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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와 정성

일시: 1971.03.04 (목) 장소: 한국 중앙수련원

​이번에 돌아가면 서울에 왔었던 교수들을 중심삼고 원리연구회를 빨리 강화시켜야 되겠습니다. 다음번에는 총장이나 차장 이상만 초대하려고 합니다. 될 수 있으면 지역사회에서 한번 해보도록 하십시오. 부산에서 한번 시도해 보세요.

​효과적인 전도 방법

​앞으로는 전도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전도대원(傳道隊員)들을 중심삼고 한 1년만 활동하면 교인들이 상당히 늘어나리라고 봅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처녀들은 처녀들끼리, 총각들은 총각들끼리 10명씩 팀을 짜서 부흥단을 만들어 전국에 배치해야겠습니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전도대원 부인들은 2년만 지나면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그 자리를 계승할 사람들을 준비해 놓아야 겠습니다. 그리고 각 교회는 부인대원들이 돌아갔다고 해서 그냥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언제든지 고정적으로 열 사람을 정주시켜서 전도활동을 시켜야 됩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식구들이 불어날 것입니다. 식구를 늘리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기동대원을 중심삼고 활동을 하면 비용도 얼마 안 들어가고 언제든지 활동하게 할 수 있습니다. 백명만 넘으면 상당히 쉬운 것입니다. 앞으로 그런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본부도 그렇게 해야겠습니다. 지구장들은 대원들을 관리하고 식구들 가정을 순회하면서 식구들에게 전도를 시켜야 합니다. 식구들간에 중간 연락을 취하면서 이런 활동을 하게 하면 완전히 이중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성교회에는 장로제도, 집사제도, 구역제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도부 인들이 있어서 서로 관계를 맺어 순회를 하면서 전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한 목사의 계획을 밑에서 밀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오면 그저 원리강의나 해주는데, 그래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부조직까지 만들어서 중앙에서부터 그 세부요원들까지 모두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새 식구들이 교회에 들어와도 교회 내용을 모르면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직접 대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됩니다. 책임자들이 그런 일을 못 하니까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기동대원이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이 전부 다 새로 나온 사람이 누구라는 연락을 받아 가지고 대번에 찾아가서 그 사람을 중심삼고 그 친척까지 연결짓는 것이 전도하는 데 제일 빠른 길입니다. 노방에서 전도하거나 개인 개인을 만나서 전도하는 것보다도 친척관계나 친구관계 등 연줄을 통해서 전도하는 것이 제일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친구관계이니만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란 것을 잘 압니다. 그러므로 '저 사람이 가는 곳이라면 틀림없을 것이다' 하면서 백퍼센트 믿고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서로 위하고 서로 신임하는 처지이니까 자기를 나쁜 곳으로 인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나가서 전도를 하면 좀 다릅니다. 아무리 통일교인 이라고 해서 전부 믿을 수 있어요? 믿을 수 없거든요. 원리 말씀을 듣고 말씀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믿고 따라오기까지는 1년 6개윌 이상의 시간이 소모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만나서 한 사람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3개월 이상이 걸립니다. 자주 그의 집을 방문하여 신앙을 키워 준 연후에야 비로소 진리도 좋고 사람도 좋으니 한번 움직여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지간이나 친척지간에는 이미 인연이 맺어져 있기 때문에 강의만 해주면 금방 식구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척이나 친구를 중심삼고 전도하는 것이 제일 빠르다는 것입니다.

일 1인 전도

그렇다면 전도대원들은 어떻게 전도를 해야 되느냐? 매일같이 무작정 돌아다닐 것이 아니라 백 집을 돌았으면 그중에서 열 집을 고르고 그 가운데서 다시 한 집을 골라서 집중적으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한 달에 한 사람 전도하는 것을 목표로 움직여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 달 동안에 한 사람을 전도했다면, 그 사람이 한 달 동안 정성들이며 수고 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 한 사람이 전도되었으면 그 다음에는 전도된 그 사람에게 '너도 너희 친척들에게 내가 너에게 한것처럼 정성을 들여 가지고 전도를 하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 전통을 세워 놓고 지도하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달에 한 사람씩을 전도하는 일률적인 방법으로 나가게 되면, 한 사람에서부터 그 다음 사람으로 이어지는 횡적인 전도가 벌어져 식구들이 무한정 늘어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가 모두 교회를 나오지 않다가 아버지가 나오게 되면 어머니는 자동적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나오게 되면 자식들은 자연적으로 따라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또, 어머니가 우리의 사상으로 신념이 서 있으면 친척 친지들은 자연적으로 전도가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중심적인 기반을 확대시켜 나가면서 전도하는 것이 제일 빠른 방법인 것입니다.

