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을 맞이하여 세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 여기에 모인 당신의 어린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각자의 사정과 입장이 아무리 다르더라도 당신을 그리워하고 사모하고 흠모하는 심정만은 하나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을 위하고 당신으로 말미암아 인연된 사실을 생각하며, 어떠한 생활환경에서나, 수난길에서나, 슬픈 자리에서라도 그 인연을 붙들고 기뻐하고 슬퍼할 줄 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혈육의 인연을 이어받은 자식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아버지가 계신 것을 알았지만, 이 시간에 당신께서 어떠한 것을 굽어살피시고 누구를 찾아오시고 어떠한 이를 격려하시는가를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이 땅 위에는 그러한 당신의 뜻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당신의 심정을 추구하는 무리가 이 땅 위에 없는 것이 사실이옵니다. 미비한 저희들만이 당신이 계신 것을 알고, 당신의 사정이 어떻다는 것을 알 뿐이옵니다.
아버님, 세계에는 잘난 나라도 많고 잘난 사람도 많지만 그러한 나라와 사람들이 당신과 인연을 맺을래야 맺을 수 없는 입장에 있으므로 할수없이 저희들을 상대로 하셔서, 저희가 당신이 찾고 싶으신 아들딸이 아닐지라도 저희에게 소망과 기대를 갖고, 찾고 싶으신 아들딸을 찾을 수 있는 그곳을 향하여 심부름이라도 저희들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 당신의 입장인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버님, 심부름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개인을 찾으시고 가정을 찾으시고 민족을 찾으시고 세계를 찾으셔야 할 당신의 엄청난 사명을 부족한 것들이 맡아 감당하기가 너무나 어렵사옵니다. 이러한 것을 아시고도 저희들을 보내 놓고 걱정하시고 세워 놓고 염려하셔야 하는 당신의 사정이야말로 비참한 사실이요, 슬픈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버님, 철부지한 이것들이 아버지 앞에 부복할 적마다, 옷깃을 여미고 아버지 앞에 모습을 나타낼 적마다 수고로우신 아버지를 진정히 우러러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을 위하여 역사의 배후에서 그 누구도 모르는 수난길을 개척해 나오신 아버지이신 것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비록 병신이라도 '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을 맺고 있다. 그 무엇을 가지고도 이 인연을 끊을 수는 없다'는 확고한 마음이라도 가져야 되겠습니다.
병신 자식을 가진 부모가 자기의 권위와 위신을 세워야 할 자리에서, 원수들이 조롱하는 자리에서, 그 원수보다도 낫고 우세한 아들딸을 앞에 놓고 아들이라 딸이라 부를 수 있을 때에는 자기의 위신과 체면을 세울 수 있겠지만, 원수들이 바라보는 자리에서 불구자들을 아들이라 딸이라 부르며 저 원수를 갚아 달라고 부탁할 때에는, 그 원수들이 얼마나 희롱을 하고 농락을 할 것인지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희들이 복귀의 도상에서 아버지를 그와 같은 자리에서 욕되게 한 사실이 한두 번이 아닌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내 모습이 그랬고, 내 걸음걸이가 그랬고, 내 행동이 그랬고, 내 삶이 그랬다는 사실은 당신 앞에 너무나 수치였습니다. 그 입장에서 볼 때 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날아가고 싶고, 사라질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사라지고 싶었던 것이 당신의 마음이 아니었사옵니까? 그렇지만 불구의 자식밖에 없는 당신은 그래도 이들을 붙들고 내적으로 사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아들딸을 통해 후대의 후손을 남기어 원수의 자식보다도 훌륭한 자식이 되기를 고대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아옵니다. 그러한 아버지 앞에 불구의 자식들이 아버지를 모욕시키는 입장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아버지를 배반하고 아버지를 거역하는 배도의 무리들이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적마다, 그들의 후손된 저희들은 당신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부끄러운 자신임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님이여, 그러한 저희들이 이 시간 당신 앞에 또 찾아 나왔사오니, 긍휼이 당신의 본질이요 자비가 당신의 본성일진대는 다시 한 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적 과오를 아는 저희들은 다시는 그러한 모습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당신이 저희로 말미암아 수치스러운 자리에 섰다 할진대 천만번 수치를 당하더라도 그 체면을 복귀해 드려야 할 사명을 느끼는 아들딸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백번 죽고 천번 죽더라도 이 길에서 원수들이 조롱하는 부끄러움의 환경, 원수들의 자식들을 세워 놓고 자랑하는 그 입장을 꺾어 놓고 밀어젖히기 위해서는 단 하나 이 길밖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수의 자식들은 서로서로 배반하고, 그 부모에 대해서 불효하는 길을 갈지라도 저희들은 효성을 하는 데 있어서 그들보다 나아야 되겠습니다. 불구의 자식이라도 당신을 위하여 기쁨으로 생명을 바친다 할진대는, 하늘땅에서 자랑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아옵니다. 그 한 길밖에 없기 때문에 저희를 찾아오셔 가지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씀을 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아버지의 내정을 저희들이 살필 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저희들은 언제나 상습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아버지 앞에 상습적인 면을 갖추는 불쌍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적절한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마음 가운데에 기억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저희를 들어 기필코 원수를 대한 승리의 기반을 닦아 주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고 또 노력하시는 아버지를 모시는 자리에 설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 자리에 서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 길은 하나밖에 없는 길이기 때문에 부족한 자식들이 아버님을 모실 수 있는 자리에 서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아버지, 저희들은 그러한 자리를 향하여 가기 위해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몸부림이라도 쳐야 되겠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그곳을 향하여 절규하면서 전진, 또 전진하는 모습이라도 가져야 되겠습니다. 불구의 몸이라 할진대는 엎드려서라도 가야 되겠고, 절룩거리면서라도 가야 되겠으며, 그렇게 못 하거든 배밀이를 해서라도 당신을 위하여 가야 할 것이 우리의 처지요 입장인 것을 망각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이 땅 위에 불쌍한 것들이 저희들밖에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땅 위에 있는 저희가 불쌍하기 때문에 저희를 대하시는 아버님 또한 불쌍하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진정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가 가는 길을 인도하시는 수고로운 복귀의 수난길이 아직까지 남아 있을진대, 저희 앞에 서기가 얼마나 끔찍하고 얼마나 부끄럽고 얼마나 수치스럽사옵니까? 때문에, 아버님께서 저희들에게 나타나시지 않고 약속이라도 해주시면 저희들은 이 길을 다 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원수들 때문에 수치스럽고 치욕스럽게 된 아버님의 입장을 피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마음가짐이라도 가질 줄 아는 아들딸이 돼야 될 것이 저희의 의무요 본분이 아니겠사옵나이까?
오늘, 이 아침에 당신 앞에 찾아온 저희들, 몸 마음을 당신 앞에 또다시 의탁하옵니다. 저희는 남루한 옷을 입은 걸인과 마찬가지요, 부끄러운 상주의 모습과 불구자와 마찬가지의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엎드렸사옵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당신을 위하여 효의 도리를 다하려 하고 충의 절개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오니, 이 시간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이번에 교역장들이 수련받고 임지에 도달하여 오늘 이 아침에 같은 심정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께서 그들의 마음을 붙드시옵고, 그들의 갈 길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가 아니면 모든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그들이 되게 하시사 이제 책임적인 소행을 감당해 내고, 당신을 위로하는 하늘의 효자 효녀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끔 복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동대원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들은 역사 이래 처음으로 '평화의 십자군'이란 이름을 갖고 이 땅 위에 나타난, 불쌍하다면 불쌍한 무리요, 외롭다면 외로운 무리이옵니다. 당신이 이들을 세계에 내세우셨으니 이들이 가는 길에 있어서, 피를 흘리고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며 가더라도 걸음걸이를 똑바로 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가는 곳곳마다 머무는 곳곳마다 드러내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뜻을 다 가지 못하게 될 때에 당신의 자녀들은 불쌍한 자들이 되고 당신의 갈 길은 암담한 길밖에 없음을 아오니, 최후의 이 길을 지키시옵고, 이 무리를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역사적인 수치를 풀 수 있는, 하나의 기념이 되는 역사적인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희의 소원이오니, 부디 당신이 그들과 같이하여 주시옵고, 천군천사를 동원하시어 그들을 격려하시옵소서. 땅을 당신의 품에 품지 않으면 안 되는 복귀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 원조자가 되도록, 일선에 선 그들을 기억하시고 당신께서 내세운 부끄러움이 없는 정병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8월도 20일이 지났습니다. 8월이 지나면 9월이 올 것입니다. 이해도 절반을 더 넘긴 이때에, 저희들이 과거를 회상해 보고 당신 앞에 청산지어야 할 문제가 많은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저희 자신을 생각해 가지고는 그 문제들의 해결의 여건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불효한 몸이라도 당신의 아들이오니 마음대로 하시옵소서' 하며 바쳐 드리고 몽땅 헌제하는 것 이외에는 길이 없다는 것을 각오하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1972년도가 당신의 나라를 이루는 데 있어서 역사적인 해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2년도가 당신의 나라에서, 당신의 세계에서, 당신의 역사에서 길이 빛날 수 있는 추억의, 회상의, 찬양의 해가 될 수 있게끔 당신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한국을 당신이 맡으시옵소서. 이렇게 불쌍한 이 민족을 찾아오신 아버지여, 이 민족의 장래를 당신의 장중에 묶어 하나로 세우지 못하게 될 때에, 당신은 더더욱 불쌍한 아버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불초한 저희들, 하나의 개인을 중심삼고는 마음과 몸이 갈라져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갈라져 있고, 가정과 가정이 갈라져 있고,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갈라져 있고, 하늘과 땅이 갈라져 있고, 사람과 하나님이 갈라져 있는 이 사이에 누가 다리를 놓겠습니까? 개인 개인이 서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철옹성같이, 너와 내가 하나의 식구를 이룰 수 있는 결합이 필요한 것을 알고 있사온데 그 사명을 누가 하겠습니까? 타락한 인간은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은 영계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의 협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붙드시고 이것을 엉크리고 또 엉크리시어 통일시키시기 전에는 통일될 길이 없사옵니다. 이미 홍수에 떠내려가는 사람과 마찬가지의 운명에 서 있는 저희들의 힘 가지고는 도저히 되지 않기에, 하늘을 향하여 아버지라 부르고 하늘을 향하여 조상이라 부르고 있는 저희들을 불쌍히 보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찾아오실 수 있는 가정이 어디에 있느냐 할 때,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길, 그러한 가정을 찾기 위하여 통일교회는 새로운 의미의 가정을 편성하였습니다. 이는 이 땅 위에 어떠한 민족과 나라가 가기 전에 당신이 먼저 가시지 않고는 민족과 나라가 갈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색다른 가정을 편성한 것도 당신이 통일적인 길을 요구하셨기 때문인 것을 당신은 아실 것이옵니다. 둘이 되었던 것을 하나 만들어 당신만의 것으로 소유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옵니까?
이런 가정들을 모아 종족을 편성했습니다. 그 종족 가운데에는 아벨 종족과 가인 종족이 있는 것을 저희는 압니다. 아벨 종족은 가인 종족을 복귀하지 않고는 부모의 이상권을 이어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의 이상세계를 상속받을 수 없는 것이 원리원칙이기 때문에 저희는 필생의 힘을 다하고 안간힘을 쓰고, 몸부림치면서 가인을 복귀할 수 있는 종족권을 향하여 달음질치고 있사오니, 이 통일의 무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축복가정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된 종족을 이룬 다음에는 그것을 중삼삼고 하나의 민족을 편성하고, 아벨적 민족으로서 가인적 민족과 하나되게 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아옵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의 독립을, 이 나라의 통일을, 이 나라의 제2해방을 이루는 것이 저희들의 소원인 것을 잘 아시는 아버지, 금후의 한국을 당신이 맡아 주셔야 되겠습니다. 그 누구도 주인이 될 수 없사오니 당신이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는 분명 살아 계시기 때문에 당신이 경륜하시는 뜻대로 될 것을 믿고 알고 나가는 이 불쌍한 무리들의 편에 당신이 서시어서 당신이 요구하는 뜻을 이루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국을 통일시켜야 할, 아시아의 3국, 즉 아담 국가, 해와 국가, 천사장 국가를 규합하여야 할 사명이 저희의 복귀의 노정에 있사온데, 이 중심은 당신이 되셔야 되겠습니다. 그 누구 일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인 영광을 위하고, 시대적인 영광을 위하고, 우리 후대 후손들의 영광을 위할 뿐만이 아니라 수고해 나오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바라고 있는 이 불쌍한 무리를, 아버지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저희들은 그런 길을 걸어왔습니다. 오늘도 그런 길을 가야 되겠고, 그 싸움터를 향하여 달려 나가야 되겠습니다. 내일도 그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원수의 진지를 응시하면서 인내, 또 인내, 또 인내하며 싸움을 거듭해 가는 데 지칠 줄 모르고 효의 도리, 충의 도리를 다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효의 자체요 충의 자체라고 칭찬하실 뿐만 아니라. 만군 만민 앞에, 역사시대의 천천만 성도들 앞에 저희들을 불러 세워 놓으시고 '이는 내 사랑 중의 사랑이요, 내 생명 중의 생명이요. 소망 중의 소망이다'라고 자랑하시고, 당신의 영원한 승리의 위업을 상속시킬 수 있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식들이 이 땅 위에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것이 당신의 소원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저희는 마음으로라도 그리 향하고 그리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오랫동안 수난길에서 탕감의 역로를 거쳐 올라온, 남북이 엇갈린 불쌍한 한민족을 이 자리까지 이끌어 나오신 아버지, 앞으로 이 나라를 지도할 수 있는 이는 당신밖에 없습니다. 아버님을 숭배할 때에는 흥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같이하실 때에는 그 민족도 흥할 것을 알고 있사오니. 부디 불쌍한 무리를 버리지 마시옵고 당신이 같이해 주셔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같이하시게 될 때에는 이 나라도 아시아에 있어서 어떠한 민족이 따를 수 없는 위대한 민족이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행동이 문제요, 말이 문제가 아니라 실천이 문제이거늘, 이 길을 향하여 달음질치는 아들딸이 이 아침 여기에 엎드렸으면 복을 빌어 주시옵소서. 마음의 사무침이 그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심정의 줄을 붙안고 아버지를 자극시킬 수 있는 필연적인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린 당신의 자녀들을 다시 한 번 기억하여 주시옵고, 전세계에 널리어서 외로운 길 가운데서 싸우고 있는 무리가 있는 것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원수의 세계 가운데서, 원수의 치하에서 몸부림치며 생명을 걸고 싸우고 있는 통일의 역군들을 당신이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수고의 한계가 차거들랑 이 땅 위에서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사탄의 권한을 밟으시어, 그들이 영광의 날, 해방의 날, 광명의 새 아침을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을 맞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뻗어 나가는 통일세계의 인연이 개개인의 마음 동산 위에 꽃을 피우고, 생명의 봉화를 드높이 들어 흑암 세상에 자유의 생명의 해방권을 찬양할 수 있는 통일의 길이 열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길은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니요, 당신을 위한 길이기 때문에, 당신의 영광이 여기에서 생겨날 수 있게끔 소망을 가져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아버지 앞에 엎드린 저희들, 아버지 가슴에 부둥켜 안기어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 가운데 부탁하지 않을 수 없는 부탁을 하면서 내일의 의무와 사명을 명령받는 거룩한 이 아침이 되게 하여 주신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겠사오니, 홀로 남겨두지 마시옵고 찾아와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립니다.
모든 전체가 허락하신 뜻 가운데에서 이루어지고, 당신이 기쁨으로 기억하실 수 있는 이 아침이 되기를 바라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이 땅에 살고 있는 인류 가운데에 자기가 어떠한 역사의 출발에서부터 어떠한 과정을 거쳐 가지고 어떠한 목적의 곳으로 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쳐놓고 인류 가운데서 특별히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는, 기독교를 위주로 한 수많은 종교인들을 두고 보더라도, 과연 자기들이 어떻게 출발해서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떠한 종착점에 도달할 것이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아는 종교인이 많지 않은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보다 더 나아가서, 그런 인류를 넘어 정성을 들여 가지고 영적 체험을 하고 있는, 혹은 신비로운 체험을 하고 있는, 혹은 초연한 세계를 친히 느끼며 살고 있는 그러한 특별한 유(類)의 사람들, 다시 말하면 영통하는 사람들, 혹은 진정한 의미의 도의 기준에서 최고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은 과연 영적인 세계의 인연을 갖고 있는, 또 그 체험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 어디서부터 출발하였으며 어떠한 과정을 어떻게 거쳐서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것을 아느냐? 그들도 확실히 모르는 것입니다. 영계에 있어서 그들 앞에 분부해 주고 혹은 지시해 주는 그 일은 할지언정, 그것이 어디서 출발하여 어떠한 내용과 어떠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현재의 자기를 통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아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초대 기독교시대에 있어서의 바울을 보나 베드로를 보나 그들은 신앙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무엇을 본질삼아서 했느냐 하면, 하나님을 본질 삼아 가지고 한 것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현실적인 이 세계면 세계, 혹은 그 나라면 나라 앞에 어떠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그런 일이 벌어지느냐 하는 문제, 그 문제의 근본적인 유래로부터 그 결과에 대해서 확실히 모르고 허덕이며 움직여 나갔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신령역사로 말미암아 핍박의 와중을 넘어설 수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개인으로부터 시작해 민족을 거쳐 세계적으로 되지 못하고 국한된 내용으로 남아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 근본 원인이 어떻게 되어서 그런 영적인 현상이 자기들에게 미쳐지고 또한 그것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어떠한 종착점을 향하여 갈 것인지 그 방향을 확실히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 있었던 신령한 역사들이 과정에서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현재 기독교의 신학자들은 신령한 역사를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 하면, 삿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을 찾아가는 것은 위험하니까, 가 봤자 정상적인 목적을 바라볼 수 없는 결과에 떨어지고 말기 때문에 그나마도 인정하지 못하고 막아 버리는 현대의 신학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신학을 배워 가지고 교회를 인도하고 교회를 책임지고 나가는 사람들이 교역자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들은 교역자들로서 그런 것은 알 바가 아니라는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길을 통하여 우리와 관계를 맺을 것이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진리를 통하여 관계를 맺는데, 이때는 말을 하여야만 됩니다. 서로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말을 통하여 사정을 서로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정이란 현재 당대의 사정이 아닙니다. 그런 사정을 가지고는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정이 오래됐으면 오래됐을수록 그 사정을 친구와 더불어 나누고, 그 사정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사정을 친구와 같이 나누어 가지고 그 어려움을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자리가 벌어지게 될 때에 참다운 친구도 생겨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자리에서 참다운 인연도 맺어질 것이 아니겠느냐?
서로서로가 자기의 슬픔이라든가. 혹은 고충을 깊은 자리에서 나눌 수 있는 내적 인연이 크면 클수록, 그것이 외적으로 부딪쳐 오는 환난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문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적 인연이 보다 보람된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러면 그 외적 환경을 넘는 것은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외적으로 당한 문제보다도 내적 인연이 약할 때에는 외적 문제를 극복해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갑이라는 사람과 을이라는 사람이 이런 문제를 같은 운명으로 맞아들인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동료간, 혹은 관계, 인연을 두고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오늘날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려면 어떠한 자리에서 관계를 맺으시겠느냐? 피상적인 말을 가지고 관계를 맺으시겠느냐, 진지한 입장에서 뼛골에 사무치는 역사적 내용을 가지고 토로할 수 있는, 사정이 통하고 심정이 가중되는 자리에서 인연을 맺으시겠느냐? 피상적인 말을 가지고 인연을 맺는 것은 피상적인 사건을 넘어설 수 있는 동기는 될는지 모르지만, 생사의 문제를 진지하게 해결할 수 있는, 자기 일대에 한번밖에 없는 중차대한 문제를 앞에 놓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이 된다고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역사라는 것은 개인적인 사건을 수습하기 위한 역사가 아닙니다. 여러분, 구원역사라는 것은 한 사람, 즉 20세가 된 사람이 있으면 20세의 자리에 선 개인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한사람을 구하려 할 때에 거기에 역사적인 사명을 가중시켜 놓고 구하려 하는 것입니다. 비록 나이는 어릴지라도 그 어린 사람을 필요로 하게 될 때에는 역사적으로 그 젊은이를 찾아야 할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그 젊은이를 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당년 20세가 된 청년의 지난날을 통하여 가지고 그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겠느냐 할 때에 그것은 아닙니다. 20세의 그를 들어서 논하기 전에, 그 자체의 생애 과정, 20년이라는 그 과정을 들어 가지고 논하기 전에 그를 찾아온 유래를 통하여, 다시 말하면 그의 선조를 통하여 논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당년 20세가 된 청년이 자기 조상을 모른다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하나님이 보시게 될 때, 그의 조상은 지극히 선한 조상이기 때문에, 그가 20대의 젊은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알고 그를 세워 가지고, 이 땅 위에서 역사시대의 선조들의 선한 공적을 이루어 주기 위한 사명을 분부하시고자 하는데 그를 이해시킬 수 있는 길이 없게 될 때에, 하나님은 얼마나 슬프시겠습니까? 또, 그 입장에 선 그 사람은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역사적인 사실을 알 길은 있느냐? 당년 20세의 젊은 사람이 혼자서 아무리 몸부림치더라도 자기 혼자서는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선조들이 선하다는 역사적인 내용을 기록한 책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 책도 없을 때는 그 외에 어떠한 길이 있을 것이냐? 만일에 영계가 있어 가지고 자기 선한 조상이 영계에 가 있다면 영계에 가서 그 선한 조상을 만나는 길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길을 가는 것이 천지의 대주재가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보다 쉬운 일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당연한 말입니다.
오늘날 도의 세계에서 자기 입장을 옹호하고 자기 입장을 해명하면서 도의 길을 추구하라고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은 마치 당년 20세 청년이 자기의 갈 길을 가려 가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인류가 스스로 처해 있는 입장에서 하나님을 논해 가지고는 종교를 추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입장에서 종교를 추구해야 되겠느냐?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으로 그런 길을 기록한 책자라도 있느냐? 기록이라도 있느냐? 있다고 해도 그 기록을 믿을 수 없다는 거예요. 알 수 없다는 거예요. 자, 그러니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이라도 붙들어야 될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을 붙들기엔 너무나 먼 거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류 앞에 선의 공적을 나타낸 위인 성현들이 있었거들랑, 그들을 찾아가서 물어 볼 길밖에 없지 않느냐? 또, 만일에 그들을 통하여 가지고 그 일이 해결나지 않거들랑 선한 선조가 영계에 가 있으면 영계에 가 있는 그들과 통하는 길밖에는 역사적인 문제를 해결해 가지고 자기의 입장을 공고화시키고 당당한 자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이란 없지 않느냐?
이런 관점에서 동양사상을 보게 되면 동양사상은 하늘을 막연히 소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선자(爲善者)는 천(天)이 보지이복(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天)이 보지이화(報之以禍)니라'고 했잖아요. 이런 말도, 막연합니다. 선을 행하면 하늘이 복을 베풀어 주고, 악을 행하면 화를 내린다는 거예요. 하늘이 뭐냐? 그러면 동양사상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통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고, 오늘날의 사회에 있어서, 현시점에 있어서 우리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하나님을 가르쳐 주고, 하나님과 관계맺을 수 있는 내용이 될 수 있느냐? 그건 어렵습니다. 예언은 미래의 관계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미래의 관계점을 확정지어서도 그때가 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 예언이 아니냐? 그러면 오늘은 보다 알 수 없는 자리가 아니냐? 그러니 이러한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성인의 도리를 따라가야 할 것이 아니냐? 성인이 이 땅 위에 지금 없거들랑, 그들이 추구한 선의 목적지는 세계의 끝, 영원한 세계였으니 그 소원의 길을 붙들고, 그들이 가던 길과 그들의 방향에 서 가지고 그들의 소원을 보다 긴 역사적 방향에다 세워 놓고, 그것을 그들보다 확실히 붙들고, 하나님한테 묻기 전에, 성인이 영계에 가 있으면 그 영인에게 물어 볼 수밖에 없지 않느냐?
이러한 인류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제자들 앞에 그렇게 간곡히 통고하였던 사정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 요한복음 14장을 읽어 보면 알 것입니다. '나는 네 안에 있고 너는 내 안에 있고,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도 너희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누구를 통하여서 들을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과 직접 통할 수 있는 길이 아닌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왔다 간 예수는 성인 중의 성인이었습니다. 예수가 가야할 방향을 확실히 모르는 제자들이 금후의 갈 길을 어떻게 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보았을 때, 비록 그들이 노력한다 해도 현재의 자신들을 중심삼고 노력해 가지고는 천도의 길을 모색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나와 너와 하나될 수 있는 길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비절한 최후의 날을 앞에 놓고 있었던 예수의 심정이 아니었겠느냐? 그것은 당연한 사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가더라도 너희와 내가 통할 수 있는 길이 하나 있나니,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 외에는 없다'고 다짐지을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예수의 사정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갔다가 너희들이 있을 곳을 준비해 놓고 다시 오겠다'고도 했고, '너희들은 내 갈 길을 알지 못한다'고도 했습니다. 또한 정성들이는 길에 있어서 예수는 제자들이 자기를 그들의 아버지보다 더 사랑하고, 그들의 나라보다 더 사랑하고, 그들의 소원이나 이상보다 더 사랑하고, 자기와 더불어 호흡을 같이하고, 위치는 다르더라도 심정이 일치되고 공감되는 생활권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너와 나는 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다. 내가 네 안에 있고, 네가 내 안에 있다'는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에, 남겨진 편지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문제는 남겨진 예수의 편지, 즉 남겨진 예수의 말씀의 배후에 숨어 있는 사랑, 알 수 없는 높은 차원의 사랑의 마음이 아니겠느냐. 그 마음을 중심삼고 너와 나의 하나를 강조했지 그 말을, 그 편지를 놓고 너와 나의 하나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까지 찾아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죽음의 장벽을 놓고, 사랑하는 제자들을 만날래야 만날 수 없고 통할래야 통할 수 없는 내연을 앞에 놓은 간곡한 처지의 예수, 불쌍한 제자들을 앞에 놓은 예수가 그 제자들을 위로하는 단 하나의 길로서 그때 전한 그 말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이 가는 길에 있어서는 죽음이 그들 앞에 들이닥치고, 그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고 쓰러져야 할 것을 알았던 예수는 '너희는 죽더라도 나를 사랑하는 자리에서 죽으라'는 그 말을 해야 할 터인데, 그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듯 말할 수 없는 예수의 사정과 내면적인 인연이 남아진 것이 성서가 아니겠느냐?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가 사랑하는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느냐? 사랑하고 싶은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느냐, 지극히 사랑한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성서의 가르침은 사랑하고 싶은 자리에서 말한 것이 아니냐. 사랑을 다 하고 난 후에 '너는 이래라' 하고 명령적인 입장에서 한 말은 성서에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진리만으로 통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갑니다. 진리는 참된 이치요, 말씀인데 말씀 가지고 통과하는 시대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말씀 통과 시대에 실체는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실체의 사랑은 점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말씀의 약속대로 가게 되면 그는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의 사랑을 점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나 가지고 또 할 일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통과 과정을 거치는 것보다도 그를 만나 가지고 서로 주고받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나를 사랑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 사랑했느냐? '죽을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 했다. 또 그런 자리에서 사랑받았다. 서로의 사정을 넘어 맹세하고, 하늘을 찬양하고, 혹은 만세를 부르고 가자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받았다' 할 수 있는 자리를 우리 인간 세계의 그 누구도 맞이한 바가 없지 않느냐?
사랑하는 세 제자마저도, 사랑이 무슨 사랑이예요?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음을 앞에 놓고…. 틀림없이 죽는 거라구요. 틀림없이 죽는 예수라구요. 이미 각오한 예수요, 죽음길을 가기로 결정한 예수였습니다. 그러한 비장한 자리, 생사를 판단짓는 자리에서 세 제자는 잠을 잔 것이 아닙니까? 한 번도 아닙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를, 깨어 기도하라고 두 번 세번씩 권고하던 예수의 그 심정적 통일점을 이 땅 위의 어디서 찾아볼 수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그가 최후의 길을 가게 될 때에, '당신이 가는 길은 나도 필생의 소원으로 하고 가겠다'고 따라 나서는 제자가 있었다면, 그가 사랑하고 싶었던 그런 제자가 있었다면, 그리하여 같이 죽을 자리에서 갈라졌더라면, 십자가를 지고 나가던 행로에서, 골고다 산정을 향해 십자가의 형틀을 지고 나가는 그 자리에서 일러주고 싶은 말을 일러주었을 것이 아니냐?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 말하고 싶었던 그 사연이 인류역사상에 나타났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제자들의 사연이 달랐기 때문에, 그 엇갈린 사연으로 말미암아 비장한 죽음길에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하늘의 사연을 인류가 이어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얼마나 비통한 사실인가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도의 길이라는 것은 그 자체들로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 환경에 갖추어진 모든 교회의 교권, 교세를 가지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교세를 나타낸 장본인, 즉 교주면 교주를 통하여 보다 차원 높은 내연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갈 길을 잃어버린 이 세계 인류 앞에 가야 할 방향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종교인들 앞에 금후의 방향을 어떻게 가려 줄 것이냐? 이런 문제를 여러분들은 무관심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심각한 입장에서 생각할 때, 이는 세계사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일국의 흥망을 가리기 위한 주권자의 고통도 크거늘, 만국 만세의 해방을 위하여 도의 승리의 터전을 해결짓기 위해 노력하는 그 누가 이 땅 위에 있다면 그는 위대한 분일 것입니다. 반면에 그는 누구보다도 비장하고 누구보다도 처절한 자리에 서서 인생의 절박한 문제를 추구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 자리를 해결지을 때까지 그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그 무엇이 이 땅에 나타나기 전에는 인류의 역사적인 연장이 계속될 것이고, 혹은 인류가 소망하는 새로운 이상이 이루어질 수 없는 차제에 우리는 처해 있는 것입니다. 민족 국가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통하여 할 짓은 이미 다 해봤다 이거예요. 힘으로도 해봤고, 물질만능을 주장하던 물질의 능력을 가지고도 해봤고, 사람의 지혜와 지식을 논하는 그 지식을 최고조로 동원해 가지고 다 해봤지만, 인류의 제2의 해방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직시한 단계에 우리는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물질을 동원해서 해봤고 사람을 동원해서 해봤는데, 아직까지 해보지 못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소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사람들은 물질을 원합니다. 그리고 인격을 원합니다. 그 다음에 자기에게 돈이 있고, 학박사가 된 후에는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세계를 자기의 무대로 삼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끼리 세계를 유람하며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 아니겠느냐? 인간들은 이런 단적인 욕망을 이루기 위해 물질을 가지고도 해봤고, 인간의 모든 지혜와 권위를 다 통해서도 해봤지만, 실패의 일로에 봉착했습니다. 이제 한 가지 해볼 문제가 있다면 사랑입니다. 사랑의 역사를 들어 가지고 그저 한번 해볼 수 있는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어디서부터 생겨날 것이냐?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그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될 것이냐? 지금까지는 인간을 중심삼은 물질을 주장했고, 인간을 중심삼은 인간의 권위를 주장했습니다. 인간끼리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 나왔던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안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여기에 사랑의 길이 있다면, 인간은 그것을 얻기 위해서 기원해야 됩니다. 아까 말한 20대의 젊은이 문제에 대한 해결기점은 하나님이 가담하든가, 그 다음에는 그 역사를 아는 선조가 가담하든가 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요, 조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 교리의 골자가 무엇이냐?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자, 인류의 근본 부모로 하자, 심정의 근원된 어버이로 찾자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뭘 하자는 것이냐? 조상을 찾자 이거예요. 여기에서 귀결점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부모를 가졌기 때문에, 거짓 부모의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것을 부정하고, 그러한 역사적인 실정을, 세계적인 실정으로 맺어진 이것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의 기원 밑에서, 하나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상대적 입장의 인류의 참된 부모를 찾자는 거예요. 여기가 통일교회가 가야 할 최후의 목적지요, 이것을 추구해야 할 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의 심정생활이 아니겠느냐?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오늘날 통일교회는 이 땅 위에 인간을 중심삼고 심정적 문제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우리 조상을 기원으로 한 심정적 역사를 논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심정의 세계를 바라보고 나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과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심정의 세계를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기성적인 차원과 달라요. 이것은 혁신적인 차원이요, 보다 고차적인 차원입니다. 거기서부터 관계맺어 출발한 것은 평면적인 정서가 아니라 입체적인 정서적 내용을 갖고 출발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것이 인류가 귀결지어야 할 최후의 희망봉이요, 가는 길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비참한 모든 역사를 안이와 행복으로 귀결지어 줄 수 있는 하나의 기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지어도 타당합니다. 그것이 만약에 성사되지 못하게 될 때에는, 아무리 과정이 행복하고, 아무리 과정이 진실되고, 과정에서 아무리 무엇을 가졌다 하더라도, 최후의 종착점이 천지의 근본 되는 하나님과 우리의 문제를 해결지을 수 있는 것이 되지 못하면, 그 모든 것이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단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 예수님을 사랑하라고 결론지어 놓은 것입니다. 예수는 누구냐? 어떠한 분으로 왔느냐?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로 왔습니다. 그리하여 독생자로서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처음 받을 수 있는 독생자였어요. 부모의 사랑을 몽땅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외아들이 아녜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 역사 가운데에 독생자라는 이름은 위대한 말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독생자인데,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면 독생자라고 했겠어요? 옛날에 인류 시조 아담 해와를 하나님이 직접 지으셨지만, 그들을 다 사랑하시지 못하고 사랑의 품에서 빼앗기지 않았어요? 그러나 절대자의 사랑 가운데에서 절대자의 사랑을 받는 사람을 누가 빼앗아 가겠어요?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타락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미급한 자리에서 사랑의 대상권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하게 된 거라구요. 따라서 여기에 도달한 자리에서, 다시 말하면 타락한 조상이 체휼한 사랑 이상의 사랑을 체휼한 입장에서 왔기 때문에 비로소 사랑을 중심삼고 인류의 소망의 조상으로 등장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메시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를 통하는 길 외에는, 그 예수를 통하는 길 외에는 인간 문제의 해결 방안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아버지 앞에 갈 자가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는 그것을 극복하자는 거예요.
내가 어디서 왔느냐 할 때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숭이 새끼라고 하고 있다고요, 원숭이 새끼. 여러분이 원숭이 새끼예요? 오늘날 공산주의 논법에서는 인간이 노동에 의해 가지고 발전함으로 말미암아 인식권이 발전되고 가중된 지식적 터전 위에 서 가지고 인간이 됐다 이러는데…. 그래 원숭이예요? 차원이 다르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통일사상에서 본성론을 강조하고 나오는 거예요. 인간은 본성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종자가 다릅니다.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아이들은 벌써 좋고 나쁜 것을 가릴 수 있는 본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헌법을 몰라도, 학교를 안 가도 자연히 알게 됩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자신의 출발을 확실히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에서부터 출발했는지 사람에서부터 출발했는지 모르고 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라고요. 여러분들은 어머니 아버지가 낳아 주긴 했는데 나자마자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합니다. 나 혼자 나왔는데…. 혼자밖에 없는 입장에서 볼 때, 나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어디에서 나왔을까 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 역사는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거예요. 생각할 수 있는 무슨 밑바탕이 없으니 자기 멋대로 생각해서 '이럴 것이다. 이럴 것이다' 귀납적으로 추리해 가지고 '그럴 것 같다' 하는 결론을 내리지, '그렇다'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요. 그렇지만 자기가 친히 자라 가지고 산 경험도 있고, 또 사랑한 경험도 있는데 어떤 사람이 '너의 아버지 어머니는 없다'고 하면 그 당장에는 죽어서 없더라도 '야, 이 자식아, 왜 없어? 이러게 마련이라구요. 그놈을 쳐부수고 말지 끄덕끄덕하지 않는다구요, 안 그래요?
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기에서 우리 인간들이 해야 할 말은 무슨 말이냐? 오늘 제목과 같은 '미처 몰랐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자기 자신이 암중모색하는 자리에서 신음하는 자기 자체를 발견함과 동시에 '내 갈 길은 이렇고 나를 위한 분은 이러한 분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고 난 자리에서,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라고 발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나이가 있다면, 그 아버지를 어떻게 붙들었겠느냐? 어떤 모습으로 붙들었겠느냐? 그분과 나의 관계를 확실히 알면 알수록 자신은 어떻게 대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러이러한 줄 난 미처 몰랐습니다. 당신이 그러한 아버지이신 것을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고 해야 됩니다.
세상에 타락된 인간 끼리끼리의 사이에도, 부자지간에 서로 갈라졌다가 어떠한 연유로 인해 가지고 장년이 되어서 만나게 되는 것을 여러분은 영화 같은 데에서 봤을 거라구요. 그 아버지가 아들을 찾기 위해 고통을 극복하면서 수고하는 것이 부모된 도리가 아닙니까? 자식은 모르기 때문에 꿈에도 생각하지 않아요.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부모가 수십 년이 넘어 50세가 된 아들을 만났다 하게 되면, 부모가 그 아들을 만남과 동시에 '야, 야, 이 녀석아, 50세가 되도록 내 생각도 한 번 안 했어? 이래요? '야, 너하고 나하고 어디 한번 역사를 말해 보자' 이래요? 어때요? 역사는 다 집어치우는 거라구요. 역사를 초월하게 하는 것이 뭐냐? 심정입니다. 자기 사정을 초월하게 하는 것이 심정입니다. 아버지인 줄 알게 되면 과거야 어쨌든, 체면불구하고 자식은 '아버지' 하는 거예요. 면목이야 있겠으면 있고 말겠으면 말고 그것을 모른다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 '야 아무개야!' 하며 벼락같이 부둥켜안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야, 야, 야, 조금 스톱, 생각해 보자' 이러겠어요? '야, 너 아무개 녀석아, 어릴 때에 고생한 것을 좀 알고 만나자' 그래요? '내가 너를 찾아 만나기 위해서 눈물을 이렇게 흘렸기 때문에 너도 한번 흘려 보고 만나자' 그래요? 그런 것은 다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일화시키고 귀일화시킬 수 있는 것은 지식이 아니요, 사연이 아니요, 사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로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 그것뿐입니다. 이 힘만이 역사를 초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가 없을 거예요.
인간이 금력을 가지고 인력을 가지고 다 해봐도 도달해야 할 곳에 아직도 미급입니다. 처절한 절망의 벽에 부딪친 운명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있어서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냐? '너하고 나하고 말해 보자' 하는 사연 가지고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하고 인간하고 '자, 토론해 보자. 자, 사연을 이야기해 보자. 진리니 무엇이니 그런 놀이를 해보자' 이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안 돼요. 점프를 해야 됩니다. 대들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는 틀림없이 내 아버지다'라고 생각하는 것, 이게 문제라구요. 여기서부터 비로소 신(神)과 인간의 인연이 지상의 기대에서 재출발할 수 있지, 그 외에는 방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논리적 귀결입니다.
자,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을 진정히 알았다면, 이제 '이러한 예를 살피고 아버지를 대하기 위해 찾아온 나 자신이 이제 당신을 알았습니다. 이런 아버지인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런 아들을 만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망하지 않는 것이요, 그 사람 또한 망하지 않는 것이요, 그 사람이 사는 세계는 또한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 여러분이 어떤 자리에 있는지 알아요? 물론 알고 있을 거예요. 내가 어제 청평수련소에 있었는데, 홍수가 나서 한강에 물이 만수가 되어 흘러가는 거예요. 오늘 여기에 안 오면 안 되겠는데, 어물어물하다간 못 오겠더라구요.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그 물을 헤치고 왔어요. 그것은 모험이라구요. 오면서 보니까 뭐 집이 안 떠내려오나, 뭐 무슨 살림살이, 가구, 뭐 별의별 오만 가지가 다 떠내려오는 거예요.
그 떠내려오는 것들을 볼 때, 저것들은 어디서부터 오느냐? 전부 다 보긴 봐도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구요. '넌 어디 있던 거니?' 하고 물어 볼 수도 없고…. 그 물건들이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그저 흘러 떠내려가는 것으로 보지만, 그 자체들의 가치는 천태만상이라구요. 알겠어요? 돼지 새끼가 떠내려가더라도 그 돼지 새끼도 주인에 따라 가지고 가치의 평가가 달라집니다. 아무개집 돼지를 동네의 종이 발길로 찼다가는 돼지를 찬 발길이 그 주인한테 채입니다. 그럴 수 있지요? 아무개집 가정지물, 즉 바가지 하나라도 발길로 찼다가는 그 주인한테 혼나는 거예요. 그 가정지물을 멸시하고 천대하는 것은 주인을 천대하는 것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주인도 그가 자기 휘하에 있으면 '야 이 녀석아' 하며 거꾸로 처박을 것입니다. 이렇듯 그 가치의 내용은 다른 것입니다.
모양이 같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도 천하에 없는, 하나님이 기억하실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떻겠어요? 여기에서 한국 역사가 기억할 수 있는 위문품이 떠내려올지 모릅니다. 그것은 꼭 무슨 큰 집채가 아니고 이러한 손수건, 종이 짜박지 한 장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 가치는 엮어져 온 배후의 역사에 따라서 천태만상으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인류역사 앞에, 인류심정역사 앞에 가치적 내용을 지니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가치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오늘날 인류는 그런 역사의 홍수에 떠내려가는 오만 가지의 물건과 마찬가지가 아니냐?
만일에 하나님이 있다면, 그 가치를 아는 주인이 있다면 어떤 것을 건질 것이냐? 종이 짜박지 한 장 줍는 것을 남들이 보게 되면 '저 미친 녀석 보라고, 저 미친 녀석, 건지려면 제일 큰 토막나무 같은 것을 건지지, 저게 무슨 미친 짓이야. 저렇게 수고해 가지고 아이구 종이 짜박지 한장을 건지니, 에이 이 녀석아'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종이 짜박지 한 장이 나라를 팔고 살 수 있는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역사를 해방할 수 있는 문서가 될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럴 때에는 누가 지혜로와요? 그것은 아는 사람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역사도 그와 마찬가지요, 이 세상 인간도 그와 마찬가지가 아니냐?
오늘날 통일교회가 세상에서 지금까지 규탄받고 나왔지만, 이 통일교회가 어떤 교회냐? 그건 여러분들이 모를 거라구요. 어떤 자리, 어떤 위치에 있었느냐, 어디서부터 출발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통일교회는 종교 가운데에 제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다구요.
제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두고, 그 누구도 모르는 세계까지 발굴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영계가 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지 알아요? 사랑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미국에 있으면 미국에 갔다 올 수 있는 거예요. 순식간에 갔다 오는 거예요. 영계에 가 있어도 순식간에 갔다 올 수 있는 거라구요. 시간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사랑의 역사만 들고 나가면 모든 것을 포괄하고도 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역사는 거기서부터 출발했고, 과정에서는 그곳을 그리며 가고 종착점인 그곳을 표현화시켜 가지고 생활무대에서 이어받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냐? 따라서 그것은 과거에도 있어야 되고, 현재에도 있어야 되고, 미래에도? 없어야 돼요? 있어야 돼요, 없어야 돼요?「있어야 됩니다」 '아, 나는 지금 돈이 많고, 내가 대통령이 됐으니 이것이면 그만이야. 과거에는 내가 사랑을 필요로 했지만 오늘은 사랑이 필요없어. 이제는 여편네, 자식을 다 나눠 주자' 그래요? 돈을 가져 보고, 권력을 가져 보고, 다 해보고는 사랑이 귀한 것을 더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면서도 살면서도 죽으면서도 그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죽을 때에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딸이 있으면 '야, 죽기 전에 와라' 하고 부르는 거예요. 자식은 부모가 운명할 때 거기에 참석해야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을 보고 죽어야 눈을 감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다고 보고 죽는다고 해서 그 아들딸들이 와서 한바탕 맛있는 갈비짝을 갖다가 대접해요?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천만번 절을 한다고 좋아해요? 아니라구요. 대할 때 눈물을 홀리면서 '엄마, 아빠…'·'잘 있거라…' 하지요. 그런데 유언하기를 '너희는 돈을 잘 벌어서 원수를 갚아라' 한다면 그는 허튼 녀석이라구요. 또 너는 세상의 권력을 잡아라'고 한다면 허튼 녀석이라구요.
진정한 부모라면 '너희는 나보다도 네 아들딸을 사랑해라. 나는 너희들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미급했다. 내가 너희에게 보여 준 사랑을 급수로 말한다면 초단급밖에 못 된다. 그러니 너희는 할 수 있으면 십 배 만 배 더 사랑하라'고 한다면 그 이상의 유언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너희 아버지를(혹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사랑이 부족했다. 내가 이제 임종의 순간에 있어서 한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 아버지(흑은 어머니)를 힘껏 사랑하지 못한 것이 한이니 부디 너희는 이 엄마, 아빠 대신 너희들끼리 힘껏 십 배 만 배 사랑해 다오' 하고 유언을 하는 부모가 있다면 위대한 조상이 되지 않겠느냐? 나는 그것을 찬양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안 그래요? '야 야, 집문서 어디 있어? 집문서' 이래 가지고 '이것 꽉 쥐어라. 네 여편네를 잃어버리고 자식을 잃어버려도 이것만은 잃어버리면 안 된다' 이런다면 이게, 이게…. 그런 조상은 쓰레기통이라구요. 나는 그렇게 보고 있다구요. 그런 조상은 쓰레기통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남겨야 할 유언 중에 최고의 유언이 무엇이냐? 사랑의 전통을 빛내고, 사랑의 현실을 강화하고, 사랑의 미래를 소망으로 자식의 가슴에 불을 질러 놓을 수 있는 자리에서 가는 부모라면, 그 부모는 하나님이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손이 그 유언을 따라 산다면, 나라가 추앙할 수 있는 중심존재가 될 것이고, 만국이 찬양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틀렸어요? 자,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들 자신을 생각해 보게 될 때,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알았어요?
아까 말했듯이 20대의 젊은 청년 앞에 역사적 섭리를 통한 부모가 있었는데, 그 부모가 일생 동안 있는 정성을 다하고 희생하여, 자기 때문에 죽어간 사실을 몰랐다가 그런 사연을 비로소 알게 될 때에는 뻔뻔스럽던 그 얼굴은 땅을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릴 줄 모르던 목석 같은 사나이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질 것이 아니냐? 그 심정을 찾고 돌아서서 산에 있는 무덤을 찾아가는 그 길은 천년사의 인연을 회생시킬 수 있는 부활의 길, 심정부활의 길이 아니겠느냐? 거기에서 무덤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는 그 자리는 천지에 효의 도리와 충신의 도리를 싹틔울 수 있는 거룩한 자리가 아니겠느냐? 안 그래요?
이러한 불쌍한 우리 인류, 이러한 처지에 있던 우리 자신들이 그러한 부모가 있었던 것을 몰랐다가 그것을 알고 난 아침은 새로운 아침이요, 그 아침은 영원히 복된 아침이 아니겠느냐? 눈물을 흘리면 얼마나 흘릴 것이고, 통곡을 하면 얼마나 통곡을 하고, 소리를 지르면 얼마나 소리를 지를 것이냐? '내 울부짖음에 천지여, 화동할지어다. 하늘이여, 여기에 동정할지어다. 역사의 조상이여, 기뻐할지어다' 이러한 최후의 통첩을 하면서 통곡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 아니냐?
여러분은 그런 시간을 가져 봤느냐? 그런 자리에 있어 봤느냐? 나는 그런 자리에 없었고, 그런 것을 몰랐지만 하나님은, 그 부모는 그런 자리의 연속이요, 그런 비통한 운명의 연속적인 역사과정을 넘어왔을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위대하다고 하는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역사를 움직인다고 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혁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냐?
그 사랑을 몰랐던 불효막심한 우리 자신들을 다시 한 번 회고하고 다시 한 번 인정하고 나서게 될 때에,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설 것이냐? 그때서 비로소,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 뻔뻔스럽게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가 아니예요. 뼛골이 자지러지듯 머리는 땅에 숨어 들어가고 싶고, 자신이 증기가 되어 날아가고 싶을 만큼 천지에 어디든지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해야 됩니다. 세계를 넘고도 남음이 있을 수 있는 사무친 심정이 격동되고 격발되는 그 자리, 새로운 사랑의 분화구가 지구성에서, 하늘땅에서 솟구쳐 오르는 자리가 있다면, 하나님도, 그분도 그때에 비로소 눈물짓고 '오냐, 내 소원성취다. 오냐, 네 모습이 비록 보기에는 아주 형편없는 모습이고 기가 막히게 처절한 모습이지만, 그 자리가 내 소원의 자리다. 찾아온 보람을 얻는 시간이 아니냐?'고 하실 거예요. 이래 가지고 그런 것을 알고 그런 자리에 서게 될 때에, 하늘이 아무리 모른다 하더라도, 땅이 아무리 모른다 하더라도, 이 경계선을 격파하고 직선으로 달려가 가지고 인간과 하나님이 부딪칠 수 있는 길이 있을 성싶지 않아요? 안 그래요?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되 이런 자리에서 만나고 싶다고 소원해야 됩니다. 성경을 놓고 소개장을 써 줘 가지고 사랑이 어떻다고 말하고 있는 자리가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자리, 나에게는 소개장이 필요 없다고 하는 자리에서 만나야 됩니다. 소개장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왜? 원수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잘못 썼다가는 아들을 함정에 몰아넣게 되어 사자밥을 만들어 버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는 암호로 쓰여져 있습니다. 이 안타까운 과정에서 신음하는 자신의 필생의 노정을 극복하고 일대일의 입장에서 사랑만을 중심삼아 모든 것을 초월해 가지고, 하나님과 상봉하여 부딪치는 폭발적인 분화구가 자기의 역사상에, 자기 역대노정 위에, 혹은 자기 혈족 가운데에 나타났다면, 그 혈족은 세계에 빛날 수 있는, 빛을 발할 수 있는 위대한 혈족이 될 것이 아니냐? 안 그렇겠어요?
그런 관점에서 그러한 아버지를 중심삼고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 하고 현실의 비참한 것을 느끼고, 현실에 포위되어 사망권을 직시하면서, '이런 해방의 닻줄이 내게 있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하며 세상의 누구보다도 기쁨을 느껴 가지고 그 부모의 사랑 앞에 혈족을 빛내어 품길 수 있는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비로소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수 있을 성싶지 않느냐? 그렇지 않아요? 당연한 결론입니다.
20대 청년이 조상을 만나 그런 사연을, 그런 역사를 전부 다 알게 되더라도 믿어지지가 않아요.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인가 실험을 해봅니다. 실험을 해서 한 가지가 맞고, 두 가지가 맞고, 세 가지가 맞고…. 이것이 천만사인데 그것을 다 알려고 하면 일생에 다 마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너 가지만 맞다고 느껴지면 생명을 내놓고 다 옳다고 믿는 것이 좋습니다. 빨리 믿으면 믿을수록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꼬치꼬치, '아 요 잎은 어떻고, 요 가지는 어떻고, 요것은 내 맘에 안 맞는다' 자기 맘에 맞을 게 뭐 있어요? 자기 마음에 맞을 게 뭐예요? 그것은 안 맞게 돼 있다구요. 모든 것이 안 맞는다구요.
처녀가 시집가 가지고 '아이쿠 우리 집하고 맞지 않는구만' 그랬다간 소박맞고 돌아서야 되는 거라구요, 안 그래요? 그게 안 맞아야 시집간 보람이 있지요, 안 맞으니까 딴 분야의 것을 계승받을 수 있다구요. 맞을 때에는 사랑을 몰라요. 안 맞는 자리에서 새로이 사랑을 찾을 수 있다구요. 통일교회 여러분들, 뭐, 통일교회가 안 맞는다고 하지만, 안 맞는다구요. 그거 맞으면 통일교회가 가짜라구요. 안 맞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소망이 있지요. 미치지 못한 자리에서…. 순차적으로 거쳐가야 된다는 거예요.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사실 하나님이 있는데, 부모가 있는데 인간이 타락해서 그 부모를 잃어버리고는 부모를 가진 줄을 몰랐다 이거예요. 이것은 여러분이 심각히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 이것은 자기가 신음하고 몸부림친 그 비례에 해당할 만큼 심각한, 혹은 간절한, 처절한 느낌이 아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처절한 길을 가 가지고 그 문제를 해결하느냐 하는 경쟁이 도의 세계, 혹은 종교세계의 수난길이더라는 거예요. 맞지요? 가당한 말이라구요. 수난의 도가 차게 될 때 우리 부모를 만날 수 있다면 좋겠지요? 수난의 한계점을 넘어서는 날에 우리는 이상적인 상대를 만날 수 있고, 이상의 나라와 이상의 세계를 볼 수 있으며, 우리 인간이 영원히 영원히 그려도 그릴 수 없던 영원한 사랑의 세계를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극한점에 가서 그것을 바라보고 '아이쿠' 하는 것보다도 '이놈 극한점아 잘 만났다. 너를 밝고 넘어가야 되겠다, 이놈아! 해야 됩니다. 이럴 수 있다면 수난길을 넘어갈 수 있는 소망이 있지만, '아이코' 할 때에는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현재 7.4공동성명을 발표하니 대한민국의 삼천만 민족이 '아, 남북 평화의 무드를 조성하는 중에 있다. 이제는 이북에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간다는 말이예요? 역사적으로 볼 때, 자기의 주권을 순순히 옮겨 준 주권자들이 있었어요? 모가지가 잘려 피를 토하면서도 '야야. 이것 내가 분하니 복수해 다오. 저놈을 때려 죽여라' 이런 거예요. 주권을 놓고 이런 싸움의 역사가 뒤넘이치지 않았느냐 이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결국은 통일을 위하는 길에 있어서 공산주의 이상 처절한 내용의 길을 남한 백성들이 가야 됩니다. 그런 한계점을 밟고 넘어선다는 신념이 있으면 남한이 북한을 통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북한이, 남한의 모든 한계적 요건을 참고 넘어서고, 남한 백성들이 못 참고 넘어질 때 북한 앞에 남한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흡수돼요, 안 흡수돼요? 누가 이겨요? 극한 기준을 극복하는 패가 이겨요, '아이코 난 싫다, 모르겠다'고 하는 패가 이겨요? 물어 볼 것이 없다고요.
문제는 이것입니다. 역사의 승패권을 가름하는 최후의 격전장의 용사로 싸우는 데 있어서 앞으로 다가오는 격전, 전쟁 앞에 얼마나 강하고 담대하냐, 얼마나 극복해 내느냐, 생사의 교차로에서도 제2의 결의를 다짐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용사가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구요. 죽음길에서도 또다시 살아서 싸울 수 있는 소망이 있고, 이것을 이루지 못하면 다시 살아서 싸울 것이다 하는 사상이 있으면 공산주의를 흡수할 수 있는 거예요.
공산주의는 유물사상이라구요. 알겠어요? 공산주의는 유물사상입니다. 죽으면 다 없어진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통일사상은 내가 뜻을 못 이루게 되면 죽어서라도 가서 싸워야 된다는 거예요. 이런 면에서 한 가지 낫지요. 그런 사상이 아니고는 이길 가망성이 없다고 결론지을 수 있지요. 여러분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선생님이 뭘 하자고 하면, '아이구 또 뭘 하라고 그러나' 이러지요. 우리 통일교회 무슨 단체의 책임자들, 그 이상의 책임을 느끼면서 가야 됩니다. 가라구, 이놈의 자식들! 변명할 사람이 많겠지만…. '아. 선생님 기다렸습니다. 그 아침이, 그 낮이. 그 저녁이, 그 밤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라고 하며 몇십 배를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남한에 있으면, 북한 사람은 그러지 못하는데 남한 백성이 그러고 있으면 북한을 소화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틀려요?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한 것이 뭐냐? 공산당들을 눈앞에 놓고 '누가 노동자 농민을 더 사랑했느냐? 자, 터놓고 이야기해 보자. 백성을 들어 거국적으로 알아 보자' 할 때에 이야기할 재료가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재료를 남겨야 됩니다. 준비를 해야 됩니다. 지금 그것이 필요한 때가 왔다구요.
'3년이 미급하거들랑 10년 세월을 붙들자. 10년이 미급하거들랑 20년을, 내 청춘이 미급하거든 내 장년, 내 생애를 바쳐서 붙들고 민족의 숙원인 통일방안, 통일의 사상적 기틀을 남겨 놓고 가자. 이것이 우리 민족의 소원이 아니냐? 남이야 알아주든 몰라주든 우리는 가자!' 이것이 통일의 길이 아니었습니까? 통일의 사상은 거기서부터 일어날 것입니다. 통일사상이 가는 곳에서는 공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운동을 제시해야 되겠습니다. 현지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어려움도 그 눈을 넓혀 가지고 바라보고 오라고 울부짖을 수 있는 사나이의 무리를 만들어 보자고 하는 것이 통일사상이 아니냐?
그 일을 여기에 있는 문이라는 사람을 중심삼고 시작한다면 패할 가망성이 있지만, 하나님을 동기로 삼고 그런 과정을 거쳐간다면 망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망하더라도 이 뜻은 이루어질 것이다 하는 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소신입니다.
우리는 민족이 이렇게 갈라질 줄 미처 몰랐습니다. 이렇게 될 줄은 미처 몰랐지요? 그러다가 이렇게 통일의 운세가 터 오게 될 줄 또한 미처 몰랐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미처 모른 배후에 어떠한 해결방안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처 몰랐다는 말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적용되는 거예요. 이 땅에 왔다가 삼십 당년을 중심삼고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필생에 한을 남기고 갔던 예수, 그가 인류의 조상으로 왔던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가 사랑의 남성으로서 사랑하고 싶었던 사랑의 대상. 여성을 사랑해 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해보지 못한 것이 얼마나 한이 됐다는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가정을 이루어 종족을 치리하고 나라를 치리하고 세계를 거느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야 할 것인데, 그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이게 전부 한이라고요.
6천년 역사시대를 두고 볼 때에, 아담 가정에서 타락된 동기가 무엇인지를 미처 몰랐습니다. 노아가 실패한 동기가 이것인 줄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아브라함이 드린 제물 하나가 이렇게 역사적인 한의 거울이 된 줄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모세의 실수가 그렇게 역사적 반역을 일으킨 원한의 터전이 된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세례 요한의 실패를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예수가 간 십자가의 길이 어떻다는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기독교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우리는 몰랐던 사실을 너무나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아는 여러분들이 미처 그것도 모르고 간 그 사람들보다도 못해 가지고 세계 역사시대의 주인이 되고, 심판을 주도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될 수 있겠느냐? 어림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보다도 나아야 할 것 아녜요? 아브라함을 대해 가지고 아브라함의 훌륭함을 찬양하는 것보다도 '아브라함이여, 그대는 훌륭했지만 요 부분은 미처 생각지 못했지 않았느냐? 당신은 미처 몰랐지 않았느냐?'고 교시하여야만 그것을 수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여, 당신은 요 점을 미처 모르지 않았느냐?'고 교시할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을 대해서 '당신은 이것을 미처 모르지 않았느냐? 예수님을 대해서 '이러이러한 작전을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했어야 될 것 아닙니까' 이렇게 진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앞에 그런 제자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가 그렇게 죽은 거예요. 그렇게 진언할 수 있는 제자를 맞을 수 있어야만 예수가 해원성사 할 수 있는 거예요. 예수 당대에 그런 제자가 있었으면 예수는 성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를 위해서 염려하고 갈 길을 위해 염려하고 진언할 수 있는 제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니, 그 이상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가 가지고 십자가에 죽을 것을 예고하니까 베드로가 '선생님이여 그리 마옵소서'라고 하자 예수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했습니다. '죽게 됐는데 자다가 지금 와서 무슨 수작이야, 이녀석아! 보따리를 이미 싸놓았는데, 이미 결의하고 이미 결심하고, 다 작정한 일인데 이제 와서 그것까지 방해하느냐? 이 겁장이 녀석아' 그런 역사를 모르는 무리나 혹은 동료들간의 동급의 자리에서는 역사를 수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리란 것을 미처 모르지 않았습니까?'라고 교시할 때에, 역사의 부활은 벌어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실패의 역사가 승리의 역사로 되는 부활권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할 것이냐? 이는 심각한 문제예요.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렇게 될 줄을 여러분이 알았어요, 몰랐어요? 몰랐습니다. 미처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르는 민족을 깨우쳐야 될것이 아니냐? 깨우쳐 줘야지, 앞으로 이러다간 망합니다. 망하는 이 민족을 깨우쳐야 됩니다. 지금은 어떤 때냐면 말이예요. 뜻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출발한 때와 마찬가지예요. 알겠어요? 지금 때가 그때와 맞먹는다는 거예요.
애급 땅에 살고 있는 60만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에 절름발이 한 사람에게까지도 통고 안 하면 모세가 걸립니다. 모세의 책임이 중대했던 거예요. 그렇게 보면 통일교회가 이 시대적인 사명을 짊어진 무리로서 삼천만 민족 앞에 서서 '나라를 이렇게 사랑해야 산다'는 것을 보여 줘야지 보여 주지 못하면 통일교회의 갈 길은 막혀 버립니다. 만일에 심판하게 되면 통일교회 패들을 먼저 심판해야 됩니다. 그것이 천도라고요. 자기의 아들딸, 자기의 부모, 자기의 혈족이 잘못하면 덮어놓고 남에게만 탓하는 것은 세상 이치지 천도가 아니예요. 천도는 더우기나 역사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지배의 심정적인 내연을 닦은 부자의 인연, 부부의 인연까지도 초월한 자리에서 전통을 중요시하는 기원이 마련돼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먼저 심판받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패들을 고생시키는 거예요. 만약에 6개월의 형을 받은 사람들에게 1년 동안 고생길에 들여 놓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잘못돼 가지고 당연히 6개월 형을 받은 사람인데 나라를 위해서 1년 동안 고생했다고 한다면, 그런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그 사람은 용서받겠어요, 못 받겠어요? 용서받는 거라구요. 3년 형을 져야 할 사람이 5년 동안 나라를 위해서 죄 값의 몇백 배나 되는 수난길을 가고, 몇백 배 탕감을 하고 고생을 해 나갈 때에 특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길 외에는 없다는 거예요.
이것을 볼 때, 우리 인류가 역사과정에서 얼마나 죄를 지었더냐? 개인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느냐? 가정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느냐? 종족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느냐?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느냐? 그런 사람들이 이제는 세계적으로 죄를 짓고 있는 거라구요. 자, 이 사람들을 한꺼번에 용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세계에 없는 고생을 시키는 비법밖에 없습니다. 알겠어요?
성경을 보면 종말에는 7년 대환란이 온다고 했는데, 그런 관점에서 그 대환란이라는 말이 좋아요, 나빠요? 고마운 말씀, 응당한 말씀, 타당한 말씀, 거룩한 말씀이예요. 7년 대환란이 오면 자식이 있으면 자식을 버리고 나가야 되고, 아내가 있으면 아내를 버리고 나가야 됩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그 환란 때에 피난 가면서 '아이고 내 아들아 내 딸아!' 이러는 녀석들은 피난 가다 한꺼번에 다 죽어 버린다구요.
그럴 때에는 할수없으니 네 패로 나누어 가지고 가라구요. 장가간 아들딸이 있고 식구가 열 사람 이상이 되면 네 패로 나누어 가지고 어머니한테 갈 수 있는 아들딸을 묶어 주고, 형님한테 딸을 묶어 주고, 누나한테 아들을 묶어 주고, 아버지한테…. 그래야 종자를 남길 수 있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이런 생각을 가지면 그 가정은 피난민 가운데서 그 가정은 위대한 가정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미래의 국난을 방지하기 위한 거룩한 사상을 지닌, 사악과 분립할 수 있는 인연에는 미래의 소망이 깃들지 않겠어요? 그 슬픈 과정에서 남아진 것은 자기들의, 현재의 집안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후손과 혈족을 위한 것이다 할 때는 다르다구요. 안 그래요? 그저 '아이고 떨어지면 죽는다. 아이고 어서 와라' 이러다가 죽게 되면 한꺼번에 몽땅 망해 버립니다. 비상시 피난길에서는 서로 서로 갈라져서 보따리를 짊어지고 동으로 내빼고 서로 내빼는 것이 사는 길이예요. 그렇게 죽음길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은 사람이 그래도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안 그래요?
통일교회 믿자고 해 가지고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우리 여편네, 남편이 같이 가야지, 우리 아들딸과 같이 가야지…' 이렇게 같이 가려다간 옥살 박살 전부 다 죽게 되는 거예요. 생각하기를 뭐 설마 그럴 수야 있을라구. 옛날에 안 그랬는데 오늘이라고 그럴 수 있나' 하겠지만 지금 우리는 최후의 작전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최후 작전을…. 죽기 아니면 살기 내기라구요. 망하기 아니면 흥하기 내기예요. 방법은 둘밖에 없습니다. 안 하려면 아예 그만두던가 하려면 악착같이 하든가 해야 돼요. 알겠어요? 하려면 세상 사람보다 악착같이 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뭐예요? 너, 어떻게 해야 되겠어? 어떻게 해야 돼? 통일교회를 믿겠으면 악착같이 대들고 그만두려거든 보따리를 싸가지고 가라 이거예요. 통일교회 책임자로서 이런 말을 해서 안됐지만 심정이 다르다구요. 방해는 되지 않아야 됩니다. 방해자는 되지 말아야 돼요. 지금도 방해자가 많다 이거예요. 애국 투사가 세계에 홀로 남더라도 그에게 민족정기가 올바로 잡혀 있을 때에는 거기서부터 새로운 건국이념이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하고 독한 말 같지만, 섭섭해요? 진짜 그래야 되겠어요?「예」 이래도 망하고 저래도 망할 길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죽기를 각오한 이상 먼저 가야 돼요. 그럴 때가 우리 앞에 와요. 누가 북한에 갈 것이냐? 북한에 들어가서 전도 기반을 닦아야 되겠다구요. 지금 동구(東歐)에서 통일교회 식구들이 지하운동을 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고요. 그런 문제를 중심삼고 선생님이 밀명을 하고 돌아왔어도 그런 이야기를 안 해요. 여러분, 통일교회가 현재 자유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이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싸움터가 세계 전선으로 확대되어 있습니다. 1972년도의 표어가 '통일전선수호' 아녜요? 그렇지요?「예」
통일전선수호 하자는 것이 임자네들 잘살자고 하는 거예요? 이 쌍것들! 새끼를 끼고 돼지처럼 잘살자는 거야? 하기야 그것도 해야지. 그렇지만 나라를 찾고 태평세월을 맞이할 때까지는 이를 악물고…. 때가 되면 선두에 서서 피를 흘리고 죽음을 각오한 사람들이 더 잘살 것입니다. 세상 일이 그렇게 되는 게 원리라구요. 오래됐다는 사람, 명령하는 사람, 탈쓰고 있는 사람, 나는 보기 싫다구요. 저거 저러다 어떻게 망하려고…. 그가 망하지 않으면 내가 망하는 거예요. 내가 그릇된 입장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내가 망할 것이고, 내가 올바른 자리에서 그렇게 생각하면 그가 망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나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무정한 길이 이 길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무정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무정하더라구요. 그저 바삭바삭 죽게 될 때까지 돌보지 않는 거라구요. 그러다가 아이고, 죽는 그 순간에 가서, 죽을 자리에서도 첨단에, 맨 꼭대기에 올라가서, 아이고, 나 죽는다고 하는 거기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느냐, '아버지' 하느냐 하는 것을 문제삼는 것입니다. 예수도 그랬지요?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랬지요? 그 자리라고요.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했지마는 그다음에 '다 이루었다'라고 했지요? 버리는 최고 절정의 자리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는 거예요. 왜 그러냐? 인간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버렸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염려하여 보러 오게 될 때에 '아이고, 엄마 아빠' 하고 붙들어야 부모가 '오냐, 얘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부모인 하나님의 위신도 서는 것이요, 자식도 체면을 갖출 것이 아니냐? 그 자리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망선이 벌어져서 그 사망선을 출발할 때 눈물을 흘리며 비참한 몰골로 나왔기 때문에, 생명선을 넘기 위해서는 타락하던 때 이상 비참한 눈물을 흘리고 넘어가야 빛나는 새 생명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거 다 이론적이라구요.
통일교회 패들을 모조리 잡아다 이북 귀신 만들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기분 나쁜 사람은 통일교회에 안 나와도 돼요. 한국 사람이 못 하게 되면 일본 사람을 잡아다가 할 것이고, 일본 사람이 못 하게 되면 서양 사람을 잡아다가 할 것입니다.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지독한 사람이라구요. 질기다면 황소 힘줄보다 더 질기다구요. 시시하게 몇 달 동안 통일교회에 드나들다가, 뭐 되고 안 되고 그런 수작하는 사람은 '푸우-' 어서 물러가라 이거예요. 그런 사람은 개, 돼지 새끼만큼도 생각지 않는다고. 그런 녀석들과 나는 종자가 다르다 이거야. 몇 년이나 가다가 지쳐서 그래? 나는 종자가 다르다 이거야.
이렇게 심각한 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이예요. 여러분도 역시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 하는 입장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금후에 대한민국의 갈 길은 어떻게 될 것이냐? 망하고 나서, '아이고 이럴 줄은 몰랐다. 이럴 줄은 몰랐다' 그런 사정을 봐주면 한이 없어요. 보라구요. 이번에 일본 수상 선거에서 후꾸다를 보라구요. 후꾸다는 자신을 갖고 나갔다구요. 그러다가 결과를 보고는 '어이쿠,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미처 몰랐다'고 했지요. 그게 아니라 준비 부족이요, 정성 부족이요, 활동 부족이라고 해야지요.
자.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오늘은 8월 20일, 내일은 8월 21일, 우리는 8월 15일을 통일의 날로 설정했어요. 우리는 이 민족을 통일해야 되겠습니다. 남북통일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눈물을 흘려야 되겠습니다. 내가 삼팔선을 넘어오면서 다리를 걸어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 통일을 해야겠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못 하고 죽게 되는 날에는 삼팔선 완충지대에 무덤을 남기고 가야 되겠다'고 한 거예요. 그런 생각을 갖고 지금 싸워 나가고 있는 선생님인 것을 여러분은 미처 몰랐을 것이라구요. 내가 김일성이 졸때기한테 고문을 받았는데 그 사람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았어요. 아직까지 이것은 이야기를 안 했지만, 잊어버리지 않고 '어느 한 날 너를 못 만나면 네 아들딸을 만날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고 다짐한 거예요, 안 죽겠다 이거예요. '김일성이 너 두고보자. 너와 내가 정면으로 충돌해 가지고 일대일 담판을 지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 날을 위해 준비하고 나가는 거예요. 이거 바쁘다구요.
이번에 내가 3차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이 이놈의 공산당, 빨리도 서둘러 가지고 세계를 망칠 수 있는 단계에 왔구나 하는 것입니다. 딱 골리앗 앞에 선 다윗과 같은 기분이더라구요. 그러니 이제 하나님밖에는 붙들 것이 없다구요. 엘리야가 기도하면서 '나만 남았나이다' 했지요. 그렇게 낙망하는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이 '바로에게 굴하지 않는 7천의 무리가 있다'고 통고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제 이 세상에 나만 남았나이다' 할 때에 이 땅 위에 바로에게 굴하지 않은 7천의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있어요. 대한민국내에 통일교회 교인들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준비한 7천의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요즈음에 그들이 관계를 맺자고 자꾸 연락하고 있어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저럴 줄 미처 몰랐다고 할 수 있는 그때가 언제 올지 몰라요. '그럴 줄은 몰랐다. 이럴 줄은 몰랐다' 할 그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러실 줄을 몰랐다. 그러실 줄 미처 몰랐다'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는 여러분의 일상생활을 중심삼고 생애노정에, 복귀섭리의 운명을 중심삼은 심정적 세계에 그렇게 엉클어져 있는 것을 알고, 여러분이 이 아침에, 이 8월이 지나가기 전에 새로운 결심을 하여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밤이나 낮이나 쉴 사이가 없습니다. 알겠어요? 「예」
이렇게 감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나라에 소망을 남길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죽거들랑 여러분의 아들딸 앞에…. 만일에 공산당한테 못 이겨 가지고 일보 양보하게 되더라도 우리 아들딸들은 이렇지 않아야 된다고…. 아들딸 앞에, 그 피맑은 10대의 소년 소녀에게 '우리는 이 치하에서 죽어 가지만 너희는 10년 후 스물 몇 살이 되거들랑 이런 치열한 공산권에 들어가더라도 이겨야 된다'고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유언이라도 남겨야 할 것이 아니냐? 심각한 때라구요. 오늘 먹는 밥이 어제의 밥을 계승한 밥이 아니라고요.
이러한 입장에서 모든 극한 어려움을 책임지고 민족을 수호함-이것은 통일전선 수호예요-과 동시에 민족 앞에 가는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저렇게 저와 같은 무리가 되어 저와 같은 사상을 갖고 저와 같은 행동을 하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남북을 통일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증거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때가 되면 기성교회 교인들은 '통일교회가 저렇게 될 줄은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할 거예요. 역사적으로 싸우다 간 영계의 영인들이 보고는, '통일교회가 저렇게 될 줄 미처 몰랐습니다' 할 거예요. 말할 것도 없이 그렇게 된다고요.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탄식권내에서 '미처 몰랐습니다' 하는 것보다도 소망권내에서 눈물을 흘리든, 뭘 하든, 죽든, 소망을 붙들고 '미처 몰랐습니다' 하며 감사할 수 있는 밑받침을 가지고 여러분이 죽든가 살든가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편에 설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기억하고 과거를 반성하면서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를 재차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말씀을 했어요.
사랑하는 아버님! 그렇게 수고로왔던 당신의 뜻이, 내가 있기 전부터 있었던 그 뜻이 이러한 결과가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몰리는 자리에서 낙망하고 절망하는 내가 안 되겠다고 몸부림쳐 나왔습니다. 알고 보면 감사밖에 할 수 없는 오늘을 가진 것을 먼저 아버지 앞에 감사하옵니다.
통일교회가 이 민족 앞에 지탄을 받고, 기성교회 앞에 비바람 몰아치는 몰림을 당할 때는, 그것으로 모든 것이 청산될 줄 알았지 오늘날 이와 같은 기준이 남을 줄은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아시고 부족한 것들을 수습하시고 권고하시기에 많은 애달픈 사정을 지닌 채 세월을 보내셨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제가 당신을 모신 것이 부끄럽습니다.
