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2회째 맞이하는 '부모의 날'입니다. 1971년에 들어서서 맞는 부모의 낱은 중요한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날에는 식구 전체가 한 자리에 모여서 축하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날은 세상의 그 어떠한 날과도 비교될 수 없는 날로서 타락한 인류가 오늘날까지 바라고 나온 날입니다.
6천년 복귀섭리노정을 두고 볼 때, 하나님께서 이 땅의 인간을 바라보시며 소망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어떠한 나라를 찾거나 혹은 이 세계를 당신의 손아귀에 넣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타락한 인간 세계를 수습해 가지고 하나님께서 치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누가 있어야 되느냐 하면 인류의 참된 부모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참부모를 맞지 못하게 된 것이 타락입니다. 인류의 시조가 하늘과 땅을 대표하여 창조이상적인 면에 있어서나 소망적인 면에 있어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부모가 되지 못하고, 하늘과 땅과 만물의 소망 앞에 배척되고 상충된 반역의 입장이 되어 그 누구도 환영할 수 없는 자리에 떨어졌는데 그것이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 가운데 참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혹은 역사과정에 있어서 성인 현철이 왔다 갔다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그들이 모시고 받들었던 부모가 있다 하더라도, 그 부모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타락한 혈통권내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운명권을 벗어나야 할 입장에 있는 부모로서 자기의 아들딸을 낳아 길렀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이 인류 앞에나 역사과정에서 성현이나 현철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성현이나 현철은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참다운 선의 부모를 대신한 입장이 아니라 타락권을 벗어날 수 없는 부모의 입장이므로 인류가 공히 모실 수 있는 부모의 입장이 못 되는 것입니다. 인류는 이런 거짓된 부모를 모신 한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에게는 이 원한을 풀고 참부모를 맞기 위하여 지금까지 싸움의 역사와 개척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뜻을 통하여 알고 있는 바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였다는 것은 곧 본래의 자리에서 이탈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이탈한 자리는 완성급의 자리가 아니라 미완성급의 자리이기 때문에 완성단계로 재차 수습되어 나가지 않으면 인류가 바라는, 혹은 천지가 바라는 참된 부모의 자리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환경적인 모든 여건을 갖추지 못한 부모와 인연을 계속 갖게 된 것입니다. 하늘로 보나 땅으로 보나 스스로의 부끄러운 모습을 감출 수 없고 자기 스스로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 놓이게 된 인류의 시조인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는 소망의 이상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역사가 된 것이 아니라, 절망과 탄식을 하면서 암흑의 세계로 떨어지는 역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인간들을 희생시키고 새로운 소망의 나라로 복귀시키기 위해 섭리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이와 같이 절망과 탄식권내에 떨어져 있는 인간을 끌어 올리는 것입니다.
타락한 부모, 즉 거짓 부모로부터 태어난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래야 맺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즉,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와 내연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아무런 것도 갖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창조 원칙을 두고 볼 때 인간은 하나님이 지은 인연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을 지은 목적은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완성의 표준을 세워 놓았던 창조의 법도가 있는 고로 이런 인연을 중심삼고 다시 인간이 책임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제 2차적 복귀섭리노정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복귀섭리는 타락하기 전의 상태로 끌어올리는 노정입니다. 끌어올리는 데에 있어서는 더이상 떨어질 수 없는 최하 말단의 자리까지 떨어져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주장할 수 있고 또 무엇을 가질 수 있는 자리에 있어 가지고는 새로운 인연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무원리권의 세계로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리가 없는 세계, 하나님이 간섭할래야 간섭할 수 없는 세계로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체와 동기가 되지 않고는 인간 자체만으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한의 구렁텅이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창조원칙으로 볼 때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을 가져야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은 떨어진 인간들을 다시 아들의 자리로 끌어올리려고 하시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차라리 다시 짓는 것이 쉬운 일이지 역사과정을 거쳐서 떨어지지 않았던 자리까지 수습해 놓는다는 것은 창조보다 몇 배 이상의 수난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무엇을 해 나오셨느냐 하면 무원리권내로 떨어진 인간들을 사다리를 놓아 끌어올리는 역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무원리권내로 떨어진 인간은 하나님과 혈통적인 관계 즉, 부자의 인연을 갖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 원수의 혈통을 받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는 꿈속에서도 만날 수 없는 원수의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소망을 가지고 대할 수 있는 그 어떠한 기준도 갖지 못한 채, 오히려 절망과 탄식과 고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누구의 후손이 되어 버렸느냐 하면 하나님이 용서할 수 없는 사탄 마귀의 