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많으신 아버님! 오늘은 1972년 10월 1일, 이해에 있어서 4분의 3을 보내고 마지막 3개월의 첫날을 맞는 아침, 초하루 위에 아버님께서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또, 이날은 저희들이 마음과 몸을 다 바쳐 정성을 들여야 할 안식일도 되옵니다. 원리적인 관점에서 볼때 9수를 지나 10수를 넘어서는 첫날도 되옵니다.
금년은 역사적인 운명을 판결해야 할 세계사적으로 중차대한 해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나왔습니다. 이제 10월을 맞이하는 저희들을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시옵고, 당신의 마음과 뜻 앞에 없어서는 안 될 자녀의 명분을 갖춘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소원하시는 모든 면에서 기대와 소망을 더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기를 이 아침에 다시 한번 다짐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남달리 저희들이 이와 같은 길을 개척해 나온 것은 당신이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연고이옵니다. 그러기에 개척의 노정을 더듬어 이 자리까지 나왔습니다. 아버지! 어제도 싸움이요. 오늘도 싸움이요. 내일도 싸움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역사의 운명을 짊어지신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수고롭고, 외롭고, 고통스러운가를 저희들은 다시 한 번 생각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저희들의 갈 길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자신을 타일러서 또다시 이끌고 가지 않으면 안 될 복귀의 길은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저희들의 모든 앞길을 밝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 자신들 앞에 힘과 능을 더하시어서 최후의 산정을 넘어설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앞으로 저희들이 타개해야 할 사명이 얼마나 큰가를 알게끔 시일이 가면 갈수록 점점 목전에 가까워지는 세계적 정세가 저희들을 포위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민족이 금후에 가야 할 길이 어디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인간의 힘 가지고는 이 모든 환경을 헤치고 나갈 수 없는 고독한 이 민족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남북이 엇갈려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남한 땅을 중심삼고 사방에 에워싸인 이 모든 역사적인 운명은 인간만으로서는 도저히 해결지을 수 없는 외통길로 몰려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가 가야할 운명도 그런 길로 다가선 것을 저희들은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고 자신이 처한 환경을 다시 한 번 직시 하면서 자기 자신을 내세워서 무엇을 해결하려고 고민하는 것보다도, 하늘을 부여안고 하늘의 권위와 하늘의 긍휼과 하늘의 자비가 나타나기를 바라며 역사적인 회개를 통하여 하늘의 긍휼을 바라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더더욱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어린 자녀들을 이 시간에 다시 한 번 격려하여 주시옵소서. 한 생명 한 생명을 귀히 보시는 아버지! 이들이 머무를 수 있는 당신의 해방의 나라와 승리의 나라를 갈구하고 있나이다.
이들은 당신의 승리의 한날과 더불어 동참할 수 있는 그때를 바라보고 참아 나가고 있사오니, 그 자리까지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인간으로서는 인간 자체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놀라우신 은사의 자리에 참여할 수 없게 되옵니다. 그런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내용을 아무것도 갖지 못한 인간인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사방을 둘러보아도 당신의 지도와 편달이 없으면 안 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자기 스스로를 아버지 앞에 다 바쳐 놓고, 당신이 다시 동정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저희들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될 내적인 결의를 다짐하게 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필시 저희들이 가야 할 길임을 다시 한 번 느끼옵니다. 아버님! 이 시간 저희들을 붙드시옵고 저희들이 갈 길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10월을 맞이하였습니다. 지금 이 계절은 모든 만물이 수확기를 바라보는 가을절기이옵니다. 이와 같은 계절이 역사적인 슬픔을 제거시킬 수 있는 가을절기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을을 넘으면 겨울절기가 찾아와 혹독하고도 무자비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자기 스스로의 생명력을 지닌 씨가 되지 않고는 새로운 봄을 맞아 봄동산에 뿌려질 수 있는 새싹의 인연을 찾아 나설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의 한 생명도 인류역사의 수확기를 맞이한 이 시대상 앞에 확고한 하나의 결실체가 되어, 가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내적인 생명력이 거기에 집착되어서 환경적인 모든 여건을 제압할 수 있는 생명의 씨알맹이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느끼게 되옵니다.
그 누구의 힘으로써 보호될 것이 아니라 자체의 힘과 자체의 영양을 가져서 자기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어려운 환경을 돌파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겨울절기와 같은 시련기가 이 민족과 이 세계, 혹은 수많은 종교계에 찾아왔사온데 이때에 하늘이 찾고 있는 참다운 역사적인 열매를 갖춘 생명력의 실체들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이 당신의 관심이요. 당신의 소원이요. 당신의 수확기에 바라는 하나의 대상이 되는 줄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자들이 바로 오늘 저희들 자신이 되어야 할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이 시간이 되고, 깨닫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피옵소서. 당신의 마음 가운데 잊혀질 수 없는 아들딸이 몇 명이나 되오며, 당신의 소원하시는 길을 대신 개척하는 자로 동참시킬 수 있는 기대를 가진 무리가 몇 명이나 되오며, 당신의 싸움터에 당신 대신, 신뢰하고 내세울 수 있는 용사가 몇 명이나 되옵니까? 있거들랑 그의 본질적인 사상과 그의 결의된 충효의 심정을 다짐하시어서 아버지 마음 가운데 잊을 수 없는 무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그들이 당신이 기대하고 당신이 소원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된다 할진대,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기대와 새로운 소망과 승리를 예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하늘이 동원하고 하늘이 밀어주고 하늘이 마음 가운데 두는 그런 아들딸이 여기에 있거들랑 격려해 주시옵소서. 민족을 위한 책임과 세계를 위한 책임을 짊어지고 하늘이 지금까지 전체를 책임지고 나왔던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하는, 하늘의 뜻을 상속하는 자들이 많이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찾아온 무리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저희들이 겸손히 마음과 몸을 아버지 앞에 봉헌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내가 지금 어떠한 자리에 있는가를 스스로 직시하면서 당신이 소원하시는 기준과 얼마만한 차이를 가졌으며, 얼마만한 일치점을 가졌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 하면서, 아버지께 돌아갈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되고 아버지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확립시킬 수 있는 오늘 이 아침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통일전선수호라는 과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바쁜 복귀의 행각의 노정을 달려가야 할 저희들의 앞길을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세계 각국에서 선두에 서서 싸우고 있는 기동대들을 아버지께서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한국에서는 당신의 어린 딸들이 일선에 나가서 싸우고 있사오니, 그들의 갈 길과 그들의 책임과 사명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아버지의 이름을 갖고 모이는 곳곳마다 축복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은사와 자비가 그곳에 넘쳐흐르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체를 아버지께서 맡으시옵소서.
이제 10월, 11월, 12월,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이해의 마지막 이 기간에 저희들이 당신의 뜻과 더불어 계획하는 모든 것들이 일취월장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을 동원하시어 그들이 땅 위에 선한 후손들을 따라서,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세계를 창건하는 데 역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직접 그들 앞에 땅을 대신해서 활동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시사 하늘이 원하는 하나의 세계로서 모든 것이 귀결될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총동원시켜 주시옵소서.
선이 새로운 분기선을 가려서 아버지의 영원한 승리의 결과를 다짐지을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의 은사가 통일의 무리들 위에, 만민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우리는 통일교회 교인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무리들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의 새로운 종교 단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 종교들은 최고의 목적을 바라고 또 그것을 찾아 나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다운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참다운 사람들이 합하여 가지고 참된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 역사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참이라든가, 혹은 종교의 목적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어떤 세대권내에 종교가 있다 하더라도, 그 종교는 그 시대를 거쳐 나가고 미래에 연결되는 선의 목적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종교가 가는 길은 여러 가지 종교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의 길을 통해야만 하나의 목적의 세계에 귀결될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를 두고 보아도 수많은 종파가 있습니다. 불교도 종파가 많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 종교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많은 종파가 벌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종파들이 생기게 된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보다 선한 목적을 다짐 지우고 보다 선한 목적을 현실적으로 자기들의 종파권내에서 성사시키기 위한 내적인 요구에서부터 출발한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파간에 분쟁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현재 전진하고 있는 입장을 후퇴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다 차원을 높여서 혁신하기 위한 분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게 될 때에는 분쟁하는 두 종파의 목적관은 상반된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종교라 하더라도 그 종교는 하나의 최고의 목적을 지향해 나가는 것이 틀림없을 것은 사실입니다. 종교의 목적, 혹은 종교를 중심 삼고 나가는 것은 절대적인 신을 중심삼고 출발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숭상하는 신만이 이 우주에서 최후에 승리의 신으로서 등장할 수 있는 분이요. 그리고 그분이 자기들을 통해서, 자기 종단을 통하여 제시해 놓은 교리, 혹은 경서에 소개된 그 길을 통해서 기필코 하나의 승리의 세계로 귀결지어진다는 이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이라는 것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밖에 있을 수 없는 신이 아니냐, 그 신이 바라는 것은 하나의 목적이요. 하나의 결과를 다짐짓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수많은 종교들이 가야 할 길은, 어떻게 해서라도 빠른 시일내에 그 목적의 자리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경주장에 나선 선수들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출발 당시에서부터 목적점에 도달할 때까지 달리는 과정에 있어서는 그 달리는 자체가 하나의 경쟁이요 하나의 싸움이로되, 달리면서 옆을 보면서 싸운다면 그 두 사람은 그 경주마당에서 달리는 자로서의 목적과 사명을 올바로 지니고서 달리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싸움에 있어서는 그 출발 에서부터 한 방향을, 향한 목적을 가지고 싸우며 경쟁하는 것은 용납할 수 있으되, 자기를 중심삼고 횡적으로, 옆에 뛰는 사람은 어떻고 앞에 뛰는 사람은 어떻고 하는 입장에서 분쟁을 한다면, 그는 패자의 서러움을 맛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로지 싸우는 것은 자기의 목적과 더불어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목적을 향해서 싸우는 것이 바쁜 것이 아니냐? 옆을 바라보고서 염려하고 옆을 바라보고 싸우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패자의 길을 기필코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경주마당에 선 선수들 입장이 아니냐.
그와 마찬가지로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종교들을 보면 종교와 종교끼리 지금까지 경쟁해 나왔습니다. 과거에는 기독교를 중심삼고 불교 등을 이방 종교라고 말하였습니다. 다른 종교들과는 상극적인 입장에서 싸워 나오지 않았느냐, 한 종교가 목적하는 자리에 완전히 도달하여서 다른 종교를 잘못한다고 심판한다면 그것은 공인받을 수 있는 권위가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목적점의 자리에 도달하지 못한 입장에서 서로 서로 싸우는 것은 목적점을 향하여 달리고 있고 혹은 향하여 나아가는 종교 노정에 도움이 못 되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그런 싸움이 계속된 반면, 수많은 종교내에서도 수많은 교파로 분열되어 싸우고 있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싸움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전진을 촉구하고 목적을 다짐지을 수 있는 그러한 결과를 초래케 , 해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가는 길을 혼미하게 하고 가는 방향과 목적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강화시키는 결과밖에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비단 종교뿐만 아니라 한 나라를 중심삼고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라 온 국민이 철두철미하게 하나의 목적을 바라보고 나아가게 될 때, 상하를 막론하고 위정자를 비롯한 국민 모두가 일치되어 그 목적을 향한 일념으로써 투쟁의 역사를 전개하고 심정을 기울여서 나아가게 될 때, 그 나라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전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목적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횡적인 면에서 투쟁이 벌어지고 상극적인 반작용이 벌어지게 될 때는, 반드시 침체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번의 싸움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번 싸워서 내가 이겼다 하더라도 또 딴 패가 나타나 싸움을 걸어 나에게 영향을 주고, 그 패를 이겼더라도 또 딴 패가 나와 영향을 주게 되면, 결국 그 자체는 약화되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적을 바라보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횡적인 싸움이나 투쟁은 모두 소모를 의미하는 것이요. 전진하는 힘을 감퇴시키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즉, 목적을 향해서 필요 요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요건을 박탈하는 결과에 도달한다는 것은 두말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종단을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요. 한 나라를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아가서 세계의 정세를 두고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 세계와 공산세계도 지금 싸우고 있습니다. 민주세계는 하나의 이상세계를 바라고 나가고 있습니다. 공산세계도 역시 공산주의를 중심삼은 세계 제패를, 그들 나름대로 바라는 하나의 이상세계를 향해서 달음질치고 있습니다. 여기에 상충되는 입장에서 투쟁하며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목적점에 도달하여서 바라는 이상세계를 완전히 확립시키든가 그 목적을 달성한 권위를 세우는 것입니다. 횡적이라든가 사방으로 싸우게 될 때는 그 싸우는 대상은 목적을 달성한 자체 앞에서는 완전히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목적한 결과에 도달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는 세계는 온 인류와 온 세계를 대표해서 싸우면 싸울수록 전세계 앞에 온 인류 앞에 미래의 희망과 미래의 소망과 미래의 목적을 확실하게 하고 격려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혼미케 하고 도리어 가는 길을 혼란시키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늘의 현실 정세를 봐서 우리는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을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이 어떠한 목적을 딱 결정했으면 그 목적을 중심삼고 밤이나 낮이나 자기의 모든 정력을 투입 하고, 일체의 힘과 활동의 방향을 투입하면 투입할수록 목적과의 거리를 점점점점 단축할 수 있으되, 큰 목적을 갖고 있으면서 횡적인 면을 연결 시킨 환경에서 투쟁하고 싸우려는 내용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원래 정했던 목적은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길은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가야 할 목적을 하나님은 너무나 잘 알 수 있는 입장에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어떠한 목적을 제정했으면 그 목적을 향해서 직행하라고 요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그러한 입장에 서더라도 그 길에서 온갖 정성을 다하여 직행하고 점진적인 투쟁을 가중시키면 그 목적을 따를 수 있으되, 그것을 횡적으로 전개시키는 일을 하게 된다면 목적에 대한 모든 기세는 점점 희미해질 것입니다. 이것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단 하나의 길로 전진하라고 가르쳐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는 한 인간에게 그런 길을 반드시 명시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대해 가지고는 모든 정성을 다 들이라고 했던 것이요. 일체를 다 봉헌시키고 투입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도 남지 않게 전체를 투입해서 그곳을 향하여 달음질치라고 권고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외의 일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을 달성하고 난 후의 문제이지, 하나님의 목적에 가담시켜서 같은 입장에 놓고 같이 대하는 자리에서 해결하기를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 목적에 철두철미하면 철두철미할수록 그 방향에 대해서도 철두철미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의 목적이 한번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연습이 없는 것입니다. 연습이라는 것이 없는 일이라면 얼마나 심각하고 얼마나 철두철미해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쌍 하는 일도 실패를 가져 오기 일쑤인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아는 입장에서 볼 때, 단 한번만으로 성사시켜야 하는 가장 귀한 어떠한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대하게 하는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심각한 입장에서 그 목적을 대하게 할 것이냐, 그 목적이 크면 클수록 그 목적을 대하는 인간에게 그 목적을 이겨낼 수 있고 그 목적을 성사시킬 수 있는 이상의 각오와 힘과 내용을 가지고 결의시키려 할 것은 두말할 바가 없습니다.
만일에 가는 도상에서 실패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한번밖에 할 수 없는 일, 한번에 성사해야 할 목적의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목적의 길을 책임지고 나선 사랑하는 자녀가 있다든가,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얼마나 심각한 입장에서 권고를 할 것이냐, 곁눈도 팔지 못하게 할 것은 사실이요. 밤에도 쉬지 말고 가라고 권고할 것도 사실입니다. 인간으로서 바랄 수 있는 일체의 욕망도 전부 끊어 버리고 단지 이것만 목적으로 삼고 가라고 권고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이 가야 할 최후의 목적은 가장 심각한 목적이 아니겠느냐? 여러분의 일생은 가다가 어긋났다고 다시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하루를 보냈으면 그 하루는 영원히 나와 작별하고 마는 것입니다. 일년을 보냈으면 그 일년은 영원히 나와 작별하고 마는 것입니다. 단 한번의 행동으로 성취할 수 있는 길 외에 없는 목적을 대한 나 자신이 일년을 통해서 전진이냐 후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나는 전진이다' 하는 그 전진이 얼마만큼의 전진이었느냐 하는 문제가 그 일년의 가치를 측정할 것이 아니냐? 혹은 일생을 통해서 청년시대면 청년시대, 장년시대면 장년시대에 얼마만큼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길을 향해 전진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이것을 단시간내에 성취하고 싶은 것은 어느누구나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것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다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짧은 시간에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비례적인 힘의 투입과 시간의 투입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그 목적을 위한 청년시기면 청년시기일수록 그 시기에 얼마만큼 자기의 있는 힘을 다해서 전진했느냐 하는 문제로, 후퇴가 아니예요. 전진했느냐 하는 문제로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위치의 차이에 있어서 대비되는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마라톤 경기에서 선수들이 달리게 될 때, 많은 사람들이 달리지만 맨 처음부터 선두에 선 사람은 일등이라는 목적을 중심 삼아 가지고 대비되는 가치의 인정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중계 방송을 듣더라도 출발선에서부터 누가 일등으로 달리고 있나 하는 것을 말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 그 과정에서 얼마만큼 노력하여 가지고 선두에 서고, 목표에 접근할 수 있는 거리에 누가 대표적으로 가장 가깝게 되었느냐, 누가 대표적으로 가까운 거리를 지금 달리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그 사람의 가치 결정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년을 보냈으면 그 일년이 얼마만큼 의의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올해가 1972년이면 1972년 자체가 있었으므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1972년에 우리 통일교회에서 바라는 어떠한 목적이 있다면 그 목적을 향해 가지고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에 수많은 해(年)가 바뀌었지만 그 가운데서 얼마만큼 그 목적의 거리를 단축시키는 입장에서, 연례적인 해(年)와 달랐느냐 하는 데에 따라 이해가 수많은 해들 앞에 설 수있고 혹은 뒤에 설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이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하루 생활에서 '오늘은 기분이 좋았다' 혹은 '오늘은 운이 좋았다' 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는 확실히 모르지만 인생으로서 갈 수 있는 행복의 곳을 암암리에 추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만일에 천운이 있다면, 천운은 그곳을 향해서 온 인류를 몰아가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몰려가는 데 있어서는 옆으로 서서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돌아서서 뒤로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모양은 천태만상으로 각기 다르더라도 몰려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몰려가는 데 있어서 다 일렬로 서더라도 목적에 귀결될 수 있는 것은 한 점입니다. 한 점이라는 거예요. 그 목적체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목적체 중심과 내외적인 자체를 중심삼고 볼 때, 그 목적이 바라는 상대적 존재를 대하는 데는 한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목적을 이룰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올 수 있는 길은 두 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길을 통해야만 오는 것입니다. 한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의 중심 노선을 중심삼고 그 주위에 수많은 길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목적과 목적이 찾고 있는 대상이 만날 수 있는 길은 한 길밖에 없습니다. 요 한 길, 직선상에 설 수 있는 한 길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것이 얼마만큼 단축되느냐, 이 거리가 얼마만큼 가까우냐에 따라 그 목적의 가치를 차지할 수 있는 자리를 계승할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그것이 멀면 멀수록 그 목적을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점점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가 목적을 향하여 가는 길은 한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단 하나의 길, 두 길이 아닙니다. 그건 두 길이 있을 수 없다 이거예요. 선두에서 달려가는 책임자가 있다면 그는 직선을 향하여 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것없이 직선으로 달려가야 될 것입니다. 춘하추동 역시 직선을 향해야 되기 때문에, 춘하추동을 구성하고 있는 365일이라는 날들도 역시 직선으로 달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루의 생활도 역시 직선을 향해서, 아침도 그 직선, 점심도 저녁도 역시 그 직선을 향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딴 곳에서 딴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 일의 방향도 역시 직선의 길을 향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 직선을 향해서 목적과 일치될 수 있는 상대적인 일을 매일매일 접하게 될 때는 그것은 기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게 될 때는 기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늘은 기쁘더라도 최후의 목적에 상충되게 되면 그 상충되는 가치 추구 앞에 우리는 패자의 서러운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좋고 나쁘고 행복하고, 운이 좋았느니 나빴느니 하는 모든 말들은 암암리에 인생의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정짓는 말이지, 내 개인적인 하루하루의 기분에 따라, 혹은 매일매일 다른 입장에서 자기의 환경 여건에 따라 우연한 인연에서 찾아진 것이 아닙니다. 틀림없이 암암리에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자기가 목적하는 내적인 인연을 따라 가지고 좋고 나쁜 것이 결정되는 것이지, 그것이 없이 좋고 나쁘다고 하게 되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나쁜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됩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아무리 현재 입장에서 부흥하고 세계에 자랑 할 만하더라도 대한민국이 가는 길이 대한민국 사람만으로서 가는 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이 바랄 수 있는 소망은 있을는지 모르지만, 전세계가 바라는 소망의 자리에는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영원히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물론 현재의 입장에서 국가와 국민이 기뻐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 일이 앞으로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민족 운명의 길 앞에 일치되지 못하는 자리에서 기뻐하게 된다면, 그 기쁨은 결국 슬픈 자리에서 내일의 세계를 향해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생각하며 노심초사하는 것보다도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 자체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우리가 가는 길이 올바른 길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먼저 결정해야 됩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이 길이 확실한 길이냐, 틀린 길이냐, 이것을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본래 갈 수 있는 길이냐, 아니냐? 이것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갈 수 있는 길이냐, 아니냐? 이것이 한계권 내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만을 중심삼고 가야 할 길이냐, 혹은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 인류가 가야 할 길이냐? 그리고 인륜을 대표한 인간만이 갈 수 있는 길이냐? 인륜 외에 천륜이 있으면 천륜은 또 다른 길로 가느냐?
인륜과 천륜이 엇갈리게 될 때는 천륜을 따라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천륜을 제쳐놓고 인륜만을 위해서 세계로 나섰다 할진대는 그 목적점에서 또다시 천륜을 향한 길이 뒤로 돌아서 갈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돌아가야 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점점점점 목적점에 가까와오면 가까와올수록 그 목적의 가치가 가중되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점점 목적점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직행뿐이지 동요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여러분? 결승점을 향해서 달리는 그 사람은 그 결승점에 대해서 일체의 생각이 집중되는 것이 아니냐, 모든 동작은 그 결승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집결되는 것이 아니냐, 목적의 때가 가까와오면 가까와올수록 일체를 투입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프더라도 '나 아프니 사정 좀 봐주소' 하는 사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일분 혹은 일초라는 똑딱하는 순간, 일생을 두고 보면 지극히 짧은 이 한 순간이 무한의 가치를 전부 다 금 그어 버릴 수 있는 숨막히는 결승점을 대하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들이 운동경기에서 보는 바와 마찬가지로 최후에는 한 발자국이 문제가 아닙니다. 십분의 일 발자국, 백분의 일 발자국,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날에는…. 일등과 이등은 천양지판입니다. 일등이 하늘이라면 이등은 땅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일등이 높은 산이라면 이등은 그 대상으로 상대적인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천양지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순간의 차이가 결승점에 이르러서…. 그 한때를 바라보고 그와 같은 심각한 순간의 심정을 일생을 통해서 그 목적에 대한 과정에서 다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올바른 길을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성을 들인다면 결승점을 바라보는 최후의 순간과 같은 마음으로 출발과 동시에 있는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 긴장한 자리에서 생애를 통해 투입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등은 못 했더라도 장려상 이라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일생의 길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갈 수 있는 일생의 운명의 길을 가려 가는 데 있어서 그것이 전부 다 공통적인 목적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파들이 있지만 그 종파의 목적은 하나,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세계면 세계 평화, 통일세계면 통일세계, 하나의 이상세계의 귀결점을 향해서, 목적점을 향해서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체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낱낱이 따로따로 달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손가락과 마찬가지 입니다. 열 손가락이 싸워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싸우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새로운 종단으로서 이 세계에 출현을 보게 됐습니다. 수십년의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그 역사과정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부대끼는 일, 가정적으로 부대끼는 일, 그 대하는 모든 일들이 지금까지 자기의 생애노정을 거쳐오는 습관적인 환경에서 당하는 시련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통일교회를 하나 믿는 조건으로 말미암아 개인이 시련을 당해 왔습니다. 가정이 시련을 당해 왔습니다. 교회 전체가 시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때문에 시련을 받았음과 동시에 시련을 당하게도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없었으면 좋겠는데 통일교회가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기성교회에 문제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거예요. 좋든 싫든간에 앞으로는 연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단계로 들어온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핍박도 개인적으로 받았지만, 가정적으로 받았지만, 혹은 사회적으로 핍박을 받았고, 교회적으로 시련을 받고 나왔지만 그것이 우리 자체의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반드시 그 환경적 여건 에도 영향을 미치고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길을 감으로써 여러분의 가정들은 반대적인 입장에서 시련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나쁜 일이냐, 좋은 일이냐? 만약에 어떤 선수가 있다면 그가 선수로서 결정될 때까지는 그 선수 혼자만의 노력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가 하는 경기종목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연되어 있는 사람들이 배후에서 협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배후에서 협조하는 데 있어서도 같은 소질을 가지고 있는데, 얼마만큼 협조의 환경을 많이 넓게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러한 기반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는 빠른 시일내에 출세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한 선수가 자라나게 될 때에 그 선수만 노력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수가 하나 생겨나기 위해서는 자기의 부모, 형제, 친구 등 관계되어 있는 모든 여건들이 전체 협조할 수 있고 같은 수고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환경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는 빠른 시일내에 출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수 하나가 선수로서 이름이 날 때까지는 그 배후, 자기 자신도 물론 고통이지만 관계되어 있는 환경도 고통을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피한 발전적인 현상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좋든 나쁘든간에 반대를 받아 나왔습니다. 통일교회만이 반대받고 통일교회만 고통받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을 가진 그 집 식구들도 반대를 하지만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일치되지 않는 상반된 자리에서 반대할 뿐이지 고통을 받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대하는 사람하고 반대 받는 사람 중에서 누가 더 가치 있는 자리에 섰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반대가 극하면 극할수록, 그 반대를 물리치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가는 길이 참된 길이라면 반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그 사람의 가치가 작아지느냐? 반대인 것입니다. 환경적으로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반대받는 사람이 도리어 나쁜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받는 그 자리가 참이면 참일수록, 반대하는 환경이 모질면 모질수록 그 길을 달리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가치가 진해지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 목적을 위해서 간다면 반대도 안 받는 것입니다. 반대받는 그 자체는 벌써, 부모한테 반대를 받고 형제한테 반대를 받고 지금까지 살던 생활 환경에서 반대를 받는다는 것은, 자기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아 나오던 자기의 입장을 유지하는 자리에서 반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 나오던 습관적인 환경을 타파했기 때문에 반대를 받는 것입니다. 결국은 옛날과 다른 나로서 반대를 받는 것이지 옛날과 같은 나로서 반대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극과 극에 서 있는 것입니다.
어제는 저랬다면 반대받을 때는 이런 것입니다. 어제까지는 부모 앞에 절대 순종했지만 오늘은 도리어 부모를 순종시키려고 하는 자리입니다. 그것이 누구를 중심삼고? 나, 아무개의 아들이면 아들, 딸이면 딸, 형제면 형제를 중심삼고 굴복시키려는 입장에 서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리어 파탄이요. 도리어 절망밖에 될 수 없습니다.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은 보다 차원 높은 나라를 대표하고 세계를 대표한 자리에서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런 목적이 서 있는 자리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여기에 그 목적의 가치를 동참시키기 위해서 반대를 받는 것입니다. 결국은 누구를 위해서 하느냐?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를 위해서 하기때문에 그것은 어디까지든지 보증받을 수 있는 선(善)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선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자기를 위주로 해서 세계를 굴복시키려고 하는 게 선이 아닙니다. 최고의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목적 앞에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이 선이 추구해 나오는 길입니다. 선을 따라가는 목적의 길은 그러한 결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의 목적을 중심삼고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은 언제나 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은 방향이 다릅니다. 사적인 것은 나한테로 끌어들여서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이지만, 공적인 것은 나를 희생시켜서 굴복당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반대라구요. 그러면 공적인 것이 왜 선한 것이 되느냐?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나는 전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나한테로 끌어들여 가지고 남이 내게 붙은 상태에서 내가 전진하려고 한다면, 나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입니 다. 짐을 벗어버리고 목적을 향해 투입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목적은 아랑곳없이 짐을 짊어지고 늘어지겠다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욕심은 결국 자승자박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가르침에서는 온유, 겸손, 희생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공적인 길에 서라, 공적인 길에서만이 모든 개체의 해방권이, 해방 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목적이 자기와 상관을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어디까지나 출발도 자기요 목적도 자기를 중심삼고 결정 짓고 나서는 데는 인류가 바라는 공통적인 목적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자기를 희생시키고 나서는 자리는 인류가 바라는 공통적인 목적의 자리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적인 일은 악으로 귀결되는 것이요. 공적인 일은 세계가 소망하는 선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 선의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냐? 희생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희생의 본질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했다고 해서 그 희생을 희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희생하면 희생할수록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그런 상이한 소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얼마만큼 크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는, 그것을 드러내는 자리는 반드시 희생하는 그 양이 얼마나 크냐 하는 것에 따라서 높고 낮은 사랑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희생이 크면 클수록, 큰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요. 희생이 적으면 적을수록 거기에는 높지 못한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가난한 집의 부모들은 그들의 아들딸들을 남과 같이 먹이지 못하고 입히지 못하고 남과 같이 하고 싶은 일을 자식 대해서 못 해주면 못 해줄수록, 그 마음은 자식들 대해서 잘해 주는 부잣집 부모보다도 더 고통이 심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대하는 순간순간에 거쳐가는 애달픈 심정은 부잣집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부모의 시선에는 눈물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감정이 뛰쳐나오는 것입니다. 도리어 눈물이 앞서고 감정이 앞서고 긍휼이 앞서는 자리가 아니냐, 그 자리에 선 사람은 자기는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긍휼이 앞서고 눈물이 앞선 입장에서 '네가 나를 위해서 희생하라'는 말은 절대 못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더 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런 자리가 자기에게 낙심을 촉구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리일수록 '오냐! 조금만 참아라! 남과 같이 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안 오면, 내가 힘이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빌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집 자식이라고 전부 다 불행한 것만은 아닙니다. 역사적인 위인들은 부잣집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것보다 극난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 부모가 애국심을 가지고 나라를 사랑하는 부모일수록 그 인연을 따라 길리움을 받은 아들딸은 미래의 나라를 창건하고도 남을 애국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애국자의 출생이 거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적인 것은 당대에만 웃는 것입니다. 그 웃는 것이 누구와 더불어 웃느냐? 상대와 더불어 웃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더불어 웃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돼요. 행복이라는 것은 자기 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 관념에 있어서….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그런 거라구요. 좋다는 말은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 관계를 얼마만큼 동원시켜서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기쁨의 비율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냐.
누구나 좋은 일이 있으면 세계적으로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지요? 나쁜 일이 있으면 세계적으로 숨기려고 합니다. 그것이 왜 그런지 알아요?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거예요. 누구에게나 드러내고 싶지 않다 이거예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영영 없어진 가치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자기를 위한 행위입니다. 욕심을 통해서 나타난 결과의 흐름은 그런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서 그러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해도 그것은 자랑을 못 합니다. 그렇지만 남을 위하고 전체를 위하는 자리에서 그런 일을 했다면, 아무리 비천하고, 아무리 악하고, 아무리 말할 수 없는 자리에서 그 일을 이루었 더라도 이것은 아무리 높은 자리에 가더라도, 높은 자리에 가면 갈수록 더 당당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선악이 가는 길은 엇갈려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을 성사시키고 뜻을 이룬다는 것은 오늘의 행복을 취하고 오늘의 자기들을 중심삼고 만족을 취하는 사람으로서는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다 큰 선의 목적을 추구하는 그 길이라는 것은…. 자기를 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현재에 만족하고 현재의 안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은 반대로 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라톤 경기에 나간 선수들이 달리는 과정에서 얼마나 힘이 들어요? 숨이 막히고 기가 막히고 쓰러질 것 같은 경각선을 왕래하면서 그것을 극복하며 달리는 것입니다. '아이구! 나 힘든데 달릴 게 뭐 있어? 아! 오뉴월 복중에 달릴 게 뭐야? 편안히 쉬지'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나발을 불면서 선전하고 아무리 '나를 따라오면 성공하고 나를 따라오면 목적을 이룬다'고 해도 그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염천하에서도 누구보다도 있는 정성을 다해서 그저 이를 악물고 기를 쓰며 달리는 사람들에게만이, 그 사람들로만이 그 목적은 계승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목적을 앞에 놓고 목적을 바라보고 대하는 사람으로서 자기를 중심삼고 안일을 추구하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는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패자의 쓴잔을 마시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만일에 그러한 사람이 국가를 대표한 자리에 섰다면 국가의 망신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꼴찌를 하더라도 있는 힘을 다해 뛰어 가지고 결승점까지 와서 쓰러져 죽었다면, 그는 일등은 못 하더라도 그 경기 종목에서 영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일등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얼마만큼 최선을 다했느냐, 얼마만큼 있는 정성과 생명을 그 길에 투입시켰느냐 하는 문제가 그 사람의 가치 기준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거리의 측정에 있어서 가치의 결정이 벌어지고, 그 사람의 정성의 측정에 의하여 가치 결정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경기 종목을 통해서도 여실히 알 수 있거들랑 우리의 신앙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빨리 달려야 됩니다. 밤이나 낮이나 빨리 달려야 됩니다. 종교적 소질이 있어서 빨리 달려 가지고 일등을 했다면 좋겠거니와, 일등도 일등이지만 일등은 못 했을망정 일등한 사람의 몇십 배의 정성을 들였다 하게 된다면 도리어 역사상에 전통으로 남기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소질에 의해서 일등한 것보다도 '이 사람은 경기 종목에서 이렇게 이렇게 생명을 다해 가지고 죽기까지 했다. 꼴등하더라도 죽기까지 하였다' 그게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니냐?
소질이 있는 사람과 소질이 없는 사람과 정성을 두고 볼 때는 소질 없는 사람이 일등이라구요. 그러면 어떤 사람이 역사를 움직일 수 있겠느냐? 정성을 따라서 나간 사람이 일등은 못 했더라도 소질을 따라서 일등을 한 사람이 부끄러울 정도의 내용을 갖고 나서면, 그 일등한 사람도 정성의 길을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의 길은 그러한 내용의 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빨리는 못 가지만 맨 꼴찌가 되더라도 있는 힘과 정성을 다해서 전체를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치면서 가는 사람을 하나님은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은 윤곽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원형의 세계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가고 마는 것이 아니라 갔다가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돌아오기 위해서는 딴 문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쪽으로 갔으면 저쪽으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 다. 그렇기 때문에 일방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정성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고, '쉬지 말고 달려라'고 했습니다. 그런 엇갈린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 한다면 어떻게 달리나요? 이런 상반된 내용을 제시한 이유는 양면의 내용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소질이 있어 일등을 했다 하더라도 돌아와야 됩니다. 돌아오는 데는 뛰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받쳐 들고서 지탱해 가지고 나갈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상을 받았으면 그 상을 지탱시켜서 다음 인계자에게까지 유지해 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지탱시킬 수 있는 힘, 강인하고 끈기 있는 저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미루어 볼 때, 우리의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남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새로운 목적을 따라서 나선 길입니다. 싫든 좋든 이미 경주마당에서 달리고 있습니다. 이미 뛰고 있다는 거라구요. 전체가 지금 마라톤 경기를 하고 있는 거라구요. 경기를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구 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뭣을 하자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만약에 그대로 행치 않게 되면 양심에 고통이 오는 것입니다.
그거 왜 고통이 오느냐? 내 마음대로 하는데 왜 고통이 오느냐? 경기장에 나선 사람은 공적인 존재다. 알겠어요? 대한민국의 대표선수면 대한민국을 대표한 선수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이라는 그 나라의 공적인 운명을 짊어진 것입니다. 공적인 운명을 짊어졌으면 공적인 가치를 세워 놓지 못하고 죽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세워진 가치기준보다 한 발자국이라도 떨어지면 안 됩니다. 내려가면 안 됩니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올려놔야 합니다. 그 말은 한 등수라도 더 앞으로 나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꼴등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꼴등보다도 한 단계 올라서고, 그보다 더 또 한 단계 올라서고, 그보다 또 한 단계 올라서고…, 정성과 그 달리는 내용이 하나가 되어 가지고 일등을 하면, 그야말로 그런 사람이 있다면, 둘 다 갖춘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경기 종목에 있어서 영원한 전통의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 사람이 자신만을 위해 달린다면 쓰러져서 후퇴할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내가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어떻게 된다는 생각보다도, 내가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나라가 어떻게 된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달려 가지고 경기에서 일등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민들 앞에서 환영을 받을 때 '그렇습니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문제구만!' 하면, 이건 '내가 일등하기 위해서 내가 나를 중심삼고 내 욕심으로 이렇게 달렸는데 대한민국 사람들이 무슨 상관이야!'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환영을 받는다면 그 환영이 도리어 부끄러움이 되는 것이 아니냐?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서 달렸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환영이다' 할 수 있어야지, 자기의 욕심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디까지든지 공적인 규범을 따라서, 운동 종목의 법칙을 따라서 온 세계가 공인할 수 있는 원칙 밑에서 국가를 대표해서 일등을 하게 된다면, 그는 세계가 공인할 수 있고 대한민국이 공인할 수 있는 선수가 됩니다. 안 그래요?
통일교회가 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비록 개인으로 서 있지만 결코 사적인 입장이 아닙니다. 공적인 입장입니다. 그러니 대한민국 내의 수많은 종파들을 대표한 공적인 입장에 서라,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종교를 대표한 자리에 서라, 인간세계의 종교가 아니라 종교의 주체자이신 절대자가 바라보는 종교를 만들어 가지고 그분이 추구하고 있는 목적, 그분의 소원에 일치될 수 있는 방향을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륜은 천륜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인하고, 인류가 공인하고, 나라가 공인하고, 수많은 종파가 공인할 수 있는 자리에 서면 설수록 최고의 존경스러운 공적인 자리가 아니냐, 그런 공적인 자리에 선 사람이 나라를 생각 못 하고, 수많은 종교를 생각 못 하고, 수많은 인류를 생각 못 하고, 영계와 하나님을 생각지 못하게 된다면, 그는 공적인 자로서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공적인 입장에 섰기 때문에 천운이 나와 더불어 지금까지 상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양심은 자기 개인의 욕망을 위해서 지배받는 것이 아닙니 다. 공적인 욕망을 위해서 지배받기 때문에 잘못하면 당연히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됩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슬쩍슬쩍해 가지고 슬쩍슬쩍 통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법칙적 과정, 즉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법도에, 규칙에 위배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조금만 위배되는 날에는 공적인 존재로서는 걸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잘 달렸더라도 맨 마지막 결승점에 이르러 자기 편이 사적인 목적으로 거들어 도달했으면 그것은 일등이 못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혼자 달려야 됩니다. 끝까지 혼자만이 가야 됩니다. 끝까지,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게 끝까지 공적인 입장에서 달려서 승리함으로써 그 목적을 차지 하게 될 때 그것은 역사적인 승리가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늘과 땅이 공히 찬양하고 환영할 수 있고, 전체가 기뻐할 수 있는 역사시대의 한 순간을 만들고 영계와 인류와 수많은 종교를 대표한 자리에서 전체의 내용을 통하는 기쁨의 인연을 맺어 놓을 수 있다 할진대는 그것은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개인이 됩니다.
역사적인 개인이라도 개인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반드시 가정을 지나, 종족을 지나, 민족을 지나, 국가를 지나, 세계적인 단체로서 끝을 낼 것입니다. 차지한 그 목적은 개인으로서 차지했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의 가치라는 것은 전체 앞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국가를 대표한 선수가 차지한 그 영광이라는 것은 그 개인의 영광만이예요? 그건 그 민족의 영광이요. 현실적인 민족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영광을 축적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수많은 종파 가운데서 배척을 받고, 어려운 길을 걸어오고, 좁은 길을 달리는 것입니다. 남이 모르는 그런 루트를 따라서 달리고 있다는 거예요. 어떤 때는 내려가는 길도 있을 것이고, 첨한 산골의 고빗길도 돌아가야 될 것이고, 험산준령을 기어서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어떤 때는 꺼꾸로 갈 때도 있을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 보면 그래요. 언덕바지를 넘어갈 때 이렇게 가려면 못 가는 경우가 있습니 다. 도리어 이렇게 게는 게 좋아요. 그거 이해돼요. 무슨 말인지?
강원도 같은 높은 산을 하루 종일 넘나들어 보면, 이 산정에서 저 산정으로 넘다 보면 벼랑 같은 데 갈 때 꺼꾸로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 녀석은 왜 꺼꾸로 가 이렇게 드러누워서 보는 사람은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상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목적을 향해서 가는 데는 별의별 길이 다 있습니다. 장애물 경주와 마찬가지입니다. 장애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빛나는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냐? 개인의 어려운 길, 가정의 어려운 길, 단체의 어려운 길, 그 나라의 어려운 길을 지금 우리는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 국가로서 일등한 국가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세계에서 일등한 민족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세계에서 일등한 종파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세계의 인류가 하나로 통합되어서 '야! 좋은 때가 왔다. 이야말로 인류의 성공을 찬양할 때가 왔다' 역사상에 그런 때가 있었어요? 그곳을 향해서 지금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말세니, 심판이니 하는 종교는 초기의 좋은 때가 오지 않고 전부 다 기가 막힌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경기장에 선 사람이 달리다가 목적을 달성 못 하면 망하는 거라구요. 망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 목적 달성을 중심삼고 보면 망한 거라고요. 패자가 되었으니 망한 거라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 우리의 목적은 무엇이냐? '아이고! 나 김 아무개로서 출발해 가지고 이렇게 가는 것이 통일교회의 길이다!' 할 것입니다. 물론 그 길도 있겠지만, 그렇게 가다가는 한 바퀴 삥 돌아와 가지고는 스톱(stop)한다구요. 삥 돌아왔으면 또 뛰쳐나갈 길이 있습니다. 그 길에서 여러분은 경주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곳에도 수백 명이 모였겠지만, 모인 여러분들 가운데서 일등은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일등이 두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일등 같은 것은 많다구요. 몇 억천분의 일이라도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몇 억천분의 일이라면 '같지 뭐! 그것도 일등이지!' 할는지 모르지만 몇억분지 일의 차이라도 일등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숨을 한번 쉬려고 하면서 공기를 들이 쉬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의 순간인 것입니다. 몇 백분의 일, 아니 몇 억분의 일이라는 순간에 일등은 결정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전번 9월 23일이 추분이었습니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데, 진정으로 그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것을 보고 느낀 사람이 있느냐? 있어요? 여기 누구 있어요? '야! 이제야말로 밤과 낮이 같다'라고 느낀 순간이 있어요? 그 똑딱하는 순간을 절대로 맞추지 못합니다. 모든 운명의 결정은 순식간에 고개를 넘게 되고, 저울이 기울어지는 거예요. 저울이 기울어졌다 할 때는 벌써 그건 다…. 근본에서 그 원칙에서 벌써 금 그어 버리고 쉬고 있을 때 저울이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벌써 그 원칙이 기울어졌기 때문에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일생에 있어서 성공의 정상을 올라서는 사람도 있고 성공을 못 하는 길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산으로 말하면 봉우리가 점점 높아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아이구 내 정상은 여기다! 여기도 겨우 넘어섰다' 하며 분수령에서 한 발자국만 가면 전부 다 넘어설 텐데도 불구하고 누워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쓰러지더라도 몸뚱이의 몇 백분의 일이라도 중앙을 넘어서서 저쪽 편에 쓰러져야 저쪽 나라의 관리를 받지, 몇 백분의 일이라도 그 경계선에서 넘어서지 못하면 이쪽 나라의 관리를 받게 됩니다.
사탄세계와 하늘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기준을 중심삼아서 '아이고 성공이다!' 하며 좋다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기준으로 살았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저런 기준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어떠한 산맥을 중심삼고 '어느 봉우리가 높으냐? 할 때에 낮은 곳을 가리키며 '여기가 높다' 하는 사람이 있어요? 높은 산을 중심 삼고 볼 때 제일 올라가 보고 싶은 봉우리가 여기라고 할 사람이 있어요? 그는 미친 녀석입니다. 사람 축에도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올라가서 '야! 내가 일등이다? 하고 암만 큰소리로 찬양하더라도, 이쪽에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일등이고 뭐고 생각도 못하고 숨을 헐떡헐떡하고 있는데, 여기서 춤을 추며 '일등이다' 한다고 그게 일등이예요? 죽을 힘을 다해 기를 쓰고 올라가고 있는데, 여기서는 춤을 추고 있다면 어느 것이 일등이예요?(칠판을 가리키시며) 이게 일등이예요. 이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또, 높은 곳을 향해서 비지땀을 홀리고 죽을 지경이 되어 올라가는데, 낮은 곳에서 일등이라고 하는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이 구경꾼의 입장에서 보신다면 '야 이 녀석아! 네가 일등이라고 큰소리 치지 마라, 이 녀석아!' 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네가 큰소리치기 전에 저걸 본받아라, 여기 올라서게 될 땐 본받아라!' 본받으려면 이렇게는 못 가는 것입니다. 어렵게 돌아가야 됩니다. 길을 잘못 들면 도리어 안 갔던 것만도 못합니다.
종교도 그렇습니다. 신앙길을 잘못 들어 가지고 고질통이 된 것은 뜯어고치지 못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못 간다구요. 그러니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돌아오더라도 누더기 보따리를 싸 가지고 돌아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깨끗이 청산을 해야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종교생활도 그렇지만, 살림살이도 그렇습니다. '아이쿠 아무개 남자! 우리 남편하고 정이 들었는데….' 그 보따리가 전부 다 원수라는 것입니다.
산 꼭대기를 넘어야 할 운명인데….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전부 벗어 던져라, 팬티 바람으로 나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평지를 가게 될 때는 비난도 받을 것입니다. '저것들 팬티바람으로 춤추러 간다'고 말하겠지요. 평지에 가다가 쉬게 되면 '저것들 보라고, 벌거벗고 산다!'고 흉보겠지요. 그렇지만 흉보는 사람이 망할 패냐, 흉보인 사람이 망할 패냐? 어느 게 망할 패요? 벌거벗었을지라도 목적이 뚜렷해야 합니다. 만일에 올라가다가 쇠고리 같은 데에 빤쯔가 걸린다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팬티를 벗고라도 나설 수 있는 길로 가서 일등 하면 장땡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지금 통일교회 교인들이 그렇습니다. 어떤 패들은 '선생님이 오늘 또 무슨 말씀하실 것이다. 고생하라 할 것이다! 하지만 말만 그렇다'고 합니다. (웃음) 충신의 가르침은 별것이 아니라구요. 그저 보는 눈에는 침을 놓으려고 하고, 전부 다 달리는 말에 브레이크를 걸려고 하고, 자고 있는 사람을 목침으로 대가리를 까려고 하고…. 그게 충신의 가르침이라구요. 그렇다는 겁니다. 전부가 반대입니다. 나 좋다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들여다보면 볼수록 정떨어질 것밖에 없지, 정들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이 지극히 하나님을 위한 충신이 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는 길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속아서 나가든 강제로 끌려 나가든 나가게 되면, 나가지 않은 사람보다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망하더라도 세상 사람보다 나은 자리에서 망합니다. 죽더라도 영계에 가게 되면 높은 자리에 갑니다. 그거라구요. 그러므로 통일교회에 와서 좋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예 보따리 싸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올 필요도 없어요. 왔거들랑 보따리 싸 가지고 뒤로 돌아가야 됩니다.
그러면서도 떨어질 수 없고, 안 갈 수도 없는 길이라면, 그것은 지독한 길입니다. 지독한 길인데 그것이 나쁜 길이 아닙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오면 멋진 것입니다. 그 길이 얼마나 긴 역사의 거리를 갖고 있느냐? 만약 천년 동안 걸어왔다면, 천년 이상의 가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혹은 인류역사와 더불어 비참한 역사를 거슬러서 지금까지 걸어왔다면, 인류역사에 없는 빛나는 영광의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한 가치의 길이라면 벼룩이 놀라 뛰는 것 모양 그렇게 뛰어서 되겠느냐 이거예요. 뛰더라도 몇십 년은 뛸 수 있어야 합니다. 산이라면 산을 넘어가더라도 평지에서 뛰쳐내려가는 것이 좋아요. 뛰쳐 올라가다가 점점점점 기진맥진해서 팍 쓰러지는 것이 좋아요? 그것은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저 산정을 넘고 내려가는 데도…. 여러분들이 산에 가보게 되면, 노루라는 놈은 언덕바지를 치닫는 데는 이게 참 명수예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노루라는 놈은 반드시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넘어설 때에는 한번 싹 돌아보는 거예요. (웃음) 그것이 틀렸다구요. 거기서 전부 다 총에 맞아 쓰러지고 한다구요. 올라가는 데만 선수인 줄 알았더니…. 노루는 뭐 뒷다리가 길어 가지고 내려갈 때 언덕바지는 못 뛴다고 하는데, 그건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못 뛰긴 왜 못 뛰어? 그건 그 나름대로 뛰는 거예요. 뛰는 걸 보면 뒷다리를 이렇게(흉내내심) 넓히고 뛰는 겁니다. 보라구요. 내려갈 때 어떻게 하느냐 하면 뒷다리를 이렇게 넓히고 앞다리는 모아서 뜁니다. 그러니까 뛸 수 있다구요. 그냥 뛰게 되면 이렇게 꺼꾸로 되거든요. 그러니까 다 살게 마련이라구요. (웃음)
자 그러면, 고개를 올라갈 때에 멋지게 치달아 올라가고, 또 넘어가서 내려갈 때도 달려 내려가기를 하나님께서 원하겠어요. 그저 할수없어서 '아이고 나는 됐소' 하며 꺼꾸로 가다가 쭉 넘어지는 것을 좋아하겠어요? 어떤 것을 원하겠어요? 하나님도 별거 없지요 뭐, 사람과 마찬가지가 아니냐, 대개는 그렇습니다.
겨울에 말이예요. 객사하는 사람들이 그래요. 산을 넘고 내려오다가 아주 모진 바람을 막지 못하여 옴폭한 데 양지 바른 곳에 내려오면 '아 이거 참 따뜻한 자리구나! 좀 쉬어 가자' 이럽니다. 싹 앉으면 노곤해 가지고 가물가물 잠이 들어서 얼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 길에서는 안일을 용서하지 않아요. 언제나 초긴장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경기마당에 선 선수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가 어디까지 갈 것이냐?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어디까지 갈 것이냐? 만약에 살아서 못 가게 되면 죽어서라도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살아서 못 가게 되면 죽어서도, 가야 될 운명입니다. 여러분도 그걸 알지요? 땅 위에서 완성하지 못하게 되면 억천만 년이 걸리더라도 완성할 때까지 땅을 찾아와야 됩니다. 땅을 찾아오는 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과 사람끼리도 사정이 통할 수 있습니다. 눈물을 홀리면 그 눈물로써 사정이 통할 수 있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죽어서 영이 되어 이 목석 같은 인간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자기가 터를 닦아 가야 할 길이 있다면, 얼마나 비참할 것이냐? 그거 여러분이 몰라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선한 선조들이 있으면 말이예요. 여러분이 일단 통일교회에 발을 들여놓으면 코를 끌고 다니면서 '이렇게 이렇게 해라!' 해 가지고 전부 다 철석같이 잘되고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면 좋겠는데, 왜 선한 선조들이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협조를 못 하느냐? 다리가 놓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리가 놓아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땅 위까지 내려오기 위해서는 수만 단계의 다리가 놓아져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생각 하면 큰일이라구요, 큰일.
선생님은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땅 위에서 누구보다도…. 도의 길이 라는 것은 사후의 세계에 갈 길을 생전의 세계에서 전부 다 넘고 가자 그거예요. 그러려니 쉴 새가 있어요? 이것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는 거와 같다구요. 동네에서 일등했으면 됐지 또 일등을 하라고 합니다. 또 일등하라고 안 하게 되면, 그건 영영 동네의 일등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녀석아! 또 일등해라, 옛날같이 새벽같이 또 나서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면에서 일등합니다. 그렇지요? 동네에서 일등한 다음에 면에서 일등합니다. 그런데 면에서 일등했으면 '야 이 정도면 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너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만하면 됐잖아? 면에서 일등인데….' 그건 세상 모르는 녀석들입니다. 그렇게 뭐 했다고 뭐 자랑을 하고 이러는 녀석들은 어리석은 녀석들이라구요. 때를 모르고 환경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면에서 일등했다고 하더라도 아는 사람은 '야 이 녀석아' 일등한 후에도 하룻밤도 지나자마자 끌어내 가지고 또 훈련이라고, '이 녀석아!'이러면서 더 기합을 넣어 또 하라고 죄긴다는 것입니다. 죄기는 사람이 있거들랑, 거 나쁜 거요. 좋은 거요? 우리 아가씨들, 나쁜 거요. 좋은 거요? 「좋은 겁니다」 좋은 거예요? 그건 아는구만, 그것은 좋은 거예요.
그래서 군 선수로 나가서 일등을 했어요. 그렇게 일등을 했는데 누가 와서 '아 이젠 됐어, 우리 군에서 일등했는데 그만하면 됐지' 하는 녀석이 있으면 모가지를 잡고 '이놈의 자식! 내 성공을, 세계적인 성공을 망치려는 이 사탄아' 해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베드로도 마찬가지예요. '아 선생님 그러지 마시옵소서' 할 때에 '사탄아! 물러가라' 한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구요.
일등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그만두라고 하면 그거 사탄이요. 사탄 아니요? 자기 어머니가 반대하게 된다면 그거 사탄이예요. 아니예요? 어머니가, 사탄이지요. 형님 반대하게 되면 형님이 사탄이지요. 동생이 그러면 동생도 사탄입니다. 반대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반대하는 입장이 사탄이예요. 사탄이 별것이예요?
군 대표 선수가 되면 '야, 이 녀석은 소망이 있으니 전체가 훈련시키고 때려몰아라' 해서 훈련해야 돼요. 군대표가 되어 가지고도 자지도 않고 쉬지 않고 해서, 너무 훈련을 해서 군수로부터 서장으로부터 '야! 너무한다. 너무해, 좀 쉬고 하지' 하는 말을 듣게 되면 나가서 꼴등을 했더라도 동정을 받는다는 거예요. 쉬다가 꼴등하면 야 이놈의 자식…. 하고 국물도 없다는 거예요. 이건 뭐 면에서 승리한 것까지도 박탈해 버린다는 거예요. 세상이 그렇지요?
우리가 아는 사람이 군 책임자가 됐으면 도 책임자 되라고 더 무자비 하게 옛날보다 더 브레이크를 거는 겁니다. 이래 가지고 훈련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훈련하면 도 대표가 되는 거라구요. 점점 커지면 커질수록, 가면 갈수록 점점점점 더 치열한 훈련을 시킨다고 해서 그것이 싫다는 사람은 졸장부밖에 못 되는 거예요. 안 그래요? 우리 남자들, 안 그래요. 그래요? 그렇지요?「예」 그러니까 할수없다구요.
자 이건 통일교회에 들어오자마자…. '아, 이거 내가 처녀 때, 국민학교 6학년 때 들어왔고, 고등학교, 중학교 1학년 때 귀에 피도 마르지 않아 가지고 들어왔는데 그때도 고생하라고 하더니, 이제는 시집가고 장가가고 아들딸을 낳았는데도 또 고생하라고? 이러한 사람이 있다면 그 생각 잘못했다구요. 어떤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생각을 잘못했든가, 지금 통일교회 선생님이 뭐 이렇다고 평하는 그 사람이 생각 잘못했든가, 둘중의 하나는 잘못했다고, 그렇지요?
둘 중에서 하나는 잘못되었으니 그 하나를 걷어치워야 되겠는데 어떤 것을 걷어치워야 되느냐? 통일교회 문선생이 하라는 것을 걷어치워야 되겠어요. 그걸 평하는 것을 걷어치워야 되겠어요? 어떤 것을 걷어치워야 되겠어요? 자, 결정짓고 넘어가자구요. 어떤 것을 걷어치워야 되겠어요? 「평하는 것입니다」 평하는 것을 걷어치워야 됩니다. 그걸 걷어치워야 되는데, 안 들으면? 방해꾼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쫓아내야 돼, 쫓아내야 돼!
뭐 통일교회에서는 합동결혼식을 세계 사람들이 전부 다 주목한 가운데 굉장히 찬란하게 하더니, 무슨 40일 뭐 어떻고 어떻고 또 그런 소문이 나더니, 그것도 말고 3년 동안 남북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다고 해서 부모들이 '아이쿠! 우리 아들딸 다시는 통일교회 못 들어가게 하겠다' 그럴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래 가지고 나라 살리기 위해서 망했다면, 앞으로 역사에서 대한민국이 망한다면 그 망한 역사를 반대하다가 망했다면, 그것은 그 나라를 다시 부흥시킬 수 있는 재기의 전통적 사상으로 등장할 때가 올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해 가지고 나가는 무리를 반대하는 민족 반대하는 주권이 망했다 할 때는 반대받던 통일교회 패들은 제 2차 새로운 건국, 창건의 사상적 전통으로 남아질 것이 아니냐? 그거 맞아요. 안 맞아요? 선생님 말이 틀렸어요. 맞았어요? 맞았으면 그렇게 해야 돼요.
때가 되면 될수록 점점 더 부대낄 것입니다. 결론은 그거라구요. 점점 점점 때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통일교회에서 오래 된 사람은 전부 다지쳐서 나가자빠질 거예요. 그런 때가 오거들랑 처음부터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아이코 이것만은 내가 책임지겠다' 해야 됩니다. 슬쩍해 가지고는…. 춤추는 데는 용마를 타고 춤추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구, 그렇잖아요? 이왕에 춤출 바엔 후닥닥 남을 타고 춤추지, 태우고 춤출래요? 어떤 것을 원해요? 태우고 춤출래요. 타고 춤출래요?「타고 춤추겠습니다」 타고 춤춰야 돼요. 그럴 수 있는 길도 있다는 거예요.
먼저 나왔다고 뭐 어떻고 어떻고 큰소리하지만 결국은 남을 태워서 이러다가 결국 이러다가 맨 구덩이에 다 가서 쓰러지는데 그것을 살짝 딛고 저쪽 강을 건너가야 된다구요. 그걸 배워야 된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도 작전을 그렇게 하는 거예요.
'음! 기성교회가 얼마만큼 센 줄 알았더니 뭐 별것 아니구만! 떼거리가 많은 줄 알았더니만 별것 아니구만! 침질해 보니까 별것 아니구만? 그렇다구요. 하나님의 뜻은 하나이기 때문에 챔피언 선수로 기록을 내야 되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을 타고라도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그 이상 넘어가려니 그 이상 날뛰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기는 놈이 있으면 나는 놈이 있고, 나는 놈 위에는 또 뭐가 있다구요? 덮치는 놈이 있다구요. 나는 놈을 덮치려면 얼마나 눈치가 빨라야 되겠어요. 눈이 일방적으로만 되어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사방적이 되어 가지고 번개 같이 나꿔채야 된다구요. 요전에 누가 말하기를, 번개불에 계란을 삶아 먹는다고 했지만 말이예요. (웃음)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다구요.
자, 이렇게 볼 때, 가면 갈수록 공산당은 죽을 길로 들이모는 것입니다. 그런 공산당이 원수라면 그보다 더하지 않고 이기겠어요. 못 이기겠어요? 공산당이 자기의 최후의 원수라면, 가면 갈수록 죽을 길로 들이몰면서 훈련시키는 공산당이라면 그것을 이기려면 그보다 덜해서 이길 수 있어요. 없어요? 없다구요. 없다구요.
이번에 내가 3차 세계순회노정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느낀 것이 뭐냐 하면 통일교회 교인 불쌍하다…. 그래서 내가 세계로 돌아다니면서 원조도 해주고 다 그랬지만, 불쌍하다는 거예요. 철모르거든 지금…. 겨울이 올 때가 되었는데 베적삼을 입고 지금 뭐 뛴다고 야단하고 있다구요. 지금은 그렇게 해도 통하지만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게 되면 솜바지저고리를 입어야 할 텐데 야단났거든요. 그렇지만 솜바지를 못 입고 베적삼을 입었더라도 그 겨울을 달리기만 하면 산다 이거예요. 쉬는 날에는 얼어 죽지만, 베적삼을 입었더라도 뛰는 날에는 맨발로 뛰더라도 동상에 걸리지 않아요. 땀을 흘리고 뛰는데 동상에 걸려요? 계속해서 뛰게 되면 겨울도 모르고 넘어갈 수 없다?「있다」(웃음)
자, 이런 것은 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통일교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뭐 그런 생각도 안 하고 출발했겠어요? 통일이라는 건 쉽지 않은 거라구요. 시일이 걸리게 되면 더 쉽지 않아요. 이놈이 크면 클수록….
여러분이 큰 공장에 들어가면 말이예요. 큰 모터에 호이루가 달려 있습니다. 기계가 전부 원활히 운동을 하게 하기 위한 큰 쓸데없는 바퀴를 하나 덧붙여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돌아가고 있는 경우는 전기 스위치를 딱 꺼도 돌아가요. 안 돌아 가요?「돌아갑니다」 스위치를 껐는데도 돌아가요?(웃음) 크면 클수록 돌아가요. 안 돌아가요? 돌아가던 것이 그냥 전부 다 '야 스톱' 한다고 한꺼번에 스톱해요? 전기는 껐지만 아랑곳없이 '나는 간다. 돌아간다' 하는 거예요. 얼마나 돌아가느냐? 돌아가고 돌아가고 돌아가고 점점점점…. 이래 가지고 나중에 멎을 때는 어떻게 돼요? 돌아가려고 하다가 스톱해 가지고 한번 뒤로 쓱…. (웃음) 그것을 나는 경험했어요. 발동기도 이렇게 돌리다 보면 스톱할때…. '아! 천지의 이치는 인사법이 있다!' 라고 생각했다구요. (웃음) 일을 해서 그렇게 돌아갔으니 반대로 인사를 해야지, 인사법이 있다고 생각해 봤어요.
이러한 자연물도 그와 같은 법도의 작용에 따라서 돌아가려고 합니다. 돌아가기 시작했으면 끝가지, 그 전기가 빠져도 돌아가려고 하는데 통일교인들은 뭐야? 전기를 집어넣어도 '부웅부웅….' 하다가 잘못되면 모터면 모터가 꽝 하는 거예요. 그게 잘된 거예요? 터져 나갑니다. 터져 나가게 되면 이쪽도 못 쓰고 저쪽도 못 쓰고 아무 쪽에도 못 쓰니, 그것은 쓰레기통에 가는 거예요.
여러분은 지금 전기를 집어넣는데 '우-' 하우, '씽씽씽' 돌아가우? 어때요? 뭐 있다구요. 그런 입장에 여러분이 있다구요.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는데 그것이 안 돌아가면 망했어요. 안 망했어요? 망했다구요.
너무 빨리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위험한 것입니다. 요전에 대구를 가는데 말이예요. 시간이 좀 늦었어요. 두 시간 30분이 남았어요. 대구까지 보통 고속 버스로 네 시간 20분이 걸리는데 남은 시간 내에 달려 보자 해서 두 시간 20분 만에 달려 버렸어요. 그 우리 차가 참 잘 달립니다. 생기기도 잘생겼지만, 잘 달리더라구요. (웃음) 그런 때는 내가 기를 쓸 수 있다구요.
종교 지도자가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이거 양심적으로 가책을 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바빠서 시간이 없을 때는 하나님도 할수없이 이보다 더 좋은 차가 있으면 나에게 갖다 주고 태워 주고 싶겠어요. 안 싶겠어요? 그러고 싶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아주 기분이 좋았어요.
고속버스가 시속 백 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는데도 그 고속버스들을 휙휙 지나가 버렸지요. 그것은 이웃 동네 작은 애기를 따라잡기와 마찬가지라구요. 이래 가지고 두 시간 20분 만에 달려갔으니 기분이 나빴겠어요. 좋았겠어요?(웃음) 「좋았겠습니다」 자, 이거 시간내에 가니 기분이 참 좋았어요. 좋았지만 갈 때까지는 어떠했겠어요? 두 시간 20분 동안 조마조마 조마해 가지고, (웃음) 간이 콩알 만해 가지고…. 만일에 까딱만 잘못하는 날에는 날아간다구요. 어디로 날아가느냐? 영계로 날아가는 거예요. (웃음) 그것은 수속절차도 없이 돌입해 버린다구요. 그거 얼마나 심각하겠어요? 이야! 뭐 잠자고 쉬는 것도 어지간해야지요. 잠이 뭐예요? 운전수보다 내가 더 정신을 차리는 거예요. 가다가 조금만 까딱하는 날에는 볼장 다 보는 거예요.
빠른 게 좋긴 좋지만 빠르면 빠를수록 위험이? 위험이?「동반…」 동반 합니다. 통일교회가 빨리 나가면 나갈수록 점점 위험천만한 사건이 세계적으로 벌어집니다. 그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지금 통일교회 때문에 위압을 받고 있어요.
옛날에는 기성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이 찾아와서 '통일교회 ! 야, 아무개야! 내 아들 내 딸이 여기 와 있지? 이 녀석 나와' 하면 통일교회의 책임자들, 못 입고 못 먹는 불쌍한 교회장들은 '아이쿠! 나 죽었구나!'하고 (웃음) 가슴이 철렁해 가지고 '덜커덕 쾅' 했어요. 그런 시대가 있었다구요. 그거 다 지내 본 사람들은 잘 알 거라구요. 요즘에는 반대가 됐다구요. 통일교회의 전도대원이나 혹은 고등학교 학생들이 정문으로 찾아가서 '목사님 있소' 하면, '어 누구냐? 합니다. (웃음) '누군 누구예요. 나지요!', '나가 누구야! '내가 누구기는요. 교회 찾아온 사람이요', '교회 찾아온 사람 누구야?','통일교회…', '아!' 꽝…. (웃음) 뒤로 도망가는 거예요.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반대로 되는지….
그 반대적 현상이 벌어졌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이게 문제라구요. 그렇잖아요? 망하는 기성교회가 반대로 가야 살겠어요. 바로 가야 살겠어요? 망할 길에 들어선 기성교회가 반대로 가야 살 길이 있어요. 바로 가야 살 길이 있어요?「반대로 가야 합니다」 그러니 반대로 물아 줘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기성교회의 목사들을 전부 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쫓아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백두산 맨 심산유곡에 들어가서, '아이고 하나님 ! 이거 큰일났소' 하고 기도하다가 불이라도 받아 가지고 다시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지만, 그냥 뒀다간 망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돼 있어요! 우리가 길잡이 노릇을 잘해 주고 있다구요. 그렇잖아요?
그렇다고 뭐 우리가 그것을 취미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구요. 그걸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 사람들의 교회를 전부 다 약탈하는 황마적 같은 패들이 아니라구요. 같이 살자는 거예요. 끝날로 가면 갈수록, 파장이 되어서 장거리가 되게 되면 전시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 그렇지요? 박람회가 있잖아요. 종교 박람회가 있지 않느냐 이거예요. 한번 종교 박람회를 해보자는 거예요. 그 왜 반대를 하느냐 이거예요. 종교 박람회를 하게 되면 종교 통일 현상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종자가 다 같지만 강원도산(産), 전라도산, 그게 있지요? 한국산, 미국산 다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보자는 거예요. 거기서 누가 일등하느냐? 박람회에 제시해 가지고 결정을 해보자는데, 왜 야단이냐 이거예요. 통일교회 틀렸어요? 당당한 소리를 하고 있다구요. 그런 당당한, 소위 통일교인들, 우리는 뚜렷한 목적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죽더라도 하나님은 죽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요? 내 뜻은 못 이루더라도 하나님의 뜻만은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효의 길이나, 충의 길이 무엇이냐? 충효의 길이 무엇이냐 하면, 내 뜻을 못 이루더라도 부모의 뜻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효의 길이요. 군왕의 뜻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충의 길이 아니냐, 열녀의 길은 낭군의 뜻을 세우고 가는 것이 아니냐? 죽더라도 그것을 세우고 가기 위해서 모든 것을 투입시켜 가는 것이 열녀의 길이 아니더냐? 이거 안 그래요?
예수님이 베드로에 대해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사랑하는 제자 앞에 당치 않은 말을 한 것도 왜 그랬느냐? 예수님을 따라야 할 것이 제자의 책임인데, 선생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길을 협조하고 따라가고 바라야 할 것이 제자의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반대적 입장에 서니까 사탄이 아니냐, 사탄이요. 아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자기 뜻대로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구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한 거예요. 자기 뜻대로 살았어요?
성인이 자기 뜻대로 살았어요? 아닙니다. 그래서 성인은 뭐냐 하면 하늘을 따라 살아야 된다구요. 공자는 '위선자(爲書者)는 천(天)이 보지이 복(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天)이 보지이화(報之以禍)니라' 했는데, 천(天)이 뭐예요? 막연하지만 하늘을 따라 살려고 했다는 거예요. 하늘의 뜻을 세우려고 했다는 거예요. 이런 거예요.
한 나라에 애국애족하는 백성이 있다면, 그 백성은 나라의 뜻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나라의 뜻을 세워 가지고 그 뜻을 다 이룬 후에는 뭘할 것이냐? 그 나라가 세계의 뜻을 이어받아 가지고 세계의 뜻을 세우게 된다면, 그 백성은 세계를 지도하는 민족이 되는 것은 정한 이치가 아니냐? 또, 그 세계를 세우게 되면 인륜의 길을 다 세우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 인륜의 길을 세워 가지고는 뭘 할 것이냐? 천륜의 길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성인의 가르침은 언제나 하늘이 위주가 되었습니다.
천륜을 세워야 되는 거예요. 인륜을 세우는 것만이 종교의 목적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그 사명의 분야는 천륜까지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될 때, 천륜이 지금까지 성사 못 된 것은 인륜이 반대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인륜을 완전히 거부하고 부정할 수 있는 완전한 터전을 갖기 전에는 완전한 천륜의 새로운 출발을 못 봅니다. 그것이 종교가 출발하는 원칙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길은 부정에서부터 시작해요. 인륜 부정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독신생활을 해라, 욕심을 버려라, 가정을 버려라, 나라를 버려라' 하는 것입니다. 전부 다 이 놀음 하는 거라구요. 그랬어요. 안그랬어요? 부정하는 자리에 서서 긍정적인 자체를 다시 재조성하는 데 있어서 인간 본연의 완성적 가치를 추구해 나온 거예요. 그것이 역사 이래 종교가 추구한 목적이 아니냐, 그래서 그 완성을 보게 될 때는 인륜의 완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륜 완성의 기반을 가지고 천륜을 출발하게 될 때 인간은 영원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영원이냐? 하늘이 영원이기 때문에 거기서 영원히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륜적인 요소를 넘어서는 데서만이 영원적인 생명이라든가 영원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륜과 그냥 그대로 타협하는 자리에선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가만히 보면 사람의 욕망이 무엇에 걸려 있느냐 하면 자기에게 걸려 있는 거라구요.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무엇이 걸려 있느냐? 자기 중심삼고 편안한 데에 걸려 있는 거라구요. 자기가 편안하려고 그런다구요. 그러나 편안한 자리에 있으면 망하기 때문에 전부 다 반대로 고통의 자리에 바꿔 놓는 것입니다. 이거라구요. 종교의 본질이 그렇게 해서 출발했어요. 그러한 과정을 타파하는 것이 종교가 역사시대에 싸워 나오는 전쟁노정이라구요.
그래서 지금까지 기독교는 어느 주권시대에도 환영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환영받았던 때가 있어요? 전혀 없어요. 대원군도 그랬고, 일본도 그랬고, 전부 다 온 나라마다 피를 흘리게 하고 모가지를 땄어요. 그 희생 하는 전통을 본받아서 나라가 반대할 때 사체를 쌓아 놓더라도 그 반대가 끝날 때까지 싸워서 남아진 무리가 기독교의 전통적 사상권내에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는 명실공히 세계적 종교가 된 것이 아니냐, 그런 죽음의 고개를 넘어서 가지고 세계적 종교가 된 것이 아니냐.
이제는 세계적 종교보다도 차원 높은 하늘 종교, 즉 인륜을 대표한 종교보다도 천륜을 대표한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또다시 혁신해야 됩니다. 전세계의 기독교까지도 전부 다 불살라 놓고 고차원적인 것을 위해서 그야말로 일시에 전세계가 희생할 수 있는 각오를 갖지 않고는 새로운 천륜을 이어받을 수 있는 새로운 역사시대를 맞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그 새로운 역사적 기원을 다시 이 인류 앞에, 천륜을 대신하여 기원을 만들기 위해서 오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있다면 재림사상으로 남겨질 사상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걸 바라보게 될 때 보따리를 가지면 가질수록 사고뭉치라구요.
자, 개인을 찾았으면 가정을 찾아야 되고, 가정을 찾았으면 종족을 찾아야 된다구요. 종족을 찾았으면 민족을 찾아야 되고, 민족을 찾았으면 국가를 찾아야 됩니다. '민족을 찾았으면 국가도….' 천만에.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에 남북이 갈라져 있다구요. 세상은 두 나라가 되어 있다구요. 선한 나라와 악한 나라가 되어 있기 때문에 민족도 두 패가 되어 있으니 그 민족을 중심삼아서 나라를 찾아야 된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지금 현재 세계적 대표 국가가 되어 있어요. 남북이 갈라져 있지요? 민족 찾기 운동이예요.
민족을 누가 찾느냐? 민족을 찾는 기록을 누가 갖느냐? 자기 욕망을 중심삼고 자체의 욕망을 중심삼고 기록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공산당이면 공산당의 세계 국가 이념이나 민주세계라든가 전세계 국가를 무시하고 이북이면 이북 자체의 소원을 위한 세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계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에서 보조를 맞추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그에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하나의 통일을 바라고 세계가 적극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애국애족하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북한보다도 남한이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전통적 사상을 올바르게 가려 가져서 북한 사람들이 여기에서 생각을 해서 무엇이든지 전부 다, 하나에서부터 백, 천, 만까지 '졌다' 하는 자리까지 가게되면 자연적으로 악은 후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북은 천 오백 만을 돌파했어요. 기분이 나쁘다는 거예요. 남한 인구가 삼천 오백 만이나 되는데 천 오백 만밖에 안 되는 이북을 두려워 하고 있어요. 이건 사람이 다 된 거예요. 그게 사람이예요? 우선 민족적으로 수적인 입장에서 대한민국 자체를 두고 볼 때 이건 망신 입니다. 망신이지요. 배 이상의 국민을 가지고서 왜 벌벌 떠느냐? 사람이 없느냐 말이예요. 그거 왜 그래요? 못났기 때문입니다. 왜 못났느냐? 싸우기 때문에. 어떻게 싸우느냐? 앞으로 싸운다면 대한민국이 이기지만 옆으로 싸우는 거예요. 자기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라구요. 옆으로 싸우니 망하게 마련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뭐 옆의 누가 어떻고 누가 어떻고…. 옛날에 유협회장이 욕을 많이 먹었지요. '유협회장 눈을 보면 정기가 있는 것 같애, 그를 보게 되면 뭐 어떻고 어떻고…' 말이 많았다구요. 유협회장이 문제예요? 문제가 있더라도 그 사람을 보고 가야 되겠느냐? '저는 책임자는 어떻고, 그 아무개 책임자가 보기 싫어서 나 통일교회에 못 간다' 라고들 하는데, 책임자가 무슨 잘못이 있어요. 그 책임자가 보기 싫으면 딴 도로 이사 가면 되지요. 그 책임자가 필요하면 본부로 이사 오면 되지요. 지금 여기 본부는 김원필이가 책임자인데, 원필이가 보기 싫으면 선생님을 따라오면 되지요. 선생님이 보기 싫으면 그 사람은 죽으면 된다구요. (웃음)
자기 혼자 죽기가 싫으면 선생님을 죽이고 죽으라구요. 죽이는 데는 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너보다 낫기 때문에 죽인다' 하게 되면 선생님도 '예-' 하겠다는 거라구, 알겠어요? 그렇지만 나보다 못한 자리에서 그랬다가는 천벌을 받습니다.
유대교가 예수보다 나은 자리에서 예수를 죽였다면 조건에 걸렸겠어요? 제사장들 천국 다 갔겠지요. 유대교 천국 다 갔겠지요. 그때에 예수를 잡아서 죽인 유대교의 제사장들이 다 천국에 갔어요? 천국갔다면 내가 가서 쫓아내려고 한다구요. (웃음) 유대교인들이 천국가면 내가 가서 쫓아 내려고 한다구요.
못 가는 거예요. 왜? 자기보다 더 높은 선을 쳤기 때문입니다. 선을 침범한 만큼 손해배상을 하고야, 탕감하고야, 청산하고야 갈 길을 찾는 것이지, 잘못했던 것을 변상하지 않고는 못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수난길에서, 망하지 않고 독립국가로서 등장해 가지고 그들의 수십 배에 해당하는 아랍권의 원수들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옛날 예수님이 싸우지 않고 승리했던 기반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이제 우리가 다 협조해 줘야 된다구요.
자, 이렇게 보면 통일교회에서 하나님의 창조이상이고 뭐고 하는데 그놈의 창조이상이 어떻게 된 거야? 한번 보고라도 죽어야 되겠다고 생각해 봤어요? '내가 한번 보고, 그 다음에는 냄새를 맡고, 그 다음에는 먹어 보고, 그 다음에는 들어 보고, 입어 보고, 마음껏 살아 보고 죽어야 하겠다' 이런 욕심이 많아야 됩니다. 그거 다 못 하게 될 때에는 '한번 보고라도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안 해 봐요? 그 창조목적인지 무엇인지, 너불너불 말은 잘하지요. 통일교회가 입나발은 아주 컸어요. 입나발은 컸는데 기를 써서 나발을 불다 보니 진액이 빠져서 점점 작아진다구요. (웃음) 눈도 소가죽이라는 거예요. (웃음) 결국은 뭐냐? 하늘의 힘, 하늘의 뜻을 모른다는 거예요. 목적이 어떤가를 알아야 돼요. 알아야 된다구요!
오늘 아침에 처음 온 사람은 '뭐 저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면 그 모가지에 흰 것은 왜 발랐나? 할 거예요. (웃음) 그렇지만 내가 안 아프더라도 붙이고 나오는 것은 내 자유라구요. (웃음) 그럴 수 있어요. 코에다 저울추 같은 것을 달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 (웃음) '저 녀석 왜 저러냐?' 하더라도 그것은 나에게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그런 것을 최후에는 싫어할 사람인데도 그저 지금까지 정성이 지극하거든요. 그래서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그 사람이 최후에 합격하느냐, 못 하느냐를 중심삼고 하나의 시험대에 올려 세워 그걸 테스트하기 위해서 내가 시험하는 재료가 될 입장에 서면 코에다가 저울추를 달고 나올 수도 있어요. (웃음) 그럴 때는 그 사람이 제일 꼴불견으로 생각하고 제일 싫어하는 행동을 해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아이코' 하며 한방에 나가자빠지는 거예요. 그러면 시험 문제를 잘 냈어요. 못냈어요? 잘냈죠! 그 시험을 참 멋지게 계획대로 못 치르게 잘 했어요. 못 했어요? 잘 했다는 것입니다. 일등하게 되면 아이구 나 상줄 줄 알았더니 상이 뭐야?'이 녀석아 또다시 출발해, 출발!' 하기 위해서는 그런 놀음을 시킬 수도 있다구요.
통일교회를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빼려면, 술병을 한 열댓 개 갖다 놓고 먹고 먹고 먹고, 그 다음에 조금 기다리다 변소에 갔다 와서 또 먹고 먹고 술병을 가득히 놔 놓고 먹으면서 얘기하는 거예요. 거기에 세계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한 사람을 빼려고 작전하면 그런 놀음을 해야 된다구요. '저 사람이 지금까지 술을 안 마셨는 데, 왜 술타령이지? 저렇게 술을 먹고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저럴까? 거기에는 뭐 있구나!' 그런 사람일수록 무서운 사람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지 않아요?
사람이 양반 되어서 점잖게, 나랏님도 용상에 앉은 나랏님은 좋은 것 같지만 죽을 지경입니다. (웃음) 그러므로 곤룡포고 뭐고 전부 다 벗어 던지고서 '아이고 좋다. 이게 자유가 좋다' 이러면서 벌렁벌렁 뛰어다니는 거예요. 그럴 수도 있다구요. 죽을 지경이면 그렇게라도 해서 '아이고 좋다' 할 수 있는 겁니다. 그것을 반대하는 자는 간신입니다.
하나님도 그렇지요. 통일교회 문선생님을 하나님이 잘 내세웠어요. 기성교회 목사들이 얼마나 뭐 이웃을 사랑하고 판단하는 것은 판단받는다는 성경 말씀을 다 해 놓고 말이예요. '끝날에는 네 집안식구가 원수'라고 했는데, 집안식구가 총을 대서 원수예요? 못 가게 만들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거예요. 그런 것을 보게 된다면, 성경 말씀을 읽게 되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사탄인지 하나님편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여러분들이 판단하겠지요. 하여튼 전세계 기독교가 문제시하는 대표적인 왕초가 나오긴 나왔다구요. (웃음) 그렇다고 키가 큰 것이 아니고, 눈이 큰 것도 아니고, 손가락이 육손 팔손이 된 것이 아니라구요. 마찬가지라구요.
무엇이 다르냐? 출발한 그 기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르다구요. 근본적으로 다르다구요. 다른데 최후에 가서 어떤 것이 더 좋아질 것이냐 하는 것은 두고 봐야 되는 거라구요. 두고 보는데 지금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큰 그릇이 되고 안 되는 것은 어릴 적부터 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보면 아는 거라구요. 어떠한 길을 가느냐? 자기를 위한 욕심꾸러기로 가느냐, 남을 위해서 희생하느냐 할 때, 남을 위해서 희생하며 가게 될 때는 그건 틀림없이 득세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 욕심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고 간다면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내가 통일교회 선생님이 되어 가지고 이 세계에 피해를 많이 입혔어요. 사탄세계에서 보면 말이예요. 그런데 이 세계가 하나님이 좋아하는 세계 같으면 내가 하나님 앞에 복종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렇지만 이놈의 세계가 하나님이 싫어하는 세계라면 그 세계에 있는 녀석들이 나쁘다고 하게 된다면 하나님편에 먼 거예요. 가까운 거예요? 가깝다구요.
세계가 '야!' 미국에 가면 미국에서도 '아! 미스터 문 안 되겠다' 고 하고, 일본에 가게 되면 일본 정부에서도 '아! 미스터 문' 그래요. 문제의 인물이 돼 있다구요. 지금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여러분들 한국 사람들은 모르지만 아시아에서 조금만 가게 되면 아시아 근대 사회에서 미스터 문을 빼놓고는…. 정치, 사상적인 분야에 있어서 기록을 남길 수 없는 일을 지금까지 해왔다구요. 그건 한국의 그 누구도 모르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은 모르지만 외국 사람은 알고 있다는 거예요.
밤중인지, 아침인지, 초저녁인지, 새벽인지 뭘 몰라 가지고, 이거 못난 것들…. 개구리 새끼들은 우물 안에서 싸우지요? 못생긴 두꺼비는 척 내려다보면서 '야! 너희들 잘 싸운다' 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게 상대가 안 되기 때문에 싸움을 안 하려고 합니다. 우리 갈 길이 바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악한 세상에 반대받고 망해 들어가는 기독교 앞에, 기성종교 앞에 반대받는 패가 나와야 빨리 망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새로이 개조가 되든가 둘 중의 하나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대한민국의 수많은 종교를 사랑하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 같은 사람을 내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내가 필요해요. 안 해요? 통일교회 자체내에도 필요하고, 기성교회 자체 내에서도 필요하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통일교회 교인들 앞에 가면 갈수록 신용받는 것이 아니라 가면 갈수록 싫어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것 이해돼요? 기성교회는 물론이고, 대한민국도 통일교회 문선생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사탄인 공산당도 나를 제일 싫어합니다. 엊그제도 일본에서 조총련이 국제승공연합을 '그 악랄한 패들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을 내가 보면서 '잘도 노는구만' 했지요. 나는 가만히 있는데 왜 야단들이냐 이거예요. 가을이 되어 찬바람이 불어오면 활엽수는 떨어지고 침엽수는 남아지지요? 끈기 있는 것일수록 오래 남아지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에서는 망한다고 하는데 통일교회에서는 흥한다고 하지요. 다르다구요. 저기서는 쉬려고 하는데 우리는 안 쉬려고 합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저기서는 자기 잘사는 것과 자기 아들딸만 생각하는데, 우리는 아들딸을 버리고 나섭니다. 반대라구요. 전부, 그러니까 저들의 목적과 우리의 목적은 다르다구요. 다르지요? 달라요. 안 달라요?「다릅니다」 다르다구요. 얼마만큼 달라요? 얼마만큼 다르다니? 비교할 바도 안 된다 이거예요.
보라구요. 기성교회 목사들은 기도하게 된다면 말이예요. 그저 '우리 아들딸, 우리 교회, 뭐 어떻고 어떻고…. 남의 교회는 망해도 좋다' 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구요. 기도를 해도….잘난 사람은 어떤 동네에 가게 되더라도 동네 어른들을 찾아보고 아이들에게까지 눈깔 사탕이라도 사 주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저 사람은 처음 왔지만 좋다' 는 평을 받아 놓고 그 다음부터 자기 일을 시작하는 것이 인정의 도리예요. 안 그래요? 그렇다구요.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할 책임은 해야 됩니다. 나 자신이 누가 기성교회에서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왔다고 멸시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면 환영하는 거라구요. 만나면 좋은 낯으로 대해 줘야지, 눈을 흘기고 '너, 옛날에 원수로 대하던, 우리 통일교회를 못살게 굴던 원수, 고질통 후계자가 들어왔구만, 이 녀석아' 이러지 않는다구요. '아! 왔느냐?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어떻게 해서 달라졌느냐? 여름과 겨울이 반대 입장에서 맞서 가지고 사시 계절을 만들어 나가지 않느냐 이거예요. 그것이 있기 때문에 맞서기 때문에 여름이 생기고 겨울이 생기는 거라구요. 그것 필요하다구요. 기성교회가 반대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다 망한다구요.
버릇이 얼마나 없겠느냐 생각해 보라구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버르장 머리가 얼마나 없겠나, 그저 눈을 곤두세워 가지고 들이밀치고 '이 녀석들 가라' 고 반대를 들이하고, 못 간다고 야단하며 반대했기 때문에 '아이고! 죽더라도 사람이 한번 결심한 것은 망하더라도 가고 봐야지' 하고 나선 거예요.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더욱 단결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안 그래요? 날이 추우면 추울수록….
부처끼리, 지금까지 일생 동안 살을 맞대기 싫어하며 부처끼리 살던 사람인데 맨 추운 방에 딱 둘이 있어서 얼어 죽게 되었다면 붙들게 돼요. 안 붙들게 돼요?(웃음) 붙들지 말라고 해도 불들게 됩니다. 저 구석에서 '여보 여보' 하면서 약한 사람부터 먼저 기어갈 것입니다. 서로 붙들고 비벼대게 돼 있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그럴 수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 반대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구요. 그것을 어떻게 유효적절하게 우리가 소화시키고 관리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이렇게 통일교회의 사고방식은 다르다구요. 기성교회는 지금도 우리가 찾아가면 미워하고 있습니다. '요것이 또 왔구나' 하면서 핀세트로 눈알을 빼려고 합니다. 그게 좋은 일이 아니라구요. 내가 좋은 전법을 하나 생각했어요. 통일교회 젊은 사람이 배후에 배수진을 치고 기성교회를 들락날락하게 되면 포위작전은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싸움하지 않고 들락날락하게 되면 죽을 것 같으니까 거기에 전심전력을 하다 보면 딴 것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들락날락을 하면 할수록 빨리 빨리 포위되어 가지고 한 그물에 포위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얼마나 열심히 통일교회를 반대하느냐? 반대할수록 사고다. 반대 안 했으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그러니 이거 야단이라구요.
