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어떠한 개인의 뜻에 의해서 탄생되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즉, 그분은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낸 구세주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구세주가 필요하게 된 것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렇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은 구세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을 구하려는 하나님이 계시면, 하나님은 반드시 구세주를 통해서 인간과 관계맺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인간이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신 목적은 잃어버렸던 자녀를 찾으시고, 그 자녀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가정, 혹은 종족, 국가, 세계를 다시 찾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목적에서 예수를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를 이 땅에 보내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오랜 기간, 4천 년 기나긴 세월을 통해서 개인적인 수련 과정을 거치게 하면서 종족, 민족, 국가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무한히 수고하셨다는 것을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모르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인간이 타락하기 전 하나님으로서의 이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실현되지 못한 이상을, 인간을 다시 구원해 가지고, 복귀해 가지고 타락하지 않았던 본연의 이상을 재차 실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를 보낸 목적입니다. 타락한 세상에 하나님이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들로 사랑할 수 있는 이 아들을 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구요.
예수가 탄생하는 데는 반드시 여자의 몸을 빌어 탄생해야 하는데, 그 여자는 보통 여자가 아니고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모 마리아를 두고 볼 때에, 마리아는 한 몸이지만 세상의 죄라는 것과 관계되어 있다는 면에서 마리아는 어떤 입장에 있느냐? 마리아 자신도 타락권 내를 초월하지 못한 입장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타락의 역사과정에 연결돼 있는 것입니다. 타락하기 전 역사시대의 기준에는 올라가지 못했다 이거예요.
그런 입장에서 볼 때에, 마리아는 어떤 입장에 서야 되느냐? 역사상의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런 조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마리아 자신을 중심삼고 역사시대의 모든 타락된 인연을 끊었다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이런 두 가지 조건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다 하더라도 마리아는 예수가 타락의 역사시대에 서 있다고, 타락의 역사시대에 태어났다고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해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에, 하나님은 그 마리아 복중에 있는 메시아 되는 예수를 대해 가지고 타락하지 않았던,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지어 놓고 기뻐하던 이상 기뻐할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여러분 생각에는 어떨 것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타락하지 않았던 본연의 아담 이상의 자리에 태어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자신이 메시아로 잉태된 예수를 대해 가지고 '아! 슬픈 아들이 태어난다' 하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을 때는 하나님만이 아담 해와를 주관했었습니다. 거기에는 사탄이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사탄이가 타락 전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구요. 그렇다면 이원론이 되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타락과 동시에 사탄이 생겨났습니다. 타락의 주인이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자,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예수와 마리아는 하나님만이 주관할 수 있는 권내에 있었느냐?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탄은 어느때든지 엿보아 가지고 마리아와 예수를 자기 편에 끌어들이기 위한 일을 했습니다. 그런 일을 중지했느냐 하면 그러지 않았습니다. 계속했다 이거예요. 그러한 입장에 선 것을 마리아 자신은 알았느냐 이거예요. 마리아는 잘 몰랐습니다. 그럼 요셉은 어떠했겠느냐? 요셉도 몰랐다는 거예요. 그 형제들도 그와 같은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태어난 예수를 가만히 볼 때, 예수는 어떠했겠느냐 이거예요. 예수가 태어나 가지고 그런 것을 몰라 가지고는 그런 환경을 정리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만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가 탄생하자마자 그런 일을 알 수 있느냐? 예수가 자라서 성숙할 때까지는 언제나 사탄의 참소의 위험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마리아와 요셉의 가정이 사탄의 침해를 받지 않도록 자랄 때까지 예수를 옹호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마리아로부터, 가정의 모든 식구와 친척이 전부 다 그런 환경이 돼 가지고 '사탄이 노리고 있는 예수이기 때문에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바치더라도 장성할 때까지 옹호하여 거룩히 길러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아들의 사명을 하도록 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해 가지고 예수가 태어난 날을 축하하고 예수가 자라는 동안 보호해 주고 사랑했느냐? 그런 사람이 있었느냐 이거예요. 자, 여러분은 그렇게 했다고 생각이 돼요, 못 했다고 생각이 돼요?「못 했습니다」그건 못 했습니다. 못 했다 이거예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예수가 마굿간에서 태어났습니다. 마굿간에서 태어났다 이겁니다. 그런데 그걸 찬양하고, 전세계는 예수가 만민을 구하기 위해 천한 자리에서 태어났다고 자랑해요. 그게 진짜 하나님이 자랑하고 우리 인간들이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이냐 이거예요. 그분을 위해서 준비한 것이 이스라엘 나라요 유대교인데도 불구하고, 그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알기나 했느냐 이거예요.
