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어느누구나 자기 스스로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인물' 하게 되면, 이것은 보통 수준을 넘어서 전체 앞에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든 환경에서 승리적 기준이 되어 비교의 기준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비교의 기준이 되려면, 완전한 것과 완전하지 못한 것을 갈라내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어떠한 면이 남보다 특출해야 중요한 인물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오관이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데 있어서 보통 사람들보다 특출해야 될 것입니다. 또, 듣는 데 있어서도 역시 그래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데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만지고, 느끼는 등의 모든 면에 있어서 특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 마음입니다. 그 마음 자체도 그 씀씀이에 있어서 보통 사람보다 특출해야 됩니다. 그 다음, 행동하는 데 있어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드러나야 될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인데, 그럴 수 있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이 모든 것이 남보다 뛰어나기 위해서는, 그냥 보아서는 안 되고, 그냥 들어 가지고도 안 되고, 그냥 말해 가지고도 안 되고, 그냥 행동해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전부문에 있어서 모두를 능가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고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보는 데 그냥 봐 가지고는 안됩니다. 보는 데 있어서도 내용을 갖추게끔 보는 것을 훈련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공부를 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그냥 봐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거기에는 보는 연습을 하고, 훈련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한 거예요.
우리가 듣는 데도 그래요. 음악을 듣는 데도 그냥 한 번 들어 가지고는 안 돼요. 여기에 대해 세밀하게 내용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적 과정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말하는 것도 그렇다구요. 말하는 것이 남보다 드러나고 특출하기 위해서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훈련 과정이 있어야 돼요. 그 내용을 따라 연단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행동도 그렇다구요. 자기가 무엇을 한다고 해서 생소한 것을 그냥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몇 번씩 해 가지고 훈련된 결과의 자리에서 행하여야만 남아지는 것으로서 모든 일 가운데 드러나는 일이 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마음 쓰는 것,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전부 다 훈련 과정을 거쳐야 돼요. 그러기에 명상이니, 혹은 기도니, 하는 것도 그러기 위한 한 수양 방법이예요. 마음의 수양 방법을 말하는 거라구요.
그러면 중요한 사람이 됐다 하는 자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면에 능숙하도록 훈련 과정을 거쳐서 그것이 적중한 자리에 섰다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거예요. 그것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예요. 보통 사람이 못 하는 것을 해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그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문제를 앞에 놓고 훈련과 시련의 과정을 거치고, 뿐만 아니라 일을 대해서 모든 문제에 자신을 가지고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일상 생활, 인간들이 사는 생활에 있어서 무슨 훈련을 하고 있느냐? 일생 동안 보는 훈련, 듣는 훈련, 말하는 훈련, 행동하는 훈련을 하고 있는 거예요. 결국 우리의 생활이라는 것은 하나의 훈련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내용을 갖추어 어떤 목적과 일치될 수 있는 결과의 자리에 도달한 생활을 하느냐 못 하느냐, 훈련 과정에 있어서 그 훈련을 해내느냐 못 해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전체 환경 앞에 비교의 기준으로 드러나느냐 못 드러나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거예요.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보통 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보통 사람이 하지 못하는 말을 하고, 보통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생각을, 보통 사람이 행하지 못하는 행동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틀림없이 중요한 사람이 되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러한 사람들을 어느 단체가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그 단체가 전체 앞에 중심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은 한 나라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하는 문제에 따라서 그 나라가 세계적인 중심 국가가 되느냐 하는 것이 좌우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단체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을 놓고 말한다면, 여러분을 어떠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느냐?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으냐? 여러분은 중요한 사람이 되려고 하고, 교회 자체에서는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다방면의 훈련을 시켜야 되겠습니다. 다방면의 훈련을 통과하게 해 가지고 자신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되겠어요. 이 눈으로는 남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도 볼 수 있게끔 훈련시켜야 되겠습니다. 이 귀로는 남이 듣지 못하는 것까지 들을 수 있게끔 훈련시켜야 되겠습니다. 또, 입으로는 남이 하지 못하는 말을 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되겠습니다. 마음으로는, 생각을 중심삼고는 그 어떤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생각할 수 있게끔 훈련시켜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잘 보고, 잘 듣고, 말을 잘하고, 생각을 잘한다 하더라도 행동에 있어 패자가 되면 다 깨져 나가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 사람들을 어느 분야에 부딪쳐 가지고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분야든지 뚫고 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후퇴하는 날에는 아무리 훈련을 하고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이는 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극복해 가지고 넘어 가야 됩니다. 전진해 가지고 자기 힘으로써, 능력으로써 그것을 소화하고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그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책임질 수 있고, 그 환경에서 그 문제를 능가한 승리적 기준으로 말미암아 공인받는 중심적 존재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지금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것을 듣고, 새로운 말을 배우고,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훈련받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배우는 내용도 복잡하다 이거예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도 복잡하다 이거예요. 자, 그러면 복잡한 것이 나쁜 것이냐? 내용이 갖추어지고 통일성을 가진 복잡한 것은 귀한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만물을 보더라도 만물 가운데서 구조상으로 복잡한 물건일수록 그것은 가치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중심, 중요한 인물이 되게 되면, 그 중요한 인물이 차지하고 있는 환경에서는 복잡한 기관들을 연결해 움직일 수 있는 자제력을 그는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인물이 되기를 원한다면, 복잡한 환경을 소화할 수 있는 자체를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한 환경, 여러 분야에서의 훈련이 필요한 거예요.
우리 사람들도 보게 되면 오관으로 느끼는 것하고, 그 다음에는 행동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이 행동이 어디에 미쳐지느냐 하는 데 있어서 그 미쳐지는 범위가 크냐 작으냐, 혹은 다방면이냐 일방면이냐, 입체적이냐 평면적이냐 하는 문제에 따라 중요한 인물, 중요한 책임자가 결정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지금 과학문명이 발달한 이 시대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부 다 한 방향을 중심삼고 부분화되어 발전해 나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분적인 가치는 중요시하지만 전체적인 가치는 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분적인 그 자체를 중요시하다 보니 전체적 가치를 잃어버린 거예요. 이것이 지금 20세기말, 현재 문명시대의 현상입니다. 부분은 전체의 가치, 혹은 전체의 목적을 따라 있는 것임을 망각한 데서 이러한 결과가 오게 된 것입니다.
자, 이러한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러면 전체를 중심삼고 그 관계성을 재차 맺어 줄 수 있는 운동을 오늘날 누가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나 개인' 하면, 그 개인은 전체를 대신한 개인이라는 것을 발견해야 됩니다. 그러지 못하고는 그 개인은 전체와 더불어 행복한 세계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전체와 더불어 행복을 찾는다는 관념이 있어야 되는데, 전체를 잃어버리고 나와 더불어 행복을 찾자 하는 것이 지금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 개인만을 위해서 행복을 찾을 것이냐, 전체를 위하는 데 있어서 행복을 찾을 것이냐? 문제가 다르다는 거라구요. 지금까지는 내 개인이 행복하기 위해서 환경을 희생시키는 놀음을 해 왔지만, 내 개인의 행복보다도 전체와 더불어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희생시키지 않고 나를 희생시키는 놀음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거라구요. 방향이 달라지는 거예요.
또, 우리 가정을 두고 봐도 그래요. 그 가정이 나와 우리를 위한 가정이라고 생각하지, 전체 가정을 대표한 가정이라는 관념이 돼 있지 않다는 거라구요. 자기 가정만 좋으면 된다고 하는, 그거 안 된다는 거예요. 전체 가정이 좋을 수 있는 입장에서 내 가정이 잘돼야 하는 거예요.
