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크고 작은 것을 비교할 줄 아는데 인생의 어느 때를 제일 추모할까요? 어느 자리에 있고 싶어하겠어요? 아기로 태어나 가지고 처음에 어머니의 젖을 빨면서 좋아하던 자리일 것입니다. 생사지권을 넘어 가지고 좋아하면서 젖을 빨던 그 시간, 그 이상의 세계에 어떻게 가느냐 하는 것이 숙제입니다.
선생님도 그래요. 나이 많은 사람은 싫습니다. 아기들은 천진난만해 가지고 세상을 모르고 자랍니다. 아기들은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르고, 아버지도 누구인지 모르고, 자기가 먹는 젖도 무엇인지 모르고,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조금만 불편하면 그 불편한 것을 울음으로 표시합니다. 그게 신호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욕구라면 그 이상의 욕구가 없고, 간절하다면 그 이상의 간절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울더라도 그 초점만 맞춰주면 울음을 그칩니다.
10개월이 지났든 1년이 지났든 열 살이 되어도 그 자리에만 가게 되면, 사람이 풀어집니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느껴야 됩니다. 그런 심정으로 내가 일생 동안 어떻게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른의 입장이라든가 무슨 장의 입장이라고 하는 것들은 다 외적으로 흘러갑니다. 그것을 누가 가지고 있어도 영원한 푯대로서 등대와 같이 비춰준다든가 하나의 핵과 같이 남겨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다 지나가서 없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양의 아기를 보나 서양의 아기를 보나 젖 먹던 시대, 그런 자리라는 것은 어때요? 하나님도 보게 되면, 아기가 젖 먹는 입으로부터 좋아하는 얼굴 전체가 어떻겠어요? 그 몸 자체는 더러운 것이 없고 아름답습니다. 그 자리가 제일 귀합니다. 아기와 같은 그런 자리를 자기가 의식하면서 생활철학의 관(觀)으로 산다면, 그 이상의 관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식세계에 있어서 제일 높은 데 가면 갈수록 이 사람 저 사람의 학설을 따다가 비교해 보는데 전부 다 얼룩덜룩합니다. 순진한 것이 없습니다. 얼룩덜룩해요. 그런데 선생님이 우리 신준이를 바라보게 되면 얼룩덜룩하지 않습니다. 지금 일곱 살이 됐는데 아버지를 대하는 마음이 어떠하냐? 자기가 젖을 먹던 순진한 때 느꼈던 본연의 마음을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그게 귀한 겁니다.
그것이 있기 때문에 아기를 아기로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이 나서 50대, 70대, 90대를 지나면서 그 자리는 제일 첫 번으로 생각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기를 낳아서 젖 먹이지 못하는 어머니는 가짜입니다. 아기가 오줌과 똥 싸는 걸 표시하는데, 그걸 어머니는 알아요. 어머니는 기저귀를 갈아치울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 아기들보다 앞서서 도울 수 있는 자세의 싹이 있는데 그게 귀한 겁니다. 어머니하고 아기는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그러한 경지, 우리가 진리를 탐구하는 데 본성의 그 핵이 무엇이냐? 그건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불로도 태울 수 없고, 힘으로도 지울 수 없습니다.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그 자체가 10년 전이나 20년 전에도 살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 부모라고 할 수 있는 부모, 형제라고 할 수 있는 형제, 아내라고 할 수 있는 아내가 살아 있습니다. 그 아내를 몽땅 전부가 뺄 것이 없는 것으로서 내가 소화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전부를 품을 수 있는 하나의 뿌리들 중의 뿌리 가운데 핵이 되는 근본지이다.
그것을 지금도 느낍니다. 없어지지 않고, 타지 않고, 무엇을 가지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 경지에서 ‘아, 나도 저와 같은 마음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은 변치 않습니다. 그런 마음은 동물세계에도 있습니다. 만물의 본성을 가진 것은 어때요? 이성성상의 핵 가운데는 상하관계나 전후관계뿐만 아니라 어떤 면이라도 그 뿌레기의 마음은 어느 것이나 안 갖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근원이 그렇습니다.
