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아버님, 오늘은 1972년 9월 17일, 이달 들어 세번째 맞는 안식일 아침이옵니다. 이 시간 어린 자녀들이 아버지 존전에 엎드렸사오니, 자비의 아버님이시여, 개개인의 심령을 살피시사 각자에게 흡족한 은사와 풍성한 사랑으로 찾아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이 자리에 엎드린 저희들은 틀림없이 통일교회의 식구들이옵니다. 당신이 오랫 동안 찾아 나왔고, 역사과정에서 그리워하던 자녀의 명분을 갖고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옵니다. 지고지선하신 당신 앞에 아들딸의 명분을 갖추어 당신의 권위와 위신과 체면을 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아들딸이 돼야 한다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뜻을 알고 난 그날부터 당신을 따라 나온다고 하였지만, 당신을 섬긴다고 하였지만 당신 앞에 얼마나 얼마나 부족한 일이 많았는지, 얼마나 얼마나 미흡한 점이 많아 당신이 저래서는 안 된다고 내심으로 염려하시는 처지에 있었는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철이 들고 세월이 감에 따라 당신 앞에 책임과 사명을 대신할 수 있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저희는 도리어 당신 앞에 모든 책임을 맡기고, 도리어 어려운 것은 당신의 것으로 돌려 버리고 저희 자신의 이익만을 번번이 생각한 무리였사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이 시간에 지난날을 반성하면서 인간으로서 기필코 가야 할, 당신이 계시는 그곳까지 죽든지 살든지 만난(萬難)을 극복해 가지고 최후의 승리의 모습으로 당신 앞에 가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사명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의 인생길은 너무나 바쁜 인생 길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루를 보내고 저희가 기뻐할 것이 아니라 당신을 우러러보면서 슬퍼하지 않으면 안 될 자신들이요 우리의 처지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와 같이 삶을 영위하면서 당신의 기쁨의 대상이 못 되고 슬픔의 대상으로 나날을 보냈던 불충의 자녀들이 부복하였사오니, 자비의 아버님이시여, 긍휼의 손길을 다시 펴시옵고 넓으신 사랑의 마음을 가지시사 저희를 다시 한 번 돌보아 주시옵소서.
아무리 멀다 하더라도 가야 할 길이요, 아무리 싫다 하더라도 가야 할 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 무슨 수난길을 당하더라도 그 수난을 같이 당하지 않으면 안 될 부자의 인연을 맺어 주신 놀라운 은사를 저희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원수들이 아무리 가중된 조롱의 말을 가해 와도 저희들은 당당코 당신을 중심삼은 부자의 인연을 가진 권위를 자랑할 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높은 가치를 드높이 마음 깊이 모실 줄 아는, 당신만이 기억하고 남음이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모습을 닳아 있는 아들딸임에 틀림없는 것이요,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위업을 이어받을 수 있는 아들딸임에 틀림없는 자신들임을 자각하면서, 역사의 과정을 거쳐오는 동안 당신의 섭리 앞에 자고로 부모들이, 혹은 선조들이 다하지 못한 일을 저희 앞에 맡기시고, 당신은 저희를 대신하여 가중된 자리에 서시어 역사적인 모든 탕감은 물론이요, 시대적인 사명을 다해 주기를 바라시지만 그 높고 크신 기대 앞에 일치되지 못하고 그 기대 앞에 소망스럽지 못한 자신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이러한 저희를 대하며 당신이 바라시던 기대가 얼마나 큰 낙망과 슬픔으로 돌아갈 것인가를 생각하옵니다. 당신이 슬픈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좋지만 사탄 마귀가 이것을 찬스로 삼고, 이걸 조건삼아 당신을 참소하고, 저희들을 슬픈 자리로 끌고 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사실을 아시기에 슬픔이 있어도 그것을 무시하지 않으면 안 될 안타까운 아버지의 사정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돼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이여, 저희의 마음을 살피시옵소서, 저희의 본심은 당신 앞에 충성하고, 당신을 위하여 살고 싶어하는 것을 당신은 알고 계시옵니다. 당신의 아들의 권위와 딸의 권위를 가지고 어느 한 때라도 책임 다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계시옵니다. 이것만은 사실이옵니다. 이것만은 틀림없는 고백이오니, 아버지여, 친히 찾아오셔서 버리지 말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슬픔도 당신을 위한 슬픔이요, 외로움도 당신을 위한 외로움이요, 고통도 당신을 위한 고통으로 저희들의 생애에 연결된다면 그 슬픔과 외로움과 고통은 당신이 버릴 수 없는 슬픔과 외로움과 고통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저희가 그런 자리에 서게 되면 도리어 사탄이 슬퍼하고, 사탄이 당신 앞에 머리를 숙이고 마음으로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아들의 권위가 여기에서 생긴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둘 사이의 갈래길을 혼자 주름잡아 오신 아버지의 슬픔을 저희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의 얼굴을 아버지 앞에 향하게 될 때, 저희들의 눈은 아버지의 사랑에 어릴 수 있어야 되겠고,저희들의 귀는 속삭이는 당신의 깊은 사랑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그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더듬을 줄 알아야 되겠고, 당신의 정상과 당신의 모든 사정을 촉감으로 느낄 줄 아는 자기 자신들이 모두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충과 효의 길을 남기지 않고는 갈 수 없고, 이것을 후손 앞에 자랑의 선물로서 남겨야 될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보람된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곳을 향하여 마음을 졸이면서,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가시는 길, 아버지께서 책임져 하시는 모든 일이 일취월장하기를 바라는 그들의 마음을 아버지께서 아시옵고, 그들의 간구를 들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불쌍한 이 민족을, 아버지, 기억하셔야 되겠습니다. 남북이 엇갈리는 가운데서 하나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왕래하는 모든 대표들이 하늘을 대표하고, 땅을 대표할 수 있는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왕래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늘의 뜻과 더불어, 섭리의 보조와 더불어 훗날 이 민족의 새로운 축복의 인연이 티워질 수 있는 새 아침이 밝아 오는 그날이 이들로 하여금 찾아질 수 있다는 것을 각자가 알게, 남북의 백성이 알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바라는 애국애족하는 심정으로 귀결시키시어 당신의 나라와 당신의 백성으로서 합당할 수 있는 민족정기를 이 기간을 통하여 연결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무리 해도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이 개재하시옵소서. 불쌍한 이 민족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천만에 가까운 이산가족들을 기억하시옵소서. 그들이 우리의 소원은 오로지 통일이라고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자세와 그들의 말을 통하여 부르짖고 있는 것은 틀림없사옵니다. 어느 한 때라도 잃어버린 자식을 생각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어느 한 때라도 자식으로서 부모를, 가장으로서 처자식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와 같은 마음을 넘어 자기들 서로서로 사랑하는 것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이 민족이 돼야 한다는 것을 먼저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사명을 짊어질 수 있는 대한의 나라가 되기 위하여 당신을 사랑할 줄 아는 이들이 되었던들 잃어버린 부모는 찾지 못하였더라도 잃어버린 부모가 소원하신 나라를 찾았을 것이고, 잃어버린 부모의 영원한 안식처인 세계를 찾았을 것을 생각할 적마다 모든 것은 다 외롭고 슬픈 일이지만, 그 자리를 갖추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잃어버린 자리에서 금후에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나라와 세계를 가질 수 있는 천만에 가까운 이산가족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을 모시고 당신과 더불어 살고 당신을 위로하면서, 당신이 얼마나 외로왔으며 당신의 가정이 얼마나 파탄되었나를 생각하면서, 당신의 뜻앞에 외로움을 가지고 당신을 위로할 수 있는 천만 가까운 이산가족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이 당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고, 당신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모든 환경과 처지가 삼천만의 정기를 이어받을 수 있는 새로운 국민사상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희들의 소원이옵니다. 이것이 없다 할진대는 아무리 가정 가정이 만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가정 가정의 인연으로 끝날 것이옵니다. 가정이 갈라지게 되는 것은 한 가정이 만나기 위해서 갈라지는 것이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나라를 그 가운데에 놓고 새로운 세계를 그 가운데에 놓기 위해서 당신이 삼천만 민족을 혹은 이 백성을 그와 같은 처참한 자리에 놓아 주신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이 민족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민족이 서로 만나게 될 때 이 나라가, 이 세계가 당신을 중심삼고 하나될 운세권내에서 만나기를 바라던 당신의 소원이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그럴 수 있는 국민운동이 처처에서 벌어져야 되겠습니다. 남으로 북으로 연결하여서 서로서로 바라는 그 나라를 위하여 동족끼리 합하고, 서로서로 민족정기를 중심삼고 일체될 수 있는 민족이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당신이 아시지 않습니까? 부디 축복하시어서, 지키시어서 그와 같은 나라를 이루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국을 바라보고 있는 세계 사람들 중에 한국을 생각할 적마다 그 마음으로 높으신 당신을 추앙하고 불쌍한 민족을 위하여 해방의 그날을 간곡히 고대하는 민족이 있으면, 그런 세계 인류가 있으면 그들 앞에 천배 만배의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한국을 생각하고, 한국을 염려하고, 한국을 동정하는 세계 인류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통일교회는 찾아드는 세계 정세를 앞에 놓고 새로이 가려 가야할 금후의 책임분담이 얼마나 지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길을 지키시옵고, 이 길을 지도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오고 가는 외국 식구들을 바라보고 자기 스스로를 알아야 되 겠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바라보는 한국, 외국 사람들이 마음으로 흠모하는 한국 청파동 본부, 여기에 있는 이 자식을 향하여 바라는 마음이 크다 할진대 그 마음 앞에 상심을 남겨 돌려 보내는 저희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들이 바라던 기대를 넘어설 수 있는 저희가 돼야 되겠고, 그들이 바라는 소망의 기대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완전한 모습이 돼야 되겠습니다. 그들이 눈물로써 저희 자신들을 높여 줄 수 있고, 그들이 즉석에서 눈물로 치하할 수 있는 본부와 한국의 권위를 갖고도 남음이 있을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바라던 한국, 그렇게 알았던 한국 식구들이 그들 앞에 상심의 조건이 되고, 낙망의 조건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되겠습니다. 개인으로 하여금 그런 자리에 섰다 하면 그 개인은 망하더라도 뜻은 남아져야 되겠고, 대한민국을 주체 국가라고 추앙하던 그 마음은 흩어 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모의 심정과 흠모의 심정만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이민족과 더불어 높아져야 되겠사옵고, 이 본부에 있는 식구들보다도 높아져야 되겠사옵니다.
현재 저희들의 처해 있는 자리를 생각할 때. 이 자리는 무서운 자리이옵니다. 두려운 자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이 문전을 찾아들 적마다 아버지 앞에 가슴을 조이면서 당신의 거룩함이 같이하기를 바라고, 당신이 저희로 말미암아 상심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출입하지 않으면 안 될 무서운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찾아드는 모든 외국 식구들 앞에 본부의 의무와 책임을 다한 권위를 갖고, 현시대뿐만 아니라 그들 후대가 추모할 수 있는 민족적 사명을 다하고도 남음이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일본인을 지도하고 있는 전체 책임자들이 지금 여기에 와 있습니다. 오늘도 대구를 향하여 움직이겠사오니, 가는 곳곳마다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대 앞에 한국이 해야 할 사명이 얼마나 지중하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알고 계십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내세워서 아시아에 있어서 어떤 사명을 감당시키지 않으면 안 될 천적인 의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금후에 아시아에 있어서 고립된 한국의 정상을 지켜 줄 나라도 일본밖에 없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환경에 머물렀습니다.
아버지, 통일의 무리를 다짐하게 하시고 십여 성상을 통하여 눈물 어린 투쟁의 역사를 남기게 하신 것도, 한 때의 보람을 바라시고 당신이 길러 오신 것인 줄 알고 있사오니, 이제야말로 이들이 한국을 위하고, 이제야말로 아시아를 위해서 있는 정성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국에 왔다가 돌아가게 될 때, 일본 땅을 기필코 당신 앞에 복귀시키기 위하여 일심으로 단결하여 그 민족을 부여안고 당신 앞에 정성들이는 무리를 만들어야 할 이번 순회 기간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거쳐 나가는 언저리에서, 혹은 노상에서 한국의 초막살이 집을 바라보게 될 때, 내적으로 새로운 각오를 하게 하여 주시옵고, 불쌍한 이민족을 통하여, 이러한 자리를 통하여 하늘의 섭리가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알게 하시옵고, 하늘을 추앙하는 경천사상을 갖고 내려온 이 민족이 있기 때문에, 한 때의 허락하신 은사를 이 민족으로 말미암아 이어받은 것을 고맙게 생각할 줄 아는 이번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삼천리 반도를 편답하는 전부로 말미암아 그 마음 가운데 다시 한 번 조국강토를 세계에 자랑하고 남을 새로운 신념과 두터운 사상을 갖고 돌아갈 수 있는 좋은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가야 되겠습니다. 이 아침, 저희들을 향하여 말씀하고 싶고, 분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분부하여 주시옵소서. 바빠도 가야 되겠습니다. 쓰러져도 저희들은 또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복귀의 역사를 저희들이 더듬어서, 배워서 알듯이 역사에 후회와 한을 남기는 그런 개인과 가정과 종족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제 세계사적인 최후의 운명을 앞에 놓고 온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서 최후의 결정타를 날리지 않으면 안 될 숨막히는 순간이 이 민족 앞에, 이 교회 앞에, 저희들 앞에 다가온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제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입장을 확정지어 가지고 '나는 이러이러한 모습이었사오니 당신이 바라시는 소원 앞에 일치되지 못한 것을 제거시켜 달라'고 몸부림치면서 당신의 소원 앞에 일치될 수 있는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신념을 갖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백전불굴의 용사의 심정을 갖고 맹세하고 나서야 되겠사오니, 아버지, 저희들의 가는 길을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민족 앞에 요구되는 한계점이 오래지 않아 찾아온다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저희들은 비틀걸음을 걸으면서라도 당신 앞에 버림받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의 채찍을 맞더라도 붙들고 놓지 않는, 당신의 마음의 인연을 붙들고 남아지는 무리가 되지 않고는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지난날 아무리 잘하였다 하더라도 오늘에 당신의 슬픔을 자극시키는 불효가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효하였던 역사적인 심정의 인연이 있으면 있을수록 아버지의 심정을 그 반작용적으로 가중시킬 수밖에 없는 불효의 자리가 남아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죽더라도 그런 자리에 서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어야만 된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더불어 저희들이 끝까지 참지 못하는 자리에서 스스로를 주저하는 자가 있사옵거든 격려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여, 이들을 붙들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안간힘을 다해서라도 이 아침도, 저희들은 달음질쳐야 되겠습니다. 오늘도 가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가야 할 길이 태산준령이라 하더라도 임을 향한 일편단심의 심정이야 변할 수 없다는 모습을 가지고 가야 되겠습니다.
도중에 객사의 몸이 되더라도, 혹은 자기의 일생의 소원을 이루지 못한 자리에서 쓰러질지라도, 영계에 있는 선조들의 눈물을 안고 그 자리에 쓰러진 자는 당신이 찾아 주시고 결코 망하지 않는 자인 것을 저희는 알았사옵니다. 하오니 그 길을 따라가려고 결심한 당신의 자녀들 위에 만복을 베풀어 주시옵고, 외로울 때 위로하시던 당신의 사랑의 손길로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10월, 11월, 12월, 이제 1972년도도 몇 달 남지 않았습니다. 통일전선 확보라는 엄청난 과제를 놓고, 아버지, 외국 식구들과 더불어 맹세하던 시간이 이미 많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이해도 오래 남지 않은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금년만은 온갖 정성을 다하고 온갖 몸부림을 쳐야 될 것을 다짐하였던 일련의 지난날들이 저희 앞에 영광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의 조건을 남긴 그것을 들고 참소할 수 있는 두려운 자리에 서지 않게끔 남은 석 달만이라도 온갖 정성을 기울일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 앞에 무엇을 훈시하실 것이며 어떠한 길을 지시하시겠습니까? 바친 몸, 가야 할 운명의 길을 나선 몸이기 때문에 그렇게 소문이 나고, 그렇게 조롱을 받고, 그렇게 손가락질을 받던 억울함만으로도 잊을 수 없는 저희 사정들이 얼마나 얼마나 많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 저희들이 기필코 이루어, 원수들이 조롱하던 그 앞에서 패자의 서러움과 망하는 운명 가운데서 저주와 더불어 사라져서는, 당신이 같이하던 길이 그와 같이 파탄의 결과로서 결실맺게 해서는 안 될 것을 저희들은 다짐 해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같이하셨기 때문에 망할 줄 알았던 그들이 흥하고, 없어질 줄 알았던 것이 역사를 움직이고 민족 앞에 필요한 무리가 되었던 것을 생각할 적마다, 말은 쉽지만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의 교차로가 가중된, 운명을 노리고 있는 그 자리를 극복해 넘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이미 맡겨진 몸들, 이미 운명으로 지어진 걸음이기 때문에 당신이 기쁠 수 있는 결과만을 바라면서 갈 뿐이옵니다. 허락하신 뜻대로 이 시간 지도하시옵고, 명령해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굽어살피시옵고, 기동대원들을, 아버지, 지키시옵소서.
