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Ⅰ)> 사랑하는 아버님, 이날은 만민에게 속죄의 은사를 허락하신 날이옵니다. 전전하는 역사의 과정을 거치시는 가운데, 수고의 발자취를 남기시면서 역사하시던 아버님의 피어린 노정과 앞서 간 선열들의 순교의 발자취를 이 시간 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날, 이 한 시간에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는 것이 아벨이 피의 호소를 했듯이 간절히 제물을 드리는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썩어질 몸을 중심삼고 모이는 모습들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고, 성별의 제단이 되어서 아벨이 아버지와 전체의 만물 앞에 향기 나는 제물이 된 것과 같이 보잘것없는 소수의 무리들이나마 삼천만을 대신하여 아벨적인 제단을 쌓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부디 원컨대는 아벨이 피 흘리는 것을 보고 가인의 입장에서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자리에 서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천심을 대한 심정과 피의 호소의 심정이 사무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는 아직까지 선의 핏자국이 남아 있사옵고, 피어린 이 땅이요, 억천만년의 탄식의 멍어리를 갖고 있는 이 땅이오니, 이를 위하여 아버님 앞에 기쁨의 제물로 나타나 감사의 경배를 드릴 수 있는 자녀가 삼천만 민중 가운데 많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24억 인류 가운데 많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억천만년의 쌓여진 죄악의 담을 헐고 환희의 동산을 이루어 아버지를 기쁨과 영광 가운데 모실 수 있는 자녀의 무리가 방방곡곡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하늘이 나를 찾아오시기 위해, 나를 세우시기 위해 6천년 동안 수고하신 손길이 남아 있음을 저희들은 오늘날까지 망각하고 살아왔사옵니다. 내가 오늘 편안하게 살 수 있고, 편안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이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 한 자체가 오늘 이 자리에 있기까지의 역사 과정에 어려있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피어린 수고의 손길 때문임을 망각하는 자리에 서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온유겸손히 엎드리는 하나의 제물로서, 드려지는 하나의 제물로서, 바쳐지는 하나의 기쁨의 제물로서 아버님께 경배드릴 수 있는 자녀들로 세워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잠들어 있는 이 성중을 깨우쳐 주시옵소서. 어둠 가운데서 방향을 알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이 민족을 불쌍히 보시옵소서. 이를 위하여 세우실 자녀를 어서 속히 세워 주시옵고, 부르실 자녀를 어서 속히 부르시옵소서. 하늘을 향한 중심을 세워서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랑하는 제단으로서 어서 속히 이루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 전부가 승리하게 해 주시고, 성은에 감사하며 성광(聖光)을 대하여 찬양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여, 오늘 소수의 무리가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맡아 주시옵소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각 개인의 중심을 아버지께서 통찰해 주시옵고, 스스로 세운 마음의 중심이, 자아의 심정이 자기로 시작하여 자기로 끝나는 자리에 서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자기에 대한 인식과 관념을 통해 자기의 이념을 형성하고 자기 만족에 도취되는 자리에 서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모든 관념이나 주의 주장을 솔직히 내어 놓고 부모의 심정 앞에 온유겸손한 제물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존엄하신 아버지 앞에 자신의 부족함을 통감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아버님께 근본적으로 내어 드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여, 당신께서 이들을 모으시고 이들을 세우시어서 이미 이 성중에 새로운 경종을 울리셨사오니, 아버지께서 전체적인 책임을 져 주셔야 되겠사옵니다. 전체적인 사명을 완수해야 되겠사옵고, 전체적인 일을 맡아야 되겠사오니, 이들이 어서 이 시대를 밟고 올라서게 해 주시고, 아버지, 선봉에 서서 나아가 싸울 수 있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삼천만 민중을 대신할 수 있는 정병들로서, 천천만 성도들 앞에 서거나 하늘에 있는 천사들 앞에 서거나 이 땅의 성도들 앞에 서더라도 부족함이 없는 모습들로 세워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3일간을 지내는 가운데 나 하나만을 생각한 시간이 많았사옵고, 나 하나를 사랑하기 위해 산 시간도 많았으며, 나 하나를 변명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허비했사옵나이다. 