수양이 높은 나이 많은 사람이라도 한마디를 하는 말이 그런 경지에 가서 자기가 느끼면서 말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찾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 사람은 내 생각에서 흘러갑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을 죽으면서까지 잊지 못하는 마음의 근원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들어가면 승화되고 본성에 가까워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둘이 아니고 하나다. 역사적인 모든 조상들 천만이 있더라도 하나다.’ 합니다. 그 자리가 중요해요. 없어지지 않고, 암만 지워도 지워지지만 구멍이 뚫어지지 않습니다. 타지 않아요. 그렇게 타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요전에 플라즈마라고 하는 걸 얘기했지요? 해수 물과 흙만 있으면 됩니다. 그것만 있으면 1억 도에 해당할 수 있는 힘이 나온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말하고 있던 고체와 액체 그리고 기체, 그걸 초월하고 있습니다. 그 에너지원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거기에는 오늘날 전기 이상의 힘이 있습니다.
둘이 하나된다는 자체가 놀랍습니다. 전부 다 둘이 하나되어 나가는 겁니다. 아기와 엄마, 남편과 아내, 형님과 동생이 하나되는 데는 둘이 없습니다. 형님이 바라는 것이 있으면, 나도 그걸 바란다 이겁니다. 동생이 바라는 것을 나도 바란다는 것입니다. 부모라든가 전체가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그 경지에 화합할 수 있는 요소가 언제든지 앞장선다고 생각할 때 그것이 본질에 제일 가까운 자리입니다.
내면에 있든가 바른쪽에 있든가 앞에 있든가 하는 그것은 자유자재로 변경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면에도 갈 수 있고 전면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백 살인 노인의 차이가 있더라도 어린아이가 노인의 앞에도 설 수 있다는 겁니다. 본질에는 나를 감동시키고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핵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느끼면 언제나 생각나서 거기로 갑니다.
언제나 하나의 근본과 형태를 갖춰 가지고 화합할 수 있는 존재, 내가 화답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있습니다. 둘 사이를 안팎으로 연결하고, 전후좌우로 연결시킬 수 있는 그런 화답의 근원이 있어요. 하나님도 그런 본체에 있어서 일초 동안에 열 번이라도 동서남북의 어려운 것을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높은 데 맞출 수 있고, 둥그런 데 맞출 수 있는 겁니다. 몇 초 동안이라도, 몇 십 번이라도 변경해 맞출 수 있는 그 본체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를 향해야 됩니다.
어디에 무엇이든지 포괄될 수 있는 요소를 갖췄기 때문에 몇 백분의 1초라도 이 우주의 만상을 대할 수 있는 한 분이 계십니다. 몇 백분, 몇 만분의 1초 가운데서도 그 모양을 자기 마음대로 돌이켜 가지고 환경에 맞출 수 있는 핵심 자체가 신입니다. ‘신(神)’이라는 것은 ‘보일 시(示)’ 가운데 ‘가로 왈(曰)’을 한 겁니다. 말씀의 중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집의 중심은 어디예요? 모가 있고, 천만가지의 울뚝불뚝한 것들이 있는데 중심은 어디예요? 여기의 한 점이에요, 한 점. 보게 되면, 꼭대기가 있는 동시에 여기서 받들어 주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돼 가지고 기둥이 설 수 있는 최고의 초점이 되는 거예요. 그 초점이 실 끝과 같이 돼 가지고 이 우주가 붙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가 있다면 선유조건으로 아래를 정해야 돼요. 핵이 없는 데는 존속이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새빨갛다면 새빨갛게 보이고, 새까맣다면 새까맣게 보입니다. 선생님이 요전에도 얘기했잖아요. 밤의 주인인 하나님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밤의 핵에는 무엇보다 밝은 것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숨을 쉴 수 있습니다. 숨을 이렇게 쉬게 되면 무한히 이것이 축소되고, 이게 더 크게 되면 이 중심이 여기에 있지 않고 중앙으로 옮겨집니다.