이제 한국이 맞이해야 할 금후의 사명을 대하여 각자가 자각하고, 스스로가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실체대상이 될 수 있게끔 온갖 지성과 충성을 다하기를 결의하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 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 인생살이에 있어서 개개인을 중심삼고도 그 일생을 살펴 보면, 어느누구나 다 주목될 만한 일들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들을 추려 가지고 기념하기 위한 대표적인 날들이 생일이니, 결혼한 날이니, 환갑날이니 하는 날입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전통으로 남아진 날들을 우리가 기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자기 일생에 있어서 잊지 못할, 주목될 만한 사건을 우리 인간들은 기념하게 마련인 것입니다. 개인에게 있어서 그러한 주목의 사건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면 가정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부부가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자녀를 낳아 길러 나가는 가정 생활에 있어서, 그 가정으로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주목거리의 사건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가정이 그러하다면 한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한 민족 국가의 역사를 통해 보게 될 때에, 그 역사과정에도 역시 그 민족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주목되는 사건 혹은 일들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연장시켜서 인류 역사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거기에도 역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주목되는 세계적인 사건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세계가 그러하듯이, 만일 절대적인 신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의 섭리의 길을 따라 나오고,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책임을 해 나오는 영계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과 그 영계도 오늘날 이 지상섭리에 있어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주목거리의 사건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귀원리를 통해서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담 가정에서 아담이 타락한 사건은 주목거리의 사건인 것입니다. 또, 가인 아벨의 사건도 역시 주목할 사건인 것입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지은 이 사건도 섭리상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주목의 대상인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역시 그랬고, 야곱 역시 그랬고, 모세 역시 그랬습니다. 그 다음에 세례 요한을 중심삼고 섭리적인 책임으로 본 그 사건은 역사의 갈림길을 작정해야 될 중차대한 자리에 선, 그야말로 사람은 개인이로되 세계적인 사건을 짊어졌던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중삼삼은 사건…. 이런 전부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주목의 대상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산정을 향하던 그 걸음도 역시 주목의 대상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2천년 동안 복귀섭리를 발전시켜 나온 그 역사과정도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주목의 날들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가 크면 클수록 주목되는 관심은 커지는 것입니다. 사건이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거기에 모든 신경을 규합해 가지고 주목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에, 이 지구상에 인간들이, 태어나 가지고,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이 있어 가지고 이 역사시대를 거쳐오는 가운데 제일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주목의 날이 어떠한 날이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 개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주목되는 사건도 중요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는 한민족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날이 가장 중요한 날,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일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나라 이 민족이 주목하는 그런 사건들이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역시 주목할 만한 사건이냐? 하나님이 전체 섭리를 해 나오는 역사 시대에 있어서 전체를 대신해 가지고 주목하고, 이 사건만은 올바로 해결지어 주기를 바라는 그런 주목할 만한 사건을, 그런 날을 우리 한민족이 가졌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좀더 큰 의미에 있어서 하늘이 바라보는 이 세계사를 중심삼고 볼 때. 주목의 대상의 날이 어떤 날이었겠느냐?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그날이 하나님 앞에 있어서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주목의 날이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온 신경이 기울여져 슬픔에 부딪치던 경각의 한 순간이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그 순간이 아니 겠느냐? 아담 해와가 행동한 그 사건이 아니겠느냐? 세계가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권위가 몰락하게 되었고, 악의 권위가 등장해 가지고 하나님의 권위를 제압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 그야말로 기가 막힌 한 순간이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그 순간이 아니겠느냐. 그 순간이야말로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잊을 수 없는 주목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순간을 책임진 사람이 누구냐? 그러한 사명을 책임진 사람이 누구냐? 하나님도 아니요, 사탄도 아니요, 아담 해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가 한 행동은 어떤 행동이냐? 하늘땅이 주시하는 대표적인 자리에서 한 행동은, 개인들이 흔히 범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그런 행동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역사적인 사건이요, 천지가 주목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기막힌, 온 천주가 주목할 수 있는 순간이었지만 그야말로 큰 사건이라는 것을, 천지가 한꺼번에 몽창 떨어져 나가는 듯한 것을, 주위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느낄 수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되어진 사건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만우주 가운데 나타나지 않은 은은한 가운데서 남이 모르게, 알았다 해도 하나님과 사탄, 그리고 아담 해와밖에 모르는 자리에서 벌어진 사건인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세상에서 늘 있을 수 있는 사건이지만 역사의 갈림길이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은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사건을 담당하고 그러한 사건의 주역을 맡고 있었던 아담 해와는 그것을 느꼈느냐? 만일 아담 해와가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있었으면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숨막히는 그러한 것을 스스로가 자기의 세포에 감지할 수 있었으면, 타락이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그것을 보통 일과 같은 일로 대하는 데 있어서, 당연히 자기들이 그렇게 해도 괜찮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저끄린 것이, 인류를 이와 같은 도탄과 신음의 역사 가운데에 몰아 넣은 동기가 될 줄이야. 그들은 미처 몰랐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행동을 하고 난 후에는 변명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 한 번의 행동에 온 천지가 좌우와 판가리를 결하고 만다는 것을, 그야말로 지극히 작은 사건과 같은, 오늘날 이 땅 위에서 개인적으로 흔히 타락하는 인간과 마찬가지의 사연이 이렇게 역사적인 내연을 가지고 역사를 대표하게 될 줄을 그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거기에서 사망의 길이 싹트게 되고, 생명의 새 아침은 석양 길을 향하여 걸음을 더듬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비운이 출발될 줄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천지를 가로막는 그러한 사건, 천지가 뒤집어지는 듯한 그러한 사정과 그러한 내용을 갖고 그런 모양으로 나타날 줄을 그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잊을 수 없는 주목의 순간이요, 아담 해와에게 있어서는 천지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최후의 순간이었다는 것을 아담 해와가 몰랐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그것을 모르는 가운데 하늘이 원치 않는 숨막히는 주목의 시간을 잘못 보냄으로 말미암아 타락의 세계가 이 땅 위에 생겨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아까 말한 복귀섭리 도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목의 대상의 자리에서 책임을 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책임을 한다 하더라도 하늘땅을 가름하는 이러한 중요한 책임을 짊어진 자리에서 책임을 하지 못했습니다.
가인 아벨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인 아벨을 통하여 바란 그 첫째 목적은 가인을 굴복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그 다음 목적은 아담 해와를 복귀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첫째 목적을 위해서는 출발할 수 있었지만, 전체 목적을 위해서는 출발할 수 있는 자리가 못 됐던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된 다음에는 가인 아벨이 하나된 그것보다 더 중요한 하늘의 주목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맞지 못한 채 가인 아벨은 또다시 실패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노아로 연장돼 내려왔습니다. 그 연장되어 내려오는 역사는 어디까지냐? 아벨이 승리해야 했던, 다시 말하면 가인을 굴복시켜 가지고 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한 날을 바라던 그 바람의 역사를 개인적으로 확대시키고, 가정적으로 확대시키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확대시켜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끝날이 왔기 때문에…. 가인 아벨로 뿌려졌기 때문에 그와 같이 뿌려진 것이, 끝날에 그와 같이 거둘 수 있는 세계적인 정세를 이루어 놓은 것이 지금의 민주세계와 공산세계, 좌우의 세계인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좌우의 세계가 서로 부딪치는 겁니다. 이것이 현재의 끝날의 정세인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좌우가 서로 부딪칠 것이 아니라, 좌우가 서로 부딪치지 않고 붙잡을 수 있는 길이 생겨나야 되는 것입니다. 붙잡기 위해서는 손 그 자체를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왼손이나 바른손 그 자체를 가지고는 붙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라는 것이 있어 가지고, 머리가 있어 가지고 하나의 체제 앞에 오른팔 왼팔이 그 목적을 위해서 부둥켜 안으려는 이러한 의식관념이 뚜렷한 자리에서만 붙잡을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오른손 왼손 그 자체만을 가지고는 붙잡을래야 붙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머리가 없고 신경을 잃어버린 손과 같은 그러한 자체를 가지고는 아무리 하나되려고 해도, 붙잡으려고 해도 그것은 말뿐이지 실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손발의 신경과 같은 작용을 누가 해야 될 것이냐? 머리와 같은 책임을 누가 해야 될 것이냐? 그러한 책임을 해야 할 것이 종교가 아니냐?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그런 일을 해야 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두뇌가 돼 가지고 종교 단체를 신경기관과 같은 이러한 입장에 세워 활용해 가지고 그들이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는 책임을 해야만, 거기서 비로소 갈라진, 부딪치는 손들이 안을 수 있는 놀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될 수 있는 길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들이 하나되어 가지고 찾아가야 하는 길은 어떤 길이냐? 아담 해와가 타락한 이후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가인 아벨을 통해 세운 것은…. 가인 아벨이 하나되어야만 부모를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길이 아니냐. 이것이 오늘날 복귀원리의 주류사상이 아니냐. 가인 아벨의 싸움이 싸움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 하게 해줄 수 있는 주역이 누구냐. 뜻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뜻을 사랑하는 사람….
그러면 그 뜻은 무엇이냐? 그것은 부모의 뜻이자 아들딸의 뜻입니다. 아들딸의 뜻은 부모의 뜻이 돼야 하고 부모의 뜻은 아들딸의 뜻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됐느냐? 부모의 뜻이자 아들딸의 소원의 뜻이 못 됐습니다.
부모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들딸은 싫은 뜻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싫은 뜻을 넘기 위해서, 부모의 참뜻을 이어받는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 둘이 싸움을 한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를 놓고 하나님과 사탄이 좌우로 갈라졌기 때문에 사람을 놓고 싸우는데 그 싸움을 말려야 할 책임자가 누구냐? 사탄도 아니요, 하나님도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그 싸움을 말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그렇게 수십년 동안 우리를 원수시해 나오던 기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돼야 한다고 가르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문전에서 박대받고 서러움을 머금고 돌아서는 것보다도…. 역사시대에 하나 만들려고 노력하던 그 마당을 사탄이 실패의 결과를 가져 오게 해 가지고 하나님은 얼마나 얼마나 참소받아 나왔겠느냐. 원한을 품고 오신 아버지가 아니냐. 그 아버지는 사탄 앞에 혹은 아들딸 앞에 추방당할 수 있는 서글픔을 품고도 또다시 찾아가지 않으면, 또다시 생각하고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섭리를 추진시켜 나오는 입장에 계신 것을 생각할 때, 통일교회 교인들은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찾아가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엇갈린 운명이 섭리의 뜻 가운데 심어졌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적으로 볼 때…. 세계적으로 볼 때 갈라진 나라는 네 나라밖에 없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갈라졌습니다. 그 다음엔 월남이 갈라졌습니다. 중국이 갈라졌고, 독일이 갈라졌습니다. 월남전은 한국전쟁의 연장전인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가 평화의 세계로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갈라진 나라들이 싸움으로 해결하려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싸움으로 심어진 역사를 싸움으로 수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싸움으로 심어졌기 때문에 싸움이 아닌 것으로 수습할 수 있는 길이 나오지 않고는 평화는 올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월남전이라든가 한국의 정세를 미루어 볼 때에, 평화로 해결해야 할 날들은 우리 앞에 다가오는데 평화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것이 우리에게는 고통입니다. 세계는 여기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싸움을 해서도 될 성싶지 않고 무엇 가지고도 될 성싶지 않은 입장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력을 가지고서는 평화의 세계를 소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쳐 죽일 때, 그것을 기뻐하신 하나님이라면 무력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승리를 자랑할 수 있는 길을 찾았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원치 않으셨던 하나님이 아니냐. 노아가 방주를 짓고 난 이후에 방주에서 내려와 가지고 실패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함을 쳐 버리고 승리의 기반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냐. 어디까지나 자연굴복을 바라 나오는 것이 섭리의 뜻이기 때문에 오래고 지루한 역사시대를 지금가지 참고 나오는 것이 아니더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노아도 그랬고, 아브라함 역시 마찬가지 아니냐? 바로가 사라를 빼앗아다가 유린하려는 그러한 정경을 바라보셨던 하나님은 쳐 가지고 승리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감동시켜 가지고, 자의에 의해 가지고 하늘 앞에 굴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왔던 것이 아니냐.
야곱도 마찬가지 아니냐. 야곱은 21년 동안 자기의 장자 기업을 빼앗겠다고 원수시하고 생명을 노리고 있는 에서를 대해 가지고 자기가 축복 받은 모든 것, 당당한 자기 일신의 영광, 일신의 권위를 가지고 형을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힘의 대결로써 해결하려는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도리어 순응의 도리를 앞세워 가지고 옛날 형제의 인연의 심정을 유발시키는 데 노력했던 야곱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외지에서 성공하여 갖춘 그 모든 환경을 자랑하기 위해서보다도 어떻게 부모의 심정을 유발시키고 형제지정을 유발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노력하였던 야곱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돌아와 가지고 형을 대해 '우리 주인이요'라고, 우리 주인이라고까지 한 찬양의 명사를 보게 된다면, 과연 그는 누구보다도 형님을 높이기 위한 자리에 섰던 것이 아니냐. 여기에서 악했던 형님의 마음이, 강퍅했던 형님의 마음이 감동되어 녹아짐으로 말미암아, 형님 에서를 위하고 높여 주는 마음을 가지고서 굴복시킴으로 말미암아 천도를 바로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기막힌 주목의 시간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모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가 반석을 받기 위하여 시내 산에 올라가 있는 40일 동안에 이스라엘 민족의 원성이 높아졌고 또한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내려와 혈기를 부려 가지고 하늘로부터 받아 쥔 반석을 깨 버렸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실수였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참고 극복해야 할 그 순간을 잘 넘었더라면 역사적인 원한의 구덩이를 파지 않았을 텐데, 책임자로서 혈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 환경을 잘 넘기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오점이 심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세례 요한을 두고 보면, 세례 요한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증거했으면 증거한 대로 행해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말했으면 말한 대로 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인간적인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예수를 두고 보면 예수는 자기의 동생 뻘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자란 과정을 다 알고 있는 세례 요한으로서는 도저히 믿을래야 믿을 수 없는 그런 존재였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만일에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내세운 그 입장이라는 것은 내가 비판할 수 있는 입장보다도 더 엄숙하고 더 기막힌 입장이라는 것을, 그런 입장에서 내세웠다는 것을 생각했다면 예수를 배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의 오점을 남기게 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불화하는 데는 파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불화하는 데는 천륜의 발판이 뽑혀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목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진다고 한 겁니다. 옳습니다. 화목케 하는 동기를 찾아 나오는 것이 하늘의 뜻이기 때문에 그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은 화목할 수 있게 하는 제물의 자리에 올라가는 사람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전통적 사상, 속죄사상의 그 인연은 어디서부터 쌓아졌느냐? 피 흘리는 제물의 제단을 통해서 이것이 묶어진 것이 아니냐? 그러면 그 제물의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불화하기 위한, 분립하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이 갈라졌고 인간과 인간이 갈라졌던 것을 서로서로 화합시키기 위한 것이요, 하늘과 땅이 갈라진 것을 화합시키기 위한 하나의 조건물이 제물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순응의 제단인 것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 제물을 통해 가지고 화목의 인연을 찾아 맺고자 하는 것이 제물을 드리게 하는 아버지의 뜻이 아니겠느냐? 옳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는 명실공히 제물의 사명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력한 제물이 아닌 것입니다. 마을이면 마을에서 소를 잡아 가지고 서낭당에서 제사를 지내게 될 때, 그 소를 사는 데도 제일 나쁜 소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장거리에서 소를 사온다 하게 될 때에도 흠이 없는 소를 사오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소를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만일 소를 사기 위해서 열 사람이 갔으면 열 사람의 마음에 '이것이어야 되겠다'고 할 수 있는 공통적인 결론이 서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다 좋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어야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열 사람 가운에 두 사람만 참소하면,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참소하지 않는 물건을 고르려니, 제일 좋은 것을 고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자동적으로 제일 좋은 것이 아닐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겁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갈라진 세계를 화목시켜야 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기독교에 있다는 것입니다. 전세계의 기독교, 혹은 전세계의 종교가 해야 할 일이 아니냐? 전세계의 종교는 제물적인 사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제사드리려 온 사람들이 전부 다 우러러봐야 됩니다. 오른편 사람도 우러러봐야 되고, 왼편 사람도 우러러봐야 되고, 앞 사람도 뒷 사람도 우러러봐야 되는 것입니다. 제물로 바쳐진 그 제물을 다 우러러봐 가지고 피흘린 제물을 향해서 머리를 숙여야 되는 것입니다. 이래야 제물의 의의가 성립되는 것이 아니냐.
그 머리를 숙이게 될 때, 하늘의 뜻 앞에 머리를 숙이면 하나님도 머리를 숙이고 제물 앞에 축복을 해주는 것이 아니냐? 만일에 이것이 하나 되지 못하는 결론을 가져 왔다면 사탄의 제물이 되는 것이 아니냐? 이러한 사명을 짊어진 것이 소위 종교라는 것이 아니냐. 그러한 제물적 본질을 이어받아야 할 종교,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종교가 기독교라면, 기독교만이라도 이와 같은 제물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끝날에 있어서 하나님은 이 세계를 바라보실 때 좌우익 세계, 공산세계와 민주세계, 이러한 외적인 세계를 주시하시는 것은 물론입니다. 주목하고 계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주시하는 데는 오른편 왼팔만 주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누구를 주목하시느냐? 제물과 같은 입장에 선 기독교를 주목하실 것이 아니냐? 주목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것이 종교입니다. 그 종교의 대표가 되어야 할 것이 기독교입니다. 이 기독교의 중심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냐.
그러면 기독교는 무엇 때문에 생겨났느냐?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속의 사명을 세계화시키기 위하여 생겨나게 한 분이 하나님이요, 생겨나게 하기 위해서 죽은 사람이 예수가 아니냐. 죽었던 제물의 보람을 찾기 위해서…. 죽은 제물이 아니라 산 제물로서 만민 앞에, 천주 앞에 승리의 월계관을 갖고서 온 만민 앞에, 온 천주 앞에 자랑함과 동시에, '하늘이여, 당신의 승리의 날은 나로 말미암아 이루었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결정적인 한날을 이 땅 위에 설정해 놓아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될 수 있는 것이요, 예수가 바라던 소원성취가 벌어질 것이 아니냐. 이런 입장에서 생각할 때, 기독교는 권위를 잃어버렸습니다. 거리에 창녀들까지도 손가락질하며 '저들이 목사냐? 저들이 신자냐?' 합니다.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 종교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뭐 믿는 것들이 그래'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남북이 갈라진 이 모든 운명을 해결지어야 하는데, 남과 북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종교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머리와 같은 사명과 신경기관과 같은 사명을 해야 할 무리가 종교인이 아니냐. 맨 나중에 세계를 위해서 망하게 된 이 세계를 붙들고 살려줄 수 있는, 살아 있는 신경기관을 가진 종교가 있느냐? 없다면 하나님은 불쌍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비참한 하나님입니다. 틀림없이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수난길을 가려 나오면서, 수천년 역사시대를 거듭하며 참고 나오신 하나님이 한 날의 소원성취를 할 수 있는 소원의 상대가, 소원성취의 한 토대가 없고, 바랄 수 있는 한 모습도 없다 하게 될 때, 기가 막힌 수난의 역사를 하나님은 잊을 수가 없을 것이 아니냐.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악한 마귀 사탄은 하나님을 대해서 참소할 것입니다. '역사시대를 통해서 당신이 바라던 소원이 이것이요? 참패를 당한 당신의 운명이 바로 타락한 인간을 사랑해 나오던 보응이요?'라고 참소할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이걸 볼 때, 하나님은 불쌍하신 하나님이 아니냐.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아요? 병신 자식을 가진 그 부모는 어느 한 날이라도 자식을 자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와 제일 가까운 사람, 자기가 위하는 사람,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앞에 나타나면 그것은 치욕이요, 수치가 아니냐. 그 자식을 데려와서 '아무개 이 아이는 훌륭한 내 아들이다'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아무리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한다 하더라도, 어머니밖에 모르는 효의 마음을 가진 자식이라 하더라도, 그 부모와 자식 둘 사이에는 통할 수 있지만. 그 위신이 나라의 위신으로 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 위신이 세계의 위신으로 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 위신이 역사의 위신으로 통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냐. 사랑하는 부자의 인연은 귀하고 놀랍지만, 그 부자의 관계에서는 통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가치의 자리에서는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냐. 안 그래요?
