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을 맞이하여 마지막 맞는 이 아침에 당신의 영광과 존귀와 찬양이 하늘로부터 이 땅에 미쳐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속죄함을 바라고 있는 땅 위의 불쌍한 만민을 구하시려는 아버지시여, 이 인류를 당신이 소원하시는 뜻대로 어서 속히 구하시옵소서. 사망의 골짜기에서 허덕이고 있는 이 인류를 당신의 생명의 권한 위에 세우시사, 이 인류가 당신의 본연의 자비스러운 사랑을 흠뻑 받으면서 무한히 무한히 기쁨과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그 날과 그 시간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주시옵소서.
저희들은 타락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임을 자인하고 있습니다. 개인으로 범한 죄가 가정과 나라와 세계로 미쳐진 것을 직시하고 계시는 아버지시여, 지고하신 당신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으로 이들을 긍휼히 보시어 버려 두지 말기를 바라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부복한 어린 자녀들을 찾아오시어 과거의 나를 다시 한 번 회상하고 오늘의 나를 확실히 명시하게 하시어 미래의 보람있고 가치있는 나를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자각의 모습을 갖추게 도와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이 시간 이곳은 물론이지만 전국에 널려 있는 어린 자녀들이 당신이 남기신 복귀의 한스러운 길을 거슬러 가기 위해서 싸우고, 부딪던 몸으로 아버지 앞에 찾아 나와 부복하였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을 일일이 살피시사 당신이 원하는 참다운 아들이요, 딸의 모습을 갖추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아버지, 우리 각자 자신을 중심삼고 인연되어 있는 사방의 민족과 국가들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인연되어 있는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먼저 우리 자신들이 문제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각자가 책임질 수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처해 있는 자리에 서서 단속하고 조절하지 않고는, 당신이 바라는 환경의 인연을 연결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우리로서는 어떤 대상의 가치도 추구할 수 없는 타락한 후예인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사옵나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여기에 주체가 되시어서, 당신의 뜻을 대하여 대상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현재의 저의 위치를 결정지으시옵소서. 당신의 힘에 의지하여, 당신이 뜻하시는 목적에, 당신의 능력의 손길에 붙들리어 따라갈 수 있는 길 외에는 저희들이 구속의 은사를 받고, 해방의 은사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할 적에, 아버지는 과연 불쌍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와 같이 못난 인류를 당신이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되고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 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이와 같이 타락한 후예가 된 이 무리들을 지극히 높고 선하신 당신의 거룩한 자리까지 미쳐지도록 해야 할 사명을 인간으로서는 하지 못하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 시여, 당신이 원하시는 그 자리까지는, 당신이 소원하시는 것에 비례적인 이상의 수난과 탕감의 역경이 가로놓여 있는 것을 저희들은 역사를 통해서 배웠고, 통일교회라는 이 교단을 통하여 보고 체험하여 왔나이다.
하늘을 사랑하고 하늘의 뜻을 따라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체험하면 체험할수록, 이와 같은 개개인을 당신이 소원하신 나라까지 이끌어 가야 할 당신이 짊어진 사명이 얼마나 비참한 궁지에 있는가를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자비로운 심정으로 하늘을 배반한 무리를 천만번 부르시며 돌이키려고 애쓰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어느 한 때 역사적 시대에 있어서 우리 선조 들이 동정한 일이 있었사옵니까? 당신이 수고하신 것은 물론, 당신이 천신만고 끝에 수고의 결과로 찾은 한 자녀를 이끌어가다 사탄의 궤계에 부딪쳐 그 자녀가 아버지를 배반하고 나설 때마다, 아버지의 고독함과 아버지의 비참함과 아버지의 슬픔이 얼마나 컸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담 가정에서도 그러했고, 가인과 아벨의 싸움으로도 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노아 할아버지의 120년 수난의 노정에서도 그와 같은 한 날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집시의 행각의 노정에서 축복의 자리를 더듬으며 참아오던 수난길에 당신이 원하신 축복의 제단을 놓고도 그와 같은 결과는 찾아왔던 것입니다. 사십 평생을 두고 애급 왕국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는 일념으로 지내 나왔던 모세의 노정에도 그와 같은 슬픔의 날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머무를 때까지의 4천년 역사과정에서 시대적 사명을 짊어지고 왔다갔던 수많은 우리 선조들도 아버지의 슬픔을, 아버지의 고독을, 아버지의 비참함을 자아낼 수 있는 나날들은 가졌지만,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고, 당신의 존엄하신 그 모습을 염려하면서, 인류를 위하여 이렇게 수고하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붙들고 사정을 통고하고 심정을 나눈 조상들은 많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님의 사정이 얼마나 딱하였으며, 그 사정 속에 숨어 있는 엇갈린 심정을 하소연 하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인간은 자기가 서러움을 당하게 될 때에는 아버지에게 그 서러움을 풀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께서는 서럽게 될 때에 그 서러움을 알아 달라고 호소할 수 있는 대상을 갖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은 그 아버지를 진정 알아야 되겠습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많지만 당신의 마음을 사랑하고, 당신의 사정을 사랑하고, 당신의 소원을 사랑하면서 당신의 사정과 심정과 소원을 중심삼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혹은 역사적 선조들이 지극히 희귀하였다는 사실을 바라볼 적에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이 당신의 심정을 알았던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자기는 죽는 길을 가더라도 당신은 죽음의 고통을 당해서는 안 될 것을 아는, 당신의 아들의 영광을 지니고 왔던 예수만이 당신의 마음 앞에 소망의 존재요, 당신의 사정이 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요, 당신의 심정을 나눌 수 있는 참다운 아들이었습니다.
그 아들이 당신을 중심삼고 위로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갖고, 하나의 종족을 갖고, 하나의 민족을 갖고, 하나의 세계를 가졌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그 아들은 당신을 위로할 수 있는 사정의 터전을 이 땅 위에 남기고 가지 못했습니다. 그 아들은 당신의 사랑을 지녀 가지고 개인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종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가져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자리를 갖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4천년 준비하였던 유대교단과 수난길을 돌보아 가면서 지켜 고이 길러 나왔던 이스라엘 민족이 바라는 소원은 메시아를 맞는 것이요, 메시아를 시봉하는 것이었지만, 그가 삼십 평생을 이 땅 위에 지내실 때 그를 사모한 자 그 누구였으며, 그를 모시려는 자 그 누구였느냐를 생각할 때, 한 사람도 없었다는 이 비참한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12사도들도 3년 수난길 가운데 있어서 민족을 대신한 서글픔과 교단을 대신한 안타까운 마음을 하늘 대신 짊어졌던 예수님의 가는 길을 알지 못했고, 가고 맞는 날들은 슬픈 날이요, 당하는 일은 핍박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조롱의 화살을 받으며 이 마을 저 마을로 전전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길에서 당신의 사정과 심정을 책임지고, 당신의 소원을 해원성사하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오셨던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하나님의 왕자였던 것을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 시대에 예수를 모신 사람은 없었지만 역사 과정을 통하여 높여진 예수를 믿는 사람은 많아졌습니다. 역사 과정을 통하여 높여지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희생의 피를 얼마나 흘렸으며, 수많은 시련의 역사 과정의 순교 신화에 비참사가 얼마나 많았던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오신 예수님의 역사의 배후에는 하늘이 보기에 당하기에 끔찍한 피의 역사가 계속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이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니었음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좋아하기 위하여 그러한 죽음의 길과 피 흘리는 길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기쁨의 해방과 더불어 갖추어야 할 아버지의 소원의 역사가 비참과 고독과 한탄으로서 해방하고 구원의 역사를 전진시켜 나오는 아버님은 얼마나 얼마나 불쌍하신 분인가를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님, 그러한 아버님을 모시고 그 아버님을 위로할 수 있는 우리가 돼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까마득한 한스러운 십자가의 고통을 느껴야만 할 것이 저희 입장임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님, 그러한 우리의 사명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뜻이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런 내용을 알고 하늘을 우러러볼 때에, 하늘 앞에 무엇을 달라고 기도할 힘을 가질 수 없는 것을 발견하옵니다. 부복하여 눈물과 더불어 당신의 슬픔에 동참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있기를 바랄 뿐이요, 고통과 더불어 당신의 수난길에서 극복의 한 한계선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 저희들의 소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나 아버님과 우리 사이에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연과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버지를 불러야 되겠고, 아버지를 찾아야 되겠고, 아버지의 가는 길을 따라가야 할 운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한 수난 길을 알지 못하고 가고 있는 우리의 걸음걸이를 바라보시는 아버님은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저주하여 제거시킬래야 제거시킬 수 없는 불쌍한 인류를 지금까지 끌고 나오시는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 그러한 당신의 사연이 우리 개인의 사정보다도 딱한 때가 얼마나 많았겠으며, 당신의 염려가 우리 일생을 통하여 염려할 수 있는 개인의 염려를 몇천만배 넘는 자리에서 수고하신 적이 얼마나 많았겠는가를 마음으로라도 생각할 수 있는 자신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래도 그러지 못한 자들보다도 당신은 이들을 붙들고 이들을 위하여 또다시 수고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악을 제거하고 선의 길을 가기를 바라는 아버지 앞에 다시는 불충의 모습을 남겨 놓지 않기 위하여 오늘의 이 순간을 통하여 몸부림치면서 고독과 더불어, 한숨과 더불어, 당신을 염려하고, 당신을 시봉하고 싶은 마음뿐이로소이다.
아버지, 이러한 저희들을 지금까지 이끌어 오신 수고에 감사하오며, 통일교회가 오늘이 있기까지의 그 배후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당신의 너무나 과분한 수난의 길이 첩첩이 가로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적마다, 여기에 서 있는 아들은 아버지 앞에 면목없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만일에 이 땅에 통일교회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당신 앞에 그런 수고의 길을 가중시키지 않았을 것이오나, 통일교회가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해방 이후 27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당신은 고독의 길에 부딪혔고, 당신은 슬픔의 자리에 부딪힌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슬픔을 위로하여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식구들이요, 통일의 무리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슬픔이 남아 있다고 그 슬픔을 아버지 앞에 늘쌍 통고하는 신앙자의 버릇을 그냥 갖고 따라 나오고 있는 자신들을 다시 한 번 증오하면서 아버지께서 기쁠 수 있는 그 모습을 마음 깊이 다시 더듬을 줄 아는, 새로이 자각할 줄 아는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이 시간 아버지 앞에 직고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곳은 초라한 곳이지만 통일의 무리들이 흠모하고 바라보는 본부라는 곳입니다. 중심이라는 곳입니다. 하나의 중심이 잘못되게 될 때에 그 전체는 쓰러지는 것입니다. 중심을 붙들어 세워야 할 사명이 통일교회의 본부에 속한 식구들에게 있는 것, 통일교회에서 받들어 섬겨야 할 중심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전체 식구가 일심일체가 되어 아버지를 붙들어 세워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해야만 그 중심은 영원히 영원히 보존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하늘의 뜻을 중심삼고 백방으로 당신을 받들어 세울 줄 아는 이 무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남이야 뭐라 하든, 남이야 이단이라 하든 남이야 패역자라고 하든 당신만이 기억할 수 있는 혈육을 이어받은 적자가 되어진다면, 그 이상 소원이 없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통일의 식구들 위에 이 시간, 아버지여,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싸움의 터가 남아 있거들랑 이들을 내심으로 격동시키시옵소서. 가야 할 싸움터에 그것을 지시하시사 일생에 일체, 일심을 가다듬어 하늘의 용사로서 전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강하고 담대한 하늘의 병사의 책임을 짊어지고 출동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당신의 나라를 위하여 저희들은 간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의 안식할 보금자리를 위하여 간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이 안식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머무는 것은 아버지께서 안식할 수 있는 가정을 찾아 머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다스릴 수 있는 나라를 바라고 나가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요, 또 역시 당신의 소원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 세계가 당신이 치리하는 하나의 세계로 수습되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요, 그 소원 성취를 위하여 간곡한 십자가의 짐을 짊어지고 가고 있는 비참한 사정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 비참한 사정에 아버지의 지극히 숭고한 희생의 심정이 뒷받침 되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도 그래야만 되겠습니다. 저희의 가야 할 소망과 뜻의 길은 이 세계를 해방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들의 사정은 이 세계에 남아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것이요, 저희들이 가야 할 극복의 한계선은 죽음을 당하더라도 이들을 사랑의 줄로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희들의 심정의 본바탕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지의 책임분담을 저희들이 맡아 가지고 오늘의 하루 생활에서 이것을 삭감시켜 드리는 효의 무리가 되고 싶어 몸부림치는 불쌍한 자가 되었다면, 그 자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 설 때마다 아버지께서 권고하는 것을 들어 왔습니다. 그러한 자리에 서서 싸울 때에 승리의 결과를 원치 아니하였지만 맞아 주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는 아버지인 것을 알았고, 그렇기 때문에 동행하는 아버지인 것을 알고 나왔습니다.
