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창조이상으로 볼 때, 우리 인류의 시조인 아담 해와는 틀림없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선한 혈통을 전인류를 통해서 계승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이상적 하나님의 소원이었다. 그 소원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생각지도 않은 결과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타락론을 통해서 배웠다.
현재 사탄권에 속해 있은 사람은 하나님의 혈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즉, 선한 부모의 자녀로 태어나야 할 우리들이 악의 부모를 통해 악의 인연을 맺고 태어났다. 그래서 악을 중심으로 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되어 있다. 이것을 탕감해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탄세계는 상, 중, 하 이런 식으로 계급을 중심으로 하여 쭉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편에서 이것을 원래의 이상의 기준에까지 끌어올리는 데는 탄지 하나님의 소원대로만 할 수는 없다. 단계를 거쳐 쭉 역사적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종의 시대로부터 양자의 시대, 적자의 시대, 참부모의 시대, 이와 같은 단계를 통해서 악의 세계에서 이것을 탕감하고, 다시 하나님의 선한 원래의 이상세계로 되돌리려고 하는 것이 전반적인 하나님의 섭리이다. 수많은 종교나 민족, 또는 문화의 배경이 다른 종교를 세워서 이것을 정리해 오고 있다.
하나의 큰 강을 이루는 데는, 많은 지류가 한 곳에 모여 큰 강이 되듯이 골짜기를 흐르는 강의 방향은 여러 가지로 다르다. 이와 같은 지류를 놓고 보면, 동쪽으로 흐르는 것이 있으면 남쪽으로 흐르는 것도 있으며, 북쪽으로 흐르는 것도 있다. 종교에서도 이렇게 본류를 이루기까지는 과거에 여러 가지의 종교의 형태가 있었다.
지금까지 세계 인류의 배후에서 하나님이 섭리를 이 지상의 인류를 통해 펴 오셨지만 그 방향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것이 점점 역사의 흐름에 따라 지류가 본류에 합병하듯이, 여러 문화는 점점 하나의 사상의 방향을 더듬으면서 어떤 종교의 목적지를 향해서 지금까지 발전해 온 것이다.
이 기간에는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발전해 갈 수 없다. 이 기간에 있어서는 많은 탕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탕감이란 것은 아담 가정에 심어진 것과 같은 경로를 통과하면서 탕감해 가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
가인 아벨의 문제가 걸려 있다. 가인은 아벨을 친 자이다. 보다 선한 입장에 선, 보다 하나님편에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 반대를 해온 자는 언제나 가인의 입장이다. 이와 같은 관계는 타락 이후 오늘까지 역사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여러분도 그와 같은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들 자신의 하루의 생활에 있어서도 언제나 자신을 중심으로 하고 보면 가인적이든가 아벨적이든가 그와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또, 한 시간에 있어서도 그러한 관계에 있다. 전후관계, 좌우관계, 상하 관계에 있어서 모두 선악을 중심삼고 보면, 한쪽은 하나님에게 기울어져 있고, 한쪽은 반대쪽에 기울어져 있다. 이것이 우리들 일체의 생활과 연결되어 있다.
한마디의 말을 중심삼고 보아도 그것은 가인 아니면 아벨의 입장이 된다. 어제의 기준에서 볼 때, 오늘 말하는 자신의 입장이 달라졌는데 어제보다 좋으면 아벨의 입장에 선 것이요, 나쁘면 가인의 입장에 선 것이다.
일체가 그와 같은 관계에 있다. 이런 인연을 맺어서 하나님은 보다 아벨편을 향하게 하려 하고, 사탄은 그 반대편으로 끌어가려고 하고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아벨쪽에 보다 다가서서 높이 올라가면 기쁨이 있다. 이것은 기쁘다. 기쁨이 온다. 그 반면에 사탄편인 가인의 방향에 끌려간다고 하면 이유없이 슬픔을 느낀다. 그래서 기쁨과 슬픔의 교차점을 만들어 온 것이 우리 선조로부터 지금까지 인류가 걸어온 길이다. 우리의 매일의 생활을 볼 경우에는 자신에게 손해되는 때는 슬픔을 느끼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때에는 기쁨을 느낀다. 슬픔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는 것은 결국 가인 아벨의 문제를 중심으로 해서 이것이 엇갈리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선한 입장에 서면 일보 전진하고 하나님쪽에 가깝게 된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세계가 해방된다. 아벨의 입장에 선 사람은 지금까지의 입장보다 전진하고 싶은 것이 소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반하여 후퇴할 경우에는 거기에 비례한 슬픔이 자연히 생긴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에게 도달하는 것이다. 그런 기준을 중심으로 우리들은 기쁨을 느끼고 슬픔을 느낀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우리들 인간은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통해서 사회를 연결하고, 국가를 연결해 세계에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인간이 아무리 사회인이라 해도, 개인을 연결한 것이 사회이고, 국가이고, 세계이므로 결국 이와 같은 인간들을 해방하는 데는 개인을 해방하는 운동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정의 해방의 동기도 개인에게 있다.
국가를 해방하고 세계로 가는 길을 여는 것도 결국 개인과 개인이 합하여 그러한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목표로 해서 하나님은 종교라는 기관을 만들어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에 가깝게 하려고 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섭리이다.
그러면 섭리의 궁극의 목적을 무엇인가? 지금까지 사람들은 세상을 위하여 헌신한다든가, 세상을 위하여 이익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라고 생각해 왔다. 종교인들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삼고 생각해 보면, 일반세계에 대해 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제2의 목적이고, 직접적인 목적은 참부모를 지상에 세우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악한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을 완전히 탕감해 승리하는 것은 선한 부모를 여하히 세우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대한 문제이다.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 외적인 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발전한다. 악의 세계가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배후에서 하나님도 그런 기대를 만들어 올라가는 데는 혹은 천사장권, 혹은 종의 권으로 넓혀 간다. 거기에서 한 단계 올라가 양자권으로 넓혀 간다. 그 양자권으로부터 한 단계 올려 적자권에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적자권을 중심삼고 보면 여기에도 가인 아벨이 있다. 언제나 가인 아벨이 있다.
타락한 부모에 의해 태어난 가인 아벨은 서로 다투고 떨어져 간 가인 아벨이다. 우리들 복귀시대에 있어서 적자(嫡子)로 설 수 있는 자리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적자가 될 수 있는 자리는 가인 아벨과 같이 싸움하는 자리는 아닌 것이다. 가인 아벨이 완전히 하나가 된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타락권을 넘어설 수가 없다. 우리 원리로 말하면, 실체기대를 세움으로써 타락권을 극복할 수가 있다. 그러나 타락권은 극복했지만, 그리고 소생, 장성 기준의 탕감권을 통과해 오고 있지만, 장성기준은 실체기대를 승리적으로 세우지 않으면 극복할 수가 없다.
그리고 완성기준에 들어갔다고 해도, 이것은 아직도 혈통적으로는 완전히 청산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이므로 혈통적으로는 아직 청산되어 있지 않다. 혈통적 청산을 하는 데는 반드시 메시아가 필요하다. 그래서 믿음의 기대, 실체기대,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타락한 인간에게는 절대로 필요하다. 최후의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어떻게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만들어 메시아를 통해 자신이 혈통전환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적자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아벨과 가인이 종적으로 하나될 수 있는 길은 없다. 가인 아벨을 통해서 아담 해와의 실패를 복귀하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종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는 기준은 없다.
아담 해와에게는 이것이 없어졌기 때문에, 적자권을 바라고 있는 우리 들자게 있어서는, 종적으로 맺어질 부모와 그 자식이 하나가 된 조건이 세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양자의 입장에서는 하나되어 올라갈 수 없다.
타락하지 않은 적자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완성기준에 올라갈 수 없는 것같이, 우리 인간은 그 단계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도, 아무리 가인 아벨이 하나가 되었다고 해도, 타락하지 않은 부모의 기대가 복귀되지 않는다면 종적으로 올라가는 길은 생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참부모의 기준을 세우게 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을 중심으로 가인과 아벨이 하나됨에 따라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생긴다. 참부모의 기준을 세우려면 반드시 혈통전환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은 단 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
타락이 장성기 완성급에서 되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원상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타락한 반대의 경로를 통해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담 해와는 사랑의 문제를 중심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의 복귀노정에 있어서도. 그 기준에 도달했다면 반드시 사랑의 문제를 중심으로 해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는 사탄의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랑의 문제를 극복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참부모의 사랑에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것을 극복할 길이 없다. 그러므로 타락한 부모의 혈통을 이어받은 우리들 타락권에 있는 인류는 최후에는 부모를 맞아 종적으로 하나가 되어, 타락권을 극복하는 길을 더듬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원리의 입장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은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반드시 남녀가 짝짓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하고 있는 축복이다. 그러므로 축복은 자기 나름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종적 중심인 부모를 중심으로 해야 된다.
타락세계에 있어서 타락의 혈통을 받아 결혼하는 사람들까지도 자기들을 중심으로 결혼하지 않는다. 부모를 중심으로 해왔다. 그와 같이 복귀 노정에 있어서도 참부모가 나와서 종적 부모로 완성하는 것과 동시에 가인 아벨이 하나됨으로써 승리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입장에서 축복을 이룸에 따라 타락의 한계를 처음으로 극복할 수가 있다.
그것은 혼자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축복이라는 문제를 통해서 장성기 완성급 기준을 극복한다. 즉, 완성기 소생급 기준에 올라갈 수 있다. 축복받은 가정에게는 7년이라는 기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3단계의 기간인 소생기간, 장성기간, 완성기간 7년을 합하면 21년이니까, 완성기간 7년이 남아 있다. 이것은 아직 누구도 가지 않은 입장에 있다.
