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저희들의 생일을 축하해 준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 생일이 저에게는 만 66회를 맞는 생일이었고 어머님에게 있어서는 43회를 맞는 생일이었습니다.
통일교회의 부모님이라는 이 두 분을 대해서 여러분이 생각할 때, 선생님은 나이가 많으신데 어머님은 젊으셔 가지고 그 연령의 차이가 23년이나 되는데, 왜 그렇게 차이를 두고 부부의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되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오로지 제 생각을 중심삼고 이렇게 된 것이 아니고 섭리의 뜻에 따라 이렇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어머니가 한 살 때 저는 스물 세 살이었습니다. 그러니 차이가 많다구요. 세상으로 말하면 아버지와 같은 연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균형된 세계, 남자라든가 여자의 균형을 생각하게 될 때 왜 그런 차이 있는 연령을 중심삼고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었느냐? 거기는 우리 인간으로서 보는 내적인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역사적이요 섭리사적인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모르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의 문제점을 해결하여 그 해결점 위에 서지 않으면 축복가정이 설정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설정되기 위한 거기에는 한 남성이 원하는 개인적인 목적을 중심삼고 그대로 축복이라는 것을, 성혼이라는 것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역사적인 관계, 역사적 내용이 개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동과 서가 언제나 대할 수 있는 것은 왜냐? 중앙선을 가졌기 때문에, 중심이라는 것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동과 서가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중앙선이, 중앙점이 결정 안 되면 동과 서의 위치가 암만 설정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든 균형된 세계에 있어서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남과 북도 마찬가지입니다. 남과 북이 중앙선을 통하는 중심점을 통하지 않으면 대하는 그 기준은 전체의 균형을 취하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동서가 합할 수 있는 그 중앙점, 남북이 합할 수 있는 그 중앙점이라는 것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둘이 아닌 하나, 그 하나라는 자리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반드시 90도의 각도를 갖추어야 되고 평면에 상하 고저가 상대적인 입장에서 전부 다 균형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의 가정, 오늘날 하나님의 섭리의 뜻으로 볼 때, 하나의 가정이 나오기 위해서는 한국이면 한국 민족이 흘러나온 그 역사의 방향성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한국을 위주로 한 것만으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을 중심삼고 주변에 있는 세계를 무대로 해서 하나의 종적인 방향이 있으면 횡적인 관계가 연결된 그 중앙점에서 모든 것을 결정해야 비로소 동서가 확립되는 것이고 남북이 설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봐요.
그러면 중심, 이 중심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동과 서가 아무리 있다 하더라도, 또 남북이 아무리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중심점이 일치될 수 있는 그 점을 중심삼고 돌거나 움직이지 않게 될 때에는 그 움직임과 도는 그 모든 사실은 허무하고 가치가 없는 것이 됩니다. 만약에 그 중심점을 따라서 작용하지 않게 될 때는 파탄적인,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하는 것을 운동하는 세계를 보아 우리가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섭리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오늘날 인간세계에는 영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적인 세계입니다. 종적인 입장에서 우리가 언제나 맞춰야 할 하나의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혹은 횡적인 면에 있어서도 오늘날의 세계와 언제나 평형을 취해야 하는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참된 자리에 섰다 할 때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남자면 남자 자체가 혹은 여자면 여자 자체가 서 있는 그 자리가 참된 자리입니다. 그 참된 자리라는 것은 남자 여자가 한 중앙점을 중심삼고 연결된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관계를 맺어야 참된 남자, 참된 여자가 될 수 있지 그 자리에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될 때는 참된 남자, 참된 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의 이치라구요.
그러면 그 중앙점, 남자 여자가 무엇을 중심삼고 그 중앙점에 접하느냐? 또, 우리 인간 자체들로 보면 횡적인 남녀의 사랑은 무엇을 위하여 그 중심점에서 하나되어야 하느냐? 그것은 천지예요, 천지. 하늘과 땅이라는 거예요. 하늘이 주체라면 땅은 상대적인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동양사상으로 말하면 천지인, 하늘과 땅은 아버지 어머니와 같다고 했습니다. 거기에서 사람을 말하고있다는 거예요.
중앙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남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천지 사이의 사람, 그 사람은 어디에 있어야 되느냐? 천지 가운데 있어야 됩니다. 그 가운데 자리를 벌여 놓으면 남자와 여자와 같은 이 자리가 되고 합해도 남자와 여자는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 중앙점이라는 것은 무엇에 의해서 하나될 것이냐?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예요. 이것은 종적인 사랑의 힘, 횡적인 사랑의 힘이 하나되는 데서 참된 남자, 참된 여자, 참된 하늘, 참된 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할 때 인간과는 어떠한 자리에 있으려고 했느냐? 하나님이 동쪽에 있다면 동쪽에 있는 하나님이 서쪽을 찾아가려면 서쪽을 가기 전에 반드시 중앙선을 향해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또, 하나님이 남쪽에서 출발했다면 남쪽에서 출발한 하나님의 가는 길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직행하는데 그 직행하는 선이 반드시 중앙점을 지나게 됩니다. 반드시 중앙점을 중심삼고 남에서부터 북으로, 혹은 북에서부터 남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사람이 산다 할 때는 막연히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가야 할 중심점을 중심삼고 산다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왜 사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생각할 때 내가 사는 것이 그냥 그대로 밥을 먹고 그대로 매일같이 순환의 궤도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떠한 중심점을 향해 가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심점에 가면 어떻게 되느냐? 나 혼자만으로 될 수 없습니다. 거기에서 관계의 세계가 벌어지는 거예요. 상대적 관계인데 하나는 횡적인 관계요, 하나는 종적인 관계, 즉 종횡의 관계를 갖게 되는 거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중앙에 오기 전까지는 평형선만 바라보고 왔지마는, 중앙에 와 가지고는 상하, 위와 아래를 볼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건 왜 그러냐? 그래야만 구형이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그래 운동하는 모든 것은 구형을 닮아 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의 원칙에 있어서 오늘날 통일교회는 어디로 가느냐? 대한민국 내에 있어서 통일교회는 어디로 가느냐? 통일교회는 모든 인간들을 대표해서 가는 것입니다.
종교는 마루가 되는 것을 가르칩니다. 제일 마루가 될 수 있는 것을 가르치는 곳을 교회라고 합니다. 종교, 종교의 종 자는 마루 종(宗) 자 아니예요? 교는 가르칠 교(敎), 종이라는 것은 맨 마루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집으로 말하면 대들보, 대들보가 되는 거예요. 집을 구성하는 데에 대들보가 없으면 안 된다 이거예요. 대들보가 없게 될 때에는 공간 세계를 이룰 수 없어요. 다 무너지고 만다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집은 반드시 대들보를 중심삼고 연결돼야 됩니다. 그와 같이 마루, 맨 꼭대기 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종교다 이겁니다.
그러면 종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뭐냐? 그것은 사람에 대한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위주가 아니예요. 사람의 뜻을 이루려고, 사람이 사는 생활적인 관계를 이루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신이라는, 가장 높고 가장 귀하신 신에 대한 것을 중심삼고 가르치는 거예요. 신을 중심삼고 나와 통일교회, 신을 중심삼고 나와 나라, 신을 중심삼고 나와 세계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니 신을 중심삼지 않고는 관계를 지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남성 여성은 무엇을 중심삼고 가느냐? 신을 중심삼고 갑니다. 물론 인간 자체로만 갈 수 있는 우리의 일상생활목표도 있고 발전하는 과정의 방향도 있겠지마는, 제일의 목표는 뭐냐 하면 신을 중심삼고 남자도 가고 여자도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남자, 여자 둘이 만나는 데 있어서는 어떻게 만나야 되느냐? 신을 중심삼고 만나야 됩니다. 신을 중심삼고 만나서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그냥 그대로 가만히 서 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을 중심삼고 돌아야 된다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그렇잖아요? 도는 데에도 누가 먼저 동기를 이루어야 됩니다. 누군가가 먼저 거기에 동기를 주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서 합하는 데 있어서 신 자체가 그냥 그대로 합하라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신 자체에 대하여 압축을 해보면 신은 신대로 자유로운 환경이 있는고로 서로서로가 공동으로 공유할 수 있는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신을 중심삼고 도는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돌아가는 자동차의 바퀴를 보면 바퀴는 반드시 심보(しんぼう;축)를 중심삼고 도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보를 중심삼고 도는데, 그 심보라는 것이 강한 거예요. 강한 심보를 중심삼고 메다루(メタル)가 있어 가지고 돌아가는 것을 지지해요. 이것이 돌아가는 데 있어서 강유(强柔)를 겸해야 됩니다. 유(柔)한 것을 겸하지 않으면 타 버린다는 거예요. 그러니 강유를 겸해야 된다 이거예요. 그리고 고저를 겸해야 돼요.
음악도 그래요. 명곡 같은 것은 전부 다 화음이 맞습니다. 화음이 맞기 위해서는 고저가 맞아떨어져야 한다구요. 하나의 음이 낮고 하나의 음이 높더라도 이것이 어느 때에 가서 전부 음이 맞아 가지고 하나의 파동과 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몇 개의 음정을 집어넣더라도 그 음의 폭이 하나의 파동이 되어서, 복잡한 내용을 지녔지만 그것이 하나의 파동으로 느껴지게 되면 인간들은 화음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 생활에 있어서의 종교는 신을 중심삼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을 중심삼고 가는데 신의 무엇을 중심삼고 가느냐 이거예요. 이것은 신의 지식이라든가 하는 이런 것이 아니고 신을 중심삼은 사랑입니다. 신 자신도 사랑을 중심삼고 돈다는 거예요. 우리에게 몸과 마음이 있듯이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그 몸과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그것이 중앙선에 설 수 있는, 하나의 중앙점에 머물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건 신을 중심삼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심이 돼 있다는 거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몸과 마음은 상대적 관계에 있는데 그것이 반드시 하나되기 위해서는 신의 사랑을 중심삼아야 됩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되게 돼 있지 그 외에는 하나될 수 없는 그런 원칙이 있습니다.
그 맨 중심의 핵이 무엇이냐? 신이 머무를 수 있는, 신이 언제나 떠날 수 없는, 그 하나의 중심적 핵은 사랑을 중심삼고 고착돼 있다는 것입니다. 신 자체도 이동하게 되면 중앙점을 잃어버린다는 거예요. 탈선해 버리는 동시에 신 자체가 고착할 수 있는 그 자리를 상실해 버리게 되는 거예요. 그 자리를 상실하게 되면 완전히 이상적인 안착점, 혹은 안식점은 우주 어디 가더라도 없다는 거예요. 단 이 한 점, 단 이 한 점이라는 거예요. 그 점이라는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하나된 신, 그러한 신을 중심삼고 우리 인간 자체도 신의 사랑과 신의 신격을 그려 가면서, 그것을 닮아 가면서 그와 하나되기 위한 놀음이 본래 가정의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비로소 정착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 할 때, 어디겠어요? 동쪽의 끝도 아니요, 서쪽의 끝도 아니요, 남쪽의 끝도 아니예요. 그곳은 반드시 남자 여자가 합하는 하나의 중앙점인데 중앙점 거기는 남자도 아니요, 여자도 아니예요. 서로서로가 자리를 엇바꿔 가면서 너와 내가 하나됨을 자랑할 수 있고, 하나됨을 기뻐할 수 있는 그 중심작용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인격과 하나님의 인격을 조성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어 하나님을 중심삼고 남자 여자가 하나의 가정의 기반을 닦았다면 이것은 영원한 행복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사랑의 큰 말뚝 위에 닻줄을 달아 맨 배와 같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떠돌더라도 그 배는 닻을 중심삼고, 그 말뚝을 중심삼고 돌기 마련입니다. 그 자리는 행복한 자리입니다. 이것을 누가 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인간 자체도 끊을 수 없습니다. 인간 자체가 끊게 되면 자체 파멸이예요. 아무리 영웅적인 남성이 있다 하더라도 이걸 파괴시킬 수 없습니다. 약한 자나 강한 자나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여기를 중심삼고 하나되어 가지고 돌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신과 더불어 관계를 맺어 하나된 자리에서 그다음에는 또 확대한다는 거예요. 확대할 때 그때는, 여자면 여자로 신의 중심을 찾아갔지마는 신과 화합해 가지고 나오게 될 때는 나는 뭐냐? 확정되어 가지고 돌아가게 될 때는 비로소 나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인격이 형성됐다는 걸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 전까지는, 하나로 일체될 수 있는 중앙선에서 하나되지 못하고는 그것을 다시 확대하더라도, 확대해서 갈라놓더라도 완전한 인격을 찾아볼 수 없다는 거예요.
어디까지나 사랑을 그리워하고 어디까지나 인격을 그리워할 수 있는 하나의 외로운 자리의 남성이면 남성이고 여성이면 여성일 뿐이지 비로소 독자적인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을 대신한 남성이다, 혹은 사랑을 대신한 여성이다 할 수 있는 사랑적 인격이 형성되지 않아요. 그것을 차원을 높여 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생활입니다. 그러면서 가정을 중심삼고 사회를 느껴야 되고, 사회를 느끼고 체험하면서 국가를 체험하고, 국가를 중삼삼고 세계를 체험하고, 세계를 체험하면서 영계까지 확대해야 됩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마음대로 고립적인 입장이 아니라 반드시 중심을 중심삼고 확산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한 점을 중심삼고 원형이 확대되는 거와 같이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로 가야 됩니다. 또, 그것이 아무리 세계까지 갔다 하더라도 다시 어디로 찾아가야 되느냐? 환고향해야 된다구요. 자기의 고향을 떠나간 사람은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세계에 가 가지고 어디로 돌아 들어올 때에는, 이쪽으로 갔으면 돌아올 때에는 저쪽으로 돌아 들어온다 이거예요. 그렇게 구형의 세계를 향해서 내 자신이 횡적으로 반경을 그려 가지고 또다시 돌아오기 마련이예요. 이와 같은 관계를 중심삼은 것이 오늘날 우리 인생의 생활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것이 개인을 중심삼은 생활의 하나의 모델, 하나의 공식인 동시에 가정도 마찬가지라구요. 가정만, 가정 하나만이 될 수 없다 이거예요. 그 가정도 그런 하나님의 사랑의 인격과 화합한 부모와 자녀를 중심삼고 하나되어 가지고 그 가정 자체도 확산하려고 한다구요.
그러면 왜 확산해야 되느냐? 사랑은 그런 작용을 해야 됩니다, 컸다 작았다 하는. 우리가 호흡을 할 때 내쉬는 것과 들이마시는 숨이 차이가 있다면 그는 불원한 장래에 이 존재의 세계에서 사라지는 거예요. 내쉬는 숨과 들이마시는 숨이 균형이 맞춰져야 됩니다. 그 박자에 의해 조화를 이루는 선상에서 우리의 생명이라는 것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고는 반드시 확산하는 거예요. 확산하는 데는 가면 갈수록 어떻게 되느냐? 소모가 벌어진다구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그리워지는 거예요. 또다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어디로 돌아가느냐 하면 중심점을 통해서 상대편을 통해서 돌아가야 됩니다. 그렇게 돌아가게 되면 또다시 그 중심의 사랑과 중심의 인격에 접하게 되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또 하나되어 또 다른 의미에서, 더 큰 의미에서 '아! 지금까지 경험한 것이 이러하니 더 큰 곳을 향해서 가야 되겠다' 이렇게 확산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아무리 세계의 무대에 나가 성공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하더라도, 성공하고 나서는 어디로 가려 하느냐 하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지요?
고향이 별거 아니예요. 고향에 갔다고 해도 별거 아니예요. 보게 되면 뭐, 고향의 생활적인 환경으로 보게 되면 자기가 현재 외부세계면 외부세계에 나가서 성공한 환경보다도 못하다 이거예요. 못하지마는 거기에 무엇이 있느냐? 옛날에 정서적인 자신의 과거가 살아 있다는 거예요. 정을 중심삼고 살던 옛날의 그곳을 잊을 수 없다 이겁니다.
타향살이와 고향살이의 차이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정서적인 내용이 다르다는 거예요. 타향에서 아무리 잘살더라도 말이예요, 고향의 깊은 사랑의 내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관계가 맺어지면 다르다는 거예요. 환경적인 여건으로 보더라도…. 예를 들어 미국 같은 데를 갔다 하면 말이예요, 우리 같은 사람이 미국 가게 되면 벌써 사람이 달라요. 환경이 달라요. 거기에는 백인이 살고, 여기와는 환경이 다르다는 거지요. 환경이 달라요. 그리고 모든 생활환경이 전부 다 반대된다구요. 여기서는 오라 하면 이렇게 오라고 하는데 그쪽은 이렇게 오래요. 전부가 반대예요. 자는 데도 동양 사람은 이렇게 자는데 그 사람들은 대부분이 엎드려 잔다구요. 전부 반대라 이거예요.
그게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그래야 모든 것이 합할 수 있지요. 반대가 나쁜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그것은 멀리 돌아서 합할 수 있는 상대적 위치를 취하는 놀음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것이 뭐냐? 돌아가서 다시 만나야 된다는 것을 예상했기에 습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동서양의 출발이 다르고, 생활풍습이 다르고, 모든 문화배경이 다르고, 출발 기준이 다르지마는 심정을 중심삼은 역사적 과정은 반드시 돌아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깊은 심정적 기준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면 갈수록, 어디로 가고 싶으냐? 점점점점 끝, 세상 끝에 가면 갈수록 세상 끝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선을 넘게 되면 벌써 '난 돌아가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작용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은….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 임종시에 있는 그분들도 어디 가서 죽고 싶으냐 하면, 외지에 나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고향 가서 죽고 싶어합니다. 왜? 왜 그러냐? 고향에서 잘먹고 잘살아서 그런 게 아닙니다. 그건 뭐냐 하면 정서적인 내용, 잊을 수 없는 내용이 거기에 남아 있다는 거예요. 거기에 가야만 옛날에 자기가 자랄 때에 아버지 어머니에게 사랑받던 것을 다시 회상하고, 또 옛날에 거기에서 결혼할 당시에 신랑을 만나던, 혹은 아내를 만나던 모든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 시대의 사랑을 중심삼고 엮어진 자연환경이라는 것을 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때가 처음이기 때문에. 처음 것은 귀한 것이라는 거예요.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아요?
