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은 새로와지기를 바랍니다. 새로와지는 데 있어서는 먼저 내 자신이, 또 우리들이 살고 있는 환경이, 더 나아가서는 우리 나라, 우리 세계가 새로와지기를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 새로움을 바라는 목적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높은 데, 더 좋은 데, 더 귀한 데 도달하기 위한 것이다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살아 나가는 생활이란 것을 두고 볼 때, 우리는 같은 날들을 지내고 있다는 거예요. 오늘 하루, 오늘 4월 27일 하게 되면 이 하루가 맞아지는 것입니다. 그 하루를 중심삼고 보면, 아침이 있고 점심 때가 있고 저녁이 있고 밤이 있다 이겁니다. 그것이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제 하루와 오늘 하루가 되풀이하는 것은 같지마는 그 하루 사이의 과정에 나타나는 현상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때가 달라진다는 거예요. 겨울철이 지나가고 봄철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와서 순환해 가는 것입니다. 때와 모든 시기는 그냥 그대로 순환하지마는 그 가운데 살고 있는 모든 우리 인간이나 만물은 자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후퇴하는 것이 아니예요. 전진하고 있다구요.
지금 새봄이 되어 새로운 싹이 나오면 그 싹이 나온 후에는 꽃이 피는 것이고, 꽃이 피고 난 후에는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를 맺어 가지고 일 년의 과정을 거치면서 결실을 해 가지고 그것을 수확하게 되면 또 거기에서 잎이 떨어지고 순환해 나가는 것입니다. 순환은 같이하지만, 같은 날들로 순환해 나가지만 그 과정의 날들을 맞아가는 모든 물건, 혹은 현상은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달라지는 것이 보다 귀한 것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봐도 과거 시대가 있었고, 지금 현재 시대가 있고, 미래 시대가 있습니다. 이 통일교회의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서 통일교회는 어디로 가느냐? 어디로 가느냐? 이것이 발전해 가야 된다구요. 어려운 곳에서 평탄한 곳으로 가야 된다 이겁니다. 그다음 평탄한 곳에서는 어디로 가야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평탄했다가 더 평탄할 수 있는 곳을 갈 수 있느냐 이거예요. 이 순환 법도, 순환하는 세계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좋은 곳이 있으면 반드시 내려가는 거예요. 내려가는 형태를 취해 가지고 좋은 곳으로 바꿔지지, 좋은 곳이 더 좋은 곳으로 계속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왜 그러냐? 왜 그러냐? 모든 것은 서로 화합하여야 됩니다. 높은 데가 있으면 낮은 데가 있어야 되고, 낮은 데가 있으면 높은 데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화합해야 됩니다.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 이거예요. 조화란 것은 언제나 한 곳에 있어 가지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구요. 낮은 데 있으면 높은 걸 대할 줄 알고, 높은 데 있으면 낮은 것을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대하면서 그 자체의 모양들이 부풀어 가야 된다 이거예요. 대하는 데 있어서 이것이 직선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부풀어 가야 된다 이거예요. 부풀어 가면서, 순환해 가면서 환경의 변화과정을 지나가게 마련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달라져야 된다는 거예요.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가 무엇이냐? 세상 만사 지나가는 모든 일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라는 인간…. 온 우주가 움직이는 그 가운데 있어서 달라져야 할 그것이 뭐냐? 우주 자체는 고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해와 달이 고정되어 있고, 일월성신이 고정되어 있고, 시간과 때도 물론 회전법칙에 따라서 순환되어 다른 위치에 가지만, 봄 절기라든가 여름 절기라든가 가을 절기라든가 겨울 절기라든가, 그 달라진 위치를 맞이하지마는 그 맞이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우리라는 것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달라지는 환경에 있어서 내가 주체가 되든가 상대가 되든가 해서, 위치에 있어서 어느때나 봄 절기면 봄에 있어서 내가 주체가 되든가, 혹은 그 봄 절기가 상대가 되든가 해서 상대적 관계를 맺으면서 전진, 순환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자,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에게도 과거의 통일교회 시대가 있었어요. 그것을 무엇이라고 할까요? 밤과 같은 시대가 있었어요. 그 밤과 같은 그런 시대에 있어서 주역이 누구냐? 그 밤이 주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사람인 내가, 우리가 주역이 되는 것입니다.
밤이 된 후에는 그다음에 아침이 오는 것입니다. 아침에는 누가 주역이 돼야 되느냐? 우리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낮이 되었다면, 낮이 됐으면 누가 주역이 되어야 되느냐? 역시 우리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저녁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춘하추동의 모든 시기는 순환해 가지만 그 가운데 주역이 되어야 할 것은 우리 인간들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에 겨울 절기가 있으면 그 겨울 절기의 주역도 인간이요, 봄 절기가 있으면 봄 절기의 주역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름 절기도 마찬가지요, 가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순환해 가지고 뭘 할 것이냐? 가을이면 하나의 결실을 향해 가지고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다. 결실이라는 것은 정지한 자리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전진적인 변화과정을 거쳐 가지고야 반드시 결실이 찾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시간을 딱 잘라 두고 봐도 그 한 시간이…. 오늘 4월 27일, 이 아침을 두고 보면, 이 아침 가운데는 겨울이 뒤따라와요. 또 여기에는 봄이 찾아와요. 이러면서 이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동하는 그 순간 순간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 순간 순간에 전진적인 순간을 갔느냐, 그 반대로 후퇴적인 순간을 갔느냐에 따라, 향상적인 입장에 갔느냐, 아니면 후퇴적인 입장에 갔느냐 하는 것을 중심삼고 내가 발전하느냐 후퇴하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시간, 새로운 날, 새로운 때, 새로운 시대를 맞아 가지고 하나의 결실 시대로 가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결론이 나는 거예요.
