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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가 가야 할 본연의 길

일시: 1972.08.01 (화) 장소: 한국 남산성지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2년 8월 초하루이옵니다. 아버지여, 오늘부터 남은 이해의 5개월 동안에 이 나라와 이 세계를 당신의 경륜의 방향에 일치시키시옵소서. 그렇게 지루하게 섭리해 나오시던 역사노정에 있어서 소원성취의 때를 맞을 수 있는 금후의 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오늘은 새 달 새 아침이오니 당신이 특별히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어린 자녀들이 하늘이 기뻐하는 이 나라, 하늘이 주관할 수 있는 이 나라,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이 나라가 되기를 염원하면서, 불철주야 당신의 남아진 복귀의 뜻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희의 일체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남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가는 길은 저희들의 필생의 노정으로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될 길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남기신 복귀의 사명이 개인에서부터 가정과 국가와 세계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당신이 찾고자 하는 참다운 개인과 가정과 국가와 세계는 저희들이 생각하는 기준과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하늘을 사모하고 하늘을 위하여 따라 나가는 자신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부족과 불충과 미급을 느끼게 되옵니다.

그러나 이 땅 위에 당신의 뜻을 알고 섭리의 방향을 아는 무리가 없는 것을 보게 될 때에, 이들을 통해서라도 뜻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하늘의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알면 알수록 불쌍한 분은 당신뿐이옵고, 수고로운 수난길을 책임져야 할 분은 하늘뿐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여! 늘 불쌍한 자녀들을 위하여 수고하시는 아버지여! 저희들은 마음으로는 당신이 가는 길을 추구하고 있사옵고, 몸으로는 당신의 뜻앞에 충효의 길을 가고자 하옵니다.

지금까지 이들을 이끌어 나오셨사오니, 금후에도 이들이 당신과 더불어 행보를 맞추어, 당신의 영광의 한 터전을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되고 당신의 마음 가운데 협조할 수 있는 어린 자녀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아버지여! 통일교회의 역사가 짧은 역사이지만 그 이어 내려온 유래와 전통은 인류시조의 역사와 더불어 같이 내려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 시조들이 엮어 나온 역사는 기쁨의 역사가 아니고 비통한 역사인 것을 생각하게 될 적마다 아버지여, 저희들의 사명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더더욱 느끼게 되옵니다.

역사적인 슬픔을 품고 나오신 아버지를 위로하고 모셔야 할 것이, 온갖 지성으로 효의 도리와 충의 도리를 다해야 할 것이 응당 저희들에게 맡겨진 바의 사명이요 의무이지만, 늘 그러한 자리에 서지 못하는 불초한 모습들을 버릴 수 없는 자리에서 바라보고 나오시는 아버님의 안타까움이 얼마나 크신가를 저희들이 절절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런 연고로, 하늘을 위하여 자신을 갖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권위를 찬양하면서 수난의 제물의 노정을 바라보면서 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언제나 당신의 승리의 날이 오기를 바라는 저희들의 부족한 마음이라도 받으시사, 이 나라와 이 민족과 이 세계를 당신의 품에 품겨 드릴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오늘은 특별히 8월 초하루이옵니다. 아버지여! 이해의 후반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접때에도 이 자리에서 말하였지만, 이제부터 이 나라 이 민족이 가는 길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개인에서부터, 가정에서부터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온 가정들이 나라를 염려하고 남북의 통일을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 바쳐야 할 거국적인 시대에 처하여 있는 것을 느끼게 되오니, 여기에 하늘이 떠나서는 안 될 것을 잘 알고 있는 저희 자신들부터 본이 되어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식구라는 이름을 가진 저희들은 완전히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사명을 앞에 놓고 최후의 결정적인 호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 살되 얼마 살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땅 위에 어떠한 큰 욕망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욕망대로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없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늘이 바라는 그 욕망과 더불어, 하늘이 바라는 그 뜻과 더불어 저희들은 가고 싸우고 개척하고 달릴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늘과 더불어서는 가다가 쓰러지더라도 망하지 않는 것이요, 하늘과 더불어는 싸우다가 죽더라도 죽지 않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통일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최일선에 선 기동대원들을 지키시옵소서. 이들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널려 있사오니, 이들이 가는 곳곳마다 당신의 권위와 살아 계심을 드러내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위신을 존중시하시옵소서. 하늘의 뜻을 나타내시옵소서. 그리하여 인류 앞에 새로운 지표를 설정하여 금후에 인류들이 가야 할 방향을 확실히 제시할 수 있는 어린 무리들이 되게 하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일을 위하여 1972년도 금후의 역사를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한 나라를 위할 뿐만 아니라 세계만민을 끌고 가야 할 기관차의 사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맡겨진 책임이 막중한 것을 느끼면서도, 저희들의 힘이 부족하여 저희들의 힘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하늘을 믿는 마음으로 맡고 있사옵니다.

당신의 어려움을 생각할 때는 어려운 자리도 극복의 마음을 갖고 나가게 되옵니다. 수난길을 거쳐 나오신 당신의 죽음이 엇갈린 길, 선열들이 남기신 순교의 노정을 생각하면서, 저희들도 그와 동행하여 가겠다고 결의하고 나설 적마다 하늘이 지켜 주셨고, 길을 열어 주셨고, 모든 것을 보호해 주셨던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이여! 당신이 지켜 줄 수 있는 무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당신이 보호해 주시고 승리자가 되도록 직접 지도해 줄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체를 당신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당신 것으로 귀결시켜야만 된다는 이 원칙을 생각하게 될 때에, 부족하고 부족하고 또 부족한 것들을 당신이 굽어살피시옵소서. 주관하시어 당신이 원하시는 하나의 모습들로 세워 주시옵소서. 최후에 남아진 이 싸움터 위에서 당신의 보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게끔 노력할 수 있게 허락 하여 주시옵소서. 온갖 힘을 다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동정의 마음이 저희 생활에 머물게 될 때, 일신이 가는 행로에 혹은 생애노정에 머물게 될 때, 이들은 빛난 소망 가운데서 승리의 한 터전을 이 땅 위에 남기고 갈 수 있는 무리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 사는 길은 막힌다는 것을 원리를 배운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공적인 일을 위해서 저희들은 달려야만 되겠습니다. 이제 이 8월도 저희들이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산지사방하여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젊은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 누구의 한을 위해서 나선 것이 아니라 당신의 한을 위해 나섰습니다. 저희들은 고생을 위해 고생 가운데 태어났고 고생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고생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한이 없나이다. 당신의 한을 풀어 드리고 당신의 수난길을 감소시키는 것만이 저희의 소원이오니, 당신으로 말미암아 출발을 하였거든 과정도 그러하게 하시옵소서. 결과도 그래야만 되겠습니다.