반대 안 하고 너하고 나하고 화해합세. 통일교회 임자네들하고 우리하고 공존이요. 공존' 이런 원칙을 세워 가지고 제 1조 공존, 제 2조 공존, 제 3조 공존, 이렇게 되면 큰일난다는 겁니다. 뜻을 이룰 수 있어요?
누구 하나가 먼저 머리를 숙이게 돼 있기 때문에…. 빛을 진 사람은 머리를 숙이는 거라구 먼저 까닭 없이 주먹질한 사람은 머리를 숙여요. 안 숙여요? 빛을 졌으면 머리를 숙인다구요. 악한 것은 빛을 졌기 때문에 머리를 숙이고, 선한 것은 빛을 지웠기 때문에 머리를 숙이지 않아요.
자, 그런 길을 지금 이만큼 닦아 왔어요. 이제는 어지간히 올라왔지요? 「예」이제는 선생님이 '여보' 하면 저쪽에서 '그래, 그래, 그래, 왔어, 왔어, 됐어, 됐어' 할 수 있는 때에 왔다구요. 이제는 세계가 어떻게 되느냐? 점점 정상에 올라설 수 있는 입장에 섰습니다. 1974년까지 그렇게 안 되면 통일교회 원리가 거짓말이라구요. 최후의 숨가쁜 마루판 씨름이 이민족 앞에 찾아왔고, 세계 앞에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럼 왜 아시아에서 이런 놀음을 하게 되느냐? 최후의 결승전이 벌어 지게 될 때는 점점점점 큰 원수가 나타나우, 작은 원수가 나타나우? 큰원수가… 둘이예요. 하나예요? 세계에서 딱 하나인 것입니다. 최후에 우리가 마루판 씨름을 하려고 하게 되면 세계에는 우리밖에 없다. 하늘도 우리한테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이런 신념을 가져야 돼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면 우리 대 누구냐? 공산당이예요. 공산당에 비해 수적으로 약합니다. 수적으로는 약하지만 질적으로는 우리가 더 우수해야 됩니다. 수라는 것은 질의 확대에 의해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단 하나라도 공산당으로부터 안팎으로 깨뜨려 부숴 가지고 치더라도 깨지지 않을 수 있는 질의 결합체만 갖출 수 있으면 그것이 맞는다고 해도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맞으면 맞을수록 때린 것이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마루판 씨름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이북에 들어가게 되면 이북 공산당은 전부 다 사상무장을 하고 있을 테니까, 거기에 대해 우리는 사랑의 사상을 무장해야 합니다. 거기는 겨울의 찬바람이 불어치는 북방문명이라구요. 소비에트 문명에서 온 북방문명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온대권 문명으로 얼음을 가만히 둬도 자연히 녹아날 수 있는 이런 작용을 하지 않고는 두 나라가 망한다 이거예요. 그러니 철두철미한 사상무장을 해야 됩니다.
그 사상이 개인의 욕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 인류를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은 것이 아니예요. 공산당들은 공산당 몇몇 간부를 중심삼고 하자는 것입니다. 김일성이면 김일성 이외는 일체 용납하지 않는 거라구요. 모택동이면 모택동 이외에는 일체 용납하지 않는다구요. 자기의 적수가 나오면 모가지를 잘라 버리는 거라구요.
우리는 그것이 아닙니다. '상대적 환경과 화합하여 하나되어서 보다 높은 차원의 상대적 기준을 이루자. 즉,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서 보다 높은 부모를 맞이하자' 그 사상이라는 거예요.
차라리 안 나가는 게 낫다고 해서 떨어진 사람들이 지금 자기 멋대로 장가를 가서…. 이번에 순회할 때 한 사람 만났는데 '이런 사람도 통일교회가 받아 줄 수 있겠느냐?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받아 주지요. 그것을 전부 다 수습은 할 수 있다구요. 그 수습절차가 조금 복잡할 뿐이지, 받아 주는 것입니다.
자, 이런 입장에서 보면, 결국은 통일교회 문선생님밖에 믿을 수가 없지 않느냐 이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별수없다구요. 죽을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그 길밖에 없다구요. 그러니까 책임진 사람은 불쌍한 사람 이라구요.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보라구요. 이번에 박대통령배 쟁탈전 축구대회 결승전에서 한국이 버마한테 졌지요? 그렇지 않아요? 거 쟁탈전 최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최후에는 둘이 남는 것입니다. 둘이 남아 가지고 싸울 수 있는 기력이 등등하고 당당하면 할수록 그는 챔피언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결정 순간이 되면 될수록, 전부 다 지치고 숨막히는 그 시간이 되면 될수록 그 숨막히는 시간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힘을 가졌으면 그 팀은 우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그 목적의 한 결정타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고 숨 막힌다' 해 가지고, 볼이 굴러오는데 막 달려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저쪽에서 뛰어오는데 한 발자국만 더 뛰면 내가 잡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쿠' 하고 주저하다가는 망하는 거예요. 그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후에는 공산당 이상 끈기를 가지고, 그 공산당이 세계를 제패한다면 우리는 하늘땅을 제패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지고 당당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세계에서는 세계 제패를 들고 나오지만, 우리는 천주주의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천주주의라구요. 천주주의, 목적하는 바가 공산당의 세계 제패가 아니라구요. 하늘땅, 영계의 우리 조상들까지 전부 다 자손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지, 아담 해와, 타락한 아담과 해와를 우리의 맨 말단 손자로 만들자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이라구요.
할아버지가 손자 되는 때가 되기 때문에, 천지개벽이 벌어진다 이거예요. 천지개벽이 뭐냐? 할아버지가 할아버지 되고 손자가 손자 되면 그게 무슨 천지개벽이예요? 그런 때가 된다는 거예요. 이렇게 돌아가던 것이 이렇게 돌아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꼴래미가 일등이 되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통일교회가 맨 꼴래미가 되어 있지만 세상이 꺼꾸로 돌아갈 때는 어떻게 돼요?「일등」그런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놀음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못나서, 못나서 이 놀음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여러분을 반대하는 가정을 반대로 돌려 놓아야 됩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를 반대하던 기성교회를 반대로 돌려 놓아야 됩니다. 기성교회 목사들 왔으면 똑똑히 들으라구요. 선전포고를 한다구요. 교회든 무엇이든 암만 가서 해보라구요. 통일교회는 없어지지 않는다구요. 이 밥목사들, 내가 돈을 그저 몇천억 원만 예금해서 '옛다 너도 먹고 물러가라' 하면 춤을 추며 밤에 도깨비처럼 나타나서 '나도 왔소'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내가 시키는 대로 일할 수 있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구요. 밥목사들 별수 있어요? 조밥을 먹던 사람에게 쇠고기 장조림에 이밥 먹게 해주면, 거기에 그저 혓바닥을 나불나불해 걸려들게 돼 있지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이젠 부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알겠어요? 부자가 아니고 부재가 되어야 되겠어요. 부자가 되어 가지고 부재가 되어야 되겠다구요. 기성교회보다 못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대학을 세워도 내가 연세대학 뭐 이화대학…. 그 대학들은 전부 다 외국 사람들을 빌어다가 했지만 나는 외국 사람을 갖다가 시켜 가지고 할 거라구요. 다르다구요.
통일교회 본부를 보고 '통일교회 본부가 뭐 이래, 큰소리는 하지만 이렇구만' 그러는데 아직까지 때가, 새끼가 다 자라서 날아갈 때가 안 되었다구요. 아직까지, 그러나 가지는 쓱쓱 자라고 있는 거라구요. 그렇다구요. 여러분이 새둥지 보지요? 맨 처음에 알로 살 때는 포근해 보이지만 그 다음에 솜털난 새끼가 나 가지고 어미 아비가 먹이를 갖다 주면 찍찍 빽빽 하면서 서로 먹겠다고 경쟁하는 거라구요. 거기에서 많이 받아 먹는 녀석은 잘 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라구요. 통일교회에서도 이렇게 많이 받아 먹겠다고 그저 바람 소리만 획 해도 '아' 하는 거예요.
내가 옛날에 새를 많이 잡아 봤어요. 새라는 새는 안 잡아 본 것이 얼어요. 취미가 많았다구요. 어떻게 사는지 생리적인 모든 전후를 알지 않고는 밤잠을 안 잤어요. 철새가 한번 나타나게 되면 끝까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새둥지까지 내려서 보고 새끼가 어떤가 뒤져도 보았습니다. 그런 것을 다 알고는 새끼를 딱 꺼낸 다음에는 방앗간에 가서 뭣을 먹나 보는 그런 놀음을 많이 해봤다구요. 어미 아비 새는 바람만 획하면 새끼에게 뭘 먹이느냐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생리적으로 그런 작용을 하는 거라구요. 획하게 되면 흡하고….(웃음) 그렇게 돼야 자라는 거라구요.
우리 통일교회 패들도 툭 하게 되면 '아이쿠 이래야 사는 것이다. 전도도 하고 뛰라면 뛰어야 되는 것이다' 이래야 돼요. 그저 눈을 깜박깜박하며 '아이구, 왜 이래' 이러면 못 자라는 거라구요. 말라 죽든가 하지요. 그럴 수 있다 이거예요.
자,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한번 보고 싶소? 그 세계 한번 보고 싶어요? 안 보고 싶소, 보고 싶소?「보고 싶습니다」 '자, 이거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이 많고, 얼마나 수단이 좋은지 한번 보고 싶다' 할 것입니다. 안 보고 싶어요? 그러면 세계를 가지고 '하나님 여기 있소, 한번 당신 마음대로 해보소' 그러고 싶어요. 안 그러고 싶어요? 또 하나님도 그렇게 해 줬으면 좋겠어요. 안 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못 해줬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금 헐떡헐떡하며 고생하고, 하나님의 6천년의 비참한 역사가 이루어진 거라구요. 그 능력만 있으면 마음대로 한번 할 수 있게 '여기 있소, 당신 소원대로 한번 해보소' 하면, 하나님은 '아이구 잘 됐다' 하며 하늘땅을 전부 다 품고 말아 가지고는 척척척 개인으로부터 문서를 꾸미는 거예요. 족보를 꾸밀 것이고, 생활계획을 꾸미고서 인간의 일생이 이렇게 돼야 되고, 이 한 고비를 가게 되면 무슨 경치가 나오고, 호수가 나오고, 무슨 굴이 나오고, 무슨 금강산 같은 것이 나오고, 뭐가 나오고 뭐가 나오고…. 요렇게 딱 한 고비를 가게되면 거기는 좋은 누각 같은, 궁전 같은 안식처가 나오고 그 거기에 들어가면 무슨 음식이 있고, 전부 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될 거라구요. 그래서 한 발자국 가 보면 그렇게 된 것이 틀림없거든요.
몇 번만 가보게 되면 '아! 틀림없구만, 아! 틀림없구만' 그렇게 되면 끝까지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그 재미가, 고게 그렇게 된다고 가르쳐준 대로 딱딱 들어맞는 재미가, 세상에 그렇게 좋을 수 있는 재미는 또 다시 없다 하게 될 때는, 그 길을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가겠습니다」 간다구요. 여러분들, 그런 재미 나는 길을 지금 가고 있어요. 못 가고 있어요? 못 가고 있으니 이걸 억지로 끌고 가는데 '아이구 다리야, 어디로 끌고 가요? 미친 녀석은 길잡이도 해줄 수 없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미친 녀석은 죽기 전에 갈 지(之) 자로 걷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집은 찾아가지만 이건 자기 집도 못 찾아가고 있다구요.
여러분의 조상이 누구예요. 조상을 모르고 있다구요. '우리 조상이 잔나비지, 잔나비' 이럴지 모릅니다. 내가 원숭이 띠요. (웃음) 그래, 잔나비가 조상이예요? 그래, 여러분들에게 '원숭이의 몇 대, 몇십 대의 손자들아' 한다면 기분이 좋아요? 아무리 굶어 죽게 되어도 원숭이가 먹여 살린다고 하면 '아이코' 소리치고 도망가지, 좋다고 하게 안 되어 있다구요.
이 나라에서 역적이라는 이름만 가진 사람도 사람은 사람인데 역적 됐다는 그 간판 가지고도 이 나라에서 살기 싫어 가지고 전부 다 해외로 나가려고 하고 있는데 말이예요. 원숭이? 사람이 원숭이예요? 그것은 정신이 돌아도 형편없이 돌았다구요.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 모르잖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진짜 있어요?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난 틀림없이 하나님이 있다' 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 증거를 못 갖고 있지 않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있다는 것,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진짜 자기 생명을 바치고 갈 수 있어요? 못 간다구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야말로 이제 그야말로 각성을 해야 되겠습니다. 뭔가가 잘못되어 있다구요.
내가 볼 때는 대가리를 흔들흔들하고 말이예요. 눈꼴 사나운 패들이 많다구요. 그런 패는 안 데리고 간다구요. 따라오려고 하면 그저 돌팔매질을 해서 떨어지게끔 만들어 놓겠어요. 못 따라오게끔 굴구멍에도 들어 가고, 물구덩이에도 들어가고, 떼굴떼굴 굴러가서 선생님을 못 따라오게 할 거예요. 따라올 수 있는 녀석은 따라와 보라고 할거라구요. 그래도 따라올래요?「예」 따라와야 뭐 생기는 것이 없다구요. (웃음) 솔직히 이야기하지만 생길 것이 없어요.
그저 가고 나서도 또 가고 싸우고 나서도 또…, 세상에서는 싸움 한판 하고 나면 술이든 무엇이든 고기든 푸지게 한번 먹고 낮잠이라도 한번 자고 이럴 텐데, 이건 싸우고 나서는 또 뛰어야 된다구요. '저놈 잡아라!더 큰 놈이 있구나!' (웃음) 합니다. 그러니까 쉴 수도 없습니다.
이래 가지고는 또 말하는 내용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이라….' 거기서 창조이상의 맛이 나요?'아이구! 창조이상이라더니 쓴맛밖에 없고 기가 막히는 맛밖에 없구나! 이게 창조이상이예요? 기가 막힌 맛밖에 못 보는거예요.
그러면 창조이상의 맛은 어떻더냐? 창조이상을 이루면 어떨까? 그 세계를 한번보고 싶어요? 보고 싶소, 안 보고 싶소?「보고 싶습니다」 얼마나 보고 싶어요? 내 눈이 보고 싶어서 뛰쳐나오리만큼 보고 싶으냐? '아이구, 보고 싶다' 숨막힐 듯이 보고 싶으냐? 아무리 옆에 대포알이 떨어지더라도 그걸 듣지 못하고 잊어버릴 듯이 그렇게 심각한 자리에서 보고 싶으냐? 그 정도 문제가 있을 거라구요. 내가 배 고픈 자리에서 배 고픈 것도 잊어버릴 만큼 보고 싶으냐? 여기에 정도 문제가 있을 거예요.
먹을 것 다 먹고, 들을 것 다 듣고, 볼 것 다 보고, 맛볼 것 보고…. 이걸 무슨 잔치식으로? 그건 하나님의 가치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 그럴 수 없다구요. 최고의 가치이니만큼 최고의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 자신이 숭배할 수 있는 이상세계라면, 또 그것이 그냥 그대로 가서 건드릴 수 없는 목적체라면 하나님 자신도 심각하게 정성들여서 그것을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 서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럼 그게 얼마나 보고 싶어요? 그런 창조이상세계라는 것이 앉아 가지고 말만 가지고 될 것 같아요? 될 것 같아요? 안 되는 것입니다. 자, 그렇게 보고 싶어한 창조이상세계를 우리가 맞이해서 하나님한테 한번, 그 창조이상세계를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도록 드려 보면 어떻게 될까요?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인데 그 사탄 새끼 같은 악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손을 쓰기 시작하면 악한 것들도 쓱 녹일 수 있는 힘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갖고 계실 거라구요. 그런 힘의 작용이 봄바람같이 불어오든가 여름바람처럼 불어 대면 이것이 한꺼번에 전부 다 선한 사람이 되어 가지고, 악하던 사람이 일시에 선한 사람이 되어 가지고, 서로서로가 한 덩어리가 되어서 하나님이 사랑을 안 할 수 없는 판국이 될 것입니다. 세계가 전부 다 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대해 가지고 지극히 좋아하고, 하나님도 좋아하고, 세계 인류가 좋아하고, 웃음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행복의 여건이 천지에 넘쳐흐르게 됐다면, 그곳에서 그러고 산다면 그 얼마나 좋겠느냐? 보기만 할래요? 한번 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거기가 보고 싶은 곳, 가고 싶은 곳…. 그곳에 가려면 보고 싶어해야 돼요.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가는 거예요. 보고 싶은 훈련을 해야 된다구요. 그 다음에는 가고 싶은 훈련을 해야 돼요.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보고 싶은 훈련을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식구가 보고 싶다는 거예요. 식구를 보고 싶어해야 되는 거예요? 얼마나 보고 싶으냐? 자기의 영감은 문제가 아닙니다. 영감을 죽여서라도 내가 가서 보고 싶은 사람, 자기 아들딸을 종으로 만들어 놓더라도 보고 싶은 곳을, 그 보고 싶은 상대를 좋게 해 주고 싶으냐? 그래요?
그런데 보고 싶은 곳을 가는데 나를 주장해 가지고 가겠다고 하면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를 위해 가느냐? 보고 싶은 곳을 위하여 가는 거라구요. 그 놀음이예요. 그래서 내가 있는 것은 그를 중심삼고 남을 위해서….
여러분, 보고 싶은 곳이 있어요? '그럼 있지, 미국에 간 우리 아들, 우리 딸, 아무 대학교 나온 귀염둥이 우리 아들, 자랑할 수 있는 우리 아들 딸이 있는데 내가 왜 안 보고 싶겠소?' 이것은 이미 썩어진 거라구요. 그것은 썩어진 나무인 것입니다. 그 몸뚱이가 썩고 있으니 봄철이 되어도 돋아나는 순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게 다 썩어져서 영원히 없어지면 그 순도 죽습니다. 뿌리를 박지 못한 그런 나무예요.
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없어요? 대답을 해보라구요. 있어요. 없어요? 사람이 성공하는 비결은 뭐냐? 어떤 목적을 대해 가지고 어디든지 가고 싶다하는 일체의 감정을 통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공을 빨리 해요. 더디 해요? 성공을 빨리 하지요? 빨리 만나는 거라구요. 만약 못 만난다면 꿈에서라도 만나는 거예요. 그 이상세계를 만약에 그렇게 보고 싶어하고 그리워하게 된다면 고생은 해야 되겠지만 꿈 가운데서 만날 때마다 더 심각하게 대하면 눈을 뜨고도 다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요?
그래서 종교 세계에서는 통한다는 말이 성립되는 거예요. 얼마나 보고 싶으면 그것이 실상으로 나타나게 돼 있느냐?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그 나타난 것이 그냥 그대로 들어맞게끔 되어 들어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얼마나 보고 싶어해야 되느냐? 자기 아들을 잡아서 제사할수 있어야 되고, 자기 여편네를 잡아서 제사할 수 있어야 되고, 자기 부모도 그럴 수 있어야 됩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씩보다는 부모와 아내와 아들딸을 한꺼번에 잡아서 제사할 수 있는 성의를 가지고 하지 않고는 그곳까지는 갈 수 없는 거예요. 왜 그러냐? 부모는 조상이요. 부부는 상대요. 자식들은 후계자입니다. 그러니 조상과 상대와 후계자를 전부 다 일시에 잡아서 둘로 갈라 놓지 않고는, 가른 자를 하나는 오른발로 밟고 다른 하나는 왼발로 밟고 넘어서기 전에는 이상세계가 못 옵니다.
왜 그러냐? 타락으로 우리 조상이 어떻게 됐느냐? 하나님을 배반했지요? 또 아담과 해와, 남자 여자가 서로 원수가 되었지요? 그렇지요? 원수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이 서로 원수가 됐다구요. 이 원수 된 것을 잡아 가지고 제사드리기 전에는 못 넘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면서부터 그런 길을 부정해야 되니 '가정을 떠나라, 결혼생활을 그만둬라, 자식을 갖지 말라'는 결론을 안 내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도의 길입니다. 도의 길, 비참한 길이라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백 세에 독자로 얻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 세상적으로 보면 그런 미친 하나님이 어디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이런 심정의 내용을 두고 볼 때 정당한 일이 아니냐, 부모를 모시고, 여편네를 데리고, 자식을 데리고 그냥 그대로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안 돼 있어요.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통일교회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뭐 통일교회가 가정을 파괴한다고 하는데, 내가 파괴했나요? 그건 하늘이 전부 다 파괴시키는 거라구요.
자기 남편보다도 더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따라가야 된다구요. 보고 싶은 것, 꿈에도 보고 싶고, 실제로도 보고 싶고 밤이나 낮이나 보고 싶은 것, 그 보고 싶은 것을 생각해서 훈련을 받아야 돼요. 초등부에서부터 중.고등부를 거쳐 대학에 가 학위를 얻어 학박사가 되고, 그 대학을 지도할 수 있는 총장이 될 때까지는 훈련을 받아야 된다구요. 그런 역사를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은 전부 다…. 자기 집을 버리고 나선 것입니다. 그걸 생명시하고 그리워하면서, 죽을 길도…. 죽음까지도 청산하고 그리움에 끌려가는 거기에서 새로운 운동은 벌어지는 거예요.
보고 싶은 곳….보고 싶으니까 가고 싶은 것입니다. 가고 싶으니까 보고 싶은 것이 그리워지는 거예요. 그러니 몸뚱이는 가는 거예요. 그렇지요?「예」 '보고 싶은 곳, 가고 싶은 곳을 한번 가 보자' 가 가지고는 뭐할 것이냐? 있고 싶은 곳…. 가는데 아주 지긋지긋해 '거기에서 죽으면 그뿐이야' 하는 곳, 통일교회가 그런 곳이라면 아예 떠나면 큰일날 곳이지요?
그래,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오고 싶어요? 거 이상해요. 통일교회 말씀을 한번 듣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던 발걸음이 통일교회로 온다구요. 방과 후에는 집에 돌아가는 것이 학생의 임무로 알고, 본분으로 알고, 책임으로 아는데, 통일교회 말씀만 딱 듣게 되면 집에 가던 발걸음이 통일교회로 오게 된다구요. 집을 보면 엉성하고 골짜기에 있는 교회지만 여기 오면 '여기서 가지 않고 밥을 먹고 살면 좋겠다. 있고 싶다' 는 생각이 든다구요.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는 진짜라구요. 있고 싶으면, 다음에는 뭘하고 싶어해야 할 것이냐? 살고 싶어야 돼요.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서로가 하나돼 가지고 형제로서 살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지 않으면 이상세계는 안 옵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사람입니다. 틀려요. 안 틀려요? 그리움에 사무쳐 가지고 '하나님이 어디 어디 있다' 하는 소리가 나기만 하면 어디든지 개의치 않고 국경을 지나서도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행동을 해서 찾아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삼천리 강산을 편답하여 온 사람들이 많다구요. 그거 뭐냐? 있고 싶다는 거예요. 아이쿠! 그립다. 가고 싶지 않다 이거예요. 여기 있고 싶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있고 싶으면 얼마나 있고 싶으냐? 늙어 죽도록, 거기서 시집장가를 가서 아들딸 낳으면서 전부 다 둥지를 틀고 영원히 살고 싶다. 이렇게 돼야 돼요.
그러한 터전을 이어받아서 그러한 내용이 하늘과 더불어…. 보고 싶은 곳이 하늘도 통하고, 가고 싶은 곳이 하늘과 통하고, 살고 싶은 곳이 하늘과 통해야 합니다. 이래 가지고 화합될 수 있는 곳이 되어야만 창조이상을 이어받을 수 있는 지상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바랄 것이 아니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 교회에 가자' 하는데 '나는 가고 싶지 않아' 한다면 이건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아기에게 젖 주는 어머니가 아침, 점심, 때에 맞춰 젖을 주지 않으면 젖이 아파서 어디 가더라도 그저 아기에게 달려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이상 사무친 심정이 언제나 앞서야 됩니다.
그래서 사무침이 해결될 수 있는 길이 있다 할 때는 결사적이어야 돼요. 그러한 행동에서는 주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직선이예요. 바랐던 때가 안 왔기 때문에 그렇지, 그때를 맞았다면 직선이예요. 그때는 누가 인사하면 인사하는 것도 모르고 간다구요. 인사도 안 받고 도망치듯 직행하는 거예요. 그런 바쁜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 도달해 가지고는 한숨을 쉬면서 '이제야 됐구나, 뒤를 돌아 보나 앞을 바라보나 이제는 내가 여기서 망하지 않는다'고 자기 스스로를 반추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보따리를 풀고 '여기서 내가 이제 안식을 해야 되겠다' 하며…. 안식하는 데는 어떻게 하느냐? '내가 세상에 있어서 창조이상에 알맞게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이루어 평화왕국의 세계에 들어가 거기에서 주권자가 되든가 해서 위함을 받는 자리에서 살고 싶다. 그것이 나와 주권자와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다. 서로 서로가 피지배자와 지배자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에 의한 부자관계다' 이러한 것이 하늘과 땅, 천륜과 인륜이 화합해서 벌어진 천상의 세계가 될 때, 이것이 이상세계가 될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런데 통일교회가 그런 걸 찾아가게 된다면, 옛날에 사랑하고 데이트 하던 애인을 데리고 와 가지고 그냥 그대로 결혼 통과시키지 못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그냥 그대로 통과시키려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구요. 수속을 밟아야 됩니다. 다르다구요. 여기 젊은 사람들 그거 잘 들어요. 근본적으로 다르다구요.
'만일에 그러한 견지에서 가정을 이루고, 세계를 이루어서 하나님 앞에 몽땅 바쳐 드리면, 하나님을 위하는 데에 있어서 세상과 다른 그런 세계를 하나님께 드린다면 하나님이 그걸 받아서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한번 보고 싶다. 하나님이 개인을 지도하는 법도의 과정을 내가 한번 보고 싶다. 그때 출발하고 싶다. 그때에 효도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해야 된다구요.
지금 통일교회에서 효도하는 게 아니라구요. 그때에 그야말로 탕감복 귀의 운세권내에서가 아니라, 이상적인 운세권내에서 천지가 알아보는 자리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당당하게 일생을 거쳐서 효의 도리를 하여 부모 앞에서 영원한 사랑을 이어받을 수 있는, 영원히 효도할 수 있는 자리에 설 게 아니냐, 이런 길이 있습니다. 혹은 나라가 있다면 충신의 절개를 갖추어 가지고 그 나라 군왕의 사랑을 받는 충신이 한번 되어 보고 싶다….그때에 가서 쉬겠다는 것이 아니예요.
오늘날 기성교회 성도들은 천국가면 무슨 열두 가지 생명의 알을 먹는 다나? 놀고 그럴 줄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때 가서는 충신의 도리를 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야말로 멋지게 한번 부모를 섬기고 부모 앞에 효도하는 것이, 내 마음에 있는 사랑을 다 동원해서 마음을 다할 수 있는 사랑을,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 가지고 충의 도리의 극치를 다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내가 위하면서, 내가 위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모시면서 최고로 기쁠 수 있는 것이 이상(理想)이 아니냐, 그것이 개략적인 입장에서 본 통일교회에서 목적하는 이상세계가 아니냐.
그 이상세계에 갖다 맞추기 위해서 가는 길이 통일교회의 길이라면 지금의 보따리를 그냥 그대로 차고 되겠어요? 안 된다구요. 이걸 떼어 버리지 않으면 못 갈 길을 가게 하는 거라구요. 이런 것이 따라다니면 방해가 되겠으니까…. 눈이 나쁘고 죽을 지경이 되더라도 내몰아야 됩니다. 그렇게 하여서 다 떨어진 다음에는 앙숙이나 원수들이 없는 거예요.
원수의 국경지대를 거쳐야 하는 입장에서는 별의별 장애물이 있고, 우리를 전부 다 파괴할 장애물들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주의하면서 가려 가야 하는데, 지금이 그런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빨리 가야 된다구요. 밤이나 낮이나 쉴새없이, 빨리 이왕이면 빨리 도착해야 됩니다.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 지금은 그런 때입니다. 이제는 많이 올라왔지요.
우리 통일교회가 바라는 천주주의라는 그 이상을 달성할 수 있는 그곳 까지 가기 위해서,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곳, 있고 싶은 곳, 살고 싶은 그 세계를 위해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나그네 신세라구요. 나그네에게 집을 줘요? 우리가 그런 입장에 있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의 목적을 향해서 가는 길이니 이것을 어떻게 단축시키는냐, 전진하기 위해서의 투쟁입니다. 전진하는 데 있어서 서로를 위해야 됩니다. 전진하는 데 있어서 서로가 싸워? 그것은 좋지 않은 거라구요. 알겠어요?
'네가 하늘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난 더 사랑해야겠다' 해야 돼요. 여기에 대해서 옆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사탄 중의 사탄입니다. 사탄은 그런 자리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남편이 그러면 남편이 사탄이요. 부모가 그러면 부모가 사탄입니다. 그것은 옆으로 싸우자는 것이요. 옆으로 운전해 가지고 못 가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상대했다가는 못 가는 거예요.
동네를 낯선 사람이 지나가게 되면 동네 개들은 짖게 마련입니다. 개야 짖겠으면 짖고 말겠으면 말고 나는 그 동네를 지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치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전부 단결해야 됩니다. 통일교회 전체가 단결해서 통일교회를 넘어서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복지로 가자고 출발 명령이 내렸을 때에 모세의 한 지파라도 애급 땅에 남아 있었으면 출발을 못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벌을 주든가 해 가지고 안 가면 전부 다 죽는다는 입장에 서 가지고 떠나게 했듯이, 남편이 죽든가 자식이 죽든가 해서 못살게끔 비참해져야 '아이고 선생님! 죽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최후의 길을 떠나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로를 강팍하게 하는 거예요. 원수들이 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돼요.
통일교회가 이런 엄청난 뜻을 위해서 가야 하는 무리인데도 불구하고 길을 못 떠나게 된다면 내적으로는 통일교회가 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점점점점 어려워질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점점 더 험해질 것입니다. 험해지면 험해질수록 우리는 낙심할 것이 아니라, 하늘을 부여안고 최후의 담판을 지어야 할 숨막힌 시간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보라구요. 일전에 일본 다나까 수상이 중공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발표한 성명의 내용을 여러분들은 너무나 잘 알 것입니다. 오대양을 중심 삼은 그 모든 내용을 볼 때 이제 일본 때문에 대만이 불쌍하게 됐습니다. 대만은 한국과 통할 수 있는 입장이예요. 약소국가라구요. 대만이 이제 어디로 가겠느냐 할 때 하나의 길밖에 없는 거예요. 소련을 업고 나오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어떻게 될 것이냐? 아시아에 있어서….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그런 것을 내가 권고해 주고 충고해 줄 것을 갖고 있습니다.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하고, 감옥에 들어갈 각오를 하고 사람을 시켜 가지고 다하는 것입니다. 요즘에 와서야 '아하! 그때 아무개가 얘기하던 것, 그대로 했으면 이렇게 안 되었을 텐데…' 이러는 거예요. 일본도 그래요. '일본은 이렇게 된다' 하고 내가 말을 했던 거라구요. 보라구요. 이제 일본이 중공과 딱 야합해 가지고 소련과 버틸 수 있는 입장에 섭니다. 그런 입장에서 소위 중공하고 소련이 공산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아시아의 적화, 아시아 제패를 누가 하느냐 하는 문제는 일본을 자기 편에 어떻게 흡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국가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번에는 소련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이 자칫 잘못하면 함정에 모가지가 걸려버릴 것입니다. 지금 현재에 있어서는 중공이 소련을 못 당한다구요. 소련은 블라디보스톡을 중심 삼은 극동함대등 지금 방대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래서 미7함대가 권위를 상실할 수 있는 때에 들어온다구요. 대만이라든가, 한국이라든가, 월남이라든가, 이들 나라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닉슨 독트린을 중심삼고 후퇴할 수 있는 차제에 있어서 미국은 세계 앞에 권위를 주장할 수 없는 때가 아니냐? 여기에 소련이 강력히 나오게 되면 어떻게 할테야?
인도는 소련의 지배권내에 들어가 있고, 지금 말레이지아에서부터 전부 다 남방안보체제를 재촉하고 있는데, 그것은 왜 그러냐? 중공의 남방 진출을 방지하기 위한 소련의 작전이 아니냐.
그러면 여기에 있어서의 동북 아시아를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이겁니다.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일본까지 어떻게 연결시키느냐가 문제라구요. 이것은 일본이 중화적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일본이 브레이크만 걸면 되는 거예요. 대만해협을 중공을 시켜서 전부 다 막아 버리면 어떻게 할 거예요? 일본의 석유 도입 90퍼센트 이상이 그 해협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인데 여기에서 선박을 전부 다 물 속에 침몰시켜 버려라, 소련만 같이하게 된다면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어 인간 노릇도 못 하는 일본 놈들 우리가 모두 극동 군사력을 총동원해서 보호할 테니까 구주(九州) 지방에 상륙해라' 이거예요. 소련이 그런 작전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자기의 장래를 생각해 가지고 그런 긴급작전도 할 수 있는 때가 아니냐, 이래 가지고 만약에 중국을 시켜 가지고 중공으로 가는 일본의 상선 몇대만 땅땅 때려부숴라, 침몰시켜라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장사 해먹을 것 같아요? 이렇게 되면 이 아시아 태평양의 해상권은 전부 다 소련이 완전히 장악해 버리는 것입니다.
지금 일본의 공산당은 전부 소련계라구요. 지금 혼란된 찬스를 이용해 가지고 내적인 면에서 불을 질러 나오면 어떻게 할 테냐 이거예요. 그러니 이들은 중공에 가서 빌게 안 돼 있다구요. 틀림없이 소련으로 가서 '도와주소' 하게 되면, 소련에서는 '우리가 하라는 대로 해라' 이렇게 되는 거예요. 내가 만약에 소련의 지도자라면 틀림없이 그렇게 한다구요. 그러면 미국도 몰아낼 수 있고, 일본도 저자세의 입장에서 하라는 대로 할 수 있도록 몰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정 일본이 말을 안 듣게 되면 사할린에서부터 북해도로 내리 미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이냐? 공산권내에 포위되는 거라구요. 포위되어 버리고 만다구요. 이런 운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때가 어떤 때인지를 알아야 된다구요. 자, 중공이 있지, 소련이 있지, 일본이 저렇게 되면 우리는 어디로 갈 거예요? 헬리콥터 타고 날아 간다고 해도 날아가서 앉을 데가 어디 있어요? 태평양 가운데 하와이 같은 섬이라도 우리 땅이라면 좋지만 말이예요. 날아가면 제주도? 제주도 같은 데는 순식간에 쳐들어오는 거라구요. 이 대한민국은 어디로 갈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자체가 단결해서 아시아 전지역을 대해서 이스라엘 민족과 똑같은 입장에 서야 된다구요. 우리의 몇 배 이상의 수를 가진 이 아시아 전지역을 대해서 말입니다. 일본이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 아시아의 약소국가들은 전부 다 친중공화되어 가고 있다구요. 왜? 거부 하게 되면 앞으로 규탄받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때가 올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백방으로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서 일본의 고위층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몇몇 사람을 희생시켜 수난길에 내세우는, 그런 놀음을 지금 까지 해 나온 거예요. 그것은 대한민국도 모르고 있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만 지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구요. 이것이 예상권내가 아니라 예상밖으로 벗어날 수 있는 때가 왔기 때문에, 제 2전략선을 확대 시켜서 세계 방어선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세계의 무대를 향해서 진출해야 할 때입니다. 이번 3차 세계순회노정에서 그걸 준비하고 돌아온 거라구요.
자, 이런 때에 왔다구요. 이제는 망하더라도 한번 힘을 쓰고 망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죽더라도 한번 있는 배알풀이라도 하고 자기의 역량을 발휘하고 죽어야 되겠다구요. 이런 때가 왔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그때를 방비하기 위해서는 가정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부인들을 뽑아 가지고 전부 다 '나라를 위해 서라' 한 것입니다.
내가 제일 한스러운 것은 기성교회하고 통일교회하고 합동 못 한 거예요. 이제 그런 때가 왔습니다. 종교인들은 합동해야 됩니다. 김일성이가 나오게 되면 종교의 이름을 가진 사람은 전부 다 모가지를 자르는 거라구요. 이런 비참한 판국을 앞에 놓고 공동적인 운명에 서서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될 차제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교파 싸움? 안 됩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종교협의회에 참여해 가지고 초교파운동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돈이 많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구요. 내가 쓸 비용을 절약하면서 그 놀음 해 나오는 거라구요. 그건 단 대한민국이 금후에 가야 할 방향만이라도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지 않느냐, 저들도 같지 않으면 나라를 구할 수 없습니다.
이론적인 면에서 일대일에서 공산당보다 나은 실력을 가진, 사상무장을 한 실력을 가진 사나이들을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대표자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 놀음을 하려니 그 어려운 무대에서 도를 바꾸고 군을 바꾸고…. 전부 다 뭐 파당싸움 하는 거예요. 전라도 패, 경상도 패, 경기도 패 해 가지고 뿔개질을 하고 있어요. 그런 것을 우리는 전부 다 합동결혼식을 통해서 사돈의 팔촌을 만들어 놓는다구요. 뜯어고쳐야 되겠다구요. 경상도 패하고 전라도 패가 제일 사이가 좋지 않는데, 그래서 며느리는 경상도 며느리, 사위는 전라도 사위, 전부 다 이렇게 맺어 주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배치하는 것도 전라도 사람은 경상도, 경상도 사람은 전라도로 배치해 놓는 거라구요. 그런 놀음을 하면서 지금까지 끌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아래서, 땅에서 제일 밟히던 통일교회가 이제는 이만큼 올라왔어요. 국가에서도 강력한 단체로 알고 있는 거라구요. 현정부에서는 통일교회가 정치를 한다면 큰일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치가 문제가 아니라구요. 우리가 싸우는 목적이 대한민국이 아니라 공산당이라구요. 세계 공산당은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냐? 부모가 살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모가 없다고 하는 녀석은 때려죽여야 할 녀석이라구요. 공산당을 우리가 방어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현정부가 그런 일을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 우리는 반드시 후원해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일은 일대로 하고 천대는 천대대로 받고 있다구요. 좋다는 거라구요. 뭐 관에서도 우리에게 협조해 주고 싶어서 협조해 주었어요? 그들이 알면 나가자빠질 실적을 가졌지만 우리는 자랑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거예요.
하나님이 선전하지 않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선전하지 않고 자력으로 가는 것입니다. 달리는 과정에서 알아주면 알아줄수록 그것이 부끄러움이 되는 것입니다. 응원을 받다가 꼴등이 되면 면목이 없어집니다. 면목을 세울 수 없는 부끄러움이 되는 것입니다.
중간에서 누가 칭찬해 주는 것은 내가 원치 않습니다. 내가 또 나타나서 선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외국에 나가서는 큰소리를 치고 다니지만, 국내에 있어서는 공식집회를 안 하는 사나이입니다. 그런 놀음을 하면서 가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최후에 가서 골인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국가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움직여서 최후의 결전장에 임할 수 있는 끈기 있고도, 그 목적 달성에 주도적인 인물들을 어떻게 양성하느냐 하는 것이 지금 급선무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그 주류의 터전을 인계받아야 할 통일교인으로서의 가야 할 길은 확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느냐, 안 가느냐? 중립은 있을 수 없습니다. 뭐 서 가지고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바라볼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전진 아니면 후퇴라구요. 둘 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절박한 때에 있어서, 총동원 명령을 내려야 할 때에 있어서, 동원에 응하지 않는 것은 반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다가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어요.
이러한 관점에 있어서 남북한이 점점점점 교류할 수 있는 때가 되어 오면 되어 올수록 대한민국이 북한보다도 더 큰 배수진을 쳐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정면에서 밀리면 밀릴수록 밀고 넘어갈 수 있는 세력균형을 어떻게 국민 개인 개인에 적응시키느냐 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래서 요전에는 우리가 기관에다가 그런 걸 건의까지 했어요. 이북 5도의 권내에 있는 지식층의 사람들을 정부가 돈을 대서 교육을 안 시키면 우리가 돈을 대서 교육을 시키겠다고, 지금 '우리' '너' 할 판이 되어 있어요? 지금, 우리, 너 하게 돼 있느냐 말이예요. 정부가 못 하면 백성이 해야지요.
어떤 때는 우리 통일교회 패들 전부 다 새마을운동에 동원하고 싶다구요. 그러나 그건 외적인 운동이라구요. 새마을운동을 해서 집만 잘 지으면 뭘하느냐? 공산당한테 먹히면 그만이지, 그보다도 새마을운동은 못하더라도 새마을운동을 해 가지고 새로운 사상을 가져서 이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개개인을 어떻게 만드느냐? 이것이 우리의 급선무이기 때문에 새마을운동은 손을 댈 사이가 없다 이거예요. 지금 그러고 있다구요. 그것이 나라의 현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누구보다도 차원 높은 입장에서 나라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부심을 당당히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의 갈 길은 '교파의 시련을 극복해야 되겠다. 국가의 시련을 극복해야 되겠다. 남북의 시련을 극복해야 되겠다. 세계의 시련도 극복해야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 현재 아시아의 포위망에 휩쓸려 들어가는 이 권을 어떻게 극복하여서 민족의 자주성을 세워 가지고 아시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도적인 판도를 확대시키느냐, 이것을 하기 위해서 천신만고하고 남들이 잠잘 때 준비해 나오고 있는 거라구요. 통일교인들도 그것을 모르고 있다구요.
선생님을 보고 '저렇게 젊은 사람이 주일날 새벽에 와서 한마디하고는 놀고 있는 사람이야' 하겠지만 천만에요. 바쁜 사람이라구요. 여러분은 모를 거라구요. 지금 우리가 뉴욕 근교에 120만 불짜리 집을 깎고 깎고 깎아 가지고 85만 불에 계약을 해서 며칠내로 중도금 치르기로 했다구요. 여기 대한민국에서 그런 집은 찾을 수 없을 거라구요. 미국의 어떤 거부가 살던 집입니다. 거기에는 수영장이 세 개씩이나 있고, 헬리콥터장이 있고, 테니스 코트가 있고, 자연 못이 있고…. 굉장한 집이라구요. 그뿐만 아니라 워싱톤에 지금 35만 불짜리 집을 또 사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돈을 쓰고, 대한민국에 학교를 세우고, 대한민국을 위해서 하겠다고 하는데도, 대한민국이 협조 안 하니, 이러다가는 대한민국도 망하고 세계도 망하겠으니, 하나를 내버려야 할 때에 들어오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총력을 대한민국을 기지로 하는 것보다도 미국을 기지로 삼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 운명으로 몰려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 때문에? 국가가 책임을 져야 될 것입니다. 그건 역사적 지탄을 받을 때가 올는지 모른다구요.
여러분은 생각해야 된다구요. 선생님이 없으면 대한민국은 여러분이 책임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미국이라든가 세계무대에 나가 가지고 편안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치열한 투쟁을 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여러분은 선생님이 지금까지 싸워 나오던 것과 마찬가지로 공산당과 일선에 서 가지고 피를 흘릴 각오를 하고 생명과 재산을 전부 다 투입해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모든 체면이라든가, 체신이라든가 위신이라든가, 그것이 전부 땅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방비하기 위해 총주력하지 않고는 망할 것입니다.
공산당이 내려오는 날에는 통일교회 임자네들부터 모가지를 자를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기 전에 방비를 해야 합니다. 그 방비를 누가 해주느냐? 백방으로 울타리를…. 미국의 상원의원을 어떻게 움직이느냐? 그래서 이번에 갔을 때도 내가 십여 명에 가까운 상원의원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에 전부 다 만나 보았다구요. 하원의원들도 만나 보았어요. 내가 필요한 사람들을…. 이런 놀음을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래지 않은 시일 내에 아시아에 드러나고 세계에도 드러날 날이 올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인 하나의 창조이상의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서, 하나의 목적을 위해 선 우리 이기 때문에, 이제 우리들은 그 목적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밥을 먹어도 그 목적을 위하는 데서 밥을 먹어야 돼요. 하루 좋아하는 것도 그 목적을 위해서 좋아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전부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딴 것을 중심삼고 좋아하면 할수록 그것을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방망이 맞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차라리 여기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 자는 것도 뜻을 위해서 자는 것이요. 먹는 것도 뜻을 위해서 먹는 것이요. 가는 것도 뜻을 위해서 가는 것이요. 시집 장가가는 것도, 자식을 기르는 것도 뜻을 위해서 하는 거라구요.
일체 그 외의 것은…. 그것을 빼놓고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패자의 길은 있을는지 모르지만 승자의 길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정 적인 결론이 아니냐, 여러분, 패자의 쓴잔을 마신 자는 동정 안 해요. 아무리 어젯날의 승자라 하더라도 그 실전에 부딪쳐 가지고 패자가 되면 절대 누구도 그를 따라가는 사람이 없다구요.
통일교회가 지금은 반대를 받지만 통일교회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따라오는 사람이 많게 된 것은 뭐냐 하면, 이 단체가 패자가 되지 않을 가망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그런 기준과 세력권을 확대시키면 세계는 반드시 흡수되어 들어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 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만들어야 됩니다. 안 되면 창조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했기 때문에 우리도 창조해 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적을 앞에 둔, 우리에게 있어서는 딴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기쁨과 슬픔은 그 목적으로 말미암아…. 슬픔이 부딪쳐도 그 목적이 성사되게 될 때는 슬펐던 그 기준이 도리어 행복의 요건으로서 하늘에 높은 깃발을 달고 찬양할 수 있는 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정에서 남보다 수고해 가지고 뒤떨어지고, 수고해 가지고 망한다고 해도 그것이 절망이 아니라, 섭리사에 있어서 높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 우리로서는 말없이 갈 뿐입니다. 여러분은 따라갈 길을 알게 된 것입니다. 또, 여러분 앞에 선생님이 서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은 다시 생활을 정비하고 현재의 급박한 정세권 내에 있어서 이러한 세계사적인 사명을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할 차제(此際)가 되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단결과 우리의 전체 동원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외적인 하나의 축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 이것은 우리를 촉구시키고, 격려시키고, 자극시키기 위한 좋은 때가 아니냐, 이때를 놓치는 사람은 비통한 사람이요.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건 자동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고서 지금까지를 다시 한 번 반성해 봐야 하겠어요. 지금까지 출발한 것이 출발도 하늘로부터 하고 목적도 하늘 중심삼고 해야 되는데, 출발은 하늘로부터 시작해 가지고 과정에서 나로 말미암아 가지고 '내가 뭐 어떻고 어떻고…. 내 무엇 때문에 뜻길을 못 갑니다'라고들 합니다.
예수님은 그러지 않았다구요. 죽음의 자리에서도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런 비장한 놀음을 매일 같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어느 누가 처자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부모를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말이예요? 목석 같은 사람이라도 그런 정은 있다구요.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있다구요.
그러면 왜 부모나 처자식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느냐? 우리는 목적이 다른 데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부모들도 나중에는 우리를 따라올 줄 확실히 알기 때문에, 이래서 출발한 길인데도 불구하고 가다가 중도에서 패배하여 망하게 되면 나 망하고 부모 망하고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건 세상편에서도 동정 못 받고, 하늘편에서도 동정 못 받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세상도 참소하고 하늘도 참소하는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이것은 사탄보다 더 나쁘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 입장에 들어가면 하늘편에서도 참소받고 사탄편에서도 참소받고….그러면 어디로 갈 것이냐? 지옥보다 더 나쁜 곳으로 갈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가는 길인 것을 알고, 오직 그 목적을 위해서는 온갖 정성을 다하고, 그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놀음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체적인 시간이 소모돼야 되고, 여기에 자기의 모든 정성이 투입되어야 됩니다. 그 외에는 단축시킬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러면서 또 훈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북에 들어가서 전도를 해야 된다구요. 그렇게 되면 누가 전도하러 갈 거예요? 이북에 갈때는 여러분들이 먼저 가야 되겠다구요. 그 이북에 들어가서 치열하고 상반된 여건하에서 투쟁하기 위해서는 남한에서 가지각색의 훈련과 준비를 다 해야 됩니다. 거기 가서 극복할 수 있는 준비를 해 가지고 자신을 갖고 나서기 전에는 남북한을 하늘의 뜻 앞에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 이런 엄청난 우리의 가는 길 앞에 가로막힌 여건들을 넘어 설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자각하고 그 자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말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크면 큰 이상의…. 창조이상을 완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6천년 동안 걸려서도 그것을 못 이루었으니, 우리는 몇만 년이 걸려도 그것을 못 이룰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무엇으로써 보충하고 무엇으로써 밀고 나갈 것이냐? 정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다하는 그 자리에서 '오직 당신을 위해서 자신을 바치겠다'는 일념이 아니고는 밀고 나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각오로써 목적을 향한 직행, 직방향을 따라서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는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지 않고는 우리의 목적은 여러분과 관계를 맺을 수 없고, 통일교회의 목적으로서 가져올 수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고, 오늘이 10월 초하루이니만큼….
1972년도가 이제 거의 다 지나갔습니다. 나는 10월 초하루가 오기를 무척이나 기다렸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한 고비를 넘는 기간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계획한 일에 있어서 최후의 싸움의 터전은 숨막히게 급박한 과정으로 우리 앞에 찾아올 것을 예상하고, '72년, '73년, '74년은 총동원, 총주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물론 통일교회 문선생도 그렇게 백방으로 후원을 하겠지만, 이때는 여러분의 시대입니다. 제 2차 7년노정은 여러분의 시대가 아니냐, 그렇지요? 「예」 지금까지 원리를 그렇게 가르쳐 주었지요. 이 제 2차 7년노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문제가 세계화되는 것입니다. 절박한 때가 되어 오는 것입니다. 천지가 뒤넘이칠 수 있는 경각점에, 경계선에, 한계점에 도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과 로마가 경계선에 접경을 해서 거기서 최후의 결판을 봐야 될 운명이었듯이, 이때가 세계사적인 견지에서 이때가 그러한 입장에서 뒤넘이치던 예수님의 3년노정에 해당 되는 때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러니만큼 여러분 각자가 예수님이 지녔던 사상과 예수님이 지녔던 죽음을 무릅쓴 각오를 갖고, 민족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단결되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슬픔의 길을 엮어 나온 거예요.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사람이 예수님을 반대했다가 예수님이 죽은 후에 충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후에 아무리 충신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금이 간 그릇을 때워 가지고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기독교는 순전한 세계를 상속 못 받는 거라구요. 기독교의 이상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예수님이 바라던 이상세계를 상속 못 받게 돼 있다구요.
한번은 뒤넘이쳐야 돼요. 맞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되게 돼 있기 때문에, 지금 통일교회한테 맞고 있다구요. 그 때리는 채찍이 귀한 것이 아니라구요. 때리는 그 주인의 목적이 귀한 것입니다. 때려서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목적의 자리로 인도하기 위해서 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선의 심판이 되는 거라구요.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가 출발했고, 가고 있느니만큼 있는 힘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혹은 갈보리 산정을 향해서 전진할 때와 같은 그런 비참이 다가오더라도 그것을 밀고 나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전진을 거치는 데 있어서 부활의 날을 맞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래야 세계와 대한민국에 새로운 종교이념이 전개되리라는 것이 뜻으로 본 관(觀)인 것을 알고, 여러분들은 그 목적에 대해서 충성을 다해 주기를 바라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님, 이 자리는 청파동 통일교회 본부입니다. 갖추어진 자리는 초라하고, 나타난 모습들은 불쌍한 모습들이옵니다. 불쌍하게 된 것도 효도를 하기 위해서 불쌍하게 되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 불쌍하게 됐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그 자리에 서 있는 저희들은 아무 한도 없습니다. 부모가 살아 있는 한 자식의 한은 없어지는 것이요. 군왕이 살아 있는 한 신하의 한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아버지, 그 부모 앞에 그 군주 앞에 붙들려 가지고 영원히 영원히 '내 영광이 네 영광이 되고, 내 나라가 네 나라가 되고, 내 가정이 네 가정이 되고….내 형제가 네 형제가 되고, 내 자식이 네 혈육이 될 수 있는 인연의 심정을 가졌다'고 축복할 수 있는 어버이를 가진 것, 나라의 중심존재로서의 군왕을 모신 자가 불행한 자가 아닌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님, 제가 지금까지 생애노정을 바쳐 이 길을 개척한다고 팔방으로 달려왔습니다. 때로는 보아서는 안 될 일도 보았고, 당해서는 안 될 일도 당했습니다. 이런 저를 대하는 하늘 앞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도 많았지만, 그럴수록 하늘은 이 통일교회가 가고, 제가 가는 길을 지켜 주시어서 오늘의 이 자리에 세워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른 그 누구의 공이 아닌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자랑할 것이 있더라도 통일교회 문 아무개를 자랑할 것이 아니옵니다. 그 배후에서 역사하신 당신의 공적이 큰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의 공적이 큰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목적과 소신이 언제나 저희들의 바라는 생활권내에서 같이할 수 있는 인연을 붙들고 몸부림치는 그 사정을 보시사, 같이해 준 당신의 권한과 당신의 능력과 존엄성으로 말미암아 이 자리까지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왔지만, 아버지, 또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가야 되겠고, 통곡을 하면서도 '가야 되겠습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당신에게 효도의 길을 남기고 가야 되겠고, 충신의 도리를 남기고 가야 되겠고, 열녀의 도리를 남기고 가야 되겠사옵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이 이 땅 위에 남기고 가야 할 사명인 것을 알았사오니, 시일이 가고, 연한이 지나 청춘시대를 보내고, 장년시대를 보내고, 혹은 내 일생을 거쳐 죽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무덤으로라도 하늘의 때를 맞아보고 그 밟던 땅이라도 맞게하겠다는 전통을 남기기 위한 싸움길을 주저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돌아갈 줄 모르는 자리를 찾아서 직행하면서 상처를 받아 쓰러진 병사의 모습이 되더라도, 총탄을 맞고, 포탄을 맞아서 비참하게 갈래갈래 쓰러진 것이 도리어 하늘에 기억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제 통일교회를 당신이 갖다 세우고 싶은 곳이 어떤 곳입니까? 피를 흘려서 당신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곳이라면 저희들은 전체가 그것을 각오 해야 되겠습니다. 거지와 몰림뱅이, 종의 종살이를 통해서 세계를 해방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그것도 저희들은 순응하여서 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길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자초해서 그런 거지의 놀음을 해 나왔고, 종의 놀음을 해 나왔습니다. 수난길을 자초해서 개척해 나온 통일교회 무리 였습니다.
아버님, 이제 대한민국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아시아에서 불쌍한 민족인 것을 잘 아시는 아버지여, 역사시대에 이 땅을 찾아 왔던 당신의 설움을 붙안고 이 나라를 박차고 돌아서는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한 생명이라도 좋사오니 하늘을 모시는 이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추운 겨울밤에 따뜻한 방을 준비하여 오시는 당신을 모셔 드릴 수 있는, 한 방을 지키는 주인이 있기를 당신이 얼마나 바라셨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 방에서는 천년 역사가 시작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통일교회 가정 가정에서는 하늘을 모시고, 밀실에서 의논하고 밀실에서 사명을 분부받아야 되겠사옵니다. 한이 맺혀진 무리들로서' 아버지 앞에 충효를 다짐하는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절규하는 무리가 통일의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는 나라를 위해서 싸워 나왔습니다. 비록 통일교회는 보잘것없는 입장이지만 나라를 위해서 싸워 왔습니다. 아버지, 싸워 나오던 그 나라가 없어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망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끝까지 그 나라를 붙들고 늘어지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게 될 때는, 수난을 극복하고, 만세에는 새로운 소생의 길이 이 민족 앞에 채워질 것을 바라고 지금까지 왔사오니, 대한민국을 아버지여, 맡아 주시옵소서!
남북이 엇갈린 이 세계사적인 흐름 앞에 불어오는 태풍 앞에 선 어린 고아와 같은 이 한국을 지키시옵소서. 그 한국 가운데서 놀림을 받고 있는 통일의 무리들, 선두에 선 입장에서 나라를 위해 그렇게 울부짖어 오던 무리들이 지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당한 자리에서 최후의 순간을 결하고 아버지의 마음속에 슬픔과 더불어 기억되고, 미래를 다짐하는 기억의 용사로서 남아질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이 되거들랑 저희들이 바라는 소원은 이 땅 위에 기필코 성사할 수 있는 세계사적인 터전을 남길 줄 알고 있사오니, 그러한 당신의 마음 앞에 기억될 수 있는 무리가 통일의 무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제 이 '72년 후반기를,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이 3개월을 통하여 하늘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길이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74년도까지의 3년기간에 역사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희의 온갖 정성을 다하여 이 한 목적을 위하여 투입할 수 있는 각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숨막힌 이 기간을, 질식할 것 같은 이 환경을 저희들이 참고 극복하여 넘는 길 외에는 저희들의 소망의 터가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민족 개개인이 여기에 단결해야 되겠고, 민족 전체가 단결하여 이북에 있는 모든…. (이후의 기도는 녹음이 안 되어 있음)
오늘은 10월 8일, 이달은 결실의 달이요. 이날은 이달을 맞이하여 두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아버지, 지나가는 나날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지나가는 나날들은 당신이 원하는 뜻을 높이고 자신들이 가야 할 인생길을 다짐하면서, 1972년도도 후반기를 향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침이면 변함없이 아침 햇빛을 맞이하고, 그 가운데서 하루의 생활을 영위하면서 참신한 인생길을 더듬고 참신한 가치의 노정을 찾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저희들의 모습을 아버지께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을 줄 아옵니다.
여기에 모인 어린 자녀들은 천태만상의 심성을, 마음의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여, 저희들은 당신이 찾을 수 있고, 당신이 임할 수 있고,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본연의 자세를 갖추어 응할 수 있으며, 화할 수 있으며, 처할 수 있는 아들의 모습과 딸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내적 심정을 가다듬고 저희들의 모습을 정시하여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줄 아는 자녀들이 돼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입을 열어 명령하시는 그 말씀이 내 개인에게 있어서 어떠한 가치의 기준을 세워 놓고 하시는 말씀인가를 저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방향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시는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자, 저희들은 처하여 있는 위치를 확정짓고 당신이 지정하시는 목적지를 향하여 직행할 수 있는, 뜻과 더불어 일치될 수 있고, 당신의 마음과 더불어 일치되어 가지고 당신이 바라는 참다운 아들딸의 모습을 저희들이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그러한 것을 바라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아버지여, 이 자리는 통일교회의 본부가 되는 자리입니다. 그러기에 수많은 자녀들이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흠모하고 있는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진정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자리가 인간뿐만 아니라 하늘이 지중한 사명을 맡기고 있고 역사적인 새로운 기원을 다짐짓기를 바라고 있는 자리인 것을 생각할 때, 이 자리는 하늘이 주시하는 자리요. 인간들이 주시하는 자리요. 하늘편과 인간편의 중앙에서 하늘을 모시고 인간다운 길을 감으로 말미암아 치우치지 않고 당신의 뜻을 향하여 직행해 나가야 할 책임을 짊어진 자리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하오니 아버님이여, 저희는 확실한 목적관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 목적을 대하여 하루하루의 생활에 있어서 틀림없는 방향성을 가려 가지 않고는 참다운 인생의 행로를 다 갈 수 없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확실히 아는 저희들이 돼야 되겠습니다.
수많은 날들을 보내는 가운데 그저 그 모양으로 보내서는 안 되겠습니다. 무엇인가 달라지고 변화하여 당신의 심성에 귀일 될 수 있는 모습을 그리워할 줄 아는, 또 그 자리에 설 줄 아는, 당신의 창조이상의 하나의 실체의 모습을 대표할 수 있는 거룩한 무리들이 돼야 되겠습니다. 이런 무리를 당신의 뜻을 통하여 만나고 찾고자 한다는 것을 저희들이 이미 알았습니다.
역사상의 수많은 선조들도 이것을 위해서 암중모색하던 수난길을 다 극복하지 못하고 탄식의 한을 남기고 역사와 더불어 흘러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통일의 무리이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지난날의 선조와 같은 전철의 행로를 다시 밟아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하게 될 때, 그들도 그 길을 원해서 간 길이 아닌 것을 아옵니다. 그들도 안간힘을 다하여 몸부림쳤지만 그런 결과에 도달하여 슬픈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 버렸사옵니다.
참다운 신앙의 길을 세워야 할 그 자리에 있어서 하늘과 더불어 위로의 대상이 돼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결정지어 하늘 앞에 봉헌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한의 오점을 남겼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오점은 천상의 모든 오점으로 남아져 한의 조건을 계승할 수 있는 기원이 되었다는 이 원통한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 느낄 줄 아는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아버지라 부르게 될 때, 그 아버지가 막연한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직시하여 아버지가 가는 방향을 저희가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그 길이 평탄한 길이라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수난에 수난이 가해지는 길이라 할지라도 필시 하늘이 간, 부모의 길이었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자녀의 의무라는 것을 느낄 줄 아는 저희들이 돼야 되겠습니다.
개인의 수난길을 극복하고 가정의 수난길을 개척해야 되겠고, 가정의 수난길을 극복하고 종족의 길을 개척해야 되겠고,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향하여 전진적인 개척의 행로를 더듬어 가야 할 한스러운 복귀의 길을 저희들은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각자가 어떤 자리에 있는가를 자기 스스로 명시해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자신에게 매여진 이 쇠고랑을 아직까지 끊지 못하고 있습니까? 자신이 빠져 있는 함정의 자리에서 신음하고 있습니까? 그 누가 구해 주기를 원하거든 구할 수 있는 당신의 음성이 위로부터 내리는 것을 바라보고 그 명령에 절대 순응해야 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현재의 환경에서 해방의 모습을 갖추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에 함정에 빠져 있거든 위를 향하여 단 하나의 길을 바라면서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쇠고랑에 매였거든 이것을 끊을 수 있는 새로운 무엇을 찾지 않고는, 새로운 어떤 장비를 갖지 않고는 끊을 수 없고, 끊을 수 있는 것을 갖지 못하면 해방된 환경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내 자신의 신임도가 어떠한 처지에 있는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자신이 해방되었다면 가정과 종족과 민족의 해방권을 바랄 수 있어야 될 것인데,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한 연약하고 가냘픈 저희 인생인 것을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전진의 도를 가하여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전진을 주저하는 것이 저희 인간이요. 내일의 희망을 다짐해서 싸워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싸움을 도피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인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현재의 자리에서 보다 나은 무엇을 추구하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아무리 그 자리에서 나은 것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자리가 하늘이 원치 않고 자기가 처해야 할 본연의 자리가 아니게 될 때는, 아무리 좋은 자리를 허락받았다 하더라도 그냥 흘러가 버리고 나와는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약에 지금의 자리에서 좋다고 해 가지고 그 자리가 자기가 바라는 자리라고 안정하게 될 때, 그 자리는 영원히 영원히 해방을 받을 수 없는 구속의 자리가 되어 버리는 것이옵니다. 이와 같은 자리가 차원을 높여 가면서 개인으로부터 가정으로, 종족으로, 민족으로, 국가, 세계까지 거쳐 나가야 할 한스러운 복귀의 운명길임을 직시하면서 싸워 나가야 할, 개인 개인의 인생행로를 붙안고 몸부림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타락의 후예가 가야 할 길인 것을 저희들은 절감하고 있습니다. 이 비통한 사실을 알고 저희는 통곡하는 마음으로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나를 극복해야 되겠고 내일의 나를 다짐지을 수 있는, 그날을 향하여 오늘의 나를 희생시키고 극복하며 싸워 나갈 수 있는, 나 자신을 따라 나가는 것보다도 보다 전진적인 자신을 앞에 세워 놓고 가기를 주저하고 있는 내 몸을 끌고 나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돼야만 된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자리에 나온 저희 자신들을 아버지께서 살피시옵소서.
저희가 지금 어떠한 자리에 있습니까? 민족을 위해 서 있습니까? 국가를 위해 서 있습니까? 세계를 위해 서 있습니까? 아버지, 전체를 대신해서 있습니까? 당신이 바라는 소망의 기준을 중심삼고 나를 찾아와 '야 아무개야, 네가 이 책임을 해 달라' 하고 분부할 수 있는 소명의 대상이 돼 있느냐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저희는 겸손히 엎드려 당신의 긍휼과 당신의 자비의 은사를 여기에 가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희 자신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불쌍한 것들이요. 구속된 자신들을 비탄하고 있는 현재의 입장인 것을 잘 아시는 당신은 저희를 위하여 영계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을 지금 까지 동원하여 오셨고, 거듭되는 동원에 지칠 수 있는 한의 여건을 매양 당하더라도 또 참고 저희들을 향하여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을 동원 하셨사옵니다.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영적 선한 선조들을 이 땅 위에 보내셔서 당신의 분부하심에 따라 저희들이 가는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헙조시켜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나 하나가 해방받기 위해서는 내 개인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영적인 면에서 이것을 개방해 줘야 되겠고, 하늘의 직접적인 명령을 받들어 가지고 그 명령에 응할 수 있고, 주체 앞에 절대 순응하고 헙조할 수 있는 자기를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해방권을 맞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버님이여, 밤이나 낮이나 저희들을 직접 지도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을 보호하여 주시옵고, 양육하여 주시옵고, 부족한 자리에 정지하여 있거들랑 채찍을 들어 쳐서라도 아버지를 향하여 전진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사명을 받은 자리에 있으면서 편안하고 안일한 그런 자리를 바라거들랑 그 모든 것을 빼앗고, 채찍질을 하고, 배(倍)의 고통을 주어서라도 이 길을 넘어갈 수 있는 어떠한 방향을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지 않고는 저희들이 가야 할 길을 올바로 가려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일체를 당신 앞에 맡겼사오니 당신의 소원에 응할 수 있는 승리의 모습이 될 때까지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전국에 널려 있는 뭇자녀들을 이 시간 기억하여 주시옵고,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은 세계를 향하여 세계적인 전선을 펴고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역사시대에 처해 있습니다. 그 누구를 바라볼 수 없고, 그 누구를 의지할 수 없사오니, 아버지만을 바라보고 아버지만을 의지하고, 아버님이 가시는 목적지만을 향하여 저희들은 갈 뿐이옵니다.
나의 기쁨을 느낄 수 없는 싸움터에서 당신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저희들에게 위로가 되고, 당신의 분부를 받는 것이 저희들에게 힘이 되고, 당신이 모든 것을 지켜 주는 것이 저희의 자랑이 되옵니다. 이것을 자랑으로 삼고 당신이 남기신 뜻의 길을, 한스러운 복귀의 길을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지금도 걸어가고 있습니다. 내일도, 또 남은 생애에도 이 길을 가려 하오니, 당신이 언제든지 이끌어 주시옵고, 지키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더더욱 바라고 있사옵니다.
긍휼의 아버지, 찾아와 주시옵고, 자비의 아버지, 사랑의 손길을 펴시옵고, 능력의 아버지, 악을 제거시켜 재창조의 승리의 권을, 부활의 은사를 받는 자리에 세워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제2의 해방을 이룰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 가지고 만국 앞에 당당한 하늘의 의용군으로서 정병으로서 자세를 갖추기에 부족함이 없는 무리들로서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이 하루 동안 당신의 풍성한 은사와 더불어 이 수확기를 맞아 당신 앞에 신앙해 온 일년을 승리의 열매로 바쳐 드림으로써 한 해의 기쁨을 당신 앞에 돌려 드리고, 하나의 보람된 사실을 생애에 남기면서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가 남기신 염려를 책임질 줄 아는, 사랑의 인연을 따라가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대표하여 일선에 선 기동대를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이들은 당신의 소명을 받고 출발하였사오니 땅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하늘의 군대요. 하늘의 개척자들이요. 하늘이 바라볼 수 있는 소망의 모습들이옵니다. 하오니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싸여 있는 적진의 세력이 아무리 드높다 하더라도, 저희들로 하여금 하늘의 권위를 다짐하고 나선 하늘 정병의 모습을 갖춘 용자로서 당당함을 드러내어 원수를 굴복시키고도 남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고, 당신의 병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국을, 아버지여, 지키시옵소서. 남북이 엇갈린 실정을 아버지께서 잘 알고 계시오니, 이 나라의 갈 길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시아에서 홀로 포위된 입장에서 사방으로 밀고 나가야 할 걸음걸이를, 홀로 책임을 져야 하는 이 불쌍한 민족을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시옵소서. 사방이 다 막혔습니다. 이제는 하늘밖에 바라볼 수 없는 이런 자리에서 당신의 힘과 당신의 권위와 당신의 보호와 당신의 지도만을 어떠한 민족보다도 간절히 바랄 수 있는 거국적인 민족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를 믿고 나가는 것보다도, 어떠한 나라를 의지하고 가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라가며 당신을 대신하여 그 모든 것을 책임질 줄 아는 이 민족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그 누가 선봉에 서야 되겠는데, 그 선봉에 나선 무리가 통일의 무리라는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 저희의 책임이 지중한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여, 당신이 아니면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저희들이오니 저희의 길을 아버지께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만큼 이끌어 주신 당신의 은사를 고맙게 생각하옵니다. 남아진 최후의 고빗길, 혹은 최후의 정상을 넘게 될 때, 꿈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하여 숨막히는 비탈길을 달려가야 하고, 최후의 격전에 임하여 생명이 극할 때까지 정상을 넘어야 할 책임이 있사오니, 아버지여, 부디부디 현재에 처해 있는 위치를 명시하고 적이 공격하는 방향에 태세를 갖추어 가려 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당신의 이름을 갖고 모이는 수많은 종교를 믿는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만국이 당신의 품에 품길 수 있는 길을 향하는데 있어서 중대한 책임을 다하고도 남음이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는 흔히 서로 비교해 가지고 이것이 크다 작다. 혹은 좋다 나쁘다. 혹은 앞섰다든가 뒤섰다든가 하는 전후 좌우 상하관계를 중심삼고 결정을 내립니다. 혹은 자기를 중심삼고도 나보다 크다든가 나보다 작다든가 나보다 앞섰다든가…. 이렇게 가려서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무엇을 결정하게 될 때는 언제나 그 누군가가 표준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표준은 늘쌍 자기를 중심삼고, 즉 자기를 표준으로 놓고 판단을 짓기 마련인 것입니다. '내가 좋다' 하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 그 표준은 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나쁘다' 하는 것도 자기가 표준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들이 타락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타락한 자리라는 것은 천태만상일 것입니다. 우리 개인을 두고 보면 개인과 연관되어 있는 수천대의 선조가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잘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못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높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낮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앞에 선 사람도 있을 것이고 뒤에 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전부 다 하나의 길, 하나의 자리에 서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하나의 최고의 선한 사람을 중심삼고 일번에서부터 천번까지 하나의 행렬이 지어진, 그런 갖추어진 자리에서 선조가 서 있느냐 하면 그렇다고 볼수 없는 것입니다.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하나의 중심을 중심삼고 있다면 원을 그려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원형(正圓形)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멋대로 그렇게 서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 사람 모두가 각각 다른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상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한 개인을 두고 보더라도 선조가 그렇게 나와 인연맺기 위해서 그런 과정을 거쳐 가지고 그 후손으로 태어난 것이 오늘의 '나'입니다. 그러한 내가 과연 이 모든 선조들이 바라고 있는 참의 기준 앞에 합당하냐 할 때, 각도가 좀더 다른 입장에 서 있는 '나'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참을 중심삼고 일치점에 선 선조들이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는 있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년이 아니라 수천년, 혹은 수만년의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그 기준이라는 것은 역사가 길면 길수록, 거리가 멀면 멀수록 점점 확실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호해질 수밖에 없으며, 완전한 것이 아니라 점점 불완전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대개는 그러한 우리들이요. 그러한 내가 아니냐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내가 좋다. 아이구 오늘은 좋았다' 하는 그 좋음이 대관절 어떤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 집안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우리 집안은 지금 행복하다' 할 때, 그 행복하다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참다운 행복을 중심삼고 하나의 행복의 중앙점이 있다면, 그 중앙점을 중심삼고 동쪽이냐, 서쪽이냐, 남쪽이냐, 북쪽이냐? 그 위치가 어디인지 알고 있느냐 하면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이 지금 불행하다. 불행할 수 있는 입장에 처해 들어간다' 하면, 어느 자리에서 불행하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세계는 점점점점 우리 인류가 희망을 더할 수 있는 보다 차원 높은 세계로 전개되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까지 더 높은 이상을 찾아 나가던 수많은 사람들을 절망 상태로 몰아넣는 세계입니다.
이런 세계정세를 우리들이 직시해 보게 될 때, 이 세계가 과연 역사적인 소망의 기준을 대표할 수 있는 참다운 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떤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러한 환경에 우겨싸여 살고 있는 우리 개인으로부터 민족이라든가 인류를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서 과연 우리들이 바랄 수 있는 표준이 무엇이겠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과연 내 개인으로서 가야 할 표준이 어디 있느냐? 이것은 오늘의 시간권내에 살고 있는, 짧은 시간권내에 처해져 있는 내 자신의 문제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것이 해결될 수 있는 그 기준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어떤 색다른 표준, 보다 가치적인 내용의 표준을 여기에서 다시 한번 찾아 가지고, 발굴해 가지고 그 표준과 더불어 상대적 관계를 맺는 데에서부터 우리가 그야말로 좋을 수 있는, 가치를 바랄 수 있는 기준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나마 생각지 못하고, 이것이나마 찾지 못하는 자리에 있어 가지고는 오늘의 나를 세워 자랑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것이 아니냐? 우리는 이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참다운 인간이 있다면 그 참다운 인간은 오늘날 역사를 대표해 가지고 '인류여 그대들이 가야 할 참다운 표준이 바로 이것이다' 하고 가르쳐 줄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참다운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그런 길을 모색하기 위하여 인류를 대신하여 모진 희생을 당하더라도 그 길을 찾아 나설 때까지 외치고, 가르쳐 주고, 그 길을 개척해 줄 것이 아니냐, 만일에 그 길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만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참된 사람이 아닙니다.
참이라는 것은 개인에게 한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를 넘고 넘어서 적용되고, 전체를 넘고 넘어서 가치적인 인연을 맺고자 하는 것이 참인 것입니다. 참은 누구나 좋아하고 누구나 찾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에나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를 대표해 가지고 참된 길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그 가치적인 인연이 어디에나 있게끔 세계화시키기 위해서 온갖 희생을 하더라도 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의 자리에 선 사람으로서 해야 할 생애의 책임이 아니겠느냐, 그 길이 어렵다고 해서 나 혼자만 알면 된다는 그런 입장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세계 인류 가운데에 과연 그런 참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그 참을 중심삼고 얼마나 진지하게 살고 있느냐? 이게 문제예요. 얼마나 진지하고 보람있게 살고 있느냐? 또, 그 사람은 그것이 그 시대의 환경, 즉 어떠한 권위보다도 어떠한 권력보다도 그 시대의 인간들이 바라고 있는 어떠한 목적 완성한 그것보다도 더 가치적이라는 것을 알고, 그 환경을 밀고 나가고, 그 환경을 개혁하고, 그 환경을 개척하기 위하여 모진 싸움을 당당하게 해 나가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이것은 진정한 참이다.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참이다. 이것만이 절대 승리를 결정하고 이것만이 절대 완성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고 확실히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외로운 환경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그 환경에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정화시켜 가지고 그 환경에서 제일의 표준의 인물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주체로서 상대적 환경을 개척해 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상대적 환경을 개척해 내지 못하게 되면 그나마 역시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나마 그 자신에서 그쳐지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의 일생은 제한된 권내에 있기 때문엔, 백년 미만의 생애노정이기 때문에 그 기간 내에 이 환경을 개척하지 못하게 될 때는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생애를 투입해 가지고 제2의 대상권을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온갖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환경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을 진짜 참으로 알 수 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이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느냐? 다 알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걸 알면 다 같게요. 개인개인들로부터 '과연 저 사람이 참이다' 할 수 있는, 공인받을 수 있는 내용을 인간이 알 수 있느냐? 알 수 없습니다. 봐 가지고 모르는 것입니다. 봐야 같은 이목구비를 갖고 있고, 같은 몸을 갖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그 내용의 가치를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자기가 주장하더라도 그 당석(當席)에서 그를 주체로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 재창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냥 그대로 있어 가지고는 자기와 더불어 관계를 맺을 수 없겠기 때문에 이를 반드시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적응시키는 운동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를 닮아라' 하는 겁니다. 닮음으로 말미암아 보다 가치적인 인연이 맺어지고 보다 가치적인 선한 기준이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 줘야 됩니다. 무엇으로 보여 줘야 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은 언행심사(言行心事)를 중심삼아 가지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말과 행동과 마음씨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보여줘야 될 것이냐? 말로 보여 줘야 됩니다. 말을 하는 데 있어서 '개인은 이래야 된다'고 하는 개인의 인생관을 가르쳐 주어야 되겠습니다. 그 개인은 어떠한 개인이 돼야 하느냐? 가정을 움직일 수 있는 개인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된다는 거라구요. 가정이 이 개인을 움직여야 됩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세계입니다.
선이 갖추어진 세계에서 태어난 남편이라든가 아내, 혹은 그 부부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은 선이 갖추어진 그런 세계에서 배워 가지고 선할 수 있지만, 그것이 갖추어지지 않은 세상에 있어서는 그런 세계를 대표한 참된 사람이 있으면 개척해야 됩니다. 그것을 만들어 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완성을 자기가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완성권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구요. 하나의 남성이면 남성으로서 이것을 만들었으면, 하나의 완성한 가정을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아내는 '남편이 하는 말이 참 좋다. 나의 것을 전부 다 포기해 버리고 남편이 하는 말을 백 퍼센트 받아들여야 되겠다' 이래야 된다는 거예요.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도 '그가 동으로 가면 나도 동으로 가겠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내적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남편이 가는 대로 아내가 안 가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는 자기가 말하던 모든 것을 없애 버리고 남편이 말하는 그런 내용의 자신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말뿐만 아니라 '그분이 가는 데에 나도 가야 되겠다' 그래야 끝까지 갈 수 있는 거예요. 그분은 동으로 가는데 '그분이야 동으로 가라지 난 기분이 나빠 서로 가겠다' 하면 거기서부터 파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참된 남편이 있으면 그 남편을 중심삼아 가지고 말을 따르는 동시에 행동을 같이 해야 됩니다. 행동하는 데 있어서 어디에 갔다 왔다가 그 다음에는 또 마음대로…. 하나의 방향을 중심삼고 행동해야 됩니다. 하나의 방향을 중심삼고 행동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건 두말할 것이 없습니다.
말하고 행동하는 데에 있어서 이것이 상치(相馳)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말과 말이 다르면 '그 사람 말과 행동이 다르다 '그러지요? 이럴 때는 다른 만큼 평가를 하게 되는데, 좋은 평가가 아니라 나쁜 평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때는 그 다른 차이로 인해서 비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막연하나마 마음이 말의 기준이 돼 있고 행동의 기준이 돼 있습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말과 행동이 하나된 자리에 서지 않고는 그 사람이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막연한 자리에서 마음이 말과 행동의 중심으로서 표준이 되어 있다 할 때, 그 표준된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말이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행동이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음을 닮은, 마음과 하나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한 마음, 그 마음은 어떠어떠한 것들을 중심삼고 움직이느냐? 그것은 목적관이라든가, 인생관이라든가, 나라를 위해서 움직인다든가, 혹은 자기 성공을 위해서 움직인다든가 하는 천태만상으로 벌어집니다.
그 마음은 어디를 향해서 움직이느냐?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는냐? 가정의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느냐? 거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예요. 국가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느냐? 혹은 세계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느냐? 더 나아가서 오늘 통일교회의 술어를 빌려서 말한다면 천주를 위해서 움직이느냐?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움직이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은연 중에 하나의 말과 행동의 기준이 되어 있는 그 자체가 하나의 가치적인 존재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그 은연 중에 있는 마음과 말과 행동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되어야만, 현재 처해 있는 위치에서 그 마음 바탕을 중심삼아 가지고 비로소 기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마음과 말과 행동이 달라지게 될 때는 기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벌어지게 되면 불안을 느끼고, 자기 스스로 구속을 느끼고, 제재를 받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을 두고 볼 때, 사람의 마음 가운데는 무엇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마음 가운데는 반드시 무엇이 있느냐? 마음 가운데 있는 가치적인 내용을 분석해 보면 지(知), 정(情), 의(意)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떻더냐 하고 분석해 보면 지적인 요소가 있고, 의적인 요소가 있으며, 그 다음에는 정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라는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작용을 하려고 하느냐? 결국에 들어가서는, 마음의 기준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뭐냐 하면 기쁨입니다. 기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기쁜 것을 기준 삼고 있다는 거예요. 슬픈 것을 기준 삼고 있지 않아요.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마음이 슬프고 몸이 슬프고 여러 가지 환경적으로 슬픈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다 기쁜 것을 표준하고 그 마음도 있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짜 기쁜 것은 뭐냐? 마음에 있어서 진짜 기쁜 것이 뭐냐? 보다 기쁘려면, 마음과 행동과 말이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기쁠 수 있는 목적을 대하는 데서만이 기쁜 것입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말과 행동이 하나되게 된다면 기쁨을 중심삼고 있으려고 하는데, 그 기쁨의 기준이 뭐냐 하면 정(情)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소위 심정이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지, 정, 의의 그 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말과 행동이 하나된 거기에 기쁠 수 있는 중심적인 정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준이 되는 정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보다 기쁠 수 있는 목적했던 바의 내용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치적인 내용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혼자는 기쁠 수 없는 것입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가지는데에서만이 가능합니다. 혼자 기쁠 수 있어요? 혼자 웃고 있으면 돈 사람이라고 합니다. 내가 여러분도 없는데 이렇게 혼자 열심히 얘기한다면 돈 사람입니다. 내가 말을 열심히 하면 그 내용을 중심삼고 여러분은 열심히 듣고 그 말에 하나되어 가지고 여러분도 기쁘고 나도 기뻐져야 되는 것입니다. 말하고 나서 슬프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쁘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야 말 참 잘했다. 그말 잘 들었다' 할 수 있는 자리가 벌어지면 들은 사람도 기쁘고 말한 사람도 기쁩니다. 그 말한 사람이 뭐가 기쁘냐? 아침부터 이야기를 하게 되면 땀을 흘려야 되는데, 땀을 흘리게 되면 자기 자체의 소모인데 뭐가 기쁘냐, 자기 자체는 소모인데 왜 기쁘냐 이거예요. 일을 열심히 했는데 그 열심히 한 보람이 있는 가치가 딱 완성되게 될 때는 기쁩니다.
왜 기쁘냐? 손해나면서 기쁜 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손해 나면서 기뻐하는 것은 도대체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왜 기쁘냐 하면, 내 마음의 기준하고 상대의 마음 기준하고 플러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목적을 중심삼고 말을 했으면 말한 것을 긍정하고 거기에 순응해 가지고 하나될 수 있게 되면, 그 마음에 또 하나의 마음이 합해지니까 둘이 되는 것입니다.
둘은 어떻게 된 것이냐? 혼자를 둘로 만든 것이 아니라, 둘이 합해 가지고 둘이 된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 입장에서 보면 결국은 '나는 하나를 얻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야 이거 내가 동기가 되었든 누가 동기가 되었든간에 서로서로가 하나씩 더 얻은 자리니까, 우선 손해난 것이 아니니까 기쁘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없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큰소리 한다 하더라도 상대가 없을 때 그 소리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투입하면 할수록 점점점점 더 없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상대가 있게 될 때는 투입하면 할수록 없어질 것 같은데, 어떻게 돼요? 없어지는 것 같은데 생겨납니다. 생겨나는 걸 보면 그것은 내 것이고 나도 그분에게 필요한 것이 되는 거예요. 손해나는 것 같은데 결국 플러스가 된다는 거예요. 그것은 어디서 있느냐? 기쁠 수 있는 데서만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기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은 혼자는 절대 될 수 없습니다. 상대적 요건이 적용되는 데서만이 기쁠 수 있습니다. 왜 기쁘냐? 상대라는 것은 제2의 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에 플러스하게 되면, 하나될 수 있는 번식적인 제2의 나로 등장하기 때문에, 둘이 됨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둘이 돼 가지고 뭘할 것이냐?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하나되는 거예요. 만사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마음도 상대적입니다. 마음이 어디로 가야 될 것이냐? 마음이 가는 길이 어디냐? 기쁠 수 있는 길을 가려고 합니다. 기쁘려면 어떻게 돼야 되느냐? 마음 기준이 세운 차원 높은 기쁨에 정적인 인연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서적인 내용을 빼 놓고는 행복이니, 희망이니, 무슨 뭐 기쁨 이니 하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있을 수 있어요? 기쁘면 웃는 것입니다. 기쁘다면 벌써 웃지요? 왜 웃어요? 웃는 데는 누구를 보고 웃어요? 혼자 웃어요? 혼자 웃으면 그건 돈 사람입니다. 웃는 것은 왜 그러냐? 자기를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웃을 때 석경(거울)을 보고 웃는 거예요? 안색이 달라지면서 표정이 달라지면서 웃는 것은 누구 때문에 웃느냐?
자기 때문에 웃어요? 상대 때문에 웃는 놀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왜 웃느냐 할 때, 내가 좋으니까 웃지, 거 왜 좋으냐? 나 혼자이기 때문에 좋지, 그래요? 웃는 것이, 왜 웃느냐? 좋아서 웃지, 좋은 일도, 왜 좋으냐? 혼자 있으면서 좋아할 수 있어요? 상대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돼 있죠?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있어 가지고 둘이 하나되어 있으면 웃기 마련입니다. 웃기 마련이니까 그것은 기쁜 것입니다. 기쁨의 표시는 누구로 말미암아 되느냐? 나로 말미암아 되지 않고 상대로 말미암아 되었기 때문에 내 표정은 상대를 위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석경을 보고 매일같이 웃는 녀석은 고독한 녀석입니다. 고독한 과부나 홀아비가 그렇습니다.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여러분이 결혼을 하기 전에는 석경을 많이 봅니다. 여러분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혼한 다음에는 '석경을 보기는 뭘 봐'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기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마음의 주체 되는 것이 뭐냐? 그것이 정(情)이라는 것인데, 정이라는 것은 그냥 막연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가운데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에서는 심정의 기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정에도 마음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 마음이 마음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의 기준이 마음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준 가운데 인격 기준이라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심정이라는 것이 둘이 있어요, '심정이다' 할 때의 그 심정? 개인을 중심삼은 심정의 기준도 하나요. 가정을 중심삼은 심정도 하나입니다. 물론 개인과 가정은 둘이지만 이 둘이 합해서 설 수 있는 심정의 기준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남자 여자 가운데에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은 둘이 있을 수 있어요?
