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님, 이 땅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당신이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고 계시는 소원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지극히 희귀하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교파가 있고 수많은 신도가 있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많지만,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집이 어떠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그 도리를 따르고자 하고, 그 도리를 본받고자 하며, 그 도리를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 없기에, 아버지께서 이 땅 위에 한 사람을 세워서 전체를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될 지중한 책임을 지고 계신 것을 느낄 적마다, 인간을 자유로이 대할 수 없는 아버지의 입장이 얼마나 불쌍하신가를 느끼게 되옵니다.
당신은 오랜 기간을 통하여 수많은 선지자들을 세우셨고, 그들이 인간의 인연을 따라 나오면서, 역사적인 그 모든 어려운 환경을 넘고 넘으면서 개척자의 사명을 다하였지만, 그때에 책임을 졌던 선지자들과 그때를 위해서 수고하신 아버지의 수고는 시대와 더불어 흘러가곤 하였던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렇게 연이어 나온 역사….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희 인간들 앞에 당신이 가중시킨 힘과 수고가 얼마나 컸는가 하는 사실을 오늘날 인류는 스스로 깨닫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여기는 용산지구 본부이옵니다. 소수의 무리들이 아버지 앞에 부복하였사옵니다. 이들이 모인 것은 그 누구를 따르기 위한 것이 아니옵고 당신을 따르기 위한 것이옵고, 당신의 자녀로서의 명분을 갖추기 위해 모였사오니 이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저희 마음 마음을 살피시어 당신의 마음 앞에 합당치 못한 모든 마음을 제거하여 주시옵고, 저희가 저희 자체를 부정하여 당신의 마음에 일치될 수 있는 본성과 몸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말과 관념으로써만 아버지를 부를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체휼로써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지 못한 아들딸들이 있거든 그런 자리에 나갈 수 있게끔, 아버님이여, 붙들어 주시옵고,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뜻 앞에 명령하시어서 기필코 당신의 은사 가운데서 살며, 당신으로 말미암아 생활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랜 동안 찾아오지 못했던 이 자리에서 오늘 이 시간에 다시 만나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용산지구를 책임맡고 있는 당신의 아들이 수고한 모든 사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 작은 자리를 통하여 용산지구 전체를 아버지 뜻 앞에 세우는 중요한 책임을 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아버지,긍휼히 보시옵소서.
많은 무리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한 생명이라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몸과 몸이 서로 연결되어 아버지의 뜻 앞에, 아버지의 생활 앞에, 아버지의 심정 앞에 화답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아옵니다. 그럴 수 있는 생명이 한 생명이라도 나타나서 이 조그만 자리에서 하늘과 인연맺고 저희들과도 인연을 맺어, 아버지가 기뻐할 수 있는 효자 효녀가 될 수 있게 하여 주옵시고, 당신께서 세우시어 자랑하고 칭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1년, 금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저희들이 일치 단결하여 당신이 맡겨 주신 사명과 책임을 다하지 않고는 민족 앞에 원한의 조건을 남길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삼천만 민족 앞에 참소받을 수 있는 입장임을 느끼면서 금년에 있어서 맡겨진 바의 책임을 감당하여 아버지 앞에 칭찬받기에, 아버지가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이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저희들 사정 사정을 온전히 당신의 사정과 연결시키시옵고, 저희들이 바라는 소원이 당신의 소원과 하나되게 하시어 당신의 뜻을 여기에서 성취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소수의 무리들이 무릎꿇은 이 자리로 말미암아 당신이 사랑하고 남을 수 있는 거룩한 승리의 터전이 확장되고 발전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언제나 이곳을 위해서 마음 모아 기도하는 자녀들에게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허락하신 이 한 시간 아버지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 통일교회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 그늘과 같은 어려운 역사를 지내 나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 하나님의 섭리 역사를 두고 보면 구약시대는 만물을 제물로 드리는 제물시대였고, 신약시대는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시어 제물적인 입장에 세운 시대였는데, 그 아들이 십자가에 돌아간 희생의 공로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신약을 중심삼은 기독교가 발전해 나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자녀의 시대가 아니라 부모가 역사적인 수난의 길을 가야 할 시대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역사는 재창조의 역사이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창조하실 때와 같은 순서를 다시 밟고 올라가야 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신 후에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인간 조상 아담 해와는 참다운 부부가 되기 전 자녀의 자리에서 타락했습니다.
만일 이 자녀가 타락하지 않고 자라서 참된 부모의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상속을 받았더라면, 이 세계는 그야말로 우리 인간이 이상하던 선의 세계요, 소망의 세계요, 본향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세우려던 본연의 부모의 인연을 갖지 못했습니다.
자녀의 인연도 가졌다고는 하지만, 아담 해와가 자녀의 인연을 갖고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장성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모든 소망을 걸고 전폭적으로 사랑하실 수 있는 자리에 선 자녀는 되지 못하였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만물은 완성한 자녀의 입장에 선 인류의 시조 아담 해와로부터 주관받아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주관받지 못하였다는 것도 알고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 역사, 구원 역사는 잃어버린 만물과 자녀와 부모의 인연을 다시 찾아 나오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만물을 중심 삼고, 신약시대에는 자녀를 중심 삼고 나왔습니다. 그러고 성약시대에는 부모를 중심 삼은 새로운 역사시대가 전개되어 나온다는 것을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온 역사 과정을 살펴보게 될 때에, 인류 역사는 하나의 중심을 세워 가지고 그 중심으로부터 하나의 가정을 세우고 그 가정으로부터 하나의 종족과 하나의 민족과 하나의 국가와 하나의 세계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 하나의 중심적인 기원을 찾아 나오는 역사였습니다. 이것이 종교를 중심 삼은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종교는 지금까지 무엇을 해 나왔느냐? 지금까지 종교라는 것은 잃어버린 아담 해와를 찾기 위한 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그 아담 해와를 찾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이 아담을 먼저 지었기 때문에 아담을 먼저 찾아 새워야 합니다.
이렇게 잃어버린 아담,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의 자격으로 등장할 수 있고 합격될 수 있는 하나의 남성을 찾아 나오는 역사를 지금까지 종교가 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종교든지 보게 되면 종주가 전부 남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이상 세계의 완성된 남자의 기준을 세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죽어 버린 입장에 있는 인류 가운데서 새로이 하나의 완성된 남자를 다시 찾아 나오는, 다시 세워 나오는, 다시 지어 나오는 역사를 거듭해 나오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까지 종교가 추구한 구원의 내용, 구원의 도리는 개인 구원이었습니다. 종교는 어디까지나 개인 구원을 표방하고 개인을 구원시키기 위한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하나의 남자가 완성되면 그 남자로 말미암아 하나의 여성이 찾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때 아담을 지어 놓고 나서 그 아담을 본떠 가지고 해와를 지었습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칙이기 때문에 완성된 하나의 남성이 나오지 않는 한 하나의 완성된 여성은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역사는 하나의 남성을 찾아 나오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아 가지고 만 인간의 대표로서 혹은 만 남성을 대표하는 중심적인 존재로서 한 분을 보내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왔다 갔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왔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의 사랑을 받았다면, 즉 위로는 하나님이 사랑하고 아래로는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받드는 입장에 섰었다면, 예수님을 중심 삼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 민족에게 연결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완성한 남성으로 보냈던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 위에서 민족과 더불어 혹은 교단과 더불어 완성할 수 있는 승리적 터전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지금까지 기독교를 중심 삼고 다시 한 민족과 한 국가를 세우고 하나의 교단을 세워, 새로운 남성을 이 땅 위에 찾아 세우기 위해 싸워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남성을 하나의 여성이 받들 수 있는 터전을 넓혀 나오는 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인 것입니다.
완성된 아담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 앞에 그때의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의 완성된 여성을 맞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 드렸더라면, 예수님은 하나의 완성된 남성으로서 하나의 완성된 여성을 맞이하여 가지고,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던 당시에 인간을 중심 삼고 바라시던 하나의 완성된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그때 비로소 완전한 가정의 출발을 보았을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완성하여 부부의 인연을 맺는 것이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지으신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 두 남성과 여성이 하나의 완전한 가정의 출발을 봐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완성된 남성으로서 이 땅위에 오셨기 때문에 국가와 교회가 받드는 가운데에서 완성한 여성을 맞이해 완성한 가정의 출발을 했다면, 그 완성된 가정을 중심 삼아 가지고 완성된 교회, 완성된 민족, 완성된 국가를 형성해서 완성된 세계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뜻이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 뜻을 이루기 위해 재차 범위를 넓혀 가지고 세계적인 무대에서 지금까지 일해 나온 것이 신약시대의 기독교 역사인 것입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느냐 하면, 이스라엘 나라와 같은 한 국가의 판도를 외곽적으로 넓혀 나왔습니다. 일개 국가를 중심 삼고 그러한 판도를 넓힌 반면 세계적으로 그 판도를 넓혀 나와서 지금의 민주 세계를 이루었습니다. 그리하여 기독교가 이 민주 세계권 내의 사상적인 책임을 지고 나왔습니다.
이 기독교와 민주 세계는 하나님의 완성된 아들이 하나의 완성된 가정의 기반을 갖출 수 있게끔 교회와 나라를 세워야 할 입장입니다.
옛날 예수님 당시에 유대 교회와 이스라엘 나라 가운데서 완성될 수 있는 하나의 여성이 세워져 가지고 예수와 하나되어서 하나님이 바라시던 이상적인 하나의 가정을 이루었더라면 그 가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하나의 종족이 나왔을 것이고 하나의 민족이 나왔을 것이고 세계가 나왔을 것인데,
그 소망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찾아 나오는 것이 기독교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는 다시 새로운 역사를 전개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 사상이라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오시는 주님은 어떠한 분으로 오시겠느냐? 남성을 대표하여 인류 역사의 노정에 있어서 악한 세계의 모든 것을 넘어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의 자격을 갖추어 가지고 이 땅 위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이 땅 위에 오셔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땅 위에 오자마자 나라를 치리(治理)하고 세계를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이 간접적인 목적은 될는지 모르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직접적인 목적은 뭐냐 하면, 하나의 완성된 남성으로 하나의 완성된 여성을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즉, 타락의 인연을 완전히 벗어난 하나의 남성과 하나의 여성이 부부의 인연을 맺고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류 시조가 하나님을 중심 삼고 이루어야 할 참된 부부의 인연을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이루기 위해 육천 년의 역사를 통과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부부의 인연을 세우고 하나님을 중심 삼은 새로운 가정의 출발을 보기 위해 이 땅 위에 다시 찾아오시는 분이 재림 주님이요, 그것이 재림 이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참다운 부부의 인연을 통해서 참다운 자녀와 참다운 민족과 참다운 국가와 참다운 세계로 발전해 나가야 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중심된 하나의 가정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 가정 주위는 전부 하늘의 가정이 아니라 하늘에 반대되는 악한 가정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악한 가정들을 전부 뜻 앞에 소화시키고 뜻과 더불어 일체화될 수 있게끔 하늘 편으로 끌어오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가정으로부터 수많은 가정을 거쳐 가지고, 하나의 새로운 종족을 편성하고 새로운 종족으로부터 새로운 민족을 편성하고, 새로운 민족으로부터 하나의 새로운 국가를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국가의 책임자는 어떤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중심 삼은,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국가가 이 땅 위에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들의 주권자를 중심 삼고 볼 때에, 그들은 하나님이 수천 년의 역사 노정을 통해서 바라 나오던 그 책임을 계승해 나오는 그런 주권자가 아니라, 한때에 있어서 그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어떠한 공적을 중심 삼고 그 사회인들에 의해서 선출되거나 자기가 그런 자리를 차지하고 나선 주권자들입니다.