만일 그럴 때가 된다면…. 부모가 눈물지을 수 있는 자리에, 통곡할 수 있는 자리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서게 되면, 아무리 병신 자식일지라도 그 자리에 응당히 가 가지고 부모를 위로해 주고 효의 도리를 다해야 되겠지만, 그 부모의 선 자리가 나라를 대표한 자리라면 아무리 효자의 마음을 가진 자식이라 하더라도 나설 수 없는 자리가 아니냐 이거예요. 그럴 때에는 나서지 않고 도리어 문을 닫아 걸고 그 부모를 위하여 눈물로써 기도하고, 그 부모를 위하여 마음으로써 효의 도리를 표시한다면, 그 자식은 그야말로 효자이고, 충신의 행적은 다 갖추지 못했더라도 충신의 반열에 참석할 수 있는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얼마나 병신 자식 노릇을 했느냐? 그것이 개인 역사를 통해 가지고 올 때는 너와 나 사이, 부자의 관계. 우리집 사이에서는 괜찮습니다. 친척간에도 괜찮습니다. 그런 관계에서는 그것을 서로서로 이해할는지 모르지만 적의 나라, 원수의 국가를 대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랑할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저 아무개, 외적으로는 다 좋아 보이고 안팎으로 갖춘 것은 그만하면 됐는데, 그 자식 때문에…' 좋은 의미에서 동정을 하는 것이 아닌 것은 평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동정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전부 다 평이 되는 것이요, 국가의 수치가 되는 것이요, 더 나아가 국가를 넘어서 세계를 가는 데 길막이가 될 수 있지 않느냐.
이번에 북한 대표들이 남한을 찾아오는데…. 요전에 선생님이 현충사를 다녀 오면서 보니까 길을 단장하고 팔각정에 칠을 다시 하고 다 수리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우리 끼리는 자신의 흠을 보일 수 있는 것이지만, 국가를 대하는 입장에서는 권위를 세우고 그들보다 못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애국심의 발로가 아니냐.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나라가 어느 나라보다 더 낫기를 바라는 것은 애국심의 발로이기 때문에, 그것은 어느 누구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못사는데 치장은 해서 뭘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빨갱이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나라의 백성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야지. 나아야지, 일시적으로 그럴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나아야지, 1년만이 아니라 천년 만년 이북보다 나아야 되겠다'고 할 수 있는 소신을 가지고, 이 민족이 이번 기간을 통하여 단결된 결의를 가진다면, 이번 적십자 회담이 성공리에 끝나거나 안 끝나거나간에 한국민족에 있어서는 손해가 아니지 않느냐. 거기서부터 나라가 새로이 소생될 수 있고, 새로운 민족정기로 국민의 단결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세상이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외국에 나갔을 때, 한국 사람이 외국에 가서 그 나라 백성에게 수치를 당하거나 그 나라 백성에게 규탄을 받게 되면, 그것을 보고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욕을 먹는 것은 내가 욕을 먹는 것이요. 그 사람의 수치는 자기의 수치라는 거예요. 그것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야 그 나라의 백성이지, 그것을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은 그 나라의 백성이 아니다 이거예요. 그것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환경을 넘어 자기의 수치를 방어하기 위한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아들딸이 되겠다고 모인 우리들을 생각할 때, 역사시대의 누더기판을 이어 나온 그런 선대의 피를 받고 나온 후예로서의 자기 자신을 생각할 때, 오늘날 뒤적뒤적하는 꼴을 볼 때, 이것을 가지고 '아버지 좋지요?' 할 수 있어요? 병신 걸음을 걸어오면서 '엄마 아빠 나 좋지? 오늘이 제일 좋아! 나 춤추는 데 같이 춤춰 줘' 하면, 외국 사신들이 와 있는 데에서 춤을 춰 줘야 되겠어요? '에이 이 녀석, 저리 치워 버려' 하면서 보이지 않는 총이 있으면 쏴서 쓰러뜨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그 나라를 사랑하는 충신이 될 것입니다. 거 무슨 말인지 이해가 돼요.
그러면 끝날에, 싸움으로 심어졌던 역사가 싸움으로 끝날 때는 성공이 올 수 없겠기 때문에 하늘은 여기서 어떻게 할 것이냐? 붙들고 놓을래야 놓을 수 없는, 바른쪽 사람들은 바른쪽 이쪽을 붙들고 왼쪽 사람들은 왼쪽 이쪽을 붙들고, 살아 있는 팔과 몸뚱이와 머리를 가진 그런 사람이 되어 가지고 붙들어 줄 수 있는, 사람노릇 하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냐? 종교인들입니다. 그 대표적인 책임을 기독교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밥을 위해서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교역자는 쓸데없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여, 하늘땅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걸고 저울질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가는 종교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을 치고 부정하고서라도 이것을 붙들고 나서는 사람이라야 충의 도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공신이 될 것이 아니냐.
이런 공적인 입장에 선 통일교회 자체를 비교해 보게 될 때,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문 아무개, 나는 어떠냐 이거예요. 그 문제에 직접 걸릴 것입니다. 내가 자랑하고 싶은 누구 간부,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드나드는 외국 사람들 앞에, '외국에서 내가 이야기하던 그대로의 우리 식구들이 아니냐. 본부의 우리 간부들이 아니냐. 잘 봐라. 잘 봐라!' 이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병신이 되어 절룩거리면서 '뭐 우리 아버지 잘났다. 우리 아버지 어떻다…' 한다면, 그런 것을 보게 될 때에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그런 때가 왔습니다.
하늘이 찾고 있는 종교 단체는 어디 갔느냐? 하늘의 당당한 권위를 갖고 세계의 좌우를 능가해서 하늘 앞에 당당히 효할 수 있는 그런 규범을 가지고 나오는 아들딸이 있느냐?
사탄마저도 굴복하고, 좌우의 세계인류가 굴복해 가지고 '옳소이다' 할 수 있는 그러한 아들딸이 있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하시겠느냐? 또 얼마나 그것을 바라고 오셨을 것이냐? 한 사람이라도 그런 사람을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없다면 하늘은 비참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6천년 기나긴 소모의 역사, 희생의 역사를 거듭해 오던 하늘 앞에 또다시 기막힌 순간이 찾아올 것이 아니냐. 역사를 두고 한탄할 수 있고, 역사를 두고 희생의 대가를 걸어 놓고 저주할 수 있는 숨막힌 순간이 찾아올 것이 아니냐.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한 이후 둘도 없었던 처절하고 심각하고 기막힌 또 하나의 순간이 끝날에 남아질 것이 아니냐. 이 숨막히는 순간을 막아 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기를 바라는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그런 사람이 없다면 큰일이예요, 큰일.
하나님이 창조했기 때문에, 무지한 인간으로서 번번이 실패의 역사를 거듭해 나왔던 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은 인간에게만 책임을 맡길 수 없겠기 때문에, 끝날에 한 아들을 다시 보내겠다고 약속을 하시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 아들이 영광의 주로서, 세계를 전부 다 심판해 버리기 위한 그런 분으로 오신다면 역사가 틀려집니다. 그런 분으로 오실 것이라면, 복귀원리에 나오는 가인 아벨의 싸움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 아니냐. 노아의 역사가 있을 수 없었을 것이 아니냐. 아브라함의 역사가 있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니냐. 이스라엘의 민족사 역시 있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니냐. 그것은 순전히 가인 아벨이 환영의 한 날을 가려 가지고 서로 붙안고 하나님 앞에 돌아갈 수 있는 그러한 날을 맞기 위한 것이…. (잠깐 동안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그러한 사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됩니다. 만일에 그러한 여자가 없거들랑 남자라도 되어야 됩니다. 그러한 남자가 없거들랑 여자라도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땅 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 봐요? 이런 관점에서 역사를 훑어 보게 될 때, 그런 집단도 없었고 그런 사람도 없었으니,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것을 해야 되겠습니다.
아벨이 생명을 바쳤어도 이루지 못한 뜻, 노아가 120년 동안 수난길을 가 가지고도 성사시키지 못한 이 뜻, 아브라함이 가정과 아내를 빼앗기는 자리에서도 이루지 못한 섭리의 뜻, 야곱이 21년 동안 수난길을 극복하고 하늘의 축복을 받고 돌아왔으나 그 축복을 가지고서도 이루지 못한 이 뜻, 모세가 바로 궁중과 자기의 영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다 저버리고 이어받았으나 이스라엘 민족사를 바로잡지 못한 기막힌 그 뜻, 4천년 역사의 종국에 하나의 꽃으로 피어났던, 하나님이 특별히 택하였던 세례 요한이 메뚜기와 석청만을 먹으면서 30여 평생을 광야에서 보내며 조롱과 손가락질을 받아도 참고 고대하여 메시아를 증거 하였으나 이루지 못한 그 뜻, 예수가 30여 평생 온갖 힘과 정성을 다 기울였지만 살아서 이루어야 할 뜻을 살아서 이루지 못하고 간 그 뜻, 이런 엄청난 뜻입니다. 모두가 실패로 귀결된 일로를 공식처럼 밟고간 그 뜻…. 그것을 해원성사시키고, 그것을 승리의 기점에서 뜻 앞에 일치화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않느냐?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통일교회 여러분들, 아벨 이상의 죽음 길을 각오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겁니다. 노아의 120년 수난길 이상을 극복할 수 있는 각오와 신념을 갖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처자식을 집시의 무리와 같이 이끌고 국경을 넘나드는 행각의 행로에 있어서 소망을 갖고 그 생활을 흥미롭게 느낄 수 있는 나그네의 신세를 거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나라 없는 백성으로서 자기의 조국광복을 바라던 것보다도, 밤이면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아침이면 태양을 바라보고, 저녁이면 달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조국을 찾게 해 달라고 아우성치고, 원한을 품고 하늘 앞에 그 사연을 통고하는 민족이 아니고는 안 되는 겁니다. 2천년의 이스라엘 민족사는 수난의 역사요, 슬픔의 역사인 것을 알아 가지고 이것을 가로막고 민족적 사명을 대신 책임하겠다고 나섰던 세례 요한, 민족적 자각자요. 새로운 시대의 중보자로서. 그런 사명을 짊어지고 생애를 바쳐 노력하였던 세례 요한마저도 망한 길이 아니었더냐.
예수가 하늘의 특명을 받아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성취의 일념을 갖고 30여년의 생애를 제물로 바쳐 가면서도 이루지 못한 그 뜻이 아니냐.
이러한 뜻을 이어받고, 이러한 뜻의 승리의 종결을 바라보고 나가는 무리가 땅 위에 있다 할진대, 이는 죽음길을 간다는 각오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는 누구의 아들딸이니 뭐니 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마 26:39)"라고 기도하던 그 이상 심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심각했던 그 이상으로 심각하다고 해서, '야 야, 이놈아, 너 예수가 심각했던 그 이상 심각하면 그건 죄야!' 그럴 사람이 있어요? 또, 예수보다도 더 효도하겠다고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야 야, 그것은 예수가 차지할 자리니, 너는 여기서 스톱, 됐다' 이런 하나님이 될 수 있어요? 하나님은 '더 해라, 더 해. 예수가 한 것보다 천배 만배 해라' 할 것입니다.
조상보다 후손이 천배 만배 나으면, 그 후손은 망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끝날에는 예수보다 못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예수보다 나아라 이거예요.
예수는 반대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반대하던 유대교를 중심삼고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했지만, 지금 시대에 있어서는 그 범위가 세계시대로 넓어졌다 이거예요.
통일교회는 세계를 앞에 놓고 통일교회로서 남아질 수 있는 겟세마네 동산을 생각해야 됩니다. 아무리 못난 아들딸이라도 모여서 그런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행하기 위해 각오를 가지고 하늘 앞에 담판하고 나서는 무리가 있다면, 하나님이 '야 야, 그건 안 된다' 그럴 수 있어요?
부모 앞에 맏아들이 효도를 하는데 맨 막내 아들인 조그만 녀석이 와 가지고 '아 형님, 형님이 효도하는 거 틀렸소. 이거 뭐요. 형님은 안돼 먹었소'라고 하면, 그 부모가 '야, 이 녀석아 형님이 왜 안돼? 효자인데' 그런다고, 그 부모가 기분이 나빠요? 야 그 녀석 봐라…. 귀에 피도 안 마른 조그마한 녀석이 형님이 효자인데도 불구하고 '형님 뭐야, 그게 효자야' 그렇게 참소한다고 해서 기분 나빠할 부모가 있어요? 그것을 기분 나빠하는 부모는 없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야, 요 녀석 봐라' 그러는 겁니다. 안 그래요? '요 녀석 봐라. 요거 크면 무엇이 될까? 아, 우리 집에서 제 형의 백 배 되는 효자가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는 거예요. 그것이 틀렸어요?
내 출처는 비록 비참하더라도, 오기는 동방에서 왔고 남방에서 왔더라도, 인간세상에서 왔더라도, 하늘로부터 온 사람보다도 더 충성을 다짐하고 더 노력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환영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오기를 바라지 말고 예수 이상의 일을 하라 이거예요. 예수 이상으로 훌륭하라 이거예요. 그 이상 되거들랑 주님이야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고…. 이건 앉아 가지고 '오, 주여! 오시옵소서' 하는 이런 미치광이가 많다는 거예요. 그런 미친 녀석들이 많다는 거예요. 통일교회는 달라야만 되겠습니다. 세계적인 겟세마네 동산을 우리는 넘어 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세 제자 이상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생전에는 눈을 똑바로 떠 가지고 '아. 모든 제자들이 주님을 배반하더라도, 나는 죽더라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그렇게 알뜰하게 약속 하던 베드로가 허풍선이 모양으로 저녁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무가치한 사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 있는 젊은 녀석들 통일교회 믿는다고 해서 전부 다 모가지를 덜컥덜컥 잘라 버리겠다고 하면, 전부 다 도망갈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통일교회에 나오느냐? 통일교회에 나와서 복이나 받겠다구요? 통일교회는 복을 나누어 주기 위한 교회가 아니라구요. 복받을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된다구요. 그래 가지고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좌우가 수라장이 되어 가지고 자리를 못 잡고 있는 끝날에 있어서, 만일 이것을 자력으로 해결하지 못하거든 하나님을 대신해서, 인류의 슬픔을 대신해서 회개할 수 있는 속죄의 제물이 되든가, 제사장이 되든가 둘 중의 하나는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은 망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영광은 고사해 놓고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선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대해서 아담 해와에게 걸었던 소망보다 더 큰 소망을 가지고, 더 심각한 자리에서, 가인 아벨의 죽음의 자리를 엿보아 주목하던 그 시간보다도 더 심각하게, 아브라함·모세 ·세례 요한·예수의 죽음의 자리를 대하던 이상 심각하게 주시할 것이 아니냐?
엘리야가 바알에게 쫓겨 가지고 자기 혼자 남아 죽게 되어 '하나님이 여! 나만 남았나이다' 할 때. 하나님이 바알에게 굴하지 않은 7천여 무리가 있다는 것을 엘리야에게 통고하지 않았느냐?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배반하는 자는 지금까지 아무리 하나님 앞에 충성을 했고 효도를 했더라도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단체는 망해야 됩니다. 아무리 해도 망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머물지 않습니다. 통일교회는 그런 일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맞아라, 맞아라! 몰려라, 몰려라! 쫓겨라, 쫓겨라! 끝까지 가 보자! 사탄이 끝까지 몰아내면, 하늘은 끝까지 버려 두느냐? 끝까지 몰리어 가 보자, 원망말고 가보자!
하나님께서 역사적 고빗길을 참아 나온 것은 인간 때문에 그런 것이요, 인간 때문에 그랬다면, 그 인간은 어떤 인간이냐? 한 사람의 효자입니다. 그 효자를 찾아 나오시는 부모이기 때문에, 그런 아들의 길을 가려 주기 위해서 오시는 부모이기 때문에, 그 부모 앞에 불효한 역사적인 사건들은 그 사람이 대신 탕감해야 할 사건들입니다. 그러니 아담보다 나아야 되겠습니다. 아벨보다 나아야 되겠습니다. 노아보다 나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보다 나아야 되겠습니다. 모세보다 나아야 되겠습니다. 세례 요한보다 나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보다 나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이단이예요?
신앙길을 끝까지 가 봐라 이거예요. 원수가 내몰걸랑 개인적으로 몰려서 죽을 곤경에 빠져 봐라. 가정적으로 몰리고, 종족적으로 몰리고, 교회적으로 몰리고, 국가적으로 몰리고, 세계 끝까지 가 봐라. 죽기 아니면 살기입니다. 결론은 그거라구요. 망하지 않으면 흥합니다. 결론은 이거예요.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예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몰려라. 배척받아라. 중간에서 머뭇거리다가는 망합니다. 망한다 이겁니다. 이 칼에 망하고 저 칼에 망하는 겁니다. 하나님도 '에이 이놈의 자식아, 언제는 맹세를 하더니 이제는 뭐 그래? 이놈의 자식아'라고 하실 겁니다. 통일교회 믿다가 망한 사람 많습니다.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구요. 내가 꾸며서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구요. 자기들이 망한 것이지.
