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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랑의 표제를 정하고 살라

일시: 2010.02.10 (수) 장소: 한국 경기 가평 천정궁

(『문선명선생말씀선집』제4권 ‘참목자와 참된 양 무리, 거짓 목자와 거짓된 양 무리’라는 제목의 말씀을 훈독) 무엇을 중심 삼고 결론짓겠느냐 하는 답을 여러분이 해야 됩니다.

‘나는 어떻게 결론짓겠다.’고 하게 되면 어떤 고개를 넘고, 어떤 산을 밀어 넘기고, 어떤 깊은 곳이 있으면 깊은 곳을 메울 뿐만 아니라 그 땅에 무엇을 두고 갈 것인가 하는 게 문제입니다.

1. 어떤 표제를 갖고 사느냐가 문제

10대의 생각이 다르고, 20대의 생각이 다르고, 청춘시대와 노년시대의 생각이 다르고, 노년시대와 생사지경을 대할 때의 생각이 다르다고 하지만 그것이 달라지면 안 됩니다.

죽음의 고개를 넘어서 영계에 가서도 ‘이렇게 살겠다.’ 할 수 있는 표제를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하면서 아무렇게나 살 수 없습니다.

오늘은 양력으로 천일국 10년 2월 10일입니다. 어제까지 선생님은 말할 수 없는 곡절의 고개를 넘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진짜 넘었느냐 못 넘었느냐에 대한 답을 할 때, 내가 인정하기 전에 제일 가까운 사람이 인정을 못 합니다.

한 가정에 열 사람이 있으면, 그 열 사람이 결론을 못 짓는 것입니다. 하나의 가정이면 가정 자체가 표제를 중심 삼은 그 문제를 남한테 제시도 할 수 없고 제시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을 누구와 더불어 결론을 짓겠느냐? 누구보다도 하나의 중심적인 존재, 결정권을 가진 중심존재와 더불어 결정해야 됩니다. 그것이 하늘이면 하늘인데, 거기에 하나님 혼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직결돼 있어서 화합 통일된 세상은 아닙니다. 그 모든 것들이 직결되어 가지고, 자기가 갖고 있는 주관을 어떻게 세우느냐는 것입니다. 외적인 고통과 상충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할 때 내적인 상충은 더 크게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후의 세계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나는 어떤 자리에서 결정해야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과 선생님의 할 일이 큽니다. 축구세계에 발을 들여놨습니다. ‘축구!’ 해봐요.「축구!」그다음에 새로이 올림픽대회를 해야 됩니다. 세상에 수십 년, 일생 동안에 그 대회를 맞지 못하고 초청할 수 없었던 나라들도 많은데 올림픽대회를 하겠다니 누가 하느냐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있으면, 여자보다도 남자가 해야 된다는 것을 느끼고 본을 보여야 됩니다.

가정이 있으면 가정을 중심 삼고 자녀들 앞에 부모가 있으면 부모가 본을 보여야 되고, 그다음에 나라가 있으면 나라에 본을 보여야 되고, 세계가 있으면 세계에 본을 보여야 되는데 지금의 세계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지금 나라만 해도 우리 아벨유엔에 가입한 나라가 194개국입니다. 아직까지 넘어야 할 고개와 해야 할 일들이 세계보다 더 크게 남아 있다고 생각할 때, 그 문제를 누가 해결해야 되겠어요? 그것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종합적인 표제의 조건