아버지께서 이 민족의 슬픔을 맡을 수 있었고, 아버지께서 이 민족의 수난길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께서 얼마나 저희를 사랑하는 줄을 알겠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오늘날 저희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계시거든, 저희가 이 민족을 위하여 참고 나오신 당신과 같은 인연 가운데에서 몸부림쳤사오니, 이 민족을 사랑해 주시옵소서. 이것이 이 자리에 있는 아들의 마음이요, 통일의 무리의 마음들인 것을 아시는 아버지시여, 당신은 저희 곁을 떠나지 마시옵소서. 그러나 저희는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갖고 있지는 못하지만 당신에게 아픈 마음이 있거든 그 아픈 마음을 대신 책임지는 데 있어서는 누구한테도 양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진 것이 저희 통일의 무리인 것을 이 시간 믿고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50평생 이 길을 줄달음쳐 나왔습니다. 이제 반세기를 내리막길을 향하여 60으로 70으로 80으로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육을 갖고 있는 연고로 때로는 옛날과 다른 육신의 피곤함을 느끼옵니다. 그럴 적마다 당신 앞에 충성을 다하지 못한 오늘, 오늘을 부끄러이 생각하는 이 마음을 당신은 아시옵니다. 지금도 가야 되겠습니다. 내일도 가야 되겠습니다. 그 누구가 환영하는 것을 바라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안이(安易)를 위하여, 당신이 소망하시는 그 터전을 향하여 우리는 가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비참한 줄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언제나 당신이 그러한 자리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습니다. 이것이 당신으로 연유된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 시조로 연유되었기 때문에, 원한의 구렁텅이가 우리 인류 시조의 죄악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역사는 이것을 밟고 넘어서기 위한 당신의 소모전쟁이요, 탕감의 역사인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오늘에야 이것을 알고 난 저희들, 굶는 것이 문제가 아니요, 매맞는 것이 문제가 아니요. 찢기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이 이 자식을 위해 울어 줄 수 있고, 사랑의 마음을 갖고 아무개라고 불러 줄 수 있는 그 자리를 남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버님, 아버님, 통일교회를 사랑하시는 아버님, 통일교회를 사랑하시는 것같이 세계를 사랑하시옵소서. 세계를 바라고 있는 아버님, 통일교회는 세계를 위한 소망을 가졌사오니, 드높은 소망을 가하시어서 세계를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단 한 번만이라도 세계를 위할 수 있는 기회를 이들 앞에 허락하시옵소서. 만군 만민이 쌍수를 들어 '하나님은 그렇다'고 하며 당신의 영광을 찬양할 그때까지 망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끝까지 참고 남아야 되겠사옵니다. 자꾸만 다짐해 가야 되겠습니다.
이 아침, 과거를 다시 한 번 반성하고, 현재의 자기의 부끄러운 모습을 감출 수가 없어 아버지 앞에서, 이 자리에서 뛰어 나가면서 '나의 본을 받지 말고 아버지 앞에 미치고 갈 수 있는 마음을 가지라'고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는 소망된 길이 열릴 것이고, 그 사람에게는 아버님의 심정이 동정의 터전으로 바쳐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마음이 이 시간 다시 한 번 일어나도록, 당신이 찾아와 주시옵고, 저희들의 본성의 마음의 문을 여시어서 불꽃같은 눈으로 살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은 안식일이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통일의 깃발 아래서 이곳을 바라보면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는 그들에게 사모의 심정과 흠모의 심정이 무한히 무한히 뻗어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그리움의 사다리를 당신의 마음, 당신의 심정 복판에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지상의 족속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달과 이해, 그리고 70년대가 당신의 보호의 손길에서 빠져 나가는 일이 없기를, 아버지여, 부탁하옵니다. 당신의 권한과 당신의 뜻을 생각하여 그리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옵나이다. 남북의 모든 사정을 아버지께서 살피시옵소서. 제가 그리워하고 가 보고 싶어하는 곳이 있는 것도 당신은 알고 계시옵니다. 그러나 책임 다하지 못할 때 그것이 찾아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초조하고 무서운 것인가를 일면 느꼈기 때문에, 이제부터 저희들은 불철주야 몸부림이라도 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고이고이 소원의 한 날, 해방의 한 날, 영광의 한 날, 승리의 한 날을 맞으시사, 온 피조세계의 환호와 더불어 당신의 희열과 만족과 행복이 인간을 통하여 어우러진 천주가 되게 하여 주시옵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오니, 아버지시여, 협조하여 주시옵소서. 남아진 날에서도 승리의 터전을 예상하면서, 다가오는 극복의 행각을 도피하는 졸자가 되지 말고 전진에 가중된 진격을 명령할 줄 아는 하늘의 정의의 용사들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당신의 소신에 맡기오니 허락하실 수 있는 은사대로 처리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올 때에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사랑하는 아버님, '나'라는 존재를 중심삼고 한 시대는 지나가고 지금 이 시간 이후의 새로운 시간이 나를 찾아오고 있으니, 현재만으로 영원히 있을 수 있는 그러한 자리가 못 되는 것을 시시각각으로 느낄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현재 당신이 책임져야 할 사명을 앞에 놓고 이것을 처리하는 입장에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책임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찾아온 것이 아닐 수 없사옵고, 또한 그 책임은 지금부터 후대에까지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나이다. 개인이 그러함과 동시에 당신이 그러하고, 우리 대한민국과 이 세계도 역시 그러한 운명에 처하여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듯 한때는 가고 한때는 오는 어쩔 수 없는 갈래길에서 오는 길을 자랑할 수 있는 오늘이 필요하고, 가는 길을 빛낼 수 있는 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나'라는 이 하나의 몸을 두 세계의 과중한 욕구와 소망이 짓누르고 있는 사실을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언제 어느 때에 어젯날의 인연을 추구했으며 오늘의 중한 가치를 세워 내일의 소망 앞에 남겨질 수 있는 나의 모습을 흠모하였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흘러가는 세월 속에 덧없이 뜻의 길을 지내 버린 자신들을 발견하게 되고, 1972년 8월 27일 이 아침을 중심삼고 이날, 이와 같은 날들이 찾아올 때까지 당신의 수난길이 있었음을 저희들이 몰랐던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 시간 저희들을 바라보시면서, 오늘 저희들 앞에 허락하고 맞아 주고 싶었던 당신의 소원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할수록 지금 저희들이 처해 있는 이 자리가 부끄러운 자리가 아니면 영광의 자리요, 칭찬받을 수 없는 자리가 아니면 칭찬받을 수 있는 자리로, 두 갈래길에 있어야만 되는 저희 자신들인 것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를 대신해서 기대할 수 있는, 내일에 남길 수 있는 뜻을 품고 몸부림을 치더라도 역사의 인연을 따라오신, 혹은 찾아오신, 싸워오신 그 소원 앞에 필요한 내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또 미래에 있어서 당신이 저희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하나의 참모습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에, 이것을 바라신 것이 당신이요, 이 뜻을 세워야 할 것이 저희들의 입장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하늘과 땅 가운데 있는 나 자신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천륜의 인연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언제나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아버님, 저희들이 이 아침 아버지 앞에 부복하였사옵니다. 이러한 저희들이 누구를 붙들고, 누구를 위하고,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 엎드렸는가를 생각할 때에, 지금의 나는 본래의 내가 아닌 것을 알게 되옵니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이 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은 지금까지 내 연령에 해당하는 그런 시간을 경과하였기 때문이지만, 아버님의 뜻이 저희들이 나기전부터 수천, 수만의 연한(年限)을 거쳐서 오늘의 이 한 시점을 찾아 오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내가 태어남도 그 뜻에 플러스되기 위한 존재로서 태어난 것이 틀림없는 것이요, 내가 사는 것도 그 뜻 앞에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 혹은 하나의 가치를 세우기 위해서 사는 것이 틀림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됩니다.
오늘에 살고 있는 현시점도, 또 내일에 빛날 수 있는 당신의 소원의 짐을 짊어지고 슬프든지 기쁘든지 몸부림을 치면서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의 역사가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할 때, 당신이 가는 방향과 저희들이 가는 방향이 절대 엇갈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님이여! 이제 겸손히 당신 앞에 부복하였사오니, 당신이 원하는 소원의 동산으로 저희를 이끌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바라는 마음이 있거들랑 과거의 저희 자신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되겠고, 현재 저희 자신의 환경을 정비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저희 마음은 요동없이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따라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만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개척자의 사명과 전쟁터에 선 병사의 사명을 가진 입장에 서서 악을 대비해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세계를 향하여 미지의 실적을 이루어 나가는 개척자의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따르지 않고는 저희의 자리는 어떤 자리이며, 저희가 찾아 나오고 저희가 태어난 그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저희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그 기준을, 그 자리를 스스로 갖지 못하게 될 때는 저희의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아버지 당신은 불쌍하신 분임을 알게 됩니다. 당신은 역사시대 어느 한때에 소원하는 것을 이뤄 볼 수 있었으며, 현재의 때를 맞이할 때마다 역사의 슬펐던 것을 탕감복귀하지 못한 분한 마음을 갖지 않는 때가 어느 때엔들 있었겠습니까?
아버지, 당신의 노정은 내일의 승리를 다짐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하며 사랑하는 자녀들과 더불어 가고 싶은 복귀의 노정이요, 전진적 행각의 노정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한 당신의 소원 앞에, 당신의 역사 앞에 저희들이 당신의 가치를 중심삼아 가지고 동조(同調)하며, 동행 (同行)하며, 동사(同事)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었느냐고 묻게 될 때, 아무도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언제나 언제나 당신은 불쌍한 분이란 걸 느끼게 됩니다. 당신은 수고를 해야 되고, 개척을 해야 되고, 싸워야만 되는…. 그와 같은 자리에서 시작했으니 저희들은 과정도 그와 같은 과정이요, 끝도 그와 같은 자리에서 종결짓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런 과정의 노정은 점점 작아지는 수난길이 아니라, 배가하여 입체적으로 가중된 수난길로서, 그 길을 거쳐오시는 아버지 앞에 진정한 의미에서 효도하지 못하는 불쌍한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고, 그 나라를 위한 충의 도리를 지키지 못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찾아오시어서 저희에게 분부하시옵소서. 당신이 눈물 흘리시며 정성들여 오던 모습을 저희들에게 보여 주시옵시고, 당신이 십자가 도상에서 참고 극복하시면서 투지력을 가지고 그 환경을 밀고 나가시던 정상(情狀)을 저희들이 보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 앞날에 모든 힘을 다하여서 당신의 뜻을 성취시켜야 할 저희들은 내적 결의와 더불어 현재 강력한 투지력과 개척자의 심정을 가지고 애쓰시는 당신의 모습을 배울 수 있게끔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자녀들이 바라는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당신이 가는 길을 보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머물러 있는 그 자리를 저희들은 지킬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가고자 하시는 소망의 곳을 향하여 나가 싸우지 못하고 슬픔의 자리에 있으면 있을수록 아버지의 슬픔과 수고가 가중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내일에 그러한 사명이 촉구되는 것을 알고 원수의 본영(本營)을 직시하면서 거기에 대비할 수 있는 승리의 인격체가 되기 위해 시간 시간 다짐하는 무리가 돼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그 한때를 맞기 위해 온 정력을 기울일 줄 아는, 당신이 신뢰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곳은 통일교회 본부라고 하는 곳입니다. 여기에 있는 소수의 무리는 당신의 아들딸이라고 자부하려 했던 무리였습니다. 저희들에게 슬픔이 있을 때는 당신 앞에 그 슬픔을 제거해 달라 하였고, 저희들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도 당신 앞에 그 어려움을 맡아 달라고 하면서, 저희들이 가는 길에 평탄만을 바랐던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와 같은 요구와 이와 같은 입장은 당신이 복귀의 짐을 짊어지고 나오는 길 앞에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란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어려움이 다가올 적마다 저희들은 말없이 스스로 감수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나보다도 수고로우신 아버지, 나보다도 어려우신 아버지, 나보다도 슬픈 아버지, 그 아버지를 위로하며 그 아버지와 같이 동참할 수 있는 말없는 모습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당신은 지금까지 수천년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누구한테도 당신의 뜻을 피력하지 못하셨으며, 누구한테도 당신의 모습을 들어낸 일이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드러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이 영원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못 되게 될 때에, 당신은 외로운 자세를 감추며 홀로 몸부림치시며 역사적 슬픔을 홀로 부둥켜 안고 오셨사옵니다. 이러한 당신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너무나 경솔하였던 것을 다시 한 번 뉘우쳐야 되겠습니다.
짧은 자기의 생애를 중심삼고 볼 때, 이렇게 무가치한 자기 자체가 빛나기를 바라고, 좋기를 바라고, '나'라는 존재가 아버지, 당신의 뜻 앞에 사랑을 받고 축복을 받으며 영원한 생명을 고대하던 가련한 자체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당신 앞에 너무나 너무나 철부지하였던 것을 이 시간 다시 뉘우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기와 같이 당신밖에 모르고, 당신의 인연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미련하다면 미련한 저희들이 되지 않고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지혜로운 척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미련한 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여! 사탄 앞에는 지혜로운 자가 돼야 되겠습니다. 뜻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당신이 기쁨으로 가거들랑 저희들은 슬픔으로 가야 되겠고, 당신이 슬프거들랑 저희들은 감사함으로 가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중심삼고 볼 때는 이것이 상반된 자리요, 상충된 자리요, 이해할 수 없는 역리적 입장(逆理的立場)이기 때문에 당신이 지혜롭기를 바라거든 저희들은 어리석고 미욱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길에서 이와 같은 본질의 노정을 가려 가려고 다짐하지 않고는 당신의 승리와 더불어 동참할 수 있는 영광의 한날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당신을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워하고, 당신을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부탁드리고 싶어서 내 있는 힘을 다하여 눈물 흘리고 내 정성을 다하여 몸부림칠 수 있는, 생애 노정의 절박한 자리에서 모든 것을 잊고 아버지만을 향하여 울부짖는 저희 자신이 되지 못한 이 불충스러운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불효막심하였던 저희 자신을 용납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나라를 향하여 당신이 가야 할 걸음이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이 세계를 향하여 당신이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필코 가야 할 그 길을 가는데는 당신 혼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혼자 갈 수 없는 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때려서 가지 않으면 끌고서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그래도 가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벌을 주고 병신을 만들어서라도 끌고가야 할 길이 복귀의 길인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버님이여, 당신이 저희를 병신을 만들어서라도 생명길로 인도하려 하는데 그 인연을 맺지 못하는 불쌍한 저희들, 당신이 직접 가르칠 수 있는 인연을 가지려 하는데 따르지 못하는 저희들, 당신의 역사적인 권고와 명령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그러지 못하는 저희들은 당신이 가는 길 앞에 설 수 없는 부족한 자신인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 시간이 당신이 소원하시는 뜻 앞에 다시 한 번 인연되기를 간곡한 심정으로 고대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아버님, 당신이 동으로 가라 하시거든 서에서 살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동으로 찾아가야 되겠고, 남에서 북으로 가라 하시면, 그 길이 저희들의 갈 길이 아니라 생각되더라도 가야 되겠고, 당신이 가야 할 길이거든 그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 저희들의 운명인 것을 진정히 느끼는 자들이 돼야 하겠습니다. 저희들은 그 길이 아무리 죽음길이라 하더라도 가야 할 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대한민국을 지켜 주셔야만 되겠습니다. 대한민국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개인의 운명이 그러하면 이 나라의 운명도 그러한 것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되겠습니까? 이 나라의 운명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아버지, 당신이 가는 길이 아무리 험산준령이라 하더라도, 당신이 가는 그 방향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겨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소원과 목적의 귀결점을 향하여 대한민국은 가고 있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에게 슬픔을 떼어 맡기는 나라가 되기보다는 당신의 슬픔을 상속 받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며 몸부림치는 이 나라. 이 민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럴 수 있는 종교도 없습니다.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럴 수 있는 충신의 인연을 남길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버지, 남북이 엇갈린 이 처참상을 바라보시게 될 때 당신은 얼마나 슬프옵니까? 27년이라는 역사를 지나면서 저희들은 지루한 역사라고 하는데, 당신은 얼마나 지루하였습니까? 밤이 되면 그 밤을 보기 싫어했을 것이고, 아침이 되면 아침 햇빛을 슬픔을 품은 한반도에서 보고 싶어하지 않은 당신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땅 위에 발을 디디고 사는 저희들이 당신께서 섭리의 뜻을 이끌고 나가는 그 노정을 따라 서글프고도 고독하고도 비참한 그 길을 가게 하고 싶지 않았던 당신의 뜻이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뜻을 안다고 하는 무리가 있는 가운데서 그들로부터 배척을 받고, 외로운 가운데 눈물을 흘리며 다짐하는 통일의 무리들은 그래도 당신의 심정을 더듬어 가지고 그 뜻이 가는 길을 가겠다고 안간힘을 다 썼습니다. 그러나 그 힘쓴 것은 당신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민족의 한을 풀기 위한 수난길에서 힘쓴 것이 아니라, 자기 개인의 평안을 위하여, 자기 개인의 행복을 위하여 몸부림쳤다는 이 서글프고도 원통한 과거를 남긴 사실을 다시 한 번 후회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벌거숭이가 돼야 되겠습니다. 당신 앞에 채찍을 맞더라도 옷을 입고 채찍을 맞는 자리에 서서는 안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채찍질을 하는 것은 매맞을 자를 회개시키고 거기에서 돌이키기 위한 당신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옷을 입고 맞는 그런 자리에 서는 것보다도 벌거숭이로 매를 맞고 아버지의 심정을 가중시킬 수 있는 처량한 자리를 그려 나갈 수 있는 길을 가야만 과거의 잘못을 당신 앞에 빨리 용서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픈 심정을 극복하면서 채찍을 드는 부모의 마음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는, 맞는 자식은 순응하면서 응당 맞아야 한다며 자기 스스로를 책하고, 자기 스스로의 모든 것을 책임지면서 이를 악물고 죽을 힘을 다하여 그 채찍에 반항하지 않고, 당신의 마음속에 풀어야 할 아픔이 있거들랑 응당히 풀으시라는 마음으로 참는 모습, 참으며 극복하는 모습, 그러면서 당신을 위하여 눈물지으면서 당신은 슬프신 분이라고 도리어 그 채찍을 붙들고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 또한 채찍을 던지고 목을 놓고 울고 싶어 지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하루하루 생활에 있어서 자신이 어렵게 되면 아버지 앞에 기도하기가 일쑤였습니다. 저희들의 어려움을 당신 앞에 맡기려고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의 수난사를 이미 맡으신 당신은 작정을 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천만사를 맡을 수 있지만, 당신의 뜻을 이루어야 할 사명을 맡길 사람이 없는 당신은 얼마나 고독한 분이신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님이여! 당신의 어려움을 맡아야 할 것이 인간이고, 인간의 어려움을 맡아 주셔야 할 분이 당신이기 때문에, 인간의 서글픔을 용서하시는 아버지요, 당신의 뜻을 실천해야 하는 인간인 줄 압니다. 그런데 서로 서로가 양분된, 양단된, 서로 엇갈린 입장에서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이니 그런 인간에게 요구해 나온 아버님의 슬픔이 얼마나 컸겠는가 하는 사실을 이 시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좋은 밥을 먹고 살면서도 그 밥이 나를 원망한다는 것을 몰랐사옵고, 좋은 옷을 입고 나서서 자기를 자랑하는 그 모습을 보고 당신은 부끄러운 모습이 되어 얼굴을 수그리고 있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저희들이 기뻐 춤추는 그 자리에 당신은 낙망과 처절한 모습으로 한숨과 눈물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들에게도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저희를 위하여 그렇게 염려하시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루의 생활을 맞는 그 시간에도 당신의 뜻을 위하여 염려하면서 당신이 가는 길을 위해 효의 도리와 충의 모습을 다짐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은 거룩한 성일이옵니다. 8월을 중심삼고 마지막으로 맞는 안식일이옵나이다.
아버님이시여! 세월은 덧없이 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주도하여야 할 사명의 때, 그때를 당신이 붙들고 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때는 때대로 남아 있사옵니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자녀들을 붙들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찾아오신 당신의 뜻과 저희가 만나게 된 그 인연의 해후가 슬퍼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의 소원을 중심삼고 불쌍한 대한민국, 이 민족을 찾아오신 그 발걸음이 슬픔으로 끝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러한 내용을 알고 나설 수 있는 무리는 통일의 무리밖에 없다는 것을 자부하는 자녀들이 있습니까? 아침에 햇빛을 바라보거든 그 햇빛이 과거에 바라보던 햇빛과 다른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새로운 공기를 마시거든 그 공기는 옛날과 다른 공기라고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걸어가는 그 발걸음이 어젯날 걷던 발걸음과 다른 것을 느끼면서 전진적이요, 가중적이요. 입체적인 사연을 추가시켜 나갈 수 있는, 자기 스스로를 다짐할 줄 아는 아들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뭇 자녀들을 이끌어 주시옵소서. 이들의 마음의 중심은 당신이오니, 당신의 뜻 앞에 있어서 은은한 당신의 섭리의 방향을 갖출 수 있도록 본성을 통하여 움직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만일에 그 방향에 어긋나게 될 때 저희들을 쳐서라도, 쳐서도 듣지 않거들랑 환경을 정비해서라도 갈 길을 가려 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통일교회는 가야만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는 당신의 뜻을 따라서 그 뜻을 세워야만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쉴 사이 없었던 길,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바빴던 길,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마음 졸였던 이 길을 또 가야 되겠습니다. 당신과 더불어 가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소원이 그러하기 때문에 가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바라시는 부탁이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은 가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가는 길이 평탄해지지 않고, 당신의 소원이 가중되더라도 당신이 '힘을 다하여 참을 수 있는 길이면 참아라'고 진정 명령할 수 있다면 그 자리를 통하여서라도 가기를 바라는 아들딸들이 여기에 한두 사람뿐만 아니라, 그 수가 가해지면 가해질수록 당신의 안위의 터전이 넓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오니, 부디부디 당신이 소원하는 것과 더불어 따라갈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어린애가 돼야 되겠습니다. 진리의 꿀을 흠모하고, 사랑의 품을 그리워하고, 저희를 바라보고 소망을 품고 반기는 당신의 그 얼굴을 저희들이 그리워할 줄 아는 어린애기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 시간, 당신의 뜻과 더불어 같이하여 주옵시고, 오늘이 당신의 뜻과 더불어 같이하게 허락하여 주옵고, 이해가 당신의 뜻과 더불어 같이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72년도에 당신의 뜻을 중심삼아 책임수행을 온전히 할 수 있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땅에 살고 있는 어떠한 사람이라도 자기 생애를 중심삼고 자신을 갖고 사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또한 '나는 이러한 자신 있는 길을 성사하기 위해 났고, 지금 현재도 그 길을 위해 가고 있고, 그런 내일을 맞이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의 생활에 있어서 굴곡이 많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자기가 목적하였던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 자신을 탓하면서 낙망하고 혹은 절망하는 자리에 있는가 하면, 그런 자리에서도 자기 스스로 새로운 결심을 다짐하든가, 혹은 동료의 권고에 의해서라든가 혹은 스승, 선배들의 권고에 의해 이끌림을 받는 자리에 서 가지고 새로운 자극을 받아 자기의 소원을 다짐하는 그러한 굴곡이 많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영속적인 것이 못 되는 것을 우리는 일생생활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 개인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이 같이 사는 가정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가정의 전체 식구가 그 가정의 목적을 위하여, 혹은 잘될 수 있는 길을 바라고 단결하여 거기에 새로운 힘을 투입하게 될 때, 그 가정은 새로운 의미의 전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중심적인 부모가 해이하다든가, 혹은 부모는 해이하지 않지만 자식들이 거기에 상충이 되든가 하면 그 가정은 반드시 어제와 다른 가정의 형태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까지는 희망적인 가정이었다 하더라도 현재 그러한 결과에 부딪친다고 한다면 그 가정은 슬픈 가정의 자리에 떨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활 가운데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한 가정이 그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한 민족이나, 국가를 중심삼고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에도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 엄연히 있을 것입니다. 인간들은 잘 모르지만, 이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으로서 가야 할, 현재에 처해 있는 입장을 넘어서서 가야 할 내일의 소망의 자리가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입니다.
그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틀림없이 자신 있는 하나의 방향을 갖추고 나설 수 있기 위해서는, 위로는 주권자로부터 아래로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돼 가지고 그 방향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서로서로가 격려할 수 있는 자리를 향하여 가게 될 때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소망이 찾아올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위는 위로서 주장하고 아래는 아래로서 주장을 해 가지고 엇갈리게 될 때에는 아무리 그 소망이 좋다 하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후퇴하고 떨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떨어진 자리를 다시 수습하고 옛날보다도 더 결의할 수 있는 자리를 찾기 전에는 그 떨어진 자리를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개인 생활을 미루어 봐 가지고 대한민국이 가는 길도 관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의 운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의 정세면 정세를 중심삼고 볼 때에, 세계는 그 어떠한 목적이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모르지만 세계는 그 목적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 방향을 모르고 있지만, 세계의 운세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간다고 할 때, 그 누구가, 그 무엇이 어떻게 해서라도 그 방향에 일치될 수 있는 그러한 곳으로 이끌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그 방향과 그 목적을 향해서 세계 인류가 같은 방향을 향해야 되고, 그 목적을 성사하기 위해서는 그 목적이 세계적인 목적인 만큼, 세계 가운데 인류가 살고 있으니만큼 인류가 하나돼 가지고 현재의 입장을 넘어서서 세계를 뚫고 나갈 수 있는 결의의 내용을 인류 가운데 세워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 만들 수 있는 세계적인 그 방향과 세계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될 수 있는 세계를 그려야 되고 하나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될 때, 그렇게 만들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만들 수 있는 방향과 목적을 향해서 그리워하고, 거기에 자기의 소신을 두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를 찾지 못하면 그것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방향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가 하나됐으면, 세계가 평화로운 세계가 됐으면, 세계가 행복한 세계가 됐으면 하는 것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유식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고로 역사를 통해서 바라 나왔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뿐만 아니라 현재에 살고 있는 뜻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이런 마음을 갖지 않을 사람이 없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모르고 자기가 어떠한 방향을 가려 가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본성의 방향은 은연중에 그러한 최고의 목적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고, 그러한 방향을 찾고 있는 사실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과거 역사도 그래 왔고, 현재의 인류도 역시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세계 인류가 같은 방향을 그려 가지고 같은 목적을 향해서 하나될 수 있는 운동이 있게 될 때에 이 세계는 소망적인 세계가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자기 나름대로 동으로 가자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서로 가자고 하고 혹은 남으로 가자고 하고 북으로 가자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렇듯 각국, 각 민족, 개개인이 엇갈린 자리에서 요구하게 될 때에는 그러한 소망의 나라라든가, 소망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방향을 일치시킬 수 있는 길은 없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사람 끼리끼리라면 해결점이 없을는지 모르지만, 만일에 하나님과 같은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가 이러한 세계를 앞에 놓고 어떠한 방향, 어떠한 대책을 강구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동쪽으로 가기를 바라는데 서쪽으로 가려고 하고, 이렇게 전부 다 엇갈린 방향을 취해 가게 되면 안 되겠기 때문에, 동으로도 갈 수 없고 서로도 갈 수 없고 남으로도 갈 수 없고 북으로도 갈 수 없는 그런 어느 한때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자기 위치에서 막연하나마 그 소망을 붙들고, 막연하나마 본성의 방향을 붙들고 갈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자리는 지극히 고독한 자리라는 겁니다. 자기 부모를 믿던 자리에서 그런 자리로 떨어졌으면, 가정과 같이 나가는 자리에서 그런 자리로 떨어졌으면, 그 부모와 가정을 다 잊어버리고 가정이 가야 할 내일의 소망의 자리를 그리면서 고독한 자리에서 슬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모습을 자신이 발견하지 않고는 동정의 손길, 혹은 새로운 인연을 찾을 수 있는 길이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개인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인류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세계 인류가 지금까지 자기 나름의 노력을 한답시고 삐꺽대고 가다가 그 방향을 전부 다 좌절시켜 놓고, 방향을 막아 놓은 데 대해 자기 스스로를 지탄할 수 있는 그런 인간상이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바라 나왔던 것이 전부가 허사이기 때문에, 다른 면에서 막연하나마 본성을 붙들고 옛날에 자기가 찾아 나오던 이상의 노력을 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려는 그런 몸부림이라도 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되어 몸부림치면서 어제보다도 새로운 작심과 결의의 마음을 가져 가지고 본성의 마음 방향을 향하여 몸부림칠 수 있는 그런 모습이라도 남기지 않고는, 하나님이 있다 하더라도, 절대자가 있다 하더라도 일을 할래야 할 수 있는 자리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 아니냐 하는 이러한 귀결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 개인을 두고 봐야 합니다. 여러분을 대해 '이제 이 이상 갈 수 있느냐' 할 때에 '갈 수 없다' 하게 되면, 그것은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는 절망일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있다면 우리 인간의 본성을 중심삼고, 나를 중심삼고 재차 출발할 수 있는 인연이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이 그런 자리에 섰는데도 가정이 더 나아갈 수 없게 될 때에는 더 나아가지 못하는 그 동기가 무엇이냐에 대해 자기 자신들을 반성하고 회개해야 됩니다. 안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왔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 자기 현재의 입장을 확실히 깨닫고 과거와는 달리 새로운 의미의 방향을 찾아 가지고 그 이상 결의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이 낙망의 자리라도 낙망의 자리가 되지 아니하고, 그것이 비참한 정상을 갖춘 자리라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그 무엇이 출발할 수 있을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개인과 가정이 그러하면 국가도 그러한 것이요. 세계도 그럴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우리는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개인도 현재 그러한 자리, 절망이면 절망의 도상에 부딪쳐 있는 것입니다. 개인이 그러하기 때문에 나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자기 가정의 부모도 그러한 운명에 서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나라도 역시 그러한 운명에 서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이 대한민국을 포괄하고 있는 이 세계도 역시 그러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자리에 선 사람으로서 이러한 자리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이러한 자리에 처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가정을 끌고 가더라도 결국은 절망에 부딪치는 것이요, 대한민국이 현재에 어려운 자리에 서 있지 않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러한 자리를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 서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그런 자리에 서 있고, 가정이 그런 자리에 서 있고, 나라가 그런 자리에 서 있고, 세계가 그런 자리에 서 있다면, 만일에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는 어떠한 자리에 서 있느냐 이겁니다. 우리 인간끼리라면 전부 다 그런 자리에 서 있을는지 모르지만, 절대자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은 어떠한 자리에 있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마저 그런 자리에 서 있다면 그건 안 될 일입니다.
자기 개인의 소원을 중심삼은 자신의 일생도 인간이 미급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미완성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살이, 우리 일생인 것을 긍정하게 될 때, 우리 인간은 그렇지만 절대자에게 있어서는 그럴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우리는 지금까지 방향이 다른 길로 나왔지만, 절대자라는 분은 그럴 수 없는 방향을 취해 나왔을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 절대자의 출발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인간이 출발한 그 태초에서부터 출발했을 것이고, 인간의 역사과정과는 다르지만 절대자인 하나님의 역사과정은 그런 방향을 취해 나갔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방향을 향해 가야 하더라도 인간을 통해서 인간과 더불어 가려면 할 수 없이 그 방향을 중지시켜 놓고, 중간적인 다른 것을 세워서라도 접근시켜 나갈 수 있는 전진적이요 발전적인 방향을 취해 가지고 최후에는 일치점, 귀결점을 바라고 나오는 분이 하나님임에 틀림없을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 때가 어떤 때냐 하면 이 세계의 끝날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무엇이 있어 가지고, 우리 민족이 영원히 가야 되겠다고 몸부림이라도 치는 그런 정상이 남아지고, 혹은 전부 다 손을 들고 '아! 이거 큰일났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때가 온다면, 인간이 이제까지 가던 방향이 하나님이 소원하던 방향과 달랐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이 있다면 그것이 절망의 기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비약할 수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거기에서 모험을 할 수 있고, 자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우리가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상대적인 자리에서 절대권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버릴 수 없다면 이런 어려움이 있으면 있을수록 어느 한 곳에서…. 하나님이 내일의 소망을 갖지 못하고 절망 가운데 있는 인간에게 주시려는 소망은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소망이 하나님 자신을 위한 소망이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취할 수 있는 소망이라면, 인간은 반드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과 반대, 혹은 각도의 차이가 있는 방향일지 모르지만. 또 다른 하나의 새로운 방향이 있을 성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이 있고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긍정한다면 불가피하게 내려지는 결론이 아니겠느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길은 하나님의 뜻을 세우기 위해 따라 나오는 길입니다. 그러기에 종교의 길에는 '끝날'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 끝날이라는 것은 개인의 생활, 운명을 중심삼고 설정되는 것이 아니요, 한 국가의 운명을 중심삼고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를 중심삼고 끝날이라는 것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냐고 우리는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끝날에는 지금까지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붙들고 끝날을 대하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소망을 남겨줄 수 없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끝날이 있는 것이 아니냐? 소망을 남길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끝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과정에 머물 수 있는 자리지 끝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절망에 부딪치게 될 때에는 인간과 하나님이 같은 소망의 길을 찾아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지고지선(至高至善)이신 하나님과 더불어 보조를 맞출 수 없는 악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 거기에는 끝날과 더불어 새로운 길이 우리와 방향을 달리하고 찾아올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논리적인 결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 그러면, 그런 때가 된다면 피할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이겠느냐? 자기를 생각하고 현재를 생각하는 사람은 그때를 피해 갈 길이 없다는 겁니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피할 길이 없다는 거예요. 왜? 자기만을 생각했다는 것 자체는 이미 절망할 수밖에 없는 자체를 생각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요? 자기의 가정을 생각하는 것은 절망한 가정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나라를 생각하는 것은 절망한 나라를 붙드는 것입니다. 세계를 생각하는 것은 절망한 세계를 붙드는 것이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세계적인 부정을 제시할 수 있는 색다른 자기를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는 문제가 문제될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이 끝날을 부정할 수 있는 자기를 어떻게 발견하느냐 이거예요. '현재의 부정이다. 현재의 극복이다' 하는 이것이 현재의 실존철학을 중심삼아 가지고 논의되고 있지만 신이고 무엇이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것을 찾기 전에 부정할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이 선결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어떻게 부정하느냐 이겁니다. 오늘날 이 세계를 부정할 수 있는 나, 혹은 나 아닌 또 다른 무엇을 어떻게 발견하느냐 이겁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길이, 혹은 그러한 가능성이 없는 한 우리 앞에 이상적인 세계, 하나의 세계는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현재가 그런 때입니다.
민주세계를 지도하고 있는 선진국가, 미국 같은 나라가 세계를 책임질 수 있겠느냐? 민주세계의 그 이념을 실천하여 세계화시킬 수 있는 책임을 질 수 있는 주체국이냐? 이미 실험을 끝낸 그 틀거리를 우리는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이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실험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패의 결과로 해결지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현재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산주의 가지고 그렇게 될 것이냐? 그것도 이미 실험이 끝났습니다. 이제는 무엇 갖고? 민주세계도 아니요, 공산세계도 아닌 무엇을 갖고?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주장하던 최고의 이념, 세계관이라는 것은 망상적이나마, 혹은 몽상적이나마 혹은 추상적이나마 어떻든간에 그것을 고대해 나오던 그 길이 이미 다 끝나 버렸다 이거예요. 실험해 봐 가지고 끝났다 이겁니다.
그러면 무엇을 바랄 것이냐? 그러기에 만일 인간 외에 어떤 무엇이 있거들랑 이제는 손을 들고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하는 자체가 되어야 하고 '우리는 안 됐습니다' 하는 현재를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의 자체 정비를 어떻게 서두르느냐 하는 문제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맡깁니다.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당신 앞에 맡깁니다. 죽는 것도 당신에게 있고, 사는 것도 당신에게 있습니다. 이왕 죽일 바에는 오늘의 이와 같은 자리에서 죽이지 마시고, 당신이 소원하시는 방향에 접근시켜서 기쁘게 죽을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주십시오' 해야 합니다. 여기서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죽겠다고 하는, 새로운 각도의 소원을 희망하면서 죽겠다 하면 살 길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이러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을 우리가 세포로 느낄 수 있는 현재가 아니냐 이겁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이 알고 보고 있다면, 만일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상에 와 가지고 권고한다면 '야, 너희들 살겠다고 해라' 이렇게 가르치겠느냐 이겁니다. 아니라구요. 그 답이 무엇이냐면 죽기를 바라야 살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밖에 답이 없다구요.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를 위하는 자리에서는 살 가능성이 없지만, 자기를 포기하고 새로운 그 무엇을 찾아 나가는 사람에게는 살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외에 다른 어떤 문제를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이미 때는 그런 때가 됐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그런 때를 맡을 수 있는 나 자신이 됐느냐? 가정을 끌고 갈 수 있는 여러분도 말고, 나라를 위할 수 있는 충신의 절개를 지키는 여러분도 말고, 성인의 도리를 다해서 세계를 위한다는 그런 입장도 말고,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나 자신이 돼 있느냐? 또, 자체를 정비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새로운 방향을 가려 가야 되겠다고 몸부림이라도 치고 안간힘을 다 쓰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 때라는 것은 소식을 전달하고 찾아오지 않습니다. 끝날이라는 것도, 모든 것을 통고해 놓고 그날이 오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우리 인류 앞에 왔습니다. 그러면, 그 때가 왔다가 그냥 지나가든가, 지나가지 않으면 나와 관계를 맺어 가지고 '오기를 잘했다' 하든가 '온 것이 안됐다' 하든가 두 가지 중에 답을 내고 가야 할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누구를 중심삼고? 나를 중심삼고…. 그것이 나를 중심삼고 그래야 되고, 가정을 중심삼고 그래야 되고, 나라를 중심삼고 그래야 되고, 세계를 중심삼고 그래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결론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게 될 때, 여러분은 그러한 한 개인만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길 바라겠어요? 개인이 그랬다 하더라도 가정이 가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가정이 가는 길을 찾았다 하더라도 나라가 가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나라가 가는 길을 찾았다 하더라도 세계가 가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지금 때는 한 개인의 해결, 나라의 해결, 세계의 해결이 단계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이 못 했으면 가정으로 갈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 돼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가정으로 향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가정이 안 됐으면 나라로 갈 수 있는 단계, 차원 높은 단계가 남아 있다면 더 노력하면 그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나라가 안 됐으면 세계로 갈 수 있는 단계에서 더 노력하여 국가의 새로운 방향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이 나올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전부 다 나 하나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내 개인의 문제인 것과 더불어 가정의 문제요, 가정의 문제인 것과 더불어 나라의 문제요. 나라의 문제인 것과 더불어 세계의 문제요, 인류의 문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런 자리에서 자신을 가만히 생각해 볼 때, 나는 개인을 중심삼고도 소망을 둘 수 없는 사람이요, 가정을 중심삼고도 소망을 둘 수 없는 사람이요, 나라를 중심삼고도 소망을 둘 수 없는 사람이요, 세계를 중심삼고도 소망을 둘 수 없는 사람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러면 이런 때에 있어서 나는 개인을 중심삼고 수습하려다가 끝장을 보고 말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인간이라는 것은 개인만을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나온 것입니다. 일을 하려면, 이왕지사 그럴 수 있는 운명이라면 개인을 버리고 세계의 방향을 중심삼고 세계의 운세와 더불어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일을 찾아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죽더라도, 망하더라도 개인만을 위해 가지고 몸부림치다가 망한 것보다는 나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겁니다. 안 그래요?
나라를 위해 가지고 몸부림을, 안간힘을 다 하다가 절망에 부딪치는 것보다도, 세계를 위해 가지고 몸부림을 치다가 절망에 부딪쳤다면 그는 자기 현실을 위해 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두고 미래를 위해 산 사람이라고 할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노력하고 피땀을 흘렸다는 그 사실들은 현재 자기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닐 것이냐.
이렇듯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이 찾아오는 데는 어떠한 사람을 찾아오겠느냐? 만일에 멍텅구리가 되어 가지고 미래에 대해서 바라지 않고 망한 그런 두 패가, 혹은 두 사람이 있다 하게 되면 하나님은 누구를 더 동정할 것이냐 할 때, 개인만을 중심삼고 끝날을 맞는 사람보다도 세계를 자기의 소망의 터전으로 해 나오면서 몸부림치다가 망한 자리에 떨어진 사람을 더 동정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개인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살겠다고 하는 사람을 더 동정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어떠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어지느냐 하는 결론이 여기서 나옵니다. 개인을 위해서 싸워 나온 사람보다도, 개인이 망하더라도 개인을 중심삼고 망하게 될 때에는 동정을 받을 수 없지만, 미래의 가정을 위하여 효의 도리, 형제의 사랑의 인연을 붙들고 미래를 건설하겠다는 사람은 동정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살지 못한 사람은 망하더라도 하나님의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고, 가정을 위해서 미래의 소망을 품고 나온 사람은 개인이 망하는 시대를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개인보다도 가정을 염려하는 그 사람을 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나마 꺾어 놓으면 소망의 가정을 이어받을 수 있는 길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을 실천 못 했더라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개인보다도 가정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그 길에 있어서 망하더라도 소망의 하나님의 마음을 붙들고 쓰러질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은 두말할 것이 없다는 거라구요.
가정과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 가정을 위하는 사람보다도 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최후를 맞은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들이 남아질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나라보다도 세계를 염려하는 그런 국가와 그런 사상이 있게 된다면 그 국가와 사상이 남아질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그것은 두말할 것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도리라는 것은 개인주의적인 도리가 아닙니다. 일족의 가정을 중심삼고 가정주의의 도리가 아닙니다. 민족을 중심삼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의 도리가 아닌 것입니다. 세계주의의 도리인 것입니다. 그들은 그 시대에서 망해 가지고 죽어 갔지만 그들이 가진 사상은 역사시대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그것은 누가 남겨 줬느냐? 그 사람 자신이 남기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사상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래도 큰 것을 위해서 죽어가는 절망의 자리에 선 그 사람을 하나님이 동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주장하던 사상이 오늘날 인류역사, 문화세계를 이끌어 나왔는데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큰 인물 하면 그 큰 인물은 자기 짐만을 꾸리는 사람이 아니요. 자기 나라의 짐만을 꾸리는 사람도 아니요, 세계를 위해서 세계의 짐을 꾸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더 큰 인물은 어떤 인물이냐? 이 세계의 살림살이를 꾸리는 것보다도 절대자인 신이 있으면 신의 살림살이까지도 꾸리겠다고 하는 사람이 아닐 것이냐?
이렇게 보게 될 때, 오늘날 성인이라는 반열에 선 사람은 신의 살림살이를 중심삼아 가지고 꿈꾼 사람들이지, 인간의 이상을 중심삼고 살림살이를 꿈꾼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종교의 종주(宗主)더라 이거예요. 예수, 공자, 석가모니, 마호메트 같은 사람, 그렇지요? 그들은 인간의 살림살이를 꿈꾼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살림살이보다 더 차원이 높은 이상적인 살림살이의 본체가 되시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하늘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상을 그려 나왔던 분들이 아니냐?
이걸 볼 때에, 개인을 위해 죽어가는 것보다도, 자기 개인을 위해 죽어 가는 것보다도 자기 개인을 희생하여 가정을 위해서 죽어간 사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가정을 위해서 죽어가는 가정보다도 나라를 붙들고 나라를 위해서 죽어가는 그런 가정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가 자기 민족과 국가만 위해서 싸워 나가는 것이 아니고 세계를 위해 싸워 나가는 그런 민족과 국가라면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인간 끼리끼리가 아니라, 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신의 나라를 위하여 신의 이상세계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최후에 남아지는 사람으로서 신의 이상을 꿈꾼 그런 인간상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은 현실적인 사실로 미루어 보아 불가피한 결론이라 하겠습니다. 틀림없이 그렇다구요.
하나님은 그러한 역사를 추구해 나오기 때문에 끝날이 오는 것입니다. 이는 개인의 끝도 끝이지만 가정의 끝도, 혹은 민족의 끝도, 국가의 끝도, 세계의 끝도, 전부가 끝이 되는 것입니다. 그 끝날에는 전부가 망하더라도 전부가 망하는 그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남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 없이는 인간세상을 수습할 수 없겠기 때문에, 반드시 남겨야 할 인물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남아질 인물은 어떠한 사람이냐? 그는 개인을 위해서,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사는 주의라든가 사상이라든가 하는 생활 방법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개인주의 사상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체주의면 되느냐? 인간을 위주한 전체주의면 되느냐? 인간을 위주한 전체주의 가지고도 안 됩니다. 인간을 초월해서 신을 위주한 전체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전체주의가 되면 그것은 다시 개인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욕망이 무엇이겠습니까? 남자로 태어났으면 상대가 될 수 있는 여성을 맞는 것이 최대의 소망일 것입니다. 여성을 맞아 가지고 행복을, 사랑을 중심삼고 자기의 소원성취가 다 이뤄지게 될 때에, 그 소원은 횡적 소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횡적인 상대적 인연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종적인 소원이 거기서 출발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끝난 그런 자리에서 새로운 생의 출발이 벌어지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자녀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만이 사랑을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이 서로서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기를 바라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승리의 기점을 중심삼고 소원하던 것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도달 못 했다면 그것을 바라는 사람, 즉 세계적인 입장에서 바라는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은 그래도 제 2차적인 관심을 가지고 세계가 망하는 시대에 남겨 놓을 것이 아니냐? 그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세상 것과 하나님 것은 반대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세상이 가는 길과 하늘이 가는 길을 반대되는 길로 말했습니다. 세상과 하늘이 서로가 합할 수 없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상충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충될 수 있는 내용, 절대적인 뜻을 품기 위해서는 현재의 입장에서 상충될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충된 자리에 서는 사람이란 현재의 생활과 현재의 인생관을 부정하는 자리에 선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독실한 종교인들입니다. 특정한 타입의 종교인들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그래도 끝날에 남을 수 있는 소망의 무리는 인간만을 위하는 무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움직이는 그런 무리입니다. 그런 무리 외에는 다른 길이 없어요. 이건 여러분들이 느낄 거라구요. 지금 때가 그런 때입니다.
여러분이 대한민국 백성으로 태어났지만,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은 여러분이 바라는 이상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북 사람도 새로운 통일을 바라고 있고 이남 사람도 통일을 바라고 있는 거라구요.
이 세계를 볼 때에 이 세계는 좌우로 갈라져 있습니다. 민주세계에 사는 사람이 이 세계가 자기의 이상 동산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라는 겁니다. 민주세계가 바라는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세계도 역시 공산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둘 다 실험해 본 결과에서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현재가 아니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다 차고 지나가게 되면 끝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가 더 높은 차원의 것으로서 매매되고, 매매라는 말이 이상하지만 왕래되어야 할 것인데 불구하고, 더 낮은 차원의 것으로 왕래되는 결론을 보게 되었다면 끝날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물질문명이 인간이 가치시하는 이념을 통할 수 있는 그러한 뒷받침이 못 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문명을 통한 현재 세계에 있어서 고차원적인 이상의 세계를 추구할 수 있는 길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보다도 낮은 것을 중심삼고는 이상을 소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높은 차원의 것 이외에는 있을 수 없겠기 때문에, 끝날에는 종교의 세계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를 중심삼은 승리의 세계가 온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러한 것을 위주로 해 나왔기 때문에, 그런 목적의 귀결점을 확실히 가르쳐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끝날이라는 것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때에 처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정비를 해야 됩니다. 개인을 위해서 정비하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가정은 이렇게 이렇게 정비돼 있어야 됩니다. 가정이 정비되는 데에는 엄마는 이렇게 가고 아빠는 이렇게 가면 안 됩니다. 엄마 아빠가 같은 방향에서 정비돼야 됩니다. 그렇지만 엄마 아빠가 정비된 그런 자리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아들딸이 있으면 그 아들딸을 합하여서 정비된 방향을 가려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끝날은 뭐냐 하면 청산짓는 시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정비해야 됩니다. 그 정비에 합격할 수 있는 사람은 남아지는 것이요, 합격할 수 없는 사람은 낙엽이 되는 것입니다. 그건 불가피하다구요.
자, 이렇게 보게 될 때, 여러분 개인이 정비돼 있습니까? 가정이 정비돼 있습니까? 나라가 정비돼 있습니까? 세계가 정비돼 있습니까?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개인으로 가고 난 후에는 가정이 가야 할 텐데…. 내 개인이 다 간 다음에 가정으로 출발했으면 좋겠다' 그래 가지고는 안 되겠다구요. 가정이 다 간 후에 국가로 출발해서는 안 되겠다구요. 국가가 가고 난 후에 세계로 출발해서는 안 된다구요. 될 수 있으면 세계의 출발과 동시에 나라가 가고, 가정이 가고, 개인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상적인 길입니다.
그럴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매를 맞아도 한꺼번에 맞고 말지요. 매도 먼저 맞는 녀석이 좋다고 하잖아요? 매맞은 녀석이 발을 펴고 잔다고 하듯이 말예요. 이왕에 그렇게 지지리 모진 운명으로 끝날 바에는 내 개인으로 가다 허덕이지 말고 개인의 운명을 뭉뚱그려서 가정의 운명과 범벅을 만들고, 가정의 것을 뭉뚱그려서 나라의 것과 범벅을 만들고, 나라의 것을 전부 다 뭉뚱그려서 세계의 것과 범벅을 만들어 가지고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방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첨단에 선 우리의 단말마적인 요구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런 것을 잘 알 것입니다. 만일 그런 것을 알아 가지고 그러한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그 하나님은 멍텅구리 하나님일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인간을 찾아온 보람을 느끼지 못 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방안이 나오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내 개인을 부정하라 할 때 '내 개인을 가정보다 더 중요시한다' 하게 되면 그 개인은 망하지 말라고 해도 망하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그러한 개인은 망하지 말라고 해도 망하게 돼 있다는 겁니다. 또, '아이고, 나라고 무엇이고 우리집, 내 아들딸' 하는 그런 사람, 그런 가정은 망하지 말라고 해도 망하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섭섭하지만 할수없다구요. '아이고 우리나라만, 우리나라만…' 한다면, 그 나라도 망하지 말라고 해도 망하게 돼 있다구요.
지금 남북통일을 바라고 있는데, 남북통일을 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냐? 차원 높은 통일의 내용을 제시하지 않고는 통일이 될 수 없습니다. 이북에서 이남에 와 가지고, 또 이남에서 이북에 가 가지고 서로가 '우리 하자는 대로 하자' 할 때는 되지 않습니다. 서로가 손해나는 자리에서는 통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서로가 플러스될 수 있는 데에서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남자 여자가 결혼해 가지고 서로 마이너스되는 입장에서는 하나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로서로가 이익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세상, 우리 나라의 역사를 통해서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현재 나가는 걸음걸이, 주의 가지고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인간 사이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위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별수없이 그 하나님을 붙들고 가는 길 외에는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북도 하나님을 붙들고‘아이고!’하고, 이남도 하나님을 붙들고‘아이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아이고' 하는 모습이 불쌍하고, 뒤넘이 치는 모습들이 불쌍하지만 거기서 새로운 모색 방안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도 가정을 위해서 죽어야지. 아이고 가정을 위해서…' 하는 사람은 그래도 자기는 망하더라도 가정은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가정을 중심삼고 '아이고 가정을 희생시키다니, 통일교회 믿으면 가정이 파탄이야! 아이고, 난 못 가겠소' 하겠지만 가정 보다도 더 차원 높은 나라를 위한 통일교회이니만큼 통일교회가 나라를 위해 가정을 파탄시킨다면 그 가정은 망하더라도 통일교회가 바라는 나라는 남아질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건 불가피하다구요.
그러니 나라를 저버리더라도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 하게 될 때, 대한민국은 망하더라도 세계는 살아 남을 것입니다. 세계가 살아 남게 되면 망한 대한민국은 다시 살아나기 마련입니다. 큰 것을 살려 놓고 내것도 살려 놓으니 결국 나는 이래도 손해가 아니요, 저래도 손해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지혜롭고 이로운 인생길이라고 볼 수 있는 거라구요. 안 그래요? 세계를 다 희생시키더라도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겠다 할 때에, 세계는 망하더라도 하나님만을 위하는 사상만은 살아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꿈꾸어 나온 것이 종교인들, 어리석은 종교인들입니다.
그렇지만 가만 보면, 종교인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구요. 때를 맞기 위해 기다리기 때문에 어리석은 놀음이지, 때가 못 돼서 행사를 못 하는 것뿐이지, 알겠어요? 이건 양반 자식도 별수없다구요. 역적으로 몰리게 되면 별수없다는 것입니다. 피난살이를 해야 되고, 망명객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런 때는 성명이 없는 거예요. 여기서 큰소리치면 그늘에서 살게 마련이니. 약자 된 신세의 탈을 아니 쓸래야 아니 쓸 수 없는 것이 그 양반 자식의 신세가 아니겠느냐?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그러니 세계를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라는 겁니다. 자신도 없는 무슨 주의나, 무슨 세계관, 무슨 국가관, 무슨 가정관, 무슨 부부관, 무슨 사랑관이니 하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붙들고 자신 있다고 하게 되면 그 사람은 남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것을 알기 때문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의 세계와 인류를 사랑하라' 하지 않았습니다.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겁니다.
사람이 본시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니 그 귀결점에 딱 갖다 맞추려고 하는 것입니다. 맞춘다고 해서 '하나님이 나한테 와서 맞춰 주십시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과 하나님이 반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맞추려면 등을 대고 맞추라고 하는 겁니다. 등을 대고는 맞추어지지 않으니까 할수없이 하나님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전부 다 하나에서 백까지, 죽더라도 전부 갖다 맞추어라 이겁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과 맞추는 날에는 망할 줄로만 안 세계는 거기서부터 살아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종국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인간 자체의 상실이 표면화되면 될수록 그것으로 끝나는 인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왜? 나는 죽더라도 하나의 이념을 찾고 있는 본성의 마음은 남아지기 때문에, 그 길을 지켜 가지고 인류와 더불어 사다리 길을 걸어 나온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그 길을 통해서 상봉할 수 있는 한날이 있어야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하고 나왔고, 또 하나님만을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독재자가 아니라구요. 사랑하라는 것은, 너는 나를 사랑하라고 한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네 사랑을 다 받고 난 후에는 틀림없이 나도 너에게 사랑을 하겠다'고 하는 그 말입니다. 사랑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라는 그 말은 일방적인 말 같지만 일방적인 말이 아니예요.
이렇게 볼 때, 틀림없이 하나님과 세계와 나라와 가정과 개인이 같이 가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뭉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뭉쳐 가지고 몽땅, 한꺼번에 가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6천년 역사는 개인에서부터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나온 역사인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 천주복귀, 하나님의 사랑복귀 8단계를 거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는 이 8단계를 중심삼고 하지요? 아버지여, 개인복귀 완성하고 가정복귀 완성하고…. 그것이 뭐냐 하면 개인복귀 완성은 가정 가운데 있는 것이요, 가정복귀 완성은 종족 가운데 있는 것이요, 종족복귀 완성은 민족 가운데 있는 것이요, 민족복귀 완성은 국가 가운데 있는 것이요, 국가복귀 완성은 세계 가운데 있는 것이요, 세계복귀 완성은 천주 가운데 있는 것이요, 천주복귀 완성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전부 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천주적으로 하나되자는 거라구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심정역사관을 중심삼고 천주주의 (天宙主義)를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런 통일교인은 멍텅구리들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오늘 밥 먹기도 바쁜데 천주주의? 흥, 오늘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데 뭐 영원무궁한 이상주의? 그 미친 녀석들'이라고 할지 모릅니다. 미치기야 미쳤지요.
우리의 욕심, 우리의 소원,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한꺼번에 하자는 거라구요. 죽으려면 모가지를 딱 잘라 죽어야지 손가락을 딱딱 잘라서 죽겠어요? 그걸 원해요? '아이쿠, 내가 조금이라도 더 살아야 할 텐데…' 하고 손가락 하나 잘라 놓고 '아이고, 조금 더 살자구' 그러고, 또 팔목을 잘라 놓고 '아이구 조금 더 살자구' 그러고…. 이렇게 하나하나 자르길 원해요, 뭉청 자르길 원해요?
우리 아가씨들, 어떤 것을 원해요? '아이고, 시집도 못 가 보고 죽으면 큰일이구만, 왼다리든 팔이든 하나 없더라도 시집이나 한번 가 보고 죽어야지' 그래요? 시집가 보고 죽으면 뭘해요? 그건 남편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배가되는 거라구요. '아이구, 당신은 나 때문에 불쌍하게 됐소' 하는 거예요. 고통이 배가된다구요. 이왕 죽을 바에는 혼자 죽는 것이 좋다구요, 안 그렇겠어요? 이왕지사 보따리 싸 들고 나설 바에는 역적보다도 충신의 보따리를 남겨 주고 죽어야 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게 돼야 된다구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뭐냐 하면 '에라 한꺼번에 싸워 버리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를 보라구요. 지금 통일교회가 하는 것을 보면 무섭다구요. 내 어제밤에도 청평에 늦게 갔다가 늦게 돌아왔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까 통일교회 문선생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바쁘게 돌아 다니는가? 누가 동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밤에 무슨 도깨비가 붙은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미치지도 않았는데, 그 무엇 때문에 이렇게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가? 그렇다고 하루에 밥 세 끼 먹지 다섯 끼 먹는것도 아니고, 지갑에 두둑하게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생겼다고 해도 보지도 못하고 나간다구요. 돈이 생겼다고 해도 난 말만 듣지, 만져 보지도 못하고 구경도 못하고 다 흘러가 버린다구요.
자, 이게 무슨 재미예요? 재미가 없다구요. 또, 그렇다고 해서 통일교회 식구라는 사람이, '선생님을 위해 죽겠소. 선생님이 가는 데로 따라가겠소'라고 맹세한 통일교회 식구라는 사람들이 '아이구 좋습니다. 가겠습니다'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구 나 싫소. 싫습니다' 이러고 있는데…. 이게 무슨 꼴이냐 이겁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 놀음을 하는 것은 이왕 지사 매를 맞을 바에야, 역적이 되려거든 그까짓 것 세계적인 역적이 한번 돼 보자는 것입니다.
세계적 역적이 되려면 충신이 되어야 합니다. 나라에 대한 충신의 역사를 남기지 않고는 세계적인 역적이 될 수 있는 길이 없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세계적인 역적이 되려는데 누가 가담시켜 주나요? 나라의 챔피언이 되어야 올림픽 대회의 선수로 출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그 나라의 역적이 되어야 세계적인 역적 클럽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라구요. 안 그래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까짓 것 먹다 죽더라도 한꺼번에 물고 죽자 이겁니다. 어디 소화시켜 보고 한번 해보자 이거예요. 그런 놀음이라도 해보고 죽었으면…. 만일에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싹 들게 되면 야, 이거 그래도 통일교회 패들 가운데 추려 가지고 쓸만한…. 누더기도 뒤적거리면 말이예요. 거기에서 보석반지가 나올 때도 있다구요. 그러한 가망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별수없이…. 인종지말을 당해 가지고 인간이라는 무리 가운데 그래도 그러한 가망성이라도 둘 수 있는 것은 우리 통일교회 무리들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맨 나중 인간으로 남아질 수 있는, 죽더라도 최후의 모습으로 죽자는 것입니다. 그것밖에 생각할 수 없다구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가 가르치는 것은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죽으라는 것입니다.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하는 것은 깡패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주의에서 깡패요, 통일교회 주의에서 사기꾼이라는 겁니다.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하는 것은 종족 앞에 사기꾼이요, 도적놈이다 이거예요. 깡패 도적놈 사기꾼이면 다 됐지요 뭐.
그러한 통일교회가 종족권을 만들었으면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라 이겁니다. 남들은 꿈도 안 꾸는데, 지금까지 통일교회라는 간판을 붙이고 대한민국을 구한다고 별의별 소문을 내면서 별의별 욕을 다 먹었습니다. 그렇다고 정부에서 후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동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걸 알아달라는 것도 아니라구요. 누가 알아주고, 사람이 알아주는 것, 그들은 전부 다 하나님보다 낮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알아줄 수 있는 길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 있어서 누가 알아 주겠으면 알아주고 말겠으면 말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구요. 뭐 세계야 알아주겠으면 알아주고 말겠으면 말고, 우리는 가는 거라구요. 이 길밖에 없지 않아요? 이건 여러분들도 이해가 될 거예요? 이러한 것은 끝날에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게 참 중요한 문제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왕에 매를 맞게 되면 한꺼번에 맞자. 우리는 세계를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이제는 통일교회가 어느 정도, 얼마만큼 기반이 닦아졌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더라도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을 거예요. 공산당이 들어와 가지고 전부 다 휩쓴다 하더라도 통일교회 사람들은 공산당권내에 사로잡혀 죽지는 않을 거라구요. 죽어도 통일교회 귀신이 되지…. 그렇지요? 여러분, 틀림없지요?「예」 죽어 가지고 공산당 세계에 가서 공산세계를 협조하는 사탄의 영이 될 거예요? 둘 중의 하나는 남아지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 거라구요. 망하지 않는다구요.
예수는 죽었지만 영적인 승리 기반이라도 남겼기 때문에 기독교가 망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문선생이란 사람이 없더라도 이 사상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다시 소생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제는 안심하고….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을 것이 아니냐고 생각 하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을 바라보고 대한민국을 뒤로 두고 세계를 살리기 위한 책임을 하겠다고 세계를 향하여 떠날 수도 있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런데 이 대한민국에 남아야 할 그 사람이 '선생님 가는데 나도 가겠소' 한다면 그건 안 됩니다. 그건 안 된다구요. 그래서 '이 녀석아, 여기 남아 있어' 하고 눈을 부릅뜨고서라도 남아 있게 하는 거예요. 눈을 뜨고 따라오려고 하면 눈을 빼어 봉사를 만들어서라도 남겨 두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문제는 뭐냐 하면 '세계를 짊어지고 매맞겠다. 세계를 짊어지고 죽어보자'고 하는, 하늘편에 선 사람이 있지 않고는 수습할 길이 없습니다. 수많은 종교가 있고 수많은 기독교가 있는 이 문화세계 권내에 망운이 뻗쳐 가지고 이제 갈 수 없는 세계가 되었기 때문에 그걸 다 집어치우고 새로운 방안을 찾아 가지고 죽든 살든 하나님 앞에 배밀이를 하고 싸움을 할 수 있는 패당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나 모르겠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모른다 하더라도 나는 하나님을 위해 싸우겠다고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10년만큼 반대하고 모른다 하더라도 난 11년만큼 반대받고 당신을 위해 가겠다고 한다면 하나님도 별수 있어요? 10년이 지난 후에는 하나님도 '아이쿠 할 수 없지만, 그 녀석 어찌나 지독한지…' 그럴 것입니다.
세상에도 그렇지 않아요? 짝사랑하는 사내가 보기 싫지만 그가 '난 당신을 위해 났고, 당신을 위해 죽을 것이오.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그렇게 죽겠소. 낮이나 밤이나 당신을 위해 살겠소' 그런다면 여자의 마음도 살짝살짝 변하기 마련입니다. '암만 찾아봐도 그 사람 같은 사람이 없다. 누가 나를 위해 죽을 거냐? 나 위해 죽을 사람은 저 사람밖에 없다. 사랑은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도 조금 낫지 않느냐. 얼굴이 조금 못하지마는, 그것은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해 가지고 여자의 마음이 살금살금 돌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여자들, 그래요, 안 그래요? 우리 아가씨들.
남자들도 그렇습니다. 남자들이야 더 하지요. 그렇다구요. 끈기 있게 정성을 들이고 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자의 마음에 여자의 마음이 살랑살랑…. 소식이 없는 것 같지만…. 겨울 가운데서 봄이 되는 것을 누가 아는 사람이 있어요? 겨울과 봄이 바꿔질 때 '야! 이 시간이 진짜 봄이다. 봄맞이하자' 하고 깃발을 들고 축하하는 사람 봤어요? 슬쩍슬쩍 안 가는 것 같기도 하고 가는 것 같기도 한데, 어느 사이에 오지 않는것 같은 봄이 와서 떡 자리잡아 가지고 한 계절은 가 버리고 또 한 계절이 와 있더라 이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아침이 온 줄 알았어요? '아침은 어느때부터냐? 해 떠오르는 시간부터다. 그 아침은 세계적으로 전부 다 다르다'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일본의 아침과 한국의 아침과 중국의 아침과 저 구라파의 아침은 다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지구의 아침이 언제냐 할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구요. 지구의 아침 때가 어느때냐? 그것은 하나님밖에 모르는 거예요. 왜? 지구가 뺑뺑 돌다가 햇빛을 받기 시작한 그때가 아침이라구요. 그 점을 모르지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의 경도선을 지나는 그때부터예요? 그것이 아니라구요. 전부 다 모르고 살고 있다구요.
이렇게 보게 될 때, 자 이거 통일교회가…. 아, 뭐 내가 얼마나 반대를 많이 받고 얼마나 생각을 많이 했다구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역사적 종말시대에는 '한꺼번에 전부 다 내가 책임지겠소. 내가 책임지겠소' 할수밖에 없습니다.
보라구요. 어느 한 나라가 비운을 맞이해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위기일발인 그런 시점에, 충신도 어쩔수 없는 때에 그 나라에서 그 전시대에 역적의 팻말을 갖고 있던 사람이 '여보, 걱정 마시오. 내가 이것을 책임지겠소' 했다고 합시다, 충신마저도 절망 가운데 있을 때 그것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한번 그렇게 해보라고 하겠어요. 하지 말라고 하겠어요? '에이 역적이 뭘 해, 이 자식아' 그러겠어요? '그 녀석이 역적이 될 만큼 배포도 컸으니까 한번 희망이라도 갖고 시켜 보자'고 할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는 망하더라도 나라는 남을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감옥에 있어서의 왕초가 충신 꼭대기를 디디고 충신 대신 국운을 책임져 가지고 그 책임을 하게 될 때는, 그 다음에도 역적이예요? 그렇게 되면 충신도 역적이었던 그 사람에게 가서 고개를 숙인다구요. 별수없다구요. 고개를 숙이겠어요, 안 숙이겠어요?「숙입니다」 군주가 있다면 그 군주도 그 놀라운 재주면 재주, 실력이면 실력, 수완이면 수완에 감탄하면서 '아! 우리나라는 이제 너로부터야…' 할 것입니다. 그때 그 너로부터가 역적 아무에게서부터이겠어요? 아닙니다. 충신 간판을 돌려 붙이게 되고, 충신이 역적이었던 사람 앞에 무릎을 꿇는 자리에서 충신의 팻말을 찾을 수 있는 길도 있을 성싶다 이겁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럴 길도 있지요?「예」
대한민국에 있어서도 그렇잖아요? 말하자면, 이북에 첩보요원을 보내게 될 때에는 전부 다 살인강도들, 없애야 될 사람들을 내세워 가지고 보내게 됩니다. 전부 다 그런 사람들을 내세워 가지고 이 나라 백성 누구도 못 하는 놀음을 시켜서, 그 사람들이 그 일을 해낼 때에는 이 나라의 당당한 국민으로서 해방시켜 주는 놀음도 있다구요. 마찬가지라구요.
자, 우리 통일교회는 그 놀음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왕지사 망하라고 하는 그런 욕을 먹는 패들이 말이예요. 이미 환경적으로 다 망하게 됐다구요. 망했잖아요? 어머니 아버지한테 이미 쫓겨났으면 망한 거지 별수 있어요? 형제들한테 쫓겨났으면 망한 거지 별수 있느냐 말입니다. 그래 가지고도 뭘 살겠다고 뒤적뒤적하면 '어구구…' 이거 기가 막힌 꼬락서니라구요. 그래 살아서 뭘해요? 또 그뿐 아니라. 세상에 자기 스승들까지도 '퉤퉤' 침을 뱉는다구요. 그렇게 살아 뭘해요? 또 그 나라의 주권자들까지도 '아, 통일교회, 하필 그…. 뭘 해? 이 녀석들' 하는 거예요. 그러니 살아서 뭘해요.
또,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통일교회 문선생은 불쌍합니다. 일본에 가게 되면 일본 사람들이 '어, 문선명이가 왔구만' 하고, 미국에 가게 되면 '아, 미스터 문이 왔구만' 이럽니다. 이거야 뭐 거치적거리는 게 많아요. 그게 살 재미가 있겠어요? 꼭 남의 집 살림하는 거와 같습니다. 이건 머슴살이, 낯설이살이다 이겁니다. 이 나라에 있어서, 이 세계에 있어서 머슴살이라는 것입니다. 자, 이 머슴살이의 족보라는 게 이게, 백정의 족보라는 것이 이게, 옛날에 충신들이 역적으로 몰리게 되면 백정이 됐다구요, 백정.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야 이건 뭐 백정 놀음하고 있구만' 하면 손가락질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면 모르지만, 만약에 역사를 뒤집어 엎어 가지고 밝힐 수 있는 공판정이 있거들랑, 그 백정의 후손은 그 나라의 가식적인 충신 이름을 가진 자들의 꼭대기에서부터 들이칠 것입니다. 소 잡던 망치로 그 충신의 이름을 가진 자들을 들이칠 것입니다. 그 때가 진짜 심판 때다 이겁니다.
보라구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머리가 깨졌고, 얼마나 사자밥이 되었고, 얼마나 사라져 버렸어요? 그 족보를 전부 다 들추어 가지고 새로운 세계의 앞에 걸어 놓고 한번 알아보자 하는 그런 운동이 안 벌어지겠어요? 그것이 이제 대심판이라구요, 대심판.
자, 그러면 맨 마지막에 다 망해도 남아질 수 있는 무리는 뭐냐? 아무리 생각해도 통일교회 문선생이 생각하는 방식 이외에는 없다 하는 것이, 아무리 내가 핍박을 받고 저 감옥에 들어가 영어의 몸이 돼 가지고 생각을 해보아도 이것밖에 결론이 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러고 있다구요.
내가 힘내기를 해도 누구한테 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구요. 무엇을 하더라도 지고 싶지 않다구요. 누구만큼 못나서 이 놀음하고 있는 거예요? 욕먹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세상에 그것도 하루가 아니라구요.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그 기가 막힌 자리에서 망하면 그것으로 사라지 겠지만, 기가 막히게 비참한 역사를 남기겠지만 그 기가 막힌 자리에서 기가 막힌 성공을 하게 될 때에 역사는 발카닥 뒤집힌다구요.
자, 그러면 여러분, 이왕지사 이래도 사판이요, 저래도 사판으로 이판사판인데, 어떡할 테요? 그래도 죽고 난 다음에 무덤에라도 찾아와 가지고 엉엉 우는 패가 있을 자리에서 죽고 싶어요, '아이고, 퉤, 잘 죽었다, 그 녀석' 그럴 자리에서 죽고 싶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죽으면 무덤 앞에서 '아이고 그놈의 통일교회 문선생 뭐 큰소리하며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더니 잘 죽었다, 그놈의 무덤. 퉤-' 하며 세상 사람은 그러고 돌아설는지 모르지만, 와 가지고 싫다고 침을 뱉을는지 모르지만 낮에 길을 막으면 밤에 와서 엉엉 울고, 밤에 길을 막으면 새벽에 와서 엉엉 울고, 새벽에도 길을 막으면 잠깐 아침 해뜰 무렵에, 문지기가 잘 때 들어가서 엉엉 울다가 매맞아 쫓겨나고 하는 무리가 계속적으로 있다면 그 무덤은 성공한 사람의 무덤이라구요.
그래서 여러분들, 어디 선생님이 죽게 되면 와서 한번 울어나 주겠어요? 침뱉을래요, 울래요? 응? 여기 남자들, 울래요? 찾아오지도 않을 거라구요. 그래 한번 찾아가 봐야 되겠다고 생각해요? 어디 그렇게 생각해요?「예」 아이구야. 정말 그래요? 선생님을 찾아오려고 하지만 못 찾아와요. 선생님은 뭐 천주주의 사상가라구요, 천주주의 사상가. 그 천주주의를 이를 때까지는 고생바가지라구요, 고생바가지. 자, 그렇다고 해서 이 고생탈을 벗고 싶으냐? 벗었다간 안 된다구요. 벗었다가는 이건 뭐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구요.
나도 어떤 땐 가만 생각해 보면 내가 뭐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구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이구, 나에게는 청소년시대도 그저, 청년시대도 그저, 장년시대도…' 이젠 반세기가 넘어 가지고 내리닫이 인생길을 향하게 됐습니다. 자, 이건 일생 동안 고생만 하고 쫓김받고 그저 욕먹고 그저 뭐 이러고…. 옛날에 친구들하고도 기가 막힌 사정들이 많았다구요.(웃음) '자. 이러다가 죽겠구만! 그래 남는 게 뭐냐?' 할 때 그거 가만히 보면 남는 것이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없지 않다구요. (웃음)
자 이렇게 볼 때, 이왕에 죽을 바에는…. 내 배때기를 위해서 도적놈이 되고 살인 강도가 돼 가지고 죽게 됐으면 그 녀석을 두고는 어머니와 아버지도 '나 모른다. 나 모른다, 이놈의 자식아. 그는 우리 자식이 아니고 후레자식이다. 우리와 관계가 없다'라고 하며 형제들도 관계 없다고 할 것입니다. 전부 다 간판 내 붙이고 선전한다구요. 그렇지요?
그렇지만 부모 형제를 위해서 그 사람이 살인강도를 해 가지고 죽었다 할 때에는 어머니 아버지 혹은 그 형제들은 그 아들이요, 그 동생된 사람이 자기들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할 때 밸이 꼬여져 가지고 터질거라구요. '네가 죽는 대신 내가 죽을 수 있으면 죽어야 될 텐데' 하며 거기에 눈물이 남아지게 됩니다. 그렇지요? 남아지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자기를 위해서 그랬을 때에는 전부가 경멸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동네에 한 집안이 망하게 될 때, 그 집안이 그 동네를 위해서 일하다가 망했다고 동네 전부가 알게 될 때에는 '그 가정이 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이 망해야 될 것인데…' 이러는 거라구요.
마찬가지 이치라구요. 대한민국이 세계를 위해서 망하겠다고 하게 되면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습니다. 이걸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 때문에 망하고자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천주주의를 위해서 망하자는 거예요. 이 천주주의라는 말은 막연해서 여러분의 마음이나 생각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구요. 그렇지만 하여튼 제일 큰 주의라구요. 천주주의라구요, 천주주의. 하늘집이니까 하나님도 몰아넣고, 인간도 몰아 넣고 다 몰아넣자는 거예요. 그런데 떡 몰아넣기만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천주주의이긴 천주주의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천주주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정의 역사를 말하는 거라구요.
자, 이만한 것을 한번 찾겠다고 말하려면 이 세계에서 찾겠다고 하려면, 그것과 싸워 이기려면 세계에서 고생을 제일 많이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이 똑똑한 사람들, 고생을 제일 많이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많이 해야 됩니다」 많이 해야 된다구요. 큰 목적을 품은 사람은 그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시간적 투입과 노력의 투입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끈질겨야 되겠다구요, 끈질겨야. 어떤 때는 내가 볼때기의 살을 잡아당겨 보면서 '이놈의 볼때기 살이 끈질기기도 하지, 이놈의 가죽이 끈질기기도 하지' 그래 봅니다. 지난 날을 생각하며…. 별의별 고문을 받으면서 가죽이 터져 나갔지만 또 들어붙는 거라구요. 뭐 별의별 꼬락서니를 다 당했지만, 씻고 털고 나서면 멋진 신사도 될 수 있다구요.
자, 이렇게 말하면 '제목은 저렇게 해 놓고 선생님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해요' 하겠지만 이제 결론을 내린다구요.