이걸 확대하여 한 국가를 두고 봐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세계야 어떻게 되든, 그 환경적 국가야 어떻게 되든 우리나라만 잘되면 된다고 하는 그런 국가는 남아지지 못한다구요. 결국은 세계 국가를 위하는 데 있어서 자기 국가가 세계 국가와 더불어 선 가운데서 드러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무시하고 자기 국가만 드러나겠다는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을 두고 봐도 마음의 세계와 몸의 세계가 있는데 몸의 세계만 가지고 안 된다는 거예요. 마음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 몸의 세계여야 되는 거예요. 또 마음만 가지고도 안 되는 거라구요. 몸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 마음이어야 됩니다. 이것이 상응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과 몸이 하나된 자기가 딴 사람의 마음과 몸과 얼마만큼 화합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 그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을 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람이나 중요한 가정이나 중요한 민족이나 중요한 국가가 되는 데 있어서, 그 모든 문제는 어디서 결정되느냐? 여러분이 얼마만한 복잡한 환경과 더불어 주고받을 수 있는 주체성을 지녔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자기 개인의 가치만, 자기 개인의 중요성만 생각하고 환경을 망각하면 최후에는 고독밖에 없다는 거예요, 고독. 그 다음에는 절망이요, 그 다음에는 자포자기요, 그 다음에는 스스로 망하는 것밖에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 개인주의 사상은 지극히 위험한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습니다」
오늘날 부분적인 입장에서 가치를 추구하는 분석적인 과학 문명의 영향을 받아 가지고 개인주의 사상도 발전돼 나왔다고 보는 것입니다. 국가가 있기 전에 '나'를 생각한다는 거예요. 가정이 있기 전에 '나'를 생각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있기 전에 '나'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인간 세상에 새로운 혁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 '나'라는 관념을 어떻게 타파하느냐? 여기서부터 혁명의 기준은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혁명을 해야 되느냐? 무자비하게 혁명해야 됩니다. 무자비하게 혁명하면 할수록 무자비한 승리적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을 대해서 '너, 지금까지 잘못 봤으니, 전부 다 잘못 봤으니 그것을 부정하고 새로이 봐라!' 이래야 되겠다구요. 듣는 데도 역시 그래야 되겠습니다. 말하는 데도 역시 나를 옹호하기 위한 말을 했지만 전체를 옹호하기 위한 반대의 말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생각도 자기를 옹호하고 자기만을 위한 생각을 했지만 그것을 전부 다 혁명해 버려야 되겠습니다. 행동도 자기를 위한 행동을 했지만 이것을 뜯어고쳐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혁명하고 나선 그런 자리에 서면 지금 세상에서도 새로운 중심으로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는 결론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냐 이거예요? 우리는 뭘 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냐? 국가와 세계를 혁명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되기 전에 나를 먼저 혁명하기 위해서 모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결국은, 환경적인 모든 가치를 나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는, 그 가치적 범위를 나보다도 넓게 할 수 있는 여기서부터 우리는 전체의 가치를 세우기 위해서 나를 희생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 이래 지금까지 인간들이 추구해 나오던 방향과 반대적인 것인데, 이 길을 따라가지 않고는 절망시대에 있는 인간들이 새로운 희망을 가질 성싶은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기 위해서 모였어요?「예」 예수님 같은 양반은 무얼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왔느냐 이거예요. 이걸 하려고 왔다구요, 이걸. 살기를 바라고, 중심존재가 되기를 바라고, 좋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죽어라 이거예요. 때려 잡아라 이거예요. 개인을 위주로 한 중심 사상으로 말미암아 역사를 망칠 수 있게 됐으면 그 반대의 길이 아니고서는 살릴 수 있는 길이 없다구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도 반대의 말이라구요. 반대의 말이라구요.
그게 무슨 사상이냐? 자기를 중심삼고 개인을 존중하고, 개인을 보다 중심적인 가치 존재로 인정하는 이 세상을 타파해 버리자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개인을 위해라' 할 때는 전부 다 개인 하나를 놓고 헤어져 갔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를 높여 주겠다'고 할 때는 다 좋아한다구요.
그러면 이제 인류역사의 이 끝날에,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시대를 거쳐온 인류를, 절망 상태에 부딪친 인류를 어떻게 살 길로 안내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그것은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개인적인 이 사상을 타파해 버리고, 전체를 위한 사상으로 전환시켜 놓으면 됩니다. 이것을 어떻게 전환시켜 놓느냐 하는 것이 이 세계가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이상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그것이 어떤 길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윤곽을 잡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자기를 위하는 길이냐, 전체를 위하는 길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어떤 길이예요?「전체를 위하는 길입니다」 이것만이 세계를 살릴 수 있는 혁명의 기점입니다. 이걸 하지 않고는 모든 것이 틀어진다구요. 모든 것이 불가능이예요. 여러분들은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좋기 위해서다' 이랬다구요. '먹는 것도 내가 잘되기 위해 먹고, 내가 배우는 것도 내가 훌륭하게 되기 위해 배운다'고 했다구요. 그런 사고방식들을 전부 다 버려라 이거예요.
'나'라는 관념을 어떻게 빼느냐가 문제라구요. 내가 왕이 돼 있다구요. 내가 중심이 돼 있다구요. 내가 중요한 위치에 있다구요. 그러니까 이것들이 전부 다 싸울 수밖에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태어난 것은 형제를 위해서고, 당신을 위해서고, 전체를 위해서다' 할 수 있는 사상을 철두철미하게 가져야 합니다.
'내가 난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를 위해서고, 가정을 위해서고, 전체를 위해서다' 하는 관념으로 어떻게 바꿔서 갖느냐 하는 문제가 전체의 중심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하는 제일 빠른 길입니다. 여러분들도 선생님을 대하게 될 때, 선생님이 선생님 자기만을 위하면 선생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이거예요. 내가 지금 나 자신을 보게 되면, 미국에 와서 이러지 않아도 쓸 돈, 먹을 것…. 여기서 암만 일을 잘했댔자 내가 지금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구요. 내가 먹으려면 먹을 수 있고, 뭐 부러운 게 없다구요. 그런데 결국은 여기 와서 뭐 고생을 하고, 돈을 쓰고 이러고 있냐는 거예요. 이익 나는 것이 뭐 있느냐 이거예요. 어디 순회 가게 되면…. 미국 사람하고 나하고 인간적으로 보면 무슨 관계가 있어요? 여기 와 가지고 여러분이 일을 못하게 되면, '이 녀석들, 왜 일을 그와 같이 해 놨어?' 하면서 쥐어박고, 눈을 부릅뜨고 '이게 뭐야!' 하며 욕을 하는데 그건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여기 독일 사람도 있고, 불란서 사람도 있고, 이태리 사람도 있고, 영국 사람도 있는데, '오라, 이녀석들아, 오라구' 해 가지고 이들을 데려다가 뭘하자는 거예요? 선생님을 위해서 일하라는 거예요? 자기 나라를 위해서 일하라는 거예요, 이게? 불란서도 아니고, 영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고, 독일도 아니고 하나의 인류를 위해서, 하나의 세계를 위해서 다 뭉쳐 가지고 하라는 거라구요. 다르다구요.
독일 사람의 눈을 볼 때, 그것이 독일 사람의 눈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구요. 그 몸뚱이를 독일 사람의 몸뚱이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불란서 사람을 불란서 사람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불란서 사람, 독일 사람으로 보기보다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로 보자 이거예요. 내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먼 나라의 형제를 만났기 때문에, 먼거리에 있는 형제를 만나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복잡한 내용이 있는데, 그것을 극복함으로 말미암아 나는 심정적 무대에서 보다 넓은 인격을 갖출 수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하라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데리고 이렇게 쭉 지내다 보면 어떤 때는 딱할 때가 많다구요. 우리 한국 사람들을 만나 가지고 한국말로 한참 얘기하다 보면 여기 서구 사람들은 눈을 꺼벅꺼벅하고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영어도 공부해야 되겠다구요. 그것을 공부해서 뭘하냐 이거예요? 여러분들의 수고를 덜어 주고, 여러분이 좋을 수 있는 내용을 넓혀 주려니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떡하든지…. 세계가 하나되는 데 있어서 제일 장애물이 뭐냐 하면, 언어입니다, 언어.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무엇이 문제냐? 언어예요, 언어.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것은 세계인들이 모여 가지고, '자, 우리가 어느 나라 말을 공동으로 쓰자' 하고, 국제회의를 통해서 결정해야 될 문제라구요. 그러면 그 말이 어느 나라의 말이 되면 좋겠느냐? 그것은 뭐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나라의 말을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볼 때, 그 말이 어떤 나라의 말일 것이냐? 어머니 아버지가 쓰는 말이요, 형제들이 쓰는 말이요, 우리 나라가 쓰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이 천국에 가서 영원히 쓸 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어느 나라의 말을 쓰고 싶겠느냐 이거예요. 첫번 사랑을 속삭인 그 인연의 말을 쓰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은 말을 하나님도 하실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에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하기 때문에 그 사랑의 인연을 통한 부부로부터 혹은 형제로부터 가정으로부터 말은 시작되게 돼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문화는 시작되게 돼 있고, 이념은 시작되게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가면 하나의 새로운 문화세계와 더불어 새로운 세계사적인 운동이 벌어질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 하고 묻게 된다면, 남자에게 있어서는 제일 사랑할 수 있는 여자를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또, 여자에게 있어서 제일 행복한 길이 뭐냐 하면, 그것은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남편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갈 때는 내 것 다 가지고, '나'라는 관념을 딱 가지고 '나는 나를 사랑하지만 너를 사랑한다' 이런 관념을 가지는 게 아니라, 자기는 공이 되면서 '너만 사랑한다'고 해야 이게 멋지다는 거라구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나라는 관념을 가지고 '아, 당신을 사랑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은 사랑하지 못해요'라고 하는 게 좋아요, '나보다 더 사랑해요'라고 하는 게 좋아요? 어떤 것을 원해요? 여러분, 내가 살도록 사랑한다는 것하고 내가 죽도록 사랑한다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좋아요?
