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2년 8월 초하루이옵니다. 아버지여, 오늘부터 남은 이해의 5개월 동안에 이 나라와 이 세계를 당신의 경륜의 방향에 일치시키시옵소서. 그렇게 지루하게 섭리해 나오시던 역사노정에 있어서 소원성취의 때를 맞을 수 있는 금후의 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오늘은 새 달 새 아침이오니 당신이 특별히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어린 자녀들이 하늘이 기뻐하는 이 나라, 하늘이 주관할 수 있는 이 나라,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이 나라가 되기를 염원하면서, 불철주야 당신의 남아진 복귀의 뜻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희의 일체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남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가는 길은 저희들의 필생의 노정으로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될 길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남기신 복귀의 사명이 개인에서부터 가정과 국가와 세계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당신이 찾고자 하는 참다운 개인과 가정과 국가와 세계는 저희들이 생각하는 기준과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하늘을 사모하고 하늘을 위하여 따라 나가는 자신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부족과 불충과 미급을 느끼게 되옵니다.

그러나 이 땅 위에 당신의 뜻을 알고 섭리의 방향을 아는 무리가 없는 것을 보게 될 때에, 이들을 통해서라도 뜻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하늘의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알면 알수록 불쌍한 분은 당신뿐이옵고, 수고로운 수난길을 책임져야 할 분은 하늘뿐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여! 늘 불쌍한 자녀들을 위하여 수고하시는 아버지여! 저희들은 마음으로는 당신이 가는 길을 추구하고 있사옵고, 몸으로는 당신의 뜻앞에 충효의 길을 가고자 하옵니다.

지금까지 이들을 이끌어 나오셨사오니, 금후에도 이들이 당신과 더불어 행보를 맞추어, 당신의 영광의 한 터전을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되고 당신의 마음 가운데 협조할 수 있는 어린 자녀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아버지여! 통일교회의 역사가 짧은 역사이지만 그 이어 내려온 유래와 전통은 인류시조의 역사와 더불어 같이 내려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 시조들이 엮어 나온 역사는 기쁨의 역사가 아니고 비통한 역사인 것을 생각하게 될 적마다 아버지여, 저희들의 사명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더더욱 느끼게 되옵니다.

역사적인 슬픔을 품고 나오신 아버지를 위로하고 모셔야 할 것이, 온갖 지성으로 효의 도리와 충의 도리를 다해야 할 것이 응당 저희들에게 맡겨진 바의 사명이요 의무이지만, 늘 그러한 자리에 서지 못하는 불초한 모습들을 버릴 수 없는 자리에서 바라보고 나오시는 아버님의 안타까움이 얼마나 크신가를 저희들이 절절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런 연고로, 하늘을 위하여 자신을 갖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권위를 찬양하면서 수난의 제물의 노정을 바라보면서 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언제나 당신의 승리의 날이 오기를 바라는 저희들의 부족한 마음이라도 받으시사, 이 나라와 이 민족과 이 세계를 당신의 품에 품겨 드릴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오늘은 특별히 8월 초하루이옵니다. 아버지여! 이해의 후반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접때에도 이 자리에서 말하였지만, 이제부터 이 나라 이 민족이 가는 길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개인에서부터, 가정에서부터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온 가정들이 나라를 염려하고 남북의 통일을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 바쳐야 할 거국적인 시대에 처하여 있는 것을 느끼게 되오니, 여기에 하늘이 떠나서는 안 될 것을 잘 알고 있는 저희 자신들부터 본이 되어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식구라는 이름을 가진 저희들은 완전히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사명을 앞에 놓고 최후의 결정적인 호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 살되 얼마 살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땅 위에 어떠한 큰 욕망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욕망대로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없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늘이 바라는 그 욕망과 더불어, 하늘이 바라는 그 뜻과 더불어 저희들은 가고 싸우고 개척하고 달릴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늘과 더불어서는 가다가 쓰러지더라도 망하지 않는 것이요, 하늘과 더불어는 싸우다가 죽더라도 죽지 않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통일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최일선에 선 기동대원들을 지키시옵소서. 이들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널려 있사오니, 이들이 가는 곳곳마다 당신의 권위와 살아 계심을 드러내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위신을 존중시하시옵소서. 하늘의 뜻을 나타내시옵소서. 그리하여 인류 앞에 새로운 지표를 설정하여 금후에 인류들이 가야 할 방향을 확실히 제시할 수 있는 어린 무리들이 되게 하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일을 위하여 1972년도 금후의 역사를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한 나라를 위할 뿐만 아니라 세계만민을 끌고 가야 할 기관차의 사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맡겨진 책임이 막중한 것을 느끼면서도, 저희들의 힘이 부족하여 저희들의 힘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하늘을 믿는 마음으로 맡고 있사옵니다.

당신의 어려움을 생각할 때는 어려운 자리도 극복의 마음을 갖고 나가게 되옵니다. 수난길을 거쳐 나오신 당신의 죽음이 엇갈린 길, 선열들이 남기신 순교의 노정을 생각하면서, 저희들도 그와 동행하여 가겠다고 결의하고 나설 적마다 하늘이 지켜 주셨고, 길을 열어 주셨고, 모든 것을 보호해 주셨던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이여! 당신이 지켜 줄 수 있는 무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당신이 보호해 주시고 승리자가 되도록 직접 지도해 줄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체를 당신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당신 것으로 귀결시켜야만 된다는 이 원칙을 생각하게 될 때에, 부족하고 부족하고 또 부족한 것들을 당신이 굽어살피시옵소서. 주관하시어 당신이 원하시는 하나의 모습들로 세워 주시옵소서. 최후에 남아진 이 싸움터 위에서 당신의 보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게끔 노력할 수 있게 허락 하여 주시옵소서. 온갖 힘을 다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동정의 마음이 저희 생활에 머물게 될 때, 일신이 가는 행로에 혹은 생애노정에 머물게 될 때, 이들은 빛난 소망 가운데서 승리의 한 터전을 이 땅 위에 남기고 갈 수 있는 무리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 사는 길은 막힌다는 것을 원리를 배운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공적인 일을 위해서 저희들은 달려야만 되겠습니다. 이제 이 8월도 저희들이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산지사방하여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젊은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 누구의 한을 위해서 나선 것이 아니라 당신의 한을 위해 나섰습니다. 저희들은 고생을 위해 고생 가운데 태어났고 고생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고생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한이 없나이다. 당신의 한을 풀어 드리고 당신의 수난길을 감소시키는 것만이 저희의 소원이오니, 당신으로 말미암아 출발을 하였거든 과정도 그러하게 하시옵소서. 결과도 그래야만 되겠습니다.

청년시절을 그런 길에서 보냈으면 장년시대는 물론이요, 노년시대는 물론이요, 자기 일생을 그런 자리에서 보냄과 동시에, 일대에 사명을 이루지 못하였거들랑 진정히 자기 후손들 앞에 유언으로 남겨서라도 소원 성취해야 할 역사적인 사명이 저희의 어깨 어깨 위에 짊어지워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이여 ! 불쌍한 모습으로서, 하늘을 흠모하면서 그리워 눈물지으며 하늘 앞에 지성 다하는 무리는 망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늘이 전후 좌우에서 저희를 동정하는 움직임이 떠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머무는 자리에 하늘이 동거하는 은사를 바라옵니다. 그렇게 될 때마다 그 자리와 그 모임과 그 움직임은 발전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지도하신 아버지여! 여기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니옵니다, 당신뿐이옵니다. 여기에 있는 모든 지도자들과 무리를 거느릴 수 있는 분은 당신뿐이옵니다. 저희들은 그렇게 알고 지금까지 따라 나왔고, 그렇게 알고 지금도 가고 있으며, 그렇게 알고 순응의 도리를 따라 지금은 승리를 바라보고 있사옵니다.

여기에 승리가 있고 그 무슨 자랑할 것이 있을진대, 그것은 아무런 것도 저희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당신 앞에 돌려 드리고, 당신이 은사를 주시면 감사히 받을 것이고 안 주시거들랑, 그 은사라는 것이 저희 자신에 머물 것이 아니오니 더 큰 나라와 세계를 위하여 남겨 달라고 부탁하는 소원의 마음을 갖고 가는 당신의 자녀들이라 할진대, 이들이 가는 길에는 승리와 영광이 길이길이 같이할 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이제 이 초하루부터 이달을 지키시옵소서. 이달은 복잡한 달입니다. 새로운 출발의 계기가 되는 8수를 맞는 첫날이옵니다. 1972년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정상(頂上)의 해라고 말하였습니다. 7월을 지냈습니다. 8월부터 새로운 소망이 깃들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8월부터 이 나라 이민족 이 땅 위에 희망이 찾아들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수심과 환난 가운데 머물러 있는 인류 앞에 해방과 자유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달을 당신이 축복하여 주옵고, 이달을 위하여 충성을 하고, 이달 가운데 하늘 앞에 바쳐지는 봉사의 날들이 있거들랑 그 날을 자랑의 날로 기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모인 자녀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저희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저희들은 세상에서 불쌍하다면 불쌍한 무리이오나, 불쌍한 반면 당신을 더 사랑할 줄 아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수고하고 그 수고의 대가를 땅에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당신만은 인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당신을 높여야만 되겠습니다. 외로울 때에 하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리가 얼마나 고맙고 황공한 것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리에서 자기를 붙안고 신음하고 자기의 생애를 염려하는 불쌍한 무리보다 아버지를 확실히 알고 아버지와 더불어 의논할 수 있는 무리는, 지극히 고독하고 지극히 불쌍하고 지극히 비참한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행복한 자들인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 가정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뜻을 위하여 그 가정 가운데 태어난 어린 자녀들을 아버지 고이 키우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뜻 앞에 바쳐져 후대에 당신의 민족과 당신의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귀염둥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곳은 120개 성지를 연결시키는 중앙 성지이옵니다. 아버지, 이 남산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서울 시민들이 하늘을 우러러보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만국의 중심인 이곳 시민들에게 당신의 소원과 이념을 마음으로 추구할 수 있는 영적인 은사를 주시옵소서. 이 서울을 찾아오는 수많은 무리들은 하늘의 때가 어떻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게 하시고, 만일에 그러지 못하는 무리가 있거들랑, 갈 길 앞에 스스로를 재검토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며칠 후에는 남북이 서울을 중심삼고 만나는 그런 자리가 있사오니 당신이 그 가운데 주인이 되시옵소서. 이 나라 이 민족을 금후에 당신의 뜻 앞에 부복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하시옵고 지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늘 앞에 모든 것을 맡기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갖지 않는 벌거숭이 몸과 어린애 같은 마음 가지고 하늘의 품에 품길 줄 아는 이 민족, 삼천만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후의 날들과 달이 자랑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고, 제 2차 7년노정 위에 하늘의 승리의 장들이 쌓여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한국과 일본과 미국과 독일을 중심삼고 세계 40개 국에 연결되어 있는 성지를 통하여, 수많은 백성들이 평화의 새로운 아침을 추앙하는 마음이 하늘이 원하시는 소원과 더불어 고이고이 싹트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모든 것을 당신의 경륜 가운데서 치리받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우리는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통일교회 식구입니다. 식구라 하면, 물론 맡은 바의 직책은 다르겠지만 가는 길이나 생활하는 감정에 있어서는 환경과 어떠한 처지를 떠나 가지고 동일한 생활 노정을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딸이 있다 하면 그 아버지와 아들딸이 하는 일은 다르다 하더라도 정서적인 생활 분야에 있어서는 같은 것입니다. 아버지가 슬퍼하면 그 아들딸도 입장은 다르지만 슬픈 마음을 느껴야만 응당히 그 부모의 자녀로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과 다른 식구의 관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우리는 식구'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식구가 가야 할 본연의 길, 그 길이 물론 뜻을 위해 가는 목적에 일치되겠지만, 그렇게 일치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정서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달라서는 안 되겠습니다.

더우기 그 집안이 어려움을 당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하게 될 때는 그 식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어버이가 슬퍼하는 자리에 서게 되면 그 자식들도, 같이 살고 있는 식구들도 슬픔에 잠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 슬픔을 해결하려면 현재 자기에게 맡겨진 직책이라든가 자기가 하고 있는 그 일이 중하다고 해서 그것을 더 중요시하는 자리에 서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될 때는 부모와 하나된 자리에 섰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정서적인 생활이 분립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외적으로 처해 있는 환경이 아무리 달라지더라도 그것을 다 버리고, 또 그것이 없어지더라도 그 부모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당하고 있는 슬픔에 대해서 몸과 마음이 같이 고통을 느끼는 자리에 섰다면, 그 가정이 아무리 갖고 있는 것이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스스로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여기서부터 자랑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는 어떠한 때보다도 색다른 방향을 가려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결의해 가지고 나서게 될 때는 사선이라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모색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흔히 식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식구를 중심삼고 볼때에, 부모의 슬픔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반면, 자녀들의 슬픔도 자녀만의 슬픔이 아닌 것입니다. 자녀의 슬픔은 부모의 슬픔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자녀가 많고 식구가 많다 하더라도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식구 가운데 한 사람이 슬픔을 당하게 되면 식구 전체가 그 한 사람의 슬픔에 포괄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거기에 융화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슬픔을 중심삼고는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된 그것이 그 가정의 자랑이요, 그 가정의 힘이요, 그 가정의 생명의 원천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한 식구의 슬픔을 그 사람의 슬픔으로만 생각한다면, 열 식구가 있을때 그 열 식구가 전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열 식구는 하나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열 식구가 마음으로 평화를 바라고 혹은 행복을 바라고 안식을 바란다 하더라도 그들 가운데는 안식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개인이 안식을 바란다면 개인의 안식으로 찾아진 그 무엇이 있다 할지라도 그 안식은 전체가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이 못 되는 것입니다.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이 각자 자기를 위하는 자리에서 찾은 개인의 안식 처가 있다 할진대는, 그것은 서로의 불안의 터전이 되고 불화나 혹은 불행의 근본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활을 통해 가지고, 우리 식구들의 주변의 사연을 통해서 역력히 잘 아는 바입니다.

식구라는 입장에서 이런 내용을 중심삼고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우리는 일반 세상의 식구와는 다른 것입니다. 세상의 식구는, 일생 동안 같이 살면서 서로 위하고 서로 위로의 대상이 되어서 하나의 심정을 가려 나갈 수 있는 행복의 길을 찾았다면 그 식구는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생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그 어떠한 가정보다도 자랑할 수 있는 식구가 되고 가정이 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말하는 식구의 관념은 다른 것입니다. 세상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늘 부모를 중심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를 중심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하늘 부모는 일시적인 시대를 주관하는 부모가 아닌 것입니다. 역사를 지배하고 역사를 주관하는 부모요, 이 시대를 지배하고 주관하는 부모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금후의 시대, 즉 미래까지도 주관하지 않으면 안 될 부모인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 부모를 모시고 있는 우리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될 때, 하늘 부모는 타락한 인류를 대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타락권내에서 완전한 해방을 맞지 못한 자신들인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드려야 할 인간

이렇게 볼 때, 하늘 부모가 기쁨으로 안식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이며, 그 자리는 어떠한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냐 하는 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통해서 하늘 부모가 안식할 수 있고, 안식의 길을 찾아갈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못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안식을 누가 마련해 드려야 되겠느냐, 누가 이 방향을 제시해야 되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타락한 우리에게 있어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타락한 인간으로서 오로지 바랄 수 있는 하나의 소원이 있고 바랄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하늘의 안식의 터전을 가려 줘야 되는 것이요, 안식의 방향을 가리기 위해서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필요 없는 결론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늘이 기쁜 마음을 갖고 결심한 현재의 그 마음이 기쁘고 안식할 수 있다면, 확고한 신념에 불탈 수 있는 그런 하늘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하늘은 언제나 그 출발서부터 행복의 길을 찾아가는 그런 하늘이 못 되었습니다. 안식과 행복보다는 불행과 탄식과 고통을 받은 하늘이었던 것입니다. 즉, 인류시조가 출발한 그날부터 안식이 아니라 파탄을 가져왔고,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초래했던 것입니다.

그 초래된 내용이 우리 인간의 사연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간단하겠지만, 인간들이 말하는 사연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는 불행을 초래했습니다. 또 이것이 하늘의 권한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모르겠지만 하나님 자신이 권한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내용으로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해결해야 할 주체가 하늘인 것을 잘 알지마는, 하늘이 해결할 수 없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사람의 기준이 상실되었고 참다운 하나님의 기준이 상실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래 원리원칙을 두고 보면 하나님의 권위와 인간의 권위라는 것은 당당히 사탄을 지배할 수 있는 자리에서 성립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복과 하나님의 안식과 인간이 그리는 행복이라는 것은 당당코 사탄을 지배할 수 있는 권위의 자리에서, 그 이상의 자리에서부터 추구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 우리 인류가 그 이상의 자리에 올라왔느냐? 올라오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늘이 안식이라는 말을 생각을 하고 있고 알고는 있지만, 안식하겠다고 할 수 있는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은 안식할 수 있는 어떤 결정적인 한계선을 지어 놓고 섭리의 길을 나오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노아 때 그 일을 바랐지만 실패로 끝났고, 아브라함때에도 역시 그랬으며 모세 시대, 예수 시대를 거쳐오면서도 그랬습니다. 역사 이래로, 그런 입장을 더듬어 나오는 역사라는 것이 하늘의 소원을 다짐하고 기쁨을 다짐한 역사가 아니라 도리어 슬픔을 가중시키는 역사였다는 것을 생각 하게 될 때에, 하늘이 바라는 안식과 행복은 어디에 있겠느냐 하는 문제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타락은 인간이 했기 때문에 인간이 책임져야 된다는 문제가 여기에서 개재되는 것입니다. 하늘이 안식하기 전에 하늘을 안식시켜 드리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늘이 안식하는 방향을 찾아가는 것보다도 인간이 그 앞에 서서 하늘이 안식할 수 있는 길을 소개하고, 안식된 자리를 찾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찾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개척해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효자의 촉매가 되어야 할 우리

이렇게 부모에게 불효를 한 아들의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 인류입니다. 불행을 초래한 장본인이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하늘 앞에 말할 수 없는 불효를 했기 때문에, 불효한 자가 하늘 앞에 당당히 서기 위해서는 효자될 수 있는 자리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불행하였던 그것을, 불효하였던 모든 것을, 본심에 돌아가 가지고 불효한 그 과오를 바라보는 것보다도 부모가 슬퍼하였던 그 마음을 보고 그 이상 슬퍼할 수 있는 아들이 되지 않고는 불행하였던, 불효하였던 자식이 불행으로 말미암아, 불효로 말미암아 저끄러진 어버이의 마음을 풀길이 없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게 될 때, 오늘날 불효의 길로 출발하였고 불행의 씨를 뿌리고 난 불효자식된 우리들이 하늘 부모 앞에 이제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내 안식을 추구하며 내가 안식하는 그 길을 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자신이 불행하게 했고, 불효자식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얼마나 타격받았겠으며 하늘이 얼마나 상심이 되었겠느냐? 그러니 그 마음을 어떻게 내가 위로해 드리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늘은 우리 인간이 제한된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을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자격자라고 믿지 않습니다. 불쌍한 자라고 동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변명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변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저 그 성상을 바라보게 될 때, 불효자식으로 낙인이 찍혀졌지만, 부모를 대할 때에 천만 사지백체를 그 앞에 엎드려 눈물을 뿌리면서, 부모 앞에 저끄러진 죄상을 직고(直告)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부모의 심정에 상처를 입힌 그 불효의 역사를 이어받은 우리들이, 불효의 역사로 말미암아 역사시대를 수난길에서 역경을 극복하며 나온 하늘 앞에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자기 자신을 세워 가지고 내가 이렇게 하늘을 위로할 수 있다고 자신을 가질 수 있느냐?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역사를 알면 알수록 우리는 눈물로써 하늘의 한을 덮어 드려야 되겠고, 아버지가 비참하였던 이상의 비참한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장면이 있게 될 때, 여기에 하늘의 새로운 동정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뻔뻔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 변명을 하고, 자기의 주관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동정이나 새로운 인연이라고 하는 문제는 생겨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천 번 만 번 죽어 마땅한 자신이요, 당신 앞에 나타나는 것이 고역이요,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당신의 성상을 바라보는 것이 죽기보다도 더 비참하다고, 울분을 느끼면서 나는 죽더라도 당신의 상처난 그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라도 남길 수 있으면 그 이상의 소원이 없다고, 절망자와 마찬가지의 입장, 세상의 그 누구를 바라볼 수 없는 소망이 없는 자와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게 될 때, 새로운 의미에 있어서 하늘의 동정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이요, 그 길에서만이 새로운 역사의 출발이 인연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자기를 생각하고, 자기 위신이나 체면, 자기의 지내온 경력, 현재 처해 있는 무슨 위치, 이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하늘의 효자가 되기를 맹세하고 나섰다고 자처합니다. 우리는 냉정하게 다시 한 번 분석 비판해야 되겠습니다. 내 손이 하늘 앞에 얼마나 효자의 손으로서 하늘이 그리워하는 손이 되었으며 내 얼굴이 얼마나 하늘 앞에 효자의 모습으로서 하늘이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느냐?

내 일신이 얼마나 효자의 촉매가 되어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어떠한 역경에 있을지라도 그 역경을 극복하면서, 효자의 가는 길을 개척해 주기 위하여 노력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게 만들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거기에는 우리가 자신을 못 갖는 것입니다.

이 손과 이 모습과 지난날의 모든 역사라는 것은 불효, 불효투성이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못을 박던 우리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불평을 하였고, 그러면서도 투정을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 8월 초하루를 맞는 이 자리에 선 여러분들, 우리에게는 하늘을 위해서 효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충의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앞서 나 자신이 어떻게 하늘 앞에 동정의 제물이 되어 그 자리를 지켜 내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귀하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행복의 길을 찾으려면 희생의 자리에 서야

우리는 통일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일을 중심삼고는 하나되기 쉽고 동정을 하기는 쉬운 것이로되, 마음을 중심삼고는 하나되기 어려운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도 정서 문제를 중심삼고는 더 어려운 것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일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을 소생이라고 하면 마음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은 장성이라고 볼 수 있으며, 심정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은 완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심정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데 있어서 내가 나를 위해서 있다고 하는 자리에서는 하나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식구들이 평화의 동기를 이룰 수 있고 서로서로가 안위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너를 위해서 있다 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식구들을 위해서 있다 하는 데서만이 평화는 그려지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들을 위해서 있다고 하게 될 때에 비로소 자식들에게 있어서 안식의 보금자리는 출발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를 위해서 있다고 하게 될 때는 자식들에게 있어서 안식의 보금자리, 행복의 보금자리는 파탄이 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부모 앞에 있는 자식들이 '부모는 나를 위해 있고 나는 나를 위해서 있다' 하게 된다면 그 부모에게는 안식과 행복의 자리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불행한 것이요, 여기는 안식의 터전이 못 되는 것입니다. 즉, 식구 식구들이 다른 식구를 위해서 있다고 하는 데라야만 평화의 기반이 되고 안식의 터전이 되고 행복의 여건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보다 식구들을 위해서 책임을 지고, 보다 희생하고, 보다 전체를 위하겠다는 입장에서 전체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수습하고 전체의 어려움을 나의 어려움으로 책임지는 자리에 서면, 그로 말미암아 그 가정의 행복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어버이가 그러지 못하더라도, 형제가 그러지 못하더라도 여기에서 희생을 각오하고 전체를 책임지고 위하는 아들, 식구면 식구 한 사람이 있다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행복의 여건은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게 될 때, 천지를 중심삼고 인류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보게 되면, 하나님 자신이 나를 위하라고 하는 자리에 있을 때는 그 자녀들은 행복의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모 되시는 하늘이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있고, 자신을 위해서 싸워 나왔다고 보지 않습니다. 하늘은 인류를 위하고 인류를 위해 싸워 나온, 다시 말하면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있는 거와 마찬가지의 입장을 고수해 나온 것이 아니냐. 억천만사의 수난길을 하루같이, 하루의 생활 심정으로 보듬고 싸워 나온 하늘이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 그 하늘은 언제나 장한 것입니다. 그 하늘은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 하늘은 언제나 우리가 우러러보는 것입니다. 그 하늘은 언제나 우리가 모시고 싶은 것입니다. 그 하늘과 더불어 우리가 언제나 하나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하늘이 나만을 위해서 있어라 하는 입장에 선다면, 그 하늘과는 통일이고 무엇이고 없는 것이요, 그런 하늘을 대해서는 추앙의 대상이고 존경의 대상이고 하는 것들은 전부 스러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늘은 더할 수 없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 앞에 오늘날 자녀와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인류들이, 여기에는 수많은 민족도 있고, 국가도 있습니다. 그 수많은 국가들 중에 우리는 하늘을 위해서 있다고, 하늘을 위해서 이 나라가 있고, 우리 씨족이 있고, 우리 가정이 있고, 우리 개인이 있다고 주장한 그런 개인과 가정과 어떠한 씨족과 국가가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두고 보면. 예수님이 하늘 앞에 행복의 길을 소개할 수 있고, 새로운 소망을 이어줄 수 있었던 것은 '내 뜻대로 마시옵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한 내용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기도를 한 그때는 '나는 죽더라도 하늘의 안위를 위해서 죽는 것이 효의 길이 아니냐. 그것이 안식의 보금자리와 행복의 요건을 가져올 수 있고 가정을 살릴 수 있는 하나의 기초가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이 사상 일념에 서 가지고 죽음길을 다짐하고 나선 숨막히는 순간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선민사상 전체를 일관해 보더라도 그런 사상이 남아질 때는 그 민족은 발전해 나왔습니다. 또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따져 보더라도 그 나라의 주권자와 백성이 하나되게 될 때는 흥하였습니다.

선군이라고 하는 그 선의 이름을 갖고 남아진 사람은 백성을 위하는 임금이지 임금을 위하는 백성을 찾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선한 백성이라 함은 자기를 주장하는 백성이 아니라 자기를 희생시키고 나라를 주장하는 백성을 말합니다. 그런 백성이 모여 살 때 그 나라는 반드시 역사를 일깨워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제 우리는 수십년의 역사를 남기고 있습니다.

더 큰 불행을 초래하는 교만

8월 15일이 되면 광복 27주년이 됩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과연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된 점이 있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금년에 우리는 '통일전선수호'라는 방대한 표어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 수호의 한계선은 자기 일신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가 한계선이 되어 가지고 국가를 넘어 세계를 방어해야 된다는 중차대한 사명을 짊어지는 의미에서의 방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먼저 방어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땅이냐? 땅에서 하늘이 공격을 받게 된다면 이때에는 직접 하늘이 공격할 것입니다. 그 목적은 세계를 방어하자는 것, 세계적인 섭리에 있어서 피해를 방어하자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는 하나님의 심정에 안식의 터전을 이룰 수 있는 길을 닦아 보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하늘은 나에게 있어서 언제나 막연하고 나와는 관계 없는 먼 자리에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아닙니다. 하늘은 지극히 가까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세포보다도 더 가까운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자신 전체의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상대인 여러분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상대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태양계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아홉 개의 행성이 태양을 관리하면서 도는 것이 아닙니다. 행성 자체가 자체를 중심삼고 방향을 따라서 태양을 잊어버리고 도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 전체의 중심으로 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자신은 중심을 관리할 수 없는 상대적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 중심을 망각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태양이 있기 때문에 행성이 도는 것이지 행성이 돌기 때문에 태양이 도는 것은 아닙니다. 태양이 있어 가지고 돌기 때문에 행성이 되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우리 생명의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그 중심을 관리 관찰하면서 내가 돌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기 자체를 중심삼고 돌면서 일정한 궤도를 도는 태양계의 행성들과 마찬가지 입장이 아니냐. 태양은 어느한 자리에 정지해 있습니다. 그것이 이동하게 된다면 천주는 혼란을 가져오고 파탄상태에 부딪치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의 중심인 하늘이 있습니다. 그런데 도는 데는 하늘을 중심삼고 같은 방향으로 원리 원칙을 따라 돌아야 할 텐데 반대로 돌고 있습니다. 반대로 돌고 있는 자체가 그 자체에도 마이너스지만 주체에 대해서도 마이너스입니다. 이러한 세계를 바라보는 하늘은 편할 수 없습니다. 하늘이 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식구들이 나가 전도하다가 힘들어서 낙심하는 사람이 왕왕 있는 것을 보게 될 때에, 그는 누구를 위해서 출발했느냐? 출발이 누구로부터이고 누구를 위한 과정이었으며 그 목적이 누구를 중심삼고 결실하려 하는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는 여지없이 배반자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출발했다는 것을 증거해 주는 것이고, 과정에 있어서도 자기의 이익을 바랐으며, 목적이 이루어지면 그 목적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존재는 하늘이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 목적이 이루어지면 이루어질수록 그런 사람은 더 불효가 되는 것입니다. 더 큰 비극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은 하늘이 그냥 둘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제거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섭리는 어느 시대나 교만을 들고 나오는 사람에 대해서는 하늘이 고충을 받더라도, 섭리의 뜻 앞에 막대한 지장을 가져 오더라도 그를 들어 쓴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러냐? 더 큰 불행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자식의 도리

여러분, 우리 통일교회는 수난길을 걸어왔습니다. 어려운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것은 선생을 위해서가 아니요, 민족과 세계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뜻 하면 내 개인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뜻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 길은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를 위해 일선에서 생명을 걸어 놓고 싸우는 우리 통일교회 식구가 있습니다. 위성국가에서, 혹은 암흑세계에서, 지하에서 생명을 내놓고 싸우는 식구들이 있습니다. 즉, 세계적인 최첨단에 서서 싸우고 있는 식구가 있습니다, 혹은 나라를 대표하여 나라의 첨단에서 싸우는 식구도 있고, 자기 종족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동정을 한다면, 어떤 사람을 동정해야 되겠느냐? 종족을 위해 싸우는 사람보다도, 나라를 위해 싸우는 사람보다도 보다 큰 것을 위해 싸우는 사람, 즉 세계를 위해 죽음길에서 싸우는 사람을 동정해 주는 것이 사랑의 길이 아니냐. 두 자식이 있는데 두 자식 중에 하나는 병이 나서 죽으려고 하고 하나는 물에 빠져서 죽으려고 한다고 합시다. 병이 나서 죽으려고 하는 자식은 오랜 고통을 통해 지금 죽을 자리에 들어와 있고 물에 빠진 자식은 당장 빠져서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다 할 때, 그 부모는 '아이구, 오래 고생한 아들을 먼저 구해 주어야겠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길에서 먼저 희생될 수 있는 길에 있는 자식을 부모는 살려주려고 할 것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볼 때, 생명을 바치는 최일선의 자리에 선 사람을 동정해 주고, 밀어 주고, 협조해 주고 그를 위해서 전체가 하나되는 것이 원칙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종족을 위해서 일한다면 '아 내가 종족을 위해서 일하는데 교회에서 몰라주면 안 돼. 교회가 하나되어야지. 전체 통일교회 식구들은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협조해 줘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나라면 나라를 중심삼고 협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건 입장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보다 큰 책임을 짊어지고 생명을 바칠 것을 각오한 죽음길에서 싸우는 최일선에 선 무리를 위하여 그 국가 국민이 총단결해서 협조하는 것이 정의요, 그것이 이 세계의 전통이 될 것이 아니겠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자기가 어렵다고 해서 그 환경을 포기해 버리고 도리어 자기를 변명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는 하나님에 대한 기가 막힌 배반자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우리는 이만큼 싸워 나왔습니다. 이제 우리의 때가 눈앞에 가까와 오고, 정상의 고개를 넘느냐 못 넘느냐 하는 때가 우리 목전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되겠느냐? 일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보다도 마음을 중심삼고, 심정을 중심삼고 하나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중심삼고 진행하고 있느냐? 그것을 중심삼고 거기에 일체의 정성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어느 길을 가느냐? 그 가는 길이 있거들랑 그 길을 중심삼고, 내가 딴 길을 가더라도 부모가 가는 그 길을, 어머니 아버지가 가는 그 길을 자식으로서 염려해야 할 것이 아니냐. 자기가 다른 곳에서 살지만 하루의 생활은 그 마음과 더불어 하고, 하늘과 더불어 심정이 일치되는 자리에서 살아 나가는 것이 하늘 식구가 가야 될 본된 걸음걸이가 아니겠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여러분들은 식구의 이름 앞에 배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이름보다도 실체적으로 배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8월 초하루를…. 여러분이 통일 교회에 들어온 후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될 때가 왔습니다. 맨 처음에 교회에 들어올 때 기뻐하던 그 기쁨이 다 스러져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이 정상적으로 뿌려진 하나의 씨가 되었으면 거기에서 열매를 맺어 가지고 수십 수백의 씨를 거두고, 그 씨를 다시 뿌렸으면 수십 수백의 봄날을 맞을 것이 아니냐. 적막강산 위에 한송이의 꽃이 피어나 수많은 꽃을 피워 꽃밭을 이루고 수많은 향기를 풍길 수 있는 향기의 동산을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니냐. 여러분 자신들이 그러한 향기를 풍길 수 있는 결실된 동산 가운데 서 있느냐?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스스로 풍기는 향기를 좋아하는 것은 고독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향기 가운데에서 많은 향기와 더불어 내가 풍기는 향기는 고귀한 것입니다. 그것은 대중이 깃들 수 있고 만물이 화동할 수 있는 요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만으로는 적적하고 외로운 것입니다.

공적인 원칙을 생명시하는 하나님

이렇게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이 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한 사람으로 출발해서 한 사람으로 자라 가지고, 가지도 뻗지 못하고 잎도 피우지 못하고 꽃도 피우지 못한 채 그냥 그대로 한 모습으로 있다가, 그나마도 절망적으로 시들어진 입장에 서게 된다면, 그 사람을 누가 동정하겠습니까? 그건 동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도리어 뽑아 버리고 다시 심는 게 났습니다. 세상에서도 그런 일들이 있지만 하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은 완전한 것을 바랍니다. 하늘은 완전한 것을 찾되 개인으로서 완전한 것이 아니라 전체를 대표하는 완전한 것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심각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심정적인 문제에 있어서 사무친 그런 때가 있었다면, 그것은 완성기준에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완성 기준이 아니라 출발입니다. 소생이라구요. 평면적인 면에서 선생님과 심정적인 인연, 유대가 맺어졌으면 그 유대는 소생에 속한 것입니다. 이 소생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과 장성을 거쳐서 만민 가운데 그 사랑을 횡적으로, 즉 주체적인 자기를 통하여 만민 앞에 주체성을 이루어 줌으로 말미암아 만민이 비로소 그 심정적권에 설 수 있게 될 때, 이것이 완성권이 된다는 것입니다. 완성은 이 지구성, 땅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될 때 여러분이 결심하던 그것은 소생기적인 것입니다. '사망의 세계에서 목적도 없고, 혹은 인생의 보람이나 가치를 모르던 나 자신이 이제 그 목적을 알았다. 나는 갈 길을 알았다'고 하면서 기뻐하지만, 그것은 자기에게 국한된 것입니다.

그러나 식구라는 이름을 갖게 될 때에는 자기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만 됩니다. 결심하고 들어선 후에는 자기 혼자가 아닙니다. 내 뜻대로, 내가 바라는 소원대로가 아닙니다. 그때부터는 내가 바라는 소원, 우리 가정이 바라는 뜻, 그것은 식구로서의 뜻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가정이 바라는 그 뜻이라는 것은 부모를 중심삼은 심정세계에 방향이 일치되는 행복을 바라 나가는 뜻을 말하는 것이지, 불행을 바라 나가는 뜻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진정한 의미에서 식구로서 언제 하나되어 봤느냐? 이것이 문제라구요. 여러분이 가정에서 자기 누이동생 혹은 언니, 오빠 혹은 부모의 어려운 것을 볼 때에 자기 고통과 같이 느꼈던 그러한 체험이 있다 할진대는, 우리 식구끼리 그 이상으로 느껴 봤느냐? 이들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왜 불쌍하냐? 이들은 집도 없습니다. 식구라고 하지만 집도 없고 친척도 없고 나라도 없는 패들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에서는 집이 있고 나라가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누가 더 불쌍하냐 하면 공적인 입장에 선 우리가 더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우리를 사랑할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 못 하더라도 우리가 그런 입장에 섰기 때문에, 공적인 원칙을 생명시하는 하나님은 세상을 남겨 놓고 우리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밤을 새워 기도해야 할 때를 맞이한 우리

자, 그런 면에서 우리는 어떤 입장에 있느냐?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집이 여러분의 집이 아닙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인연맺은 것이 우리 나라에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의 뜰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원수의 철망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단결해서 이 철망을 뚫고 나가야 됩니다. 개인의 철망이 막고 있고, 가정의 철망, 종족의 철망, 민족의 철망, 국가의 철망, 세계의 철망이 막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돌파해 나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서는 안 됩니다. 가정의 철망을 뚫기 위해서는 부부가 하나돼야만 합니다. 종족의 철망을 뚫기 위해서는 가정이 하나되어야 하고, 민족의 철망을 뚫기 위해서는 종족이 하나되어야 하며, 국가의 철망을 뚫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남한이면 남한 민족이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야말로 상극적인 입장에 있는 북한과 남한이 상봉해 가지고 하나의 통일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여기에서 누가, 어느쪽이 더 강력하게 하나돼 있느냐에 따라 통일의 주도권을 쥐는 문제가 결정될 것이 아니냐.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어떠한 무리보다도 강하게 하나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 이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식구를 식구로서 그리워할 줄 아는 새로운 봄을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옛날에는 전도 나가서 자기가 외롭게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외로운 식구를 찾아가기 위해서 서로 50리 길을 가다가 중간에서 만나던 사연도 남아 있지 않느냐? 그때는 개체를 가려 가는 때였지만, 이제는 나라를 향해서 가려 가야 할 때인 것입니다. 이런 때에 있어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거들랑 한 번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식구들을 열 번이라도 찾아가고 싶어서 허덕일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만,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정상적인 통일교회 식구의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면이면 면을 중심삼고 그래야 되고 한 도면 도를 중심삼고 그래야 됩니다. 나아가 자기 도만 잘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도 전체가 잘되기 위해서는 전체의 도 앞에 본이 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 본이 되는 데 있어서는 자기를 중심삼고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가정의 뜻과 부모의 뜻을 따라서 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데에서, 가면 갈수록 빛날 수 있는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통일교회 진리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말 가지고 하나되기란 쉬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용적인 통일은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을 바라볼 때, 진리를 중심삼고도 하나되지 못한 비운의 역사를 엮어 나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 진리를 중심삼고도 어려운 것이 아니냐. 통일교인은 원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는 원리인이다' 하고, 하나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용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효자가 되어야 하고 충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려울 것이 아니냐.

이런 의미에서 이 8월 이후에 있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효의 길은 그야말로 섭리사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섭리사적인 효의 도리를 다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 누구도 맞지 못했던 이런 때를 맞은 것이 아니냐.

이제, 하늘의 뜻을 중심삼은 하나의 기수가 되어 가지고 안간힘을 다해서 외칠 때, 그 외침이 땅뿐만이 아니라 하늘에 미칠 수 있는 때가 되지 않았느냐? 예수 시대보다 나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지새워 가며 기도했지만 그 세 번의 기도에도 반응이 없었던 것입니다. 민족은 물론이요, 유대교회도 반응이 없었지만 지금 우리 때는 그와 다릅니다.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게 되면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무리가 국가를 넘어서 세계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룻밤을 지새우는 데도 우리 식구를 위해서 지새워야 되겠습니다. 나를 위해 밤을 지새우는 사람은 베드로가 되는 것입니다. 민족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밤을 지새웠던 것이 예수님의 입장이 아니었더냐? 죽음이 앞을 가려 오는 그런 운명길에서도 그가 염려했던 것은 자기의 죽음이 아니라 제자들을 염려했고 민족을 염려했기 때문에 하늘의 동정이 임하였던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부활하게 된 것이 아니냐.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바로 그런 때가 지금입니다.

이제야말로 우리 통일교회 교단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지새워 기도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기도할 때가 왔습니다. 밤을 지새워 기도하는데 나를 위해 기도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세계인류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밤을 지새우고 그것을 위해서 같이 우는 무리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길도 같이 가기를 결의한 사람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고빗길이 부활을 약속할 수 있는 최후의 판결을 내릴 것입니다.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망하게 할 것 같지만 부활을 촉구시킬 수 있는 생명의 동기를 부여해 줄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내적 심정 통일

여러분, 통일교회는 승공을 표제로 해 가지고 공산세계를 대해 첨단에 나서 있습니다. 총을 맞더라도 먼저 맞아야 되고 희생하더라도 먼저 희생해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싸움을 지금 일본에서 전개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느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싸움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타국에 가 있더라도 자기가 까닭 없이 모해를 당하게 될 때는 자기 나라가 들고 나서는 거라구요. 그래서 나라가 좋은 것입니다. 자기가 비통한 것은 자기의 비통이 아니라, 민족의 비통으로서 세계를 향하여 들고 나설 수 있는 것이 국가가 아니냐.

여러분, 본국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자기네 형제들이 외국에 나가서 희생당하는데 모르는 척하면 그 나라는 무력한 나라요, 망할 나라 입니다. 본국에 있는 여러분들! 외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듣게 될 때에 그것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상습적이고, 퇴폐적인 사상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무리들은 상관이 없는 무리들입니다.

좋은 소식이 있거든 밥을 안 먹고도 춤을 추면서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 슬픈 소식이 들리거든 내가 먹는 것을 잊어 버리고 자는 것을 잊고 내 문제와 같이 뼈살에 사무침을 느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주인이요, 주인의 아들된 입장이 아니겠느냐? 여기에 제삼자와 같이 구경하는 패들은, 구경하면서 비웃고 입을 벌려 가지고 좌지 우지 하는 녀석은 주인의 슬픔을 자아내는 반역자입니다. 그가 처단하고 해결지어야 하는 원수라고 한다면 그부터 청산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등등의 문제를 생각할 때, 이때야말로 여러분들이 하나되어서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가 8.15를 앞에 놓고 15일 동안 정성들여야 하겠습니다. 통일은 어디를 중심삼고 할 것이냐? 중심되는 하늘을 중심삼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심정적인 면에서 그야말로 식구가 한번 되어 보자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지극히 요구되는 때가 이때입니다. 식구로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원수들의 장중(掌中)에서 포로가 되어 하늘길을 가지 못한 기독교를 해방하고 나라를 구하러 나서야 할 전통을 우리가 세워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지 않으면 그들의 갈 길은 어디냐? 그들은 통일교회에로 넘어올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가 그들을 지나가 가지고 그들이 바라는 이상의 길을 제시해 줘야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가 갈 수 있는 그 이상의 길을 우리가 제시해 줘야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부작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공을 들고 나오는 것이요, 그래서 우리는 희생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 이만큼 나타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반공 하게 되면 통일교회를 꼽게 되어 있고 통일교회 활동을 꼽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나쁜 의미가 아니고 교회를 위하고 선의의 하나님을 위하고 나라를 위함에 틀림없다고 하는 것이 드러나게 될 때는 많은 교회도 기뻐하는 자리에서 통일을 볼 수 있지, 자기들이 넘어 들어와 가지고는 수습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망하라는 말입니다.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에게, 세계적인 운세권을 중심삼고 그 권이 앞설 수 있는 때, 비로소 그들이 따라갈 수 있는 때에 해방권을 허락한 것이 아니냐. 자기가 해방을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자체도 그랬고, 우리 통일교회 선생님 자체도 그랬지 않았느냐?

역사는 거기에서 행복을 찬양하고, 그런 것이 있어야 하늘 앞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동기가 되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주도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늘이 우리를 앞세워 가지고 이렇게 승리를 가져오게 했기 때문에 언제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고마운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고마울 수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아, 기성교회가 우리한테 머리를 숙여야지' 하는 것보다도, 그들보다 더 좋은 교회를 만들고 더 훌륭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앞서서 그들 앞에 본을 보여 주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따라오게 되고, 이렇게 되면 완전히 구원할 수 있습니다. 나라도 마찬가지라구요, 나라도. 나라가 가지 못하는 곳을 우리는 가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통일교회를 위해서냐, 진정 나라를 위해서냐? 나라는 그것을 감정한다구요.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가 출세하기 위해서, 정치 기반을 닦기 위해서 그런 놀음을 한다고 모함하고 있지만, 통일교회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그랬다고 하는 입장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될 때, 나라는 그것을…. 그것이 자연적인 통일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3차 세계순회노정을 마치고 돌아와 가지고 지금까지 하는 일이 무엇이냐? 세계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순리적인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그러면 여러분 자신에 있어서, 여러분의 가정이 있으면 여러분의 종족 앞에 여러분 가정이 중심이 되어 종족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종족의 이익을 위해서 일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통일방안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자식들이 미래에 전체 앞에 보다 높은 자리의 중심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효자도 빨리 이루어진 효자, 하루만 빵긋하는 효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나면서부터 저 녀석은 달랐다. 생각하는 것이 달라' 이럴 수 있고, 살아가면서도 어렵든 슬프든 언제나 부모 앞에 힘이 되고, 언제나 부모 앞에 소망이 되고, 언제나 부모 앞에 플러스될 수 있는 여건이 남아지게 될 때, 그 부모는 그 효자를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인계해 주고, 맡지 않겠다고 해도 맡기려고 하는 것이 심정의 세계의 인습이 아니냐.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러한 책임을 누가 하느냐? 수많은 종교 앞에 본을 보이는 책임을 누가 하느냐? 선생님 혼자서는 안 됩니다. 수많은 민족 앞에 본될 수 있는 책임을 누가 하느냐? 선생님만으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해야 됩니다, 우리가. 여기서만이…. 그러면서 식구들을 위하고, 전체를 위하고, 나로 말미암아 식구들이 위로받을 수 있게 하고, 내가 식구들을 편안하게 해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선두에 서서 모든 책임을 지고 절름발이 걸음을 해 나간다고 할 때, 그의 주변에는 하늘의 동정의 눈물이 감돌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반드시 그로 말미암아 통일적인 환경이 개척되고 만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외적 통일보다도 내적 심정 통일이 중요합니다. 희비극이 하늘과 엇갈린 자리에서가 아니라 하늘과 동참한 자리에서,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마음의 자리에서 출발해 가지고 같이 감과 동시에, 자식이라면 먼저 하늘 앞에 불효했던 자신을 생각하면서, 이제야 비로소 불효했던 역사를 다시 탕감받을 수 있고 해방받을 수 있는 좋은 찬스라고 알고 거기에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나서는 그런 자라면 하늘의 복은 그로 말미암아 연결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으로 말미암아 민족의 운세가 천운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생겨나리라고 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야말로 식구로서 보람되고, 서로가 심정적 안식처가 되고, 소망의 방향을 제시하는 여러분들이 되어 주기를 바라서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지금부터 수십년 전을 회상해 보면, 이몸은 민족 앞에 몰리며 영어의 신세를 모면할 수 없었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을 지나서 지금까지 복귀의 길이 멀다고 생각지 않고 나오다 보니 이제는 이 나라에서 문제시하는 최고의 집단이 됐습니다. 아시아에서 문제시하는 최고의 집단이 됐습니다. 세계에서 문제시되는 단체로 등장할 수 있는 때가 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염려하는 것은 본국의 사명이 크다는 것입니다. 본가(本家)가 행불행의 요인이 된다는 것을 아오니. 한국의 식구들이 씩씩해야 되겠습니다.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늠름해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엇갈리는 수난길이라 하더라도 우리 식구들이 거쳐 나갈 길이기 때문에, 그 수난길이 수많은 식구들이 쓰러질 수 있는 동기의 터전인 것을 알고, 그 식구들을 구할 수 있는 전통을 내가 세우겠다고 다짐하는 어린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사상을 가져야 본국의 전통과 역사적인 면을 이어받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주인, 혹은 후계자가 응당히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통일의 역군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제 통일의 식구가 어떠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통일의 식구는 심정의 통일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짐과 동시에, 우리는 불효했던 역사를 알았사오니 하늘이 맞기 전에 제가 맞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있던 열두 제자들이 하늘을 먼저 맞게 한 것이 역사적인 한이 된 것을 알았사옵니다. 하늘이 맞기 전에 인류를 대신하여 날아오는 화살을 내 몸, 앞 가슴에 맞고, 우리가 그 화살을 안고 쓰러진다 하더라도 그 죽음의 자리는 부활의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시대의 그 누구도 갖지 못한 통일 심정을 이어받은 무리들로서 저희는 이런 일을 자유롭게, 상습적인 일로 할 수 있는 경력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저희는 공적인 길, 공적인 죽음, 공적인 생활, 공적인 생애노정, 보다 공적인 가치관을 추구해 나온 무리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자아를 가지고 살지 않으면 안 되고, 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무리이옵니다.

하늘은 식구들을 위해서 존재하고 식구들은 하늘나라를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하늘나라는 아버님을 위해 있고, 아버님은 아버님의 사랑을 위해 있습니다. 그 사랑은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에, 저희들을 찾아 앞장 세워 사랑하고 싶은 아버님이시기 때문에, 전체를 저희 때문에 창조하셨고, 저희 때문에 싸워 오셨고, 저희 때문에 참아 나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아버지의 사랑을 이어받을 수 있는 무리는 이 전통적 사상에 있어서 주류적인 입장에서 싸워 나가는 무리 외에는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식구의 전통을 지니고, 그럴 수 있는 본국의 인연을 지닐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부터 8월을 아버지의 뜻과 더불어 출발하겠사오니, 이달도 아버지께서, 지난 7월, 아니 지난 6개월 이상, 보호해 주셨던 모든 기간 이상의 사랑의 보호권내에서 저희들을 지도하시옵소서. 늘 하늘을 간절히 그리워하며 하늘만을 위하며, 하늘 앞에 효성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온갖 지성을 다 기울이고도 부족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생활들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자리에서는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의 승리의 권한이 횡적으로 세계를 향하여 뻗어 나갈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마음의 상속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심정의 계승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해의 전부도, 70년대의 전부도 당신의 뜻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주옵기를 부탁하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2년 8월 6일, 이달을 맞이하여 첫번째 맞는 안식일 이 아침에 당신의 보호와 은사와 지도가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일에 부족한 것들을 이끄시고 수고의 노정을 참으시며 지금까지 저희들을 인도하여 주신 아버지 앞에 저희들은 진정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이제 이 한 달도 새로이 맞았사오니, 당신 앞에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고 충성을 다하는 이달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은 당신의 뜻을 따라가기를 원하오나, 언제나 아버지만을 위하지 못하고 자기를 위하는 때가 많았사오니,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침에 아버지 앞에 부복한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자신이 어디에 처해 있느냐 하는 것을 깨닫고, 당신이 남기신 복귀의 한계선을 향하여 스스로 달려갈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누구의 힘으로써 이 길을 갈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최후의 싸움을 다 싸워 가지고 아버지 앞에 가지 않으면 안 될 저희 자신들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길이길이 참으시고 수고하신 아버지, 저희 자신들도 불쌍한 것을 아시는 아버지, 저희들을 버릴 수 없는 자리에서 저희들을 위해 서 있는 아버지이신 것을 알게 될 때 늘쌍 불쌍한 아버지이심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님, 이 아침에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이곳을 바라보고 정성 들이는 그 곳곳마다, 아버지,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특히 이번 기간은 저희들의 마음을 모아 나라와 민족을 중심삼고, 금후의 아시아의 문제를 중심삼고 하늘의 갈 길을 염려하면서 정성들이는 기간이오니, 아버지여, 각별히 이 기간에 당신의 보호하심으로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대내적인 모든 것이 당신의 뜻과 더불어 일체가 되게 하시옵고, 대외적인 모든 문제도 당신의 섭리의 뜻 앞에서 환영의 터전이 될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늘쌍 저희들을 위해서 수고하신 아버님이신 것을 생각할 적마다, 저희들의 수고가 부족하고, 저희들의 정성이 부족한 것을 스스로 느끼면서, 내일의 개척자의 사명을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될 저희의 처지인 것도 잘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이끌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당신의 이름을 갖고 모이는 곳곳마다, 더우기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시고, 특별히 기동대를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역사 이래 처음 하늘을 위해 나선 무리이오니 그 움직임이 당신의 뜻을 증거하고, 당신의 생명의 인연을 나타내고, 아버님이 실존하신 것을 드러냄으로 말미암아 만방에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고, 아버지의 승리의 터전을 확대시키어 당신의 권위와 당신의 존엄성을 만민 앞에 드러내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을 보고 그들과 더불어 인연맺고 그들의 말씀을 듣는 곳곳마다 당신의 생명력이 같이하여 개개인의 심령 심령을 연결시키시옵소서. 그리하여 최고의 아버지의 터전을, 아버지의 승리의 나라와 승리의 세계를 넓히는 데 있어서, 절대 필요한 움직임이 됨과 동시에 그런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저희 모두를 친히 굽어살피시옵소서. 저희가 원하는 모든 뜻은 당신이 남기신 뜻이옵니다. 또한 당신이 싸워 나가는 길이오니 저희들이 그 싸움을 상속받고 그 수난의 길을 극복하기 위한 하늘의 용사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하늘에서 바라시는 것과 같이 땅에서 저희들이 응하여 드리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가 요구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과 일치되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의 영광, 당신의 승리의 그날을 저희들이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 드리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말 씀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은 누구나 소망을 갖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또, 그 소망을 대해서는 온갖 충성과 노력을 다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이요, 본능인 것입니다. 즉, 인간은 현재보다도 더 낫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입장을 넘어서서 발전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소원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소망은 행복을 찾는 것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 인간을 지었다고 했기 때문에, 본체 되시는 하나님이 있다면 우리들도 그분을 따라서, 그분을 닮아서 지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소망을 지니기를 바라고 소망하는 곳에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을 볼 때, 우리 인간은 어디까지나 주체적인 입장에 서는 것보다도, 혹은 어떠한 동기적인 입장에 서는 것보다도 결과적이요, 상대적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 자신들이 그러한 마음을 갖는 것은 그 어떠한 주체가 그러한 목적을 중심삼고 우리와 일치된 자리에서 공동적인 성사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어떤 주체에게 그런 마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상대 되는 우리 인간도 그러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을 넘어서 주체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도 보다 나을 수 있는 소원, 보다 나을 수 있는 이상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이상(理想), 현재의 입장보다도 나을 수 있는 이상을 추구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인간이 바라는 소망, 그 소망이 이루어진 곳은 불행한 곳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 소망을 이룬 나라가 있으면 그 주권자는 모든 나라 앞에 자랑하고 싶을 것입니다. 혹은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의 대소를 막론하고, 작으면 작은 자리에 있어서 자기가 소원을 이루고 싶었던 그 소원을 중심삼고 나타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 나타내고 싶어하는 자체는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나라면 나라, 혹은 더 높은 곳이 있으면 그곳에까지 자랑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인 것을 우리는 엿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렇듯이, 하나님도 자기의 소원이 성취된 그러한 자리가 있으면 그것을 자랑하고 싶을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나 인간에게 있어서 자랑할 수 있는, 자랑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겠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보면, 외적인 문제도 물론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보다 자랑하고 싶은 중심적인 요인, 중심적인 그 내용이 무엇이 되겠느냐 할 때, 이것은 행복한 자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하다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전체를 대해서 결핍을 느끼지 않는 자리입니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꽉찬 자리,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없는 자리가 행복한 자리가 아닐 것이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모든 것이 완전히 채워진 자리가 행복한 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받고 싶을 때 무한히 받을 수 있고, 주고 싶을 때 무한히 줄 수 있는 자리가 행복한 자리가 아니겠느냐?

행복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된 가정에서 비롯된다

사람이 불행하다는 것은 무엇을 두고 불행하다는 것이냐? 내가 받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받지 못하는 것이 불행한 것이요, 또 진정한 의미에서 주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줄 수 없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 불행한 것이 아니냐. 그러니 언제나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 언제나 줄 수 있고 언제나 받을 수 있는 자리가 행복한 자리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자기의 상대적인 환경이 응해 줄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면에 있어서 어떠한 사물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자기가 움직이는 데 있어서 그 환경이 상치되지 않는 자리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소원의 중심이 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이 문제를 두고 볼 때, 부모가 계시면 부모 앞에는 자녀가 없어 가지고는 안 될 것이다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부모 앞에 자녀가 없게 될 때는 그 부모의 행복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의 기쁨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자녀 앞에 부모가 없어 가지고는 그 자녀의 기쁨은 결함 있는 기쁨이 아니겠느냐?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혹은 어떤 남성이 있으면 남성 앞에 그 상대가 없어서는 안될 것이 아니냐. 여성이면 여성 앞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부부가 있으면 그 부부는 반드시 하나돼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되느냐?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어서 서로서로의 소원이 뭐냐 하면, 보다 높은 사랑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냐. 지금의 자리보다도 내일에 희망하는 보다 가치적인 내용, 보다 입체적인 사랑의 내용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또 그것이 틀림없이 그러리라고 믿을 수 있는 생활적인 입장에서, 서로서로가 하나되는 그 자리에서만이 내일의 행복을 자극할 수 있으며 오늘의 행복을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부부가 있으면 부부 앞에는 반드시 자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가정이 이루어지는 데 있어서 위로는 부모가 계시고, 아래로는 자녀가 있어야 하며, 또한 부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부모는 부모끼리 하나되어야 되고 자기들 부부는 부부끼리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부부를 중심삼고 자녀를 볼 때, 자녀는 자녀끼리 하나되어야 되는 것이 아니냐. 그것을 보면, 종적으로는 물론 3단계가 되어 있지만, 횡적으로 보면 이것이 둘 둘 둘이니까 6수가 하나되어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누구를 중심삼고 하나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인간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만 가지고는 최고의 이상,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여섯 사람이 하나된 가운데 거기에 없어서는 안 될 것 하나가 무엇이냐? 우리 인간은 제한된 인간인 것입니다. 한계권내를 넘어갈 수 없는 인간임을 생각하게 될 때 절대관이 아니라 상대권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절대적인 그 무엇이, 절대적인 사랑의 주체가 있다면, 그를 중심삼아 가지고 부모도 하나되기를 바랄 것이고, 혹은 부부도 하나되기를 바랄 것이고, 자녀도 하나되기를 바랄 것이 아니냐. 그렇게 횡적으로 부모와 자기들 부부와 그 부부를 중심삼고 태어난 새로운 자녀가 하나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현재 자기들만의 행복 가지고는 횡적으로는 물론, 종적인 부모와 자기들 부부와 자녀의 입장을 연결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인간을 통해서

그러면, 모든 것을 하나로 규합시키고, 모든 것을 보다 가치 있는 입장으로 희망적이요 자극적인 면으로 통합시키고 하나로 통일시킬 수 있으려면 그 무엇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은 우리 인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절대적인 사랑일 것입니다. 그것을 중심삼아 가지고야만이 가능할 것이다 하는 것을 우리는 추측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이상, 최고의 분으로서의 높은 이상이 있다면 그 이상은 어떤 이상일 것이냐? 그보다 더 높은 이상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갔으면 그것은 내려와야 되는 것입니다. 높아졌으면 낮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주는 반드시 주고받는 이치로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높아졌으면 낮아져야 되고 받았으면 줘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최고의 사랑, 혹은 절대적인 주체되는 그분 앞에 보다 높을 수 있는 이상이 있다면 그 이상은 어디서 실현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보다 높을 수 있는 자리에서 실현될 것이냐 할 때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대적인 입장이라 하더라도 그 절대적인 입장이 보다 높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다면 그 절대적인 자리는 상대적인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주체가 못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로서의 절대자는 반드시 상대를 위해서 이상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훌륭한 사람, 무슨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자라든가 예술가라든가 정치가라든가 혹은 아무리 높다 하는 성인이 있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기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혼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여건을 갖춘 그곳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그가 기뻐할 수 있는 통일된 기준이라는 것은, 아무리 높은 인격자라도 그를 중심삼고 볼 때 그가 기뻐하는 것은 더 높을 수 있는 무엇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최고의 자리라면 그 자체를 중심삼아 가지고는 기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최고의 자리가 있다면 그 자체도 반드시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자 가지고는 기뻐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기쁨은 어디에 나타날 것이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더 높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가는 데서 기쁨이 나타나는 것보다도, 하나님은 절대자이기 때문에, 그분은 끝이라면 최고의 끝이요, 또한 한계선의 중심으로 서 있기 때문에, 그 상대적인 면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어떠한 물체를 중심삼고 볼 때, 햇빛이 비치면 거기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의 형태로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주체 되는 그분이 주는 데는 높은 것을 위해 주는 것보다도 상대적인 낮은 인간과 만물을 위해서 주고 싶을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왜 지었느냐? 하나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이상실현의 대상을 보게 되면, 미물에서부터 큰 우리 인간까지 연결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자연계도 포함되지만 하나님은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작은 것은 무엇이냐? 작은 것은 작은 것으로서 하나님의 모든 것의 일부분적인 상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것을 추구해 가지고 지었기 때문에, 절대적인 하나의 상대적 요건으로 지었기 때문에, 작은 것을 대해서 사랑할 수 있는 출발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 작은 것보다 높아지는 자리를 바라게 될 때 상대적인 면의 자극을 느꼈을 것이 아니냐. 점점 차원 높은 의미의 자극을 느꼈을 것이 아니냐. 이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 이렇게 해 가지고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을 찾아가는 인간의 본심

그러면 인간은 어떠한 존재냐?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로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중심삼고 비로소 이상적인 사랑을 실현하려고 했을 것이 아니냐. 그러면 인간 외에 또 다른 무엇이 있겠느냐? 있을 수 없다 이겁니다. 상대 외에 또 다른 것이 있을 수 있겠느냐? 없다구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이상도 사랑을 빼놓은 이상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상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중심삼고 실현될 것인데, 인간을 대하는 그 사랑은 어떠한 사랑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부모의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절대적인 하나님이 인간을 대해 부모로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요, 인간을 자녀로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어떠한 일치점-그 일치점에 우리 인간이 미도달했지만-은 자라고 있는 인간에게 있어서 높은 자리에 있어야지, 낮은 자리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 완성과 더불어 부모된 하나님 앞에 그 자녀로서 당당히 서 가지고 그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할 수 있는 일치점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이상적인 사랑은 실현의 자리라는 것은 어떤 자리냐? 하나님이 인간을 지어 놓자마자 인간이 완성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었다면 모르지만, 모든 창조원칙은 반드시 과정을 지남으로 말미암아 완성이 이루어지게끔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도 짓자마자 대번에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점진적인 발전을 하여 장성해 가지고 그 사랑의 자리에 도달하기 때문에, 우리 인간으로 볼 때 그 자리라는 것은 미래의 자리요, 소망의 자리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소망의 자리, 다시 말하면 인간으로서 바라는 행복의 자리가 있을 것인데, 그 자리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이어받을 수 있는 그런 자리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이 그 자리에까지 도달했다면, 인간과 하나님이 행복할 수 있는 그 자리를 맞이했을 것이 아니냐. 또한 절대자가 느끼는 그 행복과 절대자가 느끼는 그 사랑은 영원할 것이 아니냐. 그 사랑의 출발을 보았으면 그것은 영원할 것이고, 그 사랑에 동거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인간이 되었다면 그 인간의 권위와 그 동거하는 자리는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무엇이 변하더라도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된 그 자리는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우리 인간을 두고 봐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 자리는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무엇이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요, 그 무엇에 점령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점령당했댔자 그것은 스스로의 해방권으로서 자주성을 갖고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타락한 인간이지만 일상생활에서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이 소망적이고, 이상적이고, 행복한 그 자리에 가지 못하고 미도달 단계에서 떨어진 것이, 혹은 그것을 잃어버린 것이 타락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소망적이고, 이상적이고, 행복한 그러한 터전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 본성의 마음이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바탕을 지녀야만 절대적인 하나님의 이상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연결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이 그곳을 지향하지 않으면 일치될 수 있는 때를 영영 맞출 수 없기 때문에,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시는 한 반드시 우리의 본성의 마음이 거기에 일치될 수 있는 소망을 갖게끔 아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타락했을망정 그 자극적인 소망의 본심은 우리 인간에게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마음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우리 인간을 복귀할 수 있는, 구원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벌어진 하늘의 슬픔과 인간의 슬픔

이렇게 볼 때,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의 곳이 있다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겠느냐, 거기에 도달한 사람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될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 가운데 그런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인류 앞에 행복의 기틀이 되고, 그 터전에서의 행복했던 그 느낌과 그 삶의 결과로 나타난 것은 인류역사의 전통적인 사실로 남아졌을 것인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는 오늘날 우리 인간 앞에 미도달의 경지로, 우리가 추구하는 소망의 내용으로 남아진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절대자인 하나님은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상적인 곳, 행복한 곳, 우리의 소망이 일치될 수 있는 자리를 세우셨기 때문에 그 기준을 절대적으로 성사하지 않으면 절대자의 권위가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이 되었더라도 이를 끌어 올려 가지고 다시 본연의 자리로 귀일된 자리를, 행복한 그 길을 추구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구원섭리의 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소망의 자리를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그것이 일시에 될 수 있느냐? 일시에 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는 데는 맹목적으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떨어져 내려왔으면 떨어져 내려온 그 반대적인 과정을 거쳐서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입니다.

자, 그러면 본연의 우리 인간, 본래의 우리 인간이 처해야 할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아까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하나님의 직계의 자녀로 태어났어야 했을 것입니다. 만일 직계의 자녀로 태어났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타락하지 않은 인류 본연의 그 부모, 그 조상을 중심삼고 사랑해 내려왔을 거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소년시대로부터 장년시대, 혹은 노년시대, 즉 일생을 두고 볼 때, 하나님께 소년시대는 사랑을 받았을는지 모르고, 청년시대도 사랑을 받았을는지 모르겠지만 장년시대와 노년시대를 하나님의 사랑의 보호권 내에서 살아 본 인간이냐? 타락했다는 것을 우리가 긍정하고 들어가서 볼 때 타락한 그 연령 이후의 기간은 하나님의 보호권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추방권내. 보호권외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상권 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반대적인 입장에 있는 우리 인간을 바라보면 그 자리는 행복의 자리가 아니라 절망의 자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행복의 자리가 못 되었기 때문에 위로 하나님에게도 슬픔이 벌어진 것이고, 아래로 인간도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니, 이것이 우리 인생이 아니냐. 이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타락인간의 구원은 완전분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면 떨어진 사실을 두고 볼 때 얼마만큼 떨어졌느냐?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서 종의 자리만큼 떨어졌느냐? 그보다 더 떨어졌다는 거예요. 흙덩이와 마찬가지의 가치의 존재로 떨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공장에서 만든 제품이 있다면, 그 제품이 제작자가 구상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도리어 불합격품으로 만들어졌을 때, 그것을 다시 만드는 것은 처음 만드는 것보다 더 힘들 것이 아니예요? 이것을 우리는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으로 이것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전부다 분해작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큰 덩치나 작은 덩치나 전부 다 분해해서 다시 조립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것을 다시 어떤 규격을 중심삼고, 부분품의 완전한 설계면 설계를 중심삼고 그와 일치된 실물을 재차 추구하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이 타락했다면 타락한 인간을 다시 복귀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전부 다 분해작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분해작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부모가 있으면 부모를 그냥 붙들고 분해작업할 수 없는 것이요, 부부가 있으면 부부를 그냥 붙들고 분해작업할 수 없는 것이요, 자녀가 있으면 자녀를 그냥 붙들고 분해작업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노정,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노정이라는 것은 완전 분해작업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각자가 다 온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물건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결합되게 될 때, 완성된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집이 완성되려면 문짝이라든가 거기에 소속되는 일체의 부속품이 완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의 집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완전한 개체를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 5장 48절에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들도 온전하라'고 했습니다. 표준이 뭐냐 하면, 하늘의 완전함과 같이 너희들도 완전하라는 것입니다. 절대에 가까울 수 있는 대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두말할 것 없는 것입니다. 주인의 어떠한 구상이 있으면 그 구상 앞에 절대적으로 하나될 수 있는, 추호도 어긋나지 않는, 완전히 일치된 완성품이라고 칭찬할 수 있는 그것을 표준으로 해서 물건을 만들 것이 아니냐.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그와 같은 입장에서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완전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완전한 것을 요구하느냐? 절대자 앞에 대상으로 서기에 부끄럽지 않는 완전품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활에서부터 분석해야 되겠습니다. 생활을 전부 다 헤쳐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도 전부 다 헤쳐 버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몸뚱이까지 헤쳐 버린다면…. 물론 그래 가지고도 죽지 않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갈 수 있는 존재라면…. 일체의 분해작업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사지백체, 우리의 감각기관까지도 분해 분석해야 됩니다. 내가 느끼는 것도 전부 다 옛날과 달라야 됩니다. 내가 보는 것도, 내가 듣는 것도, 내가 느끼는 촉감도, 내가 생각하는 구상도, 나의 심정 방향도 달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안 됩니다.

완전부정에서 완전한 것이 출발한다

타락된 인간 앞에 긍정적인 요인이 남아 있을 때는 타락성을 지니고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완전 분해해야 합니다. 그 형태를 갖춘 그 요소를 그냥 연결시키는 자리에는 타락성 요인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은 완전분해가 아니지 않느냐. 완전부정이 아니지 않느냐? 완전분해라는 것은 완전부정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게 완전부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인간 본연의 이상적인 소원성취의 길은 타락한 인간에게 있는 긍정적인 요인을 가지고는 있을 수 없다, 이렇게까지 결론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신이 종교를 통해서 그의 섭리의 목적을 추구하고 계시다면, 그 신이 주장하는 행로, 그 노정이라는 것이 긍정이 아니라 절대 부정입니다. 절대 부정으로 출발한 기준이 나오지 않고는 타락한 인간 앞에 절대자의 상대이념을 성취시킬 수 있는 길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지어집니다. 그래서 '종교의 길은 반대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반대.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 나온 습관적인, 정서적인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내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 통할 수 있느냐? 이게 문제라구요. 그게 통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 그러나 통할 수 없다는 겁니다. 혹은 남녀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이 통할 수 있느냐? '그거 그래야지' 하겠지만, 이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이 그냥 통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모든 것이 상충이 벌어집니다. 상충되는 이 운동을 제지할 수 있는 놀음이 오늘날 인류역사 노정에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를 중심삼고? 사람을 중심삼는 것이 아니라 신을 중심삼고…. 역사는 그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많은 종교가 나왔는데, 지금의 결과적인 입장에 있어서는 공헌을 했지만, 그 당대에 있어서 공헌한 종교가 있느냐? 없습니다. 그 당대에 있어서는 상충입니다. 모두가 배치되었고, 모두가 부정적인 입장에서 출발했지만, 역사시대를 지나고 나서 그것이 어떻게 공헌의 결과를 가져왔느냐? 그것은 절대적인 주체자인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에, 그 섭리의 지휘 밑에서 역사는 관련되어 나오기 때문에, 그 경륜권내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겠기 때문에 비로소 종교는 역사상에 공헌한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게 행복한 것이냐? 매우 비참한 것입니다. 그건 비참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살림살이,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인연적인 제반 여건, 혹은 관계적인 환경, 이것이 행복한 것이냐? 인간이 타락됐다는 것을 공인할 때, 그 환경과 그 인연과 그 관계는 비참한 것입니다. 왜 비참한 것이냐? 하나님 앞에 슬픔을 가해 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식들이 말이예요. 뭐 애기들을 키워 본 사람들은 잘 알 거예요. 어린 애기들을 보면 물건을 갖고 놀기를 참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칼 같은 것을 가지고 놀 때, 이걸 놓으라고 하면 이걸 붙들고 안 놓으려고 야단한다는 거예요. 울고불고한다 이겁니다. 그러면 부모는 그걸 그냥놔 둘 수 있느냐? 울어도, 아무리 울어도, 그건 뭐 하루종일 울든지 뭐 며칠을 울더라도 자유를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럴 때는 매정하게 빼앗아 버려야 된다구요. 눈물을 뭐 몇 대야 흘리고 야단법석이 벌어지더라도 도리어 채찍을 가해 가지고 빼앗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부모가 참다운 사람이라면, 그 어린 아이에게 칼을 줘서 '어서 놀아라' 그럴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비참한 정상(情狀)에 처한 인간이 있다면, 그 자체를 공인해 주고 협조해 주는 것보다도 그것이 죽음의 길이요, 사망의 길이라 할 때는, 그 반대의 길로 때려 몰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역사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있어서 그러한 사명을 짊어진 것이,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로 등장한 것이 종교가 아니냐. 종교의 길은 비참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비참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긍정적인 요인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타락한 인간이 절대 완전한 것을 추구할 수 없기 때문에, 완전 부정에서부터 완전한 것이 출발할 수 있는 가망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많다

그러면 절대적인 하나님이 우리 인간 세상을 보고 기뻐할 수 있겠느냐? 기쁘다고 봐요?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춤을 추지만 그 춤추고 난 끝에는 함정에 다시 떨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뭐 자기를 자랑하고 뭐 어떻다고 큰소리치더라도 그것은 최후의 암흑과 더불어 파탄되고 말 것입니다. 그 과정은 호화찬란한 것 같지만 그 문화의 종말은 비참이요, 파멸이요, 모든 부정적인 요인을 결론지어 주고 마는 것입니다.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사회의 공인과 인정을 못 받고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부정적인 요인이 내포되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역사시대의 수많은 문명권이 발전했다가 왜 망하게 되었느냐?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보다 더 큰 세계를 향해서, 만민을 위하고 만국을 위할 수 있는 문화의 행로를 거쳐 나가지 못하고, 그 발전함에 비해서 그 반대적으로 그 발전한 사회는 망할 수 있는 요인이 더 커 간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이 현대문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같은 예를 두고 봐도 그들에게는 외적인 물질적 세계에 있어서는 무슨 불평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제반 여건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자리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행복한지 모르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회에 그들 앞에 더 높은 고차적인 희망을 촉구시킬 수 있는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파탄적인 내용-암적존재-이 보다 크게 내포되어 있어서 그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그 최후를 향해 점점 접근해 가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역사는 반드시 부정당해야 되며, 문명도 부정당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부정당할 수 있는 역사적인 운명을 타락한 인간이 이루어 나왔기 때문에, 이것을 초월할 수 없고 넘어설 수 없는 것은, 그런 결과에 부딪치는 것은 하나님이 있다면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부정하려면 아예 문명이고 뭣이고 출발도 못 하게 부정해 버리면 될 것이 아니냐? 그게 아닙니다. 인간은 경험을 다 해봐야 되는 것입니다. 칼을 가지고 노는 아이를 만일에 부모가 말리게 될 때는, 그 내용을 모르는 아이는 떼를 쓰고 야단하며 나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지고 놀다가 팔을 베어 보고 상처를 입어 보면 '아이쿠…' 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다 해봐야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봐라 이겁니다. '너희들이 이 세상에 다른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싶으면 해봐라' 이겁니다. 해보지만 그것이 인간들 뜻대로 안 되게 될 땐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무엇을 추구하느냐? '너희들의 힘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고 하나님이 소원의 일면을 그것으로 말미암아 다짐지을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을 추구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했던 사람이 돌아서게 된다면 다시는 타락의 길을 안 갈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이 있는 곳에,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많다는 말도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계가 갈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은 메시아를 찾는 것

그러면 오늘날 이 세계를 두고 보면, 이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이냐? 하나님이 바라시는 이상, 그걸 중심삼고 볼 때 그 이상은 어디서 실현될 것이냐? 오늘날 여러분이 살고 있는 가정이냐? 아닙니다. 여러분이 바라보고 있는 대한민국이냐? 아닙니다. 혹은 선진국이냐? 그거 아니라구요. 이걸 크게 부정해서 초월할 수 있는 운동이 어디서 나오겠느냐 하는 문제가…. 이것을 완전히 부정해 놓고도 거기에 행복한 것을 밀고 나와 가지고 '너의 행복이 무엇이냐? 너의 힘이 무엇이냐?' 하는 이상의, 완전부정권내에 서 가지고도 그 이상의 것을 능가할 수 있는 내용을 들고 나오는, 신을 위주한 새로운 운동에서만 그것을 바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타락의 역사의 종말이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게 된다면 여기에서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완전히 부정해야 돼요. 개인 부정, 가정 부정, 종족 부정, 민족 부정, 국가 부정, 세계 부정을 해 놓고도 그 이상의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신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소원과 새로운 소망과, 새로운 이상과, 새로운 사랑을 주장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여기서 비로소 이 세계가 갈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바랄 수 있지, 그냥 이대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안 된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만큼 끌고 나온 하나님을 볼 때, 여기에 이러한 숨막히는 장면, 즉 그야말로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흥망성쇠가 한 행동에 좌우될 수 있는 경각에 임하면 임할수록 하나님이 계시는 한 여기에 대안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안 그래요? 예를 들면, 사랑하는 자식이 지금 물에 빠져 떠내려간다고 하면 그 부모는 무슨 힘이 없어서 그렇지, 힘이 있다면 비상수단으로 그물을 치든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구하려 할 것입니다. 그것을 빠진 그 사람은 모를 겁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여보시오,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해 가지고 그물을 쳐 주소!' 하고 지시해 가지고 그럴 수 있어요? 그 자체에 급급한 것입니다. 옆을 못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어떠한 절대자가 있다면 그물을 치는 놀음을 할 것이 아니냐. 역사의 종말의 비참함이 탄식과 절망으로 귀결되어 인류 앞에 찾아오면 그 절망과 비참의 자리에 서 있는 인간들은 모르지만 이것을 방비할 수 있는 표어와 혹은 준비와 예고를, 인간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해왔을 것이 아니냐? 그것이 예언자들을 통한 예언임을 우리는 여기서 들고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메시아가 와야 됩니다. 메시아 사상은 지극히 고마운 사상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류도 비참하지만 그 정경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어떨 것이냐? 숨막히는 시간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것을 구할 것이냐? 한꺼번에 세계를 몽땅 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으로부터, 한 사람으로부터 구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한 사람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이 땅 위에 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은 보이지 않는 분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그분과 그분을 볼 수 없는 인간과는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보이는 인연을 갖고 오시는 분이 메시아요, 그 사상이 메시아 사상입니다. 종교를 보면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메시아 사상이 없는 종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종교는 한 목적을 지향한다는 부정할 수 없는 결론을 우리는 내릴 수 있습니다.

인간회복은 부모가 있어서 행복하다는 자각에서부터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만 비참한 것이 아닙니다. 어찌하여 결과가 이렇게 되었느냐 하는 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더욱 비참한 것이 아니냐.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본래의 인간은 행복할 것인데, 그 행복의 모든 요인을 전부 다 포기해 버리고 절망과 비운의 자리, 생사의 기로에 서서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은 보다 비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을 대해 나오시는 하나님은 이상적인 분이요, 절대자이기 때문에 그 절대자가 느낀 슬픔은 절대적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절대자가 아픔을 느꼈던 것은 절대적으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않아요? 진정한 효자의 한마디 불효한 말은 불효자의 백 마디 불효의 말보다 더 아픈 것입니다. 그것은 일생 동안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되겠어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가 슬픔을 느꼈으면 그 슬픔이라는 것은 언제나 절대자의 마음에 뽑아지지 않는 슬픔으로 남아질 것이 아니냐. 인간이 타락했다면 타락한 그 순간의 아픔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한 슬픔과 그 아픔이라는 것은 그의 가슴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히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분 그래요. 사랑하는 자식을 잃게 되면 말이예요.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 기간이 오래 가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상대적인 관념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사라져 버리지, 절대적인 관념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슬픔이 되살아 나오는 것입니다. 아들 또래들이 크면 클수록, 아들의 친구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친구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들이 잘살면 잘살수록, 훌륭해지면 훌륭해질수록 거기에 비해서 그것이 되살아 나오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사랑의 주체 되는 분은 비참하다, 비참하지 않느냐고 여러분이 결론을 지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의 내정을 미루어 볼 때도, 그것이 긍정될 수 있는 사실이라면 주체 되는 하나님은 얼마나 슬펐을 것이냐? 그 슬픔의 시간이라는 것은 일시적으로 흘러갔는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이라는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 순간에 '아담아! 해와야!' 하고 부르던 그 애달픈 마음은 역사시대를 넘어 가지고…. 지금도 애절한 마음으로 부를 것이 아니냐? 그러한 주체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불쌍하다면 불쌍한 반면 우리 인간 앞에는 가장 귀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부모가 있다는 것은 지극히 비참한 것이지만, 그런 자리에 선 부모 앞에 면목이 없는 것이지만, 내 앞에 그러한 부모가 있다는 사실은 행복한 것이 아니냐. 사랑의 아픈 그 마음을 가지고 천년 만년의 세월을 하루같이 나를 잃어버린 슬픔을 품고 나오는 부모가 있다는 사실은…. 그 자리에 도달할 수 있는 안위의 자리를 못 가진 것이 한이지 내일에 대해서 가졌던 소망이 얼마나 크다는 것, 그 내연적인 사실은 사실이 아니냐.

그런 사실을 두고 볼 때, '불쌍한 나였지만 그런 부모가 있어서 그분이 나를 생각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행복하다' 하는 일념을 자각해 가지고 여기서 다시 돌아서는 데에 있어서 인간 회복운동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너무나 슬퍼했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는, 나는 불효했다는 것을 뼛골에, 세포에 사무치도록 절절히 느끼게 될 때는, 불효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서 비로소 부모를 다시 찾게 되는 것이요, 그 부모 앞에 비로소 하나될 수 있는 위로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느끼지 않고는 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불효로 인한 아버지의 슬픔을 해소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라

그러면 종교는 무엇이냐? 그러한 하나님, 심정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지금까지 수천년 수만년의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우리 인간 자체를 구하기 위해서 그 아픔을 억제해 나오신 비참한 과거를 연상하면 연상할수록, 과거에 지내 나오던 수난길이 멀면 멀수록,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그 내정에는 자식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이 되살아났을 것이 아니냐. 자식을 위하는 그 마음이 되살아 났을 것이 아니냐. 자식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이 되살아났을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타락한 역사 종말시대에 메시아를 이 땅을 회복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적 존재로 세워 가지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면 그 기쁨은 어떻겠느냐? 그 기쁨이라는 것이 옛날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의 슬픔을 능가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타락했을 때 이상 자극적인 기쁨을 통쾌하게 느낄 수 있는 자리, 그러한 자리에 나가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불쌍한 하나님입니다. 불쌍한 하나님으로 끝날 것이 아니냐. 그가 자랑할 수 있는 심정적인 내연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역사시대를 거쳐오는 과정에서 당한 수난은, 잃어버린 자녀를 찾기 위해서 수난길을 극복해 나오는 데 있어서의 그 모든 슬픔과 역경의 갈림길이라는 것은 심정에 상처를 가해 준 것은 물론이고, 가해진 상처가 말할 수 없이 컸다는 것입니다. 이 상처를 품고 찾으시는 것이 뭐냐? 잃어버린 자녀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수난길의 고통에 비례되는, 찾아지는 때의 기쁨의 자극을 배가할 수 있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성경에도 주인이 백 마리 양 중에서 한 마리의 양을 잃어버렸을 때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남겨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데 찾아 다닐 때는 고통이 심했지만 그 한 마리 양을 찾았을 때는 놔 둔 아흔 아홉 마리를 보는 것보다 더 기뻐한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 이겁니다.