후손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원수의 자식이 된 인간을 본래의 타락하지 않은 하나님의 자식과 같은 자리에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 수고하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수의 자식을 데려다가 자기의 혈육과 같이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은 지극히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들을 두고 볼 때에도 사랑을 유린하는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사랑은 절대적이요 이상적인 요소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랑이라면 그 사랑은 절대적이요 이상적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사랑의 주체이십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 대적하는 입장에 선 것이 사탄마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해 주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예수의 도리, 또 그러한 예수님을 키워 나오신 하나님의 뜻, 그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여기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한 그 원수는 누구를 지칭하느냐? 사탄에게 예속되어 그의 도구로 사용되는 사람, 사탄에게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 사탄마귀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을 유린한 원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6천년을 거쳐 나오시면서도 인간들을 배척하지 못하고 용서해 나오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선악과 하나 따먹은 것이 죄가 되어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법도를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과 지극히 가까울 수 있는 천사장이 사탄마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시조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혈통적인 인연을 가진 둘도 없는 직계의 아들딸로 만들려고 했는데, 나이 많은 종이 철모르는 해와를 타락시켰던 것입니다. 그 장본인이 바로 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미래에 하나님의 가정을 이룰 하나님의 몸이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한 것과 같이 타락한 인간이라도 하나님의 구원섭리에 의해서 하나님 앞에 돌아올 수 있거늘 타락 하지 않은 선의 입장에 있는 아담 해와야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어디에 들어 앉아 계실 것이냐? 아담 해와의 마음에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 해와가 완성하면 하나님을 내심에 모시고 하나님의 외적 실체로서 부부를 이루어 인류의 조상이 되었을 것인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조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 사실을 오늘의 기독교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의 피를 받았느냐 하면 사탄의 피를 받았습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성숙해서 하나님의 뜻 앞에 일치된 가운데 부부를 이루어 사랑했더라면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는 남의 아버지가 아닌 참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중심존재이시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다 최고의 가치를 지닌 그 중심존재를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인물이 못나고 외적인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누구나 다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고 세계의 중심이신 하나님과 사랑관계를 맺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이 욕망은 불가능한 욕망이 아닙니다.
본래 인간은 고차적인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준, 즉 절대적인 창조주와 일체될 수 있는 기준에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 창조주는 인간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자리는 하나님과 부자가 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런 자리를 표준하고 하나님을 주체로 하고 우리는 대상의 관계를 맺어서 그를 맞이해야 됩니다. 이러한 창조원칙이 있기 때문에 타락했을망정 창조원칙에 의해 인간의 마음은 항상 최고의 존재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소원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무엇을 할 것이냐? 그저 구경이나 하면서 살 것이냐? 아닙니다. 하나님 속에 있는 단 하나의 사랑을 중심삼아 이야기하고 그 사랑을 몽땅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할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인간 최고의 행복의 기준과 최고 희망의 기준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아버지로서 피가 통하고 감정이 통할 수 있는 실체적인 하나님으로서 등장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 누가 침범했느냐? 사탄 마귀가 침범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하나님 앞에 사랑의 원수가 되어버렸고, 원수가 되었기 때문에 조건 없이는 그를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랑의 원수를 무조건 용서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느냐? 천지가 뒤집어지게 됩니다. 차라리 자기의 아들딸을 죽이고 가산을 탕진하고 전부를 망하게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사랑의 원수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원수를 용서하게 되면 천도에 어긋난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역사를 통하여 사랑의 원수를 갚는데 있어서 힘과 능권으로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법도를 통해서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원수가 자기 스스로 하나님 앞에 완전히 굴복하여 종의 자리에서 세계 인류에게 심판을 받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자리, 원수를 그런 자리에까지 끌고 나가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죄를 탕감할 수 없습니다.
