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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찾아서

일시: 1986.05.04 (일) 장소: 한국 본부교회

​'나'는 존재 양식의 총합체

​근원을 확실히 알지 못하면 그 과정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과정에 아무리 그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 과정이 완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이 지금 생각할 때에 우리의 근원, 우리의 뿌리, 그 뿌리가 어떻게 돼 있느냐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나'라는 것을 가만 보면, 나 하나에는 전부가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물질이 들어와 있고, 그다음엔 사람이 들어와 있고, 영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3대 부모를 갖고 있다고. 첫번째는 만물이 우리를 낳아준 부모입니다. 그다음엔 우리를 낳아 준 부모, 우리 부모가 우리를 낳아 줬습니다. 사람이 결국에는 우리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3대 부모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을 볼 때에 그 사람 가운데에는, 그 아무개 하면 아무개, 구조적인 그 인간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데 그 구조적인 것 가운데에는 반드시 역사성이 들어 있고, 자기의 부모가 되는 조상이 깃들어 있고, 더 나아가서는 거기에 하나님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가만 보면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의 깊이를 우리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양심이 얼마나 깊으냐 할 때, 이것이 무한히 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양심이 얕다면 무한히 얕다구요. 무한히 얕은 것 같으면서도 무한한 깊이를 갖고 있다는 거예요.

그건 어째서 그러냐 하면 우리의 근원이 무한한 근원에서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깊고 깊은 그런 근원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근원이 깊을 수밖에 없기에 그 깊은 것을 지니고 있는 것이 우리 사람인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마음을 갖고 있고 몸을 갖고 있습니다. 그 몸은 부모로부터 이어받았고, 또 몸이 자랄 수 있는 이 '나'라는 것은 이 만물로부터 공급받아 가지고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나'라는 이 자체는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하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문 아무개 하면 문 아무개, 레버런 문 하면 레버런 문 그 자체가 태어난 그날부터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 역사성은 지극히 오래인 것입니다. 지극히 방대한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을 우리는 생각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한 나무를 바라보면 나무에는 뿌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 나무는 뿌리를 통해 가지고, 줄기를 통해 가지고, 가지를 통해 가지고, 잎사귀를 통해 가지고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잎사귀를 통해 가지고 탄소동화작용, 광합성작용을 해서 엽록소를 보관하여 뿌리의 모든 탄화 작용과 화합해 가지고 엽록소를 보충받는 사실을 바라볼 때, 그 잎이 살고 있는 것은 잎 자체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체를 대표해서 살고 있습니다. 가지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줄기도 줄기 자체로서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하에 뻗어 있는 가지와 뿌리와 잎들을 대신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우주는 어떤 것이냐? 우주는 연체(聯體)로 되어 있습니다. 공동 생명체로 되어 있다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만물을 바라볼 때…. 내가 갖고 있는 '눈' 하면 그 눈의 역사는 깊다는 거예요. 내가 보는 이 눈과 동물이 보는 눈, 그 눈의 역사는 공통한 것입니다. 깊은 근원에 가 가지고는 연관돼 있다 이거예요. 우리의 모든 사지백체가 개별적으로 이렇게 나눠진 것 같지만 그 근원을 찾아 들어가면 찾아 들어갈수록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어느 하나도 빼낼 수 없는 공동 운명권에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볼 때 '나'라는 한 존재는 전체를 대표한, 다시 말해서 뿌리들의, 근원의 한 열매로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우주 존재들의 뿌리를 대표한 하나의 결실체다 이겁니다. 또, 평면적으로 보면 모든 존재 양식의 하나의 종합체 형상을 갖추고 있는 것이 '나'입니다.

곧은 나무가 되려면 뿌리가 곧아야 돼

그러면, 이와 같은 내 자신이 참을 그려 나가는데 왜 참되기를 바라느냐? 참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나무로 말하면 꼿꼿한 나무가 되자 이거예요. 그렇게 볼 때에 꼿꼿한 나무가 되어야지 제멋대로 뻗어 나가서는 안 되겠다 이거예요. 그러나 아무리 꼿꼿한 나무가 되고 싶어도 그 환경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좋은 환경에서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나무로 말하면, 돌이 많고 흙이 없는 이런 바위 틈에서 자란 나무라면 그 나무는 꼬불꼬불해집니다. 사방으로 돋구워 주는 영양소가 평균적으로 보급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치우치기 때문에 치우친 곳을 향하여 꼬부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로 말하면 곧은 나무가 되어야 하는데 곧은 나무가 되기 위하여는 뿌리가 곧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어려워요. 곧은 나무가 되려면 뿌리가 곧아야 되는 것입니다. 뿌리가 곧을 뿐만이 아니라 순도 곧아야 되는 것입니다. 삼합(三合)의 일치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순과 줄기를 통해 가지고 뿌리가 한 선에 서야 됩니다. 한 수직선에 서야 됩니다. 이것이 지극히 어렵다는 거예요. 아무리 뿌리가 곧더라도, 아무리 줄기가 곧더라도 그 순, 꼭대기의 순이 꼬부라지면 그 나무는 꼬부라지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그 큰 나무…. 여러분 그렇잖아요? 산에 가게 되면 무성한 나무들 가운데 특히 똑바른 나무, 보기에 참 흠이 없는 이런 나무는 전체의 표준이 되는 거예요. 그걸 중심삼고 전부 다 비교하게 마련이다 이거예요.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간이 사는 일상생활에 있어서 여러분의 뿌리, 뿌리가 곧아야 합니다.

그 뿌리는 어디를 통하느냐? 마음을 통해 가지고 마음 저 피안의 세계 깊은 곳까지 연결돼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시조에까지, 이상을 더 나아가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이 있다 하게 되면 하나님의 깊은 저 골짜기까지 뿌리를 두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뿌리가 꾸불꾸불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겁니다. 마음이 바라고 몸이 바라는 것은 곧기를 바라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에게 바른 사람이니 곧은 사람이니 하고 말을 하는 것은 어디에 기준을 두고 하는 말이냐 하면, 역사성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곧은 사람' 할 때에는 뿌리로부터 곧은 뿌리를 갖고 있고, 줄기로부터 가지, 순의 종대가 전부 다 곧은 것을 갖고 있어야 됩니다.

타락하여 꼬부라졌지만 선을 추구하는 뿌리

자,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세계를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과연 인간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느냐 이거예요. 인간의 뿌리, 이 뿌리가 어디에 있느냐? 이걸 모르고 있다구요. 뿌리가 동에서 뻗었는지, 서에서 뻗었는지, 남에서 뻗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북에서 뻗었는지 어디서 뻗었는지 그 뿌리의 방향을 모르고 있다구요. 뿌리, 그 뿌리가 어떻게 돼 있느냐? 그 뿌리가 바른 뿌리냐, 꼬부라진 뿌리냐? 이게 문제예요.

그리고 줄기 자체가 자라 나가는 데 있어서 곧게 자라고 있느냐, 제멋대로 자라고 있느냐? 아무리 곧은 뿌리를 갖고 줄기가 바르게 자란다 해도 그 순까지도…. 이 순이 문제예요. 언제나 문제가 순이예요. 그 순이 잘 자라고 있느냐 이거예요.

자,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세계를 바라볼 때, '도대체 인간의 뿌리가 어디에 있느냐?' 하고 뿌리를 생각하고 뿌리를 사랑하고 뿌리를 찾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 여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도 뿌리를 더듬어 나가야 되는 거예요. 뿌리 가운데에는 나쁜 뿌리, 좋은 뿌리가 있습니다. 우리 조상이 있다면 그 조상이 선한 조상이냐, 나쁜 조상이냐 이거예요.

종교적으로 볼 때 인간의 시조가 타락했다고 한다면, 타락했다면 나쁜 조상이고 나쁜 조상이라면 꼬부라진 것이다 이거예요. 어떤 선을 중심삼고 표준적인 그 형에 일치되지 못하고 거기에 반대되는 노선을 취했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뿌리가 꼬부라졌다, 뿌리가 틀렸다 할 때, 이것이 바로 뻗을래야 바로 뻗을 수 없어서 꼬부라졌다면 꼬부라진 형을 향해서 줄기가 뻗고 순도 거기에 따라서 뻗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인간은 어디까지나….

이 나무로 말하면 나무는 어디까지나 태양 빛을 따라 가지고 곧게 자라려고 하는 그런 본질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게 꼬부라졌다가도 왔다갔다하면서 그대로 잡아끄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자기는 모르지만, 뿌리는 모르지만, 자라는 그 근원은 모르지만 오늘날 내가 바라는 양심은, 식물이 태양 빛을 생명력으로 흡수하기를 바라듯이 선을 추구하고 좋은 걸 추구한다고 야단하며 자기 멋대로의 생활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래에 있어야 할 그 뿌리의 자리, 그 자리와 오늘날 내가 있는 이 자리는 어떤 관계가 돼 있느냐? 만약에 뿌리가 동쪽에 있는데 이것이 서쪽에 있으면 이것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소용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소용가치가 없는 거라구요. 뿌리가 있다면 그 뿌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순이 그 뿌리와 수직선상에 있어야 할 것인데, 그 순이 동쪽으로 가든가 서쪽으로 가든가 남쪽으로 가든가 북쪽으로 가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순을 중심삼고 뿌리가 이렇게 직선상에 선 나무는 동쪽의 가지도 정상적인 가지요, 남쪽의 가지 혹은 북쪽, 서쪽의 가지도 정상적인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순이 자랄 수 있게끔 모든 영양보급과 곧은 뿌리로 자랄 수 있게끔 영양 보급에 필요한 환경적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쪽 가지나 서쪽 가지나 남쪽 가지나 그 순의 안팎을 중심삼고 아무리 뻗었다 하더라도 바르면 그것은 자기가 정당한 존재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순이 찌그러졌다 할 때는 거 전부 다, 아무리 동서남북으로 가지가 뻗었다 하더라도 그 가지는 효용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재 원인

이렇게 볼 때에 종교면 종교, 혹은 철학이면 철학, 과학이면 과학 전부의 원인을 규명하자는 거예요. 원인을 규명하지 않고는 안 된다 이거예요. 원인이 없으면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요. 제1 원인, 제2 결과는 반드시 과정을 거쳐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뿌리라든가 하는 것의 원인 규명에 대해서 미분명한 자체 존재의 기반에 서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대한민국이면 이 대한민국의 뿌리가 뭐냐? 대한민국의 뿌리가 어디에 있겠느냐 할 때에 단군 성조를 중심삼은 단군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됐다 이거예요. 그럼 그 단군 할아버지는 어디서 왔느냐? 이런 문제가 제기될 때 이것은 반드시 신이 없느냐 있느냐의 문제가 된다는 거예요.

