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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자

일시: 1961.01.09 (월) 장소: 한국 순창교회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당신의 심정의 즐거움을 지으신 만물과 더불어 나누는 것이 그 영광의 가치였는데, 그러지 못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사옵고 전인류의 시조 된 아담 해와의 한낱 실수로 말미암은 것임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리하여 수천만 년 영원한 세계까지 고난의 탑을 쌓아 놓는 억울한 사실을 저희들은 가슴 아프게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실수로 이렇듯 수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눈물의 골짜기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되었사옵고, 피를 뿌리지 않으면 안 되었사옵고, 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되는 어마어마한 고난의 길이 가로놓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나이다.

당신의 심정 가운데서, 당신의 영광된 세계에서 당신의 놀라우신 선을 찬양하며 지금껏 사랑하고 싶었던 자녀를 잃어버리신 아버님의 서러움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인간시조 아담 해와로부터 6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하루 한 날같이 눈물과 더불어 고통을 겪어 나오신 아버지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복귀의 노정에 있어서 한을 품고 가시는 아버지 존전에 서 있는 저희들은 머리 들 수 없는 부족한 것들이옵니다. 하늘을 대하여 감히 자체의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부끄러운 존재였으나 섭리의 뜻의 손길은 아직까지 저희 한 개체와, 저희의 주위와, 저희 민족과, 국가와 세계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불초한 것들을 찾기 위한 당신의 숨은 사랑의 손길이 저희의 배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앎으로, 부족한 자식들이나마 머리를 숙였사오니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어느 누가 천성 앞에 자기의 모습을 자랑할 자가 있사옵니까? 스스로 완전하다 하여 하늘을 해방할 자가 어디 있겠사옵니까?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사랑의 아버님, 긍휼의 아버님, 인내의 아버님, 선의 아버님, 부족한 것들을 이 시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욱이나 역사의 곡절 가운데 서서 최후의 한숨과 더불어 절망 가운데 놓여져 있는 무리가 있사오니 이것이 삼천만 민중이요, 그 가운데에서도 이들인 것을 당신은 아시옵니다. 불쌍한 이 민족 가운데 태어난 한 때의 억울함을 하늘에밖에 호소할 수 없었던 이 민족의 서러움도 당신은 아시옵고, 이 민족 가운데에는 핍박의 길을 가기 위해 온갖 모든 것을 다 저버리고 붉은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 앞에 맹세한 무리들이 이 어린 적자(赤子)들인 것을 당신은 잘 아시옵니다.

이들을 몰아 당신이 원하시는 뜻, 당신이 소망하고 원하시던 그 동산, 당신이 지으신 영광의 그 나라까지 인류를 몰아대기 위한 아버지의 심정, 아버님의 간곡한 마음이 있는 것을 앎으로 저희가 상처를 입으나, 저희가 눈물을 지으나, 저희가 핍박의 자리에서 탄식하고 머리 숙여 엎드려 있으나 사무친 심정으로 당신께 고마움을 돌려드리지 않으면 안 될 저희들이 되어 있는 것을 당신은 아시옵니다. 저희는 가진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랑할 것 아무것도 없사옵니다. 자랑할 것은 역사적인 죄의 혈족이었다는 것밖에 없고,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하늘을 해방하겠다는 것밖에 없사옵니다.

그러나 그들을 찾기 위해 당신께서는 이 시간도 사랑의 손길을 펴시고, 각자에게 일일이 손을 내시어 저희의 손을 붙잡기 위한 아버지의 음성이 이 시간도 있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은 사무침의 하늘이요, 억울하면서도 참지 않을 수 없는 인내의 하늘인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당신이 원하시는 소망의 뜻 가운데는 갖은 고역의 눈물이 잠겨 있는 것을 알았사옵고, 더 나아가서는 몰림의 자리에서 예수님과 같이 피를 뿌리고 사라진 한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와 같은 것을 안 저희들은 모든 것을 당신 앞에 다 드리고 산 제물로 바쳐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더욱이나 여기 모인 무리들은 당신의 인내의 심정을 본받아 아버지 앞에 모였사오니 이들을 한 품에 품으시옵고, 누구도 사탄이 데려갈 사람이 없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을 세우시어 당신의 영광을 찬양해 주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족한 것들이 감히 감당하기 어려운 아버지 뜻 앞에 머리 숙여 자기 자신을 희생시켜서 산 제물로 드리지 않을 수 없사오나, 그러한 자리에 서지 못하는 부족한 것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시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더욱이나 여기에 모인 어린 청년 학생들 위에 삼천만의 운명과 한반도의 운명이 책임지워져 있다는 것을 알았고, 오늘날 저희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도 알았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죽음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고, 눈물짓는 형제들을 대신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땀을 흘려 형제를 대신하기 위해 저희들은 각오하고 나선 무리이오니 당신의 품에 품어 지켜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어린 당신의 아들딸을 대하고 볼 때, 여기 서 있는 저도 그 시절의 한 때가 그립습니다. 당신의 심정을 알기에 애달픈 마음으로 눈물지을 때가 그립사옵고, 남아진 한스러운 당신의 심정의 세계를 더듬어 방황하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 시절에 그리던 눈물은 깨끗한 눈물이었사옵고, 그 시절에 부여받은 그 책임은 깨끗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와 같은 터전 위에 하늘은 역사하시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딸 가운데에도 그와 같은 자리에서 당신의 심정을 상속받을 수 있고, 이 땅 만민 앞에 나누어 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많이 일어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간사한 것이 사람이었습니다. 때와 시기를 망각한 것이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편리 때문에 하늘을 파는 것이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하늘을 밟아 치우는 것이 인간이었사오나, 오늘 여기에 머리 숙여 당신 앞에 호소하는 이 아들딸 가운데는 한 생명이라도 하늘을 배반하는 자가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불변의 진리를 배웠사옵고, 불변의 역사를 알았사옵고, 불변의 심정을 알았사옵고, 불변의 아버지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런 아버지인 것을 안 저희들은 불변의 자식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은 한 생명이라도 하늘을 배반하는 자식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에게 언제나 품겨 당신과 더불어 영원히 살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영원하신 당신이오니 이들도 영원한 아들딸로서 당신 앞에 품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더욱이나 1960년을 지내고 1961년을 맞이했습니다. 금년부터 계획하신 당신의 뜻이 있다는 걸 알았고, 허락한 천적인 한 때를 저희들이 인계 맡았사오니, 그 기간에 있어서 하늘 앞에 역군으로 나서는 용사들에게 깊이깊이 희생적으로 나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눈물짓고 굶주린 자리에 가는 곳곳마다 거기서 당신의 처지와 인연맺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애달픈 심정적인 처지와 인연맺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번 이 기회에 남한 각지의 8백여 명 이상의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하늘의 심정을 본받아 자기 일개인의 이익을 잊어버리고, 산 제물로 당신 앞에 드리기 위하여 눈물겨운 이 한 시간을 갖고서 수많은 사람을 대하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라북도 이 지역에서 당신의 따뜻한 품에 품기어 세움받아 싸우려는 어린 적자들이 모였사오니 당신이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친구가 없습니다. 저희들의 길을 지켜 줄 자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나서야 할 것이 저희들의 길인 것을 알았사오니, 이와 같은 걸음을 다짐하여 나선 저희들을 친히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눈물로써 인연되어 있사옵고, 심정으로 연결되어 있사오니 심정을 상속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늘에 남겨진 한스러웠던 역사적인 곡절을 저희들이 알았사옵기에, 역사적인 그 한의 곡절을 저희들이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책임을 감당하기에 부족한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간 순수한 자리에서 눈물을 뿌리는 당신의 아들딸이 있사올진대, 아버지여,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내세운 하늘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아는 자들이 있사올진대, 당신이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와 같은 기간이 있어야 하늘이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오니, 눈물과 더불어 하늘을 바라보면서 아버지의 심정의 그러한 뜻을 품고 그 지역을 책임지고 제물이 되어 나가게 허락하시옵소서. 몸소 산 제물의 자리에 있어서, 몸소 배척받는 자리에 있어서 먼저 외로운 자리에 서게 된 이들을 당신이 지켜 주실 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당신께서 아무리 어려운 곡절의 길을 저희들 앞에 막아 놓고 가라 할지라도 반드시 후에 책임지시기 위한 일면을 세워 놓고 역사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나설 적마다 하늘은 같이하였사옵고, 어려운 자리에서 외로울 적마다 당신이 같이하셨사옵니다. 저희들이 쓰러지게 될 때 나 여기 있다고 부르짖던 당신의 음성이 있는 걸 알았사옵니다. 이와 같은 자리에 있어서 한 가지 가져야 할 것은 당신의 안타까운 한스러운 심정을 다시 옮겨 받는 것이오니 그럴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삼천만 민족을 부여안고, 27억 세계 인류를 부여안고, 더 나아가서는 천상에 있는 우리의 선조들을 부여안고 당신의 뜻을 염려할 수 있고, 제물로 오르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고 호소할 줄 아는 당신의 귀여운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 저녁에 저희들의 모든 사정을 다 기억하시고 허락하실 수 있는 은사로 각자의 심정을 채우시어서, 여기 모였던 이 한 시간이 헛된 시간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소망을 아버지와 더불어 나눌 수 있는 시간, 심정을 아버지와 더불어 나눌 수 있는 시간, 사정을 아버지와 더불어 나눌 수 있는 이 한 저녁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늘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도 저희들의 움직임에 같이 협조하게 하시어서 주위에서 엿보고 있는 수많은 억만 사탄들을 제거시키시옵고, 당신이 원하시는 뜻에 합당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제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이 요구하고, 하늘이 좌정하는 자리에는 사탄이 참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옵기에 부활의 역사가 그 자리에 같이하고 애천자의 역사가 그 자리에 같이하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어제의 마음으로 심중에 아직까지 당신과 더불어 결속하지 못한 자가 있사옵니까? 결속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 앞에 맹세하지 못한 자가 있사옵니까? 맹세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을 대신해서 책임지겠다고 하지 못한 자들이 있습니까? 책임지겠다고 하는 새로운 각오와 더불어, 당신 앞에 저를 원하시는 뜻대로 보내 달라고 하늘 앞에 약속을 하고 돌아가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삼천만 민중은 졸고 있습니다. 사탄은 사망의 구렁텅이를 엿보고 있사옵니다. 수많은 사탄들은 이들의 심령을 보고 기뻐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의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이 민족을 아버지 품에 품기게 하기 위해서는 남 모르는 희생이 필요한 것을 알았사옵고, 남 모르는 눈물과 피와 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와 같은 길을 자진해 나선 저희들 앞에서 사탄은 물러가고 아버지는 저희들을 시중하여 아버지가 기뻐하는 동산에서 영광을 노래하실 수 있고, 저희들이 본연의 아들딸의 미를 갖추어 아버지의 그런 영광의 세계를 단장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숨을 제단을 쌓고 남 모르는 가운데 때를 알아 염려하면서 하늘 앞에 호소하는 아들딸이 있사올진대는, 그들의 발걸음을 통하여 어서 속히 거두어 모으시옵고, 아버지의 권속을 많이 번식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여기 어린 자녀들이오나 이들이 마음을 하늘 앞에 두고, 아버지의 심정에 호소할 적마다 그곳에는 하늘에 있는 천군 천사들이 어울릴 것을 알고 있사옵고, 하늘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이 지상의 저희들을 옹호할 것을 알고 있사오니, 믿고 실천하는 자는 승리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앞에 새로운 각오를 갖고 나설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와 같이 나가는 곳에는 기필코 승리적인 성과를 하늘땅 앞에 거두어 드릴 줄 알고 있사오니, 이번 기간을 통하여 새로운 것을 느끼고, 새로운 것을 깨닫고, 인생의 골짜기 깊은 심정이 흐르는 것을 부여안고 아버지를 거기서 상봉할 수 있는 인연을 가지는 이번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고생도 당신을 위한 것이었사옵고, 눈물도 당신을 위한 것이었사옵고, 죽음도 당신을 위한 것이었사옵니다. 이루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기에 이와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탕감복귀의 역사를 저희들이 배웠기에 이 길을 저희들이 탕감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자기의 슬픔을 하늘 앞에 돌려드리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자기의 어려움을 하늘의 어려움으로 돌려드리지 말고 내 일은 내가 책임질 줄 아는 이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을 맡겼사오니 이들이 가는 일생의 노정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살피시옵고, 뜻하신 뜻대로 가꾸어 아버지의 영광의 존전에 드리기에 부족함이 없게끔 축복의 손길을 내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올 때에,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선생님이 말하는 아버님은 세상에 여러분을 낳아 준 그 아버님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대주재 되신 아버님이시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언제나 느껴야 되겠습니다.