이 심정의 가는 길이라는 것은…. 이렇게 가겠어요. 직선으로 가겠어요? 꼬불꼬불한 길을 원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건 틀림없이 직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가는 길이, 부처끼리의 정, 플러스적 남자의 정 마이너스적 여자의 정, 이것이 플러스돼 가지고, 묶어져 가지고 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가정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절대적인 기쁨을 찾아 나가야 할 운명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절대적인 행복, 절대적인 희망, 절대적인 이상형을 찾아 나가지요? (이하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절대적인 그 어떠한 목적의 세계를 요것과 연결시킬 수 있는 출발점이 있다면 마음대로 해서 되겠어요? 절대적으로 요것과 요 심정과 이것의 방향이, 다시 말해 여기서 가자는 방향과 이 방향이 상치(相馳) 안 되고 연결될 수 있는, 과정은 아무리 길더라도 변할 수 없는 단 하나의 길이 있어야 절대적인 주체의 목적자 연결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로 갈 수 있는 심정적 기준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가정을 중심삼은 부부도 그렇지만, 가정을 중심삼고 식구들이 있다 할때, 그 식구들이 가야 할 심정적 기준, 부부와 묶어진 기준과 차원 높은 자리에서 가정이 갈 수 있는 길이 되는 정서적인 기준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길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 이상적인 세계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있어야 될 거라구요.
한 동리면 동리, 동네끼리 사랑한다. 동네가 하나되자, 동네가 좋게 되자 할 때 좋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남북이 좋게 되기 위해서는 둘 되어야 돼요?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되는 데는 무엇이 기준이 되어 가지고 하나되어야 하느냐? 하나되는 데 있어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아래 위가 거꾸로 돼도 괜찮다. 그게 아니라구요. 하나되는 데는 기준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표준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표준이 뭐냐? 주체가 되든가 대상이 되든가, 그것이 표준을 결정하지 않고는 하나될 수 있는 길은 나오지 않습니다. 서로가 표준 되겠다고 하면 싸움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플러스와 플러스가 서로 플러스 되겠다면, 그것들은 둘이 반발해요. 하나돼요? 반발하기 마련이라는 거예요. 이건 밤이나 낮이나, 자면서도 반발하는 것입니다. 원수끼리는 자면서도 싸우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극단적인 원수면 원수일수록, 자면서도 싸우고, 밥먹으면서도 싸우고, 안 될 말이지만 변소간에 가 앉아 가지고도 싸웁니다. 언제나 24시간 싸웁니다. 24시간 싸우니 일년 열두 달 싸우는 거예요. 일년 열두 달 싸우면 일생 동안 싸우기 마련입니다. 일생 동안 이런 싸움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불행합니다. 일생 동안 행복한 것이 아니라 불행한 것입니다. 자, 그래요. 그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 갚겠다는 사람은 모두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걸 보게 되면, 예수 같은 사람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이야! 이거 보게 된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구요. 일생 동안 반발하고 일생 동안 서로가 싸우는 사람이 얼마나 불행해요?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것보다도 다른 것 다 집어 제치고, 행여나 하늘이 원수를 갚아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바란다 하게 되면 그 얼마나 편안하겠어요? 거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보라구요. 자기가 원수를 갚겠다고 그저 밤낮 없이 해댔자 언제나 상충적인 입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그걸 생각하면 얼마나 불행하냐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원수를 내가 갚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그분이 갚아 주는 것이다. 그분이 원수를 갚아주는 날에는, 원수라는 것은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자기가 원수를 갚고 나면, 그 원수의 자식이 있다면, 그 원수의 자식은 내 자식대에서 또 원수를 갚아야 된다는 이런 무엇이 있지마는, 그걸 다 집어 던지고 절대자의 공의의 판정만이 있어 가지고 그 판정만이 내 원수를 틀림없이 갚아 주는데, 원수의 자식도 꼼짝달싹 못하고 순응할 수 있는 그런 원수 갚음이 있다 할 때는, 그거 얼마나 멋지냐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원수 갚겠다는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보다도, 다 잊어 버리고 또 다른 희망을 바라서 원수보다도 잘되어 가지고 개인적인 원수를 갚는 것보다도 원수 족속을 지배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이 벌하겠어요? 갚기는 갚는데 길이 두 길입니다. 직접 내가 피해를 받았으니 내가 창으로 가슴을 찔러 가지고 그 피해를 복수하여 탕감 하는 게 아니라, 그럴 게 뭐 있느냐고 하며 내가 노력해 가지고 김씨면 김씨 족속 몽땅 한꺼번에 갚아 버려야 되겠다. 김씨 문중 전체를 그 조상서부터 후손까지 전부 내가 굴복시켜야 되겠다 하면 거 얼마나 멋져요? 그러려면 그 나라의 대통령이 되든가, 그 나라의 왕이 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원수를 갚는데, 그런 권력자가 되어 가지고 모가지를 잘라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야 이녀석들아, 내 원수이지만 다 용서해 주마, 내 말 들어라' 할 때는, '예, 그리고 말굽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 나라를 전부 다 한번 천국을 만드는 것인데, 너희들이 선두에 서서 피땀 흘리고 노력하면 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이것 해 주겠나? 하면, 예이' 하게 돼 있다구요. 안 그래요? 원수를 피로써 갚는 것보다도 원수가 자진해서 하게 해 가지고 자기를 위해서, 그 나라와 그 세계를 건설하는 데 돈 안주고 역군으로 쓸 수 있는 길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를 갚는 것하고 원수를 안 갚고 나라에 플러스될 수 있게 하는 것과 어느 것이 선한 것이냐 할 때, 원수를 갚아서, 피를 보고 좋아 하는 것하고, 그들을 지배하는 자리에서 그들이 지배하는 사람의 은덕을 고맙게 생각하여서 그분의 뜻을 이루어 드리겠다고 노력하게 만드는 것하고 어느 것이 멋지게 원수를 갚는 것이냐 이거예요. 그런 길이 있다는 거예요.
예수 같은 양반은 그런 방법을 썼다는 거예요. 플러스와 플러스가 남아지는 한 원수는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지금 싸우고 있습니다. 서로가 주도권을 쥐겠다는 거예요. 요전에 조총련에서 한덕수하고 김병식이하고 헤게모니(hegemony)쟁탈전을 하는 게 신문에 나고 그랬잖아요? 한 단체에서 두 플러스가 나왔다 할 때는 싸움이 벌어지는 거예요. 싸우게 되면 절반으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갈라지게 되면 점점 약화되는 것입니다. 약화되는 것은 뭐냐? 어는 것이 아니라 녹는 거라구요. 그러면 약화되는 거예요. 이것은 망하기 마련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가 흥할 수 있느냐, 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민족사상이 통일되어 가지고 전체가 하나의 방향으로 나가느냐, 개개인이 전부 다 자기 주장에 도취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전체를 위해 가지고 전체의 목적을 추구하는 국민이 될 때는 이들은 발전하는 것이요. 개개인이 자기 주장을 하는 국민은 망하는 것입니다.
한국 민족과 일본 민족이 무엇이 다르냐 할 때, 한국 민족은 개개인의 주장하는 데는 꼴찌입니다. 그래요? 남자나 여자나 전부 다 자기 주장하는 데는 눈을 붉혀 가지고 '내가 왜 양보해? 양보 안 한다고' 이러다 보니 종살이 역사를 모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일본 민족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좋은 것이 있으면 하나되자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주체를 딱 정하게 되면 이의가 없어요. 거기 따라가야 되는 것이다 하는 그런 훈련을 받았습니다.
승패의 결정은 거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되는 데는 흥하는 것입니다. 왜 흥하느냐? 그것은 어떠한 표준과 상대적 관념이 벌어져서 그 표준을 따라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둘이 서로서로가 플러스되는 것입니다. 그 표준을 서로가 무시하게 될 때는 그 서로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서로 무시하고 치면 칠수록 그만큼 상대가 나에게 또 치니까 치면 칠수록 점점점점 감퇴되니 망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것이 왜 망하느냐, 왜 흥하느냐? 그것은 천도가, 천법이, 천칙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주권내의 운명을 지니고 난 모든 존재물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천(天)이 법도의 체제를 갖고 있는 그 한계점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부처끼리 묶어지는 그 심정은 아무리 많은 가정이 있다 하더라도…. 역사시대의 정의 기준, 표준이라는 것이, 정서적인 그 중심점이라는 것이 둘이 있을 수 있느냐? 없습니다. 하나예요. 가정의 식구가 여덟 식구면 여덟 식구가 하나되게 될 때는, 어머니 아버지 자식이 전부 다 하나되게 될 때는 어머니 가는 길, 아버지 가는 길이 따로일 수 있느냐? 어머니 가는 길, 아버지 가는 길이 달라 가지고는 그 가정은 파괴되는 것입니다.
미국 사회가 그렇습니다. 돈지갑도 아버지 지갑 내 지갑이 따로 있습니다. 여편네에게 남편이 돈을 빌려 주었으면 일기장에다 몇월 몇일 얼마 빌려갔다고 써 놓고, '당신이 내 돈 빌려 갔으니까 아무 때에 주소' 해서 찾아와요? 그러면 좋을 것 같지요? 신세 안 지는 자주적인 국민성인 것 같지만 그게 좋은 게 아닙니다.
자, 생각해 보라구요. 여편네한테 만 원 꾸어 쓰고 내 것인 것같이 여겨 잊어버리는 것이 좋아요. 안 잊어버리는 것이 좋아요? 어때요? 자기 것은 쓰고 기억해 둬요. 잊어버려요? 잊어버릴수록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잊어버리지 않으면 큰일이예요. '아이구, 오늘 부산 갔다 왔는데 3천 원 썼구만' 하고 그것을 일주일 한 달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죽을 지경일 거예요. 그게 진짜 지옥입니다. 그럴 때는 잊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자기가 자기에게 한 것은 잊어버리기 마련입니다. 안 그래요?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것이 뭐예요?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것은 뭐예요. 나지. 나입니다. 가까운데 나에게 행한 것은 왜 잊어버리느냐? 여러분 가까운 것은 모를수록 좋습니다. 가까이 가게 되면 눈도 안 보이는 거예요. 가까이 갖다 대면 냄새도 못 맡습니다. 딱 도수를 맞추어야 합니다. 너무 가까이 대면 맛도 안 나는 거예요. 갑자기 후닥닥 먹어 보세요. 맛이 나는지, 전부 다 어느 정도까지 거리를 두고 시간을 두고…. 단맛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맛봐야 단맛이 납니다. 쓴맛도 그렇습니다. 쓴 것을 후닥닥 먹어 보라는 거예요. 여러분 약 먹어 보라구요. 약도 후닥닥 벼락같이 먹어 버리면 쓴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것도 거리를 두고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가까울수록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진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어떻더냐 하면 '어떻긴 어때, 여자지 여자' 이렇게 진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모르는 것입니다. '어디 그럴까? 그런 법이 어디 있어? 라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다는 거예요.
사랑하면 할수록 슬플 때 보면 슬프게 보이고, 기쁠 때 보면 기쁘게 보이고, 신나게 대할 때는 신나게 보입니다. 그래야 살 재미가 있어요.
슬플 때 봐도 그저 해죽해죽 웃으면 그거 기분 나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자기 여편네 남편네 얼굴을 모르기 마련입니다. 그럴수록 이상적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이 여러분의 얼굴을 그릴 수 있어요?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느냐 할 때, 눈이 있는 것을 알고 코 있는 것을 알고 입이 있는 것을 알고 귀가 있는 것을 아는데 '얼굴이 어떻게 생기긴 생겼는데 어떻게 생겼는지는 나는 모른다' 이럽니다. 알아요? 자기 얼굴을 확실히 아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가 한번 물어볼께요. 매일같이 석경(거울)을 보고는 기억해도 잊어버립니다. 우리 아가씨들 잊어버려요. 기억해 둬요? 「기억해 둬요」 기억해 둬요? 기억해 둔다면 자기가 석경을 볼 때 최고의 미인의 기준을 딱 기억해 두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면 '내 얼굴은 이렇게 좋다'고 할 텐데 아침에 석경을 보고 자기 얼굴을 그린다면 '이렇게 하면 좋겠는데, 이러면 좋겠는데….' 이런다는 거예요. 그건 기억하지 못한다는 표정이라구요.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나도 가만 보면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이 길고 코가 길쭉하고 눈이 조그마하게 생겼지만 남이 보는 것만큼 똑똑하게 생각 안 납니다. 여러분은 종자가 다르니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습니다. 남이 보는 것과 같이 똑똑히 기억이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것을 생각할 때, 모든 의식기관이라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 작용하지 않습니다. 작용은 하는데, 최고의 작용은 자기를 위해서 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게 뭐 그래?’ 하지만 그 말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자, 눈이 밖을 내다보지, 자기를 들여다봐요? 눈이 자기를 들여다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오관, 감각기관은 전부 다 상대를 위해서 작용하지, 주체 되는 자기를 위해서 작용하게끔 안 되어 있다고요. 코가 공기를 위해서 움직이나? 공기가 코를 위해서 움직이지, 입이 입 때문에 이렇게 돼 있어요? 상대, 먹는 것 때문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귀가 나 때문에 이렇게 됐어요? 상대의 소리를 잘 듣기 위해서…. 전부 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손은 나 때문에 이래요? 요게 문제야, 상대를 가누려니 이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전부 다 상대를 위해 가지고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데는 본래부터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게끔 되어 있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본래부터 상대를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여자가 여자 때문에 그렇게 생겨났어요? 남자 때문에 그렇게 태어난 거예요. 뭐 여자 때문에 생겨나 요? 여자 셋만 모이면 하는 것이 싸움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생겨난 것은 남자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여자든 남자든 생겨난 것은 상대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자기를 주장하는 것은 좋은 것이 못 됩니다. 결론이 그렇다고요. 자기를 절대적으로 주장하는 데서는 좋은 것이 절대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독재자라는 것은 불행으로 시작해서 불행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 독재자가 나와서 어느 정도의 자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잠잤겠어요? 얼마나 사람들을 희생시켜 가지고 긁어모았겠어요? 그래 가지고 나라를 감아쥐는 그 나날을 중심삼고 세계를 전부 다 뚜드려 패려고 한다구요. 그렇게 상대를 희생시켜 가지고 자기를 세우려고 하는 것은 누구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다 좋아하지 않습니다. 좋아해요? 그렇게 해도 좋다면 거기에서는 절대 평화의 세계니, 통일의 세계니 하는 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상적인 기대가 될 수 없습니다.
좋은 것은 어디서부터? 상대를 위하는 데서부터, 어느 정도? 절대적으로 위하는 데서만이 절대적민 좋은 것과 절대적인 선이 거처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본래의 원칙기준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고요.
부모가 나를 절대적으로 위해 주게 될 때, 그 자식이 '아이고 우리 엄마 아빠 고마워' 이러지요? 그럴 때에 자식이 '아이고 우리 엄마 아빠 좋아' 이럽니다. 엄마 아빠가 어디 갔다 오더라도 보고할 것이 있으면 딴 사람 다 접어 두고 엄마 아빠에게 보고하려고 합니다. 그렇지요? 자기를 보다 생각해 주는 그러한 사람과 하나 되려고 하는 것이 우주의 원칙입니다.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알겠지요?
보다 나를 위해 주는 그런 주체 앞에 내 모든 전체를 규합시켜 가지고 일체화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일체화시키면 어떻게 되느냐? 무엇이 생겨나느냐? 기쁨이 생겨납니다. 그 기쁜 것이 나만 기쁜 것이 아닙니다. 둘이 다 기쁜 것입니다. 둘 다 기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둘이 기쁜 것이 되면 역사적인 기쁨의 중심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기뻐하는 시일이 길고 오래면 오래일수록 세계적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효자도 10년 효자로 끝난 사람은 효자가 못 돼요. 10년 효자로 끝나면서 죽으면 죽음과 더불어 효자의 이름을 남길 수 있지만, 10년 동안 효도하다가 11년 째에 죽지 않고 11년 째 정월 초하룻날 불효 했다 할 때는 효자예요? 불효자예요? 효도 안 한 것보다도 더 불효가 될 수 있어요. 왜? 그건 부모의 마음을 칼로 심장을 도려 내는 것보다 더 아프게 해주는 것입니다. 10년 세월 효도했더라도 11년 째 초하룻날 불효하게 되면 그건 효자로 결정나는 것이 아니라 불효자로 결정나는 것입니다.
또 애국자, 충신이면 충신이 군왕이면 군왕을 위해 가지고 일생 동안 늙도록 충성을 다했지만 죽기 전날 불충(不忠)을 하게 될 때는 그것이 충신으로 끝나요? 그가 죽기 전 날, 전 시간에 만약에 역적 놀음을 하고 혹은 불충하여 상감마마라든가 군왕을 자기 멋대로 대하게 될 때는 충(忠)으로 끝나요, 불충으로 끝나요? 불충으로 끝난다는 거예요.
그거 왜 그러냐? 충이라는 것은 영원과 인연맺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참된 효자라는 것은 영원과 인연맺는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그래야만 효가 됩니다. 충도 영원히 그래야만 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은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남편을 얻고 싶은 미인 각시들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구요. 또, 이랬다저랬다 하는 여편네 얻어 가겠다는 미남자 어디 손들어 봐요. 그 녀석은 미친녀석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거 좋아요?
변덕쟁이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여자들, 변덕쟁이 싫어하지요? 「예」 그런데, 여자들은 변덕이 없어요? 변덕쟁이를 싫어하려면 변덕쟁이가 안 되어 가지고 변덕쟁이를 싫어해야 합니다. 그런데 누구나 변덕쟁이를 싫어하는데 변덕쟁이가 돼 가지고 변덕쟁이를 만나게 되면 쌍변덕 입니다. 이건 죽고 못 사는 거예요. 만나자마자, 이혼서류부터 써 놓고 만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이라는 것은 변덕이 없어야 합니다. 영원과 통하는 데서만이, 전체와 통하는 데서만이 참 좋은 것이 있게 됩니다. 참 좋은 것이라면 좋은 거예요. 참 좋은 것을 원하지요? 세상에서 '귀물(貴物)이다' 할 때는 무얼 쳐요? 귀물 하면 귀금속이 있습니다. 자, 이거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놓았느냐는 거예요. 귀사람 귀부부라고 하지 않고 말이예요. 귀금속이 좋아요? 여자들한테 귀금속이 좋아요? 뭐 여자들이야 다이아몬드 반지 하게 되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말이예요.
자, 귀금속을 원해요. 귀남자를 원해요? 어떤 것이 더 귀한 거예요? 이걸 보면, 인간들이 처음에 딱지를 잘못 붙였든가, 인간 자체에 딱지가 잘못 붙었든가 둘 중의 하나, 딱지를 잘못 붙였거나 잘못되었든가 둘 중의 하나라는 거예요. 대관절 귀금속이 귀해요? 사람이 귀하우, 돌 짜박 지가 귀하우? 사람이 귀하지요? 사람이 귀한 거라구요.
사람이 귀한데 그 귀한 것은 무엇이 있기 때문에 귀하냐? 사람이 눈이 있고 코가 있고 뭐 그렇기 때문에 귀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사람이 왜 귀하냐 하면 좋을 수 있기 때문에 귀합니다. 얼마나 좋을 수 있느냐? 꼴래미로 좋을 수 있으면 덜 귀한 것이지만 보다 좋을 수 있으니까 보다 귀한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무엇을 중심삼고 보다 좋을 수 있느냐? 내 마음과 내 모든 심정을 중심삼고 보다 좋을 수 있으니까 사람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에게 있어서 돈보다 남편이 보다 덜 귀하다. 그래요? 그래요. 안 그래요? 어디 대답해 보라구요. 나만 이야기하니까 내가 심심하게 된다구요. (웃음) 여자들, 같이 좀 얘기합시다. 남편이 보다 덜 귀해요. 보다 더 귀해요? ' 더 귀하기 때문에 죽어도 필요한 것이 귀금속이다' 그래요? 「아닙니다」 '죽어도 필요한 것이 남편이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남자도 그렇다구요. 죽어도 필요한 것이 아내다 이거예요. 이렇게 돼 있어요.
그러면 이것이 다이아몬드 책상이다 하게 되면, '이 다이아몬드 책상하고 사랑하는 사람하고 바꾸고 말고….' 그래요?(웃음) 바꾸겠어요. 안 바꾸겠어요? 「안 바꾸겠어요」 진짜 안 바꿔요? 그러면 참 보람이 있게요. 자, 대한민국 만큼 큰 다이아몬드가 있는데 그 다이아몬드하고 사랑하는 남편하고 바꿀소냐 할 때, 어때요? 사랑하는 애인하고 바꿔요. 안 바꿔요? 「안 바꿔요」(웃음) 그것은 상대적 관념이 아니라, 절대적 관념입니다. 상대적 관념이면 기분 나빠요. 조금이라도 상대적 관념이 있으면 기분나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당신을 요렇게 요렇게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좋기는 좋은데 아무 동네 그 누구의 아버지보다는 조금 못합니다. (웃음) 하면, 거 기분 좋아요?그 조금이라는 말이 아무리 크게 칭찬하는 말이라도 한꺼번에 다 잡아먹고도 남습니다. (웃음) 그렇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에는 절대적 관념은 용허(容許)되지만 상대적 관념은 절대 용허되지 않습니다. 절대적 가치의 것이니까 이것은 세상 그 무엇을 줘도 바꿀 수 있다? 「없다」 없습니다. 그래서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은 변하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는 것은 일방통행입니다. 시종일관이라는 말이 있지요? 시종변관을 요구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시종변관이라는 말이 없지만 일관(一貫)과 대조되는 말이 없기 때문에 변(變) 자를 갖다 붙여서 변관(變貫)이라고 한 것입니다. 시종변관 좋아해요? 변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런 녀석은 대갈통이 구더기 잔뜩 슨 된장통보다 못합니다.
그래서 시종은 여일하여야 되느니라, 그래야 관심거리가 되고, 관심이라도 가질 수 있는 표준적인 그러한 것도 바랄 수 있지만 왔다갔다하는 변태증은 절대 관심거리나 생각이나 대상적이거나 비중적인 조건을 절대 세울 수 없다 이겁니다. 그 사람이 천년 전에 이 땅에서 살았다면 영계에 가 가지고 만나서 '당신 옛날에 지상에 살 때는 시종여일을 주장하더니 여기 와서도 시종여일이요? 할 때 '아 그때는 그랬지만 여기 와서는 시종변관이요' 한다면 그건 빵점입니다. 낙제꽝입니다.
땅에서 살았지만 영계에 가 가지고도 물어 보게 되면,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를 잘못 알았구만, 천년 전에 내가 그만큼 가르쳐 줬으면 여일통이 되어야 할 텐데 변통이 뭐야, 이 녀석아?이럴 수 있으면 아무리 주먹을 들고 패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요. 나쁜 사람이요?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최고의 선한 주체일수록 이랬다저랬다 한다. 하지 않는다? 어떤 거예요? 「하지 않는다」 한번 약속하면 약속한 것은 절대 실천한다, 안 한다? 「한다」 참일수록 한번 나타났다 하면 영원히 그 본질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참이 되는 것입니다.
금을 왜 귀금속이라고 하느냐? 자꾸 변하기 때문이예요? 변덕이 많은 여자들은 '오늘은 아침 태양빛이 광명하니까 헤헤' 하고 '아이구 오늘은 구름이 끼였으니까 희희….' 이거 안 된다는 거예요. 도를 통한 사람들은 비가 와도 '나 때문에 오지, 우리 한국은 비가 오지만 딴 나라는 비가 안와서 굶어 죽겠는데, 거기에 비가 오는 것을 좋아할 나 한 사람보다도 몇십 몇만이 있을 텐데, 아하, 비가 잘 오는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게 나쁜 사람이예요. 좋은 사람이예요? 「좋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변덕 많은 사람들은 조금만 좋으면 헤헤, 조금만 나쁘면 흥흥 합니다. 이게 문제예요. 그래서 여자라는 사람은 남자보다도 믿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웃음) 그것은 내 말이 아니라 배웠다구요. 나 욕하지 말라구요. 왜 그러냐? 가다가는 살짝꿍 곁길로 가기 때문에 일방통행이 못 된다는 거예요. 일방통행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자동차 타고 다닐 때 일방통행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일방통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요. 자동차가 다니는 길은 쌍방통행이 필요하지만, 인간이 가야 할 길은 쌍방통행이 절대 불합리한 것입니다.
그러면 표준점이라고 말했는데 대관절 표준될 수 있는 주체가 뭐냐? 세상 말에 '인심( 人心)은 조석변(較夕變)이요. 산색(山色)은 고금동(古今同)’이라고 해 가지고, 사람 마음은 아침 저녁으로 변하고 산색이 고금동이라고 했는데, 그놈의 사람들 믿을 게 있어요? 자, 통일교회에 들어온 여러분들, 까놓고 이야기해 봅시다. 들어올 때하고 지금하고 일방통행이요. 변방통행이요? 까놓고 얘기합시다. (웃음) 일방통행이예요. 변방통행이예요? 「일방통행입니다」 일방통행보다도 변방통행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랬다고 섭섭해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럴 것 같다 이말이예요. (웃음)
아직까지 변방통행을 하는 사람은 기준을 못 잡은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에 어떤 주체적 기준을 가졌으면 그 마음은 기쁘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 길을 위해서는 최고의 속도로 직행해 달려가고 싶은 것입니다. 이렇다구요. 여러분은 그렇잖아요?
선생님도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말이예요.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애기들을 많이 길러 보면 길러 볼수록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얕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점점 두터워집니다. 젊은 사람들은 좀 지내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말이예요. 황부장은 그렇다고 끄떡끄떡 하는구만, 그렇지만 딸만 많이 낳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합격이 아니라구, 아들을 낳아 길러 봐야 돼요.
어떤 때는 말이예요. 청평 같은 데에 가서 이틀밤만 자게 되면 말이예요. 배고플 때 밥이 간절한 마음이 있잖아요? 그렇듯이 어떤 때는 애기 들이 보고 싶어서 막 클클할 때가 있어요.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면 강물이 육지라면 그냥 그대로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우러날 때가 있다구요. 그럴 때 천천히 가고 싶다고 그래요? 천천히, 한 십년 걸려서 가고 싶다고 그래요? 그렇게 되면 생각이 나자마자, 생각이 떨어지자마자…. 떨어지기는 뭐, 나자마자…. 사람의 말이 참 묘해요. 생각이 떨어진다고 해도 통합니다. 떨어지는 것은 받을 사람이 있을 때 떨어져야지, 그렇지 않는데 떨어지면 큰일입니다. 생각이 나자마자 대번에 가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양반 걸음으로 천천히 가야 된다. 군자는 대로행(大路行)이라고 했기 때문에 대로로 통하기 마련이다' 이런 군자가 있어요? 그놈의 군자가 아직 까지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렇지, 그 군자도 사랑하는 길만 있게 된다면, 뭐 빠른 길이 있다면 웃저고리 벗고 달려들 것입니다. 그것이 이해 돼요? 그렇다구요.
군자는 대로행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현재에 있어서 찾아가는 입장이니까 그렇지, 사랑하는 사람을 진짜 가졌으면 대로행이 뭐예요. 직선행이지, 그렇다는 거예요. 초단거리에서 만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거 왜 직선이냐? 왜 직선이 되어야 되느냐? 돌아가면 힘이 소모되고 직선으로 가게 되면 힘이 덜 들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보다 쉬운 곳으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보다 가치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빨리 똑바로 사랑하는 곳을 찾아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생활이 그래요.
그러나 그런 주체라든가 어떤 비준이 없게 될 때는 기가 막히는 것입니다. 가긴 가야 되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 흔들흔들…. 공원 같은 데에 가면 흔들 패들 많지요? 지나가는 사람들은 전부 다 건드리려고 하고 말이예요. 그런 녀석들은 방향이 없습니다. 방향이 없는 사람들은 파손되기 마련이고, 빨리 정비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방향성을 못 가진 존재는 이 우주에서 청산되기 마련입니다.
대한민국의 백성으로서 대한민국에 필요한 방향성을 갖지 못한 사람은 국민 앞에 규탄받기 마련입니다. 그렇잖아요? 대한민국은 이렇게 가는데 거꾸로 부딪쳐 가는 녀석들은 도둑이라든가 절도라든가 어떤 비판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위해서, 그 나라를 위해서 직행하는 사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직행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소위 애국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직행하는 사람 앞에 산이 있게 되면 산도 직선으로 뚫으려고 합니다. 굴을 뚫어서 갈 수 있으면 굴을 뚫어서라도 가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방통행 아니면 불통이라는 말이 벌어집니다. 어디서 불통이냐 하면 저쪽에서 불통이지, 여기는 불통이 아니라 직통입니다. 불통이라는 말은 여기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인 원수가 말하는 것입니다. 목적을 향해서 직행하는 사람에게는 불통이 아닙니다. 그것은 언제나 직통입니다. 직통꾼 될래요. 불통꾼 될래요? 직통꾼 되어야지요?
내가 요전에도 말했지만 우리 이 링컨차가 참 잘 달립니다. 그 차 힘이 세거든요. 뭐 이런 고개를 올라오는데 3단 놓고도 거뜬히 올라옵니다. 바쁘게 뭐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가만 두어도 부르릉 하고 잘 올라갑니다. 자 이놈 이거, 고속도로에 집어넣어 놓으면 아주 뭐 왕초입니다. 속력을 내도 '부웅-' 이게 뭐 없거든요. '쉬-' 하며 그냥 달립니다. 가다가 꺼떡꺼떡하면 기분이 좋아요? 빠르면 빠를수록 꺼떡꺼떡하는 것이 큽니다. 암만 빠르더라도 암만 길이 넓더라도, 빠르기가 동일하니까 암만 빨리 가도 빨리 가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고가 나기 쉽다는 거예요.
우리 미국 아이들도 데리고 갔더랬는데…. 백 마일이면 160킬로미터예 요. 이렇게 달리는데도 보통차 한 30킬로미터로 가는 것 같습니다. 보통 차는 변덕이 많고 이렇게 이렇게 산만하게 흔드는데 이 차는 그렇지 않다구요. 빨리 가기는 가는데 천천히 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를 생각지 않고 운전하는 사람이 빠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몰다가는 사고 나기 마련입니다.
차가 그렇다면 탄 사람도 기분이 좋고, 그 차는 어떨까요? 내가 차라도 '야, 이놈이 실력이 있기 때문에….' 하면서 실력을 다 발휘하고 났을때 수고했다고 두드려 주면 좋아할 거예요. 그렇게 해주면 말 같으면 안다구요. 비벼 주고 하면 꼬리로 탁탁 치고 뒷다리로 춤을 춘다구요. 그게 차니까 그렇지 그렇게 잘 달려 줬으면 가서 '야, 수고했다' 그런 말 합니다. 그렇지요? 그건 무얼 말하느냐? 그 동참자까지, 상대적 요건에 속한 일체는 자기의 기쁜 대상권의 혜택을 주기 마련이라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그거 무슨 말인지 이해돼요? 그렇지요? 그게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동참적 가치가 거기에 동반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끼리 재미있게 사는 그 가정에 보여지는 모든 물건이, 사진이 거꾸로 붙여져서 사람의 다리가 천정을 향해서 차려고 하더라도 기분이 나쁜 것이냐, 좋은 것이냐? 「좋은 것입니다」 좋지요. 집은 발로 차면 구멍이 뻥 뚫어져서 다리가 나가게 생겼는데도 재미있게 오손도손 정다운 비둘기같이 단짝으로 사는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게 아주 뭐 보금자리더라 이거예요.
그림이 아무리 거꾸로 붙여졌더라도 '저거 왜 저렇게 붙였을까?’ 하는게 아니라 그런 집에 거꾸로 붙어 있으면 있을수록 도리어 이상적인 생각이 벌어지는 거예요. 창조의 요건이 되는 거예요. '이거 거꾸로 붙인 것은 이들의 이상이 크기 때문에 들이 차면 구멍이 뚫어지겠으니까, 앞날에 있어서 그렇게 차더라도 귀하고 크나큰 이상적인 집을 짓겠다는 자극을 일으키기 위해서 거꾸로 붙였겠지' 하고 점점 좋게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된다구요. 사랑하는 사람을 대해서는 그렇다는 거예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대해서는 그저 보기만 해도 싫지요. '아이구 저 볼따귀는 왜 저렇게 생겼어? 저 코통 봐라, 저 눈통 봐라, 천부 다 통이구만' 이럽니다. 무슨 통이 나오느냐 하면, 반대통이라구요. 통이긴 통인데 일방통이 아니고 변방통입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말이예요. 상대적 기준이 되면 될수록, 완전한 것이 되면 될수록 거기에는 환경적 여건이 전부가 좋은 것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있다고 합시다. 이건 언제든지 성질이 야들야들해 가지고 반가워하면서 주인이 여름에 더워서 정강이를 내놓고 가는데 와서 고맙다고 싹싹 핥는 거예요. 그것 반가와서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이놈아' 하고 차서 다리가 부러져서 절뚝절뚝하게 되었다면 그 주인은 '아침부터 그렇게 반가워하고 비며대며 그랬는데 그 짓을 안 하니까 잘됐지' 이러지 않을 겁니다. 생각이 있는 주일이라면 그 강아지 다리가 나을 때까지는 그 강아지를 볼 때 마음이 편안하겠어요? 그 강아지한테 '잘못했다. 야야 내가 잘못했다' 이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그래요」 그러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려고 하다가 병신이 됐다 할 때는 그 병신 되게 만든 사람은 일생 동안 생기가 넘쳐요? 죽을 때까지, 죽어서 잊어버릴 때까지, 만약에 죽어서도 잊어버리지 많거든 영원히 그 내심에 그런 감정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 좋은 것이 있으면 그를 줘야지, 그런 생각이 남아지겠어요. 안 남아지겠어요? 「남아집니다」 남아진다구요. 영원히 우리의 마음 속에, 모든 정서적인 문제를 완전히 점령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강아지가 보기 싫은데 아침부터 나와서 '앵-' 이러고 있다는 거예요. 기분이 나빠서 발로 딱 차서 절뚝절뚝하게 만들었다면 그걸 볼 적마다 '이놈의 강아지 잡아 버려야 되겠어' 하면서 원수시하는 거예요. 그 녀석이 병신이 돼서 절뚝절뚝하면 볼 적마다 어때요? 기분 나빠요. 좋아요? 기분이 좋다면 거 안될 말이지만 기분이 아주 나쁘지는 않다구요.
그렇지만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하다가, 사랑하는 데는 남보다도 나를 위해서 저렇게 병신이 됐다 할 때는 어떻게 하겠어요?그 사람 이상 나를 사랑한 사람이 없다 할 때는 그 병신을 지극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생길이 아니냐, 그 사람보다도 나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모르지만, 그 사람이 최고였다 할 때는 그 사람을 버리고 가는 사람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불행이요. 큰 올무가 나를 끌어당길 것입니다. 거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이걸 보게 될 때,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하기 위해서, 세계와 인류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사람이 있다 할 때는 세계인류가 그에 대해 오록(오금)을 쓰겠어요. 못 쓰겠어요? 「못 씁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내가 좋은 것이 아니라, 그와 더불어 좋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의 애국자들은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 생명을 바치는 거예요. 그 나라, 그 민족을 위하여 사랑하려고 하다가 병신이 되고 죽어갔기 때문에 나라에 좋은 일이 있으면 그 이름과 심정으로 추모와 더불어 같이 있으려고 하지 않느냐? 그렇지요?
부모를 사랑하는 효자가 있어 가지고 그 효자가 부모를 위해 정성을 다 바치는 극한 자리에서 생명을 잃고 갔다면, 그 부모의 마음은 영원히 그 자식과 단짝이 되는 것입니다. 기뻐도 그와 더불어, 슬퍼도 그와 더불어…. 만약에 슬픔이 있게 되면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내 슬픔을 넘어 기쁠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너와 더불어 그야말로 천년 만년 살고지고 하고 싶다' 하며 효자의 칭호를 붙여 주고 만국에 자랑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영원히 남아지지 않느냐? 일시가 아니라 영원입니다. 그렇지요?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변하는 이 땅 위에, 변절해 나가는 이 현시대 위에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길을 어디서 모색할 것이냐, 시종여일이라는 말을 어디에서 모색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어떤 원리를 가지고 안 되는 것입니다. 원리는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있어서 대한민국 국민을 중심삼고 애국애족하는 애국사상이라는 것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원리원칙에 있어서의 애국정신이 될는지 모르지만 우주와 인류를 대한 애국애족의 정신은 못 되는 것입니다. 그게 원리예요.
모든 원칙과 법도는 각 분야에 있지만 그 자체를 가지고는 전체에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전체의 환경까지도 전부 다 통틀어 가지고 기쁘든가 슬프든가…. (녹음이 중단되어 약간의 분량을 정리하지 못했음)
선이라는 것은 혼자 있어 가지고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있는데 '저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 할 때…. '내가 선한 사람이다' 할 때 그걸 긍정해요? 또, 자기가 자기 자랑하는 녀석을 누가 긍정해요? 세상에서 자기가 잘났다고 자랑하는 사람을 긍정하고 싶어 하는 본심을 본래부터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잘났다고 하는 녀석 흉보지요? 나중에는 흉보지요? 그렇지요? 남자나 여자나 다 그래요.
그게 왜 그러냐? 본래 잘난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기를 드러내어 머리를 흔드는 자리에 있어 가지고는 선이 성립이 안 되는 거예요. 어디서 성립되느냐? 남을 위하는 데에 있어서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그대를 위하고 그분을 위하고 상대를 위하는 데에서만이 잘났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성적이요 본성적인 원리원칙이기 때문에, 그 원리원칙에서 이탈하는 자는 참이 아닙니다. 참이 안 되는 자리에 서기 때문에 자부하는 거예요.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은 다 부정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선이 가는 본성적 자리가 상대를 위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 이해돼요? 선은 남을 위하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상대의 기원이라는 것은 자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이상이기 때문에 이상적인 터전, 이상적인 환경을 소개할 수 있는 것이 선입니다. 그래서 선은 보다 상대를 추구할 수 있는 배가의 힘의 작용을 요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절대적으로 위하는 기준 여하에 따라서 절대적인 선은 환경적으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나를 높이기 전에, 동창생 친구가 80명이 있으면 나 대신 동창생들을 높여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그들이 같이 공부를 해서 같은 실력기준에 있다면, 이렇게 만들어 준 사람은 졸업 때에 가 가지고 반드시 우등생이 되는 것입니다. 졸업생 가운데서 뭇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중심자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잘 하더라도 80명을 무시하고 꺼떡꺼떡하는 녀석은 골방에 집어넣고 모듬매를 치고 혼을 내주는 것입니다. 여기 서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있으면 선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아가씨들이 길을 가다가 어떤 강도에게 습격을 받았는데 얼굴도 잘 못생긴 지나가던 남자가 얼굴 잘 생긴 습격한 사람을 보고 '거기 서!' 이래 가지고 멋지게 굴려 버리고 나서 아가씨를 보고 '큰일날뻔 했군요. 밤에 혼자 다니는 게 아니요. 안녕히 가십시오' 이러면,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뭐라고 표시도 안 하고 뭐라고 물어 보지도 않고 그냥 갔다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아가씨는 그 남자에 대해 알고 싶어해요. 안 알고 싶어해요? 「알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소' 하면 거 좋아하겠어요? 그러면 '에이' 이런다구요. 그렇지요? (웃음) 원리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게 뭐냐? 선한 일을 하고 자랑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그분에게만 미쳐지기를 바라고 해내기 어려운 것까지도 해내서 전체를 그의 가치로 넘겨 주려고 해서 그걸 넘겨 받았으면 그것을 가지고 혼자 기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 좋은 것이 있으면, 여기 도둑 맞을까봐 걱정이 될 만큼 좋은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가졌으면 혼자 보고 이럴는지 모르지만,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남편이 있다면 그걸 혼자만 보고 싶어해요? 둘이 보고 좋아하려고 하지요?진짜 좋은 것은 둘이 보고 좋아하려 한다구요.
그런데 좋은 것이 있으면 전부 다 자기 혼자 갖고 있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자식 없이 혼자 사는 여편네들은 귀금속을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불행의 요건이 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자식도 없는데 혼자서 보석반지 큰 걸 가지고 있으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이 보석반지가 화가 된다 그말이예요.
왜?'그걸 어떻게 할까? 이런다는 거예요. 점점 늙어 가는데 어떻게 하느냐? 죽을 날이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그것이 복이예요. 화예요? 「화입니다」 화예요. 귀하고 귀한데 죽어 가면 영감도 없고 자식도 없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먹고 죽겠어요? 차라리 그렇게 될 바에는 안 가졌던 것만 못한 것입니다. 늙으막에 그것을 보따리에 싸 가지고 감추려고 하다가는 깨깨 말라 죽게 마련입니다.
그런 것을 보게 되면 보물도 주는 데서,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려고 하는 자리에서 그 가치가 영원히 빛나는 것입니다. 받아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행복은 받기만 하는 데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받았으면 주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부모를 통해 자기 육신을 받고 태어났으면 자기를 부모에게도 물론 돌려야 되겠지만, 그 부모가 사랑하는 형제 앞에 돌리고, 부모가 사랑하는 나라 앞에 돌리고, 세계 앞에 돌리면 그 아들은 효자요. 충신이 요. 영원히 그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조금 받고 많이 나누어 주면 줄수록 그는 역사에 남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골동품적 가치를 점점 더 배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골동품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기원전 3백 년 시대의 골동품이 한개가 있고, 3백 년에서 하루 모자라는 골동품이 만 개가 있다고 할 때, 만개를 주어도 그 하나와 바꿔요. 안 바꿔요? 기원전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하루 앞서더라도 그 앞선 하나는 만 개를 전부 더 줘도 바꿔요? 안 바꿔요? 안 바꾸지요? 「예」 안 바꿉니다. 이건 무얼 말하느냐? 보다 멀고 보다 오래된 것일수록 귀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모두가 바랄 수 있는 것일수록 귀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골동품이 오래된 것이라고 해서 잘 생긴 것이 아닙니다. 잘 생기기는 뭐가 잘 생겨요? 칼 끝이라도, 요만큼 한 귀때기 만한 조각 하나 있으면 박물관을 가득 채울 만큼 물건이 있더라도 이것 하나 앞에는 못 당하는 것입니다. 보다 귀한 것 앞에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런 걸 바라보게 될 때, 보다 가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냐?보다 오래 된 것일수록 가치 있는 것입니다. 오래 된 것일수록 그 민족의 사상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전체의 본심적 내용과 전체의 상대적 내연의 요건을 갖추어 가지고 그것이 전체의 비준으로써, 표준으로써 소망하는 것이 될 때에는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 가치를 들고 나오게 될 때 그걸 나쁘다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 가치 앞에는 전부다 환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시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아까 말한 데로 돌아가서 이야기 합시다. 사람에게 있어서 마음이 도대체 뭐냐? 소위 말하는 마음의 밭이라는 것이 뭐냐? 오늘날 세상에서는 지(知), 정(情), 의(意)를 말합니다. 이것이 지금 문제입니다. 지가 먼저냐, 의가 먼저냐, 정이 먼저냐? 이것이 철학에서 문제가 되고 있어요.
아까 말한 대로 사람은 올바른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언행심사라고 말했어요. 여기서 사(事)는 일을 말하는 거예요. 일은 결과를 말하는 거예요. 언행심사에 따라서 그 사람은 판명이 되는 것입니다.
지식, 지(知)라는 것은 뭐냐?아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뭐냐? 말은 뭐냐 하면 말씀인데 말씀을 아는 것입니다. 앎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느냐? 옳고 그른 것이 판단되는 것입니다. 앎으로 말미암아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를 앎으로 말미암아 세계의 옳고 나쁜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말하자면, 지라는 것은 지식을 말하고 지식은 진리를 말하고 진리는 말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은 뭐냐 하면 그 사람의 아는 것을 판단해 가지고 발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요.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어떻게 되느냐? 그 사람은 거기에 해당하는 그 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주체자가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세계적인 대학자의 한마디가 세계적인 학계, 문화계 전체의 운명을 업치락 되치락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지요? 결국은 최고의 판단의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판단은 왜 필요하냐? 행동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차원 높은 자리에 가기 위한 것입니다. 판단해서 뭘하느냐? 판단해 놓고는 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판단을 해서 내가 좋은 곳으로 옮겨가기 위해서…. 옮겨 감으로 말미암아 전진하는 것입니다. 보다 가치적인 입장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판단을 절대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뭘 말하느냐? 행(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언행이예요. 행을 말합니다. 이것의 목적은 보다 발전하는 것이요. 보다 전진하는 것입니다.
의(意)도 그렇습니다. 뜻이라구요. 뜻이야, 뜻. 뜻이 있어야…. '오늘 통일교회에 간다'고 하면 가는 행동을 하기 전에 뜻이 결정되어야지요. 통일교회에 간다고 생각하기 전에 몸뚱이가 가요? 그래요? 뜻을 결정해야 돼요. 통일교회에 간다고 결정을 했기 때문에 행동이 벌어집니다. 이 뜻(意)은 '간다' 하는 뜻입니다. 이걸 보면 재미있는 것이 '설 립(立)' 자에 '가로 왈(曰)' 그 다음에는 '마음 심(心)입니다. 마음의 말을 세우는 것이 뜻입니다. 거 한문 풀이가 참 재미있어요. 그렇잖아요?
무엇을 세우는 것이 뜻이라구요? 말을 세우는 것이 뜻입니다. 말을 세우려면 행해야지요. 그렇지요? 또, 마음을 세우려면 행해야지요?그 사람이 어떤 가치를 가진 존재냐 하는 것은 그 목적 성사하는 것을 두고 봐야만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은 방향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뜻은 길을 말하는 데 길은 자기 멋대로 왔다갔다하는 게 아닙니다. 뭐 아침에는 이렇게 가고 저녁에는 저렇게 가는 게 절대 아니예요. 사방팔방으로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뜻의 길이라는 것은 일방입니다. 여자가 가는 뜻의 길은 일방입니다. 남자의 뜻의 길도 일방입니다. 부부가 가는 뜻의 길도 일방입니다. 부부가 자식들과 합해 가지고 가는 뜻의 길도 차원이 높을 뿐이지, 일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방향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 가지고, 판단해 가지고 방향을 따라서 가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기쁘게 되는 것입니다. 왜 기쁘냐? 목적의 자리가 나와 접근되어지기 때문에 기쁩니다. 알겠어요? 그 방향으로 가면 갈수록 점점점점 목적의 자리, 자기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때가 점점 가까워지니 그 거리가 단축됨에 비례해 가지고 기쁨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상대적입니다.
10년 20년 전에 고향을 떠날 때, 뜻을 품고 어떤 결의를 갖고 떠났다가, 별의별 천신만고 수고를 다 거쳐서 그야말로 성공해 가지고 금의환향한다 하게 될 때는 돌아가는 그 출발은 기쁘겠지만…. 목적을 이루고 가는 길이라면 가면 갈수록 기쁘고 동네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붙안고 소리를 치게 되지만, 만약에 실패했다면 누가 볼까봐 숨기 바쁠 거예요.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가면 갈수록 기쁜 길이 아니고 가면 갈수록 '아 어떻게 갈까? 그런 길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목적을 향하여 가면 갈수록 좋은 일이 벌어지고 한 사람은 목적을 향해 가면 갈수록 슬픔이 벌어지는 이 두 결과의 존재는 기필코 인생행로의 결정으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인생길을 가는데 전부 다 어떤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 없는 존재가 있어요? 그 눈이 괜히 깜빡깜빡하게 생겨났어요? 코가 괜히 나발통같이 생겼어요? 다 목적이 있어서 그렇지요. 귀가 괜히 누구 보기 좋으라고 이렇게 생겨났어요? 거꾸로 생겨났으면 좋을 텐데 말이요. 벌써 이것은 말을 상대적으로 들어야 할 것을 다 알고 그렇게 생겨났습니다. 거 목적이 있는 거라구요.
남자로 태어난 것도 목적이 있지요? 여자로 태어난 것도 목적이 있어요. 남자 여자가 하나되는 데도 목적이 있습니다. 또, 아들딸을 낳는 것도 목적이 있다구요. 민족과 민족이 서로서로가 하나되는 것도 목적이 있습니다. 전부 다 그렇지요? 전부 다 상대적 요건을 걸어 가지고 보게 된다면 목적관이 벌어집니다. 이것은 공산주의 이론에서 변증법 이론과는 상치되는 거라구요.
작용이라는 것은 혼자 하는 법이 없습니다. 아무도 없는데 혼자 작용 하고 웃고 떠드는 것은 미친 녀석입니다. 혼자서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미친 행동이 드러나는 거라구요. 점점점점 모순된 자체로 드러나는 거예요. 작용이라는 것은 전부 다 상대적 요건을 통해 가지고 보다 차원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데에서 작용을 계속하려고 하지, 그것이 없게 될 때는 중단되는 것입니다. 전진해 가지고 뜻의 길을 따라가면 따라갈수록 왜 기쁘냐? 목적을 성사할 수 있는 거리가 점점점점 가까와 오기 때문입니다. 가까와 오면 올수록 비례적으로 기쁨은 증가하는 것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그러면 지식이 필요하냐, 뜻의 방향이 필요하냐? 뭐가 필요하냐? 뜻의 방향도 지식도 결국 기쁨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근본을 알아야 돼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은 출발기준에서부터 이게 엇갈려 있습니다. 다들 '지식이 필요하다. 지식이야' 이럽니다.
만일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면 대통령으로 다 된 줄 알아요? 또, 세계로 갈 수 있는, 세계정세 앞에 보조를 맞추어야 할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대한민국만의 대통령이 되어 가지고는 역사적으로 책임 못 한 대통령으로서 역사에 이름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보람 있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주체자로서 드러날 수 있는 가치적인 책임을 해 가지고,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는 인물이 돼야만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 나라가 기뻐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지, 대통령이 됐다가 그 나라 망하게 만든다면 그 대통령이 필요해요? 그런 대통령은 꿈에도 훤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통령 안 됐던 것만도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이 영원히 일치될 수 있어야 합니다. 목적하는 바의 가치가 전체 앞에 적용될수록 가치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들에게 국가적인 인물이 될 거냐, 세계적인 인물이 될 거냐 할 때, 국가적인 인물이 되겠다는 녀석은 한 사람도 없다구요, 그렇게 돼 있지요? (어느 한 사람을 가리키시면서) 임자도 그래? 「예」 이젠 국가적 인물 되기는 다 틀렸다고 누구나 공인하더라도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만은 틀림없이 있지요? 「예」 죽어서라도 소원성취하고 싶은 거예요.
기쁨은 어디서 오느냐? 올바른 판단에서 옵니다. 그러니, 판단을 잘 하라는 거예요. 올바른 판단을 해 가지고 올바른 길을, 전진할 방향을 갖추어야 합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판단 밑에서 올바른 방향을 갖추지 않고는 절대 기쁨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왜? 지, 정, 의라는 것은 본성의 내재적인 속성을 말하는 것인데, 그 전체가 좋을 수 있는 요인을 보강하는 자리가 기쁠 수 있는 결과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쁠 수 있는 결과의 자리를 잘못 판단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더라도 기뻐요?
판단을 잘못하게 되면 '아이고! 그것 잘못 결정했구만' 이러지요? '아이고, 잘못 결정했구만, 안 했으면 좋았을 터인데 이겁니다' 십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거예요. 가려니 갈 수도 없고 돌아서려니 돌아설 수도 없고, 뭐 죽자니 청춘이요. 뭐 어떻고…. 이런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판단을 잘 해야 되는 것입니다. 판단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지식은 무엇 하기 위한 것이냐?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한 여비를 마련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점에서 세계적인 대가가 있느냐 할 때, 그 사람이 그 어떤 분야의 방향을 가르쳐 주는 데에는 세계적인 대표가 될는지 모르지만 인간의 기쁨을 성사시키는 목적의 자리까지는 아직 멀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대가가 됐더라도 인생으로서 갈 길은 있는 것입니다. 과학자가 됐더라도 과학을 향하여 가는 그것으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일방통행이 아닙니다. 과학자가 됐더라도 인생길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왜? 과학자도 기쁨의 길을 바라고 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성공 했더라도 그것으로 통하지 않아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종교가들도 '아 신앙의 길만 가면 되는 것이다' 이게 아닙니다. 신앙의 길도 가야 되지만 상대적 세계의 길도 수습해 가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중이 절간에 앉아서 목탁을 두드리는 수도의 길도 필요하겠지만, 그랬으면 상대적인 사바세계에 가서 실천하는 실적을 남겨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무리 목탁을 천년 동안 두드린다 하더라도 소용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로 판단해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대관절 뭐냐 할 때, '통일교회가 뭐긴 뭐야? 벌거벗고 춤추는 곳이지' 그런 말 많이 들었지요? '통일교회는 요사스런 곳이지, 삿된 곳이지, 사교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 사교의 왕초다' 세상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거 잘, 알았느냐? 내가 판단을 잘 했느냐 못 했느냐? 공의의 판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것이 정의의 판단이냐, 불의의 판단이냐 하는 문제가 벌어지는 거예요.
역사는 여기서 엇갈려져 가지고 상극의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상극의 세계에서는 주체가 주권을 잡았더라도 그 주체 일방으로서는 전체에게 미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잘못 판단하게 되면 거꾸로 떨어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만약에 대상을 잘못 판단하게 되면 대상은 남아지고 주체는 거꾸로 떨어지게 되어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만일에 통일교회를 잘못 판단해 가지고 아무리 멋모르고 이단 사교라고 떠들더라도 떠들던 사람들은 다 흘러가 버리고 이단 사교라는 칭호를 받던 통일교회는 당당코 남아집니다. 그게 천리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로 판단을 해야 됩니다.
올바른 판단을 하려면 서류를 꾸미지요? 범죄자가 있으면 서류를 꾸미는 거예요. 중요한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이 녀석은 이렇고 저녀석은 저렇고 비교해서 누가 그르냐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알아보니까 이 사람은 좋고 저 사람은 나쁘다 결정을 낸 후에 그것이 사실일 때에는 결정받은 사람은 꼼짝달싹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삼자 공인, 세 증인을 세워 가지고 사실로 긍정하고 처리하게 될 때는 천하에 어디든지 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면 죄를, 형법이면 형법에 대한 지식이나 그 알고 있는 원칙 기준을 중심삼고 판단하더라도 거기에 불합격된 사람도 불평할 수 없다 하는 것이 국가의 절대적 기준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지식이 왜 필요하냐? 판단하기 위해서….
종교를 믿는 데 있어서 막연한 종교는 믿지 말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어' 하는 것이 막연해요. 확실해요? 「막연합니다」 내가 이제 총을 쏘는데 말이요. 타켓을 향해서 총을 쏘는데 '맞겠는지 안 맞겠는지 모르겠다' 이러면서 꽝 하고 쏘면 맞겠어요? 천만 번 해봐도 안 맞는다 이겁니다. '요놈의 타켓이 그렇게 생겼구만, 야, 요것 봐라,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타켓은 납작하고 편편한데, 요놈의 타켓은 빼앵 돌아 원점은 말이야, 요것이 쏙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들어가지 않고 요것이 쏙 나와 있다…. (판서하면서 말씀하심) 타켓을 보면 말이예요. 요것이 이렇게 돼 있다구요. 쏙 나와 있다구요. 이렇게 된 타켓도 있을 수 있다구요.
이것을 딱 중앙에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정조준해야 합니다. 조금만 틀어져도 안 맞아요. 요렇게 보고 요 중점에서부터 통해야 됩니다. 그래야 맞는 것입니다. 하나 어려울 것 없다구요. 그런데 조금만 틀려도 맞아요. 안 맞아요? 맞은 것 같지만 진짜는 안 맞았다는 거예요. 이게 길면 길수록 사건이라구요. 정조준하려면 수평도 딱 같아야 되고, 방향도 딱 같아야 되고, 상하좌우 조절을 딱 해서…. 앞만 봐 가지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3점을 일치시켜 가지고…. 이렇게 쏘는 사람하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꽝 꽝 다 쏘고 '아이고 다 쏘았구만, 아이고 가산 다 탕진 했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통일교회 믿다가 망했어' 이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통일교회 선생이 되어 이 놀음 하지만망하지 않았다구요. 여러분 때문에 내가 망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나서 안 망했지, 자기들이 잘못해 가지고 몹쓸 데 갔지, 그렇게 망하는 그것은 난 모른다구요. 망하길 잘 했다는 거예요. 그런 녀석은 망해야 된다구요. 고시를 치는데 오천 명이 시험을 봐서 다섯 명을 뽑는다 하게 되면 비율이 천대 일입니다. 대수가 많을수록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좋은 겁니다」 좋은데, 들어가기는 어려워요. 쉬워요? 「어렵습니다」 어렵습니다. 좋기는 좋습니다. 오천대 일, 오만대 일인데 '아이구 합격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게 쉬워요? 안팎으로 걸리는 것이 많습니다.
마찬가지라구요. 통일교회도 그럴 거예요. 하나님 아는 데도 그럴 거예요. '하나님 알아?' '하나님 알지', '어떻게 알아? ', '하나님 머리카락 보아서 알지, 하나님 머리는 요요요요… 요렇게 생겼지, 머리카락 같더라' 그것도 맞기는 맞다구요.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 손톱밖에 못 본 사람이 있습니다. 손톱은, 따보떼하기, 손톱 짜른걸, 뭐라 해요. 손톱 깎은 거 뭐라고 해요? 응? 아, 그 손톱 깎은 거 있잖아, 깎아진 걸 뭐라 그래요? 「손톱 찌꺼기요」(웃음) 이런 게 있다구요. 자, 그게 문제야, 요것밖에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아이고, 하나님 어떻게 생겼소?', '손톱 깎아 놓은것 같다. 요게 하나님이다. 이게 요렇게 생겼기 때문에, 하나님 요렇게 생겼다' 이런다구요. 하나님이 또 옷을 입었는데 뭐 알락달락한 옷을 입었다 이거야, 모자를 썼는데, 노랑 모자 쓴 것만 본 사람에게 '하나님 어떻게 생겼소?' 하고 물어 보면 '아, 어떻게 생겼기는, 노랑 모자 쓴 것 같이 하나님이 그렇게 생겼지' 그럴 수 있다구요.
그러면 그것이 하나님이냐? 막연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아 가지고 판단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판단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판단해요? 누가 판단해야 돼요? 「자신이….」 자신이 판단해야 됩니다. 요건 틀림없습니다. 나도 맨 처음에 총을 가지고 사냥을 나가는데 총질이 순 날총쟁이지요. 처음 총질을 하는 걸 날총쟁이라구 한다구, 그런데, 총을 쏘면 틀림없이 나가기 마련인데 나가긴 나가는데 잘 나가야지 잘못 나갔다가는 큰일납니다. 자기 어머니 배도 쑤셔 놓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 배에다 들이대고 쏘면 그 인사고 뭐고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큽니다. 잘못했다가는 큰일이 벌어져요.
그렇지만 조준을 해 가지고-먼저 신념이 있어야 된다구요-쏘아야 합니다. 안 쏘아지면 쏘아질 때까지 해야 됩니다. 이래야 국제선수로 되는 거라구요. '야, 국제선수가 되면 챔피언 되는 것 참 좋은데, 금메달을 받게 될 때 기분 좋겠구만….' 그래서 자기 나라 국가(國歌)가 세계를 대표래서 뭐 '동해물과 백두산이…' 하고 연주될 때 거 아주 자랑스럽지요? 그게 얼마나 신나요? '야 나도 한 번…' 이럽니다. 사람이면 다 하고 싶다구요. 그런데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거예요? 한국이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몇개 타 왔어요? (녹음이 중단되어 약간의 분량을 정리하지 못했음) 기분 좋아요. 나빠요? 한국에서는 어떻고, 아시아에서 어떻고, 세계에서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걱정이 크다구요. 기록을 깨뜨리면 깨뜨릴수록 걱정이 작아져요? 많아져요? 「많아집니다」 기록을 깬 사람들은 점점 심각해져 들어갑니다. 그럴 수 있다구요. 그렇지요?
통일교회 문선생 입장을 보면,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종교는 종교계에 뛰어들어 꼴지도 못 해' 이랬지만, 나는 뭐야? 내가 한번 해보자' 해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많이 뛰어왔다구요. 그런데 저 녀석 좀 때려 잡으라고 야단을 하고 그랬지만 이렇게 나오다보니…. 그러던 것이 이제는 그럭저럭…. 이제는 그들이 내 밑으로 보이고 내 눈 아래 보인다구요. 다 앞에 있다고 내가 뛰어왔는데 전부 다 뒤에 서 있어서 뒤돌아봐도 안 보이게 됐어요.
그걸 보면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웃음)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이거 오다 보니까 옛날에 따라오던 그 사람들은 천국가고, 나 혼자 거지가 돼 가지고 난데없는 사막에 들어가 가지고 죽을 함정을 향해서 달음질치지 않느냐…. 고독할 때가 있다구요. 그럴 때는 '아, 반대하는 패가 또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는 거예요. 반대하는 패가 있어야…. 복싱 같은 거 할 때면 말이예요. 저쪽에서 치고 들어오면 '요놈의 새끼 어딜…' 이러면서 그 반작용으로 나꿔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반대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사막에서 혼자 가게 될 때 자기를 잡으러 오는 원수의 기마대가 나타나게 되면 도리어 살 수 있는 길이 생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사막에 있더라도 열 번 중에 두 번 세 번은 살 수 있는 길이 있어요. 없어요?이럴 때 사막 가운데에 적군의 기마대가 나타나면 그때는 기쁜 거예요. 슬픈 거예요? 어때요? 거꾸로 파고 들어가게 돼 있어요? 그때는 손을 들고 빌고 가야 되는 거예요. 그럴 때도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보게 되면 원수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 할 수 있다구요. 요전에는 뭐 통일교회를 반대하다가…. 거 누군가, 우리 통일교회 반대하다가 오물을 썼던 사람? 「신사훈….」 신사훈인지 무슨 사훈인지 모르겠구만, 그 사람 요즘엔 반대한다는 말이 들리지 않더구만, 자꾸 반대하라고 그러라구요. 때로는 반대가 필요하다구요. 반대가 있기 때문에….빛이 밝아질 수 있는 것은, 캄캄한 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빛은 더 발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만사가 무사합니다.
기성교회가 뭐 옳고…. 내가 통일교회가 옳다는 말 안 해봤습니다. 여기에 기성교회 잘 믿는 양반이 왔을는지 모르지만 내가 때로 기성교회 목사들에게 한마디 욕을 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나보고 불평 못 할 거예요. 내가 천 마디 말을 듣고 이 입으로 쏭알쏭알해 보는 것밖에 안 되는 거예요.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들고 치고 이랬는데 가만히 있다가 몇 마디 욕을 했다고 해서…. 그건 욕한 축에도 안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건 산울림하는 데 손짓하는 거와 마찬가지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내가 통일교회 선생으로서 아무리 기성교회 누구누구 목사 죽어라고 욕을 하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하나도 안 받는다구요. 나는 하나님 앞에도 당당합니다. 왜? 내가 그런 것을 많이 당했기 때문입니다. 열 번 맞고 한 번 때리는 것이 죄예요, 아니예요? 열 번 맞고도 지지리 못나 가지고 가만 있으면, 열 사람 백 사람에게 전부 다 맞고 밀리고만 있으면 그건 누구도 편을 안 드는 거라구요. 동정도 안 합니다. 그건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챔피언이 되어 가지고 그 나라의 송사리떼 같은 것들을 '아이구, 치기 좋다' 이래 가지고 그저 밤새껏 수백 명을 들이친다고 해서 저 녀석 못난 사람이라고 그래요? '야, 본격적인 훈련이 벌어지는구나' 그러는 거예요. 거 훈련이라구요. 참 신나는 놀음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럴수록 그건 좋은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내가 기성교회에 대해서 아무 짓을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만약에 그 7배를 플러스해 가지고 한꺼번에 태평양 바다에 버리더라도 하나님이 '야 야 그러지 마라'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다 그러면 하나님도 꼼짝 못할 수 있는 재료 수집을 다 했습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 볼트 너트라는 거, 네지(ねじ) 알지요? 알지요? 맨 처음에 대가리 맞출 때는 잘 맞아요. 안 맞아요? 안 맞게 됩니다. 이렇게 열 번 천 번 해도 안 맞다가 맞아 놓은 다음에는 건드리기만 하면 올라가요. 들어가요? 이건 위에서 건드리기만 하면 자꾸 들어가는 거예요. 이건 돌리기만 하면 틀림없이 들어가는 거예요. '들어간다 들어간다 들어간다. 지금 8부 들어간다. 9부 들어간다. 10부 다 들어갔다' 이렇게 들어갈 때, 그 새에 뭐가 끼이는 것을 용허(容許) 해요. 안 해요? 반대요건은 절대 용납 안 합니다.
그 다음에는 그 주인이 뿌라이야면 뿌라이야로 꽉 죄는데 뿌시식 그렇게 죄는 게 좋아요. 뚜둑 뚜둑 이렇게 죄는 게 좋아요? 꽉 조여 가지고 공기 짜박지 하나라도 못 들어가게끔 딱 조여 가지고…. 어떤 진동이 있어 가지고 몽땅 빠지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도록 그렇게 틀고 싶은 것이 너트를 죄는 사람의 심리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도 그럴 거라구요. 통일교회를 그렇게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나의 아주 중요한 볼트를 만들어서 쓴다 하게 되면,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 통일교회 교인들 진짜 한번 죄소, 얼마나 센가 한번 보게요. 명령하소' 이래 가지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죌 것입니다.
내가 조이는 사람이라구요. '조여라! 조여라!'해 가지고 전부 다 조여서 빠지직하는 때가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있어야 되겠습니다」 있어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서 거기에 무슨 기름 짜박지가 들어가 있으면 그것이 삐져서 옆으로 나와야 되겠어요. 안 나와야 되겠어요? 나오는 거라구요. 이건 쓸데없는 것들이라구요. 그런 것들은 죄면 죌수록 통일교회에 못 붙어있게 됩니다. 그럴 때가 있을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어떻게 해서든지 나중엔 눈을 빼서 삶아 먹겠다고 그럴 때가 올 것이다. 눈 빼 가지고 삶아 먹겠다고 하는 사람 봤어요? 눈을 뽑아서 삶아 먹이겠다고 하더니, 언제 가서는 삶아 먹자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제 남을 위해서 그만큼 해야 한다고 교육이 다 돼 있느냐고 하면 됐다고 그럴 거예요. '그러면 이제 나를 위해서 교육 받아라' 할 때는, '네 눈깔을 빼서 삶아 먹자' 이럴 때는 어떻게 하겠어요?' 아니요, 선생님 눈깔을 빼 먹은 맛을 알고 나서, 내 눈깔을 빼 주겠소' 그렇게 하겠어요? (웃음) 그 뭐 있을 거라구요?
때가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하나가 남는 거예요. 그 하나의 원칙을 표준해 가지고 귀결지어야 할 것이 오늘날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가 아니냐, 그것은 개인에게 있어서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종족도 그렇고, 민족도 그렇고, 국가도 그런 것이 아니냐, 대한민국은 어떻게 가야 된다. 세계는 어떻게 가야 된다 해서 세계에 너트를 딱 죄어서 이것을 풀지 못하게끔 만들어 놓으면 그 세계는 통일 세계가 될 것입니다. 안 그래요?
시종여일이라는 것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마음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의 목적이기 때문에 우선 내가 올바로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통일교회에 왔다갔다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구요.
잔칫집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잔칫날 지짐이 얻어먹고 떡 얻어먹는 사람이 제일 좋지요. 그렇지요?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제일 좋은 사람이예요? 「주인공요」 주인공은 잔칫날 지지직 지지직 지짐이를 지지고 떡을 텅텅 치면서 '아이구 좋다 좋다' 그래요? 외적으로는 좋은 것 같지마는, 각시들 마음은 속이 달랑달랑할 것입니다.
옛날 결혼식 같으면 그건 진짜 뭐 지옥가느냐, 천당가느냐, 죽느냐, 사느냐 그럴 거예요. 옛날에는 신랑도 보지 못하고 시집가고 신부도 못보고 장가갔거든요. 신랑도 못 봤기 때문에 아무리 자기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 편 되어 가지고 잔치를 하지만 신부의 가슴은 두근두근 서근서근 하게 마련입니다. 거 왜 두근두근 할까요? 한근한근하지 말이예요.
한국 말이라는 것은…. 보라구요. '찌국 째국' 전부 상대적이라구요. '왔다갔다' 왔다면 왔다지, 갔다는 또 뭐예요? '지지고 볶고' 이게 전부 상대적이예요. 다른 나라 말에는 이렇게 된 말이 없다구요. 또, 휘청휘청, 덜렁덜렁 달랑달랑, 히히헤헤 전부 상대적으로 돼 있어요. 이걸 보면 한국 말이 세계에서 제일 좋은 말입니다. 하나님이 말을 가르쳐 주는 데에 있어서 한국 민족에게 세계에서 제일 좋은 말을 가르쳐 준 거예요. 이렇게 천지이치에 맞게끔 맞춘 말은 한국 말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웃음) 여기 한국 사람이 들으면 기분 좋겠지만 서양 사람들이 들으면 기분 나빠할지 모릅니다.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구요.
자, 보라구요. 한국 음식을 보더라도 조미료가 세 가지 이상 안 들어가는 것이 없습니다. 고추, 마늘, 파가 안 들어가는 것이 없어요. 거기에 또 뭐가 들어가느냐 하면, 깨가 들어갑니다. 그걸 보면 세 가지 아니면 네 가지는 언제나 따라다니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삼위기대 사위 기대를 좋아하는 국민입니다. 또, 한국 기후를 보게 되면 삼한사온입니다. 야, 이게 어쩌면 그런가, 진짜 그렇다는 거예요. 삼위기대 사위기대, 3단계 4수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 있어요.
자, 그러면 아들딸을 갖는다면 어떻게 갖겠어요? 아들은 셋이요. 딸은 넷이다 그래요? (누구를 지적하시면서) 시집가면 애기 몇이나 갖고 싶소? (웃음) 뭐 그런 건 다 정한 이치인데, 너무 그러지 말라구요. 대답하면 하나님이 사랑하시사 아가씨가 대답하는 대로 해주실지도 모르지요. (웃음) '아들은 셋, 딸은 둘' 이렇게 하는데, 그건 불공평하지 않느냐, 아닙니다. 남자는 하늘 상징이고 여자는 땅 상징이기 때문에 하늘은 3수가 원칙이고 땅 수는 상대수가 원칙입니다. 땅은 상대입니다. 존재세계는 상대수가 원칙입니다. 천지이치가 이렇게 통하기 때문에 한국 사람은 아들 셋 딸 둘을 원합니다. 이렇게만 됐으면 맞다구요. 통일교회 원리는 안 맞는 것까지 다 맞출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거 원리적이라구요.
왜 3수가 중요한 수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3수는 존재수입니다. 존재할 수 있는 기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존재라는 것은 하나에서부터 하나의 수를 갖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의 수, 1수가 남게 하려면…. 보라구요. 하나에 플러스 하나(1+1)하면 얼마냐? 둘(2)이지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하나에 마이너스 하나(1-1) 하면 얼마냐? 공(1)이 되는 것입니다. 자,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게 대번에 둘이 나오나요? 하나가 양쪽에 있어야 둘이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로 남아지는 것이 뭐냐?둘 마이너스 하나(2-1)하면 하나(1)가 남고, 셋 마이너스 둘(3-2)하면 하나(1)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요? 보라구요. 하나 플러스 하나 플러스 하나(1+1+1) 하면 얼마예요? 셋(3)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 남는 것이 뭐냐? 하나 플러스 하나 마이너스 하나(1+1-1) 해야지요?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하나 수를 가지고 전부 다 개성진리체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수가 하나로 남아질 수 있는 수는 3수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게 돼 있다구요. 셋에서부터 하나가 남아지게 마련입니다.
여러분, 수학이라는 것이 뭐냐? 가(加)하고 감(減)하고 승(乘)하고 제(除)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 있다구요. 넣었다가 뺐다가 하는 것이 수학입니다. 이렇게 돼 있다구요. 그렇지요? 하나가 남는 수는 하나를 셋 합한 데서만이 나오지, 하나를 둘 합한 데서는 빼고 더하고 해서 하나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리적으로 볼 때, 3수는 존재의 기본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원리적이라구요.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면 통일교회를 잘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를 어떻게 아느냐? 통일교회가 나쁜 곳이냐, 좋은 곳이냐를 알아야 되겠어요. 서울대학교 가는 것보다 통일교회 가는 것이 못하냐 나으냐 할 때, 나을 때는 서울대학교 집어 던지고 통일교회에 가야 그것이 올바른 사람이고 통일교회가 못하다 할 때는 통일교회를 집어 던지고 서울대학교 가게 하고 가는 것이 올바른 사람입니다. 그게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알아야 되느냐? 통일교회 원리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원리를 알아 가지고는 통일교회는 판단 못 하는 것입니다. 원리를 앎으로 무엇을 판단하느냐? 통일교회 문선생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대관절 어떤 사람이냐를 알 수 있습니다.
원리를 아는 것은 통일교회를 알기 위한 것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원리를 아는 것이 누구를 알기 위한 것이라구요? 원리의 중심이 문선생이기 때문에 문선생을 아는 거예요. 물론 하나님이라고 되어 있지요.
여러분 십자거리에서 교통 순경이 싹 이렇게 하면, 차가 부릉하고 가지요? 깃대잡이가 춤추는 대로 놀아나야 됩니다. 만일에 그 십자거리에서 불쾌하고 기분 나쁘다고 해서 '에이 나 싫다' 하면서 마음대로 했다가는 옥살박살되게 마련입니다. 틀려요. 안 틀려요?
자, 그렇게 되면 길잡이하는 사람은 대통령보다 높습니다. 그래요. 안그래요? 대통령이라 해도 할수없이 신호하는 대로 가야 됩니다. 그러니 대통령보다 높다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 자리에서는 대통령보다 높다. 그와 마찬가지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하나님 앞에 신호잡이 라면, 하나님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신호잡이로 내세웠으면, 하나님도 내가 신호하는 대로 가야 돼요. 맞지요? (웃음) 그럴 수 있다구요. 웃을 말이 아니라구요. 내세웠으니 그렇게 안 하면 하나님도 걸린다구요.
신호가 바뀌어 뒤에 있는 차가 빵빵할 때, 엔진만 부릉부릉하고 가만 있으면 대통령이라도 잡아 끌어내 가지고 밀어제켜야지 별수 있어요? 그리 되는 거라구요. 그것이 정상이예요. 비정상이예요? 그게 정상입니다. 그러니 물론 하나님이 배후에 있겠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이 길잡이가 되어서 이렇게 가라 하면 통일교회 패들 가야 되겠어요. 안가야 되겠어요? 신호를 못 봤거들랑 앞에 빨리가는 사람에 맞춰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웃음) 신호를 언제 보겠어요? 네거리에서 신호는 20미터 30미터 밖인데 색맹 같은 사람은 그걸 볼 줄 모른다구요. 그러면 앞에 가는 사람의 뒤꼭지만 따라가면 다 가는 거예요. 방법은 그거예요. 그렇다면 그럴 수 있어요. 신호를 바로 보든가 그렇지 않으면 앞서 가는 사람 행동에 보조를 맞추든가 해야 합니다. 그것이 길을 갈 수 있는 비법입니다. 마찬가지예요.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원리를 알아서 뭘하느냐? 통일교회를 믿기 위해서 원리를 아는 게 아닙니다. 통일교회를 알기 위해 공부하는 거예요. 통일교회를 알게 되면 누구를 알게 되느냐? 통일교회의 무슨 협회장을 알고, 전도한 사람 알고 그런 것이 목적이 아니라구요. 통일교회 원리를 공부하는 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대관절 어떠한 사내냐 하는 것을 알기 위한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알기 위한 것입니다.
대관절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뭘하는 사람이냐? 새벽같이 바쁜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말이예요. 지금 몇 시간 됐어요? 이야기를 하면 한 15분 정도 쯤 설교하면 될 텐데, 지금 벌써 몇 시간 째냐는 거예요. 그건 왜 그래요? 그리고 또, 통일교회 패들은 왜 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어요? 저기 가는 사람 있구만 뭐, 기성교회 사람들이 보게 되면 모를 거예요. 어떤 때는 열두 시간까지 얘기하거든요. 아침도 안 먹고 새벽부터 얘기한 것이 낮 열두 시가 땡 칠 때 '아 점심 먹소' 하는 거예요. 아침은 그만 두는 거예요. 그것 뭐 번거롭게 '아침은 뭘 먹을까' 이래요? 신나는 놀음이 벌어지게 되면 아침쯤은 빼도 괜찮다구요. 또, 하룻밤 잠 안 자도 괜찮다구요.
통일교회 원리공부는 무엇 때문에 하느냐? 통일교회 믿기 위해서, 통일교회 가는 길 따라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알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앞으로 통일교회에 있어서 박물관장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문선생에 대한 자료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통일교회 박물관장이 될 수 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러면 앞으로 통일교회의 정수분자는 어떤 사람이냐? 통일교회 원리 책을 1페이지에서부터 550페이지까지 눈감자마자 녹음기를 돌리는 듯 벼락같이 한꺼번에 왈카닥 외워 버리는 사람이 통일교회의 정수분자냐? 그게 아닙니다. 팔만대장경 암만 외웠더라도 하등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거기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그게 뭐냐? 비준, 표준을 찾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다시 말하면 기쁨이라는 것은 책이 아닙니다. 말씀이 아니라, 말씀의 목적체가 기쁜 것입니다. 그렇지요? 말씀이라는 것은 일방적입니다. 거기에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마음과 하나되어 가지고 기쁨의 상대권을 갖춘, 기쁠 수 있는 그 자리가 목적이기 때문에 나의 목적은 상대적이라든가 주체적이라든가 하는 표준적 기준점을 발견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원리책이 표준적 기준이냐? 그래요? 아니라구요. 표준적 기준은 싫든 좋든…. 통일교회 문선생이 생기기는 잘 못생겼습니다. 코가 이렇게 생겼고 눈도 작긴 하지만 말이예요. 고집이 있다구요. 코가 이렇게 생겼으면 고집이 있고, 또, 눈이 이렇게 되어 있으면 뭣도 무섭지 않다구요. 눈이 세상만사에 겁이 없어요. 그런 무엇이 있지만 말이예요. 싫더라도 할 수 없어요. 눈이 크고 코가 멋있게 생긴 사람들, 이런 겁쟁이들은 못 따라올는지 모르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을 배워 가지고 따라오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구요. 그 말이 맞소, 안 맞소?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진짜 기뻐하는 사람은 '통일교회 교인들 전부 다 기쁘게 사는 것이 그게 내 행복이다' 하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아무리 여러분이 다 기뻐하더라도 선생님이 '익' 하면 '어어어….' 이럽니다. 거 맞소, 안 맞소? 「맞습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코를 흘리면서 침을 흘리면서 좋아하다가도 선생님이 '와라' 하면 달라져요. 안 달라져요? 달라지지요? 「예」 자 이렇게 보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문제라구요. 기성교회에 나올 때는 통일교회가 문제이더니, 또 통일교회에 들어오니 통일교회 문선생이 문제라구요. 이런 문제는 있을수록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학과가 점점 많아질수록 고급학교인 것입니다. 학과나 전공시험이 점점 많아질수록 고학년이라는 거예요. 맞아요. 안 맞아요? 연구분야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사람들에게 문제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난 후에는 좋은 것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문제점이 많다는 거예요. 아 이거 원리가 좋아서 들어왔더니 점점 두고 보니까 깍쟁이 중의 왕초 깍쟁이 다 모였다는 거예요. 고집이 제일 센 것들이 여기 왔구만, 깍쟁이도 진짜 경기도 알깍쟁이만 모였다구요. 전라도 제일 하바리만 모였구만, 경상도 맨 왕목곧이가 왔구만, 평안도의 왕초들만 모였어요. 그렇다구요. 대표 아니면 여기 못오게 됩니다. 보라구요. 전시회니까, 박람회니까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라고 하는 거라구요.
무슨 전시회냐? 통일 전시품을 전시해 놓은 것이 전시회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잘났다는 것은 다 들어와 모인 곳입니다. 품평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전시회라구요. 딱 맞지요? 세계에서 잘났다고 하는 것은 다갖다 모아 놓았기 때문에 세계 박람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그러니까 다방면에서 나와 부딪치는 거예요. (웃음) 전부가 일등이라구요. 전부 다 자기가 잘났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아지려고 하면 찬바람이 획획 부는 거예요. 박물관 들어가면 훈훈한 기운이 날줄 알았는데 찬바람이 획획 분다는 거예요. 들어가 봐야 박물관 기분이라구요.
영국 박물관에 들어가 보게 되면 전시장이 이게 전부 다 미이라처럼 돼 있어요. 쓱 무덤 가운데 들어가면 무엇이 확 덮칠 것 같습니다. 아래도 있고 저기도 있고 말이예요. 전부 놀라 자빠져요. 그렇지만 가만 들여다 보면 볼수록 재미가 있어요. 알겠어요?
통일교회에 들어왔다고 해서 다 좋은 게 아닙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좋다고 오해하는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혼비백산해 버린다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어디 있느냐? 통일교회 교인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대관절 어떤 사람이냐, 어떤 양반이냐, 혹은 어떤 녀석이냐 하는 것을 여러분 입장에서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외각적으로 보게 되면 몹시 바쁜 사람이다. 잠을 안 자며 도깨비같이 산다' 별의별 소문이 다 났습니다. 뭐 어떻고 어떻고 어떻다고 말이예요. 통일교회 믿는 사람들, 살림살이 하던 것 다 집어 던지고 통일교회 문선생만 따라다닌다고 하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왜 그런지 알아봐야 합니다. 진짜 그렇다면 좋다는 거예요. 세계 사람들이 전부 다 통일교회 문선생한테 미쳐 가지고 문선생 따라가겠다 하게 되면 그건 망하든지 흥하든지 둘 중의 하나는 결정난다구요. 그렇잖아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못나기는 못났지만 만약에 못난 문선생을 따라가겠다고 하며, 세계 사람들이 전부 미쳐 가지고 '문선생이 가는 대로 전부 다 따라가겠소' 하게 되면 망하든지 흥하든지 둘 중의 하나로 판결이 납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닐 때는 판결도 못 나고 둘 다 망하게 마련입니다. 둘 다 망하게 되는 것보다도 한쪽이 망하든가 흥하든가 이럴 수 있는 입장에 서는 것이 지혜롭지 못하다? 「지혜로워요」 지혜롭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결정을 지어야 됩니다. 끝날에는 공산세계도 망하고 민주세계도 망해요. 지금이 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목전에 전개되어 들어오는 시대입니다. 이럴 때는 어서 결정을 지어야 됩니다. 아예 망하려면 보따리 싸 가지고 여기서 한꺼번에 망하자 하는 이런 결정을 안 지으면 둘 다 망합니다. 이럴 수도 있다구요. 지금이 그럴 때라구요.
공산세계는 공산세계가 좋다고 그러고, 민주세계는 민주세계가 좋다고 하면서 서로가 담에 딱 부딪혀 가지고 빙빙 돌고 있다구요. 이제 그렇다고 해서 무얼 하나 붙들어야, 상대가 있어야 기뻐한다고 했는데 뭘 하나 붙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통일교회가 이때 나왔다구요. 종교에서는 통일하자고 나서고 말이예요. 공산당도 세계통일하자고 나오고…. 그게 상대적 관계가 돼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 들어와서는 통일교회 원리공부도 필요하겠지만, 대관절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을 알아봐야 돼요. 알아보는 데는 원리책 가지고는 자료가 불충분합니다. 결론이 그거라구요. 여러분이 아무리 알아봐야 한 60퍼센트밖에 모릅니다. 기분 나빠요. 좋아요? '아이구 저 욕심장이 봐라, 백 퍼센트 알게 써 놓지, 왜 60퍼센트밖에 모르게 써 왔나?’ 이럽니다. 왜 그랬느냐? 도둑놈들이 많기 때문에,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다이아몬드 광산이 확 차 있다고 하게 될 때는 도둑놈이 많으면 맨 본광산은 안 가르쳐 주는 거라구요. 그저 '너도 먹고 물러가라' 해 가지고 요만큼 큰 것 가지고도 아이고 좋다. 아이고 좋다고할 수 있게끔 한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곁다리만 가르쳐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60퍼센트밖에 안 가르쳐 준다는 거예요. 그것이 나 때문이 아니예요. 지옥은 안 가고 천당은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줬으니 지옥 갈 사람들이 천국갈 수 있게 되면 감사해야지요.
앞으로 제일 본광(本鑛)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백 퍼센트 가르쳐 주기 위해서…. 백 가운데에도 몇 플러스한 백이 있고 마이너스한 백이 있어요. 그렇지요? 선생님도 시험점수를 주더라도 110점 줄 것을 100점 주는 수도 있다구요. 그렇지요? 마찬가지라구요.
'자 이거 대관절 어디로 가려고 그래요?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는 올바른 판단을 하고 가야 되겠어요. 그걸 판단짓기 전에는 선생님이 가자고 할 때 '응?뭐, 또 가자고 하는구만, 그만큼 왔으면 된 줄 알았더니, 또 가? 아이구 신발도 없고 겨울이 되었는데 잠바도 없고…. 눈이 이렇게 왔는데 눈사태 났는데도 가자구? 아이구 저 선생님 돌았구만' 자 '돌았구만' 하는 사람이 돌았어요. '가자' 하는 사람이 돌았어요? 둘 중에서 하나는 돌았다구요. '가자' 하는 사람에게 눈사태 나는 것이 봄절기의 진달래꽃이 핀 것같이 보이겠소, 눈이 눈대로 보이겠소?어때요? 눈사태 난 벼랑산을 보고 가자고 하느냐, '아이구, 저것 봐라, 꽃이 피는 봄동산이다' 이러면서 가자고 하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똑똑히 보고 얘기하는 거라구요.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 산을 넘어가야 되는 것이다 할 때는, 판단을…. (녹음이 중단되어 약간의 분량을 정리하지 못했음)
내가 뭐 아쉬운 게 있어서…. 내가 뭐 밥이 걱정이예요. 아들딸이 걱정이예요? 뭐가 걱정이예요? 아들딸 걱정하고 밥을 걱정하는 때가 있기도 하지만 세계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지, 자신을 위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구요. 통일교회는 지금 통일교회를 위해서 일하자는 게 아니라구요. 통일 교회는 죽더라도 나라를 살려야 된다는 거예요. 또, 대한민국은 망하더라도 세계인류는 살아남아야 돼요. 또, 세계인류는 망하더라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은 사라질 수 없는 거예요.