그렇게 볼 때 마리아로부터, 마리아 가정, 사회, 국가, 교회가 전부 다 예수를 메시아로서 믿고 해야 할 책임을 중심삼고 사탄과 하나님 사이에서 일대 대결해 가지고 사탄을 청산지을 수 있는 책임자로서 모신 사람이 있었느냐 이거예요. 축하한 사람이 있었느냐 이거예요. 없었습니다. 단지 있었다면 하나님 한 분,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태어난 예수가, 어린 아기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기가 말구유에서 태어나서 울고 있는 모습을 하나님이 바라볼 때에, 하나님이 원하는 뜻과는 반대되는 환경에서, 사탄이 주시하며 어떻게 하든지 그의 앞길을 막으려고 하는 삼엄한 자리에서 울고 있는 예수를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이 좋아하셨겠구만!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마리아하고 요셉하고는 약혼한 사이입니다. 예수의 진짜 아버지가 요셉이냐 이겁니다. 그 요셉은 마리아가 잉태한 남의 아기가 배 안에서 자라는 걸 알고 그거 물어 봤겠어요, 안 물어 봤겠어요? 누구의 아기냐고 물어 봤겠어요, 안 물어 봤겠어요? 여기에 잘난 남자, 인내심이 제일 많고 포용력이 역사 이래 제일이라고 하는 남자가 있다고 하자구요. 그 남자의 아내 될 약혼녀가 아기를 뱄는데 남자가 그 아기를 어떻게 뱄느냐 할 때 '아 성신으로 잉태했다. 하나님이 잉태하게 했다!' 하면 그걸 며칠이나 믿을 것 같아요? 남자 중에 포용력이 큰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아내가 그렇게 됐는데 물어 보지 않고 좋아할 사람이 있느냐 이겁니다. 며칠이나 좋아하겠어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세계주의적인 배포를 갖고 있고, 또 포용력이 있다고 보는데, 어디 여러분들, 그럴 것 같아요?
만일 한번 물어 보기를 '마리아여, 당신이 하나님 뜻 가운데 아기를 뱄다는 건 좋지만, 내가 이런 환경에서 당신을 보호하는데 당신의 복중에 있는 아기의 아버지를 알면 안 되겠느냐?' 할 때, 그때는 처녀가 아기를 가지면 돌로 때려 죽일 때라구요. 마리아가 오순도순 전부 다 얘기를 해야지 '아이고, 성신이 잉태하게 했기 때문에 모른다' 이래 보라구요. 그건 뭐 아기 날 때까지 틀어지게 돼 있습니다. 싸움을 했겠어요. 안했겠어요?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예수라는 존재가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하나의 경계선이 돼 가지고 논란의 대상이 되고, 부부가 장래의 가는 길에 하나의 암적 존재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구요. 예수가 태어나 가지고 자라는 동안, 열두 살 때까지 자란 과정을 보게 되면, 어머니 아버지한테 언제나 예수가 문제였기 때문에 그 동생들도 예수를 훌륭하게 보지를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를 불신했다구요.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유대 나라는 전통을 존중시하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가 정성을 들여 예수를 위하고, 누구보다 높였으면 그 동생들이 예수를 그렇게 평할 수 있었겠어요?
예수가 열두 살 때 명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는데,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를 남겨 놓고 돌아가다가 사흘만에 되돌아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예수를 만나 묻게 될 때 예수는,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모르느냐'고 했습니다. 이런 조로 말한 그 모든 사실을 두고 볼 때에, 그 부모가 열두 살 난 예수를 데리고 갔다가 그냥 둬두고 돌아갔는데 그냥 정상적인 입장에서 둬두고 돌아갔다고 보느냐구요. 틀림없이 예수를 놓고 둘이 싸웠을 것입니다. 싸워 가지고 할 수 없이 그냥 갔어요. 가만히 볼 때, 마리아는 돌아갈 수 없지만 싸웠으니 할 수 없이 요셉을 따라가야 돼요. 거 남편을 따라가야 되겠다 이거예요. 요셉도 가만히 보니 동네방네 소문이 나서 손가락질을 받겠으니까 말이예요, 의붓자식이니까 저렇게 했다는 말을 들을 걸 생각해 가지고 가서 데려 왔다, 이렇게 볼 수 있다구요. 이렇게 보는 것이 더 정상적입니다.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다는 거예요. 그 이유가 통한다구요.