여기에서 누구든 7년간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원리의 기준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왔다면 반드시 7년간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기간에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면 인간이 타락할 때의 부모의 심정을 계승함과 동시에 잃어버린 모든 것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가 하면, 먼저 만물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실체가 사탄에게 더럽혀져 버렸다. 그리고 심정을 빼앗겨 버렸다. 이 모두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물의 문제, 실체의 문제, 심정의 문제를 완전히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해결하여 완성기간을 통과하지 않으면 완성기준에 도달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의 원리 원칙이다.
완성기준에 오르기까지의 7년간은 인류역사의 6천년과 성서에 의하면 재림주가 오신 후에 천년왕국시대가 오는데 그 천년을 플러스하여 7천년 역사에 해당한다. 그것을 이 7년간에 다시 탕감하는 기준을 세워야 하고, 내외가 함께 승리의 기준을 결정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기간에 만물과 함께 축복을 받으면 가정의 기준이 출발된다. 만물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고, 실체를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심정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횡적으로 보면 만물은 소생이고, 실체는 장성이며, 심정은 완성이다. 이 횡적 기준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그리고 종적인 섭리를 모두 횡적으로 벌여 놓은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만물의 기준은 구약시대에 해당하고, 실체기준은 신약시대에 해당하며, 심정기준은 성약시대에 해당한다. 우리가 심정세계를 포착하게 된 것도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 가지가 완전히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구약시대는 만물을 중심으로 해서 탕감하고, 신약시대는 예수님을 통해서 탕감한다. 하나님의 자녀, 실체를 중심으로 한 탕감시대다. 이것이 승리적 결과가 되었기 때문에 심정적 기준이 세워진 것이다. 그와 같은 가정기준이 지상에 처음으로 섰다는 기준이 축복받아 선 기준인 것이다.
축복받은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자녀가 있다. 그리고 그 앞에 무엇이 있느냐 하면 믿음의 자녀가 있다. 예수님 같은 외적인 실체의 입장이 믿음의 자녀이다. 직계 자녀는 재림한 실체 자녀와 같은 입장이다. 예수님이 죽지 않고 지상에서 완성해야 할 자녀의 위치가 자기 자녀의 위치가 되는 것이 지금은 영계의 기독교와 지상의 기독교가 하나로 되어 있지 않다.
영계에는 영적 기독교권 즉, 낙원권이라고 하는 것이 생겨났다. 그리고 실체적 기독교권이 지상에 있다. 영적 기독교권과 지상의 기독교권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님이 둘로 나뉘어 버렸으므로 이것을 다시 하나로 만든 입장으로 되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평면적 기준에 있어서 자신의 직계 자녀는 실체를 상징하고, 믿음의 자녀는 영적 상징인 것이다. 말하자면 가인의 입장이다.
가인은 천사장권이다. 아벨은 지상의 아담권이다. 지상과 영계가 하나가 되어야 된다. 지상과 영계가 나뉘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로 하는 데는 여러분들의 믿음의 자녀와 실체 자녀가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뉘어진 영계와 지상의 기독교가 하나되지 않은 결과가 된다.
그러므로 가정에 의해서 영계와 지상으로 갈라졌으므로 근본적으로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지상에서 평면적으로 이것을 일치시킨 기점을 만들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믿음의 자녀와 축복받은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가 하나가 되어 영계와 지상이 갈라진 것이 연결되게 해야 한다.
이렇게 가인 아벨이 하나가 됨으로써 이상적인 부모의 자리가 마련된다. 가인 아벨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이상적 부모는 복귀될 수가 없다. 가인 아벨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부모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길도 나오지 않고, 가인 아벨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부모가 복귀될 수 없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탕감의 기대로서, 믿음의 자녀와 자신의 자녀가 완전히 하나가 된 입장에 서면 타락하기 전에 천사장과 아담이 하나된 것과 같은 입장에 설 수 있다. 그와 같은 입장에 서면 하나님으로부터 언제든지 사랑받을 수 있다. 하나님은 부모의 입장인 것이다. 횡적으로 자신의 믿음의 자녀와 자신이 축복받아 태어난 자녀가 완전히 하나되면, 하나님의 이상적인 사랑의 위치, 참부모의 위치가 처음으로 복귀된다. 종적 역사과정을 횡적으로 전개하여 탕감하고 승리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우리들 통일교회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다.
결과를 복귀하려면 그 원인을 원상대로 바로 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복귀될 길이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절대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믿음의 자녀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하면, 아담을 중심삼고 보면 세 천사장이 있었다. 그리고 해와에게 있어서도 세 천사장이 있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 아담 해와는 세 천사장을 한평생 자신을 위해 봉사하는 종의 입장에 세우지 않으면 완성된 하늘의 자녀가 되지 않는다. 그것을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남자나 여자나 세 사람의 믿음의 자녀는 평면적으로는 세 천사장이 된다. 그러므로 완전히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우리들이 전도하는 것은 20세, 혹은 30세, 큰 다음에 하나가 되는 길을 구해 가는 것이다.
원래는 천사장이 하나님과 하나가 된 자리에서 아담 해와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지요? 천사장이 먼저 창조되어 하나님과 하나가 된 자리에서 아담 해와가 창조됐다는 것이다. 그 기준을 우리들은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믿음의 자녀가 먼저 생기지 않으면 안 된다. 원래는 믿음의 자녀가 앞서 준비된 기대 위에서, 아담 해와가 만들어지던 것과 같은 경로를 밟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식으로 되어야 할 것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면, 예수님이 오실 때에는 이미 믿음의 자녀와 같은 기대, 타락하기 이전에 천사장을 창조하고 아담을 창조한 것과 같은 기준으로 이스라엘 국가와 유대교가 천사장권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예수님과 하나가 된 경우에는 소원이 그때에 전부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가 바라고 가는 바와 같이 만약 국가기준이 단번에 복귀되면 그와 같은 조건을 바로잡아서 우리는 수고하지 않아도 전부 그것을 원리 기준에 일치시킬 수가 있다.
이것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거듭 반대하고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에, 모든 것이 없어져 버렸다. 특히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 기독교는 영육을 함께한 천사장의 입장은 아니다. 어떤 입장이냐 하면, 영적인 입장이다. 그런 자리에 선 기독교이다. 그러므로 영육 일치한 기준을 이루려면 예수님이 다시 오시지 않으면 안 된다. 영적으로는 천사장 기준이 되어 있지만. 육적으로는 아직 되어 있지 않다. 이것을 다시 연결시키는 탕감조건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재림주님이 오셔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예수님의 시대는 그렇지 않았다. 영·육적으로 천사장 기준이 지상에 세워져 있었으므로, 그때 영적, 육적 아벨을 중심으로 해서, 곧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가 되었다면 단번에 하나될 수 있었다. 예수님이 죽었기 때문에 영계와 육계가 나뉘어졌다. 예수님과 기독교는 영육의 완성을 구해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육적 부분을 다시 연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영적 세계가 배후에서 탕감의 길을 재차 밟아서 지상에서 천사장권 회복운동을 하여 승리함으로써 일치시켜 놓지 않으면 영육 실체권의 천사장권, 이른바 가인권이 생겨나지 않는다.
재림주님이 지상에 오셔서 지상에 개인적 승리권을 세우고, 가정적 승리권을 세우면, 그 가정의 승리권은 한정된 한 가정의 승리권은 아닌 것이다. 그 가정은 세계를 대표한 가정이 되고, 세계의 기독교를 대표한 가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씨족이 연결된 경우에는 그 씨족이 하나의 씨족만이 아닌 세계적인 씨족이 된다. 그러므로 만일 기독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재림주님이 지상에 오셔서 세계를 연결하여 발전시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재차 그러한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와는 다르다. 영육이 나뉘어져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역사적 탕감의 길을 통해 세계적으로 걸어오신 길에 실체적 기준에서 연결되려면 간단한 탕감의 과정이라도 통과해야만 하는 것이므로, 그것이 재림주가 지상에 오셔서 해야 할 일이다.
원래는 재림주가 지상에 오려면 먼저 영계에서 승리권을 완성해야 한다. 그렇게 한 후 지상에 오지 않으면 지상에서 출발 기준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안 되었기 때문에 지상에 오셔서 영계의 승리의 기준을 지상에서 다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어떠한 입장이냐 하면, 야곱이 에서를 굴복시키기 전에 천사장을 굴복시켜 승리한 기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실체적 에서를 굴복시킬 수 있었다는 것과 같다. 즉, 예수님이 천사(사탄)를 굴복시킨 것은, 아담이 천사에 의해 굴복된 것을 탕감복귀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야곱이 에서를 굴복시킨 것은 아벨이 가인에 의해서 굴복된 것을 지상에서 다시 복귀시킨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예수의 입장인 것이다.
내외 두 가지의 승리권을 초래한 것과 같은 일을 지상에서 성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야곱이 천사에게 승리함으로 인해 영적 기준을 모두 인계하게 되었다. 그 기대 위에 실체에서를 굴복시킴으로써 실체세계의 가인을 승리한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영적 승리의 기대가 처음으로 세워졌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와 하나가 되었다면, 영육 승리권을 그대로 이룰 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살해했기 때문에, 영적 기준과 육적 기준이 나뉘어져 버렸다. 이것을 다시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 참으로 야곱의 입장과 똑같은 자리에 선 재림주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탕감의 길을 가야 했다. 그러나 기독교가 반대했다. 만일 기독교가 반대하면 기독교가 지금까지 영적으로 발전해 올라간 그 코스에 비례하여 지상에서 싸움이 거듭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해 온 역사이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2천년 동안 싸워 왔지만, 재림주는 영적으로 승리한 기준. 영적 사탄을 굴복시킨 승리의 기준을 갖고 지상에 오시기 때문에, 사탄이 반대하고 유린한 입장에 선 기독교가 반대해도 지금의 시대는 예수님 시대와는 다르다.