그들은 역사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소망하고 인류가 소망해 나오던,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하나님의 모든 이상을 이어받을 수 있는 중심 부부의 기반을 갖춘, 하나님이 세워 준 주권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지만 그러한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타락이 없었다면 온 세계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들을 중심 삼아 가지고 주관 받고 치리 받았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타락이래 지금까지 악의 권내에 있는 악의 주권자로부터 주관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에 이 세상은 어디까지나 하늘 나라가 아니요, 악한 사탄 주관권내에 있는, 하늘 밖에 있는, 하늘의 뜻 외에 있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세계를 중심 삼고는 뜻을 이룰 수 없겠기 때문에 이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복귀하기 위한 복귀 역사 혹은 구원 역사를 하시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참된 나라가 나오기 전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딸이 지배할 수 있는 나라가 나오기 전에 하나님을 중심 삼고 사위기대를 이룬 하나의 가정이 나와야 됩니다. 그리고 이 참다운 가정을 중심 삼고 참다운 종족이 나와야 되고, 참다운 종족을 중심 삼고 참다운 민족이 나와야 되고, 참다운 민족을 중심 삼고 참다운 국가가 나와야 됩니다.
이 악한 세계에는 수많은 국가가 있는데 그 국가 가운데서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국가가 나와 가지고 악한 세계의 나라들을 흡수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선한 국가와 악을 중심 삼은 국가가 선악의 투쟁을 거쳐 선한 국가가 악한 국가를 전부 흡수해 가지고 온 세계 국가가 하나님을 중심 삼은, 하나님이 직접 주관할 수 있는 국가권내로 통일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통일식구가 짊어진 사명은 무엇이냐? 통일식구가 가야 할 노정과 그 사명을 살펴보게 될 때, 통일식구 개개인이 통일교회를 중심 삼고 왕래하는 것이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를 신앙하는 것이 통일식구가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은 통일교회라는 이 단체를 중심 삼고 하나로 규합돼 가지고 민족을 넘어 온 세계의 인류를 통일사상권으로 흡수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수많은 국가가 여기에 귀일될 수 있는 그런 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통일세계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모든 교회를 통일해야 됩니다. 기독교면 기독교가 그냥 그대로 있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참된 종족이 있으면 그 참된 종족을 표본으로 삼아 가지고 수많은 거짓된 종족을 참된 종족으로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된 민족이 있으면 참된 민족을 중심 삼고 거짓된 민족을 참된 민족에 접붙여 가지고 복귀해야 되고, 참된 나라가 있으면 그 나라를 중심 삼고 거짓된 나라를 접붙여 가지고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냐? 여기 용산지구면 용산지구의 이 자그마한 방에 수십명의 식구가 연결되어 모여 있는 것만이 우리 통일 교회 식구가 가는 길이 아닙니다. 비록 현재 여기 자그마한 하나의 방안에 소수의 무리가 모여 있지만 이들이 구상해 가야 할 목적지는 세계를 넘어 뜻을 향해 가야 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분 개체를 통일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선만을 남겨 놓고 악을 제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악을 중심 삼고 통일하는 것이 아니고 선을 중심 삼고 통일시켜야 하기 때문에 선을 위주로 해가지고 악을 제거해야 됩니다.
선한 것을 위주로 하여 악한 것을 물리치고 그 악의 기반을 선이 점령할 수 있는 일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통일된 하나의 내 개체를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선과 악의 중간 위치에 놓여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선한 사람도 될 수 있고 악한 사람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발자국 오른편으로 가면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요, 한 발자국 왼편으로 가면 악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반된 두 주인으로부터 상반된 두 목적 앞에 지배를 받는 우리 개인 개인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를 두고 보면 나 자체도 나 하나를 중심 삼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가 못 되어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일념으로 연두에는 일년이면 일년 동안 이렇게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원하는 그 뜻은 이루지 못하고 원치 않은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일년을 다 지내고 나서 회상해 보면 지낸 일년 가운데는 후회되는 때가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내가 원하는 데로 가지 않고 원치 않는 데로 가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것은 내가 원하는 데로 가도록 끌어 주는 힘보다도 원치 않는 곳으로 끄는 더 강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즉, ‘나’라는 개체는 선과 악의 중간 위치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중심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개체는 선의 지배도 받는 것이요, 악의 지배도 받는 것입니다. 이 두 분기선이 여러분 개체를 중심 삼아 가지고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생각해야 될 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기 때문에 인간은 완전하게 하나의 목적을 지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목적은 둘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셨다면 모든 만물은 대우주의 목적을 중심 삼고 거기에 화합하도록 계획하여 지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목적이 둘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 개인을 두고 보면 두 목적을 갖고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마음이 원하는 목적이 있는 반면 몸이 원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서로 싸운다는 것입니다.
전후 혹은 좌우로 뒤죽박죽하면서 서로 싸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생 동안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 들은 물론이요, 과거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조들도 그랬습니다. 앞으로 우리 후손들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싸움을 중단시켜 가지고 마음이 원하는 선만을 따라가고 마음이 원치 않는 악을 제거시킬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악의 목적을 향하여 가는 길을 막고 선의 목적의 길로 일방통행하지 않고는 내 자체가 선한 자리에 섰다고 결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정짓지 못하면 선과 악 둘을 붙들고 있는 입장이지, 선만을 붙들고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지금까지 이 둘 중의 하나를 잘라 버리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즉, 마음과 몸이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선을 행하라고 몸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라고 하고 자기는 어렵더라도 뭇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도와줘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몸은 그와 반대의 방향을 취해 나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현재 통일식구가 절대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뭐냐 하면, 몸과 마음이 싸우는 자기 자체내에 있어서 마음을 중심 삼고 몸을 완전히 정복하여 몸의 승리의 기반을 닦고 나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선을 위주로 한 하루의 생활과, 일년의 생활과, 혹은 십년의 생활과 일생을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선만을 위주로 할 수 있는 '나'로서 변하지 않는 내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한 하나의 '나'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선이나 악이나 모두가 두말할 것도 없이 세계적인 욕망을 갖고 나가는 것입니다. 선한 양심의 욕망도 세계적인 욕망을 갖고 나가고 악한 욕망도 세계적인 욕망을 갖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의 욕망을 가만히 보면 자신이 완전한 선의 입장에 서지 못했으면서도 바라는 소원은 세계적인 소원인 것입니다. 내가 세계에서 제일 되고 싶다거나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는 욕망은 마음도 몸뚱이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인간의 근본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음 편을 위주하는 사람과 몸 편을 위주하는 사람을 갈라놓는 역사를 기필코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안 가르더라도 반드시 단체적으로라도 그러한 역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악을 위주로 한 단체가 있으면 거기에는 새로이 내적으로 선을 위주한 단체를 갈라 놓아야 되고, 외적으로 악을 중심 삼은 나라가 있으면 내적으로 선을 중심 삼은 나라를 갈라 놓아야 되며, 외적으로 악한 세계가 있다 할진대는 내적으로 선한 세계를 갈라 놓아야 됩니다. 이것이 갈라지는 데는 그냥 갈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싸워야 됩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싸우는 거와 마찬가지로 싸움의 과정을 거쳐야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언제까지나 둘로 남아져서는 안 됩니다. 어느 한때에는 갈라져 끝에 가서는 청산지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악과 선이 같이 있을 수 없는데 여기에서 반드시 남아져야 할 것은 악이 아니고 선입니다. 그러니 선을 위주로 하여서 악을 완전히 제거시킬 수 있는 세계적 끝날이 와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끝날이 온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끝날이 어떤 때냐? 선과 악을 한꺼번에 전부다 없애버리는 때가 아닙니다. 선한 것만을 남겨 놓고 악한 것을 없애버리는 때입니다. 그러한 세계적인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적인 때가 오기 전에 선을 중심 삼고 악한 자신을 스스로 주관할 수 있는 개인이 나와야 됩니다. 선을 중심 삼고 완전히 악을 제거시킨 하나의 남성이 그러한 하나의 여성을 찾아 가지고 선의 부부의 인연을 맺어 결합된, 선을 위주한 가정의 출현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끝날에는 면양과 산양으로 갈라진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심은 것은 가을이 되면 거두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끝날에는 심어진 대로 거두어지게 됩니다. 사람은 몸과 마음이 싸우는 사람으로 심어졌기 때문에 이것이 세계적으로 열매맺을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때가 어느 때냐 하면 세계적으로 민주 세계와 공산 세계로 갈라져 있는 지금입니다. 하나는 유심 세계를 위주한 것이요, 하나는 유물 세계를 위주한 것입니다. 하나는 내적 마음 편을 대표한 세계요, 하나는 외적 몸 편을 대표한 세계입니다.
이것은 몸과 마음이 싸우는 나를 근본으로 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를 중심 삼아 가지고 그러한 부모의 혈육을 통해 세계적인 열매로 나타나야 되기 때문에 물질을 위주한 세계와 마음을 위주한 세계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타났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나타난 것을 해결지어야 합니다. 해결짓는 데는 세계에서부터 해결짓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문제가 해결됨으로 말미암아 가정 문제가 해결되고, 가정 문제가 해결됨으로 말미암아 개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세계 사람들이 통일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지만 결과적인 열매로 나타난 세계 그 자체를 수습한다고 수습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원 되는 개인을 중심 삼고 수습 방안을 세워서 해결하지 않고는 정비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뿌리를 어디에 박고 있느냐 하면 우리 인간 개개인에게 뿌리박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몸과 마음이 싸우는 것이 뿌리인데 어떻게 악한 편이 되려는 몸의 실체를 부정해 버리고 선의 기원에 서 있는 마음을 중심 삼고 모든 전체를 주관하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할 수 있는 하나의 완전한 사람으로 복귀하느냐, 악을 완전히 제거시키고 선을 위주한 그런 개인으로 복귀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종교는 세계 구원을 목표로 해 가지고 전개해 나오지 않고 개인 구원을 목표로 전개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천당가겠다거나 또 어떤 종교를 믿고 극락가겠다고들 말합니다.