여러분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데 살도록 사랑해' 하는 말이 좋아요, '죽도록 사랑해' 하는 말이 좋아요? 살도록 사랑한다는 말은 누구나 싫어 한다구요. 자, 말하기를 '당신을 제일 사랑하지만 요만큼 조금만은 못 사랑해' 하는, 이런 것을 원해요?(웃음) 요만큼 작다는 것이 큰 것을 다 잡아먹고도 기분 나쁜 거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사실이라구요.
그러면, 사랑의 길이라는 것은 자기를 용인하기를 바라느냐, 용인하지 않기를 바라느냐? 두 가지 중 결론은 간단하다구요. 그거 인정하는 거예요, 안 하는 거예요? 「……」 그러면 완전한 사랑을 받고 싶어요?「예」그 사랑을 위해서는 죽으라구요. 죽으라구요. 내가 없어야 된다는 거예요. 문제는 간단하다구요.
자, 인간이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그 사상이 제일보라고 하게 된다면, 인간세계에서 그 사상을 가지고 부모와 부부지간도 사랑으로 맺어지고, 형제지간도 사랑으로 맺어지고, 국가지간도 사랑으로 맺어져야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기를 소유할 수 있는 관념을 가지고는 사랑의 길을 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남을 위하고, 상대를 위하고 전체를 위하는 데서만이 이상의 출발이 있기 때문에, 영원한 것은 모든 것을 위하는 데에 있다는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자, 사랑을 찾는 데 자기를 부정하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난 다음에 자기를 부정하기를 주저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때는 자기를 아무리 버리더라도 아쉽지 않지요? 결국은 자기를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것은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원천이요, 동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알았다구요.
여러분들은 지금 각국에서 왔는데 여러분 나라의 애국자는 어떤 사람이냐?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 자기 생명을 잃어버린 사람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자기 부모를 위해서 희생한 아들딸이 있으면 그를 효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 자식들을 위해서 희생한 부모를 참된 부모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위해서 희생한 형제는 참된 형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자기 나라를 넘어서 인류를 위해 자기 생명을 희생하는 사람은 인류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예수 같은 양반은 인류를 위해서 희생한 사람이라구요. 역사 이래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죽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내가 죽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내가 죽는다고 각오하고, 그걸 자각해 가지고 죽은 사람은 예수가 처음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는 오늘날 인류 앞에 있어서 추모의 대상이 아닐 수없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있어서 사랑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났고, 인간의 참된 사랑이 드러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가 출발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자기를 위주하는 데 있어서는 이상적인 것이 안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체를 좋게 하는 데서만이 이상이 나온다는 거예요. 이쪽에서는 좋아하는데 저쪽에서는 울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전체가 좋아해야, 동서남북이 다 좋아해야 합니다.
아까 중요한 사람이 되려면 모든 면의 훈련을 받아야 된다고 했는데 그래 가지고 자기를 위하는 자리에 서지 않고 남을 위하는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습니다. 그러면 남을 위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위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 학문이냐, 권력이냐, 돈이냐, 뭐냐? 사랑밖에 없다는 거예요. 돈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사랑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것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권력을 필요로 하는 것도 남을 위하고 사랑을 돕기 위해서요, 지식을 갖는 것도 남을 위하고 사랑을 돕기 위해서요, 돈을 갖는 것도 남을 위하고 사랑을 돕기 위한 것이다 이러면 된다는 거라구요.
자,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이 진짜….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미국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눈을 보면 새파랗고 머리를 보면 노랗다구요. 키가 훤칠하다구요. 가만히 보면 이상하다구요. 진짜 한국 사람들처럼 사랑할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여러분을 선생님이 사랑하는 데 있어서, 한국 사람보다도 더 사랑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것이 문제라구요. 그래도 미국은 한국을 원조해 주는데, 그래도 그럴 수가 있다고 하지만, 한국의 제일 원수 되는 나라에 그럴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공산당은? 그거 죽여야 되겠어요, 사랑해야 되겠어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사랑해야 됩니다」 공산주의는 사랑하지 않는다구요. 공산주의는 사랑하지 않지만 공산주의 사람은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르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보다 내가 보는 데 있어서, 듣는 데 있어서, 말하는데 있어서, 행동하는 데 있어서 우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수해야 된다구요. 그러한 실적을 가지고 그들을 감동시켜 가지고 '너의 그 자리보다도 이 자리가 좋지 않느냐' 해 가지고 전부 다 양보해 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 내가 너보다 하나 더 가지고 있지 않느냐, 내 것이 더 좋지 않느냐 하며 비교해 가지고 가르쳐 줄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교회 교인들은 최고 공산당 요원하고 결혼할 수 있을 정도까지 돼야 된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그거 해야 된다구요.
여러분, 보라구요. 지금 현재 선생님이 하는 일이, 일본하고 한국은 원수인데, 그것을 하나 만들자는 거예요. 또, 미국하고 일본하고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 만들자는 거예요.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하나 만드느냐? 근세사에 있어서의 제일 원수국가들을 하나 만들자는 것이 지금 선생님의 작전이라구요. 그것을 하나 만들자는 거예요. 우리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한국 사람과 미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우리는 한국 사람이다' 하며 한패가 되고, '우리는 미국 사람이다' 하며 한패가 되고, '우리는 일본 사람이다' 하며 한패가 되고, 이렇게 언제나 세 패가 돼야 되겠냐는 것입니다. '아이구, 미국도 그만두고 일본도 그만두고 한국도 그만두고 한패가 되자' 해야 되는 거예요.
만일에 한국 사람 두 사람, 일본 사람 두 사람, 미국 사람 두 사람, 이렇게 여섯 사람이 가다가 절반인 세 사람이 죽어야 되겠다 할 때는 어떻게 할 테냐 이거예요? 자기가 덜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시키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관념이라구요. 그러나 우리 주의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자기의 가까운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과 아시아 사람이 가는데 만일에 그러게 되면 한국 사람부터 희생시키고 일본 사람을 희생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미국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그러한 운동을 해야 됩니다. 그런 운동을 하지 않고는 새로운 세계가 오지 않습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한국에 있는 식구들이나 일본에 있는 식구들이 지금까지 여러분보다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수고한 사람들을, 그러한 책임자들을 여기 데려와서 누구보다도 더 고생을 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주의입니다.