그러나 나를 잊고 아버지를 찾기 위하여, 나를 잊고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아버지의 전체적인 가치를 나타내기 위하여 내가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고, 아니 움직일래야 아니 움직일 수 없는, 아버지가 소망하시는 자리에서 살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아버지를 찾아 나온 이들, 관념적인 신앙자세로 복 받겠다는 마음만을 가지고 나온 모습들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은혜를 받겠다는 마음만을 가진 자들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살려 달라."고 하는 호소의 역사가 6천년을 경과하였사오니, 나를 받으시옵소서. 할 수 있는 기도의 울음소리가 땅으로부터 들리고 하늘에 상달될 때가 되었사오니, 아버지여, "나를 받으시옵소서." , "내 전부를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자체가 아버지께 합당한 예물이 되었는가 스스로 반문할 수 있게 해 주시고, 현현하신 아버지의 성체 앞에 설 때마다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하게 느끼고 스스로 죄인이라는 것을 느끼어, 아버님께 머리 숙여 경배드릴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 저희를 깨우쳐 주시어서 회개의 마음이 일어나게 해 주시고, 선의 본성을 느끼고 선의 실체를 느끼어서 아버지의 영광을 대신하여 경배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일이 하늘이 소원하는 일이요, 이 하나의 뜻을 위하여 하늘이 동원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삼위신이 움직여 주시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 주셔서, 전체를 손아래에 두시옵고 전 행사를 아버지, 맡아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뜻을 벗어난 관념이나 인식을 갖지 말고 오로지 전체를 아버님께 바쳐 드리는 성도의 제단을 이룰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외로운 무리들이 하늘을 향하여 간곡한 애원의 호소를 드리는 곳곳마다 축복하여 주시옵고,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하늘의 명령을 받고 나섰사오매, 죽음의 길도, 싸움의 길도, 피난의 길도, 역경의 길도, 골고다의 산정도 개의치 않고 가겠다고 맹세하고 나선 자녀들을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어려운 길을 가는 자의 뒤를 따르는 자들도 어려울 것이요, 그 길을 따라 나오기에 입은 상처도 많을 줄 아오니, 아버지, 이 책임을 맡아주셔야 되겠사옵니다. 이들을 아버지 대신 제물로 삼아 주셔서 끝날에 허락하실 아버님의 심정과 사랑의 은사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기쁨 가운데 잠기어 아버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직접적인 주관의 역사가 그들 각자의 마음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그들이 처하여 있는 곳곳마다 환경의 십자가에 붙들리지 않게 친히 임하셔서 위로해 주시옵고, 친히 권고해 주시옵소서. 싸움의 길이 멀지 않고 남은 고개가 높지 아니하니, 능히 넘어갈 수 있도록 직접적인 권고의 역사가 그들 위에 같이하여 주옵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아버님을 뵙기 위하여 마음을 묶어 찾아 나왔사옵고, 경배의 시간을 갖고자 원하오니, 첫 시간부터 끝 시간까지 사랑하심의 보호와 사랑하심의 은사로써 전체의 모임을 통솔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이 바라시는 은사의 제물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주의 이름으로써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Ⅱ)> 창조의 동산은 선의 동산이요, 사랑의 동산이요, 하나의 동산이요, 화동의 동산임을 아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 선해야 될 것이 저희의 책임이요, 하나되어야 할 것이 저희의 책임이요, 화동해야 될 것이 저희의 책임임을 아옵니다.
한 날의 생활도 선해야 하고, 하나의 이 뜻을 대하여 화동하며 나아가야 할 자녀의 노정을 남기고 있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이 시간 다시 분부하시어서 허락하신 이 길을 다 걸어갈 수 있도록 싸움에서 지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뜻하신 바의 표준에 어긋나지 말게 붙들어 주셔야 되겠사옵나이다. 아버님, 타락의 후손인지라 저희에게는 힘이 없어 탄식하고 있사오니, 하늘에 감추어 두신 완전함을 나타내 주시옵고, 찾으시고자 하시는 화동의 미의 가치를 찾으시옵고, 만물 자체의 본성의 미를 나타내어 온 천지 만물이 화동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고, 온 피조물이 사랑을 통하여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하나의 본연의 자체로 세워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하늘의 원한이 인간들에게 맺혀 있고, 만물의 원한도 인간들에게 맺혀 있으며, 억천만민의 탄식이 크리스천에게 맺혀 있음을 아옵니다. 그러므로 이제 자기 한 개체의 가치를 완성하여 천륜의 탄식을 제거해 드려야 할 책임이 이들에게 있사오니, 아버지시여, 이들을 세우시어서 본연의 가치를 완성하는 모습들로 세워 주시옵고, 이들을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에게 원하시는 사랑의 전체의 이념을 허락해 주시옵고, 이들로 하여금 잃어버린 아버님의 전체의 가치를 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추었던 아버지의 심중을 열어 놓고 이들에게 나타나시어서 의논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시여! 연약한 무리를 모아 놓으시기에 수고하신 그 수고하심의 전부를 알기를 원하오니, 아버님이여 ! 다시 나타나시어서 상처 받은 마음을 붙들어 주셔야 되겠사옵고, 상처 받은 가슴들을 아버지께서 권고해 주셔야 되겠사옵나이다.
