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세계가 나타난 것은 어떤 원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인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혹은 나타난 결과가 존재세계인 것입니다. 이 현상세계의 모든 만물을 바라보게 될 때, 그 배후에는 원인된 동기가 있어 가지고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동기는 무엇이겠느냐? 우리 인간을 보게 되면 지·정·의(知情意)가 있고 인격이 있습니다. 그러한 지·정·의와 인격을 출현케 한 근원적인 신이 있다면 그 신도 역시 지·정·의와 인격을 갖춘 신이어야 됩니다. 우리 인간이 좋아할 때 그도 좋아할 수 있어야 되고, 어떠한 희망을 갖고 있다면 그도 그 희망을 같이 가질 수 있어야 되고, 생활하는 데 있어서 행복을 느끼면 그도 같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원인적 존재이어야 됩니다. 그래야 원인과 결과는 내적 외적인 것과 같이 반드시 통일권을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리에서 배운 거와 마찬가지로 개인에게는 마음과 몸이 있습니다. 누차에 걸쳐 말씀드렸지만 마음은 수직을 통해서 오고, 몸은 횡적인 면을 통해서 옵니다. 이 양심과 몸이 어디에서 합하느냐? 물론 생명의 근원에 연결되어 있지만, 그 생명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사랑에서 시작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 하게 되면 그것은 보편적 사랑, 세속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살고 있는 현실세계, 타락권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참된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또한 근원 되시는 그분도,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근본이 되시는 그분도 이 몸과 마음과 같은 자세의 입장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의 인류시조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오늘날의 우리 인간들과 하나님과의 관계와 마찬가지여야 되는 것입니다. 다름이 없는 거예요. 인류시조의 몸과 마음이 그분의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참된 사랑에 하나되었더라면 오늘날 우리 자신들의 마음과 몸도 참된 사랑에 하나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기원이 참된 사랑인데, 그 참된 사랑을 통해서 생명을 지니고 태어나고 보니 마음이 되었고 몸이 되었다 이겁니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마음과 몸이 생겨났다면, 그 본연적인 근원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과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어떤 입장에 있어야 되느냐? 그 당시에 우리 인간과 같이 마음과 같은 면에 있어서의 내적인 주인의 입장, 몸과 같은 면에 있어서의 외적인 주인의 입장을 갖추어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몸과 마음이 참된 사랑에 공명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부모의 안팎의 모든 내용을 사랑을 통해 이어받아서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본연의 하나님을 중심삼고 우리의 인류조상이….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과 우리 인류조상은 하나가 되어야 됐던 것입니다.
하나님 자체에도 마음이 있고 몸이 있는 것입니다. 인류시조 자체에도 마음이 있고 몸이 있습니다. 이걸 보면 네 가지입니다. 이 네 가지가 어떻게 하나로 연결되느냐? 그것이 연결되는 곳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머무를 수 있는 하나의 기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
그러면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이룰 수 있는 뿌리는 어디냐? 이건 어디까지나 90각도를 중심삼고 연결되는 점입니다. 왜 90각도여야 되느냐?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볼 때에 거기에는 반드시 동서남북이 있습니다. 상하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표준으로 세워야 할 때는 반드시 수직과 수평을 중심삼고 재는데, 각도가 얼마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종적 횡적 관계를 측정해야 됩니다. 그것이 90각도가 되어야 된다는 것은 무엇이냐? 동쪽에서도 맞고, 서쪽에서도 맞고, 남쪽에서도 맞고, 북쪽에서도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권을 중심삼고 전후좌우 구형의 어떠한 면을 잘라 놓아도 90각도를 중심해서 모든 면이 맞아떨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 인간을 중심삼은 사랑과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그 기점은 어디겠는가? 그것은 반드시 90각도의 초점이어야 합니다. 그 초점은 동서남북을 연결시킬 수 있는 하나의 핵인 거예요. 그러기에 하나님의 참된 사랑과 인류가 바라는 참된 사랑의 출발 기점은 바로 그 핵이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바라는 소망의 기준이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소망의 기준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되고자 하고, 하나님은 인간을 대해서 하나되고자 하는데 그 내용은 무엇이냐? 그것은 물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그것은 참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현현하고 우리 인류 조상이 현현하는 데는 누구를 통해서 현현하느냐? 자기 자체를 통해서 현현하는 것보다도 사랑에 의한 자녀를 통해서 현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고 있어요.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 개개인을 두고 볼 때, 여러분도 몸과 마음이 있습니다. 몸은 횡적인 면을 대표하고 마음은 종적인 면을 대표하는데, 이것의 결합체가 오늘날 내 자신이라는 거예요. 그러기에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참된 사랑의 기점을, 이상적 출발 기지를 가져야 할 인간입니다. 그런데 타락은 뭐냐? 90각도의 기점이 틀어진 겁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을 보게 되면 그 각도가 크든 작든간에 그 기점에 맞는 겁니다. 아무리 큰 각도라도 거기에 맞습니다.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맞기 마련이예요. 그 기점을 중심삼고 동서남북 사방으로 연결시키게 될 때는 종횡이 완전히 일치화될 수 있는 것으로써 통일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90각도의 참된 사랑의 기반을 중심삼고만이 이상적 통일권이 형성된다는 논리를 찾아낼 수 있다 이겁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인격은 다릅니다. 다르지만, 그 다른 인격을 통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아버지의 생명체가 아니요, 어머니의 생명체도 아닙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참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일치점을 볼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된 거기서부터 `나'라는 존재가 벌어집니다. `나'라는 생명체가 생겨나는 겁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닮고 어머니의 마음을 닮고, 아버지의 몸을 닮고 어머니의 몸을 닮아 난 소성을 완전히 그대로 연결시킬 수 있는 내용은 무엇이냐? 힘이 강한 아버지라 할 때, 그런 아버지 자체의 생명력이 아닙니다. 가냘픈 어머니의 생명력이 아니예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의 요소다 이겁니다. 사랑을 통해서 아버지 어머니의 내적인 것을 닮을 수 있고, 사랑을 통해서 아버지 어머니의 외적인 것을 닮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이라는 것은 아버지 어머니의 내적인 면에 있는 수직을 이어받은 것이요, 몸이라는 것은 아버지 어머니의 외적인 면에 있는 수평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 서야 되느냐? `나'라는 존재가 머무를 수 있는 이상적 기점은 어디냐? 자기 혼자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마음만 중심삼아 가지고도 안 된다는 겁니다. 이 마음은 어디에서 왔느냐? 이것은 결과적 존재이기 때문에 원인적 존재의 종적 기준과 일치되어야 됩니다. 그게 마음의 자리입니다. 그다음에 몸이라는 것도 원인적 존재의 횡적 기준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몸의 자리입니다. 이 둘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생명체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사랑에 의해 모든 것이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인간이 생존하게 된 동기요, 인간이 찾아 정착하여야 할 이상적 기점입니다. 그 기점을 중심삼고 나를 세계와 연결시켜 화해야 그 세계가 이상적 세계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데는 움직이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반드시 원칙이 있어야 돼요.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요구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분은 창조주요, 절대자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필요로 하는 것은 인간들이 요구하는 무슨 지식이라든가 권력, 돈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사랑입니다. 이 사랑 때문에, 이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기 전, 나를 위하라 할 수 있는 상대가 없었습니다. 이 우주가 존속하기 전에 하나님이 창조했다 하는 것은 없는 가운데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창조 전의 입장에서 보게 될 때 하나님에게는 `나를 위하라' 할 수 있는 개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위하라'는 개념은 무엇이겠느냐? 그 개념이 있었다면 그 개념은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사랑을 위하여 `나를 위하라'고 하는 개념이었을 것입니다. 또 위하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게 될 때 그것은 무슨 개념이겠느냐? 돈을 위한 것도 아니요, 권력을 위한 것도 아니요, 지식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사랑을 위해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동기적 입장에 선 것이 하나님이 아니었겠느냐 이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했던 거예요.
