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이 한 열흘 동안 잘 지내 준 데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그 동안 여기에 있었던 사람들은 새로운 동지를 맞이했고, 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나가고 해서 기쁜 일과 섭섭한 일이 엇갈리게 된 줄 알고 있다구요.
이번에 워싱턴에 가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생각대로 잘 돼서 빨리 왔습니다.
그럼, 여기에 지금 남은 사람과 새로 온 사람이 같은가요? 28명? 「29명입니다」 새로 온 사람과 남아 있는 사람이 거의 같은데, 서로 비교했을 때 새로 온 사람이 더 낫기를 바라는 것이 선생님의 마음이라구요. 헌것보다 새것이 좋다구요. (웃으심)
자, 오늘은 새로운 사람들이 있고 하니 '새로운 목표'라는 제목으로 잠깐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표준과 같은 그런 목표를 갖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세워서 가는 길에 있지만, 우리들이 목표하는 바는 이미 계획된 목표에 의해서 가고 있다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목표와 우리가 바라는 목표 중에 어떤 것이 더 좋으냐, 어떤 것이 더 가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는 비교도 할 수 없으리만큼 내용의 차이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통일교회는 역사상에 없었던 목표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 세상 사람들이 자기 목표를 정한다면 자기 개인이 출세해 가지고 자기 가정이나 나라, 혹은 기껏해야 세계적인 인물이 되겠다고 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내용의 가치를 결정지을 수 있는 그 아무것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목표를 향해 나가는 데 있어서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를 지도하고 격려하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스승이나 부모, 친구들이 격려하지만, 그것은 한 시대에 지나가는 것으로 끝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를 지도하고 격려하는 그분은 영원히 변치 않고 영원히 우리를 지도할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표와 우리가 바라는 목표는 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기 때문에 그분을 중심삼고 나가는 사람들의 목표는 같은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계획하는 인격은 이래야 되고, 가정은 이래야 되고, 사회는 이래야 되고, 국가는 이래야 되고, 세계는 이래야 되고, 천주는 이래야 된다는 것이 결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만 갈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많은 나라가 있고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그 나라와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길은 각양인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나라 가운데서 어느 나라가 가는 길이 나라로서 가야 할 길이고,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가는 길이 사람으로서 가야 할 길이냐 하는 것을 결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통하여 누가 어떻게 가고 어떤 나라가 부딪치고 부딪치면서 어떻게 가는가를 비교해 가지고 좋은 곳을 찾아가려고 했던 것이 지금까지의 우리 인간의 역사입니다. 인간세계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나라들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언제나 이렇게 갔다가 저렇게 갔다가 하는 구불구불한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민주세계를 대표하는 미국이 지금까지 역사적 대표의 자리에 섰다 하더라도 가는 길을 어떻게 가겠다 하는 것을 모르고 가고 있는 것이며, 또한 공산주의도 자기들의 세계관을 갖고 어떻게 가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가는 데 있어서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개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도 '이렇게 간다' 하고 정했지만 가다 보니 전부 다 꼬부라지고 딴 길로 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세상이 목표하는 바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렇게 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리하면 되겠어요? 그래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직선으로 가고 싶을 것입니다. 한 개인이 가야 할 목표의 길도 직선으로 가야하고, 가정도 직선으로 가야하고, 범위야 넓지만 국가라든가, 세계도 직선을 표준해 가지고 가야 된다는 것이 하나님이 보는 목표요 관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직선으로 가기 위해서는 직선으로 갈 수 있게끔 나를 이끌어 주는 힘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힘이 무슨 힘이 되어야 되겠느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힘은 내가 목표를 향해서 가도록 매일같이 자극시키고 격려하고, 생활면에서 충동시킬 수 있는 자극적인 내용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의 주체가 있다면 우리는 상대적인 입장에 서게 되는데 서로 꽉 매여 있어 가지고 그쪽에서 잡아 끌어 주든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끌려가든가 할 수 있는 어떠한 힘, 혹은 어떠한 줄이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명을 끌어와서 우리의 인생의 전체의 목적을 끌고 갈 수있는 그 힘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힘에 이끌려 가는데, 강제로 억지로 싫은 데도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좋아서 이끌려 가는 그 힘이 무엇이냐? 그런 힘이 있다면 그것은 가면서도 감사하는 것이고, 가면서도 좋은 것이고, 가면서도 자랑하고 싶은 것이고, 가면서도 춤을 출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 그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은 무슨 힘이겠느냐 할 때, 그것은 사랑의 힘이 아닐 수 없다 하는 것을 우리는 추리를 통해서 결정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힘이 있어야 직진할 수 있다 하는 것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목표가 되려면 변하지 않는 길을 통해서 찾아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길을 인도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을 통해서만이 변하지 않는 주체와 대상이 만날 수 있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모르지만, 하나님이 계신다면 반드시 사랑의 줄을 통해서 그 직선을 그어 놓을 것이고, 그 길을 통해서만이 되어진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길은 어떤 길이냐? 사랑의 내용은 어떤 내용이냐? 그 사랑은 막연한 사랑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랑이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거기에 가기 전에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랑의 내용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보고 싶은 사랑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또한 언제나 함께 살고 싶은사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고 싶은 곳, 가고 싶은 곳, 살고 싶은 사랑의 인연의 내용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종류를 분별할 때, 그러한 사랑을 중심삼고 우리가 그 목표를 찾아나간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나은 사랑이 되어야 되겠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사랑의 내용을 가진 관계는 몇 가지나 되느냐?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친족간의 사랑, 종족간의 사랑 등등 여러 가지 사랑의 종류가 많다구요. 그러한 사랑 가지고도 우리는 지금 목적을 모르고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보다 강한 사랑의 힘이 아니고는 직진해 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거예요. 이것은 이론적으로 타당한 말이라구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이 지그재그로 가는 것을 똑바로 가게 하려면 이보다도 강한 사랑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인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사랑을 붙들고 오려거든 이 세상을 초월하고 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길을 가르쳐주고 그런 길로 인도하고 싶은 하나님이라면, 우리에게 제일 강력한 사랑을 정의 내리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죽음에 끌려가는 사랑을 원하겠느냐, 죽음을 끌고 가는 사랑을 원하겠느냐? 이런 것이 문제된다구요. 끌고 가야 돼요. 끌고 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따라오라고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첫째 가는 계명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지킬 수 있는 제일 좋은 계명이라고 딱 못박아 놓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생명을 앞에 세우고 나오지 않고 생명을 끌고 나왔다구요. 봄이 되어 열매를 심으면 싹이 나온다구요. 그것이 나와 가지고 한 때가 지나가게되면 열매를 맺는다구요. 