축구 자체만 해도 나라를 대표하기 위해서는 대표의 선생이 있어야 되는데, 대표하는 그 선생을 중심삼고 가르치는 내용에 있어서 하나의 표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이론이 없으면 안됩니다. 이론을 풀고, 이론을 제시해야 됩니다. 땅에서 자기가 가는 데는 마음대로 갈 수 없습니다. 내가 친구를 찾아간다고 해보자고요. 친구들이 여러 명 있다고 할 때 여러 사람을 대표하여 누구와 비교해서 나은 사람을 찾아갈 때, 그 나은 사람이 가는 길이 나와 몇 퍼센트까지 맞느냐? 아무런 관계를 안 갖고 있는 사람들을 중심삼고 비교하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올림픽대회를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술세계에 어떤 표제를 중심삼고 가느냐? 우리가 원화도를 만들었습니다. 원화도라는 것은 원형운동을 통해서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태권도라는 것은 발을 중심삼아 가지고 직선운동의 힘을 가하는 운동입니다. 그렇게 힘을 가해서 잃어버리고 없어지느냐? 아닙니다. 직선을 통해 가지고 찼다가 들였더라도 따라오는 힘이 얼마나 남느냐는 것입니다. 원화도는 치는 데는 위에서 치고, 아래서 치고, 돌아가면서 칩니다. 그러니까 방향성을 볼 때 전 세계에서 이길 수 있는 표제의 과제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태권도보다 원화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종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색깔도 7색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종교는 7색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100교파 이상이 됩니다. 수백 교파가 있더라도 그 교파들 가운데 표제가 되는 교파는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청춘시대와 장년시대 그리고 노년시대를 지나서 죽어 가지고도 표제를 안 가졌다고 하면 어떻겠어요? 예수님의 이름만 알아 가지고 그 표제의 자리에 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제부터 우리가 해결해야 될 과제는 무엇이냐? 축구의 문제를 누가 책임지느냐? 올림픽대회를 지금 시작하려고 하는데 될 수 있으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제로부터 10일간에 서울에 와 있으면서 선생님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부르게 되면, 그 자리를 언제든지 지키고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이냐?

이제는 마지막 때가 되어서 교본을 만들고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이 교재가 누구를 위한 거예요? 여기에 열 가지 교재의 내용이 들어갔으면, 그 열 가지의 주인은 누가 될 것이냐? 선생님이 그것을 만들어 가지고 뭘 할 거예요? 내가 만들어 놓고 가면, 그 표제 자체가 어떻게 될 것이냐?

누구든지 청춘시대와 장년시대 그리고 노년시대를 지나서 영계에 가는데, 영계는 수천만 년 동안 지상에 살다 간 사람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지상에서 수천만 년 동안 살다 간 사람들이 주장하던 사상적인 저변, 핵의 문제를 잃어버리고 있는 게 아닙니다. 거기서도 자기들의 동역자를 찾아서 주장하던 것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눈을 뜨고 돌아보게 될 때 ‘내가 표제로 삼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겠구만! 세상보다도 더 복잡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왜? 65억 인류가 사는 지구성도 복잡한데, 저세계에는 수천억이 삽니다. 수천억이 수천 갈래의 나라들을 가지고 살았고, 별의별 표제들을 갖고 살았던 것입니다.

저나라에 가서 뭘 할 거예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노력을 해야 됩니다. 기도를 더 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찾기 위한 노력을 더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을 수습할 수 있는 종합적인 표제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은 무엇이냐? 그래, 축구는 어때요? 축구라고 하게 되면, 어느 나라나 관심을 가집니다. 올림픽대회도 어느 나라든지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습니다. 그다음에 예술세계라든가 과학기술의 세계, 또 무술세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사랑을 표제로 살라

그러면 사랑의 세계는 어떠하냐? 사랑의 본질이 근본에 들어가면 하나여야 할 텐데, 하나의 사랑을 제시하는 것은 무엇이냐? 아버지가 제시하는데, 아들딸이 안 따라가요. 남편이 제시하는데, 아내도 안 따라갑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표제로 살라고 하는데, 인간은 그렇게 산다는 걸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나는 무슨 표제를 중심삼고 서 있느냐? 지금까지 무엇과도 바꾸지 않고 나온 표제가 있느냐? 그 문제를 생각할 때가 됐습니다.

그래, 운동에 대한 관심이 있었어요? 올림픽대회라든가 세계의 운동도 영계의 사실이나 미래의 사실에 대해 표제로 제시할 수 있는 무엇이 없습니다. 새로운 표제를 내놓아야 됩니다. 경쟁의 세계입니다. ‘너보다 내가 낫다.’ 하면서 하나의 제시된 표제를 중심삼고 무수한 경쟁을 대표인물들이 하는 것입니다.

올림픽대회에 3백 가지의 종목들이 있으면, 그 3백 가지의 종목들이 해마다 달라집니다. 기록을 깨뜨리는 사람이 해마다 달라진다는 겁니다. 그러면 지나간 기록을 가지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때의 기록이지 오늘의 기록은 아닙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릅니다. 오늘과 내일이 또 달라요. 금년과 내년도 다릅니다. ‘뭐 표제는 상관없다. 그럭저럭 살지!’ 하는 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다는 말입니다. 그럭저럭 살 수 있는 내가 없습니다.

