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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표준점

일시: 1972.10.08 (일)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기 도]

오늘은 10월 8일, 이달은 결실의 달이요. 이날은 이달을 맞이하여 두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아버지, 지나가는 나날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지나가는 나날들은 당신이 원하는 뜻을 높이고 자신들이 가야 할 인생길을 다짐하면서, 1972년도도 후반기를 향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침이면 변함없이 아침 햇빛을 맞이하고, 그 가운데서 하루의 생활을 영위하면서 참신한 인생길을 더듬고 참신한 가치의 노정을 찾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저희들의 모습을 아버지께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을 줄 아옵니다.

여기에 모인 어린 자녀들은 천태만상의 심성을, 마음의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여, 저희들은 당신이 찾을 수 있고, 당신이 임할 수 있고,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본연의 자세를 갖추어 응할 수 있으며, 화할 수 있으며, 처할 수 있는 아들의 모습과 딸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내적 심정을 가다듬고 저희들의 모습을 정시하여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줄 아는 자녀들이 돼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입을 열어 명령하시는 그 말씀이 내 개인에게 있어서 어떠한 가치의 기준을 세워 놓고 하시는 말씀인가를 저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방향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시는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자, 저희들은 처하여 있는 위치를 확정짓고 당신이 지정하시는 목적지를 향하여 직행할 수 있는, 뜻과 더불어 일치될 수 있고, 당신의 마음과 더불어 일치되어 가지고 당신이 바라는 참다운 아들딸의 모습을 저희들이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그러한 것을 바라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아버지여, 이 자리는 통일교회의 본부가 되는 자리입니다. 그러기에 수많은 자녀들이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흠모하고 있는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진정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자리가 인간뿐만 아니라 하늘이 지중한 사명을 맡기고 있고 역사적인 새로운 기원을 다짐짓기를 바라고 있는 자리인 것을 생각할 때, 이 자리는 하늘이 주시하는 자리요. 인간들이 주시하는 자리요. 하늘편과 인간편의 중앙에서 하늘을 모시고 인간다운 길을 감으로 말미암아 치우치지 않고 당신의 뜻을 향하여 직행해 나가야 할 책임을 짊어진 자리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하오니 아버님이여, 저희는 확실한 목적관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 목적을 대하여 하루하루의 생활에 있어서 틀림없는 방향성을 가려 가지 않고는 참다운 인생의 행로를 다 갈 수 없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확실히 아는 저희들이 돼야 되겠습니다.

수많은 날들을 보내는 가운데 그저 그 모양으로 보내서는 안 되겠습니다. 무엇인가 달라지고 변화하여 당신의 심성에 귀일 될 수 있는 모습을 그리워할 줄 아는, 또 그 자리에 설 줄 아는, 당신의 창조이상의 하나의 실체의 모습을 대표할 수 있는 거룩한 무리들이 돼야 되겠습니다. 이런 무리를 당신의 뜻을 통하여 만나고 찾고자 한다는 것을 저희들이 이미 알았습니다.

역사상의 수많은 선조들도 이것을 위해서 암중모색하던 수난길을 다 극복하지 못하고 탄식의 한을 남기고 역사와 더불어 흘러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통일의 무리이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지난날의 선조와 같은 전철의 행로를 다시 밟아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하게 될 때, 그들도 그 길을 원해서 간 길이 아닌 것을 아옵니다. 그들도 안간힘을 다하여 몸부림쳤지만 그런 결과에 도달하여 슬픈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 버렸사옵니다.

참다운 신앙의 길을 세워야 할 그 자리에 있어서 하늘과 더불어 위로의 대상이 돼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결정지어 하늘 앞에 봉헌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한의 오점을 남겼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오점은 천상의 모든 오점으로 남아져 한의 조건을 계승할 수 있는 기원이 되었다는 이 원통한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 느낄 줄 아는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아버지라 부르게 될 때, 그 아버지가 막연한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직시하여 아버지가 가는 방향을 저희가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그 길이 평탄한 길이라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수난에 수난이 가해지는 길이라 할지라도 필시 하늘이 간, 부모의 길이었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자녀의 의무라는 것을 느낄 줄 아는 저희들이 돼야 되겠습니다.

개인의 수난길을 극복하고 가정의 수난길을 개척해야 되겠고, 가정의 수난길을 극복하고 종족의 길을 개척해야 되겠고,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향하여 전진적인 개척의 행로를 더듬어 가야 할 한스러운 복귀의 길을 저희들은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각자가 어떤 자리에 있는가를 자기 스스로 명시해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자신에게 매여진 이 쇠고랑을 아직까지 끊지 못하고 있습니까? 자신이 빠져 있는 함정의 자리에서 신음하고 있습니까? 그 누가 구해 주기를 원하거든 구할 수 있는 당신의 음성이 위로부터 내리는 것을 바라보고 그 명령에 절대 순응해야 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현재의 환경에서 해방의 모습을 갖추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에 함정에 빠져 있거든 위를 향하여 단 하나의 길을 바라면서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쇠고랑에 매였거든 이것을 끊을 수 있는 새로운 무엇을 찾지 않고는, 새로운 어떤 장비를 갖지 않고는 끊을 수 없고, 끊을 수 있는 것을 갖지 못하면 해방된 환경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내 자신의 신임도가 어떠한 처지에 있는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자신이 해방되었다면 가정과 종족과 민족의 해방권을 바랄 수 있어야 될 것인데,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한 연약하고 가냘픈 저희 인생인 것을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전진의 도를 가하여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전진을 주저하는 것이 저희 인간이요. 내일의 희망을 다짐해서 싸워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싸움을 도피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인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현재의 자리에서 보다 나은 무엇을 추구하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아무리 그 자리에서 나은 것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자리가 하늘이 원치 않고 자기가 처해야 할 본연의 자리가 아니게 될 때는, 아무리 좋은 자리를 허락받았다 하더라도 그냥 흘러가 버리고 나와는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약에 지금의 자리에서 좋다고 해 가지고 그 자리가 자기가 바라는 자리라고 안정하게 될 때, 그 자리는 영원히 영원히 해방을 받을 수 없는 구속의 자리가 되어 버리는 것이옵니다. 이와 같은 자리가 차원을 높여 가면서 개인으로부터 가정으로, 종족으로, 민족으로, 국가, 세계까지 거쳐 나가야 할 한스러운 복귀의 운명길임을 직시하면서 싸워 나가야 할, 개인 개인의 인생행로를 붙안고 몸부림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타락의 후예가 가야 할 길인 것을 저희들은 절감하고 있습니다. 이 비통한 사실을 알고 저희는 통곡하는 마음으로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나를 극복해야 되겠고 내일의 나를 다짐지을 수 있는, 그날을 향하여 오늘의 나를 희생시키고 극복하며 싸워 나갈 수 있는, 나 자신을 따라 나가는 것보다도 보다 전진적인 자신을 앞에 세워 놓고 가기를 주저하고 있는 내 몸을 끌고 나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돼야만 된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자리에 나온 저희 자신들을 아버지께서 살피시옵소서.

저희가 지금 어떠한 자리에 있습니까? 민족을 위해 서 있습니까? 국가를 위해 서 있습니까? 세계를 위해 서 있습니까? 아버지, 전체를 대신해서 있습니까? 당신이 바라는 소망의 기준을 중심삼고 나를 찾아와 '야 아무개야, 네가 이 책임을 해 달라' 하고 분부할 수 있는 소명의 대상이 돼 있느냐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저희는 겸손히 엎드려 당신의 긍휼과 당신의 자비의 은사를 여기에 가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희 자신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불쌍한 것들이요. 구속된 자신들을 비탄하고 있는 현재의 입장인 것을 잘 아시는 당신은 저희를 위하여 영계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을 지금 까지 동원하여 오셨고, 거듭되는 동원에 지칠 수 있는 한의 여건을 매양 당하더라도 또 참고 저희들을 향하여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을 동원 하셨사옵니다.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영적 선한 선조들을 이 땅 위에 보내셔서 당신의 분부하심에 따라 저희들이 가는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헙조시켜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나 하나가 해방받기 위해서는 내 개인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영적인 면에서 이것을 개방해 줘야 되겠고, 하늘의 직접적인 명령을 받들어 가지고 그 명령에 응할 수 있고, 주체 앞에 절대 순응하고 헙조할 수 있는 자기를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해방권을 맞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버님이여, 밤이나 낮이나 저희들을 직접 지도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을 보호하여 주시옵고, 양육하여 주시옵고, 부족한 자리에 정지하여 있거들랑 채찍을 들어 쳐서라도 아버지를 향하여 전진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사명을 받은 자리에 있으면서 편안하고 안일한 그런 자리를 바라거들랑 그 모든 것을 빼앗고, 채찍질을 하고, 배(倍)의 고통을 주어서라도 이 길을 넘어갈 수 있는 어떠한 방향을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지 않고는 저희들이 가야 할 길을 올바로 가려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일체를 당신 앞에 맡겼사오니 당신의 소원에 응할 수 있는 승리의 모습이 될 때까지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전국에 널려 있는 뭇자녀들을 이 시간 기억하여 주시옵고,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은 세계를 향하여 세계적인 전선을 펴고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역사시대에 처해 있습니다. 그 누구를 바라볼 수 없고, 그 누구를 의지할 수 없사오니, 아버지만을 바라보고 아버지만을 의지하고, 아버님이 가시는 목적지만을 향하여 저희들은 갈 뿐이옵니다.

나의 기쁨을 느낄 수 없는 싸움터에서 당신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저희들에게 위로가 되고, 당신의 분부를 받는 것이 저희들에게 힘이 되고, 당신이 모든 것을 지켜 주는 것이 저희의 자랑이 되옵니다. 이것을 자랑으로 삼고 당신이 남기신 뜻의 길을, 한스러운 복귀의 길을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지금도 걸어가고 있습니다. 내일도, 또 남은 생애에도 이 길을 가려 하오니, 당신이 언제든지 이끌어 주시옵고, 지키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더더욱 바라고 있사옵니다.

긍휼의 아버지, 찾아와 주시옵고, 자비의 아버지, 사랑의 손길을 펴시옵고, 능력의 아버지, 악을 제거시켜 재창조의 승리의 권을, 부활의 은사를 받는 자리에 세워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제2의 해방을 이룰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 가지고 만국 앞에 당당한 하늘의 의용군으로서 정병으로서 자세를 갖추기에 부족함이 없는 무리들로서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이 하루 동안 당신의 풍성한 은사와 더불어 이 수확기를 맞아 당신 앞에 신앙해 온 일년을 승리의 열매로 바쳐 드림으로써 한 해의 기쁨을 당신 앞에 돌려 드리고, 하나의 보람된 사실을 생애에 남기면서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가 남기신 염려를 책임질 줄 아는, 사랑의 인연을 따라가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대표하여 일선에 선 기동대를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이들은 당신의 소명을 받고 출발하였사오니 땅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하늘의 군대요. 하늘의 개척자들이요. 하늘이 바라볼 수 있는 소망의 모습들이옵니다. 하오니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싸여 있는 적진의 세력이 아무리 드높다 하더라도, 저희들로 하여금 하늘의 권위를 다짐하고 나선 하늘 정병의 모습을 갖춘 용자로서 당당함을 드러내어 원수를 굴복시키고도 남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고, 당신의 병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국을, 아버지여, 지키시옵소서. 남북이 엇갈린 실정을 아버지께서 잘 알고 계시오니, 이 나라의 갈 길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시아에서 홀로 포위된 입장에서 사방으로 밀고 나가야 할 걸음걸이를, 홀로 책임을 져야 하는 이 불쌍한 민족을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시옵소서. 사방이 다 막혔습니다. 이제는 하늘밖에 바라볼 수 없는 이런 자리에서 당신의 힘과 당신의 권위와 당신의 보호와 당신의 지도만을 어떠한 민족보다도 간절히 바랄 수 있는 거국적인 민족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를 믿고 나가는 것보다도, 어떠한 나라를 의지하고 가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라가며 당신을 대신하여 그 모든 것을 책임질 줄 아는 이 민족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그 누가 선봉에 서야 되겠는데, 그 선봉에 나선 무리가 통일의 무리라는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 저희의 책임이 지중한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여, 당신이 아니면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저희들이오니 저희의 길을 아버지께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만큼 이끌어 주신 당신의 은사를 고맙게 생각하옵니다. 남아진 최후의 고빗길, 혹은 최후의 정상을 넘게 될 때, 꿈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하여 숨막히는 비탈길을 달려가야 하고, 최후의 격전에 임하여 생명이 극할 때까지 정상을 넘어야 할 책임이 있사오니, 아버지여, 부디부디 현재에 처해 있는 위치를 명시하고 적이 공격하는 방향에 태세를 갖추어 가려 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당신의 이름을 갖고 모이는 수많은 종교를 믿는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만국이 당신의 품에 품길 수 있는 길을 향하는데 있어서 중대한 책임을 다하고도 남음이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우리는 흔히 서로 비교해 가지고 이것이 크다 작다. 혹은 좋다 나쁘다. 혹은 앞섰다든가 뒤섰다든가 하는 전후 좌우 상하관계를 중심삼고 결정을 내립니다. 혹은 자기를 중심삼고도 나보다 크다든가 나보다 작다든가 나보다 앞섰다든가…. 이렇게 가려서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무엇을 결정하게 될 때는 언제나 그 누군가가 표준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표준은 늘쌍 자기를 중심삼고, 즉 자기를 표준으로 놓고 판단을 짓기 마련인 것입니다. '내가 좋다' 하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 그 표준은 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나쁘다' 하는 것도 자기가 표준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표준점이 무엇이냐

오늘날 우리는 인간들이 타락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타락한 자리라는 것은 천태만상일 것입니다. 우리 개인을 두고 보면 개인과 연관되어 있는 수천대의 선조가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잘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못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높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낮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앞에 선 사람도 있을 것이고 뒤에 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전부 다 하나의 길, 하나의 자리에 서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하나의 최고의 선한 사람을 중심삼고 일번에서부터 천번까지 하나의 행렬이 지어진, 그런 갖추어진 자리에서 선조가 서 있느냐 하면 그렇다고 볼수 없는 것입니다.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하나의 중심을 중심삼고 있다면 원을 그려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원형(正圓形)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멋대로 그렇게 서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 사람 모두가 각각 다른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상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한 개인을 두고 보더라도 선조가 그렇게 나와 인연맺기 위해서 그런 과정을 거쳐 가지고 그 후손으로 태어난 것이 오늘의 '나'입니다. 그러한 내가 과연 이 모든 선조들이 바라고 있는 참의 기준 앞에 합당하냐 할 때, 각도가 좀더 다른 입장에 서 있는 '나'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참을 중심삼고 일치점에 선 선조들이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는 있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년이 아니라 수천년, 혹은 수만년의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그 기준이라는 것은 역사가 길면 길수록, 거리가 멀면 멀수록 점점 확실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호해질 수밖에 없으며, 완전한 것이 아니라 점점 불완전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대개는 그러한 우리들이요. 그러한 내가 아니냐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내가 좋다. 아이구 오늘은 좋았다' 하는 그 좋음이 대관절 어떤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 집안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우리 집안은 지금 행복하다' 할 때, 그 행복하다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참다운 행복을 중심삼고 하나의 행복의 중앙점이 있다면, 그 중앙점을 중심삼고 동쪽이냐, 서쪽이냐, 남쪽이냐, 북쪽이냐? 그 위치가 어디인지 알고 있느냐 하면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이 지금 불행하다. 불행할 수 있는 입장에 처해 들어간다' 하면, 어느 자리에서 불행하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세계는 점점점점 우리 인류가 희망을 더할 수 있는 보다 차원 높은 세계로 전개되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까지 더 높은 이상을 찾아 나가던 수많은 사람들을 절망 상태로 몰아넣는 세계입니다.

이런 세계정세를 우리들이 직시해 보게 될 때, 이 세계가 과연 역사적인 소망의 기준을 대표할 수 있는 참다운 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떤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참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

이러한 환경에 우겨싸여 살고 있는 우리 개인으로부터 민족이라든가 인류를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서 과연 우리들이 바랄 수 있는 표준이 무엇이겠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과연 내 개인으로서 가야 할 표준이 어디 있느냐? 이것은 오늘의 시간권내에 살고 있는, 짧은 시간권내에 처해져 있는 내 자신의 문제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것이 해결될 수 있는 그 기준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어떤 색다른 표준, 보다 가치적인 내용의 표준을 여기에서 다시 한번 찾아 가지고, 발굴해 가지고 그 표준과 더불어 상대적 관계를 맺는 데에서부터 우리가 그야말로 좋을 수 있는, 가치를 바랄 수 있는 기준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나마 생각지 못하고, 이것이나마 찾지 못하는 자리에 있어 가지고는 오늘의 나를 세워 자랑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것이 아니냐? 우리는 이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참다운 인간이 있다면 그 참다운 인간은 오늘날 역사를 대표해 가지고 '인류여 그대들이 가야 할 참다운 표준이 바로 이것이다' 하고 가르쳐 줄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참다운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그런 길을 모색하기 위하여 인류를 대신하여 모진 희생을 당하더라도 그 길을 찾아 나설 때까지 외치고, 가르쳐 주고, 그 길을 개척해 줄 것이 아니냐, 만일에 그 길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만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참된 사람이 아닙니다.

참이라는 것은 개인에게 한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를 넘고 넘어서 적용되고, 전체를 넘고 넘어서 가치적인 인연을 맺고자 하는 것이 참인 것입니다. 참은 누구나 좋아하고 누구나 찾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에나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를 대표해 가지고 참된 길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그 가치적인 인연이 어디에나 있게끔 세계화시키기 위해서 온갖 희생을 하더라도 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의 자리에 선 사람으로서 해야 할 생애의 책임이 아니겠느냐, 그 길이 어렵다고 해서 나 혼자만 알면 된다는 그런 입장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세계 인류 가운데에 과연 그런 참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그 참을 중심삼고 얼마나 진지하게 살고 있느냐? 이게 문제예요. 얼마나 진지하고 보람있게 살고 있느냐? 또, 그 사람은 그것이 그 시대의 환경, 즉 어떠한 권위보다도 어떠한 권력보다도 그 시대의 인간들이 바라고 있는 어떠한 목적 완성한 그것보다도 더 가치적이라는 것을 알고, 그 환경을 밀고 나가고, 그 환경을 개혁하고, 그 환경을 개척하기 위하여 모진 싸움을 당당하게 해 나가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이것은 진정한 참이다.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참이다. 이것만이 절대 승리를 결정하고 이것만이 절대 완성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고 확실히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외로운 환경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그 환경에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정화시켜 가지고 그 환경에서 제일의 표준의 인물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주체로서 상대적 환경을 개척해 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상대적 환경을 개척해 내지 못하게 되면 그나마 역시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나마 그 자신에서 그쳐지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의 일생은 제한된 권내에 있기 때문엔, 백년 미만의 생애노정이기 때문에 그 기간 내에 이 환경을 개척하지 못하게 될 때는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생애를 투입해 가지고 제2의 대상권을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온갖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환경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을 진짜 참으로 알 수 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이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느냐? 다 알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걸 알면 다 같게요. 개인개인들로부터 '과연 저 사람이 참이다' 할 수 있는, 공인받을 수 있는 내용을 인간이 알 수 있느냐? 알 수 없습니다. 봐 가지고 모르는 것입니다. 봐야 같은 이목구비를 갖고 있고, 같은 몸을 갖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그 내용의 가치를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자기가 주장하더라도 그 당석(當席)에서 그를 주체로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과 말과 행동이 하나될 때 기쁨이 따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 재창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냥 그대로 있어 가지고는 자기와 더불어 관계를 맺을 수 없겠기 때문에 이를 반드시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적응시키는 운동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를 닮아라' 하는 겁니다. 닮음으로 말미암아 보다 가치적인 인연이 맺어지고 보다 가치적인 선한 기준이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 줘야 됩니다. 무엇으로 보여 줘야 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은 언행심사(言行心事)를 중심삼아 가지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말과 행동과 마음씨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보여줘야 될 것이냐? 말로 보여 줘야 됩니다. 말을 하는 데 있어서 '개인은 이래야 된다'고 하는 개인의 인생관을 가르쳐 주어야 되겠습니다. 그 개인은 어떠한 개인이 돼야 하느냐? 가정을 움직일 수 있는 개인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된다는 거라구요. 가정이 이 개인을 움직여야 됩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세계입니다.

