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중대한 기간의 마지막 해로 접어드는 해입니다. 더욱이나 봄절기라는 이 기간은…. 지나온 해도 중요한 기간인 것은 물론이지만 금년도 역시 천적으로 중요한 의의가 있는 기간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이렇게 모이게 했습니다. 일단 여러분이 여기 모였으면 모인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과거의 여러분이 아닙니다.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여러분으로서 생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이런 것을 말씀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자신으로 말하자면 `나'라는 것 즉, `나는 누구였던가'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하고자 하니 새로운 각오 밑에서 들어 주기 바랍니다.
역사나 혹은 전통은 각 종교를 중심삼고 달리 거쳐왔지만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하나의 줄거리를 갖고 나왔습니다. 그 줄거리라는 것은 타락된 죄악사회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한 줄거리 밑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창조이념으로 보게 될 때는 무한히 큰 존재였으나 우리 선조의 실수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난 후에는 지극히 천하다면 천하고 지극히 무가치하다면 무가치한 존재로 떨어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자신 한 개체를 두고 보게 될 때, 이 한 개체가 오늘날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단순한 개체가 아닙니다. 이개체에는 역사성이 깃들어 있고, 더 나아가서는 이 시대와 미래 전체를 중심삼고 인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이것이 비단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의 인연만이 아니라 앞으로 타락한 이 인류를 복귀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중심삼고 인연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에게 있어서는 자기 한 개체가 자기 개체로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개체는 지극히 엄청난 환경에 놓여진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한 자체라는 것은 타락의 후손이 된 연고로, 즉 우리 자신들은 원죄를 벗지 못한 후손이 된 연고로 타락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우리 선조로부터 지금까지 하늘 앞에 말할 수 없는 죄의 인연을 상속받아 오고 있습니다. 끝날이라는 한때를 세워서, 여러분들을 대표적인 현재의 입장에 세워 놓고 그 죄에 인연이 된 것을, 모든 타락의 인연을 종결지어야 할 하늘의 섭리가 있는 동시에 인간으로서 응당히 책임져야 할 문제가 남아져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소망하고, 또 이것을 해결할 중대한 책임적인 분야에 있는 , 죄의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할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느끼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자신은 오늘날의 나로되, 인연되어 내려오는 `나'라는 것은 아담으로부터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는 하늘의 뜻 앞에 세워진 수많은 사람을 대신한 내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섭리의 뜻을 대신하여 하늘의 뜻을 받들지 못하고 하늘을 서럽게 했던 모든 존재들과도 역시 내 자신이 인연을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나'라는 것은 선한 입장의 일면도 접할 수 있고, 또 선과 배치되는, 반대되는 입장의 일면을 내가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기로에서 하나를 완전히 청산하고 하나의 선한 면에 내 자신을 세워 악을 청산한 아들로서, 악에서 돌아서서 선을 향하여 환희의 심정을 갖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입장에 처한 `나'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우리들에게 이 사명이 있는 연고로 결국 여기에 모인 여러분 자신들이 이러한 사명을 감당해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내 자신이 이제 움직여야 할 내 행동에 있어서 이 행동도 지금까지의 행동과는 달라야 되겠고, 또 내가 지금까지 마음으로 생각하거나 혹은 어떠한 목적을 향하여 싸우는 입장에 서더라도 과거와는 달리 좀더 선하고 좀더 하늘이 기뻐할 수 있고 하늘이 믿을 수 있는 이러한 내 자신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자신이 되지 않는 한 지금까지 하늘의수고 앞에, 혹은 고대하고 있던 소망 앞에 우리들은 제 2차적인 배반자가 될 수 있으며, 도리어 하늘이 나를 대하여 소망하시는 