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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과 우리의 생애

일시: 1972.06.04 (일)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기 도]

아버지, 오늘 이 아침은 1972년 6월 4일, 이달을 맞이하여 첫번째 맞는 안식일 아침이옵니다. 이 아침에 당신의 자비와 영광과 사랑과 승리가 같이하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아침 이곳에 모인 자녀들은 물론이요, 전국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 무한한 승리의 영광이 깃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개개인의 심령이 당신이 원하시는 소원 앞에 일치가 되고 당신의 뜻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 생활과 생애노정이 빛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자녀들 가운데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자녀가 있사옵거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뜻 앞에 일치되지 못한 자녀들이 있으면 아버지께서 인도하시옵고, 수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길 수 있는 하나의 뜻, 남길 수 있는 하나의 사랑, 남길 수 있는 하나의 가정, 남길 수 있는 하나의 국가와 세계를 찾아오신 아버지 안에 효자의 도리와 충신의 도리와 모든 영광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겸손히 엎드린 자녀들 위에 당신이 찾아와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아버지 앞에 이 시간 부복하여 당신의 영광을 바라는 백성이 되고,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이 세계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최후의 승리를 기대하고 있는 이때에,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이 이 땅에 일치될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한국은 물론이요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고 있사오니, 거기에 늘쌍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기신 복귀의 사명 앞에 충성을 다짐하여서 내일의 승리의 기점을 아버지 앞에 찾아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아버지 뜻 가운데서 온전히 저희들을 지도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바라는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거룩한 모습들로 몽땅 바쳐 드리는 거룩한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날, 아버지의 성호를 찬양하고, 아버지의 뜻을 추종하는 모든 자녀들 위에 깊고 넓고 높으신 당신의 사랑이 찾아오시어서 지도하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모든 전체가 뜻 가운데서 하나가 되고 순응하여 그 뜻을 성사해 드리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참부모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말 씀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루의 생활을 맞이하고 생애의 노정을 바라보면서 나가고 있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생활 가운데서 선하고 악한 일이 결정되고, 이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과 사탄의 역사가 연결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영원한 뜻의 목적과 방향이 일치된 생활, 생애가 되어야

그러면 우리 하루의 생활에 있어서 선한 편을 어떻게 남기느냐 하는 것과, 우리 개개인의 생활 가운데서 악을 어떻게 퇴치시켜 버리느냐 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뜻의 길이라고 할 때 뜻은 막연한 뜻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뜻입니다. 그 뜻이 지향하는 목적이 있다면 그 목적을 향해서 갈 수 있는 방향이 있어야 됩니다. 아무리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방향이 일치되지 않게 될 때 그 목적은 우리와 관계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멀면 멀수록 소홀히 할 것이 아니라 그 방향에 대해서 우리는 더 각별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목적이 가깝다면 그 방향을 맞추기가 쉬울지 모르지만, 목적하는 바가 멀면 멀수록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그 목적과 일치되는 결과를 얻기 위한 그 방향을 맞춰 나가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 목적이 눈앞에 보인다면 방향을 무시하고, 방향을 생각지 않고 대번에 갈 수도 있지만 그 목적이 멀면 멀수록 그 방향이 애매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이 뜻 가운데는 개인적인 뜻도 있는가 하면 가정적인 뜻도 있을 것이고, 민족적인 뜻도 있을 것이고, 세계적인 뜻도 있을 것이고, 최후에는 우리 통일교회가 말하는 천주주의라는 뜻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이 하나될 수 있는 뜻을 중심삼고, 그 목적을 중심삼고 가고 있다면 우리 인간들도 그 목적을 달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가는 방향과 우리가 가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바라는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란 불가능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개인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성공하느냐 못 하느냐, 또 생활을 통해서 목적한 일을 성취시킬 수 있는 하루 하루를 남기느냐 못 남기느냐 하는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그 목적을 중심삼고 그 목적에 대한 확실한 관점을 세워서 거기에 적중될 수 있는 방향, 일치될 수 있는 방향을 어떻게 갖추어 나가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아무리 한 목적을 가지고 출발했다 하더라도 그 방향이 어긋나면 그 목적과는 상관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적을 갖고 나설 때에는 언제나 방향의 일치라는 문제를 우리는 주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방향 일치라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 그 목적과 나는 직선상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목적과 나와는 언제나 상대적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는 직선상에서 그 목적과 상대를 갖춘 자리에 서지 않고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오른발을 옮기고 왼발을 옮길 때, 그 목적과 직선으로 일치되는 자리를 취하지 않고는 반드시 엇갈리기 마련입니다. 벌써 한 발짝을 잘못 디디면 엇갈리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바른쪽으로 치우쳐도 안 되고 왼쪽으로 치우쳐도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용을 취해 가지고 그 목적과 그어지는 직선상에서 일치화시킬 수 있는 자기를 발견하는 데서부터 목적의 결과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지, 그 직선을 무시하고 그 직선과 일치되지 못하는 시간적인 기대 위에 서게 되면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그 길은 이미 탈선이 되어 나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우리가 말을 하든가 혹은 보고 느끼는, 즉 오관을 통해 느끼는 데 있어서도 자기 홀로 느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홀로 느낀다는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목적과 일치하는 방향을 가진 자리에서 느끼게 될 때, 그 자리는 공동적인 목적을 향하여 공동적인 입장에서 공동적인 방향을 취한 자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필코 같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엇갈리게 되면 하나님은 같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방향이 잘못되면 수고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협조하게 되면 협조한 만큼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서로 소모가 되는 것입니다. 헛일이 되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 서게될 때는 하나님이 협조할 수 없고 같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난 이후 느끼는 모든 감각이나 동작이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언제나 직선상에 귀일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점을 상실하게 될 때에는 뜻과 나와는 관계맺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루가 24시간인데 이것을 반으로 가르면 주야가 됩니다. 그 주야를 다시 가르면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이 됩니다. 밤도 자정을 중심삼고 반으로 가르면 밤과 새벽으로 갈라집니다. 하루를 중심삼고 보면 아침이라든가, 낮이라든가, 저녁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도 작기는 하지만 춘하 추동을 갈라놓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은 봄절기와 마찬가지요, 낮은 여름절기와 마찬가지요, 저녁은 가을절기와 마찬가지요, 밤은 겨울절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더 세분해서 보면 한 시간 가운데서도 그러한 시작이 있고 과정이 있고 종점이 있고 다음에는 성패의 영욕이 있는 것입니다.

신앙자는 하루하루의 생활을 바르게 하는 것을 중요시해야

모든 것이 이와 같은 관계에서 연결된다고 본다면 우리 인간의 일생도 마찬가지 입장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유년시대가 있는가 하면 청소년시대가 있고 청년시대가 있고, 장년시대가 있고, 노년시대가 있습니다. 작거나 크거나간에 그 형태에 있어서는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가고 있는 것입니다.

생애라고 하게 되면 일생을 말합니다. 생애라는 것은 긴 것을 말합니다. 태어나 소년시대를 거쳐, 청년시대를 거쳐, 장년시대를 거쳐 노년시대까지 즉, 태어나서부터 운명할 때까지의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생활을 통해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 생활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활이 그릇되게 될 때에는 생애도 그릇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생애를 남기려고 해도 하루하루의 생활이 그릇되게 될 때에는, 그 생애가 기필코 그릇된 결과에 도달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결론인 것입니다.

이걸 두고 볼 때, 신앙자로서 제일 중요시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자기 일생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바치겠다고 맹세하더라도, 그 맹세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올바르게 바친 하루하루의 생활이었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 터전을 이어나갈 수 있는 하루의 생활을 생애의 어떤 가치보다 더 중요시하지 않고는 보람 있는 생애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우리는 하루를 무심코 시작하지만, 이 하루가 우리가 바라는 영원한 뜻의 목적과 방향이 엇갈려 가느냐 바로 가느냐 하는 놀음을 하는 하루라는 것을 언제나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불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뜻의 길 앞에 반역자가 될수 있는 일도 그 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더 세분해 보면 한 시간권내에도 그런 일의 경계선이 좌우되는 것이요, 그 한 시간, 혹은 한 분, 한 초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 한 분, 한 초가 잘못되면 이 방향이 영원히 엇갈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가 오늘 하루보다는 한 시간, 더 나아가서는 한 분에 있고, 한 순간에 좌우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오늘 하루를 중요시하는 것보다 한 시간을 중요시해야 되겠고, 한 시간을 중요시하는 것보다도 한 분, 한 초를 중요시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우리에게 걸려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나침반은 남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무리 동쪽으로 혹은 서쪽으로 돌려 놓더라도 그것은 남북을 향하는 것입니다. 다른 힘의 제재를 받아 불가피하게 그러한 자리에 있더라도 그 힘의 작용이 없어지게 되면 자동적으로 남북을 향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반대로 돌려 놓는다 해도 거기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대항하여 자기 본래의 방향을 향해서 돌아가고자 하는 힘의 작용이 언제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 자체도 하나님을 중심삼아 남북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과 같이 한 방향을 지시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방향이 만일 엇갈리게 되면 엇갈리는 차이만한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나침반을 동서의 반대 방향으로 돌려 놓으면 자기 위치로 돌아가고자 하는 힘의 작용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하는 양심의 방향성이 있어 가지고 우리를 반대적인 방향으로 돌려 놓으면, 내적인 면에서 자기의 마음이 그 반대의 작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작용이 없다면 우리 인간은 일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수 없고, 그 목적에 귀일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작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떠한 사람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그 작용이 뭐냐? 양심작용입니다. 보다 순수한 자석으로 만든 나침반일수록 보다 남북에, 일치되는 방향을 지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양심을 가진 사람일수록 그 방향은 언제나 일치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매일같이 방향을 일치시킬 수 있는 생활을 그려 가야 됩니다. 여기에 선악의 환경이 부딪치는 것입니다. 왼쪽으로 치우치는 일도 있고, 바른쪽으로 치우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 나침반 위치를 조금만 이동하게 되면 중심을 찾기 위해서 왼쪽, 오른쪽을 왔다갔다하면서 남북과 일치되는 방향을 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들도 언제든지 하나의 목적, 그 목적과 일치되는 자리를 그려 가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인간 생활이 그와 같은 입장에 서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의 하루가 중요한 하루가 아닐 수 없고 한 시간이 중요한 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순간의 경계선이라는 것은 하루, 한 시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분, 한 초라는 순간을 중심삼고 선악이 판결되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루를 영원과 같이 느낄 수 있는 가치가 이 하루 가운데 있는 것이요, 한 시간을 하루와 같은 가치의 내용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그 한 시간에 있는 것이요, 한 시간은 분, 초로도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이 보다 작은 순간에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뜻은 변할 것이냐? 뜻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변하고 환경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은 변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변할 수 없는 뜻에는 개인이 가야 할 뜻도 있고, 가정이 가야 할 뜻도 있고,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가야 할 뜻도 있을 것이요, 혹은 세계의 36억 인류가 공동적으로 가야 할 뜻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세계에 가서 영원히 하나님의 뜻 가운데 생활하게 될 때에 맹목적이요, 무질서요, 무방향인 입장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어떠한 뜻을 중심삼은 생활로부터 영원한 생애가 시작될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우리가 살고 있는 하루의 생활이라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생활이냐는 것입니다. 죽는 것도 한순간에 결정되는 것이요, 나는 것도 한 순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나고 죽는 것이 한 순간에 벌어지고 우리 일생의 운명이 한 시간, 한 분, 한 초, 한 순간에 좌우된다고 할 때 우리가 사는 하루의 생활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슬퍼하는 것도 이 순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루를 계획해서 그 계획대로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슬픔의 동기는 있겠지만 슬프다는 사실은 순간에 결론지어지는 것입니다. 기쁘다는 것도 역시 아침과 같이, 낮과 같이, 저녁과 같이 밤과 같이 과정을 거치겠지만 그 기쁘다는 것의 종점을 볼 수 있는 시점은 순간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가 한번 호흡을 하고 한번 동작하는 것도 뜻과 더불어 일치될 수 있는 놀음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격장에 가서 사격을 해보면 알지만 총을 쏘아 표적을 맞추려면 총 끝하고 타겟트가 일치되어야 합니다. 앞의 가늠자와 끝의 가늠쇠와 타겟트가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엇갈리는 날에는 동서 사방으로 벗어 나는 것입니다. 잘 보이지 않는 타겟트의 중심점을 때린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사격장의 거리는 대개 10미터인데 10미터 거리에 있는 중심점도 맞추기가 어려운 일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런데 영원을 두고 일생 동안 표적을 맞추어야 된다면, 영원을 두고 표적을 맞추어야 된다면, 다시 말해 출발한 것이 영원히 가 가지고 적중시켜야 된다는 입장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어렵겠어요? 어렵다기보다는 말도 할 수 없으리만큼,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인공위성을 달을 목표로 쏠 때도 달의 위치와는 다른 방향으로 쏘아 올리는 것입니다. 이동하는 달을 맞추기 위해서는 그래야 됩니다. 순간에 맞아야 됩니다. 거리를 계산하고 달의 이동하는 속도를 계산하여 방향을 맞춰야 달나라에 착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달나라에 도착한다는 것도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쏘아진 총알과 같이 일생을 통해서 한 목적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냐. 가긴 간다고요. 먹고 자고 깨고 반복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무엇인가를 향하여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가는데 어디로 가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하루는 어디로 가느냐? 또 하루는 어디로 가느냐? 이달은 어디를 향해 가느냐? 다음 달은 어디를 향해 갈 것이냐? 일년 열두달 365일은 어디를 향해 갔느냐? 섣달 그믐날 가서 회상해 볼 때, 내가 출발한 점과 결과의 점이 일치되었느냐, 내가 해 나온 생활이 그 뜻이 가는 방향과 일치되었느냐 하는 것을 두고 볼 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뜻의 출발점과 직선이 되도록 방향을 맞춰야 할 신앙자

내가 태어난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그게 문제예요. 역사의 흐름을 따라 자기 선조로부터 뜻을 중심삼은 한 길을 남기었는데 내 조상들이 나를 낳아 준 자리가 어디냐? 어떤 사람은 남쪽 끝에서 태어났고 어떤 사람은 동쪽 끝에서, 어떤 사람은 서쪽 끝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 끝에서, 모든 사람이 각각 다른 자리에서 태어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낳아진 모습은 비슷하지만 가야 할 모습 모습들은 동서 사방으로 엇갈려서 가는 것입니다. 이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인류라는 것입니다. 이런 길을 가야 된다, 혹은 이러한 사상을 가져야 한다고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본다면 인간들이 서로서로가 가고자 하는 그 방향과 하나님이 뜻을 중심삼고 가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의 선을 중심삼고 보면 천태만상이라는 것입니다.' 뜻은 이렇게 가는데, 이렇게 가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가는 사람도 있고 별의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만큼 가다가 일치되고, 어떤 사람은 저만큼 가다가 일치되고, 천태만상일 것입니다. 또 출발점이 동서남북으로 각각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서 출발하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출발하고, 모두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이 가고자 하는 뜻의 출발점, 이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출발점에서부터 어떠한 선을 그어서 갈 것이냐? 그 선과 일치되는 생애를 남기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 방향과 일치되는 비례에 따라 가지고 그 사람이 선을 중심삼든가, 혹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천태만상의 차이가 벌어질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공평치 않다고 주장해도 이러한 원칙을 두고 볼 때, 공평치 않다고 주장하는 그 자체가 불공평한 자리에 선 입장일 수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공평치 않다고 보는 그 자리가 어떤 때에는 뜻의 방향과 일치되는 공평한 자리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 행로라는 것이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 행로를 바로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그 행로를 바로 가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보는 것도 그 행로와 일치하기 위해서 보아야 할 것이 원칙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아야 할 중심점이 어디냐?