우리 인간 조상 아담 해와를 두고 볼 때, 아담 해와는 어디서 왔느냐? 이 문제를 볼 때, 자기가 자의에 의해 가지고 출생할 수 없는 거예요. 내가 있고 싶어서 있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거예요. 있어졌으니 있는 것이지요. 내가 있고 싶어 가지고, 그 생존의 동기를 내 스스로 의식하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부모님의 사랑에 동참자가 되었지만 내 자신이 의식해 가지고 내가 존재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의식하기 전부터 있었다 이거예요. 내 생명 이전에, 내 존재 이전에 사랑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뿌리를 밝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뿌리를 찾아보게 될 때에, 인간에게 있어서나 나라면 나라에 있어서 뿌리는 결국 인류의 최초의 조상에게로 돌아가는 거예요. 인류의 조상은 하나다 이거예요. 둘일 수 없습니다. 하나입니다. 하나인 그 조상은 어디에 근거했느냐? 하나의 하나님에 근거했을 것이다 이겁니다.

이러한 내가 처음에 생겨나기 위해서는 나보다도 나을 수 있는 동기가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진화론을 말하는데 맹목적 진화 발전이 있을 수 있느냐? 그런 논리의 형성은 있을 수 없다 이거예요. 맹목적, 우연적 출현이 있을 수 없다 이거예요. 그렇잖아요? 마이크면 마이크가 우연히 맹목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예요.

오늘날 인간 가치의 기준은 무한한 확대 세계에서도 그 기준을 잡을 수 없을이만큼 위대한 것입니다. 그런 인간이 무목적, 맹목적적인 우연한 자리에서 그런 인간의 구성적 인격관이 형성될 수 있느냐 이거예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근원은, 오늘의 내가 아무리 날고 뛰고 아무리 발전하고 했댔자 그것은 동기의 발발, 즉 그 동기가 나타내는 하나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그 동기를 넘어선 오늘의 나 자체는 있을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렇지 않아요? 식물 같으면 세포 번식을 통해 가지고 전부 다…. 요런 꽃이 있으면 요 꽃잎이 왜 이렇게 파랗게 되느냐? 요것 하나 가지고 번식하면 저 꽃나무가 나온다구요. 그건 무엇을 말하느냐? 거기엔 전부가 들어 있다 이거예요. 전부가 들어 있어요. 그것은 식물뿐이 아니라 동물세계까지도…. 남은 나의 하나의 세포 때문에 내가 전부 다 다시 생겨날 수 있다 그 말이예요. 거긴 뭐가 들어 있느냐? 뿌리로부터, 줄기, 가지, 잎, 열매까지 다 들어 있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내 존재라는 것은 내 존재의 근원과 일치될 수 있는 그 자리의 존재성을 지녔지 진화적 과정의 연결적 단계를 달리하는, 연결적 돌연변이라는 이러한 논리 형성에 기인해서 존재했다는 걸로는 볼 수 없다는 거예요.

'나'는 우주 전체의 가치를 축소한 박물관

자, 이렇게 보게 될 때에, 그러면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그런 내용….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천국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 묻게 될 때에 예수님은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이 맞는 거예요. 마음이 자리를 못 잡았으면…. 마음이 자리를 잡아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의 마음이 떠돌아다닌다 이거예요. 마음이 떠돌아다닌다 하면 이것이 둥그런 마음같이 축을 중심삼고 수직적 어떠한 평행선을 취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수직과 일직선 자리에 있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까꾸로 됐어요. 축이 자리를 못 잡고 있다 하면 그 축이 돌아가게 되면 마음도 돌아가는 거예요. 동서로 돼 있으면 거기로 마음이 들어가고, 남북으로 될 때는 마음도 달라지고 그런 거예요. 마음이 왜 달라지느냐 하는 문제는 일정한 축의 기준이 확정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축의 기준만 돼 있으면, 그 축을 중심삼고 언제나 같은 수직선상에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축의 자리를 잡았으면 그 수직선의 자리에는 하나님도 들어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자신에게는 누가 들어와 있느냐 하면 어머니 아버지가 들어와 있습니다. 안 그래요? 어머니 아버지가 여러분에게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 자신의 몸뚱이에는 이 우주가 들어와 있어요. 만물이 다 들어와 있습니다. 모든 원소가 여러분의 몸뚱이에 다 와 있다구요.

이렇게 볼 때에 '나'라는 게 뭐냐? 도대체 내가 뭐냐? 내 관념, 평면상에 나타난 인간 나 아무개를 중심삼고 볼 때 나라는 것이 무엇이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나는 김 아무개, 어느 대학에 지금 재학하고 있는 학생이라는 그 내가 아니예요. 이 우주의 근원서부터, 과정서부터 현재 전체를 종합한 하나의 표시체입니다. 축소시킨, 하나의 우주 박물관 요소를 축소시킨, 우주의 보물들을 가진 하나의 박물관과 같은 가치의 존재다 이거예요.

여러분, 한국이면 한국의 국립박물관에 가게 되면, 거기에 뭐 보물이니 국보니 뭐니 이렇게 해서 전부 나열해 가지고 자랑하고 있지만, 내 하나의 가치는 우주 전체의 가치적인 내용을 전부 다 전시한 것입니다. 우주를 축소시킨 하나의 핵 박물관입니다. 생명력을 지닌 모든 요소를 축소시킨 하나의 박물관 형태입니다. 나에게는 없는 것이 없다 이거예요. 나에게는 없는 것이 없다구요.

세포가 아주 작지만 거기에는 없는 것이 없어요. 전체 생명력의 근원이 되는 모든 것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예요. 내가 그것을 드러내지 못할 뿐이지 관련성에서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디에나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만물도 주관할 수 있습니다. 주관하는 데는….

인간은 절대적인 상대가치를 지닌다

그 주관의 본질이 뭐냐? 본질만 내가 들고 나가게 될 때에는 우주 주관도 가능하다 이겁니다. 주관의 본질이 뭐냐 하게 된다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본질에 접할 수 있는 내 하나의 생명적인 요소가, 그것이 완전히 주체 앞에 대상적인 가치를 지니게 될 때는 그 대상의 가치는 주체의 가치에 해당합니다. 그 대상의 가치는 원인과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있다 이거예요.

그 말은 뭐냐 하면 마음 앞에 우리의 몸은 언제나 대상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몸 앞에 주체적 대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고, 몸은 마음 앞에 대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둘이 합해 가지고 '나'라는 존재가 구성된 것입니다. 우주는 이와 같은 연관 관계가 맺어져 있음과 동시에 전후관계, 내적 외적인 관계, 오른쪽 왼쪽, 상하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이런 구성 요소로 보게 된다면 인간은 다 같은 것 같지만, 얼굴의 눈, 귀, 코, 입 이 네 가지 전시된 모양이…. 가짓수는 네 가지예요. 요만한 상판에다 그것을 전시했는데 전시한 네 가지는 40억 인류를 갖다 놔도 같지 않다 이거예요. 거 얼마나 신비로우냐 이거예요. 안 그래요?

가만 보라구요. 여기에도 뭐 수백 명이 모였지만 말이예요, 가만 들여다보면, 눈 까박까박하고 코가 오똑하고, 그 모양은 다 비슷한 것 같은데 그 조그마한 얼굴 판대기에…. 몇십 혹은 몇백억 인간을 갖다 놓아도 같을까요, 안 같을까요? 안 같다 이거예요. 이게 얼마나 신비로운 것이냐 이거예요.

그런데 나라는 것이 이 몇백억 가운데 하나로서의 나라는 것으로 생각할 때에 그 몇백억을 다 부정하고 나를 긍정하려고 그런다구요. 그런 모순이 어디 있어요? 이거 왜 그래야 되느냐 이거예요. 이런 걸 볼 때에 어떤 본질적인 주체 성품이 있다면 그 본성의 성품은 절대적인 동시에 그 절대적 자리의 상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절대적 자리에서 상대적 관계를 맺게 될 때에는 그 상대적 존재도 절대적 상대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렇지 않아요? 수십억 인류 가운데, 40억 인류면 40억 대 1인데 여러분의 마음은 전부 다 40억 인류를 대표한 자리에 서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더 큰 것이 있으면 그 더 큰 자리를 대표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그거 왜 그러냐 이거예요. 인간의 뿌리가 그러한 것입니다. 뿌리가 그렇기 때문에. 거 왜 그렇게 됐느냐? 뿌리가 그렇다는 거예요, 뿌리가. 뿌리가 그러니만큼 거기에 생겨난 순이 아무리 그렇게 돼 있다 하더라도 줄기가 생겨나지 않을 때에는 그 순의 잎사귀라도…. 그 잎사귀 가운데에 줄기가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우주의 공통 가치를 대표할 수 있는 존재의 자리에 있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 자체가 그렇다는 거예요. 동물세계는 그렇지 않을 것 아니예요, 동물세계는? 동물세계는 생각하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디까지나 뿌리의 기원에서부터 과정은 물론이요, 맨꼭대기까지, 순 중에도 맨 높은 자리까지 가려고 그래요. 여러분은 안 그래요? 어느누구나, 하나의 인간을 딱 잡아내 가지고 들여다보면 그 본질은 무엇이냐? 깊은 뿌리를 원하고 있고 제일 높은 순의 가지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공통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 인간이 역사과정에서 지녀 온 본성이 아니었더냐? 그걸 부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지요? 「예」

암만 조그마한 여자로 태어났고, 못생긴 그런 여자라도 될 수 있으면 '아, 여자 중의 최고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미인 조상이다' 이래 가지고 전체의 대표자가 되고 싶어한다구요. 낮은 것을 싫어하는 거예요. 높은 것을…. 또 깊은 곳, 넓은 것, 긴 것, 많은 것을….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큰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갖겠다는 것은 많은 것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소성을 지니고 있다, 많은 것을 지배할 수 있는 소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물, 부모, 하나님과 연합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인간

그러면, 이 모든 소성들을 무엇이 관리, 치리했느냐 이거예요. 무엇이 연결시켜서, 무엇이 모체가 되어서 그렇게 세포가 엉클어져 있느냐 이거예요. 우리도 그렇잖아요? 여러분이 아침, 점심, 저녁을 먹으며 '밥이 맛있다' 할 때 그 밥이 맛있다는 것은 그냥 맛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구성요소에,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에 있어서 나는 무엇 무엇의 주체성을 지녔기 때문에 그 상대적인 물질의 요소를 흡수해 가지고야 내가 존재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이거예요.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어요. 키가 큰 것은 나와 가지고 큰 것이 아니라 나올 적부터 그런 구성적 한계에서 그만큼 자라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예요.