청년시절을 그런 길에서 보냈으면 장년시대는 물론이요, 노년시대는 물론이요, 자기 일생을 그런 자리에서 보냄과 동시에, 일대에 사명을 이루지 못하였거들랑 진정히 자기 후손들 앞에 유언으로 남겨서라도 소원 성취해야 할 역사적인 사명이 저희의 어깨 어깨 위에 짊어지워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이여 ! 불쌍한 모습으로서, 하늘을 흠모하면서 그리워 눈물지으며 하늘 앞에 지성 다하는 무리는 망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늘이 전후 좌우에서 저희를 동정하는 움직임이 떠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머무는 자리에 하늘이 동거하는 은사를 바라옵니다. 그렇게 될 때마다 그 자리와 그 모임과 그 움직임은 발전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지도하신 아버지여! 여기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니옵니다, 당신뿐이옵니다. 여기에 있는 모든 지도자들과 무리를 거느릴 수 있는 분은 당신뿐이옵니다. 저희들은 그렇게 알고 지금까지 따라 나왔고, 그렇게 알고 지금도 가고 있으며, 그렇게 알고 순응의 도리를 따라 지금은 승리를 바라보고 있사옵니다.

여기에 승리가 있고 그 무슨 자랑할 것이 있을진대, 그것은 아무런 것도 저희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당신 앞에 돌려 드리고, 당신이 은사를 주시면 감사히 받을 것이고 안 주시거들랑, 그 은사라는 것이 저희 자신에 머물 것이 아니오니 더 큰 나라와 세계를 위하여 남겨 달라고 부탁하는 소원의 마음을 갖고 가는 당신의 자녀들이라 할진대, 이들이 가는 길에는 승리와 영광이 길이길이 같이할 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이제 이 초하루부터 이달을 지키시옵소서. 이달은 복잡한 달입니다. 새로운 출발의 계기가 되는 8수를 맞는 첫날이옵니다. 1972년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정상(頂上)의 해라고 말하였습니다. 7월을 지냈습니다. 8월부터 새로운 소망이 깃들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8월부터 이 나라 이민족 이 땅 위에 희망이 찾아들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수심과 환난 가운데 머물러 있는 인류 앞에 해방과 자유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달을 당신이 축복하여 주옵고, 이달을 위하여 충성을 하고, 이달 가운데 하늘 앞에 바쳐지는 봉사의 날들이 있거들랑 그 날을 자랑의 날로 기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모인 자녀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저희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저희들은 세상에서 불쌍하다면 불쌍한 무리이오나, 불쌍한 반면 당신을 더 사랑할 줄 아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수고하고 그 수고의 대가를 땅에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당신만은 인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당신을 높여야만 되겠습니다. 외로울 때에 하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리가 얼마나 고맙고 황공한 것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리에서 자기를 붙안고 신음하고 자기의 생애를 염려하는 불쌍한 무리보다 아버지를 확실히 알고 아버지와 더불어 의논할 수 있는 무리는, 지극히 고독하고 지극히 불쌍하고 지극히 비참한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행복한 자들인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 가정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뜻을 위하여 그 가정 가운데 태어난 어린 자녀들을 아버지 고이 키우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뜻 앞에 바쳐져 후대에 당신의 민족과 당신의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귀염둥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곳은 120개 성지를 연결시키는 중앙 성지이옵니다. 아버지, 이 남산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서울 시민들이 하늘을 우러러보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만국의 중심인 이곳 시민들에게 당신의 소원과 이념을 마음으로 추구할 수 있는 영적인 은사를 주시옵소서. 이 서울을 찾아오는 수많은 무리들은 하늘의 때가 어떻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게 하시고, 만일에 그러지 못하는 무리가 있거들랑, 갈 길 앞에 스스로를 재검토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며칠 후에는 남북이 서울을 중심삼고 만나는 그런 자리가 있사오니 당신이 그 가운데 주인이 되시옵소서. 이 나라 이 민족을 금후에 당신의 뜻 앞에 부복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하시옵고 지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늘 앞에 모든 것을 맡기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갖지 않는 벌거숭이 몸과 어린애 같은 마음 가지고 하늘의 품에 품길 줄 아는 이 민족, 삼천만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후의 날들과 달이 자랑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고, 제 2차 7년노정 위에 하늘의 승리의 장들이 쌓여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한국과 일본과 미국과 독일을 중심삼고 세계 40개 국에 연결되어 있는 성지를 통하여, 수많은 백성들이 평화의 새로운 아침을 추앙하는 마음이 하늘이 원하시는 소원과 더불어 고이고이 싹트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모든 것을 당신의 경륜 가운데서 치리받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우리는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통일교회 식구입니다. 식구라 하면, 물론 맡은 바의 직책은 다르겠지만 가는 길이나 생활하는 감정에 있어서는 환경과 어떠한 처지를 떠나 가지고 동일한 생활 노정을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딸이 있다 하면 그 아버지와 아들딸이 하는 일은 다르다 하더라도 정서적인 생활 분야에 있어서는 같은 것입니다. 아버지가 슬퍼하면 그 아들딸도 입장은 다르지만 슬픈 마음을 느껴야만 응당히 그 부모의 자녀로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과 다른 식구의 관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우리는 식구'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식구가 가야 할 본연의 길, 그 길이 물론 뜻을 위해 가는 목적에 일치되겠지만, 그렇게 일치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정서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달라서는 안 되겠습니다.

