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참석한 학생들 가운데서 선생님을 처음 본 학생은 없나? 있으면 손들어 봐.
여러분들은 이 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귀한 시절인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오래지 않아서 학창시절을 끝내고 사회로 나가는 사람도 있겠고, 혹은 계속 학구의 길을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한 시대를 지내고 나면 다른 한 시대가 찾아오는 것은 인간세상의 순리인 것입니다.
뜻으로 볼 때에도 뜻의 길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개인의 복귀시대가 지나가면 가정의 복귀시대가 오는 것이요. 가정의 복귀시대를 다하고 나면 국가의 복귀시대, 국가의 복귀시대를 지나고 나면 세계의 복귀시대로 전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개인과 가정과 국가와 세계는 차원이 다르니만큼 그 벌어지는 환경과 사정도 각각 달라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여러분이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다음날 새로운 아침이 찾아오되, 그 아침은 보낸 날의 아침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일년이 가고, 혹은 십년이 감으로 말미암아 인생의 행로는 덧없이 죽음을 향하여 전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철모르던 어린 시절을 회고해 보면 까마득한 옛날같이 생각 될는지 모르지만, 더우기나 10대에서 20대의 기간은 가장 길고도 지루한 시절인 것입니다. 언제 내가 20대가 될 것이냐? 언제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갈 것이냐?
언제 내가 청년으로서 당당한 기개를 갖추어 가지고 인생의 참다운 모습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는, 10대에서 20대를 향하는 그 기간은 가장 지루한 기간인 것입니다. 국민학교 4, 5학년이 되게 되면 10대가 되어 열 살을 지나 그 학교를 졸업하고, 그 다음에는 중학 교에 들어가고, 또 그 다음에는 고등학교를 들어가 졸업반이 되는 이 스무 살 - 혹자는 20이 넘은 사람도 있겠지만 - 까지는 가장 긴 시절인 것을 여러분이 느꼈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20대가 지나가고 30대로 접어들게 될 때에는 그 20에서 30은 점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또, 30에서 40은 더 빨리 가까워지는 거예요. 40에서 50은 더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점점 짧은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생에 있어서 제일 나이 먹기를 바라는 때는 어느 때냐 하면, 10대에서 20대 사이입니다.
그러면 나이 먹음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느냐? 성인이 됩니다. 성인이 되면 어떻게 되느냐? 모든 것을 가릴 수 있습니다. 선이 어떻고 악이 어떻고, 인생이 가는 데 있어서는 이렇게 가면 안 되고 저렇게 가야 올바른 길이라고 모든 것을 가려 가지고 자기로서의 보람 있는 인생의 길을 찾을 수 있는 때가 20대로 넘어서는 때입니다. 10대에서 20대를 바라는 그 기간이 지루하다는 것은…. 새로운 인생의 가치를 추구하는 내면 적인 갈구가 깃들어 있기 때문에 길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렇게 지나는 가운데 어떤 사람은 중학교 시절에, 어떤 사람은 고등 학교 시절에 통일교회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국민학교나 유년주일학교 시절에 뜻을 알고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학교 시절이나 고등학교 시절에 뜻의 길에 접어들었을 것입니다. 이 뜻의 길을 알고 나서는 여러분이 과거에 느끼던 20대 시절과 알고 난 후의 20대 시절이 판이한 것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옛날에는 여러분들이 가야 할 인생의 길을 추구하고 모든 소망을 가지고 그 길을 찾아 나가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뜻의 길을 알고 난 후에는 입장이 다른 것입니다. 뜻을 성사시켜 나가야 되겠다, 뜻에 대한 책임을 내가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섰다는 것을 느낄 때에 들어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오래지 않아서 대학교를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회로 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과연 뜻이 원하는 길이 어떤 길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를 가려 가지고 올바른 길을 가기란 심히 어려운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말하는 뜻이 원하는 길, 진정한 뜻이 원하는 길이 어떤 길이냐 하는 것을 여러분은 똑바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자기 운명의 최후를 마감하는 그 순간에 있어서도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다하는 자리에서도 끝까지 뜻이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서 그런 최후를 마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뜻이 원하는 길을 맞춰 나가기 위해 30여 생애 동안 노력하면서 혹은 배척도 받았고, 혹은 어려운 생활도 했으며, 고독한 자리에서 신음도 했지만 그 모든 환경과 사연이라는 것은 오로지 뜻이 원하는 길을 세워 가기 위한 생애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뜻이 원하는 길을 가려고 몸부림쳤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중심삼은 제자들도 뜻이 원하는 길을 가려고 따라나섰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한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예수님이 원하는 뜻의 길에 동참해 가지고 같이 가려고 나섰던 무리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도들인 것입니다. 거기에 대표적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수제자도 뜻이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나섰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뜻이 원하는 길을 끝까지 갔지마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그 외의 사도들은 뜻이 원하는 길을 다 가지 못한 역사적인 서러움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3년 공생애노정을 예수님과 더불어 같이 자고 먹고 지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바라보는 뜻과 제자들이 바라보는 뜻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라보는 나라와 제자들이 바라보는 나라에도 거리가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이 바라보는 세계와 제자들이 바라보는 세계에도 거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보는 관에 따라서는 크다면 큰 거리가,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을 우리는 추측할 수 있습니다.
개인 개인으로 보면 예수님도 하나의 개인이요, 베드로 같은 사람도 하나의 개인이었지만 개인 자체를 두고 볼 때에도 거기에는 거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는 개인은 역사를 대표한 개인이요, 시대적인 중심의 개인이요, 미래의 선의 기수로서 당당히 출발할 수 있는 개인이었지만, 베드로라는 개인은 역사를 대표할 수 없는 개인이요, 시대의 중심의 사명을 할 수 없는 개인이요, 미래의 새로운 선의 출발을 제시할 수 없는 개인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다른 입장에 섰기 때문에 가는 길도 달랐습니다. 바라보는 표준도 달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도 달랐고, 추구 하는 목적이나 대상도 다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다하는 자리에서 뜻을 세우려고 했지만,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제자들은 죽음을 싫어하는 자리에서 뜻을 저버린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 당시 같은 환경에 처한 사람이었지만, 밥을 먹어도 같이 밥을 먹고, 행동을 하여도 같이 행동을 하였지만, 뜻을 중심삼고 바라보는 그 기준이 달랐기 때문에,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사이에는 판이한 생활의 결과가 나타났고, 그런 결과를 맺고 간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기 180명의 학생들이 모였지만 길은 하나이어야 합니다. 이 가운데는 남학생이 있고 여학생이 있지만 진정 뜻을 위하는 학생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은 두 길이 아닌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 그 성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남자의 가는 길이나 여자의 가는 길이 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앞에 서면 남자가 따라가야 할 길이요, 남자가 앞에 서면 여자가 따라가야 할 길입니다. 뜻이 원하는 길은 단 하나밖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먼저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이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나 젊은 사람이 가는 길이나 뜻이 원하는 길은 다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복귀의 행로를 더듬어 올라가는 데 있어서는 그 길이 여러 길이 아닌 것입니다. 그 길은 단 한 길, 직선으로 그어진 단 한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직선을 중심삼고 우로 좌로 거쳐가는 길은 천 가지 만 가지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직행으로 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길을 따라 나선 참다운 젊은이가 있으면, 그건 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같은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뜻이 원하는 최고의 보람 있는 가치의 길은 어떠한 길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를 위해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쳐 준 교훈, 성경에 가르쳐 준 교훈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뜻이 원하는 참다운 가치의 길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는 길이 아니라, 뜻이 원하는 대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뜻의 주체는 누구냐?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가는 길입니다. 거기에는 자기의 소원이라든가, 자기의 뜻이 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원과 하나님의 뜻을 세워 놓고 난 후에야,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가지고 자기의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것이 타락한 인생이 설 수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원을 이루어 놓고야 우리의 원을 취할 수 있는 것이 타락한 인생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의 소원이 있을 수 없는 것이요, 자기가 세우고자 하는 뜻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만민을 대표해 가지고 이 땅에 왔기 때문에, 그 주체자는 뜻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표준이요, 뜻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역사적인 모델의 형태를 갖추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소년시대로부터,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를 거쳐 가지고 일생의 노정을 걸어갔다면 만민이 그가 간 길을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청년시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청년시대에 간 길을 따라 가야 되고, 장년에 처한 사람은 예수님이 장년시대에 간 길을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노년시대에 처한 사람이면 예수님이 노년시대에 간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간 길은 누구나 가야 할 운명적인 길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들의 명분을 갖고 이 땅에 왔지만, 우리 인간은 타락 하지 아니한 아들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타락한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은 아들과는 상대할 수 없는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된 우리가 타락하지 아니한 본연의 아들 되시는 메시아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추어 그를 믿고, 그를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를 따라간다고 해서 그냥 순순히 따라갈 수 있는 입장이 못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탕감이라는 내용을 제시해 놓고, 그 탕감의 조건을 넘어섬으로 말미암아 복귀의 길을 더 가까운 거리에 다짐지어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탕감복귀는 어떻게 해 나가느냐? 뜻이 요구하는 탕감복귀의 내용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타락하던 그때의 입장을 반대로 걸어가는 길을 가려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지 아니한 길, 그 반대의 길을 가려 가야 되겠다는 겁니다. 그 가려 가야 하는 반대의 길은 어떤 길이냐? 타락하지 아니한 사람으로서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하지 아니한 사람으로서 갈 수 있고,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자리가 어떠한 자리냐? 그것은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를 보는 하나님을 모시고,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를 모시는 천사장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서 종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종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아들딸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들딸을 잃어버린 후에는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신랑 신부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부모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을 잃어버렸고, 아들딸을 잃어버렸고, 그 아들딸을 세워 가지고 하나님의 이상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신랑 신부를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결과가 되었는데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하나님을 끝까지 충성으로 모시는 천사장을 가졌을 것입니다. 참다운 아들딸을 가졌을 것입니다. 참다운 신랑 신부를 하나님은 맞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통하여 참다운 부모의 인연을 타락하지 않은 자리에서 이루었을 것이 아니냐. 이것이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려고 했던 것, 즉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게 되면, 여러분들은 '사위기대 완성이다.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뜻을 이룬다는 것은 무엇이냐?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은 무엇이냐? 사위기대를 완성하는 것이다. 사위기대를 완성하는 것은 무엇이냐? 참다운 부모와 참다운 부부와 참다운 자녀를 형성하는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가지고 참다운 종을 맞아야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뜻의 표준이라는 것을 결론지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할 때는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창조이상을 완성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 사위기대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사위기대를 완성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그 하나된, 사랑의 주체 되는 그들을 중심삼고 종 되는 천사장들이 모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 즉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타락했기 때문에 무엇을 찾겠다는 것이냐? 이것을 찾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복귀의 길을 더듬어 올라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어떠한 내용을 제시하며 오라고 하느냐? 먼저 우리는 종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천사장의 후계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천사란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되느냐? 하나님 앞에 끝까지 충성을 다하고, 온 생명을 바쳐 하나님을 모셔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종의 순수한 법도와 종의 순수한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의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이 뜻길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종의 복귀역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종의 복귀역사를 해야 되는 겁니다. 미래의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나가는 인류를 대해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소원삼고 나가는 수많은 무리 혹은 피조세계를 대해 가지고 하나님을 모시는 대신 뜻을 모실 수 있고 뜻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진 그 사람들을 모실 수 있는 종의 훈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가 하는 놀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섬기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섬겨라! 희생 봉사하라! 이런 놀음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기초단계의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원하는 길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종으로서 사명을 완결하지 못하였던 이 인연을 나로 말미암아 완결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책임을 다하겠다고 나설 때, 하나님이 원하는 길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펼쳐 나가는 복귀의 길에는 어떠한 무리가 있느냐? 참된 종으로 설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참된 종이 있는 반면, 악한 종으로 설 수 있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자리를 지나고 난 후에는 어떠한 사람이 있느냐? 참된 아들딸로서 설 자리가 있는 것이다. 참된 아들딸로서 설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엔 참된 아들이 아니라, 거짓된 아들로서 설 수 있는 자리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 표시된 가인 아벨형인 것입니다. 아벨의 길은 참된 길이요, 가인의 길은 거짓된 길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그 길을 지나고 난 후에는 아벨로서 가인을 굴복시켜 승리해 가지고 신랑 신부의 자격을 완결해 나가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을 잃어버렸고, 아들딸을 잃어버렸고, 신랑 신부를 잃어 버렸기 때문에 신랑 신부로서 설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아벨의 사명을 완결한 사람은 신랑으로서 설 수 있는 자리를 이어 받을 것인데, 본래 하나님의 사랑과 혈통의 인연을 통하여 난 사람이 아니고는 신랑의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신랑 신부를 중심삼아 가지고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종횡으로 일치될 수 있는 기원이 지상에 설정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신랑 신부의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 신랑 신부의 자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직계 사랑의 핏줄을 받고 태어난 아들딸들이 성숙해 가지고 맺어지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타락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순수한 신랑 신부로 설 수 있는 아들딸의 자리에 그냥 그대로 동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체기대를 완성해 가지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어 받으라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어받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이냐? 메시아와 나를 접붙이는 놀음을 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접붙임으로 말미암아 과거에 돌감람나무 되었던 것을 참감람나무로 돌이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의 혈통을 벗어나서 선한 하나님의 혈통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그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만 신랑 신부의 자리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원리의 길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적 시대에 있어서 종교가 찾아 해 나온 것은 어떤 것이냐 하면, 종으로서의 사명을 하는 것입니다. 악한 아들과 선한 아들, 두 아들이 서로 서로가 죽이고 빼앗는 싸움의 역사 가운데에서 남아질 수 있는, 아벨적인 사명을 계승할 수 있는 무리를 확대시켜 나온 길이 지금 까지 기독교가 걸어온 길입니다.
그렇지만 아들의 자리에 직접 올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들의 자리를 계승시키기 위해서, 또 이것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메시아라는 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분은 아버지로부터 나온 사람입니다. 날 때도 아버지로부터 나왔고, 자랄 때도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서 자란 그러한 아들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일체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지 못했습니다. 악한 사탄으로 말미암아 출발한 것입니다. 악한 사탄으로 말미암아 출발했기 때문에 악한 사탄을 저버리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쳐부수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으로서 승리해야 되고, 가정으로서 승리해야 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대신하여 반항의 깃발을 들고 돌아서 박차고 나오지 않고는 하늘을 향한 아벨적 자리에 동참할 수 없는 것이, 복귀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아들의 자리를 계승받아 가지고 신랑 신부의 자리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출발하기를, 하나는 사탄세계에서 올라가기 위해 출발했고 하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 가지고 이걸 붙여 가지고 올라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입장이 다르다는 거예요. 이것을 연결시키지 못한 것이 기독교의 비참이요,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게 된 동기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종으로서 바꿀 수 있는 길이 있고, 악한 아들이 선한 아들로서 설 수 있는 자리는 바꿀 수 있지만, 진짜 선의 목적을 이어받을 수 있는 완전한 아들의 자리에는 못 나가는 것입니다. 선한 자리를 닦아 참다운 아들의 자리를 연결시켜 가지고 신랑의 자리까지 나아가 우리 인생이 하나 남의 사랑을 중심삼아 일체 이상을 이루지 않으면 사위기대를 완성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길을 되찾아 나가는 것이 복귀의 길이요, 뜻이 원하는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편에서 보면 참다운 종이 있고, 참다운 아들이 있고, 그 다음에는 참다운 신랑이 있고, 그 신랑을 통해 가지고 참다운 하나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탄편에는 거짓 종이 있고, 거짓 자식이 있고, 거짓 신랑 신부가 있고, 거짓 하나님이 있는 것입니다.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뚝 잘라 버려야 됩니다.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고,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고 명령에 불복종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불신, 불순종, 불복종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그 반대로 탕감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종이 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신앙을 가지고,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참된 아들이 가는 길, 선한 아들이 가는 길을 찾아 나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돼요. 종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되고, 아들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메시아를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도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와야 된다는 거예요. 유대교시대에 예수님이 왔다 간 후에 다시 재림하여야 된다는 것은 아들이 다시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필연적인 사실 인데도 불구하고, 만약에 그분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완전히 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이 땅에서 나 가지고 커서 갈 수 있었던 본연의 자리를 찾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탄에게서 나서 자라 가지고 사탄의 품에 돌아갈 것이었는데,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하나님에게서 나와 가지고, 돌아갈 수 있는 대표자를 만나 가지고 연결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기리까에 시켜 가지고, 전환시켜 가지고 가는 길 외에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 앞에는 절대 필요한 것이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신앙길에 있어서 메시아가 왜 필요하냐? 이 문제가 희미해 가지고는 여러분은 갈 수 없습니다. '내게 무슨 메시아가 필요하냐? 사람은 다 마찬 가지지' 이러한 애매한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틀림없이 세계는 두 세계가 있습니다.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 혹은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이 있다 이거예요. 교육을 하는 목적은 무엇이냐 하면 착한 사람, 선한 사람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선한 사람 되기보다도 악한 사람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악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교육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교육도 필요 없다니…, 그 자체가 그냥 악한 것입니다. 교육함으로 말미암아 악과 갈라낼 수 있지, 교육을 함으로 말미암아 악과 분립시킬 수 있는 것이지….
교육이라든가, 윤리라든가 하는 것은 모두 선을 표준하고 나갑니다. 선을 표준하고 나가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닌 것입니다. 고통의 길입니다. 내 몸이 원하는 모든 것은 전부 다 본질에서 상충되는 역리적인 노정입니다. 그 길을 가지 않고는 선한 결과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오늘 우리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가르침을 받는 표준인 것입니다.
그걸 보면 이 세상은 악과 선이 뒤섞여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악을 제거하고 선만을 찾아 나가야 됩니다. 이것을 가려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뜻이 원하는 것으로 보게 될 때 가려 나가는 데는 무엇을 가려 나가야 되느냐? 하나님 앞에 천사장이 종으로서 책임 못 했으니, 절대적인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자리에 못 갔으니,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종의 자리를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이러한 코스를 거치게 하는 것입니다. 통일 교회에 들어오면 반드시 회생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민은 선한 것을 바라고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기 전에 사람을 위해라, 전체 인류를 위해라, 사람을 사랑해라, 사람을 위해 살라, 사람을 위해서 태어났다' 하는 교육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구요. 나를 위해서 태어났다면 천사장 복귀의 노정을 가려낼 수 없는 것입니다. 요거 알겠어요? 응? 자기를 위하는 자리라면 우리 타락한 인간으로서 가려 가야 할, 천사장이 인간을 위하지 못하는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타락을 가져왔는데, 이것을 탕감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그 아들의 자리라는 것은 어떠한 자리냐?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것입니다. 양자의 자리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양자예요, 양자. 아들은 아들인데 양자야! 양자란 무엇이냐? 핏줄이 다른 것입니다. 출발이 딴 아버지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후 오늘의 인류는 양자와 마찬가지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양자가 된 것은 무엇 때문에 되었느냐? 사탄 때문에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가 복귀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의 대표 되는 아들을 굴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천사장형을 실체로 굴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뜻이 원하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 아벨의 문제는 언제나 남아지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둘 다 똑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두 사람 중심삼고 뜻을 설정하게 된다면 반드시 선한 사람을 중심삼아서 할 것입니다. 그 둘 가운데 조금 나은 사람이 조금 나은 분야에 해당한 아벨적인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 분야가 커지면 점점 큰 아벨로서 커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아벨 중에 개인적인 아벨이 생겨나는 것이요. 아벨 중에 가정을 대표한 아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커 가는 거라구요. 아벨 중에 종족적인 아벨이 있는 것이요, 아벨 중에 국가적인 아벨이 있는 것이요, 세계적인 아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반대적인 면에서 개인이 생겨나는 것이요, 반대적인 가정이 생겨나는 것이요, 반대적인 민족이 생겨나는 것이요, 반대적인 국가가 생겨나는 것이요, 반대적인 세계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되면 반드시 세계는 두 갈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두 갈래로 돼 가지고 '내가 옳다. 내가 옳다' 하는 때가 되거든 끝날인 것을 알라! 끝날인 것을 알라!
가인 아벨을 두고 보면 말이예요, 공판정에 나타나는 심판날이 가까와 오면 가까와올수록 가인은 가인대로 변명하는 것이요, 아벨은 아벨대로 변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드러낼 때가 오는 것입니다. 누가 옳으냐, 누가 그르냐 하는 문제를 가려야 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부딪치는 것입니다. 부딪치는 거예요. 그러면 부딪치는 데 가인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가인과 아벨의 성격이 어떻게 차이가 있느냐? 맞는 자리에 서는 것이 아벨이요, 치는 자리에 서는 것이 가인인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오늘날 전세계를 두고 보면, 치는 자리에 선 것이 누구냐 하면 공산세계요. 맞는 자리에 선 것이 누구냐 하면 민주세계입니다. 또, 하나의 국가에서 보게 된다면 말이예요. 하나의 민주세계를 두고 본다면 치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요. 맞는 자리에 선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자들인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이겁니다.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믿지 않는 사람이 믿는 사람을 비판한다 이거예요. 믿지 않는 사람이 믿는 사람을 도리어 핍박하고 도리어 평을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비평을 받고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가인 아벨을 분별하는 데 있어서는, 맞는 것은 아벨이요, 치는 것은 가인인 것입니다.
맞고 때리고 난 후에 최후에 결판이 나게 된다면 서로서로가 기진맥진 해집니다. 기진맥진해진다구요. 둘 다 끝까지 싸웠다가는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건 그럴 수 없습니다. 어느 것 하나는 망하게 마련입니다. 어느 것 하나가 굴복하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어느 것이 굴복하게 되느냐? 어느 것이 굴복하게 되느냐? 악한 것이 먼저 굴복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악한 것은 자기가 대항을 했지만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자기가 당당히 나서서 변명하고 변호 했지만 대하고 나면, '네 이놈?' 하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기 때문에 양심의 소모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지만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올바른 자리에 선 사람은 반대가 심하면 심할수록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가책은 커녕 도리어 발전이 벌어집니다. 그렇지요?「예」악한 편에서 치면 칠수록 아벨은 강해지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치는 쪽은? 약해지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은 남아지는 것이요, 악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민주세계는 내가 어느 편에 섰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게 사고라구요. 내가 선한 편에 섰는지 악한 편에 섰는지,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선한 편에 선 것을 자각하는 날에는 '내 편에는 하나님이 있고 내가 선한 편에 섰으니 마음대로 쳐 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강해지는 것입니다. 치면 칠수록 우리 편은 하나님과 가까와진다는 것입니다. 그건 그렇다구요. 안 그래요? 부모 앞에 있어서 잘못한 형님이 동생을 치면 칠수록 부모는 누구의 편에 서느냐? 맞는 동생의 편에 오지 말래도 오게 마련입니다.
그 원칙과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느 편에 섰다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갈팡질팡하니까, 한 대 맞고 '그래 그래' 그러니까 사고지, 옳은 것을 알고 끝까지 지키고 나가게 될 때에 하나님은 내 편이 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끝까지 옳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게 사고입니다. 아벨이라는 것은 죽을 때까지 자기의 뜻을 위해 산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예수님도 죽을 때까지 자기의 뜻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아버지는 나를 버리지만 나는 아버지를 안 버리겠습니다' 했습니다. 확실히 알았다구요. 나는 참된 뜻을 가졌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부딪쳐 오는 환경이, 혹은 원수들의 핍박이 가중되어 오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망하는 것이다' 이런 신념을 갖지 못한 민주세계가 돼서는 큰일입니다. 도리어 공산세계는 '이놈은 치면 망한다' 하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사상 적인 면에서 신념을 드높이 하고 '이놈을 치면 우리 방망이에 나가떨어진다' 이렇게 자신을 갖고 나가는 것이 공산당입니다. 이건 맞으면 으례히 망할 것인데 죽지 않는 것은 맞는 자로서 당당히 부모의 변호를 받을 수 있고, 부모의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아들의 권위를 갖고 있노라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못 됐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는 피폐해가고, 민주세계는 약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을 그냥 그대로 계승받을 수 있는 자리에 못 선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만일 여기에서 자각해 가지고 아버지의 아들로서 당당히 섰다 하게 될 때는, 오늘날 이 공산세계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세 번까지는 치는 것입니다. 한 번 치고, 두 번 치고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1차대전, 2차대전, 3차대전형을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몸을 치는 시대, 그 다음에 마음을 치는 시대, 정을 치는 시대,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치는 시대, 이렇게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몸뚱이 빼앗기 싸움이라구요. 인간의 역사를 가만히 보게 되면 지금까지 전쟁은 무엇 때문에 했느냐? 땅을 빼앗기 위해 했습니다. 땅 빼앗기 싸움입니다. 땅은 몸뚱이 상징입니다. 그렇지요?「예」그 다음에는 무엇 빼앗기 싸움이냐? 그 다음에 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사람 빼앗기 싸움입니다. 그렇지요? 그 다음에는 무엇 빼앗기 싸움이냐? 누가 주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체를 하나로 통일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싸움이라구요.
공산당들이 지금 그 놀음 하고 있다구요. 공산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되기 위해 강제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당을 사랑해라. 당을 사랑해라. 당을 사랑하는 데는 자기 여편네보다도 아들딸보다도 더 사랑해야 된다, 이렇게 돼 있지요? 그 당이 무엇이냐? 김일성이 남편이라면 당은 여자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당은 무엇이냐 하면 김일성의 집이다 이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김일성의 집이라구요. 하나되는 것은 직계 족속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는 그러한 자리까지 나가서, 사람을 중심삼고 한 곳으로 집중 시켜 가지고 무엇을 치느냐? 하나님을 친다 이겁니다. 하나님을 쳤지요? 「예」 몸뚱이, 마음, 사람 빼앗기 싸움, 그 다음에는 이 인간에게서 사랑을 몽땅 빼앗는다구요. 그 다음엔 하나님까지 치는 게 공산당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 몸뚱이를 하나님편에, 우리 인류들의 마음을 하나님편에, 사상적인 면에서 인류를 포섭해서 하나님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집에 사랑을 집결시켜야 되고, 하나님을 절대로 위하고 반대할 수 없게 해야 합니다. 이러한 역사 발전을 바라보게 될 때, 이것은 불가피한 결과가 아닐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뜻이 원하는 길은 뭐냐? 천사장으로서 완성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되고, 그 다음에는 양자로서 완성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됩니다. 양자입니다. 양자. 양자의 길에는 가인이 있는 것입니다. 가인을 굴복시켜야만 되는 것입니다. 가인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인을 굴복 시켜 가지고 하나되어야만 아들을 모실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들은 무엇이냐 하면. 인류의 부모입니다. 메시아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과 아벨이 복귀되지 않고는 아담을 구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원리가 그렇게 돼 있지?
아벨은 부모를 복귀하기 위한, 아담 해와를 복귀하기 위한 것입니다. 복귀하는 데는 혼자 못 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 둘이 하나되어야만, 참다운 형제로 등장해야만 타락하기 직전 단계에 섰던 타락하지 아니하였던 아담 해와를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아담 해와는 뭐냐? 신랑 신부인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 신랑 신부를 맞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됨으로써 참다운 부모의 자리를 이어받아 가지고 비로소 선한 조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사위기대완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사위기대를 완성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반드시 세 천사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축복을 받으려면 믿음의 세 아들딸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돼 있지요? 응?「예」 그것을 상대이념을 중심삼고 보면, 노아의 여덟 식구가 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돼 있다구.
하나님 바라시는 뜻이 무엇이냐? 뜻이 원하는 길이 무엇이냐? 간단합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천사장 대신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양자의 길을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양자로서 직계의 혈족권내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건 메시아를 맞아 가지고 접붙여야 되는 거예요.
요전에 어떤 학생이 왔을 때 내가 이야기했지만, 양자로서 하나님의 직계 혈족권내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냥 그대로 간단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모든 탕감법칙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수속이 복잡하다는 거예요. 그 수속을 거치지 않고는 여러분이 결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나, 무슨 말인지? 그 수속을 거치지 않고 결혼하면 그냥 그대로 사탄 새끼를 번식하게 하는 비료공장같이 되는 거라구요. 사탄 제조공장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 수속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접붙여야 됩니다.
접붙인 후에는 반드시 그 본나무의 진액과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지 않고는 복귀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종으로서 복귀해야 되고, 그 다음에 양자로서 복귀해야 되고, 그 다음엔? 직계 아들의 자리를 지남과 동시에 신랑의 자리를 대신 묶어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하나돼야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는 거예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아들딸을 낳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위기대완성이라구. 그렇지?
뜻이 무엇이냐? 뜻이 그것입니다. 뜻이 그것인데 아담해와만 있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타락한 인간을 두고 보면, 뜻 앞에 선 여러분 개인에게는 가정이 달려 있고, 그 다음엔? 민족이 달려 있고, 그 다음에는? 국가가 달려 있고, 그 다음엔 세계가 달려 있습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사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개인복귀만 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부 다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국가복귀, 세계복귀를 할 수 있는 전통이 서야만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기를 개인복귀완성, 가정복귀완성, 민족복귀완성, 국가복귀완성, 세계복귀완성한 후에야만 천주복귀완성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영계와 육계가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사고라구요, 이러니까.
아담 해와가 한 사람으로 타락했지만, 그 한 사람이 타락함으로 말미 암아 가정이 타락되었고, 민족타락, 국가타락, 세계타락이 된 것입니다. 아담 하나 때문에 전부 다 저끄러졌습니다. 그렇지요?「예」 이것을 탕감 복귀하려니 오늘 우리가 시대적인 사명을 세계적으로 공인받아야 됩니다. 세계 만민을 크게 나누면 하나는 세계적인 남자요, 하나는 세계적인 여자입니다. 인류를 쪼개 놓으면 몇 사람이예요?「두 사람입니다」 두 사람 인데 하나는 남자형 사람이요, 하나는 여자형 사람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나보다도 큰 소원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들도 원이 있는 것입니다. 그 원이 무엇이냐? 이 세계적인 사위기대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세계적인 사위기대를 완성하려니 인류 자체도 세계 사람들을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인류가 서로서로 사랑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내 나라 네 나라가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끝날에 있어서는 내 나라 네 나라 갈라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전인류가 아담이요, 해와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천사장도 있고, 양자도 있고 다 섞여 있는 것입니다. 전부 다 두루뭉실해 가지고 둘뿐입니다.
둘인데 복귀하는 데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서로서로 천사장이 되라, 서로서로 양자가 되라, 서로서로 메시아를 맞을 수 있게끔 노력해라 그런 입장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사상은 개인을 위한 사상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김 아무개라든가, 박 아무개 개인을 위하는 게 아니예요. 가만히 족보를 뒤적여 보면 자기 할아버지 훌륭해요? 자기 조상 가운데 몇 조상 이나 자랑할 수 있어요? 선과 악으로 본다면 선한 조상보다도 선하지 않은 조상이 많겠나, 적겠나? 선한 조상이 많겠나, 악한 조상이 많겠나? 평균적으로 보면 선한 조상보다도 악한 조상이 많게 마련입니다.
검둥이하고 흰둥이하고 섞어 놓으면 얼룩덜룩할 겁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많으냐? 흰 게 많으냐 검은 것이 많으냐? 검은 게 많으면 그건…. 그렇기 때문에 자기 생각하고 자기 집만 생각하는 것은 그냥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얼룩덜룩한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암만 가 봐라, 그냥 그대로 얼룩덜룩할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가정이나 자기 종족이나 자기 민족이나 나라보다도 세계주의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가 내 세계다 그겁니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이 세계가 누구의 세계예요? 아담의 것이지요?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정리하지 못했음)
여러분, 새들이 삼팔선을 넘어갈 때 '아이고, 미안합니다. 넘어갔다 오겠습니다' 인사하고 가나요? 뱀도 그렇고, 토끼도 그렇고, 쥐도 '삼팔선 아, 내가 넘어간다' 하고 지나가나요? 인간만이 이 꼬락서니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나라보다도 세계를, 개인보다도 인류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왜 그러냐? 한꺼번에 탕감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알겠어요? 인류를 남자와 여자, 즉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타락하지 않은 해와와 같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도 인류를 구하는 것이고, 우리의 소원도 인류를 구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인류를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와 같이 모시는 천사장이 되어야 되겠다'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사장이 복귀되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천사장 노릇 하는 가운데서 양자를 택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하나님의 아들딸 될 종자는 없으니까, 사탄한테서 빼앗아다가 양자를 만들어 가지고 다시 하나님의 아들 만드는 길밖에 없겠기 때문에, 제일 충성하는 가운데서 양자를 택하게 돼 있지, 충성하지도 않는데 양자로 뺏겠나? 그건 하나님도 별수없다구요. 그러니까 지극하게 충성하면 그 사람을 하나님이 빼서 한 단계 높여 가지고 '너를 양자로 하느니라' 하면 그가 아들이란 존재입니다. 알겠어?「예」
여러분은 밥을 먹고 눈을 뜨면 명령에 순종해야 되는 거야. 우리 통일 교회 교인들은 그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전도 나갈 때에 자기 동네에는 절대 안 내보내는 겁니다. 자기 동네 전도 나가면 안 되는 거야. 세 동네 이상 넘어가야 되고, 세 면 이상 넘어가야 되고, 세 군 이상 넘어가야 되고, 세 도 이상 넘어가야 되고, 세 나라 이상 넘어가야 됩니다. 멀수록 나쁜 거예요, 좋은 거예요? 멀수록 좋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도 3개국의 시련을 받아 나온 겁니다. 세 나라를 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3정권의 시련을 받았습니다. 그렇지요? 3종단의 시련을 받고 넘어가야 됩니다. 또, 사랑하는 제자 가운데 3인의 원수가 나타나 그들의 반대를 받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탕감 복귀의 원칙입니다.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이 있어야 됩니다. 아벨 혼자서는 아벨이 될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아벨이 됐다 하게 될 때는 벌써 가인이 없게 마련이예요. 있게 마련이예요?「있게 마련입니다」 가인은 '이 녀석아! 네가 태어난 것은 나의 복을 빼앗으려고 태어난 거다' 하며 경계하는 겁니다. 아벨은 복 빼앗는 도둑놈이라구요. 그렇지요? 가인이 살림살이를 잘하고 있는데 아벨이 와 가지고 전부 다 뒤집어 놓는 거예요. 사탄편에서 보면 괴물로 등장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아벨을 잡자'고 핍박하겠나, 안 하겠나? 핍박하게 돼 있습니다. 핍박하는 데도 원리원칙대로 이 고개만 넘어가게 되면 못 친다는 것입니다. 쳤다간 걸린다는 것입니다. 한번 쳤다 하면 도리어 그가 넘어가는 거라구. 몇십 번까지는 쳐도 괜찮지만, 그 기준만 넘어가게 되면 손을 댔다가는 걸려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아벨이 됐다 하면 그 앞에 가인이 몽둥이를 들고 와 '이 녀석! 아직 살아 있구나' 하며 친다는 거예요. 그 대신 죽이지는 못하는 거예요. 죽이면 손해배상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손해배상이란 무엇인지 알지요? 잘못한 녀석이 손해배상하나, 잘한 녀석이 손해배상하나? 대답해 보라구요.「잘못한 녀석요」잘못한 녀석이 손해배상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 무엇을 잘못한 것이냐? 죄 없는데 침범한 것입니다. 침해했기 때문에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남을 먼저 치는 것, 손질을 하든가, 트집을 잡든가 해 가지고 먼저 시비를 거는 것이 잘못한 것입니다. 알겠어? 잘못한 것은 선한 것이냐, 악한 것이냐? 악한 것입니다. '매 맞은 사람은 다리를 펴고 자고, 때린 사람은 다리를 펴지 못한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안 그래요? 그런 말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는 악한 자리에 서는 것이요, 피해자는 선한 자리에 서는 것이다! 요걸 알아야 돼요.
오늘날 이 세계를 두고 볼 때 가해자 측에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무리 들이냐? 피해자 측에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무리들이냐? 역사를 바라보게 될 때, 지금까지 종교를 믿는 사람은 피해자요, 안 믿는 사람은 가해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안 믿는 패들이 가인이요, 종교를 믿는 패들이 아벨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해를 입히게 될 때는 손해배상을 피해자가 물어요? 가해자가 무는 것입니다. 그래 손해배상을 문다 하게 될 때는, 사람을 죽였으면 죽인 것만큼 물어 가지고 되느냐? 안 됩니다. 알겠어요? 손해배상을 물게 될 때는, 그 본전을 다 배상해 주고, 피해자가 달라는 것까지 주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된다구. 그걸 보면 하나님의 탕감복귀원칙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는 거예요.
여러분, 통일교회 교인들이 지방에 나가 전도할 때 어떻게 해야 돼요? 어떤 동네에 가서 돈 쓰고 다니고 이러면 침해당하는 거예요. 침해하는 거예요? (웃음) 왜? 그 동네 사람들을 꼬여내면 침해당하는 거예요, 침해하는 거예요? 계몽한답시고 밤이나 낮이나 처녀 총각들 꼬여내게…. 피해자예요, 가해자예요?「가해자입니다」그렇다구. 가해자예요, 가해자.
보라구요. 가해자라는 것은 말이예요. 지금 자살하러 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살려 주기 위해서 몽둥이로 발을 꺾어 버렸다면, 그거 가해자예요, 피해자예요?「가해자입니다」가해자는 가해자인데 종류가 다르다구요. (웃음) 그 사람이 그 나라에 있어서 둘도 없는 충신 될 사람 인데, 그냥 두었으면 그 사람은 죽었을 것인데 다리를 꺾어 놓았기 때문에 안 죽었다면, 그것 잘했나, 못했나? 「잘했습니다」 다리를 부러뜨린 것이 잘했다고? 그건 왜 잘했느냐? 나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고 그를 위해서 했기 때문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것이 어떠한 것이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상대방에게 조건을 제시하게 될 때는 가해자요, 상대방의 이익을 위해서 조건을 제시할 때는 가해자가 아니고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 가해자와 피해자는 그게 다르다구. 그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을 살려 주기 위해서, 그 사람을 복받게 하기 위해서, 그 사람을 잘살게 해주기 위해서 애쓰다 욕을 먹는 피해자가 돼 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전도 나가서 마을에서 쫓기고, 동네에서 몰리는 일을 했더라도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동네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했다 할 때에는 가해자가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자기 앞에 복을 주려고 하는데 들이쳤다 할 때는 구경하는 사람까지도 내 편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돼 있다구요. 선악의 판가름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고 생각할 때 여러분의 수고는 가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라는 거예요. 끝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해 가지고 시일이 가면 갈수록, 선을 위한 그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망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손해배상의 양이 커져 가지고 한 나라 전부를 살려 주고도 남을 수 있는 복이 굴러떨어져 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세상 나라들을 보아도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를 지배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피지배자가 지배자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자꾸 바꿔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 손해배상을 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
이런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아벨은 태어나자마자 가인이 있는 것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뜻을 세워 가지고 가인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빼앗는 데는 아벨의 욕심을 위해서 빼앗는 것이 아니라 가인을 구해 주기 위해서 빼앗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가인의 것을 빼앗는 것은 가인을 구해 주기 위한 것이지…. 그렇다는 거예요. 가인을 구해 주기 위해서 빼앗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쳤기 때문에, 치면 칠수록 자기를 구해 주는 그 희생이 크면 클수록 사탄세계는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돼 가지고 역사는 엇바꾸어져 가지고 발전해 나오는 것이 아니냐!
그 다음에는 뭐냐 하면, 양자로서 하나님의 직계 아들의 자리를 이어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신랑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남자로서 태어나고 여자로서 태어난 목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무리 남자로 태어났더라도 혼자서 남자로 태어난 목적을 이를 수 있어요?「없습니다」 여자로 태어났더라도 여자 혼자 여자로 태어난 목적을 이를 수 있어요? 여자는 누구를 위해 태어났어요? 여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났어요? 여자는 그렇게 보기 싫게 생겼지만. (웃음) 본래 태어나기를 여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남자를 위해 태어났습니다. 본래 태어나기를 여자라는 것은 남자를 위해 태어났다 이거야.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은 자기 근본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웃음)
또, 남자들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생겨났나?「여자 때문에요」그런데 이놈의 남자들이 여자들을 들이패는 일이 많다구요. 여러분들도 그런 걸 들어 봤나? 뭐 술 먹고…. 못된 남자 만나 가지고 불행한 여자가 많다구요. 그런 남자들 많아요. 그건 자기 존재권한을 무시한 거예요. 그렇다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남자로 태어나고 여자가 여자로 태어나서 완성을 보기 위해서는 신랑 신부의 자리를 거쳐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건 왜 그러냐? 횡적으로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횡적으로 하나되어야만 종적인 중심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둘이 가까와지면 몇이 되나? 하나되는 거예요. 하나되는 데는 무얼 갖고 되나? 부부면 부부끼리 하나되려면 무얼 갖고 하나되나? 사랑 갖고 하나됩니다, 사랑. 사랑 갖고 하나된다는 거예요.
사랑 갖고 하나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사랑을 중심삼은 그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깃든 곳에는 하나님이 임재하게 마련입니다. 사랑이 깃들지 않은 곳에는 사탄이 임재하는 거예요.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사랑은 서로가 위하는 데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년이 가고 몇 년만 가보라구요. 그저 땅거미처럼 되는 겁니다. 여자도 마음이 꼰드러진다구요. '너 그러면 나도 그러자' 그런 마음이 생겨나나. 안 생겨나나? 그건 생겨나게 마련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위하는 데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곳에 계시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위하는 곳에 계십니다. 형제끼리 서로서로 위하는 데서 하나되기 때문에 하나님도 거기에 계시는 것입니다. 사탄은 위하지 않고 싸우게 돼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탄은 서로서로가 싸우고 분립시키는 데 있으려 하며, 여기 왔다 저기 갔다 하니 자리를 못 잡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자리를 못 잡으니 안식 못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죄를 짓게 되면 가슴이 두근두근하지요? 잘못하면 그런가, 안 그런가?「그렇습니다」 그런 거라구요. 양심의 가책을 받는 거라구.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이렇게 하면 좋을까 저렇게 하면 좋을까' 잠을 못 자는 겁니다. 안식할 수 없다구요. 악한 것은 둘로 갈라지게 되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사탄은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안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해 가지고 하나되는 데는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안식은 위하는 사랑권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걸 전부 다 알아야 된다구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태어난 아들딸의 입장에서 참다운 남자와 참다운 여자로서 장성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부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부부의 사랑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해 가지고 그 부부를 통해서 비로소 사위기대가 완결되는 겁니다. 횡적인 사랑이 하나 됐으니 종적인 사랑이 하나되어야지요? 종적인 사랑의 인연이 하나님을 붙잡아 그 종적인 상대로 태어난 것이 무엇이냐? 아들딸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종횡의 사위기대 사랑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를 누가 잇느냐? 남편이 잇고 아내가 잇는 것이 아니라, 아들딸이 잇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 죽게 될 때에 자기 아들 딸한테 주고 가야지, 자기 아내에게 주고 가면 안 된다구. 유언하게 될 때 '마누라, 이 재산 잘 맡아 가지고 잘 살아요' 하지 않고, 마누라, 이 재산 잘 간직해서 아들딸한테 잘 인계해 주오' 그러지요? 그래, 안 그래? 「그렇습니다」 전부 다 그런다는 거예요.
종횡으로 갖추어진 사랑권이 사위기대 사랑권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부모가 부모로서 등장하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등장하기 때문에 비로소 횡적인 면에서 실체적인 하나님의 대신자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짓고 느꼈던 기쁨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인간 앞에 횡적인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힘을 허락한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 창조이상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 슬프기 위한 것이냐? 기쁘기 위한 것입니다. 기쁜 데는 무얼 갖고? 돈 갖고, 물건 갖고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을 통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하는 아들 딸이 커 가지고 부부의 사랑, 그 부부의 사랑이 커 가지고 부모의 사랑, 이 삼사랑을 일대에 전부 체험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 앞에 자식의 때와 신랑 신부의 때와 부모의 때를 허락한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이상을 이루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횡적인 면과 종적인 면에서 느낄 수 있는 중심에 선 하나님은, 그때서야 비로소 동서남북 사방을 바라보고 언제나 기쁠 수 있는 하나님이 되기 때문에 '아이고, 내가 짓기를 잘했다. 아이고, 내가 참 일을 잘했다. 내가 행복하다'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그 자리에 집을 지어 가지고 영원한 안식처로 삼겠다 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구. 알겠나?「예」
두 갈래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갈래로 되어 있다는 거예요. 하나는 종으로서 순종을 거부하는 '에이 순종이 뭐야? 사랑해서 뭘해? 다 나를 위해야지' 세상에는 그런 패들이 많다구. 통일교인은 그 반대입니다. '그러지 말고 희생하라.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희생봉사해라' 다르다구요.
그 다음에는 아벨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벨의 길도. 그저 가인을 구해 주려고 하고, 반대하는 무리들을 구해 주려고 한다구요. 그러다가 피해를 받아 다리도 부러지고, 머리도 깨지고, 그러면 머리에 꿀떡을 해 붙이고라도 또 찾아가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한 번, 두 번만이 아니라 몇 번씩 가게 되면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세 번 이상만 그렇게 하게 되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손해배상을 물게 마련이라구요. 세 번 이상은 침범 못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다구요. 어떤 악한 사람이 자기에게 찾아와 가지고 쓱 거짓말을 합니다. '여보게, 자네 나한테 돈 좀 빌려 주게' 그러면 그게 거짓말인지를 벌써 안다구.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빌려 준다구요. 그 다음에 또 와 가지고 '여보게, 자네 돈을 좀 빌려 주게' 그러면 그게 속이러 왔는지 알고도 또 빌려 줍니다. 자, 그러면 그렇게 첫번 나한테 빌려 갈 때 모르고 빌려 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전부 다 알고 있더라 이거야. 그렇게 되면 두번째 와 가지고는 얼굴이 붉어지게 되는 거예요. 두 번까지도 빌려 주긴 빌려 주었는데 전부 다 알고서 빌려 주었다 할 때, 그 다음에 와서 '여보게, 나 또 좀 빌려 주게' 하면, 또 사기치려고하는 것을 알면서도 또 빌려 주면, 그 다음에는 올 수 없다는 거예요. 세 번 이상 올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게 돼 있다구요.
여러분,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구요. 세 번 이상 나를 공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 번 이상만 넘어가는 날에는 그 다음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거예요, 손해배상. 그렇게 되면 완전히 내 앞에 굴복하게 마련입니다. 굴복하게 마련이라구요. 그러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해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이런 노정을 반드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냐 하면, 참아들과 양자가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아들과 양자가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양자는 이 세상에 언제든지 있을 수 있지만, 참아들이라는 것은 메시아이기 때문에 한 때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인류의 봄절기가 돼야 찾아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때에 이 세계를 대표해 가지고 양자로서 직계자녀로 들어갈 수 있는, 접붙이기 위한 수속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수속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메시아란 분입니다. 알겠어요?
그 수속만 잘 하면 어떻게 되겠나? 여러분, 차표 알지요? 차표를 사러 갔는데, 차표 파는 곳도 모른다구 합시다. 어디서 사는지 모른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그건 모르지만 암표라도 사면, 차표를 파는 데 가서 안 사더라도 개찰구에 들어갈 수 있나, 없나? 들어갈 수 있지? 있다구요. 결론은 차표를 어떻게 내 손에 집어넣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메시아는 와서 무엇을 하느냐 하면 차표 끊는 방법, 차표가 이렇다고 해 가지고 전부 다 딱딱 도장을 찍어 가지고 나누어 준다는 거예요. 나누어 주는 데는 얼마얼마 내라, 내는 데는 이렇게 이렇게 내라 하는 식이 있다구요, 차표를 끊어서 내는 것과 다르다구요. 딴 식이 있다구요. '이렇게 이렇게 해라, 이렇게 이렇게 하면 그 차표를 입수해서 차를 탈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제시하는 조건만 거쳐서 수속만 하는 날에는 여기서 접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나? 알겠어?「예」
그러한 사명을 해야 할 곳이 통일교회라는 곳입니다. 알겠나, 무슨 말인지?「예」 어떤 사명을 하는 것이 통일교회라구? 이런 수속을 할 수 있는 곳은 딴 데는 없는 것입니다. 이 수속을 밟지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태어난 자리에 서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축복받을 수 있나? 없다구요.
그것은 조건을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몰라도 괜찮다는 거예요. 집문서를 누가 썼는지 몰라도 좋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집문서는 누가 썼는지 몰라도 믿을 수 있는 내용만 있으면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마찬가지 입니다. 양도증이면 양도증, 집문서면 집문서 그것만 중요시하면 되는 거예요. 그건 뭐 펜으로 썼건, 연필로 썼건, 붓으로 썼건 아랑곳없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렇지?「예」 붓도 좋고, 연필도 좋고, 만년필도 좋고, 무엇이든 좋다는 거예요. 내용이 잘 되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뭐 이름을 다 쓰지만 그 주인이 그저 동그라미만 몇 개 쳐 놓아도 싸인이 되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그 사람의 싸인이 그렇더라 하는 것이 공인되면, 뭐 동그라미 열 개를 쳐도 좋고, 백 개를 쳐도 된다구. 그렇게만 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런 수속절차를 밟는 데는 통일교회 이외의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수속절차를 밟아 가지고야 비로소 신랑 신부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본연의 부모의 자리에서 선한 아들딸을 낳음으로 말미암아 창조본연의 사람, 그렇게 됐다 하면 그는 타락한 세계의 사람이 아니고, 타락하지 않은 창조본연의 사람의 가치로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통일교회는 축복이라는 것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려니 탕감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뜻이 원하는 길입니다. 알겠어? 가정은 개인과 부부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씨족도 개인과 가정을 통해 가지고 이루어지지? 나라도 개인과 가정과 씨족이 합해 가지고 이루어지지? 세계는? 세계도 마찬가지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삼고 씨족도 탕감할 수 있고, 가정을 중심삼고 나라도 탕감할 수 있고, 세계도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각해서 하나님 앞에 탕감조건을 세우면, 나라도 복귀할 수 있는 대표적인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자각의 내용을 가지고 나타난 가정이 되게 될 때에는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상에 한 남성으로 와서 한 여성을 찾아 가지고, 개인과 가정을 세계적인 대표의 가치기준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 찾아왔더라, 그것이 예수님이 와서 이루고자 한 신랑 신부의 길이더라! 그렇게 돼 있지? 뜻이 원하는 길이 뭐냐? 그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은 순수한, 죄와 상관없는 참다운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아들과 딸이 되기 전에는 순수한 양자와 양녀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런 양자와 양녀가 되기 전에 순수한 종이 돼야 되겠습니다.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로, 양자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를 거쳐 가지고 신랑 신부로서 하나되지 않고는 하나님을 못 모시는 것입니다. 절대 하나님을 혼자 못 모십니다. 신랑 신부를 갖추어야만 부모를 모시게 마련입니다.
오늘 복귀의 길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이 하나돼야만 땅 위의 횡적인 하늘부모를 모실 수 있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돼야만 종적인 하나님, 영원한 부모를, 종적인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위기대 이상형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뜻이 원하는 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나?「예」
먼저 종의 도리를 다해라. 그 다음엔 양자의 도리를 다해라. 그 다음에 접붙여 가지고 아들의 도리를 다해라. 그 다음에는 가정을 대표한 부부의 도리를 거쳐 가지고 부모의 도리를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돼라!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가르쳐 주는 창조이상완성이요, 사위기대완성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즉 무엇이냐?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했는데, 아버지의 뜻이 뭐예요. 아버지의 뜻이? 아버지의 뜻이 뭐예요?「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복귀하기 전에 개인을 복귀해야 된다구요. 나라를 복귀하기 전에 가정을 복귀해야 된다구요. 가정만 세계적 기반을 대표해서 탕감조건을 세우는 자리에 나가게 되면,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거라구요. 그걸 표준해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 유대교는 무엇을 내놓기 위한 것이었느냐 하면, 신랑 신부를 내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 기반 위에 선 예수와 신부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없다는 거예요. 그것은 결국 뭐냐 하면, 전체 가치를 대표한 사위기대완성의 기반을 찾아온 것이 메시아가 찾아온 길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나?「예」
이 길을 가야 돼요. 이 길을 가야 된다구요. 이 길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은 6천년 동안 수고했는데, 여러분들이 이 길을 자기 일대에 가려면 얼마나 수고해야 되느냐? 얼마나 수고해야 되느냐, 생각해 보라고.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도, 혹은 예수님 같은 양반도 이 땅에 와서 실패한 그 길을 찾아 나가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심각하고, 얼마나 긴장된 자리에서, 얼마나 성심성의를 다하는 자리에서 이 길을 가야 되겠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분은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아담 가정에서 아벨을 통하여, 노아를 통하여,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세를 통하여 세례 요한과 예수를 통하여, 예수 이후 2천년 동안 기독교의 수많은 선지자들이 피의 선혈을 흘려 가지고 이어 나온 그 모든 역사과정을 볼 때, 그것은 끝날에 있어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완성해야 할 사위기대복귀를 위해서 투입된 희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길을 가면서 얼마나 책임을 추궁하고, 얼마나 간절한 심정을 가지고 우리의 한을 풀어 달라며 이 땅 위에 얼마나 한의 요건을 남기고 갔느냐! 그것을 우리 자신들이 풀어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자각하고 심각하고도 심각한 자리에서 이 길을 가려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거예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생명을 다하도록 노력해라 이겁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종의 자리를 두고 볼 때, 끝날에 있는 우리로서는 역사를 대표한 종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대표한 아벨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대표한, 예수보다 나은 자리에서 신랑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남성으로서 여성을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남성과 여성이 만나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품겨 가지고 아들딸을 낳을 수 있는, 사위기대 복귀를 완성할 수 있는 그런 가정이 돼야, 하나님이 끝날에 찾아진 가정이 세계를 대표한 가정이라고 내세워 가지고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이 원하는 길입니다. 요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각자는 이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살아서 못 가게 되면 죽어서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더우기나 여러분이 20대 젊은 청년시대에 있어서 순결한, 아직까지 꽃이 피지 않은 그러한 깨끗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몸과 마음이 더럽혀지지 않은 입장에서 이 길을 직선으로 가게 되면 얼마나 그것이 아름답겠느냐? 얼마나 아름답겠느냐 이거예요. 횡적으로 더럽히지 않고 순정이 깃들어 있는 그런 깨끗한 처녀 총각으로서, 이 개인탕감노정을 거쳐 전체탕감기준 앞에 승리의 자리를 닦아 나가기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맡아 주시는 그런 놀음을 하게 된다면, 역사시대의 그 어떤 시대보다도 보람 있는 가치를 지닐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에서 첫사랑의 인연을 맺고, 하나님이 소원하는 자리에서 첫사랑을 통해서 첫아들딸을 낳는 것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었던 본연의 기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을 해서 그렇게 안되었지만…. 여러분, 여기에 찢겨진 종이 짜박지 같은 것이 있다면 이것을 전부 붙여 가지고 깨끗한 종이 같이 만들어 놓으면 편지는 쓸 수 있더라구요. 여기에 먹칠을 하고 구멍을 뚫고 다 못 쓰게 갈래갈래 찢어진, 전부 다 금이 가고 주름이 잡힌 그런 종이 짜박지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비록 찢어져서 붙이긴 붙였지만 깨끗한 모습을 해 가지고 예수와 더불어 혹은 메시아와 접붙이는 자리에서 완전히 재생된, 찢어지지 않은 종이와 같은 자리에 서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는, 하나님의 한을 대신 풀 수 있는 그러한 승리의 아들딸이 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길을 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보다도, 형제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백성으로서 애국심을 가진 애국자가 있다면 그 애국자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혹은, 인류를 사랑하는 그 박애심도 하나님을 통할 수 있는 사랑이어야만 되지, 그것이 자기 라든가, 자기 민족이라든가, 혹은 자기의 주의 사상을 가진 일파적인 동기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할 뜻의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정성을 다해서 여러분은 가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알고 나면 가면 갈수록 이 시대에 태어난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역사의 흐름 가운데서 이 짧고 한 번밖에 없는 이때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그러한 시대를 오늘날 내 젊은 청소년시대의 꽃다운 시절에 맞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 이것이야말로 자기 선조로 이어 나온 역사시대에 있어서, 자기 혈족을 중심삼은 역사과정을 통해서 한 번밖에 없는 기쁜 소식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빛나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 온갖 생애를 다 투입하더라도 부족함을 느끼고 가야 할 것, 오늘 뜻을 대한 복귀의 길을 찾아 나가는 길이요, 여러분이 뜻의 원을 이루어 드리는 길인 것을 알고, 다 함께 달려가 하나님의 축복받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알겠지?「예」
사랑하는 아버님, 역사의 과정이 어떻게 엇갈려 있는지를 모르던 저희들을 일깨워 주시사, 당신이 찾아오시던 한 많은 복귀의 길을 더듬을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준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어린 아들딸들을 이 시간 이 자리에 모으셨사오니 이번 기회를 통하여 저희들이 금후에 가야 할 길을 어떻게 가려 가야 되는가를 확실히 결정짓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제 아버님이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고, 본래 아버님이 지으신 본연의 타락하지 아니한 우리의 조상의 그 기준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정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어떻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아버님의 원수인 사탄권내에 처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부모를 통하여 자식이 되었고, 그 혈족이 되었고, 그 국가와 세계인류가 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억울하고 원통한 이 자리에서 저희들은 용단을 내려 이 세계를 잘라 버리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한 세계에 잘라 버린 대신 그 같은 가치의 기준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악한 세계를 잘라 버리고 나서게 될 때에는 나만 남는 것을 확실히 말아야 되겠습니다.
외롭더라도 하늘을 붙들고 외로와해야 되겠습니다. 역사시대에 우리의 선조들이 간 길이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들도 그러한 외로운 자리를 굳건히 지켜 가지고 하늘이 원하는 그 소원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고 가야 할 길을 다 달려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 앞에 종으로서 충성하지 못하였던 그 길을 저희들은 복귀해야 되겠고, 양자로서 책임을 다 완결짓지 못한 것을 저희들은 복귀완성하여야 되겠고, 아들과 신랑 신부로서 당신의 사랑을 이어받을 수 있는 부모의 자리에 나가지 못하였지만 저희들은 이어받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둘도 아닌 당신의 뜻으로 원하는 길인 것을 확실히 알았사오니, 이 길을 순수하게 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내가 몸을 더듬어서 밝히게 될 때에 내 손이 아버지께서 친히 빚어 만든 아담 해와를 대신한 손인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내 손 가운데는 아버지의 정성이 어려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모습 가운데는 아버지의 소원과 아버지의 이상이 깃들어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모든 사지백체에 아버지의 사랑의 손자국이 남아 있고, 아버지의 정성과 심정의 모든 것이 깃들어 있는 것을 알고, 자기 자체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 가치가 하도 귀하기 때문에 악과는 짝할 수 없는 자신인 것을 발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만을 받들고 하늘만에 속할 수 있는 자신을 남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악한 세계와 선한 세계가 어떻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한 자는 공격을 받되 반드시 손해배상의 대가를 받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확실한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흐리멍덩해 가지고는 안 되겠습니다. 불확실해 가지고는 안 되겠습니다. 똑똑히 아버지편에 선 것을 자인하고 자랑할 수 있는 각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악한 세계를 가려 갈 수 없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기회에 하늘이 원하는 뜻의 길이 어떤 것인가를 확실히 깨닫고, 생애를 통하여 그 길을 갈 것을 다짐할 수 있는, 자기를 발견하기 위해 무한한 희생을 할 줄 아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길을 청산짓기 위해서는 어떠한 탕감의 길도 감사히 맞아 나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고등학교 시대를 넘기는 최후의 이 기간 위에 당신의 축복의 손길을 펴시옵소서. 이번 기간에 이들이 새로이 결심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아버지의 신임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로서, 이 민족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깨끗한 청춘시대를 고이 간직하여 아버지 앞에 승리의 결실체로 바쳐 드리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민족 앞에 저희들이 충성을 하고, 아버지 앞에 효성을 하고, 혹은 세계 앞에 충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무리로서 남아지고, 당신의 자랑이요, 당신의 승리의 결정체로 남아질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지도편달하여 주시옵고 양육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을 뜻하신 대로 이루시옵소서, 참부모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의 고등학교 시절에 있어서는 마지막 모임이 될 수 있는 이 시간에 길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잠깐 말씀을 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원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대한 개관을 알고 있을 줄 압니다. 또, 그 개관 가운데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역사는 이래야 된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라는 것은 이래야 된다' 하는 것을 개괄적으로나마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역사과정에는 복귀섭리역사의 각 시대를 담당해 가지고 사명을 해왔던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아담 가정에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인물들 가운데는 물론 그들이 훌륭했다 하더라도 역사가 지나고 근세에 들어오면 올수록, 현실로 오면 올수록 복귀섭리의 가치성이 가중되기 때문에 지금 사람들이 옛날 사람들보다 앞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옛날 사람들의 결실의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것이 복귀 역사의 관 (關)이요, 복귀섭리를 담당한 사람들의 입장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크게 보면 아담 가정에서부터 노아 가정, 그 다음에는 아브라함 가정, 모세 가정, 그 다음에는 요셉 가정과 예수님, 그리고 그 이후에는 수많은 사도들이 역사를 연이어 가지고 기독교가 발전해 나왔습니다.
이러한 전체 역사를 두고 볼 때, 그 역사 가운데에 역사적인 수많은 책임자들이 와서 일생을 바쳐 하늘의 뜻을 위한다면서 온갖 충성을 다했지만 그 시대에 바라던 바의 결과를 맞아 본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들이 소원하는 결과가 성취될 것을 바라면서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가 오래면 오랠수록 오랜 시대를 두고 바랐고, 그것이 점점 가까와지면 가까운 시대를 두고 바란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아벨과 아브라함을 두고 보면, 아벨은 아브라함보다 더 오랜 시대를 바라보고 나왔습니다. 모세보다도 아브라함이 더 오래 바라고 나왔습니다. 세례 요한보다 모세, 예수보다 세례 요한이…. 또, 예수를 중심삼고 보면 4천년 역사의 그 누구보다도 예수 하나로 말미암아 전체 소망의 결실이 맺어져야 했습니다. 그 소망의 결실이 맺어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기독교 역사가 2천년 동안 연장돼 내려와 가지고 재차 소망의 결실이 맺어질 때를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기독교를 중심삼고 보면 기독교 가운데는 수많은 신자들이,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순교해 간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로마제국 400년 고역시대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각색의 참사를 당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참사를 당하더라도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겠다고 하는 구원관을 가지고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거예요.
자기가 아무리 희생하고 아무리 순교하는 자리에 서 있더라도 그 희생 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서, 미래의 가치를 보람 있게 드러내기 위해서, 거기에 보다 가치를 배가시키기 위해서 희생하고 순교한다는 관을 갖고 간 사람이라면 역사적인 승리의 시대를 맞게 될 때 표창받을 수 있고 추앙의 대상이 될는지 모르지만, 자기가 그렇게 죽음으로 말미암아 천국간다고 하는 입장에 섰던 사람들의 미래는 자기에게 결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순교하는 것은 천국가기 위해서 순교한다'고 하게 되면 결국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바라는 목적을 위해서 죽어 가는 것이지 하나님의 미래의 세계관을 위해서 죽어 가는 것은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아무리 많은 순교역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구원받기 위해서, 자기가 무엇이 되기 위해서,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순교해 갔다면 그 순교한 사람들은 본래 하나님의 복귀섭리관과는 상치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내가 희생하는 것은 미래에 하나님의 뜻을 이를 수 있는 시간적 거리를 단축시키고, 보다 가중된 가치를 미래에 드러내기 위해서 희생되고, 하늘이 나를 통해서 그 길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희생시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거기에 감사하면서 현재의 자기 입장을 초월해 가지고 미래를 위해서 미래의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자기가 죽어 간다는 입장에 서면 그 순교야말로 찬양을 할 수 있는 순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반 신앙자들이 생각하듯이 '내가 이렇게 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관을 가져서는 하나님의 전체 복귀섭리의 결실로 볼 때 그것은 가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 오랜 복귀섭리 역사시대에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했었지만 그 인물들 가운데서 과연 그러한 사상을 갖고 죽어간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 이것이 문제라구요. 우리 선조들 가운데서, 아담 해와는 말할 것도 없고, 아벨을 두고 볼 때, 아벨이 가인한테 맞아 죽으면서 과연 아벨이 역사적인 본연의 소망을 중심삼고 맞아 죽었느냐? 맞아 죽으면서 '아버지여, 내가 죽는 것은 당신의 미래의 뜻을 위하여, 당신이 원하는 소망의 뜻을 개척하기 위하여, 씨를 뿌리기 위하여 죽어 가나이다' 하고 죽었느냐? '내가 죽더라도 그럴 수 있는 자리에서 죽은 것은 가치 있는 죽음이다' 하고 생각하고 죽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 120년 동안 수고한 노아 할아버지를 두고 보더라도 '내가 수고하는 것은 전부 다 뜻을 위하고 미래에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남기기 위해서 수고한다' 하는 입장에서 120년을 지냈다면 그 생애야말로 역사에 남아질 생애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120년 동안 수고해서 방주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나만이 구원을 얻는다' 이렇게 하나님의 미래의 뜻은 생각지 않고 자기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그는 하나님이 택해 세운 본의에 합당한 인물이 못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노아 자신이 방주에서 내려오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내가 이런 생활을 했으며, 또 방주에서 내려와 가지고도 사는 일체 모든 것도 하나님의 미래의 뜻을 빛내기 위해서 산다' 하는 입장에서 지냈다면 한의 역사가 없었을 것이 아니냐? 이것이 문제된다는 거예요. 과연 노아 할아버지가 120년 동안 수고한 모든 것이 미래의 하나님의 뜻의 세계를 위해서였느냐, 하나님이 바라는 소원과 일치될 수 있는, 하나님이 매일같이 찾아가고 싶고 매일같이 바라고 있는 미래의 세계를 노아도 같은 자리에서 바라면서 그런 일을 해 나갔느냐 할 때 전부 다 그렇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떠했느냐? 아브라함도 그러했을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그런 인간들을 대해 가지고 축복하게 될 때, '너는 미래 세계의 초인류적인 믿음의 조상이 된다. 너희 후손들은 미래에 있어서 초민족적이요 초국가적인 조상이 된다' 이렇게 가르쳐 주어야 할 텐데 불구하고 번번이 우리 선조들한테 가르쳐 준 것을 보면 '네 후손이…' 늘'너'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았느냐.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땅 위의 모래와 같이 번창한다' 결국 너라는 것을 강조한 그것이 본래의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면 세계를 강조해야 할 것이, 세계 인류 전체를 대표한 자리에서 세계를 위한 네가 돼야 한다는 입장에서 강조해야 할 것이 본래의 뜻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너'라는 자리를 강조하는 것보다도 '세계를 대표한 너'라는 것을 강조해야 할 것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번번이 '네 후손'이라든가 '너'라든가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을 두고 볼 때, 이렇게 한 것은 우리 인간은 자기를 벗어 날 수 없는 약점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두고 봐도, 제물을 드린다든가 어떤 때든가 중요한 때마다 번번이 우리 조상들이 실수한 것은 왜 그랬느냐? 그것은 언제나 자기라는 관념을 중심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 아니냐. 그 버릇으로 말미암아, 그 전통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책임을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완수시키지 못한 결과가 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해 가지고 나서서 언제든지 외로우나 어려우나 고독하고 슬픈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그것은 자기를 위한 슬픔이 아니요, 민족의 슬픔도 세계를 위한 슬픔이라고 생각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슬픔과 비참함을 대신해서 자기는 으레히 슬픈 길을 가야 되는 것이요. '자기가 이 슬픈 길을 감으로 말미암아 그의 슬픔을 제거시킬 수 있고 슬픈 길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하나님편에 선 모세로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번번이 외로우면 외롭다고 하고, 괴로우면 괴롭다고 하고,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럽다고 하는, 자기를 중심삼고 주장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선조들의 역사인 것을 우리는 여실히 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세례 요한 같은 양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 요한을 미래의 하나님의 섭리 전체의 결실을 이루어 바칠 수 있는 대표자로 세웠습니다. 그가 사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미래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사는 것은 미래의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고 그것을 이루어 놓기 위해서 산다'고 하는 사상에 일관되고, 그런 관념에 사로잡혀서 산 세례 요한이 됐느냐? 아니라는 거예요. 언제나 자기의 전통과 습관과 구약 성경을 중심삼은 유대교의 풍습에 젖은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 가지고 자기가 보다 높은 차원에서 가치를 발견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전통이라든가 습관적인 생활환경에 고착되어 고질된 입장에 서 가지고 예수를 대했기 때문에 미래의 뜻을 망각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예수가 미래를 대신하여 온 인격자라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하늘 앞에 반역의 길을 남기고 간 것이 아니냐.
이렇게 쭉 역사를 훑어보게 될 때, 우리 선조들이 그 시대의 사명자로서 세움을 받았지만 남아진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미래에 사명을 이어 남겨 주어야 할 책임자들인데도 불구하고 과연 그런 사명을 한 선조들이 누구냐 할 때, 꼬집어 가지고 누구누구다 할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없지 않느냐.
이렇게 보게 될 때, 그러한 역사시대에 있어서 예수는 어떠했느냐? 메시아라는 그분은 어떠했느냐? 예수만은 달랐다는 것을 여실히 볼 수 있습니다. 왜? 자기의 원수를 대했을 때 자기를 생각했다면 '하늘이여! 나의 원수를 갚아 주시옵소서' 하고 저주할 입장이었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보면 응당히 욕을 퍼부어야 됐고 복수하여야 할 입장이었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저들도 하나님의 아들이 돼야 될 것이 아니냐, 내가 이렇게 희생되어 온 것은 저들을 위해서 왔기 때문에, 저들은 나를 망각하더라도 나는 저들과 더불어 가진 인연이 있지 않느냐'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입장이 달랐다구요.
예수는 어디까지나 자기의 서글픈 환경을 중심삼고 그들을 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미래에 찾아올 수 있는 세계적인 천국이 라는 것을 생각하고 그의 후손들이 남아져서 천국에 들어갈 전체의 섭리관을 바라보고 대하려고 한 것이 지금까지 역사적 선조들과 달랐다는 거예요.
원수들을 대해서도 그랬지만, 자기를 반대하는 원수들을 대해서 기도 했지만 하나님을 대해서도 그러했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는 말을 보더라도 하나님이 나를 버리는 것은 버리고 싶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세계를 위해서 버리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거기에서 반항을 하고 불평을 할 수도 있는 입장이지만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생명의 진(盡)한 것을 극복해 가지고 자기의 생명을 하늘 앞에 바치고 '다 이루었다'는 결론을 지은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있어서 예수가 무엇을 중심삼고 '다 이루었다'고 했느냐? 십자가의 죽음 그 자체로 다 이룬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는 마음가지고 바라던 참다운 아들이면 아들, 역사시대에 있어서 참다운 조상이면 조상들이 이러이러한 사람들로 나타나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시대에 실패했던 모든 것을 종결시키기 위한 책임을 진 나로서, 나는 역사시대의 승리자의 한 장면을 아버지 앞에 이루어 드려야 할 자가 아니냐. 이런 의미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했다고 봐야 한다는 거예요.
또, 그 다음에는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인류, 곧 하나님의 뜻을 대하여야 할 인류를 바라볼 때, 어디까지나 자기를 변명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과 다른 입장에서 자기는 이럴 수 있는 한 터전을 남겼기 때문에 세상 인간들 앞에 서서 '나는 하늘 앞에설 수 있는 자리를 책정했다'는 그런 의미에서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만이 입장이 달랐다는 거예요.
그러면 반대하던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는 망했는데 예수는 어떻게 흥할 수 있었느냐? 우리의 선조들은 잘못하게 될 때 거기서 전부 다 꼬꾸라져 가지고 섭리의 뜻을 대하지 못한 것이 역사시대에 번번이 나타난 실정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는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뜻이 어떻게 세계를 향하여 발전하고 세계를 향하여 전진할 수 있었느냐? 그것은 예수가 생각한 뜻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죽었더라도 예수가 그것을 위하고 바라보면서 결실을 이루겠다고 생명을 다해 나가던 하나님의 뜻이, 그 주체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주체를 위하여 지상에서 상대적인 인간의 가치로서 심어주고 갔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의 터전이 남아 있는 한 발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원리의 관이 아니냐.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죽었지만 예수의 소원은 이루어져 나왔습니다. 그 소원은 죽은 예수의 소원이 아니라, 예수가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소원을 대신할 수 있는 소원으로 심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심어진 가치의 터전을 바라보고 나오는 사람들이 거기에 접하게 될 때, 줄기가 되고 가지가 되고 잎이 되어서 무성해진 것이 기독교의 발전 역사가 아니었더냐.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러면 그 기독교는 어디로 가야 되느냐? 기독교는 세계로 가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기독교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야 되느냐? 개인에서 개인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서 시작해서 가정을 넘고, 종족을 넘고,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 세계로 가야 되고, 세계를 지나 하나님의 나라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에까지는 갈 수 없었습니다. 영적인 일방적 면만 갖추어 가지고는 완성의 자리에 설 수 없기 때문에 영육 완성의 터전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세계로 찾아온 기독교를 수습해서 영육세계를 대표한 새로운 재림사상을 중심삼고 하늘나라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의 흐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세계적인 발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명실공히 기독교야말로 세계의 종교 중의 최고의 종교가 되어 끝날 새로운 문화세계에 하나의 사상적인 창건의 이념을 제시해 가지고 세계가 그 품에 포괄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고자 하신 소원의 나라까지 찾아 가려면 그러한 종말시대를 맞이해야 되는 것이 기독교의 사명이 아니겠느냐. 그렇다는 거라구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이 기독교의 종말시대를, 우리가 살아 있는 현실에서 망하는 현상을 응시하고 있는 차제에 있어서 이 기독교를 이어받아 가지고 하늘나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무리가 있다면 그 무리들은 어떠해야 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라구요, 여기에 문제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 땅 위에 왔다 갔습니다. 과거 아담 이후 예수가 올 때까지 4천년 역사, 그리고 예수로부터 지금까지 기독교 2천년 역사, 이렇게 6천년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었느냐?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옛날 실패의 한을 남긴 것은, 역사적인 대표의 사명을 짊어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걸 짊어질 때까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았는지 모르지만 책임을 지고 나서 하나님의 사람이 못 돼 가지고 실패의 서글픈 노정을 남겨 놓은 것을 우리는 여실히 잘 아는 바가 아니냐? 과연 우리 선조들이 하나님의 사람이었더냐? 아닙니다.
여러분은 고등학교 3학년이라서 몇 달 있으면 졸업할 것입니다. 졸업 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사람으로 졸업할 것이냐? 나는 아무 학교에서 공부도 어떻게 하고 몇 년 동안 역사를 남긴 나 아무개로서 졸업할 것이냐, 하나님의 아들로서 딸로서 졸업할 것이냐?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장받는 자리에서 꽃다운 청소년 시대에 있어서 빛나는 졸업장을 받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습관적인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관계 없는 사람으로 졸업장을 받겠느냐? 여기에는 기필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학교에 학생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수천 명의 학생들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학생으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1학년부터 3학년까지 전체를 바라보게 될 때 '접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말할 때, '그나 나나 대동소이하다. 나나 그나 마찬가지 아니냐?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우리 학교를 대표한 하늘의 사람임에 틀림없다' 할 수 있는 공인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공인받고 있어요. '나는 통일교인이다' 할 때 통일교인은 누구의 공인을 받아야 되느냐? 통일교회만의 공인을 받아 가지고는 통일교회에 남아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공인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의 공인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공인하는 통일교회의 공인을 받으면 되지만 하나님이 공인하지 않는 통일교회의 공인을 받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등등의 문제가 엇갈려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나는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하늘나라의 전체를 이어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 있느냐? '우리는 그러한 젊은 청소년시대에 있다. 역사에 있어서 우리만이 이 권위를 가질 수 있는 이 긍지, 역사시대에 한번밖에 없는 이때에 하늘의 소명을 받고 부름을 받은 우리는 하늘의 젊은 청소년이다' 하는 그런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여러분을 두고 볼 때, 여러분의 짧은 역사나마 20세 전후의 연령층에 있는데 '과거의 아무개였던 나와 오늘의 나와는 차원이 다르다. 근본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디 학생들 그래요? '이제 하늘이 나를 불러서 사명을 맡기는 데는 옛날 아브라함보다도 더 큰 사명을 맡길 나다. 왜? 그는 실패자가 아니었더냐? 모세보다도 큰 사명이 맡겨진 나다, 왜 그러냐 하면, 그도 실패자가 아니었더냐?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사명을 짊어진 나다. 그 선조들이 지내온 청소년 시절보다도 빛나는 가치를 내가 지녔기 때문에 청소년 시절부터 나는 다르다. 서 있는 자체도 다르고 내 생각도 다르고 안팎도 다르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래요?(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정리하지 못했음)
내가 차간에서 척 보고 '야 젊은 녀석들은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얘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갑니다. 한 시간 반만 얘기하고 가야 쉽니다. 누구와 만날 약속이 있기 때문에 열시 반이면 내가 가야 된다구요. 아홉 시에 와서 기다리는데 '야야, 기다려라' 하고 눌러 놓고 왔다구요. 그러니 선생님이 빨리 가야 되겠나요, 천천히 가야 되겠나?「천천히 가셔야 됩니다」 왜 천천히 가야 돼? 여러분이 권유해서 선생님이 시간 안 지키고 전부 다 못 만나고 가게 하라는 말이 아니야?(웃음)
만약에 여러분들이 책임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큰 책임을 짊어진 사람이 와서 선생님을 만나자고 하면 여러분을 만나야 되겠나, 그 사람을 만나야 되겠나. 「그 사람을 만나야 됩니다」 그 사람을 만나야 된다구요. 알기는 아는구만. (웃음)
그렇기 때문에 골자만 딱 얘기하겠어요. 골자만 얘기하면 5분 내에 전부 다 끝날 수 있다구요. (웃음) 그렇게 간단히 하자구요.「아닙니다」 선생님은 말씀을 오래 하는 데는 전통이 서 있기 때문에, 두 시간 세 시간 하기 때문에 초판은 졸아도 된다. (웃음) 많은 말을 대해 가지고 전부다 잊어버리는 것보다도 자다가 맨 나중에 한 마디만 기억해도 전부 다 듣고 잊어버리는 것보다 낫다, 그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를 거라구. 여러분이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지금 기독교는 망하게 돼 있습니다. 앞으로 기독교가 망할 것 같애요, 그냥 갈 것 같아요? 기독교는 망하게 돼 있다구요. 한 7,8억에 해당하는 세계 인류 앞에 선 기독교를 하늘이 왜 망하게 하느냐? 여러분 그것을 생각해 봤어요? 왜 망할 수 있는 운명으로 몰아넣어야 되느냐? 그렇게 못난 하나님이냐? 그렇게 일을 수습하지 못하는 하나님이냐? 그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그것은 세계 7,8억의 기독교인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둘 다 한 길로써 하나님을 붙드는, 하나는 오른 손이요, 하나는 왼손이라면 둘 다 남길 수 있지만, 둘 다 바른손만 쥐겠다 하게 되면…. 유대교와 마찬가지예요. 예수는 바른 손을 쥐려고 하고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은 왼손을 쥐려고 해야 하는데, 둘 다 바른 손을 쥐려고 해서 한 손을 쳐버렸기 때문에,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망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하나만을 남기고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를 망하게 한 것입니다. 때려 눕힌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희생시켜 가지고 만든 세계적인 무대인 기독교를 어찌하여 망할 수 있게끔 내버려 둬야 되느냐? 그것은 수억이 되는 기독교인들보다도 더 가치 있는 하나님의 참된 사람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기독교 교인들 가운데에서 참된 기독교 인과 거짓된 기독교인 둘이 있다면 하나님은 어느 기독교인을 취하겠어요? 참된 것도 취하고 거짓된 것도 취하는 게 아닙니다. 거짓된 기독교인에게는 '참된 기독교인들 앞에 굴복해 와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참된 것은 아벨이고 거짓된 것은 가인이지요? 이것을 굴복해야 돼요. 참된 것을 하나님이 취하면 '여기에 따라 하나되어 와라' 하는 거예요. 하나되는 것은 거짓된 기독교인들이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언제나 아벨을 통해 가지고 섭리를 연결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섭리관이지요. 섭리역사의 발전의 동기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을 볼 때, 오늘날 전세계의 기독교가 망할 수 있는 운을 만난 것은 전세계 기독교를 대표한 아벨 기독교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아벨 기독교가 나오는 날에는 망할 수 있는 운세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한 교단이 나오는 날에는 둘 중의 하나가 망하기 마련입니다. 망하지 않으려면 아벨 교단 앞에 절대복종해라. 그길을 가지 않게 되면 꺾어진다. 이것이 섭리역사의 결정적 노정입니다. 틀림 없지요.
그러면 왜 기독교가 망해 들어가게 되느냐? 우리가 가인 아벨 탕감복귀역사를 두고 볼 때, 가인 기독교만 있다면 망할 수 없습니다. 망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망해 버렸다가는 하나님의 복귀섭리고 무엇이고 없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그렇지만 아벨 종단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 종단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반대하게 되면 망해 추풍낙엽처럼 될 것이 아니냐.
그러면 그 아벨 종단이 어디 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아벨적인 새로운 기독교, 보다 나은 열매는 미래에 나타나게 되지요? 복귀역사가 그렇지요? 역사가 지나갈수록 보다 나은 가치가 나타났기 때문에 기독교인의 맨 끝날에 나타나는 종단은 아벨적인 종단으로서 세계사적인 기독교를 통합하기 위해서 나오는 종단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중심삼고 하나 안되고 반대하게 되면 꺾여 나갑니다. 들이쳐야 된다구요. 그것은 원리가 그래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전세계 기독교 앞에 아벨 종단으로 나타난 그 종단이 어느 종단이냐? 여러분은 그것이 어디라고 생각해요?「통일교회 입니다」 어디라구요? 통일교회? 욕 많이 먹는 통일교회? 고생을 죽도록 하는 통일교회?「예」 뻔뻔스럽게 대답은 잘 하는구만. (웃음) 웃을 게 아니라구요. 원리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래야 될 것이 아니냐?
수억의 인류 앞에 기독교 문화권을 만들기 위하여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렀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것을 서슴지 않고 잘라 버리고, 우리보다 높은 평가를 한 하나님의 결정의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적인 결과가 우리 목전에 나타난 것이 아니냐? 이것을 볼 때, 개인 적으로 그들보다도 못한 통일교인은 절대 결코 안 됩니다. 큰일난다는 거예요. 있을 수 있어요? 어떻게 하든지 기독교인보다 나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게 원칙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기독교 목사들보다 앞서라,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데도 앞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기독교 교인들은 '예수 믿고 천당가자' 그렇게 믿고 나가지만, 통일교인들은 '통일교회를 믿고 세계를 구해 주자' 해 가지고, 세계가 '당신도 필요하니 어서 가야 됩니다' 하고 끌어 주면 '나도 따라가겠다' 하자는 거예요. 이렇게 다르다는 거예요. 근본적으로 다르지요?「예」 지금까지 기독교는 예수 믿고 천당가겠다는 것이고 통일교회는 통일교회 믿고 천당 보내자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조상이냐? 자기를 생각하는 것이 아버지냐, 남을 생각하는 것이 아버지냐? 아버지에 가까운 사람은 보다 남을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버지는 자기를 생각해요? 아들을 남이라고 보게 된다면 말이예요, 남이라면 안 됐지만, 그렇잖아요?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보다 자기를 생각하지요? 어때요? 그래요, 안 그래요? 아버지가 '야, 이놈아' 하고 뭐라고 하면 속으로 '왝왝왝…' 이런다구요. 불뚝불뚝 꿀떡꿀떡, 소가지가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자리는 위하는 자리라는 거예요. 아들의 자리는 아버지를 위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위하고 나머지가 있으면 아버지를 위하지' 이런 자리입니다. 이렇게 조건적이라구요. 조건이 생겨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 자리로 돌아가야 되고 아버지 사는 곳에 가려니,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 우리는 자기를 생각하는 입장을 초월해 가지고 남을 생각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자기를 생각하는 자리에 있어요, 남을 생각하는 자리에 있어요?「남을 생각하는…」 남이라도 어떤 남이예요? 사탄의 새끼, 원수의 종자를 생각하는 입장에 선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그렇지요? 남이라도 형편없는 남이라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전세계의 기독교가 망해 들어가는 것은 누구 때문이냐? 통일교회 때문입니다. 8억 이상의 전기독교 교인보다도 통일교회를 더 높이 평가한 기준을 하늘이 인정해 가지고 아벨의 자리에 세워 놓았기 때문에 통일교회와 더불어 하나 안 되게 될 때는 꺾여 내려 가는 거예요. 하나될 때까지 망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돈에 팔려 가고 사람에 팔려 가는 때가 온다는 거예요.
지금 복귀섭리를 두고 보면, 제물을 두고 사고 팔고 하지요? 사탄 것이냐, 하나님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무엇을 중심삼고 사고 팔고 하나요? 무엇을 중심삼고 결정해요? 뜻보다도 제물입니다. 제물을 알맞게 바치면 내것으로 사 오는 것이요, 못 바치면 내 것도 빼앗긴다는 거예요. 제물 중심삼고 팔고 사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제물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제물과 하나되면 장사가 되는 것이요, 하나 안 되면 손해가 납니다. 제물과 하나 안 되면 제사를 안 드렸던 것보다도 못한 결과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에도 그렇잖아요? 남의 굿하는 집에 괜히 꺼떡꺼떡 찾아갔다가 살(煞)맞아 죽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렇지요? 안 갔던 것보다 못한 일이 많다는 거라구요. 있다는 거라구요.
이렇게 보게 될 때, 통일교회 교인인 여러분들이 이걸 자각해 가지고 세계가 망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고…. 기독교를 공산당이 전부 다 막죄기는 거예요. 공산당은 뭐냐? 끝날의 기독교를 심판하기 위한 하나의 채찍으로 알라는 거예요. 기독교는 회개해야 된다는 거예요. 망해 들어가는 그 원인을 알아 가지고 하늘의 뜻 앞에 위배되는 사실을 전부 다 제거시켜 가지고 회개하여 하늘의 긍휼을 바랄 수 있는 자리에 서면 채찍은 거두어진다는 거예요. 채찍이 없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사람을 벌줄 때, 몽둥이로 때려 가지고 사람과 사람끼리 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시켜 나오는 것을 보는데, 그것은 왜 그러냐? 아벨 교단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벨 교단이 통일교회 교단입니다. 통일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은 기성교회의 어떤 누구보다도 못해야 되는 것이다?「나아야 되는 것이다」 응? 못해야 되는 것이다, 나아야 되는 것이다?「나아야 된다」 반대하는 기성교회가 땅을 바라보면 우리는?「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보고, 기성교회가 왼쪽을 바라보면 우리는?「오른쪽을 바라보고」(제스쳐를 하시면서) 기성교회가 이렇게 하면 우리는? 그런 내기를 하고 있다구요. 여기서 잡아 당기고 끌어올리고, 밀고 당기고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면 승리하는 사람은 누구일 것인가? 줄다리기를 할 때 누가 누가 승리해요? 갑자기 힘을 쓰는 사람이 승리하겠어요. 끈기 있는 사람이 승리하겠어요?「끈기 있는 사람요」 호랑이 힘내듯 갑자기 '왕' 하고 한꺼번에 달려들었다가 나중에는 '흐흥' 하는 힘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끈기가 있어야 되겠어요. '잉' 이래 가지고 버티어야 돼요. 버티다 말면 안 된다구요. 끝까지 버터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끝까지 견디는 사람이 지옥간다? 「천국간다」 그건 뭐예요? 끝까지 견디는 사람이 진다?「이긴다」 마찬가지예요. 천국가는 것은 이기는 것이요. 지옥가는 것은 지는 것이라구요. 끝까지 견디는 사람이 싸워서 이깁니다.
여러분도 그렇다구요. 더러 싸움 해봤어요? 맨 처음에는 자기가 덩치가 크다고 덤벼들었다가 나중에 조그만 주먹 같은 녀석이 '야 이 자식아, 왜 이래?'하면서 물고 늘어지면 가지도 못하고 '아이구'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하루 이틀 해보라구요. '아이구 나 잘못했소'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보기에는 어수룩하지만 그저 악착같이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 악착같아요? 기성교회 교인들의 엄포를 듣게 되면 '아, 뭐 사탄 마귀, 뭐 이단' 그럽니다. '이단도 좋고 사탄도 마귀도 좋소. 그것 다 좋지만 나중에 내가 이기게 해주소' 이렇게 하라구요. (웃음)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러는 거예요.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나중에 축복은 내가 받소', 그거예요. '주먹질을 하고 침을 뱉고 뭐 어떻게 할 것 다 하소 그렇지만 맨 나중에 가 가지고 복을 받을 때-야곱은 속여서 축복을 받았지만-하나님도 할수없이 나를 찾아서 축복을 안 해줄 수 없게끔 되면 되오. 그것이 일대의 소망이오' 이래야 돼요.
욕 먹는 것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매 맞는 것도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나갈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나니 그것은 축복이라는 거예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여러분도 그래요?「예」
통일교회 3년 이상 다닌 사람 손들어 봐요. 그 다음에는 1년 이상 된사람 손들어 봐요. 내려요. 1년 미만 된 사람 손들어 봐요. 다 풋내기들 이라구요. 여러분에게 칼을 앞에 갖다 대고 통일교회 믿을래 안 믿을래 하면 '아하, 믿을래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웃음) 그런 패들이 될래요. 너털 웃음을 지으며 '뭘 그래요? 내가 아침밥을 안 먹었으니 아침밥 먹으라고 그래요? 나 당신 말 알아듣지 못해요' 하는 패들이 될래요? '당신 말 알아듣지 못하겠어요' 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예요, '아이쿠, 믿음이란 말도 모릅니다' 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예요?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예요?
자 너, 진짜 통일교 믿을래, 너 이제 1년도 못 됐지?「예」 믿을래? 이 녀석, 너 접때 나하고 같이 갔나?「예」1년도 못 된 녀석을 내가 차를 태워 줬구만. (웃음) 너 차 탄 것 자랑했나?「몇몇 친구한테….」 왜 했어, 얘기하지 말라니까?
보라구. 선생님이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순 자기 자랑으로 몇몇 친구한테는 얘기했어? 「……」 그래, 통일교회 믿을래?「예」 이놈의 자식, 모가 지를 잘라서 거꾸로 꿰매 달아도 믿어? (웃음) 그래도 믿을래?「예」 거 어떻게 믿나?(웃음)
이 동쪽으로 매달았는데 통일교회 본부 뒤쪽에 있으면 눈을 뒤집고 죽어야 한다구요. (표정을 지으시면서 말씀하심, 웃음) 왜 웃어? 그래야 된다구요. 대가리를 거꾸로 꿰매 달려 죽는 일이 있더라도 사탄과 정방향이 되지 않게 조금이라도 돌리고 죽겠다는 생각을 해야 돼요. 심각한 일이라구요. 알겠어요. 「예」 '이것 뭐, 기분 나쁘게 길 떠날 때 죽는다는 얘기는 왜 해? 그 말은 하지 마소!' 이렇게 간절히 빌겠지만 할수없다구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수많은 기독교인들, 수많은 인류가 통일교회 때문에 망해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책임감을 느껴야 됩니다. 보라구요. 인류가 36억이라고 하게 되면 사망률을 100대 1로 잡으면 1년에 3천 6백만명이 죽어가는 것이 아니냐. 3천 6백만 명이 어디로 가느냐?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들이 일년만 일찍 이 복음을 알고 하늘의 뜻을 알았더라면, 통일교회 진리를 알았더라면 3천 6백만 명은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 그것 생각해 봤어요?
그러면 하루에 얼마나 손해냐? 360분의 1이 아니냐. 하루에 약 12만 명에 해당하는 사람이 지옥행이 아니냐. 이 지옥으로 가는 처량한 모습을 내가 하루를 노력함으로 말미암아 가로막아 가지고 하늘로 안내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이 이상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느냐?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내가 대학교를 가야 되겠다. 학박사가 돼야 되겠다' 그런 것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 심각한 문제가 달려 있다는 거예요.
또, 기독교인이 한 8억이 된다면, 그들이 하늘나라에 가겠다고 그렇게 안달복달하는데, 4분의 1이면 사팔은 삼십 이(4×8=32), 36억이니까 8억이 넘는구만. 4분의 1이면 사구 삽십 육(4×9=36), 9억의 100분의 1이니까 일년에 약 9백만이 죽어가는 것이 아니냐? 기독교인 9백만 명이 지옥행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자, 이걸 생각할 때 잠을 자겠어요? 거기 에는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까지도 끼는 거예요. 형님 처자 친척까지 끼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심각한 문제라는 거예요. 거 내가 배고프니 뭐 어떻고…. 지금 이런 판국에서 밥이 다 뭐예요? 잠이 뭐예요? 뭐 쉴 게 뭐예요? 그렇기 때문에 바쁜 길이라는 거예요. 하고 하고 또 하고 나서 끝을 볼 수 없는 처량한 길입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사망선에 처해 들어가는 것을 시시각각으로 보기 때문에 쉴 수 없는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고독한 자리에서, 누구 한 사람에게도 동정받지 못하는 자리에서, 누구에게 사정할 수 없는 자리에서 수천년 동안 인류와 더불어 배후에서 슬퍼해 나온 것이 아니냐?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 아버지가 아니냐? 그것을 모르고 그 아버지의 상속을 받겠다는 사람은 도적놈입니다. 어림도 없어요. 그거 심각한 문제예요, 아니예요? 심각한 문제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을 구하려니 기독교인보다 악착같아야 되는 거예요.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려다가 까딱 잘못하면 같이 죽지요? 그러니 모가지를 후며 쥐거든요, 뜨게 되면 붙안는 거예요. 그런 것 알아요? 선생님이 그런 말했다고 해서 이 다음에 물에 빠진 사람이 있을 때 그런가 시험 한번 해보겠다 해 가지고 후닥닥 뛰어 들어가고…. 아예 그러지 말라구요.(웃음) 틀림없이 죽는 거예요. 죽게 된 사람의 힘이라는 것은 구해 주겠다는 사람 힘 가지고는 당하지 못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죽을 힘을 다 써서 한 번 잡으면 떨어져 나가면 나갔지 안 놓는다는 거예요. 죽을 힘 다 쓴다는 말 들어 봤어요? 죽을 힘을 다해 가지고 걸머쥔 것을 구해 주겠다고 간 녀석이 이겨 낼 힘이 없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힘이 장사라면, 레스링 선수가 유치원 애들 앞이라면 암만 그래도 문제없다는 거라구요. 보다 악착같지 않고 힘이 없어 가지고는 구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 틀렸어요, 맞았어요?「맞습니다」 기성교회 교인들을 구해 주려니 그들보다 악착같이 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여러분, 시궁창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야 야, 그러지 마라, 그러지 마. 그러면 죽는다. 나와라. 바깥으로 나와라' 한다고 나올 수 있어요? 빠진 사람 이상의 힘을 안 들이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위에서 구해 줄 수 없으면 아래로 내려가서 구해 줘야 되는 거예요. 인간이 6천년 동안 떨어져 내린 것을 끌어 당길 줄이 없습니다. 그러니 밑창에 내려가서 끌어올려야 된다는 겁니다. 자기들은 모르지요.
여러분들 파리 같은 걸 보잖아요? 어떻게 하느냐면, 파리의 날개를 다 뜯어 가지고 놓으면 저 밑창에서부터 올라오지요? 그래, 거의 다 올라와 가지고 조금만 더 기어올라오면 되는데 기어올라오다가 그만 두고 꺼꾸로 돌아서면 기분이 어때요? 그거 구경하면 재미있지요. 그것이 자기 아들이라면 어떻겠어요? 한발자국만 힘을 써 가지고 몇 센티미터만 더 올라오면 될 텐데 '아이쿠!' 이렇게 되면 어떡하겠어요?
자, 그런데 자기 자식이 그런 입장에 있다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기가 막히겠어, 안 막히겠어? 세상에 딴 생각 할 여지가 있겠어요? 여지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딴 생각 절대로 하지 못한다구요. 하나님 앞에서 역사과정을 통해서 몇천 명이 매일같이 그 놀음 해 가지고 떨어져 내려 간다는 거예요.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아이구, 잘한다' 그러겠어요? 하나님이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내 손이 미치지 못했구나, 세웠던 아무개 아무개가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저렇게 되는구만, 책임을 했으면 저렇게 안 될 것인데, 일년을 더 빨리 노력했더라면 저런 일이 없을 텐데…' 하는 겁니다. 하늘이 바라기를 몇 년까지 책정해 가지고 그때가 되기를 바랐는데, 여러분이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런 비참상이 연장되어 나간다고 할 때는 누가 벌을 받겠느냐? 여러분들이 배가의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늘이 택했지만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그런 사람의 후손은 끊어지는 거라구요. 무섭다는 거예요.
뭐, 이런 얘기 하려면 한정 없어요. 머리가 멍하게 해주는 얘기가 많지만 돌아갈 때 기분 나쁘면 안 되겠기 때문에…. 기분 나쁘면 안 되거든요. 무거운 짐을 지워 주면 안 되지만 구태여 결론을 지으려면 기성교회 교인보다 악착같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공산당까지도 구해 줘야 되겠기 때문에 공산당 이상 악착같이 해야 되겠어요. 구함받으려고 할 때 말이예요. 어린애가 강가에 서 있는데 내가 물에 빠졌다고 어린애보고 어른이 말이예요, '애기야 날 구해 줘' 그래요? 그건 미친 놈이라구요. 그렇지만 애기가 한 천 명 있더라도 자기보다 힘센 사람이 한 사람 있다면 애기 천 명 제쳐 두고 힘센 한 사람에게 '여보! 날 구해 주소' 그러는 거예요. 그러지요? 망해 들어가는 판국에 애기와 같은 무리 따위는 필요 없다는 거예요. 자기보다 힘센 사람 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니 기성교회 떼거리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사망의 구렁텅이에 썩어 떨어져 들어가면 그런 기성교회 목사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목사들보다 강한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전체를 버리고 '여보! 날 구해 주소' 그런 놀음이 벌어지지요? 우리는 공산당보다 악착같아야 되고 공산 당보다 강해야 되겠어요. 그건 자연적으로, 힘의 비준에 있어서 강해야 구해줄 수 있다구요. 그건 원리적인 귀결이예요. 자연적 원칙이라구요. 그렇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보는 눈과 우리가 보는 눈은 다릅니다. 저들이 요만큼이면 우리는 이만큼, 저들이 밥을 두 그릇 먹으면 우리는 그보다 나아야지요? 몇 그릇 먹어야 돼요?「열두 그릇요」(웃음) 그래, 기성교회가 밥 두 그릇 먹고 여덟 시간 일하는데 우리는 열두 그릇 먹고 여덟 시간 일하면 누가 망하겠어요?(웃음)
남을 위해서 하는 데는 많이 할수록 좋은 거예요. 알겠어요? 상대를 위해서는 많이 할수록 좋은 것이지만 자기를 위해서는 많이 할수록 나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밥 먹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 먹어요? 남을 위해서 먹어요?「나를 위해서요」 나를 위해서 먹는데 나를 위해서는 이기면 이길수록 나쁜 것이 되는 것이다 그 말이라구요. 알겠어요? 밥 두 그릇 먹는 것보다 열두 그릇 먹는 것이 좋은 거예요? 6배 먹었으면 6배 만큼 나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또, 기성교회 사람이 여섯 시간 자게 되면 우리는 열두 시간 자야 되는 것이다!(웃음) 그건 뭐예요? 남을 위한 거예요, 나를 위한 거예요? 나를 위하여서 하게 되면 망하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이 원칙을 알아야 됩니다. '기성교회가 전도하는 데 있어서 여섯 시간 하는데 우리는 열두 시간 하면 되는 것이다' 이건 나를 위하는 거예요, 남을 위하는 거예요?「남을 위하는 겁니다」남을 위해서는 더 할수록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게 원칙이 돼 있어요. 알겠어요?