그러기에 사랑의 존재를 짓기 위해서는 내적인 자기의 인격을 중심삼고 내적인 기준을 닮아날 수 있는 사랑을 전수해야 됩니다. 몸과 같은 외적인 기준을 닮아날 수 있는 사랑을 전수해야 돼요. 그러니 사랑을 투입해야 하는 놀음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창조는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의 이상을 실천할 수 있는 대상을 위하여 투입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게 될 때, 첫출발의 개념은 뭐냐? 위해서 모든 것을 지었다는 겁니다. 위하는 개념입니다. 투입하는 개념입니다. 완전 투입이예요. 완전 투입해 가지고 대상이 완성된 자리에 서게 되면 그 투입된 것이 다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돌아오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그렇잖아요? 어떤 파이프가 있다면 거기에 피스톤 같은 것으로 밀게 되면 그 자체가 반작용에 의해서 밀리는 겁니다. 이렇게 볼 때에, 하나님이 완전히 투입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완성되게 될 때에는 반드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돌아올 때는 어떻게 되느냐? 이 외적인 세계, 역학세계에서는 입력은 출력보다 크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사랑의 세계는 입력보다는 출력이 더 커요. 이런 공식이 성립됩니다.
사랑을 하나 뿌리면 그것이 0.88이 되지 않습니다. 참된 사랑을 하나 심어 놓으면 그것이 1점, 2점, 3점으로 불어납니다. 거기에 정성된 내용을 갖추면 갖출수록 그것은 사방을 커버하고도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평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히 구형이 되는 거예요. 평면적 기준이 딱 짜여진 거기에서 사랑을 주고받으면 평면적으로 줄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주고받으면 주고받을수록 작용하는 결과는 점점 커지게 되어 구형이 형성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법도를 활용하는 데는 이상권이 형성된다는 결론을 지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보는 모든 만물은 무엇 때문에 지어졌느냐 이겁니다. 존재하는 모든 광물이나 식물, 동물세계를 막론하고 무엇 때문에, 무엇을 근원으로 해서 지었느냐? 그들의 생명 자체를 보고 좋아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근원은 어디까지나 참된 사랑을 모방한 거예요.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어떤 것은 동쪽 몇 도 위치에, 상하 전후의 어떤 위치에 존속할 수 있는 입장에서 사랑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적, 형상적인 실체들로 만물이 전개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연결하면 모든 것이 통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지으신 만물을 대상으로 말을 할 수 있다 그겁니다. 무엇을 통하여? 참된 사랑의 내성적 요소를 통하여. 그것을 통하여 서로 느낄 수 있고, 화할 수 있기 때문에 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모든 대우주의 아름다운 꽃 색깔, 또 그다음에 일월성신이나 물과 공기를 두고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해가 떴다!' 할 때 그것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해가 생겨난 것은 누구를 위해서냐? 또 물이 생겨난 것은 누구 때문이냐? 물과 공기와 흙은 생명의 요소인데, 공기는 무엇 때문에 생겨난 것이냐? 공기가 없으면 큰일나는 겁니다. 그다음 흙은 무엇 때문에 생겨났느냐? 생명체를 위해서 생겨났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들은 무엇 때문에 현현하여 가지고 동원되었느냐? 이것은 참사랑의 이상을 자극하기 위한 자기 계열에 있는 입장, 상징적, 혹은 형상적, 실체적 단계에 있어서 위치는 다르지마는 사랑의 표시체로서 사랑을 자극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동서남북에 있는 모든 존재하는 것은 사랑을 미화시킬 수 있는 자극을 줘 가지고 주인 된 그분이 사랑의 인격을 완성하는 데 도와주기 위한 소재로서 현현한 겁니다.
태양을 보게 되면, 태양은 내가 완성할 수 있는 사랑 이상세계의 소재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태양과 같이 빛나야 되고, 태양과 같이 열이 있어야 되겠구나! 태양에 의해서 생명이 자라는 거와 마찬가지로, 나의 움직임을 통해서 상대적 세계에 생명력을 발발시킬 수 있는 내적 내 자신이 되어야 되겠구나. 사랑의 내적 자신을 촉구하기 위해 태양은 뜨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물이 흐르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사지백체의 혈관을 통해서 물이 흐르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4분의 3은 물로 되어 있습니다. 물은 깨끗해야 됩니다. 빛깔이 없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투명해야 됩니다. 동에서 보나 서에서 보나 남에서 보나 거기에 그림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랑에 동화된 투명체가 돼야 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물이 내 몸에서 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얼마나 기쁩니까?
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먹고 사는 모든 것, 우리가 주스를 마실 때 주스가 여기에 올 때까지 얼마나 수고롭게 찾아왔겠느냐 이거예요. 이것이 수입품이라면 미국이라든가 브라질 등을 원산지로 하여 생겨나는데, 그것을 배양하려고 이국 백성들이 애쓰고 거두어 가지고 어찌어찌해서 찾아온 여행의 목적이 어디 있느냐? 마시고 설사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사하라고 먼 데서 찾아온 것이 아니라구요. 이것을 마신 사람은 나보다 가치 있는 인격을 갖추어서 최고의 중심존재인 하나님 앞에 생명적인 인연을 연결시키고, 그와 동시에 사랑의 길을 두꺼운 파이프로 연결시킬 수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먹히는 이 주스 자체는 그러한 사랑의 자극적인 인연을 하나님 앞에 전달할 수 있는 주스가 되는 것이 이상일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 그 옷을 지금까지는 무관심하게 입고 있었다 이겁니다. 이 옷은 어디를 통해서 와요? 어디를 통해서 옵니까? 요즘에는 화학섬유 같은 것이 생겨났지마는, 그것이 여러 가지 색깔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 공장 저 공장을 거치게 됩니다. 또 이 나라 저 나라의 것을 혼합하여 현재 내가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입고 있느냐 이겁니다. 왜 걸쳐 입느냐? 옷이 인간의 몸에 입혀지는 것은 최고의 사랑이상 완성체가 되어 가지고 하늘땅이 동할 수 있는 제일가는 골수와 같은 자리에 서 주기를 바라서입니다. 이렇게 모든 존재들은 소망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가지고 모든 것이 동화되게 될 때에 거기에는 번창이 벌어지고 화합이 벌어집니다. 힘을 가지고, 외적인 무슨 생명력을 가지고, 자기 미모를 가지고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모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 미모를 끌고 갈 수 있는 보다 큰 사랑의 힘이 없게 될 때에 그 자신은 불행할 것이고, 고민하고 자리를 못 잡고 방황할 것이 틀림없다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은 참된 사랑이라는 보다 큰 주체성을 지닐 때만이 안정권이 벌어지고, 행복된 생활노정이 전개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교회에 척 들어오게 되면 이 집 전부가, 다양한 오색가지의 아름다움으로 장식한 이 소재가 나의 이상적 사랑을 현현시키는 것을 도와주기 위하여 나를 품기를 바라고 있구나 하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여기에 완전히 품겨지고, 완전히 동화하려면 참된 본연의 사랑에 화할 수 있는 몸 마음을 지닌 완성한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외적인 것을 두고 봐도 그렇지만, 여러분 자신을 두고 볼 때 몸이 마음 앞에 원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은 어떤 자리에 있느냐? 종적인 자리에 있는 아버지입니다. 우리 인류시조는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있어야 할 아버지와 횡적인 아버지 어머니 입장에서…. 그 내적인 아버지와 횡적인 아버지 어머니가 일치될 수 있는 참된 사랑의 씨뿌림이 시작됐어야 했던 것입니다.
