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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

일시: 1973.04.15 (일) 장소: 미국 뉴욕주 벨베디아수련소

​하나님이 섭리해 나가는 오늘과 내일의 방향에 일치되어야

​우리가 봄을 맞이해 가지고 모든 자연에 있어서 꽃이 피고 새로운 잎이 나는 것을 바라볼 적에, 이봄은 반드시 겨울을 지난 후에 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이 봄이 지나가면 여름이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봄이라는 것은 여름을 이어받을 수 있는 준비의 날인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절을 보고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사람을 두고 보아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젊은 청년을 바라보면, 그 청년에게서 봄과 같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청년이 청년시대를 지내면 장년시대가 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또, 노년시대를 거치면서 일생의 길을 가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한 시대에 있어서 우리 일생을 두고 보면,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있으면 다음 시대가 있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계 정세를 바라볼 때, 복잡한 정세에 놓여 있는데 현세 다음에 오는 시대는 어떤 시대일 것이냐 하는 것을 우리는 궁금히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세상을 두고 보아도 그렇지만 하나님의 복귀섭리도 마찬가지라고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귀섭리해 나가는 데에도 지금 시대와 다음 시대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가는 오늘과 하늘이 복귀섭리 하는 오늘이 어떻게 다르냐하는 것은 여기서 자연히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하고 난 후의 미래상과 우리가 바라는 미래상은 어떻게 다를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편에서 하나님이 걸어 나가는, 하나님이 섭리해 나가는 방향과 언제나 일치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섭리해 나가는 오늘과 내일의 방향에 일치된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서 언제나 문제시하고 다루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내려가고 있느냐 올라가고 있느냐하는 문제, 현재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가장 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올라가고 있는데 우리가 내려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려가는데 우리가 올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왼쪽으로 가는데 우리가 바른쪽으로 가서는 안돼요. 언제나 방향을 같이해서 가지 않으면 안 될 문제가 여기에서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쁜 마음을 갖고 가느냐 슬픈 마음을 갖고 가느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언제나 알지 많으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아무리 내려가는 길이라도 내일이 보장되고 소망의 터전이 거기에 깃들어 있다면 내려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올라가기 좋은 길이 있다 해도 여기에서 내일이 보장되지 못하게 된다면 거기에서 우리는 후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나 우리 인간의 생활이나 다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완성의 오늘을 맞이하지 못한 인간과 복귀섭리의 방향

오늘과 내일은 하나의 경계선과 같이도 생각되는 것입니다, 경계선. 이쪽 나라에서 저쪽 나라를 바라보게 될 때에, 이쪽 나라가 강하게 될 때는 저쪽 나라를 능히 흡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내가 지금 처해 있는 오늘 이 시간은 현재요, 금일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시간을 우리가 거슬러 올라가서 최초의 하나님 입장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하나님에게도 창조한 때의 오늘이 있었을 것입니다. 창조하는 그때는 이상세계를 실현하기 위한 준비의 기간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를 끝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담 해와가 자라는 과정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실천시대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간을 거쳐 가지고 완성이라는 오늘을 보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창조이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완성의 오늘이라는 것을 인간이 맞이했느냐 하면 못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실천할 수 있는 그날을 맞이했느냐 하면 못 맞이한 것입니다. 준비기준은 완료했지만, 실천기준을 아직까지 넘어서지 못한 자리에 있는 것이 오늘날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입장인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바라는 소망의 기준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실천과정을 거쳐서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 기준을 바라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하나님의 과업은 미완성으로 있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실천해야 할 길이 남아 있고 성사해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타락했다는 사실, 이것은 우리에게 비참한 사실입니다. 타락한 그날이 있었다는 사실, 그러한 오늘이 있었다는 사실, 이것은 전체를 부정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한 자로서 아무리 실천을 했댔자 그것은 하나님이 바라는 실천적 기준, 혹은 하나님이 바라는 완성적 기준과는 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준비를 잘 해 놓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냥 그대로 남길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한 그날은 하나님이 준비했던 그 사실까지도 부정시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인간 중심한 복귀섭리를 볼 때에 준비된 끝에서부터 실천단계로 이을 것이 아니라, 준비나 실천의 모든 완성기준을 그냥 그대로 남길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분야에 있어서 준비를 해야 되고 새로운 분야에 있어서 실천을 해야 하고 새로운 분야에 있어서 완성을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 편에 준비된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떠나 딴 자리에 가 가지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향, 이런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양심의 기준에서 더 바랄 수 있는 자리에 가는 것이 아니라 양심의 기준에서도 후퇴하는 놀음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했다는 사실은 준비한 것에 대한 슬픔을 다시 회상시킬 수 있는 자극적인 요소도 되는 것입니다. 슬픔을 회상시킬 수 있는 동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슬픔을 가져 온 타락한 사람을 슬픔을 가져 오지 아니한 본연의 이상만을 가지고 준비하였던 그 세대, 그 자리의 기준에 갖다 놓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타락한 사람이 아무리 복귀완성을 했더라도 타락하지 않고 이루어야 할 본연의 기준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친구지간에 있어서도, 제일 가까운 친구 가운데서 한 친구가 자기와 반대되어 가지고 지극한 원수가 될 수 있는 자리에 있게 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타격을 준 그 친구가 나한테 나타나 가지고 다시 옛날과 같은 우정으로 돌아가겠다고 하게 될 때, 그냥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하는 거예요. 그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 앞에 있는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 입장이 아니냐 하는 것을 우리는 회상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 앞에 실수를 가져 왔느냐 하면, 창조의 위업을 뒤집어 박고 인류역사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엄청난 실수를 가져 왔습니다. 자기에게 한한 문제로 결과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로 그 결과가 나타나는 실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문제에 위협을 주게 된것이요, 사랑문제에 위협을 주게 된 근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생명의 주체요 사랑의 주체인 하나님이 이러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릴 수 없는 사실로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슬픈 하나님 앞에 타락인간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그런 인간이 복귀완성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에게 입혀진 그 상처의 마음을 어떻게 넘어서느냐, 이것을 어떻게 버리느냐, 어떻게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는 자리에 나아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슬픈 마음을 갖고 새로이 준비를 하더라도 그런 마음을 느끼지 않고 이상만을 가졌을 때에 하나님이 준비하던 그 기준에 도달할 수 있겠느냐? 그건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복귀섭리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점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 앞에나타나 가지고 '내가 새로운 준비를 해 드리지요' 할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는 반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슬픔의 자리에 서 있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나는 누구요'라고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조금이라도 들고 나서게 될 때에는, 하나님은 여전히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 계신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슬픔을 청산하지 못한 자리에 계신다면 나 역시 슬픔을 청산했다고 할 수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대해서 기쁠 수 없는 자리에 계시다면 나 역시 하나님 대해서 기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슬픔이 있어서는 안 되고 기쁨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소망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소망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이 자기를 자랑하기 전에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게 될 때에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뜻을 따라가려고 하는 내가, 섭리의 뜻 가운데에서 새로운 완성의 자리에 나가기를 바라는 타락한 후손이 가져야 할 태도는 어떠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모든 내용을 두고 볼 때에, 자연히 자기 자신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말은 틀림없는 말인 것입니다.