여러분, 선생님 말 다 잊어버려도 좋아요. 하나님의 사람 되는 비결이 뭐냐? 이것만 알면 돼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비결이 뭐냐? 나를 위함에 있어서 모든 사람 앞에 꼴래미 되는 것이, 하늘에서도 물론 일등되지만, 결과에 가 가지고도 모든 사람이 '아! 훌륭한 분이요, 일등이요' 하고 모시게 됩니다. 이것을 알라구요. 그것이 그런가 안 그런가 전부 다 맞춰 보라구요. 역사가 딱 맞아떨어집니다. 교육의 모든 원리도 여기에 입각한 거라구요. 그렇지요? 선한 사람이 되라, 남을 위해 희생하라고 말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하는 일을 많이 할 때는 악한 거예요. 거기에서는 후퇴가 벌어집니다. 있던 환경도 떠나 버리는 거예요. 그렇지만 남을 위해서 보다 노력하는 데는 거기에 살이 붙는 것입니다. 위하느니만큼 살이 붙는 거예요. 흥망성쇠는 이 기준에서 좌우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보다 많이 하게 될 때 나는 흥하는 것이요, 나를 위해서 보다 많이 하게 될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우리 아가씨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알 것 같아요, 모를 것 같애요? 「알 것 같아요」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눈도 다 안다구요. 그렇지요? 눈도 알 수 있어요. 또, 코도 좋으면 벌렁벌렁하지요? (웃음) 입도 다 안다구요. 전부 그런 거예요. 좋으면 그 기준을 따라서 움직입니다. 이런 말 들으면 귀도 쫑긋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틀림없이 알았지요?「예」
남을 위해서 많이 노력하는 것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좋은 거예요」 좋은 만큼 노력을 하는 데 어디까지예요?「무한히」 무한히라는 말이 쉽나? 내가 남을 위해서 무한히 하는 데는 그 한계점이 어디까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산다」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죽는다」 죽는 것이다. 이 말은 천리(天理)를 찾아 나가는 대도(大道)를 밝힌 말이요. 공식이 되는 명언입니다. 남을 위하게 된다면 살고 나를 위하게 된다면 왔다갔다합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짜예요. 진짜예요?(웃음) 그걸 몰라 보는 거라구요. 무엇으로 진짜 가짜를 가리느냐? 자기만을 위하려고 할 때는 나쁜 것이 되는 거예요. 그건 뻔한 얘기인 거라구요.
그럼, 전도를 하러 간다고 할 때, '얘, 너희들 뭐하려고 전도하러 가니? 하면 '뭐하러라니? 믿음의 세 아들딸 찾아 가지고 축복받기 위해서 전도 하러 가지' 이렇게 대답했다면 그건 누구를 위한 거예요?「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축복을 받더라도 끝나는 거예요. 그것 하고 나서 또 가라고 하면 '헤, 나 축복받았는데…' 이런다구요. (웃음)
전도를 함으로써, 내가 믿음의 아들딸도 물론 필요하고 축복도 필요하지만 나라를 찾고 세계를 대하여 가기 위한 공식적인 첫출발이 되는 것을 누가 생각하느냐. (녹음 상태 불량으로 일부 정리하지 못함)
여기 전부 몇 명이예요? 「177명입니다」 177명, 기분 나쁘게. 177명이 뭐야 7수라서 좋은가? 지금 177명, 178명이 대수야? 177명, 이 녀석들을 잡아다가 무엇을 시켜야 될 것이냐? 그저 몽둥이로 찜질을 해서라도 어떤 사람을 만들어야 하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언제나 놀러 가기를 좋아 하는 사람을 만들어 놓으면 그들이 사는 나라나 그들이 사는 곳은 전부다 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이 맞았어? 「틀렸습니다」
만일 여기 177명 중에서 자기만을 위하는 패가 절반 이상이 될 때는 통일교회는 완전히 망살이 뻗쳤다구요. 알겠어요? 이것 똑똑히 알았어요. 몰랐어요?「알았습니다」 틀림없이 알았지요?「예」 바른쪽 귀로도 듣고 왼쪽 귀로도 듣고, 혹은 마음을 통해 가지고 인식을 하고 직감까지 가해서 갈 길임을 똑똑히 알았지요?「예」 정말?「예」
그러면 선생님은 여러분을 어떤 곳으로 보내 줘야 될 것이냐? 너희들의 소원이 뭐야? 통일교인의 소망이 뭐냐 하면, 전도하러 나갈 때 그저 돈이나 한 보따리 짊어지고 나가서 그 동네에 들어가자마자 이밥에 잘먹게 하고, 추울 때는 따뜻한 온돌방에 자게 해주고, (웃음) 더울 때는 그늘 아래 아니면 삼수갑산 옥수 같은 냇가에 쓱 들어 앉아 가지고 냉수 욕을 하면 동네 사람이 전부 다 부러워서 통일교회에 들어올 텐데…. 여러분은 그런 것을 원해야 되겠느냐. 그 반대가 되어야 되겠느냐? 어느 것이예요?「그 반대의 것입니다」
중학교 1학년이 되어 타지에 가서 공부를 하기 위해 처음으로 고향을 떠났다가 여름방학 때쯤 되면, 고향이 그리워 가지고 교장 선생님의 축사가 끝나면 그저 전부 다 집에 돌아갈 생각뿐이지요. 숙제를 받아 가지고는 짐보따리를 미리 앞에 갖다 놓는 거예요. 그래야 축사가 다 끝나게 될 때는 먼저 나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건 고향을 떠나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도 그런 때가 있었어요. 고향이 얼마나 그리운지, 손꼽아 기다립니다. 눈이 와도 그립고 비가 와도 그립고, 뭐 밤이 되도 그렇다는 거예요. 그립다가 고향에 가면 반가와서 '어서 들어와라, 어서 들어와라' 하는 거예요. 자, 그렇게 보따리 두둑한 것 가지고 하숙집에 가자마자 문 열고 집에 간다고 인사를 빨리 끝내는 게 좋아요, 들어가 앉아 가지고 싸 가지고 왔던 보따리 풀어 놓고 '고향 집이 그립고 어머니 아버지도 그립지만 나는 피곤하니까 잠이나 자지, 난 그만두겠다' 하고 떡 드러누워 잠자는 게 좋아요? 남들은 다 가는데 잠이나 자면 어떻게 돼요? 잠자더라도 도움이 안 돼요. 잠을 자서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아이구 좀 일어 나시오' 해도, '다른 사람들은 몇 시 기차로 지금 가고 있겠구나' 그런 것도 생각지 않고 꿀돼지마냥 쿨쿨 사흘 나흘 들어가 자는 거예요.
자, 그러면 자고 싶어도 고향에 가는 사람과 쿨쿨 꿀돼지마냥 잠자는 녀석 중에 누가 나아요? 잠자는 사람이 나쁜 거예요. 자 그 잠은 누구를 위해서 자느냐? 나를 위해서 자는 거야, 남을 위해서 자는 거야?「나를 위해서…」(웃음) 결국은 자기의 뜻을 위해서 자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렇지만 남을 위하는 하나의 뜻을 위해서 잔다 할 때는 잠자는 것도 좋은 것입니다.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좋은 것입니다」 그런 잠은 얼마든지 자라구요. (웃음)
여러분은 이제 새파란 청춘들인데, 통일교회 처녀 총각들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하기계몽전도다' 해 가지고 7월 21일부터 출동한다고 딱 광고가 나 있다구요. 이미 이것은 다 결정되어 있다구요. 그것 알아요. 몰라요?「압니다」
자 보라구요. 중학교 1학년서부터 1학년 여름 겨울, 2학년 여름 겨울, 3학년 여름 겨울, 고등학교 1학년 여름 겨울, 2학년 여름 겨울, 3학년 여름 겨울, 이거 다 지내 가지고 내게 남아진 것이 뭐냐? '아이고, 이제 이 좋은 때 아니면 갈 수 없다는 선생님 말씀 들으니 나 전도 나가야겠는데 예비고사 합격을 할 정도도 안 되니 기가 막힌다. '결국은 내가 손해보지 않았소?' (웃음) 요렇게 되면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 그런 것입니다. 그럴 때 교회를 탓하는 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이 녀석아, 네가 잠을 너무 많이 자지 않았느냐, 그 3분의 1은 잠을 안 잤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이걸 탕감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몇 배 노력하게끔 결심을 갖고 가면 성공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새로운 결심을 하지 못하고 부모의 휘하에서 그럭저럭 나왔지만 이제는 자기가 주동적인 입장에서 결의해 가지고 나서게 될 때는….
자, 결과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냐? 남을 위해서 일하다가 자기를 중심삼고 탄식하고 원망하는 사람은 싸움을 하지 않고도 완전히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쌓아 둔 공적을 완전히 원수 앞에 넘겨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겨 줄 때 원수가 고맙게 넘겨받는 것이 아니라…. 빨리 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대한 민국에 내려와서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알고 보니 간첩이었다. 그럴 때는 옥살박살 녹아 나는 거예요.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지혜로운 사람은 공적인 길에서 출발했으면 끝까지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고 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역사적 우리 조상들 가운데에 그런 사람이 누구 였더냐? 예수라는 분 한 분밖에 찾아볼 수 없더라는 거예요. 언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축복을 해줘 가지고 '천지가 네 주관하에 들어오고, 내가 너의 아버지이고 너는 내 아들이고, 이 세계는 네가 마음대로 주름잡고 다녀라' 하면서 예수를 메시아로 세울 때까지 얼마나 내적으로 가르쳐 주었겠느냐 이거예요. 이렇게 결심을 하게 해 놓고 나중에는 죽을 자리에 갖다 놓았다는 거예요.
맨 처음에는 좋았지만 나중에는? 맨 처음에는 좋았다구요. 맨 처음에는 예수도 희망에 벅차서 이어오병(二魚五餠)으로써 5천여 무리를 먹이고 어디 가나 전부 다 마음대로 될 것 같은 판국이 벌어질 때는 좋았지만, 나중에는 몰려 가지고 십자가에 돌아가게 되었으니 거 좋았어요. 나빴어요?「나빴습니다」 나빴다구요.
그렇지만 나쁜 자리에서도, 출발한 것이 좋았기 때문에 좋았던 출발의 그 동기와 원칙을 죽을 때까지 어떻게 갖고 넘어가느냐 하는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참사람이 가는 길이 아니냐? 그러한 대표자가 예수였기 때문에, 예수는 만민을 대표한 참사람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예수의 사상은 죽은 이후라도 역사를 구할 수 있는 터전으로서 발전해 나온 것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냐? 이건 틀림없는 역사적 실증이라는 거예요. 알겠지요?「예」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의 사람과 그 하나님의 사람 아닌 사탄의 사람이 어떻게 다르냐? 하나님의 사람은 시종여일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답이라구요.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달라요? 시종여일이예요. (판서하심 ) 알겠어요?「예」
여러분, 통일교회 말씀 듣고 좋아서 들어왔어요, 나빠서 들어왔어요? 「좋아서 들어왔습니다」 이거 통일교회 말씀을 가만 들어 보니까 뒷맛이 좋거든. '야 요것 봐라, 조그만 녀석이 얘기하는데 저것 언제 저렇게 똑똑하게 되었느냐? 나는 고등학교 몇 학년인데 저 고등학교 1학년 애가 그 원리인지 무엇인지 말씀을 하는 것 보니까 나는 못 당하겠다' 어떻든 간에 맨 처음에 통일교회 말씀 들을 때 좋아서 들어왔어요. 나빠서 들어 왔어요?「좋아서 들어왔습니다」 야, 이거 후닥닥 쫓아와 풍덩 빠져 죽고 싶어서, 아니면 살랑살랑 다니고 싶어서? 어떤 거예요? 그건 여러 가지로 다 다를 거라구요. 어떻게 했어요? 풍덩 빠져 가지고 기쁨 가운데서 들어왔어요, 깐죽깐죽하면서 힘들게 들어왔어요? 어떻게 들어왔어요? 여기에 있는 177명이 다 다르다구요.
여러분은 순종이 좋으냐, 반순종, 순종(純種)의 반대…. (웃음) 거 말이 어때요? 반순종이 좋으냐, 같은 종자가 좋으냐? 어떤 게 좋아요?「순종이요」 그건 누구나가 순종을 좋아하지요?「예」 진짜 종자를 원한다구요. 그렇지요? 그러면 진짜 종자가 누구냐? 통일교회 원리를 전부 다 입으로 먹고 눈에다 넣고 코에다 대고 그저 전부 다 몰아 넣고, 그것도 부족해 가지고 뒤집어 쓰고 해 가지고 '야 이거 나 기분 좋다' 이런 사람이예요. 이런 자리에 들어와 가지고 꽁무니 빼고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기분 안 좋다 이거예요. 자, 그러면 여러분들 순간치기 모양으로 원리를 좋아하는 패가 좋아요, 깐죽깐죽하면서 따라오는 패가 좋아요? 어떤 게 좋아요?「순간치기요」
자, 하여튼 '나쁘지 않아서 들어왔다' 하는 말은?「사실입니다」 그 사실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알겠어요? 하늘을 봐도 사실이요. 땅을 봐도 사실이요, 어머니 아버지를 봐도 사실이요, 누이 동생 혹은 오빠를 봐도 사실입니다. 만일 반대를 받게 된다면 점점 강해진다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가 '너 통일교회 못 간다' 하면 '흥, 못 간다고 해서 못 가? (웃음) 반대하면 할수록 점점 후퇴하는 것보다도 반대하면 할수록 점점 강해진다구요. 그런 것 느껴 봤어요?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부모의 반대를 받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거예요. 반대 안 받아 본 사람보다도 반대받아 본 사람이 났다는 거예요.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 대장간에 가면 대장일을 한다구요. 그렇지요? 쇠를 두들기는 것이 좋은 쇠가 되느냐, 안 두들기는 것이 좋은 쇠가 되느냐?「두드리는 것이…」두들기면 두들길수록 나쁜 쇠가 되는 것이다?「아닙니다」 그거 한없이 두들기면 두들길수록 망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쇠는 두들기면 두들길수록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예」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두들기면 두들길수록, 죽어 버리면 안 되지만 (폭소) 안 죽을 수 있을 만큼 맞으면서 연단해 가지고…. 그럴 때 그것이 나라를 위해서 두들겨 맞으면 그만큼, 세계를 위해서 두들겨 맞으면 그만큼. 하늘을 위해서 두들겨 맞으면 그만큼, 두들겨 때린 사람이 약하게 될 때는 몽땅….
애국자 세 사람이 같이 죽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동기도 똑같고 생긴 것도 똑같고 조건도 똑같고 나이도 똑같고 밥도 똑같이 먹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 세 사람이 죽는데 매 한대 맞아 단번에 죽는 사람과, 백 대 맞아서 죽을 뻔하다가 또 살아나고 죽을 뻔하다가 또 살아나고 그렇게 백 번 죽을 뻔하다가 살아난 사람이 하나 있고, 그 다음 백 한 번 죽을 뻔하다가 살아난 사람이 있으면, (폭소) 어떤 사람이 일등이예요? 애국자 중에서 일등 애국자가 누가 돼요?「백 한번…」그런 애국자가 반드시 일등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 공적인 입장에서 가지고 맞으면 맞을수록, 반대받으면 받을수록 그 사람은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냐, 솟아 올라가는 것이냐?「솟아 올라가는 것입니다」 솟아올라갑니다.
보라구요. 여러분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좋아하니까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임자네들 치다꺼리 해 주기도 내가 신물이 난다구요. 여러분이 지금 선생님을 떡 따르겠다고 결심했는데 가만 보니까 선생님이 까닭없이 자꾸 욕을 하고 그러면 소가지가 편안해요? (웃음) 마음이 편안해요? 소가지가 편안해요? 편치 않다구요. 편하지 않지요? 이렇게 조금만 도수가 높아지면 자기도 모르게 눈이 휘뒤집어지는 거예요. 그것이 또 직접적으로 자기하고 관계가 돼 있으면 눈이 뒤집어져 가지고 붕 뜰 거라구요.
젊은 녀석이 지금까지 욕을 먹고 이래도 가만 있고 저래도 가만 있겠어요? 한번 받아야지요. 그런 의분심이 있으면 못 참아요. 그런데 만약 찌른다고 할 때는, 선한 사람을 찌르면 큰일나지만 그 나라의 역적이요, 세계 인류가 때려 잡아 죽이기를 바라는 악질을 찔러 죽였을 때는 괜찮은 것입니다. 그럴 때 죽이지 않는 사람이 간신입니다.
사탄의 배를 찌르면 하나님이 좋아하겠어요, 나빠하겠어요?「좋아합니다」 그를 찌르면서 '너는 너의 선조를 이렇게 이렇게 망치고, 이러이렇게 나라를 망치고, 이러이러한 역사의 죄를 짊어지고 이러했기 때문에 반드시 공법의 치리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전부 다 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질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는 쳐 죽여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잖아요?
만일 이북에서 이남으로 내려 온 사람이 있는데, 그가 이북에서 넘어 오면서 누구를 죽여 가지고 죄를 지은 녀석인데, 이남에 넘어와 가지고, 자기가 사람을 죽였으니 벌해 달라고 날마다 공판정에 호소하게 되면 판사가 판정해 그 사람을 형무소로 보낼 수도 있고 형장으로 보낼 수도 있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렇지만 그 사람의 죄의 진상, 즉 죄상을 알게 될 때는 '이 녀석아, 남한에 오기 전에 죄를 지은 것이잖아! 이북에서 너 이렇게 살았지 않았느냐 이 녀석아' 하고 잘못한 걸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알고 조건이 부가 될 때는 하나님이 용서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만일 하늘땅이 전부 다 공인할 그런 입장이 되거든 내가 잘못하게 될 때, 하늘 앞에 전부 다 선포하고, 인류 앞에 재판을 받은 조건만 세우면…. 알겠어요?
이렇게 보게 되면 공적인 입장에 내가 얼마만큼 적응할 수 있고 그런 입장에 섰느냐 하는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은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의 모든 공적인 기준을 아는 거예요. 알겠지요? 그래서 여러분의 선조들을 여러분은 보지는 못했지만 여러분의 몇천 대 전 선조부터 하늘을 향한 공적이 어떻다는 것을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 사람을 잊지 않고 '너희들 선조가 이러했기 때문에 이 녀석아 잘난 체 해서는 안 돼' 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이런 원리를 알아 가지고, 이런 원리의 전통을 알아 가지고 처리하게 되면 죄를 풀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는 권한도, 하나님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대신 수행할 수 있는 길도 없지 않아 있더라 할….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앞으로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냐? 하나님의 공적인 것을 책임진다 하는 사람….
죄지은 사람이 공판정에서 사형 언도를 받아 형장에 섰을 때는, 이 사람은 어떻게 고통을 받고 어떤 자리에 서고, 또 죽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이다 하는 것을 다 알기 때문에, 악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공적인 것을 남기려고 하게 되어 있지 자기를 남기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죽을 자리에 내 몰아도…. 그렇기 때문에 지옥에 가서도 하나님 앞에 불평할 사람이 있다, 없다?「없다」
그러면 통일교회 사람들이 참다운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하나님의 사람은 공적인 기준에 서 가지고 '나는 죄인이다. 나는 죄인이다' 하는 사람은 죄인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그러지 않았어요? 성경에 보면 유대법에는 음행한 여인은 당장 돌무더기에 맞아 죽게 되어 있어요. 그래 교법사들이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아 이러이러한 현장범을 잡아 왔는데 어떻게 합니까? 할 때, '너희 중에 양심에 죄 없다고 생각 되는 사람이 돌로 쳐라' 하니까, 다 도망갔지요? 자기가 돌멩이로 칠 수 있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입장을 다 알고 '네가 이러이러할 때 하늘의 심정은 어떠했고, 아버지의 입장은 어떻다' 하는 것을 전부 다 안다면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적인 입장을 다 알아야만 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판사가 판결을 내릴 때는 형법 몇 조 몇 조에 의해서 무슨 형이 얼마다 하고 형량을 정할 수 있고 특사도 허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법이 있는 한 그 법을 사용한 판결은 언제나 가능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그 나라 주권자면 그 나라, 그 주권자도 공법을 따를 때는….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에서 어떤 한 사람에게 양심의 가책을 갖게 해서, 혹은 도움을 주지 못해서 그 사람이 다니다가 떨어지게 되었다면,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럴 때 그 사람에게 했던 말은 하늘의 공법을 세우기 위해 당당코 한 말이었는데, 말을 자기를 위해서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쳤다고 합시다. 그런 일이 많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끝내는 불평한 사람이 망하지, 사랑한 사람이 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원칙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사람은 공적인 원리원칙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활하여 선악의 모든 것을 가려 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공적인 원리원칙이라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 하늘편에 설 수 있는 공적인 기준은 어디에 속하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돼요. 공적인 기준은 자기를 위하는 데에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고 남을 위하는 기준을 중심삼고 세워지는 거예요. 그러므로 복귀섭리역사상의 모든 성인들은 전부 남을 위하는 공법을 현실에서 실행한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마찬가지예요. 세계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대한민국을 복귀하기 위한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민족을 복귀해야 되고, 또 세계를 복귀해야 할 공적인 기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공적인 기준에서 어느 정도까지 복귀하고 난 후에는 하늘땅을 대한 공적인 기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법을 따라서 여러분 앞에 하늘에 상달된 명령을 내려도 행치 않는 자는 하늘의 원수이자, 하늘과는 관계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쳐야지요? 그렇지요? 공법을 선포한 그 시간부터 실효가 되기 때문에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모르면 안 된다구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여러분이 이러한 원리를 확실히 알아 가지고 원리대로 살게 될 때는 사탄도 칭찬할 수 있고, 악한 사람도 칭찬할 수 있고 죄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지요? 판사는 웬만한 형량에 대해서는 용서해 줄 수 있는 특권이 있어요, 그 한계는 다르지만, 대한민국에 판사들이 많지요? 판사도 많지만 어떤 판사든지 한번 내린 판결은 전국에 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법규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런 권한을 가질 수 있어요. 이와 같은 환경에 여러분이 우겨싸여서 하루하루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자, 본론으로 이제 돌아가자구요.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 기독교가 아벨적인 통일교를 망하게 하려 하는 것이 아니냐. 그런 입장에서 볼 때, 통일교회는 공적인 입장에서 망하라고 하는 이들을 대해서 벌할 것이냐, 축복해야 할 것이냐?「축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왜? 하나님은 끝날에 지금까지의 원한을 풀려고 벌주고 있는데, 심판하고 있는데 그건 왜? 축복해 주게 되면 나쁜 것이 아니야? 왜? 대답해 봐요. 왜 그런지?「통일교 회가 나오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모셨기 때문에…」 먼저 모셨기 때문에? 왜 그래야 되느냐 이거예요.
타락론을 통해서 우리가 아담 해와를 보게 된다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벌주게 된 것을 좋아했어요, 나빠했어요? 「나빠했습니다」 근본문제에 들어가는 거예요. 심판이라는 말을 아들에게 적용하고 싶었겠어요, 안 싶었겠어요? 심판이라는 명사를 적용하고 싶었겠어요, 안 싶었겠어요? 할 수 없어서 하지, 마음은 원치 않는 거라구요.
자기 사랑하는 아들이 대한민국 국법에 저촉되어 가지고 사형장에 나간다면 그 아들을 보고 '너, 어서 죽어라' 그러겠어요? 대한민국이든 무엇이든, 아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대한민국도 무시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있어요. 그렇지요.
대한민국은 자기가 있기 전에 이미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내가 없더라도 남아질 나라이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서 대한민국을 존중시하기 위해 세워진 헌법이니, 그것을 생각하니 자식이 죽을 자리에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입장에 설 뿐이지, 본래 부모의 마음은 대한민국이 있기 전에 있는 마음이라구요. 그렇지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벌주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돼요.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아담에게 동생이나 형이 있었다 합시다. 단 한 사람의 형제가 있어 가지고 그 아들이, '하나님 아버지여, 아담 해와가 벌받을 것을 대신 제가 짊어지고 쫓겨나겠습니다. 나를 대신 잡아 죽임으로써 아담 해와를 용서해 줄 수 있거들랑 용서해 주소' 했다면 어떻게 할까요? 생명을 내놓고 죽음을 각오하는 그런 아들딸이 있었으면 하나님이 어떻게 했을까요? 심판하는 날에는 전부 다 심판해 버려야 된다구요. 그렇게 되면 아담 해와를 쫓아내는 것도 쫓아내는 것이지만 아담 해와를 위해서 대신 희생하겠다는 아들까지 쫓아내야 된다구요. 그럴 수 있어요?
만일에 끝까지 같이 죽겠다고 그럴 때는 죽을 자리에서도 그것을 연장 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요? 쫓아낼 시간을 연장시키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었던들 복귀섭리는 연장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해결되었을 것이 아니냐. 그렇지요?
만약에 그러한 아들이 있었더라면 하나님은 슬퍼하겠어요. 기뻐하겠어 요?「기뻤겠습니다」기뻤겠다는 거예요.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그것이 아벨의 자리입니다. 아벨의 자리 알겠어요? 가인은 뭐냐? 쫓겨난 아들이요, 쫓겨나야 할 아들이라구요. 만일 '하나님이여, 쫓겨난 아들의 죄를 나에게 짊어지워 주소. 그는 나의 혈육이요 당신의 혈육이 아닙니까?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것이 당신의 본심이 아닙니까?' 하는 심정을 갖고 들이대게 될 때 '야 이놈아! 망할 자식아, 천벌을 받을 녀석!' 그러나요? 그때는 하나님도 '야, 나보다 낫구나' 그러겠지요? 그렇다는 거예요.
둘째 아들이 맏아들보다 낫다고 합시다. 아버지가 이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제일 귀한 것을 선물로 주려고 할 때, 축복을 해주려고 할 때, '아버지, 고맙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나는 그 선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안 받겠습니다. 죽어도 안 받아요' 이러면 아버지는 '받아 이 자식아!' '안 받아, 안 받아' 이렇게 싸움이 벌어졌다 그거예요. 주려고 하고 안 받으려고 하고 끝까지 서로 양보를 하여 싸우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가만 생각해 봐요.
만일 아버지가 주먹으로 강하게 때려도 끝까지 못 받겠다고 하면서 '내게 주는 것보다도 그 아무개 형님에게 주소. 나 대신 형님주라구요' 하고 밟히면서도 그러다가 만일 죽어 버렸다고 할 때 어떨 것 같아요? (웃음) '그것 형님에게 주라구요' 이러다가 아버지한테 밟혀 가지고 죽었다 할 때는 그 아버지가 얼굴을 들겠어요? 생각해 봐요. 그 아버지가 얼굴을 들겠어요? 어떻게 할 것 같아요? 생각해 보라구요. '천하에 몹쓸놈, 천하에 몹쓸 놈'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그렇겠습니다」 그거 틀림없지요? '천하에 몹쓸 자식, 이런 일이 어디 있나? 결론적으로 그렇게 되지요. 응?
그 사체를 보고 나를 용서해 달라고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무엇이든지 다 들어 주겠다고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머리 숙여 가지고…. 자, 그것을 형님에게 갖다 주면 형님이 그것을 받겠어요? (녹음 상태가 불량하여 약간의 분량을 정리하지 못했음)
자기가 타고난 운명에는 타고난 행복의 양이 있는 거예요. 그 행복의 양을 다 못 누리고 만민에게 나누어 주면 불행했던 만민이 행복의 양을 계승해 가지고, 나는 불행했지만 만민이 행복을 계승할 그 터전 위에 서가지고 만민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 같은 양반도 …. 국민을 대신하여 희생한 애국자는 국민들이 머리 꼭대기에 모시겠지요? 그렇지요? 올라가요, 안 올라가요?「올라갑니다」그런 것을 알고 여러분은 공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내가 여러분에게 '고생해라' 할 때, '아이구 선생님!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졸업할 때까지 6년 했으면 그만이지, 또 하라구요? 난 못 해요' 하겠지만, 보라구요. 효자나 충신은 죽을 때까지, 죽음과 같이하지 않고는 진짜 충신은 없는 것입니다. 진짜 충신은 죽기 전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 아무리 고생을 했더라도 오늘 한마디 후회하는 말을 하게 되면 충신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아무리 충신이 됐더라도 이 시간에 불충하게 되면 역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죽음의 고개를 넘어갈 때까지 충효의 도리를 하고 가야만 충효를 다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틀림없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길에 있어서는 충과 효는 그 과정이 같은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사람을 애국자라고 하는 것이고, 부모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아들을 효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죽기 전까지 불효했지만 최후에 부모가 죽을 자리에 처했을 때, 지금까지 효도하던 자식은 불효하게 되고 불효한 자식이 돌아서게 되면, 효도하던 그 자리를 이어받아 가지고 한 순간 효도함으로 말미암아 부모 앞에 효자 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하루의 행동의 기준과 더불어 효자의 칭호를 갖고 등장하게 됩니다. 그래요, 안 그래 요?「그렇습니다」그렇게 됩니다. 생명을 다할 때까지 그 목적을 향해서 가는 사람 앞에 영광의 상속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 틀림없지요?
개인적으로 보면, 자기를 위하여 더 일하는 것은 악이요, 남을 위하여 더 일하는 것은 선이다. 이렇게 되지요? 자기를 더 위하는 길은 망하는 길이요, 남을 더 위하는 길은 흥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흥하는걸 좋아해요, 망하는 것을 좋아해요?「흥하는 거요」'아, 너희들이 흥하면 좋겠다. 흥해라 흥해라' 이렇게 바라고 있는 것은 하늘편이요, '아, 저들 망해라 망해라' 하는 패는 사탄편입니다.
예수님 같은 양반은 개인 대해 가지고 '흥해라 흥해라' 한 사람이라고요. 죽을 때까지도. 원수를 위해서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은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해서 그러니 …' 하면서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흥해라 흥해라 하는 패는 하늘편이요, 망해라 망해라 하는 패는 사탄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망하라고 하는 마음 바탕을 가지고 대하는 데는 사탄이 같이하는 것이요, 흥하고 용서하겠다고 하는 자리에 설 때는 하나님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이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얼마든지 용서해 주라는 거예요. 한번 용서해 주고 두 번 용서해 주고 세 번만 용서해 주면 내 마음에…. 슬슬 녹아나는 거라구요. 세 번만 알 수 있게 용서해 주라는 거예요. 그러면 틀림없이 내 앞에 와서…. 이 원칙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전개해 나왔던 거예요. 알겠어요? 어찌하여 복귀섭리가 일방적인 승리를 가져오지 못 하였느냐 하는 결론을 여기서 찾을 수 있는 거예요.
우리 선조들이 보다 큰 미래를 위하여, 보다 큰 장래의 하나님의 나라를 찾는 그 날을 위하여 자기를 버리고 끝까지 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 앞에 흥하는 승자가 될 것인데도 불구하고, 번번이 하나님의 뜻 앞에 언제나 암적인 존재가 되어 패자의 서러운 길을 갔던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역사적으로 관찰하고 이것이 틀림없는 사실임을 알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역사를 안 것은 시대적인 행로를 걷기 위한 것이니 그것을 표준 삼아 가지고 그 행로에 동참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어요. 알겠어요?「예」
여러분은 내일을 위주로 내일의 번창을 위해 내일이 옹호할 수 있는 그런 입장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 길이 하늘이 찾는 길이요, 자리인 것을 알고, 그 자리를 닦아 놓은 사람은 하늘의 사람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고 이 자리를 찾아 나가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역사적인 길입니다. 공산세계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세계를 지배하려고 나가지만, 우리 통일교회는 우리 교회가 망하더라도 세계를 위해서 나갑니다. 목적이 다르다구요. 알겠어요? 그런 원칙적인 입장에서 볼 때, 세계적인 사상체제인 이 공산세계는 망하지만 통일교회는?「흥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개인적인 복귀노정이 우리 앞에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복귀를 완성 하면 거기서 개인적으로 안식할 것이 아니라, 안식의 자리, 내 복받을 수 있는 자리를 하늘 앞에 돌려 보내지 않으면 인류 앞에 돌려야 되겠다, 내가 완성한 것을 나를 위해 완성한 것이 아니라 하늘을 위해 완성했고 인류를 위해 완성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안식의 터전이 있거든 하늘 것으로 인류의 것으로 주겠다 하고 나서는 사람은 하늘이 또다시 필요로 하는 것이요, 인류가 또다시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개인복귀완성했으면 탕감조건 없이 가정복귀완성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이 원칙에서는 탕감복귀도 통하지 않고…. 왜 그러냐? 아담이 탕감조건에 걸리지 않았으면 개인완성과 더불어 가정을 차지할 수 있는 길이 벌어집니다. 그렇지요? 거기서는 탕감조건이 없어요. 그 자리는 하나님만을 위하는 것이요. 공적인 것만을 위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자리는 자기가 본래 가질 수 있는 뜻의 바탕의 자리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탕감복귀가 없습니다. 그래서 개인이 완성하면 가정적인 탕감복귀를 통하지 않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상 복된 길이 어디 있겠느냐? 그러지 않고 이것을 넘으려면 또다시 제물을 드리고 넘어야 할 길인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내연을 갖추고 나가게 될 때는 무한히 전진적인 발전의 노정을 우리가 상속받아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가정적인 완성을 해 가지고 그 가정이 하나되어 가지고, 우리 가정은 하늘을 위하고 전체를 위해 있다고 하는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쳐 드리고 희생하고 나서게 될 때는 탕감이 없는 것입니다. 그 자리 자체가 산제물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제물은 소유관념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존재의식이 없는 것입니다. 소유관념을 가지는 것도 하늘을 생각하면서 소유관념을 갖는 것이요, 세계 인류를 생각하면서 소유관념을 갖는 것이며, 존재의식도 하늘을 생각하고 인류를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자기를 초월한 공적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산 제물로서 하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것이요, 인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만이 개인을 거치고, 가정을 거치고, 종족을 거치고, 민족을 거치고, 국가, 세계를 거치게 될 때, 그 세계가 지상의 천국이라고 하느니라. 알겠어요?「예」
대한민국이 하늘 앞에 섰으면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대표한 공적인 입장에 섰고 세계 인류를 위한 공적인 자리에 섰기 때문에, 세계와 하늘을 위해서는 대한민국 자체가 망하더라도 감수하며 가겠다고 하는 국가적 체제가 생겨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나라는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는 하늘 앞에 산 제물과 같은 국가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제물 앞에는 하나님도 머리 숙이지요? 보라구요. 소를 잡아 제사드리게 될 때는 그 집 할아버지라도 제물 보고 절해요, 안 해요? 할아버지, 아버지, 제사상을 차린 장본인도 전부 다 머리 숙이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이 원칙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그렇게 나가는 사람은 산 제물, 죽지 않고 살아서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예수는 피를 흘리고 죽어서 제물의 역사를 거쳐왔지만 우리는 그렇게 나간다면 죽지 않고 살아서 제물이 되어 개인에게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 끝까지 제물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끝까지 가고 난 후에는 돌아서서 새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갈 길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하늘의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은 공복(公僕)의 길입니다. 이 공적인 길을 산 제물로서 어떻게 가느냐? 자기를 위해 예수를 이용하고,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자기를 위해 통일교회를 이용하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 되겠어요. 그걸 잘 알아야 되겠어요. 여러분이 원리를 볼 때, '저것 통일교회 교인들이 저래서는 안 되겠는데…' 여러분들은 이런 것 알지요? 그렇게 되면 그것을 보고 비판하지 말고 '나는 그보다는 나아야 되겠다. 너희는 내 앞에 가인이 돼야 된다. 나는 너희들의 아벨이 되어 가지고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바로잡아 주어야겠다. 옳지 못한 사람들을 나로 하여금 교육을 받게 해 가지고 바른 길로 인도해야 되겠다' 하면서, 주먹으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적인 면에서 눈물어린 입장에서 밤이나 낮이나 지새워 가면서 저 생명 대신 내가 희생해 가게 되면, 다시 말하면 아까 아담이 쫓겨난 자리에서 자기 생명을 갖고 변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 가지고, 나는 망하더라도 그들을 살려 달라고 호소한 공적이 그들 앞에 미치게 될 때 그들은 자연히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요?
통일교회 사람들을 비판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통일교회에서 아벨의 전통적 역사를 이어받아서 '통일교회의 교인이 저래서는 안 되겠다' 하는 그 '안 되겠다' 하는 입장에서 나는 됐기 때문에 나를 본받아 저들이 재교육받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아야만 통일교회 교인으로서의 사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교인들의 마음을 점령한 여러분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의 젊은 청년들이여! 여러분이 기성교회 교인들 앞에 반대를 받고 핍박을 받던 과거의 원통하고 분한 사실이 크면 클수록 그들이 '우리들도 통일교회 청년과 같이 되어야 되겠다. 저들이 저렇게 움직이는 것은 자기 교회 발전을 위하고 전도를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고, 나의 생명을 구하고 이 나라 이 민족을 구해 주기 위한 것이다'고 알게 될 때, 그들이 숭고한 사상을 지닌 젊은이라고 뼛골이 녹아질 수 있게끔, 머리를 숙이게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서 그들을 구해 준다면 그들은 나로 말미암아 영원한 새로운 길, 하늘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이럼으로 말미암아 나는 살아서 제물이 필요 없이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길이 현재에 있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현재에 내가 메시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산 제물의 실권의 역사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무대에서, 교회에서, 혹은 나라에서, 세계에서 발휘하고 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의 길이 아니냐? 이 통일교회 교인들의 길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걸어야 될 길이 아니냐 하는 문제가 결정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지는 여러분이 되라. 통일교인 가운데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통일교회 선생님을 생각지 않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하긴 모르겠구만. 여러분 선생님 생각해요?「예」 병신이든 잘난 미남 미녀 할 것 없이 통일교회 교인들은 문선생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흠모하면 홈모할수록 진리의 중심 실체가 선생님이기 때문에 선생님을 자기가 진리를 사랑하는 이상 사랑하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자, 그렇게 될 때까지는 우연히 된 게 아니라구요. 선생님은 내 개인의 욕심을 중심삼고 이 자리까지 나오지 않았어요. 내가 여러분 같은 20대 젊은 시대에 누구보다도 못난 사람이 아니었다구요. 세상에 나갔으면 빨리 출세도 했고 남 못지 않은 일을 다 했을 거예요. 학박사 다 됐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구요.
한 생애를 다 바쳐 가지고 자기의 이익보다도 공적인 이익을 위해서 희생했고, 그런 재료면 재료, 양이면 양을 많이 투입한 것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자연히 추앙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게 원리라구요, 그게 천운이라구요.
여러분이 이번에 돌아가게 되면 여러 사람들의 가슴 가슴에 남아질 수 있는 자신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벨의 뜻은 반항하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머리를 숙이고 위하는 인연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아벨의 완성의 터전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아벨의 완성은 개인적 아벨의 완성, 가정적 아벨의 완성, 종족적 혹은 민족, 국가, 세계적 아벨의 완성의 터전을 이어 나가지 않고는 세계천국 복귀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아는 우리들은 밤이나 낮이나 찾아오는 그날 그날들을 중심삼고 이 원칙을 적용시키고, 이 원칙의 발전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쉬지 않고 달려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을 왈 하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알겠어요?
밥을 먹는 데도 자기를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구요. 내가 배고픈 것은 왜인가를 따지는 거예요. 공적인 일을 위하여 피땀을 흘렸기 때문에 배가 고픈 것이라면 거기에 얼마나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피땀을 흘렸느냐? 나를 위했느냐, 공적인 일을 위했느냐? 이렇게 스스로 비판해 보고 공적인 일을 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밥그릇을 대하게 될 때, '오냐, 어제 아침에 먹던 밥보다 너를 먹고 더 빛나게 보다 공적인 일을 해줄게' 이렇게 생각하면 밥이 웃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밥이 소리를 치고 좋아한다구요. 그런지 어떤지 여러분은 모르지요? 어서 어서 이날이 있기를 바란다구요. 그런다구요. 밥 먹는 시간이 아주 신비로운 시간 이라는 거예요.
내가 호미를 들고 땅을 팔 때도, '호미가락에 긁히는 이 땅은 비록 한 초점에 놓여 있지만 세계 전체의 땅을 내가 언제 긁어 봤느냐? 그렇기 때문에 어서 손을 들이 내밀어서 긁어라. 이것이 지구반경을 긁어 내는 입장에 있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하라구요. 달라야 한다구요.
길을 가더라도 '나라를 넘어서 세계를 품고 가니, 하늘땅이여! 내 말을 들으소서' 할 때는 나는 공적인 존재입니다. 그렇게 나서게 되면 천만 군중이 자기도 모르게 휩쓸려 들어온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제물 앞에는 머리 숙이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알겠지요? 제물이 되라. 제물이 되어 가지고 망하는 법이 없다. 진짜 제물을 잘 드린 그 자리는 망하는 법이 없다. 제물 드린 끝에는 복이 오는 것이다. 그렇지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되겠어요.
여러분이 통일교회 교인들을 바라볼 때, 36가정이라든가 축복받은 가정들을 바라볼 때, 저들이 저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 되면 그들을 교육해야 되겠어요. 그들은 선조들의 입장에 있지마는 통일교회 선조가 훌륭한 것이 아니라구요. 선조들은 훌륭하지 못하더라도 후대의 후손들이 더 훌륭하기를 바라는 것이 복귀섭리의 전통적 길이 아니었더냐?
우리 통일교회가 한 국가적인 환경을 중심삼은 이 좁은 환경을 맞았지만 앞으로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선조들이나 선배들보다 우리들이 더 찬란한 노력을 해야 되겠다. '형님들이 한 일이 그만큼이거든 나는 형님보다 못해서는 안 되겠다, 더 힘든 수난의 길을 극복하고 무대를 세계화시켜 나가겠다'고 하는 이런 전통적 모습이 젊은 가슴에 흘러 넘치게 될 때 통일교회는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 형님들이 쉬니까 우리도 그래야지' 하는 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망한다구요.
망할 하늘의 뜻이 아니요, 망할 천운이 아닐진대는 그 뜻은 이 민족을 버리고 딴 나라에 옮겨져서라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백성 앞에 이어 주려던 이 뜻인데, 이방 민족이 이 뜻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그걸 이어받았어야 할 것인데 이방 나라 사람들이 기독교를 이어받은 것이 아니냐.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통일교회 사람들의 마음에 기억되는 사람이 되어라. 알겠어요?「예」 그 다음에는 통일교회 선생님이 기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라. 그래야 돼요, 단체 책임자니까. 식구들의 공인을 받고 난 후에는 단체의 책임자 앞에 올라오는 것이 아니냐? 세상에도 그렇지요? 그 사람의 공로가 크면 그 동료들이 추천해 가지고 장 앞에 추대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래 가지고 상을 주는 거예요. 상을 받았으면 국가적 단체들과 대결하고 나서는 거예요. 그렇지요? 올라가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원칙을 따라 가지고 선생님의 마음에 기억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라. 선생님의 마음에 기억될 수 있는 여러분은 뭐냐? 선생님은 지금 국가적 사명을 하는데 여러분은 '아이구, 나는 가정적 사명을 촉구 하는 내가 되겠다' 하면 선생님의 마음에 있겠어요, 없겠어요? 그것은 꽁무니에 따라오는 방해꾼이예요.
선생님의 마음에 들려면, 국가 탕감복귀 사명을 촉구하는 시대가 되거든 국가는 물론이고, 앞으로 올 세계를 위하여 책임질 수 있는 내가 되겠다고 밤이나 낮이나 정성어린 마음을 가지고 하늘을 향하여 직행으로 달려가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오냐, 바라던 사나이가 나타났고 바라던 아낙네가 나타났구나' 하고 그를 필요로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기필코 선생님의 마음 가운데 기억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지금 때가 어떤 때냐? 국가적인 시대로부터 세계로 넘어가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청소년들인 여러분의 소망과 여러분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표준이 대한민국을 넘지 못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여러분은 선생님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통일교회가 세계적 무대의 시대로 들어왔기 때문에, 선생님은 세계를 휘어잡기 위하여 출발하는 무대에 섰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해야 할 사명을 어서 끝내고 손을 털고 세계로 날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런 입장에서 선생님을 모시는 여러분들은 어떠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선생님 이상 저….
'뉴욕의 5번가에서 만나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야 되겠다. 뉴욕의 어디어디에서 만나야 되겠다. 그날을 위해서 내가 준비하자. 그러려면 내가 대한민국 이 민족으로 태어났으니 이 민족의 젊은이들한테 지지 않아야 되겠다. 기성교회라든가 통일교회 젊은이들한테 지지 않는 실적을 남기기 위해 나는 준비한다' 하고 노력하는 무리가 돼야 할 것이 아니냐? 그것 생각해 봤어요?
국가적 사명을 촉구하는 이때에 있어서 '아, 나라야 어떻게 되든 난 몰라, 세계가 어떻게 되든 난 몰라. 그저 나 편하면 되지. 내 어머니 아버지 모셔야 되겠으니 어머니 아버지 말대로 해야지' 이러는 것은 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계점이 되어서는 선생님이 가는 곳을 못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선생님의 마음에 기억되려고 암만 그 자리에서 기도해도 하나님이 들어주지 않는다구요. 그런 기도는 하지 말라구요. 국가를 넘어 가지고 세계를 위하려고 '하나님, 내 힘이 부족하니 도와주소' 이래야지요. 그렇지요? 안 그래요?
자, 우리 아가씨들은 졸업하고 말이예요. 세상 같으면 시집갈 처녀들도 있을 거라구요. 시집은 무엇 때문에 가느냐? 나 때문에 가는 게 아니라구요. 시집은 무엇 때문에? 천추만대의 선대를 이어받고 후대를 위해서 시집가는 거라구요? 그런 것 생각해 봤어요? 자기를 위해서 가는 게 아니예요. 자기를 위하다가는 전부 다 망쳐 버립니다. 그런 퇴폐풍조가 오늘날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 그것을 전부 다 뽑아 내고 잘라 버려야 합니다. 이 젊은들이 이런 사상을 가졌으면 나하고 원수라구요. 그런 사상은 안 가졌겠지요?「예」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주인이 돼 가지고야 남편이 될 수 있는 것이요, 아내가 될 수 있게끔 천리원칙은 되어 있어요. 아담이 완성하면 그것은 나라의 주인으로서의 완성이라구요. 그렇지요? 아담의 완성은 세계의 중심, 주인으로서의 완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주인을 꿈꾸고 주인 대신 나라의 책임과 사명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선 사나이, 아낙네가 되어 가지고서야 축복을 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것도 하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해 가지고 연애질 할 수 있어요? 어림도 없다구요. 편지질 할 수 있어요? 어림도 없어요. 붓을 들고 쓰는 자체가 얼마나 추하고 얼마나 수치스러운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담의 소원은 천주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었더냐? 아담이 품고 사랑한 부부의 가치는 세계의 중심가치를 대신했던 것이 아니냐? 그런 자리에서 사랑을 찾아야 할 것이었는데 오늘날 타락한 인생들, 이 악한 형상을 보라구요. 세계는 어떻게 가든지, 전부 다 개 돼지 모양으로 육적인 만족을 찾아가고 있어요. 육적인 만족이란 영원하지 않다구요. 몇 날도 못 가서 전부 다 누더기 바가지가 돼 가지고 굴러 떨어진다구요. 그런 퇴폐적인 사나이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어요. 여러분의 그런 자유무대가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꽃다운 젊은 청춘시대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20대에 가까운 청소년으로서 더럽혀지지 않고 물들지 않은 거룩한 순정을 고이 꽁꽁 싸 가지고 어디에 갖다 놓을 것이냐? 하늘이 제일 기뻐할 수 있는 그 제단 앞에 놓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와 같은 순정을 가진 그런 사나이와 혹은 아낙네가 만나서 하나님이 같이 묶어질 수 있는 거룩한 터전이 신랑 신부가 만나는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이건 개 돼지만도 못한 자리에서…. 그럴 바에는 다 짤라 버리고 파 버려야 됩니다. 그런 긍지를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아무리 천하의 미녀가 와도 나를 꼬이지 못한다'고 해야 하는 거예요. 해보라는 거예요. 선생님은 20대부터 쭉 그런 자체적인 훈련을 해 나왔어요. 아무리 미인이 천정 가운데에 발가벗고 뒤넘이치더라도 절대 안보겠다! 나는 꼬이지 못한다! 해봐라! 또, 내가 가는 길 앞에 어떤 친구가 방해가 못 된다! 이렇게 딱 공식적인 노정을 훈련받아 온 것이라구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고 다 그 놀음 해 나왔다구요. 이래서 그 목표를 겨누어 가지고 '저기 팻말이 보이지 않느냐' 해 가지고 거기까지 걸어가야 돼요. 목표점이 보일 때까지 가야 됩니다. 가다 보이지 않으면 또 가야 됩니다. 쉬지 않고 가야 되는 거예요.
선생님 마음에 기억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의 마음에 기억되려면 선생님이 하는 현재의 일만 책임지고 활동하면 현재에는 기억될지 모르지만 미래에는 기억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통일교회 문선생이 다 가르쳐 주었어요. 천주복귀란 거룩한 사명을 중심삼고 그것을 위해서 언제나 먼저 달려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사명을 단계적으로 귀결을 짓고 넘어 가는 그런 때라도 선두에 서서 갈 수 있는 입장에서 희생을 각오하고 제물된 입장에서 달려 나가면, 기억하지 말라고 해도 기억되게 마련입니다. 알겠어요?「예」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마음에 기억될 수 있는 여러분이 돼야 되겠어요. 하나님의 소원이 뭐냐? 사탄을 굴복시켜 이 무대에서 영영 몰아내 가지고 천국을 개문하여 하나님을 부모로서 모셔 가지고 효의 도리, 충의 도리를 못 한 6천년의 한을 푸는 기쁨을 가지고 아들딸의 사명을 다하겠다고 할 수 있는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의 사랑을 가진 아들의 사랑에 흠뻑 취해 늘어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아들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내가 당신의 사랑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당신이 진정 사랑하고 싶은 그 사랑을 내가 받든가, 그것이 안 되거든 흠뻑 사랑을 가지고 거리낌 없는 자리에서 아들을 사랑하는 것을 보고라도 죽게 해 주옵소서. 그것이 내 소원입니다' 이래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랑을 받든가, 사랑하는 것을 보고 죽게…. '당신은 아들이 있으면 이렇게 사랑하고, 딸이 있으면 이렇게 사랑할 것이 아니요? 그런 아들딸이 만나서 부부가 되었으면 부부는 이렇게 살아야 될 것이 아니요? 그 아들딸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이렇게 사랑할 것이 아니요? 그 나라는 이렇게 사랑할 것이 아니요? 그 세계는 이렇게 사랑할 것이 아니요? 아버지가 사랑하는 것을 보고 죽으면 한이 없겠습니다' 할 수 있고, 내가 미치지 못하거든 내 아들딸에게라도, 내 아들딸이 미치지 못하거든 다른 나라 세계 어디 라도 빠른 시일 내에 그럴 수 있는, 아버지를 보고 싶고 그리워서 눈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라 이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에 남아지는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그 가정을 나는 보고 죽고 싶소. 그리하여 당신이 나를 측은히 여기던 그 자리에, 같이 사랑받을 수 있는 그 자리에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 이상의 소원이 없습니다' 그래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당신이 사랑하는 동네면 동네, 씨족이면 씨족을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하는 죄 없는 자리의 씨족을 거느리는 아버지를 모시고 싶소. 진정한 죄 없는 나라를 통치하는 주권자로서의 아버지를 보고 싶소. 진정한 죄 없는 세계의 여호와로서 만국을 치리하는 그런 아버지를 모시고 싶소. 그것이 내 평생 소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내 소원인데 이 소원을 이루어 주실 아버지이므로 죽어서라도 소원이 이루어질 그날이 올 것을 믿고 갑니다' 그래야 된다구요. 죽더라도 그날을 위해서 죽게 되면 그것은 자기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날을 위해서 죽게 되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 마음속에 기억되는 아들로 서, 사랑의 무리로서 저나라의 천국 자녀의 상속을 받고, 주인 대신 모든 권한으로 치리할 수 있는 대역자가 될 것이 아니냐?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이 길을 나선 것입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라구요. 선생님도 그 길을 가고 있는 거예요. 아버지가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바라보고 기뻐할 수 있는 부모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여러분의 소원이 아니예요? 아버지가 사랑하는 부부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예요. 아버지가 사랑할 수 있는 그 친척을 내가 거느리고 살 수 있는 자리에 섰으면, 아버지가 진정으로 죄 없는 자리의 교인들을 사랑할 수 있는 그 자리에 한번 서 봤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탕감복귀의 수난길에서, 제물적인 노정에서 비참한 길을 가려 나온 하나님이었지만, 영광의 자리에서, 해방된 자유 천국의 자리에서 아들딸과 세계를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아버지를 모실 수 있고, 내가 아버지를 대하여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것이 얼마나 원통하냐 이거예요. 이 원통의 길을 빨리….
그러한 사상을 가지고 이제 여러분들이 오래지 않아 고등학교 시절을 지내고 나서 대한민국의 실전무대를 책임져야 되고, 더 나아가서는 실무를 책임져야 할 청소년들이 아니겠느냐. 이러한 무리가 되면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을 것이고, 이러한 무리의 사상으로 대한민국을 품게 되면 그 사상은 대한민국을 구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을 배양 시키고 그런 사상을 교육할 수 있는 곳이 통일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
망하라고 잡혀 간 사람은 망하지 않고 나와 보니 도리어 망하라고 잡아 넣은 사람을 다 쓸어 버리고 그들이 남겼던 모든 것을 관리 주관할 수 있는 주인이 돼 버리더라. 알겠어요? 그런 공평한 세계가 있어야 젊은 사람들도 고생할 맛이 있고 선생님 같은 사람도 살 의욕이 있지, 그렇지 않으면 살기는 뭐하러 살아요? 그런 것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 말이예요?
그런 것이 천리원칙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오늘도 그런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이요, 내일도 그런 시간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혹은 젊은 청춘 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의 그런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가고 가더라도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천리의 공법은 틀림없는 거예요. 여러분들을 그런 가치의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여러분의 선조들의 공적으로 말미암아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이 이제부터 가는 길에 대해서….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두고 볼 때, 과거의 여러분이 있는 것을 똑똑히 알라는 거예요. 과거에 내가 이러했던 것을 확실히 기도해서 버려라. 나 아무개는 그래서는 안 되었던 과거의 나를 오늘로 청산지어라. 깨끗이 청산지어라. '오늘부터 나는 이러한 나다'라는 소신을 결의해 가지고 하늘이 지향하는 목표를 향하여 정당한 자리에 서라.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지금까지 걸어온 나와 오늘부터 가야 할 나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렇게 되면 절망의 자리에서 희망이 솟구칠 것이고 낙담의 자리에서도 희망이 솟구칠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어제의 나와 오늘 이 시간 나와는 달라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내 사는 생활무대에 있어서 보람과 가치를 느껴야 되겠습니다. 탕감복귀의 하나님을 위하는 것보다도 영광의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참다운 효자의 길을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일교회 선생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에 기억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되겠어요.
'일선을 지휘할 수 있는 지휘관의 자리에 나는 건너간다. 나이가 부족 하거든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나인데도 불구하고 왜 맡겨 주지 않느냐?'고 하면서 한을 품고 그날을 위해 준비해 가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불원한 장래에 일선의 지휘관이 될 것이 아니냐? 그런 마음을 갖고 자신을 연마하며 10년 20년 가게 되면…. 그 20년이 지루하지 않다구요. 빛나는 영광의 한날을 맞을 수 있는, 20년 역사에 갖지 못하고 몇천 년 역사에 갖지 못한 가치를 그 기간에 탕감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숭고한 가치를 이를 수 있는 기쁜 길이 오늘의 이 고난의 길이요 극복의 길이더라 이거예요.
돌아서 보면, 그 기간이 없었던들 난 어떻게 됐을 것이냐? 그 기간이내 생애를 단장할 수 있는 좋은 기간이요, 복의 터전을 이어받을 수 있는 상속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보람 있는 생애로서 남아지는 것이 아니냐. '나는 청년시대를 잘 살았다. 장년시대를 잘 살았다. 일생을 잘 살았다. 한이 없다' 하는 생애를 갖추고 아버지의 품에 품기는 자리에 가게 된다면 인생노정에서 그 이상의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희망된 길이 있는 것을 알고, 이 길을 그러한 사상을 가지고 사명을 다하고 가야만 반드시 하늘의 사람으로 살다가 하늘의 사람으로서 저나라에 갈 것이 아니냐 해서 이 길을 가 주기를 바라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여러분은 옛날 악에서 출발되었기 때문에 그 악을 중심삼아 시종여일 하지 말라는 거라구요.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기뻤던 그날을 중심삼고 일관하라는 거예요. 그때의 밤이든 낮이든 한곳으로 흘러가던 그 마음을 더 강하게 나라와 세계 끝까지 뻗게끔, 그 순을 그리로 향할 수 있는 여러분이 돼 가지고 산 제물이 되어서 영광의 아버지, 영광의 하나님을 모셔 영광된 자리에서, 효자 효녀의 명분을 남기고 죽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태어난 목적인 것으로 알고 끝까지 가는 날에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하늘의 사람으로서 출발할 것이고, 하늘의 사람으로서 거쳐가 가지고 하늘의 사람으로 끝맺게 됩니다. 그런 길을 가는 사람은 틀림없는 하늘의 백성이 될 것이며 하늘나라의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를 바라면서 오늘 '하늘의 사람들'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여러분 앞에 말씀을 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내가 돌아가면 이제부터 틀림없이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는 사람 양 손을 들어 결심하자구요. 내려요.
사랑하는 아버님, 여기에 젊은 아들딸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당신의 존전에 부복하였나이다.
나 아무개는 서글픈 나라는 끔찍한 사실을 인식하고 알았습니다. 이렇게 비천하고 이렇게 불비한 모습, 이렇게 추악한 모습들이 하늘 앞에 망령되었던 과거지사를 엄숙히 회개하옵니다.
이제 역사시대의 통일사관이 찾고 있는 보다 가치적인 존재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옛날보다도 지금이요, 어제보다도 오늘이요, 오늘 보다도 내일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침에 밥 숟가락을 들 적에도 새로운 다짐을 해야 되겠고, 저녁에 밥을 먹고 자리에 눕게 될 때도 아침보다도 저녁이 빛나야 되겠다고, 오늘보다도 내일이 빛나야 되겠다고 매일매일 다짐하는 생활을 연이어 나가 그 가운데서 무한한 가치를 추구하면서 즐거워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거들랑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런 아들딸인 되기를 이제 쌍수를 들어 아버지 앞에 맹세했사오니 가는 길을 지켜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대한의 나라를 지키시옵소서. 남북이 엇갈린 비참한 이 민족이 된 것은 하늘을 받들지 못하고, 당신이 찾아온 역사적인 공적을 시종여일한 입장에서 모셔 드리지 못했기 때문이옵니다. 이처럼 비참한 국가의 운명이 저희 목전에 직시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이와 같은 한을 저희 가슴에 품고 역사를 붙안고 대신 회개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삼천만 혹은 오천만 민족을 대신한 회개의 제물이 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세계를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최후의 싸움터를 즐겨 맞을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로서 세워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짧은 시간을 통하여 들은 말씀, 각오한 전부가 하늘 앞으로 거두어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다시 만나는 그 시간이 혹은 몇 개월 후에 있을는지 모르지만, 이들이 가는 기간 동안 숭고한 사상을 그 환경 환경에 적응하면서 끝까지 싸워 하늘의 복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만민 앞에 내세우고 사탄 앞에 내세워 자랑하고 사랑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하늘의 칭찬뿐만 아니라 즉석에서 내세워서 사랑 받을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가야 할 길이 얼마나 수난의 길이요, 핍박의 길이요, 고역의 길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이것을 의의 있게 맞아 나가면서 거기에서 가치를 느낄 줄 아는 그런 자신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부디 한 생명이라도 떨어지지 않고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보람 있는 후계자 혹은 상속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잠들어 있는 세계 인류들은 젊은 저희들이 깨우쳐야 되겠고, 이 나라 이 민족은 저희들의 손길로 구해 주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신념에 불타야 되겠습니다. 용기 백배하여 목적을 위한 전진만이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그러면 다시 만날 때까지 공부 열심히 하고 졸업식도 다 지내겠지만, 그 자리에는 선생님이 없을 거라구요. 다시 와서 만날 때까지 여러분이 열심히 싸우다가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이것으로 끝내자구요.
10월을 맞이하여 마지막 맞는 이 아침에 당신의 영광과 존귀와 찬양이 하늘로부터 이 땅에 미쳐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속죄함을 바라고 있는 땅 위의 불쌍한 만민을 구하시려는 아버지시여, 이 인류를 당신이 소원하시는 뜻대로 어서 속히 구하시옵소서. 사망의 골짜기에서 허덕이고 있는 이 인류를 당신의 생명의 권한 위에 세우시사, 이 인류가 당신의 본연의 자비스러운 사랑을 흠뻑 받으면서 무한히 무한히 기쁨과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그 날과 그 시간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주시옵소서.
저희들은 타락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임을 자인하고 있습니다. 개인으로 범한 죄가 가정과 나라와 세계로 미쳐진 것을 직시하고 계시는 아버지시여, 지고하신 당신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으로 이들을 긍휼히 보시어 버려 두지 말기를 바라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부복한 어린 자녀들을 찾아오시어 과거의 나를 다시 한 번 회상하고 오늘의 나를 확실히 명시하게 하시어 미래의 보람있고 가치있는 나를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자각의 모습을 갖추게 도와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이 시간 이곳은 물론이지만 전국에 널려 있는 어린 자녀들이 당신이 남기신 복귀의 한스러운 길을 거슬러 가기 위해서 싸우고, 부딪던 몸으로 아버지 앞에 찾아 나와 부복하였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을 일일이 살피시사 당신이 원하는 참다운 아들이요, 딸의 모습을 갖추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아버지, 우리 각자 자신을 중심삼고 인연되어 있는 사방의 민족과 국가들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인연되어 있는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먼저 우리 자신들이 문제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각자가 책임질 수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처해 있는 자리에 서서 단속하고 조절하지 않고는, 당신이 바라는 환경의 인연을 연결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우리로서는 어떤 대상의 가치도 추구할 수 없는 타락한 후예인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사옵나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여기에 주체가 되시어서, 당신의 뜻을 대하여 대상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현재의 저의 위치를 결정지으시옵소서. 당신의 힘에 의지하여, 당신이 뜻하시는 목적에, 당신의 능력의 손길에 붙들리어 따라갈 수 있는 길 외에는 저희들이 구속의 은사를 받고, 해방의 은사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할 적에, 아버지는 과연 불쌍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와 같이 못난 인류를 당신이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되고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 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이와 같이 타락한 후예가 된 이 무리들을 지극히 높고 선하신 당신의 거룩한 자리까지 미쳐지도록 해야 할 사명을 인간으로서는 하지 못하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 시여, 당신이 원하시는 그 자리까지는, 당신이 소원하시는 것에 비례적인 이상의 수난과 탕감의 역경이 가로놓여 있는 것을 저희들은 역사를 통해서 배웠고, 통일교회라는 이 교단을 통하여 보고 체험하여 왔나이다.
하늘을 사랑하고 하늘의 뜻을 따라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체험하면 체험할수록, 이와 같은 개개인을 당신이 소원하신 나라까지 이끌어 가야 할 당신이 짊어진 사명이 얼마나 비참한 궁지에 있는가를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자비로운 심정으로 하늘을 배반한 무리를 천만번 부르시며 돌이키려고 애쓰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어느 한 때 역사적 시대에 있어서 우리 선조 들이 동정한 일이 있었사옵니까? 당신이 수고하신 것은 물론, 당신이 천신만고 끝에 수고의 결과로 찾은 한 자녀를 이끌어가다 사탄의 궤계에 부딪쳐 그 자녀가 아버지를 배반하고 나설 때마다, 아버지의 고독함과 아버지의 비참함과 아버지의 슬픔이 얼마나 컸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담 가정에서도 그러했고, 가인과 아벨의 싸움으로도 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노아 할아버지의 120년 수난의 노정에서도 그와 같은 한 날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집시의 행각의 노정에서 축복의 자리를 더듬으며 참아오던 수난길에 당신이 원하신 축복의 제단을 놓고도 그와 같은 결과는 찾아왔던 것입니다. 사십 평생을 두고 애급 왕국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는 일념으로 지내 나왔던 모세의 노정에도 그와 같은 슬픔의 날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머무를 때까지의 4천년 역사과정에서 시대적 사명을 짊어지고 왔다갔던 수많은 우리 선조들도 아버지의 슬픔을, 아버지의 고독을, 아버지의 비참함을 자아낼 수 있는 나날들은 가졌지만,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고, 당신의 존엄하신 그 모습을 염려하면서, 인류를 위하여 이렇게 수고하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붙들고 사정을 통고하고 심정을 나눈 조상들은 많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님의 사정이 얼마나 딱하였으며, 그 사정 속에 숨어 있는 엇갈린 심정을 하소연 하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인간은 자기가 서러움을 당하게 될 때에는 아버지에게 그 서러움을 풀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께서는 서럽게 될 때에 그 서러움을 알아 달라고 호소할 수 있는 대상을 갖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은 그 아버지를 진정 알아야 되겠습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많지만 당신의 마음을 사랑하고, 당신의 사정을 사랑하고, 당신의 소원을 사랑하면서 당신의 사정과 심정과 소원을 중심삼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혹은 역사적 선조들이 지극히 희귀하였다는 사실을 바라볼 적에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이 당신의 심정을 알았던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자기는 죽는 길을 가더라도 당신은 죽음의 고통을 당해서는 안 될 것을 아는, 당신의 아들의 영광을 지니고 왔던 예수만이 당신의 마음 앞에 소망의 존재요, 당신의 사정이 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요, 당신의 심정을 나눌 수 있는 참다운 아들이었습니다.
그 아들이 당신을 중심삼고 위로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갖고, 하나의 종족을 갖고, 하나의 민족을 갖고, 하나의 세계를 가졌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그 아들은 당신을 위로할 수 있는 사정의 터전을 이 땅 위에 남기고 가지 못했습니다. 그 아들은 당신의 사랑을 지녀 가지고 개인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종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가져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자리를 갖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4천년 준비하였던 유대교단과 수난길을 돌보아 가면서 지켜 고이 길러 나왔던 이스라엘 민족이 바라는 소원은 메시아를 맞는 것이요, 메시아를 시봉하는 것이었지만, 그가 삼십 평생을 이 땅 위에 지내실 때 그를 사모한 자 그 누구였으며, 그를 모시려는 자 그 누구였느냐를 생각할 때, 한 사람도 없었다는 이 비참한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12사도들도 3년 수난길 가운데 있어서 민족을 대신한 서글픔과 교단을 대신한 안타까운 마음을 하늘 대신 짊어졌던 예수님의 가는 길을 알지 못했고, 가고 맞는 날들은 슬픈 날이요, 당하는 일은 핍박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조롱의 화살을 받으며 이 마을 저 마을로 전전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길에서 당신의 사정과 심정을 책임지고, 당신의 소원을 해원성사하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오셨던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하나님의 왕자였던 것을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 시대에 예수를 모신 사람은 없었지만 역사 과정을 통하여 높여진 예수를 믿는 사람은 많아졌습니다. 역사 과정을 통하여 높여지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희생의 피를 얼마나 흘렸으며, 수많은 시련의 역사 과정의 순교 신화에 비참사가 얼마나 많았던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오신 예수님의 역사의 배후에는 하늘이 보기에 당하기에 끔찍한 피의 역사가 계속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이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니었음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좋아하기 위하여 그러한 죽음의 길과 피 흘리는 길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기쁨의 해방과 더불어 갖추어야 할 아버지의 소원의 역사가 비참과 고독과 한탄으로서 해방하고 구원의 역사를 전진시켜 나오는 아버님은 얼마나 얼마나 불쌍하신 분인가를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님, 그러한 아버님을 모시고 그 아버님을 위로할 수 있는 우리가 돼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까마득한 한스러운 십자가의 고통을 느껴야만 할 것이 저희 입장임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님, 그러한 우리의 사명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뜻이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런 내용을 알고 하늘을 우러러볼 때에, 하늘 앞에 무엇을 달라고 기도할 힘을 가질 수 없는 것을 발견하옵니다. 부복하여 눈물과 더불어 당신의 슬픔에 동참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있기를 바랄 뿐이요, 고통과 더불어 당신의 수난길에서 극복의 한 한계선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 저희들의 소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나 아버님과 우리 사이에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연과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버지를 불러야 되겠고, 아버지를 찾아야 되겠고, 아버지의 가는 길을 따라가야 할 운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한 수난 길을 알지 못하고 가고 있는 우리의 걸음걸이를 바라보시는 아버님은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저주하여 제거시킬래야 제거시킬 수 없는 불쌍한 인류를 지금까지 끌고 나오시는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 그러한 당신의 사연이 우리 개인의 사정보다도 딱한 때가 얼마나 많았겠으며, 당신의 염려가 우리 일생을 통하여 염려할 수 있는 개인의 염려를 몇천만배 넘는 자리에서 수고하신 적이 얼마나 많았겠는가를 마음으로라도 생각할 수 있는 자신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래도 그러지 못한 자들보다도 당신은 이들을 붙들고 이들을 위하여 또다시 수고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악을 제거하고 선의 길을 가기를 바라는 아버지 앞에 다시는 불충의 모습을 남겨 놓지 않기 위하여 오늘의 이 순간을 통하여 몸부림치면서 고독과 더불어, 한숨과 더불어, 당신을 염려하고, 당신을 시봉하고 싶은 마음뿐이로소이다.
아버지, 이러한 저희들을 지금까지 이끌어 오신 수고에 감사하오며, 통일교회가 오늘이 있기까지의 그 배후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당신의 너무나 과분한 수난의 길이 첩첩이 가로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적마다, 여기에 서 있는 아들은 아버지 앞에 면목없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만일에 이 땅에 통일교회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당신 앞에 그런 수고의 길을 가중시키지 않았을 것이오나, 통일교회가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해방 이후 27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당신은 고독의 길에 부딪혔고, 당신은 슬픔의 자리에 부딪힌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슬픔을 위로하여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식구들이요, 통일의 무리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슬픔이 남아 있다고 그 슬픔을 아버지 앞에 늘쌍 통고하는 신앙자의 버릇을 그냥 갖고 따라 나오고 있는 자신들을 다시 한 번 증오하면서 아버지께서 기쁠 수 있는 그 모습을 마음 깊이 다시 더듬을 줄 아는, 새로이 자각할 줄 아는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이 시간 아버지 앞에 직고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곳은 초라한 곳이지만 통일의 무리들이 흠모하고 바라보는 본부라는 곳입니다. 중심이라는 곳입니다. 하나의 중심이 잘못되게 될 때에 그 전체는 쓰러지는 것입니다. 중심을 붙들어 세워야 할 사명이 통일교회의 본부에 속한 식구들에게 있는 것, 통일교회에서 받들어 섬겨야 할 중심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전체 식구가 일심일체가 되어 아버지를 붙들어 세워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해야만 그 중심은 영원히 영원히 보존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하늘의 뜻을 중심삼고 백방으로 당신을 받들어 세울 줄 아는 이 무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남이야 뭐라 하든, 남이야 이단이라 하든 남이야 패역자라고 하든 당신만이 기억할 수 있는 혈육을 이어받은 적자가 되어진다면, 그 이상 소원이 없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통일의 식구들 위에 이 시간, 아버지여,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싸움의 터가 남아 있거들랑 이들을 내심으로 격동시키시옵소서. 가야 할 싸움터에 그것을 지시하시사 일생에 일체, 일심을 가다듬어 하늘의 용사로서 전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강하고 담대한 하늘의 병사의 책임을 짊어지고 출동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당신의 나라를 위하여 저희들은 간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의 안식할 보금자리를 위하여 간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이 안식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머무는 것은 아버지께서 안식할 수 있는 가정을 찾아 머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다스릴 수 있는 나라를 바라고 나가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요, 또 역시 당신의 소원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 세계가 당신이 치리하는 하나의 세계로 수습되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요, 그 소원 성취를 위하여 간곡한 십자가의 짐을 짊어지고 가고 있는 비참한 사정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 비참한 사정에 아버지의 지극히 숭고한 희생의 심정이 뒷받침 되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도 그래야만 되겠습니다. 저희의 가야 할 소망과 뜻의 길은 이 세계를 해방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들의 사정은 이 세계에 남아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것이요, 저희들이 가야 할 극복의 한계선은 죽음을 당하더라도 이들을 사랑의 줄로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희들의 심정의 본바탕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지의 책임분담을 저희들이 맡아 가지고 오늘의 하루 생활에서 이것을 삭감시켜 드리는 효의 무리가 되고 싶어 몸부림치는 불쌍한 자가 되었다면, 그 자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 설 때마다 아버지께서 권고하는 것을 들어 왔습니다. 그러한 자리에 서서 싸울 때에 승리의 결과를 원치 아니하였지만 맞아 주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는 아버지인 것을 알았고, 그렇기 때문에 동행하는 아버지인 것을 알고 나왔습니다.
통일교회를 잊어버릴 수 없는 아버지여, 이들을 세우신 이상 부디 소원을 품고 찾아오시던 그 마음을 잊지 마시옵고 돌이키지 마시사, 최후의 승리의 그날, 최후의 영광과 성령을 드리는 그날, 만국이 해방의 기치를 드높이고 만민이 찬양할 수 있는 그날까지 땅에서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거들랑 죽어서라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일대의 짐을 짊어지고 분투하는 하늘의 역전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전국에 널려 있는 어린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기말적인 세계의 정세를 앞에 놓고 저희는 좌우의 판가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긴박하고도 긴박한 책임과 사명을 짊어진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똑바로 아버지의 뜻을 바라보면서 당신이 가던 승리의 일로를 다시 한 번 본받고, 새로운 내일을 개척하는 하늘의 개척자의 사명을 더디하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 하고 원하옵나이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 또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는 서신들을 받아볼 적마다 불쌍한 것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색 민족이요, 혹은 전통과 풍속이 다를지라도 하늘의 심정을 이어받은 한 길을 가는 무리인 것을 저희들이 틀림없이 알고 있는 한 그들의 수난을, 아버지여, 지켜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더욱 이 시간도 남이 모르는 하늘의 섭리의 뜻을 품고 공산권내의 지하에서 싸우고 있는 통일의 무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목숨을 걸고 이 시간도 하루의 생활에 아버지를 자유로운 자리에서 모시기를 고대하는 무리가 있는 곳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 옵니다. 그들을 또다시 지도하고 권고하여야 할 아버지의 사정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지께서는 불쌍하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통일교단이 지금까지 남 모르는 수난길을 거듭하면서 남 모르는 세계의 길을 개척하였습니다. 아버지, 저 공산권까지 당신의 손길을 펴시옵소서. 자유의 기치를 아버지와 더불어 드높이 들고 만국의 해방을, 통일의 무리가 쌍수를 들어 승리의 날을 찬양할 수 있는 그날까지 저희의 전진을 재촉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옷깃을 여미고 엄숙한 아버지의 소명 앞에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나서는 하늘의 아들딸이 가는 길 앞에 무한한 축복과 무한한 자비와 사랑이 깃들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한국을 지켜 주시옵소서. 소돔과 고모라를 앞에 놓고 기도하던 아브라함의 심경을 느끼게 되옵니다. 최후의 열 사람이라도 남아지기를 고대하던 그 심정 앞에, 저희들도 그와 같은 마음을 갖고 이달이 편안하고, 이해가 편안하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 3년노정을 무난히 돌파할 수 있게 허락하시사 아버지께서 소원하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쉴새없이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눈을 뜨고 삼천리 반도를 바라볼 적에, 불쌍한 금후의 아시아의 정세를 앞에 놓고 이것을 초연한 자리에서 극복하고 타개해야 할 사명이 한민족에게 남아진 이 분한 원한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이것은 하늘을 배반하고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한 보응의 결과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뜻을 안다는 통일의 무리들은 이것을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지켜 주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전세계에 선두에 서 있는 기동대원들을 아버지께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은 공격전을 개시했습니다. 전진과 더불어 최후의 승리를 다짐하는 함성을 지르면서 전진의 대열을 갖추고 있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한 나라를 향하여 전진할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향하여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공산당이 세계를 향하여 전진하는 것을 가로막고, 하늘의 천군천사가 전진하는 방향과 더불어 대열을 갖추어 가지고 아버지께서 승리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저희들은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격전장에서 패배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오니, 그 최후의 격전을 평정 시키고 아버지 앞에 영광의 개선가를 드높이 승리의 찬양을 돌려드릴 때까지 죽지 말고 저희들은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지치지 말고 훈련 과정에 온갖 정성을 다 드려야 되겠습니다. 내일의 실전을 맞이할 수 있는 용사의 응시하는 시선을 가지고 적군을 향하여 곧바로 전진하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러한 자리에 선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의 모습을 대신한 하늘의 군대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뜻을 위하여 정성을 들이는 통일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이 땅 위에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수많은 기독교와, 수많은 다른 종교인들을 아버지 품에 품어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뜻 앞에 하나의 형제로 묶으시고, 동지로 세우실 뜻을 바라보면서 가인 아벨의 한스러웠던 역사가 오늘의 종결시대에 재현된 이런 비참한 운명을 극복하고 처리할 수 있는, 아버지의 사명을 대신할 수 있는 무리들이 이 땅 위에 많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남아진 그날과 그 시간도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다짐하여 내일의 승리의 표적을 세우고 마는 하늘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오며,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음받았던 아담 해와가 타락했다는 것을 누구나 다 믿을 뿐만 아니라,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인류의 시조로선 그날부터 죄악의 역사가 시작된 것을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류는 타락한 후예요, 우리 사람들은 죄악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여기에 타락하지 않은 새로운 본연의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죄악된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죄를 중심삼은 이 환경을 초월하여 해방 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욕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즉 어버이의 자리에서 있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 인간들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인간들을 다시, 하나님이 계획하였던, 다시 말하면 창조하였던 그 이상이 있었을 것인데, 그 이상과 하나될 수 있는 본연의 사람을 다시 만들어 보고, 다시 구해서 그 자리까지 끌어올리고 싶은 마음을 하나님이 갖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입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인간 자체를 두고 보면 인간도 역시 하나님이 그러하듯이 본연의 참된 인간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그곳까지 가고 싶은 소원을 갖고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끌어 올려야 되고,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서 올라가야 되는 이런 인연의 역사가 타락되어 있는 인류역사 과중에 남아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역사노정에 구원이라는 말이 생겨 났다는 사실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복된 말이 아닐 수 없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구원의 도리를 성취하기 위하여 사명을 짊어진 어떠한 기관들이 생겨 나야 되는데 그 기관이 수많은 종교인 것입니다.
타락한 이후의 수많은 인간들은 각각 생활환경과 문화배경이 다른 전통을 따라왔기 때문에 그들을 수습할 수 있는 종교를 세워 가지고 하나의 문화권 세계로서, 하나의 목적의 세계로서, 하나의 통일된 목적으로서 하나님은 수습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특정한 민족이 있으면 그 민족의 문화를 중심삼아 가지고 수습할 수 있는 외적인 발전의 역사가 있음과 동시에, 그 배후의 외적인 발전의 역사를 대동해 가지고 내적으로 보조를 맞추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 역사적인 사명의 길을 개척해 나오는 자리에 선 것이 종교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명을 하나님은 종교를 통하여 추진시켜 나가면서, 인간들은 외적인 문화의 세계, 발전의 세계로서 이것을 밀고 나오면서 지금까지 역사는 발전해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외적인 문화세계는 발전해 나왔지만, 내적인 인간의 모든 가치와 본연의 세계를 추구하는 종교가, 외적인 발전과 더불어 보조를 맞추어 내적인 발전을 도모해야 할 입장에 선 종교가 내적인 발전을 하지 못하고 지금에 와 가지고는 이것이 퇴폐해 가고, 부패해 가고, 낙후해 가는 실정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하나님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이 점점점 적어져 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교인이라고 하게 되면 그 누구나 흠모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인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점점 적어져 가는 것을 우리는 바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외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나온 인간과, 내적인 종교를 발전시켜 나오던 하나님이 여기에서 하나되어 나가지 못하는 자리에 섰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없다든가 하는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인류의 문화를 발전시켜 나오는 그 배후에서 종교라는 것이 사상의 뒷받침을 하면서 이것을 밀고 나올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는 그러한 결과가 이루어질 수 없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이 바라는 어떠한 목적을 일치시키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인간의 행로가 되지 않았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이 인간을 저버렸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종교가 사명을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종교가 사명을 못했든가 그 어떠한 면에 병폐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같은 보조로 발전하지 못하는 결과가 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시점에서 볼 때, 인간들이 가는 길이 과연 종교이념과 일치할 수 있는 생활방향으로 가고 있느냐 할 때에, 그렇지 못한 것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개개인의 생활을 중심삼고 그 주변 환경을 살펴볼 때, 그 환경은 나를 소망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여건들이 점점 희박해 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매일의 생활에 있어서 주위에 스며드는 공포감에 휩쓸릴 수 있는 절박한 사정에 우리가 몰려 들어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문화와 세계는 과학문명을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를 이를 줄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가 아니라 점점 갈라지는 현상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을 두고 볼 때, 그 환경이 우리가 소원할 수 있는 안식의 곳,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통일의 세계로서 끌고 갈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경지에 점점 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위협을 받는 생활권내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가정과 어떤 민족이나 국가도 그러한 운명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지도하고 있던, 전자유세계의 선도적인 입장에 서 있던 미국 자체도 그러하고, 공산세계를 지도하고 있던 소련 자체도 그러한 것을 우리는 현시점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들이 서로 서로 화합하여 미래의 이상형을 중심삼아 가지고 소망의 일념을 다짐하면서 서로 협력하여 개척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서로 투지가 앞서 있고, 분쟁이 앞서 있고, 자기를 주장하며 양보라는 것을 찾아 볼 수 없는 풍조가 고조되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아무래도 이 세상이 가는 길이, 아무래도 이 현재의 세기말적인 현상이 오늘날 우리 인간 앞에 행복을 소개해 줄 수 있는 길로 가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 오늘날 흘러가는 이 정세는 하늘이 있다면 하늘의 뜻과 말할 수 없이 동떨어진 자리에 섰지 않느냐 하는 것을 결론지어도 모순이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현세계를 새로운 길로 조정해 나가야 할 사명을 짊어진 것이 종교라면, 이것을 소화시켜서, 하나의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을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앞에 끌려가는 현상이 되었습니다. 세속화된 종교로 머물게 됨으로 말미암아 자연히 하나님이 이 세속화된 종교를 통하여 원하던 소원의 길을 이를 수 있는 가망성이 점점 희박해지는 결과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있어도 이 세상을 저버리지 않을 수 없고, 멀리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가 되어 움직이던 종교에서 하나님은 옮겨 가고 있는 결과가 될 것이 아니냐? 옮겨가는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하나님이 지도하던 종교는 세속화되고, 세상과 더불어 부패해지는 결과에 부딪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 되지 않느냐? 이것을 우리는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에 그렇게 됐다면 종교를 통하여 세계로 가야 할 그 길이 어디냐? 만일에 그 길을 찾아가는 길이 시작된다면 지금까지 종교의 배후에서 키워 오던 하나님은 틀림없이 현현할 것이 아니냐? 지금까지 믿고 키워 나오던 종교가 불효면 불효, 불충이면 불충의 결과로 나타나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저버림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섰다면, 새로운 면에 있어서 그 뜻을 받들어 가지고 효의 길 혹은 충의 길을 다짐하고 나서는 무리가 있다 할 때는, 이 면을 버림과 동시에 이쪽 하나님을 위하는 면을 지극히 사랑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럴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그럴 수 있는 곳을 따라 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을 어떠한 종단이 있다면, 그 종단을 통하여서 세계사적인 새로운 운동을 전개할 가망성이 있지 않느냐 하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자리에서 생각하게 될 때, 진정 그러한 종단, 그러한 종교가 이 땅 위에 있느냐? 우리는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세상을 구하려 하던 종교를 기필코 남겨 가지고 그 종교를 통하여 악한 자리에 화해 버린 이 세계를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 터전을 남겨야 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남겨질 수 있는 그것을 추구할 수 있는 무리는 있느냐 할 때, 그러한 무리들을 찾아보기 힘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기성종교면 기성종교 앞에 새로운 것이 나와야 합니다. 이 구태를 쳐 버리고 혁신운동을 제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도 물론이요, 그 외에 수많은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한국이라는 조그마한 터전을 중심삼고 전개되어 있는 종교상을 바라볼 때, 지금까지 있었던 종교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짤라 버리든가, 헤쳐 버리든가, 깨뜨려 버리든가 해서 새로운 단합 밑에서 새로운 혁신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결론은 여러분의 생활주변의 위협과 더불어, 시시각각 스며드는 고민과 더불어 이것을 갈구하는 일념이 남아져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잃어버렸다면 잃어버린 자리요, 인간이 타락하지 않은 본성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이탈했다면 이탈한 입장에 있습니다. 종교도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을 다시 찾아야 할 때가 왔고, 이 땅 위의 인류도 다시 인류로서 갈 수 있는 길을 해결지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갈래야 갈 수 없고 여기에 해결지을 수 있는 방안이 없습니다. 인간의 힘 가지고는 가능한 어떤 소망도 남길 수 없는 막바지에 부딪쳐 있기 때문에, 인간도 다시 한 번 자기들이 걸어온 생활, 걸어온 길을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될 단계에 놓여 있지 않느냐.
다시 말하면, 그냥 그대로 가 가지고는 그 무엇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돌아서야 될 것이 아니냐. 종교도 지금까지 세상과 더불어 타협하고 짝하여 찾아와 보니까 세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잘못되지 않았느냐.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다시 한 번 검토하고 새로운 단안을 내려야 합니다. 이 단안은 특정한 종단을 중심삼은 단안이 아니라 세계적인 종교가 합해 가지고 방향을 모색해야 됩니다. 또, 외적으로는 어떠한 한 단일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단안을 내릴 것이 아니라, 세계의 국가가 공통적으로 합해 가지고 단안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때를 우리들은 맞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로서도 끝날이요, 세상으로도 끝날이 된 것을 여기서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러한 입장에 서 있는 우리들을 하나님은 그대로 버려둘 것이냐? 그러한 입장에 선 이 세계를 하나님은 버려둘 것이냐? 만일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버려둘 수 없습니다. 버려둘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수습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세상에 살다가 지쳐 가지고 낙오되어 최후의 비명과 더불어 사라져 가는 무리가 아니라, 절망 가운데 새로운 결의와 더불어 재기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만 될 것입니다. 부패한 종교를 바라보면서 낙망과 절망에 싸여 그 자체를 중심삼고 신음하는 무리가 아니라, 그것을 격파하고 새로운 내일을 계승하기 위하여 제시하는 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일에 종교인들이 그런 각성을 못 하고 세상 사람이 먼저 각성을 한다면, 종교인을 버리고 새로이 세상 사람을 택할 수 있는 때가 바로 이때일 것이 아니냐? 이렇게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사람을 찾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절망 가운데서 절망과 더불어 탄식하는 무리가 아니라, 이것을 격파하고, 내일을 계획하고, 마음으로 다짐하면서 이것을 무한히 해결짓기 위한 추진력을 가진 강하고 담대한 무리가 아닐 것이냐? 그런 무리 가운데 하나님이 찾는 무리가 있을 성싶다는 결론은 타당한 결론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오던 모세가 죽게 될 때, 그 모세의 사명을 여호수아와 갈렙 앞에 인계하는 하나님은, 이제 가는 길은 싸움의 길이요, 가야 할 이스라엘의 나라는 처음 출발했던 이스라엘 민족을 죽여 가지고도, 못 간 가나안 땅인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미약한 이 두 젊은이를 민족 앞에 세워 놓고 통고하기를 '강하고 담대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환경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그 환경 앞에 밀려가는 사나이가 되지 말라. 신념이 앞서야 될 것이다. 민족이 반항하더라도 반항하는 민족을 능가할 수 있는 신념이 앞서야 될 것이다'라고 통고하였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틀림없이 찾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죽었다면 모르고, 하나님이 없다면 모르거니와 틀림없이 찾는 곳이 있을 것이 아니냐? 그곳은 현실에 있어서 우리가 고민하고 절망상태에 서서 신음하는 그 자리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내일의 희망을 가진 곳입니다. 우리가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을 수 있는 자리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너나할것없이 모두가 무난히 그 길로 일시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고 반대로 돌아서서 살기 위해서 나갈 때 앞날의 모든 여건이 자기를 환영해 주면 내일의 생을 더욱 기쁜 가운데 보낼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새로이 방안을 모색, 강구하든가, 지금까지 걸어나오던 역사적인 모든 것을 청산짓고 역사적 시대로 돌아가 설 수 있는 내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극복하고 초월하는 길은 이 환경을 뛰어넘는 길인데 이렇게 뛰어넘든가, 그렇지 않으면 출발하기 전에 뛰어넘든가 두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해결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이 안에서 아무리 신음했댔자 시궁창에 빠진 사람은 허우적 거리면 거릴수록 점점 빠져 들어가기 마련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도약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극복하자 해가지고 환경을 뛰어넘어 내일의 승리의 터전을 확고하게 했다 하는 그런 신념을 갖든가,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온 것이 틀렸기 때문에 출발전 그 시점으로 어떻게 돌아가느냐 하는 문제, 그 길을 모색하는 것 외에는 해결방안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추측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수많은 생애를 통해, 수많은 지성인들이, 수많은 노력을 통하여 짜낸 결과가 이것으로서 정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바라볼 때, 이것을 비약하기 위해서는 현재를 다 타개해 버리든가, 누구든지 네 마음대로 찾아가라 할 수 있게라도 되든가, 그것도 안되면 죽어가면서 떨거지는 떨거지로 남겨 놓고 끌고 들어가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것을 초월하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종교가 가는 길은 그것을 언제나 추구하는 길이었습니다. 종교는 언제나 그런 놀음을 해왔습니다. 세상 가운데서 안일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며 가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극복하고 초월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 같은 종교는 세상을 전부 다 포기해 버리고 인간들이 가는 길과는 반대로 돌아섰습니다. 그런 놀음을 거듭해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반해서 기독교는 현대문명의 첨단을 걸어 나오는 그 배후에 서 가지고 오늘날 문화의 발전에 보조를 맞추어 역사시대에 공헌해 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과 더불어 타협하고, 세상과 더불어 침투해 나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가운데 서서 시정이 아니라, 부정적인 일념을 강요했습니다. 성경 가운데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은 전부 다 역리적인 말이고, 모순된 말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기 위한 결심을 하는 것 보다도 살기 위해서 죽을 결심을 해나왔다구요. 거기서만이 새로운 극복의 길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예수님도 사랑하는 제자들을 대하여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최후의 심각한 말씀이 아니었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찾는 사람들, 찾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어늘, 그 찾는 사람들은 어떠한 무리들이냐? 강하고 담대한 신념을 가져야만이 찾아질 수 있느냐? 아닙니다. 강하고 담대한 신념을 갖는데, 목적을 가져야 된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대해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한 그 말 가운데는 '너는 내일의 이스라엘을 회복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 가나안 땅을 복귀하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갈 것이라는 목적관이 확실하다 이겁니다. 확실한 그 터전 위에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가 가는 길 앞에 있어서 목적관이 확실하냐? 희미하다는 겁니다. 뭐 기독교로 말하면 예수 믿고 천당가겠다고 하는데, 인간의 목적이 거기에 귀결될 수 없습니다. 보라구요. '예수 믿고 천당가겠다'하는데 '누가 가겠느냐?' 할 때 누가 가요? '내가 간다. 이 자리에는 내가 간다' 하는 것은 전부를 저버리는 자리입니다. 전부를 잃어버리는 자리인 것입니다. 안 그래요? '예수 믿고 우리 가정을 천당 보내겠다' 할 때는 가정을 찾을 수 있는 자리이지만, '예수 믿고 천당가겠다' 할 때는 누가? '내가 가겠다' 할 때 가정이 있으면 가정도 저버리겠다는 말입니다.
종교의 본질은 다시 한 번 분석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전부 다 자의적인 신앙표준을 갖고 있지, 그 자의에 덧붙여 가지고 '내가 이렇게 되는 것은 더 큰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서다' 하는 상대를 천국에 보내기 위해서 믿는 사람들이 있었느냐? 신앙의 본질을 우리가 다시 한번 헤쳐보게 될 때, 자기 구원을 위하여 피땀을 흘리고 죽음길을 갔지만, 나라를 천국 보내기 위하여 죽음길을 가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느냐? 그것을 넘어 가지고 '세계에 천국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예수 믿읍시다, 세계를 천국 가게 하기 위해서 예수 믿읍시다' 한 사람이 있었느냐? 그 세계라는 것은 나를 빼놓고 이룰 수 있어요? 각 개개인의 나를 합해 가지고 나라가 성립되는 것이요. 세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의 신앙자들을 보더라도 '천국 가자' 누가 가느냐? '나만 가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을 보면 '내 아들딸만 그저…' 자기를 중심한 기도만을 합니다. 자기 종교만 찾아요. 이놈의 종교가 자기 교회만 찾아요. 무슨 장로교 감리교…. 이거 다 때려부숴야 됩니다. 틀려 먹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있다면 그거 좋아하시겠어요? 우리 까놓고 얘기하자구요. 하나님의 뜻이 뭐냐? '김 아무개 너 하나만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래요? 그러면 예수 믿고 어떻게 할 것이냐? '천당간다' 천당은 언제 갈 것이냐? 죽어서 간다니까 자기 혼자로서 일방통행이라구요. 살아서 간다면, 자기가 구원을 받은 다음에 돌아가지, 천국에 갔으면, 그 다음에 좋으면 다른 사람들을 데리러 올 수 있는데, 이거 죽어서 가겠다니까, 전부 다 하나로 일방통행이예요. 요거 요거 따라지라구. 이런 신앙관념이 틀리지 않았느냐? 그런 종교는 하나님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도 훅 불어 버릴 것입니다.
한집에 살고 있는데 먹는 것도 자기만 잘먹겠다고 하고, 자기만 잘되겠다고 해보라구요. 그 가정에서 몰려 쫓겨나지 별수 있어요?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야 할 자식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만 잘 먹겠다고 하면 불효라구요, 불효.
여러분이 여기에서 개인이 머무를 수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걸 망각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서야 할 자리는 어디냐? 개인이 서야 할 자리는 국가 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개인이 서야 할 자리는 세계 위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은 세계의 제1인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냐? 안 그래요? 여러분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청년들에게 '당신, 앞으로 출세를 한다면 뭐가 되겠소? 하고 물어 보면 아무리 못났어도 '아!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지' 한다구요. 마음은 다 그렇다구요. 그러나 그것은 못난 사람이라구요. '한 나라 대통령으로 만족하나? 세계 대통령이 되지' 그렇게 욕심이 땅보다도 크다는 것입니다. 땅보다도 클뿐만 아니라 하나님보다도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떡 가슴에 모시고 벌떡벌떡하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까지도 자기 속에 집어넣으려고 한다구요. 그런 욕심 없어요? 사람이 설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은, 나 위에 내가 서 겠어요? 더 큰 것, 천국이라는 것은 이미 전체의 땅을 두고 말하는 것이요. 백성을 거느린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환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천국에 들어가지, 천국에서 환영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나만 천국 가겠다구요? 그런 사람에게 나라가 있을 게 뭐예요? 고독단신입니다. 그런 천국은 천국이 아닙니다.
영계에 가 보면, 옛날에, 혹은 신약상에 나타났던 훌륭한 사람이, 존경을 받고 순교를 당한 사람이 높은 곳에 갈 줄 알았더니 제일 비참한 자리에 가 있다는 것입니다. 죽을 때에 내가 이렇게 죽어야 천당간다고 생각하고 죽은 사람은 천당 못 갑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은 광증에 들려가지고 천당을 위하여 자살한 것과 마찬가지의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과는 달리 순교는 안 했을망정 고생을 하면서 믿고 간 사람이 '아! 나 하나 희생되어서 나라를 천국 만들고 수많은 사람을 천국 가게 하겠다' 한 사람은 천국에 가 있더라 이거예요.
우리는 신앙의 본질을 뜯어고쳐야 되겠습니다. 기독교가 그러한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많은 풍파가 생겼어요. 이 풍파를 타파해 버리겠다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입니다. 때려부수지 않아도 망하게 돼 있다구요. 그런데 왜 빨리 때려부숴야 되느냐? 망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전부 다 저버림을 당하기 때문에 이것을 때려부숴 가지고 구해 주어야 되겠다는 거라구요. 그렇다고 도끼로 때려부수라는 것이 아니예요.
