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이와 같이 참석해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여러분을 중심삼고 보면 이 사람은 벙어리와 같은 입장에 있고, 나를 중심삼고 보면 여러분은 귀머거리와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이 두 장벽을 헤쳐 주고 의사를 소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 여기에 있는 통역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사람에게 많은 성원을 해주셔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나는 동양 사람입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입니다. 미국 국민들은 한국 하게 되면 한국동란의 인상을 절실히 느낄 줄 압니다. 제가 미국에 계시는 여러분들을 이와 같은 공식석상에서 만날 수 있기를 다년간 기도하였는데, 오늘 이와 같이 이루어진 데에 대해서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고, 여러분 앞에 진실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 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오늘날의 세계 정세를 바라보게 될 때에, 민주세계나 공산세계가 금후의 하나의 세계를 모색하는 데 있어서는 그 자체만으로써 해결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즉, 사람의 힘으로써는 수습할 방안과 대책을 강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만일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세계의 사정을 잘 아시고 금후의 우리 인류의 고역상을 잘 아시기에, 인간을 좋은 세계로 인도해 주시리라고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현재에 있어서, 하나님이 확실히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하는 것을 결정짓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하나님이니, 하나의 세계종교니 하는 문제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통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신 하나의 이상적인 종교를 추구하는 것도 사람을 중심삼고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반드시 사람을 통해서만이 하나의 세계종교를 찾을 수 있고 하나님의 권위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하는 것을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이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존재하려면 존재하기 위한 선(先)의 조건이 필요합니다. 반드시 작용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작용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재와 작용이라는 것은 뗄래야 뗄 수 없고, 갈라놓을래야 갈라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작용은 혼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작용하는 데는 반드시 상대가 필요합니다. 즉, 주체와 대상 관계가 절대적인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혼자서 이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게 된다면 '저 사람은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 거미줄에 조그마한 무엇이 매달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보고 손을 오르락내리락하면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미국의 대통령께서 이런 큰 홀에서 혼자 큰소리로 웃으면서 강연을 한다면, 누구나 대통령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평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컵을 하나 놓든가 이것보다 더 작은 것, 조그마한 종이 짜박지를 놓고 큰소리로 말하면서 껄껄 웃는다면 그때의 대통령은 정상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만일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신다 할 때 그 하나님이 아무것도 없는데, 대상의 존재가 없는데 혼자 웃고 춤을 춘다면, 절대적인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 하나님이 정상적인 하나님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극히 작은 대상을 놓고 좋아하고 껄껄 웃고 춤을 춘다 하더라도 그때에는 정상적인 하나님인 것입니다. 존재는 반드시 작용을 거쳐야만 계속되는 것입니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 관계가 이렇듯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인식했으리라고 봅니다.
주체와 대상이 있다면, 주체와 대상이 서로 주고받는 작용을 하는 데 있어서 손해나는 작용은 절대로 안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저녁 여기에 참석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스터 문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한번 왔는데, 자기가 손해날 것을 완전히 안다면 여기에 온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문선생을 만나서 무슨 말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조금이라도 플러스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 같아서 온 것입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이 돌아가게 될 때, '아이쿠, 괜히 왔구만. 손해가 막심한데' 할 때는 다시 오라고 해도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해나기 위해서 작용하지 않습니다. 손해나는데 작용이 계속되거나 존재가 계속 된다고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샌프란시스코를 두고 보게 되면, 사람들이 마켓 스트리트(Market Street)에 많이 나갑니다. 거기에 나가는 데 있어서 어떤 사람이 매일같이 십 전 손해보기 위해서 나간다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이라는 거예요. 무엇인가 이익을 얻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곳이 서로서로가 이익될 수 있는 이상의 자리를 유지하게 될 때에는 계속 출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주체도 이익될 수 있고 대상도 이익될 수 있는 공동목표를 발견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작용이 중지되는 것입니다.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요, 전진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보다 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일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는 작용을 하는 데 있어서 작아지는 것을 위해서 작용한다는 원칙을 세운다면 이 우주는 형성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고받는 데 있어서 보다 나아질 수 있는, 서로의 가치적인 내용을 발견할 수 있는, 보다 큰 목적을 대할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는 데에서부터, 플러스 방향을 향해서 작용한다는 원칙에서부터 우주는 형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작용의 원칙이라는 것은 대상적인 목적을 필요로 해야 가치적인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이 우주는 반드시 어떠한 절대적인 주체와 대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작가로 한번 비유해 봅시다.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자기가 구상한 바와 목적한 바를 중심삼고 만드는데, 만들어진 것이 자기가 구상하고 목적한 것보다도 더 잘 되게 되었을 때에는 그 작품을 영원히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 작품이 이 땅 위에 하나밖에 없는, 상상할 수 없는 걸작품이 되었다고 하게 될 때는, 자기가 도망을 가든가 이사를 가게 되면 먼저 그것부터 챙겨 가지고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 하나님이 우주를 만들었다면, 하나님도 대상이 없어 가지고는 좋아할 수도 없고 기뻐할 수도 없고 어떤 작용도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대상을 짓는데 광물을 대상으로 지으려 했겠느냐? 아닙니다. 그것보다도 식물? 식물도 아니요. 동물도 아닌 것입니다. 동물 중에 최고의 자리에 있는 인간은? 그 인간에 대해서는 하나님도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이 대상의 존재로 누구를 지었겠느냐고 물어 보더라도 두말할 것 없이 그것은 사람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걸작품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면 주인을 몰라보는 사람으로 만들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작가라면, 자신이 만든 작품에게 '얘야, 저기 좀 갔다 와' 하면 '예!' 하고 갔다 오고, 좋은 것을 보고 같이 웃자고 하면 웃는 그런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면 얼마나 자랑하고 싶겠어 요? 그렇기에 하나님이 하나의 걸작품을 만들 때에, 말이나 감정을 모두 통할 수 있게끔 만들고 싶었을 것임이 틀림없을 거라구요.
