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여섯번째로 맞는 하나님의 날입니다. 만으로는 다섯 해가 지났습니다. 오늘의 이와 같은 하나님의 날이 책정되었다는 사실은 역사상에 없던 일입니다.
오늘날까지 타락한 이 땅에는 하나님을 축하할 수 있는 날이 없었습니다. 이 땅에 있는 사람들 혹은 수많은 나라들이 자기의 나라와 자기들을 중심삼고 기념하는 날들은 많았지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기념하는 날은 없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날이 나올 때까지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수많은 날들 중에서 좋은 날을 최고의 기준까지 끌어올린 그런 승리의 날을 맞이하고서 만이 하나님의 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날들 가운데 귀한 날은 자기가 난 날이라든가, 부모가 난 날이라든가, 혹은 나라를 세운 날이라든가, 그렇지 않으면, 실패했다가 성공한 날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날들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백성을 두고 볼 때에 제일 기념할 수 있는 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그 나라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딸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는다면 그날 또한 기념할 날이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무슨 날이 기념할 날이 되겠느냐 하면 자기들이 결혼한 날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축하하고 기념하는 날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타락하지 않고 완성을 보았더라면, 완성을 본 그날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자녀들로 서는 제일 기쁜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날이 아들딸로서는 최고의 날로서, 두 사람이 축복을 이를 수 있는 날이 되는 것이요. 그 가정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이 시작되는 날은 만우주를 대표한 승리의 날로 등장하기 때문에 모든 만물이 희망하는 날도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물론이지만 천사들까지도 기뻐할 수 있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주를 중심삼고 지어진 모든 만물이 그 주인과 더불어 최고로 기뻐할 수 있는 기념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하나님이 최고로 기념할 수 있는 하나님의 날입니다. 그날은 인류의 조상으로서 참부모의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날은 아들딸로서 최고로 자랑하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만물이 그날을 최고의 영광의 날로 맞이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날들이 한꺼번에 벌어져야 될 것이 창조의 이상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날들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날을 찾아가기 위해서 만물이 동원되고 사람이 동원되고 하나님이 동원되어 가지고 이러한 날을 찾아 나오는 것인데, 이것이 복귀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복귀섭리를 해 내려오면서 수많은 사람과 제물을 통해 좋은 날들을 가려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가지고 가려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 이것이 하나되는 데서만이 새로운 복귀의 발전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날이 되는 것이요, 우리 사람이 기뻐할 수 있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즉, 제물을 드려 가지고 하나님이 기쁨을 받는 그런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야곱 가정 시대로부터 점점점 민족을 편성해 가지고 이스라엘 나라와 세계에까지 확대시켜서 승리의 한 날을 마련하기를 하나님은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인연을 우리는 이어받아 가지고 1960년에 비로소 '부모의 날’이라는 날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날이 나올 때까지 여기에는 여러 가지 안팎으로, 개인으로부터 가정과 종족과 민족을 거쳐서 국가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체가 참소받을 수 있는 내적인 조건을 놓고 승리의 터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말고는 그날이 성립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날을 기준으로 해서 다음에는 자녀의 날이 설정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의 인간들 앞에 있는 그 부모는 자기를 낳아 준 부모지만 참된 부모의 자리에 설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들도 참된 자녀의 자리에 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참된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참된 부모가 이 땅 위에 나타나 가지고 다시 낳아 주지 않고는 참된 자녀로서 태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자녀의 날을 설정할 때까지 는, 그 자녀의 날이라는 것은 이 세계의 인류, 수많은 인간들을 대표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참부모를 모셔 가지고 참된 자리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하는 대표적인 날을 세계적으로, 혹은 천주적으로 설정한 날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녀의 날이 설정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인간이 가정의 기준을 찾았기 때문에, 아담가정을 중심삼고 떨어짐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세계의 만물을 찾을 수 있는 하나의 기원을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을 기반으로 해서 만물의 날을 설정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날을 중심삼아 가지고 한 나라를 기반으로 해서 세계적으로 연결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1965년에 선생님이 40개 국을 순방하면서 120개의 성지를 택정한 것은 그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된 가정을 중심삼고, 부모와 자녀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의 모든 만물을 연결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반을 중심삼고,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을 기반으로 하여 닦아진 터전을 중심삼고, 예수님이 이땅 위에 와 가지고 국가기준을 중심삼고 승리해야 할 그 터전을, 넘어서야 했던 자리를 다시 해방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한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되어지는 것입니다.