우주의 핵이 머무는 자리는 한 자리가 아닙니다. 위를 크게 잡았으면 아래가 좁아야 되고, 아래를 넓게 잡았으면 위가 좁아야 됩니다. 바른쪽이 넓어지면 왼쪽이 좁아지고, 왼쪽이 넓어지면 바른쪽이 좁아집니다. 중앙이 넓게 되면, 높은 것이 없어지는 겁니다. 동서남북 중에서 동서가 밝으면, 남북은 어두운 겁니다. 남북이 밝으면 동서는 어두운 것이요, 동서남북의 사방이 밝으면 가운데는 어둡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씨가 있어요, 씨. 그 씨가 하얀 씨예요, 까만 씨예요? 사과의 씨를 보게 되면 어때요? 그 씨가 하얘요, 까매요?「까맣습니다.」껍데기를 벗기면 또 껍데기가 있고, 벗기고 또 벗기면 맨 나중에는 두 쪽이 됩니다. 그 두 쪽도 갈라보면, 상하로 두 쪽이 돼 있습니다. 여러 가지 동서남북으로 붙을 수 있는 요소를 다 가지고 있지만, 맨 나중에는 두 쪽이 됩니다.
태평성대의 ‘성(聖)’ 자는 ‘귀 이(耳)’ 변에 ‘입 구(口)’하고 왕(王)을 했습니다. 왕이라는 것은 3세계를 중심삼고 틀로 돼 있습니다. 그 틀을 옮길 수 없어요. 왕이 그렇습니다. 3세계를 누구나 대신할 수 없다고요. 왕이 되려면 3세계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어때요? 크나 작으나 그 틀의 모형은 마찬가지입니다.
‘대(代)’ 자는 틀을 말합니다. 모형의 틀, 십자가의 틀이란 변하지 않습니다. 우주가 십자가 가운데 다 들어갑니다. 갈라놓으면 동쪽에도 십자가, 서쪽에도 십자가, 남쪽에도 십자가, 가운데도 십자가입니다. 전부 다 주체의 모양을 닮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안팎을 부정할 수 없어요. 어디든지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달무리를 알아요?「예.」어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무리가 있습니다. 눈이나 코라든가 얼굴의 무리가 있고, 몸뚱이의 무리가 있습니다. 전부가 닮은 것입니다. 어디를 빼보더라도 몸의 구조적인 분야는 마찬가지입니다. 근육이 백 개나 천 개가 있으면 백 개나 천 개의 근육이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수축할 수 있고 팽창할 수 있는 겁니다. 숨을 쉰다고요. 숨 쉬지 않으면 없어집니다.
그래, 바다가 몇 천 년이 되더라도 어때요? 바다에 열일곱 가지면 열일곱 가지의 원소가 들어가 있는데, 그건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숨 쉬더라도 그 숨 쉬는 것이 열일곱 가지를 좋게 하면서 숨을 쉬지 죽여 버리고 숨을 쉬지 않습니다. 여러분 몸뚱이의 세포가 얼마나 돼요? 세포가 40조 개까지 된다고 하는데, 그걸 백 배로 하든가 만 배로 키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 모양을 닮았습니다.
햇빛이 비치면, 그림자가 생깁니다. 내 모양을 닮은 그림자가 생기는데, 햇빛이 비추는 각도에 따라서 모양이 달라집니다. 그런 반대의 상이 없게 되면, 존재가 없는 겁니다. ‘달무리!’ 해봐요.「달무리!」무리가 뭐예요? 무늬(문의)라는 겁니다. 달무리가 뭐냐 하면 달보고 얘기한다 이겁니다. 동그란 그것만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보면 컸다 작았다 합니다.