거기 횡적인 그 기반의 연장선 위에 하나님의 사랑은 점같이, 혹은 3점 가운데 중앙의 핵같이 있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원리라든가 성경을 보게 된다면 전부 다 둘째가 문제로 되어 있습니다. 둘째라는 것은 직선 가운데서 소생 장성 완성이라 할 때 장성에 해당되는 겁니다. 이 장성은 무엇이냐 하면 중앙점입니다. 이렇게(거꾸로) 보더라도 소생 장성 완성의 중앙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사탄과 하나님이 투쟁해 나가는 데 있어서 문제되는 기준이 언제나 둘째 번 자리입니다. 이 둘째 번 자리를 잃어버리느냐, 잃어버리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사탄세계보다도 더 사랑하는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느냐, 종적인 아버지와 완전히 하나되었느냐 이겁니다. 그 하나된 종적인 기준을 이어받기 위해서 여러분의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 데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종적 아버지의 사랑의 길을 전통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받기 위해서는 닮아야 됩니다. 닮는 데는 하나님의 종적인 마음을 닮아 가지고, 내적인 하나님의 모습이 전체를 대했으면 동서남북 사방을 대해서 이것이…. 내적인 하나님 대신의 기준을 닮아났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바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상응하여 횡적인 몸의 기준이 일치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90각도로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 자리가 타락하지 않는 본연의 부모가 설정되는 자리였습니다. 내적 하나님, 외적 하나님의 사랑의 출발 기점이었다는 거예요. 여기에 뿌리를 박고 내가 태어났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곳이 본래 인생이 태어나야 할 근원지였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타락은 뭐냐? 이 각도가 달라진 것입니다. 종적인 기준은 맞는데 몸적인 기준이 더 뻐드러졌든가, 안으로 구부러졌든가 했다는 겁니다. 이것을 재차 수습하기 위한 방편으로 역사상에 나타난 것이 종교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권은 몸뚱이를 치는 겁니다. 몸뚱이는 자연적으로 흡수 처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억제하고, 제재를 가해서 양심의 기준에 따라가야 된다 이겁니다.
타락하지 않고 본래의 참된 사랑에 의해 생겨났다면 몸과 마음은 절대적으로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이중인격을 좋아해요? 「아니요」 왜 싫어해요? 이중인격을 왜 싫어합니까? 싫어한다는 것은 그 싫어하는 표준의 이론도 모르고, 설명도 못 하지마는 그 표준에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맞지 않아요. 그러니까 불합격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싫어한다는 거예요. 표준을 중심삼고 싫고 좋음이 나타난다고 설명을 못 하지만, 우리의 양심은 바른 자리에 있기 때문에 각도가 틀린 것을 안다는 겁니다. 왜 이중인격을 싫어하느냐? 낙제품이기 때문입니다. 등외품이기 때문에. 「노멘!」 노멘? 그래, 아멘 대신 노멘이야. 이건 통일교회에서 만든 단어입니다. 노멘이다 이겁니다. (웃음)
여러분 등외품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남자나 여자나 사람으로 태어난 존재 중엔 그러고 싶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한 사람도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어딜 가든지 `내가 사랑을 찾아갈 수 있는 본질적인 형태를 갖추었느냐' 하는 경고를 언제나 생각해야 됩니다. 그걸 생각지 않는 사람은 참된 사랑의 길을 찾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부인 된 사람이 남편을 대하게 될 때에, 부인의 마음이 90각도의 완전한 기점에 결합될 수 있는 사랑을 자극시킬 수 있는 아내로서의 입장을 취하고 있느냐? 또 남편으로서의 입장을 취하고 있느냐? 자녀로서, 부모로서 그런 입장을 취하고 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이 기준에 맞지 않는 자는 불합격입니다. 어떤 기점이 있어야 될 거 아니예요?
모든 것이 시작되는 출발이라는 것은 반드시 그 원칙의 내용을 중심삼고 출발하는 겁니다. 물이 얼게 될 때 한꺼번에 `요이 땅!' 해서 어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점에서부터 얼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관점에서, 내가 보는 눈의 시선은 참된 사랑의 뿌리를 가진 자리에서 보는 것이어야 만점이다 이겁니다. 그런 자리에서 듣는 것도 참된 것입니다. 제일 참된 거예요. 지금 여러분은 그걸 모른다구요.
우리 오관이 움직이는데, 오관은 제멋대로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통일적인 이상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 동서남북으로 전부 다 위치는 다르지마는 움직이는 목적과 출발점은 같아야 된다 그겁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참된 사랑의 뿌리를 갖고, 그 참된 사랑의 뿌리로부터 참된 사랑의 순을 따라 보는 그 기준이 참입니다. 거기에 무엇이 있어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말하는 것도 그렇고, 몸과 마음은 이 우주의 대원칙 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창조이상에 일치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위하는 상대권을 바라며 사랑을 따라가는 것이 보람 있는 인생길이다 이겁니다.
여러분, `수평이다' 할 때 그 수평은 벌써 수직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그것 수평이야' 라는 말은 그 말하기 전에 수직을 표준해 놓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수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틀린 겁니다. `수직이다' 할 때는 벌써 수평선이라는 선유 조건을 놓고 수직이라는 말이 벌어진 거예요. 이것은 뭐냐 하면 내가 틀림없이 수평의 자리에 있다 하게 되면 수직은 나와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수직이다 할 때, 그 수직 앞에는 수평이 같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이 수직적 사랑이라면 수평적 사랑이 있어야 되는데 그 수평적 사랑은 누가 차지할 수 있느냐? 누가 차지해야 할 사랑의 자리겠어요? 그 자리는 타락하지 않고 완성되어 본연의 참사랑과 화합되어야 할 참된 조상의 자리였더라 이겁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되었더라면 그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과 몸을 닮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음과 몸을 닮아 태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나'라는 존재입니다.
나, 내가 무엇이냐 이겁니다. 여러분 자신은 뭐예요? 그저 일생 동안 밥 먹고 살아가는 고등동물로서의 여자이고 남자예요? 그러면 여자는 뭣이고, 남자는 뭐예요? 그것이 전부 다 나와 관계된 문제입니다.
오늘 제목이 무엇인가요? 「고맙고 감사한 하늘 아버님」 고맙고 감사한 하나님 아버지. 여자가 뭐냐고 묻게 될 때 `여자는 여자지' 또 남자는 뭐냐고 할 때 `남자는 남자고…' 이런 대답은 그 자체를 두고 하는 말이지, 원인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여자는 이러한 것이 여자이고, 남자는 이러한 것이 남자라고 대답해야 됩니다.
그래, 여자라는 존재는 왜 태어났느냐? 이게 철학적 문제입니다. 내가 왜 태어났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구요. 태어나다 보니 남자라는 모양을 갖고 태어났고, 태어나다 보니 여자의 모양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겁니다. 여러분들이 태어날 때 `나 태어난다. 요이 땅!' 이러면서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길을 가 가지고 내가 이렇게 태어났다!' 그래요?
