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해와까지 올라가면 그들의 부모는 누구냐?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부모라고 하면, 자녀의 입장에 있는 아담 해와는 그 부모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은 부모로부터 오는데, 부모의 사랑이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생존해계시는 한 소년시대, 청년시대, 장년시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을 받습니다. 이렇게 부모의 사랑을 받아 성장하게 되면 횡적인 부부의 사랑이 각자에게 벌어지게 마련입니다. 부부의 사랑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자녀를 낳아 그 자녀를 사랑해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인류시조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서 부부가 되는데, 사랑을 중심삼고는 모두가 2수로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부모의 사랑을 받는 사람도 받게 하는 사람도 모두가 형제입니다.
부모는 자기의 자녀가 없으면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대상이 있어야만 참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형제끼리는 부모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모르고 자라지만, 성장해서 결혼을 하여 자녀를 가지게 되면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로 시작해서 한바퀴 돌아 부모로 돌아가 봐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녀를 낳아 봐야 성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완전하고 완성된 사람의 표준을 어디서 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부모 자신이 성숙한 자리에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부모가 횡적으로 종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면 완성한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성숙하여 하나님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하나되면, 즉 이성관계에 있어서 서로 상대적인 입장에서 하나될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이 완성을 중심삼고 목적하셨던 사랑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하여 하나가 되면,하나의 형(型)이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평면적인 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녀를 낳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것은 횡적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적관계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부의 사랑은 하나이며 부모의 사랑은 종적으로 둘 이상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중요하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부부의 사랑은 상대적인 관계를 가졌지만 하나이기 때문에 종적인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종적 관계는 부모와 자녀관계의 사랑을 연장하는 것입니다. 부모, 부부, 자녀가 종적 관계의 원칙이 되는 거예요. 그것이 완전히 합하면 하나의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을 넓히면 그것은 부모의 사랑으로 연결됩니다. 부부의 관계를 거쳐 부모가 되면 자녀들도 부모의 사랑과 크기가 같아야 되고 길이도 같아야 됩니다.그러면 자녀 사이의 사랑은 어떠해야 하느냐?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사랑해야 하느냐?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랑하듯이 형제들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누구로부터 배우느냐 하면 부모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한 가정에 왜 파탄이 벌어지느냐 하면사랑이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계속하려면 우리는 부모를 중심삼고 부부의 사랑을 밟아야 하고, 그 부모와 부부의 사랑을 이어받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사랑을 이어받기 위한 준비는 형제를 통해서 해야 합니다. 만약 누이동생이 있다면 그 동생 사랑하기를 자기 어머니 사랑하듯이 해야 합니다. 여자 형제는 오빠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아버지와 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남자 형제와 여자 형제는 서로서로 부모와 자식지간의 사랑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듯이 형은 아우를 사랑하고, 어머니가 딸을 사랑하듯이 언니는 동생을 사랑해야 됩니다.
형제가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상대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형제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서로 위하는 실체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형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을 통해서 나왔으므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신한 것입니다. 우리 각자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반쪽씩을 합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것을 무엇으로 묶어야 하느냐? 사랑으로 묶어야 합니다.
복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인과 아벨입니다. 그러므로 가인과 아벨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가인과 아벨은 부모의 대신이며, 부모의 사랑으로 묶어진 몸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듯이 형제가 서로 사랑하면 완전히 하나로 됩니다.
아벨은 가인을 복귀해야 하는데, 그 이상적인 자리는 어디냐? 그것은 부모를 대신한 자리로서, 사랑으로 안내해 주는 자리인 것입니다. 아벨은 부모를 대신한 주체적인 자리에 서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가인을 이상적인 복귀의 자리로 데려다 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의 자리를 통하지 않고 갖다 놓으면 그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의 사랑은 부모와 부부의 사랑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외의 사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녀들이 부모가 사랑하던 전통을 갖추기 위해 같은 자리에 서게 되면 이상적인 것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자녀들이 부모와 부부의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이상적인 사랑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아벨은 이상적인 사랑의 복귀를 꿈꾸고 원하기 때문에 부부와 부모의 사랑을 해야 합니다. 가인은 태어나기는 했지만 타락권내에 있으므로 태어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벨을 자녀로서 사랑하시지만 상대적으로 하시기 때문에, 아벨도 가인을 대하는 데 있어서는 상대와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따라오게 됩니다.