민족의 고개를 넘기 전에 하나의 씨족적인 승리의 터전을 가졌더라면, 민족의 기준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하나님의 날은 예수님 당시에 설정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내적인 기준을 재현시켜 가지고 탕감복귀해야 할 것이 우리의 책임이기 때문에, 1968년 정월 초하루, 이날을 기해 가지고 비로소 종족적 기준과 민족적 기준을 중심삼고 예수님이 몰리어 죽임당한 그런 자리를 넘어선 터전을 마련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날을 책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날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본격적인 단계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날까지 설정하는 것은 누가 해야 되느냐? 부모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날과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과 부모의 날이 될 수 있는 것을 전부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대신 탕감하기 위해서는 참부모의 자리에서 복귀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날을 설정할 수 있기 위해서는 참부모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에 선 그분이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가 이 땅에 와 가지고 비로소 기본적인 조건을 전부 다 탕감시켜 가지고 넘어서는 최후의 날이 하나님의 날입니다.
인간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습니다. 그러니 장성기 완성급에서 완성기 소생급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로운 부모가 현현해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그것을 넘어설 수 없는 것입니다. 장성기 완성급 아래로 떨어졌기 때문에 그 이상의 부모로서 넘어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장성기 완성급을 넘어서면 완성기인데 이 완성기가 7년간에 해당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소생기부터 완성기까지는 삼칠은 이십 일 21년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 20살이 넘어야만 완성으로 표시하는데, 그건 원리적이라구요. 1960년에서부터 1967년까지, 이 7년간은 완성단계이기 때문에 이때를 넘어서면서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을 일치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본연의 창조이상으로 표준하였던 완성기준을 연결시킴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결속돼야만, 비로소 이 땅 위에 새로운 하나님의 이상국가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7년간은 선생님이 참부모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에서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에 맺혀진 모든 길을 터 놓아 가지고 하늘로 향할 수 있는 복귀의 길을 가리기 위하여 준비하는 때인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날을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1차 7년노정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제 2차 7년노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본래는 타락하지 않았으면 1차 7년노정으로 되는 것입니다. 제 2차 7년노정이 왜 생겨났느냐 하면 타락한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기 전에 이스라엘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이스라엘 나라와 예수님이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뜻을 이루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부모로서도 책임을 못하고 자녀로서도 책임을 못했다는 거라구요.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서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을 갈라 가지고 탕감하는 역사적인 시대에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로서 책임을 했으면 자녀들도 책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부모와 자녀가 함께 무엇을 완성해야 되느냐 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올 수 있는 나라를 찾아야 됩니다. 이 나라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이 기준을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 1차 7년노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성사시킴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부모 노릇을 할 수 있는 책임기 준을 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참부모로서 책임을 다한 승리한 터전을 따라서 자녀들도 그 나라를 찾아 세울 수 있을 때까지 이것을 안팎으로 하나로 만들어야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살아서 이루어야할 본래의 뜻을 완결짓는다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승리한 터전을 따라 자녀들이 그 터전을, 다시 국가적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데까지 닦아 나오는 것이 제2차 7년노정입니다. 그러므로 요 7년까지는 나라면 나라, 나라의 전체 분야까지 예수님 당시에 유대교가 반대했고 나라가 반대했던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기간에 해당 합니다. 본래 메시아인 예수, 즉 참부모가 갈 길은 개인이나 가정을 기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기반으로 하여 세계로 가야 할 길이었습니다. 이것이 본래의 메시아가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가야 할 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는 나라를 기반으로 하여 세계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참부모를 말하는 것이므로 참부모는 결국 타락하지 않은 이상적인 세계에서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 세계의 침범을 벗어날 수 있는 자리에서 전진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영적 국가와 실체적 국가, 영적인 세계와 실체적인 세계가 하나 못 되었기 때문에, 따로따로 갈라진 입장에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교회는 갈라진 이것을 영적으로 규합시키는 길을 지금까지 가려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영적으로 국가적 기준을 넘어서고 영적으로 세계적 기준을 승리하면 그 기반 밑에서 육적으로 국가적 기준과 육적으로 세계적 기준이 연결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지금이 어떤 때냐 하면 영적으로는 국가적 기준을 넘어서 가지고 세계로 연결될 수 있는 때입니다. 