이렇게 씨를 뿌리는 사람은 그러한 목적을 가졌기 때문에 씨를 뿌리는 거라구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대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는 목숨을 내놓고라도 대들라고 강조한 것은 우리들이 못 되라고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고 싶어서 강조했다는 사실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기만 하면 어떻게 되느냐? 더 좋은 것이 거두어지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랑을 누구와 더불어 하자는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끼리 하자는 것이 아니라구요. 우리끼리 하자는 게 아니예요. 제일 먼저 하나님과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맨 처음에 출발한 기점이 어디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이 그 사랑의 출발의 기점이라고 우리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세계에서 볼 때, 사랑이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왔느냐?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 사랑 가운데서는 첫째로 등장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으로서 갈 수 있는 제일의 목표는 무엇이냐?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고 우리 인간들은 아들의 입장에서 사랑받는 것이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목표다 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최종적으로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 우리 인간 중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고 자신은 아들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었다 하는 자리, 창조 당시의 자리와 같은 본연의 자리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있었느냐? 타락이 없었다면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타락이 있었기 때문에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 인간 본연의 사랑, 부자관계의 사랑을 하겠다는 것이 변해야 되겠느냐? 변할 수 있겠어요, 변할 수 없겠어요? 오늘같이 날씨도 나쁘고 비가 오면 기분이 나쁜데, 그 사랑도 '아, 기분 나쁘니까 내 마음이 변했다' 하며 기분이 나쁨에 따라서 변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 그건 변할 수없다구요. 세상이 이렇게 뒤놀고 역사가 뭐 어떻게 뒤넘이치더라도 그것이 변한다면 희망이나 소망이, 모든 것이 다 끊어진다구요.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거기도 변천이 있고 지그재그로 왔다갔다 한다고 보겠느냐 이거예요. 그건 절대 그럴 수 없다구요. 봄이 되고, 여름이 되고, 가을이 되고, 또 겨울이 되고, 일년이 지나가니 다른 해가 온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기준이 바꿔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정이자, 영원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도 그 사랑이 변하길 바라느냐 이거예요. 나는 변하더라도 그분은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거라구요. 안 그래요? 그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은 변해서는 안되는 주체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한번 결정한 것이나 인연맺은 것은 변할 수 없으며, 혹은 거기에 관계맺은 것도 변할 수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그것이 뭐 좋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다구요.
여러분, 발전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발전은 누구나 다 좋아한다구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하나님도 사랑을 찾은 다음에도 발전이 필요하냐? 이것이 문제라구요. 사랑을 찾은 다음에도 발전이 필요해요? 사랑의 목적을 찾은 다음에도 발전이 필요하냐 이거예요. 사랑이 발전하는 게 필요해요? 사랑을 다 이루어서 참된 사랑을 찾은 다음에도 그게 변하기를 바라고, 또 거기에서 발전하기를 바라느냐는 말입니다. 대답해 봐요. 발전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됩니다」 발전도 변하는 거라구요. 지금까지는 달라지는 것을 말했다구요. 그러니까 사랑의 목적이 변하거나 발전해야 되겠어요? 이것을 똑똑히 대답해 보라구요.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된다구요.
자, 그러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꾸 변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발전할 수 있느냐 말예요.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이 변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그런 참된 사랑이 찾아진 자리에 있어서는 변하는 것도 허락지 않지만 누가 와서 보태는 것을 원해요? 누군가 와서 덧붙는 걸 좋아하느냐 이겁니다. 가할 수도 없고 감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를 '아,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참 못생겼으니 너희 어머니 아버지와 바꾼다. 오늘 바꾸겠다' 하면 그거 바꿔지나요? 「아니요」 그렇기 때문에 보태지도 못하고, 빼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자, 이런 말을 왜 하느냐 하면, 사랑에는 발전도 없고 혁명도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거 머리에 들어와요? 「예」 그렇기 때문에 몇천 년 전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몇천 년후에도 그와 같은 사랑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몇만 년 전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마음과 지금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했어요? 발전하고 혁명했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단 하나의 혁명도 필요치 않고 단 하나의 발전도 필요치 않고 오직 그것만으로 완전하고 그것만으로 좋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할 때, 그것은 참된 사랑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인연지어진 생활관이 변할 수 있겠어요?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인연되어 관계맺게 된 것이 변할 수 있겠어요? 그것은 변할 수 없다는 결론을 우리는 여기서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 땅 위에 있는 인간들이 찾아가는 것이 무엇이냐? 역사시대에 각 사람이 지그재그로 찾아가는 그 최후의 목적이 무엇이냐? 훌륭한 나라를 만들고, 뭐 미국으로 말하면 미국이 세상의 천국을 다 만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이 미국 전체가 변하지 않을 수 있는 영원한 사랑에 정착하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결론지을 수 있는 겁니다. 결국은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인연된 국가, 국민, 세계가 되기를 바라고 그 세계에서 살고, 그 나라에서 살고, 그런 가정에서 살고 싶은 것이 우리 인류가 바라는 최후의 목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면 말이예요.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으면 그 가정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사회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연되어 있으면 그 사회를 떠나라고 해도 떠나갈 사람이 없지 않느냐 이거예요. 그 나라와 그 세계가 하나님의 사랑가운데서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그 나라와 세계가 변하기를 바라거나 개조되기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안 돼 있기 때문에 문제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세운 목표라는 것은 변하는 목표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목표로 세워 놓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단 하나밖에 없는, 우주의 근본이 되고 모든 생명의 주추가 될 수 있는 사랑의 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연결될 수 있는, 하나의 직선을 그어 놓을 수 있는 목표점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인간의 소원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직선을 그을 때, 다른 말로만들어진 직선은 원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남아 있는 하나의 직선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민이 공통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길이라고 우리는 단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 사랑의 목표까지 가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사랑 기준, 가정적인 사랑 기준, 국가적인 사랑 기준, 세계적인 사랑 기준, 기준은 달라지더라도 가는 길은 한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요게 개인이예요. 요게 가정, 요게 종족이예요. 커지는거예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여기에는 이렇게 감에 따라서 어떻게 되느냐? 애초에 이 중심, 이 직선을 그려 가는 것은 참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밖에는 연결될 수 없는 거예요.
