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개인생활에 있어서나 가정생활에 있어서나 사회생활, 혹은 국가생활 세계생활에 있어서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심각한 시간들은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복귀섭리역사를 더듬어 보더라도 아담가정에 있어서 심각한 순간이 어느때냐 하면, 해와가 타락하게 되는 그 순간입니다. 그 순간은 인류에게 비애가 깃들고, 또 천상에도 비애가 깃들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을 우리 인류의 시조 되는 아담 해와는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에 가인 아벨을 보더라도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으시지 않았을 때 가인은 동생을 사랑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그 순간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비참한 역사의 순간이 되었습니다.
노아를 보더라도 노아 자신이 방주에서 내려 술에 취했을 때에, 만일에 노아가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았더라면, 또 함이 그와 같은 태도를 취하지 않았더라면 역사는 딴 방향으로 흘렀을 것입니다. 인류역사의 근본적인 방향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모세를 두고 봐도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모세가 반석을 한 번 쳐야 할 것을 두 번 침으로 말미암아 인류역사가 비참하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예수가 십자가를 지게 된 먼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또, 세례 요한을 보더라도 세례 요한이 예수를 증거할 때, 그 순간에는 기쁠 수 있는 한 인연을 이루었지만 그 증거한 것을 자기가 실천해야 할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지난날을 회상하고 현재의 입장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생각할 때에, 세례 요한 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역사적인 과오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4천 년 역사를 통해서 준비하시고 수많은 민족과 유대교가 바라고 나오던 소망의 중심이 꺾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역사시대는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심각한 순간을 거쳐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전세계는 그야말로 심각한 정상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좌우가 격렬하게 대치된 이 사회에서 모든 나라들과 모든 민족들, 혹은 우리 개인들이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최대의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인류 전체가 합해서 결정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러면 그 결정은 누가 해야 되느냐? 문제가 거기에 있는 거예요. 역사의 모든 전환시기에 있어서 찾아오는 그때를 누가 대해 나가야 되느냐 하면, 역시 사람이 이것을 대하고 나가야 됩니다. 그 사람 가운데는 어떤 나라를 대표한 사람, 어떠한 지도층을 대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정자로 말하면 세계를 책임진 미국의 대통령이라든가 혹은 소련의 수상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심각한 순간에서 한 번 잘못 결정하게 될 때에 인류역사에는 비참사가 벌어집니다.
외적인 세계도 그렇지만 내적인 섭리역사 세계도 역시 발전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지금은 개인적인 시대, 가정적인 시대,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시대, 더 나아가서는 천주적인 시대로, 나중에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세계까지 연결되는 발전 도중에 있는 것입니다. 발전 도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매일매일 탄소동화작용을 해 가지고 영양소를 보급하여 자라지만, 자라는 그 모양은 다 같은 것입니다. 매일같이 순환하는 환경을 거쳐 나가면서 잎이 생겨나고 가지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잎이 생겨나는 그때하고 가지가 생겨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잎은 잎으로서의 그때를 맞아 가지고 거기에 적당한 영양소를 보급받아야 되고, 가지는 가지로서 자라 나가는 데 있어서 적당한 영양소를 보급받아야 됩니다. 그와 같이 순간적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일상의 상습적인 생활과도 같은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고 밥을 먹고, 직장이라든가 혹은 자기가 종사하는 방향을 따라서 하루의 생활을 하고, 저녁에 돌아오는 그와 같은 생활이 나날이 계속됩니다. 그렇지만 계속되는 그런 날 가운데서 여러분의 비운의 역사, 혹은 희로애락의 역사는 전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전진이 향상적 전진이냐 혹은 후퇴적 전진이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행동은 위로 올라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아래로 내려가느냐? 이런 일은 우리도 모르는 가운데 결정되어 나갑니다. 어떤 사람이 말 한마디를 잘못했다고 할 때, 잘못한 그 말 한마디로 말미암아 그의 생애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는 우리 주변의 모든 환경을 거쳐 나가면서 처리돼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는 언제나 선악에 대한 관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언행심사, 모든 행동은 선악에 대한 것을 결정지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모르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서 모르는 거예요. 그의 배후가 어떻게 엮어져 왔는지 모르는 거예요. 물론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자기와 같은 한국 사람이라 하더라도 말을 들어 보면 그 사람이 다른 지방의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의 배후에 엮어져 나온 역사를 우리는 모르는 거예요. 지금 당장에 있어서 그 사람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어떤 사람이 될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즉, 그 사람이 10년 후에, 20년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대하는 데 있어서 좋든 나쁘든간에 인연되어진 모든 사람들, 혹은 모든 일들은 나를 끌어 주느냐, 내려 주느냐 하는 것에 관계를 맺고 움직인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섭리적 관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언제나 '나'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내가 있기 전에 반드시 전후, 좌우, 상하가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뭐냐 하면, 환경이 있다는 거예요. 내가 태어나서 살고 있는 이 자리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대한민국이라는 환경권 내에서는 역사를 지나온 문화적 배경이 전개되어 있다는 거예요. 한국 민족이 가는 사회적 전통에 따라서, 역사적 전통에 따라서 사회적 제도의 형성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러므로 그 제도 내에서 내가 취할 것은…. 그 제도를 보강하고 역사를 빛낼 수 있는 일을 하게 될 때에는 문화 환경인 한국 환경이 우리를 환영하고 보호하려고 하지만, 여기에 배치될 때에는 이 환경과 제도는 나를 배척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나'라는 관념을 혼자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단순히 혼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유분방할 수 있는, 경거망동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그렇지만 내가 나만이 아니라 전후좌우의 환경을 대표하고, 그와 더불어 좋은 관계에서 명령받고 사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살펴야 되는 것입니다. 이리 가면 어디로 가는 것이고 저리 가면 어디로 가는 것이냐를 살피면서, 전진이냐 후퇴냐 하는 문제를 언제나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선한 일이냐 악한 일이냐 하는 것은 어느 시대, 어떠한 환경이든지, 어떠한 시간에서든지 우리 행동 일체에 줄을 걸어 놓고 당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일생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렇잖아요? 