그 목적과 직선이 될 수 있는 방향을 올바로 보기 위해서 눈이 있는 것이 아니냐? 그건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럼 코는 왜 있느냐? 그 직선과 언제나 상대적 관계를 갖고 방향을 잃지 않게끔 선두에서 리드하기 위해 코가 있지 않느냐? 전부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입은 왜 있느냐? 그 목적을 향해 가는 데 있어서 영양을 보급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럼 왜 가느냐? 물론 무엇을 하기 위해서 오고 가지만, 그 자체가 그 목적의 방향과 일치될 수 있는 걸음걸이를 남기기 위해서 오고 가는 것이 아니냐. 이 직선과 관계맺게 하고 그 결과에 일치될 수 있는 점을 가리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이목구비와 사지백체는 생긴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어야 할 내 자체가 거기에 일치되지 못하게 될 때에는 아무리 내가 귀중하고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무가치한 것으로 떨어져 파탄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말하거나 혹은 잠을 자고 깨는 것 전부가 이 하나의 선을 기준으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을 그래프로 그려 본다면 별의별 그림이 다 그려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하루를 그래프로 그려 본다고 합시다. 어떤 일을 했느냐? 어떤 때에는 친구하고 만나고, 어떤 때에는 누구와 만나고, 어디서 누구와 싸움을 하고, 이런 것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그야말로 만물상을 그리면서 살 것이 아니냐. 또, 보고 듣는 하루의 모든 느낌과 행동하는 전부가 다른 것이 아니냐? 그것을 종합해 보게 될 때, 그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 그 방향이 결정되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인간은 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왼쪽으로 얼마만큼 왔으니, 바른쪽으로 가려면 몇 도의 각도로 왔으니 몇도의 각도로 꺾어 가지고 돌아가야 된다' 하는 것을 오늘날 인간들이 생각하느냐?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으례히 올바른 방향에 일치된 자리에서 출발했고 지금도 가고 있다 하는 습관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우리 인간 생활이 아니냐? 그것이 폐단입니다.

나침반과 같이 어느만큼 각도가 틀렸다는 것을 알아 가지고 이것을 자연적으로 조종할 수 있는 작용을 하면 모르지만, 작용을 못 하게 될 때에는 내가 고의적으로 그 작용을 해 가지고 방향을 맞추는 일을 해야 될 것이 아니냐? 이것이 이 세계의 인간 가운데에서 그들과는 다른 생활을 하고 있는 신앙자의 생활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일치되는 점에서 기쁨과 이상이 이루어져

그러면 하나님의 뜻, 뜻, 뜻이 무엇이냐? '뜻이 뭐야, 뜻이 뜻이지…' 이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뜻 가운데에는 완성한 개인이 있어야 됩니다. 뜻과 일치될 수 있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어야 됩니다. 또, 뜻과 일치될 수 있는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그건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그 가정이 가야 할 목적지는 어디냐? 나라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뜻과 일치될 수 있는 나라가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뜻 가운데 일치될 수 있는 세계가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 인간 세상에는 평면적인 세계뿐만이 아닌 뜻 가운데 일치될 수 있는 수직선이 있어야 됩니다. 그 수직선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수직선에 90도가 되는 평행선이 있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입체적인 세계와 평면적인 횡적인 세계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입체적인 세계와 횡적인 세계가 수직이 되어야 할 것인데 60도가 되어 가지고 '나는 됐다'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60도는 동서 사방이 맞지 않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동서남북의 사방이 맞으려면 90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렇게 맞추더라도 90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원칙적인 입장에서 보면 평행선에 수직을 그을 수 있는, 남북을 그을 수 있는 하나의 점은 90도인 것입니다. 90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90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수직선이 머무를 수 있는 것은 한 점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다른 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1도 2도 각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각도가 달라지면 수직이 아닙니다.

통일교회에서 천주주의라고 하는데 그 천주주의라는 것이 무엇이냐? 수직선과 횡선이 90도에서 일치될 수 있는 방향을 말합니다. 그것은 낮이나 밤이나, 옛날이나 현재나 미래나 마찬가지의 각도에 있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든지 갖다 맞추더라도 90도에 일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일상 생활에서 그런 생활을 해 나가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볼 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뜻 하게 되면 개인이 머물 수 있는 뜻, 가정이 머물 수 있는 뜻, 국가가 머물 수 있는 뜻, 세계가 머물 수 있는 뜻, 하나님과 인간이 같이 머물고 싶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존재요, 인간은 횡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종횡이 영원히 공존할 수 있는 그 점이 중심점인 것입니다. 뉘어진 것을 중심이라고 하는 말은 없습니다. 중심이라고 하게 되면 반드시 수직선인 것입니다, 횡선에서는 중심이 없는 것입니다. 횡선 위의 한 점을 중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점만이 점유하는 곳이 중심점이 되는 것입니다. 중심이 둘이 될 수 있어요?

하늘이 있고 땅이 있으면 하늘과 땅이 축이 되어 가지고 딱 맞아 가지고 한 점에 모이는 곳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중심은 위에도 하나밖에 없고 아래도 하나밖에 없는 것이 원칙인 것입니다. 이것은 둘이 아닙니다.

이 하나의 점 가운데에 개인이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한 점 가운데에 가정이 서야 되는 것입니다. 다만 범위가 커지는 것입니다. 범위가 다를 뿐입니다. 하나의 점을 중심삼고 개인이 있고, 하나의 점을 중심삼고 가정이 있고, 하나의 점을 중심삼고 국가가 있고, 하나의 점을 중심삼고 세계가 연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중심은 영원히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야 서더라도 그 한점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가지고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팽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무리 무거운 팽이일지라도 돌기 시작하면 가벼운 팽이보다 더 잘 도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그런 축이 설 수 있는 자리가 있느냐? 그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설 수 있는 뜻의 자리, 혹은 개인이 갈 수 있는 뜻의 길,가정이 설 수 있는 뜻의 자리, 혹은 가정이 갈 수 있는 뜻의 길, 국가가 설 수 있는 뜻의 자리, 혹은 국가가 갈 수 있는 뜻의 길, 하늘땅이 일치될 수 있는, 종횡이 일점에 귀결될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지고 인간의 뜻이 다 이루어졌다 할 수 있는 그 점은 하나님과 인간이 일치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갈라져 가지고는 이상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상이라는 것은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 혼자 앉아 가지고 '나는 이상적인 사람이다'고 아무리 했댔자 혼자서는 이상이 벌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상은 상대적 관계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나 혼자 기쁨이 이루어지느냐?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혼자만으로 기쁨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지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 다시 말해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상이라는 것은 혼자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상대적 관계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상대적인 존재가 서로 엇갈린 자리에서 기쁨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 점을 중심삼고 똑같은 자리에서 만나야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주체와 대상은 남북과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그 남북은 서로 바라보면서 기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라보면 소망적인 기쁨은 있을는지 모르지만 진정한 기쁨이라는 것은 서로가 하나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는 데는 어디에서 되어야 하느냐? 남쪽을 중심삼고 한 3분의 1쯤에서가 아니고, 북쪽을 중심삼고 3분의 1쯤에서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딱 중앙에 와서 만나야 좋은 것입니다. 왜 그래야 좋으냐? 딱 중앙에 와야만 수직선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왜 그 자리를 바라느냐? 그 자리에 임해야만 비로소 중심이 결정되어 이상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 이상적이냐? 평면적인 감각을 초월해 가지고 입체적인, 수직적인 감각의 세계가 오기 때문에 보다 행복한 것입니다.

동서남북이 있으면 (판서하심) 여기에서 둘이 만나 가지고는 기쁨이 안 됩니다. 불평이 벌어집니다. 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부부끼리 서로 불평하는 것을 보게 되면, '당신과 나는 같지 않다. 생활하는 것도 같지 않고 생각하는 것도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같지 않다면 '나는 여기에 있으니 당신이 여기까지 오소. 여기서 만납시다. 나는 여기 있으니까 여기까지 오소' 하는 불평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불평(不平)이 뭐냐?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불만(不滿)이 무엇이냐? 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금을 그으면 요것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직 차지 않았다는 자리에서 불평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럼 평(平) 될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중앙입니다. 여기서 보아도 같고, 저기서 보아도 같고, 돌아서 보아도 같고, 옆으로 보아도 같고, 사방이 같게 될 때에는 불평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불평하는 놈은 망하는 겁니다. 중앙에 와서 불평하면 상대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평 될수 있게 되면 서로가 같다는 거예요. 같으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가 되어야지요. 거기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보아도 남자가 여자에게 '와라' 혹은 여자가 남자에게 '남자가 먼저 와라' 이렇게 되면 절름발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벌써 불평의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 중심에…. 이 점은 무엇이냐? 이 점은 이상적 기점이요, 하나의 근본된 점입니다. 근본적인 것이 무엇이냐 하면 중심점이요, 수직점입니다. 그것이 결정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결정짓지 않는 한 돌면 돌수록 빨리 넘어지게 마련입니다. 안 돌아야 그렇게라도 있지요.

중심 각도에서 요만큼 (손짓하심) 틀어진 각도에서 돌기 시작한다면 나중에는 배 이상이 벌어진 각도에서 돌아갈 것입니다. 각도가 없으면 없을수록 이렇게 도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 거리가 좁으면 좁을수록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치점인 것입니다. 운동하는 모든 존재는 반드시 중심을 따라서 운동을 하게 마련입니다. 중심으로부터의 거리 여하에 따라서 그 거리가 멀면 빨리 넘어지는 것이요, 가까우면 늦게 넘어지는 것입니다. 멀면 멀수록 잘 움직이지도 않는 것이요, 움직인다 하더라도 한두 바퀴 돌다 대번에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뜻을 중심삼고 개인이 설 자리라는 것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는 수직점, 중심점이기 때문에 그 중심점에 개인이 서야 됩니다. 그 중심에 하나된 부부가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이 서야 될 자리이고 다음에는 가정이 설 수 있는 자리가 이것입니다. 조금 클 뿐이지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도 조금 클 뿐이지 마찬가지입니다. 세계가 서는 자리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설 자리도 역시 그렇습니다. 이렇게 서야 하는 것입니다.

천주주의와 뜻이 가는 길

천주주의라는 것은 무엇이냐? 영계와 육계가 별도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영계가 윗축이라면 육계는 아랫축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엇갈려 있는 것이 아니라 수직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 수직점은 천주(天宙)의 중심이 되는 것이요, 영계의 중심도 되는 것이요, 세계의 중심도 되는 것이요, 국가의 중심도 되는 것인데, 일개 국가뿐 아니라 전체 국가의 중심도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중심도 되는데 일개인의 가정만이 아니라 전체의 가정의 중심이 되는 것이요, 세계를 대표한 개인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완성한 자리, 즉 세계적으로 완전한 자리는 가정이 완성할 수 있는 방향과 자연히 일치되는 자리입니다. 가정이 완성되는 자리는 자연적으로 국가의 완성점과 일치되는 것입니다. 국가가 완성된 그 자리는 세계가 완성될 수 있는 자리와 일치된 자리요, 세계가 일치되었다는 그 자리는 결국 영계까지도 일치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이걸 원으로 그려 볼 때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일직선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이 가는 길이지만 뜻이 가는 길과 일치된 개인이 가는 길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뜻과 일치된 길을 가는 개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개인이 뜻과 일치된 그 길을 가는 것을 우리는 일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개인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 동참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행복한 사람은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인간으로서 행복한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이 갈 수 있는 완전한 자리에 동참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개인적으로 이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가정 자체도 역시 뜻의 길과 일치된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당신도 그 길을 가야 하고 나도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고 갈라질래야 갈라질 수 없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아무리 돌아가려고 해도 다른 길이 없는 그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자, 여자는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방법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뜻이 가는 길입니다. '옛날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이렇게 달라졌다'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변화나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시작과 끝이 같은 것입니다. 참은 전무후무한 것입니다. 역사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변하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는 변하는 것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는 변하는 것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 다음에 가정이 가야 할 것은 무엇이냐? 민족을 편성해 가지고 하나의 주권을 찾아야 됩니다. 국가 하게 되면 주권자가 있어야 되고, 국민이 있어야 되고, 국토가 있어야 됩니다. 우리 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것은 세계 공통입니다. 주권자가 있어야 되고, 국민이 있어야 되고, 국토가 있어야 된다는 원칙은 말할 것도 없는 거예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데, 민족이 다르고 국가가 다르다고 해서 민족별로 국가별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목적과 방향하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한꺼번에 날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와는 상관없이 오는 것이 아니냐! 천만에! 하나님의 나라가 나와 상관없이 찾아와서는 언제 관계를 맺을 것이냐? 죽어 가지고? 뜻이 가는 방향에는 개인이 가야 할 길이 있고, 가정이 가야 할 길이 있고, 종족이 가야 할 길이 있고, 민족이 가야 할 길이 있고, 나라가 가야 할 길이 있고, 세계가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서 나라를 이루어 내 세계를 만들어 가지고 거기서 같은 민족처럼, 같은 종족처럼, 같은 가정처럼, 같은 개인처럼 살고 갈 수 있는 나라가 우리 인간이 바라는 나라가 아니냐? 그 세계를 통일된 세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봐요?