통일교회를 잊어버릴 수 없는 아버지여, 이들을 세우신 이상 부디 소원을 품고 찾아오시던 그 마음을 잊지 마시옵고 돌이키지 마시사, 최후의 승리의 그날, 최후의 영광과 성령을 드리는 그날, 만국이 해방의 기치를 드높이고 만민이 찬양할 수 있는 그날까지 땅에서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거들랑 죽어서라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일대의 짐을 짊어지고 분투하는 하늘의 역전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전국에 널려 있는 어린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기말적인 세계의 정세를 앞에 놓고 저희는 좌우의 판가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긴박하고도 긴박한 책임과 사명을 짊어진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똑바로 아버지의 뜻을 바라보면서 당신이 가던 승리의 일로를 다시 한 번 본받고, 새로운 내일을 개척하는 하늘의 개척자의 사명을 더디하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 하고 원하옵나이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 또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는 서신들을 받아볼 적마다 불쌍한 것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색 민족이요, 혹은 전통과 풍속이 다를지라도 하늘의 심정을 이어받은 한 길을 가는 무리인 것을 저희들이 틀림없이 알고 있는 한 그들의 수난을, 아버지여, 지켜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더욱 이 시간도 남이 모르는 하늘의 섭리의 뜻을 품고 공산권내의 지하에서 싸우고 있는 통일의 무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목숨을 걸고 이 시간도 하루의 생활에 아버지를 자유로운 자리에서 모시기를 고대하는 무리가 있는 곳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 옵니다. 그들을 또다시 지도하고 권고하여야 할 아버지의 사정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지께서는 불쌍하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통일교단이 지금까지 남 모르는 수난길을 거듭하면서 남 모르는 세계의 길을 개척하였습니다. 아버지, 저 공산권까지 당신의 손길을 펴시옵소서. 자유의 기치를 아버지와 더불어 드높이 들고 만국의 해방을, 통일의 무리가 쌍수를 들어 승리의 날을 찬양할 수 있는 그날까지 저희의 전진을 재촉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옷깃을 여미고 엄숙한 아버지의 소명 앞에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나서는 하늘의 아들딸이 가는 길 앞에 무한한 축복과 무한한 자비와 사랑이 깃들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한국을 지켜 주시옵소서. 소돔과 고모라를 앞에 놓고 기도하던 아브라함의 심경을 느끼게 되옵니다. 최후의 열 사람이라도 남아지기를 고대하던 그 심정 앞에, 저희들도 그와 같은 마음을 갖고 이달이 편안하고, 이해가 편안하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 3년노정을 무난히 돌파할 수 있게 허락하시사 아버지께서 소원하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쉴새없이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눈을 뜨고 삼천리 반도를 바라볼 적에, 불쌍한 금후의 아시아의 정세를 앞에 놓고 이것을 초연한 자리에서 극복하고 타개해야 할 사명이 한민족에게 남아진 이 분한 원한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이것은 하늘을 배반하고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한 보응의 결과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뜻을 안다는 통일의 무리들은 이것을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지켜 주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전세계에 선두에 서 있는 기동대원들을 아버지께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은 공격전을 개시했습니다. 전진과 더불어 최후의 승리를 다짐하는 함성을 지르면서 전진의 대열을 갖추고 있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한 나라를 향하여 전진할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향하여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공산당이 세계를 향하여 전진하는 것을 가로막고, 하늘의 천군천사가 전진하는 방향과 더불어 대열을 갖추어 가지고 아버지께서 승리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저희들은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격전장에서 패배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오니, 그 최후의 격전을 평정 시키고 아버지 앞에 영광의 개선가를 드높이 승리의 찬양을 돌려드릴 때까지 죽지 말고 저희들은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지치지 말고 훈련 과정에 온갖 정성을 다 드려야 되겠습니다. 내일의 실전을 맞이할 수 있는 용사의 응시하는 시선을 가지고 적군을 향하여 곧바로 전진하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러한 자리에 선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의 모습을 대신한 하늘의 군대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뜻을 위하여 정성을 들이는 통일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이 땅 위에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수많은 기독교와, 수많은 다른 종교인들을 아버지 품에 품어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뜻 앞에 하나의 형제로 묶으시고, 동지로 세우실 뜻을 바라보면서 가인 아벨의 한스러웠던 역사가 오늘의 종결시대에 재현된 이런 비참한 운명을 극복하고 처리할 수 있는, 아버지의 사명을 대신할 수 있는 무리들이 이 땅 위에 많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남아진 그날과 그 시간도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다짐하여 내일의 승리의 표적을 세우고 마는 하늘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오며,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음받았던 아담 해와가 타락했다는 것을 누구나 다 믿을 뿐만 아니라,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인류의 시조로선 그날부터 죄악의 역사가 시작된 것을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류는 타락한 후예요, 우리 사람들은 죄악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여기에 타락하지 않은 새로운 본연의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죄악된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죄를 중심삼은 이 환경을 초월하여 해방 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욕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즉 어버이의 자리에서 있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 인간들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인간들을 다시, 하나님이 계획하였던, 다시 말하면 창조하였던 그 이상이 있었을 것인데, 그 이상과 하나될 수 있는 본연의 사람을 다시 만들어 보고, 다시 구해서 그 자리까지 끌어올리고 싶은 마음을 하나님이 갖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입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인간 자체를 두고 보면 인간도 역시 하나님이 그러하듯이 본연의 참된 인간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그곳까지 가고 싶은 소원을 갖고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끌어 올려야 되고,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서 올라가야 되는 이런 인연의 역사가 타락되어 있는 인류역사 과중에 남아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역사노정에 구원이라는 말이 생겨 났다는 사실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복된 말이 아닐 수 없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구원의 도리를 성취하기 위하여 사명을 짊어진 어떠한 기관들이 생겨 나야 되는데 그 기관이 수많은 종교인 것입니다.
타락한 이후의 수많은 인간들은 각각 생활환경과 문화배경이 다른 전통을 따라왔기 때문에 그들을 수습할 수 있는 종교를 세워 가지고 하나의 문화권 세계로서, 하나의 목적의 세계로서, 하나의 통일된 목적으로서 하나님은 수습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특정한 민족이 있으면 그 민족의 문화를 중심삼아 가지고 수습할 수 있는 외적인 발전의 역사가 있음과 동시에, 그 배후의 외적인 발전의 역사를 대동해 가지고 내적으로 보조를 맞추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 역사적인 사명의 길을 개척해 나오는 자리에 선 것이 종교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명을 하나님은 종교를 통하여 추진시켜 나가면서, 인간들은 외적인 문화의 세계, 발전의 세계로서 이것을 밀고 나오면서 지금까지 역사는 발전해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외적인 문화세계는 발전해 나왔지만, 내적인 인간의 모든 가치와 본연의 세계를 추구하는 종교가, 외적인 발전과 더불어 보조를 맞추어 내적인 발전을 도모해야 할 입장에 선 종교가 내적인 발전을 하지 못하고 지금에 와 가지고는 이것이 퇴폐해 가고, 부패해 가고, 낙후해 가는 실정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하나님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이 점점점 적어져 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교인이라고 하게 되면 그 누구나 흠모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인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점점 적어져 가는 것을 우리는 바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외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나온 인간과, 내적인 종교를 발전시켜 나오던 하나님이 여기에서 하나되어 나가지 못하는 자리에 섰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없다든가 하는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인류의 문화를 발전시켜 나오는 그 배후에서 종교라는 것이 사상의 뒷받침을 하면서 이것을 밀고 나올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는 그러한 결과가 이루어질 수 없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이 바라는 어떠한 목적을 일치시키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인간의 행로가 되지 않았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이 인간을 저버렸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종교가 사명을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종교가 사명을 못했든가 그 어떠한 면에 병폐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같은 보조로 발전하지 못하는 결과가 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시점에서 볼 때, 인간들이 가는 길이 과연 종교이념과 일치할 수 있는 생활방향으로 가고 있느냐 할 때에, 그렇지 못한 것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개개인의 생활을 중심삼고 그 주변 환경을 살펴볼 때, 그 환경은 나를 소망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여건들이 점점 희박해 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매일의 생활에 있어서 주위에 스며드는 공포감에 휩쓸릴 수 있는 절박한 사정에 우리가 몰려 들어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문화와 세계는 과학문명을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를 이를 줄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가 아니라 점점 갈라지는 현상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을 두고 볼 때, 그 환경이 우리가 소원할 수 있는 안식의 곳,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통일의 세계로서 끌고 갈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경지에 점점 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위협을 받는 생활권내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가정과 어떤 민족이나 국가도 그러한 운명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지도하고 있던, 전자유세계의 선도적인 입장에 서 있던 미국 자체도 그러하고, 공산세계를 지도하고 있던 소련 자체도 그러한 것을 우리는 현시점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들이 서로 서로 화합하여 미래의 이상형을 중심삼아 가지고 소망의 일념을 다짐하면서 서로 협력하여 개척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서로 투지가 앞서 있고, 분쟁이 앞서 있고, 자기를 주장하며 양보라는 것을 찾아 볼 수 없는 풍조가 고조되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아무래도 이 세상이 가는 길이, 아무래도 이 현재의 세기말적인 현상이 오늘날 우리 인간 앞에 행복을 소개해 줄 수 있는 길로 가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 오늘날 흘러가는 이 정세는 하늘이 있다면 하늘의 뜻과 말할 수 없이 동떨어진 자리에 섰지 않느냐 하는 것을 결론지어도 모순이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현세계를 새로운 길로 조정해 나가야 할 사명을 짊어진 것이 종교라면, 이것을 소화시켜서, 하나의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을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앞에 끌려가는 현상이 되었습니다. 세속화된 종교로 머물게 됨으로 말미암아 자연히 하나님이 이 세속화된 종교를 통하여 원하던 소원의 길을 이를 수 있는 가망성이 점점 희박해지는 결과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있어도 이 세상을 저버리지 않을 수 없고, 멀리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가 되어 움직이던 종교에서 하나님은 옮겨 가고 있는 결과가 될 것이 아니냐? 옮겨가는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하나님이 지도하던 종교는 세속화되고, 세상과 더불어 부패해지는 결과에 부딪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 되지 않느냐? 이것을 우리는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에 그렇게 됐다면 종교를 통하여 세계로 가야 할 그 길이 어디냐? 만일에 그 길을 찾아가는 길이 시작된다면 지금까지 종교의 배후에서 키워 오던 하나님은 틀림없이 현현할 것이 아니냐? 지금까지 믿고 키워 나오던 종교가 불효면 불효, 불충이면 불충의 결과로 나타나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저버림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섰다면, 새로운 면에 있어서 그 뜻을 받들어 가지고 효의 길 혹은 충의 길을 다짐하고 나서는 무리가 있다 할 때는, 이 면을 버림과 동시에 이쪽 하나님을 위하는 면을 지극히 사랑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럴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그럴 수 있는 곳을 따라 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을 어떠한 종단이 있다면, 그 종단을 통하여서 세계사적인 새로운 운동을 전개할 가망성이 있지 않느냐 하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자리에서 생각하게 될 때, 진정 그러한 종단, 그러한 종교가 이 땅 위에 있느냐? 우리는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세상을 구하려 하던 종교를 기필코 남겨 가지고 그 종교를 통하여 악한 자리에 화해 버린 이 세계를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 터전을 남겨야 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남겨질 수 있는 그것을 추구할 수 있는 무리는 있느냐 할 때, 그러한 무리들을 찾아보기 힘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기성종교면 기성종교 앞에 새로운 것이 나와야 합니다. 이 구태를 쳐 버리고 혁신운동을 제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도 물론이요, 그 외에 수많은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한국이라는 조그마한 터전을 중심삼고 전개되어 있는 종교상을 바라볼 때, 지금까지 있었던 종교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짤라 버리든가, 헤쳐 버리든가, 깨뜨려 버리든가 해서 새로운 단합 밑에서 새로운 혁신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결론은 여러분의 생활주변의 위협과 더불어, 시시각각 스며드는 고민과 더불어 이것을 갈구하는 일념이 남아져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잃어버렸다면 잃어버린 자리요, 인간이 타락하지 않은 본성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이탈했다면 이탈한 입장에 있습니다. 종교도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을 다시 찾아야 할 때가 왔고, 이 땅 위의 인류도 다시 인류로서 갈 수 있는 길을 해결지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갈래야 갈 수 없고 여기에 해결지을 수 있는 방안이 없습니다. 인간의 힘 가지고는 가능한 어떤 소망도 남길 수 없는 막바지에 부딪쳐 있기 때문에, 인간도 다시 한 번 자기들이 걸어온 생활, 걸어온 길을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될 단계에 놓여 있지 않느냐.
다시 말하면, 그냥 그대로 가 가지고는 그 무엇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돌아서야 될 것이 아니냐. 종교도 지금까지 세상과 더불어 타협하고 짝하여 찾아와 보니까 세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잘못되지 않았느냐.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다시 한 번 검토하고 새로운 단안을 내려야 합니다. 이 단안은 특정한 종단을 중심삼은 단안이 아니라 세계적인 종교가 합해 가지고 방향을 모색해야 됩니다. 또, 외적으로는 어떠한 한 단일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단안을 내릴 것이 아니라, 세계의 국가가 공통적으로 합해 가지고 단안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때를 우리들은 맞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로서도 끝날이요, 세상으로도 끝날이 된 것을 여기서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러한 입장에 서 있는 우리들을 하나님은 그대로 버려둘 것이냐? 그러한 입장에 선 이 세계를 하나님은 버려둘 것이냐? 만일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버려둘 수 없습니다. 버려둘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수습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세상에 살다가 지쳐 가지고 낙오되어 최후의 비명과 더불어 사라져 가는 무리가 아니라, 절망 가운데 새로운 결의와 더불어 재기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만 될 것입니다. 부패한 종교를 바라보면서 낙망과 절망에 싸여 그 자체를 중심삼고 신음하는 무리가 아니라, 그것을 격파하고 새로운 내일을 계승하기 위하여 제시하는 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일에 종교인들이 그런 각성을 못 하고 세상 사람이 먼저 각성을 한다면, 종교인을 버리고 새로이 세상 사람을 택할 수 있는 때가 바로 이때일 것이 아니냐? 이렇게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사람을 찾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절망 가운데서 절망과 더불어 탄식하는 무리가 아니라, 이것을 격파하고, 내일을 계획하고, 마음으로 다짐하면서 이것을 무한히 해결짓기 위한 추진력을 가진 강하고 담대한 무리가 아닐 것이냐? 그런 무리 가운데 하나님이 찾는 무리가 있을 성싶다는 결론은 타당한 결론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오던 모세가 죽게 될 때, 그 모세의 사명을 여호수아와 갈렙 앞에 인계하는 하나님은, 이제 가는 길은 싸움의 길이요, 가야 할 이스라엘의 나라는 처음 출발했던 이스라엘 민족을 죽여 가지고도, 못 간 가나안 땅인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미약한 이 두 젊은이를 민족 앞에 세워 놓고 통고하기를 '강하고 담대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환경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그 환경 앞에 밀려가는 사나이가 되지 말라. 신념이 앞서야 될 것이다. 민족이 반항하더라도 반항하는 민족을 능가할 수 있는 신념이 앞서야 될 것이다'라고 통고하였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틀림없이 찾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죽었다면 모르고, 하나님이 없다면 모르거니와 틀림없이 찾는 곳이 있을 것이 아니냐? 그곳은 현실에 있어서 우리가 고민하고 절망상태에 서서 신음하는 그 자리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내일의 희망을 가진 곳입니다. 우리가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을 수 있는 자리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너나할것없이 모두가 무난히 그 길로 일시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고 반대로 돌아서서 살기 위해서 나갈 때 앞날의 모든 여건이 자기를 환영해 주면 내일의 생을 더욱 기쁜 가운데 보낼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새로이 방안을 모색, 강구하든가, 지금까지 걸어나오던 역사적인 모든 것을 청산짓고 역사적 시대로 돌아가 설 수 있는 내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극복하고 초월하는 길은 이 환경을 뛰어넘는 길인데 이렇게 뛰어넘든가, 그렇지 않으면 출발하기 전에 뛰어넘든가 두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해결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이 안에서 아무리 신음했댔자 시궁창에 빠진 사람은 허우적 거리면 거릴수록 점점 빠져 들어가기 마련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도약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극복하자 해가지고 환경을 뛰어넘어 내일의 승리의 터전을 확고하게 했다 하는 그런 신념을 갖든가,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온 것이 틀렸기 때문에 출발전 그 시점으로 어떻게 돌아가느냐 하는 문제, 그 길을 모색하는 것 외에는 해결방안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추측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수많은 생애를 통해, 수많은 지성인들이, 수많은 노력을 통하여 짜낸 결과가 이것으로서 정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바라볼 때, 이것을 비약하기 위해서는 현재를 다 타개해 버리든가, 누구든지 네 마음대로 찾아가라 할 수 있게라도 되든가, 그것도 안되면 죽어가면서 떨거지는 떨거지로 남겨 놓고 끌고 들어가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것을 초월하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종교가 가는 길은 그것을 언제나 추구하는 길이었습니다. 종교는 언제나 그런 놀음을 해왔습니다. 세상 가운데서 안일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며 가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극복하고 초월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 같은 종교는 세상을 전부 다 포기해 버리고 인간들이 가는 길과는 반대로 돌아섰습니다. 그런 놀음을 거듭해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반해서 기독교는 현대문명의 첨단을 걸어 나오는 그 배후에 서 가지고 오늘날 문화의 발전에 보조를 맞추어 역사시대에 공헌해 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과 더불어 타협하고, 세상과 더불어 침투해 나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가운데 서서 시정이 아니라, 부정적인 일념을 강요했습니다. 성경 가운데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은 전부 다 역리적인 말이고, 모순된 말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기 위한 결심을 하는 것 보다도 살기 위해서 죽을 결심을 해나왔다구요. 거기서만이 새로운 극복의 길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예수님도 사랑하는 제자들을 대하여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최후의 심각한 말씀이 아니었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찾는 사람들, 찾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어늘, 그 찾는 사람들은 어떠한 무리들이냐? 강하고 담대한 신념을 가져야만이 찾아질 수 있느냐? 아닙니다. 강하고 담대한 신념을 갖는데, 목적을 가져야 된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대해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한 그 말 가운데는 '너는 내일의 이스라엘을 회복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 가나안 땅을 복귀하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갈 것이라는 목적관이 확실하다 이겁니다. 확실한 그 터전 위에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가 가는 길 앞에 있어서 목적관이 확실하냐? 희미하다는 겁니다. 뭐 기독교로 말하면 예수 믿고 천당가겠다고 하는데, 인간의 목적이 거기에 귀결될 수 없습니다. 보라구요. '예수 믿고 천당가겠다'하는데 '누가 가겠느냐?' 할 때 누가 가요? '내가 간다. 이 자리에는 내가 간다' 하는 것은 전부를 저버리는 자리입니다. 전부를 잃어버리는 자리인 것입니다. 안 그래요? '예수 믿고 우리 가정을 천당 보내겠다' 할 때는 가정을 찾을 수 있는 자리이지만, '예수 믿고 천당가겠다' 할 때는 누가? '내가 가겠다' 할 때 가정이 있으면 가정도 저버리겠다는 말입니다.