옛날 내가 잊을 수 없는 것이 있어요. 고구마 있지요? 여러분, 고구마 알지요? 고구마. 고구마가 본래 외국, 일본에서 들어온 것인데, 우리 외가집에 가면, 내가 몇 살이나 되었느냐 하면 일곱, 여덟 살 되었을 거예요. 고구마라는 것은 넝쿨 아래에 열매로 맺힌다구요. 외가집에 가면, 아이쿠 우리 아무개 왔다 하면서 외할머니가 고구마 넝쿨을 제끼고 고구마를 캐다가, 혹은 감자를 캐다가 삶아 줍니다. 이것을 삶아 주는데 참 맛있다구요. 뭐 둘이 먹다가 어떻고 어떻다 하는데 그만큼 맛있다구요. (웃음) 그것도 소쿠리로 한 소쿠리를 삶아서 주는 거예요. 그게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처음 먹을 때, 꺼풀이 있잖아요, 꺼풀? 그 꺼풀을 벗길 게 뭐예요, 그냥 먹기가 바쁘지. (웃음) 막 그저 먹어요. (웃음) 어디에 가든지 그 생각이 나는 거예요. 어디에 가서 색다른 걸 먹게 될 때에는 그 고구마 먹던 생각이 나요. 그래서 첫번 그 맛을 들인 것, 그 첫 것이 귀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도 첫정을 느끼는 것은 부모를 중심삼고, 어머니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자기가 자라던 여러 가지 사연을 첫정으로 느낍니다. 모든 것이 생생히 살아나는 거예요. 무엇을 중심삼고 살아나느냐? 정을 중심삼고 살아나는 거예요. 이게 귀한 겁니다. 지식을 중심삼고 살아나는 것이 아니예요. 자기의 무슨 뭐 어떤 경험을 중심삼고 살아나는 거예요.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강하게 느껴질 때 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서적인 관계에서 맺어진 모든 사건이나 인연은 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고향에 가면 옛날의 정서적인 그 시절을 다시 회상하는 거예요. '아! 내가 지금은 늙었지마는 옛날에는 이랬구만. 철이 없을 때에는 이렇게 지냈고, 결혼을 해서 아기의 엄마가 되었고 이제는 할머니가 됐구만' 하는 거예요. 고향에 돌아올 때는 그 모든 것이 그리워집니다. 그렇게 고향에 돌아와 손자를 보게 될 때 그 큰 손자가 자기를 대신한 것 같은, 즉 '과거에 당신 이랬소' 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는 거예요. 젊은이들을 보게 되면, 혹은 둘이 좋아하는 부부를 보게 되면 '아, 옛날에 우리가 좋아 지내던 것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보여 주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구요. 옛날의 모든 것을 대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것이 맞춰질 때는 주체적인, 정서적인 배경이 딱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을 정서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이런 인연이 나를 중심삼고 가정 전체, 부락 전체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 고향을 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성공을 해서 고향에 돌아오게 된다면 금의환향이라는 말을 하잖아요? 고향을 멀리 떠나간 사람이 성공을 하여 금의환향해야 거기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지요. 안 그래요? 10년, 20년, 30년이 지나 50이 넘고 60이 넘어 떡 성공해 가지고 집에 돌아와 봐야 어머니 아버지 다 떠났고 형님 뭐 누나 다 떠났고, 거기에 지금 그들의 손자만 남아 있더라도 금의환향해 가지고 그 모든 것을 고향 땅에 심어 놓고 싶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선생님 같은 사람도 그렇다구요. 오랫동안 나가서 복잡하게 싸우고, 뭐 어떻고 어떻고 어떻고 한 사연은 많지만 그 사연은 전부 다 흘러간다는 거예요.
그래, 조국이 좋다는 것이 왜냐? 선생님이 조국을 찾아오게 되면…. 김포 공항에 내리자마자 어디로 가고 싶으냐? 여기가 조국이지만 김포 공항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구요. 그럼 어디로 찾아가요? 한국의 중심지가 서울이라면 서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울을 지나, 중심지를 지나, 저 시골 평안북도 정주 산과 바닷가에 있는 집, 그곳을 찾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마련이예요. 그건 왜? 왜 그래요? 출발을 거기에서 했으니 거기에 가서 만나야 된다는 거예요. 돌아간다는 거예요. 무엇을 중심삼고? 정서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돌아간다는 거예요.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인간이 그러니 하나님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정서적인 그 느낌을 어디에서 느낄 수 있느냐? 여러분 혼자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이렇게 있다 할 때 정서적인 것을 느껴요? 혼자는 못 느낀다구요. 그걸 느끼는 데는 새 새끼라도 보고, 혹은 꽃이라도 보고 '아름답다!'라고 해야지요. 그 꽃 속에 꿀이라도 있어 가지고 벌이나 나비가 와서 그 꿀을 빨아먹는 것을 볼 때 거기에 정서가 미쳐진다구요. 꽃만 봐 가지고는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그 상대적인 무엇이 있어서 작동이 벌어져야 비로소 정서가 유발되는 거예요. 하나님도 그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혼자는 정서라는 것이 발동을 안 해요. 움직이지 않아요. 그건 반드시 상대와 관계를 맺어야 발동을 하는 거예요.
그 정서적인 것이 관계맺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예요. 반드시 어떠한 중심, 만약에 이렇게 맺어지면 직선이 되는 중앙선이 이렇게 되어 가지고 저렇게 표준삼고 여기에 연결될 수 있는 관계, 고향이라든가 고향의 부모라든가…. 그렇지 않아요? 그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구요.
하나님이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오늘날 기성교회에서 하나님은 거룩한 창조주이고 우리는 속된 피조물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고 하나님이 관계맺고 싶은 것이 무엇이겠어요? 원숭이? 원숭이가 사람으로 되었다고 그러는데 원숭이와 사람과는 40여 가지나 내용이 틀리다구요. 그런데도 사람이 원숭이를 닮았다고 그래요. 원숭이가 사람의 조상이다 그럽니다. 여러분도 그래요? 너희 할아버지는 원숭이같이 생겼다 하면 듣기 좋아요? (웃음) 저기 저 녀석 생기기는 잘생겼는데, 빨리 뛰기는 잘 뛰는데 원숭이같이 잘 뛴다 그러면…. 내가 원숭이 띠예요. 나 원숭이 띠라고 해도 원숭이 닮았다 하면 기분 좋지 않다구요. (웃음)
자, 이걸 볼 때 무엇을 닮았느냐 하면, 싫든 좋든 '저 녀석은 자기 아버지, 어머니를 닮았어'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없다구요. 아무리 강도 새끼라도 자기 아버지, 어머니 닮았다 하면…. 자기 아버지 어머니 닮은 것이 자연 이치지요. 다른 사람 닮았다 하면 싫어하는 거라구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닮은 소성을 비례적으로 얼마만큼 소유하고 있으면 그 기준에 비례하여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하나된다 할 때 그 하나되는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냐? 상대적 관계에서 비례적인 기준에 의해 가지고 정서적인 양이 결정된다고 하면 하나님도 사람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남자 여자가 하나된다 할 때 그 하나되는 것은 남자 여자가 둘이 맞서 있는 것이 아니라구요. 반드시 하나의 모체를 중삼삼고, 횡적인 주체의 핵을 중심삼아 가지고 반드시 관계를 맺어야 돼요.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안개 낀 날 같은 때 건너편 쪽에 전기불이 있다고 할 때 그 불을 보게 되면 말이예요, 둥그렇게 달무리 모양으로 보이지요? 그거 왜 그래요? 거 왜 달무리 모양으로 둥그래져요? 빛은 전부 다 직선으로 같아야 할 텐데 왜 그렇게 되느냐 이거예요. 그런 생각 해봤어요? 왜 그렇게 되느냐 이거예요. 어떤 매개체를 중삼삼고 얼마만큼 가게 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각도가 달라진다 이거예요. 수증기에 반사될 때 각도가 달라지는 것은 왜냐 하면, 한 곳에서 발하는 그 빛깔이 같은 거리의 빛으로 발하니 같은 거리에 가면 각도가 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달무리같이 보인다,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건 뭘 말하느냐? 그 빛 자체도 반드시 구형적인 하나의 형태를 갖춰 가지고 작용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있으면 반드시 방향을 전개시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전개시키면 어디로 가느냐 하면 이상적인 곳을 향해서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러한 작용을 한다는 거예요.
남자 여자도 그렇잖아요? 남자 여자 둘이 만나 가지고 손바닥 대고 좋다고 하는 사람 어디 있어요? '당신 나 좋아?' 해서 좋다 하면 손바닥을 대고 먼저 맞추어야 할 텐데 손바닥을 대고 맞추지 않거든요. 뭘 가지고 맞춰요? 손이 어디로 가느냐 하면 상대편 뒤로 가려고 하지 앞으로 가려고 해요? 앞으로 가려고 그래? (웃음) 그래요, 안 그래요? 나는 모르겠구만 뭐. 그렇다고 아는데. (웃음) 손은 어디로 가느냐 하면 벌써 상대편으로 가요. 그래요.
그리고 남자 여자가 똑같으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여자가 작으니까 손을 대면 벌써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몸이 기울어지는 거예요. 움직일 때에는 손이 아래로 가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척 손을 대면 몸이 벌써 이렇게 된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는 것은 동작하기에 편리한 방향을 결정하고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여자는 손을 올려서 잡게 되어 있지 내려서 잡게는 안 되어 있다는 거예요. 가만히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웃음) 여자는 수평선 이하로 손이 내려가지 않아요. 남자는 절대 수평선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아요. 그게 뭐냐 하면 돌겠다는 거예요. 춤출 때 가만 서서 춤추는 사람 봤어요? 돌지요?
이와 같이 우리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된다, 행복하다 하는 것은 가치 있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가치 있는 것이 뭐냐? 우주에서 제일 가치가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거예요.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응?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둘이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해요. 근육도 그렇습니다. 기름, 기름이 이렇게 크게 될 때에 이게 기름 한 블럭이 되고 또 한 블럭이 돼 가지고 기름을 싸고 하나 만들어 놓고 또 하나 만들고, 이렇게 되어 나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인간이 하나되어서 도는 여기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무질서하지 않아요. 반드시 자기 개성….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개성진리체, 그 말은 놀라운 말입니다. 하나님적 개성진리체를 중심삼고 몸 마음이 하나되면 사랑으로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그 자리를 중심삼고 2차적인 면에서 인간과의 관계를 맺게 돼 있지, 하나님과 몸과 마음이 하나가 안 돼 가지고는 인간과 하나되게끔 안 돼 있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남편이 필요하고 여편네가 필요하지요. 하나되어야 색시가 필요하고 신랑이 필요하지, 자기 몸 마음이 하나 안 돼 가지고 필요해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다른 데 두고 다니면 싫어하지요?
사람에게는 두 마음이 있는데 그 두 마음이 뭐냐 하면 하나는 몸뚱이 마음, 하나는 마음의 마음입니다. 세 마음 가졌다는 말은 안 하지요? 그런 말 들어 봤어요? '당신은 세 마음 가진 남자야' 그래요? (웃음) '여자인 당신은 세 마음 가진 여자다' 그런 말 들어 봤어요? 둘이 말할 때, '당신은 한 마음 가진 남자야' 할 수 있지요. 한 마음 가진 남자면 위대한 남자지요. 그러나 '두 마음 가진 남자야' 할 때는 '저것 저것' 그러는 거예요.
그건 무엇을 말하느냐? 두 마음을 가진 것은 하나가 안 되어 있다는 거예요.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된 자리를 통해서 가는 거예요.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자리에서 이상을 논하게 돼 있지 둘로 갈라진 자리에서는 이상이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자리에서 사랑의 완성적 인격의 주체성을 지닐 수 있습니다. 그 주체를 중심삼은 사랑의 인격으로 하나되기 위해서 여러분도 그걸 닮아야 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가지고 그 법도에 있어서 수직적 하나님과 90각도의 평형선으로 남자 여자가 합해 가지고 서로 주고받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될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이 큰 우주도, 방대한 우주도 반드시 그러한 작용을 합니다. 어떠한 무엇이 합해 가지고 핵이 되어 위성을 중심삼고…. 그렇잖아요? 태양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고 그 외에 8개의 행성이 돌면서 하나의 태양계를 이뤄 하나의 구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자리에서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겠느냐 이거예요. 무엇이야? 제일 닮은 사람이예요. 남자 여자가 닮았어요? 닮았다는 거예요. 남자는 전부 다 내려다보려고 하고 여자는 전부 다 올려다보려고 하는 거예요. 남자가 내려다보는 데는 여자의 몸뚱이를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예요. 여자의 인격을 내려다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 두 가지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상대적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로 여성 호르몬, 그 여성적인 무엇을 바라면서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이 자기의 마음에 맞아야 상대가 되지 맞지 않으면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건 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로 반발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부처끼리 사는 것을 가만히 보게 된다면 말이예요. 큰 남자가 큰 여자를 데리고 사는 법이 없어요. 안 그래요? 서양의 어디로 가 봐도 그래요. 비례적이예요. 가끔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계산 착오로 그렇게 되었지, 자연법도에 의해서 보게 된다면 큰 남자는 작은 남자, 이렇게 된다는 거예요. 「작은 여자입니다」 (웃음) 그래, 내가 얘기를 잘못했으면 잘 들어주는 사람이 훌륭한 것이지요.(웃음)
그렇게 상대적 관계예요. 뚱뚱한 남자는 홀쭉한 여자가 필요해요. 다 그래요. 여러분도 이다음에 며느리를 얻든가 사위를 얻을 때, 뚱뚱한 남자에게 신부감이 오는데 각시가 더 뚱뚱할 때는 그건 보지도 말라는 거예요. 사진 보고 밀어제끼라는 거예요. 그건 서로 만난 날부터…. 싸움을 하는데 두 뚱뚱이가 싸우게 되면 그건 박자가 안 맞아요. (웃음) 하나님도 짓궂은 데가 있어서 싸우는 것도 보고 싶을 거예요. 그래, 두 뚱뚱이가 붙들고 뒹굴고 하는 그 꼴을 어떻게 보겠어요? (웃음) 동정할 수가 없다구요. '실컷 싸워라, 또 싸워라 이놈들. 누가 지나 보자' 이럴 거예요.
그러니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아야, 둘이 싸우게 될 때, 남자가 뚱뚱하고 여자가 홀쭉하니 여자가 깔리게 된다면 하나님이 이걸 보고 '이놈의 자식, 왜 그래?' 하고 동정하고 싶지요. 이렇게 동정받을 수 있는 우리라야 정서적인 유발점이 있지요. 뚱뚱이끼리 싸우게 되면 '이 쌍것들, 잘들 해봐라, 죽든가 해봐라' 그럴 거예요.
그러니까 싸움하는 것도 나쁜 것이 아니예요. 싸움도 올바로 하게 되면 발전합니다. 대한민국도 북괴가 남침한다고 선전하는데도 발전하려고 하는데, 싸우면서 선전하면 얼마나 발전하겠어요? 안 그래요? 아, 북괴의 총 소리, 꽝꽝 대포 소리를 들으면서 저놈의 자식들은 전부 다 악당들인데 우리 선한 패들이 지겠느냐고 격려하면 얼마나 발전할 수 있겠느냐 이것입니다. 그래서 싸움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거예요.
남북으로 분단된 것을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선을 보더라도 몇십 년 맛보고 선을 보는 거예요. 똥싸개까지 다 안다는 거예요. 이북이 나쁜지 좋은지 알고, 또 남한의 좋은 것에 대하여 다 깨깨 알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 내 것과 네 것을 보면 내 것이 더 좋은 것이 많기 때문에 나는 남한에 가서 그걸 남한 사람들에게 주면 더 좋으니까 이들이 입을 벌리고 받아 먹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모든 것이 다 그렇지 않아요?
음악에서 오케스트라를 연주할 때 파괴음…. 이 돌 때리는 것 같은 소리, 그거 얼마나 기분 나빠요? 그러나 파괴음, 그게 필요하다구요. 돌과 돌끼리 마주쳐서 나오는 제일 듣기 싫은 소리도 있어야 돼요. 그건 뭐냐 하면 깊은 골짜기, 얼마나 깊은지 조그만 돌 하나밖에 들어갈 수 없는 그런 골짜기도 필요하다구요. 깊고 높은 산에 참새도 앉을 수 없는 뾰족한 돌 봉우리 이것도 상대가 되는 거예요. 그걸 중심삼고 돈다고 생각할 때 조화의 그 폭이 넓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파괴음이라고 다 나쁜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상대적 관계의 자리에서는 참 멋지다는 거예요.
벼락이 치는데 말이예요, 벼락이 꽝 하고 치기 전에 여기서 '땅' 하면 벼락 소리를 잊어버립니다. 거 알아요? 벼락이 칠 때 그 소리의 진동을 스톱시키고 다시 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정상점에 와 가지고 다시 움직여서 치게 돼 있지요.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파괴음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달리는 차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처럼…. 그 브레이크가 나쁜 게 아니예요. 아무리 차가 좋다 하더라도 브레이크가 나쁘면 그건 빵점이예요.
이러한 모든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나쁘고 좋다는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할 때 하나의 핵이라든가 중앙점을 놓고 하는 말입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 기분 좋지요? 뭘 중심삼고 기분 좋아?' 하면 막연하거든요. 안 그래요? '뭘 기분 좋아?' 하면 '좋기는 좋은데…' 한다구요. 그게 뭐냐 하면 정서적이예요. 정서적인 그런 핵을 중심삼고 그렇게 기분 좋다 하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행복한 하나님이냐 할 때 어때요? 사랑의 정서를 느낄 수 없는 입장의 하나님은 고독한 하나님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하나님일지라도. 그의 품에 품긴 고양이 새끼를 중심삼고 '내가 고양이를 잘 만들었구나, 내가 귀를 이렇게 만들 때 기분이 참 좋았지. 이놈의 발톱도 쥐새끼를 잡아먹으라고, 네 먹이를 주려고 이렇게 만들어 주었지. 허허 기분 좋다' 하는 거예요. 안 그래요? 사실이 그렇다구요. 그 좋다는 것은 어떠한 동기? 정서적인 동기를 중심삼고 모든 것이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상대는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 인간밖에 없어요.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 자신이 또 다른 하나님을 만들 수 없다구요. 왜 그래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 그 하나님과 똑같은 또 하나의 하나님을 만들어 놓을 것이다, 그것도 가능하다고 보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똑같은 하나님이 밥을 먹을 때 같이 밥 먹고, 손질하게 되면 같이 손질하고, 또 일어서게 되면 같이 일어서고 따라다니면서 말이예요, 하나님이 앉게 되면 같이 앉고 이렇게 억천만년 똑같이 행동하게 되면 살아가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하루도 안 가서 눈이 뒤집어질 거라구요. 또, 말을 어떻게 해요? 말을 하게 되면 며칠이나 말할 것 같아요? 사흘이나 가겠나? '저것, 저, 똑같잖아! 죽겠다'고 할 거라구요.
그러니 언제나 상대적이어야 된다구요. 높았으면 언제나 높을 수 없다구요. 높으면 그건 없어지는 거예요. 내려와야만 소유권이 생기는 거예요. 면적이 생기는 거예요. 이것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꼬불꼬불 가더라도 직선으로 가서 돌아올 수 없는 것보다도 꼬불꼬불 가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외로우신 하나님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우리 인간은 뭐냐? 우리 인간이 아무리 남자 여자가 만났다 하더라도 남자 모두, 여자 모두는 본래 사랑의 뿌리인 하나님을 중심삼았어요. 그 뿌리에 인연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뿌리를 갖지 못한 풀을 부평초라고 하지요? 그러한 것은 언제나 안심할 수 없는 거예요. 언제나 불안한 것입니다.