그래, 모든 이 만물세계에 있어서 상대적 원소를 흡수할 수 있는 본질을 갖고 나온 거예요, 본질을. 맛있다는 것은 뭐냐? 그 본질 앞에 상대적 요소를 공급하게 될 때에 맛있다는 거예요. 왜? 그건 잘 주고받으니까 좋다는 거지요. 맛있다는 거예요. 맛이 없다는 건 뭐냐 하면 그 구성요소가 주체 요소 앞에 상대적 요소가 아닌 반대적 요소를 갖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먹게 되면 병난다, 고장이 난다는 거예요. 거 맛이 없다는 거예요. 이 혀라는 것이 다 감별하게 돼 있다구요. 오늘날 이것을 논리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때에 왔어요.

자, 우리가 이 본질을 파헤쳐 보면, 우리는 만물 가운데서 받은 요소, 그다음에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받은 요소, 그다음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요소, 이 3대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거 보게 되면 한 점을 중심삼고, 이게 원형을 중심삼고, 3단계가 하나의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본성을 중심삼고 부모님의 본성, 그다음엔 만물의 본성이 합하여 연결되어 있다구요.

이것이 무엇에 연결돼 있느냐? 제멋대로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니예요. 공통적, 연합적 관계에로 연결돼 있습니다. 그러면 연합적 관계를 조성하는 것이 뭐냐 이거예요. 그것은 지식이 아니예요. 지식이라는 것은 한 단계로 제한된 분야에서의 설명하는 내용을 말하는 거예요. 진리라는 것은 어느 한 부분의 존재 양상의 실상, 사실을 말하는 거예요. 돈, 돈도 마찬가지예요. 돈, 이것은 유동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물질도 유동하는 거예요. 물질이 그렇잖아요? 나에게 있던 원소는 흘러가 가지고 딴 데로 공급되는 거예요. 흘러가는 거예요.

수직사랑과 수평사랑이 합할 수 있는 곳이 이상적인 곳

그러면 유동될 수 있는…. 우리 사람도 그런 셈이예요. 우리 인간도 그렇다구요, 인간도. 우리 인간도 몸이라는 것이, 만물로부터 시작된 이 몸뚱이의 구성요소는 원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원소가 전부 다 분해되게 되면 딴 나무에도 흡수되고 별의별 것에 흡수된다 이거예요.

그러나 정신, 부모로부터 받은 정신이라는 것은 흩어지지 않는다 이거예요. 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이라는 것은 흩어지지 않는다 이거예요. 부모로부터 받은 사상이라든가 정신은 왔다갔다하지만 그 중심을 떠나려고 안 하는 거예요. 제일 선한 것을 중심삼고 떠나려고 하지 않고 돌고 있다는 거예요. 정신을 횡적으로 본다면 영이라는 것은 종적 자리에 있어야 됩니다. 영적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은 언제나 곧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 공통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근본요소, 이것을 영원히 묶을 수 있는 요소가 뭐냐? 이게 사랑이라는 거예요. 사랑으로…. 이 모든 전부는 상대 패예요. 쌍쌍 제도, 쌍쌍 존재로 돼 있다 이거예요. 그래서 눈도 쌍쌍이예요. 왜 눈을 이거 쌍쌍으로 만들었느냐? 눈을 왜 둘로 했을까요? 코도 들어가서는 하나가 되고 입도 들어가 가지고는 하나인데, 이거 3수예요. 전부 3수를 나타냅니다. 눈을 보더라도 3단계로 되어 있어요. 요것이 초점이 맞아야 돼요. 귀도 그렇잖아요? 귀도 역시 언제나 초점이 맞아야 돼요.

이 모든 것이 상대적 관계를 통해 가지고, 거기에 차이가 없게 될 때에 고통을 느끼지 않는 거예요. 조금만 틀리면 벌써 지장이 오는 거예요. 우리 인간 구성에서도 마찬가지라구요. 우리의 영이 있고 우리의 정신, 생각이 있고 우리의 몸이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가 밸런스를 맞춰야 되는데 어떻게 맞추느냐? 하나의 수직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수직 앞에 90각도 형으로 존재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사람은 곧기를 바라고 사람은 높기를 바랍니다. 높기를 바라요. 그렇기 때문에 수직선 앞에 횡선을 그어 90각도를 갖춘 그 자리에 내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수직선 앞의 횡선을 이어줄 수 있는 상대적 관계의 요소가 뭐냐?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를 중심삼고 상대-공통적 관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게 뭐냐? 힘도 아니예요, 힘. 여자하고 남자하고 대등해요? 재간도 아니예요, 재간도. 천태만상으로 여자의 성품도 다르고 남자의 성품이 별나게 다르지만, 울툭불툭하고 별스럽게 다르지만 여자는 뭐라고 할까요, 모든 것이, 벌써 체질 구성에서부터 남자와 다른 거예요. 보들보들하고 유하지만 그것이 평행선을 세우는 데 있어서 말이예요, 강유(剛柔)가 평행선이 될 수가 있어요, 대등한 자리에서?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평행선을 만들 수 없는데 무엇이 만들 수 있느냐? 사랑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여자면 여자로서 고착하고 남자면 남자로서 고착해 가지고는 안 돼요. 그것이 기울어지지만 돌아야 된다 이거예요. 언제나 순환해야 합니다. 순환하는 데 있어서 여자 남자가 사랑을 중심삼고 평형을 취해야 한다는 논리가 수평 논리에 일치가 되지, 고착된 여성 남성의 수평 논리는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순환하는 데 있어서는 위로 올라갔으니 내려간다, 내려갔으니 올라간다 이거예요. 그것을 딱 재 보면 하나의 원형 판과 같습니다. 그래야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이렇게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서로 바꿔진다 이거예요. 섞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수평 논리를 우리가 자아내자면, 이 고착된 균형상의 남자와 여자가 수직을 취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균형을 취하지 않고 수평을 갖지 못한 세계에 수직선을 세울 수 없다구요. 수직선을 세우게 되면 그게 찌그러지는 거예요. 수직이라는 것은 반드시 90각도를 중심삼은 수평적 기반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제일 이상적인 곳, 평형선과 수직선이 합할 수 있는 이상의 곳이 어떤 곳이냐? 90각도, 360각도를 4등분한 90각도의 자리입니다. 그것이 수직이 서길 원하는 이상적 자리입니다. 수직 하면 그렇잖아요, 수직? 또, 평형선상에 수직을 모시게 된다면, 모시는 데는 아무데나 모시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반드시 90각도에, 중앙선에 임할 수 있는 수직선을 원하지 '옆으로 대' 하는 그런 수직선을 원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면 모든 것이 틀어진다 이거예요.

평형선이 하나 먼저 그어졌다 할 수 있는 그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 앞에는 반드시 수직선이 그어져야 조화가 벌어집니다. 직선상에는 조화가 없어요. 선상에서는 조화를 이룰 수 없어요. 조화라는 것은 3점 이상의 환경여건을 맞아들이는 데에서…. 그래, 조화 중의 최고의 이상적 조화의 표준이 될 수 있는 것이 뭐냐? 평형선에 반드시 수직선을 그은 걸 기준삼아 가지고 모든 것이 벌어진다, 원리가 그렇잖아요? 설계를 해도 다 그 원칙에 의해서…. 모든 제도가 전부 다 수직관에 의해서 맞추어지고 있다구요. 그렇게 구성되는 거예요.

언제나 상대적 감각을 지녀야 돼

그러면 우리 마음이라는 것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우리 자신이 절대적이기를 바라며 우리가 최고 높기를 바라는데, 그저 제멋대로 있을 수 없어요. 제멋대로 그렇게 있을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반드시 수평선을 그어 표준하고 수직선을 표준한 이상적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면 어때요? 수평기준에 이르고 수직기준과 화합하여 완전히 조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완전히 조화될 수 있는 기점이라는 것은 요 각도로 전부 다 동서남북이 같은 거예요. 이 거리는 모든 것이 같은 거예요. 이 90각도라 하는 그 중앙선을 향해서 모든 것은 전달되게 돼 있고 전파되게 돼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움직이게끔 돼 있는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반드시 외부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측정하는 거예요. 바르냐, 찌그러졌느냐, 기울어졌느냐 하고 보는 거예요. 앞에 가는 사람의 걷는 걸 볼 때, 찌글찌글하게 걷나 바르게 걷나, 벌써 딱 수평선을 그어 가지고 보는 거예요. 만물지중에 사람만이 서서 다녀요. 동물들은 전부 네 발로 다니는데 말이예요, 사람만이 서서 다닌다는 거예요. 그게 뭐냐? 그 자체가 수직을 대표했다는 거예요, 지구상의 전체 앞에. 이것을 수평선으로 말하게 된다면 수직선상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면 모든 것이 측정적 자연 기반으로 되어 있다는 거예요. 뭘 재는 데에 있어서 '찌그러졌다' 할 때, 벌써 뭘 보고 그러느냐? 내가 이렇게 서 가지고 보게 되면 찌그러지지 않아요. 내 자신이 똑바로 되는 거예요. 전부가 그래요, 똑바로.

사람은 잴 때 벌써 수직으로 재게 돼 있어요. 동물들은 볼 때 이렇게 보니만큼 평형을 보는 거예요. 적을 볼 때 자기가 크냐, 작으냐 이걸 보지요? 동물들이 싸울 때 자기보다 크냐, 작으냐 하는 걸 보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얼마만큼 크냐?' 이렇게 보지 '얼마큼 높으냐?' 하는 걸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람은 뭐냐 하면 '얼마만큼 높으냐?' 이렇게 본다는 거예요. '얼마만큼 높으냐?' 이렇게 보잖아요? 높은 데 비해서 넓은 것을, 넓은 데 비해서 높은 것을, 언제나 상대적 감각을 지니게 돼 있는 거예요.

가면서 빌딩을 보게 되면 이렇게 보잖아요? 보고는 '아 저거 틀려 버렸다' 하고 쭉 측정하면서 가는 거예요. '아 저거 크구나, 작구나', '저거 뚱뚱하구나, 홀쭉하구나' 그 전부가, 그 말이라는 것은 수평선, 수직선에서의 균형 원칙을 중심삼고 벌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원칙은 원형

이렇게 볼 때에 우리가 느끼고 보고 하는 이 모든 것의 역사적 기원, 뿌리가 뭐냐? 뿌리는 수평관계, 수직관계가 아니냐 이거예요. 또, 이 수평관계의 이것이 이렇게 해 가지고 평형과 수직이 겸해서는 뭘할 것이냐? 뭘해요? 운동을 해요, 운동. 그래야 하나의 운동을 해서 원만한 둥근 원형이 벌어져요. 원형을 왜 그리워하느냐? 원형일수록 운동을 해도….

가만둔다면 완전히 원형인 것은 이 움직이는 것은…. 여러분 그렇잖아요? 발전소에 가게 되면 큰 휠(wheel)이 있다구요. 피스톤 작용을 원활화시키기 위해서 말이예요, 거기에 필요 없는 큰 바퀴를 달아 놨다구요. 그것이 완전히…. 도는지 안 도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돌긴 도는데 암만 봐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건 소모가 없다는 거예요, 소모가.