영적 기준에서 이미 승리한 기준 위에 있으므로 반대해도 결국은 야곱 앞에 에서가 굴복한 것과 같은 입장에 놓여지게 된다. 그러므로 그 기간은 길지 않다. 또, 지금의 때는 옛날의 때와 다르다. 예수님의 때는 국가를 중심으로 해서 활동한 시대였다.
지금의 시대는 영적이기는 하나 세계를 중심으로 해서 활동하는 시대이다. 재림주라는 분은 국가를 중심으로 해서 온 분은 아니다. 영적이기는 하나 예수님 시대보다 한 단계 올라간 세계적 기반을 중심으로 해서오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세계가 하나가 되어 반대하지 않는 이상 나라를 초월하여 가는 길은 승리할 수 있는 필연적인 기대 위에 선 것이 된다.
예수님이 구한 것은 무엇인가 하면 개인완성, 개인적 영육 승리 기준과 가정완성, 가정적 영육 승리 기준이었다. 그리고 씨족완성, 씨족적 영육 승리 기준이었다. 국가완성, 국가적 영육 승리 기준에 서는 것, 로마를 굴복시킨 승리의 실체권를 형성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다. 예수님이 다시 개인복귀, 가정복귀라든가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예수님이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목적이란, 나라와 이스라엘 교단이 하나가 된 기준에서 로마제국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진정으로 지상에 오셔서 해야 할 사명인 것이다.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복귀의 길을 더듬어 오는 그러한 입장에서, 쫓기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 실패한 기준을 우리들은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영적으로는 세계적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도 가야 할 길은, 예수님이 실패한 지상기대를 다시 승리의 기대로 세우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역사적인 예수님의 실패를 탕감한 것이 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누구인가 하면 우리의 부모이다. 승리의 부모로 서야 할 사명을 가지고 왔지만, 그것을 완수하지 못하고 죽어 갔기 때문에, 재림시대에 그러한 입장을 탕감복귀하여 승리의 기대를 조성하지 않으면 이상세계로 올라갈 수 없다. 그 일을 지금까지 해 온 것이 통일교회이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선생님을 중심으로 해서 영육 함께한 승리권을 여하히 획득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영적으로는 승리권을 획득했지만 육적으로는 기독교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복귀되지 않은 입장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유대교를 버리고 새로운 기독교를 중심으로 영적인 출발을 한 것과 같이. 기독교가 반대하는 경우에는. 새로운 방향을 통해서 그 기독교의 기대를 바꾸었다는 기준을 만들지 않으면, 실체적인 탕감복귀의 조건을 만들 수는 없다.
지금까지 그것을 이루려고 해 온 사람이 통일교회의 선생님이다. 세계적 통일교회인 것이다. 그런데 종족적인 기반이 없으면, 가정이 안식할 수 없다. 종족이 포위하여 울타리의 사명을 해주지 않으면 그 속에서 하나의 가정을 안식시킬 수가 없다.
종족권이 승리적으로 아벨 가정을 포용해야만 아벨 가정이 안식할 수 있다. 사탄에게 공격당해서는 안 된다. 원래 아벨 가정은 복귀된 아담 해와의 가정과 같기 때문에, 사탄권에 침범되거나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편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가인이, 사탄편 천사장을 이기는 기대를 이루어야 아벨 가정이 보호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을 중심삼고 보면, 자신보다 더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있으면 사탄도 침범할 수 없다.
사탄은 타락한 천사장이므로, 하나님과 하나된 타락하지 않은 천사장의 입장에 설 경우에 사탄은 아벨 가정을 붙잡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편에 선 천사장은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다. 승리한 천사장의 기대를 세운 곳에는 사탄이 침입할 수 없다. 그런 침입이 되지 않는 권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승리한 천사장권이 생겨 나지 않으면, 아담의 승리권은 생길 수 없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아벨 가정 주위에 가인 가정이 생겨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사탄을 방비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 개인이 안식하려면, 개인이 침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가정이 주위에 에워싸고 울타리의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 입장에 서면,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침범받지 않는다.
즉, 에덴 동산에 있어서 타락하지 않았던 천사장에 의해 지켜지는 아담은 타락하지 않는다. 복귀기준에 있어서는 아담의 안식권, 아담의 이상적인 생활기대가 서려면, 예수님에게 순종하는 이상적인 천사장이, 탕감복귀한 가인이 아벨의 입장인 예수님과 완전히 하나되어야 한다. 그러면 사탄이 다시 침입할 수 있는 길이 없어진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가정이 예수님과 하나되어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마리아와 요셉을 중심으로 그 형제라든가 친척들은 진정으로 말하면 예수님과 관계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전체의 가족으로부터, 종족으로부터 쫓겨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기반이 울타리의 사명을 수행하고 방비시키는 것이다. 완전한 기대에 섰었다면, 예수님은 절대 집을 나오지 않는다.
3년 공생애라고 하는 기간은 절대 필요하지 않다. 가정과 완전히 하나 되었다면, 예수님은 개인 기준에서 전진하여 가정 기준을 편성할 수 있었다. 부모라든가 친척을 거쳐, 비로소 지상에 신랑 신부의 기대를 만들 수 있었다. 그것이 만들어졌다면, 예수님을 중심으로 새로운 혈통이 지상에 생겨났을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이루려던,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된 가정, 말하자면 새로운 이상 가정이 출발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러한 기대를 세우지 못하고 십자가에 달리셨으므로 새로운 혈통을 이어받은 가정은 아직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거듭 역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실패를 세계에, 영적으로나마 세계기대까지 끌어올려 발전시켜 온 것이 기독교이다.
예수님도 참부모이므로 참부모가 침해되었다는 것은, 참부모에 의해 태어난 모든 자손들이 침해받은 결과가 된다. 부모가 걸렸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그 기준을 능가하지 못한다. 세계를 향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출발할 수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오늘의 세계의 기독교도들인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영적으로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 승리의 기준을 만들었지만, 육적으로는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재림주와 하나되어 절대로 복종한다면 가능하다. 이때에는 특별한 종족을 중심으로 해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적 시대권에 서 있으므로 민족을 초월한 기준에서 이것을 다시 짜 가지고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종족을 중심하고 잃어버린 기대를 탕감복귀하려면 그 이상의 기준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종족의 기준을 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심정을 중심으로 한 심정기대가 세워진 곳이 새로운 이스라엘이다.
심정기대는 세계적 실체기대이므로, 그 기대를 통해 탕감복귀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재림주가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승리의 가정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가정을 만들려면 통일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종족권, 적을 대함에 있어서 목숨을 걸고 가정을 보호하는 참된 종족적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가정 출발을 할 수가 없다.
그것이 1960년 성혼식 이전이었다. 통일교회가 새로운 교단으로 등장하고 사탄세계는 물론 전 기독교가 반대하더라도 그 기독교 대신 기대로서 종족권을 이루어 왔다. 그래서 절대적 종족권이 이루어지고, 전체가 하나되어 목숨을 걸고 지킬 만한 기대가 조성되려면 처음으로 축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혼식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1960년의 일이다. 그 가정이 생겨났고, 지금은 계속 종족권, 민족권으로 확대해 가는 과정에 있다. 이것이 한국에서 우리가 활동하고 있는 움직임이다. 저쪽이 점점 내려가는 반면에 우리 통일교회는 점점 올라가는 것이다.
결국 유대교가 예수님을 쳐 죽여 버린 그 기준을, 가정, 종족, 민족 혹은 교회를 잃어버린 결과가 되었던 것을 다시 복귀하고, 그 이상의 기대를 목표로 하여 발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세계통일교회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발전해 왔다.
예수님은 가정을 편성한 후에는 종족을 편성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종족을 편성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예수님을 중심으로 제자들이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만일 상대기준을 이루어 가정을 만들었다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상대기준을 이루어 가정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유대교내에서 새로운 종족을 편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혼식을 하신 후에는 12제자가 성혼식을 해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가정을 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 영육 아울러 침범할 수 없는 승리권이 굳어지는 것이다.
그 축복받아 새로이 편성된 종족이라고 하는 것은, 타락권의 양자권과는 전혀 다르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적자 종족권이 생긴다. 그렇게 하면 예수님의 자녀들이 생긴다. 그래서 12제자의 가정이 있게 되고, 예수님의 자녀들이 생겨난다. 그 자녀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지상에 있어서 우리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왔다고 할지라도 20세에 들어온 사람도 있고, 30세에 들어온 사람도 있다. 틀린다. 어떤 사람은 50세에 들어온 사람도 있다. 그에게 있어서 50세 이전은 사탄세계였다. 그래서 원칙으로 말하면 나면서부터 하나의 기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의 입장이다.
그 기준을 복귀하려면…. 여러분은 이미 태어나 통일교회를 믿게 되어 가인 아벨의 기대가 형성되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그런 기대가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해서 탕감하는가 하면, 축복가정의 믿음의 자녀들은, 믿음의 부모의 자녀들을 희망의 대상으로 모셔야 한다. 나아가 그들의 애기가 태어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면서 임신된 애기를, 잉태한 복중에서부터 모시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복귀의 길을 가지 못한다.
믿음의 자녀가 자기의 직계 자녀를 복중에서부터 모시어 그와 하나된 입장에 서지 않으면 세 천사장의 협조에 의해서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신 것과 같은 자리에는 서지 못한다. 믿음의 자녀만으로는 안 된다. 통일 교회의 신자, 여러분들은 벌써 20세나 30세 이상이 되어 교회에 들어와 전도하여 횡적인 기준에서 믿음의 자녀를 둔 것이다.