지금 나가 있는 전도대원들은 무작정 돌아다녀서는 안 됩니다. 한 달 동안에 세 집을 정해 놓고 그 세 집만 중점적으로 방문하여 말씀을 전한다면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전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백 집 가운데 세집을 표준으로 뽑아서 방문하는 것입니다. 매일 갈 수 없으면 다른 집을 돌아다니다가 돌아올 적에는 꼭 그 집을 들려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면 여러분이 안 가면 기다려지고 보고 싶어지는 그런 심정적인 유대관계가 맺어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의 한 사람이 문제입니다. 그 한 사람을 두고 3년간 최고의 정성을 들여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이 전도되면 세 배 이상의 결실이 거두어질 것입니다.

정성이란 한꺼번에 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할 때에도 대중을 앞에 놓고 설교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 사람을 놓고 설교한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은혜를 받아 눈물을 흘리면 그것이 전체로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구장이나 지역장들이 교회를 발전시키지 못한 이유는 뿌리도 없이 공중에 떠 있는 설교를 했기 때문입니다. 흡수될 수 있는 터전이 없으니 전도가 될 게 뭡니까? 지구장 자신도 자기의 발판은 자기가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어떤 지시를 했을 때 지구장들이 생명을 걸고 움직이는 본을 보여야 일반식구들도 움직이는 것입니다.

한 달을 중심삼고 전도하게 될 때, 한 달 동안 백 사람을 대하더라도 그 가운데 어떤 사람을 통해서 수확의 결실을 맺을 것이냐? 한 사람을 정해 놓고 정성을 들여서 결실을 맺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아흔 아홉 사람이 다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 달 전도한 조건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작전을 세워 놓고 전도해야지 한 달에 한 명도 전도하지 못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밥만 먹으면 전도를 해야 되는 책임자들이 한 달에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성을 안 들였기 때문입니다.

전도대원들이 어느 지역을 동서남북으로 갈라서 가정 심방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다 돌아다녔다고 해서 그 활동이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 지역을 바꾸어서 또 돌아보라는 거예요.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배경이 다르고 선조가 다르고 현재의 자기 심정이 다르기 때문에, 갑이라는 사람이 그 집에 가서 배척받았다고 해서 을이라는 사람이 배척받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갑은 배척받았어도 을은 가서 환영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구장들이 와서 하는 말들이 이제는 전도할 곳이 없다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전도할 곳이 없다는 것은 전도하는 작전을 잘못 세웠다는 것입니다.

조별로 다 돌았으면 그 다음에는 개인별로 읍이면 읍 전체를 돌게 해야 합니다. 세 번 이상 돌게 되면 대충 읍민들의 사정을 파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일 주일만에 찾아갈 사람, 한 달만에 찾아갈 사람, 석달만에 찾아갈 사람, 혹은 여섯 달만에 찾아갈 사람으로 분류를 해서 장기적인 전도계획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단번에 되지 않는다고 낙망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한다면 왜 찾아갈 곳이 없겠습니까?

평소에 사람들을 잘 파악해 둬야 합니다. 매일 심방해야 할 사람, 일주 일만에 찾아가야 할 사람, 두 달 후에 찾아가야 할 사람, 혹은 쓱 지나가다가 목마를 때 물이나 한 모금 얻어 먹으러 찾아갈 사람 등, 천태만상의 사람들을 형태별로 분류해서 설렁설렁 기분을 돋구어 가며 전도를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스무 사람 가운데 열 사람을 추리고, 또 그 열 사람 가운데 세 사람을 추려서 결실을 맺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전도가 안되겠습니까? 자기가 전도할 사람을 놓고 아침 저녁으로 정성을 들이면 자연히 끌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전도를 나갔다가 들어와서도 기도하면 선조가 걸려들어도 걸려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영계의 헙조

우리는 이러한 입체적인 배경을 활용하여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전을 구사해 가면서 싸움을 해야 됩니다. 전투가 벌어지면 함포사격도 해야 되고 소총사격도 해야 되고 엄호사격도 해야 되듯이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입체적인 영계를 배경으로 하여 선조가 동원되는 영적인 분위기 가운데 전도를 해 나가면 얼마나 재미있겠습니까?

