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중심 삼고 볼 때 우리들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남북한이 통일되는 것이요, 좀더 범위를 넓혀서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투쟁하지 않고 하나되어 평화적인 세계를 이룩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일 것입니다.
개인을 두고 보면 개인에게는 자기가 처해 있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제대로 성취하는 것이 소원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개인이 처해 있는 여러 가지 실정에 따라서 원하는 소원도 제각기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두고 보더라도 부모를 중심 삼고 움직이기 때문에 식구들은 부모가 계획한 것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소원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개인에서부터 세계에 이르기까지 연관되어 있는 우리 인간에 있어서는 처해 있는 위치와 입장이 다름에 따라 각자의 소원도 다른 것입니다. 바라는 소원은 서로 다르지만 그것이 완전히 성취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실상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과연 내가 바라고 소원하는 세상이냐, 나는 과연 내가 소원하는 세상에 태어나서 소원을 이룰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그런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입장과는 상반된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을 항시 생활 속에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직장이면 직장에서도 여러 가지 복잡한 내용들이 자기 한 개체와 상관되어 있어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며, 한 가정을 중심 삼고 보더라도 그 가정이 하나의 계획을 세워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과연 우리가 진정한 의미에서 바랄 수 있는 가정의 터전이요, 이상적인 가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한 문제들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직장이나 가정을 둘러싸고 원치 않는 환경과 상반되는 모든 환경을 제거해야 하는 시점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또, 사회 단체를 중심 삼고 볼 때도 그 단체가 현재 이 사회에 있어서 영원히 행복을 누릴 수 있고, 이 사회에 있어서 영원한 소원의 빛이라고 할 수 있는 단체냐 할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자체를 두고 볼 때, 대한민국은 과연 백성들이 소원하는 나라냐?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이 이루어 놓은 환경이 우리 개개인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고, 우리가 바라는 평화라든가 모든 소원을 성취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환경으로 갖추어지지 못한 것을 볼 때, 대한민국 자체도 영원한 행복의 터전이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는 많은 선진국가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미국 같은 나라를 보면, 미국에 살고 있는 국민들은 그야말로 세계 인류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최고 선진국가의 국민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을 가졌다고 해서, 과연 그 국가의 환경이 국민이 바라는 영원한 터전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도 반드시 모순이 있고 상충이 개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크게는 세계로부터 작게는 개인에게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내 한 개체를 두고 보나 가정을 두고 보나, 혹은 사회, 국가, 세계를 두고 보나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환경의 터전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곳이야말로 우리가 영원히 살고 싶은 곳이요, 이곳이야말로 우리가 소원하던 곳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때에 이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개체들은 더 나은 곳을 찾기 위한 소망을 갖고 나가는 것이며, 그것이 곧 우리의 인생입니다.
사람들은 '나'라는 존재가 좀 더 잘 되어야 하겠고 성공해야 되겠다고 소원합니다. 또.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서 중심적인 일을 하고자 하며, 더 나아가서는 국가의 중심인물이 되고자 합니다. 세계적인 학자라든가, 정치가라든가. 성인이 되겠다는 각자의 소원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원은 현재 자기가 처해 있는 입장에서의 소원이 아니라 현재의 입장을 떠난 미래의 소원입니다. 현재보다 미래에 더 높은 소망을 걸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개인은 물론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세계 인류가 바라는 소원과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종착점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입니다. 최고 이상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들에게 소원이 있듯이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자가 계신다면, 그 절대자에게도 역시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개인에 대해 소원이 있을 것이요. 가정에 대해 있을 것이요, 국가와 세계에 대해서도 절대자로서의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국민에 대해서 절대자로서 바라시는 소원이 있을 것이요, 미국을 중심 삼아 가지고 선진국가의 권위와 현세계에 있어서 맡겨진 모든 사명을 두고 볼 때도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민주 세계에 대해서도 바라시는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 개인의 소원이 다르다고 하여 그 소원이 개인의 소원으로서만 남아져야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세계 30억 인류가 공동으로 한 곳을 바라보는 소원으로서 남아져야 되겠습니까? 물론, 전후관계와 높고 낮은 차이야 있을는지 모르지만, 방향만은 한 방향으로 같은 길을 제대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서로 방향이 다른 길을 가고 있다면 아무리 자신들이 바라는 소원이 있다 하더라도 이상 세계와는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이며, 절대자와도 관계를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처해 있는 입장은 각각 다르지만 세계 만민 모두가 소원의 종착점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소원의 기준이 과거의 사람과 현재의 사람과 미래의 사람이 다를 것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 만일에 그것이 다를 경우에는 참된 행복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소원이 절대적인 행복의 요소라면 그것은 과거의 사람이 바라던 것이나, 현재의 사람이 바라는 것이나, 미래의 사람이 바라는 것이나 그것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하나의 목적, 즉 소원의 모체라는 것은 한국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성을 띠고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성을 초윌하고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특정한 민족만을 위하는 소원이 아니라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넘어선, 보편타당성을 가진 공동적인 목적과 공동적인 행복의 요인으로서 세계 만민이 추구할 수 있는 종착점이 되는 소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그 소원은 인류가 바라는 행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소원이 인간의 행복만을 위한 것이면 되겠느냐? 인간만 있다면 인간의 행복만을 위한 소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이외에 신, 즉 절대자가 계신다면 그 절대자의 소원은 무엇이겠습니까? 만약에 절대자의 소원이 인간 외의 것을 중심 삼은 소원이라면 인간과는 하등 관계가 없겠지만,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는 절대자라면 인간과 상반된 소원의 종착점을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의 이상과 소원 역시 인간과 차원이 다른 입장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소원과 인간의 소원이 일치될 수 있는 입장에 서야만 하나님의 소원도 이루어질 수 있고,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인간의 소원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소원의 성취는 인간과는 별도로 절대자만을 위주로 이뤄지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절대자와 인간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이뤄지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의 양심을 두고 보면, 여러분의 양심은 무엇이든 최고의 것을 바랄 것입니다. 양심은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으뜸이 되고 싶어합니다. 더 나아가서 세계의 으뜸이 되고 싶어합니다. 비록 그렇게 될 수 없는 환경에 있다 하더라도 마음만은 으뜸이 되고 싶어하고, 세계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보다 더 높은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과 상관없는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높으면 높을수록, 크면 클수록 그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욕구요, 우리 인간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학생들을 중심 삼고 보면 자기 학교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고 싶은 것이 소원입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학교의 역사적인 기반을 넘어설 수 있는 최고의 성적을 내고 싶은 것이 학생들의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최고의 기록을 낼 수 있는 기준을 중심으로 하여 학교는 새로운 역사적인 전통이 세워지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는 기준이 몇점이냐에 따라서, 그 기준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 학교는 유명해지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만일 10년 전에 공부를 잘하는 어떤 학생이 최고의 성적을 올렸는데 그 학생의 성적 기록을 현재까지도 깨지 못했다고 하면 그 학교는 발전하는 학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과거를 회상하는 입장에 있어 가지고는 미래의 새로운 기록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학교는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제보다 오늘 이 시간이 낫고, 오늘 이 시간보다 내일이 점점 더 나아질 수 있게 된다면 그 학교는 무한히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런 학교가 될 때 그 학교는 대한민국의 전체 학교를 대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사회 단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을 중심 삼고 볼 때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가정이 '우리 가정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는 가정이 되겠다. 우리 가정은 부모를 중심 삼고 사랑으로 사는 생활이 모든 가정의 표본이 되고 대한민국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가정은 과거를 추구하는 가정이 아니라 모든 가정의 선두에 서서 앞으로 대한민국을 찾아오는 천운을 맞이하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대한민국을 중심 삼고 볼 때에, 대한민국이 부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문제는 과거보다도 현재에 보다 더 가치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한 발자국씩 그 가치의 기준을 높여 나가느냐 못 나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점차적으로 그 도수를 높여 나간다 하게 될 때에는 남아질 수 있는 것이지만 현재가 과거의 기준을 넘어서지 못하게 될 때는 퇴보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민주 세계와 공산 세계를 중심 삼고 보더라도 민주 세계나 공산 세계가 나가는 노정에 있어서 어떠한 때가 가장 전성 시대였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때는 전성 시대가 아니라 전성 시대를 향하여 힘차게 나가는 때인 것입니다. 