통일교회의 과거가 아무리 어려웠다 하더라도 그 어려운 자리를 벗어나 가지고 지금은 봄 절기가 왔습니다. 봄이 왔으면 봄 절기 자체에서 머무를 것이 아니라 여름을 맞을 수 있는 자체의 준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여름이 오면 그 여름 절기만 맞을 것이 아니고 그 자체에 있어서 내일을 향해 변화하는 자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신을 세우지 않고는 가을이 오더라도 결실할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여기에 우리 인간들의 폐단이 뭐냐? 인간은 습관화하기가 쉽습니다, 습관화. 아침에 깨면 세수를 하고, 그다음에는 아침을 먹고, 그다음에는 출근을 하고, 그다음에 회사에 갔다가 돌아와 가지고…. 그와 같은 생활을 계속한다구요. 무미건조하게 계속한다 이거예요. 그 계속하는 것이 첫번 출발할 때 행동을 하는 것하고 계속하면서 그와 같은 것을 되풀이하는 것하고 같아서는 안 됩니다. 달라야만 되는 것입니다. 달라야만 되는 것입니다. 출발할 때보다도 그 일을 계속하면 계속할수록 더 전진적이요, 더 가치적이요, 더 결실적인 내용이 그 움직임 가운데 찾아지지 않는 사람은 후퇴하게 마련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살아 있는 물건은 자라게 마련이예요. 물은 흘러야만 되는 거예요. 물이 만약에 한 곳에 정지해 있으면 썩어요. 물도 썩는다는 거예요. 이것이 정지되는 그 날부터는 자기 자체가 퇴화한다구요. 자기 면모를 변화시켜 가지고 더 좋을 수 있는 내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오늘보다도 못한 자리에 떨어져 나가기 쉽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의 몸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몸의 모든 세포도 퇴화작용을 하면서 새로운 세포로 발전함으로 말미암아 성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믿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두고 볼 때에, 과거 현재 미래의 나를 중심삼고 비판해 보면, 과거의 나는 어땠느냐? 어땠느냐? 열렬하고 좋았다 이거예요. 그러면 오늘날의 나는 어떠냐? 침체되었다, 이렇게 되면 문제다 이거예요. 그렇다면 틀림없이 정지 아니면 후퇴의 상황 가운데 자기들이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에 있다면 그는 반드시 죽어 가는 것입니다. 후퇴해 가는 것이다 이겁니다. 그러면 후퇴해 갈 때 후퇴해 가는 그 자신을 모든 존재세계가 환영할 수 있느냐? 그 후퇴해 가는 사람은 누구나 환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어느 존재든지. 더우기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는 소망적인 사람…. 소망적인 사람이란 뭐냐 하면 매일 매일 보면 새롭다 이겁니다. 어제와 오늘의 차이가 있다 이거예요. 작년과 금년에 있어서 급격한 변화는 없었지마는 거기에는 반드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360도를 중심삼고 1도 2도의 거리는 같지마는 360도의 방향은 달라진다 이거예요. 그 위치는 달라지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중앙을 중심삼고, 90도를 중심삼고 사방으로 돈다면 이것은 위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바른쪽에서부터 쭈욱 돌면 이것이 위로부터 쭈욱 오른쪽을 거쳐서 아래를 거쳐 가지고 왼쪽으로 거쳐 돌아가는 것입니다. 위치가 달라진다는 거예요. 하루하루의 간격은, 하루하루의 그 움직임은 같은 것 같지마는 그 위치는 봄 절기에 있다든가 여름 절기에 있다든가 가을 절기에 있다든가 겨울 절기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치는 발전적 존재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혹은 우리가 새로운 우리 통일교회를 추구하기를 바란다면 여러분 자신에 대한 것을 오늘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 어떤 상태에 있느냐? 뒤로 물러가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전진하고 있느냐 이거예요. 과거의 통일교회에 들어올 때 자기를 중심삼고 볼 때에 자기 자신을 얼마나 뜻 앞에 투입하려고 했느냐? 100 퍼센트냐, 혹은 50퍼센트냐? 그것은 여러분이 잘 아실 거예요.
그러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돼 있느냐? 뜻을 모를 때의 과거의 나와 뜻을 알고 난 후의 나의 삶에 있어서 그 보람됨이, 그 가치됨이 얼마나 차이가 있었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금년 일 년 사는 것하고 내년 일년 사는 것이 같아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반드시 새로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은사의 생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이 생명의 인연을 따라 가지고 우리를 찾아와 씨를 뿌리는 때가 있다 이거예요. 씨 뿌림을 받은 심령세계의 내 자신이 자라기 시작할 때 씨로서 있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씨가 싹이 터야 된다구요. 싹이 터야 됩니다. 싹이 터 가지고, 반드시 싹이 나와 가지고는 전부 다 자연과 화합해야 됩니다. 나 홀로, 씨 자체만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크기 위해서는 그 주변의 상황과 주고받을 수 있는 동기를 갖고 상대역을 하든가 주체역을 하든가 하여서 주위 환경에서 요소를 흡수함과 동시에 요소를 줄 수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풀 한 포기를 보더라도, 그 풀 한 포기에서 꽃이 필 때까지는 씨에서부터 무한한 전진과 동화작용을 거쳐 가지고야 꽃이 피어지는 것입니다. 이 꽃이 꽃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예요. 그다음에 열매를 맺히기 위해서는, 열매다운 열매가 되기 위해서는 환경과 반드시 화합하여 가지고 그것이 공동적인 결합적 기반을 통하여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씨라는 것이 결실되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 작용을 못 하는 존재는 그 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꽃 이외의 결실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 된다구요. 꽃의 고개를 넘고 열매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조화적인 환경의 변화작용이라든가 조화작용이라든가 하는 이런 작용을 거쳐 가지고야 씨의 결실의 시대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우리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나는 어떤 자리에 있느냐 이거예요. 내 자신이 정지 상태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기를 '뭐 사람은 이렇게 사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다. 이웃 동네도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고, 지난날의 우리 생활도 그런 습관화된 생활 가지고 살았다'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 습관에 고착되어서는 안 되겠다 이거예요. 습관에 고착되어 있는 사람은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공부하는 학생이 책을 읽게 되면 책에 동화되어야 됩니다. 책과 더불어 동화되어야 돼요. 그 책의 내용과 동화된 자리에 머물게 될 때 책을 보는 그 사람은 시시로 변화하여 간다는 것입니다. 시시로 전진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생활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동화작용을 일으키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고착된, 질식된 자리에 서 있느냐? 불평을 하고 있느냐, 좋아하고 있느냐? 혹은 내가 희생하고 있느냐, 슬퍼하고 있느냐? 이런 문제…. 아무리 슬프더라도 그 슬픔이 좋기 위한 변화과정으로서의 슬픔이라면 그건 응당히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낮이 있으면 밤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기쁠 수는 없어요. 24시간 언제나 웃고 있을 수는 없어요. 웃을 때 한때이고 또 웃지 않을 때가 한때라는 것입니다.
그래 바른쪽에 가면 좋고 올라가면 좋지마는, 왼쪽에 가고 내려가면 좋지 않아요. 그러나 순환과정을 거쳐야 할 우리의 인생살이라면 올라가나 바른쪽으로 가나, 내려가나 왼쪽으로 가나 그것을 어떻게 좋은 것으로 커버해 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기뻤으면 오늘의 기쁨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 있으면 반드시 슬픔이 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바른 다리로 한 발걸음 걸었으면 반드시 그 다리 위에 모든 중량을 갖다 얹어 놓아야 된다구요, 중량을. 그렇지 않아요? 걸을 때는 왼 다리에 전부 다 중량을 얹어 놓고 바른 다리를 옮겨 짚었지만 이 중량이 어디로 가야 되느냐? 중량 자체를 고착해 가지고는 전진을 못 하는 거예요. 이 중량을 서서히 바른쪽으로 전부 다 옮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 바른쪽에 중량이 전부 다 옮겨져 가지고 완전히 실린 후에는 왼쪽으로 바꿔 가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 은혜의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 은혜로운 생활을 어떻게 유지해 나가느냐?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기쁠 때에는 그 기쁨을 중심삼고 거기에 중심 되었던 그 기쁨으로 어떻게 어려운 환경을 커버해 나갈 수 있느냐? 이것이 지극히 중요한 문제라구요.
참 은사의 자리에서 좋았는데 거기에 반대되는 상황에 부딪치게 될 때 그 반대되는 상황이 지금 은사의 환경으로 맺어진 모든 것을 취소시켜 버리면 안 된다 이거예요. 그 은사의 환경이 반대될 수 있는 환경을 맞이해 가지고 커버해 나가야 됩니다. 감사의 마음, 은사의 마음이 이걸 커버하고도 제1에서부터 제2를 커버하고 제3의 과정에 올라갈 때 은사가 남아져야지, 은사가 아니고 슬픔이 남아 맺어지면 이건 되돌아가게 마련입니다. 후퇴밖에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앞으로 가던 것이 뒤로 돌아갈 수 없어요. 그것은 반드시 탈락해 버려야 됩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신앙생활에 있어서 제일 문제 되는 것이 습관화다 이겁니다, 습관화. '통일교회는 그저 일요일 아침이 되면 경배식이 있고 열 시가 되면 이렇게 와서 모이는 것이다. 그저 그렇게 또 오누만. 그것이 그렇게 순환해 가는 거야. 아이고 이게 없으면 좋겠는데, 안 하면 좋겠는데, 안 그러면 좋겠는데, 왜 이래야 돼요, 이게?' 그러는 사람들은 거기서 다시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사의 이런 모든 날들이 제정된 것은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하나의 동기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예요. 그것이 짐이 되고 자기가 후퇴할 수 있는 조건의 날들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새로운 우리를 추구하는 데는 이것이 절대 필요하다는 거예요.
