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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 가는 인생길

일시: 1972.11.12 (일)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자리는 하늘과 땅이 바라보는 자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일체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모인 어린 자녀들을 당신의 기쁘신 자녀로 삼으시옵소서. 인간의 인연을 따라 모였을지라도 당신의 인연을 따라 그 마음과 몸이 바쳐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전국에 널려 있는 어린 자녀들이 마음으로 그리는 이 자리는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역군들이 와 보고 싶어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당신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마음이 그러한 줄 아옵니다. 아버지가 계시는 곳에 자녀들이 아니 있을 수 없고, 아버지가 가시는 곳에 자녀들이 따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사시는 그곳에서 자녀들이 고향의 이름을 갖고 살고 싶은 것이 아버지가 허락하신 인정이요, 또 천정인 줄 아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의 마음은 자나깨나, 슬픈 일이 있으나 기쁜 일이 있으나, 오고 가는 일체에 있어서 당신을 그리워할 줄 알고, 저희들은 당신과 더불어 행동하며 살아갈 줄 아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번 이땅 위에 태어나 사는 이 세상의 생활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을 중심삼고 일생을 그려 가면서, 당신이 허락하시고 당신이 원하시는 소원의 그 목적을 향하여 순응해 갈 수 있는 진정한 아들딸을 당신이 얼마나 찾고 계셨으며, 얼마나 바라고 있었는가 하는 사실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마음으로 더듬으면서, 허락하신 그 나라와 그 목적을 위하여 쉬지 않고 가시는 당신의 발자국을 따라 저희들도 쉬지 않고 엄숙하고 충실하게 그 길을 밟아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 자신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왔습니다. 흘러가는 역사시대에 하나의 흐름을 따라 모든 인류는 흘러왔고, 또 흘러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흐르는 물줄기와 같이 저희의 한 인생도 자기의 방향을 따라 자기 마음대로 흘러가는 사람도 있겠고, 주류를 따르기 위해서 방향을 달리해 가는 입장에 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흐르는 물줄기에는 반대로 갈 수 있는 길은 있을 수 없지만, 인생의 행로 앞에는 반대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의 길까지도 부정하고, 자기가 서 있는 자리까지도 부정하고, 자기가 태어난 인연까지도 부정하는 일이 수없이 많은 것을 바라보게 되옵니다.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여야 할아버지의 사정이 인류를 거두기 위한 사정이요, 만민을 구원하여야 할 사정이다 할 때 이 모든 사람을 가려 줘야 할 책임을 저희들 자신도 하지 못하고, 저희 사회도 하지 못하고, 저희 나라도 하지 못하고 이 세계의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당신만이 이것을 책임져야 된다는 것은 너무나 과중하고 너무나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이 그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역사시대를 통하여 수고해 나오신 당신 앞에 빛을 지우지 않기 위하여 오늘도 몸부림치오니, 이 갸륵한 자녀들을 어여삐 보시옵고 기억하시사, 이들에게 천배 만배 복을 베푸시사 이 시대 앞에 이들의 가는 발걸음이 아버지를 따라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남겨진 사명을 위하여 순응하고 충성하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 단상에 섰사오니 이 자리를 지켜 주시옵고, 혹시 다음 주에 제가 이 자리에 있지 못할지라도 아버지께서 당신의 뜻과 더불어 길이길이 이 자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당신을 위하고 뜻을 높이기 위해 다시 만나는 그때까지 일체를 같이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이제 국내에 있는 어린 식구들이 모두 나서서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이 자식 역시 해외에 나가서도 아버지께서 남기신 복귀의 사명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체면과 위신을 다 집어치우고 달려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늘이여, 이끌어 주시던 뜻을 알았기 때문에 가고자 하는 이 길을 당신이 지켜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이것은 그 누구의 영광을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누구의 뜻을 세우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슬프고 불쌍하신 하늘 아버님의 그 뜻과 그 목적과 그 사명을 촉진시키고, 그 환경을 개척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가야 할 걸음이오니 아버지께서 축복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가는 길이 아무리 험하다 하더라도 나라를 찾아가는 길이요, 세계를 찾아가는 길이요, 생애를 넘고 가지 않으면 천주적인 승리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는 길이기에, 원리의 목적, 원리의 길은 당신의 창조이상의 그곳을 향해 재촉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무자비하고 매정한 일들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당신의 넓고 큰, 높고 귀한 은사를 내려 주기 위한 단 하나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마음에서 나온 불가피한 사정인 것을 생각할 때, 죽는 자리에서도 저희들은 저희 자신을 중심삼고 슬퍼할 수 없고, 희생되는 그 자리에서도 자기를 중심삼고 살필 수 없는 복귀의 운명길인 것을 아옵니다. 그러기에 저희 들은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가야만 되겠습니다. 가다가 말 것이 아니라, 가고 가고 또 가야 할 길이 얼마든지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청춘시대로부터 전체의 일생을 다 바쳐서라도 가지 않으면 안 될, 육신을 갖고 사는 이 짧은 세상을 빛나게 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만물을 바라보고 저희의 마음을 위로해 달라고, 하늘땅을 바라보고 당신의 뜻을 받들게 해 달라고, 인간은 알지 못하지만 지으신 피조세계는 알아줄 것을 바라는 그 고독한 길이 쌓이고 쌓일지라도 가야 할 그 길을 위해서는 저희들이 서슴지 않고 가기를 맹세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더우기 이번 달 1972년 후반기를 당신이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 나라가 거쳐가야 할 방향에 있어서 당신이 허락하신 뜻대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인간들이 원하는 뜻대로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저희의 마음이오니, 당신이 다년간 준비하신 역사적인 목적을 위해서 당신의 뜻으로 수습할 수 있는 하나의 나라와 민족을 새워 주시옵소서.

남북이 아무리 엇갈려 있다 하더라도 당신이 준비해 주시고 당신이 지도해 줄 수 있는 새로운 목적의 세계를 향하는 그 길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고, 그 누구도 그 일을 반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때까지 남아져 탕감의 조건을 세워야 할 사명을 어떠한 종단보다도 어떠한 종교보다도 우리 통일교회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버지, 금후의 갈 길을 당신은 아시오니, 허락하신 뜻과 경륜대로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앞에 부복한 이 어린 자식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가는 역사노정의 한 시대를 보내고 새로운 시대를 맞을 적마다 저희들은 투쟁의 역경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탕감의 제물적 조건, 즉 피를 흘리는 수난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전진할 수 없는 복귀의 역사인 것을 알고있습니다.

아버지, 오늘부터 서울을 위주하여 경기도와 강원도 식구들이 수택리에 모이고 있사옵니다. 지금 모이고자 하는 당신의 자녀들, 또 그곳을 향하여 움직이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 당신을 위한 갈급한 몸 마음에, 충정에 사무치는 흠모의 심정이 충만하여 오고 가는 걸음 걸음이 당신이 원하시는 뜻 앞에 합당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모여진 무리 가운데 당신의 영광이 드높이 드러나시옵소서. 당신의 사랑만이 임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2일, 13일, 14일, 15일 지방을 순방하는 길에도 아버지, 같이하여 주옵소서. 이번 기간에, 당신의 뜻을 놓고 결단을 지어야 할 최후의 결의의 때가 저희 앞에 다가왔습니다. 누가 더 이 민족을 사랑하느냐 하는 조건을 세우고 넘어가야 할 때이옵니다. 이 삼천만 민중보다도, 아니 오천만 민중보다도 그 어느 주권자보다도 당신을 더 사랑하고 넘어가야 할, 저희에게 분부한 최후의 충성의 도리가 저희들에게 남아 있사옵고, 저희들이 우위에 서서 당신의 권위를 드러내지 않고는 안 되는 중차대한 시점이 저희 목전에 다가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여, 저희들을 인도하시옵고, 허락하신 아버지의 뜻 가운데 다시 만나는 그때까지 있는 정성을 다해 하늘의 결실을 맺어 빛낼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허락하신 뜻대로 따라가기를 원하옵고, 인도하시는 곳으로 순응해 가면서 당신의 승리의 한 날을, 저희의 자랑이요, 역사의 자랑이요, 시대의 자랑이요, 미래의 자랑뿐만이 아니라 당신의 자랑으로 세울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달리고 또 달리고 전진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지금까지 기성교회와 반목질시하는 자리에서 나왔사오나, 다시 그들과 합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워 다시 문을 열어 주게 하시어서 당신의 영광의 때를 맞이할 수 있게끔, 아버지,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가야 할 그 길이 국가적인 시대를 넘어 세계적인 시대로 넘어가는 이때에, 이 국가 전체가 아버지 뜻 앞에 방향을 갖출 수 있게 하는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가인과 아벨이 반드시 탕감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았사오니, 그 길을 당신이 가려 주시는 대로 따라갈 수 있는 승리의 가인 아벨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남한 전체를 움직이고 남한을 통하여 그 북한을 이끌어 이 나라가 아담 국가로서 아시아의 새로운 주도적인 영광의 자리에 서서, 온 천주 앞에 새로운 방향을 향해 힘차게 전진할 수 있는 승리의 나라, 승리의 백성, 승리의 국토가 되기를 얼마나 바라 나왔습니까?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하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여 왔고, 또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저희들이 한다고 하는 그 사랑이 너무나 부족하고 너무나 미급한 것을 잘 알고 있는 저희들에게 있어서는, 충의 도리를 말하기에 부끄럽고, 효의 도리를 말하기에 부끄러운 모습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의 심정만은 당신을 향하고, 당신을 위해서 살고, 당신을 따라가고자 하며, 일편단심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을 기억하시는 아버지여, 저희들을 버리지 마시옵고, 향하는 길이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승리의 길이 되게 하시옵고, 당신과 더불어 의논하고 자극 받으면서 갈 수 있게끔 지도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아버지가 뜻하신 대로 저희들을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 개인을 중심삼고 보나, 혹은 한 국가를 중심삼고 보나, 전체의 세계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 개인이나 국가나 세계가 자기가 있고 싶어서 있게 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들이 원하여 그런 나라를 형성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은 원치 않았지만 옛날 자기 선조들로부터, 혹은 우리 인류들이 원치 않았지만 우리 인류역사가 그렇게 된 그 결과의 자리에 서게 될 때, 자연히 그 나라를 사랑하고, 자연히 그 세계를 생각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보다 차원 높은 원인에 의해 태어난 존재

우리의 개인을 두고보더라도 여러분이 이 땅에 나고 싶어서 난 것이 아닙니다. 부모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부모들이 그 백성이면 백성으로서, 혹은 인류면 인류로서 이 땅 위에 존속하면서,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필연코 그 대를 이을 후대가 없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이것이 천륜과 인륜이 가는 길이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 우리 개개인도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개인이 있기 전에 누가 있느냐 하면 부모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있기 전에는 조상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추구해 올라가게 되면 결국은 우리 대한민국이면 단군 조상을 지나 최초의 인류의 시조인 아담 해와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볼 때, 자기들이 원해서 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어떠한 원인자가 있어 가지고 그 원인자의 목적과 원인 자와의 관계를 잇기 위해서 오늘 인간이 태어난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은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내가 원인이 되어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러한 전면적인 역사관이나 혹은 어떠한 개개인을 통해서 보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도 보다 차원 높은 어떠한 원인을 따라서 태어난 것입니다. 또, 내가 난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 가는 것보다도 보다 차원 높은 원인을 따라 나 자신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그 원인이 추구하는 목적 혹은 결과의 자리에 까지 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 원인이 바라던 소망대로 진전되고 발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에, 그 진전하는 과정의 생을 지니고 있는 우리 개개인은 반드시 그 과정을 거쳐 가야 되고, 그 목적의 자리까지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의 나, 그러한 가운데의 우리로 인연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볼 때 나는 우리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한 개인이라고 하는 것은 전체를 대표해 있다는 것을 언제나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의 소원도 어떠한 원인과 통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개개인은 너나할것없이 전부 다 완전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불완전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볼 때 자기의 모든 생김새를 보고 자기 나름대로 나는 내 얼굴이 이렇게 생겼으면 좋겠다, 혹은 눈은 이렇게 생겼으면 좋겠다, 혹은 코는, 입은, 귀는, 내 전체의 일신은 이렇게 생겼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내 모습에 대해서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소원을 갖고 있음과 동시에, 외적인 모습 외에도 내적인 내 마음의 모습에 대해서도 역시 자기 나름대로 바라는 그 무엇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면 좋겠고, 내 마음이 가고자 하는 이러이러한 곳을 가보면 좋겠다, 이러 이러한 인물이 되어서 이러이러한 가치를 지닌 중심존재가 되면 좋겠다 하는 이러한 소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소원도 나라는 것을 중심삼고 생각하지만 나에게 미쳐지는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소원은 반드시 원인과 통해야 되고, 그 원인이 가야 할 뚜렷한 목적을 향하는 불변의 하나의 길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길과 더불어 항상 보조를 맞춰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마음이 곧고 바르다는 그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들이 사람 사람을 대해서 사람은 곧은 마음을 가져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른 마음을 가져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 곧다는 기준이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아직까지 확정지어 놓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르다는 그 기준을 어디에 두고 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라고 하는 개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바르다거나 혹은 곧다는 말을 하기 쉬운 것이 오늘날 습관화된 우리 인간의 생활인 것입니다.

그 바르다는 것은 어디서부터 기준이 되어야 하느냐 하면 그것은 원인에서부터 바른 금을 그어야 될 것입니다. 그 원인으로부터 바른 금을 긋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과정을 거쳐 목적점에까지 직선이 되어야 합니다. 직선은 무엇이냐 하면 두 점을 통하는 선이 직선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인을 통한 과정을 거쳐 결과로 미쳐질 수 있는 하나의 바른 선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선을 긋고 비로소 바른 그 선 가운데 곧다고 하는 것을 세워야 됩니다.