그것이 왜 그러냐? 하나님 가운데는 세계인류가 들어가 있고 세계인류 가운데는 대한민국이 들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망하더라도 세계를 살려 주게 되면, 대한민국이 망할 수 있는 운명을 달게 받았으면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건 역사적 귀추가 그렇게 되어 있고 오늘날 현실적인 모든 선악의 분립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아는 사실이 아니냐.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확실히 알고, 판단해 가지고는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요? 알고 판단하는 것은 뭘하기 위해서? 후퇴하기 위해서죠? 「전진하기 위해서…」 전진하기 위해서입니다. 전진은 왜? 전진해서는 뭘하느냐 말이예요? 밥이 나와요. 떡이 나와요. 집이 나와요? 뭣 때문에 전진하느냐 말이예요. 집이 나오기 전에 목적달성이 목전에 다가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남이 좋기 때문에, 내가 좋기 때문에? 내가 좋기 때문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남 좋게 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 좋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구요. 여러분이 좋게 되기 위해서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통해 여러분이 다 좋을 수 있는 복귀를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마음의 속성은 지적 방향과 의적 방향과 정적 방향이 통일적으로 하나가 되어 가지고 '야, 잘 판단했다. 잘했다! 야, 됐구나' 할 수 있는 그것을 위해서 가야 됩니다.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하냐? 표준과 일치될 수 있는 이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일치되면 어떻게 되느냐? 영원한 주체와 영원한 대상으로 그 상대가 결정됩니다. 거기에서 영원히 주고받음으로써 느껴지는 기쁨은 영원히 주고받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그것은 억천만금을 주더라도, 억조만세의 수많은 인류를 투입해서라도 찾을 수 없던 보람 있는 가치의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찾기 위해 가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것이 자기를 후퇴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과 고난이 극하면 극할수록 그것이 앞으로 성공으로 결실될 수 있는 것이 목전에 점점 접근해 온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람 있는 전징(前徵)로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나타나는 결과는, 전징은 기쁨과 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바라는 것이 그게 아니냐? 그래서 기쁨으로 산다 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을 통할 수 있는 그 주체, 그 사랑의 주체는 누구냐?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내가 알고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과 같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돼요. 알겠어요?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의 상대적 기준에서 내가 알아 가지고, 상대적 가치의 기준에서 판단해 가지고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절대적인 주체 앞에 상대권 판단기 준을 확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확보된 것에만 정지되어야 할 것이냐? 확보했으면 거기에서부터 하나님이 바라는 목적 세계의 방향을 따라서, 의적(意的)인 방향을 따라서 전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전진함에 따라 거기에 접근하면 할수록, 거리가 단축되면 단축될수록 거기에 비례되는 수고와 수난의 길이 가중되지만 거기에 비례하여 기쁨도 결국 가중되기 마련입니다. 어떤 것이 강하냐? 기쁨이 강하면 강했지 수고가 강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길은 승리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결정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바울 같은 양반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과 인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36)"라고 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랑을 느끼는 데에 있어서 모든 만유의 유아독존의 권위의 자리에 설 수 있는 특권적인 자리를 바라봤기 때문에, 거기에서 찾아지는 기쁨이라는 것은 죽어가면서도 주님을 위로할 수 있는 기쁨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죽음길도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 예수 그리스도의 전생애의 귀결점도 그 기준을 중심삼고 간 것이 아니냐? 성인이라는 이름을 남긴 사람들도 다 그런 류(類)의 사람이 아니더냐?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면 개인이 설 수 있는 자리, 가정이 설 수 있는 자리, 종족이 설 수 있는 자리, 민족이 설 수 있는 자리, 국가가 설 수 있는 자리, 세계가 설 수 있는 자리, 천주가 설 수 있는 자리, 하나님이 설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개인과 가정은 이렇게 돼 있고, 종족은 이렇게 돼 있고, 민족은 이렇게 돼 있고, 국가는 이렇게 돼 있고, 세계는 이렇게 …. (판서한 것 가리키시며) 이것은 상대적 방향입니다. 이것은 혼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주의 방향이 일관된 하나의 역사성을 지닐 수 있는 그런 사상 체제를 요구하는 거예요. 그런 역사관이 필요하게 되는 거라구요.
인류는 어떻게 교육을 해야 되고, 어떤 가정을 추구하고 어떠한 씨족을 형성하고 어떤 민족, 어떤 국가를 형성하여 세계를 거쳐 하늘땅을 통합시킬 수 있느냐? 그래 가지고 영원한 절대 주체, 주체와 나와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은 상대의 결합점을 이룰 수 있느냐?그걸 이룰 때에서야 비로소 상대세계로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잘 갔더라도 가정이 잘못 가게 된다면 돌아가서 또다시 가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예수관을 통할 수 있는 세계관을 바라보고, 세계관을 통할 수 있는 국가관, 국가관을 통할 수 있는 가정관, 가정관을 통할 수 있는 인생관을 바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것은 직선상에 있습니다. 시종일관해야 되는 것입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는 게 아니라구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시종일관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은 이렇게 가야 하고, 가정은 이렇게 가야 하고, 종족은 저렇게, 민족은 그렇게, 국가는 어떻게, 세계는 이렇게 가야 한다는, 그것이 직선상에 모아질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있을 것이 아니냐?
그러한 자리에 선 새 우주관을 바라보면서 그 인격 가치를 자기가 추구하면서 개인적 인격을 중심삼고 고무줄을 이어서 사격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장에 서는 거예요. 거리는 멀더라도 쏘면 딱 맞는 거예요. 1킬로미터면 1킬로미터 앞에 표적이 있다 하더라도 쏘게 되면 딱 들어가 맞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것을 맞출 수 있는 자리에 섰으면, 기분이 나쁘겠어요. 좋겠어요? 거리가 멀면 멀수록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혼자 기쁠 수 없다 이거예요. 나 혼자 기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체가 기쁘려니 '나를 따라와라'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남편의 충성은 아내의 충성이 될 수 있어요. 그렇지요? 여자가 땀을 흘려요. 피를 흘려요. 고생을 해요? 한번도 안 나가지만, 그의 여편네라면 싸움은 하지 않았더라도, 백승장군은 안 됐더라도 그 나라의 군왕이 추대 하는 영광의 자리에 나갈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왜? 총부리를 한번 잡아 보기를 했어요. 적진에 나가 원수를 한 사람 보기를 했어요? 보지도 않고 생각도 안 했더라도 상대자는 동참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다고 그 나라의 그 누구도 참소 못 하는 것입니다. 왜? 왜? 왜? 사랑 때문 입니다. 사랑하는 그분만이 간섭할 수 있어요. 나라도 간섭 못해요. 그것은 누구든지 다 바랄 수 있는 소망의 출발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일시에 특권적인 권한을 상속받을 수 있는 절대적인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몇째 계명이예요? 첫째 되는 계명이예요. 잘난 사람은 이래야 되고 못난 사람은 이래야 되고, 그런 게 없다구요. 잘났건 못났건 병신이건 뭣이건 곰배팔이건 뭣이건 괜찮다는 거예요. 병신이 더욱더 빛날 수 있는 길이 있다구요. 병신 자식을 가진 부모는 병신 자식에게 더욱 관심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든지 그걸 개의치 않고, 문제시하지 않고,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것을 보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되는 계명이다'고 했는데 첫째 되는 계명이기 때문에 이것은 특권중의 특권입니다. 이것을 처리할 수 있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치리받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가 아무리 못났더라도, 눈봉사나 목발을 짚고 다니더라도 그 나라의 대통령의 아내가 됐으면 길을 피해 주지 길을 막고 못간다고 그래요? 눈이야 있겠으면 있고 코야 뭐 주먹코이건 뭐건, 귀가 요렇게 돼 있고 두루뭉수리 되어도 입은 말만 할 수 있고, 사지가 없더라도 병신 중에서 곱사등이 데려다가 천으로 덮어 놓더라도 다 위해주는 거예요.
만약에 아내가 나라를 위한다면, 남편과 대등한 가치, 그 백 배의 가치가 부여되는 것입니다. 수천만년 그런 영광의 가치로서 자랑스러울 수 있고, 그것은 국민사상에 전통을 심어 놓게 되고, 거기서부터 역사를 넘어 가지고 설정할 수 있는 영광 중의 으뜸 영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중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정에서는 부모를 위하는 사랑의 효자를 말하는 것이요. 나라에서는 충신을 말하는 것이요. 세계에서는 성인의 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면 이걸 알아야 돼요. 올바른 판단을 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올바른 판단을 했으면 눈을 까빡까빡하고 있어서는 안 되겠어요. 가야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문선생 배포를 보고 '이렇게 해야 되겠다' 해 가지고 '선생님!', '왜?', '나 무엇 하겠습니다: '하긴 뭘해?'선생님이 시키지 않은 일 하겠어요', '뭐! 이 녀석아, 시키지 않는 놀음을 해서 될 게 뭐야? 이렇게 됩니다. 그렇게 시키지 않은 놀음을 하겠습니다' 하는 거기에는 탕감길이 있다는 거예요.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이렇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의 일은 제쳐놓고 다음에 올 수 있는 좋은 일에 대해서 딱 준비해 가지고 있게 되면 그것 탕감받을 수 있어요?없다는 거예요. 앞으로 찾아올 수난길이 있고, 앞으로 할 여러 가지 첩첩이 쌓인 일이 있거든 그 어려운 일을 위해서 앞이 멀면 멀수록 보다 배가적인 가치가 있게 될 때는, 선생님이 명령하지 않더라도 선생님을 지도할 수 있는 특권의 길을 가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의 복귀섭리도 마찬가지라구요. '오, 하나님이 명령하니까 일하겠다…' 선생님 명령하는 것은 뒤로 하고 말이예요. 하나님이 아무리 잘났더라도 하나님은 내 작전에 말려듭니다. 하나님은 지금 뭘 할 것이냐, 이걸 모르지만 그 하나님의 몇 배를 전진하여 그 어려운 일을 성사시켜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서 '당신을 위해 준비한 것이요' 이렇게 자기 욕심을 초월해 가지구 심정적 역사적 희생과 선의 본질을 따라 가지고, 터를 닦은 그 터전 위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가게 될 때는 하나님이 싫다고 안하게 돼 있어요. '오냐, 착하지' 이런다는 거예요.
남이 잠잘 때 일하면 충신이라 하느니라, 역사 만세에 빛날 수 있는, 천상에 빛날 수 있는 충신의 이름 중에서 군왕이 우러러봐 가지고 이름이 세워지는 것을 충신이라고 합니다. 뜻의 길도 그런 것을 찾아가야 되겠지만, 이왕지사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면 통일교회 문선생 보고 따라가는 사람 되지 말라구요. 문선생이 앞에 가는 사람 좇아서 '야, 이 녀석아 너 왜 했어, 내가 해야 할 텐데 요놈아!'이렇게 한다면 망하는 단체입니다. 만일에 그렇게 탓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을 위해 지금까지 해 나온 전부를 칭찬해 줄 수 있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뜻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이 좋겠어요. 없는 것이 좋겠어요? 「있는게 좋아요」 있을수록 좋소, 없을수록 좋소? 「있을수록 좋습니다」 있을수록 좋을 것입니다. 없어서는 절대 안 되는 거예요. 있으면 있을수록 뜻이 빨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목적인 국가 사회는 물론 세계적인 표본의 국가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으되, 만일에 명령을 해서 그것을 바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꽁무니를 뺀다면 망하는 거예요. 꽁무니를 빼는 사람이 있으면 누가 그 사람을 심판해야 되는데 그때는 제일 나은 사람이 심판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럴 때가 되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 한다는 게 아니냐?
통일교회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넘어 가지고 왔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것이 예수뿐 아니라구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을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할 수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있어야지요. 이런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은 시종여일하기 때문에 거기에 상대적 기쁨을 갖는 사람도 영원한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천하 어디에 가더라도 싫다 함을 받는 곳이 없기 때문에, 그런 실적을 가진 사람은 악의 소굴까지도 어두운 세계, 만국 어디 가든지 환영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야….
통일교회 문선생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표준한 것은 어디까지나 평면적 표준이지 입체적 표준은 못 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통일교회는 나라와 세계로 가야 되고, 세계와 천주로 가야 되고, 천주와 하나님의 사랑까지 직진해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면적인 기준을 넘어서 입체적 입장에서 나라와 세계를 구하고 세계의 판도를 넓히기 위해서 천신만고 생명을 바치기를 각오하고 나서야 됩니다. 이런 무리라면, 나라를 못 가졌더라도 미래에 나라를 치리할 수 있는 용자들로서 남아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추천하고, 바라고, 기르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소원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이리 가라고 하는데 꽁무니를 빼고 들어가는 사람은 앞으로 교통순경이 '이리 가라' 하는데 안 갔다가는 어떻게 돼요? 뒤에서 달려드는 차가 들이받는 거라구요. 앞에서 안 가는데 들이받게 되면 어떻게 돼요? 아무것도 안 남아요. 옥살박살나는 거라구요. 지금이 그런 때라구요. 교차로를 거쳐야 할 때입니다. 교차로 때라구요. 알겠어요? 지금 우리에게는 개인적으로 거쳐가고, 가정적으로 거쳐 가지고, 종족, 민족, 국가적으로 거쳐가야 할 것이 한꺼번에 닥쳐 가지고 세계적인 교차로가 결정되어지는 세계정세 앞에 있습니다.
금후에 아시아에 있어서 한국의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은…. 엇갈리는 정세가 우리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냐? 문제가 크다구요. 그러면 갈 길이 어떻게 될 것이냐? 여기서 하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상대로 해 가지고 나갈 수 있으면…. 주체와 대상 관계로서 우리가 국가적 책임을 해 나가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나님을 제쳐 놓고는 나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절대 순응하게 될 때는 새로운 전통의 인연은…. 나라는 망하고 민족은 망하고 그 환경의 터전은 재밖에 안 남겠지만 역사시대를 재현할 수 있는 봄날이 오는 것입니다. 죽음의 길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을 위로해 가지고, 새로운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아 가지고 인류의 조상으로 반드시 나타나야 됩니다. 그 비근한 예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예입니다. 피폐한 제단, 황폐한 그 자리를 헤치고 로마제국을 제단에 바쳐 가지고 오늘날 찬란한 기독교 문화권을 형성한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 사람과 통일교회 문선생만 표준하지 말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체하거들랑 지체하는 통일교회 문선생 앞에 서 가지고 세계문제에 있어서 남겨진 이 뜻을 위해서 갈 수 있는 길을 개방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빛나는 영광이 있게 마련입니다.
자, 국가에 이름난 인물이 될래요. 세계에 이름난 인물이 될래요? 세계에 이름난 사람이 되려면…. 보라구요. (그림을 그리시며 말씀하심) 이것(①)이 작으면 작을수록 작게 결정되지만 크면 클수록 사방을 지니고 있어서 넓어지는 것입니다. 넓어지지요? 요게 들어가게 되면 그놈 하나밖에 없던 것이 넓어지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렇게(②) 되면 점점 개인적, 가정적으로 해서 결국 세계적 무대에 가서는 이것이 점점 짧아져요. 길어져요? 「길어집니다」 이렇게(③)갈 수 있는 길(B)도 멀어지고 이렇게(④)연결시킬 수 있는 길(B)도 멀어진다는 거예요. (그림 참조)
개인개인 친구들을 대할 때는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쉬운 거예요. 그렇지만 국가와 국가가 대하게 될 때…. 국가적으로 대할 수 있는 길이 쉬워요? 국가만큼 멀지요? 국가의 역사과정을 대표할 기준을 세워서 서게 될 때는 이 둘이, 국가를 대표한 둘이 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렇게 한 나라도 그러한데, 하나님하고 우리 인간하고 대표적으로 서기 위해서는…. 그것이 역사과정에서 대표적으로 되겠어요? 하나님은 제일 높은 분이니까, 제일 끝에 가서 계신다 할 때는, 제일 머니까, 세상 출발의 신나는 날이예요. 중세요, 말세요? 제일 맨 끝에…. 이걸 알아야 돼요. 맨 먼 데 계시니까, 맨 먼 하늘과….
마찬가지라구요. 종교의 세계에 있어서 끝날이라는 말이 그래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 이해돼요? 역사의 제일 먼 자리에 세워 놓는 거예요. 그래서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나님하고 상봉해야 됩니다. 기독교사상이 그거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제일 높은 분이고 오늘 인류는 끝날을 대표해 설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 가운데서 그러한 사람이 없지만, 하나님은 사랑의 중심체이기 때문에 끝날을 대표해서 설 수 있는 만인류의 대표자로 한 사나이를 등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분이 메시아라는 분입니다. 메시아사상은 간단합니다. 메시아 알겠어요? 그 자리에 선민사상이 있더라는 거예요.
이 자리에 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역사시대의 희망을 걸 수 있는 중심적인 사람입니다. 역사과정에 참으로 바랐던 중심존재입니다. 이것이 결합되지 않고는 등장할 수 없는 그런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손을 잡고 악수를 하고 '우리 살자'고 할 때는 어디에서 살 것이냐? 사는 데는 나라를 중심삼고 삼천만 민족을 중심삼고 한꺼번에 좋아하며 살아요? 사는 데는 어디냐? 가정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사는 겁니다. 그렇지요? 대통령도 사는 데는 어디서 살아요? 공관의 사무실에서 살아요? 거기에서는 사무를 보고, 사는 것은 집에 들어와서 사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집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림할 수 있는 집,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살림할 수 있는 집, 먼저는 집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이루어지려면 무엇이 있어야 돼요? 부인이 있어야 돼요. 그래서 신랑이라 하고 신부라고 하느니라, 맞지요? 신랑 신부가 만나서 누구와 살자는 것이냐? 여기 끝에 있는 사람과 아무나 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제일 중심 되는 분이 여기에 들어와 사는 것입니다.
이 중심 되는 분은 개인으로 볼 때 세계적인 개인 대표요. 가정으로 보면 세계적인 가정 대표요. 그들로부터 번식된 종족이 되면 세계적인 종족 대표요. 여기에서 연결된 국가는 세계적인 국가 대표입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대표화한 그런 인류세계가 될 때, 이상세계요. 통일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으면 그런 구상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왜 신랑 신부를 만나야 하는 거예요. 신랑 신부를 맞아 가지고 뭘 할 것이냐? 개인완성을 역사시대에 이루어 가지고, 남성 여성의 완성을 역사시대에 이루어 완전히 하나님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요인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들 둘이 사랑하는 것은 너희들의 사랑이자 곧 내 사랑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돼요.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 사랑이자 너희들의 사랑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횡적인 주체와 대상 관계입니다. 횡적인 주체와 대상이 되었으면, 입체적인 종적인 주체와 대상이 되어서 넷이 합밤을 만들어 놓아야 이상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을 가려 놓을 수 있는 날이라야 그것이 하루가 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루 가운데는 봄절기도 있고 여름절기도 있고 가을절기도 있고 겨울절기도 있는 것입니다. 아침은 봄에 해당하는 것이요. 낮은 여름에 해당하는 것이요. 저녁은 가을에 해당하는 것이요. 밤은 겨울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춘하추동과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또, 동방은 봄에 해당하는 것이요, 남방은 여름에 해당하는 것이요, 서방은 가을에 해당하는 것이요, 북방은 겨울절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문명권을 보면 고대문명은 열대권 문명이요, 지금 문명은 온대권 문명, 가을절기 문명이라구요. 알겠어요? 20세기 문명은 전부 다 38도에서 42도권내에 벌어지는 가을절기 문명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구요. 가을절기 문명이라 가면 갈수록 앙상한 가지만 남는 거예요. 거기에 단 한 가지 뭐냐 하면, 가지만 가지고 안 되는 것입니다. 열매가 맺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역사의 수확입니다. 인간에 있어서 결실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것이 종교에서 말하는 끝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주의나 사상도 모두 몰락입니다. 가정 윤리관 몰락이요. 국가관도 몰락이요. 개인 인생관도 몰락입니다. 전부 다 몰락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 그 열매에 전부 다 집약되기 때문입니다. 그 씨는 전체의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겨울에 찬바람이 불어오면 거기에 부딪혀 가지고 그걸 뚫고 넘어가서 봄을 맞이하여 심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 한대권 문명이 공산권이라구요. 알겠어요? 시베리아의 찬바람이 부는 한대권 문명이 세계를 휩쓸어 몰아치면 민주세계는 나가자빠지는 거라구요. 추풍낙엽이 됩니다. 기독교도 망해 떨어지고 전부 다…. 가을이 되면 이파리는 말라 떨어지는 거예요. 죽을 것은 죽는 거라구요. 여기에 생명력을 가진 완전한 씨가 추운 동절기를 극복하고, 이런 여건에서도 생명을 지녀 가지고 밭을 맞아 심어져서 새싹을 틔울 수 있는 그런 사람만이 앞으로 세계 이상천국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가 보는 끝날 이후의 천국관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여러분의 하루 생활에도 봄절기와 같은 기쁨이 있고, 여름절기와 같은 기쁨도 있고, 가을절기와 같은 기쁨도 있고, 겨울절기와 같은 기쁨도 있습니다. 슬픔도 마찬가지예요. 전부 그렇게 돼 나가는 거라구요. 그래서 이것이 하나될 수 있는 것이 뭐냐? 그것은 열매입니다. 춘하추동이 들어가 있고 동서남북의 모든 요인을 갖추어 가지고 중심이 된 것이 이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심이 되는 것은 둘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입니다. 절대적인 하나예요. 이것은 개인적인 대표의 절대적인 기준이요. 가정적 대표의 절대적 기준이요. 종족적 대표의 절대적 기준이요. 민족적 대표의 절대적 기준이요. 국가적 대표의 절대기준입니다. 그 국가적 기준을 중심삼고 상대적 세계가 이루어지면 세계는 그것으로써 통일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을 중싱삼아 가지고 개인적으로 주고받을 때 내 개인의 행복이 완성을 보는 것입니다. 가정이면 가정의 부부가 완전히 하나 되어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게 될 때 가정적 완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국가면 국가, 삼천만 민족이면 삼천만 민족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돼 가지고, 국가를 주도하시는 주권자 하나님과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그 이상적인 영원한 모델의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없다구요. 여러분은 어디 있느냐는 거예요. 개인을 들고 나와서 그러한 본연의 이 세계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내가 자신 있게 섰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그러니 전부 다 낙제감이요. 불합격품이라는 것입니다.
불합격품이 마음대로 출입하게 돼 있느냐? 그러니 가정도 못 갖는 것이며 나라도 못 갖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다 버리는 거예요. 자유세계의 경향이 지금 그것입니다. 자기 어미 아비를 다 버리고, 형제를 다 버리고, 나라를 다 버리고, 세계를 다 버리고 히피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최후에는 몰락입니다. 거기에서 '뒤로 돌앗' 해 가지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전에는 전부 다 쓰레기통이 되고 구더기가 다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관 앞에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들의 표준점이 어디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빼고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무슨 사랑? 한계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무한한 사랑, 초월적인 사랑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한 초월적인 선의 터전은 초월적인 희생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할 수 있는 가치 추구에서부터 선의 세계는 발전하는 것이요. 종교의 본질의 세계는 응고되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 즉, 통일적인 터전이 다짐되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의 여러분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우리 교회가 국가를 위해 가면 여러분들도 국가를 위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세계를 위해서 가면 세계를 위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꽁무니를 흔들고 뺑소니를 치는 것은 추풍낙엽과 같이 됩니다. 여름에 태풍에 부러진 잎과 마찬가지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래안 가서 썩어지게 마련입니다.
다시 말하면, 알고 가야 되고, 가 가지고는 마음과 하나되어 가지고 주체 앞에 대상적 존재가 돼야 합니다. 나는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구요. 아무리 봐도 결과적인 존재예요. 그렇기 때문에 원인적인 존재와 상대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는 데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데서 비로소 심정의 역사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즉, 개인적인 역사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정을 중심삼고 그렇게 되면 가정적인 역사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민족이 그렇게 되면 민족적 역사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심정적 역사관이…. 그래서 통일교회는 심정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요. 심정의 역사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표준점으로 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예」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고 이 사명을 위해서 우리는 가고 있습니다. 이 사명을 위해 가는 길 앞에서 우리는 핍박을 받았고 놀림을 받았고 억울함을 당했어요. 험한 그런 길을 극복해서 찾아오는 사연이 깊으면 깊을수록,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영원한 사랑의 이야기로 묶어져 남아져 가지고 그것이 힘이 되고 하나의 자극적인 기쁨의 원천으로 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드러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조건이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길이 어렵다고 탄식하는 사람은 사랑의 길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고생하면 할수록 나쁜 것이 아니고 보다 복되고 가치적인 상대의 기준을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그릇되었다고 볼 수 없는 결론인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 길 앞에 보다 충성을 하기를 바라서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아버님, 우리는 여기 이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개인이 가는 길이나 가정이 가는 길이나 민족과 국가가 가는 길이나 세계가 가는 길이나 이것은 오로지 평면적인 세상을 묶기 위한 하늘 섭리의 상대적인 터전임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을 묶어 놓지 않고는 아버님은 행차도 할 수 없는 아버님인 것을 알았습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 왜 무능하냐고 몇 번이라도 하늘을 대하여 외치고 싶었는데, 그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온 천주를 지배할 수 있는 본연의 아담 해와 그 둘이 사랑하는 것은 세계를 대표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기는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그의 사랑권내에서 움트고 싹틀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것이 본연의 기준이었고, 그 기준 앞에서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으로 하늘과 땅을 종적인 영원한 승리적인 결합권으로, 하늘을 빼놓을 수 없고 인간과 떨어질 수 없는 자리에서 우주의 중심을 결하려는 당신의 창조이상이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될 때, 황공하고도 놀라운 그 세계를 추구하는 마음이 또다시 간절해지옵니다.
원한에 찬 노정을 걸어 나오던 역사적인 비참을 회고해 보게 될 때, 선조들의 부끄러웠던 사실들을 저희들은 다시 마음과 몸을 가다듬어 수습해 가지고 당신의 심정 앞에, 당신의 외적인 환경 앞에 가로놓이게 한 십자가의 모든 여건들을 놓고 저희들은 다시 한 번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역사에 비참함이 있었으면 비참한 가운데서 승리하지 못한 조상의 후예임을 탄식하고, 오늘의 속죄의 사명을 다짐하는 데 있어서 선조들을 대표한 제사장직을 대신할 수 있는 자신들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자기 선조뿐만 아니라 횡적으로는 자기 일족에게 남아 있는 것을 볼 때, 또 그것이 가산되어 민족으로 남아져 있는 일국을 바라보게 될 때, 이 일국이 하늘 앞에 원한의 조건으로 남아져 있는 일국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렇게 나라 앞에 남아져 있고 심어져 있는 죄악의 원인을 해소시키기 위한 제사장의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 엄청난 사실들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저희들은 타락한 부모 아담 해와를 얼마나 원망하였습니까? 그분들의 하루의 실수가 억천만세의 선조들의 한의 구렁텅이가 된 것을 압니다. 저희들은 이제 '선한지라' 하신 당신의 창조이상 앞에 있어서 본연의 자세를 맞지 못하신 당신이 슬픈 것을 압니다. 그것을 아는 저희들은 그분을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히 모실 수 있는 이상적인 부모였다는 것을 생각해야겠습니다. 그 부모를 저희들은 목전에 모시고 있나이다.
그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라고 해야 되겠고, 그 어버이를 위하여 모든 심혈을 기울인 가운데서, 생명이 기울어진 가운데서 아버지라고 절규해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내 손에 힘이 있으면 아버지의 손끝을 붙들 뿐만 아니라 목을 안고 통곡해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그 아버지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는 불쌍한 고아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부모가 있으되 부모가 있는 것을 모르고, 자식이 됐으되 자식의 입장을 모르는 처량하고도 기막힌 이 불쌍한 인간의 형상을 보시는 아버지, 당신의 혈육을 이어받아 아들딸의 인연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알아야 할 만사의 여러 가지 사연을 가르쳐 주어도 이해 못 하는 것을 바라보시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수천년 동안 당신은 사랑하는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가르쳐 주었고, 망해 들어가는 역사를 가로막고 그 역사를 부활시키기 위하여 죽음 길을 개의치 않고 싸워서 그 자리에 남아진 무리로 세워졌지만 오늘날 수많은 종교들은 하늘이 있다는 것을 망각한 자리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었다고 하는 최후의 결정을 내린 비운의 역사적 종말을 바라보는 이때에,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당신 앞에 나선, 당신을 알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것이 저희의 소망 중의 소망이옵니다.
아버님, 저희들은 역사적인 선조와 시대적인 만민을 대표하여 제사장직의 책임을 하는 동시에 앞으로 후대 후손들이 갈 수 있는 평화의 기지를 마련해야 되겠습니다. 선의 부모로서 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인류들이 이 땅 위에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한 부모를 추구해 나왔고 선한 족속과 선한 민족을 추구하고 나가는 무리이기 때문에, 저희들은 새로운 역사를 창건하여서 앞으로 올 후대 후손 앞에 지극히 선하신 선조였다고 찬양받을 수 있는 후손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시야에서 염려의 대상이 되는 눈물과 슬픔의 곡절을 가지고 우리들 앞에 사정하는 민족으로 남겨서는 안 되겠으며 후회의 후손으로 남겨서는 안 되겠습니다. 소망과 기쁨과 행복의 요건으로서 만국의 평화의 요인을 찾고 있는 나의 사랑하는 백성이라고 하면서 찾아가 가지고 칭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당신의 귀한 모든 존엄한 가치를 평면적으로 전부 다 나누어 주고 그것을 느끼고 살 수 있는 소망적인 국민상을 창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오늘날 종교인들을 대표한 통일교인의 사명인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저희들은 아버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 전체가 설정해야 할 표준점을 재차 정비하지 않으면 안 될 자리에 서 있사오니, 당신이 알고 계시는 자리에서, 동참한 자리에서 저희들은 판정해야 되겠고, 당신이 가시는 행로의 노정에 보조를 맞추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마음 앞에 저희들이 일치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고, 그 마음이 서로서로 하나될 수 있는, 심정의 인연으로 묶어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기점이 하늘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참다운 남자 여자가 하나된 가정이 기반이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것을 설정시키기 위한 것이 끝날에 있어서의 메시아를 중심삼은 신랑 신부의 이념인 것을 알았사오니, 그 기준을 바라보고 나가는 당신의 아들딸이 돼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사망의 세계의 역사를 대표해 가지고 세계의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수 있는 하나의 남성을 대표하였다는 자기 스스로의 자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역사를 대표한 자리에서도 그러해야 되겠습니다. 그들의 합한 가정은 빛나는 역사시대에 어떤 가정을 심판할 수 있는, 주체 적으로 지시할 수 있고 하나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으로서 자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부부의 사랑의 인연을 통해서 매여진 하나의 가정으로서 자녀를 기르는 그 가정을 당신이 얼마나 그리워했던가를 알았기 때문에, 또 천년 만년 수난의 길을 극복해 나온 당신의 소원이 터전인 가정동산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가정동산에서 사랑하는 아들딸을 키워 탕감의 조건을 넘어 당신이 그냥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자녀를 길러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당신이 저희들을 통해 바라시는 소원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통일가는 그 길을 위해서, 정통적으로 이어받은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지금도 몸부림치는 노정을 달리고 있는 것을 아시사, 부디부디 정상적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 당신의 사랑을 중심삼은 씨족, 당신의 사랑을 중심삼은 나라, 당신의 사랑을 중심삼은 세계를 향하여 저희들은 나가야만 되겠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나타나지 않거든 저희들이 그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할 상대적 권이라도 이루어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것을 개인으로 연결시키고, 가정으로 연결시키고, 종족에서 연결시키고 민족, 국가, 세계까지 끝을 보지 않고는 하나님이 활동할 수 없는 비참한 사실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슬프더라도 이날을 바라보면서 저희들은 극복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보다 차원 높은 가치의 그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우리를 부르고 있기 때문에, 쓰러진 자리에 있어서도 그날을 찬양하고 가게 허락하여 주옵고, 그것을 자랑하고 가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돼야만 당신의 나라의 권속으로 남아질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10월 8일이옵니다. 10월은 해방의 달로서 통일가가 축하하는 달이오니, 이 달 위에 만복을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달이 승리의 달로서 갖추어지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1972년이 이달로부터 빛나는 3개월이 되어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연말까지 저희들이 하는 일이 많사오니, 이 일에 축복하여 주옵고 이곳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선발대 위에 하늘의 의와 용기를 북돋우시사 최후의 결전장에 있어서 졸장부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승리자의 모습을 갖춘 용자들이 되게 하여 하늘의 정병으로서의 권위와 위신을 자랑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날을 위하여 오늘의 시간을 잊어버리고, 남아진 그 섭리를 위하여 오늘의 자기를 희생하고 넘어가는 무리가 되지 않고는 올바른 표준점을 찾는 무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이 시간이 되기를 바라옵니다. 모든 것을 당신의 은사 가운데서 지도하고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들은 원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 원리의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의 길을 통해서 복귀의 목적을 완성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류가 타락한 그때부터 지금까지 역사는 타락의 역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타락의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주관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 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은 직계의 자녀, 그 자녀들로서 구성된 가정을 위주로 하여 가지고 종족이 편성되고, 국가가 이루어지고, 세계가 이루어졌더라면 그야말로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세계요.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나라요.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가정이요.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개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전체가 하나님과 반대되는 입장에, 하나님을 원수시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의 역사요. 타락의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계를 그냥 그대로 두면, 하나님이 세우시려던 창조이상의 영원한 사랑의 세계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절대자이신 하나님은 본래 의도하셨던 창조이상을 실현시켜야만 하나님의 본래의 권위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자리를 표준해 가지고 악한 세계를 수습하여 본래 이상하셨던 본연의 세계로 이끌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노정에 필요한 것이 복귀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한 인간은 복귀의 길을 가지 않고서는 개인완성의 길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이요. 복귀의 길을 가지 않고서는 가정완성의 뜻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가정완성의 길을 넘지 않고서는 민족완성이라든가 세계완성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을 통해서만이 개인, 가정, 민족, 국가, 세계가 완성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복귀의 길을 가는 것이 타락한 인간에 있어서는 필연적인 운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세계에는 수많은 민족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을 중심한 한민족이 있고 가까이에는 일본 민족이 있으며, 나아가 아시아에는 여러 민족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좀더 확대하면 세계에는 수많은 민족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복귀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가야 되겠느냐? 복귀의 길은 함부로 갈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바라시는 복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의 완성을 위한 표준형을 세워 가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표준형은 본래 의도하였던 기준을 다 넘어선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표준적인 개인을 통해서 표준으로 세울 수 있는 가정과 표준으로 세울 수 있는 나라와 표준으로 세울 수 있는 세계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이 오늘날 복귀의 길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추구하시고자 하는 뜻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저 막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수 있는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 가운데 뜻을 대할 수 있는 특별한 종교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뜻을 대할 수 있는 특별한 교회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 혹은 교회가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은, 창조목적을 향하는 세계로 직행할 수 있는 길 외에 달리 갈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의 길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어떤 신학자가 우리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말씀을 했었습니다. 말씀을 하고 난 후에 우리 식구 중에 젊은 사람들이 그 신학자에게 묻기를 '그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오?’라고 하니까 그 신학자가 하는 말이 '아! 그것은 지극히 어렵고도 쉬운 문제요. 하나님의 뜻이 라는 것은 어렵다면 어렵고 또 쉽다면 쉬운 것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거기에서 우리는 교회 교회마다 전부 뜻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뜻을 두고 '그것은 이렇다!'할 수 있는 결정적인 뜻으로 제대로 정하여 놓고 간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작 성사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문제는 그 책임수행 여하에 따라 결정되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뜻의 확정을 가리지 못한 자리에서 뜻을 완성하고 뜻을 받든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막연한 뜻이 아닌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세계 전체의 중심으로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자가 의도하는 환경적 발판이 될 수 있는 것이 뜻의 길이기 때문에, 그 뜻의 길이 모호하고 불확실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확실한 뜻의 길을 정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뜻의 길은 특정한 종교를 대표한 특정한 교회를 통해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특정한 종교가 무엇이냐?그것은 기독교라는 종교입니다. 따라서 그 종교 가운데 특정한 교회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에는 기독교를 두고 보더라도 40여 교파가 있습니다. 그중에 큰 교파를 보면 장로교가 있고, 감리교가 있고 성결교가 있습니다. 여러 교파가 있지만 과연 그 교파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대해 나갈 수 있는, 집행해 나갈 수 있는 참다운 교회가 어떤 교회이냐?이 문제를 두고 볼 때, 자신이 참다운 교회의 입장에 섰다고 주장할 수 있는 목사 혹은 어떠한 지도자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뜻의 길을 복귀해 드릴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교회, 진정한 의미의 교단이 어디에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름은 기독교의 이름을 갖고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지만,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뜻을 받들어 나갈 수 있는, 뜻의 목적인 창조이상에 대한 노정을 그냥 그대로 계승한 대표자로서 우리는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모호하고 애매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먼저 창조이상을 완성한 개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개인이 가는 길은, 나라의 뜻을 따라서 가든가 세계의 뜻을 따라서 가든가 그 목적은 하나님이 창조이상과 같은, 다시 말해서 타락의 세계를 생각지 않았던 이상세계로 향해 갈 수 있는 길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완성의 길을 찾아 나가야 됩니다. 그 개인 완성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결정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어떠한 외적인 세력 기반을 통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정기반과 일치될 수 있는 데에서만이 개인완성의 기준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는 우리 가정이라든가 혹은 환경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생활적인 주체요. 환경적인 주체로 삼아 개인인격완성을 표준해 가지고 그 목적으로 접근시켜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개인완성이라는 뜻의 길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가 지향하는 골자 사상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개인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신 것은 그냥 그대로 보고 대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기쁘시기 위해서 지은 것입니다. 기쁨으로 말미암아 행복한 것이고, 행복함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서로서로가 평화로운 환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쁨을 느끼는 데에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사람 그 자체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서로서로가 끊을래야 끊을 수 없고,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아들을 대할 수 있는 그 사이에 연결된 힘이 환경을 움직일 수 있는 기쁨의 요소, 기쁨의 힘으로 남아질 수 있어야만 됩니다.
그 둘 사이에 서로서로에게 연결된 그 힘이 무엇이냐? 어떠한 힘도 이것을 제거시킬 수 없고, 어떠한 힘도 이것을 방지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 주체적인 힘입니다. 거기에는 그 하나만이 우리의 절대 이상이라고 추구할 수 있는 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정되지 않고는 서로서로 이상의 주체요. 이상의 상대자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이냐, 행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심 요인이 무엇이냐, 우리 평화의 기원이 될 수 있는 핵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이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상대적인 관계를 맺는 자리밖에는 없습니다.
그 상대적 관계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그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이시고, 우리 인간은 사랑의 상대로서 관계를 맺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이기 때문에 사랑한다면 어떠한 자리에서 사랑하고 싶으시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나라에 대한 사랑도 있고, 가정에 대한 사랑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이 많지만 어떤 자리가 제일 하나님과 인간, 절대적인 주체자와 절대적인 상대자의 입장에서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제거할 수 없는 하나의 결합되고 통일된 자리이겠느냐? 이 자리는 아버지 앞에 자식되는 자리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최고 욕망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단적으로 물어 대답을 하는 분이 있다면 최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을 말할 것이며, 그것을 이룬 사람을 최고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최고로 성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을 최고 성공한 사람이라 한다면,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그 사람을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자체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수 있는 나라라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자리는 최고의,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성공의 희망의 자리일는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어 성공했다는 자리에 섰더라도 그 자리가 세계의 뜻과 하나님이 바라시는 뜻과 하나되는 자리가 못 될 때는, 출세하고 성공했다는 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한 국가를 대표해 가지고 성공하는 것은 세계와 통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서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자기 마음대로 치리할 수 있고,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만이 행복은 아닌 것입니다. 더 큰 세계가 있으면, 더 큰 세계적인 성공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세계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바랄 것입니다. 만일에 그럴 수 있는 자리에서 더 높은 자리가 있다면, 인간의 욕망은 더 높은 자리를 향하여 움직이리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다면, 그 절대적인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욕망이 아니냐,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욕망의 종착점이 어디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이것은 세계의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는 이 종착점만으로는 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만일에 어떠한 절대적인 주체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의 어떠한 주체적인 절대자가 있으면, 그 절대자와 관계를 맺을 때까지 여러분의 욕망은 그곳을 지향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절대자가 있으면 그 절대자, 최고의 그분에게까지 우리의 욕망은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분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분에게 명령을 받고, 사명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행복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는 문제에 따라 가지고 그 가치에는 등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의 자리냐, 혹은 양자의 자리냐, 혹은 직계 자녀의 자리냐 하는 문제를 따져 보게 될 때에,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 절대자 앞에 있어서 그 절대자를 부모로 모실 수 있고, 절대자의 사랑을 중심삼고 홀로 그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길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최고의 욕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론을 추구해 가지고 결론지을 수 있는 자연적인 결론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사랑을 자기 것 만드는 것이 인간의 최고의 욕망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존경하고, 하나님을 자기 편에 둔다 하더라도 그것은 행복이 아닌 것입니다. 그 마음속에 있는 사랑과 시간을 초월하고 생애를 지나 가지고 영원히 동반할 수 있는 자리에 자기가 있게 될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행복이란 여기서부터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욕망의 종착점은 어디겠느냐?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결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이 최고로 기쁘게 상봉할 수 있는 자리는, 하나님은 아버지요 인간은 자녀다 하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 외에는 인간이 기쁨으로써 맞이할 자리가 없습니다.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받을 수 있는 자리를 결정지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우리 인간은 비로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욕망을 두고 혜아려 볼 때에, 그 자리가 아니고는 우리 마음 바탕의 종착 점이 안식할 수 있는 자리는 영원히 결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우리 인간은 자녀로서 부자의 인연으로 영원한 사랑의 인연을 맺는 그 자리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됩니다.
그 사랑의 인연을 맺었다 하면 그 사랑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부모도 그 사랑하는 자식을 대해 가지고 반대할 수 없는 것이고 막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타락한 인간도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가 있는 자식에게 '그 사람들은 너의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다'고 설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느냐 하면 없습니다. 사랑하는 부모가 부모인 줄 알고, 또 그 사랑을 받고 있는 이상 어떠한 외적 조건이라든가 혹은 아무리 교육을 하고 설명을 하더라도 그것을 부정시킬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상의 사랑이 있다면 그것을 부정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부정시키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이상의 사랑이 있다면 부정하게 됩니다.
부모도 마찬가지라구요. 부모가 자식을 대해 지금까지 사랑하던 그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부모의 마음에 가득해 가지고 다른 상대를 취해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길을 갖게 된다면, 그 자식도 버리고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더 큰 사랑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침범을 절대 받지 않을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절대적인 사랑의 자리 외에는 없다는 결론이 나와요. 그것은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아요? 세상의 둘 사이가 좋아 가지고 '너 아니면 나, 나 아니면 너' 하면서 서로서로가 죽자 살자 하던 남녀들이 세계적으로 소문을 내고 결혼을 했을지라도 서로서로가 사랑하는 상대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길이 나오게 될 때, 그 두 부부는 깨질 수 있어요. 없어요? 더 사랑받을 수 있고 더 사랑할 수 있는 길만 생겨나게 되면, 그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리 좋다고 하던 그 사랑의 인연도 버리고 돌아서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고의 이상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최고의 이상은 최고의 하나님의 사랑,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빼고라도 절대적인 사랑에서만 최고의 이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부부의 최고의 이상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느냐? 절대적인 사랑에서만 이루어집니다. 부자관계의 최고의 이상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느냐? 최고의 부자관계의 사랑에서만 이루어집니다. 가정에서 부모, 부부, 자녀, 형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최고를 중심삼고 인연된 사랑이 있는 데에서만 최고의 이상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국가와 국민이 분립되지 않고 하나될 수 있는 것도 최고의 사랑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결론을 여기서 내리더라도 명백한 사실이라고 우리는 긍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복귀의 길을 세워 나오는 하나님편에 있어서는 무엇을 중심삼고 지도 방침을 세웠느냐? 수단 방법을 가리기보다는 그 자체,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순수한 이념만을 중심삼고 지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합니다. 이것이 타당한 것입니다.
사랑의 길은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빛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 보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 12:30)"고 했고,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우주의 모든 계명 중에 제1차의 계명이 있다면 이 계명입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법이라는 것입니다. 이 법을 중심삼고 이루어지게 되면 그 외의 모든 법도는 이 법도권내에서 치리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창조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조이상 실현은 어디서부터 되느냐?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게 될 때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성경 말씀은 역설적인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 구절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사랑의 독재자같이 생각 된다구요. 그러나 그게 아니라구요.
사랑하는 것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관념을 가지고 합니다. 상대적 인연을 통하지 않고는 사랑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생명을 다해서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도 생명을 다해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이라구요. 사랑이라는 말은 독자적인 말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환경, 관념에서 이루어지는 말이기 때문에, 네 생명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했으니 그 말은 하나님도 생명을 다해서 너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했는데, 이것 역시 반대의 말이라구요.
시집갈 연령이 된 아가씨들이 생명을 기울여 죽기를 각오하고 신랑감을 찾아 나서면 시집갈 수 있는 길이 생깁니다. 그런데 '시집이야 가면 가고 말면 말고, 세월 따라 환경 맞추어 가지' 하고 적당히 생각하다가는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 올드 미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됩니다. 열심을 낼 때가 있습니다. 안 그래요?모든 것이 그렇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죽도록 사랑하고 싶다 하는 마음이 있어야 자기를 진짜 사랑할 수 있는 상대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까짓 거 남자라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이지, 뭐, 시집가는 것이 급한가?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보아도 그렇고, 우리 삼촌 뭐 다 봐도 그렇더라, 신통한 것이 없다' 하는 사람에게는 이상적으로 알뜰살뜰한 부부는 절대 안 나옵니다. 나와요? 응? 서로 생명을 기울여 가지고 너 아니면 나다. 그렇지 않으면 죽자' 하면 '그래, 그러자' 하며 세계를 대해 자랑하겠다 할 때에 멋진 부부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저 흐리멍텅해 가지고 죽에 코 풀어 놓은 듯이 해서는….
그걸 보면 하나님도 적극적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했는데, 무엇 때문에 죽는 거예요? 성공하기 위해서? 성공의 최고의 종착점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점유하게 됩니다.
여러분들,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찾을 수 있고 점령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한번 생명을 내놓고 대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있어요. 없어요? 있어, 없어? 「있습니다」 없는 패들은 통일교회에서 아예 보따리를 싸 가지고 물러가라구, 내가 선포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에 가도 그저 그렇더라, 말씀은 좋지만 기분 나쁘게 전부 다 자기만 생각하고 있더라' 이거예요. 그런 무엇이 있다구요. '전부 자기들 끼리끼리만 좋아하지 새로 들어온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더라'고 반발하는 사람이 있다구요. 도리어 반발하는 이것이 멋지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보십시오, 이렇게 얘기 하다가는 시간이 많이 가겠구만.
처녀 총각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처녀는 처녀끼리 합하고 총각들은 총각끼리 합한다구요. 그렇지요? 결혼하기 전에는 처녀들끼리 서로 '야야야, 너 왜 우리 집에 안 왔니? 너 없으니 나 섭섭하더라' 하며 야단합니다. 어쩌다 만나게 되면 붙들고 다짐하는 그런 사람들을 가끔 본다구요. 또 총각들도 그래요. '에이 자식아, 왜 안 왔어? 나한테 말도 없이 며칠 동안 어디 갔다 왔어?’ 하며 야단입니다. 남자들은 그런 식으로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결혼하기 전에는 여자는 여자끼리 합하고 남자는 남자끼리 합합니다. 그렇다고요. 그렇지요? 「예」
상대가 없을 때는 자기들끼리 합하지만, 만일 남자 가운데 여자가 생기면 어제의 친구가 오는 걸 좋아해요. 나빠해요? 결혼해 가지고 첫날 밤을 자는데, 아무개 친구가 와서 '색시를 나중에 보고, 나하고 만나자, 너하고 나하고 십년 친구인데 나하고 가깝지?’하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면 좋아해요? 그것을 절대 좋아해요. 절대 싫어해요? 「싫어합니다」 그거 절대 싫어합니다. 절대 싫어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알겠어요? 절대 좋아하는 것은 비정상이라는 거예요. 자, 우리 아가씨들, 첫날밤에 친구가 그렇게 들어오면 기분이 좋겠어요? '저놈 미친 자식 같으니, 저 미친 개 같은 것을 도깨비가 왜 안 잡아가지' 하면서 속으로 끙끙 앓고 욕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더욱이나 욕 잘하는 여자들은 속이 새빨갛게 불 탈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상대가 나타나기 전에는 끼리끼리 몰려다니지만 상대가 결정되게 되면, 상대에게 모가지를 걸고 지금까지의 관계는 뒷발로 차 버린다구요. (웃음)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이렇게 되기 때문에 상대 없는 기성교회에 서는 누구나 와도 좋다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하지만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축복을 받기 때문에 상대가 다 있다구요. 축복이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서 거치적거리면 방해가 되니까 자기들 끼리끼리 뭉쳐 돌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걸 섭섭해하지 말라는 거예요. 축복받은 가정인데 저런다고 기분 나빠서 통일교회에 못 나가겠다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잘못 생각한 것이고 오해이니 들어보라구요. 새로 들어온 녀석들은 잘 대접해 주면 멍청이가 된다구요. 기성교회보다 더 잘 대해 주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자기 길을 못 간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결혼을 떡 했는데도 남자가 옛날 친구를 찾아 잘 대해 주고 '결혼했어도 너하고 나하고 친구인데 너하고 나하고 둘이면 되지 색시가 무슨 소용이니' 이렇게 나오면 또 그 남자 친구가 '아! 그 말 맞다 맞다' 하고 맞장구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 집안은 파탄되어 버리고, 그다음 그 친구도 그냥 두었다가는 영영 결혼 못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 버려야 됩니다. 쫓아 버려야 하는 것이 천리원칙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어 가는 것이 사람이 가야할 근본 길이니, 이와 같이 되어야만 아들딸을 낳고 씨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혼자 가게 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망하는 거라구요.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쫓아 버려야 됩니다. 쫓아 버리는 것이 뭐냐 하면, 너도 빨리 나와 같이 이렇게 하나될 수 있는 길을 찾아 가지고 행복하게 되어 영원히 남을 수 있는 기반을 닦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차 버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이예요. 사랑, 요걸 몰랐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결혼한 다음에는 여러분이 원리를 통해서…. 원리는 뭐냐? 상대이상을 완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이상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여러분 전기도 그렇지요. 플러스 마이너스가 만나야 번개도 칩니다. 번개가 치려면 수억 볼트의 전압이 생겨나야 하는데, 플러스 마이너스가 생기려면 그것이 한꺼번에 생겨나는 게 아니예요. 플러스 플러스끼리 아직까지 상대가 결정되지 앉았을 때는 플러스가 생겨납니다. 그러다가 마이너스에 그와 가까운 플러스가 있게 되면 합해지는 것입니다. 비슷한 상대를 찾아서 쭉 따라가다가 만나게 되면 스톱되어 번개가 치고 우뢰가 나고 하는 것입니다. 전기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자, 이렇게 볼 때,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았다 하게 되면, 절대적 주체와 절대적 상대가 딱 하나되었다 하게 되면 거기에 방해되는 것을 그냥 두겠어요? 환영하겠어요? 발길로만 차요? 입으로는 물고 발로는 복장이라도 차 버려야 된다구요.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섰으면, 천사장하고 타락하지 말라느니, 따먹지 말라느니 하는 이런 경고가 다 필요 없다는 거라구요. 지금 재미있게 사는 부부에게 '야야, 너 이혼하지 말라구' 하는 경고가 필요해요? 서로 죽자 사자 좋아하는데 그런 말 들으면 코방귀나 뀌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사람은 어떤 때가 좋으냐 하면, 혼자 있을 때가 좋다 그래요? 그럼 몇이 있을 때가 좋아요? 둘이 있을 때가 좋은 것입니다. 그럼 둘만 있으면 좋으냐? 아닙니다. 주인이 있어야 좋습니다. 무슨 주인? 절대적인 주인이 있어야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어야 좋다는 말이라구요. 땅을 중심삼고 보면, 형제는 무엇이 있어야 좋으냐? 부모가 있어야 좋은 것입니다. 그렇지요? 부모 싫다는 사람 있어요? 부모 싫다는 자식 있어요? 그 놈의 자식은 후레자식이라구요. 그런 녀석은 자식도 아니예요. 미친 녀석이라구요.
불평하는 것은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고아이기 때문에 불쌍하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노처녀가 되면 '아, 나는 불쌍하다. 외롭다. 슬프다. 죽고 싶다' 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건 왜? 부모가 있어도 그때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부모가 아무리 고기 반찬을 해주고, 대접을 매일같이 아주 푸지게 해준다 하더라도 '어머니 아버지 고맙습니다. 내 나이 서른 다섯이 되어도 괜찮습니다' 그럽니까? 그래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는 갈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태어났으면 정상적인 입장에서 부모와 하나되어 가지고 자라야 합니다. 부모와 종적인 인연을 맺는 것입니다. 종적인 인연을 맺어 가지고 부모의 사랑을 완전히 계승받으면, 비로소 영원히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는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난 사람은 이 세계에서 쫓아낼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자, 우리 아주머니, 아저씨들, 첫사랑의 인연을 맺었던 사람을 잊어버려요. 안 잊어버려요? 마누라가 죽어서 새장가를 두 번 세 번 간다 하더라도 첫사랑의 인연을 맺었던 상대자를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소, 없을 것 같소? 응? 대답을 하라구요. 대답을 해야 이야기를 계속하지요. 대답을 안 하면 이야기를 안 할 거라구요. 선생님 물이나 좀 먹습시다. (웃음) 있을 것 같아요. 없을 것 같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없을 것 같다니? 없지요. 그때는 없다고 그래야 만점이 되는 거라구요. 내가 없을 것 같아요. 있을 것 같아요 하고 묻는다고 그렇게 대답하면 안 돼요? '없다'고 대답 해야 백점을 주고, 동그라미를 치더라고 주먹 같은 동그라미를 쓱쓱 그릴 것인데, 대답이 이래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있을 것 같아요. 없을 것 같애요? 「없습니다」 없지요. 없다고요. 그렇게 되어 있다고요.
그러면 형제간에도 내가 왜 외로우냐? 형제 중에 사랑할래야 사랑할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사랑을 줄래야 받을 자가 없고, 사랑을 받을래야 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자는 싫어요. 여러분, 독자 좋아요? 독자가 좋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외동딸이 좋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백만장자의 외동딸로 태어난다면 좋지, 왜 나빠요? 형제가 많으면 재산을 전부 분할해 가지고 나누어 가질 텐데 뭐가 좋아요? 혼자면 어머니 아버지 사랑도 독차지할 텐데 외동딸이 왜 나빠요? 좋지요? 좋아요, 나빠요? 백만장자의 외동딸로 태어나는 것이 나빠요? 좋아요. 나빠요? 「나빠요」 왜 나빠요? 왜 나쁜가 말이예요? 이것은 우주의 원칙에 불합격 자가 됐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되고, 형제 사이에 사랑을 서로 주고받아야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부모와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 밤이나 낮이나 부모를 대해, 하늘을 대해, 종적인 위를 대해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게 될 때 행복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어머니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면 자신도 어머니 아버지의 딸로서 사랑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 되겠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한 차원 낮은 평면적인 형제의 사랑입니다. 형제의 사랑이라구요.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것처럼 아들딸도 서로서로 사랑하고 위하고 싶은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고 싶을 때 당당히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이런 부모의 사랑도 받고 형제의 사랑도 할 수 있으면 행복하지만, 남자, 여자로서 성숙한 후에는 남자에게, 여자에게 또 하나의 횡적인 대상이 생겨나야 됩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플라스의 세계를 대표한 남자와 마이너스 세계를 대표한 여자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종적인 세계가 결합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남자에게는 여자가 필요하고, 여자에게는 남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무리 부모의 사랑을 받고, 형제의 사랑을 받는 가정의 행복한 아들딸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남자면 남자가, 여자면 여자가 결혼 하지 않든가, 결혼하지 못하는 자리에서는 불행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형제의 사랑을 말하고 있지요. 이런 것이 문제되는 거예요.
종횡을 중심삼고 종적인 사랑이 뭐냐? 부자의 사랑입니다. 종적인 사랑은 부자의 사랑이고 횡적인 사랑은 부부의 사랑입니다. 알겠어요? 횡적인 면의 부부의 사랑과 종적인 면의 부모의 사랑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형제가 위로 아래로 하나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형제의 사랑으로 엮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에 제일 기쁨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불행한 사람이다? 어때요? 가정에서 누구보다도 기쁨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불행한 사람이예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은 아가씨들, 오늘 결혼 이야기를 하니까 기분 나쁠는지 모르지만, 오늘은 좋은 날이기 때문에 결혼 이야기를 한다구요. 그렇잖아요? 때도 가을절기고 날도 괜찮구만, (웃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종적으로, 위로 드리고 싶을 때 언제나 드릴 수 있는 주체를 가져야 됩니다. 미성년 시대에는 횡적으로도 얼마든지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형제의 사랑을 가져야 됩니다.
이렇게 훈련받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가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로 묶어질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고,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는 자유 환경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불행한 사람이 아니고 행복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다? 「되는 것입니다」 되지 않는 것이다? 「되는 것입니다」 그런다면 내가 지는 거라구요. 아무리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도 여기엔 지게 되어 있다구요.
그러면 행복은 어디서 나오느냐? '행복이야,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사법고시 패스해 가지고 판검사 되는 것이지' 하는 사람, 그건 다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자, 판사 자리를 버리겠느냐, 사랑하는 애인을 버리겠느냐? 어떤 것을 버릴 거예요? 이것은 미치광이에게 물어 봐도 대답은 100점 맞는다구요. 누구나 100점 맞는다 이거예요. 이렇게 누구나 100점 맞게 되면 그것은 세계의 공통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 사랑하는 아내를 버릴 것이냐, 판사직을 버릴 것이냐? 「판사를 버리겠습니다」 제일 못난 사람, 병신 보고 '어떻게 하겠소?' 하면 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병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 대답이 확실하다는 것을 드러나게 하려니 말을 그렇게 안 할 수 없고,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것은 어떤 형태의 사람에게 물어도 같은 대답이 아니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요.
대통령, 그 최대의 성공하는 자리를 위해서 별의별 놀음을 다했는데 이 대통령직을 버릴 것이냐, 사랑하는 사람을 버릴 것이냐? 「대통령직을 버리겠습니다」 대통령직을 버린다구요? 그 대답 틀림없지요? 정신차리라구요. 왜 이렇게 묻느냐 하면 선생님이 목적이 있어서 그럽니다. 그러니 작전에 말려들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요. 대통령직도 버려야 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세계의 대통령이 되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버릴 것이냐, 세계 대통령직을 버릴 것이냐? 어때요? 세계의 대통령 자리는 역사적으로 수천만 인간들이 한 날의 성공을 위해 희생된 보람 있는 가치의 자리인데, 그 자리를 버리다니 있을 수 있어요? 있을 수 있어요. 없어요? 절대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버릴 것이냐, 세계 대통령직을 버릴 것이냐 할때는? (웃음) 어떡해요?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버려요. 세계 대통령직을 버려요? 「세계 대통령직을 버립니다」 정말 이예요? 「예」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은 세계 대통령 되어 보겠다고 노력해 보지 않은 사람일 것입니다. 노력을 안 해보고 생각하면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되지만 진짜 피땀 흘리고 노력한 사람이 그 자리를 버려요?
역사노정에 몇천 년 동안 죽지 않은 할아버지가 있어서 그러한 각고 끝에 성공했다고 한다면, 여자는 언제든지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세계 대통령 자리를 한번밖에 없는데 그걸 버려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답을 하라구요. 세계 대통령직을 버려요. 사랑하는 사람을 버려요? 「세계 대통령직이요」 그것 틀림없소? 맞아요? 「맞습니다」 맞아, 안 맞아? 「맞습니다」 뭐가 맞아, 이 쌍것들. 「맞습니다」 그것 틀림없이 맞아요? 「맞습니다」 욕을 먹어도 하겠습니까? 「예」 맞습니다. 그것은 욕하는 사람이 오히려 미친 사람이 된다구요.
대통령직을 버리는 것이 원형이정입니다. '원형이정은 천도지상이요. 인의예지는 인성지강(元亨利貞天道正當, 仁義理智人性之綱)이라' 하는 말도 있습니다. 그 원형이정은 천도(天都)로서 어느 누구나 공인할 수 있는 사실로 되어 있지요?
그러니 세계 대통령도 사랑이 없으면 빵점입니다. 그렇지요? 결국 그말 아니예요? 자, 우리 다정스럽게 대답합시다. 그 말이지요? 「예」 틀림없지요. 아가씨들? 「예」 무뚝뚝한 아가씨들도 틀림없지요? 「예」 미루지말고 대답 합시다. 그러면 내가 기분 나쁘다고요. (웃음) 이제 점심때가 되어 점심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러면 점심이 환영 안 한다고요. 자, 여기 무뚝뚝한 남자들도 '세계 대통령도 사랑만은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되는거요. 알겠지요?
자, 또 한 단계 올라가게 되면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절대적인 하나님을 점령했는데, 거기에 또 둘도 없는,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하나님을 버리겠어요. 둘도 없는,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이오」 대답하라요. 대답을 하라구요. 누구를 버려야 되겠느냐? 응? 사랑을 원칙으로 하는 절대적인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의 관계를 맺지 않은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을 버리겠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겠다고? (웃으심) 「사랑이 작은 쪽을 버리겠습니다」 사랑이 작은 쪽을 버리다니? (웃음) 결국 아무리 하나님을 맞아 들였다 하더라도 하나님 가운데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도 쓸데 있다? 「없습니다」 하나님도 쓸데없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왕이시기 때문에 그런 걸 미리 아시고 그것을 방비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나만 사랑해라' 하셨다 이거예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과연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결론이 나온다고요. 하나님은 껍데기만 들고 나오지 않고 사랑을 들고 나오신 주체가 되셨기 때문에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다고 하는 거예요.
자, 대통령도 되고, 세계의 대통령도 되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함께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잖아요? 사랑이 없는 하나님일 때는 그 하나님도 버리고 사랑의 길을 찾아가게 마련인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은 '나만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참 잘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오늘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말씀하신다고 한번 가 보자고 해서 어떤 사람일까 하고 처음 온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 문선생 수다스럽다고, 우리 집도 못살게 만들고, 뭐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지만 오늘 요것 하나만 기억하고 간다면, 땀 흘리고 수고하면서 이 산에 올라왔던 것이 손해난다고 보지 않아요. 절대 손해 안 난다고 봐요. 알겠어요?
제일 높은 분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분은 절대자인 동시에 절대적인 사랑을 지니신 분인데,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취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한꺼번에 취할래요. 따로따로 취할래요? 어떤 방법을 택해서 그걸 취하려고 하겠어요? 「한꺼번에」 한꺼번에? 삼키려면 몽땅 삼켜 버리는 거라구요. 한번에 꿀꺽하고 삼켜 버려야 된다구요. 여러분, 배 고플 때 먹을 것이 있으면 침이 꿀꺽하지요?(웃음) 한꺼번에 씹지도 않고 꿀떡 삼키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왜 이런 표정을 하느냐 하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표정까지 지어가며 이야기하는 것은 잊지 말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귀중한 말이기 때문에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할수없다구요. 꿀꺽 (웃음) 꿀꺽 삼켜야 됩니다.
그만한 주체이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나 통일교회 문선생이 아무리 못났더라도 그 놀음, 그 싸움을 한번 해 보겠다는 거예요. 자 그러니, 이렇게 하는 이 남자가 미친 사람이요. 멋진 사람이요? 그렇다고 내가 자가선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대상은 나 말고 여러분을 세워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 사람은 멋진 사람입니다.
만일 그것을 소화하고 그 사랑을 독차지해 가지고 간다 하는데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오지 말라고 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오지 마라, 어딜 오느냐' 하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나쁩니다」 오지 말라고 할수록 기분이 나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하는 데도 같이 가겠다고 하고, 자는 데도 같이 가겠다고 하고, 밤중에도 같이 가겠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요즘엔 이런 노래가 있더군요. 대학을 나와야 남자인가 뭔가 하는 그런 노래도 있잖아요? 결국은 다 자기 사랑이 문제더라 이거예요. 그거 이해되지요?
자, 이제 복귀의 길까지 이끌어 나왔는데 또 돌아갑시다. 하나님의 뜻은 어떤 뜻이냐?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아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들의 가치와 자격은 어떤 것이냐? 세계가 전부 바라보고 '나도 저렇게 되었으면….' 할 수 있는 고상하고도 높은 자격이요. 가치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뭐냐 하면 진짜 사랑하는 아들딸을 만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또, 그 사람도 진짜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모시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없다구요.
그러면 사랑은 어디서부터 배우느냐? 어디서부터 출발이냐? 사랑은 남자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출발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디서 사랑을 배우느냐?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배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젖을 먹고 기어 다닐 때는 아무리 형제들이 많더라도 보게 되면 어딜 찾아가요? 누구를 찾아가요? 「어머니요」 엄마를 찾아간다구요. 형제를 찾아가지 않습니다.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느냐? 철이 들게 되면 형제도 필요로 하고 친구도 필요로 하게 됩니다. 횡적으로 필요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친구가 필요해요. 그렇잖아요?
여러분, 혼자 자란 아이들은 형제와 어울려서 자란 아이들과 다릅니다. 혼자 자란 아이들은 보면, 언제나 꽁해 가지고 융통성이 없다구요. 그렇다고 그런 입장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세요. 교육만 잘 받으면 될 수 있다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없어요. 알겠어요?
사람은 무엇이냐? 진정한 부모, 절대자인 그분을 부모로서 모셔 가지고 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형제와 함께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어머니가 다른 형제를 조금 더 사랑해 주게 되면 '에이, 엄마는 누구는 사랑하고 나는 왜 사랑 안 해' 하면서 불평하고 형제끼리 싸움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직까지 올라가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다 차 가지고 넘치게 될 때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아직까지 기준에 미달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걸 채워야 됩니다.(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중심삼고 어머니 아버지를 귀하게 느끼는 동시에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형제를 사랑하는 인연을 갖추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형제가 커 가지고 상대적인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아담 해와는 둘밖에 없었습니다. 형제의 사랑이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야 부부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지 않아요?
타락하지 않았던 아담 해와 둘밖에 없었던 그 시대로 찾아 올라가서 생각하게 되면, 부모의 사랑을 받고, 형제의 사랑을 받는 훈련을 해 가지고서, 아담이 '해와야! 나 어디 간다' 할 때, 해와가 '오빠 어디 가요? 나도 데리고 가요'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누이동생 되는 해와가 어디 가면, 아담이 '야야, 너 혼자만 가지 말고 같이 가' 이렇게 했어야 했습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성숙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그들이 오누이 자리에 있었지만 결혼식을 해 주셨을 것이 아니냐, 이렇게 되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뜻은 어떻다는 것이냐?타락하지 않은 순정(純正)한 자가 순정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아들이 되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딸이 되는 것, 요거라구요. 알겠어요? 「예」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라구요. 알겠어요? 「예」 그것이 못 되면 그 뜻을 바라보고 가야지, 그 자리가 뜻을 이룬 자리가 아니라구요.
성경 마태복음 5장 48절을 보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완전함과 같이 우리가 어떻게 완전해요? 할는지 모르지만 천만에.
보라구요. 한 나라의 대통령 그 대통령은 학박사 출신이라 하더라도 그 부인은 시골뜨기 국민학교도 못 나오고 유치원도 못 간 사람일 수도 있어요. 없어요? 응? 있을 수 있지요? 남자는 대학을 나와 성공해 가지고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 아내는 국민학교도, 유치원도 못 나왔더라도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여보' 하면 '왜 그래' 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러한 특권적인 권한을 일시에 점유하고 남을 수 있는, 대등한 권한을 주장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그 길은 어떤 자리를 통해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입니다. 그 자리에서만이 하나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고요. 그렇지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높으신 분이라 하더라도 그분을 중심삼고 그 앞에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되었다면, 하나님에게 '여보' 할 때, 하나님이 '에이 이놈아, 나는 천주를 창조한 대주재이고, 너는 피조물인데 이 녀석, 네가 그럴 수 있니' 그러겠어요? 그럴 수 있어요. 없어요? 없다는 거예요. '사랑만 하고, 사랑만 받게 되면 아무래도 좋다' 이런다구요. 그렇지요?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우리 인간이 비록 몰리고 천하고 타락된 후예로 태어났지만, 전부가 형편없지만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조건만 남기게 될 때는, 하나님을 대해서 '당신' 해도 통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 앞에 최고의 것인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해 주고 싶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고 개인적인 뜻을 완성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남자, 그러한 여자가 있으면 하나님은 아담만 데리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해와만 데리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에게만 속닥속닥하고, 딸에게는 '야, 너는 오지 말라' 하는 것이 사탄세계에는 많지요? 여자들이 데모해야 된다구요.
어머니 아버지를 보게 되면, 중요한 것은 아들한테만 이야기하려고 하고 딸은 싹 무시합니다. 여러분, 기분 나빠요. 안 나빠요? 나쁘지요?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아담을 팔에 턱 안고 '아, 예쁜 아들아' 하고 해와를 대해서는 할수없이 '아, 예쁘다' 합니까? 사랑스러운 아들딸을 대해 이쁘다. 이쁘다 하여 점점 예뻐지면 사이가 가까와지겠어요. 안 가까와지겠어요? 둘의 손을 갖다 합해 가지고 '야 요것들 잘 생겼구나' 하면서 둘을 한꺼번에 깨물어 주고 싶은 것이지, 요것 물고 난 다음에 조것 물고 그러겠어요? 몽땅 내사랑 할 때는 '요것 봐라, 어쩌면 요렇게 잘 생겼나' 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거예요.
또한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사랑한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합해서는 안 된다. 사과가 익기 전에 따먹으면 안 된다' 할 때는 따먹어서는 안 된다구요. 따먹으면 안 된다고 할 때 따먹으면 비려서 전부 버리게 됩니다. '따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점점 불그스름하게 익어 가지고, 여러분, 요즘 가을에 배 보았지요? 그와 같아요. 주머니를 떡 씌워 놓으면 배가 '야야, 주머니야 좀 비켜라' 해 가지고 노르스름한 얼굴을 쓱 내놓고 '내 얼굴 봐라' 하는 그것을 보면, '야, 그것 하나 먹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안 들어요?그와 마찬가지라고요. 이놈을 먹을 때는 이렇게 갖다 먹어요. 이렇게 갖다 먹어요?(제스처와 함께) 이렇게 갖다 먹으면 병신이예요. 이래야 된다고요. 머리가 돌아가야 돼요. 입이 이렇게 생겼으니까 할 수 없이 입으로 갖다 먹어야 된다고요. 마찬가지라고요.
그러니까 아담 해와가 점점 성숙하게 되면 '야야 이제는 됐다. 요 녀석들아' 해 가지고 완전히 장성해 가지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갔으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야, 이리 오너라' 해서 결혼식을 해 주셨겠어요. 안 해 주셨겠어요? 해 주셨겠어요. 안 해 주셨겠어요? 「해 주셨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결혼시켜 주셨다는 내용 보았어요?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고요. 성경을 절대시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못 찾는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의 길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적인 교과서입니다. 일학년 교과서….
여러분, 대학교에서 말입니다. 대학교에서 학박사 학위증을 타는데, 책을 갖다 놓고 학위증을 타요? 아무것도 없이 학위증을 타는 거라구요. 거긴 책도 필요 없습니다. 그건 왜? 공부를 다해 책이 필요 없게 되었기 때문에 학위증을 주는 거라구요.
박사가 되었으면 그 분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연구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된 것은 다 해 놓고, 자기가 연구하여 새로운 것을 남겨 놓아야 박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지금까지 있는 것 가지고는 박사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박사도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이면에 있는 사랑의 세계를 찾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고요. 하나님이 딱 사랑을 했다면, 첫사랑으로 사랑한 아들딸, 그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만든 부부, 하나님이 몽땅 한꺼번에 사랑한 부부가 된다면 잊을 수 있겠어요. 못 잊겠어요? 앞에서는 인간세상의 첫사랑도 못 잊는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첫사랑을 주신 사람, 부부로서 정신이 돌 정도로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을 하게 하셨다면, 그것을 잊어버리겠어요? 안 잊어버린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어떻게 되느냐 하면 아들딸 낳기를 바랄 것입니다. 손자를 원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아들딸이면 누구의 손자예요? 아담에게는 아들딸이고, 하나님에게는 손자가 되는 것입니다. 손자를 미워하는 사람 있어요?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로 통해 가느냐? 하나님의 사랑은 올라갈 수도 없고, 옆으로 뻗어갈 수도 없으니 내려오는 거라구요. 내려오는데, 누구를 통해 내려오느냐? 사람을 통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이걸 보면 지금까지의 신앙 관점으로는 일반 신학자들, 기성교계, 전통적인 신학을 논하는 신학자, 전부 다 탁 차 버려야 된다고요. '하나님의 사랑이 올라가요. 내려가요. 평면적으로 굴러가요? 할 때, 평면적으로 굴러가도 안 되고, 올라가도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내려오는데 누구를 통해서 내려오느냐? 자기 아들딸을 통해서 어디로 내려오느냐? 손자에게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정으로, 가정을 통해 어디로 내려가요? 씨족으로 내려가지요. 씨족을 통해 또 어디로 내려가요? 민족으로 내려가요. 민족을 통해 어디로 내려가요? 나라로 내려갑니다. 나라를 통해 세계까지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뜻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연 된 환경에 인류가 남아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복귀섭리를 통한 뜻의 완성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맹목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이상적이고 원칙적인 사랑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된다고요. 이 길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 되느냐?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없는데 타락했기 때문에 복귀의 길을 가야 됩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거꿀잡이가 됐다구요. 떨어졌으니까…. 여러분, 떨어질 때 어떻게 떨어져요? 지붕에서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 떨어져요? 어디가 무거워요? 머리가 무겁다구요. 머리가 무겁기 때문에 머리가 거꾸로 먼저 떨어진다구요.
거꾸로 떨어져 박힌 녀석이 복귀하려면 혼자서 복귀할 수 있어요?복귀할 수 있어요. 없어요? 혼자서 복귀할 수 없으니까 무엇이 필요해요? 구세주가 필요하다고요. 죽는다면 그만이지만 말입니다. 자기 혼자는 일어설 수 없으니까 부축해 주고 구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구원역사라는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복귀하기 위해서는 구원하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알겠지요?
목이 비틀어지고, 다리가 부러지고, 창자가 터져 버렸으니까 그것을 고쳐 줄 수 있는 의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하려면 반드시 구주가 필요합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이 찾아가야 할 운명의 길이 뭐냐?복귀의 길입니다. 복귀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복귀의 길을 바로 가기 위해서는 자기의 사실을 잘 알아 가지고 뒤집어 가지고 구해 줄 수 있는 구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오늘날 세계의 문화사적인 배경을 헤쳐 볼 때, 그 정신적인 뒷받침이 된 것이 종교입니다. 그런 종교 가운데서 대표적인 기독교를 보면, 구주, 하나님의 구원섭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지요? 타락한 인류역사 가운데 구원섭리라는 말이 나왔다는 사실은 타락한 인류 앞에 무엇보다 복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 이상 복된 말이 있어요?죽을 녀석 앞에 살 길을 열어 준다는 그 말 이상 복된 말이 있어요?그 이상 복된 말은 없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중심삼고 보면 구주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누구라 하느냐? 뭐라고 해요? 「구세주요」 구세주라 합니다. 개인에게 있어서 구주라고요. 구주로서 일을 다해 가지고, 가정을 구하고 마지막으로 세계까지 구할 수 있어야 구세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구세주가 못 되었어요. 구국주(救國主)도 못 되었다고요. 알겠어요? 구국주가 됐어요? 세계에서 예수님이 '내가 찾던 나라가 이것이다' 하는 그런 나라를 찾아야 되는데 그 나라를 못 만났다고요. 그러니 아직 구국주도 못 되었으니,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구세주가 어떻게 되겠어요?
아직 개인 대해 가지고도, 구해 주지 못했다구요. 그래서 개인에 대해 구주노룻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을 대해서 구제할 수는 있지만, 나라를 대해서 구제할 수 있는 터전은 아직까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복잡한 문제가 벌어져 있습니다. 복귀하는 데 구주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알겠지요? 복귀하려면 구주가 필요한데, 그 구주는 뭘하느냐? 약을 주고, 주사를 놓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거예요. 알겠어요?
병난 사람으로서 약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병이 났을 때 약 먹기를 좋아해요? 「싫어합니다」 그래요. 그것이 사고입니다. 그것 이상하지요? 병이 났으면 약 먹는 것을 제일 좋아해야 할 텐데…. 약먹는 것을 할 수 없어서 먹어요. 할 수 있어서 먹어요? 할 수 없어서 먹는 거라고요. 이것을 여러분 알아야 됩니다. 병이 났으니 안 죽으려면 약을 밥보다 더 맛있게 먹어야 할 텐데, 밥은 맛있게 먹어도 약은 할수없어 먹는다구요. 그렇지요? 할 수 없어서 약을 먹는다는 놀음을 하지 않고는 병이 절대 낫는다? 「안 낫는다」 안 낫는다는 거예요.
자, 그러면 타락한 우리 인간은 병난 사람들인데, 병이 났으니 구주가 와서 무엇을 할 것이냐?꿀단지를 갖다가 먹여 주는 것이 아니라구요. 주사침을 줄 것입니다. 여러분, 주사 맞는 것 좋아요?큰 주사를 생각하면 '아이구, 뼈가 후들후들 해요'라고 할 것입니다. 안 그래요? 링게르 같은 것을 맞을 생각하면…. 이것을 한두 시간 맞는 것은 죽지 못해서 맞는 거라고요. 그것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고요. 건강한 사람일수록 그것을 싫어하는 거라고요. 그렇지요?
그러면 구세주가 이 땅에 와서 뭘할 것이냐? 타락한 인간을 구해 주려니 주사를 가지고, 주사약을 가지고, 약을 가지고 오십니다. 주사바늘을 가지고 약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 누구냐 하면 구세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의 말을 안 듣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죽는 거라구요. 영원히 구해 줄 수 있는 생명의 구세주로 나타난 그분의 말을 안 듣는 날에는, 영원히 약을 안 먹고 주사를 안 맞는 날에는 영원히 지옥가서 죽는 것입니다. 그것이 맞다는 거라구요.
이것은 조금도 비과학적인 것이 아닙니다. 안 그래요? 오늘날 인간은 병이 났다구요. 그러니까 구세주는 뭘 갖다 주는 분이냐? 주사와 약을 가져다 주시는 분이라는 거예요.
자, 그러면 타락한 인간세계에 있어서는 그분의 말을 좋다고 할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할 수 없어서 좋다고 하는 것이지, 진정으로는 좋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종교를 진정한 의미에서 좋아하는 녀석이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할수없어서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도 종교 책임자가 되었는데, 이것을 좋아서 하느냐? 통일교회 선생님이 언제나 얘기하려고 하면, '아이구, 또 주사약을 주시려고 하누만….' 합니다. 사람이 많은 데서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궁둥이를 내라고 해 가지고 주사를 한 대 딱 때리며 놓아 줍니다. 이것이 사랑 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내가 주사 놓는다. 주의해라, 주의해라' 한다면 이것이 사랑이예요? 무자비하게 딱 때리고 찔러야 된다는 거예요. 그럴수록 그것은 여러분을 위하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까지 나왔어요. 알겠지요?
종교의 경서는, 최고의 인간 생활에 대해서 반대적으로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술을 마시고 싶어하는 젊은 놈들에게 '술 마셔라' 그래요? 우리 아가씨들도 빨간 치마 저고리 싹 입고, 봄절기, 여름절기, 가을절기, 계절에 맞추어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명동 거리에 나가 한번 바람을 살짝 일으켜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있지요? (웃음) 그런 마음 없으면 시집 못 간다고요.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시집을 간다고요. 우리 총각들도 그렇지요? 대학을 다닐망정 싹 빼고, 깃도구두를 딱 신고, 바지 줄도 싹 잡아 가지고 한번 멋지게 하고 나가면 젊은 각시들이 '아이고, 저 남자 잘 생겼다' 하며 옆으로 바라보고, 앞뒤로 바라봐 주기를 바라는 것이 결혼하기 전 총각의 꿍꿍이속이라고요. (웃음) 그래요. 안 그래요? 안 그러면 사람 축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요.
그런데 종교 중에 '아, 젊은이들이여, 명동 거리에 나가 향수 냄새를 풍기며 사계절 바람을 피워라' 하는 종교가 있습니까? 그렇게 가르쳐 주는 경서가 있어요? 「없습니다」 '가지 말라, 가면 죽는다. 가면 죽는다' 하며 야단이라고요 '나가면 죽는다. 내 말 들어라' 하지만….
병난 녀석은 병이 났으니 병원에 가만 엎드려 있든가 거기서 뒹굴어야지요. 그렇잖아요? 절대 못 나가게 했는데 갔다간 사고가 난다고요.
경서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경서는 없습니다. 병난 사람치고 약 좋아하고 주사 맞고 싶어하는 사람 있어요? 그와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대로 했다가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망하는 것입니다. 깨깨 망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주사 맞고, 약 먹으라고 하는데, '주사가 뭐야, 나 싫어' 하면서 발길로 들이 차는 사람은 죽어도 '흥, 잘 죽었다'고 합니다. 장례를 지내더라도 한 사람도 안 간다고요. 그런 거라고요.
그러나, 약을 꼬박꼬박 열심히 먹고, 눈물을 흘리며 엄마 고맙습니다. 의사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고 간호원실에 가서도 '고마워요' 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 후에는 간호원도 모두 눈물 흘리고 의사들도 '아휴! 세상에 병자 중에 그런 병자가 없는데 죽었다'고 하며 안타까와하는 것입니다. 의사의 일생에 그런 사람을 처음 만났다면 잊을 수 없는 병자가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우리 인간은 병이 난 것이 틀림없다는 거예요. 젊은 사람들, 잘 들으라고! 그렇기 때문에 경서치고 우리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어 가지고 병을 낫게 할 길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옳건 그르건 그 사람이 좋다는 대로 해주어 가지고, 그런 가르침을 준다면 그 경서를 통해 가지고 그 사람을 고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없습니다. 없다구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싫다고 하는 것만 시켜 왔습니다. 통일교회는 지독한 교회로서 지독한 주사를 놓으려고 한다구요. 독한 약을 주는 것입니다. 수십 년 걸린 병이라면 매우 쓴 약을 지어 한꺼번에 먹고, 죽든가 아니면 벌떡 일어나든가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강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조제해 주는 약은 달다? 「쓰다」 씁니다. 주사를 놓으면 안 아프다? 「아픕니다」 아프다 요거예요. (웃음) 아프고 쓴 것, 그것이 멋진 것입니다. 처방만 잘하고, 자신을 갖고 투약만 잘하는 날에는 대번 벌떡 일어납니다. 대번에 낫는다 이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놓는 주사는 어떤 주사냐? 세계 주사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주는 주사는 그렇다고요. 통일교회에서는 세계적인 주사를 펑펑펑펑 주는 거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사람들은 자기 집안을 위해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도 그렇다고요, 나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한 집안보다도 타락한 병자, 큰 병이 든 세계를 고쳐 주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게 되면 병들어 사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고쳐 주고 싶겠어요. 그렇지 않겠어요? 병원을 경영하는 원장이, '아이구, 우리 병원이 잘되게 병이 십년 만년 가게 하시옵소 서, 환자들이 낫는 것도 조금씩 조금씩 낫게 해주시옵소서. 춘하추동 배급해서 병이 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바라는 원장이 있다면 그는 벼락 맞을 원장입니다. 병원의 원장은 자기 병원에 병자가 하나도 없기를 바라야 되겠어요. 더 많기를 바라야 되겠어요? 하나도 없기를 바라야 됩니다. 여기 병원 원장하던 사람도 있는데 말이예요. (웃음)
환자들이 안 오면 '가을절기가 되었으니 환자가 많이 와야 할 텐데' 하는 생각, 그것 좋은 생각이예요. 나쁜 생각이예요? 응? 이것 나쁜 생각이 예요. 좋은 생각이예요? 이것은 근본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 원장이 자기 병원에 환자가 많기를 바라는 것이 좋은 원장이예요. 나쁜 원장이예요? (웃음) 「나쁜 원장입니다」 환자가 없기를 바랄수록 좋은 원장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병든 세상이 되었는데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 세상에서 병들이 빨리 없어지기를 바라야 되겠어요. 더디게 없어지기를 바라야 되겠어요? 「빨리요」 빨리 없어지기를 바라야 되겠다고요. 그러면 의사가 많기를 바라겠어요. 적기를 바라겠어요? 만일 전부 다 의사가 된다면 병은 없어집니다」 병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생각으로는 전부 의사 선생님을 만들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의과대학만 만들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그것 좋은 생각이예요. 나쁜 생각이예요? '의과대학 선생하고 의과대학 학생 외에는 하나도 안 내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사랑 많은 원장 선생님의 소견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도 그러한 입장에 선다면 그것밖에 바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전부가 신학생이 되고 신학자들이 되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의사들이 되고, 또 그 계대를 받아 세계의 병자를 구할 수 있는 의학생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욕심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통일교회에 들어오기만 하면 조그만 놈, 큰 놈 할것없이 모두 의사가 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지금 문제는 뭐냐 하면 병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무슨 병이 걸렸느냐? 전염병이 걸렸다면, 처방은 하나 가지고도 다 통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 「예」
콜레라면 콜레라가 어디 남부에서 들어와 삼천만이 모두 병에 걸리게 된다면 의사가 달리 필요하지 않습니다. 처방해 주사만 놓을 줄 알면 되는 것입니다. 그저 주사만 쭉 놓아주면 낫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지금 전염병이 세계에 걸려 있기 때문에 이것을 고쳐 주자 해서 전부 다 통일약국을 차리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 놀음하고, 조그만 녀석, 중간 녀석, 큰 녀석 할것없이 전부 다 병을 들고 삼천리 방방곡곡에…. 병이란 무슨 병이냐? 약병이라구요. 무슨 앓는 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사기를 들고 주사약병을 들고 삼천리 반도에 나가 안 맞으려고 하는 걸 붙들고 놓아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말 안 듣게 되면 '이렇게 해야 낫는다. 절대 손해 안 날 테니 한번 맞아보라' 하여 놓아 주는 것입니다. 그래 한번 맞아 보니 옛날보다 기분이 좋으니까 그 다음에는 오지 말라고 해도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런 놀음을 하려니 통일교인들은 삼천리를 밤낮없이 부산스럽게 그저 뛰는 것입니다.
자, 그것 좋은 일입니까, 나쁜 일입니까? 죽을 병 든 사람을 고쳐 주는 날에는, 죽을 때도 '아이고 그 선생님' 하고 찾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말을 너무 길게 하니까 뱃속에서 '야야, 빨리 그만 둬라' 하는구만요. 그만둘까요? (웃음) 그만둘까요. 더 할까요? 「더 해주세요」 하긴 나도 말하는 것이 쉬운 게 아니라구요. 그만두자면 그만두지요. 하려고 하면 삼백 예순 날이라도 할 수 있다구요. 이제 초반전인데, 뭐….
자, 의사 선생님이 잘해서 죽을 병을 고쳐 주게 되면, 다시 또 죽을 병이 들어서 죽게 될 때 그 의사선생님을 부르게 돼요. 안부르게 돼요? 부르게 되지요? 그보다 더 독한 병이 걸려도 '아이고 세상에는 아무 선생님밖에 없어, 다시 나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며 구주로서 부를 수 있는 의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패들에게는 선생님이 무슨 약을 주었는지 모르겠다구요. 통일교회 약을 먹고 좀 나은 사람들은, 죽을 병에 들게 되어도 '선생님-' 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분 나빠요. 좋아요? 그때 병이 다르게 되면 거기에는 다른 처방이 나오게 될 겁니다. 통일교회 처방법이 한 가지만이 아닌 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삼천리 반도, 세계가 이렇기 때문에 세계로 뻗어 나가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선생님이 오래지 않아 미국에 갑니다. 이번에 가게 되면 선생님이 이 미국 녀석들 전부 다 발길로 차 버릴 것입니다. 옛날에는 서양 녀석들이 동양 녀석들을 찼지 동양 녀석들이 서양 녀석 한번 차 본 적이 있어요? 저기 미국 사람도 와 있지만 말입니다. 내가 기분 좋다구요. 동양, 아시아를 대표해 가지고 내가 가게 되면 와서 인사를 꾸벅 합니다. 그러면 나는 '으, 그래야지, 양반 좋아하는 한국 사람인데….' 그런다구요. 자, 이제 수습을 하자요. 그러니 쓴 약을 좋다고 하지 않는 날에는 흥하느냐, 망하느냐? 아픈 주사를 좋다고 하는 날에는 망한다?