한꺼번에 열 사람씩 전도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한 사람 한 사람씩 전도할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전도된 그 사람을 통하여 그의 친구까지 끌어들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 친구에게는 원리강의만 해주고 그 다음에는 전도한 친구가 맡아 지도하는 것입니다. 식구를 길러 보아야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가 하던 일들을 세부적으로 분담시켜 그 책임권을 확대시켜 나가면 자연히 식구가 많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솔방울처럼 우리 식구들이 그냥 그대로 있다면 거기서 무슨 잎이 나오고 뿌리가 나오겠습니까?

선생님이 평양에 있을 때 사탄의 역사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선생님은 식구를 위해 정성을 들였습니다. 아침에 어떤 식구를 위해 기도를 하고 그 식구가 오는지 안 오는지 기다려 보면 틀림없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신령한 가운데에서 기도를 해보면 기도가 얼마만큼 가치가 있고 얼마만큼 효과를 나타내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일을 해도 재미가 있고 하나님이 같이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를 주어도 홀딱홀딱 까먹기를 세 번만 거듭하면 하나님도 그 사람에게서 떠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지요? 주어 가지고 자기에게 이익이 돌아와야 협조하는 것입니다. 주어도 자꾸만 까먹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어요 ?

선생님이 지구본부와 지역본부를 도와준다고 하니까 전부 선생님을 바라보고 돈, 돈 하는데 그렇게 하게 되어 있어요? 그것은 하나님도 못마땅하실 것입니다. 자기 교회는 자신들이 발전시켜 가지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그런데 교회는 발전시키지도 못하고 지역본부만 지어 놓으면 무엇합니까? 어떻게 식구를 채울 것이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니 전도부터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슬퍼서 눈물이 나거나 좋아서 웃음이 나오기 시작하면 움직입니다. 슬프든지 기쁘든지 해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생애 가운데 뜻과 더불어 눈물 흘리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공적 사명을 하기 위해 뼛골을 녹여내는 듯한 고난을 극복하던 자본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의 소중한 밑천인 것입니다.

그때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했는가를 생각해 보면, 백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열 사람을 구할 때에는 그것의 열 배의 정성과 노력으로 그들을 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기에서 자신이 없으면 지구장이라는 간판을 벗어 던지고 제일 불쌍한 말단의 자리에 서서 '나는 부족합니다.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하며 심각한 심정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현재 이하의 자리로 내려가면 하나님은 나를 끌어올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심정을 유발해서 감정에 호소해야 됩니다.

공적인 입장에서 남을 위하여 희생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동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심정이 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질문을 받더라도 당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면, 상대방이 입만 열어도 벌써 저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느낌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대인관계를 통해서 그러한 체험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그 자리에 같이하고 계시다는 것을 안느낄래야 안 느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들이치면 어느누구라도 꺾여져 나갑니다. 거기에는 벼락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압력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들이 밀면 다 밀려나갑니다. 이것은 영적인 싸움이니만큼 영적인 힘의 비중에 따라 작용하는 차이가 납니다.

책임자의 정성

그러면 그러한 힘은 무엇을 중심삼고 유발시킬 것이냐? 심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유발시켜야 합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슬픈 일은 피해 가려고 하고 기쁜 일은 찾아가려고 합니다. 이런 것을 중심삼고 과연 하나님이 나와 같이하시는가를 자기가 테스트해 보아야 합니다. 더구나 책임자들이 이런 것을 몰라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부활은 일방적인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사방적으로 몽땅 뿌리가 뽑혀야 부활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또 그래야만 하늘이 협조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리적인 노정을 가는 데 있어서도 하루하루 도수를 맞추어 나가야 됩니다.