내 마음에 ‘달이 커진다.’ 하고 보면 크게 보입니다. 지구에서 달까지 38만 킬로미터라고 하는데 가까이 있는 것처럼 커 보입니다. 마음으로 볼 때 ‘커진다.’ 하면, 달보다도 무리가 커 보여요. 달무리라고 해서 가짜가 아닙니다. 내가 있는 처지에 따라서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합니다. 천태만상의 대하는 자리가 다르고, 무리를 느끼는 것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시정도 다르고 말하는 느낌도 다른 것입니다.
엄마한테 품겨서 젖 먹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엄마만 있어야 됩니다. 거기에 강아지가 있어도 싫어합니다. 엄마가 말없이 환희의 마음으로 웃는 그 얼굴, 그건 엄마만이 갖고 있지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생명의 젖을 먹여주는 겁니다. 젖이 달콤하거든요, 쌉싸래하고. 오만가지의 맛, 오미자의 맛이 있다는 겁니다. 기뻐서 먹을 때는 단맛이 나고, 좀 적적하면 쓴 맛도 납니다. 오미자의 맛이 난다는 것입니다. 오미자를 알아요? 다섯 가지의 맛이 납니다.
그래, 희로애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높고 낮음 그리고 중간이 있어요. 그걸 느껴야 됩니다. 선생님은 옛날에도 그랬습니다. 우리 외갓집에서 외할머니가 오면 외할머니에게 밥상을 내가 갖다 줬습니다. 외할아버지면 외할아버지한테 내가 갖다 줬어요. 내가 밥 갖다 주는 것을 얼마만큼 좋아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내가 밥을 갖다 줄 때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가 갖다 주는 것보다 더 좋아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걸 생각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들이 나를 좋아하는데, 내가 그들을 더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지요. 웃는 것을 보게 되면, 내가 따라서 웃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얼굴이 웃습니다. 웃는 걸 보게 되면, 벌써 먼 데서 보게 되면 내가 웃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무리가 필요해요, 무리. 좋아하는 무리!
사랑에는 좋아하는 것을 다 삼켜버리고 남음이 있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어요. 사랑하고 싶어합니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아기가 있다 이겁니다. 제일 귀한 아기로 생각하고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때요? 젖을 먹이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아기가 웃는 마음, 그 아기를 보며 웃는 어머니의 얼굴보다 내가 더 좋아할 수 있는 얼굴을 하면 어떻겠어요? 그게 앞서야 됩니다.
언제나 생각해야 돼요. 어떻게 무리로써 나에게 비춰주느냐 이겁니다. 선생님은 그것이 빠릅니다. 척 보면, 벌써 알아요. 어떤 때는 수천수만의 사람들 가운데 하늘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쓱 볼 때 그런 사람이 내 눈에 딱 보입니다. 핵이 가다가 갑자기 멎어요. 그 빛이 다릅니다. 빛깔이 다르다는 겁니다. 광채가 있어요, 광채.
그래서 그 사람을 대해서 말 한마디를 했는데, 그 사람이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면 전체가 웁니다. 충격을 받으면, 전체가 충격을 받아요. 상대는 둘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상대는 하나입니다. 나팔꽃이 그렇습니다. 릴리(lily; 백합)라고 하게 되면 늴리리동동……. ‘늴리리동동!’ 해봐요.「늴리리동동!」나팔꽃 같은 것이 작은 데서부터 크면 늴리리 동동으로 얼마나 커지느냐? 하늘땅보다도 커집니다. 하늘땅을 뿌리로 해 가지고 대우주를 중심삼고 울릴 수 있는 동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싸리꽃이 작지만, 그것도 나팔꽃입니다. 나팔꽃이 달아요, 따서 먹게 되면. 벌레나 무엇이나 나팔꽃 밑의 오미자 맛, 단 맛을 봐야 새끼를 칩니다. 선생님은 그렇기 때문에 청중을 보고 밤새껏 얘기해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동서남북으로 보면서 열 명 혹은 백 명의 그 사람들하고 얘기하는데 말이에요, 거기에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우리 동네에 있던 사람들을 다 닮았다는 겁니다. 눈도 닮았고, 코도 닮았고, 입도 닮았고, 모양도 닮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을 대해 밤을 새우던 그 심정이 거기에 있으니 어떻겠어요? 그거 동네 사람들 이상으로 가깝게 보입니다. 80난 노인들, 중환자가 돼서 오래 안 돼 죽을 사람과 앉아서 얘기하게 되면 중환자로 안 보입니다. 자기가 옛날에 그리던 사람을 만난 셈입니다. 그거 얼마나 반가우냐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체험함으로 말미암아 정이 많으니 어디에 가든지 그 사람이 있게 되면 꽉 찹니다. 그 한 사람만 있으면, 방이 꽉 찬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넓더라도 그와 더불어 내가 하나되어 좋아하면 그만입니다. 세상에 그 양반이 제일 좋은 겁니다. 할아버지든 누구든, 이웃 사람이든 친구든 다 버려도 그 사람을 대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누구를 찾아가느냐 하면 그 사람을 찾아갑니다.