우리가 태어나는 데는 언제 어떻게 되어서 태어났는지 모르지만 동기가 있습니다. 그 동기는 뭘까요? 「하나님의 사랑」 아아,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은 그만두고. 동기가 뭐예요? 어머니 아버지이지요. 그럼 어머니는 뭣이고, 아버지는 뭣이예요? 어머니는 여자라는 고등동물이고, 아버지는 남자라는 고등동물입니다. 그런데 남자 여자끼리 왜 함께 살아야 될까요? 남자는 남자끼리 살고 여자는 여자끼리 살면 얼마나 좋아요? 「아닙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남자가 왜 태어났으며 여자가 왜 태어났느냐 이겁니다.
남자라는 동물은 여자라는 동물 때문에 태어났다, 그래요? 「예」 여자 때문에 태어났기 때문에 여자를 중심삼고 보면 남자는 피동적입니다. 피동적인 남자는 자기 때문에 태어났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남자라는 동물은 여자라는 동물 때문에 태어났다 이거예요. 여자라는 동물을 위해서 태어났다 이겁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안 그래요? 마찬가지로 여자라는 동물은 남자라는 동물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위해서 있다'는 겁니다. 왜 위해서 있어야 되느냐? 하나님이 위해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위해서 태어난 모든 존재는 위함의 결과적인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위하는 자리에 서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위해서 존재하게 되어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여자가 여자 때문에 태어났어요? 남자가 남자 때문에 태어났어요? 사람이 사람 때문에 태어났습니까? 나라가 나라 때문에 태어났어요? 아닙니다. 모든 게 마찬가지입니다. 나라 그 자체만을 위하려고 하는 나라는 이 우주에서 제거됩니다. 그러나 세계를 위하려고 하는 나라는 흥합니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은 무엇으로 분별하느냐? 보다 위하는 사람이 보다 선한 사람이다, 이렇게 분별하는 겁니다. 왜? 하나님은 보다 위하려고 하는 근원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까운 입장에 선 것이 보다 위하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평가할 수 있는 입장에서 보면 보다 높고 보다 높기 때문에 보다 가치가 있는 것이다, 보다 위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가치 있다, 가치 있기 때문에 중심존재가 되고, 가치 있기 때문에 전체의 표준형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오늘날 위해 사는 것을 좋아하는 남자 여자를 난 보지 못했습니다. 위해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원리원칙에 위배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해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별동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먼저, 이 천지의 대주재로부터 시작되는 근원과 상치되는 입장의 존재가 왜 생겨났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과 관계없는 것이 생겨난 것은 타락 때문입니다. 고장났기 때문에 완전한 물건이 아닌 불량품이 생겨난 것과 마찬가지로 고장이 났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래 고장이 나 있는 물건을 보니, 전부 다 자기를 위하라고 합니다. 아내 된 사람들은 남편에게 `나를 위해 있어라' 한다 이거예요. 그런 세계를 사탄세계라고 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니 위하라고 하는 족속은 악한 무리요, 위하려고 하는 족속은 선한 무리입니다. 선은 어떠한 것이냐? 선은 영원한 것입니다. 반대로 악은 컸다가 작아지게 마련입니다. 악은 점점점 작아지는 것입니다. 위하라고 하는 것이 한계선까지 가게 될 때에, 그 그릇에 담지 못하게 되면 뒤집어집니다. 완전히 뒤집혀 넘어져요. 넘어지게 될 때는 끝장이 나는 것이요, 이 우주에서 제거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하려고 하는 사람은 남아지는 것이고, 위하라고 하는 사람은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한 사람은 어떠냐? 가만있는 사람, 선한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너, 나를 위해! 위해! 안 하면 죽여' 이럽니다. 위하지 않으면 주먹질한다구요. 그러니 거기에는 악이 조성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은, 위하라고 하는 존재는 이 우주가 제거해 버립니다. 보라구요. 형님하고 동생하고 있는데, 형님은 언제나 동생보고 위하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동생도 위하라고 하면 망하겠으니까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는 용서하지만 네 번 이상이 되면 완전히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동남서까지 갔다가 돌아와야지, 북까지 지나갔다가는 큰일난다는 겁니다
여러분, 미터기 같은 거 보게 되면 말이예요, 한 바퀴 삥 돌고 두 바퀴 삥 돌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360도를 넘어서는 그 기계는 고장난 기계입니다. 정확하지 않은 기계입니다. 한계선을 넘기 전이 안전지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면, 90도씩 직각 기준을 넘지 않게끔 세번째 단계까지만 가야 합니다. 일, 이, 삼 단계까지 갔다 다시 돌아와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 가망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네번째 단계를 넘어서는 날에는 덜커덕 고장이 나는 겁니다. 네지(ねじ;나사)가 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예요. 거기서는 완전히 파괴물이 되는 거라구요.
이렇게 볼 때에, 아무리 형님이 잘했더라도 동생을 못살게 하면 세 번까지는 참아도 네번째에는 `왜 그래, 형님!' 하고 들이치게 됩니다. 그렇다고 형님이 `요놈의 자식, 뭐야?' 했다가는 벼락이 떨어지게 돼요. `이놈의 자식아, 형이면 다냐?' 하고 형의 권한을 무시해 버리는 겁니다. 동생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어머니 아버지는 동생 편이 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까닭없이 제재를 가하는 자는 악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역사는 그렇게 가려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악주권이 이 세계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한 것이 나와서 주권을 빼앗으려고 무한히 노력하며 사탄과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개인도 안 뺏기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것을 본래의 정상적 자리에 세워서 세상을 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복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 뜻의 세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하라고 하는 패와 위하려고 하는 패의 싸움이, 악마와 하나님의 전쟁이 교차되는 것입니다. 이걸 똑똑히 알아야 돼요. 이걸 확실히 해야 됩니다. 덤벙덤벙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1차대전에서도 친 녀석이 망했고, 2차대전에서도 친 녀석이 망했습니다. 그래 누가 망했어요? 「친 쪽이요」 3차전쟁은 사상전인데 소련을 중심삼아 가지고 공산세계가 지금 세계적으로 치고 있고, 민주세계는 마냥 맞고 있습니다. 공산세계의 사상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하든지 민주세계,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것입니다. 거짓말로 해도 좋고, 안 들으면 총칼로 협박해서라도 빼앗아라 이겁니다.