부평초라 하더라도 뿌리가 있으면 아무리 태풍이 불고 아무리 뭐 하더라도 자기가 가는 데만큼 가다가는 다시 되돌아오는 거예요. 그걸 범위로 해서 빙빙빙 도는 거예요. 그것이 한 곳으로만 가게 되면 뿌리가 한 곳으로 치우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돌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람 같은 것이 불 때는 동풍도 불고, 서풍, 남풍, 북풍도 부는데 왜 이렇게 불어야 되느냐? 인간이 생각하게 될 때는 언제나 함부로 분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구요. 동풍이 불었으면 서풍이 불어야 곧바로 섭니다. 동풍이 불게 될 때 며칠만 그렇게 불게 되면 뿌리가 동풍에 넘어지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쪽이 길어져야 된다는 거예요. 이쪽이 길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걸 그냥 두면 이 풀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이렇게 자란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서풍이 불어 제껴야 된다는 거예요. 서풍이 불어제끼면 같은 뿌리가 됩니다. 남풍이 불어제끼면 북풍이 불고, 이게 전부 다 조화를 위해서 이런 놀음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중심점을 세우기 위해서 바람도 불고, 이런 놀음놀이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고기압이 되었으면 저기압으로 되지 말라고 해도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자가 다 성숙했으면 남자를 찾아가지 말라고 해도 눈을 감고라도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기분 나쁘오? 새벽부터 그런 얘기 하니까 기분 나쁘겠지. 기분 나쁘면 죽어도 좋아요. (웃음) 남자도 마찬가지예요, 남자도. 전부 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차게 되면 어디로 가야 돼요? 차게 되면 내려가야 됩니다. 더 부자가 되겠다고 하면 말이예요, 세계의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의 골짜기를 메워 주겠다 해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자연 이치에 맞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구! 나 대한민국의 이만한 부자가 되었으니 이제는 세계적인 부자가 되어 나를 중심삼고, 내 일족을 중심삼고 잘살겠다' 한다면 그는 오래 안 가서 욕심에 치여 죽어요. 죽습니다. 대한민국이 뭐 어떻고 어떻다는 그런 말을 남긴 사람들 가만히 두고 보라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 아무개도 부자예요. 나보고도 부자라고 하더라구요. 부자라고 해서 아버지와 아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예요. 부자가 뭐예요? 돈 많은 사람이예요. 나 돈 많다구요. 하지만 지갑에는 돈 한푼도 없다구요. 어저께도, 수백만 불을 결재했지만 돈은 하나도 보지 못하고 전부 다 은행에서 왔다갔다해요. 나는 돈을 한푼도 보지 못하고 수억 불에 해당하는 돈을 쓰고 있다 이거예요.
누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요? 내가 깍정이예요. 어머니 생일 때…. 미안합니다, 우리 비밀 이야기를 해서. 역사적인 시대가 온다고 말은 하면서 생일날이 되었는데 예물은 생각도 안 하고, 아이쿠…. (웃음) 생일이 되었는데 예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거든. 그거 어머니가 섭섭하겠지요? 선생님이 생각하기는 '예물은 무슨 예물이야?' 하는 식이거든요. 예물이 아무리 좋더라도 수단 방법으로 가짜의 마음을 가지고 예물을 해주는 것보다도 진짜의 마음을 가지고 '예물을 못 해서 미안합니다' 하는 한마디가 다이아몬드를 주는 것보다 더 귀하다는 거예요. (웃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그러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예물은 해서 뭘해요? 어머니에 대해서 예물 안 해도 좋아요. 생일이 되는 날 깊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한 살을 더 먹는구만. 우리의 갈 길이 바쁘다'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으로써 하늘 앞에 효도할 수 있는 그런 가정이 되면 하나님이 보고 좋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들 둘이 예물을 주고받고 좋아하면 하나님이 보시고 시기할 것입니다. '이 쌍것들, 나에게 먼저 인사 안 하고 이게 뭐야!' 이러시는 거예요. 생각이 다르다구요.
귀한 것이 생기면 전부 다 갖다 쌓아 두는 거예요. 쌓아 두었다가 남을 줄 것을 생각하지요. 아이쿠, 우리 아들딸 위해 잘 쓰겠다고 내가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어떤 때는 10년 전에 없어졌다고 하는 것이 나타날 때가 있어요. 10년 전의 것을 그때 쓰지 않아 지금에 와서는 못 쓰는 것이 있다구요. 그런 것은 '10년 전에 내가 이걸 잊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인데 이렇게 되었구만' 합니다. 그렇지만 후회는 안 한다 이거예요. 자기 일보다는 전체를 위해서….
내가 전체를 위하는 데 있어서, 세계 사람을 위하고 세계 사람에게 주고 싶은 나의 심정에 하나님까지도 반할 수 있게 된다면 천지의 모든 물건은 내 궁둥이에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자꾸 따라오는 거예요. 차버려도 따라오는 것입니다. 이걸 차게 되면 이것이 앞에 와서 떨어지는 거예요. 이걸 또 차게 되면 그것보다 더 크게 멀리 가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점령해 간다는 거예요. 차 버리면 말이예요, 뒤에 떨어지는데 가까운 데보다는 더 멀리 떨어져요. 그럴 것 아니예요? 고무줄같이 차게 되면 떨어질 때에는 더 멀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것 다 내 영토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기분 나빠요, 좋아요?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욕을 먹고 다녀도 기분 좋게 살고 있습니다. (웃음. 박수)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오늘의 제목이 무엇인가요? 「어제와 오늘입니다」 어제와 오늘. 어제 살던 내가 오늘도 사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레버런 문을 세워 놓았는데 그 레버런 문을 중심삼고 하나님에게도 어제와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 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도 그렇지 않아요? 결혼한 부부가 생각할 때, 결혼한 부부를 중심삼고 어제와 오늘이 있지요? 마찬가지라구요. 선생님을 만난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어제와 오늘이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예요. 또, 결혼한 부부에 있어서도 결혼해서 만난 그때부터 어제와 오늘, 남편은 하나지만 어제와 오늘이 연결되는 거예요.
그러면 어제보다도 오늘이 못해야 되느냐? 그것이 문제예요. 또,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여러분에게 어제와 오늘이 있지요? 통일교회에 들어올 때의 여러분이 있지요? 옛날에 들어와 30년, 40년이 됐으면 그 길을 출발해 가지고 오늘, 통일교회라는 무대를 중심삼고 여러분이 현재의 입장에 있고, 그리고 여러분은 반드시 과거를 남기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통일교회라는 거울에다가 여러분을 한번 비춰 봐요. 어제의 나는 이랬는데 오늘의 나는 이렇다 하는 것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가만히 누워서 통일교회를 본다면, 통일교회 이것은 누구를 보고 있느냐? 나를 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라구요.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태어난 나는 어제와 오늘의 역사를 그려 가는 거예요. 대한민국의 전통과 문화배경과 사상적인 흐름을 가진 대한민국에 태어나 가지고 관계를 맺은 나의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이겁니다. 그것이 어제는 좋았지만 오늘은 나쁘다 하면 행복해요? 그것 불행해요. 어제는 나빴지만 오늘이 좋으면 행복이 더하는 것입니다. 더한 행복, 더 좋을 수 있는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 아무개를 만나 하나님…. 내가 66살입니다. 엊그제가 내 생일 아니예요? 그러니까 1920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때 한국의 정세가 비참했었어요. 그때가 왜정 때로서 제일 비참한 시대였어요. 선생님의 66년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대변천의 시대예요. 선생님은 환란시대에 태어나서 환란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나라를 보게 되면 환란이예요. 일본에 예속되어 있었던 환란의 시대였습니다. 그때, 1920년은 기미년 만세사건 이후였고, 또 그때는 3년인가 7년인가가 흉년이 들었다구요.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는 말이예요, 소나무 껍질을…. 그거 뭐라고 그러나? 「송기」 송기를 깎아 먹고 뭐 이렇게 지냈다는 말도 들었어요. 이걸 가만히 보면, 오늘에 보게 되면 하나님이 문선생님을 사랑하는 것 같은데 태어날 때는 왜 그렇게 역사적으로 몰고 몰아 제일 환란, 저 골짜기에 갖다 세우고 닦아 치웠는가…. 또 내가 태어날 때는 말이예요, 우리 집안 일족이…. 이러한 것이 다 역사라구요. 내가 탕감법을 알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다 이해하지, 안 그러면 그것 다 거짓말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 집안의 일가, 사촌 칠촌까지 전부 다 탕감을 받는 거예요. 놀음 놀이가 한바퀴를 돌기 시작하면서 한바퀴 거쳐 나갈 때까지 좋은 것이 아니라 전부 다 때리고 넘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집은 나 하나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쑥밭이 된 거예요. 내가 10대인 15세가 되기 전까지 그러한 환란이 가정에서 떠나지가 않았습니다. 이리 볶이고 저리 볶이고 막 볶아치는 거예요.
송아지도 그렇잖아요? 송아지 대가리를 삶는 데 있어서 설 삶으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삶을 때 한꺼번에 푹 삶아야지 중간에 바람이 들어가서 이것이 뻐드러지면 아무리 불을 때도 익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렇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탕감역사도 밑창까지, 그 주변 전부를 쓸어 버려 가지고 탕감을 하는 거예요. 그것이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이걸 말할 때, 어쩌면 그랬을까 생각할지 모르지만 탕감이 우리 문씨 일족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건 역사적인 탕감입니다.
자, 그렇게 골짜기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또, 내 일생이 그래요. 내가 가는 곳마다 문제가 생긴다구요. 저번에 대한민국의 어느 기관에 있는 사람이 문 아무개 온다 그랬더니 '또 문제가 생기겠구나' 그랬다는 거예요. 내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고 다닙니다. 눈을 전부 다 이렇게 뜨고 '저 사나이가 나타나면 편하지가 않아' 이러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어느 동네에 가만히 들어가더라도 그 동네에 야단이 벌어져요. 말이 죽지, 개가 죽지, 독수리가 와서 하루에 닭을 몇 마리씩 채 가는 일이 벌어져요. (웃음) 이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 번 동네에서 쫓겨났다구요. 색다른 사람 저것이 동네에 오더니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요사스러운 사람이라고 쫓아낸다구요.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개인으로도 그렇고 가족이 전부 다 그렇게 살아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집안에 가만히 있으면 집안이 편하지가 않다구요. 나가서 돌아다녀야 집안이 편안합니다. 그래, 어렸을 때는 나가 돌아다녔습니다. 24시간 나가 돌아다니는 거예요. (웃음) 그때는 피곤도 않더구만. (웃음) 그게 역사인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신기한 것은 그 악신들이 얼마나 발동하는지, 여러분은 그런 걸 알아야 됩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나는 친히 봤어요. 도깨비 장난이라는 말 더러는 들어 봤지요? 응?
우리 어머님이 일을 많이 했습니다. 자식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자식들을 시집, 장가 보내기 위해서는 무명―무명 알아요?―을 짜야 된다구요. 무명을 짜기 위해서는 목화를 따 가지고 거기에서 털을 빼 가지고 물레에 넣어 실을 뽑아야 됩니다. 그것을 평안도 말로는 토깽이라고 그래요, 토깽이. 이런 것을 열 새 무명사, 열 한 새 무명사 열두 새 무명사…. 여기 부인들도 그걸 모를 거라, 한 새가 몇 가닥인지. 스무 올을 한 새로 잡는 거예요. 열두 새라고 하면 한 새가 스무 올이니까 2백 4십 올이지요? 그게 참 광목같이 이쁜 거예요.
혼례, 결혼을 하게 될 때, 그 집안을 평가하는 데는…. 여기서는 모르지만 평안도에서는 예단이라고 그래요. 그 혼수를 보낼 때 여러 가지 뭐, 옷도 보내고 뭐 전부 보냅니다. 옛날 평안도에서는 무명, 최고의 고급 무명을 누가 몇 필이나 가져가느냐, 그걸 자랑합니다. 거기에 따라 그 집 가문이 어느만큼 자립 자족할 수 있는지를 평가했습니다. 먹고 사는 데는 입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그러니 층층시하 사대부집 같은 데 가려면…. 그때에 무슨 나일론 옷이 있었어요? 옷이라는 것은 전부 다 아낙네들이 목화를 따다가 실을 만들어 가지고 베틀로 짜야 된다구요.
그런 것에 우리 어머니가 챔피언이예요. 어머니가 힘이 세다구요. 내가 어머니를 닮았다구요. 그러니 이렇게 힘이 세요. 하루에 열 새 같으면 이틀이면 스무 장을 짜 버리는 거예요. 보통 여자가 세 장, 네 장 짜는데 스무 장을 짜는 것입니다. 우리 누나가 시집갈 때, 정 바쁠 때에는 하루에 한 필을 끊었어요. 바쁘니까 언제 기다릴 새 있어요? 후닥닥 해 버리는 거예요. 내가 그런 성격을 타고나서 후닥딱 잘합니다. (웃음) 그렇게 무명을 토깽이 한 것을 모아 몇 필씩 준비해 가지고…. 이 일이 참 신기한 거예요.
우리 집에 가게 되면 큰 밤나무가 있어요. 한 2백 년 된 밤나무인데 그렇게 아름다운 나무예요. 내가 원숭이 띠라서 나무에 잘 올라다녔어요, 가지마다. 밤송이 있는 데마다 그저…. (웃음) 이렇게 뚱뚱한 사람이, 그때도 뚱뚱했다구요, 나뭇가지가 휘어 떨어지게 되면 저 아래 가지에 가서 닿을 것을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떨어질 때는 다른 나뭇가지에 걸치고 떨어지지요. 일부러 끄트머리에 가서 나뭇가지가 닿는 곳까지 가는 시험까지 한다구요.
그렇게 다니면서 조그만 나무 지팡이를 하나 만들어 가지고 그걸로 톡톡 밤송이를 따면 참 재미가 있습니다. 어떤 것은 밤알이 짝 벌리고 있거든요. 이걸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따는 거예요. 톡톡톡톡…. 잘못하면 떨어진다구요. 그 밤알을 떨어뜨리지 않고 따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거 아주 생생하다구요. 이것은 시골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거라. '저, 저 말도 잘하는구만, 다 지어 가지고' 뭐 그렇게 알아도 괜찮아요. (웃음) 거 십여 길, 십여 길이 아니지 수십 길이지. 그 밤나무 굉장히 크다구요.
그리고 큰 아카시아 나무가 있어 가지고 거기에는 까치 둥지가 몇 개가 있었는데 사철 언제나 까치가 지저귑니다. 큰 나무에는 틀림없이 까치 둥지가 몇 개 있어요. 까치는 길조라고 그러지요? 까치가 깍깍깍 하면 무슨 소식이 온다고 그러지요? 우리 집의 문에 들어서면 매일, 아침에도 깍깍 밤에도 깍깍 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치 둥지가 있는 나무에 순식간에 올라가는 거예요. 이렇게 자꾸 올라다니니까 나중에는 후닥딱 올라가는 거예요. 그리고 이 까치의 생리라는 것은 보면 참 재미가 있습니다. 이런 얘기 하다가 시간이 많이 가겠구만. 이런 과거의 얘기를 듣는 것도 좋지요. 그렇잖아요? 「예」 곰탕국을 먹을 때 뚝배기에다 먹어야 그 맛이 제맛이라구요.
그럼 이야기를 하자구요. 까치의 둥지를 보면 벌써 아, 금년에는 바람이 어디에서 어디로 불겠구나 하는 것을 알아요. 동풍이 불겠다 하면 방향을 딱 달리해 가지고 들락날락 거리면서 구멍을 딱 내놓고 나뭇가지를 끌어다가 둥지를 치는 걸 보면, 참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 걸작품을 만들어 놓는다구요, 이게. 이것은 나뭇가지로 엮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비도 새고 그럴 게 아니예요? 그러니 나중에는 뭘하느냐 하면 진흙을 갖다가 아래에다 전부 바르는 거예요. 바람이 안 들어오게 이렇게 해 놓고는, 참 신기할 정도로, 비가 오면 한 곳으로 흐르라고 전부 한 곳으로 끄트머리를 대 가지고 비가 집으로 떨어지지 않게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끄트머리를 될 수 있는 대로 그렇게 모아 놨더라고요. 비가 내리면 이 빗물이 흘러 가지고 그쪽으로 떨어지게 하는 거예요. 이걸 누가가르쳐 주었는지 참 대단한 솜씨지요. (웃음) 우리 인간들도 그런 집을 지으려면 아마 몇 년은 배워야 될 거예요. 그런데 나뭇가지를 입으로 물어다가 쑥쑥쑥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벌써 보면 알아요. 며칠이 지나 둥지를 다 틀고 얼마가 되면 알을 까게 되는지 압니다. 그 알을 보게 되면, 그 까치의 알을 보면 파르스름한 줄이 엉켜 있어요. 알랑알랑한 줄이 있다는 거예요. 아주 예쁘다구요. 이 알의 크기는 계란의 한 4분의 1이 됩니다.
그 알을 낳기 전에는 아무리 올라가도 그렇게 짖지를 않아요. 울지를 않아요. 그러나 알을 낳고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때 우리 같은 나이의 사람은 짓궂은 사람이지, 짓궂은 녀석이었지 그때는. 알을 낳을 때 올라가면 이 까치가 동네 방네 야단을 칩니다. 그러면 동네의 주변에 있던 까치 떼가 와 가지고 그걸 시기하는 거예요. 그것이 재미가 있어요. 그런 취미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새들이 생활하는 그 생태에 대해서 훤하지요. (웃음)
그렇게 한번 올라가면 한 알 낳고, 그다음에 올라가면 두 알 낳고, 세 알 낳고, 이것이 많이 날 때는 열두 알까지, 열세 알까지 낳는다구요. 그런데 아무리 왔다 가도 피해를 안 주거든요. 이렇게 익숙해지니까 쓱 오게 되면 '아! 또 오는구나' 하고 인사를 해요. 꽥 꽥, 인사를 하는 거예요. 올라가도 어떻게 하지를 않거든요. 올라가서 보고 그냥 내려오지요.
어떤 때는, 비가 오든지 하면 안 올라가거든요. 그러면 내가 어디에 쓱 나가게 되면 어디에 있다가 그러는지 깍깍깍깍깍 신호하는 거예요. 왜 안 오나 하고 말이예요.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더라 그거예요. 거 거짓말이 아니예요. 여러분이 그런 취미를 몰랐지요. 이제는 다 늙었으니 그런 취미를 갖지도 못하지요. (웃음)
그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구요. 또, 그놈이 새끼를 까면 어떻게 하느냐 하면, 그 나무 더미가 있거든요, 거기에 둥지를 만들어 가두어 놓고는 먹이를 물어다가 먹이는 것입니다. 먹이를 물어다 먹이는 걸 보게 되면, 새가 자기의 새끼를 사랑하는 걸 보면 우리 인간이 자식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많은 배울 점이 있다는 거예요.