그것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이 바라는 목적과 일치될 수 있고, 언제나 하나님과 같이 있기를 바라게끔 아니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절대자가 우리 인간을 만들었다면 인간의 목적과 절대자의 목적이 엇갈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절대자인 높은 그분에게 올라가고 절대자인 높은 그분은 인간에게 내려와 가지고 일치될 수 있는 방향이 없어 가지고는, 즉 인간이 절대자인 그분과 일치될 수 있는 방향이 없어 가지고는 우리를 지은 창조주와 우리 자체들의 목적이 일치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작용을 하는 것이 뭐냐 하면 양심작용이예요.
인간의 마음은 누구나 최고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여러분, 남자나 여자나 세계의 대통령 한번 되어 보고 싶지 않은 사람 있어요? 다 있다는 거라구요.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최고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여자들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남자를 원합니다. 그러나 여자가 그 남자를 취했지만 그 남자보다도 더 높은 분이 있으면 그분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거예요.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그대로 두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 사람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만일 절대자가 있다면 그 사람을 내놓고 절대자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알게 되면 그 하나님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 안 만들고 싶어요? 그런 마음이 없다면 여러분은 그분과 상봉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있으면 틀림없이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할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하게끔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자고로 인간이 생겨난 그날부터 누구나 다 바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인간을 걸작품으로 지었다면, 걸작품인 그 존재가 하나님에게 점령하겠다 하고, 하나님을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고 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싫어하겠어요? 인간의 최고의 권위가 뭐냐 하면,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들고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어 최대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이 욕망이 없어 가지고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권한과 절대적인 하나님을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욕망은 어린 시대나 청년시대나 장년시대나 노년시대나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 속에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욕망을 가진 마음이 하나님을 소유하고도 남을 수 있는 크기가 되었느냐, 하나님을 소유하고도 남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도 전부 다 소유….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 그 하나님을 영원한 내 하나님으로 만들려면, 하나님을 전부 다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한 가지를 놓쳐 버리면 하나님을 놓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 속에 숨어 있는 하나의 사랑, 그 비밀의 사랑을 점령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영원한 나의 하나님으로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했다면 내 욕망은 어떻게 되느냐?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는 거예요. 여기가 인간의 욕망이 비로소 '아, 이제 내가 쉬어야 되겠다'고 할 수 있는 안착점, 즉 종착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적인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작용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그 목적을 연결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의 양심작용을 볼 때, 앞에서 말했듯이 주체와 대상이 없어 가지고는 작용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주체되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양심이 없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갖고 있습니다. 양심은 밤이나 낮이나 나를 대하여 옳은 길로, 공의의 길로, 선의 길로 가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손해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도 플러스되고 상대도 플러스될 수 있는 입장에서 작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인류를 찾아 나오시고 인류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찾아 나오고 있지만, 확실한 일치점을 못 본 채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날에는 그분은 내 것이요, 그분이 지은 모든 피조세계도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다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이 상봉할 수 있는 그 종착점에서는 무엇을 중심삼고 만나려고 했겠느냐 하는 것을 알아봅시다. 여러분들 가운데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대해 바라는 최고의 자리를 하나님은 알아주겠지 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았는데 그 하나님 앞에 딸이 있다고 합시다. 그 딸이 사랑하는 외동딸이라고 합시다. 내가 남자라면 그 딸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딸을 가졌지만, 그보다 더 나은 아들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면 그 아들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인간으로서 사랑을 중심삼은 최종착점의 포인트가 어디냐 하면 사위도 아니요, 며느리도 아니요,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들의 자리 이외는 없다는 거라구요. 우리 인정의 최종착점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길이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그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진짜 사랑하실 자리가 어디냐 하면 인간이 요구하는 최고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계시다는 거예요. 인정과 천정이 결합되는 자리는 하나님과 인간이 부자관계의 인연을 맺는 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단 시간내에 이런 말을 듣고 있지만, 여기 서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우주의 궁극의 진리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누구보다도 심각한 입장에서 오랫동안 추구했던 사람입니다. 최고의 자리에 들어가서 얻은 답은 뭐냐? 우주의 근본은 부자의 관계라는 결론입니다.
