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가운데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만나면 반가운 얼굴을 하는데, 나에게는 그 얼굴에 더욱 기쁨을 주어야 할책임이 있는 고로 보다 기쁠 수 있는 새로운 말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을 하는 데도 그 말에는 좋은 말, 나쁜 말, 칭찬하는 말, 책망하는 말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세상 사람과는 다른 길을 가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입니다. 자기 부모 형제와도 다른 것이며, 아무리 친근했던 친구라도 이곳에 들어오면 친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선과 악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고 할 때, 그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신이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같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더라도 차이가 나고, 같은 직장에서 월급을 받는 것도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각각 중심과 얼마만한 거리에 서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결국 원근(遠近)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있는 직장의 중심적인 책임자가 좋으냐 나쁘냐에 따라서. 그 사람을 좋게 보면 여러분은 좋은 면에서 가까와지는 것이고, 그 사람을 나쁘게 보면 여러분도 나빠지는 것입니다. 단지 중심이라는 것은 책정하기 위한 기준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중심 존재가 좋으면 모든 것이 좋은 표준이 되고 나쁘면 모든 것이 나쁜 표준이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니, 사탄이니 하는 것을 배우고 있는데, 사탄은 악을 대표한 중심이요, 하나님은 선을 대표한 중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두 중심이 있을 때, 그 중심에 연결되는 것들은 종결선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실 그런 존재들이 있다면,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류들이 어느 한 권내에 속해 있는 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종결선이 어디냐? 이것이 문제예요. 악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악한 중심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가 하면, 선한 자리에 있다고 해도 선한 중심을 모르는 겁니다. 악한 중심과 선한 중심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면 종결선을 판정해야 할 절박한 심정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또한 악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어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백 퍼센트 안다면 교육도, 아무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선생님도 필요없어요.
하나님이 계셔서 빛을 나타내신다면 최고로 밝을 것이요. 여러분은 가지 말라고 해도 그 빛을 찾아갈 것입니다.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이 좋다면 그 이상 좋은 것이 없을 것이며, 한번 달라붙으면 영원불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유일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에게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가장 귀중한 사랑, 영원불변한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만 있으면 만사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길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이 있는 곳에 변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 사랑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제일 고귀한 것이 있다면, 아버지의 소유가 되기를 원할까요, 자기의 소유가 되기를 원할까요?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있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은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은 고기압이요. 사랑이 없는 곳은 저기압이기 때문에, 높고 낯은 기압은 서로 주고받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교회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평등은 사랑 없이는 안 됩니다. 행복도, 자유도 마찬가지로 사랑이 없이는 안 돼요. 평등과 평화가 있어야 자유가 존재합니다. 세상에서 자유롭기를 바라는 데에도 혼자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며, 그 누구를 중심삼고, 주체와 대상 관계에서 자유를 찾아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주체와 대상이 아무리 자유를 자랑하며 춤을 춘다 해도 그들이 악한 권내에서 움직일 때는 자유와 행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망하는, 파탄되는 자유입니다.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절대적 권한 내에는 평화롭고 행복한 자유가 있는 것이요. 보장할 수 없는 곳에는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부모가 계시고, 사랑하는 형제들이 있을 때, 공인받는 자리에서는 환경으로부터의 침범받을 것을 다 막아 주기 때문에 영원한 자유가 될 수 있지만, 원수들이 둘러싸인 환경에서는 자유를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결국 자유는 환경이 문제가 됩니다.