그 나가는 과정이 과거보다도 현재, 현재보다도 미래, 이렇게 점점 도수를 높여 나갈 때에 그 세계는 보다 더 가치있는 소원의 종착점에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가 과거보다 못하다면 그 세계는 가치있는 소원의 종착점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미국은 민주주의를 대표한 선도적인 입장에서 저개발 국가들에 대해서 경제적 원조를 해 나왔습니다. 이렇듯 미국이 세계를 중심 삼고 정책적인 모든 영향을 책임지면서 저개발 국가들의 수난을 극복하여 주기 위해 몸부림칠 때, 세계 모든 국가들은 미국에 대해 신망(信望)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미국을 도약의 발판으로 하여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게 될 때에 미국과 다른 국가들의 사이가 갈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민주세계의 주도적인 입장에서 모든 책임을 짊어진 미국이 후퇴의 일로를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공산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소련이 현재보다도 과거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입장에 선다면 이미 그것은 퇴보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욕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있으면 그 귀한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절대자인 신이 없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과연 무엇이 겠습니까? 돈이겠습니까? 물질과 사람을 비교하면 물질보다 사람이 더 귀한 것입니다. 사람 중에서 누가 가장 귀하냐 하면 자기를 가장 귀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 중에서도 바로 자기 자신이 가장 귀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가 가장 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아서 오래지 않아 죽을 연령에 있는 노인들도 자기 자신이 가장 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이 어린 아이들이나 청년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장년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기가 남에게 침해를 받고 위축되는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모든 관계가 맺어지고 자기로 말미암아 영향이 미쳐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정을 넘어 사회 국가 세계에까지 연결되어 관계맺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중심 삼고 자신이 어떠한 중심적인 존재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나'라는 존재가 과연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중심적인 존재냐 하면 그것은 잘 모르지만, 여하튼 모든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자기를 중심 삼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국민에 있어서 삼천만 국민이 처해 있는 자리가 전부다 같으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뒤에 있고 앞에 있고, 높고 낮고 모두가 처해 있는 위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높고 더 가치 있는 것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가만히 앉아서 '오! 대한민국은 내 것이다'라고 외친다고 해서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관계맺을 수 있는 위치에 들어가고 싶으면, 그 소원에 비례되는 시련을 극복하고 참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보편타당성을 가진 주체성을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한 가운데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혼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면 국가를 중심 삼아 가지고 국민을 지도하는 원칙적인 지도의 요건과 방향을 제시하는 규칙, 즉 국민생활의 모든 지침을 제시하여 주는 헌법이 있는 것입니다. 그 법을 위반하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법이 없어 가지고는 소원하는 자리에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소원하는 자리에 나갈 수 있도록 방향을 법에 일치시키려고 하다 보니 삼천만 국민이 처해 있는 입장은 각각 다르지만 같은 법의 지배를 받고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오늘보다도 내일이 더 나을 수 있는 생활을 현실에서 다짐하고 나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 그 기준이 국가가 기대하는 이상의 기준이 될 때에는 국가를 책임지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세계 이상의 기준의 가치를 지니고 나타나게 될 때에는 누가 바라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의 지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느냐 하면 위대한 인물, 또는 성인이 되고 싶어합니다. 큰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큰 사람이 되려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거기에 비례되는 어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국가를 놓고 볼 때도 어떤 국가가 선진국가의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기준까지 나오기 위해서는 그 국가의 국민들이 가만히 있어 가지고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됩니다.
어떤 국가의 국민도 극복하지 못한 분야에서 어려움을 극복하여 그 난관에 비례하는 승리적인 터전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점진적으로 그 가치를 확고히 하여 그 결과가 세계의 여러 국가 앞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될때에 비로소 그 국가의 국민은 선진국가의 권위나 입장을 차지할 수 있는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절대자가 계시다면 절대자가 인간에 대해서 바라는 소원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종지조상이 출발 당시부터 절대자와 더불어 같이 생활하였다면, 그 절대자와 인간의 조상은 그때부터 완전히 일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절대자가 인간 조상에게 바라는 소원은 개인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 개인이 바라는 소원은 가히 세계적이요, 우주적인 소원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의 개인이지만 여러분 개인의 욕망은 우주적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의 모든 것은 내 욕망과 일치되는 겁니다. 우주적인 주인이 있으면 그 주인을 모실 수 있는 상대적인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주적인 주인과 배포가 맞을 수 있는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음가짐이 쩨쩨하고 시시해서야 되겠어요? 그래서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종지조상을 중심 삼고 보게 되면, 그 조상도 우리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온 천하를 자기 소유로 하여 살고 싶어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만일 우리의 조상이 절대자 앞에 있어서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고, 그 절대자의 소원을 이룰 수 있게끔 행동했더라면 오늘날 인류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랬다고 한다면 그때부터 인류의 소원은 이루어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어떠한 입장에서 관계를 맺으시려고 하실 것인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고,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하시는 것은 인간만 행복하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도 행복하게 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중심 삼고 볼 때에 인간은 하나님 앞에 과연 어떠한 입장이냐? 다시 말해서 종의 입장이냐, 양자의 입장이냐, 혹은 아들의 입장이냐?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한다면 어떠한 자리에서 인간을 대해 주고 싶을 것이냐?
인간의 욕망을 중심으로 하여 볼 때 종의 입장으로 대해 주면 싫다 할 것이요, 양자의 입장으로 대해 줘도 싫다할 것입니다. 인간이 절대적으로 하나님 앞에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는 '당신은 내 아버지요, 나는 당신의 아들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자리일 것입니다. 또한 여자들은 '당신은 내 아버지요, 나는 당신의 딸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인간으로서는 그 이상 바랄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대한민국에 있어서 대통령의 사위 아니면 아들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할 때 '너는 대통령의 사위가 될래, 아들이 될래' 하고 물어 보게 되면 어느 누구든지 주권자의 아들이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또한 세계 대통령이 있다면 그 세계를 지도하는 대통령과 관계를 맺어서 얼마만큼 심정적으로 가까이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내가 얼마만큼 영광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이 우주에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과 인간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싶어하느냐 하면, 단 하나의 자리를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도 아니요, 양자의 자리도 아니요, 아들딸의 자리를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바람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절대자이신 하나님에게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자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부모 앞에 불효를 하고,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입장에서 부모의 책망을 받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까? 그래서는 안 됩니다. 부모에게 효의 도리를 다하여 부모가 아들딸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이 바라는 것은 그것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의 시조가 하나님의 외아들이 되고 외딸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면, 부모인 하나님과 자식인 인간과는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혈연적인 관계가 맺어졌을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면 부모의 것은 곧 아들딸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어머니 아버지가 지었더라도 자기 집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잖아요? 그 집에서 태어난 유치원생이 부모가 집을 짓는 것을 보지도 못했지만 그 집에서 자라나 '이 집은 우리집이야, 이 집은 내 집이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그런 말을 들은 때 기분이 나쁘겠어요? 오히려 '이 집은 내 집이다'라고 하는 자식을 귀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집이자 자식의 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보지도 못하고, 혹은 그 관계를 모르더라도 그것을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니, 인간이 아들딸이라 하면 그 천지만물은 아버지인 하나님 것이자 누구의 것입니까? 아들딸인 인간의 것이지요?