부자의 관계라 해서, 오늘날 우리를 낳아 주고 같이 사는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라구요. 그것은 천지를 창조한 절대적인 하나님과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우리 인간과의 관계인 것입니다. 인류가 도달하여야 할 본연의 가치의 자리는 하나님이 아버지요 우리는 자녀라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엄청난 자리를 우리에게 허락하셨다는 거예요.
부모는 자기 아들이 자기보다도 더 잘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욕망입니다. 여기 여러분들 가운데 부모 되는 분이 계시다면,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어요? 없다는 거예요. 자기보다 더 훌륭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들딸이 자기보다 더 높다고 해서 불평하고, 자기보다 더 큰 권세를 가지고 자기를 주관한다고 해서 불평할 수 없는 거예요. 그 마음이 누구를 닮았느냐? 인간이 타락했을망정 하나님의 본성을 닮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자식들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전부 다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거예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의 것인데도 불구하고, 자기한테 상속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살게 될 때는, 이만한 꼬마도 집이라든가 좋은 것이 있으면 '이거 우리 꺼야, 우리 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벌써 그 아들은 부모와 같은 소유관념을 가지고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야, 이 녀석아 내가 일생 동안 일을 해서 집을 사고 땅을 사고 귀한 것을 만들었는데, 언제 네가 하나 보태기나 했어? 왜 네 꺼냐? 이렇게 반문하는 부모는 한 사람도 없는 거예요. 부모는 그런 말을 하는 자식이 어린애일수록'이 녀석 봐라' 하며 도리어 더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으면 하나님이 가진 것을 전부 다 갖고 싶겠어요, 안 갖고 싶겠어요? 갖고 싶은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두고 보면 아버지는 위에 있는 것 같고 아들은 아래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아버지의 자리를 내가 갖겠습니다' 할 때, '야, 이놈아 안 된다' 하게 되면….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암, 그렇구 말구, 아무렴 그렇지' 한다는 거라구요. 아버지와 동등하다는 거예요.
우리 인간이 이 세계에 한 분밖에 없는 귀한 아버지를 어디에 모시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영계에 가 보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존재하고 있는 물건은 보이지만 존재하고 있는 힘이 보이지 않는 거와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이 그 귀한 하나님을 어디에 모시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귀한 분을 하늘 꼭대기에, 혹은 땅 구석에 갖다 놓을 수 없다는 거라구요. 제일 사랑하는 그분이 기쁘면 나도 기쁘기 때문에, 매일같이 보고 어디를 가도 함께 가고 언제나 같이 있을 수 있는 곳에 모시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자식을 길러 보면 그렇지 않아요? 한시라도 부모와 떨어지면 탈이 나는 거라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몸뚱이를 쓰고 있는 분으로 계시다면 문제가 크다는 거예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주의 중심이 되시는 하나님이 실제로 여기에 계시다면 전부 다 하나님을 빼앗기 위해서 싸움을 벌일 것입니다. 만일 민주세계를 대표한 미국과 공산세계를 대표한 소련이 우주의 주인인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하나님을 점령하기 위한 싸움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안 보이시기를 잘했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안 보이시기를 잘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안 보이셔야 됩니다. 안 보이시는 하나님을 나만이 볼 수 있고 나만이 대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된다는 거예요. 인간은 이런 자리, 이런 곳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위험천만한 이런 세상에, 만약 어떤 사람에게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있다면 그 사람은 이것을 어디에 감춰 둘 것이냐 해 가지고 야단일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곳에 감춰 두더라도 훔칠 수 있다구요. 그럴 가능성이 있다구요. 그렇지만 인간은 나만 보고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곳에 딱 감춰 두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 곳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 곳에다 감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났으면 어디에 모실 것이냐? 나만이 아는 곳에, 다른 사람이 모르는 곳에 모시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런 곳에 갖다 감춘다는 거예요. 그게 어디냐 하면 우리의 양심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양심을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양심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양심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면 나만이 자랑할 수 있고 나만이 하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와 같이 보이는 곳에서 최고의 사랑을 드러내고 사랑하고 싶어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최고의 사랑을 하는데 그것을 자랑하고 선포하고서 사랑하는 것은 위험천만이라는 거예요. 