우리가 이 땅 위에 '나'라는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 일생의 길을 가는데, 그 내용이 복잡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생을 간단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 내용이 복잡하다는 거예요. '나'라는 한 사람은 역사적인 종합체입니다. 수만 수천의 선조들의 혈연적 인연을 어떠한 한 분야 분야, 세포 세포에 있어서 이어받아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생활환경도 모든 것에 관계를 짓고 있다는 거예요. 의식주에 대한 문제, 혹은 지식에 대한 문제, 활동에 대한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환경적 여건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나' 하나만이 아닙니다. '나' 하나 핑 떠나 가지고 혼자 행동하는 것은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 자체를 보더라도 모든 것이 종합 통일된 협력 체제 위에서 우리의 생명을 중심삼고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관이 있으면 오관 각자의 자유를 허락치 않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것이 전부 다 협력해 가지고 무엇을 들게 될 때에는 반드시 봐야 되는 거예요.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마음이 가야 되고, 시선이 가야 되는 거예요. 거기에 따라서 손이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손 자체의 개별적인 행동을 허락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연대관계를 거쳐 가지고 행동되어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격자는 어떤 사람이냐 하면, 자기 혼자 행동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의 교훈, 아버지 어머니가 일러준 말,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교훈받은 말, 부모님들이 살아가던 생활의 모든 생태, 혹은 존경하는 스승들이 살아가던 생활의 길, 그 규범을 본받으면서 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안다는 그 자체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거예요. 알고자 하는 것은 내가 보다 잘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거예요. 환경이 내게 모두 순응해야 내가 전진하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이지, 환경이 순응하지 않는데 나 혼자 전진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전진은 분리되는 거예요. 그 환경과 분리되는 거예요. 환경을 소화해 가지고 전진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생살이는 우리가 심각한 시간을 저울질하며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일생을 쭉 살았다 합시다. 나이 30을 지나서 40, 50, 60, 70, 80이 돼서 이제 멀지 않아 영계에 가야 할 사실을 생각하고, 뜻이나 섭리의 내용을 아는 기준에서 자기의 지난날을 회고해 볼 때에, 그것은 여러분이 잘 아는 거라구요. 내가 뜻을 위해서 한다고 했지만 얼마나 뜻 앞에 도움이 됐느냐? 다시 말하면 대해와 같은 흐린 물이 지금 이 세상에 흘러가고 있는데, 내 자신이 그 흐린 물을 얼마나 맑게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 흐린 물에 물들지 않고 흐린 물을 전부 다 맑게 할 수 있는 내 자신의 환경을 얼마나 개척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심각한 문제라는 거예요.
우리가 영계에 가기 전에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았느냐 하고 우리 생활을 한번 쭉 반성해 보게 될 때,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러분, 영계는 미지의 세계입니다. 영계는 어차피 가야 할 세계인데, 미지의 세계라는 거예요. 무한 확대의 세계입니다. 거기에 가게 되면 여러분의 선조들을 다 만날 수 있는 거예요. 수천 수만의 조상들을 쭉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들이 여러분을 맞게 될 때 평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색시가 신랑을 따라 신랑 집으로 가마를 타고 갔다 해봅시다. 가 가지고 그 문중에 자기가 입적할 수 있는, 입문할 수 있는 그 순간은 자기를 중심삼은 생각으로는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자기 집에서 살고 자라 나오면서 행동하던 그 행동일체가 받아들여질 수 있느냐? 이것이 문제예요. 그들이 전부 받아들일 수 있느냐? 받아 달라고 할 수 있느냐? 받아 달라고 할 수 없는 거예요. 내 한 가지 행동, 시선으로부터 듣는 것, 말하는 것 등 행동하는 일체가 새로운 분야에서 출발하는 데는 조심이 따라야 됩니다. 그 조심은 무엇과 더불어? 신랑의 가문과 새로이 출발하는 그 환경에 어떻게 하면 내가 상충이 안 되고 거기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입장이 되느냐 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시집간 아가씨가 출발하는 첫날, 그 순간에 일생이 좌우된다는 거예요. '내 마음대로 하지. 뭐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계신 층층시하의 틈바구니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고 하면 안 됩니다. 요즈음 사람은 '아, 내가 이렇게 공부도 하고 모든 면에서 자기들보다 나은데, 무식한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봐야 그렇고, 시아버지 시어머니도 그렇고, 남편이라는 양반도 그렇고,시동생들도 전부 다 그렇고 그렇다. 내 마음대로 해도 될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시집간 아가씨들은 첫날의 출발이, 그 결정의 제일보가 자기 일생을 좌우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그 여자의 가는 길은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자뿐만이 아닙니다. 역사가 새로이 출발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는 전환되고 발전해 나가는데 그때마다 그것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발전할 수 있는 전환시기에 있어서, 새로운 무대로 확대 전개해 나가는 발전도상에 있어서 그것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상습적인 생활관념으로 관철하려는 사람들은 낙오자가 되는 것입니다. 안 통한다는 거예요.그 전환시기에 새시대를 맞을 수 있는 사람은 심각하게 모든 문제를 생각하고 전환시기에 대처할 수 있는, 급변하는 환경에 박자를 맞출 수 있는, 자기 정비와 자기 내정을 결정지어 놓은 사람이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그것을 이어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보게 될 때, 지금이 어떤 시대냐? 그야말로 심각한 순간이요, 심각한 시대입니다. 얼마나 심각하냐? 상습적으로 살아 나오던 사람들은 모르는 거예요. 또, 복귀섭리를 하시는 하나님편에서는 얼마나 심각하시느냐?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는 메시아를 보냄을 받는 것이 심각한 소망이었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메시아를 보내 놓으시고 그들이 메시아를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가 더 심각하셨다는 것입니다. 보내시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보내 주셨는데, 보내 주신 그분을 받아들일 수 있는 민족적 혹은 교회적 준비가 돼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메시아를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잘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를 바라지만 잘난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못난 사람이라도 받아들이면 좋겠는데, 사회의 흐름이라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류층, 중류층 이상이 전부 다 방향을 갖춰 나가게 된다면 하류층은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메시아로 보내심을 받은 그 시대에 있어서 예수 자체로는 심각했다는 것입니다. 두 세계의 자리, 하나님의 뜻과 이스라엘 민족간에 환경이 같지 않다구요. 상이한 두 환경 사이에서 박자를 맞춰야 할 예수의 사정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시대적 전환시기에 책임을 진 사람은 비참한 것입니다. 비참한 거예요. 안 그래요?