요셉하고 마리아가 복중에 있는 아기를 놓고 서로 싸우는 것을 요셉의 어머니 아버지라든가 혹은 마리아의 어머니 아버지가 있어 가지고 보고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사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동네방네 퍼졌겠느냐 안 퍼졌겠느냐 생각해 보라구요. 어땠을 것 같아요? 몰랐을 것 같아요? 알았을 것 같지요?
그리고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 같은 사람은 제사장이고, 또 친척이고 그런데 그거 몰랐겠어요? 또, 세례 요한이 몰랐겠어요. 알았겠어요? 그러니 동네방네에서 저거 사생아라고 손가락질을 했을 거라구요.
지금의 미국 사회에서도, 너나할것없이 사생아를 낳는 환경에서도 그 동네가, 그 어머니 아버지가 다 아는데 2천 년 전에 그랬으니 죽고 태어나는 것을 몰랐겠느냐 이거예요. 거 다 알았다구요. 다 알았다는 거예요. 그런 환경에서 자라난 예수가 행복했겠어요, 불행했겠어요? 자랄 때, 그 동네 녀석들한테 별의별 수작을 다 당하고, '얘야, 너 아버지는 어떻고 어떻고…' 별의별 놀음을 다 당했다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예수는 메시아로, 하나님의 아들로, 하늘나라의 왕자로, 인류의 왕 중의 왕으로 온 주인공인데도 하나님이 바라는 기준은 이렇게 축하하고, 이렇게 살고, 이렇게 모셔 주기를 바라는 그 기준이 있었는데 그 누구, 그 어떠한 한 사람이라도 그의 심정을 헤아려 주고, 그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당시에 예수를 우러러보고 예수를 위한 사람이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왕 중의 왕으로서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했어요.
예수를 이 땅 위에서 진짜 하나의 아무 가정의 대표, 요즘에 말하는 장관이면 그 장관의 아들만큼으로나 위해 준 사람이 있었느냐? 동네방네 반장 자식만큼도 위한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은 그만두고, 지상의 왕 중의 왕은 그만두고라도 반장의 아들만큼으로도 안 대해 주었습니다. 그랬을 것 같아요? 선생님의 말이 맞을 것 같아요? 「예」
요셉가정에서 자라면서도 그런 입장에서 자랐기 때문에 명절이 돼도 그 누구 하나 정성껏 동정해 주는 사람이 없고, 마리아가 옷을 해 입혀도 문제가 되고, 동생들한테도 전부 다 문제가 되었습니다. 명절이 되면 동생들은 옷을 잘 입는 일이 있더라도 예수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거쳐 자랐다 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으로도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예수는 입고 싶은 것도 많았을 것입니다. 남과 같이 입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입고 싶지만 입을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구요. 또, 먹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그 누구와 같이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자리에서 자랐다 이거예요. 그다음에는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즉 자연스럽고 행복스러운 환경도 없이 자랐던 것입니다. 철이 들면서 그는 자신만 중심삼고 살아야 되고, 자신은 그들과 다른 입장에서 태어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섰기 때문에 도리어 뭣을 생각했느냐 하면, 하나님을 생각했다 이거예요. '하나님은 내 사정을 알아줄 것이다' 그러한 위안을 가질 수 있는 하나의 동기를 갖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을 동정해야 되고, 혹은 이 로마제국 앞에 압제받는 사람을 해방해야 된다. 그다음에는 이스라엘 나라의 악한 기존 제도와 지금까지 있던 하나님의 뜻을 위하는 데 본이 안 되는 모든 교단, 혹은 형식적인 모든 전통을 때려부수고 하나님이 원하는 참된 길을 개척해야 되겠다' 하는 것을 마음으로 다짐할 수 있는 좋은 기간이 됐을 것입니다.