종교의 본질은 다시 한 번 분석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전부 다 자의적인 신앙표준을 갖고 있지, 그 자의에 덧붙여 가지고 '내가 이렇게 되는 것은 더 큰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서다' 하는 상대를 천국에 보내기 위해서 믿는 사람들이 있었느냐? 신앙의 본질을 우리가 다시 한번 헤쳐보게 될 때, 자기 구원을 위하여 피땀을 흘리고 죽음길을 갔지만, 나라를 천국 보내기 위하여 죽음길을 가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느냐? 그것을 넘어 가지고 '세계에 천국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예수 믿읍시다, 세계를 천국 가게 하기 위해서 예수 믿읍시다' 한 사람이 있었느냐? 그 세계라는 것은 나를 빼놓고 이룰 수 있어요? 각 개개인의 나를 합해 가지고 나라가 성립되는 것이요. 세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의 신앙자들을 보더라도 '천국 가자' 누가 가느냐? '나만 가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을 보면 '내 아들딸만 그저…' 자기를 중심한 기도만을 합니다. 자기 종교만 찾아요. 이놈의 종교가 자기 교회만 찾아요. 무슨 장로교 감리교…. 이거 다 때려부숴야 됩니다. 틀려 먹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있다면 그거 좋아하시겠어요? 우리 까놓고 얘기하자구요. 하나님의 뜻이 뭐냐? '김 아무개 너 하나만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래요? 그러면 예수 믿고 어떻게 할 것이냐? '천당간다' 천당은 언제 갈 것이냐? 죽어서 간다니까 자기 혼자로서 일방통행이라구요. 살아서 간다면, 자기가 구원을 받은 다음에 돌아가지, 천국에 갔으면, 그 다음에 좋으면 다른 사람들을 데리러 올 수 있는데, 이거 죽어서 가겠다니까, 전부 다 하나로 일방통행이예요. 요거 요거 따라지라구. 이런 신앙관념이 틀리지 않았느냐? 그런 종교는 하나님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도 훅 불어 버릴 것입니다.
한집에 살고 있는데 먹는 것도 자기만 잘먹겠다고 하고, 자기만 잘되겠다고 해보라구요. 그 가정에서 몰려 쫓겨나지 별수 있어요?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야 할 자식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만 잘 먹겠다고 하면 불효라구요, 불효.
여러분이 여기에서 개인이 머무를 수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걸 망각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서야 할 자리는 어디냐? 개인이 서야 할 자리는 국가 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개인이 서야 할 자리는 세계 위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은 세계의 제1인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냐? 안 그래요? 여러분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청년들에게 '당신, 앞으로 출세를 한다면 뭐가 되겠소? 하고 물어 보면 아무리 못났어도 '아!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지' 한다구요. 마음은 다 그렇다구요. 그러나 그것은 못난 사람이라구요. '한 나라 대통령으로 만족하나? 세계 대통령이 되지' 그렇게 욕심이 땅보다도 크다는 것입니다. 땅보다도 클뿐만 아니라 하나님보다도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떡 가슴에 모시고 벌떡벌떡하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까지도 자기 속에 집어넣으려고 한다구요. 그런 욕심 없어요? 사람이 설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은, 나 위에 내가 서 겠어요? 더 큰 것, 천국이라는 것은 이미 전체의 땅을 두고 말하는 것이요. 백성을 거느린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환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천국에 들어가지, 천국에서 환영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나만 천국 가겠다구요? 그런 사람에게 나라가 있을 게 뭐예요? 고독단신입니다. 그런 천국은 천국이 아닙니다.
영계에 가 보면, 옛날에, 혹은 신약상에 나타났던 훌륭한 사람이, 존경을 받고 순교를 당한 사람이 높은 곳에 갈 줄 알았더니 제일 비참한 자리에 가 있다는 것입니다. 죽을 때에 내가 이렇게 죽어야 천당간다고 생각하고 죽은 사람은 천당 못 갑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은 광증에 들려가지고 천당을 위하여 자살한 것과 마찬가지의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과는 달리 순교는 안 했을망정 고생을 하면서 믿고 간 사람이 '아! 나 하나 희생되어서 나라를 천국 만들고 수많은 사람을 천국 가게 하겠다' 한 사람은 천국에 가 있더라 이거예요.
우리는 신앙의 본질을 뜯어고쳐야 되겠습니다. 기독교가 그러한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많은 풍파가 생겼어요. 이 풍파를 타파해 버리겠다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입니다. 때려부수지 않아도 망하게 돼 있다구요. 그런데 왜 빨리 때려부숴야 되느냐? 망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전부 다 저버림을 당하기 때문에 이것을 때려부숴 가지고 구해 주어야 되겠다는 거라구요. 그렇다고 도끼로 때려부수라는 것이 아니예요.
'예수 믿고 천국 가자'가 아니라 '예수 믿고 천국을 이루어 놓고, 그 이루어 놓은 천국에서 보내어 주면 하늘나라 가겠다' 이것이 본래 하나님이 원하는 정상적인 신앙의 방향이 아니겠느냐? '나라야 망하든 말든, 세계야 망하든 말든 나 천국 가면 된다' 하는 것은 백정이라구요. 그런 목사들을 밥을 먹여 살려요? 오래지 않아 통일교회 앞에 추방당할 것이라 구요. 틀림없이 추방당합니다. 오래지 않아 자기들이 키우던 젊은 교인들한테 사지가 들려서 구렁텅이에 던져질 때가 올 것입니다. 기필코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건 공갈 협박이 아니예요. 여기에 목사들이 왔는지 모르지만 반드시 그렇다구요.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그런 면에서 하나의 대표적인 신앙을 하고 있어요. 역사를 망치고, 세계와 더불어 망해 들어가는 그런 종교를 타파해 버리고, 천국을 만들어 놓고 그 만들어진 천국이 공을 따라서 '당신은 이런 길을 가 주기를 바라오', 그 국가 민족이 '저 사람을 하나님 앞에 보내 주소, 천국 나라 보내 주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들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가 믿더라도 그런 사람을 좋아할 것이 아니냐? '내 교회' 그놈의 교회가 누구 총회장의 교회야? 누구 감독의 교회야? 어림도 없다는 거라구요. 이 악당의 무리들.
이제부터 우리는 공격을 해야 되겠다구요. 1972년이 지나가는 날부터 기성교회를 공격해야 되겠습니다. 뭐 우리가 힘의 대결을 하면 지는 입장에 서 있지 않습니다. 힘으로 대등해 가지고 무슨 면으로든 밀어뜨릴 수 있는 자주적인 역량을 갖추었습니다. 자! 누가 이기나 보자구요. 하나님은 공정히 판단할 것입니다.
여러분, 공적이요, 사적이라는 말을 하지요? 공적인 것이 어떤 것이냐 하면 전체를 위한 것이요. 사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냐 하면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사적인 것은 전체를 부정하고 자기를 위한 것이고, 공적인 것은 자기를 부정하고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냐? 그러면 신앙관에 있어 서도 자기를 두둔하고 공인하는 것이 사적인 신앙이요. 전체를 두둔하고 공인하는 것이 공적인 신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성교회와 통일교회를 비교해 보면 그래도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이 공적인 것에 더 가깝다 이겁니다. 통일교회 나쁘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기도할 때, '아이구, 내 아들딸 잘되게 해주소' 그런 기도는 하지 말라는 거라구요. '아이구, 내 남편 잘되게 해주소' 이런 시시한 기도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희생하면서, 통일교회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다르다 이거예요. 대한민국이 앞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날에는 대한민국이 희생해 가지고 대한민국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희생하는 사람은 자연히 중심존재로서 등장합니다. 그 가정에서 희생하게 되면 그 가정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희생하게 되면 아내는 완전히 남편 앞에 예속되는 것이예요. 이런 것을 우리는 알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여러분은 하나님이 찾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하는 것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거예요.
오늘날 미국을 봐요. 미국사회는 개인주의 사상을 가지고 끝까지 가다 보니 전부 다 나라도 뻥 넘어가고 친척도 뻥 넘어가는 거예요. '아이구 친척이 다 뭐야' 하게 되었고, 그 다음엔 '어머니 아버지가 다 뭐야. 나 낳을 때 당신들 좋아서 낳았지 날 생각해서 낳았어? 이렇게 되어 버렸다구요. 따지고 보면 그 말이 맞다구요. 언제 자기가 나올 줄 알고 기도 하면서 낳았나?(웃음)
그러니 그 말이 맞다구요. '그 아버지 어머니와 내가 무슨 인연이 있어? 동물과 마찬가지지 뭐' 딱 그렇게 됐다구요. 그러니 '어머니 아버지 뭐요? 그래 어머니 아버지도 집에 와서 밥 먹고 가려면 돈 내고 가소 그렇지 않으면 오지 마소' 하는 거예요. 전화를 해보고 '아들아 나 가도 되니? '예, 오시옵소서" '저녁밥을 부탁한다' '그러지요' 했는데도, 저녁을 부탁한다고 하고 와도 저녁이 무슨 저녁? 들이 먹으면서도 가만 있더라 이거예요. (웃음) 그러한 사상을 가진 사람은 그런 꼴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뭐냐 하면 남편과 아내도 서로서로 '너는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지 내가 너를 위해서 있지 않다' 이거예요. 이것이 전형적인 개인주의라구요. 이놈의 주의가 딱 갈라져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고층 아파트에는 어떤 사람들이 종합해 사느냐? 혼자 사는 남자 떼거리, 혼자 사는 여자 떼거리들 종합 집합소가 아파트라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별의별…. 그 남자면 남자, 자기 자신을 위해서 굳히고 사는 것이니 동물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좋은 사람들 끼리끼리 만나 가지고 살자' 해 가지고 서로 업어 가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개 돼지 같은 패들이 다 돼 버렸다는 겁니다.
그놈들은 망한다 이겁니다. 나라가 달아나고, 가정이 달아나고, 아들딸이 달아나고 다…. 나중에는 자기도 혼자 살 수 없으니 따라가는 거예요. 자기도 망하지 별수 있어요? 그렇게 가다 보니 '아이구 개인주의 사회인 미국이 좋은 줄 알았더니 미국이 싫다' 이래 가지고 전부 다 반항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구시대와 신시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하는데, 차원이 다르긴 뭐가 달라요? 하나는 직격탄을 맞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격탄을 맞는 것이니, 다 마찬가지 운명이라구요. 죽기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오래 가지 않아서 망하게 돼 있습니다. 이 망하는 미국을 통일교회가 구해 줘야 되겠습니다. 개인주의 사상을 뒤집어 박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개인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 씨알머리도 없느니라. 지금 동양에서 교육이라든가 도덕의 표준이 뭐냐? 선입니다. 선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침이나 저녁이나 전부 다 나를 위해서 살라고 하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예요? 아닙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누구든지 통일교회 지도자보다 더 나을 수 있는 지도자가 있다면 와서 맡으라고요. 지금 기성교회에서 누구 누구 한다지만 와서 맡으라구요. 그 대신 문을 열자 이거예요. 양떼가 자기 양떼야! 하나님의 양떼지요. 그 돼먹지 않은 것들이 전부 다 가로막아 가지고 쇠를 쥐고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딱 형무소와 같습니다. 빨강 벽돌로 문을 만들어 가지고 '나가지 말라, 내 밥통이다' 한 사람만 없어지면 이 내 밥통감….
다섯 사람만 빼가도 왕창 망한다구요. 제일 중요한 무리가 통일교회의 원리 말씀만 들으면 빠져나가니, 착착 빠져 나가면 착착 무너지겠으니, '아이쿠, 통일교회 대마귀, 대 사탄이…' 내가 대마귀 대장이 되었구만. (웃음) 그런 것 같으면 벌써 내가 죽었을 것이고, 통일교회는 벌써 망했을 텐데, 망하기를 바라는 패들은 망하지 않고 망하라고 한 패들은 망하게 됐습니다. 통일교회도 이제 명실공히, 내가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부러울 것이 없어요.
대한민국에서 나를 쫓아내도 나를 받아들일 나라는 얼마든지 있다구요. 현재 통일교회 여러분들이 반대해도 내가 얼마든지 갈 곳이 있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왜 통일교회 문선생님을 받아들이느냐 하면 자기 나라에 와도 손해 안 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 다 장사속이라고, 손해나지 않을 것을 뻔히 알고 있다구요. 자!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세계는 개인주의 세계가 됐습니다. 안 그래요? 거기에 반(反)해 가지고 '개인주의는 완전히 반대다' 하는 것이 자칭 공산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남아지는 것은 개인주의보다도 힘의 권을 가지고 남아지는 것이 공산당입니다. 지금 그렇다구요. 미국도 공산당한테 걸려 가지고 있습니다. 월남이라는 조그마한 나라 앞에 큰 나라가 걸려 가지고, 지금까지 발을 빼지 못하고 말려들어 가서 베트콩이 하자는 대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시시하다 이거예요. 그것을 보니 그런 미국을 민주 세계의 주도국가라고 믿고 모시고 따라왔다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 있어서 박 대통령이 한국적 토착화를 위한 민주주의라는 것을 부르짖고 나오는 것을 보니, 야! 그것 좋다 이거예요. (웃음) 그런 시시한 것보다 낫다는 거예요. 자주적 역량을 갖지 못하고, 자기의 권한을 찾아 세우지 못하는 그러한 패들…. 그렇다고 내가 여당을 지지하고 누구를 지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큰 사람이다 할 때, 큰 사람은 새빨간 것도 들어오게 할 수 있고, 노란 것도 들어오게 할 수 있고 흰 것도 들어오게 할 수 있고, 알록달록한 것도 들어오게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모든 것을 슬쩍슬쩍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미국에 가서 느낀 것은 '야 미국이라는 나라는 과연 큰 나라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십 종의 민족이 들어와 살거든요. 이들이 싸움 하지 않고 전부 다 하나되어 가지고 떡범벅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떡범벅이라고 해서 수수범벅이 아니라, 찹쌀, 보리쌀, 수수쌀, 무슨 쌀, 무슨 쌀 등등 종합 범벅 떡이라구요. (웃음) 그것은 한 가지로 만든 범벅 떡보다도 더 낫다는 거예요. 맛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 미국이라는 나라는 역시 크구나!' 그래도 기독교 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지탱했지, 개인주의 사상만 등장했더라면 산산조각이 나는 것입니다. 기독교 사상이라고 하는 박애주의 사상이 그래도 사회제도와 문화를 선두에서 끌고 가기 때문에 미국이 지탱하고 있는 것이지, 이것이 희박하게 되는 날에는 일시에 모래알이 된다는 겁니다. 지금 그렇게 돼 들어오고 있다 이겁니다. 지금 기독교가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져 나가는 제갈래 길을 가고 있다 이겁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마찬가지라구.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제각기 싸워 가지고 될 것 같아요? 싸움이 계속되고 망운이 뻗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좋기 위해서는 서로 위하는 데서만이…. 그것이 망운이요, 흥운이요?「흥운입니다」'단결하면 흥하고 갈라지면 망한다'는 것을 알긴 알지요. 어떻게 하여 단결할 것이냐? 그냥 단결되지 않는다구요. 서로 희생해야 단결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사랑은 희생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보다 희생하는 것이 사랑의 세계에서 보다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느냐? 자기를 위해서 죽었다면 무슨 구주겠어요?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다 하니 고마운 것입니다. 그 정신 하나로 세계 기독교 문화권이 형성된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찾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앞에서 말한 그러한 입장에서 개인을 중심삼고, 자기 종단만을 중심삼고, 자기 나라만을 중심삼고 나가는 사상과 그런 주의를 가진 종교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것은 큰 것을 위해서 희생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큰 것, 세계보다 제일 큰 것이 무엇이냐?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그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또, 그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데는 어떤 사람이 더 가치적인 희생을 하느냐? 앞으로 대통령이 될 사람과 더불어 희생하는 사람이 제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그가 나라를 위하여 죽을 곳을 가게 된다면 그들도 그곳을 같이 따라간다 합시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그를 따라간 사람들은 그와 더불어 영광의 자리에 나가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결국 결론이 뭐냐? 하나님이 한 나라를 찾고, 한 세계를 찾고자 하는데, 거기에 있어서 제일 높고 주인 될 수 있는 자와 같이 행동하고, 생사를 같이 결정해 가지고 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런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 이 우주 가운데 제일 훌륭하고, 제일 주인이 될 수 있는 자가 누구냐 할 때, 사람이 아니라구요. 사람으로 지배할 수 있는 때는 지나갔기 때문에 신(伸)이 있다면 그 신 중의 신이라고 할 때, 그분은 하나님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욕심장이가 되라고 가르쳐 주지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이거예요. 여기에서 '하나님을' 했지만 강조하기 위해서 '하나님만을' '만'자를 넣어야 되겠어요. 앞으로 우리가 성경을 만들면 원문에 없더라도 그 '만'자를 집어넣을 것입니다. 그것은 얼마든지 집어넣어도 좋아요. 그렇지 않아요? 예로서 귀가 못생겼지만, 귀걸이를 두툼하게 달아 놓으면 귀가 양반귀같이 보이는 거예요. 그럴 때는 귀걸이도 필요한 것입니다. 귀걸이를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형용사는 멋질수록 좋은 것입니다.