그러면, 일본과 미국이 또 싸운다 할 때 어떡할 거예요? 우리 사이에도 '너는 일본 사람이고, 너는 미국 사람이다' 그러겠냐는 것입니다. 달라야 된다구요. 우리만은 미국도 일본도 초월했다…. 그럴 때, 미국 국민 전부가 '야, 이놈들아! 너희는 배반자가 아니냐. 매국노가 아니냐?' 하고 반발하더라도, 반대하더라도 우리는 이 길을 가는 것이 당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미국을 버리고 소수를 붙들겠느냐, 소수를 버리고 큰 미국을 붙들겠느냐? 어떤 것을 붙들어야 되요?「이 소수를 붙들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한다면 이 소수의 움직임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혁명의 기치는 여기서 들린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이미 국제적인 요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단조로워요, 복잡해요? 「복잡합니다」(웃으심) 자, 그러면 '아이구, 복잡하니까 이것은 가망이 없소!' 하고 생각해야 되겠어요, 복잡한 것을 재미로 알고 '이것 참 멋지다' 하고 생각해야 되겠어요?「참으로 멋지다고…」
그러면 이제…. 불란서 사람과 영국 사람과 독일 사람, 이게 전부 다 엉터리예요. 불란서 사람은 영어도 독일말도 몰라요. 자기 나라 말밖에 모른다구요. 세 사람이 말할 상대는 있지만 말할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되면 어떻게 돼요? 한 방에서 세 사람이 산다 하게 되면…. 말할 상대는 있지만 말할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되면 어떻게 돼요? 말할 수 있겠어요? 갑자기 벙어리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시늉을 하면서 이래야 되는데, 이걸 말하는 것보다 더 좋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재미로 알아야 되겠어요. 기가 막힌 것으로 알아야 되겠어요? 그것을 싫다고 해 가지고 하나될 것 같아요? 동양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하나는 밥을 먹어야 되겠다고 하고 하나는 빵을 먹어야 되겠다고 하게 되면, 한 집에서 음식도 두 가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기만을 생각하다가는 자기 성장이 안 돼요. 자기를 주장하다가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위하고, 상대를 위하고, 전체를 위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그 환경을 수습할 수 있고, 그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이 세 사람들이 살게 될 때, 그 가운데 누가 제일 좋은 사람이냐? 이 세 사람 가운데 누구를 제일 좋아하겠느냐? 어떤 사람을 좋아하겠느냐 할 때, 그것은 아량이 있고, 자기를 위해 주고, 고생을 더 하고, 수고를 더 한 사람을 전부 다 추앙하는 것이 아니냐. 그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 되는 거라구요. 불평을 하지 않고 그 환경을 극복해 나가고, 거기에서 자기가 희생을 했더라도 그것을 감사히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전체 앞에, 세 사람이면 세 사람 앞에 중심존재가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서로가 필요로 한다는 거예요. 이 사람도 필요로 하고, 저 사람도 필요로 하는 거라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지금 자기 나라를 떠나 미국에 와서 일을 하는데, '아이구, 나는 독일 사람으로 독일에서 일했는데 이 미국 놈들은 틀렸다' 해서 발길로 차면서 '내가 독일 사람을 더 사랑하지, 미국 사람을 더 사랑하지 못한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독일 사람보다도 미국 사람을 더 사랑하기 위한 연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불란서 사람은 불란서에서 왔다고 해서 '아이구, 나는 불란서로 가고 싶어' 이러지 말고, 불란서 사람은 불란서 사람보다 여기 미국 사람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한 운동이 벌어지면 여기서부터 새로운 세계적인 국가 형성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러한 몇 사람으로 말미암아 미국 사람들이 불란서를 사랑하고, 독일을 사랑할 수 있는 운동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운동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간단하지 않다는 거예요.
우리 사이에 있어서 서로를 비판하고, 불평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렇게 엮어져 있던 모든 것을 우리 시대에 풀려고 하니 참 고마운 일이라구요, 이게. 그래서 선생님은 요번 축복해 줄 때에 독일 사람과 영국 사람을, 말이 안 통하는 사람끼리 결혼시켜 봤다구요.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 아내라고 하는 사람에게 통역관을 대 얘기해야 된다구요. 그거 멋지지요? (웃음) 그게 얼마나 기가 막힌 역사이며, 얼마나 멋지냐 이거예요. '결혼 생활에 대해 내가 할 말이 있다면, 난 이렇게 사랑했소' 하면 어느누구도 '아하, 그렇습니까? 나보다 낫습니다' 하게 돼 있지, '그것이 뭐야, 이녀석아. 못된 녀석아' 하게 돼 있어요? 그런 사람은 역사적인 인물이요, 역사적인 부부가 된 거라구요. 이미 된 것이라구요. 그 사람들이, 남자 여자가 아무리 못생겼더라도 그들은 역사적인 부부라는 것입니다. 그 두사람이 아무리 못났더라도 두 나라를 연결시키고 세계를 연결시키는 데 있어서 대표적인 공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위대한 부부라는 것입니다.
그 부부가 '나는 불행해' 이러지 않고, '우리는 누구보다도 행복해' 이러면 그 부부의 이름은 역사를 대표해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그 두 사람이 사랑의 인연을 맺는 데는 얼마나 복잡했겠느냐, 얼마나 곡절이 많았겠느냐? 자기 아버지하고 비교했을 것이고, 할아버지와도 비교했을 것이고, 이웃 동네 사람하고도 비교했을 것입니다. 남자는 석경을 보면서, '나는 이만하면 저런 상대를 안 얻을 수 있는데…' 하며 이렇게 인생에서부터 사랑의 역사까지의 별의별 모든 길을 비교해 가지고 대조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어려운 것을 다 넘고, '사랑은 이렇기 때문에 귀하다'고 하며 그것을 존중하며 모든 환경을 소화했을 때는, 그것이야말로 위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복잡하고 어렵다는 거예요. 그렇더라도 그것을 극복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원해요? (웃음)「하나님을 잘 섬기는…」 그래 그 사람이 미국 사람이예요, 어떤 나라 사람이예요? 하나님만 잘 섬기면 할머니도 좋다는 말이지요? 나이 많은 사람도…. (웃음) 하나님 잘 섬기는 사람이라면 뭐….
그러면 백인하고 결혼할래요, 흑인하고 결혼할래요?「다 괜찮습니다」괜찮지만 진짜 마음이 있을 것 아니예요? 그거 아주 보기 싫거든요. 입이 이렇게 생기고…. (웃음) 세상에 한번 보면 나가자빠질 그런 사람과 결혼할래요, 흑인 가운데 미인과 결혼할래요? 어떤 타입의 사람을 원해요?「아무라도 괜찮습니다」그래 몇 해나 갈 것 같아요, 몇 해나?
어머니를 보면 예쁘장하게 생겼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런 어머니를 얻었으니까 저런 말을 하지, 그렇지 않았으면 안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 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본래부터 그러한 아름다운 여인을 원했다면 하늘은 절대…. 그 반대의 여인을 원했다는 것입니다, 반대의 여인.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반대라구요.
이것이 직선으로만 가게 되면 영원히 직선이 되지만, 이 직선이…. 이상이 뭐냐 하면, 쭉 하고 이렇게 동그라미가 되는 거라구요. 그러려면….(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이것은 남자이고, 이것은 여자라는 거예요. 이게 뭐냐 하면, 좋은 사람끼리면 직선이 되는 거라구요. 좋은 남자가 좋은 여자를 얻으면 말이예요. 그 반대로, 좋은 남자하고 못난 여자하고…. 이게 꽁지입니다. 이것이 꽁지를 물 수 있어야 됩니다. 제일 잘난 남자가 맨 꽁지 여자하고 접붙여져야 합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잘난 남자는, 제일 앞선 남자는 제일 못난 여자, 꽁무니와 접붙여져야 됩니다. 제일 잘난 남자와 제일 못난 여자가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 말 아니예요? 원을 이루려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부모는 잘난 아들을 사랑해요, 못난 아들을 사랑해요?「못난 아들이요」병신 아들을 사랑해요, 병신이 아닌 아들을 사랑해요?「병신 아들입니다」부모의 마음은 불구자인 아들일수록 언제나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잘난 사람을 사랑하실까요, 못난 사람을 사랑하실까요? 하나님의 마음도 못살고 비참한 자리에 선 사람에게 머물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높으면 저 밑창이 그것을 상대해 줘야 돼요. 그것이 이상적이라는 거예요. 높으면 높을수록 깊은 것을 대할 수 있게 되어야 그것이 이상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갑자기, 한꺼번에 되겠어요? 갑자기 되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전부 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연결시킬 수 있는 인연이 섞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상적 가정 하게 되면 어떤 것이 이상적 가정이냐 이거예요. 젊은 부처끼리 사는 것이 이상적이예요, 복잡하게, 시어머니 시아버지 친척들 다 같이 사는 것이 이상적이예요?「다 같이 사는 거요」(웃음) 할아버지 할머니, 식구가 많아 가지고…. 우리 색시들, 시어머니랑 시아버지랑 같이 사는 것이 이상적이예요?「예」 나는 여러분들과 같이 살고 싶지 않다구요!(웃음)
자, 그러면 각 나라 사람이 전부 다 모여서 한꺼번에 사는 것이 이상적이예요, 자기 나라 사람끼리만 사는 것이 이상적이예요? 어느 게 이상적이예요? 「모여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간단한 생활이예요, 복잡한 생활이예요?「복잡한 생활입니다」 그것을 소화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섯 나라 사람과 더불어 같이 살려면 여섯 나라를 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못 삽니다. 예수님은 자기 종족 열두 사람 가지고도 하나되지 못하고 살았지만, 선생님의 사명은 앞으로 열두 나라 사람을 하나 만드는 운동을 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세계는 하나 되지 못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세계를 하나 못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선생님은 그러려고 한다는 거예요. 세계적인 열두 가정과 같이 살면서, 참 이게 하나될 수 있게끔 어떻게 사느냐…. 그게 지금 걱정이라구요. 그것을 생각하고 있다구요. 그 울타리 안에 사는 사람 가운데는 검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흰둥이도 있을 것이고, 노란둥이도 있을 것이고, 푸른둥이도 있을 것이고, 오색인종이 다 있을 것입니다. (웃음) 거기에서 '너는 흰둥이니까 사랑하고, 너는 검둥이니까 덜 사랑한다' 그럴 수 있겠느냐? 아니라구요. 도리어 그 색깔이 못한 것을 더 존경하고 더 반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선생님 대해서 '저 사람은 한국 사람이야!' 이러면 되겠어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분은 하늘의 사람이다. 이상적인 타입이다' 이래야 되지.