금년부터 이러한 때가 출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인 면에서 예수님을 중심삼고 반대되었던 기독교와 나라를 굴복시키는 놀음을 해 놓으면, 육적인 기준에서 그것을 빼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금년이 1973년인데 원래는 제2차 7년노정이 1974년에 끝나야 되는 것인데, 이 노정이 끝나기 전에 영적인 기준에서 실체적 기준을 연결시켜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육적인 국가적 기준이 연결만 되는 날에는 일시에 세계적인 기준을 연결시켜야 하는 뜻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에서 남북이 교류하는 문제라든가, 새로운 체제를 규합해 가지고 강화시키는 문제라든지 이건 모두 우연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예수님의 사상, 생활관, 세계관, 우주관을 전부 다 그 백성이 이어받았더라면 나라의 기준은 승리적인 기준으로서 수습될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제1차 7년노정의 승리적 기반을 이어받아 제 2차 7년노정에 서 있는 한국 식구들은, 완전히 이 7년 노정기간에 나라를 움직일 수 있는 사명을 다하게 된다면, 거기에서부터 세계의 운세는 일시에 연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선생님이 제일선에 서 가지고 국가적 기준에서 세계적 노정까지 가는 길을 닦기 위해서 지금 그 노정에 들어서 있습니다. 작년부터 이 3년간에 어떻게 해서…. 세계적인 대표의 나라가 미국이기 때문에, 이 미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 통일교회가 움직여 나오던 것을 어떻게 세계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기준을 닦느냐에 따라, 세계적인 3차 7년노정을 단축시킬 수 있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기준에서 우리가 국가적으로 승리한 기준에 서 있기 때문에, 예수님과 유대 백성이 하나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에 있는 여러분과 세계의 통일교회 식구들이 선생님과 완전히 하나만 되는 날에는, 제 3차 7년노정은 무난히 돌파할 수 있는 길이 열려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제 3차 7년노정이 끝나는 날에는 이 세계 앞에 통일사상이 주도적인 사상으로 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를 향해 가는 데 있어서는 선생님 혼자 못 갑니다. 한국에 있는 식구들과 하나되어 가지고 세계로 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언제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언제나 생각하면서 활동을 전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나라는 이 나라를 중심삼은 나라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닦아져 연결되어진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제 3차 7년노정까지 여러분이 세계적인 기반 밑에서 영육 아울러 하늘이 거느릴 수 있는 그 자리를 마련하지 않고는, 승리의 한 때와 승리의 날들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요. 생각할 수 없는 일 같지만, 사실대로 원칙대로 하나되는 날에는 하늘은 반드시 세계를 돌려 놓고야 말 것입니다. 여러분 탕감복귀라는 것은 전체를 대표해 가지고 조건이라도 성립되면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참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충신 열녀들이 재림부활한 실체, 그 이상의 책임을 감당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그 당시에 이루어야 할 씨족적인 최하의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책임을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개인으로 완성하고, 그 다음에는 가정을 가져 가지고 자기 씨족까지 건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예수님이 죽지 않고 가정을 가져 12제자와 70문도와 120문도를 거느리는 자리에 서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래서 통일교회에서 씨족복귀니 종족복귀니 하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루지 못한 것을 다시 이루기 위해서는 그 시대를 바라 보며 역사해 나온 수많은 조상들보다, 또는 그 이후의 기독교 역사를 통해 그것을 재차 수습하기 위해 지금까지 정성들여 나오던 수많은 조상들 보다도, 여러분들이 정성을 들이거나 일하는 면에서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연을 가지고 선생님과 여러분들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리 하여 국가를 지나 세계로 여러분들이 전진할 수 있어야만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영적인 국가기준을 중심삼고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 나왔습니다. 그러니만큼 우리들은 영육을 중심삼고 이것을 복귀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영육의 죽음을 당하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넘어가야 할 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만, 영적인 기준이 승리하는 날에는 자연히 육적인 기준도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이 서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희생하지 않고 이를 수 있는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바칠 것을 각오하지 않고는, 자기 일신을 희생할 각오를 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3차 7년노정이 끝나는 1981년대에 들어가면, 우리가 세계 어디에 가든지 양손을 벌리고 환영하고 아무리 떠들어도 그 누가 반대할 수 없는 세계를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2천년 동안 해 나온 일을 20년에 단축시켜 가지고 보다 차원 높은 기준까지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자는 것인데, 그것이 예수님이 죽지 않고 이루어야 할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불가피하게 이어받은 사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지금 선생님이 섭리의 뜻을 추진시키는 방향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대로, 공식 적인 단계를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 생전에 세계적 기준을 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넘어서야만…. 그런데 오늘 우리가 자랑하고 있는 하나님의 날은 우리 교회의 날이요, 부모의 날도 우리 교회의 날이요, 자녀의 날도 우리교회의 날이요, 만물의 날도 우리 교회의 날로만 있지, 국가의 날이나 세계의 날로 아직까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참부모의 날은 세계적인 대표적인 날인데도 불구하고, 그래 가지고는 이 자녀의 날도, 하나님의 날도, 만물의 날도 본래의 기준에 섰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된다구요.