그렇게 볼 때,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다 할 때는 무엇을 중심삼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느냐? 이 사랑에 얼마만큼 맞출 수 있는 인격자로 나타나느냐 하는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사람의 인격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두고 보더라도 하나님과 직선적인…. 그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가정이 얼마만큼 상대관계를 맺어 하나될 수 있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결정되는 겁니다. 개인은 이렇게 사랑하고, 가정은 이렇게 사랑하고, 사회는 이렇게 사랑하고, 국가는 이렇게 사랑하고, 세계는 이렇게 사랑해서 꽃다운 우주를 만들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 때문에, 그 계획이 사랑의 마음과 연락될 수 있는 계획의 길이기 때문에, 이 길과 어떻게 통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개인의 인격과 가정의 인격과 씨족 민족 국가 세계의 인격관이 좌우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그 무엇이 있을 게 아니예요? 무엇이 그렇게 되어있을 게 아니냐구요.
그러면, 그 사랑은 우리에게 어떻게 자극해 오느냐? 사랑이라는 것은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 가지고 한 점에 묶을 수 있는 힘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보는 이 눈은 '어, 보고 싶다' 그러고, 귀는 '아, 듣고싶다' 그러고, 입이 있으면 '아, 먹고 싶다. 말하고 싶다. 배우고 싶다' 그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세포가 거기에 움직여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피뢰침이 높은 꼭대기에서 번개를 만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경의 모든 감각을 피뢰침같이 전부 다 묶기 위한 작용이 사랑의 힘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피뢰침처럼 그렇게 전부 다 묶어 한테 모으는 작용이 사랑의 작용이라는 거예요. 사랑의 마음이 깃들게 된다면 모든 감각은 한 곳으로 충동을 받아서 작용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한꺼번에 작용한다는 거예요. 눈은 눈대로, 귀는 귀대로, 코는 코대로, 손은 손대로, 전부가 이렇게 같이 작용한다구요.
그렇게 되는 것은 누구 때문에 그러느냐? 나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내가 가만히 있고 싶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고 싶어요? 「가고 싶습니다」 가고 싶다는 거예요. 나를 부정하고 가고 싶다는 거예요. 그 사랑의 마음만 충동되게 되면 자기의 모든 것은 다 잊어버리는 거예요. 먹는것도 싫고 입는 것도 싫고 모두 싫지만, 오로지 그것만은 원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내 자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구요, 내 자신에서. 딴 것과 관계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이상적 주체가 아니라 이상의 대상이 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주체를 향해서 찾아가야 된다구요.
그 주체가 누구냐 하면 하나님이다 이겁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부모와 같은 자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변해서는 안 되고, 혁명이란 있을 수 없다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은 변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내 생명이 변하더라도, 내 자체의 환경이 변하더라도 이것은 변해서는 안 되겠다고 하고 붙들 수 있는 사랑을 여러분이 갖고 체험해 봤습니까? 그것을 찾아가야 할 우리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찾아가야 된다구요.
타락하지 않았으면 인간은 완전한 주체인 하나님 앞에 완전한 객체, 대상으로 자연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우리 원리로 말하면, 완전한 플러스가 있으면 완전한 마이너스는 생겨난다고 했는데, 거기에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되는 데는 문제도 되지 않고 자동적으로 하나되게 되어 있습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하면 이 플러스, 마이너스 사이에 절연체 같은 것이 꽉 끼여서 통할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극, 극이 반대로 되어 있는 거예요. 플러스, 마이너스가 이게 향하는 것이 아니고 거꿀잡이예요. 그래 가지고 이게 절연체가 생긴 것과 마찬가지라구요. 극이 반대가 되는 거와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절연체가 되어 있다구요. 이렇게 플러스가 되어 있으면, 마이너스는 반드시 돌아가서 맞춰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가서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만나자 이겁니다. 이 과정에서 만나자는 것이예요. 이렇게 돌아가면 만난다고요. 그와 같이 만날 그때가 재림날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그 사랑 가운데서 하나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살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이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보다도 절대시하고 직선으로 가는 길입니다. 확실히 알아야 되겠다구요.
돌아서 만나 가지고는 말예요, 그 다음부터는 갈 길이 한 직선밖에없다는 거예요. 만나서 가야 될 게 아니겠어요? 개인에서 가정으로서 가야 할 게 아녜요? 마이너스 되었다구요. 이것은 세계라구요. (판서하시며 말씀하심) 이렇게 돼서 만나는 거예요. 거꾸로 되었다구요. 이게 여기 마이너스고 플러스인데 반대로 되었다구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올라갈 수 없으니…. 그러니까 마이너스 된다구요. 그 다음에 요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된 여기서부터 벌어지는 거예요, 완전히 하나된 이들이 하나되어 가는 길은 영원히 변치않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변치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사랑과 내가 하나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나의 상대가 하나되어 가지고 그 사랑을 중심삼고 묶어진 부부는 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야 될 게 아녜요?
그래, 거기에서 이혼이 필요해요? 「아닙니다」 자. 사랑은 서로가 배척하는 거예요, 서로가 하나 되는 거예요? 보면 볼수록 싫은 거예요, 좋은 거예요? 한 번 봤으면 '아, 이젠 됐다'는 것이 아니예요. 보고도 또 보고 싶은 거예요. 영원히 보고 싶다는 거라구요. 들어도 영원히 듣고 싶은 거예요. 가서 살을 대더라도 영원히 대고 싶은 거라구요. '한 번 봤으니까 이제 그만 봐도 돼'그 말이 통해요? '한 번 들었으니까 이제 그만 들어도 돼' 그 말이 통하나요?
행복이 무엇입니까? 모든 자극을 새로운 이상경지에 접촉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을 지녀야, 그런 관계를 가져야 행복한 것입니다. 그 행복이라는 것은, 영원히 변치 않고 영원히 최고의 가치적인 그런 사랑을 중심삼고 상대적 관계를 맺어 가지고 자극을 받는 것입니다. 그 자리 이상의 행복은 없다 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결론지을 수 있는 거라구요. 부자관계의 중심은 사랑이예요. 사랑이 문화의 기원이요, 생활의 기원이요, 모든 씨족권을 형성하는 기원이 된다는 거예요. 그런 사랑 가운데 이루어진 문화가 있으면 하나님이 깨뜨려 버리고 싶겠어요?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예물, 조그만 손수건 같은 것이라도 영원히 보존하고 싶은 거예요. 사랑으로 이루어진 문화가 됐더라면 그것은 영원히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사랑해서 남겨주고 싶은 것이 되는 것이지, 그것을 깨뜨려 버리고 망하게 하고 싶은 것을 절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문화권이 사랑 가운데 이루어졌으면 그 문화권은 영원한 문화권으로서 이 세계 인류의 터전이 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주체로 삼고, 그 주체인 하나님과 더불어 내가 상대적 관계에서 사랑의 인연을 맺으면서 만든 것을 깨뜨려 버리고 싶겠어요? 천만에요.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두고 싶은 거예요.
