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남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타락이 되었는지도 모르고 있고, 또 그 가운데 믿는다는 사람들도 타락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즉, 본연의 인간이 어떤 것인지 그 기준도 확실히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막연하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막연한 아들의 입장에서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신앙관인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하면서 바라는 소원이 뭐냐? 혹은 구원의 목적이 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참된 남자, 참된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람, 그 가운데는 남자 여자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편에서 묻게 될 때는 무슨 대답을 할 것이냐?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겠느냐? 역시 하나님도 참된 사람, 참된 남성과 참된 여성을 바라시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을 원하실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신앙자로서 최고로 바라는 것은 뭐냐? 오늘날 통일교회의 술어로 말하면 완성한 사람입니다. 완성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그것은 참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섭리의 목적을 추진시켜 나온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이것도 역시 완성한 사람인 동시에 참된 사람에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고 싶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참된 사람입니다. 참된 가운데 참된 남성과 참된 여성을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된 남성과 참된 여성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은 타락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귀는 무엇하는 것이냐? 참된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참된 사람을 찾는 데는 창조원칙에 있어서 남자를 먼저 지었기 때문에 참된 남자를, 참된 남성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하나님이 본래 뜻하셨던 소원하던 바의 목적을 달성해 보자는 것이 구원섭리의 목적이 아닐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참된 사람, 참된 남성은 어떠한 길을 가야 되느냐?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첫번 아들이 돼야 됩니다. 그 아들은 어떤 아들이냐? 양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혈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과정을 통해서 핏줄을 이어받은 아들이 돼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뭣이냐? 참된 오빠가 돼야 됩니다. 참된 오빠, 에덴 동산에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볼 때에, 아담은 해와에게 있어서 오빠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보고 싶은 참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참된 남성은 어떡해야 하느냐? 참된 오빠로서 완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문제라구요.
그 다음에 범위를 좀 넓혀서 현재의 사람들을 두고 볼 때, 무엇이 되어야 되느냐? 형님이 되어야 됩니다. 남자에게는 형님이 돼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동생이 돼야 됩니다. 즉, 여자에게 있어서는 오빠가 되든가 동생이 되든가에 귀결되는 것이요, 남자에게 있어서는 형님이 되든가 동생이 돼야 됩니다. 이것이 남자의 갈 길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냐 하면 참된 남편이 돼야 됩니다. 참된 남편이 됐으면 참된 남편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 형제가 있게 될 때는 동생도 있을 것이고 동생의 가정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참된 아저씨가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참된 아저씨가 돼야 됩니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겠느냐? 남자가 갈 수 있는 길이 어떠한 길이겠느냐? 참된 아버지가 되고 참된 할아버지가 돼야 됩니다. 이것이 남자의 갈 길이라는 겁니다.
결국은 참된 아들로서, 참된 오빠로서, 참된 형님, 참된 남편, 참된 아저씨, 참된 아버지, 참된 할아버지로서 가야 할 길이 남성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 다음엔 참된 왕으로서 가야 됩니다.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가정의 중심만이 아니라 사회를 거쳐 가지고 한 나라의 형성을 바라보게 될 때 왕으로서 가야 됩니다. 이것이 남자의 갈 길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즉, 남성이 가야 할 길은 하나님의 직계의 혈통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아들딸의 입장에서 참된 오빠가 되고, 참된 남편이 되고, 참된 아버지가 되고, 그 다음에 참된 아저씨가 되고 참된 할아버지가 되고, 그 다음에 참된 왕이 돼야 됩니다. 이것이 인류 가운데 남자로서, 남성으로서 가야 할 과정에 있어서 필요한 표준입니다.
자, 이렇게 볼 때, 이 땅 위에 과연 하나님의 뜻에 백 퍼센트 일치된 참된 아들이 있었더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러한 남성이 이 땅 위에 있느냐?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찾아나온 역사는 어떠한 역사냐 하면, 하나의 참된 남성, 하나의 참된 아들로서 올바른 자리에 설 수 있는 그 아들을 찾아나온 것입니다. 그 아들을 표준하고 지금까지 역사해 나온 것입니다. 그럼 그 역사는 뭐냐? 아들을 재창조하기 위한 역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입장에서 볼 때, 참된 아들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재창조의 과정을 거쳐가야 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세밀히 얘기하자면 한정이 없지만 그렇게 돼 있다구요.
메시아라는 존재…. 이 땅 위에 타락한 인간은 무엇을 바라느냐? 참된 남성이라든가 참된 여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참된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타락한 인간 가지고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타락했다는 말은 떨어졌다는 말입니다. 떨어졌다는 말은 정상적이 아니고 고장났다는 말이요, 병났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위치에서는 참된 사람을 바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역사시대를 거쳐 가지고 하나님의 참된 혈통과 심정을 지닌 한 아들을 엮어서 보내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고 계신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한 사명을 갖고 오는 분이 누구냐? 하나의 참된 아들이 나오기 전에는 참된 오빠도 등장할 수 없고, 참된 남편도 등장할 수 없고 참된 남자로서의 아버지도 등장할 수 없습니다. 또한 참된 아저씨, 참된 할아버지, 참된 왕도 등장할 수 없습니다. 있을 수 있어요? 하나님이 공식적으로 그렇다 그렇다 한다고 해서 세계의 대표될 수 있는 왕위까지 차지하는 참된 남성이 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아들이 나오기 전에는 '아 내가 바라던, 희망하던 남성이다' 할 수 있는 귀결점을 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참된 아들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이라는 곳은 어떠한 곳이냐? 거짓된 아들이 가서 사는 곳이 아닙니다. 참된 아들이 가서 사는 곳입니다.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구요. 참된 사람이 가서 사는 곳입니다. 참된 사람은 참된 아들이 돼야 되고, 참된 사람은 참된 오빠가 돼야 되고, 참된 남편으로서 이제 말한 그 모든 내적인 인연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참된 사람의 요소를 타락한 인간 세상 가운데 어디에서부터 찾아낼 것이냐? 타락한 인간 끼리끼리에서는 절대 찾아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빚어 가지고 만든 역사과정을 거쳐서 참된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참된 아들로 등장하는 분이 누구냐 하면 구세주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참된 아들로 등장하는 분이 구세주입니다.
참된 아들이 되지 않고는 참된 오빠가 될 수 있는 길은 안 나오는 거예요. 참된 오빠가 되지 않고는 참된 남편은 안 나온다구요. 그렇잖아요? 해와가 참되다 할 때 오빠가 참되지 않게 되면 문제가 벌써 벌어집니다.
그래 여러분은 하나님의 참된 아들을 봤어요? 천국을 가겠다는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가겠다는 사람들인데, 하늘나라는 왕이 없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나라에는 왕이 중심존재로 있어야 된다구요.
그러면 하늘나라는 어떻게 형성되느냐? 왕이 등장하기 전에, 할아버지로부터 친척의 관계를 중심삼고 참된 아저씨의 과정을 거치고, 참된 어머니 아버지의 과정을 거치고, 참된 형제의 과정을 거치고, 참된 아들의 과정을 다 거친 사람들을 내포하는 터전 위에 서는 것이 하늘나라의 왕국입니다. 왕은 맨 나중에 가서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나라 가운데는 종족이 들어가고 가정이 들어가고 다 들어간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메시아 강림과 그 재림의 목적을 이야기하는데,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완성했소? 완성했어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 위에 와서 사명을 다 했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지금 선생님의 말씀을 두고 볼 때 예수가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완성했어요? 책임 다 했어요, 못했어요? 이건 이론적으로 볼 때 못 했다구요.