그 기준 앞에 실망을 가져다 드릴 수 있는 입장에 서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분별시켜서 이제 여러분 자신을 여러분 자신의 입장으로만 세울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지 아버지 입장의 인연과 더불어 연결시키어 나는 나만으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대신하여 있고, 우리 선조들이 실패하지 아니한 입장을 지켜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늘 앞에 배반하던 나였으나 이제 이 시간부터 여러분 자신들은 배반을 하는 자신이 아니요, 배반의 반대 입장에 서서 하늘 앞에 충성을 하고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 여러분 자신으로서 책임을 져 하늘 앞에 다시 수고의 길을 남기지 아니하는, 자신으로 하여금 청산지을 수 있는 여러분 자신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 자신들이 되지 않는다 할진댄 여러분들이 여기에 모인 의의는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이 여기에 모인 이상 이제 `나는 누구였던가'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늘 앞에 어떠한 면을 찾아보게 될 때에도 용납을 받을 수 없고, 세움을 받을 수 없고, 하늘의 축복이라는 명사 자체도 바라볼 수 없었던 부족한 자신이었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운세를 대함에 있어서 우리의 몸과 마음 전체가 하나님의 마음 앞에 용납받을 수 없는 나 자신인 것을 여기에서 느끼면 느낄수록 아버지 앞에 더욱 내 자신을 몽땅 바쳐 드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 모든 소원이라든가 요구라든가, 혹은 사적인 감정이나 내용을 첨부시켜 가지고 여기에 나타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모든 것을 몽땅 바치고 `나는 공의의 입장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는, 선과 악에 있어서 이것을 분립시켜야 할 책임적인 사명을 할 수 있는 내 자신이 돼야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늘이 여기에서 이 일을 감당해 달라고 솔직히 내맡길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지 않는 한 이제부터 21일 기간을 움직여 나가는 데 있어서 하늘이 요구하는 뜻을, 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여러 가지 지장이 있으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무(無)입니다.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죄로 말미암아 내 자신을 찾을 수 없던 과거의 모습이었으니 이 과거의 모습을 이제 이 시간서부터 매장해 버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미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늘 앞에 용납받을 수 없는 자신이니 하늘이 어떠한 조건을 세워서 우리에게 축복의 명사를 세울 수 없었던 우리들이라는 것을 알고, 또 그러한 선조의 혈통을 받고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입장에 있었던 자신인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하늘의 긍휼만 바라며 맡기고, 선과 악의 분별된 입장을 하늘이 친히 책임져 주시는 가운데서 여러분은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선한 편으로 옮겨 가겠다는 각오와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각오와 신념을 갖지 않는 한 여러분은 현재 상태에서 앞으로 하늘이 요구하는 그 뜻 앞에 해결의 어떤 조건을 세워 나갈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무(無)의 상태예요, 무의 상태.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이 아담가정을 다시 한 번 회고해 보며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을 서럽게 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리게 될 때 가인이 순종치 않고 아벨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하늘 앞에 서러움을 남겼다는 것을 우리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노아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슬펐던 사실, 함을 중심삼고 슬펐던 사실, 아브라함을 중심삼고 슬펐던 사실, 모세를 중심삼고 슬펐던 사실, 세례요한 혹은 예수를 중심삼고 슬퍼했던 모든 사실, 예수 이후 2천 년 동안 지금까지 예수와 성신의 역사를 협조해 나오던 수많은 성도들이 하늘의 뜻 앞에 있어서 슬픔의 조건을 맺었던 그 원통한 사실들을 여러분 자신들이 오늘 이제부터 어느 한 때 어느 한 순간이라도 마음에서 잊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원통하였고 분하였던 이 한 사실을 오늘 우리 자신들이 탕감하고, 분하였던 모든 천적인 한을 우리들이 제물 됨으로 말미암아 해원해 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이 아버지의 뜻 앞에 자기 자신을 바치는 마당에 서게 될 때 여러분 자신들은 어떠한 존재로 바쳐야 되느냐? 