협박해 가지고 이상권이 나옵니까? 아무리 자기 손아귀에 놀아날 수 있는 여자라고 해서 협박해 가지고 모든 것이 화합해요? 응? 「아닙니다」 위해 주어야 됩니다. 안 그래요? 살랑살랑 말입니다. 아무리 성난 돼지 같은 여편네라도, 뭐 무지막 뭐라고 그래요? 「무지막지한」 그래, 무지막지한 여편네라도 그저 힘 가지고 하면 대번에 정면에서 떠받습니다. 그렇지만 다정하게 가서 살랑살랑 위해 주면 쓱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천하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힘이 아니예요. 위하는 데에, 모든 것이 화합하고 화동하는 동기와 원천이 거기에 있느니라! 「아멘」 여기에 이의 없지요? 「예」
좋은 여자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이 남자들의 바람입니다. 그러면 좋은 여자는 어떤 여자냐? 남편을 위해 살려고 하는 여자입니다. 기분 나쁘지요? 아들딸을 위해 살려고 하는 여자,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위해 살려고 하는 여자, 더 높은 시할아버지 시할머니를 시어머니 시아버지보다도 더 위하려고 하는 여자, 그런 여자가 장래 그 집안의 사랑을 이어받을 수 있는 후계자가 되느니라.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또, 여자들이 소원하는 것은 뭐냐? 자기를 끝까지 위해 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자 성격이 좀 급해 가지고 앵앵거려도 그 앵앵거리는 것을 꿀꺽꿀꺽 삼키면서 알고도 모르는 척 넘어가고, 여자를 백방으로 낮에도 밤에도 위해 주는 남자일 것입니다. 또한 아침 저녁은 물론이요, 정월부터 열두 달간 춘하추동 위해 주고, 청춘시대뿐만 아니라 노년시대에도 위해 줄 수 있는 남편일 거라구요. 여자는 그런 남자를 원해요, 안 원해요? 「원합니다」
서로가, 남자나 여자나 다 그렇게 원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들의 이상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위하는 한 사람만 찾아가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가 위하려고 하는 중간 지점입니다. 그 중간 지점에 머물 수 있도록 언제나 끌고 갈 수 있는 놀음을 하는 것이 사랑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서로가 위하고 위하면 도는 것이요, 좀더 올라가고 좀더 커진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집은 번창하는 거예요. 만물은 사랑을 따라가려고 하는 사랑의 지남철과 같이 되어 있기 때문에, 마이너스 지남철이 있으면 플러스 지남철이 자꾸 움직여서 따라가려고 하는 겁니다.
여기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 있어요, 없어요? 부자 되는 비결은 뭐냐? 아침부터 전부 다 가져와라, 가져와라, 그래서 됩니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마다 다 내 것 만들겠다고 도적놈같이 모아 놓으면 말이예요, 왔다가 갈 때는 자기를 차 버리고 도망갑니다. 거기에 정착 안 한다구요. 그렇지만 위하고 위하고 또 위해 가지고 참된 사랑으로 접붙이는 데는 천년 만년 안 떨어지려고 한다는 겁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쁘지 않지요? 「예」
사랑이 무엇인지, 진짜 참된 사랑에 눈이 한번 달라붙으면 눈깔이…. (흉내 내심, 웃음) 저기 조는 아주머니가 있어서 그래요. 눈깔이 이렇게 뒤집혀지더라도 그리 가려고 합니다. 이놈의 코도 참사랑이라고 하면 거기에 가 붙으려고 한다구요. 이놈의 귀도 참사랑에 빠져 버립니다. 첫사랑의 속삭임은 정서적인 내용이 풍부하다고 그러지요? 첫사랑, 참된 사랑에 한번 달라붙으면 떨어지려고 안 합니다. 인간의 오관이 한번 참사랑에 접붙으면 떨어지고 싶겠어요, 안 떨어지고 싶겠어요? 「안 떨어지고 싶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영인체와 육신은 무엇에 의해 통일권을 이룰 수 있느냐? 참사랑에 의해서만 통일이 된다는 겁니다. 그 외에는 통일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참사랑권의 구덩이에 가게 되면 물질세계와 영계가 한쪽에서 통통 치면 다 울려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눈을 감고 앉았다 해도, 여기서 통통 치면 파장에 의해 손이 아물아물하면서 `왜 이래? 왜 이래?' 이렇게 움직인다는 겁니다. 참된 사랑의 세포, 참된 사랑의 신경계는 존재세계의 모든 근본적인 원자와 화합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갖고 있느니라! 「아멘」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랑의 자리에 떡 서게 되면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됩니다. 우주는 나의 우주가 돼요. 그 자리에서는 모든 것이 통한다는 겁니다. 모든 것이 통해요.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오늘 제목이 고맙고? 「감사하신 하늘 아버님」 이렇게 볼 때에, 남자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세상 모르고 돌아다녔는데, 여자가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웃으심) 맞아요? 「기가 찹니다」 기가 차요? 「아니예요」 `아니예요' 하지만, 기가 차기만 하리! 이건 사지백체가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놈의 눈깔이 있으면 뭘해요? 그놈의 코가 있으면, 입이 있으면, 귀가 있으면 뭘해요? 백년 이내에 다 없어질 것인데.
남자로서 여자를 발견한다는 것은 최고로 위대한 것입니다. 여자로서 남자가 없는 세상에서 남자 같은 것만이라도 발견해도 그것은 위대한 것입니다. (웃으심) 여자들만의 세계에서 앵앵앵앵 하는 소리 가운데 왕왕왕왕 하니 얼마나 멋져요! 화음이 되거든요. 쿵덩쿵덩 하던 곳에 쿵쿵쿵 하면, 쿵더쿵 쿵더쿵 이렇게 돼요. 그래야 다 어울리는 것 아니예요? 그러니 남자 같은 것만 보더라도 `야!' 하는 거라구요. 여자만 사는 세상에 남자 한 녀석이 나타났을 때, 그 모든 여자들의 웃음과 함성은 최고의 웃음이요, 최고의 함성일 것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안 맞지요, 안 맞아? 「맞습니다」
그래, 억천만 여자 가운데 이십 몇 년 만에 자기가 뽑혀 가지고 한 남자를 만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면 올림픽 승마경기에서 금메달 타는 것과 비교가 될까요, 안 될까요? 「안 됩니다」 아, 금메달이 더 좋지요? 「아닙니다」 그것이 왜? 왜 제일로 쳐요? 「제일 좋으니까」 왜 제일로 치느냐 하면, 최고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최고의 것이예요? 그의 참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를 영원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예요. 영원히 점령하는 것입니다. 이건 놀라운 말입니다.
그 참사랑의 그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꽁꽁 싸더라도 `더 싸 다오. 더 조여 다오!' 하지 `아이고, 이 녀석아 왜 이래?' 하지 않습니다.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그저 꽁꽁 얽어매도, 꼼짝못하게 영원히 벗겨지지 않게 더 얽어매라고 하는 겁니다.
여기 여자들, 그런 마음이 있어요? 자기 남편을 사랑하거든, 사랑하는 남편이 그저 꼬옥 안아 가지고 뼈다귀가 부서져 갈빗대가 가죽을 뚫고 나오더라도…. (웃음) 그거 불행이예요, 행복이예요? 「행복입니다」 아니, 사고가 났는데? 고소해야 할 사건인데? 너무 사랑하다가 갈빗대가 나왔다고 해서 재판을 거는 여자는 없을 겁니다. (웃음)
여자 남자는 왜 태어났느냐?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여자가 남자를 위해서 태어났다면, 그 남자를 왜 위하여야 되느냐? 남자라는 동물이 뭐가 그리 보기 좋아서. 응? 사실 한 남편을 데리고 살려면 구질구질한 게 참 많을 거예요. 어디 나갔다 들어와 옷을 벗어도 말이예요, 여자들은 착 가려 가지고 놓는데 남자들은 바빠 가지고 후다닥 벗어 아무 구석에나 턱 버립니다. 나도 그러는데 뭐…. (웃음) 정말이예요. 나 솔직한 사람입니다. 아, 옷 벗을 때 착착 순서대로 여기를 만지고 벗고 여기를 만지고 벗고 이렇게 싹 곱다랗게 벗어 봐요. 그 얼마나…. 그건 여자들이나 하는 짓이지, 남자가 그래서 쓰겠어요? 남자는 후닥후닥 한꺼번에 확! (웃음)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이예요.