예수가 메시아로 보내심을 받았지만 메시아가 오길 고대한 교회와 유대나라는 그 메시아를 상관하지 않았고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메시아를 보내신 하나님은 그 터전 위에서 사명을 완수해 주길 바라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루이틀의 생활로써 보충시킬 수 있는 환경이 못 됩니다. 4천 년이라는 역사적 배후를 중심삼은 그 경과의 터전 위에, 승리적 기대 위에 서야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차이가 얼마나 크냐 이거예요. 소망이 지극히 높을 수 있는 자리에서 지극히 낮을 수 있는 자리로 떨어져야 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메시아를 그런 자리에 세우고 싶지 않지만 제자리에 세우기가 쉽지 않다는 거예요. 그러나 환경의 여건이 그렇지 않게 될 때에는, 민족도 싫어하고 교회도 싫어하고 하나님도 원치 않으시지만 자진해서 떨어져 내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떨어져 내려가게 되면 갈 길이 있다는 거예요. 어렵지만 갈 길이 생긴다는 거예요. 좋고 쉬울 수 있는 길, 평상시에 모든 사람이 상습적인 입장에서 바라는 그 길은 심각한 순간, 즉 역사적인 전환시기의 순간에 있어서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내가 이번에 한국에 돌아와 가지고 느낀 것이 무엇이냐? '이 사람들이 뭘하는 사람들이야? 어디로 가는 사람들이야? 어떻게 살자는 사람들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돌아오면 선생님을 만나서 좋겠지요. 그러나 만나기에 앞서 그분이 원하는 뜻, 그분의 해야 할 책임이 무엇이냐 하는 게 문제예요. 만나는 그 자체를 좋아하지 말고, 만난 후에 해야 할 방향을 따라가면서 그 길을 좋아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돼야 합니다. 그런 '나'가 되기는 간단하지 않다는 거예요.
여기 36가정은 하나도 없구만. 가정이 있다고 합시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기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지요? 누구보다도 공부를 마음대로 시키고 싶지요? 그것이 마음대로 안 되는 거예요. 한 곳을 중심삼고 나간다 할 때에 가는 자체는 그 모양으로 간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가는 과정에 있어서 역사적 환경에 미치는 타격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 이 무식한 패들이 있기에 심각하다는 거예요.
만약에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나갔다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있어서 개인의 환난시대가 있었습니다. 내 자신에 대한 환난이예요. 그런 환난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심각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뜻의 길을 가느냐 못 가느냐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야 하는데, 첩첩 태산준령이 가로막혀 있는 것을 넘고 또 넘어 그 세계를 밝힐 수 있느냐? 역사시대에 그와 같은 몸부림으로 지나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심각한 것입니다. 그때 잘못 결정했더라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없을 거예요. 자기를 생각하는 것이 일념이라도 있었으면 못 갔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 나왔어요.
지금 여러분이 배우고 있는 원리의 세계가 간단해요? 알면 알수록 무서운 세계예요. 몸서리칠 수 있는 길이예요. 한 발걸음을 까딱 잘못 가게 되면…. 온 영계와 육계가 선하지 않아요. 오로지 선한 중심은 하나님밖에 없어요. 그 외는 전부 다 사탄과 인연된 관계에 서 있기 때문에 전체를 동원해서 총공격할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홀로 계신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편에 서 가지고 싸워 나간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예요.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길입니다. 복귀의 길은 찾아가야 되고, 원리의 길은 밟아가야 된다구요. 복귀섭리는 지금까지 누구도 몰랐다구요. 그것을 찾아내야 돼요. 아담 해와도 몰랐던 거예요. 하나님은 아셨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누구한테 말을 안 하신 거예요. 누구한테 말하시겠어요? 아담 해와한테 말하지 않았다구요. 아담 해와의 후손 가운데서 그 자리에 올라온다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없습니다, 원리적으로 볼 때. 그래서 그것을 동서사방으로 가려 가지고 전부 다 실험을 해 찾아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원리와 선생님이 찾아 나온 원리의 내용은 천지의 차이예요. 천지의 차이가 나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얼마나 심각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 원리 말씀 듣고 선생님을 만나 가지고 따라 나오며 어영부영하다 보니 10년, 20년, 30년의 세월이 지났지요? 여러분들은 그렇게 살았을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복귀, 재탕감노정을 가기에 얼마나 심각했겠느냐는 거예요. 누구도 모르는 거예요. 얼마나 심각했겠느냐? 얼마나 심각한 순간 순간을 거쳐왔겠느냐?
그래서 이제는 세계사, 세계 역사노정에 있어서 통일교회는 어떠한 사회에서도 빼 버릴 수 없는 존재가 돼 버렸다는 거예요. 산으로 말하면 우뚝 솟은 히말라야산맥의 상봉과 같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높은 것은 좋아요. 그러나 그 높은 데 올라가서 정상에 서기란 힘들다는 거예요. 올라가는 사람들에게는 올라가는 것이 염려되지만, 다 올라가고 나면 내려갈 것이 염려된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올라가는 것만이 염려되는 게 아니예요. 사실은 내려가기가 더 힘든 거예요. 그것은 방향이 달라지는 거예요. 거꾸로 내려가는 거예요. 그렇다고 몸이 거꾸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냥 그대로 내려가려니, 발이 이렇게 되었는데 거꾸로 돼야 된다구요. 각도가 달라지는 거예요.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일생노정에 있어서 신앙길을 중심삼고 통일교회와 하나의 인연을 맺어서 지금 얼마나 점프하느냐 하는 거예요. 통일교회는 여러분이 날아갈 수 있는, 도약할 수 있는 하나의 시험대예요. 케이프 케네디, 인공위성이 날 수 있는 기지와 마찬가지예요. 인공위성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발사력을 가지고 무거운 중량이 움직여 올라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막대한 힘의 소모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얼마나 심각해요? 심각한 순간에 모든 정력을 투입해 봤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역사시대에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나라면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지도자, 세계면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지도자, 더 큰 분야가 있으면 더 큰 분야의 지도자를 세워 가지고 모든 것을 처리해 나가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여러분들은 다 높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냥 그대로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어려움의 비례가 배가되는 거예요. 점점 심각해 가는 거예요.