하늘 앞에 서고 싶은 게 본연의 인간

여러분 자신들, 자기의 한 생명이 귀하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습니다. 내가 좀더 편하고, 내가 좀더 훌륭해져서 국가를 대신하고 싶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대신하고 싶고, 더 나아가서는 하늘 앞에 서고 싶은 것이 지음받은 본연의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타락을 했을망정 여러분의 마음은 더 높고 높은 것을 이 시간도 추구하고 있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오늘보다도 내일이 더 낫기를 바라고, 내일보다는 그다음 날이, 일 년 후 십 년 후 여러분들의 생각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그 범위에 따라 가지고 욕망은 점점 더 커져서 여러분이 세계 앞에 서고 싶은 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 심정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심정이 그릇된 것이냐? 아니라는 거예요. 왜냐? 우리 인간은 본래부터 누구를 좋아하게끔 지어졌느냐 하면, 여러분이 지금 낳아 준 부모를 대하게끔 지어진 것이 아니라 부모를 넘어서 수많은 민족이 있으면 민족을 대표해서 서야 할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대표해서 서는 동시에, 더 나아가서는 저 영계를 대신하여, 더 나아가서는 천지를 창조한 대주재이신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이 나타나야 할 무한한 가치적인 존재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와 같은 둘도 없는 가치, 하늘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 가치는 하나님도 존경하는 가치요, 천상에 아무리 놀라운 천사장 혹은 수많은 영계가 있다 할지라도 그 영계도 역시 그런 한 모습이 나타난다 할진대 그 모습 앞에는 어느 누구나 머리를 숙여 찬양하고 싶은 가치인 것입니다. 가치적인 그 존재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완성된 아담이 돼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인간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자기 본연의 목적을 완성치 못하고 여지없이 떨어졌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떨어졌느냐? 수습할 수 없는 정도만큼 떨어졌다는 거예요. 우리 인간이 하루 생활권 내에 있어서 자기가 계획한 것이나 행하던 일 하나가 잘못되면 그날에 그 일을 수습할 수도 있고, 그날에 안 되면 그다음날, 그다음날에 안 되면 혹은 며칠, 며칠에 안 되면 몇 달, 몇 달에 안 되면 일 년…. 치밀한 계획을 세워 움직임에 따라 가지고 그 일은 회복할 수 있는 기일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인간시조가 타락하고 난 후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자기 자식인 타락한 인간을 수습하기 위해 6천 년 동안 수고하였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기준으로 수습하지 못할 만큼 타락했습니다. 최상 하늘 끝에서부터 최악 지옥 밑까지 인간은 굴러 떨어졌다는 거예요. 어디 가치를 가꿀 수 없고 거둘 수 없는 무가치한 인간으로 되어 버렸다구요. 이런 인간을 하늘은 다시 최고 가치의 존재로 이끌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셨는데, 그 역사노정이 무엇이냐 하면 복귀섭리요, 구원섭리요, 재창조역사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원리에서 배워 알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역사는 수많은 우리 선조시대로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최고 인간의 가치를 향하여 우리의 제반조직이 동원되어 있습니다. 이 사회에 움직이는 어떤 조직적인 기관이나 어떤 형태를 가진 존재물이 불철주야로 그 목적달성에 총동원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움직임이 천운으로서, 천도로서 혹은 천륜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타락한 세상을 휩쓸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휩쓸고 움직이는 힘은 여러분들이 생각지 않는 사이에 여러분의 마음이 스쳐 가는 그 방향을 향하여 끌고 가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그 마음이 무엇이냐?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그다음날, 다음날에 더 좋아지고 싶어하는 마음이 여러분 앞에 있는 것을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부족한 내 한 자체라고 해서 여러분 절대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지금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이 오늘보다도 더 가치 있는 내일을 추구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거들랑, 여러분은 잘나나 못나나 이 천지 대천륜의 운세권 내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요, 그 가운데에 여러분들은 서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이걸 하나 보더라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부르나 안 부르나, 혹은 깜깜한 곳에 있으나 광명한 곳에 있으나, 혹은 훌륭한 자리에 있으나 천한 자리에 있으나 마음 방향은 여러분을 재촉하여 `가정을 대표하라! 사회를 대표하라! 국가를 대표하라! 세계를 대표하라! 더 나아가서는 하늘을 대표하고 하나님을 대표하라!'고 언제나 호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양심의 방향을 따라가라

그래서 역사적인 종말시대가 가까와 오면 최후에는 어떤 말이 나와야 될 것이냐? 사람 하나를 세워 놓고 세계가 하나될 수 있는 때가 기필코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내세워 세계를 수습하고, 인간을 내세워 하늘과 땅, 유형세계와 무형세계를 수습하고, 무형세계와 유형세계를 수습한 후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간을 내세우기 위한 천륜이 남아 있는 한, 기필코 이 법도를 어길 수 없는 한 이 일은 한 때를 맞이하여 종결될 것입니다. 기필코 이 일은 여러분들이 살아서 보지 않으면 죽어서라도 맞이해야 할, 타락한 역사가 끝날 시대에는 여러분들이 부딪치지 않을 수 없는 한 때가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런 때를 기독교에서는 끝날이라고 합니다.

이런 때를 맞이하여, 끝날을 대비하여 타락한 만민 앞에 하나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한 때를 맞이하여, 끝날을 대하여 한 중심을 세워 놓고, 한 분을 대신할 수 있는 가치적인 내용과, 가치적인 모습으로서 이 땅 위에 나타내 만민이 많은 수고의 노정을 거치지 않고도 그로 말미암아 단시일 내에 하나님 앞에 등장할 수 있는 어마어마하고도 놀라운 역사를 인간 앞에 부여하기 위하여 약속한 날이 있습니다. 그 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재림의 날입니다.