일치된 상대 없이는 이상세계를 이룰 수 없다

하나님도 개인을 따라가게 될 때, 천국의 행로를 가는 사람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 개인을 따라가려 할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길을 가는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을 오라고 하더라도 따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나라로 갈 수 있는 길을 가는 가정이 있다면 따라 나서지 말라고 해도 하나님이 따라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도 그렇지 않아요? 좋은 것이 있으면 마음이 달라진다구요. 옷을 살 때를 보더라도 좋은 옷, 덜 좋은 옷을 놓고 보면 벌써 좋은 옷에 눈과 마음이 가게 됩니다. 그렇지요? 좋지 않는 옷은 내 마음이 머무르려고 하지 않는다구요. 보다 좋은 것, 보다 새로운 것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왜 보다 좋은 것을 찾아가려고 하느냐? 최고로 좋은 것, 최고로 가치 있는 것, 최고로 권위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요? 결국은 하나님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돈이 필요해요? 하나님도 금덩이가 필요하겠어요? 하나님은 금덩이를 만들 수 있는 주인공이라구요. 하나님에게도 권력이 필요하겠어요? '예이, 이놈들아!' 명령을 하게 되면 '예-' 하고 천하가 일시에 굴복하게 되니 기분이 좋겠지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권력이 필요없습니다. 하나님 이상의 권력자가 있어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니 안 되는 것이 없다고요. 권력이 필요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이 필요하냐? 돈도 필요없고 권력도 필요없다! 그럼 지식이 필요하냐? 하나님은 지식의 주인입니다. 지식 하게 되면 없는 지식이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무슨 지식이 필요하겠어요? 여기 가도 꼭차 있고 저기 가도 꼭차 있는데 무엇이 필요해요?

그러면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도 혼자는 싫다는 것입니다. 혼자를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돈이 많고, 권력이 있고, 지식이 많으니 나 혼자서 됐다 하는 사람 있어요? 여자가 아무리 됐다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남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혼자는 안 되는 것입니다. 혼자는 외로운 것이요, 혼자는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왜 지었느냐? 왜 짓긴 왜 지었겠어요. 좋아하기 위해서 지었지요. 오늘날 기성교인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 인간은 피조물인데 창조주와 피조물이 같을 수 있느냐? 다른 것이다' 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은 언제나 홀로 절대적인 자리, 상대가 없는 자리에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 이상 불행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나라의 대통령의 권한을 가졌을지라도, 어머니가 죽어 혼자 살고 있는데 '혼자 사니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하는 아들이 있다면 '이놈의 자식아, 무엇이 행복해?' 할 것입니다. 그런 상황인데 아버지가 세계적인 대통령이라고 해서 '아버지, 행복하지요?' 하면 '오냐, 오냐, 행복하다' 그러게 되어 있어요? 효자라면 혼자 있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내가 어머니 한 분 모셔다 드릴까요?' 이래야 효자지요. (웃음)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은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세계 만물 앞에 언제나 절대자이시고 우리 인간들은 피조물이고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면 큰일난다. 그러니 언제나 엇갈린 길로 가야 된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은 어떻겠어요? '내가 비록 자격은 없지만 하나님은 이런 분이 아닙니까? 그러니 내가 잘되어 하나님의 상대를 한 분 소개해 주겠습니다' 하면 하나님께서 관심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마찬가지라고요. 아무리 잘났으면 뭘해요? 아무리 미인 아가씨가 있으면 뭘해요? 그 미인 아가씨도 아침도 그렇고 저녁도 그렇고 일생 동안 혼자 아름답게 산다고 하면 미인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결국은 무엇 때문에 사람을 지었느냐? 상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상대의 세계가 없어 가지고는 이상의 세계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일치될 수 있는 생활, 가정이 일치될 수 있는 생활, 씨족이 일치될 수 있는 생활, 민족이 일치될 수 있는 생활, 국가가 일치될 수 있는 생활, 다음에는 세계가 일치될 수 있는 생활, 이것은 전부 다 뜻이 있습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개인은 이렇게 가야 된다'는 줄이 있다면 그 줄로 가려는 사람입니다. 가정은 이렇게 가야 되는 것이다 하는 그 표준대로 틀림없이 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물론 현재는 불행할는지 모르지만 그 불행은 행복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라는 이렇게 가야 된다고 하는, 하나님이 그어 놓은 패턴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세계는 이렇게 가야 된다' 하는 그것이 없어요. '천도는, 하나님은 이렇게 와야 된다' 하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엉망진창입니다. 중심이 없고 방향이 없는 혼란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죄는 무엇이냐? 중심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방향을 부정하는 것이 죄입니다. 아담 해와가 에덴 동산에서 타락할 때 천사가 나타나서 '야 야, 아담 해와야! 하나님이 에덴 동산의 모든 과일을 다 따먹으라고 하더냐?' 했을 때 '아니올시다. 다른 것은 다 따먹어도 선악과라는 열매만은 따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는 대답을 듣고 사탄이 '그것이 아니다' 하고 중심을 부정한 것입니다. 중심을 부정하는 것이 악의 기원이라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그것을 안 따먹겠다는 방향으로 그렇게 행하려고 하는데 천사가 '야, 야, 그런 것이 아니다. 방향이 이렇게 이렇게 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이 무엇이냐? 중심을 부정하는 것이요, 방향을 엇갈리게 하는 것이 악입니다.

대한민국에 있어서 악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대한민국에는 헌법이 있습니다. 거 중심된 무엇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심이 틀렸다.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악당이 되는 것입니다. '사회니 뭐 종족 혹은 동네면 동네 어른이니 예법이니 그런 것이 뭐 필요해! 그건 필요없다'고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뭐 동네도 없고 나라도 없이 중심을 부정하는 사람은 악당입니다. '방향은 뭐 동쪽으로 갈 게 뭐야? 그거 틀렸어. 내가 서쪽으로 가면 무슨 관계가 있어? 이렇게 중심과 방향을 혼란시키는 데서부터 악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목적은 완전한 중심의 자리에서 출발하여 발전시켜 나가야 되는 것

목적이라는 것은 완전한 중심의 자리에서, 올바른 자리에서 출발하여 더 크게 발전시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출발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이렇게 각기 출발하여 어디에서 만나느냐? 만나는 점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결혼입니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면 그 가정을 중심삼고 본래의 가정이 가야 할 길이 있을 것입니다. 바른쪽으로 돌아가며 이것을 찾아가는 가정도 있고, 요렇게 가는 가정도 있을 것입니다. 그 가정들이 합해야 할 점이 나옵니다. 가정들이 합해지면 뭐냐? 이게 국가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요 국가들이 합해서 본연의 뜻에 따라 세계를 중심삼고…. 자기 멋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요것이 일치되는 것이 어떤 자리냐? 세계라는 것입니다. 세계가 하나로 귀결될 수 있는, 상봉할 수 있는 하나의 나라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래야 이상적인 세계가 나오는 것이지 혼자서는 안 됩니다.

뜻의 길은 개인의 길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을 향해 가지고…. 내가 중심, 즉 주체라면 목적이 하나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가는 길은 언제나 직선상에서 왕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 관계에서 가야 됩니다.

목적을 향해 가는 데에 있어서는 목적과 나와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오늘 아침에 밥을 먹는 것도 목적을 위해서 먹는 것이고 지금 내가 일하는 것도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주체는 대상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대상은 주체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출발은 목적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목적은 출발과 더불어 있는 것입니다. 그 둘이 가중되면 될수록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하나되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희생이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사랑이라는 것은 그 자체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상대를 위해서 있다는 거예요. 이 관념을 확실히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보다 큰 대상을 찾아가려는 것이 인생의 길이요, 보다 큰 주체를 찾아 나가려는 것이 인생의 길입니다. 내 개인을 중심삼고 보면 마음과 몸이 주체와 대상으로 되어 있지만, 가정을 중심삼고 보다 큰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보다 넓고 보다 큰 주체와 대상을 그리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왜 그러냐? 개인의 몸 마음이 이만하다면, 다음에 가정은 이만하고 이것이 점점 커져서 세계가 벌어지게 될 때 이 세계와 하나될 수 있게끔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이 머무를 수 있는, 주체와 대상이 일치된 이상권인 것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사랑의 보따리를 풀어 놓고 그 사랑이 사방으로 풍겨 나올 수 있는 뭐라고 할까, 구멍을 뚫은 고무공에 물을 채워 넣고 손으로 꼬옥 누르면 분수 모양으로 틀림없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전부 같이 물이 뻗어 나가지요? 그와 같은 사랑권을 만들려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냐? 그런데 손의 힘을 받는 것이 다르면 물이 쭉 나가요? 똑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영계와 육계가 하나의 축을 중심삼고 운동을 하더라도 같이 하고 힘을 받아도 같이 받기 때문에, 하나님과 구멍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같은 힘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상적입니다. 그것이 조금 차이가 있게 되면 찌그러지기 때문에 어느 곳은 물이 찔찔 나오고 어느 곳은 물이 삑 나간다구요. 그것은 이상적이 아닙니다. 그래서 영계와 육계는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서 천국 생활을 하지 못한 사람은 천상 세계에서 천국 생활을 할 수 있다? 있다, 없다?「없다」 없다! 왜? 찌그러지기 때문에! 불공평하기 때문에! 그것은 절름발이라는 것입니다. 절름발이는 거꾸러지기 마련입니다. 떨어진다 이겁니다. 이러한 놀음을 오늘날 우리 생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눈으로 보는 데 있어서 언제나 봐야 할 중심이 어디냐? 눈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봐야 된다 하는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코로 냄새를 맡을 때도 중심이 있어야 됩니다. 귀로 들어야 할 중심도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 중심은 개인적인 중심인 동시에 가정의 중심도 될 수 있고, 가정의 중심이 되는 동시에 국가의 중심도 될 수 있고, 세계의 중심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것은 수직의 중심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작지만 전체의 기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 눈은 적은 부분을 보더라도 세계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지상에서 보고 느낀 것은 영원한 세계에서 영원히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가는 데에도 중심, 인간은 이렇게 가야 된다 하는 그것이 있어야 됩니다. 지금까지 이것이 애매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 혹은 큰소리치는 사람도 '오늘 무얼 하고 살았소?' 하면 '뭘하고 살기는 뭘하고 살아.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이럽니다. 자기 멋대로 목적도 없이 방향도 없이 흔들거리다 죽어간다면 흔들흔들하는, 유리고객하는 영이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어디로 가느냐? 나그네, 여러분 뭐 나그네와 같은 인생이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그네와 같지도 못합니다. 나그네가 가는 데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가는 길이 멀어지면 나그네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하루에 갈 수 있으면 나그네 신세가 안 되는 겁니다. 사흘, 나흘, 닷새, 일주일을 가다 보면 자기 집이 없으니 나그네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목적이 없는 나그네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그네만도 못한 인생길을 지금까지 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은 가는 목적이 있어요, 없어요?「있어요」 뭐 있어요? 그 목적이 어디예요?

개인을 위한 목적이면 가정도 그 목적을 위해 가야 됩니다. 개인 목적을 부정하는 가정은 없습니다. 개인 목적을 살리는 가정입니다. 민족의 목적은 가정의 목적을 살리는 것이요, 세계의 목적은 국가의 목적을 살려 주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은 세계의 목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살려 주는 것이 되어야 이상적입니다. 가자 마자 전부 다 집어치워야 된다, 이게 아닙니다.

여자가 시집을 갔는데 '야 네 집에서 가져온 것은 집어 던져 버려라. 이것은 전부 다 새것이니 집에서 가져온 것은 전부 다 불살라 버려라' 할 때에는 불만이 벌어지고 불행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누더기 보따리일지라도 고이 싸 가지고 왔으면 그걸 펴놓고 장사를 하든지 춤을 추든지 그게 좋다고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가정이요, 가정의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국가요, 국가의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세계요, 세계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영계요, 천상 천하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는 싫다고 하면 불행하게 됩니다. 하나님 가운데에는 세계의 중심도 들어가 있고, 나라의 중심도 들어가 있고, 가정의 중심도 들어가 있고, 개인의 중심도 들어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절대적인 주체가 될 수 있지 그렇지 않고는 절대적인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개인이 가는 길은 가정과 직통한다, 안 한다?「한다」 한다! 참된 가정이 가는 길은 나라가 가는 길과 직통한다, 안 한다?「한다」 한다! 나라가 가는 길은 세계가 가는 길과 직통한다, 안 한다?「한다」 그러면 세계가 가는 길은 하나님과 영계가 직통한다, 안 한다?「한다」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개인이 가야 할 뜻의 길과 방향이 일치되는 패턴이 있어야 됩니다. 가정은 어떻게 가야 된다는 그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요? 국가는 어떻게 가야 된다는 패턴이 있어야 될 거라구요. 세계는 어떻게 가야 된다 하는 원칙이 있어야 됩니다. 그 원칙이 지금의 공산주의냐? 아니다. 그럼 민주주의냐? 아니다. 그 원칙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중심을 모르고 방향을 모르고 있습니다. 중심이 없는 자리에 섰고, 방향이 없는 자리에 섰으니 선한 세계냐, 악한 세계냐? 중심과 방향이 흐려지면 흐려질수록 그 세계는 악한 세계입니다. 중심이 뚜렷하고 방향이 뚜렷한 세계는 선한 세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한 세계의 사람이 되려면 중심이 뚜렷해야 되고, 방향이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은 선한 사람이다, 악한 사람이다?「선한 사람」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가정은?「선한 가정」 그러한 국가는?「선한 국가」 그러한 세계는?「선한 세계」 그렇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개인적으로 틀림없는 중심과 한 방향을 가지고 간다, 갔다, 서 있다, 산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대답하라고요. 여자들,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남자들,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안 되어 있습니다」 안 되어 있으니 미친 녀석이야, 올바른 녀석이야? 남자 아니라, 대통령 아니라 뭐 교황이라도 미친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사탄이 와서 천대해도 불평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불합격 품은 어디에서나 천대받고, 동네방네에서 쫓겨난 미치광이, 거리에 있는 미치광이, 별의별 녀석이 와서 건드려도 누구도 항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심 없는 존재, 방향 없는 존재는 별의별 녀석이 침을 뱉더라도 불평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도 중심도 방향도 없이 건들건들하는 자는 불평할 여지가 있다, 없다?「없다」 그건 모르고 '왜 천대해, 나를 몰라보고…' 이럽니다. 중심과 방향이 엇갈리게 될 때에는 악의 통치 하에 안 들어간다? 「들어간다」 그래 중심이 서 있어요, 여기 할머니? 아주머니, 중심이 서 있어요, 안 서 있어요? 서 있어요, 안 서 있어요?