이런 점에서 통일교회가 핍박받은 때와 지금 드러날 때를 살펴봅시다. 지금까지 묻혀서 핍박받을 때는 병아리가 나오기 전까지 알에서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알에서 자라고 있던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할 때에는 고통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또, 깨서 나오면 옛날 모양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모든 것을 새로운 방향, 새로운 처지에 맞춰야 됩니다. 그렇게 발전해야만 자기의 운명길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을 자연세계에서 보아 우리가 알듯이 역사발전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만일에 선생님이 한국에 있을 때 하는 식으로 그냥 그대로 그렇게 해 나갔으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통일교회가 되지 못했을 거예요. 환경여건을 소화해야 되는 거예요. 어려우면 어려운 여건, 좋으면 좋은 여건을 소화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생각해야 돼요. 좋을 때에는 어렵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생각을 그렇게 해야 메워 나갈 수 있는 거예요. 내 생각이 좋다고 '붕' 떴다가 슬프면 '아이쿠' 이래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좋을 때, 다시 말하면 우리가 경제적 여력이 있을 때 예금을 해야 됩니다. 최하의 선을 취해 나가면서 저금통장에 예금하라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어려움이 올 때에 풀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서나 신앙생활에 있어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못해도 단계는 8단계, 과정은 7대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통일교회에서 가르쳐 준 종의 종의 시대가 있었느냐? 종의 종의 시대에는 종이 주인이 된다구요. 주인이 시키는 종이 아니라 종이 시키는 종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종의 자리를 얼마나 그리워하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라든가 서자의 자리라든가 직계의 단계까지, 그다음에 해와의 단계, 아담의 단계까지 가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 단계까지 올라가야 됩니다. 하나님 단계에 가서 하나돼 가지고야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는 거예요.
천국은 사랑의 세계라구요. 그 단계를 놓고 바라보면서 이것을 극복하고 초월한 자리에서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그 사랑의 세계에 들어갈 때 주체는 오로지 하나님밖에 없다구요. 아담 해와가 바라보던 주체라는 것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완전히 둘이 합해 가지고 하나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너와 나를 잊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 주체를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복귀했는데 왜 망했느냐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이 오로지 하나님을 하나의 주체로 생각해야 할 텐데, 남편 되는 사람은 남편 되는 입장에서 여편네를 바라보고 자식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러니 문제가 됐다는 거예요. 주체만을 절대시할 수 있는 환경에서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는 환경을 처리해 가지고 소화할 때까지 주체를 중심삼은 절대적 인연을 연결시켜야 할 각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세대주면 세대주 자체들이 그것을 못 했습니다. 하나님을 절대시하고 가야 되는데, 옆의 누가 뭐 어떻고 누가 뭐 어떻고 그러다가 망했다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에 소위 간부라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로 지금 그야말로 심각한 순간에 처해 있다는 거예요. 그들의 습관적 과거생활과 오늘날 결정해야 할 문제들간의 차이가 있다는 거예요. 이제 3시대권 내의 삼각지대에 들어왔다는 거예요. 따라서 하나님의 뜻 앞에 세계무대로 나서야 할 것이고, 그다음에 여기 민족이나 국가라는 관념을 중심삼고 이 3시대를 도약해 버려야 된다 이거예요. 이것이 쉬워요?
그러면 이것을 타고 넘을 수 없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려가야 되는 거예요. 천국에 올라가겠다고 그저 노력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저 밑창으로 내려가라는 거예요. 세상에 올라가겠다는 사람이 많지 내려가겠다는 사람이 많아요? 내려가겠다는 사람이 올라가겠다고 하는 사람 축에 들어갔다가는 끼여 죽습니다. 그렇지만 올라가겠다는 사람들이 다 지나간 다음에 내려가기는 쉽다는 거예요. 천국은 올라가는 사람들끼리 경쟁해 가는 것보다도 도리어 저 밑에 내려가 가지고 찾아가는 것이 쉽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람 따라다니는 것이 사탄입니다. 사탄이 사람을 뒤따르는데, 그 사람 뒤에 하나님이 따라오시는 거예요. 안 그래요? 신옥순!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 여러분은 다 올라가고, 다 잘되고 싶지요? 그것보다도 올라가겠다는 패들은 다 내려가겠다고 하라는 거예요.
올라가는 사람들을 전부 누가 지도해요? 하나님이 지도하겠느냐 이거예요. 서로가 경쟁하면서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것보다도, 그것을 다 버리고 말없이 저 뒤에서 내 갈 길을 가겠다고 정성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잖아요? 사탄은 전부 다 올라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방어하기 위해서 야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문제시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어떠냐? 인류의 뒤에 따라오시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것이 오늘날 이 사망의 세계, 사탄세계에 있어서 안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일생 동안 그런 생활태도를 취해 나왔습니다. 때가 온다 할 때에는 더 고생하려고 하고, 좋을 때가 온다 할 때 좋아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세상 사람 같으면, 내가 당당한 사람이예요. 당당하다고 볼 수 있어요. 자랑도 하고 사람도 무시하고, 교만한 자세를 가지고 '너 뭐냐?' 하고 머리를 저으면서 다 휘저을 수 있는 무엇도 있지만, 그래 가지고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환경이 꽉 째인 거기서 휘저어 봐야 전부 부작용만 벌어집니다. 말없이 돌아서 가지고 정성들이는 그 자리가 도리어 하나님을 제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만일 해와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타락했겠어요? 행동을 먼저 안 하고 나중에 하겠다고 했으면 타락했겠어요? 또, 가인이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을 받았다고 해서 왜 먼저 나서 가지고 야단했느냐? '아벨이 어떤가 보자' 하고 그렇게 생각했으면 가인 역사가 시작됐겠어요? 또, 함이 왜 그런 행동을 한 거예요? '아버지가 어떤가 보자. 아버지가 하는 행동을 두고 보자' 이러면서 자기가 먼저 나서서 서두르지 않았으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했으면 실수가 있었겠어요? 아브라함도 3대 제물을 드리는 데 있어서, 제물을 바치라는 명령도 귀하지만 제물 드리는 것이 더 귀하다고 해 가지고 조심했으면 안 쪼개겠느냐 이거예요.