통일교회 문선생은 아직까지 망하지 않았습니다. 저 끝까지 가 보자. 끝까지 가 보자. 목숨이 떨어지지 않고 남아 있으니 가 보자. 그 가는 목적은 자기를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마비된 이 세계를 붙들고 가 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냐.
하나님이 지금까지 역사하시는 것은 가인 아벨이 싸워 나오는 것을 말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더냐. 예수 이후 2천년 역사가 아니었더냐. 가 보자! '망할 수밖에 없는 이 인간을 붙드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아들도 하나님을 닮았소. 망할 까닭이 없는 아들인 내가 붙들고 맞겠소이다' 하고 나서라. 맞아라. 맞고 망하더라도 그것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이미 그 사람이 태어난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죽더라도 성공입니다. 그 놀음을 하자는 거예요.
남북으로 갈라졌던 이것이 이제 서로 합류한다는 것은, 만나자 하는 것은 이미 이것이(판서하시며) 끝나는 거예요. 하나는 이렇게 가고 하나는 이렇게 찾아 나온 거라구요. 하나는 바탕이 다르지만 이렇게 찾아온 거라구요. 여기서 만나는 거라구요. 이것은 서로 평행이 될 수 없으니 이 둘을 갖다가 합하면, 여기서 만나는 것입니다. 만나되 여기에는 제물과 제사장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어느때든지 이런 경우에는 제물과 제사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는 어느때나 망하는 운세를 따라 가지고 새로운 부흥의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자, 여기서 그러면, 북이 할 것이냐, 남이 할 것이냐? 대한민국 정부가 할 것이냐? 못 하는 것입니다. 이북의 김일성이가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해야 될 것이냐? 하나님밖에….
머리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신경기관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신경기관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판서하시며) 이 둘이 제물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때,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그 제물을 바치게 되면, 그 제물은 받아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아, 거룩한 분들이여, 그야말로 당신들은 우리 생명을 염려해 가지고 보다 차원 높은 자리로 이끌어 줄 수 있는 틀림없는 사람이지요' 하면서 말없이 굴복할 수 있는,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그럴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는 길밖에 없다 이겁니다. 안 그래요?
그것을 누가 해요? 통일교회, 종교인들이 해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못하면 종교인들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출세하려고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내에서 이름 날 수 있는 자리에는 전부다 자기들 간판 붙여 주고,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있다구요.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누가 이 놀음을 할 것이냐? 누가 제물이 될 것이냐? 제물은 갈라야 됩니다. 갈라진 사정 위에 필요한 것이 제물이 아니냐. 하나님 앞에 갈라져 있고 형제 앞에 갈라져 있는 것이, 갈라진 사정 위에 필요한 것이 제물 아니냐. 그러니 그런 입장에 서려면, 제물 이상의 자리에 나가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죽을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죽을 길밖에 없다고 탄식하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구해 줄 사람이 어디 있느냐? 잘먹고, 잘입고 기름칠하고 다니면서 '당신 그러지 마소, 인생은 살 길이 있소' 하고 암만….
그렇지만 그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가서 얘기를 하는 거예요. '당신이 그렇다고 해서, 아들 하나 죽었다고 해서. 남편이 죽었다고 해서 그렇소? 내 말 좀 들어 보오. 나는 남편과 아들딸을 한 구덩이에다가 몰아 넣고 왔소' 이렇게 될 때, '예엣! 하는 겁니다. 울다가, 자기가 기가 막혀 하다가 무색해 가지고 '예엣? 그래도 당신이 살고 있고만' 하는 겁니다. '살다 뿐인가. 그보다 더 좋은 아들이 생기고 더 좋은 남편이 생겨났지' 하면, '틀림없이 그래요? 할 때, '그렇구 말구. 한번 보겠느냐?'고 해 가지고, 오히려 이렇다고 보여 줄 때는, 거기에서 구할 수 있는 길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통일교회는 그 자리를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식구가, 하나님의 가족이, 하나님의 종족이 있으면 그 종족이 전부가, 아담 해와는 물론이요, 가인 아벨은 물론이요, 노아, 아브라함, 모세, 야곱, 세례 요한, 예수, 그리고 수많은 사도들과 순교한 선열들 전부가 바라보면서 '야!' 할 수 있는 주목의 주인공이 되었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그거 있을 것이 아녜요? 전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지금까지 왔다 간, 하늘을 위해서 충성했던 수많은 무리들 전체가 합해 가지고…. 수천의 그 사람들이 영계에 가서 꽉차 있다구요. 그 사람들은 전부 다 뜻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목이 잘리고 눈알이 빠지고 팔다리가 잘려지고 별의별 죽음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판국인데 '아이구, 당신들이 그런 것은 나를 좋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니 고맙소. 나는 고기밥 먹고 잘살겠소' 이랬다가는…. 요거야, 요거야, 망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입장이라면 기분 좋겠어요?
욕을 먹는다구. 그런 사람에게 욕을 하려면 무슨 욕을 해야 되겠어요? 하나님이 굶고 있는데, 천지 대주재가 이런데, 좋은 자리에서 잘 살아야 되겠어요? 잘먹고 살겠어요? 그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이 끝까지 고생시켜야 되겠습니다. 지쳐서 떨어지더라도 고생을 시켜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제물을 드리려 가는데, 외양간에서 송아지를 끌고 나오는데 하나님이 엉엉 울게 된다면, 다시 말해서 팔려 가는 제물을 따라 가면서 하나님이 엉엉 울면서 따라갈 수 있는 그런 제물이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사랑하는 사람의 것은 말이예요. 애기를 길러 본 아줌마들은 잘 알 것입니다. 애기가 자기 무릎 위에서, 좋은 치마 위에서 똥을 팍 누더라도 더러운 줄 모르고 쓱쓱 닦아내고 말이예요. 닦을 때 자기 손에 똥이 묻게 되면 이렇게 쓱쓱 해 버리고 이렇게 해 가지고…. (행동으로 표현하심) 그렇지 않아요? 사랑하는 자식의 것은 똥까지도…
선생님이 어떤 부인 얘기 하나 하겠어요. 자기 애기가 병이 들어서 열이 심하게 나고, 아무리 약을 써도 병이 안 나으니까, 똥 맛이 어쩌면 어떻더라 하는 말을 듣고 똥 맛을 보는 것을 보았다구요. 여러분 가운데도 그렇게 해 본 사람이 있을 거라구요. 사랑하는 자리에서는 단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에어 주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하는 자식을 대해 가지고는. 남들은 보면 더럽다고 천리 만리 도망갈 수 있는 똥 맛까지도 보더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럴 수 있다구요.
그와 마찬가지로, 역사 이래 하나밖에 없는 제물이 생겨났다면 하나님은 그 제물이 그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그 제물이 하나님의 성전 앞에 앉아 가지고 똥을 쌌다고 해서 하나님이 '저 놈 잘아 죽여라' 그러시겠어요? '어서 누어라. 똥 누어라' 하시면서 일체를 환영하신다는 거예요. 일체를 영광의 조건으로서 찬양하고 그것을 다 가리워 주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사람 대해 그렇잖아요? 마찬가지라구요.
만약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이 끌려가면서 채찍으로 엉덩이를 맞게 된다면, 그것을 보시는 하나님은 가슴에 철창을 맞은 아픔을 느끼지 않겠느냐 이겁니다. 그러면, 탕감조건에 걸렸기 때문에 탕감이 끝날 때까지 제물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생각할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10년 20년 세월을 그저 장거리로 끌고 다니더라도 죽이지 않고 살려 가지고 탕감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길을 택하실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하실 것이냐? 언제나 그저 끌고 다니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죽지 않고 산 제물로서…. 그래야 세계에 대해 '야, 아무 나라,, 아무 고을, 아무 동네를 거쳐 올 때까지 너희들은 천대를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끝까지 죽일 수 없다'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죽이지 않고 산 제물로 만들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생각해 봐요. 있겠어요, 없겠어요? 자, 우리 남자들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습니다」 있다는 거라구요.
그러면, 통일교회가 그런 입장에 있으면 지지리 고생시켜 가지고 '한 고개 넘어가라, 두 고개 넘어 가라' 해야 된다구요. 우리 한국 속담에 '아리랑 고개 열두 고개'라는 말이 있지요? 열두 고개라는 말 참 잘했다구요. 예수님이 열두 고개를 넘다가 걸렸다구요. 가룟 유다한테 걸려 버렸다구요.
자, 고생해라, 고생해라. 그저 이리 끌고 다니고 저리 끌고 다니면서 고생하라고, 역사적인 탕감을 다할 때까지, 그래 가지고 아슬아슬 찾아 나왔는데, 몇 고개만 넘어가면 될 텐데 거기서 그만 뻗어 버려 가지고 '어이쿠 하나님, 나는 이제 못 하겠습니다' 하는 일이 만일 생긴다면 하나님은 기분이 좋으시겠어요. 기가 막히시겠어요?「기가 막히십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실까요? '야, 이놈의 자식아! 출발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낫지 않았느냐? 이놈의 자식아! 이 망할 자식아? 하시는 것입니다. 낙망하시던 하나님의 자리에서 소망을 가질 수 없는 하나님이 차라리 낫지, 소망을 가졌다가 또 낙망을 해? 그건 하나님의 위신상,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만 해도 기가 막힌데, 할 수 없다구요.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통일교회 문선생님한테 달려 있지요? 그렇지요? 안 달려 있어요, 달려 있어요?「달려 있습니다」 달려 있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머리라면 여러분은? 몸뚱이든가 꼬리든가 어디일 거라구요.
뱀으로 말하면, 뱀이 머리를 들고 가는데 꼬리가 걸려 가지고, 물려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가려 해도 갈 수 있어요? 그럴 때,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잘라 버려야죠? 잘라 버리고 가야지요? 자르는 데는 자기가 자를 수 있어요? 그때는 '내 몸뚱이를 잘라 주시오. 꼬리를 잘라 주시오'라고 선전해야 합니다. 세상에 자기 몸뚱이를 잘라 달라고 선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렇지만 여편네고 자식이고 잘라라! 자기 다리고 무엇이고 잘라라! 그런 놀음을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해야되겠습니다」
아, 가야 할 길은 뻔한데…. 할수없이 잘라야 합니다. 아무라도 잘라야 한다구요. 여편네가 붙들고 있으면 여편네를 잘라 버려야 하고, 자식이 붙들고 있으면 자식을 잘라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어디 자기 잘살자고 하는 거예요? 나라 살리고, 세계 살리고, 하나님을 해방하자는 거예요.
오늘 여기에 기성교회 믿던 사람이 왔으면, 뜯어고치라구요. 하나님이 뭐 영광 중에 계신다구요? 그런 하나님 해서 우리 뭘해요?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틀려 먹었다구요. 내가 아는 천국과 내가 아는 하나님은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은 불쌍하신 하나님입니다. 예수도 불쌍한 예수입니다. 하나님을 해방해 드려야 하고, 예수를 해방해 줘야 합니다. 성신을 해방시켜야 합니다. 기독교를 해방시켜야 합니다.
자, 그러니 할수없이 통일교회 문선생이 칼을 하나 차고 다녀야 되겠어요. 안 차고 다녀야 되겠어요? 만일 잘라 줄 사람이 없게 될 때 말이예요. 칼을 차고 다녀야 되겠어요, 안 차고 다녀야 되겠어요?
이놈의 꼬리가 걸렸으면 뭉청 짤라 버리라 이겁니다. 무자비해요, 유자비해요? 무자비하다구요. 자식이든 무엇이든 나는 모른다. 무조건 잘라 버려라 이거예요. 3분의 1은 잘라 버려라 밸만 안 나오면 된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다리를 잘라 버려도 밸만 나오지 않으면 산다구요. 그렇지요? 그 격이라구요. 잘라야 된다구요. 이리해서라도 가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자식을 데리고 오더라도 부처끼리 나오더라도 한자리에 못 앉게 하는 거라구요. 여편네하고 남편네하고 같이 앉아서 쑥덕쑥덕하는 것 나는 싫어요.
왜? 통일교회 문선생이 무엇을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 사람이 원수가 아닙니다. 오직 뜻 때문에, 갈 길이 그러한 길이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가 만일 세계적인 제물이 되려면, 소라면, 저 시골장에 끌고 가서, 거기서 레테르를 보고 '야, 이놈 쓸 만하다. 이 녀석이 쓸 만 하구만, 옳다, 끌고 가자' 그래 가지고 그 소를 면(面) 장으로 끌고 가는 거예요. 면 장에 가 가지고 수많은 소 가운데서 또. '이중에서 이놈이 쓸 만하구만' 하면 그 다음에는 군(郡)으로 가자 해 가지고 군 장으로 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군 장에서 '야. 이 녀석이 쓸 만하구만' 하면, 그 소를 끌고 다음에는 도(道) 장으로 가는 거예요. 여기 앉지 말구요.(맨앞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을 붙잡고 말씀하심) (웃음) 어느 시대나 재요가 필요하다구요. 제물이 있어야 실감이 나는 거라구요. 왜 이러느냐? 실감이 나야 되겠으니까…. 그러지 않으면 뭐라고 한지 다 잊어버린다구요.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도 장에서 나라 장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한국에서는 그렇게 소문이 났다구요. 그것 잘났나요, 못났나요? 뭐 어떻고 어떻고 절름발이고 애꾸눈이고…. 애꾸눈 노릇 했지요? 절름발이 노릇 했지요? 우리들 자신들이야 잘나기야 잘났지요. 거 일부러 하는 거라구요.
먹을 줄 몰라서 밥을 굶어요? 문 선생님은 고생이 좋아서 하는 거예요? 안 하면 안 되겠기에 하는 거라구요. 여러분보다 잘살려고 했다면 벌써 내가 몇십 층 빌딩도 샀을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위해서 피땀 흘린 것을 두고 보더라도…. 대한민국 그 누구 못지 않게 수단도 내가 좋다면 좋다구요. 둘째 안 간다구요. 그런 놀음 안 하기에 그렇지, 했으면 누구도 다리 비틀어 먹었을 거라구요. 누구라도 털 다 뽑아 가지고 볶고 지지고 해 가지고 뼈다귀까지 냠냠 했을 거라구요. 그런 소질이 있는 사람이라구요. 통일교회 하다 보니 이 꼬라지가 됐소, 이 꼬라지.
여러분, 뭣하러 새벽 다섯 시부터 와 가지고…. 통일교회 문선생 만나 봐야 그런 사람이라구요. 무정하다면 한없이 무정한 사람이라구요. 나를 믿지 말라구요. 세상에서는 자기를 선전하지만, 나는 그 반대라구요. 나 믿지 말라구요. 바랄 게 없다구요. 지지리 고생 바가지가 주렁주렁 달렸다구요. 그래도 필요하거든 나서라 이겁니다. 가만 두지 않을 것입니다. 홍두깨로 들이 갈겨 가지고 내몰 것입니다.
자! 그래서 도 장을 거쳐 나라 장까지 왔습니다. 여러분, 경기장에 가게 되면 선수들이 달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그 선수가 삼천만민족의 대표로 나섰다 하면 삼천만 민족이 주목해요. 안 해요? 이번에 뮌헨 올림픽 대회에서 뭔가? 뭐 유도 종목에서 은메달 하나 따 가지고도 뭐뭐…. 만일 그것까지도 없었으면 큰일났을 겁니다. 거기 갔다 오는 사람의 면목이…. 김포공항에 내렸을 때, 거 갈 때는 좋아서 갔지만. 김포 공항에 내렸을 때 다리를 땅에 딛고 싶었겠습니까? 어땠겠어요? 내 성격 같으면 차라리 배를 째 죽으면 죽었지 못 돌아왔을 것 같애요. 그 무슨 탈을 쓰고 어떻게 돌아와요?
자! 초반전부터, 예선전부터 아슬아슬하게 하나 하나 올라가게 된다면, 여러분 관심을 갖소 안 갖소? '야, 요것 중반전 갔다', '야. 준결승까지 올라갔다. 야. 그것들이 올라갔다' 이러면서…. 통일교회가 그렇게 올라갔다고 하게 되면 기성교회 목사들이 눈이 왕방울만 해져 가지고 '야! 저것들 봐라 키가 큰데. 키가 우리보다 크구나. 언제 저렇게 달라졌어? 달리는 데 벼락같이 달리는구나. 언제 저렇게 훈련했어? 하는 거예요.
언제 하긴 언제 해? 먹지 않고 자지 않고 했지. 자, 이기기 위해서 먹고 훈련해야 되겠어요? 먹고 훈련해서 진다면, 그것은 안 되는 겁니다. 따라서 먹지 않고 훈련해서 이긴다면 어떤 것을 취하겠어요? 여기 아주머니들, 먹지 않고 훈련하는 걸 택할 거예요? 먹고 잠자는 걸 택할 거예요. 대답해 봐요.「먹지 않고…」 먹지 않고 훈련해야 되는 거예요. 먹고 잠자 가지고 이기겠어요? 이기려면 먹고 잠자야 되겠어요? 안 자야 돼요. 이 쌍것들, 국가를 망친 쌍것들 먹고 잠자는 것이 쌍것들이예요, 쌍것들이 아니예요? 대답해 봐요. 그건 그야말로 쌍것들이예요. 여러분, 쌍것들이예요?
그렇게 말하면 욕을 먹고도 섭섭하지 않지요. 사실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그렇다구요. 오늘 여기 처음 온 사람이 있으면 선생이란 사람이 공석에서 쌍것이라고 욕을 잘한다고 생각할 거예요. 내가 욕을 잘 한다구요. 그런 욕은 해도 아침부터 해야 된다구요. 새벽부터 해야 된다구요. 하루 종일 해야 된다구요.