아담의 슬펐던 모양으로 바쳐야 되겠고, 아벨의 슬펐던 모양으로 바쳐야 되겠고, 노아의 슬펐던 모양과 함의 슬펐던 모양,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모세, 혹은 지금까지 역대 우리의 모든 선조들이 슬펐던 모양을 대신해 여러분이 바쳐야 되겠습니다. 그 바친 자체가 슬픔으로 보답되는 것이 아니고 슬픈 면을 탕감하여 다시 한 번 새로운 소망의 한 점이라도 내 자신을 세워서 남겨 줄 수 있으며 지닐 수 있게 세워 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들이, 뜻 앞에 있어서 책임 못 하였던 우리 선조들의 슬펐던 그 모습을 느껴 가지고…. 내 자신이 노아의 입장에서 슬픔을 절절히 느끼고, 아벨·아브라함·모세·예수, 혹은 지금까지 역대 우리 선조들이 슬퍼하였던 그 모든 슬픔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자리에 서서 하늘의 슬픔의 마음을 다시 나로 말미암아 슬프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슬픈 마음을 체휼하면서 `나는 아담과 같이 되지 않겠습니다. 나는 아벨과 같이 되지 않고, 가인과 같이 되지 않겠습니다. 노아나 함과 같이 되지 않겠습니다. 또,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모세, 혹은 세례 요한과 예수와 같이 되지 않겠습니다'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오늘날 우리 통일 신도들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뜻을 대신하여 여기에 불충성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나는 저런 무리와 같이 되지 않겠습니다'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역사적인 우리의 선조들의 모든 슬픈 면을 비교하여 슬픈 입장에 설지라도 내 자신은 슬펐던 선조들의 그런 위업을 상속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염려를 남겼던 선조의 위치를 박차고 나로 말미암아 슬플 수 있는 환경을 돌이켜 다시 내 자신이 하늘 앞에, 선조들이 충성하지 못한 충성의 일점을 세워서 나로 하여금 새로운 면에서 하늘의 소망의 일점을 남겨 주는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마음을 여러분들이 가져야만 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 그런 마음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런 입장에 내가 섰다 할진대는 여기에서 하늘 앞에 나선 우리들이 호소해야 할 것은`아버지여, 아담을 대신하여 당신이 주고 싶었던 심정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슬픈 마음으로 아버지는 돌아서서 갔지만, 아담을 대신하여 슬플 수 있는 입장에 섰던 나였으나 슬픔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아들이 되지 아니하고 슬픔의 자리에 설지라도 슬픔의 아버지를 내 자신이 환영하여 나로 하여금 그 심정의 인연을 다시 연결시키겠사오니 축복의 인연을 남겨 주고 가시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 마음은 아담만이 아니라 가인·아벨·노아·함, 혹은 역대 우리의 선조들이 그런 입장에서 하늘과 심정적인 인연을 맺으려 했던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서러워하는 입장에 있는 하늘을 이해해 드리고 그런 하늘의 입장에 심정적 기준을 다시 한 번 연이어 가지고 역사적인 심정을 상속받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을 져야 할 나라는 것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슬픈 면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선조들의 모든 슬픈 면을 제거해 버리고, 심정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우리의 선조들이 하늘의 심정적인 위업을 상속하지 못하였던 그 분야를 상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담가정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이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은 아담된 입장에 있지만 아담이 아닌 것입니다. 해와가 될 수 있는 입장에 섰더라도 타락한 해와가 아닌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이 아니요, 타락한 해와가 아니요, 혹은 가인과 아벨적인 입장에 섰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는 가인이 아니요, 가인이 죽이려고 하는 아벨이 아닌 것입니다. 