이 새끼가 날아다닐 수 있게끔 되었는데도, 어느만큼 컸으면 내버려두지 않고 그냥 먹이를 물어다 먹이는 거예요. 이걸 내가 한 마리 한 마리 놔 주는 거예요. 오늘은 내가 너에게 제일 좋은 일을 한다고 해 가지고는 다리에다 고무줄을 길게 매 가지고 날리는 것입니다. 짓궂지요. (웃음) 그래 놓으면 이 까치가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이 새가 화르르륵 날면 어느새 어미 새가 와 가지고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 그래, 이 새가 날아가다 고무줄을 매 놨으니 별수 있어요? (웃음) 이런 놀음을 몇 번 하다가 불쌍해서 그냥 날려 보내 주면 새끼를 어미가 다 데리고 안내해서 보이지 않는 숲속의 큰 노간주나무에 옮겨 놓는다구요. 여러분은 노간주나무라고 하면 아는지 모르겠구만. 큰나무라구요. 그런 저런 세계를 보게 되면 다 사랑의 정서를 중심삼고 움직인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입니다.
어미 하면 암놈, 아비 하면 숫놈인데 그 새가 새끼를 잃어버리면 그 새의 심정은 인간세계에서 부모의 심정과 마찬가지예요. 도리어 요즈음 세상의 인간이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정서적 기원이 어디서 나왔겠느냐 이겁니다. 응? 어디에서 나왔겠느냐? 어미라면 모든 새끼를 전부 다 사랑할 줄 알아요. 이걸 인간인 우리가 가르쳐 줬어요? 거 어디에서 그렇게 배웠어요? 사랑하지 않고 서로 싸워 물어 잡아먹지. 그렇지만 전부 다 새끼를 보호하는 걸 보면 기가 막히다구요.
또 그다음에 수놈과 암놈이 때가 되면 참 신기해요. 때가 되면 누가 먼저 발동하느냐 하면 암놈이 발동을 해요. 암놈이 발동을 하게 되면 눈이 뒤집어지고 입술이 붓고, 모든 부분이 전부 다 붓는 거예요. 소로 말하면 울면 벌써 암놈이 우는 소리인지 숫놈이 우는 소리인지 알아요. 나는 모르는데, 소가 우는 소리는 암놈이나 숫놈이 움메 하는 것이 같은 것 같은데 암소가 우는 걸 숫놈은 벌써 아는 거예요. 어디에서 소리를 들었으면 벌써 그곳을 향해서 쏜살같이 달려가는 거지요. 그러니까 여자 혼자 사는 것도 불행하다구요. 불행하지 뭐. 그렇게 다 좋아하면서 살기 마련이라구요.
그 암놈이 처음 만나는 숫놈에 대해 자기 할아버지 만난 것 이상, 세상의 누구보다도 더 귀한 손님을 만난 것 이상, 더 가까운 무엇을 만난 것처럼 좋아하는 것입니다. 처음 만난 숫놈이 뭐가 그렇게 반가울꼬? 응? 그저 입을 이렇게 뒤집어 가지고…. (표정을 지으심. 웃음) 내가 이런 원맨쇼를 해서 미안합니다, 이 공석에서. 그렇지만 사실이니까요. 사실이니까 할 수 없다구요.
그것 누가 그렇게 가까우라고 가르쳐 주었어요? 자기 어머니가요? 그때는 자기 어머니도 몰라봐요. 자기 아버지고 뭣이고 다 버리고 혼자 가서 그러고 있다구요. 그게 다 자연의 이치예요. 발생하는 모든 것은 때에 따라서 컸다가 작아지고 작아졌다가 커지면서 발전하는 자연의 이치에 박자를 맞추지 않으면 존속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박자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별수없다 이거예요, 하나님도. 노아 할아버지가 점잖고 이렇지만 그 할아버지도 자기 할머니 대해서는 별수없지요. 할머니가, `아이구 당신 나 좀 도와주소' 하면…. 그네들도 뭐 이렇게 어리광도 하고 다 그러는 거예요. 안 그래요? 자기 집안의 종가댁 할아버지는 세도가 당당하지만 그 할머니에 대해서는 세도가 당당하지 않거든요. 그건 너와 나와의 같은 박자에 놀아나는 거예요. 안 그래요? 높고 훌륭하다는 것도 전부 사랑을 중심삼고 돌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훌륭하지요? 유명하지요? 「예」 선생님이 훌륭해요? 「예」 뭐가 훌륭해요? 뭐이? 선생님이 눈이 훌륭해요? 여러분의 눈보다 작다구요. 훌륭한 것이 없다구요. 아무것도 없어요. 뭣이 훌륭해요? 문제는 그것이예요. 천지의 모든 것보다 정서적인 세계에 박자를 맞추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폭이 넓고 깊이가 깊고 높이가 높은 것, 그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하나님의 사정을 알고, 역사의 사정을 알고, 세계의 모든 사정을 통하고, 미래의 인간의 사정은 이럴 것이다 하는 것을 예상하고 그것을 그려 가는 거예요. 그런 면이 다르지 다른 면에 다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학식이 높다고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돈이 많다고 자랑할 것이 못 돼요. 그 사람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정서적인 인격이 얼마만큼 크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러한 분을 남편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여자라는 동물은 너나할것없이, 늙으나 젊으나 할것없이 다 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찾아가고 싶어합니다. 또, 남자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크고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못생긴 부인이지만 정서적인 터전의 닻줄을 매 놓은 그 인연을 따라 가지고 좋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 그렇게 돼 있지 않아요? 안 그래요?
그건 누구를 닮았느냐 이거예요. 누구를 닮았느냐?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뿌리예요, 뿌리. 보이지 않는 뿌리예요. 우리 인간은 전부 다 이 줄기를 통해서, 즉 조상을 통해 가지와 같이 잎까지 돼 있다구요. 잎 가운데는 줄기도 있는 것이요, 가지도 있는 것이요, 뿌리도 있는 것입니다. 요즘에 그렇잖아요? 식물의 세포를 번식시키는 시대에 왔지요? 이 세포 하나를 따 내 가지고 유리관 같은 데 심어 놓으면 말이예요, 거기에서 자라는 거예요. 자라는데 이 세포 하나에서 꽃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꽃이 나오는데 그 색깔을 어디에서 보급받았는지 씨가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 세포 안에는 줄기도 있고 뿌리도 있어요. 그래서 다 나오는 것입니다.
그걸 생각하게 될 때 우리 인간 자체가 누구를 닮았겠느냐 이겁니다. 누구를 닮았겠느냐? 조상을 닮았다는 거예요, 조상. 종지 조상이 누구냐 할 때, 우리는 원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제2의 존재입니다. 제1의 존재가 아니라,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는 상대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근원에서 빚어진 결과적인 존재라는 거예요. 근원 자체가 뿌리가 되어 있어 가지고 우리는 그 근원에 연결된 관계의 결실체로서 태어난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은 원인적인 뿌리와 통할 수 있는 소질이 있는 것입니다. 그건 뭐냐? 우리 인간이 누구를 닮았느냐 하면, 아까 말한 세포가 자기 조상을 닮은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예」
그러면 하나님은 어머니가 있어요, 없어요? 하나님의 어머니가 있었으면, 어머니의 실체가 있었으면 창조가 필요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성격 주체입니다. 이런 것을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알고 결론지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신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격 주체로 존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머니격 존재가 필요하니까 그 어머니격을 창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면 아담은 무엇이냐? 무형의 신으로 계시는 하나님은 이 우주만을 상대로 자극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마음 자체만 가지고는, 마음 자체가 아무리 자극을 해도 무형의 실체로는 감동이 없다구요. 같은 것이니까, 같아서 도니까 자극이 안 온다는 거예요. 이것이 서로 상충된 것, 더운물과 찬물이 합하면 폭발하지요? 그런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상대적 거리를 두어 가지고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플러스로서 마이너스적인 상대를 만든 것입니다. 내적인 것, 외적인 것, 하나님의 성품이 둘이 있는데 플러스격 상대형이 아담이요, 마이너스격 상대형이 해와입니다. 그 둘을 지어 가지고 하나님은 어디에 가 있으려고 하느냐 하면 아담 속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담 속에 들어가서 해와와 하나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해와는 누구냐?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부인이요, 외적으로는? 「아담의 부인입니다」 야, 여자가 올라갔다!
하나님이 무엇을 만들었느냐? 인간을 만들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실체화시킨, 자기 자신의 부인을 실체화시킨 것이 우리 인류시조 조상이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영적인 세계를 느끼게 되면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하게 되면 어디에서 대답하느냐 하면 마음에서 '오냐' 그래요. 그런 체험 해보았어요? 그런 경지에 못 갔으니 그렇지 마음보고 물어 보면 다 답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영통을 하든가 혹은 관상을 본다든가 하는 사주장이, 혹은 무술가(巫術家)들이 쭉 있잖아요? 그 사람들은 저급한 영이 마음에서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걸 들을 수 있는 본연의 성품이 돼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작용이 차원 높은, 저변이지마는 차원 높은…. 그것이 저변으로 내려가지마는, 자꾸 떨어져 내려가지마는 본성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이 관계하면, 작용하면 작용할수록 승화된다는 거예요.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내려가는 인간이 돼 버렸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담은 누구냐? 아담은 절대 창조주의 몸입니다. 몸으로 만든 것입니다. 무형의 실체로는 실체 자극의 세계를 대할 수 없어요. 인간 자체가 무형으로 되었으면 다른 것을 대할 수 있나요?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아담의 마음에 들어와 아담이 성숙되기를 바랐고 하나님 자신이 해와의 마음에 들어와 가지고 해와가 성숙되기를 바랐습니다. 하나님이 성숙되기를 바라던 그때에 타락한 거라구요. 타락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직계 혈통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틀림없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뿌리가 돼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엇의 뿌리? 하나님이 사랑의 뿌리라는 거예요. 그러나 타락했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역사 창조이상세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뿌리가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걸 몰랐다는 거예요, 말은 간단하지만.
신령한 경지에 들어가서 우주의 근본이 무엇이냐 하고 기도하게 되면 답은 간단해요. '부자의 관계다'해요. 그럼 부자의 관계가 뭐냐? 그걸 해석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걸 풀어서 맞춰야 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수많은 영통인들이 그 세계를 몰랐다는 거예요.
역사 이래 비로소 선생님이 나와 가지고 이걸 체계화해서 모든 것을 밝혀 현시대와 더불어 미래의 세계까지 풀어 가지고 사람이 되돌아가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병난 것과 같은, 명주실의 꾸러미가 제멋대로 엉클어진 것과 같은 것을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푸는 길이라는 것은 둘이 없어요. 단 하나예요. 단 한 길이지 두 길이 아니라는 거예요. 절대 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한 길을 풀지 않고는 절대 인간의 저끄러진 역사적인 모든 죄상을 풀고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의 자리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본 고향에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아까 말한 통일교회는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간들이 가르침을 받는 그런 모임인데 그 가르침을 받는 모임 가운데 무엇이 최고냐? 어떤 것이 대들보 되는 가르침이냐? 하나님과 인간을 중심삼고 관계된 최고의 대들보는, 그 기준은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들보가 되어서 거기에서 모든 것이 지어진다는 거예요. 그걸 가르쳐 주는 교회라면 그 교회는 만국이 필요로 하는 교회이고 만민이 필요로 하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를 중심삼지 않고는 이상적인 생활권이 나올 수 없습니다.
왜? 다시 말하면 뿌리 없는 가지가 있을 수 없고 뿌리 없는 잎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가지와 같고 잎과 같다 하게 된다면 그 가지와 잎은 본래의 뿌리를 중심삼고 정상적인 입장을 갖춘 가지와 잎과 같이 돼야 이상적인 생애를 가졌다 할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된다면 인간들이 거꾸로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천지이치에 대해,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간은 거꾸로 태어나 가지고 세계로 뻗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라는 줄거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종대 뿌리와 종대 순이 옆으로 가야 돼요, 직선으로 가야 돼요? 직선으로 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직선으로 순이 되어 가지와 마찬가지로…. 40억 인류가 전부 다 여기 잎과 같이 붙어 있는데 전부 다 거꾸로 붙어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지구성에 거꾸로 붙어 있지요?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씩 도는데, 절반은 위로 올라가고 절반은 거꾸로 서 있는 것을 알아요? 거꾸로 서 있다는 것입니다, 우주 공간에. 인력이 붙들어 주기 때문에 이렇게 있다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뿌리로 해서, 보이지 않는 뿌리를 중심삼아 줄기가 되어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태어났는데 이놈의 나무들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전부 다 싸우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 뿌리가 어떻게 되겠어요? 그 싸움의 영향을 뿌리가 받겠어요, 안 받겠어요? 받겠지요? 그러니 하나님이 편안하겠어요, 고통스럽겠어요? 응? 뿌리에서 나오는 진액은 어느 가지나 가야 돼요. 뿌리에서 나오는 그 진액은 '아, 서양만 가라. 백인세계에만 가고 황인종세계, 흑인세계는 가지 마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충만한 영양소는 반드시 뿌리를 통해서 결여된 부분에, 병이 나서 고통을 받는 데에 전부 다 공급되게 돼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기에 무슨 덧이 나든가 헐어 가지고 아픈 데가 있으면 백혈구가 와 가지고 싸워 주지 않아요? 이렇게 공급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천지이치가 그래요.
그러니 잘사는 백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흑인사회에서 못사는 사람을 잘살게 만들어 주어야 돼요. 그게 정상입니다. 공급해 주어야 된다 이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수작용을 지금 못 하고 있으니 세계는 요란스럽게 파탄이 벌어지고 비참한 일이 계속해서 궁그러져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하나님을 레버런 문이 만났는데 만난 그때부터 지금까지 선생님의 생활은 어떤 생활이었어요? 행복한 생활이었어요, 비참한 생활이었어요? 하나님이 좋아하는 생활이었겠어요, 기가 막히게 싫어하는 생활이었겠어요? 그거 문제라구요. 좋아하는 생활이었겠어요, 싫어하는 생활이었겠어요? 「좋아하는 생활…」 왜 좋아요, 왜?
자, 병이 나서 죽게 된 환자가 있다 할 때 그 환자에 대해서 의사가 밤을 새워 가면서 수술한다면 그 병원 주인이 '야 이 녀석아! 밤을 새워 가면서 수술하는 법이 어디에 있어?' 이러겠어요, '몇 밤이라도 새워 수술해서 그 병난 사람을 고쳐' 그러겠어요? 어느 편이 되겠어요? 밤을 새워 수술한 그 사람에게 잘했다고 칭찬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일생을 거쳐 섭리의 뜻을 대해 나오는 레버런 문이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직접 칼을 잡고 수술하는 의사와 마찬가지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술할 때에는 하나 하나 책임을 져야 되는 겁니다. 책임을 지지 못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 이상으로 존중시하고, 자기 생명을 희생하더라도 그를 회복시키겠다는 그런 공적인 책임을 져야만 의사로서 천지 앞에 공증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 자기 이익 때문에 혹은 고단하다고 중간에 쉬게 되면 파탄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건 반드시 이 우주가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를 처단해 버린다 이것입니다.
그런 생활을 계속, 계속, 계속해 나간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 자체는 불행한 것입니다. 얼마나 고달프겠어요? 고달프지마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 놓게 되면 그 환경은 기쁜 환경이 된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자기를 중심삼고 기뻐할 수 있는 많은 사람을 만들어 놨다 하면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사람들이 내 입장에서 전부 다 갚아 주어야 되는 거예요. 은혜를 갚으라고하지요? 은덕에 보답할 줄 알아야 됩니다.
사람은 반드시 받는 것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받는 것을 좋아하는 동시에 주는 것도 좋아합니다. 악한 사람은 뭐냐? 받는 것만을 좋아하고 주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악한 사람입니다. 거기에서 갈라지는 거예요. 그러면 선한 사람은 어떠냐?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예요. 이게 이치예요.
주면 어떻게 되느냐? 공기로 말하면 저기압이 되는 것입니다. 그 저기압이 완전히 진공상태가 되어 가지고 이만한 진공상태에서 이렇게 보급하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 진공상태의 범위를 크게 만들게 될 때에는 제일 높은 고기압이 찾아온다는 거예요. 그것 이상하지요? 옆에서 밀어내요. 저기압 진공상태에 눈이 있으면 눈에서부터 점점점점 올라가요. 저 높이 있는 고기압은 어디가 움직이느냐 하면 옆에서 움직이지 않고 저 꼭대기에서 움직입니다. 가까운 데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기압에 물들어 가지고 어디가 움직이느냐 하면 반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운동의 법칙이 그래요. 이것이 다 갔다가는 돌아와야 됩니다. 마찬가지 이치예요. 그러면 고기압이 움직이기 시작한다구요.
주는 것이 왜 좋으냐? 착한 아이는 잘 참아요. 참는 아이가 착해요. 왜 착한 아이가 참는 것이냐? 참는 것은 내가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분함을 참는 그 자체가 피해를 받는 거예요. 그 대신 나는 너에게 무엇인가, 참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 주고, 둘 주고, 또 주고, 또 주고 이렇게 되면 참을 중심삼은 저기압권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참의 주체인 하나님은 하늘로부터 이것을 공급해서 평형수준까지 올려 주어야 됩니다. 자기의 위치에서 내려와서 평형수준까지 올려 주어야 됩니다. 이렇게 채워 줄 때에는 자기가 참고 주던 것과는 천양지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큰 낙차가 벌어지는 거예요. 알겠어요? 우주는 그렇게 작용한다는 거예요. 어느누가 망하고 싶은 사람이 있겠어요?
대한민국도 요즈음에 그렇잖아요? 어저께 국회의 중요한 지위에 있는 어떤 양반이 밤 열 시에 나에게 와 인사를 하면서 대한민국이 현재 위기에 있다고 큰일났다고 하면서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일이 이러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는 거예요. 천지의 이치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높아지면 낮은 데에 주어야 되고 낮은 것은 높은 데에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돌아가야 됩니다. 이렇게 돌아가지 못하게 될 때에는 그건 망하는 거예요. 망해요.
그럴 때에는 국민이라도 그 놀음을 해야 됩니다. 상부에서 그걸 못 하게 될 때에는 국민이라도 세계의 운세와 더불어 주고받으려고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현재의 주권이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 누구가 문제가 아니고, 아시아면 아시아의 주권자와 같이하던 그 운세가 주권자를 떠나게 될 때에는 국민이 아시아의 운세를 잡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걸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통일교회는 이 놀음 하자는 거예요.