그래 가지고, 여러분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가만둡니까? 자는 데 가서 '야! 이놈아, 이 자식아 일어나라' 그래야 되는 거예요. 그저 24시간 못살게 들들 볶고 복닥질해 가지고 '남들이 돌을 열 번 짊어졌으면 너는 백 번, 천 번져라. 일해라. 남이 한 번 하면 너는 열 번 더 해라' 하는 거예요. 실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훈련에서부터 이기고 남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통일교회가 최후의 결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천 번 훈련하는 게 좋소, 만 번을 훈련하는 게 좋소?「만번요」 또, 만 번 훈련하는 것이 좋소. 십만번을 훈련하는 것이 좋소?「십만번요」 그것을 알기는 아는 구만. 그래, 전도를 한 번만 내보내는 게 좋소, 천 번 내보내는 게 좋소? 또, 천 번 내보내는 것이 좋소, 만 번 내보내는 것이 좋소? 40일 전도 나가지 말고 400년 전도를 나가라! 4천년 전도 나가라! 4만 년 전도 나가라! 40만 년 전도 나가라! 그러나 그럴 수 없으니, 늙어 죽도록 그럴 수 없으니 탕감법을 가르쳐 준 거예요. 알겠어요? 심정만은 몇십만 배 이상의 심정을 가지고, 삼천리 반도를 인공위성이 지구를 몇십 뿐만에 한바퀴 도는 것같이 바쁜 마음을 가지고 돌아라 이겁니다. 자! 선생님이 잘 가르쳐 줬어요, 못 가르쳐 줬어요?
책임자 노릇, 이 통일교회 책임자 노릇 참 못해 먹는다구요. 어저께도 선생님이 설악산을 갔어요. 설악산을 쭉 가는데, 진부령 고개를 넘어가는데 비가 와 가지고 길이 보여야지요. 그래서 바위 틈에 자동차를 들이 박았다구요. 비는 자꾸 오지…. 산골비는 한번 내리기 시작하면 좁은 골짜기로 흘러 한곳으로 모여들기 때문에 잘못하면 자동차가 훌떡 넘어가 버리기 쉽다구요. 그런데 이놈의 엔진은 꺼졌지요. 그래서 내가 내려 가지고 차를 밀고 운전수더러 시동을 걸어 보라 했는데 이것이 부릉 부르릉만 하지 돼야지요. 그런 판이라구요. 길은 막아 왔으니 어느 차든지 오기만 해라…. 오면 걸린다구요, 길을 막아 놨으니….
그것 보면, 뭐 기는 놈 위에 뭐가 있다구요?「뛰는 놈」 뛰는 놈 위에 무엇이 있다구요?「나는 놈」 나는 놈 위에 뭐가 있다구요? 덮치는 놈 있다구요. (웃음)
이제 못 가겠거니 하고 차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왠걸 부르릉하고 큰 트럭이 오는 거예요. 그런데 장마가 덮쳐서 다리가 유실됐기 때문에 겹길을 만들어 왔다 이거예요. 빙 둘러서 만들어 놓아 가지고 그리로 강을 건너가는데 말이예요. 아, 축대를 쌓아 가지고 이렇게 해 가지고 그 가운데 있는데. 아, 이놈이 오더니 들어 가지고 뭐…. 젊은 사람, 아무래도 우리 통일교회는 젊은 사람이 필요하겠어요. 아, 이 녀석이 그 큰 차를 부르릉 부르릉 몰고 오더니, 불과 얼마 못 갈 것이다 했는데, 웬걸 이 길이 10미터 가까운 차가 쭉 빠져 나가는 거예요. 그럴 때는 하나님이 살려 주신 거예요. 그래서 가서 간청해서 차를 끌어 달라고 할수밖에 없다고요.
그때는 상감도 별수없다구요. 죽을 자리에서는 빌어야 된다구요. (웃음) 별 수 있어요? 그전 뭐 통일교회 문선생인 줄 몰랐겠지요. 뭐 통일교회 문선생이 무슨 위신이 있어요? 여러분 앞에 서는 큰소리하니까 위신이 있는 것 같지만 그저 따라지라구요.
그 조수 녀석이 '뭐요? 뭐요?' 하길래 '운전수가 운전수 사정을 알아줘야지' 하면서 좀 끌어 달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뭐 밧줄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할수없이 그 차에 있던 약 한 발쯤 되는 와이어를 가지고, 대라 대라 해서 앞차 꽁무니에 바짝 대 가지고 걸어서 '잡아 끌어라? 했는데, 이놈의 차가, 크라운 차를 타고 갔는데, 이 차하고 트럭하고 키 차이가 많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앞 차는 빨리가고 뒷차는 안 가려고 하니까 이 차 앞 대가리가 휙 들리는 거예요.
이렇게 될 때…. 선생님은 차도 사랑한다구요. 그렇지만 '아이고 이놈의 차야! 우리 차가 고장 난다' 그런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구요. '야 잘 들렸다, 불거지려면 불거져라' 이거예요. 불거지든 뭐하든 이 길을 넘어 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이것이 거꾸로 들려 가지고…. 또, 그 운전수가 걸작이라구요. 차만 강을 딱 건네 주었으니 우리는 거기서 내려 가지고 걸어서 물을 건너야 했어요. 춥기는 하지요. 산골 물이라 참 찹디다. 어머니는 그러잖아도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보들보들 떨고 있는데 그녀석이 서긴 뭘 서요. 아주머니고 무엇이고 눈치 코치도 없이 차를 꽁무니에 연결해 가지고 왱 하더니 저만큼 자기 편한 데까지 가는 거예요. 그렇다고 '야! 이녀석아' 하고 욕할 수 없거든요. 오히려 '야! 그 녀석, 멋지다. 젊은 놈 기질 한번 써 먹을 만하다' 이러면서 어정어정 맨발로 한 200미터 정도를 걸어간 거예요. 차에는 어지간히 물이 차 가지고 난장판이 벌어진 거라구요.
그런 판국에서는 별수없다는 거예요. 처지고 형편이고 뭐 할수없다구요. 그런 때는 상감마마라도 거지노릇을 할 줄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결국 문제는 그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게 문제인 거예요. 어떻게 가느냐 하는 문제, 안 가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뜻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도.
통일교회 문선생이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별의별 놀음 다해 봤습니다. 내가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노동판에 가서 노동도 하고, 몇 해 동안 목수 일도 해봤습니다. 벽돌 쌓는 것도 알고, 굴뚝 쌓는 것도 알고, 온돌 방 놓는 것도 다 안다구요. 남자로 생겨나 가지고 여자 하나 데리고 살더라도 맨손 들고 어디 가서 집을 짓고 살아야지요. 옛날 아담 해와보다 나아야지요. 그렇잖아요? 아브라함보다 나아야지요. 노아보다….
노아는 방주를 120년 걸려서 지었지만 나 같으면 120년 안 걸린다구요. 그래 가지고 만일 하나님이 다시 지으라고 하면, 하나님한테 '왜 그러시오? 당신이 지으라고 한 것보다 몇 배 훌륭하게 지었는데 왜 집을 또 지으라고 하시오?라고 참소라도 할 수 있다구요. 그런데 노아가 그저 꾸물 꾸물대다 보니 120년씩이나 걸렸을 거라구요. 안 그래요? 그런 방안도 있다구요. 그런 길이 있을 수 있다구요.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다 시켜 볼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렇게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될 것이다' 라고 머리에 생각하는 것이 있는 거라구요. 내가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전부 다 시켜볼 겁니다. 지금까진 낙방이라구요, 낙방. 자, 한국인들은 전부 다 낙방이다 할 때는, 다음에는 어느 나라 사람에게 시키느냐? 일본 사람들을 데려다가 시킬 것입니다. 그래 일본 사람이 중간쯤했다 할 때는…. 낙방보다 조금 낫다구요. 일본 사람이 중간쯤 가다가 후퇴하면, 그 다음에는 미국 사람을 데려다가 시킬 것입니다. 여기 미국인들이 있지만, 미국인이 약 7부능선쯤 가다가 낙방이다 할 때는, 독일인을 데려다가 시킬 것입니다. 독일인을 데려다가 '이놈의 자식들 해라' 그래 가지고 독일인이 고개를 넘어서 완성했다 할 때는, 독일인이 동정만 하게 되면 타락한 미국인도, 실패한 미국인도 살 수 있습니다. 또, 미국인이 독일인에게 '여보 여보 저 불쌍한 일본인을 도와 주소' 그래 가지고 합동해 가지고 실패한 일본 사람을 도와주게 되면 일본 사람이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또, 일본인 미국인 독일인이 합해 가지고 '저것 불쌍한 한국인, 그래도 한다고 하다가 저렇게 병신이 되고 등이 구부러졌으니 도와줍시다' 하고 동정하게 되면 한국인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로 말미암아 살아나느냐 하면, 선생님으로 말미암아 살아 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절대 못 살려줍니다. 하나님도 절대 못 살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살려주느냐? 이긴 녀석들, 이긴 패가 살려 주는 겁니다. 그들이 '아버지, 저희들에게 줄 상급을 대신 그들에게 주소서. '저희들 대신 그들에게 주소서' 하면, 하나님이 뭐야? 그래? 왜?' 할 때 '아, 옛날에 그들이 이러이러하지 않았습니까? 탕감복귀역사는 조건 역사 아니오? 그들의 기반이 없이…. 소생 없는 장성 없고, 장성 없는 완성이 없지 않습니까? 완성은 장성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저희의 승리는 장성을 이어받아야 했기 때문에 나와 관계가 없지 않지 않습니까? 라고 할 때, 하나님도 '예이' 하신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다구요.
보라구요. 복귀섭리역사를 두고 볼 때 한 사람에게 두 번씩 역사하는 법은 없지만. 그 사람 대신 대를 이어 가지고 승리한 사람이 나와서 '저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하게 될 때, 구해 줄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아담이 실패했지만, 아담이 실패한 것을 성사하게 될 때, '아담 입장에 서서 대신 승리한 것이니 제가 승리한 것을 공인하시거든 아담도 승리한 것으로 공인해 주소서. 만일 그것이 안 되거든 내 승리를 아담에게 넘겨 주소서' 라고 하게 되면, 후아담 예수로 말미암아 아담의 실수는 용서될 수 있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래 통일교인들을 통해서 내가 지금까지 전국활동을 해 나오는데, 승리적 성사냐, 낙망적 성사냐? 승리적 성사가 못 되거든 낙망적 성사라도 해야 되겠습니다. 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한국 통일교회 교인들을 시켜 가지고 안 되면 일본 통일교인들을 투입해서 할 것입니다. 여기 일본 사람 많습니다. 두고 보라구요. 하나 안 하나. 그때는 한국 식구들은 썩은 무우 대가리예요. 그러니 '뽑아 버려라. 네 자리 치워 버려라' 하는 거예요. 뜻은 망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안 되거들랑 그 다음에는 미국 사람들을 데려다가 시킬 것입니다. 그래도 안 되면, 독일 사람들을 데려다가 시킬 것입니다.
그러려면 나는 거기에 대한 준비를 해야 되겠다 이겁니다. 자, 나쁜 생각이예요. 좋은 생각이예요? 우리 여자들 대답해 봐요. 좋은 생각이예요, 나쁜 생각이예요?「좋은 생각입니다」 나쁜 생각이지요? 할 수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아니면 할수없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할 수 없어서…. 왜? 눈이 없어서? 머리가 없어서? 몸뚱이가 없어서?
못났기 때문에, 부족하기 때문에, 부족해도 좋다는 거라구요. 그런 생각을 이제 몇 번만 더 해보자 하는 것이 1974년까지의 선생님의 생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아십시오. 알겠어요?
선생님 알았다고 자랑하지 말라구요. 선생님은 자신의 부모와 처자를 버린 사람입니다. 친척을 버린 사람입니다. 선생님의 사촌들이 지금 수택리 고장에 와 있지만. 내가 그들을 데려 오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70년 대에 와 가지고야 내 곁에 오는 것을 허락했어요. 못 온다, 절대로 못 온다고…. 그것은 때가 그렇게 되어 있었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자기의 무슨 패들을 끌고 다니는 그런 것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또, 하늘의 뜻이 그렇잖아요? 자기 집을 희생시켜 가지고 남의 집을 구해 주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는 거예요? 아벨을 희생시켜서 가인을 구하고, 원수의 자식을 구하기 위해 자기 아들딸을 제물삼으라는 거라구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보라구요. 지금 기성교회 교인들한테 욕 먹고 있지요? 이런 것을 볼 때, 통일교회 문선생님은 뼈다귀도 없는 사나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사나이가 아닙니다. 몽땅 통째로 삼키려니….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 표본 알지요. 꿩 같은 것을 표본 하지요? 표본 하려면 다리가 부러져서 되겠어요? 내장은 없더라도 외형만은 다 갖추어야 된다구요. 내장을 다 긁어 빼 버리고 껍데기만 갖다 씌워서 속을 대신 채워 가지고 표본을 만들잖아요? 안 그래요? 주둥이 하나라도 꺾어지면 안 되는 거라구요. 날갯죽지 하나라도 꺾어지면 안 되는 거라구요. 표본을 만들려면 모든 것이 성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성교회는 망하지 말고 표본이 되어야 됩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한 표본을 만들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 죽지 말라는 거예요. 아무개 아무개 목사는 죽어서는 안 된다구요. 통일교회를 그렇게 반대하던 아무개 목사는 죽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은 목사들은 반대 안 해도 죽는다구요.
표본을 만들어야 됩니다. 산 교재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겁니다. 삼천만 앞에 자기 입으로 증거할 수 있는 교재를 만들어야 됩니다. 산 교재가 필요하다구요. 기성교회 목사들이 기분 나쁘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부 다 바보 뭉치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무골충이지. 저 사람이 무슨 감정이 있나' 하면서 별의별 욕을 다 하더라도 더 하라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렇게 만만하고 나긋나긋한 사람이 아닙니다. 지독한 사람이라구요. 그렇지만 잘못했다간 천도를 망치겠기 때문에 못난 놀음을 하는 거라구요. 병신 놀음을 하는 거라구요. 여러분 대원군 알지요? '이웃집 개'라는 소문을 듣고, 별의별 소문을 듣더라도 '음, 나는 갈 길이 바쁘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너 빨리 떠오르는구나. 고맙다' 저녁이 되어 해가 지면 '빨리 지는구나. 고맙다' 그러면서 싸워 나온거라구요.
반대받는 길손으로서 세계적인 발판을 닦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악착같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내가 아무개 목사 이상 해 가지고 내 왼발로 눌러 놓기 전에는 내가 죽을 수 없다. 아무개 교회에서 만들어 놓은 대학 이상 가는 대학을 만들어 놓지 않고는 죽을 수 없다' 지금 그러고 있다구요.
그런데 이것들을 보게 되면 전부 다 기가 막힌 것들이 많다구요. 서릿발아 내려와라, 찬 바람아 불어 와라, 한번 크게 뒤집어져라 이겁니다. 그렇게 되면 몇 마리가 남겠느냐? 큰 놈 작은 놈 전부 다 사방으로 굴러 떨어지고….
이번 홍수 때…. 하, 그런 것이 또 생각난다구요. 이런 얘기…. 사실은 내가 지금 갈 길이 바쁘다구요. 대구에 가서 예배를 보고 해인사까지 가야 할 텐데….
하여튼 지난달 19일인가요? 한참 서울이 물에 잠긴다고 야단하고 있는데 내가 청평 수련소에 있었다구요. 우리 청평 수편소가 참으로 위험한 곳입니다. 북쪽에서 떠 내려온 나무는 전부 다 우리 수련소 앞에 와서 한바퀴 빙 돌면서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인사하고 내려가게 되어 있다 구요. (웃음) 참 재미있어요, 가만히 있어 보니까. 큰나무가 떠내려 오면 저리로 가겠거니 하고 있으면, 웬걸 넘실넘실 수련소 앞에 쓱 와서 한바퀴 빙 돌면서 인사하고 가더라구요.
그것이 좋다는 게 아니라구요. 나쁘다면 나쁜 거라구요. 인사받는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인사받는 것 때문에 죽을 지경이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인사받는 것을 좋아하는 줄 알지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신세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구요.
아. 집들이 떠 내려오고 나무들이 떠 내려와 가지고 수련소 앞에 와서 한바퀴 빙 돌고 가는데, 참 재미있어요. 거기서 인사하고는 그 다음에는 들어가는 거라구요. 어디로? 물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 밑에서 소용돌이를 치니까 집이 들어가고, 나무가 들어가고 소리 없이 쑤우우욱 들어가는 거라구요. 꾸물꾸물 들어가 가지고 어디가서 나오느냐 하면, 몇백 미터 앞에 가서 머리를 쑥 내밀고 나오는 거예요.
바로 그날이라구요. '예이, 이럴 때는 모험도 해야 되는 것이다 해 가지고…. 그 다음날이 주일이고, 주일이기 때문에 내가 일본 식구들을 만나자고 해 가지고…. 이번에 일본 식구들이 40여 명 왔어요. 그래 가지고 근 열흘 동안 참 고생하고…. 선생님 한번 만나는 것이 일대 소원이라서, 여기에 온 거라구요. 달리 임자네들 상통이 보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구요. 결국 못생긴 문선생님 얼굴 한번 보겠다고 멀리 천리 길을 찾아온 손님이라구요.
그런데 주일이 돼 가지고 갈 시간이 딱 되었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기가 막히는 거예요. 가기는 가야 할 텐데 길은 딱 막혔지요. 할 수 없이 포기를 했습니다. 갈 길이 막혔으니 할 수 있어요? 그러다가 '에라, 가자!'해 가지고 우리 큰딸하고 효진이를 데리고 '가자' 이래 가지고 그 물 내려오는 데를 건너가는 거예요. 그 물이 참 무서운 것입니다. 물 무서운 것을 내가 잘 알아요. 옛날에 물놀이도 참 많이 했다구요. 오리 새끼 놀이도 많이 했고 뱀장어 새끼 놀이도 많이 해봤다구요. 그래서 잘 안다구요.
그럴 때는 날쌔게, 우물우물하는 것이 아니고 벼락같이…. 누구 말마따나 번개불에 콩 볶아 먹는 식으로, 빈대떡 구워 먹는 식으로 후닥닥 해치워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배에 다 태웠습니다. 그런 때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물의 주류를 건너가지고 가야 합니다. 이래 가지고 건너가는데, 오만가지 검부러기들이 내려가는 주류를 지나가야 하는 거예요. 지나가다가 스크루에 조그만 쫄대만 하나 걸려도 그때는 볼장 다 본다는 겁니다. 모터만 스톱 하는 날에는 뭐 영계로 행차하는 거지요. 영계에서 출동명령이 내려오는 거라구요. 할수없다구요.
