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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시는 새로운 세계

일시: 1960년 9월 11일(일) 장소: 낮, 전 본부교회.

요한계시록 21:1

<말씀 요지>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신본주의적 인본주의(神本主義的 人本主義)를 세우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늘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상 민주주의도 신본주의(神本主義)의 이념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그 인간은 땅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천정(天情)과 인정(人情)이 하나로 설 수 있는 새로운 세계가 되려면 그에 합당한 땅이 있어야 하고 새로운 이념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새로움은 마음의 새로움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의식혁명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양심혁명이요, 보다 더 큰 문제는 심정혁명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동기가 된 양심을 세워야 합니다. 미완성기에서 타락되었으므로 완성 기준에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심정 기준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지금까지 종교는 사람들의 양심의 혁명을 일으켜 절대적인 위치에 세워 놓지 못했습니다.

인류의 고통은 하늘과 인류와 땅을 붙들고 기뻐할 수 없는 데 있습니다.

자연을 보고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도인(道人)이 아닙니다.

증오의 마음을 넘어서기 위하여는 그것을 초월할 수 있는 보다 큰 힘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자신과 인류와 하나님을 품을 수 있는 인간이 완성한 인간입니다.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의 훈계는 잊혀지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사랑의 주체가 되는 분의 훈계가 있다면 그것은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절대자의 훈계와 명령을 받는 때가 와야 합니다. 기독교는 이러한 한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천·지·인(天地人)은 하나님의 심정으로 맺어져야 합니다. 부모는 무엇으로 부모가 되는가? 외형(外形)인가, 지식인가? 심정으로 부모가 됩니다. 부부도 그러합니다. 외적 조건으로 부부가 된 것은 외적인 조건과 더불어 깨어집니다.

기독교 신자가 죽음의 자리(死處)도 개의치 않는 이유는 하늘과 맺어진 심정적인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대신하여 죽을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심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마음은 하나님을 대하여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 하신 것은 하나님과 관계 맺어야 할 마음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참다운 주인 앞에 세우기 위해서는 땅을 위한 땀과 인류를 위한 눈물과 하늘을 위한 피를 뿌려야 합니다. 새 세계는 하나의 말씀에서 시작되어 마음을 일으키고 심정을 불러 일으켜 세계적인 형(型)으로 세우게 될 때 실현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군림할 수 있는 지상운동(地上運動)이 필요합니다.

나를 중심한 종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고로 자기가 구원받은 혜택을 민족과 세계 앞에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 중심의 종교는 망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을 합할 수 있는 이념을 가지고 천국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아담주의가 바로 세계주의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아담주의를 갖고 오셨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