'예수 믿고 천국 가자'가 아니라 '예수 믿고 천국을 이루어 놓고, 그 이루어 놓은 천국에서 보내어 주면 하늘나라 가겠다' 이것이 본래 하나님이 원하는 정상적인 신앙의 방향이 아니겠느냐? '나라야 망하든 말든, 세계야 망하든 말든 나 천국 가면 된다' 하는 것은 백정이라구요. 그런 목사들을 밥을 먹여 살려요? 오래지 않아 통일교회 앞에 추방당할 것이라 구요. 틀림없이 추방당합니다. 오래지 않아 자기들이 키우던 젊은 교인들한테 사지가 들려서 구렁텅이에 던져질 때가 올 것입니다. 기필코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건 공갈 협박이 아니예요. 여기에 목사들이 왔는지 모르지만 반드시 그렇다구요.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그런 면에서 하나의 대표적인 신앙을 하고 있어요. 역사를 망치고, 세계와 더불어 망해 들어가는 그런 종교를 타파해 버리고, 천국을 만들어 놓고 그 만들어진 천국이 공을 따라서 '당신은 이런 길을 가 주기를 바라오', 그 국가 민족이 '저 사람을 하나님 앞에 보내 주소, 천국 나라 보내 주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들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가 믿더라도 그런 사람을 좋아할 것이 아니냐? '내 교회' 그놈의 교회가 누구 총회장의 교회야? 누구 감독의 교회야? 어림도 없다는 거라구요. 이 악당의 무리들.
이제부터 우리는 공격을 해야 되겠다구요. 1972년이 지나가는 날부터 기성교회를 공격해야 되겠습니다. 뭐 우리가 힘의 대결을 하면 지는 입장에 서 있지 않습니다. 힘으로 대등해 가지고 무슨 면으로든 밀어뜨릴 수 있는 자주적인 역량을 갖추었습니다. 자! 누가 이기나 보자구요. 하나님은 공정히 판단할 것입니다.
여러분, 공적이요, 사적이라는 말을 하지요? 공적인 것이 어떤 것이냐 하면 전체를 위한 것이요. 사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냐 하면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사적인 것은 전체를 부정하고 자기를 위한 것이고, 공적인 것은 자기를 부정하고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냐? 그러면 신앙관에 있어 서도 자기를 두둔하고 공인하는 것이 사적인 신앙이요. 전체를 두둔하고 공인하는 것이 공적인 신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성교회와 통일교회를 비교해 보면 그래도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이 공적인 것에 더 가깝다 이겁니다. 통일교회 나쁘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기도할 때, '아이구, 내 아들딸 잘되게 해주소' 그런 기도는 하지 말라는 거라구요. '아이구, 내 남편 잘되게 해주소' 이런 시시한 기도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희생하면서, 통일교회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다르다 이거예요. 대한민국이 앞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날에는 대한민국이 희생해 가지고 대한민국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희생하는 사람은 자연히 중심존재로서 등장합니다. 그 가정에서 희생하게 되면 그 가정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희생하게 되면 아내는 완전히 남편 앞에 예속되는 것이예요. 이런 것을 우리는 알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여러분은 하나님이 찾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하는 것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거예요.
오늘날 미국을 봐요. 미국사회는 개인주의 사상을 가지고 끝까지 가다 보니 전부 다 나라도 뻥 넘어가고 친척도 뻥 넘어가는 거예요. '아이구 친척이 다 뭐야' 하게 되었고, 그 다음엔 '어머니 아버지가 다 뭐야. 나 낳을 때 당신들 좋아서 낳았지 날 생각해서 낳았어? 이렇게 되어 버렸다구요. 따지고 보면 그 말이 맞다구요. 언제 자기가 나올 줄 알고 기도 하면서 낳았나?(웃음)
그러니 그 말이 맞다구요. '그 아버지 어머니와 내가 무슨 인연이 있어? 동물과 마찬가지지 뭐' 딱 그렇게 됐다구요. 그러니 '어머니 아버지 뭐요? 그래 어머니 아버지도 집에 와서 밥 먹고 가려면 돈 내고 가소 그렇지 않으면 오지 마소' 하는 거예요. 전화를 해보고 '아들아 나 가도 되니? '예, 오시옵소서" '저녁밥을 부탁한다' '그러지요' 했는데도, 저녁을 부탁한다고 하고 와도 저녁이 무슨 저녁? 들이 먹으면서도 가만 있더라 이거예요. (웃음) 그러한 사상을 가진 사람은 그런 꼴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뭐냐 하면 남편과 아내도 서로서로 '너는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지 내가 너를 위해서 있지 않다' 이거예요. 이것이 전형적인 개인주의라구요. 이놈의 주의가 딱 갈라져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고층 아파트에는 어떤 사람들이 종합해 사느냐? 혼자 사는 남자 떼거리, 혼자 사는 여자 떼거리들 종합 집합소가 아파트라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별의별…. 그 남자면 남자, 자기 자신을 위해서 굳히고 사는 것이니 동물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좋은 사람들 끼리끼리 만나 가지고 살자' 해 가지고 서로 업어 가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개 돼지 같은 패들이 다 돼 버렸다는 겁니다.
그놈들은 망한다 이겁니다. 나라가 달아나고, 가정이 달아나고, 아들딸이 달아나고 다…. 나중에는 자기도 혼자 살 수 없으니 따라가는 거예요. 자기도 망하지 별수 있어요? 그렇게 가다 보니 '아이구 개인주의 사회인 미국이 좋은 줄 알았더니 미국이 싫다' 이래 가지고 전부 다 반항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구시대와 신시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하는데, 차원이 다르긴 뭐가 달라요? 하나는 직격탄을 맞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격탄을 맞는 것이니, 다 마찬가지 운명이라구요. 죽기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오래 가지 않아서 망하게 돼 있습니다. 이 망하는 미국을 통일교회가 구해 줘야 되겠습니다. 개인주의 사상을 뒤집어 박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개인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 씨알머리도 없느니라. 지금 동양에서 교육이라든가 도덕의 표준이 뭐냐? 선입니다. 선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침이나 저녁이나 전부 다 나를 위해서 살라고 하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예요? 아닙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누구든지 통일교회 지도자보다 더 나을 수 있는 지도자가 있다면 와서 맡으라고요. 지금 기성교회에서 누구 누구 한다지만 와서 맡으라구요. 그 대신 문을 열자 이거예요. 양떼가 자기 양떼야! 하나님의 양떼지요. 그 돼먹지 않은 것들이 전부 다 가로막아 가지고 쇠를 쥐고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딱 형무소와 같습니다. 빨강 벽돌로 문을 만들어 가지고 '나가지 말라, 내 밥통이다' 한 사람만 없어지면 이 내 밥통감….
다섯 사람만 빼가도 왕창 망한다구요. 제일 중요한 무리가 통일교회의 원리 말씀만 들으면 빠져나가니, 착착 빠져 나가면 착착 무너지겠으니, '아이쿠, 통일교회 대마귀, 대 사탄이…' 내가 대마귀 대장이 되었구만. (웃음) 그런 것 같으면 벌써 내가 죽었을 것이고, 통일교회는 벌써 망했을 텐데, 망하기를 바라는 패들은 망하지 않고 망하라고 한 패들은 망하게 됐습니다. 통일교회도 이제 명실공히, 내가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부러울 것이 없어요.
대한민국에서 나를 쫓아내도 나를 받아들일 나라는 얼마든지 있다구요. 현재 통일교회 여러분들이 반대해도 내가 얼마든지 갈 곳이 있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왜 통일교회 문선생님을 받아들이느냐 하면 자기 나라에 와도 손해 안 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 다 장사속이라고, 손해나지 않을 것을 뻔히 알고 있다구요. 자!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세계는 개인주의 세계가 됐습니다. 안 그래요? 거기에 반(反)해 가지고 '개인주의는 완전히 반대다' 하는 것이 자칭 공산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남아지는 것은 개인주의보다도 힘의 권을 가지고 남아지는 것이 공산당입니다. 지금 그렇다구요. 미국도 공산당한테 걸려 가지고 있습니다. 월남이라는 조그마한 나라 앞에 큰 나라가 걸려 가지고, 지금까지 발을 빼지 못하고 말려들어 가서 베트콩이 하자는 대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시시하다 이거예요. 그것을 보니 그런 미국을 민주 세계의 주도국가라고 믿고 모시고 따라왔다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 있어서 박 대통령이 한국적 토착화를 위한 민주주의라는 것을 부르짖고 나오는 것을 보니, 야! 그것 좋다 이거예요. (웃음) 그런 시시한 것보다 낫다는 거예요. 자주적 역량을 갖지 못하고, 자기의 권한을 찾아 세우지 못하는 그러한 패들…. 그렇다고 내가 여당을 지지하고 누구를 지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큰 사람이다 할 때, 큰 사람은 새빨간 것도 들어오게 할 수 있고, 노란 것도 들어오게 할 수 있고 흰 것도 들어오게 할 수 있고, 알록달록한 것도 들어오게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모든 것을 슬쩍슬쩍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미국에 가서 느낀 것은 '야 미국이라는 나라는 과연 큰 나라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십 종의 민족이 들어와 살거든요. 이들이 싸움 하지 않고 전부 다 하나되어 가지고 떡범벅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떡범벅이라고 해서 수수범벅이 아니라, 찹쌀, 보리쌀, 수수쌀, 무슨 쌀, 무슨 쌀 등등 종합 범벅 떡이라구요. (웃음) 그것은 한 가지로 만든 범벅 떡보다도 더 낫다는 거예요. 맛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 미국이라는 나라는 역시 크구나!' 그래도 기독교 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지탱했지, 개인주의 사상만 등장했더라면 산산조각이 나는 것입니다. 기독교 사상이라고 하는 박애주의 사상이 그래도 사회제도와 문화를 선두에서 끌고 가기 때문에 미국이 지탱하고 있는 것이지, 이것이 희박하게 되는 날에는 일시에 모래알이 된다는 겁니다. 지금 그렇게 돼 들어오고 있다 이겁니다. 지금 기독교가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져 나가는 제갈래 길을 가고 있다 이겁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마찬가지라구.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제각기 싸워 가지고 될 것 같아요? 싸움이 계속되고 망운이 뻗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좋기 위해서는 서로 위하는 데서만이…. 그것이 망운이요, 흥운이요?「흥운입니다」'단결하면 흥하고 갈라지면 망한다'는 것을 알긴 알지요. 어떻게 하여 단결할 것이냐? 그냥 단결되지 않는다구요. 서로 희생해야 단결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사랑은 희생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보다 희생하는 것이 사랑의 세계에서 보다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느냐? 자기를 위해서 죽었다면 무슨 구주겠어요?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다 하니 고마운 것입니다. 그 정신 하나로 세계 기독교 문화권이 형성된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찾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앞에서 말한 그러한 입장에서 개인을 중심삼고, 자기 종단만을 중심삼고, 자기 나라만을 중심삼고 나가는 사상과 그런 주의를 가진 종교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것은 큰 것을 위해서 희생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큰 것, 세계보다 제일 큰 것이 무엇이냐?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그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또, 그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데는 어떤 사람이 더 가치적인 희생을 하느냐? 앞으로 대통령이 될 사람과 더불어 희생하는 사람이 제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그가 나라를 위하여 죽을 곳을 가게 된다면 그들도 그곳을 같이 따라간다 합시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그를 따라간 사람들은 그와 더불어 영광의 자리에 나가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결국 결론이 뭐냐? 하나님이 한 나라를 찾고, 한 세계를 찾고자 하는데, 거기에 있어서 제일 높고 주인 될 수 있는 자와 같이 행동하고, 생사를 같이 결정해 가지고 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런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 이 우주 가운데 제일 훌륭하고, 제일 주인이 될 수 있는 자가 누구냐 할 때, 사람이 아니라구요. 사람으로 지배할 수 있는 때는 지나갔기 때문에 신(伸)이 있다면 그 신 중의 신이라고 할 때, 그분은 하나님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욕심장이가 되라고 가르쳐 주지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이거예요. 여기에서 '하나님을' 했지만 강조하기 위해서 '하나님만을' '만'자를 넣어야 되겠어요. 앞으로 우리가 성경을 만들면 원문에 없더라도 그 '만'자를 집어넣을 것입니다. 그것은 얼마든지 집어넣어도 좋아요. 그렇지 않아요? 예로서 귀가 못생겼지만, 귀걸이를 두툼하게 달아 놓으면 귀가 양반귀같이 보이는 거예요. 그럴 때는 귀걸이도 필요한 것입니다. 귀걸이를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형용사는 멋질수록 좋은 것입니다.
자, 그것을 보면 하나님이 계셨다면 할 일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내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를 위해서, 내 때가 되지 않았지만 내 때는 이런 때가 되고, 그때는 이런 때가 되기 때문에 나는 너희들에게 철칙같이 가르쳐 주노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열째 계명이 아니라 첫째 되는 계명이다' 첫째 되는 계명이 뭐예요? 제일 좋은 계명입니다. 그러면 제일 좋은 계명이 뭐예요? 제일 행복한 자리입니다. 제일 행복하려면 어떻게 돼야 하느냐? 제일 행복한 것이 혼자 될 수 있어요? 둘 이상이 되어야 되지요. 행복이라는 것은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어야 둘이서 행복을 꿈꿀 수 있지요. 안 그래요? 가정의 행복은 어머니, 아버지, 자녀가 있어 가지고 행복을 꿈꿔야 행복이지요. 나라가 있으면 주권자와 정부와 백성과 각 단체 기관들이 합해 가지고 행복을 꿈꿔야 참다운 행복이지요. '나 혼자 행복하면 된다' 그게 아닙니다. 가정이 있더라도 단체에 속해 가지고 그 나라와 하나되어 행복권을 만들지 않으면 전체의 행복은 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결국은 누구하고 행복의 주체와 행복의 대상이 되겠느냐? 사람하고가 아니라구요. 하나님하고 사람하고라는 겁니다. 사람끼리 주체와 대상이 될래요, 하나님하고 주체와 대상이 될래요? 우리 최대의 이상이 뭐냐 할 때, '나는 사람하고 주체와 대상이 되겠다' 그것은 싫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통일교회 책임자로서 나오면서 불신을 많이 받아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는 말이 '백두산 천지의 반석을 갈아 가지고 감자를 심어서 선생님을 봉양하는 일이 있더라도 전 선생님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하더니 웬 걸, '죽음길을 가야 되겠다' 할 때는 '어, 생각을 좀더 해봅시다' (웃음)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라구요.
사람은 동풍이 불게 되면 서쪽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입니다. 안 그래요? 또, 서풍이 불게 되면 동쪽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질이요. 본성에 가까운 것이더라.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믿을 수 있다?「없다」 있다?「없다」 여러분들은 믿을 수 있다?「있어요」(웃음) 있다예요, 없다예요?「있다요」 정말이요? 아, 내가 그렇게까지 이야 기했는데 정말이라구? 그러니 또 속아 달라는 말이라. (웃음)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분이 있다면 누굴 믿겠느냐? 사람은 못 믿어, 사람은 못 믿는다구요.
그러면 단 하나 믿을 수 있는 분,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만은 한번 절대적으로 믿어 보자, 그런 생각 안 할 거예요? 그만큼 속아 왔고, 그만큼 믿을 수 없는 이 정상세계에 있어서 하나님만은 내가 믿어 봐야 되겠다. 또 하나님도 그걸 알고 있다는 거예요. 세상에서는 허덕이고 낙망하고 절망하기 일쑤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지내 보고 너무나 잘 아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교육의 표어를 세우는 데 어떻게 세울 것이냐? '너희들 그러지 말라. 내 말만 들어라. 사람과 사람끼리는 못 믿는 거야. 그렇지만 절대의 주체 되는 하나님만이…. 오직 최후로 나 한번 믿어줘 봐라'고 할 것입니다. 믿는 데는 어떻게 믿어야 하느냐 하면 내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다하는 데는 삼천만 민족보다도 더 하라는 것이요. 30억의 인류보다도 더하라는 것입니다. 다하라는 것이예요? 네 마음을 다하고…. 더 하는 것보다도 다하는 것입니다. 다르다구요.
자기 남편이나 아내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에 대해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나라의 주권자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것은 클수록 가치가 있는 것이요. 클수록 제일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높은 분은 최고로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네 마음을 억만분지 일이라도 남겨 놓고 해라' 그거예요? '억만분지 일이라도 남기지 말고 그것을 넘어서 더 해라' 하는 것입니다. 넘을수록 좋다 이겁니다. 그러려니까 우리는 30여 억의 인류를 넘어서, 역사이래 수천 억이 왔다갔던 그 인류를 넘어서 해라 이거예요. 그런 말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교인들이 아무리 잘 믿더라도 온유겸손해야 됩니다. (웃음) 온유겸손 하기가 어렵겠지? 왜 어려우냐 그걸 알아야 돼요. 그 한계선을 못 넘었으니까. 지금 인천까지 마라톤을 한다 하게 된다면, 뛰는 도중에 일등으로 간다고 해서 '내가 일등이다' 해 가지고 중간쯤 뛰다가 온 것이 일등이예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건 미친 녀석이라구요. 있는 힘을 다해서 '요이 땅' 한 것이 일등이라고 해서 일등이다. 그렇게 되나요? 역사가 달리고 있는데…. 역사가 달리고 있으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꾸준히 달려라 이겁니다. 끝까지 달려라 이겁니다.
'끝까지 참는 자가 지옥간다' 그랬어요?「천당갑니다」 끝까지 참고만 있으면 되나요? 참고 견디는 자가…. 견디는 자는 인간 가운데 맨 꼭대기 사람만 남았어도 그 사람을 밟고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꼭대기까지 직접 밟고 올라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와서 천국을 이루었어요? 예수님의 등을 타고, 예수님의 꼭대기까지 올라서야 되지, 예수님을 믿어 가지고만은 안 된다는 거예요.
이런 말을 한다고 기성교회에서는 '어 이단 마귀, 성경에 그런 말이 어디 있어? 하겠지만, 성경이 무슨 성경이예요. 이론적으로 따져도 그렇지 않느냐 말이예요. 성경보다 앞서는 것이 이론이라구요. 성경이 이론적으로 되어 있어요? 말로만 하나님은 뭐 어떻고 '이론이 필요 있나? 믿으면 되지' 한다구요. 그게 좋다구요? (웃음) 믿어 가지고만 된 교회가 있나요? 그런 교회는 망해요! 예수의 감투를 못 쓰게 뒤집어엎어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그 감투를 못 쓰게 뜯어 버려야 되겠습니다. 성경 66권을 다 뜯어 버려야 되겠다구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썼겠어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고 했겠어요? 일등 되는 사람을 찾아야 되겠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상에 있어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한 사람이 있어요? 하나님의 뜻은 인류를 구하는 것입니다. 인류 가운데는 수많은 나라가 있지요? 대한민국도 수많은 나라 가운데 한 나라가 됩니다. 여러분도 수십 억 인류 가운데 한 사람이라구요. 안 그래요? 그러면 하나님이 볼 때 현재의 사람만 보나요? 영계가 있다면 영계의 사람은 안보나요? 사람이란 건 다 보는 거예요. 그것을 다 동원해 가지고 뭘할 것이냐? 천국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았어요?
그러면 하나님의 섭리역사상 제일 일등 될 수 있는 효자의 이름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누구예요?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라고 할 거예요. 그럼 예수가 일등했어요?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다구요. 십자가에 죽은 그 목적은 거룩합니다. 예수가 죽어 가지고 뭘하자는 거예요? 인류를 전부 다 죽이기 위한 거예요? 죽은 목적은 전부 다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살려 가지고 뭘하자는 거예요? '내가 너희를 위해서 죽었으니 너희들은 내 무덤을 지켜 달라'고 무덤을 지키는 산지기를 만들려고 그래요? 생각해 보세요. '내가 너희를 위해서 죽었으니 내 무덤을 지키는 초소꾼이 되어라' 이거예요? '내 무덤을 옆으로 밀어 놓고라도 내가 찾고 싶었던 가정을 살려 주려무나' 그거 아니예요? 틀림없는 말이라구요. 그것이 틀렸다고 말하는 녀석은 바로 사탄이고 이단이라구요. '내가 원하던 내 나라를 살려 주지, 내 무덤은 왜 지켜 이 녀석아! 이 미욱한 녀석아, 산지기가 네 책임이야?' 라고 하지 않겠어요? 사랑하는 남편이 죽었는데 남편의 친구가 찾아와서 그저 '야 왜 죽었니 나도 너와 더불어 죽겠다'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혼이 나타나 가지고 '이 녀석, 내 아들딸이 지금 죽게 되었으니, 나 보고 울지 말고 내 아들딸을 도와줘라' 할 거예요. 그게 친구의 사명이 아니냐? 그렇지 않겠어요?
마찬가지라구요. 교회를 못 지키더라도 좋다구요. 기독교를 못 지키더라도 좋다구요. 기독교에 가야만 천국이 있어요? 천만에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구요. 교회당을 못 가더라도 교회가 이루어야 할 나라를 찾아 이루기 위해서라면 주일날이 아니라 무슨 날이라도, 오경을 다 범하는 자리에 있더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주일날을 지키지 않더라도 그 사람은 천국 가고도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틀렸어요?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야! 주일날 모여 가지고 예배 보는 것이 내 소원이다' 했다면 그 예수는 망할 예수입니다. 예배보는 것도 좋지만 예배보는 것은 교회보다도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정신을 무장하고 훈련을 쌓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가 바라는 소원이 아니겠어요? 예수가 찾고 있는 나라를 위해서 활동해 주는 사람을 원하지, 교회만을 위해서 활동하는 사람을 원하겠어요?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교회보다도 나라를 구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대교를 세운 것은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자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게 되면 이스라엘 나라를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구해 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은 개인을 위한 뜻, 가정을 위한 뜻, 종족을 위한 뜻, 민족을 위한 뜻, 국가를 위한 뜻, 세계를 위한 뜻 이렇게 올라갑니다. 개인을 위한 뜻 가운데 가정이 있을 수 있어요? 가정을 위한 뜻 가운데는 개인이 안식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개인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보다 못하나, 낫나?「낫습니다」 낫다는 말입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가정을 희생하면, 그 구한 하늘나라가 오게 되면 그 가정도 복을 받기 때문에, 구원받기 때문에 보다 선하고 보다 나은 것이 아니냐? 이런 원칙이 서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가정을 버리고,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비운에 서 있는 삼천리반도 이 나라 이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하나님 앞에 서고, 민족의 해방이 벌어지면 그 나라 그 민족은 애국애족하는 사상을 가지고 어떤 가정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정의 길을 개척한 그 가정을 받들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걸 틀렸다고 대한민국 백성이 어떤 주권자의 이상을 따라갔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믿다가는 가정 파괴다' 이런 소문을 내고 악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가정과 자식을 떼어 버리고 살고 싶겠어요? 그 누구도 그건 원치 않아요. 사람 가죽을 쓰고 그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여기 서 있는 문선생도 그것을 원치 않는다구요. 부모를 왜 버리고, 처자를 왜 버리고, 자식을 왜 버려요? 또 일족을 왜 버릴꼬? 일족, 처자, 자식보다도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남과 전체를 위해서, 그것을 다 희생시켜 나라를 구하려고 나섰기 때문에 역사는 여기에서 새로운 이상세계로 전진할 수 있는 패턴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 길에서만이 소망이 있고, 그 길에서만이 역사가 빛나는 것이라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통일교회를 믿어 가지고 내 배를 위하고, 내 일신의 영광을 위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나가 가지고 누구 못지 않는 사업가가 되었더라도 일류 사업가가 됐을 것이고, 공부를 했어도 학박사 학위를 몇 개는 땄을 거라구요. 누구에게 지고 싶은 마음은 절대 꿈에도 없는 사나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질을 능히 가지고 있다구요. 내가 못 하는 것이 없다구요. 팔방으로 능란한 소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나이가 욕을 먹고 싶어서 욕을 먹어요? 내 눈을 보라구요. 내 코를 보라구요, 욕을 먹어도 좋아하겠나. 어림도 없습니다. 천리를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가야만 인생의 보람있는 길이 나타날 것을 알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다 보니 망할 줄 알았더니 망하지 않고 이제는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 땅 위에 수많은 성인들이 왔다 갔지만, 예수님 자신도 죽게 될 때 열두 제자를 중심삼고 믿었던 세 제자도 전부 다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 문선생이 '죽자' 하게 되면 함께 죽을 사람은 그래도 예수를 따르던 무리보다 많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어디 여러분들, 선생님이 '죽자' 하면 함께 죽겠어요?「네」 정말이야?「네」 나같이 못난 선생님을 따라와야 아무런 국물도 없을 것인데 따라오겠어요? 당장에는 아무런 보답도 없지만 망하는 역사의 전통적 사상으로서 남아질 것을 이 못난이들도 알고 있습니다. 못났다고 한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못난 사람이 동정을 받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구요.
자! 이제 결론을 짓자구요. '우리 교회만을 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는 그런 종단은 망해 가느니라! 하나님은 기필코 그런 종단을 망하게 할 겁니다. 기독교는 못나고 통일교회는 잘났다고 선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좋고 나쁜 것은 지나가면 자연히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알겠어요? 잘나고 못나고 자랑할 것이 없고 선전할 필요도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선전 안 하고 가만히 있다구요. 문선생이 청파동 그늘 아래서 허리 부러진 호랑이 모양 가만히 있다구요. 별의별 욕을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고, 선생님은 갈 길이 바쁩니다. 욕을 하는 사람 거 누구냐?
겨울이 되거들랑 서북풍이 불어와야 되는 것이고, 여름이 되거들랑 남동풍이 불어야 격에 맞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동쪽으로 가려고 하는 사람들한테는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야 갈 길이 쉬워지고, 또 서쪽으로 가려는 사람들한테는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야 서쪽으로 방향을 잡기 쉽습니다. 동쪽으로 가야 되겠다 할 때는 하나님이 서쪽에서 바람을 불어대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하! 내가 기성교회에 관심 갖지 못하게 '전부 다 썩어질 것이니 그거 다 버리고 전부 관심을 갖지 않던 일반 백성에게 관심을 가져라' 하는구나…. 하나님이 보호하사, 감사합니다.
기성교회는 뒤에 두고 삼천리 반도를 찾아간다! 가는데 어디로 가느냐? 서울에서 반대하니 할수없이 지방으로 간다. 그래서 우리가 지방으로 가는 거라구요. 지방에서도 어디로 가느냐? 제일 못난 노동자, 농민에게 갑니다. 왜? 선한 사람은 이 땅 위에서 못 살기 때문에…. 아이코, 감사합니다! 이렇게 가자는 것이 통일교회식입니다. 알겠어요? 그렇다는 거예요.
바람이야 부는 것이니 뿌리를 두고 나타나지 말라는 거예요. 자꾸 세계로 부니 30여 개국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여러분, 일대에 종주라면 몰라도 교주라는 말로 내가 지금 불림받고 있어요. 내가 문교주란 말 하던 가요? '나 문교주' 이런 말 들어 봤어요? 내가 교주라는 말을 하라고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교주라는 것을 누가 붙였는지 모르지만 지금 붙여졌다구요. 그러면 기독교의 교주는 누구냐? 예수님이고. 통일교회 교주는 누구냐? 문 아무개고. 유교의 교주는 누구냐? 공자라는 양반이고. 불교의 교주는 누구냐? 석가라는 양반입니다. 그 양반들보다도 일대에 있어서 성공한 사람은 통일교회 문선생밖에 없습니다. 없다구요! 그런 의미에서는 다른 교주보다 선생님이 나을 것입니다. 낫다는 것이 아니라 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나을지 모른다는 말과도 다 통한다구요. 생각해보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옛날 예수가 로마 사람들에게 '야! 내가 갈 테니 차를 준비해라' 한다고 '예이' 했겠어요? 안 된다구요. 그러나 선생님은 현대의 로마 같은 나라가 미국인데, 미국에다 '야 내가 갈 테니 차를 준비하라'고 하면, '예' 하고 준비하게끔 만들어 놓았다구요. 독일 사람들이건 원수인 일본 사람들이건 '집이 필요하니 집을 사라' 하면 '예이' '너의 집을 팔아서 사라'고 하면 '예이' 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게 되면 성인 레테르를 가진 수많은 교주들보다도 일대에 있어서는 내가 낫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통일교회 교인들은 뒷맛이 좋지만. 기성교회 교인들은 기가 막힐 것입니다. 기가 막혀도 할수없다구요. (웃음) 이렇게 선전 한 번 하고 넘어갑시다. 따분한 이야기 하기가 힘드니까 이런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야 내가 마음이 좀 풀린다구요.
여러분이 이제 알아야 할 것은 세상에는 이제 믿을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돌아서든가, 비약을 하든가 하라고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인데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큰 고개를 넘어갔다가는 큰일난다 이거예요. 그러니 통일교회가 말하기를 아예 그러지 말고 복귀를 해라 하는 것입니다. 복귀는 어떤 복귀냐? 에덴 복귀다. 에덴은 어디냐? 타락하지 않은 아담이 있는 곳이다. 그러면 아담의 자리는 어디냐? 하나님과 일체된 곳이다. '하나님!' '응? 왜 그러니?' 하며 하나님과 일문일답하며 속삭이는 곳이다, 그러니 그곳으로 복귀하자, 돌아가자 하는 것입니다. 그럼 돌아갈 수 있는 한계점이 어디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곳입니다.
여러분, 인륜이 있어요. 인륜 도덕을 말하지요? 인륜은 무엇을 통해서 형성되느냐 하면, 그것은 정(情)을 통해서 형성됩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 아버지, 뭐 가족 관계라든가, 도덕 관념이라든가, 사회제도라든가, 질서라는 것은 전부 다 정서적인 면입니다. 정을 먼저 느낀 그것이 오래 됐든가 차원이 높든가 하면 거기에 머리를 숙여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돼요. 인륜 형성의 동기는 무엇에서부터냐? 정에서부터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서 인륜은 시작됩니다. 그렇지요?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데서 참다운 인간 관계는 성립되는 것입니다. 또,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데서,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데서 인간 관계가 맺어진다, 그렇지요? 이 사랑을 빼 버리면 인류는 전부 다 모래알이 되는 것입니다. 인륜의 형성을 반죽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틀렸어요, 맞았어요?「맞았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최고로 희망하는 것이 무엇이냐? 인륜이 문제가 아니라, 인륜을 묶어 줄 수 있는 사랑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인륜이 있으면 인륜은 어디서 남아져야 되느냐? 인정을 통해서 남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도 인정이요, 아버지의 사랑도 인정이요, 자식이 부모에 대한 사랑도 인정이요, 형제지간에 사랑하는 것도 인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륜은 인정을 벗어나서는 형성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륜과 인정은 내외의 관계입니다. 정이라는 것은 출발이요. 목적과 통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계 22:13)"는 말은 뭐냐? 시작과 끝이 될 수 있는 말, 알파와 오메가가 될 수 있는 말, 처음과 나중이 될 수 있는 말이 무슨 말이냐? 그런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생명의 알파가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가 아니라구요. 사랑이 먼저입니다. 사랑을 통해서 생명이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파는 뭐냐? 생명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리고 오메가는 뭐냐? 이것도 생명이 아니라구요. 즉, 어떻게 내가 잘살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내가 잘 사랑을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과 나중을, 시작과 끝을 이어 가지고 출발할 수 있고, 또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하나님이란 무엇이냐? 거룩한 사랑의 본질이라고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그러한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일체가 될 것이냐? 인연을 가지고? 아니라고요. 인간세계에 인륜이 있고 인정이 있듯이, 하늘에도 천륜이 있고 천정이 있을 것이 아니냐? 그렇지요? 그러면 예수라는 분이 어찌하여 인격자냐? 인륜을 통한 인정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천륜을 대신해서 천정을 위하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륜을 따라가는 천정과 인륜을 따라가는 인정은 다릅니다. 다르기 때문에 세상만사는 통일이 될 수 없다 이거예요. 이것이 잘못되어 타락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인정을 따라 인륜의 길을 어떻게 가고 있느냐? 그것은 전부 다 나를 중심삼고 가고 있다 이겁니다. 나를 중심삼은 정을 추구해 가는 것이 인륜입니다. 그러면 천륜은 어떻게 가는 것이냐? 남을 위주로 해 가는 것입니다. 다르다구요. 그러므로 천륜을 받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나를 위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위하는 사람입니다. 남을 위해 사는 사람 외에는 선한 사람이 없습니다. 보라구요. (앞에 있는 사람을 때리시며) 네가 맞았지만 전체에 아주 자극적인 표식이 되었기 때문에 선하다고 할 수 있는 거라구. (웃음) 그렇지 않아요? 어느 집안에서 맞는 자가 있어요. 그 자리는 식구들을 위해 피땀을 홀리면서 희생 하는 자리입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소모되면 소모전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항상 참되게 주면, 참되게 받는 것이 천리입니다. 천륜은 거짓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앞에 참다운 것을 주게 된다면 누구든지 그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통일교회 문선생님 좋아하나요, 안 좋아하나요.?「좋아합니다」'이놈의 자식들아, 좋아하지 말라' 하며 아무리 욕을 해도 좋은 것을 어떻게 해? (웃음) 그러면 여러분, 어머니, 아버지, 남편이 몽둥이로 즉사 하게끔 때리고 나서 '그래도 통일교회 문선생이 좋아? 하면 '아이구, 손 좀 닦고 나서 물으시오!' (웃음)
통일교회에 가게 되면 문선생에게 반하느니, 전기 장치를 해 달라붙게 만들어 놓았느니 어떠니, 말이 많았습니다. 또 통일교회 문선생이 미남자라서 홀딱 반한다는 말도 있었어요. 내가 미남자요? 내가 생기기도 이렇게 생겼다구요. 뭐 보기 싫지는 않지만 눈은 쪼그마하고, 코는 이렇게 생겼고, (웃음) 성격을 보게 되면 참 급합니다. 칼날 같이 전부 다 도려 먹으려고 하는 성격이라고요. 누구한테 반대를 받아 가지고는 밤잠을 못자는 사나이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나이가 수십 년 동안 반대를 받고도 가만히 있는 것은 누구한테서 배웠느냐? 그것은 하나님한테 배웠다구요.(웃음)
여러분, 좋은 쇠를 만들기 위해 달구려면 풀무질을 하지요? 여러분도 풀무질 알아요? 대장간에서 달군 쇠를 두드릴 때 소리가 나지요. 뚜덕 뚜덕 뚜덕. 쇠를 달구면 녹아 없어지는 거 아니야. 10년이면 10년, 그 기간이 길수록 좋은 쇠가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우리 통일교회도 그런 식이라구요. 녹지 말라는 거야. 어떻게 되든, 지치고 지치더라도 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되 방향을 바라보고 '아이구 나 죽는다' 이렇게 죽으라는 거야. 지치더라도 죽지 말라는 거야. 끝까지 녹지 않고 남아지는 쇠는 나쁜 쇠가 되나 보십시오? 그렇지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천륜과 인륜, 천정과 인정이 어떻게 된 것이냐? 인간의 소원이 무엇이냐? 인정을 따라 천정과 박자를 맞추고, 인륜을 따라 천륜과 통관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나님이 동으로 가시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동으로 가면 얼마나 좋겠느냐? 또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따라 나도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렇게 되었다면 오늘날 인간에게 종교도 필요없는 것이요, 이런 세상살이도 필요 없었을 것인데…. 이렇게 되는 거예요.
왜 내가 어머니 아버지를 믿고 따라 나왔고, 그의 키움을 받고 그 전통을 이어받아 가지고, 생을 살려는 데 있어서 천륜을 추구해야 되고, 천정을 따라가야 되느냐? 천륜 가운데 있고, 천정 가운데 살아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인륜과 인정이 천륜과 천정에서 이탈되고 이율배반된 환경이 왜 생겨났느냐? 이렇게 된 것이 타락이라구요. 이것이 이탈되었으니 갖다 맞추어야 되겠습니다. 맞추는데 '하나님, 조금 기다리소' 할 수 있어요? 안 됩니다. 천륜은 가기 때문에 갖다 맞추어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위해 가느냐? 하나님은 세계를 위해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은 무엇을 위해 간다구요?「세계를 위해서요」하나님의 뜻은 세계를 구하는 것이지 대한민국만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뜻 앞에 세워 세계로 가는 하나님의 뜻을 돕겠다 할 때에는, 대한민국을 위해서 가는 길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종착점은 어디냐? 세계의 끝과 하나님이 상봉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어떠한 종교를 중심삼고, 기독교면 기독교를 중심삼고 그 안에서 예수를 모셔 가지고 혼인잔치를 하는 그런 시시한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의 목적점은 역사성을 중심삼은 세계관적인 사상을 대표할 수 있는 이상적 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뭘 할 것이냐? 천상천국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천국을 완성해 가지고, 그 완성된 천국인들이 받들어 '당신은 우리 만민을 대표하여 천상천국에 가 주소' 할 수 있는 소개장을 받아 가지고 가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구원관입니다. 이 사상이 얼마나 멋져요? 멋지지요? 여기서 말하는 사나이는 멋지지 않지만, 지금 말하고 있는 통일교회 사상만은 멋지다 이거예요. 이 사상을 가지고 세계가 한 번 움직였다가 떨어지더라도 또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단법석을 하고 반대하더라도 '밀고 나가자' 이래 가지고 가다 보면,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게 되면 죽은 것은 썩어질 것이고, 산 것은 자라게 마련이라구요. 그렇지요? 바람이 불고 세월이 가면 갈수록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이 같이하는 것은 흥할 것이요, 하나님이 같이 안 하는 것은 망할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던 수십 년 기독교 잘 됐다구! 아직도 우리 통일교회 십대 고등학교 학생들이 기성교회 목사에게 세 번만 정문으로 찾아가게 되면 '아, 정문으로 온다' 해 가지고 도망갈 겁니다. 국민학교 학생, 중학교 학생들을 보고도 뒷문으로 도망갈 거라구요. '아이구 어쩌면 저렇게 악착같애! 문선생이 교육을 잘 시켰지…' 내가 교육을 잘 시킨 게 뭐 있나. 그들이 잘 태어났지, 그것이 내가 교육시켜서 되나? 자기 선조가 몇천 대부터 통일교회 문선생을 만나 가지고 내가 뭐 한 번 해야 되겠다고 도를 닦아 놓은 터전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되느냐? 그 길을 도로 가야 되겠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 목사와 통일교회 고등학교 학생들 중 누가 낫느냐? 통일 교회 고등학교 학생들이 낫습니다. 무엇에 있어서 더 났느냐? 세계를 사랑하고, 나라를 구하는 데 있어서…. 피를 팔아 가지고라도 나라를 사랑하자는 거라구요. 밥을 먹을 것이 없으면 노동판에 가는 거예요. 그것이 없게 되면 피를 팔아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싸우는 거예요. 이런 비참한 역사가 숨어 있다구요. 이 거룩하고 숭고한 희생의 대가를 유린하는 여러분이 되었다가는 벌을 받아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선생님은 그 길을 모면하기 위해서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이용해 먹는 기생충이 안되기 위해서 내 실력을 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안 해본 일이 없다구요. 노동판에 가면 무엇이든지 하는 거라구요. 염전 판에 가 가지고 가대기까지 다 배운 사람입니다. 자주적인 권한을 가지고 물질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나이가 되라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임자네들이 도와주지 않아도, 한꺼번에 통일교회가 다 박살이 나서 나 혼자 남아도 또 간다구요. 그렇게 갈 때는 차원이 높은 자리에서 갈 것입니다.
한국이 선생님을 버리게 되면 일본을 중심삼고, 세계를 중심삼고 더 좋은 나라로 가는 거예요. 쫓아내면 망할 줄 알지만 더 좋은 곳에 간다구요. 여러분, 금년에 통일교회 문선생 쫓아내고 싶지 않아요? '우리 통일교회 문선생 선거합시다' 해서 선거해 가지고 뽑아 놓아도 통일교회 선생 자리는 해먹을 사람이 없다구요. 해먹으라고 해도 해먹지 못한다구요. 한 시간도 못 가서 걸려 나가자빠진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제일 어려운 자리라구요.
선생님이 열 시쯤 다른 곳에 가서 얘기할 데가 있는데 이거 몇 시쯤 됐어요? 자, 제목으로 돌아가자요. 하늘이 찾는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들이냐? 이제는 알 거라구요. 자기 아이들이 죽게 되었다고 나라야 망하든 말든 나라의 금고짜박지라도 갖다가 우리 아이들을 살려야지 하면, 그 나라는 망하는 것이 원형이정입니다. 그렇게 해서 망하지 않는 나라를 찾아보라는 거예요. 망해요, 망합니다. 망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이 사람은, 사람들을 통일교회에 전도는 못하더라도 나라를 위해서 가는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해야만 나라가 사느니라! 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한계선에 왔습니다.
종교라면 통일교회와 같이 이렇게 악착같아야 됩니다. 공산당보다 더 무섭다는 소문을 듣고 있어요. 승공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세계가 공인할 수 있는 때에 들어왔다구요. 무서운 공산당 앞에 칼침을 맞을 각오하고 나선 거라구요. 왜? 하나님이 살아 있는데, 살아 있는 하나님을 옆에 놓고 그 아들에게 '야, 너의 아버지 죽었다'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구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그런 불한당이 어디 있어? 그런 소리를 듣고도 꺼벅꺼벅 '좋습니다' 하는 기독교는 망할 패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시시한 패가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세계로 깃발을 들고 나설 것입니다. 말로 하자면 말로 하고, 일대일로 하자면 하자! 생명을 각오하고 하는 것입니다. 또 단체적으로 하자면 하자, 너희 단체가 깨지기 전에 우리 단체는 깨질 수 없다!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일본에서 일본 공산당하고 '공개토론을 하자. 너희들의 사상으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자신을 가지고 평화공세를 취할 수 있으면 하자. 너희들이 자신을 갖고 나와서 하자' 이러고 있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그들이 코너에 몰리기 시작했다구요. 처음에는 우습게 알았는데 우리가 전국적으로 몰아대니까 '아이쿠, 큰일났다' 해 가지고, '우리 사무장이 통일교회 승공연합 지방 책임자와 공개토론을 한다는 약속을 했는데 왜 이름을 인쇄해 가지고 삐라를 붙이느냐? 그것이 사기가 아니냐? 해 가지고 고소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고소 사건을 일으킨다는 것은 실력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됐다. 고소해라 한 거예요. 북해도에서도 하고, 전국적으로 다 해라 이거예요. 우리가 무섭긴 무섭지요. 요전에 한국 대표가 남북조절위원회 북한측 위원장을 만나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제발 남한에서 승공이란 말을 하지 마소' 그랬다는 거예요. 박성철이는 '승공이란 말은 그만두소. 요걸 어떻게 없애야….' 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것은 통일교회를 때려 잡으라는 말이라구요. 국제 승공연합을 때려 잡으라는 말입니다. 지금 문제가 되어 있다구요.
기성교회에서는 통일교회가 문제가 돼 있지요? 내가 어떻게 보면 참 박복한 사람 같아요. 내가 뭘 하려면 전부 다 반대구만. 무슨 회사를 하나 하는 것도 이단이래요. 인삼차 공장을 하나 만드는 데도 이단, 총 공장을 만드는 데도 이단, 석재 회사를 하는 데도 이단, 우리 어린이 무용단을 만드는데도 이단, 전부 다 이단이라 합니다. 국제승공연합을 만든 것도 이단이라고 했지, 한선무용단 만들 때도 얼마나 반대한지 모른다구요. 치안국에서 모가지 짜르려고 하고, 정보부에서 모가지 짜르려 하고, 그래도 안 되니까 공안과에 넘겨 가지고 모가지를 짜르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실력과 실적을 가진 사람은 모가지를 못 짜르는 거라구요.
내가 패자의 서러운 잔을 마시는 그런 졸장부와 같은 사나이로 보일는지는 모르지만 실력과 실적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문 아무개' 하면 천하가 무서워합니다. 그렇다고 배때기 째는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일본에 갔었는데, '이번에 또 미스터 문이 들어왔다'고 출입국 관리국에서 대번에 아는 거예요. '아 미스터 문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뭘 하고 가노'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갔다가 오는 날에는 일본 전국에 사건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뭘하고 갈꼬' 아닌게아니라 또 사건을 일으켜 놓고 왔다구요. '야!저 녀석이 들어왔다 가기만 하면 사건이 벌어지는군' 한다구요.
선생님이 미국에 가도 사건이 벌어진다구요. 이번에 들어가서도 사건을 일으켜 놓고 왔다구요. 뉴욕 타임즈지와 워싱턴 포스트지에 10만 달러 현상금을 걸고 들이 지져 놓았더니 '야,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야!' 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반대하기 전에 호기심이 들어간다 구요. '야! 한 번 만나 보면 좋겠다' 한다구요. 그렇게 선전 공세를 취해 놓고 상원의원들에게 전화하여 '나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인데 좀 만납시다' 하면 '아! 당신이 그러십니까?' 한다구요. 그렇게 하여 바쁘기 때문에 일주일 이내에 열 명 이상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그것을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 개방된 나라입니다. 이번에 가게 되면 많은 사람을 만날 계획입니다.
여러분, 내가 그런 자리에 서고 싶어서 서는 것이 아니라구요. 뜻이 그렇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 목이 짤리더라도 가야 하는 겁니다. 또 여러분의 목이 짤리지 않아도 후손의 모가지가 짤리니 가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럴 바에는 내 생전에 여러분을 고생시키자, 공적인 입장에서 희생시키자 하는 것이 철칙입니다. 그런 말과 그런 책임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녀를 고생시키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고, 제자들을 고생시키고 싶은 지도자가 어디 있겠느냐? 이거예요. 그렇지만…,
박 대통령도 그렇지 않아요? 민족이 단결해 가지고 정책방향에 희생하라 이거예요. 나라를 위해서는 가정을 희생하라 하는 관이 아니냐?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늘을 위해서는 민족이 희생하고, 세계가 희생할 수 있는 세계가 되면 그 세계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되는 거라구요. 그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무리, 천정과 천륜을 표준삼고 인정과 인륜이 있을 때 어떤 것을 바꾸어야 하겠어요? 천정을 바꿔야 되겠어요, 인정을 바꿔야 되겠어요? 또 국법을 뜯어고쳐야 하겠어요, 가법(家法)을 뜯어고쳐야 하겠어요?「가법요」 그것과 마찬가지라구요. 천법을 뜯어고쳐야 되겠나, 인간의 법을 뜯어고쳐야 되겠나?「인간의 법요」 법은 하나밖에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천륜과 천정을 따라가야 되겠느냐, 인륜과 인정을 따라가야 되겠느냐? 어떤 것을 따라가야 되겠느냐?「천륜과 천정요」 인륜과 인정이 천륜과 천정에 딱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인간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버지요, 너희들은 자식이다' 했습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인정과 천정이 합할 수 있는 최고의 종착점이 어디냐? '하나님은 아버지고 인간은 아들이다' 이거예요. 고마우신 말씀입니다. 천정은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종적인 심정의 기준이요, 인정은 횡적인 심정의 기준입니다. 집을 지을 때 수평만 잡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수평을 잡는 것도 본래 종적인 기준을 세워 놓고 잡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돼요. 수평을 세워 놓고 종적인 기준이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종적인 기준이 생겨나 가지고 수평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뭘 봐서 알 수 있느냐? 나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무를 보라요. 순이라는 것이 애초에 이렇게 옆으로 뻗어요? 종대, 종적인 기준을 세워 놓고 뻗는 거라구요. 이것이 똑바르려면 이 뻗어지는 것이 같아야 똑바르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찌그러지면 이렇게 꼬부라지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돼 가지고 똑바로 가지를 쳐 뻗어 나가면 그 나무는 꼬부라진다?「안 꼬부라진다」그렇게 되려면 옥토에 심어지는 나무의 씨가 돼야만 꼬부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꼬부라지는 것은 왜 꼬부라지느냐? 뿌리가 바위 위에 있으면 거기에 소모가 많이 되기 때문에, 바위에 의해 가지고 나무는 꼬부라지는 겁니다. 그 고비를 지나면 뿌리가 다르게 꼬부라지기 때문에 나무도 그렇게 꼬부라지는 것입니다. 옥토가 있어야 직선으로 뿌리를 박기 때문에 곧은 나무가 자라게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를 가만히 보면 오불딱꼬불딱하다구요. 말 중에 오불딱꼬불딱이라는 말 있어요? 이것은 통일교회식 말입니다. 통일교회의 역사를 보면 오불딱꼬불딱하다구요. 오불딱꼬불딱하지만 소나무 자체에 변질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소나무로서 오불딱꼬불딱하면 그 자체는 안되지만, 씨를 받아 가지고 옥토에 심는 날에는 오불딱꼬불딱하지 않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만신창이가 되어 누더기 보따리를 짊어졌지만 너희들만은 똑바른 옥토에 심어져라' 이거야. 여러분들 앞에는 핍박의 길을 내가 앞에서 제거 시키지 않느냐? 자녀들을 시키면 안 되기 때문에 시달리는 거라구요.
그래서 천정과 인정이 접할 수 있는 곳은 어디냐? 통일될 수 있는 곳은 어디냐?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나는 아들이다 하는 곳입니다. 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어떻게 갈라졌느냐? 관계가 갈라졌기 때문에 만나야 되는데 어떻게 갈라졌느냐 하는 것을 몰라 가지고는 그 아버지에 대해 효도를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이것을 해결하고, 이것을 헤쳐 보자는 것이 통일교회의 길입니다. 왜? 그 길이 갈라졌느냐? 타락 때문입니다. 타락이 어떻게 돼 있느냐? 하나님은 왜 슬퍼하느냐? 헤쳐 보자는 거라구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역사적인 하나님이 아니냐? 과거의 하나님이요, 시대적 하나님이 아니냐? 오늘의 하나님이요, 미래의 하나님이 될 것이 아니냐? 과거에 슬퍼했던 것을 왜 슬퍼했는지 알아야 됩니다. 또, 오늘의 슬픈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미래의 슬픈 것이 무엇이었더냐 하는 것을 알고 방어를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문제가 아니고 이것이 문제입니다. 성경보다도 이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거기에 방해되는 성경구절은 다 빼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편찬한 것이 아니라구요, 천주교의 주교들이 모여 가지고 편찬한 것입니다. 그 사람들보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더 나을지 모른다구요. 그 사람들은 예수님이 왜 죽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 문선생은 왜 죽었는지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적으로 만나지 못했다구요. 그러나 선생님은 예수의 친구일 뿐만 아니라 예수와 더불어 의논해 가지고 무슨 일이든지 전부 다 할 수 있는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구요. 하나님을 올라가서 만나 본 것도 내가 더 많이 만나 봤으면 만나 봤지, 그 사람들이 더 많이 만나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통일교회에 와서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시시하게 주먹구구식 가지고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가? 천정은 왜? 또 부처끼리 왜 싸웠더냐? 그 싸움하는 것을 풀어 놓기 전에 합할 길이 있어요?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도 '당신은 예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요?' 말을 하면, 하나님도 '오냐, 네가 어떻게 그것을 알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걸 나빠하겠어요?
오늘의 하나님과 합할 수 있는 길은 역사적인 하나님의 한을 해원성사 해 드려야 하고, 역사적인 인류의 죄를 탕감해 줘야 됩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역사적인 인류의 죄를 탕감해 줘야 합니다. 오늘의 하나님과 합해 가지고 하나되려면 오늘날 하나님이 이 땅에 대해서 무엇을 하고자 하고 있으며,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미래의 자기 후손이 하나님의 뜻과 맞게 하려면, 미래의 하나님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아 그 방향을 가르쳐 줘야, 자기 후손이 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앞에 서서 만국을 치리할 수 있는 민족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도 옛날 하나님이 지금 하나님과 마찬가지라구요? 다르다구요. 옛날에는 개인, 특정한 민족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만을 키워 나올 때였다구요,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은 뜻이 다 실패로 돌아갔으니 기독교 개인과, 기독교 가정과 기독교 국가와, 기독교 세계를 또다시 판도를 이어받아 수습해 가지고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하나님이 현재 원하는 그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기독교가 못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럴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통일사상이 나오게 된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천정과 인정을 결부시키기 위해서는 여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죽음길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 왔던 길을 부정하고 법을 부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언제나 이걸 부정할 수 없으니 반드시 왔던 길을 부정해야 됩니다. 무서워도 돌아서야 되겠으니 돌아서 가지고 여기에 맞추어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알겠어요? 부정해 가지고 긍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타락한 인간이 살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런 세계가 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끝날을 대비해서 자동적으로 부정의 내적 세계와 부정의 외적 세계를 하나되게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냥 가 가지고 안 되는 거예요. 안팎을 부정하지 않을 때는 내적으로 가도 막히고, 기독교도 막히고, 전부 다 막히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긍정적인 길을 찾기 위해서는 어떠한 길을 찾아가야 될 것이냐? 그것은 예수님을 중심삼은 재림사상입니다. 재림사상 가운데 기독교사상의 전통적인 골수는 무엇이냐? 예수사상입니다. 예수사상은 뭐냐? '나는 독생자다'라고 했고,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한 것이냐 하면 하나님이 바라는 가정을 구성하자는 것입니다. 참다운 아들로 성장해 가지고 상대를 만나 신랑 신부가 되자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로 묶어 가지고 뭘할 것이냐?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아들딸이 없고, 신랑 신부가 없어 가정이 없으니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가정을 만들어 놓자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를 중심삼아 가지고 신랑 신부가 되어 가정을 만들었더라면, 하나님의 소원은 이루어졌을 겁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예수만, 즉 신랑만 신부만 있기를 바란 것이겠어요? 하나님은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는 선한 자리를 찾았더라면 타락하지 않는 아들 딸을 낳으라고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통한 선한, 죄와 관계없고 하나님만이 주관할 수 있는 아들딸을 낳아 보지 못한 것이 인류역사가 아니냐? 여러분은 전부 다 타락한 아들딸로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원이 뭐냐? 본연의 아들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를 세워 가지고 신랑 신부가 사랑하는 아들딸, 하나님이 복중에서부터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하나님의 협조를 얻어 낳을 수 있어야 한다 이거예요. 주먹구구식으로 덮어 놓고 믿자 하는 것은 안 된다구요. 그러면 다 깨져나간다구요.
오늘날 과학 발전의 기원이 어떻게 됐느냐 하면 과학은 가설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럴 것이다' 하는 가능성이 있으면 학자들은 그런가 안 그런가를 실험을 통해서 실증적으로 재검토하게 될 때, 그걸 과학적이라 말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교리는 가설적인 말 같지만, 실증적으로 그렇다고 과학적으로 증거가 되니 통일교회 교인들은 위대한 힘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 원리를 듣고, 통일교회 원리대로 해 보라구요. 영계를 통하나, 안 통하나?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나, 안 되나? 하나님이 나타나나, 안 나타나나?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아들딸이 있다면 하나님도 만나 보고 싶어하는 것이요. 또 그런 하나님의 손자가 있다면 만나 보고 싶을 것입니다. 만나 보고 싶겠어요. 안 싶겠어요? 또한 사랑하는 족속이 있으면 만나 보고 싶을 것이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백성이 있으면 백성을 만나 보고 싶을 것이요. 그런 백성만 만나 보고 싶을 것이 아니라, 그런 세계도 만나 보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 보고 싶고, 하나님의 나라가 보고 싶은 사람들이 되면 지상에서 천국을 이루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돼야 지상천국에 사는 사람들로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하신 말에 해당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교인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이 되어, 세계가 좋아하고, 나라가 좋아하고, 가정이 좋아하고, 개인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바라는 개성완성입니다. 즉 인격완성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한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영계에 있는 하나님을 좋아하는 모든 영인들도 좋아하고, 하나님을 좋아하는 백성들도 좋아하고, 하나님을 좋아하는 가정도 좋아하고, 개인도 좋아하는 대표자가 되지 않았느냐? 그러한 대표자의 사상을 상속받을 수 있는 법도를 세워야 할 것이 아니냐? 당연한 말이라구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좋아하게 하려니 세계 앞에 이익을 끼쳐 주고 나라 앞에 이익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또한 가정 앞에 이익을 끼쳐야 하고, 개인 앞에 이익을 끼쳐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사람이 된다면 전부 다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손해를 끼치게 될 때에는 다 싫어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세계 앞에 이익을 주고, 나라 앞에 이익을 끼치고 수많은 가정 앞에 이익을 끼치고, 수많은 개인 앞에 이익된 것을 제시해야 됩니다. 그러한 일을 가려 놓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이 제일이냐? 이런 사상에 일치되어 가지고 일편단심 세계로 전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필시 하나님이 찾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그렇게 가게 되면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단체를 따라가면 쓸만한 무리가 된다 하여 어떻게든지 가르쳐 줘 가지고라도 그런 무리를 통해서 세계 앞에 세울 것이 아니냐? 그러한 마음만 갖고 나가게 되면 하나님이 좋아하지?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더라도 인연을 맺어 가지고, 뜻 세계에 그런 사람이 있게 될 때는 그런 사람을 찾아봐 가지고 반드시 자기의 뜻을 가르쳐 줘 가지고, 키워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길로 이끌 것이 아니냐?
그래서 통일교회의 사상은 가정을 위해서 개인이 희생하라 이거예요. 알겠어요? 또 종족을 위해서, 그 동네 친척들을 위해서 가정을 희생시켜 가지고 봉사하라 하는 겁니다. 이렇게 될 때는 그 친척들이 싫어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 손해를 끼치게 되면 싫어하지만 이익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통일족속이 되어 있다구요. 그렇지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식구라고 한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차원이 높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통일교회는 희생해라! 문선생님이 말하는 통일교회는 전부 다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이 나라, 이 민족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통일교회 교인은 희생해라! 이것이 천명입니다. 천명이라면 해야 되겠나, 안 해야 되겠나?「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의 총부리 앞에 내세워라! 오늘날 망해가는 이 문화세계 앞에 내세워라! 망해 가는 종교 앞에 내세워라! 반대해도 내세워라!
자 내세우는 것이 고마운 것이요, 억울한 것이요?「고마운 거예요」 가 보라구요. 여러분 희생이 나쁩니까? 희생은 무엇을 갖다 줍니까? 봉사가 나쁩니까? 봉사는 무엇을 갖다 줍니까?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희생하고 봉사하게 되는 시일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맨 가장자리를 지키던 사람이 점점 가운데로 타고 넘어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어디로 가느냐? 중앙에 가서 세워지게 됩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구요. 그 집안을 위해서 희생하게 되면, 제일 끝 동생이라도 전체의 형님들을 위하고 부모를 위해서 희생하게 될 때는 '아, 우리 집에 중심자는 제일 막내다' 그렇게 돼요. 안 돼요? 「그렇게 됩니다」
어느 동네에 이장이 있고 반장이 있다 하더라도 일을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하게 될 때는 그 반장은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네를 위해서 가정 전체가 희생하게 되면 그 가정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그 동네의 으뜸이 돼요, 안 돼요?「됩니다」
역사적으로 희생을 한 사람은 역사적인 중심자로서 존경을 하지 말라고 해도 존경을 받기 마련이라구요. 그런 사람이 애국자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역사이래 희생하게 될 때는 역사이래에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유관순이가 영웅이지요? 유관순이가 학박사이지요? 대학교를 졸업했지요? 「아닙니다」 그녀는 미욱한 사람이라구요. 그때로 말하면 일본 경찰이 무슨 말을 했겠어요? 제발 지긋지긋하니 그만해라. 처녀가 뭐 잘났다고 그렇게 다니나? 그러나 유관순이는 민족을 대표해 가지고 내가 쓰러져 가지고 피가 떨어진 자리에는 무궁화 꽃이 필 것이고, 내 피는 삼천리 반도를 덮을 것이며, 내 땀은 삼천리 반도를 씻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일본이 우리의 국가 주권을 빼앗아 점령했다 하여도 대한민국 백성은 소화를 못 시킨다 이거예요. 소화를 못시키는 한 대한민국을 위해서 가는 길 앞에는 해방의 날이 찾아올 것이다! 일본민족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드높게 될 때는 일본을 누르고 우수한 나라로 등장할 것이다! 이런 거라구요.
안중근 의사와 같은 사람은 이국 땅에 가 가지고 이등박문을 죽이려고 야단하다가 이슬같이 사라졌다구요. 그것을 보면 미욱한 사람같이 보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왜 그렇게 버려요? 그것은 뭣 때문에 그랬어요? 자신의 돈을 벌기 위해서?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서 희생한 것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 그 사람의 사상은 역사의 주체적 사상으로 중심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열 친구가 있다 할 때, 그 열 친구를 위해서 희생하게 되면 열 친구는 그 사람을 중심으로 받들어 모실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망하는 운세의 길을 가더라도, 나라를 위해 희생하게 될 때 그 나라가 통일교회를 천대하다가는 그 나라, 그 민족이 망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 남아진 무리들을 데리고 이와 같은 사상을 찬양하는 나라로 옮겨 갈 것입니다. 끝까지 반대하다간 망하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반대하려거든 통일교회 이상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나서 반대하라구. 오늘날 현 정부의 공화당이 통일교회를 반대하려거든 통일교회 이상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고 나서 반대하라, 그렇지 않고 반대하다간 망합니다. 이것이 우주의 공법입니다. 망할 것이니 두고 보라고요.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공식적 노정을 가려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가는 거라구요
대한민국이 하나님 앞에 지도를 받을 수 있는 나라와 민족이 되고 싶으면 세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국가 예산의 3분의 1을 세계를 위해서 쓰는 나라가 있으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주권이 없고 그 국토가 현재 황량해졌다 하더라도 그 국민이 갖고 있는 사상이 세계 만민이 받들 수 있는 사상으로 남아지게 될 때는, 20세기가 지나고 30세기, 40세기, 50세기 이후라도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민족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일개 국가의 주권을 자랑할 수 있는 시대를 넘어서서 세계 주권을 전부 다 그 품에 품고 하나로 통일하여 천지의 법도를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의 통일적인 세계국가의 주권국가가 될 수 있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 그 국가로 들어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심각하다구요.
통일교회는 아무 힘도 없고, 아무런 재력도 없지만, 역사의 흐름은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에게 통일교회 교인들을 찾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통일교인은 그래도 필요 적절한 그런 상대적인 자리에 섰다고 생각할 수 있는 무리들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할 때 야, 그건 그렇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건 그렇다, 우리는 언제나 보다 그럴 수 있는 내용이 있다 하는 것을 알게 될 때는, 보다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남한을 중심삼고 싸우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남북의 교류가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이런 때에 있어서 북한 땅을 대신해서 나가게 될 때, 북한에서는 저 위로부터 끄트머리까지 이 사상의 통일적인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라디오나 이북에 갔다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이북에서는 탁아소에 있는 어린이들까지 김일성이를 어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해 주는 소식에 의하면 어떤 지방에 가서 악수를 하자고 하니까 '미제국주의 앞잡이들과 악수 안 한다'고 전부 다 악수를 안 하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한 어린이가 척 '당신도 남한에서 김일성 어버이 수상을 모시고 미제국주의를 추방하는데 협력해야 할 것이 아니겠소' 하며 악수를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새빨갛게 됐는데 임자네들은 그래요?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 교인들이 한 절반 정도 모가지가 짤리고 희생 당하는 것을 보면, 즉 피를 보면 단결해서 그렇게 될는지 모르지만 저들은 피를 보기 전에 그렇게 돼 있다 이거예요. 평화통일이 그렇게 간단하게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통일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러 가지 할 말이 있지만 한 가지 말 할 것은, 현정부가 아무리 통일을 추구하고 있다 하더라도 삼천만 민중 가운데 1천만 이상의 사람들이 현정부와 생명을 각오하고 하나될 수 있는 무리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터놓고 이야기할 때 그들의 이론을 당할 수 있겠느냐? 그들은 공산주의 이론을 무장해 가지고 전세계를 제패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50년 역사에 세계의 3분의 1을 제패한 실적을 가지고 당당히 신은 없다고 하는 주체성을 중심삼아 가지고 야단하고 있는 그 패들 앞에 이론적으로 말려 들게 되면, 이론에 지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것에 대비해 왔습니다. 조금만 더 가게 되면 학자들이 대회를 가져 가지고, 학교에서 통일교회 사상을 들고 나설 때가 올 것입니다. 두고 보라구요. 오나 안 오나. 땅에 철문을 전부 다 장치해 가지고 들어가 배겨 있더라도 철문을 용접으로 짤라 가지고 끌어내서 이 사상을 줘야 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료를 기계적으로 다 갖추었습니다.
여기에 모모한 사람들 자기가 뭐 어떻고 어떻고 행복하다느니, 무슨 주의니 하는데 다 됐더라구요. 그들은 무슨 자유민주주의니 사회주의니 뭐니 하면서 역사 철학을 갖추고 있는데, 여러분은 무엇으로 민주세계에 역사관을 제시할 것이냐? 밑도 끝도 없이 그런 관으로 대관절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그것은 안 통한다구요. 주먹구구식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이론이 적나라한 입장에서, 시대적 과정이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다 해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모색해야 할 시기가 오기 때문에 그것은 입체적인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예술 문화권이 상대적인 사상으로 맞춰져 있다, 이런 것을 골수에 넣어 줘 가지고 올바른 자세를 만들어 줘야 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는 올바른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누가 소화를 못 시킵니다. 공산당의 누가 문선생을 소화시켜 가지고 암만 공산 당을 만들려 해도 못 만든다구요. 아무도 못 만듭니다. 내가 삼팔선을 넘어설 때 하나님 앞에 맹세한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수십 년 동안 준비해 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다 하는 걸 이제 알겠지요?「예」 세계를 위하여 민족을 이끌고 만민을 해방시키자고 희생의 총부리 앞에 나설 수 있는 그런 민족과 국가가 있다면 그 국가는 세계를 지도할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국가가 없거든, 그런 무리가 되어 가지고 세계의 봉화를 들고 기수의 사명을 하겠다고 최 전선에 나설 수 있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시대의 희망의 천국을 이어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무리를 하나님이 찾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세계가 틀림없이 찾을 때가 올 것입니다. 시일과 기일이 문제지, 만민이 틀림없이 찾을 때가 올 것입니다. 세계가 틀림없이 찾기 때문에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나라도 틀림없이 우리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모르니까 그렇지. 나라가 찾을 때가 올 것이고, 교회가 찾을 때가 올 겁니다.
기성교회의 어느 한 교회 교인들을 전부 다 우리 수련소에서 수련시킨다면, 한꺼번에 넘어가나 안 넘어가나 한번 테스트를 해 봅시다.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기성교회가 모르고 있다구요. 한 60여 명, 교인이건 아버지건 아들이건 다 보내라 해서 3박 4일만 교육시켜 보면 전부 다 나가 떨어진다고요. 나쁜 편으로 나가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통일교회 편으로 나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야! 위대한 사상이구나. 2천년 동안 그렇게 목숨을 걸고 강조해 왔던 기성교회 신앙이 며칠 동안에 완전히 함락이라니….' 대한민국이, 국민들이 불쌍합니다. 만약에 대한민국의 주권자나 위정자들은 물론이요 온 국민이 통일교회의 사상을 해방 직후에 받아들여 우리의 체제로서 출발하였더라면, 세계 기독교는 통일 교회의 문으로 전부 다 들어갈 것인데 참으로 원통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야망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요. 이 민족이 갈 수 있는 길을 대비한 하늘 법도, 수천 년만에 찾아온 천운을 잃어버린 믿음의 허망,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나이 문 아무개지만, 그대들은 하늘의 그 무슨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반대한 것이 아니냐? 쇠고랑을 채워 죽음길의 감옥에 몰아넣었지만 죽음길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민족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걸어나온 것을 몰랐던 것이 아니냐?
역사가 지나게 되니 요즘에 와서 통일교인들에게 대학교 총장들이 와서 만나 가지고 '그대로 하겠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나를 만나는데 한낱 지나가는 하루의 길손과 같은 입장에서 만나지만,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수십 년 동안 피눈물나는 투쟁의 길을 가려 왔소. 당신이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데 공헌할 수 있는 길을 내가 충고하는 것은 최초의 길이요, 최후의 길이요' 이렇게 내 마음을 얘기하는 거예요. '세상은 이렇게 되느니라. 이런 길을 가 보라' 입장이 다른 것입니다. 희생길을 가는 것입니다. 어떤 총장 나리가 묻는 말이 '하! 문선생님 이런 세계적인 일을 하시기에 얼마나 바쁘십니까? 한 번 시간을 내가지고 만날 수 없겠는지요. 만나고 싶습니다' 해요. 내가 마음으로는 '조용히 시간을 내서 밀실에서 만나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구요. 이만큼 올라온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일본의 위정자들은 통일교회의 미스터 문을 미워하면서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또, 대만 정부의 배후에 있어서 지금까지 가야 할 길을 내가 거기에 제공한 것이 그들의 최후의 갈 길로 돼 있습니다. 일본 정부에 있어서 자민당이 갈 길을, 혹은 중공이면 중공정책에 대해서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구요. 그런 일은 대한민국의 어느누구도 몰라요. 통일교회를 따르고 있는 무리도 몰랐다구요.
통일교회는 이제 세계적 시대로 들어갑니다. 만일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대한민국을 버리고 아주 떠나가서 미국에서 환영을 받을 때가 되면 엉엉 울면서 오라고 할 것입니다. 내가 미국에 선풍을 일으켜 가지고 구해 줘야 되겠습니다. 미국이 망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이고 뭐고, 기독교 사상이고 뭐고 몽땅 없어지기 때문에, 기독교를 구하기 전에 미국을 구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선포하고 왔습니다. '1977년부터 1978년도까지 미국은 위기가 올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지금부터 그 위기를 대비하여 통일교회 문 아무개는 준비하고 있다구요. 상원의원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어! 당신은 지나가다 만난 아시아의 한 사나이…' 그렇게 생각하다가는 죽이 돼요.
보라구요.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이 나라의 모든 발전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 다 그렇게 됐다구요. 그러니까 헛소리한 것이 아닙니다. 책임자의 말이 맞지 않으면 그 단체가 깨져 버리는 것입니다. 만약에 미국이 그렇게 안 되게 될 때는 내가 용서받을 수 없어요. 내가 미국을 그렇게 되도록 만들고 있다구요. 그 준비를 지금 하고 있어요. 그 준비의 제1작전은 끝났다구요. 여러분들은 무슨 말인지 모를 거예요. 그런 사람을 통일교회 교인이라고 할 수 없어요. 자기 배를 위해서, 자기 한 개인을 위해서 살게 될 때는 다 망해야 됩니다.
자! 여러분, 이제 말한 이러한 세계로 가는 희생의 길이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하나님과 더불어 갈 수 있는 동참의 영광을 가졌다는 이 긍지를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고이 찾아오신 그분의 사정을 알았고, 그분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그분이 소망하는 그 소망은 타락한 이후에 수천 년의 인류역사 최초로 벌어진 소망인 것을 생각할 때, 그 소망을 받든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그 시간이야말로 거룩하고 행복한 시간이요, 그 시간이야말로 부활의 시간이요, 그 시간이야말로 재생의 시간이요, 그 시간이야말로 천하가 전부 다 그와 더불어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그분이 찾아 줘 가지고, 그분이 필요로 하여 명령한 그곳은 높고 귀할 수 있는 보좌 곁이 아니라, 미천한 지옥의 한 곳입니다. 그런 곳이라도 감사하며 가는 길이, '통일'이라는 말 그 자체의 의의를 가진 그런 교단으로서 가야 할 책임이 아니겠느냐? 통일이라는 말에는 거느려 지도하여서 하나로 만들어야 할 뜻이 있지 않느냐?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 함정, 지옥의 밑창을 해방하지 않고는 보좌가 영광 가운데 빛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알았기 때문에, 보좌는 나중에 두고 지옥을 향해서, 혹은 죽음의 길을 향해서 찾아 들어가자는 것이 통일교회의 가는 길이 아니었더냐?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은 왔다가는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지금 있는 수많은 사람도 저 사람이 몇 해 갈 것이냐? 저런 자질을 볼 때 얼마 가다가 떨어질 것이냐? 저 양반이 얼마나 갈 것이냐? 하늘이 정면으로 바윗돌을 던지면 어떻게 될 것이냐? 굴러 떨어질 것이 아니냐?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맹세를 하십시오. 칼을 꽂고 죽음을 각오하고 맹세하십시오. 하나님이 찾는 무리는,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고,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종족은 민족을 위하여, 민족은 국가를 위하여, 국가는 세계를 위하여, 세계는 하나님을 위하여, 최후에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돌진할 수 있는 불변의 자세를 갖춘 무리입니다. 그런 무리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앞에 들고 찾아오는, 하나님이 찾는 무리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이 선봉에 서 가지고 수많은 종단을 위해서 이 깃발을 이어받자는 것이 통일교회가 가는 주류의 사상이 아니었더냐?
나 문 아무개는 이 길을 위해서 가겠다. 이 사명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이 사명을 위해서 죽기를 맹세했는데 아직까지 목숨이 붙어 있으니 넘어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다짐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다는 것이 현재의 길이 아니겠느냐? 이것을 잊지 않으려고 함이 생활의 신념으로 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게 되면 세계가 찾을 것이고, 세계가 찾게 되면 만국이 찾을 것이며, 만국이 찾게 되면 이 나라, 이 백성이 찾을 것입니다. 또한, 이 나라, 이 백성이 찾게 되면 이 나라 수많은 교회라든가 수많은 단체가 찾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길을 위해서 당당코 하늘땅 앞에 맹세하고 나서는 무리들, 얼마나 가다가 패자의 서러움의 잔을 마시고 하늘의 패배의 길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냐? 아니면 승자의 권한을 가지고 하늘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는 동참자의 권한을 가질 것이냐? 길은 두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들 앞에 당부하는 것은 지치지 말고 죽지 말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세계가 기다리고 있나니, 세계까지 가기 위해서는 나라를 넘고 가야 되겠기 때문에, 나라를 구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까지 가려면 세계를 구해야 되기 때문에 세계를 넘자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권까지 가려면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안내를 받을 수 있는 사랑의 밀실까지 소개받지 않으면 못 간다는 말입니다. 그곳을 위해서 가야 합니다.
남북이 엇갈려 아무리 소망을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는 현시대에 있는 이 국면의 정상을 바라보게 될 때,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이냐? 서쪽을 바라보면 중공이 있고, 북쪽을 바라보면 소련이 있고, 동남쪽에는 일본이 있고, 북쪽 삼팔 이북에는 김일성이가 있는 것이 아니냐? 여기에 헐벗고 있는 이 민족이 어디로 갈 것이냐? 앞으로 가자니 길이 막혔고, 강대국 미국을 바라보니 이미 배척했고, 옆에 있는 일본은…. 아무리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믿지 말라구요. 그들이 찾아오는 것은 삼키려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중공도 믿지 말고, 소련도 믿지 말라.
이미 막혀 버린 이 민족, 역사도 그러하듯이 세계 정세도 대표적으로 비참한 운명권에 살게 되어 있는 것이 한국이 아니냐? 월남보다도 더 비참한 자리입니다. 안 그래요? 어찌하여 강대국의 틈바귀에 끼어 가지고 최후의 신음과 더불어 자기 자체가 생사의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비운의 자리에 섰던고! 이것이 한민족의 운명이 아니냐! 이 운명이 온 것을 알고 이 운명을 위해서 통일교회는 남아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
밤이면 북녘하늘을 바라보면서 동강나 잃어버린 이 민족을 품고 사랑할 수 있는 그 애국자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세울 수 있는 애국자를 만나고 싶은 것이 여러분의 소원이 아니더냐? 이 민족의 소원이 아니겠느냐? 이걸 알아야 됩니다. 승공패들을 두고 이 엄숙한 과제를 바라볼 때 공산당을 방어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부패하여 죽어가는 기독교의 운세를 막아줘 가지고 부활시키자고 통일이라는 명제를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냐? 이 사명이 이루어져 이 땅 위에 승리의 긴 깃발을 꽂고, 백포장을 깔고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는 그날이 삼천리 반도의 어느 곳에서 이루어질 것이냐?
여러분, 이것을 분간해야 할 때에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전히 심각한 자리에 있습니다. 수십 년 피흘려 온 최종의 결말은 무엇이뇨! 이 민족을 붙들고 구할 수 있는 길이 없거든, 미국의 힘을 이용해서 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서글픈 사정이 있는 것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자주적인 민족을 추구해야 합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가려 가지고 넘지 않으면 빠지는 거라구요. 대한민국이 이것을 타고 넘을 수 있는 주체 세력을 가지고 있느냐? 아직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부모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라를 사랑할 수 없다구요. 만약에 우리 몸뚱이가 죽어 자빠지면 개도 안 뜯어 먹는다구요. 개도…. 한 번 죽어가는 것이 인생길이거든, 무엇을 위해서 죽어갔느냐 하는 것이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인간이 무엇을 중심삼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으로 가치 기준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냐?
자기를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많더라, 자기 가정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많더라,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은 많더라, 그러나 세계와 하늘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없더라 이거예요. 그렇지만 이러한 고독한 길, 이러한 외로운 길, 이러한 기가 막힌 길에 선 자들은 낙심하지 말지어다! 세상은 춘하추동으로 돌고 있는 운세이기 때문에 출발한 일은 반드시 결과를 향해서 그것을 해결짓지 않으면, 도는 운세를 거치지 않으면 심판을 받아 어디든지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냐? 심판당하지 않고 다시 돌아오는 봄날을 맞이하게 될 때는 인류역사 종말시대에 소망했던 새로운 천국을 맞이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질 것이 아니냐?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 가지고 돌아가지 못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고, 흘러가 가지고 망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의 소신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 이제 우리의 할 일을 알았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자식을 뒤에다 두고 고독의 길을 따라,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하늘의 길을 찾아가고, 나라 없는 운명의 길을 찾아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나도 핏덩이 자식을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이북 땅을 향했던 역사가 있는 사람이라구요.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이 필요로 하고, 하늘의 명령이 있기 때문에 간 것이라구요. 안 가려고 몸부림치면서 하루 이틀은 고민도 컸지만, 그 고민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정을 알았기 때문에 간 것이 아니냐? 가정을 버리고, 부모를 버리고, 더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을 버리고 이북 땅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서글픈 사정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이남에 와 가지고 감옥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통일교회 역사입니다. 저주와 배반과 핍박의 길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길가에서 아는 친구가 침을 뱉으며 '야, 네가 그렇게 될 줄 몰랐다'고 손가락질할 때 내가 뼈가 없었던 사나이가 아닙니다.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을 때 구치과장이라는 녀석이 나 보고 했던 말을 잊지 않아요. 죽어도 잊지 못해요. 한 달이 못 되어 그들은 나한테 찾아와 가지고 '옛날에 들었던 통일교회 문 아무개와, 지금 알고 난 통일교회 문 아무개는 다르더라'고 사죄하는 것을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구요. 정의는 아무리 혹독한 핍박의 쇠사슬 가운데서도 승리한다는 것을 봐 왔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정의의 길은 힘들지만 하나님이 찾고 있는 그 무리의 길을 책임지고 가는 길이므로 낙심하지 말지어다! 통일교회 문선생님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당한 수난의 매자국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때 입은 마음의 상처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선생님은 아직까지 지치지 않았어요.
이 젊은 녀석들, 혈기 왕성한 30대의 꽃다운 청년들, 하나님도 젊은 사람들을 요구할 것이 아니냐? 늙은 사람보다도, 더럽혀지지 않는 순정에 사무친 젊은이들, 하나님을 향하여 일편단심 정열을 다 바칠 수 있는 젊은이들을 하나님은 요구할 것이 아니냐? 이런 젊은이들이 망해서는 안되겠다는 거예요. 하늘이 찾고 있는 대열의 선두에 서야 할 것이 아니냐?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10월을 보내면서 이제 2개월 남은, 1972년도라는 것은 역사 시대에 없는 해라고 정초에 선생님이 말씀했던 것이 과연 그렇습니다. 이해에 대한민국과 통일교회의 운세가 한고비 넘어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1974년도까지 세계적인 입장에서 통일교회가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그것을 지도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불철주야 지금도 다져야 할 책임을 짊어진 사람이 여기 서 있는 사나이입니다. 고독한 길을 가는 사나이기 때문에 따르고 있는 사람도 고독한 길을 가는 것입니다. 비참한 운명을 찾아가기 때문에 따르고 있는 무리도 비참한 운명입니다. 그렇지만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망할 줄 알았더니 망하지 않는 것을 여러분이 실제를 두고 증거해 준 셈이라구요. 후퇴냐, 전진이냐? 망하느냐, 흥하느냐? 두 갈래의 판정은 누가 하느냐?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하는 것입니다.
11월을 맞이하면서 남은 60여 일을 역사시대의 뜻을 잘못 알았으면 그것을 회개할 수 있는 기간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1973년을 고이 맞을 수 있는 하나의 소망의 해로서 저에게 허락하시옵소서'라고 책임을 못한 사람은 다짐하는 회개라도 해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봐도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찾는 사람들은 나밖에 없다는 결론을 이미 지었다 할진댄, 찾아왔던 하나님을 뒤로 돌려보내는 입장에 서서는 안 될 것이 아니냐? '야! 네가 못 가면 데리고 가야 되겠다고, 끌고 가야 되겠다'고, 너 놓고는 못 가겠다고 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서 모셔야 할 것이 아니냐?
여러분, 오래지 않아 선생님은 미국을 향하여 가야 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떠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선생님을 믿지 말라구요. 여러분의 안방에서 믿을 수 있는 스승이 아니예요. 여러분이 믿는 그런 입장의 믿음으로서 통일교회를 믿지 말라구요. 여러분이 믿고 있는 현재까지의 그 믿음 가지고는 통일교회는 상관할 수 없는 거라구요. 차원이 높은 입장에 있어서의 새로운 민족적 자각과 세계적 자각을 가지고 천륜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새로운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 혼란한 세계 앞에 새롭게 도약하든가 복귀하든가 해야 합니다. 두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우리 통일교회 내에 있어서 일대 위기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어젯날의 그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삼천만이 우리 통일교회를 부르고 있고, 30여 억 인류가 부르고 있고 영계에 있는 수천 억의 영인들이 우리들을 부르고 있는 이 거룩한 자신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명령받았다 할진대는 당당하게 가야 되겠습니다. 졸장부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하라 이겁니다. 내 앞에 나타난 원수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내 신념이 제압하게 되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승리한다구요.
보라구, 여러분, 지금 선생님이 한 6억이란 돈이 필요한데, 돈 한푼 없다 이거예요. 현찰이 6억이 필요한데 돈 한푼 없으니 어떻게 할 것이냐? 패자가 될 것이냐, 승자가 될 것이냐? 하나님은 살아 있다 이거예요. 지금까지 해 나온 일이 그렇듯이 이번 이 고비를 넘는 것도 하나님을 부둥켜 안고, '내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을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기필코 이루어 주신다는 신념이 앞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될 것이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두고 보라구요. 되나 안 되나….
하나님이 찾는 자리에 있어서 파수병의 길을 직행하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걸음 발을 대딛게 될 때는 민족이 부르는 함성을 들어야 되겠고, 두 걸음 걸어갈 때는 세계가, 세 걸음 갈 때는 한나님이 부르는 소리를 들어야 되겠습니다. 숟갈을 들으나, 잠을 자나, 깨나,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나의 소원은 이것이요?' 라고 해야 하고, 새가 날거든 '야! 너는 내 소원 알지? 네가 가는 길이 내 갈 길을 지시해 주는 것이면 얼마나 좋겠느냐? 내 그날을 재촉할 수 있고 승리를 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됐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것이 그립구나. 그것 때문에 미치겠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 길을 가자는 것이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문 아무개라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길을 여러분이 인연된 입장에서 볼 때, 여러분이 혼자서는 못 가고 같이 가야 할 운명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보다도 못한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보다도 철저하고, 선생님보다도 앞서고, 선생님보다도 각오가 확실하면 얼마나 좋겠느냐?
세계로 가는 데 있어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면, 그런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책임 대열을 지키고 나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이 자리를 아버지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외로울 때 당신의 외로운 것을 통고시키던, 당신이 붙안고 통곡하던 그 시간을 저는 잊지 않았습니다.
너만은 이것을 알아줘야 될 것이 아니냐고 당부하던 그 사정을 저는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그 하나의 약속과 그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피눈물의 길을 가려 왔습니다. 그 누구도 믿으려고 하지 않는 길을 선두에서 달려오다 보니 가야 할 길은 태산이고, 가야 할 길은 가시밭길이었습니다. 그 길을 가고 있는 자신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피를 흘려도 서러워할 줄 모르는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몸부림으로 계속된 오늘까지 당신이 버리지 않는 것을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피는 아버님의 피와 연결되기를 바랐고, 제 생애는 아버님의 생애와 연결되기를 바라왔던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통일의 젊은 아들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누구를 위한 자리에 서 있습니까? 그 누구라는 표준은 자기 자신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당신만을 위한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본래 사람이 태어날 때 자기를 위하여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남자가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자를 위해 태어난 남자가 그렇게 생긴 것이 본의임을 알게 될 때에, 본래의 생의 목적은 자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자도 그러한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백성은 백성으로서 자기들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 더 높을 수 있는 그 나라를 위해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 나라는 그 나라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을 수 있는 세계를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는 세계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을 수 있는 주권자인 아버님을 위해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님도 아버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아버님 자신도 아버님의 사랑을 위하여 찾아 나가고 그것을 바라보고 소망과 행복의 날을 고대하는 것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에는 아버님의 사랑의 자리까지 가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한 것은 아버님만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대적 관계이므로 사랑하는 것만큼 돌아올 것을 예고했기 때문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한 이것이 첫째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그 첫째 계명은 인간으로서 첫째 계명이요, 아버님에게도 첫째 계명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대로 돌아오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사랑하자는 말인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이 놀라운 뜻을 알고 있는 통일의 무리들은 이제 가야 되겠습니다. 개인의 고개를 넘어야 되겠습니다. 가정의 고개를 당당하게 넘어야 되겠습니다. 사회와 국가의 고개를 넘어야 되겠습니다. 세계를 헤치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공산세계, 민주세계가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 앞에 완성적 승리의 조건을 갖추어 가지고 당신 앞에 봉헌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날이 멀지 않다는 것을 저희들은 바라보고 있사오니 아버님이 원하신 소원의 뜻 앞에, 계획하신 섭리의 뜻 앞에 승리와 영광만이 길이길이 같이하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찾고 있는 무리가 어떻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한 무리, 그러한 자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 놀라운 역사시대에 있어서 소명을 받은 선택된 무리인 것을 자인하면서, 이 거룩한 입장의 위신과 체제를 아버지 앞에 버리는 불쌍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은 아담이 아버지를 버린 것보다 더 죄가 크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은 복귀의 한스러운 많은 대가를 치르고 찾았기 때문에 그 대가가 빛날 수 있는 결과를 더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확실히 깨닫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마지막 성일을, 아버지, 지켜 보시옵소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리인 이곳을 향하여 우리러 축수를 드리는 그 마음 앞에 천만 배 복을 더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이 다시 만날 수 있는 그날, 고대하는 그 소원 앞에 당신의 기쁨과 은사와 영광이 같이 상봉할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다짐과 새로운 맹세를 아버지 앞에 바치오니 앞으로 거룩되게 기억될 수 있는 이 아침이 되기를 바라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2년 11월 1일, 이달의 새로운 날 아침에 당신의 은사와 사랑이 저희들과 같이하여 주옵소서. 10개월을 지내고 11개월째 맞는 이날이 뜻 있는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제 나머지 60일 기간을 저희들이 정성을 다하여 1972년을 아버지 앞에 뜻 있게 봉헌해 드리는 이해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지금까지 저희들을 인도하신 아버지여, 나머지 2개월을 또다시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이달에는 여러 가지 계획도 있사옵고, 특별한 기념의 날도 며칠 후로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한 해 한 날이 지나감에 따라 저희들이 기념의 날을 맞을 때마다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한 해를 의의있게 보낼 줄 알고, 실적을 갖추어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는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할 것이 저희 앞에 맡겨진 사명이요, 저희들이 책임해야 할 소행인 것을 아오나, 지내 놓고 언제나 후회하고, 미급하고 미완성된 자신들을 탓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아버지의 무릎 앞에 모여서 아버지 앞에 고하는 일체의 사정을 들으시사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일일이 대해 주시어서, 금년에 있어서는 각자 각자가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 처하였던 경험과 자랑을 남길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땅의 소원이 성취됨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저희들은 원리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은 하늘의 일은 마음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그 기준을 중심삼고 한 말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실체적으로 이루어서 하늘 앞에 바쳐져야만 하늘의 소원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생각 하게 될 때, 이 땅에 살고 있는 기간이 얼마나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저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나가는 하루라 할지라도 그날 가운데 일생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가치를 다짐하는 하루로서, 하늘 앞에 보람 있는 날들로 맞고 사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습관성이 있어서 하루를 무시하고 오늘이 가면 내일 다시 오는 그런 날과 같이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루하루 빛난 아버지의 심정의 세계를 다짐할 줄 아는 아들로서의 딸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함과 동시에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제 이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소원의 나라까지 연결시키기 위해서 보통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이 가지 못하는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힘을 더하여 주시옵고 소망을 가중시켜 주시옵소서.
내일이 나를 찾아오는데 주저하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되겠고, 오늘이 나를 스쳐가는데 슬픈 날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 이날이 기쁨의 날로서 아버지 앞에 자랑이 되고, 그러므로 내일에 찾아오는 날들이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환영하면서 찾아올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런 나, 그런 각자로서 하늘을 대하게 될 때, 우리가 아버지를 보고 싶듯이 하늘도 당신의 아들딸로서 우리를 보고 싶어할 것입니다. 사람 앞에 나를 안다고 하면 나도 사람 앞에 안다고 하겠다 하였고, 사람을 대접하는 대로 하늘도 대접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하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문제가 저희의 생명선이 된다는 사실을 저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저희가 하늘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하늘을 얼마나 흠모하느냐에 따라 아버지께서 저희를 사모하고 흠모할 수 있는 상대적인 여건이 갖추어지고, 이러한 일체적 이념을 찾아 나오시는 아버지의 소원을 알았기 때문에 저희는 세상만사를 넘어서라도 하늘을 그리워하면서 아버지 앞에 돌아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진정, 우리가 기뻐하시는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것을 지극히 서러워해야 되겠습니다. 심정을 가다듬어 당신의 성상을 모시고 당신의 품 안에서 살고 싶은 것이 저희의 소원이옵니다. 그렇게 소원하였던 것이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그 비례적인 기쁨과 영광이 머물 것이어늘, 저희 마음에 하늘과 더불어 살고 싶은 마음,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하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배가 고프면 밥을 갈구하는 이상으로 아버지를 사모해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가 짊어진 십자가의 길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아버지가 염려하는 이상의 염려하는 마음이 앞서야 할 것이 자녀된 도리의 책임이 아니겠습니까? 부모는 수난길의 한스러운 자리에 섰는데도 불구하고 자식으로서 그런 것을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한다면 이는 차라리 없던 것만도 못한 자식이 될 것이 아니옵니까?
아버지, 저희가 그러한 무지의 자리에 있거들랑 저희들을 일깨우셔서 당신의 사정을 통과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환경에 처한 아들딸로서 대해 줄 수 있기를 바라옵니다. 그렇지 못한 입장에 저희가 있다면 얼마나 억울하옵니까? 얼마나 분통하옵니까? 역사시대에 있어서 하늘이 저희들과 자연스럽게 통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지 못했던 것을 알면 알수록, 저희들은 타락권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얼마나 원통스러운 것인가를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이것을 탈피하고 이것을 초월하기 위하여 하늘 앞에 힘을 요구하고, 하늘 앞에 협조를 고대하는 것이 저희들의 매양 소원하는 바가 되어야 될 것임을 저희들이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아버님, 이제 어린 저희의 몸 마음들을 아버지 앞에 봉헌하오니, 저희 가슴속을 헤치시어 당신이 임재할 수 있는 본성의 여운이 있거들랑 그 여운을 사랑하시옵고, 타락으로 말미암아 맺어진 죄악의 썩은 뿌리가 뿌리를 박고 있거든 여지없이 빼 버리시옵소서.
당신이 품고 사랑하고 당신의 뜻 앞에 세우시어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원하였기 때문에, 당신이 원하는 아들딸로서 새워질 수 있게끔…. 저희들의 힘으로는, 흠모하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재창조 역사이기 때문에 99퍼센트까지는 아버지께서 수고해야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밥을 먹고 오고 가고 자고 깨고 하는 전부가 하늘과 동반하여 하늘과 더불어 상대가 되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앞에 남아 있는 수난길을 저희들이 나섰사오니 저희들이 가야할 수난길이 있사오면 극복해야 되겠고, 나라와 세계로 가야 할 수난길이 남아 있거든 천만 번 죽더라도 가야 할 운명길이기 때문에 이 시간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야 되겠고, 오늘 하루라도 어떠한 고빗길을 지내기 위하여 몸부림쳐야 되겠습니다. 하루하루에 다짐되어 들어가는 싸움길을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한스런 복귀의 운명길에 저희가 사로잡힌 거와 같은 비참한 자리에 있는 것을 볼 때에, 저희는 타락한 후손입니다. 틀림없이 타락했습니다. 당신과는 틀림없이 먼 자리에 있습니다.
아버지여, 찾아오시옵소서. 만일에 듣지 않거든 채찍으로 치시옵고, 가기를 원치 않거든 강제로라도 끌고 가시옵소서. 죽어서는 안 되고 머물러서는 안 되는 사망의 구렁텅이를, 거기에서의 한계선을 한 발자국이라도 넘겨 놓아야 할 애달픈 당신의 사정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이끄시어 그곳까지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원하면 당신도 원하는 것이오니 인도하시옵소서. 저희가 부족하기 때문에 저희가 소원하는 것을 능력 많으신 당신의 손길에 의지하고 고대하는 가련한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달을 지내고 나니, 또 한달을 맞게 되옵니다. 10월을 지내고 11월을 맞습니다. 이 아침이 자랑의 아침이 될 수 있게 아버지, 찾아오시옵소서. 이 아침 많은 사람이 아버지 앞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정이 통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고 심정이 통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 당신의 소원의 뜻 앞에 전진하는 동역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행군하는 하늘의 병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전쟁터에 나가 일대일의 책임을 완수하여 충의 도리를 다 세우고 가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달은 이 자식이 먼 곳으로 떠나야 할 달도 되옵니다. 가고 오는 모든 행로를 당신이 정하시옵고 당신이 지키시옵소서.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오고 가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보고 싶어하는 자식들이 서로 만나 아버지를 얼싸안고 하늘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이 당신이 보고 싶은 날이요, 그것이 우리를 대하는 당신의 소원인 것을 알았습니다. 동서양을 넘어서 하늘의 뜻을 교류시키고 당신의 심정을 논의하면서 민족적인 사정을 넘어서서 천주적인 사정 앞에 하나될 수 있는 무리들을 보기를 얼마나 고대하였습니까? 역사에 없었던, 상례적인 회합이 아닌 것을 생각할 때, 필연코 이번 길이 당신의 자랑이 되게 하여 주옵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국에 있는 자녀들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 하는 것을 생각하옵니다. 이버지, 비탈길을 거쳐 나가야 할 이 시대적인 사명을 저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홀로는 미끄러져 나갈 수밖에 없는 이때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에 의해 드리워지는 밧줄을 단단히 붙들 뿐만 아니라, 자기의 몸에 이것을 잡아 매고 당신이 끌어 주는 밧줄의 방향을 향하여 저희들은 반항없이 따라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책임 소행만이 저희의 갈 길이요, 운명의 길인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한국은 한많은 한스러운 한국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한국이 되어야 되겠고, 한정된 한국이 아니라 무한한 한국이 되어야 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 누가 이러한 한국의 사명과 한국의 입장을 세울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할수록, 오늘 보잘것없는 지치고 혹은 초라한 이들의 두 어깨에 막중한 짐들이 짊어져 있음을 알게 되옵니다. 밤이나 낮이나 당신의 사연과 통하고 당신의 인도하시는 보조의 길을 진정으로 원하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뜻, 기필코 가야 할 인류의 운명의 고개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서 하늘은 부르고 있사옵고, 수많은 인류들은 어서 속히 해원성사의 길을 닦아 달라고, 자기들도 복귀의 한의 길을 넘어서 가지고 천국으로 직행할 수 있는 길을 가게 해 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고 바라보면서, 더 바쁜 걸음으로 달려가야 할 자체 자체의 모습들인 것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나'라는 존재는 누구를 위하여 태어났느냐고 묻게 될 때에,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을 위하여 태어났고 당신의 뜻을 위하여 태어났습니다. 누구와 더불어 살 것이냐 할 때에, 당신과 더불어 살고 뜻을 중심삼고 살 것이었습니다. 누구와 더불어 죽을 것이냐 할 때에, 당신의 사랑을 붙안고 당신 앞에 돌아가기 위하여 죽을 길을 가야 할 것이 우리의 운명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어린양입니다. 저희들은 철부지한 어린애들입니다. 배가 고프면 그것을 못 참아 울 줄밖에 모르고, 추우나 더우나 울 줄밖에 모릅니다. 어디 인간이 소원성취의 한 면을 갖고 있느냐 묻게 될 때,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눈물로써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아버지를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을 아시사 이 아침도 찾아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목을 안고 영원히 있기를 바랐던 아버지, 아버지의 목을 붙안고 놓을 수 없는 오늘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그 시간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내 손이 옷자락을 붙들었거든 이 손가락이 굳어지더라도 놓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한 번 만나면 영원히 헤어질 수 없다는 간곡한 사연에 사무칠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못한 인간들은 6천년 동안 탄식의 이 복귀의 노정 위에서 수없이 쓰러져 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망의 함정이 여기에 얼마나 많이 첩첩이 가로놓여 있는가를 생각할 때, 아버님을 붙들고 아버님이 거동하는 거기에 일치될 수 있게 보조를 맞추지 않고는 이 험한 구렁텅이를 넘을 수 없고 초월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옵니다. 이 길이 얼마나 마음 졸이는, 초조한 하루 하루요, 인생길인가 하는 것을 저희들은 생각지 않고 지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소년시대, 어리석은 청년시대, 어리석은 장년시대, 어리석은 노년시대로, 매양 찾아오는 습관적인 날과 같이 지내 버리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어느 한 때 칼을 앞에 놓고 생사를 결하는 심각한 국면에서, 아버지의 동조를 구하고 아버지가 내려 주는 책망이라도 받아야 할 운명길이 타락한 무리들의 갈 길인 것을 저희들이 알았기 때문에 오늘 통일교회 교인들은 심각한 무리들이옵니다.