특히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자유를 누리는 데 있어서는 환경이 중요하 다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자신을 보장할 수 있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못하는 곳에서는 자유는 일종의 방종이요, 파탄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이란 영원하고 이상적인 것인데, 그 사랑을 중심 삼고 보장된 자유, 그 사랑 가운데서 이루어진 자유는 영원불변의 자유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영원불변하신 유일의 주체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분에게 비로소 평등, 평화, 행복, 영원한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세계에서는 어떠한 평화나 자유도 보장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정신 자체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탄은 어떤 것입니까? 사탄은 하나님과 정반대가 되는 것으로 영원하지 못하고 변하는 것이요, 하나의 목적을 두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근본적인 원리를 알게 되면, 하나님의 사람과 사탄의 사람을 완전히 함께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악한 세상에서는 사랑을 찾아볼 수 없고, 서로 위하는 것이 아니라 독재이며, 자기를 위주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독재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독재 중에서도 자기 위치가 높을수록 상대를 자기 이상 사랑하는 독재는 나쁘지 않아요. 남을 위해서 전부를 주기 위한 입장이 된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악의 사랑은 상대방을 생각할 것 없이 나를 위주로 한 독재입니다. 자유도 나를 위주로 하면 악입니다. 남을 위주로 하는 자유는 얼마든지 허용될 수 있습니다. 사탄세계는 사랑이 없기 때문에 유한한 것이요. 변하는 것이요, 유일의 목적이 아니라 자꾸 중심을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악의 세계라든가, 선의 세계를 체득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악한 사람보다도 더 악한 입장에 선 것이 무엇이냐 할 때, 그것은 보이지 않는 사탄인 것입니다. 악한 사람의 뿌리는 보이지 않는 사탄이며, 선한 사람은 하나님이 뿌리입니다. 그 선한 사람은 선한 가지와 잎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에게서 재미있는 현상을 볼 수 있어요. 여러분이 졸고 있을 때는 사탄편이 되는 것이요, 깨어 있을 때는 하나님편이 되는 것입니다. 눈 깜박할 순간에 선생님 말씀을 놓치게 되면, 일생에 있어서 복받을 수 있는 길이 뒤집어집니다. 일선에서 장병이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목숨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여러분들은 졸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소원하시는 본질은 사랑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계를 중심하여 두 나무가 거꾸로 자랐어요. 악의 나무 뿌리는 사탄이요, 선의 나무 뿌리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된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서 반대 방향을 취해서 갈라놓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책임자와 세상적인 책임자를 갈라 놓으시고 두 세계, 즉 공산 세계와 민주세계로 갈라놓으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모르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알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니 모든 종교를 정비해서 하나로 귀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수년 이내에 전세계의 종교가 다 떨어 지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세우신 원칙을 실현하시는 것으로 보면 틀림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교의 뿌리는 일시에 세계로 발전하여 성장하는데 그러한 때를 준비하여 세운 것이 통일교회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알 수 있고 또한 그 뜻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자기에게 인연되어 있는 것을 초월해서 다른 세계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면, 그가 어떠한 종교를 따라 나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과 그 종교를 키워 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자신의 자녀와 친척, 그리고 나라를 희생시키면서도 원수의 나라를 구해 주기 위해 사랑으로 나오셨습니다. 악한 세상에서 맞고 희생하시면서도 발전하여, 악을 치며 싸워 나오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과 악은 다른 겁니다.
부모가 자기 자녀를 보다 좋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 때리는 것이라든가, 친구가 나쁜 곳에 가려고 할 때 치는 것은 선이요, 사랑입니다. 이러한 모든 원칙을 알아서 개인으로부터 모든 것이 선한 기준과 일치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전체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 하늘땅에 선악관(善惡觀)을 세워서, 악을 제거시키는 세계적인 선편이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볼 때, 여러분에게 있어서 선악의 경계선이 어디냐? 가정도 아니요, 나라도 아니요,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과 몸이 둘로 갈라졌어요. 경계선이 없어야 하나로 통일되는데, 마음은 공적인 면에 희생하려고 하는데 반면 몸은 '나’만이라는 이기적인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해와와 만물을 지으시고 선하라고 하셨으니, 이는 곧 서로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원하는 편으로 행하기 위해서 몸을 쳐서 마음 앞에 굴복케 하는 것이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악에서 선으로 넘지 못하면 안 됩니다.
내 몸이 완전히 승리했다는 것은 사탄까지도 완전히 뿌리뽑아 정복했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사탄을 정복해야만 갈 수 있습니다. 사탄을 이기는 것은 육신을 벗고는 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육신이 땅에서 사고가 났으므로 고치는 것도 육신을 쓰고 땅에서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하면 영원히 지옥에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서 승리하여 하늘편의 선한 입장에 서게 되면, 영원히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종교에서 결혼을 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새로운 면을 시도하여 선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종교에서는 '겸손하라, 고생하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몸을 괴롭히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들이 세계 인류를 위해 고생을 하면, 모든 인류는 고생하는 여러분을 따르고 옹호하게 되니, 이것은 우리가 전도하는 길이 되며, 결국 나의 새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는 것은 자신은 물론 전도된 사람도 자라나서 원나무 뿌리로부터 연결되어 꽃이 피고 열매맺듯이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불변하고 유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의 등을 타고 악의 경계선을 넘어 하나님을 만나러 가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따르는 것도 마찬가지로 선생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십년 탕감조건을 하루에 몰아치려는 모진 독촉은 사랑입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방법으로 여러분들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