가정이나 국가의 관념도 없고. 세계의 관념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바라는 소원은 막연하게나마 세계의 때를, 세계 전체의 한때를 바라지만 그 목적하는 바는 세계 구원을 목적하는 것이 아니라 전부 개인의 구원에 귀착점을 두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할 때 해결 방안이 세계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개인 자체내에 있기 때문에 승패를 결정하기 위한 입장에서 지금까지 종교는 개인 구원을 추구해 나온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종교를 중심 삼고 개인이 완전히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가지고 그 개인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완전히 구원받고, 나라가 구원받고, 세계가 구원받을 수 있는 때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 구원 판도를 넘어서 가지고 가정 구원과 종족·민족·국가·세계의 구원까지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개인 구원 완성의 묘법이 나와야 되고 하나의 정리, 하나의 공식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표방하고 나오느냐? 개체를 중심 삼아 가지고 악의 기원을 방지하고 해결하기 위한 통일방안을 제시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은 무엇이냐? 하나님과의 생명의 인연을 벗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생명의 인연을 벗어나 가지고 누구와 생명의 인연을 맺었느냐 하면 사탄과 생명의 인연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권을 벗어난 반면 어떠한 사랑권내에 들어갔느냐하면, 사탄의 사랑권내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생명은 하나님을 위주한 생명이 아니라 사탄을 위주한 생명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태어난 생명이 아니라 사탄의 사랑을 중심 삼고 태어난 생명입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오늘 통일교회에서 가르쳐 주는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복귀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냐? 원죄를 벗기 위해서 입니다. 원죄를 벗게 되면 하나님의 생명권과 사랑권내로 새로이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접붙여야 됩니다.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로 만들기 위해서는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여기에 참감람나무를 접붙여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돌감람나무와 같은 인간들을 참감람나무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 자체를 부정하는 과정을 거쳐 가지고 새로운 긍정, 전폭적인 긍정을 제시하는 과정을 거쳐 넘어가야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본질 본상이 돌감람나무가 아니라 참감람나무화하고, 선악을 위주한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선만을 위주한 그런 사람으로 등장하여 그런 사람을 중심삼은 하나의 가정, 하나의 씨족,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세계를 형성해 나가자는 것이 통일교회의 통일 방안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식구들이 바라는 현재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자기 한 개체를 악에서 구하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현재의 통일식구에게 있어서 문제되는 것은 뭐냐? 몸과 마음을 중심 삼아 가지고 '나' 하나를 완전히 해방시키는 일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 그 싸움이 얼마나 치열하냐?
이 싸움은 미소가 서로 경쟁하며 하는 싸움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민주 세계와 공산 세계가 싸우는 것은 문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도 더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우리 개체로부터 기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에게 두 패가 있어서 싸우는 거와 마찬가지로 가정도 두 패요, 사회도 두 패요, 국가도 두 패요, 세계도 두 패인 것입니다. 이것을 족보로 따지자면 하나는 악의 개인이요, 악의 가정이요, 악의 사회요, 악의 국가요, 악의 세계이며, 또 하나는 선의 개인이요, 선의 종족이요, 선의 국가요, 선의 세계입니다.
이렇게 딱 갈라졌습니다. 한편은 하나님을 위주로 한 종교권내에 서 있는 편이요, 다른 한편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물질권내에서 있는 편입니다. 사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뚱이는 인륜 도덕이니 양심의 도리니 하는 이와 같은 모든 것을 전적으로 부정합니다. 개나 돼지와 마찬가지로 내가 더 먹어야 되고, 내가 좋아야 되고, 내가 편안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륜도 도덕도 없습니다.
이러한 사조가 공산 사회를 중심 삼아 시작되어 가지고 민주 세계까지 영향이 미쳐져서 현재의 민주 세계의 청년들이 이 풍조에 휩쓸려 육의 만족만을 위한 최고의 행락을 그려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의 행락이라는 것은 제한되어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인연, 어떠한 고차적인 인연을 중심 삼아 세계성을 띠고 인간을 초월적인 경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무한대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육의 감정의 한계권내에서 놀아나는 것이기 때문에 지내고 보면 허무만 남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세계는 무한합니다. 마음의 세계가 얼마나 크냐 하면 하늘땅보다도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세계가 넓다면 하늘땅 보다 넓고, 마음의 세계가 깊다면 하늘땅보다 더 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몸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진국가의 젊은이들을 볼 때에, 미국 같은 데 가 보면 히피족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내들은 인생을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사회니 국가니 세계니 도덕이니 하는 그런 것은 전부 우리에게 필요없는 것이다. 인간은 행락을 위주로 해 가지고 몸뚱이가 원하는 대로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들 멋대로 자유를 부르짖다 보니 국가의 어떠한 간섭이나, 사회의 어떠한 법도적 조건이 가담된 자유를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정이면 가정의 가법을 중심 삼고 부모의 어떤 조건적 제시권내에 있어서 제약을 받는 자유를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맘대로라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하다 보니 전체를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행락을 바라는 그들의 몸뚱이가 무한한 초월경지의 감정을 유발시키지는 못합니다. 몸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오래 가지 않아서 싫증납니다. 요즈음 유행되는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째즈곡 같은 것들이 유행해 가지고 이상한 춤도 추고 하는 패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풍조로 클래식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육을 위주로 한 감각적인 만족이라는 것은 지극히 순간적인 것입니다. 육이 오관을 통해서 느끼는 감각은 제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잘먹고 기쁠 수 있는 감정, 즉 환경을 중심삼고 느끼는 감정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무한할 수 없습니다. 입체적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의 세계에서 오는 평화라든가, 마음의 세계에서 오는 자극이라는 것은 육을 중심삼은 자극에 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얼마나 크냐? 마음의 크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욕망은 큽니다. 욕망이라는 것은 몸을 위주로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위주로 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면 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대한민국을 내 것 만들고 싶다. 세계를 내 것 만들고 싶다.' 하는 것입니다. 또 '천지를 창조한 그런 주인이 있으면 그 주인도 내 것 만들고 싶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 것 만들고 싶다는 것은 몸뚱이가 원하는 거예요? 몸뚱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은 큰 것과 더불어, 굉장한 것과 더불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때,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곳,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냐? 잘먹고 잘사는 것, 몸뚱이가 추구하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몸은 그저 좋은 것 먹고, 좋은 데서 살면 좋아하지만 마음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나 홀로 있을 때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홀로는 아니예요. 세상에서도 그렇지요? 몸뚱이를 중심 삼고 기쁘고자 하는 데에도 남자면 남자 혼자는 안 되는 겁니다.
젊은 남녀들이 행락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혼자 가요? 남녀 관계를 중심으로 그것을 최고로 하다 보니 난장판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일대 일의 남성과 여성으로서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지금 어떤 풍조가 벌어지고 있느냐 하면, 두 부부끼리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를 서로 교환해 가면서 사는 이런 풍조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만족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리 해봤자 거기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허망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소원의 터전으로 해서 그 자리를 행복의 자리로 영원히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실컷 그렇게 하고 나면 허무하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시키고 차버리고 싶은 결과로 몰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몸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터전은 이 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즐거워할 수 있는 곳은 어디냐? 마음이 기뻐하는 데 있어서도 마음 혼자로는 기뻐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몸이 기뻐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찾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도 기뻐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상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상대가 무엇이냐? 시시하게 몸뚱이가 좋아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상대는 자그만치 세계적인 중심인 것입니다.
온 하늘땅을 창조한 창조주가 있다면 그 창조주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가씨들도 시집을 간다면 대통령 며느리로 가고 싶지요? 좀더 하여 대통령 딸이 되겠느냐, 대통령 며느리가 되겠느냐 하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그것은 물어 볼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또,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을 중심 삼고 묻게 될 때에 하나님의 딸이 될 수 있다면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나님의 딸이 되는 데는 몸으로 될 수 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신(神)이기 때문에 무형의 신의 상대가 되기 위해서는 유형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주체로서 절대자이시고, 중심 존재이십니다.
그런 분의 상대적인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유형체로서는 안 됩니다. 무형의 상대적인 내용을 가진 존재라야 됩니다. 절대적이시고, 무한하시며, 엄청나게 크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대상적인 자리에 서려면 엄청나게 클 수 있고, 엄청나게 높을 수 있는 무형의 모습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이 뭐냐 할 때, 몸이 아니고 마음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사람을 만나는 자리가 기뻐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마음이 보다 고차적인 내용을 중심 삼고 기뻐할 수 있게 될 때는 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자기를 중심 삼은 것이 아니고 세계를 중심 삼은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민족주의보다 세계주의는 앞서가는 것입니다. 세계주의는 국가주의를 흡수하고, 국가주의는 민족주의를 흡수하고, 민족주의는 가정주의를 흡수합니다. 그리고 가정주의는 개인주의를 흡수합니다.
마음은 보다 큰 것을 소망의 대상으로 합니다. 여러분들도 마음이 있죠? 이 마음의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이 대관절 무엇이냐 할 때에 '없지' 하면 그만이지만 마음은 무엇인지 모르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사회, 내가 바라는 세계는 악한 사회, 악한 세계가 아니라 참된 사회, 참된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은 언제나 그 현재의 입장을 능가하여 보다 나은 가정을 추구하는 것이요, 보다 나은 민족을 추구하는 것이요, 보다 나은 국가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마음은 보다 나은 세계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보다 나은 세계를 이루었다 할진대, 보다 나은 세계의 중심 존재가 있다면 그 중심 존재까지 추구하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한 절대적인 주인이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그 주인을 최고의 대상으로 삼아 가지고 그와 더불어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수시로 그를 찾아갈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늘 노력하고 작용하고 있는 것이 우리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설령 대한민국 삼천만 민족을 다 잘 살게 했더라도 '이만하면 이제 됐다'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은 또 명령하기를 세계 인류가 못 살고 있으니 세계 인류를 다 잘 살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더 높이 올라가서 맨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상대하고자 원하는 최고봉이 어디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인간 세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그마치 세계주의 사상을 갖고자 하고, 나아가 하늘땅을 통합한 천주주의 사상을 갖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보다 더 높은 차원의 사상을 표준으로 하면서 그것을 중심 삼고 상대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이라 하게 되면 성인은 세계 사람들이 전부 추앙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래야 성인인 것입니다. 위인은 각 나라마다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위인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을 들고 있지만, 위인이 훌륭한 것이 아닙니다.
이순신 장군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백성밖에 없습니다. 일본 사람은 이순신 장군을 싫어합니다. 그렇지요? 한 나라 국민들은 좋아하지만 한 나라 국민들은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이곳에서는 좋아하고 저곳에서는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볼 때에 이순신 장군도 세계 만민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참된 사람이 못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한국의 순금이 미국 가서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것은 지역적인 한계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경을 초월하고 역사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입니다.