저희들은 인간을 사랑하기에 미쳐야 되겠고, 뜻을 이루기에 미쳐야 되겠고, 자기의 생명이 연약한 것을 아버님한테 고하면서 하늘의 협조를 받기 위하여 미친듯이 아우성을 쳐야 되겠습니다. 그 누가 뭐라 한다고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옵니다. 아버지를 따라가는 길 앞에 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비록 보잘것없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대해 그 누가 뭐라고 한다 하더라도 아버지를 바라보고 가는 그 길은 소망의 길이요. 아버지를 따라가는 그 길은 저희들이 가야 하는 필연적인 길이기 때문에, 그 필연성을 깊이 알고 있는 저희들은 자기의 초라한 모습을 볼래야 볼 수 없고 환경의 비웃음을 볼래야 볼 수 없는 심각한 날들을 향해서 뛰어서 따라가야 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을 부르고 당신을 찾던 이들이 지쳐서 쓰러져 누웠다 할 때, 아버지는 그들을 버리고 갈 수 없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더 바쁜 걸음을 멈추고 저희들을 바라보며 깨기를 바라는 아버지는 얼마나 불쌍하시겠습니까? 저희들은 매양 깨어 있어야 되겠습니다. 매양 깨어 있어야 되겠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깨어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끝날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누구를 위해 기도할 것이냐 할 때에, 하늘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일체가 되지 않는 이 몸은 밤을 지새워 몸부림치면서라도 그 인연을 찾기 위하여 기도해야 할 때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과연 타락하였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얼마나 느꼈습니까? 나는 홀로 황막한 사막 가운데서, 모래바람이 불어 앞도 안 보이고 뒤도 안 보이는 그런 자리에서 앞길을 가려 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입장이 아니옵니까? 이제 어디로 갈 것이냐? 가면 갈수록 소망의 길이 아니라 절망의 길밖에 없을 것 같은 그런 입장에 서게 될 때, 동녘 하늘에 빛난 하나의 샛별이 나타나서 갈 길을 가려 준다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그렇지 못하거든 형상이나 상징도 좋거니와 하늘이 음성을 통하여 이리 오라고 하시는 것도 좋고, 그보다 직접 모습을 나타내시어 저희의 갈 길을 인도할 수 있는 그날을 가졌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사선을 넘고 간곡히 고대하던 마음이 그 중심에 사무치기 전에는 그런 일이 없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죽는 이상의 심각한 자리에서 하늘의 삶을 고대할 수 있는 자신이 못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이러한 나, 고난 가운데 사로잡혀 쓰러질 나, 운명과 더불어 처절한 한을 남기고 가야 할 나, 그 누구를 의지하고 있다 해도, 썩은 막대기와 같은 것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적에, 얼마나 배가 아프고 얼마나 초조하고 몸부림쳐도 어쩔 수 없는 그런 생명을 갈구하는 마음을 가져 가지고 몸부림쳤던 경험과 체험을 갖지 못한 저희인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채찍이라도 쳐 가지고 최후에 남아질 수 있는 길로, 좁은 골짜기의 길로 몰아서 저희들이 단거리로 가기를 바라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 아니옵니까?
아버지, 부디 버리지 마시옵소서. 아버지의 손길이 같이하시는 곳에는 소망이 있는 것이요, 아버지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는 거기에는 낙망은 없는 것을 저희가 알았기 때문에 각자대로의 깊은 생활의 일면에서 아버지와 인연맺고, 생활 환경에서 아버지가 실제로 움직이는 사실들이 현현할 수 있는 그 자리를 고대하는 것이 저희의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아버지! 이들을 붙들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11월도 그렇고 12월도 그렇고, 또한 1973년이 그렇게 저희 앞에 다가옵니다. 한 해 한 해 가면 갈수록 기쁜 날들, 기쁜 해가 아니라, 탕감복귀로서 정한 때가 원한의 때로 찾아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1972년, 이해는 역사적인 해라고 강조했던 날들이 거의 다 지나가고 이제 60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세계정세도 변했지만 한국의 사정도 변했습니다. 여기에 보조하여 하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통일교회도 변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변하지 못하였다면 이는 고장난 것이요, 잘못된 것임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는 외적으로 변하는 것보다도 마음이 변해야 되겠습니다. 애달픈 마음이 사무쳐야 되겠습니다. 뜻을 위해 생명을 기울이면서라도 가야 된다는 강한 신념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변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나로서 아버지 앞에 바쳐지는 1972년이 되지 못한 것을 분하고 한스러워 해야 되겠습니다. 나머지 이 기간이라도 저희가 뜻 있게 지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지여, 붙드시사 사랑의 품에 보호하여 주시옵고 이끄시는 동정의 마음을 버리지 마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합니다.
눈을 뜨면 저희가 보는 자연은 매양 마찬가지의 자연으로 나타납니다. 눈을 뜨면 잊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잊게 됩니다. 홀로 사망의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그런 수많은 무리를 바라볼 때에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홀로 서 가지고 하늘길을 가려 가야 할 걸음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연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이 세계를 보고 있는 이상의 간절한 마음을 갖고 이 길을 달려가지 않고는 하늘을 바라볼 수 없고, 하늘을 친히 보고 따라갈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저희들이옵니다. 하오니, 아버지여, 구해 주시옵소서. 할 수만 있으면 저희들을 이끄시옵소서.
우리는 내 뜻을 내세웠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인간이 이렇기 때문에 어려운 것을 아시는 하늘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디부디 버리지 마시옵시고 저희들을 강제로 끌어서라도 당신이 원하는 곳에 머물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어린 마음들을 가지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잘난 마음은 사탄이 기뻐하는 것이요, 어린 마음은 하늘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어린애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자고 깨면 어머니 아버지를 부르는 것이 어린애의 생활태도가 아니옵니까? 어머니 아버지를 중심삼고 가고 오고 하는 것이, 혹은 기뻐하는 것이 어린애의 입장이 아니옵니까? 그들은 자기가 어떻다는 것을 모르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저 상대적 여건에 따라 먹을 것이 있으면 좋아하는 것이요, 어머니가 있으면 좋아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상대적 권, 상대적 대상을 좋아하는 것이 어린애입니다. 남을 위하고 의지하고 기뻐하려고 하는 것이 어린애의 입장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들은 어린애와 같은 마음을 못 가졌습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기뻐할 수 있는 그 마음, 좋은 것이 있으면 자기 혼자 어디 가 가지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앞에 와서 그것을 보고하고 부모와 더불어 좋아하려는 것이 어린애인 것을 알게 될 때에, 그것은 못 가졌더라도, 벌거숭이 어린애와 같은 저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어린애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그런 어린애, 보고 싶은 어린애를 당신은 마음으로 얼마나 고대했습니까? 하늘이 얼마나 그런 어린애와 같은 모습을 고대했습니까?
순결이 그 자체로서 여과되어 가지고 나타나 환경에 반영시킬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 어린애의 모습이 아니옵니까? 천진난만한 어린애를 바라보고 저주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옵니까? 아무리 원수라 하더라도 어린애를 사랑하고 나서 미워해야 되는 것이 아니옵니까? 하늘이 사랑하는 자리에서 품길 수 있는 어린애가 되거든 사탄도 이것을 칠 수 없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인간들은 그런 어머니 품에 품겨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옵니다. 어머니 무릎에 앉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매양 어버이의 품에 품길 수 있는 한 날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것을 모르는 인간들 앞에 그것이 얼마나 소원이며, 부모의 품에 품기어서 자랑을 하면서 부모의 마음 앞에 영원히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 사랑에 어린 모습이 되는 것이 얼마나 소원인지 모르옵니다. 그 모습을 부모도 얼마나 바라고 있으며 얼마나 그 모습이 아름다운가를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옵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아버님, 찾아오시옵소서. 이곳은 통일교회 본부가 되는 자리이옵니다. 여기에 서 있는 이 자식은 통일교회를 책임진 아들인 것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한스러운 모든 일들이 눈에 어리옵니다. 잊을 수 없었던 그 날들이 생각되옵니다. 세상의 일들이 당신을 그리워할 수 있는 자극이 못 되고, 영광의 조건으로서 바쳐 드릴 수 있는 것이 못 됐다면 그것이 얼마나 얼마나 비참한 것이 되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까지 당신의 보호 밑에서 살아 남은 것만도 감사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가야 할 길이 바쁜 것을 알았습니다. 국내외 정세를 앞에 놓고 하늘 앞에 담판을 지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개인의 사정과 개인의 생활을 위하여 염려하는 사람은 부지기수이지만 당신의 뜻을 놓고 염려하는 사람은 그렇게도 희귀한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아버님은 과연 불쌍하신 분이었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과연 고독하신 분이었습니다. 그 고독한 분을 더 고독하게 만드는 불효막심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기막힌 사연, 목을 놓고 울어도 당신의 사연에 미칠 수 없는 미비하고 미비한 이것들은, 천지를 창조하신 대주재 되시는 아버지께서 아들이라고 부를 수 있고, 사랑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밑에 있었습니다.
아버지, 보기 싫은 자식이거든 보지 마시옵소서. 이것이 저희의 소원이옵니다. 그래서는 안 될 입장을 알고 있는 저희들, 보기 싫어하는 것들이라도 붙들어야 할 아버지의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런 당신은 우리 대신 원수들 앞에 조롱을 받아야 되고 십자가의 길을 가야 되는 것이 아니옵니까?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를 알고 나면 아버지를 부르기가 무서운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알면 알수록 두려움을 느끼는 마음이 큰 것을 저희들은 깨닫게 되옵니다. 감히 아버지 앞에 미칠 수 없는 추한 모습을 무엇으로 가릴까 주저해야 하는 이런 자신들의 입장인 것을 저희들은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제 11월 초하루를 맞습니다. 이 시간, 아버지, 저희들은 같이 머리를 숙여 아버지 앞에 기도합니다. 이제 60일 기간에 무엇을 남길 것이냐를 놓고 저희들은 결심해야 되겠습니다, 새로이 각오를 해야 되겠습니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에, 그 역사가 비웃음을 받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시대를 바라보게 될 때에, 이 시대가 조롱하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소망하는 미래를 생각할 때에, 오늘의 부모들이 이와 같은 미래가 찾아오는 것을 싫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자기를 아버지 앞에 제시해 놓고 당신만이 나를 벗겨 주고 당신만이 나를 씻겨 주기를 고대하는 이 시간이오니, 저희들을 품으시사 기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어린 것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더우기 선두에서 달리는 기동대원들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가는 곳곳에 하늘의 숨은 비밀의 역사가 풀어지고, 살아 계신 아버지의 현현이 거기에 이루어져서 사망의 세계를 가로막고 생명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거룩한 활동이 되기를 바라옵고 원합니다. 제가 다시 만나게 될 때는 책망으로써 그들을 대하는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늘이 자랑과 칭찬으로써 대할 수 있는 그 시간이 되옵기를 바라옵니다.
아버지, 모든 것이 아버지가 정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옵니다. 뜻하신 대로 이끄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그와 같은 길을 갈 것을 이 시간 각자가 다짐하옵니다. 모든 것 다 바쳐 효자 충신의 도리를 세우려고 맹세하옵니다. 다시 기억하시고 이끌어 주시옵길 아뢰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사람은 누구에게나 소원이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낮은 계급에 있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소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원을 가졌으면 그 소원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개인이 그러하듯이 어떤 단체면 단체에게도 소원이 있는 것입니다. 소원을 갖고 있는 그 단체가 소원을 성취하고 이루겠다고 하는 것은 곧 그 소원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원을 성취하려면 반드시 과정을 거쳐 가지고 그 바라는 대로 이것이 일치되는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렇기 전에는 성취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 나라 역시 원하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그 원하는 것이 크면 클수록 그 원하는 것을 이루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소원의 대소에 비례해 가지고 성취 과정에서는 대소의 수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나라에도 소원이 있고, 더 나아가서는 전세계의 국가, 전체 인류도 소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인간들이, 혹은 전세계의 인류가 공동의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같은 소원의 길을 가지 않고는 인류가 바라는 소원성취는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의 시대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평면적인 입장에서 보게 될 때에, 그와 같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평면적인 현상이 역사시대를 통해서 겹겹이 쌓여져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 시대 시대, 혹은 한 해 한 해를 두고 보더라도 그 평면선에 섰던 역사시대의 수많은 인류들은, 개인에서부터 전체의 인류까지 그 시대에 있어서의 소원을 품었던 것이 아니냐. 또, 아담 이후 지금까지 인류는 소원을 갖고 나온 것이 아니냐. 그러면 갖고 나왔던 그 소원이 진정한 의미에서 이루어졌느냐, 소원을 성취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성취하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
신앙길에서 보게 될 때, 아무리 자기가 신앙의 길에서 기쁨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그 기쁨이 영원한 기쁨은 안 되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찾아 왔다가 또 사라지는 기쁨이 돼 버리는 것을 우리가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옛날의 우리 조상들로부터 지금까지 수만 년의 역사를 거쳐오는 과정에서, 그 시대 시대마다 그 시대에 처했던 사람 사람들이 소원을 다 가졌지만 그 소원을 성취한 사람들이 있었느냐? 물론, 사소한 문제나 몇 해의 한계를 통하여서 이룰 수 있는 소원을 일생 동안에 성취한 일은 있을지 모르지만, 인생의 진정한 의미의 이상을 통해서 그 마음 깊은 가운데서 소원하는 이런 소원을 이룬 사람이 있었느냐 하면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이루어진 어떠한 기준이 역사시대에 남아 있고 그 내용이 밝히 기록되었더라면, 인류는 그런 길을 따라 가지고 인생이 참으로 바라는 소원의 끝까지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길을 가르쳐 주는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없다는 것은 그 소원의 자리까지 미치지 못하였다는 것인데-인간은 그러한 결과를 이룰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도 역시 역사과정에 왔다 갔던 사람과 마찬가지의 길에서 다시 소원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 소원은 나만이 특별히 바라는 소원도 아니고, 또 나로 말미암은 소원도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상례적(常例的)인 입장의 소원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으로서의 소원이 무엇이냐? 개인의 소원을 볼 때에, 여기는 남자의 소원과 여자의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그 남자 여자가 소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남자면 남자로서, 여자면 여자로서 장성해 가지고, 성숙해 가지고 결혼이라는 것을 바라고 나왔던 것이 남자 여자가 바라나왔던 역사적인 길이 아니냐. 그것이 인생이 갈 수 있는 소원의 길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갔던 것입니다. 남자면 남자로서만, 여자면 여자로서만 그것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것이 그 개인들의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왔다 갔던 보통 인간들이 소원했던 길로 남아진 것을 우리가 알고 있고, 그런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면 두 남녀가 만나 가지고 사랑하려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사랑의 목적이 어디에 머물 것이냐? 부부면 부부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들이 사랑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자기들 앞에만 그 결과가 미쳐지기를 바라서 사랑하느냐? 자기들 것만의 사랑으로 남아지게 하려고 사랑하느냐? 그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데는 반드시 그 결과가 전체로 인연맺어질 수 있는 그러한 무엇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가 아니겠느냐. 부부 자체로 있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랑이 결실된 그 무엇이 남아지기를 바라는데, 그것이 자녀가 아니냐.
자녀를 왜 남기려고 하느냐? 나에게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상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왜 자녀를 남기려고 하느냐?
자녀를 남기는 데에 있어서 자녀가 적을수록 좋은 것이냐, 많을수록 좋은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사람의 욕심은 자기가 선한 자리에 섰든가, 자기가 고귀한 자리에 섰든가, 자신이 가치적 존재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 가치적인 존재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후손을 많이 남기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요즈음 시대는 산아제한이니 무엇이니 이러한 말을 하는 때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륜도덕의 근본 되는 가정을 중심한 혈육이 많아지고 그 혈육이 상대적 환경에 있어서 넓게 퍼지기를 본성은 바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방지하는 것이 산아제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산아제한을 하는 이때에 있어서 자녀를 제한하는 것은 자식을 원치 않아서 그런 것이냐? 자식을 원치 않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자식을 원하는 데 있어서는 남과 같아야 됩니다. 아들이 있으면 딸도 있어야 됩니다. 아들딸을 낳았으면 그 낳은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을 수 있는 아들딸을 원하는 것입니다. 즉, 다른 모든 아들딸의 중심으로 설 수 있는 아들딸을 바라는 것이 아니냐. 그것은 어떠한 부모, 악한 부모라도 자식을 대해서 그러기를 바라는 것이 진심이 아니냐. 그것이 사랑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모든 사람들을 따라가는 아들딸로 남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혹은 모든 아들딸 가운데에서 일등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또한 그 자식들의 소원이 무엇이냐? 부모 앞에 내가 일등이 되었다고, 당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 내가 미치고 남음이 있다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그 보람의 대가가 내게 이루어졌다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자녀의 마음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이 있으면 그 가정은 또 가정으로서의 소원이 있는 것입니다. 그 가정의 소원이 무엇일 것이냐 할 때에, 잊혀져 간, 상례적으로 있었던 가정과 같은 가정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만은 우리 부부를 중심삼고, 우리 자녀들을 중심삼고 모든 가정의 본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사실입니다. 이렇게 가정을 발전시켜 가지고 하나의 씨족이 됐다면 그 씨족은 모든 씨족 가운데서 으뜸 되기를 바랄 것이 아니냐. 이것이 확대된 것이 한 나라가 아니냐. 대한민국 백성은 누구든지 대한민국이 세계의 어떤 나라보다도 으뜸 되기를 바라는 것이 소원이 아니냐.
그 소원이 전부 다 어디에 연결되어 있느냐? 낮은 것을 소원하는 것이 아니라 전부 다 으뜸이라구요. 비록 국토는 좁고 백성은 적더라도 그 나라를 이루는 그런 무리로서 소원하는 것은 그 나라가 모든 나라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세계가 발전해 나온 것은 전부 다 나라의 귀착점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원리로 볼 때 말이예요.
그건 왜 그러냐? 그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나라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 되겠다 하는 것이 어떤 나라든지 소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의 나라는 어떤 나라가 되어야 된다는 것은 모르지만, 가상적인 소원만이라도 두고, 하여튼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지만 그러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소원이 아닐 것이냐? 그렇기 때문에 개인에서부터 제일 중심의 자리를 연결시키기를 역사시대로부터 현재로, 또한 저 영원한 미래까지 틀림없는 역사과정의 소원으로서 인간들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 그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최후의 갈 길이 무엇이냐? 세계의 중심 나라가 되었다 할 때 그 나라는 세계가 반대하는 입장에 선 나라가 아닙니다. 그 나라는 전체가 환영하는 그 꼭대기, 탑과 마찬가지예요. 그 탑의 꼭대기와 같은, 거기에 올라가 있는 나라와 같은 것이 아니냐.
그러면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세계 인류가 바라보는 자리입니다. 세계 인류가 바라보는 자리인 동시에…. 바라봤다가 절망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기쁨을 느끼는 자리입니다. 희망을 가질 뿐만 아니라 자기가 직접 기쁨을 느끼는 자리입니다. 기쁨과 관계맺을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을 갖게끔 해주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가 타당한 자리가 아닐 것이냐. 다시 말해서 바라보는 그 자체가 소원만으로 남아지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후에는 바라고 바라던 자리 자체가 그저 바라는 자리가 아니라 바랐던 것이 이루어져 가지고 자기가 직접 기쁨의 대가를 서로서로 나눌 수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머물게 될 때에, 비로소 전체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어차피 우리 인간은 그곳까지 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우리 마음의 욕구를 추리해 보게 될 때에, 그렇게 많이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개인, 남자나 여자나 그 길을 가야 할 것이 필연적인 운명의 길이 아니겠느냐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 자리에 나가는데, 전부 다 그 자리에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나라가 그 자리에 나가게 되면, 그 나라를 중심삼고 그 나라 가운데 어떤 특정한 한 사람이 꼭대기에 최후로 남아져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는 것은 무얼 말하느냐? 그 맨 꼭대기에는 나라의 백성 전체가 평등하게 서는 것이 아니라, 삼천만이면 삼천만이 맨 꼭대기에 전부 다 서는 것이 아니라 피라밋과 같이 그 나라 백성 가운데서, 맨 꼭대기에 올라가 앉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중심삼고 보면 남자와 여자, 이 남자와 여자는 부부가 될 것입니다. 부부라 하더라도 서로 같다 하는 부부가 아니라, 거기에는 주체와 대상으로서의 부분일 것입니다. 뾰쪽하다 할 때 둘이 요렇게 된 것은 뾰족한 게 아닙니다. 이런 입장이 되어야 꼭대기가 아니냐.
그러면 맨 꼭대기가 무엇이냐? 주체와 대상으로서 천지창조가 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먼저 어떤 기준으로 서 있는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주체와 대상이 합성일체화한 부부가, 이성성상의 주체적인 하나님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놓여질 수 있는 최후의 부부가 그 꼭대기에 남아질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설 것 아니예요?
한 나라도 보면 남자와 여자로, 세계를 봐도 전부 다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는데 최후에는 뭐냐 하면,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로서 맨 꼭대기에 이를 것이 아니냐. 그런데, 그 꼭대기에 올라간 남자와 여자가 있다면 이 아래에서 전부 다 '나 지금 깨져 나간다' 할 때에, 그것이 무너져 내려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계면 세계가 하나되어 가지고 제일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라가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쌓아 올라가 가지고, 그 꼭대기까지 올라서 가지고 영원히 한 남자의 주체, 주인을 중심삼고 앉은 자리를 딱 금을 긋게 되면 그 주체는 전체의 중심, 대표의 자리에 설 것이 아니겠느냐? 그 누가 아무리 꼭대기 부분에 위치해 있더라도 이 중심과 한 발자국 틀어지는 날에는, 그 꼭대기에 있는 것도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허물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럴 수 있는 남성이요 여성이면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남성 여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보게 될 때에, 끝날은 어떤 때냐? 하나님께서 높은 피라밋과 같은 것을 만들어 나오는 역사적인 섭리가 있으면 그 섭리의 피라밋 위에 최후로 그런 남자와 여자를 갖다 올려 놓아야 될 것이 아니냐. 그것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것이요, 세계를 위한 것뿐만 아니라 하늘땅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대표한 그 무엇이 지상에 나타나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분이 반드시 인간세계에 나타나야 되겠고, 하늘이 지금까지 이 인류를 지도해 나왔다면 반드시 지도해 나온 섭리노정 가운데에 현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고맙게도 재림사상, 메시아사상이라는 말과 일치되는 말입니다.
꼭대기에 있는 그 가정은 개인적인 가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체를 위한 가정입니다. 그것이 없게 되면 탑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집니다. 요즈음 보게 되면 높은 모든 탑 같은 것의 꼭대기에는 전기불을 다는데, 그건 비행기가 날아다니기 때문에 그렇게 달지요? 만약 비행기가 없더라도 그 꼭대기에 언제든지 바라볼 수 있는 그 무엇을 남기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망일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곳에는 그냥 그대로 피뢰침같이 뾰족한 것을 다는 것보다도 거기에 다른 무엇을…. 자기가 높은 탑을 만들었으면 그 높은 탑의 밑둥을 바라보는 것보다도 '저 꼭대기를 봐라' 하게끔 그 무엇, 관심 가질 만한 다른 무엇을 올려놓고 싶을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그것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높고 좋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욕망입니다. '아이고, 높고도 나쁘다' 하는 것이 아니라 '좋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산을 바라볼 때에, 경치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 산 밑을 보고 '아이고 경치가 좋구만!' 이럽니까? 금강산 같은 것을 볼 적에도 맨밑을 보는 것보다도 꼭대기에 장식된 기기묘묘한 바위의 모양이 있기 때문에 올려다보고 입을 벌리고 '아! 참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지, 하나님도 별수없을 것 아니예요?
그 꼭대기는 모든 탑의 절대적인 중심입니다. 계급을 초월한 입장에서의 중심입니다. 안 그래요? 그것이 중심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없으면 탑으로서의 존재가치를 형성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꼭대기는 꼭대기에 있지만 탑의 절대적인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울어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것을 바라고 나갈 것이 아니냐.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그런 구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메시아사상을 맨 시작에서가 아니라 맨 끝에, 끝날에 허락할 것이 아니냐. 그 밑은 어떻든간에 맨 나중에는…. 그렇지 않아요? 돌탑 같은 것을 쌓게 되면, 애급 같은 데 피라밋 같은 것을 보게 되면 한 종류의 돌이 아니라 별의별 종류의 돌을 갖다 쌓더라도 맨 나중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은 돌 중의 제일 좋은 돌일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돌 중에서 제일 좋은 돌을 가려 가지고 올리고 싶어하는 것이 높은 탑을 쌓는 사람들의 욕구가 아니겠느냐. 사람도 그렇거늘 복귀섭리, 구원 섭리를 해 나오시는 하나님께서도 그런 것을 바랄 것이 아니냐? 그런 이상적인 메시아를 보내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는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세계는 세계 나름대로 가야 되느냐? 그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민족이면 민족 나름대로 주장하고 갈 수 있느냐? 민족은 조그마한 탑인 것입니다. 이러한 조그마한 탑들을 쌓아 나가는데, 하나님께서 보게 되면 탑을 쌓을 수 있는 재료라는 것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탑을 쌓을 수 있는 재료는 인간인데 그러한 인간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땅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 나름의 조그마한 탑을 쌓고 있습니다. 선진국가는 탑이 좀 크지만…. 그러한 것을 바라볼 때에, 사람들은 조그마한 탑들을 쌓는다고 자기들끼리 그저 싸우는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큰 탑을 쌓기는 쌓아야 할 텐데 이 큰 탑을 쌓는 데에 지금까지 쌓아 놓은 탑들은 전부 다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높고 큰 탑을 쌓기 위해서는 거기에서 쓸만한 재료를 빼다가…. 비록 그것이 외형적으로는 못생겼지만 외형적으로 좋은 모양의 탑 이상 질적으로 좋은 돌이라면 그 돌무더기가 없어질 때까지 거기에서 뽑아다가 쌓을 것이 아니냐.
그러면 그러한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 전부가 좋지 않지만 그 가운데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뽑아다 쓸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세계적인 탑을 쌓는 놀음을 하시는 하나님이라면 그분은 이 세계무대에 있는 모든 나라의 좋다 하는 것을 전부 뽑아다 쓰실 것입니다. 또 세계적인 이상적 인간이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을 것이 아니냐.
이런 관점에서 성경 말씀에 끝날이 되면 선한 사람을 모은다는 말은 요걸 두고 한 말이 아니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것은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보다도 '그렇다' 하는 결론까지 내리더라도 누가 반대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하나밖에 없는 세계적인 탑을 쌓아야 할 시대가 되면 모든 탑을 다 무너뜨려야 됩니다. 큰 놈은 큰 놈대로 작은 놈은 작은 놈대로 헤쳐 버려야 될 것입니다. 와르르 와르르 무너지게 헤쳐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 때가 끝날이 될 것이 아니냐. 거 그럴 성싶어요?
세계적인 탑을 쌓기를 바라는 절대자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럴 성싶기 때문에, 세계가 한꺼번에 왕창 무너지는 때가 되면 악한 사람이나 역사적인 소망을 갖지 않은 사람은 절망일는지 모르지만, 내가 그래도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탑을 쌓는 데 하나의 고임돌이라도 되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재료의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한 나라에서 하나도 빼지 않고 빼 쓸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끝날에 재림주님이 오면, 공중잔치 한다는 말이 있지만-그 공중잔치란 것이 높은 탑을 쌓고 올라가 공중에서 산다는 말인지 모르지만-그런 놀음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문제는 그것이 딴딴하고 질이 좋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 탑 자체가 되려면, 내가 전체가 될 수 없으니까 탑 자체에 내가 소속하고 탑을 나 자신이 지었다 하는 입장에 서려면 그 탑을 쌓는 데 내가 하나의 돌이 되면 된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의 몸에 있는 이 살이 누구의 살이냐? 내 살이지. 그렇지요? 여기는 원소들이 전부 다 광물질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누구의 것이냐 하면 그 광물질이 '그것은 네 것이기 전에 내 것이다'고 할 것입니다. 그것들이 하나되어 가지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동맥과 정맥 혹은 모든 신경기관, 또는 모든 근육이라는 것이 전부 연결되어 하나의 사람으로 되었을 때는 이 살은 내 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 살 가운데는 광물의 요소가 전부 다 들어가 있지만 그것은 내가 되는 것이 아니냐. 결국은 그 탑에 하나의 고임돌로서, 하나의 재료로서 등장하는 그 돌이라는 것은 누구냐? 마찬 가지로, 그 돌을 중심삼고는 나하고 닳았지만 나와 같은 탑 전체로 말할 때는 결국은 '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작은 것이 큰 가치로 드러날 수 있는 때는 바로 그때가 아니냐.
그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런 일을 하실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세상이 전부 다 흔들리고, 그뿐만이 아니라 넘어가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면 가다 자빠지다가 구르다가 할 수 있는 때가 눈앞에 오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보지 못하고 그 내적인 사정을 모르지만 그러한 어떤 주인이 있다면 그런 일을 할 성싶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이 바라는 것과 종교인들이 바라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지금의 때의 탑을 쌓는 것이었지만 종교인들은 미래의 탑을 바라보고 나온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인들이 소원하는 나라를 어떠한 종교도 아직까지 이루지 못했습니다. 어떠한 종교도 종교인들이 바라는 이상을 아직까지 이루지 못했습니다.
종교가 바라는 것은 '만민이 형제다. 만민이 신의 백성이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략적으로 볼 때에, 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백성이다, 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형제다 하는 내적인 사정을 갖춘 종교일수록 그 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수많은 종교들의 소원인데도 불구하고 만민이 그럴 수 있는 자리까지 못 나갔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종교들끼리 싸우고, 다 뭐 이랬다구요. 기독교만 해도….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무얼 말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정책 방향에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의 형제가 됐다면 그 가정의 살림살이에 동조하고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같은 심정을 체휼해야 할 것이 형제의 사랑이 아니겠느냐. 그런 입장이 못 됐으니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모든 것을 뒤범벅으로 휘젓는 때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거기에서 '돌, 돌' 하게 되면 그들을 감정하는 사람이 '척' 그 돌을 방망이로 깨서라도…. '에이 이놈의 돌' 하며 까 보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단단하냐 이거예요. 제일 단단한 것이 있으면 까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교단이면 교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 이거 얼마나 단단한가 여기에서 한 놈 빼서 때려 보자!' 해 가지고 방망이로 잘라 볼 것입니다. 절반으로 갈라지나, 안 갈라지나.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 것이 아니냐. 안 그렇겠어요?
그러면 기성교회와 통일교회, 미국하고 한국, 혹은 잘났다는 사람들, 좋은 역사적 전통을 자랑하는 그런 무슨 단체나 국가가 있다고 합시다. 그것이 진짜 단단한 것이냐? 그건 그렇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오늘날 과학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가면 갈수록 전세계가 더 단단해집니다. 단단해 가지고 퍼석퍼석한 것이 아니라 단단한 것도 강엿처럼 찐덕찐덕하면서 단단합니다. 서로서로가 노력하며 '더 잘하자, 더 잘하자, 더 잘하자' 해 가지고 더 좋은 것을 만들어 낸다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제의 것이 좋으냐, 오늘의 것이 좋으냐 할 때에 어제의 것보다 오늘 것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나무로 말하면 가지보다 순일수록 목적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왜? 순이 나옴으로 말미암아 꽃이 필 수 있고, 꽃이 핌으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 망하느냐? 순이 먼저 망하느냐. 밑둥이의 줄기가 먼저 망하느냐? 나무가 살아서 진액이 뻗쳐 나을 때는 순은 절대로 먼저 망하지 않는다구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지더라도 맨 끄트머리의 순이 먼저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아이쿠, 떡잎들은, 먼저 나온 이파리들은 나보다 어느 일정한 기간을 두고 먼저 나왔기 때문에, 너희들은 먼저 떨어지고 나는 얼마만큼 남았다가 떨어진다…. 이것이 천지원칙입니다. 그래서 포플러 나무를 가만히 보게 되면 모든 잎이 떨어지고 나면 어떤 때는 두 잎이 남아 바람에 팔랑거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구요, 전부.
그런데 그 나무가 원기왕성하게 살아 있을 때는 순은 살아 나갑니다. 그렇지만 나무가 한계점에 올라와 가지고 쭈그러 들어갈 때는, 그 고개가 있다구요. 그 고개를 넘게 될 때는 어디가 먼저 죽기 시작하느냐 하면, 뿌리가 먼저 죽기 시작해요? 끝이 먼저 죽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반대라구요.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역사시대의 순이 무엇이냐 하면 생명의 지향성을 가진, 혹은 방향의 지향성을 갖춘 그것이 순이 아니냐. 나무로 말하면 순이 쭉 뻗어 올라간 것이 줄거리, 줄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 순이 종대가 되어 가지고 뻗어 올라가면서 '나와 같이 이렇게 돼야 된다' 하면 그 옆에 달린 것은 '그래, 그래' 해 가지고 그 종대를 중심삼고 동서남북으로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종대의 사명을 무엇이 했느냐? 그래도 망해 들어가는 세상에 있어서 종교가 그 종대의 사명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이렇게(손짓하면서) 시켰는데, 이렇게 뻗어나간 것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제일 직선으로 뻗은 줄기가 하나는 있을 것 아니냐. 그런데 이렇게 종대로 뻗어 나갈 때에는, 그 종교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가 발달해야 된다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세계문화의 방향을 추진시켜 나가는 그 종대와 같은 사명을 하는 것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그 무엇이 아니라, 하늘을 중심삼은 그 어떤 표준이라는 것입니다. 하늘과 동반되어진 종교가 그런 놀음을 해야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추리해 볼 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사상을 중심 삼은 그러한 것이 선두에 서 가지고 세계적인 문화세계를 형성해야 된다는 말은 타당한 말입니다.
그것을 지금까지 어떤 나라가 해 나왔느냐? 미국이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미국이란 나라를 가만 보면 단일민족이 아닌 복합민족입니다. 큰 나무가 되려면 먼 곳에 있는 영양소까지 흡수해야 합니다. 그렇잖아요? 그리고 흡수해 가지고 소화시켜야 합니다. 흡수해 가지고 소화시키면 번창할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게 되면 그것이 문제가 됩니다. 영양소가 되어야 할 것이 영양소로 되지 못하고 그것이 병원(病源)이 되어 그 자체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는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것이 바로 현재의 미국사회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죽어 들어가는데 무엇이 순이냐? 나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고 지극히 젊은 청년들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미국이 망해 들어가고 있는 거예요. 이것들이 지금 퇴폐사상이 들어 가지고 히피족이니 뭐니…. '아이구, 나는 올라가지 않을래' 가면 갈수록 전부 다 떨어져 내려가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미국은 망하는 거예요. 이렇게 보면 미국은 끝났다는 거라고요.
기독교 문화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인 20세기 후반에 문화세계를 창건하였던 것은 현재 자유세계의 선도적 입장에 선 미국이 아니냐. 미국은 복합민족입니다. 그러면 미국이 몇 년 동안? 200년 동안…. 미국이 1776년에 독립되었다구요. 200년 기간이 축복 기간입니다. 그래서 1976 년이 미국에 있어서 축복의 한계선입니다. 그러니 얼마 남지 않았다고요. 7년권을 남긴 그때는 미국의 운명을 판가리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우리 3차 7년노정에 해당하는 때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어쩌면 그렇게 딱 들어맞는지! 이것이 원리적으로 들어맞지 않으면 안 됩니다. 3차 7년노정에 들어맞기만 하면…. 이 7년 기간의 전후를 중심삼아 가지고, 언제든지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면 시작 전 3일이 필요하고, 시작할 때 3일이 필요하니, 거기에 7년을 치면 13년, 만 12년 기간이 됩니다. 그런 기간에는 세계가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계에 있어서 종대가 있느냐? 탑을 쌓더라도 중심을 세워 가지고 쌓아 올라가야지요? 그 중심은 저 끝에서부터 만들어 올라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서 이것이 직선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야 되는 거예요. 중심은 중간이 아니라 저 밑창에서부터 직선이 돼야 됩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중심이 누구냐? 세계 역사과정에 중심이 누구냐? 종교 가운데 중심이 어디냐? 중심이 없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 종대가 있느냐? 중심이 없다!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지금 미국을 보게 되면 백인이 중심이냐. 흑인이 중심이냐? 지금까지는 백인이 중심이었지만 중심의 자리에서 책임 못하니까, 중심은 전체를 위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중심만 위하려고 하니 뼈다귀는 다 없어졌습니다. 결국은 다 없어집니다. 그것이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별수없이 자기는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종차별하면 망합니다. 맨 처음에는, 올라갈 때에는, 뻗어나갈 때는 차별했지만, 나라를 세우고 나서도 차별하면 결국에 가서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으려면 그 반대의 길을 가야 합니다. 모시고 받들어야 하는 문제…. 내 민족을 사랑하고 내 나라만을 사랑하는 사상을 가지고는 절대 그 중심을 남길 수 없지 않느냐? 이것은 세상적으로 봐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끝날에 코치하고 들고 나오는 대통령이 있다고 하면, 그는 민족과 국가를 초월해 가지고 보다 가치있는 중심을 확립하라 하는 것을 강조하시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 이것은 하나님이라도 그 입장에 설 수밖에 없지 않느냐.
이렇게 볼 때에, 통일교회는 그런 것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민족을 초월하고 씨족을 초월해야 됩니다. 민족과 씨족권내에 있어서 그것이 지금까지 쇠고랑이 되어 가지고 우리를 구속했지만, 이 쇠고랑을 어떻게 끊고 가느냐. 그래서 보다 차원 높은 탑을 쌓을 수 있는, 가능한 권을 이 역사시대에 어떻게 남겨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사상은 나라보다 세계를 더 사랑하라, 세계보다 천주를 더 사랑하라, 천주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 하나님보다도 하나님의 그 사랑을….
따라서 맨 나중에 남는 소원이 뭐냐 하면 높이 쌓아 놓은 탑도 아니요, 그것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믿음도 아니며, 나중에 탑 맨 꼭대기 위에 올라 앉아 있을 것은 사랑입니다. 무슨 사랑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도 나와 조화를 이뤄야 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만 딱 올라 앉게 된다면 그 사랑을 검둥이는 검둥이대로 좋아하고, 흰둥이는 흰둥이대로 좋아하고, 알록달록한 사람은 알록달록한 사람대로 전부가 하나님의 사랑은 다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돼서 이렇게 되느냐? 이 사랑과 하나되는 데는 개인에서부터 점점점점 하나되어야 됩니다. 몸이 건강해야 피가 잘 통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꼭대기 자리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서로서로가…. 그렇잖아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꼭대기에 딱 올라 앉은 이런 탑이 이루어졌다면 불평 불만이 있을 수 있겠어요? 어때요? 불평 불만이 있겠어요?
오늘날 인간 중심삼은 사랑도 그 사랑이 떨어질까봐 뭐 죽겠다고 야단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맺었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나라와 바꿀 것이냐? 어때요? 바꿔요, 안 바꿔요? 하나님의 사랑과 세계와 바꿀 것이냐? 전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관계를 맺었다면 세계보다 더 귀한 가치를 느끼기 때문에, 나라보다도 더 귀한 가치를 느끼기 때문에, 거기에서 비로소 통일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성경은 억지가 아닌 천주권적인 말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렇게 결론이 사랑이라고 나옵니다.
소원성취, 인간에 있어서의 소원성취. 하나님에 있어서의 소원성취 무엇이냐? 인생에서의 소원성취가 무엇이냐? 중심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인생의 최고의 소원이 무엇이냐? 중심을 세우는 것입니다. 아무리 나라를 세웠다 하더라도 그 나라가 세계와 통할 수 있고 섭리와 통할 수 있는 중심이 못 된다면, 그 나라는 어디에 설 것이냐?
그러므로 이스라엘 역사는 무엇이냐? '이겼다' 하는 역사는 무엇이냐? 이겼다는 말은 중심이 서 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위라면 그 위이신 하나님을 중심삼고 잃어버렸던 것을 바로 하나님의 수직선 아래에 세워야 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위에 있는 분이 찾고 있는 제일 소망점이 어디냐? 동쪽이예요, 동쪽?
이것은 동서남북을 대표할 수 있는 중앙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에 하나님도 인간세상에 중심을 세우는 것이 소원이 아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인간 끼리끼리 보게 된다면, 우리 인간 세계의 횡적인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인간의 소원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이 놓고 싶었던 중심을 절실히 찾는 것이 소원이 아니겠느냐?
그 중심이라는 것은 개인중심이 아닙니다. 맨 꼭대기와 통할 수 있는 중심, 중심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아무리 개인으로 있다 하더라도 그 서있는 자리는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중앙자리입니다. 이 중심을 중심삼고 본따 가지고 확대되어 범위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 확대는 고립적인 확대가 아닙니다. [그림 1참조]
이 중심선을 중심해 전부 다 이렇게 횡적인 입장에서 뻗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와 같아요. 나무를 보게 되면 쭉 올라간 종대가 있습니다. 종대가 높으면 횡적인 가지도 큽니다. 그렇죠? 이걸 보면 구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나무 자체가 구형입니다. 그렇다 해도 가지는 어디 까지나 가지지 종대보다 큰 가지가 없다구요. [그림 2참조]
그것을 보게 되면 하나의 탑과 같습니다. [그림 3참조] 전부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의 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꼭대기도 전부 다 평등합니다. 꼭대기에서 어느 면으로 보나 사방이 평등하게 몰려와 원이 되는 것입니다. 원형을 보게 되면 거리는 다 같습니다. 그래서 중심인 꼭대기를 전부 다 평등하게 평면적으로 덮어 씌운 것이 구형인 것입니다. 왜 구형이 이상적이냐? 전부 다 꼭대기 자리와 평면적으로 상대를 취할 수 있으니까 같은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 네가 꼭대기 되면 나도 꼭대기 된다는 것입니다. 구르는 날에는 나도 꼭대기 된다 이겁니다. 움직이는 날에는 나도 꼭대기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되어 가지고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운동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이요, 이상이요, 최고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그림 2참조]
이렇게 보게 될 때에, 탑을 쌓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역사시대 맨 처음에 하늘을 중심삼고…. '아! 돌은 이런 돌이다!' 하면 그 돌은 지방에 따라 다르다고요. 토질이면 토질의 구성에 따라, 그 환경의 여건에 따라서 굳기가 다를 것입니다. '딱딱한 정도가 우리는 이런데 이것보다 더 단단하다, 했을 때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통을 세워 나오시면서, 아노(あの), 일본 식구들을 보면서 생각하니까? 아노(あの)가 나오는구만. (웃음) 결국은 더 단단한 것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보다 못하기를 바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낫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그런 거라구요.
세계적인 탑을 쌓는다면 재료를 수집해서 전부 다 골라 가지고 볼 때에, '아, 요런 질이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질이 비슷하다고요. 그래, 이스라엘이 무엇이냐? 탑 쌓기 위한 진흙입니다. 진흙 가운데도 여러 가지의 진흙이 있지만 굳기, 강도에 있어서는 그 차이가 천태만상입니다. 무엇보다 제일 강한 것, 이스라엘, 다시 말하면 끝날에는 종교 가운데 제일 강한 종교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런 종교가 되거들랑 그 종교는, 그 질을 갖춘 종교인 돌로 탑을 쌓는 것이 탑을 쌓는 주인의 소망이 아닐 것이냐? 알겠어요?「예」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소원은 질이 제일 단단한 것을 찾는 것입니다. 단단하려면 꽉차서 딴딴해야 됩니다. 어느 누가 구할 수 없도록…. 누구라도 그거 부술 수 없도록…. 중심에 꽉차 있어야 돼요. 그렇게 단단해야 돼요. 단단한 것은 그렇지 않아요? 같은 질로 된 것이 한 면적에 얼마만큼 들어갔느냐 하는 그 비례에 따라 가지고 그 강도가 좌우되는 것이 아니냐? 물렁물렁해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 교인 중에 어떤 사람은 꾹 찌르면서 '여보 여보, 하나님이 있을까?' 묻게 되면 '글쎄? 선생님이 있다고 하니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걸 원리적으로 땀을 흘려 가면서 얘기할 때는 있는 것 같지만, 마음에는 없는 것 같은데?' 이럽니다. (웃음) 그거 딴딴해요? 물렁물렁해요? 그런 사람은 벌써 절반은 구멍이 푹 뚫렸다고요. 딴딴해야 됩니다. 눈도, 코도, 마음도 딴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누구든지 와라, 와라, 와서 비교해 보자, 나하고 비교해 보자. 와라 와라! 나 이상 딴딴한 것은 없다' 해 가지고 '나 혼자는 믿을 수 없으니까 한번 실천해 봐야 합니다. 지방에서부터, 노동자 농민으로부터, 리장으로부터 부딪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지내 보니까, 그렇게 감정을 해보니까 틀림 없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해보지 않고 나만 제일이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감정하는 요건이 무엇이냐? 지방개척입니다. 개척은 무엇을 가지고 하느냐? 손가락으로 하고, 정신으로 하라 이거라구요. 돈으로 하지 말라구요, 돈. 그렇기 때문에 개척을 나갈 때는 돈을 가져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을 가지고는 비교해서 이길 수 없습니다. 까딱 하면 들이맞습니다. 손으로 하고 정신으로 해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식입니다. 이게 좋은 식이지요?
이렇게 설명을 듣고 나면 멋진 식인데 당사자가 직접 당하고 보면 기가 막힌 식입니다. (웃음) 그래서 독방에 7,80년 묵어 갔던 사람도 나를 못 당한다 이거예요. 누구도 못 당한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뭐 뭘 보더라도 낫다구요. 정신력이 낫다는 것입니다. 남들 몇 배 낫다구요. 그러니까 미리 그런 것을 안 책임자가 있다면 감정해서 합격품이라고 딱 붙여 가지고 딴 창고에 쌓아 두고 싶은 것이 욕심 많은 통일교회 문선생의 소원입니다. 그 욕심이 좋은 욕심이요, 나쁜 욕심이요?「좋은 욕심입니다」 좋은 욕심이라구요. 그 욕심이 많으면 좋다는 거예요. 왜? 하나님의 창고에 그것을 쌓고도 남게끔 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하나님은 기분 나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요?
단단한 쇠가 있다면 대장장이가 자꾸만 두드려야 됩니다. 밤에도 두드리고 낮에도 두드리는데, 왜 밤낮으로 두드려야 되느냐? 춘하추동 계절을 통과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아침은 봄이요. 낮은 여름이요, 저녁은 가을이요, 밤은 겨울에 해당하기 때문에 춘하추동 사시사철을, 소년시대로부터, 청년시대를 거쳐 장년시대를 지나 노년시대를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쇠는 오래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일생을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좋은 쇠가 안 된다?「됩니다」 마찬가지 이치가 아니냐?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있는 힘껏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엎어 놓고 두드리고, 꺼꾸로 뒤집어서 늘였다 줄였다, 이렇게 하게 되면…. 그걸 모르는 사람은 '뭐 언제는 이렇게 하라 하더니 오늘은 이렇게 하라고, 하 이랬다저랬다하는 선생님이 됐다' 뭐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고요. 하나님 보게 되면 사실 이랬다저랬다한다구요. 그것은 왜 그러느냐? 그것은 버리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한목에 할 수 없을 때는 아무것도 못 쓴다는 것입니다.
어저께도 공장장이 지켜 보는 가운데에 빌딩을 짓고 있는데 가서 거기에서 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주욱 들었습니다. 쇠의 강도가 어떻게 다르냐 할 때, 쇠를 잡아당겨서 늘어나게 하는 힘과 눌러 가지고 이렇게 배가 나오게 하는 힘이 30배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언뜻 보면 같은 것 같지요? 야, 그것을 보면 하나님이 참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고층건물을 지을 때 이렇게 지으면, 일대일이 되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고층건물은 못 짓는다는 말입니다. 가늘지만 이것을 세워 놓게 되면 거기에 30배를 올려 놓아야 이것이 무너지기 때문에 29배만 올려놓아도 안 무너진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근을 옆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수직선으로….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교인들을, 전부 다 제멋대로 되어진 것을 때려 가지고 최고로 단단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뭘할 것이냐? 새로운 고층건물을 짓는 데다 투입해야 되겠습니다. 세우는 데는 그것이 꼬불꼬불해서는 안 돼요. 똑바로 세워져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둥그렇게 되어야 됩니다. 그것이 전체를 중심삼고는 장력이 충분해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야 초석을 놓을 수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그 초석을 놓을 때 어떻게 놓느냐 하면, 사각으로 넣는 사람이 없습니다. 역학적인 힘의 작용을 보면 이것은 45도를 통하기 때문에, 이런 힘이 통하기 때문에 이 원칙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형을 따라 그 원칙에 의해서 주춧돌을 세워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냐? 그렇죠? 그 옆의 것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기둥만 받들어줘 가지고 원형을 만들어 놓으면 옆의 것은 아무힘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무엇이라구요? 중심을 세우는 것인데, 그 중심을 세우는 데는 요런 입장에서는 세울 수 없다구요. 절대 세울 수 없다구요. 빼 버린다구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중심을 세우는데 딴딴한 것으로 중심을 세우는 날에는 그것이 자리만 잡으면 하나님도 그것을 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리를 잡는 데 있어 당신이 수평만 잡아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통일교회는 끝날에 있어서 제일 약한 종교가 되고 싶으냐, 강한 종교가 되고 싶으냐? 제일 강한 종교가 되고 싶어요?「예」 정말이예요? 얼마나 강해? '세계의 수십 억의 인류가 와라, 역사시대의 그 누구도 와라, 또한 미래에 있어서도 우리밖에 없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역사시대의 탑을 쌓는 데 있어서 중심을 세워 놓고 정초석을 전부 다 놓을 수 있는 기둥의 밑받침이 되는 것입니다. 그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바라보면 중심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개인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 할 때에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도 전세계의 선도적 국가의 자리에 올라갔다가 중심이 없기 때문에 내려오는 것은 전부 다 개인주의 때문입니다. '야! 이제 문화세계는 싫다. 원시시대로 돌아가자! 잘입고 잘먹는 것도 싫다. 쓰레기통에서 주워 먹어라. 그 다음에는 옷을 입는 것도 싫다. 원시인들과 같이 깨벗어도 좋다. 차도 고급차를 몰고 다닐 것이 아니라 다 버린 것을 갖다가 시동이 안 걸리는 차가 좋다' 지금 그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온 땅이 서구처럼 되어 가지고 이래야 된다는 표준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미국이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웽강댕강 한꺼번에 다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어떤 것이 꼭대기에 올라오면 '야, 잘 올라왔다만 여기에 내가 힘이 있어 저 두 구덩이에 구멍만 뻥 하고 나게 하면 넘어지게 될까? 한 지역 전체가 소동이 벌어지겠구만' 그렇게 되면 안 되겠지만 말이예요. 우리 같은 사람은 생각해 볼 만한 일입니다. 탑이 무너지면 '야, 이놈의 사정을 보니 동쪽으로 넘어지게 할 거야, 서쪽으로 넘어지게 할 거야' 생각할 때에…. 잘사는 사람들이 전부 모여 가지고 고층건물을 지어 사는데, 이 건물은 좋지만 사람들은 고질통이다 할 때에 '이놈의 집아, 저리 넘어져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사는 집 가운데 좋은 사람이 있으면 '아-, 안팎으로 거기에 건물 짓지 마라 그런 다는 거예요. 외형적으로 집도 좋고 사람도 좋으면 그것은 절대 안 무너집니다. 외형적으로 집도 나쁘고 선한 사람이 산다면 이 집을 넘어지게 할 때에는 하나님이 반드시 안전한 이쪽으로 넘어지게 할 것입니다. 왜? 왜? 선한 사람의 것은 당신의 것이니까? 더 좋은 면을 남기려고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지금 통일교회를 보게 되면 통일교회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선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껍데기는 거지 사촌입니다. 또, 기성교회를 두고 보면 큰 빌딩에 살고 있지만…. 그 껍데기는 좋지만 사람이 나쁘다 할 때에, 그들을 하나님이 치게 된다면 내적인 면을 중심삼고 치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것을 치게 마련입니다.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안 망해도 기성교회는 망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나 기성교회가 외형도 좋은데 내적으로도 좋다 할 때는 통일교회는 반드시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기성교회보다 나아라. 언제나 정성도 기성교회보다 더 들여라. 이것이 통일교회가 가야 할 복귀노정 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가, 안 그런가?「그렇습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은 매일같이 새벽 다섯 시면 예배본다. 그런데 통일교회 교인들은 잠만 잔다 할 때 어떻게 하겠어요? 그 사람들이 통일교회 원리 공청회에 들어가 가지고 통일교회 교인보다 밤을 새워 원리공부를 한다 하게 될 때는, 말씀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느냐? 말씀 있는 곳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통일교회의 교인은 아니지만 밖에 있는 사람이라도 말씀과 더불어 밤을 새워 가며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미처 몰랐다고 회개하게 될 때는 그 사람들은 새로운 동산에 싹이 틀 것입니다. 통일교회 말씀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교회 교인들이 하나되었다면 말씀을 모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준 말씀이 아니냐. 그렇지만 말씀은 뭐 저 선반 위에 놔 두고, '말씀을 공부해서 뭐해' 하며 그저 적당히 내 편리한 대로 사는 사람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망하게 마련입니다.
가인과 아벨 가운데 한 사람은 패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패하는 자가 안 되려면 언제나 앞장서야 됩니다. 나라를 위하고 세상을 위하는 데도 앞장서고, 하늘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데도 앞장서고, 노력하는데 앞장서고 모든 면에 앞장서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위해 앞장서는 것은 노력이요, 하늘을 위하여 앞장서는 것은 정성입니다. 정성과 노력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이 정성을 누가 막을 것이냐?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떠한 역사시대에도 남아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선생님의 관입니다.
여러분은, 정성들여요? 정성들여요, 안 들여요? 이런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제 때가 되면 될수록 통일교회한테 기성교회가 꺾이는 때가 옵니다. 통일교회가 승리할 때가 옵니다. 이때에는 누가 복을 받느냐? 통일교회가 받지 않느냐. 여러분은 뒤떨어지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 기성교회 목사들이 들어오면 여러분이 지도자로 탈바꿈할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할 때가 되어 옵니다. 가인을 아벨이 복귀해 가지고 하나된 후에는 아벨이 병신이 되었을 때는 가인의 등에 업혀서 보내야 합니다. 업혀서 가 가지고 내려놓은 그 땅에서는 아벨은 가인 앞에 예를 해야 합니다. 결국은 굴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이라구요. 그러한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견디는 데는 끝까지 견디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전에 한국티타늄을 우리가 인수했는데, 인수했다 하니까 지구장 하던 패들이 내 자리 어디 있나 하고 고민하고 있다구요. 교회에 있는 것보다 무슨 뭐 공장에 가겠다고…. 양자가 아닙니다. 공장은 종이예요. 거 왜? 돈 몇 푼 더 받는다고…. 그것 받아 먹고 좋다고 하다간 망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후퇴하는 것입니다. 20년 동안 걸어 나왔지만 끝까지 못 온 거라구요. 문턱시대에 와 가지고…. 그렇게 바라는 패들에게 전부 다 그렇게 해줄 것입니다.
미국이 지금 필요한 것은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이 필요합니다. 통일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정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돈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됐지요? 통일교회 패들, 돈 돈 돈…. 미국이란 나라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 정신이 필요합니다. 돈도 귀하겠지만, 통일교회 문선생님은 돈도 필요하겠지만, 보다 귀한 것은 정신이 아니냐. 정신만 확실히 갖추면 돈은 얼마든지 생겨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세계은행은 통일교회와 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 수속 절차가 안되어 있을 뿐이지. (웃음) 왜 웃어요? 통일교회 식구가 어떤 은행에 총재로 있다 하게 되면 그 은행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겠어요? 안 그래요? 식구만 만들게 되면 한 시간이면 당장 어떻게 될 수 있다고요. 알겠어요? 말 한마디에 딱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 어려운 게 아니라구요. 거 어려워요? 여러분 말하는 것같이 천 마디 말을 듣고 그러겠어요? 딱 한마디 말에 감동받으면 돈이 나르는 거예요. 한 바퀴 날으면 돈이 도착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어려운 게 아니라고요. 어느 구름에 비가 올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현정부가 싫어하지만 통일교회와 같은 편이라고 합시다. 박대통령이 허가해 가지고 통일교회와 손잡았다 하게 된다면 통일교회 사상을 당할 자가 있어요? 공화당 정책은 매 해 변해 나가지만 통일교회 사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원칙이 있다는 거예요. 어중이 떠중이 모여 가지고 못난 것들이, 그 다음에 이게 바람 피우다가 인민군 에게 모가지 짤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때가 되거든, 통일교회 간부들을 한 3년 동안 감옥에 처넣으려고 합니다. (웃음) 그런가, 안 그런가 두고 보라구요. 그렇게 해야 산다구요. 자 그렇게 한 3년 미친 척하고 있지 못할 감옥에 가 가지고 내 말 좀 들어 볼래요? 그럴 수 있는 거예요. 보라구요. 지금 손잡고 춤추다가는 그 전염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한 3년 동안만 내가 교육을 시켜 놓게 되면 그것은 문제없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그렇게도 고생했는데 또 감옥에 처 넣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게 되면 그건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손 안 대고 가만히 3천만 민족을 한꺼번에 한 곳에 몰아넣을 수 있는 길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이것들 내세워 가지고 기대하느니 그것들 지금 꼴 보기 싫은데 한 3년동안 처박아 두면 기성교회 사람들이 쓱 와서 '얼마나 고생했소. 얼마나 굶주렸소?' 그들이 대신 영접하면 어떻겠어요? 이렇게 함으로써 이 나라는 산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 한 3년 동안 감옥에 처 넣고 싶은 것이 모질고 믿지 못할 이 선생님의 사고방식이다 이겁니다. 거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그렇게 안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은 두 갈래 길로 작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지 않는 녀석들도 있거든요. 그런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소원이 무엇이냐? 이 세상을 보게 되면 중심이 없습니다. '내가 좋다' 내가 좋다고 하는 데는 무엇을 기준하고 좋다고 하는 거예요? 도둑질해 가지고 자기가 잘 먹을 때에 '아이구 좋다' 합니다. 도둑놈들은 자기에게 이익이 있어야 좋다 합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기꾼 들은 사기를 쳐서 딱 자기 생각대로 들어맞아 한 몫 보게 되면 '아이구, 좋다!' 할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좋아해야 되느냐? 역사의 중심이요, 시대의 중심이요, 미래의 중심이 될 수 있고, 또한 천륜의 중심이 된 그것을 전해 주고 좋다고 할 수 있는 그 기준이 무엇이냐?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이냐? 대한민국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도 되지 않습니다. 그 좋다 하는 기준은 우리가 바라고 인류가 바라는 좋다 하는 개인과 좋다 하는 가정, 종족, 민족을 위해, 좋다 하는 나라, 좋다 하는 세계관-그 좋다 하는 세계관은 우리만이 아니라 하나님도 '그렇고 말고' 할 수 있는 세계관입니다-을 중심삼고, 그 중심은 이래야 된다는 그 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거기에 일치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좋다고 해야 그것은 세계와 더불어 남아질 수 있는 것이요, 세계가 환영할 수 있는 좋은 것이지, 그것을 제쳐놓고 나만 좋다 하는 것은 당장에 무너집니다. 중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중심 없는 세상에 하나님도 중심을 세우려고 할 것이 아니냐? 그렇지요?「예」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중심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의 소원은 무엇이냐? 중심을 찾는 것,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세우시려고 하신 중심을 만나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 중심을 세우려고 하는 사상이 무엇이냐? 메시아사상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소원이 무엇이냐? 그 중심된 분을 모시는 것입니다. 그분을 모심으로 말미암아 개인의 생활관은 타락한 인류의 생활관이 되어야 하는 것이요, 그 가정관은 전인류의 모델 케이스의 가정관이요, 그 씨족은 전인류의 모델이요, 그 나라는 전세계의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개인으로 보나, 가정으로 보나, 종족으로 보나….
그렇기 때문에 제일 좋은 개인이 있으면 그 개인 앞에 제일 좋은 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예」 그래서 제일 좋은 가정이 있으면 제일 좋은 씨족이 그 다음으로 붙어야 하지요? 그렇죠? 제일 좋은 씨족이 있으면 다음에 제일 좋은 민족, 그 다음에 제일 좋은 국가가 붙어야 하지요? 이렇게 쭉 연결되어 가지고 세계가 연결되는 것이 아니냐.
이스라엘 민족은 뭐냐?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민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 앞에 어차피 나타나야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일 좋은 남자이니 제일 좋은 여자를 택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뜻을 못 이루고 죽었기 때문에 이 땅에 신랑 신부라는 말을 남겼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념적인 말을 하고 간 것이 아니냐. 제일 좋은 남자가 제일 좋은 신부를 맞아 제일 좋은 가정을 이루고, 그 다음에 그 가정은 제일 좋은 씨족과 하나되고 나아가 씨족은 제일 좋은 민족과…. 이렇게 되었더라면 이스라엘 민족은 명실공히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중심의 나라가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님은 뭘 중심삼느냐? 통일교회 교인들이 전부다 좋더냐? 아니라구요. 좋은 것도 있고 안 좋은 것도 없다? 있다? 여러분 가운데도 좋은 패가 있고 안 좋은 패가 있습니다. 그러니 절반으로 뚝 자를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패는 세상과 통할 수 있는 패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쪽은 그래도 다르기는 다릅니다. 이렇게 절반으로 갈라 놓은 여기 가운데 또 절반으로 갈라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여기에도 4분의 1, 4분의 1을 갈라놓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남은 것을 8분의 1로 가르는 것입니다. 이쪽은 좋고, 저쪽은 나쁜 대로…. 기분 나쁘지만 할 수 없다구요.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도 그렇게 안 하겠나 말이예요.
또 16등분으로 짤라다가 요것은 좋은 쪽으로 요것은 나쁜 쪽으로…. 32등분으로, 64등분으로, 그 다음엔 백 몇 등분이예요? 이렇게 해 가지고 맨 나중에는 딱 두 사람이 남을 것입니다. 36가정도 그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세 아들이 있으면 세 아들 가운데서 누가 제일 좋을 것이냐? 그것이 있다는 거예요. 36가정 중에 누가 제일 중심이냐? 전부 다 같지 않아요. 못된 가정도 있어요.
그러면 선생님은 누구를 제일 좋아하느냐? 그것은 한 사람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그렇지요? 그것이 통일교회의 전통적 기준입니다. 이렇게 되라! 그러면 하나님이 차지할 수 있는 영광을 주겠다! 너를 사랑하겠다! 누구든지 이렇게만 되면 다 그런 단계에 세워 주마! 이것이 평등 사상입니다. 그리고 고차적인 가치를 일반 앞에 나눠 갖자는 사상입니다. 그런데 과정에 있어서 그것만으로 끝나게 되면 그것은 망할 것이요 반대 받을 수 있지만, 그것을 모델로서 '이렇게 되라!' 해 가지고 그렇게 되면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에 불평이 있어요? 불평하는 녀석들이 있으면 방해를 받는다구요.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앞으로 며느리를 맞아들여야 하겠다 할 때는 처녀들을 죽 모아 놓고 처녀총회를 할지 모를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절반 절반으로 갈라 놓을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입장에서가 아니고 뜻적인 입장에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본다는 것입니다. 그 여자가 얼마나 철저한 사상을 가졌느냐, 혹은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얼마만큼 받들어 나왔느냐 하는 이런 문제를…. 그런데 여기에서 잘사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등생을 표창하게 될 때에 거기에는 공부 잘하는 사람을 표창하게 마련입니다. 표창받으러 나올 때는 사람이 옷을 잘 차려 입고 나올는지 모르지만, 그 옷 한 벌을 입기 위해서 천년 만년 살고지고 하면서 소원을 다져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냐? 그러기 위해서는 별의별 일을 다 감수한 그런 역사적인 공이 있기 때문에, 그 대가를 알아줘야 되겠기에 그런 자리에 참석시키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것이 천지이치입니다. 알겠어요?
우리 인간의 소원이 뭐라구요? 「중심을 찾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중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중심을 찾는 것이 소원이 아니냐. 물론 그것은 개인완성, 가정완성이 다 소원이지만 세계사적인 탑을 쌓는 데 있어서는 중심, 기점을 되찾는 것이 소원이 아니냐. 그 기점은 세계의 기점이 되는 것이요, 나라의 기점과 통할 수 있는 거예요. 그 다음엔 민족의 기점이 되는 것이요. 씨족의 기점이 되는 것이요, 가정의 기점이 되는 것이요, 남편의 기점이 되는 것이요, 아내의 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반드시 매일같이 그 기점과 더불어 '나는 몇 도 나갔다. 지금 몇 미터 나갔다' 하는 과정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중심을 못 가진 사람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면, 통일교회의 중심존재가 누구냐 할 때에 밉든 곱든 선생님이라구요. 그러면 선생님이 어디에 있느냐? 미국에 가 있다 하게 될 때는 미국을 향해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부 다 돌아서야 합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보면, 선생님은 미국에 있더라도 청파동을 중심삼고 지금 몇 킬로미터를 나갔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또, 청평 가게 되면 몇 킬로미터 갔느냐? 남쪽이면 남쪽, 북쪽이면 북쪽으로 얼마나 나갔느냐? 언제든지 그 중심을 모시고 중심과 올라가느냐, 내려가느냐 생각해야 됩니다. 매일같이 중심을 생각지 않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을 생각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선생님을 생각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고 그것은 괜찮지만 하나님의 뜻과 모든 사례에 있어서는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열 바퀴 돌았다 하는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말하느냐 하면, 출발 기점에서 중심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중심이 열 바퀴 돌아야 가장자리도 열 바퀴 도는 것입니다. 돌기 시작할 때에, 무엇이 먼저 돌아야 되느냐? 겉이 먼저 도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먼저 돌기 시작해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팽이가 중심이 안 잡힌 상태에서 돈다고 하면 그것은 천 번 돈다 해도 한번 돌았다고 칠 수 없는 것입니다. 중심을 잡아가지고 한 바퀴라도 돌아야, 한 바퀴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내가 왜 오늘 이런 말을 하느냐? 오늘은 11월 초하루입니다. 수요일입니다. 이 중심을 중심삼고 뺑 돌면 어떻게 되느냐? 원형이 됩니다.
이렇게 보면 11월 초하룻날은 참 좋은 날이라구요. 이렇게 되면 안팎으로 들어맞는다는 것입니다. 이래도 중심이요, 이래도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아,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한번 해봐야 되겠다 해서 하는 거예요.
결국은 뭐냐 하면 중심이 문제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주체로서 그분을 대하고, 주체를 완전히 결정하고 난 후에는 횡적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세계는 중심이 없습니다. 기독교로 보면 기독교의 중심인 예수로부터 다 이탈됐지요? 미국이 기독교를 중심삼고 돌아갈 때는 흥했습니다. 중심이 없으면 깨질 것입니다. 사람이 중심이냐? 사람을 보라구요. 인심은 조석변(人心朝夕變)이요 산색은 고금동(山色古今同)이라고 했듯이, 사람의 마음은 아침 저녁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의 마음을 여러분이 믿을 수 있어요? 그래 사람의 주장을 믿을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학설이라도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이 결정되기 전에는.
그러나 하늘 부모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한 사랑의 마음은 변치 않는 것입니다. 변치 않는 것이 세상에 하나 있지요? 단 한 가지 있는 그것이 뭐냐 하면,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한다 하더라도 요것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부모를 중심삼은 자녀…. 여기에서 부자일신이라는 말이 성립되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은 '청년들은 어떻게 살아야 된다. 장년은 어떻게 살아야 된다. 노년은 어떻게 살아야 된다'고 하는 겁니다. 이러고 보면 선생님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일생 동안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이냐 하는 이런 문제를 가만히 생각하면 고달프기 짝이 없습니다. 불쌍한 생활입니다. 공적인 생활은 불쌍한 생활입니다. 어제도 대학생들에게 이야기 했지만 공적인 생활은 불쌍한 생활입니다. 알겠어요?
땅에는 중심이 없지 않느냐? 그렇기 때문에 그런 중심을 하늘은 보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늘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때를 맞추어 가지고 중심 앞에 상대 될 수 있는 나로서 준비하지 않으면 그 중심을 만나더라도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우리 인류의 소원이 뭐냐? 중심을 만나는 것입니다. 인류가 중심과 하나 되면 인류는 가정도 찾을 수 있는 것이요, 종족도, 민족도, 국가도 전부 다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소원은 이상적인 가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적인 가정은 메시아를 맞지 않고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가정을 맞기 전에 필요한 것은 먼저 메시아를 맞아야 된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예」 왜? 메시아는 가정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종족을 맞기 전에 메시아를 맞아야 됩니다. 왜? 메시아는 종족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맞기 전에 메시아를 맞아야 됩니다. 왜? 메시아는 나라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하나로 통일해서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전에 메시아를 맞아야 됩니다. 왜? 메시아는 세계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인들이 바라는 것이 어리석은 것같지만,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기 전에 메시아를 맞아야 완전한 세계가 생겨나기 때문에 다 버리고 그것만을 고대했던 멍텅구리 같은 그들이었지만 사실 지극히 지혜로운 양반들이 아니냐? 그 종교인들이 가는 곳에 핍박이 가해지면 핍박을 가한 사람들이 망했던 것은 하늘이 그렇게 지도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겠느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소원은 중심을 맞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이게 틀림없어요?「예」 그러면 하늘의 소원은 무엇이냐? 중심을 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중심을 맞아야 되고 하늘은 중심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 중심을 맞아 가지고 여러분이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절대로 중심을 세울 수 없습니다. 왜? 인간이 중심을 세울 수 있다면 자기가 중심 노릇을 할 수 있다구요. 타락한 인간은 중심을 세울 수 없습니다. 결국은 뭐냐 하면 인간은 자기가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중심은 누가 세워 주느냐? 여러분이 세워요? 하늘이 세워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소원은 무엇이냐? 인간에게 중심을 세워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역사시대에 선지자를 보낸 것은 그 나름대로의 중심을 세워 주기 위해서 보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그 시대 사회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혁신시켰다구요. 그 선지자는 사회의 중심으로서 표준이 되기 위해서 반대하는 주권자와 부딪쳐 가지고 배반을 당했지만 사지에까지 가더라도 중심을 남기고 간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이어받아 가지고 역사가 발전되어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그러니 하늘의 소원이 무엇이냐? 중심을 세우는 것입니다. 종의 시대로부터, 양자의 시대, 아들의 시대, 부모의 시대까지 차원이 다른 반대를 반복해서 받아 나오기 때문에 비참한 길을 걸으면서 되돌아오지만, 결국은 보다 나은 중심을 세우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중심으로 보내졌던 분이 메시아라는 분입니다.
그 메시아가 중심으로 결정되어야 합니다. 세우는 데는 여러분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워진 중심을 여러분이 맞아 그분과 합해 가지고…. 여러분의 범위가 크면, 그 큰 중심과 합하게 되면 중심과 더불어 큰 무대 앞에 자신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심을 찾아 모시는 것이 소원이요, 하늘은 중심을 세우는 것이 하나의 소원입니다.
그러면 소원성취, 인간의 소원성취가 되고, 하늘의 소원성취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중심을 찾아 모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소원성취가 됨과 동시에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소원성취도 된다는 결론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분을 모시는 데는 어떠한 가치로서 모시느냐? 세계의 하늘땅을 대표한 가치로서 모시자. 그 가치로서 모시기 때문에 나도 하늘땅을 대표할 수 있는 가치자로서 등장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영광의 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소원이 성취되는 것이요, 땅의 소원성취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기쁨이요, 인류의 기쁨으로 남아지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이상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하나님의 복귀의 목적이 성사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탕감하게 하여 해원성사하는 자리가 아니냐. 알겠어요? 「예」
여러분 보라구요, 세상이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여러분들이 직장에서 통일교회 교인들끼리 모였으면 반드시 아침 저녁으로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합니다. 공산당 사회를 보면 무슨 독보회 같은 것을 하지요? 그 사회와 맞추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심을 중심삼고 가정에 맞추고 사회에 맞추고 나라에 맞추어 나가는 놀음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부 다 신문을 가지고 독보회를 하는 거예요. 아침 저녁으로 시사해설이라 해 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나간다, 이 나라의 영웅은 누구다, 전국적으로 봐서 표창할 수 있는 자는 누구다 해 가지고 전부 다 거기에 맞춰 나가게 합니다. 이런 놀음 한다는 것입니다. 참 것이 오기 전에 거짓 것이 먼저와 흉내내는 놀음을 하기 때문에 이제 통일교회는 그런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이 종횡으로 서로서로가 연락을 취해 가지고 하나의 결합체로서 형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것이 현재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알겠지요?「예」
결론을 다시 한 번 짓자요. 우리 인간의 소원은 중심을 찾아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중심을 세워서 모심받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인류의 소원이 성사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말로 한 내용을 들으면 간단한 것이지만 역사시대에 이것을 아버지께서 구상하면서 모질고 슬픈 수난길을 다하여 걸어오셨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찾기란 심히도 심히도 어려운 것임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몇천 년, 몇만 년 고대하던 것이 한번도 자리를 잡지 못하였던 한의 역사였지만, 그것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그 순간이 온다면, 그 순간에 저희는 천번 만번 죽는 마음으로 감사할 뿐이요, 그 중심을 보고 살지 못하고 모시면서 살지 못하더라도 그 자리에 동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거기가 역사를 대표한 승리의 자리인 것을 생각할 때에, 높고 귀한 자신들인 것을 저희들이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얼마나 높으냐 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땅의 인간이 얼마만큼 낮은 자리에서 높은 그 가치를 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저희들에게는 중심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기의 변명을 많이 하였습니다. 이제 변명을 하되 중심을 통하여 변명해야 되겠습니다. 살되 중심에 보조를 맞춰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저희가 바라는 소원은 보다 높은 하늘이 온 인류 앞에 중심으로 세워져서 그 하늘을 모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를 빨리 맞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요, 뜻을 따라가는 무리들의 책임과 사명인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모심받는 영광의 한 날이, 자녀들과 더불어 즐거워할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기를 당신은 바랐었습니다. 그것은 한 교회 내(內)가 아니라 일국을 넘고 만국을 넘어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한 교회에서 안 되면 그 나라에서 찾아야 할 것이요, 그 나라에서 불가능하게 되면 세계에서 찾아야 할 것이 아버지의 소원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그 운명길을 따라가려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기성교회와 통일교회는 다 상극된 자리에 섰습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당신이 중심을 찾아 세우기 위해 수난 가운데 수고하고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한국을 중심삼고 중심을 세우려고 수고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수고가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 세계를 통하여 중심을 세우려는 하나님의 최후의 때가 남아지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런 것을 알고 저희들은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세계로 가는 날을, 세계를 위해 싸우는 날을 바라야 할 것이 통일교인들이 가져야 할 사상이옵니다. 나라를 위해 싸우는 시대를 지내 가지고 세계로 가야 될 이런 사명이 남아 있습니다. 세계뿐만 아니라 영계까지 해방시켜야 할 엄청난 사명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워 이 땅을 찾아 나오던 것을 해원성사하여, 사랑의 주인공으로서 온 만민과 피조세계를 품고 내 때가 왔다고 기쁨이 만면에 만연한 그때가 오지 않고는 천상 천하의 행복의 날은 올 수 없는, 이 방대하고도 엄청난 복귀의 노정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았습니다.
아버지, 이제 가야 할 저희들은, 자랑하고 갈 수 있는 그날이 아직까지 저희에게는 없습니다. 우리는 참다운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맞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음 깊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소원의 일념을 남겨 놓고 그것을 중심삼고 환경적으로 수습하기 위해 허덕이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노정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수천 년 역사를 지내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왔다 갔습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 무리들을 중심삼고 당신이 기대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이요 딸이라고 할 수 있는, 혹은 만복의 기원이 될 수 있고 만국을 대신하여 내세워 가지고, 자랑하고 싶은 아들딸이 얼마나 되옵니까?
아버지여, 이들을 거느려서 축복의 자리까지 가기 위해서는 모든 시련 과정을 극복하고 민족을 대하는 시련과 그 이상 되는 죽음의 길을 가려 가야 할 책임적 소행이 저희들 앞에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이들이 낙망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에 오늘 갔더라도 또다시 출발을 준비하는 각오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일년을 가고도 그것은 출발 준비를 또다시 한 것이라고 느껴야 되겠습니다, 10년을 지나고 나서도 그것이 내일을 맞기 위한 출발이라고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20년을 가고 나서도 내일을 또다시 출발하기 위한 준비 였다고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여기에 준비가 잘 되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과정에는 도적도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 가진 것을 자랑하다가는 중도에서 자신이 어떠한 피해를 입을지 모르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준비하기에 게으르지 않는 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20여 년 동안 싸워 나온 통일교회 역사는 오늘의 자랑을 위해 있었던 기간이 아니라 출발의 기원을 마련하기 위해 있는 기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계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될 때요, 자체 내에 정비를 강화해야 할 때이옵니다. 그 때가 다가오고 있사오니, 세계적 중심을 모실 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선두에 서서, 누구보다도 개척자의 선봉에 서 가지고 치열한 투쟁을 한 실적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만민이 올 수 있는 대로를 닦을 수 없는 것이옵니다. 그대로를 닦아 놓은 후에 그대로를 닦기 위해서 희생했던 사람들 앞에 감사 하고 머리숙여 존경해야 할 것이 천리원칙인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가야 되겠습니다.
내일을 맞아도 또 그 내일도 준비요, 금년도 준비요, 내년도 준비, 1974년까지 준비해야 할 사명이 저희에게 남아 있습니다. 3차 7년노정까지 저희들은 준비를 하고 나서야 할 21년노정이 가로놓여 있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가면 갈수록 때가 가까이 오는 것 같지만 이것은 나에게 둘도 없는 시련이요, 나에게 결전을 촉구하는, 내적 준비와 외적 준비를 다짐하게 하는 것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과거의 자기의 그 무엇을 자랑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과거에 자기가 힘 있게 싸우던 이상의 오늘 나 자신이 더 장엄한 자체라는 것을 자랑할 수 있는 날을 갖지 않고는, 하늘 앞에 배반된 자리에 서기 쉽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준비자로서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말씀을 준비해야 되겠고, 새공산주의 비판 이론을 준비해야 되겠으며 통일사상을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세계 사상계를 몰고 나갈 수 있는 주체적 사명을 해야, 그들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적인 구원의 길을 만들어 놓을 수 있사옵니다. 그래야 그들이 당신 앞에 머리를 숙인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직 그 자리까지는 요원하기 때문에, 젊은이를 동원하여 이 자리까지 급속한 시일 내에 발전시키기를 바라는 것이 하늘의 소원이요, 여기에 서 있는 아들의 소원입니다. 가는 길을 아버지, 축복하여 주옵고, 그들이 나타나는 길 앞에 있어서 아버지, 강하고 담대한 신념을 가지게 해주시옵소서.
최후와 승리를 다짐지을 수 있는 결의에 사무친 마음, 일편단심의 그 마음을 가지고 최후에 빛날 수 있는 승리를 가질 때까지…. 이 시간을 위해서 오늘까지 싸워 왔다고, 이 시간을 맞을 수 있는 영광과 당신을 위한 찬양의 함성이나마 지를 수 있고 천지에 기억되는 모습으로서 아버지를 찬양하고, 아버지 앞에 경배하고, 아버지 앞에 칭찬받는 그날을 고대하는 당신이 마음 가운데 기억할 수 있는 아들딸로 남아지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소원성취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것은 세계에 중심을 세우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 그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 무엇이옵니까? 세계에 중심을 세우는 것이옵니다.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성취의 한 날을 저희가 맞아야 되겠습니다. 성취의 한 때를 맞아야 되겠습니다. 성취의 한 세계를 맞아야 될 것을 당신이 알고 있사오니, 그곳까지 저희들은 가야만 되겠습니다.
오늘도 가야 되겠습니다. 내일도 가야 되겠습니다. 청춘시대, 이때에 이 한계점을 못 가게 되면 출발한 청춘의 때를 잃습니다. 장년시대에 못 가게 되면 장년시대도 잃습니다. 그러면 노년시대부터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노년시대에도 못 가게 된다면 죽기 직전까지 저희들은 가야 되겠습니다. 죽기 전까지 못 가게 되면 죽어서라도 이 길을 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요, 저 영계에 가서라도 쉴 새 없이 몇천 년이라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한스러운 복귀의 길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땅 위에서 십년 노력하면 영계에서 천만 년 가는 것과 마찬가지 입장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땅 위에서의 일년을 전통으로 남김으로 말미암아 탕감조건을 세워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영계에서 천만 년을 간 것과 마찬가지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땅에 있어서의 하루를 천년 이상의 가치의 것으로 저희들이 느끼며 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할 것이 통일신자들의 매일매일의 생활이어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억천만 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이 현실적인 하루하루, 한 때를 부질없이 보내 버리는 어리석은 불쌍한 무리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혜롭고,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대상의 존재로서 천년 이상의 가치를 지닌 내적인 인연이 하루 안에 숨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 이 순간이 문제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하늘과 더불어 해결짓고 나가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1월 초하루, 우리의 소원이 무엇이옵니까? 통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나라 통일도 통일이지만 하나님과 우리가 통일되는 것이요, 성신과 우리가 통일되는 것이요, 하늘세계와 우리가 화합하여 안팎이 서로 하나 되어서 이것도 나요 저것도 나일 수 있는, 이것도 하늘 것이요 저것도 하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결과가 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그 소원을 이룰 때까지 가야 할 운명길 앞에서 우리는 쉬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피곤하여도, 피곤한 자리에서도 가야 되겠습니다. 내가 잠을 잘 때에, 몸뚱이는 쉬지만 꿈 가운데서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일생의 다짐길을 지상에서 가야 할 날들을 남기지 않고 다 갔다는 조건이라도 세워야 할 이런 책임을 하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2년 11월 5일, 이달 들어 첫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에 당신의 영광과 자비와 찬양이 길이길이 빛나게 하옵소서.
생애의 인연을 따라 만민을 당신의 자녀로 삼고, 창조의 인연을 따라 만천주를 당신의 승리의 발등상으로 세우신 그 거룩한 위업을 당신의 뜻대로 성취하시사 홀로 당신의 권한을 차지하시기를 바라옵나이다.
타락한 인류의 조상을 맞은 그 시간부터 한스런 복귀역사를 더듬어 오신 아버님이여, 얼마나 얼마나 개인들 앞에 혹은 민족과 국가들 앞에 당신이 부정당했는가 하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부정하는 인류를 당장에 포기해 버리고 싶으신 심정이었겠지만, 그래도 소원의 한 때를 바라보면서 참아오신 당신의 자비와 사랑 앞에 저희들은 몸 굽혀 경배드리며 감사를 드리옵니다. 망해야 할 인류가 이때까지 남아진 것만 해도 당신의 허락하신 온정을 무한히 받은 것이니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저희 들이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아버님 이제, 세기말적인 최종점이 저희들 앞에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이제‘나'라는 한 존재는 나 하나의 운명으로서 해결할 수 있는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을 아옵니다. 개인의 승리의 길은 민족과 통하여야 될 것이고, 민족의 승리의 길은 세계와 통해야 될 것이고,세계의 승리의 길은 천주와 아버지의 승리와 통하지 않으면 안 될 결정적인 시대를 저희가 목전에 직시하고 있나이다. 숨가쁜 한 장면이 저희 앞에 다가오는 이때에 저희 자신들은 당신이 바라보는 그런 목적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않으면 불쌍한 자들이 되며, 불쌍한 나라와 불쌍한 세계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하오니 충심으로 당신을 그리워하여야 되겠고, 당신을 시봉하면서 최후의 종착점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엄숙히 노력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악한 세계와 선한 세계가 엇갈리어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악한 땅에서 악한 사람의 후손으로 태어난 저희들은 악한 길을 가고 있던 것을 청산하고 선한 길로 접어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복귀의 길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돌아가는 길이 없기 때문에 그 길은 수난의 길이 아닐 수 없사옵니다. 가는 길 앞에는 개인이 막고 있고, 가정 국가 세계가 막고 있고 뿐만이 아니라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의 권한까지도 가는 길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일생을 통하여 이것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 얼마나 얼마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저희들에 게는 있는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생명을 각오하고라도 이 길을 극복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넘어가야 할 산정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저희의 조상들이 망하고 저희의 모든 선대의 국가들이 이 고개를 넘지 못하고 간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정상을 향하여 달려가는 저희들은 역사상에 없는 최대의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당신을 사랑하여야 되겠습니다. 당신 앞에 저희들은 미쳐야만 되겠습니다. 당신과 하나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의 힘만 가지고는 넘어갈 수 없는 길이기 때문에 하늘의 힘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저희들을 찾아오신 것은 이 길을 넘기 위하여 숨막힌 복귀의 한스런 길을 극복하고 참아오신 길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쌍수를 들어 당신이 허락하신 은사를 바라고 있는 최후의 종대를 향하는 이 마당에, 혹은 정상을 향하는 이 자리에 당신이 현현하시옵소서. 저희들이 불가능한 이런 단계에서 가능의 역사를 일으키기를 바라는 것이 역대 당신의 소원인 것을 알기 때문에, 저희들은 이것을 극복하고 돌파할 수 있는, 당신이 자랑하고 당신의 사랑을 받기에 당당한 아들딸이 되기를 마음으로 고대하고 있습니다.
고대하는 마음의 자리는 쉬울지 모르되, 실체를 넘기 위해서는 생사의 결판을 짓지 않으면, 최후에 싸움을 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저희 자신이 갖추어야 할 마음적 자세는 됐으며, 저희의 몸적인 무장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반성하면 반성할수록, 부족한 저희 자신 들이고, 벌거숭이의 저희 자신들이옵니다. 하오니, 아버지여. 저희 몸에 당신의 힘과 능력으로 철갑을 입혀 주시옵고, 저희의 마음을 당신의 마음으로 일체화시키시옵소서. 당신의 대신 실체가 되지 않고는 승리의 극복을 다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만약에 그렇지 못하게 되면 저희들같이 불쌍하고 비참한 무리가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사탄 앞에 최정상에 섰기 때문에, 하늘 앞에 최대의 협조를 할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패함과 승리가 엇갈리는 자리인 것을 아옵니다. 여기서 패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는 하늘 앞에도 원수가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잃어서는 안 될 자리인 것을 알고, 기필코 승리의 결과를 가져와 당신이 믿고 있던 그 기준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될 각자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다시 한 번 11월을 아버지 뜻을 통하여 맞고 있습니다. 1972 년도 이달과 12월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약 55일간을 저희들이 힘차게 싸워야만 되겠습니다. 이제 1972년도를 넘기고 1973년도를 맞이 하게 될 때에, 아버지여, 저희 자신들이 새로운 하늘의 승리의 모습을 가지고 세계적 도상 위에 나타날 수 있는, 당신이 지배하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 앞에는 개인뿐만이 아니라 악한 세상에서 일연된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달려 있습니다. 저희는 하늘의 뜻을 중심삼고, 하늘의 심정을 대신하여 기관차와 같은 사명을 하여야만 되겠습니다. 기관차의 힘 여하에 따라서 달리는 속도의 차이가 좌우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매양 달려야 되겠습니다. 힘이 부족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강하고 끈기 있는 자세로서 달려갈 줄 아는 기관차의 사명이 저희들 앞에 있는 것을 생각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이제 당신의 사랑하는 어린 자녀들이 당신의 존전에 부복하였사오니 일일이 소명하시옵소서. 너는 이러이러한 곳에서 불렸고, 이러한 길을 올때에는 기필코 설 수 없고 남아질 수 없는 때가 많았지만 여기까지 온 것은 나 하늘이 보호하고 길러 준 은덕으로 알라고…. 다시 하늘 앞에 감사할 줄 아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 앞에 맡겨진 책임이 얼마나 막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을 중심삼고 새로운 결의를 다짐할 수 있는 어린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현재에 당신이 찾아올 수 없거들랑 이것을 전부 다 알리시옵소서. 깊은 마음 가운데 당신이 생명의 인연으로서 좌정하시옵고 임재하시옵소서. 저희의 일체를 주관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하는 것이 일대의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역사적인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저희는 온유겸손한 어린애의 모습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벌거숭이 어린애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품을 떠날 수 없는 진정한 적자가 되어야 되겠사오니, 그럴 수 있는 아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내가 눈물을 짓는 것도 부모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처음 눈물짓지 못한 이 한스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만민의 기쁨을 대신하여 아버지 앞에 눈물로써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영광의 한 날을 바라는 것이 저희의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저희들은 웃는 것도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고 웃어야 할 텐데 불구하고 세상 사탄세계의 인연을 대하여 웃던 저희 들이었사옵니다. 이제 이것을 박차고 아버지를 향하여 웃을 수 있고 그 웃는 것을 대할 수 있는 어버이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 저희의 소원이옵니다. 희노애락을 당신과 더불어 같이하기를 바라는 것이 이 부족한 소자들의 마음이오니, 아버지여, 찾아와 주시옵소서.
험하고 고독하고 외로운 길을 그 누구도 지켜 줄 자가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그렇게 되는 것을 기뻐하는 사탄세계가, 원수가 있는 것을 생각할 때에, 저희들은 고독해도 고독한 모양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무리 죽음이 엇갈리는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저희들에게는 이를 악물고 극복할 책임이 있습니다. 망해서는 안 될 하늘의 권위와 하늘의 위신과 하늘의 처지와 하늘의 체면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 자신들은 언제나 언제나 약한 자리에, 언제나 언제나 주저하는 자리에, 언제나 언제나 후퇴하는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전진! 전진! 전진! 죽어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원수들이 과연 과연 하늘의 아들이라고 마을 마을을 통하여 기억에 증거를 남기고 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제 1972년도 막바지에 처해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갈 길을 아버지께서 책임져 주셔야 되겠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의 지도자는 그 누구도 아니었습니다. 남북이 엇갈리는 이런 실정 가운데 있어서 참의 길을 모색하여 아버님을 시봉할 수 있는 무리가 이 땅 위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님이여, 여기에 모인 저희들은 남한 땅에서도 북한 땅에서도 당신을 대신하여 설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악과선이 교차되는 현시점에 있어서, 선이 선 될 수 있는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아버님이 이끌어 가고 대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온갖 정성과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다 바쳐야 할 이때인 것을 각자가 새로이 명심하여 이때를 놓치는 무리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 땅 위에 기독교의 이름을 가지고 왔다 갔던 수많은 애혼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을 해방시켜 주시옵소서. 수많은 종교의 이름을 가지고 이 땅에 왔다가 희생된 무리들이 있사오니, 그들을 해방시켜 주시옵소서. 한 나라의 충신으로서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희생 되어 간 사람도 많사오니. 이날 이 아침에 그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을 해방시켜 주시옵소서. 사사로운 생활 가운데서 선을 지지하다가 이 땅 위의 생애를 마치고 간 수많은 백성들이 있사오니, 아버지, 그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영계에서부터 땅까지, 수많은 영인들로부터 후손까지 해방의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위로부터 풀지 않고는 아래가 풀릴래야 풀릴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이것은 땅 위에서 풀어 주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지금까지 이 땅에 왔다 갔던 의에 속하는 반열에 섰던 수많은 무리들을, 아버지여,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아버지 앞에 갈 수 있는 공인된 길을 오늘 이 시간을 통하여서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영계에서 통일교회를 위하여 수고하는 영인들 위에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들의 공덕을 치하하여 주시옵소서, 땅을 대신하여 협조하는 모든 것이 당신의 영광의 터전 앞에 자랑이 되고 당신의 마음 가운데 감사의 조건으로 남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통일교회 교인들이 이 땅 위에서 충성하는 이상으로 충성하거든 그들도 동참할 수 있는 혜택된 내에 참석시켜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1972년도에는 이 땅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한 영인들을 규합하여 지상에 새로운 대열로 포진을 시키고 이북을 향하여 악의 세력을 몰아낼 수 있는 아버지의 권고와 지휘가 같이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래지 않은 날을 남기고 저희들이 나뉘어지는 그런 시간이 오더라도 당신의 뜻과 당신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변치 말게 허락하여 주옵고,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하늘과의 인연을 높일 줄 알고 심정의 깊은 곳에서 하늘과 더불어 맺을 수 있는 사연을 지니는 무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 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나야 할 무리, 또 만나기를 바라고 있는 그들이 하늘을 중심삼고 기쁠 수 있는 내적 인연을 세계 앞에 옮겨 주기 위하여 만나고 헤어지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일본에서 지금 싸우고 있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어려운 일을 치르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사,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도 협조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원하는 뜻을 세계에 연결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각자 개인 개인의 모습을 바라보시고 그 이름을 불러 소명을 하시사 남기신 민족적 사명 앞에, 남기신 복귀의 세계 앞에 부끄러움의 자리에서는 불쌍한 무리들이 되지 말고, 당신의 칭찬과 자랑과 사랑을 직접 받는 영광의 반열에 참여할 수 있는 무리로서 남아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체를 맡으시옵소서. 1972년도의 후반기를 당신의 뜻 가운데서 처리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는 우리 개인들의 일생을 총망라해 보게 될 때, 참된 일, 혹은 참된 사정, 혹은 참된 생활이 얼마나 있었느냐 할 때, 많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참된 일이 얼마나 있었느냐? 혹은 일년에, 혹은 십년에, 일생에 얼마나 있었느냐 하는 것을 따지고 묻게 된다면, 일생에 있어서 , 그야말로 몇 시간, 혹은 몇 개월이나 있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참된 결과가 나타나게 되면 기쁨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얼마나 기쁜 생활을 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어느누구든지 나는 기쁘게 산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결론지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슬픈 자리에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슬픔이 결국은 내가 발전할 수 있는 길과 내가 바라는 길과 하나된 자리가 아니라, 그 길과 반대되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슬픈 그 자리는 결국은 괴로운 자리요, 그 자리는 악과 통할 수 있는 자리인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의 생애를 놓고 볼 때, 내가 기쁨과 혹은 참됨과 선한 자리에 얼마나 서서 살았느냐 하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게 살았다고 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혹시 있다 하더라도 잠깐, 지나가는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리를 잡아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가지와 잎을 내어‘나는 이렇게 무성하다’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그런 가정도 없는 것이요. 그런 씨족, 민족도 없는 것이 아니냐. 그런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전개된 것이 인류가 아니 더냐. 그 인류로 형성된 것이 국가가 아니더냐. 그 국가들로 이루어 놓은 것이 현재, 2대 조류를 중심삼아 가지고 부딪치고 있는 이 세계 정세가 아니더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이 세계를 악한 세계라고 전체적으로 결론지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이처럼 이 세계는 악한 세계이기 때문에, 결국은 타락한 세계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가 틀림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성경을 보면 창세기에서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조상이 타락한 조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타락한 조상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부모가 생겨났습니다. 타락한 가정이 생겨났기 때문에 타락한 자녀와 타락한 씨족, 타락한 민족, 타락한 국가와 세계가 자연히 생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생긴 세계는 불행한 세계요, 죄악된 세계요, 타락한 세계입니다.
타락했다는 명사 그 자체가 떨어졌다는 것이 아니냐. 정상적인 자리에 있지 못하다는 말이 아니냐. 그러면, 떨어지는 데 있어서는 얼마만큼 떨어졌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높은 하늘이 있다면 그 하늘과 지극히 반대되는 제일 낮은 곳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물건이 떨어지게 되면 제일 깊은 곳에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태평양 바다가 깊다 하더라도 모래 한 알이 떨어지게 되면 그 물을 뚫고 맨 밑창, 깊은 곳에 떨어져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냐. 제일 깊은 곳에 떨어지면 제일 깊은 곳에 머무를 것입니다. 제일 높은 하늘이기 때문에 거기에 반대되는 제일 깊은 곳에 떨어질 것이 아니냐.
그러면, 그 떨어진 거리를 두고 볼 때에 우리가 바라는 제 1단계의 소원은 어디가 될 것이냐? 태평양 바다라고 한다면 거기에서 떨어진 돌의 희망의 출발 기점을 찾는다면 그 곳은 물과 접하는 경계선일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우리 인간으로서 소원할 수 있는 것은 뭐냐? 인간이 어디에 소망을 두고 가다가 미치지 못하고 떨어졌기 때문에, 인간의 소망의 출발점은 어디냐 하면, 그 떨어지기 직전의 선입니다. 그 선을 넘어서는 것이 인간의 소망으로서 바랄 수 있는 출발점이 되는 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 점을 바라보고 가다가 떨어졌기 때문에 그 점을 다시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될 필연적인 운명에 놓여진 것이 타락한 인간의 정상이요, 세계 인류가 가야 할 사정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소원은 어디서부터 벌어지느냐? 타락선을 넘는 데서부터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말인 것입니다. 그러면 떨어진 우리가 자체적으로 올라갈 수 있겠느냐? 자체적으로 올라갈 수 있는 힘을 가졌다면 좋겠지만 우리 자체들로서는, 떨어진 자체들로서는 다시는 올라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떨어진 자가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반대로 끌어 주는 힘을 갖추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든가, 그렇지 않으면 땅이 솟구쳐 올라오든가, 그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누가 나서서 반대로 끌어 주는 한 사람이 나타나거나, 그렇지 않으면 땅이 솟구쳐 올라오는 천지의 대변동이 있기 전에는 그 떨어진 구렁텅이에서 본연의 자리를 찾아 올라올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떨어진 인간들을 보고 있는 어떤 한 분이 계시다면, 그 분이 떨어진 자체를 두고 볼 때에, 자기가 넉넉히 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구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람을 건져 주고 난 후에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손해난다면 안 구해 주는 것입니다. 구해 줄래야 구해 줄 수 없는 입장에 설 것이 아니냐. 구해 주되, 그 떨어진 자가 구해 주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슨 소망의 내적 이익을 줄 수 있다면 건져 줄 수 있는 길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떨어져 있는 것을 보더라도 구해 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런 입장에 선 것이 인류가 아니겠느냐. 우리 인간들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게될 때, 그런 것이 내가 아니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될 때, 내 갈 길은 어디냐, 인간이 가야 할 길은 어디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옆으로 돌아가고 옮겨 간다 하더라도 그것은 태평양 바다 가운데서 이동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냐. 그것은 이동하나마나 한 것과 마찬가지의 움직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인생의 갈 길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갈 길에 있어서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가야 하느냐? 옆으로는 아무리 노력을 하고 아무리 왕래하더라도 그 사람의 갈 길은 절망으로 끝날 것입니다. 그것은 망하는 운세에 사로잡힐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단 한 가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 자리를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서 있는 자리를 떠나서 도약을 하는 것입니다. 비약을 하는 것입니다.
