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2년 11월 1일, 이달의 새로운 날 아침에 당신의 은사와 사랑이 저희들과 같이하여 주옵소서. 10개월을 지내고 11개월째 맞는 이날이 뜻 있는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제 나머지 60일 기간을 저희들이 정성을 다하여 1972년을 아버지 앞에 뜻 있게 봉헌해 드리는 이해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지금까지 저희들을 인도하신 아버지여, 나머지 2개월을 또다시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이달에는 여러 가지 계획도 있사옵고, 특별한 기념의 날도 며칠 후로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한 해 한 날이 지나감에 따라 저희들이 기념의 날을 맞을 때마다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한 해를 의의있게 보낼 줄 알고, 실적을 갖추어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는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할 것이 저희 앞에 맡겨진 사명이요, 저희들이 책임해야 할 소행인 것을 아오나, 지내 놓고 언제나 후회하고, 미급하고 미완성된 자신들을 탓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아버지의 무릎 앞에 모여서 아버지 앞에 고하는 일체의 사정을 들으시사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일일이 대해 주시어서, 금년에 있어서는 각자 각자가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 처하였던 경험과 자랑을 남길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땅의 소원이 성취됨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저희들은 원리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은 하늘의 일은 마음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그 기준을 중심삼고 한 말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실체적으로 이루어서 하늘 앞에 바쳐져야만 하늘의 소원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생각 하게 될 때, 이 땅에 살고 있는 기간이 얼마나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저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나가는 하루라 할지라도 그날 가운데 일생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가치를 다짐하는 하루로서, 하늘 앞에 보람 있는 날들로 맞고 사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습관성이 있어서 하루를 무시하고 오늘이 가면 내일 다시 오는 그런 날과 같이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루하루 빛난 아버지의 심정의 세계를 다짐할 줄 아는 아들로서의 딸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함과 동시에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제 이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소원의 나라까지 연결시키기 위해서 보통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이 가지 못하는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힘을 더하여 주시옵고 소망을 가중시켜 주시옵소서.
내일이 나를 찾아오는데 주저하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되겠고, 오늘이 나를 스쳐가는데 슬픈 날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 이날이 기쁨의 날로서 아버지 앞에 자랑이 되고, 그러므로 내일에 찾아오는 날들이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환영하면서 찾아올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런 나, 그런 각자로서 하늘을 대하게 될 때, 우리가 아버지를 보고 싶듯이 하늘도 당신의 아들딸로서 우리를 보고 싶어할 것입니다. 사람 앞에 나를 안다고 하면 나도 사람 앞에 안다고 하겠다 하였고, 사람을 대접하는 대로 하늘도 대접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하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문제가 저희의 생명선이 된다는 사실을 저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저희가 하늘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하늘을 얼마나 흠모하느냐에 따라 아버지께서 저희를 사모하고 흠모할 수 있는 상대적인 여건이 갖추어지고, 이러한 일체적 이념을 찾아 나오시는 아버지의 소원을 알았기 때문에 저희는 세상만사를 넘어서라도 하늘을 그리워하면서 아버지 앞에 돌아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진정, 우리가 기뻐하시는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것을 지극히 서러워해야 되겠습니다. 심정을 가다듬어 당신의 성상을 모시고 당신의 품 안에서 살고 싶은 것이 저희의 소원이옵니다. 그렇게 소원하였던 것이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그 비례적인 기쁨과 영광이 머물 것이어늘, 저희 마음에 하늘과 더불어 살고 싶은 마음,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하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배가 고프면 밥을 갈구하는 이상으로 아버지를 사모해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가 짊어진 십자가의 길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아버지가 염려하는 이상의 염려하는 마음이 앞서야 할 것이 자녀된 도리의 책임이 아니겠습니까? 부모는 수난길의 한스러운 자리에 섰는데도 불구하고 자식으로서 그런 것을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한다면 이는 차라리 없던 것만도 못한 자식이 될 것이 아니옵니까?
아버지, 저희가 그러한 무지의 자리에 있거들랑 저희들을 일깨우셔서 당신의 사정을 통과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환경에 처한 아들딸로서 대해 줄 수 있기를 바라옵니다. 그렇지 못한 입장에 저희가 있다면 얼마나 억울하옵니까? 얼마나 분통하옵니까? 역사시대에 있어서 하늘이 저희들과 자연스럽게 통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지 못했던 것을 알면 알수록, 저희들은 타락권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얼마나 원통스러운 것인가를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이것을 탈피하고 이것을 초월하기 위하여 하늘 앞에 힘을 요구하고, 하늘 앞에 협조를 고대하는 것이 저희들의 매양 소원하는 바가 되어야 될 것임을 저희들이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아버님, 이제 어린 저희의 몸 마음들을 아버지 앞에 봉헌하오니, 저희 가슴속을 헤치시어 당신이 임재할 수 있는 본성의 여운이 있거들랑 그 여운을 사랑하시옵고, 타락으로 말미암아 맺어진 죄악의 썩은 뿌리가 뿌리를 박고 있거든 여지없이 빼 버리시옵소서.
당신이 품고 사랑하고 당신의 뜻 앞에 세우시어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원하였기 때문에, 당신이 원하는 아들딸로서 새워질 수 있게끔…. 저희들의 힘으로는, 흠모하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재창조 역사이기 때문에 99퍼센트까지는 아버지께서 수고해야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밥을 먹고 오고 가고 자고 깨고 하는 전부가 하늘과 동반하여 하늘과 더불어 상대가 되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앞에 남아 있는 수난길을 저희들이 나섰사오니 저희들이 가야할 수난길이 있사오면 극복해야 되겠고, 나라와 세계로 가야 할 수난길이 남아 있거든 천만 번 죽더라도 가야 할 운명길이기 때문에 이 시간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야 되겠고, 오늘 하루라도 어떠한 고빗길을 지내기 위하여 몸부림쳐야 되겠습니다. 하루하루에 다짐되어 들어가는 싸움길을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한스런 복귀의 운명길에 저희가 사로잡힌 거와 같은 비참한 자리에 있는 것을 볼 때에, 저희는 타락한 후손입니다. 틀림없이 타락했습니다. 당신과는 틀림없이 먼 자리에 있습니다.
아버지여, 찾아오시옵소서. 만일에 듣지 않거든 채찍으로 치시옵고, 가기를 원치 않거든 강제로라도 끌고 가시옵소서. 죽어서는 안 되고 머물러서는 안 되는 사망의 구렁텅이를, 거기에서의 한계선을 한 발자국이라도 넘겨 놓아야 할 애달픈 당신의 사정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이끄시어 그곳까지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원하면 당신도 원하는 것이오니 인도하시옵소서. 저희가 부족하기 때문에 저희가 소원하는 것을 능력 많으신 당신의 손길에 의지하고 고대하는 가련한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달을 지내고 나니, 또 한달을 맞게 되옵니다. 10월을 지내고 11월을 맞습니다. 이 아침이 자랑의 아침이 될 수 있게 아버지, 찾아오시옵소서. 이 아침 많은 사람이 아버지 앞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정이 통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고 심정이 통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 당신의 소원의 뜻 앞에 전진하는 동역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행군하는 하늘의 병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전쟁터에 나가 일대일의 책임을 완수하여 충의 도리를 다 세우고 가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달은 이 자식이 먼 곳으로 떠나야 할 달도 되옵니다. 가고 오는 모든 행로를 당신이 정하시옵고 당신이 지키시옵소서.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오고 가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보고 싶어하는 자식들이 서로 만나 아버지를 얼싸안고 하늘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이 당신이 보고 싶은 날이요, 그것이 우리를 대하는 당신의 소원인 것을 알았습니다. 동서양을 넘어서 하늘의 뜻을 교류시키고 당신의 심정을 논의하면서 민족적인 사정을 넘어서서 천주적인 사정 앞에 하나될 수 있는 무리들을 보기를 얼마나 고대하였습니까? 역사에 없었던, 상례적인 회합이 아닌 것을 생각할 때, 필연코 이번 길이 당신의 자랑이 되게 하여 주옵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국에 있는 자녀들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 하는 것을 생각하옵니다. 이버지, 비탈길을 거쳐 나가야 할 이 시대적인 사명을 저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홀로는 미끄러져 나갈 수밖에 없는 이때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에 의해 드리워지는 밧줄을 단단히 붙들 뿐만 아니라, 자기의 몸에 이것을 잡아 매고 당신이 끌어 주는 밧줄의 방향을 향하여 저희들은 반항없이 따라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책임 소행만이 저희의 갈 길이요, 운명의 길인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한국은 한많은 한스러운 한국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한국이 되어야 되겠고, 한정된 한국이 아니라 무한한 한국이 되어야 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 누가 이러한 한국의 사명과 한국의 입장을 세울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할수록, 오늘 보잘것없는 지치고 혹은 초라한 이들의 두 어깨에 막중한 짐들이 짊어져 있음을 알게 되옵니다. 밤이나 낮이나 당신의 사연과 통하고 당신의 인도하시는 보조의 길을 진정으로 원하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뜻, 기필코 가야 할 인류의 운명의 고개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서 하늘은 부르고 있사옵고, 수많은 인류들은 어서 속히 해원성사의 길을 닦아 달라고, 자기들도 복귀의 한의 길을 넘어서 가지고 천국으로 직행할 수 있는 길을 가게 해 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고 바라보면서, 더 바쁜 걸음으로 달려가야 할 자체 자체의 모습들인 것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나'라는 존재는 누구를 위하여 태어났느냐고 묻게 될 때에,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을 위하여 태어났고 당신의 뜻을 위하여 태어났습니다. 누구와 더불어 살 것이냐 할 때에, 당신과 더불어 살고 뜻을 중심삼고 살 것이었습니다. 누구와 더불어 죽을 것이냐 할 때에, 당신의 사랑을 붙안고 당신 앞에 돌아가기 위하여 죽을 길을 가야 할 것이 우리의 운명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어린양입니다. 저희들은 철부지한 어린애들입니다. 배가 고프면 그것을 못 참아 울 줄밖에 모르고, 추우나 더우나 울 줄밖에 모릅니다. 어디 인간이 소원성취의 한 면을 갖고 있느냐 묻게 될 때,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눈물로써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아버지를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을 아시사 이 아침도 찾아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목을 안고 영원히 있기를 바랐던 아버지, 아버지의 목을 붙안고 놓을 수 없는 오늘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그 시간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내 손이 옷자락을 붙들었거든 이 손가락이 굳어지더라도 놓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한 번 만나면 영원히 헤어질 수 없다는 간곡한 사연에 사무칠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못한 인간들은 6천년 동안 탄식의 이 복귀의 노정 위에서 수없이 쓰러져 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망의 함정이 여기에 얼마나 많이 첩첩이 가로놓여 있는가를 생각할 때, 아버님을 붙들고 아버님이 거동하는 거기에 일치될 수 있게 보조를 맞추지 않고는 이 험한 구렁텅이를 넘을 수 없고 초월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옵니다. 이 길이 얼마나 마음 졸이는, 초조한 하루 하루요, 인생길인가 하는 것을 저희들은 생각지 않고 지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소년시대, 어리석은 청년시대, 어리석은 장년시대, 어리석은 노년시대로, 매양 찾아오는 습관적인 날과 같이 지내 버리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어느 한 때 칼을 앞에 놓고 생사를 결하는 심각한 국면에서, 아버지의 동조를 구하고 아버지가 내려 주는 책망이라도 받아야 할 운명길이 타락한 무리들의 갈 길인 것을 저희들이 알았기 때문에 오늘 통일교회 교인들은 심각한 무리들이옵니다.