그러면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순신 장군 같은 사람이 참된 사람입니까? 그는 대한민국 일개 국가를 중심삼고 충신이나 위인은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성인은 못 되는 것입니다. 성인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세계적인 사람입니다. 성인은 민족을 초월합니다. 대한민국 사람도 좋아하고 일본 사람도 좋아합니다. 원수를 맺은 두 나라가 싸우고 있다가도 그 앞에서는 싸움을 그치고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그런 자리에 서야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인은 세계주의자입니다. 민족주의자는 성인이 못 됩니다. 세계주의자라야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르크스 같은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마르크스 같은 사람도 성인입니까? 마르크스는 성인 축에 못 들어갑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성인이란 인간을 위주해 가지고 나온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을 위주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성인이 못 됩니다. 자기를 위주로 하여 가르치는 사람은 성인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성인들의 가르침이 뭐냐? 성인은 전부 종교를 내세웠습니다. 석가, 공자, 예수, 마호메트 등 성인의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을 보면 전부다 종교의 교주들입니다. 그러면 소크라테스도 성인이냐? 소크라테스는 성인이 아닙니다. 왜냐? 소크라테스는 지혜의 왕은 될 수 있어도 성인은 못 되는 것입니다. 지식의 주인은 될지 모르지만 생명의 주인은 못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성인은 지식을 가르치는 주인이 아니라 생명의 도리를 가르치는 주인입니다.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나왔기 때문에 성인인 것입니다. 생사 문제는 사람이 관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관리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이 관리한다는 것입니다. 신이 생사문제를 관리한다는 거예요. 생명의 문제는 신에게 속한 것이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 지도자, 종교의 교주들이 지금까지 성인의 반열에 참여했는데, 그것은 어찌된 연고냐? 그들의 가르침이 자기를 위주한 가르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공자면 공자가 자신을 위주하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석가면 석가도 자신을 위주하고 가르치지 않았고, 예수면 예수도 자신을 위주하고 가르치지 않았으며, 마호메트면 마호메트도 자신을 위주하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전부다 하늘을 위주하고 신을 중심삼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지 않고는 성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인은 민족주의 관념권내예서 한 나라를 위주한 사람이 아니요, 한 나라를 위주로 하여 세계를 제패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 위주한 도리를 중심삼고 세계를 제패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고착된 하나의 민족을 결정지어 놓고 출발하는 그러한 도리로써는 성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성인은 초민족적이고 초국가적입니다. 즉, 세계적입니다.
오늘날 마르크스주의니 무슨 주의니 하는 것은 하나의 철학입니다. 철학은 그 개인 아무개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것입니다. 철학은 지식의 기원을 통해 가지고 나오는 것이지 신과의 관계, 생명의 기원을 통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철학은 사람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탐구하는데 있어서 인성설을 주장했을는지 모르지만 생명의 기원은 어디서부터냐 하는 것을 추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문제를 추구하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 종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교주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시작되는 가르침은 교주 자신들을 중심삼고 가르친 도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늘을 위주로 해 가지고 가르친 도리입니다. 인간이 이러한 하늘의 법도에 따라서 살아야 된다는 내용의 가르침이 오늘날 세계 인류를 전부 포섭해 가지고 새로운 문화권을 형성해야 합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인은 일개 민족이나 국가권내에서 있을 수 있지만 성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위인과 성인이 다른 것이 뭐냐? 위인이 죽을 때에는 그 나라 백성들이 비통해 하지만 성인이 죽을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인의 자리에 섰던 사람들은 대다수가 '저 녀석은 나라를 팔아먹은 녀석이다'라는 비난을 들으면서, 나라 전체로부터 배반 당하고 나라 전체로부터 희롱당하는 자리에서 죽어 갔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어 본다면 예수님 같은 분을 유대교는 물론이요, 이스라엘 나라와 로마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죽음 길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간 길은 천도를 따라서 간 길이요, 가치 없는 인생으로서 간 길이 아니라 숭고하고 무한한 가치의 기준을 가지고 간 길이었습니다. 그 가치의 기준은 온 세계가 소망할 수 있는 중심 내용을 지닌 것이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은 기필코 인간이 찾아야 할 소망의 기준이요, 찾아가야 할 참된 길이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통해서 세계가 규합되어 가지고 오늘날 민주세계가 창건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공자 같은 양반도,‘위선자는 천보지이복하고(爲善者 天報之以福) 위불선 자는 천보지 이화니라(爲不善者 天報之以禍)'고했습니다. 막연하게 나마 하늘에 대해서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과 화합할 수 있고, 하늘에 조화되어 찬양할 수 있는, 전세계가 평등하고, 전세계가 같이 잘살기를 바라는 욕구의 기원이 어디 있느냐 할 때에, 여러분의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선에 바탕을 둔 마음이 바라는 것은 인류가 서로 원수시하고, 서로 싸우면서 피를 흘리고, 서로 죽이고 죽는 이러한 것이 아니라 자유와 평화와 행복이 깃든 가운데 서로 서로 우애할 수 있는 인연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소망입니다.
그런데 그 소망이 몸뚱이에서 나오는 것이냐? 아닙니다. 몸뚱이는 배고프면 자기 형님 누나 손에 있는 한 덩이밖에 없는 떡도 빼앗아 먹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몸뚱이에서 나오는 욕망은 그런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이건 어디까지나 마음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눈물을 흘리고 불쌍한 사람을 동정하고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의 편을 드는 것은, 몸뚱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 사람 마음이 좋다고 할 때 그 사람은 악한 사람이예요. 선한 사람이예요?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저 자기는 못 먹으면서도 남에게 주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희생하더라도 남을 위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못 하면 괴로워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그렇게 하느냐? 아닙니다. 마음과 몸은 근본이 다릅니다. 마음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보이지 않는 신(神)을 좋아합니다. 마음은 상대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나기 전에는 좋아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간들은 몸뚱이가 좋아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 무슨 정욕이니 향락이니 하면서, 한 때밖에 없는 꽃다운 청춘시대를 그냥 보내면 되겠느냐 하면서 몸뚱이를 위주해 가지고 혈기왕성한 청춘시대를 자랑하고 있지만 그런 것은 오래 가지 않아서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을 다 살게 되면 끝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향락의 길은 아무리 가 봤자 허무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바라는 세계의 기쁨이라는 것을 다 해볼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해볼 수도 없거니와 해보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것이 없느냐? 있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들은, 참다운 사람의 길을 가겠다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그러한 마음의 상대를 찾아 헤매는 것입니다. 이 우주를 창조한 신이 있으면 그 신은 천주의 중심이요, 절대적인 분입니다. 우리가 '그 신은 내 마음과 상대하신다' 이렇게 주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장하는 그 내용을 개인적인 것으로뿐만이 아니라 세계성을 이것으로 체계화시켜, 과거 현재 미래를 초월하여 인류의 새로운 소망으로 등장할 수 있는 하나의 사상적인 것으로 만들자 하는 것이, 즉 신을 중심삼은 새로운 사상적인 체제를 갖추어 보자 하는 것이 인류의 마음의 욕망입니다. 그 마음이 욕망하는 세계는 지금의 사회의 조직과 같은 형태의 세계가 아닙니다.
마음이 좋아할 수 있는, 내적인 세계와 같은 조직적인 형태를 갖추는 일을 역사 시대를 거쳐오면서 해온 것, 다시 말하면 양심을 가진 인간들이 바라는 배경, 배후의 터전을 역사시대를 통하여 남겨 나온 것이 무엇이냐 하면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 종교는 어느 한 민족에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종교가 한 민족 국가에서 생겨나긴 했지만, 그 민족의 종교뿐만 아니라 민족을 넘어서 세계로 연결되는 종교의 형태로 발전하는 걸 우리는 보게 됩니다.
마음은 국경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마음은 인간이 다 평등한 자리에서 같은 형제로서 우애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인간의 높고 낮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주권국가가 망하더라도 그 민족을 뚫고 넘어 다른 민족과 다른 나라에 퍼져서 세계적인 하나의 터전을 넓혀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종교권입니다, 이 종교권을 통해서 역사시대의 새로운 문화권이 성립되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를 배운 사람이면 잘 알 것입니다.
몸뚱이는 자기의 한계선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내가 배고프면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먼저 내가 먹고 싶어하는 것이 몸뚱이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몸뚱이를 중심삼고 자기라는 관념을 위주하여 엮어진 인연의 최대 판도는 무엇이냐 하면 국가입니다.
이 몸뚱이를 위주하고 국가를 형성한 국민들은 모두 무엇을 바라느냐 하면 자기 나라밖에 모릅니다.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 집밖에 모르고, 자기 나라밖에 모릅니다. 이 세 가지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자기도 부정하고, 가정도 부정하고, 나라도 부정하는 것입니다.
선이 가는 길이 그렇습니다. 선은 자기를 위주한 데서 출발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좋은 사람이다' 할 때, '네 것은 내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이다'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예요? 아닙니다. 좋은 사람 하게 되면 나에게 좋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마음 바탕이 순수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에게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 봤어요, 못 봤어요? 못 봤지만 있기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크냐? 마음이 얼마나 커요? 그 마음이 욕심대로 하게 되면 세계를 전부다 내 것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큰지 보세요.
하나님이 있으면 그 하나님도 내 것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내 것 만들려면 자격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을 관리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자기 것으로 만들든지 할 수 있지 자격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마음이 있는데, 이 마음의 주체는 누구냐, 마음의 주인을 만나 봤느냐 이겁니다. 좋아하는 데는 혼자 좋아할 수 있어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혼자 앉아 가지고 히죽히죽 웃고 있으면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하고 몸뚱이하고는 서로 싸웁니다. 서로 싸우는 것은 몸도 마음이 싫고 마음도 몸이 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싫다고 하는 것은 그래도 서로 좋아할 다른 것이 있기 때문에 싫다고 하는 것입니다. 싫다는 것이 있는 걸 볼 때에 좋아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좋아할 것이 뭣이냐? 마음의 대상이 뭐냐? 마음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대상도 보이지 않습니다. 성인들은 그것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하게 되면 끝이 없습니다.
마음의 대상을 만났다고 하면 그 기쁨이 얼마나 크겠어요? 그 기쁨이 하루 이틀에 끝날 것 같아요? 얼마나 큰가 보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나님을 모셔 놓고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속 깊이 잠겨 있는 사랑까지도 딱 잡아넣고야 '헤헤' 하고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나에게 사랑을 줄 때도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랑을 원치 않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진짜 사랑을 나에게 몽땅 주어야 '헤헤' 하고 좋아합니다, 우리 아가씨들, 그렇지요? 세상에 부부들을 보더라도 '당신이 날 진짜 사랑하오? 할 때 그 진짜라는 것은 둘이예요, 하나예요?「하나입니다」 그러니 그 말은 '나 하나밖에 모르지요?' 하는 말인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마음이, 그 마음이 주인이 될 수 있는 터전을 갖고 좋아할 수 있다면, 얼마만큼이나 멋지게 좋을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적이겠어요?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세계가 다 거기에 녹아 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그런 주의가 이 땅위에 나오게 된다면 거기에 부딪치는 사람마다 꽃이 피고, 부딪치는 사람마다 향기를 풍기는 봄 절기가 될 것입니다. 사람이 그래 가지고 살아야 멋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통일교회 나오게 되면 그렇습니다. 여기가 용산구던가 ? 용산구, 이름은 좋은데 통일교회 방은 조그맣구만. 이 조그만 방에 들어 앉아 가지고 아주 뭐 엄청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나오기 전하고 나온 후가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학교가 파하면 그저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느라고 바빴는데 통일교회에 들어오고 와서는 왜 그런지 마음이 '야야 교회 가라. 교회 가라' 그런다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옛날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아침에 눈뜨고 밥만 먹으면 학교로 가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교회에 들어온 후에는 학교를 가는 것도 할 수 없어서…. 그리고 가는 데도 교회를 거쳐서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기 학생들, 그런 마음이 안 들어요? 그런 마음이 없는 사람은 통일교회 교인이 아닙니다.