비약을 하는 데는 각도가 좋아야 된다 이겁니다. 어떤 각도를 가지고 무한히 반대의 길로 솟구쳐 올라가는 길밖에 없지 않느냐. 솟구쳐 올라 가는 데는 한 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방, 동서남북 사방을 중심삼아 가지고, 동으로 각도를 갖추어 솟구쳐 올라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서로 북으로 남으로 자기 나름대로 방향을 갖추어 올라가려고 할 것입니다. 거기에는 천태만상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동서남북, 사방을 중심삼고 보면 360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평면적보다도 더 많은 각도의 방향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차이에 의해 자기 나름대로 몸부림을 치며 여기서 도약, 혹은 비약하여 해방을 맞기를 고대하고 있는 인간들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도 그 어떤 분야의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어떠한 각도를 향해 수고하고 노력하는 인간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뭔가, 스스로도 모르지만 해방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 사로잡힌 자기의 인생고에 부대껴 가지고 그것을 초월하고, 거기에서 해방할 수 있는 한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고대한 것이 역사이래의 인간상이 아니었더냐. 그 인간상 가운데서 내가 나를 중요시하고 나를 빼놓고는 전체의 가치를 시인하려 하지 않는 그런 자신을 두고 볼 때에, 이 자신이 머물 수 있는 자리와 가야 할 길이 어디겠느냐 하는 문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떠한 자리에 떨어져 있습니까? 거기에는 천태만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선한 조상도 있고 악한 조상도 있기 때문에, 역사 이래 제일 악한 조상이라면 제일 깊은 자리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역사이래 제일 선한 조상이라면, 그 조상들의 죽은 사체가 혹은 뼈가 쌓이고 쌓여 그것이 높아져 가지고 하나의 터전으로 남겨졌으면 그 위에 태어난 조상은 선한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악한 조상은 그 뼈라도 천지가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주인이 있다든가 혹은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악한 사람의 무덤은 바라 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의 행적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이라 할진대는, 악한 사람의 무덤이라든가 악한 사람의 그 무엇은 남기고 싶어하지 않고 없어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맨 밑창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하 고저의 차이에 있어서 천태만상의 이런 배경과 역사적 인연을 남기고 있고 또 그것을 지니고 있는 것이 우리 인간임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고로 수많은 인간들이 참을 추구하고, 공의를 추구하고, 전체를 위해 희생하고, 전체를 위해서 자기가 빚지기를 원치 않는 것은 무엇때문이냐? 남에게 줘라, 남에게 이익을 줘라, 빛을 지고 남에게 보탬을 줘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인간은 자기가 어떠한 자리에 있는가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수평으로 본다면 자기가 높고 낮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입장에 선 인간이 왜 남을 위해서 희생해야 되느냐? 결국 좋은 일을 하는 것은, 갑이라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되었으면 갑이 라는 사람이 나를 기억해 주게 됩니다. 기억해 준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줄로 얽어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을이라는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고 협조했다면 그와 나 사이에 줄을 걸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자기에게 귀한 것일수록 입체성을 갖는 것입니다.
덜 가치 있는 것, 덜 귀한 것,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은 절대 선한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올라가야 할 운명 길 앞에 조금도 도움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고 귀중히 여기는 것은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그 높은 곳에 있는 좋은 것을 주게 되면 그 높은 인연을 중심삼고 얽어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을 위해서 내가 희생하면 상대가 많기 때문에, 나는 모르지만 상대의 수많은 선한 조상들이 그 후손들을 협조하기 때문에, 그 높은 자리에 있는 조상들이 후손을 협조해 주는 자리에 서면 나는 그 높은 자리에 있는 후손과 줄을 맨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후손이 이동하게 되면 자연히 나는 끌려가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한 일을 하라고 하는 것은 결국, 무엇을 바라 가지고 하라고 하는 것이냐 하면 내가 높이 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향의 결과인 것입니다. 이것을 모색하기 위해 허덕이는 인간의 실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내가 쓰다 남은 좋지 않은 것을 주면 그것은 도리어 밑창과 인연맺는 것이기 때문에 올라갈래야 올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 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빛을 지지 말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마음을 가지고 희생을 하는 사람은 좋게 된다는 것이 막연하나마,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지만 막연하나마 오늘날 인륜 도덕을 중심삼아 가지고 일률적으로 교육의 목표가 되어 있고 교양의 목표가 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 그러냐? 떨어진 자리에서 보다 높은 한 점을 바라고 있어 하늘은 불가피하게 그런 것을 일대일의 자리에서 세밀하게 가르쳐 줄 수 없기 때문에, 암암리에 상징적으로 혹은 비유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르쳐 준 것이 오늘날 선을 행하라는, 적선하라는 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쓰다 남은 것을. 내가 못 쓸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은 결국 받는 사람이 그것을 진정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받게 되면 나를 끌어다가 밑창으로 떨어뜨리는 하나의 조건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오늘날 종교, 혹은 도의 세계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들이 현시점에서 어떤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들은 좋은 스승을 찾고 있습니다. 학교에 가면 누가 제일 좋은 선생이냐? 아무리 지식이 많아 가지고 입으로 가르쳐 주는 데 있어서는 일등이라 해도, 행동이나 인격에 있어서는 도저히 본받을 수 없는 선생이 있다면 그 선생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말은 듣지만 돌아서서는 비웃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스승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냐. 자기 부모에 대해서도, 사랑을 중심삼은 부모에 대해서도 누구보다도 자기를 사랑하는 부모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 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부모가 있는데 그 부모가 진정한 사랑을 한다면, 그 진정은 하늘과 거리가 가까와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지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들은 훌륭한 스승을 바라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자기의 영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하늘을 대표한 훌륭한 지도자가 있다면 그런 지도자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역사상에는 우리 인간이 원하지 않았지만 하늘이 있는 한 반드시 훌륭한 지도자를 넘은 훌륭한 선지자를 보내 가지고 그 시대에 지시하고, 가르침을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시대에 어떤 나라에도 있어 온 것입니다.
친구를 사귀더라도 좋은 친구, 아들딸을 갖더라도 좋은 아들딸, 남녀가 결혼을 하는 데도 좋은 남편과 좋은 아내를 원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좋은 것을 찾습니다. 좋은 것은 무엇과 통해요? 참과 통하는 것입니다. 좋은 환경을 갖추지 않으면 참된 자리에 설 수 없기 때문에, 참을 바라는 그 마음은 좋은 것을 바라는 마음과 일치되는 것을 우리는 생활 주변을 통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을 대표해 가지고 역사상에 왔다 갔던 최대의 지도자는 누구냐? 나라를 대표해서는 애국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이순신 장군' 하게 되면, 그는 우리 민족이 추모할 수 있는 대표적인 애국자로 추대하고 있지 않느냐. 그렇지만 그분이 나라는 사랑했지만 세계로 사랑했느냐? 애국자는 되었지만 위인과 성현의 반열에는…. 대한민국의 애국자의 대표는 되지만 인류의 대표자는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애국자란 난시, 환란시대를 통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평화시대에는 애국자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국가가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운명에 부딪쳐 가지고, 적국이 나라를 삼키려 하는 그런 상대적인 시대에 부딪쳐 가지고 그 삼키려는 적을 쳐서 굴복시키는 자리에서, 그것을 퇴치하는 승리의 기반을 닦은 데서 비로소 애국자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혹은 간신들이 날뛰는 환경을 청산한 그러한 자리에서 애국자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적과 싸워 가지고 승리한 그 자리에서 애국이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한 나라의 애국자는 적국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이순신 장군이 한국에서는 애국자로 통하지만, 일본에서는 애국자로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한국 사람들이 전부 다 일본 사람들보다 나으냐 할 때, 그렇다는 말을 못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나쁜 사람들보다도 일본의 좋은 사람들이 많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엇갈려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애국자가 필요하냐, 성인이 필요하냐? 성인은 무엇이냐? 한 나라의 애국자는 그 나라의 최후의 운명을 중심삼고 싸운 자요, 성인은 한 시대에 한 나라를 위해 싸우지 않고 세계를 위해서 싸운 사람인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싸운 것만 가지고 인류 앞에 성인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늘이 공인할 수 있는 성인이 되려면 하늘을 위해서 싸운 사람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를 대표해서 하늘을 위해 싸운 사람이 누구냐 할 때에 그것은 종교 지도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냐? 온 세계를 대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온 세계 인류를 대표해 가지고 하늘을 붙들고 싸우는 사람이 있거들랑, 그 사람은 역사시대에 남을 수 있는 인류의 소망의 존재요, 하늘이 있다면 하늘이 일정해야 할 필연적인 존재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사상을 통하여 혹은 행적을 통하여 좋은 것을 찾고 있는, 그 어떠한 좋은 친구보다도 좋은 스승보다도 좋은 애국자보다도 더 좋을 수 있는 것을 찾고 있는, 인류를 대표한 세계의 위인보다도 그것을 넘어서 인간세계뿐만 아니라 역사를 지닌 하늘이 있다면 하늘의 전역사시대를 대표한 하나의 참된 주인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을 친구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들의 필연적인 욕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그런 자를 역사시대의 대표자로 세워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종교 지도자가 종교 지도자로서만 서 있는 것이 아니고,성인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성인하게 되면 4대 성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예수님이 무슨 성인이냐? 그분이 땅 위에 와 가지고 30평생 사는 동안에 나라의 주권을 중심삼고 행사를 해봤어요? 대전쟁에 나가서 총칼을 들어 가지고 승리의 권위를 세워 봤어요? 이건 나면서부터 고생을 말할 수 없이 했습니다. 3년 공생애 노정에서뿐만 아니라 세상에 태어난 그 시간부터 쫓겼던 사람입니다. 이 마을에서 쫓기면 저 마을로 쫓기며 방랑하던 처랑한 사나이가 아니냐. 그러다가 민족 앞에 몰리고, 유대교 앞에 몰리고,로마 앞에 밀려 가지고 갈 수 없는 길인 죽음의 길을 자처해 가지 않았느냐. 그렇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 같으면 도망갈 수 있는 자리에서 예수님은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한 것을 보면, 내 뜻과 하늘의 뜻이 엇갈린 자리에서 하늘의 뜻을 중요시했다는 데 있어서, 어떤 성인보다도 보람이 있는 그런 내적인 세계를 관찰하고 갔던 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내 뜻을 버리고 하늘의 뜻대로 한 것은, 이것은 인간을 대표한 자리라구요.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자리가 아니요. 유대교를 대표한 자리도 아니요. 로마를 대표한 자리도 아닙니다. 그런 자리에 서면 상치되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대표한 입장에서 그들의 편이 되면 하늘 앞에 반대되는 것이요, 하늘의 편이 되면 그들 앞에 반대될 것이기 때문에 이 엇갈리는 둘 사이에 있어서 공의의 판단을 내려 가지고 결정해야 하는 길, 그것을 판단하는 싸움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아니었더냐. 이건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내 뜻이라는 것은 인간이 망할 수 있는, 타락한 세계의 인류를 대표한 공통적인 마음의 자세였지만, 여기서 당신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당신의 아직 나타나지 않은 뜻이요, 내 뜻은 이미 지나온 뜻으로서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뜻 기준 전부를 이를 수 없는, 망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그 운명에 몰린 환경을 붙들고 슬퍼하면서 죽음길을 자처한 것이 아니요, 자기의 생애를 정비하고 나서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죽더라도 당신의 뜻을 정비하여 내 생애의 터전 위에 남기고 가야 된다는 필생의 염원이 있었기 때문에, 죽는 순간까지 그 뜻을 심기 위해서 간 것이 십자가의 길이 아니냐.
결국 예수님이 피를 흘린 것은 하나님의 뜻을 심기 위한 것이요, 십자가의 고통을 당한 것도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뜻을 심어 가지고 그것이 싹이 되고 줄기가 되고 잎이 퍼져서 온 세계적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심어 놓았기 때문에, 하늘은 그 생명의 씨가 동기가 된 사상과 더불어 세계적인 발전을 시켜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동기로 말미암아 세워진 기독교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안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인들은 어떤 무리냐?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4대 성인 하게 되면 예수님도 포함되는데,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냐? 나라를 위해서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 세상의 정치를 위해서, 그 나라를 수습하기 위해서 미친 사람이 아니라구요. 무엇에 미쳐서 죽음길을 갔느냐? 하늘을 위해서, 나타나지 않는 미래의 이상세계를 향해서 미쳐 간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가정뿐만이 아니라 나라도 버렸고, 교회도 버렸고, 그 시대에 출세할 수 있는 제반 요건을 다 버렸습니다. 버린 것은 그보다 못한 것을 찾기 위해서 버린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 버린 것입니다. 그는 올라가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을 버렸던 것입니다. 떨어져 내려가기 위해서 죽어간 것이 아닙니다. 결국 그것은 올라가고자 하는 마음과 하늘이 올리고자 하는 마음이 일치될 수 있는, 어떤 접촉점을 연결시킬 수 있는 가능한 때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때가 바로 세계적으로 접촉하는 끝날입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사망의 세계의 끝날입니다. 자기를 채찍질하던 모든 원수들의 최후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와야 되는 것입니다.
선한 세계와 악한 세계는 서로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악이 지나간 다음에 선이 행사하는 것입니다. 악과 더불어 행사하기 위한 선이 아닙니다. 그러려면 선과 악은 언제나 싸워야 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인격자가 되려면 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 마디 땅 때리면 당장에 한 마디가 아니라 열 마디로 대꾸하는 것이, 즉 일대일이 아니라 몇 대 일로써 응수하는 것이 악한 세상에 있어서는 잘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선한 사람은 참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으라는 거예요.
성인들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고 석가모니도 그렇습니다. 석가모니는 자기가 살던 왕국을 버리고 나선, 하늘의 고독의 세계를 자처하고 나선 그런 사나이가 아니었더냐, 다 버리고 나섰던 것입니다.
공자도 역시 노나라 시대에 있어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시대에 있어서 희망과 소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구요. 절망에 처해 있으면서도 이념적인 어떤 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미래의 세계는 이래야 된다는 국가관을 형성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이 아니냐. 인간이 갈 수 있는 인도 (人道)의 기준은 이래야 된다는, 인륜 도덕을 중심삼고 삼강오륜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그 기원을 찾았던 사람이 아니냐. 그 시대에 처해 가지고 그 시대와 더불어 박자를 맞추어 가지고 살아간 사람이 아닙니다. 그 시대를 초월하고 그 환경을 극복해 가지고 내일의 보다 가치적이고 보람있는 인생길을 추구하기 위해서 환경에 몰리면서도 싸워 나갔던 사람이 아니냐. 그것이 유도(儒道), 유교라는 것입니다.
마호메트 같은 양반도 종교 지도자라구요. 종교 지도자. 그것이 이상하다구요. 철인(哲人) 소크라테스는 성인에 들어가지 못해요. 철인이라구요, 철인. 철인은 진리를 가르쳐 주는 거라구요. 생명을 좌우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철학이 권위가 있다 하더라도 죽을 사람을 살리지는 못합니다. 방향을 제시해 줄 수는 있지만 옮겨 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인은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성인이 되려면 생명 문제, 인간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양면의 기로에서 있는 인간을 살려 준다는 결정적인 책임을 지고 나선 사람이 아니고는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성인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위로부터 줄을 내려 가지고 끌어 올리는 사람하고 그렇지 않으면 받들어 올리는 사람, 이 두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끌어 올리려면 하늘로부터 줄을 달고 와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줄, 줄, 이걸 잡아라’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그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깊은 데 들어가 가지고 ‘너는 나를 타고 올라가라‘고 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양면의 사상을 갖고 나오지 않은 사람은 성인의 반열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도 그것은 타당한 것입니다. 당연한 결론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그런 면을 추구하기 때문에 ‘위를 바라보아라' 하는 것입니다. ‘아래를 바라보아라’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하느냐? ‘희생해라. 깊은 데로 들어가라’하는 것입니다. ‘참아라. 전부 다 밟혀라. 밟혀라, 밟혀라’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밟히는 자리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자꾸 들어가다 보니 그것이 땅에서 솟구쳐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의 뼈가 고임돌이 되어 가지고 그 뼈로 쌓여진 축대가 이 수면을 들고 나오게 될 때, 해방의 한 날이 올 것이 아니냐. 하늘이 있다면 그 두 길밖에는 모색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버리고 미래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의 도리입니다.
이렇게 볼 때, 타락한 인간에게 필연적인 교훈은 이 두 길밖에 없습니다. 한 길 한 길 나누어 갈 것이 아니라 두 길을 한꺼번에 가는 것이 더 이상적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은 절대자이기 때문에 그 두 길을 한꺼번에 가기 위할 길을 가르쳐 줘야 되기 때문에 종교를 통해서‘하늘을 절대 붙들어라’한 것입니다. 그것을 놓치면 큰일이라구요. 그것만 붙들면 사는 것입니다. 하나의 해방을 위해서는 전부가 해방될 수 없습니다. 그 하나를 서로 붙들겠다고 주위에 있는 사람이 싸우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종교를 붙들고 싸우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종교끼리 싸우는 권내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떠났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네가 꽉 붙들고 있거라. 내가 고임돌이 되어 주마’하고 서로 밑창에 들러가겠다고 하는 놀음을 해야 합니다. 하늘은 이러한 양면의 작전을 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를 붙들었지만 인류를 대신해서 내가 고임돌이 되어 가지고 땅에 들어간다’해 가지고 인류를 등에 업고 올려 주면서 ‘하늘이여! 나를 사랑한다면 이것을 끌어올려야 됩니다’이런 작전을 하기 위한 대표자로 왔다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야말로 하늘을 위한 대표자요, 인간을 해방하려는 하늘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요, 인간의 해방을 촉구하는 하나의 모델 케이스로 왔기 때문에, 인간은 이렇게 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표준형이었기 때문에 역사상에 그의 교훈이 세계의 문화사를 움직이게 된 것이 야니냐.
세기말적인 세계 정세를 앞에 놓은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내가 가야할 필생의 운명길이 어디냐 할 때,‘나 모른다' 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무지에는 완성이 없는 것입니다. 무지는 파탄입니다. 그것은 항로를 모르고 대양을 달리는 배와 마찬가지입니다. 표면에 나타난 물결은 마찬가지라고 가는 대로 가다가는 파탄되게 마련입니다. 키를 잡아 가지고 항로를 가려 가면서 전진하는 데 있어서 그 전진하는 것만 보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항로를 바로 보고 항구가 가까와지는 것을 보고 기뻐해야 정상적인 선장이 아니냐. 현재 잘 움직인다고 해서 그걸 좋아하다간 망하는 것입니다.
세계여, 그런 운명에 서지 않았느냐. 대한민국이여, 그런 운명에 서지 않았느냐. 내가 그런 운명에 서지 않았느냐. 이 입장이 우리의 인생길인 것을 생각할 때, 인생길은 그야말로 비참한 길이요, 그야말로 고해라는 옛날 우리 조상들이 남긴 말은 타당한 말이 아니었더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을 붙들어야 되겠습니다. 오른손으로 하늘을 붙들어야 되겠다 이겁니다. 하늘을 붙들고 올라가는 데 있어서는 순식간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육천년 동안 떨어진 이 구렁텅이를 올라가려면 혼자의 힘 가지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난한 자리에서 올라가기 위해서는 ‘하늘이여, 원하거든 이 땅이 솟구쳐 가지고 이 대양을 뚫고 나올 수 있는 터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다시 말하면‘이 세상이 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도 바라는 소원이요, 구원받기를 원하는 인류의 소원이기 때문에 인류 앞에는 반드시 끝날이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끝날은 뭐냐 하면 수평선상에 하나의 섬이 나타나는 때일 것입니다. 섬이 이 세계에 나타나는 그 때가 끝날일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적이 아니라 특수한 사람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때일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는 하늘을 대표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처음 찾아올 것이요, 또 땅을 대표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처음 찾아올 것입니다. 그 자리가 뭐냐? 성경에서 말한 대로, 하늘을 대표한 남자는 신랑이요. 땅을 대표한 여자는 신부이기 때문에 그러한 신랑과 신부가 상봉하는 자리가 아닐 것이냐 할 때, 그거 참 그럴 듯한 결론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간 후에 하늘로 올라갔고, 선신은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땅에 온 성신의 목적이 비로소 종착점을 결하는 것이요, 올라갔던 그분이 올라가 이루어 가지고 올 수 있는 상봉의 순간이 재림의 순간이 아니겠느냐? 그것이 재림사상이 아니냐? 메시아가 땅 위에 현현하는 때가 그 목적점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볼 때, 그것은 틀림없는 결론입니다.
그러면, 최후에 남아질 것은 뭐냐? 인간들이 구상했던 철학도 아니요, 그 어떤 인생관도 아닙니다. 하나님 플러스 인간, 신인(神人), 신인(神人) 삶의 길, 신인 생활관입니다. 인생관도 마찬가지로 신인 인생관, 신인 세계관, 그것이 통일된…. 그것이 막연하게 하나님을 대해 가지고 사람이 알 수 있는 정도의 자리가 아니라 사람이 영원히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자리입니다. 왜? 하나님과 사람은 본래 떨어질 수 없는 자리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그 떨어질 수 없었던 자리 이상의 자리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신인(神人)이 하나된 생활적인 무대, 세계적인 무대를 요구하고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신학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신학의 종착점은 어디냐? 인간의 지성,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학적인 기반을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이것이 내적인 면에서 일치점을 가지고 인간의 지식을 포괄할 수 있는 신학의 결론성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최고의 지혜가 무엇이냐 할 때에, 하나님도 인격적 신이라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소망이 있음과 동시에 사정이 있을 것이고, 심정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도 제일 중요한 문제 세 가지를 뽑는다면 소망과 사정과 심정이 아니냐. 그렇지 않아요?‘아! 그 사람은 사정이 나와 같아’그러면 통하지요?‘아! 나와 심정이 같다’그렇게 되면 거기서부터 행복이 오는 것입니다. '아! 그것이 내가 바라던 바야’거기서부터 행복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망과 사정과 심정, 이것은 인격을 가진 인간과 하나님과의 공통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사정을 넘어서 신의 사정과 일치되어야 되고, 인간의 심정을 넘어서 신의 심정을 가지고 일치되어야 되고 인간의 소원을 넘어서 신의 소원과 일치되어야 됩니다. 그러한 대표적인 인물로 이 땅에 왔다 갔던 분이 그리스도가 아니냐. 안 그래요? 그래서 예수님은‘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했던 것입니다. 달랐다구요.‘제 사정은 비참하지만 당신의 사정대로 하시옵소서, 제 심정은 비참한 길을 가기 싫지만, 당신이 원하는 심정은 세계를 사랑하기 위한 심정이기 때문에 나 하나를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위해서 사랑하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 는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인(神人)이 일체화한 인생관과 세계관과 심정관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생활은 사정을 통할 수 있는 것이요, 생애는 소망을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이요. 심정은 비로소 소망과 생활이 하나된 본보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진대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무엇이냐? 소망을 상징하는 것이요, 소망은 무엇이냐? 갈 길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소망을 중심삼고 뜻을 중심삼고 사는 것이요, 그것은 사정이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일치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냐. 그래서 모든 것은 다 지나가더라도 그 중에 제일인 사랑은 남는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에 인류세계가 바라는 희망의 세계는 지식의 세계도 아니요, 인격의 세계도 아니라 사랑의 세계인 것입니다. 이상의 세계도 아니요, 인격의 세계도 아니요, 사랑의 세계입니다.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인(神人)을 중심삼은 심정적 세계가 일치된 세계는 하늘이자 땅이요, 땅이자 하늘이요, 위가 아래가 돼도 좋고, 아래가 위가 돼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되지 않고 위가 아래가 되면 큰일난다구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으로 하나 안 되어 가지고 어머니가 위로 올라가겠다고 하면 아버지가 야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된 그 기준에서는 상하가 엇바뀌어도 그것은 통일입니다. 만일 위가 아래로 내려가게 되면 그것은 아래를 위로 올려 주기 위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내려가는 것은 어머니가 내려간 것을 올려 주기 위한 것입니다. 또, 내려오는 것은 위로 올라가는 사람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잡아당겨 주는 것입니다. 올려 주고 잡아당기고 하며 여기서 돌아가기 때문에 영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혼자 고착된 점에서는 영원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칠판에 쓴 제목이‘참된 영광의 길' 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인간이 그리는 최후의 갈 길이 어디냐? 그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 이런 운명길에 놓여 있는데 내가 갈 수 있는 영광의 길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이제 죽음으로 일방이 결정된 그런 운명에 처해서 신음하고 있는 내가 위로부터 하나의 줄이라도 탈 때는, 그 순간은 영광의 순간인 것입니다. 그야말로 영광된 시간입니다. 이것을 내가 바랐다면 바라던 그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기뻐할 순간이 아니냐. 만약에 바라지 않았는데도 그런 길이 있다면, 그 줄이 있다면 얼마나 고마울 것이냐? 그것은 바라지 않았던 사람도 기쁠 것이요, 바랐던 사람은 더 기쁠 것이 아니겠느냐. 그 영광의 길은 어떤 것이냐? 신음하는 운명에 처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부 바라는 길입니다. 전부 다 기쁨으로 삼을 수 있는 길이 아니냐. 그 길을 찾는 순간은 영광된 순간이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영광의 순간을 붙드는 데도‘아이쿠 내 손에 힘이 없어’하게 되면 아무리 영광의 길이 왔더라도, 영광의 순간이 찾아왔더라도 영광의 길을 거쳐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줄이 있다면 그 줄을 붙들 뿐만아니라 그 줄에다 목이든 다리든 꽁꽁 얽어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얽어매기만 해 가지고 되느냐? 되지 않습니다. 얽어맸더라도 누가 위에서 당겨 줘야 되는데 만일 위에서 당겨 주지 않으면, 옆에서 당겨 줄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구함받는 데 있어서 세 사람이 한꺼번에 구함받겠다고 하면, 세 사람 다 망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씩 구함받아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두사람은 협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은 참으로 이치적인 하나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삼위일체라는 말은 누구를 중심삼고 한 말입니까? 하나님을 중심삼고 한 말입니까? 삼위일체란 뭘 하기 위한 것이냐? 인간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되면 그 자체를 중심삼고 하늘은 꼭대기에 있고 나는 그 줄을 붙들고 있는데, 하늘이 안 당기게 되면…. 하늘이 꼭대기에만 있어 가지고는 안 되겠다구요. 줄을 걸어 붙들어 주는 사람이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줄을 당겨주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결국 죽음의 자리에 처해 있는 운명을 대신 책임질 사람이 없어 가지고는 살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 자리를 전부 책임질 수 있게끔 되어 가지고 전부 다‘내가 끌어올릴 수 있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끌어올리려면 현재의 입장을 책임지고 넘어설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쪽의 희생이 없어 가지고는 한쪽이 올라갈 수 있다?「없다」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비참한 운명에…. 그럴 수 있는 줄이 있으면 그 줄만을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줄 대신 수평선을 중심삼고 하나의 육지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요렇게 올라갔다가 이렇게 떨어지기를 얼마나 했겠습니까?
그 줄을 붙들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다가 쓰러지면 그때 하나님이‘야! 요녀석아 너 제발 망해라’하겠어요? 고생 고생하다가 남편이 쓰러지면 부인이 해주었으면, 부인이 쓰러지면 그 손자가 해주었으면, 그 손자가 쓰러지면 후손이 해주었으면, 후손이 없으면 나라 사람이 해주었으면, 그 나라가 없으면 세계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해주었으면 하실 것입니다.
오늘날에 있어서 이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역사시대의 희망봉입니다. 틀림없이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런 사람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나왔다면 그것은 인류의 소망이요, 그야말로 복음입니다. 그 소식은 복된 소식이 아니냐. 기독교를 중심삼고 그 소리는 복된 소리예요, 망할 소리예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물론 우리 선조도 물론이요. 수천만 대의 인류가 고대하던 메시아가 왔다니 그 얼마나 복된 사실이냐.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라는 말 자체는 죽어도 그 말이 좋은 것이요, 살아도 그 말이 좋은 것입니다.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다는 말은 망해도 좋고 흥해도 좋다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한국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아이구 좋아 죽겠다' 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을 보면, 한국 민족이 지지리 망할 민족이 아니면 반대로 지지리 흥할 수 있는 국민이라는 뜻입니다. 한국말을 보면‘아이구! 이 문둥아, 너 어디 있었니, 반가와 죽겠구나’하는데, 좋아 죽겠다니 이게 무슨 말이예요? 좋아 죽겠다니. 왜 듣기만 해도 끔직하게 죽겠다는 말을 붙이고 다니느냐? 이렇게 보면 좋은 것의 이면에는 반드시 나쁜 면이 있다는, 양면적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한국말을 보면‘그런데 말이야, 이렇고 저런데 말이야’합니다. 왜 그렇게 마리아를 불러?(웃음)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 통일교회로 볼 때, 예수 어머니 마리아가 책임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해서‘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고 한 것은 당당한 말입니다. 그런데 뭐? 유대 나라의 역사가 그렇다구요? 천만에 어머니가 책임 못 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언제든지‘말이야, 말이야’마리아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사람이 망하지 않으려면‘그런데 말이야, 너하고 나하고 말이야’하면서 좋은 마리아를 찾아야 되겠습니다. (웃음)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은 동양 일대의…. 일본말도 그렇지만 형용사는 짝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휘청휘청’'깜빡 깜빡’‘똘똘’‘딸랑딸랑’이렇게 상대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안 그래요? 딸딸 굴러간다, 껄껄 웃는다 펄럭펄럭 날린다. 그렇지요?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가을바람이 솔솔 분다. 이런 등등…. 상대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말이예요. 좋아도 울고 나빠도 웁니다. 그렇죠? 좋아도 눈물이 난다구요. 웃어 보라구요. 눈물이 나나 안 나나, 좋아서 눈물이 나오게 되면‘야 이놈의 눈물아, 나오지 마라 나오지 마라’해도 자꾸 눈물이 나온다구요. 그런 것을 느껴 봐요. 좋은 것이 얼마나 좋더냐? 눈물이 나 죽기만큼 좋더라.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세계는 원형이라구요. 돌아가는 운세니, 끝과 시작은 같은 자리에 선다는 것입니다. 접촉선에 선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좋아도 죽겠다고 하는 것이고, 나빠도 죽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볼 때 극단과 통할 수 있는 것을 구비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비참한 한국 민족이지만 소망이라도 가져 보라구요. 문선생이 거짓말 하더라도….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소망을 가지고 여러분이 그렇게 알고 싸워 나가면 성공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좋게 되어 있다구요.
자, 그렇게 생각하게 될 때, 이 땅 위에 그런 분이 나오려면 하루살이와 같은 일생 동안을 정성들인다고 해서 그 길 갈수 있다고 생각해요? 십년도 그만, 백년도 그만, 천년도 그만, 몇 만년도 그만, 꾸준히 하나의 사상이 역사시대의 통일된 사상으로서 고임돌을 고여 나온 인연을 가진 곳일수록 높아질 수 있는 곳이 되기 때문에, 세계의 추앙의 대상이 되는 것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방면에 이 땅의 역사노정에 있어서‘나는 죽어도 가겠습니다’하는 순교의 선혈을 많이 뿌린 종교가 세계의 종말시대에 있어서 추앙의 대상이 되는 것은 틀림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면 그러한 종교가 어떠한 종교냐 할 때, 그것은 기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뭐 통일교회가 기독교에서 생겼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역사는 아담 해와에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딴 종교는 아담 해와가 없습니다. 인류 시조부터 들고 나오지 않습니다. 불교만 해도 그렇습니다. 불교는 모든 법을 중요시합니다. 유교는 도리를 가르쳐 줍니다. 회회교는 종교정치의 이념을 갖고 나오고 있습니다. 조상에 대해 가지고 뿌리에 대해 가지고 그렇게 악착스럽게 나쁜 말을 하는 패들은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안 그래요? 그건 아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구요. 그렇잖아요? 그걸 보면 조상을 들추어 내서 좌지우지해 나오는 패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기독교 외에는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 역사 가운데 있어서 슬픈 사실을 원망하기 시작한 오랜 역사적 전통을 어떤 종교가 가졌느냐 할 때, 유대교를 거쳐 나왔지만 그건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있다면 기독교는 세계 종말시대에 있어서 세계에 추앙받는 종교문화권을 형성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명실공히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느냐? 예수님이 오셔서 승리한 예수님으로서 승천했느냐 할 때, 승리하지 못하고 승천했습니다. 살아서 승천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죽어서 승천했습니다. 예수님이‘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또 가룟 유다에게‘네가 나지않았더라면 좋을 뻔했다'는 이런 부정적인 요건을 심각한 자리에서 남긴 것을 볼 때에, 그는 영광의 길을 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무슨 길을 갔느냐 할 때에, 예수님은 영광의 길을 가기 위해서 왔지만 어떤 길을 갔느냐? 십자가의 길을 갔습니다. 수난길을 갔습니다. 뜻을 이룰 수 있는 해방의 순간을 가진 것이 아니라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갈 길만을 추구하고 나섰습니다. 인간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된 희망의 자리에 서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방적인 뜻만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끊고 십자가의 길을 간 사람이 예수입니다.
그러면 참된 영광의 길은 어떻게 되었느냐? 남기고 갔기 때문에 다시 오셔서 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가 참된 영광의 길로서 남아지는 때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십자가의 길이 일방통행으로서만 될 것이냐 할 때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박차고 영광의 길로써 혁신하고 비약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부정하는 종교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종교가 통일교회일지도 모릅니다. 기성교회에서 온 사람은 기분 나쁘겠지만 그건 사실입니다, 이론적으로 보아서 결과가 그래요.
그러면 십자가의 길을 부정하고 영광의 길을 나서야 할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보다 더 지독해야 합니다. 예수님보다 못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낳을 때, 여러분들도 그럴 거라구요. 우리 처녀 총각들, 앞으로 결혼하게 되면…. ‘다음에 결혼하게 되면 너보다 백 배 나은 아들딸을 낳고 싶어. 천 배 못한 아들딸을 낳고 싶어?' 하게 되면, 천 배 아니라 몇억만 배라 해도 나쁜 것은 싫지요? 그렇지요? '만배 나쁜 아들 낳을 거야, 만 배보다 영점 일 배라도 좋은 아들 낳을 거야? 하면 영점 일 배라도 좋은 아들 낳기를 원한다구요. 영점 영영영 일이라도 원하는 거라구요. 조금이라도 나은 것을 원한다구요.
인간은 누구나 다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더 낫기를 바랍니다. 그건 인간의 공통적인 마음입니다. 이렇게 볼 때 부모가 잘났으면 그 아들딸은 잘나야 되겠어요, 못나야 되겠어요? 못나게 되면 그 집 망하는 거라구요.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잘살려면, 세계의 뜻을 품고 예수님이 승리한 기반을 가지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보다 나으면 됩니다. 안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라구요. 예수님이 밀알이 되어 죽어 심어 놨으면 그 심었던 본래의 밀알보다 많이 거두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간 예수님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 종교의 길이냐? 아닙니다. 그것을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는 것을 좋아했더냐? 그것은 지긋지긋한 것이었습니다. 왜? 나라도 몰아넣고, 4천년 동안 준비한 유대교도 몰아넣고, 세례 요한도 십자가의 길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도 몰아넣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괜히 집을 나가 가지고 3년 공생애를 지낸 줄 알아요? 여러분이 갈릴리 바닷가엘 가보라구요, 거기에 비하면 한국의 토굴은 너무나 좋아요. 못난 어부들 형편없는 패들입니다. 사도니 뭐니 이름을 붙여 왔기 때문에 그렇지. 형편없는 패들이었습니다. 2천년 후인 오늘날에도 어부한테 시집갈래, 노동자한테 시집갈래 물어보면 노동자한테 시집가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 처녀들의 입장이 아니냐. 그런데 2천년 전의 어부가 형편이 있었겠어요? 형편 없는 패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몰려다니다가 어쩌다 저쩌다 저녁밥을 얻어먹게 되어 가지고, 인연이 되어 가지고, 그들이 박대하지 않으니 그 집에 머무르게 되어 가지고 신세를 갚아야 할 예수는 할수없이 그들을 데리고 나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가 잘살기를 바라고 따라다녔지 예수님이 바라는 천하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생각이나 했겠어요? 그래서 번번이 부딪친 것이 예수님과 제자들의 사정이 아니냐.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좋더냐? 천만에요, 보라구요. 그를 나라가 차 버렸고, 교회도 차 버렸습니다. 부모도, 형제도, 친척도 다 불신한 자리에 섰습니다. 다 저버린 자리에 섰다구요. 예수님하고 3년 동안 같이 먹고 살고 욕도 같이 먹었던 이 패거리들 전부 다 나중에는 ‘아이쿠, 우리 선생님 저럴 줄 몰랐구만', 뭐 영광된 주로서 나라와 세계를 가질 수 있고 로마제국도 수중에 넣어 가지고 들이 때려부술 줄 알았는데, 형편이 무언지경이 된 예수님을 바라보고 ‘죽을 줄 몰랐다'고 하며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가기 바빴다구요.
예수님이 이 땅에 왔다가 십자가의 길을 갈 때 누가 따라갔어요? 따라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없습니다. 없어요. 그래 따라가고 싶어요? 그 길을 따라가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 됩니다. 지지리 고생하고 망해야 됩니다. 예수님 믿고 천당가겠다고 하지만 천당가기 전에 망해야 됩니다. 망하고 나서 하나님이 동정하게 되면 천당가는 것입니다. 동정 안 하면 천당도 못 간다구요.
그러면 예수님이 천당간 비법이 뭐냐?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한 것 때문입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나는 하나님 믿고 천당가기 위한 것이 소원이 아닙니다. 당신이 지옥을 보내도 좋습니다’하는 뜻입니다. 그 말 아니예요?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했으니‘지옥을 보내도 나는 달게 가겠소’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상이었습니다. 천당가기 전에 지옥가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3일간 어디 갔었어요? 지옥갔었습니다. ‘내 뜻대로 말고 당신의 뜻대로 하라' 고 했으니 내 뜻대로 지옥 보내겠다 해서 지옥 보냈습니다. 지옥 보냈는데도 3일 동안 불평이 없으니‘어 그 녀석 쓸만하다. 나와라’그래 가지고 3일 만에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뭐 이렇게 말하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무례한 말을 한다고 하겠지만 하나님에게 물어 보세요.
만일 지옥가 가지고‘하나님, 나 이럴 줄 몰랐어요. 천국갈 줄 알았는데 지옥이 웬말이오?' 하고 야단했으면 어떻게 됐겠어요? 그런 사람 건져 주긴 뭘 건져 주겠어요. 부활이 무슨 부활이겠어요. 영영 그것으로 쓰러지고 말지요. 이것이 예수님의 전통적인 사상입니다. 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알아보니까 그렇더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고 천당가겠다는 사람 절대 천당 못 갑니다. 못 갑니다. 죽어 보라구요. 한다 하는 역사적인 인물들을 가 만나 보세요. 어디에 가 있나? 그런 무리는 자기로부터 출발한 거라구요.
천륜의 본의는 내가 잘되기 위한 자리에서, 잘된 자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망하는 자리에서 출발했어요. 망한 그 자리에서 출발했는데 그것을 그냥 계승받으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 목사들, 내가 이런 말 하면 안 됐지만 말이예요. 혼자 정통이고 통일교회는 이단이라고…. 누가 정통이라고 이마에 써 붙였어?(웃음) 좋은 것 있으면 그것을 내 것이다! 하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러지 않는다구요. 이제는 내가 대한민국 삼천리 반도에서 목사들하고 한 번 싸움을 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무수히 맞고 끙끙거리면서도 가만히 있으니 동네 북인 줄 아는 모양입니다. (웃음) 천만에요. 그들 모양으로 시시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우리 통일교회에서 그걸 알아야 됩니다.
십자가의 종말은 뭐이냐? 살고자 하는 자는?「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고 복받으려고 하는 녀석은 미친 녀석입니다. 예수님 믿고 죽고 난 후에 부활이 있습니다. 부활이 될 수 있습니다. 영광의 길은 죽고 난 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종교는 뭐하자는 것이냐? 죽어갈 길을 살아가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백 번 죽을 수 있는 길을 극복해 나가야 죽지 않고 한번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제자들하고 기독교인들하고 임자네들하고 누가 예수님에게 가까울 것 같아요?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을 따라 다니던 패들하고,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목사패들을 볼 때 말만 듣고….
성경은 뭐냐하면 예수님이 죽은 후에 다 뭐 불 때 가지고 꿩을 구워 먹은 뒤에 고기덩이는 하나도 없는 잿더미를 긁어 모아 가지고 편집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좋아했어요? 오병이어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고 하는 등등을 봐 가지고 하늘의 아들임에 틀림없다고…. 하늘땅이 삐거덕 뿔구덕뿔구덕 뒤넘이치는 것이 다 보이는 판국에 있던 사도들하고 오늘날 그 말만 듣고 믿는 목사들하고 어느 쪽이 예수 앞에 더 가깝겠어요?
내가 감옥에서 똑똑히 보았습니다. 전국에 총회장을 해먹었던 목사가 감옥에 들어와 젊은이들한테 비판받아 가지고 밥 목사라고 골리게 되니 나중에는‘문선생!' 왜요? ‘하나님 없는 것 같아요’(웃음)‘하나님보다 밥이 실감 난다는 거예요?’(웃음) ‘그건 그렇지요’그런 놀음을 한 것이 엊그제 같아요.
사위가 한 사건에 연루되어 목사인 장인하고 같이 붙들려 감옥에 들어 왔다구요. 그 목사가 지금 살아 있어요. 내가 이름은 안 밝히겠어요? 주모자는 목사고 사위는 장인 때문에 감옥에 들어와 한 감방 건너의 감방에 앉아 있었다구요. 그래도 그 장인인 목사는 교회를 갖고 있으니까 우리 교회 목사님 고생한다고 이북 천지에서 그래도 신도들이 푼푼이 돈을 모아 가지고 면회 올 때 떡을 해오고, 옷도 갖다 주고, 또 병날까 봐 다아아진이니 뭐 페니실린이니 약을 잔뜩 갖다 주는 거예요. 그러면 그 목사는 그것을 파는 장사를 하는 것이었어요. 다이아진 하나에 미싯가루 한 봉지와 바꾸는 장사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 사위가 반죽음이 되어 가지고 죽겠다고 약 좀 달라고 사정을 해도 약이 없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밥목사였습니다. 난 지금도 그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밥목사 떼거리들이 기르고 있는 하늘의 양을 누가 해방시킬 것이냐? 그것을 통일교회 문선생이 하고 있다 이겁니다. 나한테는 설설 기었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감옥살이를 해도 그런 시시한 감옥살이를 안 합니다. 영계에서 전도해 가지고 내 제자들이 많았습니다. 감방을 죽 출장 다녔습니다. 1사,2사, 3사…, 매일 일곱 시가 되면 말이예요. 아침에 출격 명령 나게 되면 피해 와 가지고 말이예요. 간수들한테 들키면 큰일나는 거라구요. 도망갈 준비를 위해 공모한다고 말이예요. 그렇지만 큰일나겠으면 나라는 거예요. 영계에서 가르쳐 주니 어떻게 해요? 모르는 사람도 번호를 가르쳐 주면서 건빵이나 미싯가루를 갖다 주라고 조상들이 나타나 야단하니까, 그렇게 인연맺었기에, 죽으면 어떠냐는 식으로 오는 거예요.
이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고 몇 달 동안 이렇게 되니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내가 진땀을 흘렸다구요. 이래 가지고 서로가 뭐 인사도 서서 하는 게 아니예요. 엎드려 가지고. (웃음) 그 비극적인 맛, 그거 처량한 것이지만 그때 그 맛은 여러분에게 설명해 가지고 모릅니다. 암만 설명해도 여러분은 모릅니다. 서로 눈총이 엇갈리는 심정적인 정이라는 것은 그 자리 안 가고는 모릅니다. 백과사전 천만 권으로 배워도 모른다구요. 그러니까 그러한 자리에 가서 체험하는 것이 무엇보담도 귀중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보시며‘야! 요것들 봐라!' 하시며 빵긋 웃으실 수 있는 장면일지도 모른다구요.
그런 것을 볼 때, 내가 죽는다면 이 녀석들이 따라죽을 수 있겠느냐? 생각했을 때 죽을 수 있다면 문선생이 예수님보다도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구요. 낫다는 게 아닙니다.
뭐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자가 선전 잘한다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선전 좀 할 만하지 않습니까? 내, 아무리 못났어도 한국에서 자랑하는 목사 숫꺼먹더기 같은 사람들에게 지고 싶은 마음 꿈에도 없다구요. 틀림없이 밟고 올라설 수 있다 이거예요. 하나님의 약속이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도 결심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그렇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날이 올 것입니다. 안 오거들랑 앞으로 후손이 자기 어머니 아버지 무덤을 파 버리고, 통일교회 문선생님 무덤 앞에 와서 통곡하고 회개할 날이 올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교만한 것 같지만 하늘이 가르쳐준 사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선생이 갖고 있는 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날을 갈고 있는 거예요. 너희들이 피곤하면 나는 기세당당해야 되고, 너희들이 자면 나는 깨어나 병기를 만들어야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 뭐 총칼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해왔습니다.
자, 십자가의 길 좋다는 사람 손들어 보라구요. 십자가의 길 좋아요, 나빠요? 좋아, 나빠?「나쁩니다」 나쁘다구요. 십자가를 왜 지는 거예요?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을 말했을 때, 베드로가‘선생님, 그러지 마십시오’하니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했습니다.
이런 말들을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게 된다면 십자가가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하나님이 결정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결심했다는 겁니다.‘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한 것이나, 또 유다를 대해 가지고‘차라리 너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 고 저주한 것을 보면, 십자가의 길이 할수없는 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할수없는 운명적인 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고 한 것입니다. 할수없이 고개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예수님이 3일노정을 지난 후에 부활했기 때문에, 그 길이 십자가의 고개가 아니라 영광의 고개요, 부활의 고개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리란 탕감의 도리입니다. 죄 지은 것을 청산하기 위한 빛 갚는 도리입니다. 빚 갚는 게 뭐가 좋아요? 빚 갚고 나면 해방되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부활의 도리입니다. 통일교회가 십자가의 도리를 짤라 버리므로 세계 기독교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암만해도 기독교는 말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두고 보라구요. 통일교인들에게 먹히나 안 먹히나. 예를 들어 한 70명 되는 교회의 목사와 장로를 전부다 이제 한 번 수련소에 데려다가 3일 동안만 우리 통일교회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교육해 보라는 거예요. 큰 녀석 작은 녀석 한꺼번에 몽땅 함락되고 맙니다. 총 한 방도 안 맞고….
해방 이후에 통일교회를 기성교회가 환영했더라면 기독교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젠 세계 기독교는 추풍낙엽과 같이 망하는 운세권에 들어간 것입니다. 무화과나무가 열매도 맺지 못하고 서글픈 가을절기를 맞는 것과 같은 처량한 기독교가 되어 갈 것입니다.
본래 기독교는 형님들이고 우리는 동생이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딱 요셉과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구덩이에 쳐박았다가 그중에 한 형이 팔아먹자 해 가지고 팔았습니다. 애급에 가 가지고 망할 줄 알았던 그가 총리대신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런 요셉이 아버지를 구하고, 자기를 버린 형들을 구해 주었습니다. 통일교회도 그럴 수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어떻게 용서했느냐 하면. '내가 없을 때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반사막지대에서 효도를 하며 섬겼던 분들이 아니냐’하면서 원수된 형님들이었지만, 부모를 생각하면서 용서했습니다. 즉, 내가 없을 때 부모를 봉양했던 그 은덕을 생각하면 칠 수 없다는 마음으로, 형들을 죽이고 싶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용서한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한 요셉은 어려운 일을 한 것입니다. 딱 그와 마찬가지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없었을 때, 하늘을 위해서 효도했고 하늘을 아버지로 모시고 나온 그들이기에, 딱 그 마음을 갖고 용서해 주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누구나 원하지 않는 길입니다. 원치 않지만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기관차가 달리면 객차는 반드시 끌려가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피를 흘려야 된다구요.
십자가의 길에는 개인적인 십자가의 길이 있고 가정적인 십자가의 길이 있고 민족적인 십자가의 길이 있기 때문에, 예수를 믿다가 개인적으로 학살당하고 일족이 학살당하는 일이 있음과 동시에, 일국이 망하는 일이 있고 세계가 망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민주세계권이 까닥 잘못하다가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 기독교의 십자가의 길을 누가 받아서 소화시킬 것이냐? 여기에서의 십자가는 무엇이냐? 왼쪽 공산주의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세계와 전세계 기독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그야말로 죽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세계적인 결의를 하고 나서지 않으면 살 길이 없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지금은 공산주의(늑대)가 평화 공세를 펴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갖추어진 모양의 꼴을 해오면 해올수록 우리는 모두 포승을 준비해 가지고 포위망을 만들어 일시에 잡을 수 있는 내적 준비를 해 놓고 접근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영광의 길이 어디 있느냐? 영광의 길은 십자가에 있지 않습니다. 영광의 길은 십자가를 넘어 승리의 표적을 바라는 자리에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 부활의 한 날은 하나님을 통하여서 되어진 것이 아니냐? 이와 마찬가지로 역사시대에 그런 비운의 역사를 이어받은, 타락한 인간의 후손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할 때가 오기 때문에 끝날이 있는 것이요, 그 끝날은 심판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 심판은 무엇을 갖고 오는 것이냐? 생명을 갖고 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갖고 오는 것입니다. 심판장으로 나서는 사나이 앞에는 시험이 있고 무자비한 하늘의 공적 법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악하게 될 때는 들이치는 것이요, 선하게 될 때는 찬양하는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최후의 심판 때입니다.
그때는 인간의 법을 가지고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천륜의 법도를 통해 가지고 심판하는 것입니다. 심판하는 데는 누구를 표준해 가지고 심판하느냐 하면 선한 사람을 표준해 가지고 심판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선한 사람, 가정으로 선한 사람, 민족적으로 선한 사람, 국가적으로 선한 사람, 그 다음엔 종교가 가운데 종교적 입장에서 선한 사람, 이런 반열에 따라 가지고 심판하는 것입니다. 이런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되어진 대로, 자기가 심어진 대로, 커진 대로, 자기가 갖춘 모양대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은 떨어지고, 또 씨를 갖지 못한 열매도 떨어져서 썩게 마련입니다. 잎도 썩고 열매 껍데기도 썩지만 그 가운데에 있는 씨만은 썩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가 아무리 썩었더라도, 하나의 생명의 씨가 남아지는 날에는 썩어진 기독교가 도리어 부활의 요건이 될 수 있고 발전의 요건이 될 수 있습니다. 성장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비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비료는 주는 대로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지성교회 목사들이 통일교회 보고‘왜 기독교인을 전도해? 일반사람이나 전도하지’하는 것도….
1972년도부터 세계적인 공격전에 들어간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는 세계를 대해 가지고 공격전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수세에 몰리고 피해를 입는 입장이었지만, 이젠 수세를 넘어 공세를 취하면서 점검 세계로 넘어가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편제를 만든 것이 국제기동대입니다. 기동대를 말하게 되면(판서하심) 십자가가 아니라 십자군을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동서남북 사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넘어지면 그 중앙에 하나의 상대적 추가 머물 수 있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넘어지는 날에는 십자가의 중심에 추가 머물 수 있는 하나의 표준이 된다는 거예요.
기동대는 미국으로부터 출발해서 영국, 독일, 일본 그리고 맨 꼴래미 (꼴지)가 한국입니다. 나는 그것을 생각할 때 차바퀴가 생각납니다. 차바퀴 큰 것과 작은 것을 함께 돌리면 큰 것이 안으로 들어와요. 작은 것이 안으로 들어와요? 어느 것이 안으로 들어와요?「작은 것이요」 작은 것이 안으로 들어오지? 자꾸 돌다 보면 윗놈이 아랫 놈 되고 아랫 놈이 윗놈 되는 것입니다. 큰 놈인 미국이 작은 놈인 월맹한테 걸려 가지고 헐떡거리며‘아이쿠 아이쿠’하는 것입니다. 큰 놈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큰 놈도 돌아가고 작은 놈도 돌아가지만 큰 놈이 자꾸 바깥쪽으로 나가는 바람에 작은 놈은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들어가 가지고 그 다음에 쑤시고 들어갈 구멍이 없게 되면 올라가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맨 가장자리가 꼭대기 왕초가 되는 것입니다.
천지 이치, 순환 법도의 이치를 따라오면 돌아가는 시대권 가운데 제일 작은 데가 중심이 되는 것은 결정적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기동대를 한국에만 만들어 놓았습니다. 한국은 작지요? 그것도 절반으로 쪼개어 나뉘어져 있습니다. 잘 돌아가지? 조그만하니까. 잘돌아가나, 안 돌아가나?「잘 돌아갑니다」 잘 돌아가지 않지 않지?「예」(웃음)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남이 돌아갈 때 돌아가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중앙에 가만히 붙어 있겠다고 하다가는 큰일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 통일교인은 기동대 출신이 아니면 안 됩니다.
자, 우리 젊은 양반들, 기동대에 가담할싸 말싸?「할싸」이놈들, 할싸 말싸?「할싸」말싸?「할싸」말싸?「할싸」해 보라구. 우리 아가씨들 시집갈싸, 말싸?(웃음) 기동대 출동할 싸, 말싸? 말싸?‘할싸‘는 하자는 말인데‘할싸'(작게 말씀하심, 웃음) 여자들 말하기 부끄러워하는 것 보면 에덴 동산에서 말하기 부끄러워하는 전통을 그대로 받았다구요.
지금까지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청파동에 허리 부러진 호랑이 모양으로 있었지만 이젠 그럴 때가 지났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가게 되면 우리 회사가 세계적으로 벌어진다구요.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게 되면 기술공업하는 패들은 우리 제품을 서로 사겠다고 야단일 것입니다. 그때는 제품을 많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낼름낼름 만들 것입니다. 상당히 내가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사업을 추진 중이라구요.
뉴욕에서 몇십 만 달러를 런던으로 송금할싸 하고 전보를 한 번만 치면 사람은 안 가더라도 돈은 점보 비행기를 타고 런던에 떨어집니다. 그 떨어진 것을 개미새끼 같은 통일교회 패들이 물어다가…. 고것 재미있다구요. 남들은 욕을 해도 나는 이 재미로 살고 있습니다. (웃음)
그래 남들한테 욕먹다가 망할래요, 흥할래요? 어떤 것 택할래요? 난 욕먹다가 망하는 것 택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욕먹다가 흥하는 것이요」욕먹다가 흥하는 것, 고것이 통일교회라고…. 괜히 욕한 녀석들 욕하다가 전부 손해배상 해주고 나중에는 그 동네에서 쫓겨나기 마련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통일교회 안 믿으면 도망을 가든가, 죽든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농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은 다 싫어하지만 내가 20년 동안 이것을 간파해 가지고 우리 통일교인들에게는‘고생해라, 고생해라’하고 죽도록 고생을 시키는 것입니다. 고생을 시키는 책임자는 등골에 뼈가 녹아나는 것을 생각해야 돼요. 고생을 시키는 지도자의 마음은 오죽하겠어요? 고생을 안 하겠다는 녀석을 잡아다가 고생을 하라고 하는 것은 죽을 일입니다. 팔자가 드세다는 것입니다. '아이구, 나라에서 반대받고 뭐 부모한테 쫓겨난 것도 분한데 이건 또 뭐 이래?' 그러나 반대로 돌아갈 입장에 있으니까 디리 때려 모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한 바퀴 삥 돌아야 살아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바퀴 싹 돌아가서 달라붙으면 거기서 영원히 머무는 것입니다. 그러니 돌기 시작해서 멎으려고 하는 자식들을 방망이로 찜질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어때요? 복귀니까 가만히 있어서 되겠어요?「안 됩니다」 지금까지 언제 한 번 영광의 때가 온다고 말해 봤어요? 여러분들 그런 말 들어 봤어요? 무슨 팔자가 그래? 나도 이 골치거리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래도 수고하면서 넘어오다 보니 하나님이 보우 하사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실 말이지 통일교회 패들 문선생한테 천대받지 않았어요? 그렇지요? 안 그래요?「아닙니다」 언제 내가‘당신 잘 싸웠으니, 만민이여 이 자를 본받으라' 하면서 손을 잡고 복받으라고 축복해 주었어요? 축복 못 해주겠으면 편지 한 장으로라도 축하해 주었어요? 못 했다구요. 여러분 그렇지요?(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정리하지 못했음)
복귀하는 데는 좋은 것만 복귀하겠어요? 하나님이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알아요? 하나님은 털 하나, 이 솜털 하나도 버리지 않으려고 한다구요. (웃음) 왜 이러느냐 하면 저 뒤에 있는 양반들을 교육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천국가 가지고 선생님 말 못 들었다고 하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늦게 온 것을 반성시키기 위해서 불가피하다구요. (웃음) 그러니 한 사람쯤 교재로 써도 실례가 아니라 유례라구요. 언제 임자의 머리가 이 대중의 교재로 쓰이게 될 수 있을 것 같애? 이것도 다 십자가의 영광이야.
기독교는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수난의 길을 걸어온 기독교가 최후에 머물러야 할 종착점이 어디냐? 수난의 길이 아니라 부활과 더불은 영광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온 천하를 밟고 올라서 가지고 그 권위와 희망 앞에 만국과 만민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자기들의 미급함을 직고하게 해야 할 권위를 가진 십자가의 길을 다짐지어 가지고 세계를 발전시켜야 할 것이 기독교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도리어 세상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건 하나님이 사탄 새끼들 앞에 무릎을 꿇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죽었다고 하는 단계에까지 내려왔습니다. 이젠 볼장 다 봤습니다. 주인이 있는데도 없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이 있어도 그것은 허재비다 하는 그 말은 없다는 말이지요?
기성교인이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알고 있어요? 우리 통일교인들은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알아요?「예」 알아, 몰라?「압니다」 여기 있는 사람도 하나님이 있는 것을 몰랐다면 이 놀음 안 할 것입니다. 보라구요, 내가 감옥에서 배고플 때 미싯가루를 날라 주던 하나님을 알고 있어요. 또 길을 가다가도 해가 저물게 될 때 하늘이 불쌍히 보시고 잔치상을 미리부터 준비해 놓아 대접받는 일을 한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날 죽으라고 잡아넣은 사람은 죽어 버리고, 죽으라고 한 나는 살아 나오더라 이겁니다. 그 잡아넣은 장본인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일족까지 쓸어 버리더라구요. 그런 것을 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무서운 사람입니다.
내가 원한을 품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좋은 일 하기에 바쁜 사람입니다. 세계적으로 좋은 목적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나쁜 마음 가지고는 안 되겠기 때문에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선한 길 가는데 원수가 없을 수 없습니다. 원수 천지라구요. 이 마을에 가도 원수요, 저 마을에 가도 원수요, 이 나라에 가도 원수, 저 세계에 가도 원수뿐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플러스 앞에 플러스가 나타나면 상충되는 것은 천리이치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현상인 것입니다. 그것을 마다하지 않고 가는 길 앞에 있어서 수난이 많았지만 누가 깨져 나갔느냐 하면 결국은 부딪친 사람이 깨져 나가더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반대하던 사람들 두고 보라구요. 누구 누구 두고 봐요. 한 14년만 두고 보라구요. 14년, 21년만 지나면 깨끗이 정리될 것입니다. 또 일면 무서운 것이 뭐냐 하면, 어느때 쓱 가다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그 녀석을 생각지도 않았는데‘이놈의 자식 같으니라,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하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게 되면 그 집안은 7개월도 못 가서 쑥 새둥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기성교회의 말로가 좋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내가 다 말했습니다. 재건교회가 아무리 떠들어도 7년노정이면 되는 것이고, 뭐 교려파가 아무리 떠들어 봐야 14년노정이면 떨어집니다. 또, 기성교회가 합동으로 통일교회를 정면적으로 반대하더라도, 21년노정이면 그들은 완전히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기반을 닦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두고 볼 때, 예수님을 중심삼고 땅 위에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인류의 소원이요,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아니냐. 다시 구하자는 것은 어떻게 구하자는 것이냐? 여기에서 타락했으니 그 이상의 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 아니냐.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시며) 병난 사람이 병나지 않았던 자리에 가려면 이 자리를 통과해야 보다 건강한 자리에 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 자리에 올라가고자 하는 것이 하늘의 소원이요. 인류가 마음으로 바라는 소원의 기준이 아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끝날이 있다는 말은 하늘을 중심삼고 볼 때, 복된 말이라는 것입니다. 심판이라는 말은 나쁜 말이 아니고 복음입니다. 설움의 자리에서 수천 년 동안 신음해 나오던 역사적인 한을 풀게 할 수 있는,원한의 가슴을 가진 아들딸의 한을 풀어 줄 수 있는 한 날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그런 심판의 한 날이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의의 법도를 가진 천지의 재판장이신 하나님으로서 그것은 반드시 선포해야 할 말이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심판받는다는 말은 복된 말입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바라 나온 것은…. 역사는 탕감역사를 거쳐 해 나가기 때문에 세계는 반드시 망해야 되는 것이고 망하게 될 때는 선과 악이 교차되는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이며, 그 교차되는 점에서 올라가야지 떨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심) 그러기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한 길만이 영광의 길, 참된 영광의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서로 엇갈려 있다가 서로 지쳐 가지고 이제는 서로 화합하자 하고 있습니다. 또, 남북이 엇갈려 있었지만 이젠 하나되어 보자고 하고 있습니다. 또 동서가, 미국과 소련이 냉각시대를 거쳐서, 이래 가지고는 안 되겠으니 이제는 서로 세계를 다시 한 번 모아 보자 해 가지고 평화의 타이틀을 가지고 만나고 있습니다. 만나면 서로 같이 살 줄 알지만 같이 살 수 없습니다. 서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갈라지는 것을 누가 수습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한국에 있어서도 여당과 야당이 엇갈려 있다가 하나 만들자 해 가지고 하나될 수 있지만, 하나된 다음에 갈라지는 날에는 누가 수습하겠습니까? 현정부의 모 기관장을 만나 가지고 한 이야기지만, 역사적 귀결점에 있어서 반드시 교차로가 있어야 할 그때가 왔기 때문에 세계를 대표해서 새로운 분야를 들고 나오는 것은 좋지만 그 자체내의 결렬이 벌어지게 될 때에는 누가 통합할 수 있겠느냐? 그것을 난 제일 무서워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와 통일교회가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에 기성교회 대표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만나자는 거예요. 그리고 사탄세계의 외적 대표자격인 사회 저명인사와 대학총장들도 만나고 있습니다. 만나자! 만나서 너와 내가 싸울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을 수 있는 한 길을 가려 가자는 것입니다.
서로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최고의 뽀족한 곳이라는 것은 전부를 합해 가지고 대표적으로 뽀족한 곳이기 때문에 제일 뽀족한 자리에서는 서로 같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뭐냐? 주체와 대상이 갖추고 나타나야 할 역사적인 종말시대가 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철학사조를 보면 인간 위주한 주체사상을 논하던 입장에서는 인간이 제일인 줄 알았지만 최후의 종말인 심판시대가 오기 때문에 그것은 장막에 부딪쳤다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 것과 마찬가지로 절벽에 부딪쳐 가지고 신음하는 초점에 놓여진 절망상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존철학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장벽 앞에 소외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밟고 올라가느냐? 인간 위주로 절대 주체사상을 강조한 철학사상은 이제 말로에 처해 있습니다. 인간은 대상 철학을 논의해 가지고 주체 존재를 깨칠 수 있는 입장을 갖지 않으면 해방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몰락된 신을 부활시키고, 우리의 주체자로서의 잃었던 권위, 신의 권위를 다시 복귀해 가지고, 하나님이 주체 입장에, 우리는 대상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는 대상의 입장에서 하나되어 하나님이 끌어 줘야만 넘어갈 수 있지 그렇지 않고는 절대 못 간다는 것을 알게 해야 됩니다. 태평양 바다 가운데서 아무리 덤벙대도 살 길이 없는 것처럼….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할 때‘하나님 내 아들딸 복 주소’하고 있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여러분을 놓고 문선생이‘통일교회만 복 주소' 하게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세계를 구하겠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하나님은 해방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울더라도 하나님은 기뻐해야 됩니다.
나라를 찾아 나선 우리에게 있어서 나는 망하더라도 나라가 자리를 잡는 그날을 보고 죽으면 나라를 찾아 나섰던 한 사람의 소원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후회했다면 소원성취가 아니예요. 그것이 나라에서 바라던 영광의 날입니다. 그 안에서 죽지 말고 그 자리를 영광으로 맞아 가지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그 나라는 수고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온 나라, 땅 위의 주체자이기 때문에, 그 하늘의 절대적인 주체자와 대상관계를 맺어 가지고 하나되어 가지고서야 천지가 주체로 삼아도 좋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높은 그분도 나와 같이 있을 수 있는 곳은 나와 같이 있을 뿐만 아니라 내 아우와 같이 가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 약한 아내일지라도 사랑하는 아내의 품에 들어가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아내를 위하여 종의 입장에서 아내를 사랑한다 해도 거기에는 비운이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거기서부터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승리적 결속이요, 승리적 결판을 지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기준이 뭐냐?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그 심정은 인간을 통한 심정이 아니라 천륜을 통하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 역사시대를 통한 심정, 전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심정, 미래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심정의 기준이 지상에 나타나지 않으면 역사의 부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또 시대의 기틀이 있을 수 없고, 미래의 출발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의 세계는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하게 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비로소 복지의 천국은 벌어질 것이요, 해방의 기원이 벌어질 것이 아니냐? 그 기점이야말로 우리들이 찾아 나오던 참된 영광의 출발점이 아니겠느냐.
그 출발점에 서 가지고 하나님을 부모로 모셨다면, 그 부모 앞에 원수들이 참소와 탕감조건을 제시하고 피를 흘리는 자리에 있어서 죽음의 대가의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니라, 죽음의 대가의 보람있는 가치의 영광을 가져 가지고, 옛날의 슬픔을 기쁨으로 맞을 수 있는 날을 맞아 내 개인 적으로 탕감의 효의 길은 찾아왔겠지만, 탕감없이 사탄이 참소하지 않는 자리에서 하늘 앞에 상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었느냐 할 때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죽음길을 가면서 낙원길을 개문하기 위한 최후의 기수의 놀음은 했지만, 영광의 자리에서 하나님 앞으로 직행할 수 있는 천국을 앞에 두고 아버지는 사랑이요, 아버지는 사랑의 주체라고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늘을 맞을 수 있는 대표의 자리에 못 섰기 때문에 재림이라는 해원성사의 한 날을 바라고 나오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가 있지만 그 기독교는 개인을 대표한 기독교요, 민족을 대표한 기독교요, 민주세계를 대표하고, 하늘을 대신하는 마지막 종교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의 사명을 다 망각하고 교파 싸움으로 분열되어 가고 있다면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사명을 저버리고 자기 교파적인 사명을 들고 나서는 무리는 망합니다. 국가가 망하는 운명에 처해 있는데 자기 가정만 붙들고 있는 무리는 망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수십 년 비운의 역사를 걸어왔습니다. 여기 서 있는 사나이도 슬픈 심정을 품고 싸워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려고 했고, 누구보다도 신앙길에 있어서 하나님을 위하려고 애썼지만, 애쓰는 길에 있어서 환영이 아니라 반발이요. 핍박만이 있었습니다. 죽음과 엇갈리는 영어의 신세밖에 없었던 그런 비운의 기점을 가져 나왔던 그런 사실들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날을 거쳐서 고통의 출발이 개인의 시대에서부터 가정시대, 종족시대, 민족 시대, 국가시대를 거쳐서 현재까지 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통일교회가 짊어진 사명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역사시대의 모든 고통을 현재의 통일교회가 짊어질 사명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두 어깨에 짊어진 남북의 엇갈린 이 사상을 수습할 수 있는 운명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앞에 귀결시켜 가지고 책임 추궁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면에서 하나의 기수가 되어 보겠다고 수십 년 동안 싸워 나온 무리가 통일교회의 사람들이 아니겠느냐는 거예요.
이렇게 나온 우리가 지난날의 역사를 회고해 보게 될 때에, 그 시대는 슬픈 역사가 가로놓여 있던 시대였습니다. 나의 10대 시대, 20대 시대, 30대 시대, 40대 시대, 50대 시대를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비운의 역사가 깃들어 있었고, 하늘의 서러움이 깃들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잊을 수 없는 사연과 지난날의 모든 것들이 흘러갔지만, 그 흘러간 모든 것들이 내 마음에서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날이 가면 갈수록 살아 남아 있습니다. 이 살아 남아 있는 한을 내 한과 더불어, 하늘의 한을 풀어 드리고, 민족의 한을 해소시킬 수 있는 그 한 날을 기필코 성취해 놓아야만, 하늘이 안식할 수 있는 것이요, 민족이 안식할 수 있는 것이요, 내 개인이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그때까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라는 것은 탕감복귀의 노정, 제물의 노정, 비참한 노정에서 하늘의 효의 길을 찾아 나왔지만, 해방과 더불어 천상천하에 영광의 가치를 대신한 하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전체의 사탄세계가 참소하지 않는 단 하나의 영광된 자리에서 하늘이 칭찬하고 온 존재세계가 환영하는 입장에서 효의 길을 아직 가지 못하였고, 충의 길을 가지 못하였습니다. 성인으로서의 부활된 자리에 가지 못하였습니다. 개인으로 가야 되겠고, 가정으로 가야 되겠고, 민족으로 가야 되겠고, 세계로 가야 되는 사명 분야가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972년도 정초에 여러분 앞에‘통일전선 수호' 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 앞에 최후에 장벽이 다가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말씀드린 것입니다.
지금은 교육을 시키고 있는 내 아들딸을 수호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통일전선, 섭리의 전선을 수호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대양 육대주를 우리의 발판으로 삼아 가지고, 그 터전 위에서 하늘의 기수가 되어 그 수호의 권한을 자랑하고 영광의 가치를 지녀 가지고 하늘 앞에 효도를 해야 되고 충을 돌려 드려야 되는 새로운 역사적 전통을 세워 놓아야 할 책임이 통일교회의 사명이 아니냐. 비장한 각오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내 53년 반세기의 생애를 지낸 것은 탕감 해원성사의 한 날을 바라기 위함이었지만, 아직까지 영광 가운데서 개인으로서 하늘 아버지를 대신하여 효도의 자리에 못 갔습니다. 내가 무릎을 꿇고 하늘 앞에 영광으로서 시위하는 그런 자리에 만국이 찬양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못 간 것이 아니냐. 개인도 그렇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도 그랬습니다. 이런 한스런 운명의 길이 우리 앞길에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만일에 이길을 반대할 때 막지 못하면 죽음으로 이 전통적 기원을 남기고 가야 하는 사명이 살아 생전 땅 위에 있는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라 앞에 보여 줘야 되고 세계 앞에 보여 줘야 되는 것입니다. 개개인 앞에 보여 줘야 되는 것입니다. 기성교인은 우리를 따라오지 못할 것입니다. 삼천만 민중은 우리를 따라올 수 없습니다.
‘저들을 본받아야 나라가 산다’하고, 기성교회 수많은 종교가‘통일교회 같이 움직여야 교회가 살 수 있다’하는 길을 바로잡아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까지 참된 영광의 길을 맞이하지 못한 것입니다.
신음의 박차가 가해 들어오는 숨막힌 세계적인 최후의 교차점을 향하여 찾아 들어가는 혼란된 와중에서 내 주체성을 어떻게 들고 나오느냐 하는 문제가 금후에 한국에 있어서의 종교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요, 수많은 교포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요, 대한민국 자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냐.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서는 안 됩니다. 주체와 대상을 확실히 가려 가지고, 하늘을 주체로 인간을 대상으로 완전히 가려 가지고 설 자리에 설 수 있고 처할 수 있는 자리에 처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숨막힌 시대의 교차점을 향하여 우리는 지금 전진하고 있는 것이며, 지금이 그 순간인 것입니다.
대한민국 백성으로서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그 누가 있겠느냐 이거예요. 제2의 해방을 원치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제2의 해방뿐만 아니라 제2의 해방이 되고 나면 제3의 해방이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제3의 해방을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이런 때일수록 사람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친구의 목을 따는 것입니다. 더구나 공산당은 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를 동원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단체도 주체와 대상관계에 있어야 됩니다. 주체와 대상 관계를 갖지 못한 단체는 존속하지 못하는 것이 원리의 기준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체가 되어 가지고 영계의 천사들을 동원해야 되겠습니다. 그 놀음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했기 때문에 땅이 문제인 것입니다.
내일은 자녀의 날입니다. 그러나 사선을 넘는 이런 때가 찾아오는 숨막히는 역사적인 전환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적인 소원, 과거 현재를 통해 가지고 하늘이 찾아 오는, 하늘의 3원의 3층천의 개문의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를 맞을 관문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하겠느냐? 영광된 새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순간이 어느때일 것이냐? 일생에 있어서 최고의 정성을 다 들여서 그 순간의 초점 앞을 지나쳐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개문되는 날 어디로 어떻게 넘어설 것이냐? 한 발자국, 반 발자국, 반의 반 발자국, 반의 반의 반…. 1센티미터라도 넘어서야….
그 넘는 순간이 얼마나 숨이 막힐 것이냐? 숨을 들이 쉬고 넘을 것이냐. 내쉬고 넘을 것이냐?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쉴 때에는 사망의 세계에 있어서 한스러운 숨길을 전부 다 씻어 버리고 영광의 숨길을 완전히 쉬어야 되겠다는 이런 각오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 순간이 언제냐? 내 숨을 내쉬고 넘어야 되겠다. 그 순간이 언제노? 힘을 다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내 눈은 이 선을 똑바로 보고 넘어야 하겠다. 그선이 삼팔선이 아니냐.
전통을 어떻게 세울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전통은 인간을 중심삼고 세워서는 안 됩니다. 하늘을 중심삼고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고 갈라지는 날에는…. 공산당은 갈라지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순식간에 지금 포위할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지하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다 평면도상에 나타나야 할 시대에 있기 때문에 국가의 위정자들이 결의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과 하나되어 가지고 1974년부터 1977 년까지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문제로 이 나라의 운명을 판가리할 수 있는, 숨막힌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오늘날 이러한 사명을 책임지고 가야 할 통일교인들에게 있어서는 남자 여자가 하나되고 남녀노유가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종적으로 하나되어야 되고 횡적으로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가 흥하려면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전쟁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남녀노유가 서로 일선을 지키겠다는 민족은 승리하게 마련입니다. 그런 민족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 민족이 아무리 약한 민족이라도 그 민족을 축복할 것이며, 그들에게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사상이 있으면 그 사상을 세계 앞에 남겨 놓을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통일교회 사상은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사상을 지닌 정병으로서 전선에 나서는 날에는, 우리 소수의 무리들이 일치 단결해 가지고 최후의 전선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날에는 우리의 신념으로 인하여 승리는 하늘의 것으로 가져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전선을 수호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누구에게나 맡길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1972년에‘통일전선 수호' 라는 역사적인 표어를 정한 것입니다. 복귀원칙으로 볼 때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수호의 시대에 왔습니다. 남북이 이렇게 되어 있고 또 아시아권이 포위하고 있는 입장에서 어디로 갈 것이냐? 문제입니다. 아랍권내에 포위된 이스라엘 민족은 2천년 역사의 신음과 비참과 수욕과 고통을 극복해 나왔던 처참상이 가슴에 못박혀 있는 것입니다. 박혀도 단단하게 박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필코 우리 민족을 들어 한 때를 맞을 것이므로 아무리 원수가 많더라도 그때를 놓치면 망하기 때문에, 그 원수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전선에서 죽더라도 우리는 승리를 다짐하여야 될 것입니다.
하늘의 역사적인 권위와 우리 선조들의 한을 풀어 드리는 의미에서 오늘을 지키고 나가야 한다는 철두철미한 사상적 기반이 역사시대의 수난 길을 통하여 갖추어진 것입니다. 그 수난, 그 사상적 단결을 오늘 통일교회 수십 년 역사로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날을 흘러간 역사로 그저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보다 더 어렵습니다. 중공과 일본 이 3국, 쫓겨난 아담 해와가 다시 복귀될 때는 반대하던 세 천사장과 같은 형이 나타납니다. 그것을 밟고 올라서서 우리는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승리하고 나서게 될 때 이 민족의 영광이 올 수 있습니다.
우방인 미국이 우리를 저버렸고, 인접 국가인 일본은 본래부터 우리를 원수시했기 때문에 저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를 찾아오는 강대국은 우리를 삼키려 오는 것입니다. 믿지 말라구요. 믿을 수 없습니다. 약소민족으로서 개인에게 의지했다가 약탈당했고, 가정을 믿으려고 했다가 약탈당했습니다. 씨족, 민족, 국가를 믿으려고 했다가 다 유린당했습니다. 이제 누구를 믿어야 될 것이냐?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역사적인 한의 핏줄을 받고 태어난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단 하나 믿을 것은 하나님을 한 번 믿어 볼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밖에 없다구요.
하나님은 우리를 무조건 영광으로 인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 앞에 하나의 제물로서 배를 가르고 피를 흘리는 자리에 가게 될 때 하늘은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제물의 피가 흐른 곳에 해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희생의 울음 소리의 환경 위에 해방의 인연이 세계에 개문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을 고맙게 맞고 그 인연을 저버리지 않고 극복하는 날에는 한국은 영광의 국가가 될 것이 아니냐.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나섰기 때문에, 우리가 모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진정한 효도를 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복을 주고 잘살아야 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겠거든 그걸 보고라도 죽는 것이 내 소원이라는 마음을 여러분이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류역사상에 인간으로서 바라는 최고의 소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당신이 사랑하고 싶은 아들딸을 실컷 사랑하고 행복스럽게 사는 당신의 가정을 보고 죽으면 나는 한이 없다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충신의 도리입니다. 만일에 자식의 자리에 섰거들랑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할 것이냐 하는 것이…. 효자와 충신의 두 길을 찾는 길이 통일 교회가 바라는 소원입니다. 그리하여 그 가정으로부터 가정을 치리하고, 민족을 치리하고, 주권국가를 세워서 하나님의 세계를 치리할 수 있는 권한이 세계에 미쳐서 통치하는 세계가 평화의 세계요, 영광의 세계입니다. 그것을 내 눈으로 보고 싶은 것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그 나라의 백성이 못 되더라도 구경이라도 하고 죽는 것이 소원이 아니겠느냐. 그러한 소원을 가진 우리 앞에 그런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은덕을 얼마나 감사해야 될 것이냐? 그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을 약속해 주었다면 그 가는 길은 엄숙한 길이 아니겠느냐?
그리하여 세계를 하나의 백성으로 치리하고, 하나의 사랑으로 묶은 형제의 인연을 갖추고 천지가 하나되어 그야말로 영광과 승리만이 비쳐질수 있는, 즉 해방이 필요치 않는 평화의 기틀이 영원히 설정된 그 세계를 바라보고 사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소원이 아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보고 싶은 곳, 보고 싶은 나라, 보고 싶은 세계, 보고 싶은 분을 중심삼고 그러한 자리를 소원하고 나온 것이 타락한 선조의 후예인 우리들의 소원이 아니겠느냐. 보고 싶은 그분을 만나서 그분이 가는 곳이면 동서남북 어디라도 따라갈 수 있고 어떠한 명령을 내려도 반갑게 대답할 수 있고 그가 바른발을 내딛을 때 같이 바른발을 내딛을수 있는 반열에 동참할 수 있는 영광을 나에게 부여한다면 천만 번 죽더라도 그 감사와 영광은 무엇하고 바꿀 수 없는 기쁨일 것입니다. 하늘 백성이 될 수 있는 영광 이상의 소원이 어디 있겠느냐? 나는 그렇게 되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소원인데, 하늘이 그런 사람을 불러 가지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왕국이 세워진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광 가운데 내세워 가지고 그 나라와 그 세계를 치리할 수 있는 자리에 세운다면, 그 영광을 무엇으로 갖을 것이냐? 그러한 권한이 설정되게 되면, 그 권한은 영원한 자리에 승리의 권한으로 내려가지 않고 영원히 고착될 수 있는 참된 영광의 길로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을 중심삼고 공인된 아들딸의 자리에서 가지고 만국을 대신하여 혹은 만천주를 대신하여‘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딸이라' 고 온 천지 앞에 자랑하고, 목을 붙들고 입을 맞추는 그런 자리가 있다면 그 이상의 소원이 어디에 있겠느냐?
그분과 더불어 살고 그분과 더불어 가고픈 곳을 가 보고 죽을 수 있는 환경을 보고 살다가 죽는 것이 우리 인간이 바라는 참된 영광의 길이 아니겠느냐!
타락한 그날부터 이 세계에는 그런 세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신음과 고통과 절망 가운데서 죽음이 엇갈린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소망했던 날이 이제 우리 목전에 다가올 수 있는 비장한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해결할 자가 하늘도 아니요. 다른 어떤 나라도 아닙니다. 바로 이 한국, 남북이 엇갈린 여기에서 문제점을 해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진 종교 가운데 오늘날 통일교회가 주목거리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숨막힌 이 순간에 있어서 한 점 한 점을, 한 발자국을 잘 넘느냐 못 넘느냐 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광의 한 날, 나는 없는 것으로 탕감해 버리고 남은 것으로써 숨을 내쉬는 기쁨과 더불어 영원히 찬양한 그 숨결이 또다시 들이쉬었다가 내쉬는 출발을 볼 수 있는 내 일생이 되고 내 후대 후손 앞에 그럴 수 있는 대표자로 남아진다면 그 얼마나 영광이겠느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자리를 차지해야 인생의 참된 영광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겠느냐.
우리는 미국을 믿지 못하고 일본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끼리 믿어야 되겠습니다. 나라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가인 아벨 복귀 운세라고 했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가인 아벨이 하나 못 된 것을 우리는 단결해 가지고, 개인적 가인 아벨을 타파하고, 가정적 가인 아벨도 타파하고, 종족적 가인 아벨도 타파하고, 민족적인 가인 아벨도 타파할 수 있는 전통을 우리가 지녀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 가정을 동원하는 데 동원되지 않은 가정은 입적하지 못한다는 말이 여기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명령했는데도 불구하고 불응하고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선생님과 상관이 없다는 결론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하가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되어야 되겠다구요. 하나되어 가지고 서로 밀고 당기고 해서 땅에 떨어져 죽을 수 없으니 올라가야 되겠습니다.
역사이래 그런 압축된 환경에서 솟구쳐 오른 한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한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한 무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것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국가를 뚫고 세계를 뚫고 나을 수 있는 개인과 가정, 종족. 국가가 나타나면 그 국가는 세계적인 전통 국가가 될 것이고, 그종족은 세계적인 전통 종족이 될 것이고, 그 가정은 세계적인 전통 가정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서로 따로따로가 아닙니다.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에서부터 종족, 민족, 국가적인 승리권을 갖게 되면, 이것은 영원한 국가와 영원한 민족, 영원한 종족, 영원한 가정과 영원한 개인의 전통을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하나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사랑을 중심삼고 세울 수 있는 전통의 기반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랑 신부의 이념을 중심삼고 뭘하려고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가정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을 만들어 가지고 종족, 민족, 국가를 편성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탄세계의 국가보다 강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강해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구 누구보다도 단결해야 되고 누구보다도 하나되어야 되고 누구보다도 승리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두 길을 앞에 놓고 있습니다. 올라가지 않으면 희생해야 됩니다. 우리는 하늘 이상을 먼데에 두고 지금까지 희생해 나왔습니다.
우리의 희생의 대가는 컸습니다. 그렇게 자꾸 나가다 보니 국가에서, 반대하던 교단에서, 세계에서 통일교회를 알아주게 됐습니다. 그렇지요? 지금까지 그렇게 올라온 것입니다. 이걸 볼 때 타락한 인류에게 있어서는 그 방법밖에는 해방이 벌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탕감복귀 해원성사를 지나서 영광의 한 때를 맞이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영광의 한 때를 맞이하도록 해야할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을 알고 더욱 다짐하길 바랍니다.
지금의 때는 아버지 어머니를 믿을 수 없고, 다 믿을 수 없는 때입니다. 하늘만을 믿고 의지하여 그 자리를 나서게 될 때 비로소 참된 영광의 길을 맞이할 것입니다.
우리는 삼팔선을 넘고 남아질 수 있어야 됩니다. 이북을 지나가고도 남을 수 있어야 됩니다. 반대하더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가야 되겠습니다. 공산세계를 밀고 넘어갈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못 가게 되면 죽음이라도 각오해야 되겠습니다. 세계는 하늘이 주관할 수 있는 이 땅이요. 천주도 하늘이 주관할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사탄이 거기에 버티고 있을 때 그것을 격파할 수 있는 특공대로서 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기동대란 말이 나온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지금 통일교회 식구 가운데는 위성국가 안에서도 투쟁하고 있는 식구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수가 아니지만, 판도가 이만큼 넓어진 것을 알고 이것을 몰아 가지고 최후의 세계 전선을 수호할 수 있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1970년대를 의의있게 보내기를 바랍니다. 영광된 길을 남기기 위해서 움직이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바라서 말씀드렸습니다.
영광의 길이 아닌 십자가의 길을 출발하기 위하여 삼팔선을 넘던 날이 어제 같지만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역사시대를 회상하면서 1960년도를 기점으로 하여 1980년대까지 통일교회는 피어린 투쟁 과정을 거쳐가야 할 역사적인 기간을 이미 설정해 놓았습니다. 1960년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금년 4월 11일이 12년을 보내고 13년째를 맞는 때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뜻있게 보낸 옛날을 추억하옵니다. 13년 넘어서 14년만에 야곱이 가정을 중심삼고 에서를 찾아가서 승리의 한 날을 맞이했던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이, 통일교회가 가야할 7년노정이 이미 3년 전에 우리 앞에 다가온 것은 역사적인 귀추로 보아 필연적인 운명의 길이라는 것을 이미 원리를 통해서 역사적인 사실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서 있는 내 한 개인은 개인이로되 내 한 개인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타락한 후손들의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버님이 이끌어 줄 수 있는 한 줄기의 생명의 줄이요. 이것을 높여 줄 수 있는 승리의 피의 대가를 치른 선한 선조들의 생애를 걸어 가꾼 터전인 것을 생각할 때에, 엄숙히 이어받을 수 있는 거룩한 자세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거룩한 무리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무리들은 이것을 이어받기 위해서 눈물의 골짜기를 더듬어 왔사옵고, 슬픈 가시덤불을 제쳐 왔사옵고 태산준령 돌짝밭을 개척해 나왔사옵니다. 그러면서 어언간 수십 년의 역사가 지나고, 이제 바라보이는 것은 지친 모습과 주저와 피폐한 모습으로 정상을 향하는 자리에 쓰러져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정경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몇 발자국 밖에 남지 않은 정상을 향하여 함성을 지르고 나설 젊음이들이 필요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일선을 돌파하고 방어해야 할 젊은 기백을 가진 하늘의 용사들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재편성하여야 할 때가 된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가에 있는 젊은이들을 규합하여야 되겠고, 고등학교 출신들을 규합하여 일선에 다시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와 사명이 저희 앞에 있는 걸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님이여, 소망하는 길을 당신의 뜻과 더불어 이루시옵소서.
이제 이들이 기백을 갖추어 가지고 2세들이 이스라엘 나라를 복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를 밟고 넘어서 하늘이 역사하는 정상을 넘어 새로운 전통을 세워 달라고 전체가 하나 되어…. 그렇지 못하거든 밧줄을 매어 가지고 우리를 끌어 줄 수 있는 때가 지금 때인 것을 알고 있으되, 자신을 구해 주기를 바라는 입장에는 설 수 없는 때가 이때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갈 길이 바쁜 통일교회 운명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 옵소서. 한국과 세계가 연결될 수 있는 운세가 남아 있사옵니다.
아버지, 제 1선에서 지키지 못하거들랑 제 2선에서, 제 2선에서 지키지 못하거들랑, 제 3선에서 지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 3선에서 지키지 못하거들랑 전부 결의하여 배를 가르고 일시에 죽음으로써 해결지어야 할 운명이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비장한 길인 것을 저희는 알았습니다.
이 길을 만나기 위해서 찾아왔던 기간이 지금까지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원한의 심정을 억누르고, 비참한 역사의 피맺힌 눈물의 길을 수만 년 거쳐 나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비참한 역사를 해원성사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문제가 오늘날 우리의 거취에 달려 있다는 엄청나고도 황공한 자리에 자리에 저희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어서는 살고자 하여서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승리의 장병으로서 나타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용맹한 하늘의 용사가 필요한 때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일깨워 가지고 하늘이 가나안 땅을 바라보게 하면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촉구하던 때가 바로 이런 때였습니다. 골리앗 앞에 연약한 다윗을 내세웠을 때 다윗은 하늘을 믿고 나섰습니다. 그는 입은 옷은 남루했습니다. 목동의 신세요, 집도 없고, 마을도 없고 문화와 전통도 갖추지 않은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통일교회 무리와 같은 신세였습니다. 벌거숭이인 이들은 세계 공산당과 같은 골리앗 앞에 나타난 다윗과 같은 무리입니다. 우리는 물매도 갖지 않았습니다. 누더기 옷을 입은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을 사랑하는 마음, 아버님을 믿는 마음은 그 나라에 주권을 갖고 있는 누구보다도 더 강합니다. 그 주권을 갖고 있는 국민의 강한 힘보다도 아버님을 더 믿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보호하시옵소서. 지켜 주시옵소서.
저희의 운명을 판가리하여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사오니, 가는 길을 지켜 주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렇다고 통일교회가 나라 앞에 혹은 세계 앞에 출세하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당신이 자유로운 천지를 바라보고, 당신이 이 땅에 좌정하셔서 소생되는 이 땅을, 천지를 주관하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옵니다. 이것이 효자의 마음이요, 이 길을 따르는 당신의 자녀들의 마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야 할 길만이 저희의 길이요, 가야 할 사명만이 저희의 사명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 저희들은 또 가야 되겠습니다. 통일전선 수호를 위하여 또 나서야 되겠습니다. 잘난 사람은 잘난 자리를 버려야 되고 못난 사람은 못난 자리에 서서 일선을 수호해야 되겠습니다.
삼천만을 붙들고 눈물로써 저희들이 호소해야 되겠고, 피눈물을 가려 가면서 최후의 날이 온다고 일깨워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저희들이 책임지지 않는 한 영광의 나라. 영광의 자리는 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참된 영광의 한 날을 그리워했던 대한민국의 백성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버리지 않고 찾아왔던 당신의 뜻이 한을 남기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통일교회 교인들을 필요하거들랑 써 주시옵소서. 죽음의 자리에도 감사히 받아 나갈 줄 아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양자의 도리를 세워 나온 기독교의 사상 가운데서도 죽음길을 가려 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영광된 효자의 자리에서 나를 위해 죽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전통적 사상을 가리기 위해서, 하나님을 해방하기 위해서 저희들은 죽어가야 되겠습니다. 하늘나라를 건국하기 위해서 저희들은 희생 해야 되겠습니다.
그 일이 다 이루어진 다음에 자신들이 구원의 나라를 차지하는 것이요, 최후의 승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은 최후의 아버지의 영광이 다 이루어진 그때에 있어서 저희들의 설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길이 우리의 갈 길인 것을 알고, 끝까지 나선 걸음 주저 말고 힘차게 달려가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11월 첫 주일입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불쌍한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기동대원들을, 아버지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 이름이 빛나지 않게 될 때는 하늘이 빛나지 않을 것입니다. 땅 위의 수난길에서 허덕이고 있는 이 자식이 짐을 또 져야 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허락하신 뜻을 받들어 이 일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이 이 길을 감당하지 못하거들랑 책임져야 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세계를 넘나들며 최후의 전선을 개척하기 위해서 나서는 길 위에 당신이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한국 땅에 남아 있는 당신의 어린 자식들을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이들을 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옵니다. 이들의 갈 길을 권고해 주시옵소서. 이들이 빛나는 승리의 담을 쌓고, 하늘의 튼튼한 장벽을 높이기 위해 가는 길은 틀림이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끝까지 참고 다시 만나는 그날, 영광을 중심삼고 나라를 찾고 남북이 통일되어 해방의 함성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당신이 얼마나 바라고 계시는가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그야말로 목을 놓고 하늘과 더불어 담판할 때가 왔습니다. 저희들은 밀실에 들어가서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기도할 때가 왔습니다. 밤을 지키고, 낮을 지켜야 할 하늘의 용사 시대는 왔습니다.
이 거룩하고 찬란한 한 때밖에 없는 이 시대를 놓치는 불쌍한 무리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영광의 날, 영광의 시대, 영광의 주인, 영광의 권위가 우리를 맞기 위한 순간이 시시각각 우리 목전에 숨가쁘게 다가오고 있사오니 그것을 맞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깨어나 응시하면서 승리의 길을 다짐하면서 맞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11월, 12월을, 1972년, 1973년, 1974년을, 아버지여, 지켜 주시옵소서. 부디부디 이들을 뜻하신 뜻대로 남아지는 자리까지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참된 영광의 길이 저희 앞에 찾아올 것을 엄숙히 고대하면서,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가 승리하고 구원 얻는다고 하신 말씀을 믿고 가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며,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저희의 갈 길은 정해진 길이니 오늘도 가고 있습니다. 설정한 그 길은 이 시간에 정한 것이 아니옵고, 이 시대에 정한 것이 아니오라, 멀리 저희의 조상들이 태초부터 정한 길이옵니다.
그 길을 바라보며 저희는 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 길은 하늘이 태초에 저희의 조상들 앞에 명령해 왔던 길이옵니다. 가지 못하게 되면 당신이 선두에 서서 고이고이 이끌어 평화의 한 곳으로 인도하여 주시던 길이었습니다.
저희들은 잘못하여 그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길을 갈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저희는 그 길과 상관이 없는 자리에 섰습니다. 그렇지만 정한 그 길을 지키는 주인은 당신이옵니다. 정한 그 길을 가라 하는 것도 당신이옵니다.
그 길을 다 가게 하고 당신이 허락한 위업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당신의 사랑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정한 뜻을 알지 못하고, 그 길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당신이 정한 위업과 사랑을 차지할 수 있는 자격자가 못 되었습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길을 잃어버렸고 그 길을 생각도 못해 본 인간들이었습니다.
오늘, 자기 부모의 혈육을 받아 태어난 그날부터 철들어 가지고 이 나라 이 백성으로 사는 이때까지 그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저희들의 갈 길로 알았습니다. 배우고 닦아 나이 들어 성인이 되면 가정을 갖고 자식을 낳아 키워 보는 그 자리를 인생으로서 정한 길로 알고 가는 무리였습니다. 그와 같은 군상의 한 모습을 대신하였던 과거의 인연을 가진 타락의 후손임을 저희들은 다시 한 번 알았습니다.
이제, 눈을 들어 마음을 솟구쳐 바라보게 될 때, 이와 같은 길이 저희가 가야 할 본연의 정한 길이 아니었음을 저희들은 몰랐었습니다. 하늘이 권고하고 지시하는 뜻을 따라온 저희들은 이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옷깃을 여미고 당신이 슬퍼하며 재촉하고 수고하시던 역사적인 이 길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원래 평탄하고 행복하고 영광된 길, 눈물의 골짝길에 저희들도 동참하겠다고 몸부림쳐 봤습니다.
당신이 정한 그 길이 어쩌면 이렇게 한 많은 역사의 길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이것은 저희들의 잘못도 잘못이겠지만 역사이래 저희의 선조들이 책임을 못하여서, 탕감의 역사를 가려내지 못했기 때문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 누가 이 길을 바로잡을 것이며 지도할 것이냐 하는 것이 저희 조상으로부터 지금까지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성현들이 바라던 것이었고, 참된 모습을 따라가는 수많은 의인이 가는 길인 것을 생각하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렇게 정해진 길을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이렇다고 정해 본 사람도 없는 이러한 과정에 처해 있을 적에, 하늘은 보잘것없는 저희들에게 통일교회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희들이 가는 길은 오늘날 하나의 민족만이 가야 할 길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민족은 필시 선두에서 가야 할 길임과 동시에 세계 만민이 가지 않으면 안 될 하나의 길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뿐만 아니라 역사시대에 왔다 갔던 수많은 저희 조상들도 다시 가지 않으면 안 될 엄청난 정한 길임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영계에 가 있는 모든 선지선열이나 현재 살고 있는 인류도 그렇지만, 저희의 후손들도 이 길을 또다시 정한 자리에서 가 주기를 바라는 당신의 뜻이 있음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아버지, 한 많은 역사길에서 바라보던 정한 그 길을 얼마나 흠모하였습니까? 꿈속에서도 만나지 못하였던 그 길을 오늘 저희가 갈 수 있는 자리에 섰다면, 저희들에게는 역사를 대표하여 당신을 위로해 드릴 책임이 있지 않습니까? 시대를 대표하여 만민 앞에 기수가 되어야 할 사명이 있지 않습니까? 뿐만 아니라, 후대 후손들 앞에 당당히 가라고 보여 줄 수 있는 자신들이 되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다는 입장을 생각할 때, 그야말로 천주사적인 중차대한 시점에 가로놓인 책임을 분담하고 있는 저희 자신들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한 발자국, 한 노정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자신인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에 모인 이 청중들은 당신의 뜻을 따라온 무리이옵니다. 이 뜻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시던 십자가의 정상과 연하는 뜻이옵고, 이 길은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에덴에서 쫓겨나던 슬픔의 역사와 연한 길이옵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들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3대 비참사건을 알고 있습니다. 첫째는 아담 해와가 타락한 사실이요,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 위에 오셨다가 피흘리고 간 것이요. 세째는 통일교회가 이 땅에 와 가지고 수난길을 더듬어 온 것이 역사시대에 비참한 사건으로 남아질 것을 아는 무리이옵니다. 이 남겨진 비참한 역사 가운데서 그 비참의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는 인간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아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최후의 십자가의 정상에서, 자기의 사선을 앞에 놓고 담판하는 기도 선상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천만번 죽더라도 자기 한 개인은 사라져 가더라도 당신이 소원하는 그 뜻의 길은 남겨야 된다는, 당신이 마음 깊이 정한 그 뜻의 길은 남겨야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길을 남기기 위하여 죽음길을 자처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뜻을 알았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무리들도 자신들은 망하더라도 이 길을 남겨야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철부지한 무리들이 모여서 당신의 거룩한 승리의 한날을 표방하고 나섰다고 소문을 내다가, 민족의 규탄을 받았고 사회의 규탄을 받았습니다. 하늘땅을 바라보아도 친구가 될 수 없는 고독의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그것은 이 땅 위에 하늘이 정한 길을 남기려 하는 당신의 뜻임을 처음 알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뜻을 따라 나선 걸음이 오래면 오랠수록 빛나는 역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긍지를 가진 하나의 주체적인 인격이 되어야 될 텐데 그렇게 되지 못했더라면, 이는 하늘의 수치입니다. 역사이래 저희 선조들의 부끄러움이옵니다. 통일가가 세워 나온 전통적 인연을 바라보게 될 때에, 이는 말할 수 없는 비참이요 부끄러움인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이제 이 부끄러움에 밀려나는 대표적인 사나이가 되고 아낙네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내적 결심을 다짐하면서 부끄러운 자세에서 회개의 눈물과 더불어 정한 뜻길을 가려 하는 마음을 가다듬고, 맹세의 실체로서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자신을 일깨우기 위하여 다시 모였습니다. 하오니 아버님, 오늘 여기에 모인 어린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백번 만나고 천번 만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남길 수 있는 거룩한 뜻길이 어떻게 빛나는 길로 남아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저희 자체가 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한 이 길을 어떻게 빛날 수 있는 길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아버지!이 길을 고이 따라가고 순응하여 승리의 한날을 갖추어 하나님이 행차하실 수 있는 그 길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바라는 것이 통일가의 소원인 것을 아는 저희들은 이 일을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가야 된다는 결의를 했던 것입니다.