목회자는 사흘에 한번씩이라도 식구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됩니다. 선생님은 흥남 감옥에서 3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몇몇 식구들을 위한 기도는 밥 먹을 때부터 잠잘 때까지 매번 안 해준 적이 없었습니다. 설령 떨어져 나간 사람일지라도 그를 위하여 계속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선생님을 찾아와서 떨어져 나간 것을 처량하게 눈물을 흘리며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육신이 약하여 어쩔수없이 선생님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인사를 하며 떠나는 그 비참한 정경은 동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떠나갔어도 그 사람을 위해 계속 기도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 그 사람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그 계승자가 나올 때까지 기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성의 토대만 남아 있으면 아무리 식구가 떨어져 나갔다 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뜻있는 사람을 보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식구가 떨어져 나갔다고 해서 절대 낙망해서는 안 됩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한 식구가 떨어져 나가면 그 사람과 성격도 비슷하고 말하는 것도 비슷하고 걸음걸이까지도 비슷한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으로 보더라도 신기할 정도로 떨어져 나간 그 사람과 너무도 닮은 사람이면서도 모든 면에서 월등히 나은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정성들인 것은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느누구를 만나더라도 만난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더우기 하늘을 중심삼고 만난 사람이라면 절대 그 인연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그 사람이 교회에 나오다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잘라 버리거나 저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떨어져 나갔다고 해도 그 사람과 맺었던 인연만은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한국을 위하여 들인 정성의 기준이 하늘이 공인할 수 있고,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입장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한 기준만 되어 있으면 사람이 없어도 세계적으로 수확을 거둬 들일 수 있기 때문에 절대 손해 안 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자의 정성이란 무서운 것입니다. 선생님은 과거에 삼천만 민족을 앞에 놓고 이마를 땅에 대고 피눈물나는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 선생님과 여러분의 정성이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는 날에는 삼천만 민족은 틀림없이 우리들에게 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의 운세는 하나의 주체자를 중심삼고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도(道)의 책임자인데 지금까지 도를 위하여 정성을 들여 보았어요? 반드시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전도는 정성이 비례하는 것이지 지식이나 실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60년대에 이러한 체험을 다 해보지 않았습니까? 대학교를 나와서 왜 안다고 하는 사람보다 정성을 들이면서 전도한 사람이 더 낫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얼마만큼 동정해 주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한 사람을 놓고 목숨을 걸고 정성들여 보았느냐

지금 지구장들이 일편단심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밥 먹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이 죄악세계에서 한 생명 한 생명들을 어떻게 하늘의 아들딸로 부활시켜 하늘나라로 옮겨 주느냐 하는 책임적인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일구월심 그러한 사명감을 가지고 나가 보십시오, 안 되는 일이 있는가.

완전한 주체 앞에는 완전한 대상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체는 대상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기도를 하는 데는 대상이 새벽에 일어나면 그보다 먼저 일어나서 정성을 들여 주어야 됩니다. 사람은 자기를 위하여 정성들여 주게 되면 대번에 알게 되어 있습니다.

책임자는 자기 위치를 지켜 가며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책임자라면 아침에 기도할 때에 20명 이상씩은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루에 70명 이상은 생각하며 기도해 주어야 됩니다. 식구들과 같이 먹고 식구들과 더불어 살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심각한 시간은 밥 먹을 때와 잠잘 때입니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을 때 그리고 졸음이 와서 잠을 자려 할 때는 모든 신경이 거기에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그와 반면에 깨어날 때는 모든 신경이 풀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심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의 생활 가운데 세끼 밥 먹을 때와 잠잘 때가 제일 심각한 시간입니다. 뜻을 위해 그런 심각한 자리에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한번 하는 기도가 보통 때 몇 번 하는 기도 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식구들과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잔다는 심정으로 식구들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누구누구는 어떻다는 감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각이 예민해지면 멀리 있는 사람도 가까이 보이고 가까이 있는 사람은 더욱 가까이 보입니다. 척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령을 지도하는 사람들이 그 정도의 능력도 없이 맹숭맹숭해 가지고 어떻게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겠어요? 자신이 한 생명에 대해서 얼마나 정성을 들였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마 16:26)"고 하신 말씀의 뜻도 한 생명을 우주보다 더 귀하게 여기어 거기에 심정의 닻을 내리신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세계를 망각하고 한 생명을 위해서 일대일로 싸우며 인간의 가치의 골짜기를 찾아 들어가시던 예수님의 심정적 경지에 도달할 때, 비로소 새로운 식구의 인연이 얻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뜻을 중심삼고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무엇을 해보았습니까? 여러분은 가까이 인연되었던 사람 가운데 뜻 앞에서 자신이 어려울 때 위로해 주던 사람들을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일생 동안 언제든지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언제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인연을 가지고 나가게 되면 이런 인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오지 말라고 해도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식구들은 정성들여 기도하는데 책임자가 잠을 자서야 되겠습니까? 그것은 빚지는 생활입니다. 그래서는 발전하지 못합니다. 정성이란 한꺼번에 들일 수 없는 것이니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을 한 사람씩 차례를 정해 가지고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한 사람씩 붙들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실패한 것은 열두 사람을 데리고 다니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사람에게도 자기의 뼛골에 사무치는 내적인 사연을 가르쳐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책임을 다할 때까지는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밀고 나가야 합니다. 무엇을 놓고 정성을 들이고 기도를 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정해 놓은 기도의 양은 다 채워야 됩니다. 만일 자기가 정해 놓고 정성들인 사람이 뜻 앞에서 떠났다고 하더라도 그를 찾아가서 여러분의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빚을 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뜻을 따라 나오면서 하나님 앞에 한 사람을 걸어 놓고 이 사람이 떨어지면 내가 지옥간다는 심각한 심정으로 정성을 들여 본적이 있습니까? 이 사람이 내 말만 들으면 둘 다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까?