또, 집에 가서 가만히 있으면, 집에는 어머니 아버지 다 계시고, 먹을 것 다 있고, 방도 좋고, 없는 것이 없이 다 갖추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컬컬하고 교회에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보기도 싫은 이곳이지만. 그래도 여기 교회에 오게 되면 좋다는 겁니다, 집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 느껴져요, 안 느껴져요? 그런 것이 안 느껴진다면 통일교회 교인이 아닙니다. 다 허수아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것을 몸뚱이가 느껴요, 마음이 느껴요?
몸뚱이로 말하면 자기 집이 더 편합니다. 집에서는 먹는 것도 좋은 것을 먹지만 여기에서는 깍뚜기밖에 없습니다. 김치도 있다면 형편없는 것이고, 그것도 없어서 소금에 찍어 먹거나 총각김치 하나 가지고 밥 한 그릇 먹으면서도 이 밥이 맛있다고 싹싹 긁어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게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거 왜 그래요? 몸뚱이가 좋아서 그래요, 마음이 좋아서 그래요? 보이지 않는 마음이 좋아해서 그런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 마음이 주인을 만나 가지고 마음의 본향을 찾아갈 수 있고, 마음의 나라를 찾아갈 수 있고, 마음의 세계를 찾아갈 수 있는 길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산골에 들어가서 구덩이를 파고 농사를 짓던 사람이 자기 고향에 간다고 할 때, 산골 집을 나오는 그 마음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기분이 좋다는 겁니다. 지금 출발하는 곳은 산골이지만 고향에 간다고 생각할 때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왜 좋으냐 하면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올바른 것인 줄을 마음이 알기 때문에 마음의 안테나를 중심 삼고 전파를 주고받게 되면 무리없이, 상충없이 자꾸 돌아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나오는 겁니다. 마찬가지 이치라는 거라구요.
인간에게 있어서 이 위대한 마음이, 엄청난 이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주체를 만나 가지고 그와 더불어 영원히 행복을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 봤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처녀들이 시집 가 가지고 사랑받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한 자리는 그야말로 귀한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석가모니 같은 양반은 천상 천하에 유아독존(天上天下 有我獨存)이라고 했습니다. 온 천지간에 나만이 귀한 존재다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알고 보니 나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 멋지지요? 국민학교 졸업도 못한 여자가 대통령의 부인이 되었다면 그 여자가 대통령을 대해서 '여보' 하고 부를 수 있어요, 없어요? 할 수 있지요? '당신이여' 할 수 있어요, 없어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격으로 보면 남편은 대통령이고 부인은 국민학교도 못 나왔지만 한 가정의 부부로서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중심 삼고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보다도 위대한 것입니다.
사랑은 생명보다도 위대한 것이요, 국가를 넘을 수 있고 세계를 넘을 수 있는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 삼은 인연이라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생명을 걸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지식과는 다릅니다.
인간의 가치를 두고 볼 때, 박사학위를 몇 개씩 가지고 있는 대학교의 교수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농부하고 어떤 사람이 더 가치 있느냐 할 때에 학·박사가 더 가치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농민이라고 해서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생명이라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도리어 순수한 가치로 보면 농민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지식에 있어서는 학·박사가 더 나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순수한 면에 있어서는 농민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생명의 가치를 중심 삼은 사랑은 우주와 통하고 온 천하를 꿰뚫고 넘어갈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중심 삼고 볼 때, 우리는 마음의 주체와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개인과 개인이 있으면 기뻐할 수 있는 부부가 생겨날 것입니다. 즉,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주체 되시는 하나님이 있고 그 하나님을 좋아하는 남자와 여자가 있으면, 그들이 만나 이룬 가정이 있게 될 것입니다.
마음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 좋아하는 남자 여자가 이룬 가정이 있으면, 그 가정은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가정뿐만이 아니라 그런 가정이 모인 김씨면 김씨의 친척이 있게 될 것이고, 그런 친척이 합하여 씨족을 이루게 될 것이며, 그 씨족이 많아지면 민족을 이루게 되고, 나아가 국가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이루어진 국가가 갈래갈래 나눠질 수 있어요? 갈래갈래 나눠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 통일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개인에게 있어서는 마음을 중심 삼아 가지고 몸뚱이를 지배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싸움에서 마음이 패배하게 되는 날에는 지옥에 가는 겁니다. 악에 떨어졌기 때문에, 악에 부딪쳐 가지고 고장이 났기 때문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옥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쓰레기통입니다. 인간 쓰레기통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은 내 개체를 중심 삼고 몸뚱이의 상대를 위주로 해서 살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대되는 하늘을 중심 삼고 완전히 주고받아 하나되어야 합니다. 몸뚱이를 중심 삼고 인간 끼리끼리 맺어진 사랑보다도 신을 중심 삼고 맺어진 사랑이 훨씬 강한 것입니다.
이처럼 내적인 마음의 힘이 강하여 외적인 몸의 힘이 침범할 수 없게 될 때, 비로소 악의 침범을 벗어난 완전한 사람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이 되어서 그러한 가정을 이루고 그러한 민족을 이루고 그러한 국가를 이루고 그러한 세계를 이루자는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그러면 현재의 통일식구들은 어떠한 입장에 있느냐 할 때, 현재의 우리 통일식구들의 수는 적지만 우리가 짊어진 역사적인 책임은 엄청납니다. 세계에 수많은 인간들이 있지만 그 책임을 짊어지고 나선 사람들은 보잘 것 없는 소수의 우리 통일의 무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가 바라는 나라도 다르고, 우리가 바라는 세계도 다르고, 우리가 생활하는 표준도 다르고. 우리가 생활하는 내용도 다릅니다. 판이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된 가정을 이루어 참된 선의 조상이 되자는 것입니다. 선한 조상이 되어 가지고 선한 후손들을 남겨 놓자는 것입니다. 선한 후손들을 남길 뿐만이 아니라 선한 나라를 위해서 싸우고, 선한 나라뿐만 아니라 선한 세계를 위하여 싸우자는 것입니다.
현재에 연결되어 있는 악한 세계와 악한 나라에 의해 밀려 나가는 선한 입장에 설 것이 아니라 이것을 밀어낼 수 있는 주체적인 선한 입장에 서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제한된 한계권내에서 생활을 하지만 마음 세계에 있어서는 악한 나라와 악한 세계를 밀어내고, 우리가 바라는 참된 나라와 참된 세계를 생활 속에서 쌓아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만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형제 아닌 형제로서 모였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형제 아닌 형제들입니다. 김씨, 박씨 등 각양 각색의 성씨들이 모였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은 세상의 혈통을 통해서 맺어진 형제보다 낫지 않고는 가짜입니다. 또, 우리는 세상의 부모 아닌 부모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부모 아닌 부모를 모시는 자녀의 입장에 있지만, 세상의 혈육을 받아 연결된 부모와 자녀 이상 하나 못 되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오늘 이 악한 세계의 혈육을 중심 삼고 연결되어 있고, 그 뒷받침이 되어 있는 정적인 문제를 중심 삼고 연결되어 있는 가정 이상의 가정이 나오지 않고는 이 악한 세계에서….
그런 새로운 가정이 나오지 않고는 새로운 민족이 나올 수 없으며, 새로운 민족이 나오지 않고는 새로운 국민이 나올 수 없으며, 새로운 국민이 나오지 않고는 새로운 나라가 나올 수 없으며, 새로운 나라가 나오지 않고는 새로운 세계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세계의 터전이 될 수 있는 존재는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여러분 개개인입니다. 나라가 그 터전이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민족이 그 터전이 되는 것이 아니고 가정이 그 터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의 터전은 '나'입니다. 가정이 모여서 종족이 되니 종족의 터전은 가정입니다. 종족을 규합해서 민족이 되니 민족의 터전은 종족입니다. 종족을 터전으로 해서 민족이 되고, 민족을 터전으로 해서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상의 그 어떠한 종족보다도 단결된 철옹성 같은 종족, 어떠한 민족보다도 단결된 민족, 어떠한 국가가 침범할 수 없는 단결된 국가가 오늘 통일교회 식구로 말미암아 형성되지 않는 한 하나님이 바라는 새로운 세계, 지상 천국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언제 결정하느냐? 어느 때 결정하느냐? 내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서, 우리 통일식구의 현재의 생활에서 여러분 개체를 중심 삼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올 세계가 보장할 수 있는 '나' 앞으로 올 나라가 입증할 수 있는 ‘나', 앞으로 올 국민이 지지할 수 있는 '나' 앞으로 올 종족이 보증할 수 있는 '나' 앞으로 올 가정이 찬양할 수 있는 '나' 그 가정이 터전을 잡을 수 있는 '나', 결국은 내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기에 열 사람이 있으면 열 나라를 중심 삼은 대표자라는 입장에서 사랑하라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 여기 용산교회에 모인 사람이 한 50명 정도 되는데, 이 50명을 매일같이 보는 김 아무개 박 아무개, 무슨 박양, 이양으로서 알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개인이로되 한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대표자로 알라는 겁니다. 50명이면 50국가의 대표자들로 알아야 되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서로 사랑해야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서로 사랑함으로써 국가를 초월하고, 민족 감정을 초월하고, 오색 인종적 감정을 초윌하여 거기에 간막이 되어 있는 모든 것을 완전히 헤쳐 버릴 수 있는 심정적 훈련을 현재의 입장에서 여러분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처녀 총각이 있으면. 단순히 처녀 총각으로서 생각하지 말라 이겁니다. 30억 인류를 대표한 하나의 총각이요, 30억 인류를 대표한 처녀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이 원하는 영원한 주체 되시는 하나님을 중심 삼고, 하나님과 더불어 생각하고, 사모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이래도 같고 저래도 같으니 존경할 수밖에 없는 남자 여자로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 가지고 가정을 이루면 그 가정이 얼마나 멋지겠어요?
그 부부가 사랑하면서 '우리는 하늘땅을 대표한다. 여자가 남극을 대표한다면 남자는 북극을 대표한다.' 또 '남자가 동쪽을 대신한다면 여자는 서쪽을 대신한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 부부가 사랑하여 안팎으로 하나되는 것은 온 세계 만민을 대표한 종합적인 사랑의 주체로서, 사랑의 대상으로서 사랑하면 하나되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를 우리 품에서 사랑하고 세계 인류는 우리 사랑권 내에서 산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부부가 되면, 그런 부부에게서 아들딸이 태어난다면 어떠한 아들딸이 태어나겠어요? 여러분, '태교'라는 말도 있지요? 거기에서는 멋진 아들딸이 태어나는 겁니다.
성인은 어떤 사람이냐? 신을 중심 삼은 도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라야 성인의 반열에 동참할 수 있는 겁니다. 통일교회도 그렇습니다. 인간을 위주하고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구요. 절대자이신 신이 있으면 그 신을 중심 삼고 가르쳐 주는 겁니다. 그 신은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세계를 찾고자 하십니다. 대한민국도 귀하지만 세계의 모든 국가를 찾고자 하십니다.