우주는 모든 공기마저도 원형을 품으려고 하지 각도를 품으려고 하지 않아요. 원형을 품을 수 있게끔 돼 있습니다. 그게 이상형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소모가 벌어지지 않아요, 소모가. 소모가 벌어지지 않는다 이거예요. 그 근본 원인이 뭐냐? 그건 뭘 말하느냐 하면 원형일수록, 둥글수록 오래가는 것이다 이겁니다. 둥글수록 오래가는 것이다 이겁니다. 둥글지 않은 것은 돌면 돌수록 그건 마찰에 의해서 이것이 깎여지든가 전부 다 소모되는 것입니다, 소모.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원만을 바라는 거예요, 원만. 원만이라는 것은 거 납작한 것을 말하지 않지요? 구형을 말하는 거예요.

눈도 꽉차 있고, 코도 꽉차 있고, 입도 꽉차 있고, 모든 몸뚱이가 전부 다 꽉차 있다구요. 그래 가지고 그것이 하나의 원형을 이루는 것과 같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원형을 닮았어요, 전부가. 원형 안 닮은 것이 없다는 거예요. 코도 뾰쪽한 사람은 말이예요, 거 언제나 무섭다구요. 보라구요. 신경질적인 사람 보라구요. 반드시 뭣이든 뾰쪽하게 돼 있어요. 손끝도 뾰쪽하면 이거 신경질적이예요. 코끝도 뾰쪽하면 신경질적이예요. 귀 끝도 뾰쪽하면 신경질적이예요. 두고 보라구요. 코도 원형을…. 그래요. 내가 관상가는 아니지만 우주의 원칙으로 보게 될 때 그렇다는 거예요. 그 모든 한 가지 한 가지 뜯어보게 될 때 그것이 화합이 되고 원형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코도 말이예요, 무슨 코, 무슨 코 해 가지고 코에도…. 코 타령이 있잖아요? 입도 무슨 입, 무슨 입…. 전부 다 있잖아요? 그런 모든 것이 원형을 닮아 간다는 거예요.

여자의 나체를 그린 그 초상화가 왜 전부 다 화가들의 동경 대상이 됐느냐? 원형미가 거기 있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원형미가. 그래서 지구도 둥글어야 된다 이거예요. 모든 세포도 그래야 됩니다, 세포도. 원자도 전부 둥근 거예요, 주체가 그러니. 그건 무엇을 말하느냐? 평형 기준과 수직 기준을 공통한 관계에 있어서 참 원만한 그런 구조 형태를 표상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둥근 원형을 닮게 마련이다 이겁니다.

이렇게 볼 때 동작하는 모든 존재는 그 뿌리가 어디냐? 원형이라는 것을 표상하고 그걸 비교 기준으로 삼아 나온 것입니다. 그건 여러 분야에서 볼 수 있는 거예요.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도. 원만한 사람, 원만한 사람을….

눈을 가만 보면 알지요. 우리 같은 사람은 보게 되면 고약한 사람이지요. 이 눈을 보게 되면 흔치 않다구요. 쇠못이 박혀 있는 눈을 갖고 있거든요? 그리고 깊다구요. 서양 사람의 것은 깊고 크니까 그건…. 그 사람들의 것은 깊고 커서, 보기는 보는데, 들여다보는데 그게 초점이 안 맞아요. (웃음) 들여다보긴 보는데 확산적인 눈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동양 사람들은 전부다 얼굴은 넙적한데 눈이 작으니까 멋지다구요. 얼굴이 넙적한데 눈까지 커 보라구요. 얼마나 이게…. 눈이 조그마하니까, 이 눈을 들여다보니까 그늘진 것 같아서 이 윤곽이…. 눈이 깊어 보이니까 이게 나와 보이고 다 원의 형태로 되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거 보면 참 재미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참 예술가입니다.

조화라는 것은 뭐냐 하면, 평형과 수직이 다방면으로, 여기의 것을 여기에 갖다 맞추고, 여기의 것을 여기 갖다 맞추고, 아무데 갖다 맞춰도 딱딱 맞아요. 그러면 어느 자리, 어떠한 자리에서 그런 논리가 형성되느냐? 반드시 수직선과 수평선에 존재하는 사방의 것은 어디에다 떼다 맞춰도 다 맞는다 이거예요. 안 그래요? 이것이 수직이 안 되고 수평이 될 때에는 어느 것을 갖다 대도 맞지 않는다 이거예요. 안 맞는다구요. 그래서 인간 관계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남자와 여자는 사랑 안에서만 평등하다

그러면 인간 관계에 있어서의 수평적 대상이 누구냐? 친구냐, 누구냐? 이렇게 볼 때에 남자에 있어서는 누가 되겠어요? 친구? 친구, 친구끼리 돼 가지고 서로가 꽉 붙들고 돌아가야지요. 그런데 친구끼리 하게 되면 꽉 붙나요? 그건 꽉 붙지 않는 거예요. 그건 외적으로 좋아하지, 본질적으로는 좋아하지 않아요. 놀기가 좋으니 친구를 좋아하지요. 거 마음에서 우러나오고 말이예요, 정서적인 면이 동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물론 놀기 좋은 것이 인연이 돼 가지고 사정이 통하고 다 그러니까 좋아하지요. 그렇지만 우리 본질 본성이 서로가 통해 가지고 '하나돼야 되겠다' 해야 되는 거예요.

끌어당기는데 빙빙 돌면서 끌어당기는 게 아니예요. 먼저 작용이 하나돼야 되는 것입니다. 수직선 작용을 해야 된다 이거예요. 남자 여자라면, 직선으로 잡아당기는 힘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언제든지, 밤이나 낮이나. 그게 얼마나 강하던지 생명력보다 더 강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남자 여자의 사랑에 있어서는 말이예요, 그런 힘이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 여자에게 있어서 수평 대상 기준이 누구냐 하면 남자 앞에는 여자임에 틀림이 없고, 여자 앞에는 남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구성체를 보게 된다면 남자 여자는 판이해요.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고. 하나가 크기가 작다면 다른 하나도 몸뚱이라도 만만하고 이러면 모르겠는데, 이게 키가 크고 몸뚱이도 울툭불툭하고 털이 나고 그렇다구요. 여자를 보게 되면 언제든지 이렇게 찌그러들게 돼 있지, 손댈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나 단 한 가지 사랑의 힘만은…. 여자가 뭐 큰소리로 '남녀 평등권!' 하지만 그 따위 수작 그만두라 이거예요. 남녀 평등권은 사랑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지 그 이외는 전부가 남녀평등 내용이 안 됩니다.

자, 밥을 먹는 데도 여자가 지지요? 웃는 소리만 해도 다 지지요? 뛰는 데도 지지요? 전부가 지는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 평등권이예요? 그것은 사랑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는 '너와 나!' 입니다. 너를 위해서는 죽어도 좋다는 거지요. 남자도 말이예요, 사랑하는 아내가 있으면 자기 생명을 다해서 사랑하려고 그럽니다. 거기에는 뭐 간막이가 없어요. 전체, 몽땅 시인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서로 맨 처음부터 똑같이 대등했으면 이 우주가 어떻게 돼요? 동작할 수 있는 동기가 없다는 거예요. 어떻게 동작해요, 둘이 버티고 있는데? 천년 만년 버티고 있다는 거예요. 아하, 남자가 크니까 찌그러들었으니 '아―' 하고 이게 돌게 마련이라는 거예요. 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남자님네들, 여자님네들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평등권이라는 것은 센터를 중심삼고, 수직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그 개념에 의해서 남자 여자가 평형적으로, 이 세상을 도는 기준에 있어서 수직의 축을 중심삼고 남자 여자가 돌게 될 때에는 평등합니다, 평등. 사랑의 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는, 도는 데 있어서는 평등하다구요.

그다음에 사람의 생활에 있어서는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을 중심삼고 돌며 살잖아요? 그래야 평등하지요. 그 외에는 평등이 있을 수 없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 레버런 문은 남성 제일주의자요, 여성 부정주의자다!' 하며 미국에서 야단입니다. 내가 여성 부정주의자가 아니예요. 원칙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주체가 없으면 대상이 없기 때문에 먼저 주체를 말하다 보니…. '여자를 주체로 삼지, 여자부터 먼저 설명을 하지 왜 남자부터 설명을 해?' 하겠지만 여러분들은 무엇을 취할 때 같은 값이면 큰 걸 취하겠어요, 작은 걸 취하겠어요? 같은 값이면 큰 걸 취하지요. 마찬가지예요. 논리나 모든 행동에 있어서 같은 질이라면 반드시 큰 것을 요구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를 볼 때에 여자보다 남자가 크니까 주체로서 먼저 해설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거지요. 아시겠어요? 「예」

남자와 여자가 왜 크고 작으냐? 운동하려니까. 같아 가지고는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결혼하는 데에도 그래요. 강한 사람끼리, 서로 버티는 사람끼리 살아 보라구요. 이틀도 안 가서 다 깨져 나가요. 그러면 중심이 거기 있지 않고 도망가는 거예요.

벌써 쓱 보고는 말이예요, 강한 녀석은 약한 녀석을, 지극히 약한 녀석을 도와줘야 돼요. 팔자가 좋은 사람은 팔자가 사나운 사람, 팔자가 울툭불툭한 사람을 도와줘야 됩니다. 팔자가 너무 나쁜 사람은 말이예요, 일생 동안 팔자가 나쁜 사람은 울툭불툭하게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어야 태어나는 자식들이 쓸 만한 자식들이 나오지, 그렇지 않으면 전부 다 나쁜 자식만 나온다는 거예요. 모든 천지의 조화가 그렇게 돼 있는 거예요. 조화를 이루어야 되는데 조화는 반드시 도는 데서 벌어지는 거예요. 작용이라는 것은 반드시 도는 데서…. 직선 작용은 없잖아요? 포물선을 그려 가지고 모든 작용을 합니다. 직선 작용은 없다는 거지요.

천리의 본성은 변할 수 없다

자, 남자 여자를 두고 볼 때, 평행선을 발견하여 뿌리를 찾아보게 되면 사랑을 중심삼고 되어 있습니다. 수직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수직은 뭐냐? 수직은 뭐예요? 수직도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횡적으로 잡으면 부자의 관계는 수직선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수직, 수직선에서. 그래서 동양사상에서 부자의 관계는 변할 길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그건 영원한 것이지만 자기 어머니와의 상대적 관계, 그것은 변할 수 있는 거예요. 수직에 따라서, 수직이 동서로 되게 되면 남북으로 위치가 달라지는 거예요.

그러나 본질적 수직은 변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자의 관계, 이것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천리의 도리예요. 천주의 모든 존재들이 이것을 부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시인하고 긍정하는 거예요. 자연 긍정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은 부모의 말에 자연히 순종해야 됩니다.