억만 사탄이 시험하고 싸움을 걸어오는 과정에서 이들이 천추의 원한을 대신 짊어지는 자들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고, 하늘 길을 걸어감에 있어서 전체의 뜻 앞에 오로지 선 하나를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게 허락해 주옵시고, 아버님의 세우신 뜻을 중심삼고 화동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해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의 마음이 피곤하여졌사옵니까? 몸이 연약하여졌사옵나이까?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의 불길을 허락해 주시옵고, 몸에 하나님의 심정의 열기를 가하여 주시어서 저희의 마음 몸이 움직이고, 하늘에 있는 천군천사와 모든 영들이 움직이고, 땅에 있는 전체의 존재가 움직일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만물을 대하여 하나의 중심을 복귀하고, 온 피조만물 앞에 하나님의 아들딸로 나타나기에 부족함이 없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6천년 동안 수고하신 아버님 앞에, 억천만 사탄들 앞에 자랑의 존재로 나타날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사망에 사로잡혀 탄식하고 있는 무리와 슬픔의 자리를 빠져나가지 못하는 불쌍한 무리들이 있사오니, 아버님께서 이들을 붙들어 주시옵고, 천륜을 대할 수 있는 중심된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지혜와 총명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삼천만 민족을 대신하여 하늘의 제단을 쌓아야 할 때는 되었사옵고, 선한 생축의 제물을 바쳐야 할 때는 되었사옵고, 합동하여 하나의 무리가 되어야 할 때는 되었사오니,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에게, 아버님, 임해 주시어서 이들의 심정을 주관해 주시옵고, 이들의 마음을 주관해 주시옵고, 이들의 전체를 주관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합당치 못한 악의 요소가 남아 있다 할진댄 사랑의 하나님이여, 능력의 하나님이여, 전능의 하나님이여, 불꽃같은 눈으로 나타나시어서 뜨거운 하늘의 성령의 힘과 생명의 불로 이들의 마음을 살펴 주시옵소서 .
아버님, 이날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생의 길을 찾지 못하여 유리 방황하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있사온데, 이들을 위해서 생명을 내어놓고 책임지고 호소하는 자가 있었사옵나이까? 이들을 위하여 생명의 제단을 쌓고 눈물을 흘린 자가 있었사옵나이까? 있다 할진댄 어서 속히 그들을 찾아 세워 주시옵고, 최후의 십자가를 바라보시며 호소하시던 예수님과 같이, "나만 남았나이다."하고 호소하던 엘리야와 같이 간절히 호소하는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많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환희의 소식을 붙들고 이 민족 앞에 남아질 수 있는 실천의 제단이 많게 허락해 주시고, 간절한 정성을 쌓는 무리가 많게 허락해 주셔서, 이 민족이 어둠의 고난을 헤치고 세계 만방 앞에 빛이 될 수 있고, 사랑의 빛을 발할 수 있으며, 아버님의 허락하신 뜻을 받들고 나갈 수 있게끔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 이 시간 저희들 아버지의 은사를 바라서 나왔사오니 먼저는 나를 살펴야 되겠사옵고, 저희들의 마음이 비판적으로 되어서는 아니 되겠사옵나이다. 이제까지의 저희의 관념을 제하고 오로지 아버님의 뜻 앞에 바치어진 제물로, 쓰여질 수 있는 하나의 요소로서만 남아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본성의 미의 자체로 온유겸손함으로 말미암아 아버님께서 친히 저희의 몸 마음에 나타나실 수 있고, 아버지께서 친히 저희를 중심삼아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도록 아버지의 사랑의 역사가 이 시간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시여! 이 민족, 신앙을 갖고 있는 자녀들이 어려운 환경과 십자가의 길을 헤치며 이 시간까지 찾아왔사오니, 이 한 시간만이라도 6천년 동안 감추었던 아버님의 사랑의 뜻을 보여 주시고, 아버님께 경배드리는 이 시간,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큰 기쁨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고, 이 날의 느끼는 은사로 말미암아 생애를 개척하고 생활을 개척하여, 천륜의 대도를 밝힘으로써 저희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뜻 앞에 감사할 수 있 는 제물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이 곳에 있다 하더라도 아버지께서 부르신다면 언제라도 그 곳을 향하여 달음질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사오니, 아버님의 마음이 움직이는 표준과 당신의 사랑의 표준을 통하게 해 주시고, 다시 당신의 마음을 통하여 저희의 마음에서 선을 이루고 그 선이 씨가 되어 저희의 몸에서부터 영광 된 선의 동산을 이루어서 그것이 가정, 교단, 사회, 국가에까지 이루어 나갈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러한 전체적인 책임이 저희에게 있음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의 남겨진 사명을 담당하고, 사탄과 싸워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있음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가 지치는 자리에 있을지라도, 아버지여, 힘을 주시옵소서. 연약한 자리에 설지라도, 아버지여, 권고해 주시고, 쓰러질 때에 일으켜 주시며, 분부해 주셔서 최후의 장벽을 헤치고 나가, 승리의 무리를 이끌고 아버지 앞에 나가 호산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 시간까지 이끌어 주옵시길, 나의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날도 삼천만 민족을 대신하여 쌓고 있는 수많은 제단들 위에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의 불길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무지하여 6천년의 뜻을 분별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하늘의 제단을 원망하는 자리에 서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을 붙들고 통곡하던 뜻이 이루어질 때가 되었나이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던 말씀이 오늘날 교회와 교단 가운데 나타나고 있사오니,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없는 현실적인 과정에 처해 있는 제단들을, 아버지, 붙들어 주시사, 다시 회개시키시어 하늘의 생명으로 연결시켜 주시옵소서. 6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대신 짊어지고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제단이 되기까지 아버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원컨대 모든 행사를 직접적으로 주관하시고, 저희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나라를 일으킬 수 있고 아버지가 축복하실 수 있는 승리의 사명자로 세워 주시옵소서. 오늘 이 시간까지도 사탄이 준동해 나오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곤고하여 쓰러지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끝까지 배후에 서시어서 제단을 지키고 어두운 사탄의 화살을 막아내기에 제물이 되어 사라지게 될지라도 감사할 수 있는 무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시간 전부를 맡기었사오니 저희가 아버지를 흠모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흠모하여 생애를 바쳐 아버지의 길을 따르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뜻하신 기준을 잃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고, 하늘 끝까지 사무칠 수 있는 천륜의 뜻이 인간 가운데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부족함을 부족하다 마시옵고, 친구와 같이 사랑으로 나타나시옵고, 친근한 아버지로 나타나시옵고, 보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시옵소서.