그런데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른다는게 문제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 당신이 준 약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먹어 보기 전에는 모른다' 허허허…. 알겠어요? 먹어 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말 듣고 행해 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자, 결론지었어요.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 지금 통일교회에 들어와 조제한 약봉지는 가지고 있지만, 알맹이는 안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 여기에 모인 여러분 가운데도 점심때 먹고, 저녁때 먹을 약 봉지는 가지고 있는데 약이 없는 빈 봉지를 가지고 있는 패들이 많습니다.
오늘 좋다는 날, 대다수의 사람 앞에서 얘기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기분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좋겠습니다」 좋아요? 난 모르겠는데 뭐, 아까 총무부장이 나와서 오늘은 좋은 날이라고 해서, 내가 '좋긴 뭐가 좋아' 했는데, 약봉지를 가졌다 하지만 봉지만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약이 든 봉지를 가지고 있으면 빈봉지를 들고 있는 것보다 기분이 좋겠습니까, 나쁘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좋기는 좋은데 그 약을 자신이 만들었느냐, 교회에서 뒀느냐? 자기가 만들었어요? 허허허허….자기가 만들 수 있으면 병원에 갈 필요가 없지요. 약을 조제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 약을 누가 누구한테 타야 되느냐? 자기가 만들어 가지고 약봉지를 타올 수 있어요?없습니다. 할수없이 통일교회 문선생님한테 와서 사바사바해야 됩니다. (웃음)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도 약봉지가 두둑하게 된다? 안 되는 것입니다.
자, 지금 약봉지를 가진 사람이 있다구요. 지금 약봉지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약은 식후 30분, 아니면 식전 30분에 먹으라고 쓰여 있는데, '그 약 아무렇게나 먹으면 어때? 전에 먹으나 후에 먹으나 배에 들어가면 다 마찬가지야' 하며 시간을 안 지키고, 식전에 먹으라 한 것을 식후에 먹었다 하게 되면 그 약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속에 얹힐 수도 있습니다. 알겠지요. 무슨 말인지?의사의 지시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맞습니다」 맞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이라고 '너 뜻길을 가야지' 했을 때, '뭐 가긴 가야지, 가야 하지만, 내가 성공을 한 다음에 한꺼번에 다 도우면 되지'라고 한다면 그것이 통할 수 있어요?안 되는 것입니다.
병난 환자가 병이 낫기 위해서는 약을 조제한 약사의 지시와 의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알겠지요?
복귀의 길을 가려면 메시아가 필요한 것이고, 병이 낫기 위해서는 조건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복귀하는 데는 의사가 필요하고, 그 다음에는 조건물이 필요하고, 기간이 필요합니다. '약을 사흘은 먹으시오, 일주일간 치료를 해야 되겠소' 그럽니까, 안 그럽니까?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러면 병난 사람은 메시아 대신, 구주 대신 신념을 가져라 이겁니다. 대신자가 되라, 알겠어요? 구주가 하는 말, 의사가 하는 말을 자기의 말 이상으로 믿어야 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의 원리를 보면, 복귀하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합니다. 제물에는 기간이 필요하고, 그 다음엔 조건물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엔 아담 대신 존재가 필요하다고 했지요? 아들 대신의 존재, 메시아 대신의 존재, 그것을 대행할 수 있는 존재, 그것은 뭐냐 하면….
의사가 지시한 것을 죽더라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는 아벨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실감 나요? 실감 나요. 안 나요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싫든 좋든 선생님이 하는 말을 절대시하고 '난 선생님 대신자다' 하게 되면 통일교회의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된다구요? 조건물을 세워야 됩니다. 약을 먹어야 됩니다. 약을 먹을 때 누워서 먹어라 하면 누워서 먹고, 뛰면서 먹어라 하면 뛰면서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왜 뛰면서 먹으라고 했는지, 그것은 자기가 그 입장에 처해 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직접 되어 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씹어 먹어라 하면 씹어 먹고, 발라내고 먹어라 하면 그렇게 먹어야 됩니다. 밤에 먹어라 하면 밤에 먹어야 하고, 저 포플라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먹어라 하면 올라가서 먹어야 됩니다. (웃음) 왜 웃어요? 조건물을 세우는 데는 절대 순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는 데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요걸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복귀하는 데는 구세주가 필요하고, 즉 의사가 필요하고 그 의사의 말을 중심삼고 절대 조건을, 기간을….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소위 탕감복귀의 길입니다. 알겠어요? 복귀하는 데는 그냥 복귀하지 않는다구요. 뭘한다구요? 탕감복귀를 하는 것입니다. 열만큼 못 쓰게 되었으면,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열만큼의 수고를 해야 됩니다. 10년을 두고 걸린 병이라면, 그 병이 낫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리더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복귀를 하는 데는 어떻게 하느냐?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원칙을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조건을 제시하는 데는 의사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약을 조제하는 데 이 약 저 약 마음대로 넣는 게 아닙니다. 원리원칙에 따라서 넣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는 길이 복귀의 길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제 결론지읍시다. 복귀의 길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 되느냐?혼자 못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복귀의 길은 찾아가야 하는데 혼자는 갈 수 없으니, 메시아를 만나서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 메시아를 만나 가지고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복귀의 길에 들어서 가지고는 원리원칙을 가려 가야 되는 것입니다. 구세주, 의사를 만난 후에는, 그 의사의 말을 중심삼고 원리원칙을 가려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은 찾아가야 할 길이요, 원리의 길은 밝아가야 할 길이다. 결론 났어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렇게 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이상세계, 혹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이상적인 상대세계, 사랑의 세계는 우리의 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복귀의 길에 들어선 우리는 그 길을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복귀의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느냐? 복귀의 길에는 개인을 복귀하기 위한 길이 있고, 가정을 복귀하기 위한 길이 있고, 나라를 복귀하기 위한 길이 있고, 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길이 있습니다. 하늘땅, 영계에서도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술어로 말하면 천주복귀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하나님을 잘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복귀해 가지고야 하나님의 사랑의 단계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이 이렇게 남아 있더라 이겁니다. 알겠어요? '뭐 나 예수 믿고 천당만 가면 된다' 하는 것은 유치원만 가면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유치원을 갔으면 소학교를 가야 되고 소학교에 가서는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졸업을 해야 되고, 그래 가지고 중고등학교를 거쳐야 되고, 그 다음에는 대학교를 나와 학박사가 되는 원리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요? 그러려면 거기에는 가르칠 수 있는 소학교 선생이 필요 하고, 중고등학교 선생이 필요하고 대학교 선생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이와 마찬가지의 역사를 거쳐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세계에서 민족, 문화가 다르고 사상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을 규합하기 위해서 종적, 횡적으로 여러 가지 면에 유치원과 같은 소학교와 같은, 중고등학교와 같은, 대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을 설치해 수많은 민족의 배후에서 움직여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하나님이 그런 놀음을 아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를 안 갈수록 낙오자가 되는 것입니다.
종교를 믿지 않을수록 그 사람은 비양심적이요, 악한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문화발전의 주체적 사상의 뒷받침을 해 놓은 것이 무엇이냐? 종교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적 사실입니다. 종교가 이렇게 나오기까지에는 어떠했느냐? 수난길을 거쳐왔습니다. 희생했습니다. 참된 교역자는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지도자들은 희생해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말이 있지요?훈장, 글방 선생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말이예요. 그런 말이 있다구요. 왜냐? 선생의 똥은 타서 쓰기 때문에…. 열이 나게 되면 쓰게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애기 엄마는 어린 애기가 병이나 고열에 시달리게 되면, 그 아기의 똥맛을 본다구요. 그 말이 맞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시대에서 이러한 놀음을 해 나온 것이 오늘날의 종교입니다. 그러면 종교 가운데서도 통일교회의 길을 가겠다 하면, 고생을 죽도록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고생을 죽도록 하면 할수록 그 이름은 점점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은 이렇게 해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복귀의 길을 가야 하는데, 그 복귀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메시아를 찾아야 됩니다. 그런데 메시아 비슷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참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개인을 중심삼고 세계 대표, 역사 대표, 혹은 인류 대표의 길로 갈 수 있는 길은 하나입니다. 그 길은 하나이지, 둘이 될 수 있나요? 하나라구요. 그러한 하나, 제일 최고를 중심삼고 규합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서는 비슷한 것은 많지만 참된 하나의 사람이 안 나오기 때문에 재림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끝날에 오시는 그분은 과거를 대표하고 현재를 대표하고 미래를 대표해 개인완성의 표준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개인완성 할 수 있는 조제와 투약의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가정완성하고, 종족완성, 민족완성, 세계완성의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런 총책임을 지고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알겠지요? 「예」
개인이 완성을 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는데, 그 십자가의 길은 제물의 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십자가의 길을 싫다고 하게 되면 개인완성의 길을 못 찾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1960년대서부터 지금까지 걸어 나온 것이,….여기에 대해서 결론을 지읍시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걸어 나온 것이 뭐냐 하면, 처녀 총각들을 고생시키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약을 먹고 나아야 하기 때문에 투약시키는, 약을 먹이는 놀음을 하기 위해서 처녀 총각 개인을 고생시켜 나온 것입니다. 개인이 살아나기 위해서, 또 개인을 살려주기 위해서 고생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지나게 되면, 개인완성을 했다고 해서 개인이 편안히' 살자고 하게 된다면 가정완성이 나올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완성한 사람들이 가정을 만들었으면 부처끼리 합해 가정완성을 위한 싸움 노정을 걸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합동결혼식한 사람들은 색시, 남자 할것없이 모두 동으로 서로 헤어져서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지금 희생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가정은 이렇게 해야 산다'는 투약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지금 삼천리 반도에 나가서 싸우는 것입니다. 알겠지요?가정이 완성하기 위해서는 가정의 탕감노정을 가야 되고, 그 탕감노정을 가려면 제물과정의 원리원칙을 따라가야 됩니다.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통일교회 가정들도 그렇지만, 통일교회 자체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교회 자체도 역시 그 길을 가야 됩니다. 전도하는 것은 통일교회 자체를 위해서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교파와는 목적이 다릅니다. 그들은 자기 교파의 발전을 위해서 전도하지만,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우리 자체를 위한 전도가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완성한 자리에 섰다 하더라도, 통일교회가 궁극적으로 찾아가야 하는 곳은 나라입니다. 교회를 버리고라도 나라완성의 길을 가게 되면 한 단계 높을 수 있는 자리에서 완성의 길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이 보다 가치 있는 길이기 때문에 교회를 희생시켜서라도 나라를 찾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하늘 앞에 책임을 못 했더라도 세계를 대표해 가지고 희생 하게 된다면 세계의 모든 국민 앞에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세계의 국민들이 사지사판에서 자기들을 구해 준 것을 알게 될 때는, 대한민국 국민은 역사시대를 통해 세계가 추앙할 수 있는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어 천당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도적놈들입니다. '예수 믿어 내가 천당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고 다 천당가게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올바로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알겠어요?예수 믿어 잘살겠다는 사람은 도적놈이라구요? 예수 믿어 다른 사람들이 잘살게 만들겠다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에서 기도하는 것 보게 되면, '하나님이여, 우리 장로교회…' 하게 되면 그 목사는 벌써 빵점입니다. 목사가 자기의 아들딸을 위해서 기도하면, 그 목사는 빵점입니다. 여러분,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남의 가정을 다 저버리고 '하나님, 우리 아들딸 복 많이 주고 남의 아들딸은 희생해도 괜찮습니다'해도 돼요? 천만에, 그런 기도는 아무리 해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안 이루어진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어 천당가겠다고 하는 것이 원칙이 아니라, 예수 믿어 천당 보내 주겠다고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내가 의학 공부하는 것은 의사 되어서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다' 하는 사람은 옳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없습니다. 돌팔이 의사보다 나쁜 것입니다. '내가 의사가 되는 것은 남을 살려 주기 위한 것이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상적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것이 상반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전부 뜯어서 뒤집어 가지고 바로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이 맞느냐, 아니면 지금까지 믿고 나오던 사람들의 말이 맞느냐? 그것을 어디 가서 물어 봐도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이 맞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 들으니 기분 좋지요?
선, 보다 선한 것은 어떤 것이냐? 가정에서 효자를 가진 사랑이 충신을 둔 나랏님 앞에 나가 자랑할 수 있습니까? '나랏님, 우리 아들이 효자입니다. 충신이 있을지라도 우리 아들을 알아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게 통해요? 안 통한다구요. 나랏님 앞에 부모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나랏님이여, 우리 아들이 충신입니다' 할 때, '그렇고 말고' 그럴 수 있는, 공증을 받을 수 있는 실적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효자를 두었다 하더라도, 아무리 자기 가정이 구원을 받았다 하더라도, 하늘의 충신 되기까지는 자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늘의 충신이 되면 좋겠어요. 효자가 되면 좋겠어요? 충신은 효자의 도리를 다하고 나서야 그 길을 닦을 수 있는 것입니다. 효자의 도리를 다하지 않고는 충신의 길을 닦을 수 없습니다. 충의 길을 따라가는 첫출발이 효의 길이기 때문에 먼저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효자가 되어야 하고, 충신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또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면 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월남전에서조차 휴전을 하는 일이 벌어지지요? 원수끼리도 그날을 서로 축하하는 것입니다. 그날은 원수로서 맞이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를 초월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왜 그러느냐? 그건 예수가 자기 나라의 충신보다도 높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도리를 통해서 세계는 하나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인의 도리는 무엇이냐? 세계 사람들에게 살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의 백성을 위해 사는 사람은 충신이요. 자기 가정을 위해 사는 사람은 효자지만, 하나님은 효자보다도, 충신보다도 성인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성인 중에도 최고의 성인이 있다면, 그 최고의 성인이 구세주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우리 통일교회는 이 길을 가야 됩니다.
자, 이제 결론지읍시다. 그러면 선생님은 지금까지 무엇을 해 나왔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으면, 그 안 것만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본이 되라 이겁니다. 선두에 서라 이겁니다. 거기에서 개인으로서, 가정으로서, 종족으로서, 민족으로서, 국가로서, 세계까지 대표자의 책임을 느끼게 되면, 거기에 아무리 모진 바람이 불어오더라도 그 바람에 밀리는 것이 아니라 밀고 나가라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를 받고 나오면서도 도망하지 않았다구요. 레슬링 헤비급 챔피언이 링에 나와 가지고 으스대지요? '요 녀석 으시대기 좋아 하지만 조금 기다려라 으시대면 다야?‘ 해 가지고 난데없이 이름도 없는 촌 녀석이 나와 싸워서 거꾸로 눌러 놓는 날에는 그 으시대던 챔피언이 어떻게 됩니까? 위신이 땅에 떨어질 수도 있지요? 「예」
기성교회가 통일교회에 대해서 으시대고 '뭐야 이것들, 사람도 몰라 보고,…. ' 이러면서 자기들 천지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두고 보자구요. 실력 대결입니다. 실력은 실적이 많아야 높아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기성교회의 반대를 받으면서 나왔지만 내가 기성교회와 싸움하려고 해서 싸움하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내가 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해명하려니 이런 놀음 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부터 나는 혼자고, 여러분들은 단체입니다. 모든 사람이 챔피언 팬이지만 챔피언이 나한테 지는 날에는…. 그 챔피언의 팬이었던 사람들이 거기 남아 있나요? 「없습니다」 인사도 안 하고 돌아설 수 없다? 「있습니다」 있습니다. 돌아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젠 통일교회 문선생도 종교계에 많이 이름이 났습니다. 그렇지요? 이제부터는 내가 종교계의 거두들을 좀 만나려고 합니다. 이번 외국에 나가기 전에 말입니다. 나라의 거두들, 저명한 사람들을 한번 쓱 만나 봐야 되겠다구요.
자, 지금 이렇게 씨름을 해 올라오는 것입니다. 옛날에 통일교회가 기성교회 무서워했지요? 기성교회의 목사 장로, 혹은 집사들이 눈을 시뻘겋게 해 가지고 '야, 요놈의 자식, 통일교회 청년 녀석아, 네가 통일교회 뭐라고? 야, 뭐 전도대원 요 녀석아, 왜 왔어!'하면, 가슴이 뭉툭 내려앉고 형편 무인지경이었다구요. '아, 그렇소' 이러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가난한 집 살림살이도 원통스러웠지만, 부잣집 영감 호령은 더 원통스러웠다구요. 그것을 느꼈다구요. 그래요?
'지금은 우리가 키가 작아서, 나이가 작아서 이렇지만 내가 40대 목사, 장로 정도의 연령만 되면 그때는 틀림없다' 이러한 뱃장은 다 가지고 있었다구요' 두고 보자, 십년만 두고 보자' 이래 가지고 맨날 죽은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되살아 나왔다구요. 그랬지요? 우리가 물러나는가 봐라 해 가지고…. 내가 그런 이야기 하려 해도 여러분 다 도망갈까봐 안 하는 거라구요. 그 놀음을 해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한때 통일교회 문선생 소문 있었지요? 있었어요. 없었어요? 그때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칭찬했습니까?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하지, 남편, 혹은 아내가 반대하지, 할아버지 할머니 반대하지, 학교에서 선생님 반대하지, 회사에 나가면 회사의 사장님까지 반대하지, 반대 안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당당할 때에는 '두고 보자 내가 양심적으로 봐도 틀림없이 잘했다' 이럴 때는 거기에 굴복해요? 「안 합니다」 가하면 가할수록 너희들이 넘어지는 걸 보기 전에는 내가 밥을 안 먹고 산다. 밤잠을 안 자고 산다' 이렇게 악에 받쳐 가지고 우리는 목적을 향해 달음질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자, 옛날에 목사, 장로, 집사가 오면 가슴이 철렁하던 것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집사들 뭐 건드려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더라구요. '아이구!'하면서 다시 만나자면 도망가게 되어 있습니다. 장로들도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목사 패들도…. 요전에 여러분이 만났겠지만 목사가 떡 안방에 들어가는 걸 보고 사모님 '목사님 어디 갔어요?’ 하니까, '어디 갔어요. 없어요' 이러고 변소에 숨어 있다가 변소 뒷문 열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웃음) 이런 놀음이 벌어졌다구요. 그거 보게 되면 뭐 '주객이 전도된다'라든가 '남의 자리가 제자리'라는…. 세상에 그런 말이 있지요?
그런 일이 우리 목전에서 벌어지는 걸 볼 때 기분이 나빠요. 좋아요? 「좋습니다」 기분 나쁘지요. '우선은 기분이 나쁘고, 생각을 해보니까 나쁘지 않다' 그래야 된다구요. 기분 나쁘다고 하면, 기성교인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이 저렇게 가르치누만' 하니까 우선은 기분이 좋지 않지만, 우리의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기분이 좋지 않지 않다. (웃음) 이것이 좋다는 말이예요. 나쁘다는 말이예요? 「좋다는 말입니다」 좋다는 말이다 이겁니다.
이제는 기성교회 목사들도 인정하고 나옵니다. 선생님이 누구 만나자고 하게 되면, '아, 그러시냐' 하며 나옵니다. 옛날에는 통일교회 교인 하나만 들어서도 뭐!' 하며 노발대발했는데, 하지만 이제는 무엇으로 봐도 지지 않습니다. 돈을 대려고 해도 그들에게 지지 않습니다. 힘내기를 해도 지지 않는다구요. 우리를 반대하던 그 사람들은 벌써 육십, 칠십, 팔십 다 넘었지만 나는 오십대입니다. 힘으로도 안 된다구요 달리기를 해도 안 될 겁니다. 내가 옛날에는 뚱뚱하고 씨름도 잘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밥목사가 돼 가지고, 월급받아 가지고 시시하게 사는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개척시대에는 웃통 벗고 씨름도 하고, 노동판에 가서 짐도 져 보고, 목도질도 해보았습니다.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집도 지을 줄 알고, 미장이도 할 줄 알고, 온돌 놓을 줄 알고, 전부 다 내가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어디를 가도 먹고 사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또, 거기다가 우리는 금식까지 훈련해 놓았으니…. (웃음) 어디 가더라도 밤이면 산에 가서 잠을 자고 아침이면 쓱 일어나 일하러 가게 되면 점심에는 밥을 먹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기성교회 목사들은 그렇게 못할 것입니다. 쌀이 없으면, 앉아서 입맛을 짭짭 다시며 굶으면 굶었지 나와 같이 하지는 못할 겁니다. 나같이 훈련을 못 받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전쟁판이 벌어져서 피난을 가게 되면, 내 신세를 져야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은 어디를 가더라도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다 해낼 수 있습니다. 노동판에 가게 되면 인부들의 우두머리가 되고, 농촌에 가게 되면 농민이 되고, 내가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농민들 선동도 잘 한다구요. 하지만 기성교회 목사들은 피난가게 되면 누가 알아줍니까? 달랑달랑 달랑달랑…. 그렇게 되면 내 신세를 져야 됩니다.
앞으로 잘못하다가는 피난가는 길이 벌어지게 됩니다. 목사들이 싸우다가,….남북의 정세를 바라볼 때 피난갈 수 있는 한 길을 찾아 달음질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 내가 이 사람들을 고쳐야 되겠다. 그때에 응급 자금도 조달해 주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반대하던 그 사람들, 굶어 죽게 된 밥목사들 뭐 밥만 먹여 주겠다면 와서 그저 배 밀이를 하면서 '그저 구해 주소' 그럴 때가 올 수도 있다구요. 올지도 모른다구요. 괜히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요번에 공청회 때, 이 사람들 수련소에 불러다 고기 반찬에, 들이 먹이니까, 이 사람들이 고마운 줄을 모르고 남의 상에 있는 닭다리를 집어 주머니에 넣고 가는 목사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목사라고…. 눈이 죽었으니까 목사(目死)지, 안 된다구요.
이러한 것들을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이제 종교계에서 명실공히 무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나 개인적으로도 무시 못 합니다. 내가 미국 가서 사방에 돌아다니면서 미국은 망한다고 들이쳤습니다.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미국은 망한다고 말입니다. 눈이 새파란 어떤 녀석이 와서 '동양 녀석이 와 가지고 이렇고 저렇고 하느냐' 하고 반대했다가는 나꿔채 가지고 때려 잡는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큰소리해도 시퍼런 눈을 껌벅껌벅하며 어이가 없지, '아이고, 세상이 뒤집어졌구나'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양 사람이 미국 천지에 와서 그러고 다녀도 항의 못 하고 눈만 꺼벅꺼벅하고 있더라구요. 내가 기준 좋았습니다. (웃음) 내가 이런 놀음을 하니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한국도 그 바람에 대사관 직원들이 왔다가, '아이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런 줄 몰랐더니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래 가지고 대사가 특별 초대를 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만날 시간이 없다구요. 이제 이만큼 컸다구요. 알겠어요?
이만큼 컸으니까, 그 다음엔 우리 살림살이를 준비해야 됩니다. 그렇지요?옷도 좀 잘 입을 때가 왔다구요. 이제 앞으로는 내가 통일교회 선생으로서 여러분을 대해 이야기할 때는 이렇게 빨리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천천히 말씀하심) 이렇게 천천히 할 겁니다. 그때는 영감이 되는 거라구요. (웃음) 지금은 이렇게 말을 빨리 하지만 그때 가서는 '여러분들' 한마디 하고 한번 쓱 해 가지고 '여러분들' 한마디 하고 한 5분쯤 쉬고 또 한마디할 것입니다. 그러면 답답해서 못 듣겠다고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아이고, 선생님 초창기같이 하실 때가 좋았지, 이거 안 되겠다' 할 겁니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렇게 해야 된다구요. (웃음) 여기에 나오는 것도 천천히 뚜-벅 뚜- 벅(걷는 시늉하시자 웃음)
그런 것도 할 줄 알아야 된다구요. 그거 보게 된다면 통일교회는 변화무쌍한 곳이라구요. 그렇지요? 「예」
자, 이제는 이만큼 컸습니다. 봐요. 여러분은 아직 모르지만, 앞으로 아시아에 있어서 어느 대통령, 어느 수상의 이름은 안 남아도 통일교회 문선생의 이름은 남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러한 일을 해왔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도 아직 모르고 있다구요. 배후에서 일본이면 일본, 중국이면 중국을 통해서 여러분이 모르는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요? 허리 부러진 호랑이 모양으로 세상을 대하니, 나를 본 사람은 없지만 소리는 들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허리가 부러진 호랑이일지라도 울게 되면 소리는 같지요? '우와앙' 하면 산 중에 있는 새나 짐승들은 다 도망가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그와 같은 놀음을 해왔습니다.
이제는 내가 용을 쓰고 활동을 해야 할 때가 왔다구요. 그렇게 하면 좋겠지요? 여러분을 시키는 것보다 선생님이 하루 나서서 일하는 것이 낫다구요. 그렇지요?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부흥회 한다 하면 기성교회 목사들이 모이겠어요. 안 모이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의 얼굴 생긴 것은 이렇게 생겼지만, 한번 보고 싶어서 다 모이게 되어 있다구요. 그럴 때가 온다구요.
그때가 오면 한국에서 안 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부터 하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을 좋아하니까, 그 미국의 상하원 꼭대기를 질어 가지고 대통령의 소개를 받아가지고 오면 어떨까요? 미국 대통령 특별 전용기를 타고 '한국부흥단 일행이 한국에 행차시다' 하는 공문을 띄우고 갈 때, 그 일행의 책임자로 문선생님이 떡 내릴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이런 준비를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같이 시시한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선생님은 개인적으로도 여러분 앞에 참소받지 않습니다. 가정적 입장에서도 참소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종족적인 입장으로나 민족적 입장, 국가적 입장, 세계적 입장으로도 그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애국자도 부럽지 않습니다. 누구보다도 애국애족, 통일교회 문선생이 누구보다 애국애족하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기성교회 목사들까지도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애국자임에는 틀림없다' 이제는 이렇게 선전하는 목사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누구에게 지지 않겠다' 이 놀음을 할 수 있는, 그것이 영향 미칠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떠했느냐? 개인적인 수난시대가 있었습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에게는 개인적인 수난시대가 있었습니다. 통일교회 식구는 이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 가정적인 수난시대가 있었습니다. 통일교회 축복받은 가정들에게 족속적인 수난시대가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민족, 국가, 세계까지 뻗어 나가는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수난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놀음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것은 통일교회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못나서 이런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한 것입니다.
남을 위할 수 있는 입장에 설수록 그것은 악한 것이 아니고 보다 선한 것이 됩니다. 그러면 보다 선하신 분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냐? 하나님은 세계를 두고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자신보다는 이 세상의 자식들을 위해, 인류를 위해 대표적인 입장에서 수고해 나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최고 선한 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남을 위해 희생하는 데에만 사랑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내가 너를 20년 동안 공부시켰으니까 너는 탕감복귀원칙에 의해서 20년 동안 부모 앞에 희생하라' 합니까? 없습니다. 자기의 대가를 치지 않고 수고하면 할수록, 그 수고가 극하면 극할수록 자식은 그 부모에 대해 사랑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 대가를 요구하지 않더라도 부모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자식의 본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부모 앞에는 불효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부모를 염려시키는 불효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자식을 위하여 희생하는 부모 앞에는 효자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한 나라의 군왕이면, 군왕 자신이 신하들을 위하여 희생하면 할수록 그 신하들은 충신이 아니 될래야 아니 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이면 하나님, 그 절대자가 자기 앞에 제일 가까운 인류를 대해서….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길이란 보다 수고하고 보다 고생하면 할수록 그 가치가 감소되는 것이 아니라 배가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길입니다. 알겠지요?
여러분이 '좋은 것' 할 때, 그 좋은 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좋은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손해보는 자리에 선 사람이 결국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형제끼리 싸움을 해도 부모가 볼 때 먼저 싸움을 걸고, 피해를 입힌 자식을 야단치는 것이요. 피해를 당한 자식을 두둔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공동사회에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은 남한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 아니라 이익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선한 사람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보다 더 바쁩니다. 요즘 수택리에 공장을 짓고 있기 때문에 보통 하루에 두세 번 왔다갔다 합니다. 바쁩니다. 그거 왜? 통일교회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는 개인적 탕감노정, 가정적 탕감노정, 종족적 탕감노정, 민족적 탕감노정, 국가적 탕감노정, 세계적 탕감노정을 거쳐서 영계까지 탕감시켜서 해방시켜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 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길을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거기에는 편안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생에 처한 사람부터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통일교회 역사는 지지리 고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점점 퍼져 나갈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은 하늘이 같이하는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제는 많이 올라왔습니다. 1946년부터 14년이 지난 다음에 1960년도에 성혼식을 했습니다. 그렇지요? 그 성혼식을 중심삼아 7년 후인 1967년도에 '하나님의 날'을 택정했습니다. 이때까지가 선생님 개인에게 있어서는 21년노정입니다.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1946년부터 1967년 말까지가 21년노정에 해당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1960년도는 선생님의 2차 7년노정의 마지막 해입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는 1960년도부터 가정 출발 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면 1차 7년노정이 출발하는 해입니다. 1974년도까지가 2차 7년노정입니다. 그렇지요? 그럼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이때까지가 몇 년도가 되는 거예요? 28년째가 되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3차 7년노정이 끝나는 1980년에는 35년째가 되는 것입니다.
1961부터 1974년까지 몇 년간이예요? 또, 1946년부터 계산을 하면 몇 년간인가요? 28년이지요? 그렇지요? 28년입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때는 어느 때까지냐? 세계적인 때는 선생님이 출발한 때로부터 30년에서 33년 되는 기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느때냐 하면 1977년부터 1980년까지 잡는 것입니다. 이때가 세계적으로 가장 혼란스러운 때가 되는 것입니다.
또, 통일교회로 보게 되면, 통일교회는 2차 7년노정에서부터 3차 7년노정이 끝날 때까지를 고비로 보는 것입니다. 이제 금년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면 12년째입니다. 이것이 13년, 14년이 지나 2차 7년노정이 끝나는 때가 1974년까지요. 3차 7년노정이 끝나는 때가 1981년입니다.
그러면 세계는 어느 때까지 내려가야 되느냐?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게 된다면 21년 동안에 하늘의 뜻이 세계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때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 탕감기간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선생님에게 있어서 1960년도는 1946년도를 중심으로 보게 되면, 14년째에 해당되는 해입니다. 이 14년을 7년 7년, 원리적으로 보면 소생, 장성의 기간을 넘어서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은 야곱으로 보면 라헬과 레아를 찾아 가정의 출발을 한 때라고 보는 거예요. 이 14년 맞는 때인 1960년도를 중심삼고 우리는 자리를 잡고 나선 것입니다. 교회를 중심삼고 자리를 잡고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중심삼고 보면 이때는 교회가 자리잡고 나와도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21년노정이 아직 완결 못 되는 것입니다. 1차 7년노정이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21년을 채우는 때입니다. 1차 7년노정은 거의 완성, 가정을 대표해 설 수 있는 개인 완성 기준을 갖추고 나갈 수 있는 때입니다. 2차 7년노정은 선생님의 가정을 따라서 축복받은 가정들이 책임하여야 할 기간입니다.
이 2차 7년노정은 민족을 중심삼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때입니다. 예수님이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출발해야 했던 그 목적을 완성하지 못한 것을 완성해야 할 때입니다.
왜 이렇게 되어야 되느냐 하면 메시아는 실체기대를 완성하여 교회와 민족권을 맞이하고 오신 분이기 때문에, 결국은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맞을 수 있는 기준은 장성기 완성급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고로, 통일교회가 이제 가야 할 길은 1974년까지 남은 3년 동안 나라에 새로운 영향을 미쳐야 됩니다. 나라뿐만 아니라 기성교회를 대해서도 새로운 영향을 미쳐야 됩니다. 그리하여 유대교와 예수가 하나되고 예수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되어야 했던 그러한 비준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유대교가 쳤고 이스라엘 민족이 치는 자리에 섰지만, 지금은 그런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가 유대교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스라엘의 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를 2차 7년노정을 통해서 완결짓지 않으면 안 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것을 맞추기 위해서 지금 초교파운동이니, 종교협의회니 하는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성교회와 통일교회가 대등한 자리, 더 나아가 기성교회가 통일교회의 신세를 지는 자리까지 갈 수 있는 날이 점점 다가오면 우리의 때가 가까와 온다는 것을 알라는 거예요.
또, 나라가 통일교회가 가는 방향과,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사상과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나라 앞에 어려운 일이 생길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 가는 방향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국가적 사명을 다할 수 있는 때가 온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이번에 3차 순회노정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까 여러 가지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어 얘기 안 하지만, 남북한 협상문제가 벌어지고 점점점…. 이러한 현상은 이미 복귀원리 원칙에 의해 짜여진 공식적인 발전 노정에 제시된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현상이 언제까지 갈 것이냐? 1974년, 늦으면 1975, 1916, 1977년까지 갈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간다고 해서 이것을 한국이 다 해낼 수 있느냐? 안 됩니다. 지금 월남을 보라구요. 티우 대통령이 월맹과 화해해 연립정부를 만들기 위해 교섭하고 있다구요.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앞으로 남한과 북한에 있어서도 아시아의 전지역에 공산권이 우세한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한국을 누가 방어할 것이냐? 문제가 큰 것입니다. 우리 한국은 미국을 중심삼고 방어선을 칠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생님은 어제부터 미국을 중심한 활동체제를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지 않고는 한국은 갈 곳이 없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1981년도까지는 우리의 세계적 기반을 닦아 나가야 됩니다. 알겠어요? 1981년이 통일교회에 있어서 21년에 해당하는 때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나라를 넘어서 세계로까지 발전 기반을 닦아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계적 탕감노정을 거치지 않고는 세계적 종교로서 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통일교회 위에서 섭리해 나오신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와 같은 조건적인 공식 노정을 통해서 가야할 책임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 책임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온갖 정성을 다해 보조를 맞추지 않고는 그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고, 그 세계의 인류가 될 수 없는 문제가 벌어지게 됩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지금 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972년, 1973년, 1974년까지 이 3년 동안, 2차 7년노정 기간에 국가적으로 세계적인 기반을 닦으려 하는 것이 국가적인 이 때와 맞먹어 들어가는 때가 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앞으로 우리가 갈 길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복귀의 길에서는 반드시 탕감노정을 가야 합니다. 탕감노정은 원리원칙의 길을 가야 합니다. 탕감노정은 원리원칙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주먹구구식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2차 7년노정이 끝날 때까지는 대한민국은 남북한에 있어서 주도적인 영향을 미쳐야 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만히 앉아서 될 것 같아요? 안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과 하나되어 있는 힘을 다해서 맞추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여러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국가로 넘어가야 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고 있지만, 지금 그 원리, 공식적인 노정에 의해 싸워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그렇게 맞아 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 모를 것입니다. 이제 금년까지 남은 9년을 넘기는 날에는 우리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종교로 등장할 것입니다. 이걸 믿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은 여러분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전부 다 함께 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말뚝을 박고 줄을 다 걸어 놓았습니다. 기를 걸어 놓았습니다. 이런 놀음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동대 편성이니 이런 것 전부 다.
금년에도 미국 중심삼고 전도를 하기 위해서 150만 불 달라는 것을 85만 불 주고 뉴욕에다 집을 샀고, 앞으로 워싱턴에도 집을 사 가지고 대대적인 세계 교육을 할 것을 지금 계획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상원의원들이나, 미국의 저명한 인사들과 연결시키기 위한 놀음을 하고 있고, 대학가를 중심삼고, 대학 교수를 중심삼고 아시아협의회로부터 세계협의회…. 그래 가지고 앞으로 미국이 공산당의 활동무대가 될 것을 방비하기 위한 준비를 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통일교회를 일반적인 종교단체로 생각하지 말라구요. 여러분은 모르고 있지만 세계적 기반을 닦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 무용단이 일본에서 지금 5개월 동안 활동하는 것도 전부 다 그 준비입니다. 구라파에서 활동하는 것도 다 그 준비입니다.
이러한 놀음을 지금 세계적인 선두에 서 가지고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옛날 통일교회 들어오던 때와 같이 그저 적당히 잠자고 일하며 들락날락하는 통일교인이 있다면 큰일입니다.
선생님은 개인적인 시대에서 가정적 시대, 종족적 시대, 민족적 시대, 국가적 시대, 세계적인 무대로까지 나설 수 있는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여기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게 되면 일본 사람을 데려다가 쓸 것입니다. 일본 사람도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미국 사람을 데려다 쓸 것입니다. 이렇게 결정적인 방향을 향해 돌아가고 있는데, 아침이 되었는데도 밤인 줄 알고 잠자는 한국 사람들이라면, 그 한국 사람들은 망하는 것입니다. 아침을 놓쳐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낮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잠을 자고, 저녁이 되도록 잠만 자면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왕지사 여러분이 선생님과 인연맺고 지금까지 탕감복귀의 길을 걸어 왔으니 이 길을 뜻과 일치시켜 복귀노정을 완결지어야겠습니다. 원리의 뜻을 완성시켜서 하나님의 이상세계를 이루고,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이루어야겠습니다. 이것을 개인에서부터 세계에까지 연결시켜야 하는 것이 우리의 갈 길입니다. 그 길의 선두에서 달리고 있는 선생님을 좋든 싫든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결심하고 가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오늘 이 출옥기념일이니 하는 이런 놀음도 뭐하러 하는 것이냐? 왜 이북에 가서 감옥살이를 했느냐? 이미 감옥살이할 것을 각오하고 간 것입니다. 또, 이남에 내려와 출발할 때, 이미 서대문 형무소 갈 것을 다 각오하고 출발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구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사탄이 최후 발악을 하기 때문에 반드시 부딪치기 마련인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부딪치고, 가정적으로 부딪치고 교회적으로 부딪치고 세계적으로 부딪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나라에서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일본에서도 오는 걸 싫어합니다. 미국에서도 오는 걸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번에 내가 돌아오는 길에 일본에 들렀을 때 '미스터 문이 일본에 들렀는데 무슨 일을 할꼬' 했겠지만 폭발적인 사건을 벌여 놓고 왔습니다. 미국에 가서도 그런 놀음 하고 왔습니다. 이번에 또 가면 무엇을 할꼬, 궁금하지요? 이번에 갔다가는 안 올지도 모릅니다. 안 오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나쁩니다」
세계를 요리하려면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빠르겠어요. 미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빠르겠어요? 「미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빠릅니다」 그래서 원리무장이 잘 되어 있고, 새공산주의비판에 대해서 강의할 줄 알고, 통일사상에 대해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춘 중요한 사람들은 한국에서 빼갈 것입니다. 이제 한국에는 몇 달만에 한 번씩 잠깐 다녀갈지 모릅니다.
요 몇 년 동안 한국을 보면, 남북적십자회담이니 뭐니 하고 있는데 그거 누가 책임지느냐? 일본이 지금 미국을 저버리고 중공하고, 다나까 수상이 중공하고 하나되려고 하는 판에 한국을 언제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배후에 배수진을 쳐야 할 책임을 느끼게 됩니다. 모르면 그런 일을 못하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그런 놀음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실적 있는 사람들은 한 곳으로 다 모을 것입니다. 실적 없을 때는 선생님을 암만 불러도 소용없습니다. 금년에도 일본에서 120명, 구라파에서 800명을 미국으로 데려간다구요. 그런데 한국, 한국에서는 몇 명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했습니까? 약속했어요. 안 했어요?한국은 아직 탕감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가야 할 길을 아직 못 갔다구요. 선생님은 아벨적인 입장에서, 영적인 입장에서는 넘어섰지만 여러분은 영적인 입장, 실체적 입장에서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나 미국은 상대적이라구요. 마음대로 끌어 가도 괜찮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사람만은 동원해서는 안 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섭섭하지요?
이제부터는 모든 싸움에서 선생님을 대신해야 됩니다. 그래야 한국이 주체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못 하게 되면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고 일본이 못 하게 되면 미국으로 넘어갑니다. 미국도 못 하면 영국, 영국도 못 하면 독일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이번에 미국 대회, 영국 대회, 독일 대회를 한 것입니다. 다 그 길을 닦기 위해서….
자, 선민 이스라엘이 될 수 있는 이러한 복 된 사실을 옮겨 올 수 있는 이런 때가 되었기 때문에, 내가 기성교회 책임자를 만나고, 이 나라의 주요 간부를 만나 할 말을 하고, 또 이 나라를 위한 세계적인 준비 노정을 떠나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나라를 수호할 수 있는 길이 없겠기 때문에 이 놀음을 하겠다는 것이 지금 선생님의 자세입니다. 세계 책임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 주사를 놓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주사 맞은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자기 집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세계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됩니다.
이번에 내가 뉴욕에 가게 되면 모르면 몰라도 열두 나라 백성을 데리고 함께 활동을 하고 함께 사는 실적을 남겨야 되겠습니다. 그쯤 되면 대한민국에서 통일교회 문선생 오라고 야단나겠지요. 기성교회 목사들도 '통일교회 문선생님' 하며 소문나고 야단 난리 벌어질 것입니다. 행차 후에 나발 부는 놀음이 벌어질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다구요. '선생님이 언제까지나 우리 편에 서 있을 줄 알았더니….' 할 것입니다. 올라갈 때는 한 길밖에 없습니다. 올라갈 때는 한 길이지만, 다 올라가서는 동서남북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다 올라갈 때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영적인 기준을 중심 삼고 보면, 다 올라간 자리에서 세계를 왕래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오늘은 10월 14일인데, 8월, 9월은 우리 통일교회가 국가에 있어서 예스냐, 노우냐 하는 중차대한 문제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인데, 지났습니다.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우리 단체는 강력한 단체로서 지금까지의 실적으로 보아서도 국가에서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통일교회가 여러 가지 난관을 해결하는 배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당국자간에 많은 문제가 되어 있다구요. 이제는 한 고비 넘어갔습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제 이것으로 한국에 있어서 선생님 책임은 완전히 다 했습니다.
선생님은 하늘 앞에 한국 백성, 한국 민족으로 태어나 한국에 통일교회를 세워 가지고 일으켰던 책임자로서 이 민족에 대하여 당당히 책임을 완결짓고 길을 떠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이제는 세계적 시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 동안 강의하고 싶지만 못해서 맺혔던 한을 풀 때가 온 것입니다. 이번에 본부에서 한 세 사람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 먼저 가서 그 길 닦아 놓고 데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120명 데려가고, 미국에서는 명년까지 한 400명 뽑아 기동대를 만들고 3년 이내에 2천 명의 기동대를 편성할 것입니다. 미국 상원의원들이 공산당 선전에 말려들어가기 때문에 이걸 방지하기 위해서 앞으로 미국을 중심삼고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된다구요. 한국에서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책임 다했습니다. '한국이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방향 제시까지 해주었습니다. 이제 그것을 다 알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으니 말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이 알고, 오늘, 이와 같은 날을 기념해야 되겠습니다. 탕감복귀의 노정이라는 것은 공식적인 역사적 원칙으로서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승리와 성사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뜻을 알고…. 그러한 길이 오기 때문에 이 길은 고생길이 아닐 수 없다구요.
내가 미국 간다고 해서 편안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세계 선두에 서서 치열한 투쟁을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민족을 합해서 가는 것입니다. 12개 국 이상의 민족을 모아 한 울타리에서 각국에 영향을 골고루 미쳐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미국 전역의 어려운 문제를, 미국은 수많은 민족이 모여 가지고 국가를 형성했기 때문에, 흑백문제라든가 민족간의 감정 등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델 케이스를 제시해 교육을 시킬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이념을 중심삼고 미국을 하나 만들 수 있는 내적 실적을 쌓아 영향을 미쳐 가지고 1977년, 1978년까지 미국에 다가오는 고비를 넘을 수 있는 방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미국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망하는 날에는 아시아 자유국가, 자유세계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공산당 천지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세계 기독교인은 대환란시대를 맞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전부 학살당해 버린다구요.
이러한 위기가 우리 앞에 오기 때문에, 이것을 방지해야 할 책임을 짊어졌기 때문에 여러분이야 알든 모르든 이 책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책임이기 때문에, 그 길을 위해서 세계적인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이제 금년 지나고 명년부터는 통일교회도 세계적인 활동시대에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단단히 준비하라구요. 알겠지요? 「예」 몇 시나 됐나요? 한 시? 이제 밥 먹고 해야 되겠구만.
원필이 얘기하게 되면 내 얘기가 필요할 거라. (웃음) 앞으로 내가 많이 시정해 줘야 된다구, 내가 지난번 들어 보니 빠진 게 많더라구, 빠진 이야기 하나 해주지, 감옥살이할 때의 일인데, 제일 잊을 수 없는 것 한가지 얘기할께요. 그 이야기 할까요? 「예」 지금도 제일 잊을 수 없는 것인데, 여러분도 이것을 잘 기억해 둬야 되겠어요.
자, 선생님을 감옥소에 집어넣은 주모자가 있었어요. 그 주모자는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원수이지요? 「예」 그건 보기만 해도 눈에서 퍼떡 불이 나야 된다구요. 그거 뭐 평안도 식이라면 받아 쳐야 됩니다. 그러한 원수인데, 감옥에 떡 들어가 있는데- 사람에게는 누구나 양심이 있습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가책받고 그러면 그것을 직고해 가지고 전부 다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나를 감옥에 넣기 위해 선두적 역할을 한 그 녀석이 떡 나타났다 이거예요.
그는 공산당 간부라구요. 그러니 그가 나타났을 때 나의 기분이 좋았을까요. 나빴을까요? 어때요? 그 자를 봤을 때 나의 기분이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나빴을 겁니다」 나빴다구요. 척 대할 때 기분 나빴다구요. 하지만, 잘 알면서도 시치미를 딱 뗐습니다. '누구신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랬습니다. 모르기는 왜 모르겠어요?매일같이 보았는데, 그러니까 눈치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아무개인데 나를 모르십니까?’ 해서 아, 그러시냐고 내가 미처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 눈을 보니, 옛날에는 고약했는데, 그 눈이 다 풀어지고 제법 사람 꼴을 쓰고 나타났더라구요. 그래 가지고 지난 일을 다 흘려버리고 찾아온 걸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자기가 한 일이 있으니까.
그러고 나갈 때 먹을 것을 사 주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먹느냐 안 먹느냐?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그것을 먹어야 되겠어요. 안 먹어야 되겠어요? 독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구요. 독이 들어 있는지 알아요? 어때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먹어야 됩니다」 왜 먹어야 돼요? 「감정을 다 풀었기 때문입니다」(웃음) 감정은 그 사람이 풀었지 내가 풀었나? 내가 안 풀게 되면 먹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내가 풀게 되면, 그 사람보다도 더 감정이 없게 풀어지는 기쁨으로 먹으면 내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떡 받아 들고 먹을 것이냐, 안 먹을 것이냐가 걱정이었습니다. 감옥 같은 데서는 먹을 것이 참 귀합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대한민국에 맨 처음 군대가 생겼을 때 젊은 놈들 군대에 가게 되면 들어간 날부터 '밥 밥'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거 뭐 감방에서는 누가 먹을 것을 들었으면 서로 빼앗아다가 먹을 판인데, 이것을 먹느냐 안 먹느냐? 심각했습니다. 그것을 점심때 받아 가지고 저녁때까지 안 먹고 심각하게 생각한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셨을 것이냐?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응? 탕자가 부모 앞에 불효하고, 형제를 배반하고 길 떠났다가 돌아오면서 눈물어린 마음을 가지고 돌아오면서 아버지의 옷, 혹은 지팡이라도 사 왔다면, 그 아버지가 그것을 받을 것이냐, 안 받을 것이냐? 어때요? 이것은 사랑이 없이는 받을 길이 없습니다. 사랑의 원칙을 발견하지 않고는 받을 수가 없습니다.
탕자가 돌아올 때, 자기의 모든 과거를 회개하면서 부모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사랑의 표시로 그것을 사 오게 될 때는, 그것이 도리어 부모의 사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해 가지고 식구들과 나누어 먹은 생각이 납니다. 그 다음에도 가만 생각해 보니 만일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찾아갈 용기가 있었겠느냐, 그렇게 감옥까지 찾아갈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대답할 수 없습니다. 이것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그렇잖아요?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 등등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에 부딪칠 것입니다.
그가 감방을 찾아올 때는 배척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체면이 서지 않을 입장을 각오했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는 공산당 간부라구요. 거기에서는 보안대라고 하지만, 간수들 앞에 창피당할 것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침을 뱉고, 뺨을 갈기면, 창피당하지 별수 있어요? 그런 입장에서 체면과 위신을 무시한 채 왔습니다. 그것을 무시하기까지는 또한 얼마만큼 양심의 고통을 받았겠어요? 그런 것을 생각해 볼 때, 그 사람은 그래도 장래성이 있는 사람이다고 심각히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그렇게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일생을 지내오면서 지금까지도 그 사람의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감옥 생활에 있어서, 원수인데도 불구하고 잊혀지지 않고 언제나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주하는 자리가 아니라구요. 그래도 그런 사람은 의리가 있고, 장래성이 있는 사람이다 하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감옥이라는 곳이 얼마나 고독한 곳입니까, 자기의 체면도 체면이지만 그 고독한 곳에 있는 사람을 염려해, 상대방의 사정을 생각해 먹을 것 한끼라도 도와주고 싶은 책임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자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어떠한 조건에서도 위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될 때는, 그 사람이 충분히 이해되고 마음속에 남아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원수지간이지만, 그 심정적 인연을 남긴 사람이 되게 될 때는 역사에 다시 만날 수 있고 다시 살 수 있는 길이 있다 하는 것을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 감옥에서 외로운 적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외로운 자리에 있을 때 와서 위로해 주고 간 사실이 언제나 잊혀지지 않습니다. 친척이나 다른 누가 왔던 것은 잊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의 인연을 맺은 사람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걸 보면 원수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자리를 통해서 교육이 될 수 있고 배울 것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내가 느껴 봤어요. 알겠습니까? 「예」
이런 걸 생각하여 본다면, 통일교인들 중에서 누가 군대를 가든가, 혹은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 식구의 입장 아니면 다른 관계로라도 그를 방문해 주면 얼마나 고마워하겠습니까? 식구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찾아 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 어느 누구 하나가 찾아 주게 되면, 그가 누구일지라도 그는 완전한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도 물론 바쁜 사람일 것입니다. 바쁜 가운데 시간을 내서 그 외로운 자리에 찾아오는 것은 보통 사람의 정성이 아닙니다. 친척이 왔다간 것보다도 그 사람을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생각해야 돼요.
어려운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찾아 주고, 동정해 주게 되면 누구보다 가까이 인연맺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는 것을 지금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식구 중에 누가 군대를 가든가, 혹은 감옥소에 가든가 하게 되면, 선생님도 물론 찾아가야 되겠지만 못 갈지라도 여러분은 그런 인생을 남기고 그런 인연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상대방에게 일생 동안 이렇게 좋을 일을 해야 된다는 교지로서, 하나의 교육의 표준으로서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런 체험을 한 사람은 자기가 죽게 되더라도 그 후손들 앞에 '그런 사람과 같이 되라'고 유언을 하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사상 가운데 지켜져야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외로울 때 찾아주는 것은 용서를 받을 입장이면 누구보다도 빨리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되고, 또 친구지간이라면 누구보다 깊이 기억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기억하기를 바라서 말씀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한 많은 복귀의 길이 이렇듯 슬픈 길임을 미처 몰랐나이다. 아버지, 타락한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는 복귀의 운명길을 모면할 수 없는 개개인이요. 가정이요. 국가요. 세계요. 천주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가 필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끝날이 되면 메시아를 보내 주시겠다는 말씀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맙고 고마운 복음인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여기에 서 있는 자식은 이제 50대를 넘기고 있는, 인생의 반세기를 넘어 내리막 길을 향하는 때에 처해 있습니다. 혈기 당당하고 늠름하던 그 시대에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겠다던 것이 당신과의 변함 없는 약속이요. 맹세요. 서약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교계와 민족의 반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우여곡절의 수난길을 더듬어 온 것을 생각할 때, 저 스스로 슬픔도 있지만 배후에서 아버님께서 얼마나 슬프시겠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 누구의 사정과도 통할 수 없는 외로운 심정을 억제해 가면서 길고 긴 날을 하루같이 보호해 주시고 갈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에 오늘의 이 자리까지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 누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은덕 때문이기에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지, 개인복귀의 길이 이렇게 험난하고 슬픈 탕감길인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수난길을 더듬어 수십 년의 역사를 거치고 이 자리에 남아 가지고 세계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인연을 설정하기 위해서 당신이 얼마나 수고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통일교회가 인연맺은 50년대부터 60년대 70년대까지, 가정을 연합하여 세계 기준까지 777쌍을 묶기 위해 싸움의 노정을 더듬어 온 것을 생각할 때, 당신께서 이 자리에서 얼마나 수고하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3차 세계순회노정을 연결시킬 때까지 피어린 투쟁의 노정을 가려 가면서 상처 입을세라 보호해 주시는 당신의 후대 앞에 몸 마음을 다하여 머리 숙여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여기에 모인 어린 자녀들을 바라보시옵소서. 당신이 필요하옵니다. 당신의 창조이상 앞에 부끄럽지 않게 설 수 있는 아들딸이 필요하옵니다. 당신의 사랑 가운데서 누구도 끊을 수 없는 절대적인 인연의 공고한 자리에서 당신을 우러러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아들딸이 필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통일교회를 통하여 심정의 세계를 계발하라고 명령하신 그날부터 오늘까지 개인복귀와 가정복귀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 천주복귀, 나아가 당신을 해방시키어 당신이 자유분방한 자리에 서서 그 누구의 참소도 벗어나 사랑의 주인공으로서 활개를 펴고 천주를 주관할 수 있는 거룩한 모습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저희 자녀들의 소원입니다.
당신이 개인을 마음놓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 내 일생의 소원이요. 당신이 가정을 흠뻑 취한 자리에서 사랑하는 것을 보는 것이 소원이요.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한 나라와 세계인류를 사랑하는 것을 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걸 보지 못하고 죽으면 한이 될것을 알기에, 지루하고 어려운 복귀의 길을 참아 나온 것을 당신께서는 잘 아시고 계십니다.
아버지, 대한민국을 불쌍히 보시옵소서. 기성교회가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 이 민족은 둘로 갈라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될 수 있는 날을 맞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운명은 비참할 것을 아옵니다. 하오니 아버님, 이들이 다시 한 번 상봉할 수 있는 날을 마련하고자 애쓰고 있는 이 10월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날을 지켜 주셔야 되겠사옵니다. 남북이 원수지간으로 이마를 맞대고 무릎을 맞대고 논의하는 이때에 있어서 기성교회와 저희는 원수가 아닙니다. 형제이옵니다. 에서와 야곱과의 관계와 마찬가지요. 야곱의 아들들 요셉과 열한 형제와 마찬가지 입장인 것을 알게 될 때, 당신 깨서 분부하시는 뜻을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풀 수 있는 날이 오게 하시옵소서.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하나되는 날에는 대한민국도 당신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예수시대에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통일되어야 했던 그 승리의 권한을 갖추기 위해서 모진 투쟁의 길, 많은 고난의 길을 거쳐 지금의 이 자리까지 연결시켜 나온 것을 당신께서는 알고 있사옵고, 또한 저희는 거기에 당신이 협조한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통일교회는 이미 남아 있지만, 기성교회에도 아버지와의 인연을 연결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 딸들을 3년노정의 일선에 세워 기성교회를 드나들게 하면서 그들을 위한 기도와 정성을 들이게 하고 있습니다. 삼지사방에 나가 있는 당신의 딸들의 수고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이 민족의 갈 길을 위해서, 민족 해방의 그날을 위해서 남 모르는 수고의 길 가운데 피어린 투쟁의 역사를 가려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통일교회를 별의별 중상모략으로 몰고 있지만, 일편단심, 당신의 뜻, 하나의 뜻세계를 향한 우리의 갈 길이 바쁘기에 옆을 보고 싸울 수 없는 바쁜 길을 걸어온 것을 당신께서는 잘 알고 계십니다.
남북이 엇갈리고, 아시아에서 고립된 이 한국을, 아버지여, 지켜 주시옵소서. 이것은 이 나라가 책임하지 못하고 기성교계가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가 가로막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밤을 지새워 가면서 나라를 붙들고, 교회를 붙들고 호소하지 않을 수 없는, 형제를 잘못 가진 인연을 탄식하면서 하늘의 긍휼을 바라지 않을 수 없는 통일교회의 운명길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누구보다 뜻을 대하는 자리에서 불쌍하고, 자세를 갖출 수 없는 통일의 무리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당신이 그 이상 슬픈 자리, 불쌍한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고생시켜 또다시 좁은 길로 내몰지 않으면 안 되고, 십자가의 길을 가라고 명령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 선 이 분하고 억울한 사실을 역사와 더불어 흘려 보내더라도, 당신을 위하여 자랑할 수 있는 길만을 남기기 위한 뜻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뜻을 바라보면서 언제나 내가 하늘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느냐를 이 시간, 이 날을 축하함과 동시에 다시 한 번 자각하고 묵묵히 결정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가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승리의 터전을 향해서 가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외롭고 고독한 길일지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그 누가 동정하지 않을지라도 당신을 향해 갈 것입니다. 아버지, 당신과 하나될 수 있는 깊은 심정의 인연이 남아질 것을 생각하고 가는 이 길, 부디부디 당신의 염려하는 길이 되지 않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으로 이날을 축하하면서 스승이 남긴 슬픈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자들이 있거든, 저를 사랑해 주시는 당신의 축복이 그들에게도 같이해 주시옵소서. 남은 당신의 십자가의 길을 위해서는 이 이상의 슬픈 길이라도 자기들이 책임지고 나라를 위하여 민족을 향하여 나서겠다는 재결의를 촉진하고 다짐할 수 있는 오늘이 되면 이 이상 기쁜 날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부디 오늘을 기쁜 날로 맞아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1972년은 역사적으로 수난의 기간이 넘어가는 때라고 이미 말하였습니다. 1972년은 6천년 역사의 정상을 대표하는 달, 날로서 맞아진다고 하였습니다. 하오니 이 10월 14일을 해방의 날, 축하하는 날, 특별한 날로, 아버지여, 세워 주시고 맞아 주시옵소서. 통일교회가 민족을 대신해서 안팎으로 넘어설 수 있는 계기, 내연적으로 갖추어진 자리를 맞이한 줄 알고, 있사오니, 금후에 가는 길도 아버지께서 활짝 열고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수고의 길, 고난의 길, 역경의 길을 다짐하여 온 이들이 가는 길이 이제 멀지 않은 장래에 축복의 손길로 변할 줄 알고 있기에 극복의 일로를 다짐해 나올 수 있었던 이들, 아버지 앞에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나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만인류 앞에 내세워 칭찬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의 칭호와 명분을 가릴 줄 아는 이들로서 세워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달이 복되고, 이해가 복되고, 70년대가 복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복잡다단한 세계정세를 가려 승리의 팻말을 박고, 아버지의 영역을 넓혀 나가 승리의 무리들을 규합하여 당신 앞에 봉헌할 수 있는 거룩한 인연을 자아내는 이번 기간이 되고, 이달이 되고 이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저희들, 허락하신 뜻대로 모든 것을 바치고, 남기신 길을 지킬 수 있는 파수병이 될 것을 다짐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일년 반쯤은 누구든지 다 감옥을 경험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감옥이라는 곳이 참 배울 게 많습니다. 왜 배울 게 많으냐? 사람 중에 배운 사람이든가 아는 사람은 모든 문제에 대해서 그 가치를 알게 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에 대한 가치를, 배우지 못한 사람보다도, 뭔가를 알지 못하는 사람보다도 배우면 배울수록, 알면 알수록 알아준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이 '애국하자, 나라를 사랑하자'고 하더라도 경험이 많고 자기가 배운 것이 많으면, 혹은 역사를 통해서 안다든가 지금까지의 애국자들을 통해서 안다든가 하게 되면 자연히 대한민국의 가치를 알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내가 유능한 사람이 돼야 되겠다' 하는 사람은 공부를 해야 되는 거예요. 공부는 왜 하느냐? 그 분야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는거예요.
그러면 감옥이라는 곳은 어떤 곳이냐? 왜 필요하냐? 어디보다도 많이 배울 수 있는 곳입니다. 우선 내가 입는 것에 대해서 배워요. '야, 옷이라는 것이 참 귀하구나' 알겠어요? 옷에 대한 진짜 가치를 알 수 있는 곳입니다.
감방에 들어가게 되면, 감방은 온돌방이 아닙니다. 뭐 스팀이 들어오고, 연탄을 피면, 연탄가스 때문에 죽는 사람도 있겠지만 뜨스한 그런 곳과는 영원히 관계를 갖지 않는 곳이예요. 흥남 같은 데는 겨울에 평균 영하 18도에서 21도 되는 곳이예요. 그렇게 추운 곳이기 때문에 담을 막든가, 무슨 바람벽이 됐든가 상관 없이 전부 다 통하는 곳이라구요. 알겠어요? 그러니까 바깥이나 안방이나 마찬가지예요. 감옥 안방이나 바깥이나 마찬가지라구요. 그것 알지요?
오히려 겨울에는 감방이 더 춥다는 거에요. 왜? 바깥은 햇볕이 나기 때문에, 햇볕이 나는 곳에 나가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따뜻하지만 감방에는 그런 곳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햇볕이 나왔다 해서 머리를 내밀고 '아이고 햇볕을 좀 쪼이자' 하게 안 돼 있다구요. 이 감방이라는 곳은 낮에도 춥고 밤에도 추운 곳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는 뭐 비단옷? 비단옷이라는 것은 염두에도 없고, 비단옷과는 아주 연관이 없다구요. 비단옷보다도, 질보다도 양이 필요한 곳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포대자루라도 좋다는 거예요. 포대자루라도 두꺼운 것이 좋다…. 그 맛 알지요? 그것은 진짜 직접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내가 설명해도 통하지 않는다구요.
비단옷을 필요로 하느냐, 포대자루를 필요로 하느냐 하게 되면, 감방에 사는 사람은 양단, 비단 그런 옷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다 집어 던지고 두툼한 포대자루를 먼저 가서 움켜쥐고 갖겠다고 싸우는 곳이 감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옷에 대한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곳입니다. 그것 이해돼요? 알겠어요? 「예」
그런 가치를 보게 될 때, 두툼한 포대자루 하나 척 쓰고 이렇게 앉아 있게 되면, 좀 뜨습다 하게 되면 하! 내가 얼마나 행복하냐…. 이것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웃으심)'내가 포대자루를 쓰고 있을망정 누구보다도 오늘은 좋구나, 이 시간만큼은 얼마나 행복한가' 이렇게 사는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자리가 그 자리라는 거예요. 포대자루 말고 가마니짝이라도 좋다는 거예요. 부들부들 떨고 있다가 가마니때기라도 뒤집어써서 춥지 않고 훈훈하게 된다면 가마니 속에서도 히죽히죽 웃을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면 별천지라구요.
그러니까 만세에 보다 높은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 감옥입니다. 세상에서는 배울래야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입니다. 젊은 청년들에게 있어서는 제일 좋은 장소입니다. 그것 이해돼요?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선생님이 일년 반쯤은 감옥살이를 했기 때문에 감옥에 가면 배울 것이 많다고 말을 했는데, 아무리 가봐야 통일교회를 믿다간 감옥에 갈 길은 없으니까, 도둑질이라도 해서 감옥에 한번 가자' 그건 안 된다구요. (웃음) 그건 예외라구요.
그러니까 감옥에 가면 무엇이든지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옷에 대한 가치를 진짜 알 수 있는 곳이 어디? 감옥, 감옥입니다.
또, 사람의 눈은 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 사람들은 사람 보기를 싫어합니다. 지금은 그런 세상이 됐다구요. 명동에 나가게 되면 오만 가지의 사람이 다 있습니다. 얼마나 사람이 많아요. 걸어가고 있을때, 진짜 자기를 알아보고 '여보 당신하고 나하고 인연이 있습니다. 언제 본것 같소' 하게 되면 가슴이 철렁 한다는 거예요. '어이쿠 저 사람 왜 저러나' 사람을 보고도 놀라자빠집니다. 그렇지만 감옥이라는 곳은 사람이 그리워요. 알겠어요? 눈앞에 보이는 것이 사람으로 나타나게 되면 그 사람이 잘났든 못났든, 미남이든 추남이든, 뭐 미인이든 추녀든 누구를 막론하고,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아무개를 찾아온 사람이 있다 하게 되면, 그 사람 눈이 번갯불같이 번쩍거린다구요. 알겠어요? 아주 신나는 기분을 표현할 길이 없으니, 그렇게 표시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 사람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르는 거예요. 자기와 인연된 사람이 있으면 아주 고마운 거예요. 그 이상 고마운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나타난 사람이 잘나고 못나고 그건 상관할 게 없다구요. 자기를 찾아 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요. 사람을 높이, 대한민국이 있다 해도 대한민국보다 더욱 그 한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고 대할 수 있는 그런 자리는 감옥이 아니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것 이해돼요?
음성을 듣더라도, 말을 듣더라도 세상에서 제일 좋은 말이 무슨 말이냐?한때 감옥에 들어온 사람으로서는 나가게 된다는 말을 들으면 귀가 번쩍 뜨인다구요. 알겠어요? 내가 지금 좋게 되어 나가는데, 해방이 벌어 지는데…. 그러면 세상이 그렇게…. 그건 뭐 형용할 수 없다구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는다는 거예요.
자, 여러분, 지금 남북이 통일이 안 돼 가지고 뭐 협상하기 위해 적십자 회담이니 하면서 야단하고 있지요? 그렇지만 '그거 야, 북한과 남한이 해방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 말만 듣고 그저 뛰고 못살 정도만큼 된 사람 있어요? 없다구요. 아무리 애국자라 해도 '아이구 그 말을 듣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구요. 여러분 그래요? 그렇지 않다구요.
그러나 감옥에서 '나간다. 우리가 해방이 된다' 하는 말이라는 것은 칠성당에서 춤추며 놀라는 것보다 더 반가운 말이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듣는 귀, 보는 눈….
또, 그 다음에는 냄새 맡는 거예요. 감옥에 있으면 이 코가 얼마나 예민해지는지 몰라요. 남쪽에 동네가 있으면 말이예요, 남풍이 쓱 불어와 가지고 자기 앞으로 쓱 지나가게 되면 '흐흠…' 셰퍼드는 여기에 사촌도 못 된다구요. (웃음) '아 저 동네에서 지금 국밥을 하는구나' 하고 벌써 안다구요. 이거 얼마나 예민한지 모르는 거라구요. 십리 안팎의 동네에서 소 잡아 가지고 소고기국 끓여 먹고 하는 것을 앉아 가지고 다 안다구요. 얼마나 이 코가 냄새 맡는 데 있어서 그 가치를 백 퍼센트 알아주는지…. 감옥 아니면 그 가치를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코가 전문적인 교육을,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곳도 감옥이다! 이해돼요? 그러니까 감옥은 나쁘지? 「않다」 않다. 허허허….
또, 할까요? 그 다음에 이 놈의 입, 이 입은 말하게 되어 있고 먹게 되어 있습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소곤소곤 얘기하지요. 또, 맛있는 것을 보게 되면 참 잘 먹지요? 그렇잖아요?
소곤소곤 얘기할 수 있는 그것이 얼마나 그리운가, 그건 여러분이 모른다구요. 그것을 경험 안 한 사람은 암만 설명해도 모르니까 아예 설명을 안 하는 게 났다구요. 그냥 표정을 보고 들어 두라구요. 소곤소곤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그리운지…. 그런 시간이 나에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기쁠까? 이렇게 꿈속에서 그리워하고 마음속으로 사모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상상 못 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을 통해서 연인맺어지는 가치를 최고로, 백 퍼센트 인정할 수 있고 알아줄 수 있는 자리는 감옥밖에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감옥 이상 그러한 가치를 가르쳐 주는 곳이 없기 때문에, 감옥은 제일 뭐라구요? 좋은 곳이다 이겁니다. (웃음)
그 다음에 이놈의 입이 또 뭘 하느냐 하면, 먹는 일을 합니다. 밥이 그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밥이 그렇게 맛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곳은…. 세상에서 천년 살더라도 밥맛을 모르고 먹었지만,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살아 보면 밥이 얼마나 귀한지 진정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배울 수 없는 밥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곳은 감옥밖에 없기 때문에, 감옥이 제일 좋은 겁니다. (웃음)
또 감옥은 어떤 곳이냐? 홍두깨가 왔다갔다 하는 곳입니다. 옛날 왜정 때는 몽둥이가 왔다갔다 하고 말이예요. 내가 이북에 들어가서 취조받을 때, 고문 받을 때는 말이예요. 이런 얘기는 부인들 있는 데서 하게 되면 실례됩니다. 부인들 귀 막아요. (웃음) 귀 막으라고 했는데 안 막고 듣고 나서 그런 말하는 사람 있다고 욕하는 사람은 나보다 더 나쁜 사람이 되는 거라구요. 부인들은 귀 막으라구요. 그래도 듣고 싶으면 들어요. 이건 좋지 않은 말이라구요. 남자들은 까짓것 다 아는 거니까…. (웃음)
여러분, 황소 생식기가 있지요? 그거 알아요?이놈이 이만큼 긴데, 이놈을 말려 놓으면 이건 뭐라고 할까, 몽둥이 중에서 그렇게 멋진 몽둥이가 없다구요. 여기에 세상 사람이 옛날에 감옥에 들어가면 무슨 몽둥이로 맞는다는 말 들은 사람이 있을 거라구요. 나도 그놈이 어떻게 생겼을까 했는데, 내가 한번 들어가서 한바탕 고문을 받고 '여보, 거 손에 쥔것 이름을 모르겠는데 내가 맞더라도 그것이 무슨 나무인지 좀 알고나 맞읍시다' 해 가지고 알기는 알았지요. 그걸 알고 맞고 나서는 달라고 해 가지고 보니 휘청휘청하고 그 가운데는 옴폭하게 참 멋지게 생겼어요. 한번 때리면 찰싹 들이받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매를 맞는데 있어서 참된 매 맛을 아는 곳은 감옥밖에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어머니 아버지한테 매를 맞는 것은 잘못해 가지고 매를 맞는 것이지만, 이건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잘못했다고 들이 때립니다. 잘했던 사람도 잘못했다 할 수 있게끔 때리기 때문에 잘못했다고 오줌을 싸면서 말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매 중에서 제일 지독한 매라구요. 그 매를 맞으면서라도 당당히 자기의 소신대로 나가는 사나이는 찬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매를 통해서…. 매야말로 멋진 사람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매 중에서 지독한 매, 그야말로 한번 맞으면 말이예요. 여러분 말로 하면 모르겠지만 배가 올라갔다내려갔다. 올라갔다내려갔다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선생님이 왜정 때, 그때는 한참 일본 천황의 모가지를 떼겠다고 했기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서 고문을 받았는데, 제일 힘든 것이 뭐냐 하면…. 한번 해보라구요. 각목을 갖다 여기에 놓고…. 왜정 때는 군대에서 신는 가죽구두가 있었다구요. 징을 박아 가지고 짜박짜박 하는 가죽구두로 밟는 거라구요. 그건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렇더라도 '패라 이놈의 자식, 내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심이 크냐, 네가 일본을 사랑하는 애국심이 크냐? 너하고 나하고는 원수다' 이러면서 아주 멋진 싸움을 한 거예요.
그러면 매 맛이 어떻더냐? 매를 지독하게 맞더라도 그걸 감정하면서 '요렇게 했기 때문에 이 몇 배를 내가 갚고야 말겠다' 하는 거예요. 이렇게 매에 대한 교육을 똑똑히 받을 수 있는 곳은 어디밖에 없다구요? 「감옥요」 감옥밖에 없더라! 그렇기 때문에 감옥은 좋다는 거예요. (웃음)
또, 하자구요? 아침에 척 눈을 뜨고 일어나게 되면 아침 노을이 보입니다. 검정노을도 노랑노을도 빨강노을도 좋다는 거예요. 그 모든 전부가 희망에 찬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야아, 저것을 자유로운 입장에서 바라보고 내 힘껏 소신대로 저를 맞아 주고, 오늘 이 아침은 멋진 날이다'고 찬양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가지고 꿈에, 감상에 잠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아침 햇빛이 쓱 비추면 그야말로 완전히 사로잡히는 거예요.
햇빛은 뭐냐 하면 엿줄과 같애요. 엿줄, 꿀줄이라고 할까,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하여튼 좋은 거라구요. '아이구 이놈의 해야' 하는데, 햇빛 줄기는 전부 다 자기를 위해서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는 거예요. 창문을 통해 햇빛을 바라보는 그곳 이상 배울 곳은 없더라, 알겠어요?
그러니 해를 진짜 알아주는 사람은 감방에 있더라, 왜?해를 제일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감방에 있기 때문입니다. 감방은 해를 칭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나쁘지 않더라, 그렇다는 거예요.
또, 나는 감방에서 파리를 잡아 가지고 매일같이 잘 놀았어요. (웃음) 감방에서의 친구는 간수가 아니고, 이 있지요? (웃음) 이것을 멧돼지 부대라고 한다구요. 기어다니니까 멧돼지 부대라고 한다구요. 감방에 오래 있으면 말이예요. 옷에 시침질해 놓은 곳이 있지요. 이 잡을 필요도 없구요. 두 마리 잡겠다 하고 쓰적쓰적하면 두 마리가 나오는 거라구요. (웃음) 내가 이런 얘기를 하게 되면 기분 나쁠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나쁘지 않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써서 책을 만들면 감방이 유명해질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책까지 쓰려고 생각은 안 합니다만, 나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얘기해 줍니다.
이를 잡아 가지고 손바닥에다 놓으면서 한 마리 잡았다. 두 마리 잡았다. 세 마리 잡았다. (웃음) 열 마리는 대번에 잡는 거예요.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아이구 감옥에서 별의별 짓을 다하고…. 사실 별의별 짓 다 했다구요. 이렇게 하면 따뜻해진다구요. 알겠어요?겨울에는 감방에 이가 많습니다. 이놈을 잡아서 갖다 놓으면, 찬 방이니까 따뜻한 데 싹 갖다 놓으면 오물오물 다 모인다구요. 그렇다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해보라고요. (웃음) 그건 왜? 생리적으로 그렇게 돼 있다구요. 요렇게 기어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열 마리만 딱 잡아 놓으면 그 다음에는 추우니까 서로 붙어 가지고 파고 들어가려고 합니다. '햐 이거 안 되겠다' 이래 가지고 열 마리, 스무 마리, 서른 마리, 쉰 마리 잡아 놓게 되면 동그랗게 됩니다. 이것을 데굴데굴 굴렸을 때 한 놈이 떨어지게 되면 거기에 파고들어가겠다고 합니다. 그거 아주 취미 중에…. 그걸 경주시키고 그러면 얼마나 좋은지…. 그렇기 때문에 감옥에서는 이가 원수가 아니고 친구였더라, (웃음)
세상에 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런데 이를 친구삼아 노래할 수 있고, 친구삼아 의논할 수 있고, 놀 수 있게끔, 이를 상대할 수 있는 그런 교육이 됐다면 교육 중에 최고의 교육입니다.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감방밖에 없기 때문에, 감옥소는 나쁘지 않더라.
또, 이제 파리, 여름에는 파리 녀석이 윙 하고 날아 들어오는 거예요. '야 너는 나보다 낫구나!'내 앞에 와 가지고는 싹싹싹 비빕니다. 그러면 기분이 나쁘다는 거예요. '요 녀석아, 너 내 앞에 와 가지고 무슨 자랑을 그렇게 손을 비비면서 하는 거야' 하고 훅 불면 날아갔다가 쓱 도로 돌아와요. '야 이놈 안 되겠다' 해 가지고 '이번에는 다리를 비비면 잡고 안 비비면 안 잡는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에 꼭 와서 눈을 깜박깜박, 파리는 깜박깜박 안 하지, 이러고 있다가 또 비비는 거예요. '이놈 이제 틀림없이 잡는다' 하면서 자기 혼자말로 주고받고하면서 신이 나 가지고 '야 이거 놓칠소냐' 하며 살랑살랑 가서 싹 잡으면…. 그 심각한 자리에서 파리 한 마리 잡는 것이 황소 잡는 것보다 더 기쁘다구요. (웃음) 그것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다가 쌩 날아가 버리면 '아이쿠 기분 나쁘다. 오늘 재수가 없겠구나' 그런 놀음을 할 수 있는 곳은 감방 외에는 없다구요.
이놈을 잡겠다 해 가지고 날아가는 것을 잡으며 이놈을 놓칠소냐, 놓치면 큰일이 납니다. 잡아 가지고는 '요놈 잘 잡혔다. 이놈, 이제는 복수다' 탕감복귀가 아니고 탕감복수하는 거예요. '요놈 야야! 아프지만 참아 내가 안 아프게 해줄 께' 하고 주사 놓는 식으로 딱 때리고 빼는 거예요. 몸뚱이를 꽉 잡으면 꽁무니가 늘어집니다. 해 보라구요. 날개짝도 딱 떼버린다구요. 우리가 생각을 해 보더라도 그렇게 하면 안 아플 것 같기도 해요. 안 아프냐고 물어 보면 안 아프다고 하는 것 같아요. (웃음) 이렇게 바른쪽을 뗐으니 왼쪽도 '참아, 참아' 해서 싹 떼어 버리고 놓게 되면, 날개 떼인 곳이 아플 텐데도 불구하고 놓아 주면 발발발발 잘도 돌아다닙니다. (웃음)
그 다음에는 담벽 모양으로 휴지를 모아서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여기서 경주를 시킵니다. 누가 일주를 먼저 하나 해 가지고 그 사이로 나갈 수 있는 구멍을 조그만큼 남겨 놓는 거예요. 구멍을 이만큼 남겨 놓게 되면 거기로 나가려고 하지요. 발발발발 돌아가거든요. 야, 누가 일등하나 세 마리만 잡아 놓는다 하게 되면, 일등 이등, 큰 놈 작은 놈, 이렇게 해 놓으면 그것 참 재미있다구요. (웃음)
내가 그런 얘기를 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파리 한 마리도 그리움의 대상이 됩니다. '야 네가 말을 할 줄 알면 내 소원을 들려주어 고향에도 보낼 텐데' 고향까지 날아갈 수 있다구요. '소식을 가져 오기도 할 텐데' 파리 한 마리가 친구가 될 수 있다구요. 미물의 곤충 파리 하게 되면 전부 다 싫어하지만 이렇게 친구 중의 친구요. 사람의 대상이자 의논의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상 교육받을 수 있는 곳은 천지에 감방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감방이 나쁘지 않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얘기를 하다 보면 한정이 없을 거예요. 이제 시간이 많이 됐는데 그만두자구요. 그런 내용이 얼마든지 있다구요.
철따라, 눈이 내린다든가 할 때는 아주 감상적이 되는 거예요. '작년에 갔던 각설이 금년에도 또 왔네….' 그런 노래와 같이 작년에 오던 눈이 금년에도 오는구만, 감방에서는 눈을 안 볼 줄 알았더니 또 보는구만' 그렇게 되면 지난날을 반성할 수 있는 거예요. '하아! 내가 일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 그러한 자연의 변화에 따라서 자기 일생을 쭈욱 반성해 볼 수 있다구요. '나는 어디서 태어났고,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사랑했고, 이렇게 이렇게 학교에 다녔고, 이런 사연을 거쳐서 오늘 이렇게 감방살이를 하는 신세가 되어 가지고 겨울을 맞이하여 펄펄 날리는 눈을 맞는구만, 이 계절이 지나면 또 봄이 올 것이고, 여름이 올 것이고, 가을이 올 것이고 또 겨울이 오면 이런 눈이 올 것인데, 내년 겨울에는 부디 여기에 안 있어야 할 텐데….' 이러면서 미래에 대한 것도 생각하고, 전부 다 철따라 변하는 것에 대해서 자기의 발전을 모색하고, 새로운 희망을 모색할 수 있는 곳이 감옥 외에는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젊은 사람이라면 못해도 일년 반쯤은 공식적으로 감방 교육을 시켜야 되겠다 하는 것이 앞으로 내가 문교부 장관이 되거나 나라를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한번 해 보고 싶은 거라요. 정말 그렇다구요.
내가 감방에서 제일 기뻤던 것이 무엇이었느냐? 한번 얘기해 볼까요? 그건 안 할 거예요. 너무 째째해 보이기 때문에.
말을 하면 재미가 있는데, 시간도 많이 안 걸리고 재미있는데, 하고 싶지만 창피스러워서 못 하겠다. (웃음) 내가 창피해도 여러분이 좋다면, 그 뭐 내가 그렇게 살기를 작정한 사람이니 여러분이 정말 듣고 싶다면 한번 해보지요. 듣고 싶소? 「예」 웃지 말아요. 자 해보자구요.
남자의 체통이 이만하면, 대한민국 사람들 가운데서도 작은 축에는 안 들어 간다구요. 내가 97킬로그램이었는데 요전에 절식운동을 해 가지고 87킬로그램까지 10킬로그램이나 내렸다구요. 배부른 사람, 배 나온 사람, 뚱뚱한 사람 걱정하지 말라구요. 금식을 하게 되면 금방 훌쭉해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일주일 금식을 했기 때문에 뚱뚱해지려거든 물을 자꾸 마시면 되는 것이요. 훌쭉해지려면 물 안 마시고 밥 안 먹으면 되는 거라구요. 그래 걱정 없다구요.
자, 보라구요. 감옥에서는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필요한 것이 없다' 그렇다는 거예요.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재산이 많더라도 필요하지 않다구요. 살림살이가 필요해요? 무슨 뭐 라디오가 필요해요? 텔레비젼이 필요해요? 그것 가지고 있다가는 큰일난다구요. 그것은 전부 다 필요한 것인데도 감옥에서는 필요하지 않다구요. 알겠어요?
그러면 필요하지 않은데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무엇이 필요해요?제일 필요한 것이 뭐냐 하면 통입니다. 통, 무슨 통? 통일교회 통이 아니라구요. 무슨 통이 필요한가? 똥통! (웃으심) 이건 제일 기분 나쁘고 째째한 거라구요. '그것이 뭐 필요해? 세상에 제일 필요한 것은 필요 없고, 그래 필요하다는 것이 똥통이예요. 똥통? 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필요하 겠어요. 안 하겠어요? 「필요합니다」
내가 얘기 하나 하지, 이런 얘기하자구요. 똥 얘기를 다 터뜨려 놓았으니까 봐라 이거예요. 자, 똥 얘기 한번 하자구요. '저녁 때가 돼 오고, 엉덩이가 아프고 지루한데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또 나타나 가지고 또 뭘할까, 약도 재탕을 해 먹으면 기분 나쁜데 재탕이야' 하겠지만, 재탕이 약탕이 될 수 있다구요. 그러니 보라구요.
흥남 감옥하게 되면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 앞은 바닷가입니다. 흥남하게 되면 참 추워요. 바람이 세기 때문에 자갯돌(자갈)이 날라드는 거예요. 참 추워요. 그렇기 때문에 감옥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 감옥의 주인양반들이 뭐 고마운 손님이라고 대접을 잘 하겠어요?그렇게 안 되어 있거든요. 그렇겠지요? 갖다 주는 것은 시래기 중에서도 돼지 줄 것 까지도 남겨 놓고 나머지 있거든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명태 잡는 계절인 겨울이 왔다고 해서 명태국 끓여 줄 리는 만무한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런데 고기 실컷 먹을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렇고 보면 그것 참 좋은 소식이지요? 고기를 바께쓰로 갖다 주면서 '어서 먹어라' 하고 문을 열고 막 들이미니 얼마나 좋겠어요? 그게 어느때냐? 흥남 앞 바다는 고등어가 많이 잡히는 곳입니다. 한번 잡히게 되면 산더미같이 잡힙니다. 그러면 전부 다 비료를 하는 거라구요. 고등어가 상당히 기름이 많다구요. 또, 생고등어를 회해 먹으면 맛있다구요. 며칠 둔 것은 안 되지만 펄펄 뛰는 것을 갖다가 회를 해 먹으면 참 맛있어요. 생선을 절인 것을 먹으면 맛을 모르겠지만 생것은 참 맛있어요. 고등어 철에는 제일 싸니까, 시래기 값보다 더 싸고 무엇보다도 싸니까 트럭을 들이대 가지고 '에헤라 먹고 싶어하는데 실컷 먹어라' 해 가지고 한 트럭 사다가 가마솥에 쪄서 한 바께쓰에 가득 들이미는 거예요. '자,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런데 일년 동안 굶을 대로 굶어 가지고 창자는 가늘어 질 대로 다 가늘고, 기름기는 다 빠졌는데 거기에 기름기를 갖다 넣으니 소화를 시키겠어요? 못 시키는 것이 틀림없다구요. 소화 못 시키니까 그냥 무사 통과라구요. (웃음) 여기에는 교통사고도 없다구요. 알겠어요? (웃으심) 그렇게 저녁을 먹고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 출역하러 가야 하는데 변소 갔다가 일하러 갈 수 있는 게 아니라구요? 아침에 일어나서 전부 다…. 새벽부터 미리는 못 일어나요. 그 시간 외에 일어나게 되면 탈옥 공모자로 몰리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같이 기다려야 돼요. 시간이 되어 한꺼번에 '출역!'하게 되면, 수십 명이 밤새껏 타고 앉았기 때문에 아직 후계자도 많고 재신청자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출역' 하니 어떻게 할 수 있어요? 다 청산 못 하고 어기적어기적 나가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전람회가 벌어지는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웃음)
이렇게 실제로 지내 본 사람의 말을 들어야 재미가 나는 거예요. 그렇지요? 재미나지요? 그 뭐 안됐지만 재미가 난다구요. 남의 말을 듣고 하는 것은 재미가 없는 거라구요. 기분 나쁜 거라구요. 그렇지만 실제로 지낸 사람이 말할 때는 재미가 물씬물씬 나는 거라구요.
쇠붙이 같은 것은 절대 못 가지게 되어 있기 때문에 혹시나 해 가지고 다섯 시에 일어나서 여덟 시까지 검사하고 나면, 여름날 세 시간씩 앉혀 놓으니 어떻게 되겠어요? 볼장 다 보는 거지요. (웃음) '여기서 아이구' 하면서 체면은 있어 가지고…. 그러다 보면 앉은 자리 있는데 후지근한 물이 고이고, 어떤 녀석은 이게 응- 해 가지고 갈 데가 없으니까, 이게 올라와요. 이게, 덩어리까지…. (폭소) 이런 요지경 판이 벌어지는 거라 구요. 그것 흉보는 사람도 한두 사람이지, '너자 나요 나자 너요' 모두가 다 그러니….(폭소) 자 웃으라구, 웃으라구, 마음 놓고 웃으라구요. 그렇다는 거예요. 나나 너나 다 그러니 흉볼 게 있어요? 그래서 말이 생겼다구요. '봄이 돌아오면 한 번 해야 된다' 뭐 한다는 거예요? 한번 싸야 된다는 거예요. (웃음) 그래 표어가 생겨났어요. '싸지 못하는 사람이 병신이다' (웃음)
그런 것은 암만 세계를 돌아 다녀 봐도…. 그런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은 형무소밖에 없다구요.