심정세계에 있어서는 가중된 역사시대의 수난길이라는 것이 물론 비통하고 비참한 것이지만, 그것이 우리 인간이 찾아질 수 있는 때에 있어서는 도리어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이상의 슬픈 심정을 넘어설 수 있는 자극적인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대해 가지고 사랑의 마음으로 지금까지 참고 극복해 나오는 또 다른 일면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길은 뭐냐? 그러한 심정적인 내연을 어떻게 내가 상기시키느냐 하는 데에서부터 본질적인 신앙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인간 회복운동 혹은 구원운동, 복귀운동에 있어서 어디서부터 사람이 돌아설 수 있느냐? 외적인 문제가 아니라구요. 슬픈 하나님의 심정 앞에 있어서 그것을 동정하고 내가 거기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부모가 가는 길에 자식이 같이 가면 그는 효자인 것입니다. 군왕이 가는 데 같이 끝까지 생사지경을 넘어서 가려고 하는 사람은 충신인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임을 알아 가지고, '부모가 고생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나도 고생하는 자리에 간다. 그분이 나로 말미암아 슬픔을 당했기 때문에 내가 더 슬픔을 당하는 것이 응당한 것이다' 하며 그것을 감수할 수 있는 입장에 설 때 그는 효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신앙자는 세상의 고통과 마주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갈 수 있는 십자가의 길을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너희 부모나 처자나 그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못하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했고, 그 다음엔 '자기를 이기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나에게 합당하지 못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 된다구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이 심정의 빛을 짊어지고 있으니 이것을 갚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불효한 자는 불효로 인한 그 심정의 요인을 해소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전에는 돌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구요.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가 극도로 고통스러웠던 것은 세계적인 십자가를 대신한 심정의 중심으로 세우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심정의 가지와 같은 여러분들에게도 거기에 접붙이기 위한 또 하나의 십자가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불효했던 것을 회개하라

그러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구원시킬 것이냐? 몸뚱이의 구원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이 몸뚱이를 구하려고? 밥을 먹고 하는 이 몸뚱이는 언제나 있는 거예요, 이게. 이 타락한 인간이 갖고 있는 오관을 가지고 느끼는 감정은 언제나 있는 겁니다. 그것을 필요로 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타락권내에 있는 인간의 정서적인 일면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요, 타락권내에 있는 인간의 어떠한 일체의 내용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부정하고 더 차원 높은, 또 다른 면에 있어서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마음을 중심삼은 그 세계의 그 무엇을 동경하고 바랄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이냐? 불효했던 그 사실을 다시 느껴 가지고 그 반대의 자리에서 부모를 위해…. 부모가 울었으면 나는 2배 이상 부모 앞에 울 수 있는 모습을 갖추고 나와야 될 것이고, 부모가 아팠으면 그 이상의 아픔을 내가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회개가 있는 것입니다, 회개.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야, 너희들 노력해서 천국가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회개하느냐? 불효했던 심정의 빛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 회개된 위에서 이루어지는 가정이라야 회개된 가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요, 그 가정 위에 선 종족이어야 회개된 종족으로, 그 종족 위에 선 민족이라야 회개된 민족으로, 그 민족 위에 선 국가라야 회개된 국가로, 그 국가 위에 선 세계라야 회개된 세계로 하나님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을 통일의 세계가 되게 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통곡할 수 있는 인류가 되어야 됩니다. 결론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통곡할 수 있는 인류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공산당이면 공산당 자체가 통곡할 수 있는 날이 와야 되는 것입니다. 민주세계를 중심삼고 세계를 하나로 못 만들었으면 '이 민주세계를 가지고는 안 된다' 하며, 이걸 붙들고 통곡해야 됩니다. 이것을 저버리고, 이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무엇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통곡하는 운동이 역사 종말시대에 나타나지 않고는 돌아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 같은 나라는 이제 통곡할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민주주의가 좋다고 하지만 끝까지 가다 보니 전부가 개인주의화 되었습니다. 개인을 절대시하는 자리에는 나라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뭐 세계가 어디 있어? 세계가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 나라가 무슨 관계가 있어? 친척이나 종족이 무슨 관계가 있어? 가정이 무슨 관계가 있어? 어미 아비가 무슨 관계가 있어? 형제가 무슨 관계가 있어? 하고 있으니 동물과 마찬 가지입니다. 그야말로 비통의…. 밤이나 낮이나 진실한 의미에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통탄할 일일 것입니다. 여기서 도약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하고 싶을 것입니다. 이것을 일시에 뭉그러뜨리고 부정해 가지고 새로이 날아가고 싶은, 미련 없이 날아가고 싶을 단계에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붙들고 통곡할 때가 왔습니다. 그런 거예요. 뭐 죽자니 청춘이요, 살자니 고생이라는 말과 같이…. 그런 역사시대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몰아낼 것입니다.

그러한 여건을 일시에 부정하고, 부정된 것을 또다시 부정한 입장에 서 가지고 되돌아설 수 있는 데서만이 새로운 인류의 소망이 열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던 종교인들이 문제가 됩니다.

보라구요. 여러분들이 그렇잖아요. 물질을 가지고 세계를 움직여 봤습니다. 물질의 힘 가지고 세계를 쥐고 땅의 힘을 가지고 권세를 쥐고 뒤흔들어 봤습니다. 나라도 그렇잖아요?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마음대로 억제하고 자기 주도권을 확대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세계를 뒤흔들어 봤다는 것입니다. 물질 가지고 뒤흔들어 봤다 이겁니다.

선과 악

타락을 보게 되면 말이예요. 삼단계 타락입니다. 심정 타락, 마음 타락, 몸 타락입니다. 그러면 타락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하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몸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구요. 결과로 보면 첫째는 심정 타락…. 마음이 문제입니다. 즉, 마음을 중심삼고 몸뚱이가 타락했고, 마음을 중심삼고 심정이 타락했습니다. 이것이 타락의 경로라구요.

천사장을 두고 보더라도, 사탄을 두고 보더라도 자기 마음에서부터 동요가 벌어졌다구요. 몸뚱이에서부터가 아니라구요. 사람이 실패하는 것도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몸뚱이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예요.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것은 몸뚱이가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그렇지요? 한 가지 잘못 결정함으로 말미암아 전부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역사를 거쳐가는 거예요. 그 마음에서부터…. 그래서 하나님을 되돌아 찾아 나가려니 복귀역사는 몸뚱이가 문제되는 거예요. 인간의 몸뚱이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 인간의 몸뚱이가 사탄의 몸뚱이가 되었고, 인간의 마음이 사탄의 마음이 되어 버렸으며, 인간의 사랑이 사탄의 사랑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인간 몸뚱이를 중심삼고 세계를 흔들려니 악이 득세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즉, 악이 물질을 중심삼고 득세할 때, 악이 마음을 중심삼고 득세할 때, 악이 사랑을 중심삼고 득세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끝까지 팽창해 가지고 그 몸뚱이도 부정받고, 마음도 부정받고, 사랑도 부정받거들랑 끝날이 된 것입니다. 지금 때가 바로 그런 때입니다.

지금 포인터, 사냥개 한 마리 사려면 몇십만원 줘야 됩니다. 그런데 사람을 3만 원만 주고 사 가라고 해도 살 사람 있어요. 거 개 새끼만도 못한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더우기나 나이 많은 사람 같으면 그냥 줘도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있어요? 야, 이놈의 고기덩이가 짐승고기 값만큼도 안 나가는…. 이렇게 떨어졌다구요. 이 인간아, 잘됐다. 이놈의 인간들아, 그건 그래야 되는 거라구요. 불효한 녀석은 지나가던 미친 개가 물더라도 그건 잘했다 하지 안됐다고 해요? 세상에 알려진 불효 자식이 도망가고 있는데 미친개가 쫓아가서 뒷다리를 물고 늘어지고, 피를 철철 흘리게 되면 그것 못했다고 하겠어요, 잘했다고 하겠어요? 잘했다고 하는 거라구요. 도망가는 역적의 다리를 미친개가 물고 늘어지게 되면 그거 잘했다고 하겠나요, 못했다고 하겠나요? 잘했다고 한다구요.

그 다음엔 뭐냐? 몸뚱이시대가 지나게 되면, 그것이 끝날 때가 되면 마음시대가 옵니다. 이것이 사상시대라구요. 그래서 이 세계역사는 몸뚱이적인 땅이 세계를 지배하는 때가 오고, 물질이 세계를 지배하는 때가 오고, 그 다음엔 사상이 세계를 지배하는 때가 옵니다. 요때가 왔다는 거예요. 사상이 세계를 지배하는 거예요. 갈라진 마음을 가지고, 사상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악이라는 것은 본래 어떻게 되어 있느냐? 주인을 부정해 버리고 또 다른 주인의 입장에 선 것이 악입니다. 이렇게 돼요. 역적이 뭐냐? 역적과 충신이 다른 것이 뭐냐? 다 같다구요. 그렇다고 군왕을 반대하는 역적은 없습니다. 수단 방법은 조금 다르지만, '오, 충신보다도 내가 당신을 더 위했소' 이런다구요. 더 위한다고 하는 거라구요. 그것은 계통을 통하지 않은 것입니다. 중심의 역사라는 것은 전통을 통해 나오는 것입니다. 과거가 뚜렷하고, 현재가 뚜렷하고, 미래가 뚜렷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악은 그렇지가 못해요, 악이란 것은.

선은 무엇이냐? 역사를 위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 선(善)입니다. 역사를 위하기 때문에 자기의 현재를 부정하는 거예요. 또, 선은 무엇이냐? 전체를 공인하고 현재의 자기를 부정하는 데서만 선이 되는 것인데, 그게 공적입니다. 미래를 긍정하고 미래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자기의 가치를 부정하는 데서만이 새로운 전통, 선의 전통이 이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악은 무엇이냐? 미래가 없는 것입니다. '과거가 뭐야? 미래가 뭐야 나면 돼, 나, 나' 이렇게 '나'만 제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은 천하가 되기를 꿈꾸는 거예요. 이게 악입니다. '모든 것이 나로 말미암아 있어라? 이러는 게 악이라구요. 모든 것은 절대적인 창조주로 말미암아 있어야 할 터인데, 그것을 부정하고 '나로 말미암아 있어라' 이러는 게 악입니다. 모든 것은 내적인 가운데, 중심에 서 있는데 '내적이 뭐야' 하며 부정해 가지고 '외적인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철학사조로 볼 때, 유심사관과 유물사관입니다. 반대라구요, 반대. 마음이 있는데 마음이 없다고 해 가지고 몸뚱이가 중심이라고…. 그러면서 이 몸뚱이를 강제로 치는 것입니다. 악은 강제로 하는 것입니다. 순리가 아니라 역리적인 행동을 해 나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탄압이요, 공포요, 공갈이요, 협박이요, 생명을 위협하면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식이 공산당식입니다.

벽에 부딪힌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현재의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가 진정한 의미에서 어디로 갈 것이냐? 공산당도 믿을 수 없고 민주세계도 믿을 수 없습니다. 어디로 갈 것이냐? 몸뚱이 세상을 부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물질문명의 권위 혹은 지금까지 땅의 기반을 중심삼고 권위를 자랑하던 그런 주의를 우리는 숭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기의 야욕과 욕망, 일방적인 자기의 욕망을, 내적인 것을 부정하고 외적인 입장을 절대시하는 그런 사상은 사탄의 사상이라구요. 오늘날 유물사관을 중심삼은 세계 제패의 사상, 그것이 온 세계를 한 번 뒤흔들 것입니다. 그래, 하나님은 사탄으로 하여금 다 해보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소원을 다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절대자라는 거라구요. 악한 사람의 소원까지도 '너 다 해봐라' 이러시는 하나님이라구요. 그게 하나님의 절대자로서의 아량이요 권위라는 겁니다. 악한 네 힘대로 한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이놈의 나라가 죄다 망했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언제나 망했지만, 그 나라의 사람은 안 망했다구요. 그렇지요? 문화와 문명은 망해 나왔지만 사람은 망하지 않았어요. 그렇잖아요? 그 누가 그것을 점령했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모가지를 다 잘라 버려요? 나라는 언제나 망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오랜 역사시대에 독재자들이 이루어 놓은, 자기 야욕으로 이루어 놓은 문명도 그 독재자의 이름과 더불어 사라져 갔지만 그 백성은 남아 나온다는 거예요. 그저 그 백성은 왔다갔다하면서 남아 나온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구요. 꾸불꾸불하면서 틀어지니까 이리 가고 저리 가고…. 이래 가지고 끌고 나오는 거라구요. 정치 야욕을 가진 독재자의 그 사상을 중심삼은 수많은 국가 주권은 변천해 나왔지만 종교는 변천 안 해 나온 겁니다. 종교는 변치 않는다, 이것이 특징입니다.

현재 기독교가 염려해서 외치는 것이 뭐냐 하면, '자, 초대교회로 돌아 가야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 이제 진짜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운동을 해야 된다구요. 변해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변질해서는 안 된다, 본질로 돌아가야 된다 이겁니다. 출발과 끝, 시종(始終)이 일치되는 것이 참인 것입니다. 첫 출발이 그랬으면 끝에 가서는 횡적인 면에 보다 배가된 그런 현상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 더 많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을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워 가면서 홀로…. 밀실에 들어가서 기도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와 같은 현상이 끝날에 벌어져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그 놀음하자는 거라구요. 뭐 기성교회가 통일교회에 대해서 반대하겠으면 하고, 우리는 갈 길이 바쁘지…. 귀한 손님이 동네에 나타나면 개는 짖는 거예요. 그렇지요? 거지가 나타나도 짖지만, 그걸 듣는 데 있어서는 그 내용이 다르다 이겁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오늘날에 있어서는 사상전입니다. 하나님을 빼놓은, 그래도 양심을 중심삼은 사상과 악을 중심삼은 사상이 싸우는 사상전입니다. 그거 재미있지요? 공산당은 전체주의입니다. 그런데 민주세계는 왜 개인주의 세계냐? 그것은 악이 주권을 잡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 선은 개인주의로 끝나는 겁니다. 그리 된다구요. 이게 악주권 앞에 설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주의 세계의 종말이 딱 벌어집니다.

물론 민주주의 세계가 하나의 형태, 하나의 모습을 갖춘다고 했지만 우리 인간으로서 양심적인 사람은…. 여러분들 이것을 기억하라구요. '내가 양심의 가책 안 받으면 다 되지' 하지요? 천만에요. 다 될 것 같아요? 양심적인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이루어 놓은 세상이 개인주의 세상이 돼 버렸다구요. 이렇게 돼 버렸다구요. 사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제는 사람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났어요. 공산주의 가지고도 안 되고, 민주주의 가지고도 안 된다 이겁니다. 그건 이제 다 알게 되었다구요.

자, 돌아갈 수 있는 사람,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자기가 현재 어떠한 입장에 있다는 것, 방향이 동쪽에 있는지 서쪽에 있는지 그것을 알게 될 때는 그 사람은 가만히 안 있습니다. 그 자리에 암만 떡을 갖다 놓고, 밥을 갖다 놓고, 혹은 뭐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것 갖다 놓고 거기 있어라 해도 안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다 알았다 이겁니다. 민주세계는 어떻고 공산세계는 어떻다는 걸 다 알았다 이겁니다. 무슨 내용을 가지고 아무리 공산당이 선전하더라도 세계는 공산당을 다 알았고, 민주세계가 아무리 선전하더라도 다 알았다 이겁니다.

색다른 세계 운동-하나님주의

그러면 이제부터 모르는 세계운동이 시작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색다른 세계운동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것이 공산주의도 아니요 민주주의도 아니면 무엇이냐? 이것들은 보다 악한 사람, 보다 덜 악한 사람을 중심 삼은 주의(主義)였습니다. 여기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의가 개재되는 날에는 인간들은 모를 주의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사람은 모를 주의가 종교라구요.

'그 예수 믿고, 뭐 종교 믿는 녀석들은 다 어리석은 녀석들이야'라고 하지만, 여기 통일교회 문선생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망발이예요. 그러는 녀석들은 내가 멱살을 잡고 다그칠 거라구요.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예요. 종교인들이 어리숙해 보이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라구요. 보라구요, 문선생이 그렇게 어리숙하게 생겼나, 눈을 보라구요.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예요. 지독한 사람입니다. 적당히 통하는 사람이 아니예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둘 중의 하나지, 어영부영해 가지고 적당히 꽁무니빼는 그런 사람이 아니예요. '세상이 반대하겠으면 반대하고, 나라가 반대하겠으면 반대해라' 하고 당당히 선포해 놓고 가는 거라구요. 교계가 반대하겠으면 반대해라! 실력 대결이다! 최후에 가서 누가…. 그렇잖아요? 세계적인 책임자가 되려면 1차전, 2차전, 3차전뿐만 아니라 10차전, 20차전, 100차전까지 해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세계적'이 되려면. 나라가 많은 데서 그 나라의 대표가 되려면, 백 개 나라면 백 번 싸워서 이겨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백 번 싸워 이겨 가지고 최후에 남더라도 출발하던 때 이상의 당당한 패가 되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 패라구요. 임자네들은 그런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안 그렇거든 다 보따리 싸라구요. 돌아가라는 거라구요. 시시하게 뭐 통일교회 나쁘다고 뭐…. 그런 껄렁패가 아니라구요.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라구요. 서울대학 들어가는 데도 돈 주고, 그저 머리 싸매 가지고 그러는데, 통일교회 들어오기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내가 이런 이야기 하면 '뭐 종교인이 그런 고자세로…'그런다구요. 이제는 고자세로 하지 않고는 일이 처리 안 될 때가 왔다구요. 판사는 최후 판결의 전까지는 저자세입니다. 그렇지만 최후에 가서는 고자세로, 최고의 고자세가 아니고는 판결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고자세를 취할 때가 돼야 할 텐데, 고자세가 되려면 두 세계를 전부 다 요리하고 남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암만 고자세로 했댔자, 그건 밤에 와도 집어치울 수 있고 낮에 와도 집어치울 수 있다구요. '뭐 종교인들은 약자들이나 귀의해 가지고 뭐 어떻고, 일하기 싫어하는 꿍꿍이 패들이 아니냐? 하겠지만 그런 시시한 패들은 종교인이 아닙니다. 세계는 종교가 지배하는 거라구요.

우리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무엇을 갖고 있어요? 무엇 갖고 대한민국을 구할 거예요? 기성교회 갖고도 안 된다구요. 공산당을 가지고 안 된다구요. 민주세계 가지고도…. 자기들이 불리할 때는 언제나 포기해 버리고 의리를 배반하는 민주세계는 이거 발길로…. 내가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싸웠지만 앞으로 미국을 중심삼고 싸울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로서 할 놀음 다 해봤다 이겁니다. 그렇잖아요? 인간들로서 할 놀음 다 해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야 야.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이것이 민주세계이고, '가인아,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이것이 공산당이라구요. 공산주의는 유물주의예요. 이것을 누가 먼저 세웠느냐? 가인입니다. 복귀라는 것은 병난 그 근원을 파헤쳐 가지고 청산짓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가인주의가 무엇이냐? 공산주의라구요. 그것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부모를 부정하는 거라구요. 아벨은 뭐냐? 하나님을 위하고, 부모를 위하는 것이라구요.

하나님의 사랑을 빼앗기 위한 싸움이 벌어져야 한다

지금은 어떻게 돼 있느냐 하면, 타락한 인간 세계에 있어서의 민주세계도 이제는 하나님을 위주하고 출발했으면서도, 하나님은 잃어버렸다구요. 하나님은 죽었다고 하는 때가 왔다구요. '중심이니 뭐니, 국가라든가 민족이라든가 가정 같은 것은 꿈도 안 꾼다구요. 다 집어 던졌다구요. 결국 인간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사랑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상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예요. 이상을 지닐 수 없다는 거예요. 사랑만이 최고일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 분들이 현재 시점에서 보라구요. 우리 사람을 두고 보면, 역사는 사람 하나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악한 사람들이 선한 사람을 완전히 때려서 죽이든가, 쓰러질 때…. 이것이 최후를 결정하는 순간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날에는, 생명이 극할 수 있는 때가 되게 되면 하나님이 발동하신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춘향이에게 이 도령이 암행어사로 출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최후의 경각에 가 가지고 모든 것이 뒤집어질 수 있는 때가 되어 옵니다. 최후다 이겁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 어사 출동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겠어요?

지금 보라구요. 금번에, 내가 3차 세계순회노정에 올라 전세계를 돌아 보면서 느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야! 공산당이 빨리도 발전해 가는구나! 빨리도 세계를 쑤셔대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여실히 느꼈어요. '이놈의 자식들, 나에게 이제 얼마만의 기간을 다오. 너희들과 정면 충돌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러고 돌아왔어요. 그래서 세계적으로 통일 십자군이란 것을 편성해 가지고 돌아왔으니, 이제부터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고 있다구요.

여러분은 대한민국에만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이제 여러분도 한국 문제만 논의할 때가 지나갑니다. 미국이면 미국이 미국 자체의 이익만을 취하는 정치노선 가지고는 갈 수 없습니다. 세계 이익을 위한 정치노선을 하나님이 허락한 것인데, 돌아서는 날에는 들이 맞는 것입니다. 미국이 이제 망한다구요. 내가 미국의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호통을 쳤어요. 이 시퍼런 눈에 키다리 말 같은 녀석들한테 '미국은 몇 해 지나가게 되면 망한다. 이놈의 자식들 두고 봐라' 하고 공공연히 들이 조져도 눈만 껌벅껌벅하고 뭐…. 우리는 그런 교육을 해야 되겠다구요.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이렇게 교육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앞으로 대한민국도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이걸 생각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두고 보면, 물질을 중심삼은 땅 빼앗기 위한 싸움, 그 다음엔 사람 빼앗기 위한 싸움이 있었는데, 그 다음엔 뭐냐? 사랑 빼앗기 위한 싸움을 했는데, 그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사랑 빼앗기 싸움입니다. 그러기에 나중에는 종교전쟁이 남아 있어요, 종교전쟁.

지금 세계 36억 인류 가운데 20억 가까운 수가 종교인이 아니냐. 이들이 어떠한 정치적 영역까지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지금 한국만 하더라도 뭐 기독교와 불교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세계적인 기독교당이 나올 것입니다. 그거 안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세계적인 불교당이 나올 거라구요.

미국 같은 나라가 책임 못 했다는 거라구요. 내가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1965년에 만나 가지고 한 말이 그거라구요. '당신이 재임시에 한 것이 뭐냐? 한국동란 때에…' 이런 거예요. 아이젠하워라는 말은 '아! 이젠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 아이젠하워라구요. 거 이름도 비슷하다구요. 그때 저 히말라야의 뭐 달라이 라마(Dalai Lama)사건이 있었다구요. 그게 세계적인 사건이었는데…. 공산당은 종교의 원수라고 해 가지고 그런 찬스를 포착해서 세계적으로 매스컴을 동원하고 미국에 있는 종교인들을 규합하여 세계 복지화 운동을 제창해 가지고…. 뭐 30억 달러 정도의 자금만 만들었으면 세계의 4대 종교를 완전히 한 손아귀에 규합했을 것이 아니냐 그겁니다. 이래 가지고 복지화 운동을 하면서 '공산당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니 그 이상 원수가 어디 있느냐' 하며 이런 놀음을 했더라면, 세계 종교는 제2의 전략을 위한 완전한 터전을 만들었을 것인데, 미국이 그렇게 손댔어요?

내가 지금까지는 공산당은 틀림없이 아랍권을 중심삼고 재출발할 것이다 한 것입니다. 그래 지금까지 왔다가 지금 이집트가 몰락하는 때에 있기 때문에 공산당도 휘딱 지나가는 것입니다. 미국도 민주세계에서 몰려서 후퇴하는 것입니다. 다 마찬가지예요. 아랍권에 진출했던 소련이 후퇴 함과 동시에 세계무대에 진출했던 민주주의 대표인 미국도 후퇴하니 누가 언도할 것이냐? 지금 이렇게 돼 들어오는 겁니다.

신본주의 사상으로 기독교를 통일하자

그런 의미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기독교를 통일하자는 것입니다. 원래 선각적인 싸움으로 출발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통일하는 데는 무엇을 가지고? 주먹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물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 너를 더 사랑했느냐, 누가 너를 덜 사랑했느냐 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앞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지금가지 그런 놀음하고 있다는 겁니다. 대한민국 이 민족을 누가 더 사랑했느냐? 속여 가지고 뜯어먹는 패들이 아니라 자기가 죽어 가면서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린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부모는 자기 자식을 사랑했다고 광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 놀음하자는 거라구요. 어떤 기관에서는 통일교회는 왜 선전할 줄 모르냐고…. 우리는 선전해서 팔아먹고 발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자기들의 수법일는지 모르지만, 통일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어떤 실적을 가지고도 실적의 3분의 2이상은 생각하지 말라는 주의라는 거예요.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사랑했다고 선전하게 된다면 그것은 불효자를 길러 놓는 자원이 되는 것이 아니냐. 그렇지요? '야야! 내가 너를 위해서 눈물을 이렇게 흘리고 피땀을 흘렸는데, 요놈의 자식아 그걸 몰라줘, 요것아, 요것아' 이러는 것은 불효를 낳는 기원이 돼요. 한 면으로 수고는 했지만 불효자를 양성하는 기원이 되는 것이 아니냐.

대한민국에 있어서 뭐 통일교회가 나라를 위해서 뭐 어떻게 어떻게 했다고 해서 뭐 어떻고 어떻고 그러는데…. 지금까지 나라가 못 하는 일을 내가 많이 했다구요. 빚을 지면서…. 요즈음 뭐 통일교회가 돈 많다고? 돈이 뭐야? 피를 팔아 가지고 이 놀음하고, 굶으면서 이 놀음하고 있다는 거라구요. 그런데 뭐 어떻고 어떻고, 그 조총련의 돈을 들여와? 이놈의 자식들, 조총련을 때려 잡기 위해서 선두에 서서 싸우고 있는데, 지금까지 기성교회에서는 그렇게 모략하고 있다구요. 뭐 통일교회가 이렇게 강력한 단체이기 때문에, 문선생은 이렇게 해 가지고 수가 많아지면 정당을 만들어 가지고 대통령 해먹으려고 한다고 하는데, 대한민국 대통령? 대한민국이 뭐가 크다고. 내 이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구요. 미국을 주더라도 내가 콧방귀를 뀐다구요. 그래서 내가 요번에 미국의 상원의원 유명한 녀석들을 만나 가지고 다 말한 거라구요. 이놈의 자식들, 배통에는 썩은 호박통밖에 없다 이겁니다. 이놈의 자식들, 불쌍하게 돼 있지.

여러분은 이제 정신을 차려야 되겠다구요. 이제 누구를 믿을 것이냐? 마음을 중심삼고 외적으로 출발한 그 문화의 발전의 터전이 내적으로 귀결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연합니다. 신본주의 사상은 인본주의 사상의 종결을 보는 것입니다. 인본주의 사상은 종말점에 가서 행복이 아니라 파탄입니다. 갈 곳이 없다 이거예요. 인간의 본질을 보라구요. 전부 다 자기 중심삼은 인간들 아니예요? 큰 사람 작은 사람 높은 사람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자기 위주한 인간주의 휴머니즘에서 세계 통일할 방안이 나온다는 것은 꿈도 꾸지 말라는 거예요. 따라서 그것은 인간애가 아니예요. 자기 위주한 인간이 아니예요. 자기를 희생시키고 전체를 위주할 수 있는 사랑을 중심삼고 제창하는 운동이 벌어지면 이것이 신본 주의 사상입니다. 박애주의 사상입니다. 나를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어떤 집안에 열 사람의 식구 가운데 주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열 사람을 고생시켜 자기 야욕을 충당하려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열 식구를 위해서 말없이 희생하는 사람을 열 사람이 추대해 가지고 중심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게 원칙이 아니냐. 부모까지도 그 앞에는 무릎을 꿇고 천년 만년 축복을 해주는 것이 아니냐. 그게 원칙이라구요.

타락은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하여 거기서부터 파탄이 벌어졌기 때문에, 개인주의 사상과 물질주의 사상으로 갈래갈래 갈라져 서로 헐뜯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도 그렇고 공산주의도 그렇지 않아요? 보라구요. 소련에 있어서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이 자기가 집권하기 이전의 주권자지만, 그를 격하시키기 위해서 온갖 심혈을 기울여 투쟁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기막힌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통일교회는 타락으로 출발했던 것, 타락 후에 그 문명의 목적을 바라고 나오던 것을 부정하고 타락 이전의 것을 찾아 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사상이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타락 이전의 것을….

새로운 주의와 사상을 주장하고 나가야 할 우리

그러면 아담과 해와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 효자효녀가 되었느냐? 되었다고 생각해요? 못 되었다구요. 아담과 해와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 충신이 되어 봤느냐? 못 되어 봤다구요. 하나님 앞에 선한 사람이 돼 봤느냐? 못 되어 봤다구요. 하나님의 신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느냐? 못 되었다구요. 쫓겨났다구요. 전부 다 빼앗겼다구요. 참된 효자는 하나님 앞에 보관되어 있고, 참된 충신은 하나님 앞에 보관 되어 있고, 참된 사람은 하나님 앞에 보관되어 있다구요.

그래 그 쫓겨난 사람들 마음대로 해봐라! 나중엔 돌아올 길밖에 없을 것이다! 그 놀음이라구요. 그리하여 역사를 요만큼 끌고 왔다구요. 하나님이 놀라우신 분이니 그렇게 참고 나온 것이며, 거기에 있어서 메시아 사상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 인류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희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색다른 종교를 추구해서 색다른 문화와 문명을 창건해야 할 시대가 현재 20세기 후반기입니다. 이 후반기에 있어서 인류에게 절박하고도 긴장된 시점이 지금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이 부모나 형제를 두고 보라고요. 세상에도 보게 된다면 형제끼리도 지금 뭐 돈 만원 가지고도 칼 가지고 싸우는 일이 납니다. 부자지간에도 돈 만 원 가지고 싸우는 때가 됐다구요. 부부끼리도 '아 당신이 몇천 원 썼으니까 요걸 줘야 된다. 안 주면 당신도 손해고, 나와 인연이 없다'라고…. 물질로 좌우되는 인간의 무가치한 인연, 이것은 파탄되어 버려야 된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상, 새로운 면의 주의를 주장하고 나가는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시점에 왔으니 우리가 어떻게 돌아가느냐? 애당초 출발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예요. 알겠어요?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그 자리에서 그저 더벅머리 총각 모양으로 그저 멍텅구리가 되어서 문화도 뭐도 없이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외려 낫다는 거라구요. 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는데…. 여기까지 멀리 왔으니 돌아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돌아가려니 세계를 부정해야 되고, 나라를 부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판국을 가지고 자기의 야욕을 충당하던 그런 것을 다 버려야 된다구요.

그러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타락한 아담과 해와는 타락한 가정을 이루었기 때문에, 타락한 역사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사람은 타락한 가정을 그냥 그대로 갖고 있으면 타락권내를 벗어날 수 없으니 이것까지 부정해야 됩니다. 종교는 그걸 부정하고 나오기 때문에 독신생활을 강조 하는 거예요. 사도 바울 같은 양반은 스스로 된 고자(鼓子)를 찬양했다구요. 이게 뭐 전부 다 하나님이나 종교를 두고 보면 이게 알 수 없는 것이라구요. 그렇지만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반드시 현실과 상반된 길을 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땀을 흘리는데 있어서는…. 종교가 가는 길은 하나님을 따라가는 길인데, 하나님이 지금까지 오는 길은 어떠한 길이냐? 보라구요. 전부 다 젊은 녀석들이 앞서 타락했기 때문에…. 타락은 어느 때 했느냐? 소년시대였다구요. 그래서 타락은 소년시대로부터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로 되어져 갔다구요. 역사시대에 있어서 사탄은 소년시대,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로 끌고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난 놈, 젊은 놈이 선두에 서고, 늙은이들이 전부 다 나중에 서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고대 종교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어요. 연구들 해보라구요.

인중지말…. 이걸 악이 끌고 가니 선한 하나님은 여기에 따라가면서 뒤에서 낙오자들을 수습하시는 겁니다. 낙오자들을…. 그렇기 때문에 보라구요. 성경상에 나타난 것을 보면 노아 아저씨예요, 노아 청년이예요? '노아' 하면?「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브라함은 아저씨예요, 할아버지예요? '아브라함 할아버지'입니다. 모세가 할아버지예요, 젊은이예요? 80세 나서부터 출발했으니 모세 할아버지…. 그러면 예수시대 와서는? 세례 요한 시대에 와서는? 이것이 비로소 세례 요한시대에 와서는 청년시대에 가서 아저씨시대로 들어가는 거예요. 알겠어요? 보라구요. 낙오된 많은 늙은이들, 뭐 5만 원 주고 사 가라고 해도 싫다고 할 수 있는 이 인간 쓰레기들, 이 인간 쓰레기들을 뒤적뒤적해 나오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구요. 자, 이 땅 위의 사탄 패들이 그거 좋아하겠어요? 인간 쓰레기를 빼오니, 뭐라고 할까? 고물상 주인이 됐다구요. 그래도 그걸 중심삼아 가지고 뜯어 가지고 녹여 가지고 다시 뭘 하나 만들어 보자고…. 이렇게 하여 장년시대를 향해서 출발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세계에서 빼앗아 나오는 겁니다. 그 다음엔 청년시대…. 이것이 기독교시대라구요. 기독교시대.

그러면 지금 시대는 어떤 시대냐 하면, 지금 통일교회시대는 어떤 시대냐 하면 청소년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 저기 김 장로 같은 사람은 70이 넘었지만…. 좀 섭섭하겠지만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은 젊은 사람 아니고는 못 끌려 다닙니다. 가기 힘들다구요. 밥 먹고 뛰려니…. 일선에 서야 되겠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청소년, 고등학교 학생을 위주해 가지고 전도해라 하고 지금 지시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대학생도 벌써 물들었다구요. 문제는 중학교 3학년에서부터 이들을 4년 동안에 우리는 전도를…. 그렇기 때문에 전국에서, 어느 지방에서나 고등학생 중에서 똑똑하고 우수한 패는 모두 통일교회 패라구요.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러면 통일교회가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 할 때, 나는 희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통일교회는 희망이 있다구요.

청소년 때의 이상적인 신앙과 새로운 희망의 세계 전개

이번에 우리가 일본 교수들 한 40명을 10일 동안 초청했는데, 거기에 우리 협회장이 가 가지고 파티를 했어요. 협회장이 척 나서니까, 그들은 그 사람이 협회장인 줄 모르지 뭐예요. 저 사람이 통일교회 책임자라니까 '저 사람이 뭐…' 그래요. 누구나 일본에서는 뭐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구요. '문선명' 하게 되면 유명하다구요. 유치원 애들까지 전부 다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다구요. 저 사람이 문선명이라는 사람이 아닌데 누구냐고 하더래요. 그래서 협회장이라고 하니까 몇 살 되었느냐고 물어서 40대라고…. 그래 보니까 간부들이 전부 다 피도 안 마른 새파란 젊은이들만 있다 이겁니다. 그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통일교회 하게 되면 늙은이들만 북적북적하는 줄 알았는데, 전부 다 새파란 젊은이들이…. 거기에 놀랐다는 거라구요. 그 사람들의 말이 크게 놀랐다는 거예요. 또 일본도 비슷하지. 일본만 그런 줄 알았는데, 한국도 그러니까, 이런 젊은 사람들이 구성요원이 되어 있으니까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패들은 씩씩하고 현실적인 투사들이라고…. 내가 그런 말을 듣게 될 때, 기분 나쁘지 않았어요. (웃음)

우리 통일교회는 청소년시대라는 것입니다. 인류가 하나님 앞에 언제 청소년시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대한 때가 있었느냐? 아담 해와가 청소년 시대에 타락하지 않았느냐? 타락한 아담과 해와를 끌고 나오는 데 있어서, 사탄이 자랑할 수 있는 청년시대로서, 사탄이 자랑할 수 있는 장년시대로서, 사탄이 자랑할 수 있는 노년시대로서는 거쳐왔지만,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가 있었느냐? 하나님편에 서서 사랑받을 수 있는 청년시대, 사랑받을 수 있는 장년시대, 사랑받을 수 있는 노년시대를 거쳐 가지고 천국가는 것이 본래 이상적인, 타락하지 않은 인간의 갈 길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땅 위에 그런 길을 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이라는 것은 늘그데기들이 가는 것이 아니라고요. 알겠어요? 이상적인 신앙이라는 것은 지극히 팔팔한 청소년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의 제일 고귀한 시대는 사춘기시대입니다. 꽃필 때고 향기 풍길 수 있는 그때인데, 그런 고귀한 청소년들이 하늘의 사랑과 정열에 불타 가지고 하늘나라의 이념을 중심삼고 건국의 용사로서 등장하는 무리가 나올 때, 거기서는 새로운 희망의 세계가 전개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청소년들이 진정한 사랑을 받아 가지고 청년이 되고, 사랑을 받던 그 청년들이 커 가지고 장년이 되고, 사랑을 받던 그 장년들이 나이 많아 가지고 늙은이가 되어 갑니다. 따라서 그 늙은이들이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들은 장년이요, 그 다음에 품을 수 있는 손자들은 청소년들이다 할 때, 한 가정을 중심삼고 3대를 통해서 역사적인 3시대의 한을 풀 수 있는 행복된 터전을 오늘날 통일교회 이념을 중심삼은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성취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주력하는 축복가정인 것입니다. 3대의 한을 풀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 3대의 한을 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 이러면서 이 청년들은 어떻게 돼야 되느냐 하면, 자기가 이익 되기 위해서 세계를 희생시키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하고, 자기가 잘살기 위해서 나라를 희생시키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겁니다. 절대로…. 미국이 잘살기 위해서, 미국 자체가 망할까봐 세계를 버리는 시시한 미국이 되지 말라 이겁니다. 이 껄렁껄렁한 미국…. 나라의 주권자 자기 일당의 야욕을 위해서, 자기 당이 잘살기 위해서 나라를 망각하는 무리가 되지 말라 이겁니다. 그러면 망하는 겁니다. 역사시대에 지나가는 주권자는 주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주인은 오늘 것을 내일 자랑받고 싶고, 내일 것을 모레에 자랑받고 싶은 것이 아니냐.

국보라는 물건 중에 당시에 몇천만 원짜리 있는 줄 알아요?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그건 뭐냐? 어젯날의 것이 오늘에 자랑하고 싶어하는 그 전통으로 남았다는 거예요. 그걸 말한다구요.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민족이면 민족, 자기 민족을 지도하던 사람의 일생을 남기는 것보다도 앞으로 빛나는 역사를 남기는 사람이 돼야 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의 주인이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사상을 중심삼고 본다면 통일교회, 이 통일교회 간판 어서 떼면 좋겠어요, 뗐으면…. 간판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그런 시시한 문선생이 아니라구요.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길이 있거들랑 간판을 떼라 이겁니다. 세계를 살릴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었다면 대한민국 민족이라는 것을 망각해 버려라 이겁니다. 민족을 망각해야만 세계를 구할 수 있지 대한민국을 위주한 헤게모니를 취해 가지고 민족을 지도하겠다는 무리는 물러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소련이 슬라브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 제패를 위한 공산권 이념을 들고 나왔는데, 거기에는 중공이라는 또 다른 원수가 생겨나지 않았느냐? 공산권을 위해서 세계적인 공로가 있을 때 거기에는 세계적인 지도자로 추대할 수 있는 터전이 있을 것인데, 그렇게 못 되고 슬라브 민족을 중심삼고 소련 공산당이 헤게모니를 쥐려는 내분이 숨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분열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 '내가 대학을 졸업해 가지고 보다 충성하겠다' 하는 그런 패들에게는 내가 신세 안 지겠다 이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손길을 거쳐서 실적을 갖춘 사내나 아낙네는 내가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중심삼겠다는 거예요? 민족이 망해 들어가는데, 학교가 뭐예요? 다 집어치우라는 거라구요. 교회가 뭐예요? 교회도 참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있는 거예요. 그렇다구요. 불교가 어디 있고, 기독교가 어디 있어요? 참된 이상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불교, 그 기독교의 간판을 떼야 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참된 나라가 안 나왔기 때문에 그렇지…. 우리 통일교회는 참된 나라를 못 세웠다 이겁니다.

지금은 어떤 때냐 하면 몸과 마음이 싸우는 사상전시대입니다. 마음을 봐라 이겁니다. 누구의 생각이 좋으냐 그거 아니예요? 마음 싸움인 것입니다. 역사는 뭘해 나왔느냐? 하나의 사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람을 재창조, 다시 복귀해 나오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뚱이적인 세계의 제패를 꿈꾸고 나오는 왕자들이여, 혹은 영웅들이여 나와서 해봐라! 망하게 된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교육자료로 삼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지요. 이게 하나님이라구요. 그 누가 자기 마음을 중심삼고 자랑할 수 있는 무엇이나 체제가 있으면 나와서 해봐라 이겁니다. 그래 가지고 망하게 되면 그 전통적 자료를 수집할 겁니다. 그래서 참다운 아들딸로 교육할 수 있는 교본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사상전쟁에서, 사상주의를 중심삼고 싸우는 민주세계는 어디에 가서 닻을 내릴 것이며, 공산주의는 어디에 가서 닻을 내릴 것이냐? 세계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다 이겁니다. 미국에 발붙일 곳이 있어요? 소련에 발붙일 곳이 있어요? 발붙일 곳이 있는 것 같지만 없다구요. 발붙일 곳이 하나도 없으니, 그러면 무엇에만 발붙일 것이냐? 최후에 남은 것은 사람의 몸뚱이와 마음입니다. 이상은 정(情)이 있어야 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이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행복도 정서적인 관계에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혼자 있고 아무도 없다면,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아무 상대도 없다면 그건 불행하다구요. 세계적인 대통령이 된 어떤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가 독신이 되어 아들딸이 없으면 '아, 그 사람 불쌍하다' 그러지요? 대번에 그런 레테르가 붙는 거라구요. 인간의 최고의 행복의 기준은 뭐냐? 사랑이라구요, 사랑.

임자네들 다 사랑 원하지요? 사랑 다 좋아하지요? 똥개들도 주인이 더 사랑해 주면 꼬리를 치고 따라 다닌다구요. 그렇게 영민스러운 고양이 새끼도 사랑하는 주인의 품에서 '야옹' 하는 거라구요. 그거 기분이 좋지 않지만 말이예요. 자기를 사랑하면 좋아서 따라가는 거예요. 그렇지요?

이 세상의 주인은 누구냐? 보다 사랑하는 사람이라구요. 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 되는 거라구요. 나라의 주인은 누구냐? 나라를 보다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본질이 그거라구요. 이것은 예외가 없어요. 왜 도의 길에서는 희생해야 되느냐 이겁니다. 이게 문제라구요. '적선은 무슨 적선이야. 이게? 바쁜 세상에 적선이니 뭐 그럴 수 없다. 날치기해 가지고, 슬쩍해 가지고 내 배때기 채우면 그게 행복이지' 그렇게 장담하는 사람들이 있다구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천치창조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한 것

사랑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거기에 대답할 수 있어요?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어디서 시작해요? 혼자 시작해요? 혼자 시작할 수 있어요? 사랑이라는 말은 대상관계에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자기 혼자 앉아 가지고 '아이구 좋아, 아이구 좋아, 아이구 좋아' 하면 그거 미쳤다고 하지요? 배우들이 연습하면서 춤을 추고 웃고 할 때에도 거울을 보고 그럽니다. 그림자 같은 상대라도 있어야 신이 나지, 그것도 없이는 몇 번도 못한다구요. 그런 기준을 중심삼고 얼굴을 보고 '요 표정이 딱 됐다' 하는 무엇이 있기 때문에, 감독이 잔소리하고 핏대를 올려도, '그까짓 연기도 내가 다 하는 거지, 뭐 어때서' 하며 그것을 표준해 움직인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연습한 기준이 있기 때문에…. 연습도 안 해 가지고 하다가는 '저거 왜 저리 하노?' 하면 꽁무니빼고 도망해 버릴 수도 있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연습한 기준이 있으면 누가 불평을 안 하게끔 내가 볼 때에도 더 잘됐다, 누구든지 잘됐다고 할 수 있게끔 할 수 있다구요. 그러니 상대자가 이렇게 필요해요.

그러면 하나님은 왜 천지를 창조했느냐? 그 절대자가, 전지전능하신 분이 무엇이 없어서 사람을 창조했겠어요? 무엇이 없었겠어요?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요, 없어요? 사랑이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있다구요. 여러분에게도 사랑이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있지마는 상대가 없이는 나타나지 않는다고요. 상대가 없는데 작용하게 되면 손해가 난다구요. 이거 보면 전부 다 자기를 보호하게 되어 있다구요. 절대 손해나는 곳에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상대가 나타나면 사랑이 없는 것 같은 데도 뛰어 나온다구요. 그렇지요? 그 하나님도 사랑이 있기는 있는데, 남성적인 하나님이 가만히 혼자 있을 때는 그 사랑이 있긴 있는데 그것이 나타나요, 안 나타나요? 요건 나타내 보이지 않는 거라구요. 이것을 나타내 보이려는 상대가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 뭐 세밀한 얘기 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러면 본래 창조는 왜 했느냐? 창조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냐? 요즘에 뭐 윤리학에서 가치관에 있어서 선에 대한 가치관이라든가, 지정의 (知情意)라는 말을 하고 있지만, 지(知)가 출발이 아니예요, 지가. 하나님이 모르면서 천지를 지었겠어요? 하나님이 목적 없이 천지를 지었겠나요? 목적이고 뭣이고 다 필요 없다는 거라구요. 거기엔 더 필요치 않아요. 이건 다 부차적인 거라구요. 무엇 때문에 천지만물을 지었느냐? 알기 위해서 지었어요? 아는 게 좋아요, 기쁜 게 좋아요?「기쁜 게 좋아요」 기쁜 게 좋지요. '내가 학박사가 되어서 아, 책을 바라보니 좋다? 그렇게 돼 있지 않다구요. 그 책을 바라보고 좋은 것은 왜 좋으냐? 상대권이 넓어지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자기가 아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알게 되는 그 판도가 세계적으로 되니까 그게 좋다는 것이지, 책을 보고 좋아하는 거예요? 그것은 책벌레지. 전부 다 그렇게 돼 있는 거예요. 상대적 권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보다 가치를 느끼는 데 있어서 기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왜 지었겠느냐? 기쁘기 위해서 지었습니다. 기뻐하는 데는 무엇을 갖고 기뻐할 것이냐? '야, 이 녀석아 너 하늘 천(天) 따 지(地) 해봐라' 해서 하늘 천(天) 따 지(地)를 알았다 할 때 그것 보고 기뻐하겠어요? 자, 지식을 가질 거예요, 사랑을 가질 거예요?「사랑요」그러면 뭐 지금까지 그저 세상을 살 것같이 노동해 가지고 일생 동안 그저 고생을 하면서라도 돈, 돈, 돈, 돈을…. 돈이라면 눈이 히뜩 뒤집어지는 사람들도 '너, 돈이 필요해, 사랑이 필요해?' 하면, 눈꺼벅꺼벅하지 않고, 눈 깜짝하지 않고 대답하는 말이 '사랑이지' 할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 않다면 손들어 보라구요. 그는 가짜라구요. 가짜. 개, 돼지와 마찬가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무엇에서부터 천지창조를 했느냐? 기쁨입니다. 정서적인 세계를 이루기 위해…. 거기에서 출발이라구요, 정서적인 세계 보다 간절히 자극을 추구하려니 설명이 필요하다구요. 목적이 필요한 거예요. 결국은 이렇게 됐다 하는 과정을 설명하려니 그런 이치가 필요하다구요. '이것이 이렇게 돼야만 진짜가 된다' 하는…. 그렇기 때문에 목적관이 필요합니다. 완전한 것은, 완성이라는 것은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전부 다 정서적인 면을 중심삼고 출발하는 거예요. 지(知)가 먼저 아닙니다.

천국은 사랑을 통해 이루어진다

타락한 인간이 모르는 세상에서 찾아 나가려니 그게 필요한 것이지만 하나님도? 여러분. 부모의 사랑을 받아 본 아들딸이 있다면, 그들이 사랑을 받지 못한 아들딸한테 백날 설명했댔자 그거 알 수 있어요? 천년을 설명해도…. '부모의 사랑은 이렇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이렇다, 부부가 사랑하는 그 사랑은 이렇다' 하는 설명 가지고 통해요? 몇억만 년 설명했댔자 그거 알 수 있어요? 알 길이 있을 것 같애요? 없다구요. 그건 체험을 해야 알 수 있지. 자식을 가져 봐야 '아이구, 자식 사랑은 이렇구나' 하며 알지, 그걸 자식 안 가진 사람에겐 암만 설명해 줘도 몰라요. 몰라. 모르는 거라구요. 그런 경험을 통하지 않으면 모르게 돼 있다구요. 배워 가지고 아는 도리가 아니예요, 배워 가지고. 알겠어요? 지식으로나 무엇으로나 배워 가지고 아는 것이 사랑이냐? 아니예요. 그거 그래요, 안 그래요? 이것은 배우는 것, 교육을 초월해 있어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미미한 동물도 새끼를 사랑하는 것은 다 알지요? 그 무슨 백과사전을 통해 가지고, 자기 조상에게 배워 가지고 나왔어요? 아무리 무식해도 자기 아들딸은 사랑할 줄 안다구요. 그렇지요? 그것은 교육을 초월해 있다구요. 또 그 자리는 말이예요. 체면이고 위신이고 있어요, 없어요?

이 나라 대통령이 자기 아들딸이 시궁창에 까꾸로 꽂혀 죽게 되었다할 때는 '아이구. 내가 국민이 지금 바라보는 대행사를 주도하는 주인공 인데…. 아들이 죽어도 괜찮아' 그래요? 체면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그 자동차를 차 버리고 까꾸로 들어가 가지고, 그거 뭐 시궁창에 까꾸로 들어가더라도 자식을 들고 나오게 될 거라구요. 그렇게 하면 그 대통령을 나쁘다고 하겠어요, 좋다고 하겠어요? 만약 대통령의 아들딸이 죽게 되었는데 행사 때문에 죽었다면 그것을 잘했다고 하겠어요? 차고 무엇이고, 그 나라의 주인 되는 한 사람이 타고 다니는 차를 발길로 차 버리고, 또 그게 옥살박살 되더라도 아들딸을 살리기 위해 뛰어 들어가 가지고…. 그것이 뭐 형편없이 되고, 그날 대회가 그 다음으로 연장되더라도 그랬으면 그 대통령은 아비로서의 자격이 있다구요. 국가 국민들의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은 잃어버렸지만, 아비로서의 자격은 됐다는 겁니다. 그러면 국가에 대해서는 실례 중의 실례이고 자식에 대해서는? 실례 반대가 뭔가요? 예도를 갖췄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걸 놓고 국민들이 그렇게 했다고 참소할 수 없는 겁니다. 사랑, 이것은 국가, 국민도 넘어선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누구나 이렇다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야, 사랑에는 절대적인 무엇이 있다, 사랑은 절대적이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무엇을 연구하는 분이냐 하면, 하나님은 사랑을 연구하는 분이지, 지식을 연구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것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권력을 연구하는 분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데 무슨 권력이 필요해요? 무슨 권력이 필요하냐 이겁니다. 그것보다 더 높은데…. 그러면 무엇을 숭상하고, 무엇을 연구하고, 무엇을 행사하려고 하느냐 하면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행사하려고 하고, 사랑을 중심삼고 가르치려고 하는 거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가르치게 될 때는 그 가르침은 천년 만년 가는 거예요. 사랑의 맛을 알고 가르침받게 되면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아요.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끼리, 두 청춘남녀가 동산에서 사랑을 속삭이면서 찔레꽃 잎사귀 다 시들은 것이라도 하나 준 것, 그것이 영원히 잊어져요? 안 잊어진다구요. 사랑을 통한 교육, 사랑을 통한 신앙생활, 그것이 천국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지식을 통한 국가, 권한을 통한 국가, 이것은 망국판이라는 거예요. 사랑을 통한 지식, 사랑을 통한 경제, 사랑을 통한…. 그것 싫소, 좋소? 천국이 이렇게 된 곳이예요. 이렇게 볼 때, 사랑이 이런 줄 몰랐지요? 알겠어요?

사랑이란 설명해 줄 수 없는 것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뭐 욕먹어 왔지만, 원수진 것 하나도 없다구요. 진짜 사람이냐, 가짜 사람이냐 하는 데는 욕먹는 놀음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마사를 피우는 겁니다. '저것이 어떻게 되나 보자' 하는 주목거리가 다 되어 있는데, 이제 앞으로 관심거리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안오면 안 될 단계입니다. 그렇게 될 때 통일교회가 나쁘지 않을 거라구요.

사랑을 중심삼고 어머니가 '야, 이놈의 자식아' 그랬더라도 자식이 그 사연을 알게 될 때 불평해요? 도리어 어머니 손을 붙들고…. 자기를 진정으로 알아주면 고마와한다는 거예요. 자식을 낳아 본 부모가 돼야 아이고, 어머니가 자꾸 나를 때리더니…. 옛날에 때려 놓고는 붙들고 울고 그랬거든요. 그걸 그땐 알 수 없었다구요. 그렇다는 거예요. 어미도 자식을 때려 놓고는 운다구요. 때릴 때는 언제고, 그 다음에는 붙들고 하염없이 운다는 거예요. 세상으로 보면 아주 뭐 변덕도 그런 변덕이 없을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아들딸을 낳아서 길러 봐야 '우리를 사랑했구나' 하고 알고 그때에야 어머니를 그리고 봉양하지…. 그렇다는 거예요. 그거 아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때에 자기를 때려 준…. 부모의 그 뼛골에 잊을 수 없는 사랑이 거기서…. 그래 가지고 그 자식이 부모한테 순응하게 될 때는 눈물이 나올 것이고, 수백 배로 위해 주고 싶은 마음이 그때에야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은 모른다구요. 장가 안 간 녀석들은 모른다구요. 아들딸 낳아 본 사람 외에는 모른다구요. 암만 설명해도 모른다구요, 낳아 봐야 알지. 그래 그것을 보면 사랑의 교육이 필요해요?

여러분, 장가가는 아들에게 '너 장가가기 위해서 20년 동안 교육받았느냐?' 그래요? 나면서부터 '야, 네가 색시를 얻으려면 이렇게 돼야 되는 거야'라고 교육받았어요? 여기 아저씨들! 교육받고 갔어요? 사랑의 길은 모든 것을 초월해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어떻다는 교육이 필요 없다구요. 사랑만 알게 된다면 남편이 어떻다는 교육이 필요 없다구요. 아내가 어떻다는 것도 사랑만 알게 된다면 교육이 필요없다구요. 자식이 어떻다는 것도 사랑만 알게 되면 교육이 필요없다구요. 필요해요? 교육이 있으면 도리어 방해된다구요. 부처끼리 재미있게 사는데 그의 어머니 아버지가 문 열고 들어가 가지고 '야! 너희들 사랑하니? 그런다면 그거 기분 좋겠어요?(웃음) 그 자리는 평등권이요, 동등권이요, 또한 해방권이예요. 그 누가 간섭하지 못한다구요. 그래서 사랑이 좋다는 겁니다.

자, 그러면 우리 인간의 사랑을 보면, 우리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천사장급 사랑에서 출발한 거라구요. 알겠어요? 천사장급 사랑보다 위의 사랑이 아들급 사랑이요, 아들급 위가 아버지급 사랑입니다. 그런데 천사 장급 사랑, 종급 사랑에서도 죽자 사자 하며 생명을 바치고 나가는데, 아들급 사랑과 아버지급 사랑이 한꺼번에, 꿀단지 꺼꾸로 부은 것과 같이 꼭대기에서 퍼붓게 될 때는 사지백체가 어떻게 되겠는가를 생각해 보라구요. 곤약은 아직 멀었다는 거라구요. 물이 되든 뭐가 되든, 살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된다는 거예요. 사실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 영계에 대한 체험 없지요? 영계에 대해 모를 겁니다. 내가 이번에 비행기를 많이 타고 다니면서 보았는데 말이예요. 공중에 3천 미터 이상 높이 날을 때 상공에서 아래를 보면 뭉게 구름이 있는 거예요. 여기서는 보게 되면 기분 나쁜 검은 구름이 많지요? 그렇지요? 그렇지만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 보면 검은 구름은 없다구요. 전부 다 뭉게구름이예요. 아주 뭐 솜털 같은, 아주 뭐 그 솜도…. 표현을 어떻게 하지 못한 다는 거예요. 그거 보게 되면 말이예요. 햇빛이 내리 쬐는데 거기에 반사 되는 구름 빛은 반할 정도라구요.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내려서 한번 휘익할 때, 그것이 솜과 같이 돼 가지고 한번 척 품으면 떨어지지 않는다면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구요. 그런 무엇이 있다구요.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꿈꾸는 맛이 정말 재미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계의 작용이 그렇습니다. 영계가 그렇습니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멋지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점점 넓어지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빨려 들어갑니다.

그래서 세상에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몇 해만에 만났다면, 남편과 떨어져 있다가, 아내가 남편이 오기를 바라다가, 서로 부두에서 만나게 된다면, 거기서 나타나는 것을 봤단다면 말하기 전에 손을 들고 뛰어가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만나게 되면 삥삥 돌지 않아요? 여기선 네 자리나 내 자리나 같으니, 통일되는 거라구요. 여기서 같이 나가게 되면, 도는 가운데 남아질 수 있는 중심이 무엇이냐? 중심은 사랑밖에 없다는 거라구요. 빙빙 도는데 무얼 중심삼고 도느냐? 남자를 중심삼고 도는 거예요, 여자를 중심삼고 도는 거예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뭐예요? 사랑이지요. 사랑을 중심삼고 도는 거예요. 부부면 부부는 사랑을 중심삼고 도는 거예요. 거기에 이상(理想)이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가정의 이상이라는 것은 아버지만 중심이 아니고, 어머니만 중심이 아니라구요. 그 두 사람을 합한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이 돼야 되는 거예요. 가족도 마찬가지라구요.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이렇게 볼 때, 사랑이란 결국 좋아지는 겁니다.

사랑의 본질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

그러면 그 사랑의 본질이 어떠냐 할 때….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 얘기하자구요. 우리 저 아내된 사람들, 이 아주머니들 말이예요. 시집가서 살면서, '남편이 진짜 나를 사랑하나? 하며, 물어 보기 좋아하는 것이 여자들입니다. 대부분이 그렇다고 그래요.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내가 남편한테 떡 물어 보는 거예요. '아, 나는 정성껏 당신을 사랑하는데…' 하면서 '당신 날 진짜 사랑하오? 하는 물음에 '아! 사랑하고말고' 했다 합시다. 그러면, '얼마만큼 사랑하오? 했을 때 '요만큼 사랑한다' 하면 (웃음) 싫어한다구요. 몇천 년이라 하는 것보다 말이 안 나와서 '칵' 이렇게 되면, 말을 안 들어도 시늉이라도 하며 이렇게 사랑한다 하면 좋아 한다는 거예요. 그것 그런다는 거예요. 그게 뭐냐? 품고 품고 품고 품고, 끝없이 끝없이 끝없이 끝없이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그게 뭐예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까지, 절대권에 연결될 때까지 사랑해 달라는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좋은 형용사를 무엇이 갖고 있느냐 하면 사랑이라는 거예요. 사랑만 갖고 있다구요. 절대적이라는 말이 사랑에만 맞지, 절대적인 생명이라고 해도 그거 실감이 안 납니다. '절대적인 사랑'할 때 실감이 난다구요. 그렇지요? '영원한 사랑' 실감나지요? '무한한 사랑' 실감난다구요. 이것은 우리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최고의 이념, 으뜸되는 이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 전부 다 갖다 붙여도 조금도 모순 상충이 없습니다. '절-대' 이러지 '무-한' 이러지, '무한, 절대' (짧게 말씀하심) 이렇게는 말 안 해요. 안 그래요?

그렇게 볼 때, 사랑만이 멋지다구요. 그것이 무슨 사랑이냐 할 때 이것이 영원한 사랑이예요? 인간에게 영원한 사랑이 있어요? 백년도 못 사는데…. 영원한 사랑 있어요? 남자가 아무리 잘났더라도 백년도 못 산다고요. 여자, 암만 잘났다고 해도 백년도 못 산다구요. 그러면 그 무슨 뭐 영원한 사랑 봤어요? 그게 무한이예요, 유한이예요? 일세기 이내인데, 유한인데 무슨 무한이예요? 뭐 자기들 중심삼고 영원한 사랑 멋대로 죽도록 찾아다녀 보지…. 이 사기꾼 같은 사람들이 영원이 무엇이 영원이예요? 무한이 무슨 무한이예요? 무엇이 절대적인 거예요? 여기에 무얼 갖다 놓아야 되느냐? 하나님이라는 그분이 있다는 말을 갖다 놓고야…. 그분을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보라구요. 부인이 남편한테 떡 묻는데 대답하기를, 자기가 이만큼 절대적인 사랑을 하지만…. '하지만' 한다구요. '하지만 내 머리끝만큼 아직까지 미달이야' 할 때 기분 좋아요, 나빠요? 머리끝만큼은 아직까지 사랑 못 한다 할 때 기분 좋아요, 나빠요? 대답해 봐라 이 녀석들아! 사람을 사랑하는데, '요거만큼, 조금만큼, 머리끝만큼은 아직까지 사랑 못 해' 할 때는 좋아요, 나빠요?「나쁩니다」 고거예요, 고거. 그것도 원칙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본질은 절대적이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요 머리끝 하나만이라도 몽땅 내 사랑 되라고 하지, 그것도 안 놓치려고 한다는 거예요. 사랑권내는 몽땅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손수건도 자기 생명과 바꾼다는 거예요. 그것을 몽땅 사랑할 수 있다구요. 그러니 그런 논리가 성립된다구요.

자, '그렇지만' 할 때는 안 되는 거라고 했는데, 그것이 무슨 말이냐? 나는 나를 위해 있다 하는 주장이 남아 있는 데는 완전한 사랑이 성립 안 된다는 말이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나'라는 관념이 있어 가지고, 나를 나로서 생각하는 무엇이 있다 하게 될 때는 아직까지 미급하다 그말이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게 그말이라구요. 나는 너만을 위해서 있다, 언제나 너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 할 때는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어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은 주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자기를 위하는 게 아니예요. 내가 저 쪽, 그를 위해 있어야지 자기를 좋아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진정한 사랑은 그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하고 나서 나를 생각해 가지고, 내가 너를 사랑했다 하는 그 자리로 가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나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 그 이상 많은 것을 느끼는 사람은 사랑의 원칙에 합격자가 될 수 있지만, '내가 너에게 주었으니까, 사랑했으니까 너도 나를 사랑해야 된다' 하는 것은 이상적인 사랑의 원칙에 부합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 주게 될 때 '내가 너에게 며카날 고무신 사 주고 옷 사 주고 너를 위해서 피땀을 흘렸는데. 그 가치는 몇천 몇백 몇십 전이다' 하며 치부(置簿)해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세상의 왕궁의 왕자 왕녀 이상 해주고 싶지만, 그 이상 해주고 싶은 마음을 느끼는 자리에서, '내가 정성 다해도 이것밖에 없으니 미안하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 더 좋은 것 해줄께 하는 마음을 부모는 갖고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래서 부모의 사랑을 좋아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주고도 부족함을 느끼고, 사랑하고도 덜 사랑한 것이 있지 않겠나 하며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 주고 나서 섭섭하고 안된 마음. 이러한 것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영원한 사랑과 통하는 본질에 속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사랑의 출발의 전통적 동기입니다.

창조는 손해보고 투입하는 놀음이다

왜 그러냐? 사랑은 어디서 나오느냐? 창조의 과정을 통해서 나옵니다.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할 때 어떻게 창조했느냐? 창조한 것이 뭐냐 하면 대상을 창조한 것입니다. 대상을 창조하는 데는 대상이 자기보다도 더 좋기를 바라는 것이 창조자의 심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작자가 자기 구상보다도, 지어진 그것이 자기 생각하는 것보다 나았으면 하는 것이 창작자의 소원이 아니냐. 그것이 본성이요, 그것이 원리 원칙이예요. 그런데 그것이 마음대로 되느냐?

그러면 창조주도 자기 대신의 상대자를 만드는 데 있어서 자기가 구상하는 것보다 좋은 녀석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작가의 마음의 본질은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지어 놓고 얼마나 하나님이 좋아했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그 눈을 볼 때, 요게 까박까박하고 말이예요. 여기에는 천지의 박물적인 지식이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별이 있고, 해가 있고, 땅이 있고, 공기가 있고, 먼지가 나고, 이런 것 다 알았거든요. 전부 다 들어 있다는 겁니다. 그 하나를 만들더라도 그것 하나만 보지 않았다구요. 세계의 우주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손도 보라고요. 열 손가락으로 되어 있다구요. 여러분, 통일교회를 우습게 여길 것이 아니예요. 천지의 이치를 말하고 있는 거예요. 애기들이 자라날 때는 요렇게 되면…. (녹음이 잠시 중단되었음)

그걸 말한다구요. 천지의 운행 법도권내의 중심인 하나님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를 따라 나오면 그 다음엔 주관하는 것입니다. 행사할 때는 이를 주관해야 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안 된다구요. 눈도 먼저 초점이 맞아야만 보는 것입니다. 이성성상의 하나의 초점이 맞아야만 행복의 길, 모든 창조적 상봉의 요건이 벌어지는 겁니다. 이것 코가 여기가 막히면 안 된다구요. 터져 가지고 둘이 만나야만 좋은 것입니다. 귀도 하나뿐이라면 안 들린다구요. '윙-' 해 버린다구요. 이것이 삼반규관(三半規管)을 통해서 딱 들이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전부다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것들이 전부 다 천지의 이치로….

자, 그러면 하나님이 제2대상을 정성껏 만드시는 데 있어 그 대상은 뭐냐 하면, 자기의 사랑, 내밀적 내성적인 본성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직행코스입니다. 알겠어요? 여기에서 모든 것이 직선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이에 그을 수 있는 제일 똑바른 길이 뭐냐 하면 이 길이라구요. 사랑의 길은 돌아가지 않는다구요. 거기에 반대가 있으면 다 죽여 버리고, 전부 다 치워 버리고 가고 싶다구요. 제일 빨리 가고 싶다구요. 또 그게 빠르다구요. 내가 지금 미국 갔다 왔다 하면 생각은 미국 갔다 오는 거라구요. 또 영국도 갔다 왔다구요. 그런 생각보다 더 빠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 가지고 돌아오려고 하지 않는다구요. 가 가지고는 살려고 하는 거예요. 끌려가는 거라구요. 나를 부정하고 가는 길이 사랑의 길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시인의 자리가 아니예요. 사랑의 자리라는 것은 자기를 공인하고, 자기의 가치를 타진하는 자리가 아니라, 상대의 가치를 타진하는 자리입니다. 이렇게 된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어떻게 했느냐? 만물을 짓는다는 것은 자기의 본질을 빼 내는 것입니다. 결국은 에너지를 투입했다는 것이고, 에너지를 투입했다는 것은 자기 본질의 삭감을 말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손해보는 거라구요. 손해보는 자리라구요. 대상 창조의 이념의 세계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되었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느냐? 투입하는 놀음을 하신 것입니다. 알겠어요? 투입하는 데는 그것이 자기에게 열매 맺히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에게 열매가 맺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 무엇으로 지었느냐? 사랑으로 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입해 가지고 하나님이 소원(疎遠)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만족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원칙이 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사랑의 전통에 있어서는 부모의 사랑의 본질이 남아졌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투입해 가지고 자기 의식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식을 망각해서 보다 상대적인 목적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가치 추구에 자기 전체가 흡수돼 들어가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도 창조한 사람을 위해 있는 자리에 서겠다는 말이라구요. 그것이 창조원칙이다 이겁니다. 창조원칙이라구요.

종교의 본질적인 노정은 자기몰각의 노정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길은 나 자신을 희생해서…. 사랑은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왜 사랑은 희생하지 않고는 안 되느냐? 그것은 사랑의 본질이 남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주장하는 데는 창조가 없다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출발의 상대권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만 남아지는 거라구요. 자기만 남아져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것이 창조의 원칙이기 때문에 잃어버린 인간을 찾는 데는 하나님은 원리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원칙을 따라서 찾으려니, 인간 세상에 있어서 이 원칙을 적용하려니 악한 인간 세상이지만 희생하라고 해 가지고 지금까지 자기를 재차 투입한 것입니다. 얼마만큼 투입하느냐? 개인적으로 투입하고, 가정적으로 투입하고, 종족적으로 투입하고, 민족적으로 투입하고, 국가적으로 투입하고, 세계적으로 투입해 나오는 것입니다. 종교는 개인이 희생하고, 가정이 희생하고, 종족이 희생하고, 나라까지도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도 종족권을 희생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의 국가 중에서도 종교를 믿는 국가는 지금까지 희생의 역사를 걸어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것은 왜? 창조적 사랑의 대상이념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것이 사랑의 본질적인 원칙이기 때문에 그 원칙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사랑의 이상세계와는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이상세계와 관계를 맺으려면 그 원칙의 전통을 이어받지 않고는 안 되겠기 때문에 종교가 가는 길은 사랑이나 박애주의를 내세워 희생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천국과 지옥, 선과 악은 여기에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타락이 뭐냐? 자기 자각으로부터 타락이 시작되었습니다. 천사장의 자기 자각으로부터 타락이 시작됐고, 해와도 자기가 눈이 밝아져 가지고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겠다고 하는 '자기' 생각에서부터 타락이 시작됐고, 자기 자각에서부터 타락이 시작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각을 한인간은 그것을 포기하고 부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천사장도 그랬고, 해와도 그랬고, 아담도 그랬고, 오늘날 그 후손 전부는 자기 자각을 중심삼은 악한 주권세계의 전통적 열매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것은 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이 본질적인 내용이 달라져야 됩니다.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 자각이 아니라 자기 몰각(沒却)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 자각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 상대 자각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자각이냐? 하나님, 주체 앞에 설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을 위한 자각입니다. 그렇게 하는 데 있어서 종교의 본질적인 노정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싸우지 않고 정복하는 심정의 세계관

우리 인간은 대상이예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추구하여 자기 본질의 변경을 요구하게 될 때 거기에 자기가 주체가 못 되니 사랑할 수 있는 대상 앞에 상대적인 인간으로밖에 설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그것은 아담 앞에 천사장이 인류의 조상이 되어 있지만 천사장은 종이기에 아들 앞에는 상대가 되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종교인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오시는 메시아는 무엇이냐? 우리 종된 세계 앞에 있어서 주체적인 주인으로 오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주체 앞에 절대 귀일되는 내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해서 있다, 이것이 창조원칙이라구요. 알겠어요? 사랑의 길은 그거라구요. 나를 위해서 있다는 것은 사랑의 길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난 거라구요. 그래 남자가 이 세상에 남자를 위해서 태어났어요, 자기를 위해서 태어났어요? 잘났다는 남자야말로 자기를 위해서 태어났어요, 이렇게? 남자가 아무리 덩치가 크다 하더라도 말이예요. 그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태어났어요? 여자 때문에 태어난 거라구요. 남을 위해서 태어났다구요. 부모는 무엇 때문에? 자식을 위해서 태어났다구요. 살기도 남을 위해서 살아야 되는…. 자식은 무엇 때문에? 형제를 위해서, 부모를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위하여 사는 세계가 이상세계입니다. (판서하시면서) 위하여 사는 세계, 알겠어요, 이상세계? 이상세계의 본질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이상세계는 천륜의 원칙을 중심삼고, 천지창조의 제 1조 헌법에 의해 가지고 실현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뭐냐? 사랑에 대한 규약이 천지창조의 제1조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제1조라구요. 하나님이 세웠던 헌법을 실행하려니 그 제 1조를 먼저 이루어야 제2조가 이루어지고 다 이루어지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뭘했느냐? 악한 세상 앞에 맞고 빼앗아 나온 것입니다. 맞고 나온 것입니다. 불효자 때문에 부모가 맞고, 지내고 난 후에 자식 때문에 그렇게 희생한 것을 그 자식이 깨닫게 되어서 그것을 갚고 가야 된다며 눈물을 흘리고 돌아서게 될 때 소망의 천국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요것이 종교가 본질로 추구하는 회개의 도리라구요. 그러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한 거예요. 회개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구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맞고 빼앗아 나오는 것입니다. 맞고 지배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의 능력으로 다…. 그래서 예수님도 맞고 우리 세계를 구해 나온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맞고 빼앗아 나오는…. 통일교회는 맞았지만 발전해 나왔어요. 그렇지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대한민국이 앞으로 세계를 위해서 맞지만 세계를 보다 사랑하게 될 때는 싸우지 않고 정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심정의 세계관이라구요, 심정의 세계관. 알겠어요? 통일교회에서 '심정, 심정' 하는데 그 역사는 여기서부터 출발했다구요.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알겠어, 모르겠어?「알겠습니다」

하늘의 슬픔을 위로해 드리는 아들딸이 돼야 한다

결론을 짓자구요. '아버님의 슬픔'이란 말…. 아버님의 슬픔이 뭐냐? 진짜 하나님이 6천년간 슬퍼한 것을 알았느냐? 진짜 알았느냐?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얼마나 하나님이 아픔을 느끼고 오셨느냐? 사랑의 세계가 한번 틀려 버리면 천년 만년 잊을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느냐. 시일이 가면 갈수록, 반대의 세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충격적인 자극이 있지 않느냐. 원수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을 일시에 자기의 족속으로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을 참소하고, 하나님을 몰라보고 하나님은 희생시키는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을 얼마나 상처가 심했겠느냐? 그 슬픔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찾아 나온 것은 오늘날 나 하나를 위해서, 나 하나의 해방을 위해서 역사적인 수난길, 시대적인 수난길을 거치며 미래적인 소원, 단 하나 일편단심의 마음을 품고 나오는 하나님이 아니냐? 그 슬픔을 알아 드릴 수 있어야 된다구요. 알았어요? 「예」 얼마나? 눈이 뽑혀져 나오도록 그려 봤어요? 여러분, 한 번 죄를 회개하고 울어 봤어요? 밸이 꼬이도록, 눈물 콧물 입물 할것없이 진구렁이 돼 가지고 뭐 대학교수고 대통령이고 나 모르겠다, 뭐 체면이고 위신이고 나 모르겠다, 그래 봤어요?

이제 소원성취의 그날, 잃어버렸던 부모를 찾는 그 이상과 희망이 어디 있겠느냐 이겁니다. 그래 봤어요? 자, 하나님을 사랑 한번 해봤어요? 여러분이 사랑하겠다는 말이, 그저 이거 권위와 그 위치를 생각할 때 가증스럽다는 겁니다. 자, 저기 노동자의 여편네가 돼 가지고 말이예요. 대통령을 대해서 '저 대통령을 내가 남편같이 사랑한다'고 그럴 때 그 대통령이 된 사람 같으면 일방적이라 기분 나쁠 거라구요. 한 나라도 그렇거든 오늘날 하나님도 그럴 거예요. 우리 타락한 인간은 역적의 피를 받은 인간이라구요. 역적이라구요. 역적의 피를 받은 이것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들이 '아버지' 할 때 아버지의 내용을 가졌어요? 가졌어요, 못가졌어요? 여러분 이거 심각한 문제라구요.

자, 이러한 전반적인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눈물을 얼마나 흘렸을 것이냐 이겁니다. 개인 위해서 흘렸고, 가정 위해서 흘렸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발전시킬 때까지, 기반을 닦아 나오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눈물 가운데 소원하였던 모든 것의 대표자는 하나의 완전한 남자요, 완전한 여자입니다. 예수는 고맙게도 신랑 신부라는 말을 여기에 귀결시켰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는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승리적인 터를 마련한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눈물 가운데, '내 사랑하는 아들딸, 아담 이상 되는 아들아, 해와 이상 되는 딸아'할 수 있는 아들딸을 찾기 위해서 눈물지은 것이 아니더냐.

그러한 아들딸을 찾기 위하여 수난길을 걸어 나온 하나님 앞에, 내가 망하더라도 그러한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겠다고 몸부림치면서, '당신이 소원하던 아들이 이렇고, 딸이 이렇지 않습니까? 세상은 모르더라도 나는 이러한 자리에 서겠습니다'하면서, '불쌍한 아버지!' 하며, 자신을 망각한 자리에서 옷깃을 붙들고 목을 끌어안고 통곡하는 날에는, 하나님도 진짜 그를 붙안고 운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 그건 진짜 이 땅 위에 나라를 가졌던 주권자가 나라가 망하는 슬픔을 느끼는 그 이상의 슬픔이라구요. 알겠어요?

참된 아들딸이라면 하나님을 위해 수난길을 가야 된다

아담과 해와를 잃어버리는 것은 나라뿐만 아니라 천주가 망해 나가는 자리입니다. 개인 아들딸이 망하고, 자기 가정이 망하고, 자기 국가가 망하고, 세계가 망하고, 천지가 망해 자빠져 나가는 자리입니다. 이래 가지고 망명객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하나님 아버지 아니냐.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망명자라구요. 알겠어요?

그러면 그 나라에 있어서 망명객의 입장에서 볼 때, 쫓겨난 군왕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를 제패하고 자기를 치고 백성을 지도하는 거기에 하나되기를 원할 것이냐, 데모하는 걸 원할 것이냐? 모가지가 잘려 나가더라도 하나되지 말라고 주장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순교의 피를 흘려 나왔다구요. 아무리 피를 흘리더라도 한탄하지 말고, 피를 흘리더라도 선전하라. 그런 사상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로마제국의 4백년 압박시대에도 망명객의 입장에 있는 하나님이 악한 세계의 주권에 대항하는 그날들은 하나님의 소망, 하나님의 소원성취의 자극의 시간이었더라 이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반대하고 나서면 나설수록, 투쟁하면 투쟁할수록 내일의 소망을 촉구시켜 주는 자극적인 터전이 그 순교의 자리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 하나님을 위로하면서, '당신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응당히 가야 될 길로 갑니다' 이렇게 죽어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느냐 이겁니다. 욕심을 품고, '하나님이여, 나는 요렇게 죽기 때문에, 나는 요렇게 하나님을 위해 죽었기 때문에, 그 대가로 나를 천국 보내 주소?' 하고 죽었지, '당신의 나라를 이루고 당신의 아들딸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나는 죽습니다' 하는 사람은….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 역사 앞에 반대되는 기독교는 하나님 앞에 배척받는 겁니다. 복귀시대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피땀을 흘리며 수고할 때가 있지만, 언제나 수고와 희생으로 남아지는 하나님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를 책임지고 그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자리에 있어서는 내쫓기고, 죽을 자리에 들어가서도 인간을 구해 주었지만, 그 후에는 하나님을 위한 수난길을 내가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효자는 세계를 위하여 가는 아버지의 짐을 대신 져야 됩니다. 그래야 효자라구요. 군왕이 가고 있는 수난길을 책임져야 충신이 됩니다.

여러분 그래요. 오늘날 기독교에서 '하나님이여, 우리 아들딸 복 주소? 이런 기도하는 데는 가지 말라 이겁니다. 그렇게 목사가 기도하면 뒤로 돌아서 가라는 겁니다. 그것은 무슨 말이냐? 언제나 하나님을 종으로 만들자는 거라구요. '하나님이여, 우리 앞에는 복이 필요 없습니다. 복은 세계 사람에게 주시고, 내 앞에는 사망을 주시옵소서. 죽을 자리를 주시옵소서' 이게 참된 아들딸이 갈 길이라구요. 알겠어요? 우리 통일교회 젊은 놈들, 알겠어?「예」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려고 하고,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려고 해야 된다구요. 내 아들딸 잘살게 해 달라고 하고, 내 아들딸 사랑해 달라고…. 우리 통일교회는 그러지 말자는 거라구요.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런 기도 안 해요, 지금까지. 어머니, 아버지가 뭐 이북에서 공산당들한테 피살당한 줄로 짐작하지만 언제 하나님 앞에 영계를 통해 물어 본 적이 없다구요. 나라를 위해서 바쳐야 돼요. 충신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잡아서, 하늘 나라를 위해서 제사 드려야 된다는 겁니다. 그거 이해가 돼요? 자기 아들딸이 아니라구요. 어머니 아버지까지도 잡아 제사드릴 수 있겠느냐? 나라를 위해서는…. 만약에 그가 그 나라의 주권자가 되었으면, 어머니 아버지를 죽여서라도 나라를 살릴 수 있다면, 어머니 아버지를 죽을 자리에 내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위한 주권자, 책임자의 자리에 있으면…. 그래요, 안 그래요? 「……」이렇게 심각한 길이라구요. 자기 아들딸 그건 아무것도 아니예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부모님을 사랑하라

통일교회는 그런 전통적인 역사를 따라 나오기 위해서 출발한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얼마나 나라를 생각하고, 얼마나 백성을 사랑하고,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해 봤느냐? 슬프신 하나님을 얼마나 위로해 봤느냐? 꼬리를 저으며 대가리를 들고 다니면서 자기 이익을 위해 눈을 깜박깜박하며 옆으로 빠지고 뒤로 후퇴하는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의 슬픔을 붙안기 위해서 민족의 한을 책임지고, 이 나라에 하나님이 찾아오실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위해서 내가 선발대로서 죽음을 당하고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응당한 각오가 돼 있느냐? 그게 의문입니다.

오늘은 8월 첫주일이예요. 8월은 재출발의 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다시금 반성하고…. 하나님을 사랑해 봤어요? 진짜 우리 식구를 사랑해 봤어요? 사랑해 봤어요? 「……」응? 선생님을 사랑해 봤어요? 뭐 선생님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이 고깃덩이 사랑하라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선생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나서 통일교회 문선생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구요. 가정에 대한 교육도 그거라구요. 여편네에 대한 교육도 그거라구요. 자식에 대한 교육도 그거라구요. 아버지가 자기를 위해 살다가 죽는 아비가 되거들랑 아예 울지도 말고, 장사도 지내 주지 말고, 냅다 차 버리라는 거라구요. 남편이 그런 남편이면 남편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거라구요. 그게 가훈이 돼 있다구요.

우리 아버지가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려고 했는데, 우리 아버지 이상 그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할 사람이 아직까지 없기 때문에 운다고 해야 됩니다. 세계 인류를 누구보다 사랑하려고 하다가 죽었을 때 그 이상 사랑할 수 있는 주인이 없어졌기 때문에 죽은 아버지를 붙들고 울 수 있다면, 그런 아버지를 가진 아들딸은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게 통일교회의 본질적인 전통의 역사로 알고 있는 거라구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나라를 위하여 눈물을 흘려 봤느냐? 형제를 위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려 봤느냐? 그 눈물 흘리는 것이 효의 길이요, 충의 길입니다.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고 오는 길이기 때문에 수난을 당하고 오는 길이기 때문에 그 입장을 바꿔 가지고 내가 거기에서 하나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아버지를 위한 효의 길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화목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했지요? 화목케 하는 사람이 되라는 거예요. 그래야 하나님이 오실 수 있다구요. 오늘날같이 싸우는 거기에는 하나님이 올 수 없다구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맞고, 맞으면서도 하나되자는 것입니다. '형님, 형님, 때리는 것은 좋소. 그렇지만 우리 가정과 나라를 생각해야 될 것이 아니요?' 하면서…. 원한이 있다면 그것은 일대일의 원한이 아니라 역사적인 인연으로 남아지기 때물에, 한 번 잘못하면 후대 후손 신앙자들의 역사가 무너지기 때문에, 맞는 채찍을 붙들고 그러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하자 하는 것이 통일의 길이라구요. 통일방안은 그것밖에 없다구요.

진정한 사랑은 위하고 용서하는 것

통일교회 문선생의 입장에서 보면 기성교회 목사, 장로들은 내 원수라구요. 내 본래 성격 같으면 용서 안하는 거라구요. 어렸을 때 한 번 매 맞고는 그 집을 40일 동안 쫓아다녀 그 어머니 아버지까지 전부 다 항복 하는 걸 보고야 물러난 사람이라구요. 내가 불을 놓든가 전부 다 무슨 놀음이 벌어지는 거예요. '한다' 하면 세상에 누가 오더라도 말리지 못한 사람이라구요. 지독한 사람이라구요. 그런데 왜 그러한 사람이 이처럼 묵사발이 돼 가지고 못난 놀음을 하느냐? 못난 사람이 아니예요. 그거 다 알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 목사들을 전부 다 수택리까지 데려다가 고기 반찬에다 잘 먹여 주고 그랬는데 이게 목사들이 닭다리를 가지고 싸움하고, 닭을 갖다 훔쳐 가지고 다니더라구. 그런 사람들을 내가 데려다가…. 나는 우리 통일교회의 피와 살을 에어서 하는 건데. 기가 막힌 거라구요. 선생님이 말한 대로 딱 됐다구요. 악이 선을 쳐서 남아지는 법이 없고, 선이 악을 쳐 가지고 악이 망하지 않는 법이 없지 않느냐. 통일교회를 반대하던 목사들이 우리가 고생하던 그 길을 딱 가는 것입니다. 딱 그렇게 됐다고요.

이제 그걸 알았으니…. 그렇게 되었더라도 여러분이 문제라구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러면 여러분, 오늘날 통일교회는 요셉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돼요. 요셉이 애급에 가 가지고 총리대신 될 때 전부 다 흉년이 들어 형제들이 쌀을 구하러 두 번씩이나 왔다 갔으나 형제들을 대해, 저들은 나를 팔아먹은 자들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요셉은 죽으라고 물 없는 웅덩이에다 갖다 넣었어도 형님이 권고해 줘 가지고 살았고, 나중에는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서 몰려 가지고, 간교에 꾀여 가지고 감옥에 가는데, 죽을 자리인 그 감옥에서부터 길을 닦아 출세해 나옵니다. 그렇지요? 감옥에서부터 출세했다구요. 생각하면 뼈가 갈리고 이가 갈리는 사건이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분을 안 품었다구요. 형님들 대해 분풀이한 것이 아니라구요. 내가 고향에 없어서 부모 앞에 효도 못할 때, 그래도 저 형님들이 내가 사랑해야 할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느냐, 어머니 아버지 앞에 효도한 역사적인 전통을 갖고 있으니 나보다 낫지 않느냐 하는 심정적인 효의 마음을 갖고 형제들을 용서했다는 거예요.

나도 마찬가지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나오기 전에 기독교가 하나님 앞에 효도한 것이 있지 않느냐?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보게 될 때 그들이 종과 같은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분풀이 안 한다구요. 그 반대한 것, 지금까지 단에 서서 그런 것…. 이제 우리 통일교회도 마음만 먹으면 무슨 짓도 다 할 수 있다구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천대를 받으면서도 문전에 가서 쫓겨나면 또 가고 또 가고 또 가고…. 이러면서 지금까지…. 그래도 이제는 어디를 가든지 우리 통일교회를 반대해도…. 그렇잖아요? 자기네들이 아무리 욕하고 뭐 다 그래도, 종교인들이 하는 것 보나 너무 했거든요. 지나치게 했으니까 자기를 반성할 수 있는 입장이 됐기 때문에, 이제는 점차로 통일교인들을 박대 안 하고 환영하는 무리들이 많아져 간다구요. 이제 우리는 교육해야 된다는 겁니다.