선이 갖추어진 세계에서 태어난 남편이라든가 아내, 혹은 그 부부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은 선이 갖추어진 그런 세계에서 배워 가지고 선할 수 있지만, 그것이 갖추어지지 않은 세상에 있어서는 그런 세계를 대표한 참된 사람이 있으면 개척해야 됩니다. 그것을 만들어 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완성을 자기가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완성권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구요. 하나의 남성이면 남성으로서 이것을 만들었으면, 하나의 완성한 가정을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아내는 '남편이 하는 말이 참 좋다. 나의 것을 전부 다 포기해 버리고 남편이 하는 말을 백 퍼센트 받아들여야 되겠다' 이래야 된다는 거예요.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도 '그가 동으로 가면 나도 동으로 가겠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내적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남편이 가는 대로 아내가 안 가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는 자기가 말하던 모든 것을 없애 버리고 남편이 말하는 그런 내용의 자신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말뿐만 아니라 '그분이 가는 데에 나도 가야 되겠다' 그래야 끝까지 갈 수 있는 거예요. 그분은 동으로 가는데 '그분이야 동으로 가라지 난 기분이 나빠 서로 가겠다' 하면 거기서부터 파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참된 남편이 있으면 그 남편을 중심삼아 가지고 말을 따르는 동시에 행동을 같이 해야 됩니다. 행동하는 데 있어서 어디에 갔다 왔다가 그 다음에는 또 마음대로…. 하나의 방향을 중심삼고 행동해야 됩니다. 하나의 방향을 중심삼고 행동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건 두말할 것이 없습니다.

말하고 행동하는 데에 있어서 이것이 상치(相馳)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말과 말이 다르면 '그 사람 말과 행동이 다르다 '그러지요? 이럴 때는 다른 만큼 평가를 하게 되는데, 좋은 평가가 아니라 나쁜 평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때는 그 다른 차이로 인해서 비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막연하나마 마음이 말의 기준이 돼 있고 행동의 기준이 돼 있습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말과 행동이 하나된 자리에 서지 않고는 그 사람이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막연한 자리에서 마음이 말과 행동의 중심으로서 표준이 되어 있다 할 때, 그 표준된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말이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행동이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음을 닮은, 마음과 하나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한 마음, 그 마음은 어떠어떠한 것들을 중심삼고 움직이느냐? 그것은 목적관이라든가, 인생관이라든가, 나라를 위해서 움직인다든가, 혹은 자기 성공을 위해서 움직인다든가 하는 천태만상으로 벌어집니다.

그 마음은 어디를 향해서 움직이느냐?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는냐? 가정의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느냐? 거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예요. 국가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느냐? 혹은 세계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느냐? 더 나아가서 오늘 통일교회의 술어를 빌려서 말한다면 천주를 위해서 움직이느냐?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움직이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은연 중에 하나의 말과 행동의 기준이 되어 있는 그 자체가 하나의 가치적인 존재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그 은연 중에 있는 마음과 말과 행동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되어야만, 현재 처해 있는 위치에서 그 마음 바탕을 중심삼아 가지고 비로소 기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마음과 말과 행동이 달라지게 될 때는 기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벌어지게 되면 불안을 느끼고, 자기 스스로 구속을 느끼고, 제재를 받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에서 온다

이러한 입장을 두고 볼 때, 사람의 마음 가운데는 무엇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마음 가운데는 반드시 무엇이 있느냐? 마음 가운데 있는 가치적인 내용을 분석해 보면 지(知), 정(情), 의(意)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떻더냐 하고 분석해 보면 지적인 요소가 있고, 의적인 요소가 있으며, 그 다음에는 정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라는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작용을 하려고 하느냐? 결국에 들어가서는, 마음의 기준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뭐냐 하면 기쁨입니다. 기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기쁜 것을 기준 삼고 있다는 거예요. 슬픈 것을 기준 삼고 있지 않아요.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마음이 슬프고 몸이 슬프고 여러 가지 환경적으로 슬픈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다 기쁜 것을 표준하고 그 마음도 있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짜 기쁜 것은 뭐냐? 마음에 있어서 진짜 기쁜 것이 뭐냐? 보다 기쁘려면, 마음과 행동과 말이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기쁠 수 있는 목적을 대하는 데서만이 기쁜 것입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말과 행동이 하나되게 된다면 기쁨을 중심삼고 있으려고 하는데, 그 기쁨의 기준이 뭐냐 하면 정(情)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소위 심정이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지, 정, 의의 그 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말과 행동이 하나된 거기에 기쁠 수 있는 중심적인 정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준이 되는 정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보다 기쁠 수 있는 목적했던 바의 내용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치적인 내용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혼자는 기쁠 수 없는 것입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가지는데에서만이 가능합니다. 혼자 기쁠 수 있어요? 혼자 웃고 있으면 돈 사람이라고 합니다. 내가 여러분도 없는데 이렇게 혼자 열심히 얘기한다면 돈 사람입니다. 내가 말을 열심히 하면 그 내용을 중심삼고 여러분은 열심히 듣고 그 말에 하나되어 가지고 여러분도 기쁘고 나도 기뻐져야 되는 것입니다. 말하고 나서 슬프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쁘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야 말 참 잘했다. 그말 잘 들었다' 할 수 있는 자리가 벌어지면 들은 사람도 기쁘고 말한 사람도 기쁩니다. 그 말한 사람이 뭐가 기쁘냐? 아침부터 이야기를 하게 되면 땀을 흘려야 되는데, 땀을 흘리게 되면 자기 자체의 소모인데 뭐가 기쁘냐, 자기 자체는 소모인데 왜 기쁘냐 이거예요. 일을 열심히 했는데 그 열심히 한 보람이 있는 가치가 딱 완성되게 될 때는 기쁩니다.

왜 기쁘냐? 손해나면서 기쁜 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손해 나면서 기뻐하는 것은 도대체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왜 기쁘냐 하면, 내 마음의 기준하고 상대의 마음 기준하고 플러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목적을 중심삼고 말을 했으면 말한 것을 긍정하고 거기에 순응해 가지고 하나될 수 있게 되면, 그 마음에 또 하나의 마음이 합해지니까 둘이 되는 것입니다.

둘은 어떻게 된 것이냐? 혼자를 둘로 만든 것이 아니라, 둘이 합해 가지고 둘이 된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 입장에서 보면 결국은 '나는 하나를 얻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야 이거 내가 동기가 되었든 누가 동기가 되었든간에 서로서로가 하나씩 더 얻은 자리니까, 우선 손해난 것이 아니니까 기쁘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없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큰소리 한다 하더라도 상대가 없을 때 그 소리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투입하면 할수록 점점점점 더 없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상대가 있게 될 때는 투입하면 할수록 없어질 것 같은데, 어떻게 돼요? 없어지는 것 같은데 생겨납니다. 생겨나는 걸 보면 그것은 내 것이고 나도 그분에게 필요한 것이 되는 거예요. 손해나는 것 같은데 결국 플러스가 된다는 거예요. 그것은 어디서 있느냐? 기쁠 수 있는 데서만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기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은 혼자는 절대 될 수 없습니다. 상대적 요건이 적용되는 데서만이 기쁠 수 있습니다. 왜 기쁘냐? 상대라는 것은 제2의 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에 플러스하게 되면, 하나될 수 있는 번식적인 제2의 나로 등장하기 때문에, 둘이 됨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둘이 돼 가지고 뭘할 것이냐?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하나되는 거예요. 만사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마음도 상대적입니다. 마음이 어디로 가야 될 것이냐? 마음이 가는 길이 어디냐? 기쁠 수 있는 길을 가려고 합니다. 기쁘려면 어떻게 돼야 되느냐? 마음 기준이 세운 차원 높은 기쁨에 정적인 인연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서적인 내용을 빼 놓고는 행복이니, 희망이니, 무슨 뭐 기쁨 이니 하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있을 수 있어요? 기쁘면 웃는 것입니다. 기쁘다면 벌써 웃지요? 왜 웃어요? 웃는 데는 누구를 보고 웃어요? 혼자 웃어요? 혼자 웃으면 그건 돈 사람입니다. 웃는 것은 왜 그러냐? 자기를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웃을 때 석경(거울)을 보고 웃는 거예요? 안색이 달라지면서 표정이 달라지면서 웃는 것은 누구 때문에 웃느냐?

자기 때문에 웃어요? 상대 때문에 웃는 놀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왜 웃느냐 할 때, 내가 좋으니까 웃지, 거 왜 좋으냐? 나 혼자이기 때문에 좋지, 그래요? 웃는 것이, 왜 웃느냐? 좋아서 웃지, 좋은 일도, 왜 좋으냐? 혼자 있으면서 좋아할 수 있어요? 상대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돼 있죠?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있어 가지고 둘이 하나되어 있으면 웃기 마련입니다. 웃기 마련이니까 그것은 기쁜 것입니다. 기쁨의 표시는 누구로 말미암아 되느냐? 나로 말미암아 되지 않고 상대로 말미암아 되었기 때문에 내 표정은 상대를 위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석경을 보고 매일같이 웃는 녀석은 고독한 녀석입니다. 고독한 과부나 홀아비가 그렇습니다.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여러분이 결혼을 하기 전에는 석경을 많이 봅니다. 여러분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혼한 다음에는 '석경을 보기는 뭘 봐'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기쁘기를 바랍니다.

하나의 심정적 기준을 통하지 않고는 이상적인 세계로 못 들어간다

그러면 마음의 주체 되는 것이 뭐냐? 그것이 정(情)이라는 것인데, 정이라는 것은 그냥 막연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가운데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에서는 심정의 기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정에도 마음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 마음이 마음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의 기준이 마음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준 가운데 인격 기준이라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심정이라는 것이 둘이 있어요, '심정이다' 할 때의 그 심정? 개인을 중심삼은 심정의 기준도 하나요. 가정을 중심삼은 심정도 하나입니다. 물론 개인과 가정은 둘이지만 이 둘이 합해서 설 수 있는 심정의 기준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남자 여자 가운데에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은 둘이 있을 수 있어요?

이 심정의 가는 길이라는 것은…. 이렇게 가겠어요. 직선으로 가겠어요? 꼬불꼬불한 길을 원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건 틀림없이 직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가는 길이, 부처끼리의 정, 플러스적 남자의 정 마이너스적 여자의 정, 이것이 플러스돼 가지고, 묶어져 가지고 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가정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절대적인 기쁨을 찾아 나가야 할 운명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절대적인 행복, 절대적인 희망, 절대적인 이상형을 찾아 나가지요? (이하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절대적인 그 어떠한 목적의 세계를 요것과 연결시킬 수 있는 출발점이 있다면 마음대로 해서 되겠어요? 절대적으로 요것과 요 심정과 이것의 방향이, 다시 말해 여기서 가자는 방향과 이 방향이 상치(相馳) 안 되고 연결될 수 있는, 과정은 아무리 길더라도 변할 수 없는 단 하나의 길이 있어야 절대적인 주체의 목적자 연결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로 갈 수 있는 심정적 기준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가정을 중심삼은 부부도 그렇지만, 가정을 중심삼고 식구들이 있다 할때, 그 식구들이 가야 할 심정적 기준, 부부와 묶어진 기준과 차원 높은 자리에서 가정이 갈 수 있는 길이 되는 정서적인 기준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길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 이상적인 세계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있어야 될 거라구요.

한 동리면 동리, 동네끼리 사랑한다. 동네가 하나되자, 동네가 좋게 되자 할 때 좋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남북이 좋게 되기 위해서는 둘 되어야 돼요?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되는 데는 무엇이 기준이 되어 가지고 하나되어야 하느냐? 하나되는 데 있어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아래 위가 거꾸로 돼도 괜찮다. 그게 아니라구요. 하나되는 데는 기준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표준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표준이 뭐냐? 주체가 되든가 대상이 되든가, 그것이 표준을 결정하지 않고는 하나될 수 있는 길은 나오지 않습니다. 서로가 표준 되겠다고 하면 싸움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플러스와 플러스가 서로 플러스 되겠다면, 그것들은 둘이 반발해요. 하나돼요? 반발하기 마련이라는 거예요. 이건 밤이나 낮이나, 자면서도 반발하는 것입니다. 원수끼리는 자면서도 싸우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극단적인 원수면 원수일수록, 자면서도 싸우고, 밥먹으면서도 싸우고, 안 될 말이지만 변소간에 가 앉아 가지고도 싸웁니다. 언제나 24시간 싸웁니다. 24시간 싸우니 일년 열두 달 싸우는 거예요. 일년 열두 달 싸우면 일생 동안 싸우기 마련입니다. 일생 동안 이런 싸움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불행합니다. 일생 동안 행복한 것이 아니라 불행한 것입니다. 자, 그래요. 그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 갚겠다는 사람은 모두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걸 보게 되면, 예수 같은 사람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이야! 이거 보게 된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구요. 일생 동안 반발하고 일생 동안 서로가 싸우는 사람이 얼마나 불행해요?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것보다도 다른 것 다 집어 제치고, 행여나 하늘이 원수를 갚아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바란다 하게 되면 그 얼마나 편안하겠어요? 거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보라구요. 자기가 원수를 갚겠다고 그저 밤낮 없이 해댔자 언제나 상충적인 입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그걸 생각하면 얼마나 불행하냐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원수를 내가 갚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그분이 갚아 주는 것이다. 그분이 원수를 갚아주는 날에는, 원수라는 것은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자기가 원수를 갚고 나면, 그 원수의 자식이 있다면, 그 원수의 자식은 내 자식대에서 또 원수를 갚아야 된다는 이런 무엇이 있지마는, 그걸 다 집어 던지고 절대자의 공의의 판정만이 있어 가지고 그 판정만이 내 원수를 틀림없이 갚아 주는데, 원수의 자식도 꼼짝달싹 못하고 순응할 수 있는 그런 원수 갚음이 있다 할 때는, 그거 얼마나 멋지냐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원수 갚겠다는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보다도, 다 잊어 버리고 또 다른 희망을 바라서 원수보다도 잘되어 가지고 개인적인 원수를 갚는 것보다도 원수 족속을 지배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이 벌하겠어요? 갚기는 갚는데 길이 두 길입니다. 직접 내가 피해를 받았으니 내가 창으로 가슴을 찔러 가지고 그 피해를 복수하여 탕감 하는 게 아니라, 그럴 게 뭐 있느냐고 하며 내가 노력해 가지고 김씨면 김씨 족속 몽땅 한꺼번에 갚아 버려야 되겠다. 김씨 문중 전체를 그 조상서부터 후손까지 전부 내가 굴복시켜야 되겠다 하면 거 얼마나 멋져요? 그러려면 그 나라의 대통령이 되든가, 그 나라의 왕이 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원수를 갚는데, 그런 권력자가 되어 가지고 모가지를 잘라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야 이녀석들아, 내 원수이지만 다 용서해 주마, 내 말 들어라' 할 때는, '예, 그리고 말굽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 나라를 전부 다 한번 천국을 만드는 것인데, 너희들이 선두에 서서 피땀 흘리고 노력하면 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이것 해 주겠나? 하면, 예이' 하게 돼 있다구요. 안 그래요? 원수를 피로써 갚는 것보다도 원수가 자진해서 하게 해 가지고 자기를 위해서, 그 나라와 그 세계를 건설하는 데 돈 안주고 역군으로 쓸 수 있는 길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를 갚는 것하고 원수를 안 갚고 나라에 플러스될 수 있게 하는 것과 어느 것이 선한 것이냐 할 때, 원수를 갚아서, 피를 보고 좋아 하는 것하고, 그들을 지배하는 자리에서 그들이 지배하는 사람의 은덕을 고맙게 생각하여서 그분의 뜻을 이루어 드리겠다고 노력하게 만드는 것하고 어느 것이 멋지게 원수를 갚는 것이냐 이거예요. 그런 길이 있다는 거예요.

예수 같은 양반은 그런 방법을 썼다는 거예요. 플러스와 플러스가 남아지는 한 원수는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지금 싸우고 있습니다. 서로가 주도권을 쥐겠다는 거예요. 요전에 조총련에서 한덕수하고 김병식이하고 헤게모니(hegemony)쟁탈전을 하는 게 신문에 나고 그랬잖아요? 한 단체에서 두 플러스가 나왔다 할 때는 싸움이 벌어지는 거예요. 싸우게 되면 절반으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갈라지게 되면 점점 약화되는 것입니다. 약화되는 것은 뭐냐? 어는 것이 아니라 녹는 거라구요. 그러면 약화되는 거예요. 이것은 망하기 마련이라구요.

모든 의식기관도 상대를 위하게끔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가 흥할 수 있느냐, 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민족사상이 통일되어 가지고 전체가 하나의 방향으로 나가느냐, 개개인이 전부 다 자기 주장에 도취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전체를 위해 가지고 전체의 목적을 추구하는 국민이 될 때는 이들은 발전하는 것이요. 개개인이 자기 주장을 하는 국민은 망하는 것입니다.

한국 민족과 일본 민족이 무엇이 다르냐 할 때, 한국 민족은 개개인의 주장하는 데는 꼴찌입니다. 그래요? 남자나 여자나 전부 다 자기 주장하는 데는 눈을 붉혀 가지고 '내가 왜 양보해? 양보 안 한다고' 이러다 보니 종살이 역사를 모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일본 민족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좋은 것이 있으면 하나되자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주체를 딱 정하게 되면 이의가 없어요. 거기 따라가야 되는 것이다 하는 그런 훈련을 받았습니다.