아시아의 운세보다 세계적인 운세를 잡는 민족이 되고, 거기에 다 뭉치게 되면 그 주권자가 따라와서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거예요. 주권자는 언제나 줘야 된다 하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망하는 거예요. 내가 높은 데 올라가서는 낮은 데에 줄 수 있어야 된다구요, 이치가. 이래야 모든 것이 발전해요.
발전할 때에 직선으로 발전하느냐? 아니예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총알이 나갈 때에도 직선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휙 돌면서 이것이 저으며 가는 거예요. 그건 뭐냐? 반드시 주고받는 작용을 하는 거예요, 호흡작용과 같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선생님을 중심삼고 어제와 오늘을 보게 된다면 선생님은 일생 동안 비참한 생활을 했어요. 뭐 감옥에 들어가고, 이번에도 댄버리에 들어갔다가 나왔지만 말이예요, 댄버리에 왜 갔느냐 이거예요. 나 때문에 간 것이 아닙니다. 그건 미국 때문에 갔다는 거예요. 그러니 미국은 걸려들어가는 거예요. 알겠어요? 댄버리에 왜 갔느냐?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간 것입니다. 그런 구렁텅이에 왜 들어갔느냐? 세계적인 구렁텅이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망한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는 세계의 모든 고기압권의 운세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 그 폭을 넓혀서 슬픔을 희망으로 소화하는 자리입니다. 세계의 운세가 감옥에 있을 때 찾아오더라도 피해를 입지 않고 서럽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이것이 선생님이 지녀야 할 자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철창이라도 내가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을 막을 수 없고, 내가 심정으로 주고받는, 교류하는 그 길을 어느누구도 막을 수 없다 이거예요. 이것은 철창을 넘어서, 어려운 환경을 넘어서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벌써 한계를 맞춰 이 수평선을 넘어섰기 때문에 미국 국민은 레버런 문을 존경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으로 들어갔습니다. 존경하지 않을 때에는 우주가 전부 제거하는 거예요. 우주가 갈아치우는 것입니다.
사람은 영물이기 때문에 자기가 죽고 사는 것을 예감한다는 거예요. 대한민국 국민들이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오니까 전부 다 어디로 향하느냐 하면 문선생이라는 사람을 지금까지 욕하던 사람, 제일 나쁜 사람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얼굴은 이렇게 가려고 해도 꼭대기는 이렇게 가려고 한다구요. 발은 이렇게 서 있지마는 저렇게 가려고 합니다. 문총재에 대한 말만 들어도 괜히 관심이 많다는 거예요. 밤에도 관심, 변소에 앉아서도 관심을 가지는 거예요.
변소에 앉아 있을 때가 제일 공허한 때라구요. 그 시간에는 밥 먹을 것 잊어버리고, 공부하는 것 잊어버리고, 자기가 무엇을 하던 모든 것을 그 시간만은 다 잊어버리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그때 남는 것은 처리 공장, 배설기관에 모든 힘을 주는 거예요. 힘을 주고 나면 공(空)이 되는 것입니다. 속이 허하다는 거예요. 일어서려면 허하다는 거예요. 그때 생각이 뭐냐 하면…. 인간은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은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 하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은 움직인다 이거예요. 마찬가지로 그런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괜히 소문난 문총재에 대해서 관심이 가고 생각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게 요사스러운 것이지요. 임자네들도 그렇잖아요? 통일교회 영신이 되어 가지고 말이예요.
선생님이 누구에게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라고 그랬지 누구 오라고 어디 심방 한번 갔어요? 기성교회 목사처럼 심방 가는 것 봤어요? 어떤 할머니가 와 가지고 '제 환갑날이 언제인데 그날 제발 선생님이 와야 내가 죽을 때 한이 풀리니 반드시 와 주어야 되겠습니다' 해서 그럴싸하게 답을 했지요. '정 그렇다면 한번 갈지 모르지. 하지만 내 마음대로 갈 수 없어. 하나님이 가라사대 가라 하면 간다'고 한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통일교회 교인들 가정에 심방해 본 적이 없습니다. 기성교회 교인처럼 내가 저기 서 가지고 종처럼 '어서 옵소, 어서 옵소, 어서 옵소' 하고 나는 죽어도 못 해요. 그게 다른 거예요.
그거 왜 그러는 거예요? 자기들에게 이익 될 수 있으면 오지 말라고 해도 오는 거예요. 안 그래요? 장 마당에 누가 모이라고 해서 모이나요? 이권이 거기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행여나 하고 모이는 것 아니예요. 여기에서 손해나지 않는 놀음만 하게 되면 오지 말라고 해도 오게 돼 있는 거예요, 내가 욕을 하더라도. 내가 눈을 감고 주먹으로 후려갈겨도 통일교회 교인들은 '저거 미친 사람이다, 미친 녀석이니 다시는 안 보겠다' 하고 도망가지 않고 뒤로 돌아와서 히히히히 하면서 따라다니는 거예요. (웃음) 그것이 다른 교회와 달라요.
매를 맞아도 좋거든요. 그렇잖아요? 사랑의 매는 즉각적으로 잊어버리는 거예요. 아이들을 보라구요. 내가 아이들을 많이 기르다 보니 어떤 때에는 기합을 줄 때도 있습니다. 나름대로 기합을 줄 때는 야단도 치지만 그거 쓱 하루만 지나면 다 잊어버려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귀한 거예요. 철이 들었다고 이걸 안 잊어버리고 '음― 언제 나한테 이렇게 했지' 그러지 않습니다. 사랑의 채찍은 잊어버리는 거예요.
마찬가지예요.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는 수고롭고 고통스러운 일도 잊어버리는 거 아니예요? 일생 동안 그 자식을 위해서 고생을 했는데도 또 그 자식이 잘못하면 그 부모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또 그 고생을 하려고 하거든요. 또 하고 있거든요. 그런 거라구요. 잊어버리는 거예요.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요즈음에 와서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돈도 내게 필요 없고 권력도 내게 필요 없습니다. 통일교회 창시자인 나 대신, 나보다 조금이라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그 사람에게 이걸 맡기고 빨리 영계에 가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눈을 아무리 두리번 두리번 해봐도 나 이상 할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걱정이예요. 그것에 대하여 나도 걱정하고 있지만 하나님도 걱정하는 거예요.
세상만사 내가 고생으로 시작했기에 세상에서 영광받고 잘살면서 죽어가고 싶지 않은 거라구요. 참을 위해서 고생을 시작했으니 참을 중심삼은 고생으로 끝을 맺고 싶은 것입니다. 유종의 미라는 것이 있잖아요? 알파와 오메가. 참을 위해서 고생을 시작했으니 여기서 모든 것을 고생으로 끝내어서 이제는 좋은 것으로 시작하여 좋은 것으로 끝맺을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이루어야 되겠다, 이러한 고생은 내게서 전부 끊어 버려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거라구요.
요즈음에는 무슨 생각을 하느냐 하면 내가 편안한 자리에서, 병원 침대에서 죽어갈 것이냐, 이렇게 말을 하다가 죽어갈 것이냐 하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다가 객사하는 놀음이 있더라도 이것이 사나이로서 갈 길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이제부터는 준비를 해야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그러니 통일교회의 여러분도 문선생을 따라다니면 그렇게 죽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예」
보라구요, 내가 이번에 와 보니까…. 옛날에는 대구에 할머니들이 많았어요. 3월이 끝나면 내가 해야 할 프로그램이 대개 끝나니까 4월이 되면 지방을 한번 순회하면서 그 할머니들이 누구 누구 남았나 볼 것입니다. 그들은 옛날에 선생님을 찾아다니면서 눈물을 철철철철 흘렸다구요. 그 전에는 선생님을 전부 다 반대했습니다. 대구 같은 데 역사가 많았다구요. 한 달에 열세 번 이상 이사를 했으니 매일 이사한 거 아니예요? 이단 괴수가 들어왔다고 대구 목사들이 전부 다 쫓아내라 하니 교인들은 그 나발을 듣고 색다른 사람을 쫓아내는 거예요. 자기 집에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되어있거든요. 그러니 쫓아내는 거예요. 그런 서러움 가운데 이사를 다니는 거예요.
선생님이 벌써 눈치를 보고 살짝 이동을 하는 거예요. 그럼 대구에 있는 식구들은 '아이구, 선생님이 어느 날까지 여기에 있었는데 오늘 찾아와 보니까 이사를 해버렸다' 하는 거예요. 그러니 선생님을 중심삼고 죽자 살자 따라다니던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야단을 하고 기도를 하고 허둥대는 거예요. 뭐라고 할까 외아들, 맏아들, 자기가 희망을 전부 걸었던 맏아들이 죽은 거와 마찬가지라구요. 사랑하던 남편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 하거든요.
그러니 길을 가면서도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우리 선생님 어디에 갔소' 중얼거리는 거예요. 그렇게 하늘 대해서 울부짖으니까 하나님은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선생님이 보고 싶어?', '보고 싶으니까 눈물을 흘리지요', '좋아 그럼 가자' 그렇게 하나님이 인도해 가지고 찾아오는 거예요. 저 강뚝 옆 조그마한 오막살이집에 저녁에 이사를 왔는데 그다음 날 새벽에 와 가지고, '여기에 선생님이 있다고 그러던데' 하면서 문을 열고 들어와 보니 선생님이 있거든요. 그게 믿어져요? 「예」 쌍, 도깨비들 같으니,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에 있어, 요사스럽게? 옛날 핍박을 받을 때에는 그렇게 지냈어요.
그래, 통일교인들을 하나님이 사랑했어요, 사랑 안 했어요? 「사랑했습니다」 누구 때문에? 누구 때문에? 인간세계에 있어서 남자 여자들이 좋아하고 부모와 자식이 좋아하는 그런 환경과 달리 이것은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의 인연도 있지 않아요? 출발도 달라요. 저 북한에서 온 사나이…. 남한에서 지금까지 잘살고 있던 아낙네들이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는 자기의 집은 다 버려도 선생님만은 못 버리겠다고 나서니 선생님의 갈 길이 편안했겠어요, 편안하지 않았겠어요?
저기 효율이 어머니도 통일교회에 미쳐서 자식은 미국 보내고 자기는 여기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아서 자식을 찾지 않고 사는 여편네가 되었으니 거 얼마나 못된 어미예요? (웃으심) 그래도 누가 그를 못된 어미라고 생각하지 않고, 또 자식도 우리 엄마는 못된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구요. 우리 엄마 훌륭한 엄마, 우리 자식 훌륭한 자식이라고 생각한다구요. 별천지의 사랑의 계수를 중심삼고 엮어졌다구요. 사랑의 계수 알아요? 셀 수 있는 단위를 계수라고 한다구요.
그런 할머니들이 여기에…. 옥씨 할머니도 여기 앉아 있구만. 옥씨 할머니만 해도 그래요. 누가 전도하지 않았어요. 주님이 온다고 기도하고 야단해 가지고 영계를 통해 보니 주님이 구름 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온다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러니 누가 믿지 말라고 해도 절대 믿게 돼 있거든요. 기도할 때 '주님이 언제 옵니까?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영국 사람이요, 불란서 사람이요, 어디 사람이요?', '어디 사람은 어디 사람, 한국 사람이지' 하니까 '한국 어디에 옵니까?', '평양이다', '평양 어디로 옵니까?', '와 있어', '옵니까, 올 것입니까?' 그러니 영계에서 기도가 부족하다고 '더 기도해라. 해라' 이래 가지고 가르쳐 주는 거예요. '왔다' 하니 '어디에 있소?', '어디에 있기는 어디에 있어 경창리 조그마한 어떤 마을 방에 숨어 계신다' 하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경창리는 아는데 선생님이 그때 거기에서 숨어 지내고 있어서 그 소문이 안 나 있으니 찾을 수가 있어요? 그때 내가 경창리에 나가서 개척할 때라구요. 기성교회 잘 믿는 사람들은 내 말만 들으면 다 홀딱 반하게 돼 있다구요, 어느 할머니나, 아저씨나, 할아버지나. 내가 말하는 재간이 있다구요. 또, 안 들으면 가만히 마음을 열어 보면 저게 뭘하고 있는지 알거든요. 그때는 그런 놀음을 많이 했어요. 잘못하면 '이 쌍것아 잘못하고서 이제 와서 이런 놀음을 해?' 했다구요. 그때는 제일 무서운 사람이었어요. 지금 여러분은 모르지요? 지금은 양반, 신사가 되어서 감투를 쓰고 예복을 입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은 하지 않지요. 지금도 하라면 곧잘 한다구요. (웃음)
여러분의 결혼도, 여러분이 결혼을 하는 데 있어서 1분 동안에, 1분이면 60초인데 1분 동안에 30명을 내가 묶을 수 있다구요. 2초에 한 쌍씩 묶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구요. 그렇게 해주어도 아이구 맛있다 하고 떨어지게 돼 있지 불평할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왜? 가만히 보니까 그렇게 선생님이 해준 것이 그만이거든요. 자기들이 한 것보다 낫거든요. 아들딸을 낳더라도, 메주 같은 자녀를 낳더라도 다 좋거든요, 지나고 보니까. 그러니까 내가 어디 도망가서 산에 가서 전부 다…. 일본으로 말하면 옛날에 다스께라 하는 사람이 바위 굴에 들어가 있는데 제자들이 그 문을 열어 가지고 자기 상관을 모시고 갔던 거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영신들도 그렇게 하게 돼 있지 선생님을 마다하게 안 돼 있거든요. 내가 자신을 갖고 이야기한다구요. 마다하는 녀석은 요사스러운 녀석이고 악마의 앞잡이예요. 그러니 하나님의 심정권을 논하는 사람은 나를 모시고 가게 돼 있지, 나를 모시지 않고는 못 가게 돼 있다구요.
그 특권을 가진 사람이 한국 사람 레버런 문이라구요. 역사시대의 첫째 사람이예요. 그 첫째 사람을 닮으면 둘째 사람, 세째 사람, 열째 사람, 백 번째 사람, 3천만 민족, 4천만 민족이 닮게 되는 거예요. 이들을 사랑의 초석으로 배치하게 된다면 한국 백성은 레버런 문의 심정권만 팔아도 어디에 가서 돈을 안 벌어도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이 있는데 오늘날까지 반대하기 일쑤라구요. 그런가 안그런가 믿어 보라구요. 통일교회 교인처럼 믿어 보라는 것입니다. 잘났다는 양반들 통일교회에 대하여 한번 알아나 봤어,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뭘하는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고 야단이야.
그래도 좋다구요. 봄은 찾아오는 거예요. 봄이 오게 되면 씀바귀도 싹이 나는 거예요. 싹이 나오지 않는 나무는 죽은 것이지요. 그건 불을 놓게 된다면 다 타 버리는 거예요. 그러나 싹이 나오는 풀은 타 버렸더라도 뿌리가 타기 전에는 또 나오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심판 때에 불타 버린다고 해서 오그작 오그작 타 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낙오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옛날 고향이, 통일교회 고향이 여기 아니예요? 내가 외국에 나가서 싸우고 돌아왔지마는…. 외국에 가서 기반을 다 닦고 왔다구요. 내가 하늘의 소명을 받아 외국에서 할 일을 다 하고 환고향했어요. 그런 나에게 무엇이 생각나느냐? 옛날, 어제와 오늘, 어젯날에 인연되었던 사람이 그립다구요. 안 그래요? 그 할머니들, 내가 엊그제 생일날 상을 척 대하게 될 때 '그 할머니들이 살아 있으면 내가 소를 몇십 마리를 잡아 팔도강산에 상을 차려 놓고 그 할머니들에게 이 이상 한번 잘 대접하면 얼마나 좋겠노' 그런 생각을 했다구요.
그들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어요? 통일교회 믿다가 지나가는 사람인데, 지난날의 인연인데, 자신의 처자도 아니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인연된 그 사람을 왜 나라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해야 되느냐? 그것을 마음에서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어요. 부정해도 또 현재의 자기를 전부 다 포용해 버리는 것을 생각할 때, 참 정이라는 것은 위대한 거예요. 그 정은 인간의 정이 아니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만나기를 바라고 다 그렇지요.
요즈음 미국에서 오는 식구들을 만나면, 미국에 있는 식구들이 선생님 올 때를 기다리며 '아이구, 선생님이 있을 때에는 선생님이 귀하신 줄 몰랐는데 떠나서 올지 말지 하니까 이제야 간절하다'고 한다는 거예요. 그제야 세계 사람들이 선생님 보고 싶어서 안타까와하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육이예요, 교육. 그래, 요즈음에는 선생님 언제 오느냐고 야단을 한다는 거예요. 당신들도 선생님이 오기를 바랬어요? 「예!」 오기를 바라고 기도한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음― 기도 안 한 사람이 더 많구만. (웃음) 거 기도 안 한 사람들은 가짜들이고, 기도한 사람은….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를 하면 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효자는 부모를 생각할 때, 기쁠 때에 부모와 같은 처지에 있지 않으면 눈물이 나는 거예요. 부모를 잃고 오빠와 누나와 같이 살던 그런 남매는 오빠와 누나를 생각하면 부모 대신 눈물이 동반하는 거예요. 그것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본성이 그런 거예요. 누가 가르쳐 주어서 그런 게 아니예요. 본성이 싹이 터 가지고 사방의 환경을 전부 다 울리는 거예요. 그것이 아름답고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식과 그러한 느낌의 환경에 하나님이 찾아온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뭘 찾아오겠어요? 돈이 아쉬워요, 뭐예요? 통일교회 옛날을 생각하면 그런 사람이 많아요. 선생님이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을 때에는 감옥으로 찾아오고 그랬습니다. 누가 찾아오라고 그랬나요? 찾아가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역사적 사실들이 파노라마 필름처럼 쭈―욱 지나가는 것을 생각할 때 나는 많은 사람 앞에 빚을 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내 생애도 고달팠지만, 나 하나 중심삼고 이만큼 나오기까지는 환경의 심정적 인연을 가진 사람들의 생활이 얼마나 고달픈 생활이었겠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핍박도 받고. 여기 할머니만 해도 쫓겨나고 그랬습니다. 나 만날 때 몇 살이었나요? 몇 살이었소? 「마흔여덟이었습니다」 마흔여덟, 그때 아주 곱상했지. 그때 경창리에서 한다하는 부자집 장로님의 마나님으로서 아들딸 십 남매를 거느리고 떵떵거리던 귀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날아다니는 그 레버런 문을 만나고 나서는, 레버런 문 만나는 것을 집이 반대하고 남편이 반대하고 아들 녀석이 반대하니 그 남편을 차 버리고 자기 아들딸을 차 버리고 문선생을 따라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문선생이 대접이라도 했나요? 그때 저 할머니는 50세가 가까왔고, 나는 새파란 청춘으로 아주 예쁘장한 미남자였다는 거예요. (웃음)
옛날에 그 할머니에게 아침에 오지 말라고 해도 오고, 저녁에 오지 말라고 해도 시간만 있으면 보따리 싸 가지고 오는 거예요. 그때는 대문이니 집이니 형편없었지만 그 집을 궁궐을 찾아가는 이상으로 생각하고 기쁨을 가지고 날아다녔다는 거예요. 그랬어, 안 그랬어? 「그랬습니다」 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봄바람이 불어서. 무슨 봄바람? 하늘나라의 봄바람. 그게 얼마나 세냐 하면, 그걸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얼마나 강하냐 하는 것은 체험 안 한 사람은 몰라요. 절대 모른다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는 그런 줄이 있어요.