더우기 그 집안이 어려움을 당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하게 될 때는 그 식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어버이가 슬퍼하는 자리에 서게 되면 그 자식들도, 같이 살고 있는 식구들도 슬픔에 잠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 슬픔을 해결하려면 현재 자기에게 맡겨진 직책이라든가 자기가 하고 있는 그 일이 중하다고 해서 그것을 더 중요시하는 자리에 서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될 때는 부모와 하나된 자리에 섰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정서적인 생활이 분립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외적으로 처해 있는 환경이 아무리 달라지더라도 그것을 다 버리고, 또 그것이 없어지더라도 그 부모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당하고 있는 슬픔에 대해서 몸과 마음이 같이 고통을 느끼는 자리에 섰다면, 그 가정이 아무리 갖고 있는 것이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스스로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여기서부터 자랑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는 어떠한 때보다도 색다른 방향을 가려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결의해 가지고 나서게 될 때는 사선이라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모색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흔히 식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식구를 중심삼고 볼때에, 부모의 슬픔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반면, 자녀들의 슬픔도 자녀만의 슬픔이 아닌 것입니다. 자녀의 슬픔은 부모의 슬픔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자녀가 많고 식구가 많다 하더라도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식구 가운데 한 사람이 슬픔을 당하게 되면 식구 전체가 그 한 사람의 슬픔에 포괄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거기에 융화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슬픔을 중심삼고는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된 그것이 그 가정의 자랑이요, 그 가정의 힘이요, 그 가정의 생명의 원천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한 식구의 슬픔을 그 사람의 슬픔으로만 생각한다면, 열 식구가 있을때 그 열 식구가 전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열 식구는 하나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열 식구가 마음으로 평화를 바라고 혹은 행복을 바라고 안식을 바란다 하더라도 그들 가운데는 안식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개인이 안식을 바란다면 개인의 안식으로 찾아진 그 무엇이 있다 할지라도 그 안식은 전체가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이 못 되는 것입니다.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이 각자 자기를 위하는 자리에서 찾은 개인의 안식 처가 있다 할진대는, 그것은 서로의 불안의 터전이 되고 불화나 혹은 불행의 근본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활을 통해 가지고, 우리 식구들의 주변의 사연을 통해서 역력히 잘 아는 바입니다.

식구라는 입장에서 이런 내용을 중심삼고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우리는 일반 세상의 식구와는 다른 것입니다. 세상의 식구는, 일생 동안 같이 살면서 서로 위하고 서로 위로의 대상이 되어서 하나의 심정을 가려 나갈 수 있는 행복의 길을 찾았다면 그 식구는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생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그 어떠한 가정보다도 자랑할 수 있는 식구가 되고 가정이 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말하는 식구의 관념은 다른 것입니다. 세상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늘 부모를 중심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를 중심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하늘 부모는 일시적인 시대를 주관하는 부모가 아닌 것입니다. 역사를 지배하고 역사를 주관하는 부모요, 이 시대를 지배하고 주관하는 부모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금후의 시대, 즉 미래까지도 주관하지 않으면 안 될 부모인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 부모를 모시고 있는 우리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될 때, 하늘 부모는 타락한 인류를 대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타락권내에서 완전한 해방을 맞지 못한 자신들인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드려야 할 인간

이렇게 볼 때, 하늘 부모가 기쁨으로 안식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이며, 그 자리는 어떠한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냐 하는 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통해서 하늘 부모가 안식할 수 있고, 안식의 길을 찾아갈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못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안식을 누가 마련해 드려야 되겠느냐, 누가 이 방향을 제시해야 되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타락한 우리에게 있어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타락한 인간으로서 오로지 바랄 수 있는 하나의 소원이 있고 바랄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하늘의 안식의 터전을 가려 줘야 되는 것이요, 안식의 방향을 가리기 위해서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필요 없는 결론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늘이 기쁜 마음을 갖고 결심한 현재의 그 마음이 기쁘고 안식할 수 있다면, 확고한 신념에 불탈 수 있는 그런 하늘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하늘은 언제나 그 출발서부터 행복의 길을 찾아가는 그런 하늘이 못 되었습니다. 안식과 행복보다는 불행과 탄식과 고통을 받은 하늘이었던 것입니다. 즉, 인류시조가 출발한 그날부터 안식이 아니라 파탄을 가져왔고,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초래했던 것입니다.

그 초래된 내용이 우리 인간의 사연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간단하겠지만, 인간들이 말하는 사연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는 불행을 초래했습니다. 또 이것이 하늘의 권한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모르겠지만 하나님 자신이 권한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내용으로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해결해야 할 주체가 하늘인 것을 잘 알지마는, 하늘이 해결할 수 없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사람의 기준이 상실되었고 참다운 하나님의 기준이 상실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래 원리원칙을 두고 보면 하나님의 권위와 인간의 권위라는 것은 당당히 사탄을 지배할 수 있는 자리에서 성립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복과 하나님의 안식과 인간이 그리는 행복이라는 것은 당당코 사탄을 지배할 수 있는 권위의 자리에서, 그 이상의 자리에서부터 추구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 우리 인류가 그 이상의 자리에 올라왔느냐? 올라오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늘이 안식이라는 말을 생각을 하고 있고 알고는 있지만, 안식하겠다고 할 수 있는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은 안식할 수 있는 어떤 결정적인 한계선을 지어 놓고 섭리의 길을 나오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노아 때 그 일을 바랐지만 실패로 끝났고, 아브라함때에도 역시 그랬으며 모세 시대, 예수 시대를 거쳐오면서도 그랬습니다. 역사 이래로, 그런 입장을 더듬어 나오는 역사라는 것이 하늘의 소원을 다짐하고 기쁨을 다짐한 역사가 아니라 도리어 슬픔을 가중시키는 역사였다는 것을 생각 하게 될 때에, 하늘이 바라는 안식과 행복은 어디에 있겠느냐 하는 문제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타락은 인간이 했기 때문에 인간이 책임져야 된다는 문제가 여기에서 개재되는 것입니다. 하늘이 안식하기 전에 하늘을 안식시켜 드리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늘이 안식하는 방향을 찾아가는 것보다도 인간이 그 앞에 서서 하늘이 안식할 수 있는 길을 소개하고, 안식된 자리를 찾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찾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개척해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효자의 촉매가 되어야 할 우리