원래 천사장은 하나님이 사랑해야 할 종의 입장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종은 하나님을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절대적인 하나님이시라면 사랑도 절대적인 사랑이요, 약속도 절대적이요, 원리도 절대적이어야 하는데 당신이 언제 완성한 자리에서 나를 사랑해 봤소?' 하면서 참소하게 됩니다. 완전히 사랑하지 못했다는 조건, 즉 '나를 놓고 완성한 자리에서 사랑하지 못한 것까지 사랑하지 않고는 나를 칠 수 없을 것이요' 하는 조건을 걸고 하나님을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완성한 자리에서 사랑해 주어야 하나님으로서 사탄의 그릇된 것을 비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리원칙을 세워 놓고 그것을 실행하지 못하면 하나님도 완전한 자리에 못 올라가는 것이 아니요?' 할 수 있는 것이 사탄의 입장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도 당신의 전체 유업을 상속받아 가지고 당신을 대신하여 천하를 움직일 수 있는 중심존재가 되었지만, 그도 역시 완성한 자리에서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사랑해 보지 못하지 않았느냐'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 위에 오신 예수님이기에 완성한 자리에서 사랑하지 못한 사랑을 해야 할 내적 사연이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도 원수에 대하여 용서를 비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이 원수의 아들딸들이 바로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류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리 권위가 있다 하더라도 전부 다 원수에게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참감람나무가 되지 못하고 돌감람나무가 되었기 때문에 잘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참감람나무에 접붙이지 않으면 구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역사는 종교와 더불어 출발하였고, 종교는 인류와 더불어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소망의 길을 발견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그날부터 당신이 창조한 책임을 짊어지시고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를 펴시기 위하여 역사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헤아릴 수 없는 지경에 떨어진 인간은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사탄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사탄까지도 잃어버릴 수 있는 자리로 떨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 종의 종 이하로 떨어진 자리에서부터 구원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종교를 통해서 종의 종의 도리를 가르쳐 나오는 섭리를 해 나오신 것은 그런 이유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를 위해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종의 종 되는 입장에 있는 인간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하고 복종하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종의 종의 자리는 주인이 없고 종이 주인 노릇을 하는 자리입니다.
구약시대를 중심삼고 볼 때, 그 이전의 인류는 '종의 종'의 자리에 있었으나 구약시대에 들어와서 종의 자리에 서게 되었고, 그렇게 됨으로써 비로소 주인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종의 종의 자리에서 종의 자리까지 나오기 위해서는 인간 스스로 그 길을 개척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개척자의 사명을 해 나오셨습니다. 종의 종보다도 더 악한 족속들을 교육해야 했던 것이 하나님의 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형으로 계시기 때문에 인간 앞에 나타나시더라도 보일 수 없는 입장이므로 특정한 사람, 즉 선지자를 세워서 교육하여 나오신 것입니다. 그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 땅 위에 왔지만. 인간으로서 하나님 명령에 따라 순응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면 선지자는 인간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어야 했느냐?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려면 순종의 도리를 세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섭리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 앞에 충성하는 그 이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는 사람이 나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도리를 누가 가르쳐야 하느냐? 하나님이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종의 법도를 세우고 하나의 편제를 갖춘 후에 개인 가정 종족 민족권을 형성하여 섭리의 뜻을 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종의 입장에서는 이것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메시아 사상을 제시해 주고 앞으로 구세주를 보내주겠다 하는 약속을 세워 역사를 해나 오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한 섭리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이 땅 위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과거 역사시대에 인간이 종의 입장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했던 약속을 이루어 양자와 참아들의 인연을 갖출 수 있는 자리를 세우려 오신 것입니다. 종이 충신의 도리를 다할 때는 양자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를 거쳐 오면서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종으로서 충성을 다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아 가지고 양자의 인연을 맺어 나오도록 한 것입니다.