체면이나 무슨 위신이 있다는 사람은 여덟 시까지 참고 참다가 그저 '주루룩 주루룩' 나중에는…. (웃음) 또, 거기에다가 춥지는 않지만 새벽부터 나와 볶여야 하니 어떤 사람은 '으웩' 하며 토하는 그런 놀음까지 벌어진다구요. 이게 거짓말 아닌 사실이라구요. 그렇게 '출역?’하게 되면 그야말로 옆에서는 별의별 요지경판이 벌어진다구요.
그렇게 되면 안 싼 사람은 안 싼 사람끼리 싼 사람은 싼 사람끼리…. 서로 손 안 잡으려고 도망 다닙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그러나 출역하게 되면 천여 명이 네 사람씩 손을 잡고 줄을 지어 가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서로 찾아 다닌다구요. 자, 이거…. 폐장에 말이예요. 자기 귀한 것 잃어버리고 정신 빠지게 찾아다니는 사람과 마찬가지라구요. 그런 구경은 형무소 아니고는 못 하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더러워하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손을 떡 붙잡고 갑니다. 가다가는 별수 있어요? 벌써 세 시간, 네 시간 되니까 될 대로 다 됐거든요. 그 십리길을 걸어가는데, 어그적어그적하니 소화가 돼 가지고 배에서는 '쭈르륵 쾅 쭈르륵 쾅' 하면서 자꾸 내려 오니 이건 뭐 야단법석이 예요. 뭐 체면을 차려 가지고 안 싼 사람끼리 붙들고 나가던 사람도 '아이구 와와와 확' 하는 그런 놀음이 벌어진다구요. (웃음)
그런 광경이 벌어지면 대개 다 같으니까, 부끄럽기는 뭐가 부끄러워요? '웃는 녀석 있으면 너도 한번 당해 봐라 얼마나 바쁘고 급한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러는 거예요. 난 그걸 당해 보지 않아서 그 내용은 모르겠어요.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변명할 수도 없다구요. 그러한 요지경판이 벌어지는 곳입니다.
이걸 보게 된다면 형편이 말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등어 철이 되면 고등어가 고맙기도 하지만 일면 인간꼴을 다 버린다는 거에요. 내가 이걸 얘기하려고 한 게 아닙니다. 내가 째째하다는 얘기는 이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양념으로 얘기한 것이고 이제부터 얘기하자구요.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필요한 것이 없다는 말은,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거기에서 필요 없고 세상에서 필요하지 않은 것은 거기에서 필요하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면 세상에서 필요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 바늘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바늘? 주사침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여자들이 바느질을 하지만 바늘은 좋아하지 않는다구요. 왜? 바느질 하다가 '아이구' 손톱 밑을 찔러 먹는 것은 바늘밖에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바느질하는 데 있어서는 바늘이 필요하지만, 여자는 자신도 바늘과 더불어 살지만 바늘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구요.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하면, 두고 보라구요. 바늘 그것 몇 푼이나 해요?1전 해요? 「2원입니다」 2원 해요?그것 많이 올랐구만, 그 2원을 무시해서는 안 되겠지만 십 원 대해서는 5분의 1밖에 안 된다구요. 그러니까 그것 뭐 대수롭지 않다구요. 형무소에서는 바늘을 주지 않습니다. 매일같이 유산 암모니아를 만지는데 목면옷을 입으면 아무리 새것을 입어도 사흘을 못 갑니다. 털옷은 산성에 강하기 때문에 오래 가지만 면같은 것은 아무리 새 옷이라도 사흘만 되면 쓰윽 잡아다니면 부욱 찢어집니다. 아무리 새 옷을 입더라도 일 주일, 보름을 못 갑니다. 그러니 매일같이 기워야 된다구요.
자 이거 그런데, 형무소에서 바늘 배급해 줘요? 절대 안 해 줍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자체 해결하는 거예요. 궁둥이가 나오면 체면상 안되거든요. 뭐 궁둥이 내밀고 다니면 좋지, 형무소 안에서 동맹파업을 하여 전부 다 벗고 일하자고 하여 문제를 만들어 옷을 매일 내주게 하면 좋겠다고 내가 선동을 한번 하고 싶어도 선동하면 문제가 벌어지기 때문에 그건 안 되고, 궁둥이를 내 보이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누덕누덕 기워야 됩니다. 기우려고 해도 바늘이 없으니 어떻게 해요. 큰 일이라구요.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젖가락 알지요? 젓가락을 시멘트에 가는 거라구요. 젖가락을 뾰족하게 갈아서 쓰는 거라구요. 그걸 그냥 막 집어 넣으면 뚝 부러진다구요. 여러분 침 놓을 때도 꾹 찌르는 법이 없어요. 춤추는 것과 같이 살랑살랑 비비면서 올 사이로 너 비켜라 너 비켜라 해가지고 구멍을 싹 뚫으면 그 다음에는 침을 발라서 실을 꼬는 거예요. 꽈야지 그냥은 안 된다구요. 그렇게 실을 꽈 가지고…. 한번 째진 것은 매일같이 헤져 나가니 그것을 기울 도리가 없어요. 밤을 새워도 할수없으니 어떤 때는 이만큼씩 해 놓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하나님이 보우하사 겨우 요것만 기우는 이런 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바늘이 얼마나 그리운지 몰라요.
자, 여자들 바늘의 가치를 모르지요? 그래 할 수 없이, 선생님 같은 사람은 머리를 씁니다. '바늘을 내가 만들자' 그래 가지고…. 공장에 나가게 되면 레일이 있어요. 이 레일은 강철입니다. 그 다음에는 와이어 줄이 있어요. 이것을 가지고 '바늘을 만들자' 해 가지고 시멘트 바닥에 가는 거예요. 와이어가 바늘만큼 굵은 것이 있다구요. 요놈을 뽀족하게 만들어서 가마니를 묶으려면…. 선생님은 가마니 묶는 데도 선수라구요. 그걸 묶는 쇠꽃이가 있는데 그것도 강철이라구요. 레일이 이렇게(제스쳐 하시면서), 요 식으로 되어 있지요. 각이 졌지요. 그 와이어를 레일의 꺾어지는 부분에 갖다 놓고 쇠로 똑똑 두드리면 납작해집니다. 알겠어요? 너무 두드리면 부러지고…. 그러니 이것도 딱 도수를 맞춰야 되는 거예요. 부러지지 않을 정도, 안 부러질 최고의 기준이 될 때까지 두드려야 돼요. 그것도 한번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러 번 경험이 있는 전문가가 해야 돼요. 이렇게 똑똑 두드려서 납작해지면 이것을 싹 구부려야 하는데, 그냥 뚝 구부렸다가는 부러진다구요. 그러니까 원형이 되게 하며 구부러지게 해야됩니다.
또, 필요하다면 유리를 깨뜨리는 거예요. 매 맞더라도, 기합받더라도 갈고리 집어 넣는 척하다가 비스듬히 던지면 저 공장 위에 있는 것이 떨어질 수도 있다구요. 거기에는 유리 조각도 없다구요. 유리 이게 칼이예요. 거 유리가 상당히 단단하다구요. 그것으로 면도도 하고 젖가락도 만들고 하는 거예요. 거기에는 내가 선생이라구요. 그렇게 다 살기 마련이라구요.
와이어를 싹 구부려 가지고 그 유리로 가만가만 가만가만 싹 하게 되면 달아집니다. 그렇게 해서 구멍이 싹 나게 되면 '아이구' 그 기분 참 모르는 거라구요. 구멍이 뚫어지려고 할 때 그 기분 모르는 거예요. 구멍이 뚫어졌으면 그냥 그대로 뚝 하면 부러지는 거에요. 그 다음에는 이것을 반대로 싹 구부려 가지고 이쪽도 그렇게 해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또 하나의 바늘과 같은 것을 만들어서 무엇으로 톡톡 두드리면 쇠가 들어가 박히지요? 이놈이 들어가 박히게 되면 그 다음에는 반대로 두드려 대는 거에요. 그래 놓고 그 나머지는 잘라 버리면 바늘이 됩니다. 이 바늘이 참 멋지다구요. 그 바늘은 사회에서 만든 것보다도 크고 쓰기 좋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게 되면 훌륭한 바늘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바늘 하나 만드는 시간이 없더라는 거예요. 어디에 가서 만드느냐 이거예요. 안 그래요? 그래서 이것 하나 만들어 놓게 되면 그것으로 세를 놓는 거예요. '바늘 한번 빌리는 데 미싯가루 한 봉지다' (웃음) 자 그것이 값이 나가요. 안 나가요? 쩨쩨하고 형편없는 것 같지만 멋지고 신나는 놀음이예요. 아니예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미싯가루 팔아 먹었다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렇게 내가 바늘을 만들어 가지고, 몇 개 만들어 가지고 주기도 하고 쓰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만든 것은 녹이 쓸고 강철이라 기분이 좋지 않다구, 그런데 감옥에 가서 진짜 바늘을 아무 감방에 있는 사람이 바늘을 가지고 있다 하게 되면, 천 명이 이틀 사흘 이내에 전부 다 알아요. '아무 감방에 진짜 바늘이 있대 진짜 바늘' 하면서…. (웃음) 감방에서는 진짜 바늘을 가졌다 하게 되면 유명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늘 하나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알겠어요? 부인네들은 그걸 생각하고 바늘 하나라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됩니다. 그때에는 남편보다 더 귀하다구요. 그렇다는 거예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내가 잊지 못하는 것이 이거예요. 쓱 공장에 나갔는데 그때가 오후 두 시쯤 되었어요. 시간도 잊혀지지 않아요. 공장에 나가서 가마니를 가져다가, ….거기서 제일 힘든 것이 뭐냐 하면, 유산 암모니아를 40킬로그램씩 담는데 제일 힘든 것이 뭐냐 하면, 그것을 가마니에다 집어넣어 가지고 저울에 올려놓는 것이 제일 힘든 거예요. 그러니 누가 제일 힘든 것을 하겠다고 해요? 굶주려서 배고픈 판에 힘든 것은 전부 다 안 하겠다고 꽁무니를 빼니 할수없이 그저 도매금으로 맡게 된 그 일을 매일같이 하는 거예요. 하루에 열 사람의 책임량이면 1300가마니예요. 1300개의 가마니를 가져다 비료를 넣어서 끌어내어 묶어 가지고 마무리까지 하는 것이 한 사람이 130개 책임량입니다. 젊은 사람, 여러분들 잡아다 시키면 나가자빠질 거라구요. 130개 하게 되면 조그마한 집 같다구요. 나가자빠지면 죽어야 돼요. 죽고 싶지 않으면 해야 돼요. 죽을 때까지 안 하면 안 되게 되어 있다구요.
그래 가지고 떡 그 놀음을 하고 있는데, 아 이 실이 떡 보이잖아요. 실이 보이게 되면…. 대개 시골에서 가마니를 짜 오기 때문에 실이 있으면 바늘이 붙어 있어요. 그냥 바늘만은 절대 안 남아 있다구요. 알겠어요. 실이 보이면 반드시 바늘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소문이 돼 있기 때문에 가마니에 실이 붙어 있으면 누구든지 먼저 가서 빼 보는 거예요. 이런 것을 나도 거기에서 배웠기 때문에, 통일교회 선생님이라 해도 할 수 없다구요. 실이 보이므로 행여나 바늘이 있지 않나 해서 떡 보니 아니나 다를까 바늘이 있는 거예요. (웃음)
야, 그래 가지고 바늘을 한번 찾았어요. 그것 선전을 했다가는 큰일납니다. 그래서 변소 갔다 온다고 해 가지고 그걸 가지던, 그때의 그 기쁨은 천하를 통일한다 해도 모를 거라구요. 그걸 볼 때 얼마나 쩨쩨해요? 쩨쩨하지요? '야 이거 통일교회 문선생도 바늘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했다니….' 바늘은 왕이구 나는 신하보다 더 나쁜 자리에 섰다. 이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것이 감옥생활에서 잊을 수 없는 하나의 테마로 지금도 남아 있다는 거예요. 이것을 볼 때, 집에 가서 바늘 하나를 보게 되면 그때 일을 잊어버릴 수 없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또, 밥을 먹게 되면 언제나 국부터 마시지요? 밥을 먹게 될 때는 언제나 국부터 먼저 갖다 주는 거예요. 하나는 국을 이리로 갖다 주고 하나는 밥을 저쪽으로 이렇게 엇바꾸어 갖다 주는 거예요. 하루는 이렇게 엇바꾸고 하루는 이렇게, 엇바꾸어서 갖다 주는 거예요. 저 끄트머리에서 이렇게 오고 이쪽에서는 이렇게 가니까 매일 받는 것이 뭐냐 하면 밥 아니면 국입니다. 그런데 밥을 먼저 먹고 국을 마시면 그것처럼 기분 나쁜것이 없는 거라구요. 그것 해 보라구요. 밥을 먹고 국물을 마시면 이것은 참 기분이 나쁘다구요. 국을 먼저 먹고 그 다음에 밥을 받아 먹어야 그래도 밥 먹을 기분이 나지 밥을 먼저 받는다 하더라도 밥을 먼저 못 먹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먼저는 국을 먹어야 합니다. 그 국도 소금국이라구요. 돼지 강 건너 간 물이라는 말들이 있는 그런 거예요. (웃음) 왜 웃어요?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웃음)
국을 떡 먹게 되면, 어떤 때는 국이 얼마나 짠지! 감옥에서 국 끓이는데 뭐 자기네 신랑이나 아들딸이 요렇게 먹기 때문에 이렇게 간을 맞추어야 되겠다 하고 생각해요? 가 가지고는 소금 몇 바가지면 몇 바가지 그저 들이 퍼붓는 거라구요. 많든 적든간에 붓는 거예요. 그것 다 타게 되면 짜서 못 먹어요. 그래도 이게 숭늉보다 더 귀한 국인데 짜더라도 먹겠어요. 안 먹겠어요? 버리겠어요. 안 버리겠어요? 죽더라도 그 국을 버리고 싶지 않다구요. 그 멀건 국 한 사발이 얼마나 귀한지….
거기에 무슨 상이라도 있어요? 상은 무슨 상, 손이 상이지, 척 손으로 받쳐 가지고…. 사격선수가 표적을 맞추기 위해 심각한 것과 같이 심각하게 먹는 거라구요. 그렇다는 거예요. 국 한 사발을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와 같이 먹던 생각….
또, 밥을 보게 되면 밥은 보리 끓여 가지고 주는 거예요. 이밥은 금물이예요. 형무소는 콩밥이 제격입니다. 그 다음에는 잡곡밥일수록 좋다는 거예요. 명절 같은 때, 정월 초하루라든가 오월 초하루라든가 이북에서 지키는 명절이 있는데 그때는 명절이라고 해서 반드시 이밥을 주는 거예요. 그걸 받기는 받지만 이밥을 안 먹다가 먹으니 그것처럼 섭섭한 게 없어요. 이게 입에 넣으면 벌써 넘어가는 거예요. (웃음) 밥을 먹고도 먹지 않은 것 같다구요.
그래서 전부 항의, 건의를 하는데 그게 뭐냐 하면 '명절 날도 우리에게는 콩밥 주소' 이러는 거예요. 콩밥은 그래도 깨무는 맛이 있어서 좋고 또 기름기가 있기 때문에 먹으면 끈기가 있어요. 이밥은 먹으면 슬쩍 내려가는 거예요. 그래 제일 싫은 날이 명절날이예요. 배가 고프다구요. 그렇게 손에다 맨밥을 먹던 그 맛…. 그전에도 내가 맨밥을 잘 먹었지만 형무소에 가서 맨밥이 그렇게 맛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알겠어요. 반찬이 문제가 아니예요. 반찬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은 맛있게만 먹으면 살기 마련입니다. 뭐 쇠고기 반찬 무슨 반찬 하는 것은 그건 다 배부른 사람의 타령이지, 맛있게만 먹으면 살 안 찌는 법이 없더라 이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지금도 그렇다는 거예요. 그런 놀음을 했기 때문에 지금도 그래요.
그때의 12월 14일부터 12월 23일까지의 기간이 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선생님의 감옥생활에서 제일 인상에 남아진 기간이예요. 왜 기억에 남는 그런 기간이냐 하면 말이예요. 밥을 주는데 모밀을 주는 거예요. 모밀 알지요? 국수 만드는 메밀 말이예요? 이 면도 저 면 같고 저 면도 이 면같은 거 말이예요. 그것을 찧는데 큰 알 작은 알이 있기 때문에 껍데기를 벗기면 통합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해서 분량만 채워 가지고 배급을 해주기 때문에 큰 놈은 껍데기가 벗겨지고 작은 놈은…. 작은 놈이 더 단단하다구요. 이런 걸 벗겨지지 않은 채로 대강대강 해서 먹으라고 삶아 주니, 그 밥을 먹으면 오히려 붓는다구요. 김치라든가 하는 것을 먹으면 화합이 돼서 그렇지, 모밀밥만 먹으면 붓는다구요. 해먹어 보라구요.
또, 껍데기 있는 것을 주었기 때문에 이것을 먹으려면 한 시간 이상이 걸려요. 그런데 밥은 어떻게든지 15분 이내에 먹어야 됩니다. 밥을 버려서는 안 되겠고, 먹기는 해야 되겠고 이래 가지고 밥먹는 법을 연구하던 생각이 납니다. 그 밥을 먹고 소화가 안 돼서 설사가 나 가지고 고통을 받던 것이 감옥생활에 있어서 제일 잊혀지지 않는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 메밀밥 먹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와서도 척 상을 받으면 '아무 때 그랬지, 반찬이 없다고 투정을 할 수 있느냐, 이것도 고맙지'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한끼쯤 저녁을 안 먹더라도 '아침이 되면 저녁 안 먹은 것 얼마든지 탕감복귀할 수 있지 않느냐 저녁을 안 먹더라도 탓할 수 없다' 이렇게 되는 거에요. 통일교회 교인들이야 일 주일씩 금식을 한 사람들이 뭐 음식 타박을 해서는 안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감옥이라는 곳은 그러한 모든 문제에 있어서 귀하지 않은 것이 귀하고, 귀한 것이 귀하지 않은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재창조할 수 있고 새로이 재평가를 할 수 있는 곳이 감옥밖에 없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못 한다구요. 그러니 감옥은 나쁘지 않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젊은 사람들을 한번씩 처넣어서 공식적인 훈련을 시켜야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사람들도 길러 낼 수 있다고 선생 님이 생각하는 거예요. 기분 좋아요. 나빠요? (웃음) 대답해 보라구요.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기분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교육을 잘 받은 것이요. 가만 있는 사람들은 교육을 잘못 받은 것입니다.
자, 그러면 감옥까지는 안 가더라도 감옥에 갔다 하는 탕감적 훈련이라도 해줘야 되겠다 하는 것이 통일교회 교육법이요. 훈련방법입니다. 기분 좋은 일이예요. 나쁜 일이예요? 「좋습니다」 정말 그래요? 「예」
동네에 가게 되면 제일 못 먹으면서도 '음! 우리가 제일 잘 산다' 이렇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멋이라구요. 동네에 가서 보면 떡 밥을 굶고 있으면서도 큰소리하는 것은 통일교회 패입니다. 알겠어요? 밥은세 끼, 네 끼 굶어서 얼굴을 보면 그을러 가지고 어떤 사람이 보게 되면 삼십 리 밖으로 도망갈 수 있는 신세인데 불구하고…. 세 끼, 네 끼 굶었더라도 얼굴이 화평스럽고 웃음이 벌룩벌룩하고 희망에 찬 그런 얼굴을 하고 다니는 것은 통일교회 아가씨다. 거 기분 좋소, 나쁘오? 「좋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그 색시를 얻어 가는 신랑은 불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동네에 가게 되면 총각들이 귀를 쫑긋거리면서 통일교회 아가씨들한테 관심을 갖고 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 그래요. 안 그래요? 대답을 해야 말할 재미가 있지요. 저녁 때가 되어 허기가 져 가므로 말할 기분이 안 난다구요. 파장에 손이 맞아야, 장사가 잘 되어야 돌아올 때 신나는 거예요. 그래야 집에서 기다리는 여편네에게 쇠고기 근이라든가 무슨 옷 짜박지라도 사 가기 마련이라구요. 알겠어요? 「예」
그래서 통일교회는 그런 훈련을 시킵니다. 더구나 남자는 그렇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면 통일교회가 전도하러 나가게 되면, 형무소 훈련은 못 하더라도 그 비슷한 훈련은 시켜야 하기 때문에, 전부 다 돈 없이 전도를 내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식적입니다.
가 가지고 얻어먹는 놀음을 해라, 스스로 해결하라는 거예요. 얻어먹게끔 되어서 얻어먹게 되면 기가 막히지만, 얻어먹게끔 안 되어 있는데 얻어먹는 놀음은 신나는 놀음이예요. 알겠어요? 그런 것은 암행어사처럼 조사를 하려고 내려왔다든가 동네 인심 조사라든가 하는 그런 무엇이 있다구요. 특별 사명을 가졌다는 거예요.
만일 통일교회 청년들이 그 동네에 내려가 가지고 희생하고 봉사해서 그 동네를 살려 주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반대하는 녀석이 있다 하게 되면 다음에 출세를 해 가지고…. 옛날로 말하면 춘향이 못 살게 군 사람이 누구예요? 「변사또요」 변사또같이 될 수도 있다구요.
그러기 위해서는 거지가 되어 '여보, 인품 좋다는 이 동네 인품 좀 알아봅시다. 지나가는 젊은이 점심때가 되었는데 요기를 하게끔 인심 좀 써 보소' 눈을 바로 뜨고 하면 밥을 주는 거예요. '아이구 밥 주소' 이러면 안 된다구요. 겸손하게 '어험! 이러고 이러고 이런데, 배가 고픈데 밥을 좀 주소' 하고 권위 있게 하면 밥을 주는 거예요. 밥 얻어먹는 데도 수가 있다구요. 그런 법을 다 배워야 됩니다.
나는 어디 가서 밥을 얻어먹게 될 때, 암만 안 주겠다 하는 아주머니한테도 밥을 얻어먹을 자신이 있다구요. (웃음) 안 주면 상통을 봐 가지고 아주머니는 시아버지가 어떻게 되고 남편에게 소박맞게 생겼다 하면 양양거리게 되는 거예요. 성이 나서 양양거리면서 밥그릇을 들고 뛰쳐나와 주는 밥을 내가 먹었다구요. (웃음) 그럴 수도 있다구요.
밥 광주리 이고 가는 걸 쓱 보고는 뒤에 따라가면서 '아주머니 걷는것 보니까 참 품위 있습니다(웃음) 하면 '그래요?', '얼굴을 보면 이러이러한 팔자인데 걷는 모습이 이렇기 때문에 초년에는 조금 고생이지만 후년에는 이렇게 되겠소' 하면, '아이구 그래요' 하며 좋아합니다. 별수있어요? 거기에 또 응답하고 '무슨 밥을 해가요? 하면, '뭐 보리밥 무슨밥 해 가오' 할 때 '아이구 맛 없는 밥' 하면서-그때는 안 맞아도 좋다는 거예요- '내가 말한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아니예요' 하면, '아니긴 뭐가 아니예요. 어디 봅시다' 해 가지고 '야 이것 맛있겠다' 하면서 그 밥을 얻어 먹을 수 있다구요. (웃음) 그렇게 하면 밥은 얼마든지 얻어먹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기분 나쁜 게 아니예요. '아하 그 남자 멋지다 우리 남편이 저랬으면 좋겠다' 하는 거예요. 밥을 그렇게 대접하고도 자기 남편이 그렇지 못하면 돌아가서 한탄하게 된다구요.
자, 이왕에 얻으려면 어떤 남편 얻겠어요? 배고파서 빼빼한 신세가 되어도 '밥광주리를 이고 가는구만, 먹고 싶지만 할 수 있나 체면상 무슨상 남자상 못 해' 남자상이 그게 뭐예요. 배가 불러야지, 천리 길을 달려야 할 때는 밥을 먹어야 뛴다구요. 노상에서라도 얻어먹고 가야 합니다. '얻어먹기는 왜 얻어먹어, 달라고 해서 먹지' 하는 그와 같은 놀음이 필요하다구요. 알겠어요?
어떤 때는 동네 할아버지들이 모여 앉아 술을 마시고 있으면 안주를….
그럴 때는 '할아버지 안주 옆에 뭐가 있지요?’ 하는 거예요. 틀림없이 뭐가 있을 거라구요. 이렇게 하면 '있기는 뭐가 있어? 그럴 거예요. '내가 뭐 있는 것 봤는데요,' 보기는 뭘 봐' 하면, '빨리 여기 좀 보시라'고 하면서 안주를 입에 넣고 먹는 거예요. 그러면 별수 있어요?내가 먹고 싶으면 먹고 그렇게 하는 거라구요.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 술을 먹던 할아버지도 술 못 먹게 스톱시킬 수 있다구요. 그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 놀음을 하지 않고는 혁명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은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사흘 이내에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졸짜로 만드는 거예요. 얘기를 쓱 해 가지고 ' 이 녀석아, 너의 집은 어떻겠구만, 너 상통이 그렇게 생겼으니 팔자가 사납게 돼 있어' 이렇게 맨 처음에 한번 해 놓고 때려 몰면 어떻게 그렇게…', 어떻게 그런 건 너 자신이 잘 알지? 그래, 안 그래? ', '그렇습니다' 이렇게 세 마디만 하면 '아이구 선생님' 한다구요. 그것 필요하다구요.
여러분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집에 있는 색시를 뛰쳐 나오게 해야지 총각이 뛰어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려면 시집가는 놀음도 해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특명을 가지고 달리는 판국에는 나라를 위해서 도울 수 있는 일을 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우리 통일교회는 그것이 보통교회와 다른 겁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젊은 놈들을 그냥 두지 않아요. 나와 같은 훈련을 딱 시키고 있다구요. 그래 가지고 못난 사람이 되느냐? 망하는 사람이 되느냐? 절대 망하지 않아요. 못난 사람이 안 된다구요.
내가 외국에 나가더라도, 불란서나 이태리에 가더라도, 특히 이태리 같은 데에서는 통역자를 둘씩 데리고 얘기하지만 그 녀석들 배꼽을 빼게 하는 거예요. 나 혼자 '헛허허' 하고 쓱 웃고 나면 궁금하다는 거예요. 통역을 하게 되면 두 번씩 하기 때문에 한 십 분 걸립니다. 그러니 다 지나가고, 행차 후에 나발 부는 놀음이 벌어져요. 그런데 나발이 행차 때보다 더 크다구요.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아주머니들을 대하면 살림살이하는 법도 가르쳐 줍니다. '남편은 이렇게 모셔야 되지….' 해 가지고 '추운 날은 이렇게 하고 더운 날은 이렇게 하고, 봄날은 이렇게 하고, 가을날은 이래야 되지' 하는 거라구요. 그런 것 다 생각했다구요. 보라구요. 하나님이 한 사람의 아내를 맞을 사내를 무능한 사람으로 만들었겠어요? 그렇다고 여자 하나 만나자고 나선 여러분이 아니라고요. 그리고 뭐 이렇게 꺼떡거리는 남자 하나 못 휘어잡아요? 할 수 있다구요. 일생을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을 대하여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을 갖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소원대로 안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못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젊은 각시 총각들이 지방에 가 가지고 고생한다는 것이 나쁜 줄 알았더니 좋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치를 느껴 가지고 인생의 보람 있는 자기를 찾는 데 있어서는 그길밖에 없다고 하게 될때는 그길을 가기 마련이예요. 안 가기 마련이예요?갈 거예요. 안 갈 거예요? 가야 돼요.
오늘도 내가 우리 통일교회 기동대를 보고 대학생들인가 착각을 했어요. 내가 돈은 많이 안 주지만, 옷을 갈아입고 신사 되는 것은 하루에 될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거지가 신사 되는 것은 몇 시간에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사가 거지 되는 것은 천년 만년 해도 못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거기에서 누가 성공하느냐 할 때, 거지가 신사 될 수 있는 길과, 신사가 거지 될 수 있는 양면의 길을 닦아 놓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다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다. 어때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옷만 바꾸어 입고 노동판에 가게 되면 일등 노동자예요. 그럴 때는 '야, 이 녀석아' 하며 농담도 잘 한다구요. 발로 건드리면서 '야, 이 녀석아 너 뭐야' 그러면 친구가 되는 거라구요. 나는 사홀 이내에 내가 살 수 있는 길을 다 닦아 놓을 수 있습니다. 내가 그런 놀음을 했기 때문에 그런 사람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망하지 않습니다.
더우기나 전도하러 나가게 되면 그런 일이 얼마나 많아요. 강원도 같은 데 가보면 옥수수밭이 일렬종대로 서 있고 참외밭도 많습니다. 그 옥수수밭 같은 데 가 가지고 크게 '주인 있소?해 가지고 '나 지나가는 손님인데 옥수수 세 개 따 갑니다' 하고 따는 거라구요. (웃음) 주인이 안 들었으면 동네 사람이라도 들었고, 그렇지 않으면 동네 개라도 들었다구요. 주인이 오면 '아 당신이 주인인데 그 소리 못 들었어요? 그러면 주인 자격이 없어요. 도둑 맞아도 싸요' 이렇게 들이 면박을 주는 거예요. 그리고는 껄껄 웃으면서 '여보 젊은 사람이 주인을 만났으니 지나가는 손님으로서 내 양심상 터놓고 얘기하겠소, 할아버지, 아저씨 내가 며칠 가야 되겠으니 한 이십 개 따겠소' 하고 따 집어 넣는 거예요. 그러는데 어떻게 하겠어요?그걸 보고도 주인도 기분 좋아야 한다구요. '젊은 녀석, 맞아 남자는 저래야 돼' 그런다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해 보라구요. 남자는 그래야 출세를 합니다.
젊은 녀석이 그런다면 '야 저거 우리 사위 삼았으면 좋겠다. 우리 손주 사위는 저런 녀석을 삼아야겠다. 야야 오라 오라'하고 뜻 있는 사람 같으면 자기 안방에다 모셔 들이는 그런 놀음을 한다구요. (웃음)
내가 웃을 얘기 한번 할까요?남의 선보러 가 가지고 그 집의 잔치 떡을 다 들어먹고 왔어요. 떡 몇 말을 다 먹고 왔다구요. 내가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요. 그렇게 하겠다면 하는 거라구요. 선생님은 세계를 요리하겠다고 나선 사내입니다. 무엇이야 못 하겠느냐 이겁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못 한다는 것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합니다. 달리기를 하더라도 일등, 이등, 삼등, 삼등 이하에 들어간 일이 없어요. 무엇이든지 내가 한다 하게 되면 일등 아니면 안 됩니다.
고등학교 때는 내가 씨름 선수였어요. 챔피언이었다구요. 깔보지 말라구요. 가다가로 획- 하게 되면 숨은 실력이 드러납니다. 여러분들에게 자기 보신법도 가르쳐 줘야 되겠어요. 바쁘면 낚아채서 넘어가게 한다는 거예요. 그런 훈련을 다 했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건 왜?내가 잘먹고 잘살려고? 「아닙니다」 내 얼굴이 생기기는 이렇게 생겼지만 나라를 살리고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원수들이, 악당들이 만일 길을 막게 되면, 옆구리를 차고라도 가야 합니다.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다면 절대 가야 된다구요. 그렇다고 해서 죽이는 놀음이 아니라구요. 죽이면 안 된다구요. 그런 신념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을 쓸모 있고 멋진 사나이, 아낙네들로 만들어 주겠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꽁무니를 이리 빼고 저리 빼고, 이리 변명하고 저리 변명하는 간나 놈 간나 년들은 때려 죽여야 됩니다. (웃음) 왜 웃어요?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그런 녀석은 용서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감옥에 들어가고 싶어 들어갔나요?감옥에 왜 들어 갔어요?우리 집에 먹을 것 있다구요. 그리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참 사랑합니다. 내가 왜정 때부터 갑자기 어디 간다 해 가지고 없어졌다 할 때는 감옥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웃으심) 저 녀석은 태어나기를 감옥을 위해 태어난 것 같거든요. 걸핏하면 감옥에 가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 어머니 속을 많이 썩혔어요. 그렇지만 내가 도둑질해서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바른 말하다가….
내가 국민학교 졸업할 때 식장에서 대웅변을 했어요. 서장 군수들을 앞에 놓고 일본놈들 보따리 싸 가지고 가라고 하면서 들이 깠어요. 국민학교 학생 때부터 그래 놓으니…. 그래서 경찰서장한테 붙들려 가서 담판한 사람이라구요. '이런 이런 내용이 옳지 못한 데 이런 경우에 가만 있겠느냐? 이래 가지고 그때부터 레테르가 붙은 거예요.
뭐 어디 일본에 가더라도 불청객이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거예요. 동경에서 잠시 어디를 가게 되더라도 '미스터 문 어디 간다' 해 가지고 불청객이 언제나 뒤꽁무니에서…. 안전하기야 안전하지요. 그런 놀음을 해 온 사람이라구요. 밥을 굶어서? 아닙니다. 우리 친구 가운데는 일본에 가 있을 때 공산당하고 합작 공작을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때 그들을 보고 '너희들하고 나하고 오래지 않아 싸울 날이 있을 것이다' 하고 선포했다구요. '그렇지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공산당이든 민족주의든 합해야 된다' 이래 가지고 그때 별의별 놀음을 다 했어요. 북경을 중심삼고 하관에서부터 안동현까지 차로 연락하는데는 차바퀴 밑에서 여덟 시간, 아홉 시간 달리는 그런 놀음까지 했다구요.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런걸 생각해 보면 통일교회 청년들, 아직까지 내 마음에 느낌받는 것이 덜하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내가 밥이 그리워서 그랬어요? 밥은 얼마든지 있었다구요. 우리 형님만 하더라도 훌륭한 형님입니다. 그는 이미 해방될 날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영계를 통해서…. 형님은 지병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하늘을 믿는 사람에게 지병이 찾아올 수 없다' 이래 가지고 그 자리에서 병을 고친 사람입니다. 영계를 다 통한 그런 형님이예요. 해방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다 알았다는 거예요.
또, 동생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았어요. 동생이 무슨 사명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세계에서 제일가는 동생을 가졌다는 자부심을 갖고 산 형입니다. 그래서 내가 '돈 보내소' 하고 전보만 하게 되면 집을 팔아서라도 보냅니다. 지금으로 말하여 몇만 원, 몇십만 원, 몇백만 원 보내 달라고 하면 보내게 되어 있었어요. 내가 돈이 쓰고 싶으면 언제나 쓰게 돼 있었어요. 내가 전보 한 장만 하면 형님, 어머니, 아버지가 내 말 듣게 돼 있었습니다. 벌써 열다섯 살 이내에 전부 다 내 손아귀에 집어넣고 어머니 아버지를 다 내가 조종했습니다. 그런 사람이라구요.
어머니도 성격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회초리로 쳐서 항복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치는 성격입니다. 나도 그 어머니를 닳아서 고집이 대단하다구요. 한번 시작하면 항복하기 전에는 후퇴를 할 줄 모르는 거예요. 그렇다구요.
내가 기성교회하고 싸울 때에도 '너희들이 죽든가 내가 죽든가, 또 너희 패들이 다 죽든가 우리 패들이 다 죽든가, 우리 패가 한 사람이라도 남아 가지고 이겼다는 말을 들어야 죽더라도 무덤에 가서 쉬지, 그렇지 않으면 무덤에까지 가서라도 눈을 부릅뜨고 싸우겠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부모, 사랑하는 형님에 대해서 효도를 못 했습니다. 왜? 여러분과의 인연 때문에….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힙니다. 차라리 여러 분들을 만나지 않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 가지고, 친척, 문씨 종족을 움직여 가지고 통일교회 일당을 만들었으면 내가 여러분을 대해서 이렇게 딱하고 어려운 말을 할 입장에 안 서고, '여봐라' 하면, '예이' 하고 다 통할 수 있게 만들었을 거예요.
이 땅강아지 새끼 같은 것들을 전부 다 모아 놓으니 별의별 것들이 다 있다구요. 똥 싸는 녀석이 없나, 방귀 뀌는 녀석이 없나, 먹겠다는 녀석이 없나, 재 뿌리려고 하는 녀석이 없나, 이것들을 정상적으로 관리하려니 내 허리가 휠 지경이라구요. 여러분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기분 나빠도 할수없어요. 사실을 얘기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그 목적이 여러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려야 할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그 목적을 위해서 이런 놀음을 치닥거리하려니 참고 가야 하는 겁니다. 그걸 헤아려야 된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왜 그러느냐?밥이 그리워서 그런 것이 아니고 고생이 좋아서 그런 것 아닙니다. 나는 욕먹고 못 있는 사람입니다. 동네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억울하게 매맞으면 그 어머니 아버지까지 항복시키지 않고는 밤잠을 못 잔 사나이라구요. 알겠어요?
내가 그렇게 지독한 사람인데, 기성교회한테 수십 년 동안 반대를 받아 화가 꿀덕꿀덕 치밀어 올라…, 무사가 됐으면 한칼에 전부 다 창자를 잘라 독수리밥을 만들고도 남을 수 있는 그런 원수들인데도 불구하고 참고 있는 거예요. 그 분함을 하늘은 압니다. 탕감복귀의 역리적인 효과를 바라는 하늘의 심정이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쓰러뜨리는 것이 지당하고 또 다스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참으니까 하늘이 같이하지, 본래부터 망하고,참지 못하여 빵점밖에 될 수 없는 것이라면 무슨 탕감복귀가 되느냐 이거예요. 그건 효과가 없어요. 본래부터 그렇게 살 사람이 참아 가지고 무슨 탕강복귀가 되겠어요? 힘이 없어질 것인데, 처음부터 백번 천번 질 녀석은 모진 매를 맞지, 무슨 호강매 맞느냐 이거예요.
머리가 한번 팅 하면 쓰러질 판국인데도 불구하고 꾹 참는 데 있어서 탕감복귀의 사연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알겠어요?
통일교회 만만하게 생각지 말라구요. 내가 못났다는 말을 듣고는 동네의 할아버지 몇 사람이라도 굴복시켰어요. 그런 사람입니다. 별의별 소문을 다 내고 별의별 뭐 욕을 해도 내가 못나서 가만 있는 게 아니라구요.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온다고 탓하지 말고, 바람이 불어 흔들리게 되면 뿌리가 얕다고 탓하라는 거예요. 내가 기반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오면 꺾이는 게 아니냐? 알겠어요? 내가 서러운 것은 내가 기반을 못 닦았기 때문에 서러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 길이 바쁩니다.
한국의 기성교회에 어느 훌륭한 목사가 기반을 닦았으면 무슨 기반을 닦았을 것이냐? 선생님은 일대에 지금 세계적인 기반을 닦고 있습니다. 과거에 왔다 간 어떤 성현도 못 한 놀음을 내가 했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기반 닦고 갔어요? 10개 국의 사람들을 전부 다 한 자리에 끌어다가 결혼도 시켜 줬습니다. 공자가 10개 국의 청년들에게 환영받아 봤어요? 성인 가운데에서 인생을 중심삼고 출세를 했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지금 어느 성인보다도 나은 출세를 하고 있습니다. 못난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내가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 사람의 돈 안 가지고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시아를 움직일 수 있는 일을 하더라도 아시아의 돈 안 가지고도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누구보다도 훌륭한 사람이라구요. 못나서 그런 게 아니라구요. 내 갈 길이 바쁘다구요.
문제는 실력입니다. 문제는 실적입니다. 실력과 실적만이 최후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동적인 결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실적을 보람 있게 최후의 결전장에 승리의 요건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리라도 가는 거라구요. 실력을 배양하기 위해서 가는 거라구요.
감옥에 있을 때 목사들이 전부 다 나한테 항복을 했습니다. 흥남 수용소에 가니까 목사가 한 20명쯤 모여 있었어요. 이름난 목사, 5도의 교회 총회장까지 왔더라구요. 잘났다는 목사들이 들어왔지만 내가 전부 다 굴복시켰어요. 칼을 가졌다고 해서 무서운 것이 아니예요. 그보다도 정의에 입각한 놀음을 하려면 나은 실력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실력과 실적이 없는 사람은 패배의 쓴 잔을 마셔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자랑하는 학교가 있으면 내 손으로 그 이상의 학교를 짓는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자랑하는 교회가 있으면 내 손으로 그 이상의 교회를 짓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출세했다는 사람, 일국의 주권자가 못 하는 놀음을 지금 내 손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을 갖고 지금 나오고 있는 거라구요.
그러기 위해서는 훈련을 해야 돼요. 큰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벼랑 끝에 섰더라도 뿌리를 깊이 박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갈 길이 바쁘다구요. 알겠어요? 「예」
선생님이 뿌리가 되면 여러분은 가지가 되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여기 나무가 왜 이렇게 꼬불꼬불하냐? 땅은 같은 땅인데 왜 이 나무는 이렇게 생기고 이 나무는 이렇게 생겼느냐? 그것이 왜 그런지 알아요? 뿌리가 뻗는 데 있어서 이렇게 가다가 굳은 땅이 있게 되면 이렇게 돌아가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생긴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전통을 올바르게 이어받아서 어디든지 바로 뿌리를 뻗어라 이거예요. 보라구요. 이 굳은 땅을 뚫고 나가게 되면 옥토가 되는데, 딱 한 꺼풀이 가려 있기 때문에 이것을 뚫고 나가는 날에는 나무 중에서 첫째 가는 나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깊다고 피해 가게 된다면 제일 꼴래미 마른 나무가 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나라가 가지 못하는 어려운 길을 뚫자는 거예요. 알겠어요? 종교가 가지 못하는 어려운 길을 뚫자, 세계가 가지 못하는, 인류가 가지 못하는 길을 뚫자! 공산당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것이 세계적으로 사상적인 문제에 있어서 파탄의 장벽이 되어 있는데 이것을 뚫자! 하나님은 문제가 없는데 사람이 문제 되니 이것을 뚫자!
기성교회와 같은 관념을 가지고 생활을 해서는 안 되겠어요. 지금까지의 습관적인 관념을 가지고 통일교회를 대해서는 안 되겠어요. 보는 관이 달라야 합니다.
자, 그렇게 알고, 더우기나 젊은 청년 남녀들은 형무소에 가서 교육은 못 받더라도 삼천리 반도 자유무대에 있어서…. 선생님은 20대 전에 벌써 팔도강산을 다 다녔습니다. 전라도, 경상도 전부 다 자진해서 다녔다 구요. 왜?뜻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내가 서울에 있다고 서울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삼천리 반도를 다 사랑해야 됩니다. 서울에서 눈물을 흘려도 애국애족하는 심정을 가지고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전라도 벽지에 가서도 하늘이 같이 사랑할 수 있는 땅이 되게 해달라고 눈물 흘려야 됩니다. 그런 놀음을 다 했다구요.
또, 명승지를 다 다녔어요. '나 문 아무개가 관광객으로 명승지를 찾아왔지만 나는 다르다' 다르다는 거예요. 그 누구가 몰라도 다르다구요. 남과 같아 가지고는 안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달라야 됩니다. 길든가 크든가 높든가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 환경에 있어서 주목의 대상이 될 수가 없고 중심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는 것이 자연이치가 아니냐? 그렇지요?
그러려면 시작부터 달라야 됩니다. 출세하겠다는 사람, 세계통일하겠다는 사람 전부 다 거꾸로 지역 찾아가는 거예요. 앞으로는 전부 다 그런 훈련을 시킬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 오래 있어 가지고 고생한 사람은 앞으로 전부 다 어느 회사 취직해서 사는 사람보다 더 좋은 집으로 해결해 주려고 합니다.
통일교회 믿는 사람들은 전부 다 통일교회 안 믿는 사람보다 나아야지요. 그걸 내가 만들어 주겠어요. 오래 안 가서 전부 다 외국 순회를 해야 되겠어요. 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 「하고 싶습니다」
고생한 사람일수록 출세할 수 있는 소질이 있는 사람이다. 아니다?어느 거예요? 소질이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알고 형무소살이 일년 반 못 했지만 3배 이상의 어려운 자리에 서서 훈련해 가지고 이 나라의 전통적인 사상을 이어받아, 현재에 살고 있는 이 민족 앞에 영향을 주자는 것입니다. 앞으로 자기 후손들 앞에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그 방향을 제시해 주어, 그 후손들이 자기 선조가 당당한 권위를 가졌다는 것을 자랑하면서 살 수 있는 후손이 돼야 타락한 후손의 자리를 모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후손들이 그 선조를 찬양해요. 헐뜯어요? 선조를 비판해요. 찬양해요? 비판한다구요. '아담 해와 할미 할아비가 잘못해 가지고 요 모양 요 꼴의 세계를 만들지 않았느냐' 하니 아담 해와가 영계에 가 있어도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후손들이 타박하는 조상이 되면 아무리 큰소리를 쳐도 안 되는 것입니다. 5천년 역사를 가졌다는 한민족의 선조들이 지금까지 뭘 했어요?잘났다고 나서면 큰일나는 거라구요.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회 선조들이 뭘했어요. 여러분, 통일교회 문선생 대해 가지고 어느 누가 선생님 앞에 나와서 이러고 저러고 말하게 못 돼 있습니다. 왜?실적이 없기 때문에….
선생님은 수택리 공장을 사랑하는 데도 누구한테 지지 않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데도 누구한테 지지 않았고, 싸움의 노정에서도 누구보다 선두에서 치열한 싸움을 해 나왔습니다. 지금도 내가 빛지는 자리에 서지 않습니다. 왜?내가 신세를 끼치고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누가 입을 열어 말 못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님을 탓할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 갖다 세워 놓으면 이 선생님만큼 믿을래요? 안 믿게 돼 있다구요. 내가 욕을 하고 발길로 들이차고 밟더라도 나에 대해서는 불평 못 하게 돼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놀음을 하지, '하자' 하면 해야지 별수 있어요?
선생님이 '하자' 하는데 '나는 안 하겠다' 하는 사람 손들어 보라구요. 한번 자신 있게 '나는 안 하겠다' 하는 젊은 청년 남녀들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구요.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있어야 재미가 좋을 텐데…. (웃음) 없어요. 있어요? 「없습니다」 한 사람도 없어요? 「예」 그러면 전부 다 그러겠다는 패들이예요? 「예」 기분 나쁘지 않은 패들입니다. 그러니까 통일의 용사들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자, 해가 졌으니 결론을 지읍시다. 이렇게 남다른 훈련을 받고 남다른 길에서 남다른 가치 추구를 하게 되는 원인은 무엇 때문이냐?내가 잘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를 보다 가치 있는 나라로 만들고 세계인류를 보다 가치 있는 인류로 만들기 위해서, 땅을 대하는 하늘을 보다 가치 있는 하늘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그런 가치의 자리를 가졌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를 우리로 말미암아 가치 있게끔 시정할 수 있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입니다.
다르다구요.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공장을 짓는데 밤 늦게 열 시까지 일을 하고 아침에 여섯 시 반부터 일어나 가지고 하루종일 일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밥을 먹는 녀석들을 잡아다가 불러 세워 놓고 기합을 주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들 편안한 자리에서 밥이야? 선생님이 지시했으면 지시한 대로 해야지' 하고 한바탕 닥달을 했더니 달라진 거예요. 선생님이 자기들보다 더 열심이니까….
새벽 세 시 반부터 일어나가지고'어저께 혼내줬는데 또 가보자' 해 가지고 공장에 가는 거예요. '이것들 틀림없이 이랬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했으면 내가 가만 안 둔다' 해 가지고 새벽같이 갔습니다. 본부에서 공장 왔다갔다 하려면 두 시간 이상 걸립니다. 그런데도 세 번까지 왔다 갔다했어요. 그러니 자기들이 이러고 저러고 할 여지가 없어요. '이놈의 자식들, 책임자가 뭐야? 책임자라면 대중 앞에 주체자가 돼야 한다'고 야단을 쳤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그랬으면, 사회의 젊은 사람에게 망신을 주고 괄시를 하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그렇지만 당당히 그럴 만하다는 거예요.
내가 집을 짓게 되면 40일 이내에 어떻게든 지어 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 수련소는 28일 동안에 지었어요. 또, 청평 수련소는 8일 동안에 200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집을 지었어요. 젊은 사람은 단결하면 지을 수 있는 거예요. 단결하면 기적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늙은이들 단결해 가지고 기적이 벌어졌다면 안 되지만…. 늙은이는 구경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섭섭히 생각해도 할 수 없다구요. 사실이 그러니까요. 섭섭하게 생각하면 지옥가고 섭섭하게 생각 안 하면 천국간다구요. (웃음) 거기에 늙은이가 있으면 뭘하겠어요? 밥타령이나 하지.
젊은이들을 단결시켜야 됩니다. 젊은이가 단결해서 자기들을 위해서,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 실제로 열만큼 하고 백만큼 하라는데 불평할 사람이 누가 있어요. 불평하는 사람은 입을 째 버려야 합니다. 이놈의 입이 잘못되었으니 째 가지고, 불평 못 하게 되어 있다구요. 입은 째더라도 혓바닥은 자르면 안 되니까 이렇게 벌리고….
양심은 있거든요. 통일교회가 생각하는 그런 운명권내로 가자는 거예요. 서양 사람도 그렇습니다. 요전에 내가 미국 갔을 때, 미국놈들 전부 다 붙잡아 놓고 이놈들 전부 다 모가지를 자른다고 했어요. 조그만한 동양 사람이 와서 다부지게 얘기하니까, 맨 처음에는 '왜 그럴까 농담삼아 그러겠지' 그러더니 자꾸하게 되니까 '아이쿠' 하며 수근수근 수근수근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딱 맞았다 하는 날에는 천지가 용납할 수 없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한다면 하는 거라구요. 내가 손을 대 가지고 실패한 것이 없습니다. 내가 손을 댄 것은 반드시 세계적인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보라구요. 내가 손대 가지고 통일교회가 망했어요? 세계적인 무대의 통일교회가 됐다구요. 내가 국제승공연합을 만들어 가지고 국제승공연합이 망했어요? 이제 아시아 지역이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었어요. 내가 어린이 무용단 손대 가지고 망했어요? 리틀엔젤스 만들어 가지고 망했느냐구요? 세상 사람들은 리틀엔젤스 무용단이 통일교회와 관계 있는지 모르고 있다구요. 통일교회가 하는 것이 많습니다.
교수들을 일본에 데려가고 뭐 세계평화교수협의회를 만든 얘기를 한바탕 하면 '아이쿠 선생님 죽어도 붙들어야 되겠다. 죽어도 놓아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야기를 잘 안 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따라오겠다는 사람이 많은데, 시시하고 지극히 못생긴 것들이 찰거머리같이 달라붙어서, 남보다 먼저 큰 것들을 붙잡아야 할 텐데…. 그런 사람 앞에서는 절대 그런 얘기 안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 말이 많아도 공석에 서면 욕을 들이 퍼붓는 거예요. 그래서 기분 나빠할 때까지 욕을 퍼붓는 거라구요. '아이쿠 통일교회 목사라더니 목사가 아니고 깡패구만 깡패 이런 사람은 인연이 안 되겠기 때문에 쫓아내기 위해서는 그런 놀음을 한다구요.
어저께 텔레비전을 보니까 일본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조선 사신들 보는 앞에서 뭘하느냐 하면, 조선 사신들이 일본을 방문한 것은 과연 그가 조선을 침략할 수 있는 인물이냐 아니냐를 감정하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알아 가지고 그 반대의 놀음으로 미친 놀음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사신들이 '그 사람은 조선 침공이 불가능하다' 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보면 '야 그 녀석 상통꼬락서니 안 되지만 그 멋지다' 생각을 했어요.
통일교회 문선생도 이거 벌거벗고 춤추고 어떻고 어떻고 쇼를 하는 거예요. 그 쇼에 기성교회 목사들 다 걸려 가지고 '그렇지 그렇지' 하는 바람에…' 발을 얽어매고 목을 매 가지고 가만히 지시해도 '아이쿠 아이쿠 아이쿠…' 문선생이 못나서 그 놀음 하는 게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예」 통일교 문선생이 못나지 않았다구요. 자랑이 아닙니다. 이미 각본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못나지 않았어도 그 놀음을 하는 거예요.
여의도에 우리 큰 집 지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일년에 몇십억이라는 돈을 우리가 대야 할 텐데 여의도 집짓고 난 다음에는 돈을 무엇에 쓸거예요? 대한민국 정부에서 돈 필요하면 내가 줄 거라고 하게 되면 와서 사바사바하는 패들이 많이 생길 겁니다. 알겠어요?' 일년에 한 100억 원 이상씩 내가 정부 각 기관에 기부할싸' 하고 정문에 벽보라도 떡 붙여 놓고 '누구든지 필요한 사람 신청할싸' 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장관들 싸움이 벌어질 거라구요. 그럴 때도 있을지 모른다구요.
한국이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을 요리할 것을 계획하고 있고, 일본은 지금 3분의 1은 내 계획권내에 들어와 있습니다. 장개석은 내가 손대지 않으면 갈 길이 없다는 것을 1차, 2차 통고했지만 그걸 안 들었다가 망하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 제3차 통고를 해주는 사람이 가 있습니다. 한국은 그걸 모르고 있다구 이놈의 자식들 내 말 안 듣다가 싸지! 그러다가 '그렇게 훌륭한 분이 누군가 했더니, 아하! 한국에 있는 문선생이라는 분이구만 할 때가….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선생님이 이 놀음을 할 때까지 밤이야 낮이야…. 밤이 있으면 낮이 있을 것이 아니냐? 내 속에 맺혀 있는 한이 있기 때문에 그 한을 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대단히 바쁘다구요.
하늘의 동역자가 통일교회 젊은 청년 남녀 가운데에 몇 사람이나 되느냐? 올바른 때를 가지고, 올바른 실적을 가지고, 올바른 심정을 가지고,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진 청년 남녀들이 몇 녀석이나 되느냐? 간부로부터 전부 다 지금도 내가 감정하고 있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그렇게 데데한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내가 주는 상속권, 내가 결정하는 자리는 역사에 빛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까다롭다면 까다로운 사람이예요. 크다면 무한히 크고, 작다면 무한히 작은 사람이예요. 알겠어요? 못살게 감고 들어가게 될 때는 안 감길 수 없다구요. 못난 사나이가 아닙니다. 못난 사나이가 되자고 이러는 것이 아니라구요.
내 자신을 알지만, 이러한 모든 거름더미가 되어 있는 것은 씨가 있기 때문입니다. 씨가 있기 때문에 이런 거름더미가 필요한 거라구요. 씨가 없으면 거름더미는 거름더미로 끝나는 겁니다. 그렇지만 참다운 옥토가 있고 참다운 씨가 있을 때 거름더미가 있으면 그 거름더미는 빛나는 영광을 소개할 수 있는 좋은 터전이 되는 것이 아니냐.
올바른 씨는 있다. 통일교회 원리를 중심삼고 올바른 씨는 있다. 올바른 터전은 있다. 올바른 거름더미가 필요하니 통일교회 교인은 거름더미가 되라, 거름더미가 되라는 거라구요. 그 거름이 옥토와 하나된 곳에 씨를 뿌리면 그 씨가 결실되어 수확의 결과로 나타나게 될 때, 만민이 그 수확의 결과 앞에 머리를 숙이고, 그 종자를 받아 가겠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날이 불원한 장래에 올 것이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활 철학이다 이겁니다.
그런데 거름더미가 못 되면 망하는 거라구요. 그런 사람은 통일교회에 필요 없다구요. 당장에 보따리 싸 가지고 가라는 거예요. 관계없다구요.
오늘 이와 같이 모여 선생님의 출감을 축하하는 데, 감옥이면 감옥을 내가 갔다. 남이 가지 않는 그런 길을 내가 왜 나가느냐? 그것은 누구보다도 민족을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사랑하기에 미쳐 보자! 나라 사랑하기에 미쳐 보자!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미쳐보자! 이러한 일념에서 지금까지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그런 스승의 전통을 여러분이 본받기 위해서, 선생님이 가는 길을 따라가기 위해서, 그 길을 이어받기 위해서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믿고 나오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예」
시련을 받고 나서 '아이쿠 됐다'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선생님은 아직까지 내가 '됐다'고 생각하면서 과거를 중심삼고 자랑하려고 하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아직까지 갈길이 남아 있습니다. 훈련을 받고 나서도 아직까지…. 더 훈련을 받아야 되겠다. 받고 나서도 '아이고 좋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복귀의 무대가 아직까지 남았기 때문에, '오냐, 지금 닥치는 어려움이 있다면, 이것은 내일을 위한 수련장이요 훈련장이다. 여기를 기준을 삼아서 여기서부터 다시 가야 되겠다. 1단계 2단계 3단계 폭발해 가지고 또 가야 되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속적인 폭발을 해서 그 이상의 목적지에 상륙을 해야 됩니다.
거기서 당장 실천이 안 되더라도 내가 하겠다 하게 되면…. 두고 보라구요. 그 다음에는 다 되는 거예요.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저 편안하게 먹고 편안하게 살다가 편안한 자리에서 죽겠다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그런 시시한 녀석은, 간부들은 전부 일소해 버려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내가 책임자들을 전부 다 보고 있어요. '저 사람은 어느 때까지 쓸 사람밖에 못 된다. 어느 일밖에 못 맡길 사람이다' 이렇게 다 감정하고 있는 거라구요. 말은 안 하지만 말이예요. (이후의 말씀과 기도의 앞 부분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아버님, 통일이라는 이름은 훌륭한 이름이옵니다. 통일이라는 그 말은 거느려 가지고 하나를 만든다는 뜻이옵니다. 거느려 가지고 하나를 만든다는 그러한 가르침의 모임이 통일교회이옵니다.
아버지, 거느려 가르치기 위해서는 총과 칼을 가지고 무력으로 그러한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눈물과 피와 땀과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뭇 사람이 동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 서 가지고 거느려 지도할 수 있는 주체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본래의 통일의 원인이 생겨난다는 것을 생각 하게 되옵니다. 또한, 그것을 보여 주고 그것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주체자로 등장함으로 말미암아 본질에 타당한 통일교회의 무리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옵니다.
이런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통일교회 문선생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그 개인이 가는 데 있어서 개인을 표준하여 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대표한 자리에서 세계를 표준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승리한 터전 위에 가정이 또 그러한 자리를 대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로 말미암아 나라가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로 말미암아 세계가 그러하게 될 때에, 지상에는 행복의 천국이 찾아온다는 것이 원리를 통한 가르침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당신이 기뻐하는 자리에서 세계인류가 손에 손을 붙잡고, 민족 감정을 초월하여 당신의 심정에 사로잡혀 형제 아닌 형제들이 형제 이상으로 사랑하고, 자기 민족 아닌 민족들이 자기 민족 이상으로 사랑하고, 자기 국가가 아닌 국가들이 세계를 향하여, 어느누구보다도 충절을 다할 수 있는 충신 열녀로 나타나 거룩한 당신의 인연을 찾고 당신 앞에 바쳐지게 될 때만이, 아버님의 아들딸의 인연이 맺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사실을 알고 난 그날부터 저희가 가는 길은 고달픈 길이었습니다. 저희가 서 있는 자리는 고독한 자리였습니다. 저희가 서 있는 자리는 고난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달프고, 아무리 괴롭고, 아무리 고난의 길이라 해도 그것은 당신이 원하는 목적을 완성하기 위한 자리였기 때문에,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충의 도리, 효의 도리를 다해야 할 인연을 갖고 난 인간들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그 길을 가기 위한 맹세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자신들임을 저희는 자각하였습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역사시대의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얼마나 당신 앞에 범한 죄가 컸던가를 회고할 적마다. 역사의 죄를 넘겨 받은 그 후손의 입장으로서 저희들은 당신 앞에 얼굴을 들고 나설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껴야만 되겠습니다. 자기가 죄인된 부끄러움보다도 역사시대에 선조가 지은 죄의 인연을 넘겨 받았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직시해야 되겠습니다. 이 땅 위에 선조들의 부족한 것을 사죄드리는 그러한 후손들이 나오기를 얼마나 바라고 있는가를 원리를 통하여 저희들은 배웠습니다. 저희들은 불쌍한 무리인 줄 알았더니 행복한 무리라는 것을 이제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러한 가치를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님, 이제 역사적인 죄를 탕감시궈 줘야 할 것은 물론이지만, 오늘의 세계를 바라볼 때, 개인을 넘어서 가정, 가정을 넘어 씨족, 씨족을 넘어서 민족, 국가, 세계, 세계뿐만이 아니라 천주에 이르기까지 당신이 가야 할 한 많은 십자가의 길이 이렇게 가로막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자연이요. 아버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아침 햇빛인데도 불구하고 아버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자연을 맞지 못하고 계신 것을 알고 있는 저희들은, 그 고개를 넘을 때까지 눈물을 흘리고 피를 흘려서라도 책임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책임이 남아 있는 것을 아는 통일교회 무리들은 내 개인의 안일을 찾는 것보다도 당신의 안일한 그날을 위하여…. 개인을 넘어 가정의 안식처와, 민족의 안식처와, 국가와 세계의 안식처를 위하여 자신의 수난길은 당연한 것으로 알고 나서는 효자들이 돼야 할 것을 몇천 번이 라도 맹세한 무리였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드려야 할 죄의 후손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통일교회 역사를 안 통일교회의 일원으로서 이 나라와 세계 앞에 책임 못 한 부족함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해야 할 자신들이 얼마나 얼마나 원통한가를 느껴야만 되겠습니다.
청춘시대에 혹은 장년시대에 통일교회에 들어왔지만, 당신을 위로할 수 있는 실적을 못 가진 부끄러운 모습임을 스스로 알고, 이제라도 당신이 원하는 위로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 천만 번이라도 죽음길을 달게 받고 가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 이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뿐만이 아니라 저희들은 이 땅 위에 지나가는 손님, 행객과 마찬가지의 운명이옵니다. 한번 왔다가는 한번 필시 가야 할 인생길, 왔던 걸음, 또 가야 할 걸음을 걷고 있는 생애노정에 있어서 무엇을 남겨야 되겠습니까?
저희가 온 것은 이 땅 위에 신세를 지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옵니다. 자연 앞에, 그 나라 앞에, 하늘 앞에 신세를 지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신세를 끼치기 위하여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땅 위에 온 본연의 책임을 다하고 갈 줄 아는 통일의 무리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가고 난 이후에 찾아오는 통일의 후손들이 길이길이 역사와 더불어 선조의 영광과 선조의 공적을 찬양할 수 있는 빛나는 역사시대를 이제부터 준비해야 되겠고,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역사시대의 기원과 전통을 저희 생활무대에 남기기 위해서 모진 싸움을 해야 되겠습니다. 모진 어려움을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보장을 받고, 당신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생애노정을 남기고 가는 통일의 역군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이날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오며, 이날 여기에 동참한 자녀들에게 이날을 기쁨의 날, 추억의 날로 남겨 주시옵고, 지방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날을 축하하고 정성들여 축사를 드리거들랑 천만 배 복을 베풀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0월 이후에 계획되는 모든 것이 당신의 뜻과 일치되게 하시옵고, 오래지 않아 한국을 떠나야 할 입장이오니, 이 나라의 절박한 정세, 아시아에서 고립된 고아와 같은 입장에 서 있는 한국을 아버지께서 맡아 주셔야 되겠습니다.
불쌍한 민족, 불쌍한 통일의 무리들이 있는 것을 아는 아버지여, 저희들이 밤을 새워 간구하고 생활생활 가운데서 몸부림치며 뜻! 뜻! 뜻!뜻의 길을 가겠다고 마음을 조아리면서 찾아 나오던 불쌍한 통일의 무리를 기억하시는 아버지여, 동정의 마음을 가지시사, 이 나라 이 민족을 남기기 위한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이러한 무리가 있는 것을 귀엽게 보시고, 금후에 남북의 불쌍한 처지를 당신이 맡아 주셔야 되겠습니다.
금후에 아시아, 금후에 민주세계가 갈 길을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저는 보아서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책임져 주셔야 되겠습니다. 금후에 아시아가, 금후에 세계가 민주세계가 갈 길을 누가 책임질 수 없는 것을 저는 보았고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책임져 주셔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여, 저 공산권을 박멸할 수 있는 하늘의 방패가 필요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러한 소수의 무리가 이제 이 길을 책임져야 할 사명이, 그러한 사명이 통일의 기치 아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마치 골리앗 앞에 다윗과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저희들은 벌거숭이입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버님, 당신만이 재산이요. 당신만이 무기요. 당신만이 모든 승리의 요건으로서 마음으로 모시고 생활로써 전개시키려 하는 것이 저희의 뜻이기 때문에 당신을 믿고 나서는 다윗의 길 앞에 골리앗의 갈 길이 막힌다는 것을 아는 저희들은 하늘의 정병이 돼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뜻을 위하여 생명과 재산을 다 투입해야 되겠습니다. 죽음과 더불어 승리를 당신 앞에 돌리고자 하는, 당신의 마음속에 잊혀질래야 잊혀질 수 없는 하늘의 정병의 모습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이 금후의 통일교단에 속한 저희들의 사명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일을 보람으로 느끼면서 계속 행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물어 가는 이 시간 위에…. 이 땅은 당신이 이미 소원한 땅이었습니다. 저희들이 이 땅에 모일 적마다 이 땅을 마련하기 위해서 당신 이…. 천신만고의 수난길을 각오하고 남모르는 서글픈 자리에서 이 땅을 마련하였던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 동산에 당신의 거룩한 뜻이 머무시옵고, 이 땅을 생각하고 이 자리에 참석한 자녀들의 발길이 헛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제 통일교회의 무리들이 가는 길 앞에 다시는 이런 수난길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동정이 그 생애노정을 책임져 주시옵소서. 빛을 발할 수 있는 무리가 삼천리 방방곡곡에 그 수가 많아짐으로 말미암아 이 무리는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통일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되면 망하지 않는 것이요. 나눠지면 망하는 것이옵니다. 우선 통일교회 남자 여자들이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또, 중심인 본부와 지방 전체가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한국과 세계의 통일교회 식구들이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통일의 인연을 따라 통일의 전선을 수호할 수 있는 최후의 전쟁을 정비하고, 하늘의 위신과 하늘의 권능의 무기를 가지고 원수를 사랑으로써 굴복시킬 수 있는 승리의 날이 온 천지에 나타나기를 바라서 오늘도 내일도 생애를 바쳐 싸워 나가는 이들 앞에, 무한한 자비와 사랑과 영광이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또한 이와 같은 날을 감사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통일의 노래 세 번 부른 후에 통일의 용사임을 선서시키심) 여러분은 통일의 용사임을 자부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들이 틀림없는 통일의 용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선서하는 마음을 갖고 다같이 손을 들고 세 번 제창합시다.
우리는 통일의 용사임을 자부합니다! 우리는 통일의 용사임을 자부합니다! 우리는 통일의 용사임을 자부합니다!
아버님, 오늘은 10월 15일, 벌써 이달의 중간을 맞는 날이 되었습니다. 세번째 맞는 안식일인 이 아침에 어린 자녀들이 아버님 존전에 부복하였사옵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여! 당신께서는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시선을 통하여 그리워할 수 있는 아들딸을 얼마나 바랐사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마음에 들지 못하고 보기에 아름답지 못한 자녀들이 될까봐 조바심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모여 앉은 이들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아들의 명예를 가진 저희들이 부모를 그리워하고 아버지의 얼굴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당신이 계신 것이 확실히 인식 되지 않는 자녀들이 있사옵거든 보고 싶을 수 있는 아버지로서 보여 주셔야만 되겠사옵니다. 느낄 수 있는 아버지로서 저희와 같이 늘쌍 생활 주변은 물론, 마음의 체휼을 통하여 언제나 동참할 수 있는 자리에 계셔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당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자인하게 될 때, 당신께서는 보잘것없는 저희의 한 생명이지만 그 한 자체를 찾아서 자녀의 명분을 부과해 주기 위해서 수고하신다는 것을 진정으로 알고 고맙게 생각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아버지여! 저희는 당신이 떨어질 수 없는 인연 중의 인연을 묶고 있는 생명의 근본되시는 분인 것을 알고, 삶의 인연을 갖추어 줄 수 있는 주체인 것을 알고, 이상의 근본을 저희 자신들 앞에 소개해 주실 수 있는 본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 자신들이 거룩하고 존귀하신 당신을 흠모하면서, 깊고 고요한 자리에서 당신의 마음을 파고드는 사랑스러운 자녀의 모습이 되고 싶어 이 자리에 나왔사오니, 품고 사랑하시고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한 생명을 두고 볼 때 '나'라는 관념이 강한 것을 알게 되옵니다. '나'라는 것이 강하게 될 때는 '나' 가운데에 아버지께서 임재하실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나는 대상이요 아버지께서는 주체이기 때문에, 주체를 나보다 존중시하는 데 있어서는 내 마음속에 주체로서 아버지가 계실 수 있으되, 상대인 나를 중요시하는 데 있어서는 아버지께서 계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언제나 저희들은 대상의 입장을 취하고 아버님을 주체의 입장으로 모시기 위하여 진정코 사모의 심정과 흠모의 심정에 사무칠 수 있는 참다운 그리운 모습이 되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 당신이 부르기 전에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당신의 아들딸이라는 인식을 하기 전에 이미 당신을 사랑했다는 입장에 선, 당신의 아들딸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아들딸의 입장에 있는 최대의 소원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그립고 간절하고 안타까운 아버지의 사정에 통할 수 있는, 누구보다도 가깝고, 누구보다도 간절한 아버지의 자녀된 자리를 그리워하고 있나이다.
아무개라고 부르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희열이 넘치고, 아버지의 그 모습에는 자유롭고 영원한 사랑이 넘쳐흐를 수 있는 그 아버지를 저희의 마음으로 몸으로 모시고, 저희는 어린 아기와 같이, 벌거벗은 어린애와 같이 그 아버지의 품에 매양 품겨 살고 싶고, 매양 그 곁에서 재롱을 피우고 싶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져야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심정의 인연에 화합할 수 있는 본질을 갖지 못하고 타락성이 저희 몸 가운데서 충동하고 있다는, 억울하고도 슬픈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당신은 높고 귀하시기 때문에 저희 앞에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인 것을 마음으로 느끼면서, 부족한 자신을 찾아올 수 없는 아버지요.
만날 수 없는 아버지요. 모실 수 없는 아버지라고 먼 자리에서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자책하고 스스로를 회개할 수 있는 모습만이 타락성을 벗지 못한 우리들이 처할 수 있는 입장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어찌하여 이와 같은 자신이 되었느냐고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 선조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임을 발견하게 되옵니다. 그렇게 될 때에 한탄 가지고 끝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그 모든 책임을 그 누구에게 돌릴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아버지 앞에 속죄의 제물로서 바쳐지기를 바라게 되옵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게 될 때 그 책임이 우리의 책임이요. 나의 책임이라고 다짐하고 나서게 됩니다.
인간이 타락하게 된 것도 하늘이 지었기 때문이며, 이와 같은 고통 중에 인류를 남겨 둔 것도 하늘이 지었기 때문이옵니다. 하늘의 거룩한 마음이 침범당할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몸을 붙안고 몸부림치는 자들 앞에는 당신이 찾아오셔서 '그것은 나의 책임'이라고 주장하시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그 고마움은 무엇으로도 표시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는 느껴야만 되겠사옵니다.
보잘것없는 나 자신을 향하여 아버지깨서는 얼마나 찾아왔던가를 생각할 적에, 저희들이 모르고, 저희들이 생각하지 않은 때에 내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움직여 나왔다 놀 사실을 진정 모르고 있던 저희들이었사옵니다.
보잘것없는 한 생명을 세우기 위해서 잠자리의 몽시 가운데 찾아 오셨고, 혹은 일하는 자리와 고독한 자리에서 몸부림치게 될 때에 아버지께서 현현하시어 자연스레 음성으로 혹은 마음의 느낌으로 지도하여 주신 것을 느끼면서도 고마운 것을 몰랐던 불쌍한 무리들인 것을 저희들은 다시 한 번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오늘 남아지기까지 당신께서 수고하신 날들이 얼마나 얼마나 많았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찾아오시는 당신을 위하여 얼마나 몸 마음을 단장했으며, 오시는 그 시간을 그리워하며 당신 앞에 바쳐지고 당신에게 필요할 수 있는 자신으로 바쳐질 수 있기를 바라서 얼마나 준비하였는가를 반성하게 되옵니다.
그러지 못하였던 자기 과거를 한탄하면서, 오늘 그와 같은 자리에 서서 당신의 소명을 고대하면서 새로운 명령을 바라는 마음을 갖고,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하고도 남을 수 있다는 자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이 서글픔을,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내적 억울함과 외적 분통함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인지라 타락한 세계의 습관적인 생활권내에서 그날 그날 보내기를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여기에 모인 부족한 자녀들을 아버지여, 다시 한 번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죽도록 배워야 할 것이 인간이요. 죽도록 싸워 다짐지어야 할 인생노정인 것을 너무나 잘 아시는 아버지여! 완전한 자가 이 땅 위에 어디에 있사오며, 당신을 위하여 충의 도리, 효의 도리를 다했다는 자가 이 땅 위에 어디에 있사옵니까?그러한 자가 이 땅에 없다는 것을 타락한 후손이기 때문에 당연지사로 아는 것을 생각할 적에 아버님께서는 끝까지 이들을 가려 나가야 되는 불쌍한 분이신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 땅 위에서 사는 일생 노정뿐만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에 가서도 우리의 처참한 모습들을 가려 줘야 할 남아진 당신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은 그야말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고독의 중심이요. 비참의 중심이요. 탄식의 중심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한 아버님을 저희들이 너무너무 몰랐던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반성하면서 당신 앞에 솔직이 직고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이러한 것이었사옵니다. '나'라는 모습은 이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보시고 찾아오실 수 없는 아버지시여! 도리어 나를 멀리해 달라고 기도해야 될 자신들을 직시하면서, 오늘의 슬픔을 억울하게 생각 하면서 내일의 비참함을 넘기 위하여 무한히 몸부림치고, 무한히 안타까워해야 하는 자신이 되어야 될 것을 생각할 적에, 그러지 못한 오늘의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처참지사인가를 다시 한 번 자각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뜻 앞에서는 솔직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 앞에서는 겸손해야 되겠사옵니다. 겸손의 마음을 따르는 그 배후에는 당신의 구조의 손길이 있을 수 있지마는, 교만한 마음을 갖고 나서게 될 때에는 당신의 자비의 손길은 멀리 멀리 떠나 버린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겸손하지 못했던 과거의 자기 자신을 무한히 증오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렇지 못한 자신의 현실을 무한히 증오해야 되겠사옵니다.
현실에 있어서 저희들은 솔직해야 되겠사옵니다. 있는 그대로, 가식을 모르는 그냥 그대로의 순박함이 자신에게서 표현돼야 될 것을 저희가 그리워할 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인간이 가식으로 말미암아 타락의 동기를 가졌다는 것을 저희들이 생각할 적에, 이제 저희들 앞에 가식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부복한 자녀들을 살피시옵소서. 불꽃 같은 눈으로 그 마음 마음을 살피시옵소서. 그 마음과 몸에 뺄 수 없는 죄악의 쓴 뿌리가 아직까지 자리를 잡고 있는 이 억울한 사실을 바라볼 적에 무책임한 당신이라면 이 자리를 떠날 수 있겠지만,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아버지의 간곡한 심정을 그 누구 앞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외로운 아버님인 것을 저희들이 발견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그와 같은 외로움의 자리에 선 것은 나로 말미암은 것이요. 나의 조상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제가 괴롭기 전에 당신이 먼저 괴로왔던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들이 비참하기 전에 당신이 비참했던 것을 알았습니다. 탄식이 가중될 수 있는 고독과 억울함의 자리에서 저희는 그 자리를 원망도 하고 저주도 하면서 당할 수 있지만 아버지께서는 원망도 할 수 없고, 저주도 할 수 없는 고독과 비참의 자리에서 몸부림치며 도리어 우리를 위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아버지의 사정이란 것을 어느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버지, 이제 이 부족한 것들을 당신께서 모아 놓으셨사오니, 오늘의 자기 자신을 들어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들랑 스스로 망령된 자임을 자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 하나를 위하여 역사적인 희생의 대가를 치르시면서 허구한 날 비참과 고통을 극복해 나오신 아버지가 계신 것을 몰랐다면 모르지만, 계신 것을 아는 저희들로서는 그러할 수 없사옵니다. 저희는 저희에게 비참함이 있을 때, 하늘의 동정을 받을까봐 조심성 있게 행동해야 되겠사옵니다. 하나님께서 비참한 자리에 서 있을 때, 저희가 동정하지 못했던 슬픈 사실을 느끼면서, 아버지께서 저희의 슬픈 자리에 동정의 인연으로 찾아주게 될 때는 황공하여 몸과 마음을 둘 바를 알지 못하고 눈물로써 하늘을 모시고 대할 줄 아는 겸손한 자신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저희 자신, 당신을 더럽힌 자식이요 흠 많은 자식이로되 그 자식을 심정으로 붙안고 사연을 나누고 싶어 하시는 간곡한 아버지의 마음이 있었음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 앞에 이런 기도를 올리기에 부족한 자신임을 느끼면서도 당신께서 그리워하는 사람을 찾으시기에 이러한 기도를 올리는 것이요. 그렇게 되기를 바라시기에 이러한 기도를 올리는 것이요. 그들을 책임지고 지도할 것을 바라시기에 이런 기도를 올리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악하고 또 악하고, 또또 악한 부모라 할지라도 자식에 대해서만은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책임 못 한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또 부족한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그 부족을 탄할 것이 아니라 내일의 소망을 갖고 이 부족을 극복해 나가야겠사옵니다. 오늘에 당하는 이 분함을 풀기 위해 책임지고 지도하는 입장에서 하늘 앞에 이런 기도를 올리지 않을 수 없사오니 긍휼히 보아 주시옵고, 측은히 보아 주시옵고, 불쌍히 보아 주시옵소서.
이 자리는 그 누구의 이익을 바라는 곳이 아니옵니다. 저희들은 단지 당신의 슬픔의 분량을 저희로 말미암아 제하든지 혹은 없앨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저희가 필요하시거든, 저희가 당신의 뜻 앞에 소용이 있으시거든 어떠한 자리라도 명령을 내려 주시옵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원하옵니다. 이제 당신 앞에 부복한 저희의 심경은 당신만을 위하여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께 필요한 것으로 남아져야 되겠사옵니다.
당신께서 소원하시는 후계자로서 하나의 등불이 되고, 하나의 마음의 대상이 되어 남아져야 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지고지존(至高至尊)하신 당신의 상대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이 엄청나고 황공한 사실 앞에 뼈살이 녹아지도록 감사에 사무쳐야 하겠습니다. 그런 은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생각하기 싫어하였던 배은망덕한 배도(背道)의 후손들을, 아버님께서는 저주와 더불어 멸망의 길로 몰아내셨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으시고 참으시기에 수고스러웠던 아버지의 입장을 저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지만 당신을 따라가지 않고는 살 길이 없기 때문에 따라가면서 중얼거리고 따라가면서 투정부리고, 따라가면서 욕을 하고, 따라가면서 채찍질하고 뒤에서 돌팔매질하던 이 불쌍한 것들이 다시 이렇게 나와 부복하였사오니, 이 아침, 아버지께서 이곳에 친히 찾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통일교회를 당신께서는 사랑하시옵니까?통일교회를 당신께서 키우셨습니까?통일교회 속에 계시고 싶습니까?생각하게 될 때, 저희는 높고 귀하신 당신을 모실 수 있는 아무런 준비를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더 좋고 더욱 가치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저 가치있는 곳까지 모셔 가기 위한 하나의 중간 처소로서는 당신을 모실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이 자리가 당신께서 찾아나오시는 본연의 자리라고는 이 자식부터 생각하지 않사옵니다.
이곳을 넘어가야 된다는 것, 넘어 지나가야 된다는 것, 더 빛나게 깨끗이 정비해야 된다는 것을 알 적에, 손을 대어 정비하려 할 때에는 하늘이 지금까지 수고하신 공적을 침범할까봐 주저하지 않을 수가 없사옵니다. 그런 때가 얼마나 얼마나 많았는가 하는 것을 느낄 적마다 아버님께서 불쌍하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저희는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하여 가는 사람도 역시 불쌍한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당신의 입장을 너무도 잘 알게 되옵니다. 마음대로 해야 할 책임자의 입장에 섰으면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불쌍한 것인가를 당하고, 보고, 느낄 적마다 아버님이 얼마나 불쌍하신가 하는 것을 배우게 되며, 그것을 배우는 것으로 당신께 감사하며 갈 수 있사옵니다. 그런 자리가 통일의 무리를 지도하는 책임자의 자리라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이런 무리를 이끌고 오는 당신이 얼마나 불쌍하신 분이신가 하는 것을 더욱 깨달았사옵니다.
아버지, 저희의 손은 자기를 위하여 움직이기에 바빴고, 저희의 마음은 자기의 이익을 따지기에 바빴고, 저희의 욕망은 자기의 편한 길을 찾기에 바빴지만, 당신은 그 반대의 입장에서 늘쌍 저희와 더불어, 보이지 않는 저희 뒷 자리에서 저희를 따라와야 할 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저희는 미처 몰랐습니다.
이 아침, 당신의 소신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진정한 아들의 자리를 그리워할 줄 아는 마음이 저희의 가슴속에 사무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정한 딸로서 효녀로서의 마음을 다할 수 있는 본성의 마음이 저희 마음 가운데에 발로(發露)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이제라도 당신을 향하여 효도할 수 있는 아들과 딸이 되겠다는 결심과 자각된 마음을 가진 것을 당신께서 보시고, 다시 소망과 희망을 가지고 저희를 다시 한 번 붙들어 주시옵소서. 과거에는 그랬지만 미래에는 그런 사람이 아니 되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오늘, 이 아침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니다.
때가 가까와 오면 올수록 고독이 사방에서 욱여싸여져 온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제 여기 서 있는 '나'라는 사람은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판단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과제들이 남아 있는 것을 직시할 적마다. 하늘이 시대시대를 책임지고 인도해 나을 때 당하던 딱한 사정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아버지, 그럴수록 당신을 의지하고, 당신 앞에 모든 것을 바치고, 심각한 마음으로 당신의 권고와 소망스런 결정이 있기를 바랄 때가 된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수많은 탕감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이 자리까지 온것을 생각할 적마다 감사하지만 일면 슬프고 고독함이 찾아온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한번 결정하면 다시 결정할 수 없는 때가 저희 눈 앞에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가겠다고 말하면 가야 되는 것이요. 머물겠다고 말하면 머물지 않으면 안 되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역사적인 순간이 저희의 목전에 다가옴에 있어서, 땅에 있는 그 누구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판결했다가는 영영 인류의 역사기 걸려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당신만이 주인이 되시고 당신만이 주체가 되시어 이 문제를 깨끗하고 거룩히 넘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날을 바라면 바랄수록 과연 이 자리는 하늘을 대신한 고독한 자리라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 민족의 운명을 책임져야 할 당신의 뜻, 수많은 교계와 수많은 종교를 새로운 길로 인도해야 할 당신의 뜻, 인류를 금후에 있어서 당신이 소망하시던 이상세계로 가름지어 인도해야 할 거룩한 당신의 뜻, 이 사명적인 모든 분야를 책임져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저 제물된 자리에서 따라가고, 치욕을 당하는 자리에서도 인내하며 그 자리를 무난히 당신의 소원대로 통과하기를, 넘기기를 바라는 마음을 저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알고 계시옵니다.
밥을 먹을 때나 길을 걸어갈 때나, 무엇을 하든지 오로지 일편단심 이 역사적인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할 지중(全量)한 사명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그럴 적마다 당신께서는 허구한 날 그런 마음을 지니시고 이 역사시대를 거쳐오시면서 그 심정을 알아 줄 수 있는 한 사람을 얼마나 얼마나 그리워하셨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통일교회의 책임자보다도 아버지께서는 더 불쌍한 분이시라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무형으로 계시는 아버지께서는 현현하실 수 있는 상대적 기준이 없으면 나타나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땅에서 살고 있는 저희는, 슬프면 슬픈 표정을 억울하면 억울함을 탓할 수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고독한 사실도 통과할 수 있고, 외롭고 슬픈 사실도 통과할 수 있사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는 그럴 수 없는 자리에서 바라보시며 홀로 짐을 지셔야 하는 불쌍한 분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게 되옵니다. 그러기에 저희는 반드시 효자가 되어야 되겠고, 충신이 되어야 되겠다는 일념을 드높일 수 있는,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인도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을 이 아침에 다시 한 번 깨닫는 무리가 되게 허락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10월을 복된 달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제 10월, 11월, 12월, 석 달밖에 남지 않은 1972년도가 저물어 가고 있사옵니다. 저희의 운명길에 있어서 생사의 판결이 어느때에 설정되는지 그것을 아는 사람이 없듯이, 저희가 걸어가는 뜻의 길에 있어서도 어느때 어떠한 자리에서 결정지어 넘어가는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나 끝날이 되면 될수록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늘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한 번 상기하게 되옵니다.