여러분들이 좋은 것을 추구하고 더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여 가는 도상에 있어서, 여러분 자신이 자신을 수습할 수 없는 미궁에 처해 있다는 거예요. 내가 일 개의 실낱 같은 하나의 개체로서 생명을 지니고 사는 여기에 있어서도 고충이 많아요. 자기의 일개인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여 엉클어진 곡절을 어떻게 처리할 수 없는 환경에 놓여 가지고 자기의 생명을 끊는 처량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수습할래야 수습할 길이 없기에 탄식을 하고 여기에 비명을 울리다가, 나중에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인생의 모든 가치적인 자기 자체를 파괴해 버리는 일들이 참 많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와 같은 역사적인 도상이요, 그런 천운이 움직이는 도상권 내에 한 개체로 서 있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은 어떤 권내에 있는가를 잘 살펴야 됩니다. 내 마음은 스스로 천운이 움직이는 그곳을 향하여 가려고 하고 있지만, 내 몸과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거기에 극반대적인 입장에서 양심과 부딪치는 싸움을 모면할 수 없다 이겁니다. 이 싸움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생사의 결판을 지어야 할 시간이 여러분 앞에 박두해 오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차피 우리에게 소망이 있고, 우리에게 소망의 어떤 생명력이 있다 할진대는, 기필코 오늘 현실에 있어서 내 양심을 통하여 부딪혀 들어오는 이 원수를 대해 승리의 개선가를 부를 수 있는 양심의 방향을 따라가야 됩니다. 여러분들의 환경이 작으면 작고, 크면 큰 그런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위치에 있든지간에 그 문제를 해결짓지 않는다 할진대는, 항해를 해 나가는 큰 배가 암초가 있는 지도 모르고 달려가는 것과 마찬가지의 운명에 처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됩니다.

마음은 고이고이 잘 가서 목적지를 향하여 만민을 대표하고, 하늘과 땅을 대표하고, 더 나중에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 온천지 운세를 움직이는 대주재의 힘에 의해 가지고 그리로 이끌리고 있지만 갈 수 없는 역경, 환경에 여러분이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 환경이 그로 하여금 울려 나오게 하는 웃음소리는 자기의 내일의 생명노정에 있어서 자기 갈 길을 얽어매는 밧줄과 마찬가지요, 안일한 한 날을 즐길 수 있는 그 자리가 내일의 사망을 예고하는 자리라는 것을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 처해 있는 자기의 외적인 고통을 밟아 치우고 훌훌 넘고 넘어 자유의 마음세계로 가야 됩니다. 마음세계에 있어서 인연된 어떤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와 자기 마음의 연락을 통해 느껴 들어오는 무한한 가치를 악한 세상에서 느낄 수 있고 헤아릴 수 있고, 이것을 감정해 낼 수 있는 어떤 사람이 있다 할진대 보기에 누추하고, 보기에 형편이 없는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인생행로에서는 대승리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고통이라도, 슬픔이라도, 역경이라도 오너라! 너 고난이 나로 하여금 어떤 어마어마한 고통의 자리에 서게 할 것이냐' 이렇게 부르짖고 나서는 청년 무리들이 이 지구상에 널려 있는 수많은 어떤 민족을 대신하여 한 모퉁이에서 움직여 나온다 할진대 이 무리들은 심상치 않다는 거예요. 기필코 살아 계신 하늘이 있다 할진대 그들을 세우실 겁니다. 최후의 가치를 찾고 계신 하늘은 그러한 무리를 끌어 세계 인류 앞에 내세울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영계의 영인들 앞에,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 앞에 이러한 무리를 끌어내지 않을 수 없는 하늘의 입장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 마음의 고통이 있거든 이 고통을 제거하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더욱이나 신앙의 길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마음의 세계에 구속되어 들어오는 일체의 모든 것을 용납치 않고 자기 마음속 깊은 가운데서 그 본연의 목적 대상을 향하여 시간성 공간성을 초월하여, 내 심정적인 기준에서 언제나 세상의 모든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 가치를 노래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런 자리에 서야만 마음은 즐거워할 수 있고, 그런 자리에 처해 있어야만 그 무엇을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적인 무엇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수많은 성현현철들이 찾기 위해서 노력하였지만 아직까지 해결을 못 지었어요.

절대자 앞에 등장해야 할 인간의 가치를 지켜야

오늘 여기에는 청년 남녀 학생들이 모였습니다. 여러분들 자신의 그 심정은 오늘날 어느 곳을 향하여 있느냐? 이걸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마음이 바라는 그 소망의 목표는 최후의 것입니다. 최후의 모든 것을 결정지을 수 있는 한 절대자 앞에 등장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는 여러분 자신이니, 우선 거기에 있어서 그런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결심하지 않은 일을 여러분이 성사하더라도 그건 여러분과 나는 하등에 관계가 없다는 거예요. 결심을 하여 시련과 더불어 싸워 거기에 대해 어떤 목적적인 가치를 투입 분석하여, 거기에 대한 맛을 체휼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그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어떤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 앞에 그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결심, 자기의 신념도 없는 가운데 우연히 어떤 목적이 달성됐다 해서 그걸 자랑할 수 없는 거예요. 만약에 절대자가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서는 빼앗아야 돼요. 그들이 아무리 어떤 목적을 달성했다 하더라도 그건 자기 것이 아니예요.

그래서 오늘날 하늘은 인간 앞에 믿음, 신앙이라는 명사를 세워서 `믿어라! 신념을 가져라! 네 원수가 나타나서 믿음을 삼켜 버리려 해도 여기서 삼켜져서는 안 돼! 어떠한 역경, 어떠한 고충의 환경에 부딪치더라도 그것만을 잃어서는 안 돼!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는 이런 놀라운 권고의 말씀, 약속의 말씀을 세워 주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들 자신이 어떠한 절대자 앞에 등장해야 할 인간으로서 그 가치를 이 시간에도 추구하고 있거든 그 마음을 고이고이 지켜야 되겠습니다. 마음에 어떠한 형태로 여러분과 같은 존재가 대신 나타났을 때는 있는 정성을 다해 땀을 흘리고,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곱게 단장시키고 곱게 먹이고 입힐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 길을 가야 된다구요. 이렇게 하는 사람은 지금 타락한 세계에서의 일국의 어떤 제왕보다도 훌륭한 분이요, 역대의 충신 혹은 열사 성현보다도 더 훌륭한 분인 것입니다.

그런 마음의 작용을 따라 가지고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을 줬고 우리의 인생의 갈 길을 지향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지향해 주는 역사 발전노정에 있어서 시대적인 혜택이라는 것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아무리 성현현철들이 과거에 주창하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오늘날에 와서는 그 이상의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 자신 속에 깊이 잠들어 있는 그 제왕이 무엇이냐? 천상이나 지상이나 더 나아가서는 창조주 앞에 늠름히 나서 가지고 아들의 모습으로, 딸의 모습으로 부끄럼 없이 나설 수 있는 귀동자요, 귀동녀들이 그 마음속에 깊이 잠들고 있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손길이 움직이는 그 한 시간이지만 여러분의 손길을 위한 손길만으로써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마음속에 이러한 귀동자 귀동녀의 손길이 움직일 수 있는 걸 그리워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길을 가는 데도 여러분이 가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갈 수 있는 곳을 그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에게 하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는 거예요. 누구한테? 먼저는 나 자신에게 보여 주고, 그다음에는 나를 대하여서 이 절대적인 가치의 자리까지 이끌어 준 주인 앞에 보여 준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숭고한 거예요.

만일에 이런 생각을 한다고 여러분 생각해 봐요. 하나님이 있다면 여러분이 그런 생각 한다고 해서 벌주시겠어요? 그런 생각을 못 하기 때문에, 그 생각을 잊어버리고 다른 생각이 나올 그 길을 막기 위해 오늘날 그 이외의 모든 생각을 제거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속 깊이 잠들어 있는 본연의 그 자체의 모습, 그 자체의 행동, 그 자체의 가치 앞에 정성을 다 들일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지 않을진대 여러분들은 절대자 앞에 도저히 나가지 못합니다. 이 길을 가고자 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 친구가 반대하게 될 때는 …. (녹음이 잠시 끊김)

오늘날 세상에서 장사하는 사람을 보더라도 그래요. 천만 원 있는 사람이 천만 원 이상의 이익이 날 수 있는 장사가 있다 할진대 그 천만 원을 내던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 이치는 다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인간들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마음이 지향하는 바가 있는데, 절대로 부인할 수 없는 어떤 가치적인 무엇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도달할래야 도달할 길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막연하고 관념적인 신의 실존과 내 실존적인 가치의 개체와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 실체를 갖고 생활하는 생활무대 환경에 있어서 절대자와 더불어 같이 느낄 수 있는 공감의 가치를 어떻게 이루어 놓겠느냐? 관념적인 신이 아니라 생활적인 신의 체휼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떤 철학자, 어떤 성현이 나왔어도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불가능하다구요. 만약에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할진대 그건 억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어요.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수억만 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여러분들이 허덕이고 있으니 오늘 여러분들이 어떤 단계에 있는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두 마음을 품지 마라!'고 했습니다. 눈도 둘이요, 손도 둘이요, 발도 둘이요, 입도 둘이요, 머리도 둘이요, 마음도 둘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여야 됩니다. 그 하나는 여러분들이 잘 되기를 바라고, 여러분들이 더 좋기를 바라고, 더 가치 있기를 바라는 겁니다. 가치가 있는 그곳은 오늘날 살고 있는 여기가 아니예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곳입니다. 부족한 여러분이지만 여러분을 내세워서 `야, 아무개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만민아! 이를 환영하라! 만인아, 이를 사랑하라!' 할 수 있는 자들을 만들어 놓기 위해서….