과거에 쌍수를 들어 맹세도 많이 했습니다. 현재 자기 자신은 어떠한 자리에 남아 있으며, 가야 할 참된 정한 길에 있어서 발걸음은 어떠한 도상에 서 있습니까? 개인으로서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가정으로서 정한 길을 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아니면 통일교회로서 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가지 못하거들랑, 저희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해야 할 부끄러운 무리들이옵니다. 이 무리들이 아버지 앞에 부복하였사오니, 당신이 책망할 것이 많거든 책망하시옵소서. 저희들이 갈 길을 막고, 부족하지만 연단시키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원하는 모습으로서 오라 하는 그 길, 가라 하는 그 길을 당당히 오고 갈 수 있는 자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다시 일깨우고, 재차 결의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한국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그 누구도 싫어하는 자리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 누구도 싫어하는 무리로서 살아왔습니다마는 당신은 찾아와 주셨습니다. 당신은 기도해 주셨습니다. 당신은 지켜 주셨습니다.
오늘의 영광으로 아버지 앞에 찬양할 것이 있거든 그것은 그 아무개, 아무 무리가 한 일이 아니옵니다. 그것은 오로지 당신으로부터 시작한 것이었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영광된 일이 있거든 그것을 아버님께 돌리옵니다. 저희 자신 앞에 자랑할 것이 있거든 이것을 아버지 것으로 돌리옵니다.
그러나 다시 회상해 보게 될 때, 부끄러운 자신을 하늘 앞에 나타낼 수는 없습니다. 눈물로 회개하는 마음을 갖고 이제 남기신 그 길을 가야 할 무리의 모습이오니 초조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보무당당한 하늘 용장의 모습을 갖추어 가지고 정병의 실체로서 최후의 싸움터로 전진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국내외에서 외로운 길을 가면서 저희들은 세계의 동지를 규합하여 왔습니다. 30여 국가에 동지들이 있습니다. 이런 저희들은 불쌍한 무리가 아닌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낙오자가 아니요 패배자가 아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전부 다 하늘이 우리와 더불어 역사하신 은사인 것으로 알고 고맙게 생각하옵니다. 반대받는 자리에서 싸워 나가는 저희들을 세계 만민이 환영할 수 있는 시대상이 저희의 목전에 다가오는 이때에, 반대받으면서 하나되었던 저희들이 환영받으면서 하나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고이고이 감사의 심정을 다 묶어 아버지 앞에 민족과 세계를 대신하여 바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얼마나 그리워했습니까? 얼마나 얼마나 밤을 지새워 가면서 당신 앞에 축도를 드렸습니까? 얼마나 외로운 길을 찾아오면서 극복해 나왔습니까? 아버지,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사랑이 더 필요합니다. 아버지의 가호가 더 필요합니다. 아버지가 명령하신 그 자리를 향하여, 그 길을 당당코 가기 위해서 올바른 최후의 결단을 지어야 할 저희 자신인 것을 아오니, 가고 오는 전체를 허락하신 뜻대로 맡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제 4차 세계순방을 앞에 두고 전국에서 마음을 모아 하늘의 뜻을 염려하고 모이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더우기 여기에 모인 당신의 어린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니옵니다. 한국에 있어서 전체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이들을 당신이 맡아 주시옵소서. 그 누구도 지도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습니다. 당신이 지도하여 주시옵고, 책임져 주시옵소서. 저희는 그저 어린애와 같기에 당신 앞에 맡기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가시덤불로 끌거든 피를 흘리면서라도 참고 갈 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것을 바라보며 그것을 염려할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잃어버릴까봐 염려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돌짝밭길, 비탈길을 가더라도 저희 자체가 피로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를 잃어버릴까봐 염려하는 마음으로 매일 아버지를 바라보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 자체가 쓰러지는 운명에 있더라도 동지를 권고하고 쓰러지는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정한 길을 참되게 갈 수 있는 한 개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전통의 길을 개인이 이어받아 가지고, 가정이 가야 할 길을 이어 받아 가지고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길을 빛낼 수 있고 그 길을 바로잡을 수 있는 무리가 여기에 모인 어린 소년 소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일요일이오니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그 무엇이든지 제가 계획한 말씀을 전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말씀을 전하게 허락하여 주옵고, 여기에 모인 저희의 마음 마음을 아버지께서 묶으시어 오늘의 이 결심이 자랑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 시간이 하늘의 기쁨을 드러내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허락하신 이 시간을 따라 전체가 순응하는 이 모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스스로가 알기를 또 믿기를, 나는 통일교회 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역사는 길지 않습니다. 통일교회는 해방 직후에 출발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역사는 비록 길지 않더라도 통일교회가 지녀온 역사적인 인연을 소급해 본다면, 통일교회는 예수의 심정의 세계를 거쳐서 모세, 아브라함, 노아, 가인, 아벨 시대를 거쳐 아담 가정까지, 더 올라가서는 창조하시던 하나님의 이상의 세계에서 연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승리의 표준을 다짐하는 것은 통일교회 자체의 승리를 다짐하는 것이 아닙니다.지금까지 세계의 승리를 다짐하기 전에 최초에 있었던 하나님의 목적과 이상이 성사되기를 다짐해야 할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성사를 재차 다짐짓기 위한 데에 통일교회가 이 땅 위에 출발한 목적이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가 목적의 필승을 바라는 것은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나 자신의 필승을 바라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바라는 그 승리는 나를 넘어 가지고 가정, 민족, 국가를 넘어 세계의 승리를 다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탄식하셨다는 역사적인 원한은 인류시조의 실수로 말미암아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날부터 시작된 그 탄식을 하나님 자신이 벗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탄식이 누구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느냐 하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식으로 말미암아 시작 되었기 때문에, 그 연유를 제거시키는 데는 하나님 자신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불효한 자식을 그대로 맞는 부모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효자를 결정하는 것은 부모 자신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아무리 만물을 창조하신 절대적인 능력의 주인공이라 해도, 천도를 배반해 가지고 하늘 앞에 탄식의 역사를 남긴 불효막심한 자식을 맞은 한을 벗을 길이 하나님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불효를 맞은 부모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탄식권내에서 해방시켜 드릴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을 찾는 것이 하나님이 찾아 나오고 구원섭리를 하는 목적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에서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기쁨으로 만우주를 대할 수 있는 그날이 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면에 희색을 띠고 '내가 지은 만물의 아름다움을, 온 피조 세계여 찬양할지어다! 만물 스스로가 자체적으로 서로서로 격려하며 찬양함은 물론이지만, 내 은덕을 찬양할 수 있는 아들딸을 보고 찬양할지어다!' 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한날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소망하는 바가 아니예요?
그런데 그 소망이 전체 앞에 있게 될 때…. 영광이 변하여 탄식이 되었고, 희망이 변하여 절망이 되었고, 효성의 심정이 변하여 저주의 심정이 되었기 때문에 그 탄식권을 누가 해소해 드릴 것이냐 하는 것은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날을 맞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므로 그와 같은 날을 맞이하여 그와 같은 효성을 다할 수 있는 아들딸을 맞아들이는 기쁨, 그 기쁨과 더불어 만우주에 생명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사랑하는 내 아들딸을 부르며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영광이 있다면, 그리고 그 아들딸에게 기쁨이 있다면, 그것을 아들딸의 것으로 부여하겠다는 것이 만민을 대한 부모의 심정이 아니겠느냐? 그와 같은 자리를 찾아 나가야 할 것이 인류가 소망하는 최대의 희망이 아니겠느냐? 바로 그렇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은 타락하였습니다. 하늘을 저버려서 하늘의 탄식권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이미 설파했습니다. 모든 만물이 탄식한다고 말했습니다. 영계에 있는 성신 이하 모든 영인들도 탄식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이 탄식하면 이 세계상을 바라보시는 하나님도 역시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탄식의 역사를 이어받은 후손들은 어느 한날 탄식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길을 한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번번이 실패의 역사를 거듭해 왔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수습하기 위한 가인 아벨 역사에서, 하나님은 또다시 2차적인 실패를 보았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비참상을 당했습니다. 타락으로 피를 보지는 않았지만, 타락한 결과로 말미암아 인류역사에서 피를 보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피의 역사를 물어 가지고 서로서로 화해를 해야 할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화해하지도 못했고 하늘과 더불어 하나되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인류를, 전세계를 노아를 중심삼고 쳐야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물로 전체가 사라지도록 쓸어 버리지 않으면 안 될 하나님이 되어 버렸습니다.
최고의 정성을 들여 창조한 인간일 것이며 인간을 위한 사랑과 축복의 대상으로 만물을 지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하나님이 채찍을 들어 심판했다는 말이 남아졌다는 것은, 탄식 중에서도 피가 맺힌 비참의 역사가 거기에 가해진 것임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이러한 비참의 역사를 수습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해 가지고 유랑의 생활을 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정든 땅, 고향 산천을 뒤에 두고 행객의 노정을 걷지 않으면 안 될 비참한 운명길을 가르는 놀음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가는 길은 비참한 길이었습니다. 국경을 넘나들어야 했습니다. 집시의 대열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이방에서 나그네 신세를 모면하지 못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로의 간교한 계교에 의하여 자기의 아내를 빼앗기고 자기 일족이 고립되는 상태에까지 몰려 들어갔습니다.
하늘이 가는 길이 비참한 길이었기 때문에 그분을 따라가는 사람들도 비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는 길도 비참하였습니다. 모세가 가는 길도 비참하였습니다. 바로 궁중 40년 이후에 이스라엘 민족의 편이 되어 나섰던 모세는 궁중에서 쫓겨났고, 이스라엘 민족 앞에 자기의 몸을 나타낼 수 없는 운명에 처해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먹고 사는 데 있어서 비참한 생활환경에 몰렸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뜻을 대해 나왔던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 특히 비참한 목자인 다윗을 택해 가지고 이스라엘을 지도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웠던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는 고독한 한 사람의 목자였습니다. 그 누구와 친구될 수 있는 자리에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민족을 위하여 염려하는 데는 누구보다도 고독한 자리에 섰고 외로운 자리에서 하늘을 흠모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의 탄식을 염려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대하는 하나님의 염려를 덜어 드리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깊은 심정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이 당당한 권위를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무시하고 나설 때, 이스라엘 군상들이 전멸될 입장에 섰을 때, 다윗은 양치는 목동의 옷을 입고 물매와 돌을 갖고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가 주인으로 삼았던 것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나라의 주관을 받았던 것이 아닙니다. 하늘을 주권자 대신 주인으로 세웠던 것입니다. 자기의 선조 누구보다도 하늘을 믿고 나섰던 것입니다. 하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죽음의 자리에 직면하더라도 하늘이 지켜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 자리에 선 다윗은, 가는 길은 고독하였지만 고독하지 않았습니다. 비참하였지만 비참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탄식을 해소시킬 수 있고, 이들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한을 풀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믿고 나서는 다윗 앞에 하늘은 같이하였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아무리 당당한 골리앗도 다윗 앞에서 하나의 초개와 같이 쓰러지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은 이렇듯 비참한 역사적 사연들을 가려 가지고 나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비참한 자리에서는 하나님은 지켜 주셨고, 지친 사람들이 또다시 희생하는 것을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하였습니다. 축복받은 야곱은 하란에 들어가서 21년 동안 수난길을 갔습니다. 그는 라반에게 열 번씩이나 속임을 당하면서 핍박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그는 서러운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고독한 자리에 몰렸습니다. 환경을 중심삼고 볼 때, 탄식과 절망에 부딪치는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나 절망을 호소하는 야곱이 되었던들,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자탄하는 야곱이 되었던들, 그는 이스라엘을 대행하는 민족적 권한을 차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야곱은 20년이 가중되는 수난길에서도 하늘의 축복이 변치 않을 것을 끝까지 믿었습니다.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변치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어떠한 재력이 앞을 막더라도 그것을 뚫고 나갔던 것입니다. 거기에 라반이 다른 것을 제기해 야곱이 가는 길을 막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최후의 승리는 누구에게 돌아갔느냐 하면 라반에게 돌아간 것이 아니라 야곱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결과를 가져 오지 않으면 하나님의 승리의 날을 이 역사상에 남길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탄식하던 하늘이 승리할 수 있는 터전은 탄식하는 무리가 절망하지 않을 때에 세워 나온 역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야곱이 그럴 수 있는 절망의 탄식권에 몰렸지만 탄식을 한 것이 아니라, 절망을 한 것이 아니라 당당히 미래의 축복을 믿고 나서는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1 이스라엘권이 성립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탄식권내에 사무쳐 있지만 그 탄식으로 말미암아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탄식으로 말미암아 창조이상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탄식이 강하면 강할수록, 가중되면 가중될수록 심정과 이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창조이상이 성사되기를 다짐하는 내적인 결의를 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가는 길은 탄식권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돌아가지만, 거기에 융합되는 것이 아니라 그 탄식권을 밟고 올라서서 승리의 한날을 개척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탄식권을 절대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망과 고통이 극한 자리에서도 하늘을 붙들고 '당신은 이와 같은 자리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하나님이요, 낙망하지 않는 하나님이요, 탄식하는 자리에서 자극받는 하나님일 수 없다'고 믿고 나가는 무리에게는 기필코 필승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모세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는 궁중을 떠나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는 목자생활을 하면서도 오로지 간직한 하나의 마음은 무엇이냐?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편들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거기에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은 이스라엘 민족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던 동기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과실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지만 내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고, 내가 고독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고독을 대신 책임지기 위해서 느끼는 것이고, 내가 희생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비참을 방어하기 위한 방패로서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으로 40년 동안 양의 무리를 끌고 다닐 때 늑대의 습격이 왜 없었겠으며, 독사떼의 위협은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위험이 가중되고 고독과 탄식이 휘몰아치더라도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이스라엘 민족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내적인 각성을 한 모세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나는 충성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아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그를 대했던 것입니다. 그는 '내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렇게 나선 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였노라'고 하면서 자주적인 권한을 가지고 민족의 선두에 섰던 것입니다. 수많은 민족이 있다 하더라도 그 민족 앞에 서기에 당당한, 안팎의 심적 태도가 갖추어진 모세였습니다.
십 년 세월이 지나가고 이십 년 세월을 거쳐 삼십 년, 사십 년 세월이 흘러가게 될 때에, 모세는 바로 궁중의 사십 년 호화로운 생활 가운데 뜻 없이 살던 과거지사를 회상하면서 '바로 궁중을 흠모하는 내가 되어 서는 안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자기 앞에 닥쳐오는 수난길이 가중되면 될수록 자기가 바라는 하나님의 소원의 나라, 바로 궁중에서 생활하던 이상으로 하나의 천지를 호령할 수 있는 하나의 궁중을 흠모했을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이스라엘 왕권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이 해방되는 날, 만민이 드높이 이 권위를 찬양할 수 있는 세계적인 주권국가를 흠모했을 것이라구요.
누구든지 그의 사상에 치리받는 것을 당당하게 생각하고, 열두 지파의 후손으로 태어났던 이스라엘 민족과 자기 선조들의 전통을 이어받고, 심오한 정성을 옛날부터 이어받고, 특권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들도 모세의 사상과 전통과 그 입장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모세를 이스라엘의 대표자로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 아니냐.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봐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이 땅에 와 가지고 삼십 여생을 불행하게 살다 간 사나이였습니다. 그는 요셉 가정에서 마리아의 복중을 빌려 태어났습니다. 의붓아버지인 요셉의 품에서 태어났습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자기 동생들까지 예수를 비난했습니다. 의붓아버지의 인연을 따라 태어난 예수는 세상으로 보면 불쌍한 어린아기로 자랐습니다. 요셉은 물론 예수를 사랑해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자기 피를 통해서 태어난 아들딸들보다도 더 사랑했느냐, 덜 사랑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라구요.
요셉이 꿈 가운데 마리아를 데려오라는 말을 듣고 마리아를 데려왔는데, 그 마리아가 잉태를 했다 이겁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꿈 가운데 데려오라는 말을 듣고 데려온 마리아를 열 달이 되도록 그냥 두었다는 것만 해도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 과정에 있어서 별의별 사연이 없었겠느냐 이겁니다. 남자의 욕심으로 볼 때, 그 배후를 추궁하고 싶지 않은 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추궁 하는 날에는 마리아는 불행하게 될 것이 뻔했습니다. 한 번 묻고 두 번 묻게 되면 마리아의 가정은 화가 벌어진다 이겁니다.
만일에 화가 벌어지고 말다툼이 벌어지는 그 틈바구니에서 그 주모자가 누구냐 하면…. 예수라는 인물을 중심삼고 안팎으로 엇갈린 가정환경이 벌어졌다면 예수는 얼마나 고독했을 것이냐? 통일교회는 이렇게 예수님이 불쌍한 아기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기 때부터 불쌍하게 자랐습니다. 그런 사실을 동네방네 친척들이 다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면 소재지의 구석구석까지 다 알고 있는데, 하나님이 진짜 사랑하는 아들을 거기 두고 길렀겠어요? 할 수 없이 애급으로 피난을 보낸 것도 하나님의 도피적인 작전이 아니었겠느냐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볼 때, 예수님은 비참하게 태어나서 비참하게 자랐습니다. 명절이 되어도 요셉은 자기 아들딸에게는 좋고 맛있는 것만 먹였을 것입니다. 그랬을 거라구요. 오늘날 하늘이 사랑하는 목자가 있다면, 여러분은 그 목자를 대해 가지고 '아, 우리 아들딸보다도 더 사랑해야 되겠다' 라고 생각해요? 먹을 것이 있으면 자기 아들딸의 입에 넣어 주게 마련이지.
이런 등등의 문제를 볼 때, 예수님은 불쌍하게 태어나 불쌍하게 살다가 비참하게 몰려 가지고 비참한 운명과 불쌍한 자리에서 탄식과 더불어 사라져 가신 분입니다. 그랬던 예수가 아니예요? 보라구요.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을 보면, 예수님은 일생 동안 무엇 때문에 살았느냐 할 때, 자기 뜻대로 살다 간 사람이 아니라구요. 누구 뜻대로 살았어요? 아버지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살았으니 그는 자유롭게 행동한 사람이예요, 부자유스럽게 행동한 사람이예요? 부자유스럽게 행동을 한 사람이라구요.
원수가 나타나면 그 원수를 대해 가지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왜? 아버지의 뜻을 위했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자기 소신의 뜻은 있을망정, 그 뜻대로 행동할 수 없다. 그것이 효의 길이요, 충의 길이 아니예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세상에서의 효자도 어떤 사람이냐? 자기 개인의 몸과 자유의사는 갖고 있지만 일체의 생활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부모를 위해서 일생을 희생하면서 부모의 뜻대로 가려고 하는 사람을 효자라고 합니까, 불효자라고 합니까? 효자라고 하는 거라구요. 하나의 군왕을 중심 삼고 볼 때, 군왕의 뜻대로, 자기의 뜻을 완전히 무시해 놓고, 주권자의 뜻대로 사는 사람을 충신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면서도 자기 뜻대로 나지 않았고, 살면서도 자기 뜻대로 살지 않았고, 최후에 죽을 때까지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하고 간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기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남의 뜻대로 태어났고, 사는 것도 남의…. 그 남은 남이 아니라 아버지라구요.
그런데 절망으로 갔느냐 절망으로 안 갔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구요. 절망적으로 갔느냐? '나는 비록 몰려서 죽고 비참하게 죽더라도 내 소원만은 절망이 아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는 비록 탄식의 자리요, 낙망의 자리요 절망의 자리지만, 내 희망만은 승리를 표방하는 데 있어서 당당했다'고 한 것은 하나님이 그랬기 때문에 예수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뜻은 절망에 부딪치는 것이요 낙망에 부딪치는 것이지만, 아버지의 뜻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요 승리이기 때문에, 그 승리를 표방하는 자리에서 자기의 생명을 넘나드는 순간이나마 불충 불효의 위치를 넘을 수 있다는 데 희망을 가지고 담대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있다는 것을 역사시대에 보여 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어느때에 보여 주시면 좋겠느냐? 하나님이 정서적인 심정을 가진 분이라면 어느때에 '내 아들아! 네가 죽은 것은 잘 죽었다' 할 수 있겠어요?
역사시대에 아무리 찾아보아도 역사적으로 대표되는 사람은 예수밖에 없는 줄 알아야 됩니다. 로마 병정들이 자기의 양손과 발에 '땅! 땅!' 못을 박은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적극적인 원수라구요. 적극적인 원수라는 말이 이상하다면 극단적인 원수라구요. 예수는 그러한 원수를 대해서 말하기를 '아버지여! 저들이 행하는 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하오니 용서하시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복귀섭리 혹은 구원섭리의 영역 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들이 반대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마저도 반대하는 거라구요, 하나님마저도.
그렇게 반대를 받으면서도 참아 나온 것은 왜냐? 원수의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앞에 이러한 사람이 한 사람도 생겨나지 않은 세상에서 의로운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망령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이상으로 찾던 의인을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습니다. 의인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역사의 미래 노정을 바라보시고, 앞일을 아는 예수를 당당히 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아들이기에, 맏아들이기 때문에, 그 이상 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원수를 위해 복을 빌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역사이래 없었던 사실입니다.
야곱이 아무리 승리하여 이스라엘이 되었지만 그는 간교한 사람입니다. 모세가 아무리 훌륭했지만 무뚝뚝한 사람이라구요. 그는 이스라엘 백성 하고 애급 사람이 싸울 때 애급 사람을 당장에 돌로 때려죽였습니다. 의리 있고 영웅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걸 볼 때 모세는 울뚝불뚝한 사람이구요.
그러나 예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최후의 결단을 짓기 위해서 밤을 새워 가면서도…. 한 번도 놀라운 일이라구요. 두 번도 놀라운 일이예요. 그런데 세 번이나…. 핍박을 받고, 자기의 제자들이 전부 다 배신하고 몰아내는, 이들이 잠자리에 들어갈 때까지…. 그렇잖아요? 사랑하는 제자들이 따라와서 밤을 새워 가며 기도하는 자기 앞에서 세 번씩이나 졸고 있는 그런 심각한 심판의 자리에서도, 그들에 대해서 복수심을 갖지 않고 결의한 마음을 가지고 죽음의 자리까지 밀고 나간 예수, 이 사건이야말로 역사이래에 둘도 없는 단 한 분의 사건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마음 가운데 ' 야! 너만은 내가 기억하겠다. 역사상에 너만은 내가 기억하겠다'는 내적인 결의를 자극시킬 수 있는 예수의 행로가 있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간 이후 하나님이….
예수님은 사탄이 죽였습니다. 하나님이 죽인 것이 아니라구요. 아, 세상에 자기 아들을 죽일 사람이 있어요?
오늘날 아무리 악한 타락한 인간세상에 있어서도, 자기 아들딸이 죄를 지어 가지고 사형장으로 끌려가는데 그것을 바라보면서 '이놈의 자식아!잘 죽어라! 시원하다. 아이구 나는 죄인의 어머니 아버지가 되었다. 허허 허허' 그래요? 그러는 부모가 있어요? 그런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는 미치광이라구요. 미치광이라는 거예요. 정상적인 부모라면 그 부모의 눈에는 육천년의 역사적인 눈물이 솟구칠 것이고, 자신이 대신 죽고 싶은 마음이 심정 깊이 스며들 것입니다. 그렇지요? 나라가 있으면 나라를 주고라도, 헌법이 있으면 헌법을 뜯어고쳐서라도 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살리고자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구요. 전체를 부정하고 아들의 행복을 긍정하겠다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수도 있는 거라구요.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대천지의 대주재요, 부모의 심정의 최고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자리에 서 계신 하나님은 아들딸이 망하는 것을 보고 죽는 것을 보고 좋아할 이유가 있겠어요? 그것은 하나님의 입장보다도 더 급박한 일이기 때문에, 쳤다 하면 그 상황이 될 거라구요. 그러지 않고는 심정에 한이 서리므로, 더 급박한 일이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는 이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천당가겠어? 벼락 맞는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죽을 수밖에 없을 만큼 급박했던 그 사정을 몰라 가지고 천당에 갔다간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지옥 가는 것이 편하지.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이것을 보게 될 때, '너만은 내가 잊을 수 없다! 너만을 내 골수에 기억하마! 이런 사람을 친 사람을 대하여 내가 편이 되어 주마! 사탄이 시켰거들랑 사탄의 행사에 도리어 너를 찾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부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죽일 때까지는 빨리 죽일 목적으로 죽였습니다. 아들을 죽여야만 했던 탄식의 기원이 하나님 가슴속에는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날까지 인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는 것을 '그래!' 하고 공인할 수밖에 없는 하늘의 딱한 탄식과 슬픔의 비운이 여기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런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을 죽일 수 있는 자리에 섰습니다. 그 아들을 죽여 가지고 찾겠다는 무리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고 세계 종교인들이 아니냐 이겁니다.
아들을 죽여 가지고 찾았다는 무리들의 꼬락서니가 그 모양이 되어 가지고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무리라고 생각할 도리가 없지 않느냐. 이런 입장에서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달라야 되겠다 이겁니다. 그 아들은 죽을 자리에 섰지만, 자기를 그 자리에 내세운 하늘이 자기보다 더 비참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놀랍게도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비참한 사연을 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만민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자리에 서야 풀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원수로 대할 수 없는 사랑의 마음을 비로소 땅 위의 인간으로서 깨우치고 간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의 자리에서 사랑을 들고 하늘 앞에 효의 인연을 세웠기 때문에 칠자가 없습니다. 치는 자는 망합니다.
이리하여 기독교는 도처에서 피 흘리며 죽음이 엇갈리는 길을 거쳐왔지만, 한 사람이 죽으면 세 사람이, 세 사람이 죽으면 몇 배씩 배가되어 가지고, 불에 불을 던져 가지고 세계적인 발전을 기해 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가지고 대표적인 기수로 와서 행동했기 때문에 그 뜻을 따라가는 무리 앞에 손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리하여 자주적인 권한의 국가와 세계를 거느려 가지고 악한 무리를 전부 다 회개시켜 승리를 다짐하려는 것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싸우지 않아도 인간 자신이 이 악한 세계를 청산하고, '저희 자신으로 말미암아 탄식된 것을 전부 다 해소시켰사오니, 하늘이여! 자유로이 해방하시옵소서' 할 수 있는 그날을 추구하는 것이 종교인들이 가야 할 길이요, 기독교가 책임해야 할 사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책임을 다 못한다면 쳐야 합니다. 망해야 합니다. 책임을 못 하면 망해야 된다구요. 망하지 않게 되면 망하게 해야 됩니다.
왜? 아담으로 말미암아 탄식의 동기를 부둥켜안고 나오는 후손들 중에 아담보다 나은 사람이 있었느냐 이겁니다. 아담의 아들딸로 태어나 가지고 아담보다 훌륭한 아들딸이 됐어요?
오늘날 여러분들이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 가지고, 아담은 그래도 하나님이 '야, 아담아!' 하고 부를 때, '예이!' 하고 대답하며, 타락하고 부끄러운 것은 알아 가지고 무화과 잎으로 자기 몸을 은신할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부르는 데에 대답하고 들을 줄 알아요? 그래 가지고 뭐, '아담 해와가 타락했는데…. 아담 해와 없었으면…. 뭐 할망구 할아버지…' 여러분은 그 꼴만큼도 못 돼요, 그 꼴만큼도. 아들을 심어 가지고 그 아들을 죽여서 구하려고 하는 사람들, 이건 거지 떼거리예요, 거지 떼거리. 하나님이 뒤에서 볼 때, 억천 만금의 천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 놀라운 효자를 세워 구해 주겠다고 죽을 자리까지 내몰아 가지고 찾아진 무리가 이 모양 이 꼴이라구요, 이 모양 이 꼴. 이건 싸구려, 썩은 무우 대가리보다도 더 못하다구요. 하나님이 아들을 죽인 것은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기성교회 교인들을 보고 '뭣 때문에 믿어요?' 하면, '내가 천당가기 위해서 믿지'라고 합니다. 자, 이것 하나님이 보시게 되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어쩌다가 저렇게 됐어요? 예수 믿고 천당가자구? 자기만 예수 믿고 천당가면 나라는 어떻게 해요? 나라는 지옥 가도 좋다는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교단을 앞세워 나라를 구하겠다고 눈물을 흘리는 종단이 되지 않고는 망합니다. 자기 종단을 앞세워 세계를 구하겠다고 눈물짓지 않으면 신도를 빼앗기고, 그 종단은 망하는 거라구요.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거라구요.
오늘날 교회에서는 장로교회니 무슨 교회니, 뭐 2천년 전통의 교회니, 그럽니다. 그러면서 통일교회는 이단, 이단 뭐라구요? 이단도 벅찬데 또 마귀라고 그래요, 마귀. (웃음) '통일교회는 이단이고 사탄 마귀다' 이래요. 누가 그 이름을 붙였어요? 하나님이 붙였나요? 자기 멋대로….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런 의미에서 심판은 내가 할 거라구요. 하나님이 나한테 그러시더라구요. '자!, 너 보고 마귀라고 하고 있으니 네 마음대로 해봐라' 이겁니다. 내가 마귀예요. 내가 마귀라면 당장에 심판받아야 될 것이지만, 내가 마귀가 아니라 할 때는 어떻게 하겠어요? 그 놈은 불을 놓아 죽여야 한다 이겁니다. (웃음) 웃을 일이 아니라구요.
찾아왔다는 그 꼬락서니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전부 다 자기 집안방의 하나님입니다. 아이구, 우리 아들딸 저렇게 못났지만…. 마음의 기대는 많아 가지고 말이예요, 기도하면 '아이구! 우리 아들딸 천하의 대통령이 되게 해주소!'라고 합니다. 이거 도적놈 중에서도 왕도적놈이라구요. (웃음)
자기의 아들딸들은 어떻게 생겼더라도 자기 아들딸보다 유능한 사람을 다 집어치우고 자기 아들딸을 왕초가 되게 해달라고 하니, 세상에 그렇게…. 선은 그렇지 않다구요. 물은 골고루 메워 나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물은 깊은 곳에서부터 채워지고, 사람은 어려운 사람부터 더듬어 가지고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아, 이렇게 물이 차올라 오는 날이면 아무리…. 그런 기도 백날 천날을 해봐라 이겁니다. 내가 아는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 내가 문선생이란 사람입니다, 소위 통일교회 이단 괴수라고 부르는 뭐 무슨 뿔이 나고…. 뭐 교회를 망치는 괴수요, 나라를 망치는 괴수라고 해 가지고 지금까지 야단들이라구요. 지금까지 자그마치 수십 년동안 반대를 받아 왔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 사람들 편이면 나는 죽었을 거라구요.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도 농을 참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유머(humour)도 잘하시고 농도 잘하고 말이예요. 풍류적인 뭐가 있다구요. 그렇잖아요? 사람도 그래요? 하나님을 닳은 사람도 그런 것을 보여 주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때는 쓰윽 기도하면 '야 야, 이것 좀 들어 봐라' 하시면서 마이크를 돌려 가지고 내 귀에 척 대시며 '아무개 아무개 목사가 너 죽으라고 기도한다. 들어봐라' (웃음) 하시는 겁니다. 들어보면 나발을 들이 대 가지고 방송을 하고 있다구요. '통일교회 문 아무개, 그 녀석이 있기 때문에, 전 교역자가 원통해서…. 요렇게 되면 기성교회가 옥살박살되겠소! 하나님 그냥 두지 말고 어서 불러 가시오!' 이런다구요.
죽으라면 내가 죽나요?(웃음) 자기들이 진실해질 수 있는, 죽으라는 권고였으면 내가 벌써 자원해서 죽었다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데데하게 남의 신세 지고 죽으려고 하지 않는다구요.
여러분들, 기성교회에서 자기만 아는, 자기 배만 아는 그런 사람들은 욕심장이지요? 우리 아가씨들, 시집가게 되면 욕심장이 남편 얻어 가소! 왜? 욕심장이니까 밥은 먹고 산다구요. 그러면 됐지. 그럴 수 있는 아가씨들 있어요? 정직한 신랑을 얻어 갈래요, 욕심 많은 꿀꿀 돼지를 얻어 갈래요? 어떻게 할래요? 꿀꿀 돼지?「아니요」 그것은 물어 볼 것도 없지 (웃음) '히히히' 웃는 모습을 보면….
그러면 아들을 그렇게 죽일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딱한 사정을 그 누가 알았겠느냐? 그것은 성경에 없습니다만, 아들을 죽일 수 있을 만큼 딱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 기독교의 예수를 믿겠다고 그렇게 아둥바둥 모이는 것도 비참하고 말이예요, 모든 선민의 편이 돼야 할 하나님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는 곳마다 피를 흘리고, 모가지가 떨걱떨걱 떨어지지 않나, 기름에 튀겨 죽지 않나, 태워 죽지 않나…. 이러한 운명에 부딪치는 것을 보고 '아이구, 하나님은 막을 수 있지 않소?' 하겠지만 전지전능하면서도 그것을 참아야 하는 하나님은 얼마나 한이 맺히겠어요? 그거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가지고 하나님이 최고로 높으냐 이거예요. 언젠가 한번 깨끗이 청산해 버리면 좋겠다구요.
로마에 가면, 로마제국 박해시대 4백년 동안 사용하던 카타콤바, 지하굴이 있는데, 그것이 4백 킬로미터 넘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는 '야! 종교가 굉장히 무섭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만일에 삼천만 민중이 그런 신앙으로 불타 있다면 여기서부터 평양에 있는 김일성의 안방까지 직행 통로를 뚫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못 하겠어요? 안방으로 전부 다 해 가지고 스위치만 한번 누르면 '꽝!꽝!' 해버릴 수도 있다구요. 20년 동안에 무슨 짓을 못 하겠어요? 그렇게 다 죽여 버린다는 것이 안됐지만 말예요. 극단적인 말을 한다면 못 할 것이 없더라 이겁니다. 그렇게 피해 가면서 거기서 모인다는 거예요. 그렇게 일생을 살다가 거기서 죽게 되면 전부 다 거기에 묻다 보니 나중에는 묻을 데가 있어요. 전부 다 죽은 시체를 모아 놓은 성당이 되어 버렸습니다. 명당이라구요. 이래 가지고 시체가 썩어서 물이 나오고 그런 데서 살았다구요. 그런 시대를 거쳐 나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죽음의 환경 가운데서도 죽지 않고 살아 나왔던 정신이 어디에서 나왔느냐? 그들은 원수지간인 로마제국을 원수시해 가지고 이들이 망하기를 바라는 것보다도, 하늘 앞에 마음을 모았습니다. 그들은 망하지 않더라도 인류의 해방을 이룰 수 있는 그곳이 되기를 더 간절히 바랐을 것이 아니냐.
그리하여 로마가 신앙의 자유를 허락한다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로마제국을 위해서 충신이 되라면 문제없이 충신이 될 것이 아니냐. 그렇겠지요? 그러나 기독교가 동굴 아래로 몰려다니는 시대로부터 4백년 동안 천대를 받았지만, 결국은 로마가 먹혀 버렸다구요. 그렇지요? 악이 선을 치고는 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다간 한정이 없겠다구요.
자, 예수님이야말로 역사이래의 비참과 절망의 첨단에 선 운명길을 앞에 놓고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누구보다도 가까운 자리에서 붙들고 넘어간 사람이 아니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가 죽는 자리에 나가는 딱한 사정보다도 당신의 심정 가운데에는 저를 죽여야만 하는 더 비참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저는 미처 몰랐소? 이러한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아량을 가졌다는 거라구요. 양손과 발에 못을 박히게 되었을 때, '아이고 아야!' 했더라면 어땠을 것이냐? 뼛골에 스며드는 아픔이 아무리 절망을 촉구하더라도 참아라! 생명이 다 하더라도 참아라! 그것을 바라보시는 사랑의 아버지의 가슴은 그 이상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도리어 아버지를 눈물을 흘리는 자리, 피 흘리는 곤경의 자리에 떨어져 가지고 자기 몸이 시들어 가는 입장에 서더라도 당신을 다 사랑하지 못한 한을 품고 간 효자가 아니겠느냐?
내가 살아서 남과 같이 당신의 영광의 존전에 효자의 칭호를 가지고 아들딸을 거느려 가지고, 씨족을 거느려 가지고, 민족을 거느려 가지고 영광스런 하나님의 한을 세계적으로 대신 짊어지겠다는 효자의 권위를 갖고 나타나지 못한 한을 품고 간 예수님, 그 묵묵한 예수의 사상과 신념에 동행한 사람이 누가 있었느냐? 그것을 보는 자리는 하나님도 눈물 짓지 않을 수 없고 가슴이 찢어지고 그 몸이 말라가는 그런 고통을 극복하기에 궁했을 그런 자리가 아니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부르는 예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하나님의 심정을 뚫고 나가는 화살 이상의 예리한 말씀으로 아버지의 가슴을 찔렀을 것이 아니냐. 최후에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런 말을 할 때,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니었느냐.
'저는 이렇게 죽을 때까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아픈 심정을 염려 하면서 이렇게 가는데 당신은 거기에 한마디의 회답이라도 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이런 마음…. '내가 이렇게 가는 걸 알아줄 줄 알았는데 하늘은 무심도 하시다!' 이런 마음. 알아주는 흔적조차 없는 것 같은 입장에 서게 될 때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신 그 이면에는 '사랑의 마음을 다해 가지고 당신 앞에 효도를 다하려고 했습니다' 하는 마음이…. 이러고 나서는 '다 이루었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다 이루었다구요? 무엇을 다 이루었다구? 예수님이 그 자리에 있어서 불효의 채찍을 남길 수 있는 한 순간이요, 하늘 앞에 6천년 생명의 원한이 조건을 남길 수 있는 무서운 자리를 넘어가는 그 심정, 불효자는 될 수 없다는 것을 각오했지만, 생명이 오락가락하고 정신이 오락 가락하는 찰나마다 하나님을 부인할 수 있고, 하늘을 반박할 수 있는 순간이 일신에 사무치는 것을 누구보다 두렵게 생각했던 예수가 아니었겠느냐.
그러한 싸움 가운데서도 지지 않고 하늘만을 위하여 충의 도리와 효자의 도리를 심고 가는 여기에서 생명이 다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자기 소신의 목적을 끝까지 관철한 의미에서 '다 이루었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 말은 맞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뜻, 뜻….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불효의 자리를 이어받지 않기 위해서 뒤넘이친 예수의 그 마음을 두고 볼 때, 거기에는 세계의 공포가 휘몰아쳐 왔고, 자기 일생 일대의 모든 것이 하향선으로 엇갈리는 그런 순간 아찔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개인의 사정도 생각했을 것이고, 어머니 아버지도 생각했을 것이고, 종족도 생각했을 것이고, 앞으로 올 나라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 나라를 위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나 하나가 효의 도리와 충의 도리를 남기지 않으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하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내적으로 다짐하며 스스로를 제어하는 마음이 얼마나 사무쳤겠습니까? 그 마음을 어기지 않는 입장에서 자기 스스로를 이기고, 스스로의 소원을 이루고, 하나님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자리가 불충이 될까봐 염려하는 마음과 하늘도 불충이 되지 않기를 바라던 마음이 안팎으로 들어맞아야 되는 거라구요.
예수님이 그런 자리에서 갔기 때문에 그의 무덤에는 부활의 서광이 비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겁니다. 이래 가지고 죽은 예수로 말미암아 전세계가 전부 다 뒤넘이치게 된 거예요. 그렇잖아요? 산 예수가 아니라구요.
그런 역사를 거쳐 가지고, 기독교는 수많은 선조들이 피를 흘리며 로마 박해 4백년 기간을 거쳐 가지고 피의 종교로 출발한 것입니다. 죽음 길로 개척한 길이니 그 길을 따라가는 후손도 죽음길을 가지 않고는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피를 흘리지 않고는 살 길이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씀대로 정도의 길을 밟아 가지고 세계적인 발전을 이룩해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라는 교회는 오늘 이 시대에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심정적인 내연에 있어서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중심삼아 가지고 창조 전 하나님 시대서부터 시작된 거라구요. 창세 전 하나님의 심정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인연이 돼 가지고 창조하던 하나님, 창조 이후의 하나님, 타락의 정경을 바라보시던 하나님, 그리고 타락한 이후에 복귀의 문제를 놓고 슬픈 탄식권에서 싸워 나온 하나님, 그러한 하나님의 시대를 거쳐 가지고 그런 것을 다 청산지어 놓고 해방권 하나님의 세계까지 가자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가 이어받은, 전통적인 인연을 계승한 역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갈 길은, 아담 가정의 실패와, 아벨의 실패, 노아 가정의 실패, 아브라함 가정의 실패, 모세 일파의 실패, 예수 일대의 실패를 청산하는 길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도 전부 다 추풍낙엽과 같이 실패해 버렸다 이겁니다. 처박아 버렸다구요.
여러분, 지금 기독교 믿을 것 같아요? 미국 같은 데에는 3천 명 모이던 교회가 세 명, 열두 명 모인다는 말도 듣잖아요? 거 망했어요, 안 망했어요? 다 망했다구요. 하늘의 전통을 이어받은 기독교가 실패의 역사를 거듭해 와 가지고 전부 다 망해 떨어졌습니다. 이것을 누가 가로막느냐? 이 사망선을 헤쳐 나가야 됩니다. 이놈의 기독교를 전부 다 뒤로 돌려 세워야 되겠다는 겁니다. 인류를 뒤로 몰았다가 쳐 몰아야 됩니다. 오늘 이 시대에 사명하지 못한 것을 다해 가지고 올라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2천년 동안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잘못한 것을 전부다 청산지어 놓아야 됩니다.
충신이 되려거든 말이예요, 충신의 역사를 이어받아야 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도 그렇잖아요? 대한민국이 어떤 사람을 중요한 기관에 쓰기 위해서는 말이예요, 그 사람의 배후의 역사를 조사하나요, 안 하나요? 샅샅이 조사하나, 덜 조사하나? 중요하면 할수록 샅샅이 조사하는 거예요. '아하, 그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애국자의 종자다' '거 몇 대야?' '십대 조가 애국자다' 하면, '아!' 십대 조에서 일대 더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많이 있을 때 '아!' 한다 이것입니다. 그런데 9대에서부터 애국자의 대열에 섰다가 실패한 후손이다 하면, '어! 그런 일이 몇번 있었나' '열 번, 백 번 있었다' 하면, '어! 그 사람의 후손이니 틀림없이 실패할 텐데' 그러지 않겠어요?
보라구요. 인간 역사를 가만히 성찰해 볼 때, 전부 다 성공했어요? 실패지요? 전부 실패지요? 아담부터 전부, 물에 빠지듯이 실패를 거듭한 거예요. 기독교에 와 가지고 세계적으로 실패예요, 승리예요? 무엇 때문에 실패했어요? 죄악 때문에. 죄악이 뭐예요, 죄악이? 이런 이야기 하다 가는 오늘 하루 종일 이야기해도 시간이 모자랄 거라구요. 그러려면 내가 항우 같은 기운이 있으면 좋겠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뱃심이 없어진다구요.
이렇게 실패한 역사를 누가 책임질 것이냐? 기독교를 누가 책임질 것이냐? 예장에서 책임질 거예요? 기장에서 책임질 거예요? 감리교회가 책임지겠어요? 성결교회에서 책임지겠어요? 아무리 봐도 책임질 성싶지를 않아요.
자기들이 미워하고 반대하는 통일교회 이것 망할 것 같은데 열심히 움직이는 데는, 그들도 본받아야 된다고 그럽니다. 가정을 버리고 나왔느냐고 입이 쩍 벌어지고 눈이 둥그래집니다. 물리치고 나갔다고 하지만 '진짜 가정을 버리고 나왔소? 몇이나 버리고 나왔소?', '자식을 하나, 둘, 셋을 두고 나왔다' 하는 걸 볼 때, 그런 면에서는 본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소문 들었어요? 들었어요, 못 들었어요?「들었습니다」 하나님편에서 볼 때, 그거 잘하는 놀음이요, 못하는 놀음이요?「잘하는 놀음입니다」 사탄편으로 볼 때는?「못하는 놀음입니다」 못하는 놀음이라구요. 악으로 볼 때는 못하는 놀음이요, 선으로 볼 때는 잘하는 놀음인데, 선이 잘해야 되겠어요, 악이 잘해야 되겠어요?「선이 잘해야….」 그러니까 통일교회는 기성교회보다 못해요, 나아요?「낫습니다」 낫다 이겁니다. (웃음) 우선 교리는 제쳐놓고 전도하는 데는 통일교회가 낫다는 거예요.
또 보라구요. 이게 그저 욕을 해도 그저 체면 불구하고 헤헤 웃고…. 기독교 목사로부터 내가 왕초가 되어 가지고 보고 잘 듣고 있습니다. 어떤 통일교회 신도는 살랑살랑 말도 잘하고 말이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나쁘긴 나쁘지만 거짓말 안 하고, 아주 실력자라고 말이예요. (웃음) (녹음상태가 불량하여 일부 정리하지 못했음)
악착같이 이랬으니 통일교회가 졌다, 이겼다?「이겼다」 이긴 전통을 가지고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버님이…」 교구장 이?「아버님이…」 그렇구 말구요. (웃음) 나도 동감한다구요. 정말 그렇소.
이제는 내가 세계에 나가 가지고 그런 전통을 닦고 있습니다. 자랑하라우, 말라우? 「하라우」 내 위신이 폭락되지 않게 자랑하라우, 말라우? (웃음) 그러한 전통을 갖고 있다고 자랑할까, 말까?「해요」 괜히 알지도 못하고?「아닙니다」(웃음) 거, 연습으로 하지 말고…. 통일교회 패들은 문선생이 못나긴 못났지만 말이예요, 요렇게 생겼지만 말이예요, 통일교회 문선생 말을 잘 듣게 되어 있어요, 안 듣게 되어 있어요?잘 듣게 되어 있습니다. 왜? 망하려고, 흥하려고?「흥하려고」(웃음)
대감 집 아들딸로 태어난 사람이 말이예요, '이리 오너라! 게 아무도 없느냐!', '예, 예', 너희들 세도는 당당하지만 오늘은 내 앞에 전체복종 할사!', '예이 그럴사' 이렇게 되면, 그 대감님이 이것을 보고 '아이고! 집안 망했다' 그러겠어요, 기분이 좋겠어요? 대감마님의 이름을 팔아 가지고 대감 행세하는 아들을 볼 때, 그 아버지는 나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어떻든간에 여러분들이 사명을 받아 가지고 척척 선생님 노릇을 할 때 거 어때요? 기분이 좋겠어요, 안 좋겠어요? 불쌍하게 욕먹고 천대받던 너희들은 기분이 나쁘지 않을 거라구. (웃음) 여러 분들 기분 나빠요? 「아닙니다」 '앉아! 서!' 하면 척척…. '야! 선생님이 훌륭한데 나도 한번 해보자' 해 가지고 '차렷!'하면…. (웃음) 그러면 이게 망할 패들이예요, 흥할 패들이예요? 「흥할 패요」집이 그렇게 되거 들랑 그 집은 망하지 않습니다. 절대 흥하느니라. 하나님이 5퍼센트를 인간책임분담으로 남긴 것은 당신의 영광의 자리에 동참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말씀을 못 다 이루면 난 못 죽지만 여러분은 동참함으로 말미암아 같은 패가 되느니?「라」 라. (웃음)
자! 시간이 많이 갔기 때문에…. 그러한 작전도 필요한 거라구요. 그런 말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또 하자구요? 그만 두자면 한마디로 결론을 딱 내리자구요. 또 하자우, 그만두자요?「더 해주십시오」 급하게 하라우? 자, 어떻게 해? 빠르게 하자우, 천천히 하자우? 슬렁슬렁하자는 거예요? 어떻게 하자구요? 빠르게? 기관총이 좋소, 따꿍총이 좋소?「기관총요」 기관총?「예」 기관총도 한꺼번에 '드르륵' 할 수 있는 거라야 좋지, '드륵, 드륵, 드륵' 이거 안 된다구요. 상대가 나타나야 '드르륵' 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여러분들이 졸기만 할 때는 '드륵, 드륵…' (웃음)
자, 예수님의 역사를 놓고 볼 때,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이렇게 역사해 가지고 기독교를 간신히…. 민주세계의 이 미국놈들, 여기 미국애들 안 왔나? 미국애들 왔는지 모르겠구만, 「전도하러 갔어요」 아까 여기 왔어?「안 왔습니다」 여기 안 왔으면 욕해도 모르지. (웃음) 거, 미국놈들이다 이거예요. (웃음) 그 일당들을 두고 보면 강도 패들이라구요.
왜 그러냐 하면, 잘살고 있는 미국의 주인이 누구예요? 누구예요? 「인디언…」인디언들이 미국의 주인인데 영국에서 온 사람들이 총칼을 들고 와 가지고 사방에서 꺼떡꺼떡하면서 목을 베고, 전부 다 거꾸로 뒤엎고 그러지 않았어요? 그게 뭐예요? 강도가 아니고 뭐예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렇다구요. 안 그래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남 잘사는 데 와서 쫓아 버렸으니 악당이지요? 몹쓸 악당이지요. 「몹쓸놈들입니다」(웃음)
근본은 그렇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묘사하기를, 2백 년이니 3백 년 역사니 해 가지고 세계적인 문화국가를 창건했다고 하는데, 거 수작 말라는 겁니다. 전부 다 악당의 무리들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 사람들 자체를 보면 전부 다 형무소 출신들이라구요. 그들이 개척했다구요.
미국은 누가 발견했느냐 하면, 발견은?「콜룸부스가 했습니다」 물론 콜룸부스가 했지만 예수를 믿는 패들이 발견했다구요. 콜룸부스를 비롯하여 그들은 전부 다 신앙자였다구요. 안 그래요? 신대륙에 들어와 가지고 이 사람들은 인디언들을 잡아 죽이지 않으려고 했다구요. 박애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디언의 공격을 받았다구요. 공격을 받아 가지고 자기 어머니 아버지, 자기 아들딸이 죽어 버렸습니다.
이럴 때 사람이 가만히 있게 돼요? 그들이 신대륙을 찾아 나섰기 때문에 참고 나갔지만…. 만일에 미국의 선조들이 먼저 공격을 했다면, 그건 안 되는 거라구요. 하늘이 축복을 안 한다구요. 공격을 받았다구요. 공격을 받았으니까, 반드시 방어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거라구요.
또한, 거대한 미국 대륙을 개척하려면 인디언들에게 맡겨서 되겠어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말이예요. 그렇지요? 하나님이 주인인데, 주인의 입장에서 보게 될 때,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앞으로 신문화 세계를 창조해 가지고 세계를 요리하기 위한, 하나의 세속화되지 않은 미 개척지로, 맨 나중에 택함받은 선민한테 주려는 분깃으로 떡 남겨 놓았는데 인디언들이 전부 다 차지해 앉아 가지고 있으니, 이거 되겠느냐 말이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몰리고 뭐 연결해 가지고 몰아내기 시작하는 데는 거 할수없다구요.
미국은 본래 어떤 사람들이 찾아왔느냐? 청교도들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헤매다 그곳에 도착한 무리들이 청교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미국 대륙을 중심삼고 개발해서 3백 년 역사가 흐르는 동안 세계적인 문명국가를 만든 것입니다.
미국이 독립된 해는 1776년입니다. 따라서 1976년까지 2백년 역사가 흘렀습니다. 선생님이 이번 미국 대강연회에서 2백 년 역사의 미국이 책임을 못 해 가지고 2백 년이 넘는 날에는 미국은 땅에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이놈들 두고 봐라! 이렇게 딱 때려 봤다구요.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정리하지 못했음)
미국은 전세계의 기독교 선도국으로서 민주세계를 창건해 온 국가라구요. 그런데 미국이 왜 망하게 되었느냐? 하나님이 미국을 세운 것은 미국을 위해서 세웠느냐, 세계를 위해 세웠느냐? 하나님이라면 말이예요. 하나님이 미국을 축복한 것은 미국만 잘먹고 잘살라고 세운 것이 아니라구요. 세계를 잘먹고 잘살게 만들기 위해서….
주인의 책임을 맡았을 때는 주인의 임무를 대행해야 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주인의 일을 책임졌는데 마지못해서…. 주인의 입장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만 살랑살랑 하면서, 밭도 아닌 곳을 꽃밭만 만들어 가지고 꽃이 피어나면 '나비야, 오라우. 벌아, 오라우. 아이고 좋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면 돼요? 그건 미친 녀석 이라구요. 가시넝쿨이 있는 밭을 옥토로 개발하자고 하는데 '아! 이거 주인이 없으니 내가 한다' 해 가지고 훌떡 걷어붙이고, 소로 못 하면 기계로 부르르 갈아 엎어 놓고 '내가 고생한다. 가시밭이 이렇게 되면 옥토가 되어 가지고 가을이 되면 곡식이 황금 물결 치는 그런 곡식밭이 되겠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잘사는 거예요. 그렇지요? 자기 마음대로…. 자기의 좋은 것은 없다구요. 먼저 자기에게 좋은 것을 달라고 하면 책임자로 안 밀어 줍니다. 주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 욕심부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일 욕심이 많은 분이라구요. 그렇지요? 응? 얼마나 욕심이 많으신 분인지, 쓰레기통에 버린 바지 짜박지니 구두 짜박지라도 절대 필요로 한다구요. 그 가운데서도 쓰시고 그런다구요. 자취 생활한 사람은 그런다구요. '야 야, 쓰레기통 챙겨, 쓰레기 차야! 스톱!' 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욕심 많은 하나님이 뭐 부족하겠어요? 안 그래요? 한푼도 헛되게 쓰지 않는다구요. 또 욕심이 많으니까, 쓰레기통만 감독하겠어요? 세계 어느 나라든지 전부 다 자기 수중에 넣고 감독하고 싶은 거라구요. 그렇지 않을까요?
욕심 많은 사람은 말이예요. 똥걸레까지도 버리고 싶지 않다구요. 똥걸레도 쓸 데가 있다구요. 거 피난 다닐 때는 말이예요. 겨울에 피난 다닐 때는 산에 가서 나무 해다가 불을 땔 수 있어요? 그때는 똥걸레를 한짐 지고 가다가 냄새가 안 나는 것은 이불로 덮을 수도 있고, 가다가 나무가 없으면 이걸로 불을 때도 좋고, 다들 그런 거라구요. (웃음)
그런데 하늘이 볼 때, 싫은 것이 어디 있고 버릴 것이 어디 있느냐 이거예요. 버린 것도 전부 다 쓰려고 하는 하나님인데 세계 전부 다 함부로 다루면 하나님이 좋아할 것 같아요? 여러분들을 희생시키고 고생시키고, 종으로 삼아서라도 더 좋은 것을 쫓아 다니면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구요. 안 그래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욕심을 두고 보더라도 미국을 택한 것은 미국을 위해서 택했겠어요, 전세계를 위해서 택했겠어요?「세계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택했어요?「전세계를 위해서요」 거 틀림없어요?「예」 세계, 세 계단이 세계라구요. 그것도 좋긴 좋지만 세계를 위해서 세웠다구요. 그거 틀림없지요?「예」
그러면 미국은 미국을 위해 가야 할 것이냐, 세계를 위해 가야 할 것이냐? 「세계를 위해서 가야 합니다」 미국의 많은 돈은 자기 나라를 위해서 써야 할 거예요. 세계를 위해서 써야 할 거예요?「세계를 위해서…」미국 사람들이 죽는 데는 미국 정부를 위해서 죽어야 되나요, 세계 해방을 위해서 죽어야 되나요?「세계해방을 위해서」알긴 잘 아누만!(웃음) 내가 수고한 보람이 있구만. (웃음) 가르치긴 올바로 가르쳤다구요.
여러분이 출세를 하는 데는 미국적 출세를 할 거예요, 세계적 출세를 할 거예요?「세계적…」대한민국적 출세를 할 거예요, 세계적 출세를 할거예요?「세계적 출세를…」 거 욕심들은 다 많구만. 어쩌면 그렇게 다 통일되게 닮았노?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같은 곳에 갈 수 있는 가망성은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잘나고 못난 차이는 복귀시대(復歸時代)에서 벌어지는 것이지 복귀완성(債歸完成)한 시대에는 다 잘났다 이겁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보면 코가 쭈그러졌어도 '야, 요것봐라! 찌그러진 코가 매력이 있다' 이런다구요. 보라구요. 지금 세상에는 뭐 인물경쟁, 아이 콘테스트(eye contest)니 하는 것이 세계대회까지 있다고 그러지요? 잘난 것만 대회를 하면 앞으로 못난 경진대회를 할 때는 누가 첫째 될 수 있다구요?(웃음)
잘난 경쟁을 할 때는 멍청이가 되고 말이예요. 제일 못난 것이 세계의 일등입니다. 잘나든 못나든 세계 일등이다 그래야 됩니다. 안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하려고 그런다구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은 역사적인 인물이 됐다구요. 이런 말을 내가 시작한 거라구요. 그랬다고 반대할 사람이 없을지니라. 이래 가지고 못난 사람 경연대회는 이미 시작했다구요. 뭘로? 말로 (웃음) 그렇게 되니 내가 땀을 흘려도 기분이 좋구만!
기독교는 이미 전부 다 거꾸로 떨어져 내려가는데…. 어제는 한국에서 한다 하는 기독교의 유명한 사람을 만났다구요. 만나서 '자, 당신이 이끄는 현재의 기독교가 망하겠소, 안 망하겠소? 하고 물어 봤습니다. 망해 들어 간다는 거라구요. '망해 죽을 것이라면 빨리 죽으면 좋겠소, 천천히 죽으면 좋겠소' 그건 안 물어 봤다구요. 기독교의 총책임자이기 때문에 그것까지 물어 보면 '아, 이 사람 기성교회 반대파인데 이렇게 만난 자리에서 그것까지 물어 보면 내 목을 짜르겠다고는 안 할 것인가' 이렇게 생각할 것 같아서 그건 물어 봤어요, 내 속으로만….
죽게 됐는데 지지리 설사를 해 가지고 오줌 똥을 받아내며 '십년 백년 살아라' 이러는 게 좋아요, '얼른 떨거덕 해라' 이런 게 더 좋겠어요?「 떨거덕이요」 떨거덕…. (웃음) 거 알긴 아누만! 이거 망할 바에는 아예 전부다 망해 버려라 이겁니다.
통일교회가 망하지 않으면 말이예요, 통일교회의 한 때가 올 거라구요. 거 이길 거예요. 통일교회가. 싫다고 했는데 그들이 망하면 우리는?「흥 합니다」 흥하지 말라고 해도 흥하는 거라구요. 그걸 볼 때,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은 컸던 녀석이 점점 작아지고, 작았던 녀석이 커져 가지고 바꿔치기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는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더라.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걸 볼 때, 하나님이 통일교회를 사랑하는가 보다 난 그렇게 생각하는거라구요.
왜? 기성교회가 전부 다…. 그래, 통일교회가 기성교회 망하라고 기도 했어요? 나는 그런 기도 안 했다구요. 자기들이 잘못 믿어 망했지. 이제, 기성교회가 망하게 된 것을 보고 여러분들이 그냥 내버려 두어야 되겠어요, 건져 주어야 되겠어요?「건져 주어야 됩니다」 건져 주어야 되겠지요?
보라구요. 거대한 기독교가 망하게 되면, 수억 되는 기독교가 망하게 되면 몇 사람이 막아야 되겠어요? 한 댓 사람이 막아서 되겠어요? '거 통일교회 문선생이 막아야 되겠다' 그런 소리 하면 되겠어요?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막아내려면 한 나라가 전부 다 막겠다고 나서면 된다 이겁니다. 그래, 한국이 막겠다고 나서면 세계의 기독교를 막아 댈 것 같아요? 3천만이, 남북을 합해야 5천만 명밖에 안 되는데 6억이나 되는 기독교인을 막아 댈 수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있어요?「예」있을 게 뭐 있어? 못 막아 대는 거예요. 자그만치 미국 같은 나라는 막아 댈 수 있을 거라구요. 안 그래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지금 망해 들어가는 세계 기독교를 보면서 미국을 구하겠다고 기수로서 등장하는 세계적인 사나이 혹은 아낙네가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으라고 그냥 놔 두실 분이 아닙니다. 가만히 가슴에 손을 대고 진찰을 해보면 틀림없이 그럴 성싶어요. '하나님, 당신의 마음이 그럴 것 같은데 그렇소, 안 그렇소?' 이렇게 물어볼 것도 없다구요. 그렇다구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여러분들이라도 그럴 텐데 지혜롭고 모든 것을 갖춘 그분이 왜 안 그러시겠느냐 말이예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을 구해 주겠다고 하는 새로운 기수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라구요. 군대가 아니라구요.
그래서 그런 사람을 찾아 암만 미국을 돌아다니면서 보아도 있을 성싶지 않으니, 이 못난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도 한번 해보자 해 가지고 미국에 가서 원거리 사격으로 원자탄을 쾅 던져 봤다구요. 십만 달러가 걸린 현상문제를 뉴욕 타임즈에 게재해서 '미스터 문 왕림, 들어라' 기성교회 목사들은 우리 돈 일전 한푼 안 쓰고 6불 이상 18불까지 자기 돈을 내고 들어오라고 선전포고를 꽝 해봤다구요.
쓱 나가서 전도하게 되면 '어, 별스러운 종교가 나타났구만!'(웃음), '미국에 있는 기성교회 부흥사들은 돈을 줘서 오라고 하는데 돈을 받으면서 오래? 아, 이상하다!' 그 이상한 데서부터 시작하는 거라구요. (웃음) 미국 사람들은 참 거 별났다구요. 도리어 '거, 매력적이다' 거기에 관심을 갖는 거라구요. 내가 입장료를 한 5만 달러라고 붙여 놓으면 어떨까? 그러면 한 사람이라도 올 거라구요. (웃음) 안 오면 내가 돈을 주어서라도 오게 하려면 그거 큰일난다구요. (폭소)
그러면 '야! 역사이래 제일 입장료가 많은…. 이래 가지고 통일교회 미스터 문은 일약 세계에 선전되는 거라구요. 한 5만 달러만 가지면 선전할 수 있다구요. 선전을 위주로 하게 되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누구한테도 지지하지 않겠지만, 종교는 선전하는 것보다도 실천을 내세워 가지고 칠할을 건전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나발 부는 것보다 사람이 나가서 전달하게 되어 있다구요. 그러니까, 통일교회는 고생을 죽도록 하면서도 실속을 못 보는 교회로 지금까지 나왔다구요. 그렇지만 문선생이 못난 사람은 아니라구요.
자! 나 물 좀 먹고…. (웃음) 물 안 먹으면 목이 갈라지기 때문에 말이 정지되겠으니 실례가 되어도 할수없다구요. 이렇게 땀을 많이 흘리고 말을 많이 할 때 대중 앞에서 이렇게 잔에 부어 마시더라도 실례요. 의례요?「의례요」 의례요, 실례요?「의례요」 아주머니들이 편좀 되어야지 요, 이해심 많으신 여러분들. 이래서 물을 먹으면 맛 있다구요. (웃음)
기필코 가야 되겠습니다. 제목은 저기다 세워 놓고 행차는 어디에 하느냐 하면 말이예요. (웃음) 대한민국은 백두산도 대한민국이요. 부산 항구의 맨 끄트머리도 대한민국이지요? (웃음) 그렇게 생각하면 전부 다 통하는 거라구요. 이제, 돌아가 보자구요.
기필코 가는 데, 예수님도 그러한 신념이 없었으면 기필코 십자가의 길을 갔을 것이다, 못 갔을 것이다?「못 갔을 것이다」 모세도 기필코 가야 되겠다는 신념이 없었다면 갔을 것이다, 못 갔을 것이다?「못 갔을 것이다」 못 갔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국경을 넘나들면서 집시 행각의 무리로서 행차한 것도, 그가 기필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가겠다는 결심이 없었으면 왕창…. 그렇겠지요?
전세계의 기독교가 망해 떨어져 가는 이때에 있어서, 어떤 신학자면 신학자가 목사나 장로 이상의 신념을 가지고 전세계의 기독교를 기필코 구해야 되겠다 하고 나서면 구할 가망성이 있나요. 없나요?「있습니다」한 사람이라도 구하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참사람만 남기게 되면 완전히 망했다는 결론은 안 나옵니다. 이런 결론이 나와요. 그러니까, 전세계의 망해 들어가는 기독교를 기필코 망하지 않게끔, 방어해야 되겠다 하면 어떻게 돼요?「안 망합니다」
그럼 누가 막아야 되느냐? 기독교 자체로는 가로막지 못 합니다. 알겠어요? 언덕바지를 굴러 내려가는 바윗돌이 '아이고! 나 안 굴러갈래! 내가 왜 떼굴떼굴 굴러가?' 하면서 암만 몸이 달아도 그 자체로는 가로막지 못합니다. 그러면 누가 가로막아야 되느냐? 제 3자의 입장에서 대책을 취해야 됩니다.
그러한 기독교와 같은 교회가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통일교회로, 통일교회는 기독교 같은 단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망하는 기독교를 막을 성싶은 가능한 위치에 통일교회가 섰습니다. 그 대신 기성교회보다 악당 같고, 또 뭐예요? 지독하고 악착같습니다. 세상에 좋다는 것, 강하다는 것 뭐 다 갖고 있어요. 그걸 볼 때, 통일교회 문선생은 악착같은 사람이라구요. (웃음) 말하는 것을 봐도 시시하게 안 해요. 입술을 꽉 깨물고 합니다. (웃음).
그래서 나 악어 가죽을 안 좋아한다구요. 왜? 악어는 물면 턱 떼어 먹는다구요. 그러나 인간은 몸통을 떼먹지 부분을 떼먹지 않는다구요. 내가 그런 패라구요. 지독한 패라구요. 그렇게 지독한 패이기 때문에 수십 년동안 반대를 받았어도 지치질 않아요. 뭘 모르고 했더라면 벌써 지쳐 나가 떨어졌을 거예요. 보기에 지쳤어요? 내가 지쳤어요. 안 지쳤어요? 「안 지쳤습니다」 내 나이가 쉰 셋이라구요, 한국 나이로. 그렇지만 젊은 사람들과 씨름해도 안 진다구요. 여기 아무개 씨름 한번 해보자구요. (웃음) 내가 지게 되면 기독교 역사가 조금 잘못되는 거라구요. (웃음) 밥을 안 먹으면 지지 먹으면 찌지 않아요. 점심을 안 먹으면 지지 별수 있어요? 그렇잖아요? 지면 그렇게 졌지. 본래는 안 진다구요. (웃음)
통일교회 원리가 참 좋긴 좋아요. 힘이 들더라도 이길 수 있는 비법이 있거든요. (웃음) 왜? 탕감조건이 있으니까….
미국에 가 있는 김영운 선생 알지요? 그 양반이 하는 말이 '통일교회 원리가 참 좋긴 좋아요' 해서 '왜 좋아?' 하니 '귀에 걸면 귀걸이요!' 이래요. (웃음) 망해도 탕감이라 생각하면 된다구요. 죽어도 탕감복귀다 하면 되는 거예요. 이렇게도 맞고 저렇게도 맞고…. (웃음)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삭제했음)
통일교회는 다 쓰러지더라도 기필코?「가야 됩니다」 가야지요. 가 가지고 뭘할 거예요? 「복귀요」 그건 다 가르쳐 준 건데 누가 몰라. 그렇게 물어 볼 때는 '기필코 가 가지고 승리해야 된다!' 이래야 나도 땀 흘린 보람이 있고 기분이 좋지요. 기필코?「승리해야…」 가르쳐 주었으니까 대답했지. (웃음)
기필코 가야 되겠다고 결심을 했다구요. 기필코 가야 되겠다. 기필코?「승리해야 되겠다」 그 '기필코'라는 것이 얼마나 질긴 거예요? 절대적인 것입니다. 「승리해야 됩니다」 남편이 반대하면? (웃음) 기필코? 반대하면 승리를 어떻게 할 수 있다구요? 그렇게 나가면 지게 마련이라구요. 반대하는 남편보다도 악착같아야 됩니다. 나쁜 데는 말고요.
통일교회를 위해서는 나 통일교인은 망해도 괜찮다구요.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망하면 안 됩니다. 왜 망하면 안 돼요? 이 나라도 망해서는 안 된다구요. 통일교회를 믿고 나라를 위해서는? 남편도 차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자기가 사랑하는 부모를 전부 차서 내놓고 길 떠나기 위해서는….
그래서 기필코?「숭리해야 한다」 정말이요?「예」 여기 아가씨들도 그렇고, 아주머니들도 그렇지요?「예」 우리 아주머니들 가운데는 자기의 아들한테 소박을 맞으면서 일생 동안 아들에 대한 한을 품고 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편이 멀쩡하게 통일교회에 가지 못하게 길을 막아서 아무리 생각해도 갈 길이 없기 때문에 죽어간 통일교회 아주머니들이 있는 것을 내가 안다구요. 사람이 저 반대의 길에서 사라져 가지고 하늘을 자랑하거든, 죽어 가지고…. 지금까지 걸어 나오면서 수많은 모욕을 당하고, 남편한테 매를 맞고 쫓겨나 가지고 맨발로 갈 데가 없자, 믿을 곳은 선생님밖에 없으니까, 담을 넘어와 가지고 선생님 있는 곳에 벌거벗고 찾아드는, 그런 여편네들을 맞아들인 선생님입니다. 그러니 물리게 되어 있다구요.
밤새껏 울며 불며 눈물지으면서 세상을 한탄하고, 그렇게 밤을 새웠다는 것이 원수의 조건이 되어 가지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뭐 어떻고 어떻고…. 그러한 역사라구요. 칼침 맞은 사람이 없나, 머리가 깨진 사람을 안 봤나, 팔 부러진 사람을 안 봤나, 다리 부러진 사람을 안 봤나, 허리 부러진 사람을 안 봤나…. 이렇게 비참한 역사를 거쳐왔다구요. 여러분은 죽을 때 눈을 감고 죽을는지 모르지만, 나는 모든 한을 풀지 않고는 죽지 못합니다.
부인들은 남편들한테 혹은 기성교인들한테 별의별 치욕과 수모를 당하면서 집을 잃고 여기까지 왔다구요. 부모들이 가지 말라고 해도 통일교회에 악착같이 가니까, 악착같이 남편이 반대해도 안 되니까, 나를 형무소에 몰아넣기 위해서 형사들을 데려와 가지고 꽁무니를 따라다니게끔 하는 그런 별의별 놀음을 다 해도 박차고 나왔던 길이라구요.
그렇게 되니까, 자기가 살던 집에 전부 다 불을 놓든지, 불을 놓을 수 없으니까 팔아먹질 않나, 밥그릇에다 똥을 갖다 퍼붓질 않나, 자기 딸이 예배보는 데 와 가지고 물팔매질을 하지 않나, 이렇게 여지없이….
내 옷가지에는 똥도 묻었고, 피가 묻었고, 고통을 받은 흔적이 있고, 몸뚱이에는 창끝으로 찔린 흉터가 남아 있다구요. 그러나 그렇게 하던 놈들은 다 망했습니다. 이런다고 통일교회가 죽어요?
그뿐만이 아니라구요. 쇠고랑을 차고 형무소를 드나들면서 별의별 비난 비소를 다 받았습니다. 문 아무개는 땅에 떨어진 사나이가 아녜요. 무골충의 사나이 같지만 때가 있다구요. '세월아 하루같이, 몇십 년 세월아 하루같이 지나가라! 나는 죽을 수 없다. 너는 잠자고 있지만 나는 달려야 되겠고, 너는 쉬지만 나는 고개를 넘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20년 역사를 단축시켜 나오기 위해서 남 모르게 서러운 투쟁의 길을 개척해 나온 것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가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 하나 반대받아 가지고 망하는 것은 괜찮지만 대한민국이 망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전세계의 기독교가 망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 장로들이 간판을 붙이고 통일교회 문선생을 반대해도 좋다구요. 나를 반대하고 흥할 수 있으면 좋지만, 나를 반대하고 망한다면 어떻게 할 거예요? 망할 수 있는 길로 가는 그들을 나는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하늘 앞에 세워 가지고, 원수의 기독교를 몰아 가지고 하늘의 충신으로 만들어 놓은 그 공적을 하늘이 치하한다면, 충신의 자식을 길러 가지고 충신을 만드는 것보다도 원수를 키워 가지고 충신을 만들었다면,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아무리 이단 괴수의 자리에 서가지고 그런 생애를 살다가 죽었다 하더라도,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충신의 자식을 데려다가 충신으로 만든 사람보다 높이 표창 안 할 것이다? 「할 것이다」 틀림없이 할 것입니다.
원수도 사랑하라고 한 통일교회 문선생은 누구냐? 결속하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절대적으로 기성교회 교인과 다릅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것을 느꼈는데 여러분들은 진짜 달라야 합니다. 달라요? '통일교회 교인인 나는 기성교회 교인 누구와도 다르다'고 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나는 죽더라도, 나는 청산에 묻혀 한줌의 혼이 되더라도 이 나라, 이 민족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늘을 시봉할 수 없는 것이 천리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세상을 성실히 받들어야 되겠습니다. 기성교회 목사나 기성교인들은 절대 믿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안 된다구요.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걸어가는 길을 지금까지 인도해 오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배가 고플 때는 밥을 굶을세라 먹이기를 다 해 주시고, 십자가의 길이나 수난의 구렁텅이에 몰리면 죽을 줄 알았더니 살려 주셨고, 나를 몰아넣은 사람은 망하게 하고 나를 살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수십 년 역사노정에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지금 이때는 어떤 때냐? 지금 때는 마지막 때입니다. 우리는 최후의 담판을 지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누구와 더불어? 기성교회와 담판을 지어야 됩니다.
씨름을 하는 데는 마루씨름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요전에는 기독교계의 명사들을 만났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나를 만나자는 사람은 누구와도 안 만났어요. 그렇게 시시한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내가 저자세의 입장에서 빌붙어 가지고 '어허! 도와주소!' 그건 죽어도 못 한다구요. 나는 당당하다구요.
내게 돈을 안 빌려 주어도 나는 쓸 돈이 있고, 너희 세력 기반을 움직이지 않아도 나는 움직일 수 있는 세력기반이 다 되어 있다 한 것입니다. 너희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았다 이거예요. 내가 그들을 만나도 무서워 않는 거예요.
우리는 이런 입장에 도달한 것을 알고…. 기성교회 앞에 반대받던 여러분들, 여러분은 자신이 망했다는 하나의 비난을 남기고 죽고 싶어요? 죽고 싶어요? 그러려면, 아예 통일교회에서 나가라구요! 사람은 절개가 있어야 됩니다. 체면이 있어야 되고 위신이 있어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종교를 통일하겠다고 나섰으니, 통일해야지요. 안 그래요? 해야지요? 하게끔 해야 합니다. 이제야말로….
그렇게 반대하는 데도 하늘을 믿고 나온 무리들이 아니예요? 이제 나라를 중심으로 반대하던 사회단체에서 환영할 때가 왔는데 하늘을 위해서 못 가겠어요? 그런 사람은 도와줘 보았자 망할 패들입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밤이나 낮이나 하나되기를 고대하는, 그들 편에 들어가서 하나될 수 있겠어요? 하나되겠어요, 못 되겠어요?「못 되겠습니다」 그렇다 이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되어 가지고 어떻게 할 거예요? 기성교회를 끌고 갈 거예요? 기성교회에 끌려갈 거예요?「끌고 가야 됩니다」 나라에 끌려갈 거예요?「아닙니다」 나라를 끌고 가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이 나라에는 애국애족하는 애국사상이 없는 것이 아니냐. 나라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더 사랑해야 됩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희생봉사해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인정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말없이 해 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한 일 중에는 나 혼자만 기억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구요. 나는 나를 알아 달라고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없이…. 오늘 몰라주면 십 년 역사가 흐른 뒤에는 알아주겠지, 십년 후에도 몰라줄 것 같으면 죽은 후에는 알아줄 것이거늘…. 알아주게 되어 있다구요. 알아주는 거예요.
오늘날 여러분들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위정자 들의 부패상을…. 거 안 된다구요. 부패해서는 안 되겠다구요.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말없이 그들의 갈 길에 서 가지고 역사를 대표해서 명령한 대로 희생해 가라 이겁니다. 모험을 단행하라 이겁니다. 열만한 자리에서 하늘이 나에게서 떠났으면 나는 백만한 수난의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은 나를 붙들어 주신다 이겁니다. 그렇잖아요?
자식이, 불효자식이지만 집을 나가게 될 때에 '그 자식은 행세가 그러니까, 버릇이 그러니까, 나갔다가 또 들어오겠지, 나가려면 나가라지' 한다구요. 그렇지만 죽으러 간다고 할 때에는 부모가 가는 길을 막아요. 안 막아요? 막지요? '아! 이 녀석아!' 하면서 가는 것을 못 가게 붙들어 끌어들이는 거라구요.
마찬가지라구요.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열만한 핍박으로 말미암아 수난 길에 있더라도 백만한 시련 과정을 당당하게, 내가 죽든지 살든지 생명을 걸고 나가는 길에는 회복되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여러분이 오고 있는 흑암을 스스로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느냐? 이런 문제를 볼 때, 이건 간단합니다. 남을 위해 사랑하라! 열 사람을 위하고 백 사람을 위해 사랑하라! 너를 위하는데 내가 이렇게 해야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구요. 하늘이 이러니 나도 이래야 되겠다고, 하늘이 이렇게 가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이런 생활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들을 위해서 마음을 모아 정성을 들이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꾸준히 일생 동안 그렇게 해 가지고 맨손 들고 간다 하더라도, 그 열 사람이 천국에 갔다 할 때는 나를 지옥 밑창에 갖다 둘 수 없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열 사람이 합동해서 하늘 앞에 축도를 해서라도 저분은 우리의 생명의 은인이요, 생명의 중심이요, 생명의 부모와 같은 분이기 때문에 우리보다 영광의 자리에 모셔 놓아야 좋겠다고 할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영광이 내 영광을 위해서 있다는 말입니다.
메시아사상이 뭐냐? 메시아는 만민의 생명을 책임지기 위해서 오시는 분입니다. 만민의 영광은 그로 말미암아 얻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돌려 줄 수 있는 제 2차적인 천국(天國), 영원한 세계의 이름을 독차지할 수 있는 책임을 갖고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의 사상입니다. 마찬가지 길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여러분이 가려서 가게 되면, 뜻의 길이 망하지 않는한 반드시 여러분은 그렇게 됩니다. 만일에 뜻의 길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통일교회를 망하게 하는 길일지라도 나는 망하지 않는다구요. 통일교회가 가다가 망한다 하더라도, 만약에 전부 가다가 떨어져 나가고 나 한 사람이 남더라도 일해 나가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한 사람이 남더라도 의논하고,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희생하고,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관계를 맺고 나가겠다는 마음을 갖고 나간다면 어떻게 되느냐? 통일교회가 망하게 되면 망한 것을 전부 다 치다꺼리하고, 다 처리하고 남으면…. 망했다고 해서 다 망해 없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남은 것이 있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맨 나중까지 가는 사람은 망한 그루 터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지고 보따리를 만들어 지고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통일교회가 무슨 돈이 있다 할 때는, 망했다고 하더라도 아직 돈이 남았다 이겁니다. 그 남은 재산을 자기가 상속해 가지고 가는 거라구요. 그걸 가져간다고 해서 하늘이나 그 누가 반대하지 않는다구요. 가져가게 되어 있는 거라구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이 무서운 사람이예요. 중단하는 사람은 나중에 후회합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는 복을 받는 거라구요. 망하는 자리에 있어도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피난을 가면서도 장사 밑천을 가져 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망하지 않는 방법은 뭐냐? 통일교회 선생님이 망할 사람이라면, 선생님보다 더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보다도 더 공적인 사상을 가져라 이겁니다. 그러면 문선생이 만들어 놓은 모든 공적 역시 끝을 맺더라도 그 사람을 통해서 맺을 거라구요.
또, 그 사람이 만약에 선을 위하는 마음이 절대적이라면, 하나님은 '야! 너만은 쓸 만하다' 해 가지고 나쁜 길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길로 안내해 주는 거라구요. 따라서 위하는 사람, 전체를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만을 중심삼고 나가게 될 때는 고독이요, 멸망의 길이 가까울 것이로되, 남을 위해서 희생봉사하고 나가게 되면 흥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겁니다. 반드시 흥하게 마련입니다. 통일교회는 이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찾을 때까지 이 작전을 해 나가는 것이 지극히 지혜로운 것입니다.
요즘에 아주머니들을 지방교회에 내보내 놓고 근간에 쭉 한번 순회해 봤어요. 경기도 일대와 경남 일대를 쭉 가 봤어요. 거기 가서 아주머니들을 만나면 눈물을 줄줄 흘리고, 그거 눈에 병이 난다 이거예요. 어쩌자고 눈물을 줄줄 흘리고….
본부에서는 매일 아침에 만나도 인사도 안 하던 아주머니들이 지방에 가서 만나면, 눈물을 줄줄 흘리고 뭐, 어머니가 갔더니 반갑다고 목을 끌어 안고 눈물을 줄줄 흘리고…. 그게 무슨 놀음이예요. 본부에서는 매일같이 보니까 본체 만체하고 슬슬 치마꼬리 휘두르며 돌아서고 가더니 무슨 저 야단이냐구요. 거 감상이 어떠하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라구요. 그런 것을 볼 때, 하늘을 대해서 그렇게 기뻐하고 반길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은 금이나 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런 마음을 갖고 이런 동네, 저런 생활, 청춘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를 죽기 전에 그렇게 가게 되면 틀림없이 나쁜 데에는 안 간다 이거예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녹음이 잠시 중단됨)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당 아닌 당으로서 여당의 입장에 서다 보니 욕을 많이 먹었다구요. 물론 우리가 전체를 동원해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가고 있습니다. 내가 교구장들한테 지시한 게 그거라구요. 이제는 발벗고 나서라. 죽더라도 나라를 붙들고 죽어야 되고 살더라도 나라를 붙들고 살아야 되고, 흥하더라도 나라를 붙들고 흥해야 된다고 말이예요. 통일교회가 가인 아벨을 붙들고 살든지 죽든지 판결할 때가 아니냐? 지금이 그런 때라구요. 알겠어요?
이것을 볼 때, 많이도 올라왔다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최후에 할 일이 뭐냐 하면, 하나님을 모르는 민족에게 하나님을 알도록 하늘 부모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하늘 부모를 섬길 수 있는 삼천만 민족이 되면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를 쓰고 무슨 감정을 가지고 그래도 망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온 전통적인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애국애족하는 데 있어서는 통일교회 무리와 같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사리사욕을 취하는 무리는 안 됩니다. 공의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전통적인 기준을 삼천만이 이어받고 지도자들이 이어받게 된다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선생님은 소리없이, 말없이 어디로 흘러갈 것입니다. 그런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정리하지 못했음)
지금 아시아 정세를 바라볼 때, 서북부에는 중공이 있고, 북부에는 소련이 있고, 동남부에는 일본이 있지 않느냐. 일본은 현재 용공권내에 휘몰아 들어가고 있지 않느냐. 북쪽에는 김일성이 도사리고 있지 않느냐.
이러한 때에 있어서 3천 5백만이 단결한다 하더라도 이 어려운 환경을 어떻게 극복해 넘어가느냐? 이것을 뚫고 나가려니 장벽이라구요. 화합했다 하더라도 우방국가인 미국까지도 우리를 박차 버리는 입장에 있는데, 어느 큰 나라가 찾아오게 되면 절대로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는 것은 우리를 삼켜 버리려고 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이제, 그런 때가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주적인 입장에 있어서 내적 결속과 외적 단결을 요하는 때이므로, 외적으로는 경제부흥을 통해서 결속을 했지만, 제일 시급한 것이 무엇이냐? 내적인 사상의 결합입니다.
엊그제는 모 기관장을 만나 가지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구요. '대한민국이 살기 위해서는 외적인 문제보다도 이제는 사상적인 통일을 어떻게 하느냐. 이북을 능가할 수 있는 사상적인 무장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라고 얘기했습니다. 사태가 지금과 같이 되었으면 그게 제일 골칫거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거기에는 통일교회가 있지 않느냐…. 통일교회와 같은 신념을 가지고 삼천만이 결속하는 날에는 이북은 문제가 아닙니다. 아시아도 문제가 아닙니다. 420만이 조금 넘는 이스라엘 민족이 수십 배 이상의 아랍권을 밀어내고 남음이 있지 않았느냐? 그것은 뭐냐 하면 경천사상(敬天思想)과 단일민족을 중심삼은 선민사상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냐 이겁니 다. 오늘날, 이 민족 앞에 이스라엘 민족 이상의 선민사상을 고취시킬 수 있는 사상은 통일교회 사상밖에는 없습니다.
삼천만은 너무나 많아요. 너무나 많다구요. 삼천만이 하나되는 날에는 세계가 무섭지 않다구요. 거기에 동반해 가지고 우리 조직은 세계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냐. 이러한 포위권내에 있는 것을 누가 외국에 나가 가지고 문을 열 것이냐. 이제 길이 막히게 되면 완전히 독 안에 든 쥐새끼가 아니냐. 어떻게 해서든지 이 나라를 누가 책임지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선생님이 지금까지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미국이 도망가는 것을 몰아 가지고 어떻게 한국을 붙들고, 끌고 갈 수 있게끔 만드느냐 하는 것을 놓고, 지금까지 다년간 내적 심혈을 기울여 가지고 준비한 통일교회의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1976년 도까지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최후에 이 나라는 어떻게 되느냐 이겁니다. 우리가 살려서 넘어가려고 하지 않느냐 이거예요. 우리가 지금까지 이 나라를 위해 하늘을 붙들고 기도한 그 효과가 어디 가느냐? 땅에 떨어지고 말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이것을 누가 막을 것이냐? 여기에 대하여 동정하고 협조할 수 있는 무리가 어디 있겠느냐? 미국 그 자체의 국민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오로지 미국 국민은 기독교 사상을 중심삼은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내의 기독교가 통일교회와 손잡을 수 있는 전통만 되면 미국의 기독교를 움직이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몇 년내에 움직일 수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 보라구요. 그런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지 않느냐 이거예요. 경상도에 있는 어떤 사람인데, 이름은 안 밝히겠어요. 그 사람이 한 70명 되는 신도를 이끌고 수련을 왔어요. 통일교회 사상이 얼마나 멋지냐? 일생 동안 믿어 나온 목사, 장로, 집사들이 사흘 동안에 완전히 백 퍼센트 돌아가더라 이겁니다.
20년 전에 몰리고 쫓김받던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라는 사람을 기독교가 받들어 가지고 세계에 내세웠다면…. 만일에 통일교회 교인이 1억만 된다면, 세계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내 일생에 있어서 세 사람이 하나로 합해 가지고 한 사람을 책임져라 하면 문제 없다구요. 한 사람이 세 사람을 책임져라 책임해도 질 수 있는 거라구요. 거 가능해요, 가능하지 않아요?「가능합니다」 가능하지요, 가능해.
만약에 1억이라는 사람이 일년에 천 달러씩 하자 하게 되면 1천억 달러라는 돈은 한꺼번에 몰아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방대한, 국가의 자원이 되고, 아시아에 있어서 어떠한 희망의 천국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가치 있는 금강석, 다이아몬드 광구를 이 민족이 지금까지 천대해 왔던 것이 아니냐.
이제는 알 만한 때가 왔다구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라구요. 민주세계를 지도하는 미국이 공산사상에 대비할 수 없는 이때에, 사상적인 체계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철학사조에 있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기준은 이미 짜여져 있고, 또한 나태해 가지고 쓰러져 가고 있는 기독교를 벗겨 가지고 끌어 올릴 수 있는 이때에 있어서, 내용이 결정되어 있는 이러한 보배와 같은 통일교회가 이렇게 억울한 자리에 설 줄은 하늘도 미처 몰랐습니다.
이와 같이 권위 있고 가치 있는 하늘의 은사와 혜택을 이 민족이 지금까지 자의적으로 결정을 내려 가지고 마음대로 대해 왔다구요. 그렇지만 하늘은 갈 길을 가는 거라구요. 영광의 길을 가지 못하면, 수난의 길을 개척해서라도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 홀로 수난길을 개척해 가지고 이제는 어디에 가든지 잘 곳이 있고, 어디를 가더라도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은 고급차로 모시게 되어 있다구요. 돈이 필요하게 되면, 내게 돈을 갖다 주는 사람도 있다구요. 앞으로 세력이 필요하게 되면 이 세력을 가지고 움직여야 되겠습니다.
이제부터 세계무대에서 그런 일을 가려 가고 동분서주하면서,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 내려다보고 눈물을 흘릴 때가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차를 타고 삼천리반도의 골목길을 드나들면서 이 땅을 세우는 데 있어서 눈물이 없기를 호소하며 기도하던 그 기도도 이제는 그치고, 이제는 세계무대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될 통일교회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라도 모르고 기성교회도 모르고 있습니다. 창피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피를 면해 주려니 만나려 하고…. 떠나기 전에 가르쳐 주고 갈 책임이 있지 않느냐. 밉든 곱든 형님들이 아니냐 이겁니다. 안 그래요?
하늘 부모가 효성할 수 있는 아들딸을 갖지 못했을 때, 그래도 나가 바람 피우던 자식이었다 하더라도 가끔 부모 앞에 들어와서 효도하는 놀음을 한 것이 기성교회가 아니냐. 사랑하는 하나님을 지금까지 내가 없을 때, 효성의 도리를 해 가지고 하늘 뜻을 연장시킬 수 있도록 뒷받침해 나온 것이 그들이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박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내가 자기들한테 밥을 달랬어요, 뭐 어떻게 했어요? 무엇 때문에 원수예요? 그 원수의 철망도 이제는 다 내 눈 아래로 내려다 보이게 됐다 이겁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제는 잊어버려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권고해 보아야 됩니다. 하나되지 않으면 망한다구요. 종파를 붙들고 싸우는 무리는 종파 자체가 심판할 것이고, 종교를 붙들고 싸우는 자는 종교 자체가 심판할 것이고, 나라를 붙들고 싸우는 사람은 나라 자체가 심판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종파와 종교를 붙들기 전에, 나라를 붙들기 전에 하나님을 붙들어라! 하나님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사상입니다.
만약에 어떠한 종파가 하나님을 붙들게 되면 그 종파는 망해요, 망하지 않아요? 안 망합니다. 종교는 망하지 않습니다. 나라도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런 입장이 못 되어 있기 때문에 가르쳐 주어야 되겠다 이겁니다. 그래서 총동원입니다.
이때야말로 전국적으로 총동원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공산당 이상으로 적극적이어야 됩니다. 공산당들은 밤에도 집회를 한다구요.
새벽에 첫닭이 우는 소리를 들어가며 이 나라의 미래를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늘을 바라보고, 서릿발을 맞으면서 이 나라, 이 땅이 망해서는 안 된다고 축도할 수 있는 마음을 품고 삼천리 방방곡곡을 반드시 편답(遍踏)하는 무리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남한에 내려와서 지하운동을 하는 간첩들은 밤길을 타면서 활동하지 않느냐. 우리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그들 이상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길을 묵묵히 가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이 바라는 소망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 것이냐? 망하는 국운을 앞에 놓고 있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서 가야 되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보람 있게 가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엔, 나라가 하늘 앞에 서거들랑 세계를 위해서 만민을 위해서 가야 됩니다. 만민을 위해서 가려니, 우리는 나라에 충성하고, 나라를 위해서 정성을 들이고 가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여기에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 있거든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내가 열어 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제4차 세계순회노정은 앞으로 통일교회 여러분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세계를 어떻게 하늘 앞에 이끌어 나가느냐 하는 문제를 앞에 두고 떠나는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필코 어디로 가야 되느냐? 세계로 가야 됩니다. 알겠지요?「예」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나라를 위해서 충의 도리를 세워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못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나라를 위해서 할 짓 다했습니다. 할 것 다했다 이거예요. 다 내가 한 놀음이 나라를 위해서 한 것입니다. 다 알아주지 않아도 난 나라를 위해서 한 것입니다.
보라구요! 여러분, 민단이 조총련한테 전부 다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민단뿐 아니라 한청이 전부 다 깨져 나갔다구요. 그래서 내가 1965년 도부터 그 간부들에게 '틀림없이 앞으로 민단이 이렇게 될 것인데,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일본 국제승공연합(國際勝共聯合)과 하나되어 가지고, 여기에 방어선을 치지 않으면 안 되오' 하며 사정을 했지만 코방귀만 뀌었다구요. 그렇게 한 지 7년도 못 되어 가지고 그냥 그대로 떨어져 내려가게 되었다구요.
자, 대사관도 손을 들고 있고 민단도 손을 들게 되자 그때서야 비로소 '국제승공연합이 좀 후원해 주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원은 좋다! 싸움은 통일교회가 맡아 주마!'라고 했습니다. 싸움 잘못 하다간 전부 다 역적 무덤 가운데 묻힌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자리를 가리자 이거예요.
그래서 내가 '민단 책임자들이 환영을 해라! 대사관의 공인을 받아라!' 이러한 입장을 가려 가지고, 우리가 일본에서 모험적인 활동을 개시해 가지고 이 흐트러진 민단을 규합하고, 되어 있지 않은 정신자세를 가려 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을 지금 전부 다 우리 통일교회가 하고 있다구요. 그렇다구요. 통일교회를 이용해 가지고 자기의 출세길을 모색하는 관리들은 많이 보았지만, 그렇다고 '통일교회는 나라를 위했소!' 하고 보고 하는 사람들은 내가 못 만났습니다.
경기도에서도 우리가 한 2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교육을 했는데, 여기에 누구누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면서 바쁠 때는 입을 벌려 가지고 '아이고, 교육한 것 좋았소' 하고 찬양하더니만, 갈 때는 통일교회를 협조한 모 기관 책임자들을 중심삼아서 인사조치를 하고 가더라 이겁니다. 으흠! 그것이 세상이로구나! 그 박대를 우리가 마다 않고 그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끝까지 이 길을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들을 어떻게 올바로 교육을 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남을 이용해 먹을 줄은 알고, 은혜를 입고 갚지 못하는 공무원들은 망합니다. 망한다는 거예요. 하늘이 가만히 안 놔둔다는 것입니다. 이용해 먹었으면 그 대가를 치러 주어야 된다는 거라구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빚지지 말라는 거라구요. 빚지지 말라구요.
요전에 내가 모 기관장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다구요. '자 이번에 이북 5도의 간부들을 전부 다 교육시켜야 될 텐데, 만일에 기관이 돈이 없거들랑 내가 절반 대겠소!' 했습니다. 내가 돈이 있어요? 돈이 없거들랑, 내 옷을 벗어 팔아야 되고 손을 잘라 팔아야 되고 눈을 빼 팔아서라도, 나라를 위하는 정성에 도달하지 못했으면, 도달할 때까지 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하는 말이 '국가 예산에 아직까지 그것에 대한 것은 책정이 안 되었기 때문에 모르겠소!' 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나라가 어떻게 되느냐 이거예요. 책임자들이라면 국가에 건의해 가지고, 안 되면 자기 관직을 걸고, 생명을 걸고 상부에 건의해야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남북교류가 벌어지면 이북 5도에서 내려오는 그들은 자기들의 모든 친척과 아는 명사(名士)들의 가정을 통해 가지고 타고 나올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이것을 어떻게 하느냐 이거예요.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가 돈이 많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이 살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고…. 그래도 이 나라가 자리잡을 수 있는 그 한날을 소망해 왔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냐.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갈 길을 정지시킬 수 없으니, 그들을 마다하고 그냥 가는 거라구요.
하루의 서글픈 날도 가는 것이요. 이틀의 한스러운 날도 가는 거라구요. 그래서 춘하추동 사계절이 지나가면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거든 그 열매를 새로운 옥토를 가려 가지고 심게 될 때에, 만년이 수확되는 그 결실을 보고 너도 나도 좋아하게 되면, 그 나라 전체가 거기에서부터 평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고 하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하늘이 알아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알아주고 교회가 알아주고, 친척, 우리 교인들이 알아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늘이 알아주느냐, 안 알아주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길을 가려 가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필연적인 운명길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필코 통일교회 교인들은 가야 되겠습니다. 비상시대인 이때에 있어서, 우리는 삼천만 민족을 대신해서, 혹은 북한에 있는 동포까지 5천만 국민을 대신해서 가야 되겠습니다. 이북에 갈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나는 이 젊은이들을 내세워 가지고 북한의 아무데 아무데로 파송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라구요. 자, 그때가 되면 가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구요! 고마운 말씀이요! 진짜 그렇소?「예」
나는 삼팔선을 넘을 때 기도하던 말을 잊지 않는다구요. '아버지! 저는 이남 땅으로 갑니다. 저는 이북에 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패자의 서러움을 지닌 채 옥중의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쫓김받는 무리의 걸음을 따라 이남으로 갑니다. 이남에 가면 또 반대를 받을 것입니다. 십 년 길, 이십 년 길, 가로막는 길이 아무리 멀다 하더라도 나는 가겠습니다. 갔다가 또 이 길을 찾아와야 될 것을 제가 알기 때문에, 삼팔 이북을 제가 못 가거들랑 제 사상을 심어서 후손이 가게 할 것이고, 그들이 못 가거들랑, 저를 따르는 제자들을 보내 가지고 …' 그런 결심을 하고 나온 사람 이라구요. 십년 세월을 하루같이 지금까지 싸워 나왔다구요. 내가 하늘 앞에 맹세하고 나선 걸음은 여러분과 다르다는 거라구요. 나는 그것을 위하여….