눈이면 눈을 중심삼고 내 눈이 지금까지 찾던 핵은 무엇이냐? 코가 있으면, 그 코가 일생 동안 무엇을 표제적인 내용으로 삼고 있느냐? 사지백체도 제각각 좋아하는 운동이 다릅니다. 발이 좋아하는 운동이 다르고, 눈이 좋아하는 운동도 달라요. 몸의 기관들이 좋아하는 운동이 다 다르다는 겁니다.

오장육부의 분과적인 내용에 있어서 수많은 상하⋅좌우⋅전후의 환경이 있는데, 그 환경 가운데 있어서 무수한 사람들이 ‘여기서 내가 기록을 깨야 되겠다.’ 합니다. 그 중심적인 표제에 도달해 가지고, 표제의 세계에 있어서 내가 살던 것을 중심삼고 원론을 제시해야 됩니다. 어떤 분야에 있어서 젊을 때는 이랬고, 청년 때는 이랬고, 노년 때는 이랬다는 거예요. 그 과제가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현재 전체의 원론적인 표제가 돼 있는 문제를 중심삼고 ‘내가 가야 할 분야가 남아 있다. 아직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이 있구만!’ 하는 겁니다. 선생님이 지금 훈독한 말을 듣게 될 때, 청춘시대에 한 말씀과 지금 90이 넘어 가지고 영계에 가기 전에 남겨놓겠다는 표제의 문제가 얼마나 다르거나 같으냐는 것입니다. 그걸 맞춰보는 겁니다.

그것을 맞춰볼 때 ‘보통 사람은 표제를 맞추는 데 있어서 3분의 1은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10분의 1은 따라갈지 모르겠다.’ 합니다. 그 표제를 중심삼고 아직까지 남아진 것을 볼 때 몇 분의 1을 따라갈 것이냐는 것입니다. 일생을 교재와 교본을 만들겠다고 살았는데, 누구의 교본 교재로 살았어요? 문 아무개의 교재로 살았어요? 영원히 무한하게 발전하는 세계인 저나라에 가서 그 표제를 갖고 살겠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영계에 들어설 때 환경이 달라지고, 위치도 달라집니다. 360도가 인간 세상과 달라진다는 겁니다. 내가 보는 시야, 냄새를 맡는 환경, 맛을 느끼는 것이 달라져요. 손발을 움직이는 것도 달라지는 겁니다. 이렇게 움직였는데 움직일 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방을 가려서 남겨야 할 표제의 정착자리를 어느 한때 염려한 적이 있었느냐? 무엇을 남기고 갈 때 무엇을 중심으로 남기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제는 표제를 정할 때

참사랑이면 참사랑의 표제가 무엇이냐? 몸과 마음이 그것에 화할 수 있는 자체가 돼야 합니다. 부부간에 있어서 내가 표제를 제시한다고 할 때, 아내는 어떤 자리에 있느냐는 겁니다. 그렇게 궁극적인 내용에 들어가면, 참부모의 세계는 별동세계가 됩니다. 그들이 바라는 사랑과 표제의 내용은 무엇이냐? 하나님이냐, 예수님이냐?

여기에 여러분이 있으면 여러분 중에 누구예요? 내가 본받을 표제가 누구냐는 겁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내가 표제로 삼은 것을 따라올 사람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나는 나를 중심하지 않고 예수를 중심삼고 살겠다고 하면, 예수님의 표제가 뭐예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살겠다면, 하나님의 표제는 뭐예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거예요?

여러분이 기도를 하는 데 있어서 ‘용서해 주세요. 잘못했습니다.’ 하면, 그 잘못했다는 핵심의 표제는 무엇이 돼요? 하나님이 싫어하는 표제라면 용서해 줘봤자 오히려 그 문제를 짊어져야 될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참 어려운 것이 인생행로입니다. 그래,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요, 산색(山色)은 고금동(古今同)’이라고 했습니다.

『평화의 주인, 혈통의 주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평화의 주인은 뭐예요? 평화라는 무대가 넓은데, 중심이 하나이냐 하는 겁니다. 천 사람이 있으면, 그 천 사람들이 바라는 평화가 다를 것입니다. 순이 돋아났던 데서 평화를 말했느냐, 싹도 트지 않은 가운데서 평화를 말했느냐? 문제가 큽니다. 싹이 트기가 얼마나 힘들더냐? 싹트기야 쉽지만, 자라기가 얼마나 어려우냐? 보통지사는 죽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한 번 죽는 것과 백 번 죽는 것이 다릅니다.