언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당당히 나설 수 있었어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었어요? 사랑하지 못했다구요.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었는데 '야야, 너 죽어서는 안 된다' 하고 죽을 사지에서 끌어내어 가지고 보호해 줄 수 있는 아들이 왜 못 되었느냐? 이것은 탕감노정에 있어서 아직까지 죄에서 벗어나야 할 운명에 서 있기 때문에, 참된 아들의 자리에 못 나갔기 때문에 그를 해방시킬 수 없는 하나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죽을 때 얼굴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이론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맹목적으로 덮어놓고 믿어서는 안 된다구요. 안 그래요? 하나님이 진정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로 보낸 그 아들이 죽는데 얼굴을 왜 돌리느냐 이겁니다. 세상에 그런 부모가 어디 있어요. 우리가 그런 부모를 믿었다가 천국갈 수 있어요? 보장받을 수 있어요? 예수의 소원까지도 이루어 주지 않는데, 예수의 그 간곡한 기도까지도 들어 주지 않는데, 아들을 죽을 자리에 내보낸 그런 입장에 선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천당 가겠다 할 수 있어요? 천당갔다가도 되돌아선다구요. 그런 하나님은 믿을 필요가 없다구요.
그럼 왜 그랬느냐? 여기에는 우리 인간들이 모르는 내적 단계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직까지 최후의 탕감노정…. 병난 사람을 수술해 가지고 살리려는 사람은 그 병난 사람을 수술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 병자를 더 사랑해야 됩니다.
아직까지 병이 나 가지고 썩어져 가는 이 죄악된 세상을 완전히 구원하기 위한 책임을 짊어진 입장, 즉, 구원의 짐을 짊어진 자리에 섰기 때문에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고 갔다는 거예요. 예수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면 동네방네 쫓기고 몰렸겠어요? 가정에서 몰리고, 동네에서 몰리고, 나라에서 몰리고, 교회에서 몰렸겠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놨겠어요? 참된 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이 세상에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 있느냐는 겁니다. '나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가 물어 볼께요. 어림도 없다는 거라구요. 역사적으로 복잡한 내용이 지그재그 엉킨 것을 풀어 가지고, 그것을 다 시정해 놓기 전에는 참된 아들이 안 나오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복잡하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능력이 많으시지만 엉클어진 것을 그냥 그대로 풀어 가시는 입장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푸는 데는 하나님이 풀 수 없다구요. 인간이 풀어야 됩니다. 인간이 풀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자리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도 대신 탕감 제물삼아 가지고 그것을 연장시키는 작전을 해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연장인 것입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이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참된 남성인데 하나님이 진짜 참된 남성을 한번 만나 봤느냐? 예수님을 보게 되면, 이 모든 과정을 거친 남성이 됐어요? 못 됐기 때문에 못 만나 봤다구요. 죄인이 되어간 거예요. 신랑이 되겠다고 허덕이다 죽어간 예수는 만났지만, 신랑도 못 됐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이 땅에 와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로서,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자리를 대신하여 해와와 같은 누이동생을 지극히 사랑할 수 있는, 형제를 지극히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섰느냐? 그런 자리에 못 섰다구요. 예수의 동생들이 예수를 비난하지 않았어요? 요한복음 7장에 보라구요. '아 형님, 나타나기를 바란다면 여기 시골뜨기 모양으로 있어서 되겠느냐? 어서 사람들을 만나 가지고 선전하지' 이러지 않았어요?
예수는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못 섰습니다」보라구요. 어머니와 동생들이 제자들 앞에 와서 예수를 만나자고 할 때, 제자들이 보고하기를 '선생님의 동생들과 모친이 와서 찾나이다' 할 때 예수가 뭐라고 했어요? '내 모친과 동생이 어디 있느뇨?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모친이요 동생이다' 했어요. 그래 뜻대로 했어요, 못 했어요? 여러분 덮어놓고 믿어 가지고는 안 되는 거라구요, 주먹구구식으로.
예수가 오빠 되고 싶은 마음, 오빠의 사랑을 갖고 있었지만,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자리에서 그 사랑을 해봤느냐? 어때요? 해봤어요? 우리부인들, 해봤어요, 못해봤어요? 못 해봤던 겁니다. 예수의 누이동생이 있었을 거라구요. 그렇지만 사랑을 못 해봤다구요. 동생들을 사랑 못 해봤다구요. 사랑을 하고 싶었지만 사랑을 줄 수 없거니와 받을 수 있는 동생이 못 되었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형제를 사랑하고 난 후에 아담이 가야 할 운명의 길은 어떤 길이냐? 남편이지요?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독차지하고 난 후에는, 그 외에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단 한 사람으로서 영육을 표준해 가지고 영원한 사랑을 계약할 수 있는, 참된 부부로서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가주(家主)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예수가 가주가 되었어요? 못 되었다구요.
예수에게 '당신 소원이 무엇이요?' 하고 물어 본다면 '내 소원이 무엇일고? 나라를 찾는 것이 소원이지' 그건 나중 문제라구요. '당신 소원이 무엇이요?' 하고 묻게 되면 '나는 참된 남성이 되는 것이 소원이다.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 되는 것이 소원이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누이동생을 사랑하고 싶은 것이 소원이다' 할 것입니다. 그것밖에 없다구요.
'그 다음에는 당신 소원이 무엇이요?' 하고 묻게 될 때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 지극히 사랑받는 남편이 되고 싶다. 그 다음엔 아들딸을 사랑할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할 거라구요. 부모만 되어 가지고 되나요? 이웃 친척이 있으면 아저씨가 되고 싶다,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 종족의 족장이 되고 싶다 할 것입니다. 이것이 왈 남자의 소원입니다. 그거 틀렸어요, 안 틀렸어요?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은 빵점이예요, 빵점. 입적도 못 한다구요. 십자가에 죽었으니 잘 됐구만. 아! 독자로 보낸 것은 잘 자라서 성공하라고 보냈는데 부모의 뜻도 이루지 못하고, 소원성취도 못하고 중간에 죽어 버렸으니 그게 효자예요, 불효자예요? 노골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는 거라구요. 뭐 이런 얘기를 하니까 기성교회 목사들이 '아!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실체로 알고 있는데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졸장부로 만들어 놓다니…' 하며 야단들이라구요. 사실이 그렇다구요. 이론적으로 파고들어가면 그렇다구요. 예수가 뜻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천국에 못 가고 낙원에 가 계시는 것입니다. 낙원은 어디냐 하면 기차 타기 위해 기다리는 대합실과 마찬가지의 곳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당신 소원이 무엇이냐?' 할 때, 막연하게 '아! 신부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럼 신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할 때, '그저 믿으면 된다'라고 합니다. 이런 미친 것들이 어디 있어요? 주먹구구식으로 믿으면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믿느냐? '어떻게 믿긴 교회 나왔다가 가면 되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으려면 참된 남성을 만나기 위해 참된 신부를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러면 남자도 신부가 될 수 있어요? 남자가 신부되는 법이 있어요? 이건 덮어놓고 남자도 신부 여자도 신부,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이건 인륜도덕에도 없는 거라구요. 남자면 남편이고 여자면 신부지.
그러면 오늘날 기독교 신자는 어떤 것이냐? 신부되기 위한 것입니다. 신부돼 가지고 무엇하기 위한 것이냐? 신랑되시는 예수님을 맞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가 어떻게 신부가 돼 가지고 신랑을 맞아요? 구체적으로 내용을 따져 보게 되면 이건 허황하기 짝이 없다구요.