그렇게 생각할 때, 이런 날을 이 소수의 무리가 지킨다는 것은, 지극히 분하고 원통한 일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합니다. 본래 천국은 하나님의 날을 맞이하고, 부모의 날을 맞이하고, 만물의 날을 맞이하고, 자녀의 날을 완전히 맞아 가지고 거기에서 살다가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이 천국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그런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지금 죽는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낙원보다 높겠지만 중간층에 가 머물게 되는 거라구요. 그게 원리인이 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생전에 어떻게 세계적 기준을 넘느냐 하는 문제는, 여러분과 선생님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요, 하늘땅의 문제요, 영계와 육계, 즉 전 존재세계의 문제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참 어려운 일이 생기게 된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우리 통일교회는 축복가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가정들이 협조해 가지고도 땅 위에서 이루지 못한다면, 가정들까지 수습하기 위해서는 옛날보다 더욱 큰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과거에는 혼자 왔다가 이루지 못하면 혼자 와서 재림부활을 협조할 수 있었지만 지금 시대에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본래 원리에는 가정을 중심한 재림복귀부활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이러한 크나큰 문제가 가로놓여 있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라도 영육을 중심삼고, 세계의 기준을 넘어섰다는 자리에서, 어떻게 조건적 기반이라도 남기고 가느냐 하는 것이 필생의 소원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놀음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세계적인 무대에 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한 나라가 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공산세계나 민주세계의 한 진영이 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어떠한 나라와 어떠한 진영을 희생시켜서라도, 오늘날 복귀역사에 참부모가 세계적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가정이 이 땅위에 있다가 영계를 거쳐 가는 데에 있어서, 세계적 조건을 넘어서서 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보다 큰 문제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책임을 오늘 참부모님이 짊어지고 왔기 때문에, 참부모의 가정이 아무리 희생하더라도 그 길을 돌파시키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이러한 길을 여러분이 협조하며 따라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 시대의 예수님과 그 제자들과 같이 서로서로가 하나 못 되는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가정을 중심삼고 우리는 보다 더 강력하게 하나돼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비판이고 무엇이고, 그러한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구요. 여기에서 못 가겠다고 돌아서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는 거라구요. 이 길은 갔다가 틀린다고 다시 돌아와서 가게 안 되어 있습니다. 이런 심각한 길을 따라가야 할 자리에선 것이 지금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신도의 운명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1981년까지, 제 3차 7년노정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완전히 중심과 하나되어 가지고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길을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과업을 짊어진 것입니다. 미국이란 나라 혹은 어떠한 특정한 나라가, 아니면 세계가 돌파할 수 없는 일을 우리는 돌파하겠느냐? 1981년까지 과연 그러한 무대를 닦을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이것은 보다 심각하고도 어려운 길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있고, 원리가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되기 마련인데, 여러분이 얼마만큼 선생님과 하나되어 나가느냐 하는 문제가 그것의 결정 여부를 좌우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가다가 쓰러질 수 있지만 선생님은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본래는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되었다면 예수님은 그런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연장된 것은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누가 탕감해야 되느냐 하면,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탕감해야 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기독교와 민주세계를 희생시켜서라도 이것을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유대교의 제사장. 최고 대제사장이나, 유대 나라의 왕의 입장을 대표할 수 있는 승리의 결정권을 갖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성립됩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여러분에게는 그런 자리는 꿈과 같은 자리라구요.