부모, 조상 전체가 동원된 자리에서 회개해야 할 인간

하나님이 먼저 슬픔을 당했고, 고통을 당했고, 또한 비참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하나님이 기쁠 수 있고, 하나님이 소망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이 선의 실천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이 새로이 준비를 하고 싶게 하기 위해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여기에서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늘 앞에 돌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어떤 길이겠느냐? 여기에는 틀림없이 회개라는 말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이 이 땅에 와 가지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는 말을 한 것입니다. 회개는 무엇을 말하느냐? 청산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회개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만 회개해서 돼요? 나만 회개해서 되겠느냐 이거예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의 슬픈 자리에 선 것은 우리 조상으로 말미암아 수천 대의 조상을 거쳐 가지고 이 슬픔이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데는 그 부모, 조상 전체가 동원해 가지고 회개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가운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내가 무슨 죄 있어? 내가 뭐 이렇게 났지만 양심적으로 하나도 가책 받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태연하게 앉아 있지만 여러분 자체의 모습이라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선조의 어느 한 면씩 조금조금씩 닮아난 것입니다. 수천 대의 선조의 모습을 한 부분씩 전부 다 지니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여러분 속에 여러분의 선조가 지은 어떤 죄의 요소가 있는 것이 보일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관심을 갖고 싶겠어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원리적인 입장에 서 계셔야할 하나님이 타락의 결과로 된, 이 비원리권 내를 지배할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이것을 하나님이 직접 취급할 수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창조할 때 원리적으로 사람을 창조했습니다. 천사를 협조시킨 거와 마찬가지로 천사를 동원해서 협조시키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천사에게 일을 시키기는 시키는데, 천사가 이 땅의 인간이 타락한 인간의 후손인 것을 알게 될 때에, 칭찬을 하겠느냐? 천사들이 와 가지고 칭찬해 준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천사가 동정하고 찾아올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는 자기를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부족하게 생각하고 하늘땅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나 같은 죄인은 없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어야 천사가 찾아갈 수 있는 길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역사에 없는 심판을 감사히 받아야 부활의 기준에 설 수 있다

여러분은 이 복귀라는 말을 생각하게 될때, 복귀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현재의 타락한 내 자신을 인정할진대는, 복귀라는 말은 내일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입장 그냥 그대로 적응해 가지고 내일에 연결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입장을 완전히 청산짓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을 통해서 내일의 경계선을 넘으려면 반드시 그냥 그대로 넘을 수 없기 때문에 여기에 일대의 혁명이, 일대의 파탄이, 일대의 개혁이 벌어져야 된다는 거예요. 내 자신에 있어서 그러한 작용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일면은 파탄이요 일면은 희망적인 그런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파탄은 오늘과 더불어 청산하고 희망은 내일과 더불어 성사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어떤 자리냐 이거예요. 그런 자리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나를 희생시키는 자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희생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까지 희생시키느냐 하면 '나는 역사이래 다시 없는 죄인이다' 하는 자각을 할 때까지입니다. '나는 역사에 없는 죄인이니 벌을 받아야 된다. 역사에 없는 심판을 받아야 된다'는 자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절박한 공포심을 내가 느끼고 있는 거예요. 그 절박한 자리를 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 하는 겁니다. 그리하여 '나는 이러이러한 잘못을 짓고 죽는 것이 원통하오니, 당신이 모든 것을 허락하실 수 있다면 이것을 청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을 갖고 회개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아무리 천대받고, 어떠한 취급을 받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 됩니다. 받아야 할 심판이 공포의 심판이라 하더라도 감사히 받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심판받는 것은 마땅하지만 당신에게는 나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일이 조금도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죽으면서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자기를 중심삼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당하더라도 그 슬픔을 자기를 중심삼고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대하는 하나님은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괴롭고 얼마나 고통스럽겠느냐 하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동정할 수 있는 마음, 이런 마음이 발발하고 출발해야만 회개의 기준을 넘어설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망하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하나님, 나는 망합니다'라고 동정을 바랄것이 아니라 '나는 망해도 좋소. 그러나 당신은 해방을 맞고 당신은 기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새로운 희생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수천 대의 선조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선조들의 잘못한 것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시대 요럴 때는 너의 선조가 잘못했기 때문에, 너도 그런 선조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틀림없이 그런 일을 하게되면 잘못할 거야. 또 반대할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이러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일을 시키더라도,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내가 어떠한 억울함을 당하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역사적 선조를 대표해서 심판의 자리를 대신 짊어지고 그러한 심판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감사히 받아야 합니다. 나는 고통스럽고 나는 망하더라도 하나님은 고통 받아서는 안 되고 하나님은 망해서는 안 된다는 이러한 갈구와 소망의 기준이 있어야 하늘과 땅, 나와 하늘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준이 되지 그 가외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두고 보더라도,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라는 것은 나는 천번 만번 죽더라도 아버지의 뜻을 남기겠다는 말입니다. 이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부활의 기준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만일에 부활된 예수에게 또 죽으라고 했다면 어떻겠어요? 또 죽을 수 있는 자리가 벌어지면 어떠할 것인가? 불평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슬픔이 계속되고 당신의 고통이 계속되는 한내가 기쁠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당신의 고통이 계속되는 한 내가 부활된 자로서 기뻐할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역사와 더불어 희생할 것을 각오하고 그 결의를 다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데에서만이 역사적인 기독교는 부활돼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예수가 자기를 믿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명을 다하고 죽기를 각오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다고 말을 한 것은 당연한 말이라구요.

전세계적인 모든 죄를 청산하기 위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

자,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 자신을 중심삼고 냉정하게 비판해 보자구요. 여러분은 그것을 청산지을 수 있다고 얼마나 자신을 가져 봤느냐?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있어서 슬펐던 그 하나님 앞에 우주를 대표해 가지고, 인간을 대표해 가지고 지금까지 조상들로부터 이어받은 그 모든 죄를 나로 말미암아 청산짓겠다고 몸부림쳐 봤느냐 이가예요. 그렇게 해봤어요? 「아니오」 그냥 이렇게 태어나 가지고 예수 믿고 가면 되는 것이다 이랬지요? 여러분이 풀 같은 것, 잔디가 있다면 그 잔디를 자꾸 자르면 또 나온다구요. 또 나와요. 그러니까 뿌리를 뽑아서 뒤집어 꽂아야 되는 겁니다. 이 놀음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선조들, 여러분은 수많은 죄인들이 범한 많은 죄에 대한 벌을 한꺼번에 받는다구요. 여러분들은 그러한 공포의 마음, 두려운 마음, 그 절박감을 느껴야 합니다. 그절박감을 느껴 봤느냐는 거에요. 어때요? '내가 지금 망한다. 나는 망해야 되겠다'는 절박감을 느껴 봤어요?

그런 사람으로서 '이러한 죄인은 당장에 벼락을 맞아 죽어야 됩니다' 이렇게 생각해 봤어요? '내가 이 청춘 시절까지 살아 이럴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 때 이미 죽어 버렸어야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죽어야 할 내가 살아 있으니 이 사실은 반가운 사실이다. 내가 이렇게 철이 들 때까지 이렇게 남아진 것은 죽어 마땅할 그 죄를 깨깨 깨닫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해 가지고 여기에 있어서 그것을 청산지을 수 있는, 그걸 깨닫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오늘 당장에 발표를 받는 심판날을 맞고 있다는 심정을, 심판정에 있다는 걸 여러분이 느껴야 된다구요. 여러분이 영화 같은 데서 사형을 당하는, 혹은 여러 가지 죄를 뒤집어쓰고 죽어 가는 장면을 볼 때, 그 사람들에게 얼마나 원수가 많았겠느냐는 거예요. 우리는 그러지 않고 그걸 당연히 받아야 되겠습니다. 당연히 받아들이면서 자기 생명을 잃어버리면서도 축복할 수 있는 자세, 그러한 자세가 되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타락했던 인간임을 알고 본다면, 하나님도 그럴 수있는 사람을 좋아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여기에 뭘하러 왔느냐? 여러분들 조상의 잘못한 것만을, 여러분들의 직계 선조들이 잘못한 것만을 책임지기 위해서 왔느냐 이거예요. 「아니오」 전세계적인 모든 죄를 청산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그럼 세계적인 공포를, 세계는 망한다는 공포를 느껴 봤느냐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것을 느끼느냐구요. 음? 세계가 망한다고 느껴요? 내가 밥을 먹고 뭐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고 뭐…. 여러분이 그런 것을 생각해요? 세계가 망한다고 생각해요? 막연하다구요. 그러나 그 언젠가는 망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 망하는 운세가 지금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망하는 운세를 막는 것, 끊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이라구요.