지금 선생님이 라스베이거스 대회에서 큰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대회를 누가 제일 사랑해요? 하나님도 문 총재가 사랑하는 복 위에 와야 됩니다. 그 마음이 귀한 겁니다. 아시겠어요?「예.」누가 사랑해요? 내가 사랑합니다. 남미에 가보게 된다면, 자기 크기의 몇 백 배나 되는 개미의 벽돌집이 있다는 걸 알아요? 인간도 그렇게 설계를 못 합니다.
그 집에 들어가면, 벌써 발들이 알아요. 발과 몸뚱이가 자기들이 갈 길을 안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다보면, 좋아서 찾아가 보면 자기가 살 데로 갑니다. 새끼들이 있는 데 갑니다. 좋아서 가다보니 새끼들이 있고, 거기에 살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옛날부터 그렇게 돼 있었던 곳입니다.
영계에 가면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살 집이 있습니다. 자기의 꼬락서니가 어드런지 보면 ‘아이고, 내가 이렇게 됐구만!’ 합니다. 가기 전부터 알아요. 병난 환자가 누워서 하루 이틀 사흘이 갈수록 그 병이 깊어지면 갈 것을 자기가 압니다. 경계선을 넘는 걸 안다는 거예요. 기도할 때도 은혜가 찾아오는 것을 압니다. 경계선을 넘을 때 그렇습니다. 내 발에서부터 사지가 울려오는 것입니다.
고래는 바다의 깊은 데서 와아앙 하고 파동을 통해서 신호를 합니다. 바다의 물결이 빠르거든요. 전달력이 빠릅니다. 그렇게 전달하게 되면 기뻐서 하는지, 자기를 좋아하는지, 자기를 부르고 있는지, 먹을 것이 있어서 나눠주려고 하는지를 알고 찾아옵니다. 북극의 폴라 베어(polar bear), 백곰도 20킬로미터나 70킬로미터 앞에 있는 동물의 냄새를 맡습니다. 그 냄새를 맡게 되면 냄새의 줄을 따라가 가지고 밤이야 낮이야 굶어죽을 입장에서도 뛰는 겁니다. 냄새를 맡으니까 굶어죽지는 않겠기 때문에 거기로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선생님을 그리워하게 되면 다 가르쳐줍니다. 여기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생각하지 않더라도 자기들이 사모하게 되면 선생님이 뭘 하고 있는가를 다 본다는 겁니다. ‘아, 선생님이 진지를 잡수시려고 하네!’ 하면서 그 냄새까지도 맡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다른 게 뭐예요? 시대에 대한 감정을 잘합니다. 냄새를 누구보다 잘 맡아요. ‘어떻게 선생님이 이런 때 이런 일을 할까?’ 하지요? 이상하지만, 그게 선생님은 전문입니다. 그게 업입니다. 그걸 모르면, 통일교회가 망합니다.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고개를 넘어가는 것입니다.