양자의 인연은 어떻게 맺느냐?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 위에 오기 전에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 위에 와야 되고, 그 아들의 명령을 듣고 거기에 순응해야 비로소 양자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시대와 신약시대가 연결되는 역사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구약을 믿고 나오는 사람들은 종으로서 양자의 혜택을 받기를 바라는데, 그것이 바로 메시아가 오기를 바라는 이유입니다. 즉, 메시아로 말미암아 종의 서글픈 신세를 넘어 양자권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 그들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양자의 자리는 직계 아들딸이 없게 될 때,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인연이 성립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종의 입장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뜻을 맞이할 수 있는 혜택을 받기를 바라면서 나오도록 한 것이 종의 구약시대를 지도해 나오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종의 신세를 면하고 하나님의 상속을 받을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적인 한때를 바라고 나온 것이며 그것이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세계를 대표한 민족으로서, 외적 세계를 상속받을 민족으로서 약속해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지도하여 나오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들과 양자가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종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기 전까지 양자의 터전을 닦아 가지고 아들이 겪게 될 모든 어려움을 해결한 다음 아들을 모셔 들여 그 직계 아들과 하나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갈수 없다는 이유이며, 그러기에 아벨은 가인을 복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혈통이 아닌 사탄의 피를 받아 가지고 태어난 아들이 하나님 앞에 양자로서 공인을 받게 되면, 직계 아들은 아벨적인 입장에서 가인의 입장에 있는 양자를 복귀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인연이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인연을 대표한 교단과 나라로서 양자권 입장에 서야 할 것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직계적 권위에 서야 할 것이 하나님을 중심삼은 예수 그리스도가 제시한 기독교와 이것을 중심한 세계 국가였습니다.
이렇게 세계를 대표한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예수 앞에 바치게 되면, 한 나라와 한 교단을 바침으로 말미암아 모든 나라와 모든 종교를 통합할 수 있는 권세를 갖고 오는 예수님과 연결될 수 있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예수님 앞에 봉헌해야 예수님이 가지고 온 하늘나라와 지상천국을 이 땅 위에서 상속받을 수 있는 권내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나라가 종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예수님을 정성껏 모셔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했기 때문에 그 길이 끊어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서 승천하신 후 기독교는 지금까지 재림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섭리를 연장시켜 복음의 터전을 닦아 양자권을 이어왔습니다. 이 기독교는 종의 입장인 유대교와는 달리 차원이 높은 자리에서 출발해 나온 양자적 종교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양자가 양자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다시 직계 아들을 맞아야 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의 운명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을 보면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한 예수님의 기도가 있는데 여기에서의 예수님은 양자의 입장에서 내 아버지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삼은 오늘날의 민주세계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혜택을 받지 않고는 안 될 자리에서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가 이 땅 위에 재림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메시아는 무슨 사명을 하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오시느냐? 아들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들의 사명을 중심삼고 직계 아들이 오게 된 것이니, 그 직계 아들과 양자가 하나되지 못하면 부모를 복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못하면 타락한 부모를 복귀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양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메시아는 어떤 입장으로 이 땅 위에 오느냐? 하나님의 직계 아들의 입장으로 오되, 그 입장에서 가인의 입장에 있는 양자를 횡적인 입장에서 완전히 굴복시켜 메시아의 사상이자 양자의 사상이고 하나님이 메시아의 아버지이자 양자의 아버지라고 하는 확고부동한 기반을 지구상에 세워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결정짓지 않고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뜻을 성사시킬 수 없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지금까지 양자의 입장에 있는 기독교가 양자의 도리를 넓혀 가지고 직계 아들의 인연과 연결시킴으로써 비로소 아들의 사명을 다했다 할 때 메시아, 즉 재림주님은 이 땅 위에 와서 나라를 수습하고 교회를 수습하여 굴복시킨 양자 앞에 그 나라와 교회를 상속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자기가 가지고 온 천국이념을 그 양자 앞에 남겨 줄 수 있는 아들의 도리를 성립시켜야 합니다. 이것을 못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 앞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그러면 한꺼번에 수백 명이 하나님 앞에 돌아갈 수 있느냐? 