그래, 아들딸인 인간이 그 천지 만물을 '내 것이다'라고 한다고 하여 아버지가 기분 나빠하겠습니까? 아버지가 맡아서 주관하시는 것보다도 자기가 맡아서 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아들딸이 말한다면 '야, 요녀석 봐라. 재수 없어'라고 하겠어요? 부모는 그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셉을 두고 보더라도 요셉이 형제에게 '꿈에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라고 말하였을 때, 형제들은 그 말이 건방지다고 하여 시기하였지만 아버지 어머니는 기분 나빠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디 두고 보자' 하였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부모가 되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더라면 하나님에서 지으신 피조세계, 즉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모든 피조세계가 누구 것이 된다고요?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것도 된다는 것입니다. 내 것이 된다 이겁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엄청나겠습니까? 하나님을 부러워하겠어요? 하나님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 속에 있고 내 몸 속에 있고 생활 속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하는 문제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하나님은 관념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느끼는 하나님. 생활 속에서 맞추어 갈 수 있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세계를 지배하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어서 무엇을 하겠어요? 하나님만 내 것으로 만들면, 하나님만 내 소유로 할 수 있으면 세계는 내 것이 되는 것인데,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안 될 것 같아요?
인간이 그렇게 되었더라면 현재 여러분이 추구하는 욕망, 여러분이 추구하는 마음의 작용은 필요없는 것입니다. 본래 여러분은 지금과 같은 입장에서 바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차지해 가지고, 차지한 그 터전 위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태어난 자리는 불행한 자리가 아니고 행복한 자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부모가 있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에게 영원한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생활 가운데에서 조그마한 시련도 받지 않는 자유스러운 환경을 가진 아들딸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간들이 처음부터 이와 같은 환경을 갖고 출발했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인간들이 출세를 바란다든가 세계를 내것으로 만들겠다든가 하는 생각은 안 해도 다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세계보다 더 높은 것과 관계를 맺겠다는 생각을 안 해도 이미 다 관계는 맺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런 자리에서 출발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것을 전부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보다 나은 세계, 보다 가치 있는 세계를 추구하기 위해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죽어가면서도 몰리는 싸움의 길을 계속해서 거쳐온 것을 우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바라던 소원의 때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보다 가치있는 것, 보다 빛날 수 있는 인생 길, 보다 가치있는 세계를 추구하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최종 목적은 세계를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까지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최고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그와 같은 자리에 서지 못한 인간이 그와 같은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서는 것이 인간의 최고의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냐? 이 사탄 세계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옥 세상에서 신음하며 고통받고 있는 인간을 보기 좋아하시는 분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민과 부자의 관계를 맺어 사랑할 수 있고 만민과 더불어 같이 살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아버지의 입장에서 우리를 구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의 소원과 일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소원이 일치돼 있다는 것은 곧 부자의 관계라는 겁니다. 알겠어요?
여기에서 우리 자체를 가만히 두고 볼 때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있지 못하고 항상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내 한 개체 가운데에서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른 두 목적을 추구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두 목적을 향해서 갈 수 있는 인간으로 창조하셨다면 하나님은 절대자가 아닙니다. 하나의 사상을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갈 수 있는 존재로 절대적인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다면, 두 목적을 가질 수 있는 존재로서 태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와 같이 모순된 결과에 처해 있는 사실을 두고 볼 때에 인간은 좋은 의미에서 정상적으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체가 고장난 입장에 처해 있다든가, 하나님이 안 계심으로 인하여 본래부터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든가 하는 두 가지 중의 한 가지인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면 그것은 인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고장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장난 것을 수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역사 노정을 통해서 지금까지 고장난 것을 수리할 수 있는 수리공장을 세워 나오시는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종교입니다. 수리공장을 세웠다면 기술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 기술자가 바로 종교의 도주들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고장난 라디오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람이 되도록 수리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리공장에 들어가야 합니다. 반드시 수리공장을 거쳐 나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세계 문화권은 종교 문화권내로 흡수되어 들어오고 있습니다.
민주세계를 중심한 기독교 문화권이라든가 극동 아시아를 중심한 유불선 문화권이라든가, 인도를 중심 삼은 힌두교 문화권이라든가, 이슬람의 회회교 문화권이라든가 하는 문화권이 형성된 것을 두고 볼 때에, 수천년 동안 사람들은 종교 문화권내로 몰려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수리공장이 세워지면 거기에 필요한 모든 부속재료들이 수리공장 주변에 모여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현재의 입장에서 바라고 있는 것,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후의 소원의 기점은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소원이 인간의 소원이요, 인간의 소원이 하나님의 소원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요, 내 것이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 사랑이요, 내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치화될 수 있는 관계를 맺으면 인간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고장난 라디오와 같이 이미 병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었더라면, 즉 인류 시조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된 자리에서 출발했더라면, 그출발은 개인의 출발이자 우주적인 존재의 출발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최고의 소원인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장성하여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고 살게 되었다면, 인간은 그 이상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서 끝이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는 자체가 개인이지만 우주적인 개인이라는 것입니다.
천지 만물이 창조하신 절대자의 것이라면 인간은 그분의 아들딸이기 때문에 인간의 것도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그 자리에 섰더라면 개인완성을 이룸과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의 아들딸의 완성이자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 만물의 완성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완성된다면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인간이 완성된 것을 보고 기분 나빠하시겠어요?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작가가 많은 정성을 들여서 작품을 완성했다고 하면 그 작가는 작품을 아끼고 후세에 남기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 작품을 영원히 보관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몇 달 동안, 혹은 몇 년 동안만 사랑해 주시다가 집어던지고 말겠어요? 인간이 백 년쯤 산다면 백 년을 좋아하다가 그 이후에는 필요가 없다며 집어던지겠느냐는 말입니다. 아닙니다.
인간도 자기가 정성들여 완성한 작품을 자기의 자손만대에 남기고 싶고, 자기와 더불어 같이 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하나님께서는 어떠시겠습니까? 사랑스러운 아들딸로 태어난 인간을 잠깐 사랑하다가 말겠어요? 영원히 사랑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완성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받을 수 있다면 하나님은 인간을 영원히 곁에 두고 싶어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자가 그렇게 기뻐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기 때문에 인간도 영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영원히 남아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해와가 그렇게 되었더라면 아담 해와의 완성은 물론 하나님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담 해와가 완성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의 중심이 되는 인간에 대해서 바라던 소원이 전부 다 완결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그렇게 기뻐하시는 아버지를 모신 아들딸이라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기뻐해야 된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 기뻐해야 할 것이냐 하면 6.25동란 때 헤어졌던 부자가 수십년만에 만나서 '아버지!' '내 아들아!' 하며 목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기쁨 이상일 것이냐, 그 이하일 것이냐?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최고의 기쁨입니다. 그 기쁨을 점령할 자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불행이 있어야 되겠어요, 행복이 있어야 되겠어요? 물론 행복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부부 완성은 가정 완성의 출발이 됩니다. 즉, 가정 완성은 아들딸 완성이자 부부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부모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재미스럽게 잘 사는데. 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들딸이 울고불고 하면서 못사는 자리에 가겠어요? 안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부 완성은 무슨 완성이라고요? 「가정 완성입니다」 통일교회 원리로 말하면 사위기대 완성입니다. 이렇게 완성된 가정에서 또 완성한 가정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가정들이 종족을 이루어 종족 완성이 되는 것이요, 그 다음엔 민족 완성이 되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국가 완성과 세계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여러분이 세계에서 일등이 되겠다고 바라는 자리가 아니라 여러분이 완전히 이루어서 소화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인간들은 왜 세계 제일의 자리를 바라게 되었느냐? 그것은 인간들이 고장났기 때문입니다. 세밀히 이야기할 시간은 없지만 여러분은 고장났다 이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우리가 바라는 세계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두고 보더라도 우리가 바라는 국가가 아닙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시정하고 해결해야 될 여건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회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 조상이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중심 삼고 하나되었다면 거기서부터 부부 완성이자 가정 완성, 국가 완성, 세계 완성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세계 완성뿐만 아니라 우주 완성까지도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잃어버렸으니 인간 본연의 마음은 그것을 그리워하겠어요, 안 그리워 하겠어요 ?