타락한 이 세상의 영화를 보더라도, 옛날에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던 장소에 가 가지고 슬픔이 있으면 슬픔을 풀고 하소연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 않아요?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변할 수없는 내용의 하나의 자극적인 모체의 인연을 남긴 것은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증거하는 사실이라구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이루어진 문화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깨뜨릴 수 있겠어요? 없는 거라구요. 그러한 사랑 가운데 맺어져 이루어진 나라가 있으면 하나님이 깨뜨릴 수 있겠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세계에서 혁명이 벌어지고 발전을 해 나온 것은 하나님께서 깨뜨릴 수 없고, 혁명이 필요하지않는 세계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결정짓고 끝을 맺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섭리해 오신 것이라고 할 때에, 우리는 여기에서 역사적 전체를 사랑하기 위한 하나님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끝날이라고 하는 때는 어떤 때냐 하면 많이 부딪치는 때입니다. 하나의 중심 존재가 있고, 이 세계가 이렇게 넓다 하게 된다면, 중심이 이렇게 왔다갔다 할 땐 거리가 멀어집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부딪치기 위해서는 이만큼 와야 되고, 이렇게 되게 되면 거리가 좁게 되기에 여기 와서 부딪치는 거예요. 여기 와서 부딪치지만 요것이 점점 찾아와서 점점점가면 갈수록 부딪치는 거리가 가까워 오는 것이라구요.
무엇하고 부딪치는 거예요? 끝날이 되면 이같이 자꾸만 부딪치는 거예요. 나라와 나라가 부딪치고 가정과 가정이 부딪쳐 나가는 거예요. 옛날에는 이렇게 중심이 몰렸기 때문에 아무리 왔다갔다 해도 부딪치지 않았다구요. 여기에 올 때까지 부딪치지 않았지만, 이것이 점점 이렇게 되어 가지고 끝날이 되면 중심을 찾아가기 때문에 점점 부딪친다는 말이라구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동양하고 말이예요. 서양 것하고 동양 것하고 보면 말이예요. 관계없는 것 같지만, 동양 것과 서양 것이 부딪칠 때가 오게 됩니다. 결국은 서양과 동양이 부딪치고 하나님의 문명권과 사탄의 문명권이 부딪치는데, 이것이 부딪치면 뻐드러지는 것이 아니라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예요.
이 미국 같은 나라는 여기서 한번 부딪치니까 나라가 어디 있고, 가정이 어디 있고, 윤리가 어디 있느냐고 할 정도로 다 깨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것들은 그렇게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것으로 남아지지 않고 중심을 찾아 들어간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역사하기 때문에점점 복잡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복잡해 들어간다고 해서 깨지는 것이 아니라 복잡해 들어갈수록 때가 가까워 오고 중심을 만날 때가 가까워 오는 겁니다. 중심은 돈다는 거라구요. 도는 데는 어떻게 도느냐? 전체가 하나, 둘 붙어 가지고 큰 중심으로 돈다는 거예요. 하나 둘 전부 다…. 그러고 보면 문제는….
개인주의라는 말도 자기를 위한 개인주의가 아니라 하나님 또는 대상을 위한 개인주의라면 통할텐데, 자기를 위한 개인주의이기 때문에 망한다는 거예요. 이게 한번 부딪치면 떨어지는 거예요. 부딪치고 부딪치면 떨어져 나간다는 거예요. 주체를 위한, 하나님을 위한 개인주의는 되지만 자기를 위한, 주체 없는 개인주의여서는 안 된다구요. 다 합해 붙는 거예요. 중심에 가서 붙는 거예요. 여기 플러스 마이너스를 갈라도, 아무리 가르더라도 달라붙는다구요. 자꾸 달라붙으면 굵어진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여기 주체 앞에 플러스로서자기를 위한 개인주의라면, 가서 부딪치는 날에는 떨어지는 거예요. 부딪치는 날에는 모두 깨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사상 가운데 주체를 위한 사상을 집어넣어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운동이라구요. 주체를 위한 사상…. 그렇게 되면 의외로 간단하기 때문에 빨리 붙들 수도 있다는 거라구요. 우리의 뜻이 여러분의 가정과 사회와 부딪치지만, 반대를 받지만 결국 여러분들은 새로운 면으로 커 가지고 발전할 수 있는 기원을 찾아 나가는 거라구요.
자, 그러면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렸느냐? 하나님은 여기까지 오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의 역사를 소모시키고 희생시키며 왔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수고와 희생을 해서 찾았다 하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하게 여기겠느냐 이거예요. 고생하고 찾은 것과 고생을 안 하고 찾은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가치있겠어요? 부모는 잃어버렸던 자녀를 수십 년 동안 수고해서 찾아다니다가 비로소 만나서 기뻐하는데, 그 자녀는 '이거 어떤 남자가 와서 나를 이렇게 좋아해! 나 싫어!’ 그래야 되겠느냐구요. '당신하고 나하고 사람도 틀리지만, 그 닮은 게 뭐가 있어요? 머리카락도 보면 나는 새까만데 당신은 샛노랗고…. 무엇이 관계 있어요? 이럴 수 있다구요.
여러분들, 하나님의 머리카락이 샛노란지, 새까만지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의 머리카락이 새까매요, 샛노래요? 어때요? 생각해 봤어요?(웃음) 그거 생각해 봐야 된다구요. 그리고 하나님의 살이 새까매요, 하얘요? 만일 새까맣다면 어떻게 할래요? 그래도 하나님을 사랑할래요? 「예」 말을 들으니 '예스' 하지…. 하나님은 이상적인 분이기 때문에 새까말 수도 있고, 새파랄 수도 있고, 노랄 수도 있고, 하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약에 하나님이 새까맣다면 '아, 저건 흑인의 하나님이다'고 그러겠어요? 노랗게 황인종같이 생겼을때는 '황인종의 하나님이지 내 하나님은 아니다'고 그러겠나요? 「아닙니다」 그러니까 색깔이 문제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랑에는 하나의 사랑, 영원한 불변의 사랑에는 그 사랑만이 제일이지, 색깔이나 모양이 문제가 되지 않는 거예요. 도리어 새까만 사람이 하얀 백인을 보고 '야 넌 내 아들이다' 할 때에 '아, 그래요. 내 아버지여!' 하고 엉엉 울면 얼마나 더 사랑스럽겠어요? 그건 왜 그러냐 하면 나와 같은 자리에 같이 살지 않고 모든 슬픔을 갖고 나라를 다니면서 고생을 해왔기 때문에 그것을 생각하면서 더 사랑할 수 있는 동기가 거기서 결정되는 거예요.
