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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자각과 타락

일시: 2002.03.13 (수) 장소: 미국 뉴욕주 이스트 가든

(≪문선명 선생의 교육철학≫ 제2장부터 훈독)「4절까지 다 마쳤습니다.」 다 끝났어? 「4절까지 마쳤습니다. 계속 읽습니까?」 더 하라구. 「워싱턴에 가야 된대요. (참어머님)」 갈 사람은 가. 자, 다음에 해요. 필요하다구요. 교육이 제일 필요한 거예요, 전통이.

자유의사가 아니라 자체 자각에 의해 타락되었다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을 찾기 위해서 피조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 사랑의 대상을 찾아 그것이 완전한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작은 것부터 교육해야 됩니다. 큰 것이 여기 있으면 수많은 플러스 마이너스 상대권을 중심삼고 교육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게 만물입니다. 아담 해와의 이상적 사랑 인격 완성을 위한 사랑 박물관의 교재로서 활용하기 위한 것이 만물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우리를 교육하기 위한 교재로서 지었다 할 때 만물이 얼마나…』

그래, 윤 박사는 타락이 왜 됐다고 생각해? 자유 의사에 의해서 타락됐다고 생각해, 어떻게 되었다고 생각해? 에덴동산에서는 아담이 자체 자각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전부 다 하나님을 따라가고, 모든 만물 자체가 위해서 있는 거예요.

절대 위하는 환경이 아담 해와의 에덴동산인데, 아담 해와가 여기서 왜 타락했느냐 하면 말이에요, 자유 의사로 한 게 아니에요. 만물의 모든 것이 교재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담의 성격과 해와의 성격이 달라요.

아담은 만물의 주인이 돼야 되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모든 관리 책임을 중심삼고 태어났으니 어렸을 때부터 다르다구요. 광물에서부터 식물에서부터 동물에서부터 있는 모든 전부를 알고 싶어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눈만 뜨면 자연에 가서 엉키어 들어가지요.

그러나 자연 가운데서 주인이 되는데, 혼자서는 주인이 될 수 없어요. 해와와 더불어 같이 커 가야 될 텐데, 해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담을 따라가지 못해요. 아담이 어제까지 잡으려던 토끼를 아침에 가서 잡기 위해서는 새벽같이 떠나 산에 올라가야 하는데 해와는 그걸 못 한다 이거예요. 체력적으로 못 당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많이 아담과 떨어져 지내는 가운데 울고 외로워했다는 거예요. 외로워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해와 자체가 외로운 입장에서 천사장의 보호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천사장이 업어 주고 안아 주고 그런 시간이 많았다는 거예요. 그때는 벗고 살았어요. 그걸 바라볼 때에 천사장이 느낀 것이 뭐냐 하면, 자연계를 바라보면 전부가 쌍쌍이 되어 있어요. 곤충으로부터 동물세계 전체가 쌍쌍이 되어 있는데, 수놈 암놈이 사랑하고 새끼들을 중심삼고 한 패거리를 이루어 나가는 걸 가만히 보는 거예요. 아담 해와 자신도 앞으로 이렇게 돼 가지고 한 패거리가 될 것을 천사장은 알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따먹지 말라고 훈시한 것은 아담에게 한 말이 아니에요. 천사장에게 한 말이지요. 그랬는데 무엇을 느꼈느냐 하면 말이에요, 해와를 품고 무릎에 앉히고 자게 된다면 벗고 무릎에 앉았으니 남자 여자의 그것들이, 생식기가 접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데, 거기서 ‘나도 저렇게 수놈 암놈과 같이 한 번만 관계를 하면 이렇게 되겠구나.’ 하는 걸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체가 위할 수 있는 환경인데 자체 자각을 중심삼고, 자기를 중심삼고 행동하게 되면 위험하다는 거예요. 도의 길을 가는 사람도, 성인들도 마찬가지예요. 반드시 그런 입장에서 타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거라구요. 자유의사에 의해서 타락한 것이 아닙니다. 자유 환경의 의사를 거스르는 자리에 서 가지고 자체만, 해와만 바라보고 행동한 거기에서 문제가 되었다는 거예요.

그것이 자체 자각이에요. 절대 자각을 느껴야 될 텐도 불구하고, 모든 만물은 나면서부터 절대 자각권 내에서 화합해 가는 데 있어서 자체를 중심삼고 아담과 천사장과 해와 중심삼은 거기에 있어서 상대적 관계의 개념, 저렇게 대함으로 말미암아 그 패가 생기고 일족이 생겨난다는 것을 알고, 자기도 그런 호기심을 갖고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에 나도 해보겠다는 자체 자각으로 말미암아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본연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체를 부정해야 돼

그 세계는 상대 자각을 하게 돼 있어요. 전체를 위해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위하겠다는 자각으로 말미암아 타락됐다는 거예요. 일반 신학계에서는 ‘자유의사, 자유의사!’ 그러지만, 그거 왜 그렇게 됐는가를 모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야 되기 때문에, 태어나기를 자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상대를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또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각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상대적 자각권이 미리 돼야만, 상대로부터 자극을 느껴야만 사랑이 찾아오는 거라구요.