지금 이러한 운명에 처해 있는 인간입니다. 알겠어요? 틀림없이 그러한 패들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물론이요, 개인이나 가정이나 물론이요, 나라나 세계도 물론 같은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여기서 단 한 가지 비법이 뭐냐? 끝날이 될 것인데 끝날의 해결 방안이 무엇이냐? 그 끝날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기 이 끝날 가운데 있는 가정 가지고는 안 되고, 끝날 가운데 있는 세계 가지고는 안 되고, 끝날 가운데 있는 우리들 가지고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탈피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세계 가운데 그러한 새로운 탈피를 하기 위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게 되면, 하나님도 망하는 세계를 그래도 인간을 위해 나오던 공적의 터전이라도, 실낱 같은 것이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지금 그 새로운, 색다른 무리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제 2의 교육 방안을 짜 가지고 출발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 이외의 방안은 하나님에게도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두고 볼 때, 그 길에 적중시키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 패들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적중시키는 그때가 어느때냐? 예수님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때라고 말했지요? 그야말로, 지금이야말로 그때입니다. 그러면 그때가 오되 간판 붙이고 오느냐? 아까 말한 것과 같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는 것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 해가 떠올라 가지고 아침이 되고 낮이 되는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생각하지 않은 기간에 전부 다 지나가 버리고, 또는 와 버리고 말더라 이겁니다. 이것이 우리의 주변을 중심삼은 모든 시간에 대한 여건들이 아니냐? 이것을 부정할 수 없을 거라구요. 그런 과정이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세계적인 때는 틀림없이 온다는 것입니다. 아침은 틀림없이 옵니다. 때는 틀림없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틀림없이 오기 때문에, 그때를 맞기 위한 준비를 해 놓지 않으면 다 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그런 때가 올 것을 생각할 때, 만일에 그때가 5년 후라 하게 되면, 여러분에게 있어서 5년 후에 온다 하게 되면, 5년 준비가 못된 자기 자신이 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얼마나 당황하겠어요?
때를 딱 그 점, 5년이다 해 가지고 딱 그 시간이 돼 올 때는 얼마나 바쁠 것이냐? 여러분, 사형수들이 말이예요. 아무 날 몇 시에 사형받는다 하게 되면 그 사형받을 날이 다가오기도 전에 질려 죽어요. 질려 죽는다구요. 밥이 먹혀지지 않고, 밥이 즐겁지 않아요. 그래 질려 죽는다는 거예요. 감옥살이 오래한 사람들의 사망율이 어느때 많으냐 하면, 출감하기 6개월 전부터 사망율이 많은 거라구요. 그걸 여러분은 잘 모를 것입니다. 선생님은 감옥살이도 많이 하고 그랬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구요.
금을 딱 긋고 있는데 똑딱똑딱하면, 아침이 됐으면 좋겠다고 기다리는 사람은 열두 시 땡 치고 난 뒤 똑딱똑딱 초침이 쓱쓱 돌아가는 소리를 듣게 될 때 '아이고 재미난다. 아침이 가까와 왔구만.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 텐데, 얼른 아침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얼른 와라, 얼른 와라'할 것입니다. 그때는 그 똑딱똑딱하는 초침 소리가 참 좋을 거라구요.
그렇지만 내일이 오면 그 아무날이 가까와 진다고 할 때, 똑딱똑딱 하는 그 소리에 '아, 아, 아…' 그 소리가 좋아져요. 싫어져요? 싫어져요. 좋아져요? 그걸 좋다는 녀석들은 미친놈이라구요. 싫어지게 되는 거라구요, 하루가 지나게 되면 '아-' 죽을 날이 가까와진다고 생각할 때에, 그때가 되면 될수록 얼마나 조급해지겠어요? 출감을 앞두고 일주일 동안은 잠을 못 자게 됩니다. 잠을 못 자요. 여러분 그건 모르지요? 밥이고 무엇이고 잠을 못 자요.
그러니 이런 일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도 초조해 하기 때문에, 그때는 될 수 있으면 그저 못살게끔 하는 그런 작전도 감옥에서는 해요. 한 일주일이라든가 한 달쯤 출감이 남게 되면, 그 전에는 일도 안 시키던 것을 그저 못살게 노동을 시키는 겁니다. 그저 뼛골이 녹아지게끔 몇배로, 벌렁벌렁 기어다니게끔 노동을 시킨다구요. 그렇게 노동을 시키게 되면 밥이고 뭣이고 숫제 잠이 와 죽겠는데, 나갈 생각은 차후다 생각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언제 나갈 생각을 할 여지가 있어야지요. 숫제 잠만 오는데. 그렇게 되면 밥도 없어 못 먹는 거라구요. 잠이 왜 안 와요? 그저 밥숟갈 놓자 마자 쿨쿨하는 거라구요. 그럴 때는 그저 할 수 없이 고생을 시키고 휘몰아쳐 가지고 생각지도 않은 놀음을 들이 시킨다구요. 그것이 사랑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뭐라구요. 「사랑이요」 사랑이라구요, 사랑.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끝날이 되는 줄 알게 되면 말이예요. '아이고 끝날이 몇 시 몇 분인데 똑딱 똑딱 가까와 온다. 세계가 이제 잿더미가 된다. 인류가 망한다' 하는 것을 인류가 안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해 준비한 사람도 못 가고…. 그 때에는 세상 사람들만이 질려 죽는 것이 아니라 준비해 가지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다 질려 죽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보면, 끝날을 하나님이 안 가르쳐 주길 잘했어요, 못했어요?「잘했습니다」 잘했다는 거예요. 야 이거 끝날을 모르는 게 아이구 얼마나 고마운지…. 알았다간 질려 죽는다구요. 만약에 아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이거 그날만 바라보고 잠을 안자면 큰일나겠으니까 그저 고생을 시키는 거예요. '이놈아!' 하며 알아서 하는 거예요. 그날을 기다리다간 말라 죽겠기 때문에 그걸 아는 하나님이라면 고생시켜야 된다구요. 그저 밤이나 낮이나….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말이예요. 통일교회 패들은 언제가 끝날이다 하는 것을 어느 정도 아는 패이기 때문에 이들을 살리는 길은 단 하나의 길밖에 없습니다. 그저 뼛골이 녹아지도록 이것들을 고생을 시키는 것입니다. 누더기 보따리를 씌우는데 그것을 입지 않겠다고 하거든 벗기고라도 입혀라 이거예요. 결국 이런 싸움하느라고 시간 보내는 거라구요. 싫다고 야단하더라도 입혀라 이거예요. 그런 반대작전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게 되면 뭐, 병 주고 약 준다는 말도 있지요? (웃음) 그런 말이 있잖아요? 야, 이건 통일교회에 들어맞는 말이다 이겁니다. 죽을 때는 약 주고 살 때는 병 주고…. 병 주고 약 준다는 그 말은 반대되는 말이지만 사랑의 부모로서는 이쪽도 필요하고 저쪽도 필요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난세에는 그게 필요합니다. 일본의 도꾸가와 이에야스 같은 사람은 말이예요. 그 난세에 막부(幕府)하고 관부(官府), 그 사이에 서 가지고 아주 다리를 잘 놓았습니다. 이쪽에 가서도 쏙닥쏙닥하고, 저쪽에 가서도 쏙닥쏙닥하며 병 주고 약 주고 하여 가만히 앉아 가지고, 그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쪽 대가리 없어지고 저쪽 우두머리 없어지고 해서 둘 다 없어지게 됐습니다. 그 다음엔 둘째번 대가리들이 또 싸워 가지고 없어지게 되면 그 때에 대장이 되어 가지고 왕초가 된 사람이 도꾸가와 이에야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3단계, 세째번쯤 되는 졸자들이 책임자를 대해서 '아이고 우리 선조로부터 모시던 분…' 자연히 이 놀음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게 수습해 가지고 통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렇게 해야 된다구요. 그게 지혜로운 사람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탄도 통일교회 사람보고 '야야 너희들 그러지 말고 우리 사탄나라에서 제일 좋은 복이 여기 있다'고 쏙닥쏙닥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거기에 솔깃해 가지고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또, 하나님도 '야야 사탄이가 그러지만 사탄이 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여기 있다'고 쏙닥쏙닥하고, 사탄이 비밀 여섯 개 가르쳐 주면 하나님은 비밀 열 두개를 가르쳐 주면서‘어느 것이 더 좋으냐? 요게 더 좋아, 저게 좋아? ’할 때, 그렇다고 해서 날뛰며 '아이고 나도 좋다' 하는 게 아닙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가운데 저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 놓으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저쪽에서 못하는 놀음을….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하지 못하는 놀음을 하게 되면 세계적이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이북이 하지 못하고 공산당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해서 그들보다 더 지독하고, 대한민국의 삼천만 백성보다 더 지독한 패가 되어 가지고 자기 자랑하지 말고 꾸준히 춘하추동 사계절을…. 산에 나무는 큰 나무가 중심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뭐 이러고 저러고 할 새가 없다구요. 남이야 욕을 하겠으면 하고 말이예요. 양반님이 행차하는 데 동네 개는 짖기 마련이라구요. 그렇지요? 길가에 있던 아이들은 울고 도망가기 마련이라구요. 부작용이 벌어지게 마련이라구요. 어제 아침과 오늘 아침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다르다구요. 다르다는 거예요.
자,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통일교회가 나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자 여러분, 여기 잘 들어왔어요. 못 들어왔어요?「잘 들어왔습니다」 잘 들어왔지만 가기 쉬워요, 어려워요?「어렵습니다」 그 어렵기 때문에 잘 들어온 거라구요. (웃음)
자, 세계를 위해서 천주주의를 따라가겠다고 해서 누구든지 시험을 쳐서 영점 맞을 것도 백점 맞는다면 어떻게 등수를 뽑겠느냐 말이예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건 지긋지긋하게, 재긋재긋하게, 빠직빠직하게…. 자, 그래야 되겠다 이겁니다. 그래야 세계적이지, 그렇지 않으면 뭐가 세계적이예요? 알겠어요?
그러니까 통일교회에 들어온 보람이 있지, 뭐 아무나 다 동네방네 다니며 바람피우던 녀석들이 와 가지고 여기서도 비람피워 가지고 남아질 수 있다면 그런 통일교회는 틀려먹었다구요. 대한민국에서도 내노라 하는 사람이 들어왔다가도 꼬리를 저으며 '통일교회 원리도 좋고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도 좋지마는, 아이쿠 통일교회의 고생은 난 싫소' 합니다. 그런 사람은 물러가라는 것입니다. 똥걸레들이 많이 나왔어요. 우리는 걸레는 걸레지만 비단걸레가 되자는 것입니다. 누더기 똥걸레와 비단 똥걸레가 있다면 비단 똥걸레가 나라님의 왕궁에 들어가 가지고 걸레 놀음을 할 수 있다구요, 안 그래요?
자, 틀림없이 때는 옵니다. 때는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의 때와 가정의 때와 국가의 때와 세계의 때가 한꺼번에 맞부딪칠 때가 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문제는 뭐냐? 내가 청산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청산은 무슨 청산이냐? 개인적으로 청산하고, 가정적으로 청산하고, 민족적으로 청산하고, 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선생에게 '야 대한민국을 떠나라' 하고 하나님이 명령하면 떠나는 겁니다. 암만 누가 반대하더라도 밀선을 타고라도 떠나는 거라구요. 그런 길이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뭐 여편네가 울고 자식이 울고 에미 애비가 반대하고, 어떻게 반대하더라도 정성을 다해 '야, 이제는 너희들하고의 때가 지나갔다' 할 때는 그 때를 맞으려 하다가는 안 되는 거라구요. 세계의 때를 맞을 수 있다면,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 딴 곳에서 그때가 있다면 그때를 맞기 위한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된다구요, 안 그래요?
주님이 대한민국으로만 온다는 법이 없다구요. 미국으로 온다면, 미국으로 가야 되는 거라구요. 돈이 없더라도 뭐 어떻게 하든 가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을 알아 가지고 선조로부터 이민이라도 해 둬야 된다는 말이라구요.
이렇게 보게 될 때, 여러분 그래요. 그때는 틀림없이 옵니다. 그런데 어디서 맞을 것이냐? 어디서 그때를 맞을 것이냐? 대한민국에서 맞으면 좋겠지요? 선생님은 그렇지 않아요. 통일교회가 세계를 위한 뜻을 가졌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최후의 때를 맞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건 딴 나라에서 맞아야 됩니다. 결론이 그렇게 나와요. 안 그래요? 그래야지요.
주체와 대상이 어디에서 성공을 이루느냐? 아, 주체가 성공을 할 때는 주체의 자리에서 성공을…. 천만에! 완전한 대상이 있게 되면 주체는 그곳으로 가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 소원성취는 자기 중앙지를 떠나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것은, 뜻이라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동떨어진 상대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그게 창조원칙이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최후의 뜻은 한국에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그 뜻이 한국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상대를 결정할 수 있는 그 기준을 바라 보기 전에는, 세계를 대해서 완전히 사랑할 수 있는 상대를 찾기 전에는 세계적인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대한민국을 몽땅 세계에 줘야 됩니다. 통일교회 선생님도 그러한 사상을 가졌다면, 선생님 자신도 몽땅 세계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안 그래요?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을 몽땅 가정 앞에 버리기 전에는 가정이 구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이 구해졌다 하더라도 복귀역사가 거기 가정에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정을 몽땅 종족을 위해서 버리게 되면, 다시 말해 그 가정은 종족을 위해 있었다 하는 결론이 내려지게 되면 둘다 사는 것입니다. 종족은 민족을 위해서 일하겠다는….
우리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를 위해서 전도하지 않는다구요. 지금까지 비난이 많았습니다. '뭐 승공연합이 어떻고 어떻고…. 그렇게 다 하는 것은 전도방법이지 별수있나?' 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그런 목적을 가지고 일 안 합니다. 통일교회는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출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하지 못하는 놀음까지도 우리는 하려고 책임지고 몸부림치고 있다구요. 그렇다고 해서 이 나라의 무슨 뭐 어떤 것을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통일교회가 이 나라에 자리를 잡게 된다면 이 나라의 패권을 잡겠다는 그런 꿈이 있는 게 아니라구요. 세계로 가야, 세계로 가야 된다구요.
자, 그러한 때가 우리 통일교회 사상을 중심삼은 때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 자신들이 정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정비하는 데 있어서는 울면서 정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가지고 정비해야 된다구요. 개인을 이렇게, 가정은 이렇게, 우리 교회는 이렇게, 대한민국 사람은 이렇게, 정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정비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그때가 어느날 몇 시라고 하게 되면 그때를 중심삼고 '아버지여! 제가 그때를 알았기 때문에 그때에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소'라고 해 가지고 그때를 맞추어 가지고 가는 사람이 될 것이냐?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 여러 가지 종류예요. 그때를 맞추어 가지고 기다리는 사람이 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그때가 오기 전에 미리 가서 기다리는 사람이 될 것이냐? 다시 말하면, 그 시간이 올 자리를 찾아 그 시간이 오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사람이 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그때를 바라보면서 미리 준비해 기다리는 사람이 되겠느냐? 그 다음에는 그것도 못 돼 가지고 '아이쿠 아무리 봐도 그 시간을 맞출 수 없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진정 기다려 주세요. 아버지 내가 이러이러한 일을 해 왔는데 당신이 나를 몰라보면 되겠소? 내가 보니까 그렇게 준비해야 할 텐데, 아이구 당신이 원하는 대학원을 나와야 할텐데, 아이구 나 지금 대학교 4학년밖에 못 됐소. 2년 몇 개월을 당신이 기다려 주세요' 하는 이러한 처지의 사람 등, 세 종류의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미리 가 가지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때를 맞추어 가지고 벼락같이 달려오는 사람…. 여러분, 기차시간 있지요? 기차 시간, 그것도 마지막 기차 시간이 되면 말이예요. 큰 역 같은데 가 보게 되면 어떤 녀석은 쓱 가 가지고 차표를 떡 끊어 가지고 제일 좋은 데 자리를 잡고 앉아 담배를 쪽쪽 피면서 '저 녀석들 왜 저렇게 바빠하노?' 하며 구경하는 사람이 있다구요. 그렇게 구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헐레벌떡 뛰어와 땀을 흘리면서 '여보, 여보, 차표 한장 주소' 하는 사람이 있고, 뭐 복닥불이 나 가지고 '아이구, 기차야 고장나라. 고장나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기차야 고장나라. 아이고, 기관사야 배가 아파라, 무슨 사고가 나라 아이고' 하며 딱 기차 문전에 오자 마자 기차는 '삐-익' 기적을 울리면서 칙칙푹푹 떠나가는 거예요.
그때서야 '아이고, 내 사위 맞으러 가는데, 내 애인 맞으러 가는데, 내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결혼식을 해야 하는데…' 하는 겁니다. 다 나무아미타불 되는 거라구요. 십년 공부…. 그 때는 1초가 늦어 나무아미타불 되고 만다구요. 1초가, 1초가…. 알겠어요? 1분도 아니예요. 1초가 뭐라구요? 십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는 거라구요. 그 1초가 아니면, 1분도 그렇다구요. 일분, 요놈의 1분이 내 팔자를 망칠 줄이야 고 누가 알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여보 하나님도 그렇게 용납이 없어 자기고 뭘 하겠어요? 1초를 못 기다려 줘요, 1초?' 라고 한다고 그게 통해요? 그래 가지고 차를 못 탄 사람이 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에게 가서 '내가 사실은 못 가긴 못 갔지만 1초 때문에 못 갔는데 당신 1초하고 내 1초하고 거래합시다' 하면 그렇게 하겠어요? 모든 것이 상대가 안 되는 거라구요.
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하나님 기다려 주세요' 그게 좋소, 나쁘오? '아이고 하나님, 날 봐서 기다려 주세요' 그게 통하겠어요, 안 통하겠어요? 여러분은 다 그럴 것입니다. 선생님도 때로는 그런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정을 조금 봐주시지 이럴 수가 있나' 하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지만 아침 해가 떠올라 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그것이 안 맞으면 이 우주 전체에 큰 사고가 벌어진다구요. 1초씩만 틀어진다면 우주 전체가 수천년 수만년 틀어져 나간다구요. 이렇게 될 때 하나님이 '야야, 바빠하지 말라'고 할 수 있어요, 없어요? 1초 연장할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사정입니다.
여러분, 분수령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수증기가 구름이 되어 공중에 떠다니다가 하나의 물방울이 되어 그 물방울이 '내가 백두산 천지연 한복판에 떨어지는 물이 되겠다'고 하며 떨어진다 하더라도 딱 복판에 떨어지기란 절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조금 에누리해 가지고 떨어지는 것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360도면 360가지의 분수령이 있겠지만 복판이라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구요. 그건 절대적이라구요. 거기 떨어지기가 쉬워요?
'아이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죽게 되었으니 살림보따리를 조금 짊어지고 고향에 가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 전부 다 치료해 가지고…' 그럴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제자가 '내 아버지가 죽었으니 장례를 지내고 와서 따르게 하소서' 할 때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맡겨 둬라'고 했습니다. 그런 심각한 말을 한 것은 다 그런 심정에서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 그 세 종류의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이 될 것이예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가서 기다릴래요. 숨을 헐떡거리면서 그저 땀이 여기 코 끝에 달랑달랑해 가지고 '아이고 됐다' 하는 요런 사람이 될래요, 아니면 '아이쿠' 하며 울고 불고 하는 사람이 될래요? 세종류 가운데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떠한 사람이 될래요, 우리 아줌마들? 맨 첫번째가 될래요, 아니면 꼴래미가 될래요? 이거 대답을 해야 말하는 실감이 나지…. 어떠한 사람이 될래요. 어떠한 사람?「첫번 째와 같은 사람요」 이렇다는 거예요. 큰소리로 해야 대답을 해요. 사람이 왜 그렇게 못났어? 이렇게 척 봐가지고 묻게 될 때 대답 안 할 수 없게 되면 살짝 준비하고 있다가 '첫번이요' 그렇게 세 번만 대답을 하게 되면 얼굴이 잘못 생겼더라도 내가 총각님 구해 줄 수 있다구요. (웃음)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구요. 암만 미인이면 뭘해요? 여러분, 첫번 사람이 될래요?「예」 첫번 사람은 남보다도 서둘러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오늘도 뭐 서울에 홍수가 나 가지고 야단법석을 하고 있는데, 지금 서둘지 맡고 몇 달 전부터 서둘렀으면 그렇게 많이 피해 안 났을 거라구요. '여보, 장마요, 장마요, 장마요, 장마요' (웃음) 그래 가지고 미리 준비를 했더라면 장마가 져도 '장마야 오너라 구경 좀 하자. 야. 그럴 줄 알았더니 내가 참 잘했지' 하는 거예요. 남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치는데, 자기는 쓱 제방 뚝에 가 가지고 '준비한 사람은 이렇게 편안하고,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옥달복달 복닥불이 일지어다' 하며 시를 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야 이 녀석아. 이 벌받을 녀석아' 그러겠어요? 그런 녀석이 있다면 '아 저녀석. 풍류적인 사나이구만' 그럴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도 '야 이 녀석. 잘 생겼네' (웃음) 나라도 그럴 수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은 바빠요, 바빠! 밤도깨비 낮도깨비 다 됐다구요. 밤에도 안 자고 부시대고 낮에도 그럽니다. 그러니 부시대는 선생님의 마음 맞추기 힘들다구요. '아이쿠, 왜 이렇게 볶아 대노?' 그런다는 거예요. 콩을 볶는데 가만히 놔 두면 다 큰일난다구요. 콩은 볶아 댈수록 맛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콩 볶아 봤어요? 딸랑딸랑 자주 흔들게 되면 그것이 알록달록하게 타지도 않고 노르스름하고 푸르스름한 그 빛대로 맛이 드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느 콩이 될래요? 콩을 볶는다면 어떤 콩을 만들래요? 한면만 타 가지고 깝데기만 싹 벗겨지는 콩이 되겠어요, 제 맛 다 나는 멋진 콩이 되겠어요? 어떤 콩이 될래요? 「멋진 콩이 되겠습니다」멋진 콩, 그러니 달랑달랑 볶아야 된다 이겁니다. 요것이 콩 볶는 데 장수다 이겁니다. 그렇다구요. 그러니 기분 나빠서 웃지 말라구요. 기분 좋아서 웃으라구요.
자, 우리 남자들도 첫째 번이 되겠어요, 셋째 번이 되겠어요?「첫째 번입니다」 첫째 번 될래요? 「예」 그러면 밤에 부시대야 되겠어요, 안 부시대야 되겠어요? 「부시대야 됩니다」 첫 새벽에 일어나 가지고…. 꿈에 닭소리를 듣는다구요. 꿈이 생시와 같은 때도 있다구요. 그래 가지고 잠을 자긴 한 10분밖에 안 잤는데, 꿈 가운데 닭소리를 듣고 와다닥 열두 시에 일어나서 아직도 열 시간 남았는데, 열 시간 전부터 기다렸다고 해서 하나님이 '야 이 미친 녀석아, 열 시간 남았는데 잠이나 자지 일어나 가지고 뭘하겠다는 거냐? 자야 할 게 아니냐, 내일 피곤한데'라고 할 때 그 사람 대답이 '하나님, 내일은 얼마나 기쁜 날이예요? 그렇게 열 시간쯤 이상 정성을 들이고 기다리지 않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하는 거예요. 뚝딱똑딱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 시간이 온다 온다' 하며 열 시간 이전부터 기다려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니 그 기다리는 마음이 얼마나…. 잠 쿨쿨 자고는 그 시간에 맞춰서 복닥불 나게 준비하면 정성이 미급하기 때문에 열두 시에 일어나서 열 시간을 기다리는 거예요. 한 잠도 안 자는 거예요. 졸면 사고라구요. 졸면 안 되지만, 졸지 않고 초롱눈으로 기다려 가지고 그 시간에 가서 '저는 이렇게 기다렸소' 하게 되면 하나님도 '오! 그 녀석 나보다도 낫구만' 그럴 수 있다구요. 그 때에 거기서 하나님에게 항거할 수 있는 겁니다.‘하나님, 내가 틀렸지요? ’하면 '아이고, 네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럴 거라구요. 하나님이 틀렸다고…. (웃음)
그렇기 때문에 고생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그 사람이 자기를 위하는 것보다도 공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고생하겠다고 할 때, 그것을 제재할 수 있는 법은 없다구요. 고생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고생을 위해서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제재할 수 있는 법은 없다는 거예요. 군왕이 '야 이 녀석아, 사흘 동안 쉬라고 했는데 왜 오늘 출근해 가지고 이렇게 야단이야? 사흘 동안 쉬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부시대나, 쉬지?' 하더라도 '당신 암만 그렇게 해보소. 난 사흘 동안 이렇게 나와서 놀지 않고 일하고 싶은데, 왜 그래, 왜?' 하고 반말을 했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이 녀석 반말한다' 그러면 '그렇다. 이 녀석아' (웃음) 했다고 해서 그를 칠사람이 없는 거라구요. 그럴수록‘내게 딸이 있으면 저걸 사위삼을 건데. 아이구 아들이 있으면 저걸 며느리삼을 건데’그런 생각하게 돼 있지, 나한테서 멀리 가라고 그렇게 하겠어요? 어때요? 충신이 되더라도 한 바퀴 돌아 가지고 동서남북을 통달해 가지고 중앙에 들어가는 그런 충신이 돼야 되겠어요, '동쪽에서 충신이 됐다. 이제는 충신의 영광의 자리를 차지해야지, 나라님 나를 위해 주소' 하는 요런 충신이 될래요? 동서남북을 돌아 가지고, 중앙에 들어와 가지고 충신들이 싸움하겠으면 싸움하고 그저 잠이나 쿨쿨 잘 수 있는 그런 충신이 될래요? 이런 충신은 왕충신이 되는 거라구요. 무슨 딸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매도 먼저 맞고 고생도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피할 길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통일교회에 대해서도 문선생이 욕심이 많아요. 물론 내가 원래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가까이하지 말라구요. (웃음) 욕심 많은 사람 만나 봐야 이익 되는 것이 있나요? 그렇지만 그 욕심 많은 양반이 자기 남편이 될 때에, 나는 욕심이 없어도 어떻게 돼요? 그의 여편네 됐을 때는 암만 욕심이 없더라도 그 욕심 많은 남자의 덕을 보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럴 수도 있다구요.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욕심이 많은데, 그건 무슨 욕심이냐? 그건 문선생을 위한 욕심이 아니라구요. 세계를 위한 욕심이요, 하나님을 위한 욕심입니다. 하나님보다 더한 욕심을 가졌다는 거예요. 그 하나님까지도 해방시키고 싶은 겁니다. 하나님을 해방시켜 놓고 만약에 하나님이 장가갈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내가 '하나님을 장가 보내 주었으면 좋겠다'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분 나쁘겠어요? (웃음) 생각해 보라구요. 그거 기분 나쁘겠어요?
저 나이 많은 80노인도 마찬가지예요. 혼자 사는 홀아비에게 '아이고 저기 이웃 동네에 참 미인인 혼자 사는 아주머니가 있던데, 그 아주머니를 한번 중매서리까' 하면 '어-, 그래' 하면서 흥미진진해 한다구요. (웃음) 안 그래요? 마찬가지라구요. 하나님 좋게 해주고, 어머니 아버지 좋게 해주고, 군왕을 좋게 해주는데 누가 마다하겠어요. 누가 마다하겠느냐 말입니다.
자, 통일교회 문선생이 하나님 장가 보내겠다고 진짜 그런 말을 했다면 그건 이단입니다. 성경에 그 말 없지요? 성경에 없다구요. 그런 말이 성경에 있다면 오늘날의 기독교와 싸움하지 않게요? 없다구, 없다구요. 없으니까, 미급이기 때문에 그러한 길을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지는 겁니다. 지게 마련이라구요. 내가 하나님이라도 어느 사람을 취하겠어요? 하나님 좋게 해주겠다는데….
그래서 통일교회는 하나님을 해방하자, 예수님을 해방하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한테 은혜받자고요? 이 도적놈들! 보라구요. 기도할때 '하나님이시여, 우리 아들 죄지어 가지고 지금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니 감옥문을 터 주소. 옛날 사도교회시대는 얼마나 이적기사가 많았소. 옥문을 열어 베드로도 나오게 만들었는데, 능력 있는 하나님이 지금은 왜 가만 둡니까? 아이고 하나님' 그렇게 하게 돼 있어요?
이래 놓고는 그거 안 해준다고 해서 '하나님 없다'고 하는 거예요. 없긴 왜 없어요? 덜 된 녀석이기 때문에 안 해주지, 그걸 해주었다간 어떻게 되겠어요? 전부 다 도적놈은 혼자 다 되겠다 이겁니다. 나라를 말아 먹고 세계를 망칠 패가 되겠는데 그걸 해주겠어요? 안 해준다구요. 베드로 같은 양반들은 자기들 위해 그렇게 갇힌 것이 아니라구요. 세계를 위하고 하늘땅을 위해서 영원히 남아질 공익을 위해서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정성들인 그 도수가 아직 차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협조해 주려니, 그를 감옥에 가두어 놔 가지고는 그 도수를 못 채우겠으니 그 도수를 채워 주기 위해서 그런 놀음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부 다 나쁜 것은 하나님, 나쁜 것은 예수….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한 번 도와주었는데, 또 와서 '도와 달라' 해서 또 도와주었습니다. 그렇게 두 번 도와줬는데, 또 와서 '야 이 녀석아, 또 도와 달라' 해서 세 번 도와줬습니다. 그런데 또 와서 도와 달라면 도와주겠어요? 한 번 도와줬을 때 절을 한 번 했으면, 두 번 도와줬을때는 절을 열번 백번 해야 되고, 세번 도와줬을때는 천번 만번 해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회개만 해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교회 들어갈 때 회개하고, 기도할 때에도 회개하고, 나와서는 싸움한다면…. 그놈의 교회는 망해야 돼요, 안 망하면 벼락을 쳐서라도 망해야 된다구요. 이런 교회를 망하게 만들려고 내가 아예 결심하고 나온 사람이라구요. 이런 교회는 망해야 된다구요.
한 번 도와줬으면 다음에는 와 가지고…. 사람이 체면이 있지, 세 번씩이나 잘못해 가지고도 '또 도와주소' 그런 건 인간끼리도 그렇게 못할 텐데 매일같이 죄를 부지기수로 짓고도 '하나님 별수 있소? 인간의 사정이 이렇습니다. 아이고,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 아니요?' 하면 시시하다는 거예요. 그런 하나님이라면, 그런 예수라면 시시해서 믿지 않아요. 믿지 말라구요. 그런 시시한 예수는.
인간도 한번 약속을 하면 지키게 마련인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다니, 그럴 수밖에 없다니…. 회개를 한 번 했으면 뼛골이 녹아지고, 두 번 했으면 얼굴을 못들고, 세 번 했으면 교회도 못가는 거라구요. 산비탈에 거꾸로 엎디어 가지고 울 수밖에 없다구요. 천년 만년 통곡하고, 하나님을 부르지 못하고 통곡해야 할 텐데 뻔뻔스런 패들이 많다는 거예요. 배때기를 째 가지고 창자를 꺼내 가지고 전부 다 독수리 밥이 되게 하더라도…. 그런 예수라면 믿지 말라구요.
여러분, 하나님한테 지금까지 얼마나 신세지웠나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 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고 말하지요? 새끼들 뭐 한 7,8명 가지고도 부모가 '아이쿠, 자식은 가지인데' 하며 바람 잘 날이 없다는 그런 타령을 하고 있다구요. 그런데 하나님을 생각해 보라구요, 하나님. 이 30억 인류가 매일같이 전부 다 '하나님, 나 살려 주소. 나 못살겠으니 살려 주소' 하는 것입니다. 한번쯤은 봐줄는지 모르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역사시대를 거쳐 오면서 끝날이 되면 될수록 하나님은 기가 막힐 거라구요. 맨 처음부터 지금까지 도와주었는데, 끝날에 가서도 그렇게 해 가지고 될 줄 알아요? 아니라구요. 끝날에는 달라진다는 거예요 무자비한 공판을 내려야 합니다. 비수로 짤라 버려야 할 때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정이 통해서는 안 된다구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외면하니까 끝날이 되면 모든 것이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잎을 좋아하는 패들은 떨어지고, 가는 가지를 좋아하는 패들도 떨어지고, 동삼삭(冬三朔)이 되면 생명의 근원인 뿌리만 맨 복판이 남아지는 것이다 이겁니다. 안 그래요?
통일교회 교인들 말이예요. 나는 문선생이란 이름 가지고 내가 우리 어머니 아버지 위해서 기도 안 하는 거라구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물론 형제들도 있다구요. 형님이 나를 위해서는 지극히 정성을 들인, 그런 형님이라구요. 그건 가인 복귀역사에 있어서 이미 나면서 복귀한 거예요.
8·15 해방될 것도 다 알았고, 자기가 병이 났으면 기도해서 영적 구원받아 가지고 남이 못 고치는 병도 고친 그런 양반이라구요. 그런 양반을 대해 가지고 내가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얘기를 한 마디 안 했다구요. 원리 얘기를 한마디 안 했다구요. 매정한 길이라구요. 자기 동생을 위해서는 생명을 각오해 가지고 죽음길도 개의치 않고 움직이던 형님을 놓고, '아, 하나님 우리 형님이 어떻게 됐어요? 조카들 어떻게 됐어요? 묻지 않았다구요. 지금 인민군대에 들어가 있는지 다 모르지요.
그렇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를 위하여 책임을 못 다한 데에 있어서는, 그 책임을 하기 위해 세계까지 갔다가 돌아와 가지고 자기집에 와야 금의환향이라는 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소기의 출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누더기 보따리 끌며 이러고 저러고 다니게 돼 있지 않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 갈 길이 바쁘다구요, 내 갈길, 요게 문선생이 가는 길이라구요. 알겠어요? 알겠나, 이 젊은 녀석들?「예」 알겠어요?「예!」
그렇다구요. 아까 말한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 가운데서 여러분은 어디일 것이냐? 이렇게 볼 때에, 때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다구요. 다가왔다구요. 틀림없이 다가왔다구요. 선생님이 말하던 역사적인 종말시대는 우리의 목전에 다가와 있습니다. 우리가 넘겨다 보면 담 너머로 훤히 다 보이게끔 와 있으며, 먼동이 아니라 아침 햇빛이 올라오는 때가 됐다구요. 그런데 그게 안 느껴져요? 여러분, 안 느껴요, 느껴요? 느끼지요? 「예」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바쁜 때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도 그 아침이 되게 되면 관심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공판 시간이 끝나면 잔치가 시작될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렇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내적 잔치 준비를 할 수 있는 이런 때가 됐다는 겁니다. 하늘편의 모든 치다꺼리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거기서 땀을 흘리는 사람은 역사적인 땀의 열매를 맺는 것이요, 거기에서 마음을 푼 사람은 역사적인 수난의 한의 마음을 전부 다 향취로써 꽃 피울 수 있는 것입니다. 단 한번밖에 없는 때라는 것입니다. 그 잔치를 준비할 수 있는 동참자는, 그 잔치 시간을 기다리는 그런 사람보다도 사람들을 맞기 위해 하늘편에 선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예요? 안 그래요?
만약에 차표를 살 사람이 뛰어오게 될 때 어느 누가 차표를 떡 사 가지고 있다가 '당신 이렇게 올 줄 알았소' 한다면, 다시 말하면 차표 파는 곳의 문이 잠겨서 차표는 살 길이 없는데, 어느 누가 그걸 알아 가지고 한 장 사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고맙겠어요? 그러니 앞으로 올 사람들을 위해서 치다꺼리를 하고, 혹은 그 마중을 나가 가지고, 바쁘니까 이제 1초 늦게 되었으니 1초를 재촉하라고, 빨리빨리 가라고 이렇게 독려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볼 때 '에이 녀석아, 너는 차표를 다 사 놓고 했으니 여기서 그냥 쉬어도 될 텐데 뭐하러 바쁘게 나가 가지고 길잡이 하겠다고 이렇게 고생하는 거야, 이 못난 녀석아!' 그러겠어요? 자기 분수 이상의 것을 거기에 희생하고 소모하게 될 때에 그 소모는 도리어 그 사람을 점령할 수 있고, 그 사람의 친구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주인의 입장에서 주인의 자리까지도 점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길은 그와 같은 행동을 함으로 말미암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 나라의 잔치 준비하는 사람 될래요, 아니면 그 잔치에 도착해서 '아이고 잘 됐다. 내가 얼마나 똑똑한고. 어쩌면 이렇게 딱 적시에 왔을까. 똑딱 하기 전에, 똑 할 때 도착했으니 나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없지' 그런 사람이 될래요? 자, 시간 맞추어 오는 사람하고 시간 전에 오는 사람하고 어느 게 나아요?「시간 전에 오는 사람이 낫습니다」 시간 전에 와 가지고, 그가 올 길목에 나아가 '어디로 걸어오나' 쓱 보면서 한 10분쯤 먼저 와 가지고 '아, 지금 오세요. 당신이 올 때에는 이 길로 올 것 같았고, 당신을 너무 보고 싶고 또 당신을 빨리 만나고 싶어서 내가 여기 와 있소' 할 때 '여보 바쁜 생활을 하면서 왜 당신이 10분 손해 봐요? 난 그런 사람 싫소' 그러는 사람 있어요? 10분 먼저 와 가지고 쓰윽 맞아주며 '당신을 미리 만나고 싶어서 길가에서라도 만날 준비를 하고 왔소. 당신이 이렇게 찾아왔소? 미안하오' 할 때‘에이 이 녀석아,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데, 10분이면 나라가 변하고 다 이럴 텐데 이 녀석아, 왜 왔어? ’그래요? '아이고 미안해요' 그러겠지요? 그 사람을 위해 주면 그 사람을 점령할 수 있고, 그 사람을 완전히 회개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다음에는 복닥불이 나 가지고 '아이고 탕감복귀해야지. 3년노정 가야지, 아이쿠 3년이야. 3년! 이제 몇 개월 남았구나. 아이고 어서 가라. 어서 가'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그걸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 되겠어요, 그러다가 떨어지는 사람이 되겠어요? 세 종류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될래요? 첫째 번 될래요, 둘째 번 될래요?「첫째 번이요」 둘째 번은 안 되겠다는 말이예요? 「예」(웃음) 둘째 번 되는 사람도 있어야지, 전부 다 일등될 수 있겠어요? 이등 짜리도 있어야지…. 「없어도 좋아요」
그럴 때는, 하나님도 이등이 필요하게 되면 '야 이등은 네가 탔다' 그다음에 '삼등도 네가 탔다'고 해주면 '일등한테 일등 이등 삼등까지 다 주겠다'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조건을 대신 세워 줘 가지고 '이등도 네가 했다. 삼등도 네가 했다' 할 수도 있다구요. 안 그래요? 그럴 수도 있다구요.
자,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도달하지 못한 사람까지도 해방시킬 수 있는 길이 있을 수 있다구요. 하나님의 마음에만 미치게 되면, 하나님의 마음만 기쁘게 할 수 있게 된다면, 놓친 시간을 연장할 수 있는 가망성도 있을 수 있다구요. 알겠어요? 가만 보니까 요 시간으로 딱 짜르게 되면 하나님이 열 사람밖에 못 구할 텐데, 10분 연장할 때는 만 사람을 구할 수 있다 하게 되면 하나님도 기다리고 싶겠어요, 안 기다리고 싶겠어요?「기다리고 싶을 겁니다」
기다리고 싶긴 싶은데, 하나님 자신이 정해 놨다가 자신이 연장할 수 있어요? 그럴 때는 하나님도 마음으로는, 진정한 의미에서 이 사람들이 전부 다 알게끔, 이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 하나님, 10분만 연장이요, 연장이요, 연장이요…' 하며 몸부림치는 한 사람이라도 있게 될 때는 10분을 연장해서 만 명을 구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이 연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이여 기다려 주십시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세계 앞에 행복의 터전을 소개해 줄 수 있는 주인이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다음엔 '아이고 하나님, 내가 시간이 없사오니 기다려 주시오'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아까 세 종류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더 추가한 게 됩니다. 이렇게 연장 시킬 수 있게끔 하나님의 공법은 연장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공법이 인간을 위하고 이 세계를 위한 것이기에 온 세계를 대표해 가지고 그 시간을 연장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울부짖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기다리고 싶겠어요, 안 기다리고 싶겠어요? 응? 기다리고 싶겠어요, 안 싶겠어요? 「기다리고 싶겠습니다」
그러려면 제 시간에 가서 기다리고 앉아 있는 사람보다도, 이 사람은 제일 열심히 가서 기다려야…. 통일교회는 그래야 된다구요. 그래서 '아버지여, 기다려 주세요'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런 사명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욕심이라구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아이고 이거 통일교회 가는 길 잊어버리면 되겠소? 내가 그래도 몇 해 동안 통일교회 믿었는데, 내가 그 시간에 맞게끔 들어가야 할 텐데 미급하오니 기다려 주세요' 이렇게 엇갈리는 종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될래요? 이 세계가 망운지중(亡運正中)의 절벽에 부딪쳐 최후의 운명의 판가리를 해야 할 이 차제에 있어서 하나님편에 서 가지고 공의의 법도를 장악하시는 권위의 아버지이심이 틀림없기에 그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고 '아버지시여! 좀 기다려 줄 수 없습니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소돔성을 대해 기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이 그러하고 싶으신 사정이 있기 때문에 기다려 주세요' 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에게 '야 이 녀석아, 좀 더 열심히 해라. 야 이 녀석아, 좀더 범위를 넓혀 가지고 갈구해라' 하는 소원의 일념이 있게 될 때 그 이상의 마음을 가진 자리에서 그럴 수 있는 사람을 맞게 된다면 하나님도 사탄 앞에 위신을 세우고 '오냐, 너를 봐서라도 이 망할 세계를 놓고 10분이고 10년이고 기다려 보자'고 할 것입니다. 욥기 같은 데 보면 있지요?
그래 가지고 10년 동안 기다렸는데, 이 사람이 그런 걸 알았으면 그저 밤이나 낮이나 안간힘을 다해서…. 하나님도 그 사람을 보게 될 때는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게끔 되게 되었는데, 10년 역사가 다 지나가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해서 하나님이 만약에 불을 내린다면 하나님이 회개해야 돼요.‘야 아무개야, 나 하나님은 네 앞에 면목이 없구나. 그렇지만 공의의 법도를 따라가려니 치지 않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하며 하나님이 회개할 수 있는 자리에 세우는 사람까지 있을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어때요? 그럴 것 같아요, 안 그럴 것 같아요? 심정의 세계에서는 그럴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심판은 누구 때문에 하겠습니까? '하나님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너를 위해서 심판하겠다. 너를 더 고생시켜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아들이 있다면 사탄도 항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도 그 사람에 대해서는 자기가 들이맞더라도 항의할 수 없고 '그래야지요'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공법은 '너를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서 역사적인 모든 것을 불태웠지만, 너 하나의 수고를 막기 위해서 심판을 안 내릴 수 없다' 이렇게 될 수 있는, 사랑으로 심판의 목적을 전부 자기에게 귀결시킬 수 있는 그런 단 하나의 길도 있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돼요? 심판까지도 조정할 수 있는 동시에, 심판의 목적까지도 자기를 위해서 할 수 있게 되면 심판하고 난 하나님은 어디로 갈 것이냐? 그 다음엔 찾아 돌아오지 말래도 내가 북극에 가면 북극으로 찾아올 것이고, 남극에 가더라도‘너 있는 데 내가 안 갈 수 있느냐? ’하며 하나님이 따라간다구요. 하나님이 찾아가고 싶은 사람이, 역사시대의 종점에서 심판이 끝난 후에 비로소 만날 수 있는 형의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기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한 사람이라도 만나야 될 것이 아니겠느냐? 그가 종말심판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참사람의 모습이라고 두고 볼 때, 우리 통일교인은 모름지기 그러한 사람을 꿈꾸며 그러한 사람을 향해 가자고 하는 무리입니다. 그리하여 밤이나 낮이나 '세월아, 네월아 가고 또 가라. 청춘시대야 지나가고 노년시대야 와라. 내가 죽을 때까지 이 길을 가다가 다 못 가거들랑 천년 사연을 품고 기도할 텐데 이 기도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세계를 심판하지 말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은 천년 심판의 시대를 연장시킬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 곳을 바라보고 가 보자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을 갖고 찾는다면 그 자리까지 바랄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자, 그런 사람하고 '아이고 내 책임을 못 했으니 하나님 나 망합니다. 아이쿠 하나님' 하며 치마끈 두루마기끈 할 것 없이 그저 붙들고 '이왕이면 날 살려 주고 가소' 이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기도를 해서 연장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겠어요? 어느 사람이 되겠어요?
자기 자체가 뒤넘이쳐 가지고 자기 위신을 가리지 못하고 바빠 허덕이는 자리에서 '기다려 주세요' 하겠어요? 그건 죽어도 타락한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놀음이다 이겁니다. 망하더라도 타락한 인간으로서, 역사적인 수고를 하나님 앞에 끼쳐 온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놀음이 아니냐 이겁니다. 차라리 내가 '기다려 주시옵소서' 하는 것보다도 '어서 당신이 소원하시는 대로 성취하시옵소서. 내 무슨 말을 하오리까' 하며 달갑게 받을 수 있는, 변명 없이 겸손히 심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도리어 죽어서라도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입장이 될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두고볼 때, 이 때가 얼마나 조급하고 시급한 때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가는 길과 여러분이 가는 길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그마치 통일교회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은 꿈에라도 그곳을 한번 가 봤으면, 내가 60이 되더라도 그곳을 소원삼고 가 봤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버지여, 뜻을 중심삼고 기다려 주시옵소서. 빨리 오는 것도 좋겠지만, 세계가 망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고생길을 연장하더라도 기다려 주시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런 사람 말고 '아이고, 내가 망하겠으니 기다려 주소서' 하는 사람은 천당의 최고 자리가 아니라 지옥의 최고 자리에 갈 것입니다. 이 두 경계내에 선 사람이 통일교회 무리 가운데 있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밥을 먹을 때는 하나님 앞에 미안한 생각을 해야 하고, 잠을 자려고 할 때도 하나님 앞에 미안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자기가 왔다갔다 왕래하는 데에 있어서는 성공한 결과를 갖지 못한, 보고거리를 갖지 못한 그런 걸음을 죽어도 못 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급한 하루를 붙들고 천년의 보고 자료를 완성시킬 수 있는 한 시간으로서의 사연을 걸고 투쟁하고 싶은 그런 마음을 갖고 달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결코 자기를 중심삼고 '기다려 주옵소서' 하는 그런 사탄의 입장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민족을 넘고 세계를 넘어 모든 것을 청산지을 수 있는 운명길을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는데, 여러분이 그래 가지고 되겠어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발 여러분에게 바라건대 미비한 자리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하는 그것은 안 됩니다. 그건 될 수가 없다구요. 그건 개인의 사정입니다.
여러분 개개인을 기다려 준다면…. 한 사람 기다려 주고 그 다음 사람, 그 다음 사람. 이렇게 닐리리 동동으로 해 가지고 기다릴 수는 없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할 수 없이 때를 세워 가지고 그것을 결정지을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러니 그것이 연장될 수 있는 길은 여러분이 기다려 달라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 심정을 통해서 대신 어려움을 맞겠다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 연장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스라엘 나라의 망운도 방비할 수 있고, 한국의 망운도 방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자그마치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 나라 이 민족이 알아 주지 않더라도 그런 면에 있어서 책임을 져야 역사적이며 세계사적인 사명을 짊어진 사람으로서의 보람이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문제를 여러분이 알고, 지금 남북이 엇갈린 자리에서 비로소 상봉하는 이런 때에 있어서 나라를 위해 얼마나 심각하냐 하는 문제를 여기서 다시 한 번 비판해 보아야 되겠어요. 비판해 보아야 되겠다구요. 다시 한 번 가려 가지고 현재의 자기 위치를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여러분이 알기 바래요.
그래서 나쁜 의미의 '기다려 주세요' 하는 입장이 되지 말고, 좋은 의미에서 '기다려 주세요'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된다면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을 것이고,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다구요. 틀림없이 망하지 않을 거예요. 절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한 망할 수 없습니다. 망할 수 없다 이거예요. 또한 망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계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딴 곳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우리를 키워서라도 그것을 구해야 할 책임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아시고, 자기를 위하는 자리에서 '기다려 주세요' 하는 여러분이 되지 않기를 바라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하루가 가거들랑 당신 앞에 효성을 다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한 달을 지내거들랑 당신 앞에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는 마음이라도 가져야 되겠습니다.
1972년, '통일전선 수호'라는 이 엄청난 과제를 두고 그것을 표어로 세웠던 것을 과연 말 그대로 통일전선을 수호해야 할 책임을 질 자가 이 천지에 저희들밖에 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당신은 불쌍한 분임을 압니다.
아버지, 당신의 가정을 지킬 사람이 어디 있으며, 당신의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지킬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 땅 위에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가운데 몰리고 쫓김받고 시들어져 가는 이 무리 외에는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끝까지 참아 남아지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과 더불어 오늘도 참고 가야 되겠습니다. 내일도 참고 가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참음의 역사를 아직까지 걷어치우지 않은 것을 알았기 때문에 또 가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천하에 그 누가 자기가 자랐던 고향 땅을 그리워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뜻을 알고 난 그날부터, 고향을 떠난 그 시간부터 황량한 벌판을 헤매어 나오다가 머무른 자리가 통일교회 이 자리였습니다. 이 길을 따라 나가기 위해 모인 무리들이 여기에 모인 통일교회 식구라고 하는 무리이었습니다.
이들이 정착해야 할 이스라엘이라는 승리의 터전, 당신이 축복해 준 그 땅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남북이 통일된 그 땅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기필코 이를 쟁취하지 않으면 저희들은 망해야 할 운명에 처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이요, 가정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잃어버리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취할 수 없는 사명을 짊어진 것이 저희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 당신의 거룩하신 마음을 따라 당신의 소원을 따라 당신이 슬퍼하거들랑 저희도 슬퍼하기를 바라고, 당신이 통곡하거들랑 저희들도 그 자리에 들어가 통곡하는 자가 되기를 바라는 그 마음만은 틀림없습니다. 부모의 거느림을 받는 식구는 부모가 기쁨으로 말미암아 자기도 그 기쁨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지, 아무리 자기 개인이 기뻐하더라도 부모의 얼굴에 슬픔이 생기게 될 때 아는 그 개인은 부모의 슬픔 앞에 점령당하는 것이 이치가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저희들이 아무리 행복한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슬픈 역사적 전망을 앞에 놓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슬프므로 저희들이 슬프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무리 좋은 자리라도 슬픈 모습을 취하지 않으면 불효의 자리에 서는 것이요, 불충의 자리에 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통일의 무리는 밥이 없어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요, 누구만큼 외적인 호화찬란한 생활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이런 놀음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민족의 비참을 막고 역사적인 비참을 막기 위한 것이요, 우리 후손의 비참함을 막기 위해 대신 땀을 흘려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수난길을 극복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후손들이 죽을 자리를 모면할 수 있는 길을 알았기 때문에, 오늘의 수난은 으례 있어야 할 수난으로 맞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현재뿐만이 아니라, 미래의 승리의 터전을 남기기 위해서 서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이제 당신 앞에 바라는 것은 '기다려 주시옵소서' 이제 통일교회와 나는 조급한 것을 느끼옵니다. 아버지, 우리에게는 발판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여야 할 책임, 세계라는 문이 열려 가지고 직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것도 저것도 전부 다 손을 대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는 환경적 자원인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 모든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입장에서 이 일을 책임져야 되겠기 때문에 미친 사람같이 당신의 동정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그것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밤이나 낮이나 당신의 동정이 떠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오늘까지 통일교단을 이끌어 나온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으로 하여금 슬픈 눈물을 흘리며 저주와 더불어 돌아서게 하는 그런 통일교회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기가 막히고 딱하고 억울하더라도 당신의 손을 붙들고 나는 머무를 수 없는 이 자리라고 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게 되면 여기는 소망의 터전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이요. 민족과 세계가 다시 희생할 수 있는 것이옵니다. 그 길을 여는 것이 저희들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불쌍한 통일교회라도 좋습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이 비난하는 통일교회라도 좋습니다. 이 나라가 핍박하는 통일교회라도 좋고, 세계 만민이 모진 화살을 퍼붓는 통일교회라도 좋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버릴 수 없는 통일교회가 돼야 되겠습니다. 그 누가 나를 환영하지 않는 그런 통일교회 교인이라도 좋습니다. 다만 당신만이 환영하는 통일교회 교인이면 그만입니다. 이것을 바라는 마음이 일편단심 변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충절의 꽃을 피우고 당신 앞에 분향의 향기를 바쳐 드리고, 몽땅 당신의 기억에 남기고 갈 줄 아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다는, 그러한 생애의 길을 더듬어 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철모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회고해 보게 될 때, 사연이 많습니다. 그 사연은 다 구름같이 사라져 버리더라도 역사적 시대에 있어서 당신의 뼛골에 기억돼 있는,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슬픈 사실들은 저희가 기억하게 하소서. 그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기 때문에 내 슬픔을 잊어버리더라도 당신의 그 슬픈 모습을 이어받을 수 있고, 당신의 혈육을 이어받고, 당신의 사정을 이어받고, 당신의 소망의 세계를 이어받는 것만이 통일교회 신자들의 절대적인 소원이오니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기다려 주세요. 아버지여, 저희들은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이 민족의 운명을 당신이 불쌍히 보시옵소서'라고 저희들은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미급한 자리에서 당신 앞에 개인의 염려를 위해 기다려 달라는 기도를 하는 그런 불쌍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그마치 통일교회 교인은 그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민족의 운명을 가로막고, 세계의 운명을 가로막고 '나를 쳐 주시오' 하던 것이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의 처절한 사정이 아니었습니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하며 자기는 망하더라도 후세에 남길 수 있는 미래의 뜻을 붙들고 쓰러져 가던 예수의 심정을 저희들이 동경하며 그 자리를 지켜 갈 줄 아는 통일교회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비참하게 살고 비참하게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부디 후손들이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서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소원이기 때문에, 이러한 절대지조를 끝까지 남기고 갈 수 있는 무리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하늘이여, 이제 8월 30일을 중심삼아 가지고 남북이 교류하는 시간이 가까와 오고 있사오니, 거기에 하늘의 복을 가져다 주시옵소서. 겨울 동산에 봄의 운세를 미치게 할 수 있는 그러한 하나의 교차점이 되게 하여 주옵시고, 이 나라 이 민족의 해방의 기점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벨이 가인을 찾아가듯이, 이제 찾아가는 모든…. 위에서 찾아가고 아래서도 찾아가는 것이 원리적 방향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이 행여 수단과 재간을 가지고 찾아가는 무리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뜻을 세우기 위한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무리가 되어서, 이번 이 기간을 통하여 세계가 주목하고 있사오니, 이 나라 이 민족의 자주성을 자랑하고도 남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 트여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또한, 저희들이 바라는 때를 아버지께서 아시오니, 당신이 소원하시는 수난길을 넘어서서 승리의 한 터전을 이 나라 이 민족이 길이 누릴 수 있는 해방의 날, 통일의 날이 오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세계로 갈 수 있는 이 민족의 정기를 바로잡으시어서 당신이 안식할 수 있는 안식의 노정을 승리와 영광과 자랑의 날로 걸음으로써 만민 앞에 칭송하고 자랑할 수 있는 민족정기를 남기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합니다.
오늘 이 아침에 당신의 어린 자녀들의 그 가슴에 새로운 길을 알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고, 생애노정 위에 결의의 터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배고플 때 밥 먹기가 힘들어요, 좋아요? 밥 먹기가 힘든 거라구요. 배고플 때는 밥 먹기가 힘든 줄 모르지요? 배부를 때도 밥 먹기가 힘들지만 힘들다는 것은 그만큼 필요하다는 거예요. 필요적절한 가치관을 결정하는 데에는 피눈물나는 거예요.
선생님도 지금까지 이 뜻을 위해서 나오다 늙게 됐는데…. 여러분과 같은 20대 청춘시절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제 50이 넘었지만 말이예요. 그래, 힘들게 생각했다면 지금까지 이 놀음을 해 나왔겠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사람은 힘들게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힘드는 일을 힘들다 힘들다 해 가지고는 성과가 나지 않아요. 힘들더라도 재미있다 재미있다….
사람이 그래요. 사람의 가치판단력은 어디서 설정되느냐? 모든 사람이 하고 난 일을 해 가지고는 그 사람은 보통 사람도 못 되는 거예요. 그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예요. 국민학교 학생도 할 수 있고, 중학교 학생도 할 수 있고, 혹은 대학생도 할 수 있으며, 그 다음에는 학교 안 다닌 사람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라구요. 누구도 못할 일을 해야 그게 멋진 거예요. 거기서 비로소 유명해지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우리 통일교회에서 기동대 하게 되면 선발대라구요. 외국에서 보고도 들어오고 그러는데, 지금 미국에서는 기동대의 활동이 전국적으로 상당히 활발하게 운동을 하고 있어요. 독일에서도 그렇고…. 한국 기동대한테 지지 않겠다며, 한국 기동대의 활동 내용을 알려 달라고 합니다. 지금 전부 다 전체적으로 그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 여기 경기도 기동대는 특별히 외국에 자랑할 것이 있어요? 자랑할 게 있어요? 있나요, 없나요?「……」
여러분, 평상시에도 신앙생활이란 것은 간절해야 해요. 배고픈 사람이 밥을 그리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머니를 잃은 아이가 어머니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간절한 마음이 앞서야 되는 거예요. 왜 그러냐? 신앙의 길이란 것은, 신앙의 목적이라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면 그 하나님의 뜻이 보여요?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뜻을 이룰 수 있는 자리까지 가기 전에는 보여질 수 없는 거예요. 세상에는 그렇지 않다구요. 세상에는 전부 다 계획을 하고 설계를 해 가지고 예산을 편성해서 그걸 펼쳐 나가지만, 하나님의 뜻 하게 되면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구요. 그러니까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추구하고 거기에 대한 목적을 현실에서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과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보이지 않는 뜻의 길을…. 여러분의 눈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보게 돼 있다구요. 또 느끼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보고 느끼게 되어 있다구요. 반드시 오관의 작용은 보이는 세계를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게 되어 있다구요.
그래 신앙의 길은 뭐냐? 보이는 세계에서 느끼는 감각보다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더 강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면 그 사람은 절대 지칠 줄 모른다는 거예요. 문제는 그거라구요. 외적인 모든 세상일이란 것은 전부 다 보이는 것을 따라 움직이지만, 신앙의 길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해 가기 때문에 그 목적이 막연하게 될 때는 힘이 안 납니다. 힘이 안 나요. 보이지 않지만 그것을 확실히 알고, 그것에 대해 보이는 것보다도 더 확신을 가져야만 지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여러분들은 지금 몇 개월 됐어요? 3개월? 3개월이면…. 백일 금식도 한다구요. 3개월이 채 안 됐지요?「출발이 6월 1일입니다」 그러니까 6월, 7월, 8월, 그래서 백일도 안 됐구만. 백일도 채 못 돼 가지고 힘들다고 해서 돼요? 이게 한 천일쯤 됐으면 어떡하겠어요? 한 만일쯤 됐으면, 만일이면 30년이구만. 한 30년쯤 됐으면 어떡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신앙생활에 필요한 것이 무어냐 하면, 보이지 않는 주체를 어떻게 체휼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에 지치지 않으려면 영적인 체험을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탕감복귀라는 말을 배웠지요? 「예」그 탕감복귀라는 것이 말뿐이지, 지금 현재 탕감복귀돼 나가는 것 같지 않다구요. 그런 것을 알아요? 말로만 알지, 사실 알아요?
여러분, 여기 지금 보이지는 않지만 이 안에 전부 말들이 왔다갔다하고, 말로 꽉차 있는 것을 알아요? 라디오를 틀어 놓으면 수많은 방송국의 전파가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렇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는 않지만, 여기에 말이 꽉차 있다구요. 안 그래요? 꽉차 있지요? 「예」 들을 수 있는 장치만 해 놓으면 전부 다 그 말을 가려 들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 우주에는 하나님의 충만한 작용이 꽉차 있다구요. 그렇잖아요?
우주를 주관하는 우주의 중심인 하나님의 심장이 여기서 뚝 뚝 뚝 하면 여기서만 뚝 뚝 뚝 해요? 가슴에서만 뚝 뚝 뚝 거리나요? 손끝에는 어때요? 뚝 뚝 해요? 해요, 안 해요?「합니다」 하지요? 여러분 몸에 청진기를 갖다 대면 어디에서나 전부 들린다구요. 그렇지요?「예」 크고 작은 그런 차이는 있을는지 모르지만, 심장으로부터 멀고 가까운 데 따라 크고 작은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다 들린다구요.
그러니 이 우주에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가자고 작용한다면, 작용하는 그 무엇을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예민하면 그럴 게 아니예요? 그렇지요? 예민한 라디오를 틀어 놓으면 전부 들을 수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걸 다 캐치(catch)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방송을 들으면 무엇이 어떻게 되고, 일기예보도 어떻더라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한 번, 두 번 그렇게 됐다 할 때에는 믿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누가 관리 지도하지 않더라도 그런 경험이 있으면 다 믿게 되는 것입니다. 방송국의 일기예보를 듣고 그것이 맞으면 그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그걸 믿지 않을래야 믿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날씨가 맑다고 하더라도 방송국에서 '비 온다' 하게 되면, 비 올 것을 알고 미리 다 준비한다는 거라구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저 녀석, 미친 녀석이 아니냐. 날씨가 이렇게 청청한데 뭐 비가 온다고? ’이렇게 흉볼 수 있다구요. 그와 같은 놀음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지친 녀석은 왜 그러냐 하면, 보이지 않는 신앙세계의 내정이라 할까 그 목적이라는 것을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지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뭐냐? 복귀역사는 말이예요? 여러분이 원리를 배워서 알겠지만, 복귀역사를 보게 되면 소생, 장성, 완성의 단계가 있습니다. 소생, 장성까지는 사탄이 지배하고 완성권은 하나님이 주관하게 되어 있다구요. 아담이 그 완성권 이하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미도달권으로 남아 있는 거 알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편과 사탄편이 싸우게 되면, 사탄이 언제나 이기기 마련이라구요. 사탄은 3분의 2의 입장이고, 하나님은 3분의 1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보이는 세계를 중심삼고 3분의 2권한을 갖고 있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3분의 1권한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번번이 지게 마련이라구요.
왜 그러냐 하면 우리들의 모든 오관이라는 것은 보이는 세계를 통해 가지고 감각을 느끼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고, 그것을 통해서 생활하고 있기에 보이는 것만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세계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중요시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 가지고, 3분의 2 이상 되는 외적 사탄세계의 모든 것을 능가하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고독의 길임과 동시에 개척의 길이라구요. 또한, 개척의 길임과 동시에 투쟁의 길입니다. 그렇게 돼 있는 거라구요.
이런 모든 문제를 여러분이 원리에서 배우고 있지만, 원리를 배우고 있는 여러분들이 실제 원리와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 원리와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면 지치는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 원리 가운데는 종적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한다는 말이 있지요? 우리는 지금 6천년 역사를 7년노정을 세워 가지고 탕감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21년으로 연장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역사를 보면 말이예요. 1차 7년노정, 2차 7년노정, 3차 7년노정이 연장되어 나오는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 종적으로 6천년 역사에 안식기간을 천년으로 잡으면 7천년의 역사로 보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그 7천년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는 거라구요. 탕감이라는 것은 결정체와 마찬가지라구요, 결정체. 결정체 알지요? 수정 같은 것을 보게 되면 육각(六角)으로 되어 있는데, 그걸 깨뜨리고 깨뜨리고 또 깨뜨려 보아도 전부 다 육각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조그마한 탕감조건이라는 것은 결정체와 같이 같은 모양의 조그마한 조건을 세워 가지고 큰 것을 탕감하는 것을 말하는 거라구요. 그래서 7천년 역사를 7년에 탕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적인 7천년 역사를 7년노정 기간에 탕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탕감하느냐?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할 때,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 싸움이라는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복귀과정에 있어서 아담 가정의 사건, 노아 가정의 사건, 아브라함 가정의 사건 등이 있었습니다. 야곱 가정도 사건이라면 그것은 섭리의 연장입니다. 그 다음 모세 가정의 사건, 그 다음엔 뭐냐 하면 요셉 가정의 사건입니다. 이렇게 7대째를 향해서 넘어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있어서 그러한 중대한 사건이 봉우리라구요, 봉우리. 한 고개를 넘어가려다가 못 넘어갔기 때문에 다시 그 봉우리를 올라가려면….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는 그것보다 낮은 자리에 올라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번에 고개를 못 넘고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려면, 그 봉우리보다 높은 봉우리를 올라가야만 발전할 수 있다구요. 떨어졌다가 올라가려면….
그렇기 때문에 개인에서 잃어버렸으면 가정에서 찾아야 된다구요. 점점 어려워진다구요. 알겠어요? 복귀역사가 그렇다구요. 개인에서 실패했으면, 그것을 다시 찾으려면 개인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구요. 가정에서 찾아야 됩니다. 가정에서 실패했으면 종족에서 찾아야 되고, 종족에서 실패했으면 민족에서 찾아야 되고, 민족에서 실패했으면 국가에서 찾아야 됩니다. 점점 커진다구요.
그러기에 예수님은 국가기준에서 실패한 자리에 섰지만, 육을 중심삼고 실패한 자리에 섰지만 영적인 기준에서만은 이스라엘 민족 국가기준이 아닌 세계기준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지금 세계적 기준으로 발전되어 나오는 거예요. 기독교가 세계기준까지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4천년 이스라엘 민족이 탕감해 나왔던 모든 것을 기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탕감해야 돼요. 지금까지 탕감했던 것을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까지 기독교를 중심삼고 다시 탕감해야 된다구요. 재탕감해야 됩니다.
재탕감해 가지고 그 탕감의 도수가 넘어서게 될 때, 기독교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기독교 시대가 오기 때문에 기독교가 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4백년 운세권 시대입니다. 알겠어요? 4백년간 기독교가 전세계에 문화권을 세워서 지금 민주세계의 문화권을 창설한 거라구요. 이것이 현대 과학문명과 더불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가지고 발전해 나온 거라구요. 그것이 영적으로 세계적인 한계점까지 왔기 때문에 끝날이 되고 재림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재림시대가 오면…. 재림주라는 분은 뭐냐? 예수가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영육 아울러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때워 맞춰야 된다구요. 예수는 영적으로는 세계무대에까지 나왔지만, 육적으로는 이스라엘 민족기준 이상의 세계기준은 아직 없다구요. 그렇다고 해서 영적으로 개인이 있느냐? 개인도 없고, 가정도 없고, 종족도 없고, 민족도 없고, 나라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부 다 때워 붙여야 된다구요.
그것이 뭐냐 하면, 통일교회가 그 동안에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그렇기 때문에 영육을 중심삼고 깨져 나갔던 이스라엘권을 다 갖다 때워 붙여야 된다는 거예요. 영적인 승리의 기준만 남았는데 육적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이 영적 기준 위에서 통일해야 된다구요. 영적 기준을 인계받아 가지고 육적으로 통일해야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해 나오는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래 가지고 지금 국가와 세계기준을 중심삼고 영적인 기독교 국가형의 국가기준에서 그것을 인계받아 가지고 육적 기준을 완결지어야 한다구요. 그래야 예수가 죽지 않고 국가기준을 중심삼은 영육 완성의 자리를 대신 탕감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 다음에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하고 예수가 이루지 못한 영육 완성기준을 복귀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느냐? 횡적인 육적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가 망하게 된 것은 이스라엘 나라 때문이며, 그 때문에 복귀섭리가 연장이 되어 왔다구요. 세계 인류가 사탄세계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것을 복귀하려니 지금은 이스라엘 국가 복귀시대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세계 운세가 전부 평면상에 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지금 미국이라든가, 소련이라든가, 무슨 나라든 전부 다 평면선상에 서 있는데 끝날에는 어떻게 되느냐? 제일 높다는 나라는 떨어져 내려오는 것입니다. 민주세계나 공산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련도 높다는 세계적인 국가가 됐지만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어디로 내려가느냐 하면, 세계 사람들이 끌려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떨어져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세계를 지도하다가 지금 국가적으로 떨어져 내려왔다구요. 공산세계에 있어서도 소련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소련이 세계의 주도권을 갖고 있다가 지금은 슬라브 민족을 위주한 국가로 떨어져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도 분규가 벌어지는 거라구요.
그들이 내려오게 되면 어디까지 내려오느냐? 앞으로 하나님이 국가기준을 복귀할 수 있는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부딪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이걸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기독교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앞으로 통일교회가 국가를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이 되면 기독교와 하나되게 됩니다. 곧, 평면적으로 가인 아벨로서 하나될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거라구요.
기독교의 세력이 통일교회의 세력에 의해 한계점에 이르러 통일교회 세력이 더 우세할 수 있는 권에 지금 들어가고 있는 거라구요. 이젠 기성교회가 떨어져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래 기성교회가 떨어져 내려오면 하나님이 세계적으로 섭리하고 역사한 것이 손해가 아니냐? 그게 아니라구요. 영적인 기준을 세계적으로 닦아 놨기 때문에 떨어져 내려왔어도 육적 기반만 조성되면 일시에 세계적 기준으로 올라설 수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예수께서 영적으로 구원역사를 한 것이 복귀섭리 끝날인 재림시대에서 공헌할 수 있는 터전이 되었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권이 걸려 들어옵니다. 공식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얘기를 하는지 여러분들은 모를 거라구요. 이건 얘기를 해줘도 뭘 아나! 내 지금 무슨 말 했는지 알겠어? 어디 너, 지금 내가 한 얘기 말해 봐. 하나님께서 세계적으로 영적 복귀섭리를 한 것이 왜 손해가 안 되느냐 하는 말을 했는데, 말해 봐. 「세계적으로 다 떨어져 내려왔지만…」 다 떨어져 내려오는데…. 기독교도 지금 떨어져 내려온다구요. 사탄세계가 떨어져 내려오는 것만큼 떨어진다구요. 민주세계가 떨어져 내려오니까, 민주세계의 문화권도 떨어져 내려오는 거라구요. 왜, 떨어져 내려와요? 그러면 영적으로 세계적 기반 닦아 놓은 하나님이 손해게요? 떨어져 내려오니까 손해게요? 손해가 아니라는 얘기를 했는데….「……」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가인 아벨을 하나 만들려니…. 우리가 세계적으로 나가려면 그 기간까지는 탕감받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탕감받아야 되겠기 때문에,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하려면 국가적 기준에 서서 가인을 굴복시켜서 요 기준을 맞춰야 된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손해 나는 것같이 되지만, 결국은 모두가 협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협조하는 입장에 서기 때문에 그들이 굴복하게 되면 대번에 세계로 나가게 된다구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영적 기반을 닦은 것이 오늘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는, 그 하나님의 수고로운 역사가 손해나는 역사 같지만, 손해나는 역사가 아니고 도리어 이익 된 역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때가 그런 때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그와 같은 역사가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 이렇게 7단계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귀역사를 하는 데에 있어서, 이렇게 종적인 역사를 지금까지 횡적으로 탕감해 나가는 데 있어서 역사 시대시대의 책임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느냐 하면, 맨 꼭대기에 가서 사탄과 결판하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번번이 졌다구요. 이것을 횡적으로 전개해 가지고 일곱 번 이상 진 것을 이 7년 과정에서 전부 다 굴복시키고 넘어가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제1차 7년노정입니다. 알겠어요?
그걸 누가 해야 하느냐 하면, 선생님이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한 과거의 모든 역사를 다시 승리해 가지고 여기서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은 부활적인 기반이 닦아졌다는 것입니다.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완전히 기반을 닦아서 그걸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영육을 중심삼고 출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들 축복가정이 나오는 것입니다.
축복가정, 이 축복가정은 본래 어디서부터? 예수님을 중심삼고 축복가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축복가정은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하면 말이예요. 가정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고, 씨족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부터 출발해야 됩니다. 그래서 세계를 향하여 가는 영광의 자리에 섰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지금 축복가정은 어떻게 됐느냐? 그 자리에 못 나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그 자리에 못 서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무슨 역사를 하느냐 하면, 아들의 역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역사를 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 요한이 예수를 배반했던 것을 복귀하는 역사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배반했기 때문에 그런 놀음을 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언제나 앞에, 선두에 세워 이렇게 고생시키면 좋지 않다는 거예요. 그러한 입장에 서 있다는 거예요. 지금 통일교회 가정들을 왜 동원하느냐? 본래는 선생님을 중심삼고 축복받았던 가정들이 선두에 서 가지고 모든 책임을 다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양자의 자리를 자기들이 계승받아야 선생님이 아들의 자리를 통해 가지고 완성의 기준에 도달하는 거라구요. 소생, 장성, 완성의 기준을 넘어 가지고 비로소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완성의 자리는 아담 해와와 하나님이 하나되는 자리라구요. 축복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가정이 출발됨으로 말미암아 완성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게 완성입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소생, 장성, 완성…. 타락한 인간이 복귀완성하려면 축복을 받아 가지고 소생, 장성, 완성의 단계를 넘어야 하는데,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고 무난히 넘어설 수 있는 자리에 서야 완성이 벌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사탄의 참소를 안 받아요? 국가적인 기준만 세워지면 통일교회는 참소받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국가기준을 세우려던 것을 못 세웠기 때문에, 이걸 재차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그 기준을 세워 나가야 됩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왜 가정들을 내세우느냐? 가정들이 선생님 가정을 앞에 세워 놓고 수고시켜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예수님의 가정을 영광스럽게 받들어 모셔야 했다는 거라구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죽을 자리에 내세웠기 때문에 그 민족은 전부 다 역사적으로 비참한 민족이 된 것입니다. 수많은 이민족 앞에 피를 흘리고 말굽에 밟히며 처참한 역사를 거쳐 나온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1948년에 독립이 됐다는 것은 새로운 봄이 온다는 걸 예고한 거라구요. 그래서 그들이 책임 못한 것을 전부 용서해 주려니…. 책임 못 한 사람을 구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아니라구요. 용서를 하려니 지금 가정들을 대신 일선에 내세우는 것입니다, 용서하려니.
이번에 여기 참석 못 한 사람들은 통일교회 족보에서 빠지는 거라구요. 이건 선생님의 생각이 아니라구요. 하늘의 법이 그렇다구요. 이번에 여러분들이 나가서 이렇게 하는 것이 뭐냐 하면, 예수님이 3년 동안 열두 제자를 세워 천신만고 끝에 아내를 택하려다가 죽은 그것을 복귀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예수님 이상 탕감 해원성사할 수 있는 12기대 수를 닦아주어야 한다구요. 그래서 120명을 중심삼고 3년 동안 열두 사람씩 열 명씩 배치를 하면서 120명을 전도하라고 명령했지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가서 싸움질이나 하고…. 그래서 책임 못 했기 때문에 하늘이 같이하는 것 같다가도 같이하지 않는다구요. '아이구, 하나님이 우릴 몰라준다' 할지 모르나 몰라주는 게 아니라구요. 상대할 수 없다구요. 놔두고 보는 거예요. 하나님의 관리권내에 놓아두고 보니 사탄도 간섭 못하는 거예요. 여러분의 마음 결정 여하에 따라 사탄이 끌어가느냐, 하나님이 끌어가느냐 하는 입장에 서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3년 동안 나가서 활동하다가 들어오고 싶은 사람은 들어오라는 거예요. 그 원칙적인 기준에서 수행한 사람은 다 들어와요. 못한 사람은 가만 놔두는 거예요. 들어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고…. 그 원칙 기준대로 안 들어온 사람은 전부 다 걸리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요게 마지막 고비라구요. 알겠어요?