선생님이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그들도 선생님을 그렇게 사랑해야 되는 그런 공식이 있다구요. 그러니 본심은 평형기준을 따라서 올라가려고 합니다. 우리가 계단을 올라가면 밟은 그 계단에 평형기준이 하나 있지요? 그걸 밟아야 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미끄러지는 거예요. 평형기준에 발을 들여 놓고 또 올라가는 거예요. 평형기준이 연결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는 발전하지 못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통일교회 한 사람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은 그 한 사람의 사명을 내포한 것이 아니라, 만민이 갈 수 있는 공동적인 책임하에서 그가 선두에 서서 갈 뿐이지 그가 가는 모양은 크나 작으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어려운 때에….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이 흥남 감옥에 갈 때, 쇠고랑을 차고 갈 때 평양에 남은 식구들이 손을 흔들면서 전송하던 것이 잊혀지지 않아요. 나는 눈물을 안 흘리는데 그들은 전부…. 자식이 죽어가는 것도 아니고 무슨 남편이 떠나는 것도 아닌데, 그저 훌쩍 훌쩍 눈물을 떨구는 것을 볼 때, 그 얼마나 비장해요. 선생님은 그걸 보면서 하늘을 찾아가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철창에서 수난을 당하더라도 찾아 주는 길손, 감옥을 찾아 주는 그분들은 전부 다 자기 혈족을 넘고 민족애를 넘어 천상의 심정권을 지상의 감옥과 연결시키는 데 있어서 수치를 무릅쓰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이 놀라운 거예요. 그런 사실들이 통일교회에는 참 많다구요. 여러분 자신은 그걸 모르지마는 선생님 하나를 중심삼고 얼마나 많겠어요?
어떤 때는, 전도를 나갔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굶고 있으면 하늘이 사람을 시켜서 밥을 많이 날라다 먹였지요. 그런 체험들 다 했지요? 그리고 가긴 가야 할 텐데 차표가 없어 정거장에 서서 눈물을 흘리면…. 하늘을 찾아가는 데는 이렇게 기가 막힌 걸음을 걸어야 됩니다. 옛날 선지자들이 가던 걸음을 동반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의 노정을 가던 길을 동반하는 그 심정을 가지고 눈물로써 그 역을 찾아가면 어느누가 차표를 사 가지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는 어제 밤에 잠을 자는데 비몽사몽간에 누가 나타나서 '차표를 사 가지고 기다리면 손님이 있을 것이다. 그분은 이러한 분이다. 이분에게 차표를 주면 너는 화를 입지 않고 복을 받는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있을 때 하늘이 난데없이 사람을 시켜서 차표를 사 주어 차를 타고 가는 그 시간, 그것을 무엇으로 비교하겠어요?
그러니 내가 사형대에 나가 죽는 길을 간다 하더라도 그 가치가 얼마나 귀한 거예요. 나라는 사람이 이 초점에 서 있는 것을 하늘은 보시고 거리를 초월한 자리에서 한 사람에게 명령하시어 초점에 심정권을 결탁시켰다는 놀라운 사실, 그런 사실들이 많이 있어요. 그걸 누가 알겠어요? 그것은 당하는 사람 외에는 모르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누가 믿어 줘요? 전부 다 반대하는데.
그때만 해도 선생님이 가만히 있으면 당장에 벼락을 치고 폭우, 소낙비가 내릴 것같이, 태풍권 내에 휘몰아치려는 것같이 검은 구름이 막 몰려오는 거예요, 영적으로는. 그 싸움을 하는 거예요. 전부 뒤넘이치면서…. 방향이 틀리면 안 돼요. 방향을 바로잡고 이걸 물리치는 그러한 싸움을 하고 있는 선생님을 하늘이 볼 때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그걸 동정하기 위해서 하늘은 한 사람, 두 사람 모아 주는 것입니다. 그런 하늘의 심정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 남은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런 과거의 잊을 수 없는 하나님과의 심정적인 인연, 인간을 얼마만큼 사랑하고 뜻을 중심삼고 공적인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세상에 부모가 있으면 그 부모는 일생을 중심삼고 70, 80년 혹은 수십 년밖에 모실 수 없지만 내가 태어난 그날부터 영원히 모실 수 있는 그런 부모를 내가 가졌다는 이 놀라운 사실, 그 심정권에서 나는 일생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석양에 해가 지면 밤이 오는데, 그 밤이 오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찾아오는 광명한 새아침에 사랑의 예물을 가지고 하늘이 찾아 주시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 길을 넘나들면서 지난날의 잊을 수 없는 심정적 사연이 통일교회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시대의 개인 인생길에 있어서 전부 다 낙오자가 되었고 패자의 서러운 눈물을 남기고 간 탄식권의 이 세계 역사노정 위에 오로지 한 사람, 레버런 문이 그런 탄식의 자리에 서서 희망의 내일을 향하여 비약하겠다고 몸부림치는 그 자리마다 하늘이 언제나 동반해 가지고 옹위해 주었다는 사실, 부모를 잊을지언정 그건 못 잊는 거예요. 자기 처자를 잊을지언정 그건 못 잊는 거예요. 자기에게 있는 모든 재산을 다 잃어버릴지언정 그건 잊어버릴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귀한 심정적 역사를 지닌 사실, 그것이 옛날의 사실이지만 오늘과의 거리를 가졌다고 해도 오늘과 갈라질 수 없는 거예요. 그때의 심정으로 오늘의 심정에 백 퍼센트 화할 수 있는, 같은 힘으로 작용할 수 있는 이러한 능력이 거기에 개재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선생님에 대해서 한마디만 하게 되면 난 통곡할 사람이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한마디만 하게 된다면 나는 통곡할 그 심정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다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예요. 한마디만 하게 되면 하나님이 통곡할 수 있는 심정권을 내가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나 역시 그렇습니다. 그건 누구나 모르는 거예요. 그건 오직 하나님만이 아는 거지요.
그러니 그 앞에 있어서는 감옥이 문제가 아니고 죽음의 자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겸손히 부복하여 그 사랑의 놀라우심 앞에 감사하고 그렇게 생애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 항거하고 불평하고 비판하며 갈 길이 아닙니다. 그러한 역사를 가진 것입니다. 그 역사라는 것은 지나가 버리는 것이 아니예요. 옛날, 천년 전이면 그건 천년 전의 사실이지만 그것이 심정을 통해 인연된 것이기에 그 사실은 현실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더더우기나 오늘날 우리가 발전한 그 기준을 볼 때, 그 기준이 발전하였다고 옛날 것이 낮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발전된 그 심정과 언제나 동반할 수 있는 가치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효자의 부모에 대한 사랑의 심정은 이 세계의 만민을 사랑하는 성인의 마음과 대등한 자리를 취할 수 있는 특권의 내용을 지닌 심정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그러니 효자가 지옥을 갈 수 없고, 충신이 지옥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대등한 사랑권 내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 오래된 사람들은 그런 것을 다 느끼고 있어요.
그러므로 통일교회 교인이 죽게 될 때에는 선생님을 배반하고 못 죽게 돼 있어요. 선생님이 있는 거기에서 죽게 되어 기도할 때 '저는 먼저 가렵니다' 하고 인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고생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통일교회 선교사들이 선교활동을 나간 지 십 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지만 내가 편지 한 장 안 했습니다. 무슨 권고의 편지 한 장 안 했어요. 내버려두었어요. 선교활동하다가 총살당한 사람, 피살당한 사람들도 있어요. 자기가 쓰러져 가면서 피 묻은 종이에 유언의 편지를 썼는데 '나는 먼저 갑니다. 부디 뜻을 성사시키어서 우리들이 바라던 뜻을 이루어 하늘 앞에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길 바랍니다. 그 한 날을 바라면서 나왔는데 먼저 가게 되어서 미안합니다' 그런 내용의 편지라구요. 그러한 젊은이를 가게 한 것에 대하여 내 자신은 무책임한 자리에 설 수 없다구요. 그건 심각하다구요. 그런 등등….
그리고 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배반자도 많이 나왔어요.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전부 다 선서를 하고 하늘 앞에 맹세를 합니다. 그러나 지나간 사람들이 많아요. 나갈 때는 문 아무개가 나빠서 내가 나왔다, 혹은 통일교회가 나빠서 나왔다 했지, 나가는 사람이 자기 위신 세우기 위해서 통일교회 좋은데 나왔다고 할 사람은 백이면 백 사람, 한 사람도 없는 거예요. 전부 다 선생님을 물어뜯고 통일교회를 물어뜯고, 없는 얘기 있는 얘기 다 뒤집어씌우는 거예요. 그러나 나는 그들을 대해서 원망을 안 합니다. 그들이 못 되는 것을 보면 지금도 살릴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살려주려고 하는 거예요.
어떤 때에는 길을 가다가 그런 사람을 척 만나요. 그렇게 만나면 전부 자기도 모르게 옆으로 쓱 숨는 거예요. 내가 지나가고 난 후에 나와 가지고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짓는 사람을 많이 봤어요. 왜 그래요? 사랑하는 부부로 인연지어졌다가 이혼하게 되면 그 이혼한 남편에 대해서 원망과 저주와 조롱을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 사람만은 다르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지나가고 나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나갔던 사람이 다시 돌아 들어온 사람이 많지요?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또, 영계에서 자꾸 가르쳐 줘요. 그런 사연이 선생님의 일신에는 많은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한참 어려워 돈이 필요할 때 돈이 없다구요. 우리가 보리밥도 못 먹고 그럴 때가 있었어요. 그러니 거지들까지도 통일교회는 전부 보리밥을 먹기 때문에 보리밥 준다고 가지 말라고 한 그런 시대도 있었다는 거예요. 맨 아래에서부터 시작하여 한걸음 한걸음 딛고 올라온 것입니다. 내가 환갑, 생일잔치를 하지 않았어요. 이 길을 나서면서 3년간 생일을 금식했어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이 땅 위에 태어난 사람 가운데 생일도 못 지내고 죽어간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생일을 모르고 죽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 걸 생각할 때, 내가 그런 사람들을 동정해 주고 영계에 가서 인연을 맺기 위해서 3년 동안 금식을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 내가 양복을 입었지마는 옛날에는 이 단상에서 양복을 입고 설교하지 않았어요. 노동복으로부터 출발한 거예요. 설교를 할 때 한 사람이 있더라도 피땀을 흘리고 정성을 다해 눈물을 흘리며 설교를 했지 지나가는 손님 맞듯이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연들, 그 사연이 지나고 나니까 지금 그립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지나간 사연들이지마는 돌아다 보니 그런 사연을 중심삼고는 대한민국 사람,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 무슨 뭐 강원도 사람, 팔도강산의 사람을 잊을 수 없는 거예요. 지나간 사람들을 다 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내가 하늘 앞에 고마운 것은 내가 기억했던 사람이 떨어져 나가면 그와 같은 사람이 남쪽, 북쪽에 두 사람 내지는 세 사람이, 모양도 같고 거동도 같고 음성도 같은 사람이 들어오더라는 거예요. 참 신기할 뿐이예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가는 주체적인 심정권을 가진 자 앞에는 상대권이 절대 손해가 안 나는 거예요. 그때에 그런 사람들은 수준의 정도가 낮았지만 지금의 사람들은 전부 다 수준이 최고입니다. 그분에 대해서 이야기는 안 하지마는 지금도 그런 사람이 여기에 몇 분 있다구요. 그런 것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거예요. 내가 유난스럽게 그를 대해서 특별히 대해 주지 않을 뿐이지 마음으로는 '아, 옛날의 외로움을 위로하기 위해서 하늘은 저와 같은 사람을 보내 주었구나' 하고 감사한다는 거예요. 그런 것이 많다구요.
내 현재 입장에서 보게 되면 그런 사람이 한국 사람도 있지만, 일본 사람도 있어요. 미국 사람도 있고, 또 구라파 사람, 흑인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흘린 눈물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피부 색깔은 다르지마는 눈물은 마찬가지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심정권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것이 귀한 거예요.
여러분이 결혼할 때, 처음에는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고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지만 첫사랑의 인연을 맺게 될 때는 다 제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랑의 위대한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도 마찬가지예요. 색깔의 차이라든가 문화의 격차가 있지만 하나님의 심정권과 같이하게 될 때는 모든 것을 커버해요. 전부 다 비단 보자기로 덮어 가지고 거기에 무늬를 그리고 싶은 그런 순수한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는 있습니다. 이걸 본심은 알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있을 때에는 마음이 자꾸 그리로 가고 싶어한다구요.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요즈음 어머니가 선생님에 대해 언제나 염려하는 것은, 나이가 70이 가까우니까 이제 좀 더 수면 시간도 많이 가져야 되고 이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열한 시가 되어도…. 어머니도 고단하지요. 그러니 혼자 들어가 자기도 뭐하고, 옆에 있어서 아이구, 이제 그만하고 들어가자, 들어가자 하고 서너 번을 이야기해도 안 들어가면 혼자 들어가도 양심이 미안하다는 것을 내가 안다구요. (웃음) 그렇게 세 번씩 이야기해 듣고서도 들은 척 만 척 하면 어머니가 기분 나빠할 것은 알지만 그것 할 수 없다구요. 생기기가 그렇게 생겨 먹었다고요.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다구요.
식구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사정 듣는 것을 재미로 안다구요. 꼭 부모와 같아요. 먼 데 떠났던 사람을…. 그들이 나를 반기는 것보다 내가 더 좋다구요. 그렇다구요. 그걸 알고 보면, 왜 그런가 하고 볼 때 그 사람은 몇천 년 만에 만난 사람이예요. 인연을 따라 돌고 도는 험한 세상 가운데서 모르지마는 이렇게 만나서 하늘의 사연을 노래하고, 하늘나라의 가정, 하늘나라의 국경을 노래할 수 있는 이 입장에 섰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와요?
하는 말, 주고받는 말이 네가 잘사는 그런 얘기, 너를 중심삼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구요. 앞으로 너는 이렇게 살아야 되고, 나라에 대해서는 이런 일을 해야 되고, 세계에 대해서는 이런 일을 해야 되고…. 전부 다 오늘의 일이 아니예요. 오늘 말한 모든 것은 과거를 보아 가지고 내일의 얘기를 하고자 해서 한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지난날이라는 과거, 어젯날이라는 과거가 있지만 그것을 오늘에 맞아 가지고 과거 이상의 노력을 권고하고 추구하고 싶은 거예요. 이것이 사랑의 세계에 있어서의 발전적인 내용이요, 내적 인연이다 하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아시겠어요?
과거에 선생님과 그러한 사연들을 겪어 나왔다고 지금 한남동 선생님 집에 아무나 찾아올 수 있어요? 선생님 집에 찾아올 수 있어요? 지금은 보안 문제 때문에 지키는 사람이 있어서 '거 누구요?' 하는 거예요. 그 지키는 사람이 선생님과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눈을 둥그렇게 해 가지고, '왜 오오?' 하는 거예요. 전부 다 의심하고 눈을 이렇게 뜨고 바라보는 거예요. '이게 도둑놈 새끼 아니야!' 이렇게 도둑놈같이 연상하고 공산당으로까지 연상해 가지고, '선생님을 해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니야, 이 쌍것' 이러고 있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의 생신이 되었는데 그 얼마나 오고 싶겠어요? 오고 싶지요? 그렇다고 한남동 담을 다 헐어 버리고 전부 다 너도 나도 그저 치마폭의 폭의 폭을 붙들고 닐니리동동…. 그래도 못 보게 되면 타고 올라와 가지고 봐라! 이렇게 되면 늙은 사람은 전부 다 쓰레기통에 들어갈 거예요. (웃음) 그것은 안 되겠다구요. 그러니까 할 수 없으니 여기에서 서로가 안전할 수 있는 법을 만들고 규범을 만들어 이래서는 안 된다 하는 놀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엊그제 축하한다고 특별한 양반들이 문 앞에 척 섰더구만. 당당코 와서 '축하하나이다' 할 때 선생님이 뭘 생각했느냐 하면 이런 생각을 했어요, 어제와 오늘. 선생님이 이와 같은 날을 맞게 되면, 더우기나 유협회장 같은 양반, 그 양반한테는 잊혀지지 않는 사연이 참 많다구요. 불구의 몸을 중심삼아 가지고 싸우는데, 그때 문교부와 싸우고 치안국과 싸우고 기관들과 싸우고 전부 다 하는 것입니다. 싸우려고 갈 때는 내가 딱 기도해 보고 이러이러한 일이 있을 것인데 그렇게 되면 이렇게 하라고 하는 거예요. 가서 보면 꼭 그렇다구요.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해도 절대 믿게 돼 있어요. 알겠어요? 그 양반에게 내가 3년 8개월 동안 하루에 열여덟 시간씩 여기 청파동 본부교회에 와서 원리강의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사람이 안 오는 날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도 고달프거든요. 먹기나 잘하나, 병신 몸으로…. 그래 피곤하여 누워 있으면 내가 내려가서 '고단해도 누워 있을 수 있느냐' 해 가지고 그를 닦아세워 놓고 듣든 안 듣든 혼자 영계를 대해서 이야기하게 하는 거예요. 그런 사연들을 잊을 수 있어요?
세계 순회 때, 화란에서 한국을 와야 되는데 한국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되느냐고 물으니 모스크바를 들러서 남부를 통해 가지고 인도를 거쳐가는 비행기를 타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한국에 빨리 갈 수 있으니까 한국 사람에게 가까운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도리라구요. 그런데 이 비행기가 모스크바를 통하게 돼 있다 이거예요. 그러니 큰일났거든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공산당을 전부 반대하기 때문에 공산당이 괴수라고 잘 걸려들었다 그럴 수 있거든요. 그래 다른 걸로 타기 위해서 다른 길, 5분인가 8분 남은 그 길을 뛰어가는 것입니다, 지팡이 짚고. 또, 그 양반 가방 속에…. 식구들에게 선물 준다고 구르무통 무슨 뭐, 어디에서 보지도 못한 것들이니 전부 귀한 것이거든요. 그러니 자기가 아는 식구들, 불쌍한 식구들 주겠다고 그런 걸 잔뜩 들고 다니는 것입니다. 버리라고 해도 이렇게 들고 다니는 거예요. 그걸 내가 들고 다닌다고 해도 '선생님 걱정 마소. 이것 불쌍한 식구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하는 거예요. 꼭 거지, 어머니 거지 같았다구요.