저희들은 인간을 사랑하기에 미쳐야 되겠고, 뜻을 이루기에 미쳐야 되겠고, 자기의 생명이 연약한 것을 아버님한테 고하면서 하늘의 협조를 받기 위하여 미친듯이 아우성을 쳐야 되겠습니다. 그 누가 뭐라 한다고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옵니다. 아버지를 따라가는 길 앞에 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비록 보잘것없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대해 그 누가 뭐라고 한다 하더라도 아버지를 바라보고 가는 그 길은 소망의 길이요. 아버지를 따라가는 그 길은 저희들이 가야 하는 필연적인 길이기 때문에, 그 필연성을 깊이 알고 있는 저희들은 자기의 초라한 모습을 볼래야 볼 수 없고 환경의 비웃음을 볼래야 볼 수 없는 심각한 날들을 향해서 뛰어서 따라가야 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을 부르고 당신을 찾던 이들이 지쳐서 쓰러져 누웠다 할 때, 아버지는 그들을 버리고 갈 수 없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더 바쁜 걸음을 멈추고 저희들을 바라보며 깨기를 바라는 아버지는 얼마나 불쌍하시겠습니까? 저희들은 매양 깨어 있어야 되겠습니다. 매양 깨어 있어야 되겠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깨어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끝날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누구를 위해 기도할 것이냐 할 때에, 하늘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일체가 되지 않는 이 몸은 밤을 지새워 몸부림치면서라도 그 인연을 찾기 위하여 기도해야 할 때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과연 타락하였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얼마나 느꼈습니까? 나는 홀로 황막한 사막 가운데서, 모래바람이 불어 앞도 안 보이고 뒤도 안 보이는 그런 자리에서 앞길을 가려 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입장이 아니옵니까? 이제 어디로 갈 것이냐? 가면 갈수록 소망의 길이 아니라 절망의 길밖에 없을 것 같은 그런 입장에 서게 될 때, 동녘 하늘에 빛난 하나의 샛별이 나타나서 갈 길을 가려 준다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그렇지 못하거든 형상이나 상징도 좋거니와 하늘이 음성을 통하여 이리 오라고 하시는 것도 좋고, 그보다 직접 모습을 나타내시어 저희의 갈 길을 인도할 수 있는 그날을 가졌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사선을 넘고 간곡히 고대하던 마음이 그 중심에 사무치기 전에는 그런 일이 없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죽는 이상의 심각한 자리에서 하늘의 삶을 고대할 수 있는 자신이 못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이러한 나, 고난 가운데 사로잡혀 쓰러질 나, 운명과 더불어 처절한 한을 남기고 가야 할 나, 그 누구를 의지하고 있다 해도, 썩은 막대기와 같은 것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적에, 얼마나 배가 아프고 얼마나 초조하고 몸부림쳐도 어쩔 수 없는 그런 생명을 갈구하는 마음을 가져 가지고 몸부림쳤던 경험과 체험을 갖지 못한 저희인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채찍이라도 쳐 가지고 최후에 남아질 수 있는 길로, 좁은 골짜기의 길로 몰아서 저희들이 단거리로 가기를 바라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 아니옵니까?
아버지, 부디 버리지 마시옵소서. 아버지의 손길이 같이하시는 곳에는 소망이 있는 것이요, 아버지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는 거기에는 낙망은 없는 것을 저희가 알았기 때문에 각자대로의 깊은 생활의 일면에서 아버지와 인연맺고, 생활 환경에서 아버지가 실제로 움직이는 사실들이 현현할 수 있는 그 자리를 고대하는 것이 저희의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아버지! 이들을 붙들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11월도 그렇고 12월도 그렇고, 또한 1973년이 그렇게 저희 앞에 다가옵니다. 한 해 한 해 가면 갈수록 기쁜 날들, 기쁜 해가 아니라, 탕감복귀로서 정한 때가 원한의 때로 찾아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1972년, 이해는 역사적인 해라고 강조했던 날들이 거의 다 지나가고 이제 60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세계정세도 변했지만 한국의 사정도 변했습니다. 여기에 보조하여 하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통일교회도 변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변하지 못하였다면 이는 고장난 것이요, 잘못된 것임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는 외적으로 변하는 것보다도 마음이 변해야 되겠습니다. 애달픈 마음이 사무쳐야 되겠습니다. 뜻을 위해 생명을 기울이면서라도 가야 된다는 강한 신념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변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나로서 아버지 앞에 바쳐지는 1972년이 되지 못한 것을 분하고 한스러워 해야 되겠습니다. 나머지 이 기간이라도 저희가 뜻 있게 지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지여, 붙드시사 사랑의 품에 보호하여 주시옵고 이끄시는 동정의 마음을 버리지 마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합니다.
눈을 뜨면 저희가 보는 자연은 매양 마찬가지의 자연으로 나타납니다. 눈을 뜨면 잊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잊게 됩니다. 홀로 사망의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그런 수많은 무리를 바라볼 때에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홀로 서 가지고 하늘길을 가려 가야 할 걸음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연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이 세계를 보고 있는 이상의 간절한 마음을 갖고 이 길을 달려가지 않고는 하늘을 바라볼 수 없고, 하늘을 친히 보고 따라갈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저희들이옵니다. 하오니, 아버지여, 구해 주시옵소서. 할 수만 있으면 저희들을 이끄시옵소서.
우리는 내 뜻을 내세웠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인간이 이렇기 때문에 어려운 것을 아시는 하늘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디부디 버리지 마시옵시고 저희들을 강제로 끌어서라도 당신이 원하는 곳에 머물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어린 마음들을 가지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잘난 마음은 사탄이 기뻐하는 것이요, 어린 마음은 하늘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어린애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자고 깨면 어머니 아버지를 부르는 것이 어린애의 생활태도가 아니옵니까? 어머니 아버지를 중심삼고 가고 오고 하는 것이, 혹은 기뻐하는 것이 어린애의 입장이 아니옵니까? 그들은 자기가 어떻다는 것을 모르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저 상대적 여건에 따라 먹을 것이 있으면 좋아하는 것이요, 어머니가 있으면 좋아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상대적 권, 상대적 대상을 좋아하는 것이 어린애입니다. 남을 위하고 의지하고 기뻐하려고 하는 것이 어린애의 입장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들은 어린애와 같은 마음을 못 가졌습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기뻐할 수 있는 그 마음, 좋은 것이 있으면 자기 혼자 어디 가 가지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앞에 와서 그것을 보고하고 부모와 더불어 좋아하려는 것이 어린애인 것을 알게 될 때에, 그것은 못 가졌더라도, 벌거숭이 어린애와 같은 저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어린애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그런 어린애, 보고 싶은 어린애를 당신은 마음으로 얼마나 고대했습니까? 하늘이 얼마나 그런 어린애와 같은 모습을 고대했습니까?
순결이 그 자체로서 여과되어 가지고 나타나 환경에 반영시킬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 어린애의 모습이 아니옵니까? 천진난만한 어린애를 바라보고 저주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옵니까? 아무리 원수라 하더라도 어린애를 사랑하고 나서 미워해야 되는 것이 아니옵니까? 하늘이 사랑하는 자리에서 품길 수 있는 어린애가 되거든 사탄도 이것을 칠 수 없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인간들은 그런 어머니 품에 품겨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옵니다. 어머니 무릎에 앉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매양 어버이의 품에 품길 수 있는 한 날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것을 모르는 인간들 앞에 그것이 얼마나 소원이며, 부모의 품에 품기어서 자랑을 하면서 부모의 마음 앞에 영원히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 사랑에 어린 모습이 되는 것이 얼마나 소원인지 모르옵니다. 그 모습을 부모도 얼마나 바라고 있으며 얼마나 그 모습이 아름다운가를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옵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아버님, 찾아오시옵소서. 이곳은 통일교회 본부가 되는 자리이옵니다. 여기에 서 있는 이 자식은 통일교회를 책임진 아들인 것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한스러운 모든 일들이 눈에 어리옵니다. 잊을 수 없었던 그 날들이 생각되옵니다. 세상의 일들이 당신을 그리워할 수 있는 자극이 못 되고, 영광의 조건으로서 바쳐 드릴 수 있는 것이 못 됐다면 그것이 얼마나 얼마나 비참한 것이 되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까지 당신의 보호 밑에서 살아 남은 것만도 감사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가야 할 길이 바쁜 것을 알았습니다. 국내외 정세를 앞에 놓고 하늘 앞에 담판을 지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개인의 사정과 개인의 생활을 위하여 염려하는 사람은 부지기수이지만 당신의 뜻을 놓고 염려하는 사람은 그렇게도 희귀한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아버님은 과연 불쌍하신 분이었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과연 고독하신 분이었습니다. 그 고독한 분을 더 고독하게 만드는 불효막심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기막힌 사연, 목을 놓고 울어도 당신의 사연에 미칠 수 없는 미비하고 미비한 이것들은, 천지를 창조하신 대주재 되시는 아버지께서 아들이라고 부를 수 있고, 사랑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밑에 있었습니다.
아버지, 보기 싫은 자식이거든 보지 마시옵소서. 이것이 저희의 소원이옵니다. 그래서는 안 될 입장을 알고 있는 저희들, 보기 싫어하는 것들이라도 붙들어야 할 아버지의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런 당신은 우리 대신 원수들 앞에 조롱을 받아야 되고 십자가의 길을 가야 되는 것이 아니옵니까?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를 알고 나면 아버지를 부르기가 무서운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알면 알수록 두려움을 느끼는 마음이 큰 것을 저희들은 깨닫게 되옵니다. 감히 아버지 앞에 미칠 수 없는 추한 모습을 무엇으로 가릴까 주저해야 하는 이런 자신들의 입장인 것을 저희들은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제 11월 초하루를 맞습니다. 이 시간, 아버지, 저희들은 같이 머리를 숙여 아버지 앞에 기도합니다. 이제 60일 기간에 무엇을 남길 것이냐를 놓고 저희들은 결심해야 되겠습니다, 새로이 각오를 해야 되겠습니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에, 그 역사가 비웃음을 받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시대를 바라보게 될 때에, 이 시대가 조롱하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소망하는 미래를 생각할 때에, 오늘의 부모들이 이와 같은 미래가 찾아오는 것을 싫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자기를 아버지 앞에 제시해 놓고 당신만이 나를 벗겨 주고 당신만이 나를 씻겨 주기를 고대하는 이 시간이오니, 저희들을 품으시사 기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어린 것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더우기 선두에서 달리는 기동대원들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가는 곳곳에 하늘의 숨은 비밀의 역사가 풀어지고, 살아 계신 아버지의 현현이 거기에 이루어져서 사망의 세계를 가로막고 생명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거룩한 활동이 되기를 바라옵고 원합니다. 제가 다시 만나게 될 때는 책망으로써 그들을 대하는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늘이 자랑과 칭찬으로써 대할 수 있는 그 시간이 되옵기를 바라옵니다.