내가 세계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자리, 이왕에 죽을 바에야 만민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자리에 있게 되면 얼마나 고맙겠느냐 하는 생각이라도 가져야 된다는 겁니다. 만일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그래라 하는 날에는 나는 용서받을 수 있는 거라구요. 결국 하나님이 동정하고 하나님이 관심 가질 수 있는 내용을 두고 보면, 내가 죽더라도 하나님을 위로해 주고 내가 희생되더라도 인간을 위해서 희생되겠다 하는 사람, 죽더라도 내 개인만을 위해서 죽는 것보다 이왕에 죽을 바에는 남의 죄까지 첨부시켜서 죽여 주소서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면 하나님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방면의 사람을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죽는 자리에서도 변명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은 동정하신다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 변명하지 않고 '당연합니다' 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해 나가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은 길을 갔다고 우리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법정에 서 가지고 빌라도가 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소를 하고 조롱해도 예수는 거기에서 변명을 하지 않았다구요.

하나님이 그와 같은 자리에 내세웠다고,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이와 같은 자리에 내세웠다고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런 고통의 자리에 있지만 당신만은 고통의 자리에 서는 일이 없기를 비는 마음을 가지고 나왔다구요. 자기를 심판하는 저들을 심판하라고 하지 않고 저들의 죄까지 용서해 달라고, 저들의 모든 죄까지 자기에게 책임지어 달라고 한 그 자리였더라는 것입니다. 죄를 심판하는 하나님이 동정할 수 있는 자리요, 죄 진 사람들이 동정할 수 있는 자리가 예수가 죽어간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구해 주고 싶었고 죽어 가는 사람들도 예수만은 살려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이 합쳐 가지고 예수를 동정할 수 있는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만이 부활권이 성립된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권입니다. 부활의 동기입니다, 부활의 동기예요. 그러지 않고는 부활의 동기는 찾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 출발의 동기를 찾아낼 수 없다는 거라구요.

천사가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 타락한 세상은 전부 다 자기를 중심삼고 이러는데 이 사람만은 자기는 죽어도 좋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복을 빌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를 바라며 죽었습니다'라고 얘기를 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에게 가 보는 것입니다. 그가 죽은 자리에라도 가 보게됩니다. 또한 '저 사람은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자진해서 대신 죽어간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을 구해주기 위해서 자기가 죽을 자리를 자처해간 사람이다'라고 하게 되면 그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찾아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냐 하는 겁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나는 어떻겠느냐 이거예요. 그런 기준에서 타락했다면 타락한 기준을 뒤집어박고 새로운 모습으로 만드는 것밖에 없다구요. 그러한 기준을 여러분 자신들이 어느 때에 세울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다른 길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구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 뜻길에 나서 가지고 내가 진정한 의미에서 그렇게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뒤돌아 봐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변명이 필요하냐, 변명이 필요할 수 있는 입장이냐, 변명이 필요하냐는 겁니다.뭐 어떻고 어떻고 판단할 수 있는 입장이냐 이거예요. 입을 벌릴 수 있느냐? 입을 벌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구요. 생각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계의 죄의 보따리를 전부 다 끌고 와 가지고한 구덩이에 몰아넣고 원자폭탄 같은 것으로 폭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해봤어요? 하나님이 생각한다면 그 생각을 할 거예요. 하나님도 세계의 모든 죄를 한꺼번에 폭발시켜 버리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하나님이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언제나 추구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동정할 수 있는 내가 됐느냐,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내가 됐느냐 하는 것이 언제나 문제라구요.

여러분들은 지금 뜻의 길을 가더라도 비교해 가지고, '내가 이렇게 하면 좋고 저렇게 하면 나쁘다. 다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싫으면 안 가고 좋으면 가겠다'라고 하지요? 여러분들은 좋은 것을 찾아가 가지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있을 수 없다구요. 아무리 있다고 생각해도 그것은 망상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판사요 예수님은 변호사요 사탄은 검사다

여러분들은 심판정이라든가 공판정에 나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검사는 무슨 죄목을 걸어 가지고 될 수 있으면 잡아넣으려고 한다구요. 죄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후려갈기려고 한다구요. 조금만 잘못해도 그걸 옭아매려고 그런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조그마한 죄를 지었나요? 얼마나 커요? 얼마나 크냐 말이예요? 수천만을 희생시키고, 지금까지의 역사가 전부 다 망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가게끔 만들어 놨다는 거예요. 하나님에게까지 침해를 입힌 그 죄는 방대하다구요. 하나님이 하나님 노릇을 못 하게 만든 것도 우리가 죄지음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죄를 용서할 사람이 누구겠어요? 그것을 용서할 사람이 누구겠느냐 이거예요. 무슨 재판장이, 아버지가 용서했다고 용서가 돼요? 아니라구요. 하나님이 용서해 줘야 용서될 수 있는 길이 있지 그 가외는 있을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그런 우리가 재판정에 나서는데, 검사는 조그만 죄도 걸려고 하지만 거기에는 변호사가 있다구요 변호사는 그것은 죄가 아니라고 변호하는 사람입니다.변호사는 죄를 지었더라도 죄를 지었다고 하는 것을 싫어하고 안 지었다고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그 중에서 누구를 좋아해요?

그러면 판사는 변호사의 말을 듣고 판정할 것이냐, 검사의 말을 듣고 판정할 것이냐? 어떻게 판정하느냐? 판사는 어떻게 판정하느냐 하면 그 죄를 지은 동기를 봐 가지고 판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녜요? 그 동기가 남을 위한 동기라면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이요. 자기 야욕을 위한 동기라면 가중된 벌을 받는 것입니다.

자, 그렇게 볼 때 하나님은 우주의 판사라구요. 예수님은 뭐냐 하면 변호사고, 사탄은 뭐냐 하면 검사라구요. 사탄은 여러분들을 걸어 가지고 판사에게 끌고 가서 '이 놈은 죄를 지은 녀석이니 당장에 지옥 보내야 됩니다'라고 말을 하지만, 예수는 '하나님, 내가 당신을 위하여 피를 흘리고 당신을 위하여 일했기 때문에 이들은 천국에 보내야지 지옥에 보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보내야 합니다' 예수는 그렇게 변론하는 거라구요.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판정을 해야 되겠느냐? 마찬가지라구요. 동기를 봐 가지고 판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담은 자기를 위해서 범죄했지만, 이 자리에 온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범죄하고 자기를 위해서 이자리에 끌려 온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남을 위해서 희생하다가 끌려왔다고 하는 동기를 가질 수 있으면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말입니다.그러한 동기를 가졌으면 뭐 공판정에 끌려오지도 않겠지만, 끌려왔더라도 그 사람은 틀림없이 즉결하여 해방받을 수 있는 길이 생겨납니다. 이렇게 볼 때, 남을 위하고 나서 자기를 위하라는 말이 종교생활에 있어서는 절대 원칙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거라구요.