인간이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연고로 아버님은 6천년 동안 허덕이며 나 하나를 세우기 위하여, 내 한 자체를 찾기 위하여 수고해 나오셨음을 저희들은 아옵나이다. 그러하오니, 아버님, 저희의 손을 붙들어 주시어서 저희들이 회개할 수 있는 은사의 시간을 가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저희를 붙들고 목을 안고 입맞출 수 있는 은사를 허락하시옵소서. 부족한 자체들이 아버지의 사랑에 감사하면서 눈물로써 반성하고 회개할 수 있는 은사가 이 시간 각자의 마음과 몸과 전체의 머리 위에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참석한 전체의 무리들은 아버님 앞에 사랑으로 나타나기를 원하오니, 참소의 조건에 걸리는 모습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엎드린 무리들이 당신의 소망을 대신 담당하게 허락하셔서 사탄의 비난과 비소에 낙오되는 자들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끝까지 아버지의 사랑 앞에 겸손히 경배드릴 수 있는 자녀들로 이 시간 세워 주시옵고, 아버님, 붙들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허락하신 은사가 전체의 마음 몸 위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바라면서, 사랑하는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Ⅲ)> 사랑하는 아버님이여! 바울이 디도를 하나의 개혁자로 세우기 위하여 일구월심으로 호소하며 그의 마음을 감동시켰던 간절한 내용의 말씀을 봉독하였나이다. 이 바울의 하늘을 향한 간절한 아뢰옴을 알게 될 때, 그 마음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땅 위에 흔적으로 남아져 제단을 쌓는 것이 배후에 비춰진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이 시간 저희들은 느끼옵나이다.
아버님이여! 새로운 뜻을 위하여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고 역사적인 복잡한 모든 장벽을 넘고 천륜 앞에 서야 할 때는 되었사옵나이다. 우리 자체들이 복잡한 과거를 청산하고, 복잡한 현실을 초월하여 하늘이 취할 수 있는 사랑의 품속에서 안심하고 아버지를 대하여 경배할 수 있는 마음으로 정착할 때까지, 아버지, 이끌어 주시옵소서.
죽으나 사나 남겨진 6천년의 원한의 방패로서 최후의 승리의 영광을 아버지 앞에 회복하여, 그로 인한 환희가 온 피조동산에 사무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협조하시는 가운데 저희들이 힘을 모아 이 한 뜻을 이루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저희들이 뜻을 대한 자체들인 것을 인정한다 할진대, 자문자답하여 자체의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앞에 회개할 수 있고, 아버님 앞에 가까이 서 의뢰할 수 있으며, 아버님 앞에 더 가까이 자기 자체를 폭로시켜 긍휼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이라도 가질 수 있게, 아버지, 이 시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마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성상 앞에서 흠 없는 모습을 본받아 다시 빚어질 수 있는 재창조의 형상을 갖추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 앞에 맡기고, 의지하고, 아버지 앞에 순응의 제물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둘러앉은 자녀들에게 분부하시옵소서. 이때는 많은 말씀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한마디 말에도 마음이 동하게 하여 주시옵고, 몸으로 감촉하게 허락하사 환희할 수 있는 긍휼의 은사와 감동의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의 불길로써 저희들을 주관하시사 아버님의 은사의 역사를 저희 개체들이 느끼어 하나의 뜻 앞에 움직일 수 있고, 주고받을 수 있는 귀한 화동의 분위기를, 아버님,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이 허락하실 수 있는 처소에 세워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겨진 이 시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를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저희에게 보이라." (고후 8:24)는 말씀을 중심삼고, 오늘은 "하나님의 자랑이 된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천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자랑의 실체로 지으셨습니다. 또 아담 해와를 천사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자랑의 실체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가 만물 앞에 서면 만물은 아담 해와에게 경배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지어 놓으신 피조의 동산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깨어졌던 것입니다. 즉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 앞에 자랑이 되어야 했던 만물의 가치가 제대로 나타날 수 없었고, 무형세계의 가치의 중심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인간이 그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랑의 뜻으로서 하나님 대신 만물 앞에 나타나 화동의 중심으로서의 영광을 받아야 할 인간의 위치가 근본적으로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타락 이후 6천년이 경과한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찾아오신 표준은 무엇이었던고?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고, 형상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대신하고, 천륜의 행사를 대신한 전체의 대표자,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를 찾아오셨습니다.