노아가 아니요, 혹은 함이 아니요, 역대 여러분의 선조가 아닌 입장에 서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심정의 위업을 받아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담가정으로부터 아벨에게로 이것을 연결시킬 수 없고, 아벨에서부터 노아가정으로 연결시킬 수 없고, 노아가정으로부터 함, 함으로부터 아브라함,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 이삭으로부터 야곱, 야곱으로부터 모세, 모세로부터 예수까지 연결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들은 역사적인 면에 있어서 말할 수 없이 심정적으로 갈라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담가정에서 갈라 나왔고, 노아가정에서 갈라나왔고, 아브라함가정에서도 갈라 나왔고, 모세가정에서도 갈라 나왔고, 예수님을 중심삼고도 전부 다 갈라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갈라 나온 심정적인 인연을 오늘날 우리들은 아담으로부터 연결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런 책임을 땅 위에 있는 , 오늘날 끝날에 있는 우리 성도들 각자가 책임을 했다 하는 조건을 반드시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적인 위업을 상속받았다 할 수 있는 입장을 세워야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의 책임이요, 또 이러한 책임을 전체 앞에 감당시켜야 하는 것이 여러분을 지도하고 있는 선생님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지금까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느냐? 아담가정에 있어서 아담이 하늘 앞에 슬프게 했던 내용을 탕감해야 되겠고, 슬프고 애달픈 마음을 갖고 심정적인 위업을 상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해야 됩니다. 그래서 아담가정만이 아니라 노아가정을 거치고 아브라함가정을 거치고 모세가정을 거치고 예수 이후 지금까지 역사적인 모든 심정의 인연을 거쳐 가지고 비로소 승리했다는 , 역사적인 슬픔을 탕감하여 하늘이 심정적인 위업으로 상속해 주시고자 했던 그 모든 것을 상속받았다 할 수 있는 승리적인 기준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여러분들이 배우고 있는 원리적인 내용이요, 이 원리적인 말씀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땅 위에서 싸워 나오는 내용이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역사적인 모든 슬픔을 제거하고, 하나님이 각 시대 시대에 우리의 선조를 찾아와서 상속해 주고 싶었던 심정의 위업을 지금까지, 아담가정으로부터 역사적인 종말까지 연결시켜 하나의 승리적인 심정의 실체로서 하늘땅 앞에 내세우고자 하는 그 자체가 무엇이냐? 그것은 하늘땅 혹은 모든 인류가 바라고 있는 재림의 이상, 즉 참부모의 이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참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참부모를 완전히 여러분들이 상속받을 수 있고, 참부모를 여러분의 부모로서 모실 수 있으며, 참부모의 해원을 여러분의 해원으로서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서지 않으면 하늘의 축복, 혹은 상속이라는 명사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누구냐? 하늘 앞에 말할 수 없는 배반자인 나였고, 하늘 앞에 용납받을 수 없는 나였고, 지금까지 역사적인 면에 있어서 세움받을 수 없는 나였으나 오늘 이러한 탄식의 조건을 탕감하여 역사적이고 심정적인 위업의 실체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 앞에 대신 줄 수 있는 시대적인 환경을 마련해 놓고, 이 환경 위에 하늘과 땅과 온 인류를 대신하여 실체의 부모의 자격을 가질 수 있는 그 실체의 부모야말로 여러분의 심정의 위업의 실체요, 탄식과 한의 모든 것을 청산할 수 있는 중심의 존재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부모를 여러분들이 완전히 상속받아야 돼요.
단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참부모요, 인류가 바라던 참부모요, 하늘땅이 고대하던 참부모는 역사적인 해원을 하고 하나님의 심정적인 위업을 상속받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오신 분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참부모를 다시 상속받기 위하여 찾아온 사람이 우리라는 것, 나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면 이런 부모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슬픔은 다 모를지라도 부모의 슬픔의 일면을 체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땅을 새로 찾기 위하여 하늘이 해온 수고도 물론 알아야 되겠지만, 그건 다 모르더라도 땅 위에서 수고하신 참부모의 심정적인 인연이 어떻다는 것과 슬픈 내용이 어떻다는 것을 어느 일면이라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 자신들은 그분과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일치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가 줄기라면 여러분들은 가지가 되어 있다는 것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슬픔은 여러분의 슬픔이요, 그의 소원은 여러분의 소원이요, 그의 싸움은 여러분의 싸움이니 그에게 상속된 위업은 여러분의 위업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번 21일 기간에 있어서 수련을 받고 어떠한 입장에서 문답을 하더라도 모든 그 중심 문제에 있어서는 참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내 자신이 하나된 입장에서 답을 하고, 하나된 입장에서 생활을 하고, 하나의 대신된 입장에서 이러한 기간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간을 갖지 않는다 할진대는 여러분 자신들이 여기에 참석한 것은 아무런 효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여러분 자신들이 이런 입장에 서야 할 자신이니 하늘땅 앞에…. 