사람은 바른 사람이 되고 곧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곧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서 있는 것을 말합니다. 나무가 곧다, 혹은 깃대가 곧다는 말을 우리가 하고 있는데, 그 말은 뭐냐? 바르고 곧다는 말은 곧 수평선상에 90각도를 중심으로 사방을 갖추어 360도형으로 연결되는 그 한 점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바른 것 곧은 것을 연결시키면 자연히 하나의 십자형을 그리게 됩니다. 바르고 곧다는 그것을 연결시키면 하나의 사각형도 되고 원형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입체로 표시하면 구형이 되는 것입니다. 중심으로부터 동서남북으로 미쳐지는 모든 것이 자유롭게 어디에서나 똑같다 이거예요. 어디에서나 틈이 없다 이거예요. 어디에서나 완전하다 이겁니다. 그것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와 같이 자기를 중심삼고 볼 때에 동쪽으로 미쳐지는 한계선과 서쪽으로 미쳐지는 한계선이 똑같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위면 위로 아래면 아래로 미쳐지는 그 한계선이 똑같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원형을 닮은 것이 아니냐. 모든 것은 구형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아무리 세계가 크다고 하더라도, 동서남북의 방향이 크다고 하더라도 내가 중앙에 서 있으면 그 한계점은 나를 중심삼고 결정됩니다. 그것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관계를 맺고 싶은 것이 우리의 인간의 마음입니다.

모든 것은 구형을 따라 움직인다

동쪽이나 서쪽이 가려져서, 정착되어서 동방이면 동방만으로 있기를 바라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좋으면 반드시 돌게 마련입니다. 가만히 있어 가지고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춤을 춘다든가 노래를 한다든가 할 때에는 벌써 얼굴빛이 화합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웃을 때에는 눈으로부터 코로부터 얼굴 전체가 웃게 마련입니다. 얼굴이 웃게 되면 그 얼굴만 웃는 것이 아니라 사지백체가 거기에 서로서로 화합해 가지고, 서로서로 화동해 가지고, 대응해 가지고 전체 일신의 모양이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항상 우리들의 생활 가운데에서 잘 아는 바입니다.

사람이 기뻐할 때는 마음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신이 기뻐하는 것이 아니냐. 또 슬퍼할 때는 마음만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몸도 슬퍼 하는 것이 아니냐. 그 몸도 전체가 슬퍼하는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 개인의 기쁨은 개인의 기쁨만이 아닌 것을 우리가 생각할 때, 그 슬픔과 기쁨은 전세계와 더불어 인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인과 결과가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과정을 연결시켜 가지고 그 목적이 성사된다고 하게 되면, 그 과정에 있는 하나의 모습, 하나의 표시체, 하나의 행동은 그 과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원인에 영향을 미쳐야 되고 결과에 영향을 미쳐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좋은 것이 있으면 '아, 이거 좋다!' 하며 그것으로 끝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을 볼 때 좋은 것은 영원히 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좋았기 때문에 내일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그리하여 일년, 십년, 생애 전체가 좋기를 바라는 그 소원이 있는 것을 볼 때에, 그 좋다는 것이 일시적인 한계권내에 머물기를 바라고 있지 않는 사실을 우리가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일생도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한 때를 요구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환경에 제한된, 어떠한 틀에 잡힌, 어떠한 한계점이 남아질 수 있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넘어서서 무슨 일이거나 동서남북으로 전체 앞에 미쳐질 수 있는 기쁨과 인연맺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우리 자신들이 느끼고 체험하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니냐.

공적인 삶만이 역사와 더불어 영원히 남아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쁨은 오늘의 기쁨만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기쁨은 어디까지나 영원히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슬픔은 영원히 연결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슬픔은 빨리 청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쁨을 남기고 슬픔을 청산지어야 되기 때문에 여러분이 자기의 일생 가운데 남아지는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세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냐 하면 제일 기뻤을 때, 제일 슬펐을 때, 제일 어려웠을 때, 이렇게 우리는 세 가지를 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려웠다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어려움 가운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 자신을 위해 어려웠던 일, 나라라든가 하는 전체, 전체를 위해 어려웠던 일이 있습니다. 자기 개인을 위해서 한 어려웠던 일은 개인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와 인연을 맺을래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 내 개인을 넘어서서 전체를 위해서 어려움을 당했다면 그것은 전체와 더불어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결국은 애국자들은 뭐냐 하면, 자기 개인의 어려움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전체의 어려움을 해결짓기 위해 개인이 그것을 책임지고 나섰던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겪는 어려움은 전체를 대표한 어려움이기 때문에 전체와 더불어 인연맺게 하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애국자 가운데에서 누구보다도 더 많이 고생한 사람일수록 더더욱 애국자가 되는 것입니다. 효자면 효자도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를 위해서 어려운 자리에서 신명을 다할 수 있으면 그 자리가 비참하면 비참한 자리일수록 더 높은 효의 가치가 드러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모든 고통이라는 것은 두 종류가 있는데, 개인에 한한 고통은 개인으로서 사라져 버리지만 전체를 위해서 당한 고통은 영원히, 그 전체가 없어질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고 전통을 남기려고 하고, 세계면 세계의 역사 앞에 인류들이 따라가야 할 전통을 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전통은 어디에서 세워지느냐 하면 공적인 어려운 자리를 거치는 데에서 비로소 역사적 기준이 설정되어 나오는 사실을 부정할 도리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만민을 위하여, 보다 참을 위해서 공적인 전체 앞에 자기의 생명 전체를 투입하여 조금치의 자기도 부정하고 간 그런 어려움의 자리는 온 인류가 그 사람을 추모하지 않고는 지나갈래야 지나갈 수 없는 하나의 원점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들은 자연히 역사시대의 추모의 대상으로서 후대 인류가 가야 할 전통의 길을 남기고 간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생살이에 있어서 남는 것은 기쁜 일, 슬픈 일,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인생살이 가운데 남는 것이 그런 일들이라면 그런 인생살이를 세계 만민과 공동적으로 합하여 연장시켜 놓는 것이 우리의 인류역사이기 때문에, 인류역사에 남는 일들은 어떤 것이냐 할 때, 이것도 우리 인간에게 남아지는 것과 꼭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역사과정에 가장 오래 남아지는 것은 어떠한 것이냐? 지극히 어려웠던, 역사시 대에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사건들이 가장 오래 남아지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을 두고 볼 때, 그 다음에는 어떠한 것이 남아지느냐? 제일 슬펐던 일입니다. 기가 막히게 슬펐던 일이 우리 일생에 잊혀지지 않고 남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시대에 지극히 슬펐던 일은 남게 마련입니다. 그 남는 것은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슬퍼했던 일이 아니라 공적으로 슬퍼했던 일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간 사람들이 역사와 더불어 남는 것입니다. 요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을 중심삼은 어떠한 슬픔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자기 개인의 일생에 남아질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자기 일생과 더불어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공적인 슬픔을 갖고 가는 사람은 자기는 죽더라도 세계역사와 더불어 남더라 이거예요. 이것은 불가피한 사실이예요. 세계 인류를 위하여 그 세계 인류의 슬픔을 대신 책임지고 자신의 희생을 각오하면서 악한 세계의 슬픔의 여건을 제거시키기 위하여 싸움을 하다가 죽어간 사람들일수록, 죽는 데에서도 자기를 잊어버리고 비참 하게 죽어가는 사람일수록 그는 역사 시대의 슬픔을 대표할 수 있는 대표자로 남아진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예수님과 같은 양반이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다음은 무엇이냐? 기쁜 일이 남아집니다. 여러분의 일생에 있었던 기쁨이 남아진다 이거예요. 대다수의 인간들은 자기 개인의 기쁨을 생애의 표준으로 삼거나 혹은 생활의 지향선으로 삼고 있지만 우리의 인류역 사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기쁨을 중심삼고 살아간 그 기쁨은 남아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개인의 일생이 끝나게 될 때 그것으로 흘러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이 세계 인류를 대표해서 기뻐할 수 있는 그 자리를 추구했다면, 또 그 자리를 남겨 놓기 위해서 기쁨의 한 생활 형태를 갖추어 갔다면, 그것이 공적인 생활이면 공적인 생활일수록 그 기준은 인류역사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은 양반들은 이 땅에 와서 누구보다도 고생을 했고, 누구보다도 슬픈 생활을 했지만 그 마음 가운데는 기뻐하려고 했던 그 기쁨이 인류와 더불어 있기를 바랐고, 역사 이전부터 역사 이후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기쁨이 미쳐지기를 바라고 또 그것을 추구해 나왔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생명을 다 바쳤고, 그것을 위해서 갖은 희생을 다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하나의 목적을 위해 예수님이 일대의 지성을 투입했기 때문에 그 목적의 세계는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먼 미래의 시대에 있어서 먼 후대의 여명의 한 때를 맞이할 수 있는 역사시대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인류와 더불어 그러한 길을 추구해 나왔기 때문에 하나에서 둘, 둘에서 계속 수를 가하여 하나의 씨족으로부터 하나의 민족을 넘어 하나의 세계적인 기독교 문화권을 형성해 나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죽은 예수님이 힘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죽은 예수님이 그 길을 수습해 줘서도 아닙니다. 천륜이 그렇고 하나님이 있는 한 그렇게 안 될 수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은 있는 것이요,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기쁨의 그 뜻을 바라보며 노력하다가 죽어갔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보다 나을 수 있는 한 목적점을 향해 가고 있다

이렇게 볼 때에, 가고 오는 모든 인생길을 단적으로 결론짓는다면 두 길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이 가는 길과 세계가 가는 길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물론 개인이 가는 길과 세계가 가는 길은 사람이 나면서부터 같아야 됩니다. 나면서부터 같아야 되고 살아가면 서도 같아야 되고 저세상에 가서도 같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길은 바른 길이 될 것입니다.

어느누구나 출발은 같은 원점에서 했고 가는 길은 한 길밖에 없기 때문에…. 기차로 말하면 출발역에서부터 한 레일을 통해 목적지까지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어차피 그 길을 가기 마련입니다. 그런 길을 갔더라면 인간은 원인에서부터 과정을 거쳐 목적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다 갈 것입니다.

그 목적은 슬픔을 찾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이는 필시 보다 나은 그 무엇을 바라는 목적임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살던 사람이 부산을 간다고 할 때, 왜 가느냐 하면 그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가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나쁘기를 바라서 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 거리가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희망이 부풀어 오르게 마련이고, 자기가 최후의 결단을 지어 가지고 승리의 가치를 다짐지을 수 있는 희망의 시간이 가까와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류역사도 역시 정상적으로 출발에서부터 과정을 거쳐 목적의 종착점까지 향해 가는 길에 섰다면 거기에는 고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가면 갈수록 지나가는 모든 자연 환경이라든가 거쳐가는 데에 나타나는 그 모든 여건들이 자기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 슬픔의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과 더불어 내일의 기쁨을 맞을 수 있는 그 목적을 위해 항시 기쁨의 자극이 되고, 비교의 가치를 수습할 수 있는 좋은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의 인생살이라는 것은 올바른 목적을 향해 가는 그 길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부산을 가게 되는 그 과정에는 가면 갈수록 슬픔이 아니라 희망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희망의 순간이 다가오는 그것이 크면 클수록 그 큰 주체 앞에, 그 목적 앞에 거기에 관계되어 있는 모든 외적 인연, 내적 인연은 기쁨의 조건으로 등장해야 쉽니다. 내가 그곳에 가게 되면 지나온 때에 있어서 인연된 사람, 즉 아무날 서울이면 서울에서 만났던 그 사람도 내 목적을 이루는 지점, 부산이면 부산 그 종착점에 도착할 때 그 사람이 나와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기쁜 일에 같이 동참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걸 볼 때, 정상적인 목적, 바른 목적을 추구하는 자리에서 자기가 향해 가는 그 목적의 자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것을 전체에 인연 맺어 가지고 자기가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 동참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와 같이, 목적의 세계를 향해 가는 데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목적의 세계가 점점 이루어지면 이루어질수록, 그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가면 갈수록, 자기에게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은 좋은 목적이면 목적일수록 그것을 축하해 주기를 바라고, 축하뿐만이 아니라 좋은 잔치라도 베풀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우리 인류는 그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것을 목표로 출발해 가지고 전진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만일 우리 인류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최후에 맞이해야 할 그 목적점에 임하게 될 때에는, 우리는 틀림없이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날을 위해서 우리는 참고 나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여행이 지루하더라도 그 지루함에 비하여 그 이상의 목적의 결과가 나타나게 될 때는, 지루함도 기쁨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우리의 인생살이가 아무리 험하고, 아무리 비참하고, 아무리 괴롭다 하더라도 그 이상의 가치적인 기쁨을 느낄 수 있고 목적 성사를 다짐지을 수 있는 길이 틀림없다고 하면, 가는 길이 고되면 고될수록 모든 무리가 그 목적점에 도달하는 순간에는 '이제는 다 됐다. 이제는 다 왔다' 하는 공통적인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냐. 그 순간이 되면 될수록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오늘날 이 세계도 반드시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가는 것이 아니냐.

오늘날 인류역사의 종말은 어떠한 위치에 놓여 있나

우리가 원리에서 배웠듯이 모든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됩니다. 존재하기 위한 선행 요건이 운동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거예요. 운동을 하려면 반드시 힘이 있어야 됩니다. 그 힘은 혼자서는 나을 수 없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하는 데에서만이 힘이 나온다 이거예요.