하나님을 붙들고 미래의 인류를 붙들고 싸워 나가야 한다

예수님은 오늘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붙들고 싸웠고 미래의 인류를 붙들고 싸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두세계를 붙들고 싸워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구요. 만일 하나님만 붙들고 싸웠더라면, 거기에서는 미래가 없습니다. 미래가 없다구요.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붙들고 인류를 붙들고 싸웠다는 거예요. 거기에서는 현재와 미래가 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가 엇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싸우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을 붙들고 인류를 붙들고 싸웠느냐, 자기를 붙들고 싸웠느냐? 예수님은 자기를 붙들고는 싸우지 않았다구요. 자기를 붙들고 싸우면 죽는 것밖에 없는 거예요. 죽는 것입니다. 죽는 게 싸우는 거예요? 죽으면 없어지는 거라구요. 자기보다는 하나님이 강했고 자기보다는 미래가 강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볼 때, 오늘날 우리가 복귀섭리의 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는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죽어 가면서 하나님을 붙들고 싸우고 인류를 붙들고 싸웠지만, 여러분들은 죽지 않고 하나님을 붙들고 인류를 붙들고 싸워야 합니다. 그럴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면 내 생애를 생각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내 생애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붙들고 말이예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하나님을 붙들고 이런 역사를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점점 확대시켜 나가야 됩니다. 개인 중심, 가정중심, 종족 중심, 민족 중심…. 이렇게 여러분을 끌고 가는 거예요. 여러분들을 끌고 나가는 거라구요. 그렇게 돼 있어요.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붙들고 미래를 붙들고 그렇게 가고 있어요? 지금 그렇게가고 있어요? 지금 그렇게 가고 있느냐 이겁니다. 가고 있어요? 가면 갈수록 지치고, 가면 갈수록 '아이쿠, 통일교회에 왜 들어왔지? 아이쿠 힘들어, 아이쿠…. 아이쿠, 이제 끝났다. 좋은 데로 가야 되겠다'고 할 거라구요. 내년에도 또 하자 하면 보다 좋아하겠어요? 여러분들 몇해 동안 갈래요? 몇 해 동안에 갈래요?「일생 동안에 가겠습니다」 정말 그래요? 진짜 진짜 그래요? 여러분의 마음이 진짜 그러냐 이거예요. 여러분 반성해 보라구요, 진짜 그런가.

여러분이 죽게 된다면 '아, 나는 회개할 것을 다 못하고 죽는다' 이러고 죽을래요, '아이고, 나는 회개할 것을 다 하고 죽는다' 이러고 죽을래요? 어떻게 죽을래요? 여러분이 죽을때, '나는 뜻을 위해서 정성을 다하고 이제갑니다. 나는 이만 했으면 아버지 앞에 가기에 당당합니다' 이렇게 할 거예요, '아, 할일을 못다 하고, 죄짐을 다 벗지 못하고 갑니다. 황공합니다' 이렇게 할래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여러분 영계라는 곳은 하나님을 위하고 온 피조세계를 위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예요. 그곳이 바로 천국이라구요. 그 세계의 이단자는 누구냐 하면 자기를 생각하는 자입니다. 자기를 생각하는 자라구요. 이건 무엇을 말하느냐? 자기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구요. 미래가 없다는 거예요.

내일을 위해 오늘 실천하고 희생하는 자만이 내일이 보장된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자기를 생각하는 사람이 내일의 행복한 길을 차지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성공을 하려고 해도 오늘 이 시간의 고통을 겪으면서 그걸 극복하고 내일을 위해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 실천하고 모든 훈련을 하는 사람만이 내일을 갖는 것이지, 오늘 만족하고 오늘이 좋다고하는 사람은 그것으로서 끝나는 거라구요.

내일의 입장에서 전체를 보게 될 때, 내일이 환영할 수 있는 사람은 오늘 여기에서 좋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예요. 오늘 여기에서 희생하는 사람이라구요.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을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이지, 오늘이고 뭣이고 나만 좋다는 사람은 미래에 연결될 수가 없다구요. 장래성있는 사람을 우리가 여기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을 위해서 준비하고 오늘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위해서 준비하고 내일을 위해서 살겠다는 사람이 희망적인 사람이라구요. 오늘 웃고 좋아하는 것을 위하는 것보다는 내일 웃고 좋아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사람을 희망적인 사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극복하는 그 양이 얼마만큼 크냐 작으냐 하는 문제가 내일의 승패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동료간의 생활에 있어서나 일반 사회생활에서나 혹은 여러분의 행동에 있어서나 모든 것이 이 원칙을 중심삼고 저울질하는 거예요. 성공이냐 실패냐를 저울질한다는 거예요. 하나님편을 보게 된다면 새로운 준비, 새로운 실천, 새로운 성사를 계획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준비를 해야 됩니다.새로운 준비는 새로운 실천을 위한 것이어야 되고, 새로운 실천은 새로운 완성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계속적인 준비를 해 나가야 됩니다.

종족복귀의 터전 위에 또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자, 이렇게 볼 때, 나 개인으로는 가정에 있어서의 실천무대에서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가정은 종족 실천무대에서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종족은 민족 실천무대에서 승리해야 되겠고, 민족은 국가 실천무대에서 승리해야 되겠고, 국가는 세계 실천무대에서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현실을 중심삼아 가지고 실천과정을 이루어 나가야 되는 거라구요.

어떠한 사람이 최후에 승리를 하느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여기서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정적인 시대에 있어서 승리했으면 여기에서 안식할 것이 아니라, 이 가정적인 승리 시대는 종족을 위한 준비 기간이라는 신념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남아진다는 거예요. 그거 알겠어요?「예」

가정을 중심삼고 실천하여 승리했다 하더라도 그 승리는 승리가 아니예요. 가정적인 데서 성사했다 하더라도 그 성사가 성사가 아니라구요. 그것은 전부 종족을 위한 준비로 소화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또다시 실천하기 위한 준비로 이것을 흡수시킬 수 있어야만 된다는 거예요. 종족을 위해서는 실천이 있어야돼요. 싸우는 실천무대에서 흡수하고, 그 실천을 끝내 가지고 성사시켜 제2단계의 실천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준비를 해두는 것이 필요하다구요.

여러분들은 지금 혼자라구요, 혼자. 독신자들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결혼하고 아들딸이 있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혼자 있을 때가 좋다' 이렇게 돼요? 아들딸이 다 통일교회에 다니면 어떻게 할 거예요? 생각해 봤어요? 어떻게 할 테예요? 내려간다고 봐요, 올라간다고 봐요? 아들딸이 있고 가정이 있으면 일하는 데 지장이 있게 돼요, 도움이 돼요? 어떤 거예요? 아이들 밥도 먹여야 되고 다 해야 할 텐데, 전에는 뜻을 위해서 열 시간 일했다면, 다섯 시간으로 되는 거예요. 방해가 되는 거라구요. 그것을 생각해야 된다구요. 그것을 누가 책임지느냐 이겁니다. 내가 책임져 가지고는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래서 전도가 필요하다구요. 종족복귀가 필요하다구요. 자기를 후원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후원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가인 아벨 복귀에 있어서, 전도를 했으면 반드시 그 전도된 아들은 협조하게 되는 거라구요. 이 원칙을 세우지 않고는 가지 못한다구요. 자기 아들의 입장에 섰으면…. 그걸 못 세워 놓고는 못 가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라구요. 한국에 있는 내 아들딸보다도 한국에 있는 식구들을 더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야 되는 거예요. 복귀역사가 그렇다구요. 아벨을 사랑해 가지고, 아벨을 복귀해 가지고 가인을 받들어 오는 것이 복귀역사라는 거예요. 그 놀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구요. 가인을 아벨보다, 더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가인이 아벨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죽여서라도 가인과 같은 저 인류를 더 사랑한 거예요. 마찬가지 이치라는 거예요.