세계의 모든 국가가 악하더라도 그 가운데서 선한 사람을 세워서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양 각색의 족속들이 다 모였습니다. 여러 족속 가운데서 뽑혀 가지고 하나의 나라를 추구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일개 국민이 아니라 세계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구하는 데는 한꺼번에 다 구할 수 없습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 중에서 좋은 사람들을 모아서 하나님이 좋아하는 민족을 만들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나라를 만들고,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 선 하나님이고, 그런 하나님을 주체로 삼고 그 하나님의 뜻을 성사시키기 위한 세계 이념을 갖고 나온 우리 통일교회라면, 동서남북으로부터 뽑혀 온 우리는 민족적 대표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같은 말을 쓰고 있고, 감정이 통할 수 있는 생활환경을 갖고 있지만 초민족주의자들입니다. 그러니 '나는 중국사람이다. 나는 서양 사람이다' 하는 관념을 가진, 실지로는 관계가 없는 우리 식구들이 관계를 맺어서 그러한 감정을 가지고 그런 때가 되더라도 넘어설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50명이면 50개 국 사람들이 모였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형제 아닌 형제가 모여 부모 아닌 부모를 모시고, 하나의 결속된 가정 형태와 하나의 결속된 종족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변함없이 그 나라를 향하고 그 세계를 향하여 가는 길에 있어서 탈선하지 않고 직행해 가야 합니다.
통일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사탄들은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가 걸어오면서 욕을 먹은 겁니다. 지금까지 별의별 소문이 다 났습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가면 뭐 달라붙는 전기 장치를 하고 요술을 한다, 벌거벗고 춤춘다, 문선생한테 반해서 간다는 등 말들을 많이 들었지요? 문선생한테 반할 게 뭐예요? 문선생한테 반한 게 아니라구요.
마음이 그리워하는 최고의 주체 되시는 진짜 상대를 만났으니,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주체를 만났으니 밤이나 낮이나 가고 싶은 것입니다. 가고 싶어서 마음이 요동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의 소리를 듣습니다. 영계를 통하면 그 소리가 들려요. 마음이 넘어가고 싶어서 '아이구 가고 싶다'고 소리치는 것이 들려요. 들리면 영계를 통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들이 어린 아기가 배가 고파서 떼를 쓰면서 엄마 젖을 그리워하는 이상으로 간절히 보고 싶어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몰라 가지고는 통일교회 교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체험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립고 보고 싶다 할 때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간절하게 되면 다 들려오는 겁니다. 라디오와 같이 그렇게 통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가만히 앉아서 대통령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만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살아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마음의 주체와 더불어 천지를 무대로 해서 세계 인류를 친족으로 삼고 사는 데에 멋들어진 인간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마음은 그 세계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여러분의 마음의 주체가 없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타락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몸뚱이의 상대될 수 있는 기반은 가졌지만 마음의 상대될 수 있는 주체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찾아 헤매 온 것이 지금까지의 인생의 행로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찾았다 할 때의 자극은 몸뚱이의 제한된 감정을 가지고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 연결되어 들어오는 자극은 입체적이요, 무한한 것입니다. 한계선이 없습니다. 들어가고 들어가고 또 들어가도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무한한 세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세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러한 세계가 인간 앞에 있는 것을 아는 마음은 그 세계를 얼마나 동경하고 얼마나 그리워하겠는가를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런 곳에 가려면 마음에 상치되는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할 것이 아니라, 몸뚱이를 잡아채어 끌면서 마음이 하자는 대로 통일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현재의 통일교회 식구인 여러분은 개체로 있지만 개체가 아닙니다. 내가 개체라 하더라도 나는 나라를 대표해서 있는 겁니다. 나 혼자 남아 있더라도 나는 나라를 대표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어떤 나라냐 하면 마음의 나라입니다.
마음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누구냐 하면 마음의 아버지입니다. 그 마음의 아버지와 가까이에 있는 내가 아버지와 합하여서 마음의 부자, 부녀로 만나 가지고 서로 서로 기뻐할 수 있는 본향, 본연의 동산을 그리워하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이것을 찾아 가지고 비로소 안식하게 될 때에 모든 만복이 여기에 깃드는 것이요, 만인간의 욕망이 여기에서 다 성취되는 것이요, 행복의 기원이 여기서부터 새로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통일교회 현재의 입장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현재의 이 입장이 나타나기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하셨느냐 하면 자그마치 6천년 동안을 수고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복귀 역사를 중심 삼고 계산할 수 있는 연수입니다. 그 전의 역사는 몇십만 년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이런 오랜 역사를 통해서 이럴 수 있는 한때를 마련하셨습니다.
우리 시대에 인간의 소원과 하나님의 소원의 접촉점이 이루어지고, 우리 환경권내에서, 평면적인 사회생활권내에서 하나님의 소원과 인간의 소원이 접선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세계적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사상은 세계를 제패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바입니다.
그러면 현재의 나의 입장과 가치를 볼 때, '나는 나라를 대표했다. 나는 하늘땅을 대표했다. 나는 아버지를 대표했다'고 하는 그런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살아 남아 있는 한 아버지가 바라는 새로운 가정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 남아 있는 한 아버지가 바라는 종족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 남아 있는 한 아버지가 바라는 나라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시일이 문제이지, 내가 살아 있는 한 아버지가 바라는 세계는 나로 인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늘을 대신하고 하늘나라를 대신하는 입장입니다. 나는 나라를 대신하고 민족을 대신하고 가정을 대신하고 나아가 승리적 나라를 대신하는 입장인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천상천하에 유아독존(天上天下 有我獨存) 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형제간에도 열 형제가 있으면 그 형제 가운데서 화목을 잘하게 하는 형제가 있습니다. 이 형님, 저 형님, 이 동생, 저 동생을 모두 좋게 하는, '야, 개가 없으니 섭섭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와 같은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기 용산지구에서도 '아무개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 지구장도 '재미가 없다', 학생들도 '재미가 없다', 아줌마들도 '재미가 없다', 처녀들도 '재미가 없다', 아저씨들도 '재미가 없다' 하면서 그가 안 오면 '아무개 안 오나' 하며 기다리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있으나 없으나…' 그런 사람은 틀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서도 좋아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더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유입니까, 무입니까? 여러분은 있으나 없으나 한 무가치한 존재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녀석은 생각이 그릇돼 있어요. 그런 녀석들은 자기를 위하여 이용하려고 하는 녀석들이라구요. 그런 녀석은 그 누구도 절대로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 대신이요, 세계 대신이요, 국가 대신이요, 민족 대신이요, 가정 대신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별의별 일을 다 했지. 공산당 세계에 들어가서도 감옥 생활을 했고, 민주 세계에서도 감옥 생활을 했고, 일본에서도 감옥 생활을 했고, 이 대한민국에서도 감옥 생활을 했지만 그런 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 아무리 큰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아니면 안 된다. 대한민국 그 누구라 하더라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티어 죽지 않고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선생님이 필요합니까? 얼마나 필요합니까? 이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쓰다 남은 무슨 종이 짜박지만큼 필요해요, 신다 벗어 내버린 신짝만큼 필요해요? 나 그거 싫습니다.
재미없어 매일같이 싸우는 남편만큼 필요해요? 나 그거 싫어. 하다 말고 그만둘까 말까 하는 사정 만큼 필요해요? 나 그거 싫습니다. 대통령 중심삼고 서로가 사기 모략해 가지고 뭐 해먹겠다고 할 때 그 대통령만큼 필요해요? 나 그거 싫어.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의 입장은 싫습니다. 그 이상으로 필요해야 됩니다.
인간 몸뚱이 중심 삼고 바라는 것은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몇 해가 지나가게 되면 몸뚱이의 인연과 더불어 다 흘러가 버리는 겁니다. 마음은 늙어요, 안 늙어요? 여기 50 넘어 보이는 아저씨, 마음이 늙어요, 안 늙어요?
저렇게 50이 넘었어도 마음은 아가씨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난다는 것입니다. 노인들과 얘기하는 것은 재미가 안 난다는 겁니다. 마음은 언제나 봄동산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뭘 말하느냐 하면 마음은 늙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몸뚱이의 인연은 몸뚱이가 늙어지면 인연이 끊어지게 되고 흘러가 버리지만, 마음의 인연은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 영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젊어 가지고 꽃이 되어 향기가 풍기듯이 주체와 대상이 좋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가지고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그 자리에 한번 들어가 보면 얼마나 좋을까 !
통일교회 문 선생은 그런 맛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욕을 먹고 별의별 수난을 겪으면서도 지치지 않고 후퇴하지 않고 버텨 나왔습니다. 망할 줄 알았던 통일교회가 발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용산지구는 크지 않지만…….
여기 이렇게 이게 뭐예요? 다음에 올 때는 이걸 전부 헐어 치워 버려야겠어요. 나라를 대표한 패들이 이게 뭐예요? 나도 이북에서 나올 때는 주먹 갖고 나왔습니다. 감옥에서 나올 때는 수의(囚衣)를 입고 나왔습니다.
일전 한푼 없이, 그러나 이제는 내가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뭐 부러울 게 없을 정도로 기반 닦아 놨습니다. 여러분이 도와줬어요? 내가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신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신세지고 살지 말자는 것입니다.
'본부에서 좀 도와주면 좋을 텐데. 본부에서 다른 지구는 도와주는데 용산지구는 지구장이 못났기 때문에 본부의 원조도 못 받아온다. 저 지구장은 무능력자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죽어야 돼요, 안 그래요? 그렇게 생각할 게 뭐예요? 본부 대신 내가 도와주고 내가 능력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 얼마나 좋아요?
마실 것을 단 것만 갖다 놨구만. 물을 좀 갖다 놓지. 매운 것도 필요하고, 짠 것도 필요하고, 신 것도 필요한데 전부 다 단 것만 갖다 놓았군. 어디나 가면 이런 단 것만 갖다 줘요. 며칠 동안 순회를 하게 되면 자기들은 정성을 다한다고 해 가지고 이런 것만 갖다 줍니다.
물이 제일 맛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이 집 가도 이렇고 저 집 가도 이렇습니다. 나중에는 보기만 해도 싫증이 납니다. (웃음) 여름에 순회를 하게 되면 어디 가든지 수박뿐입니다. 어떤 때는 수박이 원수 같다고요.
여러분은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믿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보고 나를 믿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을 믿지요? 옛말에 '인심은 조석변이요. 산천은 고금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연 산천은 변하지 않는데 사람의 마음은 아침 저녁으로 변한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그래요?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마음은 더 잘 변하지? 자기가 자기를 못 믿는 주제에 '하나님 날 믿어 주십시오' 한다고 해서 그거 믿어 줬다가는 하나님이 망합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그건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믿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어느 누가 뭐라 하든 내가 나를 믿고 내가 결심한 바를 믿는 것입니다. 나라의 주권자가 반대하더라도 내가 하늘 앞에 맹세한 것을 실천하는 것은 선입니다.