이렇게 부모에게 불효를 한 아들의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 인류입니다. 불행을 초래한 장본인이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하늘 앞에 말할 수 없는 불효를 했기 때문에, 불효한 자가 하늘 앞에 당당히 서기 위해서는 효자될 수 있는 자리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불행하였던 그것을, 불효하였던 모든 것을, 본심에 돌아가 가지고 불효한 그 과오를 바라보는 것보다도 부모가 슬퍼하였던 그 마음을 보고 그 이상 슬퍼할 수 있는 아들이 되지 않고는 불행하였던, 불효하였던 자식이 불행으로 말미암아, 불효로 말미암아 저끄러진 어버이의 마음을 풀길이 없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게 될 때, 오늘날 불효의 길로 출발하였고 불행의 씨를 뿌리고 난 불효자식된 우리들이 하늘 부모 앞에 이제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내 안식을 추구하며 내가 안식하는 그 길을 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자신이 불행하게 했고, 불효자식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얼마나 타격받았겠으며 하늘이 얼마나 상심이 되었겠느냐? 그러니 그 마음을 어떻게 내가 위로해 드리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늘은 우리 인간이 제한된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을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자격자라고 믿지 않습니다. 불쌍한 자라고 동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변명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변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저 그 성상을 바라보게 될 때, 불효자식으로 낙인이 찍혀졌지만, 부모를 대할 때에 천만 사지백체를 그 앞에 엎드려 눈물을 뿌리면서, 부모 앞에 저끄러진 죄상을 직고(直告)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부모의 심정에 상처를 입힌 그 불효의 역사를 이어받은 우리들이, 불효의 역사로 말미암아 역사시대를 수난길에서 역경을 극복하며 나온 하늘 앞에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자기 자신을 세워 가지고 내가 이렇게 하늘을 위로할 수 있다고 자신을 가질 수 있느냐?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역사를 알면 알수록 우리는 눈물로써 하늘의 한을 덮어 드려야 되겠고, 아버지가 비참하였던 이상의 비참한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장면이 있게 될 때, 여기에 하늘의 새로운 동정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뻔뻔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 변명을 하고, 자기의 주관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동정이나 새로운 인연이라고 하는 문제는 생겨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천 번 만 번 죽어 마땅한 자신이요, 당신 앞에 나타나는 것이 고역이요,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당신의 성상을 바라보는 것이 죽기보다도 더 비참하다고, 울분을 느끼면서 나는 죽더라도 당신의 상처난 그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라도 남길 수 있으면 그 이상의 소원이 없다고, 절망자와 마찬가지의 입장, 세상의 그 누구를 바라볼 수 없는 소망이 없는 자와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게 될 때, 새로운 의미에 있어서 하늘의 동정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이요, 그 길에서만이 새로운 역사의 출발이 인연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자기를 생각하고, 자기 위신이나 체면, 자기의 지내온 경력, 현재 처해 있는 무슨 위치, 이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하늘의 효자가 되기를 맹세하고 나섰다고 자처합니다. 우리는 냉정하게 다시 한 번 분석 비판해야 되겠습니다. 내 손이 하늘 앞에 얼마나 효자의 손으로서 하늘이 그리워하는 손이 되었으며 내 얼굴이 얼마나 하늘 앞에 효자의 모습으로서 하늘이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느냐?

내 일신이 얼마나 효자의 촉매가 되어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어떠한 역경에 있을지라도 그 역경을 극복하면서, 효자의 가는 길을 개척해 주기 위하여 노력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게 만들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거기에는 우리가 자신을 못 갖는 것입니다.

이 손과 이 모습과 지난날의 모든 역사라는 것은 불효, 불효투성이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못을 박던 우리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불평을 하였고, 그러면서도 투정을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 8월 초하루를 맞는 이 자리에 선 여러분들, 우리에게는 하늘을 위해서 효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충의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앞서 나 자신이 어떻게 하늘 앞에 동정의 제물이 되어 그 자리를 지켜 내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귀하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행복의 길을 찾으려면 희생의 자리에 서야

우리는 통일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일을 중심삼고는 하나되기 쉽고 동정을 하기는 쉬운 것이로되, 마음을 중심삼고는 하나되기 어려운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도 정서 문제를 중심삼고는 더 어려운 것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일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을 소생이라고 하면 마음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은 장성이라고 볼 수 있으며, 심정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은 완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심정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데 있어서 내가 나를 위해서 있다고 하는 자리에서는 하나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식구들이 평화의 동기를 이룰 수 있고 서로서로가 안위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너를 위해서 있다 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식구들을 위해서 있다 하는 데서만이 평화는 그려지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들을 위해서 있다고 하게 될 때에 비로소 자식들에게 있어서 안식의 보금자리는 출발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를 위해서 있다고 하게 될 때는 자식들에게 있어서 안식의 보금자리, 행복의 보금자리는 파탄이 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부모 앞에 있는 자식들이 '부모는 나를 위해 있고 나는 나를 위해서 있다' 하게 된다면 그 부모에게는 안식과 행복의 자리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불행한 것이요, 여기는 안식의 터전이 못 되는 것입니다. 즉, 식구 식구들이 다른 식구를 위해서 있다고 하는 데라야만 평화의 기반이 되고 안식의 터전이 되고 행복의 여건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보다 식구들을 위해서 책임을 지고, 보다 희생하고, 보다 전체를 위하겠다는 입장에서 전체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수습하고 전체의 어려움을 나의 어려움으로 책임지는 자리에 서면, 그로 말미암아 그 가정의 행복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어버이가 그러지 못하더라도, 형제가 그러지 못하더라도 여기에서 희생을 각오하고 전체를 책임지고 위하는 아들, 식구면 식구 한 사람이 있다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행복의 여건은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게 될 때, 천지를 중심삼고 인류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보게 되면, 하나님 자신이 나를 위하라고 하는 자리에 있을 때는 그 자녀들은 행복의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모 되시는 하늘이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있고, 자신을 위해서 싸워 나왔다고 보지 않습니다. 하늘은 인류를 위하고 인류를 위해 싸워 나온, 다시 말하면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있는 거와 마찬가지의 입장을 고수해 나온 것이 아니냐. 억천만사의 수난길을 하루같이, 하루의 생활 심정으로 보듬고 싸워 나온 하늘이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 그 하늘은 언제나 장한 것입니다. 그 하늘은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 하늘은 언제나 우리가 우러러보는 것입니다. 그 하늘은 언제나 우리가 모시고 싶은 것입니다. 그 하늘과 더불어 우리가 언제나 하나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하늘이 나만을 위해서 있어라 하는 입장에 선다면, 그 하늘과는 통일이고 무엇이고 없는 것이요, 그런 하늘을 대해서는 추앙의 대상이고 존경의 대상이고 하는 것들은 전부 스러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늘은 더할 수 없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 앞에 오늘날 자녀와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인류들이, 여기에는 수많은 민족도 있고, 국가도 있습니다. 그 수많은 국가들 중에 우리는 하늘을 위해서 있다고, 하늘을 위해서 이 나라가 있고, 우리 씨족이 있고, 우리 가정이 있고, 우리 개인이 있다고 주장한 그런 개인과 가정과 어떠한 씨족과 국가가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두고 보면. 예수님이 하늘 앞에 행복의 길을 소개할 수 있고, 새로운 소망을 이어줄 수 있었던 것은 '내 뜻대로 마시옵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한 내용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기도를 한 그때는 '나는 죽더라도 하늘의 안위를 위해서 죽는 것이 효의 길이 아니냐. 그것이 안식의 보금자리와 행복의 요건을 가져올 수 있고 가정을 살릴 수 있는 하나의 기초가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이 사상 일념에 서 가지고 죽음길을 다짐하고 나선 숨막히는 순간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선민사상 전체를 일관해 보더라도 그런 사상이 남아질 때는 그 민족은 발전해 나왔습니다. 또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따져 보더라도 그 나라의 주권자와 백성이 하나되게 될 때는 흥하였습니다.