우리 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 남자는 천사장형입니다. 알겠어요? 여자는 신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가 해와를 빼앗아 갔기 때문에 참된 남성이 와 가지고 누구를 빼앗아 와야 되느냐? 여자를 빼앗아 와야 됩니다. 찾아와야 된다구요. 주님되시는 메시아가 이 땅에 왜 오느냐? 잃어버린 여성을 찾으러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부라는 말이 필요하고 신랑이라는 말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는 무엇이냐? 도적놈이예요. 이건 도적놈들이라구요. 도적놈들…. 예수를 죽인 것은 누구냐? 여자가 죽이지 않았어요. 남자가 죽였다구요. 성인들을 죽인 것은 누구냐? 남자가 죽였다구요. 여자가 죽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기독교는 무슨 종교냐? 신부 종교입니다. 신부 종교이기 때문에 여자 종교입니다. 그걸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목사들은 무엇이냐? 그것은 앞으로의 신부를 위한 종으로서 훈련받는 것입니다. 남자도 신부되고 여자도 신부되고, 이게 다 관계가 있는 거예요. 종이 이렇게 와서 끌어갔으니 찾아오려면 이렇게 가서 끌어와야 됩니다. 못된 의사가 죽게 만들었으니 선한 의사가 고쳐 줘야 됩니다. 그거 아니예요? 구원은 원상으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술어로 말하면 복귀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와서는 목사들만 믿다가 망합니다. 목사들이 누구냐 하면 전부 다 도적놈들이라구요. 교회를 팔아먹고 교인들을 이용해 먹는 도적놈이 된다는 겁니다. 까딱 잘못하면 도적놈이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여자들은 거기에 농락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여자 단합운동을 해야 됩니다. 이것이 지금 문제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나와 가지고 기성교회 잘 믿는 여자를 빼앗아 오는 거예요. 아이구 뭐 어떻고 어떻고 야단하고 있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자들을 홀리는 마법사라고 해 가지고 별의별 소문이 다 들리지만 그건 끌려오게 돼 있다구요. 어느 기준에 간 사람들은 끌려오게 돼 있다구요. 그러면 왜 그래야 되느냐? 타락했기 때문에 구원받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여자들의 소원이 무엇이냐 할 때, 하나님의 사랑받는 딸이 되어 오빠와 남동생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는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아주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상대적 입장이라구요.
예수님이 아들로서 이 땅에 와 가지고 외토리로 가는 것이 예수의 소원이예요?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수를 보냈어요? 어림도 없다구요.
그러면 통일교회 교인들의 소원은 뭐냐? 이상 완성이니 개성 완성이니 이런 말을 하고 있는데 완성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참된 남성이 되고, 참된 여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어 가지고 재차 부활한 생명권을 체휼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 통일교회에서는 이것을 재현시켜 공식적인 과정과 같은 길을, 이러한 가치적인 결과를 다짐시켜 가지고 이 모든 과정을 거칠 수 있는 환경, 혹은 전체 복귀의 기준을 가려 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교회를 믿는 여러분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겠다. 내 몸에 있는 사탄의 요소, 타락성을 지닌 사탄의 핏줄이 여기에 담겨져 있기 때문에 이것을 깨끗이 씻어야겠다'고 하며 역사적인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따라서 어떠한 자각을 해야 되느냐? 나는 역사적인 죄의 결실체라는 자각을 해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교인들로서 가져야 할 제 2의 소원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적인 죄인의 결실체입니다. 이 세상에 살인강도가 있거든 그 살인 강도와 여러분이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한번 생각 잘못하면 살인이 벌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조상 가운데는 살인 강도도 있을 것이고,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을 것입니다. 없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조상을 중심삼고 볼 때 선조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었지만 이때 와서 나타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또 선조 가운데는 없었지만 이때 와서 나타난 것 뿐입니다. 그런 선조들도 있고, 그런 죄된 모양의 꼴을 보이는 천태만상의 죄상이 오늘날 여러분의 조상으로부터 종족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다 연결되어 있더라는 겁니다. 안 그래요?
또, 사돈의 팔촌까지 전부 다 관계 맺어 놓으면 혼인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연결되지 않은 손이 없는 거라구요. 이렇게 보게 되면 전부 다 죄인이요. 전부 다 같은 자리에 들어가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역적의 딸을 데리고 사는 사람도 역적이지 뭐. 그렇지 않아요? 뻔뻔스럽게 뭐 아주 자기는 고자세를 하고 자랑하는 녀석들도 보면 다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참된 남성이 되고 여성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타락한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나는 역사적인 죄의 열매다'고 자각해야 합니다. '지긋지긋하다. 아이구 지긋지긋하다' 그거 느껴 봤어요? 우리 아씨들, 아줌마들 느껴 봤어요? '아, 나 아무개 집 아줌마인데, 나 어느 누구의 어머니인데' 하고 근사하게 떡 버티고….
여러분들은 역사적인 죄의 결실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회개를 해야 됩니다. 이게 통일교회를 믿는 신자로서 가려가야 할 신앙생활의 제1조입니다. 무엇의 제1조라구요? 역사적인 죄의 결실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신앙의 첫출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해야 됩니다. '아이구 내가 무슨 죄를 지었소? 나는 아무 죄도 없는데' 하지만 보라구요. 구새먹은 노송나무 가지를 보면 구새먹었기 때문에 치우침에 영향을 받고 있는데 그거와 마찬가지라는 거라구요.
여러분들은 지금 푸른 잎파리 같지만 중도에 가다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가을이 되어 열매 맺는 데 도움이 되는 그런 잎사귀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열매와는 아무 관계없는 잎사귀로서 중도에 떨어질 수 있는 잎사귀에 지나지 않는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역사적인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그래 죄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거예요. 죄, 알겠어요? 무슨 죄라구요? 역사적인 죄를 느껴야 됩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여러분들을 보게 되면, 여러분이 아무개 저렇게 저렇게 생겼군 하지만, 저렇게 저렇게 생긴 것은 현재 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낳아 준 것만으로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의 조상, 자기의 아버지 어머니 핏줄을 통해 가지고 선조의 그 무엇을 천분의 일, 만분의 일씩 받아 난 거라구요. 40조의 세포로 된 이 몸은 수천만 대 선조들의 피의 한가닥 한가닥을 다 나누어 가지고 종합해 가지고 나온 주식회사와 마찬가지라구요. 그것이 완벽하지 않을 뿐이지 그 요소는 사방으로 엉클어져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역사적인 죄를 끊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자비하게 청산해야 합니다. '목을 밟아라 이놈의 자식' 자기와 싸우라는 거예요. 자기에게 있는 권위와 권세를 다 투입해서 자기를 정복하는 데 최일선에 서 가지고 '너는 내 명령대로 해야 될 것이고 내 소원대로 해야 되는 것이다' 하면서 자기를 대해 호령하고 나서는 걸음이 신앙생활의 제일보입니다.
보라구요. 여러분의 심통들을 하얀 백지에 쭉 펴 놓고, 그것을 세밀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있어 가지고 가만히 들여다 본다면 여러분이 천국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어디 관리과장, 그렇게 생각해? 오늘 메시아의 강림과 그 재림의 목적을 아주 뭐 도도하게 강의했지만, 자신 있어요? 만일 몇억만 배 확대되는 망원경으로 먹는 것을 본다면 자빠질 거라구요. 그걸 먹고 살아요? 모르니 그렇지. 모르니 다행이지.
하나님이 그것을 눈으로 보신다면, 몇억만 배 되는 확대경보다 더 확대시켜서 볼 수 있는 눈으로 다 보시는 하나님한테 죄인이 '아이구 하나님 아버지' 하면 '예끼 이놈아' 하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라는 말이 듣기 좋으시겠어요? 거지 새끼 같은, 지옥 아랫목에도 못 갈 그런 녀석이 뻔뻔스럽게 '나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런 것 생각해 봤어요? 주제 넘게 '나 곱지요. 사랑해 주소' 주제 넘게, 건방져도 유만부동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종교에서는 '들이쳐라, 거꿀잡이 해라, 온유겸손해라, 희생봉사해라, 너희들에게 가르쳐 줄 것은 그것밖에 없다'고 그렇게 들이모는 거라구요. 그것이 올바른 교육이요, 그릇된 교육이요? 그것 밖에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길은 순응의 도리지 자주의 도리가 아닙니다. 주장의 도리가 아닙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이걸 이걸. 신앙의 도리는 무엇이라구요? 순응의 도리입니다. 자주와 대안과 변론의 도리가 아닙니다.