사람이 그러한 것을 요구할 것을 미리 아시고 하나님도 하나의 보좌에 있기보다도 인간의 마음 속에 있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마음의 중심이 되고, 우리는 그 마음과 하나된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마음은 주체요, 몸은 상대가 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같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떨어지지 않고 같이 있다는 거예요. 아들의 자리에서 고대하던 부모의 자리를 하나님은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원한 평등의 자리를 인간에게 부여하겠다는 것이 둘째로 우리 인간에게 허락한 최고의 가치의 기준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영원히 같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전서에는 '너희들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와 같이 됐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최고 가치의 자리요, 영광의 자리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 세째로는 무엇이냐?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한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 창조물 가운데서 제일 걸작품으로 인간을 창조했는데 인간도 그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섰다 하더라도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가지고 인간을 한번 창조하는 자리에 서 보았으면 하고 원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인간의 욕망이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도 허락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나를 닮을 수 있다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귀납적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님 가운데에는 남자 성품과 여자 성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되어 실체를 이룬 것이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관념이 없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씨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제일 알기 쉽게 콩을 보면, 콩은 두 쪽으로 붙어 있는데 한 꺼풀로 씌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굴 닮았느냐? 원인 되는 하나님의 모양을 닮은 것입니다. 거기에서 두 쌀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떠한 씨든지 그러한 내용을 결한 씨는 없습니다.
이 두 쪽이 완전히 하나될 때 싹이 나오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남자성과 여자성을 중심삼고 사랑으로 완전히 하나될 때 비로소 인간이 창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인간도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주체 형상을 닮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그 주체는 결과인 대상과 같은 모양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주고받는 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영원한 본체의 형상을 닮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을 하나 만들고, 하나님과 인간을 종적으로 하나 만드는 것은 사랑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 없이는 하나가 안 됩니다. 통일의 원칙도 사랑이요, 이상의 기반도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된 거기에 비로소 하나님의 종적인 힘이 같이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도 만물을 주관할 수 있고 하나님이 창조한 걸작품과 같은 인간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낳는 자녀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창조의 권한뿐만이 아니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이 느끼신 기쁨까지도 우리에게 위업으로 주셨습니다. 그런 느낌이 여러분의 자식에 대한 사랑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지만, 절대자로서 가진 최고의 사랑을,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인계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아들딸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고, 완전히 하나된 부부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랑 가운데에서 태어난 아들딸을 완전히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여러분, 사랑 가운데서도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요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대상이 되어 받는 사랑도 영원해야 된다는 거예요. 오늘날 타락한 인간들이 사랑을 찬양하는 데 있어서 형용사를 갖다 붙이는 것을 보면, 영원한 사랑, 불변한 사랑, 절대적인 사랑, 유일한 사랑 등을 갖다 붙이고 있어요. 