병원에 가서 의사가 '어디가 아파서 왔소? 무엇 때문에 왔소?' 하고 물어 보는데 '그냥 왔지요' (웃음) 그런 환자는 치료해 주고 싶어도 못해주는 겁니다. 왜 왔느냐고 물어 보는데 가만히 있으면 돼요? '나 이래이래 왔어요' 이래야 되는 겁니다. 자기를 감추려고 하는 사람은 미욱하고 땅거미보다 더 둔한 사람입니다. 우리 아가씨들, 누가 자기 흉만 보게 되면 '이거 왜 그래, 너는 뭐야? 재재재재…' 이럽니다. 거 안 된다는 겁니다.

중심에 어긋나게 될 때에는 무자비하게 제재를 받아라. 방향이 전부 틀리게 될 때에는 무자비하게 제재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제재가 가해지더라도 방향만 바로잡아 주게 되면 고마와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심을 잡아 줄 때에는 고마와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사랑을 중심삼고 방향을 맞춰 나가자는 교회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뜻의 길을 가려내자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뜻의 길을 알지 못하고는 통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개인이 가야 할 뜻의 길을 어떻게 가야 되느냐? 그 표준이 있어야 됩니다. 그 표준을 누구로 잡느냐? 하나님을 표준으로 했으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다! 그러니까 제일 대표적인 사람을 표준해야 될 것이 아니냐? 그러면 그 분이 누구냐?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 하나님의 몸을 닮고,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그러한 사람이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몸 닮고, 마음 닮고, 사랑을 닮으면 다 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가는 길이 하나되고…. 몸 마음이 하나님의 가는 길을 닮았으면 하나되는 거라고요.

다음에 사랑은 무엇이냐? 상대적인 세계의 이상적인 존재끼리 일치될수 있는 절대적인 중심 요인인 것입니다. 거기에서 이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됩니다. 내가 몸과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사랑만 그리워할 수 있는 방향만 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내가 땅 끝에 있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자연히 오기 마련입니다.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뭐냐? 개인이 가는 길은 이래야 된다 하는 대표적인 표준인물이 누구냐? 그래도 역사상에 제일 대표적인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될 수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 이상 중심의 내용을 소개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했느냐 하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 하나가 됐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하나님과 하나는 되었지만 이루지 못한 것이 사랑,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사랑을 이루시려고 오시는 것입니다. 사랑을 혼자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죽으면서 '신랑 신부'라는 유언을 남긴 것입니다. 그 유언이 성취되는 그 날, 이 땅 위에 소망의 가정과 소망의 나라와 소망의 세계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고요.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누구보다도 최고의 내용을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중심을 제시했고, 방향을 올바르게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로 나가는데 있어서 그 방향과 중심이 엇갈리지 않고 언제나 같은 입장에서 일치되어 나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나가야 되느냐? 중심을 맞춰 나가야 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 보고 그리는 것이 좋아요, 안 보고 그리는 것이 좋아요? 글씨를 쓰는 데에도 체가 있습니다. 거 글씨 본(本) 말이예요. 요즈음에는 글방이 없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옛날 글방 같은 데서는 장지에다 썼다구요. 스승이 장지에다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루 황 이렇게 쓰면 (판서하심) 그 스승의 글씨체를 본받아 천번이고 만번이고 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연히 습관이 되어 그렇게 쓰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 무슨 체가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 본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예요?

그렇지만 본을 만들긴 만들어야 하는데 여러분은 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본될 수 있는, 백 퍼센트에 해당될 수 있는, 만점짜리를 본받아 가지고 점점점점 그것에 가깝게 원형(原型)을 만들어 놓는 놀음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역사노정의 성인들이 그런 놀음을 했습니다. '나는 누구를 좋아한다' 여러분은 그러지요? '나는 누구의 사상을 본받는다' 이런 것이 있다고요. 혹은 '나는 공산주의를 좋아한다. 나는 민주주의를 좋아한다' 그런 것이 있다고요.

통일교회는 무슨 주의를 좋아해요? 선생님 주의가 아니라고요. 하나님 주의라고요. 하나님 주의인데, 무슨 주의냐? 뭐 씨름하고 달리기를 하자는 그런 주의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랑하기 위한 주의입니다. 영원히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받을 수 있는 주의, 이것을 꿈꾸는 패들이 통일교회…. '패' 하면 기분 나쁘지요, 분패가 생각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통일교회 패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통일시킬 수 있는 원칙입니다.

그 사랑은 어디에 나타나야 되느냐? 개인에게 나타나야 되고, 가정에 나타나야 되고 민족에 나타나야 되고, 국가에 나타나야 되고, 세계에 나타나야 되고, 하늘땅에 충만한 사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 사람들이 바라는 욕망이라구요. 그렇게 보면 제일 큰 욕심을 가진 패들이라고요. (표정을 지으시면서) 고개를 이러고 가만히 앉아 있지만 심상치 않은 패들이라고요. 지지리 쫄아빠진 옷을 입었지만 이 다음에 왕녀가 된다는 거예요. 모양은 형편없지만 이 다음에 하나님의 왕자 왕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참, 본때가 있지요.

여러분 그 마을에서 유명한 상대를 얻고 싶어요, 군에서 유명한 상대를 얻고 싶어요? 그런 것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빠르게 안다구요. 감성은 여자가 더 빠르다는 거라구요. 그 부락에서 유명한 상대보다는 군에서 유명한 상대, 군에서 유명한 상대가 있지만 또 도의 유명한 상대가 있다면 군의 상대를 놔두고 도에서… (웃음) 도도해 간다구요. 도에서 유명한 존재가 제일 중심인 줄 알았더니 나라에서 제일 가는 큰 중심존재가 있어서 그 존재의 상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할 때에는 도에 대한 중심존재를 버린다는 것입니다.

버리는 데에는 미련을 두고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울고불고 해도 '울겠으면 울고 말겠으면 마라. 나는 간다' 하는 거라고요. 그렇지요? 또, 대한민국의 제일 가는 사람이 마지막인 줄 알았더니 세계에서 제일 가는 존재가 있다면, 대한민국의 상대를 버리고 그것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그렇지요?「예」 또 세계보다, 백년 세계권의 일생을 중심삼은 그것보다 영원을 중심삼고 처음 나오는 주체적인 존재가 있다면, 세계적인 존재도 버리고 그것을 취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 같은 양반들은 그러한 꿈을 꾸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다 버리고, 나라도 버리고, 남편도 버리고 아들 딸도 버리고, 나 한 사람 따라오라고 하는 광고를 붙이고 가는 것이 신랑된 예수님을 찾아가는 놀음이라는 것입니다. 그거 됐어요, 안 됐어요? 거 기분 좋아요, 나빠요?「좋아요」

더 좋은 것 앞에서는 덜 좋은 것을 버리고 바꿔쳐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패턴을 따라서 바꿔쳐야지 자기 멋대로 바꿔쳤다가는 파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원칙은 그래요. 하나님의 패턴을 따라 가지고, 공식적인 원칙에 따라서 그렇게 바꿔치는 것이 원칙인데, 그런 자리, 그런 환경에 서지 못했으면서도 바꿔쳤다가는 전체가 깨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건 자체도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야! 가정을 버리고 나와라, 나라를 버려라' 하는 것입니다. 중심을 못 가진 나라, 중심을 못 가진 가정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다! 도리어 없었던 것이 좋을 뻔하였도다! 가룟 유다는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가 아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나쁠 뻔하였도다? 나쁠 뻔이요, 좋을 뻔이요?「좋을 뻔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을 대표하여 하나의 표본적인 길, 즉 뜻의 방향과 목적을 취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은, 중심이 없고 방향을 모르는 곳에서 중심을 찾고 방향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하나님이 절대 지지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중심이 없는 것은 흘러가 버리지만 중심이 있는 것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중심이 없으면 아무리 큰 환경도 흘러가 버리지만 아무리 작은 개인도 중심에 방향이 일치되면 남아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역사는 수습되기 때문에 수습될 수 있는 그 자리를 찾아가는 것은 선(善)입니다.

중심존재가 되려면 대상을 위해서 있어야

총각 처녀들의 얘기를 자꾸 하면 이상한 기분이 나는데, 할 수 없다고요. 사람은 총각 처녀부터 시작되니까 말이야. 처녀들은 참된 남자를 찾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렇지요? 술 먹고 길거리에서 껄렁거리는 깡패는 싫지요? 참된 남자를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참된 남자를 찾아갈 자격자가 되려면 내가 참된 여자가 되어 가지고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여자가 됐어? 못 되었기 때문에 시집가려는 생각을 말라는 거예요. 남자도 참된 남자가 되어서 참된 여자를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남자가 됐어? 그러니 시작부터 혼란이 벌어지는 거라고요. '아이구 나 죽는다. 내 이럴 줄 몰랐구만' 그런 요지경판이 사회에는 숱하게 많습니다.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의 길이 있어야 된다고요. 참된 남자와 여자들이 가는 길, 그게 있어야 될 게 아니예요? '참된 남자, 참된 여자가 가는 길, 그걸 부부라고 하느니라. 부부를 중심삼고 자녀를 낳아 가지고 가는 것을 가정이라고 하느니라' 이렇게 되지요? 가정이 참되게 가야 할 길은 뭐냐 하면 자기 동네에서 손가락질을 받으며 가는 것이 아닙니다. 동네 방네 사람들 앞에, 중심의 자리에서 가야 되는 것이 아니냐? 저 사람을 바라보고 저 사람을 따라가겠다고 하게 될 때, 그 사람은 그 동네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동네방네 사람들이 '저 가정을 따라 가야지' 하며 전체가 동원되어 따라가게 될 때 그 가정은, 그 사람은 중심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김해 김씨가 많다고 하지요? 여기도 김해 김씨가 많을 거라고요. 나 김해 김씨 좋아하지 않소. (웃음) '우리 김해 김씨 동원해 가지고 대통령 해먹자' 이러면 기분 나쁘다구요. 김해 김씨가 누구를 위한 대통령을 뽑자는 거예요? 김해 김씨를 위하는 대통령을 뽑았다가는 그 나라는 망한다는 거예요. 김해 김씨를 중심삼고 독재하는 거예요, 독재. 그런데 김해 김씨를 통해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김해 김씨를 배반하고라도 그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대통령이 된다 하면 김해 김씨의 추천받아된 그 대통령은 올바른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또 올바른 씨족이 되려면, 김해 김씨에서 대통령을 출마시키더라도 우리보다 모든 씨족을 위하는 대통령이 되라고 출마시켜야 됩니다. 그랬을 때에는 김해 김씨는 올바른 중심 씨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들이 불평을 안 합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했다가는 동네방네 싸움만 벌어지고 대통령도 때려죽이려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자기의 씨족만을 위해서 대통령을 세우겠다는 패들은 도둑놈입니다.

본래 주체라는 것은 대상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김해 김씨가 주체의 자리에 서고자 하거든 대상된 다른 수많은 씨족들을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 것은 존재의 원칙을 망각한 것이기 때문에 천도는 그런 사람을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제거당해야 할 운명이 되기 때문에, 그 운명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당하기 마련입니다. 쫓겨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복받기 마련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서 자고로 선을 행하라고 했습니다. (판서하심) 선(善) 자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이것은(羊) 양을 뜻하고 이것은 (刀) 칼을 뜻하며, 이것은(口) 말씀을 뜻합니다. 이렇게 보면 양이 목적이고 저렇게 보면 말씀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칼이라는 것은 양 칼이라는 것입니다. 딱보면 이렇게 해석한다고 해서 기분 나빠하지 말아요. 한번 해보는 거라고요. 자기 멋대로, 내 멋대로 해석해도 기분 나쁘지 않으면 된다는 거예요. (웃으심) 이렇게 보면 양(羊)인데, 이렇게 보면 말씀(口)입니다. 말씀의 목적은 양(羊)이요. 양이 결국 가야 할 것은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걸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칼을 맞아야 됩니다. 양 칼을 맞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의 칼, 하나님의 칼을 맞고 있는 인간이라고요. 이것이 싫더라도 둘다 감수하면서 가는 사람은 선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해 봤다고요.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고요. (웃음)