또 지금까지 이 하나의 뜻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도 수고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의 타락 이후 4천년 만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분이었던가? 그는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대신하고, 외적 형상을 대신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의 이념으로 세웠던 자랑의 기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수행해야 했던 본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일대에서 그의 생활을 통하여, 어느 부분 부분 또는 어느 한 부분이라도 하나님의 심정과 형상을 대신한 자녀로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책임자의 자리에 서 있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실체로 나타났어야 했습니다. 먼저 만물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고, 그 다음에는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으며, 천천만 성도들 앞에 자랑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기뻐하며 영광을 누리려던 것을 복귀하는 한 날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중심존재인 예수를 세워 놓고 역사하며 섭리하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게 하셨고 그 가운데에 당신 앞에 세워질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칭송하고, 하나님이 자랑하고자 하셨던 그 기준에서 감사의 심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했던들 이렇듯 역사적인 서러움이 6천년까지 연장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랑으로 나타났던 예수 그리스도의 눈에 보여지는 것과 이스라엘 민족이 자랑하고 있던 것과는 판이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뜻을 대해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스스로 하나님의 선민임을 자랑했던 형과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뜻을 받들면서 싸우시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랑했던 형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랑할 수 있었던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예수님의 생애 앞에서 자기들이 그때까지 세워 나오던 민족적인 자랑을 포기하는 자리에 처해야 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자랑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자랑하기 위한 새로운 자랑을 가지고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온유겸손히 엎드렸던들, 십자가의 어려운 관문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남아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십자가의 도라는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을 경청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되었다는 말은 있었어도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되었다는 이런 말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축복하여 십자가에 속죄의 권한이 있음을 믿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생전에 하신 말씀에 속죄의 권한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물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써 영적인 속죄가 가능하지만, 예수님이 살아생전에 하신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실천하였더라면 영육 아울러 구속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와서 먼저 무엇을 자랑해야 했던가? 아담 해와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타락했고 4천년 동안 섭리역사가 연장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연장된 4천년 역사를 가로막기 위해 사탄 앞에 세운 하나의 중심이 뭐냐 하면 믿음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믿음의 왕으로 이 땅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는 어떤 분이냐? 또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랑으로 설 수 있는 하나의 가치의 기준을 어디에서 세웠느냐? 4천년 역사가 흘러오는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없었던 온 만민들 앞에 예수님은 믿음의 왕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자랑하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노라 하였지만, 그러한 믿음으로써는 하나님의 천륜의 심정을 통한 상하의 내적인 관계를 맺어 놓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왔다 갔지만, 그들이 믿고 그들이 따라가던 것을 통해서는 하나님 속에 사무쳐 있는 사랑의 원칙을 알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는 수많은 성도들이 걸어 나오던 그 역사적인 믿음의 과정 전체를 도맡아서 혈혈단신으로 모든 사탄의 역사를 끊어놓으려 했습니다. 4천년의 믿음을 총 결실하는 입장의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의 중심형으로, 믿음의 주인공으로 왔다 가셨습니다.
이 하나의 기준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했는데, 선포하신 말씀은 구약 말씀 그대로가 아니었습니다. 구약 신앙을 가지고 믿은 것이 아닙니다. 선지선열들이 말씀하고 예언했던 그 한계권 내에서 믿은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믿고 나온 구약성경의 말씀권 내에서의 메시아의 사상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믿음을 가졌느냐 하면, 구약성경에 없는, 그때까지의 역사상에 없었던 믿음, 그때까지 나타나지 아니한 새로운 믿음, 세계의 어떤 환경,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믿음을 가졌던 믿음의 대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달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랑으로 세워졌던 믿음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어떤 한계 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하시기 전의 4천년 역사와 예수님의 30여 생애와 영원한 미래에까지 미치는 그의 가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억조창생이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반대하는 자리에 서 있더라도 나는 그 뜻 하나만을 붙들겠나이다.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는 것을 나는 믿겠나이다. 라고 할 수 있는 믿음의 기준이 세워져야 예수님이 만민의 구세주, 믿음의 왕으로 설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생전에 말씀을 다 해 주고 가셨던가? 만일 말씀을 다 해주고 가시지 않았다면, 우리에게는 다시 오시는 주님이 해 주시는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담 해와의 타락 이후 4천년 만에 사탄 앞에서나 모든 피조세계 앞에서 자랑할 수 있었던 믿음의 왕이요, 하나님이 찾으시려던 믿음의 왕이었는데, 유대민족이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그를 원수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다시 온 피조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기준을 갖고 오셔서 여러분에게 새로운 말씀을 해 주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대표자, 믿음의 왕으로서 구약성경에 없었던 새로운 말씀을 발표했습니다. 그 말씀은 신약의 말씀으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 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갖추어야 할 것은, 오늘 이 시대는 새로운 시대요, 앞으로 영광의 시대가 올 것인데, 그 영광의 시대에 남아질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과 믿음은 인간들이 4천년 동안 믿어 온 차원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일대를 거쳐 먼 후대, 즉 영원까지 미치는 믿음, 하나님이 생각지 못했고 그 당시에 나타나지 못했던 사랑과 선을 나타낼 수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상에 없었던 믿음의 왕이었고,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 두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이 수천년 동안 사탄과 싸워 나왔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비로소 승리의 왕으로 설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자랑하신 것입니다.