어려움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심각한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니, 하나님과 거기서 접선할 수 있어 가지고 가르침받을 수 있는 길이 생기게 됐다, 이렇게 본다구요. 그럴 것 같아요? 레버런 문이 그걸 상상해 가지고 얘기하는 거예요, 알고 얘기하는 거예요?「알고 얘기하는 것입니다」알고 얘기하지만 여러분들이 믿지 못하기 때문에 알고 얘기하는 것같이 얘기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이건 정상적인 입장에서 보면 타당한 얘기요, 이럴 수밖에 없는 결론이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과연 예수의 탄생일이 있으면 난 날을, 생일을 축하한 사람이 있었느냐? 예수는 철이 나면 날수록, 장성하면 장성할수록, 생일이 되어도 그날을 기쁜 날이 아니라 도리어 슬픈 날이요 고통의 날로서 느꼈을 것입니다. 그랬겠지요? 생일날 무슨 생일 잔치를 해주고 무슨 예물을 사다 주는 사람보다도, 도리어 자기를 붙들고 눈물을 흘려 주는 사람이 예수에게는 더 가깝고 축하의 친구가 됐을 것입니다. 자기와 더불어 어려운 것을 서로 논의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그가 도리어 생일을 축하해 주는 어떤 무리보다도 가깝고, 그런 생일날일지라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도리어 자기를 축하해 주는, 자기 편돼주는 가까운 친구요, 가까운 동기요, 가까운 친척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기 누이동생이면 누이동생이 그런 사정을 알고 생일 축하를 못 해줄망정 자기 손수건에다 먹던 빵조각이라도 싸 가지고 와서 쥐어 주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이것을 먹고 오늘 오빠의 슬픈 마음을 풀고 이것으로 위로받읍시다' 했다면 그것이 도리어 그 어떠한 생일 축하의 예물보다도 귀하지 않았겠느냐.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그럴 수 있는 하나의 친구가 있고, 하나의 누이동생이 있고, 하나의 친척이 있었다면 그는 그날을 잊지 못할 축하의 날로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럴수록 예수는 외로우면 하나님 앞에 기도한 거예요. 그럴 적마다 하나님은 가르쳐 줬을 것입니다. '너를 앞으로 이런 사람으로 내가 만들 것이고, 너는 이렇게 돼야 되고, 이스라엘을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고, 세계를 어떻게, 로마제국을 어떻게 해야 된다' 하고 전부 다 가르쳐 줬을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는 '하나님은 우리 어머니보다도 낫고, 우리 아버지보다도 낫고, 동생보다도 낫고, 우리 나라보다도 낫고, 친척보다도 낫다. 내 친구다. 내 생명의 은인이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 예수님이 외로워 가지고 눈물을 많이 흘리고, 그렇게 심각한 자리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면 말이예요,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의 비참한 걸 볼 때 그 생각이 없었겠어요? '하나님이시여! 우리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이고, 우리 나라가 바라는 메시아는 언제 옵니까?' 이렇게 기도를 해봤겠어요, 안 해봤겠어요? 그럴 때 '네가 메시아가 돼야 된다' 하는 명령을 받았을 것입니다. '메시아가 돼야된다' 하고 한 번 얘기할 때 그걸 예수가 믿었겠나요? 남이 모르는 가운데 하나님은 그를 메시아로 믿게 하기 위해서 생활 가운데서 여러 가지 믿지 못할 약속, '내일은 이렇게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다. 언제는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다' 해 가지고 생활하는 가운데 부정할 수 없게끔 많은 증거적 체험을 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믿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었다구요. 묵묵히, 말없이 속에다 간직하고 그 내적 수련을 해 나오는 기간이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의 사정을 잘 알았습니다. 예수가 몸을 쓰고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예수는 그의 가정의 어머니 아버지 형제가, 혹은 선생이 모든 나라가 전부 다 자기를 위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전부가 반대했습니다. 하나님이 앞으로 반드시 자기를 통해서 메시아적인 사명을 하게 하실 때,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이 전부 다 자기의 마음을 이해하고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모심을 받을 수 있는 한날이 있기를 바랐겠나요, 안 바랐겠나요? 원했을 거라구요. 그런데 교회와 유대 나라와 세계가 그렇게 돼 있었어요?