그건 왜? 자기를 부정해야 하기 때문에 역사를 부정시켜야 됩니다. 여기에 검정물이 있는데 그걸 시정한다고 해서 지워져요? 부정해야 합니다. 완전 부정해야 합니다. 부정될 때까지 부정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손가락이 얼마나 선하냐? 여러분의 눈이 얼마나 선하냐? 여러분의 귀퉁이가 얼마나 선하냐? 이놈의 배통이, 심통이 얼마나 선하냐? 근본 문제는 여기서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기에 부끄러움을 백 퍼센트 느끼는 자리, 눈을 뜨고 하나님을 바라보기에 이놈의 눈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온 세포가 부끄러움을 느껴 가지고 몸둘 곳을 모르게끔 천년한(千年恨)을 품고 허덕일 수 있는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 신앙자의 정상적인 궤도의 길이 아니겠느냐.
어디 길자(吉子)! 길자는 어떤가? 그렇게 되었나? 과거 유협회장 부인인 길자, 어때? 그렇게 생각해 보면 어때? 오늘 36가정 식구들도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전부 다 회개할 것이 많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런 관(觀)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제일 죽기만큼 싫어요.
성경에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는 역설적인 논리를 가르쳐 준 것은 그렇지 않고는….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그 말씀이 오늘날 이와 같은 자리에서, 심각한 입장에 있는 사람을 대해서는 이 이상 적절한 구원의 말씀이 없다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이 그렇게 심각해 봤느냐는 거예요.
나에게 조상의 피가 꿈틀거리고 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발통으로 가고, 머리통으로 가고, 팔통으로 가고, 다리통으로 지금 움직이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금식을 해서 피를 뽑아 버리는 겁니다. 죽지 못해서 이런 놀음을 하며 살아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역사적인 죄의 결실체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죄의 결실을 부정하는 이런 판가리 싸움이 있어야 됩니다. 생명을 걸고 이것을 부정시키기 위해서는 내 육(肉)의 생명을 다 죽여 가지고 부정시키고 남은 그 힘이 부활의 동기가 되어서 재차 생명을 지니고 탄생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관리, 간섭하실 수 있고 천국에 연결될 수 있는 그런 생명체가 되는 것이지, 사탄세계권내에 있는 생명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나를 역사적인 죄의 결실로 봐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러한 종족이면 종족으로 봐야 합니다. 종족은 현실로 볼 때 국가로 볼 수 있습니다. 현실의 모든 민족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수천 대의 종족의 뿌리를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연장하여 평면적으로 보면 나라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나라 이 민족의 죄를 책임져야 할 죄의 후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민족이 받을 죄의 대가(代價)를 대신 받아야 되겠다. 이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이 세계의 죄를, 현재에 받을 죄의 대가를 내가 대신 받아야 되겠다. 이런 자아를 느껴야 됩니다. 그것이 메시아로 오셨던 예수가 느낀 그런 길이라구요. 내가 살면 이 세상이 살고, 내가 죽으면 이 세상이 죽는다는 그런 경지까지 그런 자각을 한 단계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그러면 이것을 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내가 거꿀잡이로 들어가는 겁니다. 내가 거꿀잡이로 들어가고, 그 다음에도 거꿀잡이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위로 올라가든지 해야 합니다. 이 두 길밖에 없다구요. 그냥 그대로는 못 가는 겁니다. 아래로 뚫고 들어가는 길하고, 위로 비약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이 가는 길은 허황한 길이요, 아무나 못 가는 길이다는 겁니다. 아래로 뚫고 가려니 못 갈 길이요, 초월해 가려니 허황한 길입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이 가는 길은 수난의 길이요, 허황한 길입니다. 그건 왜? 현실을 이기려니…. 아시겠어요? 우리 아줌마들 알겠어요?
진정 하늘나라에 가기를 바라면 남편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구요. 그 말이 이루어져야지요. 그 말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끝날을 맞이하여 메시아이신 주님을 신랑으로 모실 수 있는 길이 없는 거라구요. 누가 원수가 되느냐? 보라구요. 남자 앞에 여자가 원수가 되고, 형제가 원수가 되고, 부모가 원수가 되고, 할아버지가 원수가 되고, 그 나라까지도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한 것들이 주체가 된 이것을 이기지 않고는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을 초월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이것을 취할 수 없습니다. 만일에 그 가운데 있는 것을 취하면, 사탄이가 가지고 놀고 장난하던 찌꺼기, 혹은 먹다 남은 꼭지를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장이기 때문에 그것을 취할 수 없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성경관은 확실하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보게 되면 그것이 이론적이 아니고 앞뒤가 맞지 않는 역설적인 논리 같지만, 역설적이기 때문에 진리의 길과 접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거 이해돼요?
현실을 이겨야 됩니다. 현실의 죄악세계를 대신해서 내가 책임지고 내가 탕감하는 동시에 이겨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 앞에 죽음이 찾아오는 거라구요. 그러니 미래를 극복해야 합니다. 미래의 죽음을 대해 가지고 지옥이냐, 천국이냐 하는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지옥가느냐, 천국가느냐 하는 것은 죽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위에서 결정해야 합니다. 결정해서 표를 끊어 가지고 가야 합니다.
역사적인 죄를 회개하고 세계적인 죄를 회개해 가지고 현실적 사탄권에서 사탄편 개인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여자로 말하면 사탄편 개인을 굴복시키고 사탄편 아들을 완전히 굴복시켜야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딸의 자격을 얻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사탄편 오빠, 사탄편 남편을 굴복시켜야 하고, 사탄편 아버지, 사탄편 할아버지, 사탄편 왕을 굴복시켜야 해와의 해방권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여러분들이 그런 것을 꿈에라도 생각이나 하고 있어요? '내가 통일교회 믿고 있으니 천국간다' 엉터리 엉터리 그런 엉터리가 없다구요. 그것이 그렇게 주먹구구로 되어 있지 않다구요. 그러므로 진정히 통일교회를 믿으려면 가정을 버리라는 말, 형제를 버리라는 말, 그게 다 타당한 말이라구요. 그렇지요?
부모를 끊고 넘어가야 됩니다. 부모를, 뒤로 빠져나가서는 이겨야 됩니다. 넘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수난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민족 앞에 밟히면서, 밟히면 길을 뚫고 나오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렇게 밟히면서 지금까지 망하지 않았다구요. 반석산을 뚫고 나갔다구요. 생명 있는 나무 뿌리는 반석도 깨고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서 비약하는 거예요. 한국에서 방해하면 방해선을 넘고 외국까지 가서 기반을 닦아 어엿이 등장하는 거라구요.
문선생이 지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구요. 천운이 가는 길을, 법도를 따라가면 누구나 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은 극복과 비약의 길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걸 간추려 말하면 신앙길은 현실에 있어서 극복과 비약 혹은 초월입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지옥에 갑니다. 천국은 못 가는 거예요. 천국은 세상을 완전히 극복한 자요, 세상을 완전히 초월한 자라야만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고 한 끄트머리만 한, 조건만 남으면 사탄이 끌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얼마나 신앙길이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나라의 군왕이 되어 가지고 이제 최후의 흥망성쇠를 앞에 놓고 신음하는 운명길보다 몇백 배 몇천 배 심각한 문제라는 거예요. 여러분의 일생이 간단하지 않다구요. 자기 일생이라는 것은 최고의 권위를 가진 만왕의 왕의 권위까지 바라보고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그 일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이 어느 정도냐?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식구라고 말하는데 언제 여러분이 오빠로서, 언제 누나로서, 언제 형님으로서, 동생으로서 하나님 이상…. '에덴 동산이 아무리 넓고 아무리 세계가 넓다 하여도 그건 다 그만 두고 너희들끼리, 형제끼리, 우리 식구 끼리끼리 사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찾아올 만해요? 하나님이 기념하고 기념뿐만 아니라 선전하고 '아무개 형제는 어디 있느냐? 그런 형제가 보고 싶어서 나는 거기 가서 살겠다'고 할 수 있는, 찾아올 수 있는 그런 형제지인연을 갖고 있느냐는 겁니다. 있어요? 지금 이보다 얼마나 더 하느냐 이겁니다. 갖고 있어요, 없어요? 빵점도 낙제점이고 50점도 낙제점이라구요. 마찬가지예요. 시험봐서 뭐해요? 귀찮기만 하지. 그렇지 않아요? 그러므로 심각한 문제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 5장 48절에 '하늘 아버지가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이 무엇 두고 하는 말이냐? 말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 당신이 보고 싶은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뇨?