자, 육천년 동안 그렇게 수고하시며 찾아온 아버지가 있다면, 그 아들을 찾아갈 때 ‘너는 검둥이고 너는 흰둥이다' 이렇게 봐 가면서 찾아가겠어요?(웃으심) 색깔이 문제예요? 아들임에 틀림없다는 사실만이 문제지 그 외의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구요. 아들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나라를 망치고 세계를 망쳐 가면서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수고하시며 찾아와서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하는 생각해 봤어요? 진짜로 느껴봤어요? 그렇게 찾아온 아버지를 내가 찾았다면 얼마나 기쁘겠어요? 얼마나 기뻐하겠느냐구요. 아버지도 그런 것을 알고, 나도 그렇게 찾으려고 그러다가 만났다면 그 얼마나 기뻐할 것 같아요? 입이 찢어지리만큼 웃어도, 혀가 뒤집히고 눈이 뒤집혀도 좋다는 거예요. 춤을 춰도 무슨 춤을 추는지, 그건 형용도 못할 거라구요. 밥을 몇 시간, 몇 일, 몇 달을 안 먹더라도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될 것 아니예요? 그래 가지고 그렇게 수고한 아버지를 만났다면 그 아버지를 위해서 내가 무슨좋은 것을 한번 해 드리고, 그 아버지를 기쁘게해 드리기 위해서 내가 수고한 것을 다 잊어버릴 수 있는 한 가지 일을 해보겠다 하는 생각을 해봤느냐 이거예요.
그리하여 아버지가 좋아할수록, 고생한 것을 다 잊어버릴 수 있는, '야야 뭐 고생하지 말라'고 권고하면서 아버지가 고생한 것을 다 잊어버릴수 있는 일을 해서 그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버지, 나만이 아들이 아니고 다른 형제들도 많이 있는데 당신이 찾기 위해 또 그렇게 고생해서는 안 되겠으니, 내가 대신 할 테니 아버지는 이제 그만두시고 저기로 가세요' 하며 내가 혼자서 전부 다 찾아 주겠으니 아버지는 오지 말라고 한다 해서 불효이겠어요? 아버지 이상 할 수 있으면 '오냐…' 아버지는 좋아하는 거라구요.
그런 아들이라면 그것은 자기를 위해서 그러나요? 그런 고생이라면 누구든지 고생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 아들이 있다면 누구를 위해서 고생하려고 하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아버지를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하겠다는 그것밖에 없는 거라구요. 그 자리가 효자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가 타락했던 인간으로서, 배반했던 인간으로서 아버지를 다시 만난 그 감사의 은덕을 만민 앞에 전하려는 자리이지, 자기를 생각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자기를 생각지 않고 희생하는 아들일수록 그 아버지는 더 고맙게 생각하게 되고, 형제들은 자기를 생각지 않고 죽음의 고개를 넘어서 대해 주었다는 것에 대해 더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더 인연되고 더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만은 틀림없다구요.
우리가 바라는 목표는 하나님이 바라는 목표와 마찬가지라구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을 찾겠다고 하는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우리가 대상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나서는,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람이 되는 거라구요. 또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먼 거리에 있던 나라와 백성을…. 형제들을 위해서 다른 나라도 가깝게 만들어진다면, 그는 그 백성들에게 그 누구보다도 제일 사랑받을 수 있는, 제일 존귀함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갈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눈물과 피와 땀을 흘려 가지고 인류와 땅과 하늘을 위하자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해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눈물과 땀과 피로써 역사를 대신해 왔기 때문에, 그의 사랑의 대상으로서 사랑을 받은 우리는 그 사랑을 갚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갚으려니 그분을 위해서 가는 것보다도 그분이 가야 할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나가는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눈물을 닦으면서, 땀을 식히면서 서 있는 길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면서도 가야 되고, 피를 흘리면서도 가야 할 길입니다. 6천년 동안 눈물을 흘리고, 피땀을 흘리면서 헤매 온 아버지인 것을 여러분이 진정 안다면, 그 아버지를 대해 가지고 참된 효자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 아버지의 모습을 대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라구요.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어디서나 눈물 흘리고 피땀 흘리는 그런 역사적인 터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마을로 가나 이 산골로 가나 혹은 들로 가나, 어디에든지 하나님의 눈물자국이 있고 핏자국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가든지, 이곳에 찾아온 것은 우리 아버지의 눈물자욱과 피눈물 흘린 인연을 내가 체험하고 그것을 해원성사해 드리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효성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생각하면서 나가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서 있는 곳이, 머무는 곳이 도시라도 좋고 농촌이라도 좋다는 거예요. 그 마을 사람 하나만 만나게 된다면 이 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눈물의 흔적이 있고, 여기에 아버지의 발걸음이 멈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개인까지도 해원성사해 주기 위하여 그를 붙들고 울 줄 아는 사람이면 하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형님과 같은 입장에서 그 한 사람을 붙들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아버지 대신 눈물 흘리고 동정할 수 있는 마음이 깃들어야만 하늘은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데려가게 될 때는, 자기는 고생을 하더라도 옷을 갈아 입혀 깨끗하게 해 가지고 아버지께서 찾아진 그 아들을 보시고 반가와 붙들고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그런 것을 보고 좋아하는 내가 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부모를 알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으니, 사랑을 모르고 있는, 부모가 찾아야 할 사람들이 이 세계에 널려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바쁘겠어요? 바쁘게 일어서서 부모를 만나게 해줘야 할 것이 우리의 의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미국 국민을 하나님의 아들딸로 만들어 줄뿐만 아니라 세계 저 남방 아프리카까지도 가서 그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딸로 만들어 주어야 할 책임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만약에 그것을 못 하게 될 때는 내가 흘리는 눈물로 대신 그것을 했다는 조건이라도 세워 놓고 가고, 내가 흘리는 피땀으로 대신 그들을 사랑했다는 조건이라도 세워 놓고 가야 할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이 중한 일을 하기 위해 미국에서 이제 새로이 무장을 해 가지고 동서남북으로 빨리빨리 가자는 거예요. 저 끝까지 어서 빨리 가 가지고 내가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고, 감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아들딸을 찾아 부모 앞에 상봉시키는 책임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전세계까지 우리의 손을 뻗쳐서 이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 일을 하는데는 무엇을 희생시키더라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가질수록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하게 되어있지, 벌을 내리게 되어 있지 않다구요. 좋아하시지, 슬퍼하지 않으신다구요.