1972년까지 국가적인 기준에서 마지막 넘어갈 때이기 때문에, 남북한이…. 선생님이 외국에 나가 가지고 쭉 준비해야 되는 거라구요. 민주세계가 떨어져 내려올 것을…. 내려오면 하늘의 문제가 전부 다 지장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나가 맞아 가지고, 세계적인 영적 기준을 복귀해 가지고, 그 기대 위에서 선생님이 갈 수 있는 길을 닦아 가지고 지금 여기 들어온 거예요. 여기 들어오니까, 결국은 영적인 승리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본국에서는 기독교가 반대했지만, 민주세계의 주체국이 통일교를 반대하지 않고 환영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 무슨 말인지?
그러니까 결국은 거기서 운세를 전부 다 가려 가지고 영적 승리기반을 닦았으니,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육적 기반을 닦아 하나될 수 있는 길을 닦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남북협상 문제가 벌어지는 거예요. 이 8월을 넘으면 안 되기 때문에 8월 30일 이내에…. 대한민국으로 보게 되면, 이후락이 두번째 이북에 들어가서 김일성을 만났는데, 김일성이 이후락을 잡아죽이지는 않았다구요. 그게 가인 아벨 만나는 거와 마찬가지라구요. 이번에 또 남한에서 이북에 갔지요? 이런 것을 보게 되면 섭리적인 모든 것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남북이 분리된 것이 언제까지 연장될 것이냐? 여러분이 원리를 배워 알고 있겠지만, 남북통일은 결국 자기들끼리 안 된다는 거예요. 통일하려는데 북한은 북한대로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하고, 남한은 남한대로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사람의 욕심을 채워 가지고는 통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욕심을 채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맞추려면 우리 통일교회는 기독교와 통일운동을 벌여 기독교와 하나되어 가지고 대한민국을 끌고 나가야 됩니다. 유대교가 이스라엘 민족을 끌고 나왔지요? 그렇지요?
기독교와 통일교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반대했던 기독교가 벌받아야할 것인데 용서해 주어 하나된 자리에 서면 유대교와 예수님이 하나된 자리에 서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래 가지고 유대교와 같은 기독교가 대한민국을 완전히 끌고 나가게 된다면 그 다음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대한민국 사람 그 누구보다도 더 충성하고 애국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고, 공산세계 사람보다 더 애국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어야 하늘나라를 세울 수 있는 자격자요, 하늘나라를 맞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격자로 공인을 받게 하려니 통일교회 교인들을 지금 선두에 세워서 피땀 흘리는 고생을 시키는 거라구요. '통일 교인' 하면 공산당보다도 더 지긋지긋하고 더 무섭다는 소문이 나야 된다구요. 그러면 이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도 그렇고 남한에서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 활동이라구요. 알겠어요?
그래 기동대가 뭐냐? 하늘나라의 평화군단이예요, 평화군단. 앞으로 여러분들이 전부 다 나라를 위해서 나선 사람으로서 공적인, 자기 목적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가지고 전국을 편답하면서 앞으로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의 갈 길을 보여 주기 위해서 편성된 기동대라구요. 알겠어요?
또, 세계의 갈 길을 새로이 보여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 한 곳을 중심삼아 가지고 국가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더라도 초국가적이요 초민족적인 입장에서 이런 놀음을 해야 합니다. 세계의 새로운 운세를 받아들일 수 있게끔 길을 다 열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뭐냐 하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선발대들이라구요. 지금 여러분들이 통일교회 들어온 지 며칠 돼요? 며칠 안 된 여러분이 통일교회 오래된 교인들보다도 더 선두에 섰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군대라는 것은 나이 많은 사람이 가는 게 아니라구요. 그렇지요? 그와 마찬가지예요. 통일교회 들어온 갓난이들이 죽을지 살지 모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이 결심에 불붙어 가지고 '와, 와!' 할 수 있는 패를 만들기 위한 것이 기동대라구요. 여러분은 '와, 와!' 해요? '와, 와!' 해요? 맨 첨엔 '와!' 하다가 석 달쯤 가게 되면 점점 가라앉아 가지고 한 6개월 되면 사탄의 밥이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방망이로 후려갈겨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기동대원 끌고 다니기가 힘들다는 말을 하지 말라구요. 뭐 끌고 다니기가 힘들어요? 몰아치는 거예요! 지금 때가 그런 때입니다.
지금 한국의 청년남녀들이 이북 인민군대를 이기게 돼 있어요, 지게 돼 있어요? 대답해 보라구요.「집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은?「이깁니다」 이겨요?「예」 손바닥 갖고? 혓바닥 갖고? 혓바닥이 대포알인가? 손이 무슨 총대야? 뭘로 이기나 말이야, 뭘로? 「정신으로 이깁니다」 정신으로? 정신만 가지고 가만히 있더라도 '남북이 통일된다'해서 통일돼요?
무엇으로 이기느냐? '저들만은 이긴다. 어려운데 무엇 때문에 저렇게 움직이느냐? 청소년의 나이에 무엇 때문에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저렇게 하느냐? 지독하다'고 여러분 고향 동네에 전부 다 소문이 나야 된다구요. 여기 여러분은 예전보다 다르니만큼, 40개 이상의 부락에 소문이 난다구요. 알겠어요?
기동대에 나갔다 씩씩해져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후줄근해 가지고 돌아가게 되면 망신살이 뻗치는 거라구요. 기동대란 씩씩한 무리입니다. 고향에 갈 때에는 그야말로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당당히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게 되면 '내가 지금까지 교육받았던 것을 전부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되겠다. 어젯날의 친구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서로 싸움질하던 친구며, 이마를 맞대고 너 나 하던 친구였지만 나는 이렇게 달라졌다'고 할 수 있어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면 동네방네가 획 돌아가는 거예요. '저 아무개 아들이 기동대니 뭐니 통일교회에 가더니 저게 뭐지? 무슨 마크인가? 가슴에 단 것 좀 설명해 달라. 구경시켜 달라'고 할 거예요. 그러면 '기동대 마크지' 하는 거예요. '기동대가 뭐야? K가 뭐야. K는 기동대란 말인데, 그걸 설명하자면 이러이러하다'고 눈물을 흘리며 이 나라의 서글픈 사정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렇게 전부 때려잡아 가지고 꼬리를 휘젓게 되면,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 처녀총각 할것없이 모두가 '야, 그 아무개가 전에는 말썽꾸러기고, 그렇게도 천덕꾸러기였는데, 그 녀석이 완전히 달라졌더라. 눈이 바로 박혔더라. 입술이 퍼렇던 것이 불그스레해졌고, 얼굴도 두꺼비 잔등 같이 보기 싫더니 개구리 잔등같이 아주 고와졌더라. 그 녀석, 옛날에는 뒤뚱뒤뚱 걷던 것이 지금은 걸음도 달라졌으며, 모든 것이 달라졌더라' 그렇게 동네에 소문이 나야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동네를 하나님 대신 사랑했다는 조건을 여러분이 세울 수 있다구요. 그래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 하면, 자기 동네를 기반으로 옛날의 국민학교 친구, 중학교 친구, 고등학교 친구가 있으면 그들 앞에 '나는 현재 이러한 놀음을 한다'고 선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그렇게 할 수 있는 재료를 수습하는 것입니다. 선전재료가 있어야 돼요.
그저 달랑달랑 뒷짐 지고 다녀 가지고 될 것 같아요? '아이고, 오늘은 또 어떻게 하나…. 밥만 먹으면 그 놀음…' 이래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 선전재료라는 것은 여러분들 재산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기반 닦아야 된다구요, 안 그래요? 그런 선전재료가 있어요? 그저 꺼떡꺼떡…. 전도하다가 주먹으로 탁 한대 맞아 피가 죽죽 흐르면, 그 피를 받으면서 '아버지, 내가 결심을 한 이상…. 이것은 지금만이 아니라 두고 두고 선전재료가 될 것입니다. 내가 그를 원수시하는 것보다도 만민 앞에서 자랑하기 위해선 이마가 깨져 가지고 피를 흘렸지만, 오히려 하늘 앞에 사랑의 마음으로 복을 빌어 줄 수 있습니다' 그래야 돼요. 여러분이 그 마음이 얼마나 성장됐어요?
비 오는 날 나가서 나발 불고 종일 전도하는 것, 그거 얼마나 좋은 선전재료들이예요? 비는 오는데, 눈물이 빗물같이 흘러내려 입술에 뚝뚝 떨어지게 되면 그게 얼마나 좋은 선전재료가 될 수 있어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뼈가 굵어지고, 진액이 생기고 골수가 엉기어 가지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거라구요.
그저 흘러가는 거품같이 되어서는 안 된다구요. 지리멸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좋은 재료를 수습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나가 활동하다가 그 슬펐던 사정을 동네에 가서 얘기하고 가족에게 얘기하고,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가 엉엉 울고, 형제 할 것 없이 엉엉 울면서 '네가 그렇게 수고하고 고생한 걸 물라주었구나. 반대했구나' 이렇게 한꺼번에 때려잡을 수 있는 교육자료를 수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일기를 전부 다 쓰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고향에 한번 쓱 가서는 일부러 일기책을 딱 놓고 작전하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가 불을 켜고 일기를 읽고 '야, 멋지다' 감동하게 되고, 형님이 또 읽고 '야 그 녀석 거룩해졌구나! 효자가 됐구나' 하게 하는 거예요. 그 일기책 하나 써서 갖다 놓음으로 말미암아…. 그게 재료가 되는 거라구요.
어머니 아버지도 그걸 읽고, 형님 누나도 그걸 읽어 보고서, 자기 집안 모두가 '아무개는 훌륭한 사람이 됐노라'고 공인하게 됩니다. 그 기막힌 이야기를 어머니나 누가 읽게 되면 목이 메어 가지고…. 한 장면 한 장면이 소설보다도 더 훌륭한 장면이 있을 게 아니예요. 그 기막힌 장면이 있을 거 아녜요.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 배고픔을 참고,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 어려움도 참고…. 이런 애국사상을 얼마든지 기록해서 말이야, 후대 여러분의 아들딸 앞에 교재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봤어요? 그런 것 생각해 봤어요? 해봤어요, 안 해봤어요?「해봤습니다」 그래 어디 보자. 일기를 썼어요?「예」 정말?「예」 그런 내용이 있나?「예」 그런 것 해 놓아야 된다구요.
그것은 앞으로 천만금을 주고도 못 사는 재료이고, 재산이 되는 거라구요. 어머니 아버지가 매일같이 찾아오게 할 수 있는 거라구요. 어머니 아버지가 나팔수가 되고, 형님 누나가 나팔수가 될 수 있는 거라구요. 그런 재료를 수집하여 내 집을 구하고, 내 종족이 내 말을 완전히 듣게 해야 합니다. 전국을 편답해 가지고 피땀 흘린 사실은 그야말로 자기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요,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모 형제를 사랑한 터전을 통하지 않고서는 국가와 민족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부모를 사랑하지 못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무슨 나라를 사랑한다고 해요? 그런 재료를 지금….
부모 형제를 움직이고, 동네 친척들을 움직여 가지고 그들의 선전을 통해서 나라 앞에 영향을 줘야 돼요. 40개 부락이 이렇게 되게 되면 몇개 군도 움직일 수 있다구요. 그런 것이 수가 점점 많아짐으로 말미암아 나라까지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선전 안 하더라도 자기의 배후에서 밤이나 낮이나 선전이 되어 가지고 결국은 전국적으로 영향이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안 그래요? 「……」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칠 수 있어요? 「없습니다」 선생님도 일생 동안을 이 일을 해 나가는 것은 전부 다 역사적 재료라구요. 내가 일기 안 쓰더라도 여러분이 한 건 선생님이 한 일임과 동시에 그건 여러분이 대신한 것이며 세계가 대신한 일이기 때문에 역사에 기록 안 되면 안 되게 되어 있다구요. 선생님은 그렇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여러분의 혈족을 중심삼고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져야 될 게 아니냐.
여러분이 선생님이 과거에 이렇게 이렇게 했다 하면 뼈가 녹아지고, 눈물이 쑥 나오고, 다 그렇게 되지요?「예」 그런 인연이 있기 때문에 상관도 없던 여러분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렇게 돌아가려고 하지요? 마찬가지라구요. 인연도 없던 남남끼리 모여 가지고도 감동을 받고 이렇게 새로운 이상을 펼쳐 보려고 하는데, 자기 혈육, 부모 형제가 된 입장에서 감동받고 결심하게 된다면 얼마나 강하겠느냐 말이예요.
예수님도 그런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죽지 않았어요? 그래 여러분만 천국에 가겠어요? 어머니 아버지 구하고 형제들을 구해야지요? 그러러면 외부에 나가 잘 싸워서 멋진 재료를 가지고 돌아와 어머니 아버지를 감탄시키고, 가족들을 감탄시켜 한꺼번에 구원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된다구요. 그런 생각 해봤어요? 하긴 뭘 해봐! 밥이나 먹고, '아이쿠 오늘은 무슨 밥이야? 어저께도 보리를 섞었더니 오늘은 뭐야? 이건 또 뭐야? 시래기를 뚝 저려 가지고 주누만. 아이고, 맛 없어. 집에 가서 어머니 아버지가 해준 밥이나 먹어야지' 그런 녀석은 거렁뱅이와 다를 바 없다구요. 그건 거렁뱅이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구요. 그런 사람은 미친개가 얼마든지 물어가도 괜찮다구. 그런 사람은 썩어 자빠진대도 얼마든지 썩어 자빠지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되기 위해서 나온 게 아니라구요. 먹는 것이야 나쁘든 좋든, 주면 주는 대로 먹어야지. 음식이 나쁘면 나쁠수록, 나쁜 자리에서 고생을 더 할 수 있고, 더 어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충성의 도는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예」
그러니까 그런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재료를 수집하는 것입니다. 그런 재료를 가지고 부모 앞에 가게 되면 부모가 눈물 흘리고, 나라 앞에 나서게 되면 나랏님이 눈물 흘리고, 하나님 앞에 나서게 되면 하나님이 황공하다고, 미안하다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 세계와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들을 척 대해 보니까 아주 풀렸다구요. 나서자마자 도깨비 방망이로 후려갈기고 싶은 생각이 난다구요. 선생님 만나면 뭐 좋은 말 들을 줄 알았어요? 여러분들 언제나 이랬다는 거예요, 언제나.
이번 기동대에서 떨어져 나가는 날에는 앞으로 세계적 기동대가 국가적인 활동을 하게 될 때, 그때에는 함께 하지 못할 거예요. 그땐 좋은 차 태워 가지고 북치고 나팔 불고, 쓱 경찰관들을 앞세우고 나가는 그럴 때가 온다구요. 그때 가서는 여기 들어왔다가 나간 사람은 가입을 못 해요. 들어가지 못한다구요.
이 녀석들, 역사를 더럽힌 녀석들, 말뚝을 꺼꾸로 박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지금 말뚝을 꺼꾸로 박는 격이라구요. 지금 이판사판 놀음을 하는 거라구요. 여기서 죽지 않으면 저쪽에서 죽는 그런 놀음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너희들은 노라리 가락으로 알고 있어?
지쳐서는 안 되겠다구요. 지친 녀석 있으면 손들어 봐. 지친 녀석들 손들어 봐. 「그런 사람 없습니다」 있어도 말을 하지 않으니까 무슨 생각하는지 아나?「지금 한창 일할 수 있는…」 그건 임자(기동대장)가 보니까 그렇지.
하루 저녁에 대한민국을 전부 다 뒤집어 엎을 수 있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하루 저녁에…. 이 삼천만을 대해 40명 가지고, 그저 밤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이렇게 해 가지고 아옹다옹 싸움하는 싸움판에 갖다 붙이면 좋겠어요? 몇천 배 해도 힘이 모자랄 수 있는 이런 때에 지쳐요? 지치면 벼락을 맞아 죽어야지….
너희들 지쳤나, 안 지쳤나? 「안 지쳤습니다」 지쳤다고! 기동대 며칠 됐어? 지쳤어, 안 지쳤어? 눈이 다 풀어졌다구, 눈이. 눈이 모아지지 않았다구요. 좋아서 하는 사람이 몇 사람 안 된다구요. 밤늦게 잠을 자고도 내가 먼저 일어나야 될 텐데 해야 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마음이 간절한 사람은 벌써 눈빛이 난다구요, 눈빛이 나요. 그런데 할수없이 따라다니며 '아이구 그만하고 가자. 거 뭐 별나게, 두드러지게 할 게 뭐냐. 그저 어영부영 하지' 그러다가는 옆 사람까지 망치는 거라구요. 흐르는 물이 옆의 움푹한 곳을 지나가다 '아이고 불쌍하다. 내가 채워 줄께. 불쌍해라' 그래 가지고 거기 들어가 채워 주다가는 같이 썩어지는 물이 된다구요. 알겠어요?
여러분도 기동대에서 그렇게 움푹한 곳이 생겨서 힘들다고 하는 것을 동정하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녀석은 차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놈의 자식아, 너야말로 구렁텅이 원수야' 하고 차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옆에도 가지 말라는 거예요. 거기에 동정하다간 자기도 거기에 들어가게 되는 거라구요. 흐르는 물이 음푹한 곳과는 상관 않고 그 옆으로 흘러가면 산 물이 될 수 있지만, 거기에 머물렀다가는 썩어지는 물이 된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다구요.
자, 여러분 좋은 자료들을 갖고 있어요? 여자들, 자랑할 게 있어요? 오늘 아주 잘 만났다구요. 자랑할 것이 있어요, 없어요? 「……」있나요. 없나요? 「……」통일교회에서 한 사람 앞에 한 달에 5천원씩이라도 대줘 가지고 일 시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구요, 그런 거 알아요, 알아요? 그런 거?「예」
지금 전도대원들은 전부 다 2,800원 가지고 살고 있다구요. 그것도 전부 다 2,800원이 못 돼요. 그거 보게 되면 여러분은 배 이상 가지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거 보게 되면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차라리 우리 대원들을 전부 다 개척 내보내 가지고, 한 달에 2천 원씩만 주어도 몇백 배 감사할 거라구요. 그러나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은 왜 그러냐 하면, 지금 때가 그렇게 안 할 수 없으니 그런 거라구요. 알겠어요? 「예」
그런데 이건 뭐야. 수련회는 누가 하라고 그랬어? 쉴 새가 어디 있어요, 병사가? 자기 소대를 끌고 여기 올 수 있어요? 병사가 그럴 수 있어요? 수련회라고 해서 올 수 있어요?「작전상 있을 수 있습니다」 작전상이라는 것은 무어냐 하면 후퇴작전입니다, 후퇴작전. 후퇴가 아닌 전진작전에 작전상이란 것이 있을 수 있나 물어 보라구요. 전진작전에 작전상이란 말이 있어요? 작전상이란 말은 치워 버리라구요, 작전상 후퇴지. 그러니 후퇴라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지금 일보전진 총공세를 취하는데, 부대가 이동할 수 있느냐구요? 그 자체가 뭐냐 하면 후퇴야, 후퇴. 그러니까 전부 다 눈이 뒤집어졌다구요. 정상적이 아닙니다. 지금 딴 데서 해도 안 되는데 왜, 왜, 경기도에서 이러고 야단이야? 경기도에서 이러면 전부 다 따라서 그럴 게 아니야! 이제 한 번 했기 때문에 '아이고, 두 달만에 한 번씩 또 하자' 그렇게 될 거 아니예요? '아이쿠 힘든데 두 달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씩 하자' 그렇게 되면 그놈의 전선은 망하는 거라구요.
이것 누가 제안했나? 선생님이 제안했나? 난 듣느니 처음이구만. 요전에 누가 물어 보긴 물어 봤다구. 그래서 28일부터 행사 일정이 조금 비긴 빈다고 했다구요. '수련회 한번 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돼요?' 그래서 '마음대로 해라.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고…' 뭐라고 그러겠나? 그걸 '오라, 잘됐다' 하겠어요?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고 난 관심이 없다구요.
오늘 아침에도 나가다가 일본 식구들이 보고하러 왔기에 시간을 내서 듣고 있는데, 반갑지도 않는 손님이 와 뒤에 척 버티고 앉아 가지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만나고 있다구요. 만나기 위해서 여러분을 만난게 아니라구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여러분이 앞으로 후손들 앞에 말하는 데 있어서도…. 통일교회가 이러다 말지 않는다구요. 알겠어요? 통일교가 세계를 휩쓸게 될 때는 여러분이 역사를 두고 말해야 합니다. 재료가 필요하다구요, 재료가. 그러니 일기책이라도 하나 남겨 놔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후손들이 그걸 볼 때에, 그 나라가 기억하고 후손들이…. 여러분은 하늘나라를 사랑하다가 지쳐서 떨어졌더라도 후손들이 그 책을 붙들고 눈물 흘릴 수 있도록 만들라는 것입니다. '야, 아무개야! 나는 이런 맘 가지고 나오다가 몇 개월 일하지 못한 오점을, 일생에 있어서 오점을 남겼기 때문에, 소기의 목적을 네 대에 이루게 하기 위해서 이 일기책을 남긴다. 그러니 이 일기책을 읽고 아버지의 정신을 물려받아 가지고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천국의 정병이 되어 다오' 그러한 훈시라도 하고, 유물이라도 남겨 주기 위해서 이 놀음을 하는 거라구요.
밥을 못 먹어서 따라다니는 거예요? 뭐하러 돌아다니면서 동네방네 못된 소문이나 내고 말이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자나깨나 재료를 수집해야 돼요. 통일교회는 앞으로 애국애족하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 거기서 특수한 것을 빼내서 전부 다 세계적인 역사의 교육재료로 삼아야 된다구요.
여기 경기도 기동대면 기동대에 어디 자랑할 게 있어요?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한국 패들을 전부 다 쓸어 버리고, 일본 패들, 일본 기동대를 데려다가 일 시키는 거라구요. 그 다음에는 암만 하려고 해도 여러분은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을 믿다가는 안 되겠으니 일본 사람들을 앞에 세워 가지고 여러분은 종처럼 시키는 거라구요. 부려먹는 거라구요. 그래 일본 사람한테 져야 되겠어요, 안 져야 되겠어요?「안 져야 되겠습니다」 지금 지게 돼 있다구요.
그들은 차 타고 다닌다구요. 알겠어요? 여러분들은 걸어다니지요? 어디 삐라를 뿌리더라도 걸어가잖아요? 그렇지요?「예」 그러니 지게 돼 있다구요. 그 누가 당해 낼 거야? 그건 자기 조상들이 옛날에 먹지 않고 타고 다닐 수 있는 그 기준을…. 탕감복귀원칙에 따라 우리는 이 자리에서 극복해야 돼요. 그들에게 져서는 안 된다구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하나의 실적을 내면, 여러분은 둘의 실적을 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3배, 4배, 5배, 부지런히 자지 말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선생님주의라구요. 그러지 않고는 못 이긴다구요. 못 이기면 어떻게 되느냐? 그 사람들 데리고 해야 한다구요. 그것도 한국을 필요로 하게 되고, 한국을 구해 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 모르지만, 안 느끼면 그들을 안 보내 줄지도 몰라요. 그러니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고, 두고 보자는 거예요. 그렇다구요. 이것밖엔 방법이 없다구요.
여러분 여기 올 때, 선생님 만나면 좋은 말 들을 줄 알았지요? 이게 제일 좋은 말이라구요. 젊은놈들은 그저 채찍으로 후려갈겨야 된다구요. 그래 활동 잘했다고 보아요, 못 했다고 봐요? 한다고 했나요, 못한다고 했나요? 잘하려고 했는데 잘됐어요, 못됐어요? 잘됐다고 생각하는 사람 보여 줘 봐요. 뭐가 잘됐어요? 그래 잘된 상급조로 이번 수련회가 생겨났어요?「앞으로 더 잘하기 위해서입니다」(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나라를 위하는 것은 나중이라구요. 앞으로 나라를 위할 수 있는 여러분의 후손을 기르기 위해서 하는 거라구요. 여러분도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칭송할 수 있기를 바라지요? 칭송할 그런 무엇이 있기를 바라요, 없기를 바라요? 있기를 바라지요?「예」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대한민국의 애국자였다고 자랑할 수 있는 무엇이 있기를 바랄 거예요.
그래 애국자들이 그 당시에 애국자로 칭찬받은 애국자가 있어요? 죽고 망하고 난 후에 애국자라 해 가지고, 무덤 더미를 찾아 뼈를 모아 가지고 '애국자다' 지금 그러고 있잖아요, 안중근 의사니, 무슨 의사니, 뭐 유관순이 어떻고 하는데 그때도 애국자였어요? 그때는 미친 녀석이었다구요, 미친 녀석. 낮도깨비였다구요. 세상이 다 변했는데, 너 혼자 그래서 어쩔 거냐 했다는 것입니다. 젊은 아가씨 유관순이 그때 미친 뭐예요? 미친 여자였다구요. 그래 그때도 애국자였어요? 비참했다는 거라구요.
이제 그런 한때가 왔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애국자가 돼요. 그렇지요? 통일교 기동대도 비참한 거라구요. 안 그래요? 정처없는 유격대와 마찬가지라구요. 집시의 무리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디 가서 다 잘 거예요? 그렇지요? 그렇잖아요? 죽는 사람은 없지만 말이예요, 비참한 거라구요. 지금은 애국자가 무슨 애국자인지 하늘 앞에 두드러지고 보이지는 않지만….
이렇게 모든 사상은, 이렇게 모든 역사는, 이렇게 모든 애국정신은 쌓여 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무서워하는 거라구요. 기성교회에서 우리 통일교회를 몹시 무서워하고 있지요? 이 기동대 여러분을 보고도 무서워한다구요. 그런데 여기 여러분들 보고 무서워할 게 뭐가 있어요? 보게 되면 얼굴도 볼만한 녀석들이 없구만. 전부 다 빠삐욘 같이 생기고 말이예요, 다 이렇게 생겼는 데 무서워할 게 뭐가 있어요? 또, 여러분 남자들 보면, 이게 뭐야! 전부 다 강다리 떼 같은 녀석들 보고 말이예요. 그저 쓸모 없는 남자들만 모인 것 같다구요.
그런데 이런 여러분을 대하기만 해도 기성교회 목사들은 '아이쿠' 하며 가슴이 철렁하게 된다구요. 그거 왜 그러냐? 지독하다는 소문이 났거든요. '저것들 건드렸다가는 똥바가지 쓴다'고 소문이 났다구요. 또한 '문선생이 명령만 하게 되면 죽을지 살지 모르고, 칼로 옆구리 찌른다'고 생각하고 말이예요. 그렇게 떨고 있다구요. 기성교회에서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명령만 하게 되면, 어느누구 배때기 찌르는 건 예사로 한다고 알고 있다구요. 또한 사실 그렇다구요. 내가 명령을 안 해서 그렇지.
여러분들, 선생님 말 잘 듣겠어요?「예」 그런 나쁜 일은 안 시키지만 말이예요. 그러나 강도가 어느 저녁 어디에 들어오는 것을 알고 있다가, 딱 문을 지키고 있다가 강도 모가지를 자르는 것은 해도 괜찮다구요. 그런 놀음은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전통을 세워야 된다구요.
신세를 지는 사람은 남아지지 않아요. 그는 그늘에 가 앉아 있어야 돼요. 알겠어요? 신세를 지는 사람은 그늘에 가 앉아 있어야 된다구요. 그렇지요? 암만 대학 나온 학박사라도 신세진 사람 앞에서는…. 돈이라도 빚을 졌으면, 아무리 무식한, 국민학교도 못 나오고 유치원 '유' 자도 못쓰는 그런 사람 앞이라도 신세졌으면 얼굴을 들 수 있겠어요?「없습니다」 학박사면 뭘해요! 학바가지예요, 학바가지. 들이차 버리는 거라구요. 귀싸대기를 후려치더라도 신세져 가지고는 언제나 그 그늘에 가 머리 숙이고 사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통일교회 여러분도 그렇다구요. 통일교회에 신세진 사람은 아무리 얌전하다고 해도 두고 보라구요. 그는 그늘 아래로 가는 거라구요. 천하가 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앞에 신세져 가지고는 그 하나님과 영원한 세계의 그늘에, 지옥에 가는 거라구요. 지옥이 무엇이냐? 그늘이 깜깜하지요? 깜깜한 그 그늘이 지옥이라구요.
인간세계 앞에 빚을 지고, 만물세계 앞에 빚을 지고서는, 하나님이 이 모든 일월성신을 냈고, 공기를 냈고, 물을 냈고, 전부 다 빛을 냈기 때문에 그늘에 가 앉아야 돼요. 그러나 남을 위하고 선을 행하게 되면 그는 대낮의 빛 가운데 서게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대낮을 주관하시는 선한 신이요, 사탄은 깜깜한 밤을 주관하는 악한 신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빚 안 진 사람은 빛 가운데로 가는 것이요, 빚진 사람은 그늘에 가는 것입니다.
자, 너희들 기동대에 들어와서 빚지고 있나, 빚 지우고 있나?「……」 빚 지우고 있나, 지고 있나? 「……」그걸 언제나 생각해야 돼요. 내가 통일교회의 신세를 지느냐? 통일교회에 신세를 지면 그냥 지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신세는 못 지는 거라구요. 신세를 지다가는 지금까지 자기가 받은 조상의 복까지 풀어 놓고 가는 것입니다. 무서운 거라구요.
그러니 신세를 끼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너희들, 여기 통일교회에 신세를 끼치기 위해서 지금 일하고 있지?「예」 그런가,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대답이나 좀 시원하게 하라구, 이놈의 자식들! 그래, 안 그래?「그렇습니다」 그래 하나님 앞에 신세지우려고 그러나요, 신세지려고 그러나요?「지우려고 합니다」 지우려고 해요? 그러면 어디 하나님 앞에 신세지우고, 통일교회에 신세지워 보라구요. 선생님이 통일교회의 책임자라구요. 그렇지요? 선생님이 총사령관인데 신세지우는 내용을 보여 줘봐요. 보여 주라구요. 「앞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지금 신세를 지고 있는 거지요.
그 신세지우는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출발해야 하느냐 하면, 나라를 위해서 출발해야 한다구요. 통일교회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통일교를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구요. 나라를 위해서지요. 통일교회 사람은 통일교회 간판을 지고, 나라를 위해 출발해서 선두에 서가지고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보여 주어야 돼요. 잠자는 사람은 깨우고, 방향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방향을 가르쳐 주고, 민족의 살 길을 제시해야 한다구요. 그리하여 저 험악한 삼팔선을 넘고, 이 국난을 극복해 넘어 가기 위해서 나선 무리들이 여러분들이라구요. 모병을 하기 위해서 나선 패들이 여러분입니다. 그렇지요?「예」 모병이 뭔지 아나요?
그렇게 생각하고, 빚지는 사람은 그늘에 살 것이요, 빚 지우는 사람은 양지에 살게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래서 여러분들 지난 두 달 동안을 잘 반성해 보라구요. 내가 이 기동대의 요원으로서 진정, 진정 기동대를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사랑하면서 나라를 위해서 일했느냐? 밥 숟가락을 들면서도 맹세를 했고, 밥을 먹고 물을 먹고 땀을 흘리면서 하나님이 기억할 수 있는 일을 했느냐? 심각하게 반성을 해봐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예」
이번 기간이 그런 반성의 기간이 된다면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또, 그렇게 되면 선생님도 잘했다고 할 거예요. 지금은 잘했다고 생각지 않아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3일 동안에 반성을 해요.
여러분들이 있는 이 집은 8일 동안에 지은 집입니다, 8일 동안에. 알겠어요? 8일 동안에 집 짓는다는 소리 들어 봤어요?「예」 세상에서? 「아닙니다」 그럼 어디서 들어 봤어요?「여기 통일교회 들어와서」8일 동안에 서른 여섯 명이 지었어요. 여길 다 파 가지고…. 하루 24시간 일했다구요. 밥 먹고 졸면서 지었다구요. 밥 먹고 30분간 휴식…. 그러니 숟갈 들고 밥 먹다가 졸고, 밥그릇 가져 가는 것도 모르고 30분이나 조는 사람도 있었어요.
'기상! 이 녀석들, 잘 시간이 없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7월 12일에 목사들 공청회 하게 되는데, 7월 2일부터 시작해 가지고 10일까지 끝내서 색칠하지 않으면 안 됐던 거예요. 그러니까, 10일까지 안 하면 죽어도 안 되게 되어 있었다구요. 일은 그렇게 해야 되겠더구만.
여러분, '이제 열흘 후면 죽는다. 이 기간에 총탕감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얼마나 바쁘겠어요? '7천년 역사를 요 시간에 탕감할 수 있는 길이 한 번밖에 없다' 하게 될 때는 어떻게 할 거예요? 밥 먹을 생각할 여지가 있겠어요? 잠잘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구요?
여러분들, 다 건달이고, 다 뭘 모르기 때문에 지금 이러고저러고하지. 뭐, 불평들 많이 했겠구만. 불평들 많이 했지요?「안 했습니다」 대장을 믿지 못하고…. 불평 없어요? 「잘 움직입니다」 뭘 잘 움직여? 할수없이 움직이는 거지, 속으로는 전부 다 불평이 있다구요. 그래 여자들은 불평 없나요? 「예」 그래 말다툼도 한번 안 해봤어? 「안 했습니다」 안 하긴 뭘 안 해, 대답 안 하는 사람들은 불평한 사람들이라구! 그래 말다툼도 진짜 안 했어요? 「예」 전부 안 했어요?「예」 정말이예요? 저기 대답 안 하는 사람들, 안 했어? 「예」(웃음) '저런 게 다 기동대 들어왔어' 하는 그런 생각은 해봤겠지요? 말 대답도 안 하는 것을 보면 '뭐 저런 것들이 기동대 들어왔어?' 그런 생각 해봤지요? 「안 했습니다」 음, 전부 다 양가집 맏며느리 되겠구만.
또, 남자들 중에서도 불평을 해본 사람 있지요? '저 녀석, 잠만 자고, 우리 기동대에 손해나겠다' 그런 사람이 있어서 불평해 봤지요? 그런 적이 있나요, 없나요? 있지요? (웃음) 너희들도 그렇지, 여자들 대해서 불평하는 게 더러 있지?「예」 그러니까 이게 하나 안 되어 있잖아?「그건 좋은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것은 갖다 붙인 거지, 기분 나쁘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라구요. 벌써 덜 된 거라구요. 문제가 있다구요.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예요.
혼자서도 어떤 때는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40명이 같이 사는데 그럴 때가 얼마나 많겠나. 없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라구요. 선생님이 그렇게 어수룩한 줄 알아요? 너희들 뺨친다구. 지금도 눈을 보니까…. 선생님이 취재관이라면 일등 취재관이라구요.
왜정 때, 수많은 능란한 검사 판사들 앞에 그저 못난이 놀음을 해 가지고 다 잡아먹었다구요. 조서 꾸밀 때에 쓱 못난이 놀음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아니 저런 사람이 일개 책임자가 될 수 있나? 아무래도 유치원 아이들 같구만' 그래 가지고 결국은 전부 다…. 그러다 보면 딱 중요한 일 가려 가지고 넘어가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서류 꾸미고 도장 찍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구요. 그런 작전을…. 그렇게 못난 놀음 할 때 가서는 해야 된다구요. 그게 능란한 사나이라구요.
전부 다 눈을 보면 벌써 안다구요. 그래 하나돼 있어요? 남자들, 싸움들을 했어요, 안 했어요? 「안 했습니다」 너, 싸움했나, 안 했나?「안 했습니다」 안 했어?「예」고집이 세고, 남의 말 듣기 싫어하잖아?「예」(웃음) 남 말 듣기 싫어하고, 고집이 세고, 그렇잖아?「맞습니다」 맞는 거야. (웃음) 그래 싸움하게 되면 불쾌한 일이 생기고 투덜거리고 했을 게 아니야, 안 그랬어요?「그런 일 없습니다」 없긴 뭐가 없어? 저렇게 생긴 녀석은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또 저기 저 녀석도…. 기동대 너희들은 앞으로 여기 올 적보다….
여러분 여기 올 때 경치가 좋던가요, 나쁘던가요? 여기 처음 와 보나요, 여러번 와 봤나요?「처음입니다」 죽지 않고 용하구만…. (웃음) 여기 한강 물귀신이 많이 있어요. 내가 여기에 들어와 가지고 손해될 수 있는 패들은 다 잡아먹어라 했는데, 죽지 않고 여기까지 들어왔으니 운수가 좋다구요. 알겠어요? 그래 올 땐 그냥 왔지만, 갈 때 그런 일이 있을지 모른다구요. 알겠어, 무슨 말인지?「예」
여러분들 여기 물 보니까 풍덩 들어가고 싶지요?「물이 탁해서…」 그래 물이 탁했으니까 그렇지, 맑다면 틀림없이 들어갈 게 아니야?「그렇습니다」 정 그러고 싶으면 탁하건 말건 눈 감고 들어간다구요. 그러다간 여기 물귀신에게 잡혀간다구요. 절대 강가에 가지 말라구요. 알겠어요? 「예」 큰일난다구요. 특히 여자들은 남자가 쓱 지켜볼 때만 층계 아래에 내려가지, 혼자서는 내려가지 말라구요. 알겠어요?「예」 남자 물귀신 많다구요. (웃음) 정말이라구요. 그런 얘기는 안 해줘야지. (웃음) 했다간 여자들 오줌누러 변소에 가다가 뭐가 바스락만 하게 되면 '아악!' 하고 턱 주저앉아 가지고 오줌을 싸게 마련이예요. (웃음) 그런 얘기는 안 하는 게 좋다구요. 그래 여기 물에 들어가지 말라구요.
여기는 굉장히 좋은 곳이라구요. 또, 여기는 선생님이 지금까지 정성들인 곳입니다. 이곳은 내가 지금도…. 어저께도 늦게 들어왔지만, 시간만 있으면 내가 여기 들어와 가지고 세월을 보내려고 한다구요. 뭘하나? 정성들이고 다 그러는 곳이라구요. 이젠 수택리 시대에서 청평 시대로 옮겨졌다구요. 여기는 정성들이는 곳이라구요. 알겠어요?「예」
그렇게 알고, 앞으로 여러분이 지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영적인 체험을 해야 됩니다. 그래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아는 사람 손들어 봐요. 두 사람밖에 없구만. 그 나머지는 다 하나님이 있는 줄 아나요, 모르나요?「……」알아요, 몰라요? 이거 하나님이 있는 줄도 모르는구만. 바로 문제가 그거라구.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
하나님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일해 놓은 것을 봐 가지고도 찾아낼 수 있는 거예요. 움직이는 하나님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원리공부를 해야 되는 거라구요, 원리공부를. 그런 원리공부를 여러분이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이 땅 위에 온 거라구요. 여러분들 몽시 가운데 선생님을 더러 보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래 내려요. 백 퍼센트로 보게 돼 있어요. 백 퍼센트 봐야 되고, 어려울 땐 전부 다 코치해 주게 되어 있다구요.
통일교회가 세계 그 어떠한 단체보다도 무서운 조직이라는 것이 그거라구요. 내가 직접 지도한다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조금만 더 나가게 되면, 도수가 자꾸 높아지면 여기 혼자 떨어져 있어도 선생님이 전부 다 코치해 주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영적으로 보게 되면 기동대 너희들이 삐라를 가지고 나가게 되면, 선생님이 척 앞에 나타나 가지고 나누어 주었는데 먼저 그 사람의 얼굴이 실제로 보인다구요. 그 사람에게 주면 틀림없이 전도되는 거라구요. 그렇게 하나님이 같이해 줄 수 있는 평면적인 생활권이 지금 전개되고 있다구요. 알겠어요?
그러려면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돼야 되느냐? 처녀 총각들이 연애하면서 죽고 살고 하지요? 그 이상 보고 싶고, 그 이상 그리워하게 되면 다 보인다구요. 사탄세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통하던 하늘나라가 막혀 버렸기 때문에, 그 이상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하늘나라를 찾아 올라가게 될 때는 영계가 열리는 것이 원칙이라구요. 알겠어요?
하나님이 없다 있다 하는 그런 말,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물어 보는 것도 실례라구요. 왜 없어요? 자, 여러분들 심장이 뛰는 것을 알아요? 너희들 들어, 못 들어? 「못 들어요」 왜 못 들어요? 이 머리칼 하나 까딱 하는 것하고, 요것 달랑달랑하는 것은 알면서 그걸 몰라요? 여기 심장을 보게 되면 '퉁탕퉁탕' 아주 뭐 절구질하는 것처럼 크게 하는데 왜 몰라요? 그게 무서운 거라구요. 이상하지요? 그 왜 모르나요? 머리칼이 까딱하는 것보다도 더 큰소리가 나는데, 그 몇십 배, 몇백 배 강하게 퉁탕하는 소리를 왜 모르느냐? 왜 몰라요? 그거 이상하잖아요? 왜 모르느냐 이거야.
또, (숨을 들이 쉬었다 내 쉬었다 하심) 숨쉬는 것도 생각해요? 가령 내가 하루에 몇 번 숨쉬고 사는지 생각해 봤어요? 그것도 모르고 살지요? 「예」 그렇잖아요? 펌프질을 '후훅 후훅' 하는 것도 모르지요?「예」 눈도 이렇게 몇 번 깜박깜박하는 줄 모르지요?「예」 왜 몰라요. 왜? 자, 속눈썹이 지금 둘이 서로 마주치지요? 위 아래 속눈썹이 마주치는 것을 보면 창살 같은 것이 수십 개가 강하게 마주치지요? 그런데 그것도 느끼지 못하면서, 요것 살짝 하는 것은 느낀다구요. 왜 그래요? 그거 이상하지요?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알려면 맥박을 짚어 보면 되지요?「예」 마찬가지라구요. 하나님이 있느냐 하는 것도 이렇게 두고 보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구요. 여러분이 그걸 짚을 줄 몰라서 그렇지 계신다구요.
그런데 왜 모르느냐? 너무 가깝기 때문입니다. 내 생명의 인식보다도 더 가깝기 때문이라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내 신경의 의식기관보다도 앞서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신경의 의식기관이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느끼게 돼 있습니다. 상대적인 기관이지, 내적인 감촉기관이 아닙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뒤에서 작용하는 것도 내적으로 있기 때문에 그 작용이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은 제일 깊은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제일 깊은 곳에 있는데 하나님은 어떤 때에 나타나느냐? 그것은 하나님이 완전한 주체이니만큼 완전한 대상이 이루어질 때에만 나타납니다. 알겠어요? 그럴 때만 작용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왜 모르느냐? 하나님의 대상으로서의 자격을 느낄 수 있는 완전한 자리에 못 서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복귀는 무어냐? 완전한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 속에 안 계신 곳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그 대상적인 위치를 설정하게 되면 하나님은 나타나게 된다구요.
그러기에 대상적인 위치는 뭣이냐? 타락성을 완전히 해탈해야 됩니다. 타락성을 완전히 해탈하기 위해서는 자기 개인에서부터 해탈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개인에서 승리해야 되고, 가정에서 승리해야 되고, 민족, 국가, 세계, 천주까지 승리해야 된다구요. 이것이 타락성 해탈권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상대적 자기를 발견하게 될 때는 대번에 하나님이 주관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과 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 있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를 무시하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무시해 가지고 하나님의 대상이 되라는 것입니다. 대상이 되라는 것은 뭐냐?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목적관을 중심삼고 거기에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대상적 가치를 세우게끔 몰아내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을 일선에 내세운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의 대상 자체가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게 되면 세계에는 못 미치더라도 나라에는 미치게 되고, 나라에 못 미치게 되면 종족에 미칠 수 있고, 종족에 못 미치게 되면 가정에 미치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기에 세계를 위해서 가려고 싸우다가 실패하게 되면 가정적 천국은 들어갈 수 있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나 개인을 위해 노력하다가 실패하게 되면 어디로 가는 거냐? 그는 똥구덩이밖에 갈 데가 없어요, 똥구덩이에.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사상을 중요시해야 된다구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작전이 뭐냐 하면, 천주주의를 부르짖는 것입니다. 제일 큰 주의라구요. 그러면서 무엇을 가지고 천주주의를 부르짖느냐?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이게 다르다구요. 최고의 것입니다. 최고의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부르짖는 거예요. 최고의 하나님의 심정의 대상을 이루어야 됩니다. 최고의 그 심정을 통한 세계적인 대상의 자리에 나가게 된다면 세계를 품은 하나님이 내 앞에 오시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까지 보게 되면 전부 다 밥 밥…. 나가 일하면서도 '밥 밥…' 이건 개 돼지 새끼들이야! 그러니 사탄을 꽁무니에 수십 개씩 달고 다니는 거라구요.
군사란 뭐냐? 그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군사들은 밥보다도 승리를 앞세워야 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강한 군대는, 그 나라를 지탱할 수 있는 군대는 밥보다도 승리를 다짐해야 됩니다. 원수를 정복하는 것이 밥보다 앞서야 하는 거예요. 입는 것보다 앞서야 되고, 먹는 것보다도 앞서야 된다구요. 그것이 앞서 있는 군대는 절대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거라구요.
지금 선생님은 여러분이 모르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구요. 엄청난 일을 하고 있어요. 돈이 없지만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구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 위신과 자기의 환경을 더 사랑하는 것보다도 뜻을, 미래의 하나님이 갈 곳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를 돌보지 않아야 하는 거라구요. 자기 환경을 돌보다가는 큰일을 못 하는 거라구요. 마찬가지 이치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자, 여러분은 그런 것을 알고, 여기 왔으니 며칠 동안 지내게 될 텐데, 한 사람이라도 낙심하고 그래서는 안 되겠다구요. 알겠어요?「예」
이 다음에 시집 장가가 가지고 아들딸 낳고 싶지요?「예」 그 아들딸 사랑 할래요, 안 할래요?「……」 사랑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사랑할 겁니다」 그러면 그 아들딸한테 무슨 예물을 줄 거예요? '너에게 줄 선물은 이것이다. 총각시절 어느때 어떻게 하고 어떻게 했다' 이렇게 줄 게 있어야 돼요. 또, 여자들은 '엄마는 처녀시절에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다가 이런 이런 뜻 가운데서 너의 아버지를 만났고, 이래 가지고 하나님 뜻을 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런 사상을 품고 노력했기 때문에 너에게 이제 이렇게 이렇게 교육하려고 놔 둔 꽁꽁 싸맨 그 예물 보자기를 풀어 보라'고 해 가지고 한 가지 두 가지 유물 가지고 교육할 줄 알아야 된다구요. 그래야 올바른 자식을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부모 노릇하기 쉬운 게 아니라구요.
그런데 가는 것보다도 지쳐 가지고 말이예요. 마사꾼이 돼 가지고 일기에 쓰면 어떡해요? 이 다음에 기동대 했었다는 얘기도 하지 말라구요. 그런 사람은 전부 바꿔야 된다구. 기동대에서 빠져야 된다구. 그런 쓸데 없는 놀음을 해서는 안 되겠다구요. 알겠어요?「예」지치긴 왜 지쳐요? 소망이 없으면 지치는 거라구요. 이번 돌아가게 되면 여러분은 배가의 놀음을 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때가 지금 얼마나 시급하다는 걸 알아야 되겠다구요. 통일교회는 이런 한때에 이 놀음을 하기 때문에, 근대 한국 문화사에 있어서 통일교회의 활동을 뺄 수 없다는 걸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 된다면 뺄 수 없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우리가 지금 닦아 놓은 터전, 하고 있는 일들은 대한민국이 하지 못하는 놀음입니다. 이런 엄청난 뜻 앞에 들어와 가지고 졸개새끼들이 되지 말라구요, 졸개 새끼. 알겠어요?
이제 2개월쯤 됐으면 말이예요, 사람이 많이 됐을 것인데, 새로운 결의를 해 가지고 이 시대 앞에 하나님이 요구하는 선발대로서, 또한 세계의 기동대 동료들 앞에 낙후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구요. 그 사람들 앞에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그 사람들이 우리를 본받게 만들어야지, 우리가 그 사람들 본받을래요? 그러면 안 되겠어요?「예」 젊은 여러분들은 말이야, 지금 뭐 밥을 하루 한끼만 먹어도 된다구요. 여기 지금 스물 다섯 살 이상 된 사람 손들어 봐요. 몇 사람 안 되누만. 서른 살 이상 된 사람 손들어 봐요. 한 녀석도 없구만. 여러분들 때에는 그저 시궁창에 꺼꾸로 쳐박아 놓고 가만 있어도 내가 올라간다고 생각만 하면 둥둥 뜨게 돼 있다구요. 그런 때라구요. 뭐 어디 가든지 지칠 때가 없다구요.
산비탈에 가서 그저 수십 바퀴 굴러 가지고 찰과상을 입고, 살이 툭툭 터지고, 뼈가 부러졌더라도 버드나무 껍질을 갖다가 칭칭 감아 놓으면 일주일 안에 다 붙고 만다구요. 그런 때가 참 좋은 때라구요. 이런 때 훈련 못 하고 언제 훈련할 거예요. 지금 때는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다구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팔도강산을 유람하면서 다닐 수 있어요?
여러분은 경기도 구경은 잘 하겠구만. 그렇게 알고, 여기에 왔으니 잘 훈련받아 가지고밖에 나가게 되면…. 9월 초하루부터 뛰겠구만?「예, 강화로 갑니다」 지치지 말라구요. 알겠어요?「예」 틀림없이 다 그래야 된다구요?「예」 이번 기회에 새로이 결심하고 정비해야 되겠다구요. 이제 그만하고 다음에 만나자구요.
누구 질문할 사람 있으면 해봐요. 선생님에게 질문할 사람 없어요? 그럼 내가 얘기해 줄까?「예」 그러면 한 시간쯤 얘기하지요.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타락한 인류 시조를 가진 우리 인간들은 이렇게 끊어져 떨어졌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는 노정을 거쳐가야 됩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내가 어제 저녁에 무슨 얘기 했어요? 이 말 하다가 갔지요? 얘기 안 해 줬나요? 얘기를 해주기는 했지요?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습니다. 30분만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많아서 요점을 추리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요전에 얘기해 준 것은, 자신이 없으면 지친다는 내용이었지요? 「예, 주로 지치는 것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복귀역사를 쭉 더듬어 보면, 여러분이 알다시피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 이렇게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무엇이냐 하면 종의 종의 시대로부터 종의 시대, 양자의 시대를 거쳐 가지고 메시아를 맞는 시대까지, 즉 예수님이 올 때까지입니다. 종의 종의 시대는 어느때냐 하면 야곱 전 시대를 말합니다. 야곱시대에서부터 양자의 시대를 향해서 들어가기 때문에 이스라엘 선민이라는 특정한 민족이 나온 것입니다. 그 입장은 뭐냐 하면 인류역사 가운데서 아벨적 민족사가 생겨난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에서 실체기대를 복귀하게 된다면 그 다음엔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기대가 있다는 걸 배웠지요?「예」 아벨 족속이 이스라엘 민족이면 가인 족속은 뭐냐 하면 전세계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무슨 책임을 해야 됐느냐 하면, 가인적 존재인 로마제국을 예수님과 하나되게 해 가지고 복귀해야 했다는 거예요. 예수님의 뜻을 따라 가지고, 예수님을 중심삼고 로마 제국을 굴복시킴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아벨적 지상세계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어떠한 분이냐? 아벨의 사명을 갖고 온 분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아들의 사명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아들과 같이 되기 위해서는,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양자의 과정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메시아를 위한 기대입니다. 다시 말해서 실체를 복귀하여야 메시아를 복귀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 자체를 두고 보면 유대교하고 이스라엘 민족하고 하나되어야 되고,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아벨 족속으로 보게 되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로마 나라를 통일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가 와서 해야 할 사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맞기 전에 해야 했던 책임은 무엇이냐? 유대교하고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되어 가지고 예수편에 서야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하고 이스라엘 나라하고 다른 것이 뭐냐? 예수님은 아들로 왔기 때문에, 아들이라는 존재는 어디까지나 아버지편에 서야 된다구요. 그렇지요?
아들이라는 존재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서 나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양자라는 존재는 아버지가 다르다구요. 어디서 왔느냐 하면 외부로부터 들어왔다는 거예요. 이게 다르다구요.
그러면 타락한 인간과 타락하지 않은 입장에서 온 예수와는 어떤 관계가 있느냐? 아버지편에서 온 아들은 언제나 아버지편에 서야 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근거로 해 가지고 태어나고, 사랑을 받고 자라고, 사랑 속에서 죽는 사람이 아들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들도 그렇다구요. 여러분도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나고, 부모의 사랑 가운데 키움받고, 부모의 사랑 속에서 살다가, 부모의 사랑 가운데서 죽어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락하지 않은 아담 입장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서 하나님에 의해서 자라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으며 아들의 사명을 완결짓고 난 뒤에 죽어야 될 텐데, 그런 자리에 못 서고 타락했다는 거예요. 태어나기는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에서 태어났지만, 그렇게 지음은 받았지만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사랑을 중심삼은 모든 것이 파탄됐다는 것입니다.
아들이란 존재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태어나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자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죽어가야 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양자의 입장에 처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양자는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하면 딴 부모한테서 태어난 거라구요. 혈통이 다르다구요. 알겠어요? 그 혈통이 부모의 친척이라든가 형제의 인연을 통하였으면 자기 아들 대(代)는 혈통이 다르지만 아버지 대는 같다구요. 그렇지요?「예」 그런 입장에 있으면 그가 양자라 하더라도 그 부모가 그렇게 섭섭한 입장에 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몇 촌 조카이기 때문에 그렇게 섭섭한 것을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은 어떤 입장에서 태어났느냐 하면 순전히 하나님의 원수, 아버지의 원수의 핏줄을 타고 태어났어요. 그것이 하나님 앞에 복귀섭리를 통해서 양자라는 자리에 세움받은 자의 입장이다 이겁니다. 알겠어요?「예」 이스라엘 민족이 그런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거 알겠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사의 출발을 보면 본래 아들이라는 존재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없다구요. 사람을 짓는 데는 아담 해와 하나씩 지었지요? 그런데 아담 해와가 타락해 가지고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람을 다시 짓는 것은 창조원칙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을 찾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종 중에서 특별한 사람을 빼내는 겁니다. 종 중에서 세계적인 대표, 역사적인 대표자를 빼가지고 거기서 양자를 추려 내지 않으면 양자나마 찾을 길이 없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지요?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하나씩 지었는데 이들이 사탄세계에서 타락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편에서는 아들을 찾을 길이 있을 수 없다 이겁니다. 그런데 아들을 찾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세계의 종의 종가운데서 특별히 하늘의 뜻을 바라고 사탄편을 거부하고 나오는 사람, 즉 사탄편을 박차고, 사탄 부모를 박차고, 사탄 형제를 박차고, 사탄의 모든 것을 박차고 거기에서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정성을 들이는 사람, 타락한 아담 이상의 기준을 가지고 정성들이고, 하나님을 위하는 것은 물론 아담 이상으로 하나님을 찾아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는 종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양자도 찾을 길이 없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그런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야곱 시대에 와 가지고 비로소…. 야곱이 양자가 되려면 사탄한테 승리해야 됩니다. 천사한테 승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영적으로 천사하고 얍복강에서 씨름했다구요. 씨름해 가지고 영적 천사를 굴복시키고…. 그러나 영적 천사만 굴복시켜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 다음엔 영적 실체가 되는, 다시 말하면 천사장 아들격과 같은 자리에 선 에서를 굴복시켜야 합니다.에서는 형제지만 사탄편을 대표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천사를 굴복시키면 그것을 굴복시킨 영적 승리의 터전을 통해서 육적 천사의 아들과 같은, 천사의 한몸과 같은 에서를 굴복시켜야 됩니다. 알겠어요? 두 세계의 종을 굴복시키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예」 그 놀음을 한 것이 야곱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을 굴복시키는 입장에 섰으므로, 형(兄)으로 봐서는 아담의 타락하기 직전 단계를 다시 복귀한 형이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 창조원칙을 보면 소생, 장성, 완성을 지나 가지고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가 서로가 성숙해 가지고 이성지간에 서로 위할 수 있는 사춘기 시대를 지나서 서로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돼야 되는 것입니다. 완성 기준이 그거라구요.
타락은 어디서 했느냐 하면 장성기 완성급에서 했기 때문에 완성급을 남긴 입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영계의 승리 기반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니 아들의 자리에 못 나갔다구요.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 소생, 장성, 완성의 단계를 거쳐 완성해 가지고 아들로서 당당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순수한 단계에서 태어난 분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소생, 장성, 완성의 단계로 볼 때에, 완성단계에 올라설 수 있는 대표적인 존재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이스라엘 민족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단계적으로 볼 때 하나는 타락한 아담 복귀형에 선 것이요, 또 하나는 완성한 아담형에 섰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여기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7년노정을 통해 완성단계를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넘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천사장이 타락했기 때문에 천사장의 본질을 제거시키는 놀음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편에 돌아가고 아담 해와편에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천사장은 아담 해와의 종이니까, 하나님의 종이니까 하나님과 아담 해와 앞에 완전히 굴복할 수 있어야만, 거기에서 비로소 양자의 입장에서 하늘의 대를 이어 갈 수 있는 길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우리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하나님의 혈통권내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혈통권내에 들어가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다구요. 알겠어요?「예」 하나님의 혈통권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돼야 되느냐 하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접붙임을 받아야 된다구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양자의 입장에서 접붙임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완전히 예수님하고 하나돼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되는 동시에 하나님과도 하나되어야 됩니다. 왜 그러냐? 타락한 천사가 하나님의 종이요, 아담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종의 자리에서 아담을 굴복시키고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본연의 기준을 복귀한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사탄편이 빼앗아 갔기 때문에 여기서 모든 것을 돌려드려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그러면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 양자의 자리에 선 이스라엘 민족은 어떤 생각을 가져야 되느냐? 자기가 양자의 자리를 갖고 있으되, 혹은 자기가 양부모의 사랑을 받고 있으되 언제나 자기 중심삼고 생각하다가는 큰 사고라는 거예요. 그 양부모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냐 하면, 사랑하는 아들을 중심삼고 볼 때에 저것이 양자가 아니고 내 친자식이면 좋겠다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이 있겠어요, 없겠어요?「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구요.
양자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4천년 역사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가지고 양자를 필요로 해 나온 것은 아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없기 때문에 양자를 필요로 했지, 아들이 있었다면 양자가 필요 없다구요.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마음을 가지셨느냐? 양자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바라볼 적마다 '저것이 내 직계 아들이라면 얼마나 좋겠나?' 하고 소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소원한 대표자를 바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대표자를 이 땅 위에 보내 가지고 하나님의 본심의 서럽고 섭섭한 마음을 완전히 풀지 않고는 창조이상이 다시 실현될 수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알겠어요?「예」 이렇게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러한 아들을 요구하는 마음, 그 내심을 표시해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사의 끝날에 있어서 하나의 아들을 보내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구세주 메시아를 보내겠다는 약속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양자를 축복한 것은, 양자를 세운 것은 아들이 없기 때문인데, 아들 대신 세운 이 양자가 취해야 할 태도는 어떠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으면 그 축복이 자기의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소유할 수 있는 축복을 대신 인계받았다는 마음자세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양자는 상속받을 수 있는데, 만일에 하나님으로부터 상속받은 모든 권한을 자기를 중심삼고 받은 것과 같이 생각했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랬다가는 양부모의 원수가 됩니다. 즉,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본심에 거슬리는 사람이 되고, 그 다음에는 아들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조는 사람에게) 무엇이 된다고?「양부모의 원수요」 그 다음엔?「하나님의 원수요」 또 그 다음엔? 「……」 또 그 다음엔?「모르겠습니다」 그거 보라구. 시작하는데 조니까 모르지. 이런 말은 원리에도 없다구요.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역사가 복귀섭리에 맞아들어가느냐 안 맞아들어가느냐 하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그러는 거라구요. 그만둘까?「아닙니다」 자, 뭐가 어떻게 됐다구요? 양자는 어떻게 해야 된다구요? 그 축복 받은 모든 기업을 자기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 기업은 자기 것이 아니라구요. 양자로서 축복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선 자라도 다음에 그 양부모의 아들딸이 태어나면 양자의 기업을 몽땅 취소당할 수 있다구요. 그렇지요?「예」 알겠어요?「예」 그런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응당히 취소당해야 된다는 마음을 갖지 못했다가는 아들의 원수가 되는 것이요, 그 다음엔? 아버지의 원수가 되는 거라구요. 그런 자리가 양자의 자리라는 거예요, 양자.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만일에 양자가 아들이 오게 되면 자기의 모든 것을 빼앗길 것을, 양자로서의 명분이 끊어질 것을 염려해 가지고 아들로 태어날 사람을 복중에서부터 반대하게 된다면 그는 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양자는 뭐냐 하면 천사장 복귀형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양자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창조할 때 천사장은 협조의 대상이요, 수호의 대상이요, 문의의 대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복중에 아들이 잉태돼 가지고 태어날 그때부터 협조의 대상으로서, 다시 말하면 창조 당시에 천사장을 시켜서 협조시키던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을 대행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타락한 천사장을 복귀해 가지고 비로소 아들을 맞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축복이란 것이 뭐냐 하면 복귀하기 위한 축복이지, 자기들이 행복을 누리기 위한 축복이 아니다 이겁니다.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그러면 양자로서 축복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종에서부터 빼야 됩니다. 그러면 종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종이라는 존재에게는 상대니, 소유니, 이런 것이 허락될 수 없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타락하지 않은 천사장이 종의 입장인데 그 종이라는 존재가 무엇을 소유할 수 있고 무슨 축복을 받을 수 있나요? 없지요?「예」 상대니 무슨 소유니 없다구요. 천사장의 소유는 없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 역사는 뭐냐 하면 구약시대부터 예수님이 올 때까지 종의 역사에서부터 양자의 역사로 넘어가는 역사를 한꺼번에 해 나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종교가 이루어 놓은 역사는 복귀역사이기 때문에, 종시대권을 복귀하고 양자시대권을 복귀해 나온 거예요. 세계적으로 볼 때 종시대권 복귀역사는 기독교 이외의 종교 역사가 됩니다. 알겠어요? 기독교는 양자 복귀역사를 대행해 나온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 복귀역사 시대권내에 있는 수많은 종교는 소유와 상대가 허락될 수 없기 때문에 독신생활을 하고, 무엇을 가져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신부나 수녀나 중들에게는 소유가 없다구요. 알겠어요? 절간은 소유가 있지만 그 아무개 주지는 소유가 없습니다. 또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상대 이념을 허락치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로 볼 때 지금까지 믿어 나오는 수많은 종교 가운데서 고차적인 종교는 독신생활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거예요. 또, 기독교를 보면 양자는 양자인데 영육을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양자가 아닙니다. 알겠어요? 영적 기준만 이루어진 양자입니다. 육적 기준에 있어서는 종의 역사가 연장되어 내려왔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종으로서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종의 소원은 딴 데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잘 만나는 것입니다. 종이 아무리 자기의 상대를 가졌댔자 주인 잘못 만나면 그 상대까지 빼앗기나요, 안 빼앗기나요? 그 상대가 자기 것 돼나요?「안 됩니다」 자기 자체가 종 새끼니만큼 종 새끼의 상대물과 소유는 전부 다 주인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나쁜 주인 만났다간 큰일나는 것입니다. 사탄은 나쁜 주인이기 때문에 나쁜 주인을 만난 자리에서 좋은 주인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이 종으로서는 최고의 소망이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상대니, 무엇이니, 그것이 있을 수 없다구요. 그래서 고차적인 종교는 종의 복귀 역사권을 책임져 나오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에는 상대이념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독신 생활을 해 나온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 종 가운데서 빼 가지고 세움받아야 할 것이 양자입니다. 그러면 종 새끼를 불러다가 양자로 세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떤 사람이라야 양자로 세울 수 있겠느냐? 그냥 양자로 불러다 세울 수 없다구요. 죽을 고생을 다 시키는 것입니다. 주인을 위해서 죽기를 바라고, 주인을 위해서 어려운 것은 전부 도맡아 하고, 맞을 것이 있으면 주인 대신 맞고, 고통이 있으면 주인 대신 고통받고, 슬픈 것이 있으면 주인 대신 전체를 맡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를 위하여 효성하는 아들, 효자를 대신할 수 있고, 아들 이상 주인을 위해서 희생한 실적이 없는 사람은 그 주인이 절대 양자로 세울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양자가 차지할 수 있는 기업이 개인만큼 큰 기업이라면 세계적인 개인을 대표한 종으로서, 아들이 충성하고 희생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자리에 세우더라도 고맙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러한 종이라야만 비로소 종 가운데서 양자를 뽑는다면 뽑힐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개인적으로 그런 사람을 길러 나와야 되고, 가정적으로 그러한 가정이 나와야 되고, 종족적으로 그런 종족이 나와야 되고, 민족적으로 그런 민족이 나와야 되고, 국가적으로 그러한 국가가 나와야 되고, 세계적으로 그러한 죽음의 대가를 가려 나가면서 양자의 인연을 이어받기 위해 죽음 길을 자진해 나가면서라도 하늘을 모시기 위한 희생의 길을 닦아 놓은 터전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기독교 문화권입니다. 기독교는 순교의 피를 흘려 나와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이 양자로 세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보면 종교는 피 흘려 나온 것입니다. 종 복귀역사, 양자 복귀역사이기 때문에 영적 양자권을 복귀하기 위해서 세계적으로 순교를 당하고 피를 흘리며 대가를 치러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것입니다. 그 말이 예수님 자신을 두고 한 말이냐, 이스라엘 민족을 두고 한 말이냐? 대답해 보라구요. 「이스라엘 민족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것도 지금까지 모르고 있다구요. 죽고자 해야 된다고 해서 예수 자신도 죽고자 해야 되나요? 다르다구요. 예수 자신이 죽고자 해야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말이 아니라구요. 너희들은 내 앞에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그 말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양자로서 하나님의 혈족권내를 찾아들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을 예수 이상 사랑하겠다는 마음, 예수를 자기 몸 이상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갖지 않고는 하늘나라가 나올 길이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기독교 역사가 순교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서 나오는 거라구요. 알겠지요? 역사는 그렇게 되어 나오는 거라구요.
이래서 예수님 때에 있어서 하나님의 축복받은 이스라엘 민족의 교회, 즉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라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거라구요. 양자로서 차지한 기반인데 그것은 누구 때문에 받았느냐 하면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요. 아들이 오면 몽땅 양자의 입장을 버리고 그것을 아들에게 상속해 주기 위해서 축복받은 것이지,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차지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그것을 넘겨 주지 않겠다고, 그것을 빼앗길까봐, 그것이 무너질까봐 반대해서 이스라엘 나라는 망하게 됐던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리하여 역사가 연장되어 내려왔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 신자는 다시 양자의 입장에서 오시는 주님을 아들로서 맞기 위해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대하던 때가 연장되어 내려온 거라구요. 이스라엘 민족을 대한 예수 때와 지금 때는 어떻게 다르냐? 예수 때는 민족을 위주한 때요, 지금은 영적이긴 하지만 세계적인 시대권내로 확대된 것입니다. 본래 메시아의 사명은 나라에서부터 세계로 가는 것이지 개인 복귀, 가정 복귀, 종족 복귀, 민족 복귀, 그것 하는 게 아니라구요.
이스라엘 나라하고 유대 백성하고 하나되었더라면 그때 거기서부터 예수를 중심삼고 가인 아벨이 복귀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예수 중심삼은 아벨나라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국가인 로마제국을 대해 가지고 정복했더라면 그때에 지상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그것이 연장되어 가지고 지금까지 2천년 동안 피를 흘리며 탕감해 나오면서 이끌어 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면서 다시 아들이 올 수 있는 그때를 맞이해서 이스라엘 민족, 이스라엘 나라가 혹은 유대교회가 연장된 것이 민주세계와 세계의 기독교입니다. 민주세계와 기독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오시는 주님과 하나된다면, 로마제국과 마찬가지의 입장인 사탄세계가 공산세계인데 그 공산세계가 완전히…. 그 공산세계가 굴복함으로 말미암아 지상에 비로소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대가 세계화되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오늘날 전세계의 민주세계라든가 기독교는 누구를 위해 있느냐? 이것은 양자권에 있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서 근본적으로 돌려드리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타락한 천사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물건을 훔친 천사장이 그 물건을 돌려보내 주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자리에 서는 것이 됩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 세계는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왜 쇠퇴하느냐 하면 통일교회를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민주세계가 왜 쇠퇴하느냐 하면 민주세계의 대표되는 국가인 한국이라는 나라가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반대했던 자리와 맞먹는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천사장이 타락된 것이 사탄인데, 하나님의 물건을 빼앗아다가 돌려주지 않겠다는 입장에 지금까지 계속해서 서고자 하면 안 됩니다. 그 자리가 사탄이 점유하고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예요. 아무리 이스라엘 민족이고, 아무리 유대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아들한테 돌려드려야 할 것을 못 돌려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마음으로 고대하던 아들을 갖고 싶은 것을 배반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사랑의 이상을 이루려던 것을 배반한 것입니다. 그것이 마치 사탄과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또, 그 다음에 아들을 위해서 심부름을 시켰던 것인데도 불구하고, 아들을 위해서 모든 것이 있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아들을 부정하는 입장에 서니 그것은 사탄과 같은 입장이기 때문에 망할 수 있는 운명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자, 그러면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전세계 사람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도 그래요, 이 사람들이 복귀노정을 어떻게 가느냐? 복귀노정에는 소생, 장성, 완성이 있는데, 소생 없는 장성이 없고, 장성 없는 완성은 없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지요?「예」 소생, 장성, 완성을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 이렇게 종적으로 3단계로 찾아왔던 것을 횡적으로 탕감할 때가 끝날입니다. 이거 알지요? 그러면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요것이 요렇게 되는 거라구. 요것이 뭐냐 하면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라구요. 그러면 요것과 맞먹는 것이 구약시대인데, 이것이 소생시대이지요? 이것이 장성시대이고, 그 다음엔 이것이 완성시대지요?「예」 그와 마찬가지로 요것은 소생시대, 장성시대, 완성시대, 이렇게 맞 먹는다구요.
그러면 이렇게 보면 어떻게 되느냐? 세계를 보게 된다면 이와 같은 현상으로 전개돼 있는 것입니다. 이건 뭐냐 하면 종의 시대이고, 요건 뭐냐 하면 양자의 시대이고, 요건 뭐냐 하면 아들의 시대로서 부모의 자리를 결정하는 거라구요. 부모를 찾아 나오는 거라구요. 아담 해와가 여기서 타락하여 부모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걸 찾아들어가는 거지요? 결국은 부모복귀노정이 이렇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기서 왜 하나님이 세계적 시대를 맞게 했느냐, 왜 세계적 끝날에 와서 이러한 총탕감하는 복귀섭리를 해야 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주관해야 할 것은 세계입니다. 사탄한테 개인이 침범받았지만 세계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이런 기반을 닦지 않고는 개인복귀는 물론이요, 세계복귀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 끝날에 이런 역사를 되풀이해 가지고 총탕감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소생 없는 장성 없고, 장성 없는 완성이 없습니다. 자, 그러면 세계적인 종교 가운데서 종의 종교가 무엇이냐 하면…. 종의 종교가 있어야 된다구요. 하나님편에서 하나님을 찾아 나가고 하나님을 모시고 나가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셔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 가운데는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종교 중에서 소생적 종교는 어떠한 종교냐 하면 이것은 종적 종교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은 뭐냐 하면 기독교 이외의 세계적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장성적 종교가 무엇이냐 하면 기독교입니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완성적 종교는 어떤 것이냐 하면 통일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이렇게 말하면 '아이구, 통일교회니까 그렇지' 그러겠지만 그러한 입장에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역사성을 두고 얘기하는 거라구요.
오늘날 통일교회는 종교 통일을 부르짖기 때문에 기성교회의 신령한 사람도 선생님을 증거하고 통일교회를 찾아가라고 가르쳐 주고 소생적 입장인 열교(劣敎)들도 통일교회를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열교가 증거하는 표준과 기독교가 증거하는 표준을 전부 다…. 소생도 완성을 위한 것이요, 장성도 완성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전세계의 종교가 비로소 하나의 길에서 연결될 수 있는 때가 왔다구요. 지금까지는 따로따로 뛰었다구요. 알겠어요?「예」 기독교가 양자의 종교라면 종적 기준에서 양자의 종교이기에 횡적인 면에서는 전부 관련성이 없었다구요. 그렇지만 완성시대가 옴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관련성을 갖고 종교 통일을 할 수 있는 영적 운동으로부터 육적 운동을 시작할 수 있는 시대를 맞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에? 통일교회가 영적 세계의 출발과 더불어 육적 세계의 출발, 즉 영계와 육계를 합한 소생적 종교운동, 장성적 종교운동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지금 세계적인 정상이 이렇게 돼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 중에는 기독교 사상을 믿던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구요. 이방 종교를 믿던 사람, 즉 불교를 믿던 사람, 유교를 믿던 사람들, 혹은 딴 종교를 믿던 사람들도 있다구요. 소생 완성급은 장성으로 통하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옛날에는 뭐냐 하면 불교하고 통하게 되면 전부 다 예수를 믿었어요. 기독교를 믿어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전부 다 했다구요. 그러나 지금 때는 완성시대를 중심한 때이기 때문에 기독교나 일반 종교나 통일교회를 반대했기 때문에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지금은 영육으로 증거할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온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요걸 왜 요렇게 해야 되느냐? 법이 그렇다 이거예요.
사람을 가만히 보면, 사람이 타락했을 때 뭣을 잃어버렸느냐 하면 말씀을 잃어버렸고, 실체를 잃어버렸고,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알겠나?
그래서 지금까지 역사는 종의 역사를 거쳐서 양자의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뭘 찾아 나오느냐 하면, 세 가지 잃어버린 것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역사는 진리를 찾아서 나오는 것입니다. 참된 길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참된 길. 진리란 무엇이냐? 참된 이치인데, 이치는 무엇이냐? 그것은 길이예요, 길. 참된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참된 이치는 인생이 가야 할 참된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를 통해서 인류가 찾아 나온 것은 참된 진리입니다. 참된 사람을 찾기 전에 무엇을 찾아야 되느냐 하면 참된 진리를 찾아야 된다 이겁니다.
타락하던 전통적 역사를 두고 보게 된다면 말씀을 잃어버렸고, 그 다음에는 실체를 잃어버렸고, 그 다음에는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순차적으로 찾아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런 종의 역사로서, 양자의 역사로서 틀림없이 해 나왔지만 그 놀음을 해 나오면서 무엇을 찾아 나왔느냐 하면 진리를 찾아 나온 것입니다. 진리를 소재로 해 가지고 실체를 맞기 위한 인류역사가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다 이겁니다. 그것이 인류역사 6천년입니다.