한 사람으로서 아들의 사랑을 받고, 한 사람으로서 오빠의 사랑을 받고, 한 사람으로서 형님이라든가 동생의 사랑을 다 받고, 한 사람으로서 아내와 남편의 사랑을 하나님이 좋아하실 수 있는 최고 이상적인 자리에서 몽땅 다 받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아들딸을 사랑하는 참된 부모가 되고, 참된 아저씨가 되고, 참된 할아버지가 되고, 참된 군왕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여러분을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얼마나 차이가 있느냐? 그건 여러분이 잘 알 거라구요. 여러분의 양심이 잘 알 거라구요. 나는 어느 급에 있다 하는 것을 잘 알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목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말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알겠어요?
왜 화목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겠어요? 화목케 하려면 주인 이상의 노릇을 해야 합니다. 복잡한 열 사람을, 열 사람의 복잡한 것을 화목케 하려면 열 사람 이상의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화목케 하지 못하는 거라구요. 그게 그렇게 되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십자가를 대신 질 수 있는 자리에 섰느냐는 것입니다. 거기에 따라서 화목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가는 길에서만이 하나님의 아들이 생겨난다 그 말이라구요. 알 만해요?
지금 여러분들 보라구요. 통일교회를 믿는다는 사람을 가만 보게 되면 '기성교회 다니는 그 관념 중심삼고 통일교회 믿으면 되지. 교회 나가서 출석이나 하면 되지' 그저 그렇게만…. 그렇게 다녀 보라구요. 그렇게 하면 나하고 관계없다는 겁니다. 하늘과 관계없다구요.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명실공히 그러한 습관적인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지금까지 이 원리가 제시하고 원칙이 제시하는 그런 자리에서 선두에 서 가지고 달려온 사람이라구요. 내가 공석에서 하나님이 문선생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안 계시다는 것을 단언해 가지고 이 길을 가고 있는 거라구요. 그런 길을 지금까지 개척해 나온 사람이라구요.
여러분들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이 도리를 어떻게 거쳐 가느냐? 하나님 앞에 내가 사랑받겠다고 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원치 않더라도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그 길을 어떻게 찾아 나가느냐? 사랑받겠다고, 내가 무엇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절대 안 됩니다. 절대 안 된다구요. 암만 뭐 별의별 육갑을 해도 절대 안 됩니다. 원래는 성경이, 성경의 원칙이, 구원의 도리가, 섭리의 본 궤도가 뒤집어지는 거라구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대접받고자 하는 자는 대접해야 됩니다. 즉, 대접하고자 하는 자는 대접받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라구요.
내가 오늘도 얘기했지만 통일교회 먼저 나온 할머니들, 오래된 사람들 전부 다 '아! 내가 몇십 년 되었는데' 하고 머리 젓지 말라구요. 똥대가리 같은 것들…. 내색하지 말라구요, 내색.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본이 되어야지 그냥 자기를 모셔달라고 하면 누가 모셔 주나요. 침을 뱉는다구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보고 싶은 사람-남자나 여자-은 본성적인 노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찾아가야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최초의 남성,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최초의 여성, 이 둘이 만날 수 있으면 여기서부터 비로소 하나님이 '아, 이 지상에 이제부터 소망을 둘 수 있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뜻이 타락한 아담 해와보다 나은 남성과 여성을 바라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것이 재림사상을 중심삼고 메시아가 와서 신랑 신부 상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묵시록에서 말하는 어린양 잔치입니다.
어린양 잔치를 해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아버지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소원이 무엇이냐? 신랑 신부되는 것만이 소원이 아닙니다. 신랑 신부가 되어 가지고 참된 아버지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소원입니다.
이런 말 한다고 기성교회에서는 '아이구 예수님이 장가를 가?'라고 한다구요. 장가 가야지요. 예수님이 남자요, 여자요? 여기 아주머니들, 예수님이 남자요 여자요? 여자지, 여자? 틀림없이 남자라구요. 예수가 여자라고 믿는 기독교인은 하나도 없을 거라구요.
남자로 태어났으면 남자의 욕망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남자로 태어나 가지고 그냥 죽는 게 욕망이예요. 여기 군인, 남자의 욕망이 무엇이냐? 그렇게 태어나서 그냥 그대로 깨깨 말라 죽는 게 남자의 욕망이예요? 천하를 진동시켜 가지고, 거기에서 하나의 주체로서의 남성이 되어, 천하가 굽어보는 가운데 하나의 신부를 만나 멋진 웨딩마치(wedding march)를 울리고 싶은 것이 남자의 욕망이지요? 그렇지요? 대학을 가든 출세를 하든 다 거기에 귀결된다구요. 다른 것 없다구요. 대학은 다녀서 뭘해요? 여편네만 잘 얻으면 팔자가 편하고 아주 근사하게 된다구요.
그러면 예수의 욕망이 무엇이냐? 천하를 구원하는 것이다. 천하를 구원하면 뭘해요? 혼자 구원했다가 죽으면 그게 뭐예요? 그건 불쌍한 왕이 되는 거예요. 천하를 다 자기 수중에 넣었다 하더라도, '아! 천하가 전부 내 수하에 들어왔으니 나는 행복하다'고 하지 못하는 거예요. 혼자 그렇게 되었다면 '뭐가 행복해 너 죽으면 그만인데' 하는 거예요. 천하를 통일했다 하더라도, 그 옆에 거치적거리기는 하지만 아내가 있어야, 뭇 사람들이 그를 보고 말하기를 '아, 행복한 성군이요'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때를 멈추지 않고 잘한다 하지만 행복한 성군이 아닙니다. 불쌍한 성군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당당코 장가 안 가야 된다? 가야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기성교회 목사들…. 내가 미국에 가서도 이런 설교를 할 거라구요. 이놈들 콧대가 높아 가지고, 잘 믿던 전통적 기독교가 어떻게 되나 보라구요. 옥살박살 깨질 것입니다. 그저 들이제기면 제기는 대로, 왱가당뎅가당 그릇 깨듯이 깨뜨려 가지고 다시 이기는 거라구요. 그래 가마에다 넣어 가지고 다시 멋진 그릇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욕망입니다. 제 2차적인 욕망입니다. 그거 틀림없지요?
예수님 당신 소원이 무엇이요? '나는 신랑이 되고 싶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요? '그 다음에도 그거다.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것으로 그만이 아니라구요.
신랑 신부가 되어서는 뭘하느냐? 예수도 남자니까 아들딸 갖고 싶겠어요, 안 갖고 싶겠어요? 성인 할아버지라면, 남자로 태어났으면 아들딸 갖고 싶겠어요, 안 갖고 싶겠어요? 하나님도 아들딸을 갖고 싶어하시는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아들딸을 안 갖고 싶으면 그건 가짜지…. 그것은 생리적인 욕망이라구요.
그래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참된 부모로서…. 그 다음에 참된 아저씨가 되고 싶고…. 그렇지 않아요? '아, 우리 아저씨는 천하 제일이다' 하는, 조카들을 사랑할 줄 알고 친척 끼리끼리에 있어서 존경받는 그런 아저씨가 되고 싶고, 그 다음에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예요, 왕. 그래서 예수는 만왕의 왕이라고 한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 하루에 되나요? 하루에 돼요? 그것은 한 신부를 만나는 데서부터, 가정을 찾는 데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자, 이렇게 볼 때, 여러분들이 인류가 얼마만큼 죄를 지었느냐 하는 것을 이제는 대강 알 거예요.