때로는 사탄의 칼을 맞아 봐야만 하나님이 어떻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채찍을 맞아 봐야만 악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선악을 가리기 위해서는 선이 어떻다는 것, 악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게 맞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한 사람이 될래요? 선한 사람이 되려거든 맞고 가라는 거예요. 형제끼리 싸움을 해도 맞은 아들에게 어머니가 '너는 착한 아들이다' 하는 거예요. 어떤 것이 선이냐? 선한 자리는 어떤 자리냐? 피해를 받는 자리가 선한 자리입니다. 둘이, 전부가 나쁘더라도 보다 나은 사람은 피해를 받고도 가만히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선입니다. 한 대 쥐어 맞고도 참는 녀석이 선한 사람입니다. 가해자는 아무리 잘났더라도 악한 것입니다. 요 관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부처끼리 살 때, 아무리 덩치가 큰 남자, 혹은 큰소리하는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가만히 있는 아내에게 말 한마디라도 가해하여 감정을 자극하게 될 때에는 악은 아니지만 악한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해를 받는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선한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자리에 선 피해자가 악한 자리에 선 가해자에 대하여 불평하는 날에는 둘다 망하는 것입니다. 참고 용서할 때는 악한 사람도 자기를 본받고 선하게 교육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윤리의 근본이요, 사회질서의 원칙이 되어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고요. 그렇게 안 되어 있으면 세상은 벌써 망했을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 두 사람만 있으면 말을 해도 서로 다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지만 가정적으로는 나는 싫어' 그러는 사람도 있어요. 또, 통일교회 총각들 혹은 아가씨들 중에는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축복받기 위해서 전도했다'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웃음) 축복받아 부처가 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요. 뻣뻣이 목석이 되어서 죽겠어요? 그게 아니라고요. 남자, 여자가 축복받고 난 후에는 아들딸을 낳아야 됩니다. 아들딸을 낳아서 무얼 해야 되느냐? 나라가 없다면 아무리 좋고 행복한 가정이라도 황마적단이 나와 가지고 모가지를 자를 수 있다, 없다?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를 찾아야 됩니다. 이것을 종교인들이 모르고 있어요. 종교인들이 확실히 모릅니다. 선한 나라를 찾아야 됩니다. 이것이 종교의 목적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한 나라만 찾으면 악한 나라가 대들면 쳐 버릴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이런 놀음을 한 것입니다. 나라를 찾는 날에는 법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안할 때는 쳐 버린다는 거예요. 그런 때가 온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왜 비참한 죽음을 당했느냐? 나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라만 있었으면 전도 안 한다는 거예요. 전도하되 대사관을 통해서 그 나라의 왕을 전도하는 거예요. 왕궁의 황족을 위해서 전도하게 되어 있어요. 황족이 된 것은 그 나라의 선한 역사적 전통의 인연을 이어받았기 때문입니다. 왕만 딱 전도되어 복귀되는 날에는 그 나라 전체가 자동적으로 복귀되는 겁니다. 그러니 세계는 순식간에 하나님의 뜻세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몰랐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뭐냐? 가정을 이루어 가정이 잘살기 위해서 나가자, 그거예요? '아이구! 천대가 뭐야, 천대가? 언제는 선생님이 축복해 주면서 잘살라고, 이상상대는 이렇다고 설명은 참 잘하여 주시더니 이게 뭐야? 축복해 주자 마자 또 뭐 나라를 위해서 보따리 싸 가지고 나가라구?' 이럽니다. 그것은 가정이 잘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가정보다는 친척, 씨족이 잘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김해 김씨만을 위해서 나가는 패들은 쫓김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회도 한 씨족이 되어 있는데,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가겠다 할 때에는 대한민국에서 쫓겨나기 마련입니다. 통일교회는 대한민국 전체를 잘살게 하기 위해서 가자 하기 때문에 대한민국 백성이 싫어하더라도 천운이 오면 봄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꽃이 피게 마련인 것입니다. 싫다는 겨울절기는 지나가고 좋다는 봄동산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서 축복해 줬어요. 통일교회를 위해서 살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통일교회 패들은 하나님이 찾고자 하시는 선한 나라를 위해서 살라고 가르쳤다고요. 그래요, 안 그래요? 대한민국이 복귀되면 또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사는 그런 대한민국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백성이 삼천만이면 삼천만을 희생해서라도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나가라고 때려 모는 그런 주권자라면 일시에는 대한민국 백성 앞에 반발을 받고 쫓김을 받을지 모르지만 세계 인류는 그 지도자를 환영할 것입니다.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선은 남을 위하는 데에서만이 나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본래 존재하기 위한 시작은 상대를 위하는 데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알겠지요?

그러면 개인은 무엇을 바라고 나가야 되느냐? 가정을 바라고 나가야 됩니다. 가정은 종족을 바라고 나가고, 종족은 민족을, 민족은 국가를, 국가는 세계를 바라고 나가야 됩니다. 이걸 그려 보면 (판서하시며 말씀하심) 그 안에는 개인이 있고, 가정이 있고, 종족이 있고, 민족이 있고, 국가가 있고, 세계가 있습니다. 이렇게 될 때 이 전부가 하늘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큰 것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이 가는 공식적 노정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노정이라는 말 많이 쓰지요? 복귀 노정이다, 공식적 노정이다….

개인보다 큰 것이 가정이기 때문에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선입니다. 가정은 종족, 종족은 보다 큰 그 동네를 위해서 희생하라, 가정은 동네를 위해서 살라 그 말이라구요. 그 친척을 위해 살라 그 말이라구요. 그렇게 살면 절대 망하는 법이 없느니라. 종족은 민족을 위해 살라! 시골 가면 김씨네 문중하고 박씨네 문중하고 싸우지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 동네에서도 그런 걸 봤어요. 개울 하나를 놓고 싸우는 패들이 있다구요. 그 패들은 나라를 모르는 패입니다. 나라가 망하더라도 관계없다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김씨와 박씨가 싸울 때에 어느 편이 한번 져주고 위해주는 날에는 위함받은 놈은 굴복하게 마련입니다. 요걸 알아야 된다고요. 통일교회는 핍박을 받았지만 위해주는 놀음을 하게 될 때는 승리하게 마련이다. 이게 지혜로운 길이더라 이거예요. 문선생님이라는 사람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에 있어서 땅따라지 됐다고요. 뭐 삼천만이 반대하고, 낫다는 대학 교수 혹은 대학생들 전부가 침을 뱉고 그랬지만, 요즈음에 와 가지고는 '대한민국에서 기대할 것은 통일교회밖에 없소' 하는 말이 내 귀에 자주 들어온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이런 소리가 항간에 많이 들려 온다고요. 기성교회 목사들 20여 년 동안 단에 서서 그저 죽으라고…. '이단 문 아무개 이것 때문에 전통적인 기독교는 망합니다. 하나님!' 하고 별의별 기도를 다 했지만, 망하라고 한 녀석들은 망하고, 망하라고 쫓김받던 사람은 꺼떡댄다고요. 거 이상하지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된다고요.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이 원칙을 안다고요.

새로운 문명권은 새로운 이동에서부터 시작돼

가정을 버리고라도 종족을 위해서 나서야 된다면 틀림없이 나설 줄 압니다. 종족을, 통일교회를 버리고라도 나라를 위해서 가야 할 길이 있다면, 여러분이 아무리 가지 말라고 손을 잡더라도 갑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사상이라구요. 세계를 위해서는 나라를 버리고 이민을 가라, 세계를 위하는 길이 있으면 대한민국을 구해 놓고 보따리를 싸 가지고 이민을 가라 해도 갑니다. 나빠요. 좋아요? 세계를 위해서는 이민이라도 갈 것입니다. 미련없이 세계를 위해서 떠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구, 선생님 가면 안 됩니다' 하면서 민족이 엉엉 울게 될 겁니다. 그러면 따라가면 될 것이 아니냐? 그렇게 해서 따라 나서면 세계적인 대이동이 벌어질 것입니다. 새로운 문명권은 새로운 이동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야곱도 이동에서부터….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가정이 출발했고, 이스라엘 민족도 이동으로부터 이스라엘이 건국되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이동을 위해서 메시아가 나왔는데 세계적인 대이동을 출발 못 한 것이 예수님의 한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대이동의 바람을 일으켜야 합니다. 미국놈도 '한국으로 와라? 하면 '예, 갑니다' '독일놈도 '와라!' 하면 '예, 갑니다' 이렇게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한국놈, 한국 사람도…. (웃음) 오기만 바라고 가기는 싫다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오기를 바라거든 가기도 좋아해야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끌어오는 것만큼 그렇게 보내준다는 겁니다. 처녀 총각들을 보내줘야 되겠다! 보내주는 데는 어떻게 보내느냐? 제일 좋게, 시집 장가로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국제 결혼을 많이 시켜 주겠다니 좋아하는 패들이 통일교회의 총각, 처녀들이다! 그래요? 이왕지사 까만 머리의 여자로 태어났으면 상대는 노랑 머리, 알록달록해야 좋지요? 꽃도 노란 꽃만 좋다는 사람은 미의 감각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웃음) 왜, 웃어요? 선생님 말이 좋아서 웃어요, 틀려서 웃어요? 좋은지 틀렸는지 모르지만 그럴 듯하면 웃어도 괜찮다구요. 그래야 되는 거라고요.

예수님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있다?「없다」 없다! 자기를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의 몸을 사랑해 봤어요? 나는 나만 사랑한다. 나만 붙들고 살겠다고 하면 혼자 죽었지 별수 있어요? 여러분이 이런 걸 알아야 됩니다, 문제는 어디 있느냐? 자, '뜻과 우리의 생애' 이렇게 되어 있는데 여러분이 하루의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하루는 1초, 1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 이 자리에 들어와 앉아 말씀을 듣는데 어떤 사람은 '통일교회 문선생님은 가만히 보니까 배우 소질이 많다' 이렇게 봅니다. 이런 녀석은 중심을 위하는 녀석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내가 이런 표정을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자극적인 인상을 남겨 주려니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요건 기필코 알아야 될 말인데 어떻게 해야 될것이냐…. 그럴 때는 책상을 치면서 이러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해 보이시면서 말씀하심) 이래야 인상에 남기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그걸 평하는 사람은 반동분자라는 겁니다. (웃음) 여러분이 손수건을 들고 춤을 추는데 그 손수건이야 찢어졌든 구멍이 났든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서 즐거워하며 춤을 추면 그 찢어진 것이 더 예술적이라고요. 그렇게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다방면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바탕을 지닌 사람입니다.

결론을 지읍시다. 생활은 생애의 중심을 세우기 위해서 생활하는 것이요, 생명의 중심을 확정짓기 위해 생활하는 것입니다. 또, 생애의 방향을 엇갈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뭘하는 거라구요? 생활하는 것입니다. 생활은 하루 하루의 활동을 통해서 쌓아지는 것이요, 그것이 올바로 쌓아지지 않게 될 때에는 생애도 엇갈리게 됩니다. 생활과 생애는 다릅니다. 생애는 일생의 전체를 두고 말하는 것이고, 생활은 하루, 한 시간 혹은 일분 일초도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이걸 생각해야 합니다.

도주의 소원은 사람들이 자기 이상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

악은 무엇이냐? 중심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중심을 갖지 않고 행동하는 것은 악입니다. 또, 중심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방향이 틀리게 행동할 때에는 악입니다. '나는 틀림없이 통일교회 식구다'라고 하면 중심이 같습니다. 그렇지만 '돈을 벌어서 통일교회 가야 되겠소' 하면 중심은 같지만 방향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그것은 악이 되는 것입니다.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류와 비주류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된다고요. '내가 이래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해도 교회의 가는 방향과 일치되지 않게 될 때에는 벌써 절반은 악한 권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날이 되면 될수록 모이기를 힘쓰지 말라고 했다? 그래요?「힘쓰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느냐? 방향을 밤이나 낮이나 맞추어라 이것입니다. 낮이나 밤이나 24시간을 맞추어라, 모이기를 힘써서 언제나 중심과 한 자리에 서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날이 되면 될수록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 참고 견디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끝날을 맞이해서….

'선생님이야 가겠으면 가고 말겠으면 말아라. 나는 선생님을 아는데 선생님은 나를 모른다' 이거 안 된다고요. 나는 하나님을 아는데 하나님은 나를 모른다 하는 집에 들어가면 쫓겨나겠어요, 환영받겠어요? 틀림없이 쫓겨납니다.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안 쫓아내면 그것은 불법입니다. 비원리적입니다. 불합격품은 합격품과 동참할 수 있다? 「없다」 그건 아는구만. 불합격이 뭐냐? 백 미터를 뛰는데 99.9미터에서 스톱했다 할 때는 일등으로 뛰었더라도 낙제꽝이 안 되는 것이다? 「되는 것이다」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합격권에 못 드는 것입니다. 합격품의 자리, 기록에는 오르지 못합니다. 그것이 원칙이라고요. 그러니 끝까지 그걸 마쳐야 합니다.

그것이 언제 결정되느냐? 굴다리 밑을 지나가는데 생각지도 않게 지나가던 버스가 대가리를 들이받았다 할 때 (웃음) '아이구 하나님, 나는 이렇게 하려고 했습니다. 탕감조건 하나는 배웠기 때문에 통일교회 원리 고맙습니다. 나 탕감조건 세우고 죽으니 구원해 주십시오' 할지라도 그것이 방향과 중심에 일치되지 않을 때에는 수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방향과 중심에 일치되면 조건이 성립될 수 있는 가망성이 있다는 것이 아니냐구요.

탕감조건을 내가 세울 수 있느냐? 죄인에게는 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나 이렇게 하겠소'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것입니다. 판사와 검사에 의해서 그럴 수는 있지만, 여러분 자신들이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천도를 책임지고 밝힐 수 있는 중심존재가 그러한 관리권, 주관권내의 법도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이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어 가면서 '우리 통일교회 원리가 좋기는 좋아. 나는 천국에 가야지. 하나님, 내가 지금까지 선생님의 명령대로 못 했습니다만 내 마음으로는 다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나를 탕감조건을 세운 걸로 해주소' 하면 하나님도 공평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천국가려고 하는 자리에 갖다 놓는다는 것입니다. (웃음) 무슨 자리에 갖다 놓는다고요? 가려고 했기 때문에 천국가려고 하는 자리에 갖다 놓는 거라고요. 알겠어요?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거예요. 가긴 가는데 천국가려고 하는 자리에 갖다 놓는다는 거예요. 그 자리는 낙원 이하의 자리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도 천국가려고 한다구요, 지옥까지도. 그렇지요?