오늘날에 있어서 자신이 후퇴의 일로에 있느냐, 전진의 일로에 놓여 있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캐치해 가지고 나는 전진하고 있다….
과거의 신앙생활을 보면, 통일교회에 맨 처음에 들어와서 전부 다 날듯, 천하가 다 내 마음대로 될 듯했던 그런 은사의 한때가 있었으면 그 은사의 마음을 어디에서나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구요. 만일에 올라간 그때가 있다면 반드시 내려갈 때도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구약역사를 보면 은사의 시대가 있었으면 반드시 핍박의 시대가 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핍박이란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구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은사를 주기 위한 하늘의 하나의 작전이라구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큰 핍박이 올 때에 그 핍박에 대해서 내가 후퇴하면 이것은 큰 은사의 자리에 절대 못 나가는 것입니다. 큰 은사의 자리에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내가 받은 은사의 기준을 중심삼고 큰 핍박이 오는 것을 대해 가지고 후퇴하지 않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걸 밀고 넘어가게 되면 밀고 넘어간 그것으로 말미암아 다음에 찾아오는 은사는 더 큰 은사로 찾아온다구요.
예를 들어 말하면 고개를 한 고개를 넘었는데 한 고개를 넘고 나면 가고 싶은 의욕, 넘을 수 있는 능력 자체를 중심삼고 제2의 고개를 여유만만하게 넘어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고개가 작은 고개가 아니라 큰 고개라면, 큰 고개라도 무난히 넘을 수 있다면, 반드시 그것을 넘은 그 후에는 또 더 큰 고개도 넘을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떤 시련이 있더라도 은사의 생활을 중심삼아 가지고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고개를 넘고 나서 다음에 찾아오는 고개를 향해서 전진해야 될 때 기쁨의 은사의 충동이 거기서 소모돼 가지고 '아이고, 힘들어! 아이고 이런 고개를 넘나들지 않았던 옛날 그때가 좋았구나!' 하게 되면 안 되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가 이제 며칠만 있으면, 5월 1일이 되면 창립 32주년이 되는데 창립 이후의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은 핍박의 길이었다 이거예요. 산을 넘었다고 한다면 히말라야 산정을 넘어오는 그런 과정을 거쳐 왔다구요. 이제는 어느 정도 다 넘었어요. 이제는 다 넘었다구요. 통일교회를 핍박할 수 있는 환경이 전부 다 갔어요. 밤과 같은 그런 절기가 지나갔다구요. 새로운 아침 시대가 됐어요.
밤 절기를 맞이할 때는 방향을 몰라요. 방향을 모르고 신음하고 고통을 느꼈지마는 그 밤이 지나가게 되어 아침이 되면 방향을 알 수 있는 거라구요. 동쪽이 저기고 남쪽이 여기고 북쪽이 저기로구나, 서쪽이 어디로구나, 그리고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떤 곳이다 하는 걸 알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되면 밤에 지내던 그 모양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아침이 되면 이제 활동을 하고 딴 일을 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활동하는 그 환경이 달라져야 된다 이거예요. 밤과 같은 그런 입장의 환경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다른 환경이니 다른 환경을 중심삼고, 소위 우리 말로 말하면 수수작용을 해 가지고 잘 주고 잘 받아서 자체의 역량을 충만히 보충시킬 수 있는 그런 아침으로 맞는 사람은 영광스러울 수 있는 낮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광스러울 수 있는 낮을 맞이했다면 저녁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저녁이 되면 또 내려가요. 내려가는데 어젯날에 그 내려가는 밤을 맞던 거와 다르다는 거예요. 은사가 따라가요. 은사가 가해 준 저녁을 맞아 가지고 그 밤의 시련과정에서 은사를 가져 가지고 어제와 같이 어려운 자리에 서지 않고 무난히 밤을 지낼 수 있는 환경을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밤이라도 어제와 같은 밤을 맞아서는 안 되는 거예요.
또 그렇게 되면 그 이튿날 제3일이 찾아오는데, 그 아침도 역시 밤을 통하는 거기에서 새로운 아침의 은사를 가해 가지고 어제보다도 오늘에 영광스러운 낮을 맞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는 길이 아니겠느냐 이겁니다. 그러니 절대 정지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절대 같은 모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습관화란 것이 원수라구요, 습관화가. 무슨 자극이 없이 그저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경 보고 설교 말씀 듣고, 그다음에는 뭐 기성교회로 말하면 헌금하고 그것이 그냥 하나의 작용일 뿐 자신은 하등의 변화의 자극을 갖지 못한다면 그는 어차피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는 어차피 후퇴하게 마련이다 이거예요.
레벨로 말하게 되면 레벨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출발 당시의 레벨보다도 떨어지는 자신을 인정하게 될 때는 여기에는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럴 때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대로 행동하든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든가 둘 중의 하나를 해야 합니다. 거기서 혁명을 해야 돼요. 보다 차원 높은 길을 택해서 단호히 행동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 반대되는 길이라도 가야 됩니다. 반대되는 길로 간다는 것은, 아침이 되어 가지고 반대되는 길로 찾아간다는 것은 밤중으로 찾아간다는 말이예요.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자기 환경을 정리할 수 있는, 습관성을 부정할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아침에서부터 새날을 맞이하여 가지고 변혁을 일으키는 자리에 나아가든가, 이것을 시정할 수 있는 놀음을 하지 않고는 정지상태에 머물게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신앙생활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뭣이냐 하면 습관화다 이거예요, 습관화. 습관화입니다. '통일교회는 그저 이런 거야. 통일교회하고 기성교회가 다른 것이 뭐야? 다 같은 밥 먹고 같은 일 하는 데 다른 게 뭐야? 그저 그렇지' 절대 이래서는 안 됩니다. 움직이는 모양은 같지만 내용이 달라져야 됩니다. 내용은 달라야 돼요.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번에 제2세 축복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제2세의 젊은이들과 제2세가 아닌 세상의 젊은이들과 뭐가 다르냐 이거예요. 환경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밥먹고 살며, 통일교회, 같은 자리에 서 있으니 같지 않느냐 이렇게 보지만, 출발점이 달라요, 출발점이. 출발점이 다르다는 거예요. 제2세들은 통일교회에서부터 출발했다 이겁니다. 통일교회에서부터 출발해 가지고 바깥으로 나가고 있다 이거예요. 그러나 제1세들은 딴 곳에서 출발해 가지고 통일교회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들어와서 만났다 이겁니다. 만나 가지고 앉아 얘기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니 같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판이하다는 거예요.
저들은 바깥에서부터 통일교회를 찾아 들어오는 길이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바깥으로 찾아 나가는 길이다 이겁니다. 거기서 만났다고 해서, 모양이 같다고 해서, 점심을 같이 먹고 앉아서 같은 말 한다고 해서 절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건 어차피 갈라지는 거예요. 갈라져야 됩니다. 거기에 동화되어 가지고 거기에 고착해 버려서는 안 되는 거예요. 우리는 출발을 교회로부터 했으니 교회의 모든 것을 알아 가지고 세상을 향하여 소화할 책임을 갖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해서 소화하기 위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저쪽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 완전히 소화되었던 것을 교회를 통해서 이 소화된 환경을 부정하고 새로이 소화되어 가지고 새로운 나를 만들기 위해 가는 거예요.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인 아벨이 뭐가 다르냐? 아벨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세상을 구하기 위한 길로 나가야 되고, 가인은 사탄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늘편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벨이 가는 길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소화하기 위해 가야 되는 것입니다. 내용이 다르다는 거예요, 내용이. 내용이 같아 가지고는 안 된다 이거예요. 내용이 같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의 생활도. 그러면 우리 자신들의 신앙생활의 습관화라는 것이 뭐냐? 습관화!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핍박을 받고 모든 문제를 일으키고 어려운 길을 거쳐와 가지고 가는데 세상과 딱 맞섰다 이거예요. 여기서 세상화해 가지고는 망한다 이거예요. 세상화했다가는 과거의 지난날의 모든 것은 헛수고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차라리 과거 통일교회 역사를 거치지 않았으면 모르지만 통일교회 역사를 거쳐서 세상과 같이 되는 날에는 이것은 영영 희망이 없다는 거예요.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고, 전진할래야 전진할 길이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돼요.