자신의 일생 전부를 걸어 놓고 6천년의 역사와 하늘 땅을 붙들고 뒤넘이치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징성을 들여야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러한 고비를 한 사람만 넘어가게 되면 몇백 명이 따라 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까?

종족 복귀

자기가 참부모를 찾고 또 그 참부모를 모셔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참부모로 세워 가지고 참부모와 같은 가치의 인격자로 만든 다음, 여러분에게 그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고 명령하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럴 때는 그 참부모의 도리를 자기가 대신하여 그를 부모의 자리에 세우고 자기는 종의 자리에 설 수 있는 마음까지 가져야 됩니다. 복귀의 길은 그러한 길입니다. 여러분은 복귀노정에 있어서 천사장의 입장이니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보는 여러분의 신앙관념은 너무나 염려스러운 것입니다. 지금 선생님이 여기에 없으면 여러분 가운데 몇 사람이나 남아질지 의문입니다. 모르긴 해도 싸움이 벌어질 것입니다. 지금 선생님은 뜻을 위해 죽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냐 하는 관점에서 여러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심각한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가정에서는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서, 교회에서는 식구들을 위해서 내가 얼마나 정성을 들였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일 때에는 여러 사람을 놓고 들이는 것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 사람을 놓고 정성들이는 것과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정성들이는 것은 판연히 다릅니다. 동서남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가 있으면 하나의 대상을 결정지어 가지고 그 대상을 중심삼고 금을 그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방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그 사방이 그려질 때까지는 대상과 절대적인 관계를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둥근 원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도들 가운데 과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원리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전도하려 하지 말고 한 사람부터 전도할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제 1대상이 있어야 제 2대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운데 한 사람을 정해 놓고 정성을 들여 가지고 전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편지를 해서라도 전도를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전도를 하지 못하면 나중에 영계에 가서 그 사람들이 여러분을 참소할 것입니다. 자기 친척에게 참소받는 사람은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과 부모 형제는 한 층입니다. 만일 어떤 집안에서 부자간에 혹은 형제간에 싸움을 했다고 하면, 그 집안은 망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어떠한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집안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영계에 가서도 자기 친척들이 참소하게 되면 곤란합니다.

가인과 아벨은 참소의 권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참소의 권을 넘어서지 못한 세계가 타락세계입니다. 참소의 권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에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 형제들이 참소하지 않을 것 같아요?

여러분들은 자신의 부모 형제가 뜻을 모른 채 죽는다면 지옥으로 가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자기는 뜻을 알고 따라 나오면서도 자기 부모 형제가 뜻을 모르고 있다가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뜻을 모르는 자기의 부모 형제가 틀림없이 지옥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을 살리기 위해 별의별 일이라도 다해야 될 것 아닙니까? 부모 형제가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안다면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발을 동동 구르고 매를 맞으면서라도 사정을 하여 그들을 붙잡아 주어야 하는 것이 부자간의 도리요, 형제간의 의리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문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기성교회 목사들은 교단적으로 볼 때 가인 대표자의 입장이고, 학자들은 국가적으로 볼 때 대한민국의 가인 대표자의 입장입니다. 그러면 왜 목사들의 집회를 갖느냐? 그것은 지금의 때가 그런 때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해야 할 책임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기성교회 목사들이 신생님의 말을 듣지 않으니 빚을 짊어지면서도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명을 책임지고 있으니 심각해야 한다