자, 열두 가정이 하나되어 사는 것이 이상적이예요, 백 이십 가정이 하나돼서 사는 것이 이상적이예요?「백 이십 가정…」 또, 천 이백 가정이 하나되어서 사는 것이 이상적이예요, 백 이십 가정이 하나되어서 사는 것이 이상적이예요?「천 이백 가정이…」 그러면, 만 이천 가정이 하나되어서 사는 것이 이상적이예요, 천 이백 가정이 하나되어서 사는 것이 이상적이예요? 「만 이천 가정이… 」 그거 안다구요. 복잡하고 클수록 이상적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단순한 생활이 좋아요, 복잡한 생활이 좋아요?「복잡한 생활이요」 말로 그래요?「예」 하나님은 복잡한 생활을 하시겠어요, 단순한 생활을 하시겠어요? 세계에서 제일 복잡한 생활을 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니 그분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나도 세계에서 제일 복잡한 생활을 하겠다고 생각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 하나님이 편하실 것 같아요? 어때요? 그것이 뭐가 좋아요? 하나님이 좋을 게 뭐가 있어요? 자기를 위하는 그런 생각을 하는 하나님이라면 좋겠어요? 그거 행복이예요, 불행이예요?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자녀를 위하고, 인류를 위하는 사랑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자기를 생각하지 않고 전체를 생각하는, 작은 것보다 더 큰 것을, 더 복잡한 것을, 더 가치적인 것을 추구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런 사랑의 마음을 가진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잔칫집이나 찾아다니시는 분이냐 하면, 아니라 이거예요. 못살고, 비참한 곳을 찾아가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참한 곳을 찾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하나님을 닮아야 되겠다구요. 하나님이 모든 이러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전체를 위하는 입장에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주의 중심이고 그러한 중심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원하고 하나님을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우리는 어떻게 해요? 여러분은 선생님을 사랑해요?「예」 뭐? 나는 못 믿겠어요. 사랑하긴 뭘 사랑해요. 언제 사랑해 봤어요? 말로만 그러지. 언제 사랑해 봤어요. 선생님하고 뭐 뽀뽀를 해봤어요, 뭐 어떻게 해봤어요?「……」 사랑했느냐, 못했느냐 이거예요. 자신이 없구만, 자신이. 사랑했다고 여러분 자신 있게 말할 줄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수건이 있으면 말이예요.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손수건이라면, 그 손수건을 사랑하면 그것이 손수건 주인을 사랑하는 것이 돼요, 안 돼요? 다시 말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손수건을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되나, 안 되나 그 말입니다. 복잡하지요?(웃으심) 사랑하는 사람의 손수건을 사랑하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구요.
만일 사랑하는 사람이 그걸 볼 때, 자기가 사랑하는 손수건인데 그걸 자기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본다면 어떻겠어요? 나를 사랑하겠어요, 안 하겠어요?「사랑합니다」 마찬가지라구요.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이거 미쳤다'고 그러는 사람 있어요?(웃으심) 그것이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뭐냐? 선생님이 무엇을 사랑하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니 그 하나님을 여러분이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선생님이 무엇을 사랑하느냐? 세계를 사랑한다면 그 세계를 여러분이 사랑해야 하는 겁니다. 또, 선생님이 무엇을 사랑하느냐? 세계 인류를 사랑한다면 그 세계인류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무엇을 미워하느냐? 사탄을 미워하니 여러분도 그 사탄을 미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사탄 세계를 정복하는 것을 좋아하니 여러분도 그 사탄세계를 정복하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거예요.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자기 형상을 닮게 만드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누구를 닮았느냐? 선생님을 닮으려 하고 있고, 닮고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그러면 여러분, 이제 중요한 사람, 그 중요한 사람은 무엇을 중심삼고 되느냐? 사랑! 무슨 사랑?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중심삼고 중심존재가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문제가 이제 우리에게 허락된 당면 과업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제 전도 나가더라도 '아, 내가 전도함으로 말미암아, 나는 이렇게 되고…. 내가 무슨 주의 책임자가 되고, 기동대장이 되기 위해서 이런다'라는, 자기가 뭐 되기 위해서라는 그런 관념을 빼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면 그는 뜻 앞에 중요한 사람이 절대로 못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 된다는 거라구요. 그것은 자기로부터 출발했고 자기로부터 목적한 것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어느 한 때에 한계점에 부딪친다구요. 한계점에 부딪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을 위하는 입장에서 가는 데는 한계가 없습니다. 보다 복잡할수록, 보다 어려울수록, 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남을 위한 다고 하면서 끌고 다니며 수고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미리 전부 다 훈련하고 연단해 가지고, 그들을 수고시키지 않게끔 해 가지고, 간단하고도 틀림없이 그들 앞에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끔 내 스스로 준비해 가지고 나타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여러분을 대해 가지고, 여러분 미국 사람들이 이렇게 가겠다고 하는 것을 그 반대로 이렇게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가 가지고 틀리면 어떻게 할 것이냐? 뒤로 돌아서면 되겠느냐 말이예요. 틀림없이, 이렇게 가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가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될 것을 알고 가야 된다구요. 미국이 망할 수 있는 길을 막기 위해서 가자구요. 미국이 싫어하는 것을 방어하는 데서만이 미국이 살아 남을 수 있고, 미국이 방어될 수 있는 것이라구요.
그러면 그것이 뭐냐? 공산당 문제, 흑백 문제, 이런 문제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죄악의 문제, 범죄가 문제입니다. 청소년 윤리 문제라든가…. 그것을 책임지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전부 다 시정하자는 것입니다. 그 두 틈바구니에 선 우리가 가는 데는 비참상이 몰아쳐 올 것입니다. 그것이 슬프다고, 그것을 피해 가다가는 미국이 망하는 길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남이 쉴 때, 우리는 쉴 수 없어요. 남이 잘 때, 우리는 잘 수 없다 이거예요. 남들이 놀 때 우리는 놀 수 없다 이거예요.
그러면 누가 그런 사명을 해야 되느냐? 현재 미국을 사랑하고, 앞으로 미국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출발에서부터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전체를 위하는 데는 무엇을 책임지느냐? 이런 어려운 것을 책임지자는 것이 우리라구요.
만일에 10년이 걸리면 갈 거예요?「예」 20년이 걸린다면 어떡할 거예요?「가겠습니다」 40년이 걸린다면 어떡할 거예요?「가겠습니다」 우리 일대에 이것을 못 이루고 내 아들 대에 간다면 어떡할 거예요?「가겠습니다」 그러려면 여러분 아들딸에게 이런 사상을 집어넣을 수 있는 참된 부모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도 싫다는 것, 누구도 못 하는 것을 함으로 말미암아 시일이 가면 갈수록 까꾸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아래의 것이 올라가고 위의 것이 내려간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에게는 돈도 없다 이겁니다. 우리에게는 권력도 없다 이겁니다. 세상의 무슨 학자들처럼 자랑할 지식도 없다 이겁니다. 그러면 무엇을 갖고 권력과 돈과 지식이 지배하는 이 세계를 누를 수 있겠느냐? 무엇을 갖고? 응?「사랑」 그 사랑만 가지고도 안 되는 거예요. 그 사랑도 따뜻한 봄 날에, 혹은 편안한 나무 그늘에서 쉴 수 있는 자리의 사랑? 아니라는 거예요. 모험이 엇갈리는 사랑, 그 사랑이 아니면 안 됩니다. 모험을 동반하는 자리에서 혁명을 부르짖을 수 있는 그런 사랑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모험, 모험을 싫어하는 이 땅 위에서 모험을 하면서 모험적인 사랑을 가지고 미치는 데서만, 돈도 권력도 지식도 없지만 여기에 부딪치게 될때, 그것이 돈보다 낫고 지식보다 낫고 권력보다 낫다는 그것을 알게 될때는, 여기서 완전한 세계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 국민과 미국 정부가 하지 못하는 모험적인 사랑을 가지고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세계 만민들이 하지 못하는 모험적인 사랑을 가지고 선두에 서야 되겠습니다. 마치 골리앗 앞에 나타난 다윗과 같이…. 그는 금력을 가진 것도 아니요,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니요, 무슨 지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인류를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모험심을 가지고 나타났기 때문에 하늘은 이 모험심을 중심삼고 역사한 것입니다.