돌아가도 안 되는 것이예요. 돌아가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래 전진하려는데 전진할 수 있는 힘이 없거들랑 여기서 일대 자기 자신을 처리하고 환경을 처리해 가지고 재수습해서 제2의 방향을 중심삼고 새로이 전진할 수 있는 자아를 다짐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는 한 이는 습관화된 고착상태가 된다구요. 통일교회에서 필요 없는 과정적인 화석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그 화석이 우리에게는 필요치 않아요. 우리는 그것이 목적이 아니예요. 그 화석을 까 보면 내용이 무엇이냐? 자기 중심삼은 내용으로 전부 다 엮어져 있다는 거라구요. 하늘이 은사를 퍼부었는데 그 퍼부은 것을 전부 다 흘려 버리고…. 그 은사를 퍼부어 준 것은 하늘화되라고 그런 것인데, 하늘화되라고 퍼부어 준 그것이 되어진 걸 보니 자기화된 거예요. 이것은 배도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배도의 길.
여러분이 콩나물에 물을 자꾸 줬으면 그 물을 받은 콩나물은 자라야지요. 어제의 콩나물과 오늘의 콩나물은 다르다는 거예요. 내일의 콩나물과 오늘의 콩나물은 달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은사의 물을 받은 콩나물은 변하는 거예요. 그 물 주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자라는 콩나물의 위치는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경고해야 할 것은 뭐냐?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10년 됐다 하는 사람들, 20년 됐다 하는 사람들, 초창기에 들어왔다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표준형이냐? 그 사람들이 어느 자리에 서 있느냐? 습관화되어 가지고 화석과 같은 그런 사람이 된 것이 아니냐? 30여 년 동안 뜻의 길을 온다고 해 가지고 왔는데 오늘날 내 자신을 바라볼 때 귀착점이 어디로 되어 있느냐? 하나님과 세계 구도를 귀착점으로 하는 그런 자리에 서 있느냐 이거예요. 어려움을 거치고 피곤한 그런 자리에 머물렀던 그런 생활적인 말로가 결국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이거예요.
세계를 위하여서, 하나님을 위하여서, 내가 전진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다면 그는 바람직한 사람이로되, 그렇지 않고 습관화되어 가지고 화석과 같이 돼 가지고 그 자체를 해부해 보니 자아만 있다 이거예요. 자아 이익을 위하고, 자체 목적만을 위해 가지고 통일교회 무대를 흡수시키려 하는 사람은 교회의 반역자가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내가 환경을 변화시켜 가지고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게끔 밀어 주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끌어내려 가지고 자기화하려 한다면 뜻 앞에 반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돼요.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 자신도 댄버리에서 나오면서…. 거 감옥생활과 세상은 달라요. 어떻게 돼야 되느냐?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하는 문제…. 마찬가지 문제입니다. 감옥에서 나와서 그다음에 새로운 세상을 대해 나갈 때 어디로 갈 것이냐 이거예요. '아, 이거 이제 고생은 이만큼 했으니…. 아무리 고생을 해도 그저 죽을 때까지 고생길이 훤하구만. 아이고 자기 아들딸이 제일이야. 자기 여편네가 제일이구만' 해서는 안 돼요.
그 핍박이란 것은 제2의 출전을 위한 하나의 방어요, 시련이요, 훈련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영광의 출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수난을 받은 자로서 수난 길을 찾아가야 되겠다. 더 어려운 길을 찾아가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는 그 자리는 고착된 자리가 아니요, 화석이 되는 자리가 아닙니다. 습관화가 된 자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더 고생을 해야겠다, 더 뜻을 위해서 일해야겠다' 하게 될 때, 감옥을 통해서도 은사의 자리에서 발전할 수 있고 그 은사의 터전에서 출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거예요.
자, 우리 통일교회를 지금 시대적으로, 섭리사적 시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통일교회는 이미 밤과 같은 수난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아침이 온다구요. 봄과 같은 시대가 왔다 이거예요. 거기에는 모든 것이 달라져야 돼요. 봄이 오면 달라지지요? 모든 식물이라는 것은 전부 다 새싹을 낸다구요. 그 새싹을 내게 하는 그 빛 자체도 아름답지마는 새싹을 낼 수 있는 환경도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이 환경과 흡수적인 조화를 일으키는 여기에 있어서 모든 자연의 아름다움이 꾸며져 나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이제 새로운 봄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마음을 부풀려 가지고 사랑의 세계로, 이 환경의 세계가 나쁘면 그것을 소화해야 됩니다.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나무는 탄소를 섭취해 가지고 산소를 내지만 인간은 산소를 섭취해 가지고 탄소를 내고 있어요. 서로서로 주고받는 거예요. 이러면서 공동 협조해 나가며 조화를 이룹니다. 말하자면 환경과 인연맺어 가면서 서로가 공존하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의 때가 왔습니다.
자, 우리들이 새로와져야 되는데, 어떻게 새로와져야 되느냐? 이 아침에 여러분의 습관화된 과거 신앙을 박차고 새로이 일어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밤을 대하던 그런 생활 태도를 버리고 봄을 맞이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맞이할 수 있는 나로서의 주체성을 지녀 가지고 이 환경을 흡수 소화해야 됩니다.
옛날에는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핍박이었어요. 언제나 손가락질하고, 언제나 주목이고, 언제나 불평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전부 다 얼굴을 찡그렸다는 거예요.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는 거예요. 우리를 보고 좋아한다고요. 좋아하는 그 자리가 내가 대할 자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 좋아하는 환경을 내가 소화해 가지고 개인이 좋아하는 그 환경보다도 나라가 좋아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천시켜 나가야 됩니다. 나라가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을 변천시켜 가지고 세계가, 더 나아가서는 이 우주가, 하늘 전체가 좋아할 수 있는 환경으로 전진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도 다시 한 번 비판해 봐요, 내가 올라가고 있는지 내려가고 있는지. 그건 여러분 자신이 잘 알아요. 내가 그 자리에서 뱅뱅 돌고 있는지, 지금 동쪽이면 동쪽으로 한없이 가고 있는지, 한 방향을 취해서 내가 전진하고 있는지, 그건 여러분이 잘 안다구요. 누구에게 물어 볼 필요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자신이 잘 알아요. 요것을 자기 양심에게 물어 보라구요. 또 자기 자신이 심령 상태를 검토해 봐요. 누구의 비판도 필요 없어요. 자기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거예요.
이래서 될 것이냐, 이래서는 안 될 것이냐 해서 이래서는 안 되는 자리라는 것을 자기가 알면서 잘되기를 바란다면 그 자체가 모순된 거예요. 그 안 될 수 있는 자리에 있겠다고 하는 그 자신이 원수예요. 원수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감옥에서 나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 하면, 우리 때가 온다 했습니다. 때가 온다 이거예요. 때가 올 때까지는 세상이 몰아치고 몰아냈다는 거예요. 몰아냈어요. 반대해 가지고 몰아냈다는 거예요. 하늘나라가 세상의 반대 자리에 있기 때문에, 자꾸 반대함으로써 하늘과 가까울 수 있는 길로 몰아냈다는 거예요. 원치 않았지만 몰아내니까 몰려갔다는 거예요. 몰려가 가지고 알고 보니 이거 참 좋은 곳에 왔다 이겁니다. 통일교회가 아침을, 새로운 봄날을 맞이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 환희할 수 있는 이런 교회란 것을 알았다 이거예요.