아무리 에미 애비가 살인 강도라고 해도 자식 대해서는 '너, 살인 강도 돼!'라고 가르치는 부모는 절대 없다는 거예요. 자기는 마피아가 됐지만 '너는 마피아 되지 말라'고 합니다. 누구를 시켜서라도 그 동네에서 옮겨 딴 곳으로 이동하려고 합니다. 내가 이번에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그런 사람이랑 같이 있어도 봤지만 말이예요. 아무리 악한 부모라도 자식 대해서 '너, 나쁜 사람, 나 같은 사람 되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왜? 천리의 본성적 기준이, 뿌리가 그렇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뿌리를 떠날 수 없는 인간이므로 자식에 대해서 '너는 이러이러한 나 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말하게 마련이라는 거예요.

자, 이런 것을 전부 다…. 하나님도 천지를 창조할 때 왜 해와부터 안 지었을까요? 그게 문제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종적인 기준인 아들을 먼저 지어야 돼요. 종적 기준을 지어야 횡적 기준을 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종적 기준만 딱 세우면 횡적 기준, 이건 여자라도 돌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런 관점에서 '왜 남자부터 만들었느냐? 거 불공평한 것이 아니냐?' 하겠지만 아니야! 그것은 수직적 개념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이상적 목적의 개념을 세워 놓고 창조적 개념을 투입한 것입니다.

그러면, 창조할 때 근원이 있는데 그 근원의 기준이 뭐겠어요? 그 기준이 사랑이라는 거예요, 사랑.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나면서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거예요. 또, 부모님은 자식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거예요. 이걸 떠날 수 없어요. 이걸 떠나면 고통이예요. 요즈음 미국을 보게 된다면 부모들을 떠나고 부모들을 반대하고 다 한다구요. 그것은 부모들이 잘못했기 때문이예요. 본성의 부모는 이래야 할 터인데, 내가 원하는 부모는 이래야 할 터인데 그렇지 않은 부모가 됐으니 떠나는 거예요. 본성의 마음은 틀림없다구요. 다 안다는 거예요. 안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어릴 때는 그렇잖아요? 어머니를 따라가고, 아버지를 따라가고…. 아이 시대에 제일 하나님을 모시는 거라구요. 나타난 하나님이 부모라는 거예요. 나타난 최대의 스승이 어머니 아버지라는 거예요. 나타난 생활의 모든 행복의 기지가 부모라는 거예요. 거기에서부터 행복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왜? 사랑을 중심삼기 때문에. 사랑을 떠나게 될 때는 파탄이 벌어지는 거예요.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고 도는 것이 이상

부모의 사랑은 무엇을 말하느냐? 그것이 수직적 관계에 있어서 뿌리가 되는 거예요, 뿌리. 그렇기 때문에 상하관계는 반드시 수직관계입니다. 꼬불꼬불이 아니라 직선 관계지요. 꼬불꼬불하면 제3의 힘이 개재되어 있다는 거예요. 자연적 힘이 아니예요. 제3의 힘이 개재되어 꼬불꼬불한 거라구요.

자연 수직선, 그것은 자연적 힘의 작용을 하는 그러한 상하관계인 부자의 관계가 수직적 관계입니다. 그다음에 자연적 힘에 의해 가지고 90각도로 그릴 수 있는 수평적 관계가 부부관계가 됩니다. 무엇이 자연적 수직을 만들 수 있고, 무엇이 자연적 횡적 90각도를 만들 수 있느냐? 그것은 사랑만이 가능하지 돈 가지고, 지식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를 대하게 될 때는 다른 것으로, 돈이라든가 권력이라든가 하는 것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돌게 될 때는 수직으로 도는 것이 아니고 구형이 되든가, 그런 형태가 된다는 거예요. 완전히 대등한 사랑을 중심삼고 수직적인 사랑을 대표한다는 거예요. 그래요. 횡적인 사랑이, 남녀의 관계가 맺어지게 되면 부모의 사랑에서 떠나는 거예요. 부모의 사랑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이 옮겨지는 거예요. '너희들이 부모의 자리로 가야 된다' 그렇게 옮겨지는 거예요. 또 하나가 번식하는 거예요. 세포가 분열돼 가지고 번식하는 거와 마찬가지지요? 그것이 떠나는 것이 아니예요. 분열작용을 하는 거예요.

자, 우리의 수직적인 이런 기준을 표준하는 것도, 그 뿌리는 '사랑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남녀 관계에 있어서도 수평선을 만들어 가지고 90각도의 원만한 조화가 이루어져 하나로 영원히 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한 것이니까. 영원한 주체적 근원과 영원한 횡적 근원이 사랑에 근거했기 때문에, 사랑의 근원이 영원한 것이니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고 도는 것이 이상이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거 이상이 아닐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남자나 여자가 왜 태어났느냐? 왜 태어났느냐? 영원한 사랑이 그리워서, 사랑이 그리워서 태어났다 이거예요. 사랑의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러면 또, 뿌리가 뭐냐? 그게 뿌리예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그렇게 해서 창조했다구요.

사람을 창조한 것은, 부자의 관계에 있어서, 횡적 관계에 있어서 영원히 사랑을 중심삼고 서로서로가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반목질시하고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돼 가지고 서로가 잘 주고 잘 받으면서 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잘 주고 잘 받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수수작용, 원만한 수수작용은 원만한 가치 형성을 촉진시킨다 이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남자 여자가 잘 주고 잘 받는 것은 원만한, 전체의 원만한 가치를 형성시키는 기원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학생은 학생으로서, 직장에 있는 직장인은 직장인으로서…. 이것은 어디에나 적용되는 거예요. 비록 작은 자리에 있지만 작은 자리에서의 자기 일이 주체라면 만들어지는 그 물건은 상대가 됩니다. 이것을 대해 원만하게 잘 주고 내 정성을 다해서 잘하면 이 물건은 반드시 그 회사의 특제품목으로 등장하는 거예요. 회사를 대표한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그러면 무엇을 투입하느냐? 성경에 보게 되면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다구요. 그게 뭐예요? 그게 뭐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그게 다 보이지 않는 거예요. 추상적인 명사예요. 그것은 근원적인 것을 말해요, 근원적인 것을. 마음도, 뜻도, 성품도 근원적인 것입니다. 맨 근원적인 본질을 통해서 하나님을 대하라 이거예요.

그 근원적인 것, 본질의 근원이 뭐냐 이거예요. 종횡으로 엮을 수 있는 사랑의 본질만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본질이 돼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 모두를 지을 때 함부로 짓지 않았어요. 사랑이라는 것을 본질로 세워 놓고 이것을 지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싫어하는 존재가 있어요? 식물세계도 그렇고, 광물세계도 그렇잖아요? 광물세계면 광물세계의 그 모든 양자, 전자들이 전부 다 대하고 있지만 그 소성이 다른 것끼리는 상대적 요소가 안 되지요? 아무리 원소와 원소끼리 합할래야 합할 수 없어요. 하나님 자신도 못 합니다. 그러나 상대적 관계가 한번 딱 이루어지면 합하지 말래도 합하게 되는 거예요.

자, 그러면 모든 만물의 본질성…. 만물의 뿌리가 무엇에 전부 다 엮어져 있느냐 이거예요. 꽃이 왜 피어요? 변화적 색깔을 나타내는 것은 뭣 때문에 그러냐구요? 사랑 때문이잖아요, 사랑. 향기가 뭣 때문에? 사랑 때문에. 그 사랑에는 번식의 요소가 있고 그 사랑에는 발전의 요소가 있다는 거예요. 사랑을 빼 놔 버리면 발전이 없는 거예요.

진화의 논리라는 것이…. 어떻게 진화되느냐 이거예요. 아메바가 제2의 존재로 발전할 수 있는 제3의 힘을 스스로 개재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그런 논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구요. 어떻게 제3의 힘을 흡수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건 벌써 이 원소 형성에 있어서 세포에 그 본질이 다 들어가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전부 다 진화한다는데 오늘날은 왜 진화 안 돼요? 그따위 수작 같은 건 하지 말라는 거예요.

3대 존재세계의 사랑을 통합하고 화합할 책임이 있는 인간

자, 그러면 결론을 짓자구요. 우리 인간에게는 3대의 존재세계의 사랑을 통합하고 화합시켜야 할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만물세계에. 왜? 우리의 몸뚱이가 다 갖고 있어요. 만물세계의 원소들을 다 갖고 있다는 거예요, 종횡으로.

어떤 사람은 빨간 꽃을 좋아하는데 왜 빨간 꽃을 좋아해요? 어떤 사람은 빨간 걸 좋아하지요? 사람이 빨간 꽃이 좋다면 전부 다 좋아해야 할 텐데 빨간 것 싫다 하는 사람도 있다 이거예요. 그건 방향이 다르다구요. 동쪽 방향, 서쪽 방향, 남쪽 방향, 이렇게 상하, 전후, 좌우의 방향이 다르니만큼 그 색깔이 달라지는 거예요.

땅도 그렇잖아요? 태양 빛을 중심삼고 낮일 때에는 밝고 밤이 될 때는 어두워지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라구요. 방향이 다를 때는 색깔이 달라지는 거예요, 색깔이. 좋아하고 나빠하는 취향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상하, 전후, 좌우를 중심삼고 내가 원만하려면 어때야 되느냐? '난 나만이 좋으면 돼!' 이러면 되겠어요? 세상천지에 노란 꽃만 있으면 거 얼마나 질식하겠어요? 세상 천지에 빨간 꽃만 있으면 안 된다구요. 전부 다 어울려야 돼요. 그건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오색인종이 다 좋아해야 되는 것이다 이거예요.

'아, 난 뭐 백인은 싫고 황인종만 좋아!' 하면 되겠어요? 황인종은 백인도 좋아할 줄 알고 오색인종을 좋아해야 돼요. 오색 가지 꽃을 좋아한다면 오색인종도 좋아해야 되는 거지요. 그럴 수 있는 속성을 다 갖고 있다 이거예요. 그것을 전부 다 화합시키고 인연을 맺어 가지고 동화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그 뿌리가 뭐냐? 사랑. 이것이 사랑의 뿌리가 돼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만물의…. 만물은 우리의 제3 부모가 됩니다. 제3의 부모라는 거예요. 제3의 부모요, 어머니 아버지는 무슨 부모예요? 제2의 부모예요.

여러분 고깃덩어리에 어머니 아버지가 낳아 준 살은 하나도 없다구요, 지금. 낳을 때 조그맣게 나왔지요?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 있을 때에 어디서 보급받았어요? 그다음 어머니 젖을 통해 가지고 만물의 원소를 보급받았지요.