보라구요. 전세계 삼분의 일을 삼키고 있는 공산당 앞에 우리는 벌거숭이로 나타나 가지고 공산당과 싸우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 민주세계를 대해서도 선전포고를 하고 있는 거예요. 이 민주세계는 망한다 이거예요. 모험적인 기치를 들고,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느냐는 문제를 중심삼고 우리가 가기 때문에, 이것이 오래지 않아 대번에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될 때는 문제가 여기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농촌에 가면 농민과 더불어, 공장에 가면 공원과 더불어, 회사에 가면 회사원과 더불어, 그 누구와 더불어도 이와 같은 사랑을 중심삼고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선두에 서가지고 선동하며 그들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책임을 할 훈련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악이 어디에나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어디에나 가 가지고 이것을 타파하기 위하여 모험적인 행동을 개시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 우리들입니다. 죄악의 역사니 망할 역사니 하는 모든 역사를 가로막고…. 후퇴예요, 전진이예요?「전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몸이 찢기는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 나를 잊고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만이 문제라는 거예요.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이 모험적 환경을 타파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어느 곳엘 가더라도 '내가 여기 온 것은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 하나를 위해 온 것이다. 아무리 반대를 해도, 내가 사랑하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길을 가기 위해서는, 싫다는 것이 어디 있어요? 싫다는 것이 있어 가지고는 안되겠다 이거예요.
그러면, 쉬운 일을 택할 것이냐, 어려운 일을 택할 것이냐? 어느 걸 택할 거예요?「어려운 일을 택하겠습니다」 쉬운 일을 택할 거예요, 어려운 일을 택할 거예요?「어려운 일요」 정말로 그래요?「예」 대답은 쉽지만 행동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서도 힘든 일만 시키면, '왜 나에게 이 일을 시키노?' 이럽니다. 그 힘든 일을 시키는 게 나쁜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힘든 일을 시키는 것은 나를 힘든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냐?' 하며 그 일을 나에게 시켜 주기를 바랄 수 있는 의욕이 앞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불평이 앞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미국에서 1972년도에 출발하면서부터 미국의 감옥에 갈 것까지 이미 결심했습니다. 그런 곳에 간다고 해서 이 길을 후퇴할 수 없다 이거예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나라를 위해서 그 이상 생각해 봤어요? 그러한 감옥을 피하기 위해서는 감옥 가기 전에 감옥 이상 훈련을 하고, 감옥 이상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감옥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을 넘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내가 여러분을 강력히 내몰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떡할 거예요?「하겠습니다」 정말로 그래요?「예」
여러분은 '피곤하면 쉬고, 밥 먹고 하는 거 없이 잠이나 자라. 공부고 뭣이고 쉬어라' 이런 게 좋아요, '이놈의 자식들아, 왜 공부 안 해?' 하며 쥐어 박고 잔소리를 무척 하고 하는 게 좋아요? 어떤 게 좋아요? 그래, 내가 만나 가지고는 눈을 부릅뜨고 '이놈들, 일 안 한다' 하며 불평하는게 좋아요, 그저 '놀자, 놀자' 이러는 게 좋아요?「불평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정말 그래요?「예」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을 이렇게 보는데…. (표정을 지으심) (웃음) 정말 그래요?「예」
여러분 비판해 보라구요. 선생님 자신이 출세하려고 그러느냐, 미국을 살리려고 그러느냐? 선생님이 출세하려고 그런다면 그건 쳐 버려야 되지만 미국을 살리기 위해서 그런다면 겸손히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불평이 필요 없습니다. 불평이 필요 없다구요. 선생님은 이 복귀노정에서 '불평'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보라구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라면….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고생은 죽도록 시키고 말이예요. 지금까지 선생님이 고생을 얼마나 많이 했어요? 별의별 놀음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알고 보니 하나님의 사랑을 주기 위한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찾아가는 길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그 사랑이 희박해지고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해지고 더 빛나더라는 거예요. 이것을 알았다 이거예요.
그렇게 되면 될수록 범위가 넓어지고 입체적인 환경이 넓어지는 권내에 있어서 자연히 자기가 원치 않더라도 하늘이…. 가을이 되면 모든 것이 열매를 맺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결과가 나타나면 자연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해 가지고 자리잡고, 자기가 원해 가지고 출세를 하는 것은 영원히 가지를 못한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또, 그런 심정을 가지고 가면 지치질 않습니다. 여기 어머니랑 선생님을 대해 가지고, 선생님은 뭐 철골 같은 남자라고 말합니다. 선생님이 뭐 본래 건강하기도 하다구요. 건강한 게 아니라 본래 그런 준비를 했다구요. 쇠 같은 사나이지요. 엊그제도 리치몬드까지 열 세 시간 반 걸려서 갔다 왔다구요. 갔다 오는데, 어떠한 생각을 했느냐 하면, 리치몬드를 갔다 온다는 게 아니라 그 3배 이상의 거리를 갔다 온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세 시간 동안에 3배의 거리를 간다고 될 수 있으면…. 남들은 그저 쿨쿨 자지만 선생님은 안 존다구요. 환경에 대해 취미가 많다구요. 미국이 어떻고 어떻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합니다. 내가 미국 땅에 와 가지고 또 이래야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이 불쌍하다는 그 생각 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달리는 그 시간이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구요. 모든 것을 상대해 가지고 은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자기가 어떻게 새로운 무엇을 느끼느냐 하는 데 있어서는 영적인 복음의 시간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소화하려고 하는 거라구요. 그곳에 가 가지고는 돌아오고 싶은 것이 아니라 더 가고 싶다는 거예요. 더 가고 싶다구요. 그렇게 하면, 피곤도, 보통 사람같이 느끼지 않는다구요.
'아이구, 힘들다. 어서 가야 되겠다. 지루하다'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배고픈 자리에 들어가면 '아이구, 배고파!'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보다 몇 배 배고픈 것을 배우러 왔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배고픈 길을 통해서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길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고문받을 때는, 고문받는 길을 통해서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고문을 받더라도, '쳐라, 이 자식아! 쳐라, 이 자식아…' 그 매에 못 이겨서 '아이고고고…' 하면 죽는 거라구요. 치는 힘보다 더 씩씩 하게 되면 막아내는 거라구요. 마찬가지라구요. 칠 때는 '음' 하고 힘을 주는 거라구요. '내 힘이 강하냐. 네 힘이 강하냐 대결해 보자' 이렇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환경을 거쳐가면 통쾌하다는 거예요. 이놈들, 그러면 그렇지…. 그 통쾌한 것은 그러한 결의를 가지고 거치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것입니다.
지금 시간이 여덟 시가 넘었습니다. 시간을 보는 사람은, '오늘 선생님이 여덟 시까지밖에 얘기를 안 할 것이다' 했던 사람은 여덟 시가 넘어 가면 지루할 거예요. (몸짓으로) 이런다구요. 그러나 '아, 스물 여덟 시간 얘기하시면 좋겠다, 그렇게 얘기하시면 얼마나 좋겠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하루 24시간을 얘기해도 안 존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소련 공산당한테 일주일 동안 잠을 못 자는 고문도 받아 봤다구요. '이 녀석, 네가 견디나 내가 견디나' 하며 재미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구요. 보통 사람들은 일주일만 가게 되면 전부 다 이래 가지고, 자면서 얘기 다 해 버린다구요. 선생님은 눈을 뜨고서도 잘 잔다구요. 그것을 연구했다구요. 그때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도 잠이 오면, 그 방법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또, 고문받아서 멍이 들든가 아픈 데가 있거나 하면 그걸 푸는 방법을 연구했기 때문에 지금도 피곤할 때는 그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내가 보통 하루에 한 시간 자고도 버텨 나갈 수 있다구요.