그러면 피난처가 어디냐?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가 사랑하는 자녀들 앞에 모든 것을 남겨 주고는 뒤로 물러서려고 해요. 뿌리입니다. 보라구요. 뿌리가 생겨나잖아요? 한 씨에서 뿌리가 생겨납니다. 씨가 뿌려졌는데 뿌리 될 수 있는 부분이 위로 갔으면 순도 이렇게 거꾸로 가야 돼요. 그러면 뿌리는 어디로 가느냐? 뿌리는 뿌리를 찾아가는 거예요. 이렇게 꺼꾸로 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예요. 반대가 되어 힘들더라도 뿌리를 찾아가는 거예요. 꺼꾸로 되어 있어도 순은 순으로서 힘들더라도 나오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 씨를 돌려 가지고 '야, 이놈의 씨야, 너는 순이 나오기 좋게끔 왜 안 돼 있어? 바로 서! 바로 서!'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왜 이런 말을 하느냐? 여러분들의 가정이 어디로 가요? 여기 36가정들, 72가정들, 대가리 큰 녀석들, 문제가 크다는 거예요. 언제나 기러기가 날 때와 같이 가정에도 대표 자리에 선 리더가 있어야 될 텐데 말이예요.
여러분 카나디안 거위(Canadian geese)를 보게 되면, 거기에 장땡 거위가 있다구요. 그 장땡 거위가 날게 되면 따르는 모든 거위가 날게 된다구요. 그것들이 무엇을 먹을 때 그 떼 가운데서 장땡 거위 한 마리가 이렇게 서서 고개를 들고 있다구요. 고개를 들고 보호한다구요. 딴 놈들은 철없이 먹느라 야단하지만 그놈은 먹지 않고 적이 오나 보고 있다구요. 언제 올지 모르거든요. 그러다가 '꽥' 하게 되면 벌써 신호로 안다구요. 신호를 하면 즉각 모여드는 거라구요. 신호만 하면 암만 맛있는 것이 있더라도 '아이고, 나 이거 다 먹고 갈 거야' 해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신호만 있게 되면 먹던 것이고 뭣이고 다 집어던지고 모여드는 거예요. 그다음에 장땡 거위가 푸드덕거리며 날기 시작하면 전부 다 일제히 따르지요? 보라구요. '아이고, 나 조금 더 먹고 갈께, 너 먼저 가라'고 그래요? 그러다가는 낙오되는 거예요. 천리 원정길을 찾아가야 해요.
선생님이 이 세상에 있으니까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바라보고 가지만, 선생님이 영계에 간 다음에는 어떻게 할 거예요? 앞으로 후대 통일교회가 어디로 갈 거예요? 앞으로 후대 통일교회는 선생님의 지난날의 역사를 그냥 그대로 따라오려고 할 거예요. 야곱이 가던 길을 이스라엘 족속이 가야 되고, 모세가 가던 길을 이스라엘 나라가 가야 되고, 예수가 가던 길을 기독교가 가야 되었듯이,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 문선생이 가던 길을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돼요. 안 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안 가면 철새와 마찬가지로, 대양을 건너 가지고 남극과 북극을 통할 수 없는 거예요. 날아가야 돼요.
'아유, 난 날갯죽지가 이래서 안 되겠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안 되겠거든 날갯죽지를 어떻게 하든지 전부 다 보호해 가지고 키워야 되는 거예요. 거기에 박자를 맞춰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박자에 맞출 수 없는 입장에 떨어진 거위가 있다면 그 얼마나 비참하겠느냐 이거예요. 나날이 비참한 그것은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한때의 순간에 보조를 못 맞추고 때를 잃어버리면 그 이후에 찾아오는 긴날은 원한의 순간들로 연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행로는 심각한 거예요. 심각한 것입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승공연합 통지부장 설정문제를 놓고 그것을 3주일 이내에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24일이 걸렸지만 말입니다. 선생님이 와 가지고 모이는 청중을 전부 다 보니 나를 처음 본 사람, 별의별 사람이 다 있는 거예요. 오만 가지 사람들이 다 있는 거예요. 지금까지 상례로 보면 내가 그런 청중 앞에 나설 수 있는 입장이 못 돼 있다구요. 잘 안다구요. 그러나 때가 어느때냐? 올라가기만 할 때가 아니라는 거예요. 돌아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전진하는 거예요. 그냥 그대로 이렇게 되면 닳아 버려요. 차 버리고 전진해야 됩니다.
자, 이 말을 왜 하느냐? 선생님이면 선생님에게 심각한 순간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을 따라가는 여러분들에게도 심각한 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각한 순간이 있더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뭘 한다, 달라진다 할 때에는 여러분이 벌써 준비해 가지고 후다닥 앞에 나서야 되는 거예요. 여기 가정 2세들, 이제 그렇다구요. 서울에서 지금 움직이는 모든 것을 두고 볼 때에, 36가정의 아들딸들이 선생님 주위에 서야 되는 거예요. 36가정 자체가 가인이예요. 그 아들딸이 아벨의 자리에 있습니다. 선생님이 이제 착륙을 했다 할 때에는, 수평으로 연결되게 누가 앞장서야 되느냐? 아들딸입니다. 아들딸을 중심삼고 하나돼야 돼요.
부모는 아벨을 통해서 복귀해 나오는 거예요. 그 아벨은 어떠한 역사를 해야 되느냐? 가인에게 반대받고도 승리한 자라야 돼요. 여러분이 아벨적 자리에 서려면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승리한 자가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아벨적 자리에 선 사람이 누구냐? 여러분은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아들딸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돼요. 여러분의 아들딸을 통해서 가는 거예요. 아들딸을 못 세우고는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갈 길이 없다는 거예요. 그것을 알아야 돼요. 왜 그러냐? 메시아적인 부모는 아벨의 길을 통해서 구원되는 거예요. 복귀원리가 그렇지 않아요? 아벨의 모든 조상이 부모 아니예요? 그러니 거꾸로 가는 거예요. 아벨이 승리하지 않고는 자기 부모가 갈 길이 없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이 망하게 된 것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간 여호수아와 갈렙과 더불어 따라 나오던 그 사람들이 잘못했기 때문이지만 그 사람들보다 2세를 잘못 길렀기 때문입니다. 2세 때문에 망했다는 거예요. 자기 아들딸을 잘못 기르다가 망했다는 거예요. 따라서 이 길을 못 갈 때, 이제 통일교회에 있어서 그야말로 심각한 순간이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지상에서 승리적인 가정적 기반을 닦느냐 못 닦느냐 하는 문제는 여러분 혼자 안 된다는 거예요. 선생님에 대해서도 그래요. 선생님이 자리잡는 데 있어서는 탕감복귀원칙에 의해 전부 다 세상적인 가인 아벨을 중심삼아 가지고 싸워 나오는 거예요. 가인가정과 아벨가정을 중심삼고, 축복가정을 중심삼고 싸워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냥 가인가정, 아벨가정, 축복가정이 연결될 수 없다구요. 연결되는 데는 개인이 연결되어야 된다구요. 가인 아벨이 연결되어야 된다구요.