또, 국가 국민도 우리에 대해서 그러는 거라구요. 뭐 별의별 뭐…. 지금도 그저 조총련의 돈을 갖다 쓴다고 악선전하고 있다구요. 통일교회가 조총련이예요? 지금 조총련 때려잡기 위해서 선두에 서서 일본 천지가 지금…. 대사관이 업혀 가지고 전부 다 이 놀음하고 있는데…. 그놈들 아가리 찢고, 쓰레기통에 전부 다 쓸어 넣어 버리고 싶지만. 이 종교의 입장이 그렇게 안 돼 있습니다. 못 들은 척,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거예요.

그건 왜냐?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비참하냐 이겁니다. 형제끼리 싸우는 데에는 하나님이 오시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길을 거쳐 나가야만 되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형제를 사랑해 봤어요? '내가 조금 더…. 누가 다섯 시간 잤으면 나는 다섯 시간 십분, 좀 더 자야지. 누구보다 난 조금 덜 수고해야지' 요러는 것들은 전부 다 지옥 쓰레기감들이라구요. 천국은 여기서 나오지 않는다구요. 남을 위해서 내가 십분이라도, 일분이라도 더 하겠다고, 일분이라도 더 하겠다고…. 공부를 해도 그렇게 해야 된다구요. 공부를 해도…. 뜻을 알고 있는 여러분들이 만약에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하더라도, 대학교 가 가지고라도 자기가 지방에 나간 전도사 이상의 시간을 내서 전도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 실적을 나타내어 양심적으로 가책받지 않겠다는 자리에 서야 그것이 정당한 입장이라구요. 조건이 되는 거라구요. 이게 원칙이예요.

조건을 남겨 주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가는 길이요 부모님의 길

자, 이런 가운데서 하나님의 슬픔을 알았을진대는, 그 슬픔의 길을 걸어 밤이나 낮이나 세계로 갈 것인데, 이것을 누가 막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여러분과 우리 통일교회가 책임져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남북한에 지금 이런 문제가 벌어지면 국가를 놓고 우리는 기도해야 된다구요. 세계를 붙들고 기도해야 된다구요. 그야말로 이제부터 어떡하든지 사생결단을 해야 할 최후의 전선을 앞에 놓고 총궐기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구요.

그것을 넘어갈 수 있는 단 하나의 비법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슬픔을 알고 나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쓰러지더라도 그 전선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강화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전선은 강화된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살아 있기 때문에. 오늘날, 이 끝날 세상에서 우리가 소망을 가질 곳이 없지 않으냐? 그래도 세계가 모르는 하나의 움직임이…. 이것은 인본주의 사상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심정주의 사상을 가지고 나온 것은 역사시대에 처음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이 주의는, 이 사상은, 이 움직임은 세계를 제패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이 어머니 아버지를 진짜 사랑했어요? 부모를 사랑하지 말라는게 아니라구요. 사랑해야 된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원리 말씀을 중심삼아 가지고 부모한테 얘기 못 했어요. 우리 형님은 영계를 통해 가지고, 자기의 동생인 나에 대해서, 자기 동생이 세계 제일이라는 것을 알았다구요. 다 통하는 거예요. 해방될 것 다 알고, 자기가 병난것도 약 안 쓰고 하늘의 은사로 고친 사람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동생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동생의 말에는 절대 순종했다 이겁니다. 내가 필요해서 집을 다 팔라고 하더라도 이의가 없었다구요. 피난 보따리를 싸 가지고 떠나 자고 해도 이의가 없었다구요. 그런 의미에서는 가인을 복귀했다는 겁니다. 훌륭하신 형님이었다구요. 그렇지만 동생에 대해 그러한 무엇을 영계의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알았지만, 나한테 대해서 묻지 않으면 내가 얘기 안 했어요. 원리말씀 한마디 안 해줬다구요. 기가 막힌 놀음이라구요, 그게. 자기의 가치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자기의 사랑하는 부모 형제 앞에 자랑하여야 할 텐테, 부모 형제 앞에 자랑할 처지가 못 되었다 이겁니다.

예수님이 자기 형제들을 사랑했어요? 어머니 아버지한테 사랑받았어요? 모든 내정적인 사연을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얘기하지 못했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아벨을 통해서 자기의 사연을 통했어요? 못 했다구요. 예언자를 내세워 가지고는 가인을 통해 가지고…. 가인에게 가르쳐 준 후에야 아벨을 통해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라구요. 자기 아들딸을 죽여 가지고 원수의 자식을 구해 주겠다니 사랑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6천년 복귀역사가 아니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에게 있어 지금은 어떤 때냐? 그런 때가 아니예요. 여러분이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서 사랑할 수 있다구요.

선생님이 효하지 못한 그 효를 대신 해 달라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형제를 대해서, 선생님에게 그런 형제가 있지만 선생님이 형제를 사랑 못한 것을 탕감복귀하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수고한 것을 전체가 넘어갈 수 있는 하나의 조건으로 남겨 주기 위해서 길을 닦아 나왔으니 여러분 시대는 탕감시대가 아닙니다. 이 조건을 남겨 주기 위한 것, 이것이 하나님이 가는 길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에 대해서 그런 입장의 해방권을 만들어 주자는 겁니다. '좋은 것 있으면 내 것? 그것은 빼앗긴다구요. 주는 데는 망하는 법이 없다구요. 내가 전부 다 주려고 하는 이것을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행하게 되면 그것은 전부 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 뒤에서 내가 걸어가면 나를 밀어 준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원수는 뒤로 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앞으로 오지 않고 뒤로 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방향을 찾는 과정에서 전진할 수 있는…. 내가 죽게 되었더라도, 죽을 자리에 있는 나를 구해 주더라 이겁니다. 이런 길이 틀림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은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 남은 거라구요. 또 아무리 핍박이 있더라도 망하지 않고, 또 내가 낙망하지 않고 나오는 것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모를 거라구요.

하늘의 슬픔을 탕감해 드리자

이제 몇 년 안 가면 내가 외국에 나가 있으면 대한민국이 섭섭해 할 거예요. 반대하다가는…. 내가 광고를 내고…. 조금만 더 가면 그럴 날이 올 것입니다. 한국에 대한 책임을 다했어요. 다했다구요. 이젠 다, 어느 애국자에게 지지 않을 놀음을 다했다구요. 그것은 하늘이 공인하고 있는 거라구요. 이제 통고밖에 남지 않았다구요, 통고. 통고밖에 남지 않았다구요. 통고하는 날에는 그 나라에 소망이 깃들 것이요, 우리 대한민국도 환영할 것입니다. 그때가 되거들랑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의 가치가 올라갈는지 모른다구요.

여러분, 우리는 이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싸울 때가 아니예요. 이제는 미국을 요리해야 된다구요. 미국은 200년 동안의 역사를 통해서 하늘이 축복한 나라입니다. 야곱의 20년 시대와 맞먹는 200년 역사예요. 요 1976 년까지가 건국 후 200년 역사와 마찬가지라구요. 200년 동안 하늘이 고이 길러 줬다구요. 200년이 넘어서는 그때에 가 가지고는 미국이 책임을 못 하게 되면 들이맞는다 이겁니다. 그것은 원리적으로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것을 알기 때문에 미국을 수습해야 되겠다 이겁니다. 지금 그것을 느끼고 있다구요. 그래서 이 미국의 뉴욕 본부를 사는 데도, 백만 달러 가까운 돈을 들여서 사는 데도 내가 배후에서 세계를 움직여 가지고 사 놨다구요. 교육을 해야 되겠다구요. 앞으로 통일교회 책임자들은 여기서 싸우는 것보다 이제는 국제 무대에서 싸워야 되겠다 이겁니다.

자 그러려고 하는데 그 나라에 가서 신세지려 하면 여러분을 절대 안 데려갑니다. 신세지는 여러분은 절대 안 데려간다 이겁니다. 그 나라에 가서 신세를 지워야지요. 자기 집을 팔아 바치고, 자기 나라를 하늘 앞에 바치더라도…. 그대들의 은덕을 못 잊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랑의 심정을 가진, 메시아적 사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못 간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나라를 사랑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거기에서 증거가 될 재료가 무엇이냐?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살아라 이겁니다. 앞으로 공산당한테 우리는 선전해야 되겠다구요. 저 공산당 이상 사랑했다는 재료를 가져야 되겠다구요. 이런 등등의 문제를 가지고 여러분이 다년간, 오랜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서 미래를 향해 나왔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실적이 나타나지 않았을는지 모르지만, 이제 목전에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때가 왔으니 여러분이야말로 이제 다시 한 번 빛나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문제는 하나님의 슬픔을 탕감해 드리자는 겁니다. 하나님의 슬픔을 탕감해 드리자.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눈물을 흘린 대신 우리는 형제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세계를 위해서…. 이런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무리가 세상에 나오게 되면 그 무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그 후손은 틀림없이 발전할 것입니다. 여러분 당대에는 물론 비참한 역사적인 무엇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지금 끝날이 왔기 때문에 당대에 두 세계를 심판하고 한 세계를 건국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때야말로 역사적인 시점인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효자가 될 수 있고, 충신이 될 수 있는 이때인 것을 알고 하나님을 위로하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바라서 말씀했어요.

​기 도

아버님, 삼팔선을 넘어오면서 그 가운데 서서 아버지 앞에 기도하던 날이, 그 시간이 엊그제 같지만 수십 년 역사가 지난 이때에, 아버지, 당신의 뜻을 대하여 나선 저희의 무리가 이렇게 초라하고, 이렇게 미흡한 것을 생각할 때, 당신이 바라는 소원이 크면 클수록 통일교회를 바라고 오신 아버지의 마음이 낙망이요, 슬픔이요, 고통이요, 몸부림밖에 없을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제가 통일교회를 만들어 이끌어 나오는 이 기반이 아버님에게 위로가 못 된 것을 더더욱 느끼게 되옵니다. 더더욱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자극적인 것이 되었고, 더더욱 아버지의 염려를 넓힐 수 있는 내용이 되었던 것을 생각하게 될때…. 그러나 당신에게는 우리밖에, 이 땅 위에 그 누구도 없기 때문에 우리만을 붙들지 않을 수 없는 아버지의 입장이 지극히 지극히 불쌍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오늘 8월 첫 안식일을 맞이했사옵니다. 이달이 아버지 앞에 복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불쌍한 것들이 안간힘을 다해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의 심정을 붙들고 싸워 나온다고 했지만, 그 모습이 처량하고, 그 모습이 추하여 당신 앞에 어떻게 이것을 가릴 것이냐 하는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아버님을 위하는 마음을 가진, 전통을 아는 통일의 몇몇 무리가 있기 때문에 그들을 통하여 잊고자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면 알수록 당신은 불쌍하신 분이시고, 비참하신 분이심을 느끼옵니다. 오늘날 세계에 우리만큼 잘난 사람이 없어서, 저희들을 상대하고, 저희들과 더불어 세계적인 모든 계획을 하고 천주사의 한을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될 아버지는 지극히 불쌍한 아버지이심을 알았습니다.

여기에 그 어떤 잘났던 역사적인 지배자라도 당신 앞에 부족함을 깨달아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같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이끌고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시는 아버지의 딱한 사정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는 아버지 앞에 선포해야 되겠습니다. 통일교인을 보내 가지고 통일교회 이상의 당신의 뜻을 이를 수 있는 곳이 있거들랑 어서 옮겨 가시라고 저희는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나는 망하더라도 당신의 뜻과 당신의 심정은 안위의 자리를 빨리 가져야 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자리를 저희들은 바라야 되겠습니다.

세상이 어떻든 우리만이 출세하고 우리만이 성공을 바라는 그런 무리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그런 무리의 욕망을 이루어 주는 아버지가 아닌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 저희는 더 희생해야 된다는 신념이 강해지는 통일교인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금후에 통일교회의 미래는 남아지는 것이요, 통일교회는 아버지의 뜻과 더불어 남아진 전통의 역사를 기릴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지금까지 지켜 나온 아버지의 은사를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제 이 세계적 무대를 아버지께서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3차 순회노정 위에서 편성해 놓은 세계적 기동대를 아버지께서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이 이름이 상실되고, 이 이름이 수치를 당한다면, 그때는 이 땅 위에 당신의 절망이 얼마나 클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여, 아버지의 마음이 상심받지 않기를 바라는 저희 심정을 보시사 여기에 아버님이 직접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가는 길 앞에 당신이 현현하시옵고 당신의 뜻을 이루시옵소서. 만민 앞에 그 가슴 가슴에 새로운 생명의 인연을 심고 남을 수 있는, 아버지의 인연과 아버지의 관계가 맺어지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이 시간 겸손히 아버지 앞에 엎드려서 스스로 반문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를 내가 사랑했느냐 하는 데 대한 증거를 받아야 되겠습니다. 나라를 사랑했느냐? 증거를 받아야 되겠습니다. 형제를 사랑했느냐? 증거를 받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공의의 심판정 앞에 나타나기 위해서는 증거될 재료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악을 대한 것보다도 선을 대했던 실증적인 증거가 있어야만 아버지의 보호권 내에 설 수 있는 것이 천리 원칙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망각하고 아버지가 남길 수 있는 사랑의 길을 더듬으면서 봉사를 해야 되겠사오니, 일편단심으로 부모를 위하는 효의 마음, 나라를 위하는 충의 마음만 갖고 나가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북이 엇갈린 입장에서 통일을 논할 수 있는 자리는 지극히 비통한 자리인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주인이 되시옵소서. 당신이 이끄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후에 통일교회가 갈 길을 아버지께서 맡아 주시옵소서. 수난길을 마다하는 것이 아니요, 승리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안식의 심정의 터전을 넓히고자 하는 것이 이들이 원하는 것이요, 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이 자식의 원(願)이오니, 부디 그럴 수 있는 자리에서 모든 싸움과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당신의 이름과 더불어 모이는 곳곳마다 축복하여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불쌍한 자녀들이 이곳을 흠모하는 그 마음에 천만 배의 은사를 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달과, 이해와, 이 세대가 복될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아침은 이달에 있어서 두 번째 맞는 안식일 아침이옵니다. 이 아침이 복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날이 복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달과 이해가 당신의 뜻 앞에 자랑의 달이 되고 자랑의 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불초한 저희들이 당신 존전에 무릎을 꿇고 부복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찾아오시어 저희들의 사정 일체를 살피시사, 당신의 마음으로 그리는 본연의 자아와 상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아버지를 진정 사모하고,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을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인연이 여기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당신의 거룩함과 소원을 그리면서, 일체를 아버지로부터 시작하고 아버지로 귀결되기를 바라서 이 시간 나왔사오니, 아버지여, 긍휼히 보시옵소서.

저희들 자의로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는 것이요, 선을 중심삼고도 끝맺을 수 없는 자신들인 것을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본래 선에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고, 타락의 후예로 시작했기 때문에 타락권내에 처한 자신들임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도 저희들은 뜻과 더불어 해방되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 저희는 구속된 몸이요, 해방을 바라는 몸이기 때문에 자신들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신앙생활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시작도 당신께서 하셔야겠고, 과정도 당신의 손길이 거치지 않으면 안 되겠으며, 결과 또한 당신의 보호 없이는 안 될 것을 생각할 때, 철부지한 저희들을 거느려야 하는 당신은 과연 불쌍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께서 제시하시는 목적이 있거들랑 저희들은 이의 없이 그곳을 향하여 달음질쳐야 되겠습니다.

당신께서 오라 하는 곳이 있거들랑 저희들은 그야말로 부모의 부름에 반기며 달려가는 어린아이와 같이 일체를 잊어버리고 당신께 달려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외로운 무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세계를 위하여 염려하는 사람이 없는 이 땅 위에 당신의 뜻을 따르고 당신의 일을 염려하는 무리가 불쌍한 저희들 소수의 무리인 것을 생각할 때, 이 크고 엄청난 세계복귀라는 과제를 앞에 놓고는 아무리 정성을 다하고 생명을 다짐하는 자리에 서더라도 미급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당신의 승리를 갈구하는 마음만이 넘쳐 흘러야 되고, 가면 갈수록 부족함을 깨달아야 할 것이 하늘을 따라가는 자녀의 모습이옵니다.

당하는 일마다 당신의 뜻과 더불어 몸부림치며 몸과 마음을 제물삼지 않고는 그 일을 해결할 방도가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저희 통일의 무리들을 이 시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하늘이 없게 될 때는 고아와 같은 무리이고, 하늘 부모를 몰랐다면 실로 비참한 무리이옵니다. 사랑하는 부모 앞에, 혹은 형제들 앞에, 환경에서 이해받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것은 우리 개체의 욕망을 위한 것도 아니요, 우리 자신의 희망을 찾아가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미래의 소망과 만민의 행복을 위하여 간다는 이 원칙만은 변함이 없는 마음이오니 긍휼히 보시옵소서. 아버지께서 그러한 자리에서 참아 나오시며 정상에 머물러 계시는 분이었기 때문에 사정은 사정으로 통할 것을 아오니 부복한 이 어린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시아의 일각에 있는 이 한국 땅을 바라보면서 내일의 소망의 세계를 다짐하며 가는 이들의 길이 비록 작고 미미한 것이지만, 역사는 작고 미미한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참한 자리에서 새롭고 영광된 자리를 결의하고 거기에 있어서 선을 중심삼고 도약하는 날에는, 찬란하고 새로운, 역사의 빛이 발해지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그 가는 길에 있어서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긍휼의 마음이 언제나 떠나지 마시옵소서. 내일의 승리의 나라를 건국할 수 있는 용사들로서의 자세를 갖추어 끝까지 싸워 나갈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해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동대 대원들, 아버지께서 축복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권위와 하늘의 위신을 생각하여 역사에 없는 이러한 일을 시작한 것은, 오늘날 통일교회가 계획해 한 것이지만 통일교회의 어떠한 권위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옵니다. 당신의 슬펐던 한을 제거시키고, 당신의 억울하였던 원한을 풀기 위해 한 것이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선두에 서서 달리는 이들을 당신께서는 밤이나 낮이나 지켜 주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연약한 무리일지라도 그 연약한 자리에서 낙망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그 누가 배후에서, 전후에서 옹호해 주지 않더라도 당신이 선두에서 지도하고 있는 것을 늘쌍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때로는 그들의 마음을 통할 뿐만 아니라 영을 통하시어서 하늘의 내정을 살필 수 있도록 지도하여 주시는 당신이 계신 것을 잘 알게 하여 주시옵고, 늘쌍 당신과 더불어 시작하고 당신과 더불어 거두어 바칠 수 있는 움직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한국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남북이 엇갈린 자리에서, 서로서로가 자체의 중심을 바라는 자리에서는 이 민족을 끌고 갈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제한된 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백년 이상 살 수 없는 인간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이 이 민족을 맡아 주셔야 되겠습니다. 그 누구도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자신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만이 여기에 중심이 되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당신을 중심삼고 따라가고, 당신 앞에 효성의 도리를 다하겠습니다. 자기의 전체를 희생하면서도 감사할 수 있는, 민족적인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한 일이 이 민족 앞에 나타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아는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그 뜻을 바쳐 나왔습니다. 숱한 수난의 길 가운데서도 지치지 않고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금후에 갈 길을 당신께 맡기오니 당신께서 맡아 주시옵소서.

이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그 누구도 지도자가 될 수 없고, 그 누구도 책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인간 자체이기 때문에, 그 인간이 바로 하늘을 배반하였던 후예인 것을 알기에 당신만이 중심이 되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밤이나 낮이나 이 노정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충효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원한을 풀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여, 이제 머지 않아 8.15가 다시 다가옵니다. 지루하였던 수십 년의 역사였습니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질 적마다 뜻을 염려하고, 뜻을 생각지 않는 날이 없는 저희들인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그뜻이 이 나라에 이루어지고 이 세계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당신의 소원인 것을 알고 싸워 나왔던 이들의 소원의 종착점을 당신께서 기쁨으로 맞이하지 않고는 안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혼란된 세계, 자신 없는 민족의 정상을 바라보게 될 때, 과연 아버지 앞에, 세계 앞에 불리운 선봉자로서, 기수로서 가야 할 방향을 정상적으로 가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살피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없게 될 때는 질식하고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저희이기에 오늘 이 시간도 당신의 지도를 바라고 있사옵니다. 당신께서 인도하시는 길에 수난과 핍박이 가중되더라도 거기에는 안위와 평화와 자유가 깃드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아버지, 저희의 마음이 안위를 느끼지 못하거들랑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자유를 느끼지 못하거들랑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일체를 당신 앞에 맡기고 당신의 지도를 따라 당신께서 원하시는 소원의 방향에 일치될 수 있는 자아를 발견하지 못하였거든 아버지여, 이 시간 다시 한 번 찾아오시어 저희를 해방의 자녀로 세워 주시옵소서. 자주장하는 자유의 권한을 가지고 만민 앞에 하늘의 아들딸의 모습임을 자랑할 수 있는 권위의 모습이 될 때까지 저희들은 몸부림치며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쓰러지고 또 쓰러지더라도 또다시 일어나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을 지닌 타락의 후예인 것을 저희들은 원망하면서 또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모든 것이 당신의 뜻과 더불어 귀결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람이 아무리 슬픈 길을 피하려 해도 당신께 맡겨 주신 원한의 사명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슬픈 고비길을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 이 나라가 아버지 뜻 앞에 서지 못한 과거가 있으면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개인이 아버지 앞에 서지 못하는 것을 신앙생활을 통하여 여실히 느끼는 저희는 하나의 가정이 아버지 뜻 앞에 선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의 가정이 그렇게 어려울진대 하나의 민족이 당신의 뜻을 따라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움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렇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을 누가 제시할 것이냐 할 때, 아버지밖에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자유로이 제시할 수 있는 자주적인 입장에 선 것이 아니옵고, 그 제시는 우리 인간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어떤 날 어떤 시간에 아버지께서 이러한 내적인 인연을 제시할 수 있는 나 스스로가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슬프고 비참하고 고독한 분은 당신인 것을 저희들은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저희들은 아무 욕망도 없습니다. 저희들이 바라는 것은 단지 뜻과 더불어 당신의 사랑의 세계를 그릴 뿐입니다. 그렇게 슬펐던 아버지의 모습을 위로해 드리고 당신의 거룩한 품에 안겨서 기쁜 한날을 맞는 것이 저희의 소원 중의 소원이옵니다. 당신의 한스러운 복귀의 노정에서 당신의 사정을 털어 놓고 논의할 수 있고, 당신의 사연과 더불어 당신이 저희에게 간곡히 부탁할 수 있고, 당신의 뜻 앞에 기대가 될 수 있는 한날을 맞는 것이 저희의 소원인 것을 당신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8월이 되면 저희들은 8.15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대한민국 이 나라를 아버지께서 사랑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남북이 엇갈린 불쌍한 이 민족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아니면 안 될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저희 불쌍한 것들은 이번 특별한 기도 기간을 설정하고 아버지 앞에 기도를 드리고 있사오나 그 기도의 정성이 미급한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바라시는 기준 앞에 너무도 부족한 것을 알고 있지만, 몸부림이라도 치지 않을 수 없는 저희의 입장을 바라보시는 아버지께서는 또 참고 이것들을 끌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이옵니다. 아버지, 당신의 해방과 당신의 승리와 당신의 영광과 당신의 안위의 날이 언제 어느 곳에서 이루어질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그곳은 대한민국이 아닌가 생각되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대한민국을 찾아오신 당신이라 하더라도 이 나라, 이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떠나셔야 하는 수밖에 없고, 그런 걸음이 되게 될 때는 이 나라 이 민족은 불쌍한 민족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통일교회를 찾아오셨던 당신께서 이 자리에 영원한 안식처를 정하지 못하게 될 때는, 이 무리들은 불쌍한 무리가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불쌍한 무리를 만들고 바라보는 아버지는 더더욱 비참한 아버지가 될 것이고, 고독한 아버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더불어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렇게도 믿겠다고 몸부림치고, 그렇게도 하늘 뜻을 위하여 가겠다고 몸부림치던 저희들이 하늘을 쫓아내고 몸부림쳐야 하는 그 정상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아시는 아버님, 최후까지 참고 저희들과 함께 가시기를 원하는 당신을 생각할 적마다, 저희들은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제거하고 모든 것을 바치면서 최후의 한날을 위하여 가기를 다짐하오니, 그러한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부족한 자신을 살펴보고 거룩하신 하늘 앞에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는 자신임을 발견하게 될 때 부끄럽게 생각하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와 같이 추한 것들을 찾아오시어 아들딸을 삼고자 하시는 당신 앞에 용서받을 수 없다고 몸부림칠 줄 아는 저희들의 마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정상에서 저희는 당신께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한 저희들을 대하시는 것은 당신이 부끄러운 것이고, 그러한 저희들을 찾아오시는 것은 당신이 수치스러운 것이옵니다. 당신이 면목과 위신을 세울 수 없는 그 정경을 바라보면서 조롱하는 사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저희들은 아무말 없이 눈물로써 당신을 모시고, 아무런 욕망 없이 저희 자신을 당신께 제물로 바치는 길밖에 당신께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무한하신 사랑과 은사의 손길이 떠나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전국에 있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이 한 곳에 모여 수련회를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오니 그곳에 아버지께서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이 새로운 결의를 다짐하여 과거의 불충을 청산하고, 오늘의 진실 되지 못한 것을 다시 한 번 뉘우치면서 하늘의 사랑을 위하여, 하늘의 소망을 위하여, 하늘의 자주권을 위하여 거룩한 제물로 바쳐질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후의 일체를 당신께서 허락하신 뜻과 더불어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통일교회 교인이라고 자처하는 무리들입니다. 통일이라는 방대한 명제는 단순히 어떠한 개인의 욕망, 혹은 뜻을 위해서 제시된 내용이 아닙니다.

전체를 위하는 데서 통일이 벌어진다

통일이라는 것은 지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지도하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고 제시할 수 있는 길에서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통일되지 못한 현재에 있어서 통일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환경을 초월하여 또 다른 하나의 방안을 모색하여 제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만이 통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자유스럽지 못한 자리에서 통일을 바라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혹은 불안한 자리에서 통일을 바라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자유스럽고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통일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양심을 가진 우리 인간의 마음인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열 사람이 모였다면 그 열 사람이 하나되기를 바라는 것이 각각 달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의 의견이 각각 다릅니다. 혹은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의 의견이 다 다른 것입니다. 천 사람이 모이면 천 사람….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주장하라고 하면 어느누구도 자기를 중심삼고 주장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혹은 대한민국 전체 3천만 국민을 두고 보더라도, 그 3천만 민족 개개인은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그 생각이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생각으로 세워지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에, 현재 한 나라, 한 국가가 그렇지만 오늘날 현시대, 세계의 인류를 두고 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그들도 역시 자기를 중심삼고 그 무엇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30억의 인류가 각양 각색의 자리에서 모두 자기를 중심삼고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데, 과연 이것이 전체에게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 바라는 것이 전체를 희생시키고 개인을 위하고자 하는 바람일 때는 아무리 그 자체가 훌륭하고, 아무리 최고의 자리에서 주장한다 하더라도 그 일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전체가 보다 나을 수 있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길에서만이 하나의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이요, 전체가 통일된 형태를 갖출 수 있는 길이 시작된다고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볼 때, 역사적 시대에 왔다 갔던 수많은 사람들도 자기를 중심삼고 어떠한 크나큰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 나왔고 현재도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냐. 과거의 수많은 사람들이 보다 나은 통일된 세계를 마음으로 추구해 나왔지만 소원하였던 세계는 이뤄지지 않은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계 가운데서, 그러한 역사 가운데서 그래도 좀 나은 사람, 그래도 후대 사람들이 그 사람이 주장하던 소원이면 소원, 사상이면 사상, 뜻이면 뜻을 이어받아야 되겠다고 하면서 우러르는 사람들이 성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성인들이 바라고 추구하던 그 뜻이 현세에서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 역시 불가능에 가까운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러한 소원의 뜻을 바라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했고, 현재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 가운데서도 그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 그것이 가능하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두고 볼 때, 과연 금후에 인류가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절망의 벽에 부딪친 인간의 소원

그러면 금후에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통일의 세계, 자유를 중심삼은 평화의 세계가 올 것이냐,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도 그렇다면 금후에 그러한 소원의 세계가 과연 올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과거와 현재가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있어서도 그러한 세계를 바랄 수 없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온 세계 인류가, 혹은 세계 정세가 이런 처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크게 보면 이 세계에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있지만 이 두 세계가 과연 인류가 바라는 하나의 통일된 세계, 온 인류가 마음으로 추구하는 하나의 세계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 또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누가, 어디에서 이것을 시작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도 사람만 가지고는 불가능하지 않느냐, 사람만 가지고는 거기에 도달하기에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 하는 결론을 아니 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격동하는 현세계 정세를 앞에 놓고 신앙자들은 신앙자의 본질을 재검토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혹은 정치면 정치인들은 자기의 인간적 가치를 중심삼고 본질을 분석 비판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경제인이나 문화인, 각계 각층에 있어서도 이 세계적인 정세를 앞에 놓고 재차 비판해 가지고 그 본질적인 요인이 추구하는 통일의 방안을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인간들로서 할 수 있는 생각은 다한 것이 아니냐? 인간으로서 갈 수 있는 최대의 한계점에 이미 도달한 것이 아니냐? 이러한 결론을 아니 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결론을 내리고 인간 자체로 돌아와서 인간의 상을 바라볼 때, 여기에 소원을 가질 수 있겠느냐 할 때 거기에는 소원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절망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절망의 와중에서 이것을 타개하기 위한 우리의 신념이라도, 자신이라도 갖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의 지나온 역사를 두고 보거나 처해 있는 환경을 두고 보더라도, 내일의 소망을 다짐지어줄 수 있는 그 무엇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러한 우리 인간 자체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우리는 절망의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입장이 아니냐. 그렇다고 해서 돌아서 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라도 찾았느냐? 그것 또한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이러한 자리에 서 있다 하게 될 때, 과연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진정 내일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느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행복한 환경이, 혹은 불행한 환경이 미래의 소원을 새로이 개척 시키고 새로이 계승시킬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겠느냐 할 때, 거기에 자신(自信)을 가질 수 없는 자신(自身)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요, 그러한 우리요, 그러한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인류는 그야말로 비참한 것입니다.

오늘을 보장할 수 있는 터전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요, 내일을 계승시킬 수 있는 새로운 소망의 터전도 없는 자리에 선 걸 볼 때, 인류는 절망에 부딪친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이 사회적인 여러 여건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일 사람만이라면 이것이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것이지만, 사람 위에 또 다른 무엇이 있다 할 때는 어떻게 되겠느냐? 사람을 중심삼고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이냐, 악한 사람이냐' 하고 우리는 흔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다, 혹은 좋은 친구다 나쁜 친구다, 한 가정에 있어서도 어머니 아버지를 두고 그 자식들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좋은 어머니 아버지다 혹은 나쁜 어머니 아버지다, 이렇게 평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진정한 의미의 좋은 친구가 있었느냐, 진정한 의미의 좋은 부모가 있었느냐, 진정한 의미의 좋은 형제가 있었느냐? 그 좋다는 기준이 무엇이냐 하게 될 때, 이것 역시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자유스러운 환경의 여건을 허락한다고 해서 인간이 본성적으로 바라는 행복의 터전을 이어줄 수 있는 부모라고 볼 수 있느냐? 참다운 좋은 형제요, 참다운 좋은 친구요, 참다운 좋은 스승으로 볼 수 있겠느냐?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그 참이 무엇이냐?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인간이 바라는 욕망은 참만이 있으면 좋겠는데 참은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참된 자리에 서고 싶지만 참된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참된 자리는 어떤 자리냐? 그 자리에 서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 참된 자리는 어떠한 자리라는 것을 모르고 있지 않느냐.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참된 자리에 서지 못했다면 악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냐? 그렇다면 그 악의 궁극적인 한계점은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도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선을 추구하는 입장에 선 두 종류의 사람

선악을 놓고 볼 때, 우리는 선한 사람이 되든가, 악한 사람이 되든가 그러한 포위권내에 있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이 되려고 몸부림치는데도 불구하고 번번이 선한 자리에 서지 못하고 악한 자신으로 귀결되는 자신을 두고 볼 때, 청년시대에도 그랬고 장년시대에도 그랬다면 노년시대 밖에 남지 않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새로운 결심을 다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느냐? 자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젊은 사람이 참된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자신을 못 갖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앞서가는 사람도, 지도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그러한 입장에 처해서 선이라고 제창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것은 역사적인 혁명의 과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아무 소망도 갖지 못한 청년시대에 있어서 이것을 개척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의 한계점은 어디이며, 악의 한계점은 어디이냐? 사람은 악하지 않으면 선한 것입니다. 선한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악한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 귀결점은 반드시 이 둘인데, 우리들은 악한 자리를 원하지 않고 선한 자리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선한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모색 방안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그렇다고 해서 모두 악한 자리로 가겠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와중에서 몸부림치는 것이 우리의 인생살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은 귀한 것입니다. 자기의 일생은 가장 귀한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갈 길을 가리지 못하고 결정적인 주체성을 갖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것이 오늘날 인간들이 아니냐. 그러면 그 누가 언제 어떠한 자리에서, 인간이 가장 바라는 소원의 기점에 서 가지고 이것이 인간이 서야 할 결정적인 선의 자리라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느냐? 그것도 믿음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두고 볼 때, 자기 환경을 해결해 가지고 선의 방향을 추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 그 바라는 선과 나와는 상극된 거리, 무한에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결의를 가지고 내일의 개척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자신을 어디서 발굴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럴 수 있는 요인이 없는 자리에서 신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비참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가 그저 흘러가는 세월 따라 어영부영 인생살이를 하겠다는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피맺히는 심각한 자리에서 참을 추구하고 악을 제거시키기 위한 중심적인 자아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일대 모험을 하는 주체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때가 많을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의 뜻을 반대하고, 친구가 자기의 뜻을 반대하고, 제일 사랑하는 처자가 자기의 뜻을 반대하더라도 굽히지 않고 이 뜻을 위해 간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에워싸여 있는 환경의 여건을 자기 스스로 극복하고, 타개해 보겠다고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는 젊은이라면, 그는 위대한 젊은이입니다.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선에 도달하지 못하겠으면, 악의 본질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을 알아 가지고 악의 한계점을 격파해 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악의 본질을 타개하는 자리에서 선에 도달하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보다는 낫다는 것입니다. 악의 포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악의 한계점에 서서 '악은 이런 것이다' 하고 제창해 가지고 선은 이렇게 가야 된다는 소망이라도 가지고 악을 대해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사람보다는 낫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그는 악에 귀결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악을 타파해 버리고 제2차적인 선을 추구하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비록 현재 악한 입장에 처해 있더라도 그는 이것도 아닌 사람, 저것도 아닌 사람보다는 낫다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선이 추구하는 한계점이 어디냐고 하면서 이것을 중심삼고 돌진하고 여기에 모든 것을 투입하고 여기서 생사를 걸어 놓고 이것을 타개하고 극복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보다 훌륭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극단에 가서는 두 종류의 사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선악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방안

만일 인간만이 선과 악을 해결해야 할 책임을 졌다면, 그 인간은 얼마나 비참하겠느냐? 선과 악을 해결해야 할 책임이 인간에게만 있다면 그 인간은 과연 비참한 것입니다. 왜 그러냐? 역사 이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깃발을 높이 들고 몸부림치며 달려들던 사람들은 다 쓰러지고 함정에 꺼꾸러졌습니다. 절망의 장벽에 부딪쳐 신음과 더불어 후회의 한을 남기는 인생살이를 하다 간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만이 선이면 선, 악이면 악을 해결지어야 한다면 그 인간은 비참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 선이 무엇이냐? 도대체 악이 무엇이냐? 우리는 그 선과 악을 가려 잡지 못하면서도 선은 다 좋아합니다. 왜 좋아하느냐? 악은 다 싫어하는데 그 악은 왜 싫어하느냐? 상대적인 요인을 추구하기 전에 자기 자체에 있어서 그 비판 기준을 확립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결국은 내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선을 향하여 갈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느냐? 아니면 선의 파탄자가 되어 있느냐?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에게 귀결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 그러한 주체적 입장에 서 있는 나에게는 이러한 선을 해결 지을 수 있는 힘이 있느냐? 아무 힘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럴 수 있는 환경을 가졌느냐? 아무런 환경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갈 것이냐? 자신을 가지고 1년, 10년, 일생이 아니라 몇 세기의 역사시대라도 뚫고 나갈 수 있는 어떤 확실한 목표라도 있느냐? 그것이 없게 될 때는 수천 년을 흘러 나온 역사를 새로운 선의 방향으로 전환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면 선이고 무엇이고 다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만일 이러한 것으로 신음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 선악의 책임을 지워 온 역사라면 이는 절망이요, 이는 최후가 될 것입니다. 또 그 사람만이 현시대를 책임져야 한다면 그는 비참한 운명에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또 다른 무엇이, 선과 악을 중심삼고 책임져 나올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인간 외에 또 다른 어떠한 것이 있다면, 그런 자리에서 선악을 해결할 수 있는 주체적인 입장에 선 어떠한 분이 있다면, 인간은 이 또 다른 분과 하나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만일 그런 자가 있고 그런 분이 있다면 그분과 하나되고 싶은 마음, 그분과 의논하고 싶은 마음, 그분과 같이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그런데 환경에서 지극히 고립된 자아를 발견하고, 그 수습 방안을 찾을 수 없는 처지에서 신음하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할 때, 그 자리에서, 나만이 이런 것이 아니라 인간 외에 또 다른 어떤 분도 역시 이러한 자리에서 신음하고 계시다면 그분과 어느 정도로 하나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안 그래요?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의 사정을 잘 아는 것입니다. 밥을 굶어 봐야 배고픈 것을 아는 것이고 가난해 봐야 가난한 살림살이의 사정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비참한 자리에서 선악의 자주적인 판단자로서 나서기를 바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 자신을 중심삼고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가망성이 없는데 그 책임을 질 수 있는 무엇이 있다 하게 되면, 이것은 희소식 중의 희소식일 것입니다. 인류역사에 다시 없는 최대의 복음의 소식이 아닐 수 없을 것이 아니냐.

그러면 나는 얼마만큼 그와 더불어 하나되기를 바라고 있느냐? 환경에 부딪치는 모든 요인이 극에 달하면 달할수록 그것이 자신을 어떠한 주체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극한 힘이 강할수록 그분에게 접근할 수 있는 소망의 여건이 될 것이 아니냐. 그러한 길에서만이 새로운 인간 삶의 선한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길 외에는 찾을 수 없다 하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선한 그 무엇…. 이건 신이라도 좋고, 아무것이라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책임질 수 있는 분, 내가 의논할 수 있고 내가 거기에 하나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그분은 역사시대의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내용을 지녔을 것입니다. 나는 몇십 년, 혹은 일세기 미만의 생애를 가진 권내에서 신음하면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했을 때, 주체적인 그 무엇이 있다면 그는 역사시대를 그와 같은 관점에서 나왔을 것이고, 이 시대를 그와 같은 관점에서 고찰해 가지고 거기에 대한 모색 방안을 갖고 주장해 나오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보다 나을 수 있는 선이면 선의 판단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냐 할 때, 우리는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인간 자체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또 다른 우리 인간 이상의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앙이 출발한 것이 아니냐. 보다 본성적인 출발은 이러한 자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뜻은 절대자의 뜻이어야 한다

'뜻을 대하는 우리들'이라는 제목…. 그 뜻은 악의 뜻이냐 선의 뜻이냐, 그 뜻이 역사권내에 사로잡힌 뜻이냐 아니면 역사를 극복하고 초월해 가지고 새로운 역사시대로 이끌고 갈 수 있는 뜻이냐 할 때, 그 뜻은 역사 권내에 포함되는 뜻이 아니라, 역사시대를 선도적인 입장에서 주도할 수 있는 뜻입니다. 또 이 시대의 어떠한 사상에 포괄된 사상이 아니라 이것을 초월해 가지고 끌고 갈 수 있는, 거느리고 갈 수 있는 뜻이어야 될 것입니다. 그것은 두말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이 절대적인 소원을 추구하는 것에 비해 가지고 그 절대적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여기에 절대자가 있다면 그 소원을 추구하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절대자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살고 있는 인간상이 아니냐.

그러한 분이 있다면 그분을 대해서 '선에 대한 말을 해보시오, 선을 위해 갈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가 보시오. 당신 홀로 못 가겠다고 하면, 내가 상대가 되어 가 드리겠습니다. 친구가 되어 드릴 테니 가 봅시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만일 그런 분이 있어서, 그분이 이렇게 이렇게 하고 싶고, 이렇게 이렇게 가고 싶고 이렇게 이렇게 만들고 싶어도 그분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서 그분과 함께 보조를 맞추어갈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겠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나는 이렇게 가기를 바라는데 그분의 생각은 다를 것이 아니냐. 나는 이렇게 사는 것이 전통이요, 관습으로 알고 있는데 그분은 반대로 살라고 모는 것입니다. 같을 수 없습니다. 같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민주세계가 금후에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공산세계도 역시 마찬가지지만 민주세계는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생각할 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 자체만으로서 이렇게 가야 된다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이미 다 실험해 가지고 끝난, 파장을 바라보는 세계가 아니냐. 그걸 여실히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방안, 요즈음 남북 통일을 위해 7.4공동성명이 나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엇갈린 생각입니다. 하나되어 가지고도 통일되기가 힘들 텐데 둘이 엇갈린 입장에서 통일을 어떻게 할 것이냐? 문제가 큰 것입니다. 오늘날 사상이 대립된, 엇갈린 사조권내에 살고 있는 우리들, 통일이라는 것은 인간들끼리는 안 되는 겁니다. 그것은 이미 실험으로 다 끝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말하는 뜻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뜻이란 무엇을 말하느냐? 그것은 여기에 서 있는 문 아무개의 뜻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구성 요원들이 편성해서 제시한 뜻도 아닙니다. 그러한 뜻은 미급한 뜻입니다. 불가능이라는 귀결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뜻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의 뜻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서 있는 문 아무개의 뜻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상에서, 생사의 기로에 서 가지고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주체적인 그분이 누구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던 것입니다. 죽음의 기로에서 '내 뜻대로 마시옵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시대에 포괄된 뜻이 아니라, 역사시대를 극복시킬 수 있는 자주적인 뜻이 아니냐. 그 뜻의 관념 가운데서, 중심의 자리에 서서 자기 개인적인 소행을 자유로운 천지에서 이룰 수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그 뜻과 일치된 개인적인 자유의 해방권이 이루어지고, 가정적이요 민족적인 해방권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으로 남아져 있습니다. 이렇게 돼 있어요.

'내 뜻대로 마시옵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한 그 뜻은, 죽는 것만이 아니지 않느냐 이겁니다. 거기에는 개인의 역사적 해방의 내용도 있었을 것이고, 가정의 역사적 해방의 내용도 있었을 것이고, 국가, 세계, 전인류의 역사적 해방을 제시할 수 있는 모색 방안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뜻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절대시하는 자리의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선을 대해서 절대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어떠한 주체자가 있으면 그 주체자에게 귀일되고 귀의할 수 있는 자리에서 부르짖은 뜻이 아니냐. 그것은 여기에 나와 더불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는 격리된, 새로운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냐. 그것은 그럴 것입니다. 그 뜻, 그 뜻이 문제인 것입니다.

심정을 통할 수 있는 뜻이 통일교회가 바라는 뜻

그러한 어떠한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우리 인간들끼리도 행복하도록 해주고 싶은 사상을 가진 주체자일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그는 어떠한 자리에 행복하게 해주고 싶을 것이냐? 절대적인 선의 주체로 계시는, 우리 인간 외에 또 다른, 악을 대비해 가지고 선의 주권, 혹은 선의 세계를 바라는 분이 있다 할진대는, 그분은 우리 인간 앞에 어떠한 자리에 선한 세계를 이루어 나올 것이냐? 우리 인간 앞에 어떠한 행복의 선을 소개해 나올 것이냐?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분이 선의 나라를 이룰 수 있는 말은, 행동은, 생활은, 혹은 제도는 어떤 것이냐?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확실하고도 틀림없는 내용을 가졌기 때문에 그래도 수천 년, 수만 년의 인류역사를 통해 악을 대비해 싸워 나오신 주체가 아니냐. 안 그래요? 하루 살림살이하다가 치워 버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있기 때문에, 틀림이 없기 때문에, 결정적이요 확정적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렇게 나왔을 것이 아니냐. 확정적인 선의 주체자로서 개인을 중심삼은 생활관은 어떻게 될 것이고, 가정, 민족, 국가, 세계관이 어떻게 될 것이냐? 그것은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생활이 어려우니,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절대적인 선을 추구하지만 그것은 문제 외의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어떠한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가 돈이 필요하겠습니까? 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던 때 금이 필요했어요? 자기가 지은 피조물의 가치, 제2차적인 가치를 절대시하는 생활 재료로서의 돈은 우리에게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혹은 하나님에게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면 그것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내가 없으면 안 되고, 네가 없어도 안 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집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사랑. 새로운 사랑을 중심삼은 가치관의 확립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선악의 분기점에서 선의 경계선을 극복하고 넘어서지 못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악의 한계점을 타파하지 못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돈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정서적인 문제입니다.

종교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것이 무엇이냐? 돈을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인간 자체를 최대 한계점의 가치로 추구하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종교에 들어오게 되면, 그 인간은 그날서부터 폭락입니다. 주가가 폭락되는 것입니다. 그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부정의 요인으로 제시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수천 년 동안 인류들이 고심한 최대의 문제의 해결 방안은 어디서 시작될 것이냐? 인간끼리는 안 됩니다. 인본주의 사상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원칙이 틀린 것입니다. 새로운 신본주의를 발견해야 합니다. 새로운 사고의 신본주의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 내용은 지금까지의 역사에 물들은 신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색다른 차원에서의 신에 대한 인정입니다. 그 인식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하나님을 존중시하는 종교관은 탈피해야 됩니다. 시대적인 신앙의 중심으로 서 있는 신은 부정해야 됩니다. 신이 없다고 부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환경적인 여건을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그 관(觀)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 관(觀)이 맞았더라면, 오늘날의 종교가 이렇게 낙후된 현실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관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심정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하나님의 사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정을 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슬픈 사람을 보게 되면 슬픔이 감돌기는 하지만, 그 사람의 엉클어진 사연에 동참하게 될 때 그와 나는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절대적인 선의 주체되시는 어떠한 분이 있다면, 그분의 사정을 들어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 사정 말고, 인간 심정 말고 그분의 사정이 어떻더냐 들어 보자, 그분의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심정은 어떻더냐, 그 심정을 파헤쳐 보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서 있는 자리는 차원 높은 자리라는 것을 우리는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역사적 내연을 계승한 자리, 시대적인 환경의 여건을 수습한 자리가 아니라 이것을 초월한 경지입니다. 자기 자체만의 입장이 아닙니다. 또 다른 주체를 흠모하는 자리의 심정을 추구해 나오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 심정을 통할 수 있는 뜻, 이 뜻이 바로 통일교회가 바라는 뜻입니다. 그 뜻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사연은 다른 것입니다. 달라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는 엇갈리는 역사적인 길을 걸어 나오고 있습니다.

선한 세계를 만드는 책임과 수습의 주체와 방안

오늘날 우리들은 투쟁의 역사를 부정하고 나왔습니다. 안 그래요? 우리는 선과 악에 있어서 악을 타파하고 악을 때리기보다는, 그 악을 초월한 초연한 자리에서의 선의 주체성을 가려 나왔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탄이 있다면, 그 사탄은 차원 높은 초월된 자리에 선 절대적인 선을 추구하는 하늘을 얼마나 배반하였던고? 얼마나 항거하였던고? 얼마나 하늘을 부정하였던고? 하지만 하늘은 상대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날 국회의원이 선거시에 유세하듯이 선전할 수 있는 입장에 선다면 세계가 어떻게 될 것이냐? 이 세계는 문제 될 것입니다. 그러면 왜 못 그러느냐? 절대적이고 지고한 선의 자리에, 초연한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악과는 동참도 안 한다는 겁니다. 상관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는 그분은 초연한 자리의 선을 중심삼은 주체일 것입니다. 아무리 몇천 년 동안 항거하더라도 그 항거에 의해 자기의 내적 동요나 방향 변경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려면 해봐라, 네가 할 수 있는 악의 세력이 크면 얼마나 크겠느냐, 끝까지 해보아라 하는 것입니다. 그 악을 부정하고 타협 방안을 제시하는 하늘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오늘날 우리들처럼 남북이 서로 자기 주장을 중심삼은 엇갈린 입장에서는 타협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초연한 자리에, 주체로서만 설 수 있는 권위의 선의 자리에 선 하늘이 있다면 이는 상관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타협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타협 이전의 초연한 자리입니다. 절대적인 권위의 자리입니다. 절대적인 권위의 자리는 타협이나 악의 상대 요건을 중심삼고 이러고 저러고 할 수 있는 자리가 못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결론을 짓고 보면 문제가 무엇이냐? 하나님이 있다면 우리 인간을 어떻게 구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타협 방안도 없고, 모색 방안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의 길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선두에 서서 개척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조종은 하고 책임은 지는데…. 책임은 선한 세계를 만들려는 그분이 져야 합니다. 악한 세계를 소화시켜서 선한 세계를 만들려니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세워 가지고 인간 구원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수습 역사인데 그 수습의 역사를 누가 하느냐? 수습의 방안은 하늘이 제시하고 책임집니다. 그러면 수습은 누가 하느냐? 그 방안을 중심삼고 그것을 실제로 대행하는 것은 누구냐?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천사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사를 통해 가지고 해서 끝나는 날에는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할 수 있느냐? 천사를 내세워 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끝나고 난 후에는 인간을 내세워서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때서야 비로소 사람을 내세워서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그 방안을 가지고 악을 지배할 수 있어야지 그 악에 지배받는 사람이 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악에게 지배받는 사람을 하나님이 지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건 당연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악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 그러한 세계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이상세계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술어로 말하면 지상천국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모색 방안의 대행자로서 그 하나님 대신 전권의 책임을 지자, 인간 대표로서 그러한 사명을 해야 되겠다고 하는 운동이 오늘날 이 세계에 있어야 합니다. 역사 과정에 있어서 그런 섭리의 방향, 그런 뜻의 방향을 취해 왔다면 영계가 협조할 수 있는 터전을 통해 가지고 인간이 협조를 완결해야만 절대적인 선의 세계가 도래할 것입니다.

주체되는 하늘의 심정적 내면을 중심삼은 관을 제시하고 나가자

그러면 그런 인간이 있느냐? 그러한 인간은 없기 때문에 초연한 뜻을 바라는 하나님은 인류의 대표형을 보낸다는 예고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각 종교에 있어서의 재림사상이 아니겠느냐. 그래서 절대적인 선의 주체와 인간을 대표할 수 있는 그 어떠한 사람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모색 방안에 최대의 노력을 해야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환경적으로, 가정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아무리 반대를 하더라도 그 운동을…. 그 반대를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좌절되어서는 안 됩니다. 반대를 받으면 그것을 뚫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악이 선을 치고 난 후에, 그것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하는 판단은 절대적인 선의 주체가 하시기 때문입니다.

피해를 입히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지만 피해를 입히는 날에는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러한 뜻을 따라가는 무리가 있게 될 때, 무리가 피해를 입기 전까지 하늘은 가만히 있지만, 피해를 입는 날에는 거기에 역사시대로부터 시정 방안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탕감복귀라는 것입니다.

탕감이라는 것은 이 시대만이 아니라 역사시대를 거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의 죄가 지금에 와서 문제가 되고, 노아의 방주, 아브라 함의 제물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모세의 반석 2타가 문제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에게는 종교가 문제가 되고 세계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종교권내에 나라도 있고, 세계권내에 나라도 있지만, 하나님이 바라는 선의 주체적인 입장에 선 종교를 중심삼은 나라가 있느냐? 그러한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라가 있다면 그야말로 그 나라는 이상적인 나라입니다.

이렇게 모순되고 상충된 현재 인류역사의 종말에는 새로운 방면에 있어서의 통일적인 방안이, 그런 종교를 중심삼은 나라, 그러한 뜻을 중심삼은 세계관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정이 아니라고요. 주체 되는 하늘의 심정적 내면을 중심삼은 그러한 관(觀)을 제시하고 나가자, 또 바라고 나가자는 겁니다. 안 되거든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안간힘과 몸부림을 쳐야 되겠다고 하는 운동이 세계의 어느 한 곳에서라도 벌어져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인류는 절망의 길로 가는 일방통행이 아니냐.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 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이냐? 사람끼리는 안 되는 것입니다. 천운을 타야 하는데. 그 천운을 어떻게 탈 것이냐? 어떻게 하면 하늘이 찾아오는 최고의 선의 역사의 방향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서느냐? 오늘날 서로 엇갈린 사상을 가지고 있는 민주사회와 공산사회는 어떠한 자리에 서 있느냐? 자기들 주체관을 중심삼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것은 허락되지 않을 것입니다. 끝에 가서는 자기들이 뜻하지 않는 결과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는 그러한 절대적이고 차원 높은 자리에 있는, 악을 대해 선의 입장에서 책임질 수 있는 주체자, 우리 인간 외에 또 다른 절대적인 자리에 선 그 주체자의 사정뿐만이 아니라 심정 내면을 어떻게 우리가 체득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이남이면 이남에도 충신이 있고, 이북이면 이북에도 충신이 있습니다. 공산세계면 공산세계의 충신이 있고, 민주세계면 민주세계의 충신이 있습니다. 그 세계를 위해서 생명을 걸고 그 세계의 주권자와 하나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게 되면 충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면 고차적인 선의 주체자 안에 남아질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충신이 있느냐? 혹은 그분과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그분은 주체요, 나는 대상'이라고 하며 그와 내가 하나될 수 있느냐? 하나된다면 어떤 자리에서 하나될 것이냐?

인간의 욕망을 두고 보면, 인간은 최고의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못생긴 사람이라도 최고의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세계 밑에 있어서의 최고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구요. 세계 위에서의 최고를 원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들도 전부 다 세계를 내 세계로 만들고 싶어하는 욕망은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권내에서 지배받는 나로 출세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구요. 세계를 지배하는 자리에 있어서의, 자주적인 입장에 있어서의 희망과 욕망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세계를 내 것 만든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외에 또 다른 주체가 있으면, 그 주체를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 것 만드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내 것 만들 것이냐? 그것이 절대적이고, 제일 귀한 것이라면 자기의 사랑을 중심삼고 내 것 만들려고 합니다. 안 그래요?

여자들로 말하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크고 좋은 다이아몬드 반지가 있다면, 사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것을 중심삼아서 자기의 사랑과 더불어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물건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려고 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아야 좋아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지요?

세계에서 자기가 제일이 되려는 욕망이 이루어질 때, 그 욕망을 달성한 가치를 어떠한 자리에서 인정받고 싶으냐?' 잘 싸웠소'라고 치사하고 헤어질 수 있는 자리에서 잘 싸웠다고 치사를 받고 싶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세계와 하나될 수 있는 가치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라구요.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는 곳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는 그런 차원 높은 자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냐.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문제삼고 있는데, 하나님의 사정도 꿈나라인데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벌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 그런 생각이라도 들고 나오고, 그런 생각이라도 하겠다고 몸부림친다면 하나님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벌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나라가 뭐라고 하든, 이 세계가 뭐라고 하든, 악한 세계가 아무리 원수시하더라도 통일교회는 남아질 것입니다. 그분이 없다면 일시에 사라질지 모르지만…. 통일교회는 '때려 봐라, 쳐 봐라, 통일교회가 없어지나. 반대해 봐라, 통일교회가 없어지나!' 하는 것입니다. 국가적으로도 반대하지 못하는 때에 우리는 세계적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세계적으로 반대하지 못하는 이때에 우리는 영계의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이것은 꿈 같은 이야기인 것입니다. 영계의 기반을 닦았다구요.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역사시대에 선포하신 뜻을 가진 주체자가 있었으면 그 사랑을 어디에서 이룰 것이냐? 그래도 하나님의 사랑의 길을 가겠다고 허덕이는 무리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틀림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안 이상 틀림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그분이 원하는 것과 통하느냐, 내가 생활하는 것이 그분의 생활과 통하느냐? 문제가 그렇게 돼요. 뜻을 대하는 우리들이기에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예요. 내 사정이 귀하냐, 그의 사정이 귀하냐? 내 심정의 차원이 높으냐, 그의 심정의 차원이 높으냐? 그것은 물어 볼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시대의 인연을 초월하지 못한 인간입니다. 역사적 사정의 관계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입니다. 인연과 관계의 세계를, 인과원칙의 세계를 벗어나는 인생임을 자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우리가 비애를 느끼는 자아를 발견하고 극복의 대안을 추구하는 그 무엇을 가지고 신음한다면, 그 모색 방안이라는 것은 자기 자체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악을 대해 염려하는 새로운 주체가 있다면, 이것은 말할 수 없는 희소식이 아니겠느냐? 그러한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분을 위해서 얼마나 정성을 드려야 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청춘 남녀들이 첫사랑의 불길에 사로잡히게 되면 생사를 개의치 않고 그 사랑을 향해 돌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만일에 이러한 사랑의 길이 있다면 그 사랑의 길은 얼마나 강할 것이냐? 칼이나 어떠한 권위로도 막을 수 없을 것이 아니냐. 천년 만년 이 땅 위의 인간들의 권위를 종합해 가지고도 막을 수 없을 것이 아니냐. 그 길을 위해서 내가 미치고, 그 길을 위해서 내 전체를 희생해도 좋다고 할 수 있는 결의를 가진 무리가 있다면, 그 무리는 위대한 무리일 것입니다. 안 그래요?

거기에 미친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역사적인 대사건입니다. 그 결과로서 역사에 없는 기적을 이루어 놓을 것입니다. 역사에 없는 방향 전환을 시킬 것입니다. 360도 악으로 돌았으면 360도 이상의 선으로 갈 수 있는 힘이 여기에만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에만이 있는 것입니다. 지식의 길은 전후좌우 사방이 맞지 않으면 막히게 됩니다. 사랑의 길을 체휼하고 가는 길은 맹목(盲目) 중의 최고의 맹목적이요, 돌진 중의 돌진인 것입니다. 위험을 모르는 진행성을 가진 것이 사랑이라는 겁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천지애를 그리워하면서 자기 일신 전부를 저버리고 생사지경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무리가 있다면,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소원을 이룰 수 있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는 가망성이라도 둘 수 있을 것이 아니냐.

축복가정이 본래의 전통적 이념과 어느 정도 일치되어 있느냐

이러한 의미에서 여기 있는 통일교회의 문선생은 공적인 이름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입니다.

이 문이라는 사람, '너는 무엇을 위해 가느냐? 너는 무엇을 위해 사느냐? 누구를 위해 사느냐?' 할 때, 그 무엇을 위해 산다는 그 무엇이라는 것이 자기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은 사랑의 길을 못 찾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젖먹이 때부터 '네가 이 다음에 커서 철이 들게 되면, 내가 너를 키워 준 것을 알아야 돼' 하고 교육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는 미친 부모라구요. 그렇게 하려면 소 새끼를 키워서 일을 시켜 먹는 것이 낫습니다. 자기 자식에게 내가 이렇게 사랑해 주었으니 너는 이 이상으로 해 달라고 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희생하는 것입니다. 주고 또 줘도 부족함을 느끼고, 또 줘도 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가치의 궁극을 영속적으로 자극시킬 수 있는, 미래의 소망을 계속적으로 보충해 줄 수 있는 길이 사랑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한 현장에서 주체 앞에 상대적 관념이 벌어지게 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둘의 웃음 꽃이 피어나고, 새로운 세계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 좋은 친구, 좋은 살림, 좋은 환경이 왜 좋으냐? 웃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러분은 통일교회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내가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나라를 사랑하는 데는 어떻게 사랑해야 하느냐? 이 나라를 대통령에게만 맡길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발판이 될 수 있는 대통령 이상의 충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충신은 자기의 욕망을 중심삼고 출세나 꿈꾸는 그러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한 사람은 충신이 못 됩니다. 현재 그 나라의 안일을 추구하는 백성 말고, 현재의 안일을 해결하려는 주체자로서의 대통령 말고 역사시대의 안일을, 역사 이후의 안일의 세계를 추구하는 백성이요, 해결지을 수 있는 주체자로서의 대통령이 있어야 그 나라가 새롭고 차원 높은 미래의 역사시대에 연결될 수 있는 길을 가질 것이 아니냐. 그런 의미의 충을 다짐하고, 그런 의미의 효를 다짐하며 가기 때문에 우리는 이해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죽도록 일을 하고 오해받기 일쑤라는 것입니다.

선은 강한 것이고 당당한 것입니다. 빛나는 선한 자리에 섰고, 그렇게 살아왔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 나라의 권위와 그 나라의 칼이 감히 그들을 제거시키지 못합니다. 그러한 신념을 갖고 나가는 패가 통일교회 패인 것입니다. '너는 무엇을 남길 것이냐? 너는 무엇을 남길 것이냐? 네가 악을 위해 태어나지 않고 선을 위해 태어났다면 너는 일생을 살고 난 후에 선하였더냐, 악하였더냐? 그 종합적인 결산적인 결론이 뭐냐?' 할 때 악하였다면 그것은 비참한 것입니다. 선하였다 하게 되면 그것은 자랑입니다.

어디에서 그것이 결정되느냐? 그것은 공중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과 악은 현재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역사와 미래의 해결점은 현재에서부터입니다. 선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아, 오늘은 잘못했지만 내일은 그러지 않겠다' 이런 변명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오늘이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데 그 누구보다 사랑하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데 있어서 지금까지 흘러가는 역사시대의 인연을 따르는 입장의 남편으로서 아내를 사랑했느냐, 그런 아버지로서 자식을 사랑했느냐, 그런 형제로서 사랑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가정 형성의 방법도 달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가정이 지금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축복가정이 무엇이냐? 36가정이 무엇이냐? 이건 공산주의에도 없는 조직이 아니냐. 세계적으로 문제 될 것입니다. 그런데 미스터 문이 제시한 본래의 전통적 이념과 거기에 처해 있는 현재의 자체들과는 어느 정도 일치되어 있느냐? 이것이 일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차원이 달라지게 될 때는 재차의 혁명이 있어야 됩니다. 재차의 몸부림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거기에는 청산이라는 자제가 남게 될 것입니다. 역사시대의 종말적인 심판 외에 통일교회 자체내의 심판이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런 말이 성립되는 거예요.

통일교회의 움직임은 세계를 위한 것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새로운 차원의 입장, 우리로서의 주체가 아니라 또 다른 고차원적인 주체로서의 입장에 선 가정관을 그려 나오는 무리가 되어야 됩니다. 개인이 추구하는 인생 가치관이 다른 것입니다. 국가관이 다른 것입니다. 악주권을 초월해 가지고 차원 높은 하나님의 선주권을 중심삼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기성교회에서는 통일 교회를 정당조직이라고 모략하고 있습니다. 그런 시시한 말은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정당을 조직한다면 선전하고 나섰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공석에 얼굴을 나타내지 않고 비운의 사나이로 몰리며 나온 것은, 그런 것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세계가 문제인 것입니다. 어차피 지금까지 그들이 자랑하던 주권시대는 역사와 더불어 영속적인 주권 기반으로 남아지지 못합니다. 그들의 역사는 변질되고 발전해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주권 역사입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후퇴적인 입장에 서서 꿈꾸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계가 문제라구요. 세계를 문제시해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남편으로서 아내를 어떻게 사랑하느냐? 다르다구요. 나라를 어떻게 보느냐? 다르다구요.

예수님의 관(觀)은 어떠했느냐? 4천년 역사 동안 메시아가 오기를 그렇게 고대했던 그 뜻, 그 뜻을 이루기 위해 30여 평생 동안 몸부림치다 비운의 종국을 바라보면서 '내 뜻대로 마시옵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최후의 절규를 하는 그 입장은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자, 예수님이 그러기 위해서 왔어요? 다 잃어버리고 죽으려고 이 땅에 왔습니까? 아닙니다. 거기에는 인간 세상의 역사적 사정이라든가 모든 것이 엇갈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같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엇갈려 가는 것입니다. 벌써 안 되겠기 때문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미 돌아섰다구요. 타고 넘지 않으면 돌아서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돌아섰다는 것입니다. 돌아서니까 돌아서지 말라고 아우성치는 것입니다. '아이고, 내 아내, 내 부모, 내 아들딸' 하며 야단하다가는 다 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선 것이 통일교회의 무리입니다. 여러분들, 부모한테 배척받았지요? 세상에 아무리 미욱한 사람도 그렇게 만드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욕을 먹고 이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길이 없으니까 이 놀음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불원한 장래에 통일교회의 움직임이 세계화될 때가 올 것입니다.

만일에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그것은 영계에서 다 하게 되어 있다구요. 영계에서. 우리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영계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지요? 「예」 증거를 많이 받았다구요. 이것이 또 증거를 너무 많이 받다 보니 습관화가 되었구만. 습관화되더라도 자기가 질적인 요인을 갖추어 가지고 그 습관의 주체적 입장에서 습관화되면 괜찮은데, 질이고 무엇이고 관례적인 습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뭐 영계에서는 통일교회를 증거하니 수많은 영통인들의 증거를 들었다고요. 그것이 관례적으로 되어 버렸다구요. 이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관례는 통하지 않습니다. 의례적으로 출입하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야말로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시던 그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 이상의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며 죽어 가던 예수님 말고, '내 뜻 말고 당신의 뜻대로 하겠사오니 이제 명령하시옵소서' 할 수 있는 또 다른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영계가 이 땅 위에 천사를 시켜서 일하던 역사가 사람을 시켜서 일할 수 있는 역사로 옮겨질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리하여 그러한 사람들이 악주권의 세계 앞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주도적인 입장에서 선의 터전을 세계화시키게 될 때,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선주권의 세계가 아니냐. 안 그래요? 이것은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시시하게 주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사상은 인류와 영원히 공존할 수 있는 뜻

그러면 역사시대에 있어서 뜻을 진정으로 대하던 분이 누구냐? 하나님, 그 다음은 예수입니다. 아무리 봐도 예수밖에 없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당장에 죽을 운명에 처해서도 도망가려 하지 않고 오히려 목을 들이대면서 '나는 죽겠습니다' 하는 입장에서, 내 뜻대로 마시옵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한 사나이는 역사시대에 예수 이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뜻을 대함에 있어서 역사적인 대표자는 누구냐 할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예수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무엇을 바라는 자리에서 생명을 내놓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자기가 바라는 뜻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하늘이 바라는 뜻을 중심삼은 세계관이었습니다. 그러한 세계가 나타나면 이 땅 위의 독재자와 같이 그것을 마음대로 밟아 치우고, 자기 일신의 야욕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패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한 세계가 되면 어떨 것이냐? 달라질 것입니다. 그것은 출발도 선이요 끝도 선인 것입니다. 그 선은 지금까지 인간이 요구해 오던 애매한 선이 아니라 그 출발에서부터 결론에 이르기까지 확정적인 선일 것입니다. 그런 선을 향하는 생애 노정이, 역사시대가 거기에서 출현될 것이 아니냐. 그 역사시대를 우리는 모르고 있습니다. 못 봤다는 겁니다. 여러분, 보았습니까? 그러한 의미에서 뜻을 대하는 역사시대를 두고 보면, 4대 성인이 있었지만 그 성인 가운데 그래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나는 독생자다.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라고 정서적인 면에서 주장한 분은 예수입니다. 그 이상 주장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절대적인 선의 주체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 역사 시대에 뜻을 대하는 입장에 있어서 대표적인 사람이 그 누구일 것이냐? 아무리 찾아봐도 예수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상을 남기고 간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기독교 문화가 세계적인 문화로서 발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와 같은 사상을 전부 가지면 기독교가 망할 수 있느냐? 안 망한다는 겁니다.

예수의 사상은 어떠한 사상이냐? 나는 너를 위해서 죽는다, 나는 인류를 위해서 죽는다, 뜻을 위해 죽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뜻은 무엇이냐? 인류를 이탈한 뜻이 아니라 인류와 영원히 공존할 수 있는 뜻입니다. 뜻의 선두에 서서 죽었기 때문에 인류 앞에 죽음길을 교시하자, 인류 앞에 효성의 길을 교시하자, 인류 앞에 충성의 길을 교시하자, 전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 앞에 보람된 가치의 길을 소개하자는 거예요. 거기에서 보람된 가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그러한 사상을 가진 종교가 있습니까? 기독교? 어떤 책임자가 하는 말이 '요즈음 목사들은 사기꾼으로 인정하고 대해 줘야 된다. 목사는 사기꾼으로 결정해 놓고 시작해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이런 말을 듣고 나는 기가 막혔습니다. 야, 목사가 그럴 수 있느냐? 하나님은 열매가 되라고 했는데 추풍 낙엽이 되어 버렸습니다. 소도 거기에는 똥싸기를 꺼려 하는 잎이 되어 버렸습니다. 기가 막힌 말이라구요. 사기꾼으로 인정하고 대해야 된다면 그것은 다 된 것이지, 거기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있어요? 거기에 예수의 전통적 사상이 남아요, 안 남아요?

통일교회는 하늘의 심정을 위로하기 위한 종교

뜻이 무엇이냐? 뜻은 내가 사는 길이요, 가정이 사는 길이요, 국가가 사는 길이요, 세계가 사는 길이요, 인류가 사는 길입니다. 여기에서 인류하게 되면 역사적인 의미의 인류예요. 과거 현재 미래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하나님도 재미를 보며 살 수 있는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슬프시다면 세상이 재미있을 게 뭐예요?

어제 저녁까지는 뺨을 대고 '내 아들아, 내 딸아' 하며 사랑해 주었지만, 지금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인데 그 아들딸이 와서 '엄마, 아빠' 하며 '요 시간도 틀림없이 나를 사랑해 줘요' 하면서 어제같이 사랑해 주기를 바란다면, '그래 해주마' 하며 사랑해 줄 수 있습니까? 갑자기 그럴 수 있어요? 인간 자체도 그렇게 되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나기 전부터 아버지의 기분이 좋아야만, 좋게 될 수 있는 상대가 나와야만 좋은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면 만나기 전에는 기분이 나빴는데 좋은 상대가 나오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을 탕감하는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기분 나쁘게 한 패가 그 아들딸보다 더 가까운 패일 때에는 그 아들딸이 아무리 위로하더라도 위로가 안 되는 겁니다. 안 그래요? 그렇지만 그 위로하는 패가 기분 나쁘게 한 패 이상이 되게 될 때는 한꺼번에 다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정 세계의 승리적이고 보람된 길입니다. 이것이 있기에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인간의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타락한 인간 조상 아담 해와의 핏줄을 받은 우리 인간은 용서받을 수 없는 패지만, 타락 전 아담 해와 이상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길을 가지고서 '하나님, 그 슬픔은 다 잊어 버리소서' 하게 될 때 '어 어'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이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심정 세계의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차원의 뜻이 우리 통일교회에는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통일교회이기 때문에 타락 이전의 사람으로 돌아가자는 구체적인 내용이 문제되는 것이예요. 안 그래요? 자,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까지 슬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 같아요? 슬퍼하고 계십니다. 그 슬픔을 무엇으로 위안할 것이냐? '하나님 제가 있으니 슬픔을 위로받으소서' 해가지고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 이상의 사랑의 심정을 지녀 가지고 '아버지여, 당신은 이러이러한 슬픔을 가지신 아버지이기에 그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며 눈물을 쑥쑥 흘리면 그것으로 통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변명이 필요 없습니다. 백과사전이 필요 없다구요. 성경 66권이 필요 없다구요 그래서 성경은 천국은 무불능통한 자리에서 온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알겠어요? 역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이 사람도 하나님의 심정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으로서, 인간이 타락하던 그 순간 슬픔을 느꼈던 하나님의 마음을 붙들고 더욱 슬퍼할 수 있는 나를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보다 더 비참한 슬픔을 가지고 몸부림치며 '당신이 이럴 수 있느냐'고 할 수 있는 나의 심정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노아면 노아 할아버지가 120년 동안 수난길을 통하여 배를 지었던 그 수고가 한 순간의 실수로 말미암아 역사의 오점으로 남아질 수 있느냐, 그것이 그럴 수 있느냐 하며 노아 할아버지 이상 슬퍼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국경을 초월하여 수많은 나라를 넘나드는 집시의 무리를 끌고 다니는 행각의 노정을 걸었지만 그 가운데, 그 수난의 역사 가운데 하늘의 위안이 있어서 축복해 주었는데, 그 모든 축복이 깨지는 그 자리를 볼 때, 아브라함이 그럴 수 있느냐 하는 심정, 그를 대하던 아버지의 가슴이 얼마나 아팠는가 하는 것을 알아 가지고 그 이상 몸부림칠 수 있는 자기 발견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도 예수의 30년 생애의 삶이 그것으로 끝날 것이었더냐, 그것을 대하는 하나님은 얼마나 슬펐겠느냐 하며 그 슬픔 이상의 슬픔을 내가 어떻게 발견하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하늘은 그것을 원할 거라구요. 자기의 죄지은 사연을 중심삼고 이러고 저러고 하는 회개가 아닙니다. 보다 차원 높은 입장에서 새로운 자극적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몸부림에서부터 하늘도 출발하고, 인생도 해결이 벌어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을 부르짖고 나오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하나님 이상으로 눈물을 흘려 보자

나라를 위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느냐? 하나님의 슬픔을 대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느냐? 어떠한 가정에 있어서 아들이 있다면 그 중에 맏아들이 부모를 대해서 가슴 아프게 할 때, 나이 어린 동생이라도 그것을 바라보고 그 형으로 인해 슬퍼하는 부모 앞에서 흐느껴 울면서 '어머니 아버지, 형을 때리기 전에 저를 때려 주시고, 형을 욕하기 전에 저도 그럴 수 있으니 그렇게 되지 말라고 저에게 채찍질해 주십시오' 하는 아들이 있다면, 부모는 거기에서부터 아픈 마음을 풀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방향을 돌릴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나오지, 그 이하에서는 나올 수 없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이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소원 성취가 어디서부터 시작될 것이냐? 일이 아닙니다. 돈이 아닙니다. 나라가 아닙니다. 심정입니다, 심정.

아담 해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날 때 하나님이 얼마나 슬펐겠느냐, 그 이상 슬퍼할 수 있는 내가 되자는 거예요. 쫓아낸 하나님이 극복할 수 없는 경지의 슬픔이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극복할 수 없는 그 슬픔을 가지고 아들을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이 되게 왜 자극을 못 시켰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결국 무엇이냐 하면, 아담 이상 내가 눈물을 흘려 봤느냐는 겁니다. 아담을 대하던 하나님 이상으로 눈물을 흘려 보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타락한 인류에게 있어서 새로운 복음의 길이요, 새로운 부활의 길이요, 새로운 소망의 출발의 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러므로 아담 이상으로 울어 보자는 거예요. 누구를 위하여 우느냐? 자기를 위해서 우는 것 말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울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어 있습니다. 뜻을 위하여 울라고 하는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각한 자리에 선 예수와 제자되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그 종자가 달랐다는 겁니다. 편안히 잠잘 수 있는 제자와 생명을 내놓고 몸부림쳐야 하는 예수는 입장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심정이 달랐다는 거예요. 밤을 새운 모습은 비슷했지만 내용이 달랐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의 뜻을 대하는 내가 되어야겠고,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그러한 심정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120년 동안 수난길에서도 하늘을 위한 노력을 계속적으로 가중하던 노아의 인격을 바라면서 그 이상 더 어려운 자리에 들어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노아 할아버지가 '이제 그만 하소' 할 수 있는 자리, 하나님까지도 '야, 너 이제 그만 해도 된다' 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더라도 내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면, 뭐 이런 하나님이 있느냐고 하면서 뿌리치고 가는 사람이 있다 할 때, 하나님이 심판할 것이냐? 심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그렇지 않아요? 사랑하는 효자가 가는 길을 막고 '이 자식아, 이제 그만 해도 된다' 할 때, '어머니 아버지, 저는 이렇게 해야만 됩니다, 이것을 위해 태어났고 이것을 위해 죽어야 됩니다' 하면서, 효의 길을 막는 부모를 밀어 제치고 간다고 해서 불효되는 이치는 없는 것입니다.

충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군왕이 가지 말라고 하더라도 군왕에게 항거 하면서, 군왕을 밀어 제치고 죽음을 각오하고 군왕을 위해 간다고 해서 역적이 될 수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모든 법세계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심판이니, 무슨 법률을 통해 치리하는 세계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가 심정의 세계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기도와 선생님이 하는 기도는 다릅니다. 달라요. '아버지' 하는 그 말은 같지만 그 내용은 다르다구요.

통일교회가 나라를 사랑했다는 것은 역사의 판결 기준이 될 것이다

자, 뜻을 대하는 우리들, 우리는 같은 운명길에 섰습니다. 욕도 먹어 보았습니다. 동료간에 불신도 당해 보았습니다. 부모의 불신도 받아 보았습니다. 스승의 반대도 받아 보았습니다. 나라의 반대도 받아 보았습니다. 나라의 반대뿐만이 아닙니다. 여기 서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일본에 가면 일본 나라가 미워하는 것입니다. 미국에 가면 미국 나라가 나를 미워하고 영국에 가면 영국 나라가 미워하는 거라구요. 독일 가면 독일 나라가 미워하는 겁니다. 내 나라에 오면 내 나라까지 미워합니다. 그렇다고 원망하지 않습니다. 미워해 가지고 살 길이 있다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망하라고 하는 사람은 망하지 않고, 망하라고 한 사람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무서운 놀음이 역사에 일어나는 것을, 엇바뀌는 결과가 되는 것을 선생님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주를 못 하는 것입니다.

탕감시대, 가인 아벨을 중심삼은 탕감시대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통일교회를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탕감시대가 지나가면 통일교회는 어떻게 될 것이냐? 그걸 생각해 보십시오. 탕감시대를 지내고도 남을 수 있는 복받침과 사무침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하늘에 대한 사랑의 심정에 사무쳐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가서 그것이 어느 한계점을 넘게 될 때는 악이면 악이 최대의 권한까지 행사할 수 있는 한계선이 있을 것이고, 선이 선으로서 관리할 수 있는 한계점이 있을 것입니다. 이 한계점만 넘어서는 날에는 통일교회는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핍박할래야 핍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핍박하다가는….

선과 악은 영원히 남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어느 하나로 귀결되는 판결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나라를 사랑한다, 사랑했다는 것은 역사의 판결 기준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했느냐? 그것은 통일사상과 더불어 길이 남아질 것입니다. 통일교회 사람들 모가지를 다 잘라서 하나도 남지 않게 만들더라도 세계에 퍼지는 통일교회의 책은 남아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다. 사탄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지금 뜻을 대하는 사람들이 예수 시대에 뜻을 대하던 그 이상의 자리에 서지 않고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겠다고 한 약속의 세계가 올 수 있겠느냐?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던 예수님이 못 오는 것이 아니냐. 그건 이론적인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시대보다 나을 수 있는 때가 있어야 될 겁니다. 예수의 제자 이상의 제자들이 자신의 생사지경을 초월하여 하늘을 사랑하기에 미쳐야 합니다. 밤낮 없이 지새워 가면서 가는 길이 바쁘다고 재촉하는 입장에서 '예수님, 기도보다 더 바쁜 일이 있는데 여기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것이 뭐 있습니까? 갑시다. 밤새워 기도하는 것보다 더 바쁜 일이 있는데 이럴 수 있소?' 하며 기도하는 예수를 끌고 나서는 제자가 있었다면 예수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안 그래요?

통일교회 여러분, 말로는 '선생님'이라는 말을 잘합니다. 저 분은 우리를 위해서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잠자는 시간이라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데, 선생님이 잘 수 있소? 하며 깨워 가는 제자, 선생님이 가지 않겠다고 하면, 발을 꺼꾸로 끌고라도 갈 수 있는 제자가 있다면, 여기에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미스터 문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자' 하는데 눈치를 보며 적당히 하려는 사람, 선생님은 싫습니다. 여기면 여기고, 저기면 저기지 중간은 싫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생활관(生活觀)입니다. 생애를 그러한 표준에서 싸워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의 눈은 돌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생각은 그릇되지 않았습니다. 천하가 뭐라고 하더라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아무리 세계가 반대를 하더라도 졸장부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운동이 대한민국에서부터 세계로 뻗어 나가야 합니다. 지금 일본이라든가 구라파의 움직임을 두고 볼 때…. 주체국인 한국에 있는, 소위 청파동을 출입하는 식구들은 상을 받아도 먼저 받아야 되고, 심판을 받아도 먼저 받아야 될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주체국으로서 책임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예수시대에 뜻을 대하던 그 한 분의 역사가…. 오늘날 끝날에 있어서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예수 이상의 심정을 가지고 '당신의 슬픔을 알았다'고 하며 결의할 수 있는 무리가 세 사람뿐만이 아니라 천만 인이 되고, 이곳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국가로 연결되게 될 때는, 그 무리를 통해서 하늘의 뜻이 시작될 것이 아니냐.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뜻을 위해 위신, 체면 없이 보람있게 살자

여러분은 자신을 위해서는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자신의 어려움을 중심삼고는 눈물을 많이 흘렸다는 것입니다. 선이라는 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희생시키는 데서부터 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 등등을 볼 때, 선의 역사를 창건하는 하늘은 희생을 시켜 가지고 세계를 구원해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입니다. 이것은 복귀원리를 공부한 사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엄연히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고, 또 선생님도 지금까지 일대를 그러한 표준 밑에서 싸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뜻이 문제입니다. 뜻이 어려움을 당할 것을 생각하면 자기의 존재 가치고, 위신이고, 체면이고 없는 것입니다. 똥구덩이에 거꾸로 박혀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 위신이라는 것은 죽은 다음에는 똥개도 핥지 않는다구요. 하늘나라의 똥개도 핥지 않는다구요. 하나님의 위신이 엉망으로 되어 있는데, 어머니 아버지의 위신이 엉망으로 되어 있는데, 효자의 명분을 갖겠다고 얼굴을 내밀 수 있습니까? 충신이 자기 위신을 차려요? 위신 찾고 체면 찾는 패들은 멀었다구요.

자, 통일교회 문선생에 대해 까놓고 얘기해 봅시다. 내가 위신을 찾으려면 누구보다도 예민한 사람입니다. 눈치가 빠르다구요. 사리 판단에 예민하다구요. 그런데 왜 지금까지 누더기를 뒤집어쓰고서 비참한 사나이 노릇을 하느냐? 밥이 그리워서 이래요? 뭐 딴 것이 그리워서 그래요? 그것은 나 자신, 내 손으로 다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머리내기를 해도 누구에게 지지 않는다구요. 무슨 내기를 해도 누구에게 지지 않는다구요. 백방으로 소질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거 해서 뭘 하느냐는 겁니다. 그걸 다 타진해 보고 돌아선 길이라구요. 이 길밖에 없기 때문에 이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람있게 살자 이거예요.

보람있게 살자는 것이 욕먹고 사는 거예요? 선생님이 어디를 가게 되면, '저 사람이 통일교회 문 아무개라지?' 뭐 별의별 말을 다 합니다. '그거 허우대는 잘났구만,상통은 그래 보이지 않는데' 이러며 뭐 어쩌고 어쩌고…. 그것은 선생님의 뼈가 녹더라도 잊지 못합니다, 잊지 못해요. 선생님은 무골충이 아니라구요. 이 통일교회 패들, 뼈 없는 사내, 아낙네들이 많다구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그런 사람들은 오다가다 다 망해 죽는 것입니다.

이 일을 시작할 때는 개인적인 반대를 각오했고, 부모에게 몰릴 것을 각오했고, 처자 앞에 반대받고, 친지 앞에 고립될 것을 각오했고, 나라 앞에, 세계 앞에 몰릴 것을 각오했습니다. 각오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몇백 번, 몇만 번 각오한 사나이입니다. 갈 길이 정해져 있다구요. 여러분들은 가지 못하더라도 나는 이렇게 간다 하는 것이 정해져 있다구요.

그러면 선생님이 가는 세계, 선생님이 가는 심정의 세계, 하늘나라가 있으면 그 하늘나라의 유업을 받고 싶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안 됩니다. 뜻을 대하던 예수의 전통적 사상을 중심삼고 사랑의 심정을 거치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계승되지 않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두고 볼 때, 선생님도 그 운명길에서 허덕이고 있는 사람이요, 여러분은 더 허덕여야 될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선생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일본 사람도 그렇고, 독일 사람도 그렇고, 미국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 교수단들이 한 60여 명 일본을 다녀왔다는 보고를 어제 들었는데, 전부 다 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거 왜 그랬느냐고 했더니 창피했다는 겁니다. 부끄러웠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나온 통일교회가 일본에 와서 이러고 있는데…' 그것뿐인 줄 알아요? 세상에서 부끄러운 것이야 가릴 수 있지만, 영계에 들어가서 부끄러운 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 영원한 부끄러움은 어떻게 할 것이냐? 세상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 아니라구요. `

인생살이는 영계에 다이얼을 조절하는 삶

보라구요. 여러분이 죽게 된다면…. 아무리 세상에서 뭐 일국의 대통령을 했던 사람이 죽었다고 합시다. 자, 영계에 들어갈 때 누구 친구가 있습니까? 뭐 죽어지면 연기가 사라지는 것처럼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라면 모르지만, 통일교회 원리 말씀대로 영계가 있고, 영인체가 있다고 할 때는 어떻게 되겠어요? 영계는 미지의 세계인 것입니다. 역사시대의 미지의 세계입니다. 거기에 대한 경험이 있습니까? 혼자 가는 것입니다.