4천년 동안 수많은 선조들이 이 땅에 와서 사탄과 싸웠습니다. 메시아를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수많은 선지자들이 와서 사탄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탄을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4천년 동안 사탄과 싸웠지만 사탄을 점령하지 못했고, 사탄을 굴복시킬 수 없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사탄을 점령하고 굴복시켰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켰느냐? 하늘의 사랑의 원칙을 가지고 굴복시켰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데는 사랑의 원칙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의 원칙은 어떤 원칙일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 앞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또 이 땅 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신 외아들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30여 평생의 생활을 보면 어느 한 부분 효자의 생활이 아닌 부분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어서의 한 날의 생활은 밤이건 낮이건 어떤 시간도 떼어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에 알맞는 생활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이 땅 위에 너 하나밖에 없구나. 하는 말씀을 하실 정도로 효자의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일생의 모든 것이 사라질지라도 오로지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자기의 육신은 무시되더라도 만민의 구주로서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마음밖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아버지여! 나 하나가 사라져서 당신이 4천년 동안 찾아오신 사랑의 대신 존재, 당신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서 그 사랑의 대가를 돌려드릴 수 있는 효자가 되겠습니다. 하는 이 하나의 마음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억천만민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럴래야 그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천지의 중심으로 맺어진, 하나님의 사랑에 인연 된 부자관계의 천륜의 힘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환경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골고다 산상의 외로운 자리에서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을 아셨고, 4천년 동안 고대하신 아버지의 사랑의 심정을 잘 아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이 변치 않는 이상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로서의 자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독생자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의 화신체로 온 피조만물 앞에 자랑했습니다. 사탄세계 앞에 자랑했습니다.
오늘날까지의 6천년 역사상에는 자기를 낳아 준 부모에게 효성을 다한 사람이 많습니다. 사탄 품안에서의 효자 효녀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할 수 있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려면, 역사상의 모든 사탄권 내의 효자 효녀들을 합한 이상의 가치와 실적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할 수 있고, 천상천하에 유일하게 천륜을 대신한 효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예수님이 수많은 군중을 바라보게 될 때 어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의 심정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와 그들의 가치 사이에는 천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 늠름하게 하늘 앞에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사랑으로 맺어진 부자의 관계에서 나오는 힘에 의해 사탄까지 망하게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권 내의 많은 사람들이 사탄에게 동조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기준과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나타나는 거기에는 원수들 앞에 있어서 철옹성과 같은 방패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중심삼고 모이는 곳곳마다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4천년 동안 선조들이 승리한 것과 패한 것 모두를 합하여 자신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쟁취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이뇨? 지금까지 인류가 6천년 동안 사탄과 투쟁해 나왔는데, 어찌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4천년 동안 많은 선지자들이 승리한 것을 전부 합한 가치 이상의 승리의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또 우리의 선조들이 어떻게 사탄 대해 승리할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줄 알아야 하며, 여러분 자신이 그분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볼 줄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이제 이 땅 위의 성도들에게 염원하는 것이 무엇일 것이냐? 예수 그리스도만 사탄을 굴복시킬 것이 아니라 오늘날 끝날의 전체의 성도들이 모두 사탄을 굴복시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0여 평생 승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승리하지 못할 말은 피했다는 것입니다. 승리할 수 없는 말은 피했습니다. 예수님이 패할 수 있고, 사탄이 접근해 올 수 있는 말은 피했다는 것입니다. 남 보기에는 한 사람의 동네 총각이었지만 일단 전체를 책임지고 나서면, 그의 말이나 행동이나 소망은 전체를 승리의 기대 위에 올려 놓을 수 있는 말과 행동과 소망이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이 이렇게 수고하시며 다져 놓으신 승리의 발판 위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은사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서 승리하여 이뤄놓으신 승리의 발판 위에 서서 어떻게 하면 더 높이 올라가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이 여러분을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셨음을 알고 하늘에 올라갈 때까지 승리의 땀을 흘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채워야 하겠습니다. 예수와 성신의 사랑을 느껴서 하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승리하셨지만 십자가에 돌아가신 연고로 영적으로만 승리의 기대를 닦으셨습니다. 그래서 2천년의 역사를 종결해야 하는 우리는 예수의 영적인 기대 위에 서서 예수의 몸을 대신하여 승리의 터전을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영적인 구원을 완성시켜 주는 신약성경의 차원을 넘어서 실체적인 구원을 완성시켜 주는 새로운 말씀을 하늘이 이 땅에 선포하게 될 때에 사탄이 이를 반박할 것인데, 이것까지 책임지고 싸워 이겨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조건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가? 예수님은 책임을 지는 왕자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태어날 적부터 요셉의 집에서 목수의 일을 했지만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가정에서 목수의 일을 도우면서 부모가 떠맡고 있는 가족의 생계를 도와주는 이런 생활을 했지만, 예수님의 마음에는 그것만이 생활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또 큰 뜻을 마음에 품은 동시에 작은 일에까지도 책임을 다 하신 예수였습니다. 