과연 그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인 동시에 우리의 말씀이요. 우리의 말씀인 동시에 아버지의 말씀인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저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마음 모아 이곳을 향하여 하늘 앞에 정성들이는 자들이 있거 들랑 천배 만배 복을 주시옵시고, 당신을 위해서 희생을 각오하고 민족과 세계 앞에 제물되기를 각오하며 일선에서 싸우는 뭇 자녀들이 있거들랑, 제가 그러한 자리에 있을 때, 그 환경을 해결하기 위하여 당신은 얼마나 얼마나 편히 대했고 얼마나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사옵니까? 바라옵건데, 이들의 외로운 자리에도 함께하시어서 이들로 하여금 당신의 온후한 품에 품기고, 영원한 사랑의 품에 품긴 아들딸의 영광을 느끼게 해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부디 이 시간 이후의 모든 것을, 이날 전체가 모이는 자리 자리마다 긍휼과 자비의 은사로서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여러분이 원리를 통해서 알다시피,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맘아 잃어버린 그 기준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그 문제를 해결짓기 위해서 하늘이 찾아가서 책임을 당부하였을 때 그것을 맡은 사람들이 그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게 되면, 그 책임이 그냥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대신해야 하는 후계자들 앞에 다시 상속되어 가지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통해서 뜻을 이루려고 하다가 그 뜻을 못 이루게 될 때는 두번째 사람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두번째로 택함을 받은 사람은, 물론 자신이 해야 할 책임도 있지만 첫번째 사람이 하지 못한 책임까지 이루지 않고는 그 사람은 자기의 책임노정을 출발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천번 일이 첫번으로 끝나지 않게 되면 둘째번으로 연장되는데, 둘째번으로 연장된 그 뜻의 자리라는 것은 첫번에 이루려고 하던 그 뜻보다도 훨씬 더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벨을 중심삼고 가인과 복귀의 사명을 완수하려 하던 문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노아 때까지 연장되어 온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를 중심삼고 그것이 아담 가정을 대신한 아벨의 자리에서 탕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담 해와가 하지 못한 그 자리에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 자식을 통하여 가인 아벨의 탕감 노정까지 설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비운의 역사를 거쳤다는 것을 알고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은 아브라함을 통해 가지고 그 역사를 다시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 가정을 통해 가지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발전되어 내려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세계적 시대에 있어서의 탕감복귀에는 개인들이 가야 할 탕감복귀의 노정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역사적인 가정들이 가지 못한 탕감노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으로서 완성을 보지 못했고, 가정으로서도 완성을 보지 못했고, 종족으로서도 완성을 보지 못했고,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가지고도 완성을 보지 못했고, 예수 시대에 예수를 맞이한 이스라엘 나라를 통해 가지고도 완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비록 역사시대에 이스라엘 나라와 민족과 유대교가 탕감복귀 해야 할 시대는 지나갔지만, 탕감복귀를 해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는 기독교는 역사 앞에서 언제나 탕감의 대가를 추구하는 데 앞장서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탕감의 역사적 인연은, 끝날이 가까워 오면 올수록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세계적 사명을 대표할 수 있는 교회가 있으면 그 교회 앞에 전체적인 탕감의 내용은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또, 그러한 교단이 있으면 하늘은 세계적인 탕감을 해 달라고 하는 입장에서 그 교단 앞에 탕감의 내용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택함을 받은 교회가 있거들랑 그 교회는 불쌍한 교회인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또, 택함을 받은 교단이 있거들랑 그 교단은 역사시대의 그 어떠한 교단보다도 비참한 운명길을 가려 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또, 택함을 받은 어떠한 나라가 있거들랑 그 나라는 역사시대의 어떠한 나라보다도 비참한 운명길을 가야 할 처지에 있다는 것을 탕감복귀의 노정을 통하여 우리는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관점에서 볼 때, 끝날이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세계사에 없었던 하나의 비참한 나라가 나오지 않고는 세계사적인 탕감의 운명을 해결지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 가운데 비침한 하나의 교파가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또, 그 교파 가운데 비참한 하나의 교회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 가운데에는 보다 비참한 하나의 책임자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책임자가 교회와 더불어 그 교회 앞에 막아져 있는 비참한 탕감노정을 타개해 가지고 승리를 다짐하고 나서기 전에는 비참한 교파를 구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모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 비참한 교회를 구하고 나서게 될 때, 비참한 나라의 운명을 구할 수 있는 것이며, 비참한 그 나라가 구함을 받게 될 때, 비로소 비참한 세계의 운세를 해결할 수 있는 책임기반이 설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탕감복귀라는 엄연한 인과법칙을 섭리역사과정에서 부정할 수 없는 원칙으로 공인한다면, 이 세계사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그러한 사명을 대신할 수 있는 비참한 나라가 어떤 나라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나라는 다름 아닌 한국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국은 6·25동란을 통해 좌우의 세계적인 정세가 삼팔선이라는 대치선을 중심하고 이 민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인연도 없었던 좌우의 세계사적 사조 때문에 제물이 되어 피를 흘렸다는 사실은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20여 년 가까운 시대를 지나온 오늘날, 세계 무대에 있어서 또다시 비참한 운명의 자리를 대표해야 될 입장에 선 나라가 한국이라는 것을 두고 볼 때, 어찌하여 한국은 이러한 운명의 권에 휘몰아침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탕감복귀역사를 두고 볼 때, 하늘이 이 나라를 통해서 세계사적이고, 천적인 책임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남북이 갈라진 현시점에 있어서 서쪽에는 중공, 북쪽에는 소련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동남쪽에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중공과 손을 잡고 아시아의 방향을 혼미하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지금 월남에 있어서는, 티우 대통령의 거취 문제가 자신이 소원하는 바에 의해서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정치 무대에 흥정의 제물로 등장하여 논의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볼 때, 우리 한국도 그와 같은 운명이 안 된다고 단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런 현실 가운데서 금후의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할수록 이 한국이 서 있는 자리는 그야말로 비참한 자리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한국의 현재 입장을 한국 백성의 힘만으로써는 가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민족의 힘만 가지고서는 금후에 있어서 이 민족이 살수 있는 길을 가려 가기가 불가능한 자리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자기의 흠 있는, 후회스러운 환경을 타파해 버리고 그것을 극복하여 자주적인 권한을 세울 수 있는 아무런 소망의 요건도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탕감복귀역사를 두고 볼 때, 이러한 입장에서 이 민족이 살 수 있는 단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이 민족을 하늘 앞에 제물로 바쳐 드리는 길 외에는 없다는 결론을 우리는 원리를 통한 입장에서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민족이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이 민족을 수습해서 하늘 앞에 하나의 제물로서 바쳐 드릴 수 있는 그런 민족적 속성, 즉 민족성이 갖추어져 있느냐?그렇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정부는 서로 반목질시하는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시대의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상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유대교가 완전히 하나되고, 하나된 그 주체 앞에 이스라엘 민족이 완전히 하나되어야만 로마제국을 중심삼은 국가의 터전을 발판삼아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소망의 기준이 생겨날 것이었는데, 예수와 교회와 이스라엘 민족이 분립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깨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뒤로 떨어졌지만 예수는 전진하였습니다. 유대교는 뒤로 떨어졌지만 예수는 전진했습니다. 전진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하늘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건하면서 세계사적인 탕감복귀의 노정, 혹은 발전의 노정을 거쳐온 것입니다. 그 발전이 확대되면 될수록 그에 비례하여 기독교의 수난의 비율도 점차적으로 증가 되어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국가 국가를 두고 볼 때 그 가운데는 기독교 국가도 있을는지 모르고 또 어떤 나라에서는 탕감의 희생이 없었다고 볼는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지금까지 나온 역사에 있어서 통계를 잡아 본다면, 발전과 더불어 역사시대의 그 어떤 때보다도 기독교가 가중된 탕감을 치러 나왔다는 사실은 틀림없는 사실(史實)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기독교가 이 민주세계를 창건하였고, 이제 공산주의와 대결해 가지고 최후의 승패를 결해야 할 시대상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러니 민주세계가 우세한 자리에서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것인데, 지금에 와 가지고는 열세한 입장에 있어야 할 공산권이 오히려 우세한 자리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기독교 문화권에 있어서 비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미국을 위시한 민주세계가 기독교 문화권에 예속되어 가지고 이와 같은 입장에 처해 있는 한, 기독교 문화권은 비참한 운명에 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때, 그 비참한 운명이 어떠한 나라에 집중되게 되어 있느냐?그것은 가면 갈수록 최후의 종말적인 현상들을 중심삼고 볼 때, 그 나라는 한국이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한국문제를 한국 국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은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국민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해서, 외국의 어떤 세력 있는 강국이 한국을 위해 책임을 지고 이 나라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나라가 나올을 수 있겠느냐?없습니다. 왜?세계의 주도적인 책임을 지던 민주세계를 대표한 미국이 후퇴하기 때문에 그 어떤 나라도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손을 댄다면 이 나라를 삼켜 버리기 위해서, 이 한국을 몽땅 사로잡기 위해서 오는 그런 강대국은 있을는지 모르지만 진정으로 한국을 위해, 한국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찾아오는 강국은 없다는 결론을 짓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이 현재 한국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처지에서 해결점을 어디에서 찾아야 될 것이냐?자주적인 국민을 어떻게 형성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남북이 통일될 수 있는…. 세력균형상에 있어서 열세한 한국 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된 가운데에서 민족의 주체성을 고취하기 위하여 어떻게 단결해 가지고 이 환경을 타개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주체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갖지 않고는 금후에 있어서 한국이 갈 길은 불행한 처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남한이 그런 주체적인 책임을 질 수 있겠느냐 할 때, 그러한 비준을 얻을 수 있는 자신을 아무리 찾아보더라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만일 북한 공산권이 주체성을 쥐었다 하게 되면 한국은 여지없이 파탄되고 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북한과 중공, 북한과 소련은 본질적인 입장에서는 같은 노선이다 이겁니다. 체질적인 입장에서는 다르다고 하지만, 공산주의라는 본질적인 관점에 있어서는 서로 협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중공이라든가 소련으로부터 언제라도 협조받을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한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러한 정세를 앞에 놓고 우리 한국 민족, 자주적인 한국 민족으로서 금후의 한국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야말로 비참한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어떠한 제 3세력을 통해 가지고 이 나라의 해방을 기원할 수 있는 때는 지나갔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주도적인 역량을 배양해 가지고 이북을 능가하고, 공산세계를 제압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을 찾느냐 하는 것이 이 민족이 살아 남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탕감복귀역사라는 것을 두고 볼 때, 어찌하여 역사시대의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고 책임질 수 없는 비운을 맞이하게 되었느냐?인간을 통해 이루어진 역사적인 종말을 중심삼고 볼 때는 비참한 것일는지 모르지만, 세계의 그 어떠한 민족도 가질 수 없는 자주적이며 독창적인 민족성을 하나 남기고 싶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문제는 다릅니다. 그러한 민족을 여기서 재기(再起)시켜 가지고, 하나님의 주도 앞에 새로이 봉화를 일으키게 해 가지고 아시아와 세계로 통할 수 있는 하나의 사상적인 조건을 갖추어 놓는다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민족 창건을 할 수 있는 가능한 자리에 설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뜻적인 입장에서, 혹은 섭리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하늘의 입장에서 생각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때든지 한 나라의 정세라든가 혹은 그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책임자들은 많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 나라가 비상시에 처하게 될 때, 그 나라의 운명을 해결하기 위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단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그렇게 해야 되겠다는 공동결정을 통해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한 사람이 제시한 조건을 잘 받아들이면 그 나라는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나라는 영영 역사의 뒤안길로 흘러가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적 실증들을 미루어 볼 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처지에서 이 나라를 바라보게 될 때, '너, 한민족은 어디로 갈 것이냐?이겁니다. 문제가 큰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한국을 포기해 버리시겠느냐?정말로 포기해 버리셨다면 모르지만 포기하시지 않았다면 이 한국에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한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이겁니다.
여기에, 오늘날 한국은 비참한 탕감의 운명길을 세계사적인 입장에서 책임져야 됩니다. 또한 한국 자체내에 있는 어떠한 특정한 교회가 있으면 그 교회는 세계사적인 탕감의 제물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와 교파가 하나되어야 한다 이겁니다. 또한 교파와 나라가 하나되어야 한다구요.
유대교 앞에 이스라엘 민족이 그 유대교의 사상을 중심으로 온전히 하나되어 나갔더라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유대교가 만일에 메시아의 뜻을 받들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예수님과 완전히 하나 되었더라면 유대교는 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 그 같은 재판(再版)의 형성이 세계적으로 전개되는 때가 바로 지금 이 시대가 아니냐?민주세계와 공산세계, 민주 세계는 무엇을 위주로 한 사상적 터전 위에 형성된 문화권이냐 하던, 기독교 사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산 기독교, 즉 교회와 하나될 수 있는 세계적 기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형태로서는 세계형을 갖추었지만, 이스라엘 나라를 두고 볼 때에는 유대교와 마찬가지의 판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끝날에 갈구하였던 것이 무엇이냐? 메시아의 현현을 갈구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저희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 민족이 살 수 없으니, 하나님이 이 민족을 위하고 저희를 사랑하시거든 우리 나라에 메시아를 보내 주소서' 하고 고대했습니다. 이것이 장구한 역사적 수난길을 극복하기에 지친 이스라엘 민족의 최후의 갈망이요. 갈구가 아닐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때에 비로소 하나님은 메시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최후의 때에 메시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민주세계의 정세를 놓고 미국에 그러한 것들을 풀 수 있는 관건(關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한국에 있는 것입니다, 한국.
이러한 문제 등등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오늘날 한국은 세계적 수난도상의 최첨단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교회는 세계적 수난도상에 있을 뿐만 아니라, 자주력을 상실한 세계적 대표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전통을 자랑하던 수많은 교파들은 이미 낙엽과 같이 떨어져 나가는 단계에 처해 있습니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어서 자기 자신을 가누어 갈 수 있는 역량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습니다.
이제 나라도 무기력하고 교회도 무기력 합니다. 그러니 이 나라와 교회는 어디로 갈 것이냐?망해 떨어져 간 유대교와 이스라엘은 무기력했지만, 이후 기독교는 강했습니다. 망해 떨어지는 유대교보다 강했고, 망해 떨어져 가는 이스라엘보다도 강했습니다. 그러기에 기독교가 4천년 하나님의 역사를 상속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발판이 아니었드냐?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지금은 세계의 기독교가 망할 운명에 놓여 있고, 민주세계도 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권내에 처해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때에 있어서 이 무력한 교회의 그 무력함을 타파할 수 있고, 사상적으로 무력한 민주세계의 그 무력함을 타파할 수 있는 자주적인 기독교와 마찬가지의 새로운 사상체계가 갖추어지면, 그 가는 길이 아무리 수난의 길이라 해도 하나님은 그 길밖에는 협조할 수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길밖에는 소망할 것이 없습니다. 미국도 믿을 수 없고, 교회도 믿을 수 없으니 그 미국을 넘어설 수 있고 그 교회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생사를 개의치 않고 나가는 기독교의 운동과 같은 새로운 운동이 이 세계적 현실의 종말시대에 전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곳이 있거들랑, 그곳을 통해서 하나님은 방향을 제시해 나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회와 교단이 다름아닌 통일교회다 이겁니다. 그러니 강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기성교회의 어떠한 교단한테도, 어떠한 교파들한테도, 어떠한 교인들한테도 밀려 나가는 통일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밟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뚫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대한민국과 연결된 민주세계가 반대한다고 해서 밀려 나갈 것이 아니라 뚫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피를 흘리더라도 나아가야 될 것입니다. 피 흘리고 나가는 기독교는 발전할 수 있었지만, 피를 흘리게 하는 나라와 교회는 패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극적인 세계정세를 눈 앞에 놓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가 갈 길은 뭐겠어요?그러한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진 자리에 섰으면, 거기 속한 개인이 짊어진 책임이라는 것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짊어진 것이 아닌 것입니다. 알겠어요?그 짊어진 이익의 결과적 내용이라는 것은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세계의 이익을 위해서요. 민주세계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6천년 동안 피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근근히 이어받아 나온 기독교 문화가 깨져 나가는 것을 상속받는 자리에 섰습니다. 그것은 세계와 기독교를 대표한 것도 물론이지만,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대표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대표해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모든 권한을 대행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가 결정하면 결정되는 것이요. 그가 망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자리에 섰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세상의 그 무엇을 바라보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민주세계와 기독교에 기대를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대를 걸 수 있는 곳은 한 곳, 하나님에 대한 기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하나님에 대한 기대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에 기대를 거는 데는 책임을 할 수 있는 사명을 짊어지고 그 기대를 요구해야 됩니다. 그 책임이란 무엇이냐?망해 들어가는 교회와, 망해 들어가는 세계를 책임질 수 있는 대표의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세계는 망해 들어가지만, 본래의 전통적 정수(精髓)를 이어받는데 있어서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 절대 참소할 수 없는 당당한 자리에서 이어받을 수 있는 개인이라야 합니다. 그래야 되는 거예요. 그러한 주체적 입장에서 하나님을 대신하고 뜻을 대신한 상대적 인간으로서, 그 주체성을 갖고 나설 수 있는 자각된 무리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이미 민주세계를 상대하지 않습니다. 상대할 것 같아요?또한 하나님은 기독교도 상대하지 않습니다. 망해 떨어져 들어가는 이 기독교는 썩은 수박통같이 굴러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적 종말시대에 있어서,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문 아무개는 그들보다 달라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불신하는 세계를 놓고 하나님의 뜻 앞에서 볼 때에, 불신해야 할 세계와 교회를 자를 때는 아무나 그냥 잘라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잘라 버릴 수 있는 자세를 가진 하나의 교단을 대표하고 세계를 대표한 그런 단체여야만 합니다. 이것이 현재 취해야 할 통일교회의 주류적인 자세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 있는 통일교회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런 통일교회가 갈 운명의 길은 어떤 길이냐?비참한 세계사적인 망운권내(亡運圈 內)의 포로가 되어 가지고 사망의 물결에 휩쓸려 가는 이 비극적 현상들을 가로막기 위해서는 값비싼 희생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될 단체가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6천년 동안 하나님의 피의 희생의 대가를 이어가지고 남아진 기독교가 저렇게 됐구나' 하는 걸 알고 살려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민주세계가 저렇게 됐으니 잘라 버려야 되겠지만 그것을 잘라 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입장이 못 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을 구해 줄 사람은 미국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미국 사람도 알고 있어요. 기성교회를 구해 줄 사람은 기성교회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미국을 들이쳐서 회개시키는 놀음을 해야 합니다. 기독교를 들이쳐서 회개시킬 방망이가 공산당이라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할수록 공산세계는 강력한 방망이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력한 방망이로 등장하는 그것을 견제할 수 있는 다른 하나의 움직임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러한 것이 없거들랑 공산주의 일색의 세계가 결정적으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떠한 단체를 반드시 그 방망이에 브레이크를 걸어서 조정할 수 있는 하나의 산 모습으로 내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2의 기대를 걸어 그들이 회개하도록 연결시킬 수 있는 준비를 할 것이 틀림없지 않느냐 이겁니다. 그러한 것을 준비한 단체로서 나타나야 할 단체가 다름아닌 통일교단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어 한 나라의 기반만 닦고 나타나게 될 때는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때가 통일교회 앞에 있을 성싶다 하는 것입니다. 현세계정세를 중심삼고 볼 때, 해결 방법은 섭리적 내용과 하나님의 심정을 통한 최후의 이 길밖에 없다는 것을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디로 갈 것이냐?이 썩어빠진 사회로 돌아갈 것이냐?그렇다면 망해야 된다구요. 썩어 떨어진 교계의 틀거리를 소망한다면 그것은 망해야 된다구요. 기대를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산권을 포위하고 사로잡을 수 있는 자체의 역량을 완비하는 그러한 준비기간을 강화시켜야 됩니다. 그런 훈련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훈련은 결코 수월한 훈련이 될 수가 없습니다. 수월한 훈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질고 무자비한 훈련을 통해 최후의 결정타를 준비하는 하나의 교파요. 하나의 사상적인 일을 대표할 수 있는 그러한 단체, 그 단체가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자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부심을 갖고 나타난 한 개인으로서 서게 될 때에, 나 개인은 민주세계의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일을 대표해서는 앞섰다고 하겠습니다. 수많은 교파 중의 그 어떠한 교파보다도 내가 책임을 져야 되겠고, 어떠한 지도자보다도 내가 앞섰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왜 그러한 자부심을 가져야 되느냐?오늘날 탕감복귀의 원칙을 두고 볼 때, 우리들이 갈 길은 자기 집을 이끌어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세계로 넘어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갈 길은 세계입니다. '세계 대 나'라는 것입니다. 국가 대 나가 아니요. 민주세계 대 나가 아니요. 공산 세계 대 나가 아닙니다. '세계 대 나'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서 유일한 세계관의 입장을 확립해 가지고, 거기에 자주적인 주체성을 어떻게 확정지어 갈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또한 그것을 어떻게 횡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자리에 선 통일교인이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런 입장에서 보면, 오늘날 통일교회 앞에는 탕감복귀의 세계적인 제물의 내용이 전부 다…. 개인적으로 실패한 것, 가정적으로 실패한 것, 종족적으로 실패한 것, 민족적으로 실패한 것, 국가적으로 실패한 것, 세계적으로 실패한 모든 것을 상징적으로 탕감해야 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실패하고, 미국의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선교하는 데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전부 다 동강이 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여러분 미국의 여러 교회에 가 보라구요. 우습다구요. 젊은이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어서 망하라는 거예요. 망해라 망해, 망해! 불이 붙기 시작했다면, 더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 차라리 불살라 버려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 '어서 망해라' 하나님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망하지 않으면 공산당이 들어가 칠 것입니다.
일본 같은 데 가 보게 되면 관서학원 신학교라든가, 청산학원 신학교라든가, 전부가 공산당에게 놀아나고 있다구요. 그래서 이제 폐문해 버릴때에 다 들어왔다구요. 뜻을 망각해 버리고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살던 보응을 단단히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야말로 지금의 때는 숨막힌 역사적인 시점이 아니냐?골리앗을 대한 다윗은 비록 양 치는 목동으로 한 벌밖에 없는 남루한 옷을 입고 있을망정, 그의 눈동자에는 뚜렷한 목적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세워서 약속을 한 그 나라의 승리적 권한은 반드시 자기를 통해서 준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망하게 될 때는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는 것이요. 수천년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이 사랑하였던 민족적 선민권이 망해 떨어져 나간다'는 그런 자부심을 가졌던 다윗이었습니다.
그처럼 다윗이 골리앗보다 나아야 하나님이 협조해도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협조해 가지고 다윗이 이기게 된다면 사탄이 그걸 어떻게 참소하겠어요?그래서 다윗이 골리앗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의 시선은 하나님의 축복의 세계를 바라보았던 것이 아니냐?그는 비록 목자의 생활을 했지만 미래의 이스라엘 국운을 염려했던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모든 것이 골리앗보다 못하지 않다는 거라구요. 비록 현실적인 기반에서는 아무것도 없지만, 내적인 심정문제에서 보나 소망적인 면에서 보나 골리앗보다는 백 배 낫다는 겁니다. 참된 자리에 섰다는 거라구요.
그렇게, 다윗은 하나님이 편 되어 줄 수 있는 당당한 자리에 섰기 때문에 그 골리앗을 때려잡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아야 돼요. 그러기에 다윗을 왕으로 세운 거예요. 그것은 정의를 위하고 나라를 대신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빛나는 사상을 닦아 나온 다윗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다윗에게 있어서는 목자의 생활이 길면 길수록 거기에서 내적 정비를 할 수 있었고, 내적인 심정의 애국사상을 고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상이 하나님의 뜻과 방향에 일치될 수 있었기에 위대한 다윗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 그 누구도, 이스라엘의 어떠한 교역자도, 이스라엘의 교단 그 누구도 갖지 못하였던 당당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뜻 앞에 일치되는 사상을 가진 사나이가 아니었느냐 이겁니다. 그러니 '비록 이스라엘 나라는 망하더라도 내가 가진 사상으로 말미암아 다시 나라는 건국될 것이다'는 사상을 가졌던 사나이가 다윗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골리앗에게 외적인 모든 면에 있어서는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내적인 가치기준에 있어서는 골리앗보다도 무겁고 크기 때문에 거기에 하나님이 편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당당한 승리가 된 것이 아니냐? 그건 당연한 것이 아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왕이 된 거예요. 그렇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는 어떠냐? 비록 헐벗고 못먹고 있지마는 시선은 다윗과 같은 시선을 가져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의 비참상을 내가 책임지겠다. 그 누구한테도 맡길 수 없다. 비록 나이 어린 소년이지만 나의 책임으로, 내 손으로 해결짓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한 정신이 하나님이 요구하는 최후의 적절한 요구가 아니겠느냐? 또는 최후의 통첩이 아니겠느냐 이겁니다.
그런 자리가 왔고 그러한 때가 왔기 때문에, '나는 당당코 생명을 바쳐 새로운 건국도상의 일인자로서 등장하겠다'는 다윗의 전통적 사상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보게 될 때, 다윗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기대하였던 역사시대의 어떠한 사람보다도 하나님이 바라는 새로운 나라를 지키는 데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전통적 교회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대표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양면에 그 사상적인 배후가 확고히 서 있는 다윗에게 이스라엘 나라를 맡기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의 원수를 때려잡고 다윗을 남긴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이걸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는 다윗과 같은 그런 신렴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망해 돌아가는 현세를 바라보게 될 때, 이 책임을 누가 지느냐? 그것을 기성교회에 맡기지 말라 이겁니다. 그 책임을 민주세계에 맡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과중한 임무에 불타는 신념을 가지고 '세계를 우리의 손으로, 공산당을 우리의 손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무리가 있거들랑, 하나님은 이 무리를 빼놓고는 이 세계를 수습할 길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협조해 달라고 안 하더라도, 그런 사상을 가졌으면 하나님이 찾아와 협조해 주려고 하신다는 거예요.
한국이 살 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는 그러한 때를 바라보고 나왔던 것이며, 그야말로 그 때가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에서, 죽지도 못하고 살수도 없는 입장에서 이왕에 행동하려면 나를 중심삼고 행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으려면 나를 중심삼고 죽지 말라는 겁니다. 다윗과 마찬가지로 행동하는 데에는 나라와 세계의 운명을, 하나님의 뜻을 걸고 행동하자는 거예요. '죽더라도 홀로 죽지 말자! 세계를 대신한 제물로서 죽으라!' 이게 얼마나 고차원적이요. 멋진 이상을 가진 무리들입니까?
그러니 세계사적인 역사를 대표하는 하나의 제물적인 자리에서 내 생명을 하나님 앞에 봉헌할 수 있는 숨막힘과 동시에, 무한한 가치가 맺어져 있는 그런 때를 향하여 내가 나설 수 있는 길이기에 이것은 마치 다윗과 같이 죽음을 넘어갈 수 있는 배후의 사상이 하나님의 심정을 휘어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랬기 때문에 승리의 결정이 벌어진 것이며, 죽기를 바란 다윗은 살고 살기를 바란 골리앗은 죽은 것이 아니냐? 그리하여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은 다윗으로부터, 망할 수밖에 없었던 유대교는 다윗으로부터 재편성되어 이스라엘의 건국이념이 창건되었던 것이 아니냐?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통일교회는 이런 때에 대한민국만을 대표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세계 전체를 책임지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의 반대를 받았고 대한민국의 반대를 받았지만, 대한민국에게 밀리고 기성교회한테 밀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갖고 나온 주류적인 사상입니다. 물러날 수 없어요. 기성교회가 물러나야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있어서 불의의 씨들이 물러나야 되는 거예요. 세계의 민주주의를 지도하는 불의의 패들이 물러나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의 기독교의 전통을 자랑하는, 퇴폐적인 사상의 자리에 선 이 기독교가 물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밀려날 수 없습니다. 공산당을 물러나게 해야 하는 거라구요. 우리는 절대 물러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과중된 임무를 중심삼고 각오와 신념을 갖고 대비할 수 있는 자리에서만이 세계적인 새로운 수습방안이 현현될 것이 아니냐?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또한 '국제승공연합'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래 뭘하자는 것이냐? 밀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본에서는 지금 공산당들과 대대적인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미는 것입니다. 밀고 나가는거예요.
그러한 입장에서 나오다 보니 한국의 기독교계에서는 통일교회를 암(癌) 중의 암적인 존재라고 보고 있다구요. '뭐 장로교니 성결교니 무슨교니 하며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이제 문제는 통일교회다. 합동해서 싸우자' 그러고 있습니다. 합동하라구! 빨리 합동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싸우자 이겁니다. 그들이 전국대회를 하게 되면 꼭 합동해 가지고 나오지요? 전라도에서 이긴 패, 경상도에서 이긴 패가 나와 가지고 싸워서 챔피언 선수권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나오라 이거예요. 나오는 데는 발가벗고 나오라 이거예요. 담을 헐어 버리고, 문을 열고 나오라 이거야, 문을 닫지 말라 이거야, 그래 만나 보자, 해 보자, 이거예요.
그런 때가 왔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내가 모모한 사람들을 만나려고 합니다. 10월 후반기부터…. 대한민국에서 저라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 보려고 하고 있어요. 요즘 대한민국의 시급한 문제는 주체사상이라고 말들은 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 주체사상을 어떻게 형성할 것이냐?그 사람 들끼리? 안 돼, 안 돼, 안 됩니다. 사람은 주권자가 달라짐에 따라서 주의와 입장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 시대의 주권자를 통해서 세워 놓더라도 다음 세대에는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워 놓으면 주권자가 천만 번 변하더라도 그 본질과 그 본목적, 본사상 체계에 있어서는 변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설정해 놓은 주체민족이 된다면 대한민국은 세계를 지도할 수 있다고 보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 통일교회 패들, 생기기는 못 생겼고, 차리고 나타난 모습은 초라하지만 눈은 올바로 가지고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가는 길을 올바로 가야 되겠다는 거예요. 역사시대에 과중된 임무를 앞에 놓고 전체적인 탕감을 한꺼번에 하자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이제 우리는 민주세계를 대표해 공산당을 대하자는 것입니다. 세계의 기독교를 대표해서 종교계를 대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억지가 아닙니다. 사실적인 내용이 그렇습니다. 사실적인 내용이 그러니 확신을 갖고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강한 것과 약한 것이 서로 맞부딪치면 어떤 것이 깨져요?「약한 것이 깨집니다」 그러면 같은 것끼리 서로 때리게 되면 어느 것이 이겨요?그것은 보다 빠른 녀석이, 둘 다 쓰러졌어도 빠른 녀석이 먼저 일어납니다. 자동차끼리 충돌하더라도 속도가 빠른 쪽이 밀고 나가게 돼요. 그러니 암만 강하더라도 혹은 같이 강하더라도 빠르고 재치있게 하는 데에서 승패가 가려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기성교회하고 통일교회하고 어디가 무릅니까?어디가 물러요? 「기성교회요」 기성교회가 무르다구요? 기성교회에 가서 물어 보라구요. 통일교회가 무르다고 할 테니, 그렇기 때문에 부딪쳐 봐야 된다구요.
통일교회 아가씨들하고 기성교회 목사들하고 싸움을 붙이면 우리 통일교회 아가씨들이 질까 이길까? 「이깁니다」 이겨요?모가지를 비틀고 들이쳐도 이겨요?덩치 좋은 목사들을 말예요. 무엇으로 이겨요?말발로 이기지…. 아가씨들이 묻는 데에도 대답을 못하고 눈만 꺼벅꺼벅할 거라, 맨 처음 창피를 당하게 되면, 두번째 찾아가서는 정문에서 '목사님' 하고 부르게 되면 후문으로 도망갈 거라구요. (웃음)
싸움은 이미 결정된 거라구요. 이기게 돼 있는 거라구요. 물렁물렁한 것에 단단한 것이 들이치게 되면, 단단한 것은 흠도 안 납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망하지 않고 보호할 수 있는 비법이 뭐냐?싸워라 이겁니다. 알겠어요?재치 있게, 날쌔게 달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재치 있고 날쌔게 달려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기성교회가 따라올 수 없는 활동을 하자 이겁니다. 그래서 아아 저것도 통일교회구나 문목사 패다. 어어 저것도 통일교회구나, 아 이것도 통일교회고 , (웃음) 그렇다고 통일교회 여러분들이 다한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해 나왔지, 여러분이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한 게 하나도 없다구요. 못생긴 문선생이 했지, 그렇지요?
그래 누구를 무서워하는 거예요?통일교회 누구를 무서워하는 거예요? 통일교회 김영휘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통일교회 간부 누구를 무서워해요?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이 눈이 세 개 있는 것이 아니라구요. 다만 눈이 조그마하고 매섭게 생겼지, 사실은 만만치 않다구요. 콧대가 이렇게 섰는데, 누구 말 안 듣게 생겼다구요.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렇게 때문에 내가 지금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 취직이나 해 가지고 종살이하려는 사람이 아니예요. 만약에 뜻대로 못 됐으면 차라리 저 농촌에 들어가 똥통을 메고 사는 농부가 됐지, 그러니 최고가 아니면 최하, 둘 중의 하나를 택할 사람이라구요. 본래가 중간에서 어영부영 살사람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 통일교회 젊은 놈들, 잘 알아야 된다구, 긴가민가 해 가지고, 행여 공짜나 있나 바라구 말이야….술집에 가 가지고 뭐 개평술 없나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은 원수라구요. 투전판에 가 가지고는 뒤꽁무니에서 개평이나 바라는 것들은 원수라구요. '이 못난 녀석아, 이왕에 싸웠으면 대가리가 깨져 피를 보더라도 이길 수 있는 사나이가 돼야지, 싸움도 안 하고 그냥 공짜나 먹으려고 하면 너는 공짜 인생밖에 안 되는 거야' 그런다는 거라구요.
자, 그러니 단단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단단해요? 단단해? 「예」과중한 임무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물렁물렁한 사람이다? 「단단한 사람입니다」 단단하다면 눈알을 뭐 강철 같은 것으로 박았나? 눈알도 물렁물렁하지, 볼때기도 물렁물렁하지, 손도 물렁물렁하지, 만져 보면 다 물렁물렁하다구요. 뭐가 단단한 거예요. 뭐가 단단하냐구요? 응? 「목적관입니다」 목적관이 아니라 사상이 단단한 거예요. 사상이, 사상이 단단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놈의 세계가 들이치더라도 잘못쳤다간 오히려 들이쳤던 세계가 두 동강날 수도 있다구요. 그렇지요? 그들이 잘 드는 작두나 비수를 가지고 이게 뭐냐고 하면서 수박통 쪼개듯 잘 만났다고 치게 되면 그 칼이 좋다고 하겠어요. 나쁘다고 하겠어요?칠 테면 잘 쳐라 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친 칼이 절반으로 뻐개져 나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가만 있지만, 통일교회를 반대하다 보니 오히려 기성교회가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도 단단한 것을 치면 칠수록 자기가 깨져 나간다 이겁니다.
이제 조금 더 있으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들이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치지 않았어요. 그러나 조금만 더 가면 내가 그들을 들이칠 거라구요. 그들이 왼 매질을 하게 되면, 난 바른 매질을 할 거라구요. 그들이 왼 매질 하는 데 우리는 반대로 굵은 바른 매로 치게 되면 왼 매질은 떨어져 나가고 처음에는 맞지만 바른 매질로 응수하게 되면 왼 매질은 풀려 떨어져 나가고 바른 매질은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단단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자, 우리 할머니들도 어디 가다가 죽게 될지도 모르지만, 단단해야 되겠지요?어디에 가서 앉더라도 '아이구 난 허리가 꼬부라져서 죽겠다' 그러는 게 아니라구요. 허리가 꼬부라졌지만 마음만은 살아 있다고 해야합니다. 목이 아프게 되면 손가락이라도 이렇게 굳굳하게 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힘들거든 혓바닥이라도 하늘에 대하여 이렇게 하고 '나는 이렇게 단단하다'고 하라는 거예요. (웃음) 웃을 게 아니라구요.
자 여러분, 단단한 것이 좋아요. 물렁물렁한 것이 좋아요? 「단단한 것이 좋습니다」 여자들은 물렁물렁한 게 좋지요? (웃음) 여자들도 단단한게 좋아요? 「예」 그러면 그 단단한 것이 사방이 전부 다 단단해야 되겠어요. 삼면은 단단하지만 일면은 물렁물렁해도 괜찮겠어요? 어때요? 「사면이 단단해야 됩니다」 삼면은 단단한데 일면이 물렁물렁하게 되면 그것은 모두가 물렁물렁한 것보다도 더 나쁘다 이겁니다. 그건 굴리면 굴릴수록 한 편만 닳기 때문에 가다가 금방 구멍이 뚫려 멈추게 됩니다. 알겠어요? 그렇지만 차라리 사방이 물렁물렁한 것을 굴리면 닳더라도 끝까지 구른다구요. 그러니까 삼면만 단단한 것이 도리어 전체가 물렁물렁한 것보다도 낫다. 못하다? 「못하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은 어때요? 삼면이 단단하오, 이면이 단단하오, 일면이 단단하오? 여기 여자들, 대답해 봐요. 판가리를 해봐야 되겠다구요. 사면이 단단해요. 삼면이 단단해요. 이면이 단단해요. 일면이 단단해요. 「사면이 단단합니다」 사면이 단단해요? 「예」 그래 굴리면 어디든지 가겠다 그말이예요? 그렇잖아요. 사면이 단단하니 굴리면 어디든지 가는 거라구요. 동으로 가라면 동으로 굴러가는 거예요. 가다가 옆으로 갈 줄도 모르고 오직 일직선으로만 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끝날에는 차든가 뜨겁든가 둘 중의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미지근한 것은 한 면이 물렁물렁한 것과 같습니다. 그거라구요. 그러니 단단하든지, 아니면? 「물렁물렁」 물렁물렁하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소원이 뭐냐? 물렁물렁이다? 「단단이요」 물렁물렁이야? 「단단입니다」 단단이야? (웃음) 응? 「단단이입니다」 할머니들도? 「예」 저기 아주머니도? 「예」
여러분, 형용사라는 것은 좋은 것을 고르기 위해서, 좋은 기분을 돋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기분 나쁜 것을 돋구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그건 망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단단해야 됩니다. 단단해야 된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질깁니다. 가죽처럼 질기다 이겁니다. 참으로 질기다구요. 왜정 때부터 지금까지 죽지 않고 남아져 꺼떡대는 걸 보면…. (웃음) 참 질기다구요. 여기 우리 아가씨들도 시집가게 되면 질긴 남자 얻으라고, 그렇잖아요? 사람은 질겨야 되는 거라구요. 뭘 하나 붙들면 그걸 녹여내야 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 패들, 특히 문선생을 가만히 보면 겉으론 물렁물렁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누가 오면 적당히 잘 대해 줍니다. 그렇지만 벌써 그 똥싸개까지 다 파헤쳐 가지고 알고 있다구요. 음, 너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구나…. 어수룩해 보이지만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음! 저녀석 이런 생각 가지고 다니는구만' 말하지 않아도 벌써 그걸 다 안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이 질기고 단단한 것 같지 않아요? 식구들이 아무라도 선생님에게 이러고 저러고 하면 '아 그래, 아아 그런가' 하고 사정을 잘 들어주는데 뭐가 단단해요?물론 사정은 잘 들어주지만 원리원칙에 가서는 조금도 용서하지 않는 거예요. 싹 잘라 버리는 거라구요. 어머니 아니라, 아버지 아니라, 여편네 아니라, 자식이라도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겨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여자들도 단단해야 되겠습니다. 사방이 단단한 여자들이 되어야 되겠다구요. 그렇게 되어야 되겠지요? 「예」
이제 전부 다 또 한 번 총동원시켜야 되겠습니다. '총동원' 하게 되면 여자들 얼굴이…. 그전에는 미인들인데…. 미인의 반대가 뭐예요. 추녀입니다. 때가 돼 가지고도 총동원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그것을 더 안타까와해야 합니다. 언제나 '아유, 난 싫어, 난 이제 싫어, 집에 있는 게 답답하고 지루해서 싫어' 그래야 됩니다. 여러분! 여름 내내 장마가 지면 지루하지요? 그것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누더기 보따리, 누더기 옷 한번 벗어 던지고 세계무대에서 활개치고 살다가 죽어야 되지 않겠어요? 그저 언제나 지루하게 생활하면 거 기분 좋아요. 나빠요? 기분 좋아요. 나빠요? 「나쁩니다」
짐을 벗는 데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승리해서 벗는 것이 있고 하나는 망해서 벗는 것이 있습니다. 한 길밖에 없다구요. 우리가 갈 도착점은 승리해서 짐을 벗는 놀음이지, 망해서 벗자는 놀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니, 빨리 짐을 벗기를 바란다면 보다 과중된 임무를 짊어지라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이제부터 나라를 위해 살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솔가(率家)하여 나라를 위해 충성하게끔 하는 사람은 가정에서 공인받는 것만이 아니라 나라에서 공인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기에 더 큰 공적인 분야에서 희생하고, 책임소행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그것은 나쁘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요? 그럴수록 좋은 것이다. 뭐 나쁘지 않은 것이나 좋은 것이나 마찬가지지, 다 좋은 것이다 이겁니다.
그래서 내가 요전에, 남북적십자회담이 벌어져 남북이 왕래하며 무슨 무슨회의를 한다는 그런 소문을 듣고서 '아하 내가 삼팔선을 넘을 때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떠난 걸음인데, 수십 년 달리다 보니 이제 다시 삼팔선에 가 볼 때가 되어 오는구나'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안 되면 우리가 그것을 밀고라도 가서 만나야 되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한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래 남한이 뭐가 걱정이예요? 인구 수로 해도 배가 넘지 않느냐? 그렇지요? 「예」 자, 그러니 이거 얼마나 못났어요? 이것들 이게, 사람이 얼마나 못났느냐 이겁니다. 내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대 일로 바라볼 때 그들도 사람이예요. 사람이 아니예요?사람이라면, 두 녀석이 한 녀석을 무서워해요? 그게 잘난 녀석이예요. 못난 녀석이예요? 잘난 녀석이예요. 못난 녀석이에요? 「못난 녀석입니다」 못난 녀석이라구요. 못난 녀석이예요. 수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걱정이 뭐예요?
우리 대한민국 여자들만 동원해 가지고도 그들의 모가지를 다 잘라 버리고 밀어 버릴 수 있습니다. 여자만 동원하면 됩니다. 하면 되는 거예요. 공산당 이상으로 여러분도 하라는 거예요.
나는 지금도 그렇게 얘기한다구요. 박대통령 보고 '박대통령! 해라! 밀어라! 밀어붙여라! 야당이 반대해도 밀어라, 대한민국이 천년 만년 남아지기 위한 역사를 창조하려면 밀어라' 하고 얘기했습니다. 야당을 위한 대한민국이 아니라구요. 대한민국을 위해 야당이 있는 것이지 누구든지 대한민국을 위하는 입장에 서면 못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당이 만약에 대한민국을 위해서 못하게 되면 들이쳐야 됩니다. 쳐야 된다구요. 대한민국을 사랑해야 됩니다. 공화당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요즈음 뭐 '통일교회는 공화당이다' 그러는데 우리가 공화당일 게 뭡니까? 통일교회는 오직 한국을 사랑하는 한국당 종교지, 공화당이 아니라구요. 미래의 역사를 이끄는 중심으로서의 한국을 위한 패들이지, 공화당을 위하는 게 아니라구요. 공화당은 한국을 잡아먹으려 하면 안 된다구요. 그걸 확실히 해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노정은 죽도록 나라를 위해 가는 노정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니까 여당하고 한패라고, 야당들이 우릴 대해서 뭐가 어떻고 어떻고 야단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당이 우리를 알아주는 것도 아니라구요. 또 알아 달라고 내가 그러는 것도 아니예요.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러한 자리에서 충의 도리를 다하는 그것이 애국이 아니냐? 내가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에 무엇이 되겠다고 하는 생각을 했다면 그건 애국이 아니라구요. 그건 자기를 위한 욕망이요 계획이지, 나라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통일교회가 이 나라에 무슨 욕망이 있어요? 없습니다. 선생님도 욕망이 없다구요. 욕망이 있다면 세계를 구하자는 것입니다. 세계를, 요전에도 내가 한다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나보고 떡 제시하는 세 가지 조건이 뭐냐 하면 '첫째는 뭐고, 그 다음은 뭐고, 이런 문제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아 그거 당신이 나라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요. 세계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요' 하고 반문하려다가 이야기를 안 했습니다. '결국 한국 사람은 한국을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한국이라는 영역에 포위되어 세계를 지도해 보겠다는 사상은 못 가졌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언제 다시 만나면 전부 분석해서 비판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통일교회 기반이 커 가기 때문에, 뭐 박대통령을 밀어치우고 대통령 해먹으려고 그런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한국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 아닙니다. 미국 행정부를 내가 틀어쥐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민주세계 꼭대기를 끌어잡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그 닻줄을 잡혀 주는 사명을 하겠다는 거라구요.
내가 감옥에 들어갈 때도 문선생님 뭐가 어떻고 뭐가 어떻고 말이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앞으로 문선생을 만나는 것은 세계무대에서만 만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국의 인물들을 지금까지 만나지 않았어요. 만나자고 해도 안 만났다구요. 나는 저자세에서, 또는 신세지는 입장에서는 만나지 않아요. 그런 짓은 죽어도 싫어하는 사람이라구요. 신세를 지우는 입장에서, 당당히 그에게 신세를 입히는 자리에서, 공적 예의범절을 가릴 수 있는 자리에서 만나자는 거예요.
나는 이제 대한민국의 누굴 만나더라도 부끄럽지 않다구요. 그럴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선생님을 한국에서의 선생님으로 생각지 말라 이겁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만나려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사상이란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미국 사람도 선생님을 좋아하고, 일본 사람도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도 선생님이 명령하게 되면 듣게 마련입니다. 일본 사람도 원수지만 선생님이 명령하게 되면, 천황이고 다나까 정부고 간에 반대하라면 반대한다구요. 공산당하고 공개토론해 가지고 그들을 쓰러뜨려라, 칼침을 맞고 쓰러지더라도 해라, 지금 그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공산당이 코너에 몰려 있으며, 이론적으로 공산당이 밀리게 됐으니 그들이 큰일났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어제도 일본내의 비밀 이야기를 들었는데, 조총련을 통한 북괴 공산당들이 김일성 이가 큰일났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런 말들을 내가 지금 듣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앉은 이 자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회라고 이게 뭡니까?값으로 따져서 몇백만 원 되겠어요? 천만 원 미만이라구요. 그렇지만 여기에 사는 사람, 특히 통일교회 문선생은 천만 원 이하의 사람이 아니다 이겁니다. 토굴이면 어때요? 비참한 토굴이라도 그 토굴 속에서 세계를 살릴 수 있으면 각국의 원수들이 그 토굴을 찾아와 눈물 흘리며 들어서는 거라구요. 그들이 찾아 들어와 가지고 토굴 벽을 붙들고 눈물을 흘릴 거라구요. 그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내가 내 개인을 위해 그랬다면 그러는 녀석들은 미친 녀석들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단단해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 여자들은 세상 사탄이 간교한 수법으로 꼬여내면 꼬여넘어가야 된다? 「안 넘어가야 됩니다」 자신 있어요? 「예」 선생님은 '이 세상 사탄의 자식들이 나를 꼬인다는 것은 어림도 없다'는 그런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가는 길은 누구도 막지 못한다구요. 어떤 길이라도…. 그런 길을 닦아온 사나이라구요.
여기 사내녀석들, 전부 다 알몸뚱이가 되게 해 가지고 캄캄한 방에 쓸어넣더라도 안 넘어갈 자신 있나? 「예」 자신들 있어? 「예」 자신 가져야 된다구요. 선생님은 그런 훈련을 다 거쳐 나온 사람이라구요.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그렇다구요. 네가 내 말을 안 들으면 실적으로 승리할 것이다. 타당한 원칙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공인하지 않고 수긍하지 않으면 실적으로 제압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 있는데 기성교회보다 못해서 되겠어요? 그렇지요? 못해서 되겠느냐구요? 「안 됩니다」 앞으로 우리 본부교회를 새로 짓더라도 이 건물을 헐어서는 안 됩니다. 이건 그냥 그대로 두고 앞으로 박물관을 세워 놓으라구요. 이제 교회도 세계에서 제일가는 교회를 지어야 되겠다구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래야 되겠다구요. 우리들은 사는 데도 참 잘살아야 되겠습니다. 잘살자구요. 「예」 알뜰하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최고의 이윤도 남기고…, 말뿐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자 이거예요. 만들 수 있다구요.
이제는 선생님이 어떠한 말을 해도 여러분이 믿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10년 전, 20년 전 여러분들의 말을 들어 보면 무성했습니다. 그렇게 될 것이다. 안 된 것이다 하고…. 그러나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요즘에는 믿을 수 있는 단계에 들어 왔다구요. 그렇지요? 믿을 수 있는 단계에 들어 왔지요?조금만 더 가게 되면 입을 벌리고 '아하'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구요. 결국은 그렇다 이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위해서 과중한 짐을 지고 간다면 하나님이 싫어하겠어요. 좋아하겠어요? 서로가 짐을 안 지려고 하는데, 하나님을 위해서 파중한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야, 이녀석아! 얼른 가라'고 그러겠어요, '야, 쉬어라, 쉬어라' 그러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쉬어라 쉬어라 하겠어요. 가라 가라 하겠어요? 고개를 넘을 때까지는 '이놈의 자식아 가라, 가라 이 자식아' 그럽니다. 잘 때도 맘대로 못 자게 하면서 가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쉴 때가 언제냐? 고개를 넘기까지는 밤을 새워서 가라고 하고, 쓰러져도 '야, 이 녀석아 얼른 가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개를 넘을 때까지는 그렇게 때려 몰지만 하나님도 양심이 있지, …(웃음) 하나님도 때려 몰았지만 그가 탕감하고 고개를 넘은 입장에 서면 '야야, 쉬어라, 짐은 내가 대신 지마' 그런다는 것입니다. 올라와 넘을 때까지 쉬지 못한 것을 이제 30년이고 40년이고 쉬라고 하는 거라구요.
자, 그렇게 되면, 그때는 하나님 보고 '이놈의 영감, 왜 그래' (웃음) '이 때려죽일 영감' 하고 욕을 해도 걸리지 않는다구요. '이놈의 영감, 뭐야?난 쉴 줄을 몰라, 언제는 짐을 지워 빨리 가라고 해 놓고, 이젠 쉬라니 그게 뭐야?난 지고 갈거야, 더 지고 계속 가겠어' 할 때 '이놈아 너 벌받을래? 그러지 않는다구요. 그렇게 나오면 하나님이 울면서 따라온다구요. 엉엉 울면서…. (행동을 취하심, 웃음) 그럴 수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말 이해가 되지요? 「예」
사실은 잘 모르지만, 말은 이해가 가지요? 통일교회 문선생님도 하나님이 쉬라고 합니다. '이제 그만 일해라, 돈이 필요하면 돈도 내가 갖다 주마, 집이 필요하거든 집도 지어 주마, 교회가 필요하면 교회도 지어 주마, 뭐 그렇게 모닥불에 미친 사람처럼, 피스톤처럼 야단이야?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피스톤 알아요? 피스톤은 그럴수록 복잡하다구요. 그렇지요? (웃음) 그래 복잡할수록 나쁜 거예요. 좋은 거예요? 「좋은 겁니다」
쉬라는 거예요, 달리기만 하면 되나요? 데리고 가야 하는데 그냥 넘어가면 곤란하다는 거예요. 그냥 가면 갔다가 또 와야 되기 때문에 그때는 쉬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들, 올라가는 과정에서 쉬라는 사람 따라갈래요. 넘어가서 쉬라는 사람 따라갈래요? 「넘어가서 쉬라는 사람 따라가겠습니다」 그건 아누만, (웃음) 그러려면 올라갈 때까지는 짐을 벗고 가겠다고 해야 되겠어요. 짐을 더 지고 가겠다고 해야 되겠어요? 「더 지고….」 짐을 더 지고 가야 된다구요. 그러한 놀음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우기나 여러분은 탕감복귀를 배웠지요? 「예」 탕감복귀라는 것을 알지? 개인탕감이 실패했고, 가정탕감이 실패했고, 종족탕감이 실패했고, 민족탕감이 실패했고, 국가탕감이 실패했습니다. 외형적 세계탕감을 책임져야 할 미국까지도 전부 다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미국 가 가지고 미국놈을 대 놓고 1978년까지 너희들이 책임 못하면 망한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7,8년 안에 공산당한테 모가지가 걸려 있다구요. 그 일을 우리 통일교회가 해야 된다 이겁니다. 만약에 그들이 내 말을 안 듣게 되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망하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기동대를 급속히 편성한 것입니다.
자, 이 세계복귀는 우리의 사명이지요? 「예」 그렇지요? 「예」 그런데 여기 이 사람들을 데리고 세계복귀를 해? 여기 이 사람 이 사람들, 임자네들 데리고 세계복귀할 수 있겠어? 세계복귀해, 못 해? 「합니다」 해, 못 해? 「합니다」
보라구요. 여러분, 급행열차가 잘생겼어요. 못생겼어요? 응? 빠른 기차일수록 잘생겼어요. 못생겼어요? 「잘생겼습니다」 그것 보면 말이예요. 생긴 것도 쭉쭉 뻗어 가지고 대가리가 날쌔게 생겼어요. 달리게 될 때는 소리도 안 난다구요. 그것 보면 잘생겼다구요. 그렇지? 그런데 화물열차는 잘생겼어요. 못생겼어요? 그것은 힘이 들어서 "칙-칙-푹-푹 칙칙 -푹푹" (웃음) 그게 그게 기분 나쁜 거라구요. 거기다가 '떨그렁 떨그렁' 그러니 그게 잘생겼어요? 「못생겼습니다」 그러면, 기관차가 잘생겼다면, 화물차는 못생겼는데, 그 잘생긴 기관차에 못생긴 화차를 달아 놓으면 어울리나요. 안 어울리나요? 「안 어울립니다」 누가 보더라도, 왜 저런 것을 달아 놨느냐고 할 것입니다. 어울리지 않지요?어울려요. 안 어울려요? 「안 어울립니다」
그걸 볼 때에, 우리가 세계를 책임지겠다고 하는 통일교회 패들인데 잘생겨야 하겠어요. 못생겨야 하겠어요? 응? 잘생겨야 돼요. 못생겨야 돼요? 「잘생겨야 됩니다」 잘생겨야 할 것이 원칙인데 여러분들이 못생겼다 할 적에 어떻게 돼요? 자, 통일교회 문선생이 잘생겼어요. 못생겼어요? 못생겼기 때문에 욕을 먹었겠지…. 하긴 잘생겨도 욕을 먹을 수 있는 일이니, 두고 보면 역적인지 충신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선생님이 기관차라면 여러분들은 짐 싣는 화차인데 잘생겼어요? 멋진 기관차에 멋진 객차를 달아 가지고 쭉쭉 뻗어 나가야 할텐데, 이건 뭐 대가리통은 좋지만 달아 놓은 화차통들은 여기저기 구멍이 뻥뻥 뚫리고…. 게다가 썩어 망가져 가지고 가려고만 하면 덜컹덜컹 하는, 이러한 화차를 끌고가야 될 기관차라 하게 되면, 그 기관차 꼴 좋겠어요? 그건 죽지 못해서 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렇다면 그 열차의 주인은 어떻게 하겠어요? '아하 저놈의 기관차는 저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 해 가지고, 그 열차를 기관차까지 둘 다 망하게 할 수는 없겠기 때문에, 둘 다 내버릴 수는 없기 때문에 기관차는 떼어서 그 기관차에 맞는 멋진 열차칸들이 있다면 주인은 그것들을 달아 주고 싶겠어요. 안 달아 주고 싶겠어요? 솔직이 말해 보라구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좋은 기관차들이 떡 기다리고 있는데, 좋은 기관차가 없다면 하나님도 그걸 볼 때, 덜커덩거리는 기관차를 갖다 붙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멋진 객차의 대가리를 갖다 붙이겠어요. 안 붙이겠어요? 「붙입니다」 그걸 붙이는 것이 정상이예요. 아니예요? 「정상입니다」 그럴 때는 옆에 있던 화물열차가 '나 죽겠네, 이놈의 기관차가 왜 왔어' 하고 참소해야 되겠어요? 할수없어 제바람에 나가자빠져야 된다구요. (웃음) 이거 웃을 일이 아녜요. 웃기는 말이 아니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을 데리고 세계를 요리해야 되겠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껄렁껄렁한 화차칸이 되게 될 때에는, 그걸 하나님이 보시고 '열차칸들은 난 모르겠다. 쓸만한 것은 기관차뿐이다'고 생각하여 미국의 멋진 열차칸에 달아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하나님은 그 기관차를 미국으로 옮기겠어요. 안 옮기겠어요? 응? 미국으로 가져 가면 거기에서 더 발전하겠다고 생각되면 미국으로 기관차를 옮기겠어요. 안 옮기겠어요? 그렇게 옮기는 것이 정상이예요. 안 옮기는 것이 정상이예요? 생각해 보라구요. 생각을 해봐요. 남자들, 대답해 보라구, 대답을 해보라구 「옮기는 게 정상입니다」 쌍것들 같으니라구! 옮기는 게 정상적이야, 안 옮기는 게 정상적이야? 「옮기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대답을 빨리 해야지, 왜 이러는 거야 답답하게, 아무리 선생님이 있으려 해도 하나님은 옮기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거예요. 그런 것까지도 생각하고 있다구요.
여기 이 영감, 오늘 어떻게 새벽같이 왔어?영감을 내가 늙어 죽도록 부려먹으려고 했는데, 어디 갔다 왔어?병나서 집에 갔었어?병이 났나? 요즘엔 며칠째 얼굴도 보기 힘드는 걸 보면, 그래도 죽기는 싫다는 것 아니야?때가 지금 바쁜 때라구요. 자식들을 올바로 지도하는가?내가 얘기 안 할 수 없지, 영감은 통일교회에서 제일 축복받은 영감이니, 그 후손들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을 내가 두고보는 거라구요. 출발할 때 이상 죽을 때가 되면 될 수록 출발할 때의 그 이상을 추구할 수 있지 않으면 자손들이 참소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나이가 많아도 쉬려고 하지 않습니다. 육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지경이 되면 조건이라도 세우고 살 거라구요. 이런 얘기는 할 것이 못 되지만, 어제도 산에 가 가지고 아침부터 오전 내내 얘기하고, 오후에는 밤에까지 순회하며 얘기를 했습니다. 그 전날도 아침에 공장에 들렀다가 저녁에 또 공장에 가서 기합도 주고, 이래 가지고 지쳐서 들어왔다구요. 그래 가지고 주일이 되어 새벽에도 잠을 못 잤어요. 돌아오자마자 저녁밥 먹고 열 시밖에 안 됐는데도 몸살났나 해서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잠을 자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주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두 시간 먼저 자면 두 시간 일찍 일어난다구요. 그게 습관이라구요. 여러분은 두 시간 먼저 자면 두 시간 더 자게 되어 땡잡았다고 하지만 말예요. (웃음) 선생님은 습관이 됐어요. 두 시간 먼저 자면 반드시 두 시간 일찍 일어나게 되니, 어머니가 죽겠다는 거예요. 그래 덜렁덜렁 일어나면 출장소에 가야 된다구요. 출장소가 뭔지 알지요? (웃음)
오늘 아침에도 두 시 20분에 일어났다구요. 일어나면 습관이 말예요. 기도를 해야 됩니다. 기도를 안 하게 되면 얘기도 못 하는 겁니다. 또 그 다음에는 며칠 동안 신문을 못 봤기 때문에 요즈음 아시아의 정세에 대해서도 알아야 되겠다 해 가지고 네 시 10분 전에 변소 앞에 앉아서 신문을 읽는 거예요. 남 자는데 방안에서 볼 수 있어요?그래서 안경을 내다 놓고 버티고 앉아서 신문을 보는데 보다 보니까 다섯 시 12분까지 봤어요. "아이쿠?생각을 해보니 어제 저녁에 목욕을 하려다가 그것도 모르고 자 버렸기 때문에 목욕도 해야 되겠고, 양치질, 면도 정신이 없더라 구, 실컷 신문 읽다가 바빠라, 볶아라 그런다는 거예요. 그래 12분에 쫓아 올라가 하고 나니까 그래도 5분 남았더라 이거예요. 7분동안에 해치웠다구요. 그렇게 바쁜 놀음을 해 가지고 오늘 여기 이렇게 나와서 '과중한 임무'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바쁘다구요.
자 그런데, 내가 지금 만으로 쉰 두 살 넘었나, 안 넘었나? 응? 넘었어요. 안 넘었어요? 「넘었습니다」 넘었든가? 「예」 그렇지요? 나이를 보면 쉰 둘이 넘었다구요. 그럼 여러분들 중에 여기 나이 많은 분들은 통할겁니다. 나이 많은 분들만 말예요. 마흔이 넘어 마흔 다섯 살만 먹게 되면 벌써 눈에 무엇이 한꺼풀 씌운 것같이 눈이 달라진다구요. 그래 가지고 마흔 일곱 살 만 먹게 되면, 아이고 신문을 보고 읽던 것이 그때부터는 글자가 인사를 안 하려고 그런다구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 다음, 더 지나게 되면 말예요. 몸이 점점 앞으로 자연히 기울어진다구, 그걸 선생님은 지금도 운동을 하기 때문에 지탱하는 거예요. 젊은 사람들이 쏙 와서 완력으로 달겨들어도 내가 받아넘길 수 있어요. 만만치 않다구요. 선생님은 특수한 운동을 연구해 나왔습니다. 감옥에서도 그 운동을 안 했더라면 이미 큰 고생을 했을 거라구요.
앞으로 잘 믿는 통일교회 교인들에게는 선생님이 가르쳐 줄 겁니다. 지금도 그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운동을 하게 되면 피곤함이 한꺼번에 다 해소됩니다. 어떤 때는, 아주 피곤하여 곤드레만드레가 될 때에는 그 운동을 해 가지고 전부 해소시키는 거예요. 지금도 나는 통일교회 누구한테 책임을 맡겨 가지고 일시키기가, 솔직이 이야기해서 누구도 책임자로서의 책임을 맡겼지만 그 책임자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리라는 생각을 절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저걸 내가 손대야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되는 데도 그들은 자랑한다구요.
나는 지금까지도 내 자랑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조금이라도 자랑하면 내가 탕감받는다구요. 조금 더하면 '통일교회 너 뭐냐, 조금 더 자랑하다가는 탕감받는다' 이거예요. 자랑한다고 해서 꼭 탕감받는 법은 없겠지만, 그래도 있을 수 있다구요. 그건 사랑의 탕감이예요. 그렇잖아요?'야 이 자식아 쉬라는데 왜 쉬지 않는 거야' 그럴 때와 같이 사랑의 탕감도 있다는 겁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도 그래요. 나이 많은 사람들, 여러분들도 그런 거라구요. 생각은 옛날 소년 소녀시대의 생각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구요. 그런데 몸뚱이는 옛날 같지 않습니다. 산에 올라갈 때도 말예요. 요즘 선생님이 매일같이 청평에 가 가지고 산에 올라갑니다. 그래 올라갈 때 옛날과 다른 기분을 느끼면 기분나빠서 또 올라가는 거예요. 그런데 어제 올라가던 것보다 더 피곤한가 가만히 생각하니 더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정신적으로 피곤하지 않다. 않다. 않다. 해보라구요. 그래 않다. 않다. 하면서 출발하여 올라간다면…. 않다. 않다 하면 안타같이, 야구에서 안타를 치면 좋듯이 (웃음) 올라가게 된다구요. 사람은 정신력이다 이겁니다. 정신적인 힘이 큰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다 보니 언제 올라갔는지…. 안타치고 올라가는 것이지, (웃음) 올라가다 보면 정상이라구요.
지금도 그런 훈련을 하고 있어요. 감옥에 끌려가서 일하면서도 나는 그 훈련을 했습니다. 몸뚱이는 일하지만 정신은 딴 데 두고…. 그걸 알았기 때문에, 그런 작전을 하게 된다면 말예요. 피곤한 줄 모르고 이겨내는 거예요. 그리하여 그때를 지내고 나서 자리에 눕게 되면 곤드레만드레가 됩니다. 그때는 누가 져 가도 모른다구요. 그러다가 어떤 때는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고 일어나다 보면 눈이 안 떠져 눈을 뜨다 보면 눈이 충혈이 됩니다. 어떤 때는 일어나긴 일어났는데 손을 들려니 손에 힘이 없어요. 그렇지만 일어나야만 된다고 그럴 때는 쓰윽 서 가지고 말예요 다시 정비하는 겁니다. 그러면 피곤을 모른다구요.
우리는 그렇다고 쉴 수가 없습니다. 쉴 수가 없어요. 중대한 책임을 다하고 쉬어야 합니다. 책임 못 하고 죽은 무덤은 누가 찾아 주지도 않는다구요. 여러분, 우리는 세계 복귀라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개인탕감에 실패하거든 가정시대에 그 개인탕감을 복귀해 가지고 개인 승리 표준의 가정을 닦아 나와야 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천번 만번 잎을 해결짓지 못했습니다. 개인이 실패를 했지만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실패한 자리에 그대로 둘 수 없기 때문에 가정적 섭리를 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적 섭리에 실패했지만 그것을 하나님은 또 중단할 수 없기 때문에 종족적 섭리를 펴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종족적 섭리에 실패했지만 민족적 섭리를 펴 나오는 것이고, 민족적 섭리에 실패했지만 국가적 섭리를 펴 나오고, 국가적 섭리에 실패했지만 세계적 섭리로 쭉 쉴새없이 펴 나왔습니다. 하나님편에서 보게 된다면 이렇게 세계적 종교권시대를 맞이했지만 이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개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가정이 없다는 거예요.
개인과 가정은 따로따로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승리한 사람이 가정을 이어받아 가지고 승리해야 원칙입니다. 그 승리한 가정의 기준을 이어받아 가지고, 그 개인 이상으로 가정이 살아 가지고 종족적으로 승리해야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무슨 말인지, 육천년 동안 역사적으로 실패한 종적인 실패를 전부 다 횡적으로 탕감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족적 시대에 실패한 것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민족적 시대에 수습해야 되고, 민족적 시대에 실패한 것은 국가적 시대에 수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적 기반을 세계에서 수습하는 이런 놀음을 지금까지 해 나왔지만 전부 다 실패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반대하는 거예요.
이제는 개인적으로 승리한 사람이 가정을 수습해야 되고, 가정적으로 승리한 가정이 종족을 수습해야 되고, 종족적으로 승리한 종족이 민족을 수습해야 되고, 민족, 종족, 가정, 개인이 승리한 기반을 터전으로 국가를 수습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국가와 민족과 종족과 가정과 개인이 승리한 그 기준으로 세계에 승리해야 합니다. 그 책임을 도맡아 가지고 해야 할 것이 왈(日),메시아의 사명입니다. 알겠어요?
다시 말해 메시아의 사명이 무엇이냐 하면, 전체적으로 실패한 것을 역사적인 대표로서 승리의 권한을 세계적으로 세워야 되고, 그리하여 그 메시아를 중심한 가정이 세계적인 가정의 실패를 대표적으로 승리한 자리가 되어야 되며, 수많은 종족이 망한 것을, 실패한 것을 전부 찾아 세워야 되는 겁니다. 이렇게 개인에서부터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으로 다 한꺼번에 일대(一代)에 세워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오는 분이 어떠한 분이냐?그분이 메시아요. 그 사명이 메시아란 분의 사명입니다. 알겠어요?무슨 말인지,「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천신만고해서 개인 승리의 기반을 닦으라는 것입니다. 천신만고해서 가정의 승리의 기반을 닦으라는 것입니다. 그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의 승리권을 닦으라 이겁니다. 그 종족을 끌고서라도 민족의 승리권을 닦으라 이거예요. 그 민족을 끌고 가서라도 국가와 세계의 승리권을 닦고, 세계를 끌고 하늘편 천주의 승리권을 닦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일대(一代)에 하지 않고는 세계 완성적 통일세계는 되지 못합니다. 그것이 메시아의 사명이예요.
그러니까 메시아란 분은 육천년 동안 하나님이 지금까지 실패한 모든 역사를 지상에 한번 와서 당대에 총탕감복귀해야 하는 사명을 짊어지고 오시는 분이다 이겁니다. 이것을 만일에 기독교가 받들게 되면 일시에 될 수 있습니다. 일시에 기독교와 민주세계가 하나되어 가지고 받들게될 때에는 일시에 세계적 기준과 국가, 민족, 종족, 가정, 개인의 기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틀어지는 날에는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거쳐 그 기준까지 다시 찾아 나가야 합니다. 이 놀음이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해 나온 놀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떠한 입장이냐?개인의 책임을 절대적인 입장에서 져 가지고 가정이 설 수 있는 발판이라도 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그러면 그 가정이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개인적 발판이라도 되기 때문에 시대적 승리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된 승리의 그 가정은 종족적 발판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통일교회에서는 새로 축복을 해줍니다. 합동결혼식을 한 가정은 하나의 통일종족입니다. 통일종족이라구요. 앞으로는 창씨를 하는 거라구요. 사탄편 일본놈들이 먼저 성을 다 바꿨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창씨를 하는 거라구요. 성을 갈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통일'가(歌)?그런데 통일가라고 했을 때, 한국식 이름에 성이 두 자면 네 글자가 되어 일본인들 이름 같아서 기분 나쁘다면 '통'가가 되든가 '일'가가 되는 거예요. '일'자가 좋을 것 같구만, 이래도 일가요 저래도 일가요. 이웃 친척 전부가 일가니가 그게 통일이다 이거예요. (웃음) 그래 돼야 된다구요.
그렇게 해서 통일족속은 뭐냐 하면, 앞으로 민족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발판이 되라는 것입니다. 발판이 안 되면 안 된다 이겁니다. 그러한 발판이 못 되거들랑 세계 어디에서 끌어다가라도 발판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국가의 발판이 되라는 것입니다. 세계의 발판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하늘 앞에 서게 되면 대한민국이 세계를 복귀하는 발판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거든 대한민국은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게 복귀의 길입니다.
그러니까 개인복귀해서 가정복귀로 가는 것이 원칙이지만, 될 수 있는대로 우리는 다 함께 가자 이겁니다. 알겠어요? 개인복귀해 가지고 세계복귀 무대로 가자는 것입니다. 그러고 싶어요. 안 그러고 싶어요? 「그러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냥은 못 갑니다. 길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하이 웨이를 닦지 않고는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빠른 속도로 거쳐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을 해야 됩니다. 그 길이 아니면 못 가게 돼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개인세계적 탕감노정, 가정세계적 탕감노정, 종족세계적 탕감노정, 민족세계적 탕감노정을 어떻게 하느냐?이러한 과중된 임무를 선생님은 짊어지고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동정 못 하게 될 때는 한이 맺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 사람의 편이 되어야 됩니다. 세계가 그의 편이 되었던들…. 거기에 돌팔매질하고, 거기에 가시덩쿨을 씌워 방해하는 사람들은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 반대하는 사람들 잘되나 두고 보라구요. 조사해 보라는 거예요. 전부 다 죽어 나자빠지지 않으면 가족들이 떼거지가 되어 산산히 흩어져 가지고 빌어먹는 패들이 돼 버린다는 것입니다. 두고 보라는 거예요. 앞으로 '통일교회 반대하는 사람은 결국은 종말이다' 하는 책자를 하나 내려고 합니다. 두고 보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이상합니다. 내가 성이 나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할 때는 이상하다구요. 우리 교회에서 '저 사람 안 되겠다'할 때는 가만 있어도 영계에서 그를 쫓아냅니다. 공산당은 칼을 대 가지고 숙청하지만 통일교회는 영계에서 숙청합니다. 그게 다르다구요.
자 그러면 선생님이 불쌍한 사람이예요. 안 불쌍한 사람이예요? 불쌍한 사람이예요. 안 불쌍한 사람이예요?무엇 때문에 내가 불쌍해요? 세상적으로 볼 때는 불쌍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불쌍한 사람이라구요. 단에 나아가 기도하게 되면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입니다. 아! 이 막중한 책임을 누구한테 맡길소냐? 맡길 사람이 없습니다. 통일교회 어느 누가 맡을 수 있어요?그러니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있는 자리는 심각한 자리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동지가 없다면 누구보다도 없는 사람입니다. 책임을 진 자리에서 고독하다면 누구보다도 고독합니다.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나보다 더 고독한 하나님을 모셨기 때문에, 말없이 표정도 안 내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허허' 하고 웃는 그 웃음이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니예요. 오직 소망의 닻을 내려 가면서 웃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모를 거라구요. 누구든 여기 집에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이나, 앞으로 자식들이 커서 철이 들어도 그것은 모를 것입니다.
그렇다고 부모의 골수에 흐르는 하나님의 한을 아무것도 모르는 철모르는 아들딸에게 가르쳐 주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들딸들은 탕감복귀의 해원성사시대를 지났기 때문에 영광의 자리와 놀라우신 은사로 태어난 것만을 알려 주고 싶지, 그 깊은 내막은…. 그래야 될 것이 아녜요?아담 해와의 후손이 타락권의 인연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중단됨)
여러분이 동내에 길을 하나 낸다면 많은 운세가 몰려들 것입니다. 그래 '뭘하자' 그러면 서로서로가 수가 나도록 이마를 맞대고 '네가 안 하면 내가 해야지' 둘 중의 하나가 그렇게 되면 할수없이 전부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안 가도 다른 사람이 가는데 뭐' 그런 마음은 편치 않은 것입니다. 두고 보라구요. 마음이 편안치 않다구요.
자기들의 계획대로 통일교회에 인연되어 들어온 사람들이라고 해서 제 계획대로 가는 거예요?자기 선조들이 전부 길을 막아 가지고 못 가게 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한 걸음 잘못 디디면 영계의 70대(代) 선조들이 걸려든다구요. 지금 그러한 방대한 문제가 엇갈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팔자소관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내 팔자가 이것을 위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죽더라도 이 팔자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들어온 사람들은 팔자소관이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을 만난 것입니다. 못 해도 40년은 여러분들이 안 가면 안 되는 운명입니다. 복귀 역사는 4수 역사이니까 40년을 못 가면 탕감 못 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40년은 가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4천년, 아브라함부터 지금까지 4천년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40년을 여러분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기에 쉬어 보라구요. 편안한가? 쉬게 되면 여러분의 몸이 못 견딥니다. 몸에 고장이 난다구요. 병이 난다구요. 병이, 지방에 나가 지금 일선에 선 사람들이 피곤하다고 '아이고 힘들어 못 하겠다' 해 가지고 다른 것 해보라구요. 다른 것 해도 안 됩니다. 안 된다구요. 그러한 하늘의 탕감복귀의 운명을 짊어진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 길 외에는 갈 길이 없다'고 하면서 죽더라도, 배밀이하면서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어느 정도까지 오지 않았느냐? 이제야 말로 한번 뛰어넘으면 세계도 뛰어넘을 수 있는 시야가 우리 눈 앞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자기 민족보다도 세계인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모험을 할 때가 우리 목전에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는 통일교회 교인 전원이 과중한 임무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또 정세적으로 볼 때, 한국 민족은 과중한 임무를 감당해내지 않고는 살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외적 정세이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책임을 진 통일교회 교인이라면 안팎의 그런 과중된 임무를 다해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어요? 「예」
이제 가는 길은 세 길이 있습니다. 세 가지 길이 있어요. 여러분이 부모의 길을 어떻게 가느냐? 그걸 알아야 돼요. 우리 복귀역사가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는 신랑 신부의 길을 어떻게 가느냐? 그 다음에는 자녀의 길을 어떻게 가느냐? 그렇지 않아요? 그 세 사랑이 하나님이 찾아 오시는 중요한 포인트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이 세 길을 통해 보게 될 때 여러분은 지금 어떠한 길을 가고 있느냐 이겁니다. 그걸 한꺼번에 다 못 가겠거들랑 자식으로서 갈 수 있는 사랑의 길을 가든가, 그 다음에는 선생님을 남편삼고 여러분은 아내와 같은 입장에서 부부의 사랑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길을 가든가, 혹은 자기가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대신해 자식을 키우는 것과 같은 사랑의 길을 가든가 해야 됩니다. 이러한 세 가지 종류의 사랑이 통일교회에 있게 마련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그래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여러분이 대해 가지고도 그렇습니다. 남자들도 선생님을 좋아한다구요. 어떤 때는 말이예요.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같이 안 있어 봐서 그렇지, 한참 때에는 남자들이 부산에 가 있다가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자기도 모르게 부산역으로 나가서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그런 놀음이 벌어졌었다구요. 그런 일은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놀음이라구요. 그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남자들도 남자를 그리워 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또 선생님을 대하게 되면 말이예요. 자기가 아무리 나이가 많더라도 애기와 같이 된다는 거예요. 애기와 같이, 자기 마음이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좋아하는 것은 왜 그러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들은 참사랑을 일시에 잃어버렸습니다. 부모의 사랑도 잃어버렸고, 부부의 사랑도 잃어버렸고, 자녀의 사랑도 다 파탄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 3사랑의 주체를 대해 가지고 내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횡적 환경을 갖지 않고는 탕감복귀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부모의 자리, 아내의 자리, 남편의 자리 중 어느 자리든지 설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그 다음에는 자녀의 자리에도 설 수 있는, 심정화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완성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그게 원리의 가르침이라구요.
그러니 그 세 가지는 다 못 하더라도 한 가정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의 자리의 심정을 갖든가, 부부의 자리의 심정을 갖든가, 자녀의 자리의 심정을 갖든가 해야 됩니다. 이 심정 가운데 하나라도 갖지 않고서는 그 가정의 식구로서 남아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창조이상이란 무엇이냐? 사위기대 완성입니다. 그렇지요? 그 사위기대 완성, 즉 창조목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지 않고는 완성 못 합니다. 사위기대 완성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이 세 가지를 다 이루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그래 가지고 그것을 갈라놓으면 사위기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이 창조이상의 원칙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부모만을 붙들어도 되는 거라구요. 부모만을 붙들고 효성해도 살아 남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 다음에는 자기 가정이 부모를 중심삼고 하나되게 되면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그 나라의 표창도 받을 수 있다구요. '아아! 저 부부는 나라에서 표본삼을 수 있는 부부다' 하게 되면 살아 남을 수 있다구요. 또, 자식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아! 저 부모는 우리 국가에서 표창할 수 있는 부모다' 하게 되면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자식이 부모를 대해 효도함에 있어서도 '저 사람은 효자로서 국가가 맞아들일 수 있다' 하게 되면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사랑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한 가지라도 갖지 않은 사람은 인류사회에 있어서 미끄러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근본 사상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밤이나 낮이나 이 사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나라와 수많은 사회 사람들을 보게 되면 그 가정을 대신하고, 나이 많은 사람을 보게 되면 할아버지와 같이 위하여 주고,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분이 있으면 자기 어머니 아버지처럼 모시고, 형님과 같은 분이 있으면 형님으로 모시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가정에서 훈련된 사랑을 체계적으로 세계화하여 일치권을 이루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것이며, 하나님이 바라는 이상세계입니다. 그게 바로 지상천국이라고 하는 겁니다. 딱 나와 있다구요. 그것이 말뿐이 아니라 사실이 그래야 된다구요.
타락한 세계의 사람들은 부모를 몰랐기 때문에 형제를 몰랐습니다. 부모를 알고 나서 부모가 '저 사람들을 어느때 내가 어떻게 낳아 가지고 저렇게 갈라졌던 것이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면 그때서야 '아!' 형제들아, 싸우지 마라, 원수가 아니다. 본래는 내 맏형이요 내 동생이기 때문에 모두가 형제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걸 알게 될 때에는, 원수끼리도 서로 목을 끌어안고 자기의 과거 잘못을 회개할 수 있는 길이 나오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통일교회에서 3사랑의 심정을 어느 한 면이라도 갖지 않으면 통일가의 일원에서 추방당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슬퍼하는데 아들이 기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아버지와 형님이 슬퍼할 때에 그 동생이 기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버지가 슬프든 지, 남편이 슬프든지, 아들이 슬프든지 전부가 같은 마음의 같은 심정으로 화하는 거라구요. 자식이 사장이라 하더라도 아버지가 슬퍼하는 것을 보고 회사에 나갔다면 일을 하면서도 슬픈 아버지를 염려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자기가 집으로 돌아올 때, 그 아버지가 자식을 반기면서 맞이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자기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가정의 일원이 돼야 평화와 이상을 누릴 수 있는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겁니다. 알겠어요?무슨 말인지, 「예」
통일교회의 일원인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사는 녀석들이 있어요. 슬픈 일이라든지, 기쁜 일이라든지 우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면 책임자는 문선생이지요? 「예」 싫든 좋든 부모가 돼 있고, 책임자가 돼 있다구요. 그런데도 선생님이 어디에 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패들,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패들, 슬퍼하는지 기뻐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패들, 그것이 통일교회 식구예요. 아니예요? 그게 식구야? 「아닙니다」
식구라면 가정적이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짐을 지고 피땀을 흘리며 비탈길을 올라가고 있는데 아들은 옆에서 '아버지 빨리 가요. 빨리 가' 하는 게, 그게 자식입니까? 저 혼자 먼저 가 가지고 '아버지 올 때까지 좀 쉬어야지' 하는 게 자식이냐구요. 아버지의 속셈도 모르는 그런 불효망측한 패들이 많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부모는 언제나 자식보다는 과중한 임무를 짊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아내 보다 남편은 과중한 임무를 짊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동생보다도 형이 과중한 임무를 짊어져야 한다는 거예요. 과중한 임무를 짊어지는 데에서 비로소 안식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예」 과중한 임무를 자기가 지지 않고 그 임무를 누구에게 맡기려고 하는 자는 자기도 안식할 수 없고, 맡김을 받는 사람에게도 안식권이라는 것이 절대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과중한 임무를 특정한 사람을 세워서 전부 지우려고 하는 놀음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왜?전체가 될 수도 있는 조건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는 민족을 대표한 과중된 십자가를 우리가 짊어지고 간다고 할 때, 민족은 우리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안 져도 된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기에 과중한 임무가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할 때,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힘든 것이냐, 쉬운 것이냐? 「힘든 것입니다」 힘든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이냐, 안식의 길이냐?십자가의 길인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어려운 걸음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것이다. 그래요? 「아닙니다」 다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특정한 사람은 좋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좋아하는 특정한 사람은 보통 사람들을 지도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패들은 특정한 패예요. 보통 패예요? 여러분이 생기기는 그렇게 생겼지만, 여러분들의 조상들이 선생님과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만난 거라구요.
내가 이북 평양에 가 있을 때 말예요.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는데 나보다 나이가 많았어요. 나보다도 한 20, 30년 위예요. 그 아주머니가 떠억 하는 말이 '내가 선생님을 만난 것은 영계에서 가르쳐 줘서 만난 것입니다' 그러고 이야기를 하는데 '선생님! '왜? ' '선생님 좀 가르쳐 주세요' '무얼? ' '참 이상해요' 이상하다 하기에 무엇이 이상하냐고 물으니,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는데 참으로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거예요. 그래 뭐가 이상하냐고 재차 물으니, 자기에게는 그것이 수수께끼라는 거예요. 자기가 스물 네 살 때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인데 말입니다.
여러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어요?선생님이 나지도 않았을 때인데, 그런데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다는 거예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그것은 평면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예요. 그렇지만 입체적인 면에 있어서는, 종적으로 하나님은 부모이기 때문에 그 부모의 심정을 좇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과 같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양과 형태는 지금에 나타났지만, 심정의 세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심정을 주관하는 하나님은 미래에도 만날 수 있는 인연을 내내 갖고 있기 때문에 영계는 시간을 초월해 있는 것입니다. 미래가 지금이요 지금이 영원이라는 거예요. 그런 심정의 세계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가령 하나님의 마음속에 이러이러한 남성이 한 때에 태어날 것이다 하는 생각이 있게 되면, 그 심정을 통해서 그를 가르칠 수 있고 인연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정세계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거 이해돼요?그런 일이 많아요. 그런 일이 많다구요.
지금 독일 책임자로 있는 사람은 말예요. 벌써 2차대전 때 선생님과 상관했다고 말하고 있어요. 아니 2차대전 같으면 전쟁이 나서 한바탕 세계적으로 싸울 격전기인데, 그는 순진하게도 독일 히틀러 군대의 훈련장교였다구, 그런 사람인데, 전쟁이 나서 죽을 수밖에 없는'그러한 격전이 벌어지게 되면 반드시 그에게 누군가가 나타나서 '너는 이런 때에 가서는 이러이렇게 해라' 하고 비몽사몽간에 가르쳐 줬다는 것입니다. 그래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면 그 자리를 떠나 소변을 보러 갔다 오면, 그러니까 가르쳐 준 대로 그렇게 하고 나면 그 시간에 자기 동료들은 다 죽고 자기만 살아 남은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는 겁니다. 그런 역사를 거쳐 나왔는데, 그것을 참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거예요.
틀림없이 동양 사람인데 자기를 그렇게 지도해 가지고 사지에서 구하는 그러한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을 예사로 여겨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었다는 것입니다. 그 바람에 정성을 들여 가지고 그분 앞에 심신을 다바쳐 충효의 도리를 다하려고 각오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어느날 통일교회 원리 말씀을 듣고 감동을 해 가지고 가만히 보니 그 통일교회 말씀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더라 이겁니다. 그리하여 '이 말씀을 누가 냈고, 이 원리를 누가 냈느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선생님 사진이 있으면 한 장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진이 있어도 함부로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하니까, '어딜 가면 사진을 볼 수 있겠느냐? ' '정 보고 싶으냐?'정말 보고 싶다' 그래 가지고 '미국에 가면 누구의 기도실에 선생님의 사진이 있다. 가자' 해서 가서 보니 그분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땅에 살아 있는 분이냐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가능한 일이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분이 살아 있느냐, 그분이 누구냐? 이러는 겁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유를 가르쳐 줄 필요도 없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명령만 하면 된다구요. 지금 선생님은 여기 있지만 전세계의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있어요. 살림살이까지도 코치하고 있다구요. 그러니 통일이 불가능한가요.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미국 식구들도 지금 선생님을 위해 새벽같이 기도하고 있다 이거예요. 왜 그런지 모르지요?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부모의 심정에 사랑이 접해지면 그 심정은 국적을 초월하는 겁니다. 그렇지요? 거리를 초월하지요?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하니, 곧 시공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조직적인, 영적인 배경을 중심삼고 현실이 생활권에서 적용할 수 있는 실제적인 문제가 벌어지기 때문에, 세계는 통일사상으로 통일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가면 공산권내에서도 지도받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패들은 정신을 차려야 됩니다. 정신차려요! 언제나 이렇게 쉽게 통일교회에 들어오는 게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라구요. 지금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주위에서는 영통하는 사람들이 전부 다 선생님 만나자고 야단들이라구요. 그들은 가만히 앉아 가지고 천리를 꿰뚫어 보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지금 어디 갔고, 오늘 누굴 만나고, 전부 다 알고 있다구요. '요즈음 이러이러한 문제가 벌어졌지요?' '그래' 이렇게 다 알고 있는 패들이 선생님을 만나겠다고 하지만, 선생님은 안 만나고 있습니다. 왜? 여러분들 때문이예요. 여러분들이 아직 졸업장을 못 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데려다 놓으면 여러분은 전부 다 그들의 종밖에 안 되겠기 때문이라구요.
정신차려야 됩니다. 만일 한국에서 통일교회 선생님이 보따리 싸 가지고 사라지면 한국이 좋지 않아요. 이제 그만큼 선생님을 고생시켰으면, 여러분들이나마 선생님 고생시켜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해야 될 것입니다. 선생님 대신 이 민족을 대표해 주어진 사명을 이어받아 가지고 책임지겠 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데도 여러분이 그 책임을 못다하면 선생님은 여러분을 그냥 그대로 두지 않을 겁니다. 그럴 수 있는 일이 많다구요.
그런 것을 알고, 과중한 임무를 책임지는 것은 그것이 그 시대에 있어서는 비참하지만, 어느때에 가면 그 책임진 것을 알아 주기 마련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이 있는 한 알아 주기 마련이예요. 내가 지금까지 일생을 통해서 이 길을 개척해 나오면서 누구에게도 말 못할 어려운 고빗길을 걸어왔지만, 하나님만은 알아 주시기 때문에….
어떤 때는 배가 고파, 허기가 져서 산을 못 넘고 기진하게 될 때는 말이예요. 누군가가 먹을 것을 가지고 옵니다. 그것은 공적인 일로 배고픈 사람을 대접해야 할 하나님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예요. 그런 공적인 길을 가는 거라구요. 나라를 위해 가게 되면 나라가 그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대해 대접해 줘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일을, 벌써 선생님이 어느 마을에 가기 전에 영계에서 명령을 해 가지고 밥을 지어 잔치상을 차려 놓습니다. 그리고는 흰옷을 입고 길가에 마중을 나와 가지고 '선생님이시지요? 하는 놀음이 있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의 역사 시대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안 해서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은 망하지 않습니다. 망할 수 없다 이거예요. 또 망해서도 안 된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되겠다구요. 역사시대에 이러한 사명을 갖고 왔던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지나 가는 손님으로 알고 대접을 잘못하면 죽기도 하고 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선생님은 공적인 입장에서는 무정한 사람입니다. 자식들 대에까지도 그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구요. 예를 들면, 우리 성진이에게 18세 되던 날 아침에 손을 들고 선서를 시켰어요. 네가 잘못하게 되면 아버지와는 상관이 없다고 했어요. 자식을 세워 놓고 그런 공적인 선서를 시키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떻겠느냐 이겁니다.