선군이라고 하는 그 선의 이름을 갖고 남아진 사람은 백성을 위하는 임금이지 임금을 위하는 백성을 찾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선한 백성이라 함은 자기를 주장하는 백성이 아니라 자기를 희생시키고 나라를 주장하는 백성을 말합니다. 그런 백성이 모여 살 때 그 나라는 반드시 역사를 일깨워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제 우리는 수십년의 역사를 남기고 있습니다.

더 큰 불행을 초래하는 교만

8월 15일이 되면 광복 27주년이 됩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과연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된 점이 있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금년에 우리는 '통일전선수호'라는 방대한 표어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 수호의 한계선은 자기 일신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가 한계선이 되어 가지고 국가를 넘어 세계를 방어해야 된다는 중차대한 사명을 짊어지는 의미에서의 방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먼저 방어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땅이냐? 땅에서 하늘이 공격을 받게 된다면 이때에는 직접 하늘이 공격할 것입니다. 그 목적은 세계를 방어하자는 것, 세계적인 섭리에 있어서 피해를 방어하자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는 하나님의 심정에 안식의 터전을 이룰 수 있는 길을 닦아 보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하늘은 나에게 있어서 언제나 막연하고 나와는 관계 없는 먼 자리에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아닙니다. 하늘은 지극히 가까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세포보다도 더 가까운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자신 전체의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상대인 여러분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상대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태양계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아홉 개의 행성이 태양을 관리하면서 도는 것이 아닙니다. 행성 자체가 자체를 중심삼고 방향을 따라서 태양을 잊어버리고 도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 전체의 중심으로 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자신은 중심을 관리할 수 없는 상대적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 중심을 망각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태양이 있기 때문에 행성이 도는 것이지 행성이 돌기 때문에 태양이 도는 것은 아닙니다. 태양이 있어 가지고 돌기 때문에 행성이 되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우리 생명의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그 중심을 관리 관찰하면서 내가 돌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기 자체를 중심삼고 돌면서 일정한 궤도를 도는 태양계의 행성들과 마찬가지 입장이 아니냐. 태양은 어느한 자리에 정지해 있습니다. 그것이 이동하게 된다면 천주는 혼란을 가져오고 파탄상태에 부딪치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의 중심인 하늘이 있습니다. 그런데 도는 데는 하늘을 중심삼고 같은 방향으로 원리 원칙을 따라 돌아야 할 텐데 반대로 돌고 있습니다. 반대로 돌고 있는 자체가 그 자체에도 마이너스지만 주체에 대해서도 마이너스입니다. 이러한 세계를 바라보는 하늘은 편할 수 없습니다. 하늘이 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식구들이 나가 전도하다가 힘들어서 낙심하는 사람이 왕왕 있는 것을 보게 될 때에, 그는 누구를 위해서 출발했느냐? 출발이 누구로부터이고 누구를 위한 과정이었으며 그 목적이 누구를 중심삼고 결실하려 하는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는 여지없이 배반자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출발했다는 것을 증거해 주는 것이고, 과정에 있어서도 자기의 이익을 바랐으며, 목적이 이루어지면 그 목적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존재는 하늘이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 목적이 이루어지면 이루어질수록 그런 사람은 더 불효가 되는 것입니다. 더 큰 비극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은 하늘이 그냥 둘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제거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섭리는 어느 시대나 교만을 들고 나오는 사람에 대해서는 하늘이 고충을 받더라도, 섭리의 뜻 앞에 막대한 지장을 가져 오더라도 그를 들어 쓴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러냐? 더 큰 불행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자식의 도리

여러분, 우리 통일교회는 수난길을 걸어왔습니다. 어려운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것은 선생을 위해서가 아니요, 민족과 세계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뜻 하면 내 개인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뜻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 길은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를 위해 일선에서 생명을 걸어 놓고 싸우는 우리 통일교회 식구가 있습니다. 위성국가에서, 혹은 암흑세계에서, 지하에서 생명을 내놓고 싸우는 식구들이 있습니다. 즉, 세계적인 최첨단에 서서 싸우고 있는 식구가 있습니다, 혹은 나라를 대표하여 나라의 첨단에서 싸우는 식구도 있고, 자기 종족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동정을 한다면, 어떤 사람을 동정해야 되겠느냐? 종족을 위해 싸우는 사람보다도, 나라를 위해 싸우는 사람보다도 보다 큰 것을 위해 싸우는 사람, 즉 세계를 위해 죽음길에서 싸우는 사람을 동정해 주는 것이 사랑의 길이 아니냐. 두 자식이 있는데 두 자식 중에 하나는 병이 나서 죽으려고 하고 하나는 물에 빠져서 죽으려고 한다고 합시다. 병이 나서 죽으려고 하는 자식은 오랜 고통을 통해 지금 죽을 자리에 들어와 있고 물에 빠진 자식은 당장 빠져서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다 할 때, 그 부모는 '아이구, 오래 고생한 아들을 먼저 구해 주어야겠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길에서 먼저 희생될 수 있는 길에 있는 자식을 부모는 살려주려고 할 것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볼 때, 생명을 바치는 최일선의 자리에 선 사람을 동정해 주고, 밀어 주고, 협조해 주고 그를 위해서 전체가 하나되는 것이 원칙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종족을 위해서 일한다면 '아 내가 종족을 위해서 일하는데 교회에서 몰라주면 안 돼. 교회가 하나되어야지. 전체 통일교회 식구들은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협조해 줘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나라면 나라를 중심삼고 협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건 입장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보다 큰 책임을 짊어지고 생명을 바칠 것을 각오한 죽음길에서 싸우는 최일선에 선 무리를 위하여 그 국가 국민이 총단결해서 협조하는 것이 정의요, 그것이 이 세계의 전통이 될 것이 아니겠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자기가 어렵다고 해서 그 환경을 포기해 버리고 도리어 자기를 변명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는 하나님에 대한 기가 막힌 배반자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우리는 이만큼 싸워 나왔습니다. 이제 우리의 때가 눈앞에 가까와 오고, 정상의 고개를 넘느냐 못 넘느냐 하는 때가 우리 목전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되겠느냐? 일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보다도 마음을 중심삼고, 심정을 중심삼고 하나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중심삼고 진행하고 있느냐? 그것을 중심삼고 거기에 일체의 정성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어느 길을 가느냐? 그 가는 길이 있거들랑 그 길을 중심삼고, 내가 딴 길을 가더라도 부모가 가는 그 길을, 어머니 아버지가 가는 그 길을 자식으로서 염려해야 할 것이 아니냐. 자기가 다른 곳에서 살지만 하루의 생활은 그 마음과 더불어 하고, 하늘과 더불어 심정이 일치되는 자리에서 살아 나가는 것이 하늘 식구가 가야 될 본된 걸음걸이가 아니겠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여러분들은 식구의 이름 앞에 배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이름보다도 실체적으로 배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8월 초하루를…. 여러분이 통일 교회에 들어온 후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될 때가 왔습니다. 맨 처음에 교회에 들어올 때 기뻐하던 그 기쁨이 다 스러져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이 정상적으로 뿌려진 하나의 씨가 되었으면 거기에서 열매를 맺어 가지고 수십 수백의 씨를 거두고, 그 씨를 다시 뿌렸으면 수십 수백의 봄날을 맞을 것이 아니냐. 적막강산 위에 한송이의 꽃이 피어나 수많은 꽃을 피워 꽃밭을 이루고 수많은 향기를 풍길 수 있는 향기의 동산을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니냐. 여러분 자신들이 그러한 향기를 풍길 수 있는 결실된 동산 가운데 서 있느냐?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스스로 풍기는 향기를 좋아하는 것은 고독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향기 가운데에서 많은 향기와 더불어 내가 풍기는 향기는 고귀한 것입니다. 그것은 대중이 깃들 수 있고 만물이 화동할 수 있는 요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만으로는 적적하고 외로운 것입니다.