그러니까 그런 고개를 넘었다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는 여러분을 무조건 고생을 시키고, 무조건 복종시키는 놀음을 하나님은 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는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어려운 사정을 걸고 나오니 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자리에 서 있으면 생명이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이렇게 역사적으로 최고의 심각한 입장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혹은 하나님께서 수고하며 그런 길을 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자기 개인의 행복과 자기 가정의 행복과 또는 자기 나라의 행복과 자기 교단의 행복을 원하게 되면 하늘은 이것부터 들이칩니다. 그런 때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세계의 수많은 국가와 백성들은 그 코에 걸려 가지고 가정이 깨져 나가고, 친구지간이나 사제지간의 신의가 깨져 나가며, 국가관에 대한 모든 것이 깨져 나가는 대혼란 시대에 부딪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들이치면 그냥 맞고 있는 세계 사람과 우리는 작전이 달라야 된다구요. 달라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관점을 중심삼고 가야 할 우리인데도 불구하고, 세상을 그리워하고 옛날의 무엇을 사모하고, 옛날의 무슨 형제를 그리워하고 하는데, 그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늘이 치는 것을 따라가서는, 망할 수밖에 없다 구요. '나는 이래야 된다, 이래야 돼. 세계를 넘어가서 하늘나라로 직행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된다. 그것은 나 개인뿐만이 아니라 가정과 종족까지 끌고 가야 된다’하는 신념이 어느때나 사무쳐 있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종족을 거느리고 나라를 넘어서 세계로 못 갔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 길을 다시 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이 이루지 못한 것을 여러분이 이루는 자리, 예수님보다 나을 수 있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축복을 받는다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3년노정을 가야 되고 세 아들딸을 전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3년노정이 세상에서 시시하게 사는 그런 3년이 아닙니다. 제물로 가는 세 제자를 대표한 그런 제물적인 3년 생애를 통해서 바쳐져야만 갖출 수 있는 기준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만일 종족을 거느렸다 하더라도 국가를 넘어서서 세계로 갈 수 없습니다. 참부모가 와 가지고 미리 국가와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닦아 놓았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만일에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되면 그 영광의 나라에 들어간 그 가치를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이 이룬 것은 95퍼센트가 아니라 5퍼센트도 못 된다는 거예요. 결국은 참부모가 95퍼센트 이상의 사명을 이루어 놓았기 때문에 여러분이 100퍼센트에 해당하는 천국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지, 여런분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이 뭘 알아야지,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른다구요. 그렇지만 부모 앞에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어디를 가든지 그 부모와 같이 가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참부모, 참부모가 뭐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실감이 안 난다’할 지 모르지만 자기를 낳아 준 부모 이상으로 실감이 나야 된다구요. 또, 그 가정을 중심삼고 자기 가정보다 그 가정을 더 사랑하고 더 사모해야 된다구요.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를 자기가 태어난 나라보다도 더 그리워하고 더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게 될 때에는 여러분은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두 길을 바라는 입장인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를 낳아 준 부모에 대해서 어떠한 변명과 어떠한 참소와 어떠한 권력을 가지고 저건 네 부모가 아니다’하고 가르쳐 교육시킬 수 있느냐 이거예요. 자기 목이 잘려도 '아니다’하며 승리 하고 죽는 것입니다. 내가 굴복하고 죽는 것이 아니라구요. 내가 옳은 것을 주장하면서 옳은 자리에서 죽는 거라구요. 세상에서도 그렇거늘 참부모를 중심삼고 되어진 인간은 그 이상 되어야 된다구요. 이게 원리라구요, 이게. 선생님 말은 원리적이라구요.