여자는 세밀하고, 남자는 울퉁불퉁하고 우락부락합니다. 그래 우락부락하고 울퉁불퉁한 남자가 좋아요, 샌님 같고 아씨 같고 아줌마 같은 남자가 좋아요? 눈이 뒤룩뒤룩하고 울퉁불퉁한 남자를 여자는 좋아할 겁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참사랑을 그려가는 사람들의 생활은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꽃아, 너도 나한테 자극을 주기 위해서 아름답게 피었구나! 너의 조상이 아름다운 핑크 칼라의 참된 사랑을 얼마나 동경했기에 너 역시 핑크 칼라로 나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왔구나!' 그렇게 생각해 봐요. 그거 멀어요, 가까워요? 아이구, 똑 따서 지갑에 넣고 겨드랑이에 갖다 끼고 싶지요. (웃음) 그런 거예요. 제일 가까이 하고픈 거예요. 사랑이 무엇인지….
내가 태어나는 것도 사랑에 의해서 태어났고, 사는 것도 사랑에 의해서 살아야 되고, 죽는 것도 사랑의 세계를 향해서 죽어야 됩니다. 보라구요. 죽음은 무서운 게 아닙니다. 죽음은 시집가는 거와 같아요. 이동하는 겁니다. 제한된 인간의 사랑,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의 한계권에서 시공을 초월한 무한한 세계로 연장하는 겁니다. 무한한 세계로 도약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어머니 복중에 있을 때 답답한 걸 느꼈어요? 복중에 그저 이렇게 있으면서도, 어머니 배를 차면서도 답답한 줄 몰랐거든요. 이렇게 있으면서 이게 제일인 줄 알았다구요. 그런데 보자기가 터져 가지고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 편안했어요? 머리를 보게 되면 머리가 긴 수박통처럼 되어서 나옵니다. 여러분의 머리를 한번 수박통처럼 생각해 봐요. 그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하나님은 참 조화의 왕이십니다. 머리가 단단한 돌 같으면 첫 아이 낳을 때 어머니가 얼마나 죽었다 깨겠어요? 그것이 쭉 수박통같이 늘어나서 도수를 맞출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동네에 가 보면, 그늘 아래에서 담뱃대 물고 뻐끔뻐끔하면서 쓱 먼 산을 보고 있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사랑에 취해 가지고 담배 먹고 있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가신 님은 언제 오시나, 뻐끔 뻐끔…. (웃음) 왜 그래요? 그게 나쁜 게 아닙니다. 그렇잖아요? 저 앞산 너머에는 연기가 불컥불컥, 여기서는 뻐끔뻐끔. (웃음) 그게 좋은 거예요. 아내와 더불어 키스함으로 말미암아 딴 세계에서는 연기가 서로 물컹물컹…. 그것 생각해 봐요, 얼마나 시적인가? 거기에는 시 한 편만이 아닙니다. 몇백 편이 흘러가고 있다는 겁니다.
술 먹는 것도 나쁜 것 아닙니다. (웃음) 정말이예요. 사랑에 취해 님을 그리워하는 게 얼마나 절절해요? 먼 데 있으니 상상할 수밖에 없는데, 술 한 잔 쭈우욱 취하는 맛에 `님이여!' 그게 얼마나 멋지냐 이거예요! 그렇다고 술 먹으라는 게 아니예요. (웃음)
다만 사랑을 중심삼고는 만사가 오케이입니다. 사랑의 길은 틀릴 수가 없어요. 가는 길이 딱 정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자 여자는 왜 태어났을까요? 남자는 왜 태어났어요? 「여자 때문입니다」 여자 때문에, 여자는 왜 태어났어요? 「남자 때문입니다」 남자 여자는 왜 태어났어요? 「사랑 때문에」 결론은 간단합니다. 참된 사랑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럴 때는 눈이 크던 남자도 게슴츠레해지고, 성난 남자도 다 녹아지는 겁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겠지요? 「예」 사랑이 무엇이냐 하면, 완전히 주관할 수 있고 완전히 통일시킬 수 있는 힘입니다. 사랑이 없는 데는 통일도 없습니다. 힘이나 어떤 수단, 조건적인 제안을 통한 연합적인 기준을 중심삼으면 그것은 언제든지 갈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을, 참사랑을 중심삼고는 갈라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말이예요, 우리 미국 통일교회 식구들 있지요? 내가 여기 한국에 와 있으면 그 미국 통일교회 교인들이 `아이구, 그 한국 사람, 문 아무개가 미국에 와 가지고는 소문을 내고, 그저 요사스럽게 떠들더니 이제 잘 갔다. 다시는 안 왔으면 좋겠다' 그러겠어, 욕을 먹으면서라도 `아이구, 와야만 되겠다'고 그러겠어? 응? 「어서 오세요」 그러면 한국에는 오지 않고 영원히 떠나 버릴지어다, 어때요? 「노멘」 (웃음) 그래 `노멘' 하게 되면 나는 무슨 맨(man;사람)이 되어야 될까요? 예스 맨(Yes man)이 돼야 됩니다, 예스 맨.
그러니 얼마나 고달파요? 고달플 것 아니예요? 문총재가 고달프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고달프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벌써 시공을 초월해 가지고 계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를 사랑해 주세요' 라고 말하기 전에 `그래 그래, 본래부터 그런 거야' 하신다는 거예요. 한 달이라도 사랑하겠다고 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아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본래부터 그런 거야. 네가 원하는 것은 참사람 아니냐? 그게 본래부터 그런 거야' 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보좌에 턱 앉아 계시면 수많은 인간들의 `무엇 주시오. 무엇 주시오' 하는 기도 소리가 하루종일 왕왕거려서 귀가 막히실 겁니다. (웃음) 요즈음 마이크 장치가 발달해 가지고 세계인들 전부가 라디오로 통하는데, 하나님 귀가 라디오만 못하겠어요? 저 골짜기 골짜기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 대해서 `아이고, 이게 소원입니다. 도와주소! 도와주소!' 그럴 것이니, 하나님 귀가 터질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음, 내가 다 안다. 참된 사랑의 주인은 모든 것은 다 해결하지. 줄께' 하신다는 거예요. 10년, 20년, 30년, 50년, 100년, 1,000년, 우리들은 기다리기가 지루하겠지만, 하늘나라는 시공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해가 없어요. 하루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천년을 기다린다 해도 천년이란 개념이 없습니다. 그저 순간입니다.
그래, 인간세계에서는 그 천년을 기다리자니 얼마나 가슴이 타겠어요? 그러니까 하나님 노릇 해먹지, 인간 같으면 하나님 노릇 해먹겠어요? 하나님의 세포가 다 도망간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뼈다귀도, 그 가운데의 골수까지 다 날아가려 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문제는 간단합니다. 여러분들이 암만 기도하고, 또 살려 달라고 해도 참사랑만 받으면 다 끝나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것 주마!' 그러신다는 겁니다. 「아멘!」
자, 오늘 제목이 무엇인가요? 「고맙고 감사한 하늘 아버님」 왜 고맙고 감사해요? 여기 곽정환이 남자로 태어났는데, 여자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뻔했어요? 여자가 없었으면 어땠을 것 같아요? 그래, 여자가 있다고 하자구요. 여자가 오물조물한 아기로 태어나서 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 뻔했어요? 무얼 먹고 크겠어요? 남편 살 뜯어먹겠나요? (웃음) 「아니요」 무얼 뜯어먹고 크겠어요? 모든 만물을 전부 먹고 큰 것입니다. 만물들에는 쓴 것, 단 것, 신 것, 시금털털한 것, 다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몸뚱이에는 쓴 맛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습니다」 짠 맛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신맛은? 시큼털털한 맛 별의별 맛이, 오미자가 다 들어 있다는 겁니다.