사랑의 힘도 역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등 모든 사랑도 주체와 대상이 올바로 정면으로 대해 가지고 서로 마음이 일치되고 사정이 일치되고 소망이 일치되는 데 있어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네 목적이자 내 목적이 될 수 있는 공동 목적 일체점을 결하는 데 있어서 사랑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요, 사랑의 이상도 그것을 기점으로 해서 차원을 높여 그 각도를 가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인 것을 미루어 볼 때, 오늘날 인류역사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냐.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최후의 목적점에 다다를 때가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절망에 부딪힐 것이 아니라, 희망에 부딪혀야 할 것이 아니냐.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정상적인 목적을 알고 출발해 간 사람은 희망이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목적을 모르고 출발해온 사람은 그 끝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자기의 전후를 가리지 못하고 자기의 위치를 확정짓지 못하고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고민에 부딪 쳐야 되는 것은 정상적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인류역사의 종말은 어떠한 위치에 놓여 있느냐? 불안이냐, 희망이냐? 두 글자를 놓고 볼 때 불안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희망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개인을 두고 봐도 그러하고, 민족을 두고 봐도 그러하고, 국가를 두고 봐도 그러합니다.

더더욱이나 우리 대한민국을 두고 보면 남북이 엇갈려 있는 정세에서, 물론 지금 적십자회담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 귀추가 어떻게 될 것이냐? 우리가 희망하는 대로,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대로 귀결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불행한 자리로 귀결될 것이냐? 둘 중의 하나로 귀결해야 할 것입니다. 어차피 그 운명의 귀결점은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가면 갈수록 그 어떠한 방향이 나타나게 될 것인데 온 민족, 온 인류 역사가 기뻐할 수 있는 곳으로 귀결되면 그것은 이상이겠지만 그렇게 귀결되지 못할 때에는 불안한 것입니다. 불안뿐만 아니라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안은 비참과도 통하는 것이요, 실패와 통하는 것이 아니냐. 불안은 절망이요, 사망과 통하는 것이 아니냐. 희망은 소생과 통하는 것이요, 모든 발전과 통하는 것이요, 승리와 통하는 것이요, 흥함과 통하는 것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전세계는 불안과 희망의 초점을 향하여 부딪쳐 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희망으로 남아지느냐, 불안으로서 남아지느냐? 어차피 둘 중의 하나가 남아져야 할 세계의 정상이 우리의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개인과 더불어 세계로 통할 수 있는 일로가 되었습니다. 또한 가정과 더불어 세계로 통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고, 국가와 더불어 세계로 통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전세계가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누구나 희망의 자리에 서 있으면 좋겠는데, 반대로 불행의 자리에 서 있다는 결론을 누구든지 내릴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이 세계를 타개할 수 있는 길은 비약과 초월하는 길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인류역사가 정상적인 어떠한 희망을 가진 동기로부터 출발하고 과정을 거쳐오지 못 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 아니냐. 와 보니 불안이요, 와 보니 파탄이요, 와 보니 절망인데, 이제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여기에서는 정상적인 행동이나 정상적인 사고방식 가지고는 이 환경을 타개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여기에서는 비약과 초월이라는 두 글자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두 명사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비약하여 어떠한 희망의 피안의 세계로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초월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환경을 밟고 초월해 올라가야 됩니다. 여기에서 뒤로 후퇴하거나 이 자리에 정지해서는 안 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는, 하나의 인생체가 굴러가는 길 앞에 그야말로 거대한 암산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어서 이것을 막을래야 막을 수 없는 입장에 있게 될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것을 피하는 길은 도약입니다. 비약하는 길입니다. 초월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같이 비약하면 좋겠지만, 초월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 이거예요. 우리 인간은 제한된 몸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운동법칙에 있어서 가속도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가는 길을 그냥 그대로 스톱 시키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 전진해 오는 물체에 갑자기 브레이크를 걸어…. 이런 형태로 정면적으로 다가오는데 막게 되면 깔려 죽지만, 그 반대로 이런 형태로 다가오는 무엇이 있다면, 거기에는 내가 싫더라도 비약할 수 있는 길이 있게 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러한 인간을 바라보고 이것을 급하게 구해 줘야 되겠다…. 지금 전부 다 절망이요, 전부 다 파탄이요, 부패해 있는 인간을 구해 주어야 할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 경사진 여기에 다리를 놓고 뻗어 나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운동이 벌어져야 될 게 아니냐. 그러려면 그 다리는 개인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진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진 그런 다리를 놓기 시작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개인을 이기고 가정도 이겨야 됩니다. 가정을 이길 수 있는 다리를 놓아야 됩니다. 그 다음엔 국가를 이길 수 있는 다리를 놓아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세계를 이길 수 있는 다리를 놓아야 됩니다.

이 거대한 물체가 가속도로 다가오는 이 마당에 여기에 걸릴 수 있는 너슬너슬한 것이 부닥뜨려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혜로운 사람은 될 수 있으면 깔리더라도 한 곳만 꺼풀이 벗겨지든가 조금 상처만 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판자 모양 배밀 이해 가지고 넓적하게 누워 있다가는 깔려 죽을 것입니다. 이럴 때는 면적을 좁게 하여 한 면을 중심삼고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연구를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런 생각도 할 수 있다구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반드시 끝날에는 그런 일을 할 것이 아니냐.

여러분 개개인이 큰 길을 편안하게 달려가기 위해서 바퀴를 달고 레일을 놓았다면, 바퀴가 레일에 닿자마자 레일을 타고 넘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것은 힘들 거라구요. 그러니까 할수없이 한 면의 방향을 가려 가지고 그것을 거쳐 나갈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만일 손바닥이 몸뚱이를 마음대로 지지해 가지고 밀고 나갔다면 손은 없어지더라도 그 몸뚱이는 남아질 것이 아니냐. 여러분의 다리라면 다리를 중심삼고 몸뚱이 전체를 지탱해 가지고라도 넘어갈 수 있으면 될 것이 아니냐. 그런 길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뚱이에 레일을 달지 않았다구요. 그건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자신의 사지백체를 중심삼고 볼 때, 몸뚱이 전체를 들고 남을 수 있게끔, 전체를 지지할 수 있게끔 부분을 훈련시켜 놓으면 될 것이 아니냐. 몸뚱이가 부분적으로는 상하지만 전체는 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몸뚱이의 한 부분 부분이 전체를 지탱할 수 있게 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만일에 이것을 거꾸로 집어넣으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탄은 거꾸로 집어넣습니다. 사탄은 전부 반대입니다. 들어오는 놈들은 예외없이 죄가 있는 놈은 전부 다 옥살박살이다 이거예요. 그것은 반대로 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아요. 이렇게 나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그 길은 어떠한 길이어야 되느냐? 개인만큼 커서 되겠어요? 세계 인류면 세계인류보다 더 커야 될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불평하지 않습니다. 인류만큼 똑같아 가지고 '아이고, 저 사람은 왼발로 걸어가지 않는데 나는 왜 이래? 그렇게 되면 안 된다구요. 가고도 남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놔야 됩니다. 그 길은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거쳐 국가와 세계 전체가 거쳐갈 수 있는 길이 되어야 될 것이 아니냐. 어차피 그 길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혜로운 사람이나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의 단체면 단체를 거기에 대비하여 하나의 배를 만들든가 차를 만들든가 해서 하나님이 미리 준비를 시킬 것이 아니냐. 그러한 것도 있을 거라구요. 저 앞 길에는 반드시 이런 것이 있기 때문에 너희들은 미리부터 거기에 대비하여 이러이러한 준비를 하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정신을 차려 하나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만약 무슨 차 같은 것을 만들어 그곳에 넣는다 해도 거기에 들어가서는 싸워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전부 다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넘어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자리를 초월해야 됩니다. 비약하여 그 자리를 극복해야 됩니다. 전부가, 조종하는 사람으로부터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모두 그 순간만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공동운명에 사로잡힐 수 있는 역사적인 사건

여러분들은 아폴로 11호가 달나라에 갔을 때 텔레비젼을 봤지요? 세명의 우주 비행사가 달에 첫발을 내디디려고 하는 그 순간에는 세계가 아마 역사이래로 처음으로 하나로 통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순간만은 하나님도 관심을 두고 내려 봤을 것이고 영계에 간 수억 영인들도, 영인들은 그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지만, 숨가쁘게 보면서 '야, 요녀석들 봐라' 이랬을 거예요. 그때는 통일이 되었을 거라구요. 뱃속에든 아기들까지도 보고 싶었을 거라구요. 안 그래요? 그때만은 하나됐을 거라구요, 그때만은.

달나라 가는 데도 이와 같이 전부가 하나가 됐다면 오늘날 타락한 인간 세상에서, 타락한 인간 세상에 떨어진 인간들 가운데 도약이니 초월이니 해 가지고 천국문을 열고 정문으로 들어간 한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심각하겠느냐? 그거 생각해 봤어요? 그건 아폴로 11호가 문제가 아닙니다.

타락한 그때서부터 수십만 년의 인류역사를 거쳐온 이 역사시대에 비로소 천국문으로 쫓겨났던 그 정문을 해치고 '하나님을 위해 옛날에는 내가 쫓겨났지만 오늘은 못 쫓겨가겠습니다. 나를 환영해 줄 하나님이 있소' 하며 척 정문을 두드리고 들어서는 그 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지금까지 타락한 인류역사 과정에 왔다갔던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마음을 졸이며 '야, 이녀석아, 내가 못 들어갔는데 네가 먼저 들어가?' 그러겠어요? '야야, 기다려라, 기다려라. 너 그만큼 왔으면 기다려라. 욕심 많은 내가 먼저 들어갈 거야' 그러겠어요? 그때는 욕심이고 무엇이고 없다구요. 자기를 잊어버리고 어서 들어가라, 어서 들어가라, 요 발자국반 발자국으로 말미암아 네가 고장날 수 있고 틀릴 수 있으니 어서 들어가라, 어서 들어가라 하는 거예요. 그런 때가 되면 될수록 휙 번개보다 더 빠르게 쓰윽 들어가기를 바란다구요.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마라톤 선수 같으면 마라톤 선수가 최후의 결승점에 도달하게 될 때에는 그저 일등과 이등이 한 발자국…. 일등으로 달리는 사람과 이등으로 달리는 사람의 거리가 한 발자국에서 반 발자국, 반 발자국에서 4분의 1, 4분의 1에서 8분의 1이렇게 점점 가까와지면 가까와질수록 전부가…. 그때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등이 일등을 따라붙는 숨가쁜 그 순간을 바라보고 있는데 늙은이가 '아이구, 이 뜨거운 땡볕에서…. 아이고 내가 이러다가는 병이 나지. 박수를 쳐서 되나, 소리를 쳐서 되나' 그래요? 이것 죽는 것 다 잊어버리고, 죽겠으면 죽고 말겠으면 말고, 으악 소리를 지르고 그런다구요. 늙은이들이 더한다구요.

그럴 때는 그냥 옆에서 야단들이라구요.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서로 다리를 밟고 무릎을 밟고 '아야, 야!' 이렇게 된다구요. '아야' 한번 하면 다 된다구요. 좋은 양복을 입고 나갔다가는 옆에 서 있는 낯모르는 여자가 막 짚어 가지고는 까딱 잘못하면 째진다는 거예요. 얼마나 거 재수 없어요? 여자라도 보기 좋은 여자라면 모르겠는데 보기 싫은 뚱뚱한 아줌마인데 말이예요. (웃음) '에이 여보, 이게 양복이야. 그래도 양복이 야!' 해도 그럴 때는 '에이 여보시오. 양복이고 뭣이고 이겨라!' 그러기 마련이예요. 안 그래요?

역사시대에 그러한 순간이 있다면 그럴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는 뭐 다 통일이예요. 아버지 통일, 할아버지 통일, 손자도 통일, 옛날 조상도 통일, 모든 후손도 통일, 그때는 하나님은?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에이 이놈아, 내가 있을 곳에 함부로 와서 되느냐? 걸려들었다' 그러겠어요? 그럴 수 있는 그때를 중심삼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한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그때에는 통일이라구요, 통일. 다시 말하면 전부가 기쁜 일에는 통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군대가 일선에 나가 싸움을 하다가 포위가 되든가, 또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슬픈 일이라도 벌어지면 전부가 하나되는 거라구요. 그러한 공동운명에 사로잡히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많은 것이 아니냐.

끝날에는 하나님이 안내자를 필연코 보내신다

이렇게 볼 때, 여기에서는 도약을 해야 됩니다. 더 날아야 되겠습니다. 날으려면 바퀴를 달든가 날개가 달린 비행기를 타든가 해야 됩니다. 그런 놀음 하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저 녀석은 왜 저래, 저게 왜 그래? 그저 우리는 잘먹고 잘사는데 왜 저래? 남과 같이 아들딸 있으면 되고 남과 같이 잘먹고 잘살면 됐지, 저건 나다 말고 저렇게 야단이야? 이럽니다. 그래서 돌았다, 돌았다, 괜히 미쳤다, 미쳤다 그럽니다. 통일교회에 대해서 욕하는 사람과 한 패라구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 마음대로 가서는 안 됩니다. 지도자가 있어야 됩니다. 어디로 가야 제일 좋다 하는 그 길로 가야 합니다. 한 곳으로 밀렸다가는 전부 찢겨 죽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전부 봐 가지고 안전한 지대로 이끄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거 좋겠지요? 그렇게 될 때는 딱 그러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요? 길잡이가 있어야 됩니다. 왼쪽으로 갔다가는 옥살박살이다 이거예요.