사망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 악한 주권자와 선한 주권자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구요. 그 교차로에 서서 악을 제거시키고 선한 곳으로 간다고 주장할 수 있는 배포가 있느냐? 있어요, 없어요? 소위 통일교회 교인이라고 하는, 나는 부장이고 나는 누구누구인데 하는 사람들, 있어요, 없어요? 이게 철모르고 잠자겠다고…. 잠이 와요? 그 세계가 없으면 몰라요. 없다면 문선생도 이 놀음 안 한다구요. 대한민국에서 이만 하게 만들었으면 내가 누구 못지않은 일인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놀음 안 한다구요. 그 미지의 세계에 안내자가 있었느냐? 동서남북 방향도 모르는 것입니다. 미개척 세계에 혼자 가는 것입니다. 사방을 바라보니 뚝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마중 나온 패들이라고 사탄의 군대가 와서, '차렷? 하면, 그거 기분 좋겠지요? 생각해 봐요.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지 않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자, 이렇게 해서 가는 데서부터, 안내되는 순간에서부터 가중되는 슬픔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그 가중되는 상충의 역사, 가중되는 곡절의 비운의 역사가 한꺼풀 벗어지는 날에는 영원히 포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무슨 말인지? 그것은 지금부터 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라디오를 조정할 때 안테나에서 합니까? 난데없는 조그마한 다이얼로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살이는 다이얼을 조정하는 삶입니다. 잘 맞추는 날에는 직행하는 것이요, 못 맞추는 날에는 영속적인 후퇴일 것입니다. 그때의 비참함은…. 그때는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아이고, 나 이럴 줄 몰랐소' 그것이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관련이 안 되겠나 생각해 봐요. 기가 막히겠어요, 안 막히겠어요?

그렇지만 땅 위에서 다이얼을 잘 맞추고 직행하는 삶을 살다가 죽는 날에는 역사적인 성인들이 나와서 우리를 환영할 것입니다. 공자도 나올 것이고, 예수도 나올 것이고, 석가모니도 나와서 깃발을 들고 하늘의 공신이라고 풍악을 울리며 환영할 것 아니냐. 이런 것 생각해 봤어요?

영계가 반가이 맞아 줄 수 있는 길을 가자

어떠한 길을 가겠습니까? 땅 위에서는 초라하고 이름 없는 생애를 마치고 갔다 하더라도 저나라에 있어서 그럴 수 있는 그날을 맞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행한 사람입니까? 선생님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오로지 그 길을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땅 위의 무슨 권위와 무슨 자랑이 있다 해도…. 보라구요. 지금까지 이름나고 소문나게 한 것은 전부 선생님이 제시한 것입니다. 사장도 만들어 주고 대부흥 강사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대한민국에서 공석에 나서는 것을 보았습니까? 여러분들은 새벽 미명에 이렇게 와 가지고 선생님을 만나서 말씀을 듣곤 하지만, 내가 공석에 나타나려고 하지 않는다구요. 세상에서는 출세하려면 전부 자기 선전하지요? 요전에 어느 기관에서 하는 말이 통일교회는 왜 선전할 줄 모르느냐고 합니다. 통일교회는 선전해 가지고 출발한 교회가 아닙니다. 제사를 지낸 후에 그 제사가 잘 되었느냐 못 되었느냐 하는 것을 문제시하지, 제사 드리는 과정에서는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선전하지 않습니다. 선전하지 않는다고 해서 통일교회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망할 것 같으면 선생님이 벌써 보따리 쌌습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보다 생각이 더 많은 사람이라구요.

머리의 크기를 보더라도 여러분이 따를 수 없는 큰 사이즈라구요. 또 얼굴을 보세요 눈을 보니 허술하게 생겼습니까? 큰 귀를 보니 누구의 말을 듣게 생겼습니까? 남의 말은 내가 실험해 보기 전에는 안 믿는 사람입니다. 똑똑한 사람이지요. 지독한 사람입니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한다고 무엇을 주면 그것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을 주는 것이 사랑인가. 내가 찾고 있는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니다' 그런 거예요. 사고방식이 달랐던 아이였습니다.

자, 왜 이러느냐? 미지의 세계, 영계가 반가이 맞아 줄 수 있는 길을 가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반가운 사람이 온다 하게 되면 십리길도 마다하지 않고 나가지요? 국경까지 가 가지고 발끝은 이쪽에 있지만 몸뚱이는 다 넘어가서 맞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나라의 군족들이 국경선까지 나와서 발은 이쪽에 있지만 몸뚱이로 얼른 오라고 맞이해 줄 수 있는 놀음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거기에서 환영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이 불행한 것이예요? 그것을 바라고 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은 뜬구름 같고, 나그네와 마찬가지라구요.

보라구요. 미욱한 사람들은 죽을병에 한 번 걸려 봐야 된다구요. 심장이 똑딱똑딱하다가 뚝- 딱- 하게 되면 '아이고, 나 죽는다!' 하며 눈이 뒤집어져 가지고 심각해집니다. 그때는 해결 방안이 없습니다. 그때는 통일교회 교인도 '아이고, 선생님?´ 하고 부르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게 심각한 것을 죽기 전에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데는 어떠한 사람으로 가느냐? 성현들은 외면하고, 악한 사탄의 대열이 와서 거꾸로 끌고 가면 갈수록 비운에 부딪치는 사람이 아니라, 가면 갈수록 영광의 자리에, 아버지 앞에, 본향 땅에 돌아간다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금의 환향'이라는 말이 있지요? 고향을 떠날 때 비참하게 떠났으면 금의 환향하는 시간은 더욱 영광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생애가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그 시간이 절망의 시간이 아니라 자랑의 시간이요 영광의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원칙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이렇게 역사시대를 두고 볼 때에, 뜻, 하나님의 뜻, 그 하나님의 뜻만 가지고 뜻이 이루어져요? 하나님의 뜻이자 누구의 뜻? 내 뜻. 예수님의 뜻이자 하나님의 뜻이 되었더라면 예수님은 죽지 않았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뜻이, 예수님의 선 자리가 달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의 대표냐? 하나님을 대신한 사람이요, 인간을 대표한 사람입니다. 인간을 찾아왔는데,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찾아왔는데 그 국가, 종족, 가정, 개인을 다 잃어버리고 나니 예수는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자기가 본래 서야 할 자리에서 볼 때에는 하나님과 예수, 하나님과 아들의 입장이 엇갈렸다 이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자니 인간의 뜻에 위배되고, 인간의 뜻대로 하자니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니 중간 입장에서 몸부림치다 간 것이 예수의 생애가 아니냐.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의 뜻대로 하자니 세상의 방해가 많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자니 인간의 방해가 많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뜻대로 하면 방해는 무슨 방해예요? 때는 다르지만 그와 연결된, 시차적으로 맞먹는, 상대적 내용으로 맞먹는 때가 우리 통일교회가 바라는 때가 아니냐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뜻을 대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내가 자랑하고 싶은 나라, 내가 자랑하고 싶은 세계, 예수가 자랑하고 싶은 나라, 예수가 자랑하고 싶은 세계가 어디 있느냐? 우리는 그것을 목표로 삼고, 자랑할 수 있는 내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터전을 남기자는 것입니다. 생명을 버릴 것을 각오하고 또 타락한 이상의 심정을 갖추어 가지고 역대 선지자들의 이상의 심정을 가지고 이 길을 남겨 놓고 가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를 믿는 신앙자들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겁니다.

자, 그런 입장에서 여러분이 그런 자세에 도달해야 되겠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식구를 위해서, 형제들을 위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려 보았느냐, 진짜 사랑해 보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통일교회는 심정적인 역사를 추구해 나가니만큼 역사시대의 예수의 심정보다 낮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더 높아야 됩니다. 지금 이때는 예수님이 오실 수 있는 소망의 때인 만큼 환경적으로 고차적인 내용을 갖춘 확고한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를 믿는 신자들의 생활 태도가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러한 기준과 오늘날 우리 자신들을 비교 비판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현재가 문제되니 이제라도 늦지 않습니다. 내일을 위해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되겠습니다.

보라구요. 이스라엘 민족이 4천년 동안 메시아 오기를 고대했는데 와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했지요? 세례 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도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뜻을 대해서 충성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인류를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에서부터 전세계적으로 회개를 해 놓으라구요. 회개해서 손해보는 수가 있습니까? 안 그래요? 회개해 가지고 손해 볼 수가 있겠느냐 말입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여러분들도 원칙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회개해야 됩니다. 그래야 천국이 올 것입니다. 회개를 해 가지고 하나님을 움직여야 됩니다. 여기서부터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간 지방에서 많은 수고를 하고서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모이게 된 것을 감사히 생각합니다. 아주 더운 고개는 이제 넘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저녁에 여기 왔으니 앞으로 5일 동안 말씀을 들으면서 앞으로 새로운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해야 할 일들을 염두에 두고 재차 결의하는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어찌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잠시 얘기를 할까 합니다.

참된 역사를 이어받으려면

여러분에게는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지금까지 활동해 나온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또, 선생님 자신을 두고 봐도, 선생님에게도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이끌고 나온 역사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에게도 역시 그와 같은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크게 하늘을 중심삼고도 그런 역사가 있고 땅을 대표해서 사람에게도 그러한 역사적 인연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작은 것은 큰 것, 보다 큰 것을 중심삼고 흡수되어 보다 큰 가치를 드러내야 된다는 것이 우리의 원리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의 역사를 두고 보면, 여기에는 선생님의 역사가 가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통일교회가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여기에 여러분의 역사가 첨부되어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지상에 있어서는 선생님의 역사와 여러분의 역사가 첨부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게 된다면, 여기에 하나님의 전체의 역사가 개재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참의 역사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되느냐? 통일교회가 지상에 나타나 가지고 이룬 그 역사만 가지고는 참의 역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기 때문에 참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세워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을 대표한 우리들은 참의 중심인 하나님을 따라 어떻게 해서 하늘의 전통을 계승하느냐 하는 내연을 결정지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참의 역사를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참의 역사를 이어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통적인 역사를 이어받아야 된다는 말로 귀결됩니다.

하나님의 전통적 역사를 지상에 옮겨 놓으려면

복귀섭리라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 이것은 현재를 중심삼고 해결의 기점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 해결의 동기는 역사 전 시대와 인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시조가 타락했기 때문에 타락한 그 고비를 다시 넘기 위해서 복귀역사를 거듭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고빗길을 넘기 위한 터전은 하늘이 아니고, 바로 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만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사람을 위주해 가지고 그 역사(役事)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중심삼고 그 역사를 하는 데 있어서는, 이것이 타락한 아담 해와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부모의 기준을 완성해야 됩니다. 그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뜻, 타락되지 않은 가치적 기준을 어떻게 전세계에 횡적으로 적응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전통적 역사를 지상에 옮겨 놓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락한 부모 이상의 부모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또, 그 이후에 타락한 후손들이 나와 가지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악의 세계를 번창시켜 놓았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은 후손들이 나와 가지고 번창된 악의 세계를 제거시켜야 됩니다. 이런 가중된 사명이 오늘날 복귀섭리를 담당한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 개개인에게는 '어찌하십니까', '어찌하오리까' 하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각자 주장할 수 있는 인격을 다 갖고 있을 것입니다. 또, 각자의 소견을 다 갖고 있을 것입니다. 또, 자기 나름의 역사를 지내 왔고 자기 나름의 생활관을 가지고 생활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를 중심삼고 지내 온 그 역사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역사가 되었느냐, 또 현재 살고 있는 생활 환경이 이 지상섭리의 터전 위에서 복귀섭리의 전체의 뜻을 이루고 탕감시킬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있는냐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은 개인이로되, 부모의 뜻을 이어받은 개인인 것입니다. 여기서 그 부모는 역사적인 선한 기준을 소망하고 있는 부모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역사적인 소원을 성취한 부모의 후손의 자리에 선 우리 각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과연 그런 사람들이 있느냐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적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대표자로 오신 예수

여러분 자신들을 중심삼고 보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십년 역사를 지낸 사람도 있고, 혹은 그 이외에 몇 년의 역사를 지낸 사람도 있고 전부 다 그럴 것입니다. 그 역사적인 신앙생활에 있어서, 과연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전통적 기준에 일치될 수 있는 역사를 지내 왔던가 하는 문제를 두고 면밀히 검토하고 비판하면, 거기에는 엇갈린 역사적 과거를 지내 왔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현재 살아가고 있는, 생활하고 있는 나 자신을 두고 이렇게 승리해야 된다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전통적 기준을 중심삼고 냉정히 비판해 보게 되면 그 기준에 일치될 수 있는 생활관을 지니고 살아 나온 식구들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대해 가지고 바라는 입장과 오늘날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대해 가지고 바라는 입장이 엇갈리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렇게 가야 된다'는 전통을 갖고 있는 반면 오늘날 인간들은 이 세속적인 습관과 자기 나름의 소원과 자기 개체를 중심삼은 욕망을 중심삼고 가고자 합니다. 이렇게 엇갈리고 있는데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거기에는 비례되는 하나님의 고충이 개재되는 것이요, 탕감적인 내용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러한 내용의 한 면을 어디에다 축소시킬 수 있을 것이냐? 예수와 하나님 사이에다 축소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제쳐놓고, 우리 자신들은 하나님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없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예외로 하고, 하나님과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에, 즉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모든 역사적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대표자로서의 예수, 그 예수와 하나님 사이를 축소시켜 놓고 볼 때에, 하나님의 소원과 예수의 소원도 엇갈린 것을 우리는 엿보게 되는 것입니다.

양면의 뜻을 지닌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십자가 문제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워 가며 기도하던 예수의 기도의 표제가 무엇이냐 하면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입니다. 내 뜻과 아버지의 뜻, 여기서 뜻이 양면의 내용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예수 자신을 두고 보면, 그는 뜻을 위해 온 사람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통적인 모든 역사적인 인연을 이어받고, 그 인연을 따라 현시대에 횡적 관계의 세계를 형성하여야 할, 의당 뜻 이외의 자리에는 있을 수 없는 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내 뜻'이라는 말을 하게 되었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거기에는 반드시 상충의 한 내용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가 선 자리는 어떤 자리냐? 개인을 대표한 자리가 아닙니다. 이 땅 위에 보내진 예수만으로 선 자리냐 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는 민족을 대표한 자리요, 국가를 대표한 자리입니다. 유대교단의 전체 제사장들이 그 직분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다할 수 있는, 다 감당할 수 있는 자리에 예수는 서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하나님의 내정을 아는 예수는 일대 고충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 부딪쳤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길을 따라가야 되겠는데, 그 길이 이 인간세계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수습해 가지고 뜻을 이루어야 할 자신의 입장을 부정하고 나서면 모르지만, 그것을 부정한다면 소망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 부딪친 예수는 인간을 대표한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내 뜻'이라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처지와 형편을 너무나 잘 아는 예수는 인간의 사정을 알아주고 싶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고차적인 뜻의 방향과 180도의 차이가 있는 반대 방향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과 방향을 같이하고 싶은 예수는, 할 수만 있으면 그것을 조정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세상을 대표한 책임자로서 그런 마음을 안 가질 수 없었던 거예요.

자기의 일체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주장하고자 하신 예수

그렇지만 최후에 가서는, 조정도 절충도 통할 수 없는 완전한 뜻의 고빗길에서는, 용납도 절충도 타협도 성립될 수 없는 최후의 순간에 가서는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거기서는 내 뜻을 부정하고 아버지의 뜻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 예수의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망해 가는 이스라엘 민족을 뒤에 놓고, 지금까지 4천년의 하나님의 수고의 역사가 일조일석에 무너지게 하는 유대교를 뒤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워 가며 담판 기도하던 예수의 마음은 우선 인간편의 사정을 다 들어주고 싶고, 인간을 대표해 가지고 수습할 수 있는 방안을 다 가지고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하나 하나 내용을 들어 기도하던 그 시간은 자기 선조들이 잘못한 역사를 들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통고하는 시간이요, 또 현재의 이스라엘 민족이 담당한 책임을 못 하는 자리를 바라보며 그 잘못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그 내정을 살피고 심히 아픔을 느끼면서 하나님 앞에 통고하는 시간이 아니었겠느냐. 이렇게 된 모든 사정을 알기에 그는 그 뜻을 대해 주고 싶고 알아주고 싶었지만 최후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결정권을 바라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을 찾아왔던 예수는 메시아로서, 만국과 만민을 구해야 할 사명을 포기할 수 없는 입장에 서서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는 담판적인 진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자리가 얼마나 심각한 자리였겠습니까?

그 자리에 섰던 예수에게는 나는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나는 어찌해야 되느냐…. 이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4천년 동안 수고해 찾으신 유대교, 이스라엘 민족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미 저끄러진 자리에 서 가지고 중심적인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책임을 지고 왔지만 이제 책임할 수 없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나는 어찌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그 마음세계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참기 어려운 고충 가운데 신음하였던 예수인 것을 우리는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내정을 붙안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그 사연이 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방안을 모색하고 싶은 마음이 두터웠던 예수는 하나님 앞에‘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던 거예요. 그 자리가 얼마나 괴로운 자리요, 얼마나 심각한 자리였겠느냐? 그러나 그것을 그 당시의 제자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중간 위치에 있었던 메시아로서 '나는 어찌합니까?'라고 한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나 자신을 살피지 마옵소서. 나보다 당신은 어찌하십니까? ’라고 한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예수는 자기 사정을 논의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입장을 제쳐 두고 '당신의 사정을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내가 온 보람이요, 나를 보내신 당신의 사정이 아니겠느냐' 하는 입장에서 서슴지 않고 자기 일체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주장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심정적 내연이 하나님과 예수의 심정세계에 연결되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예수가 '나는 망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로 다시 새로운 이스라엘을 창건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하나님으로 하여금 재차 결의하도록 자극시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 다시 말하면, 죽는 예수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결의를 하도록 자극시킨 동기가 거기서부터 생겨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심각한 자리에서 자신의 문제 보다도 ‘하나님은 어찌하십니까?’하는 그러한 내정에 부딪쳐 가지고 자기 일체를 부정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고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그것이, 어느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이 지상에서 제2차로 승리적 터전이 된 기독교 역사의 새로운 출발의 기원을 이루어 놓을 수 있었던 동기가 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당시의 예수 자신의 마음에 어떠한 것이 스쳐 갔을 것이냐? 자기 가정에 대한 문제도 스쳐갔을 것이고, 자기 종족에 대한 문제도 스쳐갔을 것이고, 자기 민족에 대한 문제, 혹은 자기 국가에 대한 문제도 스쳐갔을 것이 아니냐. 내 종족은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도 담판 기도의 내용이 되었을 것이요, 내 민족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도 담판 기도의 내용이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종족이 망하더라도 민족이 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아는 예수에게는 자기 종족을 다 쓸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민족을 세우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담 해와 이상의 자리에 서야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다

민족을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남겨야 할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을 아는 예수에게 자기 민족이 망하더라도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남겨 놓아야 되겠다는 절규의 마음이 자기의 죽음보다 강했기 때문에, 죽은 예수는 부활의 역사를 입어 자기가 태어난 이스라엘 나라를 넘어서 가지고 세계가 발전할 수 있는 동기를 가려 놓았을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여기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은 어떠한 것이냐? 이것은 단적으로 통일교회의 문 아무개를 중심삼은, 그러한 역사적인 전통을 이어받은 새로운 무슨 주의 사상을 중심삼은 운동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어요. 그러니 하나님이 계시면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냐. 창조주이신 하나님, 창세 이후 창조물을 지어 나가는 창조과정에 있어서의 하나님,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소원성취의 일념을 가지고 어려운 문제들을 극복하시며 창조해 나오시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소망의 일념을 가지고 모든 수고의 노정, 창조의 노정도 수고로 생각지 않으시고 소망의 터전으로 생각해 싸워 나오던 전부가 아담 해와로 말미암아 결실되었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아담 해와는 이것을 완전히 파탄시켜 버렸던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중심삼고, 심정을 중심삼고 상처받은 아버지의 입장을 생각하고 '당신의 심정이 어떻습니까?' 하던 예수의 심정을 생각해 보세요. 그것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 것이냐? 이 둘로 말미암아 천지에 행복의 터전이 벌어지고 그야말로 창조주로서 바라는 이상의 실현이 가능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전체가 파탄되어 가는 것을 직시하던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 사랑하는 자식들을 키워 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알겠지만, 자식들의 장래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 자식은 틀림없이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 오늘보다 영광된 자리가 확보되어 있다. 보증되어 있다. 틀림없이 결정적이다' 해 가지고 나가는데 그 결정적인 코스를 향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것이 완전히 끊겨 버렸다면 어떠하겠느냐? 그러한 장면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지금까지 소원하였던 그 소원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창조이상으로 세웠던 그것이 하나님에게 희망의 요건이요 행복을 초래할 수 있는 자극적인 요인이 아니라, 반대로 탄식의 요인으로 화해 가지고 하나님의 가슴을 향해 쏴 버리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 그 하나님은 어떠하셨겠습니까? 이건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하는 그 현장을 직시하던 하나님은 어떠하셨겠습니까? 어떠하셨겠어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잠깐 이와 비슷한 얘기를 했지만도, 어떤 사람에게 슬픈 일이 있게 될 때에, 그의 슬픔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는, 슬픈 그 사람보다도 더 슬픈 일을 가지고 있든가 더 사랑하든가, 더 높은 자리의 인연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그 슬픈 사연을 완전히 제거시켜 버리고 기뻐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혹은 부부생활에 있어서의 감정 문제를 두고 볼 때도, 그 부부 싸움은 위로해 줄 자가 없습니다. 막을 자가 없다구요. 그 이상의 심정적 내용을 지니지 않고는 간섭할 수 없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부부의 사랑보다도 높은 사랑을 하는,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와서 자식들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논의하게 될 때에는, 그들은 간섭을 받게 되는 거라구요. 슬펐던 일을 넘어 기쁠 수 있는, 더 사랑적인 내용을 가지고, 더 가치적인 내용을 가지고 접근하여 기뻐하라고 하면 위로가 되지만, 그 이하의 것 가지고는 위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우리 인간의 감정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에, 타락 직후에 타락한 아담 해와를 직시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있느냐? 절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아담 해와보다 더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 아담 해와보다도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있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린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을 위로할 길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타락한 인간들 가운데 아담 해와 이상의 심정적 내연을 갖고 나타난 사람이 있느냐? 그런 사람이 나와 가지고야 역사적으로 상처를 받은, 타락 직후의 아담 해와를 직시하고 슬퍼하시던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지 그렇지 않고는 위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기도할 때에,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렇게 거리를 두고 아뢴 것은 무엇이냐? 타락한 아담의 역사, 그 역사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겠다는 결의를 예수가 최후로 표시한 것이 아니냐. 심정적 문제에 있어서 자기를 생각해 가지고 타락했기 때문에, 자기를 완전히 부정한 것이 아니냐. 자기의 환경적 요건 전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냐.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에, 아담보다 낫다는 거예요. 아담보다 낫다는 거예요. 아담보다 나을 수 있는 심정의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의 내연을 찾아 나섰던 예수의 모습이 아니냐. 그가 거기서 울면서 농조로 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걸고 눈물과 피땀을 흘리면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쫓겨날 때의 비통함 이상의 비통함을 느끼면서 담판 기도를 했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타락의 역사적 기원을 잊어버릴 수 있는 동기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이하의 가치적인 것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짊어진 역사적 사명

이것이 심정세계에 있어서의 전통적 역사라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고 들어간다면, 오늘날 통일교회에 속한 자신은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예수가 실패했던 역사를 그냥 인계받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고차적인, 빛나는 승리의 일로를 가자는 것입니다. 내 개체에 있어서도 그렇고, 가정에 있어서도 그렇고, 혹은 민족, 국가, 세계를 넘어서 그와 같은 내용을 책임지고 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가 짊어진 역사적 사명이 아니냐. 여기에 '그렇다'고 공인하고 나서게 될 때는 문제가 크다는 거예요.

이러한 입장에서 여러분은 나라가 망해 들어가는 것을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족이 망해 들어가는 것을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족속이 망해 들어가는 것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망해 들어가고 여러분의 아들딸이 망해 들어가는 것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냥 그대로 있어도 한때가 지나가면 자동적으로 순환적인 법도를 따라 가지고 회생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걱정도 안 하겠습니다. 그러나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멀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직시하는 자리에서 예수와 같은 입장에서 젊은 기백을 가진 사내로서의 책임을 졌다 하게 될 때에, 여러분은 겟세마네 동산을 어떻게 보겠느냐? 그것이 비단 2천년 전에 왔다 갔던 예수만 처했던 겟세마네 동산이냐? 아니라구요. 2천년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예수 이상의 입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자체를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이 밤을 새우려 할 때에 여러분의 주위에서 같이 눈물 흘리고 같이 밤을 새워 줄 수 있는 동지가 있었더냐? 내 동료가 될 수 있는 그 누구를 가질 수 있었더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그야말로 비참한 역사시대의 사명을 가진 예수보다 나은 자리에서 보람있는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여기에서 예수보다 못한 입장에 선다면, 심정적 주체로서 상처를 입은 하나님은 어찌하시겠느냐?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담판을 하고 결정을 지어 사랑하는 아들을 죽을 자리에, 십자가에 내몰아야 했던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가 예수보다 못한 입장에 서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이냐?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를 위주해 가지고는 다 망친다

예수가 갈릴리 가나의 잔치집에서 마리아로부터 술이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라고 한 것은 평면적인 면이나, 혹은 이스라엘의 전통적 역사를 이어받은 모자의 관계에서 보면 섭섭한 말이지만, 천륜사(天倫史)가 전복되는 순간을 중심삼고 볼 때에는 당당한 말입니다. 그 어머니가 천륜을 배반하고, 천륜을 파탄시키는 입장에 있으면 여인이 아니라 쌍것 중의 쌍것이라구요. 그런 어머니를 그냥 인정하면, 자기 여편네도 그러고, 자기 자식도 그럴 것이 아니냐.

이런 의미에서 보면 예수는 장가 안 가기를 잘했습니다. 도리어 잘했습니다. 만일에 여편네를 얻었는데, 그 여편네가 뜻을 대해 가지고 반대하는 여편네가 됐으면 어떻게 하겠나? 자기의 피와 살을 이어받고 태어난 예수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을 아는 마리아 자신이, 그와 일치되는 내정을 갖추어 가지고 봉헌하지 못한 사실을 바라볼 때에, 동성도 아닌 어떠한 여자를 만나 아내로 맞이했을 때, 그 아내가 뜻을 반대할 때에는 어떻게 하겠어요? 그 아내의 친척들은 예수의 편을 들 것이냐, 아내의 편을 들 것이냐? 어떨 것 같아요? 예수를 편들겠어요, 아내를 편들겠어요? 아내를 편들 거라구요. 그러면 그 종족은 어떻게 될 것이냐? 그 종족 또한 아내를 편들 거라구요. 또, 자식을 낳았다면 그 자식이 예수에게 편드는 것은 가당한 일이지만, 반대할 때에는 어떡할 테냐?

하나님이 이러한 등등의 문제를, 하늘의 섭리를 추진시키는 주체자로서 염려 안 했을 것 같아요? 사람은 번번이 자기를 중심삼고 타락하고,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를 엮어 가고 자기를 중심삼은 생활을 하고 있지요. 이런 현실을 잘 아시는 하나님이 바라보시게 될 때에, 예수와 만난 그 상대자도 자기를 위하는 입장에서 예수를 남편으로 모시려고 한다면 다 망친다는 거예요. 자식도 자기를 위주로 한 가치적 내용을 가지고 부자의 관계를 원한다면 다 망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사랑 문제가 쉽겠느냐?

주체자의 뜻을 중심삼고 사정이 통해야

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엄청난 문제를 중심삼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축복의 기준은 하늘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희생자들을 대가로 치러 가지고 찾아 나온 축복의 기준이 아니냐? 여러분이 알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입장의 축복이냐? 남자로서 대하고, 여자로서 대하는 그러한 통일교회 가정의 풍습화된 기준으로 세워지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냐? 이것을 다시 생각해야 된다는 거예요.

만일에 여편네를 가졌으면, '어찌합니까? 뜻 앞에 어찌합니까? 어찌해야 됩니까?' 하는 문제가 걸린다구요. 당신의 본연의 심정을 대신해서 볼 때에, '우리 가정은 어찌합니까? 내 아들딸은 어찌합니까?' 이게 문제가 된다구요. 밥을 못 먹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옷을 못 입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오직 남겨야 할 뜻, 그것이 문제라구요.

영육으로 타락한 아담을 복귀하기 위해 4천년 역사를 거쳐 가지고 예수를 보내서 이것을 탕감하려고 했는데 영육복귀완성의 이념을 저버려 가지고 육적 복귀의 이념은 땅에 묻어 놓고 영적 복귀의 이념만 찾아가신 하나님의 기막힌 사정을 생각할 때 그것은 지난날의 우리가 관념적으로 아는 말의 내용이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다' 하는 입장에 선 아버지를 생각할 때, 그런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얼마나 기가 막힐 것이냐.

이런 관점에서 ‘당신은 어찌하시겠습니까?’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나 같은 사람, 나의 가정과 같은 가정, 나의 부부와 같은 부부를 중심삼고 당신은 어찌하시겠습니까?’ 할 때에 할 방안은 심판밖에 없다는 거예요. 할 방안은 처단밖에 없다는 거예요. 할 방안은 최후의 통첩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이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예요?’ 하며 그것을 시인하고 들어가야 됩니다. 그것을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려는 예수는 민족이 망해야 될 것을 시인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붙들고 늘어진 거예요. 망할 수 있는 그것을 시인하고, 유대교를 붙들고 기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서 예수와 같은 담판기도는 못 했지만, 자기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해봤느냐? 내 자식, 내 아내를 중심삼고 해봤느냐? 우리 가정을 볼 때 어찌 하시겠습니까 하는 문제를 두고, 그냥 그대로 하늘의 대를 이어 가지고 역사적인 그 국가, 국민의 전통을 남길 수 있는 가정이 못 되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이것을 어찌합니까?’ 하며 내 손으로 치워 버리고, 하늘로부터 저주의 불길을 내려 가지고 살라 버리고 싶은 마음을, 격한 슬픔을 느끼는 것이 여러분에게 있어서 한두번이 아니라 연속되어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면 가정,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아버지여, 금후에 당신은 어찌하십니까? 나는 어찌합니까?' 하는 것은 사정이 다르다구요. 그것은 다르다구요. 하나님이 보는 사정하고, 여러분이 보는 사정은 다릅니다. ‘내 사정이 이러니 이것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는 것은 천 사람, 만 사람이 다 다르다구요. 통일은 있을 수 없는 사정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통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절대 애당초부터 부정입니다. 그럴 수 없다구요. 그렇지만 주체자로서의 뜻을 중심삼고 ‘당신은 어찌하십니까?’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는 사정이 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거기에 있어서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한 그 자리는 가혹한 자리입니다. 자식을 대하여 살려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있지만, 얼굴을 돌이켜야 할 장면이 아니었더냐. 자기가 사랑하는 처자면 처자, 부모면 부모를 대해 종적인 모든 내연을 가지고 순리적으로 상응할 수 있는 자리가 못 되지 않았느냐. 상충적으로 부딪쳐야 할 입장이 아니었더냐.

새로운 전통의 역사는 오로지 심정세계에서만 벌어질 수 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런 뜻을 어디에 세우려고 하느냐? '하나님은 어찌 하십니까?' 하는 자리에 세우려고 하느냐, '내가 어찌하느냐?' 하는 자리에 세우려고 하느냐? 마찬가지라고요. 예수가 서 있던 자리나 오늘날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는 자신도 설 수 있고 하나님도 설 수 있는 그 자리를 남기려니 할 수 없이 희생을 각오하지 않고는 갈 수 없었습니다. 나는 아담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데, 아담이 실수한 것을 누구보다도 더 불쌍하게 여기는데, 그분은 나를 버리지 않았던 것보다 더 딱한 입장에 서지 않았느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나 때문이 아니고 민족 때문입니다. 민족이 저버린 것이요, 인류가 저버린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인류의 대표로 나를 쳐 주시오. 인류 대신 나를 쳐 주시오'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여기에서부터 심정의 재유발의 역사가 벌어져 나간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아담 해와가 타락했는데, 타락한 아담에게 동생이 있다고 합시다. 그 동생이 타락한 아담 해와를 하나님께서 쫓아내는 것을 바라 보게 될 때에, '부모여! 그 형님 누나를 내쫓지 마십시오, 내가 그 길을 가겠으니 나를 쳐 주시오'라고 부모를 붙들고 그런다면, 여기서부터 새로운 길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역사냐? 아벨의 역사입니다. '죄를 지은 형제보다도 더 비참한 부모의 마음, 그 마음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억울하더라도 그것을 내가 극복하고 내가 책임지겠으니 나에게 짐을 전부 지워 주시오. 형제들의 십자가뿐만 아니라 부모의 십자가까지 나에게 몽땅 지워 주시오' 하는 아들이 있다면, 그 아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감동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구요. 세상에 어떤 부모에게 불효 자식이 있는데, 그의 동생이 불효 자식을 대신해서 마음 아파하는 그 어버이 앞에 나서 가지고 그 부모가 고통당하는 이상의 고통을 느끼면서 그 형을 불쌍히 여겨 가지고, 그 이상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나는 그 어려움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받겠다고 하는 일이 벌어지면, 새로운 전통의 역사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심정세계에 한해서만 될 수 있습니다. 사리와 이치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아벨의 역사

이러한 전통적 역사를, 이러한 심정적 경로의 역사를 이루고, 타락의 경로의 역사를 뒤집어 박으려니 아담 가지고는 안 되고, 해와 가지고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동생이면 동생, 그 누가 나와 가지고 그 이상 비참한 자리에 나서겠다, 아버지 이상 비참하고, 아들 이상 비참한 자리에 나서겠다고 하는 자가 있으면, 하나님이 그를 칠 수 없으니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게 아벨의 역사가 아니냐. 하나님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런 역사를 남겨 오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야말로 과연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역사를 통하여서만이 수습된다는 원칙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 아니냐. 그것이 아벨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아벨은 누구냐? 또 다른 가인이나 또 다른 아담으로서 나선 아들, 하나님의 슬픔을 책임질 수 있는 아들의 자리에 선 자가 아벨이 아니냐. 그 아담의 자리를 역사적으로 세계를 대표해 결실한 자가 예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둘의 책임을 진 것입니다. '나라와 세계를 대신해서 나를 쳐 주소서' 이게 예수의 사정이라구요.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아버지의 모든 쓰라림을 대신 지고 내가 여기서 대를 잇겠습니다' 한 자리가 예수의 자리가 아니었더냐? 여기서부터 역사는 새로운 방향으로…. 다른 차원에서의 방향과 요인이 여기에서 개척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거쳐온 아벨적인 순수한 유래를 갖춘 전통적인 역사로 보게 될 때에, 과연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 엄숙한 6천년 역사 앞에…, 6천년이라구요, 6천년. 그런데 사실 6천년만 되나요? 그 역사 앞에 그러한 순수한 입장에서 메시아 이상의 내정의 심정을 가지고, 메시아는 세 제자를 뒤에 놓고 그런 놀음을 했지만, 나라와 가정을 뒤에 놓고 그런 놀음을 할 수 있으면 그게 불행한 것이냐? 불행한 것 같지만 불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거기에 동참했던 베드로, 요한, 야고보처럼 불행한 자가 될 것이냐? 그 자리에 선 것이 불행한 것 같고 비참한 것 같지만 비참한 것이 아니요,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행복의 요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 역사는 그들로 말미암아 찬란한 승리의 역사, 다른 방향의 기독교 역사가 전개되었을 것이 아니냐. 마찬가지라구요. 마찬가지라구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러한 입장에서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서, 베드로, 요한, 야고보 대신 부모를 그렇게 놓고 처자를 그렇게 놓고 그 처자, 부모와 하나된 자리에서 나라를 붙들고 호소하고, 혹은 민족을 붙들고 미래의 자기 뜻에 대한 운명의 길을 붙들고 책임한다 할진대는 하나님은 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얼마나 기대하실 것이냐? '너로 말미암아 새로운 소원이 성취될 것이다'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아벨의 역사를 사랑하고도 빛낼 수 있는, 다시 말하면 꽃을 피워 가지고 그 미를 사방에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거기 꽃 가운데 품겨 있는 향기를 사방으로 발산할 수 있는 좋은 찬스가 아니냐. 장미는 건드려야 향기, 향취가 나는 것이 아니냐. 마찬가지 이치라구요.

통일방안이 나올 수 있는 길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 지금 대한민국은 남북이 엇갈려 있습니다. 방향이 다른 입장에서 하나는 남으로, 하나는 북으로 가려고 하는 두 갈래 길이 있으니, 그 목적이 다르다구요. 어떻게 통일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심각하다는 거예요. 그 주체적인 사명을 누가 해야 될 것이냐? 그것을 남한이 하게 된다 할 때 북한이 반대할 것이고, 북한이 하게 된다 할 때 남한이 반대할 것입니다. 자기 자체를 고집하는 자리에서는 반드시 또 결렬될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제는 남한 사람 누구 보다도 북한을 더 사랑하는 한국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북한 사람이 북한을 사랑하는 이상 북한을 사랑하는 한국사람이 나오면 됩니다. 그것밖에는 모색 방안, 해결방안이 없습니다. 남한의 그 누구보다도 더 애국하는 사람, 북한의 그 누구보다도 더 애국하는 사람, 그렇게 한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할 때에 거기서 통일방안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 길이 있겠어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외에 길이 없지 않느냐 이거예요.

그러면 이 민족은 어찌합니까? 삼팔선을 중심으로 좌우로 경계하고 있는 이 나라에 있어서 그 선상에 선 자들이 우리 통일교회 신자들이라 하게 될 때에, 우리는 어찌합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문제의 해결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그것은 북한 사람보다도 더 고생하고, 남한 사람보다도 더 고생하는 거예요. 이런 고생 가운데 세워진 초민족적인 애국심을 어떻게 들고 나오느냐? 이것이 한국을 살리는 첩경이요, 해결 방안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악한 세계와 선한 세계를 통일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라구요. 악한 세계의 충신 이상의 충신이 나와야 돼요. 지금까지 선을 지향해 나오면서 우리 조상들이 세워 놓은 충신의 도리 이상의 충절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결렬된 역사를 수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예수는 위대했습니다. 둘이 싸우는 패 가지고는 안 된다 이겁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는 길은 하나님을 위해 죽고 민족을 위해 죽는 것밖에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도리가 아니냐. 인류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역사이래 누구보다도 사랑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역사 이래 누구보다도 사랑했기 때문에, 망할 역사가 거기서부터 새로운 방향을 취해 가지고 목적의 세계로 진출했던 것이 기독교 문화권이 아니냐.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라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믿고 있고 여러분이 움직이고 있는 통일교회, 그 통일교회가 진정한 의미의 통일교회냐? 어때요? 여러분을 지도하고 있는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진정한 의미에서 여러분의 지도자냐? 그가 머물러 있는 그곳을 기점으로 삼아 가지고 민족을 대신해서 '이것이 새로운 발판이다' 할 수 있는 출발의 기점이 어디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거기서 승리를 찬양하고, 태평왕국을 노래부를 수 있는 무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두 세계 이상의 비참한 자리에 서 가지고, 전부가 다 쓰러지고, 부정해 나가자빠질 수 있고, 전부 다 역적이 될 수 있는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시종여일하게 충절의 미를 역사노정 위에 간직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1960년대의 통일교회, 그것은 지나간 통일교회입니다. 그때에 통일교회는 민족을 위해서 '어찌하십니까?' 할 수 있는 입장에는 못 섰다는 거예요. 그때는‘내 개인을 어찌하십니까?’ 하는 것이 문제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차원이 다르다구요. 1970년대에 들어와 가지고는 '아버지여, 이 민족을 어찌하십니까? 하는 차원의 시대에 들어오지 않았느냐? 오로지 여기에서 우리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전통,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것 외에는 더 이상 없기 때문에 죽음으로 부딪친 것입니다. 그것만이 해결 방안입니다.

자기 뜻을 버리고자 하는 예수 앞에 동조자 베드로가 그러지 말라고 하자 예수는 '사탄아 물러가라'고 했습니다. 수제자로 택해 3년 동안 함께 나오던 그 제자에게 면박하기를 '사탄아 물러가라'고 했는데 그 말을 잘했어요, 못 했어요? 그 말은 재차 구원하기 위한 말입니다. 그 말이 고마운 말입니다. 거기에서 베드로가 일단 '나는 내 뜻을 바라는 놈이로구나' 하고 골수가 녹아지도록 회개할 수 있는 자신이 되었더라면, 그 회개가 3년 이상 계속되었다면 예수를 저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회개가 3년 이상 계속되었으면 예수를 저버리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 안 그래요?

효자와 충신은 부모와 군왕의 염려를 자진해서 맞는 사람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는, 당신의 뜻을 대해서 어찌하십니까 해야 합니다. 문제가 크다구요. 남한이 갈 수 있는 길, 북한이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여기서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여기서 뒤죽박죽하다간 다 망한다는 거예요. 종자도 안 남고 다 망해 버린다구요. 여러분이 그 풍조에 왔다갔다하다가는 뼈다귀도 못 건진다구요. 지금 때가 그런 때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당신의 뜻을 이루려니 죽음밖에 없습니다. 백성을 대표하려니 죽음밖에 없습니다' 하며 그 결의를 넘고 나는 데서만이 새로운 소망이 출발할 수 있는 거예요. 십자가를 앞에 놓았던 예수 앞에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안 그래요? 희망이 있었을 것 같아요? 내 뜻을 들고 나왔다간 썩은 호박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가 양자를 둘 다 걸고 이루어 드리려니, '하나님의 그 슬픔 대신 나를 역사적인 슬픈 자로 죽여 주소'라고 했기 때문에, 2천년 동안 성신과 더불어 비참한 놀음을 하고 나오는 거라고요. 안 그래요? 대신 나를 쳐 주소….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희생되었지만…. 그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희생했어요? 죽을 때 '오, 주여!'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죽음길을 간 그들이 전부 다 이렇게 죽어야 천당가겠다고 했던 패지, 예수님이나 하나님의 사정을 알아줬어요? 천당가겠다고 했던 패는 많았지만 하늘나라를 이루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죽겠다고 한 사람들은 없더라 이거예요. 자기 실속을 위한 무리는 많았지만, 뜻을 성사시켜 드리고 하나님과 인류의 해방을 위해서 노력한 사람은 없었다는 거예요. 아무도 없더라 이거예요.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이제 통일교회에 있어서 '어찌하십니까?' 이게 문제가 된다고요. 하나님이 '어찌하십니까' 하는 문제하고 선생님이 '어찌하십니까?' 하는 문제하고 여러분이 '어찌하십니까' 하는 문제는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패는 망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건 불가피한 결론이 아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서 수많은 민족의 말발굽에 밟혀 쓰러졌고 총칼에 쓰러진 것이 아니냐. 그러면 지금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그 자리를 어찌할 것이냐? 마찬가지입니다. 피하려고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책임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뭐 선생님이 우리의 책임을 지시면 되지' 하는 입장에 선다면, 여러분은 잠자던 베드로와 같은 무리밖에 되지 않을 것이 아니냐. 그렇게 되면 선생님은 '차라리 몰랐으면 좋을 뻔했다'고 책망하던 예수의 심사와 똑같은 입장이 될 것 아니냐. 뭐가 다르냐 이거예요.

윤리적, 도리적 혹은 인륜적으로 따져 보게 된다면 자식이 부모를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시고 가려고 하는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어떻게 자식의 도리를 하느냐' 이것이 문제라고요. 효자는 부모의 염려를 자진해서 맡는 사람입니다. 충신은 그 나라의 군왕의 염려를 자진해서 맡는 사람입니다. 누구의 통고도 받지 않고 자진해 맡게 될 때에 그는 군왕의 혈족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안 그래요? 명령을 받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구요.

운명은 하늘에 맡기고 최선을 다하라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여러분들, 전국에서 통일교회 전체의 핵심요원 이라고 볼 수 있는 여러분들은 ‘나를 가지고, 나 같은 사람을 가지고 이 엄청난 역사시대에 있어서 뜻을 세우려고 하시는 아버지는 어찌하십니까?’ 하며 심정의 빚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로하기 위해 자기의 면목과 체면을 망각한 자리에서 몸부림이라도 쳐 봤느냐 하는 문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뭘하고 있는지,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여러분은 여러분대로 하는 그러한 전통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나는 하나님 앞에 그래야 되고, 여러분은 선생님 앞에 그래야 되는 거라구요.

자, 여러분, 우리가 이 수련소를 중심삼고 새롭게 시작하는 이 시간, 벽두에 있어서 이런 말은 비장한 내용의 말입니다. 때가 그런 때입니다. 보라구요. 세계는 우리 앞에 거의 다가왔습니다. 세계는 1974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큰 노도(怒濤)를 겪어야 된다 이겁니다. 배를 타고 이것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오고, 태풍이 불어오는 것입니다. 정면으로 악과 선이 부딪쳐야 됩니다. 그런 때가 왔습니다. 바로 그런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차고 넘어가느냐? 여기에서 방향이 조금만 틀려 나가면 헛일하는 것이 됩니다. 기계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조절기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 거기에 끈을 달아 가지고 잡아당겨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조정해 가지고 가야 됩니다. 바람이 세면 셀수록, 자기의 수완과 능력 가지고 조정해야 됩니다. 그래도 안 될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죽음을 각오하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가다가 파선되어 죽으면 하나님이 영적으로라도 수습해 주시는 것이 아니냐. 이것밖에 길이 없다구요. 밀려오는 그 노도를 앞에 놓고 배를 저어 가야 할 사공이 있다면, 그 사공의 운명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사랑의 바람이 불어 주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사공으로서의 자기 최대의 능력을 다 발휘해 가지고 '나는 이 이상 더 할 수 없다. 죽더라도 이 이상 더 할 수 없다. 미련 없이 해봤다' 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지게 될 때에는 영혼이라도 그곳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나마 붙들지 못하게 된다면 다 깨져 나갑니다. 그러한 숨막히는 때가 왔습니다.

먼저 '내 아들딸을 중심삼고 어찌하십니까?'가 문제가 아니라고요. '내가 이러니 어찌하십니까?'가 문제가 아니라고요. '나를 계수(計數)에 넣지 마시옵소서. 아버지 뜻을 중심삼고 어찌하십니까?' 해야 된다구요. 그래야 전통이 남아지는 거라구요. 그러한 순교의 자본 없이 죽어서 천국에 가겠다고 하는 마음이 있어 가지고는 천국에 못 가는 거라구요.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이렇게 죽어야 천국에 가지' 하며 참고 천국에 가겠다고 죽은 사람들은…. 시작은 자기로부터라구요.

'내가 이렇게 돼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의 전통을 이어받을 것이 아니냐' 하면서 예수는 하나님 앞에 그렇게 갔기 때문에, 이러한 스승의 전통의 사상을 다 이어받아 가지고 땅 위에 그 기틀을 남기고 가야 하는 것이 제자들의 사명이 아니겠느냐? 이러한 마음을 갖고 죽어야 됩니다. 자기와 더불어 천국을 바라지 말고 통일교회와 더불어 천국을 꿈꿔라 이거예요. 나라와 더불어 천국을 꿈꾸는 사람만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본질적인 관이 아니겠느냐.

그 관을 중심삼고 볼 때에, 오늘날 기독교는 방향이 틀렸고, 관이 틀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망하는 거라구요. 망하는 종교권 역사에 있어서 망하지 않을 종교권이 어떻게 현현할 수 있겠느냐? 반대해야 당연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하시는 곳

이러한 관점에서 통일신도들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은 어찌하십니까? 어쩌다가 이러한 역사적인 문제가 생겼습니까? 아벨과 가인을 찾아 나선 아버님은 어찌하셨습니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고요. 그 얼마나 비참하냐 이거예요. 120년 동안 노아를 찾아 나오시던 아버지는 어찌하셨습니까? 120년 동안 웃고 계셨느냐, 울고 계셨느냐, 마음을 졸이고 계셨느냐? 생각해 보라고요. 노아는 120년 동안 자고 먹고 할 대로 다했지만 하나님은 그러실 수 없었던 것이 아니냐. 아브라함이 유랑하는 집시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수십년 생애를 다 희생시키는 행로에 있어서, 동족에 의한 위험도 위험이지만 이방에 의한 위험, 모든 사방으로부터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니는 길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촌시라도 마음을 놓으셨겠느냐? 마음을 놓으셨겠어요? 야곱의 21년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촌시라도 마음을 놓으셨겠느냐? 21년 동안 밤이나 낮이나 야곱을 들여다보시는 그런 생활을 하지 않으셨겠느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러한 전통적인 역사를 평면적으로 연결시켜 가지고 세계복귀라는 것을 생각하시는 하나님이 오늘날 이 땅을 촌시라도 눈여겨 안 보시는 시간이 있겠느냐? 눈여겨 보시면 어디서부터 눈여겨 보시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 여기가 어디냐? 그곳이 통일교회라고 여러분은 알고 있다고요. 여기서부터 그렇게 될 것이다 하는 곳, 여기서부터 주시하고 싶다 하는 곳, 그곳이 통일교회라구요.

여러분들이 마음에 통일교회를 몇십 년을 믿었는데 '아, 본부에서 몰라 주다니' 이렇게 섭섭히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낙제감입니다. 낙제감이예요. 여지없이 낙제감이라구요. '나를 거름 삼아서 다리를 놓아 가지고 건너 가라' 예수님은 그런 사상을 가졌어요. 그러니 죽어요? 죽겠어요? 하나님에 대해서 항소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 엊그제까지 나에게 이렇게 대하시더니 무슨 하나님이 그래요? 뭐 이제는 죽으라고요?'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예수도 하나님이 이랬다저랬다 하시는 것을 알았겠어요, 몰랐겠어요? 십자가에 죽을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구요. 30평생….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가지고, 그들과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결의를 한 이후에 각오한 것이지 그전까지는 '너는 하늘나라의 왕자요, 천지가 다 네 이름 아래에 있고, 네 수하에 천치가 다 놀아나는 것이 아니냐. 역사는 너로부터 시작하는 것이요, 네 영광을 위하여 역사는 찬란한 문화세계를 거쳐오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그렇게 안 가르쳐 줬겠어요? 그런데 벼락같은 호령이 뭐예요, 이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것을 믿을 수 있어요? 얼마나 착잡한 사연이었겠느냐.

부모나 처자를 생각하면서는 갈 수 없는 길

선생님 자신도 그렇다구요. 하늘나라가 뭐 어떻고 어떻고, 세계가 뭐 어떻고 어떻고 하던 그런 약속은 일시에 없어지고 똥구덩이에다 거꾸로 꽂는 거라구요. '이 녀석아, 뭐 아비를 사랑하겠어, 처자를 사랑하겠어? 이 자식아' 이러시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의 입장을 내가 잘 알고 있는 거예요. 아들딸에 대한 모든 비참한 것을 다 알고 있다구요. 남과 같이 다 먹이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정에 서게 될 때에 어떻게 할 것이냐. 어찌하십니까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내가 '어미 아비의 입장에서는 자식을 생각해야지' 그랬으면 통일교회는 나오지 않았다구요.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그런 어미 아비 같은 생각을 했다면 통일교회는 안 나오는 거예요. 내 자식을 생각했다면 통일교회는 안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이 알잖아요? 성진이에 대해…. 외박 살림살이를 철들 때까지 한 것이 아니냐, 그래 가지고 18세를 넘어설 때 내가 불러 가지고 '너, 성진이 이놈아! 아버지가 몰인정하지만 할 수 없다. 네가 부모의 뜻 앞에 어긋나는 일이 있거든 난 책임을 안 진다'고 말한 거예요. 자식을 불러놓고 선서식을 하는 그 아비, 세상에 그런 아비가 어디 있느냐? 아담 해와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천륜의 역사를 비통한 역사로 이끌어 온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식이 잘못하여 하늘의 역사를 침범하게 할 수 없지 않느냐 이거예요. 당연하다구요. 그거 이해 못 하는 거라구요. 여편네를 불러 놓고 '나는 네 남편이 아니다'라고 조건을 걸고 헤어져야 할 그런 입장이었다구요. 그게 어떠한 것 같아요? 남자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할 입장에서, 남자의 상판을 가지고 할 수 없는 남자의 노릇을 해야 했던 것이예요. 아비로서의 상판을 가지고, 철면피한 원수의 아비가 되어야 했던 거예요.

그런 놀음을 자긍(自矜)한 역사가 없었지만 통일교회는…. 자식을 사랑하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에 있으며 아내를 사랑하고 싶지 않은 남편, 혹은 부모를 위하고 싶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 가지고 안 되니까…. 그것 가지고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그랬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하시겠느냐? 그럴 수 없으니 '아버님은 어찌하십니까?' 하는 것 아니냐 이거예요. '당신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어쩌다가 그런 분이 되셨습니까?' 하는 거예요. 그분이 잘못하셨으면 회개를 해야지요.

뜻에 대한 자기 반성과 새로운 관의 정립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뜻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뜻을 얼마나 책임졌느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다시 한 번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성경 말씀을 이루어야 될 거 아니냐. '네 어미나 아비를, 네 처자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 제자로되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고 했으며 그 다음에 첨부해서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나에게 합당치 않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지금까지의 역사라는 것은 죄 있으면 전부 다 예수에게 맡기려고 했고, 하나님께 신세지려고 했다고요. 지금까지 그래 왔다고요. 예수가 그렇게 말한 의미는 네 십자가를 네가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나에게 합당치 않으니 네 죄는 네가 청산하라는 거예요. 그말이라고요. 도리어 '하나님의 짐을 도맡을 수 있는 너희가 되라. 네 죄는 네가 청산하고, 네 족속의 죄는 네가 청산해라' 그거라구요. 그러지 않고는 나에게 합당치 못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들에게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고 말했지요? 그게 말뿐이예요? 통일교회 문선생 한 사람의 입에서, 가치 없는 입장에서 말했을는지는 모르지만, 영계에 가 보라구요. 말 그대로 종족적 메시아가 되는 거라구요.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이런 관점에서 새로운 관을 정립해야 되겠습니다. 정상, 꼭대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꼭대기를 향해서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넘어가서는 안 보여야 되는 것입니다. 다 올라가서 아무리 거기서 쉬고 놀고, 뭐 잔치를 하며 살더라도 넘어가지 않을 때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넘어가야 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무슨 부장이 되고 뭐 뭐 어쩌고…. 다 허사입니다. 내려가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직까지 행랑보따리를 못 면했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피난민이라구요, 피난민.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고객 하던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동렬(同列)에 참석한 그런 피난민이 아니냐. 유랑의 민족이 아니냐. 나라 없는 백성이 아니냐. 기가 막힌다는 거라구요. 그 땅이 그리워? 거기에서의 하던 사랑이 그리워? 거기에서 춤추고 지내던 것이 그리워? 그것을 촉구하는 것이 사랑의 정서를 중심삼은 자기 집안 식구이기 때문에, 성경은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했다구요. 네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그것은 오늘날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라고요.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았다고 하는 축복가정들, 안 그럴 것 같아요? 여러분의 식구가 원수라구요. 둘 다 좋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안 돼 있다구요. 둘 다 좋을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지 않느냐. 남북이 아직까지 통일되지 못했기 때문에 둘 다 좋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둘 다 나쁠 수 있는 입장이니 그것을 누가 책임지느냐? 둘 다 나쁠 수 있는 입장이지요? 그것을 누가 책임지느냐?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이 책임져야 할 텐데, 하나님이 책임져 가지고 해결되느냐? 해결돼요? 해결될 것 같으면 6천년이 안 걸린다구요. 순식간에 ….

누가 책임지느냐? 그것을 책임지는 민족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 민족이 자의(自意)에 의한 민족이 아니라 천의(天意)에 의한 민족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독특한 민족사상이 아니었더냐. 그렇기 때문에 헤브라이즘이라는 것이 역사적인 하나의 주류로서 지금까지 남아져 내려오는 것이 아니냐. 헬레니즘은 또 그런 반대적인 주류로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라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여러분이 이 문제를 놓고 '어찌하십니까?' 그럴 때가 많을 거라구요. 자식을 바라볼 때에 기가 막힌 장면도 많을 거라구요. 그것도 하나님이 다 잘 알고 있다구요. 선생님도 잘 알고 있다구요. 희진 애기를 이리저리로 전전하게 하면서 남의 집에서 살게 한 그 부모의 마음은 기가 막히다고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동정한다고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랑으로 그 자식이 꿈꾸는 세계 이상의 세계를 찾아 주시려고 한다고요.

자, 이래 가지고 ‘하나님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선생님은 어찌하시겠습니까? 나는 어찌하겠습니까?’ 이런 물음에 하나님이 이렇다고 하실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될 때에는 선생님은 따라가야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여러분은? 비판해야 돼요? 「따라가야 됩니다」 따라가야 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앞장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전국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일대 혁신을 해야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 자신이 냉정히 비판해 가지고 그것을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니냐. 이런 시점에 놓인 것을 알아야 돼요.

남북을 통일할 수 있는 방안

이북 사람이 찾아오면 어떻게 할 거예요? 여러분이 이제 이북에 전도하러 가야지요? 남한에 공산당이 내려와서 공산당을 선전하게 되면 우리는 이북에 가 가지고 통일교회를 선전해야지요? 「예」 그 싸움에 후퇴해 가지고 뜻이 이루어질 것 같아요? 남한에서 고생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예요. 아무것도 아니라구요. 남한에는 통일교회 교인이 굶어 죽는다 하게 되면 보리떡이나 개죽이라도 모아서 먹여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구요. 저쪽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거예요. '저놈의 자식들, 굶어 죽어라' 하며 굶어 죽기를 팔을 내밀고 바랄 것이 아니냐. 그런 가운데 굶어 죽는 시늉을 할 수 있어요? 꿈에도 그 시늉을 할 수 있어요? 내가 못 견디겠다고 표시라도 할 수 있어요? 이를 갈아붙이고 그런 티도 없이 가야 될 것 아니예요? 안 그래요? 그걸 볼 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는 외부 사람과 마찬가지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인은 비록 돈이 한푼 없더라도 시시하게 굴지 말라 이거예요. 내가 언제나 요렇게 살다 죽을 것이 아니예요. 십년만 참고 보라는 거예요.

내게 잊혀지지 않는 사실이 있다구요. 여러분이 서대문 형무소 사건을 알지만, 거기에서 옛날에 알았던 신앙의 동기를 만났는데 척 하는 말이 '지금도 그 따위 놀음을 하다가 참 꼴 좋구만' 하는 거예요. 그게 일생동안 잊혀지지 않는다구요. 그렇지만…. 거기에서 당당하던 네 자세, 그러나 그 자세 앞에 나는 졸자가 되지 않는다…. 그때의 내 느낌, 그것은 언제든지…. 십년 세월이 지났어도 잊혀지지 않아요. 또 감옥에서 고문받으면서, 생사의 기로에서 뒤넘이치면서 악을 대해서 증오하던 마음은 없어지지 않았다구요. 그런 일이 많다구요. 밥을 안 얻어먹었나…. 안 한 짓이 없다구요. 다 그것이 살아 있는 증거라구요.

이렇게 볼 때, 내가 시시한 패가 되기 위해서 그런 놀음을 했겠어요? 당당한 패가 되기 위해서 그런 놀음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연구해야 되고, 저들이 자겠다면 나는 새벽이라도 일어나서 노력해야 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를 이렇게 발전시켜 나왔다구요.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지금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발전을 계획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냥 밥 먹고 그런 생활을 하고 있지만, 뜻은 여러분이 따라갈 수 없으리만큼 비약적인 단계를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아침인지 저녁인지 살펴 가지고 보조를 맞출 수 있어야만 자기가 어떤 같은 목적지에 귀결될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심각한 문제라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 선생님의 뜻, 여러분의 뜻이 다르다구요. 같아요, 달라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찌합니까? 이거예요. 그러니까 살아 나갈 길은 하나밖에 없지 않느냐. 자기를 뜻 앞에…. 부락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 뜻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 이것이 예수가 가르쳐 준 길이라구요. 그것이 전통적인 길입니다. 그 길 외에는 살아남을 길이 없다구요, 통일방안이 없다구요. 그러니 남북을 통일할 수 있는 방안은 남과 북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무리들이 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 통일할 수 있는 길이 있어요?

죽음길을 자처해 나서면 다 살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의 여러분은 진지하게 '나는 어찌합니까? 선생님은 어찌하십니까? 아버님은 어찌하십니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됩니다.‘어쩌다가 하나님은 이렇게 나오셨습니까? ’이렇게 목을 놓고 울어도 끝을 낼 수 없는 비통사에 여러분들이 젖어 가지고 목을 놓고 울어야 돼요. 나라를 보게 될 때, 지금까지 선생님이 생애를 걸어 가지고 수고하던 삼천리 강산이 이제 목전에 다가왔다구요. 일대의 싸움 무대가 전개되는 이 마당에 있어서 여러분은 어찌하겠느냐? 문제가 크다구요.

이러한 중요한 문제를 중심삼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시 청산해야 될 것입니다. 남기고 싶었던 뜻만을 위하여,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은 어찌하십니까?’ 하는 위로의 길에서 죽음길을 자처해 가지고 나섬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망하지 않았다구요. 예수도 부활됐고, 민족도 부활됐고, 하나님도 부활된 것이 아니냐. 그렇지요? 세 가지 다 찾아진다구요. 알겠어요? 이북도 살 수 있는 것이요, 이남도 살 수 있는 것이요, 통일교회도 살 수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이니 우리의 임무가 막중해요.

그러니까 한 길밖에 없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그 사상은 주류사상이라고요. 그 사상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울부짖던 사상인 것을 기억하고, 그 원칙에 의해서 여러분이 지금까지의 과거 생활을 비판하고, 현재의 생활을 비판하고, 이제 수련받는 입장에서 그 기준을 다시 정비해 가지고 세우고 돌아가게 될 때에는, 통일교회에는 새로운 차원의 발전이 있으리라 하는 것이 기대되기 때문에, 이런 식구들이 되기를 바라서 말씀을 드렸어요.

​기 도

​아버님, 당신이 그렇게 초라하고 불쌍하신 분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달리고 달려와도 끝이 없는 복귀의 길이 힘든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적마다 아버님은 얼마나 불쌍하신 분인가를 느끼게 되옵니다. 전개되는 환경과 사정이 엇갈리는 것을 직시할 적마다, 언제나 수천년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그러한 무리를 대하시는 아버지 입장은 얼마나 딱하셨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인간세상에 왔다가 하늘의 내정을 살필 수 있고, 깊이 체득할 수 있는 생애가 허무한 생애가 아니고 보람 있는 생애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당신의 은사 앞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당신이 체면을 못 세우시는, 당신이 위신과 면목을 못 세우시는 이때에, 자기의 위신과 체면과 면목을 세울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겠습니까? 당신이 불철주야 허덕이시며 개척의 행로에서 쉬지 않는 걸음을 다짐하는 입장에 계시므로 뜻을 아는 저희들은 밤에도 낮에도 쉴 새 없이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자는 시간도 갖고, 쉬는 시간도 갖고, 자기를 중심삼고 밥먹는 시간도 갖고 있지만 당신은 그럴 수 없는 분인 것을 알게 될 때에, 당신이 어쩌다가 그런 자리에 서셨는지 억울하고도 억울한 것을 느끼옵니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난 그날부터 통일교회에 있어서의 지금까지 거쳐온 역사가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자신을 들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갖지 않은 것을 당신이 잘 아시옵니다. 제가 땅 위에 그 무엇을 남기고, 무슨 권세를 누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당신은 아시옵니다. 당신이 그러하셨기 때문에 저희들도 그런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어린 자식들을 앞에 놓고 아버지 앞에 호소할 때마다 나와 같은 아들딸이 되지 말라고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나도 그런 기도를 해야 되겠지만, 여기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도 자식들은 자기와 같은 불충한 자식들이 되지 말게 해 달라고, 아버지를 대하여 영광의 자리에서 충효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자식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로써 아버지 앞에 다짐지어 놓으면서 가야겠습니다. 그 길이 부모의 길임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땅 위에 아내들이 많이 있지만, 그를 대해 남편으로서는 죽고 죽고 또 죽더라도 그 은덕을 잊을 수 없는 남편의 길을 남기고 가겠다고 다짐하는 여기의 남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전통이 빛나는 역사를 남김으로 말미암아 우리 후대들은 산 증거를 목격했기 때문에…. 예수가 죽음의 자리에서, 십자가의 자리에서도 늠름하였고 빌라도의 법정에서도 당당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직시하였던 제자들은 죽고 난 예수를 다시 회상하는 자리에서 저들이 기독교를 대신하면서 강하고 담대하였던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보여 주는 것이 귀하고 중한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통일교회를 아버지께 책망하실 것이 있다면 그 잘못은 저에게 있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슬픈 내용이 있거든, 그것은 책임진 사람이 잘못한 연고인 것입니다. 아버지여,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수고로우신 아버지 앞에 이런 기도조차도 할 수 있는 체면과 면목을 가지지 못하였지만 그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저희의 사정인 것을 잘 아시는 아버님이여, 남북한을 아버지께서 맡아 주시옵소서. 여기에 기반이 되고, 여기에 생명의 기틀이 되고, 아버지 앞에 제2차적인 결의를 다짐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죽음길에 나서야 된다는 것을 알았고, 삼팔선을 먼저 넘어야 할 우리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싸움을 책임지고 나서야 할 우리들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누구에게 맡길 수 없습니다. 이러한 엄중하고도 중차대한 역사적인 사명이 오늘날 이 보잘것 없는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이, 아버지, 너무나 과중합니다. 너무나 과중합니다. 어느 곳에도 당신이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저희들을 불러 모아 놓고 이런 자리에 오셔야 했던 당신이 얼마나 비참하신 분인가를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지, 이제 전국에 있는 어린 것들이 여기에 왔습니다. 불구의 몸으로서,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한 몸으로서 아버지 앞에 왔습니다. 저희의 눈은 뜨이지 않았습니다. 봉사이옵니다. 저희는 귀머거리이옵니다. 저희는 벙어리이옵니다. 아버지의 심정 앞에는 아무런 잘난 것도 갖지 못하였던 것을, 말로는 심정을 얘기했고 입술로는 아버지를 찬양하고 효도를 했지만 진정 내정으로는 하지 못한 것을, 아버지, 이번 기회에 회개하고 돌아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다 털어 놓아야 되겠습니다. 어린애로 돌아가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밥을 주시면 밥을 먹고, 채찍으로 때리시면 채찍을 맞겠습니다. 종아리를 때리시면 종아리를 맞고 빌 수 있는 그것이 감사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아버지의 사정이 컸고, 아버지의 부탁이 컸고, 아버지의 기대가 컸기 때문에, 그러지 않고는 가실 수 없는 아버지인 것을 알았사오니 응당히 맞아야 할 채찍으로 이제 알고, 저희 자신들이 이번 기간에 다시 한 번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과 용서의 희망을 남기고 돌아갈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루한 복귀의 한계선이 저희 목전에 다가오는 것을 바라볼 때에, 불어오는 바람결이 세다고 그것을 바라보고 염려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넘어야 할 물결이 크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어떻게 넘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 지금 당면한 과업이요, 당면한 책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방에서 아무리 센 물결이 휘몰아친다 하더라도 뜻을 위한 우리의 본향 땅을 그리워하고 가고 싶어하는 심정만은 지켜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던 이 전통적인 사상을 이어받아 가지고 꽃 피울 수 있는 무리가 돼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대학을 나온 사람도 아니요, 어떤 학문적인 면에 대해 연구한 사람도 아니었지 않습니까? 무식한 베드로가 3천 명을 회개시킬 때도 베드로에게 하나님이 같이하시느냐 못 하시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지, 지식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민족을 사랑하고 사망을 극히 미워하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생명을 지극히 사랑하는 이 충격적인 자신을 어떻게 발굴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을 알게 하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이 수련 기간을 당신의 장중에 두시옵소서. 저희는 아름다운 환경과 더불어 은은한 가운데 자연히 흘러 들어오는 새로운 신비를 체험하면서, 무한히 승리의 개척자의 소망을 이 모든 자연 가운데에서 다시 한 번 느끼면서, 내일의 희망에 사로잡힐 수 있는 하나의 선각자의 모습으로 재차 나타나게 하시어서, 메마른 삼천리 반도 위에, 격동하는 삼천리 반도 방방곡곡에, 한민족 위에 당신의 은은한 사랑의 깃발이 보잘것없는 저희들로 말미암아 들려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야말로 삶으로 보여 줄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 책임을 질 수 있는 무리가 이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바라서 이번 수련기간을 책정하고 준비하였사오니, 이들이 이 마음, 이 뜻, 이 사상 앞에 고이 일치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과 더불어 '어찌하시겠습니까?' 하고 염려하는 아들, 당신의 뜻과 더불어 '세계를 어찌하시겠습니까?' 하고 의논하는 아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했고 이번 기간을 설정하였사오니, 승리의 결과를 다짐할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기 수련소야말로 참 잘 생겼다구요. 이 수련소의 뒷산을 이름 짓기를 말이예요. 천승대(天乘臺)라고 지었어요. 천승대. 이 전체를 천승대라고 이름을 지었다구요.

​청평은 하나님이 중요한 곳으로 계획하신 곳

​그러면, 여기가 이렇게 됐다구. 저 뒷산. 저 뒷산은 천성산이예요. 이 가운데 봉에는 거룩할 성(聖) 자를 쓰고, 저쪽 봉에는 이룰 성(成) 자를 쓰고, 이쪽 봉에는 재 성(城) 자를 쓴 거라구요. 3성, 3성산인데 가운데는 거룩할 성 자, 저쪽은 이룰 성 자, 이쪽은 재 성 자라구. 거룩을 표시하고, 완성을 표시하고, 그 다음은 보호를 표시한다는 거예요.

그 산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그 산은 직선상으로 병풍과 같이 되어 있어요. 이 지형을 볼 때 병풍과 같이 되어 있다구요. 전체 산들이 높지만 병풍처럼 직선으로 되어 있어서 전부 그것을 바라보고 우거지게 되어 있다구요. 그래서 내가 저 산 너머에 저 산보다도 더 높은 산이 십리 이내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저 산 너머에 있는 큰 산맥이 줄기를 뻗어 가지고 장산을 거쳐가게 되어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올라가 봤으면….

내가 7월 10일에 올라갔어요. 올라가 보니까 이 산은 난데없이 직선으로 돼 있다 이거예요. 그야말로 이것이 참 잘생겼다구요. 이것이 병풍이 되어 가지고, 이것은 뭐냐 하면 병풍 앞에 밥상같이 되어 있다구요, 밥상. 밥상과 같이 되어 있는데. 여기에 있는 이 물은 모든 조화를 말하는 거예요. 물을 보게 되면 언제든지 하루에도 몇백 번씩 변합니다. 두고 보라구요. 이것은 조화를 말하는 거예요. 조화라는 것은 모든 희망을 말하고, 혹은 무한을 말하고, 전체의 번창을 말합니다. 이런 것을 상징한다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자리가 아주 명당이라 이겁니다. 알겠어요? 전부 그렇게 되어 있어요.

재미있는 것은 말이예요. 내가 이 땅을 살 때…. 이 땅을 1970년도 5월에 산 거라구요. 4월 말부터 5월 중순에 걸쳐 샀는데, 그때에 이 땅 값이 평당 얼마냐 하면 17원. 17원밖에 안 나갔어요. 이곳이 하도 좋아 보였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1969년도에 수련회를. '69년도인가요, 그때가? 「69년도 입니다」 그렇지. 저 건너편에서 수련회를 했다구요. 수련회를 할 때 여기를 와서 보니까 참 장소가 좋은 곳이었어요. 그래서 전체 비준이 맞아야 되겠다 생각하고 쭉 알아보니, 참 좋은 곳이더라구요. 보통 사람은 척 보게 되면 바람맞이, 서북풍이 불기 때문에 얼굴을 때리는 그런 바람이 부는 곳이라구요. 일반 사람들은 말이예요. 겨울이 되면 추운 곳은 싫어하거든요. 그러니 누구도 생각 안 하는 장소라구요. 그렇지만 장소는 멋진장소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여기에다 천막을 치고 2년 동안 쭉 있었어요. 그러면서 공작을 해 가지고 이곳을 사기 시작하여 이제 거의 다 산 거라구요. 그래서 1971년부터, 1971년도인가? 천막을 지었어요. 천막을 왜 지었느냐 하면 말이예요. 누가 이 땅을 사려고 하면 파투를 놓는 거예요. '아, 이땅은 바람맞는 곳이라 쓸데없다'고 하면 왔다가 도망가는 거예요. (웃음) 정말이라구요.

또, 이 땅을 잡으려면 말이예요. 여기에는 브로커들이 참 많다고 하는 거예요. 아무개 누구 브로커들이 전부 다 있어 가지고 자기 지역을 침범하게 되면 칼침 놓으려고 하는 판국이었어요. 그러니 그것을 안팎으로 전부 다 수습해 가지고 착수하려면 정비 작업을 해야 된다구요. 이래 가지고 청평이 관광지역이니만큼 도와 결탁하고 군과 결탁해서,'여기에 난장판 장사꾼들 모이게 되면, 앞으로 국제 손님들이 올 텐데 어느 정도 비준이 있어야 되겠다'고 얘기를 해 가지고, 여기에 브로커 협회를 만들어 전부 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구요. 이래 놓으니, 땅을 팔고 사는 데에는 우리의 승인을 받지 않고는 안 된다고 하게 된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맘대로 살 수 있었던 거예요. 지금도 그렇다구요. 맘대로 못 팔아먹는다구요. 우리의 승인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단시일내에 이 방대한 지역을 샀던 거예요. 평균 이틀에 한 건씩 계약을 한 셈이 돼요. 우리가 그렇게 산 것은 아마 역사에 없는 일이 될 거예요. 그렇게 해서 지금 현재 한 120만 평, 땅 주인으로 말하면 한140명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땅을 샀다는 거예요.

만일에 그런 조직을 안 만들었다면 절대 땅을 못 샀다는 거예요. 청평에 땅을 사게 되면 여기가 청평호수기 때문에 옆에 땅을 가진 서울 사람들이 전부 다 알거든요. 그래서 아무 곳에 땅이 팔렸다 하게 되면 틀림없이 그 옆의 땅 값은 올라간다구요. 그러니 달라는 게 값이라구요. 그렇다고 해서 뭐 서울에 사는 돈 있는 사람들이 누가 어떤 조직을 가지고, 뭐 얼마에 샀는지 아나요? 자기들 마음대로 그저 뭐 몇천 평쯤은 십 원짜리를 천 원도 줄 수 있고 말이예요. 기분나는 대로 척 집어 주기 때문에 땅 값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구요.

이곳이 그러한 지역이지만, 여기가 대개 필요적절한 지역…. 여러분이 보는 여기 이 산도 우리 산이고, 저기 저 산의 중간에도 우리 산이 끼어 있고, 저 높은 산도 우리 산이예요. 이렇게 중요한 것은 대개 우리 산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 청평…. 저 아래에 있는 나이아가라호텔 건너 편에도 4만 평이 있고, 이 산 앞에 한 6만 평, 저쪽으로 넘어가 가지고 한 7만 평. 중요한 곳은 전부 다 우리가 잡아 놓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청평에 유람지를 만든다든가, 혹은 별장을 짓겠다고 안으로 들어와 가지고 좋다고 하는 곳을 알아보면, 그것은 전부 다 우리 땅이다 하는 입장입니다. (웃음) 그렇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주위의 평이 어떠냐 하면, 통일교회가 청평을 알게 모르게 옭아 맸다고 소문이 나고 있다구요.

또, 재미있는 것이 우리가 단기간내에 이렇게 매수 활동하느니만큼 거기에 부작용이 많았어요. 부작용이 참 많았다구요.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래, 반대하는 사람 중에 네 사람인가 다섯 사람인가를 영계에서 데려갔다구요. 그래서 '통일교회를 반대하다가는 망한다'하는 소문까지 나 있다구요. 그러니만큼 영적으로 보더라도 이곳을 앞으로 중요한 곳으로서 하나님이 이미 계획하신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예요.

또 재미있는 것은 전부 다 가격을 평가해 가지고 평당 17원밖에 안 되는 이 땅을 사려고 하는데, 이 땅이 누구의 것이었느냐 하면, 한국일보 어느 차장이라는 사람의 땅이었어요. 그런 사람들은 앞으로 자기 꿈이 있어서 이 땅을 샀던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보통값을 주겠다고 하게 되면 안 판다구요. 그러니 배 이상 여유 있게 정해 가지고 사겠다고 한 거라구요. 뭐 자기들이 살 때에는 몇 원씩 주고 샀지. 그 가격을 알아봐야 전부 다 뭐 뻔한 가격인데 17원 꼴 가는데 우리가 38원에, 나는 55원까지 생각했어요. 55원까지라도 주고 사겠다고 생각하고 절충해 가지고 38원을 주겠다니 '아이코머니 이게 무슨 떡이냐?´ 그래서 여기 14만 평을 한평에 38원씩에 산 거라구요. 38원에…. 지금은 얼마나 나가느냐 하면 달라는 게 값입니다. 알겠어요? (웃음) 지금 이 땅을 얼마나 달라고 하느냐? 3천 원 달라고 합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달라면 3천 원에 주겠다구요. 그러면 뭐 장사도 잘된 셈이지요.

이래 가지고 이 땅에서 작년 7월 12일에 목사공청회를 천막 지어 놓고 하려다가, 그렇지 않아도 그때는 우기인데, 질척질척한 데 와 가지고 고생하면 돌아가 가지고 그 불평이 전국에 퍼질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7월1일부터 시작해 가지고 7월 10일까지 수련소를 완공했다구요. 이틀 동안 칠했으니 8일 동안 만든 집입니다. 알겠어요? 그러고 보면 집 짓기 어렵지 않다구요. 사람이 단결하면 무서운 거라구요. 하루 24시간 밥먹으면서 자면서 이 놀음을 했다구요.

슬레이트를 올릴 때는 말이요. 3일 전부터 계약이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연락하는 사람이 어디에 가서 마지막날까지도 슬레이트가 안 올라왔어요. 큰일났다는 거예요. 목사들이 12일에 올 텐데 그날 끝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왕창 다 무너지는 거예요. 어디에 있는 목수를 데려다 놓고 집 짓는 데 협조해 달라고 그럴 거예요?(웃음) 큰일났거든요. 이건 뭐 도깨비 바람을 일으켜서라도 무슨 놀음을 해야 되는 거라구요. 이러고 있었는데, 내가 쫓아다니면서, 돈을 안 내면 슬레이트를 못 준다고 하는 것을 사정하고, 또 똑딱선을 전세내 가지고 밤 열한 시 반에야 수련소에 실어 들여왔다구요. 그것을 전부 다 내려놓다 보니까 새벽 두시 반쯤 되었어요. 이래 가지고, 똑딱선이 올라가는 데는 이미 밤이 늦었다고 해서 그 주인이 저기 올라가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구요. 그런데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내려오며 척 보니까. 밤사이에 슬레이트가 전부 다 용마루에 올라가 있었던 거예요. (웃음) 자기 생각에는 그때 비가 오니까 갓쇼우(合掌) 같은 것이 젖으면 안 되니까 임시로 저렇게 올려 놓았거니 생각했다는 거예요. 웬걸, 올라간 슬레이트 위에는 일하는 사람이 한 녀석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밤 사이에 몇시간 이내에 전부 완전히 올려놓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집은 도깨비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구요. (웃음)

이것을 쭉 살펴보게 되면. 색칠을 했기 때문에 어울린다구요. 보게 되면 납작한 것이. 엎드려 가지고 도닦는 상이라는 거예요. (웃음) 필시 여기에…. 가만히 서서 보게 되면 맞는다구요. 맞아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앞으로 이 지역은 세계적으로 이름이 날 수 있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관입니다.

청평은 영계가 바라던 땅

재미있는 것이 뭐냐 하면, 여러분. 윤보살을 알아요, 윤보살?「예」 여러분 가운데 윤보살을 아는 사람은 알는지 모르지만, 우리 통일교인들은 그분한테 참 많은 교육을 받아야 돼요.

그분은 지금까지 18년 동안 통일교회를 위해서 밤낮없이 정성들이고 있어요. 지금도 하루에 세 산. 네 산을 왔다갔다하고 있어요. 영계에서 보내니 할수없다구요. 팔도강산을 무대로 하여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화엄사로부터, 뭐 해인사, 뭐… 절간, 난 몰라요. 나는 어디 어디에 절이 있는지 모른다구요. 팔도강산을 누비고 다니면서 정성들이라고 하니까 할수있어요? 석가모니가 끌고다니는데. 석가모니 제자니까 별 수 없다구요. 또, 선생님을 위해서 정성들였으면 그 정성들인 것을 안 듣겠다고 해도 찾아가서 보고하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매번 올 때는 반드시 한 꾸러미 싸 가지고 와요. 알겠어요? 그냥 안 온다구요. 임자네들은 뭐 싸 가지고 왔어요? 참외를 싸 가지고 오고, 떡을 싸 가지고 오고, 케이크를 사 가지고 오고, 뭐 그냥은 절대 안 온다구요. 윤보살이 이 놀음을 하면서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몰라요.

그렇게 정성들이니까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구요. 선생님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가 보고 있을 거라구요. 또, 여기에 있는 어떤 녀석, 저 안경을 낀 녀석이 졸고 있는 걸 다 알고 있다는 거라구요. (웃음) 나한테 기합받은 녀석,'오늘 아무 데에서 온 사람, 그 얼굴이 예쁘게 생긴 사람 기합 잘 받는구만' 그러고 있다구요. 또. 청파동에서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을 때에는, 영계에서 다 보여 주는 거예요. 즉, 말하자면, 활동사진을 보고 있는 거라구요. '지금 차를 타고 온다. 어디에 왔다. 어디에 왔다. 지금 대문을 열고 들어가서 옷 벗고 지금 앉았다' 그러고 있다구요. 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요 전화가 따르릉 오는 거라구요. 그러고 있다구요. 알겠어요? 얼마만큼 세밀히….

영계가 앞으로 그렇다구요. 지상에 있는 여러분들이 얼렁뚱땅해서 지나갈 때는 지나간다구요. 알겠어요? 앞으로 똥싸개의 밑창까지 전부 다 들여다 봐 가지고 털어야 될 때가 온다구요. 알겠어요?「예」 선생님은 앞으로 그런 사람들을 주위에 수백 명 거느리고 살 거라구요. 알겠어요? 거기에 왕초가 누구냐 하면, 선생님이다 이거예요. (웃음) 알겠어요?

그 사람으로 말하면 지금 조제사 신도회 회장입니다. 5백 명 신도니 무엇이니 자랑하고 있는 신도회 회장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항의가 많다는 거예요. '저거 저거, 가만 보면 불교를 위해서 정성을 안 들이고 통일교회를 위해서 정성들인다'고 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나는 석가모니의 수제자다' 이러고 있다구요. '너희들은 석가모니를 눈으로 보니? 암만 뭐 정도령이니 무엇이니 하고 큰소리치는 이름난 스님들에게도 물어 보면 모른다구요. '석가모니를 보냐?'고 물으면 못 본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당신은 보우' 하면 '보구 말구'라고 대답한다는 거예요. 그래 본다는 데 '어떻게 알겠어?'라고 하면 '모르겠으면 알게 해주마. 이 자식, 석가모니가 너 아무 때 아무 때 뭘 해먹고, 뭘 해먹었다고 한다 이 자식아' 하면서 꼼짝 못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구요. (웃음) 이것은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석가모니가 그렇다고 한다면서, '그러냐, 안 그러냐?' 하니까 '어어어' 하면서…. (웃음)

그렇기 때문에 관세음보살이라 해 가지고, 조계종의 스님들은 전부 다 그 노인의 손바람에 놀아나고 있어요. 그 노인이 '와라' 하면 '예' 이러고 있다구요. 자기 제자들만 해도…. 지금 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참 무서운 데가 있어요.

가만히 앉아 가지고, 우리가 본격적인 기도를 하기 전까지, 그것이 3년 동안이예요. 1970년도 들어서면서 일본 작전을 밤새도록 세운 것을 알아 가지고…. 영계를 통하니까 전부 안다구요. 우리를 위해서, 본격적으로 자기 사업하던 것 전폐해 버렸어요. 집도 서울에 한 50여 채가 됩니다. 여러 가지 장사하던 것도 전부 다 문을 닫아 버렸어요. 싱가포르니, 로스앤젤레스에도 농장이 있고, 외국과 무역도 해서 돈도 많다구요. 그런데 전부 다 올 스톱했어요. 돈 벌겠다고 하다간 전부 다 한꺼번에 망해 버린다는 겁니다. 그런 것을 알거든요. 올 스톱해 가지고 '통일교회를 위해서 있는 정성을 다 들여라'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모든 것을 스톱하는 만큼 그 비중이, 자기가 외적으로 손해나는 것이 크면 클수록 정성은 더 큰 뒷받침된다는 거예요. 그 말은 맞는 말이예요. 그 말은 탕감이 된다는 거지요. 이렇게 아주 잘 통하는 사람입니다.