그게 뭘까요? 이 세상 모든 맛의 분자들이 전부 다 와서 붙었지요? 여러분들이 갖다 붙였어요, 그것들이 여러분한테 와서 붙었어요? 어떤 거예요? 여러분들이 끌어다 붙였어요, 그들이 와서 달라붙었어요? 「와서 달라붙었습니다」 왜 달라붙었을까요? 「참사랑 달라고요」 그래 그래, 참사랑을 달라고…. 모든 세포들에게 있어서는 참사랑을 찾아가는 것이 최고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은 소한테 먹히는 것보다도 높은 사랑의 자리에 있는 인간들에게 먹히는 것을 더 행복해합니다. 그리고 더 높은 인격자에게 먹히는 것을 소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존재가 있으면 재까닥 달라붙는다는 거예요. 그런 자리에서 참된 사랑을 가지고 먹어 주는 물은 배 안에 들어가서 설사를 일으키는 법이 없다 이겁니다. 그거 얼마나 안전해요! 마음으로 그렇지 않더라도 얼마나 기분이 좋아요!
입 안에 썩 들어오면 아내를 사랑하듯이 쩝쩝 빨아먹어야 된다는 겁니다. 첫날밤에 아내를 품고 키스하는 이상 쩝쩝, 그게 죄 아닙니다. 그럴 때 만물들이 `아이고, 이 쌍놈의 남자, 쌍놈의 여자' 그러겠어요? `아이고, 훌륭한 영감님 고맙습니다. 아이고, 아저씨 고맙습니다. 아씨 고맙습니다. 내가 당신의 세포 가운데 제일 귀중한 세포가 되겠소. 매일 뽀뽀해 주는 입술 세포가 되면 좋겠습니다. 사랑받는 젖꼭지 세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소원할 겁니다. (웃으심) 그게 만물들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접촉될 수 있는 가장 첨단을 향해서 가겠다 하는 것이 만유의 존재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서 만물들을 흡수해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람들이 참된 사랑을 가지고 먹게 될 때에는 만사가 형통하고 모든 천지에 화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이 찌고, 건강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병 없이 사는 거예요. 병이 나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욕심 때문입니다. 남의 것 훔쳐 먹고, 도적질해 먹으면 그 만물들이 소음을 냅니다. `아이고, 나 죽는다! 나 도망가야겠는데, 갈 수 없구나! 나 죽는다!' 그런다는 겁니다.
자, 여러분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놀음을 했어요? 좋은 놀음을 했다고 생각해요, 나쁜 놀음을 했다고 생각해요? 나쁜 놀음을 더 많이 했어요, 좋은 놀음을 더 많이 했어요? 「나쁜 놀음을 더 많이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옥가야지요. 「아니예요. 지금은 아버님 모시고…」 아이구, 아이구…. (웃음)
대개 변소에 척 들어가게 되면 귀찮게 하는 것이 파리입니다. 파리, 파리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냄새나게 되면 휘익 찾아옵니다. 그러니 냄새나게 하지 말라 이겁니다. (웃으심) 이 파리까지 없어 보라구요, 어떻게 되나. 한번 윙 지나가면 깨끗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파리는 더러운 곳을 청소하라고 하는 예보 전달자다 이겁니다. (웃음) 전령자라는 거예요. `고맙구만. 그래, 고맙다. 깨끗이 해줄께' 하면 가지 말라 해도 싹 갑니다. 세상을 이렇게 생각할 때 불행한 거예요, 행복한 거예요? 「행복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이 뭐라구요? 「고맙고 감사한 하늘 아버지」 고맙고 감사한 하나님 아버지. 그러니까 통일교인들을 가만 보면 말이예요, 박보희도 가만 보면 30대 같아요. 김영휘도 그렇고, 곽정환이도 그래요. 저기 최선생은 칠십이 넘었어도 사십으로밖에 안 보이거든요. (웃음) 통일교회 사람들은 사는 방법이 달라요. 모든 것을 전부 다 사랑으로 대해 주고, 사랑을 중심삼고 화합하면서 연결시켜 살려고 합니다. 쓱 방에 누워서도 가정 집물들을 보면서 `야, 너희는 나 때문에 동원되었구나!' 그럽니다. 시계가 똑딱똑딱하고, 마이크가 소리나고, 이러한 것 전부가 사랑스런 주체를 중심삼고 화합하기 위한 상대적 존재로서 존재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존재하는 그 자체가 행복스런 환경이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사랑을 배우는 데는 어디서 배우려고 합니까? 만물에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1년에 한 번씩 애기를 낳지요? 그런데 혼자 살겠다고 하는 여자들, 여자들끼리 살겠다고 하는 여자들이 사람이요, 동물이요? 「동물입니다」 동물보다 못합니다. 또 남자끼리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동물이요, 사람이요? 「동물입니다」 동물보다 못합니다.
동물들도 수놈 암놈이 있어 가지고 1년에 한번 새끼를 칩니다. 소를 매 두고 가만 보게 되면 말이예요, 새끼 칠 때가 되면 주인이 아무리 사랑하고 잘 먹여 줘도 소용없습니다. 그때가 되게 되면 흠흠 하고 냄새를 맡습니다. 황소가 있는 소리만 나면 암소는 소리를 치고 있는 힘을 다해 직행합니다. 그렇게 격렬하고 폭발적인 사랑의 충동이 있을 줄을 모를 정도입니다. 그래 사람인 여자가 암소만 못해야 되겠어요, 더 해야 되겠어요? 「더해야 됩니다」 (웃음) 더해야 되지요! 남편을 위할 땐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인간의 가치는 그렇습니다. 동물들의 대부분은 1년에 한번밖에 사랑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1년에 한 번씩 하지 두 번씩 합디까? 새끼를 많이 낳는 동물들 중에는 예외도 있지만 대체로 볼 때 1년에 한 번씩 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권은 무엇이냐? 사랑을 언제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 인간이 가치 있다는 것은 그거예요. 하루살이 같은 곤충은 8년 동안 수중에서 기다리다 하루 공중에 올라가 한번 만나고는 죽습니다. 8년 공을 들여 가지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귀한 사랑을 아내와 남편이, 부부가 만물의 영장으로서 사랑의 정도를 매일같이 이을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이냐? 매일같이 사랑하고 그 길을 이을 수 있다는 것은 이와 같은 참사랑의 작용을 동맥과 같은 작용으로써 만우주에 공급하는 표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남편이 필요하지요? 저 할머니, 영감 있어요? 영감 있나 말이예요? 「6.25때 날아갔어요」 뭣이? 「6.25때」 6.25때! 나는 또 무슨 말이라고. `6.25때 날아갔수다!' 하니 그게 들려야 말이지. (웃음) 난 또 날아가서 또 뭘 바쳤다는 말인 줄 알았어요. (웃음)
서울의 여러 곳에 있던 사람들이 왜 여기에 이렇게 와 앉아 있습니까? 왜 여기에 와 앉아 있어요? 선생님 말씀 들으려고? 말씀은 무슨 말씀? 「참사랑의 말씀」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말씀, 하나님의 생명을 이어받을 수 있는 말씀,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이어받을 수 있는 말씀을 듣고자 함입니다. 그런 말씀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거리를 상관치 않고, 남녀노유 연령을 생각지 않고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좋은 거예요.