아버지, 모든 것이 아버지가 정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옵니다. 뜻하신 대로 이끄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그와 같은 길을 갈 것을 이 시간 각자가 다짐하옵니다. 모든 것 다 바쳐 효자 충신의 도리를 세우려고 맹세하옵니다. 다시 기억하시고 이끌어 주시옵길 아뢰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사람은 누구에게나 소원이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낮은 계급에 있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소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원을 가졌으면 그 소원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개인이 그러하듯이 어떤 단체면 단체에게도 소원이 있는 것입니다. 소원을 갖고 있는 그 단체가 소원을 성취하고 이루겠다고 하는 것은 곧 그 소원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원을 성취하려면 반드시 과정을 거쳐 가지고 그 바라는 대로 이것이 일치되는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렇기 전에는 성취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 나라 역시 원하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그 원하는 것이 크면 클수록 그 원하는 것을 이루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소원의 대소에 비례해 가지고 성취 과정에서는 대소의 수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나라에도 소원이 있고, 더 나아가서는 전세계의 국가, 전체 인류도 소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인간들이, 혹은 전세계의 인류가 공동의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같은 소원의 길을 가지 않고는 인류가 바라는 소원성취는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의 시대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평면적인 입장에서 보게 될 때에, 그와 같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평면적인 현상이 역사시대를 통해서 겹겹이 쌓여져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 시대 시대, 혹은 한 해 한 해를 두고 보더라도 그 평면선에 섰던 역사시대의 수많은 인류들은, 개인에서부터 전체의 인류까지 그 시대에 있어서의 소원을 품었던 것이 아니냐. 또, 아담 이후 지금까지 인류는 소원을 갖고 나온 것이 아니냐. 그러면 갖고 나왔던 그 소원이 진정한 의미에서 이루어졌느냐, 소원을 성취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성취하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
신앙길에서 보게 될 때, 아무리 자기가 신앙의 길에서 기쁨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그 기쁨이 영원한 기쁨은 안 되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찾아 왔다가 또 사라지는 기쁨이 돼 버리는 것을 우리가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옛날의 우리 조상들로부터 지금까지 수만 년의 역사를 거쳐오는 과정에서, 그 시대 시대마다 그 시대에 처했던 사람 사람들이 소원을 다 가졌지만 그 소원을 성취한 사람들이 있었느냐? 물론, 사소한 문제나 몇 해의 한계를 통하여서 이룰 수 있는 소원을 일생 동안에 성취한 일은 있을지 모르지만, 인생의 진정한 의미의 이상을 통해서 그 마음 깊은 가운데서 소원하는 이런 소원을 이룬 사람이 있었느냐 하면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이루어진 어떠한 기준이 역사시대에 남아 있고 그 내용이 밝히 기록되었더라면, 인류는 그런 길을 따라 가지고 인생이 참으로 바라는 소원의 끝까지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길을 가르쳐 주는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없다는 것은 그 소원의 자리까지 미치지 못하였다는 것인데-인간은 그러한 결과를 이룰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도 역시 역사과정에 왔다 갔던 사람과 마찬가지의 길에서 다시 소원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 소원은 나만이 특별히 바라는 소원도 아니고, 또 나로 말미암은 소원도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상례적(常例的)인 입장의 소원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으로서의 소원이 무엇이냐? 개인의 소원을 볼 때에, 여기는 남자의 소원과 여자의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그 남자 여자가 소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남자면 남자로서, 여자면 여자로서 장성해 가지고, 성숙해 가지고 결혼이라는 것을 바라고 나왔던 것이 남자 여자가 바라나왔던 역사적인 길이 아니냐. 그것이 인생이 갈 수 있는 소원의 길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갔던 것입니다. 남자면 남자로서만, 여자면 여자로서만 그것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것이 그 개인들의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왔다 갔던 보통 인간들이 소원했던 길로 남아진 것을 우리가 알고 있고, 그런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면 두 남녀가 만나 가지고 사랑하려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사랑의 목적이 어디에 머물 것이냐? 부부면 부부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들이 사랑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자기들 앞에만 그 결과가 미쳐지기를 바라서 사랑하느냐? 자기들 것만의 사랑으로 남아지게 하려고 사랑하느냐? 그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데는 반드시 그 결과가 전체로 인연맺어질 수 있는 그러한 무엇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가 아니겠느냐. 부부 자체로 있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랑이 결실된 그 무엇이 남아지기를 바라는데, 그것이 자녀가 아니냐.
자녀를 왜 남기려고 하느냐? 나에게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상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왜 자녀를 남기려고 하느냐?
자녀를 남기는 데에 있어서 자녀가 적을수록 좋은 것이냐, 많을수록 좋은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사람의 욕심은 자기가 선한 자리에 섰든가, 자기가 고귀한 자리에 섰든가, 자신이 가치적 존재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 가치적인 존재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후손을 많이 남기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요즈음 시대는 산아제한이니 무엇이니 이러한 말을 하는 때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륜도덕의 근본 되는 가정을 중심한 혈육이 많아지고 그 혈육이 상대적 환경에 있어서 넓게 퍼지기를 본성은 바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방지하는 것이 산아제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산아제한을 하는 이때에 있어서 자녀를 제한하는 것은 자식을 원치 않아서 그런 것이냐? 자식을 원치 않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자식을 원하는 데 있어서는 남과 같아야 됩니다. 아들이 있으면 딸도 있어야 됩니다. 아들딸을 낳았으면 그 낳은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을 수 있는 아들딸을 원하는 것입니다. 즉, 다른 모든 아들딸의 중심으로 설 수 있는 아들딸을 바라는 것이 아니냐. 그것은 어떠한 부모, 악한 부모라도 자식을 대해서 그러기를 바라는 것이 진심이 아니냐. 그것이 사랑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모든 사람들을 따라가는 아들딸로 남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혹은 모든 아들딸 가운데에서 일등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또한 그 자식들의 소원이 무엇이냐? 부모 앞에 내가 일등이 되었다고, 당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 내가 미치고 남음이 있다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그 보람의 대가가 내게 이루어졌다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자녀의 마음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이 있으면 그 가정은 또 가정으로서의 소원이 있는 것입니다. 그 가정의 소원이 무엇일 것이냐 할 때에, 잊혀져 간, 상례적으로 있었던 가정과 같은 가정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만은 우리 부부를 중심삼고, 우리 자녀들을 중심삼고 모든 가정의 본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사실입니다. 이렇게 가정을 발전시켜 가지고 하나의 씨족이 됐다면 그 씨족은 모든 씨족 가운데서 으뜸 되기를 바랄 것이 아니냐. 이것이 확대된 것이 한 나라가 아니냐. 대한민국 백성은 누구든지 대한민국이 세계의 어떤 나라보다도 으뜸 되기를 바라는 것이 소원이 아니냐.
그 소원이 전부 다 어디에 연결되어 있느냐? 낮은 것을 소원하는 것이 아니라 전부 다 으뜸이라구요. 비록 국토는 좁고 백성은 적더라도 그 나라를 이루는 그런 무리로서 소원하는 것은 그 나라가 모든 나라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세계가 발전해 나온 것은 전부 다 나라의 귀착점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원리로 볼 때 말이예요.
그건 왜 그러냐? 그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나라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 되겠다 하는 것이 어떤 나라든지 소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의 나라는 어떤 나라가 되어야 된다는 것은 모르지만, 가상적인 소원만이라도 두고, 하여튼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지만 그러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소원이 아닐 것이냐? 그렇기 때문에 개인에서부터 제일 중심의 자리를 연결시키기를 역사시대로부터 현재로, 또한 저 영원한 미래까지 틀림없는 역사과정의 소원으로서 인간들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 그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최후의 갈 길이 무엇이냐? 세계의 중심 나라가 되었다 할 때 그 나라는 세계가 반대하는 입장에 선 나라가 아닙니다. 그 나라는 전체가 환영하는 그 꼭대기, 탑과 마찬가지예요. 그 탑의 꼭대기와 같은, 거기에 올라가 있는 나라와 같은 것이 아니냐.
그러면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세계 인류가 바라보는 자리입니다. 세계 인류가 바라보는 자리인 동시에…. 바라봤다가 절망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기쁨을 느끼는 자리입니다. 희망을 가질 뿐만 아니라 자기가 직접 기쁨을 느끼는 자리입니다. 기쁨과 관계맺을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을 갖게끔 해주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가 타당한 자리가 아닐 것이냐. 다시 말해서 바라보는 그 자체가 소원만으로 남아지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후에는 바라고 바라던 자리 자체가 그저 바라는 자리가 아니라 바랐던 것이 이루어져 가지고 자기가 직접 기쁨의 대가를 서로서로 나눌 수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머물게 될 때에, 비로소 전체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어차피 우리 인간은 그곳까지 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우리 마음의 욕구를 추리해 보게 될 때에, 그렇게 많이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개인, 남자나 여자나 그 길을 가야 할 것이 필연적인 운명의 길이 아니겠느냐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 자리에 나가는데, 전부 다 그 자리에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나라가 그 자리에 나가게 되면, 그 나라를 중심삼고 그 나라 가운데 어떤 특정한 한 사람이 꼭대기에 최후로 남아져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는 것은 무얼 말하느냐? 그 맨 꼭대기에는 나라의 백성 전체가 평등하게 서는 것이 아니라, 삼천만이면 삼천만이 맨 꼭대기에 전부 다 서는 것이 아니라 피라밋과 같이 그 나라 백성 가운데서, 맨 꼭대기에 올라가 앉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중심삼고 보면 남자와 여자, 이 남자와 여자는 부부가 될 것입니다. 부부라 하더라도 서로 같다 하는 부부가 아니라, 거기에는 주체와 대상으로서의 부분일 것입니다. 뾰쪽하다 할 때 둘이 요렇게 된 것은 뾰족한 게 아닙니다. 이런 입장이 되어야 꼭대기가 아니냐.
그러면 맨 꼭대기가 무엇이냐? 주체와 대상으로서 천지창조가 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먼저 어떤 기준으로 서 있는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주체와 대상이 합성일체화한 부부가, 이성성상의 주체적인 하나님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놓여질 수 있는 최후의 부부가 그 꼭대기에 남아질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설 것 아니예요?
한 나라도 보면 남자와 여자로, 세계를 봐도 전부 다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는데 최후에는 뭐냐 하면,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로서 맨 꼭대기에 이를 것이 아니냐. 그런데, 그 꼭대기에 올라간 남자와 여자가 있다면 이 아래에서 전부 다 '나 지금 깨져 나간다' 할 때에, 그것이 무너져 내려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계면 세계가 하나되어 가지고 제일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라가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쌓아 올라가 가지고, 그 꼭대기까지 올라서 가지고 영원히 한 남자의 주체, 주인을 중심삼고 앉은 자리를 딱 금을 긋게 되면 그 주체는 전체의 중심, 대표의 자리에 설 것이 아니겠느냐? 그 누가 아무리 꼭대기 부분에 위치해 있더라도 이 중심과 한 발자국 틀어지는 날에는, 그 꼭대기에 있는 것도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허물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럴 수 있는 남성이요 여성이면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남성 여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보게 될 때에, 끝날은 어떤 때냐? 하나님께서 높은 피라밋과 같은 것을 만들어 나오는 역사적인 섭리가 있으면 그 섭리의 피라밋 위에 최후로 그런 남자와 여자를 갖다 올려 놓아야 될 것이 아니냐. 그것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것이요, 세계를 위한 것뿐만 아니라 하늘땅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대표한 그 무엇이 지상에 나타나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분이 반드시 인간세계에 나타나야 되겠고, 하늘이 지금까지 이 인류를 지도해 나왔다면 반드시 지도해 나온 섭리노정 가운데에 현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고맙게도 재림사상, 메시아사상이라는 말과 일치되는 말입니다.
꼭대기에 있는 그 가정은 개인적인 가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체를 위한 가정입니다. 그것이 없게 되면 탑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집니다. 요즈음 보게 되면 높은 모든 탑 같은 것의 꼭대기에는 전기불을 다는데, 그건 비행기가 날아다니기 때문에 그렇게 달지요? 만약 비행기가 없더라도 그 꼭대기에 언제든지 바라볼 수 있는 그 무엇을 남기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망일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곳에는 그냥 그대로 피뢰침같이 뾰족한 것을 다는 것보다도 거기에 다른 무엇을…. 자기가 높은 탑을 만들었으면 그 높은 탑의 밑둥을 바라보는 것보다도 '저 꼭대기를 봐라' 하게끔 그 무엇, 관심 가질 만한 다른 무엇을 올려놓고 싶을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그것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높고 좋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욕망입니다. '아이고, 높고도 나쁘다' 하는 것이 아니라 '좋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산을 바라볼 때에, 경치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 산 밑을 보고 '아이고 경치가 좋구만!' 이럽니까? 금강산 같은 것을 볼 적에도 맨밑을 보는 것보다도 꼭대기에 장식된 기기묘묘한 바위의 모양이 있기 때문에 올려다보고 입을 벌리고 '아! 참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지, 하나님도 별수없을 것 아니예요?