그런 소망을 품고 예수가 30세가 되어 가지고 새로운 복음을 중심삼고 유대교와 세계에 새로운 진리를 선포하게 될 때, 자기를 전부 다 환영하고 그 누구보다도 존경할 수 있는 입장이 돼야 그런 것이 가능할 텐데 반대했습니다. 반대를 했다 이거예요. 그렇게 됐어요? 그렇게 안 됨으로 말미암아, 그 결과로 십자가에 돌아갔습니다.
그러면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갈 때 '아, 내 행복한 십자가여' 했겠어요? 하나님이 볼 때 '아, 예수가 잘 죽는다'라고 생각했겠어요, 원통하고 기막힌 십자가로 생각했겠어요? 하나님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나? 자신의 아들로 이 땅에 태어나 가지고, 그렇게 한때 갖고 있었던 희망조차도 몽탕 전부 다 끊겨져 가지고 절망 가운데 죽어가는 그 입장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좋아하셨겠어요?「아닙니다」
예수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비참한 자리에서, 억울한 자리에서 가는데 거기에서 무슨 구원의 도리가 생겨요? 희망의 세계가 생겨요? 희망의 길이 생겨요? 어림도 없다 이거예요. 자신은 억울하고 분통해서 죽겠는데 '너희 집에 복이 온다' 이런 말이라도 할 사람 있어요? 어림도 없다구요.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기독교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과 예수의 뜻에서 이탈됐는지를 알고 각성해야 돼요. 4천 년 동안 유대교를 만들고 이스라엘 나라를 만든 것은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고, 예수가 이 땅에 죽기 위해서 왔고, 죽을 놀음을 하기 위해서 왔다는 그런 엉터리없는 얘기는 다 집어치우라는 거라구요.
그런 관점에서 죽었다가 다시 와야 되겠다는 말을 남기고 갈 때, 예수의 원통함과 하나님의 역사적인 한의 올무가 거기에서 생겼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예수가 구름을 타고 와 가지고 그 한을 이 땅에서 풀 수가 있어요? 허깨비가 뭘하겠어요? 있을 수 없다 이겁니다.
그런 입장에서 오늘날 전세계, 미국도 오늘이 크리스마스라고 문전에 축하 트리를 만들고 무슨 뭐 야단하는 걸 하나님이 볼 때 참 자랑스럽다고 하고, 예수가 볼 때 '아이고, 내가 죽기 위해서 태어났던 날을 축하해 주니 고맙다' 이러겠어요? 도리어 자극되는 날이예요. 이 땅에 태어나 실패한 것을 자극시키는 슬픔의 날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역사시대에 예수의 난 날을 진정으로 축하한 사람이 있었으며, 어떤 나라, 어떤 교회, 어떤 목사, 어떤 선각자가 예수의 난 날을 진정한 의미에서 축하했느냐? 예수가 비참하게 살았기 때문에, 비참한 자리가 아닌 왕자의 입장에 들어가 가지고 어떠한 위로를 한다 하더라도 그건 위로가 되지 않고, 예수보다도 더 비참한 자리에서 살면서 위로할 수 있는, 한 조각의 빵을 갖다 주고 한 벌의 옷을 갖다 주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축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자, 여기 모인 사람은 뭘하는 사람이예요? 예수를 팔아 장사하자는 사람이예요, 예수를 통해 복을 받자는 사람이예요, 예수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자는 사람이예요? 어떤 거예요?「희생하자는 사람입니다」그래, 또 이게 뭘하는 교회예요? 무슨 교회예요? 뭘하자는 거예요?「희생…」그래 희생하자는 목적이 뭐예요? 예수의 목적을 이루어 가지고 하나 만들자, 하나 만들어서 예수의 목적을 이루자? 그것보다 더 크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되는 데 있어서 '예수의 좋은 것과만 하나되지, 예수의 나쁜 건 싫어' 이런 말인가요? 어디서부터 먼저 하나되자는 거예요? 예수의 어느 때서부터 하나되자는 거예요? 십자가를 진 후부터예요, 지기 전부터예요?「지기 전입니다」선생님이 말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타락 전에 있어서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완전히 하나돼 가지고 기쁜 날을 축하하고, 즐거운 날을 찬양할 수 있는 같은 자리에서 전부 다 출발하고, 같은 자리에서 축하하고, 같은 고통을 감수하면서 울고 불고 하며, 그렇게 하나되어서 세계기반까지 하나될 수 있었던 전통을 이어받아 가지고 하나 만들자는 패들입니다. 그렇다는 말이지요?「예」 정말 그래요?「예」
예수 당시에 예수에게 그런 사정이 있을 때, 그 유대인들은 전부 다 반대했는데 이방 종들 중에 흑인이 있어 가지고 예수의 사정을 알고 위로했다면, 친구는 누굴까요? 어떤 사람이겠어요? 「흑인」 정말이예요? 「예」 왜? 마음이예요, 마음. 예수는 그때로 말하게 되면 유대 사람인데, 검은 종을 대해서 '전통적으로 볼 때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민이고 너는 뭐다, 이놈아' 이러겠어요, 붙안고 같이 울겠어요? 어떻게 했을까요? 「울었을 것입니다」 교파를 초월하고, 전통을 초월하고, 습관을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할 수 있는 심정권이 거기서 생겨나는 걸 알아야 돼요.