무엇 때문에 왔다구요? 「하나님 때문에」 사랑을 위해서, 자기를 위해서가 아닌 사랑을 위해서 온 겁니다. 그걸 알라구요. 위해 산다고 생각하면 기분 나쁜데 사랑을 위해서 한다 할 때는 눈도 `그래 그래', 코도 `그래 그래', 손도 `그래 그래' 합니다. 사지백체, 마음까지도 다 `그래 그래' 하지, 반대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포들도 부르르 떨면서 `그렇지 그렇지' 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와 육계를 통일할 수 있는 요소는 참사랑밖에 없다는 것이 타당한 논리적인 결론입니다. 영계와 육계가 공명해야 합니다. 음차 같은 것을 땅 치면 같은 주파수로 울지요? 그렇듯이 참된 사람, 참되게 위해 살려고 하는 사람 뒤에는 하나님이 따라다니면서 보호하신다는 겁니다.
나라를 위하다 몰려 가지고 감옥에 들어가도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더 높고 귀한 사랑, 민족의 주권자를 넘어설 수 있는 사랑이 나와 같이하는 자리가 있다 이거예요. 그러니 감옥이 지옥이 아닌 천국으로 화하느니라! 거기 감옥에서 차입(差入)을 해주는 아내가 얼마나 고마운지, 찾아 주는 어머니 아버지가 얼마나 좋은지, 그런 자리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수난길이 있고, 아무리 복잡하고, 아무리 뒤에 떨어졌더라도 참사랑을 지니고 가는 사람은 밤이나 낮이나 24시간 행복하니라! 「아멘」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고마와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른다면 그런 사람들은 뭐예요? 나쁜 말로 뭐라 할까요? 「짐승」 짐승보다도, 똥개보다도 못합니다. 똥개보다도 못한 무리예요.
임자네들, 감사해요? 「예」 선생님이 전부 다 보따리 싸 가지고 고향에 가라고 그러는데도? 「그래도요」 보라구요. 처녀가 다 크면 어머니 아버지가 보따리 싸 가지고 쫓아내지요? 쫓겨날 때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뭘 모르고 쫓겨나지만 가서 사랑이 어떻다는 걸 알고 난 다음에는 다릅니다.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에는 사랑하는 사람 곁에 갈 때는 닭의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린다구요. 찔끔거리는 눈물이 아니예요. 닭의똥 같은 눈물이 떨어진다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가 오셨다 하더라도 궁둥이를 어머니 아버지 앞에 돌려대고 남편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해요, 남편을 생각해요? 「남편을 생각합니다」 요사스럽지, 이놈의 사랑이 무엇인지…. (웃으심)
그게 나쁜 거예요, 좋은 거예요? 「좋은 겁니다」 왜 좋은 거예요? 꽃이 피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여자로 태어났고, 사내로 태어났으면 꽃이 피어야지요. 꽃을 피워야 됩니다. 꽃을 못 피우는 것은 죽은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꽃을 피울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어머니 아버지가 쫓아냈던 것이 사랑이었더라 이거예요. 이렇게 모든 것이 참사랑을 중심삼고 엮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알았어요, 몰랐어요? 「알았습니다」
그래 여러분 자신의 몸과 마음이 그 각도를 맞추기 전에는 참사랑하고는 영원히 멀게 됩니다. 그러한 경지를 두고 석가모니 같은 분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을 했잖아요? 그런 말이 다 여기에서 생겼습니다. 하나님도 내 것이다 이겁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땅을 대표해서 홀로 높다는 것입니다. 천상천하에 오직 높은 것은 나뿐이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걸 알고, 우리는 매양 고맙고 감사한 참사랑의 주체인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통일교회 무리이니라! 「아멘」 그렇지 못했던 자신을 오늘 반성하고 이제부터 그럴 수 있는 참다운 여성이 되어야 합니다. 참다운 여성은 그런 사람입니다. 참다운 여성은 몸과 마음이….
내적인 하나님은 종적인 하나님이요, 외적인 수평선상에 서야 되는 것은 인류의 참부모라는 겁니다.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는 종적인 아버지는 있었지마는 횡적으로 설 수 있는 타락하지 않은 참부모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사람들은 그 참부모를 중심삼고 그 모델, 철형에 안 맞지만 맞게끔 만들어 놓겠다고 딱딱 때려서 갖다 붙여 놓은 거예요. 때려 놓으니까 쭈그러들었거든요. 쭈그러졌으니까 위해 가지고 이것을 다시 창조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가지고 자꾸 남을 위하고 위하다 보면 하나가 붙고, 둘이 붙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본연의 형태를 맞추어 가지고 타락하지 아니한 참사랑의 기본원칙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통일교회를 믿는 겁니다. 그렇게 살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모두 손듬) 고마워요. 그래, 다 감사하고 고맙게 살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이 자연의 대우주 세계는 사랑의 이상을 따라 살아야 할 인간을 위해서 지은 사랑의 박물관임을 느끼게 될 때,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높은 산봉에 홀로 피어 있는 진달래꽃도 그 위대함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사시장철 그 누가 보아 주지 아니해도 본연의 자세를 영원히 소망하며 피고 또 피울 수 있는 영원한 모습, 오직 참사랑을 그리워하는 그 모습은 인간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한 교재인 것을 이제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아버지, 만일에 초목이 없었다면, 모든 만물이 없었다면 우리 인간이 제아무리 잘났다 해도 당신이 세워 준 이상의 사랑의 자리에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당신의 사랑으로 베풀어진 이 모든 완전한 소재와 비품을 허락하여 주신 은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을 모시는 참다운 자녀들의 명분이란 것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나를 생각하면서, 우리들을 생각하면서 모든 만물을 지으신 아버지의 손길을 사모하면서 거기에서 당신의 소망의 마음을 저희 스스로도 느낄 수 있고, 다시 한 번 재현하여 내 스스로 만물 앞에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대할 수 있는 제2의 주인의 모습을 갖추게 된 자리가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자리인 줄 미처 몰랐사옵나이다.
이제 해가 가고 날이 감에 따라서, 우리가 높고 크신 아버지의 사랑에 화할 수 있도록 종적인 마음을 따라 횡적인 몸이 움직여야 되겠습니다. 종적으로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횡적으로 영원하신 참부모의 참된 사랑의 결합점이, 오늘날 사랑을 중심삼고 우리 남자 여자들이 출발하여야 할 하나의 기점입니다. 이것을 성사시키지 않으면 만우주의 이상적인 생명체로서의 새로운 가정,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계를 연결시킬 수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그러하오니 이와 같은 심정권을 가지고 매일매일 모든 것에 동화하면서 주체자로서 부끄럽지 않고, 위하는 아버지의 대신자로서 살 수 있는 평화의 중심체가 되고, 행복의 중심체가 될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안식일에도 전국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은 부모님이 계신 곳을 향하여 참된 사랑을 흠모하면서 그 나라를 붙안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가호와 사랑이 함께하고 계시고, 그 나라의 모든 존재물들이 그들의 주위를 옹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아버지 앞에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그들의 앞날에 모든 축복이 자연적으로 환경적 여건을 조성할 것이며, 각 나라에 높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무릎을 꿇을 것을 압니다. 그런 것을 알고 전진하는 통일 무리들의 발걸음이 자랑스럽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말씀과 더불어 만민이 축복받을 수 있는 사랑의 적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