몇 십 리나 몇 백 리 혹은 몇 천 리가 되는 지구성의 끝에서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기도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하면서 기도하는 소리가 들린다는 겁니다. 세상에서는 모르는 그런 전파가 있습니다. 영계를 중심삼고 전파가 연락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이게 되면, 세상의 주인이 될 양반이 와서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가를 다 아는 것입니다. (『평화의 주인, 혈통의 주인』의 ‘한일터널과 베링해협’이라는 소제목의 말씀을 훈독)
머리에 갔던 피가 냄새나는 발바닥에도 가요, 안 가요? ‘나 싫어!’ 하고 안 가요? 거기에도 가야 됩니다. 여러분, 뒷간에 가서 ‘내가 어제 무슨 음식을 먹었는데…….’ 하면서 방귀를 한번 시원하게 뀌어 봐요. 그러면 냄새가 나는데 신내가 나느냐, 단내가 나느냐, 짭짤한 냄새가 나느냐? ‘이상한 음식을 먹었는데, 요거 지독하다. 아이고, 참 지독하다.’ 하면서 세 번씩 ‘흠흠흠!’ 하고 냄새를 맡아봤어요?
방귀라는 것은 공중으로 어디든지 날아갑니다. 지옥에도 가고, 안 가는 데가 없습니다. 그 방귀 냄새가 좋다면 그 방귀가 가는 데 가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그 냄새가 좋으면, 그 냄새가 가는 데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선생님이 기도하는 가운데 ‘어머니!’ 하면, ‘왜 그래?’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런 세계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갔는데,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겁니다. 저나라가 먼 거리에 있을 뿐이지요. 전파가 멀다고 안 통해요? 주파수가 얼마만큼 되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단거리나 장거리의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어머니를 찾을 때가 틀림없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일족들을 중심삼고 나라님들을 구해놓은 다음에는 어머니한테 갈 것 아니에요? 그 때까지 자식을 사랑하는 무엇이 있으면, 내가 도와주고 싶으면 가 가지고 책이라도 사서 전도를 하겠지요. 여러분에게도 이번에 자서전 430권씩을 사라고 했지요? 안 사면 안됩니다. 누구보다도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부터 가르치라는 거예요, 밤을 새워 가면서.
여러분은 선생님이 가까워요, 어머니 아버지가 가까워요? 어머니 아버지가 가까우면, 그 어머니 아버지를 선생님보다 높은 자리에 갈 수 있게끔 해야 됩니다. 문중에 여러분의 이름이 다 있어요? 문 총재는 문중에 이름 있는 사람들에게 다 영계에서 가르쳐주더라고요. ‘문 씨들 가운데 통일교 교주인 문 총재가 있는데, 그 총재한테 찾아가라!’ ‘아이고, 우리 동네에서 제일 싫어하는 문 총재한테는 안 가요.’ 하고 세 번만 그러면 다시는 만나지 않습니다. 다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지금은 일족을 전도해야 됩니다. 그걸 안 하면, 여러분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선생님이 전도하라고 했지만 명령은 안 했습니다. 이번에 축복가정들이 자서전 430권씩을 일족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일괄적입니다. 딱, 공식화시켰습니다. 전도를 못 한 이상에는 나눠주는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귀한 책인가를 알았으면 금식해서 모은 돈으로 사든가 노동을 하지 않으면 누구한테 도움을 받든가 해서라도 사라는 겁니다. 그냥은 못 넘어갑니다.
그래, 일족들에게 전부 다 나눠주게 돼 있습니다. 축복가정들 가운데 열 사람이면 4,300권이 됩니다. 백 명이면 4만 권이 돼요. 여러분의 일족들을 여러분 자신들이 구해줄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왜 안 해요? 여러분의 조상과 나라의 기틀이 될 수 있고, 한 국가의 지파가 편성될 수 있는 무리들을 왜 내버려두고 안 하느냐 말이에요. 문 총재는 이제 끝난 다음에는 우리 아들딸과 손자들을 데리고 다닐 것입니다. (이후 훈독을 계속하고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