아뭏든 가는데, 전속력을 다 내서 냅다 빼는데 배 후미가 진동이 심했어요. 스크루는 돌지만 물이 세게 치니까 이렇게 이렇게 흔들릴 수밖에요. 이래 가지고 근근이 지금의 레이크 파크까지 거의 다 갔다구요. 거기는 통길이라 내려가다가는 안 되겠거든요. 그런데 거기에서 모터가 후루룩 하면서 멈춰 버렸어요.
상태를 봐 가지고 멈추더라도 엔진이 꺼지지 않게끔 하는 것을 운전수는 압니다. 이래 가지고 그것을 그냥 지내가려고 쑥 들어서니 안 되겠더라구요. 그래서 배를 어떤 별장에 갖다 대니까 그 별장에 있던 사람들이 오늘 같은 날 물 무서운 줄 모른다구, 죽을 때 뭐 인사하고 죽는 것이 아니라구, 어쩌려고 이랬느냐고,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눈을 흘기며 세상에 어쩌려고 이랬느냐고 하면서 반욕 겸 못난 사람 취급을 하면서 한바탕 들입다 퍼붓더라구요. 그래서 '예, 고맙습니다. 그렇지요' 그랬다구요.
그래도 자기 죽을 것을 염려해 주고 이런 것을 볼 때 그때는 아무리 책망조로 얘기해도 고마운 거라구요. 그렇지요? 안 그래요? 만일 '예이 이 녀석아, 내가 너만큼 몰라서 이런 놀음 하는 것이 아니야'라고 하게 된다면 큰일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고맙습니다' 한 거라구요. 여러분이 생각해 봐도 그렇잖아요? 그럴 때는 그러한 모험도 해야 된다구요. 나는 그런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보라구요, 우리 애기들 노는 것을 보더라도 말이예요. 그저 올라가는 거예요. 내려올 것은 생각지도 않고 그저 올라가는 거예요. 이불을 쌓아 왔으면 그 꼭대기에 올라 앉아 가지고 '나 봐? 이래야 직성이 풀린다는 거예요. 옛날에 내가 그랬어요. 올라가게 되면 맨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올라가서 저 소나무 종대를 꺾고 만다 하면 올라가서 꺾고야 마는 거라구요. 아무리 큰 나무도 올라 다니고….
어떤 때는 우리 둥구나무에 말이예요. 까치가 집을 지어 왔어요. 그래서 '저놈의 까치가 저 산에서 여기까지 날아오기 전에 내가 먼저 까치 집까지 올라가야 되겠다'고 정해 놓고 그것을 하는 거예요. 매일같이 밥 먹고는 그것을 하는 거라구요. 그래 어머니께서는 ' 저 녀석이 죽으려고 밥만 먹으면 뛰쳐 나가지' 하시는 거예요. 까치만 깍깍 하면 뛰쳐 나가는 거라구요. 나가서 아무리 발발발 올라가도 날아오는 까치를 이길 수가 있어요? 한 달, 두 달, 반 년 하니까 '후훅' 원숭이같이 되더라구요. 이래 가지고 그 까치를 이기고 '그러면 그렇지' 하고 나서야 까치가 새끼를 어떻게 치고, 둥지가 어떻게 생겼나를 봤어요.
선생님 성격이 그런 사람이라구. 그만하면 어지간한 사람 아니예요? 선생님이 못나 가지고 이런 놀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렇게 지독한 사람이라구요. 잘 만났다면 잘 만났고, 못 만났다면 못 만났구요. 여러분이 팔자 사나운 남자 아니면 팔자 사나운 여자들이라구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등살에 죽든가 살든가, 망하든가 흥하든가, 국물도 없이 깨깨 망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래도 등이 두드러지고 뼈다귀가 굵게끔 큰소리할 수 있게끔 흥하든가 둘 중의 하나가 되게 되어 있다구요. 알겠어요? 이래도 망하고 저래도 망하는 겁니다. 지금 그렇다구요. 아무리 자랑하더라도 결국에 가 가지고 승리하지 못하면 망하는 거라구요. 최후의 목적은 승리하는 거예요. 또, 하나님의 복귀섭리도 그렇지요? 최후의 승리를 바라보고 나오지요? 그렇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세계정세를 보더라도 그런 때에 왔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단거리의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또, 최후의 격전을 해 가지고 한 번에 싸워 넘겨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단결해야 되겠습니다. 단결해야 되겠어요. 자, 단결돼 있어요, 안 돼 있어요? 단결하려면 누구를 중심삼고 단결해야 돼요? 대답해 봐요. 누구를 중심삼아야 돼요? 임자네들 중심삼고 단결해 가지고 될 것 같애요? 까놓고 얘기하자구요. 최재만이 중심삼고 단결해서 될 것 같아요? 황충운이 중심삼고 단결해서 될 것 같아요? 그 동등한 동창생 중심삼고 단결하면 좋을 것 같은데, 나보다 둥글둥글하게 얼굴도 잘 생겼는데…. 누구를 중심삼고 단결해야 되겠어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단결해야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보여요? 그러니 싫든 좋든 매일같이 단에 나서면 여러분 고생시키려고 그렇게 그저 입이 재재해 가지고 지껄이는 여기 이 사람밖에 없지 않느냐 이겁니다. 잘났든 못났든 이왕 만난 인연인데 어떻게 하겠느냐 말이예요. 죽이지 않으면 살리기라도 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안 그래요? 고생이 싫거든 통일교회 문선생이 자기보다 먼저 죽든가,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먼저 죽든가 매듭을 봐야 될 판국이라구요. 그렇잖아요? 마음이 맞지 않는데 어떻게 같이 살아요? 안 그래요? 그러니 자기가 먼저 죽든가, 통일교회 문선생이 죽든가 둘 중의 하나로 판결을 봐야 된다구요. 안 그래요? 그런데 죽는 데는 싸움을 하다가 죽으면 안 된다구요. 그것은 둘 다 망하는 길이니까, 할수없이 서로 위하고 죽기내기 하자 이거예요, 죽기내기. 서로 위하면서….
그래서, 내가 어저께도 그런 거라구요. 설악산 울산봉인지 무엇인지 하는 데를 올라가는데, 그게 몇백 층계라든가? 9월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산후증이 있어 가지고 다리도 아프고 몸도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구요. 그렇지만 살랑살랑 달래 가지고, 내가 든든한 지팡이가 되어 줄 테니, 업고 올라갈 테니 해 가지고 구미가 돌게끔 살랑살랑 달래 가지고, 유인하다시피 해 가지고 어머니를 데리고 올라갔다구요. 아, 이거 올라 가는데,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선생님 꽁무니를 잡고 늘어지는데 할 수 있어요? 할 수 없이 맨 꼴래미로 올라가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올라갔는데, 거기가 설악산 820미터 고지라나요. 하여튼 올라가니. 기분이 좋거든요. 올라갈 때는 힘들지만 올라가면 사실 참 기분이 좋은 거라구요. 야, 설악산까지 왔다가 울산봉에 안 올라와 보고 가면 그것은 차라리 오지 않은 것만 못하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구요.
우리 통일교회 가는 길이 그렇다구요. 한 계단 한 계단 땀을 빠작빠작 흘리며 끌고 올라가야 된다는 겁니다. 혼자 가면 모르지만 데리고 가야 되겠기 때문에 힘이 든다는 거예요. '아이구 내려갈 때는 좀 쉽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예요. 앞이 확 트여 있으면 여자들은 현기증이 나기 쉽고 그렇게 되면 큰일나기 때문에, 앞에서 이렇게 떡 막아 줘야 된다구요. 그 놀음하면서 갔다왔다구요.
그걸 볼 때, 아무것도 모르고 갔다 온 사람은 그럭저럭 갔다 왔을는지 모르지만, 길잡이해서 누구를 데리고 다닌 사람은 편하지 않다구요. 그렇지요? 그리고 힘드는 일이 있으면 붙드는 것은 나 한 사람밖에 없다구요. 그 옆에 아무리 사람이 많다 하더라도 선생님을 붙들게 돼 있지요.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힘드는 일이 있으면 결국 누구를 붙드느냐? 여러분 아버지 어머니 붙들겠어요? 죽게 되면 아이쿠 선생님…. 이번에 순회하면서 보니, 통일교 믿다가 떨어진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가 움직이니까 다시 인연이 돼 가지고 하는 말이 내가 통일교회를 그만두고 싶어 그만둔 것이 아니라 너무나 힘들어서 그만둔 거라는 거예요. 또, 어떤 사람은 자기는 몸이 약한데 아무리 봐야, 통일교회 지구장 지역장을 하려면 몸이 튼튼해야 하고 죽을 각오를 해야 할 텐데, 이런 몸을 가지고는 한두 달도 못 가서 죽을 것 같으니까 차라리 안 가는 것이 낫겠다고 해서 떨어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 멋대로 장가가 가지고 살다가 이번 부흥회 때, 순회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는 거예요. 이런 사람도 통일 교회에서 받아 줄 수 있겠느냐구요. 받아 주지요. 수속은 할 수 있다구요. 다만 수속절차가 좀 복잡할 뿐이지, 받아 주는 거라구요.
자,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결국 통일교회 문선생을 붙들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별수없다구요 죽을 자리에 들어가는 그 길밖에 없다구요. 그러니까 책임진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라구요.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보라구요. 막막한 이 세상에서, 별의별 변동이 벌어져 가지고 헐레벌떡 들어가 가지고는 어떻게 빠져 나갈 줄도 모를 이 판국에서 이런 거대한 운동을 하려면 자신의 방향을 몰라 가지고 되겠어요.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떻게 운동을 할 것이냐? 나한테 선두에서 인도하라고 하면 인도하지. 세계가 전부 통일교회를 따라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지, 하지!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일본 사람들 대해서 '일본 너희들은 희생해야 되는 거야' 합니다. 지금 일본의 정세로 보면 반대라구요, 반대. '죽을 줄 모르고 이게 뭐야? 에이 이 녀석들아, 말 노릇 하라' 이겁니다.
복귀역사란 설명해 주고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해 놓고, 승리해 놓고 수습하게 돼 있는 겁니다. 설명을 해주고 갈 것 같으면 성경 신구약 66권이 필요 없다구요. 열 장이면 다 기록해요, 열 장. 알겠어요? 66권이 뭐가 필요해요? 시시하다는 거예요. 열 장도 필요 없어요. 석 장이면 전부 기록한다는 거예요.
복귀역사는 승리해 놓고 유언으로 설명해 주게 되어 있지 설명해 주고 가게 되어 있지 않다구요. 그러니까 반대 놀음을 하라 이거예요. 선생님 말을 듣고 가 보면, 그것이 안 될 것 같은데 된다구요. 그렇게 된다구요. 그런 데에 재미를 보는 것이 통일교회 무리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결심을 해야 됩니다.
내가 미국에 갔다 돌아오다가 일본을 경유해 가지고, 일본 식구 전체 요원을 빼서 6백 명 정도 동원해 가지고 경제운동을 시켜 놓고, 그 다음엔 리틀엔젤스 공연을 해야 한다고 명령했습니다. 일본 예술의 역사에 없던 기록을 내야 된다는 거예요, 기록. 통일교회는 기록을 안 내면 성미에 맞지 않는다구요. 그렇잖아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런 사람이라구요. 내가 손댔다 하면 죽든가 아니면 기록을 깨뜨리든가 둘 중의 하나는 하게 되어 있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다는 거라구요.
우리 어린이 무용단이 춤을 춘다고 하니까 '아, 애비 에미들이 벌거벗고 춤을 추니 새끼들까지 춤을 춘다. 나와서 보라. 딱 맞았지. 거 틀림없다' 하며 기성교회 목사들이 나발을 불고…. 그러나 이제는 내가 어디를 가나 목사들이 따라 와 가지고, 미국에 갔다 와 가지고 이제는 리틀엔젤스가 한국의 자랑이라고 선전하는 거예요. 야야, 이 녀석아, 언제는 이래 놓고 뭐 일 없다고 선전이야…. 세상이 간사하고 목사도 간사하다는 거예요. 또, 우리 승공연합만 해도 얼마나 얼마나 천대를 받았습니까? 이제는 명실공히 아시아에서…. 자유중국 같은 나라는 이제는 승공연합한테 전부 달렸다구요. 이런 판국에….
한국에서는 통일교회를 지독하다고 하지요? 그래 여러분이 지독해요? 그렇게 지독해요? 지독한 통일교회하고 잘 맞지요? 거 누가 지독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독하다구요. 문선생,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독한 사람이라구요. 안 그래요? 임자네들이 지독해요? 나만큼 지독하지 못해요. 지독 사촌도 못 된다구요. 그저 허풍선이라구요. 허풍선이 같지만 지독한 문선생을 만났기 때문에 여러분도…. 이제는 돌아서면 망하고 가려면 싸움을 해야 됩니다. 돌아서면 원수에게 침해를 받고, 싸우면 거기서 이상향을 건국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길밖에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구, 내 아들딸 보아 주고…' 그럴 사이가 없다구요. 일방통행이예요, 일방통행. 금을 그어 놓았다구요. 끝까지 가 봐라, 가 봐라 이겁니다.
대한민국이, 북한 남한이 따라오지 못할 첨단을 돌파하라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공산당을 대해 가지고, 우리가 노동자 농민을 누구보다도 더 사랑했다고 선전할 수 있는 재료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공산당을 수습할 수 있는 재료가 있느냐? 앞으로 그런 때가 온다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승공활동을 해서 1500만 명에 대한 교육을 해왔습니다. 해왔다구요. 그렇게 통일교회가 각종 집회를 한다고 해 가지고 통일교회가 정당을 만들려고 저런다고 별의별 기관에서 외면을 하다가 이제 크게 들이닥쳤다 이겁니다. 우후죽순같이 일어나는 이때에 공산당 대해 가지고 반공 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변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 하나님만 불러 가지고 하나님이 좋아 하실 것 같아요? 말도 말라구요. 그렇다면 6천년 전에 다 이루어졌다구요. 통일교회가 가만히 있으면 기성교회 목사의 목이 공산당 앞에 떨어진다구요. 그런 녀석들은 망하는 거라구요.
여러분 길잡이 알아요, 길잡이? 길잡이가 국경선을 넘나들 때…. 여러분 삼팔선을 한번 넘어가 보라구요. 얼마나 마음 졸이는지 알아요? 그 사람이 애국자면 애국자 한 사람이 넘게 되면 삼천만의 모든 심정을 긁어 모을 수 있고, 혹은 천륜의 전체 섭리를 대해 대표적인 사람이면 천지의 모든 심정을 종합적으로 집중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금세기에 있어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는, 심정기관의 사명을 할 수 있는 그런 단체가 있다면 어떤 단체입니까? 정당입니까? 아닙니다. 종교 단체입니다. 종교는 하나님이 배경이 돼 가지고 역사적인 섭리의 뜻을 취해 나오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종교가 그걸 해야 됩니다. 그런데, 장로교회를 믿을 수 있어요? 감리교회를 믿을 수 있어요? 성결교회를 믿을 수 있어요? 불교를 믿을 수 있어요? 유교를 믿을 수 있어요?
다 헌신짝같이 닳아져 가지고 신지 못하고 이미 벗어서 버리게 되어 있다구요. 관심이라도 갖느냐 이겁니다. 그렇지만 우리 통일교회는 관심거리가 돼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알아요? 임자네들, 그걸 알아요?
여기 본부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요. 몰라요? 본부에서 지금 무슨 행사를 하고 있는지 다 알고나 있어? 이 못난 것들아. 본부에서는 세계적인 무슨 집회 무슨 집회를 한다 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꿈도 안 꾸고 쿨쿨 잠만 자고 있다구요. 국민은 나라가 비상시면…. 나라의 비상시기에 대비할 수 있는 행동을 하고 그 환경에 보조를 맞추어야 국민이지, 자기만이 돼지처럼 하루 세끼 먹고 잠만 자고 살면 다예요? 그건 망하는 거라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주목거리가 돼 있습니다. 알겠어요? 세계의 주목거리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떤 교수가 한국 교회에 와 가지고 말한 것을 내가 보고를 들었어요. 그 교수 말이 미국의 저명한 인사계에서는 미스터 문이 상당히 유명해졌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미국을 대놓고 어느때라도 망한다고 들이쏜 것입니다. 미국인들, 세계에서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그들 앞에 백주에 나타나 가지고 정당하게 단에서 공격한 거라구요. '미국은 망한다. 안 망하도록 내가 외치는 것이다. 공산당과 가까운 제도는 전부 다 뿌리 뽑아버릴 것이다'라고 한 거라구요.
그러면, 앞으로 우리가 세계를 요리해야 될 텐데, 여러분들 현재 살림살이를 붙들고 재산을 쌓아 놓고 세계를 요리한다면 세계가 요리되겠어요?
내가 어젯밤에도 그랬어요, 어젯밤에도. 순회사들 보고 그랬어요. '당당한 여류 웅변가가 되라' 이거예요. 한 사람이 수많은 나라의 말을 할 수 없다구요. 그렇지만 통역을 세워 가지고는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습니다. 36가정으로부터 72가정, 120가정, 430가정, 전부 다 뼈다귀도 없는 듯이 들이 틀어대는 거예요. 못 견디어 전부 다 도망 가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건 왜? 아까 말했듯이 제물, 죽을 자리에 나선 제물을 어떻게든 죽이지 않고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죽이지 않고 산 제물로 세계에 내세워 가지고, 그를 바라볼 때 죽은 제물보다도 더 감사하다고 하며 눈물 흘릴 수 있는 주인공이라면, 하나님은 그를 희생시키지 않고 세계를 구하려고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참한 자리에 서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비참하지 않은 자리에서 자비의 하나님의 권위를 스스로 갖추어 가지고?,만 천주 앞에 영광스러운 본연의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만 피조물을 사랑의 품에 품을 수 있는, 그런 희생 없는 구원을 바라실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사람들이 희생하지 않고 승리했다는 기준에 섬으로 말미암아 그를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도 피 흘리는 역사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귀신들을 고생시키려는 거라구요.