그러면 세계 인류들이 지금 허덕이는 것이 무엇이냐 할 때, 어떤 길을 따라가야 참다운 사람이 되느냐 이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진리의 본체는 타락한 사람 가운데서 나올 수 없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진리는 뭐냐 하면…. 진리를 찾고 있는 사람들은 타락한 세상에서는 천사장급 족속입니다. 알겠어요? 그렇지요?「예」 양자라고 하지만 천사장급 기준을 중심삼은 진리밖에 못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장을 중심삼고 볼 때, 천사장은 어떻게 했느냐 하면 하나님을 부정했습니다. 그렇지요?「예」 하나님을 부정한 자리에서 그러한 길을 출발했습니다. 그것이 천사장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이 아무리 철학이니 무엇이니 하고 구하더라도 하나님을 확실히 모른다구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했는지 악을 중심삼고 했는지 확실히 모른다구요. 알겠어요?「예」
참된 길이 무엇이냐? 천사장급 이상의 자리를 넘어가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하나님을 부정했고, 그 다음엔 아들을 부정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기준 이상을 못 넘어가는 역사적 권내에 있기 때문에 이것을 탈피해 가지고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진리가 나와야 되느냐? 천사장급 진리 말고 아들의 진리가 나와야 되며, 그 아들은 아버지의 대행, 말씀을 가르쳐 주는 진리를 가지고 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재림시대가 오면 오시는 주님은 인간세계에 잃어버렸던 본연의 말씀을 갖고 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 말씀은 개인이 완성할 말씀이요, 가정이 완성할 말씀입니다. 그 완성은 천사장급 진리권에 설 수 있는 타락한 인간을 중심삼은 기준에 있어서의 개인 완성이 아닙니다. 아들과 동급에 설 수 있는 차원 높은 자리에서 그 진리와 하나될 수 있는 실체요, 그 실체와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을 다시 찾아야 됩니다.
그걸 왜 찾아야 되느냐? 아담 해와가 한꺼번에 말씀을 잃어버렸고, 그 다음에는? 실체를 잃어버렸고 그 다음에는?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3대 요건을 일시에 잃어버린 것을, 일대에 잃어버린 것을 일대를 중심삼고 진리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아들이 하나될 수 있는, 그 진리의 이상적인 실체가 되어야 됩니다.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 다음엔 그렇게 되거들랑,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을 다시 한 번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진리로 말미암아 참된 실체를 복귀하는 것이요, 참된 실체로 말미암아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종의 시대에는 혼자 살아왔고, 양자의 시대에도 혼자 살아왔지만, 최후에서는 혼자는 안 됩니다. 혼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비로소 새로운 진리를 중심삼고 새로운 실체적 조건을 갖추었다는 기준 위에서 사랑의 인연을 허락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소위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통일교회로 말하면 합동결혼식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그러면 여러분들이 왜 그 합동결혼식을 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느냐? 본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는 거라구요. 원수의 혈족을 받고 나온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길이 없어요. 그런데 창조원칙으로 보면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이겁니다. 본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요 기준에 있었으나 반대로 말씀과 실체와 심정을 일대에 유린하고 떨어져 내려왔기 때문에 일대를 중심삼고 말씀과 실체와 심정을 복귀하게 된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혈족권내에 원리 원칙을 따라서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예」 사랑으로 말미암아 깨졌기 때문에, 그릇된 말씀과 그릇된 실체를 통해 가지고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반대로 참된 말씀과 참된 행동을 통해서 참된 사랑의 인연을 맺음으로써 복귀할 수 있다, 이거 맞지요?「예」
그러면 여러분들이 어떻게 해야 참된 사랑의 인연을 가질 수 있느냐? 먼저는 천사장이 사랑의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하나님, 아담, 해와, 천사장, 이렇게 있지요? 요 천사장은 하나님을 사랑했나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했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아담 해와도 사랑해야 된다 이거예요. 그렇지요?「예」 그래서 아담 해와를 위해서 있는 존재,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존재로서의 종인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런데 이 천사장이 하나님을 위해서 있지 않고, 아담 해와를 위해서 있지 않고 타락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나는 아들을 위해 있는 존재가 돼야 되고,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러면 타락하지 않은 천사장의 위치를 유지하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사랑을 해 가지고 죽었던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이런 희생을 해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비로소 아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들의 사랑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아들과 같은 자리에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종으로서는 어떻게 되느냐? 이와 같은 자리에 서는 거예요. 이와 같은 자리에서 보게 될 때 천사라는 존재는 첫째는 아들의 사랑을, 둘째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타락이 뭐냐? 아들은 그만두고 누구를 사랑하려고 했느냐? 여자를 사랑하려고 했지요?「예」 그리고 해와를 사랑해 가지고 어떻게 했느냐? 아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아들을 미워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런 입장을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반대로 해야 되는 거예요.
천사장은 해와가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하려고 했다 이겁니다. 요렇게 돼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혈대(血代)를 저끄러뜨린 것은, 아들이고 하나님이고 다 부정해 버리고 딸만을 사랑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의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알겠지요? 그런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복귀하려면 딸은 내놓고 누구부터 사랑해야 된다구요?「아들부터요」 그것을 해야 되겠기 때문에 끝날에 남자들은 여자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 「예」 젊은 놈들 잘 생각하라구. 여자를 생각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뭐냐? 타락한 천사장의 계대(繼代)를 또다시 이어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보다 앞서 해야 할 문제가 뭐냐 하면, 누굴 사랑해야 된다구요?「하나님의 아들요」 양자니까 아들을 대리해서 대신 세워 주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보다도 아들을 사랑해야 됩니다. 순서가 그렇다구요. 아들을 사랑해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아들을 위하지도 않고 사랑받을 수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를 사랑해야 된다구요. 「아들요」 아들을 사랑하지 않고는 길이 없다구요. 그 다음엔? 아버지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을 같이 생각해 가지고 사랑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된 입장에 있는 남자들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여자에 대해서 생각이라도 하는 날에는 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 이녀석들아?「예」 이걸 주의하라구, 남자들, 이 똥개들! 알겠어?「예!」남 자들이 여자를 사랑하겠다 하다간 절대로 하늘의 혈대권내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알았지요?
그러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이게 문제라구요. 재미있는 얘기라구. 얘기해 줄까요?「예」 자, 보라구요. 같은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딸과 같은 자리에 서지 않고는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딸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아담을 사랑하지요?「예」 아담을 사랑하는 거라구요. 그는 미래의 남편 기준에 서 있기 때문에 천사장은 안중에도 없다구요. 그렇지요? 천사를 생각하다간 큰일나는 거라구요. 그 여자(해와)의 소원은 뭐냐? 아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딸의 사명을 대신하기 위한 것이 기독교인데, 기독교 역사는 아들을 사랑해야 되기 때문에 신랑되는 예수님, 남편되는 예수님을 사모한 역사다, 맞지요?「예」 알겠어요?「예」 여자들, 대답해 봐요.
그러니 세상 남자를 사랑하지 말라 이겁니다. 그런 면이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어, 통일교회 들어와서 처음 알았지? 선생님이 지어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복귀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어떻게 해서 하늘의 혈대(血代),대를 이어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 근본 문제가 되는 거라구요. 그러기 위해서는 여자를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이겁니다. 알겠지요?「예」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같은 자리에 서야 됩니다. 해와는 누구를 사랑하느냐 하면, 누구를 사랑해요?「아담」 아담을 사랑하지. 아담은 오빠인 동시에 남편이라구. 그렇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잘 믿는 여자들은 신랑되신 주님을 사모하고, 그분만 절대적으로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그 천주교 수녀들 있지요?「예」 알겠어요?「예」 그렇게 삶과 동시에 누구를 또 사랑해야 된다구요? 그 오빠를 사랑하고 그 남편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을 두고 볼 때 천사장도 첫째는 누구를 사랑해야 돼요? 첫째는 아들을 사랑해야 하고 둘째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천사장의 입장이나 해와의 입장이나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사랑하는 자리에서 보면 타락한 천사장의 입장이나 해와의 입장은 마찬가지인데,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 혈족 혈대를 잃게 됐느냐? 타락은 어떻게 됐느냐? 이것이 요런 입장에 서지 않고 동기가 되어 출발 했기 때문에 이것이 요런 입장과 같이 복귀되어야 합니다. 천사장인 남자가 사랑의 입장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 여자가 '아, 오빠! 아버님! 저 천사장이 저러다가 혼자 나가게 된다면 불쌍하지 않소? 저거 저 혼자 남자라고 태어났는데 그냥 놔두면 아무것도 없이 망하지 않소? 불쌍하지 않소?' 하면서 여자가 비로소 천사장을 동정할 수 있는 자리에 가 서야 복귀의 내용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축복 때에 선생님이 여자들한테 '남자가 좋으냐, 나쁘냐?' 하고 먼저 물어 보게 되어 있지, 남자보고 '여자가 좋으냐, 나쁘냐?' 하고 물어 보게 절대 안 돼 있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원칙에 의해서 여자들이 '그 불쌍한 것 살려 줘야 될 것 아니요?' 이렇게 해야 돼요. 알겠어요? 천사장이 하나님 사랑 받고 아들 사랑 받는데 신이 났다 할 때는 자기가 취할 상대가 없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상대를 가진 것이 부러워서 자기도 상대를 얻기 위해 나가게 된다면 안 되겠으니까, 하늘편에 있는 딸들이 '그 불쌍한 천사장 용서 하시고 내보내지 말고 내가 대신 아버지를 사랑하는 입장에 서 있고 아들을 사랑하는 입장에 서 있으니 나도 사랑해야 될 것 아니요?' 이렇게 돼야지요? 그렇지요?「예」 '하나님 대신 나도 사랑하고 아들 대신 나도 사랑해야 될 것 아니요?' 하는 입장에서 비로소 여자가 지켜 줄 수 있는 남자를 맞겠다고 할 때,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혈족을 유린했던 이 남자들이 비로소 하나님의 권속권내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거 알겠어요?「예」 그 외에는 절대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없다구요.
자, 여자가 고마와요, 나빠요?「고맙습니다」 고마와요? 에덴 동산에서는? 「나쁩니다」 그 놈의 간나들! 지금 때는 「고맙습니다」 공주라구요, 공주. 알겠어요?「예」 공주 마마라구요. 여러분들은? 종이라구요, 종.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뭐 미스 코리아, 미스 아메리카, 뭐 미스 유니버스, 그런 말이 나오지, 미스터라는 말은 들어 봤어요? 미스터는 누구냐 하면 오시는 재림주라구요. 미스터는 한 분밖에 없다구요. 여기에 경쟁할 자가 있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예」(웃음) 이거 웃을 것이 아니라구요. 근본 역사라구요.
자, 이거 문선생이 꾸며 가지고 얘기하는 거예요, 원리가 그렇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니까 그런 거예요? 어떻게 돼서 그런 거예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혈족을 이어받지 않고는 여러분의 아들딸이 죄짓지 않은 선의 아들딸, 참감람나무가 될 수 없는 거라구요. 그렇지요?「예」 그건 누구로 말미암아 됐다구요? 「주님요」 주님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주님의 지체와 같은 자리에서 신부성을 대표할 수 있는 이런 자격을 가진 여자들이 많다구요. 가지와 같은 신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그걸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구요. '아들도 사랑하시고, 아버님도 사랑하시니, 나도 그를 사랑해야 될 것 아니요?' 이렇게 말하는 하늘편의 공주들이라구요.
그 여자는 많지만 한 여자로 보는 거예요. 또 남자는 많지만 천사장으로 보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잃어버린 그 모양대로의 입장에 세워 놓고 탕감복귀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복귀 노정이지요? 「예」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을 존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 여자들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그러면 여자는 어떻게 되어야 저렇게 된 여자로서 공인받느냐? 요것을 얘기해 줄까요?
이렇게 되어 가지고 비로소 여러분이 하나님의 혈족을 타고 들어갈 수 있음으로 말미암아, 타락되지 않았던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혈족의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을 탕감복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제는 남자들이나 혹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상대를 찾을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종의 시대에는 상대가 없다구요. 그렇지요?
이런 역사를 거쳐 가지고 끝날에 와 가지고 재림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이 통일 운세권내에 들어왔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지, 그렇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 역사 이래 처음 나타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역사를 쭉 살펴보면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고, 몸뚱이를 잃어버렸고,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던 것을 비로소 축복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축복은 누가 해주느냐? 원리 말씀을 생명시하고 원리 말씀을 자기의 전체와 같이 믿는 사람….
우리 복귀원리를 보면 믿음의 기대가 있지요?「예」 그것을 세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원리 말씀을 절대로 믿는 사람이예요. 그 말씀은 개성 완성의 말씀이 될 수 있고, 가정완성의 말씀이 될 수 있고, 국가 완성의 말씀이 될 수 있고, 세계 완성의 말씀이 될 수 있고, 천주를 해방하는 말씀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져올 수 있는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 믿고, 그 다음엔, 믿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실천해야 될 텐데 사탄의 말을 믿고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몸뚱이와 사랑을 잃어버렸다구요. 그렇지요?「예」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몸뚱이를 복귀하는 것이요, 그 다음엔? 사랑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통일교회 원리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를 복귀해야 됩니다. 이 실체를 복귀하면, 실체를 누가 갖고 있어요? 사탄이 갖고 있다구요. 알겠어요? 누가 갖고 있어, 이 녀석아? 사탄이 갖고 있다 이 녀석아. (웃음) 그러면 사탄이 갖고 있는 실체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일선에 가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켜 가지고 찾아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일선에 내세우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일선에 나가라 이거예요. 자기 형편에서,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소년은 소년대로, 장년은 장년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일선에 나가서 고생해 가지고, 사탄권에 지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됩니다.
그러면 그 부락이 있는데 그 부락도 사탄 대표 부락이지요?「예」 그 고을도 사탄 대표 고을이기 때문에 그 고을 사람들이…. (이후는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앞으로 여러분들의 가정이 이상적인 가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여러분, 장가갈 거예요, 안 갈 거예요? 「가야지요」 장가가야 하는데, 여러분 어머니 아버지들이 장가 보낼 수 있어요? 「없습니다」 타락한 천사장에게 아기가 있어요? 천사장은 외톨이예요, 외톨이. 그도 하나님을 통해 나왔으니,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 아버지가 있을 수 없고 형제들도 있을 수 없습니다. 천사장에게는 소유권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이 선생님을 만나 가지고, 주인을 만나 가지고 주인의 동정을 받아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종은 주인이 장가를 보내 주어야 장가를 가지요?「예」 그렇다구요. 그러니까 종은 주인에게 충성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만나 가지고 복귀노정에 있어서 양자의 역사를 거쳐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전에 먼저 종의 역사를 거쳐 가야 됩니다. 알겠어요? 종은 뼈가 부러지고 살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불평을 했다가는 쫓겨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너희들, 기동대 활동하면서 불평했나, 안 했나?「했습니다」 그러면 쫓겨나야 되는 거예요. 너, 했나, 안 했나? 말 안 해도 그 속이 훤하구만. (웃음)
타락이 뭐냐 하면 불평하는 데서부터…. '나를 더 사랑할 줄 알았는데, 저거 뭐야. 아담 해와를 더 사랑해. 그건 문제가 있다' 천사장이 이렇게 한 거예요. 불평 불만이 사탄의 근거지입니다. 사탄의 전통적 근거지가 무엇인지 똑똑히 알아야 돼요. 무엇이라구요? 불평 불만입니다. 불평 불만은 무엇이라구요?「사탄의 전통적 근거지입니다」 사탄의 전통적 뭐라구요? 「근거지입니다」 그러니까 왕사탄의 자리다, 그 말입니다. 알겠어요? 「예」 불평 불만하는 사람은 통일교회 사람으로 상대하지 말라구요. 그런 놈은 아가리를 쨌으면 쨌지 눈을 쑤셨으면 쑤셨지, 상대도 하지 말라구요.
자, 그것이 원리적인 입장에서 맞는 말이예요, 안 맞는 말이예요? 선생님이 통일교회 잘 믿으라고 살짝 지어 하는 말이예요, 원리원칙에 맞는 말이예요?「원리 원칙에 맞는 말입니다」 원리원칙을 반대하는 자는 돌멩이로 때려 죽여야 되는 거라구요. 너, 불평 안 했나? 속으로는 많이 했을 거라. 표시는 안 하지만 꿍꿍이 속들은…. 여기 나오기 전에는 동네에서 여자들 꼬시기 많이 했지요?「안 했습니다」(웃음) 이 눈을 껌뻑껌뻑하는데 그랬다는 거예요. 안 하긴 뭘 안 해?「정말 안 했습니다」 안 하긴, 통일교회 들어왔으니 안 하지. (웃음)
자, 사탄의 근거지가 뭐라구요?「불평 불만입니다」 오른손은 불평, 왼손은 불만입니다. 그러므로 걸어 다닐 때 불평 불만을 '이놈의 원수야, 이놈의 원수야' 이러면서 다닐 줄 알아야 됩니다. 복귀의 노정에 있어서 불평은 절대 금물입니다. 불평해 가지고 어떻게 뜻길을 가겠어요? 어린 양같이 되라고 했지요? 어린양같이. 양은 모가지를 찌르더라도 '음매-' 하다가 죽습니다. 염소처럼 벌떡거려 가지고는 안 돼요. 묶어 놓아도, 털을 깎아도 '음매-' 하면서 가만히 있습니다. 난 그거 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럽디다. 여기 양털 깎아본 사람 있어요? 그런 경력 있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미국에 가서 처음으로 양치는 것을 구경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교회가 있는 곳에 산을 한 70만 평 샀는데, 거기에서 양을 치고 있다구요. 거기 가면 양박사가 산중에 살고 있는데 하루는, 선생님을 좋은 곳으로 모셔야 되겠다고 해서, 난 또 무슨 좋은 요리집에 가는 줄 알았어요. 산중턱에 올라가 멈추어서 보니까 양떼들이 우글우글 거리고 있는 거예요. 좋은 데 간다고 하더니, 보기 싫은 양떼들이 누워 있는 곳이라니…. 뭐, 쓰윽 구경하는데, 그 양박사가 양의 아버지예요. 밥 주는 아버지 말이예요. 그러니까 목자입니다. 목자가 쓰윽 올라가더니 '에이 위-' 하고 소리 지르니까 뭐, 사방에 흩어졌던 양들이 '음매 음매 음매' 하면서 동쪽 서쪽에서 목자에게로 물려오는데, 야, 그 양들이 통일교회 교인들보다 훌륭하더라구요. (웃음) 새끼들이 있으면 새끼들을 찾아 가지고 오려고 애를 쓰고, 새끼들이 다 컸는데도 그 새끼들을 전부 다 데리고, 주위에 모아 가지고 한꺼번에 '음매 음매' 하며 우리로 오는 거예요.
그거 볼 때 이게 진짜구나…. 하나님의 섭리를 양으로 표시한 것, 상징한 이치가 딱 들어맞더라구요. 거기에서 불평을 해요? 아, 맛있게 풀을 뜯어 먹고 있는데, 주인이 와 가지고 '에이 위-' 소리를 내서 부르는데, 이건 뭐 똥쌀 사이도 없이 그저 뛰어오는 거예요. 불평? 불평을 해? 주인이 오라 하면 와야 하고, 가라 하면 가야 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또 '휘이익' 하고 쫓아 버리니까 '음매 음매' 하면서 가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런 양만큼이나 되어 있어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대답도 안 하는 사람들은 뭐야? 얼굴 구경하러 왔나! 대답하라는 거야. 양들은 모두 다 하나됐더라구요. 양처럼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자, 여러분도 자신 있어요? 양처럼 됐어요, 안 됐어요?「안 됐습니다」 그럼 뭐가 돼 있어? 돼지 새끼가 되어 있나? (웃음) 그럼 뭣이 되어 있어요? 꿀꿀 돼지예요?「되려고 노력합니다」 글쎄 뭣이 되려고 그러느냐 이거예요. 돼지 새끼예요, 염소 새끼예요, 양 새끼예요?「양 새끼입니다」 양 새끼예요? 양 새끼는 불평할 줄 모른다구요. 불평 불만이 있는 녀석은 염소 새끼 아니면 늑대 새끼라구요, 늑대 새끼, (웃음) 웃을 것이 아니라고.
불평 불만은 사탄의 근거지입니다. 주인을 믿고, 밥을 안 주면 주인이 내 배고픔보다 더 큰 사정이 있기 때문에 밥을 안 주는구나 하면서 '밥 안 먹은 그것으로 탕감복귀하옵소서. 천년 만년 우리 후대에서는 밥 굶는 거지가 절대 없게 하옵소서' 하는 마음을 가지고, 소망을 갖고 참아 나가면 소망대로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이 불평 불만을 했다면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레테르가 붙었을 것 같아요? 보라구요. 남 모르는 가운데 심사숙고해서 미지의 사실을 찾아내기까지 얼마나 고생했겠나 생각해 보세요. 몇분 동안 말을 들어보면, '아, 그것 그말이지' 하고 생각하겠지만, 미지의 사실을 전부 다 찾아내기까지는 등골, 뼛골 모든 골수가 녹아나지 않았겠나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그것도 뭐 생각만 해 가지고는 안 돼요. 실제로 싸워서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야! 이녀석아' 할 때, '예, 잘못했습니다' 하며 배밀이 하면서 뒷꽁무니로 밀려나가게끔 사탄을 만들어 놓아야지, '뭐요, 뭐요. 그렇지 않소' 하게 된다면, 복귀가 되겠어요? 탕감복귀가 돼요? 「안 됩니다」 안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는 선생님이 절대 필요 합니다. 죽으면서도 선생님을 불러야 됩니다. 그렇지요? 양 새끼가 죽으면서도, 주인이 칼로 찔러도 '음매' 하고 부르면서 죽는 것처럼 여러분도 선생님을 부르고 죽어야 됩니다. 마찬가지 입장에 서야 된다 그거예요. 알겠어요? 「예」
불평 불만은 절대 금물입니다. 그 대신, '당신이, 하늘 주인이 내 고기를 먹지 못한 것이 한 아니요? 그러니 사탄세계에 있는 내 고기를 먹고, 내 생명을 먹고, 하늘 고기와 하늘 생명으로 낳아 주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이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또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자도 살고, 다시 죽고자 하는 자도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했지요? '어머니 뱃속에서 다시 중생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이예요. 다시 낳아져야 된다는 거예요.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 있는 애기가 반대해요? 발길로 더러 차기야 차지. 그것이 반대해서 차는 거예요? 좋아서 차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내가 크고 있으니까 엄마 아빠 기다리지 마소, 빨리 나갈테니까. 그래서 차는 것이지 뭐 나빠서 차요? 크려고 차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죽으려고 차나요, 슬퍼서 차나요, 좋아서 차나요?「좋아서 찹니다」 애기도 기분 좋아야 논다구요. 물어 보라구요, 너희들 시집가 보면 알아요. 기분 좋아야 놀지, 기분 나쁘면 절대 안 놉니다. 여기 애기들 가진 아주머니들 그런 것 알지요?
불평 불만은 절대?「금물이다」 금물입니다. 자, 불평 불만은 좋을 때 나와요, 어려울 때 나와요?「어려울 때 나옵니다」 묵시록에 보면,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라야만, 뭘 한다구요? 「구원을 얻는다」 끝까지 참는데, 눈깔빼내게 되면 어떻게 할래요? 불평하게 되면 그거 끝까지 못 견디지요? 「예」 코를 다 짤라내더라도 끝까지 견디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죽고자 하는 자는 사는 것입니다. 양자의 운명이 그런 운명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예」
그렇지 않고는 놀라운 하나님의 권속권을, 혈족권을 이어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축복이 뭐 어떻고 하지만, 통일교회가 어떤 곳인지 알아요? 알아야 자기 머리에서 생각하는 기준을 중심삼은…, 자기만큼밖에 모르는 거예요. 조그만 녀석한테 담 너머 저기 산이 보인다 하면 믿어요? 담 밑에 다니는 사람은 아무리 봤댔자 담 너머 있는 것이 보여요? 보여요, 안 보여요?「안 보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 요만큼 작은 녀석들에게, 뭐 통일교회가 보일 것 같아요? 자기만큼밖에는 안 보입니다.
선생님을 알게 될 때도, 자기 중심삼고 선생님을 알지, 잘 모릅니다. 그렇지요?「예」 통일교회 원리를 알아도 아는 것까지만 알지 그 이상은 모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빨리 크라는 거예요. 빨리 크고, 커야 훌륭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지요?「예」 무럭무럭 자라라고 했지, 무럭무럭 자라지 말라고 했어요? 무럭무럭 자랄래요, 무럭무럭 안 자랄래요?「자라겠습니다」 자라서 뭘 할 거예요?「아버님 위해 일하겠습니다」 아버님, 집어치우라구. 하나님편 아들도 못 되어 가지고 아버님을 위해서 일해? 자기를 위해서 일하는 거예요, 자기를 위해서. 복귀노정이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 전부 다 해야 되는 것이 아니예요? 아버님을 위해, 통일교회 위해? 그런 시시한 생각하지 말라구요. 아, 아버님이 아무리 못났다고 해도 여러분들 동정받고 살겠어요? 너희들이 동정을 받고, 신세를 지게 되어 있지, 내가 너희들 신세를 지고 살 사람이 아니예요. 알겠어요?「예」
부모가 아무리 못났더라도, 자식이 자라기 전에 신세를 지려는 부모가 있어요? 또, 잘 키우지 않고 신세를 지는 부모는 못된 부모, 나쁜 부모입니다. 너희들이 다 컸어요? 그래도 아버님을 위해서야? 지금 훈련 과정인데, 무슨 아버님을 위하느냐 말이예요. 지금 쓸지 말지 두고 보는데, 그래 아버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어? 아버님 집어치우라구. 자기가 제일인 줄 알아요. 통일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탕감복귀해서 하나님 아들딸이 돼 가지고서야 통일교회 선생님을 위하고, 아버님을 위하는 효자의 자리에 나가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들이 효자예요? 오히려 죽게 되었으니 내가 전부 다 구해주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그러고 있다구요. 그래, 아버님을 위해요? 내가 기동대를 만든 데에도 '뭐, 이번만 해 줄래. 선생님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 위할 게 뭐예요? 자기들이 사지에서 해방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자신들이 사지에서, 사탄의 실체에서 해방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데 뭐…. 거기서 해방받고 난 후에야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결혼이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 알아야 됩니다. 개인의 소망은, 개인이 가야 할 길은 가정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딱 공식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개인의 소망과 개인이 가야 할 길은 가정이다, 그렇지요? 「예」 가정까지 가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내가 타락성을 벗어야 됩니다. 그렇지요? 타락하지 않은 완성단계의 자리를 이어받지 않고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뭐냐 하면 개인이 타락성 벗기 위한 싸움을 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 와 가지고 상대이념을, 상대를 구하는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여기 수련소 패들 지척지척하는 걸 가만히 보면, 저 사람들이 뜻을 아나 모르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 요전번에 여기 총무과장에게 나이가 45살이 되도록 왜 장가 안 갔느냐고 물었더니만, '선생님한테 축복받을려구요' 하는 거예요.
축복이 간단한 것이 아니예요. 축복이 얼마나 무서운지…. 예수님도 그것 못 해서 죽지 않았어요? 이스라엘 민족이 망한 것도 그것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그거 반대해서 망한 거예요. 엄청난 문제가 거기에 개재된 것입니다. 그 시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심각해야 됩니다. 밤을 새워 철야기도도 하고 먹지 않고 배에서 노랑물이 나오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기동대 활동하면서 이제 조금 수고하고는 '에그 힘들다' 하는데, 뭐가 힘들어요? 개인의 소원이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통일의 길을, 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역사노정을 쭉 보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역사적 방향에 있어서 이것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어요?「아닙니다」 그렇지 않지요?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방향이 전부 다 갈라진 것입니다. 한 사람을 중심삼고 싸워 가지고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제멋대로입니다, 제멋대로.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방향이 전부 제멋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방향을 일치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녀석은 이렇게 가지만, 교차점이 있지만 그걸 맞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개인이 어떻게 가는지, 어떻게 출발했는지 그 자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통일교회는 출발에서부터 가려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맞추는 것입니다.
개인이 가야 할 방향은 어디냐 하면, 타락성을 복귀해 가지고 이상적인 가정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이상적인 가정은 어떻게 나오느냐? 메시아를 맞아야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뭘 찾아 나가느냐?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나라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어떤 나라냐? 민족 감정을 초월한 나라입니다. 알겠어요?
오늘날 민주세계에 있어서 미국이 세계를 구하기 위한 책임을 짊어져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세계를 내던지고 자기 민족만 생각하는 자리에 서게 되면 망하는 거예요. 민주세계도 망하는 것입니다. 공산당, 소련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세계의 소련도 자기 나라만을 위주하여 세계를 제패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공산세계를 위해서 최고의 노력을 한 사람은 누구든지 그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초민족적인 그런 사상적인 내용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공산세계나 민주세계는 망해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라는 것이, 혹은 국민 국가라는 것이 자기 민족을 초월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가정은 이 땅의 가정을 초월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부모가 반대하고, 형제가 반대하고 혹은 자기 사랑하는 남편, 아내가 반대합니다. 그러더라도 그걸 버리고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가정 이상의 가정을 찾아 나서야 하는 길이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인간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 가정을 찾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인간세계의 국민사상을 초월할 수 있는 심정 이상의 심정을 가진 나라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가정은 나라를 위해서, 그 나라는 세계를 위해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는 어디로 가야 되느냐? 천주를 향해 가야 합니다. 천주는 하나님을 향해 가고 하나님 사랑을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거기가 종착점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이 가정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가정은 누굴 위해 있느냐? 그 가정은 자기들 부부가 잘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잘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보장할 수 있는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라의 보호를 받는 자리에 들어가야만 비로소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 나라가 안식하기 위해서는 세계가 위할 수 있는, 보호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바라는 나라는 세계가 옹호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 안식의 나라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대한민국, 이 민족을 중심삼고 찾자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 앞에 빚을 지우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세계가 위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나라냐 하면, 아벨이 가인을 위해 희생하는 입장을 대표하는 세계적 국가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에게 나라가 있어요? 없지요? 나라가 없습니다. 가정은 통일교회에서 축복해 주지만, 그 축복이라는 것은…. 타락하지 않았으면 교회가 나오게 돼 있어요? 세계 최고의 정상에서 축복할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축복을 세 번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내에서, 나라내에서, 세계내에서. 축복이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지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었고,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일생 동안 고생한 것입니다. 이런 길을 따라가는 여러분들은 건달꾼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노력하고 나서도 부족함을 느끼고 모든 피살을 다 바쳐 탕감해야 되겠습니다. 제물 중의 제물, 왕제물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천년 왕실에 첫번째로 들어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혈족을 찾아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들을 위하고 아버지를 위하고, 뿐만 아니라 해와, 여자를 위해서는 종도 될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남자라면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야 하나의 혈족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자들도 알겠어요?「예」
통일교회 원리를 아는 사람은, 한 방에 여자 남자가 같이 잠을 자도 사고가 안 나야 됩니다. 알겠어요? 발가벗고 한 이불 밑에서 자더라도 무사 통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꿈에라도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여, 도깨비같은 이 남자들. 그렇게 한 방에 집어 넣으면 타락할 거라구. 타락하려고 쑥덕쑥덕 꿍꿍이할 거라구요. 어때, 자신 있어요, 없어요?「자신 있습니다」말이야 잘하지. 기동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용서가 없다구요. 알겠어요? 선생님이 다 쫓아낼 것입니다. 꺼꾸로 꽂아 버릴 거예요. 내가 여러분을 내보내는 것은 자신의 탕감역사를 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세 아들딸을 갖지 못하면 축복 못 받지요? 그것은 가정만이 아니라 역사적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보다 낫기 위해서는 120문도 이상을 전도해서 전부 다 결혼시켜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족장이 되는 거예요. 씨족적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씨족적 메시아가 되라는 말 들어 봤어요? 아직 못 들어 봤지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려운 길이지만, 굉장한 놀음이 벌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우리가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타락한 원수의 피를 받고 태어나서 종으로서 주인을 맞는 것만 해도 그 이상의 행복이 없는데. 양자가 됐다는 것입니다, 양자. 양자라는 신원까지 회복됐다 이겁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러분의 몸뚱이는 자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아들을 위해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요?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앞으로 세계 만국이, 천지의 모든 땅이나 모든 나라는 하나님 것으로 되돌아 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이 있기 때문에…. 일시 천사장 세계에 보관하는 것입니다. 주인을 위해서, 그 아들을 위해서 보관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것을 보관하는 책임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재산은 전부 다 우리 것입니다. 절대 아시아가, 한국이 잘 살아야 됩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 내가 미국에서의 활동을 주력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일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심정적 기준으로 본 복귀역사의 내용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길을 가야 됩니다. 그래, 여러분들, 언제 종이 되었어요? 종 됐어요? 종 중의 종이 되어야 됩니다. '세계적인 종의 대표다' 하는 인정을 받았어요? 그런 인정을 받지 않고는 세계적인 양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양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 만민 앞에, 기독교인들한테 절대 지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양자의 자리를 이어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선생님 마음속에 기억되는 여러분이 될 수도 없습니다. 알겠어요? 「예」
접붙이려면 살을 바싹 갖다 대고, 핏줄을 갖다 연결하더라도 기분 나쁘지 않아야 됩니다. 옷 속에 딱 붙어 있어야 살지요?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고 끔찍하다고 옆에 오지도 말라고 하는 이런 녀석에게 어떻게 접붙이겠어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저 선생님과 가까이 하려고 하고, 선생님을 보고 싶어하고, 선생님의 신발이라도 붙들고 입맞추려고 하는 그런 무엇이 있어야 접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여자들은 반응이 그렇게 납니다. 여자들은 빠릅니다. 전부 다 살이 부르트고 손가락이 찢어졌더라도 거기에다 대어도 싫지 않다고 하는 본체의 마음, 그런 소질을 가져야, 뭐가 어떻게 된다고요? 접붙임을 받게 된다 이거예요. 소질이 같아야 접붙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감나무는 감나무의 소질을 가져야 되지요? 그러니 타락성 가지고는 안 됩니다. 복귀의 본성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것이 없으니 그것을 다시 주입시켜 가지고 그 본질에 일치되게끔 하기 위해서 탕감하자는 것이 아니냐.
그래서 종의 탕감, 양자의 탕감을 거쳐 가지고 축복과정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죽도록 고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종질에서 최선을 다하고, 양자질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저놈, 저 도둑놈 새끼' 하는 의심을 하면 그런가, 안 그런가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거기에 걸리지 않고 믿을 수 있다는 인정을 받게 되면 선생님이 축복을 해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선생님도 그런 시험을 얼마나 받은 줄 알아요? 다 넘겼습니다. 별의별 죽을 자리에 처넣고,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돌보지도 않는다구요. 못 본 척하고는 있으라는 거예요. 그거 밥 먹여주고, 그렇게 쉽게 되는 줄 알아요? 사실은 어림도 없어요. 때가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 내가 세계순회를 하면서 세계적인 모든 인연을 거쳐 들어왔기 때문에, 이제 나라를 떠나야 할 이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기동대도 조직한 거라구요.
자, 그 놀음하겠어요, 안 하겠어요?「하겠습니다」 그래, 종으로 천대 받아도 하겠어요?「하겠습니다」 양자로 천대해도 환영이예요?「예」 종은 소유관념이 없습니다. 양자는 단지 아들을 위해서 피를 흘리고 아들 대신 죽음 이상의 자리에서 효의 도리를 했다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양자로서 상속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을 가져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 안 됩니다. 일체, 생명이 남아 있는 것은 아들을 위해서 있고, 그 외에는 요만한 것도 없다 해야 합니다. 이것은 선생님 말이 아닙니다. 원리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훈련을 받았고 그런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게 노력해야 됩니다.
여러분 중에는 종의 길을 가는 사람도 있고, 양자의 길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천태만상입니다. 다 같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도해도 전도가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조상 죄를 탕감해야 되고, 그 다음 자기 죄를 탕감해야 됩니다. 그 다음 나라가 있으면 나라의 입장을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3대 탕감노정이 벌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고생하기 마련입니다. 이왕에 고생할 몸들, 하늘의 뜻을 위해서 살고 고생하겠다고 한 사람이라면 고생을 달갑게 받아들이고 감사해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고생을 감사히 생각하지 않고는 살 길이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내일 아침 몇시에 떠나나요?「아침 일찍 갑니다」 경기도는 서울 주변에 있으니까 특별히 활동을 많이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경기도에서 서울에 영향을 미치게끔 해야 됩니다. 여기 경기도 기동대 대장이 너무 좋지요? 사람이 너무 좋지요? 「예」 선생님 같으면 용서하지 않을 것도 잘 용서해 줄 거예요. 저렇게 생긴 사람은 좋게 돼 있다구요. 눈을 보라구요, 어디 악한 데가 있나. 주인을 잘 만났다구요. 알겠어요?「예」 좋은 주인을 섭섭하게 대하면 벌 받습니다. 그러니까 누구한테도 지지 않게끔 잘해야 합니다. 저렇게 좋은 사람 만났으니 여러분은 팔자가 좋은 거예요. 제일 좋은 대장 만났으니까 속 썩이지 말고 하나되어 잘해야 한다구요. 좋은 사람 좋게 만들어 주는 것이 좋은 사람이지요? 그렇지요? 서울 근교에 지금 소문을 내고 돌아다니는 대원이니만큼 잘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는 좋은 대장이었는데 이제부터 좀 악한 대장이 되면 어때요?「괜찮습니다」 그럼 새벽 네 시에 일어나고 열두 시, 한 시쯤에 자면?「괜찮습니다」 다니는 데도 뛰어 다니면서 하고, 그래도 괜찮아요? 「예」 대답들은 잘하누만. 점심은 안 먹고, 괜찮아요?「괜찮습니다」 그거 괜찮게 되어 있어요. 8월만 지나게 되면 3천 원밖에 지불 안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절반은 빼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지요? 바짝바짝, 어디 얼마나 뜻을 위해서 한다고 결심했나 보자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점점 3천 원에서 2천 원, 2천 원에서 천 원, 나중에 안 대줄 것입니다. 그러면 전부 다 도망갈 것이지요? 6개월 지나게 되면 모두들 도망갈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예요. 아침에 나가서 네 시간 이상 보리 베고 등짐을 지고 하라 이거예요. 고생을 시킬 것입니다. 몇 명이나 남나 보자구요.
복귀역사는 누구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예」 자기 책임분담 5퍼센트를 어머니 아버지가 도와줄 수 있어요?「없습니다」 부모가 도와줄 수 있어요?「없습니다」 없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책임분담 5퍼센트를 넘어야 할 그때에 협조했다가는, (손뼉치심) 그거 연장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귀의 길은 자기 혼자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복귀의 길은 사는 길인데…. 태어날 때에 둘이 태어나요? 쌍동이는 할 수 없이 둘이 태어나는 거예요. 죽을 때도 같이 가요?「혼자 갑니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거예요. 우리는 죽고 사는 길을 해결해야 합니다. 복귀의 길은 혼자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형제라 해도, '형님 같이 갑시다'그렇게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는 데는 앞에 가고 뒤에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은 아벨을 따라가면 됩니다. 그렇지만 같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차자가 장자 되고, 장자가 차자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꺼꾸로 되는 것입니다. 횡적으로는 같이 못 가는 것입니다. 전부 따라가는 것입니다. 형님이 먼저 가게 되면 동생은 나중에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죽고 나중 죽는 일은 있지만 같이 죽는 일은 없고, 쌍동이는 같이 태어나기는 하지만 죽는 것만은 같이 안 죽습니다. 그렇지요? 「예」 복귀의 길은 혼자 가는 것입니다. 부모가 '야, 야, 죽지 마라, 죽지 마라' 한다고 해서 안 죽어요? 살기를 바라지만 죽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죽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도 원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는 하나님도 후퇴하고 사탄도 후퇴합니다.
여러분이 승리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아담의 권위를 통해서 하나님이 비로소 딱 자리를 잡고, 거기서부터 아담의 활동에 협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아담이 기반을 잡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5퍼센트 책임분담이 남아 있다는 걸 알지요?「예」 예수님도 그 책임 못하고 죽어간 것입니다. 가정 기반을 중심삼고 5 퍼센트 사명을 못 하면 사탄이 끌어 가기 때문에, 사탄은 원수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역사적인 소원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천대받더라도 꼼짝달싹 못 하는 것입니다. 심각합니다.
여러분, 결투라는 게 있지요? 칼을 들고 하는 결투 말이예요. 그 놀음을 누구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 대신 선생님이 그 기술을 가르쳐 줍니다. 최고의 기술을, 사탄도 꼼짝 못하는 기술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의 활동입니다. 원리 말씀을 중심삼고 볼 때, 말씀심판이 있으므로 말씀심판을 넘어야 되고, 사탄한테 이긴 입장에 서야 하는 실체 심판을 넘어야 합니다.
그리고 심정심판을 넘으려면 타락한 천사장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인류를 더 사랑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나서 자기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탄은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이니 무엇이니 자기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반대입니다.
그래서 반대 놀음을 통해서 가는 길이기 때문에 이 길만은, 통일교회 원리를 두고 볼 때, 타락한 경로를 두고 볼 때, 부정할 수 없는 마지막 길입니다. 알겠어요?「예」 선생님이 아무리 얘기해도 여러분은 모를 거예요. 유치원 아이들 앞에 대학교 학술강의를 하면 멍청히 있는 거예요. 확실히 모르겠지요?「압니다」 알긴 뭘 알아요? 선생님이 그러니 그럴 것같다 하고 믿고 가는 것이지요. 아직은 잘 모른다구요. 크면 아는 거예요, 크면.
여러분이 크려면 전도를 해야 합니다. 전도를 해 보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정을 모릅니다. 구약시대 종 새끼를 양자 만들기가 얼마나 힘들었어요.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종 새끼들 잡아다가 양자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해보지 않고는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길이 없습니다. 그것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전도하라고 내모는 것입니다. 일선에 가서 사탄보다도 위에 서지 않고는, 자기 자신을 계발하고 자기 자체를 사탄세계에서 해방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하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됩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은 이런 방대한 사명을 짊어졌습니다. 이번에 돌아가게 되면 활동을 잘해야 합니다. 이번 여러분들이 청평 오는 것을 나는 환영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오기 전보다도 더 활발하고, 더 멋지게, 더 책임성 있게 완수한다면 청평 왔다 간 것을 하나님도 섭섭하게 생각지 않을 것입니다. 경기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서울까지 연결해야 되겠어요. 알겠지요? 「예」 그만하자구요.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희생하라고 가르치지요? 그렇지요? 그것은 통일교회뿐만이 아닙니다. 고차적인 종교에서는 희생을 하지 않고는 본연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건 왜 그래야 되느냐? 선은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데서부터 선이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선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은 부활권 내에 있는 종교인들을 통해서 희생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왜 그러한 기준을 세웠느냐? 왜 하나님은 선을 위해서는 희생해야 된다고 하셨는가?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보면 종교라는 것은 어떠한 종교를 막론하고 참을 추구해 나왔습니다. 참도 인간이 바라는 참 보다도 절대적인 하나님이 바라는 참을 추구해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서도 역력히 나타나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게 된 근본을 생각해 보면, 타락이 무엇에서 시작되었느냐? 사탄은 천사장이었는데, 그 천사장은 주인을 위해서 희생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종 되는 천사장이 인간을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면 우리 인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왜 희생의 길을 가야 되느냐? 창조원칙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불가피적으로 희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이라는 것의 출발점이 어디냐?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느냐? 또, 어떻게 해서 선한 사람은 하나님편이 되느냐? 선은 자기를 위해서 희생하고, 자기를 위해서 힘을 투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위해서 힘을 투입하는 데서부터 선이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는 것은 하나님 자체로 볼 때는 힘을 투입시킨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야기를 하게 될 때도 반드시 힘을 투입해야 합니다. 작용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체의 자리에 계시는데 오늘날 인간세계에서 내가 선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같은 자격자,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원리입니다. 원리적인 입장에 서야 합니다.
선을 이어받고 싶은 사람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것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힘을 투입해야 합니다. 에너지를 소모하는 데서부터 창조의 출발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전부 다 에너지 소모지요?「예」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을 투입하는 데서부터 선이 시작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선한것이냐? 참된 대상이 되게 될 때 선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적으로 하지 않은 일은 선이 될 수 없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가지고 그 중심적인 존재 앞에 대상 존재로서 완전히 서게 될 때에 선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창조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대상의 세계를 벌여 놓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인간이 선하다 하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지 인간은 원래 선하다는 것입니다. 인간 하면 남자만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 인간이 선하냐?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 하나님의 완전한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선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지요?
선이 출발하는 규정을 보면, 선은 상대세계에서 받으려는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같이 창조하기 위한, 다시 말하면 새로운 선을 느끼기 위한 자리에 서지 않고는 선한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한 만물을 짓기 위해서 에너지를 투입한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이 선한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여러분으로부터 상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것이 선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는 자가 선한 자리에 설 수 있지 받는 자가 선한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주는 자가 주체가 될 수 있지, 받는 자가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돼 있지요?「예」 주는 사람은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께서 에너지를 투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는 입장에 서서 상대를 이룰 수 있는 선의 대상을 지은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자기로부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대적인 환경을 갖고 나서게 될 때는 선한 생활, 선한 길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선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상대로부터 나에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상대에게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먼저 받는 것보다도 먼저 주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 이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여러분은 받는 게 좋아요, 주는 게 좋아요?「받는 게 좋습니다」 받는 게 좋아요? 지금까지는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지금까지 타락한 인간은 무엇을 좋아해 왔느냐 하면 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주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있기 전에 네가 나를 위해서 있어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입니다. 선악의 분기점은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창조원리에 위배되는, 선의 출발과 그 동기에 위배되는 그런 자리는 악이 되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선악의 분기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저 대한민국의 삼팔선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면 나 자신의 어디가 출발점이 되느냐? 주고자 하는 자리는 창조하신 하나님의 입장이 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것은 일어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일으킬 수 있는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받고자 하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면 창조물이 없는 자리를 노리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어요?
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일어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흥하는 것이요, 자기만을 중심삼고 받고자 하는 사람은 창조하지 않겠다는 입장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없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선악의 분기점은 여기서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겠어요?「예」 머리에 쏙 들어가요?「예」
여러분, 선악이 어디에 있는 줄 알아요? 선도 그렇고 악도 그렇고…. 악한 사람은 네가 나쁘다고 합니다. 모두 그러지요?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은 남의 주장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사람은 남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입이 재빠르고 자기 변명을 잘하는 사람은 없어지는 자리에서 창조하지 않겠다는 자리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친구가 있더라도 자기를 주장하는 날에는 다 없어집니다. 아무리 돈을 가졌다 하더라도 자기만을 생각하게 되면, 자기가 받은,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 운, 혹은 복 이상의 자리에 가게 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피해를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악한 사람은 망하는 것이요, 선한 사람은 흥하는 것입니다. 왜 흥하느냐? 이러한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알겠어요?「예」 선악의 분기의 기원을 확실히 잡아 놓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자기만 위하는 어떤 사람이 열 사람의 친구를 가지고 있는데 매일 아침 그 친구들을 만나 가지고 '야 너희들은 나를 위해야 돼!' 한다고 합시다. 한 번 그러고, 두 번 그러고, 세 번까지 그러면…. 소생, 장성, 완성 단계의 우주의 원칙이 있기 때문에 세 번까지는 참아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 번 이상 가게 되면 '이놈의 자식'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이 뭐냐? 상대적 환경이 벌어지는 것이 이상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서로서로 주고받아 가지고 하나되는 것이 이상인데, 받기만 하겠다는 패는 하나님의 이상에 상치되기 때문에 그런 패는 사라져 버리게 마련입니다. 왜 사라지느냐? 열 친구에게 자기만 위하라고 하게 되면 그 친구가 하나 떨어져 나가고…. 하나만 떨어져 나가요? 그 다음에는 두 사람이 떨어져 나가고, 시일이 가면 갈수록 어때요? 없어져요, 많아져요?「없어집니다」 없어집니다. 다 없어지면 나중에는 자기까지 허덕이며 갈 데가 없이 삥삥 돌아다닙니다. 삥삥 돌아다녀도 상대가 없게 되니 결국은 자탄을 하고, 나중에는 자기 자신을 버리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주체의 권한을 영원히 갖지 못하고 자기가 자기를 버리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없으면 주체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만약에 반대로 열 친구를 가진 사람이 낮이나 밤이나 친구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위하려고 하면, 그 열 친구가 떨어져 나가요, 안 떨어져 나가요?「안 떨어집니다」 떨어지래도 안 떨어집니다. 암만 미워서 도망가더라도 어디 갔느냐 하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뿐만 아닙니다. 그 열 친구는 자기의 부모에게 그 사람을 소개시켜 하나되게 만들려고 합니다. 자기 누이동생이 있으면 '아, 그 친구를 매부 삼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오빠의 좋은 친구가 있으면 신랑감으로 나쁠 게 뭐 있어요?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친구 가운데 좋은 친구가 있으면 '아, 거 우리 올케 삼았으면 좋겠다' 요렇게들 생각하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또,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친구뿐만 아니라 친구의 어머니 아버지에게 데려가서 자기의 누이동생이라도 있으면 '아이구, 내 누이동생이야' 하고 소개시켜 주려고 해요, 안 해요? 여러분은 어때요? 그렇게 해요, 안 해요?「합니다」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같이 환경 전체를 움직여서 그 친구를 위해 주고 싶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남을 위하는 자리는 흥하는 것입니다. 작은 데서부터 점점 환경이 많아지니까 흥하게 마련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은 흥하고 싶어요?「예」 흥하고 싶어요?「예」 정말이예요?「예」
부모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은 효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위해서 완전히 주는 사람은 효자입니다. 형제를 위해서 완전히 희생하는 사람은 형제들이 부모 대신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알겠어요?「예」 그러면 애국자는 어떤 사람이냐? 자기 하나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삼천만 민족이 슬픈 자리에 있으면 그들의 슬픔을 책임지고 풀어 주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자기의 좋은 것을 모두 주고 그 슬픔을 내가 맡으려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흥할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성인은 어떤 사람이냐? 성인은 그 당시에 있어서 나라에서, 혹은 그 환경에서 이해를 못 받았지만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를 위했습니다.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간에 세계를 대해서 '만민이 행복하고, 만민이 천도를 바라 가지고 선한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그 시대에서는 이해도 하지 않고 반대를 받으면서 끝까지 자기 생명을 바쳐 나가는 사람입니다. 만민에게 주고 싶어서 생애를 바치고 간 사람은 자기는 그렇게 성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자리에 있었지만 그 명성은 자연히 세계적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같은 양반은 말입니다. 이 땅에 와서 서른세 살 젊은이로 갔지 만…. 예수님은 무엇 하나 가진 것도 없었습니다. 예수가 남편되어 봤어요? 장가를 가 보았어요? 땅 뙈기, 집 뙈기를 가져 봤어요?「못 가져 봤습니다」 없었습니다. 따라지로 왔다가 따라지로 갔습니다. 그렇지요? 그러한 예수님이 어떻게 해서 역사시대에서 성인의 자리에 섰느냐? 그때 예수님이 서른 살이었으니까, 여기 세른세 살 난 사람 있어요?「없습니다」 스물 다섯 살 이상된 사람 손들어 봐요? 없어요? 서른 살까지 손들어 봐요. 여러분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었지만 새파란 젊은이였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젊은 나이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쫓겨다니다가 할 수 없이 민족의 반역자로 몰려 가지고 십자가 형틀에서 땅땅 못 박혀 죽은 사람이 어떻게 해서 성인의 자리에 올라갔느냐? 그렇다고 예수님이 죽을 때에 천만 군중이 모여 억울한 자리에서 죽는다고 했어요? 그의 제자들까지도 이놈의 선생 따라다니다가 안 되겠다고 나중에는 내빼지 않았어요? 3년 동안 온갖 정성을 들여 가지고 죽자 살자 맹세를 하고 결의했던 열두 제자들나마도 전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도망을 갔어요, 안 갔어요? 「갔습니다」 뭐 하나 흔적이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어떻게 해서 성인이 되었느냐?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그 가르침 가운데 위대한 가르침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것하고, 그 다음에는 뭐냐 하면 '저들이 저들의 죄를 알지 못하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는 뭐냐 하면 최고의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을 갖고 가르친 것이요. 그 다음에는 땅 위에서 불쌍한 사람…. 죄인은 불쌍하지요? 예수님은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살다 죽은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가르친 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라는 사람에게 자기라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종입니다, 종. 자기의 뜻이 어디에 있어요? 자기의 뜻이 있더라도 자기를 무시하는 거지요? 그 다음에는 누구를 위하느냐? 주체를 위하는 것입니다. 주체를 위해서 절대적인 결의를 하고 절대적으로 자기를 공(空)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왜 위대한 자리냐? 상대의 이념을 이루는 것이 이상이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하나되기 위해서는 완전한 대상을 찾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여러분이 공의 자리에 서는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면, 기압권을 예로 든다면 완전한 저기압권에 해당합니다. 알겠어요?「예」 주체는 뭐냐? 절대적인 주체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완전한 고기압권에 속하는 것입니다. 저기압권이 되면 될수록 고기압권은 빨리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그것을 왈 태풍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건 왜 그러냐? 큰물의 낙차에 의해서 생기는 것을 폭포라고 하지요? 폭포수는 흘러가는 물보다 빠르냐, 더디냐?「빠릅니다」 그 차가 크면 클수록 빠릅니다. 빠름으로 말미암아 빈 그릇이 있다면 그것을 채우는 데 빨리 채워져요, 더디 채워져요?「빨리 채워집니다」
그러면 일을 빨리 해야 자랑해요, 더디 해야 자랑해요?「빨리 해야 자랑합니다」 뜀뛰기를 해도 빨리 뛰어야 자랑해요, 더디 뛰어야 자랑해요? 「빨리 뛰어야 자랑합니다」 자전거를 타더라도 빨리 가는 자전거를 원해요, 느리게 가는 자전거를 원해요?「빨리 가는 자전거를 원합니다」 비행기를 타더라도 빨리 날아가는 제트 플레인(jetplane )을 탈래요, 보통 플레인을 탈래요?「제트 플레인요」 제트 플레인이 있더라도 여러분이 미국 가게 될 때, 느리게 가는 비행기를 탈래요, 떴다 하면 똑딱하는 순간에 가는 비행기를 탈래요? 느린 것보다 빠른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이 인간 세상에 절대적인 마이너스가 되면 절대적인 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공이 되어 자기가 없는 대상자로 나타나는 그런 사람을 하늘이 찾아 나오는데, 그러한 자리예 오시는 분이 메시아적 사명을 가진 분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에게는 자기라는 것이 개밥에 도토리만한 것이라도 언제나 남아 있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여기 여자들도 그렇지요? 틀림없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그런 녀석들, 그런 자식들은 다 때려죽여야 된다. 거 때려죽이라는 말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좋은 것입니다」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죽고자 하는 자는?「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뭐예요?「죽는다」 자기를 살리겠다고 하는 사람은?「죽고」 죽고, 이 몸을 몽땅 죽어 없어지겠다는 사람은? 「산다」 왜 사느냐? 주체인, 고기압권인 하나님이 저기압권을 완전히 채워 주기 때문입니다. 채워 주는데 그 고기압권이 가만히 채워 주는 것이 아니라 돌아갑니다.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움직이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돌아가기 시작하니까 하나님이 죽기 전에는 상대가 죽어요, 안 죽어요?「안 죽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예수님이 말씀한 것은 이러한 원리원칙을 기반으로 한 말씀입니다. 역설적인 말인 것 같은데 어쩌면 그렇게도 딱 들어 맞는지…. 알겠어요?「예」 예수님의 말이 딱 맞아요, 안 맞아요?「맞습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맞습니다」 안 맞아요!「맞습니다」 안 맞는다구? 「맞습니다」 안 맞아요?「맞습니다」 그런 말 믿지 말라구. 「맞습니다」 정말 그래요? 「예」 여러분에게 하나 배웠다구요. 기분 좋구만. 정말 그래요?「예」
자, 이제 오늘 이야기를 살랑살랑 결론짓자구요. 더 길게 이야기하려면 얼마든지 하는데 시간이 없으니 가야 된다구요, 보다 나은 것을 알았지요?「예」 선과 악이 무엇이냐? 오늘날 젊은이들은 '남을 위해서 희생봉사하는 녀석, 그건 못난 녀석이지'라고 합니다. 보라구요. 높고자 하는 자는?「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높아진다」 세상적으로 볼 때 이게 될 말이예요, 안 될 말이예요?「안 될 말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선생님이 기분좋은 말을 듣고 보니 '야! 멋지고 기가 막힌 말이구나' 하지. 이런 걸 모르면 그저 '기분 나빠. 아침에 들어도 기분 나쁘고, 새벽에 들어도 기분 나쁘고, 잠자리에서 들어도 기분 나쁘고, 꿈 가운데서 들어도 기분 나빠!'라고 할 것입니다. 기분 나쁜 말이지요?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 저기압이 되면 될수록 빨리 높아질 수 있는 길이 그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완전히 저기압이 됐다 하는 날에는 왈칵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러니 그 경계선을 넘는 날에는 '야, 가자' 하고, 고기압권에서도 '야 이놈들 내가 나간다' 이렇게 되면 바람이 집을 날려 버리는 것입니다. 집을 넘어뜨립니다. 바람이 그러지요? 공기가 집도 쓰러뜨려 버리지요? 누가 점잖게 '아, 어제 저녁에 보니까 공기라는 녀석이 가는 곳곳마다 무엇이든지 슬쩍슬쩍 삼켜 버리더라. 사람도 꿀떡 삼키더라' 한다면 이해돼요? 태풍이라는 것이 어떤 거예요? 그게 뭐예요? 공기가 그렇게 된 거 아니예요. 그렇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저기압이 되면 될수록 빨리 채워지는 것이요, 중간 기압이 되면 채워지더라도 새것으로 채워지지 않고 아래는 새까맣고 위에는 알록달록한 것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완전히 자기가 없어지면 모두 주체의 것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체가 이상적이예요, 대상이 이상적이예요? 주체가 이상적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주체이기 때문에 주체의 것을 완전히 채우려면 완전히 저기압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도 없으면 완전히 채워 주지요?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완전히 채워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지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역설적인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의 욕망과 하나님이 바라는 욕망이 엇갈려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우리 통일교회 무리들은 선한 무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예」 선하다는 것은 원리원칙에 입각한 선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창조하신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 인간이 서야 하기 때문에 창조할 때 '만물을 주관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을 대하여 내가 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만물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사람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편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할 때 자기를 투입해서, 자기를 희생시키면서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으로 지었습니다. 사람을 지을 때도 자기를 희생시키면서 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그와 같은 자리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은 것은 뭐냐? 대상입니다. 그 대상은 무슨 대상이냐? 사랑을 중심삼은 대상을 바라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를 투입해서 만물을 지었기 때문에 인간이 그런 입장에서 만물을 대하면 만물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하늘편에 서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어요, 없어요?「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친구 집에서 친구와 같이 있으면 그 친구를 알 수 있어요, 없어요? 「알 수 있습니다」 서로 떨어져 있으면 알 수 있어요, 없어요?「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심정을 가지고 만물을 지은 것은 자기 투입과 더불어 상대를 위해서입니다. 상대는 무슨 상대? 사랑의 상대를 위해서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창조할 때 자기를 투입하고,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좋아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만물을 사랑할 줄 알게 되면 하나님편에 서게 됩니다. 알겠어요?「예」 만물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하나님 뒤를 찾아 들어갑니다. 뒤로 들어가는 것이 나쁘냐? 하나님이 '이 녀석아 왜 뒤로 찾아 들어와 이 녀석아' 그러겠어요? '야! 어디 어서 들어오너라' 그러면서 안 들어오면 잡아당기지. 잡아당기는 것이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귀여운 아들딸이 있으면 그 부모가 그 아들딸을 잘 업어줘요, 안 업어줘요?「잘 업어줍니다」 잡아 주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걸 품어 준다구요. 그때는 잡아 주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아가씨들, 남자가 달라붙으면 그거 기분 좋아요? '아이고 머니'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주체요, 내 행복의 주체가 꽁무니를 쓱 잡아다니면 '아이구, 어서 잡아다니면 좋겠다' 그러지 '아이구, 잡아 다니면 큰일난다'고 그래요? 이야기 한번 해보라구요. 어때요? 그런 남자가 있으면 좋겠어요?「예」 그렇지? 얼굴은 못 생겨도 대답은 잘하는구만. (웃음) 아무리 미운 데가 있더라도 나에게 잘해 주고 모든 것에 희망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색시감을 마련하려고 하는 청년은 '멋쟁이보다는 성실해야 된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 상대가 있는 자리는 이상세계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상대가 되게 되면 이상세계가 벌어집니다. 선한 상대가 있으면 선한 이상이 생겨나기 때문에 아무리 얼굴이 못났더라도 선한 이상적인 남편만은 누구나 다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귀가 안 돼요. 그게 필요한 것입니다.
만물을 사랑하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투입한 심정적 내용과 더불어 하나님이 자기의 사랑의 상대로 만들려고 하시던 것을 느끼라는 것입니다. '만물지중(萬物之中)에 유인(惟人)이 최귀(最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피조물 가운데서 왕땡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정성을 투입한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이상적인 대상으로 만들기 위하여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요 녀석이 내 마음대로 한다면 천하가 다 좋아질 수 있겠는데' 이렇게 생각하시면서 보아도 좋고, 생각해도 좋고, 자나깨나 좋아할 수 있는 존재로 지은 것이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그렇게 살게 될 때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어떤 사람이 성인이냐? 온 천하를 자기의 사랑하는 대상으로 삼고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온 천하, 온 세계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꽃이 말이예요. 잎도 나오지 않고 가지도 없이 꽃만 피었다고 할 때 얼마나 불쌍해요. 아이구 잎도 없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지요? 여러분, 시인 되어 봤어요? 그런 감정이 풍부한 사람을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한 상대를 대한 생활적 감정을 그냥 그대로 표현하면 문학작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만물을 사랑해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것 중에 만물이 하나님편에 제일 가까운 자리에 서 있으니 만물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마련입니다. 알겠어요? 사랑받기 위해서는 그래야 됩니다.
시집가는 새색시는 남편만 사랑해 주면 주머니에 일전 한푼 없더라도 조밥을 먹고 살더라도 사랑의 원칙으로 볼 때 그만입니다. 이거 맞아요, 안 맞아요?「맞습니다」 대답해 봐요, 맞아요, 안 맞아요?「맞습니다」 여러분이 지내봤어요? 어떻게 알아요? 그것은 안 배워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여러분이 시집 장가갈 때 애기는 이렇게 낳는 것이다. 제 1과, 제 2과, 제3과 이렇게 학습하고 시집을 가요? 그런 것은 배우지 않아도 다 아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사랑의 법도에 의해 가는 길에는 교육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모든 법도를 넘어서 있기 때문에 이상적인 것입니다. 자, 그만하면 알 만하지요?「예」
그러면 최고로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세계를 위해서 미친듯이 울고 다니고 고생하고 다니면 다닐수록 그 사람은 최고로 망할?「흥할」 망할?「흥할」 이놈의 자식들, 망할?「흥할」 알기는 아는구만. 망할 녀석이 아니구?「흥할 녀석입니다」 만일에 그런 길이 있다면 여러분이 가고 싶어요?「예」 빨리 가고 싶어요, 천천히 가고 싶어요? 「빨리 가고 싶습니다」 얼마나 빨리 가고 싶어요?「빛과 같이 빨리 가고 싶습니다」 그래, 그래.
오늘 이 타락한 세계에서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 가지고 그런 놀음을 한번 하고 싶다 할 때, 빛과 같이 후닥닥 이 세계를 전부 다 하나님 앞에 복귀해 드리고 싶지요?「예」 복귀해 드리고 싶다면 그만큼 희생의 길을 가야 됩니다. 이 말을 들으니까 기분 나쁘지요?「기분 좋습니다」 기분 나쁘지요?「좋습니다」(녹음 상태 불량으로 일부 정리하지 못 했음)
아 이거 배가 고픈데, 어쩌면 그렇게 배가 고프냐 이거예요. 내가 보더라도 참 그런 입장인데 참는다는 거예요. 그러면 먹는 것 때문에 그 사람에게 굴복당하는 것입니다. 그는 훌륭한 분이지요? 우리 통일교회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개인을 위해서 가게 된다면 개인은 망하더라도 이러한 사람은 남아질 수 있다 그 말입니다. 알겠지요?「예」 또, 이 세상에 아무리 많은 가정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통일교회 가정이 참을 위한 입장에 서서 참가정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게 된다면, 딴 가정은 망하더라도 통일교회 가정은 나라가 없더라도 나라를 이어받을 수 있는 가정으로 남아질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예」 종족도 그러하고, 민족도 그러합니다. 세계를 위해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면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차지할 수 있는 자리를 지키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끝까지 가는 날에는 상속받게 마련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둑놈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절대적으로 자기만을 위하라는 사람입니다. 그렇지요?「예」 맞나, 안 맞나?「맞습니다」 그런 사람은 망해야 됩니다. 일방적으로 자기만 위하라는 사람은 도둑놈입니다. 도둑놈들은 흥하는 거예요, 망하는 거예요?「망하는 것입니다」 이 천리 앞에 망하는 녀석은 고개를 들 수 없는 것이요. 꺼꾸로 내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도둑놈은 고개를 들어요, 숙여요?「숙입니다」 꽁무니를 들어요, 낮춰요?「낮춥니다」 벌렁벌렁 기어다녀요, 발랑발랑 기어다녀요? 대답해 봐요. 여러분, 그것도 몰라요? 발랑발랑 기어가야 합니다. 강아지 돌아다는 것 모양 발랑발랑 기어다녀야 한다구요. 악한 녀석들이 있을 곳은 땅구덩이밖에 없습니다. 알겠어요?「예」
그런데 선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공적인 입장에서 남을 위해서 일하면 올라가는 것입니다. 천하가 안 부럽다구요. 그러면서도 '이놈의 자식들!' 하며 대통령이 온다 하더라도, 내 목을 자른다 하더라도 당당히 고개를 들 수 있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은 밤에도 고개를 들고 낮에도 고개를 들고 다닙니다. 누가 반대하면 뻥 차 버릴 수 있는 주체적 감정이 영원히 끊이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아무리 그래도 두고 보자…. 여러분, 사필귀정이라는 말 들어 봤지요?「예」
여러분이 무슨 잘못을 하면 양심의 고통이 뒤따르지요? 그러므로 자기를 위주하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내가 만일 여러분 앞에 누덕누덕 기운 누더기 옷을 입고 나왔다고 합시다. 여러분도 누더기 옷을 입고 나왔으면 모르겠는데 다들 잘 차려입고 나왔는데 내가 그렇게 나서면 거 부끄럽겠나, 안 부끄럽겠나? 자기가 따라지 중의 따라지가 되어 가지고 그렇게 누더기 옷을 입고 나서면 부끄러운 것이지만,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마음을 갖고 자기 입을 것을 다 주고 누더기 옷을 입고 나서면 당당하다는 거예요. '야! 이놈들아!' 한다는 거예요. 어때요, 그럴 수 있어요, 없어요?「그럴 수 있습니다」 종류는 같은 종류 같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천지의 차이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남에게 받겠다고 하는 사람은 도둑놈 심보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에이 이 녀석아, 가라 녀석아!’하면서 차 버립니다.
세계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시키겠다는 사람은 거지와 같은 모습이라도 부끄럽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통일교회 무리는 빵떡을 먹든, 보리떡을 먹든, 물을 마시면서도 '아, 오늘 아침 냉차가 진수성찬보다 맛있군!' 하며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도 '감사합니다' 하게 되면 천하가 운다는 거예요, 천하가. 천하를 위해서 그런 입장에 서면 주체가 없기 때문에 천하가 뒤바꿔집니다. 알겠어요? 주체가 없으니까 천하가 자기보다 더 낮은 것이기 때문에 천하가 달라붙는 것입니다. 전부 가까이 오니까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이 왜 희생해야 되느냐? 요거 알았지요?「예」
복귀원리에서 아벨족속은 무엇이고, 가인족속은 무엇이냐? 아벨족속은 선한 족속이고 가인족속은 뭐예요?「악한 족속요」 악한 족속입니다. 그러면 악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느냐? 자기 자각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주체 자각을 망각해 버리고 자기 자각을 한 데서부터 악이 출발한 것입니다. 그 괴수가 누구냐? 그것이 왈 악의 대장인 사탄 마귀라고 하는 것이다.
자기 자각은 어떤 것이냐? 하나님도 생각하지 않고, 아담도 생각지 않고 누굴 생각한 것이냐? 자기를 내세운 것입니다. 전부 극과 극입니다. 아침부터 이런 말 들으니 기분 나쁘지요?「기분 좋습니다」 똑똑히 알아야 돼요. 자기 자각에서부터 악이 출발한 것입니다. 보라구요. 처녀 총각이 사춘기가 되면 여기 남자들은 여자 친구 있으면 좋겠다 생각한다구요.
악한 남편을 뭐라고 그래요? 나쁜 남편이라고 그러나 뭐라고 그래요? 자기만을 생각하는 남편을 둔 아내는 속으로 기뻐 살아요, 슬퍼 살아요? 「슬퍼 삽니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만을 위해서 살면 그 아내는 기뻐 살아요, 슬퍼 살아요?「기뻐 삽니다」 아내의 행복은 남편이 자기를 위해 주는 데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요? 「예」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느냐?「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데서부터 옵니다」 그거 말 잘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내가 그를 침략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자인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서 생겨납니다. 다르다구요. 내가 주체자 되는 하나님의 대신자로 서야만 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 입장이라고만 해서는 선한 것이 아닙니다. 선한 상대의 자리에 서야만 선한 주체를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기쁜 것입니다. 받아야 기쁜 이 원리원칙의 마음을 사탄은 횡적으로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주체를 망각한 자리에서 자기를 주체시했습니다.
받을 길이 있긴 있는데 상대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받겠다니까 망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없으면 어떻게 돼요? 남자가 없게 되면 여자는? 망하게 마련이지요? 여자 없는 남자는 아무리 잘났어도 망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없애겠다니까 사탄은 망하는 것입니다. 이게 원리원칙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도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겠다고 했으면 타락했겠어요? 천사장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겠다고 하나님의 사랑만 고대했으면 타락했겠어요?「안 했습니다」 또, 해와도 타락할 때 자기 자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자각하였다면 타락했겠어요? 「안 했습니다」 이 원칙을, 여러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여러분은 상대적 입장이예요, 주체적인 입장이예요?「상대적 입장입니다」 상대적 입장이기 때문에 누구의 사랑을 받아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반대의 말씀을 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겠다' 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요? 왜 이런 말을 했느냐? 사랑을 받겠다고 하더라도 전부 다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해 달라는 도둑놈 심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정하고 하나님을 다시 사랑하라 한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자기 이상,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되면 이 원칙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세상 만사가 여기에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단단히 일러 놓았다구요. 알겠지요?「예」
이러한 원칙을 두고 볼 때, 이 세계의 역사는 이것을 지축으로 하여 놀아나고, 선악도 이것을 지축으로 하여 놀아나고, 전부 다 이것을 중심삼고 이쪽이 우세할 때는 저쪽이 내려가고 저쪽이 우세하면 이쪽이 내려가고, 이렇게 올라갔다내려갔다하는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의 이상세계는 어떤 세계냐? 미국이 세계를 위해서 자기 나라는 망하더라도 세계를 살리겠다고 안간힘을 다하고 희생했더라면 민주세계가 갈라졌겠어요, 안 갈라졌겠어요?「안 갈라졌습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 백성들이 나라가 없는 민족이 되어도 '아, 우리나라에 오소. 우리 나라에 오소' 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환영할 것입니다. 야, 이 녀석들아 하면서 쫓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전부 다 모셔 주기 때문에 세계에 유리하는 민족 같고 갈라진 것 같은 민족이 되겠지만, 그 나라에 가서 최고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세계를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나라가 반대하더라도 그러한 사상을 가지고 끝까지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원리원칙을 세워 놓았습니다. 그러한 사람들 끝에는 세계가 그 품에 품기려고 할 것입니다. 오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오게 마련입니다. 교만한 자는 다 싫어합니다. 자기를 세우려는 것은 다 싫어하는 것입니다. 왜 싫어하느냐? 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세우려고 하지 않고 남을 세우려고 하는 사람은 다 좋아합니다. 왜? 이것은 흥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타락했을망정 본심은 그것 정도는 가릴 수 있는 잼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사람으로부터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은 교만한 사람이 좋아요? 「싫습니다」 여자들이 가만히 볼 때에 아무리 잘난 남자라 하더라도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아무리 잘났더라도 다 싫어하지요? 그렇지만 못났더라도 남들을 위하게 되면 '아 저 사람은 저렇게 위하기 때문에 내가 시집가게 되면 위해 주겠다'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는 미인 아가씨도 '그다지 잘나지 못한 남자지만 마음이 참 곱다' 이런다구요. 여러분은 잘나고 교만한 사람 만날래요, 그저 보통이고 수수한, 못난 데에 가깝지만 남을 위하는 그런 남자를 만나고 싶어요? 어떤 남자가 좋아요? 첫째 번이예요, 둘째 번이예요?「둘째 번입니다」 알기는 아는구만. 맞는 말이라구요.
여기 남자들은 아가씨들을 가만히 볼 때 '저 처녀는 못났더라도 제일 낫구만. 얼굴은 호박같이 생겼지만 마음씨는 참 푸근해 보이는구만. 누구라도 그 곁에 가면 다 설렁설렁 녹아지누만' 그런다구요. 그러면서 남을 위해서 그저 무슨 일이든지 하려고 하고, 자기는 힘들지 않다고 하면서 어려운 것은 자기가 맡겠다고 하는 그런 여자를 좋게 봅니다. 남자들의 눈은 말입니다. 미인 박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독사입이 되어 가지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 아무리 이쁘게 생겼더라도 그런 여자는 남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래요?「그렇습니다」 정말 그래요?「예」
얼굴은 호박통 같더라도 순진하고 뭇사람들로부터 찬양을 받고, 이다음에 애기를 낳으면 메주덩이 같은 애기를 낳을 수 있는 그런 색시를 원하게 마련이다…. 맞아요, 안 맞아요?「맞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주의하라구요. 이 다음에 여기 있는 아가씨들이 여러분의 형수가 될지도 모릅니다. 주의하라구요. 알겠어요?「예」 괜히 쓸데없는 짓하다가 이 다음에 덜커덕 형수가 되면 어떻게 하겠어요? 일생 동안 후회할지 모른다구요. (웃음) 주의해야 된다구. 알겠어요?「예」 형수뿐만이 아니예요. 어쩌면 자기 어머니도 될 수 있다구요. 그럴 수 있습니다. 자기 어머니가 죽은 다음에는 아버지가 새 장가를 들게 되면 이 색시들 가운데서 어머니 될 사람이 나올지 모른다구요. 만일에 잘못했다가는 큰일납니다. 알겠어요? 「예」「저는 그런 염려 없습니다」 이 녀석아, 아담이 '하나님! 나 염려 있습니다' 그랬어요? '염려 없습니다마는…' 그랬다구. 베드로가 '염려 없습니다. 당신이 죽으면 나도 같이 죽겠습니다마는….' 그랬다구요. (웃음) 네가 타락하지 않은 아담보다 나아? 천주를 다 들어먹은 천사장보다 나아?「못합니다」 못한데 그런 말을 어떻게 하는 거야, 이 녀석아? 그게 다 교만이라구. 뭐 나는 염려 없습니다…. 그렇지? 「예」 그러니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나 만나서 먼저 입을 짹짹짹짹 하는 사람은 주의해야 됩니다. 먼저 다 말했으니 말할 게 있어야지? 그런 사람은 나중에는 얼굴이 수그러지고 부끄러워집니다. 알겠어요? 될 수 있으면…. 말 잘하는 사람보다 말이 적은 사람이 나아요. 그러나 전도할 때는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왜? 모르니까. 원리를 중심삼고 전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발전합니다.