그 맨 밑창, 애기씨에까지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애기씨에도 전부 다 물질적 요소가 있다구요. 부체(副體)에는 반드시 물질적 요소가 다 있어요, 핵과 물질이.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누가 키워 줬느냐? 몸뚱이를 키워 준 것은 만물이예요 그래서 제3의 부모라구요.

지금 보게 되면 나를 직접 낳아 준 부모는 나하고 멀다구요. 사실은 먼 거와 마찬가지예요. 낳아 줬을 뿐이지요. 그때의 내가 지금 몇 배 됐어요? 모든 것이 그렇잖아요? 난자와 정자를 두고 보게 되면 얼마만해요? 보여요? 조그맣다는 거예요. 그것이 전부 다…. 그게 씨가 됐지요? 어머니 아버지한테 그걸 받았지요? 그 몸뚱이랑 뼈다귀를 전부 다 받았어요? 그건 누가 보충해 준 거예요, 전부 다. 안 그래요? 그게 원소가 돼 가지고 핵이 되어 끌어당겨 가지고 전부 다 만들어 놓은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보면 여러분의 제3의 부모는 물질이예요. 만물이예요. 뭐 채소를 먹고, 뭘 먹고 하는데 전부 다 공급해 가지고 먹여 주는 부모예요. 뱃속에서 어머니의 젖을 먹고 크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은 만물에 탯줄을 걸고 먹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자, 그러다가 죽으면 말이예요, 죽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만물이 좋아할 거라. '아이고, 나 이제는 보급 안 하니 좋다' 그래요? 응? 좋아하겠어요, 어떡하겠어요? 만물도 사랑이라는 인연을 중심삼고 공급한다고 할 때는 인간의 몸뚱이에 들어가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아이고 하나되고 싶다, 하나되고 싶다' 그래야 된다 이거예요. 그런 개념을 무엇으로 세워요? 그거 철학 논리 가지고 안 돼요. 무슨 원칙 가지고 안 돼요. 사랑밖에 없다는 거예요. 사랑 외에는 안 돼요. 사랑을 중심삼고 만물이 제3의 부모가 돼 있고, 그다음에 제2의 부모가 누구예요?

제2 부모는 어머니 아버지라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 그다음에 제1 부모는? 하나님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맨, 핵 중의 핵이 그 보이지 않는 뭐라고 할까, 전자를 몇천만 배로 축소시킨 핵의 존재와 같은, 전체를 움직이고 남을 수 있는 힘을 가진 그와 같은 존재가 제1 부모인 하나님입니다. 절대적인 요소, 절대적인 구속력을 갖춘 그런 하나님이시다 이거예요. 이렇게 돼야 뿌리에서 자랍니다.

자라는 데에는 충실한 열매가 있어야 돼요. 좋은 뿌리에서 좋게 자라고 그 위에 맺힌 열매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뿌리와 직선상에서 하나된 순을 가지고 동서사방으로 잘 갖춘 나무에서 따낸 열매, 그 열매에는 완전한 뿌리도 들어가 있고, 완전한 줄기, 완전한 가지, 완전한 순이 처음부터…. 그것을 분열시켜야 돼요, 분열. 제2 분열화시킨 것이 열매입니다. 여러분들은 만물을 그런 관점에서 봐라 이거예요.

'아, 저게 나를 길러 주고 있는 만물이구나. 지금도 어머니 뱃속의 탯줄과 같은 자리에서 이걸 내가 느끼고 살고 있구나' 그런 생각 해봤어요?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거예요. 만물은 제3의 부모.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는? 「제2의 부모입니다」 제2의 부모. 그다음에 하나님은? 「제1의 부모입니다」

더 깊은 사랑을 원하는 인간의 본질

이 모든 전부가 '좋다!' 할 수 있는 그러한 생활이 어떤 생활이예요? 사랑의 생활 외에는 없어요. 사랑 갖고 부모를 대할 때 '이놈의 자식아' 그래요? '오냐!' 언제든, 밤이든 낮이든 '오냐, 지금 왔느냐? 왜 지금 오노, 더 빨리 오지' 이러는 거예요. 사랑 외의 것 가지고 그게 가능해요? 안 된다는 거예요. 영원히, 영원히 그걸 되풀이하더라도 싫지 않다 이거예요, 영원히 되풀이해도. 천번 만번 되풀이하고 영원히 돌더라도 싫지 않다는 거예요. '또 돌자, 또 돌자, 또 돌자!' 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시소놀이를 하듯이 말이예요. '너 올라갔구나. 나 내려갈께' 이렇게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듯이 돌며 사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왜 손자를 사랑해요? 사실은 늙어 죽게 된 할아버지가 아들 낳았을 때보다도 손자 낳았을 때 더 기뻐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소원이 그래요. 아담 해와를 지었을 때보다도…. 손자 바라다가 하나님이 '꽝' 했지요? 손자를 못 보고 망해 떨어졌다 이거예요. 그게 왜 그러냐 하는 것이 문제예요. 그것이 상·중·하가 있어야 도는 거예요, 여기 하나에. 그렇기 때문에 3단계라는 지극히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성경역사에서 둘째가 문제가 됐어요. 둘째가 문제라구요.

가인 아벨에 있어서 둘쨋번, 아담 노아에 있어서 둘쨋번, 아브라함 이삭에 있어서 둘쨋번, 에서 야곱에 있어서 둘쨋번, 이 둘쨋번이 문제 되는 거예요. 둘쨋번이 뭐예요? 사탄은 둘쨋번을 노리는 거예요. 왜? 중앙이예요, 중앙. 중앙선에 있기 때문에. 요걸 중심삼고 빼앗기 싸움 하는 거라구요. 그 중앙선에 서 있었던 것이 뭐냐? 그것이 사랑이예요. 그 사랑의 본질적 내용을 희미하게 약화시키기 위한 놀음, 그러니까 사랑 반대의 길만 확장시켜 놓으면 영원히 사탄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알이 전부 다 갈라놓는 거예요. 전부 다 갈라놨어요.

'어머니 아버지, 너하고 내가 무슨 상관 있어!' 하는 이놈의 자식….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뭐 생각해서 낳았어? 자기들 좋아하다 낳았지' 해 가지고 전부 다 갈라놓아요, 전부 다. 사탄이, 사탄이 전부 다 갈라놓아요. 이 중앙을 중심삼고 전부 다 멀리해 놓는 거예요. 사랑은 무슨 사랑? 자기 중심 사랑. 이게 돌겠어요? 하나님이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간과 만물이 돌 수 없다는 거예요. 그걸 총합해야 합니다.

하나의 뿌리도 원형을 이루어요, 원형. 이렇게 크는 거예요. 뿌리, 순이 뭐냐? 횡적 센터를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여기 딱 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은 우주를 품으려고 해요, 우주를. 우주를 품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우주적인 인격자가 되고 싶어하지요?

그래서 원형으로 넓혀야 돼요. '더 넓히겠다' 해야 돼요. 넓혀 가야 내 갈 길이 있는 거예요. 어디든 통한다는 거예요. 여기서 통해서는 안 된다구요. 원만히 넓게, 저 세계 끝까지 가고 싶어하는 거예요. '아이고, 하늘 높이까지. 아! 바다 깊이까지' 이렇게 다 가고 싶다구요. 거기 가서야 도는 것입니다. 그 끝의 자리에 가게 되면 돈다는 거예요. 끝에 가면 돌아가는 거예요. 안 그래요? 끝에 가면 도는 길이 생기는 거예요. 또, 높이 올라가도 도는 길이 생깁니다. 또 깊이, 무한히 깊이 깊이 가면 도는 길이 생깁니다. 악마는 중앙을 격리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언제나 무엇이든지 흡수할 수 있는 소성이 있어야

오늘날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말이예요, 저희들 마음대로 해도 뭐라고 하지 않아요, 마음대로 해도. 자기 제일, 자기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이든, 부모든, 가정이든 전부 다…. 여자도 필요 없고 남자도 필요 없으니 거 망해야지요. 그건 뭐 1세기만 되면 다 망하게 돼 있다구요. 망하게 마련이예요. 안 망할래야 안 망할 수 없는 거예요. 조화의 사랑의 이상 세계를 파탄시키고 '갈라 가지자' 하는 오늘날 현실사회를 직시하게 될 때에 악마가 세계적으로 준동하는 시기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 세계를 넘어가 가지고 무슨 세계를 만들려고 하시느냐? 화합의 세계. 우리 통일교회가 그런 곳이예요, 통일교회가. 통일교회 교리가 사랑을 붙들고 나왔다는 거예요. 이런 3단계…. 천·지·인, 동양사상에 보면 천·지·인이예요, 하늘과 땅과 사람.

그런데 동양 철학에서는 인격적 신을 몰랐어요. 인격적 신이 있다는 걸 몰랐다구요. 음양이라고 하는데 막연한 음양은 인격적 기원이 될 수 없는 거예요. 그거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뿌리의 모든 것을 갖춰야 되는 거예요. 사람이 요렇게 됐으면 남자 여자의 모든 신성을 갖출 수 있는 그런 뿌리가 돼야 되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서 가르치는 이성성상, 이 논리는 위대한 논리예요.

그래서 그것은 반드시 그렇게 쭉 나와 가지고 하나되어서 뻗어야 돼요. 이건 반드시 세계를 품어야 됩니다. 동서남북을 확장시켜야 돼요. 인류는 세계적으로 퍼졌는데, 이것이 지구에 퍼지게 되면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어 가지고 퍼져야 돼요. 이걸 무엇으로 할 것이냐? 계급 가지고 안 되는 거예요. 사랑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뿌리 사랑, 하나님의 저 깊은 뿌리의 사랑이 연결될 수 있는 가지가 되고, 뿌리의 사랑이 순이 되고, 뿌리의 사랑이 저 종대의 순에까지 연결될 수 있어야 이것이 원리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의 수직운동의 원형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인류는 비로소 수평적인 원형운동을 갖출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건 이론적으로 가능한 말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만물을 제3의 부모와 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만물을 사랑해요? 그런 생각까지 한번 가지고 있어 봐요, 전부 다.

하나님이 저걸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저 꽃도. 저건 나를 위해 만든 거예요, 나를, 나를 위해서. 여러분이 만약에 어디로 장가를 가 가지고 그 장인이 선물을 주는데 말이예요, 이와 같은 산 꽃을 하나 만들어 줬다면 그걸 천년 만년 자랑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조그마한 뭐, 그림 하나 줘도 고맙다고 생각하는데…. 생각을 해봐요.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느냐 말이예요.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 선물을 줬느냐 말입니다. 우주의 이 모든 선물을 줬다 이거예요, 인간에게. 그런 선물을 받고 살면서도, 그 선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인간들이 그것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른다면 그 인간이 사람의 자격을 갖췄다고 할 수 있어요?