여러분을 그렇게 인도하면 어떡할 거예요? 다 도망가지요? 나는 얘기를 매일 20시간씩 한 달동안도 계속할 수 있다구요. 한 번 얘기하는 데 몇 시간 해야 된다는 관념이 없다구요. 여러분, 사랑하는 하나님이 6천년 동안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났다면 한 시간에 말을 다 해 버리겠어요? 하루에 말을 다 해 버리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런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대해 가지고는 밤이나 낮이나 없습니다. 언제든지 누구를 대해서 얘기할 수 있고, 언제든지 내 시간을 제시할 수 있고, 언제든지 그와 동조할 수 있다 하는 마음을 갖는 거라구요, 밤이든 낮이든. 사랑하는 사람의 전화는…. '자는 시간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하지 말라' 그럴 수 있어요? 그런 훈련이 필요하다구요. 그런 훈련이 필요하다구요.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진짜 밤에, 어느때에 출동 명령을 내릴지 모르는 거라구요. 그럼 어떡하겠어요? '선생님은 뭐야? 이게. 남이 하지 않는… 남들은 다 자는데 이게 뭐야?' 이럴 수 있어요?'밥도 제대로 먹이고, 잠도 재우고, 쉬게 하고 일을 시키지, 이게 뭐야?' 이럴 수 있어요? 그럴수 없다구요.
얼마만큼 대한 시간이 많으냐 하는 것에 따라 친한 사람의 비중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같이 행동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라구요.
이런 것을 볼 때, 여러분들이 알 것은…. 중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별것 없다구요. 모든 변화에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 가지고 부딪치고, 화하고, 접하고, 거기에 응할 수 있는 나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다방면에 있어서 훈련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여기에 일주일 동안 금식하지 않은 사람 손들어 봐요. 다 하라구. 금식 하라구. 뜻을 위한 길에서는 밤을 새워 가면서 기도도 해야 된다구요. 그거 해본 사람 손들어 봐요. 내리라구요.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땀을 흘리는 일이 있다 할 때, 땀을 흘리는 자리에 내가 몇 시간 동참할 수 있느냐? 이게 필요하다구요. 그런 시간을 많이 배정하여 그와 같은 훈련을 해야 돼요. 딱 지쳐서 그저(행동으로) 이럴 수 있는 시간에도 그 시간을 중심삼고 훈련을 받아야 된다구요. 그 자리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한 발자국 더 가다가 자기가 원하는 황금판도 맞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발자국 더 가 가지고….
지금 구라파 사람들이 여기 미국에 왔으니까 다 좋지, 여기 왔던 사람들을 당장 훈련시켜 가지고 저 아프리카의 제일 오지로 가라면 어떡할 거예요, 갈 거예요?「예」 그러면 '미국에서 하는 것보다도 내가 얼마나 멋지냐' 하고 자랑하면서 갈 거예요, 이렇게 하고 갈 거예요? 자, 미국에서 선생님을 만나는 게 멋지겠어요, 아프리카 오지에서 선생님과 단 둘이 만나는 게 멋지겠어요? 여기서는 자동차 타고 다니고 뭐 그저 이렇지만, 거기 사자가 득실거리는 데에서 만나게 되면 둘이 꽉 붙안고 이럴 거라구요. (웃음) 어떤 게 좋아요? 그럴 수도 있다구요.
하나님이 내가 노래하는 데에 섞여 가지고 있을 때 이렇게 오시는 것이 좋아요, 내가 지금 죽어 넘어가는데 하나님이 바쁘게 와 가지고 붙들어 주는 게 좋아요? 어떤 것이 좋은 거예요? 기쁠 때 오시면 '아, 기쁜 하나님' 그냥 이러지만, 지극히 슬플 때에 오셔서 기쁨이 전개되는 그 순간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어떤 것이 좋아요? 웃으면서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나는 게 좋아요, '아이구' 이러면서 눈물을 뚝뚝 흘릴 때 하나님을 만나는 게 좋아요? 어떤 게 좋아요? 그렇게 어려운 자리에서 하나님의 후원을 받아야 멋진 것이예요. 쉬운 자리에서는 '나 하나님 싫다. 하나님의 원조 필요 없다'는 이런 마음을 가져야 된다구요. '하나님은 쉬소, 나 원조 필요 없소' 이래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건 뭐 쉬운 데서, 편안한 데서 뭐 어떻고…. 기도도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라구요. 자기 벌이를 하고도 남을 수 있는데, 후원을 뭘 해요?
기도할 때는…. '오늘은 열 집에 가서 열 사람을 만났지만, 내일은 스무 집에 가서 스무 사람을 만날 텐데 합당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소서' 이건 기도가 되는 거라구요. 그러나 '오늘은 열 사람 만났지만 내일은 세사람 만날 터인데, 하나님 도와주소' 하면…. 무슨 기도가 그래요? 그런 기도는 하지도 말라는 거라구요. 기도는 노력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거라구요.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놀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게 아니라구요. 그리고, 노력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거라구요. 열만큼 하던 사람이 '백만큼 하겠습니다' 할 때는, '아버지, 내가 백만큼 하려고 하는데 내 힘이 부족하오니 도와주소서' 할 때는 하나님이 '그래, 오냐!' 하시며 도와주신다는 거예요. 그래야 하나님이 기도하는 사람을 볼 때 기분이 좋고, 도와줘도 기분 좋고, 사탄의 참소도 받지 않는다는 거예요.
자, 이런 것을 알았다구요. 우린 알았다구요. 보다 노력하고 보다 희생하는 데 있어서 기도가 필요하고, 동조가 필요하고, 사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그 사정과 동조는 전부 다 나를 망하게 만들고 퇴폐하게 만드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의 성격은 그렇다는 겁니다. 저기 저 산이면, '저 산 뒤에 무엇이 있소' 할 때, 가 보고야 맙니다. 안 가 보면 안 됩니다. 그런 성격이라구요. 그 성격을 하늘이 참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요 미국도 내가 40일 동안에 48개 주를 전부 다 돌았다는 거예요. 내가 듣고 보고 싶은 데 다 가 봤다구요. 또, 세계 40개 국을 제일 바쁘게 돌아다녔습니다. 이렇게 했기 때문에 그렇지, 이러지 않으면 일을 못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여기 수련소에 왔기 때문에 뭐 이렇게 놀고, 다 이렇게 하지, 지방에 나가 있으면…. 엊그제 50개 주를 순회하면서도 '이게 뭐야? 왜 이런 거야? 누가 이런 엉터리 짓 하라고 했어?' 하며 좋지 않은 감정으로… '왜 전도 못 했어? 전도를 왜 못 했어? 너와 같이하니까 안 되었지, 몇십 배 하고 몇백 배 하라고 했는데 안 돼?' 그랬다는 거예요.
여러분, 큰 사람이 되려면 한계점, 한계선을 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노력하는 데에는 한계가, 끝이 없다고 생각하고 노력해야 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왜? 능력 있는 하나님이…. 내가 거기서부터 생명을 내걸고 들이대는 거라구요. 하나님도 못 견딘다구요. 선생님이 이만큼 나오기까지에는 생명을 건 놀음을 한두 번 했겠느냐구요. 모든 일을 그렇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걸고 대드는 거라구요. 생명을 걸지 못하는 사람은 지게 마련입니다. 져야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굴복당해야, 정복당해야 원칙이라는 거예요.
여기 조는 놈들, 이놈의 눈깔이 조는 걸 어디서 배웠어? 피로하다구? 그렇기 때문에 침을 가지고 다니라구요. 침을 가지고 궁둥이를 찌르라구요. 그런 훈련도 해야 된다구요. 내가 깜빡 조는 순간에 십년 공부 다 흘려 갈 수도 있습니다. 자지 않는 훈련도 받아야 됩니다. 또, 듣기 싫은 말은 몇 시간이나 들을 수 있겠느냐? 이것도 훈련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을 대해 '열 시간 이야기해 보소. 내가 들어 주겠소. 스무 시간 이야기해 보소. 내가 들어주겠소. 일년 얘기해 보소. 내가 들어 주겠소'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런 것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이런 훈련이 필요하다구요. 그래 가지고 그의 말이 그치는 날에는 나한테 점령당한구요. 그게 필요하다구요.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이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구요.
선생님의 손을 보게 되면, 여러분의 손 절반만 할는지 모릅니다. 손이 작다구요. 조그마해요. 그래도 안 해본 게 없다구요, 안 해본 게. 어떤 사람이든 친구가 되려면, 사정이 통하려면 다 훈련을 해야 된다구요. 공부를 할 때는 머리를 싸매고 밤을 새워서 하는 거라구요. 놀 때는 24시간이고 일주일이고 놀자 이거예요. 아무리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나한테 붙들리면 '아이구, 제발 그만 하자' 이렇게…. 그런 훈련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뭘하게 되면 밤새우는 것은 보통이라구요. 노는 데도 밤새워 놀고, 뭘하는 데도 밤을 새운다구요. 그런 훈련도 해야 됩니다.