이제 우리는 왜 희생해야 하는가 하는 의의를 알았어요? 알았어요, 몰랐어요?「알았습니다」 그러면 희생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사탄의 직속 후계자요, 희생하겠다는 사람은 그 반대니까 뭐예요? 하나님의 직속 후계자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직속 후계자 될래요, 사탄의 직속 후계자 될래요?「하나님의 직속 후계자 되겠습니다」 선생님의 말이 틀리나 안 틀리나 일생 동안 연구해 보라구요. 연구해 보고 그것이 맞나 안 맞나 한번 실험해 보라구요. 자, 선생님 말이 맞을 것 같아요, 안 맞을 것 같아요?「맞습니다」 틀림없이 맞아요?「예」 안 맞으면 실험 해 보라구요.
여러분이 동네방네에 가서 고생하는 자리에 서면 그 동네가 전부 '여보! 당신 어디 가오. 나도 따라가겠소' 자기가 못 따라가면 '우리 아들이라도 데려가 주소' 이런다구요. 전부 다 맡기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예」 그러니 희생이 나쁜 것이냐?「좋은 것입니다」 본래 우리 인간이 가야 할 길은 재창조의 역사를 더듬어 가는 길입니다. 사람은 위함을 받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위해 주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알겠어요?「예」 악의 길은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그 반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향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남을 위해서 빨리빨리 희생하고 주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가 최고의 자리입니다. 빨리 돌아가는 것일수록 오래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 그렇잖아요? 발동기를 빨리 잡아당기게 되면 폭발되지요? 그렇지요? 「예」 발동기를 빨리 돌릴수록 빨리 작용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이러한 원칙을 알았기 때문에 '아하, 역사는 이렇게 가야 되고, 인간은 이렇게 가야 되고, 인류는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길을 가려 주는 것입니다.
내 개인을 희생해서 가정을 찾아야 됩니다. 희생해서 찾은 그 가정들은 '아, 수고하신 아버지여! 수고하신 그대여!' 하는 것입니다. 남편을 대하면 '아, 당신! 진정한 의미에서 고맙습니다' 뼛골이 녹아지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인간의 참다운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개인은 가정을 위해 희생하는 거라구요. 그 가정에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는 거라구요. 이러한 사상으로 일원화될 수 있는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어머니도 자기의 남편을 위해서, 자식들을 위해서 있고, 자식은 부모와 형제들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이 되게 될 때, 서로 위하려고 하는 가정은 전부 공이 되니까 누가 내려오느냐 하면 하나님이 내려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가정이 영원 불멸한 이상적 가정이 아니 될 수 없다, 이론적으로 딱 결론이 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가정은 그 동네를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그 씨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자기가 잘살더라도 그 동네에 밥을 먹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 식구가 밥을 먹지 못하는 것처럼 아픈 마음을 가지고 남몰래 쌀을 갖다 주려고 하게 되면, 그 동네 사람들은 자연히 '여보! 저 사람을 반장 시키고, 우리 동네의 왕초를 만들어야 되겠소!' 그래요, 안그래요?「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생이 나쁜 줄 알았더니 희생하면 어떻게 되느냐? 희생하고 나면 중심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거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맞는 거라구요.
나라를 위해서 전체 생명과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을 애국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애국자는 일자무식이라도 애국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있습니다」 유관순이 학박사가 아닙니다. 그렇지요? 「예」 그 다음에 안중근, 그도 미욱한 사람입니다. 그 시대에서는 미욱한 사람입니다. 유관순을 볼때 '이 아가씨가 뭘 안다고? 저게 미친 것이지 뭐야? 스무 살에 시집도 못 가서 정신 나갔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 유관순이 어떻게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느냐? 그것은 깨끗한 젊은 시대, 자기의 인생을 그려 나갈 수 있는 시기에 나라를 위해서 몽땅 바쳤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서 몽땅 희생했기 때문에 그 이름은 그 나라 그 민족이 없어질 때까지 없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아, 나는 대학까지 나왔는데 어쩌고 저쩌고…. 그러나 대학 나온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을 남을 위해서 활동하게 되면 그 부락 사람들이 '대학 나온 사람 집어치워라. 이 자식아. 너는 싫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저 아저씨, 아줌마, 저 청년이 좋다' 하는 것입니다. 간사한 목소리로 간들어지게 말하는 그런 무리는 싫다는 것입니다. 뚝빼기같이, 돌로 때리는 것같이 턱하며 '옛소 먹으소' 할 때, 아무 매력도 없고, 애교도 없지만, 늘어진 소매 끝에는 때가 묻고 땀이 배이고, 검은 손가락의 굵은 마디가 도리어 좋다 이거예요. 알겠어요?「예」
하늘 앞에 최고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세상 누구보다도 잘나 보이는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알겠어요? 「예」 오로지 그 마음을 일편단심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구요. 나라를 위해서 끝까지 희생하게 되면 사상적으로 그 나라의 전통적인 국민성을 중심삼은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상을 중심삼고 국민을 전부 다 교육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그러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교재를 만들어 교육을 해야 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천주를 지배하는 주인입니다. 그 주인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주인이 사랑하는 물건을 자기보다 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복받게 마련입니다. 농토를 가진 주인의 아들이 있다면, 그 아들이 아버지보다도 잠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새벽같이 농토에 나가서 벼가 자라는 것을 보고 참 잘 자란다고 하고, 그저 자기 아내같이 농토를 사랑하는 아들을 가진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가 볼 때 아 저 녀석은 장래가 매우 희망적인 사내라고 생각하겠어요, 절망적인 사내다라고 생각하겠어요?「희망적…」
가만히 보면 그것은 미친 놀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 잠자는데 왜? 밥이 없나 무엇이 없나…. 그런데도 농토가 보고 싶어서, 벼이삭 자라는 것이 보고 싶어서 그렇게 사랑하게 된다면, 그 부모는 '야, 내가 죽기 전에 저 아들한테 모든 것을 남기고 가야 되겠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희생이 나쁜 것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을 감화시키고 하나님을 내 편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저기압권이 되면 고기압권이 빨리 올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오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천지만물은 상대권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가까이 온 사람을 중심자로 세우려고 하는 것이 원리원칙입니다. 알겠어요?「예」 무슨 자라구?「중심자요」 희생은 무엇을 가져다 주느냐 하면, 중심자를 결정해 줍니다. 이것이 틀리면 통일교회 문선생이고, 통일교회 원리고, 통일교회 가는 길이고…. 그게 틀리면 통일교회는 망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여러분 기동대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 녀석들 어디 보자! 눈빛을 보고, 콧대를 보고, 상통을 보고, 가슴통을 들여다보고 이 녀석이 무엇 때문에 눈이 저렇게 휘둥그래지나?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그래요?「하나님 때문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이 나라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땅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하늘을 사랑하라고 했지요? 천(天) 지(地) 인(人). 그래서 동양사상이 위대한 것입니다. 천지인을 사랑하는 그 사람은 우주의 주인이요, 우주의 상속자입니다.
그러므로 뜻을 위해서 눈이 휘둥그래지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구요.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듣는 것도 자기 잘되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나라 잘되기 위해서, 냄새를 맡는 것도 내가 느끼는 것도 나라를 위해서 한다면, 그 사람은 주인이 아니면서 점점 주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개인에서부터 나라의 주인으로 올려 주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느냐? 성인을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성인들이 여러분들을 주인으로 모시고, 중심으로 세울 수 있는 사람을 만들겠다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입니다. 지독한 사상이지요? 지독한 사상이지?「예」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바라던 이상의 자리까지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라를 사랑하려고 했지만 나라를 사랑해 봤어요? 세계인류를 사랑하려고 기도는 하였지만 그 뜻을 이루어 봤어요?「못 이루었습니다」 이루지 못하고 기도한 사람보다도 이룬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룬 사람이 가만히 기도한 사람보다도 더 희생했기 때문에 결국은 주인이 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예수님이 형님이지만 훌륭한 동생으로서 예수 형님을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그렇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여러분 희생이 나쁘더냐, 좋더냐?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이 기동대 가운데서는 누가 일등을 하느냐? '아, 일등은 내가 일등이지. 밥도 실컷 먹고, 실컷 자고, 아이구 뭐 좀 놀면서도 아 일등이다' 한다고 해서 일등 돼요? 절대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천년 만년을 가도 절대 안 됩니다. 그렇지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남을 위해 희생하면 일등이 돼요, 안 돼요? 「됩니다」
여기 40명을 대표해서 나쁜 것 먹고…. 여러분이 활동하면서 굶고 다니는 형편인데 어느 지방에 가니까 닭 한 마리씩 삶아 주었다 합시다. 눈을 기웃거리면서 먹고 먹고 또 먹고, 남보다 많이 먹자 하면 그것 때문에 속병이 납니다. 그 닭을 붙들고 감사하며, '식구들이 먹지 못하는데, 이 나라 백성이 먹지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하면서 먹다 말고 다리 하나라도 민족을 위해 주고 싶고, 남을 위해 주고 싶은데 없으니…. 거기에 뚱뚱보가 있다고 합시다. 밥을 두 그릇씩 먹고 몸집이 이렇게 큰 사람이 있으면 '나는 너무 많은데 더 들라구' 그렇게 되면 그 뚱뚱보는 나만 보면 얼굴을 못 든다구요. 세 번만 그렇게 하게 되면…. 신세를 진 사람은 머리를 숙이게 마련입니다. 그렇지요?「예」 신세 지고 꺼떡대는 녀석도 있어요?「없습니다」 악한 세상을 굴복시키는 방법은 신세 지우는 것밖에 없습니다. 알겠어요?「예」 이렇게 생각할 때 '야! 어쩌면 하나님은 그러시냐? 내가 생각해도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이다' 하고 증거가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세상을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연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작전을 하느냐 하면 주고, 맞고, 찾아 나오는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주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어떤 대원에게 다가서시면서) 실감나게 얘기하려고 그러는데 왜 이렇게 놀래나? 이 뚱뚱한 작자에게 완전히 주는 날에는 어떻게 되느냐? 완전히 주는 날에는, 저기압이 되는 날에는, 그러면 반작용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상응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상충이 아니라 작용을 완전히 받아 가지고 돌아서면 반작용이 벌어집니다.
남자와 남자끼리는 서로 반발합니다. 그렇지요?「예」 플러스와 플러스끼리는 반발하는 것입니다. 여자 여자끼리도 반발합니다. '나 시집 갈래. 시집 갈래' 할 때 여자한테 시집가겠다고 하는 여자가 있어요? 절대 없습니다. 누구한테 시집가요? 남자한테 시집갑니다. 절대적으로 남자한테 시집갑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자는 시집을 절대 남자에게 가는 것이다. 여러분은 좋아해요?「좋아합니다」 좋아하지만 남자가 쓸쩍 두 여자를 좋아하는 놀음이 벌어지면 여자끼리 싸움을 합니다. (웃음)
남자와 여자가 같이 있으면 이것이 절대적으로 하나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이 하다가는 사고 난다구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 여자는 브레이크를 걸어야 합니다. 함부로 작용했다가는 망신당합니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잘못 인연 맺었다가는 자기혈족이 망한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좋은 상대자를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악한 선조의 실체로 나타난 여자가 있으면 자기 아들딸은 알록달록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것입니다. 공판정에서 심판을 내리는 것보다 더 심각한 자리입니다.
내가 보니까 합동결혼식을 앞두고 약혼을 할 때면 밤잠을 못 자거든.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상대를 위해서 선생님 생각하면서…. (웃음)
본래 여자는 여자를 위해서 태어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생긴 것은 자연적으로 그렇게 생겨났어요? 누구 때문에? 누구 때문에 그렇게 생겨났어요?「남자요」 남자는 누구 때문에 그렇게 생겨났어요?「여자 때문에요」 뭐 여자 때문이야. 남자 때문에 그렇게 생겨났지. 「여자 때문입니다」 자기를 주장하는 녀석은 멍텅구리입니다. 월권행위입니다. 알겠어요?
남자는 누구를 위해서 태어났느냐 하면 여자를 위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지요? '왜 남자가 여자를 위해 살아야 돼? 대한민국 윤리에서는 여필종부라고 했는데, 아 이거 남자가 여자를 위해 살다니….' 하고 기분 나빠해요? 기분 나빠하는 녀석은 망할 자식입니다. 왜? 그러면 늘어진 것 다 잘라 버려야 됩니다.
그건 누구 때문에 그렇게 생겼느냐 하면 자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자 때문에 생겨났으니 여자를 위해서 사는 것이 원칙입니다. 알겠어요?「예」 사람은 본래 태어나기를 위하여 태어났습니다. 알겠어요?「예」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왜 하나되려고 하느냐? 그래야 통하기 때문입니다.
한 십년 군대 갔다가 돌아오는 남편을 대해 그 아내는 어때요? 기차가 척 역에 멎자마자 돌아서서 걸어오는 남편을 보고 그 아내가 가만 있나요? '남자는 여자를 위해 있기 때문에 오소' 이렇게 버티고 서 있어요? 「달려갑니다」 그런 거라구요. 또, 남자도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있으니 '이리로 오라'고 하면서 가만히 서 있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안 그렇습니다」 그저 달려가는 거예요. 플러스 마이너스는 자기 진짜 상대가 되게 될 때는 달려가나, 안 가나?「달려갑니다」 이렇게 획- 천년 만년이라도 달려갑니다.
그렇게 저기 있는 남편, 여기 있는 아내가 달려와서는 만나 가지고는 '싫소' 하면서 가만 서 있어요? 만나자마자 서로 붙안고 그래요, 딱 버티고 서 있어요? 붙안고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렇지 않으면 둘 다 망하는 거예요. 찰카닥 붙자마자 '스톱!' 하면 결국은 이렇게 넘어가든가 이렇게 넘어가든가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빙글빙글 돌아갈 때는 천하가 그 품에 돌아갑니다. '둘이 주고 받으면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천지이치입니다. 돌면 돌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붙안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좋아하는데 지나가던 운전사가 '여보 교통사고 나겠소' 그래요? (웃음) 그럴 때는 '교통사고가 나도 좋소' 그런다는 거라구요. 그렇게 죽을 줄 모르고 좋아서 빙빙 돌아갈 때 천하가 다 녹아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시집을 가게 되면, 그런 남자를 만나야 합니다. 일생 동안 그런 남자를 못 만나면 시집가지 말라구요. 「예」 끝까지 그런 남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나타납니다」 어떻게? 가만히 있는데 괜히 나타나? (웃음) 대한민국에서 제일 훌륭한 여자가 되려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훌륭한 남자 한 사람을 받들어 모실 수 있는 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뭇사람들이 추앙할 수 있는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20세가 넘고 40세가 다 되도록 시집을 못 가더라도 나라를 위한 충녀(忠女)가 되면 그 나라의 충신의 신분을 지닌 위정자들이 친히 찾아와서 '나하고 결혼 합시다'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시집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예요. 알겠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
시집 가겠다고 '아이구 이 남자야, 어딜 가노, 날 버리고. 그러면 저 남자가 내 남편 되면 좋겠는데 그도 날 버리고 갔구만, 이놈 두고 보자. 이놈의 자식아!'(웃음) 이렇게 하다가 1년, 2년, 10년, 20년이 지나고 30세가 넘은 올드 미스가 되고 40고개를 넘어가서 '아이쿠, 너무 늦었다' 하면 그 누가 동정해요? 그렇지만 40평생을 나라를 위해서 공이 많아 가지고 그랬다 하게 될 때는 그 나라의 훌륭한 사람들이 그 여자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맞습니다」
그런데 보라구요. 20대에 나는 시집가겠다고 좋은 남편 데려다 주소 하며 사내 녀석 앞에서 꼬리를 들이 흔들어대며 남자 타령하는 여자가 될 거예요, 아니면 남자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나라를 살리기 위해 수십년 동안 희생하며 살아가는 여자가 될 거예요? 여러분은 둘 중의 하나를 택한다면 어떤 것을 택하겠어요?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그러한 사상을 가지고 '이 시간 만큼은 내가 정성들이는 데 주인이다'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삼천만 민족이 잠자고 있지만, 쉬고 있지만 하늘은 쉬지 않기 때문에 삼천만의 운세는 밤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역사는 낮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밤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남이 노는 시간에, 남이 자는 시간에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갈 길이 바쁘다구요.
내가 삼천리 방방곡곡 집집마다 열 번 백 번이라도 가고 싶은데 갈 수 없기 때문에 여러분이 선생님 대신 가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자그마치 십자가를 그려 한 바퀴는 돌아야 됩니다. 소생, 장성, 완성의 3수를 거쳐 나오지 않고는 이 민족을 대하여 통일교회가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떤 때냐?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출발할 때와 같은 때입니다. 그런 때이기 때문에 애급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밤을 새워 가면서 죽을 힘을 다하여 아무 날 아무 시에 그 집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통보를 해줘야 합니다. 그것을 알고도 통보를 해주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벌을 받게 됩니다. 알겠어요? 「예」 이와 같이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출발하는 시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는 삼천만 민족 전체 앞에 그들이 가든 안 가든 통고해 줄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20년 가까이 전국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왔는데 아직까지 통일교회를 모르는 사람이 있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아직까지 통일교회를 모르는 사람이 있지요?「예」 그것은 책임을 다 못 했다는 것입니다. 편히 쉬고 노는 사람이 있더라도 이 민족을 책임질 수 있는 책임자들이 없었습니다. 뼈가 으스러져도 이 산천, 저 마을 골짜기마다 내 피땀이 어린 정성의 손길을 바라고 있으니 가야 합니다. 내가 그러지 못하면 종에 실을 연결시켜서 잡아채서 사방으로 땡그랑 땡그랑 종을 울려서라도 한 곳으로 움직여 나올 수 있는 통일전선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남북한이 아무리 회담을 한다 하더라도 통일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주체적인 입장에서 그러한 길을 닦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여러분에게 고생을 지긋지긋하게 시키는 게 좋아요, 안 시키는 게 좋아요?「시키는 게 좋습니다」 불평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안 하겠습니다」 불평을 하면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입니다. 십년공부 나무 아비타불! 선생님은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지 않아요. 하늘은 도와주는 것 같지 않다는 거예요. 도와주는 것 같지 않는 데도 먼 곳에서부터 도와주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여기 한국을 중심삼고 이 나라가 하나로 통일될 때까지 몇십 년 혹은 일생이 걸리더라도 그것을 소망으로 삼고 참고 가는 날에는 내가 못 가면 내 아들이 가는 것입니다. 멀리서부터 이루어져 들어오는 것이 철칙입니다. 포도넝쿨을 잘라서 삽목을 하지요? 그것을 다른 곳에다 삽목을 해도 뿌리를 내려 잘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이 뿌리가 되었지만 다른 나라에 삽목을 하면 그 나라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이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에 있어서의 뜻이 무엇이냐? 한민족, 배달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 선조들의 공적이 있고, 세계적으로 비참한 민족이 되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동정을 해서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 은사를 다른 나라에 넘겨 줘서는 안 되기 때문에, 선조들을 사랑하고 전통을 존중시하는 입장에서 대한민국의 주체성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세계의 어떠한 기동대보다도 여러분들을 더 고생시키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틀린 선생이지요?「아닙니다」 나쁜 선생이예요, 좋은 선생이예요? 「좋은 선생님입니다」 왜 좋은 거예요? 선생님은 여러분을 중심의 자리에 세우기 위하여 지금까지 이 놀음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알겠지요?「예」
일본에서는 지금 1주일에 한 사람을 표준으로 삼고 전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활동하는 것을 보면 2주일에 한 사람은 틀림없이 전도하고 있습니다. 1주일에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 지금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뭐예요?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기동대가 정상적인 활동을 못 했습니다. 정성이 부족했습니다. 신념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이 경기도 지역에서 영향을 미치면 서울에 연결될 것이고, 다음 전국에 연결될 것입니다.
이제 9월 초하루부터 힘차게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활동한지 석 달이 되었지요? 전반 석 달은 그렇게 훌륭한 활동을 하지 못했더라도 후반 석 달은 잘해야 되겠습니다. 지방에 내려가면 원리강의도 해야 되겠고, 뭇사람의 본이 되어야 되겠고, 믿을 수 있는 책임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실력이 없다고 낙심하지 말고, 얼마만큼 나라를 사랑하느냐 하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말보다는 보여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입장에 서면 모든 사람들이 통일교회 지도자를 믿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도 그러한 사람을 믿게 될 것입니다. 이제 지방에 내려가면 여러분의 생애를 바쳐 가지고 바쁘게 활동해야 되겠습니다.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는 것을 잊어버리고, 피로를 잊어버리고 허덕이다 죽더라도 그의 무덤에는 꽃이 피어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왜 희생 해야 되느냐 하는 근본문제를 알았기 때문에 이 원칙에 위배되지 않게끔 나가서 활동해야겠습니다. 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 「하겠습니다」 하겠다는 사람은 양손을 들고 맹세합시다.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2년 8월 31일, 하나님이 재출발과정을 중심삼고 싸워 나온 그러한 달의 마지막 날입니다.
남북이 서로 통하기 위하여 한 자리에 모여 회합을 하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 우리의 목전에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사건이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사실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날이 오기를 얼마나 얼마나 고대하던 당신이옵니까? 아버지, 이날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불쌍한 통일의 무리들이 이러한 통일의 날이 오기를 바라서 교회의 이름도 통일이라고 지었던 인연을 아버지께서 문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가 눈물을 흘리고 피땀을 흘린 그 정성이 미칠 수 있는 한계선에 도달하지 못한 입장에서 남북이 교류할 수 있는 입장에 섰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보다도 하늘이 얼마나 수고했는가를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이제 남북이 통일되기 위해서는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자기를 위주하는 자리에 서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둘 다 망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북이 서로서로 위해 줄 수 있는 길을 찾기 전에는 통일의 방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모 앞에 효성을 하지 못한 불효의 자식들이 도로 모여 부모를 깨닫고 자기 자신을 깨달아 가지고 효성의 길을 찾아 나서는 마음을 가져야만 이 나라 이 민족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북도 하늘을 위하여 효성을 다하고, 남한도 당신을 위해 효성을 다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서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남북이 통일될 수 있는 운세를 맞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다년간 그 목적을 추구하고 그 목적을 향해서 싸워 나왔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이 땅 위에 그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어떠한 종교도 없고, 어떠한 정당도 없는 이런 환경에서 욕을 먹고, 쫓기고, 수난받고, 핍박받고, 불쌍한 처지에서 비틀걸음을 하고 있는 통일의 무리만이 이 나라를 위해서 눈물짓고, 하늘 앞에 이 두 곳 사람들을 다리 놓기 위하여 지금까지 싸워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은 공산당 앞에 노동자 농민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다고 선전할 수 있는 재료를 수습했고, 그 길이 본이 될 때가 온다고 믿을 때가 왔습니다. 아버님, 통일교회 역사과정에 있어서 그런 재료를 각자가 갖지 못한 것이 이제 와 보니 한스러운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여! 갈 길을 맡기오니 맡아 주시옵소서. 인간의 힘으로는 그 무엇도 안 되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몸과 마음을 하나로 묶어서 남북으로 갈라진 여기에 하나의 제물로서, 당신이 눈물지으며 그러지 말라고 할 수 있는 효의 아들이 되고, 충의 몸뚱이를 가지고 수습하겠다고 맹세하고 나서기 전에는 이 나라가 해방될 수 없고, 통일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원리적인 결과인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저희들은 가야만 되겠습니다.
삼천리 반도 남한 땅을 다 편답하고 나서는 이북 땅도 저희들의 정성 어린 마음과 몸을 가지고 편답할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하늘을 부여안고 호소하며 나가야 되겠습니다. 바쁜 시절에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어린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누구도 동정하지 않는 나날을 맞으면서 하늘편 목소리로 시민을 향하여, 혹은 마을 사람들을 향하여 외치는 그 소리는 4천년 역사를 거듭해 나오는 이 민족을 깨우칠 수 있을 것입니다. 심정의 울부짖음으로써 그 본성을 깨우치시사 그 마음을 이끄시어서 소망의 곳으로 모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쌍수를 들어 새로이 맹세를 하였사오니 어린 가슴속에 새로이 느낀 것이 있거들랑 이 나라를 잊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고, 당신이 찾고 있는 그 나라를 찾거들랑 세계를 잊어버리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영계를 규합하여 당신의 사랑의 세계를 이 땅 위에 이룰 수 있는 그날까지 저희들은 바쁘게 바쁘게 또 바쁘게 가야 되겠습니다. 이 시간 그런 결의를 하였사옵니다.
이 무리들이 몽땅 하나되어 이 삼천만 민중 가운데 폭발되게 될 때는 어떠한 힘보다도 강하고 위대한 힘이 나올 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원자탄으로서 폭발될 수 있는 분화구가 될 때는 그 무엇을 제쳐 버리지 않을 수 없고, 그 무엇을 묻어 버리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그러한 일념을 가지고 하늘 앞에 직행할 수 있는 충의 도리와 효의 도리를 다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길을 밝히고 그런 길을 가려 내기 위해서 왜 우리는 희생해야 되는지를 이 시간 알았사옵니다. 이것만이 우리들의 갈 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사오니, 이제 내심 결의한 이 결의를 죽음이 엇갈리는 자리를 만나더라도 잊어버리지 않고 행동화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내세워 자랑하고 당신이 내세워 사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같이하여 주시옵고 가는 길을 지키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2년 9월 초하루이옵니다. 새로운 달을 맞는 이날 아침에 당신의 은사가 불쌍한 이 한민족 위에 같이 하시옵고, 혼란 가운데 있는 세계 만민 위에 새로운 약속과 새로운 축복의 길이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을, 아버지여, 살피시옵소서, 하나의 나라를 추구하면서, 당신의 뜻을 붙들고 최후의 승리의 날을 바라면서 전진하고 있는 이 무리들 위에 당신의 약속된 승리의 날을 맞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침에 당신의 뜻을 염려하면서 마음을 모아 하늘 앞에 정성들이는 자녀들 위에 그 수고에 만만배 은사와 축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또,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 이 시간 한 곳을 바라보면서, 승리의 미래를 위하여 현실의 환경을, 어려운 그날 그날들을 극복하며 뜻의 길을 찾고 있는 무리들 위에 무한하신 당신의 사랑과 자비와 가호가 길이길이 같이하시옵소서.
전세계에 널려 있는 젊은 기동대원들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얼마나 얼마나 많은 수고의 역사를 더듬어 이 한때를 맞기 위하여 국경을 넘어 하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를 향하여 초민족적인 전선을 연결시켜 최후의 승리를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될, 당신이 바라던 이 젊은이들을 이 시간 버려 두지 마시옵소서.
하늘의 협조 없이는, 인간 자체로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디 그들의 마음이 하늘을 향하여 진실되고, 충성을 다짐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새로이 찾기 위해 노력하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거쳐 나가는 곳곳마다 당신의 생명의 씨를 뿌리시옵소서. 그뿐만이 아니라 부활의 재창조역사를 일으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불쌍한 이 한국 땅을 기원으로 하여서 새로운 운동이 벌어지고 있사오매 이는 그 누가 원해서 되어지는 일이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하늘이 여기에 개재했고, 하늘의 뜻을 가려 나가기 위하여 이런 일을 시작하였사오니, 그들 위에 당신이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가는 길이 평탄하고 그들이 나타나는 곳곳마다 생명의 운동과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거대한 최후의 전선을 수호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당신이 이들의 중심이 되시옵고, 이들의 생명노선에 가름길을 친히 지어 주어야 되겠습니다. 선의 결과를 다짐할 수 있는 개개인의 생명의 노정을 개척함과 동시에 그 가는 길에서 하늘만을 위주하여 승리권을 성취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전하는 말씀은 당신의 애절한 심정을 통할 수 있는 말이 되고, 그들이 활동하는 모습 모습은 당신이 현현하시사 이 시대에 심판의 예언을 할 수 있는 거룩한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뿐만 아니라 역사시대의 수많은 선조들이 슬픔을 품고 승리의 복귀의 한날을 고대하던 그 소원성취를 다짐지을 수 있는 그런 모습들로 세워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한국을 아버지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불쌍한 이 민족을 찾아오신 것은 당신이 불쌍하기 때문에 찾아오신 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갈 길을 가려서 책임질 수 있는 그 어떠한 민족에게도 없는 섭리의 노정을 수난길에서 참아오신 당신이었기 때문에, 불쌍한 자가 불쌍한 자의 사정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아시고 이 불쌍한 민족을 아버지께서 찾아온 줄 알고 있습니다.
이 민족의 장래를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이 나라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늘이 주인이 되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의 갈 길을 지도할 자는 그 누구도 못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늘만이 책임질 수 있게 될 때, 이 나라의 갈 길이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인연과 사람의 뜻을 따라가는 이 나라가 되지 말고, 하늘의 뜻을 따라가고 하늘이 원하는 나라를 향하여 전진할 수 있는 이 나라가 돼야 되겠습니다.
남북이 갈라져서 지금까지 27년간이라는 지루한 역사과정을 서로서로 엇갈린 체제에서 싸워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이들이 손을 잡고 서로서로 하나될 수 있는 길을 바라는 그 표준은 이 민족이 바라는 표준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역사가 바라 왔던 표준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조 그 누구도 하지 못한 것을 우리 시대에 종결지어야 할 사명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 시대에 해결 짓지 못하면, 천추만대 후손 앞에 원한의 조건을 남긴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불쌍한 이 민족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의 갈 길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그 누구도 이 나라 전체의 운명을 알 수 없습니다. 당신만이 아시고 당신만이 그 갈 길을 염려하고 계신 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저희들은 이때가 얼마나 중요한 때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복귀의 한계점을 향하여, 혹은 정상을 향하여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숨막히는 기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 9월을 아버지께서 축복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이해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남한에 있던 당신의 자녀들이 북한 땅에 가 있사옵니다. 이들이 거쳐오고 거쳐가는 모든 일들이 인간적으로 연결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 배후에 아버지께서 같이하시어서 당신이 원하시는 뜻의 한 나라를 위하여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뜻앞에 배치되고 이 뜻앞에 일치되지 못하는 환경을 제거시키시옵고, 그것을 방어하시어서 당신이 원하시는 통일의 나라를 성취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이날을 바라보면서, 이것을 위하여 온갖 정성을 들여 왔습니다. 이제야말로 저희 통일의 무리가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살아 있는 것은 이 나라를 해방하고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한 사명이 있기 때문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들이 오늘 이 아침에 새로이 다짐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 자체가 안팎으로 하나되고, 저희 몸 마음이 하나됨과 동시에, 뜻을 중심삼고 온 인류가 하나될 수 있는 이런 길을 당신이 지키시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해도 8월을 넘겼습니다. 지금까지 지켜 주신 것을 감사하오며, 나머지 이 4개월도 아버지께서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이 4개월 기간에 저희들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세계를 들어 저희들이 책임해야 할 일이 많사오니,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가려 주시옵소서.
국내는 물론이지만 일본과 미국과 그 가외의 구라파 제국(諸國)을 통하여 저희들이 짊어진 책임이 얼마나 중한가를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모험을 하고 있습니다. 힘이 없는 저희 자신이지만 비틀걸음을 하면서라도 저희들은 가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당신의 뜻을 알고 남아 있는 최후까지 성취의 한날을 바라고 저희들은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가는 길이 수난길이라도 당신이 가신 길을 저희들이 더듬어서 끝가지 참고 이 길을 다 가서 승리의 그날을, 아버지와 더불어 온 천지에 드높이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을, 아버지를 중심삼고 이루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그 누구를 바라보고 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누구를 위해서 저희들은 만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로지 당신의 뜻만을 위하여 만난 사람들입니다. 뜻을 남겨 놓고, 뜻을 제쳐 놓고 뜻을 뒤에 두고 돌아서는 무리들이, 혹은 돌아가는 무리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이곳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고 있는 수많은 자녀들을 영광 중에 품으시어서, 당신의 소원의 자리까지 동참할 수 있는 은사를 그들에게 베풀어 주시옵소서.
모든 것이 허락하신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타락의 역사를 지내 온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는 사람과 사람끼리 간격이 생겼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간격은 아담 해와에서부터 시작해 가지고 그것이 역사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족속지간에 생겨났고, 수많은 국가 국가간에 생겨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끼리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도 역시 담이 생겨났습니다. 또, 선의 주체되시는 하나님과 악의 주체적 입장에서 선을 반대하고 있는 악신 사이에서도 이와 같은 담이 생겨난 것을 알고 있습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통일의 운세라는 것을 이 우주, 혹은 이 천주는 맞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 있는 하늘과 땅이요, 그 가운데서 살고 있는 수많은 국가들이요, 그 가운데서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개인을 두고 보더라도 우리 자체에 있어서 마음과 몸은 간격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을 어떻게 하나 만드느냐 하는 것이 지금까지 인류역사의 수고의 터전이요, 그 길을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도 역사는 하나의 방향으로 진행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신을 품고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는 평화를 바라고 있습니다. 만민은 하나의 통일된 이상세계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 이상세계라는 것은 우리 개인 개인을 통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 개인이 그러한 이상의 터전을 확보하여 그 환경을 넓히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그 세계에까지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에, 통일의 그날이 오는 것을 어디서부터 맞아야 되느냐, 역사의 종말시대인 이때에 있어서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날을 맞을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할수록 이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또, 나라를 중심삼고 그것이 가능하겠느냐 할 때, 이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한 사회를 두고 보면, 사회에서도 서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서로서로 분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상충된 입장을 취하는 그러한 관례가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개인에게 있어서도 몸과 마음이 투쟁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평화의 길, 통일의 길이라는 것을 딴 곳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 개인에서 모색하는 길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어떤 한 사람이 완전히 하늘을 대표하고, 땅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하고, 혹은 민족을 대표하고, 특정한 가정을 대표하고, 전인류를 대표해 가지고 통일된 실체를 이루지 않고는 통일의 출발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류가 이러한 역사과정을 거쳐 왔다는 것을 아는 우리에게 있어서 문제는 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은 하늘을 대표해 있고, 이 땅을 대표해 있고, 역사를 대표해 있고, 인류를 대표해 있는, 전체를 대표한 하나의 인간으로서 통일된 자아, 즉 그런 인격을 갖고 오는 중심존재인 것입니다. 그런 존재가 없어 가지고는 통일이니, 이상이니, 평화의 세계니 하는 것을 우리가 아무리 고대한다 하더라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의 중심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중심을 어떻게 세워야 되느냐? 그 중심은 세계에서 세우려는 것보다도 먼저 우리 개인에서 세워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은 세계적인 대표자 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는 통일적인 출발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하늘은 이 중심 한 사람을 찾아 나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한 사람이 설 수 있는 자리가 메시아가 설 수 있는 자리요, 그 한사람이 나타나는 것이 역사적인 소원이요, 뿐만 아니라 섭리적인 목적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한 사람이 비로소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이 한 사람은 하늘을 대신할 수 있는 개인적인 출발을 볼 수 있고, 또 통일될 수 없는 인간들을 대표해 가지고 통일된 하나의 표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한 사람은 몸과 마음이 하나될 수 있음과 동시에 비로소 통일적인 하나의 개인이 성립됨으로 말미암아, 그 개인을 통해서 가정을 형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그 완전한 하나를 표준하고 환경을 수습할 수 있는 상대적 입장을 취하게 될 때, 그 하나의 남성을 통하여 하나의 여성을 통일시키게 될 때, 여기서 비로소 하나의 가정이 출발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그 가정을 대표한 부모는 우주를 대표해서 이러해야 된다는 하나의 모델이 생겨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부모를 중심삼고 태어난 아들딸은 부모와 완전히 하나될 수 있어야 됩니다. 이 땅 위에 수많은 자녀들이 있지만 그 자녀들이 표준적인 자녀와 하나될 수 있는 입장으로 연결돼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는 부모대로 연결할 수 있는 대표적인 중심이 설정되어야 되고, 자식은 자식대로 중심을 대표할 수 있는 그 중심과 하나될 수 있는 길을 가려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이 하나되는 그러한 입장을, 세계 수많은 가정들이 표준으로 삼고 하나되는 길을 따라감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의 가정적인 통일운세가 벌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가정을 통하여 종족, 종족을 통하여 민족, 민족을 통하여 국가, 국가를 통하여 세계, 이러한 발전적인 과정을 거쳐 나가지 않고는 세계까지 통일하는 역사를 우리는 이루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하늘을 위주한 그 중심적인 존재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중심적인 존재가 가는 길은, 그 개인은 무엇을 위한 걸음을 걸을 것이냐? 개인을 위한 걸음이 아닐 것입니다. 그 개인은 가정을 거쳐 나가야 되고, 세계로 가는 그런 길을 가야 될 것입니다. 그 개인이 세계뿐만이 아니라 하늘땅을 통일시키고, 하나님과 영원한 사랑으로 묶어질 수 있는 승리의 한때를 맞게 될 때, 비로소 인간이 바라는 사랑의 세계, 평화의 세계는 벌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통일적인 기반을 인간끼리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그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투입되지 않으면, 그 세계가 아무리 통일의 형태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이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한 세계가 벌어지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평화의 세계가 벌어지는 것이지, 인간들의 변하는 자기 이익을 위주한 그런 사랑을 중심삼고는 평화의 세계, 통일의 세계는 벌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에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까지 갈 수 있는 그 중심점을 연결시킬 수 있는 길이 있어야 됩니다. 그 길은 발전할 수 있는 길이어야 됩니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 크고 더 넓은 환경과 인연을 맺을 수 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이 땅 위에 하늘이 보낸 중심존재가 와서 할 일이 무엇이냐 하면, 주체인 자기를 중심삼고 상대적 환경을 재창조하여 상대적인 가치의 존재를 설정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 중심존재가 하나의 남성으로 왔으면, 그 남성은 하나의 여성을 재창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부부를 이루었으면, 그 부부는 자녀들을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어 그 가정을 하나의 모체로 해 가지고 전체의 환경을 재창조의 환경으로 추진시켜 나가야 됩니다. 가정은 종족으로, 종족은 민족으로, 민족은 국가로, 국가는 세계로 점진적 발전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있어서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자기가 설 수 있는 중심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중심을 표준으로 하여 내 자체를 수습하고, 내 자체를 가려 가지고 그 중심과 하나될 수 있는 그런 자아를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중심존재를 찾아 가지고 하나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가정들은 이 가정을 표준해 가지고 하나의 형태를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가정은 종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형태를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민족도 역시 마찬가지요. 국가도 마찬가지요,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땅도 역시 그와 같은 길을 걸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중심존재가 가야 할 직선 노선은 어떠한 길이냐? 이는 재창조의 길인 동시에 개척의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척의 길인 동시에 점진적인 발전으로 향하는 길이기 때문에, 개인에서 가정으로 이루어지는 데는 그냥 그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가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가정이 완성을 볼 때까지 희생을 하고 자기의 모든 힘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불가피한 결론인 것입니다.
그 중심존재가 가야 할 바른 방향은 개인을 희생시켜 가지고 가정을 찾아 나가는 놀음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가정을 찾아 가지고 그 가정을 중심삼고 자리를 잡아 가지고는 통일의 세계는 벌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중심적인 가정이 설정되었으면, 그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희생해 가지고 그 종족의 중심으로 발전해 나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그 종족은 종족 자체를 위주해 가지고 거기에서 자리를 잡아 가지고는, 거기에 자기들을 위하는 자리에 서 가지고는 통일적인 세계, 혹은 평화의 세계는 올 수 없는 것입니다. 종족이면 종족을 희생시켜 민족을 수습해야 되고, 그 민족이 종족을 확대시킨 하나의 통일적인 민족으로 나타나게 될 때, 비로소 이 세계 민족의 중심을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게 될 때, 그 중심이 거느리는 종족이 희생하지 않고는 민족적 발전을 확대시킬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민족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민족을 중심삼고 전체가 하나되기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역사가 그렇게 거쳐왔지만, 그러한 소원을 갖고 나왔지만 하나되지 못한 사실을 두고 볼 때, 그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자동적으로 순응해 가지고 통일이 벌어질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민족도 역시 전세계 민족 앞에 희생해 가지고 자기와 일치 화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주는 이런 놀음을 하지 않고는 하나의 통일적 국가를 형성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건 두말할 것도 없는 결과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하나의 나라가 형성되었으면 그 나라를 중심삼고 자동적으로 세계가 통일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를 향하여 하나될 수 있는 작용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도 역시 희생하고 개척하는 길을 거쳐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세계가 그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적인 환경을 갖추게 될 때, 비로소 이 지구성에 평화의 기원이 이루어질 수 있지, 그 외에는 아무리 바란댔자 평화는 어디로 올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방향을 가릴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완전한 하나의 중심존재가 나와 가지고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거쳐 가지고 세계까지 통일적인 형태를 갖추는 데서 만이 비로소 평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통일의 길이라는 것은 그냥 그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막대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현재 여러분이 알다시피 남북적십자회담이 평양에서 개최되어 우리 대표단들이 거기에 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통일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소원이요, 이것이 성사되어 있지 않은 것이 우리 민족의 비운인데, 이제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될 것입니다.
하나의 길을 놓고 서로서로가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 자체 앞에 모든 것을 흡수시키기 위한 길만을 모색한다면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통일이 될 수 있는 단 하나의 비법은 어떤 특정한 한 곳에서 딴 곳을 위해 희생해 가지고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주도권을 누가 잡고 나가느냐? 그 영향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주체적 환경의 터전을 가리는 데서만이 통일방안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자동적인 결론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개인을 두고 봐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드는 데 있어서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서로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통일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마음이면 마음 자체가 중심이 되어 가지고 몸을 위하여 희생하면서, 아무리 어려운 외적 환경이 있더라도 그 모든 것을 극복하는 주도적인 힘을 가진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아무리 몸이 어려운 환경을 벗어나려고 하더라도 벗어날 수 없게끔 이것을 이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전체 환경에 그 영향을 아니 받을래야 아니 받을 수 없는 그런 주체적인 사명을, 혹은 중심적인 사명을 함으로 말미암아 통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친구지간에 있어서도 서로서로 사이가 나빠지게 되었을 때, 이것을 다시 한 번 좋은 인연으로 빚어 내기 위해서도 그 갈라진 이상의 수고를 거치지 않고는 옛날 이상의 좋은 환경의 인연을, 혹은 친구지간의 인연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통일을 바라는 데 있어서도 27년간 갈라진 그 환경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27년간의 수난 이상의 수난을 극복해 가지고 주체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함으로 말미암아, 책임한 그 모든 결과에 전체가 공인하고, 전체가 순응할 수 있는 하나의 자리를 설정하는 데서만이 통일의 가망성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 일도 그렇지만 하늘의 섭리의 뜻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지금까지 이 땅 위에 하나의 중심존재를 보내기 위하여 수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통해 희생을 했습니다. 그렇게 수천 년간 희생을 하며 통일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통일되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역사시대를 통일하는 데는, 수천년의 역사적 수난을 탕감할 수 있는 그 기대 위에서만 통일이 벌어지지, 그 기대 이하에서는 통일이 벌어질 수 없다는 것이 원리의 관인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시대의 모든 수난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역사시대의 수난의 열매로 나타난 어려운 것이 있거든 그 어려움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 위하여 책임지고 나서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비록 현재에 있지만 역사적인 모든 슬픔, 역사적으로 통일의 인연이 되지 못했던 그 모든 내용을 넘어설 것을 각오한 사람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메시아라는 중심존재가 나왔으면, 그 메시아도 물론 이 세계의 평화를 바랄 것입니다. 그가 서야 할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하면, 지금까지 역사시대의 수난길로 남아졌던 것을 어떻게 소화시키고 어떻게 밀어 내느냐 하는 자리에서 그 환경에 밀려 나가는 그런 자리가 아니라 그 환경을 몰아낼 수 있는 결정적인 중심존재의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를 확보하기 전에는 역사적으로 고대해 나오던 통일의 기원을 마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두고 볼 때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들도 새로운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못 된 사람이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되겠다 할진대는, 그 사람이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가 평생에 살아 나온 그릇된 모든 것을 전부 다 일소해 버릴 수 있는 주체적인 결의를 해 가지고,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잘못했던 환경적 모든 여건을 밀어 낼 수 있는 데서부터 비로소 하나의 새로운 인격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이 나라 이 민족을 중심삼고 통일을 바라면 바랄수록 역사적인 한민족의 수난길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결의를 어디서 모색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현재의 이 어려운 문제를 책임질 수 있는 그 주체적인 사명을 누가 하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 식구들은 통일의 이념을 갖고 나온 식구들입니다. '종교를 대표해 가지고 종교를 통일해 보자. 종교통일을 확대해 가지고 국가통일을 하고, 국가통일을 거쳐 가지고 세계통일의 이념을 어떤 면으로든 펼 수 있으면 펴 보자' 해 가지고 노력하기 위하여 나온 무리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하면, 하나의 길밖에 없습니다. 개인에서 가정으로 가야 되고, 가정에서 종족으로 가야 되고, 종족에서 민족, 민족에서 국가, 국가에서 세계로, 세계에서는 천주로, 천주를 거쳐 가지고 최후에 골인해야 할 곳은 어디냐 하면 하나님의 세계를 품고 자유로이 사랑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방통행의 한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도 이 길을 위해서, 일생을 희생하더라도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이 길을 확대하기 위해서 가야 할 운명을 짊어진 자들이 통일교회 식구인 것입니다. 비단 통일교회 식구뿐만 아니라 연하여서 세계 인류가 그러한 비운에 싸여 있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에 주체적인 사명을 하기 위하여 결속하고 결의하고 나선 무리입니다. 이 길을 개척하는 것은 평탄한 길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개인 개인들이 몸과 마음을 통일할 수 없는 자신을 두고 볼 때, 우리는 낙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이렇게 원하는데, 몸은 그 반대로 원하는 거예요. 사도 바울 같은 양반도 역시 몸과 마음이 하나의 원치 않는 길로 가고 있는 것을 알고, 마음은 원이로되 몸은 반대이니 육이 약하다는 이런 입장에서 탄식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 역사가 동원되어 가지고 싸워 나왔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도 가입되어 있고 사탄도 가입되어 가지고 싸워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나를 어떻게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타락된 우리 자체를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안 되기 때문에 타락되지 않은 본연의 하나의 인격을 표준삼아 가지고 거기에 연결시키기 위한 운동을 해 나오는 것이 역사시대의 종교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사상은 종교를 중심삼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올 때는 한 사람으로 오되, 그는 자기 한 사람의 역사를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늘의 역사를 대표하고 인류역사를 대표하여 모든 수난길을 넘어서 가지고 통일적인 가치를 지니고 와야 될분이 아니냐. 그에게는 역사의 슬픔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 역사의 슬픔을 타도하기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결의된 신념을 가지고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자신의 역사를 갖고 와야 될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하나 되는 데서만 통일의 출발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그 누구와 달리 그러한 인연을 따라 그러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모인 무리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 하나가 오늘 밥을 먹고 사는 것은 현재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하나의 미성년자들은 무엇을 위해서 싸워 나가야 하느냐 하면, 참된 개인을 찾기 위해서 싸우는 것은 물론이지만, 참된 개인이 하나의 그 중심과 더불어 상대를 갖추기 위해서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그 주체가 원하는데 있어서 상대로서 할 것, 못 할 것이 없다는 거예요. 못 할 것도 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할 것은 물론 해야지만…. 이 못 할 것을 못 하겠다고 하게 될 때는 통일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할 수 없다는 이 조건을 아직까지 자기들이 알고 갖고 있다 하게 될 때는 그 주체와 나와는 그만한 거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 주체 앞에 해야 될 것이다 할 때는 하지 못하겠다는 일체의 내용이 성립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지 않기 위해서는 주체 앞에 절대 복종하라는 거예요. 절대 복종하라는 것은 뭐냐? 순응하지 못할 내용을 완전히 부정해 버리자. 부정해 버리자. 순응하지 못하는 것의 비례에 따라 반발할 수 있는 내용이 남아지기 때문에 이것을 완전히 제거시키기 위해서는 절대 순종이요, 절대 복종인 것입니다. 이것만이 해결 방안입니다. 이것이 최후의 결론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는 말은 무엇이냐 하면, 죽음을 각오하고 목숨을 걸고 대들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고 하게 될 때는 그건 하늘과 완전히 하나될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자기를 변명할 수 있는 환경이 있다 하면, 그 환경과 자기 변명의 요건이 이 앞에 막음길이 되는 것이요, 담벽이 되는 것입니다. 막음길과 담벽을 완전히 헐려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절대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절대 복종하라. 여기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 뜻대로 말라는 거예요.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한 그 귀결점을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메시아로서 세상 사람을 대표해 왔기 때문에 인간사정을 잘 아시는 메시아, 즉 예수님은 인간을 대표해 서게 될 때는 하늘 앞에 상충되고, 하늘을 대표해 서게 될 때는 인간 앞에 상충됩니다. 이 엇갈린 길 가운데서 이자택일을 해야 하는데, 이자택일을 하는 데는 인간세계에 섰다가는 하늘과의 담이 막혀 버리고 맙니다.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 메시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버릴 수 없는 입장에 선 것이 또한 메시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뜻도, 즉 구주로서 인간을 구하기 위한 뜻도 있지만, 불순의 요인을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는 자기를 부정하고 하늘의 뜻을 주장하고 나서지 않을 수 없는, 메시아의 고충된 자리를 우리는 여기서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자기 뜻을 중심삼지 않고 완전부정한 자리를 가려 나간 것과 마찬가지로, 거기는 절대 복종입니다, 절대 복종. 여기에서 비로소 예수가 죽었다가 부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만일에 자기의 뜻을 강조하고 자기 변명을 하였더라면 부활이고 무엇이고 없는 것입니다. 그건 불가피한 결론인 거예요.
자,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뜻의 길을 알았습니다. 뜻의 길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뜻의 길을 어떻게 전진 발전시키느냐?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통일시켜야 됩니다.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희생을 해야 합니다.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재창조의 역사를 해야 합니다.
재창조의 역사는 무엇이냐 하면, 자기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입니다. 창조역사는 뭐냐? 하나님 자신도 만물을 짓게 될 때, 그냥 그대로 생각대로 지은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자기의 힘을, 에너지를 투입했습니다. 자기에서부터 소모전쟁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히 투입되고 난 후에는 그냥 그대로 돌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데는 무엇이 돌아오게 되느냐? 사랑이라는 것이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열만한 힘을 투입했는데, 그 열만한 힘을 투입받아 가지고 열만한 가치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 대상이 어떻게 열 이상의 힘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발견하느냐? 그것을 발견하지 않고는 하나님도 계속적인 작용, 계속적인 의욕, 계속적인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돌아오느냐? 그냥 그대로 투입된 힘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는 거예요. 사랑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그 사랑은 무엇이냐? 열만큼 플러스된 것이, 자기의 이념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합해 가지고 돌아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희생하며 투입해 놓고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이 없으면 돌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 모든 것을 다 줍니다. 다 투입합니다. 부모가 그렇게 투입해 가지고 자식이 자기의 사랑의 마음을 대해 가지고 반기는 그 얼굴을 보게 될 때, 그 부모를 반겨 주고 부모의 사랑하는 모습을 그리워하는 것을 보게 될 때, 부모의 수고는 여기에서 기쁨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쁠 수 있는 것은, 사랑을 빼놓고는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쁨이라는 말, 행복이라는 말, 혹은 이상이라는 말은, 전부 다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보라구요. 여러분은 혼자 기쁠 수 있어요? 없다는 거예요. 혼자 좋아했댔자, 그것은 좋은 것일 수 없는 것입니다. 혼자 이상을 꿈꾸었댔자, 그것은 이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상대적 환경을 통해 가지고 이상이니 하는 모든 것이….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도 고립적인 개체를 중심삼고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 관념입니다. 그 상대적 관념을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식도 아니요, 인간의 권력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방안은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간격을 통일시키는 것은 인격이 아닙니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사랑을 완전히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받기 위한 자리에 서려면,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완전히 하나되는 데는 같은 자리에서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와 대상의 자리에서 하나되어야 됩니다. 주체와 대상의 자리에서 하나되는 데는 주체는 완전히 주려고 해야 되고, 주체가 완전히 주려고 하는 그 자리에서 대상은 완전히 받으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가 돼야 합니다.
100을 주려고 하는 주체가 있으면, 나는 100을 받아야 되겠다고 해야 되는 거예요. 100을 받으면 내게 자기라는 것을 남겨 놓고는 받을 수 없습니다. 하늘이 100을 주려고 하는데 우리 인간이 자기라는 생각이라든가, 자기라는 주장이라든가, 자기의 그 무엇을 중심삼고, 자기 욕망을 중심삼고 받으려고 하면, 그것을 남기고 받으려고 하면 100을 채울 수 있는 자리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자기 욕망이 있고 희망이 있으면, 그것이 80, 70, 60, 50이 될 게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100을 다 받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100을 완전히 받으려면, 너에게 있는 모든 것을 비워 버려라. 모든 것을 없애 버려라. 모든 것을 부인해라. 여기에서는 모든 것을 포기해 버려라.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전체를 포기하고 절대 복종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렇지 않아요? 복종이 나쁜 줄 알았더니, 복종을 완전히 해 나가게 되면 그 사람을 점령할 수 있다는 거예요.
효자는 뭐냐? 부모의 의사와 부모의 말이라든가, 부모의 일체 앞에 복종하는 행동을 나타내는 사람이 효자입니다. 충신도 그런 것이 아니냐? 애국자도 나라를 위하여 몽땅 복종의 제물이 된 사람이 아니냐? 그렇게 돼 있다구요.
예를 들어 말하면, 최고의 고기압권에 최하의 저기압권이 생겨나게 될 때, 여기에는 말할 수 없는 태풍권이 벌어집니다. 거기에 만약에 막는 녀석이 있으면 전부 다 휩쓸려 갑니다.
그것이 얼마나 빠를 것이냐? 높으면 높을수록, 비우면 비울수록, 진공이 되면 될수록 이는 일시에 하나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 통일의 강도라는 것은,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신앙세계에 있어서 복종이라는 술어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태풍이 불어오는 데 있어서 그것이 무서운 태풍일수록 고기압권과 저기압권이 만나는 곳에서 완전히 진공상태가 벌어지면, 이것은 급속도로 빨려 들어 갑니다. 폭포는 흐르는 물보다도 훨씬 빠른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폭포와 같이 내리쏟는 것입니다. 이것을 막아 낼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다 흩어져 나갑니다.
하나님이 고기압권 사랑을 갖고 있고, 인간은 저기압권으로서 흠모의 대상이 되게 된다면, 그 사이에 불어오는 사랑의 힘으로 연결되면 막을 무엇이 있겠느냐? 없는 것이 아니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주체를 대해 가지고 상대적 입장에 서서 '아, 내가 어떻고 어떻고' 하는 사랑은 지극히 미련한 자입니다.
한 가정을 두고 봐도 그렇잖아요? 남편을 대해 가지고 절대 순응하게 되면, 순응한 그 부인은 남편을 완전히 점령해 버리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부모 앞에 절대 순응하는 그 자식은 부모의 모든 것을 점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주체적 권한을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그런 아들딸이 있으면, 그 아들딸 앞에 모든 것을 상속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신앙하는 데 있어서 어찌하여 하늘을 중심삼고 절대 복종이라는 말이 나왔느냐? 이것이 기가 막힌 말입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으로 보게 되면 이것은 기가 막히게 싫은 말이지만, 하나님편에서 볼 때는 기가 막힌 선물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순종이라는 것이 나쁜 줄 알았더니. 순종하고 나면 순종하던 그 환경에 내가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어려운 환경에서 서로서로가 뜻을 세워 놓고 그 뜻 앞에 절대복종하는 사람은 빨리 성공하는 것입니다. 또. 성공하는 데 서로서로가 가담해 가지고 그 길을 같이 간 사람은 성공의 자리에 같이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결심해라. 그 결심을 중심삼고 직행해라. 직행하려면. 결심한 그 목표 앞에 절대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복종 안 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복종하면 성공합니다. 그렇게 안 되어 있어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더우기나 통일의 길을 바라고,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 통일의 무리들은 하늘이 이미 주체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주체가 가야 할 방향이 어떻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고,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종족은 민족을.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희생해야 된다는 단계적인 전진노정을 다 알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투입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자기 자신을 투입해야 하는 것입니다. 몸 마음을 따로따로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들어 가지고 한꺼번에 몽땅 투입해야 됩니다.
보라구요. 자기가 희생하는 자리에 나가게 되면 그래요. 희생하는 자리가 나쁜 줄 알았더니.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희생해 버리면 몸과 마음이 자동적으로 통일된 가치를 갖고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몸뚱이와 마음이 하나가 안 되어 가지고 싸우는 나 자신이지만, 그 어떠한 목적을 위하여 희생하려고 목숨까지 투입하겠다고 하며 나서게 될때는, 몸과 마음은 통일된 자리에서 투입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자리를 각오하고 나선다는 것은 이미 통일된 것입니다. 그 목적을 대해서는 몸과 마음이 두 갈래가 아니고 몸과 마음이 하나된 것입니다. 안 그래요?
사람이 무엇을 중심삼고 갈라졌느냐? 죽고 사는 문제에 의해서 갈라진 것입니다. 생명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느니만큼, 하나의 죽음 길을 중심삼고 희생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그 자체는 이미 통일성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생한 제물 앞에는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도 제물 앞에 머리 숙이지요? 제물 앞에 왜머리를 숙이느냐? 이는 희생했기 때문입니다. 주체 앞에 희생했기 때문에 그는 완전히 하나된 자리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런 가치가 설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몸뚱이와 마음이 따로따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하나. 그래서 귀하다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자식이 부모를 사랑할 때는 몸과 마음이 하나된 것이 아니라구요. 몸과 마음이 하나 안 됐다구요. 다르다구요. 부처끼리 사랑하는 것도 역시 자기를 옹호하고 변명하는 데서 사랑하니까 하나 안 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오직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생명을 넘어서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인간세계가 비록 타락된 세계이지만 부모의 사랑이 하나의 정서적인 뿌리가 돼 있더라 이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희생이 나쁘더냐? 우리 통일교회 식구 전체가 이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희생을 각오하고 남북한을 붙들고 늘어지는 날에는 이미 남북통일의 목적 앞에 상대는 결정된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천운이 통하게 됩니다. 그런 결론이 나와요.
만일 통일교회 식구가 하나되어 가지고 남북한의 통일을 위해서 희생한다 하게 될 때, 여기에는 그 통일이라는 목적을 중심삼고 상대적 통일성이 설정되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시일이 얼마나 가느냐? 그것이 27년 걸렸으면, 27년 이상 반대로 끌고 올라갈 수 있게 된다면 통일의 가망성은 벌어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예요. 우리 복귀섭리노정,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룰 것이냐? 하나님을 절대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체이십니다. 우리는 주체이신 하나님을 중심삼고 대상의 입장에서 완전히 희생을 각오하고, 완전히 하나되는 입장에서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몇천 년이 되더라도 나는 떨어질 수 없다. 몇만 년의 수난길이 라도 나는 안 갈 수 없다' 하는 결심을 넘어서야 믿는 대로 된다는 거예요. 이러한 자리에서 하늘을 붙들고 죽음을 각오하고 뛰어들게 될 때, 통일의 원천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복종이 극하여 가지고는 생명의 끝까지 복종의 길을 재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세계에 있어서 나쁜 것이냐? 아닙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세계에 있어서 통일시키는 하나의 비법이더라.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여러분이 지금 현재에 나타난 정세를 보게 될 때, 그럴 수 있는 남한 백성이 되어 있느냐? 전체가 하나되어 통일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자기 일체를 희생시키고 나서 가지고, 일선을 확보해 가지고 북쪽이면 북쪽 전반에 걸쳐 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체적 권한만 가지게 된다면, 이북이 암만 떠들어 봤댔자 만약에 순응하지 않으면, 우리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이북으로 전진하게 되는 것입니다. 상대하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이 상대해 주지 않고 물러나게 될 때는, 우리가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물러나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결심을 가지고 나가게 되면 우리는 물러난 자리만큼 전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통일의 길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남북한을 중심삼고 볼 때, 남한에 있어서 제일 어려운 것을 우리는 밟고 넘어설 수 있는 무리가 돼야 통일적인 주체자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민족을 위하여 희생하자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까지 해 나오는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내가 바랐던 것은 공산당까지도 얼굴을 들 수 없는 재료를 수습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노동자 농민들까지도, 노동자 농민을 위해 주권을 잡겠다고 하며 노력하는 공산당까지도 통일교회 무리 앞에 '저들은 노동자 농민을 자기들보다도 사랑했다' 하는 사실을 들고 나와서 증거하고 그 실적을 들고 나와서 비교하게 될 때에, '틀림없다' 하게 되면 그것은 공산당도 할수없다구요.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아야 돼요.
우리는 이제 갈 길을 알았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정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가정을 찾기 위해서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모든 개인적인 희생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희생하기를 바라는 목적관 앞에 전체가 흡수될 수 있는 완전한 마이너스적 존재인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합하게 됩니다. 이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합해도 주체 앞에는 역시 완전한 마이너스입니다.
이 부부라는 것은 어디로 가느냐? 뜻이라는 그 길을 향해서 완전히 투입하는 것입니다. 둘이 합해서 씨족을 위해 투입하는 것입니다. 씨족은 민족을 위해서 투입하는 것입니다.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투입하는 것입니다.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투입하는 것입니다. 세계는 천주를 위해서 투입하는 것입니다. 천주는 하나님을 위해 투입하는 것입니다. 맨 나중에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구요.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으되,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했으니까 맨 나중에 남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구요.
지금까지 슬펐던 하나님의 얼굴에 기쁨의 안색이 피어나게 하려면, 지금까지 슬펐던 일 이상 좋은 일이 벌어지지 않고는 기쁨의 화색이 나타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것이 원칙이라구요. 부모가 성이 나서 노발 대발하고 있는데, '어머니 아버지 왜 그래요? 기뻐하소' 그런다고 기뻐할 것 같아요? 어림도 없다는 거예요. 노발대발하게 했던, 슬펐던 그 사연 이상의 그 무엇을 갖다가 보여 주든가, 그 이상의 가치의 것을 부모 앞에 인연지어 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부모는 슬펐던 것을 넘어 서 가지고 기뻐할 수 있는 길이 나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이와 같은 원칙을 두고 볼 때, 맨 나중에 하늘땅이 비로소 통일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인류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슬펐던 하나님의 마음 이상 위로할 수 있는 길을 우리 인간이 모색할 수 있어야, 혹은 자극을 줄 수 있어야만이 하나님에게 기쁨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건 두말할 것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는 데서만이 비로소 통일의 날이 오리라 보는 것입니다. 통일의 환경이 오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을 위해서 절대 순응해야 되고, 절대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 사람은 성공 못 한다구요. 세상이 그렇지 않아요? 세상이 그렇다는 거예요.
주체 앞에 절대 복종해야 되겠습니다. 가정은 개인의 주체요, 종족은 가정의 주체요, 민족은 종족의 주체요, 국가는 민족의 주체요, 세계는 국가의 주체요, 천주는 이 피조세계의 주체입니다. 피조세계의 주체인 천주가 주체의 자리에서 끝까지 왔지만 그것이 주체로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앞에는 대상으로 서야 됩니다. 대상으로 서야 될 자리에 서 있으니 피조세계는 절대 복종권입니다. 알겠어요? 절대 복종권입니다. 절대 순종권입니다. 절대 희생해야 되는 운명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 있더뇨? 자동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갈 길을 알아야 돼요.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해야 되고,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되고, 종족은 민족을 위해서,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민족은 왜 국가가 아니냐? 지금 남북이 갈라져 가인 아벨 민족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국가는 가인 아벨 통일된 국가를 바라는 거예요.
남북으로 엇갈린 한국은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의 엇갈린 국가의 대표입니다. 가인적 세계관과 아벨적 세계관이 엇갈려 있는 것을 한국에서 제단적인 통일을 모색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재미있는 것이 말이예요, 판문점이 있잖아요, 판문점. 판문점이 무엇이냐 하면, 사탄하고 하나님이 서로서로 참소할 수 있는 그런 장소입니다. 안 그래요? 그것이 지상에 비로소 실체로 나타난 것이 판문점이예요. 이것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다구요. 그러면 한국에 있어서 통일의 기원이 심어진다는 것은 역사시대의 끝날이 왔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완전한 주체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지금까지 나오는 데는 개인도 주체로서 환경을 수습해 가지고 발전적인 주체를 세워 나왔지만, 개인 앞에 국가가 주체요. 국가는 세계 앞에 대상이 되고, 세계는 국가 앞에 주체가 됩니다. 세계는 천주를 주체로 삼지만 이 주체가 언제나 주체로 끝나 가지고는 이상(理想)이 없는 것입니다.
주체만 있어 가지고 돼요? 상대를 맞이해야 이상이 나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춘기가 되면 남자는 남자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예요. 누구를 생각하느냐 하면, 상대되는 여자를 생각한다구요. 여자를 생각해 가지고 사춘기가 시작되는 거라구요. 그때는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좋고 나쁘다는 것은 자기를 생각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좋다고 하는 그 출발이 자기를 생각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상대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상대를 위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자를 위해 태어났고, 여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남자를 위해 태어난 거라구요. 이렇게 됐다는 거예요. 태어나기를 자기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구요. 자기를 위해서 태어나지 않은 것들인데도 자기를 주장한다구요, '나, 나'. 이 사상을 깨뜨려 버려야 됩니다. 이것만 깨뜨려 버리면 통일의 세계는 벌어진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전부 다 '나'라는 레테르가 붙었다구요. 이것은 타락의 결과입니다. 사탄이 타락한 것은 자기 각성에서부터 타락이 시작되었습니다. 자기가 남아 있는 사람은 복귀될 수 없어요. 뜻을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에덴 동산에서 해와를 대해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던 천사장 꼴입니다. 그런 불평 불만을 하는 것은 뜻의 길에 있어서 원수입니다.
하늘을 찾아가는 데는 감사와 만족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가려 놔야 돼요. 뜻길에서 불평하는 사람들은 산 사탄입니다. 불평 불만은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제물이 불평했다가는 큰일난다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꽁꽁 묶어 가지고 제물로 드리려고 할 때, 이삭이‘이놈의 애비 왜 그래? ’했다면 그것이 제물 되겠어요, 제물? 그것은 불효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꽁꽁 묶더라도 '아버지가 무슨 뜻이 있어서 그러겠지. 아버지 하고 싶은 대로 하소' 하면서, '날 이곳까지 데려오신 아버지가 날 죽이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말고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거예요. 반항하는 날에는 큰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칼을 들고 나서는 애비에 대해서 '이놈의 애비야' 하면서 발길로 들이차고 했다면, 그게 제물이 되었겠어요?
예수님은 뭐냐 하면 어린양입니다. 어린양이 힘이 있어요? 양이라는 것은 본래 털을 깎아도 반항할 줄 모르는, 즉 순종굴복하는 대표적인 존재입니다. 알겠어요? 양도 큰양이 아니라구요. 예수를 말해서 어린양이라 했습니다. 그것은 뭘 말하느냐 하면, 복종의 제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반항의 제물이 아니라구요. 그러지 않고는 천국 못 갑니다.
천국은 어떠한 곳이냐? 순응의 세계입니다. 완전한 플러스 앞에 완전한 대상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외에는 모르는 세계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열녀는 어떤 사람이 열녀냐? 남편밖에 모르는 사람이 열녀입니다. 효자는 어떤 사람이 효자냐? 부모밖에 모르는 사람이 효자입니다. 충신은 어떤 사람이 충신이냐? 군왕밖에 모르는 사람이 충신입니다. 애국자는 어떤 사람이 애국자냐? 그 나라 백성과 그 나라밖에 모르는 사람이 애국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국자는 자기 여편네도 차 버리고, 자기 아들 딸이 희생하는 자리에 들어가고 패가망신하더라도 나라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자나 깨나 먹고 자는 것을 전부 다 자기를 위해 하는 녀석들은 원수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라구요. 먹는 것도 뜻을 위하여, 그대를 위하여, 자는 것도 그대를 위하여, 가는 것도 그대를 위하여, 난 것도 그대를 위하여, 죽는 것도 그대를 위하여, 이것이 얼마나 멋진 상대냐 이거예요.
여러분, 이상상대란 어떤 상대냐 하면, 그런 자리에 선 사람들이 이상상대입니다. 이상세계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그런데서 하나되어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좋더라도 '전체를 희생시켜 가지고 찾은 것이 비로소 이루어지니 얼마나 좋겠느냐' 하는 이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적당히 쓰다 남은 찌꺼기를 갖다 대 가지고 하는 것은 도적놈입니다. 하나님 것을 전부 다 쓱쓱 해 가지고, 하나님을 사기쳐 가지고 하나님의 것을 빼앗아 오겠다는 것은 사기꾼이요, 도적놈이다 이거예요. 그렇게 돼 있어요, 안 돼 있어요? 그렇게 돼 있다구요. 머리가 아무리 크더라도, 지식이 아무리 많더라도, 권력이 아무리 세더라도 이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복종하라고 합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자유 없는 것이 좋아요, 나빠요? 효자의 가는 길은 부모 앞에 자유가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없다구요. 충신이 가는 길은 군왕 앞에 자유가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자유가 없는 그것이 나쁜 것이냐? 그것이 행복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도 이런 관점에서 새로이 정비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9월을 맞이했어요. 통일을 바라는 이때에 있어서 8월로부터 9월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 1972년도는 역사적인 해인 것입니다. 더우기나 올해는 우리 통일교회의 3년 전도기간이 끝나는 해예요. 가장 중요한 시점에 서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또,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도 3차 세계순회노정을 끝내고 영적 가인과 아벨의 통일권을 갖추어 가지고 돌아왔기 때문에 육적인 면에서 말이라도 통일적인 말이 나와야 된다구요. 그것이 지금 우리 목전에 전개되는 것입니다. 세계는 전부 이번 남북적십자 회담에 온 신경이 하나돼 있는 것입니다. 이때만은 세계가 통일된 거예요. 그래서 한국에서 남북적십자 회담하는 것을 일본이 NHK를 통해 가지고, 텔스타(telsta: 미국의 통신위성)를 통해서 전세계에 방송하지 않았어요?
이와 같이 긴장된 이때에 우리 통일교회는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냐? 통일방안의 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통일방안의 자세가 어떤 것이냐? 문제는 그거예요. 그 뜻 앞에, 혹은 목적 앞에 절대 복종해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 뜻을 중심삼는데도 하나님의 사랑, 심정을 중심삼고 절대 복종해라.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 복종하게 될 때, 자기의 역량 이상 다했다 할 때는 죽어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 이상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 이상 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선을 알기 때문에 그 책임을 다한 다음에는 하나님에게 책임이 있지, 인간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도록 해라, 죽도록. 죽기까지 충성하라는 거라구요. 끝날에는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했지요? 참고 견디려니 그것이 얼마나 힘들어요? 그것이 복종의 도리라구요. 순응의 도리라구요.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그렇게 알고, 이제 여러분은 다시 한 번 과거를 반성하면서 뜻을 중심삼고 내가 얼마나 하나되었느냐를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전도 나가자 할 때 꽁무니를 빼면 벼락을 맞는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사랑을 중심삼고 저주의 벼락을 맞는다는 거예요. 제일 무서운 길이 그 길이라는 거예요.
'아이구, 내 아들딸, 내 환경…' 그건 자기 아들딸이지 하나님 아들딸인가? 그건 자기 사정이지 하나님 사정인가? 그런 것은 통하지 않는다구요. 그런 자리에서 나왔다면, 오늘 통일교회라는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선생님이라는 자리도, 선생님이라는 이름도 남지 않았을 거라구요. '가정이야 어떻게 되겠으면 되고, 아들딸이야 망하겠으면 망하고…' 그런 길을 걸어왔다구요. '지금 통일교회야 망하겠으면 망하고…' 그러면서 나라를 위해 이 놀음 하고 있다구요. 그 가운데에 여러분을 중간에 끼워 가지고 틀어 대는 거라구요.
여러분, 큰 연자돌 알아요? 연자돌 사이에 곡식을 집어넣고 틀어 대면 까풀이 벗겨진다구요. 까풀이 벗겨지는 동안에 불려지고, 약한 놈들은 전부 다 찢겨져 가지고 겨가 되고 싸라기가 되어 밀려 나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딴딴하게 돼 가지고 완전히 익은 사람이어야 연자돌에서 틀어대면 주인이 바라는 완전한 쌀이면 쌀로서 거두어지는 것이 아니냐? 약한 것은 틀려 나가게 마련이라구요.
이제 얼마나 더 나갈 것이냐? 내 생각은 앞으로 여러분을 전부 다 인민군대 이상 훈련시키고 싶다구요. 여자들을 내세워 가지고 인민군대를 쫓아 버리고 싶다 이거예요. 생각해 보면 지긋지긋한 사람이라구요. 세상 적으로는 뭐 기대를 걸 것이 없다구요. 지금까지 그렇게 싸워 나왔고, 이제부터도 또 그럴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우리 통일교회에서 제일 가까운 사람들, 그 심통을 보는 거예요.
너는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느냐 이거예요.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느냐? 자기를 중심심아 가지고 꼬리를 젓고 다니는 녀석은 치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아. 이놈의 간나야. 누구를 망치려고 이러고 있어' 그러한 놀음에 내가 춤 안 춘다구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성경 말씀은 참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주의 원칙을 중심삼고 잘 가르쳐 주었다구요. 이러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니냐? 성공을 바라는 사람이 있거들랑 그 목적을 위해서 희생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빨리 출세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공부하는 사람, 고시면 고시를 중심삼고 그 목적을 바랄 때, 밤이나 낮이나 희생하고 거기에 절대 복종해 가지고 시간을 투입하고 전생명을 투입하면, 그 시험에 패스하는 성공의 시간이 멀어져요, 가까와져요? 멀어지라고 제사를 지내도 멀어지지 않고 오히려 가까와지는 거라구요. 그것은 이치라구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도 마찬가지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투입할 것입니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해서든지 가려 가지고, 이것이 한국에서 안 되게 되면 저 미국 땅에 데려가서라도 전부 다 훈련시키려고 합니다.
자, 그래 가지고 망하느냐 이거예요. 망하게 되면 내 손에 뜸을 들여라 이거예요. 선생님이 망했어요? 일대에서는 성공한 사람이라구요, 이제. 내가 부러운 것이 없다구요. 어디 가든지 있을 곳이 있고, 어느 나라든지 가려면 갈 수 있는 기반을 다 닦아 놓았습니다. 대가리를 뒤적거려 가지고 누구만큼 생각할 줄 몰라서, 이것 저것에 대해 말할 줄 몰라서 이 놀음하고 있는 줄 알아요?