고장난 라디오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는 않지만 흐르는 전파를 받으면 '삑'하는 소리라도 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본심이 있어 그 작용으로 인하여 어디론가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최고의 자리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고장났다는 겁니다. 고장난 우리들이라는 거예요. 고장난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고 떠들면 뭘합니까? 분해를 해서 다시 한 번 손질을 해야 합니다.
고장난 기계가 수리공장에 들어가면 어떻게 합니까? 그냥 놔둡니까? 어떻게 해요? 수리를 하지요? 수리를 하려면 전부 다 분해해야 합니다. 기분 나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의 입장이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는 뭐냐 하면 고장난 인간을 고치는 수리공장입니다. 그런데 이 수리공장이 끝날에는 부속품만 갈아끼우는 수리로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합 수리공장을 만들어서 종합적으로 수리를 하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종합 수리공장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종합 수리공장의 기술자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기술자가 누구냐 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 주님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세계의 모든 종교가 전부 다 끝날 수 있는 때가 왔으니, 오늘날 통일교회가 종합 수리공장으로서의 내용을 갖추고 나왔다면 통일종교를 바라는 세계 만민들은 우리를 환영해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통일교회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한국에서 나왔다는 것을 한국 백성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설사 통일교회가 그런 사명을 다하지 못하더라도 그 방향만이라도 제시한다면 이 민족이 좋아하고 환영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통일교회는 반대받고 있습니다. 반대 받지 않습니까? 반대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냐? 수리공장에서 고장난 기계를 수리하면 고장난 것을 고쳐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수리공장들은 어디가 고장났다는 것도 모르고 수리하니 더 고장나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그런 수리공장의 주인은 망해야 된다는 거라고요.
그렇게 자신이 망하게 되었으니, 안 망하려고 우리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나라도 반대하고 세계까지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와 세계가 모두 반대를 한다 해도 우리 수리공장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고장난 라디오나 텔레비전은 어느 곳이 고장났는지 아는 사람이 고치면 한 번만 고치면 됩니다. 그러면 새 라디오나 텔레비전같이 방송국에서 보내 주는 방송은 다같이 들을 수 있고 다같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백대라고 해서 내용이 다른게 아니고 천대라고해서 다른 게 아닙니다. 억만대 있다고 해도 똑같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와 기뻐하게 될 때 그 자체를 비쳐 주는 텔레비전이 있다면, 그 기쁜 마음을 느낄 수 있게끔 되었다면 만민이 모두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마음이 기쁘겠어요, 안 기쁘겠어요? 기쁜 소리가 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슬퍼하시면 슬픈 소리가 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민이 전부다 그렇게 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멋진 세상이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안 되어 있으니 여러분을 수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수리공장에 들어와서 천천히 수리가 되기를 바래요, 아니면 빨리 수리가 되기를 바래요? 그것은 여러분 각자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년만에 수리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십년이 걸려야 수리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수리공장에 들어와서 일생 동안 수리되다가 버려지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 시조가 하나님과 하나되었더라면 이런 문제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완성이자 세계완성이며, 개인의 기쁨이자 세계의 기쁨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꺼번에 천국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이루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는 자연적으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 완성만 되면 자연적으로 다 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 참다운 소나무 씨를 뿌렸다 하면 참다운 소나무 싹이 나오는 것입니다. 영원히 참다운 소나무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인간은 그렇게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소나무 씨가 되어야 될 텐데 다른 씨가 됐다는 거예요. 그러니 참다운 소나무 씨로 다시 돌아 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사로 말하면 돌감람나무가 되었다는 거예요.
오늘날 인간들이 돌감람나무가 되었다는 거예요. 본래는 참감람나무가 되어야 하는데 돌감람나무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 나무의 열매는 까마귀 밥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감람나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접붙여야 됩니다.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인간들도 재생창에 들어가서 접붙이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참감람나무가 되지 못한 인간들을 중심 삼고 볼 때에 인간들은 이상적인 세계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대한민국은 이상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악이 우세한 나라입니다.
이 세계도 악이 우세한 세계입니다. 선과 악이 얼룩덜룩 섞어진 입장에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돼 있는 것을 해부해 가지고 잘라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이 서로서로 싸우는 입장에 있으면 이상적인 나라나 세계를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와 이상적인 국가나 민족이나 씨족이 생겨났어요, 안 생겨났어요? 안 생겨났지요? 또한 이상적인 가정이 생겨났어요, 안 생겨났어요? 안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왜냐? 완성된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수리공장이요 잃어버린 본향 길을 찾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는 무엇을 찾아 나왔느냐 하면, 이상적인 하나의 남자와 이상적인 하나의 여자를 찾아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은 몽땅 내 사랑이다' 할 수 있는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를 찾아온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예수님은 신랑이요, 신도들은 신부라 하는 것은 곧 세계를 총망라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독생자와 독생녀를 찾기 위한 내용을 말한 것입니다. 완성된 하나의 남자 하나의 여자가 이 땅 위에서 만나 혼인잔치를 치러야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오시는 재림 주님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신랑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 신랑이 하나의 신부를 찾아서 둘이 합하여 어린양 잔치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양 잔치가 뭐냐? 본래 인간 시조는 선한 부모로서 출발해야 했는데 악한 부모로 출발했기 때문에 인간은 모두 악한 부모의 혈통을 이어받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내 사랑과 같이 받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어서 하나님의 직계 사랑을 통한 혈족으로서 남아진 아들딸이 되어야 하는데,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본래의 그 자체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랑신부를 맞이하는 어린양 잔치인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 위에 신랑으로 오셔서 하나의 신부를 찾아 가지고 한 기준 위에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가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종교 가운데 대표적인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그 기준을 설정하여 확고한 목적을 세운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우신 종교는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민주세계가 기독교 문화권내에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참된 부모를 맞이하려면 그렇게 발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종교는 무엇을 해왔느냐? 참된 아들 하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아들 하나를 찾으시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도주들 가운데는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종교 교주들 가운데 여자가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전부 남자지요? 이것은 참된 아들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연결시켜 나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일 단계. 이 단계. 삼 단계. 백 단계…. 이렇게 올라가 최후의 바톤을 이어받아 가지고 승패를 결정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 아들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참된 아들이 나와 가지고 참된 딸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께서 결혼식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뭐 시시하게 자기 집안 인정해 주는그런 결혼식이 아닙니다. 맨 처음 결혼식 주례는 누가 했겠어요? 「하나님요」 하나님과 아들 딸 셋 밖에 없으면 누가 결혼식 해줘요?
하나님한테 결혼식 해달라고 하지 않더라도 때가 되면 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며 결혼식을 해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맨 일대의 주례는 누구라구요?「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될 수밖에 없는 거라구요. 그러면 하나님이 주례를 해봤다는 말 들어 봤어요? 그런 말 들어 봤어요?
하나님께서 주례를 서면 기분이 좋으시겠어요, 나쁘시겠어요? 또한 주례를 서는 데 있어서 아들 결혼식에 주례를 서고 싶겠어요, 종 결혼식에 주례를 서고 싶겠어요? 아니면 양자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고 싶겠어요?
그것은 물어 볼 것도 없이 아들딸 결혼식에 주례를 서고 싶어하신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생각일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직까지 아들딸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례를 서기 위해서는 앞으로 이 땅 위에 찾아오실 재림 주님을 중심 삼고 결정적인 생활 기준을 설정하여 신랑 신부가 상봉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결혼식을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결혼식을 해주실 때 울면서 해주시겠어요, 기쁜 마음으로 웃으면서 해주시겠어요? 기쁜 마음으로 웃으면서 해주신다는 겁니다.