자기 전통을 이루려면 자기를 중심삼고 가정을 복귀해야 되는 거예요. 가정은 종족을 위한 가정이 돼야 되고, 종족은 민족을 위한 종족이 돼야 되고, 민족은 국가를 위한 민족이 돼야 되고, 국가는 세계를 위한 국가가 돼야 됩니다. 그렇게 연결되는 거라구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이것은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구요. 하나님도 준비, 실천, 완성의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준비해야 된다구요, 준비. 그 다음엔 실천, 실천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내 의견 전부를 흡수해 나가는 거예요. 실천적으로…. 그렇게 해 나가면 성사되는 거라구요. 이러한 과정을 아니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과정 이라구요, 재창조과정.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결혼하는 것은, 결혼해 가지고 가정을 이루는것은 종족복귀를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준비입니다. 그리고 종족을 복귀하는 것은 민족을 복귀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민족을 복귀하는 것은 국가를 복귀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국가복귀는 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연결되지 않고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가정에서 둘이 준비해 가지고, 그 다음에 그 가정은 모든 종족을 위해 영향을 미쳐가지고 싸워서 이겨야 된다구요. 수습해야 된다구요. 그래 가지고 종족복귀를 하면 이것은 하나의 새로운 준비단계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전체를 위하고 희생하는 자만이 영원한 책임자가 된다

우리 통일교회에는 지금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와 있습니다. 그런데 모빌팀의 보고를 들어 보면 독일 사람, 미국 사람, 불란서 사람들이 전부 다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고해서 '아이고 안 되겠다. 그만두자'라고 해 버리면 마지막입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준비이기 때문에 불란서 사람을 희생시키고, 독일 사람을 희생시키고, 미국 사람을 희생시켜서라도 하나 만들어야 되는 거라구요.

미국 사람들은 '아 너희들 미국을 위해서 왔으니 미국 사람 말을 들어야 될 것이 아니냐?’ 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미국놈들은 전부 다 잘못하고 우리가 잘하기 때문에 우리의 말을 들어라' 하게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 서로 주장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되느냐? 너도 나도, 서로가 희생해야 됩니다. 서로가 희생을 해야 돼요. 누가 뭐라 하든지 사는 것은 남을 위해 산다는 마음, 이 자세밖에 없다구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하고 후대 인류를 위해서 산다고 하는 사상이 아니고는 수습할 도리가 없다구요. 그러니까 섞어 가지고 새로운 사상을 만들려는 거라구요. 새로운 인생관을 만들고 새로운 생활관, 새로운 민족관, 새로운 국가관,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독일 사람도 불란서 사람도 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인류를 위하는 사상밖에 없다고 믿어야 됩니다. 이것을 위하여 현재를 희생하고, 이것이 완성할 수 있는 때를 위하여 준비하는 것만이 우리의 갈 길이라구.

오래 안 가서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그래 가지고 전체를 위하는 사람, 전체를 위하려고 하는 사람이 영원히 책임자가 되는 거라구요. 그것은 왜 그러냐? 하나님편에 서서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인간 세상에 있어서 미래의 세계로 가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통해 가지고 가야 될 것입니다.

오늘의 성공은 내일의 준비를 위한 터전

여러분들이 크나큰 뜻을 놓고 오늘과 내일이라는 이 과제를 두고 볼 때, 오늘이 어렵기는 하지만 오늘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일 열매맺히게 해야겠다는 성사시켜야 되겠다는, 신념이 있어야만이 여기에 하나의 뜻을 성사시킬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성공은 내일의 준비라는 신념, 이러한 신념을 갖는 사람만이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공했다고 '아, 이제는 성공했다. 다 되었다' 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내일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기뻐했다는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그것은 내일의 준비이고, 또 그것은 내일의 준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준비를 중심삼고 실천을 남겨 놓게 되는 것입니다. 보다 큰 실천무대가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언제나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더 큰 실천무대…. 그것으로 다리를 놓아서 올라가는 거라구요.

어느 누구나 굴복시킬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여러분이 이렇게 일주일 수련을 받게 될 때도 '나는 우리 지방에 가 가지고 그 지방을 큰 무대로 바꿔 놓겠다. 그래 가지고 민족을 위해서 공헌하겠다'고 하는 실감과 신념과 자세를 가지고 준비를 해야 된다구요. 여러분이 여기에서 그렇게 공포하고 '고향에 가서 모든 친척 사돈의 팔촌을 중심삼고 예수의 열두 제자와 70문도와 120문도를 만들어 가지고 나라를 한번 움직이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공부해요? 삼촌, 사촌, 뭐 친척들이 전부 다 자기 제자가 되어 가지고 '야, 가자' 하면, '오냐, 네가 가는 데는 우리도 생명을 각오하고 간다' 할 수 있는 친척 떼거리를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친척을 전부 내 손에 잡아 두면 이 나라가 다 끌려오는 거라구요. 그런 생각을 더러 해요? 해요? '야, 우리 아버지는 어떻고, 형님은 어떻고, 삼촌은 어떤데 내가 전도해서 부려먹어야 되겠다. 돈이 있으면 전부 다 나에게 주선할 수 있게 해서 써야 되겠다. 그 부락을 전부 다 내 맘대로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느냐 이겁니다.

이번 돌아가게 되면 아저씨를 부르고 누구를 부르고 작전계획을 세워가지고, 1차 작전하고 2차 작전해서 들이대는 거라구요. '내가 가는 길이 좋으냐, 나쁘냐? 좋으면 협조해야 될 것이 아니냐? 하고 들이 대는 거라구요. 그 다음에는 먼 친척, 사돈이 있으면 그 친척 동네까지 가서 강의를 잘 하니까 들으라고 하는 거예요. 세 번 다 들어도 알지 못하면 그것은 권위문제인 것입니다.

'사돈집 할아버지라든가 아버지라든가 능력 있는 사람을 녹여 가지고 전부 다 이용해야 되겠다. 뜻을 위해 써먹어야 되겠다. 내 제자를 만들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면서도 '아, 이걸 공부했기 때문에 우리 아저씨가 이 문제에서 나를 잡지 못하고 넘어갈 것이다. 또, 이것을 공부했기 때문에 우리 친척 누구, 부잣집 사람 상원의원 그 누구도 이 문제 때문에 나한테 걸려서 넘어갈 것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 문제가 바로 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거라구요.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말미암아 어느학자를 때려잡을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말미암아 어느 누구든지 전부 굴복시킬 수 있다' 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준비를 해야 되는 겁니다.

같은 것을 수없이 되풀이하는 자일수록 전문가가 된다

지금 여러분이 공부할 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원리말씀만 생각하는데, 아는 사람은 신학자, 신학박사, 누구든지 때려잡을 계획을 해야 한다구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여러분보다 못한 사람을 전도하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보다 잘난 사람을 전도하라 이거예요.

수련을 이것으로 끝나는 거예요. '아, 이제는 원리 말씀도 몇 번 들었고 해서 원리를 알았으니 이제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이런 말들이 많다구요. 공부를 해보면 알겠지만, 원리를 한 번 들으면 전부 다 주먹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 번 들으면 '아, 원리가 요렇게 됐다'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그러나 '원리가 이렇게 넙적하다. 넙적하고 반반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고 가랑이졌다' 이렇게 달라진다구요. 안으로 점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또 상대가 있는 것을 안다는 거예요. 가만히 있지 않고 이것이 서로 경쟁하는 것을 알게 되는 거예요, 경쟁하는 것을. 그뿐만이 아니라 도는 것도 안다는 것입니다, 도는 것도. 선생님은 원리를 알지만 지금도 원리말씀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구요. 끝이 없는 것입니다.

밥맛이라는 것은 밥을 한 번 깨물어 먹어서 나는 것이 아니라 깨물어 먹을수록 맛이 나는 것입니다. 한 번 해 가지고 그만둔 사람은 전문가가 못 되는 것입니다. 같은 것을 열 번, 백 번, 천 번 하면서자기 것으로 하는 사람일수록 전문가가 되는 거라구요.