자, 그것을 보면 하나님이 계셨다면 할 일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내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를 위해서, 내 때가 되지 않았지만 내 때는 이런 때가 되고, 그때는 이런 때가 되기 때문에 나는 너희들에게 철칙같이 가르쳐 주노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열째 계명이 아니라 첫째 되는 계명이다' 첫째 되는 계명이 뭐예요? 제일 좋은 계명입니다. 그러면 제일 좋은 계명이 뭐예요? 제일 행복한 자리입니다. 제일 행복하려면 어떻게 돼야 하느냐? 제일 행복한 것이 혼자 될 수 있어요? 둘 이상이 되어야 되지요. 행복이라는 것은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어야 둘이서 행복을 꿈꿀 수 있지요. 안 그래요? 가정의 행복은 어머니, 아버지, 자녀가 있어 가지고 행복을 꿈꿔야 행복이지요. 나라가 있으면 주권자와 정부와 백성과 각 단체 기관들이 합해 가지고 행복을 꿈꿔야 참다운 행복이지요. '나 혼자 행복하면 된다' 그게 아닙니다. 가정이 있더라도 단체에 속해 가지고 그 나라와 하나되어 행복권을 만들지 않으면 전체의 행복은 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결국은 누구하고 행복의 주체와 행복의 대상이 되겠느냐? 사람하고가 아니라구요. 하나님하고 사람하고라는 겁니다. 사람끼리 주체와 대상이 될래요, 하나님하고 주체와 대상이 될래요? 우리 최대의 이상이 뭐냐 할 때, '나는 사람하고 주체와 대상이 되겠다' 그것은 싫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통일교회 책임자로서 나오면서 불신을 많이 받아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는 말이 '백두산 천지의 반석을 갈아 가지고 감자를 심어서 선생님을 봉양하는 일이 있더라도 전 선생님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하더니 웬 걸, '죽음길을 가야 되겠다' 할 때는 '어, 생각을 좀더 해봅시다' (웃음)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라구요.
사람은 동풍이 불게 되면 서쪽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입니다. 안 그래요? 또, 서풍이 불게 되면 동쪽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질이요. 본성에 가까운 것이더라.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믿을 수 있다?「없다」 있다?「없다」 여러분들은 믿을 수 있다?「있어요」(웃음) 있다예요, 없다예요?「있다요」 정말이요? 아, 내가 그렇게까지 이야 기했는데 정말이라구? 그러니 또 속아 달라는 말이라. (웃음)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분이 있다면 누굴 믿겠느냐? 사람은 못 믿어, 사람은 못 믿는다구요.
그러면 단 하나 믿을 수 있는 분,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만은 한번 절대적으로 믿어 보자, 그런 생각 안 할 거예요? 그만큼 속아 왔고, 그만큼 믿을 수 없는 이 정상세계에 있어서 하나님만은 내가 믿어 봐야 되겠다. 또 하나님도 그걸 알고 있다는 거예요. 세상에서는 허덕이고 낙망하고 절망하기 일쑤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지내 보고 너무나 잘 아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교육의 표어를 세우는 데 어떻게 세울 것이냐? '너희들 그러지 말라. 내 말만 들어라. 사람과 사람끼리는 못 믿는 거야. 그렇지만 절대의 주체 되는 하나님만이…. 오직 최후로 나 한번 믿어줘 봐라'고 할 것입니다. 믿는 데는 어떻게 믿어야 하느냐 하면 내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다하는 데는 삼천만 민족보다도 더 하라는 것이요. 30억의 인류보다도 더하라는 것입니다. 다하라는 것이예요? 네 마음을 다하고…. 더 하는 것보다도 다하는 것입니다. 다르다구요.
자기 남편이나 아내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에 대해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나라의 주권자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것은 클수록 가치가 있는 것이요. 클수록 제일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높은 분은 최고로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네 마음을 억만분지 일이라도 남겨 놓고 해라' 그거예요? '억만분지 일이라도 남기지 말고 그것을 넘어서 더 해라' 하는 것입니다. 넘을수록 좋다 이겁니다. 그러려니까 우리는 30여 억의 인류를 넘어서, 역사이래 수천 억이 왔다갔던 그 인류를 넘어서 해라 이거예요. 그런 말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교인들이 아무리 잘 믿더라도 온유겸손해야 됩니다. (웃음) 온유겸손 하기가 어렵겠지? 왜 어려우냐 그걸 알아야 돼요. 그 한계선을 못 넘었으니까. 지금 인천까지 마라톤을 한다 하게 된다면, 뛰는 도중에 일등으로 간다고 해서 '내가 일등이다' 해 가지고 중간쯤 뛰다가 온 것이 일등이예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건 미친 녀석이라구요. 있는 힘을 다해서 '요이 땅' 한 것이 일등이라고 해서 일등이다. 그렇게 되나요? 역사가 달리고 있는데…. 역사가 달리고 있으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꾸준히 달려라 이겁니다. 끝까지 달려라 이겁니다.
'끝까지 참는 자가 지옥간다' 그랬어요?「천당갑니다」 끝까지 참고만 있으면 되나요? 참고 견디는 자가…. 견디는 자는 인간 가운데 맨 꼭대기 사람만 남았어도 그 사람을 밟고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꼭대기까지 직접 밟고 올라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와서 천국을 이루었어요? 예수님의 등을 타고, 예수님의 꼭대기까지 올라서야 되지, 예수님을 믿어 가지고만은 안 된다는 거예요.
이런 말을 한다고 기성교회에서는 '어 이단 마귀, 성경에 그런 말이 어디 있어? 하겠지만, 성경이 무슨 성경이예요. 이론적으로 따져도 그렇지 않느냐 말이예요. 성경보다 앞서는 것이 이론이라구요. 성경이 이론적으로 되어 있어요? 말로만 하나님은 뭐 어떻고 '이론이 필요 있나? 믿으면 되지' 한다구요. 그게 좋다구요? (웃음) 믿어 가지고만 된 교회가 있나요? 그런 교회는 망해요! 예수의 감투를 못 쓰게 뒤집어엎어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그 감투를 못 쓰게 뜯어 버려야 되겠습니다. 성경 66권을 다 뜯어 버려야 되겠다구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썼겠어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고 했겠어요? 일등 되는 사람을 찾아야 되겠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상에 있어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한 사람이 있어요? 하나님의 뜻은 인류를 구하는 것입니다. 인류 가운데는 수많은 나라가 있지요? 대한민국도 수많은 나라 가운데 한 나라가 됩니다. 여러분도 수십 억 인류 가운데 한 사람이라구요. 안 그래요? 그러면 하나님이 볼 때 현재의 사람만 보나요? 영계가 있다면 영계의 사람은 안보나요? 사람이란 건 다 보는 거예요. 그것을 다 동원해 가지고 뭘할 것이냐? 천국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았어요?
그러면 하나님의 섭리역사상 제일 일등 될 수 있는 효자의 이름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누구예요?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라고 할 거예요. 그럼 예수가 일등했어요?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다구요. 십자가에 죽은 그 목적은 거룩합니다. 예수가 죽어 가지고 뭘하자는 거예요? 인류를 전부 다 죽이기 위한 거예요? 죽은 목적은 전부 다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살려 가지고 뭘하자는 거예요? '내가 너희를 위해서 죽었으니 너희들은 내 무덤을 지켜 달라'고 무덤을 지키는 산지기를 만들려고 그래요? 생각해 보세요. '내가 너희를 위해서 죽었으니 내 무덤을 지키는 초소꾼이 되어라' 이거예요? '내 무덤을 옆으로 밀어 놓고라도 내가 찾고 싶었던 가정을 살려 주려무나' 그거 아니예요? 틀림없는 말이라구요. 그것이 틀렸다고 말하는 녀석은 바로 사탄이고 이단이라구요. '내가 원하던 내 나라를 살려 주지, 내 무덤은 왜 지켜 이 녀석아! 이 미욱한 녀석아, 산지기가 네 책임이야?' 라고 하지 않겠어요? 사랑하는 남편이 죽었는데 남편의 친구가 찾아와서 그저 '야 왜 죽었니 나도 너와 더불어 죽겠다'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혼이 나타나 가지고 '이 녀석, 내 아들딸이 지금 죽게 되었으니, 나 보고 울지 말고 내 아들딸을 도와줘라' 할 거예요. 그게 친구의 사명이 아니냐? 그렇지 않겠어요?
마찬가지라구요. 교회를 못 지키더라도 좋다구요. 기독교를 못 지키더라도 좋다구요. 기독교에 가야만 천국이 있어요? 천만에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구요. 교회당을 못 가더라도 교회가 이루어야 할 나라를 찾아 이루기 위해서라면 주일날이 아니라 무슨 날이라도, 오경을 다 범하는 자리에 있더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주일날을 지키지 않더라도 그 사람은 천국 가고도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틀렸어요?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야! 주일날 모여 가지고 예배 보는 것이 내 소원이다' 했다면 그 예수는 망할 예수입니다. 예배보는 것도 좋지만 예배보는 것은 교회보다도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정신을 무장하고 훈련을 쌓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가 바라는 소원이 아니겠어요? 예수가 찾고 있는 나라를 위해서 활동해 주는 사람을 원하지, 교회만을 위해서 활동하는 사람을 원하겠어요?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교회보다도 나라를 구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대교를 세운 것은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자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게 되면 이스라엘 나라를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구해 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은 개인을 위한 뜻, 가정을 위한 뜻, 종족을 위한 뜻, 민족을 위한 뜻, 국가를 위한 뜻, 세계를 위한 뜻 이렇게 올라갑니다. 개인을 위한 뜻 가운데 가정이 있을 수 있어요? 가정을 위한 뜻 가운데는 개인이 안식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개인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보다 못하나, 낫나?「낫습니다」 낫다는 말입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가정을 희생하면, 그 구한 하늘나라가 오게 되면 그 가정도 복을 받기 때문에, 구원받기 때문에 보다 선하고 보다 나은 것이 아니냐? 이런 원칙이 서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가정을 버리고,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비운에 서 있는 삼천리반도 이 나라 이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하나님 앞에 서고, 민족의 해방이 벌어지면 그 나라 그 민족은 애국애족하는 사상을 가지고 어떤 가정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정의 길을 개척한 그 가정을 받들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걸 틀렸다고 대한민국 백성이 어떤 주권자의 이상을 따라갔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믿다가는 가정 파괴다' 이런 소문을 내고 악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가정과 자식을 떼어 버리고 살고 싶겠어요? 그 누구도 그건 원치 않아요. 사람 가죽을 쓰고 그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여기 서 있는 문선생도 그것을 원치 않는다구요. 부모를 왜 버리고, 처자를 왜 버리고, 자식을 왜 버려요? 또 일족을 왜 버릴꼬? 일족, 처자, 자식보다도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남과 전체를 위해서, 그것을 다 희생시켜 나라를 구하려고 나섰기 때문에 역사는 여기에서 새로운 이상세계로 전진할 수 있는 패턴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 길에서만이 소망이 있고, 그 길에서만이 역사가 빛나는 것이라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통일교회를 믿어 가지고 내 배를 위하고, 내 일신의 영광을 위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나가 가지고 누구 못지 않는 사업가가 되었더라도 일류 사업가가 됐을 것이고, 공부를 했어도 학박사 학위를 몇 개는 땄을 거라구요. 누구에게 지고 싶은 마음은 절대 꿈에도 없는 사나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질을 능히 가지고 있다구요. 내가 못 하는 것이 없다구요. 팔방으로 능란한 소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나이가 욕을 먹고 싶어서 욕을 먹어요? 내 눈을 보라구요. 내 코를 보라구요, 욕을 먹어도 좋아하겠나. 어림도 없습니다. 천리를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가야만 인생의 보람있는 길이 나타날 것을 알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다 보니 망할 줄 알았더니 망하지 않고 이제는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 땅 위에 수많은 성인들이 왔다 갔지만, 예수님 자신도 죽게 될 때 열두 제자를 중심삼고 믿었던 세 제자도 전부 다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 문선생이 '죽자' 하게 되면 함께 죽을 사람은 그래도 예수를 따르던 무리보다 많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어디 여러분들, 선생님이 '죽자' 하면 함께 죽겠어요?「네」 정말이야?「네」 나같이 못난 선생님을 따라와야 아무런 국물도 없을 것인데 따라오겠어요? 당장에는 아무런 보답도 없지만 망하는 역사의 전통적 사상으로서 남아질 것을 이 못난이들도 알고 있습니다. 못났다고 한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못난 사람이 동정을 받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구요.
자! 이제 결론을 짓자구요. '우리 교회만을 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는 그런 종단은 망해 가느니라! 하나님은 기필코 그런 종단을 망하게 할 겁니다. 기독교는 못나고 통일교회는 잘났다고 선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좋고 나쁜 것은 지나가면 자연히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알겠어요? 잘나고 못나고 자랑할 것이 없고 선전할 필요도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선전 안 하고 가만히 있다구요. 문선생이 청파동 그늘 아래서 허리 부러진 호랑이 모양 가만히 있다구요. 별의별 욕을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고, 선생님은 갈 길이 바쁩니다. 욕을 하는 사람 거 누구냐?