승패의 결정은 거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되는 데는 흥하는 것입니다. 왜 흥하느냐? 그것은 어떠한 표준과 상대적 관념이 벌어져서 그 표준을 따라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둘이 서로서로가 플러스되는 것입니다. 그 표준을 서로가 무시하게 될 때는 그 서로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서로 무시하고 치면 칠수록 그만큼 상대가 나에게 또 치니까 치면 칠수록 점점점점 감퇴되니 망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것이 왜 망하느냐, 왜 흥하느냐? 그것은 천도가, 천법이, 천칙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주권내의 운명을 지니고 난 모든 존재물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천(天)이 법도의 체제를 갖고 있는 그 한계점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부처끼리 묶어지는 그 심정은 아무리 많은 가정이 있다 하더라도…. 역사시대의 정의 기준, 표준이라는 것이, 정서적인 그 중심점이라는 것이 둘이 있을 수 있느냐? 없습니다. 하나예요. 가정의 식구가 여덟 식구면 여덟 식구가 하나되게 될 때는, 어머니 아버지 자식이 전부 다 하나되게 될 때는 어머니 가는 길, 아버지 가는 길이 따로일 수 있느냐? 어머니 가는 길, 아버지 가는 길이 달라 가지고는 그 가정은 파괴되는 것입니다.

미국 사회가 그렇습니다. 돈지갑도 아버지 지갑 내 지갑이 따로 있습니다. 여편네에게 남편이 돈을 빌려 주었으면 일기장에다 몇월 몇일 얼마 빌려갔다고 써 놓고, '당신이 내 돈 빌려 갔으니까 아무 때에 주소' 해서 찾아와요? 그러면 좋을 것 같지요? 신세 안 지는 자주적인 국민성인 것 같지만 그게 좋은 게 아닙니다.

자, 생각해 보라구요. 여편네한테 만 원 꾸어 쓰고 내 것인 것같이 여겨 잊어버리는 것이 좋아요. 안 잊어버리는 것이 좋아요? 어때요? 자기 것은 쓰고 기억해 둬요. 잊어버려요? 잊어버릴수록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잊어버리지 않으면 큰일이예요. '아이구, 오늘 부산 갔다 왔는데 3천 원 썼구만' 하고 그것을 일주일 한 달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죽을 지경일 거예요. 그게 진짜 지옥입니다. 그럴 때는 잊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자기가 자기에게 한 것은 잊어버리기 마련입니다. 안 그래요?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것이 뭐예요?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것은 뭐예요. 나지. 나입니다. 가까운데 나에게 행한 것은 왜 잊어버리느냐? 여러분 가까운 것은 모를수록 좋습니다. 가까이 가게 되면 눈도 안 보이는 거예요. 가까이 갖다 대면 냄새도 못 맡습니다. 딱 도수를 맞추어야 합니다. 너무 가까이 대면 맛도 안 나는 거예요. 갑자기 후닥닥 먹어 보세요. 맛이 나는지, 전부 다 어느 정도까지 거리를 두고 시간을 두고…. 단맛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맛봐야 단맛이 납니다. 쓴맛도 그렇습니다. 쓴 것을 후닥닥 먹어 보라는 거예요. 여러분 약 먹어 보라구요. 약도 후닥닥 벼락같이 먹어 버리면 쓴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것도 거리를 두고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가까울수록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진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어떻더냐 하면 '어떻긴 어때, 여자지 여자' 이렇게 진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모르는 것입니다. '어디 그럴까? 그런 법이 어디 있어? 라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다는 거예요.

사랑하면 할수록 슬플 때 보면 슬프게 보이고, 기쁠 때 보면 기쁘게 보이고, 신나게 대할 때는 신나게 보입니다. 그래야 살 재미가 있어요.

슬플 때 봐도 그저 해죽해죽 웃으면 그거 기분 나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자기 여편네 남편네 얼굴을 모르기 마련입니다. 그럴수록 이상적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이 여러분의 얼굴을 그릴 수 있어요?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느냐 할 때, 눈이 있는 것을 알고 코 있는 것을 알고 입이 있는 것을 알고 귀가 있는 것을 아는데 '얼굴이 어떻게 생기긴 생겼는데 어떻게 생겼는지는 나는 모른다' 이럽니다. 알아요? 자기 얼굴을 확실히 아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가 한번 물어볼께요. 매일같이 석경(거울)을 보고는 기억해도 잊어버립니다. 우리 아가씨들 잊어버려요. 기억해 둬요? 「기억해 둬요」 기억해 둬요? 기억해 둔다면 자기가 석경을 볼 때 최고의 미인의 기준을 딱 기억해 두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면 '내 얼굴은 이렇게 좋다'고 할 텐데 아침에 석경을 보고 자기 얼굴을 그린다면 '이렇게 하면 좋겠는데, 이러면 좋겠는데….' 이런다는 거예요. 그건 기억하지 못한다는 표정이라구요.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나도 가만 보면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이 길고 코가 길쭉하고 눈이 조그마하게 생겼지만 남이 보는 것만큼 똑똑하게 생각 안 납니다. 여러분은 종자가 다르니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습니다. 남이 보는 것과 같이 똑똑히 기억이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것을 생각할 때, 모든 의식기관이라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 작용하지 않습니다. 작용은 하는데, 최고의 작용은 자기를 위해서 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게 뭐 그래?’ 하지만 그 말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자, 눈이 밖을 내다보지, 자기를 들여다봐요? 눈이 자기를 들여다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오관, 감각기관은 전부 다 상대를 위해서 작용하지, 주체 되는 자기를 위해서 작용하게끔 안 되어 있다고요. 코가 공기를 위해서 움직이나? 공기가 코를 위해서 움직이지, 입이 입 때문에 이렇게 돼 있어요? 상대, 먹는 것 때문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귀가 나 때문에 이렇게 됐어요? 상대의 소리를 잘 듣기 위해서…. 전부 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손은 나 때문에 이래요? 요게 문제야, 상대를 가누려니 이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전부 다 상대를 위해 가지고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데는 본래부터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게끔 되어 있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본래부터 상대를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여자가 여자 때문에 그렇게 생겨났어요? 남자 때문에 그렇게 태어난 거예요. 뭐 여자 때문에 생겨나 요? 여자 셋만 모이면 하는 것이 싸움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생겨난 것은 남자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여자든 남자든 생겨난 것은 상대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상대를 절대적으로 위하는 것만이 절대적인 선이다

자기를 주장하는 것은 좋은 것이 못 됩니다. 결론이 그렇다고요. 자기를 절대적으로 주장하는 데서는 좋은 것이 절대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독재자라는 것은 불행으로 시작해서 불행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 독재자가 나와서 어느 정도의 자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잠잤겠어요? 얼마나 사람들을 희생시켜 가지고 긁어모았겠어요? 그래 가지고 나라를 감아쥐는 그 나날을 중심삼고 세계를 전부 다 뚜드려 패려고 한다구요. 그렇게 상대를 희생시켜 가지고 자기를 세우려고 하는 것은 누구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다 좋아하지 않습니다. 좋아해요? 그렇게 해도 좋다면 거기에서는 절대 평화의 세계니, 통일의 세계니 하는 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상적인 기대가 될 수 없습니다.

좋은 것은 어디서부터? 상대를 위하는 데서부터, 어느 정도? 절대적으로 위하는 데서만이 절대적민 좋은 것과 절대적인 선이 거처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본래의 원칙기준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고요.

부모가 나를 절대적으로 위해 주게 될 때, 그 자식이 '아이고 우리 엄마 아빠 고마워' 이러지요? 그럴 때에 자식이 '아이고 우리 엄마 아빠 좋아' 이럽니다. 엄마 아빠가 어디 갔다 오더라도 보고할 것이 있으면 딴 사람 다 접어 두고 엄마 아빠에게 보고하려고 합니다. 그렇지요? 자기를 보다 생각해 주는 그러한 사람과 하나 되려고 하는 것이 우주의 원칙입니다.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알겠지요?

보다 나를 위해 주는 그런 주체 앞에 내 모든 전체를 규합시켜 가지고 일체화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일체화시키면 어떻게 되느냐? 무엇이 생겨나느냐? 기쁨이 생겨납니다. 그 기쁜 것이 나만 기쁜 것이 아닙니다. 둘이 다 기쁜 것입니다. 둘 다 기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둘이 기쁜 것이 되면 역사적인 기쁨의 중심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기뻐하는 시일이 길고 오래면 오래일수록 세계적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효자도 10년 효자로 끝난 사람은 효자가 못 돼요. 10년 효자로 끝나면서 죽으면 죽음과 더불어 효자의 이름을 남길 수 있지만, 10년 동안 효도하다가 11년 째에 죽지 않고 11년 째 정월 초하룻날 불효 했다 할 때는 효자예요? 불효자예요? 효도 안 한 것보다도 더 불효가 될 수 있어요. 왜? 그건 부모의 마음을 칼로 심장을 도려 내는 것보다 더 아프게 해주는 것입니다. 10년 세월 효도했더라도 11년 째 초하룻날 불효하게 되면 그건 효자로 결정나는 것이 아니라 불효자로 결정나는 것입니다.

또 애국자, 충신이면 충신이 군왕이면 군왕을 위해 가지고 일생 동안 늙도록 충성을 다했지만 죽기 전날 불충(不忠)을 하게 될 때는 그것이 충신으로 끝나요? 그가 죽기 전 날, 전 시간에 만약에 역적 놀음을 하고 혹은 불충하여 상감마마라든가 군왕을 자기 멋대로 대하게 될 때는 충(忠)으로 끝나요, 불충으로 끝나요? 불충으로 끝난다는 거예요.

그거 왜 그러냐? 충이라는 것은 영원과 인연맺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참된 효자라는 것은 영원과 인연맺는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그래야만 효가 됩니다. 충도 영원히 그래야만 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은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남편을 얻고 싶은 미인 각시들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구요. 또, 이랬다저랬다 하는 여편네 얻어 가겠다는 미남자 어디 손들어 봐요. 그 녀석은 미친녀석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거 좋아요?

변덕쟁이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여자들, 변덕쟁이 싫어하지요? 「예」 그런데, 여자들은 변덕이 없어요? 변덕쟁이를 싫어하려면 변덕쟁이가 안 되어 가지고 변덕쟁이를 싫어해야 합니다. 그런데 누구나 변덕쟁이를 싫어하는데 변덕쟁이가 돼 가지고 변덕쟁이를 만나게 되면 쌍변덕 입니다. 이건 죽고 못 사는 거예요. 만나자마자, 이혼서류부터 써 놓고 만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이라는 것은 변덕이 없어야 합니다. 영원과 통하는 데서만이, 전체와 통하는 데서만이 참 좋은 것이 있게 됩니다. 참 좋은 것이라면 좋은 거예요. 참 좋은 것을 원하지요? 세상에서 '귀물(貴物)이다' 할 때는 무얼 쳐요? 귀물 하면 귀금속이 있습니다. 자, 이거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놓았느냐는 거예요. 귀사람 귀부부라고 하지 않고 말이예요. 귀금속이 좋아요? 여자들한테 귀금속이 좋아요? 뭐 여자들이야 다이아몬드 반지 하게 되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말이예요.

참사람은 시종여일 일방통행

자, 귀금속을 원해요. 귀남자를 원해요? 어떤 것이 더 귀한 거예요? 이걸 보면, 인간들이 처음에 딱지를 잘못 붙였든가, 인간 자체에 딱지가 잘못 붙었든가 둘 중의 하나, 딱지를 잘못 붙였거나 잘못되었든가 둘 중의 하나라는 거예요. 대관절 귀금속이 귀해요? 사람이 귀하우, 돌 짜박 지가 귀하우? 사람이 귀하지요? 사람이 귀한 거라구요.

사람이 귀한데 그 귀한 것은 무엇이 있기 때문에 귀하냐? 사람이 눈이 있고 코가 있고 뭐 그렇기 때문에 귀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사람이 왜 귀하냐 하면 좋을 수 있기 때문에 귀합니다. 얼마나 좋을 수 있느냐? 꼴래미로 좋을 수 있으면 덜 귀한 것이지만 보다 좋을 수 있으니까 보다 귀한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무엇을 중심삼고 보다 좋을 수 있느냐? 내 마음과 내 모든 심정을 중심삼고 보다 좋을 수 있으니까 사람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에게 있어서 돈보다 남편이 보다 덜 귀하다. 그래요? 그래요. 안 그래요? 어디 대답해 보라구요. 나만 이야기하니까 내가 심심하게 된다구요. (웃음) 여자들, 같이 좀 얘기합시다. 남편이 보다 덜 귀해요. 보다 더 귀해요? ' 더 귀하기 때문에 죽어도 필요한 것이 귀금속이다' 그래요? 「아닙니다」 '죽어도 필요한 것이 남편이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남자도 그렇다구요. 죽어도 필요한 것이 아내다 이거예요. 이렇게 돼 있어요.

그러면 이것이 다이아몬드 책상이다 하게 되면, '이 다이아몬드 책상하고 사랑하는 사람하고 바꾸고 말고….' 그래요?(웃음) 바꾸겠어요. 안 바꾸겠어요? 「안 바꾸겠어요」 진짜 안 바꿔요? 그러면 참 보람이 있게요. 자, 대한민국 만큼 큰 다이아몬드가 있는데 그 다이아몬드하고 사랑하는 남편하고 바꿀소냐 할 때, 어때요? 사랑하는 애인하고 바꿔요. 안 바꿔요? 「안 바꿔요」(웃음) 그것은 상대적 관념이 아니라, 절대적 관념입니다. 상대적 관념이면 기분 나빠요. 조금이라도 상대적 관념이 있으면 기분나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당신을 요렇게 요렇게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좋기는 좋은데 아무 동네 그 누구의 아버지보다는 조금 못합니다. (웃음) 하면, 거 기분 좋아요?그 조금이라는 말이 아무리 크게 칭찬하는 말이라도 한꺼번에 다 잡아먹고도 남습니다. (웃음) 그렇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에는 절대적 관념은 용허(容許)되지만 상대적 관념은 절대 용허되지 않습니다. 절대적 가치의 것이니까 이것은 세상 그 무엇을 줘도 바꿀 수 있다? 「없다」 없습니다. 그래서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은 변하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는 것은 일방통행입니다. 시종일관이라는 말이 있지요? 시종변관을 요구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시종변관이라는 말이 없지만 일관(一貫)과 대조되는 말이 없기 때문에 변(變) 자를 갖다 붙여서 변관(變貫)이라고 한 것입니다. 시종변관 좋아해요? 변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런 녀석은 대갈통이 구더기 잔뜩 슨 된장통보다 못합니다.

그래서 시종은 여일하여야 되느니라, 그래야 관심거리가 되고, 관심이라도 가질 수 있는 표준적인 그러한 것도 바랄 수 있지만 왔다갔다하는 변태증은 절대 관심거리나 생각이나 대상적이거나 비중적인 조건을 절대 세울 수 없다 이겁니다. 그 사람이 천년 전에 이 땅에서 살았다면 영계에 가 가지고 만나서 '당신 옛날에 지상에 살 때는 시종여일을 주장하더니 여기 와서도 시종여일이요? 할 때 '아 그때는 그랬지만 여기 와서는 시종변관이요' 한다면 그건 빵점입니다. 낙제꽝입니다.

땅에서 살았지만 영계에 가 가지고도 물어 보게 되면,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를 잘못 알았구만, 천년 전에 내가 그만큼 가르쳐 줬으면 여일통이 되어야 할 텐데 변통이 뭐야, 이 녀석아?이럴 수 있으면 아무리 주먹을 들고 패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요. 나쁜 사람이요?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최고의 선한 주체일수록 이랬다저랬다 한다. 하지 않는다? 어떤 거예요? 「하지 않는다」 한번 약속하면 약속한 것은 절대 실천한다, 안 한다? 「한다」 참일수록 한번 나타났다 하면 영원히 그 본질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참이 되는 것입니다.

금을 왜 귀금속이라고 하느냐? 자꾸 변하기 때문이예요? 변덕이 많은 여자들은 '오늘은 아침 태양빛이 광명하니까 헤헤' 하고 '아이구 오늘은 구름이 끼였으니까 희희….' 이거 안 된다는 거예요. 도를 통한 사람들은 비가 와도 '나 때문에 오지, 우리 한국은 비가 오지만 딴 나라는 비가 안와서 굶어 죽겠는데, 거기에 비가 오는 것을 좋아할 나 한 사람보다도 몇십 몇만이 있을 텐데, 아하, 비가 잘 오는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게 나쁜 사람이예요. 좋은 사람이예요? 「좋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변덕 많은 사람들은 조금만 좋으면 헤헤, 조금만 나쁘면 흥흥 합니다. 이게 문제예요. 그래서 여자라는 사람은 남자보다도 믿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웃음) 그것은 내 말이 아니라 배웠다구요. 나 욕하지 말라구요. 왜 그러냐? 가다가는 살짝꿍 곁길로 가기 때문에 일방통행이 못 된다는 거예요. 일방통행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자동차 타고 다닐 때 일방통행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일방통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요. 자동차가 다니는 길은 쌍방통행이 필요하지만, 인간이 가야 할 길은 쌍방통행이 절대 불합리한 것입니다.

그러면 표준점이라고 말했는데 대관절 표준될 수 있는 주체가 뭐냐? 세상 말에 '인심( 人心)은 조석변(較夕變)이요. 산색(山色)은 고금동(古今同)’이라고 해 가지고, 사람 마음은 아침 저녁으로 변하고 산색이 고금동이라고 했는데, 그놈의 사람들 믿을 게 있어요? 자, 통일교회에 들어온 여러분들, 까놓고 이야기해 봅시다. 들어올 때하고 지금하고 일방통행이요. 변방통행이요? 까놓고 얘기합시다. (웃음) 일방통행이예요. 변방통행이예요? 「일방통행입니다」 일방통행보다도 변방통행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랬다고 섭섭해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럴 것 같다 이말이예요. (웃음)

아직까지 변방통행을 하는 사람은 기준을 못 잡은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에 어떤 주체적 기준을 가졌으면 그 마음은 기쁘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 길을 위해서는 최고의 속도로 직행해 달려가고 싶은 것입니다. 이렇다구요. 여러분은 그렇잖아요?

상대적 기준이 일치될수록 환경적 여건이 좋은 것으로 등장한다

선생님도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말이예요.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애기들을 많이 길러 보면 길러 볼수록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얕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점점 두터워집니다. 젊은 사람들은 좀 지내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말이예요. 황부장은 그렇다고 끄떡끄떡 하는구만, 그렇지만 딸만 많이 낳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합격이 아니라구, 아들을 낳아 길러 봐야 돼요.