감옥에 들어가서도 절개를 지키고, 사생결단하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지조와 절개를 가지고 '나를 죽이시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겠다고 약속했던 사나이의 약속은 변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야 쓸 만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믿을 수 있어요? 여기 젊은 녀석들, 내가 한번 시험해 보겠습니다. 내가 기동대를 만들어 사방천지에 내보내는 겁니다. 진짜 너를 믿겠느냐, 하늘이 믿게끔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건 단시간에 시험할 수 있습니다. 여기 젊은 사람들 자신 있어요?
좋은 것이 있으면 눈을 조그맣게 뜨고 살랑살랑해 가며 움직이는 솔솔이떼들, 이건 뿌리도 없는 것입니다. 왔다갔다 왔다갔다하는 이런 뱀 같은 패들은 사람 축에도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디 가나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말도 살랑살랑 눈치를 봐 가지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대번에 발길을 돌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번 결심한 바는 죽어도 지켜야 합니다. 약속을 했으면 망해 자빠지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러면 그의 아들딸들은 흥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통일하는 데 이랬다 저랬다 해 가지고 통일할 수 있어요? 통일의 통자는 거느릴 통(統) 입니다. 중심이 되어 본을 보여 주고 그것을 믿고 따를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하는 데에서부터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익보려고 오는 녀석들은 그렇게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야 됩니다. 이러한 기준을 가져야 됩니다. '현재의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위해서 산다. 하늘을 소개하는 데는 나 아니면 안 된다. 세계 30억 인류 가운데 나 아니면 하늘을 소개할 자가 없다. 우리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세계 30억 인류가 총칼과 원자탄을 전부다 동원하여 가지고 우리를 습격하고 폭격하더라도, 후계자를 세워서 일을 수습하는 일이 있더라도 변함없는 지조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중심적인 주체성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 가지고는 통일식구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 지구장이 이랬다 저랬다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쫓아내야 됩니다. 좋을 때는 하나님이 좋다고 '헤헤' 하고, 조금만 핍박받으면 '아이구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으면, 나는 후퇴하고 식구들만 내세울걸' 한다면 그는 믿을 사람이 못 됩니다. 좋을 때는 누구나 다 안심하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에 하나되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어려운 일은 어떠한 것이냐 하면 경제적인 위협을 받을 때, 생명에 대한 위협을 받을 때, 사랑의 위협을 받을 때, 이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3대 위협입니다. 알겠어요? 돈에 대한 위협, 생명에 대한 위협, 사랑에 대한 위협, 이것이 인간 사회의 최대의 위협의 대상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뜻을 위해서 물질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느냐? 뜻을 위해서 생명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느냐? 뜻을 위해서 사랑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느냐? 물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뜻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건 문제가 안 됩니다. 자기가 먹고 사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고생하지요? 축복받은 아줌마들은 일선으로 출발이다 할 때 그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살림살이 다 잃어버렸지요? 남편을 잃어버렸지요? 자식들을 다 집에 두었지요?
자기 생명까지도 몽땅 부정하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가정 주부에게 있어서 생명의 기준이 어디 있어요? 가정 주부에게는 자기 남편이 생명의 기준인데 일선에 나감으로써 그것을 다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고생해 가지고 재미있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을 한꺼번에 다 들이 박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뜻을 위해서는 못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이라면, 뜻을 아는 무리들에게 있어서는 회사가 문제가 아니라구요. 뭘 많이 갖는 게 문제가 아니라구요. 이혼 당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구요.
아까 얘기했지만 하나님의 복귀 역사는 재창조 역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과 아들과 부부의 인연을 세우고자 한 것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었는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찾기 위한 역사라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유혹을 받은 것이 타락입니다.
그 다음에는 개인 완성을 해서 하나님의 아들인 생명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못 되었으니, 생명에 대한 유혹을 받은 것이 타락입니다. 또, 완성한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축복을 못 받았으니 사랑에 대한 유혹을 받은 것이 타락입니다. 3대 목적, 즉 물질과 생명과 그 다음에는 사랑을 지금까지 하나님이 다시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것을 나 자신을 두고 볼 때, 내 생활에 있어서 어떻게 되느냐? 구약시대는 물질적 시대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신앙의 소생권내에는 물질이 있습니다. 그 다음 장성권내에는 자녀가 있습니다. 그 다음 완성권내에는 부모가 있습니다. 부모는 사랑을 대표합니다.
그것이 우리 생활 환경권내에서 6천년의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 역사를 표방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6천년의 종적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한다고 했지요?(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이것이 소생시대, 장성시대, 완성시대입니다.
구약시대는 물질의 시대입니다. 그 다음 신약 시대는 아들의 시대, 생명의 시대입니다. 인격 (人格)시대, 자녀의 시대입니다. 성약시대는 부모의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물질과 생명과 그 다음에 부모를 위협합니다. 부모는 사랑입니다. 요것이 여러분 앞에 딱 걸려드는 거라구요.
뜻 앞에 있는 여러분에게 물질이 문제입니까? 통일교회 아주머니들에게 패물이 문제입니까? 지금 아들이 죽게 됐는데, 자기 남편이 죽게 됐는데 패물이 문제예요? 그건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물질을 희생시켜야 됩니다. 요렇게 되는 거예요.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는 아들을 희생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리예요, 도리.
하나님이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아들을 보내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들과 사랑으로 연결지어 그 사랑이 아들에게 전해짐으로 말미암아 아들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만민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생활권내에 있어서 물질과 자녀와 부부, 다시 말하면 물질과 생명과 사랑은 불가분의 것으로서 언제나 필요 불가결하다 이겁니다.
기성교회에서는 세상을 버리고 천당가려고 하지요? 이걸 알아야 돼요. 하늘만 위주하는 것도 반쪼가리요, 세상만 위주하는 것도 반쪼가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세상 일을 겸해 가지고 하나로 만드는 것이 완전한 것입니다. 통일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 그렇게 되는 데는 무엇을 중심 삼아야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뜻 앞에, 물질 앞에 내가 모범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식 앞에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물질보다도 뜻을 중요시하지 않으면 걸리는 것입니다. 자식보다도 뜻을 중요시하지 않으면 걸리는 것입니다. 자기 남편보다 자기 아내보다 뜻을 더 중요시하지 않으면 걸리는 것입니다.
왜 뜻보다 더 중요시해서는 안 되느냐? 타락권내의 물질이요, 타락권내의 인연을 통하여 맺어진 자녀요, 타락권내에서 이루어진 부부이기 때문입니다. 타락권내의 내용을 가지고는 하늘과 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걸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천국갈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이 세 가지를 극복한 사람입니다. 이 세 가지를 극복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갑니다. 그리고 천국갈 수 있는 사람은 남을 위해서 산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팔아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라고 했던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 물건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물건은 응당히 교회의 물건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주체적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언제든지 그 물건을 돌려보내야 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은 자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것이고 세계의 것입니다. 내 것은 세계의 것인 동시에 대한민국 것이고, 우리들의 것입니다. 다만 대한민국 자체가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중간적인 책임자의 입장에서 관리한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 안 하거든요. 나라가 원하게 될 때는 집안이 다 망하더라도 그 물건을 나라에 바쳐야 됩니다. 그것이 도리입니다,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식도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위해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것입니다. 자식을 바쳐 가지고 안 되거들랑 자기 부부까지도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이러한 기준에 서지 않고는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못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지금까지 그런 싸움을 해 나온 사람입니다. 그 싸움을 해 나왔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 부러운 것이 없지만 지금도 그런 생활을 한다는 거예요.
누가 돈을 어디에 물쓰듯 썼다고 해서 그것을 놓고 파고들어 밝혀내고 뭐 추궁하지 않습니다. 내가 믿고 주는 것입니다. 하늘 것으로 믿고 바쳐진 물건이기 때문에 그 물건을 잘 다루는 사람은 복을 받지만 못 다루는 사람은 벌을 받는 것입니다. 대번에 벌받는다는 것입니다.
내 물건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식구들에게 돈을 줄 때는 덜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 정성이 담긴 마음과 더불어, 그 마음 이상으로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마음 이상으로 주어야 하는 것이 물질입니다. 통일교회의 여러분은 그러한 심정적 기준을 가져야 됩니다.
타락한 세계의 나라와 타락한 세계의 어떤 사람보다도 물질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나라를 귀하게 여기고, 세계를 귀하게 여김으로써 하나님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현재에 있어서의 여러분이 통일교회 식구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임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여러분이 교회에 나올 때, 여기에 있는 식구들, 이런 정도의 식구들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 나올 때는 자기 부모 처자를 전부다 데리고 나오라는 겁니다. 자기 형님 누나 다 데리고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이 어머니 아버지, 자기 사촌이나 사돈의 팔촌까지 전도하기 위해서 얼마나 피눈물을 흘려 봤느냐? 그 한 생명을 끌어 주기 위해서 밤을 세우면서 정성을 들여 기도하면서 자기 일신을 제물삼아 얼마나 몸부림쳐 봤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처한 환경에 있어서 중심이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중심이 되어 가지고 나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한 가지만 더 얘기합시다. 그러면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이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악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악해 가지고는 중심이 못 되는 거예요. 선한 사람은 흥해야 되고, 악한 사람은 망해야 됩니다.
어느 살인 강도가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볼 때에, 자신도 살인 강도이지만 화면에 강도가 나온다면 그 강도가 강도질 하기 전에 순경에게 잡히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강도가 잡히면 잘 되었다 그런다는 것입니다. 강도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강도도 악한 녀석은 싫어한다는 겁니다.
또, 자기는 아무리 살인강도라도 자기 자식들에게는 '이놈의 자식들, 너희는 그러면 안 돼. 절대 그런 나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부모는 교육을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왜 그러느냐? 악은 망하고 선은 남아지기 때문입니다. 악은 순간 가다가 쓰러지는 것이지만 선한 것은 영원히 가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 어떻게 아느냐? 우리 한번 생각해 봅시다. 학생들을 중심 삼고 생각해 보면, 친구들 중에서 좋은 친구는 하루 하루 만나다가 며칠 동안 못 만나면 만나고 싶지요? 만나고 싶어요, 안 만나고 싶어요? 만나고 싶지요? 안 나타나면 그 녀석이 왜 안 나타나나 알아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친구를 좋은 친구라고 하는데 보편적으로 좋은 친구라 할 때는 어떤 사람이냐? 나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냐, 나에게 덕을 입히는 사람이냐? 어떤 사람이라구요?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예요, 덕을 입히는 사람이예요? 덕을 입히는 사람입니다. 덕을 입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나 때문에 자기는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이익을 보게끔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선은 무엇이냐? 자기를 중심 삼고 자기를 위하려는 자리에서는 선한 종자가 나올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자기를 중심 삼고 이익보겠다는 패들 가운데는 선한 종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그 말이지요?
자기를 중심 삼고 나를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예요, 악한 사람이예요? 그는 악한 사람입니다. 남의 빚을 져 줄 수 있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 이겁니다. 남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이익보겠다는 녀석은 악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나에게 있어서 좋고 나쁜 사람은 무엇을 중심 삼고 보느냐 하면 나에게 갖다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요, 나에게서 빼앗아 가는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를 중심 삼고 볼 때에 나에게 갖다 주는 사람은 갖다 주는 만큼 손해보는 것이요, 나에게서 빼앗아 가는 사람은 빼앗아 가는 만큼 이익을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느 쪽이 선한 사람이냐 하면 손해보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선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선악의 기준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선한 길을 가려고 할 때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심부름시키고 이용해 먹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 가운데 선한 녀석이 있는가 찾아보라 이겁니다.