여기 김병식, 아저씨 되어 봤나? 지금 아저씨는 되어 있지? 동생 있어? 형제 있어, 없어?「동생은 없습니다. 형님은 별세하고…」별세했더라도 아저씨라는 말 들어봤느냐는 거야. 그래 참된 아저씨 되어 봤어? 하나님이 이래야 된다는 그 아저씨 되어 봤어? 어디 대답해 보라구. 못 되고. 참된 남편 되어 봤어? 못 됐지? 또 참된 할아버지 되어 봤어 이거 전부 불합격이라구요.
자, 하나님의 이상세계는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느냐? 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백 퍼센트 선의 아들이요, 나면서부터 완전한 원칙에 합격한 그런 오빠요, 혹은 형님이요, 동생이요, 그 다음에 하나님의 사랑에 합격한 남편이요, 아버지요, 아저씨요, 할아버지요, 군왕으로 등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그런 사람이 왕 위에 나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이러한 사람들이라야 왕의 자리에 나가는 거라구요.
이걸 보면 예수가 뜻을 이루었어요, 못 이루었어요? 못 이루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예수보다 못해 가지고는 천국 못 가는 거예요. 예수보다 나아야 돼요. 그 나을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주자는 거예요. 이건 기성교회 교인들에게 원자탄보다 더 벼락 같은 소리지. 그래 누가 옳은가 두고 보자, 누가 옳은가. 누가 가을이 되면 떨어지고, 봄이 오면 꽃이 피는가 보자 이겁니다. 끝날이 되거든 우수수 떨어질 것입니다.
기독교가 가을이 되었기 때문에 떨어져 내려온다구요. 공산당 바람, 북풍 한설이 불어친다구요. 여기서 전부 다 거꿀잡이 되는 거라구요. 이걸 뚫고 나가야 됩니다. 봄날이 되거든 어엿이 꽃이 필 수 있는 그러한 희망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된다구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지금 공산당하고 뿔개질하고 있다구요. 공산당이 궁지에 몰려 가지고 궁둥이를 흔들고 머리를 숙일 수 있는…. 우리는 전진이요, 그들은 추풍낙엽과 같이…. 그건 바로잡을 도리가 없다구요.
여러분에게 죄가 있다면 무엇이 죄냐? 하나님의 아들이 못된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딸이 못된 것이 죄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누구나 죄인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원하는 오빠가 못 되고, 형제가 못 된 것이 죄입니다. 그거 맞소, 안 맞소?
그 다음에는 무엇이 죄냐? 하나님이 원하는 신랑 신부가 못 된 것이 죄입니다. 여기에 결혼해 가지고 아들딸 낳고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하나님이 바라는 신랑 신부가 못 됐다구요. 그게 죄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저씨가 못 되었고, 하나님이 원하는 할아버지가 못 되었고, 하나님이 원하는 군왕의 도리를 못 지킨 것이 죄입니다. 그러니 얼마만큼의 죄인인지를 잘 알아야 돼요.
본래 인간의 특권은 무엇이냐면 누구를 막론하고 천상 왕국 세계에 있어서 황태자로 태어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가치입니다. 공주의 권위를 갖고 태어났던 것이 본래 인간의 권위였습니다. 그런데 그 권위가 떨어졌으니 부모 앞에 불효한 사람은 그 권위를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로, 상실한 비례에 따라 가지고 불효의 낙인이 찍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불효하고 얼마나 불충하고 얼마나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상상할 만하다구요. 아시겠어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이 언제 진짜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되기 위해서, 딸되기 위해서 생명을 걸고 한번 노력해 봤느냐? 아무것도 없다구요. 이걸 볼 때 남은 것은 회개밖에 없다구요. 회개해야 됩니다. 불효하게 되어 동네방네에서 몽둥이를 들고 '이놈 때려 죽일 녀석' 할 때는 '예. 죽어 마땅합니다. 어서 치소' 하고 달갑게 받아야 용서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전부 다 빠짐없이 고생을 시키는 거라구요. 민족 앞에 핍박을 받고 세계 앞에 핍박을 받아라. 달갑게 맞게 되면, 너무 했으면, 너무 때렸으면, 열만큼 잘못했는데 백만큼 때렸으면 아흔만큼 변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치게 핍박받으면 핍박한 사람의 복의 창고문이 열려서 거꿀잡이로 핍박받은 사람에게 흘러들어온다는 겁니다.
통일교회 지나치게 반대하던 기성교회는 망한다구요. 두고 보라구요. 어느 정도까지 반대하는 것은 용허하고 있다구요. 그렇지만 지나치게 반대하다가는 자기 자체가 망하게 되고, 망하라고 하는 통일교회는 절대망하지 않습니다. 그거 이상하지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얼마나 죄인이냐 하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형제끼리 있는데 자기 중심삼아 가지고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자는 죄인이라구요. 죄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연의 남성의 갈 길, 혹은 본연의 여성의 갈 길과 하나님이 바라는 선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거기에 미합격된 각 단계, 분야에 처한 그 자체가 죄라는 것을 인식해야 되겠습니다.
여자로서의 갈 길을 여자가 잊어버렸기 때문에 천상 천하에 용납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밤이나 낮이나, 십년 세월을 거쳐서 안 되면 30년 세월을 다 해 가지고 회개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겁니다. 왜? 3시대를 거쳐오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소생, 장성, 완성을 거꿀잡이로 올라가야 되니 3시대 이상 수고의 길을 가야 된다구요.
우리가 죄인이요, 죄인 아니요? 문난영이! 죄인인가, 아닌가?「죄인입니다」뭐 유서방보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구. 유서방보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문난영이! 죄인이야, 죄인 아니야? 언제 효도해 봤어? 언제 형제를 사랑했어요? 언제 하나님을 사랑해 봤느냐는 거예요. 진정한 의미에서 언제 남편을 사랑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자식을 사랑해 봤느냐? 전부 다 타락권내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일생 동안 회개해도 끝이 나지 않는 죄의 구렁텅이에 떨어진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또, 이 타락세계에 있어서는 자기 혼자만 움직이게 되어 있지 않아요. 타락한 아담은 남성을 대표하기 때문에 아담 한 사람이 타락했지만 그 한 사람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 씨족, 국가, 세계까지 몽땅, 왕창 걸려들었다구요. 그래서 세계 인류가 되었다구요.
이것을 복귀하려면 세계를 이기고 나라를 이기고, 민족을 이기고, 그 다음에 씨족을 이기고, 가정을 이기고, 개인을 이겨야만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는 거라구요. 이것이 엄청난 과업이라구요. 이런데 주먹구구식으로 믿고 천당가겠다고…. 전부 다 낙엽이 되었으니…. 일면 보게 되면 장엄하고 근사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천국간 사람은 없습니다. 전부 다 낙원에 가 있으니 재차 낙인을 찍어서 천국으로 가야 됩니다. 이 천상법(天上法)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개인으로서 가정은 어떻게 가고, 종족은 어떻게 가고, 민족은 어떻게 가고, 이 진도를, 즉, 개인에서 가정으로 어떻게 나아가고, 가정에서 종족으로 어떻게 나아가고, 종족에서 민족으로 어떻게 나아가고, 민족에서 국가로 어떻게 나아가고, 국가에서 세계로 어떻게 나아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나아갈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구원하지 못하는 거라구요. 자기만 구원받아 가지고는 천국 못 들어갑니다. 내가 구원받아야 되고 남을 구원해 줘야 천국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대역자(代役者)가 되어 가지고 구원해 줘야 됩니다. 그렇게 구원해 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신임을 받게 되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비로소 아들의 자격을 얻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비로소 소망적인 형제의 길, 소망적인 신랑 신부의 길, 소망적인 부모의 길, 소망적인 친척의 길, 소망적인 왕의 길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과정에 서 있는 것이 오늘날 인간이라는 거예요.
만일에 여러분이 이것을 현실에서 문제시하지 않고, 이것을 타파하기 위해 여기에 정성들이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덜커덕 죽어만 보라는 거예요. 영원히 못 가는 것입니다. 영원히 못 가는 거예요. 여러분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겠지요? 알겠어요?