어떤 때는 말이예요. 청평 같은 데에 가서 이틀밤만 자게 되면 말이예요. 배고플 때 밥이 간절한 마음이 있잖아요? 그렇듯이 어떤 때는 애기 들이 보고 싶어서 막 클클할 때가 있어요.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면 강물이 육지라면 그냥 그대로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우러날 때가 있다구요. 그럴 때 천천히 가고 싶다고 그래요? 천천히, 한 십년 걸려서 가고 싶다고 그래요? 그렇게 되면 생각이 나자마자, 생각이 떨어지자마자…. 떨어지기는 뭐, 나자마자…. 사람의 말이 참 묘해요. 생각이 떨어진다고 해도 통합니다. 떨어지는 것은 받을 사람이 있을 때 떨어져야지, 그렇지 않는데 떨어지면 큰일입니다. 생각이 나자마자 대번에 가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양반 걸음으로 천천히 가야 된다. 군자는 대로행(大路行)이라고 했기 때문에 대로로 통하기 마련이다' 이런 군자가 있어요? 그놈의 군자가 아직 까지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렇지, 그 군자도 사랑하는 길만 있게 된다면, 뭐 빠른 길이 있다면 웃저고리 벗고 달려들 것입니다. 그것이 이해 돼요? 그렇다구요.

군자는 대로행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현재에 있어서 찾아가는 입장이니까 그렇지, 사랑하는 사람을 진짜 가졌으면 대로행이 뭐예요. 직선행이지, 그렇다는 거예요. 초단거리에서 만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거 왜 직선이냐? 왜 직선이 되어야 되느냐? 돌아가면 힘이 소모되고 직선으로 가게 되면 힘이 덜 들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보다 쉬운 곳으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보다 가치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빨리 똑바로 사랑하는 곳을 찾아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생활이 그래요.

그러나 그런 주체라든가 어떤 비준이 없게 될 때는 기가 막히는 것입니다. 가긴 가야 되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 흔들흔들…. 공원 같은 데에 가면 흔들 패들 많지요? 지나가는 사람들은 전부 다 건드리려고 하고 말이예요. 그런 녀석들은 방향이 없습니다. 방향이 없는 사람들은 파손되기 마련이고, 빨리 정비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방향성을 못 가진 존재는 이 우주에서 청산되기 마련입니다.

대한민국의 백성으로서 대한민국에 필요한 방향성을 갖지 못한 사람은 국민 앞에 규탄받기 마련입니다. 그렇잖아요? 대한민국은 이렇게 가는데 거꾸로 부딪쳐 가는 녀석들은 도둑이라든가 절도라든가 어떤 비판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위해서, 그 나라를 위해서 직행하는 사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직행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소위 애국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직행하는 사람 앞에 산이 있게 되면 산도 직선으로 뚫으려고 합니다. 굴을 뚫어서 갈 수 있으면 굴을 뚫어서라도 가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방통행 아니면 불통이라는 말이 벌어집니다. 어디서 불통이냐 하면 저쪽에서 불통이지, 여기는 불통이 아니라 직통입니다. 불통이라는 말은 여기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인 원수가 말하는 것입니다. 목적을 향해서 직행하는 사람에게는 불통이 아닙니다. 그것은 언제나 직통입니다. 직통꾼 될래요. 불통꾼 될래요? 직통꾼 되어야지요?

내가 요전에도 말했지만 우리 이 링컨차가 참 잘 달립니다. 그 차 힘이 세거든요. 뭐 이런 고개를 올라오는데 3단 놓고도 거뜬히 올라옵니다. 바쁘게 뭐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가만 두어도 부르릉 하고 잘 올라갑니다. 자 이놈 이거, 고속도로에 집어넣어 놓으면 아주 뭐 왕초입니다. 속력을 내도 '부웅-' 이게 뭐 없거든요. '쉬-' 하며 그냥 달립니다. 가다가 꺼떡꺼떡하면 기분이 좋아요? 빠르면 빠를수록 꺼떡꺼떡하는 것이 큽니다. 암만 빠르더라도 암만 길이 넓더라도, 빠르기가 동일하니까 암만 빨리 가도 빨리 가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고가 나기 쉽다는 거예요.

우리 미국 아이들도 데리고 갔더랬는데…. 백 마일이면 160킬로미터예 요. 이렇게 달리는데도 보통차 한 30킬로미터로 가는 것 같습니다. 보통 차는 변덕이 많고 이렇게 이렇게 산만하게 흔드는데 이 차는 그렇지 않다구요. 빨리 가기는 가는데 천천히 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를 생각지 않고 운전하는 사람이 빠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몰다가는 사고 나기 마련입니다.

차가 그렇다면 탄 사람도 기분이 좋고, 그 차는 어떨까요? 내가 차라도 '야, 이놈이 실력이 있기 때문에….' 하면서 실력을 다 발휘하고 났을때 수고했다고 두드려 주면 좋아할 거예요. 그렇게 해주면 말 같으면 안다구요. 비벼 주고 하면 꼬리로 탁탁 치고 뒷다리로 춤을 춘다구요. 그게 차니까 그렇지 그렇게 잘 달려 줬으면 가서 '야, 수고했다' 그런 말 합니다. 그렇지요? 그건 무얼 말하느냐? 그 동참자까지, 상대적 요건에 속한 일체는 자기의 기쁜 대상권의 혜택을 주기 마련이라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그거 무슨 말인지 이해돼요? 그렇지요? 그게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동참적 가치가 거기에 동반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끼리 재미있게 사는 그 가정에 보여지는 모든 물건이, 사진이 거꾸로 붙여져서 사람의 다리가 천정을 향해서 차려고 하더라도 기분이 나쁜 것이냐, 좋은 것이냐? 「좋은 것입니다」 좋지요. 집은 발로 차면 구멍이 뻥 뚫어져서 다리가 나가게 생겼는데도 재미있게 오손도손 정다운 비둘기같이 단짝으로 사는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게 아주 뭐 보금자리더라 이거예요.

그림이 아무리 거꾸로 붙여졌더라도 '저거 왜 저렇게 붙였을까?’ 하는게 아니라 그런 집에 거꾸로 붙어 있으면 있을수록 도리어 이상적인 생각이 벌어지는 거예요. 창조의 요건이 되는 거예요. '이거 거꾸로 붙인 것은 이들의 이상이 크기 때문에 들이 차면 구멍이 뚫어지겠으니까, 앞날에 있어서 그렇게 차더라도 귀하고 크나큰 이상적인 집을 짓겠다는 자극을 일으키기 위해서 거꾸로 붙였겠지' 하고 점점 좋게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된다구요. 사랑하는 사람을 대해서는 그렇다는 거예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대해서는 그저 보기만 해도 싫지요. '아이구 저 볼따귀는 왜 저렇게 생겼어? 저 코통 봐라, 저 눈통 봐라, 천부 다 통이구만' 이럽니다. 무슨 통이 나오느냐 하면, 반대통이라구요. 통이긴 통인데 일방통이 아니고 변방통입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말이예요. 상대적 기준이 되면 될수록, 완전한 것이 되면 될수록 거기에는 환경적 여건이 전부가 좋은 것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정서적인 문제를 점령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사랑

자기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있다고 합시다. 이건 언제든지 성질이 야들야들해 가지고 반가워하면서 주인이 여름에 더워서 정강이를 내놓고 가는데 와서 고맙다고 싹싹 핥는 거예요. 그것 반가와서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이놈아' 하고 차서 다리가 부러져서 절뚝절뚝하게 되었다면 그 주인은 '아침부터 그렇게 반가워하고 비며대며 그랬는데 그 짓을 안 하니까 잘됐지' 이러지 않을 겁니다. 생각이 있는 주일이라면 그 강아지 다리가 나을 때까지는 그 강아지를 볼 때 마음이 편안하겠어요? 그 강아지한테 '잘못했다. 야야 내가 잘못했다' 이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그래요」 그러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려고 하다가 병신이 됐다 할 때는 그 병신 되게 만든 사람은 일생 동안 생기가 넘쳐요? 죽을 때까지, 죽어서 잊어버릴 때까지, 만약에 죽어서도 잊어버리지 많거든 영원히 그 내심에 그런 감정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 좋은 것이 있으면 그를 줘야지, 그런 생각이 남아지겠어요. 안 남아지겠어요? 「남아집니다」 남아진다구요. 영원히 우리의 마음 속에, 모든 정서적인 문제를 완전히 점령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강아지가 보기 싫은데 아침부터 나와서 '앵-' 이러고 있다는 거예요. 기분이 나빠서 발로 딱 차서 절뚝절뚝하게 만들었다면 그걸 볼 적마다 '이놈의 강아지 잡아 버려야 되겠어' 하면서 원수시하는 거예요. 그 녀석이 병신이 돼서 절뚝절뚝하면 볼 적마다 어때요? 기분 나빠요. 좋아요? 기분이 좋다면 거 안될 말이지만 기분이 아주 나쁘지는 않다구요.

그렇지만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하다가, 사랑하는 데는 남보다도 나를 위해서 저렇게 병신이 됐다 할 때는 어떻게 하겠어요?그 사람 이상 나를 사랑한 사람이 없다 할 때는 그 병신을 지극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생길이 아니냐, 그 사람보다도 나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모르지만, 그 사람이 최고였다 할 때는 그 사람을 버리고 가는 사람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불행이요. 큰 올무가 나를 끌어당길 것입니다. 거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이걸 보게 될 때,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하기 위해서, 세계와 인류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사람이 있다 할 때는 세계인류가 그에 대해 오록(오금)을 쓰겠어요. 못 쓰겠어요? 「못 씁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내가 좋은 것이 아니라, 그와 더불어 좋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의 애국자들은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 생명을 바치는 거예요. 그 나라, 그 민족을 위하여 사랑하려고 하다가 병신이 되고 죽어갔기 때문에 나라에 좋은 일이 있으면 그 이름과 심정으로 추모와 더불어 같이 있으려고 하지 않느냐? 그렇지요?

부모를 사랑하는 효자가 있어 가지고 그 효자가 부모를 위해 정성을 다 바치는 극한 자리에서 생명을 잃고 갔다면, 그 부모의 마음은 영원히 그 자식과 단짝이 되는 것입니다. 기뻐도 그와 더불어, 슬퍼도 그와 더불어…. 만약에 슬픔이 있게 되면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내 슬픔을 넘어 기쁠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너와 더불어 그야말로 천년 만년 살고지고 하고 싶다' 하며 효자의 칭호를 붙여 주고 만국에 자랑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영원히 남아지지 않느냐? 일시가 아니라 영원입니다. 그렇지요?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변하는 이 땅 위에, 변절해 나가는 이 현시대 위에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길을 어디서 모색할 것이냐, 시종여일이라는 말을 어디에서 모색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어떤 원리를 가지고 안 되는 것입니다. 원리는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있어서 대한민국 국민을 중심삼고 애국애족하는 애국사상이라는 것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원리원칙에 있어서의 애국정신이 될는지 모르지만 우주와 인류를 대한 애국애족의 정신은 못 되는 것입니다. 그게 원리예요.

모든 원칙과 법도는 각 분야에 있지만 그 자체를 가지고는 전체에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전체의 환경까지도 전부 다 통틀어 가지고 기쁘든가 슬프든가…. (녹음이 중단되어 약간의 분량을 정리하지 못했음)

상대를 위해 주고받을 때 행복이 나온다

선이라는 것은 혼자 있어 가지고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있는데 '저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 할 때…. '내가 선한 사람이다' 할 때 그걸 긍정해요? 또, 자기가 자기 자랑하는 녀석을 누가 긍정해요? 세상에서 자기가 잘났다고 자랑하는 사람을 긍정하고 싶어 하는 본심을 본래부터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잘났다고 하는 녀석 흉보지요? 나중에는 흉보지요? 그렇지요? 남자나 여자나 다 그래요.

그게 왜 그러냐? 본래 잘난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기를 드러내어 머리를 흔드는 자리에 있어 가지고는 선이 성립이 안 되는 거예요. 어디서 성립되느냐? 남을 위하는 데에 있어서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그대를 위하고 그분을 위하고 상대를 위하는 데에서만이 잘났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성적이요 본성적인 원리원칙이기 때문에, 그 원리원칙에서 이탈하는 자는 참이 아닙니다. 참이 안 되는 자리에 서기 때문에 자부하는 거예요.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은 다 부정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선이 가는 본성적 자리가 상대를 위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 이해돼요? 선은 남을 위하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상대의 기원이라는 것은 자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이상이기 때문에 이상적인 터전, 이상적인 환경을 소개할 수 있는 것이 선입니다. 그래서 선은 보다 상대를 추구할 수 있는 배가의 힘의 작용을 요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절대적으로 위하는 기준 여하에 따라서 절대적인 선은 환경적으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나를 높이기 전에, 동창생 친구가 80명이 있으면 나 대신 동창생들을 높여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그들이 같이 공부를 해서 같은 실력기준에 있다면, 이렇게 만들어 준 사람은 졸업 때에 가 가지고 반드시 우등생이 되는 것입니다. 졸업생 가운데서 뭇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중심자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잘 하더라도 80명을 무시하고 꺼떡꺼떡하는 녀석은 골방에 집어넣고 모듬매를 치고 혼을 내주는 것입니다. 여기 서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있으면 선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아가씨들이 길을 가다가 어떤 강도에게 습격을 받았는데 얼굴도 잘 못생긴 지나가던 남자가 얼굴 잘 생긴 습격한 사람을 보고 '거기 서!' 이래 가지고 멋지게 굴려 버리고 나서 아가씨를 보고 '큰일날뻔 했군요. 밤에 혼자 다니는 게 아니요. 안녕히 가십시오' 이러면,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뭐라고 표시도 안 하고 뭐라고 물어 보지도 않고 그냥 갔다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아가씨는 그 남자에 대해 알고 싶어해요. 안 알고 싶어해요? 「알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소' 하면 거 좋아하겠어요? 그러면 '에이' 이런다구요. 그렇지요? (웃음) 원리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게 뭐냐? 선한 일을 하고 자랑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그분에게만 미쳐지기를 바라고 해내기 어려운 것까지도 해내서 전체를 그의 가치로 넘겨 주려고 해서 그걸 넘겨 받았으면 그것을 가지고 혼자 기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 좋은 것이 있으면, 여기 도둑 맞을까봐 걱정이 될 만큼 좋은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가졌으면 혼자 보고 이럴는지 모르지만,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남편이 있다면 그걸 혼자만 보고 싶어해요? 둘이 보고 좋아하려고 하지요?진짜 좋은 것은 둘이 보고 좋아하려 한다구요.

그런데 좋은 것이 있으면 전부 다 자기 혼자 갖고 있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자식 없이 혼자 사는 여편네들은 귀금속을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불행의 요건이 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자식도 없는데 혼자서 보석반지 큰 걸 가지고 있으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이 보석반지가 화가 된다 그말이예요.

왜?'그걸 어떻게 할까? 이런다는 거예요. 점점 늙어 가는데 어떻게 하느냐? 죽을 날이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그것이 복이예요. 화예요? 「화입니다」 화예요. 귀하고 귀한데 죽어 가면 영감도 없고 자식도 없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먹고 죽겠어요? 차라리 그렇게 될 바에는 안 가졌던 것만 못한 것입니다. 늙으막에 그것을 보따리에 싸 가지고 감추려고 하다가는 깨깨 말라 죽게 마련입니다.

그런 것을 보게 되면 보물도 주는 데서,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려고 하는 자리에서 그 가치가 영원히 빛나는 것입니다. 받아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행복은 받기만 하는 데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받았으면 주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부모를 통해 자기 육신을 받고 태어났으면 자기를 부모에게도 물론 돌려야 되겠지만, 그 부모가 사랑하는 형제 앞에 돌리고, 부모가 사랑하는 나라 앞에 돌리고, 세계 앞에 돌리면 그 아들은 효자요. 충신이 요. 영원히 그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조금 받고 많이 나누어 주면 줄수록 그는 역사에 남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골동품적 가치를 점점 더 배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골동품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기원전 3백 년 시대의 골동품이 한개가 있고, 3백 년에서 하루 모자라는 골동품이 만 개가 있다고 할 때, 만개를 주어도 그 하나와 바꿔요. 안 바꿔요? 기원전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하루 앞서더라도 그 앞선 하나는 만 개를 전부 더 줘도 바꿔요? 안 바꿔요? 안 바꾸지요? 「예」 안 바꿉니다. 이건 무얼 말하느냐? 보다 멀고 보다 오래된 것일수록 귀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모두가 바랄 수 있는 것일수록 귀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골동품이 오래된 것이라고 해서 잘 생긴 것이 아닙니다. 잘 생기기는 뭐가 잘 생겨요? 칼 끝이라도, 요만큼 한 귀때기 만한 조각 하나 있으면 박물관을 가득 채울 만큼 물건이 있더라도 이것 하나 앞에는 못 당하는 것입니다. 보다 귀한 것 앞에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런 걸 바라보게 될 때, 보다 가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냐?보다 오래 된 것일수록 가치 있는 것입니다. 오래 된 것일수록 그 민족의 사상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전체의 본심적 내용과 전체의 상대적 내연의 요건을 갖추어 가지고 그것이 전체의 비준으로써, 표준으로써 소망하는 것이 될 때에는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 가치를 들고 나오게 될 때 그걸 나쁘다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 가치 앞에는 전부다 환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시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知)는 행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아까 말한 데로 돌아가서 이야기 합시다. 사람에게 있어서 마음이 도대체 뭐냐? 소위 말하는 마음의 밭이라는 것이 뭐냐? 오늘날 세상에서는 지(知), 정(情), 의(意)를 말합니다. 이것이 지금 문제입니다. 지가 먼저냐, 의가 먼저냐, 정이 먼저냐? 이것이 철학에서 문제가 되고 있어요.

아까 말한 대로 사람은 올바른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언행심사라고 말했어요. 여기서 사(事)는 일을 말하는 거예요. 일은 결과를 말하는 거예요. 언행심사에 따라서 그 사람은 판명이 되는 것입니다.

지식, 지(知)라는 것은 뭐냐?아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뭐냐? 말은 뭐냐 하면 말씀인데 말씀을 아는 것입니다. 앎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느냐? 옳고 그른 것이 판단되는 것입니다. 앎으로 말미암아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를 앎으로 말미암아 세계의 옳고 나쁜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말하자면, 지라는 것은 지식을 말하고 지식은 진리를 말하고 진리는 말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은 뭐냐 하면 그 사람의 아는 것을 판단해 가지고 발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요.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어떻게 되느냐? 그 사람은 거기에 해당하는 그 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주체자가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세계적인 대학자의 한마디가 세계적인 학계, 문화계 전체의 운명을 업치락 되치락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지요? 결국은 최고의 판단의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판단은 왜 필요하냐? 행동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차원 높은 자리에 가기 위한 것입니다. 판단해서 뭘하느냐? 판단해 놓고는 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판단을 해서 내가 좋은 곳으로 옮겨가기 위해서…. 옮겨 감으로 말미암아 전진하는 것입니다. 보다 가치적인 입장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판단을 절대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뭘 말하느냐? 행(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언행이예요. 행을 말합니다. 이것의 목적은 보다 발전하는 것이요. 보다 전진하는 것입니다.