이런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생활은 전부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는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책임을 땅 위에 완수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30여 평생의 생애는 영원 불변의 실적, 책임을 다한 실적을 이 땅 위에 이루어 놓은 생애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믿음의 복음이 남아 있는 이상 그의 생애도 남아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일대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적인 면에서도 책임을 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역사해 오신 뜻에 대해서도 홀로 책임을 졌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하나님의 책임을 대신하여 나서는 이가 이 땅 위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혈혈단신으로 책임을 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홀로 전체의 뜻을 책임지는 것에 대해 외로워한 반면 더 큰 책임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하루하루의 생활은 전체적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한 발판을 놓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30년 준비시대와 3년 실천시대, 3일간의 완성시대까지 예수님의 시선 앞에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과 그 토대 위에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켜 드리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임을 절감하며 산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한 순간에도 이 책임을 잊어버린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산정에 나갈 때에도, 온 만민이 비방하고 사탄이 조롱하는 그런 최후의 순간에도 예수님은 맡은 바의 천륜의 책임을 홀로 감당하겠다는 마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책임 완수의 일념을 갖고 십자가의 고비를 넘었기 때문에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상에 남아 있는 제자들을 재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었으므로,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가셨다가 다시 내려오셔서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여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어서도 흩어진 제자들을 염려했고, 무덤의 3일간에도 이 제자들을 영원히 지키겠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 해변가로 제자들을 찾아다니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책임감이 없었던 그들을 대하여 예수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려운 자리에서 배척한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은 부활 후에 먼저 갈릴리로 찾아가셔서 자신의 책임을 수행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죽음의 고개를 넘을 때 변하지 않는 제자들로 세워 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야말로 오늘날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인격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당시의 제자들과 그 이후의 수많은 성도들, 2천년이 경과한 오늘날 우리들까지 책임지셨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구원의 역사가 전체의 역사였습니다. 하늘의 뜻은 전체를 구원하는 것이므로 예수님은 전인류까지 책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책임을 지고 계신가? 예수님은 세상적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신 것이 아니고, 잘 사는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을 책임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어려운 일이 많지만 이 이상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사의 문제를 책임졌기에….
오늘날 신앙자들은 까딱하면, 까딱하기만 하면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칼날과 같은 아슬아슬한 선상에 서 있는 사람들을 모두 오른편으로 끌어내는 책임을 예수님은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는 옛날에 30여 평생을 지낼 때도 그랬고, 죽음의 길에 들어섰을 때에도 그랬으며, 어느 때 어느 시기에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인간들은 이런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는 이 책임과 사명, 이 한 뜻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예수님,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있는 예수님을 모시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언제나 예수님에게 책임을 지우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예수님은 4천년 역사를 책임지셨었고, 당대의 인류를 책임지셨었고, 돌아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인류를 책임져 나오셨는데, 우리 자신들도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께 책임을 지우는 생활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아바 아버지여, 2천년 동안 책임져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려움을 알겠나이다. 라고 하면서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책임을 지고 계신 예수님을 원통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일들이 누구 때문이었던고! 보잘것없는 우리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여 예수 앞에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여! 라고 부르면서도 뼈가 녹는 듯한 심정, 살이 녹는 듯한 심정을 느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비로소 4천년의 뜻을 책임지려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너 하나만이 내가 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구나. 라고 하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모든 책임의 보따리를 뒤집어쓸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세워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전체의 책임을 감당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책임 하는 그 일이 어렵다면 어려운 그 일을 나에게 지워 주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는 심정으로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나타나 염원하시는 그 심정을 나를 통하여 나타내시옵소서. 나를 통하여 보여 주시옵소서. 라고 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끝날에 남아질 무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무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2천년 동안 인류를 위해 책임을 져 나오시던 그 목적을 어디에서 이룰 것인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생명을 걸고 책임의 노정을 걸으신 예수께서 책임질 줄 아는 사람들을 못 찾으신다면….