그것은 천사장적 기준에서의 가인 아벨이었고, 아버지를 중심으로 해서는 아직 탕감되어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것을 어떻게 해서 탕감하느냐 하면, 축복받아 태어나는 애기를 복중에서부터 세 명의 믿음의 자녀가 모신 입장에 서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담을 창조할 때,세 천사장이 기뻐하며 협조하고 모신 것과 같은 지상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을 통과하지 않으면 완성기준에 설 수 있는 가정은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이제 여러분들은 축복받아 애기를 낳게 된다. 애기를 배었을 때에는, 세 명의 믿음의 자녀가 자신의 복중에 있는 애기와 완전히 하나된 기준을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축복받은 부모로부터 태어난 애기가 자라서 21세 이상 되어 결혼하기까지 믿음의 자녀는 그 타락되는 입장에 두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천사장에게는 직계 자녀가 성장하기까지 보호하고 이상적 부부가 되도록 지켜주어야 할 사명이 있다. 천사장이 해야 할 사명과 같은 사명을 믿음의 자녀들은 해야 한다. 자신들의 믿음의 어버이가 낳은 그 애기는 처음으로 만든 아담 해와인 것이다.
아담 해와를 타락시킨 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한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슬픔이기 때문에 타락시키지 않는 천사장의 사명을 믿음의 자녀는 수행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천사장의 입장에 서 있는 믿음의 자녀의 갈 길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부모와 믿음의 자녀의 관계에 있어서 믿음의 자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 인연을 이룸에 따라서, 그 자녀를 중심으로 해서 비로소 복귀되어진 부모의 입장에 설 수가 있다.
결국 타락한 아담 해와는 아벨에 의해 복귀되는 것이다. 축복받은 부모도 자녀에 의해 완성된다. 이것은 참으로 타락한 부모가 아벨에 의해 복귀되는 것과 같다. 이런 식으로 해서 탕감복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자녀가 없으면, 자신의 자녀를 잉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녀를 낳아 사랑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원리의 길이다.
타락은 원리의 반대 방향으로 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반대 방향을 틀어막아서 물이 흘러나가지 않도록 갖다 맞추어 일치시켜 올라가는 길이 복귀의 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절대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면, 먼저 믿음의 자녀다. 메시아보다 그것이 문제다.
아무리 하나님께 사랑받는다고 해도 하나님에게 사랑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사랑받는 입장으로부터 독립했을 경우에는 아벨의 입장에 서는 것이다. 아벨은 아담의 입장이므로 아담 앞에는 세 천사장이 없어서는 안 된다. 세 천사장이 아담에게 완전히 복종하는 기대가 이루어지면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입장에 서게 된다. 세 천사장이 주관받고 복종하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절대 복귀되지 않는다.
통일교회의 식구들도 뜻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면 아벨이 된다. 그런 기준이 이루어지면 그 나름의 선영인(善靈人)을 중심으로 해서 아벨의 입장에 서는 것이다. 20세에 들어온 경우에는 20세를 중심으로 해서, 30세에 들어온 경우에는 30세를 중심으로 해서, 그 나름의 연령을 중심으로 해서 아벨의 입장에 선다. 거기에서 어떤 사람을 전도하면 그나름의 연령 기반 위에서 가인 아벨의 기준이 복귀된다. 그 이외에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것을 다시 해야 되기 때문에, 자녀를 통해 복귀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려면 세 명의 믿음의 자녀가 복중에서부터 직계 자녀를 모시고, 자녀가 결혼하기까지 힘을 다하고, 모든 것을 협조하는 전통을 세우지 않으면 절대로 완전복귀는 안 된다.
선생님도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고, 여러분들도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선생님이 세계적 사명을 가졌다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국가적 사명까지 하면 된다. 선생님은 한 단계 앞선다. 이렇게 해서 선생님은 세계적 승리기반을 만들고, 여러분들 개인은 국가적 승리기대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적 승리기대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그 상대기대를 넓힘으로써 탕감의 승리권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지금 만들고 있다. 그것이 제3차 세계노정이다. 제 3차 세계순회노정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완성은 가인 아벨이 싶으면 안 된다.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곳은 반드시 아벨의 입장이다. 자기 혼자만으로서는 아벨의 입장에 설 수 없다. 가인이 없으면 아벨이 될 수 없다. 가인은 먼저 태어났다. 가인은 대체로 악한 근성의 소유자이다. 반대를 한다, 아벨을 위하는 사람은 아니다. 천사장은 아담보다 먼저 태어났다.
그래서 천사장이 아담을 쳤다. 그러한 전통적인 혈통을 이어받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치게 된다. 어느 정도 치는가 하면…. 하나님에게 사랑받는 입장에서는 개인적으로 맞는다. 개인적으로 공격받는다. 사탄의 세계는 어떻게 쳐 왔느냐 하면, 기독교, 또는 기독교 신자들을, 종교인을 개인적으로 박해했다. 종교를 믿는 가정까지 박해했다. 혹은 부족과 종족 전체까지도 박해했다. 혹은 기독교 민족 자체도 박해했다. 그와 같이 해 왔다.
그러므로 개인적 박해시대, 가정적 박해시대, 민족적 박해시대, 이러한 박해를 받으면서 맞고 빼앗아 왔다. 개인이 완전히 세계적으로 맞는 경우에는 개인의 승리권이 생긴다. 맞더라도 부락 차원에서 맞은 것으로는 절대 안 된다. 세계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적이 되려면, 어떤 환경 내에서 특정한 한 사람을 하나님이 세계적으로 뽑았을 때, 그가 세계적 개인으로서 승리권에 서려면, 그 부락내에 있어서도 세계적으로 박해 받아야 한다.
결국 세계적인 박해의 표적은 무엇이냐 하면, 생명인 것이다. 생명을 위협받는다고 하면, 이것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환경내의 개인 대 개인일지라도 세계적인 박해, 또는 그 이상의 것을 대표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생명을 바친다면, 생명을 바치면서 하나님의 국가적인 뜻을 마음에 두고 죽음을 각오하고 섰다면, 아무리 개인에게 반대받아도 그 반대받는 아벨의 입장은 국가적이지 않고 세계적으로 된다. 그러므로 죽기까지 해 나가라. 여기에는 기한이 있다. 7년이라든가, 21년이라든가 하는 기한이 있다.
그 기간에는 머리를 갸우뚱거려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면 좋을까, 저렇게 하면 좋을까?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으면 좋았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걸려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에는 거기서부터 또 7년간 수고해야 한다. 야곱도 라헬을 라반으로부터 받기 위해서 약속한 7년간 수고했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자 21년 동안 수고했던 것이다. 똑같이 7년간에 이루지 못한 경우에는 21년이 걸린다. 그래서 선생님으로 말하면 7년노정이 21년으로 연장되었다. 통일교회에도 21년의 노정이 남아 있다. 바로 1960년부터 1981년까지다. 세계는 이것으로 완전히 돌아가 버린다. 1960년에 새로운 역사시대에 들어갔다. 세계적인 역사학자들도 이렇게 말했다.
사람 가운데는 자신의 부모를 죽인 자도 있고, 혹은 형제를 죽인 자도 있고, 여러 가지 사람이 있는 것이다. 친척끼리 서로 죽이고, 혹은 종족끼리 서로 죽이고, 이와 같이 흘러 온 수천년 역사의 모든 것이 이 지상에 횡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모두 개인주의가 되고 있다. 하나님도 무엇도 다 없다. 선생님도 무엇도 다 없다. 사회도 무엇도 다 없다고 한다. 개인주의다.
지금이 그러한 세계이다. 여러분들도 전부 다 그렇다. 문화국가가 되면 될수록 개인주의로 되어 온다. 이것이 사탄세계의 가장 선두에 선 기관차다. 모두 나라도 없고 가정도 없고 형제도 없고 누구도 없다고 한다. 개인이다.
그것이 천사장의 입장인 것이다. 천사세계에는 상대관계는 허락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모두 개인주의가 됨에 따라서 나라를 잃는다. 가정을 잃는다. 모두 잃어버린다. 자신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되어 분열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탕감의 길을 가려면,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을 거쳐야 한다. 적어도 12가정 이상 없으면 안 된다. 종족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종족을 중심으로 하여 날이 감에 따라서 점점 늘어나 민족이 된다. 민족을 편성하고, 그 민족이 타민족과 싸워 승리하지 못하면 나라를 세울 수 없다. 그와 같이 되어 있다.
왜인가? 사탄권 어느 민족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어딘가의 지배권에 들어 있다. 그러므로 최후에 있어서 하늘나라로 나타나려면, 그 지배를 하고 있는 민족과 싸워 승리한 기준에 서지 않으면 새로운 국가는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복귀노정도 같은 것이다.
사탄권내에 편성되어 있는 민족과 싸워 승리하지 않으면 새로운 원리적 국가는 생기지 않는다. 똑같은 이치이다. 그러한 일을 이루어 예수님을 중심으로 세계적 사탄세계의 어떠한 나라보다도 우위의 국가를 편성하여 로마제국, 세계적 가인을 굴복시켰다면, 그 이후는 이미 끝난 것이다. 그러한 단계를 통해서 올라오고 있다.
예수님은 만민의 부모지?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두번째의 부모이다. 이 부모가 실패한 것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제3의 승리의 부모는 태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2의 부모는, 제1의 부모가 되어야 할 아담 해와의 실패를 회복하지 않으면 제2의 부모로서 승리의 기대에 설 수 없는 것이다. 제1의 부모의 기준이 복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제3차까지 연장된 것이다.
그러므로 제3차에 오시는 재림주는, 제1의 부모의 실패, 아담 해와의 실패와 제2의 부모의 입장으로 오신 예수님과 성령의 실패를 영·육적인 면에서 실체적으로 탕감복귀하는 승리기반을 세우지 않으면 지상에 승리한 참부모로 나타날 수 없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탕감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가인 아벨을 복귀하는 문제에 있어서 그 근본이 무엇이냐고 하면 그것은 참부모인 것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참부모와 우리들'인데, 이 참부모라고 하는 분은 인류역사의 최고의 희망의 존재이다. 역사의 최고의 승리의 기대이다. 어떠한 민족도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적 희망의 중심점이다.