의(意)는 방향성이다

의(意)도 그렇습니다. 뜻이라구요. 뜻이야, 뜻. 뜻이 있어야…. '오늘 통일교회에 간다'고 하면 가는 행동을 하기 전에 뜻이 결정되어야지요. 통일교회에 간다고 생각하기 전에 몸뚱이가 가요? 그래요? 뜻을 결정해야 돼요. 통일교회에 간다고 결정을 했기 때문에 행동이 벌어집니다. 이 뜻(意)은 '간다' 하는 뜻입니다. 이걸 보면 재미있는 것이 '설 립(立)' 자에 '가로 왈(曰)' 그 다음에는 '마음 심(心)입니다. 마음의 말을 세우는 것이 뜻입니다. 거 한문 풀이가 참 재미있어요. 그렇잖아요?

무엇을 세우는 것이 뜻이라구요? 말을 세우는 것이 뜻입니다. 말을 세우려면 행해야지요. 그렇지요? 또, 마음을 세우려면 행해야지요?그 사람이 어떤 가치를 가진 존재냐 하는 것은 그 목적 성사하는 것을 두고 봐야만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은 방향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뜻은 길을 말하는 데 길은 자기 멋대로 왔다갔다하는 게 아닙니다. 뭐 아침에는 이렇게 가고 저녁에는 저렇게 가는 게 절대 아니예요. 사방팔방으로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뜻의 길이라는 것은 일방입니다. 여자가 가는 뜻의 길은 일방입니다. 남자의 뜻의 길도 일방입니다. 부부가 가는 뜻의 길도 일방입니다. 부부가 자식들과 합해 가지고 가는 뜻의 길도 차원이 높을 뿐이지, 일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방향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 가지고, 판단해 가지고 방향을 따라서 가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기쁘게 되는 것입니다. 왜 기쁘냐? 목적의 자리가 나와 접근되어지기 때문에 기쁩니다. 알겠어요? 그 방향으로 가면 갈수록 점점점점 목적의 자리, 자기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때가 점점 가까워지니 그 거리가 단축됨에 비례해 가지고 기쁨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상대적입니다.

10년 20년 전에 고향을 떠날 때, 뜻을 품고 어떤 결의를 갖고 떠났다가, 별의별 천신만고 수고를 다 거쳐서 그야말로 성공해 가지고 금의환향한다 하게 될 때는 돌아가는 그 출발은 기쁘겠지만…. 목적을 이루고 가는 길이라면 가면 갈수록 기쁘고 동네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붙안고 소리를 치게 되지만, 만약에 실패했다면 누가 볼까봐 숨기 바쁠 거예요.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가면 갈수록 기쁜 길이 아니고 가면 갈수록 '아 어떻게 갈까? 그런 길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목적을 향하여 가면 갈수록 좋은 일이 벌어지고 한 사람은 목적을 향해 가면 갈수록 슬픔이 벌어지는 이 두 결과의 존재는 기필코 인생행로의 결정으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인생길을 가는데 전부 다 어떤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 없는 존재가 있어요? 그 눈이 괜히 깜빡깜빡하게 생겨났어요? 코가 괜히 나발통같이 생겼어요? 다 목적이 있어서 그렇지요. 귀가 괜히 누구 보기 좋으라고 이렇게 생겨났어요? 거꾸로 생겨났으면 좋을 텐데 말이요. 벌써 이것은 말을 상대적으로 들어야 할 것을 다 알고 그렇게 생겨났습니다. 거 목적이 있는 거라구요.

올바른 판단 밑에서 올바른 방향을 갖춰야 기쁨이 나온다

남자로 태어난 것도 목적이 있지요? 여자로 태어난 것도 목적이 있어요. 남자 여자가 하나되는 데도 목적이 있습니다. 또, 아들딸을 낳는 것도 목적이 있다구요. 민족과 민족이 서로서로가 하나되는 것도 목적이 있습니다. 전부 다 그렇지요? 전부 다 상대적 요건을 걸어 가지고 보게 된다면 목적관이 벌어집니다. 이것은 공산주의 이론에서 변증법 이론과는 상치되는 거라구요.

작용이라는 것은 혼자 하는 법이 없습니다. 아무도 없는데 혼자 작용 하고 웃고 떠드는 것은 미친 녀석입니다. 혼자서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미친 행동이 드러나는 거라구요. 점점점점 모순된 자체로 드러나는 거예요. 작용이라는 것은 전부 다 상대적 요건을 통해 가지고 보다 차원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데에서 작용을 계속하려고 하지, 그것이 없게 될 때는 중단되는 것입니다. 전진해 가지고 뜻의 길을 따라가면 따라갈수록 왜 기쁘냐? 목적을 성사할 수 있는 거리가 점점점점 가까와 오기 때문입니다. 가까와 오면 올수록 비례적으로 기쁨은 증가하는 것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그러면 지식이 필요하냐, 뜻의 방향이 필요하냐? 뭐가 필요하냐? 뜻의 방향도 지식도 결국 기쁨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근본을 알아야 돼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은 출발기준에서부터 이게 엇갈려 있습니다. 다들 '지식이 필요하다. 지식이야' 이럽니다.

만일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면 대통령으로 다 된 줄 알아요? 또, 세계로 갈 수 있는, 세계정세 앞에 보조를 맞추어야 할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대한민국만의 대통령이 되어 가지고는 역사적으로 책임 못 한 대통령으로서 역사에 이름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보람 있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주체자로서 드러날 수 있는 가치적인 책임을 해 가지고,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는 인물이 돼야만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 나라가 기뻐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지, 대통령이 됐다가 그 나라 망하게 만든다면 그 대통령이 필요해요? 그런 대통령은 꿈에도 훤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통령 안 됐던 것만도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이 영원히 일치될 수 있어야 합니다. 목적하는 바의 가치가 전체 앞에 적용될수록 가치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들에게 국가적인 인물이 될 거냐, 세계적인 인물이 될 거냐 할 때, 국가적인 인물이 되겠다는 녀석은 한 사람도 없다구요, 그렇게 돼 있지요? (어느 한 사람을 가리키시면서) 임자도 그래? 「예」 이젠 국가적 인물 되기는 다 틀렸다고 누구나 공인하더라도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만은 틀림없이 있지요? 「예」 죽어서라도 소원성취하고 싶은 거예요.

기쁨은 어디서 오느냐? 올바른 판단에서 옵니다. 그러니, 판단을 잘 하라는 거예요. 올바른 판단을 해 가지고 올바른 길을, 전진할 방향을 갖추어야 합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판단 밑에서 올바른 방향을 갖추지 않고는 절대 기쁨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왜? 지, 정, 의라는 것은 본성의 내재적인 속성을 말하는 것인데, 그 전체가 좋을 수 있는 요인을 보강하는 자리가 기쁠 수 있는 결과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쁠 수 있는 결과의 자리를 잘못 판단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더라도 기뻐요?

판단을 잘못하게 되면 '아이고! 그것 잘못 결정했구만' 이러지요? '아이고, 잘못 결정했구만, 안 했으면 좋았을 터인데 이겁니다' 십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거예요. 가려니 갈 수도 없고 돌아서려니 돌아설 수도 없고, 뭐 죽자니 청춘이요. 뭐 어떻고…. 이런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판단을 잘 해야 되는 것입니다. 판단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지식은 무엇 하기 위한 것이냐?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한 여비를 마련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점에서 세계적인 대가가 있느냐 할 때, 그 사람이 그 어떤 분야의 방향을 가르쳐 주는 데에는 세계적인 대표가 될는지 모르지만 인간의 기쁨을 성사시키는 목적의 자리까지는 아직 멀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대가가 됐더라도 인생으로서 갈 길은 있는 것입니다. 과학자가 됐더라도 과학을 향하여 가는 그것으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일방통행이 아닙니다. 과학자가 됐더라도 인생길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왜? 과학자도 기쁨의 길을 바라고 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성공 했더라도 그것으로 통하지 않아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종교가들도 '아 신앙의 길만 가면 되는 것이다' 이게 아닙니다. 신앙의 길도 가야 되지만 상대적 세계의 길도 수습해 가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중이 절간에 앉아서 목탁을 두드리는 수도의 길도 필요하겠지만, 그랬으면 상대적인 사바세계에 가서 실천하는 실적을 남겨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무리 목탁을 천년 동안 두드린다 하더라도 소용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로 판단해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대관절 뭐냐 할 때, '통일교회가 뭐긴 뭐야? 벌거벗고 춤추는 곳이지' 그런 말 많이 들었지요? '통일교회는 요사스런 곳이지, 삿된 곳이지, 사교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 사교의 왕초다' 세상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거 잘, 알았느냐? 내가 판단을 잘 했느냐 못 했느냐? 공의의 판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것이 정의의 판단이냐, 불의의 판단이냐 하는 문제가 벌어지는 거예요.

역사는 여기서 엇갈려져 가지고 상극의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상극의 세계에서는 주체가 주권을 잡았더라도 그 주체 일방으로서는 전체에게 미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잘못 판단하게 되면 거꾸로 떨어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만약에 대상을 잘못 판단하게 되면 대상은 남아지고 주체는 거꾸로 떨어지게 되어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만일에 통일교회를 잘못 판단해 가지고 아무리 멋모르고 이단 사교라고 떠들더라도 떠들던 사람들은 다 흘러가 버리고 이단 사교라는 칭호를 받던 통일교회는 당당코 남아집니다. 그게 천리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로 판단을 해야 됩니다.

올바른 판단을 하려면 서류를 꾸미지요? 범죄자가 있으면 서류를 꾸미는 거예요. 중요한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이 녀석은 이렇고 저녀석은 저렇고 비교해서 누가 그르냐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알아보니까 이 사람은 좋고 저 사람은 나쁘다 결정을 낸 후에 그것이 사실일 때에는 결정받은 사람은 꼼짝달싹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삼자 공인, 세 증인을 세워 가지고 사실로 긍정하고 처리하게 될 때는 천하에 어디든지 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면 죄를, 형법이면 형법에 대한 지식이나 그 알고 있는 원칙 기준을 중심삼고 판단하더라도 거기에 불합격된 사람도 불평할 수 없다 하는 것이 국가의 절대적 기준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지식이 왜 필요하냐? 판단하기 위해서….

종교를 믿는 데 있어서 막연한 종교는 믿지 말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어' 하는 것이 막연해요. 확실해요? 「막연합니다」 내가 이제 총을 쏘는데 말이요. 타켓을 향해서 총을 쏘는데 '맞겠는지 안 맞겠는지 모르겠다' 이러면서 꽝 하고 쏘면 맞겠어요? 천만 번 해봐도 안 맞는다 이겁니다. '요놈의 타켓이 그렇게 생겼구만, 야, 요것 봐라,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타켓은 납작하고 편편한데, 요놈의 타켓은 빼앵 돌아 원점은 말이야, 요것이 쏙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들어가지 않고 요것이 쏙 나와 있다…. (판서하면서 말씀하심) 타켓을 보면 말이예요. 요것이 이렇게 돼 있다구요. 쏙 나와 있다구요. 이렇게 된 타켓도 있을 수 있다구요.

이것을 딱 중앙에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정조준해야 합니다. 조금만 틀어져도 안 맞아요. 요렇게 보고 요 중점에서부터 통해야 됩니다. 그래야 맞는 것입니다. 하나 어려울 것 없다구요. 그런데 조금만 틀려도 맞아요. 안 맞아요? 맞은 것 같지만 진짜는 안 맞았다는 거예요. 이게 길면 길수록 사건이라구요. 정조준하려면 수평도 딱 같아야 되고, 방향도 딱 같아야 되고, 상하좌우 조절을 딱 해서…. 앞만 봐 가지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3점을 일치시켜 가지고…. 이렇게 쏘는 사람하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꽝 꽝 다 쏘고 '아이고 다 쏘았구만, 아이고 가산 다 탕진 했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통일교회 믿다가 망했어' 이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통일교회 선생이 되어 이 놀음 하지만망하지 않았다구요. 여러분 때문에 내가 망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나서 안 망했지, 자기들이 잘못해 가지고 몹쓸 데 갔지, 그렇게 망하는 그것은 난 모른다구요. 망하길 잘 했다는 거예요. 그런 녀석은 망해야 된다구요. 고시를 치는데 오천 명이 시험을 봐서 다섯 명을 뽑는다 하게 되면 비율이 천대 일입니다. 대수가 많을수록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좋은 겁니다」 좋은데, 들어가기는 어려워요. 쉬워요? 「어렵습니다」 어렵습니다. 좋기는 좋습니다. 오천대 일, 오만대 일인데 '아이구 합격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게 쉬워요? 안팎으로 걸리는 것이 많습니다.

마찬가지라구요. 통일교회도 그럴 거예요. 하나님 아는 데도 그럴 거예요. '하나님 알아?' '하나님 알지', '어떻게 알아? ', '하나님 머리카락 보아서 알지, 하나님 머리는 요요요요… 요렇게 생겼지, 머리카락 같더라' 그것도 맞기는 맞다구요.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 손톱밖에 못 본 사람이 있습니다. 손톱은, 따보떼하기, 손톱 짜른걸, 뭐라 해요. 손톱 깎은 거 뭐라고 해요? 응? 아, 그 손톱 깎은 거 있잖아, 깎아진 걸 뭐라 그래요? 「손톱 찌꺼기요」(웃음) 이런 게 있다구요. 자, 그게 문제야, 요것밖에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아이고, 하나님 어떻게 생겼소?', '손톱 깎아 놓은것 같다. 요게 하나님이다. 이게 요렇게 생겼기 때문에, 하나님 요렇게 생겼다' 이런다구요. 하나님이 또 옷을 입었는데 뭐 알락달락한 옷을 입었다 이거야, 모자를 썼는데, 노랑 모자 쓴 것만 본 사람에게 '하나님 어떻게 생겼소?' 하고 물어 보면 '아, 어떻게 생겼기는, 노랑 모자 쓴 것 같이 하나님이 그렇게 생겼지' 그럴 수 있다구요.

그러면 그것이 하나님이냐? 막연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아 가지고 판단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판단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판단해요? 누가 판단해야 돼요? 「자신이….」 자신이 판단해야 됩니다. 요건 틀림없습니다. 나도 맨 처음에 총을 가지고 사냥을 나가는데 총질이 순 날총쟁이지요. 처음 총질을 하는 걸 날총쟁이라구 한다구, 그런데, 총을 쏘면 틀림없이 나가기 마련인데 나가긴 나가는데 잘 나가야지 잘못 나갔다가는 큰일납니다. 자기 어머니 배도 쑤셔 놓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 배에다 들이대고 쏘면 그 인사고 뭐고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큽니다. 잘못했다가는 큰일이 벌어져요.

그렇지만 조준을 해 가지고-먼저 신념이 있어야 된다구요-쏘아야 합니다. 안 쏘아지면 쏘아질 때까지 해야 됩니다. 이래야 국제선수로 되는 거라구요. '야, 국제선수가 되면 챔피언 되는 것 참 좋은데, 금메달을 받게 될 때 기분 좋겠구만….' 그래서 자기 나라 국가(國歌)가 세계를 대표래서 뭐 '동해물과 백두산이…' 하고 연주될 때 거 아주 자랑스럽지요? 그게 얼마나 신나요? '야 나도 한 번…' 이럽니다. 사람이면 다 하고 싶다구요. 그런데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거예요? 한국이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몇개 타 왔어요? (녹음이 중단되어 약간의 분량을 정리하지 못했음) 기분 좋아요. 나빠요? 한국에서는 어떻고, 아시아에서 어떻고, 세계에서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걱정이 크다구요. 기록을 깨뜨리면 깨뜨릴수록 걱정이 작아져요? 많아져요? 「많아집니다」 기록을 깬 사람들은 점점 심각해져 들어갑니다. 그럴 수 있다구요. 그렇지요?

반대도 받아야 그 반작용으로 다시 설 수 있다

통일교회 문선생 입장을 보면,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종교는 종교계에 뛰어들어 꼴지도 못 해' 이랬지만, 나는 뭐야? 내가 한번 해보자' 해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많이 뛰어왔다구요. 그런데 저 녀석 좀 때려 잡으라고 야단을 하고 그랬지만 이렇게 나오다보니…. 그러던 것이 이제는 그럭저럭…. 이제는 그들이 내 밑으로 보이고 내 눈 아래 보인다구요. 다 앞에 있다고 내가 뛰어왔는데 전부 다 뒤에 서 있어서 뒤돌아봐도 안 보이게 됐어요.

그걸 보면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웃음)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이거 오다 보니까 옛날에 따라오던 그 사람들은 천국가고, 나 혼자 거지가 돼 가지고 난데없는 사막에 들어가 가지고 죽을 함정을 향해서 달음질치지 않느냐…. 고독할 때가 있다구요. 그럴 때는 '아, 반대하는 패가 또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는 거예요. 반대하는 패가 있어야…. 복싱 같은 거 할 때면 말이예요. 저쪽에서 치고 들어오면 '요놈의 새끼 어딜…' 이러면서 그 반작용으로 나꿔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반대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사막에서 혼자 가게 될 때 자기를 잡으러 오는 원수의 기마대가 나타나게 되면 도리어 살 수 있는 길이 생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사막에 있더라도 열 번 중에 두 번 세 번은 살 수 있는 길이 있어요. 없어요?이럴 때 사막 가운데에 적군의 기마대가 나타나면 그때는 기쁜 거예요. 슬픈 거예요? 어때요? 거꾸로 파고 들어가게 돼 있어요? 그때는 손을 들고 빌고 가야 되는 거예요. 그럴 때도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보게 되면 원수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 할 수 있다구요. 요전에는 뭐 통일교회를 반대하다가…. 거 누군가, 우리 통일교회 반대하다가 오물을 썼던 사람? 「신사훈….」 신사훈인지 무슨 사훈인지 모르겠구만, 그 사람 요즘엔 반대한다는 말이 들리지 않더구만, 자꾸 반대하라고 그러라구요. 때로는 반대가 필요하다구요. 반대가 있기 때문에….빛이 밝아질 수 있는 것은, 캄캄한 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빛은 더 발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만사가 무사합니다.