눈물과 더불어 약속한 심정이 재산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런 가치를 반드시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가치를 달성해서 나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거기에 대한 신념이 철두철미해야 됩니다. 이 신념을 빼앗아 가고자 하는 원수가 있더라도 양보할 수 없어요. 내 생명이 당장에 끊어지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양보할 수 없어요. 내 인격이 파산되고 내가 세상에서 지니고 있는 명예나 그 무엇이 일조에 낙엽과 같이 다 떨어져 내려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만은 안 됩니다. 다 녹아나더라도 여러분이 죽어서 물이 다 되더라도 그것만은 남아져야 돼요. 그것은 어디에 남아질 것이냐? 사람의 마음, 참다운 사람의 마음에 남아질 것입니다.

여기 온 학생들 가운데는, 혹은 청년들 가운데는 통일교회에 들어온 지가 오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예요. 여러분 앞에 충고하고,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 오늘날 내 몸이 부서지고 내 몸이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신념의 가치를 감미할 수 있는 여러분의 위치를 작정하지 않는 한 여러분들은 가다가 쓰러진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외치고 있는 선생님도 세상의 명예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요, 세상의 그 무엇을 찾기 위하여 허덕이는 것도 아닙니다. 단 하나 당신과 나와의 관계, 당신도 위신을 잊어버리고 나도 위신을 잊어버리고 붙들고 몸부림치면서 `아무개야!' 하던 그 모습이 그리워 찾고 있던 그분이라는 것을 알고 난 때에, 눈물과 더불어 약속하던 그때의 심정이 하나의 재산입니다.

거기에 세상의 어떤 지도자, 어떤 가까운 사람,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의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세상 것 가지고는 도달할 수 없고,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하나의 인연이 있기에 이 시간도 여러분 앞에 나서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 들어오게 될 때까지에는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기 자유로운 환경에서 앉아서 말씀을 듣고, 외부의 아무런 핍박의 감정도 느끼지 않게 된 것이 오늘 당장에 된 것이 아닙니다. 이러기 위해서 여러분에게는 보이지 않는 노고의 피와 땀과 눈물이 엉클어져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한 눈물의 길도 피땀의 길도 밟고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마음은 피를 주고도 바꿀 수 없고, 눈물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땀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내 팔 다리를 끊어 가는 한이 있더라도 바꿀 수 없는 , 그분과 나와 맺어진 인연, 그 가치는 인간이 맞아야 할 최후의 길이요, 해결지어야 할 최후의 문제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결정을 지어 책임을 질 수 있고, 그 책임과 더불어 그 가치를 중요시하는 그 마음과 더불어 이 세상에 사는 데에는 그 고충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걸 여러분은 모르고 있어요.

여러분들은 원리를 배웠습니다. 탕감복귀역사라는 걸 배웠다구요. 여러분들은 쉽사리 선생님이니 혹은 무엇이니 하는 명사로 부르지만 그런 명사를 존중시하는 여러분이 되지 말라구요. 어떤 한 일개인의 몸뚱이를 존중시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구요. 나는 누누이 어린 식구들에게나 혹은 식구들에게 말합니다. 자기 스승이 쓰러져 죽는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붙들고 울기 전에 스승이 사랑하던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백성이 있는 것을 보고 이를 누가 대신 품어 주겠느냐고 이런 심정에 앞서 눈물지을 수 있는 그런 식구, 그런 제자들을 선생님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몸 마음 속에, 혹은 뼈와 살에 젖게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통일교회의 무슨 진리의 말씀도 필요하겠지만 그 진리 골수에 흐르고 있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고 어느 누가 유린할래야 유린할 수 없는 절대적인 선상에서 직선을 향하여 나를 간섭해 줄 수 있는 절대자와의 인연의 가치를 여러분 자신이 깊이…. 남은 모르나 내 스스로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여러분 자신들이 갖지 않았다 할진대 여러분들은 가다가 어느 한 때 어떻게 될지 몰라요.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성경을 배워서 알다시피 노아의 가정도 그러했고, 아브라함의 가정도 그러했고, 역사에 택하여져 선민권을 자랑해 오던 이스라엘 민족도 수천 년 동안 하나의 뜻, 약속의 한날을 고대하여 싸워 나왔지만 그들이 뜻을 대하지 못하고 약속의 실체를 대하지 못한 원인이 어디 있었느냐? 그것은 외적으로 나타난 환경은 중요시할 줄 알았으나 외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자기 선조를 넘어 입체적으로 맺어져 있는 하늘의 심정을 몰랐기에 그들은 배반자의 종족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효자·충신·열녀의 마음을 가진 무리는 절대 망하지 않아

오늘 여기 여러분들 대해 내가 제일 염려하는 것이 무엇이냐? 통일 성도들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수가 문제가 아니라 질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어떤 질이냐? 여기서 선생님이 `그래서는 안 돼' 하더라도 선생님이 지지 못할 짐을 진다 할 때는, 더 깊은 하늘의 심정이 그와 더불어 관계 맺어지는 것입니다.

하늘 앞에 사랑을 받을 수 있고, 하늘 앞에 그 가치를 결정받아 나선다 할진대는 내 자신도 그를 존중시하고 머리를 숙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거예요. 그런 마음이 없을 때 이 모든 천적인, 어떤 가치적인 문제를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후대에 상속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를 좋아하고, 그런 자를 존중시하고, 그런 자를 높이지 않는 어떤 대표자라면 하늘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길을 막는 자밖에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여러분들, 이제 우리는 최고의 것을 상속받아야 되겠습니다. 최후의 한점을 향하여 우리는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걸친 옷은 남루하고 처해 있는 환경은 어지러울망정, 일편단심 끓어오르는 심정 속에서 끊을 수 없는 주체인 그 절대자 앞에 내 개체로서의 최후의 가치를 향하여 가겠다는 결심만은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게 될 때 잠자고 난 그 순간이라도 내 피곤치 않다고 다시 일깨워야 됩니다. 저녁 석양에 기울어진 해를 바라보게 될 때 내 마음에 불타는 하늘을 위한 충성의 그 정열만은 서산에 기울어지는 해와 같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목표 밑에서 한 목적을 향하여 모든 것을 수습하고 나간다 할진대는 …. 이미 때가 되었다는 거예요. 수천 년, 혹은 몇천 년 전에는 우리 선조들이 그런 결심을 가졌지만 자기가 처하고 있는 현실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에 소망으로밖에 가질 수 없었는 데도 그것을 갖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됐다는 겁니다. 이 세상은 싸울 것입니다. 부딪치고 부딪쳐 가지고 내려가는 거예요. 최고의 자기 권한, 최고의 자기 영예, 자기의 권세를 자랑하던 그 모든 것이 최고의 절정에 다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절정에 다다른 그날부터 내려가는 것입니다. 내려간다는 거예요.

그런 환경, 그런 때가 왔거든 거기에 있어서, 최고의 자리에 있어서 자아도취 되어 만족하고 있는 그 무리들 앞에 몰림을 받고, 쫓김을 받고, 눈물 흘리는 자리에서 피투성이로 쓰러져 가는 몸을 부여안고 단 하나 내가 남겨야 할 유업은 무엇이며, 내가 남길 수 있는 유산은 무엇이며, 내가 상속시킬 수 있는 최후의 유언은 무엇이냐? 하늘을 대하여 타오르는 내 심정과 충성하고 싶은 효자의 마음, 충신의 마음, 열녀의 마음이라고 하는 무리들이 있다 할진대 그 무리들은 절대 망하지 않아요.

최고와 최고가 부딪쳐, 세상의 최고와 하늘의 최고가 부딪쳐…. 세상적으로 볼 때는 말할 수 없이 비참하지만 하늘적으로 볼 때는 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철두철미한 신념과 더불어 이 세계를 생각하는 데는 하나의 이념이 필요합니다. 누구를 위한 이념이냐? 아버지를 위한 이념입니다. 아버지는 이런 이념이 여러분의 이름과 더불어 아버지와 관계맺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6천 년 동안 곡절을 겪어 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그 일이 누구의 일이냐? 아버지의 일이예요. 아버지의 일인 동시에 여러분의 일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어느 누가 그 부모 대해서 내 어머니 내 아버지가 아니라고 부정할 것이냐? 거기에 무엇이 있느냐 하면, 내가 모르는 심정의 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아버지가 아니라고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심정이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이건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의 힘으로써 이것을 바꿀 수 없고 끊을 수 없는 거예요.