그런데 천사장은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 환경의 사실을 바라보고 아담이 그 책임을 못 하고 갈라져 가지고 해와가 외로워하니 해와를 벗고 기르고 업고 하던 그런 자리에 있어서 자체 사랑의 자각을 느낀 것을 억제 못 해 가지고 타락했다는 거예요.

그것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절대 자각세계에서 절대 순종 전체를 자각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자체 자각을 중심삼고 결론적 행동을 했기 때문에 타락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간섭할 도리가 없어요. 그런 세계를 창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체 자각의 세계를 위해서 존재하도록 안 되었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은 그런 천사세계를 지배할 수 없는, 타락한 세계를 간섭할 수 없는 외롭고 불쌍한 자리에 떨어져 나갔다는 거예요.

이것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에덴동산에는 자체 자각이 없어요. 절대 자각권 내에서,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위해 존재해야 될 텐데 자기를 위하라는 그런 개념이 없는데 자기를 중심삼은 자체 자각이 출발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세계에 들어가요. 전체를 부정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1대고 아담 해와가 2대인데, 참부모가 2대이고 축복가정은 3대예요. 그 가운데에는 아무것도, 제3주체가 개재할 수 없다는 거예요. 지금 여기 윤 박사, 윤세원이라는 이름도 없는 거예요. 대한민국도 없는 거예요. 윤 씨네 가문도 없는 거라구요. 전부 다 부정해야 됩니다. 부정하고 어떻게 들어가느냐 하면, 절대 위할 수 있는 세계권 내에 들어가야 돼요.

부자지관계에 있어서 삼대상목적을 전부 다 해결하고 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윤 박사보고 어떻게 하든지 아버지를 전도해 가지고 아들딸을 전도하라고 그랬는데, 아버지가 통일교회를 모르고 가지 않았어요? 아들딸도 전부 다 그렇고 말이에요. 이젠 낚아채야 돼요. 강제로라도 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때가 왔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자체 자각! 상대 자각을 해야 할 텐데 자체 자각을 중심삼고 타락했다는 거예요.

자체 자각이라 하게 되면 결심하고 새로 출발하는 데 필요하다는 그런 것이 아니에요.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세계는 전체를 위하는 세계였어요. 위하는 자각이 일변도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체 자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모든 만물들이 수놈 암놈, 이렇게 새끼 쳐 가지고 떼거리를 지어 어머니 아버지를 따라다니고, 어미 아비는 또 새끼를 사랑하는 걸 보니까 본성이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벗고 가까이 지내는 해와를 무릎에 눕히고 안고 재우는 입장에서 보게 될 때, 그런 행동을 순간만 하면 저렇게 된다고 할 때에 그 행동을 저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거지요. 알겠어요?

그런 입장에서 거둬 나가야 되기 때문에 모든 전체, 남자나 여자나 생겨나기를 자기를 위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에요. 남자는 여자 때문에, 여자는 남자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남자 혼자 할 수 없어요. 둘이 합해야 된다는 거예요.

합하는 데는 서로 위하는 사랑에서 크지, 자기를 위하라고 하는 것은 전부 다 기울어서 떨어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완전 부정이에요. 지금까지 세상에 자라난 순에서부터, 근원에서부터 자란 모든 걸 잘라 버려야 됩니다.

그래, 윤 총장이 12년 동안 해먹었지만, 종과 같은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내가 아이들을 위해서 길러 줘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총장 해먹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하다는 거예요. 그것이 문제예요. 전체를 위해 살아야 할 텐데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교회가 바라보고 상하가 바라보고 좌우가 바라보고 환경 여건이 전체를 위하기를 바라는데 그렇지 못하면 문제가 되는 거예요. 파괴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선생님 생애는 그거예요. 에덴동산에서 전부 위해서 살던 본연의 기준에 있어서, 자체 자각을 중심삼고 편파적 환경적 여건에 자기와 관계돼 있는 환경만 중심삼고 절대시하는 이런 입장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그걸 부정해야 돼요.

자기 이름으로부터, 자기 일족으로부터, 자기 나라로부터, 자기 세계로부터, 자기 지식을 부정해야 된다구요. 그러지 않으면 저나라에 가서 문제가 돼요. 타락성이 나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청평에서 정오정착이라는 말을 했어요, 정오정착. 그림자가 없어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본연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절대 위하고, 우리도 절대 위할 수 있는 입장에 서면, 둘이 다 사랑 가운데 포괄되기 때문에, 비 올 때 번개 가운데 포용되어 있는 거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어둠이 없는 정오정착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의식 구조까지, 자기 개념까지 없다는 거예요. 완전 위하는 데는 자기 개념이 없어요. 자기라는 관념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 생각이 있게 되면 저나라에 가서 그걸 해소하기 위해서 수백년 수천년을 기다려야 돼요, 다 알면서도.

하나님이 얼마나 안타까워했겠어요? 그걸 알아주는 사람, 알고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사람이 없다는 거라구요. 타락한 행동, 아담의 혈통적인 것을 따라 가지고 자기를 중심삼고 관계돼 있는데, 이것을 이론적으로 부정해서 본연의 세계에 돌아가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거에요. 이게 귀한 거예요. 알겠어요? (훈독 계속) 자, 기도하라구. (양창식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