그 꼭대기는 모든 탑의 절대적인 중심입니다. 계급을 초월한 입장에서의 중심입니다. 안 그래요? 그것이 중심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없으면 탑으로서의 존재가치를 형성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꼭대기는 꼭대기에 있지만 탑의 절대적인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울어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것을 바라고 나갈 것이 아니냐.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그런 구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메시아사상을 맨 시작에서가 아니라 맨 끝에, 끝날에 허락할 것이 아니냐. 그 밑은 어떻든간에 맨 나중에는…. 그렇지 않아요? 돌탑 같은 것을 쌓게 되면, 애급 같은 데 피라밋 같은 것을 보게 되면 한 종류의 돌이 아니라 별의별 종류의 돌을 갖다 쌓더라도 맨 나중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은 돌 중의 제일 좋은 돌일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돌 중에서 제일 좋은 돌을 가려 가지고 올리고 싶어하는 것이 높은 탑을 쌓는 사람들의 욕구가 아니겠느냐. 사람도 그렇거늘 복귀섭리, 구원 섭리를 해 나오시는 하나님께서도 그런 것을 바랄 것이 아니냐? 그런 이상적인 메시아를 보내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는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세계는 세계 나름대로 가야 되느냐? 그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민족이면 민족 나름대로 주장하고 갈 수 있느냐? 민족은 조그마한 탑인 것입니다. 이러한 조그마한 탑들을 쌓아 나가는데, 하나님께서 보게 되면 탑을 쌓을 수 있는 재료라는 것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탑을 쌓을 수 있는 재료는 인간인데 그러한 인간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땅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 나름의 조그마한 탑을 쌓고 있습니다. 선진국가는 탑이 좀 크지만…. 그러한 것을 바라볼 때에, 사람들은 조그마한 탑들을 쌓는다고 자기들끼리 그저 싸우는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큰 탑을 쌓기는 쌓아야 할 텐데 이 큰 탑을 쌓는 데에 지금까지 쌓아 놓은 탑들은 전부 다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높고 큰 탑을 쌓기 위해서는 거기에서 쓸만한 재료를 빼다가…. 비록 그것이 외형적으로는 못생겼지만 외형적으로 좋은 모양의 탑 이상 질적으로 좋은 돌이라면 그 돌무더기가 없어질 때까지 거기에서 뽑아다가 쌓을 것이 아니냐.
그러면 그러한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 전부가 좋지 않지만 그 가운데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뽑아다 쓸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세계적인 탑을 쌓는 놀음을 하시는 하나님이라면 그분은 이 세계무대에 있는 모든 나라의 좋다 하는 것을 전부 뽑아다 쓰실 것입니다. 또 세계적인 이상적 인간이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을 것이 아니냐.
이런 관점에서 성경 말씀에 끝날이 되면 선한 사람을 모은다는 말은 요걸 두고 한 말이 아니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것은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보다도 '그렇다' 하는 결론까지 내리더라도 누가 반대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하나밖에 없는 세계적인 탑을 쌓아야 할 시대가 되면 모든 탑을 다 무너뜨려야 됩니다. 큰 놈은 큰 놈대로 작은 놈은 작은 놈대로 헤쳐 버려야 될 것입니다. 와르르 와르르 무너지게 헤쳐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 때가 끝날이 될 것이 아니냐. 거 그럴 성싶어요?
세계적인 탑을 쌓기를 바라는 절대자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럴 성싶기 때문에, 세계가 한꺼번에 왕창 무너지는 때가 되면 악한 사람이나 역사적인 소망을 갖지 않은 사람은 절망일는지 모르지만, 내가 그래도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탑을 쌓는 데 하나의 고임돌이라도 되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재료의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한 나라에서 하나도 빼지 않고 빼 쓸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끝날에 재림주님이 오면, 공중잔치 한다는 말이 있지만-그 공중잔치란 것이 높은 탑을 쌓고 올라가 공중에서 산다는 말인지 모르지만-그런 놀음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문제는 그것이 딴딴하고 질이 좋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 탑 자체가 되려면, 내가 전체가 될 수 없으니까 탑 자체에 내가 소속하고 탑을 나 자신이 지었다 하는 입장에 서려면 그 탑을 쌓는 데 내가 하나의 돌이 되면 된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의 몸에 있는 이 살이 누구의 살이냐? 내 살이지. 그렇지요? 여기는 원소들이 전부 다 광물질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누구의 것이냐 하면 그 광물질이 '그것은 네 것이기 전에 내 것이다'고 할 것입니다. 그것들이 하나되어 가지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동맥과 정맥 혹은 모든 신경기관, 또는 모든 근육이라는 것이 전부 연결되어 하나의 사람으로 되었을 때는 이 살은 내 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 살 가운데는 광물의 요소가 전부 다 들어가 있지만 그것은 내가 되는 것이 아니냐. 결국은 그 탑에 하나의 고임돌로서, 하나의 재료로서 등장하는 그 돌이라는 것은 누구냐? 마찬 가지로, 그 돌을 중심삼고는 나하고 닳았지만 나와 같은 탑 전체로 말할 때는 결국은 '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작은 것이 큰 가치로 드러날 수 있는 때는 바로 그때가 아니냐.
그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런 일을 하실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세상이 전부 다 흔들리고, 그뿐만이 아니라 넘어가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면 가다 자빠지다가 구르다가 할 수 있는 때가 눈앞에 오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보지 못하고 그 내적인 사정을 모르지만 그러한 어떤 주인이 있다면 그런 일을 할 성싶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이 바라는 것과 종교인들이 바라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지금의 때의 탑을 쌓는 것이었지만 종교인들은 미래의 탑을 바라보고 나온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인들이 소원하는 나라를 어떠한 종교도 아직까지 이루지 못했습니다. 어떠한 종교도 종교인들이 바라는 이상을 아직까지 이루지 못했습니다.
종교가 바라는 것은 '만민이 형제다. 만민이 신의 백성이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략적으로 볼 때에, 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백성이다, 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형제다 하는 내적인 사정을 갖춘 종교일수록 그 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수많은 종교들의 소원인데도 불구하고 만민이 그럴 수 있는 자리까지 못 나갔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종교들끼리 싸우고, 다 뭐 이랬다구요. 기독교만 해도….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무얼 말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정책 방향에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의 형제가 됐다면 그 가정의 살림살이에 동조하고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같은 심정을 체휼해야 할 것이 형제의 사랑이 아니겠느냐. 그런 입장이 못 됐으니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모든 것을 뒤범벅으로 휘젓는 때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거기에서 '돌, 돌' 하게 되면 그들을 감정하는 사람이 '척' 그 돌을 방망이로 깨서라도…. '에이 이놈의 돌' 하며 까 보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단단하냐 이거예요. 제일 단단한 것이 있으면 까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교단이면 교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 이거 얼마나 단단한가 여기에서 한 놈 빼서 때려 보자!' 해 가지고 방망이로 잘라 볼 것입니다. 절반으로 갈라지나, 안 갈라지나.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 것이 아니냐. 안 그렇겠어요?
그러면 기성교회와 통일교회, 미국하고 한국, 혹은 잘났다는 사람들, 좋은 역사적 전통을 자랑하는 그런 무슨 단체나 국가가 있다고 합시다. 그것이 진짜 단단한 것이냐? 그건 그렇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오늘날 과학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가면 갈수록 전세계가 더 단단해집니다. 단단해 가지고 퍼석퍼석한 것이 아니라 단단한 것도 강엿처럼 찐덕찐덕하면서 단단합니다. 서로서로가 노력하며 '더 잘하자, 더 잘하자, 더 잘하자' 해 가지고 더 좋은 것을 만들어 낸다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제의 것이 좋으냐, 오늘의 것이 좋으냐 할 때에 어제의 것보다 오늘 것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나무로 말하면 가지보다 순일수록 목적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왜? 순이 나옴으로 말미암아 꽃이 필 수 있고, 꽃이 핌으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 망하느냐? 순이 먼저 망하느냐. 밑둥이의 줄기가 먼저 망하느냐? 나무가 살아서 진액이 뻗쳐 나을 때는 순은 절대로 먼저 망하지 않는다구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지더라도 맨 끄트머리의 순이 먼저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아이쿠, 떡잎들은, 먼저 나온 이파리들은 나보다 어느 일정한 기간을 두고 먼저 나왔기 때문에, 너희들은 먼저 떨어지고 나는 얼마만큼 남았다가 떨어진다…. 이것이 천지원칙입니다. 그래서 포플러 나무를 가만히 보게 되면 모든 잎이 떨어지고 나면 어떤 때는 두 잎이 남아 바람에 팔랑거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구요, 전부.
그런데 그 나무가 원기왕성하게 살아 있을 때는 순은 살아 나갑니다. 그렇지만 나무가 한계점에 올라와 가지고 쭈그러 들어갈 때는, 그 고개가 있다구요. 그 고개를 넘게 될 때는 어디가 먼저 죽기 시작하느냐 하면, 뿌리가 먼저 죽기 시작해요? 끝이 먼저 죽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반대라구요.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역사시대의 순이 무엇이냐 하면 생명의 지향성을 가진, 혹은 방향의 지향성을 갖춘 그것이 순이 아니냐. 나무로 말하면 순이 쭉 뻗어 올라간 것이 줄거리, 줄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 순이 종대가 되어 가지고 뻗어 올라가면서 '나와 같이 이렇게 돼야 된다' 하면 그 옆에 달린 것은 '그래, 그래' 해 가지고 그 종대를 중심삼고 동서남북으로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종대의 사명을 무엇이 했느냐? 그래도 망해 들어가는 세상에 있어서 종교가 그 종대의 사명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이렇게(손짓하면서) 시켰는데, 이렇게 뻗어나간 것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제일 직선으로 뻗은 줄기가 하나는 있을 것 아니냐. 그런데 이렇게 종대로 뻗어 나갈 때에는, 그 종교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가 발달해야 된다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세계문화의 방향을 추진시켜 나가는 그 종대와 같은 사명을 하는 것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그 무엇이 아니라, 하늘을 중심삼은 그 어떤 표준이라는 것입니다. 하늘과 동반되어진 종교가 그런 놀음을 해야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추리해 볼 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사상을 중심 삼은 그러한 것이 선두에 서 가지고 세계적인 문화세계를 형성해야 된다는 말은 타당한 말입니다.
그것을 지금까지 어떤 나라가 해 나왔느냐? 미국이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미국이란 나라를 가만 보면 단일민족이 아닌 복합민족입니다. 큰 나무가 되려면 먼 곳에 있는 영양소까지 흡수해야 합니다. 그렇잖아요? 그리고 흡수해 가지고 소화시켜야 합니다. 흡수해 가지고 소화시키면 번창할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게 되면 그것이 문제가 됩니다. 영양소가 되어야 할 것이 영양소로 되지 못하고 그것이 병원(病源)이 되어 그 자체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는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것이 바로 현재의 미국사회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죽어 들어가는데 무엇이 순이냐? 나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고 지극히 젊은 청년들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미국이 망해 들어가고 있는 거예요. 이것들이 지금 퇴폐사상이 들어 가지고 히피족이니 뭐니…. '아이구, 나는 올라가지 않을래' 가면 갈수록 전부 다 떨어져 내려가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미국은 망하는 거예요. 이렇게 보면 미국은 끝났다는 거라고요.