결혼식이란 남자 여자로 갈라져 있는 것을 완전히 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남자 여자는 남자 중에 제일의 남자요, 여자 중에 제일의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절대적인 관계를 맺어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 중의 사랑이요,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다'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보면 볼수록 사랑하지 않으려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들딸이 되어 장성하게 되면 그들이 결혼식을 해달라고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하나님이 그들을 결혼식 해주고 어디로 가겠어요? 둘이만 재미있게 살라고 하셨겠어요. 아니면 같이 살려고 하셨겠어요? 같이 산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살려면 인간이 기쁨과 동시에 하나님도 기뻐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부자의 관계입니다. 부자의 관계란 아버지는 위이고 아들은 아래에 있는 관계입니다. 상하관계입니다. 그런데 아들딸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부모는 윗자리에만 앉아 계신다 이겁니다.
그래서 자기도 윗자리에 앉고 싶다고 욕심을 부리게 되면 부모와 자식이 싸우게 되는 거예요.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상하관계인 부자의 관계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와 너는 같은 자리. 즉 부부일심, 부자일심이라고 하는 자리입니다. 일심이 되려면 하나는 위에 있고 하나는 아래에 있는 상황에서는 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위에 계시고 아들딸은 아래에 있어 가지고는 일심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동등한 입장에서 평면적으로 위치해 있어야 일심이 될 수 있습니다.
내적 외적 관계가 평면선상의 자리에 서야만 일심이 되는 것입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횡적 관계에서 안팎관계. 전후관계의 자리에 서야만 일심이 되는 것이지, 상하관계에서는 절대로 일심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것을 생각하시고 인간을 어느 자리에까지 올려 놓으려고 하셨느냐 하면, 하나님은 내적인 아버지요, 인간은 외적인 아버지이므로 하나님은 내적인 아버지요, 인간은 외적인 아버지로 일치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런 자리에까지 세우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몸은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지금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 할 때, 그 물건을 어떻게 잘 보관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백겹 이상의 철궤를 만들어 가지고 그 속에 숨겼다고 해도 누가 숨긴 것을 알고 있다면 안심할 수 있겠어요?
백겹 이상의 철궤를 만든 자기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있으면 이것을 꺼내어 훔쳐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물건을 땅을 깊숙이 파서 그 속에 감추어야 되겠어요. 산 꼭대기에다 감춰야 되겠어요?
귀한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매일같이 보고 만지고 품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여기에 있는 아주머니들도 사랑하는 아들딸을 할 수 없어서 떼어놓고 다니면 안심할 수 있어요?
시장을 가든. 어디를 가든 꼭 안고 다니고 싶은 것입니다. 애기의 뺨을 맞대고 다니고 싶은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자기의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이기 때문에 하나된 자리에 두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우주에서 제일 귀하신 분이라면 어디에 모셔야 되겠습니까? 생각해 보라구요. 어디에다 모셔야 되겠어요? 하늘 꼭대기에 모시면 안심이 되겠어요? 그러면 좋겠어요?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분, 그분을 다른 사람이 보게 되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게 된다면 너도 있고 나도 있고 모두에게 다 있으니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보이지 않고 내 눈에만 보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 곳에다가 감추어 두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런 자리를 연구하고 찾는다는 것입니다. 나만 볼 수 있는 곳에 감추어 두고 다른 사람은 절대로 볼 수 없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크신 하나님을 어디에다 감출 수 있겠습니까?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감출 수 있는 집, 혹은 그만한 보자기가 있어야 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보자기에 싸 가지고 저 하늘 높이 공중에다 두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내 속에 두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보자 기가 있느냐 할 때, 그것은 마음의 보자기밖에 없습니다. 간단하지요? 마음은 열 분쯤 모시고도 남을 수 있지요? 마음이 좁아서 하나님을 못 모시겠다는 사람 있습니까? 하나님을 통째로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을 볼 때 문제없이 모시고도 남게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속에다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자기만 알 수 있고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도록 감춘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과 나 둘만이 좋아할 수 있는 자리에 모시고 싶다는 거라구요. 사람의 욕심이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러니 하나님이 보이는 분이셨으면 큰일났을 것입니다. 안 보이는 분으로 계시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겁니다. 안 보이시기 때문에 내가 저 사람을 봐도 하나님이 들어가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보이는 분이셔서 저 사람 속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내 속에도 하나님이 계시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안 보이시는 것이 얼마나 잘된 일입니까? 그러니 절대가치라는 거예요. 아무리 연구를 한다고 해도 그 이상 연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 보이시는 하나님을 내 자체의 중심인 마음속에 모셔 놓았으니, 누가 빼앗아 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빼앗아 갈 수 있어요? 점령할 사람이 있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의 것입니까? 몽땅 내 것이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일시적입니까, 영원입니까? 영원히 내 것이 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귀하고 가장 가치있는 중심 존재인 그분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냐? 자신의 속사람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내적 하나님이고 우리 몸뚱이는 외적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류 시조인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만물의 하나님. 즉 외적 하나님이 될 수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만물을 주관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이는 체(體)를 가진 하나님격에 선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과 일체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부부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외적으로 나타난 하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은 아담 해와의 마음 속에 계시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외적 부부인 동시에 내적인 부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안팎으로 하나된 몸에서 태어난 아들딸이 누구의 아들딸이겠습니까?
외적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동시에 내적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와는 아담의 아내만 되는 거예요? 아담의 아내이자 내적인 하나님의 아내도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인간에게 타락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비밀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런 입장에 있다 할 때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어떠한 분이시냐? 바로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 인간의 타락입니다. 그래서 고장난 모든 것을 뜯어고쳐 가지고 새롭게 재생하는 종합 수리공장의 사명을 짊어지기 위해서 통일교회가 나온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보인다면 미국과 소련이 하나님 빼앗기 싸움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인간들은 수천년 동안 땅 빼앗기 싸움을 계속하고, 요즈음은 유심론이니, 유물론이니 하는 사상을 중심 삼고 사람 빼앗기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시하고 썩은 것들을 놓고도 치열하게 빼앗기 싸움을 하고 있는데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눈에 보인다면 빼앗기 싸움을 안 하겠습니까?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의 눈에 안 보이시기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였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지만 자기 마음에 모셨기 때문에 자기는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자기가 하나되면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천지를 바라보면 다 자기의 전원같이 느껴집니다.
꽃을 바라보면 최고의 미적 경지에 도달하게 되어 창조하신 당시의 기쁨을 노래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온 우주가 꽃밭이 되고, 온 우주가 춤출 수 있는 동산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거기에 화해 가지고 우주가 기뻐할 수 있는 가락에 맞추어 한번 흥겹게 놀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그렇게 시작한 민족이 영원히 지속되었을 것입니다.
우주에 떠 있는 인공 위성들은 한 궤도를 돌기 시작하면 그 궤도를 영원히 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우주가 한번 좋아하게 되면 그것은 끝날 줄 모르고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도 하나님과 하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자 내 것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타락하여 고장났을망정 이와 같은 본성의 기준은 남아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피조 세계의 본체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중심 삼고 언제나 상대 관계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여 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양심 작용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타락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알겠어요?