겨울이 되거들랑 서북풍이 불어와야 되는 것이고, 여름이 되거들랑 남동풍이 불어야 격에 맞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동쪽으로 가려고 하는 사람들한테는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야 갈 길이 쉬워지고, 또 서쪽으로 가려는 사람들한테는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야 서쪽으로 방향을 잡기 쉽습니다. 동쪽으로 가야 되겠다 할 때는 하나님이 서쪽에서 바람을 불어대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하! 내가 기성교회에 관심 갖지 못하게 '전부 다 썩어질 것이니 그거 다 버리고 전부 관심을 갖지 않던 일반 백성에게 관심을 가져라' 하는구나…. 하나님이 보호하사, 감사합니다.
기성교회는 뒤에 두고 삼천리 반도를 찾아간다! 가는데 어디로 가느냐? 서울에서 반대하니 할수없이 지방으로 간다. 그래서 우리가 지방으로 가는 거라구요. 지방에서도 어디로 가느냐? 제일 못난 노동자, 농민에게 갑니다. 왜? 선한 사람은 이 땅 위에서 못 살기 때문에…. 아이코, 감사합니다! 이렇게 가자는 것이 통일교회식입니다. 알겠어요? 그렇다는 거예요.
바람이야 부는 것이니 뿌리를 두고 나타나지 말라는 거예요. 자꾸 세계로 부니 30여 개국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여러분, 일대에 종주라면 몰라도 교주라는 말로 내가 지금 불림받고 있어요. 내가 문교주란 말 하던 가요? '나 문교주' 이런 말 들어 봤어요? 내가 교주라는 말을 하라고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교주라는 것을 누가 붙였는지 모르지만 지금 붙여졌다구요. 그러면 기독교의 교주는 누구냐? 예수님이고. 통일교회 교주는 누구냐? 문 아무개고. 유교의 교주는 누구냐? 공자라는 양반이고. 불교의 교주는 누구냐? 석가라는 양반입니다. 그 양반들보다도 일대에 있어서 성공한 사람은 통일교회 문선생밖에 없습니다. 없다구요! 그런 의미에서는 다른 교주보다 선생님이 나을 것입니다. 낫다는 것이 아니라 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나을지 모른다는 말과도 다 통한다구요. 생각해보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옛날 예수가 로마 사람들에게 '야! 내가 갈 테니 차를 준비해라' 한다고 '예이' 했겠어요? 안 된다구요. 그러나 선생님은 현대의 로마 같은 나라가 미국인데, 미국에다 '야 내가 갈 테니 차를 준비하라'고 하면, '예' 하고 준비하게끔 만들어 놓았다구요. 독일 사람들이건 원수인 일본 사람들이건 '집이 필요하니 집을 사라' 하면 '예이' '너의 집을 팔아서 사라'고 하면 '예이' 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게 되면 성인 레테르를 가진 수많은 교주들보다도 일대에 있어서는 내가 낫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통일교회 교인들은 뒷맛이 좋지만. 기성교회 교인들은 기가 막힐 것입니다. 기가 막혀도 할수없다구요. (웃음) 이렇게 선전 한 번 하고 넘어갑시다. 따분한 이야기 하기가 힘드니까 이런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야 내가 마음이 좀 풀린다구요.
여러분이 이제 알아야 할 것은 세상에는 이제 믿을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돌아서든가, 비약을 하든가 하라고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인데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큰 고개를 넘어갔다가는 큰일난다 이거예요. 그러니 통일교회가 말하기를 아예 그러지 말고 복귀를 해라 하는 것입니다. 복귀는 어떤 복귀냐? 에덴 복귀다. 에덴은 어디냐? 타락하지 않은 아담이 있는 곳이다. 그러면 아담의 자리는 어디냐? 하나님과 일체된 곳이다. '하나님!' '응? 왜 그러니?' 하며 하나님과 일문일답하며 속삭이는 곳이다, 그러니 그곳으로 복귀하자, 돌아가자 하는 것입니다. 그럼 돌아갈 수 있는 한계점이 어디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곳입니다.
여러분, 인륜이 있어요. 인륜 도덕을 말하지요? 인륜은 무엇을 통해서 형성되느냐 하면, 그것은 정(情)을 통해서 형성됩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 아버지, 뭐 가족 관계라든가, 도덕 관념이라든가, 사회제도라든가, 질서라는 것은 전부 다 정서적인 면입니다. 정을 먼저 느낀 그것이 오래 됐든가 차원이 높든가 하면 거기에 머리를 숙여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돼요. 인륜 형성의 동기는 무엇에서부터냐? 정에서부터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서 인륜은 시작됩니다. 그렇지요?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데서 참다운 인간 관계는 성립되는 것입니다. 또,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데서,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데서 인간 관계가 맺어진다, 그렇지요? 이 사랑을 빼 버리면 인류는 전부 다 모래알이 되는 것입니다. 인륜의 형성을 반죽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틀렸어요, 맞았어요?「맞았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최고로 희망하는 것이 무엇이냐? 인륜이 문제가 아니라, 인륜을 묶어 줄 수 있는 사랑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인륜이 있으면 인륜은 어디서 남아져야 되느냐? 인정을 통해서 남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도 인정이요, 아버지의 사랑도 인정이요, 자식이 부모에 대한 사랑도 인정이요, 형제지간에 사랑하는 것도 인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륜은 인정을 벗어나서는 형성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륜과 인정은 내외의 관계입니다. 정이라는 것은 출발이요. 목적과 통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계 22:13)"는 말은 뭐냐? 시작과 끝이 될 수 있는 말, 알파와 오메가가 될 수 있는 말, 처음과 나중이 될 수 있는 말이 무슨 말이냐? 그런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생명의 알파가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가 아니라구요. 사랑이 먼저입니다. 사랑을 통해서 생명이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파는 뭐냐? 생명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리고 오메가는 뭐냐? 이것도 생명이 아니라구요. 즉, 어떻게 내가 잘살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내가 잘 사랑을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과 나중을, 시작과 끝을 이어 가지고 출발할 수 있고, 또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하나님이란 무엇이냐? 거룩한 사랑의 본질이라고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그러한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일체가 될 것이냐? 인연을 가지고? 아니라고요. 인간세계에 인륜이 있고 인정이 있듯이, 하늘에도 천륜이 있고 천정이 있을 것이 아니냐? 그렇지요? 그러면 예수라는 분이 어찌하여 인격자냐? 인륜을 통한 인정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천륜을 대신해서 천정을 위하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륜을 따라가는 천정과 인륜을 따라가는 인정은 다릅니다. 다르기 때문에 세상만사는 통일이 될 수 없다 이거예요. 이것이 잘못되어 타락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인정을 따라 인륜의 길을 어떻게 가고 있느냐? 그것은 전부 다 나를 중심삼고 가고 있다 이겁니다. 나를 중심삼은 정을 추구해 가는 것이 인륜입니다. 그러면 천륜은 어떻게 가는 것이냐? 남을 위주로 해 가는 것입니다. 다르다구요. 그러므로 천륜을 받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나를 위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위하는 사람입니다. 남을 위해 사는 사람 외에는 선한 사람이 없습니다. 보라구요. (앞에 있는 사람을 때리시며) 네가 맞았지만 전체에 아주 자극적인 표식이 되었기 때문에 선하다고 할 수 있는 거라구. (웃음) 그렇지 않아요? 어느 집안에서 맞는 자가 있어요. 그 자리는 식구들을 위해 피땀을 홀리면서 희생 하는 자리입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소모되면 소모전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항상 참되게 주면, 참되게 받는 것이 천리입니다. 천륜은 거짓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앞에 참다운 것을 주게 된다면 누구든지 그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통일교회 문선생님 좋아하나요, 안 좋아하나요.?「좋아합니다」'이놈의 자식들아, 좋아하지 말라' 하며 아무리 욕을 해도 좋은 것을 어떻게 해? (웃음) 그러면 여러분, 어머니, 아버지, 남편이 몽둥이로 즉사 하게끔 때리고 나서 '그래도 통일교회 문선생이 좋아? 하면 '아이구, 손 좀 닦고 나서 물으시오!' (웃음)
통일교회에 가게 되면 문선생에게 반하느니, 전기 장치를 해 달라붙게 만들어 놓았느니 어떠니, 말이 많았습니다. 또 통일교회 문선생이 미남자라서 홀딱 반한다는 말도 있었어요. 내가 미남자요? 내가 생기기도 이렇게 생겼다구요. 뭐 보기 싫지는 않지만 눈은 쪼그마하고, 코는 이렇게 생겼고, (웃음) 성격을 보게 되면 참 급합니다. 칼날 같이 전부 다 도려 먹으려고 하는 성격이라고요. 누구한테 반대를 받아 가지고는 밤잠을 못자는 사나이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나이가 수십 년 동안 반대를 받고도 가만히 있는 것은 누구한테서 배웠느냐? 그것은 하나님한테 배웠다구요.(웃음)
여러분, 좋은 쇠를 만들기 위해 달구려면 풀무질을 하지요? 여러분도 풀무질 알아요? 대장간에서 달군 쇠를 두드릴 때 소리가 나지요. 뚜덕 뚜덕 뚜덕. 쇠를 달구면 녹아 없어지는 거 아니야. 10년이면 10년, 그 기간이 길수록 좋은 쇠가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우리 통일교회도 그런 식이라구요. 녹지 말라는 거야. 어떻게 되든, 지치고 지치더라도 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되 방향을 바라보고 '아이구 나 죽는다' 이렇게 죽으라는 거야. 지치더라도 죽지 말라는 거야. 끝까지 녹지 않고 남아지는 쇠는 나쁜 쇠가 되나 보십시오? 그렇지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천륜과 인륜, 천정과 인정이 어떻게 된 것이냐? 인간의 소원이 무엇이냐? 인정을 따라 천정과 박자를 맞추고, 인륜을 따라 천륜과 통관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나님이 동으로 가시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동으로 가면 얼마나 좋겠느냐? 또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따라 나도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렇게 되었다면 오늘날 인간에게 종교도 필요없는 것이요, 이런 세상살이도 필요 없었을 것인데…. 이렇게 되는 거예요.
왜 내가 어머니 아버지를 믿고 따라 나왔고, 그의 키움을 받고 그 전통을 이어받아 가지고, 생을 살려는 데 있어서 천륜을 추구해야 되고, 천정을 따라가야 되느냐? 천륜 가운데 있고, 천정 가운데 살아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인륜과 인정이 천륜과 천정에서 이탈되고 이율배반된 환경이 왜 생겨났느냐? 이렇게 된 것이 타락이라구요. 이것이 이탈되었으니 갖다 맞추어야 되겠습니다. 맞추는데 '하나님, 조금 기다리소' 할 수 있어요? 안 됩니다. 천륜은 가기 때문에 갖다 맞추어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위해 가느냐? 하나님은 세계를 위해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은 무엇을 위해 간다구요?「세계를 위해서요」하나님의 뜻은 세계를 구하는 것이지 대한민국만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뜻 앞에 세워 세계로 가는 하나님의 뜻을 돕겠다 할 때에는, 대한민국을 위해서 가는 길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종착점은 어디냐? 세계의 끝과 하나님이 상봉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어떠한 종교를 중심삼고, 기독교면 기독교를 중심삼고 그 안에서 예수를 모셔 가지고 혼인잔치를 하는 그런 시시한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의 목적점은 역사성을 중심삼은 세계관적인 사상을 대표할 수 있는 이상적 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뭘 할 것이냐? 천상천국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천국을 완성해 가지고, 그 완성된 천국인들이 받들어 '당신은 우리 만민을 대표하여 천상천국에 가 주소' 할 수 있는 소개장을 받아 가지고 가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구원관입니다. 이 사상이 얼마나 멋져요? 멋지지요? 여기서 말하는 사나이는 멋지지 않지만, 지금 말하고 있는 통일교회 사상만은 멋지다 이거예요. 이 사상을 가지고 세계가 한 번 움직였다가 떨어지더라도 또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단법석을 하고 반대하더라도 '밀고 나가자' 이래 가지고 가다 보면,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게 되면 죽은 것은 썩어질 것이고, 산 것은 자라게 마련이라구요. 그렇지요? 바람이 불고 세월이 가면 갈수록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이 같이하는 것은 흥할 것이요, 하나님이 같이 안 하는 것은 망할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던 수십 년 기독교 잘 됐다구! 아직도 우리 통일교회 십대 고등학교 학생들이 기성교회 목사에게 세 번만 정문으로 찾아가게 되면 '아, 정문으로 온다' 해 가지고 도망갈 겁니다. 국민학교 학생, 중학교 학생들을 보고도 뒷문으로 도망갈 거라구요. '아이구 어쩌면 저렇게 악착같애! 문선생이 교육을 잘 시켰지…' 내가 교육을 잘 시킨 게 뭐 있나. 그들이 잘 태어났지, 그것이 내가 교육시켜서 되나? 자기 선조가 몇천 대부터 통일교회 문선생을 만나 가지고 내가 뭐 한 번 해야 되겠다고 도를 닦아 놓은 터전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되느냐? 그 길을 도로 가야 되겠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 목사와 통일교회 고등학교 학생들 중 누가 낫느냐? 통일 교회 고등학교 학생들이 낫습니다. 무엇에 있어서 더 났느냐? 세계를 사랑하고, 나라를 구하는 데 있어서…. 피를 팔아 가지고라도 나라를 사랑하자는 거라구요. 밥을 먹을 것이 없으면 노동판에 가는 거예요. 그것이 없게 되면 피를 팔아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싸우는 거예요. 이런 비참한 역사가 숨어 있다구요. 이 거룩하고 숭고한 희생의 대가를 유린하는 여러분이 되었다가는 벌을 받아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선생님은 그 길을 모면하기 위해서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이용해 먹는 기생충이 안되기 위해서 내 실력을 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안 해본 일이 없다구요. 노동판에 가면 무엇이든지 하는 거라구요. 염전 판에 가 가지고 가대기까지 다 배운 사람입니다. 자주적인 권한을 가지고 물질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나이가 되라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임자네들이 도와주지 않아도, 한꺼번에 통일교회가 다 박살이 나서 나 혼자 남아도 또 간다구요. 그렇게 갈 때는 차원이 높은 자리에서 갈 것입니다.
한국이 선생님을 버리게 되면 일본을 중심삼고, 세계를 중심삼고 더 좋은 나라로 가는 거예요. 쫓아내면 망할 줄 알지만 더 좋은 곳에 간다구요. 여러분, 금년에 통일교회 문선생 쫓아내고 싶지 않아요? '우리 통일교회 문선생 선거합시다' 해서 선거해 가지고 뽑아 놓아도 통일교회 선생 자리는 해먹을 사람이 없다구요. 해먹으라고 해도 해먹지 못한다구요. 한 시간도 못 가서 걸려 나가자빠진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제일 어려운 자리라구요.
선생님이 열 시쯤 다른 곳에 가서 얘기할 데가 있는데 이거 몇 시쯤 됐어요? 자, 제목으로 돌아가자요. 하늘이 찾는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들이냐? 이제는 알 거라구요. 자기 아이들이 죽게 되었다고 나라야 망하든 말든 나라의 금고짜박지라도 갖다가 우리 아이들을 살려야지 하면, 그 나라는 망하는 것이 원형이정입니다. 그렇게 해서 망하지 않는 나라를 찾아보라는 거예요. 망해요, 망합니다. 망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이 사람은, 사람들을 통일교회에 전도는 못하더라도 나라를 위해서 가는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해야만 나라가 사느니라! 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한계선에 왔습니다.