여기에 대해서 좀더 세밀히 얘기하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어서 한 가지만 여러분 앞에 얘기를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것이요, 그 다음에는 상대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고 상대가 없어 가지고는 사랑이고 뭐고 없다는 거라구요. 오늘날 사랑에 대한 철학을 중심삼고 볼 때, 사랑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거예요. 이것은 방향이 틀렸어요. 절대적인 사랑은 상대를 통해서 오기 때문에,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머리를 숙여야 되고 온유겸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자식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대통령이라고 해서 아들을 대해 '야, 아들아 나는 대통령이다'라고 합니까? 아무것도 아닌 아들 앞에 머리 숙이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 앞에 오직 봉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여기는 거예요. 그것이 본질적인 사랑의 행위입니다. 희생봉사하는 거라구요. 그러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는 절대적인 사랑이 필요한 것이요, 절대적인 상대가 필요한 것이요, 절대적으로 만우주에 내세울 수 있는 아들딸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되어지는 이러한 고귀하고 숭고하고 절대적인 가치의 품성을 인간은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에게 앞에서 말했듯이, 첫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고, 세째는 상대와 일치되어 가지고 창조의 위업을 계승하는 것이고, 네째는 아들딸을 낳고 하나님이 만물을 지어 놓고 기뻐하신 것처럼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네 가지를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찾아가야 할 목적지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라구요. 양심작용에 의해 주체와 대상이 있다는 것은 그럴 듯한데,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을 인상적으로 기억해 두고 넘어갑시다. 우리 인체를 두고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사람에게는 눈이 있습니다. 이 눈이 어디에서 태어났느냐고 묻게 된다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거슬러 올라가 우리의 맨 처음 종지조상의 할아버지의 눈이 그렇게 생겼기 때문에 눈이 이렇게 생겨난 거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자, 이 눈이 지구성에 생겨날 때 땅이 있는 것을 알았겠어요? 또, 태양계가 있는 것을 알았겠어요? 몰랐습니다. 눈은 몰랐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눈은 이렇게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눈을 보면 깜박깜박합니다. 눈이 깜박깜박하는 것은 태양의 복사열에 의하여 눈의 수분이 증발하게 되면 큰일나기 때문에 수분을 축여 주기 위해서 깜박깜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증기가 증발하면 큰일나니까 깜박깜박해야 된다는 것을 눈이 알았어요?
또, 눈썹을 보십시오. 눈썹은 공중에 먼지가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스크린을 만들어 놓았다는 거예요. 이 눈썹이 공중에 먼지가 있는 것을 알았어요? 땀 흘릴 것을 알았어요? 땀이 이렇게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딱 이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코가 거꾸로 뚫렸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왜 이렇게 돼 있느냐? 벌써 코는 거꾸로 뚫리면 안 될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또, 이 코도 공기에 먼지가 있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코가 왜 이렇게 아래로 내려올수록 넓어진지 알아요? 물이 흘러내려 입안으로 들어가면 큰일나겠으니까 이렇게 된 거예요. 전부 다 그렇습니다.
또, 귀가 왜 이렇게 생겼어요? 이것도 거꾸로 붙어 있으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큰일날까 봐 큰 산맥, 작은 산맥 해 가지고 가운데로 휘어 몰아넣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사람의 몸뚱이는 신비의 왕국입니다. 이 몸뚱이 하나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박사가 몇 억이나 나올 것이냐? 몇 억이 나와도 끝이 안 날 만큼 신비의 왕국이라구요. 그들이 아무리 큰소리치더라도 그것을 따라가면서 결과를 통해 이익을 보고 있는 패들이라는 거예요. 박물학적이요 천문학적인 견해에서 볼 때, 모순과 상충이 없는 구체적이고 조직화된 인체가 그냥 그대로 모르는 가운데에서 생겨날 수 있어요? 그것이 그냥 그대로 될 수 있어요? 바보 천치들이라구요.
뭐, 진화라고요? 목적이 없는데 진화될 수 있어요? 진화되려면 그 이상의 힘이 횡적으로 보급되어야 되는 거라구요. 그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지만 결과가 이렇게 적응하게 되어 있으니까 진화라고 하는데, 그건 모르는 작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유물사관에서 말하는 변증법적 논리라는 것은 목적관만 밝혀 내면 깨져 나가는 거예요. 이것이 제멋대로 되었어요? 그냥 저절로 되었다구요? 저절로 되었다면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어떤 일에 대해 일년 계획을 세밀하게 세웠다 하더라도 그것을 하지 않는데 저절로 되는 것이 있어요? 그저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반드시 주체적인 힘의 작용이 그 목적을 향해서 밀어 주는 추진적인 기반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여기 있는 청중 가운데는 대학 교수도 있을 것이요 자기 나름대로 잘난 사람이 있겠지만, 이러한 인간의 모든 구조가 모르고 생겨났어요? 노(no), 그렇지 않습니다. 다 알고 태어났습니다.