그러면 이 땅 위에 오시는 메시아라는 분은 어떤 존재이시냐? 메시아, 메시아는 앞에서 말한 아들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표자입니다. 메시아는 아들 중의 왕이요, 오빠 중의 왕이요, 남편 중의 왕이요, 아저씨 중의 왕이요, 아버지 중의 왕이요, 할아버지 중의 왕이요, 왕 중의 왕입니다. 전부 다 왕이예요. 역사의 기록을 갖고 오시는 분입니다, 메시아라는 분은 알겠어요?
왕이 몇 가지나 되나요? 아들로서의 왕, 오빠로서의 왕, 남편으로서의 왕, 아버지로서의 왕, 아저씨로서의 왕, 할아버지로서의 왕, 왕으로서의 왕, 일곱 가지 왕이예요. 그러한 군왕, 역사 이래에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특권을 갖고 오시는 분입니다.
그러한 분을 누가 잡아 죽였느냐 하면, 타락한 인간들이 잡아죽였습니다. 그러니 죄가 얼마나…. 그렇지 않아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인데 불구하고 여기에 가중해서 메시아를 잡아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자각하지 않고는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메시아가 그런 분이기 때문에 그런 분을 죽였다는 죄를, 메시아를 죽인 죄를 회개하지 않고는 천국 못 갑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우리 인류를 대표해서 죽은 거라구요. 또 로마는 사탄나라를 대표해서 죽인 거라구요. 이런 엄청난 죄를 지은 인간이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고는 구원의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소, 안 그렇소?
예수님은 어떠한 분으로 왔느냐? 진정한 아들로서 왔고, 오빠로서 왔고, 남편으로서 왔고, 그 다음에 진정한 아버지로서 왔고, 진정한 아저씨로서 왔고, 진정한 할아버지로서 왔고, 진정한 왕으로서 온 분인데도 불구하고 이분을 잡아 죽인 죄, 한 사람만 죽여도 용서 못 받는데, 역사 이래에 전체를 총합한 대왕의 권위를 갖고 왔던 그분을 죽인 죄는 무엇으로 용서 받을 것이냐? 용서할 법이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는 단 한 가지 길은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 가지고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 길 외에는 용서받을 길이 없습니다. 결론이 그거예요. 그래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죄인이 아니예요? 여러분 세상에서는 자기 에미 애비를 죽이면 용서 못 받을 죄인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참된 분입니다. 참된 아들이요, 참된 오빠요, 참된 남편이요, 참되 아버지요, 참된 아저씨요, 참된 할아버지요, 참된 군왕으로 온, 역사 이래에 단 한 분밖에 없는 분입니다. 인류는 그분을 죽인 사탄마귀의 원흉들이라구요. 그런 죄인이 어디 가서 골통을 들고 허위적허위적 하면서 자기 주장을 하고…. 통일교회 간부들부터 알아야 된다구요. 까놓고 얘기하면 그렇다구요.
자, 죄인이요, 죄인 아니요?「죄인입니다」그런 회개를 해야 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나왔느냐? 이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자고 나온 것입니다. 알겠어요?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자. 그러려면 어떠한 자각을 가져야 되느냐? 믿음으로서 구원얻는 그런 내용은 있다는 거예요. 어떠한 자각을 가져야 되느냐? 악한 세계를 대표한 자각을 가져야 됩니다. 수많은 왕을 대표한 자각, 수많은 남편을 대표한 자각, 수많은 아들을 대표한 자각, 그래 가지고 예수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대해서 생명을 바치겠다는 자각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죽으면서까지도 예수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가게 되면, 예수 앞에 있어서 상대적 자극이 되어 가지고 구원의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대표한 자각을 해야 합니다. 남자도 세계를 대표한 자각을 해야 되고, 여자도 세계를 대표한 자각을 해야 됩니다. 역사적인 승리의 제물이 되어야 된다는 자각, 시대적인 승리의 주체가 되어야 된다는 자각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죽였기 때문에 자각해야 되는 그런 입장에서 죽인 그분 앞에서 내가 죽어 탕감해 가지고 그분의 긍휼이 나에게 미쳐짐으로 말미암아 그와 더불어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하는 것이 원칙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가는 길은 그것을 표준해 가는 길이라구요. 잠을 자도 제일 많이 자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잠을 자는 데 있어서 역사 이래 잠을 제일 안 자는 사나이가 되겠다는 거예요. 고생을 하는 데 있어서 제일 안 하겠다는 사람이 아니라 고생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거예요. 그래 내가 안 해본 것이 없다구요. 인간이 하는 것은 못 하는 것이 없다구요. 지금까지 이 복귀도상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심각한 자리에서 고생의 길을 거치고, 민족이 반대하고 세계인이 반대하는 자리에서 그것을 당당코 헤치고 오늘의 이 승리적 기반을 닦아 나왔다구요.
만일 그것을 못 하는 날에는…. 예수님 죽인 죄도 크겠지만 오늘날 통일교회가 큰 사명을 짊어지고 가는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를 반대한 죄, 통일교회를 없애기 위해 노력한 죄가 얼마나 클 것이냐? 통일교회가 이러한 사명을 갖고 왔다면 그것이 얼마나 크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함부로 할 수 있는 교회가 아니예요.
여러분 보라구요. 통일교회 반대하던 사람 다 잘 되나 두고 보라구요. 여러분이 보다시피…. 잘 될 것 같으면 나가 보라구요. 전부 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거라구요. 그런 것을 지금도 많이 보지요? 그걸 보더라도 하나님은 살아 있다는 거예요. 그걸 보더라도 하나님은 통일교회 문선생 편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참된 남성과 죄라는 것이 얼마나 엄청나요. 여러분이 참된 남성을 찾아가야 할 인간이요, 참된 여성을 찾아가야 할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관점에서 역사적인 죄를 얼마나 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일생 동안 눈물을 흘리고 흘려도 끝이 없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 있는 내가 '아, 무엇이 되겠습니다' 난 지금까지 그런 것을 생각 안 했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라고 자랑하지 않는다구요. 원필이라든가 협회장은 앞으로 주의해야 된다구요. 말 한마디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주의해야 되는 거라구요.
이제 여러분에게 책임을 맡기고 외국에 나가 있게 되면 그 책임을 대하는, 그 책임을 맡는 자신도 그것을 대하기에 천만 두려운 것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영계를 통할 수 있는 사람은 영계의 지시를 받아 가면서, 그 내용에 문답해 가면서 지도해도 부족함을 느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가지고, 자기가 지금까지 나온 습관적인 관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구요.
또, 통일교회 교인들도 그러한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들 대해서, 그렇게 가려고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 대해서 반대했다가는 여러분 일대만 용서받지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몇 수십 대의 조상이 걸립니다. 한번 잘못하면 72대가 걸려든다구요. 그러나 한번 잘하면 선조까지 해방할 수 있는 놀음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통일교회에는 그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그래서 논산 할머니가 그런 역사를 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것을 언제나 느껴야 되겠다구요.
선생님 자신이 지금까지 한국에 있으면서 공석에 나가 가지고 '문선생왔소' 하고 자랑하는 것을 봤어요? 내가 지금까지 그늘 아래 사나이로 살아왔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 누구 만나 본 사람이 없다구요. 임자네들이나 여기 와서 만나지.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 하게 되면 뭐 굉장한 줄 알지만 굉장하지 않다구요. 평민이예요, 평민. 앉아 있으면 몰라요. 누구든지 나타나기 전에는 모른다구요. 내가 태어난 땅에서는 자랑 안 한다구요.
그렇지만 나라를 떠나 가지고 미국에 가서는 불원한 장래에 문제의 사나이가 될 거라구요. 상원 의원으로부터, 미국에서 났다는 사람으로부터 미국 전역에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제는 당당코 싸우는 거라구요. 그때는 실력적이라는 겁니다. 지금 그런 준비를 하는 거라구요.