종교라면 통일교회와 같이 이렇게 악착같아야 됩니다. 공산당보다 더 무섭다는 소문을 듣고 있어요. 승공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세계가 공인할 수 있는 때에 들어왔다구요. 무서운 공산당 앞에 칼침을 맞을 각오하고 나선 거라구요. 왜? 하나님이 살아 있는데, 살아 있는 하나님을 옆에 놓고 그 아들에게 '야, 너의 아버지 죽었다'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구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그런 불한당이 어디 있어? 그런 소리를 듣고도 꺼벅꺼벅 '좋습니다' 하는 기독교는 망할 패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시시한 패가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세계로 깃발을 들고 나설 것입니다. 말로 하자면 말로 하고, 일대일로 하자면 하자! 생명을 각오하고 하는 것입니다. 또 단체적으로 하자면 하자, 너희 단체가 깨지기 전에 우리 단체는 깨질 수 없다!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일본에서 일본 공산당하고 '공개토론을 하자. 너희들의 사상으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자신을 가지고 평화공세를 취할 수 있으면 하자. 너희들이 자신을 갖고 나와서 하자' 이러고 있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그들이 코너에 몰리기 시작했다구요. 처음에는 우습게 알았는데 우리가 전국적으로 몰아대니까 '아이쿠, 큰일났다' 해 가지고, '우리 사무장이 통일교회 승공연합 지방 책임자와 공개토론을 한다는 약속을 했는데 왜 이름을 인쇄해 가지고 삐라를 붙이느냐? 그것이 사기가 아니냐? 해 가지고 고소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고소 사건을 일으킨다는 것은 실력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됐다. 고소해라 한 거예요. 북해도에서도 하고, 전국적으로 다 해라 이거예요. 우리가 무섭긴 무섭지요. 요전에 한국 대표가 남북조절위원회 북한측 위원장을 만나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제발 남한에서 승공이란 말을 하지 마소' 그랬다는 거예요. 박성철이는 '승공이란 말은 그만두소. 요걸 어떻게 없애야….' 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것은 통일교회를 때려 잡으라는 말이라구요. 국제 승공연합을 때려 잡으라는 말입니다. 지금 문제가 되어 있다구요.
기성교회에서는 통일교회가 문제가 돼 있지요? 내가 어떻게 보면 참 박복한 사람 같아요. 내가 뭘 하려면 전부 다 반대구만. 무슨 회사를 하나 하는 것도 이단이래요. 인삼차 공장을 하나 만드는 데도 이단, 총 공장을 만드는 데도 이단, 석재 회사를 하는 데도 이단, 우리 어린이 무용단을 만드는데도 이단, 전부 다 이단이라 합니다. 국제승공연합을 만든 것도 이단이라고 했지, 한선무용단 만들 때도 얼마나 반대한지 모른다구요. 치안국에서 모가지 짜르려고 하고, 정보부에서 모가지 짜르려 하고, 그래도 안 되니까 공안과에 넘겨 가지고 모가지를 짜르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실력과 실적을 가진 사람은 모가지를 못 짜르는 거라구요.
내가 패자의 서러운 잔을 마시는 그런 졸장부와 같은 사나이로 보일는지는 모르지만 실력과 실적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문 아무개' 하면 천하가 무서워합니다. 그렇다고 배때기 째는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일본에 갔었는데, '이번에 또 미스터 문이 들어왔다'고 출입국 관리국에서 대번에 아는 거예요. '아 미스터 문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뭘 하고 가노'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갔다가 오는 날에는 일본 전국에 사건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뭘하고 갈꼬' 아닌게아니라 또 사건을 일으켜 놓고 왔다구요. '야!저 녀석이 들어왔다 가기만 하면 사건이 벌어지는군' 한다구요.
선생님이 미국에 가도 사건이 벌어진다구요. 이번에 들어가서도 사건을 일으켜 놓고 왔다구요. 뉴욕 타임즈지와 워싱턴 포스트지에 10만 달러 현상금을 걸고 들이 지져 놓았더니 '야,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야!' 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반대하기 전에 호기심이 들어간다 구요. '야! 한 번 만나 보면 좋겠다' 한다구요. 그렇게 선전 공세를 취해 놓고 상원의원들에게 전화하여 '나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인데 좀 만납시다' 하면 '아! 당신이 그러십니까?' 한다구요. 그렇게 하여 바쁘기 때문에 일주일 이내에 열 명 이상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그것을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 개방된 나라입니다. 이번에 가게 되면 많은 사람을 만날 계획입니다.
여러분, 내가 그런 자리에 서고 싶어서 서는 것이 아니라구요. 뜻이 그렇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 목이 짤리더라도 가야 하는 겁니다. 또 여러분의 목이 짤리지 않아도 후손의 모가지가 짤리니 가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럴 바에는 내 생전에 여러분을 고생시키자, 공적인 입장에서 희생시키자 하는 것이 철칙입니다. 그런 말과 그런 책임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녀를 고생시키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고, 제자들을 고생시키고 싶은 지도자가 어디 있겠느냐? 이거예요. 그렇지만…,
박 대통령도 그렇지 않아요? 민족이 단결해 가지고 정책방향에 희생하라 이거예요. 나라를 위해서는 가정을 희생하라 하는 관이 아니냐?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늘을 위해서는 민족이 희생하고, 세계가 희생할 수 있는 세계가 되면 그 세계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되는 거라구요. 그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무리, 천정과 천륜을 표준삼고 인정과 인륜이 있을 때 어떤 것을 바꾸어야 하겠어요? 천정을 바꿔야 되겠어요, 인정을 바꿔야 되겠어요? 또 국법을 뜯어고쳐야 하겠어요, 가법(家法)을 뜯어고쳐야 하겠어요?「가법요」 그것과 마찬가지라구요. 천법을 뜯어고쳐야 되겠나, 인간의 법을 뜯어고쳐야 되겠나?「인간의 법요」 법은 하나밖에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천륜과 천정을 따라가야 되겠느냐, 인륜과 인정을 따라가야 되겠느냐? 어떤 것을 따라가야 되겠느냐?「천륜과 천정요」 인륜과 인정이 천륜과 천정에 딱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인간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버지요, 너희들은 자식이다' 했습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인정과 천정이 합할 수 있는 최고의 종착점이 어디냐? '하나님은 아버지고 인간은 아들이다' 이거예요. 고마우신 말씀입니다. 천정은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종적인 심정의 기준이요, 인정은 횡적인 심정의 기준입니다. 집을 지을 때 수평만 잡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수평을 잡는 것도 본래 종적인 기준을 세워 놓고 잡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돼요. 수평을 세워 놓고 종적인 기준이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종적인 기준이 생겨나 가지고 수평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뭘 봐서 알 수 있느냐? 나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무를 보라요. 순이라는 것이 애초에 이렇게 옆으로 뻗어요? 종대, 종적인 기준을 세워 놓고 뻗는 거라구요. 이것이 똑바르려면 이 뻗어지는 것이 같아야 똑바르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찌그러지면 이렇게 꼬부라지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돼 가지고 똑바로 가지를 쳐 뻗어 나가면 그 나무는 꼬부라진다?「안 꼬부라진다」그렇게 되려면 옥토에 심어지는 나무의 씨가 돼야만 꼬부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꼬부라지는 것은 왜 꼬부라지느냐? 뿌리가 바위 위에 있으면 거기에 소모가 많이 되기 때문에, 바위에 의해 가지고 나무는 꼬부라지는 겁니다. 그 고비를 지나면 뿌리가 다르게 꼬부라지기 때문에 나무도 그렇게 꼬부라지는 것입니다. 옥토가 있어야 직선으로 뿌리를 박기 때문에 곧은 나무가 자라게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를 가만히 보면 오불딱꼬불딱하다구요. 말 중에 오불딱꼬불딱이라는 말 있어요? 이것은 통일교회식 말입니다. 통일교회의 역사를 보면 오불딱꼬불딱하다구요. 오불딱꼬불딱하지만 소나무 자체에 변질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소나무로서 오불딱꼬불딱하면 그 자체는 안되지만, 씨를 받아 가지고 옥토에 심는 날에는 오불딱꼬불딱하지 않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만신창이가 되어 누더기 보따리를 짊어졌지만 너희들만은 똑바른 옥토에 심어져라' 이거야. 여러분들 앞에는 핍박의 길을 내가 앞에서 제거 시키지 않느냐? 자녀들을 시키면 안 되기 때문에 시달리는 거라구요.
그래서 천정과 인정이 접할 수 있는 곳은 어디냐? 통일될 수 있는 곳은 어디냐?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나는 아들이다 하는 곳입니다. 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어떻게 갈라졌느냐? 관계가 갈라졌기 때문에 만나야 되는데 어떻게 갈라졌느냐 하는 것을 몰라 가지고는 그 아버지에 대해 효도를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이것을 해결하고, 이것을 헤쳐 보자는 것이 통일교회의 길입니다. 왜? 그 길이 갈라졌느냐? 타락 때문입니다. 타락이 어떻게 돼 있느냐? 하나님은 왜 슬퍼하느냐? 헤쳐 보자는 거라구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역사적인 하나님이 아니냐? 과거의 하나님이요, 시대적 하나님이 아니냐? 오늘의 하나님이요, 미래의 하나님이 될 것이 아니냐? 과거에 슬퍼했던 것을 왜 슬퍼했는지 알아야 됩니다. 또, 오늘의 슬픈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미래의 슬픈 것이 무엇이었더냐 하는 것을 알고 방어를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문제가 아니고 이것이 문제입니다. 성경보다도 이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거기에 방해되는 성경구절은 다 빼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편찬한 것이 아니라구요, 천주교의 주교들이 모여 가지고 편찬한 것입니다. 그 사람들보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더 나을지 모른다구요. 그 사람들은 예수님이 왜 죽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 문선생은 왜 죽었는지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적으로 만나지 못했다구요. 그러나 선생님은 예수의 친구일 뿐만 아니라 예수와 더불어 의논해 가지고 무슨 일이든지 전부 다 할 수 있는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구요. 하나님을 올라가서 만나 본 것도 내가 더 많이 만나 봤으면 만나 봤지, 그 사람들이 더 많이 만나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통일교회에 와서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시시하게 주먹구구식 가지고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가? 천정은 왜? 또 부처끼리 왜 싸웠더냐? 그 싸움하는 것을 풀어 놓기 전에 합할 길이 있어요?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도 '당신은 예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요?' 말을 하면, 하나님도 '오냐, 네가 어떻게 그것을 알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걸 나빠하겠어요?
오늘의 하나님과 합할 수 있는 길은 역사적인 하나님의 한을 해원성사 해 드려야 하고, 역사적인 인류의 죄를 탕감해 줘야 됩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역사적인 인류의 죄를 탕감해 줘야 합니다. 오늘의 하나님과 합해 가지고 하나되려면 오늘날 하나님이 이 땅에 대해서 무엇을 하고자 하고 있으며,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미래의 자기 후손이 하나님의 뜻과 맞게 하려면, 미래의 하나님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아 그 방향을 가르쳐 줘야, 자기 후손이 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앞에 서서 만국을 치리할 수 있는 민족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도 옛날 하나님이 지금 하나님과 마찬가지라구요? 다르다구요. 옛날에는 개인, 특정한 민족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만을 키워 나올 때였다구요,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은 뜻이 다 실패로 돌아갔으니 기독교 개인과, 기독교 가정과 기독교 국가와, 기독교 세계를 또다시 판도를 이어받아 수습해 가지고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하나님이 현재 원하는 그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기독교가 못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럴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통일사상이 나오게 된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천정과 인정을 결부시키기 위해서는 여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죽음길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 왔던 길을 부정하고 법을 부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언제나 이걸 부정할 수 없으니 반드시 왔던 길을 부정해야 됩니다. 무서워도 돌아서야 되겠으니 돌아서 가지고 여기에 맞추어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알겠어요? 부정해 가지고 긍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타락한 인간이 살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런 세계가 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끝날을 대비해서 자동적으로 부정의 내적 세계와 부정의 외적 세계를 하나되게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냥 가 가지고 안 되는 거예요. 안팎을 부정하지 않을 때는 내적으로 가도 막히고, 기독교도 막히고, 전부 다 막히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긍정적인 길을 찾기 위해서는 어떠한 길을 찾아가야 될 것이냐? 그것은 예수님을 중심삼은 재림사상입니다. 재림사상 가운데 기독교사상의 전통적인 골수는 무엇이냐? 예수사상입니다. 예수사상은 뭐냐? '나는 독생자다'라고 했고,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한 것이냐 하면 하나님이 바라는 가정을 구성하자는 것입니다. 참다운 아들로 성장해 가지고 상대를 만나 신랑 신부가 되자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로 묶어 가지고 뭘할 것이냐?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아들딸이 없고, 신랑 신부가 없어 가정이 없으니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가정을 만들어 놓자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를 중심삼아 가지고 신랑 신부가 되어 가정을 만들었더라면, 하나님의 소원은 이루어졌을 겁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예수만, 즉 신랑만 신부만 있기를 바란 것이겠어요? 하나님은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는 선한 자리를 찾았더라면 타락하지 않는 아들 딸을 낳으라고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통한 선한, 죄와 관계없고 하나님만이 주관할 수 있는 아들딸을 낳아 보지 못한 것이 인류역사가 아니냐? 여러분은 전부 다 타락한 아들딸로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원이 뭐냐? 본연의 아들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를 세워 가지고 신랑 신부가 사랑하는 아들딸, 하나님이 복중에서부터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하나님의 협조를 얻어 낳을 수 있어야 한다 이거예요. 주먹구구식으로 덮어 놓고 믿자 하는 것은 안 된다구요. 그러면 다 깨져나간다구요.
오늘날 과학 발전의 기원이 어떻게 됐느냐 하면 과학은 가설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럴 것이다' 하는 가능성이 있으면 학자들은 그런가 안 그런가를 실험을 통해서 실증적으로 재검토하게 될 때, 그걸 과학적이라 말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교리는 가설적인 말 같지만, 실증적으로 그렇다고 과학적으로 증거가 되니 통일교회 교인들은 위대한 힘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 원리를 듣고, 통일교회 원리대로 해 보라구요. 영계를 통하나, 안 통하나?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나, 안 되나? 하나님이 나타나나, 안 나타나나?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아들딸이 있다면 하나님도 만나 보고 싶어하는 것이요. 또 그런 하나님의 손자가 있다면 만나 보고 싶을 것입니다. 만나 보고 싶겠어요. 안 싶겠어요? 또한 사랑하는 족속이 있으면 만나 보고 싶을 것이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백성이 있으면 백성을 만나 보고 싶을 것이요. 그런 백성만 만나 보고 싶을 것이 아니라, 그런 세계도 만나 보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 보고 싶고, 하나님의 나라가 보고 싶은 사람들이 되면 지상에서 천국을 이루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돼야 지상천국에 사는 사람들로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하신 말에 해당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교인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이 되어, 세계가 좋아하고, 나라가 좋아하고, 가정이 좋아하고, 개인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바라는 개성완성입니다. 즉 인격완성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한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영계에 있는 하나님을 좋아하는 모든 영인들도 좋아하고, 하나님을 좋아하는 백성들도 좋아하고, 하나님을 좋아하는 가정도 좋아하고, 개인도 좋아하는 대표자가 되지 않았느냐? 그러한 대표자의 사상을 상속받을 수 있는 법도를 세워야 할 것이 아니냐? 당연한 말이라구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좋아하게 하려니 세계 앞에 이익을 끼쳐 주고 나라 앞에 이익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또한 가정 앞에 이익을 끼쳐야 하고, 개인 앞에 이익을 끼쳐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사람이 된다면 전부 다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손해를 끼치게 될 때에는 다 싫어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세계 앞에 이익을 주고, 나라 앞에 이익을 끼치고 수많은 가정 앞에 이익을 끼치고, 수많은 개인 앞에 이익된 것을 제시해야 됩니다. 그러한 일을 가려 놓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이 제일이냐? 이런 사상에 일치되어 가지고 일편단심 세계로 전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필시 하나님이 찾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그렇게 가게 되면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단체를 따라가면 쓸만한 무리가 된다 하여 어떻게든지 가르쳐 줘 가지고라도 그런 무리를 통해서 세계 앞에 세울 것이 아니냐? 그러한 마음만 갖고 나가게 되면 하나님이 좋아하지?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더라도 인연을 맺어 가지고, 뜻 세계에 그런 사람이 있게 될 때는 그런 사람을 찾아봐 가지고 반드시 자기의 뜻을 가르쳐 줘 가지고, 키워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길로 이끌 것이 아니냐?