그래서 도약대를 만들어 왔는데도 질서를 지키지 않기 때문에, 오불꼬불 도약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게밖에 놀 수 없는 입장이다 이거예요. 두 산이 가로막혀 있어서 반석에 응할래야 응할 수 없으니 그 사이를 거쳐가야 합니다. 저 산을 올라가야 하는데 한꺼번에 올라갈 수 없으니 그곳까지 가려면 이렇게 날아가야 합니다. 간단하다구요.

그러한 도약대를 만들어 놓았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너희가 아니 라도 올라간다. 길손은 가라'고 해야 한다구요. 여기에서 핸들을 쥐고 방향을 갖춰야 할 놀음을 할 때에는 얼마나 바쁘겠느냐?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그거 생각 안 해요? 앞에서는 왜애앵 자동차가 달려오고 뒤에서는 원수가 따라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위험하겠지만 차를 타는 게 낫습니다. 평지에서 그냥 달리는 것보다는 싹 날아서 간다 하면 얼마나 좋겠냐 이거예요. 그럴 때는 선이고 뭣이고 인간들이 불쌍한 무리가 되는 거예요. 그러나 이런 역사시대에 그러한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일을 수습할 수 있는 지도자가 땅 위에 있으면 좋겠는데 그것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하나님이 최후의 끝날에는 기필코 지도자를, 안내자를 보낼 것입니다. 만약 그런 놀음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게 역사를 쭉 관찰해 보게 될 때, 슬픈 역사로 흘러가는 종말의 시대에 있어서 슬픔만으로 귀결시킨다면, 그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요 무자비한 하나님입니다. 그렇지만 고맙게도 성경을 보면 그 길잡이로 오시는 분이 있다고 하니, 그 얼마나 고마운 분이냐.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이왕지사 죽을 바에는 기쁨을 가지고 죽어야

이런 관점에서 역사에 대해 쭉 총평을 내리고 결론을 지어 깃발을 꽃아 놓은 그 사실을 두고 볼 때, 아무래도 하나님이 없다고 우리가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이 있는 곳을 안내할 수 있는 하나의 안내자를 보내 주실 것입니다. 그 안내자가 무엇이냐? 그가 재림주가 아니더냐.

그러면 그분이 와 가지고는 뭘할 것이냐? 임박한 자리에 찾아와서 '야, 가라!' 이렇게는 안 할 것입니다. 다리를 놓는 데 코치도 하고 모든 준비를 하고 그래야 인류를 사랑하는 하나님일 것이 아니겠느냐.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기독교가 믿는 것과 같이 재림주님은 악이 망할 순간에 벼락치면서 올 수 없는 분이 아니냐.

다리는 누가 놓느냐? 모르는 사람이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리를 놓을 수 있게끔 한 다음에 개인적인 다리, 가정적인 다리, 종족적인 다리, 민족적인 다리, 국가적인 다리, 세계적인 다리를 놓아 가는 것입니다. 먼저 갈 수 있는 그때가 되기 전에, 한꺼번에 왈카닥 올라갈 수 있는 때가 되기 전에 미리부터 옮겨 놓아 가지고 거둘 수 있게끔 훈련시키는 놀음까지 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 무리가 지상에 끝날이 되기 전에 있을 성싶다 하는 것이 우리들이 추리하는 논법에 의한 불가피한 결론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는 기수가 나와야 하고, 그 사명을 따라가는 무리가 나와야 되고, 그 사명을 따르는 나라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거 있을 것 같아요? 만약 그것이 없다면 인간은 절망과 불안한 상태에서 부딪쳐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만히 생각해 볼 때, 깨지면 어디가 깨질 것 같아요? 곤드레만드레 이마를 받혀서 깨져 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달리면서 담벼락에 부딪쳐 옥살박살이 될 사람도 있을 것이 아니냐. 그런데도 아이구 내 엄마야, 내 아빠야, 내 아들딸아 그렇게 찾겠어요? 그때는 절망의 한 순간도 기쁨의 한 순간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그것만을 붙들고 가야 합니다. 그때에는 전체의 나를 믿지 못하겠기 때문에, 그 절망권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절망 보따리를 지고 영원히 유리고객하는 영인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왕지사 죽을 바에는 기쁨을 가지고 죽어야 됩니다. 숨막히는 그 순간이 다가올 때 희망과 소망 가운데서, 내 생명이 끊어지더라도 소망을 갖고 기쁨을 추구하면서 죽어간 영은 영생의 세계에서 희망과 기쁨의 출발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망과 비애와 비탄 가운데 갔으면 그렇게 출발해 가지고 영원히 다른 세계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나오듯이 하나는 천국으로 통하는 것이요, 하나는 지옥으로 통할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가려 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길이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살이 가운데 그러한 훈련을 해라 하는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희생하면서도 감사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키려니 죽을 때까지 그 고통을 무릅쓰고 죽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겁니다. 희망을 품고 하나님의 크나큰 자비를 느끼면서 가는 사람은, 그런 새로운 출발이 될 때는 거기에서부터 향기를 풍길 수 있는…. 내가 육신을 쓰고 있는 동안에 비약과 초월을 못 했더라도 그런 자신의 새로운 생명의 귀결점을 가짐으로써 도약 아니면 초월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초월한다는 것은 다 넘어선 다는 것입니다.

바윗길을 오르는 데는 한 사람만 달려야 한다

우리 통일교회는 뭘하자는 것이냐? 그런 때가 오기 전에 다 넘어버리자 이거예요. 줄을 놓든가 뭐 로프를 걸든가 하여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이런 바위산이 있으면 그 너머를 가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산이 무한히 계속되어 있는지 어떤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산을 올라만 가는 날에는 그때부터는 내려가더라도 평지와 통합니다. 그래 가지고 영원히 평지가 될 수 있다구요. 그 산만 넘는 날에는 희망의 세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가본 사람은 알기 때문에 그 길밖에 없을 때에는 전부 다 때려 몰 것입니다. 그래야 될 거라구요. 안내자가 틀림없이 그러한 사명을 가지고 왔다면 그 길로 가라고 할 것입니다.

어디로 가라고 하느냐? 절벽 밑으로 가라, 가 가지고는 올라가라, 기어 올라가라고 할 것입니다. 그곳을 올라갈 때에는 '아이구 내 남편이 있으니 둘이 올라가야 됩니다' 이래도 그렇게 돼요? 그때에는 대롱대롱 혼자 올라가야 됩니다. 끝까지 남편이 따라가겠다고 하면 그 부인이 뭐라고 하겠어요? '야, 이놈아' 이럴 겁니다.

만약 자기 아내가 끝까지 따라붙으면 남편이 뭐라고 하겠어요? '야, 이놈의 여자야!' 발길로 차고 이럴 것입니다. 그래도 정 따라가겠다고 하면 절반쯤 발아 죽여 놓는 것이 사랑이라구요. 안 그래요? 악착같이 달라붙으면 둘 다 죽는 거라구요. 바윗길은 열 사람이 달리게 안 되어 있습니다. 딱 한 사람만 달리게 되어 있다구요.

그런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할 거예요? '아이쿠, 내 나라는 어떡하고, 아이쿠 내 살림살이는 어떡해. 아이쿠 우리 집 복동이 복순이, 내 아들딸, 우리 남편은 어떻게 해' 그러겠어요? 그때는 눈을 딱 감고…. 땅을 내려 봤다가는 큰일납니다. 나는 요놈의 밧줄밖에 모른다, 내가 태어나기를 이것을 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사는 것은 이렇게 살고 죽는 것은 여기서 죽는다는 결심을 하지 않고는 못 올라가지 않느냐 이거예요. 여러분 그런 것을 한번 느껴봤어요? 신앙생활 하는 것이 딱 그렇다구요. 한번 생각해 봤어요? 자 그것 잡아라 할 때에 그 줄을 잡지 않고 '아이구, 아이구' 이렇게 하면 그건 밟혀 죽는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 패들은 비상한 재간이 있다고 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하면, 반대하겠으면 하고…. 내가 그렇게 살아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가 죽게 되면, 어머니 아버지는 '야 네 녀석이 올라갔구나! 야, 어서 밧줄 하나 내려라' 그럴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러한 것을 알게 되면 부모가 반대하더라도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가야 됩니다」 나라가 반대해도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가야 됩니다」세계가 반대하면? 「가야 됩니다」

세계가 반대하겠으면 반대하고 부모가 반대하겠으면 반대하고 자식이 반대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고 나는 간다, 세상아 잘 있거라, 나는 간다.(웃음)

대롱대롱 올라가는데 바람이 불면 좋겠나, 안 불면 좋겠나?「안 불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저 삼각산 뭐 무슨 바위? 우이동, 저 3년 전인가 2년전인가 줄을 타고 내려오다가 바람 때문에 열 몇 명인가 죽지 않았어요? 그렇지요? 욕심 많은 사람이라도 '에라 에라 이왕지사 기분이나 한번 좋게 실컷 바람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큰일난다구요. 절대 바람이 불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든지 올라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 놀음을 해야 된다구요. 그래 가지고 올라서는 날에는 문제가 달라진다는 거예요. 그러한 무엇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 올라가는 사람이 없어 가지고는 그곳까지 다리를 놓을 사람이 있을 것이냐? 그 다리를 놓겠어요? 하나님도 안 놓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해야 됩니다. 5퍼센트는 인간이 해야 된다는 거예요. 올라가는 사람은 누구예요? 누가 있어야 돼요, 그 누가 있어야 된다구요.

올라가 가지고는 어떻게 할 것이냐? 거기에 대한 대비책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이리 오면 안전하다, 거기는 절벽과 통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해야…. 올라가 보고 나서, 이곳은 평지와 통하는 길이기 때문에 이리 올라오라고, 이리 올라가면 제일 편한 길이라고 말이예요. 이쪽에서 보면 제일 편한 길 같은데…. 걸어가면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그길로 올라갔다가는 더 큰일난다는 거예요. 내려올 수도 없으니 말이예요.

상황을 판단해 보고 '틀림없이 이 길이 맞으니 이 길로 올라오라구, 오는 데는 혼자 오라구, 혼자. 애들이고 뭣이고 다 버리고 혼자 올라와라. 올라올 때는 눈을 똑바로 차고 와라'고 해야 합니다. 눈을 똑바로 찬다는 말이 이상하지만 말이예요. 그런 길이 있을 성싶다, 없을 성싶다?「있을 성싶다」(웃음)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을 기다려 왔지, 쉬울 것 같으면 수천 년이 뭐예요, 하룻저녁에 다 해버리지. 안 그래요?

나기도 잘 나야 되지만 죽기도 잘 죽어야 된다

이 과정에는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역사시대의 수많은 위인이나 성현들이 왔다가 전부 다 영계에 가서 한숨을 떨거덕 떨거덕 쉬면서, '아이쿠 내가 조금만 노력했더라면, 내가 오긴 이만큼 왔는데 조금만 뒤로 돌아갔더라면 난 이 길을 갔을 텐데…. 이러고 있다구요. 잘났다는 사람들 말이예요, 가만히 보면 '아이구 이게 딱 꼬투리가 잡혔으니…' .이런다구요.

영계도 사람에 따라 수천 급으로 되어 있다구요. '아이구, 내가 그 사람만큼이라도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다구요. 거기에 가까이 갔던 사람은 거기에 가까운 급에 가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한 발자국 바른쪽으로 디뎠으면 여기서부터 새로운 천국이 연결될 텐데 이놈의 왼발자국이 이렇게 됐으니, 요놈의 다리야, 요놈의 다리야!' 한다는 거예요. 자기가 자기의 다리를 저주한다구요.

자기 눈을 대할 때도 '야, 요놈의 왼 눈아, 네가 먼저 옆으로 보았기 때문에 내가 따라갔지. 야 요놈의 눈아' 하며 바른 눈이 참소한다구요. 또 왼 눈도 '에잇 이놈의 바른 눈아. 네가 먼저 바른 쪽을 볼 수 있는데 왜 나보다 먼저 보지 않고 나중에 봤어' 한다구요. 이렇게 전부 싸움이라구요.

지옥이 별것이냐? 별스러운 곳이냐? '아,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아, 이렇게 한 발자국만 바른쪽으로 옮겨 디뎠으면 좋았을 걸' 하는 곳이예요. '…걸' 하는 생각을 몇천 년을 두고 한다는 거예요. 그곳이 지옥입니다. 잠을 못 자는 사람을 보면 그렇잖아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면 하룻밤을 새우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바싹 바싹 피가 말라들어가는 고통 속에서 떼어 버릴래야 떼어 버릴 수 없는 생각들이 자꾸 몰려온다구요. 그런 생각이 더 빨리 연결되니 '아이고 죽었다' 이럴 때는 대가리로 땅 박치기를 하여 기절박살하게 되어 가지고 누워서 한잠 자고 싶은 마음까지 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나기도 잘 나야 되지만 죽기도 잘 죽어야 됩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는 사람은 아무리 험하더라도 직단 거리를 택한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최후의 인생길에서 '아, 나는 인생길에서 실패하고 간다' 하고 틀림없이 실패다 하는 생각이 콱 뒤집어 씌게 되면 그것으로 결정난다는 거예요. 그것이 일생에 제일 충격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그것이 모든 것의 주체가 되어 가지고 지배하는 거라구요.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선한 자리에서 간다!'고 하면, 그것이 전체의 주체가 되어 그것이 소망의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세상만사가 이러한 판국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고 기도하게 될 때, '하나님이여, 우리 통일교회를 제일 험한 산골짝으로 들이 몰더라도 그 길이 직단 거리가 되거든 그리 몰아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고 싶은 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의 소원입니다. 여러분 기분 좋아요, 나빠요?