3년 전까지는 우리 교회에 누가 들어오게 되면 전부 다 척 봐줬어요. 그렇기 때문에 고관들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3년 동안 올 스톱해 가지고 통일교회 대주자니까 한때는 참 반대가 많았어요. '뭐 제까짓 게 기도가 뭐야 기도가' 하며….

그런데 사실 와서 보면 없고, 또 보니까, 어디에 갔다 오게 되면 누더기 옷을 입고 다니고…. 산에 가게 되면 고운 옷을 입고 다닐 수 없다구요. 딱 거지 모양으로, 얼굴에는 숯검정을 묻히고 다녀야 된다구요. 그런 것을 보게 되니까 '야. 사실이다. 사실이다'라고 소문나 가지고…. 요즘에야 좀 잠잠하다는 거예요.

그때는 줄을 지어 가지고, 하루에 돈을 뭐 몇십만 원씩 벌고 했다는 거예요. 또, 장사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국제적 거래라든가, 무슨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이 한 건에 몇천만 원, 혹은 몇억 원짜리를 입찰하여 거기에 이(利)가 나게 되면, 그것에 대해 반드시 사례하는 거라구요. 그래서 지금도 돈 버는 것은 문제없다는 거예요. 그 사람 얘기는 뭐냐 하면 앞으로 자기를 일본에 갖다 놓고, 뉴욕에 갖다 놓으면 경제인, 정치인 전부 다 자기 손바람에 놀아나게 한다는 거예요. 그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라구요. 자기가 전부 다 훤히 알고 있으니까.

자, 그런 윤보살인데, 내가 이 땅을 척 사고 청평에 들어오니, '야, 오늘은 영계에서 좋다고 춤을 춘다'는 거예요. 석가모니, 예수, 전체 영계가 통일교회에 운이 트일 수 있는 출발의 날이라 하면서 기뻐하는데, 왜 기뻐하나 하고 보니까 청평에 땅을 사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 땅은 뭐냐 하면, 석가모니가 정성들여 가지고 앞날을 꿈꾸던 곳이고, 예수님도 역시 이상을 바라던 세계에서 아주 뭐 제일 묘한 곳이라는 거예요. 여기는 미륵불이 와서 좌정할 곳인데 이곳을 어떻게….

노인네가 좋아하면서 춤을 추고 뭐 야단을 하고 그러다가, 내가 척 가니까 '선생님, 오늘 땅을 계약하고 왔지요?´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시침떼고 '아니오' (웃음) 남의 일처럼 '아니요 그게 무슨 말이요. 무슨 땅을 사요. 나에게 돈을 줬소, 땅을 사게? 나 오늘 이러이러했다구요' 하니까 '전부 다 이렇고 이런데 내가 이야기한 것은 틀림없어요' 하는 거예요. 다 보고 있었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어떤 소개인을 만나고, 그 소개인이 얼굴이 깍쟁이같이 생긴 사람을 소개하고, 주인은 한국일보 그 신문사 누구 되는 사람이고, 뭘하는 사람이고 전부 다 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래도 선생님은 아니라고 그래요?' (웃음) 이러고 있다구요. 그 보고를 해주는데, 아주 놀랄 만한 보고를 해주는 거예요. 그것을 보면 영계에서 바라던 땅이라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땅을 샀는데 이 앞 땅을 사라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이 앞 땅은 미국 사람들이 별장을 지으려고 하던 땅이예요. 이 앞 땅은 장소가 좋거든요. 첫째로 전망이 좋다구요. 그런데 이 땅 값이 얼마냐 하면 그때에 17원까지 되었어요. 그렇지만 미국 사람들이 이 땅 값을 알아요? 자기 나라 땅 값에 비하면 이것은 뭐 미친개보다도 더 싼 것이거든요. 그렇게 아는 사람들이니까 몇백 원 같은 것은 거저 먹기거든요. 아무것도 안 된다 이거예요. 그런데 소개꾼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미국 사람들을 끌고다녀 가지고 잘 타협해야 수입이 많다구요. 그래서 만약에 3배를 받았으면 거기에서 3분의 1은 주인한테 받아먹는 놀음을 한다구요. 그러니까 이것을 씌워 먹는 것이 장수라구요.

그런 판이니만큼 그때로 말하면 얼마 안 나가는 땅이라구요. 그것을 알고 있는데, 그때가 300원을 주겠다고 300원에 계약하겠다고 해 가지고 주인을 찾아다니던 때라구요. 우리는 그 때 평당 130원씩 봤다구요. 그래서 13O원씩이면 계약하려고 했는데, 그 쪽에서는 300원에 주겠다고 하니 그 쪽하고 계약하기로 됐어요. 그래 가지고 계약하기로 한 날짜가 내일 모레인데, 그 미국 사람이 오늘 자기 고향에서 사건이 나 가지고 고국에서 돌아오라는 귀환 전보를 받았다는 거예요. 그러니 별 수 있어요? (웃음) 그래 가지고 돌아가 버렸다는 거예요. 그러니 할수있어요? 그래 '미국놈 믿을 수 있냐 이거야 미국놈 믿지 말라구. 미국놈 믿을 수 없다구. 그녀석은 뭐 장사꾼인데 갔다가 언제 올지, 십 년 걸릴지, 몇십 년 걸릴지, 영영 갈지, 여러분, 한국사람들 보게 되면 외국에 한번 나가기가 힘들지 않느냐' 하고 선전해 가지고 다 우리가 사 버렸다구요. 300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을 우리가 130원이면 안 되겠느냐고 하면서 절충해 가지고 170원에 계약했어요. 한 2만 평을 말예요.

이 땅을 못 샀으면 우리가 수련회를 할 때 양놈들이 이 앞에 와서 보우트를 타고 그러면 다 망치는 거라구요. 그런데 이 땅을 잡아서 사놓았기 때문에, 이 안에는 누구도 못 들어옵니다. 우리가 수련소를 지어 놓고 왕왕 자꾸 떠들어대고 찬송을 하면 누가 오겠어요. (웃음) 그러니까 누가 이 근방에 와서 구경하라고 해도 이 근방에는 안 온다구요. 이 땅은 별장 지대로 참 좋은 땅입니다. 이곳, 저곳, 저곳, 이 세 곳은 좋은 곳입니다.

여기에 누가 들어와서 살려고 하다가 저 무슨 집이냐고 물을 때. '아, 그곳은 수련소라구' 하겠지요. 수련소라 하게 된다면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기 때문에 복잡하고 시끄럽다는 것을 안다구요. 또, 그 다음 노래부르고 뭐 어떻다고 하는 것이 소문났기 때문에 누가 거짓말하래도 못 하게 되어 있다구요.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전부 다 허리째 잘라 놓고, 그 다음에 쭉 올라오면서 이것을 산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 산 앞에 들어서면서부터 이 골짜기는 지금 우리가 판권을 잡고 있는 거라구요.

청평수련소 주변의 산들과 호수 이름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이곳이 유명한 곳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둬야 되겠어요. 청평이라는 이름도 좋다구요. 청평(淸平). 이것은 모든 것이 완전히 정착을 해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그 명사도 그렇다구요. 청평에서 `청' 하게 되면 푸른 것을 말하고, '평' 하게 되면 푸른 동시에 평평한 것을 말한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맑고 평평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정지작업은 다 되어 있으니 설계해 가지고 기둥만 갖다가 세우면,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는…. 그 명사도 그렇다구요. 앞으로 청평이 천평이 된다구요. (웃음) 이거 호수 이름을 갈려고 그래요. 그렇더라도 지금은 그러지 말라구. 그렇게 되어 천평 호수가 되면 곤란하다구요. 앞으로 그럴 때가 오는 거예요.

수련소 앞에 이 호수 이름을 천심호(天心湖)라고 지었어요. 이 산은 뭐냐 하면 선인봉(仙人峯)이라고 짓고, 그 다음에 저기 저 산은 천선산 (天善山), 어질 선 자, 착할 선 자, 이 앞에 쭉 있는 스물한 개, 여기 스물한 개 산에 대한 이름을 선생님이 7월 10일에 선인봉 꼭대기에 올라가서 명명했어요. 여기서 쭉 올라가서 있는 곳은 천인대(天引臺)입니다.

앞으로 우리 원래의 수련소 본관을 지을 곳입니다, 거기는 정성의 도수가 차고, 저 외국에서 찾아오는 특별한 사람들 외에는 절대 못 들어갑니다. 성역 지대를 만들어 가지고 왕궁처럼 지을 수 있는…. 저 산밑에는 한 만 오천 평 정도 평지를 만들 수 있는 곳이 있어요. 거기에서 쭉해서 이 산골로 길 닦으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의미에서 천인대라고 이름을 지은 거라구요. 이렇듯 전부 다 그 이름을 풀이하게 된다면 이상동산이 나오게 돼 있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여기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얘기했댔자 여러분이 눈 뜬 봉사들이니 할 수 없다구요, (웃음)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하나님이 바라시는 이 지역을 우리 통일교회가 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우선 알아줘야 되겠다구요.

이곳은 전세계 사람들을 양육할 장소

옛날에는 선생님이 수택리 공장에 가는 것이 일이었다구요. 밥만 먹으면 공장에 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요즈음은 그 정성이 어디로 옮겨졌느냐? 이리로 옮겨졌다구요. 밥만 먹으면 여기에 오려고 합니다.

여러분, 여기에 와서 가만히 보게 되면 참 장소가 좋은 곳입니다. 기도를 해도 기도가 잘 되고 말이예요. 삿된 것이 없다구요. 악령들이 나타나 가지고 뭐 이렇게 반대하는 것이 없다구요. 그것을 보면 그만큼 준비된 땅이라구요.

재미있는 것이 내가 이 터를 닦으려 하는데 윤보살이 하는 말이 '아, 선생님은 어찌 알고 거기에 학교를 지으려고 하느냐?'는 거예요. 내가 오기전에 천년 전부터 거기에 학교를 지으려고…. 여기에 무슨 구렁이가 있다나? 큰 구렁이가 여기에 와서 선생님이 천년 후에 올 것을 알고 지키다가 선생님한테 바쳤는데, 지킨 그곳이 앞으로 전세계 사람들을 양육할 곳이라는 거예요. 어쩌면 거기를, 그 산을 잡았는지, 참 좋다고 하면서 구렁이가 춤을 추고 야단하더라는 거예요. (웃음) 그런 이야기 하면 아주 재미있다구요. 그렇게 열심히 받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참 재미있다구요. 그것을 보게 되면 우리가 전부가 안팎으로 천지가 화동하는 이치에 대응할 수 있게끔 움직여 나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학교는 어디에 짓느냐 하면 여기 홈터에다가 짓는데 선생님이 그런 것을 제일 싫어해요, 들어가는 것을…. 여기가 그렇잖아요? 여기도 낮기 때문에…. 지금 왜 여기를 잡았느냐 하면 이보다 더 높게 지으면 수련소가 팍 죽어 버린다구요. 내려다보게 되면 아주 왕창 눌리기 때문에 그것을 살려 놔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것을 조금만 높여 놓으면 어울리지요. 그런데 여기에 집을 지으려고 이것을 전부 다 깎아 내리려고 하니까 이게 굉장한 일이다 이거예요. 그래서 한 단계를 높여야 되겠다 해 가지고, 여기는 앞으로 길을 하든가 뭘 하든가 해 가지고, 학교를 더 높이 지어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저기 저 산의 중턱을 전부 다 밀어 가지고 길을 저쪽으로 내고, 이 산에 높은 고개가 있다구요. 거기서부터 직방으로 들어온다구요. 이만하면 참 전망이 좋다구요.

호수에 고기가 모인다는 것은 세계 사람이 모인다는 상징

어머님:「선생님, 세상에서는 남자들이 뱀이 좋다고 잡아먹잖아요? 그런데 통일교인들은 뱀을 먹지 말라고 그러대요. 구렁이 얘기를 하시니까 생각이 나네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뱀을 먹으면 좋지 않아요. 왜 그러냐 하면, 뱀까지도 해방시켜야 되기 때문입니다. 사탄을 해방해야 되니 그것은 맞는 말이예요. (웃음) 세상 사람들은 뱀을 먹어도 괜찮고 때려 죽여도 괜찮고 그렇지만 통일교회 교인들은 뱀을 먹으면 좋지 않습니다. 조건이 된다는 거예요. 이것을 전부 다 해방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구요. 참 재미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래요. 선생님이 지금가지 이 호수에서 낚시질을 했지만, 이제는 낚시질을 하고 싶은 생각이 싹 없어졌다구요. 그때에 낚시질을 한 것은 뭐냐 하면. 세계 사람을 잡기 위한 거였어요. 알겠어요? 세계를 낚는 역사라구요. 영적으로 전부 다 그 놀음 하느라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큰 고기를 잡았다는 것은 소원성취했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2년전까지 낚시하다가 이젠 아예 싹 그만두었다구요. 여기는 이미 우리 땅이 되었고, 우리 집을 지었기 때문에 집 앞에서 고기를 잡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 여기서 고기를 잡으면 놔주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자기 정원 연못에서 고기 잡아 온 것을 좋다고 그러면 오래 못 간다구요. (웃음)

여기에서 자라서 자꾸 새끼치고, 자꾸 새끼를 치니…. 그러고 고마운 것이 저 산과 밭 사이에 있는 못에 가 보면 이만큼한 고기 새끼들이 와글와글해요. 그것은 뭐냐 하면, 수없이 번창할 수 있다는 상징이라구요. '어서 와라, 어서 와라' (웃음) 그래야 된다구요. 그래서 앞으로 미끼도 줘서 양어해 가지고, 이렇게 큰 놈이 자연스레 와서 꼬리를 치면서 아가리를 벌리면 먹이를 집어 주어 넙죽 받아 삼키게 만들어 놓으려고 합니다. 이 호수 전체에 고기가 모인다는 것은, 세계 사람은 인생을 고해라고 그러잖아요, 세계 사람이 다 모인다는 상징이라구요. 새끼가 오글오글 치니까, 이 수련소는 발전한다는 것을 예상한다는 거예요. (흥) 그렇다는 거예요. 왜 흥흥하나? (웃음)

교회가 잘되려면 교회 뜰에 동네사람들이 들끓어야

다른 얘기를 좀 합시다. 가만히 보면 말예요. 되는 집에는 개가 똥을 싸도 그 집 마당 귀퉁이에 와서 쌉니다. 그런데 주인이 '아이고 이놈의 개새끼들, 이 동네 개들은 왜 전부 다 우리집 뜰안에 와서 똥을 싸노?' 이렇게 불평하는 사람은 복을 쫓는다는 거예요. '어서 와서 싸라, 어서와'. 그래야 되는 거예요. (웃음) 그렇다는 거예요. 벌써 산수도 그렇고, 자연도 그렇고, 모든 동물들도 그렇다구요. 동물들도 좋아하는 것이 있을 것이 아니예요. 사람을 위해서 지어졌다면 하늘에 가까운 사람, 천성, 본성에 가까운 소성을 가진 사람 앞에 끌려가고 싶고, 그 사람과 더불어 화동하고 싶고, 이것은 원리 가운데 있는 창조이상의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교역자가 책임을 다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을 알려면, 그 교회 뜰을 중심삼고 그 동네사람 몇 사람이 왕래 하느냐 하는 것을 보면 대번에 안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어디에 가든지 선생님이 가는 곳은 언제나 잔치예요. 어디에 가든지 잔치라구요. 쓸쓸한 동네에 가더라도 사흘만 되게 되면 벌써, 그 동네 할아버지가 와 앉아 가지고 '어디서 왔소?´ 그래요. 궁금해 가지고 궁금병이 난다는 거예요. 궁금병. 뭐 마음이 싱숭생숭한다는 거예요. 그런 일이 있다는 거라구요. 그게 왜 그러냐 이거예요. 왜 그러느냐? 그것은 안 그럴 수 없다구요. 모든 곤충이 어두운 밤중에 빛이 있는 밝은 곳을 향하여 모이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어요. 모를 리가 없다는 거라구요. 전파 같은 것이 반드시 있다는 거라구요.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마음의 전파가 주체와 대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되는 자극을 느낀다는 거예요. 그 자극이 자기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희망을 촉구시켜 주고 성공을 기대하게 할 수 있는 길잡이 되는 방향이기 때문에, 자연히 끌려가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잘될 수 있는 길은, 먼저 그 동네 애들이 좋아 하게끔 하는 것입니다. 싫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코 찔찔 흘리는 애들을 중심삼고 '아이고, 우리 선생님?´ 할 수 있도록 애들과 친구가 돼야 되는 거라구요. 그 다음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애들의 친구, 할머니 할아버지의 친구만 되는 날에는 그 동네 사람들이 몽땅 자기 친구가 되는 거라구요. 이치가 그렇다구요.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뭐냐 하면 애기이고, 제일 싫어하는 것은 뭐냐 하면 다 죽게 된 할아버지 할머니입니다. 극과 극이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하늘의 운동이 뭐냐 하면 극과 극을 포섭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거 원리적이라구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애들과 그저 하나되려고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와서 놀다가 밥을 먹고도 가고, 이래 놓으면 그곳은 흥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친구가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여러분한테 미쳐 가지고 밤잠을 안 자고, 자기 좋은 뜨락, 청마루, 자기 뭐 고래등 같은 집을 남겨 놓고 교회 대청마루에도 와서 자겠다고 하게 되면 그곳, 그 단체, 그 사람이 있는 곳은 흥청흥청 흥한다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려면 그것이 그냥 되는 게 아니라구요. 불을 밝게 켜 놓아야 됩니다. 불을 밝게. 아이들은 장난이 제일이예요. 그렇지요? 아이들은 장난이 제일인데 장난하는 것을 저버리고 거기에 와서 뭘 바랄 수 있으려면, 장난보다도 더 재미난 것이 있어야 된다 이겁니다. 또, 늙은이들,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저 먹는 연구밖에 안 한다구요. '아이고, 맛있는 거 먹었으면 좋겠다' 이러는 거예요. 그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거기에 와서 있으려면 그 이상의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거라구요.

이 세상에 그 이상의 것이 뭐 있겠느냐? 세상에는 없다구요.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팔년풍진을 다 겪으면서 안 해본 게 뭐 있겠어요? 다 해봤다구요. 그 사람들에게 진진한 것이 뭐 있겠어요? 그것은 다른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 뜻밖에 없습니다. 아이들도 그렇다는 거예요.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고 감수성이 예민합니다. 특히 선한 것에 대한 감수성은 더 예민하다는 거예요. 괜히 좋아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어야 그 교회도 발전하는 것입니다.

사람과 형상과 천품

여러분들이 자기 얼굴을 봐 가지고, 인상을 봐 가지고, 내 인상-사람에게는 형이 있다구요- 은 독수리 인상이다 하게 되면 눈하고 코하고, 이 얼굴을 어떻게 변장할 생각을 하라는 거예요. 또, 너구리 인상, 다 각각이예요. 또, 황소 같은 인상도 있다구요. 다 그렇게 생겼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동양철학에서는 인간을 무슨 뭐 소띠, 개띠, 닭띠, 토끼띠… 그러고 있다구요. 어떤 사람은 토끼와 같이 귀를 종긋거리며 하늘을 바라보면서 '적이 오지 않나…' 그러고 있다가 적이 오게 되면 그저 꽁무니를 뒤로 뺀다구요. 그런 사람들은 잘살려고 해도 못사는 거라구요. 이렇게 전부 다 형이 있다구요. 너구리 형을 가진 사람들은 처음부터 땅구덩이를 파게 되어 있고, 여우 형을 가진 사람은 전부 다 교활하게 돼 있다구요. 그런 차이가 다 있다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선생님이 사람들을 보면, '아 저 녀석은 뭘하는 녀석이다' 합니다. 참 센스가 빠르다구요.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그런 형상이면, 그 너구리면 너구리에 맞는 동물이 있다구요. 자기 패를 만들려고 하는 동물이 있다구요. 그러므로 너구리 끼리끼리 섞어 놓으면 너구리 새끼가 나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렇지만 너구리와 너구리를 좋아하는 동물 타이프와 묶어 주면 거기서 별종이 나온다구요, 별종. 알겠어요? 종자를 바꿀 수 있다구요.

선생님이 축복해 줄 때에는 그런 것을 전부 다 알기 때문에 너구리 형끼리는 절대 안 해 준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3년 동안 서로 안 맞는다 이거예요. 공식적으로 안 맞는 것이 원칙입니다. (웃음) 7년쯤 지나가야 서로 흥미진진할 수 있게 되고, 그때 가야 맛을 알게 된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렇게 보는 거라구요.

선생님의 가정도 그래요. 제1차 7년노정이 뭐냐 하면 상대기반을 완성시키는 때입니다. 가정적 완성 기반을 넘어가는 때이기 때문에 어머니도 역시 마찬가지라구요. 성격적인 면에서 선생님하고 맞지를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길러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길러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이렇게 전부 다 키워 주면 그것이 어느 한때에 가서는 맞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옛날에 안 맞던 것은 잘라 버리고 맞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거라구요. 그것이 7년노정이라구요. 알겠지요?

제 1차 7년노정은 무슨 기간이냐 하면, 뜻을 중심삼고 어머님과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을 맞춰 나오는 기간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가정들에게도 전부 다 7년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공식적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모든 천지의 조화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천품을 잘 타고나야 된다

앞으로 사람이 많아지면 내가 여러분, 아무나 안 잡아 쓴다구요. 알겠어요? 할 수 없이 지금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전부 다 교회장…. 교회장 되기가 쉬운 줄 알아요? 교회장은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요. 옛날에는 제사장을 함부로 택하지 않았다구요. 그 동네 사람들이 전부 다 모여 제물을 놓고 제사를 지내 가지고 하늘의 명령을 받아서 택했지, 함부로 지나가는 녀석을 택해? 잘못하게 되면 망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이번에도 그렇다구요. 내가 신학교 학생들을 척보고 아주 낙심했다구요. 거기에 교회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불과 한 십여 명밖에 없다고 보고 있어요. 그 외는 전부 다 추풍낙엽이 되어 쓰레기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기대가 안 생기는 거예요. 공부야 나중에 2, 3년 공부를 더 하면 된다구요. 그것은 문제가 안 되는 거예요.

사람은 천품이 좋아야 돼요. 천품은 절대 바꾸지 못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바꿀 자신 있어요?「없습니다」 자기 성질을 바꿀 자신이 있어요? 뻔히 알고도 '아이구, 내가 또 잘못했구나' 하고, 그 놈의 성질을 안 부리려고 혓바닥을 깨물고서도, 성질을 부려 놓고 '아이쿠' 이런다는 거예요. 그렇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천성, 천품을 잘 타고 나야 된다구요.

정성을 통해 연결시켜야 장구한 희망의 터전이 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도 그런 거예요. 전도하는 데 있어서는 상대가 있다구요. 그 상대를 대해 가지고 창조역사를 하라는 거예요, 창조역사. 알겠어요? 하나님은 인간을 짓기 위해서 먼저 천지 만물을 전부 정성들여 지어 놓은 거예요. 모든 만물을 하나 하나 정성들여 만들 때에 이상적인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모델로 만들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정성들여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상대에 대해 가지고 정성을 들여야 돼요. 정성을 안 들이는 사람은 영원한 존재 기반을 찾을 수 없는 거예요. 이것이 원리의 가르침이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상대하고 완전히 하나되는 데서 영생이 벌어지고, 거기서 이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상은 성공이라구요. 이상은 행복입니다. 이상은 기쁨입니다. 이상을 실현하면 기쁨이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에게 상대가 될 수 있는 자리를 보았을 때는 온갖 정성을 다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수택리 공장에 대해…. 누가 수택리 공장에 대해 정성들인 사람이 있어요? 아무도 없었다구요. 내가 이것을 상대해야 되는 입장에서, 만일에 여기에 정성들인 것이 열매 맺히면 어쩔 수 없이 그것은 몰려오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정성을 들인지 14년을 맞이하면서 이 땅 전체를 살릴 수 있게 된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것은 날아오게 돼 있는 거라구요.

요즈음은 청평에 대해서 정성을 들입니다. 정성을 들여서 자기의 상대적 무대가 되게 될 때는 노라리가락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얼렁뚱땅해 가지고, 남에게 사기쳐서는 안 된다구요. 정성을 통해 가지고 연결시키면 이것은 장구한 희망의 터전이 될 수 있지만 그러지 않고는 망한다는 거예요.

더우기나 앞으로 여러분은 생각해야 된다구요, 교역자들은. 여러분은 전부 다 지금 아들딸들을 키우고 있는데, 만약 비양심적인, 양심의 가책을 받는 놀음을 해 가지고, 혹은 돈을 사기쳐 가지고, 공금을 횡령해 가지고…. 차라리 굶는 게 낫다는 거예요. 굶으면 하늘과 땅이 동정합니다. 굶는 사람은 동정 안 하는 사람이 없다구요. 원수의 자식도 굶을 때에는 먹여 주어야 사람이라는 거라구요. 죽게 된 사람을 언제나 동정해 줘야 하는 것이 인정의 원칙이 되어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살인범이 형장에서 사형을 당하게 될 때에, 그에게 '너 마지막 소원이 뭐냐?'고 물으면서 그때만은 들어주잖아요? 그러니 슬프고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을 동정해 줘야 되는 것이라고 보는 거라구요.

그러한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은 슬픈 사람이 있으면 그 슬픈 사람을 대해 가지고 동정해 줘야 합니다. 그 동네에서 동정해 주는 사람이 없게 될 때는 '내가 해야지' 하며 동정해 주는 주인이 되어야 됩니다. 이렇게 돼야 됩니다.

주고받은 만큼 대상의 기대가 벌어져 나온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해 주시는 주인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인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그분에게 의지하려고 그런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남을 위하여 염려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그곳에, 하나님은 자기와 닮았기 때문에, 상대적인 형태가 갖추어졌기 때문에, 오시지 말래도 오시는 것입니다. 선한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말래도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원본을 보게 되면 대상의 가치니, 대상이니 하는 내용까지도 전부 다 달리 해석하고 있다는 거예요. 주고받으면 반드시 상대성이…. 주고받은 만큼 대상의 기대가 벌어져 나오는 거라구요. 거기에 해당하는 만큼 하나님을 중심삼고, 선을 중심삼고, 참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렇게 움직이면 그것은 남아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슬픈 사람을 위해서 동정해 주는 사람이 슬픈 사람의 친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가정에서 자식들이 왜 불효하느냐 하면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발이 벌어지면 바라던 기준에 해당한 만큼의 반발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그런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러므로 그 이상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으로써 그들이 포섭되는 거라구요. 세상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힘이나 수단 가지고는 절대 안 돼요. 마찬가지로 모든 정성과 인연맺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래야 된다구요. 그래서 선생님이 요즈음에 와서 시간만 있으면 여기에 오는 거라구요.

청평은 뭐 좋기도 좋지만 말이야, 청평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래도 내가 큰 계획을 하느니만큼, 누구보다도 정성을 들여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관이기 때문입니다.

수택리에 대해서는 이미 책임을 다했다는 것을 70년도에 선포했다구요. 대통령의 결재로 군수산업을 발전시키게 되었다구요. 왜냐하면 앞으로 하나님의 큰 계획이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 내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기도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리라고 하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약속이 끝날 때까지 내가 책임을 다한 거라구요. 그래서 거기에 온갖 정성을 다했다구요. 이래 가지고 이것이 일단락되었다구요. 옛날에는 내가 하루에 세 번까지 갔다왔다했어요. 알겠어요?「예」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교회에 대해서 그렇게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 있으면, 여러분들이 교단이면 교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단상을 지키는 데 있어서 세 번 이상 자기 아내와 같이 그것을 붙안고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지 운세가 운행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원리 활용법이예요. 원리 이용법이라구요. 알겠어요?「예」

여러분들이 못해도 3년은 그 교단을 붙들고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눈물 흘리게 되면, 거짓 눈물이라 해도 동정하는 사람이 생겨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정성들이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지의 이치입니다. 그것이 틀어지는 날에는 통일교회 문선생은 벌써 망했어야 된다구요.

거기에는 외로운 게 없다구요. 만약에 자신의 상대를 사랑하는 데 제삼자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상대를 사랑하는데 제삼자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어요? 없지요? 나만이, 나만이 상대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욕망이라구요. 정서적인 욕망이라구요. 본질적인 욕망이라구요. 이것이 창조적인 욕망이라구요. 하나님도 인간을 상대적인 입장에 세워 '나만이 사랑하겠다'고 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아, 천사장. 너도 와서 같이 구경하고, 너도 조금 나눠 먹자'고 한다면 타락이라는 것을 공인하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복귀니 무엇이니 그런 놀음을 할 필요가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 상대라는 것은 나만이 간섭하고, 나만이 사랑해야 됩니다. 이것이 원칙이라구요. 안 그래요?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내가 출세할 수 있는 기반이라는 것은 제 2대상권입니다. 그러려면 나만이 사랑해야 돼요. 나만이 사랑해야 됩니다. 여기에는 누가 다시 와 가지고 스승이 될 수 없습니다. 절대적이라구요. 그래 그 사람이 떠났지만, 천리길 멀리 간다고 해서 떠난 것이 아니라 더 가까와진다는 거예요. 마음으로는 더 가까와집니다.

그런 마음으로 여러분이 어떤 교회에 교역장이면 교역장으로 거기에서 봉직하다가 특별히 색출돼서, 혹은 영전되어 간다 하면, 식구들이 천리길도 멀다 않고 따라가는 거라구요. 이렇게 여러분이 10년, 20년 교역장을 해 가지고 그런 심정적 유대가 되어 천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갈 수 있는 무리가 그 문전에 많으면 많을수록 그 후손은 흥하는 것입니다. 왜그러냐? 여러분은 팔도를 지니고 사는 대한민국 사람이라구요. 따라서 대한민국 사람들이, 팔도 사람들이 정성을 들여 주고 흠모해 주는 날에는 그 집안에 오래지 않아 주권자가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것은 원리적으로 그렇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면 대한민국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됩니다. 그런 것이 원칙이라구요.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팔도에 공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는 팔도에 공을 세웠기 때문에, 팔도인들이 그 사람을 위해서 성공을 축원하고, 복을 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랑해 주시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후손 가운데 7대에까지 안 가고 몇 대 이내에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주인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말인지?「예」

하늘의 사랑의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메시아사상

지금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세계를 사랑하자는 거라구요. 세계를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지요. 어떻게 사랑할 것이냐? 얘기해 보라구. 여러분은 '사랑한다면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늘의 사랑을 하고 싶다. 원리를 중심삼은 하늘의 사랑을 하고 싶다'고 할 거예요. 그러면 하늘의 사랑을 어떻게 하느냐? 문제가 그거라구요. 어떻게 하느냐? 사랑을 하고 싶지만 어떻게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 하는 길, 사랑의 세계로 갈 길을 개척해 주기 위한 것이 메시아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 메시아의 사명입니다. 이 똥 구더기같은 만민을 구해서 뭘해요? 하나님 앞에 사랑의 대상이 안 되는 그런 사람들이 됐다간 영계에 가서 전부 다 뜯어먹히게요. 도둑놈 같은 것은 전부 다 싹 뜯어 버려야 돼요.

서로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미치고, 미치고도 기뻐하고 미쳤어도 미친 것으로 보지 않고 더 좋아할 수 있는 사랑의 길을 닦는 것이 메시아의 과업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사랑하느냐 하는 것을, 어떻게 사랑하는 그 길을….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 하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 메시아의 전통적 사상을 본받아 가지고 그렇게 따라가게 되면 그 나라에 가는 것이요. 그렇게 못 따라가게 되면 그 나라에 못 가는 것입니다. 간단하다구요.

여러분은 마음도 없는 곳에 가라면 가겠어요? 선생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선생님이 가는 곳에 가고 싶지, 사랑도 안 하는데 가고 싶겠어요? 가고 싶어요. 안 가고 싶어요? 「안 가고 싶습니다」 안 가고 싶다는 거예요. 또, 선생님도 그렇다구요. 사랑하려고 하는데 상대를 안 대해 주면 안 될 책임이 있다구요. 알겠어요? 안 대해 주면 안 될 책임이 있다 이거예요. 여러분도 그렇다구요.

여기에 한 사내가 있고, 귀족의 딸하고 종의 딸이 있다고 합시다. 귀족의 딸은 그 사내에 대해 관심도 안 가지고 그 사내는 많은 사내 중의 한 사람이다 이렇게 본다구요. 그렇지만 종과 딸은 많은 남자 중의 남자다, 이래 가지고 아침 저녁 할 것 없이 그야 알아주든 몰라주든 정성을 들이는 거예요. 그렇게 정성들이는 것이 알려지게 될 때는 그것이 통하는 날에는 그 남자가 어디로 말려들어 가느냐? 귀족의 딸이 암만 허우대가 좋고 외면적인 것을 모두 갖추었다 하더라도, 정성들여 주는 그런 맛을 알게 된다면 남자는 교만해질 수 없습니다.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거예요. 미안해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미안해지게 되는 거예요. 그 미안해진다는 것은 벌써 점령당했다는 말이라구요.

이렇게 정성에는 모든 소원성취가 안 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이 맞는 말이라구요. 한국의 격언에도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말이 있지요? 다 맞는 말이라구요. 교만에는 전부가 이탈이요, 배타요, 배반입니다. 이렇게 되는거라구요.

여러분 선생님을 좋아해요?「예」 좋아는 하지만 사랑할 줄은 모르지요? 선생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리라구요. 얼마만큼 사랑 하느냐? 자기 여편네보다 더 사랑해요? 문평래! 어때? 실감이 안 나지? 자기 아버지 어머니 이상 사랑해 봤어요? 실감이 안 나지? 원리는 그런데 내용은 안 그렇다는 거예요. 그것은 여러분이 아직까지 두 세계에서 한 세계에로 갈 수 있는 해결점을 보지 못한 거예요. 여러분들은 중간 입장에서, 삼팔선에서 왕래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하늘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책임자들이 그렇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불쌍한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내가 여러분을 만났으면 만난 사람으로서. 인연이 있으면 인연이 있는 만큼 여러분이 그 인연을 거쳐온 이상 내가 책임을 다 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면 나는 여러분들 앞에 참소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제일 염려하는 것이 그거라구요. 여러분들 앞에 제일 고생했다는…. 여러분 고생했다고 말하지요? 어디 '나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고생했다' 하는 사람 손들어 보자. '나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몇 해 동안 고생했다' 하는 사람, 자기 마음에 '나는 고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있을 거라구요. 그렇지만 선생님 앞이라 할수없으니 눈을 껌벅껌벅 하고 이러고 바라보지, 마음속 복판에서는 전부 다 '나는 고생했다' 이럴 거예요. 고생해 가지고 뭘했느냐? 고생했으면 고생한 대가가 있어야지, 문제가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거라구요.

적선이란 천주의 복을 이어받기 위해 다리 놓는 것

자, 그러면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사랑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선생님은 어떠했느냐? 선생님은 여러분을 대해서 죽도록 사랑했다구요. 대한민국을 죽도록 사랑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저 남해 말단의 섬에 있는 섬사람을 찾아가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구. 누구보다도 개인을 대해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그렇기 때문에 거지가 찾아와도 그 거지를 중심삼고 밤새워 얘기도 하고, 거지가 아침에 배가 고파 문전에 찾아오면 내가 맛있는 진수성찬이 차려진 상을 받았다 할 때에 내가 밥을 못 먹는 한이 있더라도 그 상을 거지에게 내다 주었다구요.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라구요.

그런 것은 우리 가문이 그래요. 몇 대로부터 그런 가풍이 있다구요. 우리 집은 팔도 사람들에게 밥을 참 많이 먹였다구요. 더우기나 전라남북도 사람들, 전라도가 앞으로 선생님을 많이…. 그런 관점에서 전라남북도 사람들을 중심삼고 뜻이, 통일교회가 많이 발전하리라 생각하고 있다구요. 여기에 경상남북도 사람들도 있지만 옛날에 만주 가느라고 왜정 때에 난민들이 경상남북도 특히 경상북도 사람, 전라남북도 사람들이 만주에 가느라고…. 정주라는 곳은 평양에서 신의주까지는 2백 여 킬로미터, 550리 가량이 되는데, 정주는 그 중간쯤 되는 곳이예요. 평양에서 280리 정도 돼요. 신의주로 가는 길을 찾아가는데 국도밖에 모른다구요. 그렇게 가는데 가는 사람들은 전부 다 걸어간다구요. 돈이 있어서 차 타고 갈 사람들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빗 같은 것을 팔면서 만주로 간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전부 밥을 먹여 주었다구요.

우리 집은 일년 살림살이 계획을 하게 되면 절반은 남을 위한 계획을 했다구요. 그런 가풍이 있다구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밥을 먹여 주었다구요.

그래 선생님도 1971년도 전까지는 누가 와서 밥을 먹더라도 금하지 않았다구요. 밥을 얻어먹으러 왔는데 우리가 못 사는 사람들이라 해도 못사는 사람들을 대해서 동정해 줘야 된다는 거예요. 거지들까지도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맘대로 밥을 얻어먹고 가게 했다구요. 어느날 거지에게 밥을 주었는데 보리밥이니까 나가다가 쓰레기통에 밥을 던지고 가는 것을 봤다구요. 그걸 보면 통일교회보다 잘산다는 말이라구요. 그런 놀음을 하면서 나왔다는 것은 통일교회가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먹여 주는 교회가 아니냐는 거예요. 여러분도 앞으로 그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여러분이 배고픈 사정을 안다는 거예요. 배고프다면 죽어가는 사람들까지도 먹여 주어야 된다구요. 하나님이 배고픈 사람을 먹여 줘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구요.

여러분이 지나가다 길가에서 배고파하는 사람을 보거든 반드시 밥을…. 자기 남편의 밥을 다시 지어 주는 한이 있더라도…. 여편네가 그런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팔도 사람, 동네 사람들에게 많이 먹였기 때문에 그 동네 사람들이 복을 빌어 주는 거예요. 망하면 안 된다구요. 그렇지요?

'적선하라 적선하라' 하는 것은 왜 그러느냐? 천주의 복을 이어받기 위한 다리를 놓게 하기 위해서 하라는 거예요. 이 모든 것이 원리적으로 풀려 나간다구요. 이것이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그렇지요?「예」

주는 데는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하늘과 더불어 주어라

여러분들도 그래요.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보라구요. 뭐 지금 60년대와 같이 발전했어요? 더 낙후되었다고 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그렇지만 선생님이 지금까지 소수의 무리를 가지고 국가라든가 세계적인 무대에 있어서 통일교회는 발전한다는 이러한 기준을 어떻게 지탱해 나왔느냐? 이것은 기적입니다. 그것 자체가 기적인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자, 그러면 왜 그렇게 되었느냐? 여러분이 진짜 뜻을 사랑했느냐? 한번 비판해 봐요. 뜻을 사랑해 봤어요? 뜻이 뭐냐? 뜻은 영원한 상대권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렇지요? 내가 뜻에서 나서 뜻에서 죽어야 할 것이 아니냐? 뜻은 내가 사는 한 나의 생활무대가 아니냐? 내 생활의 영원한 터전이 아니냐? 그러니 그것을 위해서 얼마나 사랑했느냐? 환경 속에서 사랑을 언제나 갖지 못한 사람은 고독한 사람입니다. 안 그래요? '그런 환경이 되어 있어야지' 하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환경이 그렇게 돼 있어요? 내가 사랑을 느끼고 사랑의 세계를 향하여 출발하게 돼 있지요. 그 사랑을 느껴 가지고, 사랑해 가지고 '나는 사랑을 느끼고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하는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주체는 누가 될 것이냐? 사탄이 그 주체가 되는 날에는 사탄나라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이 주체가 되면 하늘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주체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영향을 미쳐야 되는 것입니다.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뭐냐? 줘야 되는 것입니다. 줄 때 그 사람이 우는 것이 아니라 '하-' 입을 벌리고 영원히 좋다고 웃어야 됩니다. 이래야 된다구요.

그러면 주는 데는 어떻게 줘야 되느냐? 먹다 남은 찌꺼기를 줘서는 안됩니다. 알겠어요? 먹다 남은 찌꺼기를 주게 되면 먹고 나서도 기분 나빠 침을 뱉는다구요. 떡을 주더라도, 다섯 개가 있으면 다섯 개 가운데 이것 저것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줄 때는, 차라리 안 주는 것보다 더 기분 나쁘다는 거라구요.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안 준 것보다 나쁘다는 거예요. 남에게 주는 데 있어서 다섯 개가 있으면 절반쯤 그냥 집어 주면 그래도 고맙다고 하지, 이것 저것 집었다가 주면 신세를 지는 사람이 신세지고 나서 평한다구요.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주는 데에는 어떻게 주느냐? 하나님과 더불어 주라는 거예요.

하나님과 더불어 주는 것은 어떤 것이냐? 부모의 심정을 가진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종의 몸을 쓰고…. 몸은 왜 종의 몸을 써야 되느냐? 종을 구하려니 종 이상의 종이 돼야 된다구요. 세상에 있는 인간들이 종의 자식들이 아닙니까? 그런 종을 하나님이 구하려고 하니, 하나님이 종을 사랑하려니 얼마나 어렵겠느냐 이거예요, 그게 쉬울 것 같아요?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완수하려면 원수의 자식을 더 사랑해야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보면, 하나님이 종을 사랑하시는 데는 옛날에 타락하지 않은 아담 이상 사랑하시지 않고는 복귀의 길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에게 있어서 일대 사랑의 원칙에 없는 혁명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괴롭겠느냐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사랑으로 타락한 인간을 사랑으로 복귀하려면, 타락으로 종이된, 원수의 씨앗이 된 이들을 사랑하는 데는 옛날 아담 해와보다 더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도 못 할 노릇입니다. 하나님도 못 할 놀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한꺼번에 못 하겠기 때문에 역사를 두고 다리를 놔 가지고 거쳐 나오는 것이 아니냐? 그거라구요. 그러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좋은 데서부터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지 말아야지, 여러분이 좋아하는 데 있어서 정상적으로 '아이고 좋다. 어서 오소' 하면, 하나님이 절대 안 온다는 것이 원칙이라구요. 알겠어요?

한번 얘기해 보라구요. 자기의 외동아들을 죽인 원수에 대해 자기가 사랑하던 그 아들 이상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어떻게 나올 수 있어요? 여러분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럴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원리를 보라구요. 그렇게 됐나, 안 됐나? 원리가 딱 그렇게 됐다는 거라구요. 그럼 복귀하려면 무엇으로? 사랑의 이상세계를 복귀하고, 사랑의 아들딸을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를 대하던 이상의 마음을 가져 가지고 불쌍히 여기고, 사랑할 수 있는 동기를 발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에게 가까운 사람들을 죽여 가지고 동정을 키워 나오는 것이 복귀역사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위해서 죽고,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따라가겠다고 하는 입장에 서서, 그 마음이 유발되지 않는 자리에서 따라 나오더라도, 죽으면서 '아버지, 아버지!´ 하게 되면,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심정에 '오냐. 너는 타락한 아담보다 낫지 않느냐? 내 자식보다 낫지 않느냐?´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 길로 아니 내보낼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희생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거기서부터 심정복귀, 천국복귀의 출발이 벌어지는 것이지. 그것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복귀역사를 보면 선생님 자신도 그렇다구요. 선생님 자신도…. 하나님의 심정복귀를 지상에 실현하기 위해서…. 어디에 가든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심정문제라는 거예요. 네가 네 자식보다 진짜 더 사랑할 수 있느냐? 네 외동아들을 집어 던지고 그 아들 이상 사랑할 수 있느냐? 그 사랑하는 것을 어디서부터 느끼느냐? 선생님을 따르게 하나님이 역사해 가지고, 혹은 계시로…. 맨 처음에는 전부 다 계시로 만난 거라구요. 이 할머니들은 전부 다 선생님이 전도해서 만난 것이 아니라 영계에서 가르쳐 줘 가지고 만난 것이라구요.

그런데 만난 그 사람들을 주위에서 디리 치는 거라구요. 반대하는 거예요. 여편네가 들어오면 남편이 반대하고, 자식이 들어왔으면 부모가 반대했다구요. 어떤 때는 머리카락이 깎여 오지 않나, 다리가 부러져 오지 않나, 팔이 부러져 오지 않나. 이랬기 때문에 선생님을 붙들고 잉잉 울면서 '선생님 죽더라도 우리는 가야 되겠습니다'라고 한 거예요. 여기에 있어서, 이들은 자기 자식보다도 누구보다도 나라를 위하고 공적인 면을 위하는 데 '우리는 죽더라도 가야 되겠다'는 심정이 싹트게 됐다구요. 매를 맞고,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지고, 형편없는 그런 입장에서도 '나는 죽더라도, 우리는 망하더라도 선생님이 원하는 뜻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어야 될 것이 아니요?'라고 한 거예요. 거기에서 '오냐!오냐! 네가 암만 종이라 해도 옛날에 타락한 아담 해와보다도 낫지 않느냐?´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복귀는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아들딸 자기 부모보다도 뜻을 더 사랑하였느냐가 문제입니다. 이것이 사실로 증명되어야 된다구요. 그것이 여러분이 정상적인 심정의 출발 기준을 세우느냐 못 세우느냐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고 기원이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역사시대, 혈족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여러분이 축복받았다는 패들이 아들딸을 낳고 그런 입장에 있지만, 앞으로 어느때든지 여러분이 역사적 혈통권내에 그런 심정적인 인연을 가졌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게 되면, 그 혈족은 사탄과…. 이것이 곤란하다는 거라구요.

앞으로 사탄세계와 이상천국의 중간 패가 생겨난다는 거예요. 낙원 패가 생겨난다는 거예요, 통일교회에. 알겠어요? 사탄세계, 낙원세계, 천국세계가 생겨난다 이거예요. 이것이 원리원칙이예요.

그러면 선생님의 그 심정을 어떻게 느끼느냐? 진짜 네가 사실 그러냐 이거예요. 여자면 여자를 대해 가지고 자기, 여편네가 있고 아들이면 아들을 대해 가지고 자기 아들이 있는데 진짜 여편네보다 아들보다 선생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 사랑할 수 있는 아들보다도 더 갖추어 가지고…. 복귀의 소망은 제물적인 소망이지, 온전한 소망이 아니라구요. 탕감복귀한 후에 소망이 생긴다는 거예요. 복귀하기 전 소망은 희생 소망이지, 그것은 외상 소망이지 소망이 아니라구요. 그 소망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보다 못난 사람들을 사랑하고, 절망 가운데서 소망을 갖고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사랑하지 못할 환경 가운데서 사랑하고 나와야 된다 이거예요.

심정의 3단계를 넘어서려면 3대를 초월해야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참부모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3대를 초월해야 됩니다. 복귀역사는 소생, 장성, 완성 단계를 거치지요? 따라서 3대를 초월해야 됩니다. 증조 할머니뻘 되는 여자를 자기 상대로 맞을 수 있는 심정적인 훈련을 받지 않고는, 이 땅 위에서 이상적인 책임을 할 수 없습니다. 안 그래요? 그렇잖아요? 역사는 소생역사, 장성역사, 완성역사지요? 그러니까 3단계로 말하면 어머니, 다시 말하면 여편네, 할머니, 증조 할머니 이 3대를 중심삼고 사랑하는 데 있어서 거리낌없이, 싫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할 때 내가 당연히 가야 할 길로서 생각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진 사나이가 아니고는 메시아의 사명을 못 한다는 것이 원리관이라구요.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 길을 나설 때에 미인 여자를 어머님으로 삼겠다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구요. 지금 사지판에 있는, 운명이 경각에 달린 그 할머니가 내 하나밖에 없는 상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을 붙들고 하나님의 모든 공의의 논의도 할 수 있는 심정을 어떻게 갖고 나오느냐 하는 문제를 찾을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3대를 초월하여야 됩니다. 3단계를 넘어서야 됩니다. 심정의 3단계를 넘어서야 됩니다. 그러려면 증손자에서부터 증조할아버지, 즉 나를 중심삼고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까지 3대를 초월해야 되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20대에 못 만나더라도, 20년을 지나 80세 이상을 중심삼고라도 자기를 누구보다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상대를 발견할 수 있느냐 없느냐…. 문제는 그거라구요. 그러려면 나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여자를 택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나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여자, 남자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여자를 택해야 합니다. 그렇게 나를 위해서 충성하는 할머니가 있으면 그 할머니를 붙들고 이상적인 사랑의 대상적인 존재로서 사랑할 수 있다 하는 마음을 유발시키지 않으면 복귀세계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원리적인 기준이라구요.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

임자네들 앞으로 영계에 들어가게 되면 선생님 앞에 얼굴을 못 든다는 거예요. 그래도 선생님이 임자네들에게 격식에 맞는 여편네들을 전부 다 택해 줬지요. 그런데 이것을 뒤죽박죽해? 그런 녀석들은 핑계를 대도, 안 듣고도 벌써 안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럴 때가 온다구요. 앞으로 전부다 법적으로 처리할 때가 온다구요. 그야말로…. 두고 보라구요. 하나님이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한 것도 안 보시려고 6천년 동안 뒤넘이쳐 나오시는데, 선생님이 복귀의 해원성사를 하기 위하여 비참한 가운데 수많은 희생자를 내 가지고 해원성사의 하나의 소망의 터전을 세워 놓았는데, 축복가정이라는 패들이 자기 멋대로 바람을 피워 가지고 잘 될 것 같아요? 자기 70대까지의 선조가 걸린다구요. 그렇게 돼 있다구요.

자,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책임자들은 할머니들을 그 누구보다도 존경하면서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80세가 넘은 할머니가 있으면 자기 증조 할머니 이상 존경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60이상 된 할머니들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40이상 된 아주머니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 사랑을 거치고 나서야 30대에 들어와 가지고 예수님이 대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 80노인 안나가 예수님을 위해서 증거했어요. 왜 그랬는지 알아요? 심정적인 기준에서 '어린 예수를 위해서 나는 죽습니다' 하는 길을 거치지 않고는 예수가 20대가 되어 가지고 정상적인 상대를 못 만난다는 거예요. 해와와 세 천사장이 전부 다 타락하지 않았어요? 세 천사장이 동방박사 세 사람이라구요. 그러므로 그것은 에덴 동산에 있어서의 세 천사장과 해와를 복귀한 형이라구요. 그 다음에 양치는 목자를 중심삼고 모든 천군천사라고 하는 것은 뭐냐? 천사세계를 상징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이 예수 앞에 귀결되어 가지고 죽더라도 영원히 그와 더불어 있으면 된다는 거예요. 동방박사 세 사람은 예수를 증거하고 도망가라는 게 아니었다구요. 만일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하게 되면 동방박사 세 사람이 합세해 가지고, 공모해 가지고 요셉과 마리아와 예수를 그 나라에 데려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어떻게 됐겠어요? 그들은 동방박사이니만큼 삼국을 연결시킬 수 있는 대표자로서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그래도 그 사회에 있어서 국경을 마음대로 넘어다닐 수 있는 최고의 실력자들이 아니냐? 만약에 그런 세 사람이 마리아와 요셉과 하나돼 가지고 예수를 모시고 키웠더라면 마리아가 협조 못 했겠어요? 어림도 없다는 거라구요. 문제는 이런 원칙에서 전부 다 엇갈린 거라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문제는 심정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지방에서 활동하는데 왜 실적이 안 나오느냐? 악착같지가 않아요. 간절하지가 않아요. 배고플 때에 밥을 간절히 사모하는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나지를 않아요. 그런 마음이 나나요? 밥을 먹는 것은 실감이 나지요? 문제는 여기에 있는 거예요.

오시는 주님은 3시대의 사명을 다해야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사랑하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그것은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원리적인 방법을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지금 통일교회에도 세 할머니가 있지요? 그들은 세상에서 절대 하나될 수 없는 패들이예요. 일본에서도 지금 3위기대를 맺어 준다구요. 그들은 세상에서 절대 하나될 수 없다구요. 세상 같으면 셋이 같이도 안 앉는다구요. 탕감해야 돼요. 이렇게 됐기 때문에 하나 만들어야 됩니다. 그런 놀음을 해야 된다구요.

그러면 오시는 주님은 어떤 분이냐? 오시는 주님을 보게 되면 이 한 남자를 중심삼아 갖고…. 땅 위에 해와가 남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첫번째로 남편을 잃어버린 여자가 생겨났다구요. 그렇지요? 그 다음에는 예수를 중심삼아 가지고 실패했기 때문에 두 번째로 남편을 잃어버린 여자가 생겨났다구요. 그렇지요? 그 다음에 세째번 소망으로 올 수 있는 것이, 세째번 남편으로 올 수 있는 분이 재림주님이라구요. 따라서 세번째로 오는 남편을 맞으면 새생명을 얻지만 이것이 틀려지게 되면 세번째로 남편을 잃은 여자가 생긴다구요.

이것을 어떻게 하나 만드느냐? 이것이 어떻게 하나되느냐? 보라구요. 해와는 마리아가 복귀해야 되고, 마리아는 예수의 신부가 복귀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다시 말하면, 소생은 장성이 복귀해 줘야 됩니다. 그렇지요? 예수는 장성이 아니예요? 예수를 후아담이라고 하지요? 둘째번이라구요. 장성은 누가 복귀해 줘야 돼요? 완성이 해줘야 된다구요. 그래서 선생님은 3시대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구요. 완성급 장성만 복귀해 주는 것이 아니라 소생까지 복귀하려니 구약시대부터 문제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아담 가정부터 문제되는 거예요. 아담 가정하고 예수 가정이 문제가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선생님이 그것을 바로잡아야 되고, 그 다음에는 거기에 연결된 선조들이 모든 것을 전부 다 묶어 놓아야 되는 거라구요.

그럼 그것을 어떻게 묶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은 상징적인 대표로서 세 할머니를 중심삼고 나온 거라구요. 선생님이 이북에 들어가 가지고 뭘해 나왔느냐? 여기 김원필 전무 하나를 찾고, 그리고 여자 셋을 데리고 나온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천사장을 잃어버렸고, 여자를 잃어버렸지요. 여자가 3시대를 거쳐 실패했기 때문에 세 여자가 하나된 기준에서 사위기대를 세워 가지고 나와야 된다구요. 그렇게 해 가지고 남한에서 출발한 거라구요. 원리가 전부 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여러분, 축복받은 가정들 전부 다 3위기대를 만들어 놓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3위기대끼리 하나 안 되면 안 되는 거라구요. 남자들도 3위기대끼리 하나 안 되면 안 된다구요. 여러분은 천사장 부부들입니다. 타락한 천사장이 복귀된 부부들입니다. 내가 어저께도 얘기한 것같이 복귀된 천사장 부부가 본연의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모시는 자리에 서야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천사세계 상대이념권을 갖춘 형이 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원리에 들어맞는 거라구요. 임자네들이 원리를 알기나 해요? 원리를 아나?

타락 인간은 왜 3대심판의 과정을 거쳐야 하나

여러분들은 3대 심판권을 지나가야 돼요. 3대 심판권을 지나가야 된다구요. 진리심판, 인격심판, 심정심판, 타락하였기 때문에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진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진리는 뭐냐? 말씀이라구요. 그렇잖아요? 또, 타락 때문에 인격을 잃어버렸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가지고 인격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정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대심판의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말씀을 찾아 가지고 말씀과 일치될 수 있는 실체를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진리는 어디에 있느냐? 참다운 진리와 하나된 실체가 없기 때문에 지상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된 실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내용을 갖춘 인간을 대표해 보낸 것이 메시아입니다. 메시아가 와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실체가 일치되어 복귀하면, 아담이 살아 가지고 완성 단계에 올라간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3대요인입니다. 그러니까 진리심판이 있다구요.

그 다음에 인격심판은 무엇이냐?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사탄을 굴복시키는 데는 무엇을 갖고 굴복시키느냐? 말씀하고 하나된 기준을 가지고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타락은 뭐냐? 말씀하고 분립된 것입니다. 하나 못 된 것이 타락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탕감복귀원칙에 있어서 말씀을 중심삼고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인격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인격이 복귀되었다는 것은 무엇이며 말씀과 하나되었 다는 것은 무엇이냐? 타락하지 않은 사람의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 타락하지 않은 사람은 천사장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일선에 나가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키고 돌아오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허락받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것이 공식이라구요. 원리가 맞아요, 안 맞아요? 맞아, 안 맞아, 이 녀석들아! 「맞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원리시험에 패스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됩니다」 이것을 못 하게 되면 영계에 들어갈 때 천사들이 딱 지키고 서서 물어 보는 거라구요. 3대 시험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시험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영계에 들어갈 때는 3대 시험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3대 시험을 하는데, 선생님이 누구를 내세워서 할 것이냐? 두 가지가 남았거든요.

그 시험이 뭐냐? 예수 자신이 되었느냐 하는 거예요. 전부 다 그거라구요. 개인복귀형, 가정복귀형, 대상복귀형, 세계복귀형을…. 그건 어떻게?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전부 다 깨져 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만 있으면 돌로 떡을 만들 수 있는 것이요. 성전 꼭대기에서도 뛰어내릴 수 있는 것이요, 세계를 전부 자기 것을 만들겠다는 교만한 자를 머리 숙이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겠다는 이런 기점에서 사탄을 대했기 때문에 사탄을 굴복시키고 메시아로서의 출발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인격심판에 승리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의 출발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런가,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죽더라도 이 원리는 적용됩니다. 여러분이 암만 싫다고 했댔자 적용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들어오는 사람마다 왜 전부 다 일선으로 내쫓느냐? 사탄이하고 싸워 가지고 이기고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몇 사탄이냐? 열두 사탄은 이기고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도 그 대표자가 열두 제자가 아니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제자가 아니라구요. 사탄이예요, 사탄. 실제 사탄 세계적 대표형입니다. 거기에 있어서 3년 동안 천신만고 수고해 가지고 정성들였지만 여기에 사탄은 끝까지 최후의 세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해와 국가 일본을 중심한 사탄편과 하늘편의 대결

이러한 기준이 있기 때문에, 춘하추동을 중심삼고 보면, 최후에 남아질 역사시대는 어떻게 되느냐? 사탄과 같은 세 녀석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사탄편 아담형, 사탄편 해와형, 사탄편 천사형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아먹을 때 혼자 팔아먹은 것이 아니예요. 거기에 쑥덕쑥덕 공모하였던 제자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없었을 것 같아요? 있었다는 거라구요. '예수가 어떻고 어떻고…' 평했다는 거라구요. 평도 안 하고 팔아먹었을 것 같아요?

끝날이 돼 가지고, 그들이 오늘날 공산당이라는 거예요. 김일성이하고 중공하고 소련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란 무엇이냐 하면 춘하추동을 두고 볼 때, 겨울절기 문명입니다. 이렇게 됐거든요?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북풍한설이 불어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에 있어서 생명력이 남아져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최후에 이것을 밀어젖히고 밀어내느냐 하는, 즉 이 세계의 운세가 넘어가느냐 되돌아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운세의 싸움이 끝날에 벌어집니다. 이 세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는 부딪혀야 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디를 중심삼고 부딪칠 것이냐? 사탄편의 세 사람은 예수를 중심삼고 부딪치는데, 예수는 무엇을 중심삼고 왔느냐? 사탄편의 세 사람들과 싸우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해와를 찾기 위해서 왔습니다. 이렇게 된 거예요. 알겠어요? 그래서 해와를 중심삼아 세 사람, 사탄편 세 형이 부딪치고, 또 하늘편 세 형이 하나의 여성국가를 중심삼고 부딪치는 것입니다. 이 여성국가가 현재 세계정세에 있어서 일본입니다. 알겠어요? 일본입니다.

일본을 놓고, 북괴도 자기 수중에 넣기 위해 지금 일본 무대를 노리고 있는 거예요. 중공도 일본 무대를 노리고 있어요. 그렇지요? 소련도 일본 무대를 노린다는 거예요.

세계정세가 왜 이렇게 되어야 되느냐? 우리 통일교회 원리로 보면. 하나님의 뜻을 세계와 일치시키는 세계적인 최후의 교단이 나타나는 역사적 종말시대가 와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해와 국가, 일본이 해와 국가라구요. 해와 국가는 어떻게 되느냐? 사탄편 셋이 달려드는 것입니다. 왜? 이것이 예수의 상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해와는 예수와 사탄편 앞에 있어서 지금 죽느냐 사느냐 하는 입장, 시집을 어디로 가느냐 하는 입장이라구요.

그래서 예수도, 남한의 이 통일교회도 지금 현재 장가가려고 한다구요. 그렇잖아요? 그 다음에 미국도 여기에 후원하려고 한다구요. 미국이 지금까지 일본을 거느렸다가 일본을 내놓은 것은 뭐냐 하면 본남편을 찾아 가라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지금 한국은 어떻게 되느냐? 한국이 지금까지 미국의 관리권내에 있다가, 미국의 보호권내에 있다가 이제는 미국을 믿지 못하고 일본을 믿어야 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편과 아내가 만날 수 있는 입장에 서라'는 것입니다. 천사장의 관리에서 벗어나 가지고 본연의 권위를 찾아 세우는 남편의 행세를 할 수 있는 때가 됐다는 거라구요. 이것이 바로 이 정세라구요. 그럴 때는 남북이 갈라졌던 것이, 가인 아벨 역사가 전부 다 깨져 나가는 거라구요.

그래서 '남북이 교류하자' 원리적으로 딱 그렇게 돼 있다구요. 정보부장은 이남에 있어서 두 번째지요? 정보부장은 2인자라구요. 2인자가 가 가지고 전부 다 조종하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이것은 전부 다 원리에 있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전부 지휘하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제3차 세계 복귀노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금년 운세가…. 천도에 박자 맞추는 놀음이라구요. 알겠어요? 이래서 김일성이가 쫓아 버렸어요? 환영을 했다는 거예요. 따라서 그 마음만 갖고 나가는 날에는, 여기에 주인으로서 등장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혁명정부는 뭐냐? 천사장 정권입니다. 3정권, 복귀역사로 보게 된다면 아담 정권시대, 해와 정권시대. 천사장 정권시대 이것이 복귀돼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박사는 아담형이라구요. 장면 정권은 해와형이라구요. 박순천이라는 여자가 당수가 되었다구요. 해와형 정당이라구요. 그리고 혁명정부는 뭐냐 하면 천사장형이라구요. 군대라구요, 군대. 그렇지요? 군대는 3단계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있으면 대통령의 힘의 유지를 위해,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경찰과 그 다음에는 군대를 잡는 거라구요. 그렇게 안 돼 있어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어쩌면 통일교회 원리와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의 조총련과 민단의 싸움이 갖는 의미

그러면 일본이 시집가야 할 텐데 벌거벗은 여자가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추파를 던지는 거라구요. 김일성이도 추파를 던지는 거예요. 여러분이 앞으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지금 내가 제일 염려 하는 것은, 일본의 조총련이 지금까지 폭동현상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제일 염려하는 것은 일본의 조총련이 민단을 전부 손아귀에 집어넣는 날에는 한국은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일본이 어디로 가느냐? 일본이 대번에 어디로 가느냐 하면 북괴하고 손잡습니다. 지금 현정세에 있어서, 남북통일방안을 제시한 이때에 있어서, 만약에 일본이 북한하고 하나되는 날에는, 일본에서 공산당을 중심삼은 조총련한테 민단이 흡수됐다 하게 되는 날에는 어떻게 되느냐? 일본 조야는 물론하고 국민들이 '아하, 한국은 어차피 공산당한테 먹힌다' 하게끔 하는 그 결정적 증거물을 제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남한하고 교류하던 것을 끊고 북한하고 손잡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교차될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지금 선생님이 막으려고 하는 거예요. 그것을 못 막으면 결국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민단 전체가 북괴에 흡수되어 들어가는 날에는 남한이 남아질 것 같아요? 그래도 민단을 중심삼고 북괴를 흡수할 수 있는 동기적 결론은 무엇이냐? 공산당은 망하고 이남은 남아지기 때문에 북괴와 손잡을 것이 아니라 이남과 하나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시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경계선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민단 작전을 제일 시급히 서두른 거라구요. 이제 우리가 새로운 푯대를 세워 가지고 우리가 기를 들고…. 이제는 정부가 우리한테 부탁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일본한테 업혔다' 이거예요. 그 말은 무엇이냐? 이제는 우리를 안 내세울 수 없는 때에 들어왔다는 거예요. 이렇게 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때가 멀지 않았다구요. 이것은 선생님이 갖다 붙인 말이 아니라구요. 세계가 전부 다 원리적으로 풀려 나간다는 거예요. 이러한 시점에 지금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구요.

그러면 이제 여러분 자신들이 넘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2차 7년노정이 끝날 때까지는 넘어야 됩니다. 정 늦으면 3년이 연장됩니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래서 5년을 잡는다는 거예요. 멀지 않았다구요. 그러한 때를 맞아 가지고 우리 본부를 짓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한국에 지을 세계본부와 본국 식구의 사명

여러분. 5만평 정도 되는 세계본부를 지으려고 합니다. 한 평에 얼마씩 계약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예」 얼마냐? 「70만 원입니다」 한 평에 70만 원이면 얼마예요? 오칠은 삼십오(5×7=35)지요? 그럼 얼마야? 350억 원이라구요. 350억 원이면 지금 여러분이 아쉬워하고 어려워하는 것을 봐 가지고는 큰 자동차 공장을 만들 수 있다구요. 그것을 만들면 좋겠지요? 자동차 공장도 언제든지 만들 수 있다구요.

선생님이 하나님을 위해서 짓는 집은 앞으로 세계 사람들이 와서 살집입니다. 우리 본부에 있는 사람들은 한층이면 되는 거라구요. 한국은, 세계 사람을 위해 짓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세계를 사랑하자고 주장하는 우리들이, 세계를 누구보다 사랑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공장을 세계 어디에나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이 다 우리 공장이 된다구요.

그러면 본국이 하여야 할 일은 무엇이냐? 세계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세계를 하나님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세계와 같이 사랑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상이니만큼, 그것을 일치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렇게 사랑한 증거를 보여 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본부는 하나님을 위한 집이라구요. 선생님의 집이 아니라구요. 세계를 위한 집이라구요. 그러니 여기에 최고의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최후에, 필생의 모든 정성을 들여서 이것을 지으려고 하는 거예요. 자, 그래 가지고 만약에 이것이 완성됐다 하면…. 1982년도 전에는 완성될 거라구요. 어차피 이것은 완성되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어느 부자가 벼락을 맞아 죽어 가지고, 그 아들딸이 돈을 인계 받아 갈 길이 없어 길가에서 흐느적거리는 것을 영계에서 호출명령해 가지고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해서 귀신을 만들든가 해서 어떻게든 만든다구요. 알겠어요? 그것은 되게 되어 있다구요. 믿으라구요. 우선 믿으라구요. 「예」 나를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구요. (웃음)

여기에 있는 여러분 자체는 지금 서른 다섯 살 이상이 되는 사람이 불과 얼마 안 된다구. 1할 가까이 된다구요. 그 외에는 전부 다 서른 다섯 이하가 아니냐? 그래 10년 후면 마흔 다섯 이하입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10년 이후에 우리 본부를 5년 동안 짓는데, 짓기 시작하면 1년에 70억원 이라는 돈을 만들어 대야 되는 것입니다. 오 칠은 삼십 오(5×7=35)이니까 말이지. 그러니 70억원 이라는 돈을 1년에 지출할 능력이 있는 단체가 아니냐? 이렇게 된다구요.

자, 그러면 짓고 나서는 어떡할 것이냐? 70억이라는 자금의 루트가 어디로 갈 것이냐? 어디로 가겠어요? 어디로 가요? 공중으로 올라가겠어요, 땅을 파고 들어가겠어요? 그렇게만 되는 날엔, 그것은 영구적으로, 70억이 700억, 7천억으로 불어 나간다는 거예요. 그 돈을 다 뭘하느냐? 10년만 지나가면 너희들이 아무리 고생했더라도 선생님이…. 그런데 지금 너희들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구. 이 자식들. 대가리는 시시하게, 뭐라고 할까, 거지같이 주둥이를 끌고 다니는 녀석들, 나가겠으면 나가라는 거예요.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구요. '그래, 나가 가지고 10년 후에 두고보자, 이놈의 자식들. 너희가 지옥의 팔촌까지 동원해 가지고 노력해 성공한 그때의 기준하고, 내가 10년 후에 활개를 펴고 여러분을 도와줄 때를 비교해 보자. 문제도 안 될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때쯤 가게 되면 여러분에게 대번에 벽돌집 지어 주고도 남는다구요. 고급 자동차 한 대씩 전부 다 사 주고도 남을 수 있는 자원이 나온다구요. 알겠어요?

그것을 뭘할 거예요? 통일교회에서 뭘할 거예요? 그것을 팔아먹겠어요? 뭘하겠어요? 벌어서 뭘하냐는 거예요. 이러한 자원을 가지고, 우리가 하늘에 대한 집을 지었으니, 그 다음에는 땅에 대한 집을 지어야 될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래서 선생님도 집을 짓는 데에는 소생, 장성, 완성의 단계를 거쳐 집을 지어야 되겠다는 거예요. 이것은 선생님이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외국 손님들이 오기 때문에, 국가적인 체면으로 볼 때, 전세계에 부끄러움이 되겠기 때문에, 소생적인 집을 지어야 되고, 장성적인 집을 지어야 하고, 완성적인, 세계에서 제일 가는 집을 지어야 합니다. 여의도에 우리 본부를 다 지어 놓고서, 선생님이 집을…. 여기 한국에서는 몇억만 들이면 제일 가는 집을 지을 거라구요. 그렇지요?「예」

그러면 선생님이 지으면 그 다음에는 뭘할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에 공장을 만들어 가지고 번 돈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면, 그것은 하늘나라를 위해서 써야지요. 또, 하늘나라를 위해서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늘나라를 위해 수고한 공인, 공신들을 위해서 써야지요.'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럼 그 자녀들의 교육은 언제 하느냐? 한꺼번에 다한다는 거예요. 대학도 한꺼번에 다 지을 수 있다는 거예요. 10년만에 이 갓을 완성시키는 날에는 세계의 모든 문제, 여러분들의 근심 걱정은 다 해결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됩니다」 될 거라구요. 그러니 그때가 되기 전에 여러분들이 수고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사랑의 길을 가려면

이제야말로 3차 7년노정입니다. 3차 7년노정은 성경에 나오는 7년대환란을 말하는 거예요. 7년대환란. 그렇다고 울면서 가는 7년대환란이 아닙니다. 멋진 소망 가운데 가는 거예요. 그때에 여러분은 어떨까요? 이때에 여러분은 뭘할 것이냐? 7년대환란이 나쁜 줄 알았지만 7년대환란을 중심삼고 7천년 역사를 넘어설 수 있는 전통을 세워야 됩니다. 역사적인 전통을 세워야 됩니다. 이렇게 선생님이 생각하는 거라구요. 그래 1981년도까지 3차 7년노정이지? 「예」2천년 역사를 21년 역사로 탕감복귀하려는 것이 선생님 일대에 하여야 할 과업입니다. 그러므로 이 과업을 성취할 수 있는 획기적인 무대가 전개되지 않고는 하나님은 죽었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하나님은 죽었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자,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무엇으로 가려 가느냐? 개인도, 가정도, 종족도, 민족도, 국가도 전부 다 사랑으로…. 여러분 사랑하는 방안을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사랑을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를 아까 말했지요? 사랑을 어떻게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오시는 분이 메시아라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그마치 흉내라도 내야 되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가자 하게 되면 이의가 없어야 됩니다. '아이쿠, 왜 그래, 아이고 난 못가겠어' 한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복귀하는 데 있어서 애급 땅을 떠나게 될 때에, '나가자, 나가자, 나가자' 세 번 통고받아 가지고 안 나간 애급 사람은 전부 다…. 애급 사람과 같이 못 가는 사람은 망한다는 거예요. 안 나가면 장자를 치기 전에 이스라엘을 쳐 죽이고 친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것이 하나님의 법도라구요.

만일 남아 있는 녀석을 남겨 놓고 장자를 치면 사탄이 참소합니다. 그러므로 안 나가는 날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먼저 치고 장자를 친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사탄도 참소 못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앞으로 통일교회에 있어서도 뜻을 위해서 충성한다고 맹세하고서 그대로 못한 녀석들은 심판하고 제 2심판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구요. 그것이 원리적으로 틀렸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좋긴 좋은데 무자비한 곳이라구요. 선생님도 자신한테 '그대는 뜻을 위해서 부모를 버린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지요? 처자를 버린 사람입니다. 내 청춘과 내 젊은 시대의 이상을 다 버렸던 사람이라구요. 부모의 사랑도, 처자의 사랑도 다 버렸던 것을 어디에서 찾았느냐? 뜻에서 찾아진 이상이요, 뜻에서 찾아진 생애요, 뜻에서 찾아진 사랑입니다. 뜻에서 찾아진 사랑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위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뜻에 대한 사랑을 찾은 사람만이, 뜻에 대한 이상을 가진 사람만이, 뜻에 대한 인격을 가진 사람만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적이라구요. 못 찾은 사람은 할 수 없다구요. 선생님은 법에 매인 사람이예요. 선생님 마음대로 하는 줄 알아요? 선생님 마음대로 할 것 같으면 40평생 고생할 필요도 없다구요. 감옥에 왜 가요? 감옥에 가는 길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이 길을 넘어가야 할, 내 갈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빨리 와라' 하고 찾아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이 일이라구요. 국가가 반대하고 세계가 반대하겠으면 빨리 하라는 거예요. 그것을 빨리 촉진시키려니 3차 순회를 통해 선전포고하고 나선 거라구요. 이런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예」

그렇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부모면 부모 대해…, 여러분이 선생님을…. 선생님을 진짜 사랑해요?「예」 정말 사랑해요?「예!」어떻게 사랑해요?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이 뭐예요? 매일같이 밥을 지어 줘요? 내가 여기 왔다갔다하는 데 길잡이를 해줘요? 선생님을 사랑하는 데는, 사랑했다는 조건은 뭐냐? 선생님은 뜻을 위하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분도 뜻을 위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조건은 뭐냐? 하나님이 수고의 터전으로 남아 있는 이 나라를 구한 후에 세계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 책임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야 할 그 수난 길을 우리가 책임지고 세계의 수난길을 우리가 맡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사랑의 길입니다. 그렇잖아오? 주체가 자기 대상을 사랑한다면, 아내의 수고의 길을 남편이 가로막아 가지고 사지에 가더라도 생명을 걸고 그것을 도맡으려고 할 때에, 그 사랑이 증거되는 것이 아니예요? 그 놀음이라구요.

그러므로 자기 가정을 구하려면, '우리 가정에 하나님이 찾아와서 복 주소. 종족적인 수난길은 관계없소'라고 해서는 안 된다구요. '우리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적인 수난길을 내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해야 하는 것이 축복받은 가정들이라구요. 따라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민족적 수난길을 아버지 대신 책임지겠소'라고 해야 합니다. 비틀거리는 걸음을 걸으면서라도 민족 앞에 제물이 되는 놀음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반대받는 것은 요셉과 같은 모양

우리가 남한을 통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는 교단적으로 볼 때 아벨 교단이 아니냐. 그러면 교단적인 입장에서 가인 교단은 어디냐? 기성교회다 이거예요.

우리는 쫓겨난 요셉과 마찬가지라구요. 우리는 애급에 와 가지고 성공한 요셉과 마찬가지라구요. 이 원수들 가운데서 통일교회는 지금 성공했다구요. 딱 요셉과 마찬가지라구요. 지금 기성교회에 흉년이 들었어요. 열두 형제 중에 열한 형제가 흉년이 들어서 죽게 되었던 거와 같이, 기성교회는 은혜가 메말라 있습니다. 배가 고파서 헐떡헐떡하며 피난살이 하겠다고 보따리 싸는 형편입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느냐는 거예요. 성경에 보면 요셉이 30세에 총리대신이 됐지요. 그것은 예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여러분들이 요셉과 같이 됐으니 앞으로….

지금 목사들도 그렇다구요. '우리에게 먹여 줄 것만 있으면 오겠소'하며 보따리 싸 가지고 통일교회에 왔는데, 그들이 요셉의 형들처럼 원수인데, 그들을 어떻게 용서해요? 용서할 길이 없다구요. 20년 동안 단상에서 통일교회를…. 우리가 뭐 그들한테 욕이라도 한 번 했나, 반박성명을 냈나, 싸우기를 했나, 아무말도 안 했는데 괜히 모략을 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들은 20년 동안 단에 서서 우리를 원수시하고 반대한 패들입니다.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 뼈가, 골수가 안 맞고 위축되는 이런 감을 느끼게 하는 원수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뜻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니냐? 뜻, 뜻은 무슨 뜻? 세계를 위한 뜻 때문에 한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요셉을 내세운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장래를 수습할 수 있는 전통적인 터전을 닦기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권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갈 길을 준비하고 확대시켜 줄 것이 요셉의 사명이 아니냐. 그럼 이스라엘 민족은 무엇이냐? 요셉 앞에 있어서는 가인이 아니냐 이거예요. 열한 형제를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 돼 있다구요.

딱 그와 같애요. 우리가 반대받는 것이 딱 요셉과 같이 됐다구요. 열한 형제가 흉년이 들어 굶게 되어 가지고 피난 보따리를 싸는 것같이 기성 교회가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두고 보라구요. 전부 다 그렇게 돼 있다구요. 자기를 중심삼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당히 해 가지고 먹고 사는 날에는, 목사 자식들이 전부 다 사탄의 제물이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게 되어 있다구요. 그런 실상이 많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반대하는 기성교회를 우리는 왜 용서해야 하나

요셉은 형제들에 의해 사지에 팔려 가지고 수난길에서 억척같이 해 가지고 성공한 거 아니예요. 보디발의 여편네의 중상모략, 모함을 받아 가지고 감옥에 들어가 출세한 것이 아니예요. 그렇지요? 선생님도 감옥에서부터 출발했다구요. 감옥에서 사람을 하나님이 다 만나게 해주셨다구요. 여러분들도 그런 말 들어 봤지요? 전부 다. 그것과 마찬가지라구요. 이래 가지고…. 이제 그야말로 기성교회가 통일교회에 대해 가지고 얻어 먹으러 올 때가 옵니다. 불원간에 온다구요.

자, 이것을 무엇으로 용서해야 되느냐? 요셉과 마찬가지예요. 무엇으로 용서해 줘야 되느냐? 단 한 가지 '내가 부모를 가졌으나 그 부모의 자식으로서, 내가 출세할 때까지 부모를 모시지 못한 불효자가 아니냐? 그래도 내가 없을 때에 고향에서 부모를 모시던 형님들이 아니냐' 이렇게 그 부모를 모셨다는, 부모를 사랑했다는 조건 때문에 요셉이 형제들을 용서하게 된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 조건 때문에…. 자신은 고향을 떠나와서 부모를 못 모실 때에, 그들이 원수와 같은 입장이지만, 그들은 부모를 모신, 자신이 사랑하는 부모를 살린 은인과 같이 생각했기 때문에, 부모를 봐 가지고 용서하는 마음을 비로소 가질 수 있었다는 거예요.

선생님도 그와 마찬가지라구요. 선생님이 나지 않았을 때에는 그래도 하나님 앞에 효도하겠다고 한 것이 누구냐 하면 기성교회가 아니었더냐 이거예요. 그렇지요? 기성교회가 아니었더냐?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사랑하는 그런 마음을 중심삼고, 참부모의 뜻이 앞에 남아 있고, 부모가 아직까지 세계로 가고자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런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용서하여 형제가 하나되어 이스라엘 복귀의 터전을 가려야 될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만약에 요셉이 형제들과 싸움을 했으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열두 지파 편성도 다 파장이 되는 거예요. 우리도 딱 그와 같은 운명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기성교회를 위해서 정성들이자, 기성교회야 받아 주겠으면 받아 주고, 안 받아 주겠으면 안 받아 줘도 우리는 그들을 용서하자는 거예요.

여러분, 공청회를 하는 것은, 선생님은 공청회에 기대를 갖지 않습니다. 공청회에 기대를 갖지 않는다구요. 앞으로 목사들을 전도해 가지고 통일교회 주요 멤버 만들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뭐냐?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자는 거예요. 기성교회 교인들을 구하자는 거예요. '통일교회 반대하던 목사가 통일교회 공청회에 갔대. 이제까지 반대하다가' 이렇게 점점 알게 되는 거예요. 그것이 백주에 전부 드러나게 되는 거라구요. '아. 목사님이 통일교회 공청회에 갔대? 그런 말이 돌면 교인들도 들어 봐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계속하면 할수록, 1년 하고 2년 하고 3년쯤 계속하는 날에는, 이번이 20회 째인데 3년만 계속하는 날에는 교인들 가운데에 '뭐야? 목사님은 가고 왜 우리는 안 보내 줘?' 이런 문제가 벌어질 때가 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결국은, 반대하는 형님들 대해서는 기분이 나쁘지만, 형님의 아들딸은 조카들이 아니냐 이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제 1세는 통일교회에 안 들어오지만 제 2세는 전부 다 통일교회에 들어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피땀 흘려 건설하던 모든 전통을 세워줘 가지고…. 우리가 소수일수록 좋다구요. 소수일수록 욕을 먹고 일어설 때에, 그 고생의 양으로 보아 많지 않아 가지고 세계를 탕감할 수 있다면 좋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발전하지 않는 것은 거기에 하나의 이유가 있다고 보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요즘에는 조금 나을 거라구요. (웃음)

영적인 가인 아벨이 복귀돼야 육적 가인 아벨이 복귀된다

자,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이제 국가적 운세는 뭐냐? 가인 아벨이 상봉할 수 있는 외적 형태가 벌어졌으니 기성교회하고 통일교회하고 손잡아야 될 것이 아니냐? 가인과 아벨이 하나 안 돼 가지고는 부모를 못 찾는 것이 아니예요. 그렇지요? 기성교회하고 통일교회하고 하나되는 날에는 대한민국, 이 국가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현정권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면, 북괴는? 대한민국은 모든 면에서 3분의 2가 되는 것입니다. 소생, 장성까지 하늘이 차지했습니다. 그렇지요? 3분의 1이 북괴니까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북괴는 자동적으로 흡수됩니다. 이북을 피 흘리지 않고 살리는 것이 원리적 관점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역사적인 이 시대에 와서 한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원리에 딱 일치될 수 있는 환경적 아시아권이 벌어졌느냐?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그렇습니다」

이북에서도 김일성이를 아버지라고 그러지요?「예」 통일교회에서도 선생님을?「아버지라고 합니다」 그래, 아버지가 둘이니 큰일났다구요. (웃음) 진짜와 가짜가 있다구요. 두 세계가 이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자. 이렇게 볼 때에, 통일교회의 원리를 중심삼은 세계관이 해결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막연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렇게 안팎으로 들어맞는지. 그것은 다 원리를 풀어서 답을 내 가지고서야…. 선생님의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렇지요? 그런 때가 오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것을 예상해 가지고 이미 세계에 가 가지고 쭉 제2차 외적 가인 아벨 국가에 배수진을 치고 돌아온 거예요. 그것이 독일, 영국, 미국입니다. 이것이 뭐냐 하면, 외적인 아담, 해와, 천사장입니다. 천사장급 외적 세계의 방어진을 친 것입니다. 아시아 정세가 불리할 때는 보따리를 싸 가지고 미국에 가게 되면 사위기대는 자동적으로 복귀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것이 제3차 세계순회노정에 있어서 닦아진 터전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느냐? 보라구요. 여러분이 원리를 알면 그것을 알아야 돼요. 때에 대한 시각을 알아야 된다구요. 보라구요. 기독교는 뭐냐? 기독교는 영적 구원의 종교입니다. 그렇지요? 영적 구원이지요? 실체를 잃어버렸습니다. 영적구원의 완성은, 즉 지금까지는 무슨 역사냐? 엊그제도 얘기했지만 지금까지의 역사는 종 복귀의 역사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사장 복귀역사입니다. 지금까지의 영계역사는. 그래 예수는 죽어서 지금 영계에 가 있지만 무슨 사명을 했느냐? 사랑받을 수 있는 아들의 사명을 했습니다. 아들이 되면 아버지의 집에 가야 될 텐데, 아버지의 집에 못 들어가고 낙원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천사장 복귀 사명을 책임지고 해 나오는 것이 기독교의 영적 구원섭리의 완성입니다. 알겠어요? 이해되지요?「예」 알겠어요?「예」 그렇게 된 거라구요.

그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앞으로 통일교회가 영육을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가 쫓겨가던 이상의 기준만 만들어 놓으면 천사장 세계는 굴복하게 마련입니다. 알겠어요?「예」 예수가 아들이 못 되었는데, 왜 아들이 못 되었느냐? 국가 기준에서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기준을 벗어날 수 있는 기준만 되게 되면 천사장 세계는 땅에 절대 복종,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 아담을 중심삼은 본연의 세계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 기준을 이루기 위한 것이 이번 3차 세계순회노정이라구요.