타락한 종족권 내에 있는 우리의 부모들도 그러하거늘, 본연의 심정을 통해 인연맺기 위하여 역사를 부여안고 역사노정에서 수많은 일을 하시는 아버지는 어떻겠느냐는 거예요. 그런 심정의 인연을 앞에 세우고 찾아 나오시는 아버지는 아직까지 그런 아들딸을 만나지 못하셨습니다. 그런 아들딸을 세우시어 그 아들딸로 말미암아 천적인 가정을 중심삼고 천적인 가정으로 말미암아 종족과 민족을 거쳐, 국가를 거쳐, 만민이 하늘의 백성으로 설 수 있고 하늘의 아들딸로 설 수 있게 하려고 했으나 그런 환경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연의 아버지는 이 세계의 끝에 가서라도 이 곡절의 세상 앞에 물들지 않은 참다운 아들딸과 상봉하여, 새로운 역사를 중심삼고 이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전환시키기 위한 한 때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가 가지고 여러분은 무엇 갖고 나갈 것이냐? 옷 잘 입는 것이 아니예요. 자기의 잘난 얼굴이 아니예요. 지식이 아니예요. 학식이 아니예요. 다 아닙니다. 내 속에 숨어 있는 나만이 갖고 있는 보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따라갈 수 없는 나만이 가진 이 보화, 이 가치를 절대자와 더불어 길이길이 만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의 것으로 찬양할 수 있는 그 마음이예요. 여러분 각자에게 그런 마음이 있다 할진대 그런 마음을 가진 자를 중심삼고 하늘은 말씀하시겠다는 거예요.

그런 마음,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 천지를 창조하신 아버지요, 절대자요, 모든 존재세계의 주체로 계시는 아버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에서와 같이 무슨 돈을 주고 끌어온 것이 아니예요. 어떤 수단에 의해서 끌려온 것이 아니예요.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내 심정이 이 자리까지 끌어온 것입니다. 그런 심정의 줄에 얽매인 사실을 여러분이 느꼈다 할진대 여러분과 아버지의 관계는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거예요.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 있으되 여러분이 움직이는 여하에 있어서 거기에 절대적인 가치의 내용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내가 먹는 것도 고깃덩이를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아무리 변하든, 처지가 아무리 달라졌든 아버지로 말미암아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한 자리에 있으면 있을수록…. 그러면 그런 절대자가 있다 할진대 오늘의 나 한 개체만을 중심삼고 가치적인 인연을 맺기 위한 것이냐? 아닙니다. 온 세계, 자기의 사랑하는 손길을 거쳐 지음받은 것이면 어떠한 존재물 하나라도 본연의 인연을 맺기 위해 지금까지 허덕여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심정으로 세계를 움직여

하늘은 이 세상을 전체적으로 움직이는 데 있어서 무슨 말씀으로 움직이려는 것이 아니예요. 심정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설명을 잘하더라도 설명보다 앞설 수 있는, 어찌할 수 없는, 내가 안 그럴래야 안 그럴 수 없는 심정으로, 하나의 목표를 향하는 불변의 심정으로…. 내 생활을 휩쓸어 가지고 환경을 급변시킬 수 있는 움직임이 반드시 역사적인 종점을 바라보는 끝날에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여기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그런 결심, 그런 자기 스스로의 심정적인 변화를 일으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도록 어떤 큰 힘이, 여러분의 가야 할 길을 지향시키는 그 무엇이 없걸랑 또 가야 됩니다. 찾아가야 되는 거예요. 여기가 여러분이 완전히 안식할 곳이 아니예요. 또 찾아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효자의 길에 있어서 자기 생명보다도 더욱 귀한 재산이 있다면 무엇이냐? 부모라는 것입니다. 충신의 길에 있어서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가치가 무엇이냐? 군왕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그 정성의 마음 그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열녀도 역시 마음이 문제예요. 그 마음은 어떤 인간의 힘으로써 수단으로써 가치로써는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스스로가 자연히 환경을 넘어 가지고 나도 어찌할 수 없는 양심의 방향과 더불어 생활적인 환경을 변화시켜 여러분을 이끌어 가는 느낌이 있다 할진대 다른 생각 할 필요 없습니다. 여기서 바라는 것이 제일 확실한 거예요. 반드시 천륜을 밝힐 수 있는, 인류가 공히 누릴 수 있는 하나의 도의 중심이 되어야 할 곳은 어떤 곳이냐 하는 것을 알았기에 심각히 생각하고 통일이라는 글자를 걸고 나오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다년간 모든 사람들, 악한 사람들을 붙들어 가지고 실험을 해봤다구요. 한 사람이 아니예요.

내 마음이 향(向)하는 그 움직임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나는 죽더라도 그것만은 남기고 가야 됩니다. 내가 죽더라도 그 움직임, 그 향심(向心)만은 남기고 가야 돼요. 이 타락한 세상에서 전멸당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마음만은 세계를 정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로부터 시작된 마음이라면 그 마음이 만민과 더불어 엉클어지기 위하여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마음은,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혹은 동 서양을 넘어서, 어떤 민족적인 전통을 넘어서, 국경을 넘어서 환경은 다르지만, 심정의 세계에 있어서는 느껴지는 그 감촉과 마음의 방향은 변치 않는 작용을 절대자와 더불어 관계맺을 수 있다면 그것이 최후의 길입니다.

본연의 모습을 일으켜 절대자와 인연 맺어야

여러분은 자기도 모르게 좋은 일이 있으면 누구한테 보이고 싶어요? 주인 앞에, 절대자 앞에. 슬픈 일이 있으면 누구하고 나누고 싶어요? 귀한 분하고.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내가 기쁘고 좋을 때에는 발길이 바빠요. 나에게 먹을 것이 있고, 좋은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좋은 게 있으면 그분을 생각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것은 나에게만 있어야지 그분에게 있어서는 안 돼' 하는 마음이 여러분 자체에서 우러나온다 할진대 여러분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저녁 사방에서 몰려왔습니다. 여기 서서 말하는 선생도 일대일로 보면 뭐 별거 없다구요. 마찬가지예요. 그러나 문제는 여러분이 모르는 내적 세계에 있어서 그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어떤 수단 방법으로는 절대 안 돼요. 당장에 그 세계, 그 심정적인 인연에 내가 찾아 들어가게 될 때에는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어요.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사무쳐 들어오는 심정적인 그 무엇이 있기에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입니다.

내가 오늘 젊은이들을 바라보게 될 때, 마음에 솟구치는 것이 무엇이냐? 꽃다운 청춘시대, 혈기 왕성한 이때에 하늘 대하여 충성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여 가지고 놀랍게 숨겨져 있는 본연의 그 모습을 일으켜 절대자와 인연을 어떻게 맺게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야 할 인생노정에는 곡절이 많습니다.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믿을 수 없는 세상이요, 어느 사방 주위를 바라봐도 자기 일신을 가꾸어 천성의 인연을 맺기 위해 눈물 흘릴 수 없는 환경이 많다는 거예요. 환경이 그런 동시에 내 자신도 그러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한 분이 있다 할진대 그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밖에 없어요.

6천 년 동안 역경 속에서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슬픔을 머금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처량한 눈물을 한없이 흘리는 자리에 가 있다 할지라도, 가슴을 억누르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배반하고 돌아서는 자가 있는 그 자리에 있어서도 `너는 가더라도 내 사랑하는 아들은 남아 있다. 하늘의 약속을 받아 가지고 민족을 대신할 아들을 보내 주마' 하셨습니다. 이런 마음을 품고 소망의 마음을 앞놓아가면서 현재의 악한 것을 잊어버리고 나온 우리 아버지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현실의 억울함 가운데에서도 소망의 아들딸이 오래지 않아 찾아온다. 내가 소망하고 내가 싸우는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하나의 아들딸들이 앞으로 나타난다. 내가 현세에는 비참함, 억울함, 한스러움을 당하지만 천지를 한시에 파괴해도 마땅치 않은 이런 심정에 사무쳐 있지만, 이런 억울함을 다 이해하면서 이 억울한 자리가 다시는 내 앞에 보여지지 않도록 참다운 아들딸들이, 소망의 아들딸들이 앞으로 온다' 하고 바라시는 아버지라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별의별 해괴망측한, 볼래야 볼 수 없고 들을래야 들을 수 없는 참상이 벌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건 다 지나가라! 이것이 지나가고 소망의 한날이 올 때에 그리운 내 아들, 그리운 내 딸…' 이러시면서, 슬픈 일을 당할 적마다 마음으로 외치시고, 곡절에 부딪칠 때마다 참는 마음으로 이렇게 읊으면서 나오신 아버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남 모를 심정의 곡절을 많이 가져야 행복한 사람