이렇게 무자비한 놀음이 여러분의 초, 분, 시간권내에서 뒤넘이치면서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살이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온 지 몇년이나 됐소?' '들어온 지 10년 됐지' '10년 되었으면 햇수는 나보다 많은데, 뭘했소?' '뭘하긴 뭘해, 통일교회 믿었지' '믿었는데 어떻게 되었소?'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두고 보면 그냥 그대로지' 예이 이 녀석아! 안 믿는 것만 못하다는 거예요. 혹을 떼야 됩니다. 그리고 고약을 붙여야 됩니다. 싫든 좋든 뒤넘이쳐야 되는 거라고요. 가만히 있어 가지고 되겠어요? 안 되는 거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가는 데는 개인이 가는 길, 가정으로 가는길, 종족으로 가는 길, 국가로 가는 길, 세계로 가는 길, 하늘땅으로 가는길,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는 길, 이렇게 딱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틀림 없이 가려 가지고 가야 되는 것이라면, 세상은 통일 안 되어 있지만, 영계에 가서는 몇억천만 년 걸려서라도 그 길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원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어서 가면 억천만년 걸리지만 살아서 가면 7년 동안에 갈 수 있다! 어떤 것을 택할 거예요? 살아서? 살아서 가는데 그저 웃고 춤추며 가면 얼마나 좋겠나?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죄를 짊어진 사람은 복역을 해야 탕감이 되는 것입니다. 탕감은 여러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대로 좋아하는 길, 좋아할 길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들어오면 신물이 도는 것입니다. 반대라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져야 악한 세상에 새로운 무엇이 나올 수 있는 가망성이 있지, 그냥 걱석걱석 춤추는 데 같이 박자를 맞추어 춤추었다가는 그냥 그대로 흘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강력한 반대 운동을 제시하는 곳이 나와야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 역사적인 세계 위에 비로소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가망성이라도 생겨나지 않겠느냐 이거예요. 자, 그럼 이 길을 따라가고 싶은가, 안 가고 싶은가?「가고 싶습니다」 싶어, 안 싶어?「가고 싶습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거들랑, 통일교회를 믿거들랑 자기 마음대로 가는 것이다? 그래요?「아닙니다」 틀림없이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어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못생기긴 못생겼고 싫기는 싫지만 선생님이 주체라면 여러분은 대상이 될 수 있게끔 밤낮으로 조정해서 맞추어야 됩니다.

기분 나쁘지요? 남자들 기분 나쁘지요? 기분 나빠도 할수없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의 마음대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하나님이 가는 방향을 맞추려고 뺑뺑 돌아가는 거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뺑뺑 돌아가기 때문에 나도 딱 달라붙어서 뺑뺑 돌아가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상이 뒬 수 있는 거라구요. 종교는 그런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도주(道主), 종주(宗主)를 중심삼고 절대 하나되라는 것은 도주, 종주가 가는 대상권을 독차지, 점령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가라, 가라' 하고 싫은 말을 하면 '선생님 또 그렇게 하누만. 이번에 외국 갔다 왔기 때문에 틀림없이 또 냅다 몰것이다' 딱 점치고 있다가 내몰게 되면, '아이쿠, 봐라! 내가 생각하던 대로 된다. 기분 좋다' 하는 사람은 먼저 벌받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라고 하는 길이 틀렸다면 선생님이 먼저 벌받을 것이고 선생님이 가라고 한 길이 옳다면…. '그것 봐라. 내가 판단한 것이 옳지' 하는 녀석은 직격탄을 맞을 것입니다. 그 녀석은 맞는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하겠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라구요. 선생님이 도둑놈인지 모른다구요. 사기꾼인지 모른다구요. 까놓고 이야기하자구요. 선생님이 사기꾼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 원칙만 알라는 거예요. 선생님만을 위해서 가라고 할 때는 보따리 싸가지고 도망가라고요. 그렇지만 자기를 위하지 않고 보다 큰 세계를 위해서 가라고 가르쳐 줄 때는 그것은 정도(正道)에 가까운 거라구요. 이것은 공식적인 노정입니다.

보다 큰 것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공식적인 노정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 원칙에 입각하게 되면, 선생님은 망하더라도 여러분은 망하지 않습니다. 만일 선생님이 그릇된 길을 가게 되면 여러분은 선생님 이상의 올바른 길을 가겠다고 끝까지 참아 가지고 선생님이 죽으면 장사하고 난 후에, '문선생님은 나라를 위해서도 가지 못했으니 문선생이 가지 못한 길을 내가 가겠다'고 하며 나서게 되면, 문선생이 닦아 둔 모든 유산을 하나님으로부터 걸머지워 가지고 몽땅 인계받을 수 있습니다. 알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도주를 믿는 사람들이 도주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이 도의 욕망인 것입니다.

세상의 주권자라는 것은 자기 이상 높아지는 사람을 모가지 자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의 세계의 주권자, 즉 도주의 소원은 사람들이 자기 이상의 자리에 나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의 세계의 요구인 것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자기 이상 잘나기를 바라고, 자기 이상 복받기를 바라고 길을 가는 것이 선의 길이요, 자기 이상 가서는 안 된다고 모가지 자르려고 하는 것은 악의 길입니다. 자기 이상 선한 길, 더 좋은 길, 중심 혹은 방향을 찾아가라고 제시하는 것은 선한 것이요. 그 이상 되는 것을 막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독재자는 그러한 부류의 사람입니다. 종교 지도자는 전자의 사람입니다. 다르다고요.

하늘땅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전통으로 이어받아야 할 법도

통일교회 문선생은 절대 복종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라를 위해 나가라고 명령하면 '아이구. 선생님! 왜, 나라만을 위해 명령해요. 나는 빨리 대한민국을 거쳐 가지고 세계로 나가려고 하는데, 기분 나쁩니다'라고 항의하였다면 그것은 정당한 항의가 되는 것입니다, '너는 대한민국만을 위해라' 하면 '나는 세계를 위할 것입니다' 이래야 됩니다. 한국에서 믿는 통일교인보다는 세계 개척 선교사로 출발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이 망하더라도 세계의 운세권에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초월적인 방향성을 가려 가지고 가는 사럼이 머리가 좋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알겠지요?

지금 아주머니들 3년노정을 나가 있는데 '3년만 되는 날에는 1972년 섣달 마지막 날에는 보따리 싸 가지고 집에 돌아간다' 이렇게 생각한다구요. 그것은 뭐야? 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라를 연결시키려고 하는데 아직까지 남북을 통일시킬 수 있는 애국자의 반열에는 동참 못 한다는 것입니다. 아예 처음 나설 때부터 '남북이 통일될 때까지 가정이고 뭣이구 남편이고 뭣이고 뜻을 위해서 다 바치겠다. 그러니 볶아 먹겠으면 볶아 먹고, 구워 먹겠으면 구워 먹고 마음대로 하소 나는 갑니다' 이러는 사람, 또 남편이 오라고 편지를 하고, 아들이 죽는다고 악을 쓰더라도 남북통일을 위해서 끝까지 싸우다 죽은 사람은 영계에 가도 심판에 걸릴 조건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3년노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성들이 가야 할 일선지대가 도래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것은 난 싫어, 나는 책임을 다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은 모른다' 하는 사람들은 그때 가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주객이 전도되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일을 하더라도 대한민국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땅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하늘땅을 위해서 개인이 있고, 하늘땅을 위해서 가정이 있고, 하늘땅을 위해서 종족이 있고, 하늘땅을 위해서 민족이 있으니 그야말로 하늘땅을 사랑하고 중심인 하나님을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식모살이하는 아가씨가 되어 있다 해도 천명(天命)에 의해 원수의 장손 집에 들어가 식모살이한다면 그 나라의 운명이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식모살이하고 있지만 식모가 아니라 애국자의 반열에 드는 것입니다. 그 생활이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역사적인 터, 무대와 권을 넓힐 수 있고 호령할 수 있는 주체적 권한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선생님도 그래요. 선생님이 뜻을 품고 감옥살이했다는 사실은, 오늘날 세계 통일교회 신도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수직으로, 분수와 같이 핏줄을 내뿜게 할 수 있는 동기가 됩니다. 몇십년 전에 그렇게 했던 것이 지금에 와 가지고 눈물을 줄줄 흘리게 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건 왜? 자기 때문에 살아서예요? 내가 밥먹기 위해서, 자기 출세하기 위해서 살아서 그렇지요? 아닙니다. 다르다고요. 그것은 전통으로 이어받아야 할 하나님의 법도라는 것입니다. 중심에 세울 수 있는, 정상적인 정도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역사는 지나가더라도 그러한 사상적 전통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역사와 더불어 사라진 것 같지만 전통적인 그 사상의 표준은 세계를 점령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자, 그러니까 중심의 자리에서 죽을 거예요. 안 죽을 거예요?「죽을 겁니다」 죽더라도 중심의 자리에 붙어서 죽어야 된다구요. 중심을 붙들고 죽어야 됩니다. 내 사지백체가 다 잘리더라도 중심의 자리에서 가닥 하나라도 놓지 않고…. 생명이 끊어지기 전에는 놓아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이걸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하다가 죽었다 할 때는 중앙에 붙게 되는 거라고요. 천국 들어갈지 말지 하다가 들어간다 이것입니다. 아슬아슬한 일이라는 거예요. 순간적이라는 겁니다. 죽을 때에도 놓지 말고 죽어야지 죽으면서 놓아도 안 됩니다. 물러나는 날에는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죽을 때까지 놔서는?「안 돼요」 놓는 것이 일년 걸려요? 순식간에, 눈 깜박할 새에 운명이 판가름되어 천지 차이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심각하다구요. 어떤 때에는 행동하기가 무서워요.

선생님도 그렇다구요. 무엇을 하나 새로이 시작하려면 그 초조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공판정에 나서는 기분이예요. 죄인들이 판사, 검사 앞에 나가 가지고 구형을 받고 판결을 받는 그 순간과 같은 초조함, 운명의 판결을 받는 것 같은 심정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한 발자국이 틀어지는 날에는 천지가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그걸 느껴 봤어요? 순간에 엇갈리게 될 때에는 역사적으로 우리 선조가 아무리 옳았었다 차더라도 천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입니다. 십년 공부, 이것은 문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옳은 것은 남겨 놓고, 그른 것은 정비해 나가야

수천년 동안의 하나님의 섭리가 일신의 운명과 더불어 좌우되는 이 엄청난 갈림길을 나로 말미암아 조정해 가지고, 개인을 지나고 가정을 지나고 종족, 민족을 지나는 데에 내가 그 기수가 되어 이런 일을 제시할 수 있다는 놀라운 가치관을 지니고, 놀라운 그 자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천지의 인연을 좌우할 수 있다 하는 사실을 느끼게 될 때, 통쾌한 자리가 아니냐? 그렇잖아요? 여러분의 생활권내에서 방향을 가리기 위한 일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어요. (녹음이 잠시 중단되어 약간을 정리하지 못했음)

'하나님 아버지, 나를 동정하시사 우리 아기를 낫게 하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기보다는 아들은 죽더라도 이 나라, 이 세계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됩니다. 자기 아들을 버리고, 나라를 위하여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나라를 위하다 보니 비록 자기 아들이 죽어가게 됐지만, 하나님 앞에 제물로서 바쳐 드린다는 기도를 함으로써 효자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요. 요런 것이 있다는 거라구요.

선한 사람은 자기편을 희생시키고 나갑니다. 보다 큰 것을 위해서 희생시켜 보다 큰 뜻이 이루어지게 되면, 희생당했던 아들딸은 역사에 선전되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기에 안중근 의사의 아들딸이 있다면 그들이 안중근 의사가 하던 일을 꿈에나 보았겠어요? 보지 못했지만, 상관이 없지만 그의 직계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영원한 가치를 인계받기 마련이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버이를 잘둔 사람은 복을 받게 마련입니다. 스승을 잘둔 사람은 화를 받기 마련이다 그래요?「아닙니다」 종교의 도주를 잘 모시는 사람은 복을 받게 마련입니다. 다 맞는 말이라구요. 그 시대와 상관은 없지만 그가 세계를 위해서, 뜻과 더불어 살았기 때문에 그와 더불어 영광의 자리에 서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결론을 지읍시다. 그러니 언제나 중심을 놓치지 말라는 겁니다. 중심을 놓치는 날에는 몇천년 공사가 나무아미타불 되는 것입니다. 중심을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은 중심이 흔들리는 거예요. 그 다음에 죽더라도 선생님이 가는 길을 따라 나라를 위해서, 방향이 일치되어 죽으라는 것입니다. 중심을 붙들고 방향이 일치된 자리에서, 다리 하나라도 그것을 위해서 움직이고 죽게 되면 그것이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심과 방향이 엇갈리게 될 때에는 아무리 큰소리하고 아무리 했댔자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에덴 동산에서 중심을 부정하고 방향을 부정한 데서 악이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원리적인 기준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반대되는 자리에서 가야 할 것이 천리의 법칙, 천도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그런 입장을 취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해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사람은 망하기 마련입니다. 공산당들은 내것도 내 것이요, 네 것도 내 것이다 합니다. 하지만 우리 통일교회 사상은 내 것은 네 것이요, 네 것은 나라의 것이요, 나라의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하나님 것이요, 하나님 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통일사상의 정도라고요. 알겠어요?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 봐요. 내가 중심의 자리에 서 있느냐? 방향을 갖추고 가느냐? 스스로를 냉정하게 비판해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려 가지고, 옳은 것은 남겨 놓고 그른 것은 정비하여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 여러분들 가운데는 교회 일에 관심조차 없는 패들이 많다구요. 이런 패들은 흘러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천도를 가려가는 심각한 초긴장 생활의 한 예

'선생님이니까 그렇게 바쁘게 살지. 선생님이니까 그렇지' 할지 모르나 선생님이니까 그럴 이유가 있어요? 선생님이 가만히 있는데 이렇게 되었어요? 가만히 있는데 이렇게 되었어요? 어제 어머니가 하는 말이 '아빠는 몸이 참 튼튼하고, 뭐 보게 되면 놀랍게 건강체'라는 거예요. 놀랍게 건강체가 뭐예요? 놀랍게 건강체가 될 수 있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피곤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요. 피곤하다구요. 피곤하지만 그 피곤에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언제나 얘기를 하지만, 이북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 삼팔선을 넘게 될 때, '틀림없이 삼팔선쪽에 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세를 볼 때 말이예요. 가만히 영적으로 생각해 보니까 사태가 불리하다는 거예요. 마음이 자꾸 이남으로 넘어가려고 하더라는 거예요. 그것을 여러분은 모르지만 선생님에게는 뭐 있다고요. 뭐가 있을 게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큰 일을 하는 거예요. 그리하여 딱 접경지대에 왔는데 파수대, 경비대들이, 아랫방에는 경비대원들이 있고 우리는 윗방에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이남으로 가려고 한다. 우리는 공산당이 아니다. 당신들은 삼팔선에 있으면 언제 공산당들이 모가지를 잘라갈지 모를텐데 우리 친구가 되는 게 좋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이래 가지고 하루 저녁 넘어가려다 못 넘어가고, 이틀 저녁 못 넘어가고, 사흘만에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 때에는 재치가 있어야 되고 눈치가 빨라야 된다구요. 그렇지요? 그런 때는 보따리를 싸더라도 먼저 싸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주인들보다 앞서야지 주인들보다 뒤떨어져서는 안 되는 거라고요. 그럴 때는 날쌔야 되는 거라구요.