이제 우리들은 되돌아 찾아 올라가 아담가정에 있어서도 참부모를 대신한 나요, 아벨 앞에 있어서도 참부모를 대신한 나요, 노아가정에 있어서도 참부모를 대신한 나요, 아브라함가정에 있어서도 참부모를 대신한 나요, 모세가정에 있어서도 역시 참부모를 대신한 나요, 예수님 앞에 있어서도 역시 참부모를 대신한 나요, 더 나아가서는 하늘과 땅 앞에 있어서 참부모를 대신한 나라는 것을 확실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는 한 여러분들은 여기에 축복의 명사를 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남자는 아버지의 분신으로서 여자는 어머니의 분신으로서 세움받아야 할 자신이니 아버지 어머니의 분신된 자신 위에는 하나님의 눈물이 젖어 있고, 아버지 어머니의 눈물이 젖어 있고, 지금까지의 선조들의 눈물이 젖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눈물이 젖어있는 이 한 자신이 하늘 앞에 불리움을 받고 택함을 받는 입장에 서게 될 때 그 눈물의 가치를 탕감해야 되겠고 슬픔의 가치를 탕감해야 될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그렇기 때문에 자기 일신을 세워 `내가 무엇 무엇, 혹은 내가 이러 이러한 과거를 가졌는데 어찌하여 나는 하늘이 축복을 안 해주느냐? ' 하는 아무런 내용을 가질 수 없는 우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몽땅 맡겨 놓고 `우리 자신의 몸 마음은 전부 다 아버지의 몸 마음으로서 완전히 접붙여 주시옵소서. 혹은 내가 부족하거든 때려서라도 그런 자리에 세워 주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기간에 있어서는 여러분이 과거로부터 지금, 혹은 미래까지 전부를 걸어 놓고 참부모의 마음과 참부모의 심정과 참부모의 실체, 혹은 참부모의 모든 말씀을 중심삼아 가지고 완전히 접붙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기간으로 여러분들이 지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축복받은 선조들과 가정을 대신하여 축복받은 분들이 있을진대, 참부모를 대신하여 그들도 역시 축복을 받았으니 축복받은 그들 앞에 여러분들이 어떤 면에서도 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해야 될 것입니다. 축복받은 그들 앞에 있어서 더욱이나 내 자신을 하늘 앞에 보여줄 수 있는 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오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과거에 축복받은 형님 혹은 누나들이 책임 못 한 것이 있을진댄 여러분 자신들이 그들의 책임까지 질 수 있는 각오와 신념을 갖지 않는 한 앞으로 이 사탄세계와 대결하여 싸워야 할 우리의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 `과거의 내 자신은 부족하였으나 이제부터는 부족한 내가 절대 될 수 없다' 하는 신념을 가지고 여러분이 이 기간에 수련과정을 거쳐 주길 부탁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어떠한 여건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이 기간에 수련을 하는 중요한 목적은 무엇이냐? 참부모를 대신한 자로 서야 할 내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수련의 목적이요, 이 21일 기간을 지내는 목적입니다. 이러한 수련과 이러한 신념을 갖지 않는 한 축복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한 `나'지만 이 기간은 하늘이 내 자신이 다시 찾아질 수 있는 , 제2 부모의 입장에 세워질 수 있는 조건적인 은사를 허락하는 기간이니, 이 허락한 기간에 있어서 여러분은 이것을 완전히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기를 결의하고 여러분 자신들이 서로서로 협력하고 서로서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면서 이 21일 기간을 지내 주기를 부탁합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은 내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아버지 대신의 입장에 서야 되겠고, 여자는 어머니 대신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목표 밑에서 그 기준을 갖는 것이 먼저예요. 그 기준을 갖지 못하였을 때는 아무것도 안 되는 거예요. 그러한 기준을 갖기 위해서, 역사적인 해원과 심정적인 상속을 받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부모의 심정을 체득하고 형제들의 심정을 체득하여 하늘이 축복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간으로 가져 주기를 부탁합니다.