세상에도 그런 일이 있다구요. 피난 길에 남들은 전부 커다란 신작로로 가는데, 한 녀석은 그저 뭐 산골짝으로 가는 거예요. 신작로로 간 사람들이 떠억 부산에 가 보니까 산골짝으로 간 사람이 두 달 전에 도착해 있는 것입니다. 일찍 와서 떠억 살림살이 할 집까지 사 놓았더라구요. 그럴 수도 있다구요. '그래 너 산을 따라가더니 어떻게 이리 빨리 왔어?' '어디를 넘긴 어디를 넘어? 그 산을 딱 넘고 보니까 이곳이 나오더라' 이러는 거예요. 도는 데는 천리길을 돌 수도 있다구요. 저 강원도 같은 데 가면, 서로 마주 건너다 보고 '여보 어디 가우?' '나 아무곳에 갑니다' '같이 갑시다' '예예' 대답은 했는데 가는 데는 몇십 리를 도는 길이 있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럴 수도 있다구요. 아는 사람은 아무리 험하더라도 빠른 길을 택한다 이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가 한국 종교계에서는 대표적일 거라구요. 남들은 잘사는 세상에 뭘하려고 새벽같이 여기까지 찾아오고, 네 시부터 세수하고 뭐…. 네 시라니? 여기까지 오려면 뭐 네 시 싸이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 준비해 가지고…. 먼 데서 오려면 택시를 잡아 타든가 뭐, 전차는 없지요? 한 시간 이상 걸리고 보니, 남 잘 자는 세상에 뭐 무슨 도인이라고….

옛날을 가만히 생각하면 말이예요…. 오는 사람들 중에는 통일교회 문선생인지 무엇인지 왜 하필이면 다른 때 이야기하지 왜 새벽 그때에만 이야기해 가지고…. 욕들을 많이 했을 거라구요. (웃음) 왜 하필 꼭 새벽 다섯 시에 금을 그어 놓고 그때만 이야기한다고 하는지 제기랄…. 누가 오래? 오기 싫으면 관두라고 야!(웃음) 앞으로는 그럴 거라구요. 한 시나 두 시쯤 이야기하면 어떻게 할 테야? 그때는 통행금지 시간이니까 할 수 없이 텔레비젼 장치를 해서라도…. 그렇게 하면 나쁘지 않을 거라구요. 안 그래요? 다 그런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막판에 가서는 전부 내 것으로 소화시켜야 된다

이러한 위기일발의 세계정세를 볼 때, 이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이냐? 미국이 갈 수 있는 길을 알아요? 모른다구요. 또, 한국이 갈 수 있는 길을 알아요? 역시 모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내가 믿음직스러운 것은 이 통일교회 패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다 뜻대로 되겠지' (웃음) 그 뱃장을 가지고 있다구요. 마음속에 무슨 반석이 들어가 박혔는지 그런 무엇이 있다구요. '가만히 보니까 그저 뜻대로 되더라. 그렇기 때문에 뭐 다 좋게 되겠지!' 이런다구요. (웃음)

그러니 나쁘게 되더라도 좋게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우선 이익입니다. 왜? 나쁘게 되더라도 남보다 고생을 안 했으니까. (웃음) 그게 이익이라구요. 나쁘게 됐지만 오기 전까지는 잘먹고 잘산다 이거예요, 걱정을 안 하니까. 그런 면에서 볼 때는 우리 통일교인들은 좀 다르지 않느냐? 다르긴 다르지만 그 대신 이게 못살 지경입니다. 만나기만 하면 전부 다 코를 꿰어 가지고 끌고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코를 꿰어 '이리 와라 이리 와라, 이렇게 뒤로 돌아가라! 뒤로 돌아가는데 왜 이리 돌아, 바로 돌아!' 그런다구요. 아이고, 서울에서 살고 싶은 데 저 섬나라에 가라고 한다구요. 그렇게 돼 있는데 못간다고 할 수 있어요? 여기 아주머니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 가만히 보면 아주머니 자기 마음대로 입을 벌리고 왜 야단이예요? 뭐 그리운 임자네 남편을 보우?(웃음) 그런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우리 통일교회는 이상한 곳이라구요. 그렇다고 통일교회 문선생을 자랑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봐도 별스러운 패라구요. 별스러운 패인데, 세상이 아무리 야단하고, 나라가 아무리 야단하고, 세계가 아무리 야단하더라도, 아무리 어려운 것이 부딪쳐 오더라도 그것을 가려갈 수 있는 다리를 놓는 놀음을 여러분이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해야 됩니다」

세계의 무리가 대이동하는데, 지금 왱 하고 당장에 올 텐데 그들을 살려야 된다는 것을 안다면, 밤을 새워야 되겠어요, 안 새워야 되겠어요? 「새워야 됩니다」 아이고 남들 다 자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생해? 이렇게 자기를 생각하다가는 망합니다. 여러분이 그들을 생각한다면 밤이 없다구요. 그 다음엔? 낮이?「없다」 없다! 그 다음에는 밥 먹을 시간이? 「없다」 없다! 그 다음엔 쉴 시간이?「없다」 없다! 밥을 먹어도 일하면서 먹어야 되고 쉬어도 자기 몫을 하면서 쉬어야 됩니다. 자더라도 일하면서 자야 합니다. 그러라구요.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판에 가서 전부 내 것으로 소화시켜야 되겠다 이거예요. 밤도 내 것이요, 낮도 내 것이요, 쉬는 것도 내 것이 되도록 하여 모든 것을 여기에 집중시켜 가지고 이것을 어떻게 단축시키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가면 죽음 길도 연장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의 소원이 뭐냐? 욕심꾸러기들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입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을 보라구요. 얼굴을 보면 욕심 바가지만 꽉 들이 박혀 있다구요. 욕심꾸러기들이 통일교인이라구요. 우리의 소원이 무엇이냐? 천주통일이지. 우리의 소원이 뭐야? 남북한 통일이지. 어떻게 통일이 될 것이냐? 하나님이 사랑하시사 통일되게 해주시니까 통일이 될 것이야? 하나님이 사랑하시사 통일되게 해주시니까 통일이 되지. 그 식이예요? 그 식이예요, 뭐예요? 5퍼센트 책임을 누가 해야 된다구요? 하나님이 해야 된다고 그랬어요, 하나님이? 누가 해야 된다구요?「인간이 해야 됩니다」 인간이라구, 인간!

인간이 누구입니까? 자기예요, 자기. 나입니다. 이 눈이 해야 되고, 이 코가 해야 되고, 이 입이 해야 되고, 이 귀가 해야 되고 이 손발이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내 눈이 바빠야 되고, 내 코가 바빠야 되고, 내 귀가 바빠야 되고, 내 손발이 바빠야 됩니다. 야, 이게 기가 막힌 놀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게 좋아요? 그거 할거예요, 안 할 거예요?「하겠습니다」

만일에 알고도 안 했다가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심판 제 1호 법정에서 공판받을지어다! '이놈아, 너 하나를 죽여 세계를 살려야 하는데 왜 내하라는 대로 안 했어? 요놈아, 통일교회를 하나 망하게 해서 세계를 살려야 하는데 왜 안했어? 할 때는 선생님이 '어-' 이렇게 당당하겠어요? 선생님 꼴이 어떻게 되겠어요? 면목이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러니까 싫어도 해야 되겠고, 좋아도 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늙어서도 해야 되겠고 젊어서도 해야 되겠어요. 시집가려고 문에 들어서다 말고 다 차버리고 뒤로 돌아서서라도 해야 되겠다구요.

그만하면 잘 알겠지요?「예」 죽어가는 길에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하겠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죽을 길도 연장해 줍니다. 틀림없이 그렇다구요. 내가 죽는 것은 나랏님이 죽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구요. 세계를 위해서 그럴 때에는 하나님이 생명도 연장해 주는 거라구요.

어떠한 회사든지 쓸데없는 사람은 처리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회사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처리는커녕 길러 가지고 필요할 때 더 필요하게끔 하려고 합니다. 그렇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구요. 그 사람이 죽음으로써 나라가 망하고 세계가 망하게 될 때에는 죽을 자리에 내세우겠어요? 하나님은 계산이 빠르겠어요, 느리겠어요? 빠르신 하나님도 할수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불경한 말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불경한 말이 아닙니다. 공대하는 말이라구요.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구요.

거지가 돼도 공적인 일 때문에 거지가 되면 희망이 있다

자 여러분,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통일교회 교인들을 편안하게 잘먹고 잘살게 해주면 좋겠지요? 아니야! 그것은 평지에 가서는 그럴 수 있지만 이 반석 밑에서는…. '야, 어서 살아라, 어서 살아라' 그러겠어요? 어서 살라고 그래야 되겠어요? 그게 뭐 별난 보따리라구…. 댕강 댕강 때려부숴라 이거예요.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 그것은 국민학생, 유치원 학생에게 물어 보더라도 다 그렇게 대답할 거예요. 그래야 된다구 말이예요. 그런 일이 있을 것이다 이거예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통일교회 문선생을 따라와서 손해 많이 봤어요? 손해 봤어요. 이익을 봤어요?「이익 봤습니다」 무슨 이익이예요?(웃음) 이밥을 먹었었는데 보리밥을 먹었지 뭐. 따뜻한 온돌방에서 자다가 찬방에서 잤지 뭐. 또 옛날에는 동네에서 가려 가면서 인사를 받을 줄 알다가 인사받기는커녕, 인사하기에 바쁜 생활이었지 뭐. 전부가 반대라구요. 고향산천이 좋다고 고향을 사랑하며 고향에서 살겠다고 했다가 모두들 타향살이 했지 뭐. 나도 타향살이라구요. 그런데 이익은 무슨 이익이예요? 척 돌아와 보니 남은 것은 빈손이요, 얼굴은 빈털털이요, 모양은 거지 꼴이다 이거예요. 뭐 그래도 이익이예요? 우리 까놓고 이야기하자구요. 내가 모르는 바가 아니예요. 다 안다구요.

거지 중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잘못하여 거지가 된 사람이 있고, 나라를 위해 일하다가 거지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거지가 된 사람이 옛날에는 무엇이었어요? 옛날에 뭐 그런 거지 있었지요? 암행어사 같은 것 말이예요. 암행어사 하는데 양반 이나 대감 나리처럼 큰 갓을 쓰고 '에 행차다' 그러고 다녔나요? 거지 중의 상거지지요? 알겠어요?

거지도 두 종류인데 자기 때문에 거지가 된 것은 절망이요, 공적인 일 때문에 거지가 되면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체의 대행자라구요, 대행자. 이렇게 하게 되면 자기의 생명도 쓱 돌아가고 이런다구요. 전체를 대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 있다구요.

세계적인 종교시대에 나라를 찾는 종교는 망하게 마련이다

우리 통일교회 때문에 거지가 되었다면, 나는 그런 거지는 싫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거지가 좋아요?「예」통일교회 때문에 거지가 된 것이 좋아요? 「좋습니다」 이 녀석아 그러면 안 돼! 그것은 통일교회 이상의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안 갖는 거라구요.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보다 큰 것,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해서…. 통일교회의 공적인 것은…. 통일교회만을 위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공적인 것이 아니라구요. 통일교회의 공적인 일은 나라를 위하는 것이요, 세계를 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종교가 그 사명을 모르기 때문에 망하는 거라구요. 자기의 나라만을 위하고 자기의 민족만을 위하는 종교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러니까 그 종교시대를 넘어 세계시대로 넘어가는 종교가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어받지 못하니, 세계적 종교시대에 나라를 찾는 종교는 자연히 망하게 마련이라구요. 그런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개인복귀에서 가정복귀, 가정복귀에서 종족복귀, 종족복귀에서 민족복귀, 민족복귀에서 국가복귀, 국가복귀에서 세계복귀, 세계복귀에서 천주복귀, 천주복귀에서 하나님복귀, 하나님복귀에서 하나님의 사랑복귀로 넘어갑니다. 망할래야 망할 수 없게끔 뒷장이 착착 잘 맞게 되어 있습니다. (웃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별수없다구요.

종족을 구할 수 있는 시대에 있어서는 종족을 위할 수 알게끔 축복을 해주니 어느 종족이든지 종족을 대표한 종교는 흥한다 이거예요. 종족을 중심한 종교시대를 지나서 국가를 세워야 할 종교시대로 발전해 나왔기 때문에, 국가만을 위할 수 있는 종교는 흥했지만 지금은 그 운세권내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국가적으로 흥한 그 기반을 통해서 세계로 흥해 가야 할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에, 유대교가 세계를 위하는 종교가 돼 주기를 바랐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나라(이스라엘 민족)만 생각 하다가 세계적 종교의 이름을 갖고 오는 예수님을 쫓아 버렸어요, 안 쫓아 버렸어요?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해서 오는 줄 알았다구요. 요 도적놈들! 예수님은 세계적인 종교의 이름으로 만민을 구원하고 만민을 해방하기 위해서 오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만을 위해서 오는 메시아가 아니고는 메시아가 아니다. 모세 오경에 절대 복종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다 원수다' 이래 가지고 구약을 중심삼고 예수를 원수시하지 않았어요? 모세 오경이 뭐예요, 모세 오경이? 모세 오경을 못 지키더라도 세계 인간들이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다면 모세 오경을 집어던지고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도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이건 틀림없다구요.