무슨 물리학이라든가 무슨 아르키메데스 원리니 그런 원리들이 많지만, 그 원리를 찾아낸 사람들이 한 번 척 읽고 원리를 찾아낸 것이 아니예요. 몇 번,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해 가지고 원리를 알아내는 거라구요.

회화 같은 것을 배울 때도 그렇다고요. 다른 나라 말을 배우는데 하루에 한 번만 하면 돼요? 외우고 외우고 또 외우고 외우고 하면 그것이 공식이 되는 거라구요.

그렇게 닦아 가지고는 잼대를 만드는 거예요. 내 잼대를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 잼대를. 그래서 이것이 맞게끔 이렇게 해 놓아야 된다구요. 이것이 틀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강사가 되려면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책임자들의 말을 전부다 들어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하더라도 어제와 다르다는 거예요. 어제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일의 준비, 더 깊은 준비, 더 높은 준비를…. 영화를 보다라도 똑같은 것을 열 번 보는 사람하고 한 번 보는 사람하고 질이 다르다는 거예요. 보고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야 그 영화 감독자이상의 비판을 할 수 있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원리를 중심삼고 얼마나 익숙하게 되게끔 공부해요? 되풀이를 얼마나 하느냐 이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명상을 하고 실천을 해보고 또 비판을 하고, 이런 놀음을 얼마나 했느냐는 겁니다.

현지에서 굴복시키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기반을 확대시켜야

지금은 자신 있지만 한 번 꽝 하고 나가떨어지면 '아이쿠, 그만두자'(웃음) 그러면 안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을 지금부터 당하고 들어가야 하는 거예요. 빨리 빨리 잘났다는 사람과도 부딪치고, 대학교 교수한테 가서 부딪치고, 총장과도 부딪치고, 지방에도 가서 상원의원에게도…. 자꾸 가는 거라구요.

그런 것은 다 기획적인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내일의 싸움을 위한 재료를 전부 준비하고 여기에서 자기가 부족한 것을 알았으면 그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밤을 새워 가면서 쉬지 않고 공부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상하관계, 좌우관계, 전후관계가 어떻다는 것을 알아 가지고 자신을 세워놓고 내밀어야 된다고요.

선생님은 이 일을 위해서 한국에서도 그 놀음을 했다구요. 낫다고 하는 사람, 신령한사람 다 만나 가지고, '너희들은 이렇구나, 너희들은 모르는 것이 많다' 이거예요. 그래 가지고 '이놈들, 내 말 들어라' 해 가지고 출발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3년 동안에 이 미국의 저명한 인사들을 대개 만나 볼 것입니다. 선생님의 머리에서 '아, 어떻다' 하는 작전계획을 하더라도 틀리지 않게끔 관을 지금 수습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들이대는 것입니다. '넌 뭐 그러냐? 너는 이렇지 않느냐…' 하고 거기에 대한 중책을 수습해야 된다구요.

만일 어떠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첫째 주장, 둘째 주장, 세째 주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 가지고 대합니다. 그렇게 대하려고 한다구요. 그런 것을 알아 가지고 그 셋 이외의 하나를 더 들고 나오게 되면, 그 사람은 꼼짝 못하고 걸려든다구요. 공격하려면 그 사람의 약한 것을 공격해야 되는 거라구요. 세계적인 학자 같은 사람을 만날 때는 한번 '책임을 맡는 실천자가 되라'고 질책도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참 훌륭한 학자로서 그런 지식은 많지만 성경을 중심삼고 보면 예수는 실천자의 대표자인데 실천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면…. '나는 실천해 왔으니 내 말을 들으시오' 하면 자연히 내 말을 듣게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실천 성사, 현지에서 굴복시키고 현지에서 감동을 줄 수 있는 기반을 확대시키지 못하면 성사라는 것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는 우리 통일교회 여러분들의 활동무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의 어디를 가더라도 전부 다 원리를 중심삼고 활동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역사적 재료가 되어 있으며 그 재료를 중심삼고 생활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론적인 면에서 실천을 불사하는 사람이 있으면 세계의 방향은 전부다 그쪽으로 따라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선생님도 그렇잖아요?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실천했다구요. 통일교회원리를 중심삼고 선생님을 뺄 수 없고 선생님이 가는 대로 여러분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다구요. 마찬가지라구요. 누가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그것을 해 나가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막연히 반대하는 사람은 완전히 꺾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매일 같은 것을 계속하여도 맛이 있어야 한다

'오늘과 내일'이라는 제목을 왜 잡았느냐 하면, 이제 40일이 거의 되게 되면 원리도 다섯 번이 끝나고 여섯 번 째 강의로 들어가고 하니, 여러분들이 '아, 이제 원리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태반인 것을 내가 알기 때문이라구요. 원리는 귀로만 들어서는 안 됩니다. 귀로만 들어 가지고는 안 돼요. 이것은 상대적, 사방적으로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 이걸 적용해 가지고 누구한테 얘기하면 어떻게 될 것이고, 누구하고 원리를 토론하면 요런 문제가 나올 것이고, 이렇게 대답해야할 텐데…' 이러면서 질문도 하고, 할 것이 많다구요.

여기 미스터 김이 나와서 강의를 하더라도 강의할 때 보면 기도를 하고 나와서 강의를 하는지 은혜를 가지고 나와서 하는지 비교할 수 있어야 된다구요. 할수없이 하느냐, 우리를 진짜 위해서 하느냐 하는 것을 전부 알 수 있다구요. 선생님이 하라고 해서 하는 것하고 자진해서 재미있어서 하는 것하고는 다른 것입니다.

'내가 만일 청중을 놓고 강의한다면 전체의 마음이 이끌리게 한번 해보겠다. 어디에서 강점을 주어 가지고 이렇게 감동을 주고 넘어갈 텐데 저렇게 넘어가는구나' 이러고 말이예요.

한 사람이 강의를 하더라도 50명이 보는 관점이 전부 다 달라야 됩니다. 느끼는 것이 달라야 된다구요. 그런 입장에서 여러분들이 공부를 하느냐? 그렇게 못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그렇게 못하고 있다고 본다구요,

기도할 때도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상을 벽에다가 걸어 놓고 그 밑에 앉아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 내용이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마찬가지인 사람은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같은 것을 매일같이 보지만 그것이 매일 다르다고 할 때 그 사람은 신비스러운 신앙세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위대한 신앙세계에 들어가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 그거 보니까 그렇고 그렇고 보고도 그렇고 그렇고…. 그것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매일 같은 것을 계속하여도 맛이 있다, 없다. 어느 것이예요? 그러는 가운데 그것이 좋고 맛있고를 계속하는 가운데 그것을 먹으며 크는 거라구요. 그런 면에서 동양 사람 사고방식과 서양 사람 사고방식이 좀 다르다구요. 동양 사람들은 뭐 하나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전부 다 퍼져 나가려고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서양 사람들을 교육해서 그저 한 가지 일을 열 날, 백날, 3백 60일을 해도 좋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놓으면 틀림없이 훌륭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변화 있는 생활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한 가지를 몇 번만 시키게 되면 그저 싫증을 냅니다.

그런 점에서 내일이라는 것은 과거와 오늘을 통해서 연결되어지는 꾸준한 길을 통해서, 직선을 통해서 연결되기 때문에 변하는 것이 아니고 이어받는 것입니다. 꾸준하게 한 것이 기억되기 때문에 여러분이 꾸준하게 하는 면을 배워야 된다구요.