미국의 사망률을 100대 1로 보게 된다면, 2억 2천만 명이면 얼마예요? 220만이 1년에 죽어 간다 이거예요. 그러면 얼마나 방대한 손해입니까? 그렇다면 뜻을 아는이 몇천 명을 하루 저녁에 희생시키더라도 220만을 구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 마음이 아니겠느냐? 세계의 인구를 36억으로 잡게 된다면, 매해 백 사람 중에서 한 사람씩만 죽어 간다고 해도, 100명이면 한 명이 죽으니까 이렇게 죽어 간다 하더라도 일년에 죽어가는 사람이 3천 6백만이 아니겠어요? 자, 그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야, 너희들 쉬어라. 쉬어라' 그러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달리는 사람 보고도 '더 해라. 빨리 달려라' 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구요.
하나님께서 아들딸을 잃어버리고 찾기 위해 미칠듯이 헤매고 다닌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형제를찾기 위하여 미칠듯이 하나님 이상의 책임을 하겠다고 해야만 하나님이 그래도 좀 쉴 수 있을 것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국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보다 여러분에게 먼저 관심을 가져 가지고 여러분이 하나님 대신 미국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요구가 아니겠어요? 하나님 대신말이예요.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구요. 말만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이 느낀다면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구요.
그 심각하게 된 것이 누구 때문에 심각해진 거예요? 하나님 때문에 심각해졌고 형제들 때문에 심각해진 것이지, 나 자신 때문에 심각하게 된 것이 아니라구요. 이렇게 가는 길은 이래도 선이요, 저래도 선한 것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2억 2천만의 미국 국민은 아우성을 치면서 우리를 부르고 있다구요. 그 미국이 아침과 같은 그런 날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저녁이됐어요, 저녁이. 그러니까 해가 지기 전에 가야할 운명이 있지 않느냐? 이것이 우리의 절박한 사정인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아이고, 내가 피곤하니, 해가 지겠으면 지고…'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이 사람은 그런 책임을 가진 사람이 못 되는 거예요. 해 지기 전에 가야 된다는 거예요.
이런 입장에 선 우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필요로 하고 미국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여러분, 그래요?「예」 지금까지는 확실치 않았으나 이제는 확실히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과 우리들이 가는 길,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목표와 우리의 목표는 근본적으로 다른 거예요.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미국이 어떻고, 형제가 어떻고, 세계가 어떻고, 하나님이 어떻고…. 근본적으로 다르다고요. 그렇게 다른 나인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내가 물을 한 잔 먹어도 다르고, 밥을 먹어도 다르고, 옷을 입어도 다르고, 보고 듣고 하는 모든 것이 다르다구요.
결국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중심삼고 그 사랑을 연결시키는 중매자가 된다면, 아버지의 중매자도 되고 아들의 중매자도 되니 이 놀라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 아버지의 사랑의 중매자도 된다는 거예요. 사랑의 중매자가 된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에서 남녀가 서로 결혼할 때도 중매해서 좋은 신랑 신부를 맞아들이면 일생 동안 그 중매자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한다구요. 우리도 만약에 그러한 중매자가 되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을 찾았다면, 하나님은 그를 사랑할 적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귀하게 여기시고 나를 추앙하고 나를 찬양할 것이 아니예요? 그뿐만 아니라 그 사람도, 그 후손도, 그 나라도 나를 찬양할것이 아니예요? 이게 얼마나 놀라운 사실이냐구요? 더욱이 우리가 중매자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찾아 주면 아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은 나를 더욱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더 사랑하게 될 것은 자동적인 이치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사랑을 받고 있는데 더욱 더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 하나의 길이 무엇이냐? 그것은 자신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과 이 땅 위의 자녀들과 부자의 관계를 얼마나 많이 맺어 주느냐 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더욱 사랑받을 수 있고, 더욱 하늘과 땅 앞에 공인받을 수 있는 조건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만일에 그렇지 못하게 될 때는, 하나님이 찾아야 할 사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은 짓밟아 버리고 싶은 거예요. '저놈의 저 망할 녀석' 하는 거예요. 얼마나 미워하겠어요? 세상을 미워하는 것보다도 더 미워할 거라고요. 그 말이 이해됩니까? 「예」 그걸 알고 있으면 가라는 거예요.
내가 갚을래야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것을 알고, 나를 먼저 찾아 준 하나님의 수고를 알기 때문에…. 어디 가서든지 은덕을 입었으면 갚아주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그 은덕을 하나님에게 갚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제발 형제를 위해서 갚아 다오' 이런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물한 그릇 대접한 것이 곧, 하나님께 대접한 것이라는 말이 맞는 거라고요. 하나님께 대접한 것보다 더 좋아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의 눈물을 엮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슬픔이 나로 인해 컸으니만큼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믿을 수있는 좋은 길을 이루어낼 수 있는 목표의 자리에 섰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믿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하나님이 나를 선포하고, 하나님이 나를 자랑할 수 있는 그런 멋진 자리에 서게 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믿어 줄 수 있는 자리요, 하나님이 자랑하고 싶은 자리 말이예요. 분명히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인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인간이 무엇이라서…. 하나님이 믿고 하나님이 자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러한 내용의 자리는 단지 이 자리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나 하나님 믿소' 하지만, '하나님이 너를 믿느냐' 하면 모른다고 할 거예요.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는지 모른다고 할 거예요. '나는 하나님을 대해서 자랑하고 싶지만 하나님이 나를 자랑하고 싶어하는지는 모른다'고 할 거예요. 그것은 모른다 하더라도 좋다는 거예요. 이 자리에만 서 있으면 하나님이 믿는 것이요, 하나님이 자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자리가 틀림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현재 내가 디디고 사는 이 생활권내에 이 놀랍고 혁명적인 사건이 머물렀다는 사실, 이것이 기적이라구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벌어진 거라구요.
우리가 이러한 자리에 서겠다고 하고 이런 자리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브라함보다 더 믿고 모세 보다 더 믿고 예수보다 더 믿고, 그들보다도 더 사랑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예수를 믿던 이상, 예수를 자랑하던 이상, 예수를 사랑하던 이상의 자리에 서니 하나님도 자랑하고 싶어한다구요. 내가 이만큼 됐다고 할 수 있는 자리….
자, 그게 얼마나 멋지냐구요? 응? 그런 사람들이 '배고프다. 밥을 못먹었어. 에이…' 그래야 되겠어요? 조금만 힘들어도 '에이 이게 뭐야? 그래야 되겠어요? 그래, 그게 사람이예요? 저 서커스단에 가면 코끼리 새끼도 '야 인사해라' 그러면 코를 들고 싫든 좋든 이러고 있는데 말이예요. 우리는 지금 그 트레이닝(training )하기 위해 여기 왔다구요. 거 보통 코끼리 새끼와 같아야 되겠어요? 달라져야지. 남들이 싫다고 하더라도 난 좋다고 해야 된다구요. 남들은 도망간다 해도 난 전진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지요. 그래요? 「예」 그래 보라구요, 나 구경 좀 하게.