이 길을 가 보니 틀림없는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 있는 한, 하늘이 있는 한 이 길은 반드시 남아지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남아져야 하나님이 그래도 악한 사탄세상 앞에 위신이라도 세우지, 이 똥구덩이 같은 것들을 그냥 남겨 놓았다가는 전부 다 사탄 앞에 참소받는다구요. 그러니까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말, 통일은 거기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될 수 있는 길을 모르면 모르지만 아는 무리에게 있어서는 가지 않는 것이 원수입니다. 하지 않는 것이 원수입니다. 그놈은 알고 하지 못하느니만큼 벌을 받아야 됩니다. 대가를 받아야 됩니다. 결론은 그거예요.
그 벌의 대가를 피하기 위해 가는 길이 절대 복종이요, 순종의 길이기 때문에, 복종 순종해 감으로 말미암아 무엇이 벌어지느냐? 내가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고 복종 순종하려고 나서게 된다면, 종족은 이미 통일시킨 가치의 자리에 결정지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런 장사가 어디 있어요? 내 개인, 가정, 종족, 이렇게 싸워 가지고 가야 할 텐데 나라를 위해서 한꺼번에 희생하려고 뛰어들어가면, 개인통일, 가정통일, 종족통일 못 했지만 나라를 통일하기 위해서 희생하게 되면, 종족통일을 하고 넘어선 자리에서 갈 것이 나라인데 나라를 위해서 점핑해 가지고 나서면, 종족통일권 가치는 지나가 버리고 만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여러분들이 애국자라 할 때, 그 애국자들이 다 동네에서 효도하던 사람이예요? 그렇게 알아요? 또, 지금까지 사는 데 있어서 전체가 우러러볼 수 있게 생활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나라가 어려울 때에, 나라가 망할 그때에 가 가지고 혼자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고 나서게 되면, 이는 종족 위에 서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개인, 가정, 종족권은 승리적 결과를 갖지 않았지만, 점핑해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할 각오로 나서게 된다면 종족승리권은 찾아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통일교회 사상이 참 멋지다는 거예요. 천주를 위해서 내가 죽겠다 하고 나서게 된다면 세계승리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알겠어요? 또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나는 미쳤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위해서 나는 산다' 이렇게 된다면 천주를 넘어설 수 있다구요. 알겠어요, 저 박봉숙이! 남편 죽은 것이 문제 아니라구요. 어차피 한번 죽을 걸. '부처끼리 세계를 위해서, 천주를 위해서 같은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손을 붙들고 전진하자고 권고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 한이라구' 이렇게 되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가치는 여기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천국에 갈 승리는 여기서 벌어집니다.
내가 지금 대학을 나온 몇몇 녀석들을 내 머리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 저 녀석 보자…. 몇 해 동안 뜻을 위해서 일하다가 취직을 했는데 '취직 그만두고 일선에 나가' 하니, '못 가겠어요' 하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 네 자식까지 걸릴 것이다. 네 부모까지 걸릴 것이다' 그렇게 보고 있는 거라구요.
이것은 내 마음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의 마음이라구요. 왜냐하면, 나라를 위해서 세계대표를 뽑아 세우려고 하는데,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는 거예요. 나라를 위해서 세계적인 책임을 지고 나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구요. 지극히 어려운 반면에 지극히 귀한 일입니다. 지극히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 사정이 어떻고…. 두고 보라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뜻을 위해 변명하고 뜻을 위해 수고해야지, 그러지 않고 입을 벌려 가지고 지껄이는 것들은 전부 다 입을 째 버려야 된다구요. 뭐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자기가 관계도 하지 못하고 상관도 없는 문제를 가지고…. 이런 패들이 많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어차피 선생님하고 인연이 없다구요. 그런 말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나하고 갈라지는 거라구요. 이 다음에 때가 되는 날에는 샅샅이, 별의별 소문을 낸 것들은 전부 다 정리하고 넘어간다구요. 누가 무슨 말을 했고, 무슨 말을 했고, 소문난 전부를 정리해 가지고 말씀심판을 하고 넘어가야 된다구요. 선생님이 그렇게 데데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철저한 사람이라구요. 이렇기 때문에 사탄세계를 똥싸개까지 전부 다 정리하고 가려 가지고 나오는 거예요. 정신 차려야 된다구요. 이 원칙에 배치되는 것은 나는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무자비하게 투입하는 것입니다. 무자비하게 투입하는 것이 망하라는 거예요, 흥하라는 거예요? 어떤 거예요?「흥하라는 겁니다」 자. 여자들, 망하라는 거예요, 흥하라는 거예요?「흥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망할 것 같으면 내가 망했을 거예요.
보라구요. 나 자신으로 말하면, 어머니 아버지가 재산을 투입하여 공부시키고 야단했습니다. 저 자식이 공부하게 되면, 우리 동네 문중을 살린다 소문났다구요. '우리 고을에 이름날, 역적이 안 되면 충신이 된다. 둘중에 하나가 될 것은 틀림없다' 이런 소문이 난 사나이였다구요. 학교 나오게 되면 동네방네 좋게 할 줄 알았더니 찾아가는 곳이 감옥이라구요, 감옥. 어머니는 보따리를 들고 엉엉 울면서 따라다니는 놀음을 했다구요. 그것이 불효 같지? 불효가 아니라구요. 부모 앞에 효도하기 위해서 나선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하고 하늘을 위해서 가자니 불가피하다 이거예요.
어머니가 나라를 위하는 아들한테 와서 자기 아들이라고 해 가지고…, 내가 기분 나빠했다구요. 시시한 에미 되지 말라고 쫓아 버린 사나이라구요. 그런 눈물은 보고 싶지도 않다는 거예요. 자식한테 와서 그런 시시한 눈물을 흘려요? 내가 시시한 자식이 아니라구요. 오히려 자식을 대해 가지고 권고를 하지 못하고, 뭐냐 이거예요. 그러면서 쫓아 버린 사나이라구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내가 가정도 전부 다 풋볼(football)을 차듯 차 버린 사람이라구요. 자식들을 대해서도 전부 다 그러고 나오고 있습니다. 부모 처자를 버린 사람이 여러분을 대해서 미련 있겠어요?
까놓고 이야기해 보자구요. 여러분은 우리 성진이 어머니 이상 선생님을 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구요. 성진이 어머니는 선생님을 참 위하는 사람이예요.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죽을 때까지 '저 남자가 가는 길을 막아 가지고 재미있게 한번 살아 보자' 이래서 방망이를 들고 별의별 반대를 한 거라구요.
그래서 그 이상 여러분이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걸린다구요. 성진이 어머니한테 참소받는다구요. 성진이 어머니가 하는 말이 자기가 통일교회 교인이면 그렇게 안 한다는 거예요. 웃을 말이 아니예요. 다 참소에 걸린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러한 길을 걸어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을 대해 가지고 내가 뜻을 중심삼고 인연이 있지, 상통을 대해 가지고 인연이 있어요? 여기 제일 가까운 사람, 어머니면 어머니 대해서 전부 다 관계되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뜻 때문에 어머니 만났지, 얼굴 좋아서 만난 것이 아니라구요. 이런 말 하면 어머니한테는 안됐지만 말이예요. 나이 40이 넘어 가지고 열여덟 살 처녀를 대하여 큰 판국을 걸어 놓고 결혼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나이 마음, 좋아서 했겠어요? 그것도 뭐 다 알고 상대가 되면 모르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구요. 그것도 십자가라구요. 기가 막힌 놀음이라구요.
대학 나온 사람이 없나, 학박사가 없나, 내가 장가 가겠다면 수두룩할 거라구요. 모르기는 하지만 말이예요. 그런데 왜 아무것도 모르는…. 왜 그런 놀음을 해야 되느냐? 선생님의 결혼마저도 뜻을 위해서 한다 이거예요.
자식들도 지금 그렇게 키우고 있는 거라구요. 자식들까지도 뜻을 위해서 버릴 수 있는 길이 남아 있어야 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결의를 하면서 지금…. 그렇기 때문에 만일 내가 길을 떠나고 없더라도 자식을 대해서 뜻을 사랑하지 않은 아비라는 말을 남기지 않겠다는 것이 지금 선생님의 생각이라구요. 그렇게 살고 있다구요.
그런 선생을 앞에 놓고 여러분이 잘 살 것 같아요? 어림도 없다구요. 여러분은 망하더라도 선생님은 망하지 않을 거라구요. 정신 차려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통일하는 것은 우리의 목적관입니다. 방향과 목적이 뚜렷하게 나와 있습니다. 개인은 가정을 위하여, 가정은 종족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입니다. 희생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제물이 나쁘더냐? 하나님의 비례적인 사랑, 가치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이 거기에서 탄생하니 희생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더더욱 좋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애국자면 애국자 백 사람 가운데에서 제일 애국자가 누구냐? 일자무식이라도 비참하게 죽은 사람이 제일 애국자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공석에서 여러분들에게 얘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있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래요. 나이가 50이 넘으니까 몸에 피곤이 옵니다. 이것도 기계와 마찬가지예요. 물리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옛날에 밤을 새우면서 물이야 불이야 이렇게 생각하던 그 마음은 살아 있습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젊은 시절의 그 마음은 아직까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조급하다구요. 그러니 무리를 하는 거예요. 그러고 있다구요, 지금. 이런데도 불구하고 젊은 녀석들이 다리를 펴고 잠을 자요?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런 것을 알고….
여러분은 희생이 어떻다는 것을 몰랐다구요. 복종이 어떻다는 것을 몰랐다구요. 그것이 자기를 이용해 먹고 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좋은 곳에 안내해 주고 같이 더 좋은 곳에 가려니까 할 수 없이 그 놀음 하는 거라구요.
일본 식구들이 그저께 수택리에 왔습니다. 한국의 여러분들은 그 사람들만큼 할 수 없다구요. 정성의 도수가 높으면 회개하는 데에 있어서 자기의 모든 잘못을 뉘우치고, 잘못을 뉘우침과 동시에 뜻을 위해서 누구 보다도 더 많이 일해야 될 게 아니냐?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자기가 이만큼 죄를 크게 지었던 사람이니 뜻을 위해서도 몇 배 해야 될 것이 아니냐?
몇 배 하려고 노력하면, 하나님은 어떤 입장에서 대해 주어야 되느냐? 맨 처음에는 '너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몇 배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보통 사람이 하지 못하는 고개를 넘게 될 때는 몇 배 수고한 거기에 복을 플러스시켜서 몇 배를 더 가해 줍니다. '옛날에 그렇게 나쁘던 네가 그럴 수 있느냐?' 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불효자가 지극히 효자가 되게 될 때는, 효자보다도 그 어머니 아버지는 더 기쁜 마음이 되는 거예요. 그거 이해돼요? 무슨 말인지 이해돼요?
그것을 그렇게 볼 때에, 일본 사람들이 왜정시대에 있어서 한국 대해서 빚을 지고 잘못했지만 지금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보다 앞서가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30일, 그제로구만. 선생님이 말씀을 해주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전부가 앞에 와서 앉으려고 밤잠을 안 자고… 세 시간, 네 시간 전부터 앞에 와서 앉아 있는 거예요. 어떤 식구는 앞에 앉으려고 세 시에 나왔는데 전부가 앞에 앉아 가지고 있어서 중간 이하에 앉았다는 거예요. 의자에 걸터앉아 가지고 자고 있다는 거예요. 이것이 무서운 놀음이예요.
한편에서는 그러고 있는데 여러분은 이불을 펴고 앉아 가지고…, 선생님은 주일 새벽에 '이놈들, 어디 보자. 어떤 놈들이 모이나' 하고 잘 보고 있어요. '선생님이야 말씀을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고, 고단한데 자야지' 자 보라구요. 철창이 가슴에 내리 꽂힌다 이거예요. 일본놈들이 여러분의 복장을 발판삼아 딛고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러지 말라고 하겠어요, 당연하다고 보겠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복장을 밟고 넘어가서라도 뜻을 이루어라 이거예요.
나라가 망하게 될 때는 형무소에 있는 살인강도들을 전부 다 끌어내 가지고 원수의 나라에 가서 공작을 하도록 시키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그 나라의 장관이 그들에게 명령을 해서 보내게 될 때, '아 제발 잘 부탁한다'고 머리를 숙이지요? 그래 가지고 일을 다 승리적으로 성사시키고 돌아오면, '야! 형무소행이다' 그러겠어요? 그 나라의 주권자도…. 그들이 역적에서 충신도 될 수 있는 길이 있다구요. 알겠어요? 그렇지요?
여러분, 정신차려야 돼요. 밥을 먹는다고 편안하게 생각하지 말라 이거예요. 잠을 잔다고 해서 자기가 잘나서 잔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앞으로 뜻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할는지 모르지만, 나는 뜻이 이루어지지 말았으면 합니다. 뜻이 이루어지지 말라는 겁니다. 이러한 패들을 놓고는 안 되겠다구요. 그래서 돈이 있으면 이제부터 전부 다 외국에 예금하려고 그래요. 내가 지금까지 할 수 있는 책임을 하려고 천신만고했어요. 그러면 여기에 협조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진정한 의미로 협조하는 사람이….
내가 수많은 돈을 쓰고 있지만 나는 돈 구경도 못 하고 있다구요. 다방에 들어가서 차 한잔 안 사 마신다구요. 언제나 어머니한테 핀잔을 맞습니다. '어쩌면 그렇노?' 그렇게 살고 있다구요.
이런 전체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들은 다시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금후에 가야 할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지 않았는데 여러분 앞에 통일의 나라를 갖다 줄 것 같아요? 선생님만 없어 보라구요, 여러분들 다 보따리 싸 가지고 어디로 갈지? 남아질 패가 얼마나 되겠어요? 그 나라에서 죽이고, 밟고, 모가지를 떼고 다 처리해 버릴 거예요. 누가 남아질 거냐 이거예요. 내가 어떤 때는 그런 판국이 한 번 되거들랑 사형대를 만들어 가지고 이것들을 전부 다 왕창 떨어지게 하면…. 진짜 사람을 거기에서 한번 추려보는 거예요. 이런 생각까지 내가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그런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내 정성을 입은 상대적 존재는 그런 존재를 추구하고 있다 이거예요. 그것은 불가피한 요구요, 그런 생각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구요. 요즈음 보게 되면 사장이니, 무슨 이사장이니 하는데 이것 다 집어치우라구요. 전화를 해도 그래야 좋아한다나요. 이놈의 자식들. 선생님이 지금 이러고 있는데 무슨 사장이 어떻고, 이사장이 뭐 어떻고, 무슨 뭐 전무, 그게 좋아요? 물론 그것도 일면에서는 그래야겠지요. 거기에 그러한 바람이 들어가서 그곳이 자기가 살 수 있는 자리인 줄 알았다면 큰 오해라구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구요. 통일의 그날을 위해서는….
결론을 짓자구요. 이제 우리는 통일방안을 알았습니다. 개인은 가정, 가정은…, 이렇게 쭉 가는 길을 알았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가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은 통일족속이 되어서 통일나라를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은 전부 다 희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전부 다 싫다고 하기 때문에, 이것들이 전부 다 망하겠기 때문에, 가정의 여편네들을 뽑아 가지고 전부 다 3년 동안 투입하는 거라구요. 그래도 그들이 나가서 일을 한다고 해 가지고 밥을 굶고 허정대며 계속하고 있으니 하늘이 제거시키지 못하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명령한 것은 내가 다 알고 있는 거예요. 일에서부터 몇백까지 호수가 있을 거라구요. 이것이 앞으로 여러분들을 심판하는 조건이 될 것이라구요. 이런 모든 것을 여러분이 알고….
문제는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면 나 하나 뜻을 위해서 바치자. 죽을 자리가 있으면, 내가 먼저 가서 그것을 이루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것 외에는 통일의 방안이 없습니다. 알겠어요? 성공의 길은 그것밖에 없는 거예요. 나만이 이북을 위해서, 조국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입장….
그러기 위해서는 이 무가치한, 여러분은 제물을 바칠 때 찌꺼기를 바쳐요? 동네에서 성황당에 제사를 드릴 때 소를 잡더라도 흠이 있는 것을 사 와서 잡아요? 제일 좋은 암소새끼를 잡거든요. 그건 역사가 해와가 전부 다…. 그 놀음 하고 있다구요. 성황당에 제사드리는 소도 좋은 소를 골라서 해요. 그런데 그것이 희생하더라도, 죽게 되어 이제는 살 길이 없어 가지고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하는 것이라면, 그건 하나님도 싫어 한다는 거예요. 그건 제물이 못 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당당하고 무엇이든지 능력이 있고, 무엇이든지 하더라도 해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통일교회 문선생은 어떤 면에도 소질이 있다구요. 지지리 못나 가지고 누구든지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가치가 없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힘을 써서 한 번만 치면 전부 다 쑥대밭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람, 모든 면모를 갖춘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안 그래요? 실력을 갖추어 가지고, 안팎을 갖추어 가지고 가치 있는 것을 하늘 앞에 바쳐야 됩니다. 거기에서 비례적으로 뜻의 판도가 넓어지는 것이고, 빨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자, 이런 등등을 알아 가지고…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수억이라는 돈을 썼다구요. 2년 동안에 20억 가까운 돈을 썼다구요. 그렇지만 통일교회를 위해서는 안 썼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썼다구요. 그렇다고 여러분이 선생님한테 돈 한푼 갖다 줬어요? 내가 벌어 가지고 썼다구요. 통일교회를 위해서 안 썼다구요. 통일교회를 위해서 쓰면 좋지 않아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통일교회는 지금 통일교회를 위해서 일하고 있지 않다구요. 여러분이 전도 나가는 것도 통일교회를 위해서 전도 나가는 것이 아니라구요. 전도 나가는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요,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관이 다르다구요.
통일교회는 과정적이예요. 다리라구요. 지나간 다음에는 다 헐어 버려야 됩니다. 통일교회 간판이 뭐예요? 간판 다 필요 없다구요. 통일교회 사람이 필요하지, 통일교회 간판이 필요해요? 이런 것을 알고, 통일교회는 나라를 위해서 희생해야 돼요.
그런 관점에서 이 9월은 마사(魔邪)의 달이라고 했지요. 양력으로 7, 8, 9월은 마사의 달입니다. 일본에서도 지금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구요. 어쩌면 그렇게 딱 들어맞느냐는 거예요.
이런 때에 여러분은 일치단결해 가지고 북한 땅 그 누구보다도, 공산당원 최고 회의를 추진시키는 최고 간부들보다도 더 심각한 자리에 서서 이 나라의 국운을 염려하면서 하늘을 부여안고 기도를 하고, 안팎의 모든 심정을 높은 자리에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이때인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통일의 그날은 우리의 피땀과 우리의 희생과 우리의 복종과 우리의 순응의 길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고, 이제부터 그렇게 움직이면 이 나라가 살 길이 생기리라고 생각해요. 아시겠어요?「예」 자, 우리 통일의 노래 한번 하자구요. (통일의 노래 합창함)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2년 9월 3일이옵니다. 이달을 맞이하여 처음으로 맞는 안식일 이 아침에 당신의 자비로우심과 거룩한 은사가 여기 모인 자녀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전국의 식구들이 아버지를 향하여 이 시간 정성들이고 있사오니, 그들 위에 일률적인 은사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남북이 엇갈려 있는 이 한반도를 당신께서 사랑하시고, 지도하시고, 주관하시사 당신의 소원과 더불어 승리의 한날을 맞는 이 나라 이 민족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남북이 교통하게 된 모든 내적 사연은 허락하신 뜻을 이루고 당신의 소원의 나라를 위하여 하늘이 배후에서 움직인 것임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가고 오는 이 기간에 그 모든 책임자들의 마음을 하늘이 감동감화시키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원하는 곳을 향하여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그 길을 당신의 뜻과 더불어 뜻을 대하는 수많은 무리들이 따라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부디 이 나라 이 민족을 당신이 보호하고 지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제 13일까지 이 나라 이 백성이 하나되어, 금후의 민족적인 운명을 염려하는 하늘의 마음 이상 가는 마음을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는 될 수 없겠기 때문에 하늘을 추앙하는 간곡한 통일적인 마음을 가지고 움직이는 남한 백성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마음 앞에 찾아오는 북한 대표들도 하늘이 원하는 뜻 앞에 자연히 하나될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미리 준비하여 주시옵소서.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때에 한반도와 한민족이 당신이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그 권위를 여실히 드러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와 같은 정세를 놓고 하늘을 중심삼고 보잘것없는 통일의 무리들은 정성을 들여 오고 있습니다. 이제 이 기간에, 아버지여, 저희들의 부족한 정성을 묶어 드리고 있사오니, 저희들의 원하는 뜻을 아시는 아버님, 철부지한 것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마시옵소서. 당신의 마음으로 저희를 보호하시옵고, 당신의 심정으로 저희를 사랑하시옵고, 당신의 뜻의 길에서 저희들이 엄숙히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당신이 기뻐하는 걸음을 걸어 나갈 수 있는, 당신의 마음 가운데 기억할 수 있는 효자 효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충신의 도리를 다하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수십여 년 세월을 지나오는 과정에서 저희들은 자유의 한날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다가오는 그날들을 소망과 더불어 슬픔을 머금으면서 아버지께서 남기신 한스러운 복귀의 길을 더듬어왔습니다. 지내고 나서 돌이켜볼 때에 불충을 자각하며 불효를 자각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었음을 부끄럽게 생각하옵니다.
지난날이 그러하였거든 오늘부터, 이 시간부터 그 길을 넘어서야 되겠습니다. 반성하는 자신을 붙안고 하늘 앞에 애원하고 절규하면서 당신이 남기신 복귀의 뜻을 향하여 생명을 다 바쳐 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냘픈 무리들을, 아버지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하늘만이 저희의 위로요, 하늘만이 저희의 목표요, 하늘만이 저희의 지도자인 것을 알기 때문에, 외로와도 하늘과 더불어, 고통스러워도 하늘과 더불어, 기가 막힌 슬픈 자리에 처하더라도 하늘과 더불어 기준을 맞추기 위하여 움직이는 불쌍한 무리들을 아버지께서 보호하시옵소서. 역사는 이와 같은 무리들로 하여금 사망선을 밟고 새로운 생명의 인연길을 가려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도 그 싸움을 계속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무리들을 바라볼 때, 당신이 표준하는 최후의 결전장을 그 누가 맡아 주겠느냐, 누구에게 맡기겠느냐고, 그런 염려를 하게하는 무리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가고 또 가고 또 가서 당신의 사랑의 품에 안기고, 당신이 칭찬을 하면서 저희들을 붙안고 목을 안고 사랑할 수 있는 그 자리를 흠모하면서 저희들의 몸과 마음을 이 시간 다시 다짐하고 이 9월 한달을 아버지 앞에 또 맡기오며, 저희들은 가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 지금 남한 땅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일선에 나서서 싸우고 있는 기동대원들의 활동이 당신의 뜻 앞에 일치되어야 되겠습니다. 한민족이 가야 할 운명길만이 아니라 세계가 가야 할 운명길, 천륜이 찾아오는 길에 보조를 맞추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은 비틀걸음을 걸으면서라도 넘어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만약에 쓰러지는 일이 있거들랑 당신을 향하여, 당신 앞에 가까이 쓰러질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뒤로 쓰러져서는 안 될 것이고, 옆으로 쓰러져서도 안 되겠습니다. 쓰러지더라도 앞을 향하여 쓰러져야 할 저희들의 사정을 잘 아시는 아버지여, 필연코 가야 할 복귀의 길에 저희들은 들어서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 길이 천리 만리길이라고 할 때는 저희들이 몇 리를 와서 머뭇거리고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는 지극히 두려운 자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다가 돌아서게 될 때는 하늘이 붙들어 줄 수가 없는 것이요, 사탄만이 좋아라 하며 이를 몰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발을 뺄래야 뺄 수 없는 외통길에 들어선 저희들을, 아버지여, 그럴 수 있는 위험성이 있거들랑 당신이 주인으로서 하나의 방패를 세우시사 저희들을 몰아내시옵소서. 그러지 않고는 갈 수 없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닌 것을 아버지께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저희들은 하늘을 슬프게 한 일이 얼마나 얼마나 많았던가 하는 것을 이달을 맞이하여 이 시간 이 아침에 당신 앞에 회개하고, 당신 앞에 직고하는 시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그렇게도 고대하던 통일의 날이 어서 이 땅 위에 오게 하여 주시옵고, 그렇게 찾아오던, 그렇게 탕감의 길을 개척해 오면서 바라던 당신의 뜻의 나라를 어서 이 땅 위에 이루시옵소서. 당신이 그렇게도 잊을 수 없는 창조의 위업을 어서 완성하시사, 당신의 영광을 만천주에 자랑하고, 당신의 높으신 사랑을 온 피조만물 앞에 덮을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시간 이 자리에 모인 어린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저희들은 어린아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어린아이 중에서도 배부른 어린 아이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배고파 가지고 이 시간, 어머니의 가슴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잊고, 당신만을 흠모하고 당신만을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 자체가 옷이야 입었든 안 입었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옵니다. 당신이 사랑하고, 당신이 품어 주는 사랑의 품에 품길 수 있는, 어버이가 필요한 저희들임을 아시는 아버지여, 저희의 모든 것을 맡으시사 저희를 품고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진정 본연의 심정을 가지신 아버지, 본연의 뜻을 이루시려는 아버지의 뜻길, 그 과정에는 역사시대에 수많은 심정의 소모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심정을 투입한 것은 당신의 심정의 대상인 자녀를 완성시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못났든 잘났든 저희들에게는 당신의 피가 연결되어 있고, 당신의 뼈살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친히 느껴 가지고 그의 외로움을 당신이 억제할 수 있는 외로움으로 폭발적인 자극을 느낄 수 있는 자녀가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저희들의 슬픔은 당신의 슬픔과 직결될 수 있는, 당신의 생명을 이어받은 아들의 인연을 튼튼히 갖고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늘이 슬프거들랑 저희 자신들도 슬퍼야 되겠고, 당신이 원통하거들랑 저희들도 원통해 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어린 것들의 손목을 묶으시옵소서.
가야 할 험산준령을 기필코 넘기 위해서 이것들의 손목을 얽어매서라도 기필코 끌고라도 가야 할 당신의 사명을 생각하게 될 때에, 당신은 불쌍한 분인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 앞에 지성을 다하는 효성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그 모양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천년 한의 심정을 억제할 수 없는 타락의 후예임을 자각하면서, 당신의 긍휼의 심정을 보다 높이 구할 수 있는 어린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고아의 모습은 저희들도 원치 않고 하늘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버이의 입장에서 고아의 자리에 남겨 놓고, 그 자리를 찾아갈 수 없는 슬픈 마음을 품은 그 어버이는 이 땅 위에서 가장 슬픈 자요, 가장 비참한 자요, 가장 외로운 자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사랑의 마음과 그 두터운 인자하심이 오늘 보잘것없는 저희들의 전후 좌후 상하에서 저희와 더불어 인연줄을 끊지 못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쓰러지더라도 양손을 하늘을 향하여 벌리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최후를 하늘 앞에 보고하고 쓰러질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가진, 자녀로서의 명분을 갖추는 측은한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저희들은 그럴 수 있는 자리에만 있지 않습니다. 저희들 앞에 부과된 책임이 막중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 9월을 당신이 승리의 달로써 맞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이때에 선두에 서서 달리고 있는, 세계의 새로운 명령을 받고 일선에 나선 기동대원들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그들이 도달하는 곳은 인간들이 바라는 그 어떤 종착점이 아니옵니다. 당신이 바라는 출발점을 향하여 지금 복귀의 한의 길을 가고 있사오매, 때로는 외로운 일도 있을 것이요, 엇갈린 사정에 부딪쳐 가지고 천 갈래 만 갈래 깨어지는 심정을 붙안고 몸부림치는 사연들도 많을 줄 알고 있습니다.
남과 같은 환경에서 남과 같은 사명을 가진 것이 아니라 남과 같지 못한 환경에서 남과 같지 못한 사명을 가진, 그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명이 아닌 이 중차대한 사명을 짊어진 이들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하늘의 권위와 하늘의 위신을 보시사 이들의 가는 걸음 위에는 생명줄이 연결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사랑과 줄이 여기에 연결되게 허락하여 주옵고, 당신의 승리의 인연이 여기에 깃들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금후에 우리 민족이 가야 할 길을 지키시옵고, 이 민족 앞에 있어서 중차대한 사명을 맡은 통일의 무리들의 가는 걸음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더디더라도 낙오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따라서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부디 원하는 뜻 앞에 부름받은 몸들, 슬픔의 짐을 벗고 당신의 소원의 짐과 바꿔 질 수 있는 그 책임을 다시 한번 이어받는 이아침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이제 몇 달 동안에 해야 할 중대한 책임들을 앞에 놓고 일본에서 지금 싸우고 있는 모든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달과 이해와 이 70년대가 당신의 경륜 앞에 일치되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모인 자녀들의 마음이 하나되게 허락하여 주옵고, 뜻을 사모하는 마음이 하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흠모와 사모의 심정이 어려 당신의 품에 품길 수 있는 거룩하고 자랑스런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인간들은 제 나름대로 생의 목적을 찾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이나 나이 많은 사람을 막론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삶의 길을 찾아서 허덕이고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이요, 인류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개인이 그러한 입장에 있음과 동시에 가정도 가정 나름대로의 하나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범위를 넓혀 말하면 하나의 나라면 나라, 하나의 민족이면 민족도 나름대로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세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륜이 남아 있는 한 인간으로써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인간만으로써의 길뿐만이 아니라, 만일에 여기에 천륜이 있다 할 때에는 천륜이 가야 할 길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제일 가고 싶어하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혹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 더불어 가고 싶어하는 그런 길이 필연코 있을 것입니다.
우리 한 개인을 두고 보면 그 개인에게는 마음과 몸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몸이 가고자 하는 길이 있고, 마음이 가고자 하는 길이 있습니다. 몸이 원하는 길로 따라가게 될 때는 마음과 상충되는 목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요, 또 그런 귀결점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마음을 따라서 가게 된다면 마음이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서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엇갈린 입장에 선 것이 우리 개개의 인간임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러한 인간들의 모습이 확대되어 이루어진 것이 세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도 역시 외적인 세계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적인 세계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내적인 세계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민주세계의 사람들이요, 외적인 세계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공산세계의 사람인 것입니다.
내적 기준과 외적 기준이 어디에서 출발되느냐 하면 '나'라고 하는 사람으로부터 출발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나에서 몸의 목적과 마음의 목적이 분립돼 있기 때문에, 결과에 있어서는 두 세계의 종착점을 향하고 있는 것이 인류요 이 세계의 정상인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 뜻은 무엇이냐 할 때, 그것은 외적인 몸이 가는 길을 따라 가는 길도 아니요. 내적인 마음의 뜻을 따라가는 길도 아닙니다. 그 내 뜻은 어떠한 뜻이냐? 몸과 마음이 합하여 가지고 일방적인 목적이 아니라 둘이 합한 것보다 가치적인 목적을 중심삼고 가야 할 길이 바로 나를 중심삼은 인생으로서 가야 할 필연적인 길이 아니겠느냐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자리를 차지하고 하나의 방향으로 갈 수 있고, 직선을 그을 수 있는 목적점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사를 두고 수많은 인류와 뜻 있는 위인과 성현들이 죽고 혹은 희생하여 갔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해결점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인류는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나로서 귀결될 수 있는 하나의 목적을, 필연적인 목적을 자기의 것으로 소유했다고 자기를 들어 만피조세계에 혹은 만천주에 자랑할 수 있는 그날이 오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인간들이 해결해야 할 숙명적인 중요한 문제인 것을 우리는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일치된 그 목적점을 옛사람들도 찾아 나왔고, 지금의 우리들도 그것을 찾으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거의 어떠한 성인이 선(總)을 그어 가지고…. '직선' 하게 되면 두 점 사이에 그어진 선을 말하는데, 인간으로서 이렇게 직선과 같이 그어질 수 있는 하나의 목적점을 해결지어 준 성현이 있었느냐 할 때에, 그렇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방향에 접근시키는 길은 남겨 놓고 있지마는 '그 방향이 이것이다. 틀림없이 이것이고 여기에 일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정을 지어 놓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보다 가치적인 나로서 찾아가야 할 길을 역사시대의 그 누구도 설정해 놓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인간이 추구해야 할 자리는 가고 난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가야 할 자리이기 때문에 현재의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미래에 찾아올 자리이기 때문에, 미래를 향하여서만 모색할 수 있는, 참다운 내가 머무를 수 있는, 참다운 나로서 통일된 하나의 길이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은 현재를 잊고 미래를 추구해 나온 것이 역사적 방향인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아는 것입니다.
현재에 있어서 그것은 모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을 밟고 넘어서는 미래에서만이 그런 길이 나타날 것입니다. 미래에 하나의 깃점이 완성되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그러한 기준을 향하여 뜻 있는 사람, 혹은 인륜을 넘어서 가지고 천륜을 바라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곳을 향하여 언제나 자기의 생애를 바치면서 노력해 나오고 혹은 숭상해 나온 그런 길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길이 종교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종교의 길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는…. 종교의 길 앞에는 그 종교가 머무는 그때에 사명을 감당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머무르고 있는 그때를 부정하면서 보다 나은 내일의 길로 몰아내기 위한 방향성이 지금까지 남아져 나오고 있으며, 지금 이후에도 또다시 그 길은 개척적인 길로서 남아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종교의 역사 가운데는 예언자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시대 시대 마다 그 시대를 대표한 예언자가 나타나 가지고 미래의 뜻 앞에 그 방향이 일치할 수 있는 귀결점을 따라가야 된다고 예언하면서, 종교의 방향을 우리 인간이 소원하는 그 목적에 일치될 수 있게끔 접근시켜 나오는 일들이 종교세계에서만 있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러한 예언자들이 나와서 예고하는 것은 그 시대에 머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미래에 머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기 전에 세례 요한이 나타나 가지고 '회개하라, 천국이 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한 사람의 왕자로, 혹은 한 사람의 메시아의 사명을 짊어지고 천국 건설을 위해서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천국이 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천국이 가까왔다고 한 세례 요한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말했습니다. 천국이 가까왔기 때문에 천국이 올 수 있는 날이 접근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천국이 와 있다고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그 당시에 제자들을 이끌고 다닌 3년 공생애 생활이 천국 안의 생활이 아닌 것입니다. 천국을 향한 생활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진 것은 천국을 향하는 자리에서 졌지 천국 안에서 진 것이 아닌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다시 오겠다고 한 말은 와 있는 자리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 와 있지 못한 자리에서 다시 오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과연 예수님이 바라던 천국의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그 자리는 오늘날 인류역사 과정에 이미 나타났던 자리냐, 또 현재 나타난 자리냐, 앞으로 나타날 수 있는 자리냐 할 때에, 그 자리는 현재 나타난 자리도 아니요 이미 나타났던 자리도 아닙니다. 그 자리는 앞으로 나타날 수 있는 자리로서 소개해 주고 가신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사명은 이 시대에만 국한된 사명이 아니라, 미래를 이어받기 위한 사명이 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기독교를 제외한 수많은 종교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종교 중에 인류가 바라는 목적의 종착점에 도달해서 '이리 와야만 산다. 이리 와야만 살 수 있다' 하는 자신을 가진 종교, 이것이 필연적인 귀결점이라고 주장한 종교가 있었느냐 하면 없는 것입니다. 내일을 향하여, 미래의 하나의 승리적 귀결점을 향하여, 필연적인 목적점을 향하여 점진적인 과정을 다짐하면서 승리의 한 미래상을 그려 나온 것이 종교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사상적인 면, 혹은 내적인 면의 대표로 선두에서 달리고 있는 것이 종교라고 할 때, 종교의 사상을 중심한 문화권, 또 종교생활하는 사람들이 가려 나온 역사의 노정을 밟아가야 할 운명길을 가려 오는 시대를 두고 볼 때, 인간들이 살고 있는 그 시대도 그 역사권내에 있는 인간이 소망하는 시대로서 맞을 수 있는 시대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밟고 넘어가고, 그것을 부정하고 넘어가고, 그것을 해결하고 넘어갈 수 있는 미래를 향함에 있어서 준비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인류가 있습니다. 수많은 국가가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상이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와 종교와 사상, 이 세 가지가 추구하는 하나의 목표는, 인간으로서 통일된 하나의 세계를 구상하고, 만우주 앞에 승리한 인생으로서 자기의 존재를 자랑할 수 있는 그곳을 향해 가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종교 중에 어느 종교가 그 최후의 목적점을 향하여 보다 앞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느 종교가 선두에서 달리고 있느냐 할 때 그런 종교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또, 어떤 나라가 그런 이상세계를 향하여, 통일된 하나의 목적세계를 향하여 선두에 서서 달리고 있느냐 할 때 그런 나라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또, 어떠한 사상을 주장하는 주의가 있으면, 어느 주의 주장이 나라를 넘어 세계의 선두에서 달리고 있느냐 할 때, 그런 선두에 선 주의가 있어야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있되 이 세 가지는, 종교면 종교 나름대로 분립된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종교는 나라와 더불어 하나의 귀결점에 봉착할 수 있고, 나라는 사상을 중심삼고 세계와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서 필연적인 목적이 이것이라고 할 수 있는 공동적인 기착점을 발견하는 데서만이 종교의 사명은 끝날 것입니다. 거기에서 인간이 찾아 나온 역사적인 사명도 끝날 것이고 사상이 추구해 나오던 통일된 세계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종교를 중심삼은 어떠한 종교인만으로도 되는 것이 아니요 애국심을 중심삼은 어떠한 일개의 민족사상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중심삼은 어떠한 일방적인 사상이나 그런 주의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닐 것이 아니냐? 그 주의는 인생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주의를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몸을 대표할 수 있는 주의요, 마음을 대표할 수 있는 주의인 반면, 내가 바랄 수 있는 하나의 주의일 것입니다.
내가 바랄 수 있는 하나의 주의는 우리 가정이 여기에 기착하기를 소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민족이 바랄 수 있는 최종의 주의가 아닐 수 없는 것이요, 나라와 세계가 '이것만이 우리의 것이다, 이것만이 우리가 소망하던 것이다. 이것만이 필승의 길이다' 할 수 있는 전체의 기준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비로소 통일이 벌어지는 것이지, 종교면 종교 나름대로, 혹은 어떠한 특정한 국민이면 국민 나름대로는 안 될 것입니다. 혹은 어떠한 사상을 중심삼고 그 주의면 주의 나름대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주의 가운데는 나라도 들어가 있어야 되고, 종교도 들어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종교 가운데는 나라도 들어가 있어야 되고, 주의도 포괄될 수 있는, 셋이 하나될 수 있는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치점을 보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역사시대에 추구해 나오던 보다 차원 높은 자리에서 나를 중심삼고 내가 바랄 수 있는 통일적인 주의는 현현을 볼 것입니다. 그 자리를 넘지 않고는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의 미명을 넘어설 수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소망의 새아침을 바랄 수 없는 것이요, 아침을 맞이하여 떠오르는 새로운 세계의 건국의 태양을 맞이할 수 없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기 때문에 끝날에는 자기만이 사랑하고, 자기만이 좋아하고, 자기만이 주장하고, 자기만이 생명을 걸고 싸우던 것이 자기에게 은사의 조건이 못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를 믿는 자들은 그 종교가 자기를 넘어서야, 즉 자기 부정을 해가지고 부정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무엇을 확고히 갖지 않고는 그는 패자로서 서러운 미완성의 자리에 머물지 않을래야 머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혹은 하나의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고 자기가 사랑하던 국가 그 자체를 중심삼고 '일방통행이다!' 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국가사상을 초월할 수 있는 보다 새로운 국가사상을 가지고, 지금까지 애국애족하던 모든 전통적 사상을 버리고 비약할 수 있는 국가이념을 가진 국민이 되지 않고는 그 하나의 세계에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주의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주의면 공산주의, 민주주의면 민주주의를 중심삼고 그것만으로서 일방통행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러냐? 몸과 마음이 상충된 것이 어느 일방적인 면을 따라갈 수 있느냐?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몸은 마음을 대해서, 마음은 몸을 대해서 언제나 상충적인 면에서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서로 주체적 입장에 서기 위해 결렬된 입장에 있기에, 생애를 통한 투쟁의 길을 모면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너무나 잘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위주해 가지고 어느 하나를 부정하는 것이 그 목적을 향하는 자리에서는 보다 차원이 높은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보다 높은 차원을 가지고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는 우리 인간이 바라는 참다운 하나의 목적의 세계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면 종교에도 지금까지 생명을 투입해 나오고, 전생애를 바쳐 나오던 신앙생활을 부정하고 초월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끝날에는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국가면 국가, 민족이면 민족을 중심삼고도 그것을 부정하고 초월할 수 있는 보다 차원 높은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사상을 중심삼고도 공산주의 이상, 민주주의 이상 되는 그 무엇이 나와 가지고 그것을 부정하고 나타날 수 있는 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인간이 바라는 필연적인 목적을 추구도 할 수 없는 것이요, 그 자리에 도달도 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니냐.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자기가 제일 좋다고 하는 것이 자기를 구해 주지 못한다는 결론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대개 어떤 때에 실패하느냐? 자기가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을 양보하지 않겠다고 하는 자리에서 실패가 벌어집니다. 춘하추동이 있으면 춘하추동을 두고 볼 때, 봄절기가 오는 것입니다. 봄절기가 오면 봄절기에만 고착되고자 하면 이는 일년을 맞지 못하는 것입니다. 봄은 변하여 가고 여름이 찾아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름이 변하여 가고 가을이 찾아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을이 변하여 가지고 겨울이 찾아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을과 겨울은 다른 것입니다. 중심이 다른 것입니다. 위치가 다른 것입니다. 그래야만 사시 사계절을 맞을 수 있는 일년의 맛을 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오늘날 끝날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때이냐? 완전히 정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해 정비할 것이냐? 어떠한 자리에서 정비할 것이냐? 그 무엇이라는 것은 미래를 위주로 하고 정비해야 됩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정비해야 할 것이냐? 과거에서 정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서 당장 정비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같은 양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말했습니다. 회개란 무엇이냐? 정비하라는 선포인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정비한 자리에 도달해 가지고 필연적으로 넘어가야 할 최후의 장벽이 아니냐. 자, 그러한 때가 어느 때냐? 바로 지금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할 때, 그 천국이 가까운 때가 언제냐? 지금이 바로 그때다 이겁니다. 일생을 두고 그 길을 바라게 되면 일생 동안 그 길을 가는 사람은 그 생애 동안 언제든지 그러한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현재에 파묻혀 사는 사람은 현재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를 극복할 수 있는 미래를 가진 사람이라야만 현재에 있어서 개인적인 심판을 모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사랑하는 그것에 고착되라고 말할 수 없는 결론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그러하면 가정도 그러한 것입니다. 수많은 생애노정을 이어 가지고 역사가 지나가기 때문에 역사적 과정에서 그런 입장에 선 것이 인간들인 것입니다. 지금도 그때라는 말이 맞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서 마지막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 때가 예수님 때와는 달리, 그야말로 세계적인 시대입니다. 우리들은 그런 세계적인 종말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부정할 수 있는 환경에 접어들어야 되기 때문에 번번이 인간이 그 환경을 붙들고 늘어지려고 하는 소성이 있고 소질이 있는 사실을 절대자가 알고 있는 이상 그 절대자는 부정하지 않을래야 부정하지 않을 수 없는 길로 내몰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정하지 않을래야 부정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의 길로, 종말시대로 내모는 것이 자연적으로 인간을 구할 수 있는 하나의 방향을 마련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던 사람이, 애국애족하던 사람들이 나라만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어떠한 주의 주장을 사랑하던 사람이 그 주의 주장만 사랑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종교면 종교를 중심삼고 자기 종파만을 사랑하던 사람도 한 종파만을 사랑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전부 다 부정의 여건이 감도는 세계정세는 우리 목전에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나쁜 운세냐, 좋은 운세냐? 이것은 미래를 찾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좋은 운세라는 것입니다. 미래를 추구하고 미래의 새 것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희망적인 순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반면에 현실을 바라보고 여기에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에 있어서는 지극히 비참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두 세계의 갈림길은 시작되는 것이며, 여기에서 두 사람의 형태는 서로 색다른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는 길이냐, 하늘이 가는 길이냐 하는 데서 그것이 결정되는 하나의 돌파구, 하나의 경계선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 남한이 가는 길과 북한이 가는 길이 서로 다른 것입니다. 우리 한민족이 바라는 것은 남한 일파를 원하는 것이 아니요, 북한 일파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양단된 입장에서 서로서로 자기의 주권을 주장하는 엇갈린 나라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된 나라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을 두고 볼 때, 이 통일의 운세를 바라보고 있는 삼천만 민족,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백의민족, 그대 들이 차지할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오늘 현재의 그 자리가 아니라는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일의 통일의 나라는 달라야 됩니다. 역사가 달라야 하고, 수많은 종교가 달라져야 하고, 수많은 주의가 달라져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봉착한 것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있는 세계 앞에 하나의 등잔과 같이 나타난 이 한국이라는 나라는 한국만으로 해결할 것이 아닙니다. 초월적인 민족관을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나와야 됩니다. 초월적인 사상관을 제시할 수 있고, 초월적인 종교관을 제시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거기서부터 세계는 통일의 운세를 맞아, 천운이 있다면 천운과 더불어 규합해 가지고 역사시대에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새로운 문화세계가 창건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이 나온다 이겁니다.
그러면 내 나라를 사랑하는 이상의 마음을 어디에서 찾느냐? 이것은 인간 끼리끼리는 안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 자체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남북에 있는 사람들만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27년 동안 노력해 가지고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힘과 사람의 노력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보다 나을 수 있는 통일된 나, 즉 인간이 바라는 이상적인 목적을 향하여 가기 위해서는, 그 목적의 자리에 도달해 가지고 승리의 영광을 온 천지에 자랑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현재 살고 있는 환경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부정하고 초월할 수 있는 자리에서만 발견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 그외의 자리에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이 가야 할 필연적인 운명의 길이 있나니 현재를 부정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찾아라! 그래서 절망과 낙망의 기로에서 허덕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소망을 이어 놓았습니다.
'끝날이 되면 너희 나라에 메시아를 보내겠다'고 한 이 메시아사상이야 말로 역사시대에 보다 새로운 이념을 소개할 수 있는 하나의 등불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지 않고는 바랄 수 있는 다른 그 무엇이 나타날 성싶지 않습니다. 메시아의 뜻을 이어받은 종교에도 이제 끝날이 왔습니다. 혹은 애국애족해 나오던 그런 나라도 끝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혹은 나라를 넘어 민족을 버리고 자기의 모든 환경요건을 부정시키던 주의 주장도 이제는 끝날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이때에 여러분들에게는 정의로운 자리에서 하여야 할, 필연적인 자기 자체를 정비하고 공작을 해 놓아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으면 시정해 놔라, 현실에 잘못된 일이 있으면 시정해 놔라 이겁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시정하느냐? 그 자체를 중심삼고 시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자기를 발견하기 위해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죄를 지은 그 자리를 옹호하는 자리에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혁신하고 격파하고 타파하고 극복하는 자리에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 극복의 자리는 현재의 설 자리가 아닙니다.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제 2의 소망을 요구하는 자리입니다. 헌 것을 타파하고 오늘을 정비해야 정비가 되지 그러지 않고는 정비가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자기가 사랑하던 가정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내 갈 길의 원수가 되고, 자식이 내 갈 길의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불가피한 사정입니다. 여러분이 피난길을 나선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다 잘 알거예요. 피난가려고 할 때, 아버지는 아직 일이 채 끝나지 않았다구요. 아버지는 '아 이거 며칠만 더 있으면 일확천금할 텐데' 하고 있고, 여편네는 '당장 가야 할 텐데' 하고, 또 아들도 '남들은 다 가는데 우리도 떠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야, 야 조금만 기다려라, 며칠만. 지금까지 지내온 생활을 봐도 아무 일 없었는데 하루 이틀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겠니?' 한다면 그것은 상습화된 관념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것은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 어버이면 그 어버이가 현재를 부정할 수 있는 단안을 내리는 것이야말로 부활이 출발되는 순간이요, 미래를 이어받을 수 있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와 자식이 아버지를 붙들기 위해서 그 자리에 남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아버지를 버려야 돼요. 남편을 버려야 돼요. 지금이 그런 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때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러한 절박한 목적을 바라보면서 '끝날에는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집안 식구가 원수였습니다. 남편이 가는 길과 아내가 가는 길이 서로 엇갈려 가지고 서로 브레이크를 거니 원수지요. 딴 사람이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일 사랑하던 사람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기독교가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끊고 넘어서야 할 텐데 그걸 붙들고 늘어졌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백성이 이 민족을 중심삼고 늘어졌다가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보다 차원 높은 내일의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민족적인 정기를 이어받아야 세계의 국민이라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세계의 국민은 대한민국의 국민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이 말을 여러분이 잘못 들으면 곤란하다구요.
끝날에는 나를 공인하던, 나의 가치를 높여 주던 그것이 나를 치는 것입니다. 나와 대립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나를 공인하던 그것이 나에게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지요. 이것은 모두 역설적인 결론이라구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어요. 원수가 딴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네 집안에 있다고 했다구요. 성경의 골자사상이 그거라구요. 여러분이 기도를 하게 될 때에, 기성교회라든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 통일교회 교인도 마찬가지예요. 나라와 세계가 이런 판국에 있는데 내 아들딸이 어쩌고 하지요? 나라를 구해 놓은 다음에야 내 아들딸이 있는 것입니다. 세계가 갈 길을 가려 간 다음에야 내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이 가야 할 필연적인 운명길이 아니냐, 필연적인 길이 아니냐 이겁니다.
오늘 내가 당도하여 밥을 먹는 그 자리가 오늘의 희망의 자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어차피 부정당해야 되고, 극복해야 할 자리입니다. 부정당하게 할 수 있는 힘,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오늘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돼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그곳을 향해서 이미 출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반대를 받되 달가이 받아라! 그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사회의 규탄을 받되 반대하면서 받지 마라! 악한 자도 최후에 죽일 때는 그 소원을 이루어 주고 죽이는 것이 아니냐? 오늘날 악이 선을 대해서 치거들랑 거기에 맞서서 치지 말라! 그에게도 하나의 소원을 이루어 줘라! 그래야 해결이 나는 겁니다. 같이 치게 되면 '이 녀석아' 하며 따라가서 복수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사상이야말로 위대한 사상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거기에서 비로소…. 원수가 따라와 가지고 치려고 했는데 자기에게 복을 빌고 있으니 칠 수 있어요? 복을 빌고 있는데 쳤다가는 자기가 망하는 겁니다. 그러니 종말시대에 살고 있는 인간으로 하여금 최후의 심정을 중심삼고 이상적으로 결정하게 하는 해결 방법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이 아니었더냐?
이렇게 볼 때에 우리는 주의해야 되겠습니다. 나를 지도하던 목사님이 나의 생명의 길잡이가 못 된다. 통일교회를 지도하던 문선생이 나의 생명의 길잡이가 못 된다. 마찬가지라구요. 통일교회가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살면 통일교회는 망한다구요. 통일교회의 현재의 자리를 부정할 수 있는 강력한 명령길이 있어야만 사는 것입니다. '아이고, 힘들어 죽겠다'고 하는 그 자리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 전체가 '아이구, 힘들어 죽겠다'고 할 때, 교회를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리에 나가게 될 때, 나라는 거기에서 소생하는 것입니다. '아이고 죽겠다. 그렇지만 가야 되겠다' 할 때는 그 나라는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학자들이여, 자기가 추구하고 사랑하던 그 학문이 자기의 목을 자른다. 종교를 숭상하는 종교지도자들이여! 높은 자리에서 모든 사람을 가르치던 그 단상이 자기의 목을 자른다.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면 그 문선생이라는 이름이 자기의 목을 자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자리에서 정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쁜 걸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극복의 일로를 다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죽음이 엇갈린 길을 초월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이어받기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가 가야 할 색다른 길입니다.
인간을 중심삼고도 그러한 결론을 짓지 않을 수 없는 우리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간뿐만이 아니고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은 인간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인륜뿐만이 아니라 천륜이 있다면 그 천륜은 천륜을 위주로 한 인륜을 세우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천륜을 부정한 인륜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인륜을 부정한 천륜을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왜? 인륜은 부정당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륜은 본래 인륜과 상충된 역사적 내용을 지녀야 되고, 상충된 역사적 방향을 지녀야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역사시대의 인간과 더불어, 역사시대의 인륜의 환경과 더불어 타협이라는 것은 하실 수 없습니다. 상충이다 이겁니다. 인륜이 강할 때는 천륜을 깔고 앉아 가지고 희생시켜 나왔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천륜이 인륜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인륜이 천륜을 망하게 하여 파탄시켜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륜은 어차피 주체이기 때문에, 하늘은 먼저고 위이기 때문에…. 그릇이 다 지어지게 되면 뚜껑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뚜껑을 만들고 그릇을 만드는 사람은 없는 거예요, 안 그래요? 밥바리면 밥바리를 만들어라 하게 되면 뚜껑을 먼저 만들고 나중에 밥바리를 만드는 사람 있어요? 그러니까 인륜을 바로잡아 놓고 천륜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륜과 인륜이 합할 수 있는 귀일점…. 출발을 위해서 찾아오는 기차가 있다면 인륜은 종착점을 향하여 찾아가는 기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류의 방향이 같은 방향으로 통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느냐? 아닙니다. 엇갈려 있습니다. 저기서는 이리 왔고 여기서는 저리 갔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갈아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갈아타려면 그냥 갈아탈 수 없습니다. 수속을 해야 됩니다.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가 빨리 수속을 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또 수속방법이 있어야 됩니다. 전세계가 그러한 천륜과 인륜이 엇갈린 역사를 거쳐왔기 때문에….
내가 가는 길에 있어서도 그런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몸뚱이가 가는 길과 마음이 가는 길이 서로 엇갈려 있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의 방향으로 어떻게 잡을 수 있느냐? 한꺼번에 갈아타든가 할 수 있는 무엇이 마련돼야 일방향을 향하는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마음의 고충을 벗어난 제 2의 인간이 되어 역사적인 인간을 초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꿔 타려면 그 수속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수속은 집안끼리 하게 돼 있지 않습니다. 개인 개인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수속을 할 때, '아이고, 우리 아버지의 아들딸이니까. 아이고 민족에 같이 있겠습니다' 해도 그 민족이 공인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 우리 부모인데 그 부모의 정을 끊을 수 있느냐? 지금까지 인륜이 끊지 못한 그 정을 끊을 수 있느냐? 같이 가야 될 텐데…' 하겠지만 안 됩니다. 끊어 버린다구요. 지금이 그런 때라는 거예요.
부부도 둘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수속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될 수 없습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개인이 그러하고, 가정은 가정끼리, 종족은 종족끼리, 민족은 민족끼리, 국가는 국가끼리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왔습니다. 천륜은 사랑이요,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은 끝날에는 다 깨뜨려 놓습니다. 깨어지는 운세가 오는 것을 보고 슬퍼하지 말고,‘어서 깨져라. 이 놈의 악한 세상아!’저주와 더불어 절망 하지 말고,‘어서 지나가라, 이 놈의 세상아! 공산주의여! 민주세계여! 어서 지나가라!’지나가게 마련입니다. 공산주의도….
인간의 권위라는 것은 돈이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권위는 하나님이 인정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망각하고 돈에 팔려 가는 주권싸움이 있으면 그건 마지막 길인 것입니다. 돈을 가지고 사람을 팔고 사고, 권세를 팔고 사고 하면 그건 마지막입니다. 민주세계도 문제예요. 여러분, 미국의 선거나 일본의 선거에서 들려오는 소문을 다 알지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권위라는 것은 하나님이 설정하게 마련이지, 돈이 설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은 악한 인륜세계에서나 필요한 것이지 선한 인륜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과 하나님과는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원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세계야, 지나가라! 공산세계야, 지나가라! 이것은 인간의 종말시대에 있어서 종지종말을 고하기 위한 최후의 하나의 현상이거늘, 이때에 우리는 각성을 해야 되겠습니다. 단결해야 되겠습니다. 공산주의 보다도, 민주세계 보다도, 혹은 그 어떤 종교단체보다도 단결을 해야 되겠습니다. 통일된 기준 앞에서 세계가 하나되자. 하나되자! 무엇에? 더 높은 곳에 하나되자. 보다 가치 있는 곳에 하나되자. 거기에서만이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라를 저버리고 세계를 살리기 위해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애국자는 못 될망정 애국자를 지도할 수 있는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바친 자가 성인이라면, 하늘땅의 사랑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바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의 아들딸?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성인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됩니다. 알겠어요? 성인을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공자는 어디 섰더뇨? 석가는 어디 섰더뇨? 예수는 어디 섰더뇨? 그 자리를 찾아 나가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의 수많은 성인들은 그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길을 소개했던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심정을 논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보다 차원 높은 하나의 세계와 하나의 나라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부정하더라도, 부정하는 핍박의 길, 부정하는 사회의 질식된 환경에 서더라도, 그 환경을 극복하고 남을 수 있는 미래를 중심삼은 자기를 긍정 하는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을 우리는 지금까지 하려고 했고, 또 해 나온 것입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최후의 결정을 봐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숨막히는 결정. 예스(yes)냐, 노(no)냐? 양자간에 택일을 해야 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자리에 있기를 바라는 통일교인은 망하는 거라구요. 망하는 거라구요. 안 망할래야 안 망할 수 없습니다. 망하는 거라구요. 기성교회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세계도 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안 나올 수 없다구요.
우리 통일교회는 오늘의 자리를 박차고 나가 내일에 머물 수 있는 그곳을 향해 달려가야 되겠다구요. 달려 나가는 데 있어서는 세계의 어느 누가, 어떠한 애국자, 어떠한 성인 철인들이 구상하지 못했던 본래의 나의 목적점, 이것을 귀결시켜 주고, 이것을 상속시켜 줄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향해 달려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역사와 미래를 향한 그 자리만 바라보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서 가지고 원수까지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메시아의 사상은 역사를 끌고 나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품고 살림살이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랑이라고 했고 신부라고 한 것입니다. 생활시대라구요. 그렇게 메시아를 위해여 엮어 왔던 4천년의 유대교의 역사가 유대교의 목을 찔러 죽일 줄이야 누가 알았느냐 이겁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공산주의가, 민주주의가 결국은 세계를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목을 찔러 죽일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 때예요.
여러분이 가진 눈, 그 눈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느냐? 오늘을 바라보고 있다가는 망합니다. 망해요. 내 듣는 것은 무엇을 향해 듣느냐? 오늘을 바라보고 듣다가는 망해요, 망해. 내 손은 무엇을 중심삼고 움직이느냐? 오늘을 위해서 움직이면 망해요. 기가 막힌 말이지만 할수없다구요. 죽 얘기하면 그런 결론에 다 귀결된다구요. 밥을 먹되 나를 위해서, 내가 회사 가 가지고 무슨 기계 짜박지를 만들기 위해서 밥을 먹는다면 그것은 망해요. 망해 둔 거라구요.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남을 위해서 행동해라! '그럴 것이다'가 아니라 '그렇다. 죽어도 그렇다. 살아도 그렇다' 부정 가운데는 부정보다 강한 긍정이 감도는 자리에서 부정이 나와야 됩니다. 긍정도, 긍정을 하는 것은 부정을 넘어선 자리에서 가지고 긍정해라. 알아듣기에 어려운 말이지만 말이예요.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현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놀음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공을, 종교단체가 반공을 해서는 뭘해, 천당가면 그만이지. 안 그래요? 일방적이면 얼마나 좋겠어요? 승공을 해서 뭘해요? 이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뼈다귀도 없는 무골충의 사나이가 아니예요. 세계를 때려 한꺼번에 몽땅 가루를 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악독하다면 악독하고, 선하다면 선한 사람입니다. 중간 패가 아니다 이겁니다. 지독한 패다 이겁니다. 핍박을 받고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닙니다. 배때기를 찔러 가지고 전부 다 절개해 가지고 소금에 절여 먹을 수 있을 만큼 악독한 사람이라구요.
그래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되기 때문에 핍박을 달게 받아라 이겁니다. 원수를 사랑해라. 인간역사가 마지막이 되게 될 때, 원수를 갚기 위해 살던 무리들과 같이 움직이다가 죽어 가지고는 그 원수를 복수하겠다는 무리들 앞에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최후에 자랑할 것은 무엇이냐? '야 야, 너희들 그래 가지고 왔니? 나는 원수를 사랑했다' 하면 '아하, 그렇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서도 그 권위를 들고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되던 역사를 뒤집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딴 세계가 벌어진 거예요. 예수님이 말하기를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것이 아니예요. '이웃을 자기의 몸보다 더 사랑하라.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이렇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죽어간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여기 지금 뭐 반대하는 사람들, 기성교회의 누구누구 전부 통일교회 지독히 반대하는 똥싸개 같은 것들을 잘 알고 있다구요. 그 녀석들은 뭐 전부 다 성인이 다 됐나요? 들춰 보면 누더기 똥구더기를 싸 가지고 끙끙대며 다니는 녀석들이라구요. 들이치면 산산조각이 날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통일교회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은 그런 놀음을 안 하는 것입니다. 내 갈 길이 바빠요. 내가 갈 길을 아직까지 다 못 갔고, 내가 청산해야 할 것을 아직까지 청산하지 못했는데…. 그럴 시간이 있거든 잠이나 자라…. 그렇잖아요?
빈정거리며 동네에서 뭐 이러고 저러고 하는 녀석들이 일을 이루는 것을 봤어요? 남을 비난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을 봤어요? 난 그런 것을 보지 못했다구요. 싸움을 하더라도 묵묵히 그 싸움터를 지나가면서 자기의 갈 길을 재촉해 가는 사람은 그보다도 더 가치 있는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냐? 그걸 다 상관하지 않고 자기의 갈 길이 바쁘기 때문에 싸움판보다도 가치 있는 것을 찾아가는 길손과 마찬가지가 아니냐? 이래 가지고 지금까지 나왔다 이겁니다. 그래 끝날이 되면 그 열매로 나타날 것입니다.
누가 더 나라를 사랑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통일교회가 뭐 나라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누가 공인해 주기를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만이 공인하면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가야 할 길은 어떠한 길거리에 있는 여자들을 사랑하는 길이 아닙니다. 자기의 본아내만 사랑하면 됩니다. 안 그래요? 본가집이 환영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주막에서 한잔 먹으며 쉬는 자리에서 자기를 맞이해 주는 그러한 친절은 원치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원래 필연적인 길입니다. 필연적인 길은 마음이 가는 길만 가지고도 안 돼요. 몸이 가는 길만 가지고도 안 돼요. 천국가겠다는 종교만 가지고는 안 돼요. 땅 위에서 잘살겠다는 몸뚱이가 나가는 길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이 길을 종합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웃거들랑 몸도 따라 웃어야 되고, 몸이 웃거들랑 마음도 따라 웃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이 싸워 가지고 행복이 있을 수 있느냐? 없는 것입니다. 싸움이란 명사가 남아지면 불행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불행뿐만이 아니라, 불행의 결과는 파탄이요 절망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되는 데서만이….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정비하자, 정비하자! 오늘을 더 사랑하는 남편이여! 아내여! 자식이여! 부모여! 오늘을 사랑하라는 교육을 하는 부모가 있으면 그 부모는 나에게 독약을 먹여주는 부모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남편이여! 오늘 나를 사랑하라'고 하는 아내가 있다면 자기 남편에게 독약을 갖다 먹여 주는 것이다. '나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하라고, 나라를 사랑하고 난 자리에서 나를 사랑하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인륜을 중심하고 인간만 끼리끼리 사랑하면 되지?' 아니예요.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천륜을, 보다 더 큰 천륜을 이어 가지고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결혼도 다르다구요. 자기 마음대로 결혼 못 한다구요. 다르다는 거예요. 뭐 합동결혼식 문제가 앞으로…. 합동결혼식 문제도 나왔지만 '합동'이라는 말이 뭐예요? 합동이란 말 외에 더 좋은 말이 있어요? 뭐 그 다음에 나올 것은 '통일 결혼식'이겠구만요.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끝날이 온다. 그것은 무서운 때인데 원수는 어디에 있느냐? 책상 앞에서 밤을 새워 가며 책을 뒤지는 학자가 있거든 책이란 것이 문제다. 그것이 자기가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이어받지 못하는 자리에 있는데…. 덮어놓고 정성을 들여라.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부정하라구요.‘기독교를 믿는 신앙자여. 기독교를 부정하라! 통일교회를 믿는 신앙자여, 통일교회의 현재를 부정할 수 있는 내일을 이어받자! 그건 얼마든지 현재를 혁명해도 좋다!’할 때, 그 사람이 망해요? '이거 안 되겠다. 때려부숴라. 이거보다 더 나아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갈 자리지. 이거 안 되겠다구' 하면서 차 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통일교회의 공로자인 것입니다.
간신은 그냥 그대로 틀거리를 붙들고 늘어지려고 하는 사람이요, 충신은 간신 틀거리를 청산하려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구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끝날에는 자기가 제일 사랑하던 사람이 자기의 목을 조르는 때이기 때문에 이것을 일단 청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잘못됐기 때문에 덮어놓고 회개하라 하는 거예요. 안 그래요? 아주머니면 아주머니가 배통을 내밀고 가슴을 내밀고 다니는 아주머니가 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저씨면 아저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런 시점에서 갈 길을 모른다면 잠이 와요? 밥이 먹혀요, 밥이? 내가 밥 한 그릇 먹고 나면 오래지 않아 내 아들딸을 원수들이 모가지를 자를 것인데 밥이 먹혀요? 심각한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따라 나오던 그 종교 가지고도 안 되는 것이요, 나라 가지고도 안 되는 것이요, 세계 가지고도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류역사를 통해서 인간들이 노력해 나온 결정이 아니냐? 이것이 인간이 수고해 나온 전시회가 아니냐? 그 전시회가 우리에게 소망적인 줄 알았더니 낙망을 재촉하는 비운의 시대에 접하여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된 거라구요. 그러면 또 다른 전시회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 전시회는 어디에 있을 것이냐? 이것은 인륜의 종말로서 나타난 전시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천륜의 시작이 와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차를 갈아탈 수 있는 새로운 무대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한 것입니다. 새로운 인생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인생관이 종교 앞에 지배당하는 인생관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종교를 지배할 수 있는 인생관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옛날의 도주들 앞에 자기의 목을 내놓고 딸려가는 그런 종교인이 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도주를 안내해 가지고 그 도주의 시조가 될 수 있는 종교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왜 그러나? 그 도주들이 올바른 길을 마련했으면 오늘날 올바른 세계로 갈 수 있는 확실한 길을 명확히 과학적인 결과와 같이 당당코 갈 수 있게끔 보여 줘야 할 텐데 알 수 없게 만들었으니 그것 가지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라구요.
시집갈 시간이 가까와 왔는데 그 아가씨가 '어머니, 아버지, 오빠! 아이고, 나 죽는다. 죽어도 시집 못 간다'고 했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시집갈 때가 되거들랑 가슴이 부풀어서 '아버지 어머니, 왜 나를 시집 안 보내 줘!' 불평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 나는 것입니다. 그렇다구요. 그것이 나쁜 현상이냐? 좋은 현상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시집 보내주마' 하면 '예, 예' 하며 얼른 가지, '나 시집 안 가겠다'고 하고,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들고 '나 죽여라!' 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올드 미스가 되면 하루에도 불평이 두두룩 두두룩 돋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쁜 것이냐 할 때, 나쁜 것이예요? 자, 우리 아가씨들! 여기게 올드 미스가 된 사람은 없겠지만, 그렇게 됐다면 그게 좋은 현상이예요, 나쁜 현상이예요? 어머니 대해서 반대하고 아버지 대해서 반대하고 이거 좋은 현상이예요, 나쁜 현상이예요?
여자가 자기의 갈 길을 찾아가는 길을 중심삼고 볼 때는, 그 여자가 '왜 내 갈길 안가려 줘?'하고 불평한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가려 주니 불평하지, 그렇기 때문에 끝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집을…. 기독교의 역사는 신부역사인데 시집가야 된다구요. 시집가는데, 이스라엘 민족 앞에, 유대교 앞에 예수님이 왔는데 말이예요. 예수님은 신랑인데 신랑집 법도는 다르다구요. '아이구, 우리 집은 솥을 이렇게 걸었는데 신랑집 솥은 북쪽으로 걸었어. 틀렸어' 그러나요?‘우리 집에서는 아 이거 온돌방에서 누워 잤는데 신랑집에는 아이구 온돌방도 없는 침대에서 버선 벗고 자? 아이구 난 싫어!’그건 망할 여자라구요. 다르다구요, 안 그래요? 보다 나은 것은 같은 것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으니만큼 보다 내용이 다르고 모양도 다르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 인간의 습관성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내가 피난살이 할 때 이북에서 감옥살이하다가 이남에 척 내려와서 보니까 이건 뭐 전부가 생소했어요. 아 이거 뭐 그 환경을 세밀히 살피는 데만 3년 이상이 걸리더라구요. 3년 이상 되니 그 환경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그 전에는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자꾸 마음이 쓰여지고, 그것이 한 3년 이상 걸리니까 비로소 평평하게 되더라구요. 그것을 볼 때, 예수님도 3년 공생애노정이 절대 필요한 기간이었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인간세상과 하늘세계는 전통과 습관이 다른데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몸에 젖기 위해서는 3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환경이 없었기 때문에 그 환경에 맞을 수 있는, 어울릴 수 있는 놀음을 하려니 3년 공생애노정을 걸으면서 12제자니 해 가지고 자기를 따를 수 있는 일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냐. 그 가운데서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집간 색시들도 말이예요, 시집가자마자 사랑받겠다고 하면 그 색시는 소박맞게 마련이다, 이런 결론이 나와요. 가 가지고 한 3년쯤 길을 닦아 놓고…. 처음 시집가 가지고는 이래도 걸리고 저래도 걸리고, 시아버지 앞에 가도 자유롭지 않고, 시어머니 앞에 가도 자유롭지 않고, 시누이 뭐 시동생 앞에 가도 자유롭지 않은데, 아이쿠, 내 마음대로? 그러면 쫓겨나지 별수 있어요? 쫓겨나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한 3년쯤은 그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그저 듣고도 못 들은 척, 먹고도 안 먹은 척, 배고파도 배부른 척, '척' 장군이 제일이다. (웃음) 그렇다구요. 여러분 아주머니들, 딸의 교육을 이렇게 하라구요. 보라구요. 한 집안의 살림살이가 망하게 되면 그거 하나 바로잡기 위해서는 일생을 걸려도 못 바로 잡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인간의 습관성을 바로잡기가 쉬워요?
자, 한국사람으로서 고추장, 된장, 김치찌개, 뭐 김치, 요런 것의 맛을 본 사람이 서양 가게 되면 김치 생각 안 나요? 이놈의 혓바닥은 왜 이렇게 노적이 많아! 남들은 잘먹고, 생각지도 않는데 이게 뭐 김치가 뭐야? 이거 야단이거든요. 김치가 먹고 싶을 때는 말이예요. 뭐 어린아이가 젖먹고 싶어서 두드러기가 날만큼, 그게 그럴 때가 있다구요. 이거 뭐 고추장에다 보리밥 해 가지고 먹던 게 제격이거든요. 이건 암만 푹신푹신한 빵 아니라, 뭐 치즈니 해도 누린내 난다구요. 몇 끼면 싫증난다구요. 이놈의 고추장….
내가 이야기 하나 하지요. 내가 독일에서 불란서로 가기 위해 스위스를 거쳐 가는데 그 중간에, 저 피망이라고 하는 양고추, 이렇게 큰 게있더군요. 한국 고추는 요게 뾰족하지요? 그건 이렇게 크다구요. 아 이놈이 떡 상점에 있는 것을 얼핏 봤다구요. '이야, 저것 봐라. 고추다!' 눈이 번쩍 뜨여요. (웃음) 그래 가지고 그놈을 그렇게…. 군입정이 나게 될 때는 말이예요. 그것을 뭐 조찬에라도 때울 수 있다구요.
그런데 어디 고추장이 있어요? 고추장이 없으니까 뭐냐 하면, 거기에 일본 된장이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지 일본 된장이 있는데, 그 된장을 사오고, 그 다음엔 고추 가루는 중국 상점에서 사다가 그것을 이만한 치즈 깡통에 넣어 가지고 언제든지 가지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을 먹자 할 때 그건 고추장 4촌, 5촌도 못 되는 거라구요. (웃음) 그건 뭐 여기서 먹던 것에 비하면 이 코밑에 갖다 줘도 아주 기분 나쁜 것인데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그것밖에 없으니까 별수 있어요? 궁한 녀석은 뭐 보리 개떡도 제격이라구요. (웃음) 자 이래 가지고, '저것 사라!' 해 가지고 풀어 놓고는 말이예요. 그때 김영운 선생하고 같이 갔다구요. 차를 버텨 놓고는 손으로 주무르는 거라구요. 언제 뭐 숟가락이 어디 있고, 손을 씻긴 뭘 씻어요? 주물러라 이거야. (웃음) 고춧가루를 쥐고 그저 주물럭주물럭하니 이 사이로 삘 삘 삘…. (웃음) 이래 놓고 척척 뚜껑에다 한 무더기 해 놓고는 그저 '자, 들어. 너두' 하며 집어던지는 거예요. 뭐 거기 대접이 무슨 대접이예요. 집어던져 줘도 입 벌리고 '아이쿠, 고맙다' 이거에요. (웃음) 그럴 때는 만사가 다 통하는 거라구 이래 가지고 말이야, 이거 뭐 먹자! 이것을 그냥 쩍 뻐개면 구멍이 황뚫리고 속이 비었습니다. 거기다가 고추장을 담아 놓고 이렇게 해 가지고 골룡탕을 만드는 거예요. (웃음) '야 이놈아! 네가 들어갈 때에 내 윗입술을 다 거치고 들어가야지, 그냥 들어가면 맛이 안 난다' 하면서 먹는 겁니다. 그러니 입을 아一 벌려 가지고 우물 우물 우물…. 이게 무슨 꿀맛 떡맛은 그거 당하지 못한다구요. 그 습관성을 보충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가 하는 것을 느껴 봤어요.
여러분들 타락성, 집에서 살림살이하던 것, 그것을 차 버리고 나간다고 생각해 봐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그런 것을 연습해야 되기 때문에, '여편네야, 나가! 이놈아, 차 버리고 나가 봐!' 하면, '아이고! 차라리 둘이 보내면 좋겠는데 혼자 가라…' 혼자 가야 돼요. 뭐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독하다면 지독하다, 인정사정 없다 해도 그것이야 못하겠지 하면서 눈을 찡그리고 어떻게 하나 보자 했더니…. 죽어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 가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설명을 죽 해줍니다. 눈이 빠지면 빠졌지 안 가면 안 되게 돼 있거든요. 다리가 부러지면 부러졌지 안 가게 안 돼 있거든요. '자, 가고 싶은 사람은 가고, 말고 싶으면 말라' 해도 '나는 간다!' 하는 거예요. 안 갈 수 있어요! 찍죽빡죽하면서라도 전부 다 퉁겨 나가는 거예요. 그렇게 하여 역사에 없는 큰 사건을 전부 다 일으켜 놓았습니다. 이것은 문선생이 죽더라도 인류역사상의 특기사항으로 기록 안하면 안 된다구요.