안 것은 내가 아니라 주체되는 그 무엇이 알았다는 거예요. 그분의 이름을 테이블이라 해도 좋습니다. 혹은 돌팔이라고 해도 괜찮다는 거라 구요. 주체되는 그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분을 영어로 말하면 갓(God)이라 하고 한국말로 하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한 분밖에 없으니까. 자, 이만하면 하나님이 있어야 되겠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한 분의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한 분의 하나님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대상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그 목적을 성사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대상이라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네 가지의 무한한 가치의 내용을 추구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들 가운데 '나, 그런 사람 됐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구요. 내가 한 가지 물을 테니, 그런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절대적인 하나님이 지은 피조물이라면 하나의 목적을 지향해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상반되는 두 목적의 방향을 지향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이요 원통한 사실입니다. 어찌하여 마음과 몸이 갈라졌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찾는 행복은 어디로 갔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주체를 잃어버린 인간이기 때문에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중간에서 왔다갔다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면서 마음과 몸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선과 악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두 갈래로 되어 있으니, 이와 같이 뿌렸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결과로 나타난 것이 유심사관이요. 유물사관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뿌렸으니 뿌린 대로 거두어야 된다는 거예요. 유물사관과 유심사관의 싸움, 즉 공산세계와 민주세계의 세계적인 싸움을 누가 통일시키느냐? 하나님만 확실히 가르쳐 주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타락은 뭐냐 하면 떨어진 것입니다. 떨어진 것은 고장난 것입니다. 여기에 복잡한 내용이 많지만 여러분이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의 원리를 공부하면 세밀히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하여 아들딸의 입장에 있지 못한 것을 그대로 둘 수 없는 입장에 계시기 때문에, 구원섭리, 다시 찾아 살려주는 놀음을 안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이 거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처소입니다. 그러나 몸뚱이는 하나님과 반대되는 악신의 거처가 되었습니다. 양심은 천국의 처소요, 몸뚱이는 지옥의 처소라는 것입니다. 양심적인 사람은 자기의 몸뚱이를 제어하고 희생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흥하는 길과 망하는 길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선한 길과 악한 길을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열 사람의 친구를 갖고 있다고 합시다. 여러분 한 사람이 열사람을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고 그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자리에 서게 되면 그 열 친구는 떨어져 가라 해도 안 가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자기 친척이나 형제, 부모가 있으면 그들까지 관계를 맺어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열 사람뿐만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친한 사람들까지 관계를 맺게 되니 스물, 서른, 마흔, 백….수가 많아진다는 거예요. 그러나 반대로 열 사람의 친구에게 '열 사람 모두 나를 위하라!'고 한다면, 그렇게 하면 할수록 친구들은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이 가는 길은 내 것은 네 것이요, 네 것은 나라의 것이요, 나라의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더 큰 것을 위해 찾아가는 길입니다. 더 많아지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선이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된 다음에 내 것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악은 그렇지 않습니다. 네 것은 내 것이요, 내 것은 내 것이라고 한다구요. 말이 다르고 행동이 다른 사상이 이 땅 위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 시간이 없으니 그 얘기는 그만하고 넘어가자고요.
하나님은 고장난 사람들을 그냥 둘 수 없기 때문에 인간 역사를 통하여 수리공장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공장을 안 만들었다면 하나님은 없는 거라구요. 그 공장을 만들었다면 하나님은 있는 거라구요. 그것이 뭐냐 하면 인류역사 과정에 생겨난 종교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전세계의 문화권을 두고 보면, 종교 사상을 일으켜서 4대 문화권이 시작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4대 문화권은 기독교 문화권, 유교 문화권, 불교 문화권, 회회교 문화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한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세계.
4대성인을 보면,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수, 공자, 석가, 마호메트입니다. 어떤 사람은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꼽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철인이예요, 철인. 지식의 대표자예요. 지식 가지고는 인간의 생명을 좌우할 수 없는 거예요.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는 것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4대성인을 중심삼고 볼 때 그들이 가르쳐 주는 도리와 사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전부가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상이 골자입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뜻이예요. 그것이 민족주의가 아니라 세계성을 띤 세계주의적 내용을 완전히 갖추면 갖출수록 세계적인 종교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정치가, 많은 나라와 민족이 종교를 탄압해 왔지만 종교는 몇 천 년 동안 변천하지 않고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정치사는 역사와 더불어 변천해 나왔습니다. 이래서 4대 문화권에 세계인류를 규합해 넣었다는 것입니다.
네 패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의 하나님이 하나의 세계 목적을 이루어야지 네 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로 만들어야 됩니다.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내용의 종교가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높은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말할 수 없이 낮은 자리로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종의 종도 못 되는 자리로 떨어졌다는 거예요.