민족을 대신하여 내세웠던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도 하늘의 사정이 이렇다고 통곡하여 가르쳐 줬으나 그 사정을 다 유린해 버렸습니다. 그럴 적마다 `민족에 대한 내 사정을 모르는 이스라엘아! 너는 갈지언정 내가 너에게 사정했던 소망만은 남아 있다. 나는 이 심정을 갖고 이스라엘 너를 대했지만 너는 갔다. 그러나 너를 대하던 소망의 심정만은 남아 있다' 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밥을 먹어도 한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내가 어디 즐거운 그 한 자리, 소망과 사정과 심정이 어우러지는 그 한 자리에서도 사탄의 참소조건을 벗어나 자유스러운 보금자리에서 아버지를 모셔 놓고 밥을 들 수 있는 그 한 시간을 그리워하면서, 여기서 말하는 사람도 그런 소망의 마음을 가지고 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대해 여기서 이 한 마음을 통해 외치지만 오늘 여기에서 외치는 그 가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의 마음을 갖고 외칩니다. 소망의 가정을 품고 외칩니다. 소망의 심정을 갖고 외치게 된다는 거예요. 아버지를 붙들고 소망을 가졌던 그들의 배반, 사정을 통하였던 그들의 배반, 심정을 나누었던 그들의 배반을 바라보면서도 `너는 가라, 가려면 가라! 소망의 아들딸은 찾아오나니, 소망의 사정은 남아 있나니, 소망의 심정은 남아 있나니…' 이러면서 내 아버지가 품고 나오시던 그 뜻을 따라 나도 그렇게 가야 된다는 자리에서 지금도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비록 내 마음에 품은 것은 없고 내 가슴에 담아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소망하시던 그 소망의 아들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아버지의 사정을 그리워하고, 심정을 나눠 주시던 아버지의 그 심정을 그리워하는 소망의 사람이라도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망하시던 그 한날 내 아버지를 모실 때 어떻게 모시겠다고 여러분은 준비해야 될 것입니다. 나는 그분을 만나게 될 때 이러한 사정을 통하겠다고 하는 사정의 곡절을 많이 가져야 될 것입니다. 내 억울한 모든 심정을 이렇게 아버지 앞에 아뢰겠다고 하는 남모르는 심정의 곡절을 많이 가진 사람이 행복한 자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예요. 한스러운 역사의 사망의 고난은 소망의 사상을 유린하고, 사정과 심정을 유린하고, 하나의 도의 심정을 갈래갈래 찢어 놓는 세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이 시간도 이러한 사정들을 수수방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은 나 대신 이 소망을 위하여, 이 심정을 위하여, 이 사정을 위하여, 우리들을 위하여 오늘날 이 현장에서 싸우고 있다는 걸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걸 잘 알아야 돼요. 누구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그런 것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지방에 나가 전도하든가 혹은 계몽 나가게 될 때, 영적인 수준이 높은 사람이 여러분들을 증거하게 됩니다. 왜 증거하느냐? 소망의 한날을 위하여, 사정의 한날을 위하여, 심정의 한날을 위하여 수많은 영계의 영인들은 지금 이 시간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전체가 동원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소원과 여러분의 사정과 여러분의 심정이 하늘의 소망, 하늘의 사정, 하늘의 심정과 연결될 수 있는 하나의 때를 준비하기 위하여…. 그 놓여질 수 있는 그 기준은 어떤 민족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하늘땅의 기준이라구요. 하나님도 여기에는 안식할 수 있는 그 기준을 향하여 나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다 잊어버려도 좋다는 거예요.

오늘의 내 자신이 그런 사람이 못 되었거든, 소망을 이루는 자로 서지 못하였거든,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서지 못하였거든, 심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서지 못하였거든 소망의 한 사람이라도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소망을 품고 소망의 사정, 소망의 심정을 향하여 아버지 앞에 나서 가지고 `내 아버지여! 그대의 사정이 이것이지요? 그대의 심정이 이것이지요?' 할 수 있는 오늘의 여러분이 못 됐거든 그런 자리에라도 서지 못하면 여러분 갈 길을 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오늘 저녁에 이것을 전부 다 수습하여서 가야 되겠습니다. 한 분을 위하여 내가 있기 때문에 내 생각이나 모든 것이, 내 영혼이나 모든 것이 그분을 위하여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인간의 목적입니다. 피조물이 그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그 한 분을 위하여 내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나는 그 한 분을 위해서 있습니다. 어떡하든지 그 한 분을 대신해 있습니다.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밤이나 낮이나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 할 수 있어야 돼요.

그분이 소망의 심정을 갖고 왔지만 사정을 나누지 못하고, 천지의 모든 것이 그리워할 수 있는 그런 심정적인 기준을 오늘날 인간들과 더불어 관계맺지 못하고 그 소망이 유린되었습니다. 소망을 갖고 그 시대적인 책임자 앞에 그 책임을 맡겨 소망의 자리에 세웠고, 그 시대적인 사정을 논했고, 그 시대적인 심정을 논했으나 다 유린되었다는 겁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세계적인 소망의 때요, 세계적인 사정의 때요, 세계적인 심정의 때입니다. 그런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때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분 알아야 됩니다. 절대적으로 그 하나의 마음만….

최후의 고비를 넘어갈 때 하나님의 후원을 받아서는 안 돼

그러면 여러분이 그분을 대신하여 있다는 걸 느낀다 할진대는 좋은 것만 그분을 대해서 내가 책임지고 내가 대신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물론이로되 나쁜 것도…. 타락을 누가 했어요? 우리 선조 아담 해와가 했던 거예요. 그래, 하나님 앞에 `6천 년 동안 소망의 실체를 갖지 못한 당신 앞에 나는 소망의 실체로서 가정을 대해서도 그렇게 하겠사옵고, 가정을 대신해서 이 사정을 나누고 싶사옵고, 가정을 대신해서 이 심정을 알고 싶습니다' 이렇게 해야 됩니다.

오늘 이 땅은 어떤 땅이예요? 타락한 땅이요, 죄악의 땅이요, 원수가 준동하는 땅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을 막고 갈래갈래 찢어 버리기 위한 땅이예요. 원수와 싸우는 땅이예요. 싸움은 누가 해줘요? 하늘이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 되겠다 이거예요. 이 싸움을 우리가 책임져야 되겠다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이 싸움을 맡긴 것만 해도 억울한 것입니다. 이 싸움을 하겠다고 결의와 각오를 하고 나선 무리가 누구냐 하면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이제 최후의 싸움이 남아 있습니다. 하늘을 움직이고 땅을 움직여 싸워야 할 최후의 싸움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싸움은 누구 때문에? 아버지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왜? 아버지 때문에 내가 있으니…. 아버지가 그러한 자리에서 나를 키우고, 그런 길을 가르쳐 주고, 그런 길을 소망으로 품고 나오던 하나밖에 없는 그 사랑의 심정을 우리와 연결시키기 위해서 수고해 오신 것을 생각만 해도 고마운데, 오늘날 그런 것을 알고 나서 또다시 그걸 맡길 수 있어요? 이제는 우리를 하늘이 후원해 주나 안 해주나 우리가 책임져야 됩니다. 하늘의 구원을 생각할 때 너무나 미안해요. 너무나 황공하다구요.

우리는 탕감복귀의 원리를 배웠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하나님이 후원해 줬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아담 해와가 생겨날 때까지는 하나님이 빚어서 만들었지만, 타락할 때 하나님께서 `너 타락해라' 그렇게 후원해 줬어요? 후원 안 했다구요.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최후의 고비를 넘어가는 그때에 하나님의 후원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천상세계의 천사의 후원도 받아서는 안 돼요. `이것은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해야 돼요. `당신은 이러한 소망의 한때에 심정적인 중심을 통하여 심정적인 인연을 통하여 세우고자 하셨던 당신의 족보가 이렇다는 걸 알았으니 하나님의 후원, 천사의 후원, 영계의 어떤 성도의 후원도 받지 않고 이젠 나 혼자 하겠습니다' 이럴 수 있는 열성을 가져야 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이때에는 어느 누구의 후원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여기 선생님도 여러분들을 내보내서 원수의 소굴에 처넣을 것입니다. 왜? 일시에 탕감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간교한 때요, 이때는 죄의 기교가 많은 때요, 이때는 자연 유인당하기 쉬운 때요, 이때는 역사적인 전체의 결재시대입니다. 악한 것이 있다면 최고의 악입니다. 그걸 쓸어내야 돼요. 거기에서 시험치고 나서 늠름하게 자기의 용자를 하늘 앞에 내세울 수 있는 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양심에 부끄럽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앞으로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후원해 주지 않습니다. 해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젠 알았다구요. 내 갈 길을 알았고 최후의 가치가 어떻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절대적인 부자관계라는 것을 알았고, 그 부모 앞에 진 빚은 몸뚱이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져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입을 벌려 가지고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할 수 있어요? 여러분이 앞으로 나가 전도할 때 환경이 어렵게 되면 `아버지! 내가 배고파 죽겠습니다' 이런 기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이런 자리에 섰음은 저들을 위한 것이었사오니 이런 것을 보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으시거든 저들을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이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동절기에 추운 방에서 잠을 자게 됐을 때 사정없이 찬 바람이 내 일신을 몰아치고, 혀와 같이 몸을 구부리고 자는 모습으로 눈물짓는다 하더라도 `아버지여! 나를 불쌍히 보시거든…. 내가 이렇게 있음은 이 민족을 위함이요, 세계 인류를 위함이 아닙니까? ' 이렇게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지 않으면 절대 여러분은 풀리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이 앞서 가지고 나가는 자는 절대 하늘이 같이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내 보니까 알겠더라구요. 감옥에 들어가 영어의 몸이 되어서 여지없이 이런 환경에 처할 때면 하늘은 난데없는 사람을 통하여 굶주리면 먹을 것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옷을 구하지 않았지만 입을 것을 갖다 주더라는 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편안한 자리에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역사를 겪어 왔기 때문에 당당히 말할 자신이 있다는 거예요. 양심적으로 가책이 안 돼요.