역사를 두고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국가적 인물이 되겠느냐, 세계적 인물이 되겠느냐 묻게 될 때, '아 나는 세계적 인물이 되겠습니다' 할 거라구요. 하나님에게 '당신은 세계적인 하나님이 되겠소, 대한민국을 위한 국가적인 하나님이 되겠소' 하고 묻는다면, '야 이 녀석아, 너는 나를 모른다' 하면서 발길로 차 버릴 거예요.

통일교회를 세운 목적은 통일교회 자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아이구, 하나님, 내 아들딸…' 이럴 거예요. 자기 아들딸을 위해서 기도하면 그 기도는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자기 아들딸을 위해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면 그 아들딸이 축복받은 뒤에 그 아들딸 앞에 '너는 나와 같이 아들딸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고 가르쳐 줘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아들딸은 딱 망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내려 그 아들딸을 보내 준 것은 아들딸을 사랑하라고 보내 주었지만, 거기에는 내 뜻을 이룸과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많은 정성을 들여서 아들딸을 낳았으면 그 아들딸을 고이 길러서 내 대신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아들딸이 되기를 바라서 보냈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에게 나라를 위해서 갈 수 있게끔 교육하지 못하면 그 아들딸은 중간에 죽어 버리든가 데려간다구요. 요렇게 되어 있다구요. 알겠어요?

한 사람도 그렇거든 통일교회에 있어서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살자고 하면 그것은 자기 아들딸을 위해서 살자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를 세운 목적은 통일교회 자체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나에게 어떠한 명령을 하는 것은 명령을 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명령의 대상, 즉 목적을 위해서 명령한 것이 아니냐. 통일교회를 세운 것은 통일교회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통일교회 대상적 목적을 위해서 세운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그 대상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은 좋아한다는 거라구요.

'그 녀석 보기에는 시골뜨기요 형편없던 녀석인데 써 보니까 쓸만하다구. 서울에 와서도 왕초 노릇 하고 아 거 쓸만하다구. 나라에서도 쓸만하다구' 이렇게 되면 농민 출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구요. 안 그래요? 마찬가지 이치라구요.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구 요. 그러길 바라요, 안 그러길 바라요? 어때요? '나는 통일교회를 위해서 있지' 이래요? 그러길 바라요, 안 그러길 바라요?「안 그러길 바랍니다」대답은 똑똑히 하는 걸 보니까 알아듣기는 알아들었구만.

우리 통일교회는 자기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통일 교회 신앙방식과 기성교회 신앙방식 둘을 놓고 볼 때, '너 왜 예수 믿니?'할 때 내가 천국가기 위해서 믿는다고 하는 사람과, 우리는 한국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있을 때 하나님이 어떠한 사람을 좋아하겠느냐? 대답해 보라구요. 나라를 구하겠다고 하는 통일교회를 좋아하실 것입니다.

'아이고, 우리는 정통이다. 통일교회는 이단이니 가지 마라!' 하는데 '이놈의 자식들아, 말은 좋지만 너희가 우리 통일교회를 욕하고 미워하는 이상 나라를 위한다'고 할 때에는 망하지 않는다구요. 알겠어요?

통일교회를 치지만 통일교회 교인 이상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할 때는 그 종파는 망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러한 종단은 망하지 않지만, 와라! 타 종단은 우리 교파로 와라! 딴 교파에는 가지 마라. 나라야 망하겠으면 망하고 우리 교회만 있으면…'그건 망하는 거라구요. (웃음) 그건 단숨에 망한다구요.

죽더라도 아버지를 붙들고 죽어야 망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어려운 일도 많이 당했습니다. 보따리 싸들고 인간살이 그만두자 할 수 있는 그런 경지도 많이 거쳐왔지만, 그때 내가 죽는 것은 무엇 때문에 죽느냐?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을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니 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보다는 남을 붙들고 죽으려고 했지, 나를 붙들고 죽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알겠어요?

예수님도 그랬다구요. 하나님 앞에 가는데 누구를 붙들고 죽느냐! 예수님보다 큰 것을 붙들고 죽어야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한 것입니다. 누구를 붙들었어요?「하나님을…」 이게 신기하다구요. 나는 죽더라도 아버지를 붙들고 죽는다, 내가 망하더라도 아버지를 붙들고 망한다 이랬습니다. 흥하면 나를 붙들고 흥해요? 그것은 망합니다. 흥하더라도 아버지를 붙들고 흥해야 되고, 망하더라도 아버지를 붙들고 망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서 있는 사람도 흥하더라도 아버지를 붙들고 흥하려고 하고 망하더라도 아버지를 붙들고 망하자 이럽니다. 이렇게 될 때는 망할 자리에 처하더라도 망하지 않더라 그거예요. 배고픈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옛날에 엘리야에게는 까마귀를 시켜서 떡을 날라 주고 그랬지만, 문선생이 배고프게 될 때는 영계에서 호출 명령을 내려 감옥의 죄수들을 시켜 가지고 먹을 것을 갖다 주더라 이거예요.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구요.

석양길에 나그네의 신세가 되어 기진맥진해 가지고 어떤 동네를 찾아 들어가면, 벌써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무때 이러한 청년이 올 테니 아침부터 종일 잔치상을 준비해서 잘 모셔 드려라 해 가지고, 잔치상도 받아 먹게 해주더라구요. 그런 일이 있다구요. 그러한 뭐가 있기 때문에 세상이 뒤집어지든지, 누가 칼침을 놓든 뭐 하든 누가 죽고 살든지 지금까지 이 놀음 하며 버티고 있지, 그런 재미도 없어 가지고 무슨 재미로 살겠어요?

김삿갓은 말이예요. 거 무슨 뭐 서산 넘어 하는 김삿갓 노래도 있잖아요? 석양이 지는 무슨 마루에 잠을 자는 김삿갓 노래와 같이 그런 맛이 있다구요. 그 맛이 있기 때문에 이런 놀음을 하지, 무엇을 바라고 살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

하나님과 사탄의 두 거두 정상들이 이끌어온 섭리역사

이제는 아무리 봐도 끝날이 가까이 왔지요? 우리 원리를 두고 보면 점점 숨막힐 때가 왔다구요. 이제는 구멍은 한 구멍밖에 없다구요. 자아, 이놈의 것, 이 구멍을 떼 버려야 되는데 날아가 가지고는…. 그놈의 바람 벽이 말이예요. 한 5미터쯤 된다구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여기서 이렇게 날라서 가다가는 들이 까이는 거라구요. 그럴 때는 그걸 걷어내야 합니다. 쉬익 무사통과, 거 그러면 좋겠지요? 그러려면 여기서부터 올라가야 됩니다. 올라가서 쉬익 큰 놈을 따라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좋겠지요? 어차피 그런 구멍이 있어야 합니다. 그 구멍으로 나가야 되겠다구요.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하고 사탄하고, 제일 능란한 분들이 계약을 하는 것입니다.

요즘 뭐 세계의 정상들 뭐 해 가지고 닉슨이 뭐 어떻고, 모택동이 뭐 어떻고…. 야 이 녀석들아 시시하다 이거야. 무슨 콧수염, 코시긴이 뭐 어떻고…. (웃음) 이런 걸 볼 때, 뭐 정상이니 하는데 정상일 게 뭐야? 하상도 못 된다 이놈들아! 너희들이 하면 뭘할 거야? 생각 못한다구요.

자, 그런 한때 세상 문을 타 가지고, 뭐 주권자가 돼 가지고 큰소리치는 그런 패들하고…. 자, 하나님과 사탄이 그래도 정상이지요? (웃음) 사탄은 악의 정상이요, 하나님은 선의 정상입니다. 이놈들이, 이놈들이라니? (폭소) 사탄편에서 보면 이놈들이지 뭐? 거 뭐 이놈들이라고 하면 실감이라도 나는데 이분이라고 하겠어요? 이분들이라고 하겠어요? (웃음) 그럴 때는 별수없다구, 하나님도 그때는 눈 꼭 감아야지 뭐. (웃음)

자, 이 두 거두가 회의를 하는데, 우리 인간 세상에 능란한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데,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어야 되느냐? 그는 최고의 인물이어야 하기 때문에 이래이래야 된다고 말할 때, '자 여기에 천리 바람 벽이 있어서 이곳(구멍)에서 저곳(구멍)까지 가는데 이건 그 길이 꼬불딱 꼬불딱하게 생겼으니 박자를 맞춰서 쭈욱 뛰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소'.이렇게 둘이 공론을 벌일 수도 있다구요. 안 그래요? 그런 공론도 벌일 성싶다구요.

그럴 때 하나님은 '여보게 여보게 사탄 대왕! 그거 그럴 수 있겠나? 그거 그럴 수 있는지 한번 해보면 좋겠는데 그럴 수 있소? 그건 임자도 그렇게 하지 못할 텐데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느냐' 하고 하나님이 뚱땅 골통을 한번 탕 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게 된다구요. 그 선의 대왕님 하나님이 가라사대 '그 말이 응당 맞소' 해 가지고 그 사탄이 '꼬불딱꼬불딱한 것을 둘로 하지요. 두 고개 쯤 못 넘겠소' 하면, 하나님이 '여보게 여보게, 거 두 고개로 하지 말고 직선으로 하세' 이럴 거라구요.

하나님과 사탄이 서로 경쟁하여 한 쪽에서 양보해서 최후에 선한 편에서 얻은 결정 사항이 무엇이냐 하면 직선 굴일 것입니다. 직선 굴을 만드는 것이 원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장대로 채 가지고 끌어낸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직선 굴을 뚫자 하는 결정이라구요. 꼬불딱꼬불딱하게 되어 있어도 되지만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니까….' 그래도 역사이래 일등 챔피언을 뽑아야 할 텐데 꼬불딱꼬불딱하게 가야 일등이지, 이거 뭐 직선으로 가서는 안 되겠다'고 해도 가당한 말이라구요.

그렇지만 사람 편에서 선하신 마음을 가진 그 대표자이기 때문에 '그건 그렇게 하지 말고 직선 굴을 뚫세' 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럽시다' 하고 공동 결의를 해 가지고 '야! 만민들아! 후대에 오는 사람들은 직선 구멍으로 상처를 입지 않고 잘 통과해라' 이렇게 선포, 공포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하는 사람마다 '아이쿠 아이쿠, 그것을 어떻게 다해? 그럴 수가 있나? 그곳은 산 위야! 하나님이 미쳤지. 사탄도 돌았지' 이럴 것입니다.

그러한 조약을 세웠으면 하나님이 명령을 내렸으니까 그 명령을 지켜야 됩니다. 하는데 언제까지 하느냐? 한 시대 혹은 두 시대를 거쳐 못해도 몇 년쯤은 걸려야지요. 자그만치 얼마나 해야 되느냐? 한 십년쯤, 한백년쯤, 한 천년쯤은 해봐야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그 가운데 잘난 사람도 실패하고, 못난 사람도 실패하고, 실패한 누그러기 사태가 나서 얼마만큼 쌓이게 될 때, '야 야 사탄아, 우리가 결의한 것은 너무 못 쓰겠다' 이래 가지고 삭감하는 제의를 하나님이 할 수? 할 수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서야 하나님의 위신이 서지, 누구를 시켜 보지도 않고 '아 이거 안 된다'고 할 수가 있어요? 하나님은 어떠한 계획을 세워서 인류역사의 어떠한 종단 앞에 명령을 해 가지고 많은 희생을 시켜 가지고 이것이 이런 방향으로는 안 되니까 이것을 다른 방향으로 이렇게 만들자, 그 각도대로는 힘드니까 이것을 45도 방향으로 돌리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경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또 그것도 안 되니까, 많은 인간들이 그 길 가려고 하다 희생되니까 이것을 깎아서 만들자, 그건 너무 높다, 그러니까 좀 낮춰서 하자, 그 직선을 통해서 발발 기어 나가게 하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사탄은 인류를 최고로 망하게 하려 하고 하나님은 최고로 우리를 위해서 사탄과 타협해 가지고…. 인간들이 가는 그 길 앞에 참소조건을 제시하여 그 길을 갈 수 없도록 하는 사탄 앞에 하나님의 주장만 내세울 수 있게끔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발발 기어 나가게 하자 그런 거라구요. 그러니 그때까지는 한꺼번에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오랜 동안 참아 나오면서 많은 희생을 치러 가지고도 안 되니까, 그럴 수 있는 사람을 바랐던 것인데,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게 하기 위해서 이것을 점점점점 쉽게 쉽게 해 가지고 이런 길을 잘 가려 가게 해야 하는데, 그때까지는 많은 역사가 필요할 것이 아니냐. 알겠어요?

이렇게 볼 때, 그 두 거두 정상들이 하는 놀음을 두고 보면, 6천년 인류역사는 너무나 짧다고 본다구요. 그것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조정해서 이루어졌던 자리냐 이거예요. 응, 야 이 자식아 하면서 얼마나 조정했겠어요? 몇천 번 몇만 번을 토의해 가지고 내려온 역사가 6천년의 인류역사 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나 짧다고 본다구요. 여러분은 길다고 봅니까?