아닙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와야 되고 그 다음에는 신부가 나와야 됩니다 그래서 재림주님은 신랑으로서 신부를 찾아 이 땅 위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국문을 열 수 없으며, 직계 아들딸과 양자가 하나님께서 본래 허락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도 열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문을 닫히게 한 것이 누구냐? 아담과 해와 그리고 천사장입니다. 이들이 합해서 세상을 망하게 했으므로 복귀원칙에 의해서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상속권을 추구하고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천사장의 입장으로, 하나님의 직계 아들의 입장으로 온 아담을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찬양하며 그 앞에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땅 위에 신부를 찾아 세우게 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지느냐? 참다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로서 하늘나라의 외적인 모든 사연을 찾은 외적인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양자의 입장인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누리던 모든 권한을 사탄이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누가 빼앗아 와야 하느냐? 사탄의 아들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빼앗아 와야 합니다. 그들은 종의 입장에 있지만 하나님은 양자가 되는 특권적 혜택을 주어 그 양자권으로 하여금 외적인 사탄 세계의 것을 빼앗아 다시 하나님의 아들 앞에 상속되게 하는 내적인 책임을 추구하는 의미에서 하나님은 양자를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양자는 사탄을 대표한 세계를 재림주님 앞에 봉헌해야 하고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즉, 재림주님의 명령에 자기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자리에서 재림주님과 하나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양자가 나와 가지고 이스라엘 주권을 대표하고 유대교를 대표하던 대제사장이 하던 것과 같이 오늘날의 기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런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의 사명은 무엇이냐? 통일교회는 과거의 종교와는 달리 개인적인 구원만을 원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이상세계를 원하는 종교입니다. 본연의 이상세계는 인간이 완성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부부의 인연을 맺어 아들딸을 낳아서 천국에 가는 것을 말합니다.
아버지는 지옥 가고 어머니는 천국 가면 그것이 무슨 천국입니까? 부모는 천국 가고 자식이 지옥 가면 그것이 무슨 천국이냐는 것입니다. 천국은 부모와 자녀, 종족, 민족. 국가가 다 들어가는 하늘나라입니다.
천국문을 열고 들어 가려면 인류가 거짓부모로부터 출발했으므로 참부모가 나와야 됩니다. 하나님도 스스로는 천국문을 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천국문을 열 수 있다면 그런 능력이 있는 분이 왜 안하겠습니까? 타락은 인간이 했기 때문에, 죄를 지은 인간이 벌을 받아야 합니다. 즉, 인간이 천국을 잃어버렸으니 인간이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6천년이나 걸린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을 개문(開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종의 종의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양자의 특권적 혜택을 주어 직계 아들과 인연맺게 하여 그 직계 아들에게 절대 복종하게 해야 합니다. 여기서 직계 아들 이란 누구냐 하면 타락하기 전 아담입니다. 또한 양자는 누구냐 하면 타락하기 전의 천사장입니다. 본래 양자는 종의 입장이므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아담 해와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은 두 종류의 사랑의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둘을 다 구원하기 위해서는 양자와 아들의 인연을 묶어 주어서 부모를 맞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섭리가 바로 하나님의 구원섭리입니다. 따라서 양자와 직계 아들이 하나되어야 비로소 부모를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 국가를 중심삼고 보면 그 나라의 주권자와 교회가 예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예수님이 가지고 온 정신적인 이념과 국가관을 중심삼아 외적인 나라의 정신적인 지도를 책임져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교회가 예수님 앞에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접붙이기 위해서는 누가 있어야 하느냐? 아담만 있어 가지고는 안됩니다. 왜? 아담 해와 천사장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가지고 타락했기 때문에 복귀하는 것도 삼위일체를 이루어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천사장과 같은 입장에 있는 양자는 아담과 같은 입장에 있는 아들이 올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직계 아들이 신부를 찾아올 수 있는 외적인 기반을 닦아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목사나 장로들이 교회를 움직이지만 그들이 신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부는 남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종이나 양자밖에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부의 치다꺼리를 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신부는 그들이 움직이고 있는 교회의 교인들 가운데서 나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목사나 장로들을 중심삼고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들을 중심삼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눈물 흘리는 할머니들로부터 여자들을 통해서 내려온 것입니다.