종교에는 여러 종류의 종교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종의 종교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양자의 종교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들의 종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부모의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종교도 필요하고 구세주도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예수고, 구세주고, 종교고 다 필요 없다구요. 대번에 하나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 땅에서 살 것이고, 그런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아들딸, 후손, 그 나라가 전부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상에서 살다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에 지상천국에서 천상천국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지옥이 생겨났고, 예수니 구세주니 종교니 하는 것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은 다 시시한 거라구요.
여기 샌프란씨스코는 동양이라는 아시아와 접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많이 발생하는 발생지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뉴에이지(newage)니 무슨 새시대니 하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것도 모르고 저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을 분간하느냐 이거예요. 그것을 분간할 줄 모르면 여러분들은 큰일난다는 거예요.
새시대라는 말은 맞다는 거예요. 종의 종교시대가 끝나서 양자의 종교시대로 체인지(change)되는 때가 되고, 양자의 종교시대가 아들의 종교시대로 체인지되는 때가 되고, 아들의 종교시대에서 부모를 만나 부모의 종교시대로 될 때는 반드시 새로운 시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중간에서는 언제나 새시대를 말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이런 것을 전부 다 알아 가지고 최후에 하나의 참된 부모를 모시고, 그 부모와 같이 살다가 천국 갈 수 있는 종교를 맞이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4대 종교 가운데 어느 종교가 제일가는 종교냐? 이것을 우리들이 찾아봅시다. 유교는 신에 대해서 막연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는다고 하는 도덕적인 관점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불교는 신이 있는 것을 가르쳐 주지만 실천의 신보 다도 법적인 신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격적 신에 대해서는…. 이슬람교는 한 손에는 코란을 들고 한 손에는 칼을 드는, 종교의 본질에서 어긋난 입장에서 신을 찾았습니다.
제일가는 종교의 기준을 무엇으로 결정할 것이냐? 인간이 타락하지 않은 본래의 선한 자리에서 창조주 하나님과 대상인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원칙적인 완전한 내용을 기준으로 해서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앞에서 말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과 한몸이 되는 것이요, 창조의 능력을 행사하는 것이요. 창조의 위업을 이어받아 가지고 기쁨을 느끼는 4대 요건인 것입니다. 그것을 중심삼고 거기에 부합되는 종교의 내용의 기준에 따라 등급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4대 종교 가운데 그런 종교가 어떤 종교냐? 우리가 기독교라는 간판 밑에 있는 것이 아니예요. 내가 이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기독교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무엇을 주장했느냐 하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독생자라고 주장했습니다. 인류역사노정에 있어서 처음으로 이분만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주장한 것은 인간을 창조한 당시의 본연의 최고의 기준을 설파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류시조가 타락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다 받지 못하고 떨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은 하나님 앞에 완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첫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첫번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받지 못한 부분을 완전히 받는 결정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나선 분이 예수님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을 보면,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둘째 번의 아담으로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첫째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과 한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하나님은 내 안에 있고, 나는 하나님 안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내적인 하나님이요, 나는 외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나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세째는 상대를 찾아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의 위업을 상속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서 맞아야 됩니다.
이런 말을 하면 기독교인들은 수긍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믿는 기독교는 나도 잘 믿고 왔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신학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기성교회의 반대를 받으면서 이 놀음을 하는 거예요. 이런 말은 미스터 문이 꾸며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한 번 발표하면 영원한 책임이 있는 것이요, 역사적인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아는 나입니다. 영계를 답습하여 궁극의 문제를 추구해 보니, 이것이 하나의 공정한 이치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세계를 대하여 당당히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남자입니다. 참된 남자인 것입니다. 지상에는 참된 여자가 없었습니다. 만일 참된 신부가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참된 신부가 있었으면,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예수님을 받들어 가지고 하나된 환경을 만들었으면, 예수님은 유대교의 최고의 대제사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유대인들이 많이 왔을 줄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들 가운데 저 사람은 예수님을 주장하는 사람이니 유대교를 비방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말을 이틀 동안만 더 들어 보고 결론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구약성경을 믿는 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확실히 알 것입니다. 시간 관계로 비약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결론에 가까운 논조로 말하고 있으니, 오해하지 마시고 좀 참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하나되어 예수님을 받들었으면 예수님은 유대 나라의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자, 그렇게 되면 예수님이 혼자 왕 되기를 바랐겠어요? 상대가 있어야지요. 그랬다면 예수님은 이스라엘 나라를 찾고 로마를 정복했을 것입니다. 죽은 예수가 400여 년에 걸쳐 로마를 정복했다면 산 예수는 40년 이내에 로마를 정복하고도 남는다는 거예요.