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역사에 대한 책임과 현실에 대한 책임과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하나님 앞에 맹세하던 그 책임을 우리에게 지워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하늘 앞에 책임을 돌릴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4천년 동안 안타까워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땅 위에서 책임의 왕으로서 역사적인 모든 책임을 감당해 나오시던 예수 그리스도 대신 그 책임을 지고 싸우겠나이다. 원수 사탄과 수천만 인간들이 환영하지 않더라도 제가 대신 책임지고 싸우겠나이다. 라고 기도할 줄 아는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와야만 예수님께서 안식의 동산에서 쉬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끝날, 이때에 들려 오는 것은, 내 생명의 호소를 들을 자가 누군고?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을 물려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호소를 들어 줄 사람은 누구인가? 하늘은 이런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만민을 위해서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쉬지 못하시고 아직까지 기도하고 계신 것은 예수님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이 아버지 앞에 서시지 못할 자리에 서 계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천년 동안 수고하고 계신 예수님을 위해서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생명을 끊어서라도 생명의 책임을 완수하려고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책임이 이 땅 위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남아진 생명의 책임을 완수해야 하는 때가 재림시대라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 나타남으로써 재림시대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는 역사적인 생명의 책임과 미래적인 생명의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기에 여러분은 최후의 싸움에서 그와 더불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세우셔서, 믿음의 예수님을 통하여, 혹은 진리의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들을 사랑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사랑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마음으로라도 믿음의 예수를 본받으라 할 때, 예. 그렇소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승리하신 예수를 본받으라 할 때 그렇소이다. 책임지고 계신 예수님을 본받으라 할 때, 예. 그렇소이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어느 한 때, 어느 한 시간도 쉬시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쉬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랑으로 세우셨던 이런 조건들을 여러분들이 대신 맡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영계에 가신 예수님의 자랑의 조건을 이 땅 위에서 이루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먼저는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믿는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책임지지 못하는 이런 세상에서 책임지는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랑이 영계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땅 위의 우리에게 미쳐지고, 땅 위의 우리를 통하여 만물에게도 그 자랑이 미쳐져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창조의 이념, 인간을 만물의 주인공으로 세워 만물 앞에 자랑하시려고 했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인간과 만물이 자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경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전체적인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너무나 형편없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도 보잘것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인간들이 사탄과 싸워야 할 때, 아바 아버지여, 이 세계 만인간이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게 힘을 주시옵소서. 온 인류가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전체의 적을 맞아 혼자 싸워서 승리해 가지고 아버지여, 기뻐하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세계의 모든 책임을 지고 나가는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고. 억천만 인간, 혹은 천천만 성도들과 피조세계 앞에 책임지고 나가는 중심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하여 땅을 대한 하나님의 원한을 해원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기 도> 아버님 ! 이리 봐도 내 책임이요, 저리 봐도 내 책임이요, 세상의 악한 것을 볼 때, 눈물이 그치지 않은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였음을 아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은 악한 것을 보고도 감각이 없고, 불의하고 미급하여 천륜의 뜻을 대한 고통 어린 심정을 안고 책임을 느끼지 못하고 있나이다. 원수를 무찌르려는 마음과 한에 사무치는 애달픔이 없었던 나, 또 싸움의 실적을 갖지 못한 나, 전능의 하나님을 믿지 못한 나였나이다. 하늘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을 알지 못했나이다.
아버지, 이 저녁 소수의 무리를 앞에 놓고 권고했사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 자랑하시려던 당신의 뜻이 사도들을 통하여, 역사를 거쳐서 오늘의 저희에게 연결되었고, 그 뜻이 저희에게서 결실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았사오며, 생명을 얻었다는 환희에 가하여 천천만 성도들이 환영할 수 있는 중심적인 책임이 오늘날 저희들에게 맡겨져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이제 저희들, 하늘땅과 만물, 예수 그리스도의 원한을 풀기 위한 제물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성심 성의를 다하는 효심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십자가의 길을 통하여 신랑 신부의 이념을 세우셨사온데,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어느 정도까지 실천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중심한 책임을 어느 정도까지 했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한 믿음의 가치성을 어느 정도까지 찾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임을 아옵니다.
아버지께서 이 시간 권고해 주셨사오니, 오늘 내 한 자체와, 우리들에게 하늘의 해원을 위한 책임이 맡겨져 있고, 하늘의 원한을 풀어 드리기 위한 싸움이 우리들로 말미암아 종결지어져야 할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것을 알았사오매 누구보다 실천하겠다는 마음, 아버님께 감사할 수 있는 마음만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를 메고도 감사하게 해 주시고, 억천만 사탄들과 싸울지라도 아버지 앞에 비굴한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를 지고 어려운 자리에 설지라도 아버지 ! 내가 있사오니 염려 마시옵소서. 할 수 있는 자녀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어려운 자리에 놓여 있는 자녀들을 보고 서러워하시는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말씀이 이들의 생명과 길이 될 수 있게 역사해 주옵시고, 이들의 생활 중심에 호소하여 살아갈 중심과 표준을 찾을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오며, 불변의 믿음과 생명의 중심을 갖고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그럴 수 있도록 말씀의 창조의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