기성교회가 뭐 옳고…. 내가 통일교회가 옳다는 말 안 해봤습니다. 여기에 기성교회 잘 믿는 양반이 왔을는지 모르지만 내가 때로 기성교회 목사들에게 한마디 욕을 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나보고 불평 못 할 거예요. 내가 천 마디 말을 듣고 이 입으로 쏭알쏭알해 보는 것밖에 안 되는 거예요.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들고 치고 이랬는데 가만히 있다가 몇 마디 욕을 했다고 해서…. 그건 욕한 축에도 안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건 산울림하는 데 손짓하는 거와 마찬가지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내가 통일교회 선생으로서 아무리 기성교회 누구누구 목사 죽어라고 욕을 하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하나도 안 받는다구요. 나는 하나님 앞에도 당당합니다. 왜? 내가 그런 것을 많이 당했기 때문입니다. 열 번 맞고 한 번 때리는 것이 죄예요, 아니예요? 열 번 맞고도 지지리 못나 가지고 가만 있으면, 열 사람 백 사람에게 전부 다 맞고 밀리고만 있으면 그건 누구도 편을 안 드는 거라구요. 동정도 안 합니다. 그건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챔피언이 되어 가지고 그 나라의 송사리떼 같은 것들을 '아이구, 치기 좋다' 이래 가지고 그저 밤새껏 수백 명을 들이친다고 해서 저 녀석 못난 사람이라고 그래요? '야, 본격적인 훈련이 벌어지는구나' 그러는 거예요. 거 훈련이라구요. 참 신나는 놀음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럴수록 그건 좋은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내가 기성교회에 대해서 아무 짓을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만약에 그 7배를 플러스해 가지고 한꺼번에 태평양 바다에 버리더라도 하나님이 '야 야 그러지 마라'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다 그러면 하나님도 꼼짝 못할 수 있는 재료 수집을 다 했습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 볼트 너트라는 거, 네지(ねじ) 알지요? 알지요? 맨 처음에 대가리 맞출 때는 잘 맞아요. 안 맞아요? 안 맞게 됩니다. 이렇게 열 번 천 번 해도 안 맞다가 맞아 놓은 다음에는 건드리기만 하면 올라가요. 들어가요? 이건 위에서 건드리기만 하면 자꾸 들어가는 거예요. 이건 돌리기만 하면 틀림없이 들어가는 거예요. '들어간다 들어간다 들어간다. 지금 8부 들어간다. 9부 들어간다. 10부 다 들어갔다' 이렇게 들어갈 때, 그 새에 뭐가 끼이는 것을 용허(容許) 해요. 안 해요? 반대요건은 절대 용납 안 합니다.

그 다음에는 그 주인이 뿌라이야면 뿌라이야로 꽉 죄는데 뿌시식 그렇게 죄는 게 좋아요. 뚜둑 뚜둑 이렇게 죄는 게 좋아요? 꽉 조여 가지고 공기 짜박지 하나라도 못 들어가게끔 딱 조여 가지고…. 어떤 진동이 있어 가지고 몽땅 빠지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도록 그렇게 틀고 싶은 것이 너트를 죄는 사람의 심리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도 그럴 거라구요. 통일교회를 그렇게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나의 아주 중요한 볼트를 만들어서 쓴다 하게 되면,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 통일교회 교인들 진짜 한번 죄소, 얼마나 센가 한번 보게요. 명령하소' 이래 가지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죌 것입니다.

내가 조이는 사람이라구요. '조여라! 조여라!'해 가지고 전부 다 조여서 빠지직하는 때가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있어야 되겠습니다」 있어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서 거기에 무슨 기름 짜박지가 들어가 있으면 그것이 삐져서 옆으로 나와야 되겠어요. 안 나와야 되겠어요? 나오는 거라구요. 이건 쓸데없는 것들이라구요. 그런 것들은 죄면 죌수록 통일교회에 못 붙어있게 됩니다. 그럴 때가 있을 거예요.

끝날이 되면 하나로 귀결된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어떻게 해서든지 나중엔 눈을 빼서 삶아 먹겠다고 그럴 때가 올 것이다. 눈 빼 가지고 삶아 먹겠다고 하는 사람 봤어요? 눈을 뽑아서 삶아 먹이겠다고 하더니, 언제 가서는 삶아 먹자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제 남을 위해서 그만큼 해야 한다고 교육이 다 돼 있느냐고 하면 됐다고 그럴 거예요. '그러면 이제 나를 위해서 교육 받아라' 할 때는, '네 눈깔을 빼서 삶아 먹자' 이럴 때는 어떻게 하겠어요?' 아니요, 선생님 눈깔을 빼 먹은 맛을 알고 나서, 내 눈깔을 빼 주겠소' 그렇게 하겠어요? (웃음) 그 뭐 있을 거라구요?

때가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하나가 남는 거예요. 그 하나의 원칙을 표준해 가지고 귀결지어야 할 것이 오늘날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가 아니냐, 그것은 개인에게 있어서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종족도 그렇고, 민족도 그렇고, 국가도 그런 것이 아니냐, 대한민국은 어떻게 가야 된다. 세계는 어떻게 가야 된다 해서 세계에 너트를 딱 죄어서 이것을 풀지 못하게끔 만들어 놓으면 그 세계는 통일 세계가 될 것입니다. 안 그래요?

시종여일이라는 것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마음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의 목적이기 때문에 우선 내가 올바로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통일교회에 왔다갔다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구요.

잔칫집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잔칫날 지짐이 얻어먹고 떡 얻어먹는 사람이 제일 좋지요. 그렇지요?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제일 좋은 사람이예요? 「주인공요」 주인공은 잔칫날 지지직 지지직 지짐이를 지지고 떡을 텅텅 치면서 '아이구 좋다 좋다' 그래요? 외적으로는 좋은 것 같지마는, 각시들 마음은 속이 달랑달랑할 것입니다.

옛날 결혼식 같으면 그건 진짜 뭐 지옥가느냐, 천당가느냐, 죽느냐, 사느냐 그럴 거예요. 옛날에는 신랑도 보지 못하고 시집가고 신부도 못보고 장가갔거든요. 신랑도 못 봤기 때문에 아무리 자기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 편 되어 가지고 잔치를 하지만 신부의 가슴은 두근두근 서근서근 하게 마련입니다. 거 왜 두근두근 할까요? 한근한근하지 말이예요.

한국 말이라는 것은…. 보라구요. '찌국 째국' 전부 상대적이라구요. '왔다갔다' 왔다면 왔다지, 갔다는 또 뭐예요? '지지고 볶고' 이게 전부 상대적이예요. 다른 나라 말에는 이렇게 된 말이 없다구요. 또, 휘청휘청, 덜렁덜렁 달랑달랑, 히히헤헤 전부 상대적으로 돼 있어요. 이걸 보면 한국 말이 세계에서 제일 좋은 말입니다. 하나님이 말을 가르쳐 주는 데에 있어서 한국 민족에게 세계에서 제일 좋은 말을 가르쳐 준 거예요. 이렇게 천지이치에 맞게끔 맞춘 말은 한국 말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웃음) 여기 한국 사람이 들으면 기분 좋겠지만 서양 사람들이 들으면 기분 나빠할지 모릅니다.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구요.

자, 보라구요. 한국 음식을 보더라도 조미료가 세 가지 이상 안 들어가는 것이 없습니다. 고추, 마늘, 파가 안 들어가는 것이 없어요. 거기에 또 뭐가 들어가느냐 하면, 깨가 들어갑니다. 그걸 보면 세 가지 아니면 네 가지는 언제나 따라다니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삼위기대 사위 기대를 좋아하는 국민입니다. 또, 한국 기후를 보게 되면 삼한사온입니다. 야, 이게 어쩌면 그런가, 진짜 그렇다는 거예요. 삼위기대 사위기대, 3단계 4수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 있어요.

자, 그러면 아들딸을 갖는다면 어떻게 갖겠어요? 아들은 셋이요. 딸은 넷이다 그래요? (누구를 지적하시면서) 시집가면 애기 몇이나 갖고 싶소? (웃음) 뭐 그런 건 다 정한 이치인데, 너무 그러지 말라구요. 대답하면 하나님이 사랑하시사 아가씨가 대답하는 대로 해주실지도 모르지요. (웃음) '아들은 셋, 딸은 둘' 이렇게 하는데, 그건 불공평하지 않느냐, 아닙니다. 남자는 하늘 상징이고 여자는 땅 상징이기 때문에 하늘은 3수가 원칙이고 땅 수는 상대수가 원칙입니다. 땅은 상대입니다. 존재세계는 상대수가 원칙입니다. 천지이치가 이렇게 통하기 때문에 한국 사람은 아들 셋 딸 둘을 원합니다. 이렇게만 됐으면 맞다구요. 통일교회 원리는 안 맞는 것까지 다 맞출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거 원리적이라구요.

왜 3수가 중요한 수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3수는 존재수입니다. 존재할 수 있는 기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존재라는 것은 하나에서부터 하나의 수를 갖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의 수, 1수가 남게 하려면…. 보라구요. 하나에 플러스 하나(1+1)하면 얼마냐? 둘(2)이지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하나에 마이너스 하나(1-1) 하면 얼마냐? 공(1)이 되는 것입니다. 자,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게 대번에 둘이 나오나요? 하나가 양쪽에 있어야 둘이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로 남아지는 것이 뭐냐?둘 마이너스 하나(2-1)하면 하나(1)가 남고, 셋 마이너스 둘(3-2)하면 하나(1)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요? 보라구요. 하나 플러스 하나 플러스 하나(1+1+1) 하면 얼마예요? 셋(3)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 남는 것이 뭐냐? 하나 플러스 하나 마이너스 하나(1+1-1) 해야지요?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하나 수를 가지고 전부 다 개성진리체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수가 하나로 남아질 수 있는 수는 3수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게 돼 있다구요. 셋에서부터 하나가 남아지게 마련입니다.

여러분, 수학이라는 것이 뭐냐? 가(加)하고 감(減)하고 승(乘)하고 제(除)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 있다구요. 넣었다가 뺐다가 하는 것이 수학입니다. 이렇게 돼 있다구요. 그렇지요? 하나가 남는 수는 하나를 셋 합한 데서만이 나오지, 하나를 둘 합한 데서는 빼고 더하고 해서 하나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리적으로 볼 때, 3수는 존재의 기본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원리적이라구요.

원리를 배우는 것은 표준을 찾자는 것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면 통일교회를 잘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를 어떻게 아느냐? 통일교회가 나쁜 곳이냐, 좋은 곳이냐를 알아야 되겠어요. 서울대학교 가는 것보다 통일교회 가는 것이 못하냐 나으냐 할 때, 나을 때는 서울대학교 집어 던지고 통일교회에 가야 그것이 올바른 사람이고 통일교회가 못하다 할 때는 통일교회를 집어 던지고 서울대학교 가게 하고 가는 것이 올바른 사람입니다. 그게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알아야 되느냐? 통일교회 원리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원리를 알아 가지고는 통일교회는 판단 못 하는 것입니다. 원리를 앎으로 무엇을 판단하느냐? 통일교회 문선생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대관절 어떤 사람이냐를 알 수 있습니다.

원리를 아는 것은 통일교회를 알기 위한 것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원리를 아는 것이 누구를 알기 위한 것이라구요? 원리의 중심이 문선생이기 때문에 문선생을 아는 거예요. 물론 하나님이라고 되어 있지요.

여러분 십자거리에서 교통 순경이 싹 이렇게 하면, 차가 부릉하고 가지요? 깃대잡이가 춤추는 대로 놀아나야 됩니다. 만일에 그 십자거리에서 불쾌하고 기분 나쁘다고 해서 '에이 나 싫다' 하면서 마음대로 했다가는 옥살박살되게 마련입니다. 틀려요. 안 틀려요?

자, 그렇게 되면 길잡이하는 사람은 대통령보다 높습니다. 그래요. 안그래요? 대통령이라 해도 할수없이 신호하는 대로 가야 됩니다. 그러니 대통령보다 높다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 자리에서는 대통령보다 높다. 그와 마찬가지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하나님 앞에 신호잡이 라면, 하나님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신호잡이로 내세웠으면, 하나님도 내가 신호하는 대로 가야 돼요. 맞지요? (웃음) 그럴 수 있다구요. 웃을 말이 아니라구요. 내세웠으니 그렇게 안 하면 하나님도 걸린다구요.

신호가 바뀌어 뒤에 있는 차가 빵빵할 때, 엔진만 부릉부릉하고 가만 있으면 대통령이라도 잡아 끌어내 가지고 밀어제켜야지 별수 있어요? 그리 되는 거라구요. 그것이 정상이예요. 비정상이예요? 그게 정상입니다. 그러니 물론 하나님이 배후에 있겠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이 길잡이가 되어서 이렇게 가라 하면 통일교회 패들 가야 되겠어요. 안가야 되겠어요? 신호를 못 봤거들랑 앞에 빨리가는 사람에 맞춰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웃음) 신호를 언제 보겠어요? 네거리에서 신호는 20미터 30미터 밖인데 색맹 같은 사람은 그걸 볼 줄 모른다구요. 그러면 앞에 가는 사람의 뒤꼭지만 따라가면 다 가는 거예요. 방법은 그거예요. 그렇다면 그럴 수 있어요. 신호를 바로 보든가 그렇지 않으면 앞서 가는 사람 행동에 보조를 맞추든가 해야 합니다. 그것이 길을 갈 수 있는 비법입니다. 마찬가지예요.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원리를 알아서 뭘하느냐? 통일교회를 믿기 위해서 원리를 아는 게 아닙니다. 통일교회를 알기 위해 공부하는 거예요. 통일교회를 알게 되면 누구를 알게 되느냐? 통일교회의 무슨 협회장을 알고, 전도한 사람 알고 그런 것이 목적이 아니라구요. 통일교회 원리를 공부하는 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대관절 어떠한 사내냐 하는 것을 알기 위한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알기 위한 것입니다.

대관절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뭘하는 사람이냐? 새벽같이 바쁜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말이예요. 지금 몇 시간 됐어요? 이야기를 하면 한 15분 정도 쯤 설교하면 될 텐데, 지금 벌써 몇 시간 째냐는 거예요. 그건 왜 그래요? 그리고 또, 통일교회 패들은 왜 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어요? 저기 가는 사람 있구만 뭐, 기성교회 사람들이 보게 되면 모를 거예요. 어떤 때는 열두 시간까지 얘기하거든요. 아침도 안 먹고 새벽부터 얘기한 것이 낮 열두 시가 땡 칠 때 '아 점심 먹소' 하는 거예요. 아침은 그만 두는 거예요. 그것 뭐 번거롭게 '아침은 뭘 먹을까' 이래요? 신나는 놀음이 벌어지게 되면 아침쯤은 빼도 괜찮다구요. 또, 하룻밤 잠 안 자도 괜찮다구요.

통일교회 원리공부는 무엇 때문에 하느냐? 통일교회 믿기 위해서, 통일교회 가는 길 따라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알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앞으로 통일교회에 있어서 박물관장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문선생에 대한 자료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통일교회 박물관장이 될 수 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러면 앞으로 통일교회의 정수분자는 어떤 사람이냐? 통일교회 원리 책을 1페이지에서부터 550페이지까지 눈감자마자 녹음기를 돌리는 듯 벼락같이 한꺼번에 왈카닥 외워 버리는 사람이 통일교회의 정수분자냐? 그게 아닙니다. 팔만대장경 암만 외웠더라도 하등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거기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그게 뭐냐? 비준, 표준을 찾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다시 말하면 기쁨이라는 것은 책이 아닙니다. 말씀이 아니라, 말씀의 목적체가 기쁜 것입니다. 그렇지요? 말씀이라는 것은 일방적입니다. 거기에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마음과 하나되어 가지고 기쁨의 상대권을 갖춘, 기쁠 수 있는 그 자리가 목적이기 때문에 나의 목적은 상대적이라든가 주체적이라든가 하는 표준적 기준점을 발견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원리책이 표준적 기준이냐? 그래요? 아니라구요. 표준적 기준은 싫든 좋든…. 통일교회 문선생이 생기기는 잘 못생겼습니다. 코가 이렇게 생겼고 눈도 작긴 하지만 말이예요. 고집이 있다구요. 코가 이렇게 생겼으면 고집이 있고, 또, 눈이 이렇게 되어 있으면 뭣도 무섭지 않다구요. 눈이 세상만사에 겁이 없어요. 그런 무엇이 있지만 말이예요. 싫더라도 할 수 없어요. 눈이 크고 코가 멋있게 생긴 사람들, 이런 겁쟁이들은 못 따라올는지 모르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을 배워 가지고 따라오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구요. 그 말이 맞소, 안 맞소?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진짜 기뻐하는 사람은 '통일교회 교인들 전부 다 기쁘게 사는 것이 그게 내 행복이다' 하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아무리 여러분이 다 기뻐하더라도 선생님이 '익' 하면 '어어어….' 이럽니다. 거 맞소, 안 맞소? 「맞습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코를 흘리면서 침을 흘리면서 좋아하다가도 선생님이 '와라' 하면 달라져요. 안 달라져요? 달라지지요? 「예」 자 이렇게 보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문제라구요. 기성교회에 나올 때는 통일교회가 문제이더니, 또 통일교회에 들어오니 통일교회 문선생이 문제라구요. 이런 문제는 있을수록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학과가 점점 많아질수록 고급학교인 것입니다. 학과나 전공시험이 점점 많아질수록 고학년이라는 거예요. 맞아요. 안 맞아요? 연구분야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사람들에게 문제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난 후에는 좋은 것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문제점이 많다는 거예요. 아 이거 원리가 좋아서 들어왔더니 점점 두고 보니까 깍쟁이 중의 왕초 깍쟁이 다 모였다는 거예요. 고집이 제일 센 것들이 여기 왔구만, 깍쟁이도 진짜 경기도 알깍쟁이만 모였다구요. 전라도 제일 하바리만 모였구만, 경상도 맨 왕목곧이가 왔구만, 평안도의 왕초들만 모였어요. 그렇다구요. 대표 아니면 여기 못오게 됩니다. 보라구요. 전시회니까, 박람회니까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라고 하는 거라구요.

무슨 전시회냐? 통일 전시품을 전시해 놓은 것이 전시회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잘났다는 것은 다 들어와 모인 곳입니다. 품평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전시회라구요. 딱 맞지요? 세계에서 잘났다고 하는 것은 다갖다 모아 놓았기 때문에 세계 박람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그러니까 다방면에서 나와 부딪치는 거예요. (웃음) 전부가 일등이라구요. 전부 다 자기가 잘났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아지려고 하면 찬바람이 획획 부는 거예요. 박물관 들어가면 훈훈한 기운이 날줄 알았는데 찬바람이 획획 분다는 거예요. 들어가 봐야 박물관 기분이라구요.

영국 박물관에 들어가 보게 되면 전시장이 이게 전부 다 미이라처럼 돼 있어요. 쓱 무덤 가운데 들어가면 무엇이 확 덮칠 것 같습니다. 아래도 있고 저기도 있고 말이예요. 전부 놀라 자빠져요. 그렇지만 가만 들여다 보면 볼수록 재미가 있어요. 알겠어요?

통일교회에 들어왔다고 해서 다 좋은 게 아닙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좋다고 오해하는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혼비백산해 버린다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어디 있느냐? 통일교회 교인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대관절 어떤 사람이냐, 어떤 양반이냐, 혹은 어떤 녀석이냐 하는 것을 여러분 입장에서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외각적으로 보게 되면 몹시 바쁜 사람이다. 잠을 안 자며 도깨비같이 산다' 별의별 소문이 다 났습니다. 뭐 어떻고 어떻고 어떻다고 말이예요. 통일교회 믿는 사람들, 살림살이 하던 것 다 집어 던지고 통일교회 문선생만 따라다닌다고 하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왜 그런지 알아봐야 합니다. 진짜 그렇다면 좋다는 거예요. 세계 사람들이 전부 다 통일교회 문선생한테 미쳐 가지고 문선생 따라가겠다 하게 되면 그건 망하든지 흥하든지 둘 중의 하나는 결정난다구요. 그렇잖아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못나기는 못났지만 만약에 못난 문선생을 따라가겠다고 하며, 세계 사람들이 전부 미쳐 가지고 '문선생이 가는 대로 전부 다 따라가겠소' 하게 되면 망하든지 흥하든지 둘 중의 하나로 판결이 납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닐 때는 판결도 못 나고 둘 다 망하게 마련입니다. 둘 다 망하게 되는 것보다도 한쪽이 망하든가 흥하든가 이럴 수 있는 입장에 서는 것이 지혜롭지 못하다? 「지혜로워요」 지혜롭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결정을 지어야 됩니다. 끝날에는 공산세계도 망하고 민주세계도 망해요. 지금이 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목전에 전개되어 들어오는 시대입니다. 이럴 때는 어서 결정을 지어야 됩니다. 아예 망하려면 보따리 싸 가지고 여기서 한꺼번에 망하자 하는 이런 결정을 안 지으면 둘 다 망합니다. 이럴 수도 있다구요. 지금이 그럴 때라구요.