이번에 기성교회 목사들을 중심삼고 원리 공청회를 하는 데에 백 오만원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당 일만 구천 오백원이 든 셈입니다. 그것은 삼십만 원짜리 교회 네 개를 마련할 수 있는 돈입니다. 그 돈으로 지역 본부를 짓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할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 하지 않습니다. 잎은 떨어져 버리기 때문에 잎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지와 줄기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학자들이고 기독교에서 최고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목사들이니, 첫째는 목사에 대해서 선생님이 해야 될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도 얻어먹기만 하고 그냥 있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리 원리를 한 번 듣게 되면 문제가 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할 때 다르고 두 번 할 때 다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자연히 말려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20세기의 기적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원리원칙의 입장에서 얼마만큼 철두철미하게 일을 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지 않으면 다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정성을 들일 때에는 함부로 들이지 말고 불쌍한 사람을 놓고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어떤 사람을 놓고 정성을 들일 때, 그 사람이 밥을 굶고 헐벗고 있다고 생각되면 추울 때에도 옷을 벗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기준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이만큼이라도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고, 불쌍한 사람들을 보게 되면 그들을 도와 주기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갖다 주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죄가 되겠습니까? 주고 싶은 마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욕심을 갖게 될 때에는 하나님도 찬양하시는 것입니다. 자기만 먹고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전부가 좋게 하기 위해서, 현재에는 고통스럽더라도 미래에 잘살게 해주기 위해서 욕심을 내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의사가 수술을 하려고 메스를 들었는데 밤 12시가 되었다고 해서 졸겠어요? 그런 의사와 마찬가지로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만큼 심각해야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을 보게 되면 전부 다 흘러가 버릴 사람들 같습니다.

지금 가정과 교회와 사회의 삼각권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은 가정을 중심한 생각이 강합니까, 교회를 중심한 생각이 강합니까? 아니면 사회를 중심하고 자기 출세하기 위한 생각이 강합니까? 여러분은 어떤 것이 더 강한지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협조해 주고 동정해 주겠습니까? 교회를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 대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구해 주는 것입니다. 구하는 데는 참된 희생이 없어 가지고는 참된 사람이 구원되지 않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이 참된 사람으로 되기 위해서는 참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참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을 십년 이상 따라 나온 사람은 믿음의 자녀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여러분들은 팔 다리가 끊어진 사람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지역장과 전도대원들은 하나되어야

지역장은 전도대원들보다 더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정성을 들이는 사람들이 금방 가짜인 줄을 알아 버려 불화가 생기게 됩니다. 아벨이 어떤 사람이냐? 편안한 자리에 있는 사람은 아벨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맨 앞에 선 사람이 아벨입니다. 그러므로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나온 전도대원들과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지역장을 하늘이 비교해 볼 때, 지역장보다 전도대원들이 더 아벨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장들은 더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역장들은 대원들을 모셔야 합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래야 되지 않겠어요? 우선 자기 집에 찾아온 손님이니 대접을 해야지요. 그들은 거기서 살려고 온 것이 아니라 복을 빌어 주기 위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니 손님을 대접해야 할 주인의 입장에 있는 지역장이 과연 대원들보다 더 큰 정성을 들이며 쓴 잔을 마시고 고통을 당해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선생님은 지역장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선생님이 지방을 순회하면서 지역장들에게 협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는 데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아침에도 먼저 일어나서 사람들을 깨우고 전도에 앞장서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는 지역장은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전도 체제를 지구장 체제로 해야 된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가인 아벨이 아니라 정성을 들이는 데 있는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로 모신다고 해서 아벨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벨로 모시게 만드는 것은 내 것 뿐만이 아니라 남의 것까지도 내 것으로 만드는 놀음입니다. 아벨은 아벨대로 자기 것을 갖게 되고 가인 것까지 빼앗아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작전은 온유겸손입니다. 온유겸손해서 절대로 손해보지 않습니다. 온유겸손하여 내 것으로 만들어 놓고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손해보지 않습니다.

대접만 받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항상 선두에 서서 전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식구가 많게 될 때, 그리고 대원들이 밖으로 나가지 말고 이제 교회에 계시라고 자리에 앉혀 놓을 때 비로소 관리해 나가야 괜찮지, 처음부터 가만히 앉아서 대원들에게만 전도해 오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전도대원들이 우리 남편보다 낫다고 하도록 왜 못 만드느냐는 것입니다. 전도대원들이 열 시간 움직이자고 할 때, 지역장이 계획을 짜 가지고 열 다섯 시간 활동하자고 하면 전도대원들은 완전히 굴복할 것입니다.

지역을 발전시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장이 잘하고 대원들이 잘한다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는 고충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람의 성질 가운데에는 고질적인 성질도 있기 때문에 상충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때는 직접적인 작전보다도 포위 작전이 제일 간단한 방법입니다. 말없이 1년만 그 작전을 하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일을 하는 데에는 자기와 친척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하는 것이 제일 빠르다는 것입니다.