본래 인간은 모든 것을 갖춘 터 위에서 출발해야 했는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30억 인류가 살고 있지만 그 많은 사람들을 종합하여 나누게 되면 남자와 여자 둘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그 많은 세계의 인류 가운데 참사람은 누구냐? 세계적인 성인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계적인 성인을 중심 삼고 그를 닮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인륜도덕이라는 말이 있지요? 대한민국의 법도 성인의 도리를 전부 다 응용, 나열해 가지고 만든 것입니다. 결국은 성인의 어떠한 가르침에 흡수되어 들어가기 위한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제 남은 문제가 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간이 타락하여 모두가 잃어버리고 아래로 떨어진 것입니다. (판서하심) 남자와 여자 둘 다 떨어졌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떨어진 이들을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시고 구원 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래 인간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알게 된다면 여기로 올라가려고 할까요, 안 할까요? 올라 가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참남자와 참여자를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6천년 동안 종교가 찾아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다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참남자와 참여자가 없었기 때문에 결혼식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되어진 이 세계는 선한 세계입니까, 악한 세계입니까? 「악한 세계입니다」 똑똑히 대답해 봐요. 선한 세계예요, 악한 세계예요? 악한 세계이니 언젠가는 망해야 됩니다. 그래서 심판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악한 사람이 악한 자리에 있으면 종교를 가질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가질 수 없으면 어떤 길을 가야 돼요?「선한 길을 가야 합니다.」 악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대로 계속 살아간다면 선한 길을 갈 수 있습니까?「없습니다.」 자기 중심 삼고는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가고 있는 악한 세상의 길에서 빨리 돌아서서 선한 길로 가야 합니다.
깡패 생활을 하던 사람이 동료들을 배반하고 돌아서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 동료들이 그냥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또다시 그 무리 속에 들어가야 되겠습니까?「아닙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돌아서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죽어도 그곳에 다시 돌아갈 수 없다.'라고 하면서 완전히 인연을 끊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연을 끊지 않으면 선한 길은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못 간다는 것입니다. 가다가 걸려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는 '이 세상의 인연을 끊어라, 이 세상을 부정하라.' 고 하는 것입니다. 참된 종교는 부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이것을 확실히 몰랐습니다. 악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두고 볼 때에, 전부 다 자기를 중심 삼고 좋아하려고 합니다.
너도 나를 위해서 좋아해라 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남을 이용해 먹고, 나라를 이용해 먹고, 세계를 이용해 먹고, 전부 다 이용해 먹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악한 세상의 판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한 사람들이 악한 세상에서 선한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악한 사람들이 남을 이용하려고 할 때 같이 남을 이용하려고 하면 선한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악을 박차고 다시 한번 선을 세워 나가지 않고는 아무리 소원이 간절하여도 선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선은 하나님의 것이자 내 것이요, 악은 사탄 것이자 원수의 것이니 악을 추방시켜 버리고 선만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힘든 일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경계선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발자국만 앞으로 가면 사망의 길로 가고 한 발자국 뒤로 후퇴하면 생명의 길로 가는 경계선에 있다는 것입니다.
떨어질 때는 머리가 무겁기 때문에 거꾸로 떨어졌을 것이니 다시 반대로 올라갈 때는 반대 방향으로 올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거꾸로 떨어졌으므로 원래 위치로 돌아서서 제자리로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도의 길을 가려면 이렇게 몇 배나 힘든 길을 가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선한 길을 가겠다고 할 때, 현재 밑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자기를 중심 삼아 가지고 올라갈 수 있겠어요? 자기 자체를 중심 삼아 가지고 올라갈 길이 없습니다. 그것으로 마지막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먼저 자신을 부정하고 자기보다 나은 사람과 절대적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은 절대 선한 자리에 못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타락한 입장에서 자신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대로 타락한 상태로 남아질 뿐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부정하고 선한 자리로 올라가면 되는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자기보다 선한 사람한테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남에게 복종하는 걸 좋아합니까? 제일 싫어합니다. 누구에게 주관받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전부 다 자기가 주관하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욕망입니다.
본래 사람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세계를 주관하고 만물을 주관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타락했기 때문에 주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마음은 주관하기를 바라지만 몸은 반대의 행동을 하지 않고는 돌아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인생 노정에 있어서 보다 선한 실적을 남기고 가는 것이 성인의 도리입니다. 인간은 이 세계에서 앞장서서 가는 성인의 가르침을 받아 그를 중심 삼고 그의 말씀과 더불어 하나되어야 합니다. 절대 복종하고 절대 순종해야 됩니다.
생명이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살아왔다 하게 될 때 그 사람과 더불어 영광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에 접붙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어요 ?
사람이 소원을 이루려면 선한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그 선의 길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는 자기 자신을 주장하는 입장에 서면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왜냐? 맨 끝, 맨 마지막에 와 있는 것이 되므로 더 이상 갈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마지막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이 선한 길, 희생의 길을 찾아가는 것은 개인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위해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개인이 희생해야 가정이 남아지는 것이고, 가정이 희생해야 종족이 남아지는 것이고, 종족이 희생해야 민족이 남아지는 것이고, 민족이 희생해야 국가가 남아지는 것이고, 국가가 희생해야 세계가 남아지는 것입니다.
내 한 개체가 희생함으로써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찾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나 자신을 내세워 가지고는 절대로 올라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선한 길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소망적인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의 일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효자 효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먹을 것이 있으면 '어머니 아버지는 많이 먹어 왔으니 나만 먹겠다.'고 하는 사람은 효자 효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부모에게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효자 효녀는 내가 먹고 싶어도 부모에게 먼저 드리고, 가정 전체를 위해서 염려하고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효자 효녀는 가정에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집안 식구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희생하게 되면 자연히 아버지보다도 집안의 중심 존재로서 위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해서 어느 누구보다도 대표적인 자리에서 희생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는 그 가정의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중심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자신이 희생하는 것을 나쁘게만 생각했지 이런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게 되면 그 사람은 희생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중심 존재가 아니 되려고 도망가더라도 중심 존재로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중심 존재로 세워질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주관하고 지도해 주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선하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선의 길에 자기를 중심 삼고 끌어들이는 것이 있습니까? 남의 주머니에 있는 것을 내 것이다 하는 것이 적선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다 하는 것이 선이예요? 그런 것을 선이라 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만약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이 선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 시조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이 세계가 모두 내 것이다 해도 그것은 선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맨 밑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선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공법은 우리의 마음에 남아 있기에 오로지 선을 향해서 움직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좋은 자리로 들어가려면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나라의 것이고, 나라의 것은 세계의 것이며,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내 것은 네것이 되고 네 것은 하나님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그런 입장이 못 되었기 때문에 내 것은 내 것이고 네것도 내 것이라는 악한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악이 뭐냐 하면 자기를 중심 삼고 생활하는 것입니다. 악은 언젠가는 망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선한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 것을 전부 다 가질 수 있게 되는 거라구요. 얼마나 욕심이 나는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이 안 갖겠다고 해도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는 것은 너를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선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친구도 자기를 좋아하고 위해 주는 친구를 좋다고 하지요? 그런데 연이어 자기를 서운하게 만드는 친구는 어때요? 서로 헤어지지 말라고 해도 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위해 주는 친구에게는 차더라도 달라붙습니다. 달라붙을 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있는 친구들도 달라붙으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남아지니까 신난다는 겁니다. 간단한 거라구요. 이것이 원칙입니다.
이렇듯 선은 내가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데에서 발생합니다. 온유겸손한 자리에서 선이 시작되는 것이요, 희생하는 자리에서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은 없나니' 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보다 크다는 말입니까, 작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보다 크다는 말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선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했기 때문입니다.
선한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기를 주장하면 가짜요, 그런 가짜는 망합니다. 영영 망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의 방안을 모색하셨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자기를 탈피할 수 있는 분기점을 찾아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반대로 올라 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위해서 살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상대가 악한 사람이라 하여도 좋다는 겁니다. 악한 사람에게 선을 베풀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받지 않으면 그 열매는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악한 사람에게도 선은 있습니다.
따라서 내게 돌아올 때는 그 사람의 선까지 모두가 합해 가지고 돌아옵니다. 선은 마이너스 되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크게 돌아오지, 작아져서 돌아오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죽고자 하는 자는 어떻게 된다고 그랬나요?「산다고 했습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정녕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역설적인 논리입니다.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은 살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역설적인 논리이지만 인생의 본연의 행로에 있어서 역설적인 논리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타락한 인간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이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려면 혈족을 통해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선한 길을 가려면 선한 부모를 통하여서만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님에게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악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속에는 종자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너도 나와 같이 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어요? 자신은 살인강도라 해도 자식에게는 '너는 절대 살인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건 반대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타락했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있어서만은 사랑이 남아 있고 본연의 사랑의 형태가 같기 때문에, 그 사랑을 통해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 사랑마저 없다면 인간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앞에 효도해야 되고, 가정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가정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친척을 중심으로 하여 볼 때에 김씨 문중이면 김씨 문중이 전부 다 우리 가정을 위해서 살아야 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이 그 문중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머 않아 김씨 문중 전부가 그 가정에 줄을 지어 찾아와서 무릎을 꿇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해보세요.