그래서 통일교회의 사상은 가정을 위해서 개인이 희생하라 이거예요. 알겠어요? 또 종족을 위해서, 그 동네 친척들을 위해서 가정을 희생시켜 가지고 봉사하라 하는 겁니다. 이렇게 될 때는 그 친척들이 싫어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 손해를 끼치게 되면 싫어하지만 이익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통일족속이 되어 있다구요. 그렇지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식구라고 한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차원이 높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통일교회는 희생해라! 문선생님이 말하는 통일교회는 전부 다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이 나라, 이 민족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통일교회 교인은 희생해라! 이것이 천명입니다. 천명이라면 해야 되겠나, 안 해야 되겠나?「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의 총부리 앞에 내세워라! 오늘날 망해가는 이 문화세계 앞에 내세워라! 망해 가는 종교 앞에 내세워라! 반대해도 내세워라!
자 내세우는 것이 고마운 것이요, 억울한 것이요?「고마운 거예요」 가 보라구요. 여러분 희생이 나쁩니까? 희생은 무엇을 갖다 줍니까? 봉사가 나쁩니까? 봉사는 무엇을 갖다 줍니까?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희생하고 봉사하게 되는 시일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맨 가장자리를 지키던 사람이 점점 가운데로 타고 넘어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어디로 가느냐? 중앙에 가서 세워지게 됩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구요. 그 집안을 위해서 희생하게 되면, 제일 끝 동생이라도 전체의 형님들을 위하고 부모를 위해서 희생하게 될 때는 '아, 우리 집에 중심자는 제일 막내다' 그렇게 돼요. 안 돼요? 「그렇게 됩니다」
어느 동네에 이장이 있고 반장이 있다 하더라도 일을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하게 될 때는 그 반장은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네를 위해서 가정 전체가 희생하게 되면 그 가정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그 동네의 으뜸이 돼요, 안 돼요?「됩니다」
역사적으로 희생을 한 사람은 역사적인 중심자로서 존경을 하지 말라고 해도 존경을 받기 마련이라구요. 그런 사람이 애국자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역사이래 희생하게 될 때는 역사이래에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유관순이가 영웅이지요? 유관순이가 학박사이지요? 대학교를 졸업했지요? 「아닙니다」 그녀는 미욱한 사람이라구요. 그때로 말하면 일본 경찰이 무슨 말을 했겠어요? 제발 지긋지긋하니 그만해라. 처녀가 뭐 잘났다고 그렇게 다니나? 그러나 유관순이는 민족을 대표해 가지고 내가 쓰러져 가지고 피가 떨어진 자리에는 무궁화 꽃이 필 것이고, 내 피는 삼천리 반도를 덮을 것이며, 내 땀은 삼천리 반도를 씻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일본이 우리의 국가 주권을 빼앗아 점령했다 하여도 대한민국 백성은 소화를 못 시킨다 이거예요. 소화를 못시키는 한 대한민국을 위해서 가는 길 앞에는 해방의 날이 찾아올 것이다! 일본민족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드높게 될 때는 일본을 누르고 우수한 나라로 등장할 것이다! 이런 거라구요.
안중근 의사와 같은 사람은 이국 땅에 가 가지고 이등박문을 죽이려고 야단하다가 이슬같이 사라졌다구요. 그것을 보면 미욱한 사람같이 보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왜 그렇게 버려요? 그것은 뭣 때문에 그랬어요? 자신의 돈을 벌기 위해서?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서 희생한 것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 그 사람의 사상은 역사의 주체적 사상으로 중심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열 친구가 있다 할 때, 그 열 친구를 위해서 희생하게 되면 열 친구는 그 사람을 중심으로 받들어 모실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망하는 운세의 길을 가더라도, 나라를 위해 희생하게 될 때 그 나라가 통일교회를 천대하다가는 그 나라, 그 민족이 망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 남아진 무리들을 데리고 이와 같은 사상을 찬양하는 나라로 옮겨 갈 것입니다. 끝까지 반대하다간 망하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반대하려거든 통일교회 이상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나서 반대하라구. 오늘날 현 정부의 공화당이 통일교회를 반대하려거든 통일교회 이상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고 나서 반대하라, 그렇지 않고 반대하다간 망합니다. 이것이 우주의 공법입니다. 망할 것이니 두고 보라고요.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공식적 노정을 가려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가는 거라구요
대한민국이 하나님 앞에 지도를 받을 수 있는 나라와 민족이 되고 싶으면 세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국가 예산의 3분의 1을 세계를 위해서 쓰는 나라가 있으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주권이 없고 그 국토가 현재 황량해졌다 하더라도 그 국민이 갖고 있는 사상이 세계 만민이 받들 수 있는 사상으로 남아지게 될 때는, 20세기가 지나고 30세기, 40세기, 50세기 이후라도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민족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일개 국가의 주권을 자랑할 수 있는 시대를 넘어서서 세계 주권을 전부 다 그 품에 품고 하나로 통일하여 천지의 법도를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의 통일적인 세계국가의 주권국가가 될 수 있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 그 국가로 들어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심각하다구요.
통일교회는 아무 힘도 없고, 아무런 재력도 없지만, 역사의 흐름은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에게 통일교회 교인들을 찾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통일교인은 그래도 필요 적절한 그런 상대적인 자리에 섰다고 생각할 수 있는 무리들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할 때 야, 그건 그렇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건 그렇다, 우리는 언제나 보다 그럴 수 있는 내용이 있다 하는 것을 알게 될 때는, 보다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남한을 중심삼고 싸우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남북의 교류가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이런 때에 있어서 북한 땅을 대신해서 나가게 될 때, 북한에서는 저 위로부터 끄트머리까지 이 사상의 통일적인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라디오나 이북에 갔다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이북에서는 탁아소에 있는 어린이들까지 김일성이를 어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해 주는 소식에 의하면 어떤 지방에 가서 악수를 하자고 하니까 '미제국주의 앞잡이들과 악수 안 한다'고 전부 다 악수를 안 하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한 어린이가 척 '당신도 남한에서 김일성 어버이 수상을 모시고 미제국주의를 추방하는데 협력해야 할 것이 아니겠소' 하며 악수를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새빨갛게 됐는데 임자네들은 그래요?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 교인들이 한 절반 정도 모가지가 짤리고 희생 당하는 것을 보면, 즉 피를 보면 단결해서 그렇게 될는지 모르지만 저들은 피를 보기 전에 그렇게 돼 있다 이거예요. 평화통일이 그렇게 간단하게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통일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러 가지 할 말이 있지만 한 가지 말 할 것은, 현정부가 아무리 통일을 추구하고 있다 하더라도 삼천만 민중 가운데 1천만 이상의 사람들이 현정부와 생명을 각오하고 하나될 수 있는 무리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터놓고 이야기할 때 그들의 이론을 당할 수 있겠느냐? 그들은 공산주의 이론을 무장해 가지고 전세계를 제패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50년 역사에 세계의 3분의 1을 제패한 실적을 가지고 당당히 신은 없다고 하는 주체성을 중심삼아 가지고 야단하고 있는 그 패들 앞에 이론적으로 말려 들게 되면, 이론에 지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것에 대비해 왔습니다. 조금만 더 가게 되면 학자들이 대회를 가져 가지고, 학교에서 통일교회 사상을 들고 나설 때가 올 것입니다. 두고 보라구요. 오나 안 오나. 땅에 철문을 전부 다 장치해 가지고 들어가 배겨 있더라도 철문을 용접으로 짤라 가지고 끌어내서 이 사상을 줘야 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료를 기계적으로 다 갖추었습니다.
여기에 모모한 사람들 자기가 뭐 어떻고 어떻고 행복하다느니, 무슨 주의니 하는데 다 됐더라구요. 그들은 무슨 자유민주주의니 사회주의니 뭐니 하면서 역사 철학을 갖추고 있는데, 여러분은 무엇으로 민주세계에 역사관을 제시할 것이냐? 밑도 끝도 없이 그런 관으로 대관절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그것은 안 통한다구요. 주먹구구식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이론이 적나라한 입장에서, 시대적 과정이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다 해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모색해야 할 시기가 오기 때문에 그것은 입체적인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예술 문화권이 상대적인 사상으로 맞춰져 있다, 이런 것을 골수에 넣어 줘 가지고 올바른 자세를 만들어 줘야 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는 올바른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누가 소화를 못 시킵니다. 공산당의 누가 문선생을 소화시켜 가지고 암만 공산 당을 만들려 해도 못 만든다구요. 아무도 못 만듭니다. 내가 삼팔선을 넘어설 때 하나님 앞에 맹세한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수십 년 동안 준비해 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다 하는 걸 이제 알겠지요?「예」 세계를 위하여 민족을 이끌고 만민을 해방시키자고 희생의 총부리 앞에 나설 수 있는 그런 민족과 국가가 있다면 그 국가는 세계를 지도할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국가가 없거든, 그런 무리가 되어 가지고 세계의 봉화를 들고 기수의 사명을 하겠다고 최 전선에 나설 수 있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시대의 희망의 천국을 이어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무리를 하나님이 찾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세계가 틀림없이 찾을 때가 올 것입니다. 시일과 기일이 문제지, 만민이 틀림없이 찾을 때가 올 것입니다. 세계가 틀림없이 찾기 때문에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나라도 틀림없이 우리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모르니까 그렇지. 나라가 찾을 때가 올 것이고, 교회가 찾을 때가 올 겁니다.
기성교회의 어느 한 교회 교인들을 전부 다 우리 수련소에서 수련시킨다면, 한꺼번에 넘어가나 안 넘어가나 한번 테스트를 해 봅시다.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기성교회가 모르고 있다구요. 한 60여 명, 교인이건 아버지건 아들이건 다 보내라 해서 3박 4일만 교육시켜 보면 전부 다 나가 떨어진다고요. 나쁜 편으로 나가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통일교회 편으로 나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야! 위대한 사상이구나. 2천년 동안 그렇게 목숨을 걸고 강조해 왔던 기성교회 신앙이 며칠 동안에 완전히 함락이라니….' 대한민국이, 국민들이 불쌍합니다. 만약에 대한민국의 주권자나 위정자들은 물론이요 온 국민이 통일교회의 사상을 해방 직후에 받아들여 우리의 체제로서 출발하였더라면, 세계 기독교는 통일 교회의 문으로 전부 다 들어갈 것인데 참으로 원통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야망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요. 이 민족이 갈 수 있는 길을 대비한 하늘 법도, 수천 년만에 찾아온 천운을 잃어버린 믿음의 허망,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나이 문 아무개지만, 그대들은 하늘의 그 무슨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반대한 것이 아니냐? 쇠고랑을 채워 죽음길의 감옥에 몰아넣었지만 죽음길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민족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걸어나온 것을 몰랐던 것이 아니냐?
역사가 지나게 되니 요즘에 와서 통일교인들에게 대학교 총장들이 와서 만나 가지고 '그대로 하겠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나를 만나는데 한낱 지나가는 하루의 길손과 같은 입장에서 만나지만,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수십 년 동안 피눈물나는 투쟁의 길을 가려 왔소. 당신이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데 공헌할 수 있는 길을 내가 충고하는 것은 최초의 길이요, 최후의 길이요' 이렇게 내 마음을 얘기하는 거예요. '세상은 이렇게 되느니라. 이런 길을 가 보라' 입장이 다른 것입니다. 희생길을 가는 것입니다. 어떤 총장 나리가 묻는 말이 '하! 문선생님 이런 세계적인 일을 하시기에 얼마나 바쁘십니까? 한 번 시간을 내가지고 만날 수 없겠는지요. 만나고 싶습니다' 해요. 내가 마음으로는 '조용히 시간을 내서 밀실에서 만나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구요. 이만큼 올라온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일본의 위정자들은 통일교회의 미스터 문을 미워하면서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또, 대만 정부의 배후에 있어서 지금까지 가야 할 길을 내가 거기에 제공한 것이 그들의 최후의 갈 길로 돼 있습니다. 일본 정부에 있어서 자민당이 갈 길을, 혹은 중공이면 중공정책에 대해서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구요. 그런 일은 대한민국의 어느누구도 몰라요. 통일교회를 따르고 있는 무리도 몰랐다구요.
통일교회는 이제 세계적 시대로 들어갑니다. 만일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대한민국을 버리고 아주 떠나가서 미국에서 환영을 받을 때가 되면 엉엉 울면서 오라고 할 것입니다. 내가 미국에 선풍을 일으켜 가지고 구해 줘야 되겠습니다. 미국이 망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이고 뭐고, 기독교 사상이고 뭐고 몽땅 없어지기 때문에, 기독교를 구하기 전에 미국을 구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선포하고 왔습니다. '1977년부터 1978년도까지 미국은 위기가 올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지금부터 그 위기를 대비하여 통일교회 문 아무개는 준비하고 있다구요. 상원의원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어! 당신은 지나가다 만난 아시아의 한 사나이…' 그렇게 생각하다가는 죽이 돼요.
보라구요.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이 나라의 모든 발전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 다 그렇게 됐다구요. 그러니까 헛소리한 것이 아닙니다. 책임자의 말이 맞지 않으면 그 단체가 깨져 버리는 것입니다. 만약에 미국이 그렇게 안 되게 될 때는 내가 용서받을 수 없어요. 내가 미국을 그렇게 되도록 만들고 있다구요. 그 준비를 지금 하고 있어요. 그 준비의 제1작전은 끝났다구요. 여러분들은 무슨 말인지 모를 거예요. 그런 사람을 통일교회 교인이라고 할 수 없어요. 자기 배를 위해서, 자기 한 개인을 위해서 살게 될 때는 다 망해야 됩니다.
자! 여러분, 이제 말한 이러한 세계로 가는 희생의 길이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하나님과 더불어 갈 수 있는 동참의 영광을 가졌다는 이 긍지를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고이 찾아오신 그분의 사정을 알았고, 그분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그분이 소망하는 그 소망은 타락한 이후에 수천 년의 인류역사 최초로 벌어진 소망인 것을 생각할 때, 그 소망을 받든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그 시간이야말로 거룩하고 행복한 시간이요, 그 시간이야말로 부활의 시간이요, 그 시간이야말로 재생의 시간이요, 그 시간이야말로 천하가 전부 다 그와 더불어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그분이 찾아 줘 가지고, 그분이 필요로 하여 명령한 그곳은 높고 귀할 수 있는 보좌 곁이 아니라, 미천한 지옥의 한 곳입니다. 그런 곳이라도 감사하며 가는 길이, '통일'이라는 말 그 자체의 의의를 가진 그런 교단으로서 가야 할 책임이 아니겠느냐? 통일이라는 말에는 거느려 지도하여서 하나로 만들어야 할 뜻이 있지 않느냐?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 함정, 지옥의 밑창을 해방하지 않고는 보좌가 영광 가운데 빛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알았기 때문에, 보좌는 나중에 두고 지옥을 향해서, 혹은 죽음의 길을 향해서 찾아 들어가자는 것이 통일교회의 가는 길이 아니었더냐?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은 왔다가는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지금 있는 수많은 사람도 저 사람이 몇 해 갈 것이냐? 저런 자질을 볼 때 얼마 가다가 떨어질 것이냐? 저 양반이 얼마나 갈 것이냐? 하늘이 정면으로 바윗돌을 던지면 어떻게 될 것이냐? 굴러 떨어질 것이 아니냐?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맹세를 하십시오. 칼을 꽂고 죽음을 각오하고 맹세하십시오. 하나님이 찾는 무리는,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고,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종족은 민족을 위하여, 민족은 국가를 위하여, 국가는 세계를 위하여, 세계는 하나님을 위하여, 최후에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돌진할 수 있는 불변의 자세를 갖춘 무리입니다. 그런 무리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앞에 들고 찾아오는, 하나님이 찾는 무리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이 선봉에 서 가지고 수많은 종단을 위해서 이 깃발을 이어받자는 것이 통일교회가 가는 주류의 사상이 아니었더냐?
