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요지> 지상에는 한을 품고 허덕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한을 토로할 수 있는 친척과 친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그러한 대상이 없습니다.
우리는 고통이나 슬픔 등이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는 줄 알고 지내 왔습니다. 알고 보면 인간에게 아무런 큰 한이 있더라도, 아무리 분한 원수가 있다 해도 이것들은 어떠한 한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분(憤)과 한은 역사적인 것입니다.
인간은 한을 풀기 위해 어떠한 것을 생각하고 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리 슬픈 일이 있더라도 그 슬픔을 표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이 세계가 원수가 주관하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불행을 표시하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어도, 하나님의 불행은 무어라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불행을 어찌 인간의 불행에 비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불행합니다. 우리는 불행한 인간을 찾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고통을 준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의 불행을 청산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한은 세기적이요 세계적입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이끌고 심판의 한 날을 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앞장서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만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왜 제물을 받아야 하는가? 그것은 고통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어느 도(道)나 제물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비참한 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인간은 막을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하늘이 인간의 비참함을 하나님의 것으로 세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을 희생시켜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세워 나갑니다. 7년 대환난은 그래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심판대에서 최후의 부름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들입니다.
메시아를 찾아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행복과 평안을 허락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이여, 인류여, 나를 쳐라! 역사 이래의 모든 것이 전부 동원되어 나를 치더라도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자라야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탄세계의 위압이 있다 하더라도 쓰러질 때는 혼자 쓰러지지 말고 하나님을 붙들고 쓰러져야 합니다, 예수님같이. 이스라엘 민족은 쓰러지면서 하나님을 붙들지 못하였습니다.
앞으로 미국이 사명을 못하면 이제껏 쌓아놓은 탑이 무너집니다. 쓰러지더라도 하나님을 붙들고 쓰러져야 합니다. ‘아버지, 당신의 한을 나로 인하여 청산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이제부터 새로운 역사를 출발시키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하나님과 함께 심정의 터를 닦아야 새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라야 새로운 시대의 선봉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념주의시대입니다. 또한 세계주의시대입니다. 앞으로 올 세계와 자기와의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그 관계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고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금은 불행한 때입니다. 이것이 크면 클수록 복된 세계가 빨리 옵니다.
심정은 개인에서 천주까지 직선을 그으며 그 외적인 형을 넓혀 왔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알아야 할 것은 타락의 심정, 복귀의 심정, 부활의 심정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내려온 것이지만 여러분은 오늘 이 시대의 전체를 평면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야곱이 고생할 때에는 그에 반응하여 모든 사람이 고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과거의 개인, 가정, 민족, 국가의 결실체로서의 나라는 것을 심정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너는 누구냐?’ 할 때, 복귀된 아담이요, 복귀된 노아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담과 노아를 심판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심정을 중심해야 심판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육을 합하여 한을 풀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역사적이고, 시대적이며, 미래적인 실체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전후와 과정의 심정을 갖고 주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승리적인 존재가 됐는가 안 됐는가를 결정하는 것이 대심판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아담이 당한 유혹이나 시험, 노아의 시련, 아브라함의 시련, 그리고 모세가 당한 어떠한 처참한 것도 이겨내야 합니다. 미디안 광야 40년의 역경이나 십자가의 죽음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치시더라도 괜찮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배반한 것을 탕감복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소망하지도 않은 세계가 자기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할 수 있는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역사적인 인물의 꼭대기를 넘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여러분은 어떠한 역사적인 인물의 짐을 지워 달라고 기도해 본 일이 있는가? 아침 햇빛과 저녁 별빛을 바라보며 역사 이래 한을 품어 오신 하나님이 소망의 한 날을 바라보며 비춰 주는 것이라는 감정을 가져 보았는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슬퍼하신다는 것을 아는 만물이므로 만물이 탄식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밥(음식)의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아니라고 하면 그들은 원망스럽다고 할 것입니다. 그들이 동맹이라도 한다면 10일 이내에 인류는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인류가 자기들로 인하여 살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밥의 신세를 지고 사는 우리들은 밥만 못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만물은 모두 우주적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자기 것으로 주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심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된 조건이 갖추어질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말씀의 모든 요소 중에서 중심은 심정입니다. 말씀은 태초부터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것은 이것이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잇자는 것이 복귀섭리입니다. 이것을 잇는 자는 역사적인 재현의 실체입니다.
예수님이 심정적인 재현의 한 날을 바라보고 오십니다. 하나님은 정복하고야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무리 탄식해도 이러한 심정을 중심하고 탄식해 보지 못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한 심정으로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심정으로 원수를 점령하라! 하나님과 우리의 재산은 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