공적인 원칙을 생명시하는 하나님

이렇게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이 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한 사람으로 출발해서 한 사람으로 자라 가지고, 가지도 뻗지 못하고 잎도 피우지 못하고 꽃도 피우지 못한 채 그냥 그대로 한 모습으로 있다가, 그나마도 절망적으로 시들어진 입장에 서게 된다면, 그 사람을 누가 동정하겠습니까? 그건 동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도리어 뽑아 버리고 다시 심는 게 났습니다. 세상에서도 그런 일들이 있지만 하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은 완전한 것을 바랍니다. 하늘은 완전한 것을 찾되 개인으로서 완전한 것이 아니라 전체를 대표하는 완전한 것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심각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심정적인 문제에 있어서 사무친 그런 때가 있었다면, 그것은 완성기준에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완성 기준이 아니라 출발입니다. 소생이라구요. 평면적인 면에서 선생님과 심정적인 인연, 유대가 맺어졌으면 그 유대는 소생에 속한 것입니다. 이 소생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과 장성을 거쳐서 만민 가운데 그 사랑을 횡적으로, 즉 주체적인 자기를 통하여 만민 앞에 주체성을 이루어 줌으로 말미암아 만민이 비로소 그 심정적권에 설 수 있게 될 때, 이것이 완성권이 된다는 것입니다. 완성은 이 지구성, 땅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될 때 여러분이 결심하던 그것은 소생기적인 것입니다. '사망의 세계에서 목적도 없고, 혹은 인생의 보람이나 가치를 모르던 나 자신이 이제 그 목적을 알았다. 나는 갈 길을 알았다'고 하면서 기뻐하지만, 그것은 자기에게 국한된 것입니다.

그러나 식구라는 이름을 갖게 될 때에는 자기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만 됩니다. 결심하고 들어선 후에는 자기 혼자가 아닙니다. 내 뜻대로, 내가 바라는 소원대로가 아닙니다. 그때부터는 내가 바라는 소원, 우리 가정이 바라는 뜻, 그것은 식구로서의 뜻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가정이 바라는 그 뜻이라는 것은 부모를 중심삼은 심정세계에 방향이 일치되는 행복을 바라 나가는 뜻을 말하는 것이지, 불행을 바라 나가는 뜻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진정한 의미에서 식구로서 언제 하나되어 봤느냐? 이것이 문제라구요. 여러분이 가정에서 자기 누이동생 혹은 언니, 오빠 혹은 부모의 어려운 것을 볼 때에 자기 고통과 같이 느꼈던 그러한 체험이 있다 할진대는, 우리 식구끼리 그 이상으로 느껴 봤느냐? 이들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왜 불쌍하냐? 이들은 집도 없습니다. 식구라고 하지만 집도 없고 친척도 없고 나라도 없는 패들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에서는 집이 있고 나라가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누가 더 불쌍하냐 하면 공적인 입장에 선 우리가 더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우리를 사랑할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 못 하더라도 우리가 그런 입장에 섰기 때문에, 공적인 원칙을 생명시하는 하나님은 세상을 남겨 놓고 우리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밤을 새워 기도해야 할 때를 맞이한 우리