이렇게 볼 때, 나라는 사람의 표제를 중심삼고 평화의 주인이라고 할 때 65억 인류가 경쟁하고 있는 데서 몇 번째이냐 하는 겁니다. 수평을 지났느냐, 수평 아래에 있느냐? 그것도 모릅니다. 모든 것을 청산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내가 무슨 표제를 가졌느냐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10년을 산다고 하면, 10년 가운데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이냐? 표제가 무엇이냐? 자기의 가정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기의 부모를 사랑하지 못했으면 가정을 누구보다 사랑해야 되고, 부모를 누구보다 사랑해야 되겠다는 겁니다. 그동안에 잊어버렸던 고향산천을 수습해 가지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나를 하나님의 대신으로 모시고 따라올 수 있는 신망의 자리에라도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영계에 표제 없이 가게 될 때, 거기에 높은 표제가 있다고 하면 따라가야 됩니다. 거기의 어떤 사람을 따라갈 것이냐? 4대 성인, 5대 성인, 10대 성인권 내에 있는 사람을 따라가야 되겠다는 겁니다. 4대 성인들 중에서 1등이 누구예요? 왜 1등 성인이냐는 겁니다. 생사지경을 중심삼고 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표제의 문제를 중심삼고 생사와 바꾸는 것은 보통지사였습니다. 그걸 싫어한 적이 없었다고 봅니다. ‘사람이 거부할 수 없는 표제의 조건을 지녔구만! 나는 어떠냐?’ 이겁니다. 모두 다 죽기를 싫어합니다. 예수님이 살아나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또 죽겠다고 하게 되면 어떻겠어요? 누구든지 따라가기가 무섭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언제든지 어려울 때 내 표제보다도 중요시해서 저 사람의 표제를 해결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사랑해요? 보통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사형 죄를 지어서 사형장에 나가는 사람도 ‘내가 갖는 사랑의 표제는 사형수를 변론하던 변호사보다 낫고, 그것을 결정한 검사나 판결을 종합적으로 내린 판사보다 낫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라도, 예수의 아들딸이라도 그런 표제를 중심삼고 예수가 살아서 가르치고 보여준 것을 몇 퍼센트까지 이루겠다고 생각하겠느냐?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고 말이에요. 이제는 표제를 정할 때가 왔습니다.

표제의 중심은 누구냐

여러분의 가정에 내 대신 남길 수 있는 표제의 인물로 누구를 정하고 있느냐? 우리 가정, 우리 동창생들, 일반 사회나 우리나라의 상류층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예요? 그 사람들도 죽어 가는데, 아무것도 남기고 가는 게 없습니다. 성인들이 남겨놓은 5대 종단들 가운데도 그 표제의 대신 인물이 되는 사람은 누구냐는 것입니다. 문 총재가 예수님과 같아요? 예수님과 문 총재 중에서 누가 표제의 중심이에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에 남편 되는 사람들과 아내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아내를 사랑하는 데는 어느 정도로 사랑하느냐? 지금 처해 있는 자리에서 아내가 표제의 인물에서 100등이 된다면 100등에 머무를 수 있는 만큼 사랑하겠다고 하면 어떻겠어요?

성경을 볼 때,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한 14:6)라고 말했는데 왜 사랑이라는 말을 빼놨을까요? 선생님은 성경을 볼 때 ‘왜 사랑이라는 말을 빼놨을까?’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기도했습니다. ‘나는 사랑의 그림자도 모르는 사람이요, 인간의 형태로 말하면 칠삭둥이나 팔삭둥이가 아니라 14일도 못 되는 사람인데 표제의 인물로서 사랑한다는 말이 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의 수를 세어보면 90명쯤으로 보이는데, 이 90명이 무슨 표제로 모였어요? 선생님의 교재를 맡기 위해서입니다. 그 교재 가운데 책들이 일곱 권입니다. 그 일곱 권 중에서 어느 책을 맡기 위해서 모였느냐? 여기에『천자문』, ‘무제시’,『명심보감』,『논어』와『맹자』등 사서삼경까지 갖다놓고 여러분이 갖고 싶은 것을 갖고 살았다고 할 때 ‘예수도 내 표제에 미치지 못해서 죽었다.’ 할 수 있는 무엇이 있어요?