그러면 부모의 입장에서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내가 부모의 사랑을 받아 보지 못했으면 그 사랑을 재현할 수 없습니다. 아벨은 부모의 사랑을 느낌과 동시에 상대적인 사랑을 느껴 봐야 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을 중심삼고 해야 하며 상대적인 사랑을 죽을 때까지 하려고 해야 합니다. 아벨이 가인을 사랑하는 데는 그렇게 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모든 힘든 것을 자기가 책임지고, 그 사랑하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려고 합니다. 그것은 부모의 사랑이나 상대적인 사랑이나 마찬가지입니다.진정한 부모나 부부는 생명을 넘어서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벨이 가인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이와 같이 하면 그는 완전히 복귀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 것을 주면 완전한 것이 둘이 모여 주체에게는 완전한 상대가 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원리가 가르치는 말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보관하고 싶어하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그것은 생명과 사랑입니다. 우리가 완전한 것을 주면 완전한 것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시대를 볼때, 이스라엘은 완전히 악한 가인의 입장에 서 있었지만 예수는 가인들을 저주하지 않고 생명을 바쳤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어요. 여기서부터 돌아오는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아벨은 하나님 자리에, 가인은 아벨 자리에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곳으로 전진하는 것이 복귀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형제와 나'인데, 우리가 복귀하려면 반드시 형제가 있어야 합니다. 복귀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해야 하므로 형제의 사랑은 이상적인 부모와 부부의 사랑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자녀를 복귀해야 부모를 복귀하고, 부모를 복귀해야만이 하나님을 복귀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야 부모가 나오고 부부가 하나되어야 하나님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자녀에게까지 오려면 부모의 사랑과 같은 상대적인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기준이 없이는 올 수 없습니다.
그러면 가인과 아벨은 어떻게 사랑해야 되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봅시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과 더불어 생명을 다 주는 것으로, 그것은 곧 희생입니다. 희생이란 완전한 것을 줘서 완전한 것을 대신 거두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복귀의 원칙입니다. 복귀의 원칙을 나와 형제라는 문제 안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됩니다.
세 사람 이상이 되면 반드시 중심이 있어서 부모와 상대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입니다. 형제간에 부모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이 표현되지 않으면 상대적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단체에서 책임자는 부모 대신자가 됩니다. 즉, 하나님의 자리에 서는 거예요. 책임자를 보좌하는 중역들은 하나님 앞에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입장이고, 그 다음 아래 직원들은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을 대신하여 사랑하고 부부의 사랑을 표현하며, 서로 사랑해야 됩니다. 그것이 이상형입니다. 이상적인 가정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사랑을 원칙으로 하여 사랑하고 화합하며 먼저 주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의 주체는 아벨이기 때문에 주체가 대상에게 먼저 줘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본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를 사랑할 때, 혹은 부부간에서나 형제간에 있어서 언제나 주체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먼저 줘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데 그 사랑을 자녀들이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저 기쁨 속에서 자연적인 사랑이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가정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기쁨 가운데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도 받으려고만 하지 않고 서로 주고받는 작용이 자연히 되어야 이상적인 사랑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을 복귀하는 데 있어서도 이러한 사랑의 연결을 잘 해야 됩니다. 참사랑은 대상에 대해 주고도 또 주고 싶은 거예요. 천국이 사랑의 세계라면 그 사랑의 본질은 위에서 말한 내용이 틀림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지상에서 천국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면 천상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가인적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해 본 적이 있습니까? 천국에 가려면 사탄세계에서 하는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이상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만일 사탄세계에서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죽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초월한 사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너의 마음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사랑이 항상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지옥은 하나님의 사랑이 떠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왜 귀합니까? 그것은 귀한 것을 주면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세계의 사랑은 서로 자기를 더 사랑하라고 합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서로 상반적인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귀한 것이 있다면 주야로 그것을 남에게 주고 싶어서 울고 다니는 그런 사랑을 해야합니다. 주는 것은 돌아오지만 받고자 하는 것은 정지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천국생활을 하려면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형제의 사랑을 소유해 봐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상에서 사랑을 체험하고 베풀어 본 자가 천국에 가서도 같은 사랑 속에서 살 수 있습니다.