신앙길은 자기 스스로 개척해 가는 길

내가 뜻을 위했다면 얼마만큼 위했을까? 10년 전에 뜻을 위하던 나와 오늘의 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뜻을 위하는가? 그것은 남에게 물어 볼 필요없이 자기 스스로가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은 자기 스스로 개척해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신앙길을 가는데 있어서 누구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움직이면 안 됩니다. 그것은 일하는 것이지 신앙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신앙이 올라 가고 있는가 내려가고 있는가를 스스로 알아서 조절해 가지고, 하늘 땅을 붙들고 거기에 화해서 하나님 앞에 정성을 들이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전도하는 데는 비위가 좋아야 합니다. 남이야 욕을 하거나 말거나 자기가 할 일은 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전도하려면 욕을 먹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개를 짖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욕을 먹게 되어 있지요.

자기 남편을 맞이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전도대원이라는 사람이 떡 들어가면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요? 눈살을 찌푸릴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분 나쁘게 하는 것도 한 번 가지고는 안 됩니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찾아가서 그쪽에서 내가 너무 지나치게 했구나 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다음에 찾아갈 때는 그만큼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입니다.

복귀역사가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기분 나쁜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남으로부터 좋은 말만 듣고, 좋은 얼굴만 보려고 하면 술좌석에나 가야 하는데 그런 자리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남을 녹이는데 뒷맛 좋고 좋은 말만 듣고 하려다가는 망합니다.

하나님은 반대 방향으로 이끄십니다. 침을 뱉고 주먹질을 하고, 이런 일을 당하지 않고는 복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이 도적같이 온다고 한 성경 말씀은 참 잘한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말씀은 선생님에게 있어서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그런 싸움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좋아할 게 뭡니까?

전도하다 핍박받더라도 감사하라

전도하러 다니다가 핍박받고 반대받고 매맞는 것이 일쑤인데 죽지 않는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뜻길을 처음 출발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죽을 마당에서 욕먹고, 욕먹는 마당에서 대면하고, 대면하는 마당에서 말하고, 말하는 마당에서 좋아하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기성교인들을 욕먹는 마당에서 대면하는 때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을 초청 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앞에 봄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오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 교회가 문제의 교단으로 등장하니 알아보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앞으로 우리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질 것 같으니까 거기에 동참해 보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빨리 커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크게 되면 무섭게 느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들보다 낫다고 생각되면 오지 말라고 해도 옵니다. 자기들이 살고 이익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를 찾아올 것입니다.

뜻적으로 볼 때, 우리는 승공연합 활동으로 외적인 면에서 그들과 싸워 이겼기 때문에 이제는 내적인 종단을 중심삼고 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적인 싸움에서도 이기게 되면 그 다음에는 국가 전체를 복귀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기성교회를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전도대원들이 나가 싸우는 것은 바로 기성교회를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반인보다 목사들이나 기성교회 교인들을 찾아가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욕을 먹으면서도 목사들을 찾아가서 전도해야 합니다. 아침에 찾아 가고 저녁에 찾아가고 자주 찾아가서 이런 말 저런 말들을 인간적으로 주고받으면 처음에는 반대하다가도 나중에는 우리 교회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재림론을 잘 얘기해 주면 넘어오게 되어었습니다.

그래도 자꾸 반대를 하면 '우리가 당신네 교단에 서서 강의해 보고 또 당신들이 우리 교단에 서서 강의해 봐서 당신네가 옳은지 우리가 옳은지 한번 알아보자' 하며 자주 쫓아다녀야 합니다. 그러면 오지 말라고는 못할 것입니다. 옛날같이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니 한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목사들이 걱정이 생길 것이고, 걱정하는 목사 밑에 누가 붙어 있겠어요? 그럴 때는 떡 찾아가서 '목사, 집사들, 당신들의 근심과 걱정을 우리가 다 알고 있소' 하는 것입니다. 누가 가르쳐 주더냐고 하면 그냥 다 알고 있다고 넘겨 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은 자꾸 얻어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 무서운 작전입니다.

사탄은 믿는 사람의 뒤를 따라다닙니다. 그러므로 사탄보다 더 열심히 밤이나 낮이나 전도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서울에서 목사들을 초청하게 되면 그때 같이 따라오면서 작전을 쓰는 겁니다. 그렇게 1차, 2차, 3차 전도작전을 하여 딱 맞아떨어지면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일주일 계획으로 시작한 일이 3일만에 맞아떨어져서 끝이 나면 얼마나 신나겠어요?