그러면 여러분들의 가정 앞에 선생님의 아들딸들이 장자의 자리에 섰다면 여러분들은 차자의 자리에 서야 된다구요. 그래야 여러분의 가정이 장자의 자리로 나가게 되는 거예요. 먼저 선생님의 가정 앞에 아들딸로 나서기 위해서는…. 평면세계에서 선생님이 자리를 잡아 놓으면 아들딸이 앞에 있으니, 여기에 누가 중심이 되어야 되느냐? 가인 아벨입니다. 가인 아벨이 중심이 되어 탕감해야 됩니다. 완전히 2세가 하나되어야 됩니다. 2세가 하나되지 않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 부모들은 곁다리예요. 또 자기 아들딸들이 태어났다 하더라도 완전한 본연의 혈통의 기준이 아니예요. 증표를 갖춰야 돼요. 아직까지도 사탄세계의 반대를 받고 있어요. 끌어갈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들! 타락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는 거예요. 탕감길은 외길이예요. 두 사람이 합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예요. 전부 다 각자 가야 돼요. 남자나 여자나 각자 가야 됩니다. 탕감길이 그런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아들딸을 중심으로 가정을 설정하고, 이제 축복받은 가정의 자녀들에게 가정을 설정해 줘야 된다구요. 가정을 설정하게 될 때에는 타락권을 넘어서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자리잡는 거예요. 이번에 가정을 새로이 설정하는데 빠지면 그 가정은 곤란하다는 거예요. 앞으로 저주의 대상이 되고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엄청난 전환시대에 서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를 거예요. 모른다고 해서 하늘의 법이 옮겨 가나요? 하늘의 헌법이 뜯어고쳐져요? 거기에 따라가야 됩니다. 여러분의 상습적 생활시대와는 달라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축복받고 태어난 아들딸을 축복해 줬나요? 여기 36가정? 그것은 여러분이 축복해 준 것이 아니예요. 선생님이 가정을 결정해서 선생님의 아들딸로서 축복해 준 거예요. 그래서 그 성이 다 바꿔지는 거예요. 박진성이면 박진성이가 아니예요. 문진성이가 되는 거예요. 홍진휘면 홍진휘가 아니라 문진휘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가정, 즉 가정적 가인 아벨의 기준이 세워지는 거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장자권이 설정되는 거예요. 장자권 가정이 평면적으로 설정됨으로 말미암아, 상대적 가정이 설정되어 사탄세계는 끊어지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의 자식들을 이번에 동원 안 하면 두고 보라는 거예요. 그 자식을 난 책임 못 집니다. 앞으로는 내가 그 녀석들 그림자도 보지 않을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예」 그러한 심각한 순간이라는 거예요. 선생님도 그래요.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예요.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할 때, 집을 떠나고 싶었겠어요? 집 떠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러나 눈물을 머금고 뒤넘이치면서라도 그 길을 가야 되는 거예요. 남한에 있는 선생님을 하나님이 이북에 가라고 하셨을 때, 처자식을 다 버리고 가야 돼요. 미국 가라고 하실 때, 어려움을 무릅쓰고 가야 됐습니다. 미국에 가면서 법정을, 감옥을 표준으로 하고 갔어요. 이북에 갔던 것도 감옥을 표준으로 하고 갔습니다. 일생 동안 그 일을 한 것이 아니예요? 그때는 뒤집어지는 거예요. 반대 현상을 거치지 않고는 정상적인 환경을 극복할 수 없는 거예요.
자, 이런 것을 아시고 여러분들이 심각히 생각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편안히 쉴 새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은 지금까지 집이고 뭣이고 관심 없었어요. 자고 먹고 사는 것에 관심 없다구요. 관심을 안 가졌는데도 하나님이 복을 갖다 주셨지요. 그것은 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아담 해와를 사랑의 중심으로 세우기 위해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는데, 당신의 뜻을 위해 사랑의 길을 완성하려고 노력하는 그 사람들을 굶겨 죽이시겠어요? 어림도 없다는 거예요. 그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때를 아는 사람이예요.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귀국해 가지고 고생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아요. 이제 한국이 문제가 아니예요. 공산당을 요리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는 거예요. 모스크바 해방을 누가 하느냐 하는 게 문제예요. 그런데 앉아 가지고 있기만 하면 되겠어요, 그것이? 지금 통일교회 식구라는 사람들이 소련 위성국가의 지하에서 활동하다가 감옥에 간 사람이 수십 명이 됩니다. 그런 것을 아는 선생님은 편안히 생활할 수 없다구요. 나는 그런 생활 못 한다는 거예요. 요즈음 감기 걸렸다고 어머님이 쉬라고 하지만 난 쉴 수 없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지들, 사랑하는 통일교회 식구들은 생사의 길에 서서 그 이상의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다 쓰고 있는데, 그 사실을 몰라주는 통일교회 책임자는 가짜예요. 그것은 망해야 돼요.
뜻의 길을 가는 사람은 남모르게 흘리는 눈물이 끊어져서는 안 돼요. 평상시에는 행복하고 다 좋아 보이지만 깊은 심정의 세계에 들어가서 심정의 십자가를 벗을 수 없는 짐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 짐을 다 못 가누는 죄인 된 인류의 정상(情狀)을 가지고 자랑을 어떻게 하느냐 말이예요. 얼마나 심각해요? 여러분이 결혼할 때보다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산모가 첫애기를 낳으려고 산실에 들어가서 해산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예요.