자, 그러니까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을 이제 알았다구요. 우리는 이런 사랑을 엮어 나가는 길에 있어서 직선을 향해서 나간다는 놀라운 자리에 선 그 가치를 자랑해야 됩니다. 여기에서 내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전통으로 세우는 거라구요. 이렇게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길이라고 보여 주라구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이래야 된다구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새로운 사랑의 전통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우리끼리, 형제끼리 사랑하는 전통, 부부끼리 사랑하는 전통, 부부끼리 한 가정을 사랑하는 전통, 가정을 중심삼고 씨족을 사랑하는 전통, 씨족을 중심삼고 민족을 사랑하는 전통, 민족을 중심삼고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를 사랑하고, 세계를 중심삼고, 하늘땅을 사랑하는 전통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생을 통하여서 이루어 놓아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러므로 여러분이 한번 해야 되겠다구요. 내 개인 하나 찾기 위해서도 이렇게 수천 년 수고했는데, 우리 가정을 찾기 위한 하나님의 수고가 얼마나 컸겠느냐 생각해 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보다도 더욱 더 고생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고는 이 가정을 수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어떠한 혁명적인 시대에 서 있는가를 알아야 되겠어요. 개인을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수고하던 이런 역사…. 수천 년 만에 상대를 찾을 수 있고 가정을 가질 수 있게 된 놀라운 혁명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군대로 말하면, 총알에서 원자폭탄으로 발전한 거와 마찬가지의 혁명적인 사건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야, 놀랍다'라고 자랑할 수 있다구요. 그러면 이 종족을 품기 위해서는 더 힘들 것이 아니냐? 민족을 위해서는 더 힘들 것이 아니야? 세계를 위하는 데는 더 힘들 것이 아니냐? 이런 것들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같이 죽자 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같이 죽자 하지않고는 안 되는 거예요.
자, 우리가 지금 1972년에서부터 73, 74, 75, 76, 77, 78, 만 6년 걸려가지고 미국을 돌이키자는 거예요. 6년 동안에. 그것이 쉬운 일이예요? 「아니오」 어렵다고요! 어렵다고! 그렇지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여기는 무엇을 써요? 인치(inch)를 쓰나요? 자를 쓰는데, 인치 자가 있어요. 그러면 미국에서 제일 완전한 인치(inch) 자는 몇 개 있어요? 「져스트 원(just one)」 하나밖에 없는 거라구요.그 하나만 만들면 많이 만들 수 있다구요. 아무리 다른 자가 많더라도 이것을 붙들려고 하지,이 많은 것들을 붙들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없는 거예요.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예」 그와 마찬가지예요.
우리 6년 기간에 요것을 만들어 놓자구요. 이걸 만들어 놓으면 된다는 거예요. 각 주에 그런 사람을 만들어 놓자 이거예요. 몇 사람만 만들어 놓으면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세계 인류를 사랑할 수 있는 표준적인 형을 만들어 놓으면 돼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각국이 섞여 가지고 부딪치는 거라구요. 그러면서 미국 전역에 통일교회가 이렇다 하는 것을 보여 주자구요. '이거 좋다. 참이다' 하는 날에는 한꺼번에 넘어간다구요. 이걸 다 보이고 이게 제일이라 해도 많은 것을 아니라고 말한다는 거예요. 천상천하 어떤 자리도 아니라고 한다구요. 그러면, 그거 사실이 지요? 「예」
그럼 인치가 요만큼만 달라도, 그 눈금 매긴 것을 옳다고 하겠어요? 다지워 버려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하는 거예요. 다시 매겨야 된다구요. 요걸 딱 갖다 놓고 다시 매겨야 된다구요. 그래야 될 게 아녜요? 자, 그거 할래요? 그렇게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됩니다」
그럼 여러분 하자는 대로 해야 되겠어요, 하나님 하자는 대로 해야 되겠어요? 「하나님」 그럼 요만큼 통해야 되겠어요? 요만큼, 이 구데기만큼 통하니 요만큼만 용서해 달라고 해서 되겠어요? 이렇게 해야 되겠어요? 「아니오」 그러니까 그저 '잡아 잡수소. 뜯어 먹겠으면 뜯어 먹고 팔아 먹겠으면 팔아먹소' 이래야 된다구요. 그런데 그러고 내놓을 사람이 없다는 거라구요. 그렇게 돼야만 빨리 일이 된다구요. 뭐를 떼든, 턱을 자르든, 코를 꿰든, 다 그거해야 된다구요. 그게 제일 빠른 길 아니예요? 그 이상 없다구요. 그렇기때문에 여기 와서는 전부 잃어버리고 새로이 갖는 거라구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말이 그거라구요. 죽을 일이 벌어진다구요. 그 말씀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잼대, 하나님의 가정의 잼대, 하나님의 나라의 잼대, 하나님의 세계의 잼대, 그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잼대입니다. 그런거 있어요? 「없습니다」
우리에게 나라가 있어요? 「아니요」 교회는 있다구요. 이제 나라를 위한교회여야 됩니다. 또, 나라가 생기게 되면, 그 나라는 나라를 위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를 위한 나라가 돼야 합니다. 미국이 하나님의 나라가 됐으면 세계를 위한 미국이 되어야지, 미국을 위한 미국이 되면 미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요.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우리가 가는 길을 확실히 알았다구요, 지금 어떻게 가야 하는가를 알았다구요. 우리는 이 지상의 인간만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영계에 가 있는 영인들까지, 나중에는 사탄까지도 해방을 해야 합니다. 3시대를 해방하고 가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밥을 먹어도 물을 먹어도 혼자 먹는 게 아닙니다. 3시대를 대표해서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의논하고 먹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누구의 소유물이 되고 싶으냐 하고 생각해 볼 때, 나는 누구의 물건이 되고 싶은가 하는 것을 자신에게 물어 보게 될 때, 나를 누구보다 제일 사랑하는 사람의 물건이 되고싶다고 양심은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계는 어디로 가고 싶으냐? 세계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품에 가고 싶다는 결론이 나온다구요.
하나님은 이 세계를 누구에게 주고 싶겠어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것입니다. 더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고 보다 사랑하는 곳에 품기었을 때, 보다행복한 것이요 보다 이상적인 것이요 보다 참된 것이 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놀라운 길이라구요.