불교면 불교의 경서, 유교면 유교의 경서, 기독교면 기독교의 성경을 중심삼고 어때요? 종교의 경서를 중심삼고, 내가 몇 점짜리의 표제를 중심삼고 살았느냐는 것입니다. 뭐 예수를 믿으면 천당 가요? 어떻게 믿어요? 예수를 사랑하면 어떻게 사랑해요? 문제가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표제를 중심삼고 결정할 때가 끝날에 옵니다.

노아 때면 노아 때의 표제를 중심삼고 노아의 배에 오른 사람은 여덟 식구면 여덟 식구가 다 올랐는데, 오르지 못할 사람이 올랐습니다. 그래, 노아의 배를 타고 실수했어요. 아들이 벌거벗은 노아에게 옷을 갖다 덮어줬습니다. 왜 바로 가지 않고 뒤로 가서 덮었느냐? 그것으로 인해서 노아 할아버지가 표제로 세웠던 그 세계에서는 하나도 용납 받을 수 없었던 겁니다. 거기에는 원론도, 이론도, 재료도 필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표제가 달랐기 때문에 노아의 모든 것이 실추의 결과로서 뒤집어졌습니다. 노아 할아버지를 환영하지 않고 좋지 않게 생각했던 주위에 있던 식구들은 다 없어졌습니다. 노아 할아버지도 없어진 겁니다. 누구라도 남아져 가지고 노아 할아버지 이상의 표제를 세울 수 있었느냐? 노아 할아버지는 120년간 표제를 세웠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12년, 12달, 12일, 12시간도 못 세웠을 텐데 말입니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심판했느냐? 그 심판을 백번 천번 했댔자 무슨 소용이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모두 다 끝장을 냈어야 할 텐데 말이에요. 지금 통일교회에서는 종교도 끝나고, 나라도 끝나고, 하나님의 섭리도 180도 돌아서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새 지상⋅천상천국의 표제

이제 문 총재의 90세 생일이 사흘인가 나흘밖에 안 남았습니다. 이 원론과 교재를 자기의 생명을 주고 바꾸자고 하는 사람이 누구예요? 여러분들 가운데 누구예요? 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되느냐? 내가 아니라고 했지만, 10대 이후에 자기의 후손들 중에서 한 사람이 ‘나는 인정하고 가겠습니다.’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10대 전까지 반대하다가 10대 이후에 그러면 어떻게 되겠느냐? 10대의 조상들이 달려 있는데, 혼자 앞에 가서 그 사람들을 교육해서 바로잡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바로잡을 수 있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심각한 문제들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오늘이 10일인데, 이제 4일밖에 안 남았습니다. 선생님이 난 달인 2월이 28일이면 끝날 것입니다. 그러면 새천년의 신년 3월 초하루가 와요. 선생님이 전 생애의 표제를 정하게 될 때 ‘내가 13년 동안 이 수첩에서 하나의 표제가 되는 내용을 중심삼고 생사를 걸고 가야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2001년 10월 3일입니다. 2001년 1월 1일도 아니고, 1월 3일도 아니고 2001년 10월 3일로써 표제를 적었습니다. 남들이 보면 수수께끼입니다. 문 총재의 표제가 무엇이냐? 첫 페이지와 이것은 상대입니다. 여기에 상대조건이 남아야 됩니다. 10년이 지났는데, 표제 한 페이지가 남았습니다. 여기에 ‘2009년 5월 4일’이라고 하고 괄호해서 ‘5월 6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백지입니다.

그 기간에 어떻게 살아왔느냐? 여기에 적은 대로 맞춰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수첩에 제시하는 내용이 끝에 가서는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지금까지 이어놓은 것은 내가 상속받을 수 없다는 거예요. 새 것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선생님이 참부모라면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했겠어요?

이 노트에는 천상천국을 창건할 수 있는 참부모가 하나님과 더불어 이뤄야 할 표제의 내용이 있습니다. 그 표제의 내용은 무엇이냐? 믿음과 사랑 그리고 소망입니다. 믿음 가운데서 복종해야 되고, 소망 가운데서 복종해야 되고, 사랑 가운데서 복종해야 되는 것이 표제다.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여기의 중간에 무슨 내용이 있느냐? 제물은 어떤 것이냐는 겁니다. 이 표제에 맞는 제물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 있어서 표제의 제물은 무엇이냐? 법궤다. 법궤를 중심삼은 표제의 물건은 무엇이냐? 법궤를 누가 세웠어요? 예수님이 안 세웠고, 노아도 안 세웠고, 아담도 안 세웠습니다. 아브라함이 실패한 위에 세운 것도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안 세웠습니다. 누가 세웠어요? 모세가 세웠습니다.