공산세계는 공산세계가 좋다고 그러고, 민주세계는 민주세계가 좋다고 하면서 서로가 담에 딱 부딪혀 가지고 빙빙 돌고 있다구요. 이제 그렇다고 해서 무얼 하나 붙들어야, 상대가 있어야 기뻐한다고 했는데 뭘 하나 붙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통일교회가 이때 나왔다구요. 종교에서는 통일하자고 나서고 말이예요. 공산당도 세계통일하자고 나오고…. 그게 상대적 관계가 돼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 들어와서는 통일교회 원리공부도 필요하겠지만, 대관절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을 알아봐야 돼요. 알아보는 데는 원리책 가지고는 자료가 불충분합니다. 결론이 그거라구요. 여러분이 아무리 알아봐야 한 60퍼센트밖에 모릅니다. 기분 나빠요. 좋아요? '아이구 저 욕심장이 봐라, 백 퍼센트 알게 써 놓지, 왜 60퍼센트밖에 모르게 써 왔나?’ 이럽니다. 왜 그랬느냐? 도둑놈들이 많기 때문에,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다이아몬드 광산이 확 차 있다고 하게 될 때는 도둑놈이 많으면 맨 본광산은 안 가르쳐 주는 거라구요. 그저 '너도 먹고 물러가라' 해 가지고 요만큼 큰 것 가지고도 아이고 좋다. 아이고 좋다고할 수 있게끔 한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곁다리만 가르쳐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60퍼센트밖에 안 가르쳐 준다는 거예요. 그것이 나 때문이 아니예요. 지옥은 안 가고 천당은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줬으니 지옥 갈 사람들이 천국갈 수 있게 되면 감사해야지요.

앞으로 제일 본광(本鑛)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백 퍼센트 가르쳐 주기 위해서…. 백 가운데에도 몇 플러스한 백이 있고 마이너스한 백이 있어요. 그렇지요? 선생님도 시험점수를 주더라도 110점 줄 것을 100점 주는 수도 있다구요. 그렇지요? 마찬가지라구요.

'자 이거 대관절 어디로 가려고 그래요?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는 올바른 판단을 하고 가야 되겠어요. 그걸 판단짓기 전에는 선생님이 가자고 할 때 '응?뭐, 또 가자고 하는구만, 그만큼 왔으면 된 줄 알았더니, 또 가? 아이구 신발도 없고 겨울이 되었는데 잠바도 없고…. 눈이 이렇게 왔는데 눈사태 났는데도 가자구? 아이구 저 선생님 돌았구만' 자 '돌았구만' 하는 사람이 돌았어요. '가자' 하는 사람이 돌았어요? 둘 중에서 하나는 돌았다구요. '가자' 하는 사람에게 눈사태 나는 것이 봄절기의 진달래꽃이 핀 것같이 보이겠소, 눈이 눈대로 보이겠소?어때요? 눈사태 난 벼랑산을 보고 가자고 하느냐, '아이구, 저것 봐라, 꽃이 피는 봄동산이다' 이러면서 가자고 하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똑똑히 보고 얘기하는 거라구요.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 산을 넘어가야 되는 것이다 할 때는, 판단을…. (녹음이 중단되어 약간의 분량을 정리하지 못했음)

내가 뭐 아쉬운 게 있어서…. 내가 뭐 밥이 걱정이예요. 아들딸이 걱정이예요? 뭐가 걱정이예요? 아들딸 걱정하고 밥을 걱정하는 때가 있기도 하지만 세계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지, 자신을 위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구요. 통일교회는 지금 통일교회를 위해서 일하자는 게 아니라구요. 통일 교회는 죽더라도 나라를 살려야 된다는 거예요. 또, 대한민국은 망하더라도 세계인류는 살아남아야 돼요. 또, 세계인류는 망하더라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은 사라질 수 없는 거예요.

그것이 왜 그러냐? 하나님 가운데는 세계인류가 들어가 있고 세계인류 가운데는 대한민국이 들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망하더라도 세계를 살려 주게 되면, 대한민국이 망할 수 있는 운명을 달게 받았으면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건 역사적 귀추가 그렇게 되어 있고 오늘날 현실적인 모든 선악의 분립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아는 사실이 아니냐.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확실히 알고, 판단해 가지고는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요? 알고 판단하는 것은 뭘하기 위해서? 후퇴하기 위해서죠? 「전진하기 위해서…」 전진하기 위해서입니다. 전진은 왜? 전진해서는 뭘하느냐 말이예요? 밥이 나와요. 떡이 나와요. 집이 나와요? 뭣 때문에 전진하느냐 말이예요. 집이 나오기 전에 목적달성이 목전에 다가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남이 좋기 때문에, 내가 좋기 때문에? 내가 좋기 때문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남 좋게 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 좋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구요. 여러분이 좋게 되기 위해서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통해 여러분이 다 좋을 수 있는 복귀를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하나의 역사성을 지닐 수 있는 일관된 사상 체제를 요구한다

마음의 속성은 지적 방향과 의적 방향과 정적 방향이 통일적으로 하나가 되어 가지고 '야, 잘 판단했다. 잘했다! 야, 됐구나' 할 수 있는 그것을 위해서 가야 됩니다.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하냐? 표준과 일치될 수 있는 이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일치되면 어떻게 되느냐? 영원한 주체와 영원한 대상으로 그 상대가 결정됩니다. 거기에서 영원히 주고받음으로써 느껴지는 기쁨은 영원히 주고받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그것은 억천만금을 주더라도, 억조만세의 수많은 인류를 투입해서라도 찾을 수 없던 보람 있는 가치의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찾기 위해 가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것이 자기를 후퇴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과 고난이 극하면 극할수록 그것이 앞으로 성공으로 결실될 수 있는 것이 목전에 점점 접근해 온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람 있는 전징(前徵)로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나타나는 결과는, 전징은 기쁨과 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바라는 것이 그게 아니냐? 그래서 기쁨으로 산다 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을 통할 수 있는 그 주체, 그 사랑의 주체는 누구냐?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내가 알고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과 같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돼요. 알겠어요?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의 상대적 기준에서 내가 알아 가지고, 상대적 가치의 기준에서 판단해 가지고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절대적인 주체 앞에 상대권 판단기 준을 확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확보된 것에만 정지되어야 할 것이냐? 확보했으면 거기에서부터 하나님이 바라는 목적 세계의 방향을 따라서, 의적(意的)인 방향을 따라서 전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전진함에 따라 거기에 접근하면 할수록, 거리가 단축되면 단축될수록 거기에 비례되는 수고와 수난의 길이 가중되지만 거기에 비례하여 기쁨도 결국 가중되기 마련입니다. 어떤 것이 강하냐? 기쁨이 강하면 강했지 수고가 강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길은 승리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결정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바울 같은 양반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과 인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36)"라고 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랑을 느끼는 데에 있어서 모든 만유의 유아독존의 권위의 자리에 설 수 있는 특권적인 자리를 바라봤기 때문에, 거기에서 찾아지는 기쁨이라는 것은 죽어가면서도 주님을 위로할 수 있는 기쁨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죽음길도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 예수 그리스도의 전생애의 귀결점도 그 기준을 중심삼고 간 것이 아니냐? 성인이라는 이름을 남긴 사람들도 다 그런 류(類)의 사람이 아니더냐?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면 개인이 설 수 있는 자리, 가정이 설 수 있는 자리, 종족이 설 수 있는 자리, 민족이 설 수 있는 자리, 국가가 설 수 있는 자리, 세계가 설 수 있는 자리, 천주가 설 수 있는 자리, 하나님이 설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개인과 가정은 이렇게 돼 있고, 종족은 이렇게 돼 있고, 민족은 이렇게 돼 있고, 국가는 이렇게 돼 있고, 세계는 이렇게 …. (판서한 것 가리키시며) 이것은 상대적 방향입니다. 이것은 혼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주의 방향이 일관된 하나의 역사성을 지닐 수 있는 그런 사상 체제를 요구하는 거예요. 그런 역사관이 필요하게 되는 거라구요.

인류는 어떻게 교육을 해야 되고, 어떤 가정을 추구하고 어떠한 씨족을 형성하고 어떤 민족, 어떤 국가를 형성하여 세계를 거쳐 하늘땅을 통합시킬 수 있느냐? 그래 가지고 영원한 절대 주체, 주체와 나와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은 상대의 결합점을 이룰 수 있느냐?그걸 이룰 때에서야 비로소 상대세계로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잘 갔더라도 가정이 잘못 가게 된다면 돌아가서 또다시 가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예수관을 통할 수 있는 세계관을 바라보고, 세계관을 통할 수 있는 국가관, 국가관을 통할 수 있는 가정관, 가정관을 통할 수 있는 인생관을 바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것은 직선상에 있습니다. 시종일관해야 되는 것입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는 게 아니라구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시종일관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은 이렇게 가야 하고, 가정은 이렇게 가야 하고, 종족은 저렇게, 민족은 그렇게, 국가는 어떻게, 세계는 이렇게 가야 한다는, 그것이 직선상에 모아질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있을 것이 아니냐?

그러한 자리에 선 새 우주관을 바라보면서 그 인격 가치를 자기가 추구하면서 개인적 인격을 중심삼고 고무줄을 이어서 사격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장에 서는 거예요. 거리는 멀더라도 쏘면 딱 맞는 거예요. 1킬로미터면 1킬로미터 앞에 표적이 있다 하더라도 쏘게 되면 딱 들어가 맞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것을 맞출 수 있는 자리에 섰으면, 기분이 나쁘겠어요. 좋겠어요? 거리가 멀면 멀수록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혼자 기쁠 수 없다 이거예요. 나 혼자 기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체가 기쁘려니 '나를 따라와라'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남편의 충성은 아내의 충성이 될 수 있어요. 그렇지요? 여자가 땀을 흘려요. 피를 흘려요. 고생을 해요? 한번도 안 나가지만, 그의 여편네라면 싸움은 하지 않았더라도, 백승장군은 안 됐더라도 그 나라의 군왕이 추대 하는 영광의 자리에 나갈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왜? 총부리를 한번 잡아 보기를 했어요. 적진에 나가 원수를 한 사람 보기를 했어요? 보지도 않고 생각도 안 했더라도 상대자는 동참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다고 그 나라의 그 누구도 참소 못 하는 것입니다. 왜? 왜? 왜? 사랑 때문 입니다. 사랑하는 그분만이 간섭할 수 있어요. 나라도 간섭 못해요. 그것은 누구든지 다 바랄 수 있는 소망의 출발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일시에 특권적인 권한을 상속받을 수 있는 절대적인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따라가려고만 하지 말고 앞서가려고 해라

그래서 그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몇째 계명이예요? 첫째 되는 계명이예요. 잘난 사람은 이래야 되고 못난 사람은 이래야 되고, 그런 게 없다구요. 잘났건 못났건 병신이건 뭣이건 곰배팔이건 뭣이건 괜찮다는 거예요. 병신이 더욱더 빛날 수 있는 길이 있다구요. 병신 자식을 가진 부모는 병신 자식에게 더욱 관심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든지 그걸 개의치 않고, 문제시하지 않고,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것을 보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되는 계명이다'고 했는데 첫째 되는 계명이기 때문에 이것은 특권중의 특권입니다. 이것을 처리할 수 있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치리받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가 아무리 못났더라도, 눈봉사나 목발을 짚고 다니더라도 그 나라의 대통령의 아내가 됐으면 길을 피해 주지 길을 막고 못간다고 그래요? 눈이야 있겠으면 있고 코야 뭐 주먹코이건 뭐건, 귀가 요렇게 돼 있고 두루뭉수리 되어도 입은 말만 할 수 있고, 사지가 없더라도 병신 중에서 곱사등이 데려다가 천으로 덮어 놓더라도 다 위해주는 거예요.

만약에 아내가 나라를 위한다면, 남편과 대등한 가치, 그 백 배의 가치가 부여되는 것입니다. 수천만년 그런 영광의 가치로서 자랑스러울 수 있고, 그것은 국민사상에 전통을 심어 놓게 되고, 거기서부터 역사를 넘어 가지고 설정할 수 있는 영광 중의 으뜸 영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중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정에서는 부모를 위하는 사랑의 효자를 말하는 것이요. 나라에서는 충신을 말하는 것이요. 세계에서는 성인의 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면 이걸 알아야 돼요. 올바른 판단을 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올바른 판단을 했으면 눈을 까빡까빡하고 있어서는 안 되겠어요. 가야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문선생 배포를 보고 '이렇게 해야 되겠다' 해 가지고 '선생님!', '왜?', '나 무엇 하겠습니다: '하긴 뭘해?'선생님이 시키지 않은 일 하겠어요', '뭐! 이 녀석아, 시키지 않는 놀음을 해서 될 게 뭐야? 이렇게 됩니다. 그렇게 시키지 않은 놀음을 하겠습니다' 하는 거기에는 탕감길이 있다는 거예요.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이렇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의 일은 제쳐놓고 다음에 올 수 있는 좋은 일에 대해서 딱 준비해 가지고 있게 되면 그것 탕감받을 수 있어요?없다는 거예요. 앞으로 찾아올 수난길이 있고, 앞으로 할 여러 가지 첩첩이 쌓인 일이 있거든 그 어려운 일을 위해서 앞이 멀면 멀수록 보다 배가적인 가치가 있게 될 때는, 선생님이 명령하지 않더라도 선생님을 지도할 수 있는 특권의 길을 가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의 복귀섭리도 마찬가지라구요. '오, 하나님이 명령하니까 일하겠다…' 선생님 명령하는 것은 뒤로 하고 말이예요. 하나님이 아무리 잘났더라도 하나님은 내 작전에 말려듭니다. 하나님은 지금 뭘 할 것이냐, 이걸 모르지만 그 하나님의 몇 배를 전진하여 그 어려운 일을 성사시켜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서 '당신을 위해 준비한 것이요' 이렇게 자기 욕심을 초월해 가지구 심정적 역사적 희생과 선의 본질을 따라 가지고, 터를 닦은 그 터전 위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가게 될 때는 하나님이 싫다고 안하게 돼 있어요. '오냐, 착하지' 이런다는 거예요.

남이 잠잘 때 일하면 충신이라 하느니라, 역사 만세에 빛날 수 있는, 천상에 빛날 수 있는 충신의 이름 중에서 군왕이 우러러봐 가지고 이름이 세워지는 것을 충신이라고 합니다. 뜻의 길도 그런 것을 찾아가야 되겠지만, 이왕지사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면 통일교회 문선생 보고 따라가는 사람 되지 말라구요. 문선생이 앞에 가는 사람 좇아서 '야, 이 녀석아 너 왜 했어, 내가 해야 할 텐데 요놈아!'이렇게 한다면 망하는 단체입니다. 만일에 그렇게 탓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을 위해 지금까지 해 나온 전부를 칭찬해 줄 수 있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뜻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이 좋겠어요. 없는 것이 좋겠어요? 「있는게 좋아요」 있을수록 좋소, 없을수록 좋소? 「있을수록 좋습니다」 있을수록 좋을 것입니다. 없어서는 절대 안 되는 거예요. 있으면 있을수록 뜻이 빨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목적인 국가 사회는 물론 세계적인 표본의 국가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으되, 만일에 명령을 해서 그것을 바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꽁무니를 뺀다면 망하는 거예요. 꽁무니를 빼는 사람이 있으면 누가 그 사람을 심판해야 되는데 그때는 제일 나은 사람이 심판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럴 때가 되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 한다는 게 아니냐?

통일교회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넘어 가지고 왔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것이 예수뿐 아니라구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을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할 수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있어야지요. 이런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은 시종여일하기 때문에 거기에 상대적 기쁨을 갖는 사람도 영원한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천하 어디에 가더라도 싫다 함을 받는 곳이 없기 때문에, 그런 실적을 가진 사람은 악의 소굴까지도 어두운 세계, 만국 어디 가든지 환영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야….

통일교회 문선생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표준한 것은 어디까지나 평면적 표준이지 입체적 표준은 못 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통일교회는 나라와 세계로 가야 되고, 세계와 천주로 가야 되고, 천주와 하나님의 사랑까지 직진해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면적인 기준을 넘어서 입체적 입장에서 나라와 세계를 구하고 세계의 판도를 넓히기 위해서 천신만고 생명을 바치기를 각오하고 나서야 됩니다. 이런 무리라면, 나라를 못 가졌더라도 미래에 나라를 치리할 수 있는 용자들로서 남아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추천하고, 바라고, 기르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소원입니다. 알겠어요?

절대 순응하는 곳에 새로운 전통이 세워진다

그런데 이리 가라고 하는데 꽁무니를 빼고 들어가는 사람은 앞으로 교통순경이 '이리 가라' 하는데 안 갔다가는 어떻게 돼요? 뒤에서 달려드는 차가 들이받는 거라구요. 앞에서 안 가는데 들이받게 되면 어떻게 돼요? 아무것도 안 남아요. 옥살박살나는 거라구요. 지금이 그런 때라구요. 교차로를 거쳐야 할 때입니다. 교차로 때라구요. 알겠어요? 지금 우리에게는 개인적으로 거쳐가고, 가정적으로 거쳐 가지고, 종족, 민족, 국가적으로 거쳐가야 할 것이 한꺼번에 닥쳐 가지고 세계적인 교차로가 결정되어지는 세계정세 앞에 있습니다.

금후에 아시아에 있어서 한국의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은…. 엇갈리는 정세가 우리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냐? 문제가 크다구요. 그러면 갈 길이 어떻게 될 것이냐? 여기서 하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상대로 해 가지고 나갈 수 있으면…. 주체와 대상 관계로서 우리가 국가적 책임을 해 나가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나님을 제쳐 놓고는 나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절대 순응하게 될 때는 새로운 전통의 인연은…. 나라는 망하고 민족은 망하고 그 환경의 터전은 재밖에 안 남겠지만 역사시대를 재현할 수 있는 봄날이 오는 것입니다. 죽음의 길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을 위로해 가지고, 새로운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아 가지고 인류의 조상으로 반드시 나타나야 됩니다. 그 비근한 예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예입니다. 피폐한 제단, 황폐한 그 자리를 헤치고 로마제국을 제단에 바쳐 가지고 오늘날 찬란한 기독교 문화권을 형성한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 사람과 통일교회 문선생만 표준하지 말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체하거들랑 지체하는 통일교회 문선생 앞에 서 가지고 세계문제에 있어서 남겨진 이 뜻을 위해서 갈 수 있는 길을 개방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빛나는 영광이 있게 마련입니다.