내가 축복해 준 가정의 자녀들이 누더기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잘 보고 있다구요. 선생님은 그렇게 무자비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정이 많은 사람이라구요. 옛날에 아무 상관도 없었던 한 여인이 통일교회를 찾아왔는데 그 여인이 꿰맨 치마를 입고 있었어요. 내가 그 꿰맨 치마를 바라보지 못한 사나이라구요.
그렇지만 축복가정의 자식들은 아직까지 한 번도 얼싸안아 주지 않았다구요.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선생님 자식이라구요. 지방에 가서 일반 가정의 자식들은 안아 주고 그랬지만, 축복가정의 자식들은, 무슨 3가정의 자식들 누구 손목 한 번 안 잡아 봤다구요. '내가 뜻을 이룰 때까지 안 안아 준다구요. 자랄 때까지, 학교 보낼 때까지 내 손으로 일전 한푼 안 주게 돼 있다구요.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사랑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구요.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제물된 가정으로서 넘어야 할 제물의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를 동정했다가는 제물을 못 만들어요. 애비가 못 하게 되면 자식의 배를 째서라도 제사를 드려야 되겠다는 겁니다. 그것이 뜻을 중심삼아 응당한 생각입니다. 그것이 싫거든 보따리를 싸 가지고 가라구요.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매정한 길이라구요.
내가 지금 축복가정들을 전부 다 거지떼같이 해 가지고 삼천리 반도에 내보내 놓고 있다구요. 매정하지만…. 그 어느 단체의 지도자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사람보다 내가 잘살게 해주어야 할 책임을 느끼고 있는 거라구요. 또 그렇게 만들 거라구요. 그렇게 할 거라구요.
하늘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협조해 주는 하늘인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못 하더라도 나는 한다구요. 앞으로 10년만 참아라 20년만 참아 봐라 이겁니다. 20년만 뜻을 위해 일편단심 참아 봐라. 야곱은 21년 노정을 가정복귀의 한 민족복귀의 한의 고개를 넘기 위해서 그런 길을 갔거늘, 우리는 세계적인 한의 고개를 넘기 위해 3차 7년노정을 못 넘어갈 것이냐? 그것은 말도 안 된다구요.
여러분은 여름이 되거든 솜옷을 입고, 겨울이 되거든 베옷을 입고 탕감해야 될 사명을 짊어진 통일교회 교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과 땅이, 혹은 하나님과 역사적인 선지선열들이 우리 통일교회의 움직임을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목의 주인공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단체로서의 주인공의 입장에 설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가 타락하는 그날, 예수가 십자가에 운명하는 그날,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며 한탄하는 최후의 경각, 얼굴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숨막힌 그 시간도 넘고 나와야 했던 기막힌 사정을 그 누가 알았겠느냐? 예수도 모르는 심정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그 말에도 버릴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심정을, 그 이상의 애달픈 사연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모른다 하는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는 아버지의 사정을 모르는 예수는 있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 그 누가 있었느냐? 하나님 자신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위해서 가야 되겠습니다. 그 길을 위해서 우리는 돌진해야 되겠습니다. 거리에서 객사를 하더라도, 수많은 친구가 비소하더라 도, 조소를 하더라도 당당한 사나이로서 가야 되겠습니다. 당당한 권위와 모습을 가지고 가야 되겠습니다. 지쳐 쓰러지는 국가의 비운을 바라보게 될 때, 나라는 망하더라도 뜻을 품은 애국자는 남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지도하던 모세, 60만 대군을 지도하던 모세 자신이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 대군이 망하더라도 이어받을 수 있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독수리의 밥으로 끝났을 것이 아니냐. 그렇지만 인계받을 수 있는, 하늘의 정기를 따라 나온 여호수아와 갈렙이 있었기 때문에, 모세는 죽더라도 2세에게 바톤을 넘겨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있었기 때문에, 첫번 이스라엘은 망하더라도 다음 번 이스라엘은 여호수아로 말미암아 2대를 거친 입장에서 이스라엘 복지 건국의 한 날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정성을 다하지 못한 신앙노정에 있어서 탄식을 하거들랑, 지금도 생명이 끊기지 않았거들랑 최후의 숨지는 그 순간에 아버지 앞에 '아바 아버지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기도보다도 '아바 아버지여,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나이까'라는 말이라도 남기고 죽으면 여러분의 무덤은 탄식의 무덤이 안 될 것입니다.
예수는 밤이나 낮이나 민족과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은 날이 없었기에 버리는 자리에서 그것을 통고할 수 있었지만, 뜻을 대하여 아무것도 행함이 없는 나 자신은 죽음을 대해 가지고 '아버지여, 뜻과 더불어 죽을 수 있는 영광을 감사하나이다'라고 한다면 그대로 그의 무덤은 소망의 무덤이 될 것이 아니겠느냐 이겁니다.
한 번 이 세상에 왔다가 한 번 가는 것은 당연지사,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공식적인 원칙이 아니냐. 죽는다는 자연적인 형법에 의해 가지고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같은 운명길을 가는 것이 인생길이 아니냐. 시간은 통고받지 않았지만 죽게 마련이라구요.
그러면 죽은 후에 그 무덤을 누구를 위해서 남길 것이냐? 남한을 위해서 남기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남한은 남한대로 지탱할 수 없고, 북한은 북한대로 지탱할 수 없는 입장이 되는 것보다도, 소망의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객사의 무덤이라도 남기게 되면, 그 무덤엔 꽃이필 날이 올 것입니다. 아무리 북망산천에 홀로 외로운 무덤을 남기더라도 거기서 애국정기가 흘러 나오게 되면 그 산천을 찾아드는 길상객이 생겨 가지고 그 길은 대로가 될 것이고, 그 행로를 더듬으면서 그의 죽음길을 추모하며 지금까지의 자신의 생애노정을 반성하면서 그 나라의 소망의 뜻을 이어받고자 하는 애국투사들의 반열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행로가 줄을 지을 것이 아니냐.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왕지사 가는 몸, 젊은 청춘, 꽃다운 청춘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라, 우리는 그러한 꽃다운 청춘을 지으셔 가지고 소망을 품은 하나님의 이상적인 청춘을 다 유린한 배반자요, 배역자의 후계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핏줄을 이어받은 원통함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죽더라도 뜻을 살려 놓고 죽어야 될 것이 아니냐. 통일교회 문선생은 망하더라도 통일교회 문선생을 지도하시던 하나님의 뜻을 남겨야 될 것이 아니냐.
앞에서 얘기했지만. 선생님은 설악산에 갔다가 늦게 돌아와 가지고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됩니다. 책임자는 그런 것입니다. 명령받지 않은 죄인의 심정을 품고 사는 사람이 책임자입니다. 밥을 먹고 배가 부르거든 회개해야 됩니다. 잠을 실컷 잤으면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회개 해야 됩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내 일생에 복이 생겨나지 않더라도 좋다는 거라구요. 선생님은 '하늘이여, 이것만은 이루어 주시옵소서' 그런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 기도가 천년 만년 아버지의 심장복판까지 꿰어 갈 수 있는 기도가 남아지는 한, 이것을 이루어 주셔야 할 아버지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천년 만년 그것이 이루어지는 그 한날을 바라는 마음을 품고 나가는 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효의 도리, 충의 도리를 가르쳐 주셨지만 내가 하늘 앞에 미칠 수 있는 효의 도리 충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아들이 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못됐습니다.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세계에서, 타락이라는 인식관념도 느끼지 않는 자유스러운 입장에서, 인간들을 대해 뼛골로부터 흘러 나오는 사랑의 마음에 취해 가지고 '내 아들아, 내 딸아' 하면서 사랑할 수 있는, '내 손자야, 내 백성아, 내 나라야' 하면서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한 하늘이 된 것이 얼마나 원통하냐 이겁니다. 그런 자리에 계신 아버지를 모시지 못하고, 그런 자리에 계신 군왕으로서의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 것이 얼마나 부족하냐는 겁니다.
통일교회 교인들과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효자의 이름은 가질 수 있으되, 충신의 이름은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냐. 나라가 없어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없고, 하나님의 백성이 없고, 민족이 없지 않느냐 이겁니다. 하늘 민족이 없지 않느냐! 그 나라와 그 민족을 위해서, 민족을 재편성하기 위해서 초민족적 감정을 가지고, 하늘의 사랑을 붙들고 나온 것이 심정의 세계관을 논하는 통일사상이 아니냐.
여러분, 요새 산에 오르면…. 사람의 육신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원칙에 지배를 받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산을 넘어도 피곤한 줄 모르던 그런 때가 그리워지더라 이겁니다. 혈기왕성해 가지고 한 번 내가 들이치면 천하가 뚫려 나갈 것 같은 의분심과 용기에 불타던 그때가 그립다 이겁니다. 이제 꽃다운 청춘시대를 다 지내고 쉰 고개를 넘어. 인생 내리받 이룰 향하는 이런 때에 있어서 다시 고개를 쳐 올라가는 기막힌 놀음을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결의하는 입장에 있는 그 자체가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젊은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여러분처럼 젊은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의분에 찬 사나이를 요구하십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이 세계 도상에서 하나님이 공산당을 바라보실 것이냐, 기성교회를 바라보실 것이냐, 민주세계를 바라보실 것이냐? 이제는 추풍낙엽과 같이 전부 다 만신창이가 돼 버렸습니다. 여기에 있어 그 나무는 비록 말랐고 잎이 떨어졌더라도 그 나무 줄거리에 남아진 하나의 새싹이 있거들랑 하나님은 거기에 제 2의 소망이라도 둘 것이 아니냐? 그런 입장에서 통일교회는 이 시대적인 사명을 짊어진 사명감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어서 속히, 그 줄기에. 그 뿌리에 생명을 붙여 가지고 사는 것보다도, 자주적인 생명의 부리를 박아 가지고 그 본체의 나무 보다도 더 싱싱할 수 있게끔 어떻게 키우느냐 하는 것이 오늘날 이 말단 세계의 종교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사정인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볼 때, 저 통일교회는 늠름하게 자라라. 최후의 주목의 주인공이 돼라' 하는 이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외치고 싶은 소원이요, 바라고 싶은 소원인 동시에, 통일교회 문선생의 소원은 다 덮어놓고라도,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이루기를 바라는 소원이 아닐 것이냐.
통일교회 교인들, 통일교회 단체를 대하여 6천년 해원성사의 뜻을 이루지 못한 하나님으로서 바라보시는, 직시하시는, '주목의 주인공이 되어 다오' 하는 그러한 숨은 소원이 없을소냐? 없을 수 없습니다. 있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의 사랑하는 아들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응당 그렇소. 그런 가정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응당 그렇소. 그런 민족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응당 그렇소, 나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응당 그렇소' 할 수 있는 세계가 되기를 바라는, 세계보다도 우위에 설 수 있는, 그 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무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응당 아버지의 소원이 아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천주주의 사상을 갖고 나온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역사적인 선조들의 해원성사뿐만 아니라 만물을 해방하기 위하여 나온 무리가 아니냐? 혁명가 중의 혁명가들이다 이거예요. 우리는 양세계를 일시에 혁명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 부분부분 따로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에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일시에 하는 데는 세계적 무대를 중심삼고 천주적 무대를 가려 놓고 해야 된다는 이 엄청난 사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의 총 주목의 대상이 아니겠느냐.
한 나라를 대표한 경기 선수들도 그 종목에 있어서 생명을 걸고, 쓰러질 때까지, 자기 숨이 막힐 때까지, 보이는 그 최후의 목적지를 향해서 마지막 일보까지 달려가는 것이 아니냐.
이런 것을 볼 때, 우리의 최후의 결승점이 어디냐? 결승선이 어디냐? 그것이 삼팔선입니다. 그것이 남북으로 갈라졌고 좌우로 갈라진 세계적인 정세가 아니더냐? 이것을 넘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부딪쳐 넘어가야 할 최후의 결승선입니다. 그것을 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도 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공산당 이상 돼야 되겠습니다. 그 어떤 종교도 따를 수 없는 그런 실적을 갖추어 놓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삼팔선을 넘으면서 하늘 앞에 결의하면서 기도하던 기준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내 고향의 부모 형제를 보지 못하고 이남 땅에 온 거라구요. 감옥의 철창문을 열고 나오는 그날 '어머니' 하고 부르며 달려가고 싶었고, 나를 위하여 희생한 형님을 찾아가서 만나고 싶었고, 희생한 형제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인간으로서, 동물이 아닌 이상 그 누구에게도 있을 수 있는 그 마음이지만 그 길을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틀 이내에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옛날에 인연되었던 사람들을 수습해 가지고 북을 등지고 남한 땅을 향하여 나올 때, '죽지 말고 다시 만날 수 있는 그날까지 참아 주소' 했는데, 이미 그 소원은 이루어질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하고 흘러 버린 하소연으로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미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갈 곳을 가셨으리라 보고 있습니다. 또, 우리 형제들도 많이 갈라지고, 또 갔으리라 보고 있는 겁니다. 내가 통일교회의 지도자로 되어 있고, 국제 승공연합의 창시자로 되어 있기 때문에 공산당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 아니냐. 즉, 말하자면 이남 부락의 대표자가 될 것이 아니냐.
6·25사변이 나기 전까지 우리 동네는 이남 부락으로 낙인이 찍혔던 동네였습니다. 이남 부락으로 끝까지 공산당과 투쟁한 가정들이었어요. 그러한 역사적 배후를 가진 집안이라구요. 내가 그 무덤을 안고라도 최후에 꽂아 놓아야 할 꽃 한 송이를 역사를 대신해 가지고 하늘의 울음과 더불어 꽂을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와야 되겠다 이거예요. 형제들이 그런 자리에 있으면 '내가 당신들을 살려 주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
사람을 시켜 다리 놔 가지고 데려올 수 있는 길이 있었지만, 하늘과 더불어 출발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만나고 찾는 것은 원리의 길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다 뒤로 하고 이남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이북에서 다 헤쳐 버리고, 이남에는 하나님과 맹세한 사람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남에 나와서 그 사람들을 만나 가지고 모든 것을 청산짓기 전에는 가정에 돌아가서 해결짓는 것은 원리의 길이 아니요, 하나님의 섭리의 길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런 돌고빗길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대해 가지고 뭐 선생님을 모시고 간다고…. 선생님이 거기에 가 봤자 나쁘다구요. 선생님을 위해서 선생님의 가정이 희생되고 선생님의 형제들이 희생됐다구요. 나를 위해 희생됐다구요. 나 하나 태어나기 위해서 수십년 동안 우리 집이 쑥대밭이 됐다구요. 별의별 풍파를 다 겪어 가지고 선생님아 태어났다구요. 그러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는 것을 내 눈으로 봤다구요. 내가 친히 거쳐왔기 때문에 잘 안다구요. 그렇게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찾은 무리가 여러분들입니다. 그런 여러분들을 내가 형님보다 더 사랑하고, 누이동생보다 더 사랑하고 누구보다 더 사랑한다는 마음을 주체삼아 가지고 나오고 있습니다. 사랑했다구요. 자식보다도 더 사랑했다구요.
선생님은 천도를 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통일교회를 통해 가지고 아들이 있기를 바라시고, 가정이 있기를 바라시고, 나라가 있기를 바라시고, 세계가 있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미달한 자신을 보게 될 때, 자랑할 수 있어요? 내 가는 길에 반대하겠으면 반대하고…. 어떤 손님이 동네에 가게 되면 동네 개가 짖기 마련이라구요. 반대의 함성이 세계에 떨칠 것입니다. 내가 일본에 가게 되면 일본 정부가 나를 싫어합니다. 미국에 가면 미국 정부가 나를 싫어합니다. 좋다구요. 영국에 가면 영국 정부가 싫어합니다. 독일에 가면 독일 정부가 싫어합니다. 좋다구요.
'너희들은 나를 싫어하지만 너희 국민 가운데는 너희들이 나를 싫어하는 이상 좋아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역사를 넘고, 세계를 넘어가게 될 때는 통일사상은 너희 국민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천지를 바라볼 때, 하나님이 전신경을 집중해 가지고 주목할 수 있는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는 어떤 종교냐? 가정이 있다면, 어떤 가정이냐? 개인이 있다면, 어떤 개인이냐?
여러분이, 축복가정들이 자기 아들딸을 위하여 기도하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망합니다. 통일교회 우리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으면 망하게 돼 있다구요.
어제 저녁에도 순회사들을 만나 가지고 열두 시 반이 되도록 쭉 보고를 받았습니다. 아마 그들은 한마디 한마디 자기 얘기를 하겠다고 다 그럴 거라구요. 그러면 나는 아무리 피곤해도 그들의 얘기를 들어 줄 책임이 있는 거라구요. 한 달 동안 피땀 흘려 가면서, 혹은 눈물길을 가려 가면서 걸어온 거친 역사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자세입니다.
밤을 새워 가지고라도 들어줄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남의 말을 잘 들어 줘야 되는 것입니다. 듣고파도 들어야 되고, 듣기 싫어도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사람들은 힘이 생기고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그것을 피곤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피곤하다구요. 피곤하다고 쉴 수 없는 길, 외롭다고 안 갈 수 없는 길, 기가 막히다고 책임 안 질 수 없는 길, 이것이 하나님의 사정이 아니냐. 이 모든 것을 훌훌 벗어 놓고 자유인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거예요. 자유인이 되었으면….
내 아들딸들과 더불어 누구 못지않게 만판 푸지게 먹고도 싶고, 놀고도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날을 못 가진 불쌍한 사나이라는 겁니다. 아들딸을 갖추어 놓고 천하에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다'고 자랑할 수 있는 살림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공적 생활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 그것을 볼 때, 자식들도 불쌍한 거라구요. 통일교회 축복받은 가정들의 자식들도 불쌍한 거라구요. 새벽 네 시부터 흔들어 깨우면 울고불고하다가 와 가지고 다섯 시 아침 경배 시간에 눈을 감고 맹세문 외우는 것을 볼 때 기가 막히다구요.