법궤의 표제는 하나님도 못 세웠고, 누구도 못 세웠는데 모세가 표제로 세운 법궤를 어떻게 했어요? 하나님이 안 세웠는데, 어떻게 자기가 세웠어요? 참부모의 표제는 역사에 세운 그 표제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신천신지라는 새 지상⋅천상천국의 표제는 그 누구도 세우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표제로 삼은 것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백지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또 미래에 표제를 세우는 어느 누구도 역사의 표제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을 남길 사람은 없는데, 그것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타락 전의 표제가 무엇이었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저기에 보이는 벽에 ‘천지부모천주안식권(天地父母天宙安息圈)’이라는 휘호가 걸려 있습니다. 천지의 표제를 부모가 따라가지 않습니다. 천주안식권이 천지부모라는 표제의 내용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997년 7월 7일’이라고 해서 7이 몇 번이에요? 역사에 있어서 지금까지 표제로 삼을 수 있었던 내용을 찾는다면 어떤 게 있겠어요? 이 뒤에 있는 것과 천지부모라는 것을 중앙에서 연결할 수 있는 무엇을 내가 갖고 있어야 했는데, 나 안 가졌습니다.

왕아빠의 표제

지금부터 50여 년 전이었던 30대에 말씀한 내용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나는 세상의 역사를 안 따라가려고 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가 훌륭했느냐 하면 훌륭하지 않았습니다. 그 표제가 나라의 중심이 못 될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나라의 중심이 있으면 만주든 어디든 가르칠 수 있는 제자를 찾아가서 가르치겠다고 생각해야 할 텐데, 왜 찾아오지 못했느냐?

죽었던 사람들이 나를 표제로 삼아서 천상에서 지상에 와 가지고 맨 막내 동생이 되는 내 궁둥이를 따라서 ‘조상들의 표제가 없었기 때문에 너희의 표제가 되는 그것이라도 따라가야 되겠다.’고 했을 텐데, 그것도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표제가 있었다면 ‘이야, 그것 됐다!’ 했을 것입니다.

역사시대의 표제들 가운데 그런 것이 있느냐? 역사는 흘러갑니다. 심판당해서 없어질 수 있는 표제들 가운데는 없습니다. 그러면 새 천지의 표제가 무엇이냐? 두 사람으로부터 천국이 이뤄진다, 몸과 마음이 하나돼야 한다는 표제의 내용을 볼 때 ‘이야, 그거 쓸 만하다.’ 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지부모천주안식권’의 표제를 따라올 사람이 있느냐? 따라왔어요? 그 표제 가운데 무엇을 따라왔어요? 훈독회를 열심히 해서 따라왔어요? 훈독회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겁니다. 하루를 안 자는 것은 보통입니다. 사흘이나 나흘, 일주일도 안 자고 눈을 떴을 때 태양이 안 보이기까지 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풀 수 있었던 표제가 무엇이냐? 하나님이 ‘이야, 네 표제가 좋다!’ 하고, 예수와 4대 성인들도 좋다고 하고, 우리 할아버지라든가 조상들도 좋다고 하고, 자손만대가 내가 죽은 후에도 ‘그 할아버지의 표제밖에 없다.’ 할 수 있는 표제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손자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왕아빠와 왕엄마라고 하는데, 왕엄마와 왕아빠가 돼 가지고 뭘 해요? 왕조상입니다. 그 왕조상의 표제는 무엇이냐? 할아버지를 왕아빠라고 하는데, 왕아빠의 표제가 뭐예요? 죽어 갈 때의 유언입니다. ‘너는 이 위에 서라!’ 하는 것입니다. 모두 다 넘어가기가 어렵다는 고개를 7년 동안에 넘어간다면, 나는 일주일이면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기의 표제를 정한 사람들이 있어요? 다 쫓아내야 됩니다. 쫓겨나기 싫다고 울고불고 하더라도 말이에요. ‘역사시대에 70년 혹은 80년 전 나를 길러준 부모, 먹여준 부모, 정을 다 부어준 부모를 붙들고 울고불고 했는데 어땠어요? 몇 천 년 전의 사람들을 다 살려주고, 몇 억이 되는 사람들을 책임지고, 후대의 몇 억만이 되더라도 그들까지도 살려줄 수 있는 표제를 나는 지녔다.’ 할 때 정말 그래요? 정말 그렇게 갈래요? (신준님이 들어옴) (사탕을 나눠주심)