어떻게 그렇게 하나될 수 있을까요? 그 자리가, 요즘 같으면 귀빈들을 모아 놓고 스테이크를 놓고, 좋은 왈츠곡에 맞추어 춤을 출 수 있는, 한 잔 먹는 자리, 그런 자리예요, 비참한 자리예요? 웃는 자리예요, 우는 자리예요? 어떤 자리예요? 여러분들은 어떤 것을 취할래요? 첫번째예요, 두번째예요? 어떤 걸 취할래요?「두번째요」두번째? 왜? 어째서? 어째서? 예수가 그렇고 하나님이 그러니, 제일 가치 있는 분이 그렇기 때문에 그분과 가장 가까이 친하려니 난 그런다, 그게 이론적으로 타당하다 이거예요. 그래요?「예」
그래서 레버런 문도 하나님과 예수의 친구가 되고, 믿음직한 내가 되고, 총애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쫓기고 몰리는 자리에 서면 설수록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세계가 멀어지고, 자기 조국이 멀어지고, 자기 가정이 멀어지고, 자기 아내와 아들딸이 멀어지더라도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이 그 길밖에 없기 때문에 그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레버런 문을 따르는 사람들을, 여러분을 그런 길로 내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거 찬성해요? 「예」 레버런 문 따르기가 힘들고 통일교회 믿기가 힘들지만 한 가지 복된 것이 뭐냐 하면, 예수의 친구가 되고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귀한 것입니다.
예수가 어머니 아버지한테 배반을 당해 봤고, 서러움을 당해 봤고, 형제들한테 그렇게 당해 봤고, 혹은 자기 종족과 자기 민족과 자기 교회한테 그렇게 당해 봤기 때문에, 나도 그런 자리에 설 수 있는 길, 지금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길에서 그런 길을 가겠다는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길을 찾아갑니다. 그런 길을 찾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본래의 진정한 신앙길을 가자는 사람들의 소원인데 통일교회 교인들도 지금 자기도 모르게 그런 자리에 몰려들었다 이거예요.