그것은 나만이 결정해야 돼요. 나에게 달린 거예요. 옆에 있는 사람이 문제 되고 여편네가 문제 되고 자식이 문제 되는 것이 아니예요. 내가 잘하면 그들도 따라서 복을 받는 것이고, 내가 못하게 되면 그들도 비참해지는 거예요. 통일교회면 통일교회 자체도 내가 결정을 잘못하면 비참해지는 거예요. 안 그래요? 결정을 잘못하면 비참해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위신이니 체면이니 하는 걸 생각할 여지가 없다는 거예요. 그런 전환시기에 있습니다. 언제나 상습적인 생활을 행복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변천 발전하는 섭리사 시대에 있어서 급변해야 할 자신의 처리 방법을 언제나 결심하고 있어야 되는 거예요.
내가 미국에 방대한 기반을 닦아 놓고 지금 여기에 왔어요. 이제 나는 거기에 관심 없어요. 오늘 여기서부터 하라는 거예요. 내가 온 것은 미국을 위해서가 아니예요. 아시아를 위해 왔기 때문에 아시아를 위해 일해야 돼요. 이것이 끝나기까지는 미국을 생각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스트 가든에 자식을 다 두고 왔지만…. 물론 자식들이 부모를 생각하는 것을 아는 거예요. 이것은 말도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러나 나는 그들을 생각할 여지가 없다는 거예요. 될 수 있으면 내가 전화를 안 해요, 어머님은 전화하더라도. 어머님은 전화할 수 있다구요. 자, 그런 것을 여러분이 아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은 일생을 그렇게 살았지만 여러분은 자신이 가는 길에 있어서 어느 한때에 한 번이라도 그러한 때를 갖추지 않으면 자리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언제 자신을 부정해 봤어요? 복귀의 길은 부정해야 돼요. 부정의 길입니다. 자신을 완전히 부정해 봤어요? 예를 들어 말하면, 여자에게 제일 높은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요? 여왕의 자리일 것입니다. 그 여왕의 자리에서 거지의 자리로 떨어져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뜻길을 가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정해야 돼요. 그다음에 가정을 부정해야 돼요. 그리고 사회를 부정하고 국가를 부정하고 세계를 부정해야 되는데, 개인이 세계적인 부정을 할 수 없으니 하나님이 부정하게 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반대를 받는 거예요. 1976년 전세계가 레버런 문을 반대한 거예요. 내가 전세계를 부정했댔자 사탄이 공인을 안 하는 거예요. 전세계적으로 레버런 문을 들이 치는거예요. 반대당함으로 말미암아 부정했다는 자리에 서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지혜로운 사람은 옳은 자리에서 부정되는 자리에 서는 거예요. 옳은 자리에서 언제나 핍박받으라는 거예요. 그 사람은 역사적인 인물이 될 것입니다. 옳은 것은 누구보다도 옳은데, 대한민국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옳은데,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에 있어서 역사에 없는 핍박을 받으면 역사에 없는 대한민국의 애국자가 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의 일대는 그렇게 나왔어요.
여러분들의 자녀가 '아, 우리 엄마 제일 좋아! 우리 아빠 제일 좋아! 통일교회 믿더니 좋아졌어' 한다면, 그 가정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가정이 못 됩니다.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했죠? 남편이 원수가 되어야 되고 아들딸이 원수가 되어야 돼요. 반대하는 자리에 서야 되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그들이 문을 열 수 없는 거예요. 그게 얼마나 심각한 놀음이예요?
내가 대한민국, 지금은 5공화국이라고 말하지만, 그 주권자들한테 지금까지 반대받아 나온 거예요. 나쁜 일을 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자기들 이상 사랑하니 반대를 받은 거예요. 그것이 이제 돌아가는 거예요. 우주는 춘하추동 돌아가는 거예요. 가려졌던 것이, 통일교회가 맨 밑창에 깔려 가지고 이름도 없던 것이 점점 드러나게 되는 거예요. 요즘에는 그렇죠? 국민도 선생님에 대해서 상당히 존경하죠? 존경한다는 것이 꿈같은 얘기 아니예요? 그런데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심각한 역사적 순간을 거쳐가는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은 제일 선한 자리에서 핍박받는 자들입니다. 안 그래요? 그 사람들이 살아남는다는 거예요. 선한 입장을 취해 나오면서 핍박받는 사람, 전체 공익을 위해서 핍박받는 사람들입니다. 핍박받으면 그것은 제일 밑창입니다. 사탄도 간섭할 수 없고 하나님이 보호해 줘야 한다는 거예요.
이러한 것을 알고, 이 시대에 여러분의 1대 가정은 지금까지 선생님을 따라 나오는 복귀과정에 있었지만, 이제는 여러분들이 결정할 때가 왔다는 거예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갈 수 있는 시대가 가까워 오면 올수록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가나안 민족의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가정이면 가정이 되어야 되고, 이스라엘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국민성을 지녀야 돼요. 개인적 권리를 가져야 돼요. 그래 가지고 당당코 악한 세계에 주체성을 갖고 나타나 악을 지배할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한 사명이 있다고 생각해야 된다구요. 가나안 복지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것이 다가 아니라구요. 들어온 것이 다가 아니라구요. 때가 오는 것이 다가 아니라구요. 여러분의 사명이 있다는 거예요. 아들이면 아들의 사명이 있다는 거예요. 2대 사명이 남아 있어요.
가인 아벨의 사명을 중심으로 결정해야 할 그야말로 심각하고도 엄청난 전환시대가 오는 것을 잘 알고, 그 심각한 순간을 잃지 않고 여러분이 자리잡아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이어받을 수 있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오로지 저희는 뜻밖에 모른다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는 하나님밖에 모른다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저희 아버지이신데, 당신이 역사적인 한을 품으시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인류의 부족함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종교가 당신의 소원의 일념을 해원성사하기 위한 뜻의 이유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 그 종교들은 본의의 뜻과는 먼 세계로 다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종교세계 앞에 오로지 통일교회만이 이 시대에 있어서 당신이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의 종교로 드러날 수 있는 때까지 당신이 보호하시사 이끌어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심각한 순간의 때인 것을 저희들은 느끼옵니다.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그것을 여전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신 이후로 몸과 마음이 싸워 가정적으로 분립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으로 분립하여 마음을 중심으로 한 유심세계관의 민주세계와 몸과 물질을 중심으로 한 유물세계관의 공산주의가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이 대치과정에 있어서 둘 다 지쳤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우리 개인의 인생살이에 있어서, 여건을 소화하지 못한 채 미로에서 허덕이다가 지친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가 지쳐 있습니다. 이것은 어이 된 연고입니까? 아버님을 배반한 보응의 연고요, 아버님을 잊어버린 슬픔의 역사의 연고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것을 전부 극복하고 새로이 저 지하에서 있는 함성을 다하여 아버님을 불러야 합니다. 그래야 할 시대상에 왔습니다.