서울에서 내가 가까운 식구들 모아 놓고 한 말이, 네가 나를 사랑하고 존중시하거든 네 양심에 가책이 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말할 때마다 그랬습니다. 내가 잘 먹고 잘 입는 표준에서는 말 못합니다. 내가 고생함으로 말미암아 버젓이 말할 수 있어요. 내가 어려운 자리에서 수고함으로 말미암아 민족 앞에 버젓이 나설 수 있고, 만민 앞에도, 하늘땅 앞에도 위신을 세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행치 못한 기준에 있게 될 때는 양심이 입 못 벌리게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부디 마음만은 하나님을 위주로 한 여러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삼천만 민족을 찾아 품고자 하는 아버지가 계신다면 그 아버지 앞에 초라한 모습이나마 삼천만 민족을 넘어서서 아버지의 심정을 염려하며 눈물지으며 내 일신의 처량한 모습을 잊어버리고, `아버지여! 나를 긍휼히 보시거든 이 민족을 사랑해 주시옵소서' 한다면 그로 말미암아 그 민족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된 자여, 자식을 키우되 훌륭한 사람을 만들고 싶거든 자식을 세워 놓고 남에게 말할 때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마음을 가져라 이겁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세워 놓고 만민 앞에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자리에서 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하늘은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 위에서 30평생을 살다가 죽어갔고, 그 대상인 성신도 이 땅에 와서 피눈물 나는 길을 갔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할말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이제 이 민족 앞에 나선 우리라 할진대, 더 나아가서는 인류 앞에 나선 우리라 할진대 여러분들이 앞으로 이 민족 앞에, 이 세계 만민 앞에 말할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 수고하신 아버지 앞에 말할 때 양심에 가책되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자리에서 여러분이 나간다면 나중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늘은 곡절이 많은 데로 인도하시는 것 같지만 최후에는…. 자기 태어난 천성을 잘 아시는 하늘이기 때문에, 하늘은 사랑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내가 어떤 계기와 어떤 수단 방법을 개의치 않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보다도 내가 떨어지는 것 같고 불쌍하게 망하는 것같이 이끌려 들어가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상의 최고의 그곳까지 하늘은 책임지고 끌어당기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때까지 지탱하지 못하기 때문에 걱정이지요. 몇 해만 가면 다 굴러 떨어진다구요. 야곱도 21년, 노아 할아버지도 120년, 모세도 120년이었으니 못해도 10년 단위는 훌훌 넘어가야 된다구요. 삼칠은 이십 일(3×7=21), 7년 이상 넘어가야 됩니다.

남자는 아버지의 분신이요 여자는 어머니의 분신

여러분들이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나서게 될 때, 하늘은 여러분들을 누구 대신으로 세우려고 그러는 지 알아요?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무리들을 누구 대신 세우려고 하느냐? 앞으로 오시는 주님 대신 세우고, 지금까지 이 땅에서 역사하신 삼위신을 대신하여 세우고, 나중에는 아버지 자신을 대신해서 세우려고 하시는 겁니다. 실체의 어떤 결과적인 실적의 가치를 가져야 할 이 세계에서는, 마음의 세계에서는 나타난 가치는 지극히 작고 미미하다 하더라도 그 심적인 동기는 목적을 넘어 소망의 심정에까지 붙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일이 비록 미미하다 하더라도 그 가치는 아버지를 대신한 가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금 나가 있는데 누굴 위해 나가 있느냐? 먼저는 여러분 자신을 위해 나가 있고, 그다음에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버지 대신자예요. 여러분이 아버지 대신자면 뭐냐? 아버지의 소망, 아버지의 사정, 아버지의 심정을 여러분은 상속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은 기필코 여러분을 이 땅 위에 만민의 대표자로서, 만우주의 주인공으로 세우기 위한 창조목적을 달성할 것입니다. 그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끝에 가 가지고는 여러분들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대신자예요, 대신자. 남자는 아버지의 분신이요, 여자는 어머니의 분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누어진 몸입니다. 창조원리에서 배운 것과 마찬가지로 대신한 몸입니다.

선생님이 금년 정초에 본부교회에서 강조한 것이 뭐냐? 이것이었어요. 금년에는 여러분들이 아버지 대신이니 책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소망의 대신이요, 사정의 대신이요, 심정의 대신일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사탄을 대해서 싸우는 싸움의 대신자입니다. 이 싸움에서는 하늘의 후원을 받아서는 안 돼요. 여러분들의 자력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지금까지 40평생을 나오는 도상에 있어서 누구의 협조를 안 받았습니다. 내가 맡은 바의 책임은 생명이 끊어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에게 신세 안 져요. 여러분의 갈 길을 지도해 주는 스승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리하여 지금 3년 이 기간을 조건삼아 한계를 정해 여러분들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내세운 여러분들은 누구냐? 아버지의 대신자요, 삼위신의 대신자입니다. 참부모의 심정을 대신하여 나선, 참부모의 사정을 대신하여 나선, 참부모의 소원을 대신하여 나선 여러분이기 때문에 이 법을 유린하는 자는 용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용서가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자신이 쌍수를 들어 하늘 앞에 맹세하고 나서는 데 있어서 `아버지여, 나는 이제 아버지의 대신이로소이다!'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세 사람의 증거가 있어야 돼요. 그걸 누가 해 줄 것 같으냐? 참부모가 해주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모셔 놓고 삼위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땅을 대신한 나는 어쨌든 창조원칙을 통한 본연의 아버지의 분신으로서, 어머니의 분신으로서 손을 들어 삼위신을 입증하는 자리에서 맹세하고 나서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날에 있어서 무엇을 책임지느냐? 하늘의 소망의 마음입니다. 하늘이 사정을 품고, 심정을 품고 지금까지 가르쳐 주지 못하고 나오던 이 사실을 여러분 앞에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고 아버지의 사정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아버지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를 위해서는 남 모르는 비밀 길에서 고생을 해야

여러분 자신들이 남한 각지에 지금까지 8백여 곳에 계몽 나가 있습니다. 나는 어떤 많은 성과 내기를 원치 않아요. 나갔다 들어오게 될 때에 무엇을 남겨 놓고 들어올 것이뇨? 아버지의 정신, 참부모의 정신, 성부 성자 성신의 정신을 남겨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 부락에서 철수해 오더라도 거기에서 잊지 못할 여러분의 모습, 꿈에라도 떠오르고, 생각에서도 떼낼 수 없는 여러분의 모습을 남겨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고 돌아오게 될 때…. 3년 기간에 우리의 생활적인 모든 것이, 눈물과 땀과 피가 흘려져 있어야 됩니다.

6천 년의 최후의 종결을 지어야 할 하나의 소용돌이가 치고 있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3년 도상에 있어서 여러분이 어떤 부모된 자가 있다 할진대는 자기 자식들을 이러한 기간에 내세우지 못하면 천추의 한이 될 것입니다. 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가진 자들이 이런 때에 뜻 앞에 있어서 이런 기간에 동참하지 못할 자리에 있으면 천추의 한이 될 것입니다. 그런 부모를 갖지 못한 그 후손은 한할 때가 올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개체의 몸에 아버지를 모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전부가 건설이예요. 에덴의 아담 해와가 집 지을 때 무슨 기구가 있었어요? 연장이 있었느냐구요?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앞으로 지방에 가서 여러분 개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서게 되면 반드시 거기에는 자기가 머물 수 있는 숙소가 있어야 됩니다. 숙소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어야 돼요. 여러분의 집을 지어 나가는 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의 집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집이예요. 여러분들의 집을 짓는 데 있어서 여러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하면 망해야지요.

동산을 남겨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모셔 놓고 축복받기를 원해야 합니다. 축복해 주기를 그리워하던 하나님이요, 축복받기를 속사람이 그리워했던 아담 해와였다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벌판에서 축복받겠다고 하는 사람은 망하는 거예요. 초가삼간 지어 놓고 어찌 아버지 앞에 축복받겠다고 할 수 있어요? 사탄세계는 저렇게 어마어마한 자리에서 향락을 누리고 있는 이때에 내 무슨 자랑할 것은 없사오나 내 마음만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다고 자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몸 대신이요,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창조하시던 그 이상의 가치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돈이 없습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본부에서 수많은 사람을 동원할 때 돈 천 원 한 장도 없었습니다, 남들은 말하기를 통일교회 돈 많다고 하는데. 돈이 없더라도 해야 할 우리의 운명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천륜의 곡절이 있으므로 여러분 일신을 통하여 이 민족의 운명을 가로막고 있는 현세를 타파해야 할 사명을 감수해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을 내 어린 시절의 한 때를 회상하면서 내몰았습니다. `자라고 있는 이 어린이들을 당신을 위하여 피눈물 뿌리며 호소하던 그 모습을 대신하여 내몰겠습니다. 그때에 당신께서 이렇게 주장했고, 이런 때 이렇게 붙들어 주시던 당신이 있는 것을 아오니…' 하며 여러분들을 내몰았던 겁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아니예요. 여러분 내보낼 때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며 여러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외식자예요. 여러분의 피와 땀을 농락하는 거라구요. 그래, 여러분이 심정의 빚을 지지 않기를 지금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늘 앞에 서서 아버지가 쌍수를 들어 축복하시는 그날 야곱의 일가가 하늘의 축복받는 무리가 되었던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종족의 조상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때에 하늘의 배반자가 되고 천추의 심정적인 범죄자로 등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등장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아담 해와는 심정적인 범죄자가 됐습니다. 미완성권 내에 있어서 하늘이 허락한 심정을 기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 대신자입니다. 싸워야 되겠어요. 이를 악물고 싸워야 되겠습니다. 야곱은 하란 라반의 집에 가서 싸웠습니다. 애급에 가서 싸웠습니다. 예수도 이 땅 위에, 사탄세계에 와서 싸웠습니다. 무엇을 위해? 사람을 빼앗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을 복귀의 노정이라 하는 것입니다. 잘 알 거예요.