그런데, 봄이 됐으니 이제는 쉬어야 되겠다 해서 몰려가 가지고 '봄이 되니 좋다. 이제는 뭐 여기도 봄이 왔으니 쉬자!' 하면 그 사람에게는 열매니 무엇이니를 바랄 수 없어요. 봄에서부터 여름을 거쳐 가지고 가을로 가야 됩니다. 그러니 봄에서 정착해 쉬려고 그러는 것을 가만두어서는 안 돼요. 누가 또 몰아내야 돼요. 몰아내야 된다구요. 거 누가 몰아내야 되느냐? 통일교회의 외부의 사람이 몰아낼 수는 없다 이거예요. 그러니 할 수 없이 선생님이 몰아대야 되겠다구요. 어디로? 가을 절기를 향해서 갈 수 있게끔. 가만두어서는 못 가니까 할 수 없이 방망이로 후려갈겨서라도 가을이라는 방향에 맞추게 해 가지고 몰아치는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댄버리에서 나오면서 결의한 것이 뭐냐? 이제 나가게 되면 통일교회 교인들이 전부 다 '이제는 봄날이 왔다. 옛날의 누더기 옷을 다 벗어 제끼고 새 옷을 갈아 입고 이제는 천년 만년 살 것이다. 쉬자. 쉬고 남과 같이 살아 보자'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이겁니다.
봄이 되었으면 씨를 다시 뿌려야 돼요. 옛날에는 사탄세계에 뿌렸기 때문에 사탄세계에서 물론 잡초도 날 수 있고, 뭐 벼가 있으면 피가 나올 수도 있었다 이거예요. 피라는 잡초가 있다구요. 옛날의 그와 같은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이거예요. 하늘의 밭에 새로운 씨를 뿌리는데 여기에는 잡초도 나서는 안 되고, 벼라면 거기에 피가 있어서는 안 되겠다 이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내가 댄버리에서 나오자마자,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이 나왔으니까 우리를 위로해 주고 아, 수고했다!'고 할 줄 알았는데, 나오자마자 위에서부터 들이까 버리는 거예요. 여기 박보희! 오늘 없구만. 한 40일을 들이까 버렸더니 눈이 풀어져 가지고 벨베디아에 오게 되면 문앞에 서 가지고 선생님 있는 자리에 들어오려면 이러고 서 있다가는 꺼벅꺼벅하는 거예요. 후려갈기는 거예요. 내가 그러지 않고는 그 누가 그렇게 할 사람이 없다 이거예요. 여러분 자신들이 못 한다 이겁니다.
그래 이번에 여기에 와서도 그렇잖아요? 통일교회에 관계된 교수들이 있어요. PWPA(세계평화교수협의회)가 있거든요. 이 아카데미 패들을 불러 가지고 말이예요, 쫓아 버리는 거예요. 쫓아내는 거예요. 거 교수세계에 있어서 교수들이 지방에 가 가지고 농촌 사람들을 대해 자기가 강의를 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구요. 몰아치는 거예요. 또 서울이면 서울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부 다…. 서울이 가만히 지금 자고 있는데 여기에 못살게, 복닥불 나게끔 말이예요, 자꾸 자극을 주고 문제를 벌이는 거예요. 통지부장을 선정하기 위해 선생님이 직접 거기에 관여하고 야단이라구요.
통일교회에서 나 하나 몸소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서울이 와사삭하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하니, 기관에서 한 방향으로 가고 있던 사람들이 레버런 문이 와 가지고 이렇게 야단하니까, 서울을 전부 다 들이 휘저어 놓으니까 '저거 왜 저래? 왜 저래, 저거? 우리 원수가 되지 않나' 해서 눈을 찡그리고 야단이지요.
각 기관에서는 기관대로 야단이고, 시민은 시민들대로 야단이예요. 지금까지 습관화된 대로 요렇게 잘살고 있는데…. 그렇게 살아서 발전하고, 그렇게 살아서 남북이 통일될 수 있으면 좋아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좋아요! 그러나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으니 변화를 일으키는 거예요. 환경을 들이 쳐 뭉그러뜨려야 된다구요.
그러다 보니 욕을 먹는 거예요. 욕하니 뭐, 남편의 반대를 받아 가지고 다리가 부러지지 않나, 뭐 사고가 생기고 자기 집에 찾아가는 부인이 담을 넘다가, 달려가다가 갈쿠리에 걸려 가지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나, 뭐 요사스러운 사건이 많이 벌어지는 거예요. 승공연합 본부에 와 가지고 땡깡부리는 남자 패들이 생겨나지 않나, 별의별 패들이 다 생겨나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거 문제 생겨나는 그것이 좋은 거요, 나쁜 거요? 문제가 생겨난 자체는 나빠요. 그렇지만 문제를 일으킨 내용은 좋은 거예요. 내용은 좋은 거라구요. 그래 서울에 지금 반 지부장 편성이 다 끝나가는 거예요. 이제 이틀만 하면 완전히, 백 퍼센트 편성하는 겁니다. 백 퍼센트 편성이 다 끝나는 거예요.
누가 뭐 통일교회 승공연합 반지부장 하겠다고 하나요? 공격으로 밀어 제끼는 거예요. 자기가 하든가, 그러지 않으면 죽든가, 도망가든가 해야 돼요. 왜? 그렇지 않으면 자꾸 나타나거든요. 자꾸 여기서 몰아 대거든요. 이래 가지고 반지부장 편성을 다 끝내는 거라구요. 끝내 가지고 어디로 갈 것이냐?
이제 우리는 움직임이라는 것이 옛날과 다르다구요. 통일교회가 지금 목표하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 모든 반 지부를 중심삼아 가지고 반상회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가가호호, 개인 개인이 '승공활동은 어머니 아버지의 일인 동시에 내 일이야!' 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게 해야 돼요. 대한민국 백성이 '승공활동은 아들딸의 일인 동시에 어머니 아버지의 일이요, 어머니 아버지의 일인 동시에 할아버지 할머니의 일이요, 우리의 새로운 일이다' 할 때에 남북통일의 정기가 밑바닥에 깔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따로, 할아버지 따로, 아들딸 따로 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물이 차려면 밑바닥에서부터 가뜩 차야지요.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 놓으면 물이 차요?
우선은 서울을 밀어대야 됩니다. 서울을 밀었는데, 레버런 문이 서울을 밀었는데 서울이 밀렸어요, 레버런 문이 밀렸어요? 선생님이 밀렸어요, 서울이 밀렸어요? 「서울이요」 서울이 밀렸어요. 그래 서울이 밀려 가지고 어떻게 되느냐? 좋아지는 거예요. 내가 요거 밀어대니 나가면 내 앞에서 나가기 때문에 망하는 자리로 안 간다고 본다 이거예요. 반대로 이 서울이 나를 밀어내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예요.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통일교회 외부 사람들이 통일교회 때문에 지금 습관화되던 것이 고착되지 못하고 전진적 미래를 향하여 출동하고 있는데, 통일교회 교인 자체는 어때요? 구경하고 있을 수 있어요? '서울이 잘 움직이는구만. 그거 승공연합 활동이지. 우리 통일교회와는 관계없어' 그래요? 서울이 움직여 가지고 좋을 성싶은 방향을 거쳐간다면 승공연합이건 무엇이건 그저 뛰쳐 나가 가지고 거기에 가담해 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거예요.