이런 사정들은 모르고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는데 세계는 왜 이렇게 만들어 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오늘 또 내가 여러분에게 얘기할 거예요. 오늘은 열 시에 모이지?「아홉 시입니다」 아홉 시에 모여요? 임자네들은 아홉 시에 모이지만 나는 열 시에 간다구. (웃음) 오늘 제목이 '오고 가는 인생길'인데 이렇게 이야기하다가는 한정이 없다 구요. 그러니까 다 잘라 버리고…. 어느 정도 알았지요?「예」 결론을 안 지어도 잘 알 거라구요. 우리 지혜로운 통일교회 패들 얼마나 잘 알아요? (웃음)

세계와 더불어 망하는 운세를 벗어나야 한다

숨막히는 이 세계를 바라볼 때, 공산주의 세계를 가지고도 못 가고, 민주 세계를 가지고도 못 가고…. 한국 같은 데서는 무슨 뭐 토착화, 뭐 한국적 민주주의 이름을 부르짖고 나오는데 그거 좋다구요. 이게 어디로 갈 것이냐? 궁금하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출발은 잘 했는지 모르지만 목적은 어디일 것이냐? 사람으로 출발하여 사람으로 종결되었다간…. 대한민국으로 출발하여 세계로 종결을 맺으면 모르지만, 대한민국으로 출발했다가 대한민국으로 끝나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세계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망하는 운세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오늘날 섭리관적인 결론입니다. 알겠어요? 대한민국으로 출발해서 어디로? 「세계로」 세계로 끝내지 않고는 망한다 이거예요. 그럴 수 있는 아량을 지닌 민족, 대한민국이냐? 그럴 수 있는 사상과 배포를 가졌느냐? 이북에서 오라 하게 되면 그들과 씨름을 해 가지고도 이기고, 말을 해 가지고도 이기고, 잡혀 있어도 이기고, 풀어진 데서도 이겨야 된다 이거예요. 이럴 수 있게 될 때는 그것은 뭐 세계적 사건이 됩니다.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보는 관점에 있어서는 대한민국으로 출발해 가지고 대한민국으로 끝내기를 바라지 않고, 대한민국으로 출발해 가자고 세계로 끝내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러기를 바라고,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대한민국의 갈 길을 위해서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놓겠다는 것입니다. 그거 나쁜 생각이예요, 좋은 생각이예요?「좋은생각입니다」

강력한 사상을 가지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러면 여기에 벼랑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 이거, 올라가든가 줄을 타든가 뭘 해야 된다구요. 지금까지 우리가 한 것은…. 이것을 올라가려면 다리를 놓아야 하는데 다리를 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나무 기둥을 박아야 되겠어요, 쇠기둥을 박아야 되겠어요?「쇠기둥이요」무슨 쇠기둥, 물렁물렁한 쇠기둥을 박아요, 강철 쇠기둥을 박아야 되겠어 요? 세상에서 제일 강한 강철 쇠기둥을 박아야 됩니다.

그럼, 쇠기둥이 뭐예요? 진짜 쇠기둥을 박아요? 그 쇠기둥이 뭐냐 하면…. 사람을 내세워 여기다 박고, 이 사람을 데려다가 이렇게 박아 가지고 쇠기둥을 만드는 것입니다. 무슨 기둥이라야 되느냐? 사람 기둥으로서 참된 사람 기둥을 박아야 한다 말이예요. 참된 길로 참되게 이것이 딴딴해져 가지고 밀고 쳐야지 그렇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강력한 사상을 가지고 버티고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위에다 세계적인 개인을 데려다가 눌러 놓더라도, 물을 아무리 폭포같이 퍼붓더라도…. 바케쓰에 물을 확 붓게 되면 그 물은 내려가고 꼭대기는 시원하지요? 그와 마찬가지라구요. 이 세계 인류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여기 통일교회 교인들 앞에 갖다 놓으면 통일교회 교인들이 쓰윽 도둑질 해도 누가 알 게 뭐야? 그럴지도 모른다구요. 그래요? 그래서 통일교회 사상은 개인 위주가 아니라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그런 사상이예요. 그렇지? 여기에 있는 우리 아가씨들도 그래요, 안 그래요?

나라가 몽땅 통일교회를 반대하더라도 통일교회는 크면 컸지 망하지 않습니다. 세계가 몽땅 통일교회를 반대하더라도 세계가 망하면 망했지, 통일교회는 안 망합니다. 여러분, 그러면 좋겠지요? 나는 통일교회 책임자로서 어디든지 다 가 봤어요, 다 가 봤다구요. 누구나 다 그렇게 해보라는 거예요. 그 대신, 그럴 수 있는 대신 제발 후회하면 안 된다구요. 그렇지요? 통일교회 뭣이라 하나? 에이구 질기고 그 다음엔 보기가 딱딱하고 그 다음엔? 그 다음에는 뭐야? 끈적끈적 하게 질기다 이거예요. 그러면 강하다 이거예요. 그래야 되겠다는 거예요.

여호수아와 갈렙을 내세운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 이스라엘 나라를 이끌어 나오면서 고생을 했습니다. 가나안을 복귀하겠다고 그렇게 천신만고 하던 모세까지 결국은 느보산에서 최후의 막을 내리고 죽었지 않았느냐.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7족을 점령하여 끝내 가나안땅을 복귀시켜 나왔습니다.

여자가 망쳤으니 여자가 탕감복귀해야

그런데 하나님을 대신한 그렇게 훌륭한 자기의 조상이 죽었는데도 그 후손이 따라 나오지 못하니, 조상의 이상을 이어가야 할 것인데 그러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은 여호수아 갈렙에게 무슨 말을 했느냐? 강하고 담대하라! 철석같이 강하고 담대하라! 권고한 그것이 강하고 담대하라는 거예요. 강한 것만큼 강한 이상의 사랑으로서 대해 주겠다, 담대한 만큼 담대한 이상으로 대해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는 데 있어서 자기 어머니 아버지에게 '어머니 아버지 강해집시다. 어머니 아버지, 담대합시다' 그래요? 누구 중심삼고 그래야 되느냐?

앞으로 이북에 전도 나가야 할 사람은 누구일 것이냐? 우리의 젊은 딸들입니다. 김일성을 대해 전도할 사람은 누구일 것이냐? 우리 아가씨들 이다 이겁니다. 왜? 김일성은 사탄세계의 천사장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천사장에게 끌려들어가 가지고 넘어간 것이 해와이기 때문입니다. 탕감복귀 원칙에 있어서 그들을 굴복시켜야 할 대표자는 누구예요? 여자예요, 남자예요?「여자입니다」여자!

그렇기 때문에 한 자, 두 자, 세 자, 네 자, 다섯 자, 여섯 자…. (웃음) 그러므로 여 자를 망친 것은 여자더라, 6수를 망친 것은 여자더라, 6수를 복귀 완성하지 않으면 남자들이 7수, 안식일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여 자를 망쳤기 때문에 사탄을 굴복시켜야 되는 것은 여자더라. 그렇게 말하니 그럴 것 같지요. (웃음) 그렇게 돼 있다구요 .

자, 이제 전도 나갈 거예요? 나갈 거예요, 안 나갈 거예요?「나가겠습니다」 또, 여자가 나가겠다고 하면 남자들은? 구경해야지? (웃음) 어디 요놈의 천사장 이놈아! 여자, 해와한테 맞고 싶으냐 이 자식아!(웃음) 여자들이 모두 그렇게 나서면, 여자보다도 남자가 갈 수 없다?「있다」갈 수 있다! 자, 그러면 여자를 보낼 거야, 우리 천사장이 갈 거야? 「 같이 가야 됩니다」 그런 얘기 하니까 기분 나쁘지만 별수 없다구요. 통일교회 원리대로 문선생이 재 가지고 딱 그렇게 되는 이야기를 하니까 할 수 없다구.

그렇기 때문에 이북 개척 운동도 여자를 보내서 해야 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젊은 남자들이 가게 되면 대번에 딱지 붙어 가지고 처단을 당하지만 여자들이 가게 되면, 여자들 중에도 미인들이 가게 되면 '아 이거 봐라, 남한에도 이런 미인들이 있었나' 올려다 봐도 좋고, 내려다 봐도 좋고, (웃음) 집에 들어가는 것까지 따라가서 보고 싶어하니 죽을 곳에서 안 죽을 수도 없지 않다, (웃음)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자, 그만 하고 이젠 다른 곳으로 흘러간 말을 수습해 가자구요.

인생이 가는 길은 원인으로부터 과정을 거쳐 결과의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좋은 것은 영원히 여러분의 일생에 남아 지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일생에 남아지는 것은 무엇이냐? 좋고 기쁘고 어려웠던 일입니다. 역사시대에 남아지는 것도 좋고 기쁘고 어려웠던 일입니다.

슬픔과 고통을 소화시키는 자만이 이 세계를 책임질 수 있다

그러면 지금의 이때는 어떤 때이냐?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고 쉬울 수도 있는 때입니다. 전부가 한꺼번에 우리의 목전에 세계적으로 부딪혀 오는 때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소화시키려면, 이것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기쁠 수 있는 것만을 가지고 어려울 수 있는 것을 소화시키고, 슬플 수 있는 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그런 세계를 이어받을 사람이 나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러니 기쁨을 주관하는 그러한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그 사람들이 비참하고 슬픈 길을 각오하면서 끝까지 다 갔다고 할 때는, 그들이 가는 길은 기쁨만이 남을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한 때가 왔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미래의 기쁨을 추구함과 동시에, 현실의 개척자로서 의분심을 가지고 오늘의 슬픔을 소화시키자는 것입니다. 나라의 슬픔이 있으면 그 슬픔의 뒤로 물러날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극복하고 넘어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또한, 나라의 어려움이 있으면 그 어려움을 대해 도망가거나 회피해 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정면적으로 부딪쳐서 그 어려움을 내가 책임지고 가겠다고 해야 됩니다. 가는 데는 울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의젓하게 당당하게 희망 가운데 가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렇게 책임해 가지고 그 경지를 극복하는 날에는, 그 사람에게는 그 슬펐던 일이 도리어 더 큰 기쁨을 자극시킬 수 있을 것이고, 어려웠던 일이 도리어 기쁨의 터전이 되고 자랑의 조건이 될 것이 아니냐. 그럴 수 있는 사람만이 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고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이상의 관문이 개문될 것이 아니냐. 그것은 틀림없는 결론입니다.

오늘날 오고 가는 인생길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기쁨의 소원을 가지고 슬픔과 고통을 책임지려는 사람이 있었더냐? 없었다 이거예요. 단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 가지고 하나님의 이상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슬픔과 인류의 슬픔을 책임지려고 했지만 그 책임을 완수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냐.

시대적인 이 종말기에 오늘날 기독교를 대표한 우리 통일교회가 그런 입장에 서서, 원대하고 높은 희망을 가지고, 미래의 소망을 위한 현실적 소망의 실천 무대로 삼아 여기에 부딪쳐 오는 전부가 슬픔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소망 앞에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고통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고통으로 열매맺을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기쁨과 영광의 자극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들 이라면 망해들어가는 이 시대상을 틀림없이 책임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망하는 이 세계를 연장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뜻을 이룰 것입니다.

참다운 인간이 가야 할 길

그러한 사람들이 나옴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들은 슬픈 세상을 등지고서 그 슬픈 세상을 올라서고, 고통을 이기고 선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비약할 수 있는 다리라도 놓을 수 있고, 길을 닦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에게 제일 절박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과 상봉하는 것이 역사의 종말시대의 제일 큰 요구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요구의 대상, 요구의 실체가 되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들로 말미암아 역사의 슬픔은 해소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로 말미암아 역사의 고통은 해소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역사시대에 슬픔과 고통을 겪어온 모든 인간은 제1차 부활의 터전으로서 그 소망의 상대로 우리를 맞아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러한 사람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들로 말미암아 지상에서 재차 재림부활 역사를 출발시켜서 영계에 있는 슬픈 영인들을 해방시킬 것이 아니겠느냐.

그뿐만이 아니라, 지상에서 오늘날 도탄 가운데, 환난 가운데 빠져 미래의 소망을 갖지 못한 이들 앞에, 제2의 소망의 터전을 갖추게 하여 하나님이 원하는 세계를 다시 맡게 할 수 있을 것이 아니냐. 그 외에는 길이 없다고 보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우리들이 그러한 입장에 서서 아무리 어려움이 오더라도 이것을 극복해 나가야 됩니다. 개인적인 어려움이 부딪쳐 올 것이고, 가정적인 어려움이 부딪쳐 올 것입니다. 국가적인 어려움이 부딪쳐 올 것이고 세계적인 어려움이 부딪쳐 올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총합한 어려움이 우리에게 부딪쳐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의 어려움까지도 우리에게 맡기려고 우리 앞에 웃는 시험까지 할 수 있는 때가 있을지라도, 우리는 일편단심, 뜻을 위하고 가야 할 목적을 위해서는 불변의 신념을 가지고 최후까지, 낙망이 아닌 희망을 갖고 가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에는 그러한 무리를 하나님도 필요로 할 것이고, 인간도 필요로 할 것이며 역사시대에 왔다 갔던 수많은 영인들도 필요로 할 것이 아니겠느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이러한 책임을 짊어진 하나의 생애 노정, 하나의 뜻의 길을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의 종교, 그 하나의 종교를 중심삼고 새로운 문화 창건의 역사를 편성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 아니겠느냐. 그것이 인류의 소원이요, 만민이 바라는 소원이요 희망이 아니겠느냐. 이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다운 인생이 가야 할 길입니다. 지금까지 오고갔던 모든 인생들은 이것을 이루기를 바랐고, 이것을 이루어 놓기 위해서 수고하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총결산지어야 할 책임을 짊어진 무리는 누구냐?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통일교회 여러분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바로 여러분에게 말하는 선생님의 요구요 희망인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 길을 가기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 선 예수님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하는 요 기준에 살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공적인 입장에 서서 망하기를 바라고 나서는 날에는 우리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세계를 위해서 망하더라도 삼천만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단행하겠다고 하며 나서는 날에는 우리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습니다. 이북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수적인 면에서 우리를 못 당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고 가는 인생길을 새로이 편성하고 새로이 가려 줘야 할 사명이 통일교회에 있다는 것입니다. 비약해야 되고 도약해야 될 이 시점에서 이것을 못 해 가지고 비약을 한들 뭘할 것이며, 도약을 한들 뭘할 것이냐? 이것은 슬픔을 대신 소화시키고 어려움을 대신 소화시킬 수 있는, 기쁨과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그 길을 어떻게 가느냐 하는 문제에 귀결됩니다.