이용해 먹겠다고 하는 녀석이 선한 녀석이예요, 악한 녀석이예요? 요런 녀석은 악한 녀석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이용당하겠다 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런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왜 악은 망하고 선은 흥하냐? 이것을 여러분 자신을 놓고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나를 중심 삼고 볼 때에 악한 사람이 내 것을 한 번 빼앗아 가고 두 번 빼앗아 가고 자꾸 빼앗아 가면 내가 따라가겠어요, 도망 가겠어요? 내 것을 한 번 빼앗아 가고, 두 번 빼앗아가고, 또 세 번째 빼앗아 가려고 하면 내가 도망가게 되요, 따라가게 되요? 도망갑니다.
그럼 둘이 있다가 내가 도망가니까 그는 혼자가 돼요, 둘이 돼요? 그는 고독단신이 되는 것입니다. 고독단신이 좋아요, 안 좋아요? 자기 좋기만 바라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자기 욕심만 부리는 녀석에게서는 친구 열사람이 있으면 열 사람이 다 도망갑니다. 열 명이면 열 명이 다 도망가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다 도망가고 혼자 되니 어떻게 되겠어요? 자기까지 늙어서 죽으면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죽으면 '그 녀석 잘 죽었다. 어이 시원하다. 그 녀석 잘 죽었다'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이렇게 자기 위주하는 사람은 열 친구가 있으면 열 친구를 다 잃어버리고 혼자가 되어 무너져 없어지고 맙니다. 그렇게 되니까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내가 남을 위해서 누구에게든지 희생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내게서 친구들이 떨어져 나가겠어요, 안 떨어져 나가겠어요? 그 친구들이 선전해 가지고 자꾸 '닐리리 동동' 붙여 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게 되면 자꾸 친구들이 불어나기 때문에 흥하는 겹니다. 마을을 위해서 밤낮없이 수고하는 사람이 있으면 맨 처음에는 그를 비웃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저 녀석 괜히 저러지. 남자가 되어 가지고 저게 뭐야. 어디 며칠 가나 보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년, 이년, 삼년…, 끝까지 그 동네가 그 사람의 신세를 지게 될 때에는 그 동네가 그 사람을 좋아해요. 나빠해요? 신세를 진 후에는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천지의 이치가 받았으면 줘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공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좋아 안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그 부락을 위해서, 전체를 위해서 수고하고 나면 나는 어떻게 되느냐? 나는 하나도 없는 거지가 되고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부락 전체가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끝까지 부락을 위해서 수고하게 되면 그 부락 전체가 나에게 몽땅 점령당하는 겁니다. 끝에 가서는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종교는 끝날을 바라보며 희생해라. 희생해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무서운 작전입니다. '남을 위해 적선해라. 적선해라' 하는 것이 망하라는 것이요, 홍하라는 거예요? 흥하라는 것입니다.
원수까지도 위해서 기도하고 생명을 주면서 축복하며 가는 기독교에게는 원수 나라의 사람들도 달라 붙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운동은 세계적으로 커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이 종교가 세계를 점령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부락에서 그렇게 희생하고 나가게 되면 그 부락 전부가 자연히 그 사람의 신세를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는 그 부락에서 이 사람을 그 부락의 대표자로 세우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당신이 제일 좋으니 당신이 우리를 지도해 주소' 하며 자청해서 중심존재로 추대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집안에서도 자기 식구가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을 위해서 있는 정성을 다하고 희생하다 보면 중심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보다도 식구 전체 앞에 더 희생하게 되면 아버지 어머니도 우리 집에는 아무개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하고, 형님 누나도 모두가 기쁨으로 아무개를 중심존재로 세우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틀려요. 안 틀려요?
그렇게 되면 그 다음에는 중심존재가 될 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주인이 되어서 주관해 주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중심존재만으로는 싫소. 당신이 우리의 모든 것을 관리 처리해서 우리의 생사문제까지 전부 책임지는 주인이 되어 주소' 하고 바라는 겁니다. 이것이 선이 가는 작전입니다.
그렇게 되나 안 되나 보세요. 그렇게 되나 안 되나 해보라는 겁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 삼고 이익을 보자 하게 되면 망하는 것이요, 남이 이익을 보게 하면 흥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태어난 인생으로서 빚을 지워 주고 죽어야지 빚을 지고 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빚을 지워 주고 죽는 사람은 그 후손이 끊어지지 않지만 빚을 지고 죽는 사람은 후손이 끊어집니다.
돈 빚도 물론이지만 인생에 있어서 빚을 지고 죽는 사람은 후손이 마른다는 겁니다. 자꾸자꾸 싫다고 떨어져 나가니까 없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빚을 지워 주고 가게 되면 자꾸 엉기니까 커지게 마련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런 작전을 하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통일교회라는 간판을 붙였지만 통일교회를 위한 간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관이 다릅니다. 이 간판은 나라를 위한 간판입니다. 나라를 찾기 위해서는 간판도 떼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간판도 떼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통일교회의 책임자도 되지만 통일교회뿐만 아니라 나라를 살리기 위한 일도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을 위해서 빚을 지지 않으면 개인의 중심이 되고, 가정을 위해서 빚을 지지 않으면 가정의 중심이 되고, 종족을 위해서 종족 앞에 빚을 안 지면 종족의 중심이 되는 겁니다. 민족을 위해서 민족 앞에 빚을 안 지고, 민족 전체 앞에 빚을 지워 주게 되면 최후에는 그 민족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서 국가 앞에 빚을 안 지면 그 국가의 중심으로 서는 겁니다. 그 중심으로 완전히 섬으로써 그들이 그 가치가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될 때는, 자기들이 그 가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당신이 나의 주인이 되어서 영원히 지도해 주십시오' 이런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이 로마 병정을 위해서, 원수들을 위해서 복을 빌었던 작전이 멋진 것입니다. 원수나라에게까지도 빚을 지우고 갔다는 것입니다. 이 공식에 적용해 가지고 볼 때 그것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아버지여, 저들이 저들의 죄를 알지 못하고 저런 행동을 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자기 생명을 앗아가는 그 원수들에게도 복을 빌어 주는 아량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로마 병정들 앞에 빚을 졌어요, 빚을 지웠어요? 억울하게 생명의 침범을 받은 데다가 사랑의 빚까지 지워 놨으니 로마는 예수님 앞에 완전히 빚장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고로 인륜 도덕의 표준은 적선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의 신세를 지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의 신세를 져야 되겠어요, 통일교회에 신세를 지워야 되겠어요? 통일교회의 신세를 지기 위해서 다니는 녀석은 통일교회 앞에 있어서 원수입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의 신세를 지겠다고 하는 사람이 통일교회 편이 되겠어요, 통일교회를 팔아먹는 원수가 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통일교회를 팔아먹는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 앞에 신세를 지우면 통일교회가 내 것 되는 것입니다. 간단한 겁니다. 또 통일교회 전체 식구 앞에 내가 신세를 지워 주기 위해 활동하면 통일교회의 중심존재가 안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이 어떤 생활이었느냐 하면,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빚 안 지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나에게 빚을 졌으면 졌지 내가 여러분의 빚을 안 진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기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천적인 선한 종족의 보따리를 남겨 놓아야 할 게 아니예요? 악이 선을 쳐 가지고 점령할 도리는 없습니다. 악했으면 선 앞에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왔다가 건들건들 나가면 자기 선조들이 쌓아 놓은 기반까지도 통일교회에 몽땅 빼앗기고 껍데기만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결론을 짓자구요. 선과 악이 무엇이냐? 사적인 것은 악에 속하는 것이요, 공적인 것은 선에 속하는 것입니다. 간단한 거라구요.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종교가 다루는 분야는 어디까지냐? 종교는 공적인 분야를 다룹니다. 그런데 공적인 생활 내용은 인간 세계뿐만 아니라 영계에까지, 주체적인 절대자 하나님에게까지 입체적으로 관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적으로 나라를 이용해 먹고, 자기 개인이나 가정을 위해서 국가 재산을 막 취하게 되면 나라가 망하게 됩니까, 안 망하게 됩니까? 그렇게 되면 나라가 부패했다고 하지요? 그렇지요?
공적인 책임을 진 공복인데, 국가의 공무원인데 공적인 것을 자기가 가지면 망하는 겁니다. 그것은 독약을 자기 자식들에게 먹이는 것보다 더 무서운거라구요. 안 망했으면 앞으로 망하게 되는 거라구. 하늘이 망하게 만드는 거라구.
통일이 어디서 벌어지느냐? 통일은 자기를 위하는 데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를 위하는 데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하는 데서 벌어집니다. 이것이 통일의 방안입니다.
회사에 있어서 앞으로 회사의 주인의 자리를 인계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남보다 10분이라도 먼저 출근하고, 여덟 시간 일을 하게 되면 일을 할 때 내가 회사에 빚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서 일하고, 퇴근을 하는 데도 남보다 1분이라도 더 많이.
더 열심히 일하고 퇴근을 하겠다고 하게 되면 그는 오래 안 가서 그 회사의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간단해요. 그러한 기준으로 생활하게 되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자기의 생활무대에 있어서 공복이 되어야 됩니다. 공복이 되어야 됩니다. 사적인 입장에서 자기를 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공적인 입장에 서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통일교회가 그렇게 나가게 되면 통일교회의 발전은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아무리 누가 뭐라 해도, 나라가 뭐라 해도 막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선은 부딪치는 때마다 발전하는 것이요, 가는 곳곳마다 백승(百勝)하는것입니다. 어려운 것 같지만 이 원칙에 입각하게 될 때는 이 원칙이 틀리지 않는 한 반드시 승리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 원칙에 의해서 살고, 이 원칙에 입각하여 희생하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하는 것입니다. 내가 본 이익을 내 이익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더 큰 이익으로 여기고,
승리를 하면 그 승리한 가치를 내 것으로가 아니라 나라의 것으로 세계의 것으로 돌리는, 이런 사상을 펴 나가는 단체가 있다면 세계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단체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진 통일 사상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불과 20년 남짓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전후에 수천년의 인류 역사와 관계되어 있고, 그 전체 역사를 대신한 것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결되고, 이 터전이 닦아지는 데는 다른 데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 3자에게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게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중심 삼고 되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
몸과 마음을 두고 볼 때에 어떤 것이 공적이냐 하면 몸보다 마음이 공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중심 삼고 몸을 굴복시키는 승리적 기반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빚을 지지 말고 빚을 지우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빚을 지우는 데는 평면적인 빚을 지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빚을 지우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된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에 빚을 지워 주고도 그것을 받지 못하게 되면 반드시 그 사람의 후손이 하늘로부터 받아 가지고 이 땅 위에 와서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현재의 입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고, 앞으로 여러분이 뜻 앞에 있어서 모든 것을 극복하고 나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