진정 당신을 몰랐습니다. 진정 당신의 뜻이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무지에 대한 회개를 해야 되겠고 몸부림을 쳐야 할 순간이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통일교회를 세우시어서 방향을 제시하시고 계시옵니다. 레버런 문이라는 한 사람을 처참한 인류의 행로에 있어서, 쓰러질 수 있는 환경에서 보호하시어 극복하게 해주셨습니다. 이제는 세계의 정상에 서게 되었고 온 인류가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선대(先代)에 왔다 갔던 수많은 영인들과 앞으로 올 후세 사람들이 저희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서구사회의 모진 물결에 스치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패자의 서러움을 맛보는 신세가 되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보호하신 연고로 고국산천을 다시 찾아와서 이 단에 섰습니다. 이제 서울을 중심삼고 경륜하는 모든 일은 당신의 뜻이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던 일들을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이 민족을 불쌍히 봐야 할 당신의 뜻이 있는 것을 저는 알았습니다. 이 민족이 가야 할 길이 험산준령으로서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민족이 맨 처음 철부지할 때에는 강대국들의 어깨에 매달려 가지고 끌려가야 할 입장이었지만, 나이가 듦으로 말미암아 매달려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저희들은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님의 원수인 타락한 천사장, 또 아버님 앞에 세워진 천사장의 자리에 서 있는 강대국들의 어깨에 매달려 가던 양자와 같은 모습들이, 서자의 과정을 거쳐 직계의 자녀의 인연을 갖춰 부모의 이름을 맞을 수 있는 놀라운 은사 앞에 있는 저희들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스스로를 아버지 앞에 드리는 마음을 가지고 부복하였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이 모든 것을 밟고 넘어서지 않고는 부모님을 모실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민주세계가 문제가 아니요 공산세계가 문제가 아닙니다.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의 저 너머에 가서 통일권 세계를 갖지 않고는 우리의 행복의 기지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역사시대에 있어서 민주와 공산이 최후의 절벽에 부딪쳐 생사의 기로에서 신음하는 환경에 서 있습니다. 한국에 있어서 남북으로 갈라진 참상이 그러하고 세계의 정상이 그러하옵니다. 이것을 이제 그 누구가 책임질 수 없는 역사적인 섭리사관 앞에 있어서 저희들이 부끄러운 모습을 나타내서는 안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자녀의 명분을 가진 놀라움을 금치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 권위를 잃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 남길 수 있는 후대의 복의 기준을 가지고 그것을 심을 수 있는 자신을 어떻게 이루느냐? 새싹이 돋고 새 뿌리가 날 수 있는 내 자신의 기준이 돼 있느냐? 내 가정의 기틀이 돼 있느냐? 거기에 태어날 아들딸들이 새로운 싹이 될 수 있느냐? 이런 문제들을 심각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역사적인 소명을 받을 때는 기뻤지마는, 소명에 대한 임명의 그 순간에 있어서 부끄러운 자체로 나타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소망의 결실을 가져와 아버지 앞에 봉헌할 수 있는 책임자로서 부끄럽지 않고, 아버지의 칭찬뿐만이 아니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네 수고를 칭찬하고 네 인내를 자랑한다고 하실 수 있는 아버님의 아들딸이 되고 가정이 되어야 할 역사적인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깨닫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그야말로 아버님을 중심삼고 아버지 어머니와 자식이 사위기대를 이루어 새로운 세계무대로 비약하여야 할 도약의 때에 이르렀습니다. 그때가 우리 통일가에 남아진 무리 앞에 있다는 사실을 이 시간 각성시켜 주시옵소서. 심각한 순간을 망각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상에 엄청난 한의 역사를 초래하여 연속적인 비운의 그 자리에 서지 않게끔, 아버지, 각자가 이 시간 결의하고 다짐하는 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났듯이 내가 북한 땅을 향해 떠났고, 사랑하는 통일교회 신도들을 뒤에 놓고 말없이 미국을 향하여 떠났었습니다. 그 길은 생각해 보면 슬픈 길이요 고독의 길이었지마는, 그 길을 가고 가고 가다 보니 이제는 다 끝장이 날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끝장을 내고 이제 고국산천에 돌아와 보니 고국이 말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에, 상처 입은 몸을 가누어 수습해 놓지 않으면 안 됨을 아옵니다. 외국에서 하던 이상의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될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 돌아와 이 4개월 동안에 수습하여야 하겠습니다. 이런 천적인 모든 내정을 품고 그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뜻을 해결하기 위한 엄청난 사명 앞에 몸굽혀 마음 졸이는 순간이옵니다. 이 순간이 어렵다고 상신(上申)하는 내 자신이 안 되기를 바라는 동시에 통일가의 식구들이 그런 자리에 서지 않게, 아버지,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역사의 부름 앞에 부끄럽지 않은 통일가, 세계 사명 앞에 부끄럽지 않은 통일가, 아버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통일가정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인류가 자랑하고 세계가 자랑하고 아버님이 자랑할 뿐만이 아니라, 이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야 되겠고, 그 아버지 어머니의 가정이 되어야 되겠고, 그 아버지 어머니의 나라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명이 이들이 모인 인연 가운데 깃들어 있다는 엄청난 사실을 미처 몰랐사오니, 아버지, 다시 정비하여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갖추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날이 섭리의 뜻 앞에, 당신이 원하시는 데에는 미치지 못할 부족한 것들이오나,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슬퍼하면서 아버지 앞에 나서기에 주저하는 그 모습을 당신은 뒤로 품어 주시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이들을 불쌍히 보시옵소서. 가련한 심정을 가지고 아버지를 위하겠다는 마음, 그 몸부림을 긍휼히 보시어서 내일의 소망으로 연결시켜 주시길 부탁드리옵니다.
이날의 모든 전체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부모님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