그렇기 때문에 승공이념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싸워 나오는 것이 아니냐! 공산당을 포위해야 되겠다구요. 공산당을 한 골에 몰아넣어야 되겠다구요. 우리의 대열을 그들보다 강한 대열로 만들어야 되겠다구요. 반대 받는 역사의 가름길에서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을 여러분이 잃어버리면 벌받을 거라구요. 벌받을 거예요. 그러면 통일교회는 망하는 데 있어서도 저주받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망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은 망해서는 안 되겠다구요. 우리는 망하더라도 이 나라는 망해서는 안 되겠다구요. 나라의 힘을 빌려서도 안되거든 세계의 힘을 빌려서라도 삼팔선을 넘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책임자 구보끼한테 말하기를 '너 일본에 있는 CIA간부들을 규합해라'고 했습니다. 벌써 십여 년 전부터 그런 공작을 해왔다구요. 근래에는 매일같이 그것을 중심삼고 지시하고 있다구요.
미국이 문제입니다, 미국이. 미국을 우리가 살려 주어야 되겠다구요. 미국을 구해 주어야 될 것이 아니냐! 그래도 포위된 한국의 운세를 가로 막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라구요.
한국을 떠났던 미국과 자유세계를 다시 규합해 가지고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그 미국이 한국을 다시 찾아오는 데는 이념적인 일치점을 찾아 가지고 오지 않고는 한국과 연결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미국에 있는 기독교 문화권을 움직여야 되겠기 때문에 전번에 미국에 가서 순회강연하는 기동대를 편성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로막고 가는 길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쉬운 것이 아니예요. 어렵긴 어렵지만 안 되는 일이 아닙니다. 돼요! 되는 거라구요. 그들보다 몇백 배 이상 정성들이면 되는 거라구요. 그들이 자거들랑, 쉬지 않고 일을 준비하고 계획해서 실천해 나가면 되는 거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선생님이 미국에 가면 미국 전역을 중심삼아 가지고 대대적인 준비를 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어려운 여건들이 많이 엇갈려 있다구요. 모험도 해야 될 것이라구요. 공산당들과 정면 대결하여 충돌도 해야 될 것이라구요. 총부리 앞에 자진해서 나서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싸움을 맞아서 앞으로 가야 할 통일의 운세의 길을 누가 조명(照明)할 것이냐? 선두에 나선 사람들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책임감을 여러분이 느끼고, 이제 내가 돌아올 때까지 여러분들은 편안히 잠을 자서는 안 되겠다구요.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밤이 되면 잠을 자지만, 선생님은 잠을 자지 않고 그 밤에도 싸움을 중심 삼아 가지고 기도하며 자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이라구요. 나는 자다가 소변이 마려워서 일어나는 경우에도 그냥 드러누워 자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내가 자는 시간에도 나를 통해서 복을 비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책임 못 한 죄인과 같이 엎드려서 하늘 앞에 복을 빌며 빚을 지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 아둥바둥 해 나오는 거라구요. 여러분의 신세를 지지 않을 거라구요. 여러분의 신세를 지면 책임자는 망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거기서 후퇴하는 거라구요. 내가 책임을 지고 선두에서 달리는 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 거라구요. 세계를 대해 가지고 나가게 되면 세계적인 발전을, 그야말로 이제 비약적인 발전을 도모해야 할 때가 왔다 이겁니다. 그러니 여기에는 모험이 가중되는 것이라구요.
그 모험에서 후퇴하는 졸장부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 가지 장벽을 가려 가지고 갈 것이라구요. 이색 민족이 앞으로 미국 땅에 가서 활동하려면 여러 가지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될 수 있으면 빠른 시일 내에 돌아오겠지만 여러분이 국내에 있으면서…. 어떤 사람은 '한국을 버리는 것이 아니냐?'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니라구요. 선생님은 죽더라도 한국 사람이라구요. 나는 지금까지 50평생을 한국을 위해서 고생한 사람이라구요. 그 어느 애국자 못지 않게 눈물을 흘려 온 사람입니다. 하늘이 한국을 사랑하지 아니 할 수 없는 인연을 맺게끔 노력한 사람입니다. 한국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구요. 여러분이 한국을 위하여 이 땅의 당당한 주인으로서, 혹은 주체 국가로 서의 신망의 기준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세계인들이 한국을 그리워했지만, 내가 여기에 없고 여러분들이 내 대신 한국을 책임지고 움직인다 할 때는 한국을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냐. 안 되겠다구요.
한 사람도 없는 입장에 놓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한국에 대한 관심 거리가 없을까봐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 앞에 강하고 담대하고 모질게 활동하라는 총동원 명령을 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삼천리 방방곡곡 어떤 곳이든지 통일교회 교인들이 개척해 가면서, 이 민족을 북한 공산당의 세력권 이상 확대 시키고 공고화하기 위하여 사상무장의 선두에 서서 싸우면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지금 우리에게 맡겨진 절박한 임무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명년 4월 16일까지는 선생님과 같이 활동해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안팎이 맞아야 되는 거라구요, 안팎이. 자, 그렇게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하겠다는 사람은 양손을 들자구요. 내리라구요! 난 안 봤다구요. 하늘 앞에 여러분 각자가 맹세한 거라구요.
자, 기필코 가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어떤 곳이냐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전체적으로 알아보자구요. 통일교회는 역사적인 인연을 갖고 있는데 통일교회의 내용을 알아보면, 지금까지 종교세계에서 혹은 문화 세계에서 찾지 못하였던 진리를 갖고 있습니다. 알겠어요?「예」 역사시대에 있어서 우리만이 갖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역사와 더불어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진리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무엇을 찾아 나왔느냐? 역사가 지금까지 허덕이면서 찾아 나온 것이 뭐냐 하면 진리, 참된 진리의 곳, 진리의 세계를 찾아 나온 것입니다. 진리의 곳, 진리의 세계를 찾으려면 진리를 대신할 수 있고 진리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진리를 기반으로 한 사상체계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갖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절대적인 진리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진리가 나타난 곳에는 하늘이 같이하는 것이며, 이 진리가 가는 곳에는 적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진리야말로 최후의 선언이요, 최후의 심판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갖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공산당이 제아무리 뭐라고 하고, 수많은 종교가 제아무리 뭐라고 하더라도 나한테 배워야 된다는 신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말씀이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부심을 가져라!
인류역사 속에서 문화의 세계를 거쳐 나오면서 흥망성쇠의 역사를 거듭해 나오는 동안 인류가 찾아 나가는 하나의 이상세계는 인간만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만으로 될 수 있는 것은 해볼대로 다 해보았습니다. 올라갔다내려갔다하면서 몇 번씩 뒤집어 가지고 다 해본 것입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만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절대자의 힘이 여기에 개입되어 가지고 협조를 받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런 면에 있어서 일반세상과는 다른 진리의 내용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놓아 준다'고 하였습니다. 아는 사람만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완성이라는 것은 완전히 아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무지는 미완성으로 끝나는 것이지, 완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완전히 아는 지식 기반 위에서 완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 기독교의 이상도 기독교와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안팎의 사정과 소원을 완전히 아는 데서만이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 혹은 인류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에, 우리는 최고의 진리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들은 이러한 자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내 감정과 의식을 가고, 내 마음을 통하여 사지를 거쳐 가지고 내 입을 열어서 하나님이 절대시하고 인류가 소망하던 말씀을 외친다는 것은 역사에 빛나는 사실이 아니냐! 어떤 혁명가의 주장보다도 애국자의 주장보다도 더 방대하고도 멋진 말씀이 아니냐!
역사과정의 시대적인 미물인 한 인간으로 태어난 내가 이런 진리를 내입을 통해서 말할 수 있다니, 여기에 들리는 말씀의 반응을 통하여 천군 천사가 환영할 것이요,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여 경청하실 수 있다니, 선조가 동원되어 가지고 협조할 수 있다니, 뿐만 아니라 이 땅 위의 영계를 통하는 수많은 영통인들이 우리와 동지가 될 수 있다니….
이 엄청난 사실을 여러분은 보았고 체험했고, 또 여러분은 실질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다 이겁니다. 그렇게 방대하고 무한하고 고귀한 그 가치를 쓸어 버리는, 배은망덕한 사나이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구요. 아낙네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구요.
갖추어야 할 본연의 가치의 진리를 마음으로 모시고 뜻으로 받들어 가지고, 천상세계, 인류세계에 고이 남겨 주어야 할 거룩한 말씀이 아니더냐. 지금 말하는 말씀을 말씀답게 알아듣지 못 하는 사람은 말씀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죽더라도 이 말씀을 천추만대 이 후대 앞에 남기고 가야 되는 거라구요. 복귀(復歸)의 운세가 남아 있고, 하나님의 섭리가 아직까지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한, 이 말씀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될 절대적인 말씀이 아니냐.
이 고귀한 말씀을 가꿔야 합니다. 이 말씀 앞에 만민이 무릎을 꿇을 날을 고대했던 것이 아니냐. 참된 진리의 말씀 앞에 만민을 무릎을 꿇리겠다고 천신만고 수난의 역사를 지금까지 가려 나온 것이 아니냐. 그것이 바람벽에 부딪쳤기 때문에, 땅에 떨어져 돌아설래야 돌아설 수 없고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지 않느냐. 이러한 운명에 처해 있는 여기에서 머리를 잡아채서라도 가르쳐 주어야 할 책임이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들도 통일교회를 물랐을 때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한(恨)했다구요. 지지리 못살고 비참한 민족 앞에 태어난 것을 한탄했다구요. 그렇지만, 말씀을 알고 난 그날부터는, 아! 대한민국에 태어난 영광을 자랑하지 않았더냐! 비참하고 무가치한 국민으로서의 생애를 비판하고 경시하지 않았더냐! 이 말씀을 듣고 난 후에는 저주가 아니라구요. 자기의 비참이 도리어 영광스러운 빛이 되었고, 역사적인 인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되었다고 놀라우신 하늘의 은사로 받아들였던 것이 아니냐.
보라구요. 세계는 이제 앞으로 가 보다가 막혔기 때문에 뒤로 돌아서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그렇게 됐지 않느냐 이겁니다. 이것을 넘어서 이제는, 오늘 아침에도 잠깐 얘기했듯이, 도약(跳環)을 하든가, 초월하든가 해야 할 현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도약을 하려니 발판이 없고, 초월하려니 현실에 고취되어 있다구요.
그러니, 이러한 내연을 가릴 수 있는, 주도적인 앎의 길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통일교회의 원리가 아니더냐.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진리를 갖고 있다는 이 권위를, 무한한 가치적 내용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취급하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이 말씀은 언제나 남겨 놓아야 할 것이요. 삼천만 민중에 참다운 정을 진정 가슴 위에 옮겨 놔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숨 끄트머리에 옮겨 놓아야 할 말씀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가 무릎을 꿇을 수 있는 하나의 말씀이 아니더냐.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엄숙한 시간이 가까와오는 세기말적인 이 시대에 있어서, 이 말씀의 가치를 보다 폭넓게 알아 가지고 천상 천하를 굽어살피면서, 말씀에 고이 무릎을 꿇게 될 때 협조해 줄 수 있는 책임을 해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이 아니냐. 그러기 위해서 연결지어야 할 책임이 있지 않느냐. 그렇기 때문에 전도를 해야 된다는 말도 나오게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세상에 없는 말씀을 갖고 있고 권위와 영광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이 말씀을 통하게 되면 하늘 효자와 직통입니다. 이걸 여러분은 알 거라구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것을 전부 다 알거라구요. 그것이 미덥지 않으면 영통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문선생이 가르치는 진리의 말씀이 어떻더냐고 물어 보라구요. 구라파든가, 미국이든가, 일본이든가 여기 한국이든지 한번 물어 보라구요. 대번에 답이 나온다구요. '아! 이 말씀은 최후에 남은 세계의 만민이 추앙할 수 있는 하나의 진리의 말씀이요' 하는 답이 곧 나온다구요. 내가 말했다고 해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 있는 내용이 설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진리에 접한 영광을 찬양할지어다, 알겠어요?「예」
말씀은 말씀대로 물 위에 기름이 등등 떠다니는 것처럼 되면, 말세에 심판을 받는 거라구요. (녹음이 잠시 중단됨)
집을 지으려면 설계를 해야 되고, 설계를 하려면 거기에 대한 모든 계획과 구조에 대한 이론 설명이 있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구요.
그 다음에 우리는 무엇을 갖고 있느냐? 억천만세 동안 하나님을 골탕 먹이던 사탄을 굴복시킬 인격을 가질 수 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역사 이래 우리 조상들이 하지 못한 것을 할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내가 가는 길에 사탄은 굴복되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얼마나 교활해요? 6천년 동안 하나님을 골탕먹이던 사탄을 이기지 않고는 인격심판을 모면할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말씀과 더불어 하나되어 가지고 나가면 무엇에 승리할 수 있느냐?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예」 무엇을 굴복시킨다구요? 「사탄이요」 사탄이 얼마나 커요? 사탄은 지금까지 수십억 인류를 지배하고 있다구요. 이놈의 사탄아! 너는 주인인 우리의 행보 앞에 즉각 무릎을 꿇어야 된다! 인격심판(人格審判)의 권한을 갖춘 사람 앞에는 사탄이 굴복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사탄을 굴복시키려면 사탄보다도 지독해야 된다구요. 사탄이 못 하는 것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요?「예」 사탄은 뭘 못 하느냐? 사탄은 온유겸손 하지 못합니다. 사탄의 본질은 교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리깎고 자기가 서려고 하는 것이 사탄의 본질이기 때문에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그 반대의 본질을 갖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유겸손하고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온유겸손과 회생의 도리를 사탄에게 가르쳐 준다면 사탄은 일시에 몽땅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비법은 내가 온유겸손하고, 가정이 온유겸손하고,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중심삼고 온유겸손해 가지고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는 세계를 지배하던 사탄은 완전히 후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사탄을 굴복시키는 비법은 만민이 전부 다 감사할 수 있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온유겸손해 가지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자리를 통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작전법은 맞고 빼앗아 나오는 작전입니다. 사탄의 작전법이 치고 빼앗기는 작전입니다. 보라구요. 1차 세계대전 때도 친 녀석이 망했고 2차 세계대전 때도 먼저 친 녀석이 망했습니다. 3차 지금 때, 사상전의 시대에 와 가지고도 먼저 친 녀석이 망한다구요. 공산당이 빨리 망한다구요. 망하기 시작하면 운명이 달라지는 거라구요.
1957년도에 중공과 소련간에 이념분쟁이 벌어졌습니다. 요즈음에는 어떠한 현상이 벌어지느냐 하면 말예요. '내 어머니 아버지는 공산당이지만 나는 싫다. 나는 독재주의가 싫어!' 이런 현상이 벌어져 나간다구요. 점점점점 그것이 1대가 그대로 거쳐서 2대를 거쳐서 3대까지 가라 이겁니다. 그때는 끝장이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달러 주머니를 해 가지고 모스크바에서 일등 가는 대학에 가 가지고 학생들을 전부 다 돈을 주어 커피를 마시게 하고 춤을 추게 만든다 이겁니다. 그러면 공산당 간부의 아들딸들도 좋아하는 거라구요. 그런 경향이 벌어진다 이겁니다. 그래 가지고 아들딸들이 저의 아버지가 '아무리 탄압해도 안 되겠어!' 이럴 수 있는 자유경향이 벌어집니다. 지금 그런다고 하잖아요?
민주세계는 그래도 하나님이 다시 돌리자는 무엇이 있지만 공산주의는 마지막이기 때문에 돌아설 길이 없다는 거라구요. 그래서 세계적 공산주의가 국가적 공산주의, 국가적 공산주의가 씨족적 공산주의로 떨어지면 마지막이라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북한이면 북한 자체가, 중공이면 중공 자체가 전부 다 소련의 말을 안 듣는다 이겁니다. 민족적 공산주의라구요. 여기에 있어서 북한도 두 패로 된다는 거라구요. 뭐 동쪽 패 우리 패 이래 가지고 싸워서 숙청 못 하게 되면 그만이라구요. 지금 소련에서는 숙청 바람이 점점 해이해 가지요? 그렇잖아요?
주권이 바꿔졌지만, 흐루시초프가 자기 한명(限命)에 죽었어요. 총칼에 맞아 죽었어요? 숙청당해 죽었어요, 병이 나서 죽었어요?「병이 나서 죽었습니다」 달라진다구요. 사람을 죽이는 그런 독재정권은 다 싫어한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멀지 않았다구요.
악은 먼저 치게 마련입니다. 힘의 세력 기준이 넘어지게 될 때는, 선은 넘어서라도 참지만 악은 공격하게 마련입니다. 미국이 소련보다는 강하지만 친다는 입장에서 볼 때, 미국이 치지 않기 때문에 소련보다는 더 선하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김일성이가 남한보다 무력을 강화시켜 가지고 남침하려고 했지요? 악은 자기의 힘이 우위에 서게 될 때는 공세를 취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민주세계는 힘의 기준에서 지지 않게끔 준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저 뭐 평화고 무엇이고….
공산당이 평화공세를 펴면서 무력을 증강시켜 놓으면, 민주세계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총 공장을 지금까지 해 나왔다구요. 알겠어요? 지금 '총!' 하면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나쁩니다」'에이, 싫어 싫어' 이러지요?
그래서 일본 공산당들도 우리가 수천 정의 비 쓰리(B3)를 갖고 있는 것을 알고 '통일총을 갖고 있다! 그들을 포격했다간 B3들고 나온다!' 이래 가지고 무서워한다구요. 그거 잘했다는 거라구요.
통일교회는 진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최후에 사탄을 잡아다 심판할 수 있는 인격자가 되어야 됩니다. 됐어요, 안 됐어요?「못 됐습니다」그렇게 될 때까지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개인 사탄 굴복시키고, 가정 사탄 굴복시키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사탄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참소하던 사탄을 추방시켜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엇을 갖고? 하늘의 법도를 갖고.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면, 통일교회 편의 하나님은 없다?「있다」 없다?「있다」(좀 크게) 없다?「있다」(더 크게) 하나님은 통일교회 편에 있다?「있다」'있다' 하면 안 돼요. '그렇소' 해야지. 「그렇소」(웃음) 있다구요. 있다는 거예요. 그건 내가 이야기하지요.
왜 하나님이 있느냐 하면 말이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렇게 못생겼지만,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는 모양이라구요. 좋아하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런 모양 같다구요. 왜 그러냐?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말이예요. 배가 고파 가지고 자기 사위가 죽을 자리에 있는데도, 그 사위의 보따리에서 미시가루를 빼 먹는 장인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알겠어요? 그런 곳인데, 세상에 이렇게 형편없는 곳이지만 내가 배고플 때는 하나님은 나한테 미시가루 포대를 날라다 먹였습니다. 그게 믿어져요?「예」
그것은 들은 사람이나 믿지. 처음 온 사람이 어떻게 믿어요? '저 사람이 지금 정상적인 사람 같은데, 말은 도깨비처럼 한다. 미친 사람처럼 말한다' 그럴 겁니다. 미친 사람 같은 사람 가운데 진짜 사랑이 많은 거라구요.
나도 미쳤지요? 몇 시예요. 지금? 아, 열 시부터 시작했으면 점심이나 먹이고 얘기해야지, 아침도 다 안 먹었을 것 아니예요? 그래 밥먹을 줄도 모르고, 배고픈 줄 모르고 있으니, 나나 여러분이나 둘 다 미쳤지 별수 있어요? (웃음) 나는 이렇게 여덟 시간 이야기한다구요. 그러면, '아이쿠, 아침도 안 먹고 점심도 안 먹었는데, 또 해? 회비도 냈는데 그거 짤라 먹고…. 아이쿠, 안 되겠는데' (웃음) 그렇게 계산 빠른 사람은 섭섭할는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 섭섭해도 괜찮다구요.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는 게 통일교회식입니다. (웃음) 먹이지 않고 교육하는 식이라구요. '이래서 나 싫어!' 했다가는 망하는 거라구요. 그래도? 「좋습니다」 궁둥이들이 얼얼하지 않소? 조금 더 조일 걸 그랬다구요. 더구나 여자들은 골반이 크기 때문에 다리를 말고 앉으면, 들이 조이면 무릎이 저리다구요. (웃음)
사탄을 대해 가지고 '야, 이놈의 사탄아!' 할 때 사탄이 '예' 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보장을 받아야 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감옥에 있을 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자기 선조들이 나타나 가지고…. 그때 선생님이 죄수번호가 오구륙이라구요. 그걸 볼 때, 억울하다는 거예요. 오구륙이 몇 번이예요? 596번이라구요.
그런데, '아무 감방에 이런 분이 있는데 이놈의 자식아, 어른을 몰라 보고 미싯가루 너 혼자 먹어?' 하면서 그 사람의 선조 할아버지들이 자꾸 나타나 가지고 '갖다 드려라! 모셔라! 전부 다 미싯가루 드렸다가 그분이 주면 네가 받아 먹어라. 갖다 드려라!'고 호령을 하더랍니다. 자, 이게 꿈 같은데 사실이거든요. 하루 저녁 그러고 그만두었으면 좋겠는데 이틀 저녁, 사흘 저녁 때도 또 그런다구요. 그래도 정 안 들으니까, 입을 비틀고 발길로 들이차는데, 나중에 보게 되면 그 자리에 멍이 들었다구요. 이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거 이상하지요? 그런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구요.
그때는 콩 한 알을 가지고 황소 한 마리하고도 바꾸는 때라구요. 알겠어요? 그런데 미싯가루 보따리를 들고 나서려니, 이것은 자기 생명 보따리를 들고 나서는 것보다 더한 거라구요. 부들부들 떨면서 '아이고' 하지만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문선생 배고프겠다고 하나님이 미싯가루 보따리를 날라다 먹이는 놀음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구요. 알아요? 그런 말을 믿겠어요, 못 믿겠어요? 못 믿겠으면 죽으라구요. (웃음) 왜?내가 죽음 이상의 실천과 신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니 죽음 이상의 신념을 가지고 못 믿으면 죽어야 된다구요. 사실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내가 공산당을 안다구요. 학생시절부터 공산당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대했습니다. 내 친구 가운데는 이북에서 장관을 해먹은 녀석들이 있다구요. 이런 얘기를 하면 형사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이 혹시 공산당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제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북한에 왔다갔다 하는데 나를 잡아다가 목을 못 자를 거구요. 그렇다고 내가 공산당은 아니라구요. 승공대열의 세계적인 선두에 서 있다구요.
그 녀석하고 한 반에 있으면서 '야, 이 녀석아! 너하고 나하고 어차피 대결이다. 네가 먼저 출세하면 나한테 원수가 될 것이고, 내가 먼저 출세 하면 내가 먼저 원수가 될는지 모른다' 이렇게 입씨름하던 녀석들이 있다구요. 그때는 왜놈들하고 싸울 때는 합동작전이라구요. 그렇게 이론투쟁하던 그런 때가 엊그제 같다구요. 명실공히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 후에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승리를 얻은 문선생 같지만, 이제는 세계가 '미스터 문' 하게 되면 아는 사람이 많다구요. 서구 세계에는 많다구요. 비행기표를 사는데 천 달러 이상을 쓰고라도 문선생을 만나러 날아오는 사람들이 있다구요.
한국의 뭐 잘났다는 사내들, 뭐 어떻고 어떻고 어때? 그런 녀석들은 내가 무서워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구요. 이만큼 했으면 소금을 쳐 놓은 말만큼 짭짤하지요? (웃음) 거짓말 같긴 하지만 거짓말이 아닌 것 같기도 하지요? 소금이 들어 있던 독 안이 짭짤한 거와 마찬가지로 말이예요. 그런 일은 얼마든지 있는 거라구요. 지금도 그렇다구요, 지금도. 여러분이 통일교회 역사를 백주에 세계에 걸어 놓고 선포할 때는, 세계가 나가자빠질 사건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성경의 말씀은 거짓말이 아니라구요. 이적은 지금도 있는 거라구요.
그만하면 기성교회 목사들보다 못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여기 기성교회에 다니다 나온 아주머니가 있으면 가라구요. 전부 다 욕하다 말고 지쳐 가지고 왔다구요. 가라구요. 가 가다가 돌아올 걸 왜 선생님이 저러시나? 선생님 뭐 할수없잖아요? '보기에 사정 많고 인정 많은 선생님이 세계의 원수를 사랑한다고 해서, 또 올 건데 왜 그래요?' 자기 혼자는 그럴지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다구요. 사탄이 나를 올무에 몰아넣어 가지고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은 어쩌면 그렇게 나를 빼내더라 이겁니다. 알겠어요?
그런 이야기를 한바탕 했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없다구요. 언젠가 자유세계가 되고 세상이 전부 다 한 나라가 되었을 때는 내가 세밀히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임자네들보다 못해 가지고 내가 요러고 있는 게 아니라구요. 보라구요. 내 눈을 보라구요. 모난 눈에 콧대를 보라구요. 누구 말을 듣게 생겼나. 귀도 보라구요, 귀구멍이 없다구요. 개미 새끼도 못 들어가게끔 좁다구요. 절대로 남의 말을 안 듣는 사람이라구요. (웃음) 허술하게 추풍낙엽같이 그렇게 함부로 떨어져 가지고, 고리 입에 떡으로 떨어질 것 같아요? 살랑살랑 날아가다가 상감마마의 감투에 떨어지면 떨어졌지! (웃음)
통일교회 문선생이 벌거벗고 춤이나 추고 침이나 흘리며 좋아하는 패인 줄 알지만, 천만에! 그런 시시한 사나이 같으면 벌써 누더기판이 되고, 다 구어먹고, 자리까지 다 까먹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밑천을 다 안 내 썼다구요. 아직까지 밑천이 얼마든지 있다 이거예요.
그런 말을 듣으면 통일교회 식구들은 지쳐 있다가 '어! 다 한 줄 알았는데 또 있대? 가 보자!' (웃음)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늘 같은 날 내가 가는 선물로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의 실력을 한번 알아봐라 이거예요. 알겠어요?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라구요. 옛날에는 허리가 부러진 호랑이 모양으로 청파동 뒷뜰에서 '왱' 하게 되면, 홍길동식으로 세계가 퍼떡퍼떡 했다구요. 가라 하면 여자들이 가고, 오라 하면 남자들이 오고 말이예요.
이래 가지고 '천리길 행군이다' 하면, 깃발을 들고 나가 걸어가고, 자기 발바닥에 물이 잡혀 살갗이 벗겨져도 좋다고 껑충껑충 갔습니다. (웃음) 그때가 좋았어요, 지금 때가 좋아요?「그때가 좋았습니다」 그때가 좋았어요. 지금 때는?「안 좋습니다」(웃음)
그런 일을 안 하니까, 재미가 없다는 말이지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이때를 좋게 만들려니 나는 또 그런 일을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해서 뭘하자는 거예요? 삼천만 민중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인격자로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는 장엄하고도 놀라운 기력을 가누어 가지고 임해야 할 거룩한 자리인 것입니다.
만약에 믿어지지 않거든 죽어 보라구요. 목을 떼고 죽어 보라구요. 내말이 거짓말이거든 여러분 선조들 천만 명을 동원해 가지고 통일교회 문선생의 목을 베라구요. 사실인가, 거짓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사탄의 세력권을 밟고 찔기게 뭉그러뜨려 가지고, 이제는 통일교회 문선 생하게 되면….
요즈음에는 내가 대학 총장들만 만나고 다닙니다. 만나 가지고 이야기 하게 되면, '아! 당신이 문선생이구만요. 미처 몰랐소' 하는 것입니다. '흥! 그런 줄 미처 몰랐소' 이러고 있다구요. '이제 알아라 이 녀석아!' 그것을 보면, 자, 여러분들 따라갈 만해요. 안 따라갈 만해요?「따라갈 만합니다」 한번 기분내서 다리가 찢어지고 머리가 깨지더라도 한번 해볼 만해요, 안 해볼 만해요?「해볼 만합니다」 해볼 만하고도 남고도 남고도 남는다구요. 만약에 여러분이 해볼 만하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는 내가 이런 놀음을 안 한다구요. 알겠어요? 내가 이런 놀음 안 한다구요.
선생님을 보게 되면 머리는 작아 보이지만, 일본에서 공부하던 학창 시절에 머리에 맞는 모자가 없어서, 전국에서 주문해 가지고 제일 크게 해온 모자도 작아서 두 번이나 물러 가지고 썼다구요. (웃음) 머리가 작은 것 같지만 굉장히 큰 편이라구요.
된장 독이 크다면 된장이 많이 들어가는 거라구요. 머리통이 크다면, 머리 안에 뭔가? 뭐예요?「뇌수」 뇌수가 많이 들어갈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생각할 수 있는 면적이 많아질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별의별 생각을 다한 사나이다 이거예요.
이러다가 망하는 날에는 통일교회 문선생은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도 생각 안 해봤겠어요? 과학적인 데이타를 가지고 다 재보고 측정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될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망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뭐 세계 기독교를 통일해 보겠다는 것은 꿈이요, 망상입니다.
이제는 가만히 보니까, 가망성이 있을 것 같아요. 없을 것 같아요?「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그래요?「예」 알겠어요?「예」정말이예요? (조용한 말씀으로) 어! 무슨 대답을 했어요? (웃음)
통일교회 문선생도 그런 재미나 있어야 단에 나서서 땀을 흘리며 이야기하지요. 그런 재미도 없으면, 나 죽지 않아요? 그러니까, 가능성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틀림없지요?「예」 이런 재미가 있기 때문에 나도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계산이 빠르다구요. 참 빠르다구요. 여러분을 쓱 보면 벌써 저 사람이 무슨 배통을 가지고 다니는지 안다구요. 저 사람이 통일교회에 플러스시킬지 마이너스시킬지 안다구요. 그러면서도 내가 그냥 모르는 척하는 거라구요. 내가 정 모를 것 같으면, 사흘만 붙들고 기도해보면 다 구멍이 뻥 뚫어집니다. 옛날에는 그런 놀음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안 합니다. 왜? 개인적인 친구가 되어야 되겠으니, 그저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친구가 되어야 하겠으니, 그런 기도 안 한다구요.
할머니들이 와서 '여보게 문 아무개' 하고 얘기하면 손자가 되어서 얘기 잘 들어줍니다. '할머니의 소원성취 하나도 못 들어주면 내가 무슨 선생이 되겠노? 어서 이야기하소!' 그러면, 어려서 있었던 일부터 뭐 어쩌고 다 이야기합니다. (웃음) 원리강의를 그렇게 하면 얼마나 좋겠나? 그래서 자기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면 제일 좋아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내가 이렇게 세상 사람 말을 잘 들어주니, 여러분들도 세상 사람들 말을 잘들어 줘야지요. 세상은 하는 대로 밥을 먹여 주니, 내가 만민을 구하기 위해서는 통일교회 원리 말씀을 사흘이 아니라 백날이라도 할 텐데, 백날 이상 들어줄 수 있는 배포를 가져야 백날을 하더라도 반대받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사. (웃음)
저 구석에 있는 사람들, 졸아요. 졸라구요. (웃음) 가만히 보게 된다면 말예요, 졸라면 안 졸고 졸지 말라고 하면 졸려고 합니다. 그러면 할머니들 친구도 잘 되어 준다구요. 친구로 사귀어야 선생님을 좋아한다구요. 진짜 좋아해요? 여기 젊은 여자한테는 안 물어 볼 거라구요. 자! 우리 남자들!(웃음) 우리 남자들도 선생님을 진짜 좋아해요?「예」 왜? 왜 좋아해요?「무조건 좋아합니다」 무조건 좋아한다는 말은 없어요. 이용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렇지요? (웃음) 말은 맘대로 하지요, 뭐.
대학생들도 학교 다 집어치우고 부모가 '아이고, 우리 집 망한다'고 야단하더라도 툭툭 털고 나서는 것은 왜 그러느냐? 통일교회에 감으로 말미암아, 이용 가치가 없기 때문에?「있기 때문에」 있기 때문에 다 장삿 속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구요. (웃음) 다, 까놓고 얘기하지, 뭐 나도 여러분들을 만나 가지고 이렇게 몇 시간씩 얘기를 왜 해요?「이용 가치가 있기 때문에요」 이용 가치가 있기 때문에. (웃음)
그래서 둘 다 이용 가치가 있으니까, 싸움을 하면 갈라질 것이냐? 서로가 좋기 때문에 이러고 있다구요. 그렇잖아요? 서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을 이용하고, 여러분들은?「선생님을 이용합니다」 이용하자는 거라구요. '미국이나 세계 어디에 가 가지고 길을 닦아 놓으소. 선생님이 기관차가 되어 레일 위를 달릴 때에는 나는 끌려갈 것입니다' 이런다구요. 솔직하게 얘기하면 그렇지 않느냐 말이예요. 다 손해난다면 나도 절대로 싫다구요. 그렇지요? 그러니 장삿속으로 다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웃음)
자! 하나님은 왜 통일교회 문선생을 좋아합니까?「이용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에. (웃음) 통일교회 선생님은 왜 하나님을 좋아하는 거예요? 「이용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하면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그럴 수 있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웃음)
하나님은 왜 지금까지 탄식하며 나오시느냐? 아들딸이 될 사람이 없어서 탄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탄식하냐? 아들딸이 되려고 할 때 번번이 길을 막고 목을 잘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참소하는 사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냐? 탄식을 해원성사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역사시대에 사탄을 추방할 수 있는 하나의 왕초가 나오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사탄을 추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은 천지의 법을, 천지의 대도를 어기고 흉악한 범죄를 한 녀석이기 때문에, 그 지은 죄를 낱낱이 절대적인 공의의 심판주이신 하나님 앞에 보고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그걸 입증할 수만 있으면, 사탄은 여기에 굴복하게 마련 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한을 푸는 데 있어서는 진리도 필요하겠지만, 최후의 문제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전역에 있는 사탄을 추방해야 할 것이고, 세계의 전역에 있는 사탄을 추방해야 될 것입니다. 무엇으로 말미암아? 공의의 법도를 따라, 심판은 천리의 복귀의 헌법을 따라….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알고 나서야 할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키는 날에는, 하나님은 비로소 싸움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사탄을 추방하고, 가정적으로 사탄을 추방하고, 종족적으로 사탄을 추방하고, 민족적으로 사탄을 추방하고,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사탄을 추방하러 나서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의 가는 길을 사탄이 발동해 가지고 막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후퇴하는 패들은 망하는 것입니다. 국가 앞에 사탄이 가로막고 못 가게 할 때에도 거기에서 후퇴하려 하는 자들은 국가를 하늘편으로 돌이킬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 가는 길 앞에서 사탄이 무서워서 후퇴하게 되면, 세계복귀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싸우는 사탄 패들을 대하는 그런 시련마당이 있거든…. 이러한 시련마당은 훈련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 싸움터에서 승리하게 되면 가정적인 싸움을 책임질 수 있는 책임자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적 싸움에서 사탄의 시련이 있거들랑, 종족적 싸움의 책임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싸움에서 기필코 승리하지 말아야 될 것이다. 그래요?「승리해야 합니다」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악물고라도, 죽을 힘을 다 써서라도 승리해야 합니다. 민족과 국가로 나가는 길에 있어서 사탄이 가는 길을 막는다고 후퇴하게 되면 그들은 영영 천국에 못 들어가는 거라구요.
그러나, 사탄이 그 길을 막더라도, 나라를 거치고 세계로 박차고 나가게 될 때에, 막던 사탄이 자동적으로 그 길을 내주며 '어서 가시오'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로 가는 길을 따라 가는 것이 통일교회의 길이요,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이 통일 교회 교인들의 사명입니다. 알겠어요?
또한, 이 땅 위에서 비록 저 산너머 골짜기에 살고 있는 거지 패요, 천민이요, 난민이라 할지라도 출발하거든 천국보좌까지 직행할 수 있는 길을 닦아야 할 것이 통일교회 교인의 사명입니다. 기분이 좋아요? 기분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이왕지사 큰 사람이 되려면 크게 한번 해 가지고, 뛰어도 크게 뛰어야 하고 죽더라도 크게 죽어야 하고 망해도 크게 망해야 합니다. 조그마한 송사리 떼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구요. 죽더라도 고래 새끼처럼 말이예요. 한번 뛰었다가 죽더라도 절커덕 허리가 부러지고 창자가 터져 나오더라도 죽을 각오를 하고 기운껏 뛰다가 죽는다면, 죽은 다음에라도 그 고기를 잡아 가지고 동네 잔치를 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돈을 모으자 할 때는 세계에서 2등도 싫습니다. 일등입니다. 일등으로 돈을 모으려고 그럽니다. 돈도 일등으로 모으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좋습니다」 나는 틀림없이 세계에서 일등 가는 부자가 될 것입니다. 되는 거라구요. 되나 안 되나 나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면서 구경하라구요. (웃음) 그렇게 웃다간 언제 죽을지 몰라요.
그래서 여의도에 본부도 그럴싸하게 한번 지어 봐야 되겠습니다. 어떻게 짓느냐? 대한민국의 무슨 은행 돈을 얻어서 지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구요. 어떻게 지어요? 외국 사람들 동원시켜서 짓지. 거 잘난 사람이예요, 못난 사람이예요?「잘났습니다」 무엇이 잘났어요? (웃음)
자, 외국 사람들 데려다가 부려먹는데 잘났어요?「예」 이제까지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라고 했는데 잘났어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라고 가르쳐 놓고 외국 사람들을 데려다가 부려먹겠다고 하는데 잘났어요? 먼저는 세계를 위해서 희생을 했으니, 그 희생한 대가를 갚으려니 외국 사람들이 따라와 가지고 심부름을 시켜달라고 해서 시키게 될 때는 잘났어요, 못났어요?「잘났습니다」 그건 잘났습니다. 그건 잘났다구요.
아주머니들이 사위를 얻게 되면 그런 사위를 얻으시오! 아가씨들은 시집을 가려면 그런 신랑을 얻으시오. 그게 소원이지요?「예」 아주머니들도 소원성취해 줘야 되기 때문에 사윗감도 위대한 사윗감으로 내가 만들어 주려고 하는 거예요. 또, 우리 아가씨들도 시집갈 때, 그런 신랑 이상의 신랑으로 만들어 주려고 한다구요.
그러면 왜 통일교회 문선생을 좋아하느냐? 그 이상 좋은 것이 없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라구요. (웃음) 그러면 됐지요?「예」 좋아할 만하지요? 「예」 그 다음에 둘이 모아져 가지고 아들을 낳게 되면, 그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세계를 주름잡고 다 닦아 놓은 다음에 하늘나라로 보따리를 싸 가지고 승천, 비상천할 수 있는 그런 아들을 낳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게 되거들랑, '아이고 문선생, 세상은 이렇더라도 나는 진정으로 좋아합니다!' 이럴 것입니다.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구요.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지, 누가 있다고 그랬어요? 얼마든지 피할 수도 있고 그렇다는 거예요. 또, 있을 수 있으니까. 없을 수는 없다구요. 또, 그럴 수도 있다는 거라구요.
이제, 십년 후에 통일교회를 두고 보자구요. 내 말이 거짓말인지 정말인지…. 떨어지지 말고 십년 동안 남았다가, 아파트 한 채를 통일교회에서 충성한 사람들에게 배급해 줄 때, 그때에 저금통장이 없이도 배급해 줄 테니까, 그때 와서 배급을 타 가라구요. 그러니까, 십년 동안 떨어지지 말고 싸워 나가라 그말입니다. 한번 해볼래요?「예」
여러분이 암만 출세하겠다고 학박사가 되어 가지고, 곤드레 만드레가 되어 꺼떡꺼떡거리더라도…. 앞으로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저 천덕꾸러기라고, 미친 것이라고 조롱하고, 어머니가 반대하고 누나가 반대하고 동네가 반대하던 그런 사람들인 줄 알았더랬는데, 십년 후에는 학박사를 지도할 수 있는 대학교 총장으로 만든다는 거예요. 거 믿을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때 가서 두고 보라구요. 나는 보통사람이 하는 것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구요. 알겠어요? 남이 지지리 못 하는 것을 하려고 합니다.
내가 금후에 할 것을 한번 쭉 이야기해 줄까요?「예」 열두 시간이나 걸릴 텐데요. (웃음) 「해주세요」
이렇게 아침을 안 먹고 점심을 안 먹었더라도 우선 웃으니까 나는 기분이 좋습니다. 그렇잖아요? 사람은 웃는 것이 불행보다 나은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러므로 아가씨들은 아침에도 웃고, 점심때도 웃고, 저녁에도 웃어야 합니다. 더우기, 밥을 먹을 때 성이 나서 밥을 먹으면 배탈이 나는 거라구요.
더구나 아주머니들은 저녁에 잘 시간에는 웃고 자기 시작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한테 소박을 맞는 거예요. 웃고 사는 것이 장땡입니다. 장땡은 투전판에서나 있고 여기서는 없는 것이지만 말이예요. 그렇지만 한번 써 보는 거예요. 장땡이다. 웃고 사는 거예요. 알겠어요? 사람은 웃고 살게 되어 있다구요.
웃을 때, 이가 하얗게 나오는 것이 좋으냐, 입을 딱 다문 것이 좋으냐? 어떤 것이 좋아요?「이가 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춤을 추려고 걸을 때에도(행동으로 보이시면서) 기분이 좋아서 생긋생긋 이러는 게 좋은 것입니다. 웃는 게 좋은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아침에도 웃고, 점심때도 웃고, 저녁에도 웃고, 24시간 내내 웃고 살라는 것입니다. 누구 보고 웃어요? 통일교회 문선생 보라는 게 아니예요. 그래서 사고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을 돌아서 가지고 하나님보고 웃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언제 이렇게 귀여운 아기가 되어 가지고 노래를 해봤소?' (웃음) 왜 웃어요? 웃고 사는 거라구요. '하나님, 언제 나한테 노래를 가르쳐 주어 봤어요? 나에게 노래 좀 가르쳐 주십시오' 이래 가지고 토끼야 토끼야 산토끼야 그런 노래도 있을 테고 말이예요,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우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언제 춤 한번 가르쳐 줬소! 하나님은 춤을 이렇게 가르쳐 줄 것 같습니다. (행동으로 표현하심, 웃음)
그렇게 한번 살아보는 거라구요. 그렇게 살아 가지고 뭐 나쁠 게 있어요? 하나님 같으면, '내가 죽을 자리에 가더라도 이제는 천국 직행이다' 하게 될 때는…. 하나님은 죽을 고비를 거쳐서라도 천국까지 직행이지요. 그러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게 되면 나도 천국까지 직행입니다. 죽을 자리에 가서도 그저 웃으면서 '아이쿠, 이제 내 때가 왔구만' 하며 가 보라구요. 그렇게 사는 민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그러지 않고 눈을 깜박깜박하면서 입을 악물고 심각하게 있는 사람은 아침에 봐도 재수 없고, 점심때 봐도 재수 없고, 저녁에 봐도 재수가 없는 거라구요. 그러니 그런 사람은 소박맞게 마련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웃고 살자는 것입니다. 반대를 받을망정…. 이쪽 보면, 기분 나쁘니까, (행동으로 하심) 그렇게 해서라도 웃으라는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도 매일 그러는 거예요. 감옥에 들어가 있을 망정. 콩밥을 갖다 주면, '야 야, 밥 좀 더 가져 오지! 내가 젊은 사람인데 왜 천대를 하나? 배가 고픈데 밥이 작아서 이건 뭐' 하면서 기분 좋게 먹는 겁니다. 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형무소에 들어간 첫날 저녁밥은 못 먹습니다. 누구든지 못 먹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우리는 다르다는 거예요. 쓱 보면 밥이 적다구요. 형무소 생활을 십년을 할지 20년을 할지 모를 텐데, 지금부터 잘 먹어야지. (웃음) 밥이 적으니 많이 먹어야 된다구요.
밥 많이 먹는 방법을 가르쳐 줄까요? 그건 뭐냐 하면 영적 밥을 먹는 거예요. 밥이 이만큼 되면 한 절반을 뚝 잘라서 '옛다 너 먹어라' 하고 남 주는 이거예요. 그러면 참 고마워 합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웃음) 전도하기 힘든 줄 알았더니 제일 쉬운 곳이 감옥이라구요. 밥 반 덩이 가지고도 얼마든지 제자 삼을 수도 있다구요. 야 이거,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이렇게 쉽다면 밥 가지고 천하를 다 통일하겠구만. (웃음) 밥을 요만큼만 줘도 '아이구…' 이럽니다. 한 열흘 쯤만 주게 되면 죽으라면 죽을 짓도 다 합니다. 내가 다 해봤다구요.
남의 밥을 받아서 먹는 것을 보면 그저 미칠 듯이 입에서 회오리 바람이 불 듯 들이 감추어 버린다구요. 야, 배고픈 맛도 볼 만하지만 그걸 보는 맛도 볼 만하다구요. 그거 재미라구요. 먹는 맛보다도 보는 맛도 근사 하다구요. 그렇잖아요? 전부 다 생각 하나에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감옥에 들어가 앉아 가지고 당장에 사지(死地)에서 죽을 칠성판에 엎어져 있더라도 '이게 칠성판이구나. 야 야, 너 잘 생겼구나. 나하고 인연돼서 우선 고맙구만' 하고 인사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내가 묻힐 산이 있으면 '아, 우선 고맙구만. 난 혼자 살아 가지고 강가에 흘려져서 고기밥이 될 줄 알았는데 내가 묻힐 산이 있다니…'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하! 기다리던 청산이여, 고맙구만' 하고 인사해야 된다구요. '이제 내가 가는 데 어떤 사람들이 갈 거야? 형무소에서 내가 죽게 되면 간수들이 날 메다 줘야지.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들이 나를 메다 주니 고마운 일이지' 전부 이렇게 생각하는 거라구요. 절대 손해나게 생각지 않고 절대 좋게만 생각하는 거라구요.
벼락을 맞을 팔자라도 그렇게 좋게만 생각하고 살겠다는데 그렇게 망할 운세가 있을 수 있어요? 하나님도 생각이 있지,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믿는 사람들은 좋게만 생각해라, 알겠어요?
'아이코, 선생님이 제4차고 뭣이고…. 공문에 뭐라고 났어요? 4차 세계순회 송별대회, 전송대회, 뭐예요? 환송대회다 하는데…. 환송이나 전송이나 마찬가지지요. (웃음) 아마, 그렇게 돼 있을 거예요. '아이고, 그러니까 선생님이 가시는데 인사나 해야지' 이래 가지고 왔다가 아이구 바가지만 썼구먼, 바가지. 무슨 바가지예요?「복바가지」 복바가지.
복은 맨 처음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바가지?「고생바가지」고생바가지를 쓰고 나야…. (웃음) 그게 원칙이라구요. 그래서 내가 복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구요. 복을 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복받을 수 있는 길을 소개해 주어야 할 필연적인 사명을 느끼는데…. 복을 받기 위해서는 나라를 위해서 죽으라는 거예요. 나라를 위해서 죽어라. 나라를 위해서 죽으면 뭐가 되느냐? 잘 죽으면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라의 주권은 갖지 못했더라도 그는 역사를 통해 가지고 주권자의 꼭대기를 뒤흔들 수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보라구요. 여자 가운데서 제일 유명한 여자가 누구던가요?「유관순이요」 유관순이 뭐 사촌 누나 쯤 돼, 그렇게 큰소리로 하게. (웃음)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야? 진짜 그래? 자네 성이 뭔가?「이씨요」 이씨? 그녀석 그것 됐다구요, 아주 남자는 좀 저래야 된다구요. 자기 할머니래, 이가인데. 유관순 누나가 이가인지도 모르지요. 그럴 때는 할머니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또 해석을 해주어야지요. 그럴지 모를거라구요.
자, 그 유관순이 남 고생하지 않을 때 고생한 보람으로 십대 소녀로서 이 나라의 뭣이 됐어요? 남들이 다 죽을 때 무더기 죽음 했으면 그렇게 될 수 있어요?「없습니다」 없는 거라구요. 남 잠자고 꿈도 꾸지 않을 때 그런 일을 했기 때문에 그는 이 나라의 충신이 되지 않았느냐? 그렇지요? 그렇잖아요?
세상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복귀섭리니 지상천국이니 하고 누가 말하는 사람을 봤어요? '지상천국을 이루자. 여기 애국자를 모집하자. 충신을 만들어 보자' 그런 말 들어 봤어요? 전부 다 공포 같았다구요, 공포. 거짓말 같았다구요. 거짓말 같지만 만일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수가 난다 이거예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고생을 해라. 고생을 하다가 죽을 때에 가서 죽어라 이거예요.
'이거 뭐 어디 간다고 무슨 환송회니 해서 왔더니 기껏 손님 대접을 이렇게 해. 전부 죽으라구? 아이구, 기분 나빠. 그래서 통일교회는 망할 곳이야' 그렇게 생각해도 좋다는 거예요. 자 죽으라는 거예요.
예수님도 죽고자 하는 자는?「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죽는다」 그걸 생각하면 예수님은 내 친구라구요. 어쩌면 2천년 전에 그렇게 가르쳐 주었던고! 이 골통을 휘두르는 통일교회 교인들이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쫙 꿰매더라도 그렇다 할 수 있게끔 만든 분은 예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고맙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구요. 예수님 앞에 고맙게 생각해야 된다구요. 예수님의 소원이 그런데 예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통일 교회 문선생이 예수님이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 나쁜 거예요? 안하겠다면 몽둥이로 후려갈겨서라도 그렇게 만들어야 되겠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거기에 원망이 있어요? 원망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없다구요. 그렇게 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게 해 가지고 내가 복을 받자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복을 받게 하자는 거예요?「저희들이 복받게…」여러분을 복받게 하자는 거라구요.
사탄을 굴복시키고 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돼야 되느냐? 하나님을 굴복시키는 사람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자, 이거 또 진짜 이단의 말이구만. 하나님을 굴복시킨다니.
보라구요. 효자 앞에는 부모가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굴복한다」 효자한테는 부모는 부모의 위신을 차리기 위해서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진짜 효자 앞에는 그 부모가 굴복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나이가 많지 않은 부모라도 자식이 효자일 때는 '야 야, 살림살이 네가 맡아라. 내가 돈을 타 쓰더라도…' 이러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예」 굴복하려고 하는 거라구요.
충신 앞에는 군왕도 굴복하는 것입니다. 군왕이 자기는 잠을 못 자더라도 충신이 못 잘까봐 지켜 주는 수도 있더라는 거예요. 그렇지요? 충신 앞에서는 군왕도 종 되는 것도 원망하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그럴 수 있지요? 그러니까 충신 앞에서는 군왕도 굴복하는 것을 영광으로 아느니라. 알겠어요?
이렇게 볼 때에 통일교회 신자들은 뭘하자는 것이냐? 하나님이 보기에 효자요, 하나님 보기에 충신이라는 공인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이 '야야, 이제 그만 활동하고 쉬어라. 밤 열두 시가 지났구만. 한 시, 두 시가 지나서 초하룻날이 되어 첫닭 우는 소리를 듣고 자면 팔자가 사납다더라. 어서 자거라'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도 책을 보거나 뭘하려고 하면, '야, 이 녀석아!, 자라는데…' 그럴 수도 있다구요. 그래도 안 자게 되면, '야, 제발 빈다. 좀 자자'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사랑하는 아들 딸이기 때문에 '야야, 제발 소원이다. 제발 좀 자 주려무나' 그런 아들딸도 있지요? 그런 것을 볼 때, 심정을 통하고 효성과 충성을 다짐하는 그런 충신이 가는 길 앞에는 그 주체자가 머리를 숙이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까지도 굴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망했어요, 흥했어요?「흥했습니다」 군왕이 그런 충신을 가졌으면 망했어요, 흥했어요? 집안에 그러한 효자가 있으면 망했어 요, 흥했어요? 그러한 통일교회가 됐으면 하나님이 흥했어요, 망했어요? 「흥했습니다」 흥했다구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심정적인 면에서 하나님이 '야야 너희들 나 좀 데려가 다오. 야야 문 아무개야, 너 가는데 나 좀 데려가 주렴' 그럴 수 있다 하게 되면 하나님이 망하겠어요? 그럴 수 있는 하나님이 되었다면 하나님은 흥합니다.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냐. 사랑에는 높고 낮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심정이 일치되는 곳에는 동등권이 벌어지는 것이요, 주체와 대상, 상하가 엇갈리더라도 불평을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더라. 알겠지요? 잘난 남자와 못난 여편네 둘이서 같이 살더라도, 외적으로는 천지 차이지만 사랑으로 하나되게 될 때는 높은 것이 높은 게 아니요, 낮은 것이 낮은 게 아니더라. 그렇지요? 높은 자는 낮아지려고 하고 낮은 자는 높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둘 다 평등이요, 서로 화합이었더라.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높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거라구요. 그러면서 서로 위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위하는 자리는 굴복시키고 머리 숙이게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머리 숙일 수 있게 되는 자리가 사랑하는 자리이더라. 이 논리가 틀림이 있더라? 「없더라」 없더라 이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그렇게 되면 하나님까지도 홀딱 반해요. 하나님이 사랑의 주체라면, 그 사람의 주체자가 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반하는 것을 한번 보고 싶지 않아요? 하나님이 반해 가지고 밤잠을 못 자고 말이예요. 아주 맥이 빠져 가지고 그저 매양 좋아서 '허허허허' 하고 천년 만년 살고지고 하는 그런 하나님이라면 망하겠어요? 그렇게 '하하' 하게 될 때는 우주도 '하하' 하고, 춤을 추게 되면 우주도 춤을 춘다구요. 자, 사람 중에 하나님이 반할 제 일등 남자가 있다면 내가 한번 만나고 싶다구요. 또, 하나님이 역사상에서 제일 반해서 못 살겠다는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를 한번 만나 보고 싶다구요. 어때요? 그거 기분 좋아요, 나빠요?「좋아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욕심이 많기 때문에 그러한 남자 여자를 통일교회 패들 가운데서 한번 만들어 보자는 거예요. 우선 하나님이 그런 말을 들으실 때 기분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우선 만들어 보겠다고 하는 것이 안 만들어 보겠다는 것보다 낫다구요. 그러니까 궁금증이라도 가져 보고, 관심이라도 가져 봐야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된다 이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만들어 준다면 하나님이 신이 나시겠어요, 안 나시겠어요? '야 어서 해라' 하고 후원하시겠어요, 안 하시겠어요?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저 영국에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에 오지 말라고 해도 태평양이 멀다 않고 자꾸 건너 오신다구요. 와 가지고는 빙빙 돌다가 인연을 맺어요. '야야, 어디 가 어디 가' 할 때, '어디 가긴 어디 가요? 난 하나님 몰라요' 하면, '야야, 모르기는 왜 몰라. 네가 지금 사지(死地)에 있으니 내가 보호해 주마' 이렇게 해 가지고, 인연을 맺어 가지고 몽땅 좋게 만들어 하나님 곁에…. 알겠어요? 그런 수가 있을 성싶다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저 보좌에 계시다가도, 땅에 내려오시지 말라고 해도 내려오십니다. 그래서 사랑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는 마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지요? 사랑하는 아들딸이 외국 유학을 가게 되면, 그 어머니 아버지가 따라가요. 안 따라가요? 몸뚱이는 할수없어서 못 따라가지만 정으로나마 몇 배 이상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침에 햇빛을 보면 아들을 생각하고, 옛날에 같이 있을 때는 생각이 뭐야? 바빠 가지고 말이예요. 강물을 봐도 아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있으면 '아, 우리 아들딸…. 태평양이 아무리 짠 바닷물이라도 이 강물은 통하겠지' 하는 겁니다. 조그마한 도랑에서 빨래를 하면서도, '이 물은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에 까지 통하겠지. 나는 이 물에서 빨래를 하는데, 우리 아들은 이 물에 발을 담그고 있을지도 모르지' 이렇게 어머니는 빨래를 하면서도 우리 아들의 마음이 철렁철렁 좋아지라고 하는 이런 기도를 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아들이 그걸 알아 주면 얼마나 멋지겠어요. 사랑의 마음은 거리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구요. 알겠어요?
그런데 그 아들딸이 고생을 한다는 소문을 듣게 되면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어요? 기뻐요, '아이구!' 해요? '아이구!' 하며 당장에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발동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냐. 하나님을 동원할 수 있는 그런 개인이 돼 가지고 개인적으로 망하는 법이 없고, 가정적으로 하나님을 동원해 가지고 망하는 법이 없고, 국가적으로 하나님을 동원해 가지고 망하는 법이 없다 할진대는, 사랑하는 아들딸의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그 나라와 그 세계를 위해서 고생을 하면, 하나님은 찾아오시지 말라고 해도 찾아오십니다.
그러면 비로소 하나님이 행차하십니다. 지상 나라가 아무리 험하더라도 '천지의 대왕님인 하나님이 행차하시는데 그 행차 반열의 정면에서 모실 수 있는 거룩한 무리가 되다니…' 이러고 있으면 하나님이 진짜 나타나시는 거라구요. '야 아무개야', '예이', '천상의 인연을 존중시하는 네 정성이 지극하여 천상에서부터 행차하였나니, 너는 이제부터 이 이상 더욱 충의 도리를 더 할지어다' 할 때, '예이' 하는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그럴 때 기분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서 있으면 '야, 얼마나 나를 한번 만나고 싶고, 한번 만져 보고 싶어 기도하였느냐. 자 이리 와라' 할 때, 감싸며 '아이고 아버지' 그럴 수 있다구요. 사랑으로 진짜 점령할 때는 하나님이 살짝 오실 수도 있다구요.
그런데 왜? 아직까지는 때가 안 됐다구요. 그걸 알고 그 자리를 돌아서려면 다리가 천근 만근이예요. '아이구,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그런 세계가 있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가 이별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구요. 뼈가 녹아나고 힘줄이 당기고 모든 신경이 조여 드는 것과 같은 그런 자리에서 돌아서려면 발걸음이 천근만근 같다는 거예요. '내 어찌 박복하여 그분을 모시지 못하고 이렇게 돌아서노' 그러면 천군천사가 군악대로 새로운 기분을 돋구어 주는 거예요. 군악대가 위로해 주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춤추다가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돌아서는 거예요. 그런 놀라운 것이 없지 않더라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이왕에 아들이 되려면 그런 아들이 한번 돼 보고 싶지 않아요?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일생 동안 가더라도…. 밥을 안 먹더라도 하루쯤은 보통이예요. 누가 욕을 하더라도 그까짓 것은 보통이예요. 그것 생각 안 하면 '뻥뻥뻥뻥' 다 할 때는 주저앉는다구요. 철강판 같은 데는 아무리 대포알이 터져도 오히려 그 파편이 튀어 나가 가지고 쏜 녀석 이마에 박히게 되어 있어요. 그런 일이 없지 않더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자 이것 멋져요, 멋지지 않아요? 그런 일이 있다면 멋져요. 멋지지 않아요? 멋지다구요, 멋져. 그렇기 때문에 옛날의 도주들은 말이예요. 석가모니 같은 분은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다' 이런 말도 했다구요. 그런 말을 들어 볼 때, 통일교회 문선생이 괜찮은 것 같지요? 그렇지만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는 거예요.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라구요.
자, 이래 가지고 최후에는 하나님까지도 행차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것 가능해요, 가능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사모하기를, 일주일 동안 밤잠을 못 자고 눈물을 지으면서, 눈이 물커지도록 사모해 보라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서는 태양빛을 바라보지 못하고 손으로 눈을 가리고 눈물 지을 수 있는, 사무친 심정에 한번 사로잡혀 보았느냐? 흠모의 애달픈 심정에 허덕여 먹는 것 입는 것 다 잊어버리고 미칠 듯이 하나님의 사랑을 한번 흠모해 봤느냐? 해봤어요?
'내가 거지가 되든 무엇이 되든 좋소' 그럴 수도 있는 승리의 한 날, 당신이 가는 거동거리를 만날 수 있어 가지고, 하나의 시녀, 졸장부가 되더라도 좋다고 하며 그 행차 반열에 내가 한번 따라가 보고 싶다고, 일생을 바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몸부림쳐 봤어요?
전부 다 도둑놈 심보를 가지고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고 말이예요. 하나님이 금 보따리를 가지고 있으면 전부 다 훔쳐 가지고는 '하나님 나 모르겠소' 하려는 패들이라구요. 진정으로 바치고, 진정으로 드리지 않고는 하늘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통일교회의 내적인 인연을 파고 들어가게 될 때는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여 엇갈리는 사연이 너무나 많더라 이거예요. 나라가 부정하더라도 이것을 부정할 수 없으리만큼 나라를 뚫고 올라갈 수 있는 내용이 있는 것이요, 세계가 부정하더라도 세계의 반대를 뚫고 올라갈 수 있는 내연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냐.
빛나는 하나의 진리의 길, 빛나는 하나의 최대의 승리의 길, 빛나는 하나의 사랑을 통한 영광의 길이 오늘날 이 교단을 통하여 있다면,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 일신 다 바쳐 가루가 되더라도 한이 있을 수 있겠느냐? 심지어 내 일신을 나라의 죽음길과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한이 없는 것입니다. 세계의 도상에서 객사하여 개한테 뜯어 먹혀도 한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품안에서 죽는다면 그 이상의 소원이 어디 있겠느냐? 그런 자리에서 나지 못한 것이 한이라면 나는 나지 못한 것을 한탄하야 되겠고, 그런 청춘시대를 갖지 못한 것이 한이라면 내 그런 청춘시대에 살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되겠고, 혹은 생애를 바쳐 가지고 살지 못했으면 내 생애를 통해서 이 땅 위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살아 봐라.
그 사람이 가는 곳에는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그 사람이 가는 곳에는 망하는 운세가 전혀 있을 수 없는 거라구요. 가는 곳곳마다 승리요, 가는 곳곳마다 하늘이 같이하는 실적이 나타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더라. 짧은 선생님의 생애를 통하여 그러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까지도 앞날을 바라보고…. 후퇴가 아니예요. 여호수아와 갈렙을 대해서 하나님이 강하고 담대하라고 권고하던 이상의 강한 내적 다짐과 용맹스러운 그 마음을 가지고 지금도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자 이걸 볼 때, 연령적으로 선생님보다 젊은 여러분들, 젊은 청년 남녀들, 내 가슴에 시간 시간 울려 나오는 고동소리를 듣고 있는 거냐, 맥박은 왜 이렇게 뛰고 있는 거냐? 이 맥박은 누구를 위해서 뛰고 있느냐, 이 심장은 누구를 위해서 뛰고 있느냐? 아내로, 여자로 태어났다면 저 믿을 수 없는 불신의 남편 때문에 뛰는 것이 아니라구요. 천정(天情)을 이어받을 수 있는, 천만세의 기업을 이어받을 수 있는 자손 하나를 위해서, 영광스러운 사나이를 맞기 위해서 내 생명을 지녔던 여자의 몸이 아니냐. 남자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천리의 기업을 가지고, 그의 일신을 보호할 수 있는 그 자리에 서 가지고 하나의 여성을 맞이해야 되는 거라구요. 남성이 정열을 다 부어 가지고 찾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하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내를 맞고 싶은 것이 아니더냐.
하나님의 오른 손가락에 딱 끼어 가지고 안팎으로 튕기고 나갈래야 나갈 수 없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부부가 하나되고, 흠뻑 사랑하는 가운데에서 죄가 없는 본성의 아들딸을 한번 낳아 보는 것이 우리 부부의 소원이라고 하늘에 절규하는, 사랑의 일치권을 이룬 그런 부부가 있거들랑 하늘은 금세기 이후의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세계적인 인물을 틀림없이 그들의 혈육을 통하여 나게 할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망해 가고 통일교회 교인들은 보잘것없지만, 그럴 수 있는 부부가 있는 곳에는 앞으로 희망의 나라가 시작되는 것이요, 희망의 세계가 찾아올 것이 아니냐. 그러한 부부와 그러한 가정이 되어 하늘이 품고 사랑할 수 있는, 그 나라의 주권자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내가 죽기 전에 보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하나님이 맡아서 지도하고 통치했으면 어떻게 됐을 것이냐? 오늘날 이러한 부패상은 없었을 것이 아니냐. 완전 무결한 하나의 세계적인 주권국가로서 흠잡을 수 없는, 만민이 흠모할 수 있는 나라를 내 일신의 힘이 다하기 전에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 아니냐. 그것이 애국애족하는 철칙이 아니겠느냐. 그뿐만이 아니라 한국을 일으켜 세계를 통치할 수 있는, 세계 국가를 전부 다 주름잡을 수 있는 하나님의 권한을 내 눈으로 볼 수 있고, 또 거기에 협조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가 있다면 백 번이나 태어나 이 땅에서 살아가더라도 그 이상의 소원이 없을 것이 아니냐.
한 번밖에 없는 이 짧은 인생노정이 기나긴 역사의 흐름 노정에, 한 방울의 물방울과 같은 권내에 내 일신이 들어가 가지고 그 영광된 한 자리를 잡아 가지고 직접 대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이겠느냐. 그것이 꽃이라면 향기를 품은 꽃일 것이고, 아름다운 꽃일 것이고, 크다면 이 이상 클 수 없는 꽃, 아름답다면 이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꽃, 향기롭다면 이 이상으로 향기가 짙을 수 없는 그런 향기, 열매라면 그 이상의 열매가 없을 것이고, 그 이상의 나무면 나무, 꽃이면 꽃의 종류가 없을 것이 아니냐. 그럴 수 있는 하나의 목적체가 통일교회라면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을 것이라구요. 그러한 결실과 그런 하나의 사절이 되어 가지고 미를 돋구고, 그러한 하나의 향취의 요소가 되어 가지고 움직이는 여러분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한 내가 되고 그러한 우리가 돼야 됩니다. 그러한 우리 교회가 되고 우리 나라가 돼야 됩니다. 그러한 우리가 사는 세계가 되어야 됩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아버님을 모시고 승리의 천국을 이루어 가지고 어화둥둥 춤을 추고, 지상이나 천상이나 만민이 전부 다 기뻐할 수 있는 그날을 맞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천지창조의 유업을 대성하였다고 기뻐 하면서, '내 소원성취다. 기쁜 날, 즐거운 날' 하면서 하나님이 쌍수를 들어 천하에 사랑하는 만민을 거느리고, 그 가운데에서 특별히 제일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하늘 전체의 유업을 상속해 주고 싶은 하나님의 그 마음 앞에 책정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있다면, 그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느냐.
그럴 수 있는 아들딸이 나는 한국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미국 사람?「한국 사람」 한국 사람. 그러려니 지독히 고생을 시켜야 되겠다구요. 그러려니 지독히 희생시켜야 되겠다구요. 그러려니 지독히 사탄쪽으로 내몰아야 되겠다구요. 그것이 철석같은 하나님의 소원이요, 하나님 앞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을 맞게 할 수 있는 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20년 동안 단상에서 여러분을 낮이나 밤이나 고생시키려고 하는 모진 사람이 되더라 이거예요.
나에게 정이 없는 것이 아니예요. 누구보다도 정이 통하는 사람이라구요. 그렇지 않고는 망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고는 끝장이 나겠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혀를 깨물면서, 가고 싶어하지 않는 길로 내몰게 되었다구요. 고생길로 나서더라도, 망하는 것을 보지 않으려니 이 길로 내 모는 것입니다. 고생길이 싫다고 해도 망하지 않게 하려니 할수없다구요.
여러분,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대한민국을 선생님이 사랑하던 이상 여러분이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거라구요. 믿을 수 없는 여러분한테 기대를 우선 갖겠다는 거라구요. 대한민국에 있는 통일교회는 세계의 그 어떤 나라 앞에도 자랑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통일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우선 통일교회의 말씀의 권위를 세워야 되겠다구요. 통일 교회 교인들 개개인의 인격의 가치와 권한을 세워야 되겠다구요. 하나님의 심정의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되겠다구요.
그래 가지고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그래 가지고는 하나님을 여러분의 하나님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내가 알던 하나님을 여러분에게 백퍼센트 소개하고 싶다구요. 나를 사랑하던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을 보고 죽고 싶다구요. 그것이 이 스승의 소원입니다.
내가 사지에 몰렸을 때 살길을 가려 주시기 위해서 불철주야 수고하신 하나님인 것을 내가 알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살려 주기 위해서 앞길을 가려 가면서 하늘이 밤잠을 자지 않고 사방을 뛰쳐 다니며, 여러분을 해방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하나님이 있다면 여러분은 망하지 않는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부디 통일교회의 권위와 위신을 땅에 떨어뜨리지 말라구요. 내가 사랑하던 통일교회, 내가 책임지던 통일교회를 여러분들이 대신 책임지라구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구요. 더 큰 싸움을 해야 되겠다고 각오하고 가는 길이기 때문에 돌아올 때까지 여러분이 책임지고, 삼천리 방방곡곡에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 사랑하는 충절을 심고 가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이제 3년만, 1974년도까지만 밀고 나가는 날에는 한국은 망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는 거라구요. 그게 섭리적인 관이라구요. 이 숨막히는 최후의 정상을 넘어야 할 이런 때가 1974년도이기 때문에….
후방에서 일선장병 이상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할 때가 왔다구요. 하늘이 소망하는 그 나라를 위해서 기필코 나는 가야 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은?「가겠습니다」 여기에 잡힌 운명이기 때문에 기필코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만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영계도 갈 것이고, 영계만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따라갈 것입니다. 하나님, 영계, 모두다 가는데 낙오된 그 서러운 낙오자의 자리에는 절대 죽어도 설 수 없다구요. 그 고독한 사망의 물결에 휩쓸려 가지고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을 배반하던 그 사탄이 즐거워할 수 있는…. 통일교회 패 가운데도 이런 패가 있지 않느냐 하며, 사탄이 하나님 앞에 끌고 가 가지고 '하나님 보소. 당신이 자랑하던 통일교인 가운데에 이렇게 배통 큰 것들이 있지 않소. 아이구, 이래 가지고 그 유명한 통일교회 교인이라고 합니다' 하고 참소할 그런 죽여야 할 패가 있어서는 안 되겠다구요.
나는 감옥길을 걸어가면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한 사람이라구요. 내가 감옥에 가면 하늘이 만나게 해주기로 약속된 사람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희망을 품고 간 사나이라구요. 콩밥을 앞에 놓고도 하늘 앞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민족을 위해서 기도했던 사람이라구요. 수난길에 몰리는 자리에서도 민족을 잊어 본 적이 없고, 세계 인류를 잊어 본 적이 없는 거예요.
흥남 수용소의 그렇게 무지무지한 극한 노동 가운데서도 나는 지치지 않아서 쓰러지지 못했다구요. 쓰러지면 안 되는 거라구요. 일신이 병이 나더라도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역사를 지닌 사람이라구요. 나는 그 자리에서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저를 동정하지 마시옵소서. 저를 사랑하시거들랑 민족을 사랑하여 주시고, 저를 귀히 여기시거들랑 세계를 귀히 여기소서. 공산권 마수의 철망 속에 제가 들어와 있지만 이들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한 사나이라구요. 그 기도는 가식적인 기도가 아니예요.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이런 기도를 올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구요. 이 거룩한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참된 사람을 하늘은 지금도 부르고 있습니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여러분들과 같은 청춘시대에 나라를 거느리고, 세계를 거느려 가지고 하늘 앞에 봉헌하지 못하는 서글픈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불쌍한 사나이지만, 젊은 청년들이 앞으로 이 길을 가 가지고 혈기 당당하게, 기백도 늠름하게 하늘의 승리의 주권국가를 이루고, 세계의 주권국가를 하늘 앞에 봉헌하는 그날이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젊은 청년 여러분, '나'라는 사람은 무가치한 사람이라구요. 개인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는 거라구요. 남자로 태어난 사람은 얼마든지 있는 거라구요. 여자로 태어난 사람은 얼마든지 있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뜻을 위한 때, 절박한 이 시대에 태어난 여러분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엊그제 듣기를, 우리 통일교회 축복받은 가정의 자식으로서 대학교 학생들이 이번 출동하는데 동원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요놈들…. 피를 뿌려 갈은 밭고랑을 타고 앉아 가지고, 살을 에이며 가꾸어 놓은 그 밭고랑을 타고 앉아 가지고, 여러분 자식들하고 여러분들이 잘먹고 잘살것 같아? 안 된다고, 두고 보라구요. 두고 봐. 이와 같은 배도(背道)의 무리가 있다는 거라구요. 나는 그런 사람 싫다구요. 가정이면 앞에 서야 지요. 앞으로 그런 패들은 내 손으로 들이 짤 거라구요.
우리는 하늘 앞에 결의의 맹세는 여러 번 했다구요. 이 결의의 맹세를 천만번 했더라도 소용없는 거라구요. 하늘 앞에 승리를 결정하는 개가의 맹세와 소명이 언제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는 요원하다구요. 여기에는 피어린 투쟁이 남아 있다구요. 이 구렁텅이를 메워야 되겠습니다. 꽃다운 청춘을 희생시켜서라도 이걸 메워야 되겠다구요. 나라는 사람을 희생시켜서 메워야 되겠다구요. 우리 에미 애비가 희생되더라도, 여편네와 새끼들을 희생해서라도 메워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반대받고 있는 통일교회 문선생의 골수의 사상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던 부모를 문전에서 박대하던 사나이, 그렇게 당신 아니면 못 살겠다고 하는 여편네를 뒤에 떨어뜨려 놓고 국경을 넘은 사나이, 자식을 7년 만에 만나 가지고도 눈으로 뻔히 바라보면서 '네가 아무개지?' 하며 자식이라고 품어보지 못한 사나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여기에는 법도가 있다구요. 천도(天運)가 있다 이거예요. 하늘이 바랄 수 있는 자리는 영광의 자리요, 승전고가 드높은 자리인데, 그럴 수 있는, 만날 수 없는 자리를 대하는 하늘의 서러움을 알았기 때문에 자식을 보고도 자식이라고 할 수 없었고, 아내를 보고도 아내라고 할 수 없었던 걸음을 걸어온 사나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이해 못 하고 처자가 이해 못 했다는 것입니다.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흘러가 버렸지만 이해 못 하게 하였던 사나이는 망하지 않고 그 이상의 길을 솟구쳐 가지고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자기 에미 애비보다도 하늘을 더 사랑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구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비참한 하나님, 하나님은 고독한 하나님, 하나님은 말할 수 없이 슬픈 하나님인데, 이 하나님을 해방시키기 위한 기수가 되고, 일선 장병이 되고, 피를 흘려도 정통으로 맞고, 피를 홀리고 쓰러져도 한꺼번에 쓰러지겠다고 할 수 있는 신념을 가지고 조국 광복을 위하여, 그 세계를 하나로 수습하기 위하여 가는 용사의 대열이 점점 커지게 되면 여기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은 불쌍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불쌍한 사나이가…. 그렇지만 나는 죽더라도 이 땅을 중심삼아 가지고 철석같은 싸움을 위해 다시 제 2차로 도전할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통일교회 문선생의 주류사상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거들랑 그 사상을 본받아 가지고 통일교회 문선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갖고 있는 집안을 사랑하거든 통일교회 문선생의 소망이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라는 거예요. '내가 죽거든 나를 밟고 넘어가소' 이럴 수 있어야 됩니다.
문선생이 사랑하던 하나님을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고 눈물짓는 사람은 환영할 것이로되, 내가 이제 뜻을 이룰 수 있는 때가 왔다고 눈물짓는 사람은 망해야 된다구요. 하늘과 세계를 사랑하고 그렇게 애쓰던 그분의 전통적인 사상을 중심삼고 그 이상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눈물 흘리는 사람은 환영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오늘에야 내가 내 뜻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나타날 필요도 없다구요.
이런 최후의 숨막힌 결정적인 순간이 오늘 목전에 다가온 것을 여러분이 알고 우리 모두가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남자 여자가 하나되어 가지고 모두가 합세해야 되겠습니다. 피끊는 정열에 사무쳐 한 곳에 집약 시켜 가지고 나라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정상적인 직선 행로를 달려야 할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없더라도 부디 그런 사상과 전통을 남기는 보람 있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바라서, 여러분들도 기필코 가기를 바라서 이런 말씀을 드린다는 것을 명심해 주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어요?
그런 책임을 틀림없이 감당하겠다는 사람이 있거든 양손을 들어 아버지 앞에 맹세합시다.
당신을 목이 터지도록 부르고 싶사온데, 그럴 수 있는 환경이 못 되었습니다. 당신을 위하여 충효의 도리를 다하다가 미치고 싶사온데, 그럴 수 있는 환경이 못 되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데도 숨어서 길을 가려 가면서 사랑하여야 하고, 당신의 뜻을 위하는 데도 눈치를 봐 가면서 하지 않을 수 없는 이 환경이 지긋지긋하옵니다.
아버지, 자유분방한 세계를 어서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 공산세계를 앞에 놓고 저희들은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금후에 싸워 가야 할, 첩첩의 태산준령을 가려 가야 할 사명이 남아 있사오니, 가는 길을 지켜 주시옵소서. 기필코 가야만 되겠사옵니다. 기필코 가야만 되겠사옵니다. 죽고 또 죽더라도 기필코 가야만 되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 어린 자식들이 쌍수를 들어 아버지 앞에 맹세하였사옵니다.
아버님, 제가 없더라도 청파동을 위주로 해 가지고 밤낮 그리워하는 심정 위에 불꽃을 튀기게 하락하여 주시옵소서. 처처에 널려 있는 성지를 지키면서 하늘의 성전으로 가꾸기에 온갖 지성을 다해 주기를 바라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승리의 영광을 찬양하면서 만날 수 있는 그날이 와야 되겠습니다. 민족 전체가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그 숭고한 모습의 하늘을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 저희의 소원이옵니다.
이제 기필코 가야만 되겠다고 맹세를 하였사옵니다. 틀림없이 맹세를 하였사옵니다. 저희는 저희 자신을 속일 수 없사옵니다.
이제 저희가 가는 길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닌 것을 알았사옵니다. 민족의 싸움터로 가야 할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럴 수 있는 하늘 앞에 부끄럽지 않은 민족이 되고 후계자가 되게끔 복을 빌어 주시옵소서. 제가 그럴 수 있는 초조한 자리에 서게 될 때 하늘이 보호해 준 그 동참적 은사를 가해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마음에 불타 가지고 하늘을 위하지 못하여 사람을 붙안고 눈물짓게 될 때, 하늘이 현현하였던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길을 가야만 될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가기를 결심한 그들의 행로를 당신이 지키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모든 것을 허락하신 뜻대로 가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만만세의 은사와 사랑과 영광이 이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은 꼬리표를 달려서 일선으로 추방당하는 화물차들이예요. 알겠어요?「예」 자, 또 시작할까요, 말까요?「해요」저 뒤는 구경하는 사람들이예요? 할까요, 말까요?「하세요」 출동명령이라구요. 전체 출동할까요, 말까요?「해요」 11월, 12월, 1월, 2월, 3월, 4월 16일까지 우리 통일교회 식구 전원은 개척을 나갑니다. 그 대신 선생님도 일선에 나서니 선생님에게 지지 않게끔 여러분이…. 알겠어요?「예」 내가 돌아올 때까지 여러분이 얼마만큼 성과를 올렸는가 한번 경쟁해 보자구요. 알겠어요?「예」
내가 지금 가게 되면 수많은 젊은 청년들을 동원하려고 합니다. 한 8백 명 동원하려고 하는데, 일본과 합하게 되면 상당한 수를 동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세계의 통일교회 젊은 신자들이 그야말로 최첨단에서 활동하는데, 한국은 주체국이 되는 거예요. 모국이라구요. 신앙의 조국이 아니예요? 그렇지요?
주도국으로서 그들에게 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그들한테 져서는 안 되겠다구요. 지게 된다면 앞으로 주도국으로서의 권위를 세울 수 없어요. 더우기 선생님이 외국에 가 있는 동안 여러분이…. 선생님이 미국에 가 있다고 미국에만 관심 가져서는 안되겠다구요.
여러분이 한국에서 벼락 같은 이런 작전을 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한국에 없더라도 주체적인 국가로서 권위를 남겨야만 앞으로 한국은…. 알겠어요?「예」 일거리를 만났다구요. 자, 그러겠다는 사람들 손들어 보자요. 「안 들립니다」 안 들려요? 그럼 다시 얘기할께요. 한국은 세계적인 주도 국가로서-통일교회에 있어서-주체국으로서의 위신과 체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이 알다시피 처음에는 120만 불 달라는 것을 우리가 깎고 깎아서…. 95만 불 이하는 안 되겠다고 하는 집이 있었는데 주인이 바뀌게 되었다구요. 그래서 우리 젊은 청년들이 주인을 방문하여 감동시켜 10만 불을 깎아 가지고 85만 불에 집을 샀습니다. 그 집은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물론이요, 미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궁전보다 백악관보다도 나은 집이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런 집을 샀습니다. 그 집에 인원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느냐? 한 6백 명 수용할 겁니다. 왜 샀느냐? 세계의 젊은 지성들을 데려다가 세계적인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 교육하기 위해서 산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미국에 가면 당장에 이 일을 실천할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뭘할 것이냐? 미국의 전 50개 주에 선풍을 일으킬 계획입니다. 선풍을 일으켜서 뭘할 것이냐? 한국을 보호하자는 것입니다. 상원의원들을 어떻게 감동시켜 끌어내느냐? 그래서 우리 50개 주의 기동대들 중에 제 1진을 한 주에 40명 이상(40×50=2,000) 2천 명을 동원해서 안 되면, 한 주에 4배 해서 사사 십육(4×4=16), 160명까지 동원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구요. 160명씩 동원하면 얼마인가? 한 8천 명, 한 만 명의 기동대원을 동원할 수 있는 때가 되면, 미국 조야에 상원의원들이 출마할 때에 우리가 브레이크 걸면 다 떨어질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우리는 말펀치가 셉니다. 통일교회 이론과 실력을 그 누구도 당하지 못 합니다. 그건 이미 한국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국제승공연합의 강사들이 어떤 대학의 교수보다 수준이 높고 감동력이 강하다는 것은 이미 평가받고 있는 사실입니다. 일본에서도 그렇고 미국에서도 그렇기 때문에 닦아진 기반, 훈련된 실력을 가지고 미국 천지를 한번 주름 잡아야 되겠습니다.
1976년에는, 기필코…. 오늘날 졸장부로 갔던 문선생이 그때 쯤 되면 천하에 영향을 크게 미치게 될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12년 전부터 준비했다 이거예요. 30여 명 가까운 상원의원들을 배후에 엮었고, 하원의원 120명 이상과 우리가 인연맺을 수 있는 길을 닦아 왔습니다. 꿈 같은 얘기라구요. 여러분들이 나가서 활동하다가 지쳐서 일을 못하겠다고 후퇴할 때, 이런 길을 닦기 위해서 천신만고 쉬지 않고 선생님이 배후에서 싸워 온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그것이 이제 하나의 활동적 무대로 백일하에 드러날 수 있는 때가 왔고, 또 미국을 그냥 두었다가는 사탄의 제물밖에 되지 않겠기 때문에 그것을 아는 내가 사탄을 막아 주어야 되겠습니다. 미국에 제 2의 해방을 일으켜 놓아야 되겠다. 기독교 해방을 일으켜 놓아야 되겠다. 이것이 지금 통일교회의 계획입니다. 지금 미국 자체 식구가 적어서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구라파에서 8백 명 흡수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또 일본에서도 못해도 한 6백 명 흡수할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되면 4년 후인 1974년까지는 틀림없이 그러한 기수를 들어 가지고 세계 교회에 문제를 일으킬 것이고, 대학가에 젊은이들이 전부다 우리 때문에 골탕을 먹든가 그렇지 않으면 따라오든가 하는 문제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다 되면 젊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다니지 못할 때가 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폭탄 던져서 공갈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순히 정의를 위해서, 피를 토할 듯한 성의를 가지고 외쳐서 가는 길을, 인생이 가야 할 근본 길을 가르쳐 주는 싸움을 할 것입니다.
이런 놀음을 해야 할텐데…. 내가 미국에 가서 몇 개월 동안 이 놀음 해야 되겠습니다. 그 전통을 세워 주고 돌아와야 되겠습니다. 갔다가 돌아오면 좋겠어요, 안 돌아오면 좋겠어요?「돌아오십시오」 안 돌아오면 좋지요?「아닙니다」 돌아오면 좋아요?「예」 빨리 돌아오게 하려면…. 여러분이 불나게 일하면 갔다가 두 달도 못 되어서 돌아올지 몰라요. 데데하면, 여러분에게 소망을 갖지 못하게 되면 할수없이 눈이 시퍼렇고 콧대 높은 서양놈들을 앞에 내세워 선생님 심부름을 시키겠습니다.
그때는 선생님이 세계를…. 물론 한국에도 가끔 오지 안 오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한국을 버려두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일 못하니까 일하는 사람을 데리러 가는 것입니다. 잠이나 자게 하고 쉬게 하고 일하는 사람을 내세워 초라한 모습으로 잔치상을 만들어 놓고 밥이나 얻어먹고 떡이나 먹으러 오라고 초대할 것입니다. 그러면 좋겠어요. 잔치를 벌여 놓고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당당코 공문을 내 가지고 '안 오시면 안 됩니다' 할 수 있는 이런 권한을 가지고 불러들이겠어요?「당당코 불러들이겠습니다」 불러들일 수 있는 당당한 권한을 남겨 주고 싶다 이겁니다.
내가 외국에 가 가지고…. 미국 기동대, 일본 기동대, 독일 기동대, 영국 기동대가 지금 활동하고 있습니다. 영국에 집회소가 하나였던 것이 내가 작년에 가서 기동대를 만들어 활동한 후로 23개의 집회소가 생겨났습니다. 알겠어요? 꿈 같은 얘기입니다. 지금 독일에서도 전국을 휩쓸고 있습니다. 미국도 기동대가 전역에 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통일교회 때문에 세계가 도망가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든가, 통일교를 믿든가 하는 그런 결과의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난 좋지 않지만, 난 죽을 지경이지만 하나님은 좋아하실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되면 어떻게 살 수가 있어요? 이 나라에서 오라, 저 나라에서 오라 하면 살 수가 있나 말이예요. 수백 국가가 될 텐데. '한 달 동안만이라도 우리나라에 와서 사소' 하게 된다면 120개 국만 되어도 한달씩만 있어도 10년 걸린다구요. 그렇지요? 그렇게 되면 한국 떠났다 돌아오게 될 때는 10년이 걸리기 때문에 선생님 새까만 머리가 백두(白頭)가 되어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가 불원한 장래에 올 것입니다.
이제 세계는 그냥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통일교회의 세력기반이 세계 앞에 그냥 왔다가 그냥 흘러가게 안 되어 있다 이겁니다. 한번 씨름을 크게 하든가 단판을 하게 되어 있다 이겁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좋겠나, 나쁘겠나?「좋습니다」 그때에 가서는 대한민국은 '야! 우리 문선생, 잘했다. 우리 문선생 잘했다' 그럴 겁니다. 그때는 우리 문선생이 되지? 지금은 남의 문선생입니다. 미국 문선생이 되길 바란다고요. 선생님이 그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체국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게끔 만든 것이 선생님이 길 떠나는 데 있어서의 보람 있는 요구일 것이냐, 주체국의 권위를 지키게끔 하는 것이 선생님의 보람 있는 요구일 것이냐? 어떤 거예요?「지키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이 안 하겠다면? 안 하겠다면?「합니다」 확 때려! 몽둥이로 후려갈길 사람이 누구냐? 내가 감독관을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자, 때려서라도 시켜 주기를 바라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려요. 안 든 사람 손들어 봐요. 그놈 때려죽여라! 죽이려고 해도 한 사람도 없으니까. 때려 죽이라고 명령해도 그건 통하지 않는 명령이니까 안 한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통일교회에 처음 온 사람들은 아이구, 통일교회에서 문선생이 공적인 강당에서 그런 녀석 때려죽이라고 말했다고 뭐 어쩔지 모르지만, 아니라구요. 오해 잘하는 한국 사람, 깐죽깐죽 잘하는 한국 사람, 남 헐뜯기 좋아하는 한국 사람, 사돈네 사촌 논 사면 배 아파하는 한국 사람, 거 종자 받을 패예요, 종자 받지 못할 패예요? 종자 받지 못 할 패인데 종자 받을 수 있는 패로 만들기 위해서 내가 이 놀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진짜 좋아요?「예」 '예' 했지만 아이고, 안 그랬으면 좋겠다. (웃음)
그러니까 주체국으로서의 권위를 잃어버리지 말라구요. 내가 없을 동안에 여러분들이 한국에서 보람 있게 활동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외국 나가 가지고…. 자, 보라구요. 죽어 있는 것 같은 한국이지만 죽지 않았다구요. 푸른 동산의 호랑이였지만, 잠자는 호랑이였기 때문에 소리가 없었지만, 이젠 봄날이 되어서 잠을 깨어, 으르릉 거리고 나서게 될 때는 세계가 다 흔들먹흔들먹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번 시키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간절한 염원이요, 소원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게 할 거야, 안할 거야?「하겠습니다」 저 뒤에 들었어요, 못 들었어요?「들었습니다」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귀가 없는 자는 듣지 말지어다, 이거예요. 들었지요?「예」 자, 그러면 동원하겠다는 사람 손 들어보자요. 아이구! 기분 좋구만. 저녁을 안 먹어도 소화가 잘 되겠구만. 저녁을 안 먹었는데 뭐 소화가 잘 돼? (웃음)
자, 이제는 막바지입니다. 이제 다시는 여러분들이, '아이고, 선생님 나 전도 내보내 주십시오' 해도 나 모르겠다. 전도 안 내보내 줄지 모릅니다. 이제는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위해서 전도 못 하고 책임을 못 할 때는 일본 사람들을 동원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그래요. 요번 책임 못 하게 되면 한국 교회에 일본 사람 투입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도 못 하게 되면 서양 사람들을 데려올 것입니다. 그런 창피한 꼴 보겠어요, 안 보겠어요?「안 보겠습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리가 주체국으로서 외국에 영향을 미치는, 신세를 지우는 나라가 되어야지 신세를 지는 나라는 나는 싫어요. 자, 그렇기 때문에 해야 되겠어, 안 해야 되겠어?「해야 되겠습니다」 죽어도 해야 되겠어, 살아도 해야 되겠어?「죽어도 해야 됩니다」 죽든 살든 해야 된다 그 말이라구요.
이제부터 행동개시라구요. 전국의 면 단위에까지는 동원되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몇 개월 동안 악착같이 말 잘 듣고, 내가 나갔다 들어올 때까지…. 만일 내가 4월 16일까지 못 오게 되면 몇 개월 연장한다는 통첩이 올 거라구요. 그러면 '아이구, 문선생 거짓말했구나' 그러지 말라구요. 뜻을 위하여 수고하면 수고할수록 영광의 도수는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자, 내가 나눠 줄 거라구요. 나눠 줄까요, 추첨을 할까요? 사실은, 본래는 자기 면에 가서 활동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불원한 장래에 그렇게 할 것입니다. 이번만은 전부 다 추첨해 가지고 나가라구요. 자, 전부 다 조를 짜고 점심 식사 하세요. 점심이야, 아침이야?「점심입니다」(웃음) 우리는 탕감법을 배웠으니 아침, 점심, 저녁까지 탕감하는 거라구요? 지금 세 시인데 또 저녁 먹겠어요? 거 번거로운데 한꺼번에 한 끼 먹고 말지 뭐. (웃음) 점심 먹고 전부 나눠 주세요.
선생님 사명은 일단 다 끝났습니다. 이제는 식사를 하고 쉬고 싶으면 쉬고, 여러분이 간절히 또 만나기를 원하면 살짝 나타나겠어요. 또 만날까요, 말까요?「만나요」 나 땀 흘렸으니 청평이나 가서 시원한 공기나 쐬고 오늘 밤 푹 자고 오면 좋겠는데, 그렇게 안 돼요?「안 됩니다」 그렇게 박절할 수 있어요? 저녁에 또 만나자구요?「예」 만나야 뭐 또 욕을 먹고 주먹이 왔다갔다, 주먹으로 바람을 일으킬 텐데, 그래도 괜찮아요? 「예」 그러면 또 한번 만나 보자구요. 그러면 오늘 저녁에는 풀자구요. 응? 나도 주머니 풀고 말이야. 그래 가지고 우리 화동회 합시다. 화동회 하고 싶은 사람…. (박수) 선생님 주머니 털어야 되지 않나? (웃음) 화동회 해야 될 게 아니예요? (웃음)
사랑하는 아버님, 이 자리는 하늘과 땅이 바라보는 자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일체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모인 어린 자녀들을 당신의 기쁘신 자녀로 삼으시옵소서. 인간의 인연을 따라 모였을지라도 당신의 인연을 따라 그 마음과 몸이 바쳐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전국에 널려 있는 어린 자녀들이 마음으로 그리는 이 자리는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역군들이 와 보고 싶어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당신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마음이 그러한 줄 아옵니다. 아버지가 계시는 곳에 자녀들이 아니 있을 수 없고, 아버지가 가시는 곳에 자녀들이 따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사시는 그곳에서 자녀들이 고향의 이름을 갖고 살고 싶은 것이 아버지가 허락하신 인정이요, 또 천정인 줄 아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의 마음은 자나깨나, 슬픈 일이 있으나 기쁜 일이 있으나, 오고 가는 일체에 있어서 당신을 그리워할 줄 알고, 저희들은 당신과 더불어 행동하며 살아갈 줄 아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번 이땅 위에 태어나 사는 이 세상의 생활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을 중심삼고 일생을 그려 가면서, 당신이 허락하시고 당신이 원하시는 소원의 그 목적을 향하여 순응해 갈 수 있는 진정한 아들딸을 당신이 얼마나 찾고 계셨으며, 얼마나 바라고 있었는가 하는 사실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마음으로 더듬으면서, 허락하신 그 나라와 그 목적을 위하여 쉬지 않고 가시는 당신의 발자국을 따라 저희들도 쉬지 않고 엄숙하고 충실하게 그 길을 밟아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 자신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왔습니다. 흘러가는 역사시대에 하나의 흐름을 따라 모든 인류는 흘러왔고, 또 흘러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흐르는 물줄기와 같이 저희의 한 인생도 자기의 방향을 따라 자기 마음대로 흘러가는 사람도 있겠고, 주류를 따르기 위해서 방향을 달리해 가는 입장에 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흐르는 물줄기에는 반대로 갈 수 있는 길은 있을 수 없지만, 인생의 행로 앞에는 반대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의 길까지도 부정하고, 자기가 서 있는 자리까지도 부정하고, 자기가 태어난 인연까지도 부정하는 일이 수없이 많은 것을 바라보게 되옵니다.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여야 할아버지의 사정이 인류를 거두기 위한 사정이요, 만민을 구원하여야 할 사정이다 할 때 이 모든 사람을 가려 줘야 할 책임을 저희들 자신도 하지 못하고, 저희 사회도 하지 못하고, 저희 나라도 하지 못하고 이 세계의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당신만이 이것을 책임져야 된다는 것은 너무나 과중하고 너무나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이 그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역사시대를 통하여 수고해 나오신 당신 앞에 빛을 지우지 않기 위하여 오늘도 몸부림치오니, 이 갸륵한 자녀들을 어여삐 보시옵고 기억하시사, 이들에게 천배 만배 복을 베푸시사 이 시대 앞에 이들의 가는 발걸음이 아버지를 따라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남겨진 사명을 위하여 순응하고 충성하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 단상에 섰사오니 이 자리를 지켜 주시옵고, 혹시 다음 주에 제가 이 자리에 있지 못할지라도 아버지께서 당신의 뜻과 더불어 길이길이 이 자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당신을 위하고 뜻을 높이기 위해 다시 만나는 그때까지 일체를 같이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이제 국내에 있는 어린 식구들이 모두 나서서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이 자식 역시 해외에 나가서도 아버지께서 남기신 복귀의 사명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체면과 위신을 다 집어치우고 달려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늘이여, 이끌어 주시던 뜻을 알았기 때문에 가고자 하는 이 길을 당신이 지켜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이것은 그 누구의 영광을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누구의 뜻을 세우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슬프고 불쌍하신 하늘 아버님의 그 뜻과 그 목적과 그 사명을 촉진시키고, 그 환경을 개척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가야 할 걸음이오니 아버지께서 축복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가는 길이 아무리 험하다 하더라도 나라를 찾아가는 길이요, 세계를 찾아가는 길이요, 생애를 넘고 가지 않으면 천주적인 승리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는 길이기에, 원리의 목적, 원리의 길은 당신의 창조이상의 그곳을 향해 재촉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무자비하고 매정한 일들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당신의 넓고 큰, 높고 귀한 은사를 내려 주기 위한 단 하나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마음에서 나온 불가피한 사정인 것을 생각할 때, 죽는 자리에서도 저희들은 저희 자신을 중심삼고 슬퍼할 수 없고, 희생되는 그 자리에서도 자기를 중심삼고 살필 수 없는 복귀의 운명길인 것을 아옵니다. 그러기에 저희 들은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가야만 되겠습니다. 가다가 말 것이 아니라, 가고 가고 또 가야 할 길이 얼마든지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청춘시대로부터 전체의 일생을 다 바쳐서라도 가지 않으면 안 될, 육신을 갖고 사는 이 짧은 세상을 빛나게 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만물을 바라보고 저희의 마음을 위로해 달라고, 하늘땅을 바라보고 당신의 뜻을 받들게 해 달라고, 인간은 알지 못하지만 지으신 피조세계는 알아줄 것을 바라는 그 고독한 길이 쌓이고 쌓일지라도 가야 할 그 길을 위해서는 저희들이 서슴지 않고 가기를 맹세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더우기 이번 달 1972년 후반기를 당신이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 나라가 거쳐가야 할 방향에 있어서 당신이 허락하신 뜻대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인간들이 원하는 뜻대로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저희의 마음이오니, 당신이 다년간 준비하신 역사적인 목적을 위해서 당신의 뜻으로 수습할 수 있는 하나의 나라와 민족을 새워 주시옵소서.
남북이 아무리 엇갈려 있다 하더라도 당신이 준비해 주시고 당신이 지도해 줄 수 있는 새로운 목적의 세계를 향하는 그 길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고, 그 누구도 그 일을 반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때까지 남아져 탕감의 조건을 세워야 할 사명을 어떠한 종단보다도 어떠한 종교보다도 우리 통일교회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버지, 금후의 갈 길을 당신은 아시오니, 허락하신 뜻과 경륜대로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앞에 부복한 이 어린 자식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가는 역사노정의 한 시대를 보내고 새로운 시대를 맞을 적마다 저희들은 투쟁의 역경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탕감의 제물적 조건, 즉 피를 흘리는 수난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전진할 수 없는 복귀의 역사인 것을 알고있습니다.