아버님, 나라는 것은 하늘 앞에 용납받을 수 없는 나인 것을 알았고,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담이 타락할 때 하늘의 슬픔을 남겼던 나인 것을 알았고, 그날부터 당신에게 복귀의 한을 품으시고 무한한 고통의 길을 걷게 한 나였음을 알았습니다. 타락의 한이 있는 동시에 복귀의 한이 남아졌고, 복귀의 한이 있는 동시에 부활의 한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늘은 슬픔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지금까지 슬픔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 슬픈 인연을 내가 대신 상속하여, 슬픈 자로 서 가지고 하늘을 다시 슬픔의 자리로 돌려보내는 내 자신이 돼서는 안되겠습니다. 역사적인 슬픔을 상속받아 이 슬픔을 내가 책임지고 아버지의 본연의 아들로, 다시 제2소망의 실체로 서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러한 내가 되지 않으면 하늘의 심정적인 축복의 인연을 나로 하여금 연결시킬 수 없고, 이것을 연결시키어 후대의 계대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그걸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기 위해 부족함이 없는 자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어떠한 면에서 보더라도 저희 자신은 부족한 모습이옵니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수 있는 저였으나, 이제 참부모의 공로로 말미암아 심판적인 기준을 세워서 말씀심판, 인격심판, 심정심판을 갈라내지 않고는 축복의 인연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들의 말씀 실체도 참부모요, 인격 실체도 참부모요, 심정의 실체도 참부모인 줄 알았습니다. 참부모는 모든 심판의 절대적인 기준 위에 섰습니다. 말씀도 그로 말미암고, 실체도 그로 말미암고, 심정도 그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께서 이 하늘땅을…. (녹음이 잠시 끊김)
축복의 인연을 가져 다시 심판을 할 수 있는 자격자가 없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 하늘이 수고한 모든 것을 합하여 축복받기 위해 모였사오니, 하늘이여, 여기에 각별한 은사를 베푸시옵고 각별한 섭리의 심정을 가하시어서, 이날부터 당신이 염려하시던 그 마음을 푸시옵시고, 이들로 하여금 심정의 인연을 펴시어 운행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의 마음 가운데 새로운 결심을 하여, 과거의 나로 돌아가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옵고, 새로운 나로서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품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약속과 축복의 인연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당신의 아들딸로 연마시킬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수련기간이 되게 하여 주옵고, 혹은 명령할 수 있는 시험 기간이 되게하여 주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바라시는 선의 기준, 당신이 찾고 있던 소망의 실체들로서 나타나기에는 저희들이 부족한 모습이었사오나 긍휼의 사랑으로 용납하시어서 저희들을 부르셨으니 모든 미비한 것을 굽어살피지 마시옵고, 아버지, 이들로 하여금 당신이 허락할 수 있는 생명적인 인연과 당신이 허락할 수 있는 승리적인 인연과 당신이 허락할 수 있는 심정적인 인연을 세우시옵소서. 사탄이 저희들을 엿보고 있사오니, 아버지, 엿보는 모든 참소의 조건을 막으시어서 축복의 손길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날부터 남아진 기간을 아버지께서 친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고, 생명적인 인연을 두터이 하시어서 이 기간에 다시 성령에 성별을 가하시어 아버지의 약속된 실체로 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이 모임을 위해 지방에 널리어서 외로운 심정을 갖고 기도하는 자들이 있사옵니까? 있사올진댄 같은 은사의 부류들로 그들을 보호하여 주옵고, 같은 은사의 손길로 그들을 연결시켜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 시간 이후에 남아지는 모든 절차 위에 있는 당신의 전권의 행사가 이들 위에 같이하여 주옵고, 생명의 움직임이 이들과 더불어 인연 맺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 자신들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다시 한 번 재분석하면서, 아버지의 심정의 실체가 되기 위한 입장에서 저희들이 마음과 몸을 다시 한 번 단속하여 아버지 앞에 고스란히 바쳐 드릴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
<말씀 요지> 금년은 천적으로 의의가 깊은 3년 기간 중의 마지막 해입니다. 금년의 봄철은 더욱 중요한 시기입니다. 지난 2년이 그러했듯이 금년도 천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는 해입니다. 여러분이 일단 이 자리에 모였을진대 전체 식구를 대표하였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마치는 날까지 무사히 지내 주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드릴 제목은 ‘나는 누구였던가’입니다. 여러분은 각자 다르게 살아왔고, 종족은 그들의 전통을 중심삼고 다른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공통된 점은 죄악사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으로 볼 때 원래 ‘나’라는 존재는 무한대의 가치를 지닌 존재이지만 현재의 나는 무가치한 존재입니다.
개체 하나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관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자기 한 개체는 자기 한 개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 개체입니다. 원죄를 벗지 못한 후손이요, 죄의 인연을 상속 받은 ‘나’입니다. 그러기에 나에게는 타락의 인연을 종결지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아담 이후 역사를 거쳐오면서 등장하였던 수많은 섭리적 사명자들의 대신체입니다. ‘나’는 선한 입장과 그와 반대되는 입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제는 죄악을 청산하고 오로지 선의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죄악이 청산된 내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나를 청산하여 어느 한때에 가서는 선의 기준을 세워 아버지 앞에 나아가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는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지 않는 한, 수고한 하나님 앞에 배반자가 되고 실망을 드리게 됩니다. ‘나’는 나만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은 선조의 입장에도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간부터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하나님께 수고를 끼치지 않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는 한 여기에 모인 의의가 없습니다.