전도대상자에 대해 연구하라

전도를 할 때에는 함부로 얘기를 해주어서는 안됩니다. 그 사람이 음질인지 양질인지를 파악해서 거기에 맞추어 가지고 얘기를 해야 합니다. 사람 중에는 음성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과 양성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이 있습니다. 음성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절대 우울할 때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양성적일 때, 즉 기분이 좋을 때 가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기분이 나빠서 웅크리고 있을 때에는 절대 신나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럴 때는 기분을 봐 가면서 동정해야 합니다.

또, 양성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양성적일 때에 이야기를 하면 안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반대로 음성적일 때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양성적일 때, 즉 기분이 좋을 때 이야기를 하게 되면 간직하지 못하고 모두 흘러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럴 때는 피하고 반대로 심각할 때에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전도를 하려면 사람들의 섭리를 연구해야 합니다. 표정이나 걸음걸이만 보고도 저 사람이 좋아하겠는지 싫어하겠는지 알아야 됩니다. 그 사람의 감정을 공식적으로 감정(鑑定)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나 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 듣고도 그에게 좋은 일이 있는지 나쁜 일이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 아내가 방에 척 들어오면 '당신 왜 기분이 좋지 않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는 언제 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남편이 다 알고 있으니 할 말을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잼대를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게 되면 그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는 생명을 접붙이는 일이기 때문에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놓고도 정성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일생을 걸어 놓고 몇 사람한테 정성을 들여 보았습니까? 또한 자기를 위해 정성들여 주는 사람이 많다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정성을 들이는 사람은 복을 받지만 정성들인 것을 받는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내가 정성을 들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여 주었는데 그가 말을 안 듣는다고 외로와 하거나 슬프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천리 원칙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서럽거나 외롭지 않습니다. 때가 가까와 오기 때문에 봄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그러나 정성을 들여 주었는데 그것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가을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때가 가까와 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첫째는 심정, 둘째는 합심, 세째는 봉사

여러분이 어느 지역에 가서 전도를 할 때 맨 처음에는 질곡시대가 있습니다. 이 질곡시대를 타개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어느 정도까지 가게 되면 포화시대가 오는데 대개의 사람들이 이 포화시대에서 망해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포화시대를 중심삼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포화시대가 자기를 심판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의 고개를 못 넘어갑니다. 개인이 탕감하게 되면 가정이 복귀되는 것이요, 가정이 탕감하게 되면 종족이 복귀되는 것이요, 종족이 탕감하게 되면 민족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탕감복귀섭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는 자리가 아니라 비참하고 억울하고 눈물이 흐르는 자리에서 탕감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면에 중점을 두고 강력히 생활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책임자는 불쌍합니다. 앞으로 활동하는 데 있어서 첫째는 심정이요, 둘째는 합심이요, 세째는 봉사입니다. 이 세 가지만 잘하면 됩니다. 지역장 중심이니 지구장 중심이니 하는데 오늘보다 더 정성들이고 활동한다면 누가 뭐라고 말하겠어요?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나온 여러분들이니 전도하는 데 열의를 다해야 합니다. 기성교회를 대하는데 있어서 전도가 안 되더라도 끈기있게 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를 이해하는 목사들을 연결시켜 가지고 더욱 강화해 나가면 결국은 좋은 결과가 올 것입니다.

기성교인들을 대할 때는 인간적으로 가까워진 다음에 전도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기성교회의 신앙 생활에 대해 서로 토론하다가 약점이 있을 때에 뼈 있는 말을 한마디씩 해주면서 이끌어 가지고 우리 원리강의를 듣도록 하면 됩니다. 사람을 전도하려면 먼저 그 사람이 나에게 호감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좋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번 기간에는 기성교회를 위해 정성을 많이 들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이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4월 10일부터 4월 20일까지 전국적으로 부흥회를 개최해야겠습니다 부흥강사는 그 도내의 지역장과 지구장이 서로 바꾸어 가면서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전국에 있는 각 지구에서는 원리연구회를 조직해서 활동해 주기 바랍니다. 앞으로 서울에서 거국적인 학생승공대회를 개최하려고 하니 빠른 시일내에 각 지구에 있는 대학을 중심삼고 원리연구회를 조직해야 되겠습니다. 이번에 전국 각 대학 교수들이 왔다 갔으니 그 교수들을 중심삼고 하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