자, 그런 면에서 우리는 어떤 입장에 있느냐?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집이 여러분의 집이 아닙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인연맺은 것이 우리 나라에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의 뜰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원수의 철망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단결해서 이 철망을 뚫고 나가야 됩니다. 개인의 철망이 막고 있고, 가정의 철망, 종족의 철망, 민족의 철망, 국가의 철망, 세계의 철망이 막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돌파해 나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서는 안 됩니다. 가정의 철망을 뚫기 위해서는 부부가 하나돼야만 합니다. 종족의 철망을 뚫기 위해서는 가정이 하나되어야 하고, 민족의 철망을 뚫기 위해서는 종족이 하나되어야 하며, 국가의 철망을 뚫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남한이면 남한 민족이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야말로 상극적인 입장에 있는 북한과 남한이 상봉해 가지고 하나의 통일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여기에서 누가, 어느쪽이 더 강력하게 하나돼 있느냐에 따라 통일의 주도권을 쥐는 문제가 결정될 것이 아니냐.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어떠한 무리보다도 강하게 하나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 이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식구를 식구로서 그리워할 줄 아는 새로운 봄을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옛날에는 전도 나가서 자기가 외롭게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외로운 식구를 찾아가기 위해서 서로 50리 길을 가다가 중간에서 만나던 사연도 남아 있지 않느냐? 그때는 개체를 가려 가는 때였지만, 이제는 나라를 향해서 가려 가야 할 때인 것입니다. 이런 때에 있어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거들랑 한 번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식구들을 열 번이라도 찾아가고 싶어서 허덕일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만,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정상적인 통일교회 식구의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면이면 면을 중심삼고 그래야 되고 한 도면 도를 중심삼고 그래야 됩니다. 나아가 자기 도만 잘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도 전체가 잘되기 위해서는 전체의 도 앞에 본이 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 본이 되는 데 있어서는 자기를 중심삼고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가정의 뜻과 부모의 뜻을 따라서 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데에서, 가면 갈수록 빛날 수 있는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통일교회 진리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말 가지고 하나되기란 쉬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용적인 통일은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을 바라볼 때, 진리를 중심삼고도 하나되지 못한 비운의 역사를 엮어 나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 진리를 중심삼고도 어려운 것이 아니냐. 통일교인은 원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는 원리인이다' 하고, 하나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용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효자가 되어야 하고 충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려울 것이 아니냐.

이런 의미에서 이 8월 이후에 있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효의 길은 그야말로 섭리사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섭리사적인 효의 도리를 다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 누구도 맞지 못했던 이런 때를 맞은 것이 아니냐.

이제, 하늘의 뜻을 중심삼은 하나의 기수가 되어 가지고 안간힘을 다해서 외칠 때, 그 외침이 땅뿐만이 아니라 하늘에 미칠 수 있는 때가 되지 않았느냐? 예수 시대보다 나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지새워 가며 기도했지만 그 세 번의 기도에도 반응이 없었던 것입니다. 민족은 물론이요, 유대교회도 반응이 없었지만 지금 우리 때는 그와 다릅니다.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게 되면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무리가 국가를 넘어서 세계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룻밤을 지새우는 데도 우리 식구를 위해서 지새워야 되겠습니다. 나를 위해 밤을 지새우는 사람은 베드로가 되는 것입니다. 민족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밤을 지새웠던 것이 예수님의 입장이 아니었더냐? 죽음이 앞을 가려 오는 그런 운명길에서도 그가 염려했던 것은 자기의 죽음이 아니라 제자들을 염려했고 민족을 염려했기 때문에 하늘의 동정이 임하였던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부활하게 된 것이 아니냐.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바로 그런 때가 지금입니다.

이제야말로 우리 통일교회 교단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지새워 기도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기도할 때가 왔습니다. 밤을 지새워 기도하는데 나를 위해 기도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세계인류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밤을 지새우고 그것을 위해서 같이 우는 무리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길도 같이 가기를 결의한 사람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고빗길이 부활을 약속할 수 있는 최후의 판결을 내릴 것입니다.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망하게 할 것 같지만 부활을 촉구시킬 수 있는 생명의 동기를 부여해 줄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내적 심정 통일

여러분, 통일교회는 승공을 표제로 해 가지고 공산세계를 대해 첨단에 나서 있습니다. 총을 맞더라도 먼저 맞아야 되고 희생하더라도 먼저 희생해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싸움을 지금 일본에서 전개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느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싸움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타국에 가 있더라도 자기가 까닭 없이 모해를 당하게 될 때는 자기 나라가 들고 나서는 거라구요. 그래서 나라가 좋은 것입니다. 자기가 비통한 것은 자기의 비통이 아니라, 민족의 비통으로서 세계를 향하여 들고 나설 수 있는 것이 국가가 아니냐.

여러분, 본국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자기네 형제들이 외국에 나가서 희생당하는데 모르는 척하면 그 나라는 무력한 나라요, 망할 나라 입니다. 본국에 있는 여러분들! 외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듣게 될 때에 그것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상습적이고, 퇴폐적인 사상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무리들은 상관이 없는 무리들입니다.

좋은 소식이 있거든 밥을 안 먹고도 춤을 추면서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 슬픈 소식이 들리거든 내가 먹는 것을 잊어 버리고 자는 것을 잊고 내 문제와 같이 뼈살에 사무침을 느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주인이요, 주인의 아들된 입장이 아니겠느냐? 여기에 제삼자와 같이 구경하는 패들은, 구경하면서 비웃고 입을 벌려 가지고 좌지 우지 하는 녀석은 주인의 슬픔을 자아내는 반역자입니다. 그가 처단하고 해결지어야 하는 원수라고 한다면 그부터 청산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등등의 문제를 생각할 때, 이때야말로 여러분들이 하나되어서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가 8.15를 앞에 놓고 15일 동안 정성들여야 하겠습니다. 통일은 어디를 중심삼고 할 것이냐? 중심되는 하늘을 중심삼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심정적인 면에서 그야말로 식구가 한번 되어 보자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지극히 요구되는 때가 이때입니다. 식구로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원수들의 장중(掌中)에서 포로가 되어 하늘길을 가지 못한 기독교를 해방하고 나라를 구하러 나서야 할 전통을 우리가 세워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지 않으면 그들의 갈 길은 어디냐? 그들은 통일교회에로 넘어올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가 그들을 지나가 가지고 그들이 바라는 이상의 길을 제시해 줘야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가 갈 수 있는 그 이상의 길을 우리가 제시해 줘야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부작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공을 들고 나오는 것이요, 그래서 우리는 희생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 이만큼 나타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반공 하게 되면 통일교회를 꼽게 되어 있고 통일교회 활동을 꼽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나쁜 의미가 아니고 교회를 위하고 선의의 하나님을 위하고 나라를 위함에 틀림없다고 하는 것이 드러나게 될 때는 많은 교회도 기뻐하는 자리에서 통일을 볼 수 있지, 자기들이 넘어 들어와 가지고는 수습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망하라는 말입니다.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에게, 세계적인 운세권을 중심삼고 그 권이 앞설 수 있는 때, 비로소 그들이 따라갈 수 있는 때에 해방권을 허락한 것이 아니냐. 자기가 해방을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자체도 그랬고, 우리 통일교회 선생님 자체도 그랬지 않았느냐?