여러분이 그렇게 됐느냐구요? 얼마나 행복하며, 얼마나 멋있는지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참부모가 바라는 가정과, 참부모가 바라는 나라와 참부모가 바라는 세계하고 내가 사는 가정과 내가 사는 나라는 절대적입니다. 그렇게 되는 자리다 이겁니다. '이것을 누가 내게서 갈라낼 수 없다. 여기에는 부정이 있을 수 없다' 고 해야 합니다. 그것은 얼마만큼 자기가 통일교회의 교인으로서 가치적이고 얼마만큼 참에 가까우냐 하는 것을 앎으로써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한 것을 다 하고 나서도 부족함을 느끼고 때리면서 잡아먹겠다고 해도 제물로서 '천번 만번 감사합니다’하는 그 길 외에는 갈 길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에서의 무서운 하나의 가르침이 무엇이냐? 그것은 '참부모’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도 무서워하는 말이요, 사탄도 무서워하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타락권내에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참부모를 중심삼고 볼 때에, 그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말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은데, 나왔기 때문에 심판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서니까, 하나님이 그분의 말도 들어 주는 것입니다. 또, 사탄이 왜 참부모라는 말을 두려워하느냐? 이 말을 믿고 따라가는 날에는 자기의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리고 파탄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지극히 무서운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놈의 사탄은 언제나 참부모의 가는 길을 막으며 쓰러지기를 바라고 나빠지기를 바라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이 길을 따라가는 데 얼마만큼 믿고 따라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구요. 여러분이 그런 첨단에 섰다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행동 하나를 천년 이상의 정성을 가해 가지고 감격하면서 가려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여러분의 갈 길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참부모, 부모의 날을 얼마나 정성껏 모셔봤으며, 자녀의 날을 얼마나 기쁨 가운데 환영해 봤으며,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던 우리가 얼마나 기쁘게 만물의 날을 맞아 봤느냐? 이래 가지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하루같이, 그것이 인류의 자랑의 날이자 하나님의 자랑의 날이요, 인류의 영광의 날이요, 인류의 부모의 영광의 날이요, 우리들의 영광의 날이요, 부모의 자랑의 날로서 이루어져야만, 이 땅 위에 비로소 천국을 완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날, 하나님이 거동하게 될 그날은 전우주의 하나님의 날과 통하는 것이요, 부모님이 기뻐하는 그날은 온 인류가 기뻐하는 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지상이나 천상이나 모두 천국화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우리는 이 길을 따라가야 할 필생의 사명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반대하는 사탄이 있으면 그 사탄을 정복해야 되고 이것을 반대하는 나라가 있으면 그 나라를 굴복 시켜야 되고 이것을 반대하는 세계가 있으면 그 세계를 굴복시키고 가겠다는 철석같은 신념이 앞서야 됩니다.
우리는 가야 됩니다. 승리의 날까지 전진만을 우리의 철칙으로 삼아 싸워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창은 생애노정에 이 길을 못 간다면 영원을 두고 가야 할 천추의 한을, 천만 년의 한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짧은 시간에 어떻게든 축소시키고, 단축시켜서 시련과 고통이 가중하더라도 가겠다는 신념이 복받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바라는 해방의 한 날을 위해서 우리는 가고 또 가야 되겠다고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이 한 자리를 연결시키기 위해 내가 먹고 자며 사는 것이요, 내가 하루 하루를 보내고 일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싸워 나가야만 되겠습니다. '나는 틀림없이 그 길을 가겠습니다’하고 결의를 하고 맹세를 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렇거들랑 우리 양손을 들어서 맹세하자구요.