지금까지 역사가 더듬어 온 것은, 어느 나라까지 가는 것이 아니고, 세계로 가는 것도 아니다. 일본 나라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다. 일본 나라는 통과 과정에 들르는 여관과 같은 곳이다. 역사가 바라는 곳은 어디인가 하면 나라도 아니고 세계도 아니다. 외적으로는 나라와 같이, 세계와 같이 보이지만, 외적 세계만 가지고는 해결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섭리는 어디를 중심으로 해 왔는가 하면 세계를 구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세계를 구하려면 선한 부모가 이 지상에 와서 완전한 기대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생기지 않는다면 완전한 국가, 세계를 구하는 길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 전체의 희망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라가 아니다. 세계도 아니다. 무엇인가? 참부모다. 이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는 민족관이라든가 세계관이라고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민족관도 부모의 혈통을 계승한 뒤에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된 후에 종족을 편성하지 않으면 안 되고, 민족을 편성하지 않으면 안 되고, 세계를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모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참부모를 맞이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이것을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일본에 정착하는 것이 일본 통일교회의 사명이 아니다. 또 일본인의 사명도 아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좋다. 세계의 중심이 되면 좋다.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절대로 되지 않는다. 항상 가면 갈수록 희망이 우리들을 맞이해 줄 것으로 생각하지만 희망은 없다. 점점 암담해 오기만 한다. 그렇게 되어 온다.
그러므로 최후까지 가 보고, '아! 틀렸다' 하고 뒤로 돌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인간이 해 온 그러한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이 아니면 뒤로 돌아가는 길을 발견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은 세계가 뒤로 돌아가는 그런 단계에 이르게 하기 위해 준비를 해 가지고 개인복귀 완성, 종족복귀 완성, 국가복귀 완성이 되도록 해 오셨다. 이 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길로 가게 하는 것이 지금 통일 교회를 세워 하는 일인 것이다. 어차피 민주주의 사회를 가지고서는 세계는 구원되지 않는다. 공산주의로도 세계는 구원되지 않는다.
하나의 방법을 모르기에 가는 데까지 가나, 가보면 뒤죽박죽이 된다. 가면 갈수록 뒤죽박죽이 되어진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이것으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장 최고의 사람도, 최하의 사람도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로부터 새로운 방향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세계에서 몸부림치면서라도 그런 단계까지 가도록 해야 한다. 그 배후에 있어서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의 기준까지 세우고 세계로 통하는 길에 사다리를 놓도록 하여,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단번에 세계가 이 길에 당도하게 될 때에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때는 최초보다 가장 무섭고 곤란한 시대가 온다.
왜 곤란하냐 하면, 앞을 다투어 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때에는 압사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통일교회에는, 그때에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문을 좁히는 것이다. 그런 때가 온다.
그와 같은 작전을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해 가신다. 참으로 그와 같은 현실을 우리들이 보고, 예측해 알 수 있는 시대에 와 있다는 것은 현재가 종말의 때임을 말하는 것이다. 세계 인류가 모르는 때에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이런 시대에 들어간다. 세계는 이렇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참부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한다. 여러분들은 참부모를 여러분들의 부락에 있는 유명한 돈많은 부모쯤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
국가의 주인, 왕이라든가 혹은 귀족 같은 사람들은 한때의 호텔 주인과 같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의 목적은 세계를 하나로 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를 하나로 하는 데는 참부모를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를 하나로 하는 길을 인간으로서는 발견할 수 없다.
참부모라고 하는 분은 역사의 희망의 결실체이다. 소망의 결실체이다. 모든 것을 탕감한 승리의 결실체이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참부모와 미국과 바꿀 수가 있나?
지금까지의 역사는 과거의 역사이다. 지금까지 공헌한 것은 여러분 자체에는 없다. 지금까지의 섭리에서 공헌한 사람들은 전부 어디에 가 있느냐 하면 영계에 가 있다. 이 영계에 가 있는 사람들도 참부모를 필요로 하고 있지만, 참부모는 지금까지 공헌하였던, 영계에 가 있는 사람들의 참부모는 아니다. 그들과는 직접적인 인연을 가질 수 없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참부모다. 영계에는 천사장 세계와 같다. 그러니까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지상인을 위하여 원조해 주는 천사장의 입장이다. 지상 세계는 아담 해와의 세계와 같다. 참부모가 오심에 따라….
지금까지 영계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탕감복귀를 위해 동원되어 왔다. 그 탕감복귀를 위한 동원이 무엇이냐 하면, 천사장이 타락했기 때문에 천사장권을 복귀하기 위하여, 타락한 사탄을 위하여 동원되는 것이다. 그것을 탕감복귀한 기준에 서면 종권의 천사장으로 간주한다. 여러분들은 천사장과 같다. 천사장와 사명을 하는 종교는 3대 종교다. 회교는 왼손에 코란,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싸우고 있다. 이것은 종교의 본질에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악의 내적 종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3인의 성인, 3대 종교는 세 천사장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그와 같은 형에 있어서 예수님은 그 중심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예수를 대장으로 하여 영적 사탄을 내쫓아야 한다. 지상에 기반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때가 왔다. 가인을 축복해 주었다는 것과 같은 조건으로 선생님은 예수님을 축복해 주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지상에 영향을 미친다. 영인들을 동원하여 타락한 사탄의 영인체를 내쫓는 승리의 기반을 필연적으로 갖게 되기 때문에, 지상의 사탄의 주관권과 인연되어 있는 인류를 하나님편에 되돌려 올 수 있다.
조금 더 있으면 바로 세계는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가 수고해 왔지만, 그것은 참부모가 탄생하는 기대를 만든 것이다. 그 길을 준비해 온 것이다. 참부모는 완성한 아담 해와이므로 아담 해와 이전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 천사장이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보다 전에 생긴 모든 종교는 천사장 종교이다. 사실이 그렇다고 하면, 통일교회는 멋지지 않은가? 내용은 멋지다. 사실은 일본 풍토를 중심하고는 아직도 쫓기고 있다. 그러나 내용은 멋지다.
그러나 이것이 커져서, 독수리 새끼같이 날개에 완전히 털이 나서 나는 경우에는, 세상의 나르는 새가 전부 자기 눈 아래에 있게 된다. 지금은 병아리이니까 아무에게나 쫓기는 입장이지만 지금부터 성장하여 나라를 갖게 되면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는 민족을 세워 주는 것이 아니다. 세계 인류를 세워 준다. 여기에는 흑인도 들어간다. 전부 들어간다.
미리 그와 같은 천사장 국가로 준비한 것이 미국이다. 미국은 2백년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국가적 기준에서 대표적 국가는 미국이다. 1976년까지 건국 2백주년이 된다. 미국의 축복은, 미국의 운세는 2백년내의 운세인데 1976년부터는 이것을 넘어가기 때문에 미국에 위기가 온다는 것은 원리적인 시각인 것이다. 2백년 역사 내에서 저만큼 세계적인 국가가 된 것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것은 2천년의 탕감기간과 맞먹는다. 2천년의 탕감복귀의 기간을 대신한다. 지금까지 미국은 세계적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므로 미국은 초국가적이고 초국민적으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일본 민족도 이민하면 바로 미국 민족이 된다. 미국은 미래의 하나님 나라로 되어 있다. 멀지 않아 바로 천국에 들어가 그 나라의 국민이 되게 된다. 기독교가 선생님을 맞이하면 일시에 미국이 아벨권에 복귀될 수 있었다. 그것이 쫓겨 나와 하나님편을 쳤기 때문에 사탄이 또 친다. 그래서 공산당에게 당해 간다.
중공이 사탄세계의 해와 국가다. 일본도 20년간에 세계적인 경제복귀를 이루었듯이 사탄적인 해와 국가인 중공도 20년만에 세계적인 국가로 올라섰다. 유엔으로부터 내쫓긴 침략 국가가, 1952년 유엔의 결정으로 침략자로 규정된 국가가 20년만에 세계적인 국가로 되돌아온 것과 같은 전례는 없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20년이다, 20년. 통일교회에 제2차 7년노정이 1974년까지인데 제2차 7년노정을 넘는다면 세계적이 되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하는 것이 원리관이다. 그 기간에 세계는 부딪친다.
당치도 않은 일본을 중심으로 해서 미국과 소련과 중공이 부딪친다. 이 세계가 이와 같이 격동하는 시대에 키를 잡아 항구에 도착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 통일교회이다. 침해되지 않고, 파선되지 않고 지금 살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을 콘트롤하는 것은 선생님이다.
참부모라고 하는 그 기준은 세계의 모든 것이 그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 기준이다. 그러므로 섭리 전체가 그에 의해 움직여진다. 하나님도 그것을 원하고 있다. 하나님도 그것이 없으면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최고의 소망이었던 것이다. 모두에게 두려울 정도로 굉장하다고 하는 것을 세상은 모를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선생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선생님은 이와 같은 원칙을 잘 알고 있지만, 여러분은 모른다.
참부모는 우리들에게 어느 정도나 필요할 것인가? 또 하나님에게는 어느 정도 필요할 것인가. 하나님은 참부모를 어느 정도 필요로 하시는가.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신다. 영계에 가 있는 수억 수백만의 영인들은 참부모를 얼마만큼 필요로 할 것인가. 아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참부모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천사장계는 지상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 앞에 호소하든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탕감의 길을 개척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천사장의 사명이다. 아담과 함께 천사장도 타락했으므로 뜻 앞에 탕감복귀가 완성된 천사장권을 이루어야 하는 사명이 있다. 복귀라고 하면 아담 해와만의 복귀가 아니다. 천사장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슬픔이라든가 한탄이라든가 하는 것이 없는 미래로 출발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탄식이라든가 탕감이라든가 하는 것이 없어져 버린다. 하나의 꿈 같은 이상의 세계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후손은 실로 멋지게 살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한계가 있다. 몇 년까지 들어오지 않는 자들은 전부 고통스러울 정도로 눈물 흘릴 때가 올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에는 연한이 있다. 그러므로 제1차, 제2차. 제3차 기간이라고 하는 것은 중요한 기간이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가 되려면 자기 나름의 과거의 죄를 청산하도록 하라. 과거의 죄가 있는 경우에는 큰일인 것이다. 과거의 죄는 빨리 청산하라. 죄 있는 자가 참부모와 일체가 될 수 없다. 정말이다.