한국에서 그러니까 일본의 축복받은 패들도‘우리도 따라가야 돼요, 안 따라가야 돼요? ’하는 거예요. 그래서 '따라가고 싶으면 따라가고, 말고프면 말아라' 하고 얘기했어요. 결론적으로 복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입장이냐? 선을 위해서 못사는 사람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할 때에,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다 알거든요. 선을 위해서 못사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수고해야 할 길이 남아 있는데, 더 수고하는 사람이 복받을 사람이냐, 덜 수고하는 사람이 복받을 사람이냐? 더 수고하는 사람이 복받을 수 있는 사람이지. 그러면 통일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제일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통일교회의 뜻을 위하고, 그 뜻은 세계를 위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위한 것인데, 그 길을 위해 더 수고하는 사람이 복받는 사람이냐, 덜 수고하는 사람이 복받는 사람이냐? 더 수고하는 사람이 복받지. 그러면 나간 사람과 안 나간 사람과 누가 더 수고하는 사람이냐? 그것은 나간 사람이 더 수고하지, 안 나간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벌받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가고 싶으면 가고 말고프면 말라'고 이야기했더니, 선생님에게 인사도 안 하고 다 도망쳐 가지고 다 전도 나갔다구요. (웃음) 미국 놈도 그러고, 독일놈도 그러고 세계는 큰 무슨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구요.
사건으로 보면 남북이 회담하는 사건보다 더 큰 사건이 영계에서 볼 때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더라 이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아, 여편네와 새끼를 다 버리고…. 그것도 잘살기나 하나요? 그저 고생을 해야 복받겠다 해 가지고…. 그걸 보면 내가 황마적 대장 같다는 생각이 든다구요. 그저 쟁깨비(남비) 짜박지. 사발 짜박지 가지고 못사는 생활 했는데, '아이쿠, 우리 선생님이 축복해 주면 잘살라고 했기 때문에 당신은 나하고 잘살아야 됩니다' 해 가지고 안 먹고, 남는 것은 적지만 가정집을 만들어야 된다며 뭐 무슨 짜박지, 통 짜박지 마련해 가지고 살려고 하는데 한꺼번에 왱강댕강 다 갖다 집어던지니 별수 있어요? (웃음) 어떤 때는 '야 이거 선생이라는 작자가 황마적보다 더한 놀음을 하였구나. 내가 벌받을 노릇을 했나, 복받을 노릇을 했나?' 하고 생각해요. 통일교회 자체에서는 벌받을 노릇을 했을지 모르지만 나라와 세계 앞에는 복받을 놀음을 했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망해도 나라는 남아지고 세계는 남아지기 때문에 그것은 선한 길이다. 종교는 나라를 이어받아야 되고, 나라는 세계를 이어받아야 되고, 세계는 하나님을 이어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이어받아야 되느냐? 하나님도 사랑을 이어받지 않으면 가치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졸장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하면, '거 뭐 하나님이 졸장부가 되다니? 하겠지만 보라구요. 문선생이 아무리 잘나고, 또 오늘 뭐 피땀을 흘리며 얘기한다 하더라도 여러분과 같은 상대적 존재가 없이 피땀흘리며 이야기 한다면 정신이 돈사람이예요, 안 돈 사람이예요? 혼자서 땀을 뻘뻘 흘리며‘야, 야!’소리 지르면 그는 미친 사람입니다. 세계를 다스리는 대통령이 있다 하더라도 아무도 없는데 '아, 여러분, 내 말 들으소. 이렇게 해야 됩니다' 한다면, 그 녀석 미친 녀석입니다.
이렇게 올라가 보면 하나님이 상대도 없는데 '아이고 좋다' 하며 춤춘다면 미친 하나님이지, 별수 있어요? (웃음) 이렇게 볼 때 하나님도 상대가 절대 필요합니다. 상대는 왜 필요하냐?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 때문에 상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을 이어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이어받으려면 하나님 혼자는 안 되겠으니 아들이 있고 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되는 거라구요.
'하나님, 무얼 원해요? 좋은 진지요, 좋은 반찬이요? 물으면 하나님은 '아니다. 무얼 원할꼬? 나에게 없는 것이 있나 다 있지', '그렇지만 무엇이 없소?','한 가지가 있지', '한 가지가 뭐요?' 하면, '아들딸을 죽인 것을 살리지 못한 것이다. 아들딸을 살려 놓는 것이 내 소원이다'라고 할 거예요, 그거 아니예요? 그래서 '아이들을 찾아 가지고 보내 주겠다'고 해서 아들은 찾았지만 딸이 없으니까, '아하! 땅 위에 신부를 찾을 수 있는 아들을 보내야 되겠다. 딸을 찾기 위해서 사람을 보내겠다' 해서 보내신 분이 메시아라는 분이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랑이라는 분입니다.
예수 믿는 패당들이 전부 다 그것을 목표로 해 가지고 신랑 맞을 잔치를 바라며 나오는 것이 지금까지 수천년의 기독교 역사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믿는 패라구요. 이놈의 패들은 잘못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열처녀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신랑 한 사람만 채 가지고 딴 곳에 가서 집을 짓고 살림살이를 하게 되면, 기독교의 수많은, 뭐 전부 다 도적놈 심통이 들려 가지고 사기…. 요전에 목사들을 대해서 어떤 사람이 얘기하 기를 '목사는 우선 사기꾼으로 인정하고 대해야 된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내가 기가 막혔습니다. 너무 좋아서 기가 막힌 것이 아니라구요. (웃음) 기가 막히게 됐다구요. 그러면 망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서로 인사를 할 때에는, '밥을 먹었소? 밥을 먹었니?' 그렇게 하지요? '밥을 먹었니? 밥 먹었지?' 하는 건 미정이라구요. 먹었는지 모르는 입장에서 인사를 하는 거라구요. 그거 가만히 보면 그렇다구요. 오늘을 중심삼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떤 때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느냐? 새로이 결혼한 사람들이 서로 싸움하게 될 때는 절망이지만, 그래도 점점점점 가까와지기 시작하면 희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 우리 결혼식을 할 때보다도 한3년쯤 지나니 더 났다' 할 때는 재미가 붙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3년을 지나 아들 낳고 딸 낳고 5,6년째 접어들면 더 재미가 난다구요. 잠점점점 좋아져야 재미가 나지, 좋았다가 나빠지면 재미가 나요?
통일교회를 믿기 시작했다가 점점 나빠져야 재미나요? 통일교회 하는 일이 지독하고 못살겠지만 그걸 살짝살짝 지나가 보면 재미가 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서 있는 이 남자도 이러구 있다구요. 욕먹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여기 있는 사람의 눈을 보라구요, 욕먹게 생겼나? (웃음) 옛날엔 욕먹고는 소화를 못 시켰어요. 일년이고 십년이고 그걸 청산짓기 전에는 자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잘못해서는…. 그렇게 데데한 사나이가 아닙니다. 천하의 누구한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양심의 가책이 없기 때문에 어떤 녀석 앞에도 부끄러움이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 놀음 하는 거라구요.
자, 습관성이라는 것이 원수다! 알겠어요? 여자는 여자의 습관이 원수입니다. 여자도 남자의 습관을 이어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자들이 걸어온 길은 남자들을 밟고 넘어왔기 때문에 여자가 여자를 갖고는 못 가는 것입니다.
여자의 습관성을 버려야 되겠기 때문에 여자는 시집가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남자도 남자의 습관성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사회에 나가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사회라는 것은 좋은 것이요, 시집을 가는 것도 좋은 것이요, 가정을 책임지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처녀시절의 습관을 전부 다 골고루 시정해야 된다구요. 그것을 그대로 물고 들어가 가지고 시집살이하면서 '우리 어머니 아버지, 우리 형제들 보고 싶어' 타령했다가 그 타령이 시집 사람들 사랑하는 마음과 비교할 때 이것이 지금 나은 입장이 될 때는 소박을 맞는 것입니다. 옛날을 돌아보려고 하면 소박 맞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우리 통일교회는 뭐냐? 통일교회는 밟고 올라가야 되겠다구요. 기성교회보다 나아야 되겠다구요.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아무리 못생겼어도 하나님 앞에 가면 당당코 기성교회 어떤 목사들보다 낫다구요. 믿어지지 않으면 죽어 보라구요. 모가지를 칼로 찔러 가지고라도 살아올 자신이 있거든 문선생 목을 찔러 보라구요. 누가 거짓말했는지? 이놈의 목사들 정신차리라구.
습관성이란 무서운 것입니다. 알겠어요? 한국사람에게는 고추장이 무서운 거예요, 김치가 무서운 거라구요. 어느 판사가 서양에 가 살게 되어 죽어도 못 돌아가게 되었는데 고추장이 그리워서 찾다가는 '이놈의 원수야, 이놈의 고추장 원수야' 하더라는 거예요, 안 그래요? 이 습관이…. 자, 물이나 조금 먹고. (물을 드심)
자, 여러분들 이제 한번 반성해 봅시다. 나는 무엇을 붙들려고 하느냐? 나는 무엇을 알고 싶으냐? 나는 무엇을 갖고 있느냐? 나는 무엇을 남겨 왔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남겼어요? 나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욕을 먹고 반대하는 소문을 남겼습니다. 여러분보다 그면에서는 나을 것입니다. 안 그래요? 세계적으로 소문났어요. 일본 가면 일본정부가 나를 싫어하고, 미국 가면 미국정부가 나를 싫어합니다. 우익 패도 물론이요, 일본 국민들도 '아하! 그 미스터 문이 일본에 한번 왔다 가면 사건을 일으켜 놓기 때문에, 저 사나이는 왔다 가면 곤란하기 때문에 안 왔으면 좋겠다' 이러고 있는 거라구요. 공항에 쓱 가게 되면 거기 입국관리국의 요원들이 '당신이 유명하신 문선생이요? 물으면 '그렇소!' 하면 좋아하지 않는다구요. 그건 왜? 갔다가 나올 때는 언제든지 사건을 일으켜 놓고 오거든요.
이번에도 가서 기동대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이게 또 사건이라구요. '뭘하러 가나 했더니 또 사건을 일으키러 왔구만' 요전번에도 일본에서 합동결혼식을 해줬거든. 그러니 또 사건을…. 그건 신문기자들도 몰랐다구요. 감쪽같이…. 그거 보면 통일교회 사람들이 참 용하다구요. '야! 소문관제다, 소문 내지 마라…'
문선생이 들어오면 이번엔 틀림없이 합동결혼시킬 줄 알았는데, 전부 다 온천지대로 왔다갔다하고, 바쁘게 북해도로 왔다갔다하고…. '아 북해도 갔대. 사흘 걸려야 돌아올 걸' 하지만, 오늘 아침에 갔다가 두 시간 후에 돌아오는 건 모른다구요. (웃음) 그러다 보니 자기들 모르게 몇 시간 후에 후닥닥 해치우는 겁니다. 가서 자는 줄 알았는데, 가서 노는 줄 알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후닥닥 다 해버렸다구요. '아이쿠, 그랬소?' 소문 듣고는 '아이구 속았다'(웃음) 하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들, 너희들한테 문의해 가지고 하늘의 일을 하니? 벼락같이 해치우지…. (웃음) 그렇게 하고 왔다구요.
한국에서도 그래요, 한국에서도 역시. 여기 36가정 합동결혼식 할 때에도 어머니 아버지에게 뭐 통첩할 수 있어요? 싫다고 하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누가 가서 의논한다고 그 자식을 좋아하겠어요? 안 그래요? 그것은 뻔한 겁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오면 가시가 되고, 기쁜 날 눈에 티가 되겠는데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그것을 빤히 알면서 그 어머니 아버지한테 물어 보고 소개하게 돼 있어요? 통첩은 해야 되겠기에 결혼식하기 전날 몇 시간 전쯤 딱 도착하게 하는 겁니다. '당신의 아들딸이 거룩한 결혼식을 하옵나니, 왕림하시길 원합니다' (웃음) 그렇게 통첩은 다 했다구요.
자, 남의 자식 데려다가 시집장가 보내 주면 그 부모가 와 가지고, 아이고, 옷을 입은 것을 보더라도 좋은 옷을 입었고, 아 신랑을 얻어 주더라도 자기 딸보다 나은 남자를 얻어 주었는데, 와서 고맙다는 인사는 못하고 반대를 해? 이 녀석! 당당하다구. 당당하다구요. 그랬더니, '아이고, 누가 우리 아들딸을 데려다가 결혼시켜?'해서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했다고 하면 에미 노릇하고 애비 노릇을 왜 당신이 했느냐 이거예요. 그때는‘언제 한번 새끼가 죽을 자리에 왔는데 알아 봤어, 이 녀석아!’들이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건, 그건 못 했습니다','그래 놓고 무슨 수작이야?' 그 한마디에 미끄러져 가지고 골통도 못 들고 거꾸러지는 것입니다. 그런 자신이 있기 때문에 그 놀음 하는 것입니다. 뭐 신문이 떠들고, 떠들겠으면 떠들어라 이겁니다. 내가 천하에 못 할 놀음 안 하는 것입니다. 강도새끼보다 낫다 이거예요. 이 나라의 그 누구보다 내가 애국자요, 나라를 위해서 눈물 흘리는 데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다구요. 나라를 위해 사는 거예요.
기성교회에서는 뭐 벌거벗고 춤춘다고? 내가 벌거벗고 춤추면 얼마나 보기 좋겠어요? (웃음) 할 일이 없어서 벌거벗고 춤춰요? (웃음) 한번 벌거벗고 춤이나 춰 보고 그런 말을 들으면 좋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재미가 있다구요, 재미가. (웃음) 작전이 참 잘 들어맞는다구요. 그 바람에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의 통기둥에 전부 다 갖다 걸어 놓고 튼다구요. 우직 우직 하면 '아이쿠 큰일났다, 아이쿠 큰일났다. 아이쿠 무너진다. 어디로 갈꼬?' (웃음)
그게 작전법 중의 최고의 작전법임을 알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보고 '하나님, 어쩌면 나를 그렇게 교육을 잘 시켰소…' (웃음) 벌거벗고 춤이라도 한번 춰 보고, 내가 모래사장도 한번 벌거벗고 기어 보지도 못했는데 춤을 춰요? (웃음) 에이 미친 것! 이것은 낮도깨비 중에서도 미친 낮도깨비예요. 미친 낮도깨비는 미치지 않은 낮도깨비한테 지는 거라구요. 나도 낮도깨비예요. 반대하는 녀석들은 도깨비는 도깨비인데 그건 미친 낮도깨비라구요.
지금까지 그렇게 나왔다구요. 망하는 줄 알았더니 언제 세계적인 기반을 닦고, '야 이 녀석아, 네 이름이 뭐든가?' 유명한 목사들은 문선생의 계획 가운데 놀아나고 있는데 전교계가 지금 문선생의 계획 아래 춤추는 놀음을 하고 있는데 그걸 누가 시키는지도 모르고 있거든.‘언제 그렇게 됐어? ’언제 그렇게 되긴 언제 그렇게 돼? 너희들은 자니까 세월을 모르지. 낮잠 자다가 놀라 갑자기 일어난 녀석들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알아요? (웃음) 나는 그렇게 못난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그 목사들 반대 바람에 나가떨어질 것 같으면 벌써 보따리를 내가 다 차 버렸다구요.
이번에 미국 갔다 오는데도 그런 거예요. 미국의 상원의원들 가운데에도 미스터 문이 문제가 되어 있다구요. 그것은 대한민국도 모릅니다. 일본 고위층에서 '청파동 선생님 집을 방문하겠습니다' 해도 '여보, 여보! 지금 방문하면 부작용이 벌어집니다. 아무 때 오소!' 이라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다구요.
여러분 가운데 통일교회에 구경삼아 온 사람들은…. 문선생은 통일교회의 단에 나서서 말하는 선생님만은 아닌 것입니다. 세계 작전을 한번 밀게 되면…. 꼭 산에 올라가야 호랑이를 잡아요? 동네 가운데 좋은 미끼만 해 놓으면 돼지우리에 오자마자 산채로 잡을 수 있는 길도 있다구요. 그렇지요? 그렇다는 거라구요. 그렇게 세계를 요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은 말하기를 '통일교회는 정당조직이다' 하는 데 정당조직하려면 여기서 할 게 뭐예요? 미국 가서 하지. 안 그래요?
그래서 이제부터 미국 가서 한번 싸울 거라구요. 이번에 세계로 돌아 다니면서 10만 달러 현상 소설 모집 광고를 내걸고 부흥회니 뭐니….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이 녀석들 콧대가 높다니 그놈의 코를 한번 거꾸로 뒤집어 박아 놓은 것입니다. '미국놈 망한다!' 하고 가는 데마다 때렸다구요. '망한다'고 하면, '뭐? 미국이 망해?' 그래 눈깔 시퍼렇게 뜨고 들어 봐라 이거예요. 역사적으로 주욱- '이러니까 망한다. 요것이 이렇게 됐기 때문에 요렇게 됐고, 망하게 되어 있다' 그렇게 하더라도 미스터 문이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욕을 들입다 해도 '아, 맞소' 하며 (박수 치면서) 박수를 치는 거예요. 동양사람으로서 미국에 가서 그렇게 판을 치고 온 사람은 아마 미스터 문이 역사이래 처음일 거예요. 시시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껄렁껄렁한…. 머리로 말하더라도 누구에게 지지 않는 머리를 가지고 있다구요. 정력으로 해도, 선생님 고기는 질기다구요.
왜정 때 고문을 받으면서도 '쳐라, 이 자식아!' 그런 거예요. 이런 책상 다리 네 개가 전부 다 부러져도 '쳐라, 이자식아!' 그랬다구요. 그 매를 맞는 법도 연구했다구요. 매를 맞을 때 '아이쿠, 잘못했습니다' 하면 죽습니다. 그건 죽는 거예요. '쳐라, 이 자식아. 쳐라 이 자식아!' 몽둥이가 들어오면 '움-' 힘을 주는 거예요. 거기에 안 진다는 거예요. 너보다도 사상적인 면에 있어서…. '이 개똥 같은 자식들아, 네 뼈다구까지 가루를 내서 내가 마시겠다! 쳐라, 이 자식아!' 그 이상의 강한 정신력으로 나를 쳐대는 거라구요. 끄떡없다구요. 그린 놀음을 해 왔다구요. 그래서 생리가 아주 이제는 반대받는 것이 취미가 되어 버렸습니다.
내가 옛날에 뱀장어를 참 많이 잡았어요.‘요놈아 안 잡힐래? ’잡으려 했다가 놓치게 되면 '요놈의 자식아, 스톱!' 하고는 대가리를 깨물어서 잡았다구요. 그런 사나이라구요. 한다 하면 하는 사나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망하든가 통일교회가 망하든가 둘 중의 하나, 양자택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반대하려면 죽도록 반대하든가, 그러지 않으면 도망가서 반대하든가, 그러지 않으면 믿든가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그대로 부끄럽게 보따리 싸 가지고 뭐…. 그렇게 안 되게 돼 있어요.
선생님이 지금 한국사람들을 포위작전해 나오고 있습니다. 잘 걸려들도록 그물을 쳐 왔다구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 거라구요. 기성교회 믿던 사람들이 왔으면 '기분 잡쳤구만. 그거 이단인 줄만 알았더니 뿔까지 돋아났구만. 뿔까지 돋아났을 뿐 아니라 거기에 꽃까지 피었구만. 아이쿠….' (웃음)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돼요. 이제는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될 때가 왔기 때문에 통일교회나 한번 믿어 보라 이거예요. 알겠어요? '남한 사람들이여! 북한 사람들이여!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거든 통일교회 한번 믿어 보라' 이제 문제는 그것밖에 없을 거라구요.
그거 왜 그러냐? 통일교회는 사람의 뜻을 위해서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똑똑히 얘기하는데 문선생이라는 사람을 따르지 마라, 문선생을 믿지 마라 이겁니다. 문선생은 일세기밖에 머물지 못할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왔다가 백년 이내에 가는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그 백년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문선생보다 하나님의 뜻을 믿어라. 하나님을 믿어라.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여러분을 주도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의 긴 역사 가운데서도 뜻의 길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 살아라 이거예요. 나도 그것을 위해 살고, 여러분도 그걸 위해 살아야 됩니다. 맡은 분야와 직책에 한계가 있어서 대소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는 여러분과 마찬가지요. 뜻의 길을 가는 데도 여러분과 마찬가지입니다. 선두에 섰을 뿐이지 그 자리에서 일방통행을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나중에 선생님이 죽거들랑 선생님을 붙들고 우는 자들이 되지 말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사랑하던 하나님을 누가 사랑할 것이냐를 걸고 울고, 선생님이 사랑하던 뜻을 붙들고 그 이상 사랑하지 못할까봐 그것을 놓고 탄식하며 우는 것은 가(可)하되, '어이쿠, 나 큰일났구나' 하는 그런 시시한 패가 되지 말라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부모도 버린 사람이라구요. 처자도 버린 사람이라구요. 형제도 버린 사람이라구요. 까딱하면이 나라도 버릴 사람이라구요. 그렇게 악착같이 반대한 이 나라까지, 그렇게 악착같이 모든 것을 출혈하면서 위하려고 하던 그 나라까지 내가 할 책임을 다하면 버리는 거예요.
내가 할 책임을 다하면 나라도 버리고 어디로 갈 것이냐? 이 나라보다 좋은 나라로 갈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나라를 망하게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성공을 하게 되면 그 성공을 가져다가 그 나라 앞에 다시, 예수님이 찾아온 것을 찾아 가지고 잘살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쁜 걸음을 걷는 것입니다. 동동 걸음을 걷는 것입니다. 이러고 있다구요. 남들은 낮잠을 자지만 통일교회 패들은 낮잠을 안 자는 것입니다. 남들은 피곤하다고 쉬고 낮잠을 잘는지 모르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은 낮잠을 잘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공장 가까이 가게 되면,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기계 소리가 들려 오면 젊은 사람들에게 죄 짓는 것 같아서 내가 낮잠을 못 자는 사람이라구요.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여러분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구요. 뜻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가야 할 뜻이 남아 있는 거라구요. 그 뜻이 무엇이냐? 이제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는 어차피 넘어가야 할 뜻이 있는 것입니다. 홍수가 난 이편 나라와 저편 나라입니다.
요전에 홍수 얘기 하나 하지요. 지난 19일에 내가 청평 별장에 가 있었어요. 그때 일본 의료단 40여 명이 와서 전국을 일주하고 내일 모레면 돌아가야 하는데, 내가 교회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떡 해 놓았다구요. 아 그런데 장마가 져 가지고 뭐 라디오 방송에는 서울에 난장판이 벌어 지고, 뭐 물난리가 나서 어떻고, 야단이 벌어졌어요. 자 이거 가려니 길은 막혔고, 그래도 아니 갈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이왕지사 떠나려면 이런 날은 새벽같이 떠나자고 해 가지고 모터보트를 몰라고 했습니다. 모험을 한 거예요. 이놈의 집이 떠내려오지 않나 뭐, 물이 무섭긴 무서운 거라구요. 그것을 잘 알고 있다구요. 무섭지만 수십 명의 수고한 사람들을 알아줘야 할 책임이 있는데 무섭다고 안 갈 수 없다구요. 그래서 '자 이왕지사 가려면 아들딸이랑 같이 가자!' 해 가지고 네 사람이 보트에 올라타고 '몰아라' 했어요.
그럴 때는 재치가 있어야 됩니다. 우물쭈물하면 안 된다구요. 그 물을 봐 가지고 소용돌이치는 데를 가려 나가는 거예요. 거기에 오만 가지가 떠내려 오는데, 그것을 터치고 나가다가 모터만 스톱하는 날에는 여지 없이 나이아가라 폭포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내몰아라'고 한 겁니다. 그때는 우물쭈물 안 한다구요. 순식 간에 내몰아 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들이달려간 거예요. 달려가는데 배 꼬리가 이러는 거라구요. 구비치는 거라구요. 앞쪽은 떠서 나가니까 그냥 나가지만 뒤쪽은 닿기 때문에 이런다구요. '에라, 사람 팔자 모른다 더니, 오늘은 이 한강수 최고 장마 바람에 놀아나는구나. 가자. 이놈아! 내 갈 길이 바쁘지, 네 갈 길이 바쁘냐? 네 갈 길보다 내 갈 길이 바쁘니 몰아라!' 이래 가지고….
내가 한강을 잘 안다구요. 이것이 쓱 돌아 가지고 댐 가까이 가면 안 되거든요. 거기 들어가다가는 야단이거든요. 거기 가려고 쓱 들어가 보니까 획-(행동으로 표현하심) 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보트를 그 옆에 대놓고 척 내리니까 그 옆에 있는 별장 주인이 하는 말이‘이 사람들이 물 무서운 줄을 모른다. 지금 낮이냐 밤이냐? ’무슨 영인체가 도착한 줄 아는 거예요. '죽는다는 생각 해봤냐고' 하며 핀잔하는데, '아 그거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거지' 라고 대답했다구요.
자, 그러한 놀음을…. 그런 때도 인생길에는 있어요. 알겠어요? 모험을 해야 할 때에는 모험을 해야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여러분들? '아이구, 요거 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러면 안 되는 거라구요. 피난할 때에는 그저 닥치는 대로 할 줄 알아야 된다구요. 그저 울타리 안에서 하인들한테' 여보게! 요것 하게' 하면 '예이!' 이렇게 살던 양반집 아주머니들이 피난통이 되니까 깡통을 들고 종새끼들한테 '나 좀 도와주소' 그 꼴 되는 거라구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러지 말라구요. 닥치는 대로 하라는 겁니다.
나 자신도 노동판에 가면 일등 노동자입니다. 배를 타게 되면 일등 선장감이라구요. 공장에 가면 무슨 직공을…. 안 해본 것이 없다구요. 내가 운전하는 것 하나는 일부러 안 배우고 있는 거라구요. 운전은 사흘 이내에 면허증을 딸 자신이 있다구요. 그런 소질이 있지만 운전은 안 배우는 거예요. 왜? 내 성격을 알기 때문입니다. 추월하는 녀석이 있으면 내가 기분 나쁘다고 갖다가 처박아 가지고 망치든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망하든가, 안 가면 들이받아 가지고 네가 죽든가 내가 죽든가…. (웃음) 성격을 알거든요. 그걸 안 배워 둔 게 장수의 비결이기 때문에, 그거 안 배운 거라구요.
그러니까 유유한 사람이 못 되어 봤다구요. 알겠어, 이 젊은 녀석들! 알겠어, 이 녀석들아!(웃음) 통일교회에서는 이렇게 해도 통한다구요. (웃음) 기성교회 목사가 그랬다가는 큰일나지. 그 목사 왱가당 댕가당 쫓아낼 거라구요. 이것들은 그저 쥐어박아도 좋다고 하고…. 자 그러다 보니까 뭐 한바탕 통일교회 자랑했구만. (웃음) 자 이제까지 욕도 그만큼 먹었는데, 선전 한번 했다고. 그거 나빠요?
자, 이제는 정비하고 넘어가자구요. 습관이 무섭다는 말을 했으니, 돌아갑시다. 습관이 무서운 거예요. 고추장 얘기 들었지요? 그 피망이 참 맛이 있습디다. 한번 먹어 보라구요. 도적질해다 먹는 참외는 더 맛있다구요. 나도 도적질해 봤어요. (웃음)
그 삼촌네 오이밭을 내가 전부 다 한번 쓸었어요. 내가 농도 잘합니다. 내가 '작은 어머니?' 하니, '왜?' 하는 거예요. '삼촌네 외밭에는 금년에 참 잘되었는데요. 그래서 맨 처음으로 익은 것은…. 그래도 이 집안에서 내가 주인되고 대장이 될 터인데 지금부터 대접을 해야 됩니다. 그러니 제일 좋은 참외는 내가 따먹어요?' 한 거예요. 엣날에도 그런 자부심을 가졌어요. 그래서 동생들도 나를 이렇게 봤다구요. (행동하심) 그랬더니 '그래 그래 그래'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럼 내 친구들 몇 사람을 데리고 와서 실컷 한번 먹여 봐도 괜찮죠?'하니 '그래 몇 개나 먹겠니? 그래라. 그래' 하는 거예요. '예, 됐습니다' (웃음) 떡 말해 놓고는 그냥 와라 이겁니다. 동네방네 그저 졸장부, 무슨 장부 (웃음) 전부 다 모이게 하는 거예요. 아침에 가서는 안 되겠으니 해가 진 다음에 어두워지면 '자 뽑아라!' 해 가지고 뽑는 것입니다. (웃음) 포대 자루를 몇 포대를 가지고….
그 뒷동산에 싸리밭이 있어요. 그 싸리밭에다 포대를 갖다 놓고 뭐 심심하면 먹자 이거예요. 한 일주일쯤 먹어야지. (웃음) 그게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그렇다고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건 예고하고 했기 때문에 밀고를 하더라도 정면으로 대하여 슬쩍 넘어 설 수 있고, 또 참외를 그 자리에서 얻어먹을 수 있는 수완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했지. 그렇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작은 어머니가 나한테, 홀딱 반했다구요.
작은 어머니가 '너 언제 오니?' 하면 '언제 오지요. 언제쯤 올 텐데 여비나 잘 마련해 주세요' 하는 거예요. 어머니한테는 학비를 마련하라고 차비는 작은 어머니한테 전부 다 시켜 놓는 거라구요. 그렇게 살아온 사나이예요. 그렇다구요. 고거 참 그렇게 갖다 놓고 먹는 맛은 참 복잡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거기는 거기대로 재미있는 게 있다구요. 그렇지만 통고라도 안 하고 하면 안 되지요.
자,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습관들, 재미를 붙인 그런 습관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일생 동안 그 놀음만 했으면 사기꾼 대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런 것 전부 다 왕창 잘라 버렸어요, 왕창.
시집을 갔다면 남편을 위해서 수절하는 열녀가 되었을 거라구요. 내가 그 여자들을 가만히 보면 '저것도 여자인가? 모양은 여자 같은데 여자는 아니구만' 아, 그 남자 하나 못 녹여내요? 남자 같은 푸서기가 없다구요. 남자는 쉬운 것이라구요. 이건 그저…. 요전에 우리 안집에 강아지 새끼를 한 마리 갖다 놓았어요. 이걸 애들이 서로 갖겠다고 싸움을 하는 거예요. 요건 바둥바둥하며 '아이고 내가 갖겠다' 하며 싸움박질하는 거예요. 야, 요거 강아지 새끼까지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인데 말이예요. 귀염둥이가 되고, 영감 모양으로 모실 수 있다는 겁니다. 이래 가지고 보고 생활을 잘 하게 되면….
남자들이 보기에는 그래 보여도 약한 게 남자들입니다. 알겠어요? '맨처음부터 시집가면 남자가 나를 사랑해 줘야지' 그게 아니예요. 덮어놓고 사랑을 해야 된다구요. 아기를 키우는 습관이 있으면 애기 키우는 두배만큼만 남편에게 해보라구요. 그러면 남편에게 '오소' 하면 '그래' 하고 '오소' 하면 대낮에도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봤어요, 여기 아주머니들? 남편을 애기 기르는 것의 두 배 이상 수고하면서 한 3년 동안 키워 보라구요. 그가 어떤 남자가 되려나? 그렇게 해봤어요? 통일교회 아가씨들은 나중에 시집가게 되면 일생동안 살 남편이니까 애기 기르는 수고의 배 이상 해봐라 이겁니다. 저 차만춘이도 남편에게 그렇게 해봤어요?「못 했습니다」 저런 양반들은 다 살이 두꺼운 양반들이라구요. 그렇지만 그런데는 센스가 빨라야 된다구요.
내가 통일교회 교인이라면 통일교회에 대해서 결코 비평하면 안 된다 이겁니다. 자기가 자기의 값을 떨어뜨려 가지고는 안 된다 이겁니다. 내가 통일교회 교인이라면 나는 이렇게 할 텐데…. 아주 뭐 하나에서 백가지를 보더라도 내 마음에 차는 것이 없다구요. 다 자기들은 잘한다고 보지만 말이예요. 그러니까 난 고독한 사람이라구요. 그곳을 향해서 달리는 거라구요. 달려 가지고 맨 나중에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달릴 거라구요. 무서운 곳이니까 아예 오지 말라구요. 마라톤 선수는 기막힌, 숨이 그저 할딱할딱하는 경계선을 왔다갔다하면서라도 결승점을 향해 달려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 마라톤 선수가 뛸 때에 좋다고 생각하면서 뜁니까? 나도 마라톤을 해봤어요. 이게 고개를 넘나들 때는 입에서 쇳비린내가 나고 말이예요, 세상에 못 할 것은 마라톤이예요. 그렇지만 타고난 운명 길이니, 안 갈 수 없으니, 죽기 전에는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뭐 승패를 결하는 것이라구요. 그렇다구요.
통일교회의 길을 통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길이 나와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세계 마라톤 챔피언 되는 것보다 쉬울 것 같아요, 어려울 것 같아요? 하나의 선수의 권위를 갖기 위해서도 밤을 새워 가며 새벽이면 냉수목욕을 하고, 겨울이면 산을 오르내리면서 그저 훈련에 훈련을 계속해 가지고 자기의 그 명분을 유지하는 것이 운동 선수들의 생활이거든, 어느날 하나님의 아들 되겠어요? 하나님의 아들딸 되겠어요? 생각을 해보라구요. 먹을것 다 먹고, 입을것 다 입고, 쓰고싶을때 다 쓰고, 뭐 사랑받고, 칭찬받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어요? 그런 아들딸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나는 안 될 거예요. 그것은 무가치한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대하여‘야, 너 문 아무개!’할 때 '예' 대답하면…. 주체 되시는 하나님이 명령하는 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구요. 그 정도를 봐 가지고 명령을 하는 거예요. 야 요 녀석이 이걸 해내겠느냐 안 해내겠느냐를 봐 가지고 조금 어려운 것을 시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조금 쉬운 것을 시키려면 명령도 할 필요 없다는 거예요. 내버려 둬도 하는 거예요. 불러 가지고 다짐하며 시키게 될 때는 좀 어려운 걸 시키는 거라구요. 여러분, 통일교회에서 통일교회 교인들이 뭐 전도를 안 하는 사람 있어요? 전도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도하라고 특별히 부르게 될 때는 지금까지의 전도 방법보다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불러 가지고 이야기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말도 해주고 내모는 거라구요.
그러려면 옛날 역사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한 그 승리의 기준 이상의 결의를 다짐하고 나서야 되는 거라구요. 거기에 뭐 '옛날에는 내가 배고플때 이렇게 참아 나왔는데….옛날이 무슨 상관 있어요, 옛날이. 옛날에 장관 아니라 애국자가 되었더라도 오늘에 역적이 되면 그 장관 바가지 다 깨지는 거라구요. '더러운 놈의 자식아! 네가 옛날엔 역사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은 왜 그래?' 가중된 채찍만 늘어나는 것입니다.
자, 끝날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여러분, 저 출정하는 남자…. 가난한 살림을 하다가 자기 어머니도 안 계시는데 여편네와 자식을 놔 놓고 군대에 가는 사람이 그걸 놔 두고 길 떠나게 될 때 기가 막히겠지요? 그런 것을 체험해 본 사람이 있을 거라구요. 그것도 잠을 재워 놓고 떠나야 되겠다 할 때 자는 시간에 떠나는 애비라면 애비의 마음이 어떻겠느냐? 그런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얼마든지 있어요.
내가 공석에서 여러분 앞에 몇 번 말했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을 사랑하지 않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없다 이겁니다. 그런 놀음을 해나온다는 거라구요. 자, 둘이 만나서 얘기해 보자는 거예요. 무슨 역사를 가지고 있느냐? 상상하지 못하는 놀음을 지금 하고 있는 거라구요. 그것은 왜? 대한민국의 미래는 이렇게 된다…. 내가 60년도부터 예고해 가지고 준비하라고 여러분한테 이야기했던 것이 지금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거예요. '세계는 이렇게 된다…' 그랬는데 그렇게 되기 때문에 여러분이 붙어 있는 거라구요.
이제 우리 갈 길은 지금이 아니예요, 지금. 종교 그 자체를 절대시해서는 안 됩니다. 혁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애국심을 갖되 나라만을 위해는 애국사상을 가질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세계적인 시대로 들어왔기 때문에 세계를 위할 수 있는, 보다 차원 높은 애국사상을 갖지 않고는 이 민족이 세계에 있어서 주도적인 사명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선진국가에도 선교부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이거예요. 통일교회 교인은 자기 새끼들을 사랑하지 말라 이겁니다. '세계인을 자기 새끼같이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가라!' 꿈같은 이야기인데 사실 그러구 있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도 부모를 버린 사람입니다. 처자를 버린 사람입니다. 내가 사랑하던 모든 외적인 인연을 다 버렸다 이거예요. 그렇게 버려 가지고 찾았다고 하는 패들이 여러분이라구요. 결국 내 인생은 뭐냐?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던 그 관념이 벗어지지 않았다, 처자를 대하던 내 생각이 벗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를 버렸던 것은, 그보다 나은 것을 찾기 위해서 버렸는데 오늘날 그보다 나으냐, 못하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못할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버리고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버리고 못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을 풀고 한 중의 한을 푸는 겁니다.
부모를 버린 죄라고 할까, 처자를 버린 죄라고 할까? 그 죄값으로 알고 응당히 받을 탕감으로 알고 간다는 생각 외에는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구요. 그들이 모르거들랑 가르쳐 주고, 가르쳐 줘도 모르거들랑 보여 주고, 보여 줘도 모르거들랑 그 자리에 세워 체험을 시켜서 가자 이겁니다. 밥을 해 가지고 상을 차려서 숟가락에 반찬을 얹어 가지고, 입을 안 벌리니까 입을 벌려 가지고 몰아 넣어 줘도 안 먹어요? 입을 떡 벌려 가지고 먹이니까 맛있거든요. 이러고….
여기 통일교회 들어온 여러분, 통일교회 선생님이 좋아서 통일교회에 들어왔어요? 전부 다 눈을 흘기면서 '저 사람이 뭐 벌거벗고 춤추는 패지?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는 패지?' 그런 사상이 없어질 때까지는 몇해가 걸리는 거라구요. 그래도 고마운 줄은 모르고 뭐 쓰다 달다 타박이 수두룩하다는 거라구, 이 쌍것들! 그건 망할 것들이예요. 안 망하면 내가 망하게 해줄 거라구요. 그건 망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패는 문선생과 상관없다구요. 그런 마음 있거들랑 보따리 싸 가지고 살짝 갔다가 몇해 후에 오라는 거예요. 방해가 되는 거라구요.
못살았던 사람들은 누구나 다 들어오느냐? 아니야, 아니야! 통일교회는 누구든지 다 들어오지 말라구요. 내가 필요한 사람 외에는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구요. 그러면 필요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자기 자식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는 사람, 나라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는 사람 이 세계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을 안식시키기 위한 운동을 하는 사람….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해방시키고 예수를 해방시켜 드리자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예수의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예수를 해방 못 시킨 것 아니예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지 못했으니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리지 못한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나중에는 예수 장가까지 보내 줘야 되는 거라구요.
이런 말을 한다고 이단이라고 하는데, 누가 이단인가 두고 보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신부를 찾기 위해서 2천년 동안 별의별 죽고 살고, 못사는 놀음을 했는데, 예수님의 신부를 찾아 가지고 혼인잔치 준비해 주겠다면 예수님이 나빠할 게 뭐예요? 하나님도 그것 못한 것이 한인데, 하나님이 나빠할 게 뭐예요? 그게 이단이예요? '장가들지 못한 노총각들,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시집가지 못한 처녀들, 올드 미스가 되어 가지고 노처녀로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하면 좋겠어요?
어머니가 안 계신 80세 노인 아버지도 그 아들딸이 모여 앉아서 쑥덕 쑥덕하면 '왜 쑥덕공론하니?', '아버지는 몰라도 돼요!','야 너희들은 지금까지 효자노릇을 잘했는데, 오늘 아침따라 왜 아버지는 몰라도 된다고 하니? 왜 그런 반대 말을 하노? 내가 섭섭하지 않나?', '아니예요, 아니예요' 하면 '아니긴 뭐가 아니냐!' 하며 아버지가 성이 나서 투덜투덜하게 되면 '아버지, 딴 게 아니예요. 우리가 어머니를 한 분 모시려고 공론했어요!' 할 때, 그 아버지가 '아, 그래, 그놈의 효자 효녀들한테 내가 괜히 그랬구나. 아이구…'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여기 남자들은 통할 거라구요. 자기를 위해서 쑥덕공론하고 그래도 그 아버지는 좋아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라구요.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구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한테 물어 보지도 않고 '하나님 잠깐만 기다리소. 우리 쑥덕공론하는데…' 이래 가지고 새벽부터 해 가지고 하루, 이틀, 사흘, 한 일년 동안 쑥덕거리느라고 인사도 못하고 알아보지도 못하고 있더라도 하나님이 볼 때, '야 야, 이녀석 아! 왜 그래? 아침 저녁으로 인사해야지?' 할 때, '아니, 조금 기다려요. 조금 기다려요. 하나님…' 하나님이 기분 나빠서 '이 녀석' 그러면, '그럴 수 있는 내용이 있어요. 조금 기다려요, 기다려요' 하면, 하나님이 '야, 이놈아!' 하며 벼락을 치겠다고 하면, '그렇습니까? 벼락을 치면 하나님 망합니다' 해 가지고…. 그렇게 하나님을 위한 것을 보고하게 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벌주겠어요? 부모의 염려할 것을 먼저 염려하면서 부모 앞에 알리지 않고 하려고 하면 '야, 요놈의 망할 녀석아' 그러겠어요? '야, 이 녀석이 저만큼 컸구나…' 한다는 거예요. 그런 길이 있다구요. 이건 자기를 위해서 '나 천당가겠다'고 그런 시시한 통일교회 문선생이 아니라구요. 천당은 이미 몇번씩 갔다 왔고, 모든 것 다 알고 있는 거라구요. 천국에 가게 되면 제 1은 어떻게 되고 제2는 어떻게 되고, 수속절차며, 누가 환영 나올 것까지 다 알고 있는 거라구요
여러분 보라구요. 여러분에게는 필연적인 길이 있는데, 죽음길이 필연적인 길이예요. 우연적인 길이예요? 대답해 보라구요. 「필연적인 길입니다」 절대적으로 필연적인 길이예요. 자, 그때는 남편 데리고 가지요? 여편네 데리고 가지요? 아들딸 데리고 가지요? '제발 데리고 가라. 안 데리고 가면 큰일난다'고 해서 데리고 갈 수 있어요? '아이쿠, 당신은 오지 말고 남으소' 하면서 떼어 놓고 가야 된다구요. 아들딸에게도 '야 야, 오지 마라, 오지마라. 나 혼자 가겠다' 하며 혼자 가는 거라구요. 자기 혼자 가는 겁니다.
자, 슬쩍 한 고개만 넘어가면 영계가 없는 게 아니예요. 앞으로 이제 초감각적인 시대가 와요. 영통을 안 하는 사람이 없을 때가 옵니다. 이제 사람들이 이 지구성을 습격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그 다음에는 영인들이 습격해요. 사탄 마귀가 지금 습격하고 있지만, 선한 영들이 습격할 때가 오는 거예요. 그런 길을 닦기 위해서 내가 이러고 있다구요. 자식을 대한 부모의 입장을 보더라도 사랑하는 자리,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그 자식을 위해 줄 수 있는 부모가 있기 때문에 좋은 거예요.
여러분, 이제는 요만큼 왔어요. 누가 부정하더라도 안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또, 죽음길은 안 갈 수 없는 길입니다. 혼자가게 될 때는 어떡할래요? 황량한 영계가 벌어지면 어디로 갈 거예요? 국적이 있어요, 국적? 국적이 없는 민족이 어디로 가요? 집이 있어요, 어디로 가요? 제일 무서운 세계가 됩니다. 거기에는 사탄이 올 것이고, 거기에는 천사도 올 것이라구요. 사탄편에 서 있으면 천사도 안 온다구요.
이렇게 될 때, 죽고 나서 눈을 번쩍 뜨고는 영계가 있는 걸 알게 될 것이고, 그때 사탄이 끌고 가면 어떻게 할 거예요? '야 야, 네가 앞장서라' 하며 이러고 달려들 거라구요. '가자 가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길이 있다고 생각할 때 여기서 잠이 와요? 그것은 필연적인 길이라구요.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그러한 놀음에 대해서 심각한 사람이라구요. 사후에 어떻게 되느냐? 내가 영계에 가는 날에는 누구 누구가 올 것이다. 다 만들어 놨다구요. 알겠어요? 공자니, 석가니, 뭐 예수니, 그들의 비밀을 내가 다 알고 있다구요. 예수님도 딱하신 심정…. '당신이 이래서 죽지 않았어요?' 하면, '그렇고 말구. 어쩌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런 것을 다 알아?' 그러는 거예요.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하고 친구도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주님! 주님!' 할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러지 않는다구요. 친구지간이라구요. 이런 말 하니까 이단이라고 하지. 누가 이단인가 가 보라구요. 그거 다 닦아 놓고 가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땅 위에 누구 누구가, 문 아무개가 갈 때는 자그마치 영계에는 대소동이 벌어질 것이다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놀음 하는 거예요. 그것이 안 믿어지거들랑 당장 기도해 봐 가지고 알아보라구요. 이게 통일교회의 하나의 협박 같은 말이라구요. 모르겠으면 기도해 봐라… 기도해 봤다가 진짜인지, 진짜가 아닌지 판 틀리면 어떻게 될 거에요? 그런 내용이 다 준비돼 있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가기란 힘들지만 나는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은 어디로 갈래요? 준비돼 있어요? 죽게 될 때에는 통일교회 패들은 '아이고 선생님, 내가 죽어서 영계에 가니까 부탁합니다' 그때 가서 준비 안 된다구요. 그 준비는 땅에서 해야 돼요.
땅에서 수속을 밟아 약혼식을 하고 예장(禮裝)을, 치장을 하고…. 그 준비를 해야 되는 거라구요. 자신 있어요? 그 남편이 영접을 하겠어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영접을 하겠어요? 못하는 거라구, 못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후에 벌어질 비운의 역사를 생전에 다 가려 놓아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니 갈 길이 바쁘다구요. 자, 그 길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준비를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되겠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바쁜 거라구요.
자, 그러니까 땅 위에 사는 모든 습관성을 이제는 청산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내가 느끼는 감각부터…. 내가 무엇을 보게 되면 좋든가 나쁘든가 둘 중의 하나가 결정됩니다. 내게 이익 되느냐, 마이너스 되느냐, 둘 중 하나를 결정하게 마련입니다. 손을 한번 이렇게 했으면 그것이 좋은 손길이냐, 나쁜 손길이냐? 하나님이 좋아하는 손길이었느냐, 사탄이 좋아하는 손길이었느냐? 내가 어디에 갔다 오면 그것도 둘 중의 하나로 결정된다구요. 자, 하나님이 좋아하는 길을 갔다왔느냐, 선할 수 있는 자리에 갔다왔느냐? 사탄이 좋아하는 자리에 갔다왔느냐, 악할 수 있는 자리에 갔다 왔느냐? 둘 중의 하나라구요. 전부가 그렇다구요.
밥을 먹고 나서, 아침밥을 먹고 나서 그 밥이 소화될 때에 하루의 생활이 선한 편에서 살았느냐, 악한 편에서 살았느냐? 둘 중의 하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 판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보는 것도 그렇고, 듣는 것도 그렇고, 내가 느끼는 것도 그렇고 사는 것도 그렇고…. 여편네면 여편네, 남정네면 남정네 끼리끼리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둘이 합해 가지고 보다 나을 수 있는 선한 가정을 이루었느냐, 악한 가정을 이루었느냐? 전부가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가정이 살아 가는 데도 전부 다 그렇다구요. 서로가 좋아하더라도 사탄편에서 좋아하느냐, 하나님편에서 좋아하느냐? 나라가 나가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나라의 운세 가운데 서 있느냐, 사탄이 좋아하는 나라의 운세 가운데 서 있느냐? 끝장이 나지 않았을 뿐이지, 그 과정에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세계를 볼 때도 하나님이 좋아하는 세계냐, 사탄이 좋아하는 세계냐, 둘 중의 하나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는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왜? 몸과 마음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열매맺힌 것이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입니다. 철학이나 사상도 그렇게 돼 있습니다. 유물사관이니 유심사관이니 하는 것도 둘로 돼 있지요? 하나는 몸을 대표한 세계관이요, 하나는 마음을 대표한 세계관입니다.
몸뚱이 편은 '신이고 하나님이고 없다' 하며 들이죄기는 거라구요. 그것은 사탄입니다. 마음 편은 '하나님이 있다' 하며 몸뚱이 편을 들이죄긴다구요. 이것이 언제 하나되느냐? 몸뚱이가 하나되기 전에는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몸뚱이가 하나되기 전에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면 몸뚱이가 언제 하나가 되느냐? 여기에는 몸뚱이 혹은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창조원리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면 보다 높은 하나님이 임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돼 있어요. 그렇지요?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날에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하나가 되는 날에는 중심을 통해서 전류가 흐르는 것이다, 그렇게 돼 있다구요. 알겠어요? 거기에서는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작용의 모체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기의 원리입니다. 마찬가지라구요. 요렇게 돼 있어요.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거들랑…. 마음과 몸을 보면 마음은 주체요, 몸뚱이는 대상입니다. 이것이 둘이 싸우게 됐는데, 왜 싸우게 됐느냐? 요 몸이 플러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타락입니다. 알겠어요? 타락이 뭐냐? 주체되는 마음 앞에 몸이 영원한 대상이 되어야 될 텐데, 이것이 또 다른 주체가 되었습니다. 그게 타락입니다.
오늘날 동양철학으로 말하면, 상대적 관계이기 때문에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구요. 그 어두움은 빛을 따라가기 위한 어두움이지, 빛이 왔는데 '야, 못 온다!' 하며 막는 그런 어두움이 아닙니다. 조그마한 빛이 아무리 어두운 데에 있더라도 그 빛에 따라 가지고 그 어두움은 자유통과 해 가지고 점령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돼 있다구요. 어두움이 빛을 반대해요?
사탄은 무엇이냐? 또 다른 주체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이 죄입니다. 교만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절대 주체자인데 자기를 절대시하게 되면 이것은 사탄 족속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어저께도 얘기했지만 절대복종이 원칙입니다. 절대복종하라는 것은 뭐냐? 절대적 주체 앞에 절대적인 마이너스가 되라는 말입니다. 마이너스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 절대적인 주체하고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하나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의 그 무슨 힘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들 수 있는 것은 뭐냐? 보다 높은 하나님의 사랑의 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러냐? 하나님은 본래 계시며, 플러스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왜 창조했느냐? 하나님도 혼자서는 행복이 없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말은 상대적 관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말도 상대적 관계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좋다는 말도 상대적 관계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자기 혼자서 행복하다는 사람 있어요? 혼자 좋다는 사람, 그건 미친 녀석이라구요. 혼자 기뻐하는 녀석은 미친 녀석이라구요. 좋고, 사랑이고, 행복이고, 바람이고 하는 것은 차원 높은 의미의 상대적 관계를 요구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이고, 거기에서 행복의 요건의 등위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하나님도 상대가 없어서는 큰일나겠기 때문에 상대적 존재로 지은 것이 무엇이냐?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존재로 계시느냐 하면 이러한 주체로 계시는데, 이것을 형으로 보면 강하고 약한 플러스 마이너스의 소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판서하며 말씀하심) 그래 가지고 그것이 하나되어 가지고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요 원칙을 따라서 만물은 발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그러한 주체가 피조물을 지은 것은 왜냐 하면 이러한 상대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이 상대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가 그냥 그대로 떨어져 나와서는 행복하지 않은 거라구요. 요 상대들도 행복하려면 요것이 갈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 놓은 것이 남자요 여자입니다. 요것이 합해 가지고 행복을 이루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한 남자에게도 이러한 마음과 몸의 관계가 상대형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에게도 상대형이 있다는 거예요. 여자에게도 마음과 몸이 있는 것입니다. 요런 원칙으로 우주는 구성되어 있다구요. 알겠어요? 요것은 마이너스 소질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이요, 요것은 플러스 소질을 많이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들을 왜 이렇게 갈라 놓았느냐? 왜 갈라 놓았느냐 하면 이것들도 행복을 느껴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남자 자체만 있어 가지고는 안 되겠으니까 여자로 갈라놓은 것이요, 그것은 여자 자체와 남자 자체를 서로 행복하게 하기 위한, 횡적인 행복권을 만들어 가지고 서로 하나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한 것이 뭐냐?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 없이는 하나되는 법이 없어요. 그렇지요? 남자와 여자를 하나 만드는 것은 무엇이예요? 사랑이라구요, 사랑.
남자와 여자를 하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 하면, 요 자체내에서 하나 만드는 것은 무엇이냐? 다시 말하면,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드는 작용은 무엇이 하느냐? 무엇이 해요? 가만히 생각해 보라구요. 그것은 재창조역사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적 목적을 추구하는 데서 가능합니다. 마음이 원하는 목적과 몸이 원하는 목적을 발견하게 될 때는 거기에서는 하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거 왜 하나되려고 하느냐?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익되기 때문에 자기를 부정하면서도 하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적 노정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창조했느냐? 창조를 왜 하게 됐느냐? 하나님밖에 없는 자리에서 피조물을 창조할 때는 어떤 입장이냐? 자기를 소모하는 입장입니다. 에너지를 투입해야 되는 것입니다, 에너지. 안 그래요? 에너지를 투입하게 되면 손해가 납니다. 손해가 나는데 하나님이 왜 기쁘냐? 이게 문제라구요. 왜, 기쁘냐? 하나님이 '선한지라' 하셨는데, 언제 선하냐 하면 힘을 투입할 때에 선한 것이 아닙니다. 힘을 다 투입해 가지고 그 물건이 완성한 물건이 되었을 때인데, 그때 그 완성한 물건에서 무엇이 생기느냐? 예를 들어 말하면, 남자가 완성하면 여자가 완성하도록 하는 데는 무엇이 있느냐 하면, 여기에는 주체와 대상 관계를 맺기 위한 사랑의 힘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힘은, 남자가 완성하고 여자가 완성하여, 사춘기 시대를 지내 가지고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랑의 힘은 그 남자보다도 강하고, 여자보다도 강하기 때문에 통일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나 서로서로가 부부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길에서는 자기 생명까지도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보다도 강한 것입니다. 요 힘이 왜 있느냐? 요 힘이 왜 있게 됐느냐?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것을 투입해 가지고 이 사랑이 완성된 후에는, 그것이 사춘기와 마찬가지의 완성권에 왔으면, 여기에서는 보다 강한 힘의 사랑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하기 위해서 열만큼의 힘을 투입했는데, 여기에 또 다른 하나님의 본성의 대상적인 사랑의 힘을 투입하게 되면, 먼저 투입한 것보다도 강하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이라구요. 그렇지만 인간이 완성돼 가지고 사랑이 가중하게 될 때는 하나님이 투입한 힘보다도 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학의 원칙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생명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요것을 소모시키게 되면 어떤 게 돌아오느냐? 요런 힘이 되어 가지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열만큼 힘을 소모시켰지만 그 힘이 돌아오게 될 때에는 열만한 힘을 투입한 그것을 중심삼고 또 다른 상대의 이념을 추구하는 존재적인 힘, 다시 말하면 사랑의 힘을 가해 가지고 돌아오기 때문에 이것은 요것보다도 강한 힘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손해 보는 입장에서 투입했지만, 여기에 작용을 투입했지만 그 이상의 사랑을 통해서 자극을 느낌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감이 안 나거든 예를 들어 보자구요. 아들딸을 낳은 부모가 고생을 죽도록 했지만, 그 아들딸이 어머니를 점점 더 알게 됨에 따라 가지고 엄마 앞에 반겨 들게 될 때는 그 어머니는 그때까지 수고한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것은 무엇 때문에?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기 때문에 창조하고 나서 기뻐했다는 겁니다. '선한지라' 사랑이 그 상대에게 미쳐지지 않게 될 때에는 선하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되는 것입니다. 요렇게 된 거라구요.
남자나 여자가 다 성숙하게 되면 사춘기 시대에서 반드시 입체적인 힘에 의해 상대를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개체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플러스 입장에 서 있는 마음과 마이너스 입장에 서 있는 몸뚱이가, 즉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는 사춘기 시대가 왜 없느냐 그거예요. 알겠어요?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내 개체는 왜 하나되려고 하지 않느냐? 요게 모순이라구요.
남자와 여자는 하나되려고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나되려고 하는데 왜 내 몸과 마음은 하나되려고 하지 않느냐? 그렇게 하나되려고 하지 않는데, 플러스적인 남자와 마이너스적인 여자는 왜 하나되려고 하느냐? 이것이 역설적인 입장입니다. 그거 이상하다는 거예요. 자,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타락입니다, 타락. 타락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 타락으로 인해 또 다른 플러스가 생겼기 때문에 서로 반발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플러스 입장에 서지 말고 마이너스 입장에 서라고 합니다. 완전히 희생하라! 완전히 복종하라! 그러면 우리 개체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게 되고,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천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개인에게 있어서 이것이 하나되면 무엇이 나오느냐? 중심이 생겨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가 들어오기 때문에 영통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계를 통해 버리는 입체적인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자기의 몸뚱이는 여지없이 마음을 위한 하나의 길로 규합되는 것입니다. 이걸 하나되게끔 해 가지고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살아가야 할 것이 본연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물에 빠지고, 병이 났으니 구원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주가 필요한 거예요.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됩니다. 자,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요것이 상대적 관계에서 남자 여자를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그래서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는 남자 여자를 갈라 놓아 가지고 요것이 비로소 하나되면 부부를 이루게 되고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요것이 플러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하나 돼 가지고는 마이너스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높은 곳을 바라보고 나왔지만, 끝에 가서는 플러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요것이 절대적인 플러스 앞에서는 마이너스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돌아가던 것이 결국 180도 돌아섰다는 말이라구요. 안 그래요?
인간들이 지금까지 바라고 나온 것은 전부 다 자기를 중심삼은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출세를 꿈꾸며 나간다구요. 알겠지요? 전부 다 세계적 출세를 하려고 하는데, 세계적 출세를 알아요? 여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남편을 얻어가려고 하고, 남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자를 얻어가려고 한다구요. 그걸 바라볼 때 자기 중심삼아 가지고 보다 높은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요것보다 플러스적인 가치를 찾아가지만, 세계 끝에 남자와 여자가 딱 완전히 차지하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자기가 플러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이너스가 되어 내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었으면 대통령 위의 자리를 또 찾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찾아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국민을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완성을 이루게 되면 이 주체는 마이너스를 찾아나가야 되고, 여기의 마이너스는 플러스를 찾아가는 길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플러스적인 입장에서 인간의 욕망을 두고 찾아 나갔지만 최후에 가서는 '팩'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왜 돌아서야 되느냐? 절대적인 주체 앞에 절대적인 마이너스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때가 천지개벽이 벌어지는 때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 원리로 말하면 왼쪽으로 주려고 하던 것을 바른쪽으로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지금까지의 입장을 완전히 부정하는 놀음입니다, 부정. 요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한 길을 애당초 가야 되기 때문에 '우리는 아예 전부를 부정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자리까지 가자. 말세까지 달려가자' 하는 것이 기독교 사상입니다. 말세까지 가서는 절대적인 마이너스가 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고기압권이니 나는 절대적인 저기압권이 되자는 거예요. 절대적인 저기압권이 되면 나쁘냐? 절대적인 저기압이 되면 절대적인 그분으로부터 모든 것을 채움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소성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것이 완전히 차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같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나중에는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같아집니다. 여기서 통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 몸뚱이를 사랑하라' 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전부 다 이렇게 돼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원칙을 두고 볼 때, 끝날은 어떤 때냐? 자기가 믿어 오던 그 종교를 가지고 그냥 그대로 일방통행으로 하나님 앞에 못 간다. 나라도 못 간다. 세계도 못 간다. 부정하고야 간다. 이런 논리가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뜻을 세울 수 있는 완전한 종교는 완전 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이게 이론적이라구요. 오늘날 종교에 끝날이 다가왔으니, 국가와 세계의 운명에 끝날이 다가왔으니, 이때에 인간이 필연적으로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횡적인 이념을 찾아 나가는 역사가 지금까지의 세계 역사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참다운 남자와 여자들로서 구성된 인생관이 설정되어야 되고 세계관이 설정되어야 됩니다. 그것은 개인을 넘고, 민족을 넘고, 세계를 넘어 가지고 하늘땅이 통할 수 있는 사상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을 표방하고 그러한 사상의 길을 따라가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래서 '통일'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 통일은 무엇을 중심삼고 해야 되느냐? 인간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천륜과 인륜이 합해져야 합니다. 인륜과 천륜은 무엇을 중심삼고 합하여질 것이냐? 인간의 욕망을 두고 보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위가 될 것이냐, 하나님의 며느리가 될 것이냐 할 때, 하나님의 사위나 며느리가 되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보다 높은 것이 뭐냐? 아들딸입니다. 아들딸 이외의 것을 원치 않는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어떤 자리에서 사랑할 것이냐? 인륜과 천륜이 있으면 인정과 천정이 있을 것이거늘, 인정과 천정이 연합될 수 있고 통일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인류는 아들딸이 되는 자리입니다. 그 이상의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가 하나님을 대해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우주의 근본을 설파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여러분들, 지금 무엇이 되려고 그래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고 한다구요. 그렇지요?「예」 세계 대통령이 되더라도 하나님의 아들딸까지는 못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더라도 어떤 아들딸? 반대되는, 불효한 아들 딸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의 마음을 점령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들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하기를 '독생자'라고 하였습니다. 독생자는 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자격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예수가 신랑으로 오기 때문에 신랑되신 예수님을 기다리기 위한 종교가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 종교는 최후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까 말한 거와 같이 부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라도 없고 세계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통일교회는 종교 중에 보다 나은 종교라야 됩니다. 통일교회 사상은 나라를 위하는 어떠한 사상 이상 나라를 위하는 사상이 되어야 되고, 세계를 위하는 어떠한 사상 이상의 주의 사상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 다 연결되어야지, 동강이가 나고 따로따로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합된 귀결점을 가릴 수 있는 새로운 이념적, 사상적, 애국적, 혹은 종교적 내용을 일원화해 가지고 그 목적의 세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것이 뭐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끝날에 모든 것을 부정해 놓고, 간절히 바랄 것은 하나님의 사랑 외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심정의 역사를 말하는 겨예요. (판서하심)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심정통일을 말하는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반대하는 거예요. 심정통일이 벌어지면 생활통일은 자동적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부부끼리 하나되어 심정통일이 벌어지면 행동은 남편 가는 데 그 아내는 따라가지 말라고 해도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아버지와 자식지간이라면, 아들이 가는 데 아버지가 따라가려 하면 그 아들이 '아버지, 오지 않아도 돼요' 하더라도 그 아버지는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주관할 수 없고 제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병사가 동원되고 인류가 동원되더라도…. 자기를 낳아 주고 길러 준 아버지로 알고 키움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의 아버지로 알고 자식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 어떠한 설법과 어떠한 방법을 가지고 사랑하는 그 사이를 끊을 무엇이 있어요? 그것은 출발부터 통일이요, 생활 자체가 통일입니다. 그 무엇이든지 통일할 수 있는 원칙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 못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귀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보다 높은 것을 절대시하는 자리에서 절대적인 하나의 기준을 바라니 절대적인 기준에서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라는 것이 남아 있으면 아직까지 사탄세계의 플러스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은 반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깊은 불평불만을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감사와 만족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십자가의 자리에 나가더라도…. 예수가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기도드릴 때, 엉엉 울면서 기가 막힌 입장에서 '아이고 나 죽지 않겠다'고 그랬다면 구세주도 못 되고, 부활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도 감사로 기쁨으로 맞이해야 된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본래 우리 인간은 기쁨으로 와서 기쁨으로 살다가 기쁨으로 죽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원칙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권내에 들어왔더라도 기쁨으로 감사하고 살다 가야만, 하늘과 더불어 그럴 수 있어야만 천국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죽어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 필연적으로 찾아가야 할 길은 '내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옵소서' 해야 합니다. 내 몸과 마음이 갈라져 가지고 역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던 투쟁의 역사는 지금 내 가슴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
바울이 말하기를 마음의 법과 몸의 법, 둘이 서로 싸우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이 싸움에서 누가 나를 구해주리오' 하고 탄식을 했다구요, 바울까지도. 예수님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도 그 싸움에서 정신을 똑똑히 차리고 싸웠던 거예요. 예수님도 사람이라구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몸도 굴복하고 마음도 굴복할 수 있는 자리에서,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체적인 사랑을 가지고 절대적인 상대적 입장을 취하려니 내 뜻 말고 하나님의 뜻을 강조했던 거예요.
다시 말하면, 남편만을 위하는 아내는 없어진 것 같지만 남편을 싸우지 않고 점령하게 마련입니다. 그거 맞아요, 안 맞아요? 자기 아내에게 명령하고 교육하지 않더라도 남편이 끝까지 아내를 위하려 할 때는 그 아내는 그 남편을 위하지 말라고 해도 더 위해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도리를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왜 싸웠던가? 거기엔 '나'라고 하는 것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천사장이 타락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냐? '나'라고 하는 자각 때문입니다. 자체 자각을 한데서부터 타락한 것입니다. 자체 자각이 남아 있는 여자는 시집가더라도 남편하고 하나 못 되는 것입니다. 주체 자각을 자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체 자각을 부정해 놓고 하나님을 중심한 주체 자각을 해야 됩니다. 나는 상대적 존재이기 때문에 상대적 자각을 부정하고 주체적 자각을 하는 데서부터 새로운 인간의 복구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심전(心田)을 계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그렇게 돼 있다구요.
효자는 무엇이냐? 절대적으로 부모만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충신은 뭐냐? 군왕만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열녀는 뭐냐? 남편만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거기에서부터 이상(理想)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에서 주는 사람, 그럴 수 있는 자리에서 받고 있는 사람….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입장에 계시느냐? 지금까지 주체적인 입장에서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일해 나오신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일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요, 그렇기 때문에 주체인 것입니다. 언제나 주체인 것입니다. 그 주체를 주체로 모시기 위해서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절대적인 상대가 되려니 절대복종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 저기압권이요, 절대적으로 하나될 수 있는 비법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서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당신이 진정 나를 사랑하오?' 하고 물을 때, '아이고 사랑하지. 세계보다 더 당신을 사랑하지. 그렇지만…' 할 때는 싫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 마음에서 요만큼 남아 있어' 할 때는 기분 좋겠어요? 요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주체가 되어 있다구요. '요만큼만 남아 있어' 할 때는 지금까지 좋다는 것이 도리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절대적으로 있어라. 절대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살아라. 그래서 남자가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상대를 위해 태어난 거라구요.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태어난 거라구요. 여자가 여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남자가 남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구요.
이런 점에서 볼 때, 모든 존재는 자기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서 모든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계적인 이 종말시대에 있어서 자기 종교를 중심삼고 볼 때, 그가 하나님이 향하는 방향과 일치되지 못한 입장에서 자기를 주장하는 입장에 있으면 이는 망하는 것이요, 국가면 국가도 하나님의 섭리역사관에 일치되지 못하면 망하는 것이요, 어떤 주의도 거기에 일치되지 못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지 않는 비결은 무엇이냐?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입장에서 주체만을 위할 수 있는 사상의 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정을 알아야 되고, 하나님의 희망을 알아야 되고,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된다, 여기까지 올라간다는 거예요. 남편 앞에 열녀가 되기 위해서는 남편의 사정을 알아야 되고, 소원을 알아야 되고, 심정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만이 비로소 새로운 종교관, 새로운 국가관, 새로운 세계관이 발현될 것입니다.
그 발현된, 그 인연된 통일적인 내용이라는 것은 인간 누구든지 요구하고, 국민 누구든지 요구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인류사에 있어서 누구나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주체가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만을 위할 수 있는 세계에 포괄되고 거기에 안식할 수 있는 자기 생명의 가치를, 온 주체와 더불어 하나된 자리에서 찬양할 수 있어야만이 보다 절대적인 이상형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그래야만 하나님이 계신 맨 안방에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만이 그렇다는 거예요. 아무리 노동자의 딸, 아무리 무식한, 유치원도 못 간 그런 여자라도 그 나라의 주권자와 사랑관계를 맺으면 그 나라의 국모가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이 형편없고 사탄의 제물밖에 될 수 없는 입장이지만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되면, 하늘의 본궁 그 안방까지도 들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들어갔다가 나오고 나왔다가 들어가고 자유로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희망의 자리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 앞에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야 할 필연적인 운명의 길이요, 필연적인 귀결점이요, 필연적인 역사의 노정인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이것에 골인할 수 있는 자체를 찾아야 되고, 가정을 찾아야 되고, 국가를 찾아야 되고, 세계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데서만이 본연의 나, 몸과 마음이 분열되지 않은 결렬되지 않은 통일된 나로서의 귀결점에 비로소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인간역사를 청산하고, 비로소 내 자체의 인간으로서 승리했다는 우주사적인 가치를 들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당히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소원의 길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필연적으로 추구해 나가야 할 길이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금년에 우리는 '통일전선 수호'라는 엄청난 표제를 내걸고 1월부터 8월까지를 지냈습니다. 오늘은 9월을 맞이하여 3일째 되는 날이요, 이달에 있어서 처음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날 아침에 '필연적인 길' 이런 내용을 가지고 말하였습니다. 당신이 소원하고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통일된 당신의 사랑의 대상의 실체가 되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사탄의 종이 됐고 사망의 족속이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되살리기 위한 구원섭리의 길을 닦아 나온 것이 종교요, 그 종교사상 가운데 있어서 신랑신부의 이념을 가릴 수 있는 길이 남아 있는 것이 기독교역사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체적인 사상을 중심삼고 마음적인 면의 민주세계를 대표해서 기독교 문화권이 그 주도적인 입장을 가려 나오지 않을 수 없겠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권을 창건하게 된 줄을 압니다.
이 세계 가운데서 자기 나라만을 사랑할 수 있는 민주주의, 이것은 이미 실험이 끝난 세계적인 말로에 처한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 나라를 희생시키더라도 보다 넓은 차원에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는, 하늘 주체를 위한, 자기 나라를 희생시키면서라도 세계를 살리기 위한 민주주의가 되지 못한 것이 지극히 비통한 사실이옵니다.
아버님, 오늘날 우리는 이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일개국을 위주로 한 애국심에 사로잡힌 그런 민족성을 타파하기 위한 운동을 벌여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종족을 초월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자기의 혈족을 민족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자기의 종족을 세계인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인류보다도 하나님을 덜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통일로 갈 수 있는 방향은 이미 제시됐습니다. 목적의 세계도 이미 제시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아버님의 사정을 통하고 아버님이 바라는 희망의 방향을 따라 가지고 아버님의 심정적 생활을 중심삼은 안식의 자체를 복귀하는 것만이 필연적인 운명의 길인 것을 이제 알았사오니, 내 마음 속에 아버님의 사랑이 있는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내 마음속에 아버님이 인연되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동으로 가게 되면 그 부모도 동으로 갈 수 있는 것이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기 때문에 아버님의 아들이라면 아들이 가는 곳에 부모되는 아버님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아버님이 계신 곳에 저희들이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입장은 다를지라도 묶어져 있는 자리는 한 곳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나고 싶은 자리도 서로서로의 사랑을 중심삼은 자리인 것을 알고 아버님의 사랑만이 우리의 행복이요, 아버님의 사랑만이 우리의 필생의 길인 것도 알았습니다.
이것을 바라보고 나가기 위한 싸움을 우리는 전개했사오니 끝까지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최후까지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강한 원수가 있더라도 이것을 직시하면서 내가 사랑의 힘을 가지고 포괄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갖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묵묵히 그길을 위하여 밀실에서 기도하고 그 사랑의 길을 따라가야 할 것이 하늘의 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죽음의 길도 넘고 가야 되겠습니다. 나라를 버리고라도 이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인류를 버리고라도 새로운 인류의 현현을 위하여 저희는 선두에 서 가지고 이 인류를 각성시키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러한 방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이러한 길을 가기 위한 것이 통일의 무리였사옵니다. 개인을 버리지 않고는 가정을 찾을 수 없는 것이요, 가정을 버리지 않고는 아버님이 원하는 종족을 찾을 수 없는 것이요, 종족을 버리지 않고는 아버님이 원하는 나라를 찾을 수 없는 것이요, 이 땅 위의 나라를 버리지 않고는 아버님이 원하는 세계를 이어받을 수 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저버리고 나섰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오로지 아버님을 중심삼은 통일입니다. 내 개체도 아버님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을 통일하고, 가정도 그러하고, 교회도 그러하며, 민족이면 민족, 분열된 한국 자체를 두고 보더라도 그와 같이 해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오른편 왼편, 양편이 아버님 자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묶어질 수 있는, 열 손가락이 하나로 묶어질 수 있는 길 이외에는 길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버님이 이 나라의 주체적인 새로운 이념적 국가의 중심이 되어 주기를 저희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이 세계도 좌우로 갈라져 있사온데,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키이 포인트(key point)가 한국이옵니다. 한국에서 이것을 가려냄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으로 불이 붙여질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싸워 나가고 있사오니, 통일의 운세를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남북이 엇갈린 입장을, 아버지여, 살피시옵소서. 몸과 마음이 엇갈린 이 운명길을, 아버님의 사랑을 더듬어서 아버님의 인격관과 하나님의 세계관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옵고, 지도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기 위해 초월적인 것을 바라는 이 국민이 되지 않고는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길을 위해서는 저희들은 싸워야만 되겠습니다. 이 길을 위해 저희들은 개척해야만 되겠습니다. 이 길을 위해서는 악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선만을 위주해 가지고, 싸움길에서 지치지 말고 최후의 적진을 직시하면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당당히 진군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어야 되겠사오니, 그러한 아버님의 사랑받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리하여 당신이 찾아오는 길을 상속받아 가지고 기필코 따라가겠습니다. 당신이 찾아오던 나라를 기필코 이루어 드릴 때까지 저희들이 싸우면서 따라가겠습니다. 당신이 찾아오던 세계를 이루어 드릴 때까지 저희들은 기필코 따라가겠습니다. 당신의 사랑의 자리까지 죽더라도 따라갈 것을 이 시간 맹세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이것이 아버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이 가야 할 필연적인 길인 것을 알았사오니, 아버님의 사정을 통하고 하나님의 소원과 더불어 아버님의 심정을 통하여 가지고 아버님의 마음을 자극시킬 수 있는, 사랑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고 아버님을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님께서 사랑할 수 있는 부부가 되고 아버님께서 사랑할 수 있는 부모의 자리까지 추구해 올라가야 할 방대한 소원의 길에서 낙오자들이 되지 않고, 희망 중의 희망을 가지고, 내일의 건설자가 되고, 내일의 무엇을 남기며, 내일을 품고, 내일을 위해 사는 무리가 되기 위한 것이 통일의 무리인 것을 이 시간 새로이 자각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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