종적인 면과 횡적인 면의 가인과 아벨형이 있는데, 아벨은 사랑의 주체이므로 부모와 같이 가인의 모든 것을 염려하고 보살펴 주며 가인을 구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시되는 사람에 대해서 하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인도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인 되는 사람은 자기가 몇 번째 되는 가인인지 알수 있게 되며, 가인을 염려하는 아벨이 많으면 가인은 자연히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만약 가인이 없게 되면 나가서 다른 가인을 인도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여성은 지극히 어머니를 닮은 모습을 찾아야 되고,남성은 지극히 아버지를 닮은 모습을 찾아 사랑을 행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사랑의 상대적인 표준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과 같이 형제끼리도 그렇게 사랑한다면 누구든지 다 좋아할 수 있는 사랑의 세계가 됩니다.
어린이들은 세상에서 제일 좋고 높은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라고하지요? 그러기에 그 부모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어떻다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충분히 납득이 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가정을 만드는 곳이 바로 우리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싸움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곳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모인 곳입니다. 사랑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기 위해 모인 곳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방법은 어디에서 배우느냐?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만나 선생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합니다. 그저 서로 보고 싶고 주고 싶은 사랑을 형제들에게 주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몇 배로 돌려주시고자 하실 것입니다. 부모는 형제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는 길은 형제를 하나님과 같이 사랑하는 데서 열립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따라가고자 하는데, 그 마음으로 형제를 따라 같이 가려고 노력해 보세요. 이렇게 볼 때,천국에 제일 높게, 빠르게, 좋게 인도하는 자는 하나님도 아니요, 선생님도 아니요, 형제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부모와 부부의 사랑을 능가하는 사랑을 가지고 노력하는 자는 최고의 사랑의 주체자로서 상대자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은, 천국에 가기 위한 훈련은 죽기까지라도 하면서 실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아벨의 입장이라면 가인을 중심삼고 천국에 가는 훈련을 해야 됩니다.이것이 못 된 천국은 울안에 있는 천국이요, 무한히 돌 수 있는 천국이 못 되는 것입니다. 또한 종횡으로 상통할 수 있는 천국이 못 되는 것입니다.
지금 때는 세계적인 때입니다. 백, 흑, 황인종은 삼형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 이색인종이 모여서 살면 행복할 수 있을까 할는지 모르나, 다투는 일이 없어요. 천국은 인종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많이 한 업적에 따라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화목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면 좋지만, 사탄의 아들은 대하면 대할수록 공포와 불안이 생기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형제는 나보다 귀한 것입니다. 형제를 위해 사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천국에 가는 거예요. 어디서나 환영받고 추천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형제를 위해서 사는 자는 중심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되겠어요.
부모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을 재현하는 형제의 사랑을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것이 곧 지상천국을 이 땅에 현현시키는 비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결국 기쁘기 위해서 주고 기쁘기 위해서 맞는 이것만이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입니다. 나보다 형제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길을 가도 잠을 자도 먹을 때도 형제를 위해서 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모든 것을 행하기를 바랍니다. 타락한 세계에서는 오직 '나'라는 존재가 중요하지 형제는 개의치 않습니다. 형제를 위해 세운업적에 따라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자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