기독교 문화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인 20세기 후반에 문화세계를 창건하였던 것은 현재 자유세계의 선도적 입장에 선 미국이 아니냐. 미국은 복합민족입니다. 그러면 미국이 몇 년 동안? 200년 동안…. 미국이 1776년에 독립되었다구요. 200년 기간이 축복 기간입니다. 그래서 1976 년이 미국에 있어서 축복의 한계선입니다. 그러니 얼마 남지 않았다고요. 7년권을 남긴 그때는 미국의 운명을 판가리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우리 3차 7년노정에 해당하는 때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어쩌면 그렇게 딱 들어맞는지! 이것이 원리적으로 들어맞지 않으면 안 됩니다. 3차 7년노정에 들어맞기만 하면…. 이 7년 기간의 전후를 중심삼아 가지고, 언제든지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면 시작 전 3일이 필요하고, 시작할 때 3일이 필요하니, 거기에 7년을 치면 13년, 만 12년 기간이 됩니다. 그런 기간에는 세계가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계에 있어서 종대가 있느냐? 탑을 쌓더라도 중심을 세워 가지고 쌓아 올라가야지요? 그 중심은 저 끝에서부터 만들어 올라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서 이것이 직선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야 되는 거예요. 중심은 중간이 아니라 저 밑창에서부터 직선이 돼야 됩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중심이 누구냐? 세계 역사과정에 중심이 누구냐? 종교 가운데 중심이 어디냐? 중심이 없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 종대가 있느냐? 중심이 없다!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지금 미국을 보게 되면 백인이 중심이냐. 흑인이 중심이냐? 지금까지는 백인이 중심이었지만 중심의 자리에서 책임 못하니까, 중심은 전체를 위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중심만 위하려고 하니 뼈다귀는 다 없어졌습니다. 결국은 다 없어집니다. 그것이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별수없이 자기는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종차별하면 망합니다. 맨 처음에는, 올라갈 때에는, 뻗어나갈 때는 차별했지만, 나라를 세우고 나서도 차별하면 결국에 가서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으려면 그 반대의 길을 가야 합니다. 모시고 받들어야 하는 문제…. 내 민족을 사랑하고 내 나라만을 사랑하는 사상을 가지고는 절대 그 중심을 남길 수 없지 않느냐? 이것은 세상적으로 봐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끝날에 코치하고 들고 나오는 대통령이 있다고 하면, 그는 민족과 국가를 초월해 가지고 보다 가치있는 중심을 확립하라 하는 것을 강조하시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 이것은 하나님이라도 그 입장에 설 수밖에 없지 않느냐.
이렇게 볼 때에, 통일교회는 그런 것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민족을 초월하고 씨족을 초월해야 됩니다. 민족과 씨족권내에 있어서 그것이 지금까지 쇠고랑이 되어 가지고 우리를 구속했지만, 이 쇠고랑을 어떻게 끊고 가느냐. 그래서 보다 차원 높은 탑을 쌓을 수 있는, 가능한 권을 이 역사시대에 어떻게 남겨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사상은 나라보다 세계를 더 사랑하라, 세계보다 천주를 더 사랑하라, 천주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 하나님보다도 하나님의 그 사랑을….
따라서 맨 나중에 남는 소원이 뭐냐 하면 높이 쌓아 놓은 탑도 아니요, 그것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믿음도 아니며, 나중에 탑 맨 꼭대기 위에 올라 앉아 있을 것은 사랑입니다. 무슨 사랑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도 나와 조화를 이뤄야 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만 딱 올라 앉게 된다면 그 사랑을 검둥이는 검둥이대로 좋아하고, 흰둥이는 흰둥이대로 좋아하고, 알록달록한 사람은 알록달록한 사람대로 전부가 하나님의 사랑은 다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돼서 이렇게 되느냐? 이 사랑과 하나되는 데는 개인에서부터 점점점점 하나되어야 됩니다. 몸이 건강해야 피가 잘 통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꼭대기 자리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서로서로가…. 그렇잖아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꼭대기에 딱 올라 앉은 이런 탑이 이루어졌다면 불평 불만이 있을 수 있겠어요? 어때요? 불평 불만이 있겠어요?
오늘날 인간 중심삼은 사랑도 그 사랑이 떨어질까봐 뭐 죽겠다고 야단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맺었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나라와 바꿀 것이냐? 어때요? 바꿔요, 안 바꿔요? 하나님의 사랑과 세계와 바꿀 것이냐? 전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관계를 맺었다면 세계보다 더 귀한 가치를 느끼기 때문에, 나라보다도 더 귀한 가치를 느끼기 때문에, 거기에서 비로소 통일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성경은 억지가 아닌 천주권적인 말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렇게 결론이 사랑이라고 나옵니다.
소원성취, 인간에 있어서의 소원성취. 하나님에 있어서의 소원성취 무엇이냐? 인생에서의 소원성취가 무엇이냐? 중심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인생의 최고의 소원이 무엇이냐? 중심을 세우는 것입니다. 아무리 나라를 세웠다 하더라도 그 나라가 세계와 통할 수 있고 섭리와 통할 수 있는 중심이 못 된다면, 그 나라는 어디에 설 것이냐?
그러므로 이스라엘 역사는 무엇이냐? '이겼다' 하는 역사는 무엇이냐? 이겼다는 말은 중심이 서 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위라면 그 위이신 하나님을 중심삼고 잃어버렸던 것을 바로 하나님의 수직선 아래에 세워야 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위에 있는 분이 찾고 있는 제일 소망점이 어디냐? 동쪽이예요, 동쪽?
이것은 동서남북을 대표할 수 있는 중앙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에 하나님도 인간세상에 중심을 세우는 것이 소원이 아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인간 끼리끼리 보게 된다면, 우리 인간 세계의 횡적인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인간의 소원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이 놓고 싶었던 중심을 절실히 찾는 것이 소원이 아니겠느냐?
그 중심이라는 것은 개인중심이 아닙니다. 맨 꼭대기와 통할 수 있는 중심, 중심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아무리 개인으로 있다 하더라도 그 서있는 자리는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중앙자리입니다. 이 중심을 중심삼고 본따 가지고 확대되어 범위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 확대는 고립적인 확대가 아닙니다. [그림 1참조]
이 중심선을 중심해 전부 다 이렇게 횡적인 입장에서 뻗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와 같아요. 나무를 보게 되면 쭉 올라간 종대가 있습니다. 종대가 높으면 횡적인 가지도 큽니다. 그렇죠? 이걸 보면 구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나무 자체가 구형입니다. 그렇다 해도 가지는 어디 까지나 가지지 종대보다 큰 가지가 없다구요. [그림 2참조]
그것을 보게 되면 하나의 탑과 같습니다. [그림 3참조] 전부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의 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꼭대기도 전부 다 평등합니다. 꼭대기에서 어느 면으로 보나 사방이 평등하게 몰려와 원이 되는 것입니다. 원형을 보게 되면 거리는 다 같습니다. 그래서 중심인 꼭대기를 전부 다 평등하게 평면적으로 덮어 씌운 것이 구형인 것입니다. 왜 구형이 이상적이냐? 전부 다 꼭대기 자리와 평면적으로 상대를 취할 수 있으니까 같은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 네가 꼭대기 되면 나도 꼭대기 된다는 것입니다. 구르는 날에는 나도 꼭대기 된다 이겁니다. 움직이는 날에는 나도 꼭대기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되어 가지고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운동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이요, 이상이요, 최고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그림 2참조]
이렇게 보게 될 때에, 탑을 쌓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역사시대 맨 처음에 하늘을 중심삼고…. '아! 돌은 이런 돌이다!' 하면 그 돌은 지방에 따라 다르다고요. 토질이면 토질의 구성에 따라, 그 환경의 여건에 따라서 굳기가 다를 것입니다. '딱딱한 정도가 우리는 이런데 이것보다 더 단단하다, 했을 때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통을 세워 나오시면서, 아노(あの), 일본 식구들을 보면서 생각하니까? 아노(あの)가 나오는구만. (웃음) 결국은 더 단단한 것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보다 못하기를 바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낫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그런 거라구요.
세계적인 탑을 쌓는다면 재료를 수집해서 전부 다 골라 가지고 볼 때에, '아, 요런 질이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질이 비슷하다고요. 그래, 이스라엘이 무엇이냐? 탑 쌓기 위한 진흙입니다. 진흙 가운데도 여러 가지의 진흙이 있지만 굳기, 강도에 있어서는 그 차이가 천태만상입니다. 무엇보다 제일 강한 것, 이스라엘, 다시 말하면 끝날에는 종교 가운데 제일 강한 종교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런 종교가 되거들랑 그 종교는, 그 질을 갖춘 종교인 돌로 탑을 쌓는 것이 탑을 쌓는 주인의 소망이 아닐 것이냐? 알겠어요?「예」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소원은 질이 제일 단단한 것을 찾는 것입니다. 단단하려면 꽉차서 딴딴해야 됩니다. 어느 누가 구할 수 없도록…. 누구라도 그거 부술 수 없도록…. 중심에 꽉차 있어야 돼요. 그렇게 단단해야 돼요. 단단한 것은 그렇지 않아요? 같은 질로 된 것이 한 면적에 얼마만큼 들어갔느냐 하는 그 비례에 따라 가지고 그 강도가 좌우되는 것이 아니냐? 물렁물렁해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 교인 중에 어떤 사람은 꾹 찌르면서 '여보 여보, 하나님이 있을까?' 묻게 되면 '글쎄? 선생님이 있다고 하니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걸 원리적으로 땀을 흘려 가면서 얘기할 때는 있는 것 같지만, 마음에는 없는 것 같은데?' 이럽니다. (웃음) 그거 딴딴해요? 물렁물렁해요? 그런 사람은 벌써 절반은 구멍이 푹 뚫렸다고요. 딴딴해야 됩니다. 눈도, 코도, 마음도 딴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누구든지 와라, 와라, 와서 비교해 보자, 나하고 비교해 보자. 와라 와라! 나 이상 딴딴한 것은 없다' 해 가지고 '나 혼자는 믿을 수 없으니까 한번 실천해 봐야 합니다. 지방에서부터, 노동자 농민으로부터, 리장으로부터 부딪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지내 보니까, 그렇게 감정을 해보니까 틀림 없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해보지 않고 나만 제일이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감정하는 요건이 무엇이냐? 지방개척입니다. 개척은 무엇을 가지고 하느냐? 손가락으로 하고, 정신으로 하라 이거라구요. 돈으로 하지 말라구요, 돈. 그렇기 때문에 개척을 나갈 때는 돈을 가져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을 가지고는 비교해서 이길 수 없습니다. 까딱 하면 들이맞습니다. 손으로 하고 정신으로 해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식입니다. 이게 좋은 식이지요?
이렇게 설명을 듣고 나면 멋진 식인데 당사자가 직접 당하고 보면 기가 막힌 식입니다. (웃음) 그래서 독방에 7,80년 묵어 갔던 사람도 나를 못 당한다 이거예요. 누구도 못 당한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뭐 뭘 보더라도 낫다구요. 정신력이 낫다는 것입니다. 남들 몇 배 낫다구요. 그러니까 미리 그런 것을 안 책임자가 있다면 감정해서 합격품이라고 딱 붙여 가지고 딴 창고에 쌓아 두고 싶은 것이 욕심 많은 통일교회 문선생의 소원입니다. 그 욕심이 좋은 욕심이요, 나쁜 욕심이요?「좋은 욕심입니다」 좋은 욕심이라구요. 그 욕심이 많으면 좋다는 거예요. 왜? 하나님의 창고에 그것을 쌓고도 남게끔 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하나님은 기분 나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요?
단단한 쇠가 있다면 대장장이가 자꾸만 두드려야 됩니다. 밤에도 두드리고 낮에도 두드리는데, 왜 밤낮으로 두드려야 되느냐? 춘하추동 계절을 통과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아침은 봄이요. 낮은 여름이요, 저녁은 가을이요, 밤은 겨울에 해당하기 때문에 춘하추동 사시사철을, 소년시대로부터, 청년시대를 거쳐 장년시대를 지나 노년시대를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쇠는 오래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일생을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좋은 쇠가 안 된다?「됩니다」 마찬가지 이치가 아니냐?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있는 힘껏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엎어 놓고 두드리고, 꺼꾸로 뒤집어서 늘였다 줄였다, 이렇게 하게 되면…. 그걸 모르는 사람은 '뭐 언제는 이렇게 하라 하더니 오늘은 이렇게 하라고, 하 이랬다저랬다하는 선생님이 됐다' 뭐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고요. 하나님 보게 되면 사실 이랬다저랬다한다구요. 그것은 왜 그러느냐? 그것은 버리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한목에 할 수 없을 때는 아무것도 못 쓴다는 것입니다.