왜 남이 하지 않는 이런 놀음을 해야 되느냐? 왜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가야 되느냐? 그렇기 때문에 남과 다르지 않느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과 다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량이 더 나가는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왜 그런 생활을 하느냐? 하나님의 소원이 끝날에 그럴 수 있는 개인, 그럴 수 있는 단체, 민족을 대표하여 그렇게 움직이는 단체가 있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더냐? 그것이 하나님의 필생의 소원이 아니더냐?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우리 통일교회가 수는 적더라도 그럴 수 있는 이상의 자리로 끌고 가고 싶은, 하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원수 같은 말도 하고 이율배반되는 그런 일도 시키는 거예요. 그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 등쳐 먹고 혼자 잘 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마음은 꿈에도 없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하는 이 대한민국 백성 가운데, 이 민족 가운데 그럴 수 있는 하나의 종족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은 당신의 사연을 그 종족 앞에 털어 놓을 것이 아니냐. 또, 이 민족 가운데 그럴 수 있는 가정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은 그 가정을 중심삼고 자신의 사연을 털어 놓을 것이 아니냐. 그럴 수 있는 개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할진대. 하나님은 그 남자와 여자를 붙들고 자신의 사연을 털어 놓을 것이 아니냐. 너만은 아들의 위치, 딸의 위치를 가져 달라고 부탁할 것이 아니냐?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최후의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여러분을 붙잡고 통사정할 수 있는 통일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을 못살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게 원수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누구보다도 복받을 수 있는, 누구보다도 하늘 앞에 기억될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음은 그것을 알 것입니다.
이러한 길이 있기 때문에 끝날에는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네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젖 먹이는 여인은 화 있다' 는 말은,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 사랑을 대표한 사람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두고 대표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이걸 볼 때, 우리가 극복해야 되고, 부정해 넘어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늘은 성서를 통해서 그렇게 가르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여러분은 주목의 주인공들입니다. 보잘것없는 여러분 자신들이지만 여러분은 주목의 주인공들입니다. '비록 내 손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이 손길을 통해 가지고 세계를 향할 수 있는 길이 연결되어 있다. 내 모든 시선을 통해서 하나님의 시선이 연결되어 있다. 내 감정을 통해서 심정의 뿌리가 연결되어 있다. 내 가는 일생의 행로를 통해서는 하늘의 섭리의 방향이 달려 돌아간다. 내 오관을 통해서 느껴지는 감각, 감성이 있다 할진대 그 감성은 전부 하늘이 주목하는 주인공으로서 느끼는 감성이다'는 이런 자부심을 가져야 됩니다.
방대하고도 엄청난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그 누구도 신임할 수 없는 고독한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신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그 이상 바랄 것이 있느냐 이겁니다. 죽어도 좋다는 겁니다. 내 육신이 물이 되어 흘러간들 무슨 한이 있고, 가루가 되어 날아간들 무슨 한이 있느냐 이겁니다. 세상에는 개돼지처럼 죽어가는 무가치한 인생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개도 안 뜯어먹는 거라구요.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순간, 하늘이 그렇게 심각하게 주목하던 슬픈 날을 맞이한 것을 예수를 통하여 해원성사하려던, 슬픈 날의 한을 풀고 한의 한 곡절을 풀기 위해 그때에 책임지기를 바랐던 소원의 대상이 누구냐? 종교를 대표해서는 유대교요. 나라를 대표해서는 이스라엘 나라가 아니냐. 그 나라 전체를 대표해서는 제사장들이 아니냐. 그 주목의 주인공이 어떻게 했느냐? 그들이 반기를 들고 나서게 될 때, 하나님이 그 주목의 주인공을 믿고 보냈던 예수는 고독한 자리에 몰려나는 슬픔의 운명을 맞게 된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오늘날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반대하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비운의 역사노정을 걸어온 것이 아니냐. 대한민국이 반대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자체도 그러한 역사노정을 걸어오게 된 것이 아니냐. 보라구요. 2차 세계대전 때 폭탄 하나 안 떨어진 대한민국이 왜 쑥대밭이 돼 가지고 민족상잔이라는 이런 비참한 피의 대가를 치러야 되느냐? 남북이 엇갈린 이런 모든 사연들은 현실적으로 볼 때, 가인적 세계를 중심삼고 생겨났지만 통일교회에 책임이 있는 거라구요. 가인이 실수했다고 해서 그 실수를 가인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아벨이 그 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벨의 길입니다. 그것이 아벨의 전통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아벨의 역사를 이어받아야 되기 때문에, 그 책임을 우리가 져야 되는 것입니다. 고이 달갑게 받아라 이겁니다. 이것을 싫다고 하는 사람은 하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당신께서 고대하시던 참다운 아들, 창조본연의 진정한 아들은 어찌 되었느냐? 하나님의 제일의 창조목적은 무엇이냐? 상대를 찾는 것입니다. 혼자 있어 가지고는 기쁨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선생님이 혼자 이렇게 말을 하게 되면 미친 사람이 되지만 여러분이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창조주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해도 주체만 있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상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를 찾았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 상대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줬던 것이 돌아오는 데 있어서, 그냥 돌아오면 작은 것으로 끝날 것이지만, 사랑이라는 가중된 힘을 투입시켜 가지고 사랑을 중심삼고 돌려 받게 될 때, 하나님은 희생적인, 소모적인 창조를 했지만 영광을 느끼시게 되는 것이 아니냐. 결국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기 위한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냐? 하나님이 인간의 형상을 입기 위해서입니다. 창조목적이 그렇다구요. 무형의 하나님으로서 온 천주를 주관할 수 없기 때문에 아담의 형상을 입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영계에 가 보면 예수님밖에 안 보입니다. 예수는 완성한 아담격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그걸 느껴 볼 때. 그러한 자체, 모순 상충이 없이, 투쟁과는 격리된 환경에서 이것을 메워 가지고 상봉하겠다는, 그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자연적인 환경에서, 나면서부터 순리적인 입장에서 하늘의 사랑을 백 퍼센트 받을 수 있는, 그 태양빛을 전면적으로 받을 수 있는 본연의 아들의 자리에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아들딸이 되어, 그 사랑받는 아들딸로 가정이 이루어지고, 그 가정으로 말미암아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터전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통일교회는 자그마치 이러한 엄숙한 사명을 해결짓기 위해서 선두에 선 무리라는 것입니다. 이 선두라는 것은 개인적인 선두가 아니라 역사적인 선두요, 천주사적인 선두인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선 '나'라는 사람이 갈 때에는 세계가 주목하는 것입니다. 세계가 주목하니 땅에서도 주목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을 가진 사람은 세계가 공통적으로 주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자리까지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탕감의 탈을 벗어야 합니다. 탕감에는 개인탕감, 가정탕감. 종족탕감, 민족탕감, 국가탕감, 세계탕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가려 가야 할 운명길을 안 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류는 어디를 바라볼 것이냐? 하나님이 주목하는 주인공을 바라볼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목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나라를 바라볼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위해서 나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역사 이래에 비참한 것, 역사 이래에 고통스러운 것, 역사 이래에 극복하기 어려운 수난길을 극복하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울며불며 억지로 가서는 안 됩니다. 원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불평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만족해 하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보라구요, 하늘이 버려 두나. 절대로 안 버려 두는 거라구요. 감사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면서 나가 고생을 해 보라구요, 버려두나. 절대 망하지 않는 겁니다. 망하려고 하면 하늘이…. 망하려고 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언제 사람을 사랑해 봤습니까? 아벨이 형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인 형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진짜 사랑입니다. 아벨이 개인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천주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는 것입니다. 아벨의 역사는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종족적인 권내에 있어서. 씨족적인 권내에 있어서 민족적인 권내로 넘어가야 할 때에 왔습니다. 지금 때가 그런 때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1974년을 중심삼고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1974년까지예요. 이 3년 기간에 죽든가 살든가, 먹든가 먹히든가, 망하든가 흥하든가를 결정 봐야 되겠습니다.
하늘은 망할 수 없으며, 선생님이 가는 길과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만일에 한국에 대한 한계선에 가서, 끝에 가서 안 되는 날에는 한국을 버리고라도 세계를 개척해서 다시 구해 줄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사명시대는 끝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될 겁니다. 여러분 가정을 동원할 때 그 무슨 말인가 하고….
그러므로 3년, 이제 2년 3개월을 놓고 우리는 사생결단을 해야 되겠습니다. 거기에는 자식이든 무엇이든 전부 다 투입해 가지고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이 3년 기간은 특별히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이 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온 천지가 주목하는 그런 입장에 선 것을 생각해야 되겠어요.
여기에서 승리하는 날에는 적이 없지요? 이번 올림픽 대회 때 공산당들이 아무리 극성을 부렸어도 경쟁해 가지고 진 후에는 참소해요? 참소 못 하지요? 만일 경기에 맨 꼴래미 할 수 있는 한 나라라도 빼 놓고 했다면 참소하는 거라구요. '너는 일등 아니야, 일등 아니야. 우리하고 싸워야 돼'라고 참소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연장하는 거예요. 10년도 연장할 수 있고 20년도 연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통일교회를 걸고 맞부딪치자. 기성교회와 부딪치는 거라구요. 기성교회는 통일교회를 반대하다가 후퇴하지만 우리는 부딪쳐도 후퇴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성교회는 도망을 가든가 죽든가 믿든가 셋 중의 하나를 해야 합니다. 그때까지 가는 것입니다. 뭐 어영부영하게 안 되어 있다구요. 죽기 아니면 살기입니다. 둘 중의 하나뿐입니다. 결론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목하는 것은 최후의 결판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이래서, 승리하는 날에는 참소의 여건이 남아지는 그 세계를 봐야만 되는 것입니다. 공산세계도 그렇고 민주세계도 그렇고. 그러한 주체적인 세력이 이 땅 위에 어떤 종교적인 배경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사상체제와 세계적인 운동을 제시해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통일사상을 중심삼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어요?「예」
아브라함한테 교육받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을 교육해야 되겠습니다. 노아 할아버지를 교육해야 되겠습니다. 그렇잖아요? 술을 마시고 취해 가지고 벌거벗고 드러누워서 함의 실수의 역사를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승리하고 난 후에 주의해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물을 쪼개라는데 왜 안 쪼갰어요? 모세는 반석을 왜 두번 쳤어요? 세례 요한은 예수를 증거하고 왜 안 따라갔어요?
예수가 죽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구요. 죽지 않고 이 땅 위에서 뜻을 이루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예수가 죽었기 때문에 비운의 역사가 연장되어 가지고 숨가쁜 최후에 있어서 주목의 대상의 자리에 선 것이 무엇이라구요? 그런 곳이 어디라구요?「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
세계에 다른 단체가 있더라도 그 단체를 능가할 수 있는 결심과 단결을 해 가지고 그곳을 향하여 달려가게 되면, 그 단체가 10년 가다가 후퇴하게 될 때는 그 상속자는 그 자리에 못 나갔다 하더라도 그곳을 향하여 달려가는 단체가 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기성교회가 재림사상을 중심삼고 바톤을 이어받지 못하게 될 때, 우리 통일교회가 그들 이상 열심히 해 가지고 가게 되면 그 바톤을 이어받을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라는 거예요. 암만 반대해 보라구요. 만일 그것이 틀리게 되면 하나님 대해 하나님은 못난 하나님이라고 당장에 참소할 수 있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한국에 끌어올 수 있습니다. 안 오시겠다고 해도 끌어올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올 수가 없다구요. 예수님도 한국에 끌어올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하는 날에는 오시겠어요 안 오시겠어요?「오십니다」 할 수 있다 이거 예요. 그런 자신을 가지고 통일교회는 나가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의 가르침이 틀렸더라도 통일교회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이 세상에 어떠한 종교 단체보다도 더 열렬히 해 나가게 되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낙제광이 되더라도 여러분은 급제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이단인지 모르지만 여러분은 이단이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여러분이 부여받았습니다. 이것은 엄숙한 책임이라구요. 능동적인 책임이라구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책임이라구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돼야 하고, 딸이 돼야 하고, 백성이 돼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효자의 길과 충신의 길은 이미 정해져 있는 길인 것을 알고 이 길 앞에 생명을 다해서 세계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감당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하늘 부모의 주목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밖에 모릅니다.
이러한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고, 또 그러한 소명을 절감하며 가는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하늘의 명령에 여러분이 하나 되어 가지고 나가면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 여러분, 이 길을 갈래요 안 갈래요?「가겠습니다」 가겠다는 사람은 손들자구.
아버지, 비운의 역사의 걸음걸이를 덧없이 따라 나오던 행각의 노정이, 아버지여, 오늘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우리 목전에서 신음하고, 수라장이 되어 홍수의 소용돌이를 향하여 기울어져 가는 세계 정세를 바라보게 될 때, 하늘 높이, 바닷속 깊이 반석 위에 부리를 박고 부동한 하나의 철주가 있다 할진대 그 소용돌이는 도리어 구원의 방패가 될 수 있고 흘러가는 모든 물건들이 여기에 엉길 수밖에 없는 것이옵니다. 아버지, 그러한 개인을 찾아오시는 아버지의 간곡한 사정을 이제 알았습니다.
저희는 타락한 아담 해와 이상 심각해야 되겠습니다. 역대 우리 선조들이 심각했던 것 이상으로 심각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골고다에서 기도한,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기도보다도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지 않사옵니까'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세계를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심한 격전지를 향하여 출동하기를 하늘 앞에 호소할 수 있는 무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비참하고 불쌍한 통일교회의 소망이라 할진대, 이는 인간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편에 서 있는 무리가 기필코 되고야 만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과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회고해 보게 될 때, 역사는 무정하였습니다. 복귀섭리의 공식적 노정은 우리 눈앞에 스쳐 갔습니다. 개인적으로 핍박받던 그 서글픈 사정을 저는 보았고 느꼈습니다. 가정적으로 핍박받던 그 안타까운 사정을 제가 보았고 또 당해 왔습니다. 수많은 교파들이 반대하던 그 처량하고도 기가 막힌 사정을 저는 느껴 왔습니다. 나라 없는 예수의 사정을 제가 알 수 있었고, 교인 없는 교단 앞에 서야 하는 예수의 사정을 제가 알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그러므로 저희는 천만 죽음길이 있다 하더라도 죽을 수 없는길을 다짐한 그 시간서부터 지금까지 싸움의 길을 더듬어 나왔습니다. 지내고 보면 꿈과 같은 일, 그 무엇 하나 자랑할 것이 없지만, 통일교회는 명실공히 그늘 아래에 있는 교회가 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민족의 희망과 기대를 바라보고 학계에 있는 많은 유식자들은 통일교회만이라도 부패하지 말아 달라고 권고한다는 소식을 많이 듣고 있사옵니다. 뜻 있는 애국 사상가들이나 전통을 이어받겠다고 생애를 바쳐 충의 도리를 다짐하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기대할 것은 통일교회밖에 없다는 그런 성원의 말을 들을 적마다 무릎을 꿇고 밤을 새워 가면서….
아버지여, 이와 같은 날이 오기를 바라시던 당신 앞에 때가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저희는 내세워서 자랑하는 것보다도 더 큰 무대를 이어받아야 할 사명의 책임자로 서기 위한 엄숙한 염려의 마음이 가중되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여! 통일교회를 그 누구에게도 맡기지 마시옵소서. 이 자식도 책임질 수 없습니다. 당신께서 맡아 주시옵소서. 당신의 종이 되고 당신을 모실 수 있는 아들의 자리가 좋습니다. 권위의 자리를 원치 않는 것을 당신은 아시옵니다. 그런 자리에 서기를 바라고 있사오니 부디 맡아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당신 앞에 맡기기에 부족하고, 맡아 달라고 아뢰기에 황송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가 아니옵니까?
이것이 우리 선조들이 간 운명의 길이요, 최후의 통첩의 길이었던 것을 생각하게 길을 가려 주시옵고, 이들을 위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시면 이들이 바라는 그 환경을 넘어서서 나라를 취할 수 있는 이상의 마음을 갖게 될 때 찾아 주시옵소서. 이들을 고이고이 만대에 축복해 주고 싶으시면, 이들이 세계 만민 앞에 부끄럽지 않은 죽음길을 책임지겠다고 하는 권위를 가진 후에 축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이 스승의 간절한 소원인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이들의 갈 길을 책임져 주시옵소서.
저기는 스승도 없는 곳이옵니다. 당신의 사랑의 굶주림을 당하고 있는 메마른 무리들이옵니다. 사막에서는 오아시스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샘솟는 당신의 사랑이 필요한 무리들이옵니다.
당신이 주목하고 계시는 것을 알고 있는 저희들, 누추한 누더기 옷을 입은 보잘것없는 추태의 모습을 보실 때에 부디 보시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을 매일같이 느끼면서 허둥지둥 움직이는 무리라도 돼야 할 통일의 무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는 많은 소문이 있었습니다. 이 소문들이 당신의 영광의 흔적을 가릴까봐 염려되옵니다. 이 소문들이 당신의 아픈 마음을 도리어 격동시켜 가지고 과거의 어느누구보다도 우리를 더 사랑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결심하시게 하는 조건이 된다면. 얼마나 얼마나 황공스러운 은사이겠습니까?
참고 가고 말없이 맞고 가는, 당신의 입장을 방불하게 하는 무리가 아니고는 당신이 신뢰할 수 있는 무리가 없는 것을 알았기에 그러한 길을 이어받아 가고자 하는 이 무리들을, 아버지, 보호하시옵고,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2년 9월도 이미 기울어졌습니다. 이해의 마지막 석 달을 맞아, 가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이 저희 앞에 찾아오기 전에 저희는 결실이 되어 어떠한 한풍이 불어오더라도, 거기에서 생명을 잃어버리는 무가치한 씨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동삼삭을 극복하여 생명의 여력을 남겨 가지고 봄날이 찾아오거든 새로운 새싹을 돋우고 봄잔치를 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가진 무리가 여기에 남아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주목의 주인공이라는 엄청난 명사를 가지고 당신이 바라보시는 것을 시시각각 생활에서 느끼고, 환경을 더듬으며 싸워 나가는 겸손한 당신의 아들의 명분을 갖기에 부족함이 없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개인을 넘어 가정, 가정을 넘어 종족, 종족을 넘어 민족, 민족을 넘어 국가, 국가를 넘어 세계, 세계를 넘어 천주, 천주를 넘어 아버지의 사랑의 세계에 다리를 놓을 때까지 가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것이 천년 만년 연장되더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단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은 사탄의 참소가 저희들로 말미암아 가중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옵니다.
지금부터 그 마음 이상 방지할 수 있는 정성을 들여 가지고 갈 것을 결의하였사오니, 이들의 가는 길을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모든 것을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