여기 잎사귀면 잎사귀에서 청록소를 만드는 탄소동화작용을 하는데 이것이 상반되는 산소 탄소를 번갈아 흡수하고 내뿜는데, '아이고 산소 맛있다 맛있다!' 해야 그것이 자라게 되지 '아이고 산소 싫어, 싫어!' 하면 돼요? 또, 탄소면 탄소를 '싫어, 싫어!' 해야 되겠어요? 우리 인간은 '산소 좋아, 좋아!' 이렇게 서로가 화합함으로써 모든 조화가 벌어지는 것 아니예요? 그거 생각해 보라구요. '야, 어제 하나님을 만났는데 오늘 나에게 이렇게 모든 것을 준비해 줬구나!' 하고 생각할 때 얼마나 고마워요? 그걸 불평할 수 있어요, 이러고 살면서? 여러분이 자연을 바라보고 불평하며 살 수 있느냐 이거예요.

아침에 새가 '짹짹' 하며 '늦잠 자지 마라!' 하고 소식을 전하면 '아이고 고마워라. 늦잠 자면 시아버지, 시어머니한테 책망받겠으니 참새가 나에게 알려 주누만. 아, 이거 고맙지' 전부가 그렇게 되면 되는 거예요. 사랑의 줄을 중심삼고 연결하면 전부가 그렇게 됩니다. 어떤 아저씨가 야단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걸 보게 된다면 말이예요, '아 저 우리 형님이 저러누만' 그렇게 생각하라 이거예요. 나쁘게 보지 말라는 거예요, 나쁘게. 내가 어디든지 언제나 좋을 수 있는 것을 던지면 잡을 수 있어야 됩니다.

야구 하는 걸 보면, 피처가 있어 가지고 던지면 캐처는 언제든지 잡게 돼 있지요? 이거 못 잡으면 판이 아주, 아예 전쟁 마당이 벌어지는 거예요. 승패가 갈라지는 거예요. 아무렇게나 던지더라도 캐처는 잡아야 됩니다. 이렇게 언제든지 무엇을 흡수할 수 있는 소성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한 사람은 내려가고 온유한 사람은 올라갑니다. 왜? 흡수하니까, 크니까 올라가는 거예요. 교만한 사람은 전부 다 배척하니까, 나밖에 없다 하니까 흡수할 수 없으니 망해야 돼요. 그게 자연적인 논리예요. 이상할 게 없다구요. 오늘 젊은 애들이 많이 왔구만, 젊은 사람들이. 더우기 젊은 애들은 요게 필요한 거라구요.

학교에 척 가서는 '선생님도 나에게 부탁하소, 뭘 원합니까? 친구들이나 수많은 군중들, 여러분들은 뭘 원합니까?' 하고 물을 때 선생이 말하기를 '네 사랑을 원한다' 하는 거예요. 선생이 나보고 '아, 네 진정한 사랑을 원한다' 그런다 이거예요. '그래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데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뭐요?', '나는 사랑하고 싶은데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사랑을 표현화시키기 위한 작용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아름다워요, 이게?

학생들도 친구들 대해 가지고 '너는 뭘 원하니?', '아, 전부 다 서로서로 사랑할 수 있으면…', '아, 내 사랑해 주마!' 하며 사랑의 말을 하고 사랑의 표시를 하고 사랑의 행동을 하는 게 얼마나 아름다워요? 생활 태도가 얼마나 다른 거예요, 이게? 뿌리와 모든 전체 환경이 통하고 저 순 꼭대기까지 통할 수 있는 그런 생활을 이 우주가 바라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은 그런 생각 하고 살아요, '아, 내가 가니까 자연도 따라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자연을 좋아하는 거예요. 쓱 앉아 가지고 '야―!'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얼마나 가까우냐, 이게? 또,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내 세포 구성에 있어서 내 인격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옥작박작하면서 나 하나를 그 원만한 세포구성체들로 전부 다 연단시키고 있구나! 뭐 싸우고 뭐 어떻고 어떻고….

부모님이 생사를 건 간판이 되어야 할 우리

여기, 우리 그렇잖아요? 본래의 우리 체내에서는 백혈구가 있어 가지고 균이 들어오는 것과 싸우고 있잖아요? 한편에서는 싸우고 있는 거예요. 공격의 싸움에 대해서 보호의 싸움을 한다 이거예요. 공격전과 방어전에 있어서 균형된 선상의 자리에서 살고 있는 것이 생명입니다. 그 생명이 싸우고 있는 거예요.

'복잡다단하게 다 이래 가지고 붙드는 것 같지만 결국은 나 하나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저런 것을 다 보고 듣고, 나쁜 것 좋은 것을 다 가려 가지고 좋을 수 있는 나를 만들기 위해서 저런 요사스러운 일이 벌어지누만', 또 '저런 것은 내 사랑의 마음이 원치 않으니까 그 사람은 나하고 관계가 없는 거지' 하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을 중심삼고 만인 앞에 넓게, 깊게, 높게, 사랑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최고의 친구가 되고 주체가 되겠다 하는 분이, 뿌리로부터 순과 가지 끝까지 친구가 되겠다는 분이 어떤 분이냐? 하나님이예요. 그리고 하나의 이파리로서 이파리의 친구 되겠다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조금 큰 인격자들은 말이예요, '하나의 가지가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애국자이고 위인이고 그렇다는 거지요.

그러면 하나님은 왜 좋아하느냐?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는 것은 사랑의 주체이고, 사랑의 본질을 가진 뿌리를 갖고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뿌리는 무한한 존재세계에서 순과 더불어 전부 다 포괄할 수 있는 사랑이상권을 인간세계에 펴 놔야 됩니다. 펴 놔야 되는 거예요. 펴 놔서 열매가 맺혀야 되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하나님이 발휘하고 싶었던 것만큼 발휘해야 돼요. 발휘해 가지고 그 다음엔 결실된 체로 제2분열, 제3분열을 통해 번식해 가지고 하나가 열이 되고 백이 되어 우주의 좋은 본질을 남기기 위한 입장에서 인간이 태어난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제1 부모 앞에 언제나 대상자가 아니면 안 됩니다. '부모가 잘 때는 내가 주체가 되어야지. 밤이 되어 하나님이 주무시면 내가 지켜 줘야지. 또, 내가 잘 때에는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 하는 것이 귀한 사랑의 마음이라는 거예요. 그럴 때에는 나는 하나님을 대피시키는 방패로서 악마가 있으면 악마를 방어할 수 있는 제일의 초점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싫어하겠어요?

부모 앞에 있어서 나는 부모님의 초소가 돼야 합니다. 부모님의 모든 생사를 건 하나의 간판이 돼 있어야 합니다. 이 간판이 사랑의 간판으로 변하게 될 때는 부모님은 죽어가면서도 좋아할 거예요. 태어날 때도 그 사랑을 바라면서 좋아하면서 태어났으니, 갈 때도 사랑을 바라면서 기뻐하며 죽어갈 수 있는 부모가 되는 거예요.

또, 남자 여자도 마찬가지예요. 부부도 마찬가지예요. 전부 다 사랑에 의해서 태어나서 사랑을 가지고 살다가 사랑 가운데서 좋아하면서 죽어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만물을 사랑해야 되고, 그다음엔? 인간은 어떻게 해야 돼요? 응? 인간도 사랑해야 되고! 그래야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그렇잖아요?

성경에서 확실히 가르쳐 줬다구요. 이 우주의 첫째 되는 계명이 뭐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했으니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는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세째는 필요 없다구요. 응? 사람과 하나님이 수직이 되고 만물은 평형이 되어 가지고 주고받으면 그만이라는 거예요.

사랑만이 우리의 뿌리

그래서 오늘은 뿌리를 알자! 우리 인간의 뿌리가 뭐냐? 내 몸뚱이의 뿌리는 뭐예요? 만물이고, 그다음에 이 골육의 뿌리는 어머니 아버지고, 우리의 마음의 뿌리는 뭐예요? 이것이 시대적으로 전부 차이를 갖고 수천년, 수만년 역사적으로 연결돼 있지만 이것을 무엇 가지고 하나에 연결시킬 수 있느냐? 그 전통을 묶을 수 있는 힘은 오직 사랑입니다. 사랑만이 우리의 뿌리가 되는 거예요. 그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동작하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이 뭐가 부러워서 행동하기 시작했겠어요? 돈 때문에? 그다음에는 지식 때문에? 권력 때문에?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예요.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는 분인데 무엇 때문에? 만약에 사랑의 논리를 세우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동작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됩니다. 두루뭉수리, 뭐라 하나요, 두루뭉수리…. 하나님도 있으나 없으나 가만히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행동을 했으면 그 행동의 기원을 무엇으로 해서 시작했겠어요? 돈? 돈 필요 없어요. 얼마든지 만들면 됩니다. 우리 인간으로 보면 돈이 금인데 금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구요. 다이아몬드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지식? 지식의 왕자인데, 모든 존재의 기원, 세포의 근원까지도 조성시킨 분인데 지식이 뭐 필요 있어요? 인간에게 있어서 과학자라는 사람이 풀 한 포기를 위해서 일생 동안 연구해도 못 다 연구한다구요. 뭐, 권력? 아, 우주가 하나님 것인데요. 그분이 창조를 했다면 그 창조를 왜 했겠어요? 사랑 때문에 했다는 논리를 부정할 수 없어요. 그게 근원이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사랑은 강제적 사랑이 아니라 순리적 사랑입니다, 순리적 사랑.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남자 여자 결혼하는 데는 강제 결혼은 안 되는 거지요?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때요? 통일교회도 언제나 선생님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구요. 선생님은 오래 안 가서 갈 텐데요. 지금 때는 사탄세계의 순리가 되었으니 하늘세계의 반대, 끝에 갔다 이거예요. 그래서 역리를 통해 가지고 본원지에 돌아오려니 반대적 역사를 하는 거지요. 자식들을 전부 다 내보내 가지고 남한테 맡겨서 결혼시켰거든요. 그래, 통일교회 문선생인 내가 관리해 가지고 결혼시킨 거라구요. 옛날 인간 조상들은 결혼식을 누가 먼저 했겠어요? 부모와 자식지간에는 자식을 결혼시켜 주게 되어 있지요?

그러면 아담 해와 두 남녀가 커 가지고 누가 결혼시켰겠어요? 부모가 결혼시키고, 하나님이 결혼시켰다 하면 그건 논리적 기준에 딱 맞지만 말이예요. 자기 멋대로 결혼할 수 있어요? 없다구요. 사랑은 반드시 주체 사랑을 세운 후에 부자의 관계를 통해 가지고 주체 사랑이 확립된 후에, 수직 사랑이 성립된 후에 횡적 사랑이 필요하게 돼 있어요. 자, 이런 것을 아시고, 이렇게 우주를 생각해야 된다구요.