자, 선생님이 이만큼 밀어서 만들어 놨는데, 여러분 할머니 할아버지 오래 된 패들 말이예요, 통일교회 축복받은 가정 패들, 세상 가정만도 못해요. 요전에 뭐 어떤 교구장이 와서 하는 얘기가 '아이구, 참 세상에, 서울에 이변이 벌어졌어요' 그래요. '무슨 이변이야? 이변이 무엇이야?' 했더니 '옛날 우리가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왔을 때 반대받으면서 억세게 활동하던 그런 것들이 서울의 모든 통·반 지부장들이 활동하는 것을 볼 때 생각납니다' 이러는 거예요. 딱 같다는 것이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그들은 살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잡되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들을 밀어대든가 그들의 앞에 서든가 둘 중의 하나를 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은 탈락의 때가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좋은 환경이 벌어지는데, 이것이 내 천지가 될 줄 알았는데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결과의 세계로 간다는 것이예요.
결국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때가 왔다 이거예요. 몽땅 이제부터 출동하는 사람한테 넘겨 주고 여러분은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된다구요. 폐물, 폐품 이거 누구도 누구도 원치 않는 거예요. 폐물은 재창조하기 위하여 공장에 들어가 가지고 다시 만들어지지 않으면 이용될 길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역사는 이렇게 무정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생각해 봐요. 사실이 그렇지 않아요? 서울의 시민들이 새로운 방향과 전진 대열을 갖춰 갖고 총진군하는데,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밀어대든가, 그들 앞에 서든가 해야 된다구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살 수 있는 길, 새로이 될 수 있는 길은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한 자리에 서는 길이예요. 그러지 않고는 망하는 것입니다. 이 아침에 여러분의 마음 자세를 냉정하게 비판하고, 자신이 처해 있는 위치를 확실히 알아 가지고, 자기 상태를 분석하여 가지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할 때에는 앞에 서라는 것이예요. 앞에 서든가 밀어댈 수 있는 자리에 서든가, 둘 중의 어느 하나의 자리에 서지 않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망해야 됩니다. 폐물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이런 패들을 전부 다 무자비하게 쓰레기통에 집어넣어야 새로운 잔치를 맞이할 수 있는 환경이 벌어지지, 이걸 보고 흥흥 했다가는 문선생 자체가 제거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자체가 제거되어야 된다구요. 그 따위 통일교회는 원치 않아요! 사회가 원치 않고, 세계가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 이제…. 오늘 제목이 뭐예요? 「새로운 우리들입니다」 '새로운 우리들'이라 했는데 새로운 우리들이 어떻게 되느냐? 어떻게 새로이 되느냐? 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 세계가, 서울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려고 하는 거예요. 새로와 지는 것이 사실이예요. 환경이 새로와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이 이런 때에 있어서 여러분이 습관화되고 고착이 되어 있으면 망조 패가 되는 거예요. 망조가 들었다구요. 통일교회에 망조가 들었다구요. 제2의 발전 무대를 향해서 밀어대든가 선발대가 되든가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만 여러분이 과거에 통일교회의 주인이 되던 거와 마찬가지로 이 시대에 있어서 주인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어요. 책장을 넘길 때가 되었다 이거예요.
책장을 넘겨 기록하는 데는 옛날 처음부터 써 나오던 전부를 그냥 그대로 다 써서는 안 돼요. 새로운 페이지에는 새로운 사실을 기록해야 됩니다. 옛날 것 그냥 그대로 가지고는 쓸데없어요! 새로운 페이지에는 새로운 내용을 기록해야 되는 거예요. 과거에는 통일교회가 슬픔의 역사를 엮어 왔지만, 기쁨의 역사를 맞기 위해서는 기쁨의 역사를 맞을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어야 됩니다.
국가의 운세를 맞기 위해서는 국가의 운세를 맞을 수 있는 그런 터전을 가져야 되고, 세계의 운세를 맞기 위해서는 세계의 운세를 맞을 수 있는 터전이 돼야 됩니다. 내가 그런 배포를 갖고 그런 준비를 하여야만 그 운세와 내가 관계가 있지 그렇지 않고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이거예요. 흘러가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앞으로 천년 후에 통일교회 목적 시대에 가 가지고 '내가 통일교회에 옛날에 들어왔으니, 내가 첫번으로 들어왔으니 첫번에 가 있겠다' 하는 그런 사람은 도둑놈이예요. 도리어 벼락맞을 도둑놈들이라구요, 벼락을 맞을 도둑놈들. 선생님 자신이 지금 선두에 서서 이러고 있는데…. 망해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새로와져야 되겠다는 거예요.
이제 협회 창립 32주년 기념일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협회 나이 33세를 넘게 되면 우리 때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때가 옵니다. 예수님이 33세에 전부 다 한을 남기고 갔기 때문에 교회 역사 33년이 되면 교단적인 예수 해방권이 이루어질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해방권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제 그 시대를 향해서 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 있어서 여러분이 옛날에 습관화된 그런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거예요. 거 가만히 생각해 봐요? 이치적으로 생각해도, 이론적으로 생각해도 그렇지 않아요? 어쩔 수 없다구요. 요 기로에 딱 서 있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지금 서울을 밀어대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같이 밀어대야지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밀어대요. 선생님이 앞에 서려고 하면 여러분이 앞에 서서 끌고 가야 됩니다. 못 가면 끌고라도 가야 된다구요. 이제는 끌고 안 가도 갈 때가 되었어요. 끌고 안 가도, 여러분이 끌고 안 가더라도 이제는 세계가 통일교회를 따라가게 된다는 거예요.
두고 보라구요. 자기 자체의 가치를 참 우주적인 가치와 비교하여 찾기 바라는 사람들이 갈 길은 통일교회의 길 외에는 없어요. 밥을 먹되, 같은 보리밥을 먹든 무엇을 먹든 살이 쪄야 된다구요. 그거 병이 나면 안 됩니다. 무엇을 먹더라도 소화해야 돼요. '아이고, 나 힘들어서 못 하겠어. 통일교회에는 뭐 이렇게 하는 것이 많아? 또 반지부장은 뭣인고. 반 지부장은 또 뭐야?' 해서는 안 돼요.
이제 반 지부장을 중심삼아 가지고 뭘하려고 하느냐면 말이예요, 반상회 같은 것을 중심해 가지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 전부 다 일가가…. 할아버지 가는 길이 내가 가는 길과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광야노정에 있어서 가나안 복지로 가는 길은 할아버지가 걷는 길이나, 어머니 아버지가 가는 길이나, 아들딸 손자가 가는 길이 마찬가지라구요. 전진의 내일을 도피해 가는 사람들은 사막에서 독수리밥이 되는 거예요. 머물면 죽어요. 머물면 죽어요. 습관이 되어 가지고 정착하면 죽어요. 망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바라던 여러분들의 때가 왔다구요. 핍박이 없는 한날을 얼마나 고대했어요! 자유스러운 환경의 천지를 얼마나 고대했어요! 부모에게 쫓김을 당하고 남편이나 아내에게 쫓김을 당하고, 자식들에게까지도 몰아침을 받던 그 억울하고 분통한 사실을 잊어버렸어요? 나는 안 잊어버렸어요. 생생해요. 내가 묶여 형무소에 출입하던 것을 잊어버릴 수 없어요! 흥남감옥 생활을 잊어버릴 수 없어요. 댄버리 역사를 잊어버릴 수 없다구요!
나는 가고 있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가고 있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끌어 주고 선생님 하는 일을 밀어 주고, '선생님 어서 가소. 염려 마시오. 자꾸 빨리 가소!'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으면 모세는 망하지 않았을 거라구요. 그들의 사정을 보고 흥흥거리다가 망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늘에 기도하는 것 보라고요. 이스라엘 붙들고 울다가 망했다는 거예요.