이것만 하는 날에는 제 2의 희망의 세계가 우리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이고 제 3의 이상의 천국은 우리를 통한 끝에 비로소 형성되리라는 것은 틀림없는 결론인 것을 알고, 그런 책임을 하기 위해서는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죽고자 하는, 생명을 각오하고 나서는 그것 외에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아시고…. 오늘도 수택리에 경기도와 서울과 강원도 식구들이 모일 줄 압니다.

세계적인 무대를 가려 가야 할 때가 목전에 다가왔다

절박한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야말로 우리 통일교회가 소망을 가지고 행해 나온 모든 과거를 청산지어야 됩니다. 청산짓는 데는 어떻게 청산짓느냐? 통일교회와 더불어 청산짓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더불어 청산지어야 합니다. 나라와 더불어 청산지어 가지고 세계와 더불어 청산지어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나라에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와 더불어 청산지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앞에 나라와 더불어 청산지을 수 있는 일을 맡긴다면,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은 세계와 더불어 청산지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이 제4차 세계 순방노정의 의의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편안한 잠을 잘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만히 앉아서 자기 자신과 가정의 안일을 꿈꿀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자나깨나 이제 정한 세계적인 무대를…. 여러분이 갈 수 있는 싸움터를 가로막아 가지고 이것을 단축시키고, 이런 시련 무대가 없게끔, 편안하게 갈 수 있게끔 어떻게 감축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하나님을 붙안고 또 투쟁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입니다. 이것을 알고….

이제는 국내와 국외에서 평면적인 세계적 기반을 닦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고생한 여러분들도 세계적인 무대를 가려 가야할 때가 목전에 왔다구요. 그러려면 자그만치 나라를 위하고,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격동하는 운세권내에서 오늘날 우리가 절박한 사정을 중심삼고 이러한 입장에 섰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부여한 절호의 찬스가 아니냐. 이 찬스에서 여러분이 사명을 감당하느냐 하는 여부에 따라 앞으로 세계에 영향을 어떻게 미치느냐는 문제가 좌우된다는 것을 알고, 이번 시기를 무의미하게 넘기지 말고 뜻 있게 총결산짓기 위해서 움직여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지금 선생님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니만큼 여러분들도 그러한 각오 밑에서 금후에 잘 대처해 주기를 바라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 도

아버지, 우리에게는 당신으로부터 이어받은 기쁨의 한 날이 없었습니다. 당신의 행복이 어떻다고 하는 것도 몰랐고, 당신의 사랑이 어떻게 고귀하다고 하는 것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또한, 당신이 가야 할 바른 길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이제 끝날에 와 가지고, 이 최후의 종착점에 선 결과적인 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출발을 당장에 해야 하는 아버지의 사정 앞에 일치될 수 있는 본연의 당신의 창조본성의 이상세계를 저희들이 그릴 수 있어야만 되겠습니다.

그러는 데는 세계의 극복이라는 비장한 생사 문제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세계의 비운이라는 슬픈 문제가 저희 앞에 가로놓여 있습니다. 이제 저희의 슬픔은 저희 자신의 슬픔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소리는 세계에 진동하고 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이 가야 할 수난길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바라보게 될 때, 오늘날 통일의 무리들은 통일교회가 출발한 그날부터 국가복귀라는 엄청난 과제를 안고, 반대받는 자리에서도 끈질기게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이 민족 앞에 쫓겨나지 않고 찰거머리와 같이 붙어 가지고 세계 무대로 연결시키면서 발전해 나왔습니다.

이제 통일교회 운세권이 대한민국의 운세권보다도 클 수 있는 환경을 급속적으로 발전시켜서, 대한민국이 금후에 갈 수 있는 수난길을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될 당신의 소명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이제 그것을 준비해야 될 안팎의 책임이 저희에게 강요되고 있는 것을 절감하옵니다.

국내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아버지여,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이 어디 가든지 안팎이 하나가 돼야 된다는 뜻을 알았습니다. 당신은 7년 앞서 간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제부터 1978년까지 이 전세계의 운명을 판가리해야 할 세계사적인 책임이 통일교회 가는 길 앞에 있다는 것, 그때까지 당신의 복귀섭리의 기간이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아버님이여, 저희들은 그때까지 가려고 하옵니다. 또한 그때를 넘어서 3차 7년노정이 끝나는 1981년까지 가야 되겠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이 금후에 가야 할 그 길에 있어서도 앞으로 1981년까지가 세계의 정상에 오르느냐 못 오르느냐 하는 안팎의 운세를 가려야 할 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그것이 연결되면, 1984년까지는 세계사적 과정에 결정적인 운명을 세워 놓지 않으면 저희들이 살아온 보람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야 할 기정적인 노정이요, 결정적인 노정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와도 그 바람은 우리가 졸까봐 부는 바람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혹은 폭풍우가 몰아치거들랑 그 폭풍우는 그 집에 있다가는 망하기 때문에 집을 나오라고 권고하는 것인 줄 알아야겠습니다. 부딪쳐 오는 모든 것은 우리를 격려하기 위한 아버지의 최후의 인연으로 알고, 이것을 흡수할 수 있는 무리가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그 누구도 모르는 길을 지금까지 가게 하신 아버지 앞에 머리를 숙일적마다 황공하옵니다. 내가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 한국 근대사에 있어서 수십 년간 수고하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이 민족을 찾아온 당신의 역사적인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한스러운 역경을 거쳐온 이 민족을 동정하는 심정을 가진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이 민족은 아시아 일각에서 반만년 역사를 거쳐오면서 그 누구도 모르는 수난길을 극복해 나온 민족이었기 때문에, 번영된 나라의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천지에 드높이 품고 있는 애국심을 지닌 민족이로되 하나의 주권을 중심삼고 남의 나라를 침범할 줄 모르는 어린애와 같은 민족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역사시대의 어떠한 민족보다도 한민족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의 사정과 통할 수 있는 민족이었기 때문에, 오랜 역사를 두고 동정해 오던 이 나라 이 민족인 줄 아옵니다.

왜정 말기에 일본으로부터 당한 수난의 결과를 중심삼고 세계사적으로 순교의 사명을 이어받아 스스로 죽음길을 당신과 더불어 가는 사람이 많은 것을 아시는 아버지였기 때문에, 시대적인 역사의 인연을 이 민족 앞에 세웠사옵니다. 그러기에 그런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오늘날 이 민족이 통일교회와 더불어 손발을 같이했더라면, 이 나라는 복귀의 천국이 되고도 남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만일 통일교회 무리가 1억이 되었던들 대한민국은 천국이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이 세계가 새로운 문화권을 이루었던들, 이 세계는 우리의 휘하에서 움직일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수십 년간 당신이 찾아왔던 길을 환영하지 못한 민족이었습니다. 그 환영하지 못하게 된 책임을 대표로 짊어진 이 아들이었기 때문에 민족이 맞을까봐, 민족이 망할까봐, 우리가 맞기를 바라며 나왔고 민족이 쓰러질까봐 우리가 쓰러지기를 자청해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에 와서는 저희들은 만신창이가 된, 상처를 입은, 병신이 된 몸을 가지고 가야 할 최후의 싸움터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국가의 시련과 더불어 교회와 사회의 시달림을 겪으면서 피눈물나는 그 길을 극복하던 그 걸음…. 그 누구에 비할 수 없는 서글픔을 품고 사는 우리와 슬픈 생활이요, 고독하다면 누구보다도 고독한 생애를 더듬은 생활들이었지만, 당신이 더 고독한 것을 알았고 당신이 더 슬픈 것을 알았사옵니다. 하오니 이제 되받은 그 고독하고 슬픈 입장에서 영원을 두고 고독의 길을 참아 나오는 아버지의 슬픔을 저희들이 가히 짐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고독한 자리에서도 당신을 위로하려 했던 저희의 마음을 아시는 아버지였사옵니다. 통일교회를 버릴 수 없는 딱한 아버님이라는 것을 저희 들이 생각할 적마다 불쌍하고도 불쌍한 아버지인 것을 저희들은 느끼기 때문에, 맞는 그 길에서도 눈물과 더불어 당신을 위로했고, 쫓기는 발걸 음을 옮기는 그 자리에서도 당신의 서글픈 역사적인 이런 망명의 길을 추종하면서, 역사적인 아버님의 심정을 위로시키기 위한 걸음을 더듬어 오고 있사옵니다.

전통을 남겨야 할, 하늘의 사명을 짊어진 아들딸이 가야 할 길을 알았기 때문에, 망하기를 바랐지만 저희들은 망하는 자리에 서도 망하지 않았고, 세계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일이 있거든 스스로 죽기를 바랐지만, 당신은 저희들을 남겨야 할 뜻이 있고 남겨서 이 뜻을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죽을 자리를 모면하여 주셨사옵니다. 그 자리를 넘기 위해서는 죽음 이상의 시련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될 당신의 서러움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여곡절의 노정이, 천만 갈래로 상충될 수 있는 사건 사건이 밀어닥치는 그때마다 엘리야가 '나만 남았나이다' 하며, 바알을 대해 욕할 수 없었던 심정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그 누구도 수행할 수 없는 고독한 자리에 머무르게 될 때, 당신이 찾아와 위로해 주시던 그때의 사정, 불쌍한 아들딸들이 당신을 배반할까봐 두려워하는 그 심려가 컸기 때문에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시던 것을 생각할 때마다, 천만번 죽더라도 죽음길에서 당신을 대해 저의 위안과 저의 구원을 기도하지 않겠다고 결의하고 그렇게 나가는 것이 통일교회를 지도해 나오던 이 자식의 소원인 것을 당신은 아시지 않습니까?

아버지! 민족과 교단을 다 잃어버리고 갈 길이 없어 감옥을 찾아 나서던 당신의 서글픔을 알고 난 그날부터, 내가 죽더라도 이 한을 풀겠다고 한 결심을 아직까지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밤이나 낮이나 시간을 재촉하면서 그 길을 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이 자식의 책임인 것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오는 길이 험하였으면 가는 길은 더욱 험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고 가는 길을 참고 극복해 나가야 되고, 오늘 절망하면 내일의 슬픔을 풀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늘 절망을 기쁨으로 맞이해야 할 것이 당신을 모시는 불충한 자들이 가야 할 길이옵니다. 하오나 당신이 환영의 길을 맞지 못한 복귀의 비운의 역사를 넘어서서 자유와 평화와 행복속에서 자유로운 자세를 가지고 만면의 회색을 띠며 '사랑하는 내 아들아' 하며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서, 탕감조건을 넘어선 자리에서 아버지를 못 불러 본 불쌍한 자식이 이 자식이옵니다.

그런 자리에서 아버지라 부르고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이 당신이 바라는 소원일진대 그 이상의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일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 오늘날 만민이 바라는 소원이기에 그런 길이 있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적마다, 그런 자리가 될 때까지 죽어서는 안 되고,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반세기의 생애를 거쳐 지금까지 나왔사오나 이제 또다시 가야 할 세계 무대로 당신이 같이 가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다시 눈물의 길이 있거든 당신이 눈물지어야 되겠고 고독한 사정이 있거든 당신이 고독을 당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불효자의 길을 면치 못한 금후의 행로를 언제나 당신이 대해 주고 이끌어 줘야 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준비의 길, 최고의 십자가를 지는 한이 있더라도 불변의 하늘을 모실 수 있는 길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 소자의 소원이오니, 허락하신 뜻과 더불어 이 민족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가고 오는 모든 길은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장래의 길을 열기 위한, 불쌍한 자리에서 최후의 순간까지 생사를 결정지을 터를 결정해 놓고 승리를 다짐지어야 할 길이었고, 이 무리들을 위해서 가야 할 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디 가나 이 땅을 잊을 수 없고, 이 곳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가고 나면, 헤어지는 그날부터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진 전진밖에 있을 수 없는 결정적인 노정이 우리의 배후에 있사오니, 그 길을 위하여 과거의 죄의 노정을 청산짓고, 가야 할 운명길을 직시하면서 최후의 승리를 다짐하며 하늘의 안위의, 안식의 모습을 마련하기 위해 가기를 결심하는 이 시간이 되기를 바라옵니다.

아버지, 오늘, 내일, 모레, 글피 15일까지 전국에 있는 식구들을 아버지께서 격려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하나가 돼야 하겠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나돼야 하겠습니다. 이번에 원리연구회 대학생들을 일선에 내세우고 또다시 몰아내야 할아버지의 명령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자기 멋대로 움직여 왔지만, 이제부터는 신의의 법도를 따라서 최후의 절정을 넘을 수 있는, 숨막히는 민족적이요 세계적인 운세 앞에 절대 순응하는 어린애의 무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당신의 소원인 줄 알고 있습니다.

남아진 복귀의 천국을 바라보면서 최후의 남아진 전선 앞에 강자의 기백을 가지고 하늘의 정병의 모습으로 출정하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맡겨 주신 보람 있는 목적의 세계 앞에 내일의 희망을 짊어지고 가는 무리로서 최후를 결하는, 당신이 보시기에 믿음직하고 당신이 칭찬할 수 있기에 부족함이 없는 무리들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고, 또 책임을 맡겨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