내게 친구 아닌 것이 없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 아니예요.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구요. 어디 가든지, 자고 아침에 나가면 어디 가든지 사람이 없어요, 만물이 없어요, 하나님이 없어요? 여러분은 모르지요. 여기에는 하나님이 있다는 거예요.

자, 이러한 근원과 뿌리를 여러분이 알고 그 뿌리와 근원을 여러분 자신 것으로…. 뿌리가 저기 있고 순이 저기 있지만 가지는 자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런 기준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사랑의 특권이 있는 이 뿌리를 앎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면 여러분의 생활이 얼마나 윤택하겠어요? 그저 이래 가지고 울뚝불뚝한, 그 세계에서 자라지 못한, 원만히 자라지 못한 쪼글쪼글한 바가지가 되겠어요? 쪼글쪼글한 바가지, 그것을 뭐에 써요? 둥근 바가지가 되어서 사랑의 북같이 울려 나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의 근원과 뿌리를 알고, 이 우주 창조의 경로와 더불어, 그 뿌리와 더불어, 그다음엔 관계되어 있는 가지와 더불어 어디까지나 순과 같은 자리에 서야 됩니다. 똑바로 가야 된다구요. 순과 같은 자리, 순의 자리에 서야 돼요. 이 순의 자리라는 것은 정상적인 가지가 있으면, 이것은 어느 가지에 가더라도 영양이 있으면 다 돌아가는 거예요. 내가 기쁘면 다 기쁘다는 말이예요. 그러니 열심히 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라고….

뿌리와 종대만은 바로 서야 된다

우리 같은 사람은 그렇게 사는 거예요. 감옥에 들어가 있더라도, 내가 철창이면 철창보고 '너 철창은 나를 포위하지 못한다' 하고 생각했어요. 내 자신을 포위하지 못합니다. 내 자신에 우주가 들어와 있어요. 그런 생활 방법이 얼마나 멋져요? 자, 여러분! 32주년은 지났어요. 이제 33년 시대에 들어왔으니….

예수님이 그러한 이상을 가지지 않았겠어요? 이 세계를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세계로 만들어야 된다구요. 하나님의 아들로 왔으니 나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거예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했지요? 거기에 하나가 빠졌어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사랑이다' 해야 돼요. 사랑이라는 말이 빠졌다구요. 그래, 예수가 말한 '나는'이라는 말은 사랑을 대표한 '나'라고 하게 될 때 맞는 거예요.

'나'라는 것은 사랑의 주체에 있어서 사랑의 길이요, 사랑의 진리요, 사랑의 생명이다 이거예요. 이러한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수 없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이겁니다. 모든 면에서 그럴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 바랍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여러분이 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졌다면 예수님이 바라던 그 이상세계를, 그 당대 33년에 맞이해 가지고 실천을 하여 그 혼란된 사회를 극복해 가지고 바랐던 그 세계를 오늘날 이 시대에 있어서 조성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또, 선생님이 지금까지 40평생을 투쟁한 것도 이 뜻을 알았기 때문에 이 뜻을 지상에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냐 이거예요. 그러니 아무리 곡절이 많더라도 그 뿌리와 종대만은 바로 서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가에 있어서 전통적 기원으로 설정해 놓은 것이 뭐냐 하면 보다 위하겠다는 자리입니다. 보다 위하겠다는 것은 뭐냐? 전부 다 위하다 보니 나는 다 없어졌어요. 다 위하다 보니 없어졌지만 돌아오는 힘이 나를 위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힘을 자연히 제일 높은 자리로 뻗게 했는데 그것이 종대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전부를 위하다 보니 내가 제일 약한 자리에 있어요. 전부 다 위하다 보니 그 위한 힘이…. 준 것이 돌아올 때는 이렇게 위에서부터 약한 자리를 통해서 뻗어 나오기 때문에, 나를 밀어 주기 때문에 이것이 종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방식, 이게 진리입니다. 부모가 위하다 보니 모든 식구들이 사랑으로 밀어 주어 어머니 아버지가 주체가 되는 것 아니예요?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위하다 보니.

그래서 종대는 전체를 위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찌그러져요. 찌그러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 자체는 전체를 위하다 보니 무의 자리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떡 돌아오는 힘이 아래로 와 더해져 가지고 원형을 그리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체가 합해서 나를 밀어 주어 순의 종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 논리는 타당한 논리가 아니냐 이거예요.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레버런 문이 오늘날의 역사시대에 핍박도 많이 받았지만 그러한 사랑의 마음을 갖고 지금까지 생애를 지내다 보니, 자라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제는 세계에 드러나고 세계의 나무 위에 있다 이거예요. 높고 좋은, 곧게 자란 나무와 같으니 모든 사람이 우러러본다 이거예요. 앞으로는 사람마다 통일교회를 원하고, 레버런 문을 만나는 사람마다 전부 다….

요전에 박보희도 그러더라구요. 어디에 가도, 영국 가도 그렇고 불란서 가더라도 화제가 선생님이지 박보희가 아니더라고 말입니다. (웃으심) 그거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주인이 누구냐 하면 그분뿐이예요. 하나님도 그래요. 하나님이 우주를 위하다 보니, 전체를 위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올라가는 거예요.

자, 뿌리가 이렇게 된 것을 아시고, 오늘의 이 말을 기억하고, 여러분의 생활을 통해서 세계를 정화하는 데…. 예수가 33년 동안 활동하던 최대 목표는 로마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것이었어요.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이제 예수의 33년과 같은 입장에서 나라와 세계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나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세계로…. 그 전에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민족,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종족,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가정,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아내가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사랑하기 위한 사다리예요.

이런 관점에서 세계를 위하여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성취를 온 우주에 연결시키고, 선생님의 소망성취를 영계에 연결시켜서 하나님을 뿌리로 해 가지고 통일교회가 모든 인류와, 뭐라 할까, 인간 나무와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가치, 순이 바로 자라 가지고 뿌리와 종대와 연결할 수 있는 똑바른 나무가 되기를 바라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신록이 우거지는 5월이 찾아왔습니다. 만물이 어느 하나도 소생하지 않는 것이 없는, 자기 생명력을 이 우주에 자랑하기 위해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없는 자연계를 바라봅니다. 그 모든 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쌍쌍이 되어 있어 우주애에 접할 수 있는 하나의 세포와 같은 식물 요소로서도 피지 않는 꽃이 없는 그러한 자연계가 찾아왔습니다. 이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던 본질적 깊은 사랑의 일념을 다시 회상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세계를 대표한 모든 사람들, 40억의 인류와, 한국의 4천만 국민과 서울에 살고 있는 1천만 시민과 통일교회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렇게 모여 사는 모든 것도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그 사랑을 동경하기 때문이옵니다. 사랑을 재촉하고 사랑을 격려하여 오늘의 나 하나를 완성시키기 위한 뜻에서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 사회가 있게 하심을 저희들은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뿌리로 하여서 올바른 순이 되길 원하여 주고 위하며 살 수 있고, 사랑의 본질을 추구하며 그리워 흠모할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가 이 땅에는 지극히 적사오니, 오늘 여기에 참석한 당신의 자녀들이 사랑할 수 있는 흠모의 마음, 사모의 마음, 정성들인 그 마음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느끼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만물까지도 나를 주인으로 삼고 싶을 수 있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까지도 나를 내세워서 부를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이 그런 아들딸을 얼마나 그리워하는가를 알았사오니, 사랑으로 엮어진 인격을 갖추어 가지고 이걸 품고 온 우주 앞에, 천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무리 가운데서 한 사람, 두 사람 많이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이 33년 생애에 있어서의 수난길, 십자가의 길을 앞에 놓고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한 그 심각한 경지에서도 천리의 사랑의 도를 펴고 싶었던 당신의 숨은 심정은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그 깊은 사연을 캐냈습니다. 그전에는 높으신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몰랐습니다. 뿌리 될 수 있는 아버지 앞에 어떻게 해야 순이 될 수 있는가를, 똑바르고 큰 나무의 순이 어떻게 되어지는가를 제가 알았사옵니다. 나 홀로 고독한 이 나라의 생명의 주체, 사랑의 주체가 되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는 젊은이들이 이 땅에 많게 될 때는 이 땅이 온 우주를 주관하고, 지배하고 남을 수 있는 본원지가 된다는 것을 미루어 예측하여 알았사오니,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의 깊은 그 마음 가운데에 거하여 주옵소서.

자연과 이 만우주와 화합하고 통할 수 있는 하늘의 본질적 사랑을 흠모하고 하나의 구형적인 인격을 완성하여, 아버지의 마음 앞에 있어서나 몸 앞에 있어서나 환경 앞에 있어서 '네가 아니면 안 되겠다. 모든 것을 잃더라도 너만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이런 아들의 모습과 딸의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원한 사랑을 우리가 원하기 전에 하늘이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를 당신이 얼마나 고대하시는가 하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여기 모인 청중들 가운데 젊은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 젊은 마음 가운데 이러한 심정이 발발하여 생명적인 인연을 높이 찬양할 수 있는 놀라운 사랑의 자녀들이 될 수 있고, 사랑의 하나의 당신의 발판이 될 수 있음과 동시에, 사랑의 하나의 자랑의 표적이 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통일교회의 자랑이요, 어떤 교회가 못 가진 하늘만이 소원하시는, 하나의 통일교회만이 가진 선물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 선물의 터전이 만인 앞에 확산되고, 만인 앞에 찬양의 조건이 되어 하나님이 높이 드러날 수 있으며 영웅됨으로 말미암아 그걸 바라보고 만 우주가 감사할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오길 바라는 것은 저희의 소원이기도 하오니, 그 자리까지 전진을 가속시켜 나가는 강한 당신의 아들딸의 모습들이 되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고 있사오니 그 자리에 같이하시옵고, 말씀을 갖고 나타나는 곳곳마다 하나님이 같이하시고, 사랑의 인연을 통하여 만민이 흡수력을 가지고 통합할 수 있는 힘을 가진 통일교회임을 어느 곳에서든지 보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소원성취, 해원성사의 일념을 타개해 드릴 수 있는 통일교회의 모든 제단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제 새달의 첫번 주일을 맞이하였사옵니다. 이 5월은 더우기 대한민국에 있어서는 복잡한 달로서 복잡한 정세를 갖게 됩니다. 또 남북의 긴박한 정세와, 세계의 모든 아시아에 있어서의 긴박한 움직임이 집중되어 있는 시기입니다. 아버지, 지켜 보시옵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사랑의 길이 해결될 수 있는 본연의 행로가 세워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마음으로 고대하고 몸으로 고대하고 환경으로 고대하는 사랑의 동산세계를 향하여서, 그 이상세계에 품겨 당신의 사랑 가운데서 안팎으로 사랑을 받게 하옵소서. 내가 삶의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본연의 인간이 되었다고 찬양을 드릴 수 있는 아들딸이 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