자, 국가에 이름난 인물이 될래요. 세계에 이름난 인물이 될래요? 세계에 이름난 사람이 되려면…. 보라구요. (그림을 그리시며 말씀하심) 이것(①)이 작으면 작을수록 작게 결정되지만 크면 클수록 사방을 지니고 있어서 넓어지는 것입니다. 넓어지지요? 요게 들어가게 되면 그놈 하나밖에 없던 것이 넓어지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렇게(②) 되면 점점 개인적, 가정적으로 해서 결국 세계적 무대에 가서는 이것이 점점 짧아져요. 길어져요? 「길어집니다」 이렇게(③)갈 수 있는 길(B)도 멀어지고 이렇게(④)연결시킬 수 있는 길(B)도 멀어진다는 거예요. (그림 참조)

개인개인 친구들을 대할 때는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쉬운 거예요. 그렇지만 국가와 국가가 대하게 될 때…. 국가적으로 대할 수 있는 길이 쉬워요? 국가만큼 멀지요? 국가의 역사과정을 대표할 기준을 세워서 서게 될 때는 이 둘이, 국가를 대표한 둘이 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렇게 한 나라도 그러한데, 하나님하고 우리 인간하고 대표적으로 서기 위해서는…. 그것이 역사과정에서 대표적으로 되겠어요? 하나님은 제일 높은 분이니까, 제일 끝에 가서 계신다 할 때는, 제일 머니까, 세상 출발의 신나는 날이예요. 중세요, 말세요? 제일 맨 끝에…. 이걸 알아야 돼요. 맨 먼 데 계시니까, 맨 먼 하늘과….

마찬가지라구요. 종교의 세계에 있어서 끝날이라는 말이 그래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 이해돼요? 역사의 제일 먼 자리에 세워 놓는 거예요. 그래서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나님하고 상봉해야 됩니다. 기독교사상이 그거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제일 높은 분이고 오늘 인류는 끝날을 대표해 설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 가운데서 그러한 사람이 없지만, 하나님은 사랑의 중심체이기 때문에 끝날을 대표해서 설 수 있는 만인류의 대표자로 한 사나이를 등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분이 메시아라는 분입니다. 메시아사상은 간단합니다. 메시아 알겠어요? 그 자리에 선민사상이 있더라는 거예요.

이 자리에 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역사시대의 희망을 걸 수 있는 중심적인 사람입니다. 역사과정에 참으로 바랐던 중심존재입니다. 이것이 결합되지 않고는 등장할 수 없는 그런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손을 잡고 악수를 하고 '우리 살자'고 할 때는 어디에서 살 것이냐? 사는 데는 나라를 중심삼고 삼천만 민족을 중심삼고 한꺼번에 좋아하며 살아요? 사는 데는 어디냐? 가정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사는 겁니다. 그렇지요? 대통령도 사는 데는 어디서 살아요? 공관의 사무실에서 살아요? 거기에서는 사무를 보고, 사는 것은 집에 들어와서 사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집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림할 수 있는 집,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살림할 수 있는 집, 먼저는 집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이루어지려면 무엇이 있어야 돼요? 부인이 있어야 돼요. 그래서 신랑이라 하고 신부라고 하느니라, 맞지요? 신랑 신부가 만나서 누구와 살자는 것이냐? 여기 끝에 있는 사람과 아무나 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제일 중심 되는 분이 여기에 들어와 사는 것입니다.

이 중심 되는 분은 개인으로 볼 때 세계적인 개인 대표요. 가정으로 보면 세계적인 가정 대표요. 그들로부터 번식된 종족이 되면 세계적인 종족 대표요. 여기에서 연결된 국가는 세계적인 국가 대표입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대표화한 그런 인류세계가 될 때, 이상세계요. 통일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으면 그런 구상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왜 신랑 신부를 만나야 하는 거예요. 신랑 신부를 맞아 가지고 뭘 할 것이냐? 개인완성을 역사시대에 이루어 가지고, 남성 여성의 완성을 역사시대에 이루어 완전히 하나님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요인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들 둘이 사랑하는 것은 너희들의 사랑이자 곧 내 사랑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돼요.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 사랑이자 너희들의 사랑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횡적인 주체와 대상 관계입니다. 횡적인 주체와 대상이 되었으면, 입체적인 종적인 주체와 대상이 되어서 넷이 합밤을 만들어 놓아야 이상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을 중심삼아 주고받을 때 완성을 본다

동서남북을 가려 놓을 수 있는 날이라야 그것이 하루가 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루 가운데는 봄절기도 있고 여름절기도 있고 가을절기도 있고 겨울절기도 있는 것입니다. 아침은 봄에 해당하는 것이요. 낮은 여름에 해당하는 것이요. 저녁은 가을에 해당하는 것이요. 밤은 겨울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춘하추동과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또, 동방은 봄에 해당하는 것이요, 남방은 여름에 해당하는 것이요, 서방은 가을에 해당하는 것이요, 북방은 겨울절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문명권을 보면 고대문명은 열대권 문명이요, 지금 문명은 온대권 문명, 가을절기 문명이라구요. 알겠어요? 20세기 문명은 전부 다 38도에서 42도권내에 벌어지는 가을절기 문명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구요. 가을절기 문명이라 가면 갈수록 앙상한 가지만 남는 거예요. 거기에 단 한 가지 뭐냐 하면, 가지만 가지고 안 되는 것입니다. 열매가 맺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역사의 수확입니다. 인간에 있어서 결실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것이 종교에서 말하는 끝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주의나 사상도 모두 몰락입니다. 가정 윤리관 몰락이요. 국가관도 몰락이요. 개인 인생관도 몰락입니다. 전부 다 몰락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 그 열매에 전부 다 집약되기 때문입니다. 그 씨는 전체의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겨울에 찬바람이 불어오면 거기에 부딪혀 가지고 그걸 뚫고 넘어가서 봄을 맞이하여 심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 한대권 문명이 공산권이라구요. 알겠어요? 시베리아의 찬바람이 부는 한대권 문명이 세계를 휩쓸어 몰아치면 민주세계는 나가자빠지는 거라구요. 추풍낙엽이 됩니다. 기독교도 망해 떨어지고 전부 다…. 가을이 되면 이파리는 말라 떨어지는 거예요. 죽을 것은 죽는 거라구요. 여기에 생명력을 가진 완전한 씨가 추운 동절기를 극복하고, 이런 여건에서도 생명을 지녀 가지고 밭을 맞아 심어져서 새싹을 틔울 수 있는 그런 사람만이 앞으로 세계 이상천국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가 보는 끝날 이후의 천국관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여러분의 하루 생활에도 봄절기와 같은 기쁨이 있고, 여름절기와 같은 기쁨도 있고, 가을절기와 같은 기쁨도 있고, 겨울절기와 같은 기쁨도 있습니다. 슬픔도 마찬가지예요. 전부 그렇게 돼 나가는 거라구요. 그래서 이것이 하나될 수 있는 것이 뭐냐? 그것은 열매입니다. 춘하추동이 들어가 있고 동서남북의 모든 요인을 갖추어 가지고 중심이 된 것이 이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심이 되는 것은 둘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입니다. 절대적인 하나예요. 이것은 개인적인 대표의 절대적인 기준이요. 가정적 대표의 절대적 기준이요. 종족적 대표의 절대적 기준이요. 민족적 대표의 절대적 기준이요. 국가적 대표의 절대기준입니다. 그 국가적 기준을 중심삼고 상대적 세계가 이루어지면 세계는 그것으로써 통일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을 중싱삼아 가지고 개인적으로 주고받을 때 내 개인의 행복이 완성을 보는 것입니다. 가정이면 가정의 부부가 완전히 하나 되어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게 될 때 가정적 완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국가면 국가, 삼천만 민족이면 삼천만 민족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돼 가지고, 국가를 주도하시는 주권자 하나님과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그 이상적인 영원한 모델의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없다구요. 여러분은 어디 있느냐는 거예요. 개인을 들고 나와서 그러한 본연의 이 세계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내가 자신 있게 섰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그러니 전부 다 낙제감이요. 불합격품이라는 것입니다.

불합격품이 마음대로 출입하게 돼 있느냐? 그러니 가정도 못 갖는 것이며 나라도 못 갖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다 버리는 거예요. 자유세계의 경향이 지금 그것입니다. 자기 어미 아비를 다 버리고, 형제를 다 버리고, 나라를 다 버리고, 세계를 다 버리고 히피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최후에는 몰락입니다. 거기에서 '뒤로 돌앗' 해 가지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전에는 전부 다 쓰레기통이 되고 구더기가 다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표준점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러한 세계관 앞에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들의 표준점이 어디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빼고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무슨 사랑? 한계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무한한 사랑, 초월적인 사랑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한 초월적인 선의 터전은 초월적인 희생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할 수 있는 가치 추구에서부터 선의 세계는 발전하는 것이요. 종교의 본질의 세계는 응고되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 즉, 통일적인 터전이 다짐되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의 여러분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우리 교회가 국가를 위해 가면 여러분들도 국가를 위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세계를 위해서 가면 세계를 위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꽁무니를 흔들고 뺑소니를 치는 것은 추풍낙엽과 같이 됩니다. 여름에 태풍에 부러진 잎과 마찬가지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래안 가서 썩어지게 마련입니다.

다시 말하면, 알고 가야 되고, 가 가지고는 마음과 하나되어 가지고 주체 앞에 대상적 존재가 돼야 합니다. 나는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구요. 아무리 봐도 결과적인 존재예요. 그렇기 때문에 원인적인 존재와 상대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는 데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데서 비로소 심정의 역사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즉, 개인적인 역사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정을 중심삼고 그렇게 되면 가정적인 역사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민족이 그렇게 되면 민족적 역사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심정적 역사관이…. 그래서 통일교회는 심정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요. 심정의 역사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표준점으로 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예」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고 이 사명을 위해서 우리는 가고 있습니다. 이 사명을 위해 가는 길 앞에서 우리는 핍박을 받았고 놀림을 받았고 억울함을 당했어요. 험한 그런 길을 극복해서 찾아오는 사연이 깊으면 깊을수록,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영원한 사랑의 이야기로 묶어져 남아져 가지고 그것이 힘이 되고 하나의 자극적인 기쁨의 원천으로 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드러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조건이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길이 어렵다고 탄식하는 사람은 사랑의 길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고생하면 할수록 나쁜 것이 아니고 보다 복되고 가치적인 상대의 기준을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그릇되었다고 볼 수 없는 결론인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 길 앞에 보다 충성을 하기를 바라서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기 도

​아버님, 우리는 여기 이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개인이 가는 길이나 가정이 가는 길이나 민족과 국가가 가는 길이나 세계가 가는 길이나 이것은 오로지 평면적인 세상을 묶기 위한 하늘 섭리의 상대적인 터전임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을 묶어 놓지 않고는 아버님은 행차도 할 수 없는 아버님인 것을 알았습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 왜 무능하냐고 몇 번이라도 하늘을 대하여 외치고 싶었는데, 그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온 천주를 지배할 수 있는 본연의 아담 해와 그 둘이 사랑하는 것은 세계를 대표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기는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그의 사랑권내에서 움트고 싹틀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것이 본연의 기준이었고, 그 기준 앞에서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으로 하늘과 땅을 종적인 영원한 승리적인 결합권으로, 하늘을 빼놓을 수 없고 인간과 떨어질 수 없는 자리에서 우주의 중심을 결하려는 당신의 창조이상이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될 때, 황공하고도 놀라운 그 세계를 추구하는 마음이 또다시 간절해지옵니다.

원한에 찬 노정을 걸어 나오던 역사적인 비참을 회고해 보게 될 때, 선조들의 부끄러웠던 사실들을 저희들은 다시 마음과 몸을 가다듬어 수습해 가지고 당신의 심정 앞에, 당신의 외적인 환경 앞에 가로놓이게 한 십자가의 모든 여건들을 놓고 저희들은 다시 한 번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역사에 비참함이 있었으면 비참한 가운데서 승리하지 못한 조상의 후예임을 탄식하고, 오늘의 속죄의 사명을 다짐하는 데 있어서 선조들을 대표한 제사장직을 대신할 수 있는 자신들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자기 선조뿐만 아니라 횡적으로는 자기 일족에게 남아 있는 것을 볼 때, 또 그것이 가산되어 민족으로 남아져 있는 일국을 바라보게 될 때, 이 일국이 하늘 앞에 원한의 조건으로 남아져 있는 일국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렇게 나라 앞에 남아져 있고 심어져 있는 죄악의 원인을 해소시키기 위한 제사장의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 엄청난 사실들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저희들은 타락한 부모 아담 해와를 얼마나 원망하였습니까? 그분들의 하루의 실수가 억천만세의 선조들의 한의 구렁텅이가 된 것을 압니다. 저희들은 이제 '선한지라' 하신 당신의 창조이상 앞에 있어서 본연의 자세를 맞지 못하신 당신이 슬픈 것을 압니다. 그것을 아는 저희들은 그분을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히 모실 수 있는 이상적인 부모였다는 것을 생각해야겠습니다. 그 부모를 저희들은 목전에 모시고 있나이다.

그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라고 해야 되겠고, 그 어버이를 위하여 모든 심혈을 기울인 가운데서, 생명이 기울어진 가운데서 아버지라고 절규해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내 손에 힘이 있으면 아버지의 손끝을 붙들 뿐만 아니라 목을 안고 통곡해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그 아버지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는 불쌍한 고아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부모가 있으되 부모가 있는 것을 모르고, 자식이 됐으되 자식의 입장을 모르는 처량하고도 기막힌 이 불쌍한 인간의 형상을 보시는 아버지, 당신의 혈육을 이어받아 아들딸의 인연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알아야 할 만사의 여러 가지 사연을 가르쳐 주어도 이해 못 하는 것을 바라보시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수천년 동안 당신은 사랑하는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가르쳐 주었고, 망해 들어가는 역사를 가로막고 그 역사를 부활시키기 위하여 죽음 길을 개의치 않고 싸워서 그 자리에 남아진 무리로 세워졌지만 오늘날 수많은 종교들은 하늘이 있다는 것을 망각한 자리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었다고 하는 최후의 결정을 내린 비운의 역사적 종말을 바라보는 이때에,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당신 앞에 나선, 당신을 알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것이 저희의 소망 중의 소망이옵니다.

아버님, 저희들은 역사적인 선조와 시대적인 만민을 대표하여 제사장직의 책임을 하는 동시에 앞으로 후대 후손들이 갈 수 있는 평화의 기지를 마련해야 되겠습니다. 선의 부모로서 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인류들이 이 땅 위에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한 부모를 추구해 나왔고 선한 족속과 선한 민족을 추구하고 나가는 무리이기 때문에, 저희들은 새로운 역사를 창건하여서 앞으로 올 후대 후손 앞에 지극히 선하신 선조였다고 찬양받을 수 있는 후손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시야에서 염려의 대상이 되는 눈물과 슬픔의 곡절을 가지고 우리들 앞에 사정하는 민족으로 남겨서는 안 되겠으며 후회의 후손으로 남겨서는 안 되겠습니다. 소망과 기쁨과 행복의 요건으로서 만국의 평화의 요인을 찾고 있는 나의 사랑하는 백성이라고 하면서 찾아가 가지고 칭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당신의 귀한 모든 존엄한 가치를 평면적으로 전부 다 나누어 주고 그것을 느끼고 살 수 있는 소망적인 국민상을 창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오늘날 종교인들을 대표한 통일교인의 사명인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저희들은 아버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 전체가 설정해야 할 표준점을 재차 정비하지 않으면 안 될 자리에 서 있사오니, 당신이 알고 계시는 자리에서, 동참한 자리에서 저희들은 판정해야 되겠고, 당신이 가시는 행로의 노정에 보조를 맞추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마음 앞에 저희들이 일치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고, 그 마음이 서로서로 하나될 수 있는, 심정의 인연으로 묶어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기점이 하늘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참다운 남자 여자가 하나된 가정이 기반이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것을 설정시키기 위한 것이 끝날에 있어서의 메시아를 중심삼은 신랑 신부의 이념인 것을 알았사오니, 그 기준을 바라보고 나가는 당신의 아들딸이 돼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사망의 세계의 역사를 대표해 가지고 세계의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수 있는 하나의 남성을 대표하였다는 자기 스스로의 자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역사를 대표한 자리에서도 그러해야 되겠습니다. 그들의 합한 가정은 빛나는 역사시대에 어떤 가정을 심판할 수 있는, 주체 적으로 지시할 수 있고 하나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으로서 자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부부의 사랑의 인연을 통해서 매여진 하나의 가정으로서 자녀를 기르는 그 가정을 당신이 얼마나 그리워했던가를 알았기 때문에, 또 천년 만년 수난의 길을 극복해 나온 당신의 소원이 터전인 가정동산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가정동산에서 사랑하는 아들딸을 키워 탕감의 조건을 넘어 당신이 그냥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자녀를 길러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당신이 저희들을 통해 바라시는 소원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통일가는 그 길을 위해서, 정통적으로 이어받은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지금도 몸부림치는 노정을 달리고 있는 것을 아시사, 부디부디 정상적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 당신의 사랑을 중심삼은 씨족, 당신의 사랑을 중심삼은 나라, 당신의 사랑을 중심삼은 세계를 향하여 저희들은 나가야만 되겠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나타나지 않거든 저희들이 그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할 상대적 권이라도 이루어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것을 개인으로 연결시키고, 가정으로 연결시키고, 종족에서 연결시키고 민족, 국가, 세계까지 끝을 보지 않고는 하나님이 활동할 수 없는 비참한 사실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슬프더라도 이날을 바라보면서 저희들은 극복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보다 차원 높은 가치의 그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우리를 부르고 있기 때문에, 쓰러진 자리에 있어서도 그날을 찬양하고 가게 허락하여 주옵고, 그것을 자랑하고 가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돼야만 당신의 나라의 권속으로 남아질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10월 8일이옵니다. 10월은 해방의 달로서 통일가가 축하하는 달이오니, 이 달 위에 만복을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달이 승리의 달로서 갖추어지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1972년이 이달로부터 빛나는 3개월이 되어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연말까지 저희들이 하는 일이 많사오니, 이 일에 축복하여 주옵고 이곳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선발대 위에 하늘의 의와 용기를 북돋우시사 최후의 결전장에 있어서 졸장부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승리자의 모습을 갖춘 용자들이 되게 하여 하늘의 정병으로서의 권위와 위신을 자랑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날을 위하여 오늘의 시간을 잊어버리고, 남아진 그 섭리를 위하여 오늘의 자기를 희생하고 넘어가는 무리가 되지 않고는 올바른 표준점을 찾는 무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이 시간이 되기를 바라옵니다. 모든 것을 당신의 은사 가운데서 지도하고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