여러분이 사격의 명수가 되는 데에 있어서 '아이고, 한 구멍에 열 방 쐈으니 됐어' 그러면 되나요? 한 구멍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쏘아야 된다구요. 계속할수록 유리합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훈련을 많이 했느냐 하는 문제가 그 사람이 실적을, 그리고 그 실적이 승리를 개척하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구요.

그러니 많이 들어라. 많이 들으라는 거예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강의를 많이 들으라는 거예요. 다음에는 많이 해라, 많이 실천하라는 거예요. 많이 실천해야 거기에 비례하는 결과가 오느니라. 그게 틀려요? 「맞습니다」 그러니 많이 들으라구요.

이제 미스터 김이 강의하는 것을 들어 봤으면, 그것만으로 다된 게 아니예요. 여기에서는 미스터 김의 강의밖에 못 들으니까 그 다음에는 한국이면 한국에 가서 통역관을 놓고서라도 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아,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이렇구나' 하면 열 사람, 혹은 수십 명의 강의를 들어봐서 그 사람들의 장점을 보는 것입니다. 그 장점 보따리를 싸 가지고 떡 나타나는 거예요. 한 조건을 중심삼고 수십 명의 재료를 갖고 있기 때문에, 수십 명의 그 멋진 재료를 갖다가 퍼부을 수 있는 거라구요.

대중을 움직여 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여러분이 지금 자라는 과정에 있어서 누가 강의하는 것을 비판하거든 거기에 절대 두려워하지 말라구요. '누가 비판하는 거야? 그렇게 비판할게 뭐야?'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백 퍼센트 받아들이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발전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만큼 했으면 잘했지' 하는 사람은 그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계점이라고요. 그건 관계를 맺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 지금까지 강의를 몇 번 들었나요? 여러분들이 배웠으면 백 명이고 이백 명이고 삼백 명이고 많은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멋지게 한 번 외쳐 봐야 할 텐데, 내 손으로 삼백 명을 모으자 하는 결심을 각자가 해야 됩니다. 각자가 '나는 삼백 명이면 삼백 명, 몇 백 명이면 몇백 명에게 강의할 것이다' 하고 정해놓고 그것이 안 되게 되면 자기가 전도를 해서라도 할 계획을 세워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대중을 움직여 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웅변식으로 해야 된다구요. 이렇게 세밀히 생각하게 되면, '뭐 내가 이제 통일원리를 다 아는데…' 이렇게 생각해 가지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준비를 해야 됩니다. 이제 어느 만큼 준비되었어요? 준비되었다고 생각해요? 「예」 그러면 실천해야지요? 「예」 어디로 갈래요? 도시로 갈래요, 농촌으로 갈래요? 「도시요」 전부 다 도시로요? 그래서는 안 되겠다고요. 처음은 뭐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도시에 갔다가 잘못되면, 큰 도시에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어요? 만족할래야 만족할 수 없다는 거예요.

복귀하려면 하나에서부터 둘…. 그렇기 때문에 맨 밑창에서부터 출발해야겠다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안 되거든 빨리빨리 해 가지고 올라가야 되겠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빨리빨리 해서 뉴욕으로 들어가야 되겠다. 뉴욕으로 가자' 해야 하는 거예요. 가는 데는 3년이면 3년, 5년이면 5년 이내에 가겠다고 각자가 정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런 것을 갖고 있어요? 갖고 있어요, 없어요? 그런 뭐가 있어야 되잖아요? '7년이라는 세월이 걸리더라도 나는 가겠다. 그때가 되는 날에는 내가 7년 동안 준비한 그것을 쓸 것이다'라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7년 동안에 당한 모든 일은 내 한 때를 맞기 위한 준비였다' 이런 사람은 승리하는 거라구요. 그 동안 자기가 싸워 이긴 것을 전부 조건으로 세워 가지고 전부 다 모아 집중 공격하면 터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빨리 성공하려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공했다가 뒷처리를 못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더디 성공을 하더라도 성공한 후에 영원히 그것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 성공을 바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착실히 닦아 나가야 됩니다. 착실히 닦아 나가야 된다구요.

발전하려면 좋은 것 나쁜 것 전부 다 소화시켜야 된다

여기에는 앞으로 선생님을 대신할 세계적인 지도자들도 있을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못해도 미국이라든가, 일본이라든가, 구라파라든가, 아시아의 어떤 나라면 어떤 나라에서 지지리 고생을 해야 할 거예요. 한 달 아니면 사흘에 한 번 인사이동을 할지도 몰라요. 위에서 점점 떨어져 내리는 인사이동을 하더라도, 어디를 가더라도 이왕이면 백 퍼센트 해야 되는 거라구요. 어디에서든지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는 잘하지만 그 자리는 싫소' 하면 안 되는 거라구요. 동서남북부터 하늘의 중심지를….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아, 나는 싫소. 북쪽은 싫고 나는 남쪽만 좋아'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춘하추동으로 보게 될 때 전부 다 석달씩이니 전부 다 거쳐야 된다구요. '아, 나는 여기 북쪽에서는 한 달만 할래' 그러면 되나요? 안 된다고요. 그러면 찌그러지는 것입니다. 찌그러지는 거라구요. 일그러지게 되면 결정의 자리에 못 오는 것입니다. 이쪽에 오면 이쪽이 다르다구요. 이쪽에서 한 달이면 저쪽에서 한 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가 발전하려면 좋은 것 나쁜 것 전부 다 소화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좋은 것은 소화시켜도 나쁜 것은 못 시킨다' 하게 되면 그걸 누가 책임져요? 나중에 여러분들 후손에게 가는 거라구요. 제일 사랑하는 아들딸, 후손들이 그걸 맞는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나쁜 것, 좋지 않은 것들을 소화시키 위해서는 서로 먼저 나서야 됩니다. 그러면 북쪽도 남쪽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통일교회의 사람들이 이 시대를 즐기면 후대의 사람들은 고생하는 것이고 통일교회 사람들이 이 시대에 고생을 하면 후손들은 잘되는 것입니다. 그게 공식이라구요. 그거 알아요? 그러니 이 미국에서 처음 통일교회에 온 사람들이 그저 악착같이 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여러분들의 후손을 죽도록 부려먹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수가 적지만 미래에는 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적은 수를 고생시켜야 되겠어요, 많은 수를 고생시켜야 되겠어요? 「적은 수…」 그럼으로 말미암아 후손들이 우리 조상들은 선했다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아이쿠, 나 통일교회에 괜히 들어왔는데…' 하고 생각할 거라구요. 그렇지만 알고 나서는 도망갈 수 없다구요, 참이기 때문에.

오늘의 준비가 내일의 승리를 가져온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한 집안이 망했을 경우 그 집이 일어서는 데는 십년이 걸려도 일어서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몇천 년 동안을 이렇게 망해 내려온 것을 몇 해 동안에 할 수 있겠어요? 빠르다면, 빠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고요. 하나님의 힘이 있어서 이렇게 빠르게 할 수 있지 우리 인간의 힘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언제든지 이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러한 자리에서 미국을 대해 가지고 세계적인 사명을 대신할 수 있는 이 자리는 얼마나 엄청난 자리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수많은 물결과 거친 파도 가운데 어쩌다가 내가 여기에 와서 걸렸느냐는 거예요. 어쩌다 걸렸느냐? 이것은 비참하다면 말할 수 없이 비참한 것이요, 행복하다면 말할 수 없이 행복한 것이라고요. 여러분은 유도탄과 마찬가지로, 달나라에 가는 인공위성을 쏘는 거와 마찬가지로 한번 들이치면 날아가는 거와 같은 입장입니다. 그러한 시점에 놓여 있는 것이 여러분의 입장이라는 거예요.