그것은 왜 그러냐? 통일교회를 두고 보면, 통일교회는 영육을 중심삼아 가지고 국가기준에서 아직까지 아벨적인 승리의 기반을 못 닦았다구요. 그렇지만 영적인 기준에 있어서 국가기준, 세계기준으로 볼 때, 대한 민국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에, 사상적인 면에서는 우리가 첨단에 섰다구요. 그렇지요?「예」 통일교회 이론은 누구도 못 당한다구요. 그것은 다 공인된 사실입니다. 종교로 말하면 종교 가운데 통일교회가 안팎으로 공인될 수 있는 때에 왔다구요. 그러니까 이것이 외적으로는 못 되었지만, 말로는, 내용으로는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

이것이 영적 기준에 있어서 국가를 넘어선 아벨 기준을 복귀했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영적 기준에 있어서 아벨 복귀를 완성했기 때문에, 영적 기준에 있어서 가인 복귀를 완성할 수 있는 출발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이 제3차 세계순회노정에 있어서 영적인 가인세계인 기독교문화권 앞에 선포를 한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말이예요. 영적이라구요. 알겠어요?

이래 가지고 3개국에 대해 가지고…. 이것은 가인국가의 대표국이라구요. 가인국가의 대표국이기 때문에 그 대표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전포고했습니다. 옛날 예수시대에는 영육을 중심삼은 아벨의 입장을 선포했다가 죽임을 당했다구요. 따라서 국가에 대해 영적인 입장에서 선포하는데 죽임을 당하지 않고 반대받지 않고 돌아오는 날에는, 환영했다는 입장에 서는 날에는 육적 복귀의 출발시대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다구요. 알겠어요?「예」 그러기 위해 하는 것이 제 3차 세계순회노정입니다. 그래 가지고 돌아오게 되면 한국은 육적 복귀의 내적 기반이 닦아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남북한 평화통일방안을 중심삼고 빨리 정부하고 우리가 하나돼야 된다는 거라구요.

그러면 현정부는 어떤 입장이냐? 통일교회가 육적 아벨이라면 정부는 육적 가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가인 아벨이 복귀된 터전 위에 육적 가인 아벨이 복귀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결론입니다.

육적 아벨시대를 맞기 위한 통일의 날 설정의 배경

그렇기 때문에 이 8.15를 중심삼아 가지고 27년, 삼 구 이십 칠(3×9=27)이라구요. 27년을 넘어서면서부터 새로운 운세가…. 선생님도 이 길을 27세 때 출발했다구요. 이것을 볼 때 27년을 넘어서면서부터가 뜻 있는 기간이예요. 27년에서 28, 29, 30,이렇게 해서 만 3년이예요.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이 3년 기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는 전부 다 이래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2차 7년노정에 맞먹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1975년 9월 15일까지 잡는 거라구요. 그런 때가 남았기 때문에, 예수님도 27세에서부터 27, 28, 29, 30, 31, 32, 33, 7년간을 잡았던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역사적으로 귀중한 시대에 들어옵니다.

이번 8.15가 고맙게도 제1회 광복절을 맞이할 때와 양력과 음력이 딱 맞는 날이라구요. 그것을 알아요? 칠월 칠석날 해방되었다구요. 이번 15일이 칠월 칠석이라구요. 그래 음양이 딱 맞아떨어진 날이라는 거예요. 이러면서 천지 법도의 기준에 있어서 9수를 세번 넘어서면 10수를 맞이할 수 있는 새로운 때가 옵니다. 그래서 본부에서 무엇을 했느냐? 통일의 날이라는 식을 했다구요. 알겠어요?

우리 통일교회는 역사에 없는, 국가를 중심삼은 가인 아벨, 육적 아벨 시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천지의 대운을 맞고 넘어갈 수 있는 때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있어서는 8월, 9월, 10월까지, 음력 9월까지 내적으로…, 여러분은 모르지만 국가가 지금 골을 싸매고 '이 단체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뒤죽박죽하는 때에 들어왔다구요. 알겠어요? 이 단체가 아니면 안 되겠다고 하는 거예요. 이미 일본 작전을 했기 때문에 이 결정에 따라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고,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딱 공원 묘지에 부딪친 거라구요.

그러므로 요즈음 이때는 어떤 때냐 하면, 통일교회가 수난기인 것 같지만 잘하는 날에는 살짝 넘어설 수 있는 때입니다. 알겠어요?「예」그러한 외적인 시대가 오게 되면 영적으로 가인과 아벨을 하나 만듦으로써 육적 가인 아벨을…. 영적으로 아벨이 승리하게 될 때에는 육적 가인이 육적 아벨을 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원리원칙이예요.

왜 그러냐?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영적인 천사를 굴복시킴으로써 에서가 야곱을 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기준이 오늘날 국가를 걸고 넘어가는 때이기 때문에 통일의 날을 설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8월15일은 우리 통일교회가 영원히 기념할 수 있는 통일의 날로 설정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어떻게 되느냐? 영적인 가인 아벨 역사가 교차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아벨은 어떻게 되느냐? 가인이 아벨을 쳐서 제물로 삼았지만, 반대로 될 때가 옵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것이 국가만 넘어가는 날에는 사실대로 영원히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사탄이가 천사장이기 때문에 천사장이 마음대로 하던 그때가 지나가고 아담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복 주고 병 주고 다할 수 있는 때가 옵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놓고 입이 째져라 하면 째진다구요. 다리가 부러져라 하면 부러진다구요. 그렇다고 그것을 취미로 하게 되면 안 된다구요. (웃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사랑으로써 그럴 수 있는 운동이 벌어지면 돼요. 그렇게 무서운 때가 온다구요.

지금은 실체로 영계를 완전히 지배할 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앞으로 얼렁뚱땅해 가지고 선생님 앞에 절대 못 나타날 때가 온다구요. 그때 가서는 선생님이 영계의 문을 열어 젖힐 것입니다. 문 앞에 와 있다가 그런 자가 밖에 나타나면 '이 녀석, 뭘하러 왔니' 하면서 문전에서 쫓아 버리는 것입니다.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은 선생님이…. 선생님에게 그런 뭐가 있다구. 전문적인 면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요리할 때로 들어갈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때에는 땅에 앉아 가지고 미국 대통령이 변소에 가는 것까지 전부 일기로 써서 '너 이렇게 이렇게 했구나. 이렇게 가다가는 몇해 후에 너 죽을 터인데 하늘을 따라가라'고 해 가지고 굴복시킬 때가 올 것입니다. 알겠어요? 싸움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공산세계에 있어서 코시킨이면 코시킨이 뭘하고 있는지, 무슨 꿍꿍이 속을 가지고 있는지, 전부 다 보고 해 가지고 '야, 이 녀석아, 하나님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 하는 거예요. 공산당의 최고 수령들을 전부 다 명령식으로 굴복시킬 때가 온다는 거예요.

지금 세계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 예수님 때와 마찬가지의 그런 사람들이 세계에 있다는 거예요. 복귀시대이니만큼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면 아직은 안 되겠기 때문에 안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시키지 않지만 선생님 대신 별의별 놀음을 할 사람들이 세계에는 있다는 거예요. 공중을 날으는 사람도 지금 있다구요.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겠어요? 물위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지금 얼마든지 있다구요. (웃음) 천리만리를 순식간에 가는 사람이 지금 얼마든지 있다구요. 오래 안 가서 선생님이 그런 사람들을 저 히말라야 산맥에서 불러오고, 도의 세계에서 불러 올 때가 있을 것이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꿈 같은 얘기지요.

자, 그렇게 되는데 세계가 통일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하나님의 전권이 평면화돼 가지고 재창조역사에, 이상적인 사랑에 화답하지 못하는 일체의 모든 요건은 전부 다 파탄되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이 보는 금후에 있어서 초감각시대의 세계관입니다. 사랑만이 초감각시대의 세계관을 이룰 수 있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여러분 초감각세계에서 사랑하게 되면 그저 붙들고 안 놓으려고 하지요? 신경선을 넘으려고 하지요.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만이 그것을 평면적으로 환영할 수 있는 세계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기도하는 가운데서 그런 것을 전부 다 알고 있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모르는 그런 무엇이 있다구요. 여러분에게 얘기를 안 하니까 선생님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같지만 다 알고 있다구요. 지금이 어느때냐 하면 실체로, 실체 몸뚱이를 가지고 영계를 완전히 지배할 때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선생님이 영계의 내용을 가지고, 진리와 몸뚱이를 가졌기 때문에 사탄도 굴복해야 되고 천사세계도 완전히 굴복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 도통한 사람이라든가, 기독교에 도통한 사람들은 전부 다 선생님 앞에 굴복해야 된다는 거예요.

영통하는 패들이 영통 안 하는 선생님 같은 사람 앞에 졸장부가 되고, 죽으라면 죽을 수 있게끔 돼야 실체 완성권을 이뤄 가지고 지상천국을 개문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영적 복귀 완성시대에 있어서는 영적으로 싸운 거라구요. 지금은 실체로 싸우는 때입니다. 지금 그런 때에 들어오고 있는 거예요. 지금 지상섭리시대로 들어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7년노정이 변해 가지고 21년노정으로 연장되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자, 그러한 세계가 됐다고 생각할 때에, 일할 때가 있겠어요? 그때는 선생님의 생각을 알고 나면 여러분이 기가 막힐 거라구요. '어쩌면 저렇게 되었나? 어쩌면 내가 저렇게 했나?' 그럴 때가 온다구요. 농담이 아니라구요. 공갈 협박이 아니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두고 봐라 이거예요. 어쩌면 내가 이렇게 미욱했던고?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 둔다고 그랬지? 그런 때가 온다구요.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에 그런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예수 이상 인류를 사랑해야 복귀될 수 있다

자, 그렇기 때문에 하늘길을 가는데 선생님이 하는 대로 하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하는 것을 다 못 하면…. 선생님이 나라를 사랑하자고 하면 나라를 따라가라는 거예요. 나라를 따라가면 망하는 패가 안 된다구요. 예수의 제자와 다르다는 거예요. 나라를 따라가게 되면, 선생님이 세계를 따라갈 수 있는 길을 개척했기 때문에, 여기에 여러분들을 핍박하는 무리가 있고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일본에서는 여러분들을 환영할 수 있다구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예수의 제자보다 낫다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그렇습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대한민국이 쫓아내면 통일교회 패들만 받아들일 수 있는 나라가 있다구요.

그런 길을 지금 닦아 가지고 여러분들은 망할 수 없는 때에 들어왔으니, 여기서 여러분들이 뒤척뒤척하다가 자기 예복을 못 갖추면 못 들어가는 거라구요. 축복받은 가정에게는 선생님이 원리, 천도를 밝힌 특권적인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열리지만, 축복 받은 가정이라도 거기에 들어가려면 예복을 입어야 돼요. 부부끼리 암만 사랑했댔자, 축복받았다고 '아, 우리 축복받았으니 들어가자' 해도 천만에요. 예복을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예복은 무엇이냐? 예복은 딴 게 아니라구요. 개인적으로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지금 천사장 복귀시대지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축복받기 이전에 있어서 천사장 이상 인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이상 인류를 사랑하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수 이상 인류를 사랑해라.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그 이상 심각한 입장에서 인류를 사랑해라, 이스라엘을 사랑해라, 그거라구요. 여러분들이 사랑하지 않고는 그 사람의 뒤를 못 따라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라는 거예요. 한국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해라! 한국을 필요로 하는 것은 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라구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천사장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 예수를 사랑해라! 천사장을 사랑하고 난 다음에는 양자의 입장에서 아들을 사랑해라! 엊그제도 이렇게 얘기했지요?「예」 아들을 사랑해라! 아들을 사랑하지 않고는 천사장의 혈통을 이어받은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사랑할 길을 찾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의 있어요, 없어요? 이의가 있다면 말해 보라구요. 자, 이것이 원리원칙인데 선생님도 원리원칙대로 안 하면 가짜예요, 진짜예요? 선생님이 원리원칙대로 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원리원칙대로 못 갔을 때에는 여러분들을 무자비하게 처단하는 것이 선생님의 공정한 책임이다, 용서가 없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천사장 이상 백성을 사랑하라!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것이 예수라구요. 예수가 상대를 못 가졌으니 말이예요. 그래서 지금 천사장 복귀의 사명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재림해야 한다는 거예요. 재림해서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양자를 세워 지상 기반을 닦아야 돼요. 양자가 종보다 나으니까 예수가 양자의 대를 이어 가지고 아들의 대를 잇기 위해서 와야만 아들의 사명으로 왔던 것을 복귀할 수 있다는 거라구요. 그러지 않으면 복귀할 길이 없다는 거라구요. 지상에서 그것을 못 하고 갔으니까 선생님이 그 일을 해주는 거라구요. 전부가 주먹구구식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예」

여러분이 축복받을 때까지의 그 배후의 이론은 몇 권의 책이 된다구요. 알겠어요?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도 모른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모르는 입장에서 선생님을 사랑했다는 것은 전부 다 가짜라구요. 여러분이 선생님을 사랑했다고 이러구저러구 말하고, 선생님의 상대가 되었다고 이러구저러구하는 것은 아주 뭐 매스꺼운 놀음이라구요. 다 모르잖아요?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그것을 다 할 때에 선생님이 그냥 그대로 주먹구구식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전부 다 천도를 따라 가지고 한 거라구요. 전부 다 이론에 맞지요?「예」 이론에 맞아요, 안 맞아요?「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 뒤넘이치는 거라구요.

그러면 여러분은 그러한 분을, 선생님이 선생님 자신을 높여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분을 진짜 사랑했고, 진짜 사랑하려고 얼마만큼 정성들인 경험을 갖고 있느냐? 선생님에 대해 말하게 되면, 선생님이 옛날에 글방 소학 훈장을 무서워했다구요. 외우는 것을 못 하면 회초리를 맞거든요. 어디 여러분은 선생님을 글방 선생님만큼 무서워해요?

그런 의미에서 생각할 때에, 여러분은 사랑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길을 가야 된다구요. 여러분들이 얼마만큼 백성을 위해서 사랑했고, 세계를 위해서 사랑했고, 또한 기독교면 기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를 위해 사랑했느냐? 가는 길이 그래요. 복귀가 그렇다구요. 세계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기독교를 사랑하고, 그 다음에 통일교인을 사랑하고, 통일교회 축복가정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 선생님의 아들딸을 사랑하는 것이 선생님이 가는 길입니다. 복귀노정이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세계가 이렇게 돼 있는데 우리만은 까꿀잡이라구요. 세계가 다 있고, 나라가 다 있고, 종족이 다 있고, 가정이 다 있고, 개인들이 다 있지만, 우리들은 이것을 부정하고 개인복귀, 가정복귀…. 정반대로 가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세계를 모르는 사람들은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는 거예요.

세계를 사랑한다고 하는 이러한 생각이 있는 사람들을 사탄세계에서 빼앗아 와야만 사탄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빼앗아 오는 격이 된다는 거예요. 그 일을 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여러분들이 전부 다 복귀하려면 세계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그 다음에는 종족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를 사랑할 수 있어야 됩니다. 세계적인 자각을 한 입장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부부의 터전에서부터 그 다음에는 개인복귀, 가정복귀, 세계복귀, 즉 새로이 하나님을 개재시켜 사랑하는 입장에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복귀되어 나가는 것이 아니냐? 다르다구요.

7년노정을 대하는 축복가정의 자세

세계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공산세계는 외적인 천사장형이라구요. 그렇지요? 외적 세계를 통해 보면 공산세계는 사탄형이고 민주세계는 내적인 천사형이라구요. 그 다음에 기독교는 뭐냐? 내적인 천사형이라구요. 통일교회에 있어서도 내적인 천사장형이 통일교회이고 내적인 아벨형이 축복받은 가정이라구요. 그러므로 내적인 가인과 아벨이 가정적으로 하나돼야만, 기성교회 가정하고 통일교회 가정이 하나돼야만 내적인 부모가 복귀되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남북이…. 이스라엘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졌었지요? 남쪽과 북쪽이 하나돼야만 국가적 메시아로 등장하는 거라구요. 국가적 부모로 등장하는 거라구요. 그래야 비로소 아담국가가 되는 거라구요. 가인 아벨 복귀역사가 그렇게 돼 있다구요. 구원론이 그렇게 되어 있지요? 용서가 있어요? 딱 그런 운세에 지금 맞섰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도 가짜 아버지가 나섰다구요.

여러분이 원리관적인 입장에서 현재의 정세 파악을 확실히 하라는 거예요. 지금이 어떤 때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3년 기간을 놓치는 날에는 여러분이 일할래야 일할 수 있는 때가 없다구요. 여러분의 때가 지나가는 거라구요. 더우기나 축복받은 가정들은 큰일납니다. 큰일난다는 거예요. 만약에 1차 7년노정에서 못 가는 날에는 3차 21년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7년노정을 넘어서 21년을 갔지요? 그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는 기가 막힐 거라구요.

보라구요. 통일교회를 믿지 않던 사람들은 7년노정을 가는데, 여러분들은? 21년노정을 가야 됩니다. 그것이 원리입니다. 그것이 원리인데 이러고 있어. 이 녀석들아? 그래 그 조건에 안 걸리게 하려니, 가정이 전부 다 동원했다는 조건을 세우려니 여편네들을 빼앗아 3년 전도를 가게 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 조건을 세워 주려구요.

여기에서 안 나간 녀석들은 전부 다 축복가정 명부에서 뺀다구요. 이번에 전부 다 빼버린다구요. 입적한다는 말 들어 봤지요?「예」 뺀다구요. 2차 7년노정에는 국물도 없다는 거예요. 안 나가게 되어 있어요? 안 나가 보라는 거예요.

만약에 선생님에게 그런 사상이 없었으면 선생님이 이 길을 떠났겠어요? 여편네 버리고 핏덩어리 자식을 버리고 떠났겠어요? 그때가 성진이 엄마가 스물 두 살 때라구요. 객지에 나가 있었다구요. 애급 땅과 마찬가지예요. 자식을 낳은 지가 며칠이 되었나 하면 40일도 안 되었다구요. 그런 핏덩어리를 버리고 나섰다구요. 그렇지만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내 자식도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구요. 보호해 주신다는 거예요. 지금이 그런 때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그런 길을 안 갔으면 통일교회가 나왔을 것 같아요? 마찬가지라구요. 여러분이 그 전통을 이어받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예」 알겠어, 모르겠어?「알겠습니다」

이 녀석들, 너희들 불평하지 말라구. 임자네들의 불평을 받을 선생님이 아니라구요. 나한테 불평하는 것은 좋지만 여러분의 후손이 걸려 버린다구요. 세계를 위해서 지금 달리고 있지 않느냐는 거예요. 지금 선생님이 너희들보다 세계를 위해서 수고하고 있지 않느냐? 그렇지요?「예」 이제는 민족을 위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세계를 위해서 달리는 시대 아니냐? 선생님이 세계를 위해서 소망하고 가야 할 다리인데 다리를 무시해 가지고 건너갈 수 있어요? 선생님을 뭐 이러고 저러고 평하는 사람은 참 곤란하게 된다구요. 영계에 가서 걸린다구요. 선조들이 걸려 버립니다. 불평하겠어요. 안 하겠어요?「안 하겠습니다!」마음으로 힘들다고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안 하겠습니다!」이제 3년 동안 여러분들이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여러분들이 이 기간에 나가서 진짜 사람을 사랑해 보라는 거예요.

가인을 먼저 사랑하는 역사를 개척해 나온 선생님

선생님은 어린애들한테도 경배한 사람이라구요. 알겠어요? 세 살 난 아이를 하늘의 왕자같이 정성껏 모신 훌륭한 사람이라구요. 알겠어요? 이 녀석들 말하는 것을 보게 되면 전부 다…. 그러면서 여러분들끼리 별 이야기 다하지? 선생님이 그런 여러분들을 분립해 주는 거예요. 선생님이 그런 자리까지 나오기 위해서, 여러분들에게 반말하기 전까지…. 내가 여러분들한테 깍듯이 존대해 보라구요. 어떻겠어요? 죽을 지경이라구요. '이랬어요. 저랬어요? 아무개 선생님!' 그러면 어울려요? 어울리겠어요? 「안 어울립니다」 잘 아누만. 선생님은 벌써 공증할 수 있는 안팎의 모든 역사적 승리의 터전을 닦아 가지고 얘기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전부 복귀되는 거라구요. 어린애로부터 승리했다구요. 이것을 3대 이상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앞으로 어린애들에게까지도 강제로 경배시켜야 된다구요. 그런 전통을 가져야 된다구요.

선생님은 어린애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 자신의 소망의 상대로 여기고 유년 주일학교 학생들을 지도하던 명 지도요원이라구요. 알겠어요? 그들을 누구보다 사랑했어요. 그 아이들이 선생님한테 막 미쳤다구요. 학교에도 안 가고 선생님 뒤를 따라다니려고 했어요.

하기야 뭐 그런 바람이 불어야 한다구요. 뭐 학교고 뭐고 다 싫다 하고 선생님을 따라다녔다구요. 지금 서울에 옛날 내가 지도한 처녀 총각들이 다 있다구요. 그 처녀 총각들한테 내가 이남에 와서 '야야, 와라' 하면 전부 다 와서 선두에서 달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을 데려다가 통일교회 중요한 멤버를 안 만들었다구요. 알겠어요? 그것은 왜 그랬느냐? 가인을 사랑하는 역사를 개척하기 위한 것이 선생님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친구들도 다 여기에 있다구요. 또, 공장에 있는 패들도 선생님의 사촌이라구요. 전부 다 한집에서 자랐다구요. 저 농장에 있는 패들도, 여기 레이크 파크에 있는 패들도 전부 다 선생님의 사촌이라구요. 전부 다 한집에서 자랐다구요.

내가 아산에 공장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예요. 정 장로뿐만 아니라 전부 다 하자고 해 가지고 했어요. 눈물을 흘리면서 '아, 선생님의 형제들이 와 있는데 우리가 안 하면 안 됩니다'고 했기 때문에, '정 그러냐? 가인 아벨 복귀역사에 있어서 외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래 봐라'고 해 가지고 토기 공장을 만들어 가지고 그렇게 했다구요. 자기와 가까운 사람이라고 대번에 가 가지고 데려올 수 없다구요.

'70년도 들어서면서부터 선생님이 일본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 할 때이니만큼, 국가를 넘어서서 준비해야 할 때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전부 다 수택리 공장에 나와 있으라고 한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렇게 안 하면 좋지 않다구요. 그러므로 모든 원리원칙을 따라 가지고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전에는 뭐 얼씬하는 것도 싫어한다구요.

지금까지도 친구들이 10여 명 있다구요. 하나님이 제일 친한 친구들을 다 데려갔어요. 그러니 선생님이 무서운 사람이예요. 선생님하고 친한 사람은 전부 데려갔다구요. 그 사람들이 찾아와서 무례하게 대하면 국가 망신이예요. 하늘땅의 망신이 벌어진다구요. 그러면 그 선조, 후손들이 걸려 버린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망령된 일이 있을까봐…. 친구라고 해 가지고 '아무개야' 하며 옛날같이 주먹질하고 멱살잡는 행동을 하면 되겠어요?(웃음) 안 되겠으니 미리 다 데려갔다구요. 그렇게 정리한 거예요. 내가 딴 데 관심을 갖게 하는 사람이면 잡아가는 거예요. 관심을 갖는 날에는, 하나님을 위한 관심을 갖게 그들을 전부 데려가는 거라구요. 내가 만일 대한민국을 세상적으로 사랑하면 대한민국은 망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하늘만을 염원하게끔 이 길을 닦아 나온 사람이라구요.

식구들에게 반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복귀역사라는 것이 전부 다 사탄이 여기에 기준이 되어 나왔다구요. 내가 별의별 종살이를 다했다구요. 이래 가지고 선생님이 임자네들에게 반말하는 것이지 이놈의 자식들 들어와 가지고 식구들에게 반말을 해! 누가 반말하랬어? 그놈의 아가리에 창끝을 갖다 들이대 가지고 다물지 못하게 해 버리고 싶다구요. 복귀해라! 탕감복귀해라! 여러분들이 언제 무슨 책임을 했다고 '야!´ 하고 반말을 해? 반말해 본 사람은 솔직이 손들어 보라구. 용서해 줄께, 손들어 보라구. 이놈의 자식들, 돼지 새끼처럼 모가지를 잘라 죽이고 싶다구. 식구들한테 반말을 하겠어, 안 하겠어?「안 하겠습니다」 안 하겠다는 사람 손들라구요. 이번에 내려가면 당장에 취소해 버리라구요.

내가 전에 평양에서 하숙하던 집에 가 가지고 그런 일을 다한 거예요. 세 살 난 아이와 마주치면 경배한 거라구요. 어린아이를 하늘같이 모셨다구요.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에서부터 했던 거예요. 그가 눈물을 흘리며 그러지 말라고 할 수 있는 입장까지 높여 주며…. 박정화도 감방에 있을 때 영계에서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기합받아 관계됐다는 말을 들었을 거라구.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 결심이 다시 희미해지는 거라구요. 암만 영계에서 가르쳐 주었더라도 다시 희미해지는 거라구요. 그래서 미안해 쩔쩔매는 거라구요.

그래 세상에 깡패보다도 못한 일을 누가 하라고 그랬어 이놈의 자식들! 어린아이를 사랑하라구요. 사랑하는데 발길로 차며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높이면서, 하늘같이 높이면서 사랑하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린 아이를 대해 가지고 시를 읊고 노래를 불러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존경어를 갖추어 가지고 찬양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의 공인을 받아 가지고 그 아기가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천지의 법도는 상하관계가 어긋났으니까 이것을 바로잡아 가지고 이렇게 복귀의 길을 가려 나오는 거라구요. 그래서 상대적 권을 만들어 놓았고, 그들이 기쁨으로 그런 것을 상속받아 가지고 할 수 있는 터전이 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선생의 자리에 섰다는 거라구요.

내가 지금 여러분들한테 설명해 주는 이 모든 원리 내용을 옛날에 가르쳐 주었어요? 지금에 왔으니 다 설명해 주지. 말 가운데 처음 듣는 말들이 많을 거라구요. 그렇지요?「예」 앞으로도 많다구요. 앞으로도 많아 진다구요. 그럼 선생님이 모르느냐? 그것을 알아 가지고, 틀림없이 다 해서 맞춰 놓고 가르쳐 준다구요. 가르쳐 주는 것은 상속하겠다는 거예요. 상속하겠다는데 다리를 떡 뻗고 썩은 개똥쇠 같은 마음을 가지고 될 것 같애요? 겸손하고, 하늘땅 앞에 황공하고, 천만부당한 은사라고 생각하면서 받아도 부족한데도, 이게…. 여러분은 보게 되면 전부 다 하나님 앞에 설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라구요. 이런 말 이해돼요?「예」

이번에 돌아가 가지고 반말하는 녀석들이 있으면 여러분들끼리 입을 째야 되겠다구요. 식구가 누가 어떻게 될는지 아느냐 이거예요. 임자네들 보다 더 높은 자리에 간다구요. 임자네들이 소생이라면 식구들은 장성이라구요. 알겠어요?「예」 그 사람들은 핍박받는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영광의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니 여러분보다 훌륭한 사람들이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여러분이 그들 앞에 여러분의 복을 상속해 줄 때, 내 복을 잘 지켜 달라고 마음으로 허리를 굽히면서 부탁하고, 작은 복을 상속할 때 그것을 상속받아 가지고 나 이상 천년 만년 잘 보관해 달라는 전통을 상속시켜야 된다구요. 그런데 발로 밟아 가지고 되겠어요?

그래 누가 그런 짓을 하라고 그랬어요? 이번에 돌아가 가지고 내 눈앞에 그러는 것이 보였다가는 후려갈기는 거라구요. 약속하자구요. 알겠어요?「예!」

자신의 구태의연한 생활을 반성하고 기도해야

또, 이 녀석들, 뭐 전남에서는 바둑을 둔다구? 선생님이 바둑을 두기 시작할 때 하라구요. 바둑을 둬? 이놈의 자식들. 바둑을 둘 시간은 있고 공부할 시간은 없지? 임자네들 가운데에 원리시험 패스한 사람이 몇 사람이 돼요. 벼락을 맞을 자식들. 그 말을 듣고 내가 잡아다가 한꺼번에 패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참고 나오는 거라구요. 내 눈으로 아직까지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겠어요? 내 눈으로 보는 날에는 벼락이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내가 얘기해 주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바둑을 둬 본 사람, 손들어 봐요. 이놈의 자식들. 바둑 둘 시간이 있어? 바둑 둘 시간이 있으면 기도하라구요, 기도하라구요.

선생님은 여기에 와서 저 평상에 가만히 앉아 가지고 괜히 그저 공상하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기도하는 거예요. 눈을 뜨고 기도한다구요. 일구월심. 내가 만약에 다 못 이루었다면 내 마음이라도 언제든지 활개 펴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나 자신이 되겠느냐.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라고 예수가 기도한 거와 마찬가지로 기도해야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 아니냐?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없다구요. 지금 선생님이 공부 안 하는 줄 알아요? 뭐 수작들은…. 본부에서 뭐 좀 보급해 줘야지…. 그래 보급해 주겠다구. 공부할 수 있는 기간을 설정해 주겠어요. 전부 다 3개월씩 공부시키려고 했는데, 이 녀석들 전부 다 약속한 대로 다했어? 자, (새 공산주의 비판)을 한 번 이상 읽은 사람은 손들어 봐. 손들어 보라구. 이놈의 자식들. 모가지를 전부 다 생매장해 버릴 자식들 아냐? 선생님은 그런 것을 전부 다 모르고 있지 않다구. 앞으로 이거 이래 가지고 안 된다는 거예요.

지금 몇 명, 불과 200명 넘는 이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2천만 3천만 전체 인류가 문제가 아니냐는 거예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지는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일대 칼을 대는 하늘의 심판이 오기 전에 내가 여기에서 그것을 스스로 해야 되겠다고 하는 게 선생님의 생각이라구요. 거기에서 회개하는 사람은, 각성하는 사람은 그래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선생님이 보고 있는 거라구요. 이래서 내가 어저께 순회사들에게 지금까지 선생님의 방안에 대한 것을 전부 다 얘기해 주었다구요. '너희들만 이것을 알아라. 틀림없이 이렇게 할 것이다' 했습니다. 그거 알겠어요?「예」

메시아와 본연의 참부모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은 복 중의 복

종의 종권을 사랑해야 되고, 종권을 사랑해야 되고, 양자권을 사랑해야 됩니다. 양자권은 뭐냐 하면 가인세계입니다. 알겠어요? 그 다음에 아들을 사랑해야 됩니다. 아들은 타락하기 전의 아들과 타락한 후의 아들이 있는데, 먼저 타락한 후의 아들을 사랑해야 됩니다. 타락한 후의 아들은 양자입니다. 그 다음에 타락하기 전, 타락하지 않는 아들, 아담을 사랑해야 된다구요. 이것이 뭐냐 하면 재림사상이라구요.

오늘날 타락한 인간이 타락하지 않은 아들을 사랑할 수 있는 은사권내에 선 것은 천지에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복 중의 복이라구요. 알겠어, 무슨 말인지?「예」 여러분은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들을 만나볼 수 있고, 그 아들을 사랑할 수 있는 종의 입장에 선 것만도 영광이라는 거예요. 그 이상 자랑할 것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그런 저런 것을 선생님이 전부 다 알기 때문에 선생님이 나는 너희들과 같지 않다는 말을 언제나 하는 거라구요. 이건 밤인지 낮인지 꿈인지 뭔지, 기가 막히다는 거라구요.

그뿐만이 아니라구요.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그 아들을 사랑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타락하지 않고 완성한 자리에 설 수 있는 본연의 참부모를 맞을 수 있는 것은 태양을 만들었을 때 그 빛나는 태양을 처음 본 그 권위와 마찬가지라구요. 태양의 역사는 어디서부터냐? 빛나는 태양을 본 거기서부터 아니냐? 그러므로 태양에 대해 말하려면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라구요. 역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밖에 없게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인생을 말할 사람은 여러분 밖에 없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 가치를 알아요?

그뿐만이 아니라구요. 그분이 아들딸을 거느리고 사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뿐만이 아니라 그 혈족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엊그제도 얘기해 줬지요?「예」 아버지하고 아들의 사랑을 힘껏 받아 가지고 이제 세계를 구하기 위해 집을 떠나가려 할 때에, 아버지와 아들은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딸을 축복해 가지고 데리고 가라고 하면서 보내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하는 하나님과 아들의 마음이 아닐 것이냐? 그 아들의 사랑을 받지 않고는 그런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는 절대 필요합니다. 그렇게 돼 있잖아요?

메시아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을 받고 나서야 타락한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상대라는 것이 시작된다구요. 원리가 그렇지요? 원리적으로 볼 때 그것을 알고 있으면 전부 다 장가가게 되어 있지 않다구요. 알겠어요? 전부 다 독신생활을 해야 되는 거예요. 역사가 그렇다는 거예요. 이것은 선생님이 지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그렇게 왔다구요. 이것을 어떻게 뭐 부정할 도리가 없다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그렇습니다」 그렇다구요. 그것이 그렇지 않다면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자리에 안 서 있다구요.

본연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있는 우리

그것을 볼 때에, 여러분들이 그분과 살고 있는 아들딸, 그 울타리를 바라보고, 일생을 살면서 그 울타리에 들어가서 나무를 심고, 뜰을 쓸고, 또 그 동산에 가서 노래도 부르고, 같이 새소리를 듣고, 같이 곤충 소리를 듣고, 같이 불빛을 바라보고, 같이 우주를 바라보는 그 영광, 그런 것을 생각해 봐요? 선생님이 그런 세상을 다 알고 사는 사람이라구요. 천지만물을 지을 때 본연의 태양을 찬양할 수 있는 본연의 아들, 하나님이 소망하셨던 아들 앞에 인계해 주시던 심정을 느끼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그래야 될 것이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해본 사람이 있어요?

자, 그 본연의 세계에 있어서, 자유로운 참사랑의 동산 가운데에 있어서는 들리는 쓰르라미 소리도 같이 듣지요? 안 그래요? 또, 같이 앉아서 땀을 흘리지요? 이것이 싫어요?「좋습니다」 또, 같이 일을 하지요? 앞으로 세계를 따라다니며 같이 세계일주도 하지요? 그것은 좋지요? (웃음) 그것은 그렇게 안 되게 되어 있다구요. 여러분은 그것을 생각해야 된다구요.

이 땅 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면서, 같은 태양빛을 받아 가면서 같이 호흡을 하고, 그가 거느린 가정이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을 보고, 또 그가 거느린 종족들이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을 보고 '그 나라가 어떻더라. 그 세계가 어떻더라'고 하는 이것이 본래에 하나님이 보시고 싶으셨던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보시고 싶었던 자리에 내가 동참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를 찾은 것. 천만번 죽어도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하게 한 이 은사를 무엇으로 갖을 것이냐? 가면 갈수록 감사해야 되고, 알면 알수록 뼛골이 녹아나는 황공한 심정을 가져야 되며, 죽음을 각오하고 일생 동안 살아도 그 은혜를 보답할 수 없다는 감사의 마음을 품고 살도록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상입니다.

앞으로 선생님이 그런 교육을 할 것입니다. 알겠어요? 한 3년 동안 그런 교육하면 전부 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기 전까지는 교육을 안 하려고 그래요. 안 가르쳐 주려고 한다구요. 왜?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전부 다 걸려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저 나중에는 전부 다 못살게 훈련할 거예요. 앞으로 여러분 자식들까지 전부 다 훈련해 가지고 한번 시험하고 싶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알겠어요? 안된 생각 같지만 말이예요. 왜? 이 가치가 너무 위대하고, 역사에 비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가치를 중심삼고 시험이라도 해 가지고 그 시험에 통과한 사람을 거기에 세워 놓아야 그래도 이 가치를 아는 선생님의 마음 앞에 위안의 터전을 잡을 수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복귀의 심정을 유발시키려면

이 녀석들이 똥 구덩이의 구더기가 파리가 돼 가지고 파리인 줄 알지 못하고 무슨 뭐 매미인 줄 알고 있다구요. 여러분은 그렇지 않아야 된다구요. 타락한 인간은 원리적으로 그렇다는 거예요. 선생님의 출발점은 여러분과 다르다구요. 종자가 다르다구요. 그러므로 앞으로 혈족권내의 혜택은 어느 것에 비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이 실감나야 된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예」

그것이 뼈에 사무치고, 생애노정에 어리고, 생활노정에서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벌어져야 됩니다. 눈물어린 동정으로 불쌍한 사람을 붙들고 하나님 대신 울어 주고, 그 사람들이 여러분을 붙들고 울어 주게 될 때에, 하나님이 타락한 아담을 대해 가지고, 종 새끼가 된 후손들을 대해 가지고 참아들딸 이상 사랑하실 수 있는 마음을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들이 울고 매맞고 죽게 되는 거기서부터 아담이 하지 못한 것을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귀의 심정이 발로될 것이 아니냐? 복귀의 심정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

선생님이 지금 이것을 거꾸로 하고 있다구요, 거꾸로. 알겠지요? 선생님이 울고, 선생님이 고생해 가지고 여러분들을 자극시킨 거라구요. 알겠어요? 선생님이 매를 맞고, 선생님이 울고불고해 가지고, 지금 여러분들이 이러고 있다구요. 이것이 지금 통일교회의 현상이예요. 이것은 천국에 못 들어갈 통일교회 패들이예요. 여러분이 울고불고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하나님의 마음을 유발시킨 것과 같이, 본연의 아담을 사랑하던 이상의 마음을 유발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전부 다 희생시키면서 자기 자식을 사랑하던 이상의 마음, 못 한 것을 대신 하겠다고 죽음을 각오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심정을 유발시키는 데서만이 복귀가 벌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요즈음에 '뭐 선생님은 3천만 원짜리 차를 타고 다니고 우리는 살 집이 없어서 골골하고 있다' 이런 평을 하는 사람도 있다구요. 좋다구요. 그래 여러분들이 사다줬어요? 여러분들이 일전 한푼이라도 대줬으면 그건 평할 수 있다구요. 그런데 그것은 외국 사람들이 전부 다 한 거라구요. 이런 아가리질을 하는 녀석들은 앞으로 선생님과 관계없는 사람입니다. 앉아 가지고 그런 얘기를 하는 것에 동조하고 귀를 기울여 고개를 끄덕끄덕하면 앞으로 대가리가 떨어지고 목이 부러지는 때가 온다는 거예요.

천기 누설은 용서받지 못한다

앞으로 보라구요. 선생님이 말하지 않았는데 소문나면 그것을 앞으로 공문화시켜 가지고, 선생님 입회하에서 역사적 죄악과 더불어…. 여러분들이 그렇게 잘못한 것을 용서받으려면, 세계 사람들이 용서해 준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이것을 벗어날 길이 없다는 거예요. 전부 다 조사해 가지고 판명을 해 놓고 넘어간다구요. 내가 듣지 못했던 말, 내가 하지 않은 말, 별의별 말을 다 누가 말했는지 전부 다 뿌리를 뽑아 가지고 청산할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때 걸리게 되면 용서가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깨끗이 청산한다구요. 선생님이 그렇게 데데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천기 누설은 용서받지 못합니다. 만일 국가의 일급 비밀을 누설해 가지고 국가의 운명을 좌우시킬 수 있는 문제를 일으켜 그 주권자면 주권자, 중심자 앞에 피해를 입힌 사람은 헌법의 보장을 가진 국권 앞에 있어서는 용서받을 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이놈의 자식들, 지금까지 살아도 망창 살았지? 여러분이 그런 것을 알고 심정적인 노정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그래 선생님의 뒤를 따라오라는 거예요. 싫더라도 나라까지 따라와야 되는 거예요. 나라까지 따라오게 되면 횡적인 세계는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나라까지 따라와야만 그 다음에 세계적인 국가권에서 횡적으로 갈 수 있는 역사적인 새로운 조상권을 가질 수 있는 거라구요. 그것을 알지요?「예」

이런 등등의 문제를 중심삼고, 이런 문제를 앞에 놓고 책임을 달성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통일교회와 8.15가 지난 이후의 통일교회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앞으로는 즉결처분할 때가 옵니다. 우리가 8.15를 중심삼고 통일의 날로 설정한 때부터는 교차될 때가 온다는 거예요. 지금부터 한 7년만 지내보면 대강은 알 수 있습니다.

동양 3국에 대해 책임 다했다

이제 7년만 지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여러분은 모르지요? 그래 세계는 끝에 다 왔어요, 안 왔어요? 지금 일본이 딱 그렇게 됐지요? 일본이. 일본이 그렇게 됐어요. 안 됐어요?「됐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일본 정부에 대해 가지고 여러분이 모르는 싸움을 해 나왔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일본 고위층들은 말이예요. 기시 전수상도 한국에 오게 되면 선생님을 방문하겠다는 것을 내가 못 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일본 작전에 지장이 있다는 거예요. 일본 국민들이 반대한다구요. 이번에 리틀엔젤스 후원회 회장이 되는 것도 사사까와가 됐지만 기시 전수상은 당당히 명예직을 받을 거예요. 이번에 국제문화협회라는 것을 만드는 데도 여기에 구보끼가 회장이 되고 기시 전수상은 명예회장을 시켜 가지고, 지금 국제무대에 있어서 일본 외교관이 된 사람들은 전부 다 이사로 들어와 있다구요.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그런 기반을 닦기 위해서 지금까지 밤낮 쉬지 않고 일했다구요.

자유중국이면 자유중국을 위해 구보끼를 시켜 가지고 세 번씩이나 지시를 했다구요. '일본에 폭격해라. 일본에 선전포고를 다시 해야 된다. 그러면 중국이 살아날 길이 있다' 1970년, 3년 전에 그런 얘기를 했다구요. '미국을 대해서 선전포고해라' 이거예요. 미국과 싸우라고 했다구요. 중공에 일방적으로 들어가 한번 '꽝' 해 가지고 아예 구축함 같은 것을 하나 깨버리라는 거라구요. 그렇다고 미국이 대들어 싸움할 거야. 그렇게 되면 절충하는 거라구요. 중공하고 싸우게 지휘하는 거예요. 그런 사건을 일으켰으면 자유중국이 저렇게 안 됐을 거예요.

그때 구보끼를 시켜서 앞으로의 중국 문제에 대해 장개석한테 얘기하게 했다구요. 앞으로 중국을 통일해야 된다는 얘기를…. 이러니까 장개석이가 자기 앞에서 그런 얘기를 한다고 해서 경호관을 시켜서 구보끼를 끌어냈다는 거예요. 그것을 보면 구보끼가 훌륭하다구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행동하는 사나이라구요. 해라! 앞으로 이렇게 안 하면 안 된다고 쭉 얘기했다는 거예요. 장개석이가 말을 듣다 보니 제일 싫어하는 말을 했다구요. 제일 싫어하는 말을 했는데 전부 이치에 맞는 말이라구요. 그렇지만 장개석이는 거기서 그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거예요. '치워 버려, 이 자식들아!' 내가 그런 이야기를 왜 하겠느냐 하며, 계속해 가지고 한 시간 가까이 권고를 했던 것입니다. 구보끼가 1차 2차 3차까지 선생님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임무를 했기 때문에 장개석이나 중국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구요.

그렇게 했는데도 말을 안 들으니까 날라가야 되는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원래는 내가 워싱톤에 있을 때에, 5월에 돌아오다가 장개석을 만나기로 약속을 한 거라구요. 그런데 내가 안 만나고 돌아왔다구요. 내가 올 때도 대만에서 만나게 돼 있었어요. 일본에 갔을 때 구보끼가 연락하려고 하는 것을 연락하지 말라고 했어요. 내 책임을 다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동양 3국에 대해 내 책임을 다했어요. 한국, 일본, 중국에 대해서. 아시아적 천사장 국가가 중국입니다. 그 나라에 대한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세계적 천사장 국가인 미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의 피어린 전통을 상속받겠다는 여러분이 돼야

이러한 문제가 말뿐이 아니라구요. 이것이 안 맞아떨어지면 원리가 틀려지기 때문에, 생명을 걸고 필사적인 투쟁을 하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기 때문에, 영적기준이니만큼 내적 기준이라도 그러한 전통 기반을 아시아에 닦았다는 조건이 섰기 때문에, 3차 세계순회노정에 있어서 이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제 2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선생님에 대한 내막을, 선생님의 역사를 알게 되면 기가 막힐 거예요. 자신이 뜻을 위해서 뭘했느냐 이거예요. 입을 벌리고 통곡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들아, 너희들 다리 가죽에 아직까지 굳은살이 안 배겼지? 다리가 아직까지 병이 안 났지? 뭐 차를 안 타고 다니면 어때? 수작 그만두라구. 선생님이 차를 타고 다닐 때까지는…. 별의별 놀음을 다해 가지고 여기까지 올라온 거예요. 그렇게 올라오게 된 거라구요. 자, 그러니 여러분들도 그렇게 할래, 안 할래?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은 손들라구. 양손을 들어 봐, 이 자식들아. 내려! 자, 이제부터 반드시 그렇게 해야 되겠어요.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뭘 물어 볼 때에 눈꼴사나운 것이 많겠어요, 없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매스껍고, 얼마나 뭐라고 할까? 이거 보게 되면 거지 족속을 기르는 것보다 더 기가 막히다구요. 철원!「예」 잘하고 있는가?「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려면 못해서는 안되지. 철원이 무슨 도시예요? 방위도시라구요. 단단히 결심하지 않으면 붙어 있지 못할 곳이라구요.

가만히 보게 되면, 전체 식구에 대해 보고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인사이동을 해야 되겠더구만. 순회사 말을 들은 것이 아니라구요. 벌써 사람을 시켜서 다 알아봤다구요. 뭘하고 다니나 하는 것까지 내가 다 알고 있다구요. 네가 핑퐁을 잘 치지?「통일교회에 들어오기 전부터 했습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서는 핑퐁 안 쳤나?「안 쳤습니다. 지난번에 도민 체육대회에 좀 나가 달라고 그래서 나갔다가…」 교회를 위해 열심히 해야 돼요. 무조건 기도해야 되는 거라구요. 눈물을 흘리고 찾아올 수 있는 식구가 있게 해야 됩니다. 전도사가, 교회장이 이런 심정을 갖고 기도했기 때문에 끌려왔다고 하면서 같이 눈물 흘리며 기도할 사람이 줄을 지어야 된다구요. 그래야 되는 거라구요. 가는 발걸음을 안 올 수 없게끔 만들어 놓아야 된다구요. 그런 기도를 해야 돼요.

선생님이 마루바닥에 엎드려 기도할 때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구요, 눈물이. 알겠어요? 여기에 굳은살이 배겼다구요. 지금도 굳은살 배긴 자국이 남아 있다구요. 엎드려 기도해서 여기 굳은살이 배겼다구요. 지금은 그렇게 기도를 안 하지만. '공든탑이 무너지랴' 하는 말이 있잖아요? 그렇지요? 하나님을 위해서 공을 들여야 된다구요. 하나님이 그리워서 미치리만큼 사무친 경지에까지 들어가야 된다구요. 하나님이 계신 곳이 땅이라면 뭐 하루에 천 번도 왔다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나 땅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없어서 선생님을 보낸 거예요.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안 되게 되어 있다구요. 괜히 그렇게 정이 가요?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에 동삼(冬三)에 솜바지저고리를 전부 다 눈물로 적실 때가 있었다구요. 얼마나 기가 막혔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칼을 꽂아 놓고 담판기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구요.

그러한 전통을 이어받겠다는 여러분들이 말이야. 자신들을 생각해 봐요, 되겠나? 선생님이 용서하더라도 선생님의 조상들이 여러분들은 가만히 안 둔다구요. 기독교의 전통적 역사를 따라가다가 순교한 선열들, 열사들이 용서 안 해 준다구요. 통일교회가 그런 무리를 통해서 발전됐다면 가짜야 가짜야. 가짜라는 거예요. 발전 안 한다구요. 임자네들이 이래 가지고 전부 다…. 선생님의 입장이 처량하다구요. 그렇게 보면 하나님이 참 불쌍하신 분이예요. 어쩌자고 어쩌자고 한국에 우리 같은 사람을 태어나게 했느냐는 거예요. 이건 가만히 보면 가면 갈수록 희망이 아니라 적막강산이라구요. 문화나 민족성을 보면 전부 틀려먹었다구요. 하기는 또 뭐 아담국가 소질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말이예요. 누구의 말도 안 들으려고 하거든요, 전부 다. 그래 선생님의 말도 안 들을래요? 선생님의 말은 들어야 될 게 아니예요?

공산권의 해방을 위해 사생결단을 해야

여러분들, 불원한 장래에 전부 다 이북에 가야 된다구요. 이북에 보내면 가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라구요. 내리라구. 말만이 아니라구요. 정보부에서 3년 전부터 선생님에게 연락하는 것을 보라구요. '앞으로 어떡할까요?' 하고 문의해 오는 것을 보라구요. 그래도 대한민국에 있어서 사상적인 단체는 통일교회밖에 없다고, 통일교회가 이러이러한 사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고 그러는 거라구요.

우리가 핍박받기 전에 주동적인 역할을 해 가지고 앞으로 홍콩 같은 데에 흥신소를 만들어야 돼요. 홍콩 같은 데에 만들어 가지고 내가 쭉 순회하면서 전부 다 관리 관찰까지 해 가지고 돌아올 참이예요. 우리가 세계적인 최고의 정보망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 제일 주력하는 것이 미국의 CIA를 포섭하기 위한 공작을 하는 거라구요.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정보부를 제일 무서워하지요? 통일교회는 정보부를 무서워할 줄 모른다구요. 까딱하면 치고, 까딱하면 매까지 맞는 거예요. 까딱하면 욕을 하고, 그 사람들이 우리하고 제일 원수졌다구요. 그렇지요? 미국 CIA면 CIA를 앞으로 어떡하든지 잡아야 된다구요.

그러면 앞으로 이북에는 누가 갈 것이냐? 누가 가야 되겠어요? 선생님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보내야지요?「예」 공산당이 공산당의 정수, 골수분자를 첩자로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예요? 알겠어요?「예」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뽑아 가지고 통일교회를 반대하게 하고 통일교회 간부들에게 칼침 놓는 싸움을 시켜 가지고 군에 소문내고 도에 소문내고 신문에 내 가지고 보내는 거라구요. 앞으로 그런 일도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같이 데데해 가지고 뭐…. 어떡하든지 이 땅 위에서 공산당을 굴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치밀한 조직에 있어서도 그들한테 지지 않는 조직도 갖고 있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공산당 조직에 대해 연구한 사람이라구요. 독일 조직에 대한 것을 연구한 사람이라구요. 주먹구구식인 줄 알아요? 아직 때가 안 됐기 때문에 일시에 그물코에 걸지 못하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이제 때는 그런 때가 왔다는 거예요. 이미 사생결단해야 할 때가 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남에서 그것을 준비해야 돼요. 3년 동안에 최후의 정비, 준비를 해야 된다구요. 그것이 3년 기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일본에 창림이가 갔지요? 당장에, 이번 며칠 이내에 결정해 가지고 몇 사람을 일본에 보내려고 한다구요. 정 급하게 되면 여기서 3분의 1까지 일본에 파견하여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공산당하고 진짜 싸우는 거라구요. 일본에 있어서 공산당 조총련과 싸우고, 일본 공산당과 싸운 실적을 가진 경력자들이어야 앞으로 하나님이 믿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런데 지금 이남 땅에서 지지부진해 이게…. 그런 무리는 앞으로 무덤구덩이에 집어 넣을 때가 온다는 거라구요. 그런 놀음을 앞으로 해야 된다구요. 그것을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해야 되겠습니다!」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론을 준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론 공부를 해야 된다구요.

그런 것을 알고, 새로운 결심을 하길 바래요. 내일 돌아가지요?「예」 내일 돌아갈 터인데 내일 돌아가면…. 이번에 와서 도움된 것이 있어요? 「예」 무슨 도움이 됐어요?「내적인 각오가 섰습니다」 내적인 각오가 섰어요? 각오가 안 서는 날에는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으로 통고하는 것입니다.

2차 7년노정은 예수님이 갈 수 있는 국가기반을 닦는 기간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가는 길과 선생님이 가는 길이 차원이 달라진다구요. 여러분이 차원이 달라지지 않고는 선생님을 못 따라간다구요. 선생님은 이번 9월 중에 또 외국에 갈 거라구요. 외국에 가면 언제 돌아올지 몰라요. 여러분들이 외국 식구들보다 더 잘 움직이면 오는 거라구요. 그러지 않으면 주체국으로서 위신을 못 세울 때가 온다는 거예요.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됩니다. 고생은 죽도록 해 놓고…, 끝을 잘 맺어야 됩니다. 끝을 잘 맺어야 된다구요.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를 대해 가지고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마 21:19)고 저주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망을 키웠던 터전이 이래 가지고는 안 되겠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섭리역사를 책임져 가지고 바라던 소원이 이 꼴이라면 죽어야 돼요.

그런 결심을 해 가지고…. 2차 7년노정은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이지요?「예」 2차 7년노정은 이스라엘권을 만들어 가지고 예수님이 갈 수 있는 자유로운 국가 기반을 닦아 드려야 하는 기간이라구요. 그래야만 2차 7년노정이 완성되는 거라구요. 그것이 뭐냐 하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하나돼 가지고 예수를 받들어야 된다는 그 말이 아니예요? 그렇지요?「예」 본래 메시아가 갈 길은 인류를 대해 가지고 피땀 흘리며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구요. 국가 기준에서부터 준비해 가지고 로마제국, 세계적인 가인 나라를 굴복시키는 것이 메시아가 해야 할 사명이라구요.

지금 선생님이 똥구더기 노릇을 하고 있다구요. 종 노릇, 양자 노릇을 하면서…. 여러분들이 울고불고해 가지고 하나님의 동정의 심정을 일으켜야 되는데, 내가 울고불고해 가지고 가르쳐 줘 가지고 하고 있다구요. 반대로 하고 있다구요. 그것을 가르쳐 줘 가지고 내 대신 세계를 위하는 놀음을 하라는 거라구요. 그래 그 놀음하고 있어요?

선생님이 60년대 전에는 7년간을 잠을 많이 자지 않았다구요. 하루에 평균 두 시간, 세 시간밖에 안 잤다구요. 알겠어요? 새벽 두 시, 세 시, 네 시가 보통이예요, 매일매일…. 알겠어요? 이래 가지고 식구들을 중심삼고 민족을 사랑해야 할 입장에서 민족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 분해서 밤을 새워 가면서 이야기해 준 거라구요. '날 닮아라, 날 닮아라' 하며 기른 때가 있어야 될 것이 아니예요. 그렇잖아요? 어린아이를 일곱 살쯤까지 정성들여 키워 놔야 그 다음에 국민학교에도 보내잖아요? 그렇잖아요? 안 그래요? 그것이 원칙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7년노정이 다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가인을 기르려면 7년을 길러야 됩니다. 그러므로 7년노정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먼저 가인을 사랑해야 하는 사랑의 원칙을 세우신 선생님

그래 여러분에게 누구를 사랑한 역사가 있어요? 목을 걸고 사랑한 역사가 있어요? 여러분은 그 동네의 책임자입니다. 선생님은 10대 때에 서울을 대신해서 눈물을 많이 흘린 사람이라구요. 전차도 안 타고 다녔어요. 그때 노량진에서 살았는데 시내 나올 때는 반드시 걸어다녔어요. `나라 없는 백성이 전차가 있으면 뭘 하느냐? 그 전차가 누구의 전차냐? 우리 나라의 전차가 아니다. 일본 전차가 아니냐? 그들에게 왜 한푼이라도 돈을 주느냐?´ 이런 것입니다. 그때에 전차삯이 5전씩이었어요. 그 비용을 대신 거리에서 '적선이요' 하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줬다구요. 땀을 흘리며 한 시간 반이면 왔다갔다했어요. 선생님이 참 빠르다구요. 전차한테 뒤떨어지지 않았다구요. 이래 가지고 가두에서 '적선해요' 하는 사람을 붙들고 내 땀값을 줬다구요. 이렇게 훈련해 온 사람이라구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임자네들은 모르지요? 뭐 걸어다니는 게 힘들어요? 고개를 넘으며 땀 흘리는게 힘들어요? 탕감복귀원칙에 있어서 우리가 그런 사정을 다 겪어 봐야 세계 사람들을 지도한다는 거예요.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이 뭐냐 하면…. 여러분은 모르지만 옛날에는 상도동에서 흑석동 중앙대학교로 넘어가는 산마루가 있었다구요. 거기는 무인촌이었어요. 고개를 넘어가게 되면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꽃을 재배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거기에 가면 논두렁이 있는데 그 논두렁에서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이 천안 사람인데 그 논두렁에 누워 신음하면서 앓고 있었어요. 거기를 넘어가다가 그를 떡 만났는데 야단났더라구요. 그래 알고 보니 지금 어디 자기 친척을 찾아오던 길인데, 주소를 알아 가지고 왔는데 잘못 알아 가지고 와서 찾다가 길에서 병이 나 쓰러졌다는 거예요. 그 사람을 업고 거기서부터 노량진까지 가던 일이 엊그제 일같이 생각이 나요. 그것이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 일이었다구요. 바로 그때가 신학기, 3월말께인데 그 사람에게 차표를 끊어 주고 내 학자금 전부 다 털어 가지고 줘 보낸 거예요. 학자금이 하나도 안 남았었다구요. 책도 사야 하고, 하숙비도 내야 하는데 전부 다 털어 줘 버렸어요.

그것을 보면 그 사람의 조상이 선한 사람이라구요. 자 그렇다고 해서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없으면 없는 대로 산다구요. 내가 남이 하는 것은 다 한다구요. 신문 배달도 할 수 있고, 구루마도 끌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고 지내는데 난데없이 그 몇 배의 돈이 생겨난 거예요. 알겠어요? 그 사람의 친척이 나를 찾아왔다구요. 난데없이 몇 배의 돈을 주더라구요. 3일 이내에 다 청산하고 가더라 이거예요. 그런 일이 너저분 하다구요. 알겠어요? 참 많다구요. 그 사람은 자기가 온 게 아니라구요.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위해서….

또, 어떤 때에는 비상 작전법도 있는 거라구. 우리 아이들 가운데에 흥진이가 있다구요. 한번은 흥진이가 고열이 나는 아주 지독한 독감에 걸려 가지고 앓고 있었다구요. 열이 41도까지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았다구요. 그때에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아기를 사랑해야 됩니다. 아기를 사랑하는데 원리적으로 사랑하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만일에 가인의 아기가 그런 입장에 있으면, 내 자식과 가인의 아기가 있다면 누구를 사랑할 것이냐? 누구를 동정할 것이냐? 그런 마음이 생겨날 수 있다구요. 따라서 그런 마음이 일어나서 가인 아기를 사랑하면 자기 아기는 틀림없이 날 것입니다. 그게 원리원칙이라구요. 알겠어요?

자, 그러니 원리원칙을 실행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을지로 2가 우리 센타가 있는 거기서부터 을지로 3가, 4가로 갔다구요. 그때에는 겨울이라 추워서 거리에 사람들이 없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길을 죽 걸어가고 있는데 문이 닫혀 있는 어떤 가게 앞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포대기를 뒤집어쓰고 애기를 붙안고 말이지, 조그마한 밤알들을 몇 개 놓고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어요. 그 애기를 보니까 얼마나 안됐는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구요. 그때는 내게 있는 모든 정성을 다하는 거예요. 그래 지갑을 다 털었다구요. 그때 내가 5만 원을 가지고 나가 가지고 천 몇백 원인가 쓰고 4만 8천 몇백 원이 있었어요. 쓰려고 넣어 두었던 거예요. 그럴 때는 돈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지갑까지 몽땅 털어서 전부 다 주고 왔다구요. 가인을 사랑하는 동정의 마음을 베풀고, 그 다음에는 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버지여, 사랑의 원칙이 이러이러합니다' 하는 마음을 먹고 돌아왔습니다. 와 보니 그 시간에 병이 나았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런 일들이 많다구요. 탕감법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거예요. 지금 선생님의 생활에는 그런 일이 많다구요. 어디를 가다가도 난데없는 일을 하는 거라구요. 그럴 때는, 마음이 그렇게 동할 때는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구요. 그걸 보면 그 애기는 선한 조상의 후손이라는 거예요.

영계에서 선한 조상이 협조하여 내가 그 사람을 도와줌으로 말미암아 내가 손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애기가 한국을 위해서 공을 세운 충신의 후손이면 그 후손을 통해 충신으로서 공을 세운 것을 우리 통일교회가 인계받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런 일이 많이 벌어져요. 그렇기 때문에 도인들이 찾아오게 되면 선생님이 그냥 안 보낸다는 거예요. 도인들이 찾아오게 되면 전부 다 인계식을 하는 거예요. 그런 놀음을 참 많이 했다구요. 그렇게 전부 수습해 가지고 이것을 임자네들에게 보자기에 싸서 그냥 그대로 몽땅 상속해 준다는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 녀석들아. 이 곰 같은 녀석들아!

선생님이 여러분 앞에 이렇게 나서서 얘기하는 데 그럴 선생님이 아니예요. 본래는 세계의 주권자들을 지도하고, 그 사람들을 시켜먹을 사람이라구요. 알겠어요? 이거 어쩌자고 어쩌자고 이렇게 되었어? 이놈의 대한 민국에 태어났기에 이렇게 되었지.

하나님을 중심한 심정생활의 길

여러분이 그런 것을 알고, 그런 심정적 내용을 실제로 느껴야 돼요. 말 만이 아니고,많이 많이 느껴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 여러분이 어디를 가다가도 하루에 몇 번씩 생각해야 된다구요. 하늘을 보고도, 모자를 썼으면 모자를 쓸 수 없는 그런 황공한 마음이 사무쳐야 돼요. 여러분이 좋은 산을 바라볼 때도, 찬양해야 할 거룩한 하나님의 창조의 묘미를 찬양할 수 없는 자신을 탄식해야 합니다. 보고 듣고 사는 것 전부 다 그런 마음으로 행하는 심정적 생활을 해야 된다구요.

선생님은 지금도 그렇다구요. 누가 나에게 심정적인 한마디만 얘기하는 날에는 통곡할 사람이라구요. 그런 심정을 가졌다구요. 내 심정에 언제든지 하나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이고 척추가 내리 꽂히는 듯한 그런 뭐가 있다구요. 그것이 그렇게 되면 어떡하느냐? 나 자신도 어쩔 수 없다구요. 그런 영역이 있기 때문에 비록 기도를 안 하더라도 생활 전부는 기도 생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메어 쓰러지고, 나무를 붙들고 전신주를 붙들고 억제할 수 없는 이런 하나님의 기가 막힌 사정, 억울하고 분통한 사정이 얼마든지 있다구요. 지금도 그렇다구요. 어떤 때에는 몸을 지탱하지 못할 정도의 심정을 체휼하게 됩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면 그 시간에 하나님의 슬픈 일이 있는데, 어느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 준다는 거예요. 그것은 왜? 내가 지상에 중심적인 책임을 지고 왔으니만큼 영육을 중심삼고 수습해 줘야 할, 심정적 터전을 연결지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내게 반드시 연결시키고 통고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짜 나가고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마음을 못 놓고 사는 사람이라구요. 마음을 못 놓는 거예요. 언제나 심각하다는 겁니다. 어느때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구요. 안 그래요? 충신이 가는 길이 그렇다구요. 효자의 가는 길에 있어서 밤이나 낮이나 어느 무슨 명령이 있을 줄 알아요? 부모가 부르는데 '아이고, 나 잠자오' 하는 건 효자가 아니라구요. 그러니 절대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마음놓고 자고, 마음놓고 먹고, 마음놓고 사는 생활이 아니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세계의 대표가 될 것이다' 하는 것은 여러분이 추측으로도 알 수 있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렇게 살아야 된다구요. 길을 가다가 배가 고프면 그 주린 배를 부여안고 '아버지가 얼마나 불쌍하신가' 하고 울어 봤어요? 이놈의 주린 배때기가 더 주리도록 울어 봤느냐 이거예요. 여러분 고생길은, 심정의 세계에서는 하나님과 더 가까울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에 고생이 나쁜 게 아니라구요.

선생님은 지금도 감옥살이를 각오하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만일에 대한민국이 반대해 가지고 내가 3년쯤만 감옥에 들어가 있으면 대한민국은 빨리 복귀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감옥에 들어가 복귀가 빨리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취하자는 거라구요. 최단 거리로 가자는 거예요. 이것이 선생님의 철학입니다. 알겠어요? 십년을 고생해서 일년을 단축시킬 수 있으면 나는 그 길을 가겠다 이겁니다. 그러니 체면도 없고, 위신도 없습니다. 여편네의 체면도 모르고, 부모 앞에 자식의 체면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렇게 닦아 나온 것이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심정적 역사라구요. 알겠어요?「예」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돌아가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구요. 내가 통일교회를 위해서 무슨 일을 했느냐? 일했다는 것을 적어 보라구요. 여러분이 아무 곳의 지역장, 아무 곳의 지역장을 할 때의 그 역사를 한번 쭉 냉정히 비판해 보라구요.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고 나와 가지고, '아버지, 내가 보고하겠소' 심정 세계의 심정의 거울 앞에 서 가지고, 천하에, 전 우주에 입체적으로 드러나는 그 세계 앞에 서 가지고 보고하는 내 자세가 어떨 것이냐? 입을 열 수 있겠느냐? 얼굴을 들 수 있겠느냐? 숨을 쉴 수 있겠느냐?

'나는 죽더라도 그 부끄러운 참패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죽더라도 그런 모습을 보이고 죽지 않겠다' 이래야 된다구요. 차라리 그것을 면할 수 있는 죽음길이 있다면 그 길이 행복한 길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해 봤어요? 여러분이 이번에 돌아가 가지고 좀 달라져야 되겠어요. 알겠지요? 「예」 진짜 달라져야 된다구요.

한국이 망해도 뜻은 망할 수 없다

이제 일본 식구들 가운데에 현재의 책임자들은 3년 이내에 미국에 데려다가 고생시키려고 합니다. 알겠어요? 원래는 임자네들을 데려가야 된다구요. 원래 임자네들 데려가는 것이 전통인데, 임자네들을 가만히 보면, 지금 밤낮없이 달리겠다고 해 가지고 '요이 땅' 할 것을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없다구요. 할 수 없어서 눈치만 보고….

새로운 천지의 전통을 마련해야 될 것이 아니냐? 그런데 여러분을 앞에 내세워 가지고 전통이 되겠어요? 전통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 일본 사람밖에 내세울 사람이 없다구요. 그래서 그들에게 경제적인 분야에서 길을 닦게 해 가지고 전통을 세워 가지고, 그 다음에 여러분을 재각성시켜 가지고…. 이스라엘을 버리고 이방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섭리와 마찬가지로, 그러지 않으면 안 될 이런 때에 들어왔다는 거예요. 여러분을 데려가면 좋겠지요?「예」

이제 선생님은 세계적인 사명을 해야 됩니다. 대한민국에 대한 책임을 다 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누구 누구 사람을 시켜 가지고 내가 할 것에 대해 조건도 세우고 다 그렇게 하고 있는 거라구요. 이제 편지 몇 장만 쓰면 다 되게 돼 있다구요. 이제 대한민국에 대한 내 책임은 다했다구요.

그러니까 이제는 세계적 기준에서 세계를 대해 나가야 돼요. 제2작전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만약에 한국이 망하는 날에 어떻게 되겠어요? 여러분, 뜻이 망하면 되겠어요?「안 됩니다」 뜻이 망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또 살아난다구요. 공산당이 여기를 전부 다 점령해 버려도 여러분들은 죽지 말아야 합니다. 알겠어요?「예」 죽지 말아야 할 텐데 어떻게 해요? 공산당이 내려오면 여러분의 목을 전부 다 자를 텐데. 그래서 그것 까지 방지하기 위해서 지금 대마도에 전면적 개척을 추진하고 있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지금 배까지 마련할 준비를 하고 있다구요. 만일에 무슨 일이 생길 때에는, 통일교회 교인들이 생각지도 않았는데 '아무 데로 모여라' 하는 명령이 있을지 모를 거라구요. '선생님이 그거 왜 그러노? 하면 안 돼요. 그럴 때도 있다구요.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이 벌어진다구요.

지금 사사까와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 만일에 한국에 김일성이가 내려오는 날에는 자기가 비상조치를 취해 가지고 문선생을 구하겠다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고, 요전에 통고까지 해 왔어요. '만일에 선생님이 망명하는 날에는 내가 책임지겠으니 일본에 오소' 하는 거예요. 통첩을 갖고 있다구요. (웃음) 공산당을 때려죽이겠다고 선두에 섰던 문선생이니까 공산당에게 걸리면 국물도 없다는 것을 안다구요. 그걸 보면 일본 사람이 선생님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요.

그런 문제까지도 생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민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공산당을 방지할 준비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만일에 일본에 공산혁명이 일어난다면 한국에 데려올 수도 있다구요. 그렇잖아요? 일본 사람들을 전부 다….

이런 등등의 긴박한 문제,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지만 그런 문제까지도 생각해 가지고 우리는 예산을 지원해 작전을 추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이 가는, 통일교회가 가는 길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예」

아벨의 권위를 가지고 기성교회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어야

여러분들은 꿈도 안 꾸었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미리미리 여러분의 갈길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기에서 천년 만년 살겠어요? 지금 나이가 50이 넘지 않았어요? 오래지 않아 이 땅을 떠나가는 거라구요. 그러니 내가 해야 할 것은 뭐냐 하면, 임자네들과 더불어 여러분의 후손이 잘살 수 있는 전통을 올바로 세워 놓는 것입니다. 이 전통을 못 세워 놓으면 비참한 민족이 된다구요. 지금은 그렇게 하는 것이 싫지만 이를 악물고 배밀이를 하면서라도 안 하면 안 됩니다. 안 하면 안 된다구요. 여러분이 고생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내가 무슨 원수졌다고 고생시키려 하겠어요? 그렇게 하는 것이 절대 입체적으로 손해 안 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거라구요.

이번에도 보라구요. 여러분이 선생님한테 무슨 얘기를 하겠어요? 전도대원들이 혼자 사는 것이 불쌍하기 때문에, 3년노정 기간에 어떻게 하든 120명을 만들라는 말 들었어요, 안 들었어요?「들었습니다」 못 들은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러다가 한꺼번에 몽땅 실패하는 날에는 더 큰일난다구요. 그래서 중간에 다리를 놓아야 되겠다 해서 분산시키는 거라구요. 분산시키려 하기 때문에 그때가 되기 전에 미리 준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분산만 시켜 놓는 것이 아니예요. 전도를 못 했기 때문에 전도요원을 보급시키기 위해, 실패한 것을 제 2차적으로 포섭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거예요. 이거 하기 위한 것이 기동대 활동이라구요.

이래 가지고 가서 전부 다 일구어 전도해 놓으면 수습은 여러분들이 해야지 누가 하겠느냐? 수습도 못 하고 다 흘려 버린다구요. 나중에 어떡할래요? 선생님이 어떡하라는 거예요? 그렇게 자기들 살 터전을 닦아 주고, 생활 기반을 닦아주고 했는데 어떡하라는 거예요.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기반을 만들어 가지고 기성교회 교인들이나 목사들한테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주체적인 기반을 닦아 놓아야 앞으로 여러분이 아벨의 권위를 가지고 기성교회를 대해 당당한 입장에 서지, 기성교회에 흡수되어 들어가 가지고 그들 앞에 끌려가는 입장이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제 그럴 수 있는 때가 온다구요. 이제 조금만 있으면 그런 때가 온다구요.

보라구. 내가 본래는 71년도 72년도에 150개 교회를 지어 주기 위해 A타입 B타입 C타입 설계를 다 해 놓았다구요. 알겠어요? 그래 3억이라는 예산을 딱 세워 가지고 준비하고 있던 사람이라구요.

자, 해주기를 원한다면 이것을 해줄 것이다! 해주면 어떻게 될 것이냐? 지금 임자네들에게 해주더라도 그것이 텅텅 또 빈다, 이럴 때에는 통일교회 문선생 얼굴에 똥칠하고 마는 거예요. 더 창피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것을 해주기 전에 중간적 기간, 중간적인 한 단계를 넘어가자! 그래서 7천만 원 정도 마련해 가지고 전국에 도와주었다구요. 5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처소를 얻어라. 지역 본부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을 전세라도 얻으라고 30만 원씩을 후원하는 운동을 했다구요. 그렇게 했어요. 안 했어요?「했습니다」 해 놓고 나니 그것마저 텅텅 비었다는 거예요. 교회를 지어 됐다면 어떻게 됐겠어요? 실패인가, 아닌가? 교회 지어주지 않기를 잘했다, 못 했다?「잘했습니다」 잘했다!

그 대신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게 뭐냐? 3년 이후에는 선생님이 한국에 없습니다. 물론 앞으로 한국에 왔다갔다하겠지만, 그것은 1972년까지 입니다. 제2차 7년노정까지입니다. 출발을 1차, 2차, 소생 장성까지 했으니, 완성은 세계적인 시대가 아닙니까? 그렇지요? 세계적 시대가 아니냐? 그러니까 세계적으로 순회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그 전통을 3년 동안 닦자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래서 이 1972년도부터 3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 전통을 닦으려는 거예요. 세계 시대의 기반을 닦아야 될 것이 아니냐? 전부 다 원리적이라구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외국에 갈 때 그런 것을 할 줄 몰랐지요? 소식 들었어요? 협회장도 가면서 몰랐다구요. 미국에 가서 선생님이 선포할 때 난데없이 발표하는 줄 알았지만 선생님은 벌써 1년 반 전부터 20개월 전부터 여기에 와서 기도하고 준비한 거라구요. 알겠어요? '나는 이렇게 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반대가 벌어질 것이고, 미국에 있는 통일교회 식구, 선교사들이 반대해도 그들을 다 모가지 자르더라도 나는 이렇게 가야겠습니다' 이렇게 하늘의 결정을 말아 쥐고 현지에 들어간 거예요. 들어갔는데 얼마나 핍박이 많은지. 사탄들이 아주….

맨 처음 일본으로 출발할 때 여권 수속에 얽혔던 일화

우리가 맨 처음 한국에서 일본으로 출발할 때에, 비상사태를 선언하기 바로 전날 떠났다구요. 가만 보니까 사태가 절박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출발하려고 하는데 주일날이라 수속을 못 한 거예요. 외무부 여권과 과장의 결재를 받아 놓아야 되는 것을 못 받아 놓았다구요. 주일날이라도 나가야 할 텐데 인증서가 없기 때문에 못 나가게 됐다구요. 큰일 났거든요. 그래 가지고 그 시간까지 전부 다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30분전에 여권과 과장을 만난 거라구요. 그것이 하늘의 역사라구요.

그 여권과 과장은 주일이니만큼 자기 과원들을 데리고 청평 호수에 놀러가려고 약속해 놓았어요. 그래 과장이 아침에 일어나 가려고 하니까 몸이 찌뿌드드하고 아, 왜 그런지 절대 가고 싶지 않더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자기가 '내가 이렇게 몸이 아파서 못 간다'고 전화를 해 놓고 할수없이 일어나 뒤적뒤적하는 판이었다나요. 그때 우리 패거리가 찾아간 거예요. '우리 선생님이 나가야 할 텐데 어떡할 테요?' 주일 아침에 과장이 앉아 있을 게 뭐예요. 과장이 가고 싶지 않아 가지고 뒤척뒤척하고 있는 판인데 우리가 가서 큰일났다고 해 가지고 그 과장을 내세워 서류를 준비한 거라구요. 주일날이라 문을 다 채워 놨다구요. 세 문 열쇠를 전부 다 과장이 갖고 있는데 과장이 없으면 큰일나는 거라구요. 이래서 그 과장이 전부 다 자기가 열어 가지고, 자기 도장까지도 내어 증인서를 써 줘 가지고, 우리가 그것을 30분 전에 들이대 가지고 떠난 거라구요.

일본에 들어가는 데 있어서 말이예요. 선생님의 여권이 무엇이었느냐? 아시아의 경제인 대표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회의는 벌써 40일 전에 끝났다구요. 그 여권을 가지고 일본에 들어가는 거예요. 들어가는데 이것을 파고들면 큰 문제가 벌어진다구요. 하나님이 보호하사 믿고, 모험을 하는 거라구요. 그때 출입국 관리 요원들이, 외무부 요원들이 전부 나와서 조사하는 거라구요. 조사하는 데에 쓱 가서 가만히 보니까 여러 사람이 있는데 그 뚱뚱한 녀석한테 가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가 보니 그 녀석이 바로 어떤 녀석이냐 하면 한국말을 참 잘하는 녀석이었어요. 나 한국 사람 미스터 문이라고 소개하니, 이름은 안 봐요. 내가 한국말을 하니 한국에서 오셨느냐고 하는 거예요. '아, 당신이 어떻게 한국말을 할 줄 아느냐'고 물으니까 자기가 뭐 경상남도에 있었다는 거예요. 야 이거 찬스다는 거예요. '어쩌면 한국 사람보다도 이야기를 잘하느냐? 당신이 어떻게 일본 사람이냐 한국사람이지' 하면서 농담을 한 거라구요. '아, 그렇지 않다. 당신은 교포든가, 당신의 아버지 아니면 어머니가 한국사람일 것임에 틀림없다. 당신은 한국사람이라구' 이런 농담을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갔다구요. 그랬더니 '그 여권을 주소' 하며 그냥 꾹 찍어 주는 거예요. (웃음) 그때는 그런 놀음도 해야 된다구요. 농담도 쓱쓱 하고 '당신이 말이야…' 그래 가지고 그 관문을 통과했다구요.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들어가기까지 생겼던 일화

여기 미국 대사관에서 여권을 안 내주기 때문에 일본에 가서 내려고 미리 아는 사람을 통해 일본 대사관에까지도 연락해서 자신있다고 해 가지고 떡 갔는데 안 된다는 거예요. 미국에 들어가려면 캐나다를 통해 들어가야 되거든요. 미국 여권을 못 냈기 때문에 캐나다에 가서 내려고 그랬어요. 일주일 전에 그런데 안 된다는 거예요. 한국 목사가 캐나다 대사관을 통해 비자를 내 가지고 미국으로 도망가서 지금 찾는 중이기 때문에 한국사람은 절대 캐나다에 안 들여보낸다는 거예요. 떡 이렇게 되었다구요. (웃음)

이렇게 되니 할 수 있어요? 그래 성신 대학교 이사장을 통해 보좌관이라고 해 가지고 길을 터서 다리를 놔 가지고 천신만고 끝에 대사와 우리 네 사람이 면담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현찰이 없으면 큰일나겠더라구요. 얼마나 꼬치꼬치 파는지, 일주일 전에 떡 그랬으니 말이예요. 한국 사람을 들여보내지 말라는 통첩을 자기 본국으로부터 받고 있는데, 한국 사람을 한 사람도 아니고 네 사람씩 들여보내게 된다면 문제가 된다나요. 그래 얼마나 꼬치꼬치 캐묻는지 거기에서 시간을 한 시간 가량 보낸 거예요. 나중에는 현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미국에 간다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 남미 엘살바도르에 간다고 핑계를 대 가지고 미리 여권 낸 것을 들이댄 거라구요 비자를 그렇게 냈기 때문에, 그리로 갈 것이 틀림없으니 통과비자를 내 준 거라구요. 그래서 14일 간의 통과비자를 갖고 캐나다에 들어가서 미국으로 갈 공작을 할 작정을 했다구요. 이렇게 겨우 천신만고해 가지고 겨우 끼우뚱끼우뚱 해 가지고 하나님이 보호하사 도장 안 찍을 것을 도장 찍게 했다구요. 이래서 캐나다에 가게 된 거라구요.

캐나다에 가는 데는 비행기가 직접 캐나다로 가지 않고 로스앤젤레스에 들려 가지고, 그 다음에 캐나다에 가는 거라구요. 원래 로스앤젤레스에 들려서는 비행장 호텔에서 자고 캐나다에 가야 되는 거라구요. 그런데 거기에 있는 식구들이 나와 가지고 미리 교섭해 가지고, 로스앤젤레스 통일교회에서 이분들의 신원보증을 할 테니까 내보내 달라고 미리부터 교섭해 놓았기 때문에, 하룻밤을 나와서 자는 것만 승락받고 그 이튿날 그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로 가야 된다구요. 이래 가지고 캐나다에 갔다구요.

캐나다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들어온다는 거예요. 미국에 들어갈 수 있는 비자가 있어야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미국 대사관에 가서 무슨 문제가 있었느냐면 말이예요. 미국에 들어가는 비자를 내려고 신청을 해 놓으니 사흘 후에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사흘 후에 쓱 가니까 그 대사가 안 된다는 통첩이 왔다는 거야. 거기에 옐로우 카드라는 것이 있다구요. 신원조회서가 있어요. 그것이 미국 대사관의 역사라구요. 그것은 절대 비밀문서라구요. 어떻게 돼서 못 들어가느냐 하는 내용은 당사자에게 절대 알려 주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패들이 극성맞게 매일같이 갔어요. 이래 가지고 대사들하고 농담할 정도로 다 친했다구요. 그래 안 보내 준다는 것을 미국 대사관에 가서 들이대고 '왜 안 보내 주느냐?´고 하니까 할수없이 '미스터 문은 1967년도에 공산당 활동을 한 내용이 있다고 해서 안 보내 준다는 보고서가 왔소' 하며 보여준 거예요. 옳지, 됐다! 내가 언제 공산당 활동을 했어? 하고 물고 늘어진 거예요.

그래 가지고, 우리 단체가 넷이 있는데 네 단체가 전부 다 미국 상원의원들을 통해 가지고 미국 국무성에 진정서를 낸 거예요. '미스터 문이 1967년도에 언제 공산당 활동했느냐?´고 들이 항의하는 거라구요. 대사관에 대해서도 항의문을 보내 가지고 큰 문제를 일으켜 놨다구요. 이렇게 되니 동부에서, 서부에서, 워싱톤에서 전부 다 캐나다 대사관에 문의가 오는 거예요. 그러니 대사관이 국방성에 문의를 한 거예요. 미스터 문은 그런 무엇이 없다는 반대 진정서가 캐나다에 있는 대사관에까지 보내져 왔다구요. 이렇게 되니까, 한국 대사관에 조회해 가지고 본국에 있는 카드를 조사해 보니까 결국에는 미스터 문이 그런 패가 아니라 승공지도자라고 하는 게 판명이 된 거예요. 입을 딱 꿰매 버렸다구요.

이래 가지고 비비고 제기고 밀고 치고 하면서 대판 싸움을 했어요. 결국 국무성이 꼼짝달싹 못하게 모가지가 딱 걸렸으니, 이제 야단났다구요. 가만 보니 우리 단체가 있으니 변호사를 불러 재판하게 된다면 국무성은 걸려 넘어가게 되어 있거든요. 자기들 정보망이 엉망진창이 되어 있기 때문에 큰일났으니 '어서 내 줘라' (웃음) 해 가지고, 캐나다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서 입국 비자를 얻은 거예요. 기적적으로 미국에 들어간 거라구요. 그것을 사탄도 알기는 알아요. 세 고개를 넘은 거예요. 소생, 장성, 완성. (웃음)

그래 가지고 12월 18일에 워싱톤에 도착한 거라구요. 그런데 워싱톤에 갈 때도 그날 워싱톤에 도착해야 하는데 비행기가 있어야지요. 그날이 리틀엔젤스의 마지막 공연날인데, 내가 참석한다고 미리부터 약속해 놓았는데 오지 않으니까 아이들이 코가 늘어져 가지고 전부 다 기다리고 앉아 있는 거예요. 딱 그날이 마지막날이지, 비행기는 없지, 할수없이 프로필러 비행기를 타고 간 거예요. 그런데 이놈의 비행기가 안 들리는 데가 없구만. 한 시간 반이면 갈 곳을 여섯 시간인가 일곱 시간인가 걸렸다구요. 그래 가지고 가서 참석했다구요. 이리하여 미국 땅에서 활동이 벌어진 거라구요.

복귀의 운세에 맞춰 나가는 사람이 되라

미국에 가서 대선포할 줄은 다른 사람들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구요. 누구도 몰랐다구요. 선생님만이 알았지 어머니도 역시 몰랐다구요. 선포하니까 그제야 선생님이 안팎의 배후를 전부 다 준비해 가지고 온 것을 알았다구요. 선생님이 다 속셈이 있어서 그렇게 복귀역사를 해 나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이제도 그렇다구요. 여러분들이 앞으로 어떻게 천국에 갈 거예요. 갈 자신이 있어요? 자신 있어요, 없어요? 선생님이 없다 할 때에는 어떻게 할 테야? 방안이 있어요, 없어요? 자, 여러분들이 모여서 연구해 가지고 될 수 있어요?「없습니다」 없잖아요. 그러므로 한 고개를 넘는 쪽쪽, 내가 외국에 가 있으면 외국에 찾아와 가지고 '제발 가르쳐 주소. 끌어넘겨 주소'라고 해야 합니다. 뭐 돈이 있으면 돈을 드려야 되고, 나라 3분의 1을 팔아서라도 드려야 되는 거라구요. 그럴 수 있는 방법을 여러분이 생각하라는 거예요.