그러한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한국에 있어서 전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서로가 희생봉사하고, 내가 미쳐질 수 있는 영향을 어떻게 나타내느냐를 중심삼고 가야 합니다. 그런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참된 사람과 죄라는 것을 언제나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오늘도 청평에 가 가지고 식을 거행하면서 몇몇 사람 지적해 가지고 얘기했지만 꼭대기가 되려고 하지 말라. 발바닥이 되라, 발바닥. 밑에서부터 시작하라 이겁니다. 발바닥에서부터 시작하라 이겁니다.
자기 자식을 가르칠 때 '너 훌륭한 사람 되라'고 가르치지 말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 이러한 길을 거쳐야 한다'고 가르쳐 줘야 된다구요. 아버지면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하고, 형이면 형으로서의 책임을 하고, 누나면 누나로서의 책임을 하고, 다시 말하면 참된 남성 참된 여성의 길을 갈 수 있는, 참된 오빠, 참된 형제, 참된 부부, 참된 친족의 인연을 가려 갈 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여러분이 되어야 순리적인 노정을 거쳐 한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이 생길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메시아를 반대하지 않아도, 죽이지 않아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를 죽인 죄, 통일교회까지 반대한 죄가 있기 때문에 용서받을 길이 없다구요. 그건 망하게 마련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그러한 관점에서 비교해야 돼요.
이러한 식구들을 보게 되면 대번에 자기 가정의 살림살이와 비교해야 합니다. 자기 여편네와 그 여인과 비교해야 합니다. 어려운 자식들이 있게 되면 자기의 자식들과 비교해야 합니다. 충신은 자기 자식을 제쳐놓고 그 나라의 백성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걸 할 줄 알아야 된다구요.
이것을 알고, 여러분이 선생님 안 계시는 동안 이러한 관점에서 노력하게 되면, 틀림없이 통일교회는 발전할 것이고 여러분은 말할 수 없는 진전을 할 것입니다. 교회에 대해서 충성을 하라 하지 않아도 안 할 수 없다구요. 여기는 형제의 인연을 맺고 살 수 있는 곳이요, 친족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의 중심존재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라를 치리할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많은 무리일수록 우리는 화합하고 통일해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한 나라를 형성해야 됩니다. 또 우리는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가기 때문에 동쪽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내가 서쪽에 있으니 동쪽과 관계없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늘나라는 동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입체적으로 돌아간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가 나요, 내가 그가 될 수 있는 이런 이상적인 세계를 향해 가기 때문에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게 여러분이 하나되어서 교회를 위해 움직여 주기를 바라겠어요. 아시겠어요?「예」죄인 된 사람은 큰소리를 못 하는 거라구요. 그저 밤이나 낮이나…. 여러분 그렇잖아요? 뭣이 답답하게 막혀 있지 않아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그저 남모르는 사이에 고요한 곳을 찾아들어가 명상을 하면서 하나님과 의논하고 싶고 해결하고 싶고 말이예요. 인간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불어 단판짓고, 도리어 자연을 그리워하고 도리어 하늘을 그리워하면서 일구월심 본연의 인간을 그리워하면서 가는 길이 신앙길이 아니냐. 자기를 위하는 길은 사탄의 길입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넓고 넓은 광야에서 하나의 방향을 가리지 못하게 될 때는 죽음이 앞을 막는 것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로 미루어 보아 저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방향성이 제시되게 될 때는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마찬가지로 섭리의 노정을 생각해 볼 때에, 황막하고 적막한 광야와 같은 길이 섭리의 길인 줄 알고 있습니다.
막연한 표준뿐만 아니라 확실한 표준을 갖고 거기에 적응할 수 있는 내 개체를 갖지 않으면 이 넓은 길을 탈출할 수 있는 자기가 못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는 비상한 관심과 심각한 자체를 발견하여 그 목적을 향해 노력을 투입하는 데 불철주야 계속적인 노력을 가하는 것을 흥미와 취미로 알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통일교회가 오늘 이 자리까지 나오기 위해서는 많은 눈물과 억울한 고빗길을 많이 거쳐왔습니다.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불쌍한 처지에 놓일 적마다 당신이 찾아와서 인도해 주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 나라와 이 민족이 지금 생사의 기로에서 판가리를 하며 가려가야 할 국가적 운세를 아버지께서 직시하실 때에…. 오늘날 통일교회 저희 자신들도 이러한 시대권내에 있어서 당신이 원하는 승리의 기치를 드높이 들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시대적 사명이 저희들 앞에 놓여져 있다는 것을 재삼 느끼지 않을 수 없나이다.
그러기에 저희들은 강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은 용맹스러워야 되겠습니다. 끝까지 참고 이겨야만 되겠습니다. 죽음이 연이어 자기를 몰아친다 하더라도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자주력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당신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의지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실천궁행하는 개체가 되고 하나의 단체가 되어 하나의 교회를 형성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그것을 표준하고 훈련을 해왔습니다. 이러한 훈련을 받은 저희들은 지친 사람들이 아니옵니다. 지금까지 받은 훈련 기간은 내일의 출발을 예고할 수 있는 재료를 수습하는 기간인 것을 알고 또다시 극복을 다짐하고 추구해 나가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며칠 후에는 싸움의 고개를 넘어 미주 대륙을 향하여 또다시 출발해야 되겠습니다. 거기에는 고달픈 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자비한 투쟁의 행각의 노정이 연속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가두에서 피곤하여 쓰러질 환경에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옵니다. 생명을 바치기로 각오한 자리이기 때문에, 죽기 전에 가야 할 운명의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라도 출발하여 최후의 승리의 영광을 아버지의 뜻과 더불어 귀결지어야겠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귀결짓느냐 하는 것이 필생의 소원인 것을 아시는 아버님이시여, 가는 길을 당신의 뜻 가운데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여기에 남겨 놓고 가야 할 이 한국의 어린 자녀들을, 아버지 지켜주시옵소서. 맡길 자라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 누구도 없습니다. 당신이 맡아 주시옵소서. 책임을 맡은 자가 책임을 못 하거든 아버지께서 징계의 채찍을 내리시옵고, 그 일을 못 하거든 막으시옵고, 당신에게 합당한 사람을 세우시어 이 길을 이끌어 갈 수 있게끔 지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제가 이 자녀와 교회를 사랑하지 못해도 아버지께서 대신 사랑해 주시옵고 지켜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불철주야 생명의 인연을 가지고 천상세계를 향해 달려가는, 하나의 인연의 줄을 타고 가는 당신의 아들딸이 있거들랑 그들을 지키시옵고, 고이고이 보호하시옵소서. 다시 만날 때까지 염원의 한 날을 맞게끔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길은 그 누구를 위해 가는 길이 아니옵니다. 그 누구를 위해 자신을 당신 앞에 맡긴다고 맹세한 것이 아니옵니다. 오로지 당신으로 말미암아, 당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당신을 위하는 데서 살고, 당신을 위하는 데서 죽는 것이 저희들의 의무요, 본분인 것을 확실히 아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금후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무리 어려운 자리에 있더라도 당신이 원하시는 뜻과 길은 기필코 개척된다는 것을 제가 알고 있사오니 이 한국 땅에 있는 식구들을 지켜주시옵소서.
어려운 자리에서 신음하고 수난길에서 고통을 극복하면서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이 되고, 효자가 되고, 충신이 되고, 열녀가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자들이 있거들랑 기필코, 아버지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그러할 때 찾아오신 아버지는 살아 계신 아버지인 것을 제가 알기 때문에 그러한 자리에 있는 자녀가 있거들랑 저 이상 당신이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을 저 스스로 알고 있나이다. 맡으시옵고 인도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가는 길 오는 길을 가려가면서 당신의 영광의 심정을 필생의 노정 위에 고이 다져 가지고 다니게….
선한 것만으로 당신 앞에 봉헌을 하고, 이 땅에 태어나서 빚을 지지 않고 빚을 지워 당신 앞에 봉헌해 가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옵고, 개인이 되게 하여 주옵고, 자체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만만사의 영광과 사랑이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