그랬으면 유대 나라가 나라를 잃어버리지 않고 기독교의 세계적 기반 위에서 세계를 지도하는 국가를 이미 형성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신교니 구교니 하면서 싸우는 종교 전쟁은 있을 수 없다는 거라구요. 또 예수님의 후손이 이 땅에 있어 가지고 기독교의 중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원했겠어요, 원하지 않았겠어요? 이렇게 수백 개 교파로 나뉘어져서 싸우고,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누더기 떼거지를 하나님이 바랐겠어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미국은 종합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나라인 것을 미국 국민 여러분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전통이 무엇이냐?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자유가 아닌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자유는 이제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민주주의가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것 같지 않습니다. 자유를 가지고 인류의 행복의 터전을 허락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갖고 있는 이 나라의 전통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에 하나의 전통이라는 것은 기독사상인 것입니다. 만약 그 사상을 전통으로 남기지 않고 전부 잃어버린다면 일시에 무너집니다. 미국 전역에 널려 있는 교권자들, 감독이니 신부, 혹은 목사 여러분들이 알아야 될 것은 자기의 교권을 가지고 주장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전통으로 남겨 줄 수 있는 기독사상인데 이것이 있느냐? 없다는 거예요.
교회는 깨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여기 워싱턴에 와서 구교의 조직에서 신학교를 판다는 말을 듣고 이제는 끝날이 다 됐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신교에서도 신학교를 판 교파가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퇴폐해 가는 청년들을 무엇으로 지도할 것이며, 분립된 가정을 무엇으로 지도할 것이며, 금후의 공산세계의 사상적인 위협을 무엇으로 방지할 것이냐 하는 것이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새로운 기독교관을 제시하는 운동이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여러분의 장래를 보장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동양 사람으로서 미스터 문이라는 한 사나이가 미국에 와 이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 이런 전통적 사상을 세우지 않아서 민주주의가 망하고, 하나님이 축복한 이 나라가 없어지면 하나님께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놀음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공석에 나서는 일은 한국에서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이 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금후에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되고, 하나님과 한몸이 되어야 되고, 신부를 맞아 신랑 신부로서 가정을 이루어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지상에 천륜의 법도를 세우고 민족과 국가 앞에 왕이 되고 교구장이 되어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은 당연한 이론적인 결론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실 수 있는 모델로 세울 수 있는 가정이 나오지 않고 서는 종족, 국가, 세계가 나올 수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처음으로 메시아 예수는 지상에 와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중심삼고 출발하는 가운데 십자가에 돌아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믿는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도리가 아니라 부활의 도리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형틀이예요, 죽음의 형틀.
원칙적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은 개인으로서 하나님과 하나된 완전한 남자의 자리에 섰지만, 상대를 찾으려 하는 자리에 있어서는 그 상대 기반을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부여하지 못하여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만약 이것을 찾지 못하면 나라와 세계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는 말을 남기고 가신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묵시록에 나타난 어린양잔치는 무엇이냐 하면, 우리 인류가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참부모를 잃어버리고 타락한 거짓 부모를 갖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류역사의 종말시대에 참부모를 찾아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간 조상으로서 결혼식을 해주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알파입니다. 인간이 알파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묵시록인 오메가에 가서 맞춘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무엇을 가르쳐 주셨느냐 하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 오시는 부모는 참된 부모로 오십니다. 종교의 목적도 참부모를 만나는 것이요, 역사의 목적도 참부모를 만나는 것이요, 인류의 소원도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참된 가정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모든 소원과 이상의 기점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2차 대전 직후에 전승국가가 패전국가를 독립시켜 주는 놀음, 역사에 없는 놀음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시는 참된 부모 앞에 불효하고 멸시 천대하던 입장에서 벗어나 공평할 수 있는 천륜의 때를 맞지 않고는 부모를 맞을 수 없기 때문에 역사적인 천운을 따라 그렇게 안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참부모가 올 수 있는 절대적인 측면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참부모가 옴으로 말미암아 인류역사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의 목적을 달성하고 새로운 문화 창건은 물론이요 민족, 국가, 세계를 넘어 하나님을 중심한 지상천국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지상천국은 천상천국과 영원히 통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거기에서 비로소 하나의 세계종교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 부모의 이상은 그 부모가 들어가면 그 가족과 종족이 한꺼번에 따라 들어간다는 거예요. 전부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하나님을 중심한 새로운 세계종교의 형태를 갖추어 평화의 천국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내용을 가지고 여러분께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