자, 결론을 짓자구요. 선생님이 끌어 주면 좋겠어요, 밀어 주면 좋겠어요? 끌어 주면 좋겠어요, 밀어 주면 좋겠어요? 「끌어 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선생님이 앞에 서 있어야지요. 선생님이 앞에 서 있어요? 끌어 주려면 뭐 지금까지 통일교회 30년 동안 믿고 나와 가지고 지친 사람을 끌어 줄까요? 싱싱해 가지고 달려갈 사람들을 끌어 주어야지요, 같은 값이면. 그런 차원의 시대에 왔다는 거예요.
새로운 우리들이 되기 위해서는, 광야 40년노정에 있어서 하늘 앞에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받으면서 메추라기와 만나로 생계를 취해 나가던 그런 하나님의 협조시대를 지나 자주적인 내 힘을 가지고 먹고 살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만들고,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고 궁전을 지어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내 자신의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건 뭐 가나안 땅에 들어와 가지고도 옛날 광야시대를 생각하다가 비참한 민족이 되었던 이스라엘 민족의 처참상을 오늘날의 역사에 있어서 우리가 표본으로 바라보고 있는 거라구요. 어떤 저 유대인 책임자, 우리 단체에 있어서 중요한 책임을 진 책임자가 유대인들은 개인주의라나요. 자기들끼리 싸우기만 하고 있다는 거예요. 전체적인 하나님 뜻을 대해야 했던 민족이 어쩌다가 개인주의에 떨어졌느냐 이거예요. 마찬가지입니다. 전체 하나님의 뜻을 표준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나온 통일교회 교인들이 어떻게 돼서 개인주의로 떨어졌느냐 이거예요. 그건 망하는 것이요, 흘러가는 겁니다. 확실히 알았지요? 「예」
서울이 뜻의 길을 가려고 하고 있다구요. 선생님이 밀고 있어요. 여러분이 같이 밀어야 돼요. 이거 밀고 나가 가지고 서울의 모든 것이 끝났다 할 때는 여러분이 끌고 가야 돼요. 따라가야 되겠어요, 끌고 가야 되겠어요? 「끌고 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어떻게 돼요? 이 사람들이 차 버려요. 내가 차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차 버린다구요. 쓰레기통밖에 안 되는 거예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그 말씀이 이뤄질 심각한 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통일교회가 망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가 새로운 내일을 맞이해 새로운 통일교회 비약권을 추구해야 된다는 이런 말을 선생으로서는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지 말라는 거예요, 그 자리에.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36가정이든 무슨 가정이든 뭐 기성가정이든 나는 몰라요. 싸움은 결판 안 났어요. 남북의 통일이 가로놓여 있어요. 삼팔선을 밀어내 가지고 북한 땅을 전부 다 소화해야 되는 거예요.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뭐냐? 그곳을 내가 소화해야 되겠다구요. 그곳을 향하여 전진해야 되겠다 이겁니다.
자, 각 대열에 있어서 통일교회에 그러한 새로운 전진적인 대열과 형태가 나타나게 될 때는 통일교회에 있어 내일은 우리들이 바라는 새로운 세계가 될 것이다 이겁니다. 새로운 우리들이 가는 길이 될 것이라구요. 새로운 우리들이 사명을 하는 자리에 설 것입니다. 이것이 틀림없는 것을 알았으니 우리는 그렇게 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들, 오늘 통일교회 교인들을 가만 보면 말이예요, 기도를 하는데 자기는 전부 다 완전한 자리에 있는 것처럼 뭐 달라, 달라고 야단이예요. 그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해 기도해야 해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 때에 마리아라든가 여인들이 울 때 '너희가 나를 위해서 울지 마라. 네 후손을 위해서 울어라. 나에게 화가 있는 것이 아니고 너희들 자체에 화가 있다' 하고 통고한 거예요. 잘못한 것은 전부 다 딴 사람에게 보내고 나는 잘되겠다 하는 사람은 악마의 누각에 서 있고, 망할 일선에 서 있다는 거예요. 그러한 예화가 있다는 걸 알아야 돼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가만 보게 되면 그저 습관화가 참 되기 쉽다는 거예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어머니도 그렇다구요. 같이 살지만, 같이 살면 습관화되기가 쉽다고요. '저 분이 내 남편인데 뭐. 이렇게 살고 이래 사는 거야, 그저' 하며 뜻이고 뭣이고 언제나 자기 중심삼고 생각하면 그 어머니의 갈 길은 안 된다는 거예요. 선생님 자신의 갈 길도 안 된다는 거예요. 주의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무리들이 되기를 바라거든 변천과정을 거쳐야 돼요, 시시각각으로. 지금 이 시간도 똑딱똑딱하며 변해 가지요? 이러면서 틀림없는 우주의 순환법도를 따라가는 거예요. 그런데 멍청해 가지고 저녁때인데도 아침인 줄 알고…. 아침이나 저녁때나 뭐 동서사방을 모르고 태양을 볼 때는 아침인지 저녁인지 모른다 이겁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확실히 알아야 돼요.
지금 전세계 통일교회가 움직이는 것이 그래요. 국가를 대해 넘어가는 때예요. 이 나라도 이제 새로운 면으로 넘어와야 돼요. 이 나라 주권자들이 정신차려야 돼요. 싸움이 문제가 아니예요. 나라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당을 중심삼고 자기 권력 구조를 위하는 그건 흘러가는 거예요. 똑똑히 말해 줘요. 나라는 흘러갈 수 없어요.
나라를 당 이상 사랑하여야 돼요. 야당이든 여당이든 문제가 아닙니다. 나라를 자기 당보다도, 나라를 자기보다도 중요시하지 않는 것은 물러가요. 흘러가는 것입니다. 나라 앞에 끌려가야 돼요. 나라 앞에 끌려가 가지고…. 끄는 데도 한때지요. 끌 때는 위에서부터 여기까지는 끌어 주지만 이 올라갈 때는 끌면 둘이 다 망해요. 그건 쳐 버려야 돼요. 버려야 된다구요. 한 면, 한 과정을 거칠 때는 끌어 줄 수 있지마는 더 이상 가다가는 둘 다 망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당과 야당이 싸우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와 보니…. 내가 여당이나 야당을 목표로 가는 사람이 아니예요. 여당 야당이 모두 죽고 지도자들이 다 망하더라도 대한민국은 망해서는 안 돼요. 그 대한민국의 갈 길을 위해서 나는 간다 이거예요.
너희들은 부사스럽게 이렇게 싸우고 해봐라 이거예요. 나는 욕을 먹더라도 잠잠히 밤이나 낮이나 이 길을 가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싸우는 여당 야당보다도 우리는 열심히 해야 되겠어요, 말 없이. 미래에 찾아오는 한국을 위하여! 남북의 통일 위에 설 수 있는 우리의 조국을 위하여! 그 조국은 엄숙한 조국입니다.
그걸 맞기 위해서는 양 어깨를 가누어 가지고 사방으로 봐야 돼요, 오른편 왼편. 좌익이나 우익 어느 편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를 숙여야 된다구요. 엄한 선 앞에 머리를 숙여야 됩니다. 동양의 인사법이 왜 머리를 숙이는 것이냐? 엄한 선 앞에 하나되자는 거예요, 하늘땅이. 요사스러운 사회환경의 바람 앞에 흔들리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 갈 길은 정해져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변하는 사회환경, 그 흘러갈 변하는 풍조에 내가 소화되지 않고, 변해 가는 그 풍조를 소화해 가지고 우리 미래의 한국으로서 품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움직이면, 그 한국 자체가 우리를 품을 수 있는 때가 온다구요. 이걸 똑똑히 알고 정지해서는 안 되겠다 이거예요. 새로운 무리가 되기 위해서는 정지해서는 안 돼요, 정지해서는. 알겠어요? 습관화되어 고착상태에 있게 될 때는 원수예요, 원수. 그래서 여기 통일교회 자체도 이제….