또, 우리 여자들 말이예요. 저 깊은 산골짜기에 데리고 들어가 가지고 돼지 사냥도 하고, 훈련도 많이 시켰습니다. 여기서는 지금 뭐….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냐 말이예요. '이제는 갑시다' 하고 가자는 말을 하면, '가?' 하고 또 하는 거예요, 밤을 새워. '선생님, 더 합시다. 더 합시다' 이러면 안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 대해서 그렇게 해도 괜찮아요? 그래, 강의를 아홉 시간씩 들으니까 어때요?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뭐가 그래요? '아이고, 여름이 되어 오니 에어컨디셔너(air conditioner)를 놓아야 되겠소. 더워서 공부하는 데 지장이 돼서요' 하면 난 그런 거 모른다구요. 그렇게 훈련을 시켰다가는, 에어컨디셔너 있는 데에서는 일을 시켜 먹을 수 있지만 그것이 없을 때는 어떻게 일을 시켜 먹느냐 말이예요.
그래, 그것이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습니다」 그래, 더우면 어떻게 해요? 덥다고 생각해야 되겠어요, 춥다고 생각해야 되겠어요? '이렇게 덥다가 곧 서늘해질 것이다. 시간이 조금 길다 뿐이지. 몇 개월이지…' 이렇게 생각하라는 거예요. 몇 달만 있으면 또 추워지는 거라구요. 몇 달 참는 훈련이 나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기간이 필요 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그렇게 생각을 해야 한다구요. 그게 힘들어요?
그렇게 해 가지고 뭘하자는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남이 하지 못하는 것, 남이 견디지 못하고, 남이 소화하지 못하는 것을 소화하고, 이기고, 감당할 수 있어 자연히 환경적으로 드러나게 되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선생님도 이제 나이가 많기 때문에 눈이 멀어집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안경을 안 끼고 책을 읽습니다. 그럴 때도 있다는 거라구요. 글자가 아물아물하다가도 쭈욱 보게 되면 어느 한 때에 가서는 그 글자가 딱 보인다구요. 그렇게 초점이 잡혀지면 눈을 깜박거리지 않고 이렇게 본다구요. 그거 다 그런 훈련을 했다구요. 몇 분을 눈 깜박거리지 않고 있을 수 있느냐? 선생님은 한 시간도 문제없습니다. 한 번 결심하면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한 시간이 가능하다구요. 그런 훈련을 했다구요. 나한테 이기는 사람이 없다구요. 훈련, 훈련을 했다구요.
여기 팔을 들게 되면 말이예요. 선생님은 천 명이 와서 겨드랑이를 깔작거려도…. (웃음)
자, 여러분, 그런 훈련 좀 해보고 싶지 않아요? '내가 지금 하는 것이 다 됐다' 그거 누가 정했어요? 누가 정했어요? '이것이면 된다'고 누가 정했어요? 내가 정하지 않았다 이겁니다. 내가 정하는 것은, 내가 정하고 싶은 대로 정한다는 이런 사고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뜻을 이뤄야 되겠습니다. 그런 훈련을 해서라도 뜻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훈련을 거치지 않고는 뜻을 못 이룬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 여러분이 그러한 내용을, 그러한 마음을, 그러한 태도를 가지고, 그러한 다짐을 하고, 모든 면에 관심을 가지고, 이렇게 훈련받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거쳐 나가는 것을 의무로 생각하고 나가게 되면, 자동적으로 시일이 가면 갈수록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점 훌륭한 사람이 되고 불원한 장래에 뭇 사람들의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과 다르다는 것을 언제나 생각하고 나가라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훌륭한 사람들이 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역사시대에 왔다 갔던 우리 선조들을 보게 될 때, 어느 시대나 당신의 뜻의 길을 찾아 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가정을 지니고 사회에 자기의 명목을 세우고, 자기의 모든 출세의 길을 닦아 나가면서 하늘의 뜻을 세워 나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배웠습니다.
아버지, 이제 이 거대한 미국을 앞에 놓고 저희들이 새로운 훈련을 해야 되겠습니다. 뜻을 중심삼고 산이나 바다나 들이나 어느 곳이든지 가지 못할 곳이 없다는 이런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내 청춘시대에 못 간 것을 노년시대에 더듬으면서 가야 되는 운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이여, 이 어린 것들이 젊은 시대에 하늘의 뜻을 세울 수 있도록 모든 길이 가려져야 되겠사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이 하도 크고, 하도 엄청난 문제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내용과 정상적인 환경을 거쳐 가지고는 천년 만년 시일이 연장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이것을 가로막아 비운의 역사를 더듬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서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의 즐거움이 나의 자랑이 아니라 오늘의 비참과 투쟁이 나의 자랑이요, 오늘의 생활 모습이, 뭇 사람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죽음이 엇갈리는 사선 가운데서 자기를 잊어버리고 가는 그 길이 반드시 선을 위해서 산 길일 때는, 그 시대를 낸 후에는 공증되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았습니다.
오늘날 모든 통일교회 식구들은 남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뜻을 모르고, 혹은 어떠한 이념을 찾지 못한 그런 사람들은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는 이런 무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내 자신이 그런 길을 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당신을 알고 난 후에, 당신이 그런 길을 갔고 그런 입장에 섰기 때문에, 그러지 않고는 따라갈 수 없는 입장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당신이 그리워 당신을 찾기 위해서는 당신의 뜻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그렇게 아니할 수 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여기에 모인 젊은이들 앞에 그런 길을 가라고 다짐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사정이 너무도 비참하옵니다.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지만 그 길을 갈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저희 앞에는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저희 앞에는 인종차별의 모든 문제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에 대한 제반 문제가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탄이 원수됐던 그것을 해결해야 할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매개체가 되어야 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모든 문제를 문제삼지 않는 강하고 담대한 무리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이 어린 것들에게, 아버지, 힘을 주시옵소서. 강하고 질긴 힘을 주시옵소서. 하루의 결의에 불타서 꺼지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하루의 불길이 천년을 태우고도 남을 수 있는, 이런 의욕에 불타는 하늘의 용자들로 삼아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어린 다윗의 눈길에는 소망의 불빛이 비쳐 났습니다. 그 마음에는 하늘의 감화를 남길 수 있는 동족애의 심정이 민족을 넘어, 하늘에 까지 미쳐졌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여기 모인 당신의 어린 자녀들의 가슴에 '하늘을 추구하는 길 앞에 무엇이든지 못할소냐' 하는 신념에 불탈 수 있는 모든 감각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관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부딪쳐 가지고 행하고, 소화시키지 못함이 없는 그런 자주적인 인간으로 삼아 주시옵소서. 환경이 이들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점령할 수 있는 주체적 인간들로, 아버지, 키워 주셔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을 당신이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때가 가기 전에, 촉박한 기간 내에 그것을 하여야 할 역사적 사명이 우리 눈앞에 가로놓여 있사옵니다. 이것을 놓고 후퇴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쳐서 밀쳐 가지고 제거시키고 전진하여야 할 우리의 사명이 있사옵니다. 오늘 미국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주시하고 계시니만큼 아버지의 동정을 살 수 있는 활동의 터전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아오니, 움직이는 제반사가 당신의 관심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날과 그 뜻이 저희를 부르고 있고, 인류의 해방의 한 날을 저희를 위해서 준비하시는 아버지의 심정이 저희들을 보호하고 있사옵니다. 최후의 승리의 방패를 들고 하늘과 땅을 대신하여 승자의 권위를 가지고 자랑할 수 있는 승세자를 아버지께서 자랑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께서 만민 앞에 세워 가지고, 온 사탄 앞에 세워 가지고 '내가 사랑하지 못한 것을 네가 이렇게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될 때까지 천만사의 수난길을 통하여 참고 싸우고 이겨 남아지지 않으면 안 될 무리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 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중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희생하고, 보다 공적이고, 보다 자기 스스로를 포기하는 자리에 서고, 그러면서 모험을 단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안식일이옵니다. 모이는 곳곳마다 항시 축복하여 주시옵시고, 영광의 한 때에 당신의 사랑권내에 품길 수 있는 인연을 고이 남기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곳을 바라보고 기도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과 구라파에 있는 모든 식구들, 또 미국에 있는 모든 식구들을 굽어살피시어서 같은 은사로 품으시옵고 이끌어 주시옵소서.
외로운 자리에 있거들랑 위로하여 주옵고, 뜻을 위하여 눈물짓는 자녀들이 있사오면 당신이 자비의 심정을 가하시어서 보호하여 주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