이제는 신부를 신부로서 인정하지 않는 교회와는 갈라질 때가 되었습니다. 오시는 아들, 즉 주님을 맞을 신부가 이 땅에서 찾아져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땅에서 천사장과 관계되었던 타락의 인연을 땅에서 갈라놓아야 하나님께서 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시는 주님 앞으로 돌려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과거의 인연에 집착되어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섭리로 볼 때 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첫아담이 실패했기 때문에 후아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후아담으로 온 예수님의 복귀섭리가 실패했기 때문에 또다시 완성한 아담이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이 땅 위에 와서 무엇을 할 것이냐? 인류의 참된 아버지로 와서 참된 어머니를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반드시 천사장을 세워 놓고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타락할 때, 아담과 해와 두 사람과 천사장이 타락했기 때문에 이들이 우주적인 내용을 결정짓고 사탄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는 승리적 기반을 닦지 않고는 인류가 바라는 소원의 기점을 가져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역사적인 소원의 기점은 나라도 아니요, 세계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참부모입니다. 거짓부모가 씨를 뿌려 가지고 사망권내에서 신음하고 허덕이던 인간에게 소망의 기점이 되는 참부모가 오시는 것은 곧 돌감람나무 밭에 참감람나무가 하나 태어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접붙일 줄 아는 주인이 있어 돌감람나무를 전부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의 눈을 따다가 돌감람나무에 눈접을 붙이면 그 밭은 참감람나무의 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전부 다 돌감람나무이므로 밑등을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 어떤 사상과 생각을 부정하지 않고는 완전한 참은 출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부모를 사랑하던 그런 사랑 가지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과 욕망을 전부 다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롭게 접붙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를 긍정하면서 출발하는 종교는 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아버지 어머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하고, 자기의 아내나 아들딸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가야 할 길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자기의 아내나 남편을 버리고라도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며, 자식을 버리고라도 하나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가 걸어가야 하는 십자가의 길이요, 하늘나라로 가는 길입니다. 이것이 천리원칙입니다.
통일교회는 사회로부터 일시적인 지탄과 온갖 모함을 다 당했지만 그것이 하늘나라를 가는 데 있어서는 원칙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나라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나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이 안 나왔기 때문에 진실로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나라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곧 나타나 있는 세계는 부정되어야 합니다. 개인으로부터 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청산지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이 땅에 와서 이 세계를 부정하고 심판하더라도 막을 길이 없습니다. 그때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심판날이며, 그날에는 자기가 세상을 중심삼고 사랑했던 모든 것이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윤리가 파탄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며, 낡은 세대에게 비판받는 것이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망해야 할 세상이 되었는데 그냥 망하도록 내버려두면 둘 다 망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할 수 없이 갈라 놓아 서라도 살 수 있는 길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계를 갈라 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 섭리해 나오신 내용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현실 가운데에서 되어지는 것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썩어진 세계를 밑거름으로 하여 소망의 뿌리를 박아 생명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되는 주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통일교회를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봄날에 돋아나는 새싹처럼 자라나서 완전한 뿌리를 내릴 때에는 그 싹을 뽑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인류가 역사과정을 통해서 소망해 나오는 최후의 목적이 무엇이냐? 이상적인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상적인 나라가 있기 전에 이상적인 민족이 있어야 하고 이상적인 민족이 있기 전에는 이상적인 종족이 있어야 합니다. 