하나님이 사람한테 ‘내가 누울 자리가 이곳이다.’ 하겠느냐? 하나님이 결정을 못 합니다. 하나님도 죽어보고 싶겠어요, 안 죽어보고 싶겠어요? 답! 하나님의 무덤자리는 누가 결정해야 되느냐? 효자 효녀, 충신 열녀, 자기의 대신자나 상속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결정해 줘야 됩니다. 하나님의 무덤자리를 하나님이 못 정합니다.

선생님의 무덤자리는 어디예요? 여러분의 동산에 갖다 묻으면 좋겠지만 나라의 동산이에요, 나라의 동산. 세계에서 제일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이 가서 살 수 있는 집이 어디에 있어요? 하나님이 혼자 사는데 하나님의 집을 지어주고, 그 집 주인이 살다가 떠나게 될 때 집을 정해 준 사람이 ‘나도 거기에 묻히겠습니다.’ 해야 됩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무덤을 정하는 것입니다. 덮어놓고 하면 안됩니다. ‘나도 통일교회의 교인으로서 문 선생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 같은 자리에 있으니 세계의 어디를 가든지 죄를 다 용서해 준다.’ 한다고 해서 용서가 돼요? 그렇게 용서받으려면 선생님의 대신자라는 사인, 참부모의 사인이 있어야 됩니다.

그 사인을 안 믿으니까 지장을 찍어야 되고, 지장도 안 믿게 되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거기에는 뭐냐 하면 작지만 국새라는 도장까지 찍혀야 됩니다. 나라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나라의 권한 아래서 세상의 람들이 다 그 복을 받는 자리에서 그 가운데 하나의 복이라도 내가 받겠다고 생각해야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인정권에 섭니다.

천국의 정상자리

누구든지 내가 인정하는 그 때부터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리를 잡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요, 지금. 내가 자리를 잡아줘야 됩니다. 죽을 자리도 그렇습니다. 누구나 다 원전에 갈 수 없습니다. 오래된 사람들 가운데 원전에서 빼라고 한 사람이 있습니다. 왜 뺐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여러분이 관리할 책임이 없잖아요? 조상들의 역사를 여러분이 알아서 뭘 할 거예요? 알면, 선생님이 잘했느냐 못했느냐를 감정하겠다고 하겠어요? 심판받아 없어질 자리에 있는데 말입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믿는 이상 자기를 믿을 수 있는 자리에도 안 서 가지고 그렇게 하겠어요? 100분의 1도 믿지 않는 자리에 서서 아버지를 물고 늘어지고 가지 못하게 스톱시켜 버리는 사람은 지옥 중의 지옥에 가는 겁니다. 통일교회의 가야 할 길을 원리말씀을 중심삼고 갈 수 있는데, 왜 막고 있어요?

여러분의 어머니와 아버지, 일족을 전도하라고 했습니다. 일족을 다 전도했으면 사돈의 팔촌까지, 이방 나라들 가운데 세 나라 이상까지 깨워주고 가르쳐주고 와야 천국의 정상자리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형제를 내버려두고 어머니와 아버지, 삼촌보다 앞장서고 내가 제일이 되겠다고 하면 안됩니다.

저나라에 가서 전도에 있어서 몇 등급이냐 하면 중앙도 아니고 꽁지에 가 앉게 될 때 ‘왜 이럽니까?’ 하면 뭐라고 하겠어요? ‘나도 몰라. 네가 한 대로 가는 것이다.’ 하는 겁니다. ‘너도 이제 죽어보라. 다시 죽어보라. 네가 간 데가 잘못된 자리냐고 영계의 동료들을 만나면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 갔구만!’ 합니다. ‘그 욕심을 가지고 그랬으면 지옥으로 떨어져야겠다, 이 자식아!’ 한다는 겁니다. 영계의 친구들이 ‘이 자식아, 네 자리에 간 것을 고마운 줄 몰라 가지고 그런 말을 하느냐?’ 해요. 그것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