아버지, 오늘부터 서울을 위주하여 경기도와 강원도 식구들이 수택리에 모이고 있사옵니다. 지금 모이고자 하는 당신의 자녀들, 또 그곳을 향하여 움직이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 당신을 위한 갈급한 몸 마음에, 충정에 사무치는 흠모의 심정이 충만하여 오고 가는 걸음 걸음이 당신이 원하시는 뜻 앞에 합당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모여진 무리 가운데 당신의 영광이 드높이 드러나시옵소서. 당신의 사랑만이 임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2일, 13일, 14일, 15일 지방을 순방하는 길에도 아버지, 같이하여 주옵소서. 이번 기간에, 당신의 뜻을 놓고 결단을 지어야 할 최후의 결의의 때가 저희 앞에 다가왔습니다. 누가 더 이 민족을 사랑하느냐 하는 조건을 세우고 넘어가야 할 때이옵니다. 이 삼천만 민중보다도, 아니 오천만 민중보다도 그 어느 주권자보다도 당신을 더 사랑하고 넘어가야 할, 저희에게 분부한 최후의 충성의 도리가 저희들에게 남아 있사옵고, 저희들이 우위에 서서 당신의 권위를 드러내지 않고는 안 되는 중차대한 시점이 저희 목전에 다가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여, 저희들을 인도하시옵고, 허락하신 아버지의 뜻 가운데 다시 만나는 그때까지 있는 정성을 다해 하늘의 결실을 맺어 빛낼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허락하신 뜻대로 따라가기를 원하옵고, 인도하시는 곳으로 순응해 가면서 당신의 승리의 한 날을, 저희의 자랑이요, 역사의 자랑이요, 시대의 자랑이요, 미래의 자랑뿐만이 아니라 당신의 자랑으로 세울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달리고 또 달리고 전진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지금까지 기성교회와 반목질시하는 자리에서 나왔사오나, 다시 그들과 합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워 다시 문을 열어 주게 하시어서 당신의 영광의 때를 맞이할 수 있게끔, 아버지,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가야 할 그 길이 국가적인 시대를 넘어 세계적인 시대로 넘어가는 이때에, 이 국가 전체가 아버지 뜻 앞에 방향을 갖출 수 있게 하는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가인과 아벨이 반드시 탕감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았사오니, 그 길을 당신이 가려 주시는 대로 따라갈 수 있는 승리의 가인 아벨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남한 전체를 움직이고 남한을 통하여 그 북한을 이끌어 이 나라가 아담 국가로서 아시아의 새로운 주도적인 영광의 자리에 서서, 온 천주 앞에 새로운 방향을 향해 힘차게 전진할 수 있는 승리의 나라, 승리의 백성, 승리의 국토가 되기를 얼마나 바라 나왔습니까?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하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여 왔고, 또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저희들이 한다고 하는 그 사랑이 너무나 부족하고 너무나 미급한 것을 잘 알고 있는 저희들에게 있어서는, 충의 도리를 말하기에 부끄럽고, 효의 도리를 말하기에 부끄러운 모습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의 심정만은 당신을 향하고, 당신을 위해서 살고, 당신을 따라가고자 하며, 일편단심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을 기억하시는 아버지여, 저희들을 버리지 마시옵고, 향하는 길이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승리의 길이 되게 하시옵고, 당신과 더불어 의논하고 자극 받으면서 갈 수 있게끔 지도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아버지가 뜻하신 대로 저희들을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 개인을 중심삼고 보나, 혹은 한 국가를 중심삼고 보나, 전체의 세계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 개인이나 국가나 세계가 자기가 있고 싶어서 있게 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들이 원하여 그런 나라를 형성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은 원치 않았지만 옛날 자기 선조들로부터, 혹은 우리 인류들이 원치 않았지만 우리 인류역사가 그렇게 된 그 결과의 자리에 서게 될 때, 자연히 그 나라를 사랑하고, 자연히 그 세계를 생각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개인을 두고보더라도 여러분이 이 땅에 나고 싶어서 난 것이 아닙니다. 부모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부모들이 그 백성이면 백성으로서, 혹은 인류면 인류로서 이 땅 위에 존속하면서,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필연코 그 대를 이을 후대가 없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이것이 천륜과 인륜이 가는 길이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 우리 개개인도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개인이 있기 전에 누가 있느냐 하면 부모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있기 전에는 조상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추구해 올라가게 되면 결국은 우리 대한민국이면 단군 조상을 지나 최초의 인류의 시조인 아담 해와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볼 때, 자기들이 원해서 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어떠한 원인자가 있어 가지고 그 원인자의 목적과 원인 자와의 관계를 잇기 위해서 오늘 인간이 태어난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은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내가 원인이 되어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러한 전면적인 역사관이나 혹은 어떠한 개개인을 통해서 보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도 보다 차원 높은 어떠한 원인을 따라서 태어난 것입니다. 또, 내가 난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 가는 것보다도 보다 차원 높은 원인을 따라 나 자신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그 원인이 추구하는 목적 혹은 결과의 자리에 까지 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 원인이 바라던 소망대로 진전되고 발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에, 그 진전하는 과정의 생을 지니고 있는 우리 개개인은 반드시 그 과정을 거쳐 가야 되고, 그 목적의 자리까지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의 나, 그러한 가운데의 우리로 인연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볼 때 나는 우리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한 개인이라고 하는 것은 전체를 대표해 있다는 것을 언제나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개개인은 너나할것없이 전부 다 완전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불완전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볼 때 자기의 모든 생김새를 보고 자기 나름대로 나는 내 얼굴이 이렇게 생겼으면 좋겠다, 혹은 눈은 이렇게 생겼으면 좋겠다, 혹은 코는, 입은, 귀는, 내 전체의 일신은 이렇게 생겼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내 모습에 대해서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소원을 갖고 있음과 동시에, 외적인 모습 외에도 내적인 내 마음의 모습에 대해서도 역시 자기 나름대로 바라는 그 무엇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면 좋겠고, 내 마음이 가고자 하는 이러이러한 곳을 가보면 좋겠다, 이러 이러한 인물이 되어서 이러이러한 가치를 지닌 중심존재가 되면 좋겠다 하는 이러한 소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소원도 나라는 것을 중심삼고 생각하지만 나에게 미쳐지는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소원은 반드시 원인과 통해야 되고, 그 원인이 가야 할 뚜렷한 목적을 향하는 불변의 하나의 길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길과 더불어 항상 보조를 맞춰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사람 사람을 대해서 사람은 곧은 마음을 가져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른 마음을 가져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 곧다는 기준이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아직까지 확정지어 놓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르다는 그 기준을 어디에 두고 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라고 하는 개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바르다거나 혹은 곧다는 말을 하기 쉬운 것이 오늘날 습관화된 우리 인간의 생활인 것입니다.
그 바르다는 것은 어디서부터 기준이 되어야 하느냐 하면 그것은 원인에서부터 바른 금을 그어야 될 것입니다. 그 원인으로부터 바른 금을 긋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과정을 거쳐 목적점에까지 직선이 되어야 합니다. 직선은 무엇이냐 하면 두 점을 통하는 선이 직선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인을 통한 과정을 거쳐 결과로 미쳐질 수 있는 하나의 바른 선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선을 긋고 비로소 바른 그 선 가운데 곧다고 하는 것을 세워야 됩니다.
사람은 바른 사람이 되고 곧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곧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서 있는 것을 말합니다. 나무가 곧다, 혹은 깃대가 곧다는 말을 우리가 하고 있는데, 그 말은 뭐냐? 바르고 곧다는 말은 곧 수평선상에 90각도를 중심으로 사방을 갖추어 360도형으로 연결되는 그 한 점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바른 것 곧은 것을 연결시키면 자연히 하나의 십자형을 그리게 됩니다. 바르고 곧다는 그것을 연결시키면 하나의 사각형도 되고 원형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입체로 표시하면 구형이 되는 것입니다. 중심으로부터 동서남북으로 미쳐지는 모든 것이 자유롭게 어디에서나 똑같다 이거예요. 어디에서나 틈이 없다 이거예요. 어디에서나 완전하다 이겁니다. 그것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와 같이 자기를 중심삼고 볼 때에 동쪽으로 미쳐지는 한계선과 서쪽으로 미쳐지는 한계선이 똑같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위면 위로 아래면 아래로 미쳐지는 그 한계선이 똑같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원형을 닮은 것이 아니냐. 모든 것은 구형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아무리 세계가 크다고 하더라도, 동서남북의 방향이 크다고 하더라도 내가 중앙에 서 있으면 그 한계점은 나를 중심삼고 결정됩니다. 그것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관계를 맺고 싶은 것이 우리의 인간의 마음입니다.
동쪽이나 서쪽이 가려져서, 정착되어서 동방이면 동방만으로 있기를 바라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좋으면 반드시 돌게 마련입니다. 가만히 있어 가지고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춤을 춘다든가 노래를 한다든가 할 때에는 벌써 얼굴빛이 화합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웃을 때에는 눈으로부터 코로부터 얼굴 전체가 웃게 마련입니다. 얼굴이 웃게 되면 그 얼굴만 웃는 것이 아니라 사지백체가 거기에 서로서로 화합해 가지고, 서로서로 화동해 가지고, 대응해 가지고 전체 일신의 모양이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항상 우리들의 생활 가운데에서 잘 아는 바입니다.
사람이 기뻐할 때는 마음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신이 기뻐하는 것이 아니냐. 또 슬퍼할 때는 마음만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몸도 슬퍼 하는 것이 아니냐. 그 몸도 전체가 슬퍼하는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 개인의 기쁨은 개인의 기쁨만이 아닌 것을 우리가 생각할 때, 그 슬픔과 기쁨은 전세계와 더불어 인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인과 결과가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과정을 연결시켜 가지고 그 목적이 성사된다고 하게 되면, 그 과정에 있는 하나의 모습, 하나의 표시체, 하나의 행동은 그 과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원인에 영향을 미쳐야 되고 결과에 영향을 미쳐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좋은 것이 있으면 '아, 이거 좋다!' 하며 그것으로 끝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을 볼 때 좋은 것은 영원히 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좋았기 때문에 내일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그리하여 일년, 십년, 생애 전체가 좋기를 바라는 그 소원이 있는 것을 볼 때에, 그 좋다는 것이 일시적인 한계권내에 머물기를 바라고 있지 않는 사실을 우리가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일생도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한 때를 요구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환경에 제한된, 어떠한 틀에 잡힌, 어떠한 한계점이 남아질 수 있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넘어서서 무슨 일이거나 동서남북으로 전체 앞에 미쳐질 수 있는 기쁨과 인연맺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우리 자신들이 느끼고 체험하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기쁨은 오늘의 기쁨만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기쁨은 어디까지나 영원히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슬픔은 영원히 연결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슬픔은 빨리 청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쁨을 남기고 슬픔을 청산지어야 되기 때문에 여러분이 자기의 일생 가운데 남아지는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세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냐 하면 제일 기뻤을 때, 제일 슬펐을 때, 제일 어려웠을 때, 이렇게 우리는 세 가지를 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려웠다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어려움 가운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 자신을 위해 어려웠던 일, 나라라든가 하는 전체, 전체를 위해 어려웠던 일이 있습니다. 자기 개인을 위해서 한 어려웠던 일은 개인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와 인연을 맺을래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 내 개인을 넘어서서 전체를 위해서 어려움을 당했다면 그것은 전체와 더불어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결국은 애국자들은 뭐냐 하면, 자기 개인의 어려움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전체의 어려움을 해결짓기 위해 개인이 그것을 책임지고 나섰던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겪는 어려움은 전체를 대표한 어려움이기 때문에 전체와 더불어 인연맺게 하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애국자 가운데에서 누구보다도 더 많이 고생한 사람일수록 더더욱 애국자가 되는 것입니다. 효자면 효자도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를 위해서 어려운 자리에서 신명을 다할 수 있으면 그 자리가 비참하면 비참한 자리일수록 더 높은 효의 가치가 드러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모든 고통이라는 것은 두 종류가 있는데, 개인에 한한 고통은 개인으로서 사라져 버리지만 전체를 위해서 당한 고통은 영원히, 그 전체가 없어질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고 전통을 남기려고 하고, 세계면 세계의 역사 앞에 인류들이 따라가야 할 전통을 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전통은 어디에서 세워지느냐 하면 공적인 어려운 자리를 거치는 데에서 비로소 역사적 기준이 설정되어 나오는 사실을 부정할 도리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만민을 위하여, 보다 참을 위해서 공적인 전체 앞에 자기의 생명 전체를 투입하여 조금치의 자기도 부정하고 간 그런 어려움의 자리는 온 인류가 그 사람을 추모하지 않고는 지나갈래야 지나갈 수 없는 하나의 원점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들은 자연히 역사시대의 추모의 대상으로서 후대 인류가 가야 할 전통의 길을 남기고 간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생살이에 있어서 남는 것은 기쁜 일, 슬픈 일,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인생살이 가운데 남는 것이 그런 일들이라면 그런 인생살이를 세계 만민과 공동적으로 합하여 연장시켜 놓는 것이 우리의 인류역사이기 때문에, 인류역사에 남는 일들은 어떤 것이냐 할 때, 이것도 우리 인간에게 남아지는 것과 꼭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역사과정에 가장 오래 남아지는 것은 어떠한 것이냐? 지극히 어려웠던, 역사시 대에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사건들이 가장 오래 남아지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을 두고 볼 때, 그 다음에는 어떠한 것이 남아지느냐? 제일 슬펐던 일입니다. 기가 막히게 슬펐던 일이 우리 일생에 잊혀지지 않고 남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시대에 지극히 슬펐던 일은 남게 마련입니다. 그 남는 것은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슬퍼했던 일이 아니라 공적으로 슬퍼했던 일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간 사람들이 역사와 더불어 남는 것입니다. 요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을 중심삼은 어떠한 슬픔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자기 개인의 일생에 남아질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자기 일생과 더불어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공적인 슬픔을 갖고 가는 사람은 자기는 죽더라도 세계역사와 더불어 남더라 이거예요. 이것은 불가피한 사실이예요. 세계 인류를 위하여 그 세계 인류의 슬픔을 대신 책임지고 자신의 희생을 각오하면서 악한 세계의 슬픔의 여건을 제거시키기 위하여 싸움을 하다가 죽어간 사람들일수록, 죽는 데에서도 자기를 잊어버리고 비참 하게 죽어가는 사람일수록 그는 역사 시대의 슬픔을 대표할 수 있는 대표자로 남아진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예수님과 같은 양반이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다음은 무엇이냐? 기쁜 일이 남아집니다. 여러분의 일생에 있었던 기쁨이 남아진다 이거예요. 대다수의 인간들은 자기 개인의 기쁨을 생애의 표준으로 삼거나 혹은 생활의 지향선으로 삼고 있지만 우리의 인류역 사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기쁨을 중심삼고 살아간 그 기쁨은 남아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개인의 일생이 끝나게 될 때 그것으로 흘러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이 세계 인류를 대표해서 기뻐할 수 있는 그 자리를 추구했다면, 또 그 자리를 남겨 놓기 위해서 기쁨의 한 생활 형태를 갖추어 갔다면, 그것이 공적인 생활이면 공적인 생활일수록 그 기준은 인류역사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은 양반들은 이 땅에 와서 누구보다도 고생을 했고, 누구보다도 슬픈 생활을 했지만 그 마음 가운데는 기뻐하려고 했던 그 기쁨이 인류와 더불어 있기를 바랐고, 역사 이전부터 역사 이후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기쁨이 미쳐지기를 바라고 또 그것을 추구해 나왔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생명을 다 바쳤고, 그것을 위해서 갖은 희생을 다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하나의 목적을 위해 예수님이 일대의 지성을 투입했기 때문에 그 목적의 세계는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먼 미래의 시대에 있어서 먼 후대의 여명의 한 때를 맞이할 수 있는 역사시대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인류와 더불어 그러한 길을 추구해 나왔기 때문에 하나에서 둘, 둘에서 계속 수를 가하여 하나의 씨족으로부터 하나의 민족을 넘어 하나의 세계적인 기독교 문화권을 형성해 나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죽은 예수님이 힘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죽은 예수님이 그 길을 수습해 줘서도 아닙니다. 천륜이 그렇고 하나님이 있는 한 그렇게 안 될 수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은 있는 것이요,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기쁨의 그 뜻을 바라보며 노력하다가 죽어갔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가고 오는 모든 인생길을 단적으로 결론짓는다면 두 길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이 가는 길과 세계가 가는 길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물론 개인이 가는 길과 세계가 가는 길은 사람이 나면서부터 같아야 됩니다. 나면서부터 같아야 되고 살아가면 서도 같아야 되고 저세상에 가서도 같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길은 바른 길이 될 것입니다.
어느누구나 출발은 같은 원점에서 했고 가는 길은 한 길밖에 없기 때문에…. 기차로 말하면 출발역에서부터 한 레일을 통해 목적지까지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어차피 그 길을 가기 마련입니다. 그런 길을 갔더라면 인간은 원인에서부터 과정을 거쳐 목적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다 갈 것입니다.
그 목적은 슬픔을 찾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이는 필시 보다 나은 그 무엇을 바라는 목적임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살던 사람이 부산을 간다고 할 때, 왜 가느냐 하면 그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가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나쁘기를 바라서 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 거리가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희망이 부풀어 오르게 마련이고, 자기가 최후의 결단을 지어 가지고 승리의 가치를 다짐지을 수 있는 희망의 시간이 가까와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류역사도 역시 정상적으로 출발에서부터 과정을 거쳐 목적의 종착점까지 향해 가는 길에 섰다면 거기에는 고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가면 갈수록 지나가는 모든 자연 환경이라든가 거쳐가는 데에 나타나는 그 모든 여건들이 자기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 슬픔의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과 더불어 내일의 기쁨을 맞을 수 있는 그 목적을 위해 항시 기쁨의 자극이 되고, 비교의 가치를 수습할 수 있는 좋은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의 인생살이라는 것은 올바른 목적을 향해 가는 그 길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부산을 가게 되는 그 과정에는 가면 갈수록 슬픔이 아니라 희망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희망의 순간이 다가오는 그것이 크면 클수록 그 큰 주체 앞에, 그 목적 앞에 거기에 관계되어 있는 모든 외적 인연, 내적 인연은 기쁨의 조건으로 등장해야 쉽니다. 내가 그곳에 가게 되면 지나온 때에 있어서 인연된 사람, 즉 아무날 서울이면 서울에서 만났던 그 사람도 내 목적을 이루는 지점, 부산이면 부산 그 종착점에 도착할 때 그 사람이 나와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기쁜 일에 같이 동참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걸 볼 때, 정상적인 목적, 바른 목적을 추구하는 자리에서 자기가 향해 가는 그 목적의 자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것을 전체에 인연 맺어 가지고 자기가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 동참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와 같이, 목적의 세계를 향해 가는 데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목적의 세계가 점점 이루어지면 이루어질수록, 그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가면 갈수록, 자기에게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은 좋은 목적이면 목적일수록 그것을 축하해 주기를 바라고, 축하뿐만이 아니라 좋은 잔치라도 베풀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우리 인류는 그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것을 목표로 출발해 가지고 전진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만일 우리 인류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최후에 맞이해야 할 그 목적점에 임하게 될 때에는, 우리는 틀림없이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날을 위해서 우리는 참고 나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여행이 지루하더라도 그 지루함에 비하여 그 이상의 목적의 결과가 나타나게 될 때는, 지루함도 기쁨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우리의 인생살이가 아무리 험하고, 아무리 비참하고, 아무리 괴롭다 하더라도 그 이상의 가치적인 기쁨을 느낄 수 있고 목적 성사를 다짐지을 수 있는 길이 틀림없다고 하면, 가는 길이 고되면 고될수록 모든 무리가 그 목적점에 도달하는 순간에는 '이제는 다 됐다. 이제는 다 왔다' 하는 공통적인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냐. 그 순간이 되면 될수록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오늘날 이 세계도 반드시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가는 것이 아니냐.
우리가 원리에서 배웠듯이 모든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됩니다. 존재하기 위한 선행 요건이 운동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거예요. 운동을 하려면 반드시 힘이 있어야 됩니다. 그 힘은 혼자서는 나을 수 없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하는 데에서만이 힘이 나온다 이거예요.
사랑의 힘도 역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등 모든 사랑도 주체와 대상이 올바로 정면으로 대해 가지고 서로 마음이 일치되고 사정이 일치되고 소망이 일치되는 데 있어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네 목적이자 내 목적이 될 수 있는 공동 목적 일체점을 결하는 데 있어서 사랑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요, 사랑의 이상도 그것을 기점으로 해서 차원을 높여 그 각도를 가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인 것을 미루어 볼 때, 오늘날 인류역사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냐.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최후의 목적점에 다다를 때가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절망에 부딪힐 것이 아니라, 희망에 부딪혀야 할 것이 아니냐.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정상적인 목적을 알고 출발해 간 사람은 희망이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목적을 모르고 출발해온 사람은 그 끝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자기의 전후를 가리지 못하고 자기의 위치를 확정짓지 못하고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고민에 부딪 쳐야 되는 것은 정상적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인류역사의 종말은 어떠한 위치에 놓여 있느냐? 불안이냐, 희망이냐? 두 글자를 놓고 볼 때 불안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희망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개인을 두고 봐도 그러하고, 민족을 두고 봐도 그러하고, 국가를 두고 봐도 그러합니다.
더더욱이나 우리 대한민국을 두고 보면 남북이 엇갈려 있는 정세에서, 물론 지금 적십자회담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 귀추가 어떻게 될 것이냐? 우리가 희망하는 대로,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대로 귀결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불행한 자리로 귀결될 것이냐? 둘 중의 하나로 귀결해야 할 것입니다. 어차피 그 운명의 귀결점은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가면 갈수록 그 어떠한 방향이 나타나게 될 것인데 온 민족, 온 인류 역사가 기뻐할 수 있는 곳으로 귀결되면 그것은 이상이겠지만 그렇게 귀결되지 못할 때에는 불안한 것입니다. 불안뿐만 아니라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안은 비참과도 통하는 것이요, 실패와 통하는 것이 아니냐. 불안은 절망이요, 사망과 통하는 것이 아니냐. 희망은 소생과 통하는 것이요, 모든 발전과 통하는 것이요, 승리와 통하는 것이요, 흥함과 통하는 것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전세계는 불안과 희망의 초점을 향하여 부딪쳐 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희망으로 남아지느냐, 불안으로서 남아지느냐? 어차피 둘 중의 하나가 남아져야 할 세계의 정상이 우리의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개인과 더불어 세계로 통할 수 있는 일로가 되었습니다. 또한 가정과 더불어 세계로 통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고, 국가와 더불어 세계로 통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전세계가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누구나 희망의 자리에 서 있으면 좋겠는데, 반대로 불행의 자리에 서 있다는 결론을 누구든지 내릴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인류역사가 정상적인 어떠한 희망을 가진 동기로부터 출발하고 과정을 거쳐오지 못 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 아니냐. 와 보니 불안이요, 와 보니 파탄이요, 와 보니 절망인데, 이제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여기에서는 정상적인 행동이나 정상적인 사고방식 가지고는 이 환경을 타개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여기에서는 비약과 초월이라는 두 글자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두 명사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비약하여 어떠한 희망의 피안의 세계로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초월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환경을 밟고 초월해 올라가야 됩니다. 여기에서 뒤로 후퇴하거나 이 자리에 정지해서는 안 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는, 하나의 인생체가 굴러가는 길 앞에 그야말로 거대한 암산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어서 이것을 막을래야 막을 수 없는 입장에 있게 될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것을 피하는 길은 도약입니다. 비약하는 길입니다. 초월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같이 비약하면 좋겠지만, 초월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 이거예요. 우리 인간은 제한된 몸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운동법칙에 있어서 가속도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가는 길을 그냥 그대로 스톱 시키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 전진해 오는 물체에 갑자기 브레이크를 걸어…. 이런 형태로 정면적으로 다가오는데 막게 되면 깔려 죽지만, 그 반대로 이런 형태로 다가오는 무엇이 있다면, 거기에는 내가 싫더라도 비약할 수 있는 길이 있게 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러한 인간을 바라보고 이것을 급하게 구해 줘야 되겠다…. 지금 전부 다 절망이요, 전부 다 파탄이요, 부패해 있는 인간을 구해 주어야 할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 경사진 여기에 다리를 놓고 뻗어 나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운동이 벌어져야 될 게 아니냐. 그러려면 그 다리는 개인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진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진 그런 다리를 놓기 시작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개인을 이기고 가정도 이겨야 됩니다. 가정을 이길 수 있는 다리를 놓아야 됩니다. 그 다음엔 국가를 이길 수 있는 다리를 놓아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세계를 이길 수 있는 다리를 놓아야 됩니다.
이 거대한 물체가 가속도로 다가오는 이 마당에 여기에 걸릴 수 있는 너슬너슬한 것이 부닥뜨려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혜로운 사람은 될 수 있으면 깔리더라도 한 곳만 꺼풀이 벗겨지든가 조금 상처만 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판자 모양 배밀 이해 가지고 넓적하게 누워 있다가는 깔려 죽을 것입니다. 이럴 때는 면적을 좁게 하여 한 면을 중심삼고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연구를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런 생각도 할 수 있다구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반드시 끝날에는 그런 일을 할 것이 아니냐.
여러분 개개인이 큰 길을 편안하게 달려가기 위해서 바퀴를 달고 레일을 놓았다면, 바퀴가 레일에 닿자마자 레일을 타고 넘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것은 힘들 거라구요. 그러니까 할수없이 한 면의 방향을 가려 가지고 그것을 거쳐 나갈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만일 손바닥이 몸뚱이를 마음대로 지지해 가지고 밀고 나갔다면 손은 없어지더라도 그 몸뚱이는 남아질 것이 아니냐. 여러분의 다리라면 다리를 중심삼고 몸뚱이 전체를 지탱해 가지고라도 넘어갈 수 있으면 될 것이 아니냐. 그런 길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뚱이에 레일을 달지 않았다구요. 그건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자신의 사지백체를 중심삼고 볼 때, 몸뚱이 전체를 들고 남을 수 있게끔, 전체를 지지할 수 있게끔 부분을 훈련시켜 놓으면 될 것이 아니냐. 몸뚱이가 부분적으로는 상하지만 전체는 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몸뚱이의 한 부분 부분이 전체를 지탱할 수 있게 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만일에 이것을 거꾸로 집어넣으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탄은 거꾸로 집어넣습니다. 사탄은 전부 반대입니다. 들어오는 놈들은 예외없이 죄가 있는 놈은 전부 다 옥살박살이다 이거예요. 그것은 반대로 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아요. 이렇게 나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그 길은 어떠한 길이어야 되느냐? 개인만큼 커서 되겠어요? 세계 인류면 세계인류보다 더 커야 될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불평하지 않습니다. 인류만큼 똑같아 가지고 '아이고, 저 사람은 왼발로 걸어가지 않는데 나는 왜 이래? 그렇게 되면 안 된다구요. 가고도 남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놔야 됩니다. 그 길은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거쳐 국가와 세계 전체가 거쳐갈 수 있는 길이 되어야 될 것이 아니냐. 어차피 그 길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혜로운 사람이나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의 단체면 단체를 거기에 대비하여 하나의 배를 만들든가 차를 만들든가 해서 하나님이 미리 준비를 시킬 것이 아니냐. 그러한 것도 있을 거라구요. 저 앞 길에는 반드시 이런 것이 있기 때문에 너희들은 미리부터 거기에 대비하여 이러이러한 준비를 하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정신을 차려 하나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만약 무슨 차 같은 것을 만들어 그곳에 넣는다 해도 거기에 들어가서는 싸워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전부 다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넘어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자리를 초월해야 됩니다. 비약하여 그 자리를 극복해야 됩니다. 전부가, 조종하는 사람으로부터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모두 그 순간만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아폴로 11호가 달나라에 갔을 때 텔레비젼을 봤지요? 세명의 우주 비행사가 달에 첫발을 내디디려고 하는 그 순간에는 세계가 아마 역사이래로 처음으로 하나로 통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순간만은 하나님도 관심을 두고 내려 봤을 것이고 영계에 간 수억 영인들도, 영인들은 그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지만, 숨가쁘게 보면서 '야, 요녀석들 봐라' 이랬을 거예요. 그때는 통일이 되었을 거라구요. 뱃속에든 아기들까지도 보고 싶었을 거라구요. 안 그래요? 그때만은 하나됐을 거라구요, 그때만은.
달나라 가는 데도 이와 같이 전부가 하나가 됐다면 오늘날 타락한 인간 세상에서, 타락한 인간 세상에 떨어진 인간들 가운데 도약이니 초월이니 해 가지고 천국문을 열고 정문으로 들어간 한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심각하겠느냐? 그거 생각해 봤어요? 그건 아폴로 11호가 문제가 아닙니다.
타락한 그때서부터 수십만 년의 인류역사를 거쳐온 이 역사시대에 비로소 천국문으로 쫓겨났던 그 정문을 해치고 '하나님을 위해 옛날에는 내가 쫓겨났지만 오늘은 못 쫓겨가겠습니다. 나를 환영해 줄 하나님이 있소' 하며 척 정문을 두드리고 들어서는 그 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지금까지 타락한 인류역사 과정에 왔다갔던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마음을 졸이며 '야, 이녀석아, 내가 못 들어갔는데 네가 먼저 들어가?' 그러겠어요? '야야, 기다려라, 기다려라. 너 그만큼 왔으면 기다려라. 욕심 많은 내가 먼저 들어갈 거야' 그러겠어요? 그때는 욕심이고 무엇이고 없다구요. 자기를 잊어버리고 어서 들어가라, 어서 들어가라, 요 발자국반 발자국으로 말미암아 네가 고장날 수 있고 틀릴 수 있으니 어서 들어가라, 어서 들어가라 하는 거예요. 그런 때가 되면 될수록 휙 번개보다 더 빠르게 쓰윽 들어가기를 바란다구요.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마라톤 선수 같으면 마라톤 선수가 최후의 결승점에 도달하게 될 때에는 그저 일등과 이등이 한 발자국…. 일등으로 달리는 사람과 이등으로 달리는 사람의 거리가 한 발자국에서 반 발자국, 반 발자국에서 4분의 1, 4분의 1에서 8분의 1이렇게 점점 가까와지면 가까와질수록 전부가…. 그때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등이 일등을 따라붙는 숨가쁜 그 순간을 바라보고 있는데 늙은이가 '아이구, 이 뜨거운 땡볕에서…. 아이고 내가 이러다가는 병이 나지. 박수를 쳐서 되나, 소리를 쳐서 되나' 그래요? 이것 죽는 것 다 잊어버리고, 죽겠으면 죽고 말겠으면 말고, 으악 소리를 지르고 그런다구요. 늙은이들이 더한다구요.
그럴 때는 그냥 옆에서 야단들이라구요.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서로 다리를 밟고 무릎을 밟고 '아야, 야!' 이렇게 된다구요. '아야' 한번 하면 다 된다구요. 좋은 양복을 입고 나갔다가는 옆에 서 있는 낯모르는 여자가 막 짚어 가지고는 까딱 잘못하면 째진다는 거예요. 얼마나 거 재수 없어요? 여자라도 보기 좋은 여자라면 모르겠는데 보기 싫은 뚱뚱한 아줌마인데 말이예요. (웃음) '에이 여보, 이게 양복이야. 그래도 양복이 야!' 해도 그럴 때는 '에이 여보시오. 양복이고 뭣이고 이겨라!' 그러기 마련이예요. 안 그래요?
역사시대에 그러한 순간이 있다면 그럴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는 뭐 다 통일이예요. 아버지 통일, 할아버지 통일, 손자도 통일, 옛날 조상도 통일, 모든 후손도 통일, 그때는 하나님은?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에이 이놈아, 내가 있을 곳에 함부로 와서 되느냐? 걸려들었다' 그러겠어요? 그럴 수 있는 그때를 중심삼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한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그때에는 통일이라구요, 통일. 다시 말하면 전부가 기쁜 일에는 통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군대가 일선에 나가 싸움을 하다가 포위가 되든가, 또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슬픈 일이라도 벌어지면 전부가 하나되는 거라구요. 그러한 공동운명에 사로잡히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많은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여기에서는 도약을 해야 됩니다. 더 날아야 되겠습니다. 날으려면 바퀴를 달든가 날개가 달린 비행기를 타든가 해야 됩니다. 그런 놀음 하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저 녀석은 왜 저래, 저게 왜 그래? 그저 우리는 잘먹고 잘사는데 왜 저래? 남과 같이 아들딸 있으면 되고 남과 같이 잘먹고 잘살면 됐지, 저건 나다 말고 저렇게 야단이야? 이럽니다. 그래서 돌았다, 돌았다, 괜히 미쳤다, 미쳤다 그럽니다. 통일교회에 대해서 욕하는 사람과 한 패라구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 마음대로 가서는 안 됩니다. 지도자가 있어야 됩니다. 어디로 가야 제일 좋다 하는 그 길로 가야 합니다. 한 곳으로 밀렸다가는 전부 찢겨 죽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전부 봐 가지고 안전한 지대로 이끄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거 좋겠지요? 그렇게 될 때는 딱 그러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요? 길잡이가 있어야 됩니다. 왼쪽으로 갔다가는 옥살박살이다 이거예요.
그래서 도약대를 만들어 왔는데도 질서를 지키지 않기 때문에, 오불꼬불 도약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게밖에 놀 수 없는 입장이다 이거예요. 두 산이 가로막혀 있어서 반석에 응할래야 응할 수 없으니 그 사이를 거쳐가야 합니다. 저 산을 올라가야 하는데 한꺼번에 올라갈 수 없으니 그곳까지 가려면 이렇게 날아가야 합니다. 간단하다구요.
그러한 도약대를 만들어 놓았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너희가 아니 라도 올라간다. 길손은 가라'고 해야 한다구요. 여기에서 핸들을 쥐고 방향을 갖춰야 할 놀음을 할 때에는 얼마나 바쁘겠느냐?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그거 생각 안 해요? 앞에서는 왜애앵 자동차가 달려오고 뒤에서는 원수가 따라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위험하겠지만 차를 타는 게 낫습니다. 평지에서 그냥 달리는 것보다는 싹 날아서 간다 하면 얼마나 좋겠냐 이거예요. 그럴 때는 선이고 뭣이고 인간들이 불쌍한 무리가 되는 거예요. 그러나 이런 역사시대에 그러한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일을 수습할 수 있는 지도자가 땅 위에 있으면 좋겠는데 그것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하나님이 최후의 끝날에는 기필코 지도자를, 안내자를 보낼 것입니다. 만약 그런 놀음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게 역사를 쭉 관찰해 보게 될 때, 슬픈 역사로 흘러가는 종말의 시대에 있어서 슬픔만으로 귀결시킨다면, 그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요 무자비한 하나님입니다. 그렇지만 고맙게도 성경을 보면 그 길잡이로 오시는 분이 있다고 하니, 그 얼마나 고마운 분이냐.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이런 관점에서 역사에 대해 쭉 총평을 내리고 결론을 지어 깃발을 꽃아 놓은 그 사실을 두고 볼 때, 아무래도 하나님이 없다고 우리가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이 있는 곳을 안내할 수 있는 하나의 안내자를 보내 주실 것입니다. 그 안내자가 무엇이냐? 그가 재림주가 아니더냐.
그러면 그분이 와 가지고는 뭘할 것이냐? 임박한 자리에 찾아와서 '야, 가라!' 이렇게는 안 할 것입니다. 다리를 놓는 데 코치도 하고 모든 준비를 하고 그래야 인류를 사랑하는 하나님일 것이 아니겠느냐.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기독교가 믿는 것과 같이 재림주님은 악이 망할 순간에 벼락치면서 올 수 없는 분이 아니냐.
다리는 누가 놓느냐? 모르는 사람이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리를 놓을 수 있게끔 한 다음에 개인적인 다리, 가정적인 다리, 종족적인 다리, 민족적인 다리, 국가적인 다리, 세계적인 다리를 놓아 가는 것입니다. 먼저 갈 수 있는 그때가 되기 전에, 한꺼번에 왈카닥 올라갈 수 있는 때가 되기 전에 미리부터 옮겨 놓아 가지고 거둘 수 있게끔 훈련시키는 놀음까지 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 무리가 지상에 끝날이 되기 전에 있을 성싶다 하는 것이 우리들이 추리하는 논법에 의한 불가피한 결론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는 기수가 나와야 하고, 그 사명을 따라가는 무리가 나와야 되고, 그 사명을 따르는 나라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거 있을 것 같아요? 만약 그것이 없다면 인간은 절망과 불안한 상태에서 부딪쳐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만히 생각해 볼 때, 깨지면 어디가 깨질 것 같아요? 곤드레만드레 이마를 받혀서 깨져 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달리면서 담벼락에 부딪쳐 옥살박살이 될 사람도 있을 것이 아니냐. 그런데도 아이구 내 엄마야, 내 아빠야, 내 아들딸아 그렇게 찾겠어요? 그때는 절망의 한 순간도 기쁨의 한 순간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그것만을 붙들고 가야 합니다. 그때에는 전체의 나를 믿지 못하겠기 때문에, 그 절망권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절망 보따리를 지고 영원히 유리고객하는 영인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왕지사 죽을 바에는 기쁨을 가지고 죽어야 됩니다. 숨막히는 그 순간이 다가올 때 희망과 소망 가운데서, 내 생명이 끊어지더라도 소망을 갖고 기쁨을 추구하면서 죽어간 영은 영생의 세계에서 희망과 기쁨의 출발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망과 비애와 비탄 가운데 갔으면 그렇게 출발해 가지고 영원히 다른 세계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나오듯이 하나는 천국으로 통하는 것이요, 하나는 지옥으로 통할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가려 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길이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살이 가운데 그러한 훈련을 해라 하는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희생하면서도 감사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키려니 죽을 때까지 그 고통을 무릅쓰고 죽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겁니다. 희망을 품고 하나님의 크나큰 자비를 느끼면서 가는 사람은, 그런 새로운 출발이 될 때는 거기에서부터 향기를 풍길 수 있는…. 내가 육신을 쓰고 있는 동안에 비약과 초월을 못 했더라도 그런 자신의 새로운 생명의 귀결점을 가짐으로써 도약 아니면 초월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초월한다는 것은 다 넘어선 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뭘하자는 것이냐? 그런 때가 오기 전에 다 넘어버리자 이거예요. 줄을 놓든가 뭐 로프를 걸든가 하여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이런 바위산이 있으면 그 너머를 가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산이 무한히 계속되어 있는지 어떤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산을 올라만 가는 날에는 그때부터는 내려가더라도 평지와 통합니다. 그래 가지고 영원히 평지가 될 수 있다구요. 그 산만 넘는 날에는 희망의 세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가본 사람은 알기 때문에 그 길밖에 없을 때에는 전부 다 때려 몰 것입니다. 그래야 될 거라구요. 안내자가 틀림없이 그러한 사명을 가지고 왔다면 그 길로 가라고 할 것입니다.
어디로 가라고 하느냐? 절벽 밑으로 가라, 가 가지고는 올라가라, 기어 올라가라고 할 것입니다. 그곳을 올라갈 때에는 '아이구 내 남편이 있으니 둘이 올라가야 됩니다' 이래도 그렇게 돼요? 그때에는 대롱대롱 혼자 올라가야 됩니다. 끝까지 남편이 따라가겠다고 하면 그 부인이 뭐라고 하겠어요? '야, 이놈아' 이럴 겁니다.
만약 자기 아내가 끝까지 따라붙으면 남편이 뭐라고 하겠어요? '야, 이놈의 여자야!' 발길로 차고 이럴 것입니다. 그래도 정 따라가겠다고 하면 절반쯤 발아 죽여 놓는 것이 사랑이라구요. 안 그래요? 악착같이 달라붙으면 둘 다 죽는 거라구요. 바윗길은 열 사람이 달리게 안 되어 있습니다. 딱 한 사람만 달리게 되어 있다구요.
그런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할 거예요? '아이쿠, 내 나라는 어떡하고, 아이쿠 내 살림살이는 어떡해. 아이쿠 우리 집 복동이 복순이, 내 아들딸, 우리 남편은 어떻게 해' 그러겠어요? 그때는 눈을 딱 감고…. 땅을 내려 봤다가는 큰일납니다. 나는 요놈의 밧줄밖에 모른다, 내가 태어나기를 이것을 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사는 것은 이렇게 살고 죽는 것은 여기서 죽는다는 결심을 하지 않고는 못 올라가지 않느냐 이거예요. 여러분 그런 것을 한번 느껴봤어요? 신앙생활 하는 것이 딱 그렇다구요. 한번 생각해 봤어요? 자 그것 잡아라 할 때에 그 줄을 잡지 않고 '아이구, 아이구' 이렇게 하면 그건 밟혀 죽는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 패들은 비상한 재간이 있다고 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하면, 반대하겠으면 하고…. 내가 그렇게 살아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가 죽게 되면, 어머니 아버지는 '야 네 녀석이 올라갔구나! 야, 어서 밧줄 하나 내려라' 그럴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러한 것을 알게 되면 부모가 반대하더라도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가야 됩니다」 나라가 반대해도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가야 됩니다」세계가 반대하면? 「가야 됩니다」
세계가 반대하겠으면 반대하고 부모가 반대하겠으면 반대하고 자식이 반대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고 나는 간다, 세상아 잘 있거라, 나는 간다.(웃음)
대롱대롱 올라가는데 바람이 불면 좋겠나, 안 불면 좋겠나?「안 불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저 삼각산 뭐 무슨 바위? 우이동, 저 3년 전인가 2년전인가 줄을 타고 내려오다가 바람 때문에 열 몇 명인가 죽지 않았어요? 그렇지요? 욕심 많은 사람이라도 '에라 에라 이왕지사 기분이나 한번 좋게 실컷 바람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큰일난다구요. 절대 바람이 불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든지 올라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 놀음을 해야 된다구요. 그래 가지고 올라서는 날에는 문제가 달라진다는 거예요. 그러한 무엇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 올라가는 사람이 없어 가지고는 그곳까지 다리를 놓을 사람이 있을 것이냐? 그 다리를 놓겠어요? 하나님도 안 놓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해야 됩니다. 5퍼센트는 인간이 해야 된다는 거예요. 올라가는 사람은 누구예요? 누가 있어야 돼요, 그 누가 있어야 된다구요.
올라가 가지고는 어떻게 할 것이냐? 거기에 대한 대비책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이리 오면 안전하다, 거기는 절벽과 통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해야…. 올라가 보고 나서, 이곳은 평지와 통하는 길이기 때문에 이리 올라오라고, 이리 올라가면 제일 편한 길이라고 말이예요. 이쪽에서 보면 제일 편한 길 같은데…. 걸어가면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그길로 올라갔다가는 더 큰일난다는 거예요. 내려올 수도 없으니 말이예요.
상황을 판단해 보고 '틀림없이 이 길이 맞으니 이 길로 올라오라구, 오는 데는 혼자 오라구, 혼자. 애들이고 뭣이고 다 버리고 혼자 올라와라. 올라올 때는 눈을 똑바로 차고 와라'고 해야 합니다. 눈을 똑바로 찬다는 말이 이상하지만 말이예요. 그런 길이 있을 성싶다, 없을 성싶다?「있을 성싶다」(웃음)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을 기다려 왔지, 쉬울 것 같으면 수천 년이 뭐예요, 하룻저녁에 다 해버리지. 안 그래요?
이 과정에는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역사시대의 수많은 위인이나 성현들이 왔다가 전부 다 영계에 가서 한숨을 떨거덕 떨거덕 쉬면서, '아이쿠 내가 조금만 노력했더라면, 내가 오긴 이만큼 왔는데 조금만 뒤로 돌아갔더라면 난 이 길을 갔을 텐데…. 이러고 있다구요. 잘났다는 사람들 말이예요, 가만히 보면 '아이구 이게 딱 꼬투리가 잡혔으니…' .이런다구요.
영계도 사람에 따라 수천 급으로 되어 있다구요. '아이구, 내가 그 사람만큼이라도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다구요. 거기에 가까이 갔던 사람은 거기에 가까운 급에 가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한 발자국 바른쪽으로 디뎠으면 여기서부터 새로운 천국이 연결될 텐데 이놈의 왼발자국이 이렇게 됐으니, 요놈의 다리야, 요놈의 다리야!' 한다는 거예요. 자기가 자기의 다리를 저주한다구요.
자기 눈을 대할 때도 '야, 요놈의 왼 눈아, 네가 먼저 옆으로 보았기 때문에 내가 따라갔지. 야 요놈의 눈아' 하며 바른 눈이 참소한다구요. 또 왼 눈도 '에잇 이놈의 바른 눈아. 네가 먼저 바른 쪽을 볼 수 있는데 왜 나보다 먼저 보지 않고 나중에 봤어' 한다구요. 이렇게 전부 싸움이라구요.
지옥이 별것이냐? 별스러운 곳이냐? '아,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아, 이렇게 한 발자국만 바른쪽으로 옮겨 디뎠으면 좋았을 걸' 하는 곳이예요. '…걸' 하는 생각을 몇천 년을 두고 한다는 거예요. 그곳이 지옥입니다. 잠을 못 자는 사람을 보면 그렇잖아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면 하룻밤을 새우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바싹 바싹 피가 말라들어가는 고통 속에서 떼어 버릴래야 떼어 버릴 수 없는 생각들이 자꾸 몰려온다구요. 그런 생각이 더 빨리 연결되니 '아이고 죽었다' 이럴 때는 대가리로 땅 박치기를 하여 기절박살하게 되어 가지고 누워서 한잠 자고 싶은 마음까지 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나기도 잘 나야 되지만 죽기도 잘 죽어야 됩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는 사람은 아무리 험하더라도 직단 거리를 택한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최후의 인생길에서 '아, 나는 인생길에서 실패하고 간다' 하고 틀림없이 실패다 하는 생각이 콱 뒤집어 씌게 되면 그것으로 결정난다는 거예요. 그것이 일생에 제일 충격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그것이 모든 것의 주체가 되어 가지고 지배하는 거라구요.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선한 자리에서 간다!'고 하면, 그것이 전체의 주체가 되어 그것이 소망의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세상만사가 이러한 판국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고 기도하게 될 때, '하나님이여, 우리 통일교회를 제일 험한 산골짝으로 들이 몰더라도 그 길이 직단 거리가 되거든 그리 몰아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고 싶은 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의 소원입니다. 여러분 기분 좋아요, 나빠요?
세상에도 그런 일이 있다구요. 피난 길에 남들은 전부 커다란 신작로로 가는데, 한 녀석은 그저 뭐 산골짝으로 가는 거예요. 신작로로 간 사람들이 떠억 부산에 가 보니까 산골짝으로 간 사람이 두 달 전에 도착해 있는 것입니다. 일찍 와서 떠억 살림살이 할 집까지 사 놓았더라구요. 그럴 수도 있다구요. '그래 너 산을 따라가더니 어떻게 이리 빨리 왔어?' '어디를 넘긴 어디를 넘어? 그 산을 딱 넘고 보니까 이곳이 나오더라' 이러는 거예요. 도는 데는 천리길을 돌 수도 있다구요. 저 강원도 같은 데 가면, 서로 마주 건너다 보고 '여보 어디 가우?' '나 아무곳에 갑니다' '같이 갑시다' '예예' 대답은 했는데 가는 데는 몇십 리를 도는 길이 있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럴 수도 있다구요. 아는 사람은 아무리 험하더라도 빠른 길을 택한다 이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가 한국 종교계에서는 대표적일 거라구요. 남들은 잘사는 세상에 뭘하려고 새벽같이 여기까지 찾아오고, 네 시부터 세수하고 뭐…. 네 시라니? 여기까지 오려면 뭐 네 시 싸이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 준비해 가지고…. 먼 데서 오려면 택시를 잡아 타든가 뭐, 전차는 없지요? 한 시간 이상 걸리고 보니, 남 잘 자는 세상에 뭐 무슨 도인이라고….
옛날을 가만히 생각하면 말이예요…. 오는 사람들 중에는 통일교회 문선생인지 무엇인지 왜 하필이면 다른 때 이야기하지 왜 새벽 그때에만 이야기해 가지고…. 욕들을 많이 했을 거라구요. (웃음) 왜 하필 꼭 새벽 다섯 시에 금을 그어 놓고 그때만 이야기한다고 하는지 제기랄…. 누가 오래? 오기 싫으면 관두라고 야!(웃음) 앞으로는 그럴 거라구요. 한 시나 두 시쯤 이야기하면 어떻게 할 테야? 그때는 통행금지 시간이니까 할 수 없이 텔레비젼 장치를 해서라도…. 그렇게 하면 나쁘지 않을 거라구요. 안 그래요? 다 그런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일발의 세계정세를 볼 때, 이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이냐? 미국이 갈 수 있는 길을 알아요? 모른다구요. 또, 한국이 갈 수 있는 길을 알아요? 역시 모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내가 믿음직스러운 것은 이 통일교회 패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다 뜻대로 되겠지' (웃음) 그 뱃장을 가지고 있다구요. 마음속에 무슨 반석이 들어가 박혔는지 그런 무엇이 있다구요. '가만히 보니까 그저 뜻대로 되더라. 그렇기 때문에 뭐 다 좋게 되겠지!' 이런다구요. (웃음)
그러니 나쁘게 되더라도 좋게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우선 이익입니다. 왜? 나쁘게 되더라도 남보다 고생을 안 했으니까. (웃음) 그게 이익이라구요. 나쁘게 됐지만 오기 전까지는 잘먹고 잘산다 이거예요, 걱정을 안 하니까. 그런 면에서 볼 때는 우리 통일교인들은 좀 다르지 않느냐? 다르긴 다르지만 그 대신 이게 못살 지경입니다. 만나기만 하면 전부 다 코를 꿰어 가지고 끌고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코를 꿰어 '이리 와라 이리 와라, 이렇게 뒤로 돌아가라! 뒤로 돌아가는데 왜 이리 돌아, 바로 돌아!' 그런다구요. 아이고, 서울에서 살고 싶은 데 저 섬나라에 가라고 한다구요. 그렇게 돼 있는데 못간다고 할 수 있어요? 여기 아주머니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 가만히 보면 아주머니 자기 마음대로 입을 벌리고 왜 야단이예요? 뭐 그리운 임자네 남편을 보우?(웃음) 그런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우리 통일교회는 이상한 곳이라구요. 그렇다고 통일교회 문선생을 자랑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봐도 별스러운 패라구요. 별스러운 패인데, 세상이 아무리 야단하고, 나라가 아무리 야단하고, 세계가 아무리 야단하더라도, 아무리 어려운 것이 부딪쳐 오더라도 그것을 가려갈 수 있는 다리를 놓는 놀음을 여러분이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해야 됩니다」
세계의 무리가 대이동하는데, 지금 왱 하고 당장에 올 텐데 그들을 살려야 된다는 것을 안다면, 밤을 새워야 되겠어요, 안 새워야 되겠어요? 「새워야 됩니다」 아이고 남들 다 자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생해? 이렇게 자기를 생각하다가는 망합니다. 여러분이 그들을 생각한다면 밤이 없다구요. 그 다음엔? 낮이?「없다」 없다! 그 다음에는 밥 먹을 시간이? 「없다」 없다! 그 다음엔 쉴 시간이?「없다」 없다! 밥을 먹어도 일하면서 먹어야 되고 쉬어도 자기 몫을 하면서 쉬어야 됩니다. 자더라도 일하면서 자야 합니다. 그러라구요.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판에 가서 전부 내 것으로 소화시켜야 되겠다 이거예요. 밤도 내 것이요, 낮도 내 것이요, 쉬는 것도 내 것이 되도록 하여 모든 것을 여기에 집중시켜 가지고 이것을 어떻게 단축시키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의 소원이 뭐냐? 욕심꾸러기들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입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을 보라구요. 얼굴을 보면 욕심 바가지만 꽉 들이 박혀 있다구요. 욕심꾸러기들이 통일교인이라구요. 우리의 소원이 무엇이냐? 천주통일이지. 우리의 소원이 뭐야? 남북한 통일이지. 어떻게 통일이 될 것이냐? 하나님이 사랑하시사 통일되게 해주시니까 통일이 될 것이야? 하나님이 사랑하시사 통일되게 해주시니까 통일이 되지. 그 식이예요? 그 식이예요, 뭐예요? 5퍼센트 책임을 누가 해야 된다구요? 하나님이 해야 된다고 그랬어요, 하나님이? 누가 해야 된다구요?「인간이 해야 됩니다」 인간이라구, 인간!
인간이 누구입니까? 자기예요, 자기. 나입니다. 이 눈이 해야 되고, 이 코가 해야 되고, 이 입이 해야 되고, 이 귀가 해야 되고 이 손발이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내 눈이 바빠야 되고, 내 코가 바빠야 되고, 내 귀가 바빠야 되고, 내 손발이 바빠야 됩니다. 야, 이게 기가 막힌 놀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게 좋아요? 그거 할거예요, 안 할 거예요?「하겠습니다」
만일에 알고도 안 했다가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심판 제 1호 법정에서 공판받을지어다! '이놈아, 너 하나를 죽여 세계를 살려야 하는데 왜 내하라는 대로 안 했어? 요놈아, 통일교회를 하나 망하게 해서 세계를 살려야 하는데 왜 안했어? 할 때는 선생님이 '어-' 이렇게 당당하겠어요? 선생님 꼴이 어떻게 되겠어요? 면목이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러니까 싫어도 해야 되겠고, 좋아도 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늙어서도 해야 되겠고 젊어서도 해야 되겠어요. 시집가려고 문에 들어서다 말고 다 차버리고 뒤로 돌아서서라도 해야 되겠다구요.
그만하면 잘 알겠지요?「예」 죽어가는 길에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하겠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죽을 길도 연장해 줍니다. 틀림없이 그렇다구요. 내가 죽는 것은 나랏님이 죽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구요. 세계를 위해서 그럴 때에는 하나님이 생명도 연장해 주는 거라구요.
어떠한 회사든지 쓸데없는 사람은 처리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회사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처리는커녕 길러 가지고 필요할 때 더 필요하게끔 하려고 합니다. 그렇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구요. 그 사람이 죽음으로써 나라가 망하고 세계가 망하게 될 때에는 죽을 자리에 내세우겠어요? 하나님은 계산이 빠르겠어요, 느리겠어요? 빠르신 하나님도 할수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불경한 말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불경한 말이 아닙니다. 공대하는 말이라구요.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구요.
자 여러분,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통일교회 교인들을 편안하게 잘먹고 잘살게 해주면 좋겠지요? 아니야! 그것은 평지에 가서는 그럴 수 있지만 이 반석 밑에서는…. '야, 어서 살아라, 어서 살아라' 그러겠어요? 어서 살라고 그래야 되겠어요? 그게 뭐 별난 보따리라구…. 댕강 댕강 때려부숴라 이거예요.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 그것은 국민학생, 유치원 학생에게 물어 보더라도 다 그렇게 대답할 거예요. 그래야 된다구 말이예요. 그런 일이 있을 것이다 이거예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통일교회 문선생을 따라와서 손해 많이 봤어요? 손해 봤어요. 이익을 봤어요?「이익 봤습니다」 무슨 이익이예요?(웃음) 이밥을 먹었었는데 보리밥을 먹었지 뭐. 따뜻한 온돌방에서 자다가 찬방에서 잤지 뭐. 또 옛날에는 동네에서 가려 가면서 인사를 받을 줄 알다가 인사받기는커녕, 인사하기에 바쁜 생활이었지 뭐. 전부가 반대라구요. 고향산천이 좋다고 고향을 사랑하며 고향에서 살겠다고 했다가 모두들 타향살이 했지 뭐. 나도 타향살이라구요. 그런데 이익은 무슨 이익이예요? 척 돌아와 보니 남은 것은 빈손이요, 얼굴은 빈털털이요, 모양은 거지 꼴이다 이거예요. 뭐 그래도 이익이예요? 우리 까놓고 이야기하자구요. 내가 모르는 바가 아니예요. 다 안다구요.
거지 중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잘못하여 거지가 된 사람이 있고, 나라를 위해 일하다가 거지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거지가 된 사람이 옛날에는 무엇이었어요? 옛날에 뭐 그런 거지 있었지요? 암행어사 같은 것 말이예요. 암행어사 하는데 양반 이나 대감 나리처럼 큰 갓을 쓰고 '에 행차다' 그러고 다녔나요? 거지 중의 상거지지요? 알겠어요?
거지도 두 종류인데 자기 때문에 거지가 된 것은 절망이요, 공적인 일 때문에 거지가 되면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체의 대행자라구요, 대행자. 이렇게 하게 되면 자기의 생명도 쓱 돌아가고 이런다구요. 전체를 대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 있다구요.
우리 통일교회 때문에 거지가 되었다면, 나는 그런 거지는 싫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거지가 좋아요?「예」통일교회 때문에 거지가 된 것이 좋아요? 「좋습니다」 이 녀석아 그러면 안 돼! 그것은 통일교회 이상의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안 갖는 거라구요.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보다 큰 것,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해서…. 통일교회의 공적인 것은…. 통일교회만을 위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공적인 것이 아니라구요. 통일교회의 공적인 일은 나라를 위하는 것이요, 세계를 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종교가 그 사명을 모르기 때문에 망하는 거라구요. 자기의 나라만을 위하고 자기의 민족만을 위하는 종교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러니까 그 종교시대를 넘어 세계시대로 넘어가는 종교가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어받지 못하니, 세계적 종교시대에 나라를 찾는 종교는 자연히 망하게 마련이라구요. 그런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개인복귀에서 가정복귀, 가정복귀에서 종족복귀, 종족복귀에서 민족복귀, 민족복귀에서 국가복귀, 국가복귀에서 세계복귀, 세계복귀에서 천주복귀, 천주복귀에서 하나님복귀, 하나님복귀에서 하나님의 사랑복귀로 넘어갑니다. 망할래야 망할 수 없게끔 뒷장이 착착 잘 맞게 되어 있습니다. (웃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별수없다구요.
종족을 구할 수 있는 시대에 있어서는 종족을 위할 수 알게끔 축복을 해주니 어느 종족이든지 종족을 대표한 종교는 흥한다 이거예요. 종족을 중심한 종교시대를 지나서 국가를 세워야 할 종교시대로 발전해 나왔기 때문에, 국가만을 위할 수 있는 종교는 흥했지만 지금은 그 운세권내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국가적으로 흥한 그 기반을 통해서 세계로 흥해 가야 할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에, 유대교가 세계를 위하는 종교가 돼 주기를 바랐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나라(이스라엘 민족)만 생각 하다가 세계적 종교의 이름을 갖고 오는 예수님을 쫓아 버렸어요, 안 쫓아 버렸어요?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해서 오는 줄 알았다구요. 요 도적놈들! 예수님은 세계적인 종교의 이름으로 만민을 구원하고 만민을 해방하기 위해서 오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만을 위해서 오는 메시아가 아니고는 메시아가 아니다. 모세 오경에 절대 복종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다 원수다' 이래 가지고 구약을 중심삼고 예수를 원수시하지 않았어요? 모세 오경이 뭐예요, 모세 오경이? 모세 오경을 못 지키더라도 세계 인간들이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다면 모세 오경을 집어던지고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도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이건 틀림없다구요.
역사를 두고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국가적 인물이 되겠느냐, 세계적 인물이 되겠느냐 묻게 될 때, '아 나는 세계적 인물이 되겠습니다' 할 거라구요. 하나님에게 '당신은 세계적인 하나님이 되겠소, 대한민국을 위한 국가적인 하나님이 되겠소' 하고 묻는다면, '야 이 녀석아, 너는 나를 모른다' 하면서 발길로 차 버릴 거예요.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아이구, 하나님, 내 아들딸…' 이럴 거예요. 자기 아들딸을 위해서 기도하면 그 기도는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자기 아들딸을 위해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면 그 아들딸이 축복받은 뒤에 그 아들딸 앞에 '너는 나와 같이 아들딸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고 가르쳐 줘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아들딸은 딱 망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내려 그 아들딸을 보내 준 것은 아들딸을 사랑하라고 보내 주었지만, 거기에는 내 뜻을 이룸과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많은 정성을 들여서 아들딸을 낳았으면 그 아들딸을 고이 길러서 내 대신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아들딸이 되기를 바라서 보냈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에게 나라를 위해서 갈 수 있게끔 교육하지 못하면 그 아들딸은 중간에 죽어 버리든가 데려간다구요. 요렇게 되어 있다구요. 알겠어요?
한 사람도 그렇거든 통일교회에 있어서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살자고 하면 그것은 자기 아들딸을 위해서 살자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를 세운 목적은 통일교회 자체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나에게 어떠한 명령을 하는 것은 명령을 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명령의 대상, 즉 목적을 위해서 명령한 것이 아니냐. 통일교회를 세운 것은 통일교회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통일교회 대상적 목적을 위해서 세운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그 대상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은 좋아한다는 거라구요.
'그 녀석 보기에는 시골뜨기요 형편없던 녀석인데 써 보니까 쓸만하다구. 서울에 와서도 왕초 노릇 하고 아 거 쓸만하다구. 나라에서도 쓸만하다구' 이렇게 되면 농민 출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구요. 안 그래요? 마찬가지 이치라구요.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구 요. 그러길 바라요, 안 그러길 바라요? 어때요? '나는 통일교회를 위해서 있지' 이래요? 그러길 바라요, 안 그러길 바라요?「안 그러길 바랍니다」대답은 똑똑히 하는 걸 보니까 알아듣기는 알아들었구만.
우리 통일교회는 자기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통일 교회 신앙방식과 기성교회 신앙방식 둘을 놓고 볼 때, '너 왜 예수 믿니?'할 때 내가 천국가기 위해서 믿는다고 하는 사람과, 우리는 한국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있을 때 하나님이 어떠한 사람을 좋아하겠느냐? 대답해 보라구요. 나라를 구하겠다고 하는 통일교회를 좋아하실 것입니다.
'아이고, 우리는 정통이다. 통일교회는 이단이니 가지 마라!' 하는데 '이놈의 자식들아, 말은 좋지만 너희가 우리 통일교회를 욕하고 미워하는 이상 나라를 위한다'고 할 때에는 망하지 않는다구요. 알겠어요?
통일교회를 치지만 통일교회 교인 이상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할 때는 그 종파는 망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러한 종단은 망하지 않지만, 와라! 타 종단은 우리 교파로 와라! 딴 교파에는 가지 마라. 나라야 망하겠으면 망하고 우리 교회만 있으면…'그건 망하는 거라구요. (웃음) 그건 단숨에 망한다구요.
내가 지금까지 어려운 일도 많이 당했습니다. 보따리 싸들고 인간살이 그만두자 할 수 있는 그런 경지도 많이 거쳐왔지만, 그때 내가 죽는 것은 무엇 때문에 죽느냐?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을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니 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보다는 남을 붙들고 죽으려고 했지, 나를 붙들고 죽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알겠어요?
예수님도 그랬다구요. 하나님 앞에 가는데 누구를 붙들고 죽느냐! 예수님보다 큰 것을 붙들고 죽어야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한 것입니다. 누구를 붙들었어요?「하나님을…」 이게 신기하다구요. 나는 죽더라도 아버지를 붙들고 죽는다, 내가 망하더라도 아버지를 붙들고 망한다 이랬습니다. 흥하면 나를 붙들고 흥해요? 그것은 망합니다. 흥하더라도 아버지를 붙들고 흥해야 되고, 망하더라도 아버지를 붙들고 망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서 있는 사람도 흥하더라도 아버지를 붙들고 흥하려고 하고 망하더라도 아버지를 붙들고 망하자 이럽니다. 이렇게 될 때는 망할 자리에 처하더라도 망하지 않더라 그거예요. 배고픈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옛날에 엘리야에게는 까마귀를 시켜서 떡을 날라 주고 그랬지만, 문선생이 배고프게 될 때는 영계에서 호출 명령을 내려 감옥의 죄수들을 시켜 가지고 먹을 것을 갖다 주더라 이거예요.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구요.
석양길에 나그네의 신세가 되어 기진맥진해 가지고 어떤 동네를 찾아 들어가면, 벌써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무때 이러한 청년이 올 테니 아침부터 종일 잔치상을 준비해서 잘 모셔 드려라 해 가지고, 잔치상도 받아 먹게 해주더라구요. 그런 일이 있다구요. 그러한 뭐가 있기 때문에 세상이 뒤집어지든지, 누가 칼침을 놓든 뭐 하든 누가 죽고 살든지 지금까지 이 놀음 하며 버티고 있지, 그런 재미도 없어 가지고 무슨 재미로 살겠어요?
김삿갓은 말이예요. 거 무슨 뭐 서산 넘어 하는 김삿갓 노래도 있잖아요? 석양이 지는 무슨 마루에 잠을 자는 김삿갓 노래와 같이 그런 맛이 있다구요. 그 맛이 있기 때문에 이런 놀음을 하지, 무엇을 바라고 살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
이제는 아무리 봐도 끝날이 가까이 왔지요? 우리 원리를 두고 보면 점점 숨막힐 때가 왔다구요. 이제는 구멍은 한 구멍밖에 없다구요. 자아, 이놈의 것, 이 구멍을 떼 버려야 되는데 날아가 가지고는…. 그놈의 바람 벽이 말이예요. 한 5미터쯤 된다구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여기서 이렇게 날라서 가다가는 들이 까이는 거라구요. 그럴 때는 그걸 걷어내야 합니다. 쉬익 무사통과, 거 그러면 좋겠지요? 그러려면 여기서부터 올라가야 됩니다. 올라가서 쉬익 큰 놈을 따라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좋겠지요? 어차피 그런 구멍이 있어야 합니다. 그 구멍으로 나가야 되겠다구요.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하고 사탄하고, 제일 능란한 분들이 계약을 하는 것입니다.
요즘 뭐 세계의 정상들 뭐 해 가지고 닉슨이 뭐 어떻고, 모택동이 뭐 어떻고…. 야 이 녀석들아 시시하다 이거야. 무슨 콧수염, 코시긴이 뭐 어떻고…. (웃음) 이런 걸 볼 때, 뭐 정상이니 하는데 정상일 게 뭐야? 하상도 못 된다 이놈들아! 너희들이 하면 뭘할 거야? 생각 못한다구요.
자, 그런 한때 세상 문을 타 가지고, 뭐 주권자가 돼 가지고 큰소리치는 그런 패들하고…. 자, 하나님과 사탄이 그래도 정상이지요? (웃음) 사탄은 악의 정상이요, 하나님은 선의 정상입니다. 이놈들이, 이놈들이라니? (폭소) 사탄편에서 보면 이놈들이지 뭐? 거 뭐 이놈들이라고 하면 실감이라도 나는데 이분이라고 하겠어요? 이분들이라고 하겠어요? (웃음) 그럴 때는 별수없다구, 하나님도 그때는 눈 꼭 감아야지 뭐. (웃음)
자, 이 두 거두가 회의를 하는데, 우리 인간 세상에 능란한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데,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어야 되느냐? 그는 최고의 인물이어야 하기 때문에 이래이래야 된다고 말할 때, '자 여기에 천리 바람 벽이 있어서 이곳(구멍)에서 저곳(구멍)까지 가는데 이건 그 길이 꼬불딱 꼬불딱하게 생겼으니 박자를 맞춰서 쭈욱 뛰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소'.이렇게 둘이 공론을 벌일 수도 있다구요. 안 그래요? 그런 공론도 벌일 성싶다구요.
그럴 때 하나님은 '여보게 여보게 사탄 대왕! 그거 그럴 수 있겠나? 그거 그럴 수 있는지 한번 해보면 좋겠는데 그럴 수 있소? 그건 임자도 그렇게 하지 못할 텐데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느냐' 하고 하나님이 뚱땅 골통을 한번 탕 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게 된다구요. 그 선의 대왕님 하나님이 가라사대 '그 말이 응당 맞소' 해 가지고 그 사탄이 '꼬불딱꼬불딱한 것을 둘로 하지요. 두 고개 쯤 못 넘겠소' 하면, 하나님이 '여보게 여보게, 거 두 고개로 하지 말고 직선으로 하세' 이럴 거라구요.
하나님과 사탄이 서로 경쟁하여 한 쪽에서 양보해서 최후에 선한 편에서 얻은 결정 사항이 무엇이냐 하면 직선 굴일 것입니다. 직선 굴을 만드는 것이 원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장대로 채 가지고 끌어낸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직선 굴을 뚫자 하는 결정이라구요. 꼬불딱꼬불딱하게 되어 있어도 되지만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니까….' 그래도 역사이래 일등 챔피언을 뽑아야 할 텐데 꼬불딱꼬불딱하게 가야 일등이지, 이거 뭐 직선으로 가서는 안 되겠다'고 해도 가당한 말이라구요.
그렇지만 사람 편에서 선하신 마음을 가진 그 대표자이기 때문에 '그건 그렇게 하지 말고 직선 굴을 뚫세' 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럽시다' 하고 공동 결의를 해 가지고 '야! 만민들아! 후대에 오는 사람들은 직선 구멍으로 상처를 입지 않고 잘 통과해라' 이렇게 선포, 공포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하는 사람마다 '아이쿠 아이쿠, 그것을 어떻게 다해? 그럴 수가 있나? 그곳은 산 위야! 하나님이 미쳤지. 사탄도 돌았지' 이럴 것입니다.
그러한 조약을 세웠으면 하나님이 명령을 내렸으니까 그 명령을 지켜야 됩니다. 하는데 언제까지 하느냐? 한 시대 혹은 두 시대를 거쳐 못해도 몇 년쯤은 걸려야지요. 자그만치 얼마나 해야 되느냐? 한 십년쯤, 한백년쯤, 한 천년쯤은 해봐야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그 가운데 잘난 사람도 실패하고, 못난 사람도 실패하고, 실패한 누그러기 사태가 나서 얼마만큼 쌓이게 될 때, '야 야 사탄아, 우리가 결의한 것은 너무 못 쓰겠다' 이래 가지고 삭감하는 제의를 하나님이 할 수? 할 수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서야 하나님의 위신이 서지, 누구를 시켜 보지도 않고 '아 이거 안 된다'고 할 수가 있어요? 하나님은 어떠한 계획을 세워서 인류역사의 어떠한 종단 앞에 명령을 해 가지고 많은 희생을 시켜 가지고 이것이 이런 방향으로는 안 되니까 이것을 다른 방향으로 이렇게 만들자, 그 각도대로는 힘드니까 이것을 45도 방향으로 돌리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경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또 그것도 안 되니까, 많은 인간들이 그 길 가려고 하다 희생되니까 이것을 깎아서 만들자, 그건 너무 높다, 그러니까 좀 낮춰서 하자, 그 직선을 통해서 발발 기어 나가게 하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사탄은 인류를 최고로 망하게 하려 하고 하나님은 최고로 우리를 위해서 사탄과 타협해 가지고…. 인간들이 가는 그 길 앞에 참소조건을 제시하여 그 길을 갈 수 없도록 하는 사탄 앞에 하나님의 주장만 내세울 수 있게끔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발발 기어 나가게 하자 그런 거라구요. 그러니 그때까지는 한꺼번에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오랜 동안 참아 나오면서 많은 희생을 치러 가지고도 안 되니까, 그럴 수 있는 사람을 바랐던 것인데,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게 하기 위해서 이것을 점점점점 쉽게 쉽게 해 가지고 이런 길을 잘 가려 가게 해야 하는데, 그때까지는 많은 역사가 필요할 것이 아니냐. 알겠어요?
이렇게 볼 때, 그 두 거두 정상들이 하는 놀음을 두고 보면, 6천년 인류역사는 너무나 짧다고 본다구요. 그것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조정해서 이루어졌던 자리냐 이거예요. 응, 야 이 자식아 하면서 얼마나 조정했겠어요? 몇천 번 몇만 번을 토의해 가지고 내려온 역사가 6천년의 인류역사 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나 짧다고 본다구요. 여러분은 길다고 봅니까?
이런 사정들은 모르고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는데 세계는 왜 이렇게 만들어 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오늘 또 내가 여러분에게 얘기할 거예요. 오늘은 열 시에 모이지?「아홉 시입니다」 아홉 시에 모여요? 임자네들은 아홉 시에 모이지만 나는 열 시에 간다구. (웃음) 오늘 제목이 '오고 가는 인생길'인데 이렇게 이야기하다가는 한정이 없다 구요. 그러니까 다 잘라 버리고…. 어느 정도 알았지요?「예」 결론을 안 지어도 잘 알 거라구요. 우리 지혜로운 통일교회 패들 얼마나 잘 알아요? (웃음)
숨막히는 이 세계를 바라볼 때, 공산주의 세계를 가지고도 못 가고, 민주 세계를 가지고도 못 가고…. 한국 같은 데서는 무슨 뭐 토착화, 뭐 한국적 민주주의 이름을 부르짖고 나오는데 그거 좋다구요. 이게 어디로 갈 것이냐? 궁금하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출발은 잘 했는지 모르지만 목적은 어디일 것이냐? 사람으로 출발하여 사람으로 종결되었다간…. 대한민국으로 출발하여 세계로 종결을 맺으면 모르지만, 대한민국으로 출발했다가 대한민국으로 끝나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세계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망하는 운세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오늘날 섭리관적인 결론입니다. 알겠어요? 대한민국으로 출발해서 어디로? 「세계로」 세계로 끝내지 않고는 망한다 이거예요. 그럴 수 있는 아량을 지닌 민족, 대한민국이냐? 그럴 수 있는 사상과 배포를 가졌느냐? 이북에서 오라 하게 되면 그들과 씨름을 해 가지고도 이기고, 말을 해 가지고도 이기고, 잡혀 있어도 이기고, 풀어진 데서도 이겨야 된다 이거예요. 이럴 수 있게 될 때는 그것은 뭐 세계적 사건이 됩니다.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보는 관점에 있어서는 대한민국으로 출발해 가지고 대한민국으로 끝내기를 바라지 않고, 대한민국으로 출발해 가자고 세계로 끝내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러기를 바라고,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대한민국의 갈 길을 위해서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놓겠다는 것입니다. 그거 나쁜 생각이예요, 좋은 생각이예요?「좋은생각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벼랑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 이거, 올라가든가 줄을 타든가 뭘 해야 된다구요. 지금까지 우리가 한 것은…. 이것을 올라가려면 다리를 놓아야 하는데 다리를 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나무 기둥을 박아야 되겠어요, 쇠기둥을 박아야 되겠어요?「쇠기둥이요」무슨 쇠기둥, 물렁물렁한 쇠기둥을 박아요, 강철 쇠기둥을 박아야 되겠어 요? 세상에서 제일 강한 강철 쇠기둥을 박아야 됩니다.
그럼, 쇠기둥이 뭐예요? 진짜 쇠기둥을 박아요? 그 쇠기둥이 뭐냐 하면…. 사람을 내세워 여기다 박고, 이 사람을 데려다가 이렇게 박아 가지고 쇠기둥을 만드는 것입니다. 무슨 기둥이라야 되느냐? 사람 기둥으로서 참된 사람 기둥을 박아야 한다 말이예요. 참된 길로 참되게 이것이 딴딴해져 가지고 밀고 쳐야지 그렇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강력한 사상을 가지고 버티고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위에다 세계적인 개인을 데려다가 눌러 놓더라도, 물을 아무리 폭포같이 퍼붓더라도…. 바케쓰에 물을 확 붓게 되면 그 물은 내려가고 꼭대기는 시원하지요? 그와 마찬가지라구요. 이 세계 인류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여기 통일교회 교인들 앞에 갖다 놓으면 통일교회 교인들이 쓰윽 도둑질 해도 누가 알 게 뭐야? 그럴지도 모른다구요. 그래요? 그래서 통일교회 사상은 개인 위주가 아니라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그런 사상이예요. 그렇지? 여기에 있는 우리 아가씨들도 그래요, 안 그래요?
나라가 몽땅 통일교회를 반대하더라도 통일교회는 크면 컸지 망하지 않습니다. 세계가 몽땅 통일교회를 반대하더라도 세계가 망하면 망했지, 통일교회는 안 망합니다. 여러분, 그러면 좋겠지요? 나는 통일교회 책임자로서 어디든지 다 가 봤어요, 다 가 봤다구요. 누구나 다 그렇게 해보라는 거예요. 그 대신, 그럴 수 있는 대신 제발 후회하면 안 된다구요. 그렇지요? 통일교회 뭣이라 하나? 에이구 질기고 그 다음엔 보기가 딱딱하고 그 다음엔? 그 다음에는 뭐야? 끈적끈적 하게 질기다 이거예요. 그러면 강하다 이거예요. 그래야 되겠다는 거예요.
여호수아와 갈렙을 내세운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 이스라엘 나라를 이끌어 나오면서 고생을 했습니다. 가나안을 복귀하겠다고 그렇게 천신만고 하던 모세까지 결국은 느보산에서 최후의 막을 내리고 죽었지 않았느냐.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7족을 점령하여 끝내 가나안땅을 복귀시켜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대신한 그렇게 훌륭한 자기의 조상이 죽었는데도 그 후손이 따라 나오지 못하니, 조상의 이상을 이어가야 할 것인데 그러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은 여호수아 갈렙에게 무슨 말을 했느냐? 강하고 담대하라! 철석같이 강하고 담대하라! 권고한 그것이 강하고 담대하라는 거예요. 강한 것만큼 강한 이상의 사랑으로서 대해 주겠다, 담대한 만큼 담대한 이상으로 대해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는 데 있어서 자기 어머니 아버지에게 '어머니 아버지 강해집시다. 어머니 아버지, 담대합시다' 그래요? 누구 중심삼고 그래야 되느냐?
앞으로 이북에 전도 나가야 할 사람은 누구일 것이냐? 우리의 젊은 딸들입니다. 김일성을 대해 전도할 사람은 누구일 것이냐? 우리 아가씨들 이다 이겁니다. 왜? 김일성은 사탄세계의 천사장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천사장에게 끌려들어가 가지고 넘어간 것이 해와이기 때문입니다. 탕감복귀 원칙에 있어서 그들을 굴복시켜야 할 대표자는 누구예요? 여자예요, 남자예요?「여자입니다」여자!
그렇기 때문에 한 자, 두 자, 세 자, 네 자, 다섯 자, 여섯 자…. (웃음) 그러므로 여 자를 망친 것은 여자더라, 6수를 망친 것은 여자더라, 6수를 복귀 완성하지 않으면 남자들이 7수, 안식일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여 자를 망쳤기 때문에 사탄을 굴복시켜야 되는 것은 여자더라. 그렇게 말하니 그럴 것 같지요. (웃음) 그렇게 돼 있다구요 .
자, 이제 전도 나갈 거예요? 나갈 거예요, 안 나갈 거예요?「나가겠습니다」 또, 여자가 나가겠다고 하면 남자들은? 구경해야지? (웃음) 어디 요놈의 천사장 이놈아! 여자, 해와한테 맞고 싶으냐 이 자식아!(웃음) 여자들이 모두 그렇게 나서면, 여자보다도 남자가 갈 수 없다?「있다」갈 수 있다! 자, 그러면 여자를 보낼 거야, 우리 천사장이 갈 거야? 「 같이 가야 됩니다」 그런 얘기 하니까 기분 나쁘지만 별수 없다구요. 통일교회 원리대로 문선생이 재 가지고 딱 그렇게 되는 이야기를 하니까 할 수 없다구.
그렇기 때문에 이북 개척 운동도 여자를 보내서 해야 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젊은 남자들이 가게 되면 대번에 딱지 붙어 가지고 처단을 당하지만 여자들이 가게 되면, 여자들 중에도 미인들이 가게 되면 '아 이거 봐라, 남한에도 이런 미인들이 있었나' 올려다 봐도 좋고, 내려다 봐도 좋고, (웃음) 집에 들어가는 것까지 따라가서 보고 싶어하니 죽을 곳에서 안 죽을 수도 없지 않다, (웃음)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자, 그만 하고 이젠 다른 곳으로 흘러간 말을 수습해 가자구요.
인생이 가는 길은 원인으로부터 과정을 거쳐 결과의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좋은 것은 영원히 여러분의 일생에 남아 지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일생에 남아지는 것은 무엇이냐? 좋고 기쁘고 어려웠던 일입니다. 역사시대에 남아지는 것도 좋고 기쁘고 어려웠던 일입니다.
그러면 지금의 이때는 어떤 때이냐?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고 쉬울 수도 있는 때입니다. 전부가 한꺼번에 우리의 목전에 세계적으로 부딪혀 오는 때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소화시키려면, 이것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기쁠 수 있는 것만을 가지고 어려울 수 있는 것을 소화시키고, 슬플 수 있는 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그런 세계를 이어받을 사람이 나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러니 기쁨을 주관하는 그러한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그 사람들이 비참하고 슬픈 길을 각오하면서 끝까지 다 갔다고 할 때는, 그들이 가는 길은 기쁨만이 남을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한 때가 왔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미래의 기쁨을 추구함과 동시에, 현실의 개척자로서 의분심을 가지고 오늘의 슬픔을 소화시키자는 것입니다. 나라의 슬픔이 있으면 그 슬픔의 뒤로 물러날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극복하고 넘어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또한, 나라의 어려움이 있으면 그 어려움을 대해 도망가거나 회피해 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정면적으로 부딪쳐서 그 어려움을 내가 책임지고 가겠다고 해야 됩니다. 가는 데는 울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의젓하게 당당하게 희망 가운데 가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렇게 책임해 가지고 그 경지를 극복하는 날에는, 그 사람에게는 그 슬펐던 일이 도리어 더 큰 기쁨을 자극시킬 수 있을 것이고, 어려웠던 일이 도리어 기쁨의 터전이 되고 자랑의 조건이 될 것이 아니냐. 그럴 수 있는 사람만이 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고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이상의 관문이 개문될 것이 아니냐. 그것은 틀림없는 결론입니다.
오늘날 오고 가는 인생길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기쁨의 소원을 가지고 슬픔과 고통을 책임지려는 사람이 있었더냐? 없었다 이거예요. 단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 가지고 하나님의 이상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슬픔과 인류의 슬픔을 책임지려고 했지만 그 책임을 완수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냐.
시대적인 이 종말기에 오늘날 기독교를 대표한 우리 통일교회가 그런 입장에 서서, 원대하고 높은 희망을 가지고, 미래의 소망을 위한 현실적 소망의 실천 무대로 삼아 여기에 부딪쳐 오는 전부가 슬픔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소망 앞에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고통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고통으로 열매맺을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기쁨과 영광의 자극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들 이라면 망해들어가는 이 시대상을 틀림없이 책임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망하는 이 세계를 연장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뜻을 이룰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나옴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들은 슬픈 세상을 등지고서 그 슬픈 세상을 올라서고, 고통을 이기고 선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비약할 수 있는 다리라도 놓을 수 있고, 길을 닦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에게 제일 절박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과 상봉하는 것이 역사의 종말시대의 제일 큰 요구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요구의 대상, 요구의 실체가 되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들로 말미암아 역사의 슬픔은 해소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로 말미암아 역사의 고통은 해소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역사시대에 슬픔과 고통을 겪어온 모든 인간은 제1차 부활의 터전으로서 그 소망의 상대로 우리를 맞아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러한 사람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들로 말미암아 지상에서 재차 재림부활 역사를 출발시켜서 영계에 있는 슬픈 영인들을 해방시킬 것이 아니겠느냐.
그뿐만이 아니라, 지상에서 오늘날 도탄 가운데, 환난 가운데 빠져 미래의 소망을 갖지 못한 이들 앞에, 제2의 소망의 터전을 갖추게 하여 하나님이 원하는 세계를 다시 맡게 할 수 있을 것이 아니냐. 그 외에는 길이 없다고 보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우리들이 그러한 입장에 서서 아무리 어려움이 오더라도 이것을 극복해 나가야 됩니다. 개인적인 어려움이 부딪쳐 올 것이고, 가정적인 어려움이 부딪쳐 올 것입니다. 국가적인 어려움이 부딪쳐 올 것이고 세계적인 어려움이 부딪쳐 올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총합한 어려움이 우리에게 부딪쳐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의 어려움까지도 우리에게 맡기려고 우리 앞에 웃는 시험까지 할 수 있는 때가 있을지라도, 우리는 일편단심, 뜻을 위하고 가야 할 목적을 위해서는 불변의 신념을 가지고 최후까지, 낙망이 아닌 희망을 갖고 가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에는 그러한 무리를 하나님도 필요로 할 것이고, 인간도 필요로 할 것이며 역사시대에 왔다 갔던 수많은 영인들도 필요로 할 것이 아니겠느냐.
이러한 책임을 짊어진 하나의 생애 노정, 하나의 뜻의 길을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의 종교, 그 하나의 종교를 중심삼고 새로운 문화 창건의 역사를 편성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 아니겠느냐. 그것이 인류의 소원이요, 만민이 바라는 소원이요 희망이 아니겠느냐. 이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다운 인생이 가야 할 길입니다. 지금까지 오고갔던 모든 인생들은 이것을 이루기를 바랐고, 이것을 이루어 놓기 위해서 수고하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총결산지어야 할 책임을 짊어진 무리는 누구냐?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통일교회 여러분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바로 여러분에게 말하는 선생님의 요구요 희망인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 길을 가기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 선 예수님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하는 요 기준에 살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공적인 입장에 서서 망하기를 바라고 나서는 날에는 우리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세계를 위해서 망하더라도 삼천만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단행하겠다고 하며 나서는 날에는 우리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습니다. 이북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수적인 면에서 우리를 못 당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고 가는 인생길을 새로이 편성하고 새로이 가려 줘야 할 사명이 통일교회에 있다는 것입니다. 비약해야 되고 도약해야 될 이 시점에서 이것을 못 해 가지고 비약을 한들 뭘할 것이며, 도약을 한들 뭘할 것이냐? 이것은 슬픔을 대신 소화시키고 어려움을 대신 소화시킬 수 있는, 기쁨과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그 길을 어떻게 가느냐 하는 문제에 귀결됩니다.
이것만 하는 날에는 제 2의 희망의 세계가 우리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이고 제 3의 이상의 천국은 우리를 통한 끝에 비로소 형성되리라는 것은 틀림없는 결론인 것을 알고, 그런 책임을 하기 위해서는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죽고자 하는, 생명을 각오하고 나서는 그것 외에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아시고…. 오늘도 수택리에 경기도와 서울과 강원도 식구들이 모일 줄 압니다.
절박한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야말로 우리 통일교회가 소망을 가지고 행해 나온 모든 과거를 청산지어야 됩니다. 청산짓는 데는 어떻게 청산짓느냐? 통일교회와 더불어 청산짓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더불어 청산지어야 합니다. 나라와 더불어 청산지어 가지고 세계와 더불어 청산지어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나라에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와 더불어 청산지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앞에 나라와 더불어 청산지을 수 있는 일을 맡긴다면,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은 세계와 더불어 청산지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이 제4차 세계 순방노정의 의의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편안한 잠을 잘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만히 앉아서 자기 자신과 가정의 안일을 꿈꿀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자나깨나 이제 정한 세계적인 무대를…. 여러분이 갈 수 있는 싸움터를 가로막아 가지고 이것을 단축시키고, 이런 시련 무대가 없게끔, 편안하게 갈 수 있게끔 어떻게 감축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하나님을 붙안고 또 투쟁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입니다. 이것을 알고….
이제는 국내와 국외에서 평면적인 세계적 기반을 닦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고생한 여러분들도 세계적인 무대를 가려 가야할 때가 목전에 왔다구요. 그러려면 자그만치 나라를 위하고,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격동하는 운세권내에서 오늘날 우리가 절박한 사정을 중심삼고 이러한 입장에 섰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부여한 절호의 찬스가 아니냐. 이 찬스에서 여러분이 사명을 감당하느냐 하는 여부에 따라 앞으로 세계에 영향을 어떻게 미치느냐는 문제가 좌우된다는 것을 알고, 이번 시기를 무의미하게 넘기지 말고 뜻 있게 총결산짓기 위해서 움직여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지금 선생님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니만큼 여러분들도 그러한 각오 밑에서 금후에 잘 대처해 주기를 바라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 우리에게는 당신으로부터 이어받은 기쁨의 한 날이 없었습니다. 당신의 행복이 어떻다고 하는 것도 몰랐고, 당신의 사랑이 어떻게 고귀하다고 하는 것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또한, 당신이 가야 할 바른 길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이제 끝날에 와 가지고, 이 최후의 종착점에 선 결과적인 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출발을 당장에 해야 하는 아버지의 사정 앞에 일치될 수 있는 본연의 당신의 창조본성의 이상세계를 저희들이 그릴 수 있어야만 되겠습니다.
그러는 데는 세계의 극복이라는 비장한 생사 문제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세계의 비운이라는 슬픈 문제가 저희 앞에 가로놓여 있습니다. 이제 저희의 슬픔은 저희 자신의 슬픔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소리는 세계에 진동하고 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이 가야 할 수난길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바라보게 될 때, 오늘날 통일의 무리들은 통일교회가 출발한 그날부터 국가복귀라는 엄청난 과제를 안고, 반대받는 자리에서도 끈질기게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이 민족 앞에 쫓겨나지 않고 찰거머리와 같이 붙어 가지고 세계 무대로 연결시키면서 발전해 나왔습니다.
이제 통일교회 운세권이 대한민국의 운세권보다도 클 수 있는 환경을 급속적으로 발전시켜서, 대한민국이 금후에 갈 수 있는 수난길을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될 당신의 소명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이제 그것을 준비해야 될 안팎의 책임이 저희에게 강요되고 있는 것을 절감하옵니다.
국내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아버지여,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이 어디 가든지 안팎이 하나가 돼야 된다는 뜻을 알았습니다. 당신은 7년 앞서 간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제부터 1978년까지 이 전세계의 운명을 판가리해야 할 세계사적인 책임이 통일교회 가는 길 앞에 있다는 것, 그때까지 당신의 복귀섭리의 기간이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아버님이여, 저희들은 그때까지 가려고 하옵니다. 또한 그때를 넘어서 3차 7년노정이 끝나는 1981년까지 가야 되겠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이 금후에 가야 할 그 길에 있어서도 앞으로 1981년까지가 세계의 정상에 오르느냐 못 오르느냐 하는 안팎의 운세를 가려야 할 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그것이 연결되면, 1984년까지는 세계사적 과정에 결정적인 운명을 세워 놓지 않으면 저희들이 살아온 보람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야 할 기정적인 노정이요, 결정적인 노정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와도 그 바람은 우리가 졸까봐 부는 바람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혹은 폭풍우가 몰아치거들랑 그 폭풍우는 그 집에 있다가는 망하기 때문에 집을 나오라고 권고하는 것인 줄 알아야겠습니다. 부딪쳐 오는 모든 것은 우리를 격려하기 위한 아버지의 최후의 인연으로 알고, 이것을 흡수할 수 있는 무리가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그 누구도 모르는 길을 지금까지 가게 하신 아버지 앞에 머리를 숙일적마다 황공하옵니다. 내가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 한국 근대사에 있어서 수십 년간 수고하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이 민족을 찾아온 당신의 역사적인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한스러운 역경을 거쳐온 이 민족을 동정하는 심정을 가진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이 민족은 아시아 일각에서 반만년 역사를 거쳐오면서 그 누구도 모르는 수난길을 극복해 나온 민족이었기 때문에, 번영된 나라의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천지에 드높이 품고 있는 애국심을 지닌 민족이로되 하나의 주권을 중심삼고 남의 나라를 침범할 줄 모르는 어린애와 같은 민족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역사시대의 어떠한 민족보다도 한민족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의 사정과 통할 수 있는 민족이었기 때문에, 오랜 역사를 두고 동정해 오던 이 나라 이 민족인 줄 아옵니다.
왜정 말기에 일본으로부터 당한 수난의 결과를 중심삼고 세계사적으로 순교의 사명을 이어받아 스스로 죽음길을 당신과 더불어 가는 사람이 많은 것을 아시는 아버지였기 때문에, 시대적인 역사의 인연을 이 민족 앞에 세웠사옵니다. 그러기에 그런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오늘날 이 민족이 통일교회와 더불어 손발을 같이했더라면, 이 나라는 복귀의 천국이 되고도 남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만일 통일교회 무리가 1억이 되었던들 대한민국은 천국이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이 세계가 새로운 문화권을 이루었던들, 이 세계는 우리의 휘하에서 움직일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수십 년간 당신이 찾아왔던 길을 환영하지 못한 민족이었습니다. 그 환영하지 못하게 된 책임을 대표로 짊어진 이 아들이었기 때문에 민족이 맞을까봐, 민족이 망할까봐, 우리가 맞기를 바라며 나왔고 민족이 쓰러질까봐 우리가 쓰러지기를 자청해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에 와서는 저희들은 만신창이가 된, 상처를 입은, 병신이 된 몸을 가지고 가야 할 최후의 싸움터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국가의 시련과 더불어 교회와 사회의 시달림을 겪으면서 피눈물나는 그 길을 극복하던 그 걸음…. 그 누구에 비할 수 없는 서글픔을 품고 사는 우리와 슬픈 생활이요, 고독하다면 누구보다도 고독한 생애를 더듬은 생활들이었지만, 당신이 더 고독한 것을 알았고 당신이 더 슬픈 것을 알았사옵니다. 하오니 이제 되받은 그 고독하고 슬픈 입장에서 영원을 두고 고독의 길을 참아 나오는 아버지의 슬픔을 저희들이 가히 짐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고독한 자리에서도 당신을 위로하려 했던 저희의 마음을 아시는 아버지였사옵니다. 통일교회를 버릴 수 없는 딱한 아버님이라는 것을 저희 들이 생각할 적마다 불쌍하고도 불쌍한 아버지인 것을 저희들은 느끼기 때문에, 맞는 그 길에서도 눈물과 더불어 당신을 위로했고, 쫓기는 발걸 음을 옮기는 그 자리에서도 당신의 서글픈 역사적인 이런 망명의 길을 추종하면서, 역사적인 아버님의 심정을 위로시키기 위한 걸음을 더듬어 오고 있사옵니다.
전통을 남겨야 할, 하늘의 사명을 짊어진 아들딸이 가야 할 길을 알았기 때문에, 망하기를 바랐지만 저희들은 망하는 자리에 서도 망하지 않았고, 세계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일이 있거든 스스로 죽기를 바랐지만, 당신은 저희들을 남겨야 할 뜻이 있고 남겨서 이 뜻을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죽을 자리를 모면하여 주셨사옵니다. 그 자리를 넘기 위해서는 죽음 이상의 시련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될 당신의 서러움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여곡절의 노정이, 천만 갈래로 상충될 수 있는 사건 사건이 밀어닥치는 그때마다 엘리야가 '나만 남았나이다' 하며, 바알을 대해 욕할 수 없었던 심정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그 누구도 수행할 수 없는 고독한 자리에 머무르게 될 때, 당신이 찾아와 위로해 주시던 그때의 사정, 불쌍한 아들딸들이 당신을 배반할까봐 두려워하는 그 심려가 컸기 때문에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시던 것을 생각할 때마다, 천만번 죽더라도 죽음길에서 당신을 대해 저의 위안과 저의 구원을 기도하지 않겠다고 결의하고 그렇게 나가는 것이 통일교회를 지도해 나오던 이 자식의 소원인 것을 당신은 아시지 않습니까?
아버지! 민족과 교단을 다 잃어버리고 갈 길이 없어 감옥을 찾아 나서던 당신의 서글픔을 알고 난 그날부터, 내가 죽더라도 이 한을 풀겠다고 한 결심을 아직까지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밤이나 낮이나 시간을 재촉하면서 그 길을 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이 자식의 책임인 것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오는 길이 험하였으면 가는 길은 더욱 험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고 가는 길을 참고 극복해 나가야 되고, 오늘 절망하면 내일의 슬픔을 풀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늘 절망을 기쁨으로 맞이해야 할 것이 당신을 모시는 불충한 자들이 가야 할 길이옵니다. 하오나 당신이 환영의 길을 맞지 못한 복귀의 비운의 역사를 넘어서서 자유와 평화와 행복속에서 자유로운 자세를 가지고 만면의 회색을 띠며 '사랑하는 내 아들아' 하며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서, 탕감조건을 넘어선 자리에서 아버지를 못 불러 본 불쌍한 자식이 이 자식이옵니다.
그런 자리에서 아버지라 부르고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이 당신이 바라는 소원일진대 그 이상의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일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 오늘날 만민이 바라는 소원이기에 그런 길이 있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적마다, 그런 자리가 될 때까지 죽어서는 안 되고,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반세기의 생애를 거쳐 지금까지 나왔사오나 이제 또다시 가야 할 세계 무대로 당신이 같이 가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다시 눈물의 길이 있거든 당신이 눈물지어야 되겠고 고독한 사정이 있거든 당신이 고독을 당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불효자의 길을 면치 못한 금후의 행로를 언제나 당신이 대해 주고 이끌어 줘야 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준비의 길, 최고의 십자가를 지는 한이 있더라도 불변의 하늘을 모실 수 있는 길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 소자의 소원이오니, 허락하신 뜻과 더불어 이 민족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가고 오는 모든 길은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장래의 길을 열기 위한, 불쌍한 자리에서 최후의 순간까지 생사를 결정지을 터를 결정해 놓고 승리를 다짐지어야 할 길이었고, 이 무리들을 위해서 가야 할 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디 가나 이 땅을 잊을 수 없고, 이 곳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가고 나면, 헤어지는 그날부터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진 전진밖에 있을 수 없는 결정적인 노정이 우리의 배후에 있사오니, 그 길을 위하여 과거의 죄의 노정을 청산짓고, 가야 할 운명길을 직시하면서 최후의 승리를 다짐하며 하늘의 안위의, 안식의 모습을 마련하기 위해 가기를 결심하는 이 시간이 되기를 바라옵니다.
아버지, 오늘, 내일, 모레, 글피 15일까지 전국에 있는 식구들을 아버지께서 격려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하나가 돼야 하겠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나돼야 하겠습니다. 이번에 원리연구회 대학생들을 일선에 내세우고 또다시 몰아내야 할아버지의 명령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자기 멋대로 움직여 왔지만, 이제부터는 신의의 법도를 따라서 최후의 절정을 넘을 수 있는, 숨막히는 민족적이요 세계적인 운세 앞에 절대 순응하는 어린애의 무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당신의 소원인 줄 알고 있습니다.
남아진 복귀의 천국을 바라보면서 최후의 남아진 전선 앞에 강자의 기백을 가지고 하늘의 정병의 모습으로 출정하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맡겨 주신 보람 있는 목적의 세계 앞에 내일의 희망을 짊어지고 가는 무리로서 최후를 결하는, 당신이 보시기에 믿음직하고 당신이 칭찬할 수 있기에 부족함이 없는 무리들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고, 또 책임을 맡겨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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