어저께도 공장장이 지켜 보는 가운데에 빌딩을 짓고 있는데 가서 거기에서 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주욱 들었습니다. 쇠의 강도가 어떻게 다르냐 할 때, 쇠를 잡아당겨서 늘어나게 하는 힘과 눌러 가지고 이렇게 배가 나오게 하는 힘이 30배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언뜻 보면 같은 것 같지요? 야, 그것을 보면 하나님이 참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고층건물을 지을 때 이렇게 지으면, 일대일이 되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고층건물은 못 짓는다는 말입니다. 가늘지만 이것을 세워 놓게 되면 거기에 30배를 올려 놓아야 이것이 무너지기 때문에 29배만 올려놓아도 안 무너진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근을 옆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수직선으로….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교인들을, 전부 다 제멋대로 되어진 것을 때려 가지고 최고로 단단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뭘할 것이냐? 새로운 고층건물을 짓는 데다 투입해야 되겠습니다. 세우는 데는 그것이 꼬불꼬불해서는 안 돼요. 똑바로 세워져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둥그렇게 되어야 됩니다. 그것이 전체를 중심삼고는 장력이 충분해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야 초석을 놓을 수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그 초석을 놓을 때 어떻게 놓느냐 하면, 사각으로 넣는 사람이 없습니다. 역학적인 힘의 작용을 보면 이것은 45도를 통하기 때문에, 이런 힘이 통하기 때문에 이 원칙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형을 따라 그 원칙에 의해서 주춧돌을 세워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냐? 그렇죠? 그 옆의 것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기둥만 받들어줘 가지고 원형을 만들어 놓으면 옆의 것은 아무힘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무엇이라구요? 중심을 세우는 것인데, 그 중심을 세우는 데는 요런 입장에서는 세울 수 없다구요. 절대 세울 수 없다구요. 빼 버린다구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중심을 세우는데 딴딴한 것으로 중심을 세우는 날에는 그것이 자리만 잡으면 하나님도 그것을 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리를 잡는 데 있어 당신이 수평만 잡아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통일교회는 끝날에 있어서 제일 약한 종교가 되고 싶으냐, 강한 종교가 되고 싶으냐? 제일 강한 종교가 되고 싶어요?「예」 정말이예요? 얼마나 강해? '세계의 수십 억의 인류가 와라, 역사시대의 그 누구도 와라, 또한 미래에 있어서도 우리밖에 없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역사시대의 탑을 쌓는 데 있어서 중심을 세워 놓고 정초석을 전부 다 놓을 수 있는 기둥의 밑받침이 되는 것입니다. 그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바라보면 중심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개인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 할 때에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도 전세계의 선도적 국가의 자리에 올라갔다가 중심이 없기 때문에 내려오는 것은 전부 다 개인주의 때문입니다. '야! 이제 문화세계는 싫다. 원시시대로 돌아가자! 잘입고 잘먹는 것도 싫다. 쓰레기통에서 주워 먹어라. 그 다음에는 옷을 입는 것도 싫다. 원시인들과 같이 깨벗어도 좋다. 차도 고급차를 몰고 다닐 것이 아니라 다 버린 것을 갖다가 시동이 안 걸리는 차가 좋다' 지금 그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온 땅이 서구처럼 되어 가지고 이래야 된다는 표준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미국이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웽강댕강 한꺼번에 다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어떤 것이 꼭대기에 올라오면 '야, 잘 올라왔다만 여기에 내가 힘이 있어 저 두 구덩이에 구멍만 뻥 하고 나게 하면 넘어지게 될까? 한 지역 전체가 소동이 벌어지겠구만' 그렇게 되면 안 되겠지만 말이예요. 우리 같은 사람은 생각해 볼 만한 일입니다. 탑이 무너지면 '야, 이놈의 사정을 보니 동쪽으로 넘어지게 할 거야, 서쪽으로 넘어지게 할 거야' 생각할 때에…. 잘사는 사람들이 전부 모여 가지고 고층건물을 지어 사는데, 이 건물은 좋지만 사람들은 고질통이다 할 때에 '이놈의 집아, 저리 넘어져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사는 집 가운데 좋은 사람이 있으면 '아-, 안팎으로 거기에 건물 짓지 마라 그런 다는 거예요. 외형적으로 집도 좋고 사람도 좋으면 그것은 절대 안 무너집니다. 외형적으로 집도 나쁘고 선한 사람이 산다면 이 집을 넘어지게 할 때에는 하나님이 반드시 안전한 이쪽으로 넘어지게 할 것입니다. 왜? 왜? 선한 사람의 것은 당신의 것이니까? 더 좋은 면을 남기려고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지금 통일교회를 보게 되면 통일교회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선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껍데기는 거지 사촌입니다. 또, 기성교회를 두고 보면 큰 빌딩에 살고 있지만…. 그 껍데기는 좋지만 사람이 나쁘다 할 때에, 그들을 하나님이 치게 된다면 내적인 면을 중심삼고 치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것을 치게 마련입니다.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안 망해도 기성교회는 망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나 기성교회가 외형도 좋은데 내적으로도 좋다 할 때는 통일교회는 반드시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기성교회보다 나아라. 언제나 정성도 기성교회보다 더 들여라. 이것이 통일교회가 가야 할 복귀노정 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가, 안 그런가?「그렇습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은 매일같이 새벽 다섯 시면 예배본다. 그런데 통일교회 교인들은 잠만 잔다 할 때 어떻게 하겠어요? 그 사람들이 통일교회 원리 공청회에 들어가 가지고 통일교회 교인보다 밤을 새워 원리공부를 한다 하게 될 때는, 말씀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느냐? 말씀 있는 곳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통일교회의 교인은 아니지만 밖에 있는 사람이라도 말씀과 더불어 밤을 새워 가며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미처 몰랐다고 회개하게 될 때는 그 사람들은 새로운 동산에 싹이 틀 것입니다. 통일교회 말씀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교회 교인들이 하나되었다면 말씀을 모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준 말씀이 아니냐. 그렇지만 말씀은 뭐 저 선반 위에 놔 두고, '말씀을 공부해서 뭐해' 하며 그저 적당히 내 편리한 대로 사는 사람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망하게 마련입니다.
가인과 아벨 가운데 한 사람은 패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패하는 자가 안 되려면 언제나 앞장서야 됩니다. 나라를 위하고 세상을 위하는 데도 앞장서고, 하늘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데도 앞장서고, 노력하는데 앞장서고 모든 면에 앞장서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위해 앞장서는 것은 노력이요, 하늘을 위하여 앞장서는 것은 정성입니다. 정성과 노력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이 정성을 누가 막을 것이냐?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떠한 역사시대에도 남아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선생님의 관입니다.
여러분은, 정성들여요? 정성들여요, 안 들여요? 이런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제 때가 되면 될수록 통일교회한테 기성교회가 꺾이는 때가 옵니다. 통일교회가 승리할 때가 옵니다. 이때에는 누가 복을 받느냐? 통일교회가 받지 않느냐. 여러분은 뒤떨어지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 기성교회 목사들이 들어오면 여러분이 지도자로 탈바꿈할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할 때가 되어 옵니다. 가인을 아벨이 복귀해 가지고 하나된 후에는 아벨이 병신이 되었을 때는 가인의 등에 업혀서 보내야 합니다. 업혀서 가 가지고 내려놓은 그 땅에서는 아벨은 가인 앞에 예를 해야 합니다. 결국은 굴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이라구요. 그러한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견디는 데는 끝까지 견디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전에 한국티타늄을 우리가 인수했는데, 인수했다 하니까 지구장 하던 패들이 내 자리 어디 있나 하고 고민하고 있다구요. 교회에 있는 것보다 무슨 뭐 공장에 가겠다고…. 양자가 아닙니다. 공장은 종이예요. 거 왜? 돈 몇 푼 더 받는다고…. 그것 받아 먹고 좋다고 하다간 망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후퇴하는 것입니다. 20년 동안 걸어 나왔지만 끝까지 못 온 거라구요. 문턱시대에 와 가지고…. 그렇게 바라는 패들에게 전부 다 그렇게 해줄 것입니다.
미국이 지금 필요한 것은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이 필요합니다. 통일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정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돈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됐지요? 통일교회 패들, 돈 돈 돈…. 미국이란 나라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 정신이 필요합니다. 돈도 귀하겠지만, 통일교회 문선생님은 돈도 필요하겠지만, 보다 귀한 것은 정신이 아니냐. 정신만 확실히 갖추면 돈은 얼마든지 생겨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세계은행은 통일교회와 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 수속 절차가 안되어 있을 뿐이지. (웃음) 왜 웃어요? 통일교회 식구가 어떤 은행에 총재로 있다 하게 되면 그 은행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겠어요? 안 그래요? 식구만 만들게 되면 한 시간이면 당장 어떻게 될 수 있다고요. 알겠어요? 말 한마디에 딱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 어려운 게 아니라구요. 거 어려워요? 여러분 말하는 것같이 천 마디 말을 듣고 그러겠어요? 딱 한마디 말에 감동받으면 돈이 나르는 거예요. 한 바퀴 날으면 돈이 도착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어려운 게 아니라고요. 어느 구름에 비가 올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현정부가 싫어하지만 통일교회와 같은 편이라고 합시다. 박대통령이 허가해 가지고 통일교회와 손잡았다 하게 된다면 통일교회 사상을 당할 자가 있어요? 공화당 정책은 매 해 변해 나가지만 통일교회 사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원칙이 있다는 거예요. 어중이 떠중이 모여 가지고 못난 것들이, 그 다음에 이게 바람 피우다가 인민군 에게 모가지 짤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때가 되거든, 통일교회 간부들을 한 3년 동안 감옥에 처넣으려고 합니다. (웃음) 그런가, 안 그런가 두고 보라구요. 그렇게 해야 산다구요. 자 그렇게 한 3년 미친 척하고 있지 못할 감옥에 가 가지고 내 말 좀 들어 볼래요? 그럴 수 있는 거예요. 보라구요. 지금 손잡고 춤추다가는 그 전염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한 3년 동안만 내가 교육을 시켜 놓게 되면 그것은 문제없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그렇게도 고생했는데 또 감옥에 처 넣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게 되면 그건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손 안 대고 가만히 3천만 민족을 한꺼번에 한 곳에 몰아넣을 수 있는 길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이것들 내세워 가지고 기대하느니 그것들 지금 꼴 보기 싫은데 한 3년동안 처박아 두면 기성교회 사람들이 쓱 와서 '얼마나 고생했소. 얼마나 굶주렸소?' 그들이 대신 영접하면 어떻겠어요? 이렇게 함으로써 이 나라는 산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 한 3년 동안 감옥에 처 넣고 싶은 것이 모질고 믿지 못할 이 선생님의 사고방식이다 이겁니다. 거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그렇게 안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은 두 갈래 길로 작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지 않는 녀석들도 있거든요. 그런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소원이 무엇이냐? 이 세상을 보게 되면 중심이 없습니다. '내가 좋다' 내가 좋다고 하는 데는 무엇을 기준하고 좋다고 하는 거예요? 도둑질해 가지고 자기가 잘 먹을 때에 '아이구 좋다' 합니다. 도둑놈들은 자기에게 이익이 있어야 좋다 합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기꾼 들은 사기를 쳐서 딱 자기 생각대로 들어맞아 한 몫 보게 되면 '아이구, 좋다!' 할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좋아해야 되느냐? 역사의 중심이요, 시대의 중심이요, 미래의 중심이 될 수 있고, 또한 천륜의 중심이 된 그것을 전해 주고 좋다고 할 수 있는 그 기준이 무엇이냐?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이냐? 대한민국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도 되지 않습니다. 그 좋다 하는 기준은 우리가 바라고 인류가 바라는 좋다 하는 개인과 좋다 하는 가정, 종족, 민족을 위해, 좋다 하는 나라, 좋다 하는 세계관-그 좋다 하는 세계관은 우리만이 아니라 하나님도 '그렇고 말고' 할 수 있는 세계관입니다-을 중심삼고, 그 중심은 이래야 된다는 그 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거기에 일치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좋다고 해야 그것은 세계와 더불어 남아질 수 있는 것이요, 세계가 환영할 수 있는 좋은 것이지, 그것을 제쳐놓고 나만 좋다 하는 것은 당장에 무너집니다. 중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중심 없는 세상에 하나님도 중심을 세우려고 할 것이 아니냐? 그렇지요?「예」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중심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의 소원은 무엇이냐? 중심을 찾는 것,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세우시려고 하신 중심을 만나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 중심을 세우려고 하는 사상이 무엇이냐? 메시아사상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소원이 무엇이냐? 그 중심된 분을 모시는 것입니다. 그분을 모심으로 말미암아 개인의 생활관은 타락한 인류의 생활관이 되어야 하는 것이요, 그 가정관은 전인류의 모델 케이스의 가정관이요, 그 씨족은 전인류의 모델이요, 그 나라는 전세계의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개인으로 보나, 가정으로 보나, 종족으로 보나….