아 이래 가지고 제일 먼저 배를 탔는데 떼거리들이 몰려와서 아우성이 벌어지게 되니까, 어떻게 됐느냐 하면 순경, 경사, 그리고 경사보다도 계급 높은 사람하고 일반 사람들을 체인지하는 거라고요. 바꿔치기를 하는 것입니다. 군경의 가족이 아니면 끌어내는 거라구요. 이런 판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니 난데없는 사람들은 어쩔수없이 쫓겨나야지 별수 있어요? 용매도에 갈 때의 제일 기수가 결국은 다시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일화가 많다구요. 그럴 때는 날쌔야 됩니다, 날쌔야 돼. 환경에 몰려서 그렇게 되었지 틀림없이 선두로 이남에 나올 뻔했습니다. 조수가 한 시간만 빨리 들어왔더라도 나올 뻔했는데, 딱 걸렸다고요. 이래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구요. 갈 때는 소망을 삼고 가니 힘든 줄 몰랐다구요. 사흘 동안 밤잠을 못 자고 갔던 것입니다.

여기 원필이가 있지만 원필이는 그때 열아홉 살, 철모르는 때이니 뭘 알아요? 그저 먹고 배불러야 좋아하고, 고단하면 잠자야 좋아할 때라고요. 그런데 새벽 두 시에 깨워 가지고 가게 한 것입니다. 삼팔선에서 청단까지 80리 길입니다. 그 길을 달밤에 가는데…. 그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얼마나 고단한지 이 사람(원필)은 보따리를 메고 가면서도 조는 거예요. (웃음) 모르는 사람은 그렇다구요. 그러나 선생님은 한 발자국이 바쁜 거예요.

오늘 저녁 중으로 임진강 턱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그런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는 선생님이 비상 작전, 비상 조치를 하는 것입니다. 안테나를 최고로 뽑아 보는 거라고요. 보통 때에는 그런 놀음을 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들은 저녁이 되었다고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전부 다 부락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우리들만 열두 시를 지나 한 시에 임진강 접경 밑 집에 도착한 것입니다. 거기는 뭐 사람들이 전부 이남으로 갔기 때문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빈집에 들어갔는데 자긴 뭘 자요.

그런데 그날 임진강이 얼지 않았다고요. '이 강이 얼지 않으면 안 될텐데…'하고 걱정을 했는데 하나님이 보호하사 그날 저녁에 딱 얼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벽같이 첫번에 넘어왔다고요. 그런데 우리가 제일 빨리 온 줄 알았는데 그 동네에 미리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래 가지고 유엔군이 철수하면서 우리 일행을 마지막으로 막아 버렸습니다. 그 뒤 사람들은 전부 뒤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럴 때 한 1분만 서성댔더라면 어떻게 되었겠나? 사람 팔자 시간 문제가 아니라구요. 아예 망쳐 버리는 거라고요. 그런 일들이 우리 인생살이에도 많이 벌어지는데 천도를 가려 가는 길 앞에 없겠느냐 이것입니다. 얼마나 심각하냐 이거야! 그걸 여러분들은 모른다구요.

선생님이 3차노정으로 세계를 돌아왔지만 떠날 때, 문공부에 결재를 받아야 했습니다. 서류에 문공부 장관의 도장을 찍어서 첨부해야 할 텐데 못 했기 때문에 딱 걸려 버렸습니다. 그런데 주일날이었기에 문공부는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니 큰일났다는 것입니다. 다 된 줄 알았는데 딱 걸렸으니 큰일났거든요. 시간은 조여 오는데 말이야. 오늘 안 가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는 거예요. 오늘 안 가면 안 될 텐데 딱 걸렸다고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가야 돼!' 했더니 쫓아 뛰어다니는 것입니다.

책임자인 여권과 과장이라는 사람이 원래는 비행장에 나와 근무하는데 그날은 주일이기 때문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책임자인 그 과장은 그날 계원들과 춘천 호수에 가서 하루 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나요? 그런데 그 과장이 아침에 일어났는데 죽어도 가고 싶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참 고맙고 감사하지요. 이런 때는 고맙다고 한다구요. (웃음) 자기는 책임자이니 가긴 가야 될 텐데 발이 안 떨어지더라는 거예요.

그래 '에라 모르겠다' 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자는 판인데 난데 없는 사람이 문을 두드리며 과장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여권과에 열쇠가 세 개나 채워졌는데 열쇠는 전부 다 과장이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정문과, 사무실, 철궤의 열쇠를 과장이 가지고 있으니 그가 아니면 일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가 과장을 찾아가서 만나 악착같이 쫓아 다녀 가지고 떠나기 15분 전에야 가까스로 해 가지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공항에서는 '어떤 사람들이기에 쉬는 날까지 과장이 이렇게 나와서 일을 하나' 그러는 거예요. 안 된다고 반대하고 싸우다가 그렇게 되니 할 수 있어? 푹 주저앉는 것이지. 그렇게라도 해서 나가야 된다구요.

그날 안 나가면 문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오는 것도 그래요. 가만히 생각도 않고 있다가 간다, 준비해라…. 복닥불이 나는 거예요. 사흘 전에는 꿈도 안 꾸었다고요. 그날 안 하면 안 된다구요. 영계를 통하는 사람이 와서 보고하는 거예요. '이 날이 틀어지면 이렇게 될 것인데, 선생님은 어쩌면 그렇게 잘 아느냐'고 합니다. 어쩌면 잘 알다니? 그런 걸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선생님이 잘 알지! (웃음)

선생님이 이렇게 세계를 돌아오니까 하는 말이, '선생님은 세계를 순방하니까 얼마나 좋겠나? 이곳 저곳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니 좋으시겠다' 이럽니다. 좋아? 그야말로 이럴까 저럴까,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서 싸워 나가는 거예요. 초긴장 상태에서 생활하는 거예요. 그걸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수고를 알아 달라고 하면 불효

여러분들은 뭐, 우리가 본부에서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잘 돌아왔지…. 천만에요. 여러분의 기도 신세 지고 다니는 선생님이 아니라고요. 여러분의 기도를 받아 가지고 민족 앞에 돌려주기 위해서, 장단을 맞추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는 것이지, 여러분의 기도에 죽고 사는 운명을 건 사람이 아니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의 정성과 수고를 민족의 것으로 남기고 세계의 것으로 남기려니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세워 가지고 세계적으로 그 환경권을 포위, 포괄하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한 것이지, 내가 여러분의 기도 때문에 죽고 사는 사람인가요? 여러분의 신세를 지지 않고 가는 사람이라고요. 그렇다고 '오늘부터 선생님 위해서 기도 안 해도 된다' 그렇게 하겠으면 그렇게 하라고요. (웃음) 그런 것을 여러분은 모른다구요.

자, 6천년 동안 하나님을 녹여 먹던 사탄이가 그냥 순순히 '아이고 나는 하강이요' 눈 내리깔고 돌아갈 것 같아요? 여러분은 걸레 짜박지도 버리려면 아까와하지요? 걸레 짜박지도 뒤집어 봐 가지고 냄새를 맡아 보고 버릴 거예요. 사탄이가 그냥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고요. 그러니 악착같은 싸움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심에 맞추어야 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중심에서 어긋나게 될 때에는 꺾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발전 안 한다구요. 방향이 맞지 않으면 발전 안 한다구요.

그러니 그 나라를 찾기 위해서 밤이나 낮이나…. 그 나라를 찾는 것은 세계를 찾기 위해서, 세계를 찾는 것은 영계를 위해서입니다. 그래 가지고 뭘 할 것이냐? 하나님을 모시고 지상에 와 가지고, 자리를 잡아 가지고, 만국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그 하나님 앞에 승리의 영광을 돌려드리고 바쳐 드리기 위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통일교회를 위해서 이만큼 일을 했는데 선생님은 왜 나를 몰라주느냐고 당당하게 말을 합니다. 그거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만일 그렇게 나왔다가는 그 즉시에 그 후손들, 그 사람의 아들딸의 씨앗까지도 거두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정성을 들이게 되면 그 사람에게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후대, 후손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이 책임자를 세워 정성을 들이게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요. 그 사람의 후대에게 복을 주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 복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 후손에게 복 주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는 거예요. 후대를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후대고 무엇이고 필요 없으니 나에게 다 해주소' 그러면 '그래' 하고 다 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라는 거라구요. 내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안 알아주면 안 된다고 당당하고 거침없이 불평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만약에 이러한 조로 나와도 된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하나님에 대하여 얼마나 참소했겠느냐 이것입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서 죽을 자리에도 갔고 일생을 다 바치지 않았소! 별의별 놀음을 다 하면서 수난길도 선의 표적으로 알고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나오지 않았소! 그걸 당신이 몰라주면 되겠소! 왜, 아직까지 이러한 고생을 시키고, 이런 자리에 두십니까, 능력이 많으신 분이?' 그랬다면 거 어떡해요?

그건 불효라구요. 죽어도 그분 안에 있고 살아도 그분 안에 있어야 됩니다. 그 자체 가운데 있다 해도 그 자체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목적이라는 것은 보다 더 큰 것입니다. 대상으로서 그 자체 앞에 있는 것은 희생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땀을 흘려야 됩니다. 수고를 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가정이 동원될 때에 동원되지 않은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럴 때가 온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지도하던 것은 공식적으로 여러분이 가야 하는 법도가 되어, 앞으로 기성교회가 들어오든가 남이 들어오든간에 전부 다 이 공식적인 노정을 가라 하면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가지 않으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때에 가서 천대를 받으며 가지 말고 지금 동정을 받으며 가라는 것입니다. 같은 자리에서 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처음 출발에서부터 중심과 방향을 일치시켜 가는 사람은 나중과 시작을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최후의 승리는 주체의 것인 동시에 처음부터 끝까지 간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여러분은 중심을 가지고 살라, 중심을 가지고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녹음 상태 불량으로 약간의 분량을 정리하지 못했음)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천도의 길을 가야

20년 전에는 통일교회 식구들과 선생님이 새벽 한 시까지 기도하고 정성을 들이며 한 방에서 지냈습니다. 그때는 선생님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으니 지금도 선생님의 방에 들어와 마음대로 앉아 가지고…. 천만에. 이제부터는 그렇게 안 됩니다. 앞으로는 선생님을 만나는 데 있어서 체계를 세우려고 합니다. 토요일 하루를 면담하는 시간으로 하고 그 외는 만나지 않을 때가 옵니다. 내가 할 일이 많아요. 그렇다고 여러분을 멀리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큰 일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개인의 사소한 문제는 총무부를 중심삼아 가지고 해결하고, 교회장을 통해서 해결짓게 되면 본부까지 올라올 일이 없게 될 거예요.

어떤 사람이 선생님과 약속도 안 하고 '나 선생님을 한 시간만 뵈어야 되겠소' 하는 것입니다. 만나 주지 않고 쫓아 버렸다고요. 그렇게 했다고 내가 양심의 가책을 받지도 않습니다. 그럴 수 있는 때는 옛날에 다 지나갔다 이거예요. 옛날에는 개인을 위해서 밤을 새워 상대해 주고 눈물을 흘리면서 상대해 주었지만 언제나 그렇게 해 가지고는 내가 일을 할 수 없어요. 내가 큰일을 해야 된다구요. 개인적인 사정을 들어줄 수 없습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전체적인 문제를 다루어야 되니 그건 불가피 하다는 거예요.

이럴 때에는 아무리 참소를 하더라도 선생님은 참소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요. 보다 큰 것을 위하려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 이해되지요?「예」 선생님을 만날 때 함부로 들어와 누구와 얘기하고 있는데 눈치를 보고…. 불청객으로 와서 떡 쌍통을 벌리고 앉아 있는 돼먹지 않은 패들이 많았다구요. 지금까지는 좋았다고요, 살림살이할 때이니까. 그러나 이제는 나라를 위하는 사람끼리 의논하는 거라구요. 그렇지? 가정과 나라는 다르다고요. 앞으로 이런 것을 가려야 되겠습니다.

이제는 만나는 시간도 정하려고 합니다. 몇 시에서 몇 시까지 사람들을 만나고 그 다음에 문제가 있으면 조직 책임자들과 의논해야지 선생님에게 올 필요 없다구요. 그런 때가 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또, 새벽 다섯 시만 되면 언제나 선생님이 이야기한다…. 그럴 때는 지나가는 거라고요.

여러분 대해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큰 책임을 수행해야 할 때에는 여러분에게 이야기 안 해줄 수도 있다고요. '주일날 선생님이 예배에 참석하지 안 했으니 나도 안 해도 된다' 할지 모르지만 여러분과는 다르다구요. 서 있는 자리가 다르다고요. 그걸 같이 생각하면 안 된다구요.

통일교인들 중에 선생님이 가끔 영화 구경간다고 '우리들도 영화 보러 가야지' 합니다. 천만에요. 옛날에는 선생님이 극장 앞에 돌아다녀 보지도 않았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런 훈련을 거쳐서, 그런 자리에 가더라도 내가 더럽힘을 받지 않고 지배받지 않을 수 있는 자주적인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가더라도 문제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하려고 하는 대로 다 하겠다고…. 내가 지방에 갔는데 어떤 녀석이 내가 반말을 한다고…. 그래도 책임자인데 반말을 하다니…. 이런 시시껄렁한 패들이 있습니다. 내가 반말할 때까지는 어린 삼척동자까지도 섬기고 경배하고 하나님 앞에 모심의 생활을 했던 몸이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뜻을 알고 나면 선생님이 자기들에게 경어를 쓰면 거북해서 얼굴을 들고 말을 못 한다고요. 깍듯이 대해 줘 보라고요, 얼마나 거북한가? 해보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지요? 박정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감옥에서 데리고 나온 사람 말이예요. 이 녀석에게는 선생님이 생명의 은인이라고요. 그에게는 선생님이 어떻게 하나 보자 하고 깍듯이 예를 하고 공손히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쩔 줄을 몰라서, 설 자리를 몰라 가지고 선생님이 무서워 나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선생님에게는 아무것도 없지만 그런 뭐가 있다구요. 상대를 척 대해 가지고 내가 자리를 잡고 나면 자유스럽지 못하다구요. 암만 자기 세상이라고 해도 자리를 딱 잡으면 나는 태연하게 앉아 있지만 무엇인지 모르게 어색하다고요. 손을 이렇게 드는 것도 (손짓) 다시 생각하게 되고 목을 이렇게 할 때에도 '내가 이렇게 해도 되나?' 이렇게 된다구요. 그런 무엇이 있다구요.