그래 가지고 그 먼 길을…. 화란은 지금도 생각이 나요. 멀고 먼 그 길을 가던 그때, 나도 땀이 났으니 그 양반 얼마나 고생했겠어요? 땀에 그저 만신창이가 돼 가지고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때 그 사람이 '아이구, 죽었으면 얼마나 좋겠나' 이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선생님도 마음대로 갈 수 있게끔 하지 못한 것이 이 불효자식이라고…. 그런 사연을 남기게 되었어요. 그런 동지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그 양반은 무엇을 좋아하느냐 하면 말이예요, 젓갈이예요. 아휴, 나는 그 냄새만 맡아도 '왁!' 하는데 젓갈도 냄새나는 젓갈, 꼴뚜기 젓갈 같은 것, 그것도 전부 삭아서 대가리만 남아 가지고 휘저은 그런 걸 맛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걸 조그만 종지에 담아 가지고 한꺼번에, 하루에 먹을 수 있는 것을 이틀 사흘 찍어 먹던 그걸 생각하면…. 통일교회가 지금은 어렵지 않거든요. 이제는 어디에 가더라도 불고기로부터…. 세계 상류 사회 어디를 가더라도 거들먹거릴 수 있는 판도를 차리고 사는 이런 환경입니다. 그 양반이 있으면 이 환경에서 그것 미칠듯이 먹고 취해 가지고 늘어진 것을 보면 얼마나 좋겠노, 이런 생각을 한다구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나도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별스러운 교회예요. 누가 그랬느냐 하면 내가 그랬어요. 내가 그러니까 통일교회 사람도 안 그럴 수 없게 돼 있어요. 아시겠어요? 완전한 플러스는 완전한 마이너스를 창조하는 것이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에 인간이 인연되었다면 하나님을 닮지 말라 해도 닮게 돼 있는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문선생님 닮지 말라고 해도 그 심정을 닮아 가고 있다는 거예요. 재미있는 것은 우리 아들도 그렇다구요.
이런 얘기…. 지금 몇 시나 되었나? 두 시 이십 분 되었구만. 시간을 자꾸 말하게 되니까 내가 공처가가 되는 모양이구만. (웃음) 아, 식구끼리니까 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지 뭐 감출 게 뭐 있어?
우리 아들 세째 도령이, 플로리다에 가다가 햄버거 집에 들어갔습니다. 새벽같이 햄버거 집에 들어가니 나이 많은 할머니가 햄버거 모자를 쓰고 말이예요…. 거기에는 모자를 쓰게 돼 있다구요. 미국에 가면 그 상점의 마크를 박은 모자를 쓰고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빗자루를 들고 소제를 하고 있었답니다. 그걸 척 보고는, 그거 나를 닮았다고 해 가지고…. 그런 걸 보면 못 견디는 거예요. 그냥 못 지나가는 거예요. 그래, 할머니 앞에 가서 '할머니 내가 다 쓸어 드리리다' 하며 빗자루를 달라고 한 거예요. 그러니 그 할머니는 동양의 젊고 잘생긴 청년이 와 가지고 빗자루를 달라고 하니…. 그런 걸 처음 보거든요. 서양세계에는 그런 걸 못 보는 거예요. '제발 내가 쓸어 줄 것입니다. 우리 할머니 같으면 내가 일을 못 시킵니다' 하며 달라고 한 거예요. 그러니 그 할머니에게 '아이구, 바쁘니까 이렇게 새벽에 와서 아침을 먹으려고 그러지 않느냐고, 제발, 제발, 굳이 굳이 제발' 그런 거예요. 그래 효율이가 왜 그러나 하고 나가 보니까 그러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렇게 간절히 말하니까 할머니가 자리에 앉아 가지고…. 그 할머니가 눈물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귀하게 보더라는 거예요.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것을 자랑삼아 보고하는 거예요. 그래, 효율이도 회개를 했다나. 자기의 인간됨이 지금까지 덜됐다고. 그 한 사건을 중심삼고 과거를 청산짓고, 또 그다음에는 둘이 앉아 가지고 밤을 새우면서 이야기를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저런 양반을 모시는 데 있어서 잘 모시지 않으면 참 큰일나겠다' 이랬다는 것입니다. 사건은 한 가지로 간단하지만 그 사건으로 보이지 않는 혁명이 벌어져 나갔다는 거예요. 혁명이 벌어져 나간 거예요. 그러니 가지가 쳐 나가는 거예요.
어디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느냐? 통일교회가 그래요.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핍박을 받아 왔지만 그 핍박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발전해 나왔습니다. 그 무엇이 발전시켰느냐? 문선생이 머리가 좋아서 그렇게 발전시킨 것이 아니예요. 사랑, 사랑이예요.
통일교회 사람 중에서도 옛날 통일교회 사람, 요즈음 통일교회 사람, 이 시점에서 선생님을 처음 본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들은 선생님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옛날 통일교회 식구들은 말이예요, 선생님에 대해서 보고 싶은 분, 보고 싶은 분 그래요. 보고 싶은 양반, 그 사람이 선생님이었어요. 보고 싶은 분, 보고 보고 또 보고 싶은 양반, 가고 가고 또 가고, 갔다 왔으면서도 또 가고 싶은 곳, 그다음에는 살고 살고 살고 또 같이 살고 싶은 분, 그런 마음이예요, 그런 마음. 그걸 누가 빼앗아요? 권력으로 안 되는 거예요. 힘으로도 안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철창이 가로막고 사망의 십자가가 가로막더라도 그것을 무난히 넘나들고 왔다갔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신의 사랑의 교차로가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은 몰랐다는 거예요.
내가 흥남 감옥에서 2년 7개월을 지냈지만 그 가운데서도 나는 내 도리를 다 했어요. 먹을 물을 주면 전부 몸을 닦았습니다. 하늘을 모시는 사람이 감옥에 있다고 해서 몸을 등한히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앉을 자리도 가려서 앉았고 토요일이나 주일에는 자 본 적이 없어요, 그렇게 피곤한 노동을 하면서도. 모든 사람들은 오자마자 자지마는 나는 그냥 자 본 적이 없어요.
감옥에서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중노동을 하여서 피곤하기 때문에 먼저 잡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자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하는 말을 남기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새벽에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요. 그리고 밤에는 반드시 혼자 운동을 하는 거예요. 또,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 먹는 물을…. 거기에서는 먹는 물이 얼마나 귀한 줄 알아요? 한 모금의 물이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조그만 방에 수십 명이 있기 때문에 여름에 더울 때에는 옷을 벗어 짜면 땀물이 나옵니다. 그러니 물을 몇 바가지 먹어야 사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깨끗이 한 그 자리에서 하늘을 모셔야 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도 나는 내 속살을 보이지 않았어요. 거기에서는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비료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비료가 가마에서 쪄서 나옵니다. 그런 더운 곳에서도 내가 아랫도리를 안 보이게 했습니다. 수절하는 여인 이상의 그런 훈련을 해 나왔습니다. 그건 왜? 남은 마음대로 살고 남은 자유롭게 사는데 왜? 내가 아는 본향집을 향해서, 고향의 전통을 향해서…. 아무리 감옥살이가 험하더라도 내 갈 길을 막지 못해요.
너희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반성문을 써야 된다고 했지만 나는 그런 반성문을 못 쓴다! 김일성이를 지지하고 그에게 교화받아 가지고 좌익을 찬동하는 글은 못 써.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제일 어려운 감옥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입 다물고 무언의 생활을 하는 가운데 하늘은 나를 위해 전도해 주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나를 위해서. 알 수 없는 어떤 사람에게, 너 아무데 감옥의 어떤 사람에게, 그때 죄수 번호가 596번이었어요, 그분한테 미싯가루 들어온 것 갖다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의 조상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타나 가지고 내일 당장에 아침이 되면 미싯가루를 보따리째로 가져다 주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일들이 그 자리에서 벌어진다구요.
말하지 않는 입장에서, 예수님이 감옥에서 열두 제자를 잃어버렸지만 그 이상의 사람들을 하늘은 인연맺어 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침이 되면 이 사람들이 서로가 선생님에게 먼저 인사하려고 하는 거예요. 아침에 '출역 준비!'하게 되면, 그 광장의 좌우편에 방들이 쭉 있는데 낭하(廊下)에 나와 4열 종대로 와 앉는 거예요. 준비하는 시간이 10분 이내예요. 인사를 하는데 저 끝에 있는 방의 사람들도 전부 와 가지고 인사를 하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그래요.
얼굴을 들고 가다가 어디에서 봤다가는 문제가 되거든요. 그러니 선생님에게 얼굴로 이렇게 인사하고 계속 뛰는 거예요. 그게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예요? 그걸 연상해 보라구요. 그렇게 하다 걸리면 독방에 들어간다구요. 내가 말하지 않고,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나에 대하여 그런 놀음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구요. 그것에 대하여 옆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알고 있다구요. 알고 있지마는 감방살이 하는 사람은 나를 다 좋아한다구요. 다른 사람 같으면 그걸 전부 다 보고를 할 것인데 쉬이 쉬이 쉬….
내가 현장에서 일하는 데에도 넘버원이었습니다. 일하는 데에도, 일을 하면 제일 어렵고 힘든 일만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공산당 패들의 눈을 가리면 가렸지 선생님 얘기를 그들에게 하지 않는다구요. 그런 놀음을 한 거예요.
그때 함경남도 도의 국장을 지낸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문씨라구요. 그에게 문씨의 영이 접해서 그랬는지 나를 만나고부터는 미쳤어요, 미쳤어. 그래, 선생님에게 면회를 오게 되면 선생님이 입고 있는 옷이라도 만지고 가야 마음이 자리잡힌다는 거예요. 그러니 선생님만 있으면 옷이라도 한번 만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서로 만지려고 하는 남자들이 많았어요. 그것 이상하지요.
내가 감옥에서 나오게 될 때, 그 양반은 자기 여편네도 있고 아들도 둘이 있는데 내가 감옥에 있을 때부터 면회 오면서 내가 나오기를 바랐습니다. 그래, 내가 나와서 평양으로 가야 되는데 바쁜 길을 가다 그 집 앞으로 지나가게 되어서 그 집에 들어가 인사나 하고 가려고 들어가서 인사하고 작별하고 나오는데 그가 뛰쳐나와 가지고 나를 따라오는 거예요. 그래, '왜 왔니?' 그러니 자기가 가야할 길이 여편네와 자식하고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하며 따라오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세 사람이 따라오는 그런 놀음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상하다구요. 그런 과거에 대하여 새로 온 사람들은 모를 거예요.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되면 영계가 환하게 보이는 거예요. 타락으로 말미암아 영계의 심정권이 끊겼으니 하늘나라의 심정권 기준에 올라가면 영계가 열리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가만히 앉아 가지고도 다 아는 거예요. 그러면 선생님이 뭘하겠다 하는지 다 안다구요. 이게 걱정이예요. 선생님이 지금 뭘하고 있는지 다 안다 이거예요. 쓱 와서 '선생님 어제 어디에 갔습니까?' 그러는 거예요. '이 쌍것! 가긴 어디에 가' 하면, '아니 어제 수원 어디에 가서 어떻고 어떻고 하시는 것이 다 보이던데요?' 그러는 거예요. 아닌 게 아니라 그랬거든요. '수원 가서 뭘하던? 이 쌍것아', '뭘하긴 뭘해요? 누구 누구 만나고 이런 이런 이야기 하는 것이 다 보이던데요?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나는 모르겠는데 영계에서 가르쳐 주었는데 영계에서 거짓말 하는 것인지 선생님이 거짓말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환하게 알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통일교회 패들에게는 속여먹지도 못한다구요. (웃음)
내가 뭘한다 하면 세계에 이런 패들이 많기 때문에 쑥덕쑥덕쑥덕 해 가지고 '아이고, 구라파에 온다고 하시더니 한국에 가신다더라' 이렇게 마음만 먹으면 알고 있으니 속여먹겠어요? (웃음) 영계는 못 속여요. 내가 사기꾼 같으면 벌써 판 드러난 지 오래라구요. 사기로 수십 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요? 이 자리가 얼마나 무서운 자리이고 힘든 자리인데. 저 귀신도 모르게, 이렇게 내가 죽지 않고 해먹는 것은 그럴 만한 밑천이 있기 때문이예요. 그 밑천은 간단합니다. 돈이 아니예요. 수단이나 방법이 아니예요. 말이 아니예요. 심정이 밑천이예요. 심정을 중심삼고 나가야 됩니다.
내가 여러분을 만나는 데 있어서, 이번에 한국에 와 가지고 잠깐 여기 있다고 해서 그러한 심정권을 남길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그게 아쉽다는 것입니다. 아, 시대의 차이가 생겼구나! 여러분도 선생님을 만나는 데 있어서 이제는 거리가 생겼다구요. 옛날 같으면, 인사는 무슨 인사예요. 문이 잠겨 있으면 꺼꾸로 넘어와 가지고 문을 열고 들어와 안방의 따뜻한 자리를 찾아 척 앉아서 주인같이 엎드려 기도하고 울고불고 해도 누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남동에 떡 가려면 파수꾼이 집에 못 들어가게 하니 기가 차지요. 기가 차지요? 기가 찬 사람 손들어 봐요. 그 사람은 죽으라구요. (웃음) 왜? 지금의 때는 또 그런 때예요. 옛날과 같이 그렇게 하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렇게 진전되는 거예요.
또 선생님이 영원히 이 땅에서 살 수 없어요. 나는 나의 갈 길을 가야 돼요. 내 갈 길이 바쁘다구요. 그래, 요즈음에는 어머니에게 지상만 생각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갈 길이 바쁘니 바쁜 길을 가는 남편을 모시고 사는 한 모든 것을 준비해 두라고 합니다. 누가 먼저 갈지 모르니까요.
지상보다 영계가 바쁘다는 거예요. 내가 가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거예요. 요즈음은 그것이 자꾸 생각이 난다구요. 그러니까 갈 날이 가까이 온 모양이지요? 내가 영계에 간다 할 때에는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는 울지 않을 사람도 있을 거라구요. 선생님이 세상 떠났다면 울 것 같아요? 그럼 뭘하겠나? (웃음) 그래, 요사스러운 것이 천정(天情)이예요. 인정은 천정에 의해서 사는 거예요. 천정을 따라가는 사람은 어디 가나 외롭지 않아요, 혼자 있어도. 그를 사로잡을 자가 없어요. 사탄세계가 아무리 포악하다 하더라도 사로잡을 수가 없어요.
선생님은 감옥생활을 많이 했어요. 그 생활이 그리워요. 지금도 그 생활이 그리워요. 혼자 앉아 가지고…. 이런 얘기는 사담이지만…. 왜정 때는 이가 많았습니다. 한복 솔기 같은 데에, 일곱 새 무명 같은 것을 두툼하게 해 놓으면 여기에 이가 행렬을 주욱 지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를 딱 잡아 가지고 이렇게 하면 수십 마리가 터져서 핏줄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이놈의 옷이 언제나 누더기 판이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뭐냐 하면 이를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한 열두 마리를 잡아 놓으면 나중에는 똘랑똘랑 뭉칩니다. 이라는 것은 파고드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서로서로 뭉쳐서 궁둥이만 내밀고 있으면 똥글똥글하게 된다구요. 그걸 싹 굴리면 도르르륵 굴러간다구요. (웃음) 그런 재미는 나밖에 몰라요, 그것은. (웃음)
그런 것들과 대화하던 것, 그런 것을 전부 다 글로 쓰려고 하면 수백 권의 책으로 낼 수 있다구요. 그러나 그런 얘기를 내가 안 해요. 오늘 여기서 처음으로 하는 거예요. (웃음)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옛날 얘기를 하다 보니까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이지요. 그게 참 재미있습니다. 그런 사연이…. 또, 빈대하고 노는 거예요. 아버지 빈대, 어머니 빈대, 누나 빈대, 내가 전부 다 색깔로 갈라서 종이 울타리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바늘 같은 꼬챙이로 꼭꼭 찌르는 거예요. '뛰어라, 뛰어라, 뛰어라, 뛰어라 여기에서 만나면 어떻게 되나 보자' 이러면서 노는 것입니다. 그 세계도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재미가 있는 거예요.
그러한 세계에서 생활하는 보통 사람들은 아침부터 한숨입니다. 입만 벌리면, 눈만 뜨면 그저 불평이예요. 이놈의 나라 망해야 되고, 쌍놈의 자식들 망해야 되고 하는 거예요. 요즈음에 의식화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간 녀석들이 누구 누구는 제일 나쁜 놈이라고 욕을 많이 할 거라구요. 불평이 많아요. 자기는 잘했고 남은 나쁘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구요. '아, 수련소에 들어왔다. 남 모르는 세계를 알아야 앞으로 남을 가르쳐 주지' 하는 거예요. 안 그래요? 남이 모르는 세계의 심정권을 두둑히 가져야, 밑천을 가져야 다른 데에 써먹을 게 아니예요? 노동판에 가는 것도 전부 다 교육이예요. 내가 노동판에 가면 남들은 노동자 친구들을 못 만드는데 나는 순식간에 쓱쓱 다 친구로 만드는 거예요. 외교 수완이 또 있거든요. 사람을 만나면 눈치봐 가지고 이리 치고 저리 치고 잘 꿰어 가지고 내가 앉아 부려먹을 수 있는 능력도 있다구요. 그러나 통일교회 내에서는 그러한 놀음도 못 하겠더라구요. 그러한 것을 전부 다 알고 눈을 이렇게 뜨고 바라보기 때문에…. 이런 저런 것을 두고 볼 때, 그 사연이 엮어지는 그 배후의 역사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어요? 「예」
여기 어느 기관에서 온 양반이 있게 되면 '저 문선생은 거짓말도 새빨간 거짓말을 잘해' 할 거예요. 그렇게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새빨간 가짜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세계가 있는 거예요. 자기들이 측정할 수 없는 세계, 빛깔이면 빛깔도 이것이 얼마예요? 그 파장이 얼마예요? 그 파장 이상 이하 되는 것은 안 보이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라구요. 이것은 특별한 장치를 해야 볼 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레버런 문도 그와 같은 특별한 장치가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남이 보지 못하는 것도 보고 남이 듣지 못하는 것도 듣는 것입니다. 그러니 싸움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벌써 시대가 변천할 때에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다구요. 그러니 미국에 있어서 니카라과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도, 미국 대통령이 니카라과를 돕기 위해서 국회에 제출한 것이 국회에서 비토당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2억 4천만의 미국 국민 그 누구도 믿을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 감옥에서 자고 있는 레버런 문을 찾아와 깨워 가지고 니카라과에 큰 문제가 났으니 네가 하지 않으면 할 사람이 없다 해 가지고, 냅다 들이부수게 한 사실, 그것은 누구도 모르는 거예요. 레버런 문만이 알지요. 그래서 7주일 동안에 여론으로 이걸 뒤집은 것입니다.