그렇기 때문에 제일 좋은 개인이 있으면 그 개인 앞에 제일 좋은 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예」 그래서 제일 좋은 가정이 있으면 제일 좋은 씨족이 그 다음으로 붙어야 하지요? 그렇죠? 제일 좋은 씨족이 있으면 다음에 제일 좋은 민족, 그 다음에 제일 좋은 국가가 붙어야 하지요? 이렇게 쭉 연결되어 가지고 세계가 연결되는 것이 아니냐.
이스라엘 민족은 뭐냐?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민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 앞에 어차피 나타나야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일 좋은 남자이니 제일 좋은 여자를 택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뜻을 못 이루고 죽었기 때문에 이 땅에 신랑 신부라는 말을 남겼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념적인 말을 하고 간 것이 아니냐. 제일 좋은 남자가 제일 좋은 신부를 맞아 제일 좋은 가정을 이루고, 그 다음에 그 가정은 제일 좋은 씨족과 하나되고 나아가 씨족은 제일 좋은 민족과…. 이렇게 되었더라면 이스라엘 민족은 명실공히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중심의 나라가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님은 뭘 중심삼느냐? 통일교회 교인들이 전부다 좋더냐? 아니라구요. 좋은 것도 있고 안 좋은 것도 없다? 있다? 여러분 가운데도 좋은 패가 있고 안 좋은 패가 있습니다. 그러니 절반으로 뚝 자를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패는 세상과 통할 수 있는 패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쪽은 그래도 다르기는 다릅니다. 이렇게 절반으로 갈라 놓은 여기 가운데 또 절반으로 갈라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여기에도 4분의 1, 4분의 1을 갈라놓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남은 것을 8분의 1로 가르는 것입니다. 이쪽은 좋고, 저쪽은 나쁜 대로…. 기분 나쁘지만 할 수 없다구요.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도 그렇게 안 하겠나 말이예요.
또 16등분으로 짤라다가 요것은 좋은 쪽으로 요것은 나쁜 쪽으로…. 32등분으로, 64등분으로, 그 다음엔 백 몇 등분이예요? 이렇게 해 가지고 맨 나중에는 딱 두 사람이 남을 것입니다. 36가정도 그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세 아들이 있으면 세 아들 가운데서 누가 제일 좋을 것이냐? 그것이 있다는 거예요. 36가정 중에 누가 제일 중심이냐? 전부 다 같지 않아요. 못된 가정도 있어요.
그러면 선생님은 누구를 제일 좋아하느냐? 그것은 한 사람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그렇지요? 그것이 통일교회의 전통적 기준입니다. 이렇게 되라! 그러면 하나님이 차지할 수 있는 영광을 주겠다! 너를 사랑하겠다! 누구든지 이렇게만 되면 다 그런 단계에 세워 주마! 이것이 평등 사상입니다. 그리고 고차적인 가치를 일반 앞에 나눠 갖자는 사상입니다. 그런데 과정에 있어서 그것만으로 끝나게 되면 그것은 망할 것이요 반대 받을 수 있지만, 그것을 모델로서 '이렇게 되라!' 해 가지고 그렇게 되면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에 불평이 있어요? 불평하는 녀석들이 있으면 방해를 받는다구요.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앞으로 며느리를 맞아들여야 하겠다 할 때는 처녀들을 죽 모아 놓고 처녀총회를 할지 모를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절반 절반으로 갈라 놓을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입장에서가 아니고 뜻적인 입장에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본다는 것입니다. 그 여자가 얼마나 철저한 사상을 가졌느냐, 혹은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얼마만큼 받들어 나왔느냐 하는 이런 문제를…. 그런데 여기에서 잘사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등생을 표창하게 될 때에 거기에는 공부 잘하는 사람을 표창하게 마련입니다. 표창받으러 나올 때는 사람이 옷을 잘 차려 입고 나올는지 모르지만, 그 옷 한 벌을 입기 위해서 천년 만년 살고지고 하면서 소원을 다져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냐? 그러기 위해서는 별의별 일을 다 감수한 그런 역사적인 공이 있기 때문에, 그 대가를 알아줘야 되겠기에 그런 자리에 참석시키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것이 천지이치입니다. 알겠어요?
우리 인간의 소원이 뭐라구요? 「중심을 찾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중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중심을 찾는 것이 소원이 아니냐. 물론 그것은 개인완성, 가정완성이 다 소원이지만 세계사적인 탑을 쌓는 데 있어서는 중심, 기점을 되찾는 것이 소원이 아니냐. 그 기점은 세계의 기점이 되는 것이요, 나라의 기점과 통할 수 있는 거예요. 그 다음엔 민족의 기점이 되는 것이요. 씨족의 기점이 되는 것이요, 가정의 기점이 되는 것이요, 남편의 기점이 되는 것이요, 아내의 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반드시 매일같이 그 기점과 더불어 '나는 몇 도 나갔다. 지금 몇 미터 나갔다' 하는 과정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중심을 못 가진 사람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면, 통일교회의 중심존재가 누구냐 할 때에 밉든 곱든 선생님이라구요. 그러면 선생님이 어디에 있느냐? 미국에 가 있다 하게 될 때는 미국을 향해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부 다 돌아서야 합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보면, 선생님은 미국에 있더라도 청파동을 중심삼고 지금 몇 킬로미터를 나갔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또, 청평 가게 되면 몇 킬로미터 갔느냐? 남쪽이면 남쪽, 북쪽이면 북쪽으로 얼마나 나갔느냐? 언제든지 그 중심을 모시고 중심과 올라가느냐, 내려가느냐 생각해야 됩니다. 매일같이 중심을 생각지 않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을 생각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선생님을 생각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고 그것은 괜찮지만 하나님의 뜻과 모든 사례에 있어서는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열 바퀴 돌았다 하는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말하느냐 하면, 출발 기점에서 중심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중심이 열 바퀴 돌아야 가장자리도 열 바퀴 도는 것입니다. 돌기 시작할 때에, 무엇이 먼저 돌아야 되느냐? 겉이 먼저 도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먼저 돌기 시작해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팽이가 중심이 안 잡힌 상태에서 돈다고 하면 그것은 천 번 돈다 해도 한번 돌았다고 칠 수 없는 것입니다. 중심을 잡아가지고 한 바퀴라도 돌아야, 한 바퀴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내가 왜 오늘 이런 말을 하느냐? 오늘은 11월 초하루입니다. 수요일입니다. 이 중심을 중심삼고 뺑 돌면 어떻게 되느냐? 원형이 됩니다.
이렇게 보면 11월 초하룻날은 참 좋은 날이라구요. 이렇게 되면 안팎으로 들어맞는다는 것입니다. 이래도 중심이요, 이래도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아,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한번 해봐야 되겠다 해서 하는 거예요.
결국은 뭐냐 하면 중심이 문제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주체로서 그분을 대하고, 주체를 완전히 결정하고 난 후에는 횡적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세계는 중심이 없습니다. 기독교로 보면 기독교의 중심인 예수로부터 다 이탈됐지요? 미국이 기독교를 중심삼고 돌아갈 때는 흥했습니다. 중심이 없으면 깨질 것입니다. 사람이 중심이냐? 사람을 보라구요. 인심은 조석변(人心朝夕變)이요 산색은 고금동(山色古今同)이라고 했듯이, 사람의 마음은 아침 저녁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의 마음을 여러분이 믿을 수 있어요? 그래 사람의 주장을 믿을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학설이라도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이 결정되기 전에는.
그러나 하늘 부모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한 사랑의 마음은 변치 않는 것입니다. 변치 않는 것이 세상에 하나 있지요? 단 한 가지 있는 그것이 뭐냐 하면,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한다 하더라도 요것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부모를 중심삼은 자녀…. 여기에서 부자일신이라는 말이 성립되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은 '청년들은 어떻게 살아야 된다. 장년은 어떻게 살아야 된다. 노년은 어떻게 살아야 된다'고 하는 겁니다. 이러고 보면 선생님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일생 동안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이냐 하는 이런 문제를 가만히 생각하면 고달프기 짝이 없습니다. 불쌍한 생활입니다. 공적인 생활은 불쌍한 생활입니다. 어제도 대학생들에게 이야기 했지만 공적인 생활은 불쌍한 생활입니다. 알겠어요?
땅에는 중심이 없지 않느냐? 그렇기 때문에 그런 중심을 하늘은 보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늘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때를 맞추어 가지고 중심 앞에 상대 될 수 있는 나로서 준비하지 않으면 그 중심을 만나더라도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우리 인류의 소원이 뭐냐? 중심을 만나는 것입니다. 인류가 중심과 하나 되면 인류는 가정도 찾을 수 있는 것이요, 종족도, 민족도, 국가도 전부 다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소원은 이상적인 가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적인 가정은 메시아를 맞지 않고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가정을 맞기 전에 필요한 것은 먼저 메시아를 맞아야 된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예」 왜? 메시아는 가정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종족을 맞기 전에 메시아를 맞아야 됩니다. 왜? 메시아는 종족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맞기 전에 메시아를 맞아야 됩니다. 왜? 메시아는 나라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하나로 통일해서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전에 메시아를 맞아야 됩니다. 왜? 메시아는 세계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인들이 바라는 것이 어리석은 것같지만,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기 전에 메시아를 맞아야 완전한 세계가 생겨나기 때문에 다 버리고 그것만을 고대했던 멍텅구리 같은 그들이었지만 사실 지극히 지혜로운 양반들이 아니냐? 그 종교인들이 가는 곳에 핍박이 가해지면 핍박을 가한 사람들이 망했던 것은 하늘이 그렇게 지도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겠느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소원은 중심을 맞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이게 틀림없어요?「예」 그러면 하늘의 소원은 무엇이냐? 중심을 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중심을 맞아야 되고 하늘은 중심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 중심을 맞아 가지고 여러분이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절대로 중심을 세울 수 없습니다. 왜? 인간이 중심을 세울 수 있다면 자기가 중심 노릇을 할 수 있다구요. 타락한 인간은 중심을 세울 수 없습니다. 결국은 뭐냐 하면 인간은 자기가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중심은 누가 세워 주느냐? 여러분이 세워요? 하늘이 세워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소원은 무엇이냐? 인간에게 중심을 세워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역사시대에 선지자를 보낸 것은 그 나름대로의 중심을 세워 주기 위해서 보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그 시대 사회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혁신시켰다구요. 그 선지자는 사회의 중심으로서 표준이 되기 위해서 반대하는 주권자와 부딪쳐 가지고 배반을 당했지만 사지에까지 가더라도 중심을 남기고 간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이어받아 가지고 역사가 발전되어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그러니 하늘의 소원이 무엇이냐? 중심을 세우는 것입니다. 종의 시대로부터, 양자의 시대, 아들의 시대, 부모의 시대까지 차원이 다른 반대를 반복해서 받아 나오기 때문에 비참한 길을 걸으면서 되돌아오지만, 결국은 보다 나은 중심을 세우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중심으로 보내졌던 분이 메시아라는 분입니다.