그것은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식의 잘못이 그 일가의 잘못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잘못되면 나라가 망하고 세계가 망하기 때문에, 조건이라도 망할 수 없는, 사탄에 대한 방위선을 치고 나가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한 비참한 자리에 선 공적인 가정이 돼야 하는 거라구요. 심각한 거예요. 어머니면 어머니에 대해서도 공약을 세워 놓고 가는 길입니다. 이 원칙에 어긋나게 될 때에는 어머니도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구요.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모를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뭐라고 할까, 여러분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면 좋을까요? 줄다리기라고 있지요? 줄다리기를 할 때 보면 표정이…. 힘을 내서 당기면 넘어오고, 조금 늦추면 넘어갑니다. 그러니까 최후의 싸움은 다 그렇다구요. 내가 기를 쓰고 하면 그것이 단축이 되고, 조금만 해이하게 되면 하늘이고 뭐고 전부 다 해이 해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렇게 한번 놨다가는 수습할 길이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정상으로 가는 사람은 한 발자국만 잘못 되었다간 살아날 길이 없는 거라구요.
여러분들은 그런 의미의 책임을 진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정신 없는 사람 모양으로…. 여러분, 형무소에 가서 공판날 법정에 서는 그 기분, 나는 일생동안 그 기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 가졌던 그 기분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오늘 공판정에 가 가지고 자기의 한 마디가 운명을 결정한다 할 때는 비장하다구요. 그렇지만 복귀의 섭리노정에는 그 이상의 길이 얼마든지 있어요. 얼마든지 있다는 거예요.
그러한 전통의 길을 가려 가지고 통일교회가 닦은 그 기반을 여러분이 모르고 아무 공도 없이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고, 자기 마음대로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책임자들은 주의하라는 거라구요. 책임자들은 주의하라는 거예요. 잘못하다간 하나님이 들이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런 때가 조금 남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앞으로는 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책임자는 선생님 이상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 이상 못 벗어났으면 나가서 책임을 다하라 이겁니다. 그러지 않고는 책임자로서 통일교회의 전통 앞에 부끄러운 자들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과중한 임무를 짊어진 우리는 사탄 앞에 비웃음의 자리에 서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 있어서 현재의 여러분이 짊어진 사명이요. 책임인 것을 알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래지 않아 선생님은 한국을 또 떠나야 해요. 떠나야 된다구요. 이제 가면 하나님이 언제 다시 돌아가라고 할는지 모르겠어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디로 가라 하면 거기 가서 머무는 것이요. 한국을 당분간 포기해 버리라면 포기해 버릴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외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내적으로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선생님은 한국을 위해서 싸울 거예요. 금후에 있어서 한국이 아시아의 해방권을 준비할 수 있도록 여러분 이상 몇 배의 투쟁을 해 나갈 행로에 있어서 아침 햇빛을 바라보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지낼 거라구요. 그것만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이 과중한 임무를 책임지는 데 있어서 자신들이 서로서로가 앞을 다툴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통일교회는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며, 이 나라 이 민족의 운명은 우리로 말미암아 개방된 새로운 시대가 찾아올 것을 틀림없이 믿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렇게 해 주기를 바라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 당신 앞에 면목이 없사옵니다. 저희들은 때로는 사람들 앞에 투정도 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마는, 당신은 존엄하신 권위를 죽으면서도 붙들고 나가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사정을 통할 수 있는 평면적인 상대권을 갖지 못한 아버님은 불쌍한 아버님인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 통일교회를 아버지께서 사랑하셔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있는 자식을 보시고 사랑하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면목이 없사옵니다. 50이 넘도록 이 싸움을 아직까지 끝내지 못하고, 거듭되는 시련의 노정을 앞에 놓고 최후의 일격을 가해야 할 결전장을 바라보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생사의 판가름을 짓지 않으면 안 될 이 엄숙한 사명의 분담이 저희에게 정면으로 부딪쳐 오는 것을 직시할 때에 아버지, 그 누가 이 책임을 져주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제가 책임질 수 있는 입장이 아니옵니다. 제가 책임을 못 지거들랑 아버지께서 책임을 지고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 그래도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는 용서하실 분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은 그러기 전에 책임을 지고 30번이라도 해내겠다는 결의를 가진 저희가 되어야 할 것을 절절히 느끼옵니다.
여기 둘러앉아 있는 이들을 아버지, 보살펴 주시옵소서. 당신 앞에 자랑할 아무것도 갖지 못하였사옵니다. 못나고 상처 입고 지친 불쌍한 피난 떼거리이옵니다. 이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혹은 노숙도 해야 하는 비참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 이들을 몰아 당신의 뜻 성사에 세우시려는 그 거룩한 곳까지는 아직도 길이 남아 있사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복귀의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는 이 길을 달려가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원수들이 지쳐 쉴 틈을 타 가지고 가야 되겠기에, 밤이나 낮이나 저희는 전진밖에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사방을 주시하고 살피면서 가려 가야 할 길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옵니다.
아버지, 금후의 한국을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제 이 민족은 어떠한 강대국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운명을 벗어나야 하겠사옵니다. 자주적인 민족자결을 통해 통일된 민족을 형성하고 아시아의 강한 주체적인 기반을 닦아 일본과 아시아의 약소민족을 움직일 수 있는 주도적 기반을 넓혀야 하겠사옵니다. 어떤 나라의 민족보다도 많은 수를 갖추지 않고는 이 민족이 금후에 아시아에 있어서 주체적인 국가의 행세를 할 수 없다는 걸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은 이 나라를 넘어서 아시아를 향한 작전을 지금까지 해 나왔습니다.
아버지, 일본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제단 앞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들이 해와국의 최고 간부들과 담판하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그들의 갈 길을 지키시옵소서. 그 누구도 모르는 복귀의 길을 더듬어서 수 년 동안 쌓아 온 실적을 당신 앞에 영광과 찬양의 조건으로 남기기를 바라는 그것이 이 아들이 지금까지 누구도 모르게 쌓아 놓은 것이 아니옵니까? 그것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현재의 입장이 딱한 환경인 것을 바라볼 때에,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보내 주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더 급하시기에 저희들을 따라가는 입장에서 쓰라린 민족의 심정만을 붙들고 있사옵니다.
이 몸 다 바쳐, 이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아버지의 뜻 앞에 반역의 무리가 안 될 통일의 무리가 되어야 된다는 그 일념만은 변치 않고 있사오니, 아버지시여, 이 통일교회를 맡으시옵소서. 통일교회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맡으시옵소서,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금후의 아시아 제국을 맡으시옵소서. 이 아시아를 세우시어, 지금까지 핍박받고 압제를 당하던 아시아를 통하여 세계의 모든 민족을 지도할 수 있는 자유의 아시아권을 넘어 세계적 시대를 맞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가는 길이 험하더라도 우리 임이 가신 길을 이어받아 가는 것이기 때문에 정성과 충성과 효성과 열녀의 심정을 다 바쳐 가기를 결의하고, 과중된 임무를 다짐받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를 대해 입을 열어 맹세하는 것보다도 당신을 대하여 저희의 심신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자리에서 아버지 앞에 맹세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옵니다. 이때의 책임을 짊어진 통일의 역군들, 삼천리반도에서 남모르는 색다른 대열을 갖추어 가지고 선두에 서서 투쟁하고 있는 기동대원들, 그리고 세계의 5개 국가에서 싸우고 있는 기동대원들의 젊음의 십자가를 아버지께서 고이 키우시어서 금후의 뜻과 더불어 교육하는 모든 것이 일취월장해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가고 싶은 그곳이 그립습니다. 보고 싶은 그날이 조급한 마음으로 기대되옵니다. 당신이 살아 명령하는 주체로서 진정으로 아들딸을 품고 사랑하는 그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진정한 가정의 식구들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그 전통을 배우고 싶고, 당신이 사랑하는 그 나라에서 당신이 치리하는 그 모든 국정을 보고 싶습니다. 늠름한 세계의 이상국가를 치리할 수 있는 만민의 갈 길을 이어 주기 위해서 보고 싶어하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그러한 자리에 당신의 해방과 당신의 자주권과 자중할 수 있는 자유의 천국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탕감의, 제물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고임돌로 삼으시어서 당신이 가시는 행보를 단축시킬 수 있는 길이 있거들랑 그 이상의 바람이 없는 것을 자각하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뜻을 중심삼고 모여 있는, 초라한 당신의 자녀들이 모인 곳을 찾아 주시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대신한 교회라야 민주세계의 정상을 향해 갈 수 있다고 하는 말씀을 저희들이 마음속에 갖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도 찾아오셔서 그 마음에 동조하시고 협조하여 주시길 간곡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의 모든 것이, 이달과 이해의 모든 것이, 70년대의 모든 것이 뜻과 더불어, 당신이 원하는 섭리의 뜻과 더불어 당신이 원하는 섭리의 노정에서 일취월장하게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만만세의 은사와 사랑과 가호와 지도가 길이길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 위에 같이하기를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승리와 영광과 존귀가 당신에게만 미쳐지는 것을 알고 있는 저희들, 저희들도 당신의 협조 없이는 승리와 영광과 존귀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동으로 가면 저희들도 동으로 갈 수 있고 서로 가면 서로 따라갈 수 있는, 당신은 완전한 주체요 저희들은 당신의 형상을 닮아야 할 상대적 입장에 있는 것을 잘 아옵니다.
저희의 손이 저희들만의 손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의 몸이 저희들만의 몸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 자신들의 지체가 당신을 대신할 수 있는 지체로서 당신의 손을 대신하고, 당신의 눈을 대신하고, 당신의 입을 대신할 수 있는 모습이 되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
아버님이여! 부족한 저희들은 선할 수 있는 힘의 인연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능동적인 요인을 차지하지 못한 타락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고있는 저희들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에도 다시 창조의 힘, 혹은 재창조의 힘을 가하여 주지 않는 한 당신의 성상을 따를 수도 없사오며, 당신의 상대적 가치도 추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저희 자신들을 잘 아시는 아버지시여, 저희 자신을 잘 아는 저희들은 당신의 자비와 당신의 능력의 손길이 이 시간에 다시 찾아 주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저희를 찾아오신 아버지의 수고의 발걸음이 이 아침에 한하여서 찾아오는 발걸음이 아닌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많은 역사의 고빗길에서 수난과 죽음이 엇갈리는 길도 참으시고 홀로 넘어오신 아버지시여! 고독이 넘쳐흐르는 그 자리에서도 소망의 자녀를 꿈속같이 그리 면서 참고 오신 아버지시여! 슬픔이 다가오는 장면을 직시할 수 없어서 눈을 감고 넘지 않을 수 없었던 수많은 비참했던 고개를 극복하여 오신 아버지시여! 그 아버지는 저희들을 지극히 사랑하고, 저희들을 찾기 위하여 또한 험난한 생활의 원한을 품고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아버지를 앞에 모시고도 느낄 줄 모르고 화답할 줄 모르는, 그런 기가 막힌 정경을 대하여야 할 아버지의 처지는 비참 그 자체인 것을 저희들이 느끼게 되옵니다.
또다시 만나거들랑 천만 한스러웠고 애달픈 마음을 가지고 저희의 정경을 바라보시며 한마디 한마디로 새로운 복귀의 갈림길을 갈라내기 위한 수고의 역사를 다시 하지 않으면 안 될 기막힌 아버지의 성상을 저희들이 느껴야만 되겠습니다.
그가 오른손을 들면 저희들은 오른손을 들어야 되겠고, 그가 동으로 가면 저희들도 동으로 가야 되겠습니다. 그가 좌정하면 저희들도 좌정해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내용을 본받고 당신이 원하시는 뜻을 따라서 당신이 원하시는 곳에 끝까지 따라가야 할 사명이 부자의 인연이 었기 때문에, 저희들은 당신을 사모하고, 당신의 그리운 마음을 알아 드릴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당신이 저희들을 불러 줄 때 그 음성을 듣고, 당신이 저희들을 향하여 손짓할 때 그것을 바라보고 달음질쳐 갈 수 있는 눈을 가진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고, 귀를 가진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부르더라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귀머거리와 봉사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런 자리에 있거들랑, 능력이 많으신 아버지시여, 저희들의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사오니, 당신을 볼 수 있고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그 귀와 눈을 주시옵소서. 그 귀와 그 눈을 갖지 않고는 당신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부족한 것들, 이 나라의 부패한 것들을, 아버지여, 긍휼히 보시옵소서.
하늘의 마음을 가지고 찾아와 주시어 당신이 다시 한 번 거룩하신 창조의 손길을 가하여 주기를 바라는 부족한 것들이오니, 버리지 말아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 앞에 저희들이 나올 적마다 부정해야 될 자신인 것을 스스로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미비하고 불급된 자기 자신을 놓고 열심히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직고하는 심정을 가지고 '나는 이러한 길을 걸어 왔고, 나는 이러한 자'라고 스스로 적나라하게 비판하여 당신 앞에 세워 놓고, 옳지 않은 요건들을 제거시켜서 당신이 합당하다 할 수 있는 본성의 요인들을 다시 품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리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생명을 가하여 당신이 원하는 뜻 앞에 이것을 가중시켜 가지고 당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향하여 전진할 수 있는 소망의 무리들이 되어야만 될 것을 확실히 깨닫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저희 손길을 붙드신 바에는 놓지 마시옵고, 저희들을 이끄시옵소서. 당신이 원하시는 소원의 터전 앞에 서고야 말고, 승리의 결실체로서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을 일으킬 수 있는 아들의 모습과 딸의 모습을 완성하고야 말겠다고 몸부림 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확실히 깨달았사오니, 이 아침 찾아오시어서 저희들을 버리지 마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여, 이 나라 이 민족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불쌍한 이 나라 이 민족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아무리 적진에 포위되었다 하더라도 당신을 사모하고 당신을 위해 있는 자들 앞에는 모든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을 저희들은 확신해야 되겠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은 이 나라를 붙안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살아 계신 것을 알고 모시고 나오고 있사옵니다. 이 나라의 갈 길이 어려운 것을 바라볼적마다 저희 책임이 가중되는 것을 절감함과 동시에, 저희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될 때에, 이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진정한 의미에서 저희들이 제물의 사명을 다할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다짐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삼천만 민중을 이끌 수 있는 것도, 남북의 오천만 백성을 당신 앞에 품을 수 있게 하는 것도 당신만이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아버지의 장중에 쥐시어서, 원하는 무리들을 세우시어 당신의 뜻 앞에 가누시사 승리한 하늘의 나라를 건국할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통일된 소원의 날이 저희 민족 앞에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나라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닌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께서 주인이 되시어서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시는 이 나라가 되기를 바라옵니다. 사람의 그 어떠한 힘 가지고는 이것을 수습하지 못한다는 것을 저희들도 알고 있사오니, 당신의 마음에 기억되는 이 나라가 되게 하시옵고, 당신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이 민족이 되게 하시옵소서. 당신이 원하시는 소원의 나라 앞에 하나될 수 있는, 상하가 일치될 수 있는 민족으로서 남아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통일의 제단을, 아버지, 이 나라 가운데 불러 주시어서 다년간 훈련시켜 왔습니다. 때로는 저희들이 원치 않은 자리에 몰아내신 아버지여! 그것은 저희들을 남기기 위한 뜻이 있기 때문이었음을 저희들이 알았습니다. 남이 아니라는 수난의 길에서 극복하라고 다짐하던 것은 끝날에 당신이 책임을 부과하시려는 크나큰 뜻이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님, 이제 당신의 명령하신 뜻 앞에 생명, 재산, 모든 것을 바치고 다시 한 번 전체가 움직여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결의와 다짐이 있지 않고는 안 될 때가 목전에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알고 행치 않는 데는 화가 있을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기필코 저희들은 아는 길을 향하여 지금까지 달려 왔습니다. 지금도 달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불충의 모습을 가지고 달렸사오면 다시 한 번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이 당신의 희망과 더불어 남아져 있을진대 이제라도, 아버지여, 회개하고 나설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라를 망각하는 무리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자신을 세우기 위해 하늘을 배반하는 무리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을 이 시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누구를 의지하고 누구를 바라보고 살아갈 것이며, 누구를 따라갈 것이겠습니까?당신의 뜻과 당신을 바라보고 살고 가야 할 그 무리들인 것을 알게 될 때에, 그 누구도 지도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금후에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일선에 나가 있는 기동대들을, 이 평화의 십자군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가는 곳곳마다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당신이 살아 계신 것을 직고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금후에 저희들이 계획하는 일이 많사오니 살피시옵소서. 일본에서 지금 저희 어린 자녀들이 리틀엔젤스를 중심삼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사오니 그 자리에 당신의 가중한 은사가 임하시옵소서. 이들은 이 무용단을 위한 것이 아니었사옵니다. 나라를 넘어, 아시아를 넘어, 세계 복귀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 길을 넓히기 위한 것이옵니다. 어린 것들을 내세워 금후에 계획하는 모든 것이 당신의 마음 가운데 기억되고, 늘쌍 살피시어 당신이 가려 줄 수 있는 이번 활동의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2년의 종말을 장식하는 거룩한 당신의 뜻이 이들 가운데 나타나게 하시옵고, 일본을 통해 세계에 제시하려는 당신의 고귀한 뜻을 부디부디 남김없이 드러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후에 맞아지는 저희의 모든 어려움이나 슬픔이나 고통이 있을지라도 감수하면서, 어린양에게 남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무리들로서 책임 다하는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엎드린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사랑의 심정으로 품으시어 당신의 소원의 터전 앞에 한 생명이라도 빠짐이 없이 동참할 수 있는 거룩한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책임분담이라는 말을 합니다. 인간이 보다 가치 있는 내용을 지닐 수 있는 것도 이 책임분담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책임분담을 완수했더라면 우리에게는 한(恨)이라는 말이 남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한 연고로 우리의 역사과정 에는 한스러운 이런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에 책임분 담을 완수했더라면 인간과 천사세계, 전피조세계는 기쁨과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의 주관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책임분담 미완성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가 형성되었고, 이 땅이 사탄 주관권내에 남아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임분담 미완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도 수고의 길을 지금까지 가려 나오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임분담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나 어떠한 개인이나 혹은 어떠한 민족이면 민족, 어떠한 세계에도 남아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이 책임분담이라는 과제가 자기 생애를 중심삼고 언제나 앞에서 이미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책임분담을 완수하면 개인으로서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요.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면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개인으로서의 인생길을 완전히 갈래야 갈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책임분담은 물론 생애 노정에 전개되어 있지만, 우리 하루하루의 생활 가운데서도, 여러분이 보고 듣고 혹은 느끼는 일체의 생활 가운데서도 책임분담을 해야 할 인연이나 환경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듣는 것도 책임분담을 완수하고 나서 들어야 되는 것이요. 보는 것도 책임분담을 완수하고 나서 보아야 되는 것이요. 느끼는 것도 책임분담을 완수하고 나서 느껴야 되는 겁니다.
만일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한 자리에서 보고 듣고 느낀다면 그 모든것은 책임분담 완수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한 자리에서 내가 듣고 기뻐한 그 기쁨이 책임분담을 완성한 이후의 기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한 그 자리에서 느끼는 그 느낌이 책임분담을 다한 자리에서의 느낌으로 통할 수 없는 겁니다. 즉 나라는 사람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한 자리에서 살고 있는 것이 책임분담을 완수하고 난 후의 삶과 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에, 우리는 자나깨나 가나오나, 혹은 우리의 일체의 생활을 통해서 이 책임분담이라는 명제가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중심적인 요인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내가 진정한 의미에서 기쁠 수 있는 한 날을 맞이했다면, 그것이 책임 분담을 완성한 자리에 있어서의 기쁨이냐? 혹은 내가 보고 좋아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봤다면, 그것이 책임분담을 완수한 자리에서 보고 좋아하는 것이냐? 내가 뜻있는 걸음을 걷는다면 그것이 책임분담을 완수한 자리, 하늘과 땅, 온 우주가 바라볼 수 있고, 혹은 희망의 조건으로 남아질 수 있는 그 자리에서 가고 있느냐, 혹은 그런 자리에서 살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전진하는 과정에서도 책임분담이 남아 있는 것이요. 혹은 쉬는 그 자리에서도 책임분담을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춘시대에도 책임분담의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청춘시대에서 해결 못 하면 장년시대, 노년시대의 생애를 통해서 책임분담 추구의 요건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만일 살아생전에 이 책임분담 완성을 하지 못하게 될 때는, 이것은 영원한 참소의 조건으로 남아집니다. 저세계에 가서도 이 책임분담의 요인은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의 책임분담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것은 한많은 요인을 갖고 있는 책임분담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도 이것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했고, 아벨을 중심삼은 복귀의 역사도 책임분담을 하는 입장은 달랐지만,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벨이 희생을 당한 것입니다.
노아 가정에서도 역시 이 책임분담 때문에 그렇게 됐고, 아브라함도 역시 생애노정의 수난길에서 최후로 다짐지어야 할 입장인데도,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는 불신의 역사로 남아진 것입니다. 모세도 역시 처한 환경은 달랐지만, 모세가 해야 할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비참한 운명에 놓여진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교의 4천년 역사를 종결짓고 이스라엘의 소망의 한 때를 맞이하는 전체의 책임을 대신하여 다짐지어야 할 사명을 짊어진 세례 요한이 민족을 대표한 책임분담, 교단을 대표한 책임분담을 완수할 수 있는 한 날을 맞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은 비참한 민족이 되었고, 유대교회는 하늘의 복귀역사에 한의 요인을 남긴 교단이 됐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사명이 예수 앞에 옮겨지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예수가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책임 못한것을 짊어지고, 그 시대의 사명을 앞에 놓고 몸부림친 것도 이 책임분담을 완수하기 위한 목적에서 그랬던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혹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중심한 열두 제자도 스승을 맞아 스승 앞에 하여야 할 제자로서의 맡겨진 책임분담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비운을 자아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한의 구렁텅이가 생겨났기 때문에 이것을 청산하기 위한 재차의 노정이 바로 기독교의 역사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볼 때, 개인의 책임분담을 통해서 다시 탕감노정을 개척해 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적인 탕감노정과 개인적인 책임분담은 언제나 문제가 되어 왔었습니다. 개인적인 책임분담을 완수한 터전을 이어받아 가지고 가정적인 책임분담을 완수해야 되고, 종족적인 책임 분담과 민족적이요 국가적이요 세계적인 책임분담을 완수하기 위해 발전해 나온 역사가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세계 기독교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책임진 선진국의 입장에 선 미국을 보면, 미국은 자기 나라 2백년 역사를 대표한 미국이 아니라 수천 년의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대표한 역사 전체를 탕감복귀해서 책임분담을 완수해야 할 세계사적인 책임을 짊어진 미국이라는 것입니다. 이 미국이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게 될 때는, 이 세계의 말로는 암담한 말로로 귀결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라가 책임 못하게 될 때 대신 책임할 수 있는 어떤 교단이라도 있다면 이 책임분담을 완수할 때까지 그 나라가 망할 수 있는 인연을 기다릴 수 있는 길이 있으되, 하늘을 대표한 어떠한 교단이 그 나라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망할 수 있는 그런 책임분담을 대신 인계받고 나서지 않는 한 그 나라와 그 교단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앞에 놓은 예수와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완전히 하나되어야 할 입장에서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하나되어 예수를 배반하게 될 때에, 만일에 예수가 이것을 도맡아 가지고 '망할 수 있는 이 운세를 내가 맡겠사오니, 하늘이여, 이 길을 나에게 넘겨 주시옵소서' 하고 연장 시키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았던들 그 이스라엘 나라, 그 유대교는 영영 망해 버렸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망할 수 있는 입장에서 홀로 예수가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를 대신한 사명을 짊어지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로 말미암아 망할 수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속죄의 미래를 남길 수 있는 것이요. 망할 수 있는 유대교가 미래의 속죄의 한 때를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와 혹은 교회를 대표해서 책임질 수 있는 한 사람 예수로 말미암아 망할 수 있는 역사적인 운세를 연장시킬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미국이면 미국, 미국을 대표한 교회면 교회가 하늘 앞에 뜻을 대하여 탕감복귀, 혹은 책임분 담을 완수하겠다고 하며 나서야 합니다. 그런 나라와 그 나라를 대표한 교단이 없는 한, 이 미국, 혹은 미국의 교회는 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는 세계를 대표하고 미국을 대표하고, 혹은 자유세계를 대표하고, 미국 안에 있는 교파를 대신해서 미국국민이면 미국국민이, 혹은 어떠한 개인이라도 메시아와 마찬가지로 나라의 운명을 대신해서 자기 생명을 다 바쳐 가지고 '내가 있사오니 나로 말미암아, 나를 희생시켜서라도 이것을 남겨 주옵소서'라고 호소할 수 있는 개인이나 종족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는, 그 종족과 개인으로 말미암아 미국이, 혹은 미국의 교회가 망할 수 있는 길을 연장시킬 수 있는 가능한 길이 있을 수 있으되, 그것이 없게 될 때는 망하는 세계밖에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감복귀 혹은 책임분담 완수라는 과제를 두고 볼 때 이렇게 결론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보면, 대한민국이 금후에 갈 수 있는 방향은 어떠한 것이냐?대한민국은 그야 말로 혼란된 입장에 있습니다. 대한민국 안에 있는 수많은 종교단체 혹은 수많은 교회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여기에서 확정적으로 '이렇게 가야 된다'는 그런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렇게 해야 된다. 책임분담을 완수해야 되겠다' 해 가지고 그 국민이 결속하고, 그 국민의 사상의 중심이 되는 종교가 결속되어 가지고 책임분담을 완수해 나가는 과정에 있게 될 때는 망할래야 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는 자리에 서게 되면 이것은 망하게 마련입니다.
아담 해와가 책임분담을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에덴에서 쫓겨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을래야 맺을 수 없는 자리에 떨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대한민국에 있어서, 혹은 대한민국을 대표해 가지고 책임분담을 완수하는 사명을 하겠다고 몸부림치고 지성을 다하는 특정한 교단이나 혹은 특정한 개인들이 있다면, 이들이 포기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이 망할 수 있는 운세, 혹은 대한민국을 대표한 교계가 망할 수 있는 운세의 자리에 섰더라도, 하나님은 이것을 방어하고 연장시킬 수 있는 길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연장시키기 위한 어떠한 특정한 개인이 있다면, 그 개인은 대한민국이 책임 못다 하여 맞이하여야 할 탕감의 내용을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혹은 교단이 책임 못 하여서 망할 수밖에 없는 이 탕감의 내용을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 책임을 감수하고 나설 수 있는 특정한 개인이 있으면, 그 개인이 책임분담을 완수하겠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는 한 그 개인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연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복귀섭리를 미루어 보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과연 자유세계에 그러한 책임완수를 위해서 책임분담을 할 것을 다짐하고 있는 특정한 교단이 있느냐 할 때, 우리는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혹은 대한민국에 그런 특정한 교단이 있느냐?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계가 망해야 되고 대한민국이 망해야 될 것이냐?그것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있어서 마치 망할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 나라를 앞에 놓고 유대교를 앞에 놓고, 바라보는 예수와 마찬가지의 심정을 지닌 하나님을 위한 아들이 있고 딸이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그 아들이 그 나라를 붙들고 그 나라와 더불어 죽으려고 하고, 그 나라와 더불어 끝까지 싸우려고 하는 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이 있는 한, 그 아들을 쳐 가지고 그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탕감복귀해야 할 사명을 앞에 놓고 하늘이 지금까지 섭리역사노정을 연장시켜 나온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탕감복귀 완성하여 책임분담을 완수할 수 있는 그 한 날이 오기를 바라서 한많은 역사시대에서 하나님은 극복의 역사노정을 다짐지어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는 교단이 되어야 되겠느냐?교회를 통합할 수 있는 교단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교회를 통일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합시키고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먼저 하나님 앞에 책임분담을 완수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그러하지 않고는 통일교회의 이름을 가진 통일교회로서의 사명을 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하늘 앞에 책임을 다하는 자리에 섬과 동시에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대표해 가지고 오천만 민족이면 오천만 민족을 대신하여 다짐하는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만일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이렇게 해야만 산다고 전체 앞에 예고, 혹은 통고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혹은 나는 오천만 국민을 위해 있노라, 내가 망하기 전에는 전체가 망할 수 없노라' 할 수 있는 신념을 지닌 한 사람이 문제요. 그러한 사람을 가진 하나의 교회가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교회만 있다면 아무리 하늘의 버림을 받아 망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 하더라도 그 교회로 말미암아 망할 수 있는 운세를 연장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의 전통적인 내용임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 국가 민족을 중심삼은 탕감복귀의 사명을 완결지어서 국가 민족을 대신하여 책임분담을 완수할 수 있는 무리가 진정한 의미에서 있느냐?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 이 민족적 책임분담을 완수하기 위하여 나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개인적인 탕감을 거쳐 가지고, 개인적인 책임분담을 완수해야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가정적인 책임분담을 완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책임분담을 완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국가적인 책임분담을 완수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가 가르쳐 주는 순차적인 노정이 아니냐?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과연 나 자신이 민족적 책임분담을 완수한 자리에 섰느냐 할 때, 여러분은 '그렇다' 할 수 있는 자신을 가지고 있느냐? 여러분이 원리를 배워서 알다시피 개인의 십자가의 노정, 즉 개인이 탕감복귀 완성하기 위해서는 제물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제물 되는 것이 7년노정이라면, 그 7년노정에 승리한 자리, 즉 책임분담을 완수한 자리에 서서 또다시 가정의 책임분담을 완수하기 위해서 희생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 책임분담 완수보다 배가의 힘이 드는 것입니다.
내 하나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데, 하나의 남자 하나의 여자가 자녀를 거느린 하나의 가정을 중심삼고 책임분담을 완수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개인이 책임분담을 완수하는 것보다 몇십 배 몇백 배 힘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개인이 책임분담 완수한 터전 위에 가정 책임분담을 추구하고, 가정 책임분담을 완수한 터전 위에 씨족 책임분담을, 씨족 책임분담을 완수한 터전 위에 민족 책임분담을, 민족 책임분담을 완수한 터전 위에 국가 책임분담을 완수해야 할 것이 원리가 가르쳐 주는 전진적인 발전 노정이라고 할진대는 과연 이 문제가 얼마나 어려우냐?얼마나 어려우냐 이것입니다. 그런 것을 직시한 예수님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당초에 죽는 것을 각오하지 않고는 갈 수 없다 하는 것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의 싸우는 그 삼팔선을 타개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역사가 동원되었지만 그것을 해결한 그 누가 있었느냐?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인간으로서 승리했노라'고 만천하 앞에 제시한 사람이 있었느냐?없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절망으로 태어났고 절망으로 살고 절망으로 죽어가는 것이 인생인데, '이 절망의 함정을 초월해서 나만은 승리하겠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나는 하늘이 제시한 책임분담의 요인을 전부 다 탕감해 버렸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봤느냐? 일시에는 그럴 수 있어요. 일시에는.
석가 같은 분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홀로 천상천하에 제일 높다고 할 수 있는 그 자리라는 것은 일시 한 때에는 있을 수 있지만 장구하게도 있을 수 있느냐?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 그러냐?개인이 책임분담을 완수했더라도 가정적 탕감복귀노정을 중심삼은 책임완수 노정에 떨어져 내려가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개인을 붙들고는 근근히 끌고 갈 수 있는 길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가정적 책임완수 노정이 인생이 가야 할 길 앞에는 완전히 막혀 있기 때문에, 이것을 앞에 놓고는 아무리 유아독존이라고 말했던 석가도 떨어져 내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책임완수한 그 기준에 섰다면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거기서 승리의 권한을 자랑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 가정이 책임분담을 완수했더라도 그 가정은 또 내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종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높은 권위의 자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내려가야 됩니다. 희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종족이 책임분담을 완수했더라도 그 종족은 민족을 대해서 또 내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민족이 책임분담을 완수했다면 거기에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향하여 또 내려가야 되는 것이 아니냐, 세계는 천주를 향하여, 천주는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향하여 굴복해 가지고 희생의 대가를 완전히 치르지 않고는 책임분담 완수라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가 확실히 가르쳐 주는 노정인 것을 알게 될 때, 책임분담의 노정을 가야한다는 말은 그야말로 인생길에 남겨진 한스러운 길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많은 책임분담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아담 해와가 망한 것도 책임분담 때문이요. 가인과 아벨이 망한 것도 책임분담 때문이요. 노아 가정이 또다시 꺼꾸러진 것도 책임분담 때문이요. 아브라함이 수난길을 벗어나지 못한 것도 책임분담 때문이요. 모세가 광야에서 쓰러지게 된 것도 책임분담 때문이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서 이상적인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성전 건축을 못한 것도 책임분담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도 역시 그랬고, 이스라엘 민족도 역시 그랬고, 유대교도 역시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한을 남긴 것도 결국은 책임분담 때문이 아니었더냐?하나님이 한을 품고 오는 것도 책임분담을 완수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냐?이렇게 볼 때 한많은 책임분담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탕감복귀라는 말을 하고 있지만 탕감복귀를 해서는 뭘하느냐?탕감복귀해 가지고는 타락 전 아담 해와의 자리까지밖에 넘어갈 수 없습니다. 탕감복귀로 수습할 수 있는 그 한계점을 타락전 아담 해와 그 이상의 자리는 못 올라간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결국 탕감복귀라는 것은 타락이 있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지, 타락이 없었으면 탕감복귀라는 말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탕감해가지고 복귀한다는 그 복귀의 한계점이 어디냐?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의 자리, 그 이상은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탕감복귀된 개인은 어떻게 되느냐?여기에서 책임분담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그래야 타락하지 않은 아담이 5퍼센트의 사명을 완수할 것이 아니냐?그렇기 때문에 탕감복귀라는 것은, 복귀는 돌아가는 것인데, 탕감해서 다시 돌아가는 것은 타락 전 아담 해와의 입장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탕감복귀된 후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5퍼센트의 책임, 미완성한 아담으로서의 완성단계를 넘어가 하나님 앞에 효와 충의 도리를 세워야 할 책임분담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생, 장성, 완성, 이 원리결과주관권내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최후까지 책임분담이 추구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으로, 가정으로,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전체가 또 타락의 인연을 가진 수많은 피조세계가 이 책임분담의 과정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 앞에 이 사상이 희박해졌기 때문에, 이 사상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낙오자가 되고, 지치고 주저하게 됩니다. 이런 무리가 점점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필연의 길입니다. 백번 죽어서라도 또다시 부활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될 길입니다. 이것을 아는 한 내가 한번 태어난 일생을 깨끗이 바쳐 가지고 탕감복귀의 한계선을 넘어야 되겠습니다.
아담 해와는 개인이로되 개인이 아닌 것입니다. 이들은 인류의 시조가 되기 때문에 우리가 탕감복귀 완수하기 위해서는 개인만 그 자리에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 개인만 가면 나에게 달린 타락한 세계가 남아있게 됩니다. 이래 가지고는 탕감복귀 완수한 아담의 자리가 못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탕감복귀했으면 그 꽁무니에는 세계라든가 혹은 나라라든가 혹은 가정이라든가 혹은 그 무엇이 달려 있지 않다 이겁니다. 그러나 우리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내가 개인적인 탕감복귀를 완수했다 하더라도 내 꽁무니에는 그 나라 민족이 달려 있고, 세계가 달려 있다 이거예요. 그 뿐만 아니라 영계가 달려 있고 낙원세계가 달려 있더라 이거예요.
이걸 생각하게 될 때, 책임분담 완수, 탕감복귀 완수는 영원히 불가능에 가까운 길을 남기고 있기 때문에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도 이 책임분담이라는 조건에 걸려서 지금까지 복귀의 완성을 하지 못한 것이지, 이것만 없었더라면 일시에 다 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개인으로 탕감복귀를 완수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본연의 자리에 돌아간 그러한 가치의 내용을 지녀야 되는 것입니다. 왜?아담은 조상이기 때문에…. 개인 탕감복귀 완성은 가정 탕감복귀 완성의 출발인 동시에 국가 세계 탕감복귀 완성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그러나 타락한 우리에게 있어서는 아무리 개인 탕감복귀를 완수했다 하더라도 세계가 꽁무니에 달려있다구요. 천주가 꽁무니에 달려 있다구요. 사탄이 얼마든지 내 뒤를 통하여 왕래할 수 있는 길이 훤히 트여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으로만 갈 것이 아니라 이걸 수습해 가지고 꺼꾸로 올라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수습하자, 민족을 수습하자, 국가를 수습하자, 세계를 수습하자, 그래 가지고 사탄이 참소하는 길을 막아 놓고 나서야만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의 기준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돌아서 나왔다 하더하도 그 자리에서 해야 할 것은, 그 전체가 하나되어 가지고 복귀의 자리에 선 그 세계에 또 다시 남아지는 것은 뭐냐 하면 책임분담입니다. 책임분담이 남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책임분담이라는 말은 타락하기 전부터 있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타락하고 생겨난 말이 아니라구요. 이러한 엄청난 내용이 복귀역사라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한많은 복귀역사, 이러한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기를, 개인복귀, 가정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 천주복귀 완성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으로부터 가정으로, 가정에서 종족으로, 종족에서 민족으로 찾아 올라가는데, 이렇게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점점점점 어렵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가정을 수습하고 나면 더 큰 무대로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 역사는 지금까지 영육을 중심삼고 꺼꾸로 올라가는 놀음을 했다는 거예요. 꺼꾸로 올라가기 때문에 세계 전부가 원수라는 거예요. 전부 다 내리친다는 거예요. 네 맘대로 올라오지 마라 이거예요. 쳐도 쳐도 맞지 않으니까, 상대가 되지 않으면 쳤던 것은 마냥 떨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여기서 맞지 않으려고 반항하게 되면 반작용으로 여기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은 지금까지 맞으면서 희생해 나오는 것입니다. 거기에 반항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항하는 날에는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이것은 올라갑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까지는 영적으로 싸워 올라왔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영적인 탕감노정을 세계형으로 벌여 놓은 것입니다. 수백 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희생되어 가지고 연결시켜 놓았습니다. 횡적으로 세계형으로 벌여 놓았다 이거예요. 세계형으로 벌여 놓은 것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원리가 그렇지 않아요?종적으로 올라간 것을 횡적으로 탕감시키자는 거예요.
개인, 가정, 민족, 국가, 세계로 올라간 것을 왜 이렇게 전개시키는 것이냐?이거 왜 이렇게 해야 되느냐?이러한 길이 없으면 개인으로서 어느 역사시대의 세계를 대표한 탕감복귀라는 말은 절대 성립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은 개인이되 세계적 대표요. 국가적 대표요. 가정적 대표요. 개인적 대표라는 것입니다. 그런 탕감복귀의 본연의 원칙을 인간 세계의 그 누가 세계를 한 무대에 품고 한꺼번에 연결시켰느냐?요 개인은 가정을 대표하고 민족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하고 세계를 대표하고 천주를 대표한 개인입니다.
그 한 사람은 여기 있지만 (칠판 가리키시며) 여기에서도 환영받고, 여기에서도 환영받고, 여기에서도 환영받고, 여기에서도 환영받고, 여기에서도 환영받습니다. 여기에 있지만 여기의 대표요. 여기의 대표요. 여기의 대표요. 여기의 대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탕감복귀의 역사적인 과정을 통하여 바라보게 될 때, 끝날에는 반드시 전체를 탕감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타락의 인연을 갖지 않은 한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가정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하고, 세계를 대표하고, 천주를 대표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심정을 대표해서 나타나기에 부족함이 없는 한 사람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저끄러진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보다 가치적인 기준을 결정할 수 있는 끝날이 되지 않고는, 우리 인류의 소망의 세계, 이상적인 세계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론적인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사명을 가지고 오시는 그분은 누구냐 하면 재림주라는 분입니다. 만일에 그 한 분이 오시어 이것을 연결시켜 놓으면 이 전체는 일시에 개인이자-개인은 어디에나 통하는 거예요. 개인은 세계의 기본도 되는 것입니다. 또 가정은 어디나 통하는 것입니다. 종족의 기본도 되고, 국가의 기본도 되고, 세계의 기본도 되고, 하늘땅의 기본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인과 가정을 위주로 하고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사상은 개인완성 터전 위에서 가정을 소망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의 이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 신랑 신부는 어떠한 사람들이냐?내 아들딸만을 사랑하는 신랑 신부가 아닙니다. 자기만을 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계를 대표 하고, 국가를 대표하고, 민족을 대표하고, 종족을 대표하고, 가정을 대표하고 나선 공적인 입장에 선 신랑이요 신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기독교의 신앙이 얼마나 원칙에 어긋난 자리에 섰느냐 하는 것을 자각해야 된다구요. 내가 믿고 천당 가겠다고? 그렇게 돼 있어요?천당은 나중이라구요. 탕감복귀 완수해 가지고 책임분담 완수하고 난 후에 천당이지, 먼저 해야 할 것이 책임분담이라구요. 먼저 해야 할 것이 탕감복귀라구요. 그러고 난 후에 천당이지, '아, 책임분담은 나하고 관계없고 탕감복귀는 나하고 관계가 없어, 그것은 다 이방 사람 앞에….' 그렇다면 하나님이 6천년간 수고할 필요도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식구는 이걸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인 각자는 세계적인 자각을 하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천주적인 자각을 하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내 속에 국가가 있느냐?그 국가는 망할 수 있는 국가가 아녜요. 흥할 수 있는 국가관을 가져야 됩니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세계라는 것은 망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망하지 않는, 책임분담을 완성한, 하늘의 영광을 당당히 대신할 수 있는 세계 입니다. 그런 세계관, 사상을 통한 세계관을 추구하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과연 여러분들이 탕감복귀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책임분담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 「없다」 없습니다.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되겠다구요.
탕감복귀의 소원의 한계점이 어디냐? 어디예요? 개인을 중심삼고 복귀하는 거예요? 개인복귀예요? 개인복귀 했더라도 가정을 못 넘으면 망하는 거라구요. 그것은 이스라엘 역사가 여실히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120년 동안 수고한 노아도 일시에 걸려 넘어갔어요. 안 넘어갔어요?걸려 넘어갔다구요. 아브라함도 일생 동안 수난의 국경을 넘으면서 집시의 조상이 된 입장에 섰지만, 한번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갔어요. 안 넘어갔어요? 넘어갔다구요. 모세가 반석을 잘못 침으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갔어요. 안 넘어갔어요? 그걸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요.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은 알지 못해도 걸리는 것이요. 알고도 행치 못하면?걸려요. 안 걸려요? 「걸려요」 알고 행치 못해도 걸리는 것이요. 알지 못하고 행치 못해도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행치 못해서 걸리는 것보다도 모르고 행치 못해서 걸리는 것이 못하다? 「낫다」 그건 아는구만, 그러니 '차라리 원리를 몰랐으면 좋을 뻔했다' 는 거예요. 행치 못할 때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죽을 각오를 해야 된다는 거라구요. 그래서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했습니다.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이기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이기라는 것이 뭐예요?뭐 밥 먹는 것을 이기라는 거예요?고통의 길을 이기라는 거예요?아닙니다. 아니예요. 생명을 이기고 나서라는 거예요. 알겠어요?타락한 세계에서 이어받은 생명을 이기고 나서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생명을 죽이는 자리에 들어가는 사람은 새로운 생명의 출발을 볼 수 있는 거라구요. 그거라구요. 그거라구, 그러지않고는 가지 못한다구요. 그런 진정한 의미의 내용에 입각한 참다운 신앙자를 하나님이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수천 년의 한스러운 역사를 연장시켜 나왔던 것이 아니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4천년 역사를 중심삼고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이 그러한 사상을 갖고, 그러한 심정과 일치된 사상을 가지고 실천하면서 당당코 자신있게 갔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영적이나마 하나님의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개인의 길, 가정의 길, 국가의 길, 세계의 길을 맞이하였던 것이 아니냐, 그것이 영육을 중심삼고 완전히 완결짓지 못했기 때문에 재림이라는 내용을 중심삼고 재차 전개해 가지고 이것을 탕감복귀하고 책임분담을 하라고 세계 완성을 표준해서 보낸 것이 재림주님입니다. 이것이 사명이 아니겠느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많은 책임분담의 노정을…. 통일교회를 믿는 여러분들이 '아! 책임분담을 완수하겠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5퍼센트의 책임완성이다' 하는 생각을 하루에 몇 번이나 해요?5퍼센트의 책임 완수하겠다 하는 생각을 하기 전에 그것을 하려면 반드시 탕감복귀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탕감복귀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제물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문선생이 지어낸 말이 아니라 역사적인 내용이 그렇게 돼 있으니 틀림없는 사실이 아니냐는 거예요?
자, 이 나라가 망하게 될 때, 망하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는 무리가 없어 가지고는 망하는 나라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생겨날 수 있어요?절대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망하는 인간이 다시 희생되기 위해서는,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제물의 과정을 기어이 거쳐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리고 피를 흘리는 그런 역사가 없어 가지고는 되짚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법도라구요. 물에 빠진 자가 나오려면 빠질 때의 힘 이상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요?그러려면 누군가 대신 죽는 이상의 힘을 투입 하지 않는 한 살릴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탕감복귀라는 말을 아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하나도 없나?툭하면 탕감복귀예요?그런 시시한 탕감복귀가 아닙니다. 그저 허허 웃으면서 하는 탕감복귀가 아니라구요. 눈을 부릅뜨고 생명을 가름하는 여기서 죽느냐 사느냐, 칼을 받느냐 안 받느냐 하는 입장에서의 탕감복귀입니다.
보라구요. 아브라함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이삭이 칼을 받는 자리에서 탕감복귀의 제물이 되었지요? 전부 그랬다구요. 양도 제물 되기 위해서는 칼을 받는 자리에서 탕감복귀했지요? 그렇지요?
예수님도 인류를 대신해서 속죄의 탕감복귀의 역사를 남기려니 십자가의 피흘리는 자리에서…. 그렇기 때문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한 그게 뭐예요? 품는 거야, 버리는 거야? 「버리는 것입니다」 버리는 데는 어디에서 버리느냐? 뭐, 길가다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구요. 피 흘리는 자리에서 버리는 거예요. 원수도 그 이상의 원수가 없는 거예요. 아무리 가깝던 친구라도 죽을 자리에서 차 버리고 도망을 가게 되면 그것이 친구요. 원수요? 그러면 당장에 원수가 되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그런 자리에서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죽을 자리에서 버렸으니 하나님과 예수님은 원수지요? 원수 중에서도 용서하지 못할 원수인데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부활이 생겨났습니다. 그 원수를 원수시 않고, 죽을 자리에서 버리는 데도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며 그것을 붙들었습니다. 그것을 붙듦으로 말미암아, 세상 같으면 원수로서 끝날 것인데 불구하고 붙들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원수가 아닌 새로운 차원의 길이 개척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들 중에는 조금만 어려우면 교회 불평하고, 협회장이 어떻고, 누가 어떻고 어떻고…. 그렇게 입을 벌려 가지고 지껄이는 이런 아가리를 가진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구요. 통일교회 교인도 아니라구요. 그런 것들은 통일교회 교인도 못 된다구요. 탕감복귀를 하는데 남을 비방해 가지고 탕감복귀의 길이 있어요?남을 잡아 죽여 가지고 탕감복귀의 길이 있어요? 없다는 거라구요. 내가 하나에서 백까지 희생해야….그래서 어린양, 어린양, … 예수님은 어린양을 상징합니다. 양은 털을 깎더라도 가만히 있다구요. 딴 짐승 잡아다가 털 깎아 봐요. 가만히 있나, 그놈은 털 깎더라도 가만히 있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목을 자르더라도 '음매' 하고 죽는다 이거예요. 내가 보지는 못했으니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뭐, 다리야 버둥거리겠지요. 그렇지만 '날 왜 잡아!'하며 물겠다고 덤벼들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동물 중에 순하기로 대표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상징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탕감복귀는 제물 없이도 된다? 「안 된다」 왜 안 돼? 왜? 죄를 지었기때문에, 무슨 죄?본연의 아버지 어머니를 잡아먹은 죄다. 그런 죄를 지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 다음에는 본연의 아버지 어머니의 살림살이할 수 있는 그 집을 파탄시킨 죄다. 사탄이 그랬다구요. 본연의 인류의 참다운 조상의 살림살이를 전부 다 근본적으로 파탄시킨 죄다. 그 다음에는 그 후손, 그 나라를 파탄시킨, 본연의 나라를 망하게 만든 죄다. 그 다음에는 본연의 세계를 파탄시킨 죄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고생하게 만든 건 둘째치고 하나님의 사랑까지도 전부 다 유린해 버린 죄다. 그게 누구라구요? 타락한 천사장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타락한 천사장의 후손입니다.
늑대의 후손은 무엇이 된다구요? 「늑대 새끼요」 새끼 늑대가 크면 늑대가 되지요. 새끼 늑대나 늑대나 마찬가지라구요. 그러니 자, 이놈들을 잡아다가 제사를 드리려면 어떻게 하여야 되느냐? 나라를 대신해서 제사를 드리려면 나라를 전부 다 잡아 죽여야 됩니다. 세계를 대신해서 탕감 하려면 세계를 전부 다 잡아죽여야 됩니다. 전부 다 잡아죽이면 어떻게 되느냐? 사람 종자가 없어집니다. 없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뜻이고 뭐고 못 이룹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수없이 탕감조건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조건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조건물을 만드는 데 있어서는, 그냥, '아, 하나님! 이것을 오늘의 탕감조건으로 드립니다' 해서는 안 된다구요. 조건물을 드릴 때에는 조건은 작지만 대등한 가치 이상이 되어야만 조건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사탄이 참소합니다. 제물도 함부로 드리게 되면 지고지성(至高至聖) 하신 하나님이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생명보다 더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은….
여러분, 세상에도 그렇잖아요. 서낭당에 제사할 때에도 소를 사러 간다면 목욕재계하고 말이예요. 여러분은 그런 것 모르겠지만…. 그 소는 무슨 소? 황소보다는 암소를, 암소도 새끼 낳지 않은 암소, 그것도 흠이 있으면 안 되는 거라구요. 또 아무리 모양이 좋더라도 설사한 소는 안 되는 거라구요. 암만 잘생겼다 하더라도 병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입니다. 소 사러 간다 하게 되면 동네 방네 전체의 사람이 다 기억이라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야 정성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한국 민족이 옛날 서낭당에서 제사하는 풍습이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것과 딱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소를 잡아 가지고 제사를 드릴 때에는 전동네가 하나되어서 정성을 모아야…. 사탄한테 제사를 바치는데도…. 탕감법이 그렇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조건이라는 것은 그냥 그대로 함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노아가 방주를 조건물로 세우기 위해 120년 동안 정성을 들인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아브라함도 3대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는 유랑의 집시 생활을 수십 년 동안 했습니다. 나그네 생활 방랑객의 생활을 한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해서 제물되는 노정을 실천해 나가기 위해서는 40년 동안 애급 궁중에서 생활을 했으며, 그것이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미디안 광야에서 또 40년 동안 정성을 들이면서 오로지 민족만을 생각하고 민족을 위해서 밤이나 낮이나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자리에서 제물된 입장에서 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조건물로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구요.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탕감복귀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제물적인 조건이 필요한데,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 얼마나 정성들였어요? 정성들인 생각 나요? 생각 나? 엉터리들만 모여 있다는 거라구요. 생각대로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생각대로 한다고 하나님이 받아 줄 수 있나 이거예요. 어림도 없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조건물은 내 생명 대신입니다. 나 대신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조건물과는 완전히 하나 되어야 되고 완전히 사랑해야 됩니다. 사랑의 대상으로 대해 가지고 그것이 죽음을 당할 때, 같이 아픔을 느껴 가지고 속으로 울면서 제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식을 잡아 제사 드리던 것과 마찬가지로, 심정적으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갖춘 자리에서 끊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제물을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에게 있어서 제일 귀한 것을 제물로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물질을 바치게 될 때에는 여러분이 쓰고 남은 찌꺼기를 바치면 벌을 받습니다. 그런 건 차라리 안 바치는 것이 낫습니다.
여러분이 십일조를 할 때, 정성들여 십일조만 해보라구요. 절대 굶어죽지 않는다구요. 그 후손이 물질에 대한 궁핍을 당하지 않는다 하는 것이 원칙이라구요. 십일조 드리기 위해서는 정성을 들여라,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적당히 하면 되겠거니…. 그것은 통하지 않는다구요. 제물은 내 생명 대신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일 귀한 것을 바쳐야 됩니다. 옷을 바칠 땐 자기에게 몇백 가지 옷이 있더라도 그 중에 제일 귀한 것을 바쳐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합니다.
사람에게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냐? 생명입니다. 이런 거예요. 알겠어요?그러니 내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감복귀의 제물을 통해서 죄를 씻는 놀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관점에서 죽고자 하는 자는 용서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데 있어서 자기를 완전히 희생시켜서 드리는 자는 완전히 구원받을 수 없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나 때문에 함부로 희생시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라를 대표하고 세계를 대표한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바쳐져야만 세계, 혹은 하늘을 대표한 자리에서 부활할 수 있는 기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시대에 세계를 대표해 가지고 이런 일을 하러 왔다가 그 일을 행하고 갔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은 그 터전 밑에서부터 세계가 부활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이래서 외적으로나마 기독교의 문화권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역사시대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맞지요?그렇게 돼 있지요?왜 희생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그거라구요.
탕감복귀는 그냥 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탕감복귀 하려면 (판서하시면서) 무엇이 절대로 필요하다구요? 제물이 절대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영신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는 주먹구구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탕감복귀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물을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제물을 드리는 데는 그냥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제물과 나는 반드시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제물은 조건물입니다. 탕감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물을 드려야 되고, 제물은 조건물이 되고, 조건물을 드리려면 아담 대신자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불효하였던 아담 대신 나는 효도하는 아담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망하게 한 남편이 되었기 때문에 망하게 하는 남편이 아니라 구해 주는 남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망하게 만든 오빠가 되었다면 나는 망하게 만드는 오빠가 안 돼야 하는 것입니다. 여자측에서도 마찬가지라구요. 여자가 남편을 망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남편을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흥하게 하는 여자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누이 동생의 입장에서 오빠를 망하게 했으니 오빠를 흥하게 만들어야 되고, 하나님 아버지를 망하게 만들었으니 하나님 아버지를 흥하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거라구요.
타락으로 말미암아 쓸데없는, 타락된 후손인 아들딸을 낳아 버렸으니, 그런 아들딸을 절대 안 낳고 하나님이 기뻐하고, 만민이 기뻐할 수 있는 아들딸을 다시 낳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되는 것입니다.
탕감복귀가 되었다면 어느 자리까지 가요? 「장성기 완성급요」 장성기 완성급에 올라서는 것입니다. 원리로 말하면 소생, 장성, 완성이 있지요? 타락은 여기에서 했기 때문에 탕감복귀 하면 요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탕감복귀하는 그 자리는 혼자만 가느냐? 혼자만이 아니라구요. 세계적 사명을 짊어진 자가 와야 합니다. 그 대표자로 오시는 분이 메시아라는 분입니다. 그 분은 마음대로 이 자리를 마음대로 넘나들어 가지고 책임분담을 완수할 수 있는 내용까지 다 알고 오시는 분입니다. 아담은 모르고 타락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어떻게 가야 되는지를 알고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요 자리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합니다. 제물은 어떻게 어떻게 거쳐야 되느냐? 혼자 절대로 뛸 수 없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개인적인 제물시대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가정을 가졌으면 부부 둘이 합해 가지고 제물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부부끼리 탕감복귀 하기 위해서는 제물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들딸이 제물을 드려야 되는 겁니다. 이래 가지고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이, '아, 내 가정이다' 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만, 그 가정을 내세워 '이는 내 가정인 동시에 세계의 중심 가정이다' 하는 공인을 받을 수 있고 그래야만 본연의 아담 가정으로서 여기에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이 복귀의 길이기 때문에 그런 길을 다 갔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되어진 것입니다. 이걸 망하지 않게 하려니 이러한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다 갈 수 있게 하는 책임자로 오시는 분이 메시아라는 분입니다. 그 메시아와 접붙이면 나는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거라구요. 통일교회로 말하면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실체기대를 완성하게 되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게 된다는 말이 있지요?그것이 그 말이라구요.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무엇이냐? 메시아하고 완전히 하나되는 기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왜 메시아와 하나되는 것이 필요하냐? 내 개인탕감복귀, 가정탕감복귀, 종족탕감복귀, 민족탕감복귀, 국가탕감복귀, 세계탕감 복귀, 천주탕감복귀, 하나님의 심정탕감복귀까지 인간은 일생 동안 갈 수 없겠기 때문에 이런 역사적인 승리의 모든 내용을 총 수습해 가지고 하나의 결실체로서 대표로 나타난 것이 메시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메시아에게만 달라붙게 되면 나는 개인완성한 노력 가지고 천주완성한 자리에 설 수 있다. 없다? 「있다」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메시아는 절대 필요하다. 자기 생명을 끊어 버리더라도 메시아는 남겨야 된다 이거예요. 이것을 열두 제자가 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걸 못 했기 때문에 오늘날 타락의 역사가 다시 연장되어 내려온 것입니다. 이 말은 선생님의 말이 아니라구요. 문선생이 꾸며 가지고 얘기하는 말이 아니라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라구요.
자 여러분, 탕감복귀라는 말을 알았지요? 「예」 탕감복귀의 내용을 알았어요. 몰랐어요?탕감복귀를 하려면 제물을 드려야 돼요. 제물을 드리려면 조건물이 필요합니다. 조건물을 바쳐 가지고 제물을 드리려면 아담 대신자가 있어야 됩니다. 아담 대신 존재, 그건 타락한 아담이 아니라구요. 타락의 한을 넘어서려고 하는 아담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 다음에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어떠한 기간이냐? 원리적인 수, 3수 아니면 4수, 7수 아니면 12수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7수 아니면 21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는 40일 전도 기간이 있는 것입니다. 7년노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되면 삼칠은 이십 일(3×7= 21)로 연장되는 것입니다.
1960년도부터 21년노정이 끝나는 1981년까지는 세계가 전부 다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금년이 13년째로 넘어가는 해입니다. 12수를 넘어가기 때문에 복잡한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앞으로 21년노정 동안에 세계는 하나님의 탕감복귀역사로 전부 다 떨어져 내려가고 난데없는 패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내려온다구요.
단, 거기에 남아지는 것은 뭐냐? 7수를 기반으로 해서 남아질 수 있는것, 3수를 수습해서 남아질 수 있는 것, 12수를 수습해서 남아질 수 있는것, 21수를 대표해서 남아질 수 있는 것은 뭐냐 하면 사위기대입니다. 사위기대 가운데는 3수도 있지요. 3단계? 사위기대를 보게 되면 (칠판에 판서하시며) 이걸 갈라 놓은 거라구요. 그렇지요?요걸 합치면 3단계가 되는 것입니다. 3수가 나온다구요. 그렇지요? 「예」 이것을 벌여 놓으면 수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이 되는 것입니다. 요걸 제하면 전부 다 나오는 것입니다.
사위기대가 되어 가지고 뭘하느냐? 중심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구요. 중심을 중심삼고 사위기대가 되지요? 평면이 7수를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입체의 출발을 보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돼 있다구요. 이것은 5수도 됩니다. 전체를 보게 되면 말이지, 뭐 오행이라는, 말이 나온다구요. 이것은 4수도 되고 3단계도 됩니다.
또 이 3단계는 뭐냐 하면 7수의 완성수인 21수도 되는 것입니다. 삼칠은 이십 일(3×7=21), 21수도 되는 것입니다. 사위기대를 중심삼고 볼때 이것은 12수도 되는 것입니다. 3대상 목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배웠지요?여기에 하나, 둘, 셋이 합해서 삼사 십이(3×4=12), 12수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상대수로 하면 24절기가 나옵니다. 전부 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기본수라는 거예요. 거기에 남아질 수 있는 단 하나의 중심기대가 뭐냐? 사위기대입니다. 사위기대 속에는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위기대를 완성한 심정 기반만 갖추게 되면 천지의 모든 주관권의 핵심이 여기에 전부 다 집약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정입니다. 이것이 실현될 수 있는 기반만 되면, 그것을 횡적으로 세계화 시킨 것이 지상천국입니다. 전부 다 거기에서 벌어지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사위기대를 완성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타락의 인연을 벗어난 참다운 남자가 되고 참다운 여자가 되어야 됩니다. 참다운 남자가 되고 참다운 여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탕감복귀노정을 거쳐야 됩니다. 탕감복귀노정을 거치려면 남자로서 세계 제일 가는 제물을 바쳐야 되고, 여자로서 세계 제일 가는 제물을 바쳐야 됩니다. 세계에서 제일 가는 제물은 무엇이냐? 예수보다 더 나은 제물이다 이거예요. 안 그래요? 예수님은 영육을 중심삼고 영적 제물을 바쳤지만 우리는 영적 제물은 물론이요 육적 제물까지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등등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을 바치기 위해서는 그냥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인 여러분들이 탕감노정을 간다 하게 되면 제물을 바쳐야 할 입장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들이 바칠 수 없습니다. '내가 이것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제물이 아닙니다. 제물의 규약이 있는 것입니다. 그 규약을 통일교회 원리를 통해서 가르쳐 주는 거라구요. 그 다음에 여러분이 지금 제물을 바칠 수 있는 나라 할 때에는 어떻게 되느냐? 선생님 대신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과 접붙인 나뭇가지가 되어 가지고 지방이면 그 한 지방의 분성전의 제사장의 입장에 서는 겁니다. 선생님을 대신한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대신한 자리에서 선생님이 바치던 전통적 사상을 따라 제물적 조건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기간을 맞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은 통일교회 문선생을 절대 저버릴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에서 가르쳐 준 탕감복귀의 길을 가려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것은 내 말이 아니라구요. 그것은 원리가 주제로 삼는 말이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죽을 때에도 필요하고, 살 때에도 필요하고…. 난 것도 선생님을 위해서 났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뭐 자기 마음대로 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났다구.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는 아담 대신 존재가 필요하지요? 그 존재는 어떤 인물이냐? 승리한 아벨형의 인물입니다. 그 아벨형의 인물이 승리적 입장에 서 가지고 승리적 조건물을 반드시 제물로 드리고야 나는 넘어가는 것입니다.
개인에서 가정으로 넘어가려면 개인적인 제물을 바치고야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자가 없어 가지고 가정의 구원의 도리는 절대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절대 안 해줍니다.
종족을 구하려면 종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가정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가정의 부인들이 아들딸과 남편을 다 버리고 나가서 야단하고 있다구요. 왜 그러는 줄 알아요?가정을 희생시킴으로써 그것을 본으로 삼아 민족과 종족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가정을 희생시키는 운동이 없어 가지고는 탕감복귀 승리의 역사 한국이면 한국의 통일교회 역사가 가운데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가정을 파괴해 가지고….
축복을 해준 것은 가정을 이루라고 해준 것인데 가정을 이루게 해 놓고 또 깨뜨려 버리다니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무슨 선생님이 그래? 변덕장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변덕장이가 아니라구요. 차원높은 개인복귀 승리의 터전을 결실로 맞은 것이 가정이면 그 가정이 종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종족권의 통일교회가 민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맞으면서 희생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희생시켜 민족을 구하려니 끝까지 정성 들여라 이거예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기도했던 것과 같이 나가 전도하는 전도대원들은 밤을 새워 가면서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해서 전도를 아무리 해도 전도가 안 된다구요? 안 되어도,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입장에 서더라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나는 끝까지 정한 길을 가겠나이다' 하며 참고 넘어가야 된다구요. 전도가 안 된다구요. 전도가 되면 안 된다구요. 알겠어요? 안 되는 거예요. 내 살이 여위고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게끔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럴수록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알라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아무리 전도해 보라구요. 전도가 안 되는 현상이 벌어진다구요. 제물을 놓고 제사 드릴 때 거기에서 무슨 전도가 벌어지나? 번식이 벌어져요? 제물이 다 되고 난 후에야 비로소…제사를 받고 난 후에야 그 제관들이 '어! 잘 받았구만' 하고 하늘 앞에 감사하고 기쁜 일이 벌어 지든가, 슬픈 일이 벌어지든가 하지, 제물도 안 드렸는데 뭐?앙상한 비참밖에 없다구요. 옛날 60년대와는 다르다구요. 왜 지금은 그렇게 되느냐? 제물을 드릴 때라는 것입니다. 제물로 드리게 될 때에는 제물된 자 외에는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없지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비명을 질러야 될 입장에 몰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될수록 마지막이 아니고, 마지막이긴 마지막인데 내 때가 가까와지는 것입니다. 그걸 알고 이 고비를 잘 참고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구요. 생명이 진(盡)하더라도 참아야 됩니다. 발길로 주인을 차 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 때가 그런 때라는 것입니다.
1970년도부터 1974년까지의 이 기간은 세계가 뒤넘이치는 때입니다. 자리를 못 잡고 뒤넘이칠 때라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 원리는 그야말로 세계사적인 사명을 짊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길은 어떻게 가려 갈 것이냐?문제는 간단하다구요. 불평하지 말고 세상 사람과 손잡지 말고, 하나님만 붙들라는 거예요. 지금 대한민국을 볼 때, 대한민국 백성 누구를 믿을 수 없다구요. 전부 다 믿을 수 없는 자리에 들어 간다구요. 나라를 믿을 수 있어요. 나라를 지도하는 지도자를 믿을 수 있어요? 뭘할지 모르는 이런 입장에서는 믿을 수 없습니다. 어느 당도 못 믿고, 교회도 못 믿고, 다 믿을 수 없습니다. 이북의 공산당도 못 믿고 이남도 믿을 수 없습니다.
딱 그렇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할 테냐? 신의(神意)의 길을 가야 됩니다. 신의의 길을 가지 않고는 이 나라가 살 길이 없는데, 신의의 길을 어떻게 모색하느냐? 인간을 믿어 봤지만 낙망과 절망에 부딪쳤으니 하나님을 믿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생명을 다해 가지고 믿는 운동이 적극적으로 벌어지는 날에는 대한민국은 새로이 부활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일면 비참하고 일면 혼란된 환경이지만 여기에서 확실히 새로이 하는 날에는 단결할 수 있는 하나의 종대가 우리 앞에 다가온다고 보는 것입니다. 망할 줄 알았더니, 망하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흥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역적이면 그 역적이 회개하면 역적 칭호를 벗어버릴 수 있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역적들이 전국에 퍼져있다고 할 때, 이 역적이 자기 혼자 죽는 것는 억울하지 않지만 자기 죽은 후에까지라도 이 도당들을 남겨 놓으면 그야말로 억만 년 존속해야 할 이 나라가 망할 것을 알고 자기의 도당들의 마음을 나랏님 앞에 회개하도록 바꿔 놓게 되는 날에는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도 그와 마찬가지로 망할 수 있는 입장에 있고 배신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지만, 하늘을 망하게 하는 이런 모든 사연들을 하나님 앞에 통고하고 그것을 밝혀 달라고 호소하는 마음을 대신 갖고 몸부림치고 회개하면서 그들을 대표하여 매를 맞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만약에 '나 혼자에게 역적의 죄를 전부 다 책임지우고 저 사람들을 용서해 줄 수 있으면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한다면, 그는 역적 중에서 그래도 쓸 만한 녀석이라구요. 그렇지요? 응? 그러한 심정을 가지고 이 나라 이 민족을 대신하여 우리가 책임지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신자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는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탕감복귀하지 않고는 책임분담을 완성할 수 없다구요.
여러분들은 혼돈하고 있다구요. 여러분들에게 지금 나라를 위해서 나가 싸워라 해서 싸운다면 여러분이 나라를 위하여 싸울 수 있는 그러한 자격자들이 되었다고 봐요? 어림도 없다는 거예요. 전부 다 그냥 그대로 사탄 새끼라구요. 이런 사람들이 여기에 와 가지고 하는 말이, '그래도 나는 나라를 위해 싸우는 공신이다'고 합니다. 공신이 될 게 뭐예요? 여러분들은 그 자리에 나타날 수도 없고,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도 없다는 거예요?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것은 선생님이 가담을 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너 이렇게 해라, 선생님의 말을 믿고 해라, 아담이 하나님을 불신하여 타락했기 때문에 너희는 아담보다 나은 자리에서 신임받아라, 아담이 하나님과 일체가 못 되어 망했기 때문에 너희는 하나되어 가지고 나가 싸워 봐라' 할 때는 탕감복귀되는 거라구요.
그걸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들이 그 꼬락서니 가지고, 그런 입장에서 하늘나라의 건국 도상에 있어서 민족을 대표하여 제물적인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자기가 당당해서 그런 거예요? 어림도 없다구요. 그 주제에 뭐 머리 들고 통일교회를 비판해? 어림도 없다구요. 그런 녀석은 영영 모가지가 걸린다구요. 그런 사람을 데리고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안 하십니다. 어림도 없다구요.
그런 퇴폐적인 사상은 전부 버려요. 그래 가지고도 통일교회 식구라고? 선생님이 알고 있는 통일교회 식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구요. 뼈가 부러지도록 몽둥이로 모듬매를 맞더라도 당연히 참석해야지요. '나 같은 것은 이 자리에 설 수도 없고, 섰더라도 거룩한 제단을 더럽힐 수밖에 없는데, 오늘 특별히 하늘의 잔칫날에 초청해 주어 왔기 때문에 그 은혜를 보답하겠습니다' 해야 됩니다. 그래야 떡이라도 얻어먹든지 주인이 볼때, '그 녀석 부르기는 불렀지만 섭섭하지는 않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주제에 뭐 머리를 들고 바람을 피워? 그런 사람이 망하는가, 망하지 않는가 두고 보라구요. 그건 통일교회에 남아지지 못하는 거라구요. 그런 무리를 수습하는 통일교회 선생님이 아니라구요. 그러한 무리를 데리고 탕감복귀역사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은 자동적으로 떨어져 나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교회의 뜻을 알고 민족복귀니 세계복귀니 이런 입장에 가담할 수 있는 놀라운 영광에…. 역사이래 한 번밖에 없는 내 짧은 생애에 반짝하는 이 시기, 언제나 그것이 지루하게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구요.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때가 여러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때를 기다려 가지고 때를 맞추어야지, 때가 여러분을 찾아와서 여러분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러니 때가 왔으면 거기에 온갖 정성을 투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알고도 허송세월을 했다가는 그건 누가 책임을 안 진다구요. 선생님이 책임질 줄 알아? 그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은 어영부영하는 적당한 선생님이 아니라구요. 심각한 사나이라구요. 때가 찾아온 것을 알 때에는 죽을지 살지 모른다구요. 그것을 놓치는 날에는 천지가 망한다는 심각한 심정에서, 힘줄이 오그라드는 심정을 가지고 이 일을 타개해 나가는데도 불구하고 쳐 가지고 비난하고 비판해요? 그래 가지고 남아지나 보라구요. 그 사람들은 춘하추동이 자기도 모르게 교차되듯이 자기도 모르게 풍화작용에 의해 가지고 소식도 없이 다 굴러떨어지는 거라구요. 그러한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하고,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조건물을 가지고 있어요? 가정을 위해서 드렸느냐, 나라를 위해 드렸느냐, 세계를 위해 드렸느냐에 따라 조건물이 달라진다구요. 즉, 개인복귀의 제물 조건이냐, 가정복귀의 제물 조건이냐, 종족복귀의 제물 조건이냐, 민족복귀의 제물 조건이냐, 국가복귀의 제물 조건이냐, 세계복귀의 제물 조건이냐에 따라 조건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조건이 달라지는 거라구요. 기간도 달라지는 겁니다. 제물의 역사성을 초월할 수 없고 비약할 수 없는 운명권에 있는 타락한 조상의 후손인 것을 확실히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탕감복귀하여 해원성사한 후에야 비로소 책임분담이 벌어집니다. 한을 남긴 책임분담, 이것 때문에 하나님도 녹아났고, 지금까지 우리 인류가 이 책임분담을 할 수 있는 세계적인 한 때를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의 역사는 거듭되어 내려온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한 많은 책임분담의 고개를 어떻게 넘을 것이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예」
탕감복귀는 왜 해야 되느냐? 책임분담하기 위해서 해야 되는 겁니다. 책임분담은 왜 해야 되느냐? 한많은 역사를 해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책임분담을 완수하는 날에는 하나님의 한이 풀리나요. 안 풀리나요? 「풀립니다」 또 인류의 한이 풀리나요. 안 풀리나요? 「풀립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시대적인 한, 미래의 한까지 다 풀린다는 거라구요.
한많은 책임분담의 역사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 한을 풀 수 있는 책임완수의 한 날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워야 합니다. 그것을 그 누구를 그리워하는 것 보다 그리워해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서로 자기의 아내를 사랑하고 자기의 남편을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그리워야 합니다. 그것을 해결지어 놓고 그_터전 위에 아내가 필요한 것이요. 남편이 필요한 것이요. 자식이 필요한 것이요. 가정이 필요한 것이요. 민족 국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 이걸 여러분이 알고 그 길을 다시 한번 냉정히 비판해 볼 때, 과거의 나 자신을 중심삼고 탕감복귀의 길을 걸어왔느냐?
나는 개인복귀의 자리에 허덕이고 있거들랑, '가정복귀의 날을 맞기 위하여 메시아를 맞는 것이 내 최고의 희망이 아니냐, 나에게 가정복귀할 수 있는 기준이 바로 그 기준이기 때문에 이 목숨을 다 바치더라도 한이 없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개인탕감복귀의 책임을 완수하였거든 가정적인 탕감복귀의 길을 갈 수 있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고, 가정탕감복귀 완수해 가지고 책임분담 완수하였거든 나에게 종족탕감복귀의 길을 갈 수 있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고, 혹은 종족탕감복귀 완수해 가지고 책임분담 완수했거든 민족, 혹은 국가, 세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수 있는 분이 있다면, 이런 전체의 한의 구렁텅이를 한꺼번에 가르쳐 주어 가지고 한꺼번에 비약시킬 수 있게 되면 내 손이야, 내 발이야, 내 뼈살, 무엇을 아끼고 싶을 것이뇨. 일시 투입하는 것이 내 소원 중의 소원이요, 보람 중의 보람이라고 각오할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야 될 것이 아니냐.
그야말로 통일교회를 통해서 여러분이 일시에 이것을 횡적으로 탕감복 귀하려는 역사적 사명을 여러분은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7년이라는이 기간에 한 많은 7천년의 역사를 탕감하고 인류가 지금까지 한의 구렁텅이에 있던 것을 일시에 비약해 가지고 이걸 초월하자는 것이 오늘날의 통일교회의 가르침이 아니냐? 이 7년이야말로 우리에게 복된 기간입니다. 이 7년을 놓치면 우리는 망하는 것이요. 우리의 뜻은 설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7년 기간은 모든 생명의 권한을 해결할 수 있는 기간입니다.
내가 바라던 이 7년이라는 기간이 나에게서 사라지는 날에는 우리는 한의 사나이요. 한의 아낙네밖에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7년이라는 기간을 거치지 않고는 여러분 앞에 책임분담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7년 기간을 거치지 않고는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한과 인류의 한을 해원 할 수 없습니다. 이 7년 기간을 여러분이 완수하는 데서만이 나라와 민족을 해방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1차 7년노정에 못 하게 되면 2차 7년노정, 3차 7년노정으로 연장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3차 7년노정까지 안 되게 될 때에는 이 뜻은, 이 복은 대한민국 복이 아니고 여러분의 복이 아니라 이방의 복으로 넘어갈 것입니다. 왜? 예수님의 뜻이, 기독교의 뜻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대한민국의 백성은 종이 될 것입니다.
보라구요. 노아의 아들 함이 축복받은 아벨의 자리에 있었지만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종이 된 것과 같이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의 영육을 중심삼고 죽였다면 그 민족은 희생할 길이 없지만 영적인 기준이 남아 있기 때문에 희생할 수 있으되, 한국 민족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 3이스라엘은 영육을 침범할 수 있는 조건적인 입장에 섰기 때문에 이 민족은 종새끼와 같이 됩니다. 그것이 원리의 결론이라구요. 함의 역사를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을 모시고 사는 통일교회 간부들이여, 정신 차려라 이겁니다. 그대들이 지금까지 선생님을 모시고 뜻을 대하여 나온 그것으로써 일방통행이 안 됩니다. 여기서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원리적인 비판을 다시 적나라하게 받아야 될 것입니다.
그대들이 살고 있는 그 삶이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대표한 삶이냐? 나는 책임 안 집니다. 아무리 가깝던 사람도 나는 책임을 안 집니다. 아무리 지금까지 수십 년 선생님을 받들고 나왔던 36가정의 그 누구라 하더라도 나는 책임을 못 집니다. 민족을 위함에 있어서, 세계를 위함에 있어서 탕감복귀노정을 단축시키기 위한 그 길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기 위한 수난길을 자처해서 가는 책임자가 아니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걸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선생님이 뭘 하고 다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를 것입니다. 요즘에는 내가 한국에서 한다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꼭대기 몇몇 사람을 만나 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탕감복귀 원칙에 있어서….기독교를 위해서 지금까지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했고 기독교를 구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의 몇몇 사람을 만나고서는 영계의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각 종교의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이들은 하늘의 법도를 알고 있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님을 어떻게 모셔야 하고 어떻게 받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구요. 여러분이 앞으로 그런 사람들에게 교육 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 교육하게 되면 교육 받아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을 마음대로 만나지 못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있을 성싶다는 거라구요.
탕감복귀의 원칙은 선생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탕감복귀 원칙의 길을 가기 전에는 하나님 앞에 나타나고자 하는 생각을 안 했습니다. 제물의 과정을 가지 못한 사람은 후원이 필요없다구요. 제물을 동정하는 입장에 서면 진정한 제물은 못 바치는 것이 아니냐,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갈 때,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해 주소서' 절대 그런 시시한 기도는 안 했습니다. 그러면 제물의 뜻에 위배됩니다. 깨끗이 희생하고 깨끗이 피를 흘려야 됩니다. 동정을 바라는 제사장이 되어 가지고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된다 이겁니다.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하나님!' 난 그러지 못한다구요. '하나님, 나는 나 자신을 책임지겠습니다. 동정은 필요없습니다' 하는 사상을 가지고 나오는 사나이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탕감복귀를 하지 않고는 책임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민족적 탕감복귀를 시키려니 통일교회 교인들을 들이 고생시키는 거라구요. 죽을 자리에 내모는 거라구요. 가라 이거예요. 그 방향과 여러분이 가는 방향이 엇갈리게 될 때에는 엇갈리는 각도만큼 여기에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을 뻔했어요.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은 몰랐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하였도다. 차라리 통일교를 믿지 않았으면, 차라리 문선생님을 몰랐으면 좋을 뻔 하였도다.
그러면 여러분 일대만 걸리는 것이 아니라, 잘못하면 여러분의 70대 선조까지 걸려 버리는 것입니다. 선한 공적이 있으면 전부 다 빼앗아 가지고 이방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거라구요. 말만 그러는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에게 신앙적으로 공갈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말을 했는데도 하지 못하게 되면 나는 모른다구요. 알겠어요? 탕감복귀하기 전에는 책임분담을 할 수 있다? 「없다」 없습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탕감복귀의 노정을 가는 것을 언제 생각해 봤어요? 제 탕감복귀노정을 뒤넘이쳐 넘는 것을 느껴 보고 동정해 봤느냐 이것입니다. 한 마을에서 소를 잡아 제사를 드려도 동네 제삿날로 기억하거늘, 제물에 대하여 긍휼의 마음을 가지는데, 선생님을 내세워 가지고 여러분이 얼마나 마음으로 동정했어요? 이것들이 선생님을 이용해 먹으려고 하고 뜯어 먹으려고 하고 전부 다…. 앞으로 내가 샅샅이 들이칠 거라구요. 만약에 뜻이 이루어지는 날에는 소문난 시시한 사내들은 전부 서류로 꾸며 가지고 공판에 붙여서 해결하고 넘어갈 거라구요. 잘못한 것 전부 들춰내 가지고 해결하고 넘어갈 것입니다. 왜 그러냐? 심판은 역사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 미래까지 누가 잘못을 했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조서를 꾸미고, 그 족속까지 전부 다 들춰 가지고 청산짓고 가게 돼 있다구요. 통일교회를 반대한 목사면 목사도 전부 다 걸릴 것입니다. 그러한 길을 가야 할 입장에 선 사나이가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입니다. 어물어물 적당히 넘어가지 않는다구요.
내 마음에 충격을 준 말, 내가 하지 않은 말, 이런 것은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뿌리를 전부 깨끗이 정리해 놓고 가야 된다는 겁니다. 만일 이땅에서 그걸 못 하게 되면 영계에 가서라도 깨끗이 청산지어야 할 것입니다. 영계에 가서 청산지을 때에는 영영 그들을 용서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용서해 주지 않으니….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한을 남긴 책임분담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손이 책임분담을 완수했더냐, 이 손이 얼마나 책임분담을 완수하기 위해서 노력했더냐 그렇게 볼 때 이놈이 밉살스러워야 된다구요. 이놈의 손아! 이놈의 눈깔아! 이놈의 아가리야! 뭘 먹겠다고 입을 벌려? 이놈의 입아? 도끼를 들고 이빨을 콱 부숴 버리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겁니다. 손가락은 전부 다 방망이로 뱀대가리 찍듯이 해 가지고 없애 버리자고 다짐하더라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고기 덩어리를 들색거렸다고 힘들다고? 그래 가지고는 탕감복귀할 수 없다는 거예요.
자, 여러분이 그렇게 알고, 한을 남긴 책임분담의 길은 어떻게 올라가 가지고 풀 것이냐 하는 문제가 새로운 과제입니다. 이제 1974년도까지 2년 몇 개월밖에 남지 않은 이 기간에 어떻게 이걸 밀고 나가느냐? 이 기간이 지나가게 되면 민족적 사명 시대는 지나간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에 대해서 '뭘 해라, 해라, 야, 전도해라' 절대 그러지 않는다구요.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고…. 나는 관계없습니다. 그때에는 통일교회 문선생을 여러분이 볼래야 볼 수 없는 곳에 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얘기하는 거라고 내 말이 아닙니다.
젊은 처녀 총각들도 마찬가지요. 나이 많은 늙은이들도 마찬가지예요. 탕감복귀의 길은 다 가야 됩니다. 낮이나 밤이나 세계를 붙들고 통곡을 하고 씨름을 해야 할 운명을 책임진 것이 통일교회 교인이기 때문에, 한을 남긴 탕감복귀의 해원성사를 이루어 한을 남긴 책임분담 완수의 고개를 넘기 위한 것이 우리가 출발한 길이기 때문에, 이 길을 완전히 승리적으로 넘지 않으면 이 통일교회의 운명은 불쌍한 운명이 될 것입니다. 결박해 들어오는 공산세계의 마수는 지금 세계를 풍미하고 있지 않느냐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고 확실히 이것을 가려 가지고 남은 1974년도까지 2차 7년노정은 여러분이 책임지고 가야 할 기간이라구요. 자그마치 가정으로 가야 할 책임을 민족으로 전개시켜 가지고 책임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를 대해 가지고 777가정을 연결시켜 가지고, 그 가정들은 전부 다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보조를 맞추고 있는 거라구요.
그들에게 지는 여러분이 되면 주체국으로서 책임을 못다하는 입장에 선다는 거예요.
아버님! 여기에 서 있는 이 아들은 뜻을 알고 난 그날부터, 아득한 천리길 복귀의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결심에 결심을 다짐하던 그 옛날 한때 한때를 다시 한 번 회상하게 되옵니다. 그 누구에 게도 말을 할 수 없는 서글픈 아버지의 내정을 안 그날부터 깊은 심정을 품고 하늘의 때가 오기를 지금까지 기다려 왔사옵니다.
그런 기간에 저의 젊은 시대도 지냈고 청년 시대도 지내고 인생의 한 고개를 넘고, 석양길을 향하지 않으면 안 될 지금에 와 있습니다. 이제 민족과 세계가 엉망진창이 되어 가는 것을 직시하면서 때가 다가오고 환경이 어지러워질수록 하나님과 나만의 사정이 같이하는 역사성을 짊어진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럴 적마다 죄스러움을 느끼고, 하루의 생활을 출발하면 출발한 그날 이 민족과 세계를 대한 염려의 마음이 부풀어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하늘의 때가 가까운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나이다.
그렇지만 하늘이여! 이 불쌍한 한민족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반만년의 역사를 지나온 이 민족, 서글픈 고아와 같은 자리에서 살아오던 이 민족, 헐벗고 굶주린 거지의 자식과 같은 자리에서 천대를 받아 나오던 이 민족, 그래도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믿고 추울 때에는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돌이켜 '우리 부모는 죽었지만,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와 주옵소서' 기도하던 역사의 인연을 남겨 왔던 한민족인 것을 아시기에 당신은 이 민족을 찾아왔고, 이 민족을 축복하기 위하여 수많은 어려운 역경 가운데서도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복을 주려 했지만 이 민족은 당신을 배반했습니다.
아버지여! 이스라엘 민족을 용서하신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것을 알았고, 유대교를 멸하지 않고 지금까지 남겨 온 당신의 억울한 뜻이 남아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것을 배후에 놓고 아버지 앞에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될 오늘이 얼마나 원통한가 하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그러나 할수없는 복귀의 길, 번번이 그럴 수 있는 길을 남기고 있는 저희들이 죽기 전에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이 뜻이 저희들의 뜻이 아니요. 당신의 뜻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다시 수습하여 당신 앞에 공인받을 수 있는 승리적인 때를 바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 이 나라 민족으로 태어난 민족적인 사상이요 긍지인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통일교회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역경 가운데서 수난의 노정을 걸어왔습니다. 그 누구한테 말할 수 없는 억울함도 참아 왔습니다. 이가 갈리고 혹은 힘줄이 당기는 그런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서글픈 나날을 생각하면서 참아 나왔습니다. 당신이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아는 저희들이었기에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하시옵고 품에 품어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엇갈린 남북의 통일은 누가 나서서 하겠습니까? 하나님만이 이걸 책임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부족하기 때문에 정성을 다하여 이 서러운 운명을 가로막고, 십자가의 죽음길을 각오할 수 있는 비참한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생각할 적마다. 저희는 고요히 당신의 품을 그리워하면서 당신이 승리의 한날을 세우는 결과를 바라면서 이 난국을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현재 통일교회의 사명인 것을 그 누구의 가슴에도 확실히 믿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금년은 1972년입니다. 이해는 역사적인 비참을 대표할 수 있는 해입니다. 이해에 벌어지는 일은 비단 한국 민족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세계사를 대표한 일이라는 사실들을 알았습니다.
10월을 맞이하여 이 나라 이 민족은 비상계엄령을 발표했습니다. 이때에 저희들은 무엇을 바라보아야 되겠습니까? 이러면 이럴수록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심정에 파고들어가야 되겠습니다.
하늘이여! 이 민족을 버리지 마시옵고, 이 나라 이 백성을 사랑해 주시옵소서. 우리가 희생하더라도 이 뜻만은 남기고 가야 되겠다는 무리가 있어야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한많은 책임분담노정이 어떻다는 걸 알았사오니, 이것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탕감복귀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확실히 깨닫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아버지 앞에 새로이 충성을 다짐하고 맹세하는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1974년도까지 가야 할 이 길 앞에 최후의 막바지를 치닫는 이 발걸음이 지치고 쓰러지고 노곤한 자리에 서더라도 생명을 걸고 정상을 한 발자국이라도 넘고 나서 쉬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정상이 가까와 오는 것을 알고 극복에 극복을 다짐할 줄 아는 용사다운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사탄세계에 하늘의 아들딸이 끈기 있고 강인한 그 모습을 보게 하시고 당신이 사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통일의 역군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심신을 가다듬어 내일의 소망을 바라보며 아버지 앞에 엄숙히 맹세하고 자각하는 각자들을 아버지여 긍휼히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이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책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