미국은 강대국으로서, 약소국가에는 미국 CIA가 병 주고 약 주는 그런 일을 하거든요. 그러니 그러한 제재와 활동을 못 하게 법적인 규정을 다 빼 버린 거예요. 그걸 누가 했어요? 레버런 문이 했어요? 그건 하나님이 시킨 거예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수습하기 위해서, 자기의 본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이렇게 밤낮을 개의치 않고 일하고 있다는 사실들을 우리는 안테나가 다르기 때문에 알지 않아요?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워싱턴 타임즈 회사가 완전히 날아간다고 생각했다구요. 두고 봐라! 그때 그걸 안 했으면 지금 레이건 행정부는 엉망진창이 되었을 것입니다. 똥파리가 되어 지금 흐느적거리고 있을 거라구요. 소련 모스크바의 외교 정책으로 남미가 수라장으로 만들어진 이 환경이 여론으로 다시 때려몰 수 없는 환경으로 떨어졌으니 할 수 없이 남아연방을 중심삼은 흑백문제 싸움으로 이동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걸 누가 했나요? 응? 그것은 하나님이 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거기에 안테나 작용밖에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 일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없으며, 보통 사람은 모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오늘날 세계적인 반대를 받는 이런 상황에서도 이만큼 헤엄쳐서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나 미소관계보다 더 어려운 문제예요. 한 발짝을 잘못 디디면 역사가 천운에 걸려요. 천년 만년의 역사가 으스러지는 거예요. 얼마나 심각해요? 그럴 때마다, 그런 자리에서도 용케 이 자리까지 나왔어요. 그것은 그럴 수 있는 소질을 갖고 있는 문선생님을 모셨기 때문에 가능했지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망했을 거예요. 이제도 그렇다구요.
그러한 과거, 수수께끼 같은 그러한 사실, 성경에 나온 그러한 이적 기사가 거짓말이 아니예요. 그와 같은 일을 내가 이야기 안 하는 거예요. 별의별 일을 다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통일교회 식구들은 선생님을 아무리 믿지 말라고 해도 믿지 않을 수 없다구요.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마음이 열 번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고 나면 벌써 여기에 와 있어요. 선생님이 모든 사람에게 반대를 받는데 내가 왜 선생님을 위해서 정성을 들이느냐, 이래 가지고 정성을 안 들이고 전부 자기 살려고 일하고 나서 척 헤어지고 보니까 자기 한 일이 선생님의 일이예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자기도 모르게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장 간다고 시장 바구니를 들고 나섰는데 시장은 안 가고 교회로 오는 거예요. 자기도 모르게 왔다는 거예요. 교회에 와 가지고 `아이구, 시장 바구니 들고 왔구만' 하는 거예요. 그게 홀린 것이지요. 그러니 마술사 가운데에서도 마술 대왕이라는 네임(이름)이 붙은 사람이 이 사람이라구요. 자기는 생각지도 않은 것이, 생각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울고 불고 밥을 못 먹고 3일 4일 잠도 못 자게 되면 영계에 가게 됩니다. 영계에 가게 돼 있다구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첫사랑 이상의 사무친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본연의 세계에 접착할 수 있는 길이 없어요.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그래요. 하나님의 사연을 한마디만 하면 통곡해 왔다구요. 길가에 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전신주를 붙들고 주저앉아서 우는 그런 사람인 줄 누가 알겠어요? 그건 나와 하나님만이 알아요. 그런 인연을 누가 끊겠어요? 그걸 누가 부정시키겠어요? 그건 절대적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하나님이 보호하사 지금까지 나온 거예요. 아시겠어요? 「예」
그러면 어제가 그랬으면 오늘 이제부터의 통일교회는 어디로 갈 것이냐? 이게 문제예요. 선생님이 죽은 후에 통일교회는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심정권은 남자나 여자나, 늙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혹은 소년, 소녀들이 지금 자라고 있지마는 철이 들면 그 심정권이라는 것은 동일한 거예요. 통일교회가 이제 영존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게 뭐냐? 통일교회의 진리를 듣고, 그 말씀을 듣게 될 때 자기도 모르게 그 심정이 폭발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 말씀을 읽게 될 때 밤에 잠을 못 자고 눈물을 흘려 봤어요? 유협회장이 훌륭한 것은 원리를 전부 다 노트하면서 한 책자마다 눈물을 수백 번 흘렸다는 거예요. 자기는 지식인으로서, 대학을 다닌 똑똑한 사람으로서 진리를 탐구하다가 지쳐서 떨어졌는데 이러한 깊은 세계를 어쩌다 알게 되니 눈물이 한두 방울이 아니고 폭포수같이 퍼부어지는 거예요. 그걸 접하게 될 때 그 진리 앞에 황홀함을 느껴 눈물 없이는 기록할 수 없었다는 거예요. 한 페이지를 기록하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는 말을 내가 들었다구요. 그러니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릅니다. 본연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그 진리의 말씀은 사랑을 폭발시키고도 재폭발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고 그 작용은 역사성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는 신령한 교회로서 모실 때에만 신령한 역사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활동을 하는 데에도 신령한 역사가 벌어져요. 일본에서 그런 역사가 벌어지는 거예요. 시장 가는 사람들이 통일교회의 상점으로 자기도 모르게 몰려든다 이거예요. 우리가 대리석 꽃병 하나를 얼마나 비싸게 팔았느냐 하면 25만 불에 팔았어요. 그런 건 대만 것으로 말하면 불과 25불에서70불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런 것을 하나에 25만 불을 받고 팔았어요. 그건 누가 정하느냐 하면 영계에 있는 자기 조상이 정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이게 믿어져요?
영계에서 조상이 나타나 가지고 딱 발을 붙여 놓고 '함부로 대해서는 안 돼' 한다구요. 이것의 가격은 달라는 것이 값이예요. 값이 따로 없다구요. 그래, 너의 무엇 무엇을 팔아서 사라고 합니다. 그걸 누구 명령이라고 거부하겠어요? 거부할 수 있어요? 그건 틀림없는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25만 불에….
그다음에는 인삼을 파는 데 있어서 우리 통일교인이 몇 년 분을 팔았느냐 하면 말이요, 2백 년 분량을 한꺼번에 팔았어요. 그것 믿어져요? 며칠 분이요? 2백 일? 뭐야? 내가 말을 잘못한 것이 아니예요. 몇 년이요? 「2백 년이요」 그게 트럭으로 몇 트럭이 된다 이거예요. 그런 놀음 하고 있다구요. 그걸 어떻게? 영계에서…. 그거 이상한 교회지요? 그걸 누가 막아요? 나라의 힘 가지고 막을 수 있어요? 아무리 해보라는 거예요. 때리면 때릴수록 옆으로 퍼지는 거예요. 불을 지르면 지를수록 휘발유 뿌린 것처럼 퍼진다는 거예요.
이것은 무슨 불이예요? 이게 무슨 불이예요? 「사랑의 불입니다」 사랑, 본성의 사랑의 불이예요. 천지를 태우고도 남을 수 있고, 영혼이 훨훨 타서 만유의 물건을 다 녹여 가지고 녹인 것을 재승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구요. 사람이 거기에 타게 되면 타락 인간도 재차 성화스러운 인간이 되는 거예요. 그것 안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러한 심정권을 알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서, 혹은 아비 어미를 사랑하는 것보다,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못 된다고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가 있다는 거예요, 십자가. 오늘날 자기가 맡은 십자가를 예수님에게 맡기지 말라는 거예요. 자기의 탕감노정이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맡기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다음에 하는 말이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라고 했습니다. 원수가 누구냐 하면 자기 집안 식구예요. 주님 사모하기를 자기 남편보다 더 사모하고 부모보다 더 사랑하니 집안 식구들이 시기하지요. 저것 미쳤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 남편이 옆으로 오는 것이 꼭 뱀이 오는 것 같아요, 뱀! 이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이상해요. 연애해서 결혼한 부인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일주일만 지나고, 원리만 듣게 되면 남편이 뱀같이 느껴져서 옆에 오게 되면 섬뜩하다는 거예요.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건 왜 그러냐? 원리만 알면 다 그렇게 돼요. 그러니 남편이 새벽에 일찍 출근해서 제발 밤 늦게, 혹은 안 돌아오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한다구요. 그러니 그 남편이 기분 좋겠어요? 그러니 들이패고 밟고, '쌍간나 같으니라고 뭐 문선생에게 반해서 바람이 났나? 이게 미쳐도 이렇게 미쳤다' 하면서 때린다구요. 때린다고 듣지도 않고 똘똘 뭉치는 거예요.
여기에 인주가 있구만. 손을 얽어매고 발을 옭아매 가지고 매로 때려서 눈이 부어 앞도 안 보이는데도 그래도 행여나 문틈 사이로 선생님이 지나가나 보러 가자, 이러는 거예요. 미쳐도 별스럽게 미쳤지요? 요즈음의 뭐 상사병? 상사병도 아니예요. 별스러운 병이지요. 선생님이 좋기는 좋은데, 그렇다고 이성도 아닌데 괜히 좋아요. 좋아서 세포가 움직여요. 가만히 있으면 손이 그리 간다구요. 자기도 모르게 자꾸 끌려간다구요. 끌려가다 보니 선생님이 있는 데까지 온다는 것입니다. 그 힘을 누가 막아요? 별 요지경이 다 있지요.
나에게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쫓겨나기 일쑤고, 반대받기 일쑤고, 편안하지 않는 환경에 몰리기 일쑤였지마는 그렇게 반대받으면 반대받을수록 그 반대받는 것에 반비례하여 그 무리는 점점 많아지는 거예요. 핍박이 심하면 심할수록, 나쁘면 나쁠수록 좋은 결과를 낳아 따라오는 무리는 점점 많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가 이렇게 컸어요.
이제부터 핍박의 시대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나가니 다음에는 자유로운 세계예요. 이렇게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 현상이라는 거예요. 꽃도 그렇습니다. 꽃이 피어 가지고 그 꽃의 향기가 다 풍기고 난 후에는 진액을 흡수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진액을 흡수해 가지고 열매맺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꽃이 피었으니 이제부터는 열매를 맺을 때가 왔기 때문에 흡수 시대가 옵니다.
흡수 시대가 오는 이때에는 여러분이 뿌리를 가져야 됩니다. 이걸 갖지 않은 사람은 통일교회에 와도 맛이 없어요. 각자 각자가 갈 길이 바빠요, 각자가. 그렇기 때문에 불평을 하는 거예요. 통일교회에서 사랑을 말하면서 선생님 빼고는 전부 다 가짜라고 하지만 가짜가 아니예요. 그건 때가 다르기 때문이예요.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꽃을 피워야 되고, 잎과 가지가 전부 다 자기를 중심삼고 모든 진액을 흡수해야 충실한 열매를 맺는 거예요.
통일교회는 그러한 시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냉정해 보이는 것입니다. 냉정해 보이지만 열매맺힐 때라는 거예요. 열매를 맺히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다시 씨를 심어 가지고 열매를 맺게 해야 됩니다. 씨를 심지 않으면 죽은 열매라는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거예요. 제2의 존재를 생성시키지 않으면 열매가 되지 않는 것보다 나쁘다는 거예요. 그게 빚이 되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의 여러분도 이와 같은 뿌리를 통해서 진액을 받았으니, 열매를 맺을 때는 각자를 중심삼고…. 때가 이제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 이제는 탕감권도 다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 홈 처치, 다시 말하면 홈 처치의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교회가 필요 없어요. 홈처치 시대가 지나가면 여러분들이 선생님 대신으로 남편을 잘 모시고 부모님을 선생님 대신으로 모시고, 그렇게 되면 선생님이 할아버지지요? 선생님 대신 할아버지와 심정권이 일치하게 되면 천국은 그냥 그대로 가게 돼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이 지금 교체 시대에 있으니만큼 여러분의 방향성에 있어서 확실히 잡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는 어디로 가야 되는가? 열매가 되고 열매가 되었으면 씨가 되어 이렇게 싹이 나와 이렇게 자라 가지고 이렇게 줄기와 가지가 되고, 거기에서 뿌리가 뻗어 가지고 꽃이 피는 그런 공식노정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여러분도 이와 같이 과거 현재 미래의 공식노정의 궤도를 거치지 않고는 영존할 수 있는 심정권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어요? 「예」
그렇게 되려면 여러분은 선생님을 그리워하던 그 마음을 중심삼고, 축복받은 부처끼리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그 이상 서로가 그리워해야 되고, 그다음에는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 선생님 이상으로…. 선생님은 그걸 접붙여 줘야 할 책임이 있어요. 인간이 그러한 사랑의 인연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 뜻을 중심삼고, 여러분 몸 마음을 중심삼고 연관된 사랑권을 만들어 주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놀음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결과는 오늘에 있어서 여러분들은 사랑권의 씨가 됩니다. 아시겠어요? 그 본질은 과거의 역사적 본질을 벗어날 수 없어요. 이러이러한 심정권을 중심삼고 뿌리가 된 입장에서 줄기와 가지와 꽃이 되었으니 그 꽃은 옛날의 뿌리와 같은 길을 이어받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심정권의 줄기와 같고 가지와 같은 심정권의 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들이 역사와 더불어 분립된 존재가 아니라 역사와 더불어 일체된 존재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선생님이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지나가는 얘기가 아니라구요. 여러분의 심정 깊은 곳에는 그러한 체휼적인 내용이 언제나 있으니 그걸 표면화시킬 수 있게끔 심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는 어느때, 어느 장소에서도 나는 나대로의 싹이 나고 나대로의 줄기가 나고 나대로의 가지가 뻗고 나대로의 꽃이 피어 가지고 나대로의 열매를 맺을 제2세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예」 그것이 오늘의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정리해 가지고 여기에 왔으니, 어젯날의 역사적 전통의 주류사상을 이어받아 오늘의 여러분이 결실을 맺어야 됩니다. 결실의 터는 홈 처치예요. 아시겠어요? 거기는 누가 개재하는 걸 원치 않아요. 개재해서 흡수하려고 하는 거예요. 선생님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줄기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가지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잎도 전체가 완전히 씨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서로서로 자기 본질에 해당하는 요소가 주체 기준 앞에 상대적 요소를 흡수해 가지고 완전히 결실로 맺히게 하여야 할 것이 현실의 입장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못 하면 통일교회는 꽃은 피었지마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교회가 된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것이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알고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홈 처치를 중심삼고 이것을 재현시켜야 됩니다. 마음 자체에서 그걸 느껴야 됩니다. 마음 자체에서 그걸 느껴야 되고 그런 마음 환경으로 재현시키어서 그것에 동화될 수 있어야 돼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결실체를 구성한다는 걸 아시기를 부탁하는 뜻에서 오늘 '현재와 과거, 어젯날과 오늘날'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어젯날은 어젯날로 갈라진 것이 아니라 오늘을 위한 어젯날이었고, 오늘은 오늘만을 위한 오늘이 아니라 어젯날의 계속된 오늘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참대나무의 마디와 같은 것입니다. 먼저 되어진 대나무의 마디는 크지마는 모양은 같은 것입니다. 같은 모양입니다. 크기는 점점 작을지 모르지마는 그것이 가지에서 열매를 맺는 거와 마찬가지의 결과인 것을 아시고,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니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옛날의 선조들 혹은 선배들에 대해서 잘 알아야 됩니다. 그 환경이 어떠했다는 것을 잘 알고 그걸 흡수하여 소화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오늘의 여러분들이 그때의 그것을 재현해 가지고, 그때의 심정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뿌리를 다시 내릴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잘라서 삽목을 하든가 식목을 할 때, 다시 본연의 모습과 같은 심정적 내용을 지니지 않고는 결실될 수 있는 완성한 천국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이해하기를 바라면서 말씀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한국의 서울은, 주위에 둘러 있는 모든 산야는 옛날에 심정을 중심삼고 동지들과 외로움을 주고받으며 왕래하던 역사적 사연이 담긴 잊을 수 없는 제2의 고향이기도 한 곳입니다.
아버지, 오늘날 통일가를 중심삼고 역사과정에 남긴 심정적 사연이 천태만상의 사연으로 엮어진 사실은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고, 현실의 사람은 그 누구도 측량할 수 없고, 감정할 수 없는 내용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작은 데서부터 큰 데까지 금후에 무한히 뻗어 갈 수 있는 지상세계와 연결시키지 않으면 안 될 천상세계의 내적 인연을 완성시켜야 할 역사적인 숙명의 과제를 짊어지고 가는 무리인 것을 생각할 때, 미래의 가는 길 앞에 아버지, 더더욱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올바른 뿌리와 올바른 줄기와 올바른 가지…. 줄기는 하나이나 가지는 많습니다. 여기에 순이 되는 그 순에 가지가 맞추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중심 될 수 있는 뿌리와 직행하는 역사적 방향성, 이것은 오로지 사랑을 지향하는 하나님을 위하고, 만민을 위해서 통하는 심정권인 줄 아옵니다. 이것 외에는 이 순과 이 중심 뿌리가 통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그 길 앞에 저희들이 동쪽 가지면 동쪽 가지로서 순에 맞추어서 자라고, 뿌리에 맞춰서 자랄 수 있는 가지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고,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열매를 맺어야 되겠사옵니다. 과거가 오늘을 위한 것이요, 오늘이 미래를 장식하기 위한 것임을 알고 과거 현재 미래가 연결되어서 인간 완성이라는 심정권을 중심삼고 주인이 될 수 있는 자격자가 되게끔, 아버지, 각별히 지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이 어린 자식을 불러 세워 놓고 그리도 수고하시면서 이끄시는 역사적인 길이 엄연히 살아 있사오니, 이 심정권에 접붙임을 받아 이들도 이와 같은 보람있는 생애의 노정, 보람있는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시옵고, 환경이 어렵지 않고 편안하면 편안할수록 그 내면적인 심정적 사랑에 있어서 더 깊고 높을 수 있는 사연을 위해서 묵묵히 자기가 자숙하면서, 고요한 자리를 찾아 깊은 기도 생활을 갖춰 나가 이를 보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게끔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외적 핍박이 없으면 없을수록 내적 스스로의 보완 조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평형적 기준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확실히 알고 내일부터라도 부끄럽지 않는 하늘의 아들딸의 모습을 갖춰 나갈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제 66회 생일을 지내고 처음 맞는 주일이오니 이제부터 나머지 가는 길을 아버지께서 지키시고 통일교회와 더불어 축복하시어서, 모든 일이 그 뜻하신 뜻 앞에 부활이 되고 완성의 기반이 될 수 있게끔 통일교회를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이 세계 앞에 부끄럽지 않는 최후를 바라면서 전진에 전진을 다짐하는 통일교회의 무리와 세계의 당신의 자녀가 되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