그러니 먼저 역사적 죄를 청산하라. 선조 이래 지금까지 쭉 역사에 결부되었던 혈통적 더러움을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뜻의 노정을 비교 대조해 보고 틀렸던 모든 것을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자신은 장래의 선한 선조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선한 선조가 되려면 선한 후손에게 무엇인가 짐을 남기면 안 된다. 무거운 짐을 그 후손에게 넘겨 주는 선조가 되면, 참소받는 선조가 되었다면, 참부모가 통치 주관하는 권내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가정들은 현재에서 모든 것을 탕감하고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복귀노정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선두에 서서 탕감의 길을 가면, 자기 일대의 탕감보다도 국가 민족의 탕감을 짊어지고 가면 후손에게는 자랑스런 선조가 된다.
나라가 세워지면 축복가정이 선두에 서서 처음으로 영원한 기대를 만들게 되고, 지상의 안식과 함께 영원한 영계에서의 안식의 기준이 세워 지면 지상은 완성된다. 그때에 여러분의 역사는 세계적 주목의 표적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뿐만이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일들 가운데 자기에게 느껴지는 모든 해로운 것들을 빨리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청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 먼저 사탄과 싸워 승리하는 것이다. 그것이 제 1의 조건이다. 사탄과 싸워 이기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사탄을 때려 이기어 두지 않으면 아무리 역사적인 청산을 하였다고 해도 거듭 사탄이 덤벼들게 된다. 그러니까 먼저 근본적으로 사탄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사탄을 굴복시키게 하기 위해서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원리다.
사탄이 어떤 죄를 범했는가 하는 것을 가르친다.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가르친다. 사탄세계에 가서 사탄을 굴복시켰다고 하는 조건은, 사탄 세계에 가서 3인의 가인적 존재를 취해다가 완전히 목숨을 걸고 봉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세워진다.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를 죽음을 각오하고 보호하여 주는 천사장과 같이 자기의 방비대가 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참자녀, 참 믿음의 자녀, 참 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승리한 가인의 입장은 무엇인가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와 같이 무서운 환경이 될 경우에, 다 도망해 버리는 자가 되면 안 된다. 예수님을 지켜야 한다. 예수님에 앞서서 죽음을 각오하고 서야 한다. 그러한 자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 완전히 승리한 세 천사장으로, 믿음의 자녀로 설 수 없다. 그런 사람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사람을 만드는 데는 자기의 실체 자녀를 키우는 것보다도 3배 또는 7배 이상 힘이 든다.
사랑은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가 하면, 사탄, 천사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복귀는 사탄, 천사장으로부터 빼앗아 와서 믿음의 자녀를 만들고 믿음의 자녀를 사랑하고 난 뒤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참부모가 한 것같이 돌아오는 것이다. 사랑은 사탄으로부터 시작된 그 사랑권으로부터 빼앗아 오지 않으면 안 된다. 사탄이 빼앗아 갔으므로 그것을 반대로 사탄권으로부터 찾아오는 것이 승리적 천사장, 절대 복종하는 천사장의 입장에 서야 할 3인의 믿음의 자녀의 사명이다. 그 믿음의 자녀를 구해서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사랑하였다고 하는 입장에 서야 하는 것이다.
사랑의 문제로 사랑을 잃고 타락한 것이니까 그 이상의 사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믿음의 자녀를 어느 정도 사랑하면 좋은가 하면, 이 세상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 이상 사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믿음의 자녀는 복귀되지 않는다. 세상 부모의 사랑은 사탄적인 사랑이다. 그 이상의 사랑의 길이 아니면 사람은 끌려오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에 의해서 끌려간 사람은, 사랑에 의해서 되돌아오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승리한 사랑의 기준이 3인의 믿음의 자녀에 의해서 세워지고 승리한 그 기반 위에 서야 비로소 자기 자녀를 사랑할 수 있다. 이것은 공식인 것이다. 선생님도 그러한 생활을 쭉 계속해 오고 있다. 그 공식을 통과하지 않으면 완성기반은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녀가 있더라도 믿음의 자녀가 완전히 복귀되지 않았을 때는 그 자녀를 자기 집에 들여서 함께 살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탕감복귀를 위해 예수님을 지상에 보내어 죽음 길에 보내시고 인류를 사랑하신 것같이 믿음의 자녀를 완전히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믿음의 자녀가 자기의 자녀를 위하여 희생하는 기대를 세우지 않는다면 자기 자녀를 사랑할 길은 생기지 않는다. 믿음의 자녀 없이는 아무 것도 없다.
믿음의 자녀를 찾아 세우고, 그에 의해 이상상대를 맞아 가정을 이루면 타락한 아담 가정의 여덟 식구를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복귀한 기대를 만들 수 있다. 그것이 타락권으로부터 복귀되는 기준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태어난 자녀는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처음으로 태어난 자녀가 타락하지 않는 권, 장성기 완성급 기준권을 통과하는 것이다. 이것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태어나는 자기 자녀, 축복받아 태어나는 자녀에 의해 완성시대가 비로소 열린다. 축복받은 가정은 부모의 날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나름의 부모의 날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고, 자기 나름의 자녀의 날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자기 나름의 만물의 날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고, 자기 나름의 하나님의 날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생님과 비교하면 선생님은 세계적이지만, 여러분들은 종족적 혹은 민족적 승리를 해서 국가기준까지 올라가야 한다. 국가기준까지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여러분들의 사명이다. 이렇게 번거로운 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 이렇게 번거롭기 때문에 하나님은 6천년 걸렸다. 그런 것을 전문적으로 아는 자가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타락은 인간이 한 것이므로, 복귀도 탕감도 인간 자체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죄를 범한 자가 죄를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원칙이다. 이 세상 부모는 모두 거짓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거짓 부모를 타고 넘는 참부모가 와서, 그 모든 것을 알아 탕감해 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역사가 새로이 하나님께 돌아갈 길이 없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 분이 참부모이다.
여러분들의 생명은 몇천만, 몇억을 주어도 바꿀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그런 분 앞에 가서 '제가 목숨을 걸고 봉사하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선언도 그렇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출발점은 거기다. 우선 전환점은 거기에 있다. 배후의 목적은 거기다. 최후의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 이 메시아다. 통일교회에 들어와 '언제 저렇게 행복하게 될 것인가' 하는 자는 행복해지지 않는다. 자신이 행복하게 되기 전에 부모가 행복해지지 않으면, 자신의 행복의 길은 절대로 생겨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행복해지지 않으면 우주에 존재하는 만물은 행복해지지 않는다. 같은 이치다. 완전히 탕감하는 데는 죄를 완전히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분들의 과거를 원칙대로 바로잡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전도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무섭다. '믿음의 자녀를 데려오지 말아라. 그것 없어도 좋다고 하는 것은 사탄이 바라는 제1조다.
자녀를 낳지 않아도 좋은가? 자녀가 필요한가? 자녀가 없으면 멸망해 버린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부모가 생활하는 양식은 자신도 장래에 그렇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공식이다. 그래서 결혼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종교에서는 결혼할 수 없었다. 참부모가 이 지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우리들이 지상에서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교단이 생겼다는 것은 역사적인 문제가 된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야 한다. 믿음의 자녀를 키우는 데는 3배 또는 7배 이상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믿음의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자녀를 사랑할 자격이 없다. 복귀는 그렇다.
사탄이 굴복할 수 있도록 과거와 현재를 회개하는 데는 단지 '하늘 아버지, 이러이러하게 되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런 식으로는 용서되지 않는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된다. 얼굴이 부어오를 정도로 아픔을 느끼면서, 내장이 뒤집히는 아픔을 느끼면서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우리들의 현실의 문제라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전부가 자신과 관계를 갖고 있다. 전부가 자기 한 사람 때문에 그렇게 되어 있다. 여러분 한 사람 때문에 전부 그렇게 되어 있다. 결국 자신 때문이고 우리의 국가 때문이며, 우리의 세계 때문에 이렇게 수고하고 있다. 자신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국가, 자신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세계 때문에 수고하고 있다.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수고의 길을 피할 수는 없다. 혹은 국가적 싸움을 피할 수는 없다. 혹은 내적 싸움을 피할 수는 없다. 통일교회가 이런 길을 가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피하는 길, 가정적으로 피하는 길. 종족적으로 피하는 길, 국가적으로 피하는 길, 민족적으로 피하는 길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수없이 눈물 흘리고 희생함으로써 탕감조건을 세워 이러한 상태가 된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참부모가 여기에 오시기까지 여러 분들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 배후에서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한 순간에 흘리는 눈물은 문제가 아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그러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눈물 없이는 말할 수 없다. 그러한 자신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과거 현재에 걸쳐 죄를 범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있으면 안 된다. 눈물을 흘려야 한다. 타락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돌아가려면 감사의 눈물을 흘려야 한다. 그러면서 복귀해 가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길이 없는 것이다. 그 심정은 누구라도 그렇게 되어 있다. 하나님이 맞이하시는 사람은 실로 그러한 사람이다.
아담 해와와 천사장을 대표한 참부모가 없어지면 깊은 아픔을 느끼게 된다. 예수님이 지상에 오셨다가 죽음의 길을 가신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심정을 쓰리게 했었나를 알아야 한다. 제3차로 재림주를 보내어 아담의 완성기준을 이룰 것을 바라서 하나님은 수천년 동안 기독교만을 중심하고 섭리해 오셨다. 생각해 보라.