이제는 해야 할 것이 뭐냐면, 죽은 예수를 붙들지 말고 살아 있는 예수를 붙들고, 십자가에 돌아가는 예수를 붙들지 말고 어린 아기 예수를 붙들고, 복중에 있는 예수를 붙들어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내가 돼야 됩니다. 여자들은 '예수를 밴 마리아가 책임 다하지 못한 것을 알았으니 마리아 이상 내가 해야 된다' 하며 마음에 하나님의 심정과 예수의 심정과 전통적인 모든 것이 상실되지 않게 어떤 희생을 당하더라도 그 길을, 본연의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남자로 말하면, 책임 못 한 요셉의 입장을 대신하고,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그의 친구의 자리에서 그를 위로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자리를 발견하고 그렇게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절대 예수가 모른다 할 수 없는 것이요, 하나님이 모른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난그렇게 생각해요. 뿐만 아니라 예수에게는 그때에 서로 사랑하고 싶은, 그 사정을 통할 수 있는 형제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동생의 자리에서, 혹은 누이의 자리에서 그것을 동정할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뜻을 품고 옳은 사랑을 하고, 옳은 길을 가는 젊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있거들랑 그를 예수와 같이 생각하고, 눈물어린 심정으로 동정해 줄 수 있는 누나가 되고, 동생이 되고, 형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되겠다고 하며 그런 환경적인 놀음을 한다면, 그렇게 가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예수가 절대 모른다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신은 억울하고 분한 심정을 가지고 이 길을 가면서 그 억울함을 알듯이, 동생과 같은 사람, 누나와 같은 사람, 혹은 어린애들 같은 사람들이 이 길을 가려고 몸부림치게 되면, '얼마나 힘드냐? 참고 가자' 할 수 있는, 그런 심정이 통할 수 있는 환경을 갖고 나가는 사람은 틀림없이 예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방문해서 위로할 수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예수의 자리에서 동생과 같은 사람에게 '얼마나 힘드냐' 할 때 '아닙니다 형님, 나는 힘들지 않아요. 형님이 얼마나 힘드십니까?' 이렇게 서로 위로할 수 있고,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은 연령이 된 사람이 있으면 예수와 같은 입장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이러고 그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니야, 나보다도 네가 더 힘들었지' 이렇게 위로할 수 있는 그 환경이야말로 천국건설의 기대가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레버런 문이 통일교회를 만들었는데, 통일교회 교인들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이냐? 어디로 끌어내야 될 것이냐? 놀고 편안하고 잘사는 자리가 아니라구요. 비참하지만 예수의 친구가 되고, 억울하지만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자리로 몰아내겠다는 것입니다. 어때요?「좋습니다」그게 좋아요?「예」그게 왜 좋으냐 이거예요, 왜? 하나님의 한을 풀 수 있는 길이 거기에 있고, 예수의 한을 풀 수 있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예수의 한을 풀지 않으면 세상에 아무리 복을 오라고 해도 복이 올 수 없지 않느냐.
그러면 십자가에 돌아가기 전의 예수가 나타나서 틀림없이 여러분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형제 이상의 형제요, 어머니 아버지 이상의 식구가 된다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요?「예」어떻게 돼서? 2천 년 전의 예수님과 여러분들이 어떻게 그렇게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사랑, 사랑, 사랑의 마음은 변치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사랑의 힘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거리에서 쫓기고 몰리고 욕먹고 핍박받고 침 뱉음 당하는 것은 여러분을 위해서 그래요,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그래요? 누구를 위해서 그래요?「세계와 하나님을 위해서요」그렇다구요. 역사시대 지난날의 모든 것과 내가 하나될 수 있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사탄이 참소하던 입장에서 볼 때, '내 옆에는 사탄이 있을 수 없다. 나에게는 하나님만이 있다. 사탄이 아무리 그러더라도 사탄이 나를 참소할 조건이 없다' 이렇게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유대 나라를 하나 만들려고 했지만, 우리는 세계를 하나 만들려고 한다구요. 거 왜 그래야 돼요? 왜? 예수가 살아서 나라와 세계까지 이루었어야 할 그 일을 내가 대신 이어받아 가지고 실천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 살아있다고 해야 됩니다. 예수는 한 교파 유대교와 한 민족 이스라엘 나라에서 몰려 가지고 로마한테 죽어갔지만, 우리는 한 교파가 아니라 수백 교파와 수백 민족에게 몰리더라도 죽지 않을 것이고, 오늘날 공산당 이상의 강력한 그 무엇이 반대해도 나는 간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왜 그래야 되느냐 이거예요. 예수시대에 수많은 나라를 지도할 수 있는 사람, 나라와 싸워서 승리한 사람의 부활체요, 이 세계를 대해서 책임한, 재림의 역사의 목적을 이어받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나라를 위해서 싸우던 예수와 앞으로 이 세계를 위해 싸우려는, 재림시대를 대표한 나다, 그 뜻을 이어받고, 상속받기 위한 나다 이거예요.