나 문 아무개는 이 길을 위해서 가겠다. 이 사명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이 사명을 위해서 죽기를 맹세했는데 아직까지 목숨이 붙어 있으니 넘어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다짐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다는 것이 현재의 길이 아니겠느냐? 이것을 잊지 않으려고 함이 생활의 신념으로 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게 되면 세계가 찾을 것이고, 세계가 찾게 되면 만국이 찾을 것이며, 만국이 찾게 되면 이 나라, 이 백성이 찾을 것입니다. 또한, 이 나라, 이 백성이 찾게 되면 이 나라 수많은 교회라든가 수많은 단체가 찾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길을 위해서 당당코 하늘땅 앞에 맹세하고 나서는 무리들, 얼마나 가다가 패자의 서러움의 잔을 마시고 하늘의 패배의 길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냐? 아니면 승자의 권한을 가지고 하늘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는 동참자의 권한을 가질 것이냐? 길은 두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들 앞에 당부하는 것은 지치지 말고 죽지 말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세계가 기다리고 있나니, 세계까지 가기 위해서는 나라를 넘고 가야 되겠기 때문에, 나라를 구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까지 가려면 세계를 구해야 되기 때문에 세계를 넘자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권까지 가려면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안내를 받을 수 있는 사랑의 밀실까지 소개받지 않으면 못 간다는 말입니다. 그곳을 위해서 가야 합니다.
남북이 엇갈려 아무리 소망을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는 현시대에 있는 이 국면의 정상을 바라보게 될 때,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이냐? 서쪽을 바라보면 중공이 있고, 북쪽을 바라보면 소련이 있고, 동남쪽에는 일본이 있고, 북쪽 삼팔 이북에는 김일성이가 있는 것이 아니냐? 여기에 헐벗고 있는 이 민족이 어디로 갈 것이냐? 앞으로 가자니 길이 막혔고, 강대국 미국을 바라보니 이미 배척했고, 옆에 있는 일본은…. 아무리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믿지 말라구요. 그들이 찾아오는 것은 삼키려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중공도 믿지 말고, 소련도 믿지 말라.
이미 막혀 버린 이 민족, 역사도 그러하듯이 세계 정세도 대표적으로 비참한 운명권에 살게 되어 있는 것이 한국이 아니냐? 월남보다도 더 비참한 자리입니다. 안 그래요? 어찌하여 강대국의 틈바귀에 끼어 가지고 최후의 신음과 더불어 자기 자체가 생사의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비운의 자리에 섰던고! 이것이 한민족의 운명이 아니냐! 이 운명이 온 것을 알고 이 운명을 위해서 통일교회는 남아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
밤이면 북녘하늘을 바라보면서 동강나 잃어버린 이 민족을 품고 사랑할 수 있는 그 애국자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세울 수 있는 애국자를 만나고 싶은 것이 여러분의 소원이 아니더냐? 이 민족의 소원이 아니겠느냐? 이걸 알아야 됩니다. 승공패들을 두고 이 엄숙한 과제를 바라볼 때 공산당을 방어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부패하여 죽어가는 기독교의 운세를 막아줘 가지고 부활시키자고 통일이라는 명제를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냐? 이 사명이 이루어져 이 땅 위에 승리의 긴 깃발을 꽂고, 백포장을 깔고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는 그날이 삼천리 반도의 어느 곳에서 이루어질 것이냐?
여러분, 이것을 분간해야 할 때에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전히 심각한 자리에 있습니다. 수십 년 피흘려 온 최종의 결말은 무엇이뇨! 이 민족을 붙들고 구할 수 있는 길이 없거든, 미국의 힘을 이용해서 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서글픈 사정이 있는 것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자주적인 민족을 추구해야 합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가려 가지고 넘지 않으면 빠지는 거라구요. 대한민국이 이것을 타고 넘을 수 있는 주체 세력을 가지고 있느냐? 아직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부모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라를 사랑할 수 없다구요. 만약에 우리 몸뚱이가 죽어 자빠지면 개도 안 뜯어 먹는다구요. 개도…. 한 번 죽어가는 것이 인생길이거든, 무엇을 위해서 죽어갔느냐 하는 것이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인간이 무엇을 중심삼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으로 가치 기준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냐?
자기를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많더라, 자기 가정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많더라,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은 많더라, 그러나 세계와 하늘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없더라 이거예요. 그렇지만 이러한 고독한 길, 이러한 외로운 길, 이러한 기가 막힌 길에 선 자들은 낙심하지 말지어다! 세상은 춘하추동으로 돌고 있는 운세이기 때문에 출발한 일은 반드시 결과를 향해서 그것을 해결짓지 않으면, 도는 운세를 거치지 않으면 심판을 받아 어디든지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냐? 심판당하지 않고 다시 돌아오는 봄날을 맞이하게 될 때는 인류역사 종말시대에 소망했던 새로운 천국을 맞이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질 것이 아니냐?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 가지고 돌아가지 못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고, 흘러가 가지고 망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의 소신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 이제 우리의 할 일을 알았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자식을 뒤에다 두고 고독의 길을 따라,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하늘의 길을 찾아가고, 나라 없는 운명의 길을 찾아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나도 핏덩이 자식을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이북 땅을 향했던 역사가 있는 사람이라구요.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이 필요로 하고, 하늘의 명령이 있기 때문에 간 것이라구요. 안 가려고 몸부림치면서 하루 이틀은 고민도 컸지만, 그 고민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정을 알았기 때문에 간 것이 아니냐? 가정을 버리고, 부모를 버리고, 더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을 버리고 이북 땅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서글픈 사정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이남에 와 가지고 감옥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통일교회 역사입니다. 저주와 배반과 핍박의 길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길가에서 아는 친구가 침을 뱉으며 '야, 네가 그렇게 될 줄 몰랐다'고 손가락질할 때 내가 뼈가 없었던 사나이가 아닙니다.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을 때 구치과장이라는 녀석이 나 보고 했던 말을 잊지 않아요. 죽어도 잊지 못해요. 한 달이 못 되어 그들은 나한테 찾아와 가지고 '옛날에 들었던 통일교회 문 아무개와, 지금 알고 난 통일교회 문 아무개는 다르더라'고 사죄하는 것을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구요. 정의는 아무리 혹독한 핍박의 쇠사슬 가운데서도 승리한다는 것을 봐 왔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정의의 길은 힘들지만 하나님이 찾고 있는 그 무리의 길을 책임지고 가는 길이므로 낙심하지 말지어다! 통일교회 문선생님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당한 수난의 매자국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때 입은 마음의 상처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선생님은 아직까지 지치지 않았어요.
이 젊은 녀석들, 혈기 왕성한 30대의 꽃다운 청년들, 하나님도 젊은 사람들을 요구할 것이 아니냐? 늙은 사람보다도, 더럽혀지지 않는 순정에 사무친 젊은이들, 하나님을 향하여 일편단심 정열을 다 바칠 수 있는 젊은이들을 하나님은 요구할 것이 아니냐? 이런 젊은이들이 망해서는 안되겠다는 거예요. 하늘이 찾고 있는 대열의 선두에 서야 할 것이 아니냐?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10월을 보내면서 이제 2개월 남은, 1972년도라는 것은 역사 시대에 없는 해라고 정초에 선생님이 말씀했던 것이 과연 그렇습니다. 이해에 대한민국과 통일교회의 운세가 한고비 넘어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1974년도까지 세계적인 입장에서 통일교회가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그것을 지도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불철주야 지금도 다져야 할 책임을 짊어진 사람이 여기 서 있는 사나이입니다. 고독한 길을 가는 사나이기 때문에 따르고 있는 사람도 고독한 길을 가는 것입니다. 비참한 운명을 찾아가기 때문에 따르고 있는 무리도 비참한 운명입니다. 그렇지만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망할 줄 알았더니 망하지 않는 것을 여러분이 실제를 두고 증거해 준 셈이라구요. 후퇴냐, 전진이냐? 망하느냐, 흥하느냐? 두 갈래의 판정은 누가 하느냐?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하는 것입니다.
11월을 맞이하면서 남은 60여 일을 역사시대의 뜻을 잘못 알았으면 그것을 회개할 수 있는 기간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1973년을 고이 맞을 수 있는 하나의 소망의 해로서 저에게 허락하시옵소서'라고 책임을 못한 사람은 다짐하는 회개라도 해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봐도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찾는 사람들은 나밖에 없다는 결론을 이미 지었다 할진댄, 찾아왔던 하나님을 뒤로 돌려보내는 입장에 서서는 안 될 것이 아니냐? '야! 네가 못 가면 데리고 가야 되겠다고, 끌고 가야 되겠다'고, 너 놓고는 못 가겠다고 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서 모셔야 할 것이 아니냐?
여러분, 오래지 않아 선생님은 미국을 향하여 가야 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떠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선생님을 믿지 말라구요. 여러분의 안방에서 믿을 수 있는 스승이 아니예요. 여러분이 믿는 그런 입장의 믿음으로서 통일교회를 믿지 말라구요. 여러분이 믿고 있는 현재까지의 그 믿음 가지고는 통일교회는 상관할 수 없는 거라구요. 차원이 높은 입장에 있어서의 새로운 민족적 자각과 세계적 자각을 가지고 천륜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새로운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 혼란한 세계 앞에 새롭게 도약하든가 복귀하든가 해야 합니다. 두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우리 통일교회 내에 있어서 일대 위기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어젯날의 그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삼천만이 우리 통일교회를 부르고 있고, 30여 억 인류가 부르고 있고 영계에 있는 수천 억의 영인들이 우리들을 부르고 있는 이 거룩한 자신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명령받았다 할진대는 당당하게 가야 되겠습니다. 졸장부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하라 이겁니다. 내 앞에 나타난 원수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내 신념이 제압하게 되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승리한다구요.
보라구, 여러분, 지금 선생님이 한 6억이란 돈이 필요한데, 돈 한푼 없다 이거예요. 현찰이 6억이 필요한데 돈 한푼 없으니 어떻게 할 것이냐? 패자가 될 것이냐, 승자가 될 것이냐? 하나님은 살아 있다 이거예요. 지금까지 해 나온 일이 그렇듯이 이번 이 고비를 넘는 것도 하나님을 부둥켜 안고, '내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을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기필코 이루어 주신다는 신념이 앞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될 것이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두고 보라구요. 되나 안 되나….
하나님이 찾는 자리에 있어서 파수병의 길을 직행하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걸음 발을 대딛게 될 때는 민족이 부르는 함성을 들어야 되겠고, 두 걸음 걸어갈 때는 세계가, 세 걸음 갈 때는 한나님이 부르는 소리를 들어야 되겠습니다. 숟갈을 들으나, 잠을 자나, 깨나,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나의 소원은 이것이요?' 라고 해야 하고, 새가 날거든 '야! 너는 내 소원 알지? 네가 가는 길이 내 갈 길을 지시해 주는 것이면 얼마나 좋겠느냐? 내 그날을 재촉할 수 있고 승리를 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됐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것이 그립구나. 그것 때문에 미치겠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 길을 가자는 것이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문 아무개라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길을 여러분이 인연된 입장에서 볼 때, 여러분이 혼자서는 못 가고 같이 가야 할 운명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보다도 못한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보다도 철저하고, 선생님보다도 앞서고, 선생님보다도 각오가 확실하면 얼마나 좋겠느냐?
세계로 가는 데 있어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면, 그런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책임 대열을 지키고 나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이 자리를 아버지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외로울 때 당신의 외로운 것을 통고시키던, 당신이 붙안고 통곡하던 그 시간을 저는 잊지 않았습니다.
너만은 이것을 알아줘야 될 것이 아니냐고 당부하던 그 사정을 저는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그 하나의 약속과 그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피눈물의 길을 가려 왔습니다. 그 누구도 믿으려고 하지 않는 길을 선두에서 달려오다 보니 가야 할 길은 태산이고, 가야 할 길은 가시밭길이었습니다. 그 길을 가고 있는 자신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피를 흘려도 서러워할 줄 모르는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몸부림으로 계속된 오늘까지 당신이 버리지 않는 것을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피는 아버님의 피와 연결되기를 바랐고, 제 생애는 아버님의 생애와 연결되기를 바라왔던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통일의 젊은 아들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누구를 위한 자리에 서 있습니까? 그 누구라는 표준은 자기 자신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당신만을 위한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본래 사람이 태어날 때 자기를 위하여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남자가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자를 위해 태어난 남자가 그렇게 생긴 것이 본의임을 알게 될 때에, 본래의 생의 목적은 자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자도 그러한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백성은 백성으로서 자기들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 더 높을 수 있는 그 나라를 위해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 나라는 그 나라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을 수 있는 세계를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는 세계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을 수 있는 주권자인 아버님을 위해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님도 아버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아버님 자신도 아버님의 사랑을 위하여 찾아 나가고 그것을 바라보고 소망과 행복의 날을 고대하는 것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에는 아버님의 사랑의 자리까지 가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한 것은 아버님만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대적 관계이므로 사랑하는 것만큼 돌아올 것을 예고했기 때문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한 이것이 첫째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그 첫째 계명은 인간으로서 첫째 계명이요, 아버님에게도 첫째 계명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대로 돌아오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사랑하자는 말인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이 놀라운 뜻을 알고 있는 통일의 무리들은 이제 가야 되겠습니다. 개인의 고개를 넘어야 되겠습니다. 가정의 고개를 당당하게 넘어야 되겠습니다. 사회와 국가의 고개를 넘어야 되겠습니다. 세계를 헤치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공산세계, 민주세계가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 앞에 완성적 승리의 조건을 갖추어 가지고 당신 앞에 봉헌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날이 멀지 않다는 것을 저희들은 바라보고 있사오니 아버님이 원하신 소원의 뜻 앞에, 계획하신 섭리의 뜻 앞에 승리와 영광만이 길이길이 같이하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찾고 있는 무리가 어떻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한 무리, 그러한 자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 놀라운 역사시대에 있어서 소명을 받은 선택된 무리인 것을 자인하면서, 이 거룩한 입장의 위신과 체제를 아버지 앞에 버리는 불쌍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은 아담이 아버지를 버린 것보다 더 죄가 크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은 복귀의 한스러운 많은 대가를 치르고 찾았기 때문에 그 대가가 빛날 수 있는 결과를 더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확실히 깨닫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마지막 성일을, 아버지, 지켜 보시옵소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리인 이곳을 향하여 우리러 축수를 드리는 그 마음 앞에 천만 배 복을 더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이 다시 만날 수 있는 그날, 고대하는 그 소원 앞에 당신의 기쁨과 은사와 영광이 같이 상봉할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다짐과 새로운 맹세를 아버지 앞에 바치오니 앞으로 거룩되게 기억될 수 있는 이 아침이 되기를 바라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