자유 민주 국가에는 기독교가 들어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수천년 역사를 통하여 피를 흘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일본에 있어서도 그렇지 않은가. 예를 들면 도원(島原)의 난(亂) 같은 것.
1960년에 선생님은 성혼식을 올리기 전에 36가정 중 세 가정을 약혼시켜 가지고, 선생님이 성혼식을 올린 후에 이 세 가정을 축복하였다. 그것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같이 선생님을 중심으로 세 자녀가 하나님의 이상권에 섰다고 하는 조건을 세운 것이다. 완전히 갈라질 수 없다는 승리적 기반을 세운 것이다. 그런데 반대를 받았다. 그것이 최고의 박해이다. 알았는가?
국가로부터 쫓기고, 교회로부터 쫓기고, 모두로부터 쫓기는 환경권에 서지 않으면 복귀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국민이 총동원하여 박해하여 왔다. 통일교회에 대해 수십 명이 투서를 써서 경찰이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체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거국적, 거족적으로 통일교회를 쓰러뜨리고 통일교회를 뿌리 뽑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없애지 못하였다. 그것이 통일교회인 것이다.
성혼식 전날까지도 선생님을 해치려는 투서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유협회장과 협력하면서 1960년. 싸움 가운데서, 승패를 다투는 환경에서 성혼식이 올려졌던 것이다. 그 성혼식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마음 편히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식이 아니었다. 싸움이었다. 문 밖에서는 반대하는 소리, 그런 중에서 결혼식을 거행하였다. 그런 일을 하면서 통일교회는 승리하였다.
그렇게 하면 선악이 교차한다. 우리들이 그렇게 되지 않으면 하나님은 기쁘지 않다. 세 가정을 세운 것은 예수님의 세 제자가 죽지 않고 살아서 신랑 신부의 이상을 이루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죽어서 남긴 기준을 승리한 평면적 기반을 세운 것이 된다. 예수님이 죽지 않은 입장에 선 것이 된다. 세 가정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 전체의 모든 것을 탕감하는 중심 가정이다.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 선생님의 시대에는 제1아담과 제2아담의 모든 것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적 과거의 것을 탕감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신약시대를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선생님의 사명이다.
그렇게 하는 데는 과거의 역사를 무시할 수 없다. 아담 가정으로부터 야곱에 이르러, 야곱이 비로소 양자권의 출발을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권을 중심으로 하여 메시아라고 하는 분을 보내게 된 선민권의 시초는 무엇인가 하면 양자권이다. 그 이전은 종의 권인 것이다. 그러므로 탕감복귀에 있어서는 종의 시대와 양자의 시대를 탕감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와 같이 전반적 역사를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아담 가정으로부터 노아를 거쳐 야곱 가정까지의 역사를 살펴볼 때, 야곱노정의 연장이 모세노정이며 모세노정의 연장이 예수님의 노정인 것이다.
야곱노정은 양자의 노정이다. 하나님의 적자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민족적 탕감시대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것을 대표한 것이 모세노정이다.
그래서 민족적 승리를 해야 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 보내서 승리한 기대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의 노정이라고 하는 것은 야곱의 가정적 승리와 천사와 싸워 이긴 기반을 계승한 터 위에 범위를 넓혀 민족적 승리를 위한 기대를 쌓는 노정이다. 예수의 시대는 민족으로부터 범위를 넓혀 국가기대의 승리를 위한 시대인 것이다.
이렇게 발전해 간다. 여기서 제일 문제인 것은, 역사 전체 복귀다. 그래서 36가정이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가정인가. 제1가정은 구약시대를 상징한다. 제2가정은 신약시대를 상징한다. 제1가정은 구약시대를 상징 하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허락하기 전에 결혼한 입장이다. 그렇지? 신약시대는 처음으로 하나님이 택해 준 땅에서 결혼을 원하셨던 시대이다. 원했지만 실패하였다.
제3가정은 성약시대를 상징한다. 성약시대는 실패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완성한 시대다. 출발은 가정으로부터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야곱시대로 되돌아간다. 그래야 복귀된다. 그래서 선생님이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종의 기준, 그리고 양자의 기준이다.
양자권 국가 기준은 모세로부터 예수님까지다. 그리고 적자는 예수님이다. 이것은 3단계를 상징하여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3단계가 언제나 12지파, 즉 10수나 12수의 평면적 기반을 중심으로 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다. 이것은 원리적 내용이 된다.
구약시대에 해당하는 것은 복귀 전에 결혼한 입장일 것이다. 예수님 시대는 결혼의 소원을 이루는 것이지만 이루지 못한 시대이다. 야곱의 고난의 시대이다. 그것을 전부 이어받은 것과 같은 입장에서 36가정은 구약시대, 예수님시대, 재림시대를 대표하는 가정으로 나뉘어 있다. 제 1가정은 역사적 상징의 기준으로서 아담 해와로부터 야곱까지 2천년을 탕감한다.
그 위에서 승리한 것은 선생님 자체에 있어서는 1대, 즉 구약시대만의 승리는 아니다. 가정 승리의 완성이므로 그 내용은 3시대의 승리이다. 역사적인 것이다. 36가정 중에 제 1가정은 아담 가정이다, 아담 가정. 가인 아벨을 중심으로, 그리고 노아까지 12수다. 그래서 12가정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노아를 중심으로 해서 아브라함까지 10대다. 그것이 이삭, 야곱까지 연장하여 12대다. 이것이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은 천적인 입장에 서려면 하나님 앞에 노아로부터 아브라함에 해당하는 선조가 태어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 시대를 확립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잇는 수가 필요하다. 그 수가 12인데, 그것을 노아 가정이라 한다.
그리고 야곱 가정은 처음으로 개인적이 되었다. 이것은 종적이 된다. 처음으로 소생, 장성을 통과한 입장에서 지상에 나타난 것이 야곱 가정의 12쌍이다. 이 가정은 진정으로 구약시대, 신약시대를 지나 성약시대에 들어간다. 이런 식으로 6천년의 역사를 연장한다면 아담을 중심으로 해서 보면 예수님의 시대는 노아에 해당한다. 재림시대는 야곱에 해당하는 것이다. 알겠나? 이것은 수적 기준을 중심으로 크게 동시성 역사를 놓고 볼 때, 그 시대를 상징해서 설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알았는가?
36가정은 무엇이냐? 즉, 실체로 지상에 재림하여, 복귀노정에 있어서 우리의 선조들이 하나님 앞에 소명받아 수행하지 못한 모든 사명을 승리함으로써 사탄에 의해 유린되었던 역사를 재차 하나님에 의해서 종적 역사성을 복귀한 것이 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즉, 36가정은 복귀섭리에 의해 볼 때,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심정을 계승한 그런 완성의 인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선조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에 있어서 실패한 선조가 아니고 승리한 선조의 기준을 지상에 확립시킨 것이 36가정이다. 그러므로 36가정은 무엇인가 하면, 인류의 조상이다. 복귀된 인류 조상이다.
72가정은 어떤 가정인가? 가정을 완전복귀하려면, 가인 아벨 가정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담 해와가 완전히 하나님 앞에 서려면, 가인 아벨이 완전히 하나가 된 기대 위에 오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조상이라고 하는 것은 부모의 입장이다. 이 부모의 입장이 완전히 하나님 앞에 서려면 가인 아벨의 기대를 복귀해야 한다.
36가정은 조상인 것이다. 조상이 서려면 가인 아벨이 하나된 가정의 기반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36가정의 2배가 72가정이 된다. 72가정은 예수님을 중심삼고는 70문도에 해당된다. 그것이 하나된 지상의 탕감권을 이루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는 점점 그 기대가 확대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고 하면, 조상가정을 중심으로 해서 가인 아벨 가정이 하나가 되기 때문에 섭리역사에 있어서 그것은 가정을 중심으로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것이 된다. 가정복귀를 완성한 것이 된다. 그것이 72가정까지의 축복이다. 그것이 성취됨에 따라서 처음으로 지상에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고 평면적으로도 입체적으로도 하나의 단계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소생 장성 완성을 보면 선이 4개가 된다. 그러므로 세 가정을 종으로 하면 하나님을 중심으로 3단계가 된다. 그것을 횡적으로 보면 사위기대가 된다. 알았는가?
그러므로 이것이 정해짐에 따라서, 중심적 기준이 서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정해져야 할 중심점이 종적인 발판으로, 완전한 역사의 승리자로 서는 것은 36가정, 72가정이 하나됨으로써 이루어지게 된다. 그 중심점이 정해지면 하나님이 요구해 나오신 중심적 선조의 승리권을 이룬 것이 된다. 그것은 완전한 기대이므로 그것을 횡적으로 전개해야 된다.
그 기준을 중심으로 124가정 축복이 있었다. 124가정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의해 달린 후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다. 120문도가 하나가 되어 기도한 결과 성령 강림을 맞이할 수 있었다.
성령 강림은 국가기준을 초월한 기준에서 되어진다. 예수님이 국가기준 위에서 신부를 맞음에 따라 영적이지만 그와 하나된 기대를 세운 것이다. 그래서 120인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하면, 120개 국가를 상징한다. 이것은 하나님편 120국가 이상의 기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마침 1967년부터 1968년에 걸쳐서 그런 기대가 이미 되어 있었다. (유엔에 120개 이상 국가 가입) 역사는 우연히 탕감되는 일은 없다.내외 함께 수적인 발전을 했다. 그러므로 124라고 하는 것은 세계 국가를 상징한다.