나라를 중심으로 하여 볼 때도 먼저 눈물의 길을 가지 않은 애국자가 없고,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볼 때도 먼저 눈물의 길을 감수하지 않은 효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결국 나를 죽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부정하는 길을 가야 됩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가는 길이 선의 길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여러 종족이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김씨가 가장 많다고 하여 자기네들의 후손 중에 대통령도 나오고 장관도 나오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히려 수많은 종씨 앞에 희생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여러 종씨들에게 알려져 희생한 자기들의 종씨를 중심 인물로 모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되기까지는 피나는 고통과 슬픔이 몇십년, 혹은 1세기 2세기가 걸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의 장단은 있을 수 있겠지만, 틀림없이 씨족의 중심 인물로 모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씨족의 중심에 세울 뿐만 아니라 씨족의 주인이 되어 달라고 원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되지 않겠다고 하여도 자연적으로 주인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민족은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고, 나라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완전한 선의 나라가 되려면 반드시 세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전통과 사상을 다른 나라들이 본받고 후대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드시 중심 존재로서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는 거예요. 이제 알겠지요. 중심 존재로 모셔질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본래 인간은 가정의 주인이요, 종족의 주인이요, 국가의 주인이요, 세계의 주인입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인하여 이러한 것을 모두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 원칙을 찾아 그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는 그러한 자리에 올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시간의 장단의 차이는 있지만 이 공식을 통과해야 하는 것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은 선한 사람이 되겠어요, 악한 사람이 되겠어요? 「선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빨리 선한 사람이 되는 방법이 뭐예요?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6천년이라는 지루한 세월이 걸렸는데, 빠른 시일 내에 선한 사람이 되는 방법이 없을까요? 그러려면 사상이 필요합니다. 세계 주의, 국가 주의, 민족 주의 이러한 말을 많이 하는데 민족주의자가 되느냐, 세계주의자가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위인과 성인이 여기에서 갈라지는 거예요. 대한민국에 위인이 있어요, 없어요? 대한민국의 위인이 누구입니까? 이순신 장군은 위인이지 성인은 아닙니다. 참이라는 것은 일본에서도 참이요, 한국에서도 참이요, 세계 어디를 가도 참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은 참이 아니라구요. 이순신 장군은 대한민국의 위인이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참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명장은 될지언정 성인은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이순신 장군은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에 있어서만 위인입니다. 대한민국 사람들만 좋아하지, 일본 사람에게는 뭐가 됩니까? 원수입니다. 일본을 때려잡았다고 하여 일본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을 다 싫어합니다. 그렇지요? 국경을 못 넘었어요. 그러니 이순신 장군은 민족주의자라는 것입니다.
민족주의자 다음에는 세계주의자입니다. 성인은 어떠한 분입니까? 성인은 민족주의자와는 다릅니다. 성인은 세계적입니다, 성인은 국가 한계권내에서 충성을 바치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깨달아야 됩니다.
이순신 장군이 자기 일신을 다해 국가를 위하다가 희생됐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통곡을 하였습니까? 그와 더불어 민족이 같이 죽고, 거국적인 슬픔의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이 갈 때에는 그 나라에서 한마디 동정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전부 다 때려죽일 놈이라고 핍박하는 사람만 있었습니다. 거국적으로 몰리고 쫓기는 사람 가운데서 성인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자기의 나라를 넘어서서 세계를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 가운데서 성인이 나왔다는 뜻입니다.
성인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 가지고 세계를 위해서 자기 생명을 투입하여 수난의 노정도 기쁨으로 삼고 세계적인 이념과 더불어 살겠다는 신념을 갖고, 생명을 걸겠다는 조건을 세우고 이상세계를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세계뿐만이 아니라 세계까지도 초월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천주적입니다. 지금까지의 성인들 중에 하나님을 소개하지 않은 성인이 있습니까? 찾아보세요. 하나님을 소개하지 않고 사람들끼리, 우리끼리 해먹자고 한 성인이 있어요? 성인은 반드시 하나님을 중심삼고 간 사람인 것입니다.
공자도 '위선자는 천보지이복하고, 위불선자는 천보지이화니라(爲善者天 報之以福 爲不善者天報之以福)' 하셨습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하늘이 복으로써 갚아주고 선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하늘이 화로써 갚아 준다는 것입니다. 공자님이 아무리 훌륭한 성인이라 해도 하늘을 생각하지 않고 가르쳤다면 아마 성인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인들을 두고 보면 모두가 종교의 교주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성인이지요? 성인이예요, 아니예요?「성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하셨습니다. 이 가르침의 주류 사상은 사람이예요. 하나님이예요? 하나님입니다. 불교의 석가모니, 회회교의 마호메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다 신을 위주로 한 종교의 교주로서 출발했습니다.
세계 4대 성인을 말할 때 소크라테스가 성인이 될 수 있습니까?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지식의 왕자인 것입니다. 지식은 인간의 생명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생명은 하나님만이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가치를 찾아 나가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지식을 통하여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학박사가 되었다고 하여 그것이 인생에 있어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오산인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지식이 천하가 다 인정할 수 있는 지식이라 할지라도 어린아이의 생명만 못한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종교는 생명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나왔으며 철학은 지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성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식은 사람의 생명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신을 빼 놓은 성인이 없다는 것을 볼 때에 신이 있다는 것을 상징한 거예요, 없다는 것을 상징한 거예요? 있는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세계 문화권은 종교를 중심으로 하여 전부 다 형성되었지요? 아무리 훌륭한 정치가 라든가 위대한 민족이 있었다 해도 다 망했지만, 종교만이 수천년 동안 그 전통을 지키면서 한 발자국씩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의 모든 국가가 종교 문화권내로 들어왔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사실은 부정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볼 때에도 역사적인 주체인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 위에 왔다 간 성인들이 뜻을 이루었어요, 못 이루었어요?「못 이루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들 하나 찾는다고 했지요? 그래 잔칫날을 맞아 봤어요, 못 맞아 봤어요? 그러면 통일교회 선생님이 성인의 제자가 되면 좋겠어요, 성인의 선생 되면 좋겠어요? 성인의 선생이 되어야지요. 선생님이 뜻을 이룬 성인이 되어야겠어요, 뜻을 못 이룬 성인이 되어야겠어요?「뜻을 이룬 성인이 되셔야겠습니다」 뜻을 이룬 성인이 되어야겠지요?
선생님은 통일교회 식구들을 중심삼고 합동결혼식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세계의 사람들이 우리나라로 몰려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오직 문선생밖에 없습니다. 만일 결혼해 주었다는 것에 대해 상을 받게 된다면 세계 10개 국을 모아 놓고 777쌍 합동결혼식을 해준 것으로 일등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웃음) 이런 사실을 알고 보면 기가 막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늘 땅이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부가 다이아몬드라고 해도 주고 바꿀 수 없는 일이 있다면 한 번 해볼만 하겠지요? 여러분은 민족주의자가 되겠습니까, 세계주의자가 되겠습니까 ?「세계주의자요」 종교는 세계주의뿐만이 아닙니다. 인간만 좋게 하자는 주의가 아니라 하나님까지 좋게 하자는 주의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는 인간만 좋게 하자는 주의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까지 좋게 하자는 주의하고, 인간만 좋게 하자는 주의하고 어느 주의가 더 좋아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도 좋고 인간도 좋아하는 주의가 좋아요, 주인을 빼버리고 종들끼리만 좋아하는 주의가 좋아요?「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좋다고 하는 주의가 좋습니다」 대답을 하는 것을 보니 그래도 알긴 아는군요. 종교는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만 좋아하는 주의면 되겠습니까? 원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만 좋아해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좋아하고 인간도 좋아해야 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을 보면 신이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물질이 곧 생명이라고 합니다. 아마 지옥까지도 가지 않겠다고 그럴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결국 끝에 가서는 망하는 것입니다. 종교도 신만을 위주로 하는 종교는 망합니다. 또한 인간만을 위주로 하는 종교나 주의 사상도 망합니다. 망하지 않으면 내 손으로 전부다 망하게 할 것입니다.