이러한 내용을 선생님이 전부 연구해 가지고 세계적인 복귀의 운세를 휘몰아 가지고 가는 거예요. 그것을 가만히 보면, 선생님이 공상가가 아니예요. 원리적인 내용에 어쩌면 그렇게 딱딱 들어맞는지 모릅니다. 옷감을 짜 가지고 마름질해 가지고 딱 맞춰 가지고 옷을 만들어 입히면 몸에 딱 맞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정세가 딱 맞아 돌아가지 않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런데 뭐가 불만이고, 뭐가 불평이야, 이 자식들아? 불평이야, 뭐야?「아닙니다」 목사들 데려다가 '이 자식들아' 하면 기분이 좋겠구만. 정신 차려야 되겠어요.

내가 여러분을 호랑이 새끼로 만들려고 했지, 고양이 새끼로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 호랑이 새끼가 될래요, 고양이 새끼가 될래요?「호랑이 새끼가 되겠습니다」 호랑이 새끼가 되라는 거예요. 될 수 있다는 거라구요. '선생님 대신자다. 하나님 대신자다. 대신자는 이래야 된다' 하고 해봐요. 된다는 거예요.

사람을 가려서 전도하거나 사랑하지 말라

선생님이 한창 때 기도할 때는 사생결단으로 기도했다구요. 어느 식구를 세워야 되겠다고 딱 정해 기도하게 되면, 철야기도를 하게 되면, 그 사람은 집에 가서 밤잠을 못 자는 거라구요. 그 사람이 아주머니면 아침에 보따리를 이고 시장에 가다가 교회로 오는 거예요. 시장에 뭐 사러 간다는 발걸음이 본부교회 선생님한테 와 가지고 그때서야 '아이코' 하는 거라구요. 누구의 힘으로 왔어요? 그 아주머니를 영계의 천사들이 끌고 온 거예요. 그런 놀음이 벌어지는 거예요.

임자네들에게도 그런 놀음이 벌어진다는 거라구요. 쓸데없는 밥 생각, 쓸데없는 자기 생각, 쓸데없는 자식 생각, 쓸데없는 여편네 생각을 하니까, 데데하니까 안 되는 거예요. 일체의 모든 것을 합해 가지고 하나님만 생각해 봐요, 되는가 안 되는가. 안 되면 선생님이 가짜니까 보따리를 싸가지고 전부 다 가라구요. 가라는 거예요.

밥을 왜 굶어요? 선생님은 밥을 안 굶어 봤다구요. 그렇다고 '당신 내게 연보(捐補)하소' 하고 내 입으로 안 해봤다구요. 알겠어요? '당신 연보하소' 내 입으로 절대 안 한다구요. 싫다고 하는데 갖다 주는 거예요. 알겠어요? 누가 연보하라면 연보해요? 나를 도와 달라면 도와줘요? 자기가 이익될 수 있는 것을 원하면 그는 반드시, 장사꾼과 딱 마찬가지예요. 장사속이라구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만히 보니까 내가 저 사람을 도와주지 않으면 벌을 받겠고, 자기가 손해 나겠으니 안 할 수 없게끔 만들어야 된다구요. 그렇게 되게끔 기도해야 되는 겁니다. 가는 손길이 있어야 오는 손길이 있는 것이 아니냐? 그렇지요? 얻어먹겠다는 거지들을 누가 좋아합니까?

여러분이 전도할 때에 척 보고 '아이쿠, 저 사람이 교회를 도울 것인가? 그런 생각해서는 안 돼요.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구요. 아, 교회를 도울 것이다…. 천만에. 내가 해야 할 것은 '내가 사람을 사랑하느냐' 이겁니다. 문제는 그거라구요. 첫출발에, 내가 사랑하는 데 있어서 교회를 생각하지 말라구요. 사람을 사랑해야 교회도 사랑할 수 있는 거예요. 교회를 사랑하려면 사람을 사랑한 후에 해야 그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자연히 교회를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교회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들이 교회를 사랑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골라 가지고 전도하지 말라는 거예요. 자기 집 문전에 찾아오면 정성껏 맞아야 됩니다. 인연이라는 것은 생각지 않는 데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인연을 맺으려면 나 자신이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생각지 않는 출세의 길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이박사가 감옥에 있을 때에, 감옥에서 이박사를 협조하던 사람들은 그때에 이박사가 대통령이 될 줄 누가 알았어요? 국가 반역자로서 사형수로 낙인이 찍힌 패였어요. 그런데 그를 협조하고 조금이라도 도와줬던 사람들은 전부 다 생각지도 않은 시대가 와서 생각지도 않은 출세를 한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러니 '사람 팔자 알 수 없다. 시간 문제다'라는 말이 그런 뜻에서 나온 말이라구요.

이러한 등등의 모든 것을 두고 볼 때, 여러분들이 사람을 가려 가지고 사랑할 수 있어요? 참이라는 것은 뭐냐? 낮에도 변함이 없고, 밤에도 변함이 없고, 가을에도 변함이 없고, 겨울에도 변함이 없어야 참이 아니냐?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사람을 가려 가지고 사랑하지 말라. 알겠어요?「예」 여러분 동네면 동네에 가서 그 동네에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거예요.

인재 양성을 위한 계획

선생님이 지금 교수협의회니 뭐니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요전에 일본 교수들이 왔다 갔는데 경비가 5백만 원이 들었어요. 이번에 여권 같은 것 전부 다 낸 것을 보게 되면, 한 사람 앞에 17만 원에서, 18만 원의 돈이 들어갔다구요. 지금 내가 여러분 한 사람 앞에 17만 원씩을 대주면 얼마나 좋겠소? 그렇지요? '아이구 이거 땅이 떨어졌다' 그럴 거예요. 짓고땡과 같이 말이예요. 그런 식으로 생각할 거라구요. '돈이 없는데 한꺼번에 와 가지고 그럴 수 있느냐'하며…. 그렇지만 교수협의회에 투자하는 것은 눈앞의 것을 위해 그러는 게 아닙니다. 앞으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한일국제평화교수협의회가 설립된다구요. 알겠어요? 세계적 조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볼 때에, 그것을 돈 주고 살 수 있느냐? 없다구요. 이래서 소생, 장성, 완성 이 3단계를 거쳐 가지고, 4차만에 그것을 다 설정했습니다. 앞으로 세계적인 교수 협의회를 만들어 가지고 한 5백 명의 교수들이 대한민국에 들어왔다 하면 대학가가 전부 돌아가는 거라구요. 그거 다 왜 그래요? 앞으로 우리가 세계적인 대학을 짓게 되면, 협의회를 중심삼고 그 협의회에서 추대를 받은 세계적인 대학 교수들을 전부 다 우리 학교에 데려오는 거라구요. 그렇게 해서 세계적인 모든 석학들을 한 곳에 집중시키면 세계적인 대학이 되는 거라구요. 그러면 그 대학을 움직여 가지고 사회 제도가 거기에 상대적 기반만 되면 이 나라는 세계적인 문화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미국이 근대에 세계적인 주도권을 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세계적인 인재들을 전부 다 품을 수 있는 대학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대학에서 민주세계의 주도적인 미국 사상을 추구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 가지고 각국에 대신, 혹은 장관, 국장들이 되게 전부 다 혜택을 줘서 보냈기 때문에 미국이 세계적인 주도국이 되는 거라구요. 마찬가지 이치가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복을 받으려면 여러분이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원칙입니다.

완전히 주기 전에는 완전히 돌아오지 않는 것이 천지원칙

이제 결론짓자구요. 그것은 또 왜 그래야 되느냐? 아까 말한 상대라는 것은 대신 사랑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상대는 자기의 이상적인 터전이요, 행복의 터전이요, 모든 기반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만물을 지으시고 사람을 지으신 것은 뭐냐? 하나님 대상으로 지은 거예요. 대상으로 지으신 것인데 주고받는 수수작용의 원칙이 천지의 작용, 운동과 법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히 다 주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게 원칙입니다. 그렇지요? 아내가 남편을 완전히 사랑하려면 남편으로부터 완전히 사랑받았다고 하는 그날에 가서야, '남편을 진짜 사랑하겠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완전히 사랑받게 될 때에, 완전히 주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것이 천지의 원칙이라구요. 주체로부터 완전히 받고 나야만 완전히 돌려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기 전에 돌려주기 시작하면 완전한 것이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거라구요. 그것이 사랑을 중심삼고 수수작용, 원리 원칙을 중심삼은 우주의 원칙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러면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이 자기와 같은 대상적인 물건을 지으시기 위해 얼마나 자기의 에너지를 투입하셨느냐? 이것을 알아야 돼요. 에너지의 투입이라구요. 하나님의 이상적인 대상이니만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중심삼고 전체를 투입했다는 겁니다. 투입입니다, 투입. 흡수가 아니고 투입이라구요. 투입에서부터 우주는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지요? 우주가 시작되는 것은 뭐냐? 선의 이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선의 이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이상적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권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즉, 뜻의 세계가 되는 거라구요.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안 그래요?

뜻의 세계라는 것은 어떻게 해서 벌어졌느냐 하면, 자기의 소모에서부터 벌어졌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그 이념을 추구하는 인간에 있어서도 소모에서부터 출발하지 않고는 창조원칙에 입각한 본연의 세계를 갖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소모시켜라. 그것이 창조하시던 하나님의 입장이었다면 재창조역사도 복귀역사니만큼, 제 2하나님적 입장에 서서 환경을 갖춰 네 자체를 소모시키라는 것입니다. 소모시키는 데는 가짜로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소모하라는 겁니다. 네 몸과 마음과 사랑, 모든 것을 소모하라. 그것이 선한 사람이 가는 길입니다. 그러한 자리가 선한 주체이신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그러니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완전히 주고 난 후 돌려받는 날에는 하나가 된다

사랑하는 데는 왜 희생해야 되느냐? 이념을 성취하는 데에는 왜 희생 해야 되느냐? 이 세계가 타락한 세계가 되어 사랑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이상이 실현되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 세계의 인간이 하나님의 이상을 재차 실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재창조의 소모의 역사를 이루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제2의 선의 발판을 지상에서 추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희생이라는 원리원칙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론적이라구요. 그것이 재창조역사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희생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이상을 못 만납니다.

오늘날, 도의 세계에 있어서 적선이라는 것이 뭐냐? 자기 소모입니다. 자기를 소모하는 것은 자기의 전체를 소모해 가지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 2의 대상을 창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사랑의 대상을 위해 소모하면서 슬퍼하는 것이냐 할 때에, 소모해 가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들딸을 중심삼아 가지고 희생하고 소모하면서 슬퍼하느냐? 아닙니다.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와 같이 소모하면서도 기뻐하는 것은 이상세계에만 있는 것입니다. 악한 세계에는 없는 것입니다. 소모하는 것은 절대 싫다고 하는 세계는 악한 세계입니다. 그렇지만 선한 세계는 소모하면서 기뻐할 수 있고, 받으면서 기뻐할 수 있는 양면의 내용을 가진 세계입니다. 그것이 수수작용의 원리(原理)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주기 전에는 완전히 돌아오기 시작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또, 그것이 그렇게 안 돼 가지고는 완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 완성을 바라본 것이 창조의 이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완전히 주고 돌려받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이었습니다. 돌려받게 될 때에는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돌려받는 날에는, 완전히 주고 난 후에 완전히 돌려받는 날에는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플러스 마이너스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입체적인 하나님이 지상에서, 즉 주체적인 하나님이 지상에서 상대적인 하나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적 횡적이 합한 통일적인 주체로 설 수 있는 것은 이 둘이 하나된 사랑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왈 부부라는 것이요. 이러한 입장에 서야 하는 것이 인류의 시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벌써 거기에 개재되어 들어간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것이 창조의 골자입니다.

희생하고 고생하라는 이유

자, 이 원칙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랑의 이상이 벌어지게 하려면 하나님의 재창조역사이니만큼 여러분 자신들이 제 2대상을 만들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전체를 소모해야 합니다. 그렇게 투입하지 않고 제 2대상이 나올 수 있겠느냐? 원리적인 입장에서 말하라고 할 때, 어때, 나올 수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하기 위해서 '희생하라'는 원칙이 이론적으로 성립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 대상을 환경에 얼마만큼 적응시키느냐 하는 문제에 따라서 주체의 중심적인 인격관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딱 나와 있다구요. 맹목적으로 전부 다 고생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래 여러분, 남을 위해서 고생해 가지고 진짜 그렇게 되었어요? 백 사람을 대표해서 고생하는 한 사람이 있으면 백 사람이 '아 그 사람' 하고 머리를 숙입니다. 숙이나요, 안 숙이나요? 「숙입니다」 좋아하나요, 안 좋아하나요? 「좋아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좋아합니다」 아무때나 좋아하는 거예요. 사시장철 다 좋아합니다. 좋아 하는 세계가 선의 세계가 아니냐? 그럼 왜 좋아하느냐? 주체와 대상이 서로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기 때문에 좋아하는 겁니다.

그는 주체적 여건을 갖추어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하나님 대신 자리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대상권 앞에 중심으로 설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지 이치인 것입니다. 그게 원리관이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여러분에게 고생하라는 것은 뭐냐? 결국은 중심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싫어요? 중심으로 삼는다는 것은 전부 다 떨어지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공격받을 때에 뼈에 살을 붙이는 것입니다. 맞는 데에는 누가 맞느냐? 내가 맞는 것이 아니라 대신 맞아 줄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이상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다구요. 원리가 그렇기 때문에 희생하라는 것은 천리원칙에 적합한 것입니다. 틀려요. 안 틀려요?「맞습니다」

그러니 희생을 하라구요. 이놈의 자식들, 다 희생하라구. 안 하겠다는 녀석들 선생님이 강제로 고생시켜야겠어요? 강제로라도 시키면 나중에는 '아이고 고맙습니다'라고 할거라구요. 그냥 두었다가는 '그때에 왜 가만히 두었소' 할 테니 가만 두었다가는 안 되겠다구요. 들이 패서라도 끌고가고, 안 가겠다고 하면 다리를 끌고서라도 끌고 가야 되겠다구요. 자, 그렇게 해주면 좋겠어요? 안 해주면 좋겠어요?「해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 굴을 파 가지고 들어가서 공부하고 싶지요?「예」 전부 다 영어 공부하고 싶지요?「예」 형무소처럼 가두어 가지고 밥을 요만큼씩만 주면서 책 열 권을 갖다가 '1년만에 이 책 열권을 전부 다 암기해서 능불능통하는 사람은 밖으로 내보낸다'고 하게 되면, 일년 이내에 전부 다 해 버린다는 거예요. 그래 딱 철문을 만들어 그 안에서 공부하게 되면…. 그런 감옥을 한번 만들고 싶다구요. 그런 감옥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손들라우. (웃음) 들어가고 싶은 사람 손들라우. 그것을 원하기는 다 원한다구요. 그것을 왜 원하느냐? 좋은 것이 되니까…. (웃음)

마찬가지 이치라구요. 왜 이렇게 싫다는 것을 자꾸 시키려고 그러느냐? 왜? 틀림없이 좋은 것이 나오니까. 그것이 미심쩍으면 선생님을 보라구요. 선생님이 그렇게 살아 가지고 망했느냐? 망하지 않았다구요. 그렇게 살면 살수록 점점점점 세상은 나한테 말려 돌아간다는 거예요. 대상을 보니까, 전부 다 대상이 창조과정에 있으니까 길면 길수록 나쁜 것이냐, 좋은 것이냐? 일생 동안 잊지 않고 죽을 때까지 그렇게 가다가 죽더라도 그것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좋은 것입니다」 좋은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언제 뜻이 이루어지겠나?' 하는 사람들…. '언제 뜻이 이뤄져' 하는 이놈의 자식들, 이 도둑놈들, 이놈의 강도 자식들, 다 망해 떨어져라. '언제 뜻이 이루어질 거야?' 하는 녀석들이 뜻이 언제 이루어질 것을 알기나 하고, 언제 이루어졌는지 보기나 했어요? 모르게 다 이루어졌다구요. 똑똑히 알겠어요?「예」 이론적으로 다 알아 놓아야 된다는 거예요. 누가 뭐라고 그래도. 재창조원리가 그렇지요?「예」

고생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

자, 이제 고생하겠어요? 안 하겠어요?「하겠습니다」 그래서 망하거든 선생님의 목을 쳐라 이겁니다. 그 동네에 가서 그래 가지고 쫓겨나거든 선생님의 목을 치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통일교회는 천지를 망치는 사기 교회라구요. 그 뻔한 놀음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얻어먹으러 들어가지 말고 주기 위해 들어가라는 거라구요. 동네 개가 짖게 들어갔지만 사람이 울고 나오게 해야 돼요. 개가 짖게 들어갔지만 사람이 울고 나오게 만드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것이 통일교회 무리가 갈 길입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 내 뒤에는 네 사람이 따라 나왔다구요. '선생님 가는 데 가겠습니다' 하는 거예요. 여편네고 자식이고 할것없이 전부 다 버리고 말이예요. 그 가운데에 문가가 하나 있었어요. 그래 문가 중에 가인이 하나 생긴 셈이 됐다구요. 자기 고향에 안 가겠다고 해 가지고 나올 때에 네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구요. 그런데 이북에 연락하러 갔다가 우리가 이남으로 나오는 바람에 떨어졌다구요. 그래서 그는 가인이니까 이북에 남았고, 나는 아벨이니까 이남에 나오고, 지금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알겠어요? 이제 내가 이북에 간다 할 때 죽지 않았으면 찾아올 거라구요. 죽었으면 그 무덤을 내가 찾아가 가지고 꽃다발, 비석을 하나 세워 줘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라구요. '너의 정성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남한과 북한이, 앞으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기도하고 있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서는 기도를 안 하지만, 지금 그를 위해서는 기도하고 있는 사람이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게 다 우연이 아닙니다.

자, 깜빡깜빡하는 눈이 있어 가지고 보고, 귀가 있어 가지고 선생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해야 되겠습니다」 고생은 나도 싫다구요. 선생님이 고생을 좋아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고생을 안 해 가지고는 성공할 길이 없다구요. 그러니 고생하는 것이 성공의 제일 직방인 거예요. 만약 그 거리가 몇백 리가 된다면 돌아갈래요. 다리를 놓고 건너갈래요? 어떻게 갈래요? 만약에 많은 국민이 왕래하여야 할 길이라면 다리를 놓아야 되겠어요, 놓지 말아야 되겠어요?「놓아야 되겠습니다」 다리를 놓으려면 설계하는 사람이 죽어야 된다고 할 때에는 어떡할 테야? '아이고 나 죽고 뭐…' 그 사람이 죽더라도 그 다리를 설계하여 놓는 날에는 그 다리를 건너는 사람 천만이면 천만인이 다 머리를 숙이고 가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희생하게 되면 만민은 그를 중심존재로 추모하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예수님도 역시 그런 입장에서 죽었기 때문에 만민의 심정적 구세주가 될 수 있었더라는 겁니다. 알겠지요?「예」

식구들을 대하는 교역자의 책임

그래 임자네들은 진짜 식구들을 사랑해 봤어요? 식구가 오기를 문을 열어 놓고 얼마나 기다려 봤느냐? 선생님이 식구를 기다리던 그 마음을 모를 거라구요.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이북에서 내가 감옥살이할 때에 귀에서 사람 소리가 나는 거예요.‘선생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다 들린다구요. 그런 입장에서 기다리는 데 1년, 2년, 3년… 10년 세월이 지나간다면. 사람 말라죽을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러면 여러분이 그렇게 기다린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줄 거예요? 울려 보낼 거예요, 기뻐서 눈물 흘리며 살게 해 줄 거예요? 그게 문제라구요. 만났는데 자리가 어떤 자리냐? 비참한 자리다 할 때에, 그 다음에는 어떡할 것이냐? '여보, 갑시다. 우리 집에 가면 이런 이런 준비가 되어 있소'라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실감이 나게끔 가르쳐 줘야 된다구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틀림없다고 하는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눈물겨운 골수에 사무치는 심정을 가지고 한마디 한마디 골수에 젖어 넘치게끔 얘기를 해줘야 되는 거라구요. '자, 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가면 우리 고향이 있소. 자 그러니까 그 길을 찾아갑시다' 할 때, '예, 갑시다' 하면 틀림없이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한 고개를 넘고 두 고개를 넘으니 '야, 틀림없구나. 늘 찾던 그 나라를 찾고 나서게 될 때에는 우리가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요? 틀림없지 않소?´ 해 가지고 교육을 해야 된다구요. 그렇잖아요? 임자네들이 따라지로 가 있는데 누가 소망을 가질 것이냐?

세상이 이렇기 때문에 내가 여기에서 안내할 수 있는 안내요원이 되어야 될 게 아니냐? 안내하려면 희망이 넘쳐 흐를 수 있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보따리를 싸 쥐고 나설 수 있는, 진지하고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신앙적인 책임자가 돼야 됩니다. 그 다음에 안내역을 하는 데 있어서, 이리로 가면 어떤 길이 있고, 우리가 가면 이렇게 된다는 것이 틀림없게끔 믿을 수 있는 실적을 보여 주고, 그럴 수 있는 사랑을 하고, 그럴 수 있는 가르침을 해줘야 될 것이 아니냐? 그것이 지금 교역장의 책임입니다. 그렇게 했어요?

하나님이 동정할 수 있는 생활을 해야

그래 사랑의 대상자를 재창조하는 역사를 하는 데 밤을 새우는 것이 그렇게 힘들어요? 그렇다면 장사꾼이다 이겁니다. 밥을 굶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힘들어요? 그런 사람은 가짜다 이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 그렇게 해봤어요? 임자네들 자신도 '뜻이 어떻게 될지 알아야지. 글쎄 두고 봐야 알지'라고 하지요? 자, 자신 있어요. 자신없어요? 「있습니다」 지금이야 자신 있어 보이지.

선생님을 생각해 보라구요. 감옥에서 출감해 남하할 때가 벌써 30년 전이라구요. 그때에 누가 알아됐어요? 누가 꿈이나 꿨어요? 임자네들이 뱃속에서 나오지 않은 그 시절서부터 고생하고 나온 거라구요. '어느때에 가서든 이런 때는 틀림없이 올 것이다. 이 뜻이 틀림없는 거룩한 뜻이니 내가 그 과정에 더럽힌 역사를 남기고 싶지 않다. 내가 불효와 불충의 역사를 아느니만큼 나는 죽더라도 그런 흠을 남기고 싶지 않다' 하면서 여기에 생명을 걸고 밤낮없이 투쟁하는 사람이라구요. 나는 죽더라도 나 자신의 더러움을 느끼고, 내가 똥 감태기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외면적인 문제가 아닌 내정적인 문제에서 하나님의 동정을 어떻게 남기고 가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의 투쟁 목표라구요. 생활 철학이라구요. 내가 죽을 때에 하나님이 동정할 수 있는 자리에서 죽자 하는 것이, 내가 사는 자리에 하나님의 동정을 남기고 살자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활 철학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아요? 어떤가? 이런 생각을 못 하고 이런 뜻이고 무엇이고 멋대로, 형편들이 없게끔 다 살아왔구먼. 자, 이런 등등을 이번에 똑똑히 가려 가지고 가야겠습니다.

부모의 심정세계란 주면서도 또 주고 싶은 마음의 세계

죽고자 하는 자는, 뭐라구요?「살고」 다 없어짐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것이 둘 다 달라진다는 거예요. 예수도 살고 여러분들도 산다 그 말 아니냐? 하늘도 살고 땅도 산다 그 말이 아니냐? 그렇잖아요? 그 이상 사랑한 것이 어디 있어요? 몽땅 주었다 이겁니다. 주고 나서 빼앗겠다는 것이 아니라 주면서 더 좋은 것을 줘야 할 텐데 하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식을 어느 황태자 이상 사랑하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느냐? 잘 입히지 못한 자식을 볼 때 '내가 너를 어떤 황태자가 입는 옷 이상 해주고 싶다. 그러나 내 입장이 이러니 이것으로 참아다오'하며 빌면서 주고 싶은 것이 자식을 진정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아니냐 이겁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이 지금 그렇게 사는 거라구요. 몇천, 몇백만 원 해 가지고 수첩에 절대 기록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선생님이 과학적인 사람이었다구요. 책상 서랍이 쭉 정돈이 안 돼 있으면 기분 나빠했다구요. 지금 우리 애들도 그렇다구요. 우리 효진이를 보게 되면 그저 장난만 치고, 우리 예진이도 그렇지만, 책상을 누가 손대면 벌써 다 알지만 그것에 개의치 않아요. 그것은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구요. 그렇게 좁쌀을 까먹는 것 같아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주고 잊어버리는 거예요. '주고 잊어버리자. 진정히 주고 더 못 주는 한을 가졌기 때문에 준 것을 잊어버리자' 이렇게 생각하라는 거라구요. 누구에게 주고 누구를 동정해 준 것을 잊어버리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고 잊어버리자! 주면서 자신을 가지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일 수 없습니다. 자신을 갖는다는 것은 주체가 됐다 하는 자리이니, 그런 사람은 거기서 받겠다는 사람이다 이겁니다. 그러니 그것은 완전한 것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완전한 것을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미완성권 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다 주고, 주면서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을 갖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이것은 영원히 계속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내가 당당히 나서게 되면 주체와 대상권이 벌어지기 때문에 그것으로 끝나 버리지만, 주면서도 또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면 이것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세계가 창조본연의 부모의 심정세계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해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망하거들랑 선생님의 목을 잘라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밤을 새워 기도해 가지고 식구들이 오면 그저 남자의 체면도 모르고, 그저 그 사람이 색시인지, 처녀인지도 모르고 반가와 가지고 그저 허리를 붙안고 울고 싶은 마음을 갖고, '어쩌면 이곳을 찾아왔느냐? 내가 복귀의 길을 걸어와 보니 이렇게 힘든 길인데, 나만이 홀로 위하는 길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이 길을 찾아오느라고 얼마나 수고했소?'라고 하여 끌어안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반가운 것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그들이 구멍이 뚫린 옷을 입고 왔으면 자신은 그의 얼굴을 못 보는 거라구요. 자기가 그 구멍이 뚫린 옷을 입는 게 낫지 그걸 못 보는 거예요. 이것이 부모의 심정이예요. 옷을 잘 못 입었으면 몸 둘 곳을 모르고, 자기가 돈이 있으면 사 주고서야 마음이 편하다구요. 이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생활을 했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통일교회 선생이 되겠다고 작정하고 나온 사람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이 자연히 끌어 줘 가지고 통일교회를 발전시킬 수 있게끔 길을 열어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거라구요. 여러분들도 그런 사람들을 대하면 눈물 흘리고 뼛골이 녹아져 가지고 그 앞에 그냥 머리고 위신이고 전부 다 쳐박고 싶지요? 그럴 것 같아요, 안 그럴 것 같아요?「그럴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절대 통일이요, 절대 순응이 벌어지는 겁니다. 가인 아벨 완전복귀의 터전이 여기 외에 있을 수 있느냐는 겁니다. 이론적으로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구요.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것은 맹목적이 아니라, 재창조역사에 불가피한 것입니다.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이 땅 위에서 비로소 하늘의 인연을 따라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서 세상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역사적 사명을 짊어지고 이마만큼 해 나왔기 때문에, 세계는 지금 통일교회 하나를 위해서 안팎으로 뒤넘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온 영계와 육계의 만민들은 앞으로 통일교회의 출세를 위해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성공이 더뎌지면 한할 것이요, 만약에 그렇게 되면 만민이 비통해 하는 날을 가질 것이다. 이런 결론을 지을 수 있다구요, 안 그래요?

지금은 나라를 위해 동원해야 할 세계적인 끝날

자, 선생님의 말을 알겠어요?「예」 오늘 시간을 많이 보냈구먼. 점심식사 시간도 없이, 오늘 말할 것을 한꺼번에 다 해치워 버려야 됩니다. 저녁에 내가 말할 시간이 줄어도 좋다구요. 내가 저녁 일곱 시에 말하기로 돼 있지요?「예」

이번에 돌아가게 되면 사위기대를 편성하라구요. 타락인간은 혼자 못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 혼자 못 가는 거예요. 사위기대를 편성해야 된다구요. 교회장을 중심삼고 전부 다 사위기대를 편성해야 됩니다. 그렇게 네 사람이 하나 안 되면 동서남북을 하나 못 만듭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문화권이 몇 개 남았느냐 하면 네 개 남은 거예요. 공산문화권, 회회교문화권, 기독교문화권, 통일문화권, 이렇게 네 개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두 강도가 있지요, 오른편 강도, 왼편 강도. 왼편이 좌익 아녜요? 바라바권이 회회교권이라구요. 그래 소련하고 회회교권이 하나되었다가 결렬된 것은 바라바하고 사탄하고 하나됐다가 결렬된 형이라구요. 그러니까 세계적인 정세로 볼 때, 예수님이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한 것처럼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문제삼을 것은 뭐냐 하면, 공산당이 문제고, 그 다음은 회회교권이 문제라구요. 알겠어요? 이스라엘 민족 앞에 있어서 회회교권이 문제라구요. 이런 문제가 벌어져 나오는 거예요. 기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볼 때, 기독교는 자연히 수습될 거라구요.

이러한 등등을 볼 때에, 이러한 마지막판이 오는 것은 원리를 아는 우리로서는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목전에 다 왔지요? 목전에 다 왔지. 지금 못 믿겠다는 녀석들은 죽으라구. 단시간에 얘기하는, 짧은 시간에 얘기하는 것이지만 역사가 전부 다 이렇게 귀결되게끔 돼 있다는 거예요. 우리 원리가 하나님의 법도가 아니면 그렇게 들어맞을 수 없다 이겁니다. 그렇지요?「예」 이런 데에도 못 움직이겠어요? 이런 데에도 안 할래요? 할래요, 안 할래요?「하겠습니다」

이번에 내려가서 어떻게든 식구 120명을 만들어 놓아야 되겠어요. 방해되는 것은 휘저어 전부 다 청산해 버리라구요. 여편네든 자식이든. 지금은 나라를 위해서 총동원하지 않으면 안 될 때라는 거예요. 지금 참바쁘다는 거예요. 우리가 밥 먹다가 천국에 가면 좋겠지만 밥 먹다가 지옥에 가면 큰일난다구요. (웃음)

주한외국인을 통한 선교방법

그래, 여러분들도 선생님이 가는 길을 따라가고 싶지요? 뉴욕에 있는 집은 아주 좋은 집이라구요. 앞으로 선생님이 작전하는 데 있어서, 미국에서는 돈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돈이 생기게 되어 있다구요. 왜 그러냐 하면 가인 아벨의 복귀원칙에 있어서 누가 주인이냐? 미국 대통령이 주인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미국 대통령이 주인이 아니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많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뭘하려고 그러느냐? 내가 얘기를 하나 하지. 여러분, 요전 미국 학생들이 한국에 왔었지요? 「35명이 왔었습니다」 그 가운데 여섯 명이 지금 한국에 남아 있어요. 여섯 명이 지금 한국에 남아 가지고 이 사람들이 뭘하느냐? 지금 한국에서 40일 전도하고 있다구요. 전도하는 데 미국 사람을 위주로 해 가지고 외국 공관에 와 있는 모든 대사관을 중심삼고 전체를 전도할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여기에 반드시 외국인 교회가 생긴다구요. 알겠어요? 외국인 교회인데 이름은 통일교회라고 안 붙일 거라구요. 그냥 외국인 교회라고 이름을 붙이는 거예요. 이 교회에 교인이 100명이 넘는 날에는 한국 장관들은 다 걸려들어간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차츰차츰 걸려들어간다는 겁니다.

이래 가지고 장관들을 전부 다 초대하게 되면 안 오겠다고 못 하게 되어 있다구요. 대통령이 방문한다면, 안 오겠다고 안 한다는 거예요. 공관, 거기에는 대사관에 있는 과장 부인이라든가 과장 아들딸이 전부 다 끼어 있어요. 그리고 각 나라, 유명한 나라의 대사관 직원들이 전부 다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들이 틀고 나가면 대한민국의 외교정책에 큰 지장을 주게 됩니다. 그런 단체를 만들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래서 지금 그 출발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거예요.

요즘에도 전도하지요? 요전에 무슨 말이 있었느냐 하면, 이런 보고가 왔어요. 한국에 미국 패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더우기나 미8군이 여기에 와 있는데, 이 사람들을 가만히 보게 된다면. 한국에 와 가지고, 총각들이 한국에 와 가지고 외부에 나가 양갈보를 찾아가 가지고 나쁜 짓을 하게 되면 병에 걸린다는 레테르가 붙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잘못하다가 병난다 하기 때문에 젊은 놈들이 지금 큰일났다는 거예요. 그렇다 해서 놀러도 못 다니고, 토요일과 주일만 되면 갈데가 없어서 빌빌하고 야단이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외국 땅에 와서 좋은 일도 없고, 한국에서는 바랄 것이 없거든요. 고생만 하고 말이예요. 이런 입장이 되었다는 거예요.

그런 판국에 기독교의 전통적인 배경을 가진 청년들 가운데에 그것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입장에 있는 청년들도 많다구요. 그래 쭉 방문해서 전도해 보니까 전부가 '당신, 어디에 있소? 어디에 있소?´ 전부가 '당신이 가는 데 같이 가자'고 한다는 거예요. 그들이 말을 들어보니, 지금 활동을 이렇게 하고, 외국 사람들도 같이 살고, 뭐 이런 얘기를 하니까 코가 아주 더 높아져 가지고, 눈이 휘둥그래져 가지고 바라보며 '당신들 어디에 있느냐?' 하면서 전부가 토요일 새벽부터 오겠다는 거라구요. 그러면서 나한테 부탁하는 것이 그렇게 되면 빵 값이 많이 들어간다는 거예요. 빵 값이 많이 들어가는데, 저녁에 와서 하루씩만 재워 보내게 되면 그저 줄지어 가지고 들어올 것이며 무수히 연락될 것입니다, 이렇게 보고하더라구요.

그래서 '야, 빵 값 지불한다'고 했어요. (웃음) 빵 값을 지불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해야 됩니다」 목사 공청회를 두 달에 한번씩만 하면 됩니다. 한 달 비용만 가지면 얼마든지 먹이고 남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그래 가지고 이 사람들이 모두 백 명이 넘었다 한다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앞으로 외국 유학 가는 유학생들, 외무부 시험에 패스한 사람들 전부 다 짝자꿍해서 모집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불란서 식구가 생겼으면 그 사람을 중심삼고 불란서로 유학 가고 싶은 사람에게 '불어를 가르쳐 주겠으니 우리 집에 오소' 해 가지고 오게 되면, 그들을 전부 다 여기에서 선교 공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몰려들겠어요, 안 몰려들겠어요? '야, 이게 무슨 호박이야! 지금 말을 배우지 못해 큰 야단났는데 불란서 사람이 자기 집에 오라고 해서 가르쳐 주겠다니…' 얼마나 죽자 살자 하겠어요? 그렇게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코가 걸릴 거라구요. 미국에 갈 녀석들도 전부 다 코가 걸릴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외국에 나가는 똘똘한 유학생들은 전부 다 내 손 안에서 녹아난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가는 쪽쪽 전부 다 전도해 가지고 거기에 교회만 만들어 놓게 되면 해가 가면 갈수록…. 우리가 대학을 짓게 되면 몇 해 후에는 유학생들 가운데 여기에 필요한 선생 짜박지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보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우리가 수고를 안 하고 말이예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그래서 내가 요즈음에 계획하는 것이 뭐냐하면, 각국에 유학생 센터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거예요. 이것은 한국에서부터 일본, 미국, 영국, 독일, 이렇게 5개국에만 만들어 놓는 날에는 세계로 나가는 모든 유학생들은 우리 손아귀를 거쳐서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자, 그 작전이 굉장한 작전이예요, 아니예요? 굉장하지요?「예」

그 유학생들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대개 돈이 많다구요. 그러니 그렇게 해 놓고 '초대 파티를 하소' 하면 안 하겠어요. 하겠어요? 빌어 가지고라도 하게 되어 있다구요. 그럴 때는 백 명의 교인이 가서 '당신의 나라 한국은 복받은 나라요'라고 하며 아리랑 타령으로부터 민요를 들이불러 주는 거라구요. 이러면 한국 사람, 외국 사람 전부 다 따라 하게 되는 거라구요.

그래 놓고는 '당신도 우리 교회에 나오소. 나오고 싶으면 나오소. 언제나 나오지 않아도 좋소. 매주일 나올 수 없지만 특정한 날, 한달에 한 번씩 예배 드리는 날에 나오소' 하게 된다면, 기성교회 장로라도 그 시간에는 참석하는 거라구요. 그때는 여기 미 8군 사령관, 대사 할것없이 전부 다 초청해 가지고 설교도 시키자구요. 유명한 사람 전부 다 시키자구요. 이래 놓으면 한국에 있어서 명물 교회가 된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뭘 할 것이냐? 그 다음에는 외국 선교사 외국 사람들을 초대하는 거예요. '와서 얘기 좀 해주소' 하면 얘기해 줄 거라구요. 와서 얘기하면 질문도 들이 대는 거예요. 왔다가 눈도 뜨지 못하고 말더듬이를 만들어 다 쫓아 버리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는 안 된다'고 디리 치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교육을 해야 됩니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 선교사들 전부 다 쓸어버리는 교육을 시키는 거예요. 반대하는 날에는 제 1호로 불란서 사람을 보내고, 그 다음에 독일, 일본, 미국 사람을 보내 가지고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두 사람 보내고, 세 사람 보내고, 다섯 사람을 보내는 거예요. 그래도 반대하게 되면 공갈 협박을 해 가지고 전부 다 밀어 버려야 되겠어요.

반대할 선교사 패들을 다 쓸어버리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내가 외국에 가 가지고 세계에서 유명한 신학자들을 데리고 올 거라구요. 그 사람들이 받는 최고의 봉급은 일년에 3만 달라라구요. 그러면 내가 10만 달러를 매해 지불할 것입니다. 3배만 올려 지불한다 하게 되면 그저 입 벌리고, 손 벌리고 '아, 어서 낚시질해 끌고 가소' 이렇게 하게 되어 있다구요. 그때쯤 되거들랑 외국 선교사들을 전부 다 바람 들게 해 가지고, 유명한 사람들을 딱 규합해 가지고 기동대를 만들 거예요. 그건 세계적 기동대라구요. 기동대를 데려다가 전국에 부흥회를 하는 거라구요. 거기에 광고지를 뿌리고, 선무 공작하는 선전 요원이 누구냐 하면 외국 통일교회 교인들입니다. 그들이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누가, 기성교회가 반대하겠어요? 반대했다가는 시대에 뒤떨어진다구요. 그런 계획을 세워 가지고 지금 추진 중이라구요. 알겠어요? 그러면 언제든지 우려먹을 수 있다는 거예요.

반대하는 기성교회 목사들이 탕감받을 날이 온다

자, 그런 교회를 만들면 좋겠어요? 안 만들면 좋겠어요?「만들면 좋겠습니다」 찬성이야, 반대야?「찬성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결국은 임자네들 길을 닦아 주겠다는 거예요. 외국 사람들까지 국내에 와 가지고….

또, 조금 더 가서는 선생님이 교회를 만들어 줘 가지고 여러분들이 책임 다할 수 있는 기반만 되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일본 기동대들을 못해도 몇백 명 데려오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과 독일에서 3분의 2에서 여기에 4백 명만 투입하는 날에는 한국은 얼이 빠질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 가지고 반대하는 목사들만 찾아가서 영어로 지저귀는 거예요. '이거 목사가, 무슨 목사가 영어도 못 해´(웃음) 천대하는 거예요. '이거 전부 다 시대에 뒤떨어진 목사들이구먼' 하고 한 대 들이치는 거라구요. '당신이 한국사람이오? 당신이 한국 사람이오?' (웃음) 밤중이라구. 내가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전부 다 가르쳐 줄 거라구.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더니 이놈의 뱃속이 어둡구만, 이놈의 자식아!´ 이렇게 젊은놈들로 하여금…. 그들이 교단에서 통일교회 양놈에게 매맞았다고 하게 되면, '그 녀석, 외국 사람한테 얼마나 잘못했으면 매맞았을까? 오죽하면…' 이렇게 하게 돼 있지. (웃음) 우리는 싸움해 가지고 욕을 잘하고도 이기는 것이고 못하고도 이기는 것입니다.

내가 기성교회 목사들 그냥 둘 줄 알아요? 죽기 전에 내가 할 것입니다. 누구 누구 다 할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잘못 알았다구요. 뭐 이화 대학의 누구? 이놈의 간나! (웃음) 선생님은 죽은 사나이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60년대의 분함을 잊지 못하고, 감옥에 들어가 공판장에 나서 가지고 희롱받던 그 아픔을 잊지 않은 사나이라구요. 죽기 전에 그것을 복수하여 탕감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인연을 가지고 여기에 몰려든 패라구요.

내가 잠을 못 자고, 내가 굶더라도 빠른 시일내에 어떻게 적중시키느냐 하는 것을 지금까지 백방으로 해 나왔고, 앞으로도 할 것이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발전하는 겁니다. 옳은 일이라면 틀림없이 하라고 했지요? 그것은 틀림없는 일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런데 뭐 안 가겠어? 이 자식들! 자, 말 좀 해보자구. 「가겠습니다」 그래도 싫어? 그래도 궁둥이가 무거워, 이놈의 궁둥이가? 이놈의 궁둥이. (앞에 있는 사람의 궁둥이를 차심) (웃음) 안 하다가는 큰일난다구. 그러니 나 있는 데 가까이는 앉지 말라구. (웃음)

오늘 8월 16일인가, 17일인가? 「17일입니다」 선생님이 심각한 얘기를 할 때에 궁둥이를 맞은 사람은 영원히 그것이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웃음) 그게 좋은 훈장이 되는 거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선생님에게 밟히는 것도 복이 되는 거라구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구만. (웃음) 그러니 천국이라는 거예요. 지옥은 이래도 나쁘고 저래도 나쁜 거예요. 그럴 수 있는 것, 그것은 맹목적이 아니라구요.

선생님은 과학적인 사람이라구요. 엉터리가 아닙니다. 적당히 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내가 해보기 전에는 절대로 믿지 않은 사람입니다. 절대 믿지 않은 사람이라구요. 이제 그만큼 일해 왔으면 선생님한테 한번 크게 속아봐도 손해 안 날 것 같지 않아요? 이왕 마지막판에 한번 속아 보라구요. 호랑이 굴에 들어갈 때에 '호랑이한테 물려갈 때 피가 어디로 튈 것이냐? 나는 동쪽으로 튄다' 해 가지고 동쪽으로 향해 들어가서 피를 그렇게 뿌리면 나는 이긴다는 거라구요. 죽지 않는다는 거라구요.

1975년 말까지 120개 국에 선교사를 파송해야

이러한 때가 왔으니 이번에 돌아가거든 열심히 하라구요. 여러분 위신이 있잖아요? 또, 앞으로 여러분들을 전부 다 세계적인 순회사로 만들어야 됩니다. 여러분 생각해 봐요. 선생님이 1975년도 말까지 120개국에 어떻게 하든지 선교사를 파송하려고 합니다. 거기에 우리 식구는 많이 안 생겼지만 못해도 선교사는 다 나갈 것입니다. 1975년도까지 안 하면 안 되게 되어 있다구요. 알겠어요? 왜? 3차 7년노정은 세계노정이기 때문에 전세계 국가 앞에 평면적으로 하늘의 사명을 완결시켜 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5년도에는 120개국에 선교부를 가져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

자, 그렇게 돼 가지고 그 나라에 식구들이 만 명씩 있다면 선생님을 오라고 그러겠어요, 오지 말라 그러겠어요? 오라고 그러겠지요? 가서 한 달씩만 있더라도 120개월입니다. 120개월이면 몇 년이예요? 「10년입니다」 10년 세월입니다. 여기서 출발해 가지고 순회를 떠났다 하면 10년 이내에는 못 돌아온다는 말이라구요. 그래 한 나라에 한 달만 있다 가라고 그러겠어요? '미국에서는 몇 달씩 있고, 왜 우리 나라에서는 한 달밖에 안 있소?' 참소하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자그마치 3수를 채워서 있어 주길 바라는 거라구요. 3개월을 잡는 거라구요. 3개월을 잡으면 몇 년이예요? 「30년」 30년. 나이 50에 떠나면 80이 되어야 돌아오는 것입니다.

자, 그러니 선생님이 그 일을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겠나요? 그 대신 '탕감순회다' 해 가지고 120명 대표를 뽑아 가지고 한꺼번에 세계를 한 주일씩 돌아다니면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내가 가는 대신 대역들을 보내는데, 이번에 내 대신 순회사를 3개월 동안 보내니 내 대신 3개월 대신 모시고 열심히 하나되어라' 하게 되면 하나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그 때에는 내가 누구를 부려먹겠어요? 그러니 자그마치 120명은 필요하더라 이겁니다.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 순회사를 빨리 만들어야 됩니다. 세계 순회사를 빨리 만들어야 된다구요. 지금 당장에 필요하게 되어 있다구요.

세계 순회사는 누구를 뽑을 것인가

그러면 순회사를 뽑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얼굴이 잘난 사람을 뽑지 않는다구요. 미남자, 혹은 미인을 뽑지 않는다구요. 얼마만큼 뜻을 위해서 고생했느냐? 그 실적을 가져야 합니다. 그 사람들한테 가서 자랑하는 데 원리를 자랑할 거예요? 그 사람들도 원리를 다 안다구요. 앞으로 가서 승공사상 강의를 할 거예요. 그것은 책을 보면 다 안다구요. 그 사람들은 대학 출신이예요. 그들도 전부 다 대학원을 나온 사람 들이예요. 여러분들이 암만 연구해 가지고 가야 그 사람들이 한 번 읽은 것을 못 따라가게끔 되어 있다구요. 그러니 뭘 팔아먹고 뭘 선전할 거예요?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 고생한 것밖에 없다구요. 그 밑천 이상 없다구요.

그리고 내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별의별 박사들 만나 보고 수십 명 앞에 별의별 질문을 해봐도 별 게 아니라구요. 통일교회 원리는 위대한 것입니다. 최고라구요, 최고. 그러니 세계를 딱 몰아 쥐고 나가는 사람 앞에, 앞으로 철학적으로 우리 원리를 증거해야 된다구요. 그들이 돌아와 가지고 고개를 자꾸 이러는데, 지금 여러분들은 뭐예요? 울타리 너머로 고개를 빼 가지고‘이거 뭐 나 혼자 낙오됐다'고 생각하잖아요? 이놈의 자식들! 거꾸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 잘난 줄을 모르지? 그럴 때가 됐다구요.

죽기 전에 세계인의 동족화 기반을 확고히 닦아야

불원한 장래에 바쁘게 됐다구요. 그래 선생님 생각은 한국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그렇게 내세우고 싶다구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선 미국에 데려가서 공부를 가르쳐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공부시켜 가지고 그런 준비를 해야 된다구요. 그렇게 해서 못해도 선생님 주위에 몇백 명을 데리고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뉴요커 빌딩을 샀는데 거기에는 한 4백 명이 같이 살 수 있다구요. 알겠어요? 교육도 하면서 그 일을 하려고 그러는 거라구요.

세계적인 요원을 만들어 가지고, 내가 죽기 전에 세계적인, 초민족적인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 혈족 이상 사랑할 수 있는 세계인의 동족화 기반을 확고히, 공고히 닦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죽으면 누가 할 거예요? 선생님만이 할 수 있지. 선생님 이외에는 할 사람이 없다구요. 여러분들, 일본의 구보끼가 와서 말하면 듣겠어요? 여기 김 협회장이 미국에 가서 뭘 하자면 들을 것 같아요? 코배기든, 검둥이든, 흰둥이든 할것없이 선생님 앞에는 꼼짝 못 한다구요. 그렇지요? 꼼짝 못 해요. 실력으로 못 견디고 못 당한다구요. 원리 세계에 대한 내용은 누가 뭐라고 해도 못 당해요. 또, 싸워 나온 전통에 있어서 나를 못 당한다구요. 실적에 있어서 못 당한다구요. 그러니까 그것은 덮어놓고 인정하고 들어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죽기 전에 초민족적인 단위적 기반이라도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래 가지고 하나의 도시라도 만들어 세계인이 열을 지어 그 도시를 순방하게 될 때 그 사람들에게 입장권을 팔아 가지고 먹고 살 수 있는 때가 불원한 장래에 올 것이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라구요. 알겠어요? 지금 로마 법황청이 기독교인들을 전부 다 찾아오게 해 가지고 수십억 수백억 달러에 가까운 돈을 벌고 있지만 우리는 그 이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은 거기에 참석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참석하고 싶습니다」 그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3년 후에 36가정, 72가정, 120가정, 430가정, 777가정 전부 다 대등한 의미에 있어서 가인 아벨이 생겨날 것이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관입니다. 그것은 어차피 할수없습니다.

들어올 때의 심정 이상의 기반을 갖고 뜻길을 가야

그런 것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생각하고, 이왕에 일선에 나섰으니 지금까지 수고한 것을 생각하고, 뜻을 위해서 이제 이를 악물고 옛날에 들어올 때의 배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열성을 가지고 뛰는 날에는 발전하게 마련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이 들어올 때 이하의 마음을 가지면 절대 안 됩니다. 알겠어요? 절대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는…. 그런 입장에서 통일교회가 발전을 바라는 것은 원리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왜?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더 큰 것이 있기 때문에,더 큰 것을 이루려면 언제나 더 큰 심정이 아니면 안 되겠기 때문에 심정적 원칙으로 볼 때 들어올 때의 심정 이상의 기반이 아니고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이게 원칙입니다.

자, 그러면, 내가 들어올 때 이상 열심히 했다고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여기 통일교회에 들어올 때보다 지금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람 손들어 보라구요. 그러니까 안 된다 이겁니다. 그럼 선생님은 어떠냐? 선생님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열심입니다. 알겠어요? 더 열심이라구요. 더 심각하다구요.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뭐예요? 더 심각해요? 반대입니다. 그러니 안 됩니다. 이러다가 안 되겠으니 여기서 체질 개선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새로이 출발하는 통일교회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러분은 핍박시대를 거쳐왔으니, 이제부터 저 후진들 앞에 '이상적인 터전이 우리 눈앞에 있다. 한꺼번에 넘자'고 자극을 주면, 그들이 여러분보다 더 높은 심정의 출발을 볼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기동대 활동 준비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다음에는 뭘할 것이냐? 대학교를 중심삼고 실리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학사 출신들을 전부 다 보급하기 위해서는 3차 교육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뭘할 것이냐? 실적이 있는 사람들은 대학교를 지어 가지고 공부시켜야 되겠다는 거예요.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은 공부하라구요. 공부하겠다는 사람은 공부시켜 주고, 세계무대에 나가겠다는 사람은 세계무대에 나가게 해주려고 합니다. 그러니 3년 후, 1975년도까지 여러분이 정성을 다해 가지고 하나님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면, 여러분들은 성공한 사람이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어느 세계에 나서도, 내가 못생긴 것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뭐 학력이 어떻고, 그거 관두라구요. 나이 한 40이 되어서 한 4년 동안, 한 2년 동안 공부하면 학위를 받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5년만 되면 석사 학위, 박사 학위 코스까지 내가 공부시킬 자신이 있다구요. 우리 대학교만 만들게 되면 학점을 따게 해 가지고 학사가 되도록 만든다는 거예요. 몇 학점만 따면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 하게 된다면, 1년 동안에 학점을 따게 해 가지고 학위를 주면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앞으로 그럴 수 있는 때가 오는 겁니다. 그것 가지고 그것을 해 가지고 일선에, 세계 순회 역정에 나서는 게 소망이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면 어느 길을 갈 거예요? 공부해 가지고 박사 되어서 갈래요, 그냥 나설래요? 앞으로는 박사 공인 안 한다는 거예요. 공적 시대가 오는 거라구요. 자, 그러니까 지혜로운 마음을 가지고 통일교회에서는 빠른 길이 이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교회에 있는 여러분이 지금 제일 불쌍해 보인다구요. 뭐 신문사라든가 회사 같은 데에는 월급도 주고, 편한 것 같지만, 제일 따라지라구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하는 일이 나쁜 것이 아녜요. 나쁜 것이 아니고 뭐예요? 「좋은 것입니다」 최고로 좋은 것이다 이겁니다. 아들딸도 못 먹이고 못 입혀도 좋은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은 관심이 많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러니까 이 고개를 넘자는 거예요.

그래 고개를 넘을 때 '야 두꺼운 옷을 입어라' 하고 동정해야 되겠어요? 지금은 '옷을 벗어라. 짐을 벗어 던져라. 간단하게 해라'고 해야 할 때라구요. 산 고개를 넘는 때인 줄 알고 단단히 준비해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예」

청평에 세계적인 학교와 문화촌을 건설할 계획

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시간 때문에 못 하겠어요. 그만큼 얘기해 줬으면 알만하겠지요. 뭐 곰 새끼가 아니고야 등골이, 골수가 아주 뻐근하도록 느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느꼈어요, 안 느꼈어요?「느꼈습니다」 느낀 사람 어디 손들자. 이제는 나도 좀 쉬자구요.「예」 아침을 안 먹여서 미안하네. 괜찮아?「예」

이 땅을 사 가지고 학교를 저 위에다 지을 계획입니다. 이제는 이슬이 없을 테니 한번 올라가서 구경할까, 설명도 하고. 「예」 여기를 평지로 만들려고 그래요. 여기서부터 쭉 20미터 위쪽으로 평지를 만들 거예요. 저위에, 골짜기 저쪽에 만들면 좋은 판국이 되는 거라구요. 학교는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 내야 된다구요. 그러려면 낮은 골짜기, 산골짜기에 세워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여러분 좋은 고급차를 타고 싶어요? 나쁜 비행기이지만 날아가는 비행기를 타고 싶어요?「비행기를 타고 싶습니다」 타게 된다면 고급차보다도 나쁜 비행기라도 타고 싶은 거라구요. 그렇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소망을 품게 하기 위해서는 학교는 높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제 여기에 학교를 짓게 되면 배를 타고 쓱 올라다니는 거예요. 구불구불 힘들지 않고 쓱 들이댈 길도 닦을 것입니다. 세계적인 학교를 만들 계획입니다.

지금 한 3억 예산하고 있는데 돈이 없어요. 돈이 없지만 시작은 해야 되겠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돈 없이 시작하는 게 기가 막힌 거예요. 기가 안 막힌 거예요. 정선호! 「예」 돈 없이 시작하는 게 기가 막힌 거야, 기가 안 막힌 거야? (웃음) 「기가 막힌 겁니다」 기가막힌 거야. 그거 진짜 알겠어요?「예」 빚장이 맛이 아싹하지? (웃음) 그까짓것 교회가 하나 날아가는 것은 걱정 없다구요. 하늘땅이 왔다갔다하는 입장이 어떻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자, 기가 막혀도 그것을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해야 됩니다」 나는 이제 학교를 짓는 데 주력해야 되겠다구요. 여러분들은?「전도 하는 데 주력하겠습니다」 자, 이게 반대 아녜요? 한 편에서는 피땀 흘리며 일하고 죽겠다고 나가서 싸우는데, 선생님이 순회하며 여러분을 격려해 주면 모르겠는데 딴 일을 한다면, 그래도 괜찮아요?「예」 이제 그런 일을 하려고 생각하는 거예요. 늦어도 1년 후에는 짓게 되지 않나 보는 거라구요. 빠르면 6개월. 이것을 닦아 놓고 6개월…. 이 터를 닦는 데 좀 오래 걸리리라 보고 있어요.

엊그제 얘기했어요? 했지?「했습니다」 이번에 교수를 데리고 일본 갔다 올 때 정보부, 치안국, 문교부, 대학가의 책임자들 전부 일본에 데리고 갔다 온 거라구요. 가만히 보니까 통일교회 원리연구회라든가 통일교회 사상을 가진 사람을 전부 다 세상에 내놓으면 한국이 대번에 살 것같이 느껴지거든요. 요전에 우리가 신학교를 세우려고 할 때, 그 사람들이 보이코트했다구요. '안 됩니다. 서울 이남이어야 됩니다. 한강 건너 아니면 안 됩니다. 이 광주 지역으로부터 아래쪽으로 고속도로에 가까이 있어 가지고 언제든지 보따리 싸가지고 윙 할수 있게끔 되어야지. 청평은 멀어서 안 됩니다' 이렇게 보이코트를 당했다구요. 그런데 이번에 이들이 일본에 갔다가 감동받고 그저 눈이 이렇게 커져 가지고 우리 책임자들에게 신학대학을 빨리 짓도록 해준다는 거예요. 그 약속을 받고 온거라구요. 그래서 4년제 학위를 받는 신학대학이 하나 생겨날 것입니다. (웃음)

그래서 지금 수속 중이라구요. 재단 설정에 대해 코치받아 가지고, 지금 재단설정 준비를 해서 며칠 후에 문교부에 들릴 거라구요.

여기서 하나만 지어 놓으면 못해도 4개 학과를 만들 수 있어요. 철학과라든가 사회사업과라든가 그 다음에 농과 계통도 할 수 있는 거라구요. 우리가 필요하니까…. 신학대학을 나오려면 앞으로 실질적인 교육을 받게 만들어야 돼요. 여러 가지로 해 가지고 그 분야 분야 하나 하나가 농과 대학을 중심삼아 가지고, 물리과 대학을 중심삼아 가지고, 공과 계통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부 다 그 기반을 확대하면 앞으로 종합대학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하나 짓고 둘 짓고, 둘 지었으니 셋은 자연히 짓게 되어 있지요? 종합대학을 지어야 됩니다.

앞으로 나는 서울 가까운 데에 절대 대학교를 지으려고 안 합니다. 이 경치 좋은 데에 갖다 짓지. 그리고 여기를 앞으로 전부 다 반관광지로 만들려고 해요. 이상세계를 만들려고 한다구요. 여기에다 전부 다 서스펜션 브리지(Supension bridge; 현수교, 적교)를 만들어 가지고 전부 다 이상경을 만들려고 한다구요.

여기에 대학교를 짓고, 저 건너편에는 우리 본부를 짓고…, 박장로는 신앙촌을 만들었지만, 우리는 여기에 문화촌을 만드는 거예요. 알겠어요?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 문화촌은 망하지 않는다구요. 그것을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한 계획이니만큼 그렇게 알고…. 이제는 여러분들이 실질적인 문제에 있어서 활동할 날이 멀지 않다구요. 앞으로 여의도에다 우리 본부 짓는 데만 해도 사무요원이 얼마나 들어가야 되느냐 하면 3백 명이 있어야 합니다. 3백 명이 들어가야 됩니다. 앞으로 사람이 없어서 쓸 수 없는 때가 불원한 장래에 오니까, 여러분은 어디 지방에 가서 딴 일을 한다 하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구요. 앞으로 실력 있는 사람은 뽑아 가지고 쓰고, 실력이 없는 사람들은 전부 다 실력 없는 대로 써먹고 그래야 되겠다구요.

지금을 최후의 때로 알고 국가복귀의 사명을 다하자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전부 다 체제화시키는 거라구요. 국가고시처럼, 보통 문관고시로부터 고등고시같이 전부 다 제도들을 만들어야 되겠다구요. 앞으로 조금 더 가서는 7년노정을 법적으로 제정해 버릴 거라구요. 들어오는 쪽쪽 공식이라구요. 몇 개월은 뭘하고 몇 개월은 뭘하게 하는 거라구요. 재미있게 군대처럼, 이등병에서 올라가는 것처럼 해 가지고, 명령에 절대 복종하게 하는 겁니다. 이러한 체제 강화시대가 오는 거라구요. 지금 때는 피난민 시대라구요. 한국에 군대를 편성하게 될 때 어중이떠중이 해병대에 들어간 사람들이 한때 해먹었지? 그와 마찬가지의 과정을 불가피적으로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창군의 공로자로서 역사에 남는, 그 사람들이 안팎에 갖춘 기반이 없더라도 군을 창설한 전통을 중심삼아 가지고 무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있는 것이 여러분인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지금 몇시야?「열 한 시입니다」 열 한 시면 점심 먹지 뭐. (웃음) 자, 한번 올라가 보고 가면 좋겠어요. 그냥 가면 좋겠어요?「올라가 보고 가겠습니다」 마음으로는 비가 오고 그러니까 안 올라가면 좋겠다고 생각할거라구. 「올라갑시다」 나는 올라가고 싶지 않다구요. 올라가 봤기 때문에. (웃음) 거기에 올라가려면 상당히 힘들다구요. 전부 다 측량을 하고 있는 거예요. 「진지 잡수시고, 다음에 한번…」 다음에는 뭐 다음에야 내일은 가야 할 텐데. 하루 더 연장하면 좋겠는데 그러면 안 된다구요. 기동대들이 눈이 빠지게 기다린다구요. 하루 연장하면 좋겠어요? 연장할까요, 갈까요?「내려가야 됩니다」가면 좋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 연장하면 좋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 그렇지만 내가 정하면 할수없지 뭐. (웃음) 그건 내일 가 봐 가지고….

우리가 지금은 이 학교 터전에서 이렇게 결의하고 있습니다. 통일학교가 세워지면 여러분이 아무때 선생님 앞에 결의한 곳이 이 자리인데, 그때 결심한 것을 성사해 가지고 몇 해 후에 학교에 오게 되면, 그때에는 여러분들이 학생도 될 수 있다구요. 그때에는 연구생 이름으로 몇 과목을 공부시켜 가지고 졸업장을 주려고 그래요. 문교부는 우리 작전 여하에 다 따라올 거라구요. 간판 따는 것 간단하다구요.

그렇게 알고, 여러분이 이번에 돌아가게 된다면 그야말로 선생님이 여러분 앞에 기대를 걸었던 최후의 때로 알고, 이 2년 동안, 1972년도는 여러분의 시대니까, 통일교회 축복받은 가정들의 시대니까…. 가정 아닌 사람이 몇 사람 없잖아요? 가정들의 시대니까, 이것은 예수님이 종족복귀 터전을 못 이루고 죽은 것을 해원성사하는 3년기간에 해당하는 때가 아니냐? 그러니 필사적으로 국가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영향을 미쳐야 할 것이 원리관이 아니냐? 선생님이 갖다 붙인 게 아니라구요. 그렇게 되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지극히 심각한 문제로 알고, 여러분이 부디 어렵지만 참고 이 3년을 잘 극복해 주기를 바라서 말씀드렸습니다. 알겠지요?「예」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우리의 갈 길을 당신 앞에 맡기옵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수난길의 역로를 더듬어 오면서 망하지 않은 것은 당신의 공로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들을 거느리고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을 생각해 볼 때에, 아버지는 불쌍하신 아버지이옵니다.

아버지, 어느 곳에 저희들보다 나은 사람이 없어서 저희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천륜의 내정적인 사정을 통고해야 했습니까? 하지만 그러지 않을 수 없었던 기가 막힌 장면이 많았음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은 불쌍하신 아버님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들은 딴 무엇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만 생명을 다해서 당신을 위하여 효도하는 마음 하나 가지고 객사의 몸이 되더라도 한을 남기고 죽지 않겠다는 결의를 이 시간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이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복귀의 길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처량한 길인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저희들보다도 더 처량하시옵니다. 저희는 그런 당신의 자녀로 태어났기 때문에 당신의 모든 수욕의 길을 그냥 그대로 인계 받아야 하는 것이 자녀의 도리인 것을 알고 있사옵고, 이것을 극복해 가야 하는 것이 저희의 본분의 사명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외로운 길을 따르고 있는 무리가 불쌍한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이 불쌍한 젊은이들을 품어 주시옵소서. 내일의 소망을 찾아 암담한 길을 가는 이들 앞에 당신의 광명의 빛으로 비춰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돌아가면 땅을 보아도 하늘을 보아도 부끄러운 자기 자신을 발견하여 통회의 심정을 붙안고, 하늘땅 앞에 자기의 수치스런 모멸감을 해방받기 위해서는 당신의 긍휼의 마음, 생명의 인연의 줄기, 사랑의 인연의 줄기를 붙드는 길 이외는 없다는 것을 느껴, 있는 충성을 다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기독교가 이만큼 남아지기 위해서는 오랜 역사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옥중에서 피를 흘리고 기가 막힌 죽음길 가운데에서 극복의 일로를 개척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남아진 역사이온데, 이처럼 세계에서 낙후한, 낙조의 신세가 된 입장을 바라본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가 막히옵니다.

하늘을 배반한 무리는 기필코 원망의 저녁을 맞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역사시대를 통해 여지없이 증거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직시하면서, 저희 자신들은 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결의하였사오니, 금후에 가는 길을 당신이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가 사랑하고 싶었던 그 사람이 어디 있으며, 내가 사랑하고 싶었던 그 가정이 어디 있으며, 내가 사랑하고 싶었던 그 마을이 어디 있으며, 내가 사랑하고 싶었던 그 민족이 어디 있으며, 내가 사랑하고 싶었던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 그것들은 딴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불쌍한 한민족임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제 저희들이 보는 이 민족상은 저희들의 운명을 대신한 상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들을 구하여 당신 앞에 이끌고 가는 길 외에는 저희가 갈 길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저희들은 죽어도 민족을 데리고 가야 되겠고, 살아도 민족과 더불어 살아야겠사옵니다. 이것이 필생에 통일사상의 전통적 사상인 것을 이제야 알았기 때문에 이것을 위해 쌍수를 들어 맹세한 몸들이오니, 아버지여, 이들이 가는 길에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생명의 인연을 가짐으로써, 영원한 세계의 동반자로서 부러움이 없는 수욕의 그 모습을 피하여 거룩한 모습을 갖추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팔월 열이렛날이옵니다.

아버지, 금후의 역사시대는 가인의 탕감역사가 엇갈리는 역사이오니, 하늘의 영광을 대신할 수 있는, 아벨의 시대를 맞을 수 있는 때를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번에 이들이 돌아가 계획하는 것이 일취월장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생명의 인연을 가지고 나서는 곳에는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게 허락하여 주옵고, 재창조의 역사가 거듭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저희들에게 분부하시고, 저희에게 사정을 통고하신 아버지는 과연 불쌍하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런 아버지를 누가 동정하겠습니까? 이 몸들밖에는 없사옵니다. 걸인, 거러지와 같은 것들이 어쨌든 이 단체를 이끌고 아버지를 모셔야 할 신세가 딱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환경이 부족하더라도 아버지를 모시고 갈 때에 하늘의 종자는 길이길이 심어지고 남아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그러한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들이 거느리고 있는 처자들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어려운 길을 앞에 놓고 가기에 힘든 것을 잘 아시는 아버지여, 그들을 지켜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충성을 다할 수 있는 가정적 기원을 만들지 않고는 민족해방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식을 붙들고 뼛골이 녹아나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아내를 붙들고 머리 숙여 눈물과 더불어 권고해야 되겠습니다. 죽지 말고 최후까지 참아서 영광의 자리에 동참할 때까지 우리 가정을 살리자고 결의할 수 있는 남편이 되고 아낙네가 되고 자식들이 되어 영광의 사위기대의 소망적인 터전을 가릴 줄 아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식을 붙들고 뼛골이 녹아나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아내를 붙들고 머리 숙여 눈물과 더불어 권고해야 되겠습니다. 죽지 말고 최후까지 참아서 영광의 자리에 동참할 때까지 우리 가정을 살리자고 결의할 수 있는 남편이 되고 아낙네가 되고 자식들이 되어 영광의 사위기대의 소망적인 터전을 가릴 줄 아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고, 당신이 지도하는 길을 따라 순응의 법도권을 지켜 나가는 이들을 거룩한 무리로서 기억하시옵소서. 일체를 맡으시어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전체를 당신 앞에 맡기오니, 허락하신 뜻 가운데 마칠 수 있도록 지도하시옵고, 해결지어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신앙이라는 것은 본래 믿고 우러러보는 것입니다. 신용이라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쓰이는 것이지만 신앙이라는 것은 인간과 하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믿고 우러러보는 것입니다.

​말이 세계를 움직이는 때가 끝날

​믿음이라는 말을 보면 ‘사람 인(人)’ 변에 ‘말씀 언(言)’ 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 믿음이란 게 뭐냐? 하나님을 중심삼은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을 중심삼은 말씀인 것입니다. 사람을 중심삼고 하신 말씀인데 어떠한 말씀이냐 하면 최고의 말씀입니다. 최고의 말씀이라는 것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사람 가운데에서 나오는데 사람은 어디에서 나왔느냐 하면 하늘에서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사람은 하늘 가기가 어렵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람의 말씀은 어디서 나오느냐? 그 참된 사람의 말씀의 내용은 오늘날 우리 인간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말과 다릅니다. 최고 인간의 말씀이 나온 원천지가 어디냐 할 때 하늘을 빼 놓은 인간에게서는 나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반드시 사람의 마음을 통해서 나오는데 마음과 더불어 생각이 일치되는 가운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생각만 해 가지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생각과 마음이 일치되어서 말이 나와야 신용할 수 있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은 하늘을 상징하는 것이요, 마음은 자기의 주체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마음이 하나되는 가운데서 말씀대로 실천하게 될 때는 생각, 즉 마음과 몸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3단계 과정을 거치는 데 있어서 그 결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창조과정을 중심삼고 보게 된다면, 하나님이 말씀을 할 때도 3단계의 원칙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생각이 있고, 그 다음에 마음을 통해서 그 생각을 나타내고, 그 다음에 그것의 실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3단계를 거쳐서 창조물이 형성된 것입니다. 물론 말씀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도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도 역시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적 마음과 하나님적 몸이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렇게 되라. 이렇게 창조되는 것이다'할 때 비로소 창조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뭘했다 하게 되면 하나님이 창조한 것과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이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그 일한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회 조직이라든가 우리 국가를 두고 보더라도 어떤 일을 이루려면 먼저 글로 표시하는 것입니다. 말을 대신해서 표시하는 것이 글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말로 계획 세운 것을 글로 표시해 가지고 그 계획 세운 대로 실천하게 되면 그 목적한 것의 성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어떤 시대냐 하면 말의 시대다, 언론시대다 하는 것입니다. 언론시대가 되었는데 이 말이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때가 되면 끝날인 줄 알아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하는 말들이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때가 되면 끝날인 줄 알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지금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냐? 정치와 경제입니다. 여기서 정치는 나라를 두고 말하는 것이요, 경제는 살림살이 터전의 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들의 말을 통해 움직이면 끝날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정세는 정치생활 및 경제생활을 중심삼은 사회제도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세계는 절대적 정신과 인연된 하나의 사상체제를 통해

그런데 인간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그것은 주체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인간의 계획권내에 있는 일부인 것입니다. 정치도 경제도 인간의 계획권에 있는 하나의 상대적 요건이지 주체적 요건은 못 됩니다. 그러면 주체적 요건은 뭐냐? 국책이라는 것입니다. 국책을 중심삼고는 전부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국가의 경제라든가 정치의 모양은 전세계가 같습니다. 경제와 정치를 통해서 나라를 잘살게 하겠다는 그 목적은 다 같지만 정책의 내용은 전부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책 방향이 일치되어 가지고 정치를 하고 경제생활을 일원화하게 될 때는 통일된 문화세계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가 정치 역사 혹은 경제 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아무리 발전해 나간다 해도 그 표준은 정책의 방향과 일치권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정책은 무엇에서 성립되느냐? 그것은 이념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 이념은 무엇에서 성립되느냐? 사상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사상은 어디에서 성립되느냐? 고차적인 정신에서 성립됩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은 정신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정신이 지향하는 그대로 되어야만 이상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생각대로 돼야만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즉, 나와 같은 사람을 통해 생각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당면하고 있는 전세계의 현상입니다.

그러면 앞으로의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이냐? 정치적 형태가 갖추어졌다고 세계가 하나되는 것이 아니요, 경제적 생활 제도가 같다고 해서 세계가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책방향이 하나되어야만 세계는 하나되는 것입니다. 국가간의 싸움이나 결렬 같은 것은 어디에서 비롯되느냐? 정책 방향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 차이 때문에 세계는 부딪치기도 하고 갈라지게도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생각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마다 다른 그 생각들을 통합해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통합하는 데 있어서 인간 끼리끼리의 생활로서 통합할 수 있겠느냐, 아니면 신을 중심삼고 통합할 수 있겠느냐? 길은 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끼리끼리 통합했댔자 인간은 자기의 이익을 주장하고 자기의 권위를 주장하며 자기만을 위한 이익을 추구하는 욕망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욕망을 가진 인간 자체로서는 이상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국가가 정책을 세워 가지고 그 정책을 중심삼고 이익을 주장했다면 그것을 세계화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끼리의 욕망으로 세워진 정책이념 가지고는 하나의 정책 방향, 하나의 노선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것이 뭐냐하면 절대적인 사상, 절대적인 정신과 인연된 하나의 사상 체계를 통해서 인간의 양심과 몸을 통한 생활무대를 재현시키는 길을 발굴하지 않고는 하나의 세계를 모색할 수 없으며, 평화의 세계를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종교는 경제분야하고도 원수요, 정치분야하고도 원수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세상과 하늘과는 같을 수 없습니다. 물질과 하늘과는 같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말은 무엇이냐 하면, 이 세계의 정신적인 방향을 일치화시키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국책이면 국책을 세우고, 그 국책에 정치 경제의 요소나 혹은 국민의 생활이 적응 되게 될 때, 거기에서 비로소 하늘이 바라는 지상세계의 소망의 터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신앙은 뭐냐 하면 참된 사람의 인격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인격을 추구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또, 그런 인격을 추구하며 살아 나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신(信)’자를 보게 되면 사람 인(人)변에 말씀 언(言)자요, 또 우러를 '앙(仰) ’자도 사람 인(人)변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사람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중심삼고 나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러러본다는 것은 자기를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존경하는 대상을 중심삼은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우리가 참된 말씀을 추구해 나가고, 그 말씀을 통해 하나의 방향을 성립시키기 위한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이요, 하나의 사상을 가진 분이기 때문에 신앙세계는 자연히 하나님의 하나의 사상권내로 흡수되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고차적인 사상은 저급한 사상을 흡수함으로써 하나의 체계를 세워 수습해 나가는 것입니다. 신앙세계에 어떠한 한 사상체계가 있으면 그 사상, 강으로 말하면 지류와 같은 것입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보면 남쪽으로 흘러가는 강인데도 불구하고 북쪽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기 멋대로 흘러가지만 점점점점 흘러감에 따라 대해(大海)로 들어가는 그 입구에 오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의 본류(本流)를 거쳐 하나의 통합된 결과를 맞아 가지고 대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때는 반드시 하나의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사상의 골자는 사랑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두고 보면 수많은 성인들이나 위인들이 나와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의 사상을 주장했지만, 그 사상을 가지고 환경적인 여건을 중심삼고 생활적인 면에 적응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다 해봤지만 그 목적하는 바의 성사(成事)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전부 다 지나가는 사상이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남은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종교사상입니다. 종교인격을 중심삼고, 종교사상을 중심삼고는 아직까지 세계화운동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세계화운동을 해봤어요? 새로운 길을 모색해 가지고 이 세계에 적응할 수 있는, 인류의 생활개선이라든가 환경개선이라든가 하는 전체적인 문제를 종교인들이 책임져 가지고 하나님이 세운 그 정책 방향에 세계를 일치화시키고자 하는 운동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자기 생각을 중심삼고, 혹 집안이면 집안에 한 주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경제생활을 해 나온 것입니다. 하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종족을 중심삼고 볼 때 추장이면 추장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추장은 한 나라의 주권자와 마찬가지입니다. 그 동네면 동네, 씨족이면 씨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렇게 경제생활 일치화운동을 다 해봤습니다. 이것은 개인을 중심삼고도 해봤고, 가정을 중심삼고도 해봤고, 혹은 씨족을 중심삼고도 해봤고, 민족을 중심삼고도 해봤고, 국가를 중심삼고도 해봤습니다. 지금은 세계를 중심삼고 한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엇갈린 자리에 있었지만 점점점점 하나의 노선을 향해 수습되어 나오다가 결과적으로 맨 나중에는 두 사상 세계가 남아지게 됩니다. 그것이 현재의 우익사상과 좌익사상입니다.

우익사상과 좌익사상을 통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흑과 백의 인종과 마찬가지로 남북이 통일하기 위해서는 남한만 가지고도 안되는 것이요, 북한만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남한 사람도 전부 다 저 사람처럼 교육해야 되겠다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하고, 북한 사람도 자기들보다도 저래야만 이상적인 대한민국이 나오겠다고 할 수 있는 운동을 제시하는, 그러한 애국사상을 가진 개인이 나와야 합니다. 또, 그런 가정이나 종족, 민족, 국가 형태가 벌어지게 될 때 통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이 가능한 방안을 제시하는 노선은 어디로 가야 되느냐? 대한민국이 나라로 출발해 가지고 나라로 나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쇄국주의 제도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라로 출발했으면 세계로 진출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국주의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개방적인 동시에 세계로 향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좋은 것이 있으면 세계에 선전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기가 잘했으면 잘한 것을 모든 사람 앞에, 전세계 앞에 사방에 자랑하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개방된 국가가 있으면 그 국가는 세계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통일된 나라가 대한민국에서 출발해서 대한민국에서 종결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세계로 지향할 수 있는 그런 국가방향, 혹은 그러한 국가이념이 아니라 대한민국 한 국가에서 출발했지만 세계가 따라갈 수 있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사상적인 기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들의 사상에 일치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상에 일치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쭉 찾아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통일사상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사상이 어디에서부터 나왔느냐 하면 사람으로부터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상의 골자가 뭐냐?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무슨 사랑이냐 하면 민족을 넘은 사랑입니다. 자기를 중심삼은 가정 일원화 운동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정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세상의 어느 가정을 사랑하는 도수보다도 높은 차원의 사랑을 강조하고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하게 되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가정을 중심삼은 윤리관이 형성될 것입니다. 역사상에 없었던 윤리관이 형성될 것입니다. 강한 사랑으로 결합된 윤리 형태에서 가정 유대가 횡적으로 발전되면, 이것은 씨족을 넘어 가지고 민족 혹은 국가를 형성할 것이고,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체적인 심정적 사랑의 기원을 갖고 나타날 것입니다. 그것은 전세계가 공인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들고 나와야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심정의 세계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그 심정의 세계라는 것은 어떤 것이냐?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전체를 희생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주의는 지금까지 인간의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실험하다가 전부 다 실패한 경력을 이루어 놓은, 인간 스스로 패자임을 직고할 수 있는 시대, 세기말적인 시대에 있어서 그러한 주장을 갖고 나온 것입니다. 지금 이 세계는 전부 실패로 귀결되어 있고, 실패에 봉착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최후의 단말마적인 비운에 처해 있는 것이 지금 세계의 입장인 것입니다.

가정이면 가정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자기 중심삼은 사랑을 가지고 역사는 출발했고, 그 역사의 목적을 추구하던 것이 절망 가운데 왔기 때문에 우리 인류는 무엇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사랑을 부르짖어야 되느냐? 인간을 초월한 새로운 신앙적인 관점에서 하늘이라는 것을 개재시켜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을 들고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 앞에 한 번밖에 없는, 최후의 하나의 방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방법마저도 깨지고 실현되지 않게 될 때는 이 세계는 망할 것이요, 금후의 인류세계는 암흑의 세계로 종결될 것입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은 이러한 세계적 종말을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이 종말적인 비운의 역사를 가로막고, 이것을 도피하고 초월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내세운 것이 신앙의 길인 것입니다. 그 신앙의 길은 어딜 가기 위한 것이냐? 개인생활의 행복의 터전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기말적인 비운의 역사를 초월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한 출발이기 때문에, 그 출발 당시부터 주장하는 것은 누굴 사랑하라고 하겠느냐? 인간을 사랑하라고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은 지금까지 인간끼리 사랑해 나왔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들끼리 사랑했고, 혹은 자기의 종족끼리, 민족끼리 사랑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랑을 주장해 가지고는 반드시 실패의 역사가 올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에 인간 끼리끼리 사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해 나오라고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눅 10:27)"는 출발적 지혜를 인간 앞에 제시하신 것입니다.

사랑의 길을 찾기 위한 것이 원리에도 약간 얘기되었지만 재창조의 역사인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적 역사는 받고자 하는 역사가 아닙니다. 받고자 하는 역사였다면 천지창조는 출발도 못 했을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주기 위해서, 자기로부터 기원이 돼 가지고 흘러나갈 수 있는 길을 찾아나가는 데 있어서 이 단계적 창조 세계가 생겨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주체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서부터 사랑이 출발하는데, 그것은 자기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가 전부 전체에 흡수돼 가지고 전체의 뼈가 되든가 살이 되든가 둘 중의 하나가 되기 위해서 가는 길이 사랑의 길입니다.

남자는 주체고 여자는 대상이기 때문에, 그 둘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는 뼈와 같은 존재요, 하나는 살과 같은 존재가 되어 일체되는 자리에서만이 비로소 사랑을 중심삼은 부부일신이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부모를 중심삼고 자녀를 중심삼고 일신이 되는 것입니다.

일체적인 이념을 막연하나마 우리의 사랑을 중심삼고 말했지만, 그 사랑을 중심삼은 일체의 이념은 인간만으로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만 가지고는 불가능합니다. 왜 그러냐? 현재 우리가 직시하고 있는 세계적인 문제 가운데 제일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청소년 윤리문제입니다. 20세 전후된 아들딸들이 부모를 불신합니다. 또, 새로 결혼한 사람들이 몇 개월도 안 되어 서로를 불신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지금까지 인간을 중심삼은 가치의 내용을 제시해 나오던, 인륜도덕의 중심 표제이던 사랑이라는 문제가 여지없이 파탄되는 시대에 왔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의 사랑을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찾을 길이 없습니다. 부부끼리에서 찾지 못하고, 부자간에서 찾지 못하고, 가정에서 찾지 못한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인간들이 기준으로 하던 사랑을 어디에 가서 찾을 것이냐? 다 잃어버린 때에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인간의 사랑을 찾더라도 마찬가지의 결과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위주한 사랑 가지고는 모든 것이 되지 않습니다.

끝날의 심판기준

만약에 인간을 초윌한 자연적인 사랑이 없더라도 가상적인 신(神)이라도 세워 가지고, 가상적인 사랑의 표어라도 세워 가지고 거기에 규합될 수 있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인간은 끝장이 날 것입니다. 전세계는 사망이요, 파탄이요, 절망에 부딪힐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거예요. 그것으로 망하는 것입니다.

가상적인 신을 중심삼은 사랑, 그것을 찾기 위해 허덕이면서 얻는 사랑이라도 세워 가지고 그 길을 모색하고 거기에 새로운 이상이라든가 평화라든가, 혹은 행복의 요인을 재설정하지 않은 차제에 하나님이 사실로 계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만일 신이 있어 가지고 그런 일을 해왔다면 얼마나 고마운 것입니까? 그런데 그야말로 그런 신이 있었더라 이겁니다.

그것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느냐? 역사적 과정을 우리가 전부 다 비교 비판해 보게 될 때 신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신은 있습니다. 종교의 경서를 보면 반드시 하나님에게 귀결되라고 가르쳐 줬지, 인간에게 귀결되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가르쳐 준 종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싫든 좋든간에 반드시 어디에 가서 무릎을 꿇고 판정을 받아야 되느냐? 인간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판정을 받을 것이 아니라 최후에는 신 앞에 가서 잘됐는가 못 됐는가 판정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숙명입니다.

인간이 그러한 운명에 서 있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끝날에 심판의 역사가 남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판을 하는 데 있어서 그 기준은 뭐가 될 것이냐? 사무 처리를 잘하고, 이 땅 위에서 학교 공부를 잘하고, 혹은 이 나라를 잘 다스렸다고 하는 것이 심판의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얼마만큼 정서적인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역사 시대에 인연을 남겼느냐 하는 문제가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심정의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심판해야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심정의 세계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면 그 심정의 세계는 어디에서 출발해야 되느냐? 지금까지 인간 끼리끼리의 사랑의 기반 위에서, 나를 중심삼은 기반 위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에서 출발해야 됩니다. 그 이상이어야 된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너의 아비나 어미나 혹은 처자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합당치 않다'고 한 것입니다. 출발점이라는 것은 인류애를 초월한 자리에서, 부정하는 게 아니라 초월한, 초연한 자리에서 하늘과 인연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사랑의 출발이 선의 출발이 되었다면 거기에서 하나님이 출발할 수 있으되, 그렇지 않고 악의 출발이 되었다면 하나님은 절대 거기에서 출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보다도 높은 차원을 요구하는 것이 필연적이기 때문에 사랑의 이념을 중심삼고 인간과 관계맺고자 하는 것이 구원섭리요, 그 구원섭리를 완수하는 것이 메시아의 사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오시는 메시아는 무슨 사랑을 주장할 것이냐? 지금까지의 인간애를 넘어 초월적인 사랑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라는 것은 놀음거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취미거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혹은 돈 때문에, 혹은 세상의 권력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잖아요? 물질적 조건을 초월하고 권력적 조건을 초월한 순수하고 영원한 기준을 중심삼고 사랑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즉, 말하자면 타락의 요소 요소를 초월한 사랑의 터전을 찾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질로 통할 수 있는 길도 아니요, 권력으로 통할 수 있는 길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순수한 어린애의 사랑을 다시 찾으라고 코치하는 것이 기독교의 사상입니다. 어린애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한다는 전제 조건을 중심삼아 가지고 성경에서 사랑은 표현한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타당한 논법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인간이 지금까지의 사랑, 즉 인간을 중심한 사랑의 심정을 중심삼고 인륜 도덕관에 고착되어 있는 한 하나님은 그런 인간 앞에 못 가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부정하는 것은 인간세계에서는 죽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세상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것입니다. 전부다 여기에….