거 왜 그러냐? 권위라는 것은 공의의 권위라는 것은 자기가 취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천도가 가려 주는 것이라구요. 영계에는 수천억의 영인들이 있는데 거 언제 등급을 매기겠어요? 세상같이 네가 먼저냐 내가 먼저다 해 가지고 어떻게 영계가 통일되겠어요? 벌써 척 대하면 아는 거라구. 아무리 몇천년 전의 조상이라도 척 봐서 후손의 등급이 위가 될 때에는 머리를 숙이게 되어 있다구요. 알겠어요?

저나라에 간 돼먹지 못한 조상이 후손에게 '야! 너는 나의 몇십대 후손이 아니냐? 야 이놈아, 네가 잘 되었다지. 나를 몰라보면 안 돼' 이럴 때에는 어떻게 되겠어요? 어느 동네에 신세를 지면서 어렵게 살던 사람의 아들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야! 너는 옛날에 내 신세를 지고 지금은 몰라봐?' 그러면 나라 정치가 되겠어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고요. 매정하다구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몇십 대의 할아버지라도, 원칙적인 질서는 천도에 의해서 가려지게 되어 있으니, 자기 후손이라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고요. 그런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은 내가 너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자유스러운 환경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도리어 선생님에게 무관심해졌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절대 무관심한 자리에 내몰아 나오면 눈이 둥그래 가지고 관심을 갖게 마련입니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총무부에 가라는 겁니다. 선생님을 만날 사람들 함부로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비서실을 만들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1년 열두달, 3년 아니라 5년 동안 암만 만나자고 해도 안 만나 주는 사람도 있다구요. 그런 사람을 만나 주면 그 사람이 손해니까. 자기 이상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만나 줘야 손해라구요. 돈을 투입하면 투입할수록 손해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만큼 내가 할 일을 다 했다고요. 가정을 위했고, 종족을 위했고, 민족을 위했습니다. 이제는 두 가지 남았습니다. 그것은 이야기 안 하지만, 간단한 것입니다. 몇 사람만 만나서 해결지으면 내 책임은 다하는 거라구요. 대한민국을 위해서 눈물 한 방울 안 흘려도 영계에 가서 대한민국의 선조나 후손 앞에 참소 안 받을 일을 내가 다 해 놓았다고요. 알겠어요? 그런데 여러분을 보기는 언제 봐요? 선생님은 무정한 사람이라고요.

감옥을 찾아와 눈물 흘리는 어머니를 쫓아버린 사나이라고요. 아내를 쫓아버린 사나이요, 자식을 모른다고 길거리에 거지와 같이 버려둔 사나이라구요. 그걸 생각해야 된다구요. 오직 뜻 때문에 그런 무자비한 사람이 됐다구요. 불효라면 세상에 없는 불효자가 됐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불효가 아닙니다. 남편이면 남편, 아버지면 아버지 노릇을 못 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천도의 길을 가려니 할수 없지 않느냐…. 둘다 할 수 없기 때문에,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세워 가는 길이 지혜로운 길이기 때문에, 만약에 세상에서 치리가 안 되거든 영계에 가서는 틀림없이 치리된다는 원칙을 알았기 때문에 그 원칙적인 길을 지상에서 실천해 가는 노상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돈을 벌어 가지고 쓰는데 내 개인을 위해서 쓰지 않습니다. 보다 큰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한국을 위해서 돈을 써 왔지만 이제는 세계를 위해서 쓸 때가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자립해야 됩니다. 조금만 더 가면 브레이크 거는 거예요. 모든 경제력을 쪽 빼다가 세계를 위해서 돌리는 날이 불원한 장래에 올 것입니다. 그러한 준비를 해 놓고 지금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니 한국은 빠른 시일내에 자립해야 될 것입니다. 선생님의 신세를 질 때는 지나갑니다. 그럴 때가 오는 거라구요.

그러지 않고는 이것도 저것도 안 되는 거라고요. 매일같이 거지 패들 같은 사람들을 데리고 뭣이 되겠느냐? 안 됩니다. 본부에서부터 전부 다 깨끗이 정리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내가 직접 얘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부 다 영계를 통해서 직격탄을 쏜다는 거예요. '너는 뭘하러 다니는 녀석이야' 안팎을 딱 짜 가지고 꼼짝을 못 하게 하여 제거해 버릴 것입니다. 앞으로 여기에 들어오려면 파수꾼 24명을 통과하지 않고는 들어오지 못할 때가 올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꼼짝도 않고 가만히 앉아 가지고도 저쪽에서 무얼 하는지 배속까지 들여다 보는 사람들을 파수꾼으로 세우고 살고자 하는 것이 선생님의 이상입니다.

그러한 기반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이 기반을 닦으려고 지금 이렇게 천신만고의 수난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가 온다구요.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선생님을 만나자고 자꾸 전화하는 사람이 많은데 다 끊어 버렸다구요. 통일교인 여러분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통일교회의 시대는 지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엄벙덤벙하다가는 '아이쿠! 아이쿠! 이럴 줄 몰랐구나, 이럴 줄 몰랐구나' 그럴 때가 온다고요. 그걸 여러분이 확실히 알고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때를 아는 사람입니다. 때를 맞이한 사람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맞추는 사람입니다. 때를 맞추는 사람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때를 맞추기 위해서 모험을 하고 생명을 내놓고 대드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천도의 가는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뜻과 우리의 생애…. 중심의 가는 방향을 중심삼고 1분, 1초를 직시하면서 가야 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뜻을 배반하고 가는 길이 어떨 것이냐? 이번에 일본에 들렀을 때 우리와 관계를 맺었던 어떤 사람이 우리와의 관계를 그만두겠다고 하기에 그만두겠으면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나는 사실 당신을 위해서 이렇게 해나오는 것이지 내가 당신을 믿고 나온 사람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너 같은 사람은 흘러가더라도 내게 손해 안 된다. 너 자신이 손해가 날 것이다. 두고 봐라' 했어요. 그건 걸리는 거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선생님이 참 좋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무서운 사람인 줄 나 자신도 안다고요. 나도 모르게 '고약한 녀석' 이런 생각이 들어 가지고 말 한마디가 나오게 되면 6, 7개월 이내에 난장판이 벌어지는 걸 많이 봤습니다. 거 이상하다구요. 이런 것을 생각하면 선생님이 좋긴 좋은 사람이지만 무섭다면 무서운 사람이라고요.

아들딸에게 부모의 심정과 뜻길을 어떻게 가르쳐 줄 것이냐

아이들에 대해서도 그렇다는 걸 내가 압니다. 내가 아버지 노릇 하기 힘들다구요. 아버지는 자식을 어떻게 대해야 되느냐? 친구 중의 친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친구하고 놀다가도 아버지가 나타나면 친구를 다 버리고 아버지를 향해 달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승 중의 스승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심정에 있어서는 언제나 지주, 즉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선생님은 이상도 하다. 애들을 데리고 공장에 다닌다'고 흉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구요. 공장을 다니는 것이 놀러 다니는 사람 같다고 말입니다. 앞으로 우리 공장은 가정을 발전시킨, 한 단계 차원 높은 터전이 된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구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그러려고 한다구요. '우리 아버지는 대통령보다 제일이다. 하나님 다음 가는 것이 우리 아버지다' 이래야 된다구요, 전부 다. '친구를 주고도 못 바꾸는 우리 아버지다. 어떠한 스승을 주고서도 못 바꾸는 우리 아버지다.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면 버렸지 아버지는 버릴 수 없다' 이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 예진이를 보면 이제 자기 엄마만큼 크다구요. 선생님은 지금까지 어느 한날도 빼지 않고, 피곤하더라도 자고 있는 방에 들어가서 뽀뽀를 해주었다구요. 그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구요. 애기들에게 될 수 있으면 그렇게 한다구요. 그런데 이제는 커서 그런지 자기도 어색하고 나도 어색하다구요. (웃음) 그런 것을 느낀다구요. 철들 때까지 그렇게 했다구요. 잠이 안 든 그런 순간에는 아버지가 와서 자기를 이렇게 (손짓하심) 쓰다듬어 주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 것이 필요하다구요. 이러한 새로운 정서적인 전통을 만들어야 됩니다. '세상의 대통령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 아버지가 최고다' 이래 돼야 되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 아버지가 최고다. 친구가 문제 아니고 우리 아버지가 최고다'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 효진이가 아, 아버지 가는 데 따라가겠다고 지금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오면 함께 어디를 가겠다고 어디 가게 되면 링컨차를 타고 가자고 합니다. 어떤 때에는 '주일날 경주에 한번 데려가 주지 않겠어요?' 합니다. '주일날 무슨 경주야. 주일날은 어디에 가게 되어 있지 않으니까 가려면 대구에 간다는 조건을 해 가지고 살짝 들러가면 갔지 그냥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냥 경주에 간다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구요. 예배를 다 보고 난 후면 모르지만 말이예요. 아버지를 따라가겠다고 지금 우리 국진이까지도 나서고 있습니다. 그게 나쁜 것이 아니라구요, 그러지 못해서 문제지. 교육이 참 힘든 거라고요. 아버지 노릇 하기가 힘듭니다. 쉬운 게 아니라구요.

이러한 모든 문제를 중심삼고…. 문제는 뜻 하나라구요. 뜻 하나 이루자는 거예요. 아들딸에게 뜻길을 어떻게 가르쳐 주느냐? 내가 아들딸을 위해서는 정성을 못 들였는지 모르지만 내 마음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는 거예요. 그걸 하나님이 보게 될 때, 그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잘되지 말래도 그 가정의 후손은 자연히 하나님이 보호해 주는 거라고요. 그렇지 않아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되지 못했다고 한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부모가 충신이 되었거들랑 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충신의 아들딸이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랐다면 그 나라 군왕이, 그 나라 나랏님이 사랑해 주기 마련입니다. 알겠어요? 자기 어버이의 신세는 못 받지만 나랏님의 신세는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복이냐? 자식이 나랏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면, 부모가 자식을 위해 가는 이것이 복된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구요. 이것이 정도요 공식적 노정입니다. 뜻의 길이라구요. 알겠지요?「예」 중심이라구요. 방향, 낮이나 밤이나 방향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아직까지 내 아들딸을 위해서 기도 한 번 안 했다고요. 그런 기도하려면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뜻이 이루어지면, 내 아들딸을 위해서 기도는 안 했지만 아까 말한 대로 제일 먼저 승리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거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가까운 아들딸을 돌보지 않았다구요. 희생시켰다구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광의 날에 자동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을 깜박깜박하고, 숨을 쉬고 하는 일체를 중심의 방향에 일치시켜야 합니다. 먼길을 하루종일 가거나 달리고 나서 처음으로 쉬게 될 때도 '뭘하고 왔나?' 생각하고, 눈만 뜨고 있으면 뜻의 길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뜻. 반성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쉬더라도 경치를 바라봐도 마음이 편하지. 그렇지 않다면 눈물을 흘리고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언제나 중심과 방향을 맞추기에 온갖 신경을 집중시키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언제 어느때에 탈선될 지 모를 위험천만한 현실인 것을 알고, 뜻을 위한 생애를 시정해 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바라면서 말씀드렸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여기에 모인 자녀들의 마음 가운데 부풀어 오르는 방향이 의롭기를 바랍니다. 밤도 이 방향을 위하여 이 중심을 위하여, 낮도 이 방향과 이 중심을 위하여, 젊은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 운명길을 지나 가지고 영원한 세계에까지 가더라도 이 원칙은 변치 않는다는 철칙을 지닌 사나이 아낙네로서 자신을 가진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아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신자가 가야 할 확실한 길인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뜻을 위한 생애의 걸음이 빛되고 자랑이 되기를 간곡히 고대하는 이들이 되기를 바라서 말씀하였습니다.

아버지! 세계적인 싸움의 노정이 저희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천신만고 수난의 행각을 통하여서 엮어진 이 무리들이, 낮이나 밤이나 소식을 그리워하고, 그 한마디의 소식이 자기의 생활 감정을 자극시키고 하루의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생활을 가져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현재 처해 있는 우리들의 입장인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중심과 더불어 하나되고. 그 방향과 더불어 일치되어 아버님께서 기뻐할 때 그 자리에서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지 않고는, 앞으로 찾아오는 이상세계는 나와 더불어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약관화한 사실인 것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이제 과거를 시정하고 현시점에 있어서 내일의 행로를 바로잡아 가지고 보람있는 자기 가치를, 아버님이 먼저 인정하고 역사가 인정하기에 서슴지 않을 수 있는, 오늘의 자체를 자랑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이 비운 가운데 사로잡힌 현시대에 있어서 통일의 무리들을 보시사 이 민족의 운명을 지켜 주시옵소서. 한스러운 삼팔선을 중심삼아 남북으로 갈라져 가지고 수많은 곡절의 인연을 남겨 놓은, 이 역사적인 분통함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을 넘고 이것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옵니다. 이러한 천적인 기원이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은 그 중심과 그 방향을 향해서 밤이나 낮이나 싸워 나가는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다시 깨달았사오니 그러한 나, 그러한 무리로서 태어났고, 그러한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천주주의 인연을 통한 영계와 육계가 통일권에 동참하여 아버님을 해방시켜 가지고 주체와 영원한 사랑 일체 이상을 그려 가야 할 것이 뜻의 길인 것을 확실히 알고 가는 통일의 무리들 앞에 당신의 가호의 손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당신은 주체적인 입장에서 대상적인 기준만 벌어지면 언제나 공존, 공영, 공의의 법도를 적용하시는 주체자인 것을 알고 이것을 위해서 가는 사람들은 망할 수 없다는 것은 천리이오니,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악의 중심보다도 강한 중심, 어떠한 악의 방향보다 강한 방향성을 갖추어 가지고, 어떠한 대립적인 장벽이 가로놓여 있어도 뚫고 나갈 수 있는 철저한 하늘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이날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복받을 수 있는 6월의 첫 주일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과 땅의 화합이 실현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