그 메시아가 중심으로 결정되어야 합니다. 세우는 데는 여러분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워진 중심을 여러분이 맞아 그분과 합해 가지고…. 여러분의 범위가 크면, 그 큰 중심과 합하게 되면 중심과 더불어 큰 무대 앞에 자신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심을 찾아 모시는 것이 소원이요, 하늘은 중심을 세우는 것이 하나의 소원입니다.
그러면 소원성취, 인간의 소원성취가 되고, 하늘의 소원성취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중심을 찾아 모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소원성취가 됨과 동시에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소원성취도 된다는 결론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분을 모시는 데는 어떠한 가치로서 모시느냐? 세계의 하늘땅을 대표한 가치로서 모시자. 그 가치로서 모시기 때문에 나도 하늘땅을 대표할 수 있는 가치자로서 등장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영광의 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소원이 성취되는 것이요, 땅의 소원성취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기쁨이요, 인류의 기쁨으로 남아지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이상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하나님의 복귀의 목적이 성사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탕감하게 하여 해원성사하는 자리가 아니냐. 알겠어요? 「예」
여러분 보라구요, 세상이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여러분들이 직장에서 통일교회 교인들끼리 모였으면 반드시 아침 저녁으로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합니다. 공산당 사회를 보면 무슨 독보회 같은 것을 하지요? 그 사회와 맞추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심을 중심삼고 가정에 맞추고 사회에 맞추고 나라에 맞추어 나가는 놀음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부 다 신문을 가지고 독보회를 하는 거예요. 아침 저녁으로 시사해설이라 해 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나간다, 이 나라의 영웅은 누구다, 전국적으로 봐서 표창할 수 있는 자는 누구다 해 가지고 전부 다 거기에 맞춰 나가게 합니다. 이런 놀음 한다는 것입니다. 참 것이 오기 전에 거짓 것이 먼저와 흉내내는 놀음을 하기 때문에 이제 통일교회는 그런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이 종횡으로 서로서로가 연락을 취해 가지고 하나의 결합체로서 형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것이 현재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알겠지요?「예」
결론을 다시 한 번 짓자요. 우리 인간의 소원은 중심을 찾아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중심을 세워서 모심받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인류의 소원이 성사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말로 한 내용을 들으면 간단한 것이지만 역사시대에 이것을 아버지께서 구상하면서 모질고 슬픈 수난길을 다하여 걸어오셨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찾기란 심히도 심히도 어려운 것임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몇천 년, 몇만 년 고대하던 것이 한번도 자리를 잡지 못하였던 한의 역사였지만, 그것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그 순간이 온다면, 그 순간에 저희는 천번 만번 죽는 마음으로 감사할 뿐이요, 그 중심을 보고 살지 못하고 모시면서 살지 못하더라도 그 자리에 동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거기가 역사를 대표한 승리의 자리인 것을 생각할 때에, 높고 귀한 자신들인 것을 저희들이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얼마나 높으냐 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땅의 인간이 얼마만큼 낮은 자리에서 높은 그 가치를 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저희들에게는 중심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기의 변명을 많이 하였습니다. 이제 변명을 하되 중심을 통하여 변명해야 되겠습니다. 살되 중심에 보조를 맞춰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저희가 바라는 소원은 보다 높은 하늘이 온 인류 앞에 중심으로 세워져서 그 하늘을 모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를 빨리 맞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요, 뜻을 따라가는 무리들의 책임과 사명인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모심받는 영광의 한 날이, 자녀들과 더불어 즐거워할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기를 당신은 바랐었습니다. 그것은 한 교회 내(內)가 아니라 일국을 넘고 만국을 넘어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한 교회에서 안 되면 그 나라에서 찾아야 할 것이요, 그 나라에서 불가능하게 되면 세계에서 찾아야 할 것이 아버지의 소원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그 운명길을 따라가려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기성교회와 통일교회는 다 상극된 자리에 섰습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당신이 중심을 찾아 세우기 위해 수난 가운데 수고하고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한국을 중심삼고 중심을 세우려고 수고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수고가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 세계를 통하여 중심을 세우려는 하나님의 최후의 때가 남아지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런 것을 알고 저희들은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세계로 가는 날을, 세계를 위해 싸우는 날을 바라야 할 것이 통일교인들이 가져야 할 사상이옵니다. 나라를 위해 싸우는 시대를 지내 가지고 세계로 가야 될 이런 사명이 남아 있습니다. 세계뿐만 아니라 영계까지 해방시켜야 할 엄청난 사명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워 이 땅을 찾아 나오던 것을 해원성사하여, 사랑의 주인공으로서 온 만민과 피조세계를 품고 내 때가 왔다고 기쁨이 만면에 만연한 그때가 오지 않고는 천상 천하의 행복의 날은 올 수 없는, 이 방대하고도 엄청난 복귀의 노정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았습니다.
아버지, 이제 가야 할 저희들은, 자랑하고 갈 수 있는 그날이 아직까지 저희에게는 없습니다. 우리는 참다운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맞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음 깊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소원의 일념을 남겨 놓고 그것을 중심삼고 환경적으로 수습하기 위해 허덕이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노정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수천 년 역사를 지내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왔다 갔습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 무리들을 중심삼고 당신이 기대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이요 딸이라고 할 수 있는, 혹은 만복의 기원이 될 수 있고 만국을 대신하여 내세워 가지고, 자랑하고 싶은 아들딸이 얼마나 되옵니까?
아버지여, 이들을 거느려서 축복의 자리까지 가기 위해서는 모든 시련 과정을 극복하고 민족을 대하는 시련과 그 이상 되는 죽음의 길을 가려 가야 할 책임적 소행이 저희들 앞에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이들이 낙망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에 오늘 갔더라도 또다시 출발을 준비하는 각오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일년을 가고도 그것은 출발 준비를 또다시 한 것이라고 느껴야 되겠습니다, 10년을 지나고 나서도 그것이 내일을 맞기 위한 출발이라고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20년을 가고 나서도 내일을 또다시 출발하기 위한 준비 였다고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여기에 준비가 잘 되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과정에는 도적도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 가진 것을 자랑하다가는 중도에서 자신이 어떠한 피해를 입을지 모르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준비하기에 게으르지 않는 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20여 년 동안 싸워 나온 통일교회 역사는 오늘의 자랑을 위해 있었던 기간이 아니라 출발의 기원을 마련하기 위해 있는 기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계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될 때요, 자체 내에 정비를 강화해야 할 때이옵니다. 그 때가 다가오고 있사오니, 세계적 중심을 모실 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선두에 서서, 누구보다도 개척자의 선봉에 서 가지고 치열한 투쟁을 한 실적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만민이 올 수 있는 대로를 닦을 수 없는 것이옵니다. 그대로를 닦아 놓은 후에 그대로를 닦기 위해서 희생했던 사람들 앞에 감사 하고 머리숙여 존경해야 할 것이 천리원칙인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가야 되겠습니다.
내일을 맞아도 또 그 내일도 준비요, 금년도 준비요, 내년도 준비, 1974년까지 준비해야 할 사명이 저희에게 남아 있습니다. 3차 7년노정까지 저희들은 준비를 하고 나서야 할 21년노정이 가로놓여 있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가면 갈수록 때가 가까이 오는 것 같지만 이것은 나에게 둘도 없는 시련이요, 나에게 결전을 촉구하는, 내적 준비와 외적 준비를 다짐하게 하는 것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과거의 자기의 그 무엇을 자랑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과거에 자기가 힘 있게 싸우던 이상의 오늘 나 자신이 더 장엄한 자체라는 것을 자랑할 수 있는 날을 갖지 않고는, 하늘 앞에 배반된 자리에 서기 쉽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준비자로서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말씀을 준비해야 되겠고, 새공산주의 비판 이론을 준비해야 되겠으며 통일사상을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세계 사상계를 몰고 나갈 수 있는 주체적 사명을 해야, 그들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적인 구원의 길을 만들어 놓을 수 있사옵니다. 그래야 그들이 당신 앞에 머리를 숙인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직 그 자리까지는 요원하기 때문에, 젊은이를 동원하여 이 자리까지 급속한 시일 내에 발전시키기를 바라는 것이 하늘의 소원이요, 여기에 서 있는 아들의 소원입니다. 가는 길을 아버지, 축복하여 주옵고, 그들이 나타나는 길 앞에 있어서 아버지, 강하고 담대한 신념을 가지게 해주시옵소서.
최후와 승리를 다짐지을 수 있는 결의에 사무친 마음, 일편단심의 그 마음을 가지고 최후에 빛날 수 있는 승리를 가질 때까지…. 이 시간을 위해서 오늘까지 싸워 왔다고, 이 시간을 맞을 수 있는 영광과 당신을 위한 찬양의 함성이나마 지를 수 있고 천지에 기억되는 모습으로서 아버지를 찬양하고, 아버지 앞에 경배하고, 아버지 앞에 칭찬받는 그날을 고대하는 당신이 마음 가운데 기억할 수 있는 아들딸로 남아지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소원성취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것은 세계에 중심을 세우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 그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 무엇이옵니까? 세계에 중심을 세우는 것이옵니다.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성취의 한 날을 저희가 맞아야 되겠습니다. 성취의 한 때를 맞아야 되겠습니다. 성취의 한 세계를 맞아야 될 것을 당신이 알고 있사오니, 그곳까지 저희들은 가야만 되겠습니다.
오늘도 가야 되겠습니다. 내일도 가야 되겠습니다. 청춘시대, 이때에 이 한계점을 못 가게 되면 출발한 청춘의 때를 잃습니다. 장년시대에 못 가게 되면 장년시대도 잃습니다. 그러면 노년시대부터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노년시대에도 못 가게 된다면 죽기 직전까지 저희들은 가야 되겠습니다. 죽기 전까지 못 가게 되면 죽어서라도 이 길을 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요, 저 영계에 가서라도 쉴 새 없이 몇천 년이라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한스러운 복귀의 길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땅 위에서 십년 노력하면 영계에서 천만 년 가는 것과 마찬가지 입장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땅 위에서의 일년을 전통으로 남김으로 말미암아 탕감조건을 세워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영계에서 천만 년을 간 것과 마찬가지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땅에 있어서의 하루를 천년 이상의 가치의 것으로 저희들이 느끼며 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할 것이 통일신자들의 매일매일의 생활이어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억천만 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이 현실적인 하루하루, 한 때를 부질없이 보내 버리는 어리석은 불쌍한 무리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혜롭고,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대상의 존재로서 천년 이상의 가치를 지닌 내적인 인연이 하루 안에 숨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 이 순간이 문제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하늘과 더불어 해결짓고 나가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1월 초하루, 우리의 소원이 무엇이옵니까? 통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나라 통일도 통일이지만 하나님과 우리가 통일되는 것이요, 성신과 우리가 통일되는 것이요, 하늘세계와 우리가 화합하여 안팎이 서로 하나 되어서 이것도 나요 저것도 나일 수 있는, 이것도 하늘 것이요 저것도 하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결과가 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그 소원을 이룰 때까지 가야 할 운명길 앞에서 우리는 쉬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피곤하여도, 피곤한 자리에서도 가야 되겠습니다. 내가 잠을 잘 때에, 몸뚱이는 쉬지만 꿈 가운데서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일생의 다짐길을 지상에서 가야 할 날들을 남기지 않고 다 갔다는 조건이라도 세워야 할 이런 책임을 하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