하나님의 한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 앞에 세 제자까지 배척한 거요, 열두 제자가 배반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탕감복귀노정은 꺼꿀잡이입니다. 여러분들도 부모의 자리에 나가기 위해서는 믿음의 세 아들딸을 만들어 놓아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못 나가요.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꺼꿀잡이. 아담 해와가 부모가 되어 가지고 자식을 낳았다면 정상적인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백성이 될 것이었는 데 타락했기 때문에 꺼꾸로 뒤집어졌으니 하늘은 종을 시켜, 천사를 시켜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시대입니다. 아버지가 천사와 협조해서 그런 백성을 만드는 데 꺼꾸로 올라가는 거예요.

그다음에 아들을 만들어 가지고 부모의 기준을 통해서 하늘과 인연 맺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들도 예수가 가던 길을 이를 악물고 가야 됩니다. 탕감복귀 노정을 가기 위해 남 모르는 비밀의 길에서 얼마나 고생을…. `내가 마땅히 받을 세계가 있으나 받을 때까지 나의 답답함을 어찌 알겠는가? '라고 탄식하는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서 외치고 있는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40평생 다리를 못 뻗어 보고 뜬구름같이…. 발과 몸뚱이를 놓아 놓고 한 날을 안심하고 살지 못했습니다. 흘러가는 구름결같이…. 탕감복귀의 길이 이렇게 힘들다는 걸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이 갈 길은 아버지 앞에 제물 되는 것

그러나 여러분들은 지극히 좋은 환경에 있습니다. 우리의 진리를 들고 나서면 하늘이 평면적으로 역사하실 수 있는 때입니다. 심정기준이 땅을 중심삼고 벌어질 수 있는 때가 왔기 때문에 평면적으로 하늘이 역사하실 수 있고 여러분 자신들이 예수와 성신의 역사를 전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대신, 성신 대신이 되어 가지고 상대 방향을 일으킬 수 있는 평면적인 입장에 들어왔으니 사탄이 지금 벼르고 있다는 거예요. 그 고개를 넘어가야 됩니다.

이젠 선생님이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그걸 할 때까지는 죽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이제 인간들이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에 있어서 필요조건이 뭐냐? 여러분에게 직접적으로 평면적으로 사탄 대해서 가르쳐 주더라도 참소할 수 없는 시대가 왔으니, 이 3년 기간이 무슨 기간인 줄 알아요? 여러분이 피와 땀과 눈물을 중심삼고 사탄세계에 가서 잃어버린 아들딸을 찾아오는 기간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그 부락에 들어가는 데는, 여러분이 배정받아 그곳에 나가는 데는 그 목적이 뚜렷해야 됩니다. 무엇 때문에 나와 있느뇨? 잃어버린 부모의 입장, 자식을 찾아 헤매는 사무친 부모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가르쳐 줘도 모르니 부모가 이렇다는 것을 심정적인 면까지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소원을 오늘에 있어서, 아버지의 사정을 오늘에 있어서, 아버지의 심정을 오늘에 있어서 `내 아들아, 내 딸아! 네가 소원의 실체요, 사정의 전통이요, 심정의 전통이다'라고 나타낼 수 있는 그 환경을 얼마나 고대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마당에서 여러분 빚지지 말라구요. 선생님은 한푼도 도와주고 싶지 않아요. 도와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공적으로 도와주면 안 돼요. 각자 책임진 노정에 있어서 통일신도가 가야 할 길은 아버지 대신의 길입니다. `아버지의 소망, 사정, 심정이 오늘날 내 자체에 나타나는 결실이 되겠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소원을 내게 주시옵소서. 당신의 사정을 내게 주시옵소서. 당신의 심정을 내게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소망의 심정, 소망의 사정, 소망의 소원으로서 여러분 자체가 주체가 되고, 여러분 자신을 통하여 하늘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참부모의 대신자, 아버지의 분신 어머니의 분신으로 아버지 소원의 실체요, 아버지 사정과 아버지 심정의 실체로서 등장해야 됩니다. 아까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6천 년 동안 지금까지 아버지의 소원적인 실체, 사정적인 실체, 심정적인 실체로 나타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소원을 내 것으로, 그 사정을 내 것으로, 그 심정을 내 것으로 해야 됩니다. 하늘 대해서 이 땅 위의 여러분의 갈 길은 여러분이 아버지 앞에 제물이 되는 길입니다. 여러분이 책임져야 돼요. 앞으로 여러분이 최소한 그런 심정을 갖고….

그렇기 때문에 신세를 지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돈이 없으니 자기 어머니 아버지한테 달라든가 뭐 어떻게 할 거예요. 배가 고프면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서 조르면 어머니 아버지는 멋도 모르고 그저 도와주는 겁니다. 그래서 그 조건으로 말미암아 어머니 아버지는 복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을 닦아 준다는 거예요. 구체적인 설명은 안 하겠습니다. 때가 그런 때라구요.

또, 여러분들 지금 운세를 보라구요. 1960년은 세계 전환의 때라고 원리에 딱 나와 있습니다. 이 3년간은 예수님의 공생애노정의 3년간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기간에 완전히 동참해서 승리자가 되면 예수님 대해 오빠라 할 수 있고, 형님이라 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최후의 이 격전에 있어서 패자가 되지 않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어요? 「예」

기 도

인생이 바라던 소망의 실체도 당신이었사옵고, 잃어버려 눈물을 흘리게 된 동기의 실체도 당신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는 당신이 없으면 하나에서부터 천만사가 전부 다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생명도 당신을 잃어버리고는 무의미한 것이요, 내 욕망과 내 소망과 내 모든 존재의 힘의 가치도 당신을 잃어버리고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일깨워 주시어서 제 마음을 재촉하여 최고의 기준과 연락하기 위한 당신의 구원의, 소원의 뜻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저희들은 너무나 황공한 심정으로 머리 숙였사오니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타락한 후손으로서 어느 누가 당신 앞에 버젓이 서서 저는 당신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가면 갈수록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고, 가면 갈수록 뼛골에 사무친 눈물을 짓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오늘 저녁 여기에 모인 어린 것들, 당신의 무릎 앞에 모여 당신의 소원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제 어떤 욕망을 이들에게 주고 싶고, 그 욕망은 당신의 욕망과 바꾸고 싶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소망하는 모든 소망도, 사정의 모든 것도, 심정의 인연의 모든 것도 당신 앞에 맡기겠사오니, 맡기고 날 적마다 맡기려는 그 입장을 굽어 지켜 봐 주시옵소서. 또, 맡길 수 있는 그 기준이 못 되어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아버지 앞에 호소하면서도 눈물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렇게 하여서라도 당신의 뜻을 이루어야 할 것을 이제 알았사옵니다. 고생 고생하여 한 생명을 붙들어 아버지 제단 앞에 세우시어 충성을 다짐하고 제단을 키우는 하나의 제사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피와 눈물이 섞이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여기에 당신이 직접 염려하시는 아들딸들이 있을 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심정을 나눌 수 있는 무리가 되기를 저는 고대합니다. 불초 이들을 이끄시는 아버지,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이들이 눈물 흘릴 때 같이 눈물을 흘리시는 것도 알았사옵고, 매맞을 때 같이 억울함을 느끼시는 것도 알았사옵고, 쓰러질 때 권고하시던 당신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런 아버지 앞에 제 자신이 그렇게 대신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오늘 이 시대의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 앞에 송구한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하늘이 대신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뜻을 중심삼고 이 모든 천지의 움직임이 그들의 마음과 동반할 줄 알고 있사옵니다. 환경적인 희생의 조건을 아버지가 처치해 줄 수 없사온데 저희들이 탕감적 자리에 놓여 있으면서 당신에게 염려를 끼쳐 드림을, 아버지,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하오니 끝까지 참고 이기는 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무리 억센 설한풍이 저희를 휩쓸어 갈지라도 저희 몸에 타오르는 아버지를 향한 일편단심만은 남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몸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하늘아, 땅아, 나는 충성을 다 했노라!' 할 수 있는 붉은 심정의 마음만은 남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을 대신하여 지방 지방, 더욱이나 전라북도 이 한 지방을 대한 당신의 뜻이 컸던 것을 저는 아옵니다. 이제 만 7년을 넘는 이 한 기간에 있어서 당신의 뜻이 다시 여기에 불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어린 것들을 통하여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시옵고 심정과 심정을 연결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길은 지상의 무슨 간격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궁핍한 자리에서 한 그릇 죽을 나누어 먹으면서도 눈물을 합하여 나눌 수 있는 이런 모습들인 것을, 아버지, 기억하옵소서.

세상에 남기고 갈 무엇이 있습니까? 죽으면 물로 돌아갈 몸을 다 잊고 뜻만을 길이 고이 마음에 넣으면서 높일 줄 알고 섬길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저희 식구 식구끼리는 시간을 넘고, 시간점을 초월하여 아버지를 찬양해 주기를 저는 바랐습니다. 하늘과 땅, 밤과 낮이 갈라지는 이 절기 위에 어둠의 권세가 드리워진 것이 한스러운 것을 저는 알았습니다. 한 시간이라도, 밤에라도 아버지를 노래하고 아버지를 의지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을 통하여 밤이나 낮이나 당신이 기쁜 가운데서, 당신이 만족한 가운데서 모실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뜻을 성취하는 노정에 있어서는 밤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잠 못 자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굶주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핍박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다 지내 보니 거기에는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눈물 흘리는 곳에는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이하는 녹음이 안 되어 있어서 수록하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