그것이 우리가 가는 길입니다. 이것을 볼 때 세상은 어때요? 세상 사람들을 보면 어때요? 여기 들어와서도 '아이구 세상이 좋다' 이렇게 생각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많다는 거예요. 세계 유명한 배우보다 멋진 실극, 실극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사실 그렇다구요. 여러분이 비참한 곳, 여러분이 피눈물을 흘린 곳은 세계가 추앙하는거예요. 그런 실극 시대가 오는 거예요. 실극이라구, 사실. 이 놀라운 사건을 우리는 이행하고 실천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천하에 무엇보다 가치 있게 생각해야 되겠다구요.
이제는 우리의 목표를 확실히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사랑의 길을 따라서, 참된 사랑을 위해서 '미쳐서가자' 하는 것이 우리의 표어도 되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그러고 싶지요? 「예」 그러고 싶은 사람, 한번 손들어 보세요.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3년 5월 5일이 되옵니다. 엊그제는 한국에 있어서 협회 창설 20회를 맞는 기념일이었습니다. 아버지, 5월은 역사적인 한 장면이 바뀌어지는, 새로운 계기가 마련된, 역사적인 달이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제 미국 땅에 당신의 사랑의 닻을 내리시옵소서.
오늘 아침에는 고향에 있는 사랑하는 어린아들딸과 전화로 연락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부모를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을 생각하는 것을 볼 때에, 진정 아이들이 그렇게 부모를 그리워하는 이상으로 저희 자신들이 하늘을 그리워하는가를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된 것을 감사하옵니다.
아버지여, 눈물과 더불어 '아빠, 엄마' 하는 그 음성을 들을 때, 이 땅에서 아버지를 대하여 어서 오라고 아빠, 엄마와 같은 간곡한 심정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진 아들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수많은 집이 있다 하더라도 그 집 가운데 하나님을 부르고 눈물짓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아버지의 심정을 동경하는 아들딸들이 얼마나 많으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노래도 엄마 아빠를 위한 노래를 부르는 그 자리는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이 동정할지 모르나, 하나님을 대하여 엄마 아빠라 부를 수 있는 심정이 깃들인 곳에는 온 천지 만유가 여기에 화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저희의 갈 길, 저희의 목표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가야 할 뚜렷한 길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수난의 길을 엮어 오신 아버지여! 아직까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누가 오라 하지 않아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세상을 모르고 잠들어 있는 자식의 뒷걸음을 따라서 아버지는 밤을 지새워 가며 찾아오시고 있다는 그 심정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내가 세상에 취하여 죽음의 장막 안에서 기뻐하는 그 자리에도 당신은 마음 졸이는 가슴을 품고 이 땅의 저희들을 찾아오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필시 당신의 원하는 소망 앞에 무지한 자식들이 돼서는 안 될 것을 알았습니다.
이 밤과 이 시간도 당신이 재촉하는 발걸음과 피눈물 나는 가시밭길의 싸움을 거쳐가고 계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가 저희들을 부르기 전에 '아버지'라고 소리지를 수 있는 아기가 되어야, 총에 맞아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아기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에게는 칠흑과 같은 암흑세계에서 소망과 희망의 마음을 자극시킬 수 있는 한 순간이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생명을 걸고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 보겠다는 마음을 갖는 당신의 자녀들이 여기에 한 생명이라도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10일 가까이 되는 기간에 워싱턴에 다녀왔습니다. 여러 가지 모양을 보았습니다. 여러 사람들도 만나보았습니다. 당신이 미국을 축복하였던 그 마음 가운데는 슬픔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디가든지 아버님이 이 나라를 품고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의 터전이 갖추어지지 못한 것을 생각할 때에, 미국을 축복하였던 아버지는 고독한 아버지가 된 것을 알았고, 슬픈 아버지의 입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희들이 찾아가서 그들과 더불어 인연을 맺고 당신의 인연을 거기에 연결시켜 남기기 위한 사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아버지.
가면 갈수록 당신은 불쌍한 분인 것을 알게 됩니다. 불쌍한 당신 앞에 효성의 도리를 해야 할 우리는 그 얼마나 불쌍한가를 알고 있습니다. 다해야 할 책임도 다하지 못한 어려운 자리에 서 있는 이들이지만 과분한 아버님의 사랑이 여기에 묻혀 있기 때문에, 이들을 통하여 당신이 마음의 위안을 받기를 바라는 아버지는 과연 불쌍한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저희들에게는 날이 갈수록 행복의 콧노래를 부르기보다는 슬픈 형제를 찾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비통의 눈물과 더불어, 울부짖음과 더불어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남아 있사옵니다. 우리를 바라보고 눈물을 지으며 가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운명의 길을 축원하지 않으면 안 될 아버지인 것을 알게 될 때, 여기에 새로운 소망이 우리들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마음에 남겨질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감사하면서 가야 되겠습니다.
어떤 모진 시련이 눈앞에 다가온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저희는 참고 가야 되겠습니다. 내일의 희망 앞에 주저하는 발걸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강하고 담대하고 용맹스러운 하늘 정병의 발걸음을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1977년, 1978년까지 금을 그어 놓고 어린것들을 몰고 가야 할 이 길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국에 있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과 일본과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 스승이 있는 벨베디아 땅을 향해, 서쪽 하늘, 혹은 동쪽 하늘을 향하여 추앙하고 눈물짓는 이가 있거든 천만 배 갚아 주시옵소서. 하늘이여, 현현하시옵고, 살아 계신 것을 드러내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1973년을 통하여 이 땅에 새로운 불길을, 아버지여, 내려 주시옵소서.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조상을 동원하여서라도 아버님의 뜻을 펼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그 누가 오라 해서 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기다려서 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기다리는 이상의 마음을 가져야 되고, 부르지 않아도 부름받은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저희들의 사명이었습니다. 외로운 자들이요, 불쌍한 자들인 것을 느끼옵니다. 아버지 당신이 불쌍하기 때문에 저희들을 부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저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새로이 모여 온 당신의 아들딸들이 여기에서 재차 훈련하여 미국땅에 파송되기 위해 새로이 사명을 다짐하는 자리이오니, 이 자리에 하늘의 사랑이 깃드시옵고, 하늘의 재창조 부활의 능력의 손길을 재현하시옵소서. 새로운 결의와 새로운 결심을 가지고 천지의 획을 긋고도 남음이 있을 수 있는 장하고 담대한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을 위하여 전진하면서 내일의 소망 앞에 빛나는 기수가 되기를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사오니, 아버지 앞에 부끄러움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소망을 가지사 당신의 슬펐던 마음을 억제하시고 내일의 한 날에 기대를 갖고 이들을 바라봐 주옵시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날과 그 시간이 저희들 앞에 부끄러움을 가져오지 않고, 자랑과 영광을 가져오고,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행복의 천국을 가져올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