그래 신과 인간을 좋게 하는 주의를 신의 세계에서 환영하겠어요, 안하겠어요? 또한 인간의 세계에서도 환영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환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지상천국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지상천국을 이루지 않고는 천상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점진적이고 진취적이며 포괄적인 종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세상 사람들은 통일교인들, 야! 선전 잘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 선전 좀 하면 어떻습니까?(웃음) 이제 선전할 만합니다. 세계 사람이 내 명령에 의해 국경을 초월하여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 있는 행동을 갖추고 있으니 선전할 만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이와 같은 놀음은 대한 민국 대통령이나 미국 대통령도 못하는 거라구요. 영국 수상도 못하는 겁니다. 예수님도 못하고 공자도 못한 일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랑할 만하지요? 한번 자랑해 보아야겠습니다. 이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면 배가 아프고 괴로울 겁니다. 그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소원, 우리의 소원을 성취하자면 이와 같은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서 죽어야 되겠어요, 안 죽어야 되겠어요?「죽어야 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그 나라가 희생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희생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미국만을 위한 민주주의 입장에 서게 되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여 자기 국가를 희생시킬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공산주의의 중공이면 중공을 중심삼아 가지고, 소련이면 소련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제패하려고 하지만, 그런 원칙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민족과 국가를 초월할 수 있는 주의 주장을 들고 나오지 못하면 세계를 하나로 만들지 못하는 겁니다. 자기 민족을 초월하지 못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미국 국민만을 세계의 주인으로 만들고 싶어하시겠습니까? 세계 사람을 전부 다 주인으로 만들고 싶어하실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위주한 사상은 전부다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무리 세계를 진동시킬 수 있는 주의가 있다 하여도 자기의 민족성을 초월하지 못하면 결국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민족을 초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제한된 환경권내에서 살고 있지만, 국가를 초월하여 세계를 위한 입장에서 살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아가씨들은 머리가 새까맣지만 통일교회 아가씨들은 노란 서양 총각들한테 시집가라고 해도 찬성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하나로 형성하기 위해서는 그런 때가 되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에게 서양 남자면 됐지 무엇이 부족하냐는 거예요.
지금도 일본 사람들 3백명 정도가 수련을 받고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어디를 더 사랑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더 사랑하고 있느냐, 자기 민족을 더 사랑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를 위주로 했을 때는 나라가 망할 때 같이 망하는 겁니다. 이것은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큰 것을 위해서는 작은 입장에 있는 내가 희생되지 않고는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성인들은 세계주의를 부르짖다가 죽어갔지만, 그 세계주의라는 사상과 더불어 지상에서 살았기 때문에 지상에 해방의 때가 오게 되면, 영계에서도 해방의 때가 벌어지게 되므로 그로 인해 비로소 자기의 때를 맞아 영광의 자리에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원수들의 복을 빌어 주면서, 자신은 비록 죽지만 절개를 지키고 죽음길을 당당하게 갔지요? 이스라엘 민족의 반대를 받으면서 오로지 하늘땅을 위해서 죽어간 것입니다. 그렇게 죽었으면 그런 세계가 올 때까지는 그 사람을 중심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주인 삼아 가지고 모시고 살아가고 싶어하는 것이 천리원칙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선을 행하라'고 교육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하라는 것은 희생하라는 뜻입니다. 알겠지요?
말없이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은 국운을 맞이할 수 있는 후손을 남기는 것이요, 말없이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은 세계 운세를 맞이할 수 있는 후손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가야 하는 길은 어디냐? 오늘날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민족주의자가 아닙니다. 보다 큰 사상을 지닌 세계주의자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대한민국의 자유당, 민주당, 현 정권 앞에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면서 나왔던 것입니다. 왜 ? 가만히 보니까 주의가 크거든. 그래서 또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에게도 핍박받고 있는 거예요. 지금까지 그렇게 나왔습니다. 우리는 세계주의 뿐만 아니라 천주주의라고요. 알겠어요?
그러면 이 세계는 무엇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느냐? 하나님을 위해서….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진대 그 중에 제일은 뭐라구요?「사랑입니다」 사랑이 제일이라는 결론을 이미 내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그래, 세계는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고 하나님은 누구를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구요? 아들딸을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들딸 만나서 뭘 하자는 거예요? 하나밖에 없는 사랑의 인연을 남기기 위해서…. 그것을 남겨 주지 않고는 후계자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비로소 횡적으로 모든 인연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들도 하나님을 닮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닮지 않고는 이 세계를 이끌고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우리의 소원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참된 부모의 인연을 중심삼고 인간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의 사상이 종족의 사상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런 종족의 사상은 민족의 사상으로 발전하는 것이요, 민족의 사상은 국가의 사상으로 발전하는 것이요, 또한 국가의 사상은 세계의 사상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의 사상은 하나님의 사상으로 모든 생활에 전개되어 가지고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을 중심삼아 가지고 온 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입장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존재하고자 하는 것이 지음받은 모든 피조물의 소원이요, 인간의 소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오늘날 타락한 인간은 자신을 중심삼고는 갈 수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당신을 따라가야 하는 동시에 나를 희생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이 엄연한 법칙적인 사실을 확실히 느낄 수가 있사옵니다.
나 자신이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고, 뜻을 위하여 희생하여, 모든 것을 다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에서 당신의 수고와 노고 위에 승리를 찾아 드려야 할 저희 자신들이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우리의 소원이 무엇이냐 할 때, 타락한 저희에게 있어서는 선의 길을 가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선의 노정을 남기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기울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에게로,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에게로,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에게로, 민족을 중심삼고 국가에게로,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에게로, 세계를 중심삼고 하나님에게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렇게 단계적인 노정을 오늘날 저희들이 추구하게 될 때, 개인에서 가정으로 연결되려면 탕감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정에서 종족, 종족에서 민족, 국가, 세계, 그 단계단계마다 탕감조건을 세워 놓지 않고는 연결시킬 수 없다는 엄청난 탕감의 내용을 저희들이 체득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이 모든 전체를 책임지시고 인연지을 수 있는 승리의 한때와 승리의 한 기준을 넓히시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걸어 나오신 것을 생각할 때, 몸 굽혀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감사의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바로 통일교회 식구들의 생활이요, 생활 철학인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자기의 고집만을 주장하는―몰상식하고도 망할 수밖에 없는―자아를 무시하고 멸시하며, 남을 위해서 살고 성인이 가야할 길을 준비하기에 온갖 정성을 다하여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자기의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도 가담시켜서 '다 갔다'라는 하나의 결정적인 말을 할 수 있는 역사적인 종말의 때가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이 좁고 낮은 자기 일신을 버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바라시는 본연의 모습에 일치될 수 있는 기준을 설정하여 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도 당신이 허락하여 주신 가운데 내려진 말씀이 저희들 생활노정에 있어서 동기가 될 수 있고, 생명의 원천이 되고, 선과 악의 분기점을 확정지을 수 있는 신념의 모체가 되어, 당신을 사랑하는 저희들 가슴 가슴에 채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선을 추구하고 악을 근절시킬 수 있는 심판의 주인공으로서 남아질 수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주관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