예수님이 이 땅에 왔다가 갔지만 오늘날 우리가 당하는 고충과 우리가 당하는 억울함과 우리가 당하는 비참함은 체험 못 했다 이겁니다. 이것은 통일교회와 레버런 문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도 처음 당하는 일입니다. 알겠어요?「예」이런 자리에 있더라도,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갈 때 핍박받던 열두 제자와 같은 자리에 서더라도 우리들이 당당히 가게 된다면, 이 시대의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재촉합니다. 이 말이 그럴 듯하지요?「예」
이렇게 생각할 때,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고생길로 몰아넣고, 세계가 핍박을 하고, 혹은 모든 교파가 원수시하고, 모든 나라가 원수시하고, 미국 전체가, 공산당 전체가, 여러분들 어머니 아버지까지 전부 다 레버런 문 핍박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잘하는 거예요, 못하는 거예요? 그것이 그 사람들에게는 비참한 일이 되지만, 우리는 하나님한테 제일로 축복을 받을 수 있고, 제일 가까워질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제일 가까워질 수 있는 패들입니다.
예수가 쫓기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이 가르쳐 주던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분하고 억울해서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가르쳐 준다구요. 여러분들은 불행한 사람이예요, 행복한 사람이예요?「행복한 사람입니다」뭐라고?「행복한 사람입니다」왜? 어째서 그래요? 그게 무슨 행복이예요?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여러분을 납치해 가는 것이 행복이 예요? 그게 행복한 거예요?「예」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부모가 키드냅(kidnap;납치)한 것은 역사상에 처음이라는 거예요. 부모까지 키드냅하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칭찬받을 수 있는 제일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면 이 세계는 내 것이 되는 거예요. 사랑을 가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사랑을 가지니, 하나님 사랑 가운데 거주하는 세계가 내 주먹 안에 들어오니까 행복하다는 거예요. 하나님같이 그렇게 돼요. 무엇에 의해서? 사랑으로 말미암아서. 다른 것은 하나님은 주체요 나는 대상일 뿐이라는 겁니다. 이게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예요.
자, 오늘 제목이 무엇인가요?「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동참자입니다」 동참자가 되자. 거짓된 축하의 동참자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축하의 동참자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된 자리에서 예수가 난 날을 기념하고, 예수가 죽은 날을 기념하고, 예수의 행적을 기념하고,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 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축하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고, 예수의 축하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최대의 권위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밥을 못 먹고 왔더라도, 더러운 옷을 입고 있더라도, 얼굴이 검든지 뭐 어떻더라도 거기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세계가 얼마나 거짓된 축하를 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진정한 의미의 축하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진정한 심정을 가지고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축하를 하는 것이 참된 축하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오늘 아침 눈뜰 때 옛날 교회를 생각하고,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며 '오늘도 뭐야? 이거 뭐 휴가도 없구만. 오늘도 또 신문팔이를 해야 되고, 이제 또 뉴욕에 가게 되면 환드레이징이나 할 것이고, 이게 사람이 사는 거야?' 이렇게 별의별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거라구요.「안 그렇습니다」
오늘은 슬픈 날이예요. 슬픈 날이라는 걸 알아야 돼요. 예수님이 태어나서는 태어난 날을 축하의 날, 기쁜 날로 맞지 못했다 이거예요. 슬픈 날로 맞았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축하의 동참자가 된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감사해야 됩니다.
우리 예쁘장한 아가씨들은 화장도 한 번 못 해 가지고 그저 초췌한 얼굴을 하고, 머리도 못 빗고 이거 뭐 꾀죄죄하고, 그 입은 옷까지도 작고 다 헤져 가지고 기워 입고 다니는데 그게 얼마나 비참해요? 이래도 행복해요?「예」정말 그래요?「예」
그런 여러분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가 친구가 되어 주고, 역사적인 모든 선조가 감사하고, 오늘날 이 세계 모든 인류가 부러워할 수 있는, 선생님까지도, 하나님까지도 축하할 수 있는 왕자 왕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걸 표준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남자와 그러한 여자를 찾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런 남자를 신랑으로 삼으라고 안 해도 된다구요. 예수가 오더라도 그러한 여자가 있으면, 그 여자를 찾을 것입니다.
그런 동참자가 될래요?「예」불평한다면 남이 되는 거라구요. '나는 이제부터 내 일생을 통해서 기쁜 마음을 가지고, 이런 축하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 가지고, 틀림없이 하늘의 왕자가 되고 왕녀가 될 것이다' 하고 결심한 사람 손들어 봐요.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