이번에 오면서 세운 선생님의 작전은 뭐냐? 교회제일주의가 아니였어요. 여기에 협회장도 있지마는 환영회를 누가 했느냐? 승공연합에 맡겼어요. 가인 아벨 탕감복귀원칙에 있어서 선생님이 가인을 사랑하여야 됩니다. 어느 자리에서? 최고의 자리에서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돼요. 지금이 그때라는 거예요. 세계적인 운세 앞에 가인을 전부 다 내세우는 거예요. 그래서 승공연합 간부를 전부 다 내세우는 것입니다. 엊그제야 여기 본부를 방문했어요, 본부 사무실을. 이제는 여러분이 할 책임이 남아 있는데 그냥 그대로 세월 보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 이제는 알았어요? 「예」 새로운 이런 시대가 우리 앞에 왔으니 여러분이 밀어대야 해요. 다 밀렸거든 그다음에는 그거 다시 끌고 가야 돼요. 어디까지? 저 이북 정주까지. 고향 땅에 내려가서 거기의 악당 패들을 전부 다 몰아내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렇게 된 이후에야 새로운 우리들이 될 것입니다. 그때는 남북이, 공산세계, 민주세계가 다 환영할 수 있는 통일국가를 차지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이다 하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습관과 고착상태는 원수예요. 원수라구요.
환경이 좋더라도 절대 그 환경을 따라가지 말라는 거예요. 좋은 환경에 살더라도 옷을 입는 데는 반대로 입으라구요. 옛날 환경이 나쁠 때는 나가려면 잘 입고 다녔지만 지금은 막 입고 다니라 이거예요, 막 입고. 제일 못입고 다녀라 이거예요. 반대 행동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하늘이 나를 밀어 준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도 떠나고 사탄도 떠나요. 사탄은 떠나면서 차 버리고 떠나는 거예요. 하나님이 밀지 않으면 자빠지는 거예요.
그런 것을 알고, 지금 때가 위험한 때라는 걸 아시고, 여러분들이 오늘 아침에, 이제 새로운 5월달을 맞이하느니만큼, 모든 것이 무르익을 이런 시대가 찾아오느니만큼, 이 시대의 환경과 더불어 통일교회도 그런 시대를 접어 가지고 넘어가는 데 있어서 탈락자가 되지 않고 새로운 무리들이 되기 위한 입장에서 습관과 고착상태를 극복하고, 전진대열의 선두에 서든가 아니면 뒤에 서서 밀어대든가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거기서만이 새로운 통일교회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예」 그렇게 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 「하겠습니다」
여기에 온 사람들은 전부 다 앞으로 반 지부장을 끌고 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반 지부장을 찾아가요.
사랑하는 아버님, 부름을 받은 자로서의 소명이 얼마나 큰가를 생각하옵니다. 사망의 세계에 있어서, 사탄세계에 있어서 그 소명을 이룰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 얼마나 치열한 전투의 과정인가를, 그 과정을 겪고 난 후에야 찾아질 수 있는 영광의 은사란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하늘이 나를 찾아와 주어 가지고 권고하고 은사를 주는 것이, 오늘의 은사를 주는 것이 내일을 위해서 준비하기 위해서임을 몰랐습니다. 이것이 나의 것이요, 이것이 모든 전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은사는 내일을 위한 것이요, 미래의 터전을 닦기 위한 하나의 준비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지금 통일가에 있어서는 세계사적인 은사권이 목전에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 지금까지 40여 년간 수고한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일신에는 하늘을 위하여 하늘의 충효의 도리를 가려 가겠다고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많은 상처와 흠을 갖고 있사옵니다. 그 흠과 상처를 남긴 아들딸이 커 가지고 나라를 향하여서 충신의 길을 가야지, 역적의 길을 가서는 안 될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 통일교회에 나이 많은 사람들, 혹은 오래된 사람들이 제일 어려운 때에 처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아침에 새로운 무리가 되어야 된다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이제 저희들이 서울을 아버지 뜻 앞에 일치된 방향으로 가도록 몰고 있습니다. 일본도 역시 그러한 자리에 있고, 미국도 그러한 자리에 있사옵니다. 이러한 운동을 전국적으로 연결시키어 세계적인 운동으로 새로이 몰고 있는 이 모든 역사는 레버런 문에 의하여 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되어지는 것이 사실이옵니다. 움직여지는 전부가 아버지 뜻 앞에 일치화되고 아버지 경륜에 자랑이 될 수 있는 이런 길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우리는 습관화되어 가지고 고착화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루의 한날 가운데 자라고 있는 나무는 자라는지 안 자라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정지되어 있는 것같이 보이지마는 그들은 자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정지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지되게 될 때는 냄새가 나는 것이요, 썩어지는 것입니다. 썩어지며는 모든 것이 전부 다 그 자체에서 분리되어 가지고 분산, 분해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와 마찬가지의 발전적 원칙에 의해서 통일가 전체가 새로운 봄날을 맞이하였습니다.
옛날의 겨울과 같은 시대에 처했던 습관적 내용 가지고는 봄날을 포괄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봄날의 자세를 갖출 수 있는 주체성을 지녀 가지고 그 환경과 화합하여 새로운 여름을 향해 전진할 수 있는, 천의의 방패가 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될 것을 강조하였사오니, 이 뜻 앞에 결의한 그 마음 앞에 새로이 아버님이 권고하시고 충동하시어서 낙오자가 되지 않게끔 하옵소서.
광야시대에는 60만 대중이 모세를 따라가기만 했습니다. 모세 앞에 달려가면서 '어서 가자!'고 할 수 있는 60만 대중이 없었기에 지도자 모세의 모습이 얼마나 비참했는가를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하여 교육적인 일념으로서는 알고 있으나 오늘 통일교회가 가는 길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스승을 앞에 놓고 따라오는 무리들은 많았으나 스승 앞에 서 가지고 어서 가야 되겠다고, 당신이 안 가면 내가 가야 할 길이니 이 길을 빨리 가자고 할 수 있는 제2세 혹은 제3세가 없었습니다. 역사적인 선조가 되어야 할 제1세 가운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그럴 수 있는 2세가 나올 리 만무한 것이요, 그럴 수 있는 2세가 없으니 그럴 수 있는 3세가 나올 리 만무한 것을 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을 진 레버런 문은 이제 1세의 책임, 2세의 책임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서 피어린 심정을 가지고 아버님의 뜻 앞에 대신해 서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이제 통일가에 있는 오래된 식구는 물론이요, 지금 따르고 있는 모든 무리는 알아 가지고 선생님을 끌고 갈 수 있고, 모시고 갈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옵소서. 그렇게 될 때 아버님도 얼마나 대견히 생각하시고 미래의 소망과 뜻하신 뜻 앞에 얼마나 기뻐하시며 이 무리를 맞아 주실 것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한 무리들이 가는 길 앞에는 영광의 날, 영광의 세계밖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사오니 이 과정에서 낙오자가 되지 말게 하시옵소서.
습관화가 되지 말고, 고착되지 말고, 부디부디 말씀과 더불어 우리가 새로와져야 되겠습니다. 이 내용을 중심삼고 밀든가 끌든가 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들을 바라보는 그 자리에는 아버님의 눈물이 깃들 것이요, 아버님의 심정이 깃들 것입니다. 아버님이 칭찬할 뿐만 아니라 이들을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생명의 핏줄이, 생명의 젖줄이 거기서부터 연결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오늘부터 새로운 변화의 행로를 향하여 전진할 수 있는 무리가 되겠다고 다짐하였사오니 은사 가운데 품어 주시기를 재삼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