여기에서 정상기준, 승리적 기반에 섰기 때문에 이것은 세계적 구성인 것이다. 그것을 모두 하나로 정리해서 연결시킨 것과 같은, 그러한 상대 이상 기대를 만들어 준 것이 124쌍의 축복이다. 원래의 수자는 120이었는데 거기에다 4쌍을 플러스시켰다. 4쌍은 어떤 가정인가 하면 이미 결혼한 가정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두지 않으면 결혼한 가정이 하나님의 나라에 돌아갈 길이 열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동서남북의 문을 상징한 네 가정을 합해서 124가정을 축복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인류가 지금까지 바란 것은 상대이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상대불가침권을 바라 나왔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독신생활을 강조해 나왔다. 가정적인 상대이상은 선생님의 시대에 들어 와서 처음으로 실현되었다.
승리적 이스라엘권으로부터 세계적 이스라엘권으로 확대해서, 승리적 기대를 횡적으로 끌어올려 124가정을 축복한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의 경우는 3인의 제자로부터, 12인의 제자와 70인의 제자, 그리고 120인의 문도밖에 세우지 못했지만, 선생님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이상적 가정의 편성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던 것을 지상에서 탕감복귀함에 따라 제1아담과 제2아담의 실패를 지상에서 탕감복귀한 후 완성한 것이 된다.
그 다음은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해 만물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만물복귀 조건으로 1965년을 중심으로 세계에 120개 성지를 결정한 것이다. 한국의 흙과 돌을 씨로 해서 승리의 기대를 세계적으로 구축하고 평면적으로 연결해 간 것이다. 만물기대가 싶으면 일할 수 없다.
하나님의 활동무대가 성립이 안 되었으므로 그 조건으로 120개 성지를 40개 국가를 중심으로 찾아 세웠다. 이른바 참부모의 승리의 기대를 세계적으로 택정한 것이다. 40개 국가에 120개 성지를 택정한 것은 세계 적으로 만물을 복귀하는 천적인 길을 연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흙과 돌을 가지고 본부에서와 같이 기도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복귀의 길이 열린다. 처음으로 하나님을 맞이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것이 1967년을 넘어 1968년 10월에 제1차 7년노정이 완전히 끝나고서 비로소 완성기반을 이루지 못했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7년간에 이것을 모두 탕감해 승리한 위치에 섰기 때문에 1968년에 처음으로 완성기준에 서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위치에 선 것이, 하나님의 날이라는 것이다.
내적으로 하나님이 처음으로 상대자와 연결된 것이 인간에 있어서는 참부모의 결혼식이다. 그 후 하나님의 날과 더불어,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을 7년간에 찾아 세워 전체를 탕감복귀해서 근본 위치에 돌아갔기 때문에, 거기로부터 세계적 시대권에 들어간다.
선생님을 중심으로 미국과 세계 각국에서 힘을 다하게 하고 일본과 공동작전 같은 것도 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일본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3년간 진심을 다하여 만물과 실체와 심정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아담 국가의 선생님이 이룬 승리의 기대를 복귀하는, 그러한 기대를 만들지 않으면, 일본이 해와 국가로서 어떤 사명을 했다고 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 예수님의 3년노정에 있어서 해와를 맞이할 수가 없었던 것을 다시 국가적 기준에서 탕감하는 일도 일본의 통일교회는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이전에는 선생님은 절대 명령하지 않았다. 명령하지 말라고 말려 왔다. 선생님은 3년노정이 끝나면 일본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축복가정의 아파트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
1974년까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사명이 남아 있다. 그런 걸 생각하면서 430가정을 축복했다. 세계적 탕감의 인연을 맺기 위해서….
한국에 있어서 통일교회는 자체적으로 탕감하는 것이고, 국가기준의 탕감의 인연은 아직 맺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 때에 치러진 것이 430쌍 축복이다. 430이라고 하는 수자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면, 그 해가 바로 한국이 단기로 4300년이 되는 해이고,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는 애급노정 430년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것이 430이라는 수자다.
이스라엘 민족의 민족해방 이상을 원하는 것이다. 그 기준을 중심으로 한국의 모든 국민이 하늘의 뜻에 설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다. 그것은 상대이상의 길이다. 지금의 종교와 같이 개인의 이상을 중심으로 하여 길을 열어 주어 가지고는 소용이 없다.
우리 통일교회는 상대이상의 길을 사방팔방으로 열어 주었다. 그래서 전국민을 움직이고 역사를 통해서 역사적 탕감의 실체를 자체의 일대에서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43수라고 하는 것은 수적으로 보면, 곱하면 12, 더하면 7이 된다. 4수는 동서남북에 해당한다. 3수는 소생, 장성, 완성에 해당한다. 그래서 4, 3수는 인간의 발달로부터 모든 만물의 수를 상징하는 수에 해당하므로 탕감복귀 원리에 의하면 절대적 수이다.
그래서 430쌍은 축복한 것이다. 그래서 한민족은 누구라도 들어가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가적으로는 그런 기준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의 상대적 기대를 외국에 만들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1969년의 제2차 세계순회 할 때에 43쌍을 축복시켜 주었다. 그래서 세계적이 되었다. 우선 내적인 10개 국가를 중심으로 43가정을 만들어 상대권을 세계적으로 넓힌다.
세계는 통일교회의 운세에 들어와 점점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 1970년에 처음으로 국제합동결혼식을 했다. 그것이 777쌍이다. 이것은 지상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모든 것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430쌍까지는 선생님이 가서 축복해 준 것이 되는 것이다. 한국에 데리고 와서 축복을 해주면 안 된다. 그런데 처음으로 한국에서 전세계적으로 777쌍 국제합동결혼식을 했다. 거기에 10개 국 사람이 참여했다. 이렇게 해서 가정적 이상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 어느 나라도 하나님에게 돌아올 수가 있는 길이 완성되었다. 이때를 중심으로 세계의 운세는 통일운세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남북 국가들도, 세계의 좌·우익 사람들도 우리와 대립하는 단계에 오고 있다. 지금 우리들은 이들을 한 곳에 끌어다 '낳아라, 번식해라' 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점점 전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이다.
전도하지 않더라도 이 사람들을 전부 데리고 미국에 가서 하나의 주에 뭉쳐서 살면, 가만히 있어도 세계는 복귀되어 갈 것이다. 알겠어?
우리들은 땀을 흘리고 피 흘리며 수고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낳고 번식하여 새로운 민족 편성을 하면, 하나의 나라는 자연히 된다. 우리들은 애급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건강한 자녀를 많이 낳았듯이 낳기만 하면 된다. 유다의 아들들과 같이 축복하여서 쌍동이룰 많이 낳으면 된다. 우리들에게는 산아제한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세계에 새로운 혈통적 기반을 넓히는 것이다. 세계 초민족 국가를 이미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 축복받은 가정은 동서남북에 상관없이, 장래에는 교육도 한 곳에 데려와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한국에서 대학을 세울 것도 생각하고 있다. 한 곳에서 유치원으로부터 중, 고등학교, 대학까지 간다. 그러므로 축복받은 가정에게는 본국에 유학하는 것이 최고의 소망이 된다.
될 수 있다면 그때에 일본이라든가 세계의 모든 나라의 부모가 진심을 다해 그런 대학을 세우는 것에 찬성했다고 하면. 역사적으로 자랑스러운 때가 온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문화, 새로운 세계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이 참부모를 중심으로 해서 우리들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세계적인 탕감의 길이다. 여러분들은 아무것도 몰랐지만 모르는 사이에 세계적 내외 탕감기준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 기대를 만든 선생님은 당당히 아무것에도 걸리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세계에 처음으로 깃발을 올렸다. 선생님은 지금 죽어도 예수님과 같이 실패의 사나이는 아니다. 죽어도 이 뜻은 사탄세계를 점령해 버린다. 그렇게 되어 있다. 다시 오지 않아도 된다.
이번에 돌아가 선생님이 기도하고 있으면 모든 것이 완성된다. 그러므로 한국에만 머무는 선생님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일본에 와 있는 것이 기분이 좋으면 일본에도 와 있을 수도 있고, 미국이 좋으면 미국에도 있을 수 있다. 그야말로 세계를 무대로 하고, 만민들, 어떠한 대통령이라도 할 수 없는 길을 세계적으로 닦아 나아가지 않고는 안 된다. 이것이, 지금부터의 선생님의 사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부모와 우리들…. 결국은 참부모는 완성한 아담이고, 실패한 제1의 부모의 기준을 완성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예수님이 실패한 제2의 부모의 기준을 완성해야 한다. 재림시대에 있어서 선생님이 더 고생한 것은…. 예수님은 영적 승리의 기대만을 만들었지만 선생님은 영육 아울러 세계적인 통일권 섭리로 여기까지 올라 올 수가 있었다. 지금부터 3년, 우리들은 결속해서 일본에서도 힘을 내어 움직이면, 일본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이 해와 국가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일본은 발전할 것이다. 발전하게 되어 있다. 3년 기간이 지나면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 원리의 관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맞이하기 위하여, 특별히 그것을'성취하기 위하여 지금 기동대 편성을 한 것이다. 알았나? 빨리 인재를 양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재 양성보다 수가 문제다. 그렇게 생각하고, 일본이 선생님을 염려시키면 해와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고, 충효의 열녀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들은 흔들흔들하는 인간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쉽게 왔다갔다하는 자는 하나님이 믿는 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절대 변하지 말라. 그것이 선생님 말씀의 결론이 된다.
이와 같이 멋진 역사적 승리의 기대에 섰는데 무엇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 승리를 얻은 자신들의 가치를 세계에 나눠 주고, 무상의 가치의 실체자로서 세계에 자랑할 수 있도록 하라. 하나님이 믿어 주시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는 주체자가 되겠다는 신념을 가지라. 왔다갔다하고 변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왔다갔다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믿을 수 없다.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되지 못 한다. 그러니까 절대로 변하지 말라. 지금부터 30년, 40년 죽기까지 변하지 않겠는가?「예」똑바로 손을 들라. 선생님은 믿고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