나는 누구였던가? 축복이라는 명사를 바라볼 수 없었던 내 자신입니다. 그러한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아버지 앞에 의탁해야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사적인 것이 전혀 없는 순수한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곧 나에겐 아무것도 없다는 입장에서 내 자체를 온전히 아버지 앞에 내맡겨야 합니다. ‘나’라는 존재는 없습니다. 과거의 나는 용납받을 수 없는 모습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선과 악을 책임져 주시고 선으로 옮겨 갈 수 있도록 무(無)의 자리에 서도록 해야 합니다.
아담이 타락으로 하나님을 서럽게 한 사실, 가인이 아벨에게 순종치 않은 죄, 노아를 중심한 섭리에 있어서의 함의 실수, 아브라함을 중심한 곡절의 역사, 모세를 중심한 슬픔의 역사, 예수를 중심한 한의 역사, 이러한 원통하고 분하였던 역사와 여러분 자신의 입장까지 탕감해야 합니다. 아담의 슬펐던 일과 아벨의 슬펐던 일, 노아와 함의 슬펐던 일, 아브라함이나 모세의 슬펐던 일을 대신 탕감하여 하나님께서 소망으로 바라보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아담이나 아벨, 노아, 아브라함, 모세, 또는 예수의 사정과 심정을 체휼하고 ‘아버지, 나는 그들의 입장처럼 되지 않겠습니다.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의 처지와 같이 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무리가 되지 않겠습니다.’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선조들이 하지 못한 충성으로 하나님 앞에 소망을 돌려드리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여, 아담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축복의 인연을 남기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의 사명자들이 맺고 싶어했던 심정의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역사적인 선조들이 상속 받지 못한 심정을 상속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타락한 아담 해와도 아니요, 가인 아벨도 아니고, 노아나 함도 아니며 역대 조상 어느 누구도 아닙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의 심정을 연결 지어야 합니다. 아담으로부터 갈라진 역대 사명자들의 심정을 연결 지을 책임이 여러분과 선생님에게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담으로부터 예수까지의 심정을 상속 받아 승리적인 인연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싸워 나오고 있는 역사적인 내용인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끝날까지 연결시켜 하늘땅 앞에 내세우고자 하는 것이 재림의 이상이요, 참부모의 뜻입니다. 참부모의 이상, 참부모의 뜻을 느끼지 못하면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나는 역사적인 배반자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니 탄식과 한을 풀고, 실체의 중심을 모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놓은 자에게만 실체 부모를 인연 맺어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하기 위해 참부모가 있는 것이고, 여러분은 참부모의 유업을 상속 받기 위해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참부모의 심정과 섭리역사의 슬픈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참부모와 일체가 되어야 축복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부모의 슬픔과 고통과 기쁨, 예수의 슬픔과 고통과 기쁨을 나의 것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완전히 하나가 되어 생활하며 대신자의 입장이 되지 않으면 아무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아담 앞에서도 참부모를 대신한 나요, 노아나 아브라함, 모세, 예수 앞에서도 참부모를 대신한 나요, 하늘땅 앞에서도 참부모를 대신한 내가 되지 않고서는 축복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남자는 아버지의 분신이요, 여자는 어머니의 분신입니다. 이 분신이라는 말에는 역사적인 눈물이 어려 있고 역사적인 슬픔과 곡절이 어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적인 눈물과 슬픔과 곡절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는 이러이러한데 왜 축복을 해 주지 않습니까?’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친 참부모의 심정과 실체와 모든 말씀을 접붙임 받아야 합니다. 참부모를 대신하여 축복받은 선배들에게 지지 않고, 선배들이 책임을 못하면 그들의 책임까지 대신하겠다고 하면 틀림없이 그들과 같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부족했으나 끝까지 부족한 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개인의 목적은 허락이 안 됩니다. 참부모를 대신하지 않으면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제2의 부모의 입장, 즉 특권적인 입장에서 20일 동안을 지내 주기 바랍니다. 남자는 아버지를 대신한 입장이요, 여자는 어머니를 대신한 입장입니다. 이번 수련 기간을 통하여 부모의 심정과 형제의 심정을 체득하기를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