그러니 준비를 얼마나 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것을 실천하는 데 얼마나 수고를 해야 하겠어요. 그래 가지고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언제나 그것을 생각하고, 이때에 있어서의 준비를 다짐할 수 있는 실천장을 바라보면서, 실천무대가 크니만큼 준비가 크지 않고는 이것을 해결해 낼 수 없다는 각오 밑에서, 밤이나 낮이나 그런 준비와 실천을 목표로 해 가지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울대와 마찬가지라구요 여기에 자꾸 갖다 붙이면 이게 들려 넘어오겠어요. 안 넘어오겠어요? 그 다음에 뒤집을 때가 되면 이것이 앞서겠어요, 뒤에서 가겠어요? 뒤집어지는 날에는 세상이 우리 뒤가 되고 우리가 앞선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우리를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딱 그와 마찬가지라고요. 밤이고 낮이고돌을 하나 갖다가 집어넣는 것과 같이 여러분들이 그런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래 하나라도 여기에서 갖다 놓아야 돼요. 이것을 들기 위해서 자꾸….

그런 생각을 가지고 오늘을 기뻐하는 것보다, 오늘 쉬는 것보다 오늘을 희생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내일에 승리하지 못합니다. 오늘의 준비가 내일의 승리를 가져 온다는 생각을 언제나 해야 합니다. 오늘과 내일이라는 관점을 확실히 알아 가지고, 오늘 내용을 가지고 소화시켜 나가야 되는 거라구요. 이러한 실천성사 과정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실천하느냐에 따라, 어느 정도 성사하느냐가 달려있다는 거예요. 세계적으로 성공하려는 사람이라면 세계적인 무대를 중심삼고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말이라구요. 그러니 쉴 새가 있어요? 일생 동안이 쉴 새가 없는 비탈길이라는 것입니다. 쉴 새가 없는 길이라고요. 하나님이 쉬고 있나요? 여러분은 그걸 생각해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하더라도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죽더라도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이 인류를 위해서라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밥을 먹어도, 생활 전부가 그렇게 돼야 된다구요. 그래야 그 사람이 남아지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안 남아진다구요.

슬퍼도 '아이고 내가 슬프다' 이러지 말라는 거예요. 전체의 슬픔을 대표해야 돼요. 언제나 그런 사고방식을 갖추어 나가야만 여러분들이 내일의 승리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을 알고 여러분들이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서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그런 관점에서 오늘과 내일을 비판해 주기를 바랍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18억이 넘는 아시아의 백성을, 아버지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수난과 고통 가운데 버림을 받았던 것은 당신이 찾아올 수 있는 한 때를 맞기 위한 것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아시아 가운데서도 불쌍한 한민족을, 아버지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월남과 한국이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아시아를 지킬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 한국의 사명이요, 또한 월남의 모든 것을 해결지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것을 생각하게 되오니, 이 시간 한국에 있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과 축복받은 가정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수많은 원수들의 조롱과 핍박 가운데서도 쓰러지지 않고 통일의 판도를 넓히어 새시대의 후계자로서 상속받기 위한, 당신의 준비의 터전을 이어받은 이들이옵니다. 당신의 뜻 앞에 서게 될 때 수난길 가운데서 수십 년의 역사를 거쳐왔지만, 지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현재 이들의 입장인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그 수난의 터전 위에서 새로운 역사적인 열의를 연결시키기 위한 하나의 뜻이, 이 스승으로 말미암아 일본과 미국을 통하시고 한국을 연결시키어 이 한 거점을 중심삼고 새로운 세계의 출발을 기약하는 당신의 뜻이 있음을 생각하게 되오니, 아버지, 이 자리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미국 사람뿐만이 아니옵니다. 구라파 사람이 합하여 가지고 초민족적이요 초국가적인 시대의 준비를 하기 위한 수련 과정에 있사옵니다. 역사적인 시대의 사명관을 지니신 아버지께서 바라보게 될 때에, 이번 이 집회가 얼마나 중차대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생각하실수록, 아버지여, 이 자리를 잊지 마시옵소서.

오고 가는 한 생명 자체 자체가 당신의 뜻을 위하여서 대역자가 되고, 당신의 사명 분야에 있어서의 하나의 방패가 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최후의 전선을 응시하면서 오늘의 준비를 더디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내일의 싸움의 용자로서 당당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골리앗 앞에 나타난 다윗과 같이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누구를 믿지 않지만 하늘을 믿고 나설 수 있는 강한 용자들이 되게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은 4월 15일, 이제 이틀 후면 저희들이 기념하는 부활절이 찾아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이여, 생명의 인연을 이 땅 위에 연결시키기 위하여 2천년전에 왔다 갔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길을 회상하면서, 오늘 그 수난의 한 장벽을 밟고 올라서 가지고 부활의 권을 세계적인 터전 위에 이루어야 할 역사적인 수난시대에 저희들이 처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역사적인 총아가 해산되기 위해서는 해산의 수고의 고비를 거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생명을 이어받을 수 있는 수난기에 있어서 그것을 극복하고 남을 수 있는 여력이 있어야만이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알고, 최후까지 저희 자신들이 그 표준 앞에 지치는 무리가 되지 않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과 내일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내일이 문제이옵니다. 오늘을 잃어버린 사람은 내일을 찾게 되고, 오늘을 찾는 사람은 내일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내일을 찾기 위하여 오늘을 잃어버리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미래를 찾기 위하여 현세를 부정하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있어서 종교를 통해 지켜 오던 당신의 뜻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책임수행을 완성할 수 있는 하나의 통일교단으로 세계 앞에 내세울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당신의 부르신 소명 앞에 저희들은 주저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늘을 향하여 기울어지는 마음이 시간을 재촉하고 나를 재촉하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시간시간 다짐되는 당신의 사명 앞에 불타게 하여 사명의 물결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높은 파도를 치고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잔잔한 한날이 찾아오거들랑 저희들이 사탄세계에 새로운 의미의 새로운 파도를 일으켜 전해 줄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겠다고 결심을 하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백일수련회가 역사시대에 없는 수련회가….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 통일세계 앞에 있어서 처음 되어지는 일이오니 이 자리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온 세계 앞에, 수많은 민족 앞에 초민족적인 심정을 갖고 당신의 전통을 이어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이 벨베디아의 이번 수련 기간을 잊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고, 이들이 생애의 자랑으로 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진 것을 느끼면서 자기 선배의 모든 전체를 탕감할 수 있는 새로운 부활의 총아로서 나타나기 위한 준비를 더디하지 말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었사오니 당신의 이름을 가지고 모이는 곳곳마다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한국과 일본과 미국을 연결시키는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이 시간 축복하여 주시옵고, 사망의 세계를 향하여 전진하는 이들이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힘을 가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니다.

당신께서 능력의 손길을 가하시어 최후의 승리를 당신의 편에 서서 수습할 수 있게끔 전진에 전진을 다짐하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선의 권한을 가지고 내일의 악한세계를 굴복시키고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랑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뿐만 아니라 당신 앞에 그들이 사랑받을 수 있고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뉴욕을 중심삼은 전 미주에 새로운 불길을 전하시어서 영광의 한날을 당신이 원하는 세계에 심어 놓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 새로이 결심하는 가운데 지금까지의 자아를 비판하고 내일을 활용할 수 있는 오늘의 자신 자신이 되게 하여 주옵고, 죽음길에서도 내일의 소망을 붙들고 거기에서 부활의 용솟음을 다짐할 수 있는 스스로의 모습들을 취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의 모든 전체를 맡아 주관하여 주옵길 바라옵니다. 저희들을 통하여 바라는 당신의 소망이 큰 것을 생각하여,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최후의 심판날에 당신이 옹호하는 가운데, 당신이 동정하는 가운데 후대를 받을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 위에도 축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