또, 이상적인 종족이 있기 전에 이상적인 가정이 있어야 하고, 이상적인 가정이 있기 전에 이상적인 부부가 있어야 하며, 이상적인 부부가 있으려면 이상적인 아들딸이 있어야 합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도 이상적인 자유로운 존재로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영광 중에 계시는 하나님' 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전지전능하시고 영광 중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왜 아들딸이 사지에 들어가도록 두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도 자유로운 하나님이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종이 가야 할 길과 양자가 가야할 길을 닦아 오셨으며 앞으로 참부모가 와서 가야 할 길까지도 닦아 놓지 않으면 안 될 수난의 길을 걸어오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 앞에 동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의 그런 내적 사연을 알게 될 때 완전히 하나님 앞에 굴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유로이 운행하시면서 '내 아들아, 내 딸아 사탄의 공포가 어디 있느냐?' 하는 자리에서 아들딸을 사랑하게 되면 만물도 기뻐하며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때, 이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환경을 가져 보았습니까? 이런 일이 오늘날까지 한번도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유롭게 해방되는 날을 갖기 전에는 인류도 해방될 수 없습니다. 해방된 국가가 되려면 해방된 민족이 있어야 되는 것처럼, 해방된 세계가 되려면 해방된 국가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욕심이 많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천국 간다고 하는데….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없는 일입니다. 천국에 가려면 미리 그 터전을 닦아야만 됩니다. 순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천국문을 개문하기 위한 터전을 먼저 닦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천국을 망친 것이 누구냐? 거짓 부모로 말미암아 지옥이 되었으니 지옥에서 천국문을 열려면 참된 부모가 와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참된 양자가 되었느냐? 양자는 아들의 갈 길을 준비해야 되는데 아직까지 우리 통일교인들은 그 책임을 못하고 있습니다. 양자는 아들을 대신해서 나라를 준비해야 되고, 그 아들이 나라와 교회를 거느리는 데 있어서 환난이 있으면 막고 대비하여 아들이 승리할 수 있는 터전을 갖추어 놓고 예비해야 됩니다. 그래야 그 터전 위에서 아들이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과 인류의 희망의 귀착점이 되고, 신앙자가 승리할 수 있는 기점이 되는 하나의 터전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한의 기원은 인류가 거짓부모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참부모의 거룩한 인연을 중심삼고 그 앞에 순응하는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천지가 해방될 수 있고, 천국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한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중심이 무엇이냐?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의 날입니다. 참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그날이 나오지 않고는 역사적이고 엄청난 그 한을 풀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선한 가운데 나타나야 할 참된 부모의 혈연이 이 땅위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는 고아와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즉, 사탄의 아들과 딸이자 원수의 아들딸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법도를 보아서 인간은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인간을 쇠사슬로 묶어 가지고 못 가게 유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정상(情狀)입니다. 그러나 그 쇠사슬을 끊어 버리고 최후의 생사결단을 지을 수 있는 인류의 소망의 기점이 '부모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이날은 하나님도 지금까지 바라오셨던 최후의 한날 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와 같은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억천만 세의 죽음의 피로써 호소하고 소망하면서 남아지기를 갈구하여 산 모습으로 세워진 터전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세운 이 날은 세상의 그 어떤 날에도 비길 수 없는 귀중한 뜻이 있는 날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새롭게 느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소망해 오셨고, 타락한 인류가 찾아 세우려고 했던 이 '부모의 날'을 오늘날 타락한 인류는 물론 믿는다는 사람들도 모르고 있으며 통일교회 교인들까지도 '부모의 날'이 갖는 귀중한 의미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날을 찾아 세우시기 위하여 피나는 수난길을 통해서 선지자를 보내고 메시아를 보냈다는 것을 타락한 인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썩어진 종교계가 참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부패할 대로 부패한 모습을 보고 통일교인들은 의분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부조 리한 이 세상을 부정하고, 어서 속히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선한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열과 성을 다하여 하나님의 위업을 계승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하루하루를 새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