역사는 거기에서 행복을 찬양하고, 그런 것이 있어야 하늘 앞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동기가 되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주도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늘이 우리를 앞세워 가지고 이렇게 승리를 가져오게 했기 때문에 언제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고마운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고마울 수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아, 기성교회가 우리한테 머리를 숙여야지' 하는 것보다도, 그들보다 더 좋은 교회를 만들고 더 훌륭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앞서서 그들 앞에 본을 보여 주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따라오게 되고, 이렇게 되면 완전히 구원할 수 있습니다. 나라도 마찬가지라구요, 나라도. 나라가 가지 못하는 곳을 우리는 가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통일교회를 위해서냐, 진정 나라를 위해서냐? 나라는 그것을 감정한다구요.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가 출세하기 위해서, 정치 기반을 닦기 위해서 그런 놀음을 한다고 모함하고 있지만, 통일교회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그랬다고 하는 입장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될 때, 나라는 그것을…. 그것이 자연적인 통일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3차 세계순회노정을 마치고 돌아와 가지고 지금까지 하는 일이 무엇이냐? 세계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순리적인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그러면 여러분 자신에 있어서, 여러분의 가정이 있으면 여러분의 종족 앞에 여러분 가정이 중심이 되어 종족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종족의 이익을 위해서 일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통일방안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자식들이 미래에 전체 앞에 보다 높은 자리의 중심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효자도 빨리 이루어진 효자, 하루만 빵긋하는 효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나면서부터 저 녀석은 달랐다. 생각하는 것이 달라' 이럴 수 있고, 살아가면서도 어렵든 슬프든 언제나 부모 앞에 힘이 되고, 언제나 부모 앞에 소망이 되고, 언제나 부모 앞에 플러스될 수 있는 여건이 남아지게 될 때, 그 부모는 그 효자를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인계해 주고, 맡지 않겠다고 해도 맡기려고 하는 것이 심정의 세계의 인습이 아니냐.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러한 책임을 누가 하느냐? 수많은 종교 앞에 본을 보이는 책임을 누가 하느냐? 선생님 혼자서는 안 됩니다. 수많은 민족 앞에 본될 수 있는 책임을 누가 하느냐? 선생님만으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해야 됩니다, 우리가. 여기서만이…. 그러면서 식구들을 위하고, 전체를 위하고, 나로 말미암아 식구들이 위로받을 수 있게 하고, 내가 식구들을 편안하게 해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선두에 서서 모든 책임을 지고 절름발이 걸음을 해 나간다고 할 때, 그의 주변에는 하늘의 동정의 눈물이 감돌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반드시 그로 말미암아 통일적인 환경이 개척되고 만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외적 통일보다도 내적 심정 통일이 중요합니다. 희비극이 하늘과 엇갈린 자리에서가 아니라 하늘과 동참한 자리에서,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마음의 자리에서 출발해 가지고 같이 감과 동시에, 자식이라면 먼저 하늘 앞에 불효했던 자신을 생각하면서, 이제야 비로소 불효했던 역사를 다시 탕감받을 수 있고 해방받을 수 있는 좋은 찬스라고 알고 거기에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나서는 그런 자라면 하늘의 복은 그로 말미암아 연결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으로 말미암아 민족의 운세가 천운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생겨나리라고 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야말로 식구로서 보람되고, 서로가 심정적 안식처가 되고, 소망의 방향을 제시하는 여러분들이 되어 주기를 바라서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지금부터 수십년 전을 회상해 보면, 이몸은 민족 앞에 몰리며 영어의 신세를 모면할 수 없었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을 지나서 지금까지 복귀의 길이 멀다고 생각지 않고 나오다 보니 이제는 이 나라에서 문제시하는 최고의 집단이 됐습니다. 아시아에서 문제시하는 최고의 집단이 됐습니다. 세계에서 문제시되는 단체로 등장할 수 있는 때가 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염려하는 것은 본국의 사명이 크다는 것입니다. 본가(本家)가 행불행의 요인이 된다는 것을 아오니. 한국의 식구들이 씩씩해야 되겠습니다.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늠름해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엇갈리는 수난길이라 하더라도 우리 식구들이 거쳐 나갈 길이기 때문에, 그 수난길이 수많은 식구들이 쓰러질 수 있는 동기의 터전인 것을 알고, 그 식구들을 구할 수 있는 전통을 내가 세우겠다고 다짐하는 어린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사상을 가져야 본국의 전통과 역사적인 면을 이어받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주인, 혹은 후계자가 응당히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통일의 역군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제 통일의 식구가 어떠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통일의 식구는 심정의 통일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짐과 동시에, 우리는 불효했던 역사를 알았사오니 하늘이 맞기 전에 제가 맞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있던 열두 제자들이 하늘을 먼저 맞게 한 것이 역사적인 한이 된 것을 알았사옵니다. 하늘이 맞기 전에 인류를 대신하여 날아오는 화살을 내 몸, 앞 가슴에 맞고, 우리가 그 화살을 안고 쓰러진다 하더라도 그 죽음의 자리는 부활의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시대의 그 누구도 갖지 못한 통일 심정을 이어받은 무리들로서 저희는 이런 일을 자유롭게, 상습적인 일로 할 수 있는 경력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저희는 공적인 길, 공적인 죽음, 공적인 생활, 공적인 생애노정, 보다 공적인 가치관을 추구해 나온 무리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자아를 가지고 살지 않으면 안 되고, 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무리이옵니다.

하늘은 식구들을 위해서 존재하고 식구들은 하늘나라를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하늘나라는 아버님을 위해 있고, 아버님은 아버님의 사랑을 위해 있습니다. 그 사랑은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에, 저희들을 찾아 앞장 세워 사랑하고 싶은 아버님이시기 때문에, 전체를 저희 때문에 창조하셨고, 저희 때문에 싸워 오셨고, 저희 때문에 참아 나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아버지의 사랑을 이어받을 수 있는 무리는 이 전통적 사상에 있어서 주류적인 입장에서 싸워 나가는 무리 외에는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식구의 전통을 지니고, 그럴 수 있는 본국의 인연을 지닐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부터 8월을 아버지의 뜻과 더불어 출발하겠사오니, 이달도 아버지께서, 지난 7월, 아니 지난 6개월 이상, 보호해 주셨던 모든 기간 이상의 사랑의 보호권내에서 저희들을 지도하시옵소서. 늘 하늘을 간절히 그리워하며 하늘만을 위하며, 하늘 앞에 효성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온갖 지성을 다 기울이고도 부족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생활들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자리에서는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의 승리의 권한이 횡적으로 세계를 향하여 뻗어 나갈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마음의 상속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심정의 계승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해의 전부도, 70년대의 전부도 당신의 뜻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주옵기를 부탁하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