사랑하는 아버님, 저희들의 전체를 지켜 주시옵소서, 영원히 영원히 저끄러진 이 길을 더듬어가는 노정 속에서, 항상 철없고 어린 저희들을 위해서 이 기준까지 가려 주기에 당신은 얼마나 수고하셨사오며 철없는 인간들을 이 기준까지 가려 주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들을 수습하여 이곳까지 이끌어 오신 그 노고 안에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이제 제 6차 하나님의 날을 맞이하였습니다. 아버지, 6수가 사탄수라면 7수는 하나님수이기 때문에, 6수를 넘어 7수로 향하는 금후의 날들이 아버지의 기도와 아버지의 위로 가운데에서 수습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 인간들을 불쌍히 보시는 아버지 앞에, 저희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 앞에 진정 이런 내용이 있는 줄은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가려 나가야 할 복귀의 길 가시밭길이 이렇게 엉클어진 것을 풀기 위해 무지한 저희들을 이끌고 당신은 얼마나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때가 되였기 때문에 미천한 자식들이 핍박을 받으면서도 아버님을 위해 일생을 살아 가야 되겠습니다. 부족한 저희 자신들을 생축의 제물로 다 바치더라도, 일생에 그 무엇을 남기지 않고 다 바치더라도 당신을 한할 수 없는 자식임은 틀림없습니다.
과거의 생활이 어떻게 됐건 철없는 저희였고 못난 저희였고 비참한 저희였습니다. 부모님이 가야 할 길이 이렇듯 수난의 길이요, 아버지가 가야 할 길이 이렇듯 슬픈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여, 저희는 천번 만번 죽더라도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을 하고 가지 않으면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없고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함과 동시에 이 나라와 세계가 책임질 수 있는 길이 좁혀진다는 것을 생각할 때, 밤이나 낮이나, 앉으나 서나 그것을 위하여 피곤한 몸을 이끌고라도 책임지며 가야 되겠다고 하며 앞으로 앞으로 가다가 쓰러지면서라도 가야 할 저희들의 발길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전한 말씀을 통하여 미국에 있는 식구들이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지도해 나온 책임자들이 책임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이 거대한 세계적인 무대를 올바른 궤도로서 유지시켜야 할 이 엄청난 사명을 놓고 당신의 채찍과 신뢰가 무서움을 느끼면서 가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은 사랑이시요. 영원하신 아버지인 것을 아오니, 모든 것을 이제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이 시간 아버지 앞에 손을 들어 맹세하였사오니, 당신이 여기에 행차하시옵고, 부족한 자리지만 당신이 여기에 임재하시옵소서.
저희들은 너무나 당당하였습니다. 저희들은 너무나 부끄러운 자신을…, 자신을 놓고 볼 때에, 얼굴도 들 수 없고, 몸도 가눌 수 없는 모습인데, 당당했던 과거의 그 모습을 백일하에 풀어 헤쳐 놓고 겸손히 겸손히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당신의 어려운 그 심정의 깊은 곳을 향하여 살아 드리자고 다짐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이 말씀과 더불어 내적으로 결심하고 결의하는 모든 심정이 천상세계의 수많은 영인들과 통하고, 지상세계의 통일식구들과 통하고, 지상세계의 수많은 기독교 신자와 통하고 만민과 통하여 당신이 원하는 데로 가려 갈 수 있는 승리의 길이 이제 현현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이 복되고, 이 시간이 복되고, 이해가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금후로부터, 아버지여, 저희의 가는 길 앞의 십자가가 제거되고, 영광과 승리와 찬양의 날을 맞을 수 있는 길만이 남아져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디 아버지 그러하셔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저희들이 수고하신 아버지를 진정으로 모시지 못했습니다.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그것을 원통히 여기면서 땀 흘리고 피와 눈물을 흘리면서 같이 싸우고 같이 생활하고 몸부림치며 이제라도 가겠다는 간곡한 마음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긍휼의 품에 다시 품어 주시옵고, 당신이 허락할 수 있는 영광의 심정을 지닌 자리를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을 기념하는 전세계의 수많은 만민 위에 축복하여 주옵고, 영계에 있는 영인들과 통일의 식구들, 이곳을 위하여 기도하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영광이 길이길이 임하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날의 말씀과 더불어 저희가 갈 길을 다짐한 모든 것이 당신의 소원 앞에 자랑이 될 수 있게끔 수습하여 주시옵시기를, 재삼 재삼 재삼 부탁 드리고 원하옵니다. 다시는 무정하게 변절하는 그런 자들이 되지 않고, 이제 이 미국 땅에 있어서 보람있는 세계 도성을 향하여 빛날 수 있는 통일식구들이 되기를 다짐하는 한 기간이 되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