상대를 찬양하는 것이 인간이 가야 할 본질적인 생활의 근본

결국 신앙이라는 말은 인간을 중심삼은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중심삼은 제일 중요한 실천 방안이 무엇이냐? 그 말을 통해서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또, 그 말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삼아 가지고 정치를 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먼저는 사랑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천지창조도 그랬지만, 모든 것이 사랑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찾아오는 복귀노정에서도 반드시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 가운데 세워진 정치와 경제가 합한 세계 단일의 정책 수행의 길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만민을 사랑하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 펼쳐져서 이루어질 지상천국 세계는 어떤 세계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평등화된 세계입니다. 그런 세계가 되기 때문에 자기의 개인적 가치를 중심삼고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찬양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상대를 찬양하는 사랑의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 세계가 사랑의 세계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래 사랑하는 사람은 보세요. 여러분, 남자가 쓴 문학작품 같은 것을 볼 때 '아! 내 눈의 아름다움이여, 내 입술의 아름다움이여, 내 모습의 아름다움이여'라고 쓴 작품을 봤어요? 전부 다 '아! 그대의 호수 같은 눈동자여, 어떻고 어떻고…' 이런 것들 뿐이지요. 결국은 상대를 찬양하는 세계에 이상이 있는 것입니다. 시인이 왜 인간의 동경의 대상이 되느냐? 상대를 풍자적이요, 서정적이요, 심정적으로 풍부하게 찬양할 수 있는 소성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어디 가서 귀결되느냐 하면 상대를 찬양하는 사랑의 시대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로 접어드는 때가 이상시대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시대는 자기를 찬양하는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자기를 찬양하는 시대는 망해야 됩니다. 사라져야 됩니다. 그것을 망하게 만들자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상입니다. 그래서 문선생도 여러분 앞에 자신을 찬양하려고 안 합니다. 될 수 있으면 과거의 이야기를 안 하려고 합니다. 다같이 통일교회를 찬양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자기가 활동한 것을 어디 가든지 자랑하려고 합니다. 선생님이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걸…. 상대를 사랑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되면, 여러분 교역장들, 교회 책임자들이 교회에 가 가지고 '야 이놈들아, 나 좀 위해 있어라'고 하게 되면 그건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있어서 전통을 자랑해 나오던 인간의 주장과 같은 자리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기에 절대로 동참도 하지 않고 관심도 안 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를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창조이상의 출발도 상대를 찬양하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상대를 찬양해야 돼요. 이것이 인간이 가야 할 본질적인 생활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떠나 가지고는 생애노정의 전부가 실패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 보라는 거예요. 완전히 주게 되면 완전히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숨을 힘껏 들이쉴 때 단계가 아직까지 남아 있으면 더 들이쉬는 것이지만 완전히 다 들이쉬고 나면 '아이고, 내쉬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내쉬어지는 것입니다. 극에 도달하게 되면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과 악에 있어서도 악의 끝에 가게 되면 선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왜? 거기 가면 영영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무(無)가 되기 때문입니다. 있기를 바라는데 거긴 싫으니까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세계는 상대를 찬양하는 세계

그렇기 때문에 세상 끝날에 하늘 세계가 온다는 논법도 성립되는 것입니다. 세상 끝날에 하나님의 세계가 온다는 말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론에 은혜가 많습니다. 왜? 지독하게 악착같은 사람들이 죄인들입니다. 죄인들은 다 지독한 사람들이예요. 그들은 대개 혁명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형수라든가 살인강도들을 보게 되면 전부 다 눈알이 보통 눈알이 아닙니다. 산 매 같은 눈알을 가진 사람들, 전부 다 남의 고기를 낚아채 가지고 빼앗아 먹는 타입의 사람들 가운데 살인강도가 많습니다. 태어나기를 배포가 든든하게 태어난 사람들이예요.

그런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 데는 누구보다도 지독하게 연구해서 누구 보다도 치밀하게 합니다. 그들이 선한 쪽으로만 돌아서는 날에는…. 물커덩해 가지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하는 녀석들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무슨 일도 안 됩니다. 물커덩한 사람보다 그렇게 지독한 사람들은 가서 부딪쳐 가지고 아이코 안 되겠다 싶어서 돌아서는 날에는 제트기 식으로 달린다구요. 바울과 같은 양반도 그런 사람입니다. 하늘은 그러한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든지 덥든지 해야 합니다.

자, 여러분들은 차요, 더워요? 한 번 정리하고 넘어가자구요. 빨리 빨리 대답하라구요. 차, 더워?「미지근합니다」 미지근해? 미지근한데 어디를 기원으로 하고 미지근해? 찬 것을 중심삼고 미지근해요? 더운 것을 중심삼고 미지근해요? 미지근한 것도 기준이 있는 거라구요. 어떤 거예 요?「더운 것을 중심삼고 미지근합니다」 뭐가 더운 거야, 너들 중심삼고 미지근하지. (웃음) 그러면 안 됩니다. 안 된다구요. 극대 극이예요. 칼자루를 쥐든가, 칼날을 쥐든가 해야 돼요. 그래야 싸움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야 싸움이 끝날 수 있는 길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선악의 방향은 반드시 그렇게 엇갈린 자리에서 승패를 겨루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 실증으로서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앞으로 올 이상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이상세계라는 것은 내가 잘먹고 잘살고, 아들딸 낳고 비둘기처럼 구구구구 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이겠지' 이럴지 모르지만 그게 아닙니다. 그 세계는 상대를 찬양하는 세계입니다. 알겠어요? 부모들은 자식을 찬양해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본심의 본질을 추구하게 될 때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를 찬양하고 싶어하고, 또 아내는 사랑하는 남편을 찬양하고 싶어합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을 아무것도 모르는 젖먹이 자식일지라도 찬양하고 싶어합니다. 또, 자식은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가 제일이라고 하는 것을 좋아하지 나쁘다고 하는 것을 좋아해요? 이것이 전부 다 뭐냐 하면, 자기의 가치라는 것은 상대를 찬양할 때 나타난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올 이상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자기를 찬양하는 세계가 아니라 상대를 찬양하는 세계입니다. 실감이 나요? 무엇을 찬양하는 세계라고?「상대를…」상대를 찬양하는 세계라구요.

그 상대를 찬양하는 데 있어서도 상대적 가치의 기준에 따라 그 가치가 큰 것을 더 찬양하려고 허덕이는 데에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그 발전은 영원한 발전이요. 그 발전은 영원한 전통으로 남아질 수 있는 역사적 유물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탄세계의 나라면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국보 1호니 뭐니 하면서 자랑한 역사적인 유물들이 무엇이냐? 그것은 자기 개인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불교문화면 불교문화를 중심삼아 가지고 석가모니의 사상을 본질적인 것으로 찬양하는 그것이 전체성을 지닐수록 그것은 국가의 불교문화를 중심삼은 대표적인 걸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이건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내가 지금까지 수련을 받았는데 무엇을 위해서 수련을 받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수련은 신앙의 질적 차원을 높이기 위해서, 어제보다도 오늘이 더 높은 차원에 도달하기 위해서 받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모이는 일은 왜 하느냐?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추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가치적 내용을 어디서 추구할 것이냐? 나 자신에게서 추구해야 됩니다.

보다 큰 상대를 찬양하는 것이 신앙

자기가 실력이 없다고 걱정하는 사람 많지요? 그래 가지고 '아이고, 내가 대학을 나왔으면 좋겠다' 이러기도 하는데 그런 생각을 빼 버리라는 거예요. 대학을 나온 사람보다 상대세계를 더 찬양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그렇게 행동하게 되면 대학을 나온 사람이 나에게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내가 찬양하는 상대권, 내가 찬양하는 상대적 환경보다 작은 자리를 찬양해 가지고 찬양받는 사람이 된다 하더라도, 내가 그보다 큰 자리, 높은 자리에서 찬양받게 된다면 그는 내 수하에 들어와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애국자는 전부 다 학박사다' 하는 논법이 국가의 전통으로 결정되어 있다면 모르지만, 유관순이 학박사예요? 안중근이 학박사예요? 그 시대에 있어서 그들은 미욱하고, 바보 천치 같고, 곰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나 그들이 사랑하는 데 있어서 누구를 사랑했느냐? 우리나라를 상대로 사랑했습니다. 사랑하는 데는 얼마만큼 사랑했느냐? 미치는 단계를 넘어 가지고 죽을 때까지 사랑한 것입니다. 상대 세계를 무한히 찬양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맨손을 들고 있어도 세계는 그를 환영할 것이고 그와 더불어 죽음의 자리까지 동참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상대를 찬양하려고 하는 세계가 창조이상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혼자 죽더라도 이 세계가 그의 친구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도 동정하지 않는 외로운 자리에 혼자 있다 하더라도 그 이념권은 그와 더불어 같이 있는 것입니다. 그 인연을 설정한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찬양하고 가는 곳에는 언제나 그 주체가 나와 같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혼자 죽더라도 천국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본고향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라는 것은 누구를 찬양하는 것이냐? 자기를 찬양하는 거예요? 상대를 찬양하는 그것이 신앙이라구요. 결국은 그 논리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보다 큰 상대를 찬양하는 데에서 신앙의 길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하나님이요, 유일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최대의 가치를 지닌 그런 상대로서, 영원히 영원히 그를 찬양하기 위한 생활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상대를 찬양할 수 있는 그 길은 어디에서 생기느냐? 관계를 맺는 데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내 말과 내 정신과 내 마음과 내 행동이 가는 곳에서 인연이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만나 가지고 말을 해야 됩니다. 길이라도 같이 가 봐야 됩니다. 한 자리에 앉아서 밥이라도 같이 먹어 봐야 인연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과, 상대와 나와의 인연은 거기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인연을 갖지 못한 사람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의 인연을 따라왔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의 인연을 따라왔기 때문에, 여자와 남자가 그런 인연을 가졌기 때문에 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자는 어떠한 존재냐? 여자가 '아 나는 여자만을 위해 있을 거다' 이럴지 모르지만,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로 남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자기의 위치를 부정하는 데에서 존재가치가 출현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왜 태어났느냐? 자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남자는 왜 태어났느냐? 남자도 자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자를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남자가 아무리 덩치가 크고 아무리 배짱이 있다 하더라도 나중에 상대를 필요로 하여 여자를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 여자가 아무리 작더라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나 살려 주소' 하고 빌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생겨나기를 자기를 위해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 눈이 누구를 위해서 생겨났느냐? '누구를 위하다니, 나를 위해 생겨났지' 이래요? 눈이 자기를 위해서 생겨났어요? 상대적인 세계를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나를 위해서 생겨난 것 같지만 상대세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귀는 왜 생겨났느냐? 상대가 있기 때문에 그 상대의 말을 듣기 위해 생겨난 것입니다. 자기의 말이야 뭐 그까짓 귀 없이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코는 왜 생겨났느냐? 코가 코 때문에 생겨났어요? 상대와 인연을 맺기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입은 왜 있느냐? 말을 해 가지고 모든 의사 소통을 함으로써 그 사상이라든가, 혹은 마음이라든가 인격적인 기준을 서로가 통하게 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전부 다 그래요. 손은 뭣 때문에 생겨났느냐? 일 때문에 생겨 났습니다. 나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지만 결국 그것은 역사를 개척하기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전부 다 남을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위해서 태어났다고 주장할 수 있어요?

사랑의 종착점은 남을 위하는 곳

밥을 잔뜩 먹고 나서 '아이구, 또 밥' 이래요? 배가 정상적으로 부른데 '아이고, 또 밥' 이래요? 밥을 먹었으면 뭘할 것이냐? 밥을 먹은 다음에는 일을 해야 됩니다. 일을 하는데도 나를 위해서 한다 하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서 일한다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원리는 그런 면에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서로서로 주고받아 가지고 하나되는 데에 하나님은 임재하십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망합니다. 아무리 연구를 해보고 결론을 지어 봐도 하나님이 계실 곳은 그 자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데도 누굴 중심삼고 주고받느냐? 나를 중심삼고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상대를 중심삼고 주고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서로이니까 나는 저리 가야 되고 저기서는 나에게로 와야 됩니다. 여기서 서로서로라는 말은 자기를 부정하는 자리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과시하고 고착된 자리에서 절대 성립되지 않습니다. 상호관계라는 말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평등이라는 말도 안 됩니다. 통일이라는 말도 안 됩니다. 안 그래요?

이것을 볼 때 서로서로 잘 주고받아야 됩니다. 이런 모든 것을 비판해 가지고 귀결짓게 될 때에, 통일방안이라든가, 이상방안이라든가 모든 존재의 가치, 존재의 동기는 서로서로 상대를 위하는 자리 외에는 있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주고 받아 가지고 하나되는 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통일사상의 결론은 논리적으로 타당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소망하는 우리의 본심이 거기에 있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우리의 눈도 보게 되면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어 가지고 이것이 합해져야 볼 수 있습니다. 코도 둘이 합해 가지고 공기가 들어가야 할 텐데 하나가 막혔다 하면 기분이 나빠요, 좋아요? 코가 안 막히면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모르지만 조금만 막히면 숨 쉬는 걸 대번에 아는 것입니다. 눈도 아프지 않을 때는 눈이 있는지, 눈이 깜박깜박하는지 모르지만 조금만 이상이 있으면 '아이구 걸렸다' 이러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런 거라구요. 이것이 천지조화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모든 논리를 전개하여 종합해 가지고 확대시켜 보고 축소시켜 보아도, 주체와 대상이 서로 상대를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는 데는 하나님이 임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 통일교회의 결론은 정말 멋진 결론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실감이 나요? 손도 쥘 때 하나만 꽉 쥐면 기분이 나쁩니다, '하나되자' 해 가지고 악수를 하게 될 때 하나만 왁 쥐면 '에이, 이놈의 자식아' 하면서 기분 나빠하는 거예요. 가만히 쥐고 좋다고 손을 흔들흔들하는 것보다 모양이야 흉하더라도 서로 손을 욱쥐고, 이를 악물고 세게 흔들어야 그것이 기분 좋은 것입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은 다 결혼했으니 색시들 사랑도 다 해봤겠구만, 여편네하고 사랑할 때 그저 멀거니 해 가지고 될대로 되소 하게 되면 좋아요? 어디 남자들 이야기해 보라구요. 부등켜 안고 쓸고 그저 물어뜯고 하는 것을 좋아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자, 노골적으로 이야기해 보자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웃음) 그런 거예요. 당신을 사랑한다는 표시가 크면 클수록 기분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전부 다 귀결은 어디서 짓느냐? 인간의 최고의 행복은 어디서 찾느냐? 사랑이 지향하는 종착점이 어디냐? 남을 위하는 곳, 지극히 사랑하는 곳입니다. 남을 미칠듯이 사랑하는 거기에 이상이 있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라고 하면 처음부터 도망가는 거라구요.

재창조역사는 사랑의 힘을 중심삼고 벌어진다

이제 우리의 이상세계가 어떤 세계라는 것을 확실히 알겠어요? 어떤 세계예요? 결론을 짓자구요. 상대를 찬양하는 세계입니다. 상대를 찬양하는데 그것이 극하게 되면 그 찬양은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안 돌아오면 천지는 망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잘못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법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기쁠 수 있는 것이지, 만약에 소모 전쟁만 자꾸 해 가지고 돌아오지 않고 넘치도록 채워만 주게 되면, 하나님은 망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차면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하잖아요. 모든 것이 플러스, 마이너스로 되어 있습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주체와 대상이 반드시 보조관계, 축관계를 이루어야 천지의 작용이 벌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주체와 대상이 빨리 합하게 되면 작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커 간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을 10년만에 만났는데 '아, 우리 한 5분 후에 만나세' 하고 만나요? 직선으로 나가 부딪칩니다. 부딪히게 되면 반발적인 반작용이 벌어지므로 이상권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야! 지독하구나' 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감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재창조 역사가 거기서 벌어지는 거예요. 부딪혀서 하나되어 가지고 그것이 다시 출발하는 데서 재창조가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 여자가 부딪혀 가지고 하나되면 여기에서 재창조 역사가 벌어짐으로써 아들딸이 나오는 것입니다. 부딪치면 반작용 운동이 벌어지므로 여기서부터 번식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둘이 부딪친 자리에 영원한 힘이 '뻥' 하고 주체적으로 가해지면 그 작용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 작용은 뭐냐? 여러분이 사랑하여 아들딸이 태어나는 것은 인간적인 사랑만이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사랑의 플러스 방망이가 와서 '꽝'하고 접촉하기 때문입니다. 부딪쳤다가 꽝 하고 밀어주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영원불변한 인생창조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수 있다구요.

그래서 상대와 합하게 되면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겁니다. 점점점점 가까와지게 되면 사랑의 본능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됐다 할 때는 하나됨과 동시에 작용이 벌어지는 거예요. 재창조의 역사가 사랑의 힘을 중심삼고 벌어진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아들딸이 생명체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도 얼마나 하나된 사랑을 했느냐의 여하에 따라 천지운세를 이어받고 태어나는 직계손이 되느냐, 방계손이 되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직계 심정적 인연을 맺어 가지고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핵심 기반으로 해서 반작용적인 재현을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가족의 세계 이상 실현권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형제끼리 사랑하고, 여자는 남자를 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형제끼리 사랑하게 되면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부모는 부부끼리 사랑하던 마음을 가지고 자식을 사랑하고, 즉 남편을 사랑하는 이상 자식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는 이상 자식을 사랑하고, 또, 아들딸은 부모를 사랑하는 이상 형제를 사랑하려고 해야 돼요. 그런 세계가 이상세계입니다. 또, 형제끼리 사랑하는 이상 동족을 사랑하고, 동족끼리 사랑하는 이상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끼리 사랑하는 이상 세계를 사랑하면, 그 세계가 이상세계예요. 이상세계가 간단하지요? 말은 간단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이상세계인 것입니다. 국경을 초월해 가지고 이방민족들이 모여서 자기 식구와 같이, 혈육을 이어받고 태어난 형제지애(兄弟之愛)를 가지고 이마를 맞대고 살 수 있는 세계가 이상세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는 하나님이 뿌리이고 우리는 가지이니까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잎에 있는 하나의 세포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포에 소모된 진액이라는 것은 뿌리를 통해 가지고 동쪽 북쪽 저끄트머리의 말라 썩어지려고 하는 잎에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아이고 난 썩은 것은 싫어' 그렇지만 그 썩은 것을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체 소모를 통하여 재창조 역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재창조 역사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소모한다고 해서 자기는 서러워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걸 서러워하게 된다면 그 나무는 원만하게 오래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가 산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동쪽에서 아침 햇빛을 잘 받고, 또 어떤 사람은 남쪽에서 햇빛을 잘 받고 있는데, 자기는 북쪽 가운데 부러진 가지에서 '아이구, 죽겠구만. 아이구, 죽겠어' 하고 있다가 소모전이 벌어지니까 '아이구, 난 소모 싫소. 저 동쪽 가지 이파리로 보내 주소. 남쪽 가지 이파리로 보내 주소' 이런 수작하게 되면 이 나무는 어떻게 될 것이냐? 나무 뿌리가 영양을 전부 다 거기에 소모하게 되기 때문에 그 나무는 전체가 쓰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논리적으로 전개하면 그렇게 되지요? 「예」

여러분, 소위 통일교회 교역장들이라는 패들, 소위 간부라고 하는 책임자들이 와 가지고는 '아이고, 나 좀 살려 주소. 인사이동해 주소' 이럽니다. 그래 거기서 죽도록 해봤느냐는 것입니다. 나 자체가 소모되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끝까지 가 봤느냐 이거예요. 그러면 죽을 수 있는 자리에서 살아난다 이겁니다.

병이 난 것은 죽고 사는 경계선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경계선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병이 나서 생명의 저력이 점점점점 약화되어 가지고 죽음이 생의 밑창에 깔려서 싸움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의 기반은 무엇이냐 하면 죽음입니다. 생의 기반이 죽음이라면 이상하지만, 생명 밑에는 보이지 않는 죽음이 떡 깔려 있다구요. 몸이 점점 약화될 때는 '야 이놈아, 올라가자 올라가자' 이러면서 싸우는 것입니다. 몸이 180도 중심에서 조금만 기울어지게 되면 그 사이에 죽음이 올라와 가지고 몸을 장악하게 되고 그러면 몸은 넘어가는 거예요.(울음) 여러분의 생명이 사망과 싸워 이겨서 당당한 승리적 자리에 있기 때문에 지금은 여러분이 사망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편안히 앉아 있지만, 사망이 위협하는 경계선에 접하게 될 때는 죽는 때라는 거예요. 이런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 본래 나는 상대를 위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실감이 나요? 「예」

통일세계관이 그런 것입니다. 통일세계가 다른 것이 뭐냐 하면 상대세계를 하나님과 같이 찬양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사랑하자'는 것이 통일세계관입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하나될 수 있겠느냐 할는지 모르지만 아무리 논거를 추구해 봐도 이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안 되더라도 인간은 그런 결론을 짓고 해보다가 죽어야 됩니다. 그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사상이 최후의 방법이다, 이렇게 결론을 지을 수 있다구요. 여러분, 어때요? 듣고 보니 생각이 그렇게 정리돼요? 「예」

자, 그러면 '나를 도와주소! 나를 도와주소? 하는 것이 좋은 말이예요, 나쁜 말이예요? (웃음)「나쁜 말입니다」 진짜 다 줘 보라는 거예요. 지독한 자리면 지독한 자리에서 진짜 다 줘 보라는 것입니다. 도와 달라는 말은 뭐냐 하면 자기가 복 받을 수 있는 터전을 다른 사람에게 인계해 주겠다는 말입니다. '나는 이 책임을 못하니 누구 책임할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든 와서 이 복을 받으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짜 다 주고도 죽지 않는 날에는 뿌리에서부터 보급이 와요, 안 와요?「옵니다」 누런 잎이 시꺼멓게 돼요? 푸르러집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것이 원칙입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가 죽는다?「산다」 삽니다. 이런 원칙에서 볼 때 '본부, 도와주소' 한 것이 잘한 말이예요? 말 잘했어요?「잘못했습니다」 도와 달라면 도와주는 것은 좋습니다. 사랑은 도와주는 것입니다. 뿌리의 진액은 사랑이 원동력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여러분의 꼭대기에 가 있다구요.

여러분이 만약 코가 되어 공기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생겨 났는데 나와 보니까 공기가 없어서 큰일났다, 그런 입장이라고 생각해 봐요. 이놈의 코가 얼마나 원망스럽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그런 것 걱정 안 하게 다 되어 있습니다. 또, 눈이 태어났는데 태양빛이 없으면 눈은 괜히 생겨났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눈은 얼굴의 쓰레기통이 됩니다. 눈을 깜빡깜빡하면서 1분 동안에 수십 번 소제를 하기 때문에 먼지가 안 들어가는 것이지 가만히 뜨고만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쓰레기통이라는 겁니다. 만일 태양이 없으면 '이놈의 눈 뭐하러 태어났어?' 그럴 것입니다. 입은 뭐하러 생겨났겠어요? 먹을 것이 없고 말할 필요도 없다면 입이 뭐 하겠어요? 벙어리입니다. 그러면 입도 원수고 눈도 원수고 코도 원수가 됩니다.

통일세계는 관이 없는 세계

이런 것을 볼 때, 전부 다 상대적으로 생겨났습니다. 상대에게 갔다가 돌아옴으로써 '나'라는 것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에게 갔다 와서 보고는 '아이구, 내가 있구나' 하고 아는 거예요. 상대를 통해서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 창조원칙입니다.

하나님도 상대를 통하여 '내가 그러한 사랑의 주인이구나' 하는 것을 안다는 거예요. 다각적인 면에서 자기를 느낌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왜 기쁘냐? '아,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자기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자기가 발견되는 거예요. 상대를 통하지 않고는 자기 발견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대하는 여하에 따라서 인격이 조성되는 것입니다. 그 말이 그 말이라구요. 알겠어요? 그래서 친구를 잘 사귀어라, 선생을 잘 모셔라 그러는 것입니다. 그 말 맞지요? 올바른 길을 가라는 거예요. 상대로 말미암아 자각이 시작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남을 지극히, 미칠듯이 사랑해 보게 되면 자기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남을 위하여 끝까지 가 보게 되면 인간의 맛을 알게 되는 거예요. 자기를 위하는 사람보다도 남을 위하는 사람이 인간의 맛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동서남북을 바라보더라도 풍겨오는 향취를 다르게 느끼는 거예요. 시야가 점점 넓어지고 높아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관(觀)이 생깁니다.

관(觀)이라는 것은 볼 관(觀)자입니다. 관이라는 것이 나에게서 생기는 거예요? 자기를 들여다봐 가지고 내 눈이 이렇구 내 마음이 이렇구 나는 이렇다 하는 것이 관이예요? 관(觀)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이상권을 상대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상적인 상대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관(觀)은 그런 거라구요.

그렇지만 관이 없는 세계는 어떤 세계냐? 통일된 세계입니다. 남자하고 여자하고 하나된 후에는 남자, 여자라는 생각이 있나요? 관을 초월하기 전에는 통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관을 초월하는 데 있어서 재창조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에는 관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는 관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되면 관이 없는 거예요. 그 차원의 세계에 있어서는 관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관을 초월했기 때문에 또 다른 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 관은 낮은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것입니다. 사랑의 길은 더 큰 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큰 것을 위해서는 사랑하는 길밖에 발전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하나님과 하나된 후에는 가정을 찾아가고 가정을 사랑한 후에는 종족을 찾아가고, 종족을 사랑한 후에는 민족을 찾아가고, 민족을 사랑한 후에는 국가를 찾아가고, 국가를 사랑한 후에는 세계를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게 되면 나중에는 어떻게 되느냐? 이 관도 하나님하고 합해져 버리게 됩니다. 하나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너와 나와의 관이 없는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은 완전히 하나된 세계입니다. 상대이자 나요, 나자 상대인 것입니다. 관이 없는 세계라구요. 천국에는 관이 없어요.

지금까지 우리 인간 세계에서는 개인의 상대관이 다르고 가정의 상대관이 달랐습니다. 이 관을 총괄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주류적인 능력을 가진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사상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개인통일, 가정통일, 민족통일, 국가통일, 세계통일을 이루어 나중에는 하나님 통일을 거쳐 관이 없는 세계를 이루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주권도 없는 것입니다. 주권자가 높은 것도 아니요, 상대자가 낮은 것도 아닙니다. 주권자는 상대자를 위한 것이요, 주체는 상대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가 와야 오늘날 인간이 추구하던 지배자니 피지배자니 하는 모든 어구가 해결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어떤 논고를 통해서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 외에는 없다는 결론이 딱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지금은 인간의 사랑에도 관이 있습니다. '나는 돈 때문에 사랑한다. 무엇 때문에 사랑한다' 그런 것 있지요? 그런 것은 순수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을 초월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 나가자는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앞으로 민주주의 세계도, 공산주의 세계도 이 사랑 기준에 흡수시켜 하나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이상세계가 올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사랑을 하는 데는 죽을 힘을 다해서

이제 결론 내리자구요. 신앙이라는 말은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참된 인간은 뭐냐? 하나님하고 놀고, 하나님하고 쉬고, 하나님하고 자고, 하나님하고 살고자 하는 인간이 최고의 참된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느냐 하면 그러한 참된 인간을 찾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참된 것을 찾아 나가고 참된 세계를 찾아 나가는데 하나님과 더붙어 사는 세계가 참된 사랑의 세계요, 참된 행복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비로소 우리의 이상경(理想境)이 현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표준은 인격을 추구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까지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상대를 위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사랑의 세계에 가지 못합니다. 왜? 창조원칙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창조 원리가 그렇기 때문에 원리를 떠난 세계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지금까지 여러분의 생활관은 어떠했느냐? 자기를 중심삼은 생활관, 자기를 위한 생활관이었지요. '아이고 힘든데 내가 말은 해서 뭘하나, 뭐 다른 사람이 하겠으면 하고, 임자네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하며 자기 책임을 누구한테 양보할 수 있어요? '나는 아침밥을 안 먹어도 돼. 네가 나 대신 아침밥을 먹어 다오' 했다가는 죽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책임이 있는 거예요. 자기가 일생에 지키고 가야 할 책임, 이것은 절대 불가침권입니다. 개성진리체에 부여된 특권입니다. 이 권(權)을 상실하는 무책임한 사람은 지옥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하는 일은 다른 사람 누구도 못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 할 수 있으면 해먹어 보라는 거예요. 그런 것을 내가 갖고 있는 거예요. 왜? 그런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사랑하기 때문이예요. 여러분에게도 그런 무엇이 있어요? 상대권을 위한 무엇을 갖고 있어요?

여러분, 볼트(bolt)에 너트(nut)를 채우는 것을 잘 살펴보면 맨 처음에는 슬렁슬렁 돌아갑니다. 제 맘대로 틀어집니다. 처음에는 맨 밑창까지 슬슬 돌아가다가 점점 가게 되면 점점 뻑뻑해집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이를 악물고 '얍' 하고 돌려야 돌아갑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틀어 놓아야 그 누구도 와서 건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힘센 사람이 틀어 놓으면 힘이 약한 사람은 절대 못 푸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안 그래요?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이 틀어 놓은 것은 하나님밖에 못 풀어요. 남자 여자도 볼트 너트와 같습니다. 남자 여자는 볼트 너트와 같은데 이것을 누가 틀었어요? 하나님이 틀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틀어 놨으니 그걸 풀 자가 있어요? 마찬가지입니다. 풀기 좋게 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나님이 그걸 할 때는 노라리가락으로 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 핵심 사상을 우리가 닮는 날에는 천지에 벼락이 날 거예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사랑하려고 힘을 주는 데 있어서는 죽을 힘을 다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사랑을 하려면 죽을 힘을 다하여 그 흉내라도 내야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자리에서 내가 너트라면 식구를 볼트와 같이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아버지여, 저 사람이 나하고 하나될 수 있도록 틀어 주십시오' 해야 됩니다. 그것을 자기가 틀 수 있겠어요? 하나님이 틀어 주는 날에는 뗄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이 가면 나는 죽어도 같이 갑니다. 떨어질 수 있어요? 어디를 가더라도, 몸뚱이는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같이 가는 거예요. 일생 동안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울릉도 지역장!「예」후원을 해주는 것이 좋아, 안 해주는 것이 좋아? 대답해 봐. 해결짓고 넘어가자고. 후원을 해주는 게 좋아, 안 해주는 게 좋아? 만약에 죽지 않고 최고의 노력을 하면 할 수록 그 뿌리의 진액은 전부 다 가지와 잎사귀에까지 보급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 작전을 하는 거라구요. 내가 가진 돈은 한푼도 없지만 얼마나 정성을 들이느냐, 얼마나 저기압권을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 이상 내가 필요한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태풍이 불어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불어와요, 안 불어와요?「불어옵니다」저기압권일수록 태풍은 멋진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태풍이라는 역사 가운데는 저기압권일수록 역사적인 태풍이 안 되는 것이다?「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출발하고 선생님을 따라 나선 걸음

여러분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오매불망 길을 가면서도 혼잣말을 하고 그래 보세요. 여러분에게 한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탕감원칙입니다. 조상의 탕감과 여러분의 탕감이 여러분 앞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탕감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탕감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위하려는 마음으로 탕감해야 돼요. 여기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선조들의 훌륭한 공적이 많아 탕감할 게 많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생애에 있어서도 죄를 짓지 않았으면 어디에 가서 개척을 해도 잘 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내용이 개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너, 이름이 뭐야?「박정선입니다」 박정선? 박정신이 아니고? 박한 정신을 가졌기 때문에 박정신인가?「박정선입니다」 박정선? 강원도에서 났구만? (웃음) 어디서 왔나?「경기도에서 왔습니다」

그러므로 누굴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끝까지 해봤느냐는 거예요. 끝까지 해봤어요, 안 해봤어요? 해봤어요? 그 끝이 어디냐? 길면 길수록 좋은 것입니다. 오래되고 멀수록 좋다는 겁니다. 그건 뭘 두고 길게 잡느냐? 멀리 가서 만나게 되면 거기서 오는 것도 멀기 때문에 오래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하는 데 있어서 선생님은 '아버님! 몇천년 후에라도 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기억되는 문제로서 남게 해주시옵소서'라는 기도도 합니다. 이루어질까봐 걱정인 것입니다. 다 이루어지면 큰일난다구요. 지금 다 이루어지면 앞으로 우리 아들딸들이 기도할 것이 없어진다구요. 알겠어요?(웃음) 기도할 것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소망이 없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 만년 이것만은 이루어지지 말게 해주시옵소서' 하고 기도를 한다구요. 천년만년 조금씩 이루어져 가면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고 천년만년 남아진다, 그 말이라구요. 생각이 다르다구요. 그거 그럴 듯하지요? 기도를 해서 '옛다 이 녀석아' 하고 나가 자빠지도록 왈카닥 해주면 '아이고 내 하나님 고맙소' 할지 모르지만 거기에는 멋지고 장구히 존재할 생명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영원한 생명은, 영원한 것은 항상 은은한 세계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느껴지지 않는 세계에서도 영원히 있어야 된다구요. 과격한 끝도 영원히 있어야 돼요. 과격하고 은은한 것, 높고 낮은 것, 밑과 끝을 모두 통일한 것이 영원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그 감각권에도 하나님은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있다 하는 과정을 지나서도 하나님은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을 모른다' 하고 하나님을 저버린 사람, 노상 선생님에게 불평하는 사람, 주체 대상은 다 누구 때문에 만들었나? 동정할 것 같아요? 이론적으로 하나님이 동정하게 되어 있어요? 그가 배고플 때 하나님은 '이놈의 배고픈 자식아, 잘했다 이 자식아'하고 선생님도 '이놈의 자식아, 잘했다 이 자식아' 이럴 거예요. 이것이 배고픈 녀석을 대하는 처리 방법이자 인사법입니다. (웃음) 이 논고에 반대할 사람 말해 보세요, 내가 하나 들이 쏠 테니. 이게 틀렸소?

그러면 하나 물어 봅시다. 인간은 맨 처음에 누굴 위해서 출발했어요? 까놓고 얘기해 보자구요. 이제 갈 시간도 되고 했으니 말예요. 나도 시원하고 임자네들도 시원하게 궁금한 보따리를 다 풀어놓고 이야기 해보자는 거예요. 저놈의 보따리에 무엇이 있는지 밤새도록 궁금했었는데 아침이 되어 떠날 때는 다 풀고 가야지 그것을 들고 가 보세요. 떼를 써서라도 다 풀어 보고 싶을 것이예요. (웃음) 그러니까 '옛다 모르겠다' 하고 풀어 놓고, 해쳐 보고 다 시원하게 하고 가야 되겠다구요. 안 그래요?

자, 여러분이 출발할 때 누굴 위해서 출발했어요? 맨 처음에 누구를 위해 출발했어요?「나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하늘을 위해서 출발했습니다」하늘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출발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을 위해서 출발했다구요. 그 다음엔 누구를 따라 나섰어요?「선생님요」 선생님을 따라 나섰지요. (웃으심) 그 다음에 뭘하려고 따라 나섰어요? 내가 잘살려고? 세계를 잘살게 하기 위해서 따라 나섰지요. 세계를 잘살게 하려면 나라를 잘살게 해야 되는 거예요. 꺼꾸로 되어 있습니다. 세계를 잘살게 하려면 나라를 잘살게 해야 되고 나라를 잘살게 하려면 민족을 잘살게 해야 되고, 민족을 잘살게 하려면 종족을 잘살게 해야 되고, 종족을 잘살게 하려면 가정을 잘살게 해야 되고, 가정을 잘살게 하려면 내가 잘살아야 합니다. 거꿀잡이라구요.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자리에 있어요? '아, 내가 못사는구나. 아, 우리 가정이 못사는구나. 나라야 어떻든, 세계야 어떻든 나만 잘살면 되지' 이럽니다. 나라의 위급한 것이 여러분의 가정문제보다도 더 시급합니다. 세계의 위급한 것이 우리나라 문제보다 더 시급하다는 거예요.

3개 도를 넘어서야 그 나라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에서 가만히 자기를 비판해 가지고 해명하여 그 귀결점을 생각해 볼 때 기가 막힌 놀음입니다. 이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나라가 잘 될 수 있다면 자기가 칼로 자기의 귀를 툭 쳐가지고 발길로 차 버리고 쓰러져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이놈의 눈알을 뽑아 가지고 왼발 바른발로 멋지게 일직선으로 축구볼마냥 차 버리고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코를 째 가지고 저 밸에까지 똥물을 집어넣어 버리고 싶다구요. (웃음) 왜 웃소?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이 망할 자식이예요, 흥할 자식이예요?「흥할 자식입니다」 그는 틀림없이 흥한다구요.

하나님이 만약에 사랑하는 아들딸이 그러는 것을 본다면 '야야, 내가 빈다 빌어, 제발 그러지 말아라, 아이구 뭘 원하니?'라고 할 것입니다. '이놈의 코로 향기를 맡고 싶소', '무슨 향기?', '세계의 향기입니다', '그래 그러면 세계의 향기를 뿌려 주마'라고 할 거예요. '눈은 왜 빼려고 그러니?' 할 때 '이 눈으로 세계를 한번 보려고 하는데 가망이 없으니 빼 버리려고 합니다' 하면, 하나님이 '아이고, 그만둬라. 그 눈이 보고 싶어하는 세계를 만들어 줄께'라고 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기를 세워 보라는 거예요. 망하나, 안 망하나.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선생님은 모험을 하려고 하는 거예요. 박자가 맞아 들어가니 눈감고 모험을 하는 거라구요. 눈 뜨고 모험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새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와 있어요? 여러분의 위치가 어디예요? 이제 누굴 위해야 되겠어요? 위해야 할 것은 누구예요? 대한민국을 위해야 돼요? 통일교회의 뜻을 위해야 되겠어요? 통일교회의 뜻도 위하게 안 되어 있다구요. 결국은 누구를 위해야 되느냐? 제일 미운 것이 누구예요? 누구예요?「자신입니다」 자신인 거예요. 그러면 이 제일 미운 것을 구해 줄자가 누구예요? 자신은 못 구해 줍니다. 상대의 세계를 올바로 찾기 시작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구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어디서 기쁨을 얻느냐? 자기 자신에게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올바로 찾는 데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천지의 모든 이치가 그런 것입니다. 우리도 그 길밖에는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의 운명을 지니고 있는 종교인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종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심정을 찾아가는 종교인들은 누구보다도 선두에 서서 그것을 달게 소화시키며 가야 합니다. 그러한 패들이 통일교회의 패들인 것입니다.

자,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와 있어요? 눈에 무엇이 보여요? 선지자가 자기의 고향에서 대접을 못 받았다는 말은 이런 원칙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이론적으로 전부 다 청산지어야 됩니다. 거기에는 어머니 아버지가 있기 때문에, 심정적 내연이 있기 때문에 지장이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에 있어서 영광을 나타낼 수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이상 사랑하려고 할 때는 새로운 창조역사가 벌어지기 때문에 이적기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 대접을 못 받는 것이 원리원칙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고향을 떠나서 일하려고 하고 고국을 떠나가서 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소생, 장성, 완성, 3단계가 천리원칙이기 때문에 못해도 3도를 넘어서 일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꿈에도 소원이 3단계를 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면이서 세 면 이상을 넘어서라. 이 군에서 세 군 이상 넘어서라. 이 도에서 세 도 이상 넘어서라. 이 나라에서 세 나라 이상을 넘어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의 목적은 국가적인 이념을 중심삼고 한국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나라를 넘어서서 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마을의 족속들을 동원해 가지고 ‘3개 면을 넘어섭시다’라고 해야 합니다. 넘어서려면 반대하는 원수들인 가인권을 통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3개 면을 초월해야 되는 것입니다. 3개 군을 무난히 돌파해야 되는 것입니다. 3개 도를 돌파해야 국가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하늘이 보낸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관입니다.

여러분은 천국관을 중심삼고 가야 할 천민입니다. 알겠어요? 도까지는 올라가야 됩니다. 도(道)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중앙청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개인과 가정들은 역(逆)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도 역으로 올라가야 돼요. 그러니 면이면 면, 군이면 군, 도면 도에서는 반대로 서 가지고 거기에서 드러나야만 국가를 대할 수 있는 중앙청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천리적 기질을 가지고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마을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도를 지나 그 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주체성을 가지고 국가적 주체로서 결정되어 국가적인 대상권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할 말이 있어요?

지금까지 선생님은 대한민국에서 정성을 들였지만 영적 기반에서 세계화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 쭉 돌아오는 거예요. 돌아올 때는 그야말로 새로운 이상세계를 품고도 남을 수 있는 모습으로 금의환향할 것입니다. 아직까지 금의환향은 안 했다고요.

상대를 울리려면 그를 위해 피, 땀, 눈물을 흘려야

이런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볼 때 우리 인간이라는 것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신앙관에 있어서 주체와 대상 관계를 알지요? 본래 하나님도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을 위해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위하기 전에 상대를 위해서 천지를 지은 것입니다. 상대에게 완전히 주고 난 후에는 그 상대의 모든 것이 자기에게 돌아오는데 돌아올 때는 준 것에 플러스되어 가지고 아담 해와까지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억만장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좋다는 거예요. 완전히 주고 나면 그를, 그의 권을 점령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주는 방법에는 천만 가지가 있습니다. 말로도 줄 수 있고, 손길을 통해서도 줄 수 있고, 행동을 통해서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방법은 무수합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상대를 위하는 세계관을 갖고 나온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성경의 모든 이치는 여기에서 다 풀리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서(經書)도 이 원칙에 대입하게 되면 그 모든 핵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통일사상의 내용을 갖고 나가면 놀라운 내적 통일이 벌어집니다. 외적 통일이 아니라 근본적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정을 들고 나온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은 누구를 위해 돌아갈 것이냐?「상대를 위해서요」 '내가 한번 해보겠다' 하고 결심을 하고 있지요?「예」 누구를 위해서? 「상대를 위해서요」 상대를 위해서 움직이면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상대를 사랑하는 데 얼마만큼 사랑할 것이냐? 하나님만큼 사랑하려고 흉내라도 내봐야 합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심정의 촛불을 켜고 '야, 출발이다' 하며 기도해 보세요. 그러면 얼음 같았던 심정이 녹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명작이라든가 세계적인 위인들의 전기라든가, 혹은 문학작품을 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눈물이 섞여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일대의 혁명을 제창시킬 수 있는 문학작품에는 반드시 사람의 뼛골에 사무치는 내용이 있는 거예요. 혼자서는 싸울래야 싸울 환경이 없고, 싸우고 싶은 마음이 천지에 꽉 찼지만 일보를 내디딜 수 없는 입장에서 구상을 하고 정성을 다해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의 소원을 고이 그려 놓은 것, 그것을 자기의 절대적인 대상으로 붙안고 눈물과 심혈을 다해 가지고, 정성을 합해 가지고 그려 놓은 것이 세계적인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눈물을 흘리며 쓴 편지는 상대를 울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어떤 생명을 위해…. 그가 눈물나게 하기 위해서는 그를 위해 울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그를 위해 얼마나 눈물을 흘렸느냐? 얼마나 피땀을 흘렸느냐? 남자가 전도를 나가서 자기가 기도해 주었던 아주머니가 왔다 할 때는 그저 붙들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그때는 남잔지 여잔지 모르는 거예요. 그게 세상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러는 거예요? 그 생명을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그 사람을 위해서 정성을 들였던 주체로서 대상의 가치를 그 사람에게 주기 위해서 그러는 거지요. 그렇게 붙들고 늘어지면 치지 못 하는 것입니다. 손찌검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해봤어요? '내 집을 다 팔아 바치고, 내 몸뚱이를 전부 팔아 바쳐도 좋으니 제발 몇 시간만 있다 가소'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야기하면 그 시간에는 절대 발이 못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봤어요? 그거 가능하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면 몇분 이내에, 몇 십분 이내에 그 사람의 사정을 위해서 기도해 가지고 '당신의 사정을 알았습니다. 당신에게 이런 고충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한마디 하면…. 기도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알아 가지고 그를 위해 얘기해 주고 그러는 거예요. 처음 온 사람에게 '남자에게는 이런 고빗길이 있습니다. 인생살이에는 이런 길이 있습니다. 여자의 가는 길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자기 이야기가 전부 맞다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기도하면 영적으로 보든가, 하늘이 그를 나팔수로 세워 가지고 얘기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집이요 나의 입은 당신의 마이크가 아닙니까?'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간절한 입장에서 기도하게 되면 맞추는 거라구요. 그 입이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의 역사를 엮어서 말하게 되는 거예요.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면 입이 호스통처럼 점점 넓어져 가지고 자동적으로 영계가 열려지게 됩니다. 알겠어요? 그런 사람에게는 기도가 필요 없다구요. 그거 실험해 보세요.

완전한 주체 앞에 완전한 대상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창조원리가 그렇잖아요? 그러므로 완전한 사랑을 했느냐가 문제예요. 그녀가 완전한 사랑을 그리워하던 그런 여자라면 완전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고 그 여자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게 되면, 그 여자는 앉은 자리에서 절대 못 일어납니다. 오자마자 자기의 모든 사연을, 자기 남편의 비밀까지 털어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거기에서, 누구보다 가까운 자리에서, 세상에 없는 부부, 세상에 없는 부모 이상의 인연을 맺어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을 이어받게 되면 공적인 새로운 세계관이 거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렇게 해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본연의 이상천국으로 가는 복귀의 길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누가 오면 '열두 시가 아니라 세 시, 네 시가 되어도 안 돌아갔으면 좋겠다. 이 밤을 이 사람과 더불어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사정을 중심삼고 의논할 수 있으면 좋겠다. 돈이 있어 가지고 뭐라도 사다 먹여 가지고라도 이 시간을 연장시키고 싶다. 내가 어떤 노래를 부르는 재간이 있으면 노래라도 한곡 불러서 자극제 삼아서 이 시간을 연장시키고 싶다' 이러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느냐? 내가 그를 통해서 하늘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대상이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거잖아요? 대상이 있어야 하나님의 사랑도 느낄 수 있는 것이지 혼자서는 안 되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 시간은 상대를 중심삼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과 인연맺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하게 된다면 그 여자는 절대 오지 말라고 철문을 닫아 놓아도 그걸 타고 넘어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붙들고 기도한 여자들은 안 올 수 없다 이겁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심리전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가 그렇게 악착 같이 반대하던 세계에서, 그 세계를 무찌르고 밟고 넘어온 것은 그러한 체휼적인 심정적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 있어요?「상대요」 무슨 상대? 상대는 자기 아들딸이 아닙니다. 자기 집이 아닙니다. 씨족권이 안식권내에 없으면 집이 안심하고 살 수 있어요? 안 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원수들은 습격해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앞에 싸워 줄 수 있는 씨족권, 울타리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울타리 안에 가정을 만들어야 돼요. 여러분이 선생님 가정 대신 싸워 줄 자신 있어요?「예」 정말이예요?「예」 그러면 선생님은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씨족권이 있으니까요.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가정으로 이루어진 씨족권이 있으니까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짜 자기 아들딸을 전부 다 희생시키더라도 선생님 가정을 보호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 있어요?「예」 대답은 쉽다구요. 진짜 그래요?「예」

가정적 안식권이 전개되고 종족적 안식권, 민족적 안식권이 전개되려면 이 국민이 통일사상을 받아 가지고, '우리 선조들이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죽고, 이렇게 피 흘리는 투쟁을 했으니 이제 형님들은 고생을 안 시키고 우리가 대신 싸워 드리겠다'고 깃발을 들고 거국적으로 일선에 나서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 대한민국 안에 있는 우리 통일 씨족권이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걸 누가 해줄 줄 알아요? 여러분이 안 하면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그 수난길에서 싸움치 깃발을 영원히 내리지 못하고 싸워야 될 것입니다. 선생님 일대에 이것을 어느 기준까지 만들어 놓지 않으면 영원히 연장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아요? 여러분, 새끼들이 곱지요? 여편네들이 곱지요? 여러분이 그런 기반을 남기지 못하면 여러분의 새끼는 자기가 원하는 선산에 묻히지 못하고 원수들의 해골골에 묻히게 되지 않겠어요?

예수도 해골골에 묻혔지요? 왕능 가운데에서도 중앙의 왕능에 묻혀야 할 예수가 왜 그렇게 되었어요? 시대적인 기반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시대적 기반을 남기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은 어떻게 됐느냐? 그들은 황폐한 땅에서 물을 걸러 먹어야 되었고, 땅을 걸러서 생활을 개척해야 될 입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운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안식권은 가정이 완성되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가정의 안식권은 종족이 완성돼야 되고, 종족의 안식권은 민족이 완성돼야 되고, 민족의 안식권은 국가가 완성돼야 되고, 국가의 안식권은 세계가 완성돼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의 안식권은 천주가 완성돼야 되고, 천주의 안식권은 하나님이 안식해 가지고 사랑만을 찬양할 수 있는 때가 되어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지간에 하나님의 본연의 이상천국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남아 있다구요, 우리에게.

그러면 선생님은 지금 얼마만큼 왔느냐? 지금 민족을 중심삼고 국가의 기준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때에 들어왔습니다. 앞으로 국가를 넘어서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때가 와야 되고, 세계를 넘어서 영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때가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계와 육계가 하나되어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때가 와야 됩니다. 사탄세계가 남아 있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사탄까지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지옥을 철폐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때가 돼서 하나님이 비로소 '아! 이제 다 이루었다'고 최후의 선언을 하고, '야! 수고했으니 이제 기뻐하자'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로소 하나님의 무궁한 세계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죽어서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니 선생님의 일생이 얼마나 고달프겠습니까? 잘못하면 영원히 고달플 수도 있는 거예요. 짧은 일생에 있어서 영원히 고달플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방어하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고 가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활관입니다. 부딪쳐 오는 어려움을 내가 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소화 흡수하고 넘어서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 방향에 일치할 수 있는 상대권을 상실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노심초사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활입니다. 심각한 생활이예요.

최후의 선언, 최후의 잔치

선생님은 이러고 있는데 여러분은 한 군(郡)를 맡고 있지요? 한 군에 얼마만큼 소문을 냈어요? 선생님은 21년 동안 3차 7년노정을 거쳐오면서 길이라는 길은 다 다녔습니다. 어려운 길, 좁은 길, 부딪치는 길, 걸어서는 다 갈 수 없으니까 지프차가 갈 수 있는 데까지는 다 들어가 봤습니다. 옛날에 영덕을 찾아가기 위해 골짜기로 들어가다가 삼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진탕길을 만나 고생도 진탕했어요. 그래도 나는 이 나라를 통일교회 이름을 가지고 마을 마을, 산상 골짜기 골짜기를 다 다녀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십자로를 거쳐야 되고, 동서남북으로 다 편답해야 되고, 그 다음엔 이 나라를 일곱바퀴 도는 놀음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내 일신이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7년노정을 거치면서 그런 놀음을 시켜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안 끝났기 때문에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야 할 텐데 임자 네들이 그것을 계승하지 못하면 민족을 세워서라도 계승시켜야 됩니다. 임자네들이 그것을 계승하지 못하여 민족이 계승해야 할 때는 여러분은 바톤을 옮겨 줘야 됩니다. 결국은 열매를 못 맺은 잎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꽃을 못 본 잎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게 될 거예요?「안 되겠습니다」 왜 안 돼? 그렇게 됨으로써 뜻이 여러분이 가는 것보다 빨리 이루어진다면 그렇게 되어야 됩니다. 달리 이루어질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길이 없는 거예요.

이제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다 짓지 않았다구요. 그렇지만 잔치하기 위해 집을 짓는 것이니 초반 잔치는 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초반잔치가 국가적인 잔치입니다. 그 다음 중반 잔치가 세계적인 잔치고, 그 다음 종반 잔치가 천국에 들어가는 잔치입니다. 하나님이 그야말로 하늘 땅을 통일했다고 최후의 선언을 하고, 역사 이래의 공신들을 다 모아놓고 잔치를 하면서 상금을 주고, '이제야 내 사랑의 세계가 시작되는구나' 하며 만면에 희열을 가지고 기뻐하시고, '너희들이 이 기쁨을 인계받아 가지고 상대적인 세계에서 영원무궁토록 즐거이 살라' 하시고…. 그것이 최후의 잔치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국가를 중심삼고 잔치를 했어요? 선생님은 할 수만 있으면 어떻게든 국가적인 잔치를 세계의 잔치로, 세계의 잔치를 하늘의 잔치로 결부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예요. 그렇기 때문에 영계의 모든 협조 기반을 땅 위에 끌고 내려오기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지금 모든 영계가 통일권내로 접근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영계가 앞으로 점점 통일세계 기준에 접근함에 따라 영계의 최고 통일접선, 육계의 최고 통일접선, 영육의 통일접선을 합한 세계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최후의 판결을 지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사고방식입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세계를 돌아보면서 공산권에 대한 대비작전을 해야 되겠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그 포석을 치고 돌아왔습니다. 그것이 이번 작전이었습니다. 영계에서 주력하는 주력선과 지상의 민주세계를 총 대표하는 주력선을 일치화시켜 가지고 최후의 격전에서 승패를 결함으로 말미암아 국가통일이요, 세계통일이요, 천주통일의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승리했다고 만세를 부를 수 있는 기원을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기 전에 이것을 만들어 놓지 못하면 영원을 두고 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얼마나 고생해야 되느냐? 말로 할 수 없다구요. 그러니 선생님의 갈 길이 바빠요, 안 바빠요?「바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삼천리 반도는 물론이지만, 세계 방방곡곡 어느 곳에나 다 가보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책임지고 있는 군(郡)을 제일 깊은 산골짜기, 한 집 있는 곳까지, 거기가 30리 50리가 되더라도 좋으니 찾아가야 합니다. 가는 데는 정성을 들여서 가야 합니다. 아무리 복중이라도 여러분이 땀을 흘리면서 30리 길을 가 가지고 그 문전에서 '여보! 주인 양반! 내가 찾아왔소?' 하면서 쓰러졌다면 그는…. 그렇게 되면 그 가정을 찾아갔던 그는 전 군을 찾아간 탕감기준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렇게 일하라는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은 늑막이 아팠어요. 얼마나 아팠는데…. 그래도 새벽 두 시부터 세 시까지 달렸습니다. 누구도 아픈 것을 몰랐습니다. 지금 문성균 공장장이 그때 운전을 했는데, 밤새껏 운전을 하여 힘들었을 거라구요. 그렇지만 빨리 일어나라고 깨워서 새벽 두 시에 해인사에서 포항까지 갔습니다. 그런 놀음을 하고 다녔던 거예요. 그래도 바쁘다는 거예요. 가야 되니가요. 그때는 그렇게 하면서 삼천리 반도를 눈물과 더불어, 심정과 더불어 '제가 갈 수 있는 발걸음으로 어디든지 가게 하시옵소서'하고 기도하며 역방하던 그런 때였습니다. 그와 같은 마음을 여러분이 이어받아 가지고 면이든 마을이든 곳곳의 산천에 통일교회의 발자국을 남겨 가면서 눈물을 흘리면, 그것을 보고 온 민족이 눈물 흘릴 수 있는 배경이 되면, 이 강산은 틀림없이 하늘의 축복받은 제 2이스라엘의 민족권이 된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했어요? 여러분이 군 책임자로서 가 보지 않은 집을 지나게 되면 고개를 숙여야 됩니다. 임자네들은 하늘의 밀사입니다. 사탄세계의 잔악상이 어떤지 샅샅이 뒤져야 합니다. 그런 것을 느껴 봤어요?

그 집에 대해서 그런 마음을 느끼거든 또 교회 앞을 지나가게 될 때는 '내가 여기 목사님을 안 만나 보았으니 만나 봐야지' 해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 형님이 아니냐 그러면서…. 그렇지요? 그렇게 찾아가 봤어요? 그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진정으로 그에게 주기 위해서 갔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박차게 될 때는 그냥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랬지요? 70문도를 둘씩 둘씩 짝을 지어 이스라엘 땅에 복음을 전파하라고 내보내면서 너희들이 나가서 어느 곳에 들어가든지 복을 빌어 주고 머무는 곳에서 대접을 하거든 대접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만일에 그들이 그것을 받지 않으면 너희들이 기도한 것이 너희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돌아오는 데는 그냥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복까지 빼앗아 돌아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가는 길은 뭐냐? 복을 주러 갔는데 그들이 박대하면 그들의 복을 도리어 빼앗아 온다는 거예요. 결국은 거두러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들은 목사, 장로들을 다 만나 봤어요? 목사를 만나 보고, 장로를 만나 보고, 집사를 만나 보고 그래야 돼요. 가자마자 싸움을 하려고 주먹으로 친다고 해도 '아이쿠, 이 자식아 왜 치느냐' 하며 같이 싸울 필요 없습니다. 세 대 이상, 세 번 이상 맞으라는 거예요. 맞고 아무말도 없이 돌아와 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동네는 우리 편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렇게 하게 되면 그 동네에서 교회를 비방하고 교회를 미워하던 패들은 전부 다 자연히 우리 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를 미워하던 패를 수습해 놓으면 사탄의 일선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탄의 일선을 전부 다 막을 수 있는 입장에 서기 때문에 우리 수가 많아서 그들을 위할 수 있게 되면…. 야곱이 축복받은 모든 수가 에서보다 많았기 때문에, 양(羊)도 많았고 아들딸들도 많았기 때문에 졸자가 안 되고 우세한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리도 그런 자리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반대하던 교회, 반대하던 모든 부락 사람들을 우리편에 세워 가지고, 그 사람들에게 교회를 사랑하는 새로운 전통을 세워 줘 가지고, 우리가 그들보다 잘살게 된다면, 우리 교회가 2백 명의 식구를 가진 교회라면 백 명의 식구를 가진 교회를 찾아가 후원해 보세요. 그런 자리에서 그 교회를 도와줘 보라는 거예요. 그러면 싸우지도 않고 복귀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수습을 해야지, 주먹다툼하고 싸움해 가지고는, 우격다짐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성교회 목사들을 찾아가서 만나 봤어요? 앞으로 순회사들이 여러분의 교회를 순회할 것이고, 기동대원들이 순회할 것이고, 전도대원들이 찾아갈 것입니다. 만일에 그들이 정성을 들여서 수확을 거두어 왔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그것을 모두 탕진하게 될 때는 그들이 영계에 가 가지고 참소할 것입니다. 그 기동대원과 전도대원들이 여러분 앞에 무서운 심판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들이 누구보다도 정성을 들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정성 안 들인다고 추궁했을때 거기에 반발하면 정성 안 들인 것에 대한 책임추궁을 누가 하느냐? 하나님이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동대원, 전도대원들이, 정성들인 여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또, 순회사들이 가 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권고했는데도 불구하고, 증거를 보여 주면서 선두에서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 줬는데도 불구하고 안 하게 될 때는 앞으로 그 순회사가 여러분을 심판할 수 있는 심판장이 될 것입니다.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옛날에 무슨 의사 있었지요? 머리를 빡빡 깎은 사람 있었잖아요. 그 사람이 천일 기도해 가지고 통일교회 찾아온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에 대해서 '어! 내가 통일교회 문선생이다!' 하며 으시대며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어린애와 같이 대해 주었어요. 그를 전적으로 맞아들인 것입니다. 그가 공들인 모든 것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전적으로 맞아 준 것입니다. 그가 닦아 온 도의 가치만큼 그를 대해 주어야 할 책임이 내게 있는 거예요. 하나님에게도 이 땅 위의 인간을 대해 가지고 그가 수고한 만큼 대해 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원리가 그렇지요? 원칙이 그렇기 때문에 도(道)의 세계에서 책임을 진 사람은 상대의 그 실적 기준만큼, 선한 기준만큼 가치적인 면에서 그를 대해 줘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책임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래서 선생님은 그 사람을 대해서 '그간 고생했소. 뭘 먹고 싶소? 뭘 입고 싶소? 뭘 갖고 싶소?' 이렇게 물어 봐 가지고 다 해주었습니다. 그 다음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소' 하여 그가 원하는 것을 다 하게 해줬습니다. 그가 닦아 온 상대적 가치 기준까지 책임 다했습니다. 그 다음에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고 묻는 거예요. '이 통일교회가 어떤 교회인 줄 알고, 문선생이 어떤 일을 어떻게 해온 줄 알겠소?' 하고 묻는 거예요. 그리고 식구들을 통해서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이렇게 싸워 나왔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백방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목이 잘려 나간다는 것입니다. 심판받고 전부 다 껍데기 벗고 떨어져 나가는 겁니다. 그것이 심판입니다. 알겠어요?

생활적인 면에서 기성교인들에게 감동을 줘라

지금 여러분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복 줄 사람들이 아니면 화 줄 사람들입니다. 긴급한 하늘의 통첩을 가져오는 사람이냐 망하는 통첩을 가져오는 사람이냐 둘 중의 하나입니다. 흥이냐 망이냐 둘 중의 한 가지라구요. 알겠어요? 망할 운을 들고 찾아온 사람이라면 그를 잘 대접하고 잘 위로해 주게 되면 감동받고 가게 됩니다. 그가 감동받고 가게 되면 감동받은 그 기준에 플러스시켜 가지고 악한 운세, 망하는 운세가 누룩이 되어 삭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것을 대접하게 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주고도 더 주고 가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왔던 사람이 자기의 복까지 털어놓고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지금까지 선생님은 그 작전을 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아무것도 갖지 않고 가진 것을 전부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을 대접했고, 유교를 믿는 사람도 대접했고, 여러가지 도를 믿는 잡동사니들까지 전부 다 대접해 주었습니다. 한 가지 못한 것은 기독교 목사들입니다. 임자네들을 통해 가지고 찾아가서 얘기를 하게 됐다는 것이 서글픈 사실입니다. 그것을 못 했기 때문에 내가 그 조건을 세워 줘야 하는 것입니다. 찾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나쁜 것이 아니라 내가 책임 못한 것이 한으로 맺힐까봐 임자들을 세워 가지고 목사들을 만나 보라고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여러분들은 뭘하러 가느냐 하면 복을 거두러 가고, 복을 빼앗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복을 주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복을 주러 갔는데 안 받게 될 때는 다 주고 난 후 자연히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성을 다해서 가라는 거예요.

요셉은 자기 형제들을 대해 나라의 권위를 대신해서 당당코 책망할 수 있었지만, 천번 만번 눈물이 엇갈리는 심정을 가지고 참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처소로 돌아와서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를 악물고…. 나라의 권위를 대신해서 대할 수도 있었지만 형제지정 때문에 그럴 수 없어서 눈물을 흘리고 바른 자세를 취했던 것인데, 그것이 하나님이 같이 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교회 목사들을 사랑해 줘 봤어요? 내가 남한 각지의 목사들을 전부 못 만나 봤기 때문에 그들을 전부 다 불러다가, 잘나고 못나고 관계없이 목사라는 사람은 다 불러다가 잘 먹여 보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땅잔치 하늘잔치를 해주는 것입니다. 땅잔치를 즐기고 간 사람은 은혜가 내릴 것이고, 하늘잔치를 즐기고 간 사람은 은혜가 솟아날 것입니다. 만일에 여러분들이 움직이는 날에는 3년 세월만 지나게 되면 기성교회의 문은 열릴 것입니다. 1974년까지만 계속하는 날에는 기성교회의 문이 열립니다. 그렇게 된다는 것이 원리를 중심삼은 선생님의 결정적인 관입니다. 알겠어요?「예」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기성교회 목사들을 찾아가 봤어요? 찾아가 본 사람 손들어 봐요. 안 찾아간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러면 기성교회 찾아가 보라는 말은 들었어요?「예」 그런데 김명대, 왜 안 찾아갔어? 싫지?「싫은 것이 아니라 식구들을 많이 보냈습니다」 식구들을 많이 보냈으면 자기도 찾아가 봐야지.

내가 앞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보려고 합니다. 제1차로 통고했습니다. 통고했는데 응답이 안 올 때는 안 갈 것입니다. 만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할말이 많지 않다구요.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러기 전에 여러분들은 기성교인들을 만나야 됩니다. 앞으로 나는 교회장, 총회장을 전부 다 만나려고 합니다. 내가 만나기 전에 먼저 지방에서 여러분들이 목사를 만나야 되고, 그 다음에 장로를 만나야 됩니다. 그들이 여러분에 대해서 머리 숙일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소생의 터전 위에 장성이 놓여지는 것입니다. 장성의 터전 위에 완성이 놓여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이치입니다. 소생적 기준이 지방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지방을 중심삼고 활동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승공활동도 그런 의미에서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원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감동을 줘라, 생활적인 면에서 기성교회에 감동을 줘라. 통일교회를 따라가지 않더라도 통일교회 사람들의 행동을 본받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는 벌써 절반은 점령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작전을 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삼위기대를 편성하라고 한 거예요. 그것이 지방에서부터 도로 올라와 가지고, 도에서 중앙까지 들어가서 정부면 정부에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만나자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게 순서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방에서 점 조직적으로 움직였으면, 그것을 어떻게 조직화시켜 가지고 기성교회 책임자들과 상대적 조직편성을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인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힘이 있어서 그것이 안 되면 우리가 힘의 기반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약하니까 기성교회가 우리 기준과 떨어져 내려오더라는 거예요. 그게 좋은 것 같지만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우리가 빠른 시일내에 기반을 닦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떨어지지 않은 채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진한 자리에 있으니 기성교회가 떨어져 내려와 가지고 우리보다 낮은 자리에서 접해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기성교회는 그야말로 추풍낙엽이 다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와 기성교회와의 운명적 관계

천사장을 아담보다 앞서 지었습니다. 아담은 천사장의 협조를 받아 지음받았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에는 나이 많은 사람이 남아 있고 통일교회에는 젊은 사람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상대적 관계로 돼 있는 거예요. 그렇지요? 안 그래요? 이것이 어떻게 하나될 것이냐? 기성교회도 하나님을 믿어 나왔고, 나라를 믿어 나왔고, 자기의 권세를 믿어 나왔지만 이젠 권세도 나라도 하나님도 잃어버린 입장이 되었습니다. 불쌍한 패가 되었습니다. 또, 우리 통일교회도 하늘을 붙들었지만 공산당을 중심삼고 볼 때 제일 무서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안 그래요? 공산당은 세계적인 기반을 가지고 온갖 사탄적인 안팎의 갖출 바를 다 갖추고 기다리고 있어요. 명령만 하면 일시에 전부 다 격파하고도 남을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도 없고, 자기 씨족도 없고, 종족도 없는 처지, 같은 사정에 있는 것은 기성교회하고 통일교회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공산당이 나오게 되면 통일교회를 먼저 짜를 것이고, 그 다음엔 기성교회를 짜를 것입니다. 죽음의 골짜기에서 같은 시체로, 피를 흘리고 같이 묻힐 수 있는 패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와 기성교회는 그런 운명에 처해 있어요. 그러니 기성교회는 원수 같지만 최후에 같이 남을 수 있는 형님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 형님을 중심삼고 어떻게든 여기에서 하나되지 않으면 죽음을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바라느냐?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행사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손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행사를 못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원리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야만 부모가 등극하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을 통해 가지고 부모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지요? 가인 아벨이 싸워서 결렬됨으로 말미암아 부모도 함정에 빠졌기 때문에 가인 아벨이 세계적 기준에서 하나되어야 비로소 세계적 종족 기반을 중심삼은 부모의 출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민주세계에는 그 통일된 기준에서부터 일시에 세계적인 승리의 터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3년 기간 동안 여러분의 부인들을 내세워 가지고 출동시키게 한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기성교회를 전도하라고 그런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라는 겁니다. 이런 것을 알아요? 다른 사람을 전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전도해서 언제 길러 가지고 써먹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 싫든 좋든 기성교회를 하늘 앞에 세우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민족을 구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3백만 이상의 신도를 갖고 있고 제반 분야에 우세한 기반을 닦고 있으면서 주체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 내용을 갖추고 있는 것이 기성교회입니다. 그 기성교회와 하나 안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와 교회는 서로 가인 아벨의 입장입니다. 이것이 하나되어 아벨의 자리에 서지 않고는 나라를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복귀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이것은 필생의 사업입니다. 6천년 동안 하늘이 수고해 나온 전체의 결과가 여기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힌 것입니다. 목사들을 대해 가지고 기성교회를 대해 가지고, 지독히 반대하는 그들을 대해 가지고 그래도 복을 주기 위해서 소모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정성을 다했다 하는 한계선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나중에 내가 임자네들을 시켜 가지고 몇 해까지 월급이라도 지불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이 사람들이 밥 목사가 되었으니…. 그런 목사들은 제거시키고 식구들만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목사들은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와 하나되라

이 3년 기간, 1974년까지의 2차 7년노정은 뭐냐 하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하나되는 때와 같습니다. 예수가 왔을 때 했어야 되는 일이지요, 예수는 2차 아들로 온 것입니다. 2차 아들의 사명을 해야 할 입장에 선 예수가,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된 터전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망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와 나라가 반대하지 않았으면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해방 직후에는 주권이 없었기 때문에 나라가 없었습니다. 기성교회가 나라였어요. 선생님과 기성교회는 종적인 입장에서 하늘 땅의 입장이요, 가인 아벨의 입장이었습니다. 횡적인 기반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서 하나되었더라면, 하나된 자리에서 나라가 성립되었다면 이 나라는 세계 표준의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나라에서 하려고 했던 것을 못 했기 때문에 나라의 원수가 생겨났고, 세계의 원수가 생겨났고, 영계의 원수가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이 공산당이라는 패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책임을 못 하게 되면 가중한 탕감조건이 성립된다는 것이 우리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이제 우리가 갈 길은 다른 길이 없습니다. 기성교회를 전도해야 됩니다. 기성교회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요, 안그래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말이 아니라 원리입니다.

개인적인 가인 아벨을 포섭하지 못하면 가정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가정에도 가인 가정과 아벨 가정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가정이 아벨 가정이면 여러분의 가정은 가인 가정입니다. 이 둘이 하나되지 않고는 민족편성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이것이 하나되어야 '통일가에 씨족이 벌어졌다. 그 씨족은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될 수 있다'고 말로라도 선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러분의 아들딸을 중심삼고 죽더라도 하나되겠느냐, 안 되겠느냐 할 때에 여러분이 되겠다고 맹세를 하는 날에는…. 그리고 만약 그 맹세대로 되지 못했으면 여러분이 책임져야 합니다. 한편은 망하더라도 한편은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통일가에는 통일족속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이 있습니다. 그리고 통일족속 앞에는 이 민족이 가인입니다. 그래서 족속적인 가인 아벨을 통일하려면 민족이라는 상대를 중심삼고 소모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직접적인 주체인 통일가 앞에 대상적인 종족은 뭐냐? 기독교입니다. 그것을 연결시키라는 것입니다. 가인을 연결시키게 되면 그들을 중심삼고 민족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체적인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주권입니다. 주권을 중심삼고 직접 맞서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내의 삼천만이 아니고… 예수가 서야 하는 자리는 그 나라의 주권자와 로마의 주권자와 만나는 자리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나라의 주권자와 직접 맞서게 되면 삼천만은 왕창 한 자리에 들어섭니다. 주권자만 굴복시키게 되면 삼천만은 하나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이 나라는 아벨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로 남북이 갈라져 남조 이스라엘, 북조 이스라엘이 됐지요? 남조는 두 지파요, 북조는 10지파였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한국을 중심삼고 보면 문화의 발상지는 북쪽이라구요. 지금 이것은 다 꺼꾸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남쪽이 많고 북쪽이 적어졌습니다. 그런 때가 되었다는 거예요. 남한 정부가 아벨 정부가 되었어요. 그러니 단결만 하게 되면 북한 정부에 대해 '이 자식들아, 너네 같은 군비를 가지고 큰소리치지 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통일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승공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남한을 통일하게 될 때는 공산당이 문제예요?「아닙니다」3분의 2권(圈)을 가졌는데 말예요. 사탄세계에 잃어버렸던 이 3분의 2권을 우리가 찾았는데 이 싸움에 이기지 못하겠어요? 싸울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가까와 오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점이 가까와 오기 때문에 싸우지 않고 통일할 수 있도록 외적으로 남북의 조절위원회가 나온 것입니다. 기반만 닦았다면 문제가 없을 것인데 아직까지 주체적인 사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지 못했습니다. 영적으로는 되어 있지만 실체적으로는 안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절충시킬 수 있는 때가 지금입니다. 알겠어요?「예」

통일교회가 망하더라도 싸움은 이겨야

나라를 찾고 나서야, 충신이 돼 가지고서야 효자의 도리를 실행할 수 있고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진정한 충신만이 천하에 이름난 효자를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효자의 이름은 갖고 있을는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충신은 안 되어 있습니다. 충신이 되었어요? 「안 됐습니다」 하늘나라의 소원이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이제 여러분의 눈은 기성교회를 향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형님과 같이 친하게 대해야 돼요. 그래서 그들이 교회야 어떻든간에, 옛날이야 어떻든간에…. 사실, 통일교회가 기성교회의 복을 다 빼앗았습니다. 앞으로 통일교회를 후원하면 돈 많이 줄 거예요. 그때는 거지처럼 전부 다 얻어먹으러 온다구요. 요셉 앞에 그 형제들이 얻어먹으러 오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손벌리는 사람이 많다구요. 딱 그렇게 되는 거예요. 선생님도 지금까지 요셉과 같이 반대받았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이 죽기를 바랐던 사람들 아녜요? 그렇지요? 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우리는 사탄세계에서 요셉이가 거쳐가던 그 길을 지금 거쳐가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젠 상당히 올라왔지요?

이런 마지막 고비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이냐? 허리띠를 풀어 놓고 싸울 것이냐, 허리띠를 조이고 싸울 것이냐? 허리띠를 조이고 싸우면 배가 불러 되겠어요? 그러면, 허리를 펴고 공격전을 해야 되겠어요. 허리를 까부러뜨리고 공격전을 해야 되겠어요? 배가 비대해지면 되겠어요? 요즘엔 나도 배를 까부러뜨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선생님도 요즘 한 10킬로그램 이상 줄었습니다. 쉬지 않고 일을 해야 돼요. 선생님도 무리를 하니까 배가 싸악 들어갔어요. 95킬로그램에서 85킬로그램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늘어서 백 킬로그램이 되었더라면 거인 협회에 들어갈 것인데…. (웃음)

돌격전을 하는 데는 배에 힘이 있어야 된다구요. 큰 배는 괜찮지만 비계덩어리 배통은 안 됩니다. 허리띠를 조일 때라는 거예요. '배가 고파도 좋다. 배가 고프더라도 싸움은 이겨야 되겠다'고 생각하라구요. 그렇지요?「예」`배가 고픈데 싸움은 이겨서 뭐해?´ 그래요? 배가 고프더라도 싸움은 이겨야 됩니다. 새끼가 죽더라도 싸움은 져야 되겠다?「이겨야 되겠습니다」 여편네가 도망가더라도 싸움은?「이겨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싸움은 이겨야지요. 그러면 그 싸움은 통일교회보다도 나은 싸움이 될 수 있습니다. 통일교회보다도 더 큰일을 할 수 있는 가치를 가져올 수 있는 싸움이 된다면 망하게 된 통일교회는 더 발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말은 그런데…. 여러분 자신에게 되돌아가 물어 보자구요. 이제는 얼마만큼 결심이 됐어요?「예」

여러분은 하나님의 대행자

여러분이 이제부터는 군이면 군을 중심삼고 또 다시 돌아다니며 저 집은 개가 몇 마리며, 그 동네에서 부잣집이 있으면 그 부잣집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가까지 알아야 됩니다. 그런 거 알아보고 싶지 않아요? 지나가는 손님에게 푸대접 못 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밀사와 같이, 하늘의 암행어사와 같이 그런 배짱을 가지고 찾아가야 됩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 부락 부락, 마을 마을, 동네 동네를 찾아가야 돼요. 찾아갈 거예요, 안 찾아갈 거예요?「찾아가겠습니다」 심판은 누가 하느냐 하면 식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군(郡)에 대한 심판관입니다. 하나님의 대행자라구요. 하나님은 가르쳐 주고 시킵니다. 가르쳐 주지 않고 시키게 되면 날 총잡이가 사람잡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 가르쳐 줘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1957년도에 제 1차 전도 내보낼 때, 7년 동안 여러분과 밤을 새워 가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동네에서 별의별 욕을 다 먹고 별의별 놀음을 다 했습니다. 선생님이 식구를 기르기 위해서 천신만고하던 놀음을 여러분도 하라는 것입니다. 밤에 온 손님이 있거든 무릎을 꿇고 하늘의 복을 빌어 주고, 낮에 온 손님에 대해서는 안방으로 초대해 가지고 누구보다도, 자기 친척보다 더 반가운 손님으로 대해 주고, '우리 집은 이런 집이다'는 풍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런 풍을 세워 놓으면 그 사람들이 누구를 위하겠어요?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전통을 가진 사람들이 교역자 밥을 굶기겠어요? 교역자에게 밥을 굶기고 복받겠다는 녀석들은 입에 모래알이 들어가야 된다구요. 어제도 얘기했지만 1957년, 그때에 선생님이 7년 동안 정성들이던 그곳이 언제나 그립습니다. 여러분도 그대로 하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곳이 그리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자리가 그리워야 합니다. 그 자리를 지금 만들자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사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불붙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갈 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한사람을 중심삼고라도 밤을 새워 가며 이야기해야 합니다. 유협회장은 3년 6개월 동안 한사람이 와도 본부에서 원리강의를 해주었습니다. 매일같이 드러누워 강의를 했는데 지금은 가고 나니까 참 안됐어요. 그 병신 몸으로 누워 가지고 아프다고 하면서도 강의를 했어요. 아프더라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유협회장이 3년 6개월 동안 전통을 세웠던 그 이상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한 사람이 오더라도 큰소리로 원리강의를 해야 합니다. 열 사람이 오더라도 천만인을 대하듯이 큰소리로 해야 합니다. 그런 전통을 세워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유협회장이 강의를 할 때 딱 지켜 앉아 가지고 감독을 했습니다. 잘못하게 되면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시정해 주고 조정을 했어요. 그리하여 3년 6개월이 지난 후에 대역자를 세운 것입니다. 잘못하게 되면 총을 만든 사람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식구들에게 일을 시키는데, 그 일을 제대로 하고 있어요? 이놈의 자식들, 도둑놈 심보를 가지고 있으니 도둑질밖에 더 할 것이 있느냐는 말이예요. 그것은 착취야, 착취. 도의 세계에서는 착취라구. 순진한 하늘의 어린 양떼들의 피를 전부 다 빨아먹고, 뼈를 갉아먹고, 그 피를 뽑아다가 새끼들을 먹여 가지고 그 새끼들이 잘 될 것 같애? 나는 그 새끼들을 후원 안 한다구요.

전통적 터전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선생님은 외국 다니면서도 온갖 정성을 다합니다. 일본에 가서 일곱 시간, 여덟 시간 이야기를 했는데 그쯤 되면 다리가 막 저려옵니다. 다리가 저려오는 거라구요. 서 있으니까 다리가 저리는 거예요. 여러분은 모를 겁니다. '서 있는데 다리가 저릴 것이 뭐야. 피가 통하지 않아야 다리가 저리지' 할 것입니다. 서 있으면, 피가 전부 다리로 모이기 때문에 저린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리 저린 것이 문제가 아닌 거예요. 나는 모인 청중을 천국과 지옥의 삼팔선을 넘겨야 할 책임이 내 다리에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선을 넘겨 놓았는데 다시 넘어오는 것은 선생님이 책임을 안 집니다. 왔던 것보다 나아야 된다는 거예요. 어떤 것과 같으냐 하면 타잔이 줄을 타고 건너가는 것과 딱 같습니다. 획 건너가 가지고 건너편 나무가지에 올라서야 하는데 건너서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 여기에도 도달하지 못하면 저기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떨어지게 되는데 어디로 떨어지느냐면 악어굴에 떨어집니다. 딱, 그런 식이라구요. 그런 것을 느끼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모험을 해야 됩니다. 내디딘 자리에서부터, 뒤에서부터 해볼 수 있으면…. 넘어질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넘어지고, 찰 수 있는 대로 최대로 차야 됩니다. 이런 모험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정탐꾼의 놀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와 같은 심정을 갖고 하는 거예요. 비가 오는데 우산을 안 썼더라도 비 오는 것도 모르고, 빗소리도 못 듣고 그 말소리만 울려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책임자는 불쌍한 거예요. 불쌍한 거라구요. 그래서 선생님을 세상 사람이 동정하지 못하니까 하늘이 동정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 보세요.

어떤 때는 골이 터질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기절할 경지까지 갈 때가 있어요. 그렇게 골이 아프다구요. 그때 '순교의 역사에 빛나는 순교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영광으로 알겠다'는 생각을 하면 그 아픔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의 몸이 쇳덩어리인가요? 어떤 때는 선생님이 몸이 지쳐 가지고 들어가자마자 이불도 덮지 못하고 옷도 다 벗지 못하고 쓰러져 잘 때가 있습니다. 일어나 보면 다리에 바지가 반쯤 걸려 있다구요. 그럴 때는 몇 시간 안 잤는데도 일어나면 몸이 얼마나 거뜬한지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놀음을 해먹을 수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은 그러한 전통적 역사 위에 선 사람들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스승이 닦아 놓은 그러한 터전을 유린하는 날에는 어디 가서도 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몰랐으면 몰라도…. 오늘 아침에도 선생님은 일찍 일어났습니다. 아무도 안 일어날 시간에 일어나 여기에 왔다구요. 선생님의 마음은 딱 죄 지은 사람이 형장에 나가는 그 마음입니다. 이 짐을 어떻게 푸느냐? 이 짐을 벗는 해방이 벌어지게 될 때는 소리를 지르고 감사에 떨며, 눈물로 전체가…. 참 말할 수 없는 자리에 서서 하늘 앞에 감사의 기도를 어떻게 올릴 것이냐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길은 좋아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죽으러 가는 길입니다. 지금 내 나이가 쉰세 살이지만, '쉰 살까지는 가자' 했던 거예요. 지쳐 가지고 가다가 못가는 날에는 할 수 없지만 갈 수 있는 날까지 가는 거라구요. 문제는 뭐냐 하면, 내가 만약 죽는 날에는 누가 하늘을 붙들고 위로해 드릴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 대신 세계를 위해서 안타깝게 싸울 것이냐는 거예요. 그것이 문제라구요. 여러분이 그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언제 갈지 모르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런 말 들으면 섭섭하지요? 선생님은 언제 갈지 모르는 사람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경계선까지 내가 하늘의 비밀을 보관하고 나갈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철없이 생각하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틀림없이 알고, 틀림없이 갖고 있지만 입을 열어 번복하지 않는 사나이입니다. 천만 사연을 다 통고하더라도 그 사연만은 통고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진 비밀의 사나이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이것을 어디다 털어놓을 것이냐?

사탄까지도 공인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살라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기대를 못 합니다. 자식들한테 기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지 못할 때는 자식을 대해서 여러분과 같이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는 사랑을 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미치지 못했다면 자기 자식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식들을 사랑하는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알겠어요? 옛날에는 자식을 잃어버리고 인류를 사랑해야 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사탄패입니다. 하늘을 보게 될 때 하늘은 불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은 틀리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고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전통을 이어받게 할 것이냐? 자식들이 자는 자리에 가게 되면 눈물에 사무치는 마음을 가지고 '잘 자라. 어서 커라' 하는 겁니다. 그런 맘을 갖고 찾아가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래야 됩니다. 이제 이 거룩한 하늘의 전통을 누구에게 물려줄 것이냐? 자기의 믿음의 아들 딸이냐, 아니면 자기의 아들딸이냐? 자기의 아들딸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고마운 것은, 우리 통일교회는 가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종 앞에 물려주고 양자 앞에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직계 앞에 물려줄 수 있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역사적 시대의 누구보다 행복한 것입니다. 예수시대 이후의 기독교 역사를 보더라도, 양자를 사랑하고 돌아와 가지고 공인을 받고 난 후에야 자기 직계를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지금 아들을 사랑할 수 있는 입장입니다. 그런 자리에 섰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뜻을 위해 죽음의 길을 가고, 나는 이렇게 갔는데, 이것을 누구한테 남길 것이냐? 자는 애기의 손을 붙들고 나라를 위하여 그 기도를 해야 됩니다. 나라의 그 누구한테도 사정하지 못한 것을 철모르는 애기를 붙들고 사정해야 되는 입장이니 얼마나 비참한 것입니까? 그런 자리에서 어이하여 하늘이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는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는 눈물의 자리인 것입니다. 밤에 잠이 깨더라도 자식들이 누운 것을 바라보면서 그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자야 됩니다. 그 소망을 다짐하고 자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선생님한테 산뜻한 무엇이 느껴져요? 간격이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열두 제자와 예수님 사이에 간격이 있었던 것과 같이…. 그 간격을 무엇으로 메울 것이냐? 그건 다 하늘의 전통을 중심삼고 메워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우고자 하는 그 전통을 나를 통해서 세우겠다. 당신이 눈물 흘릴 것이 있으면 내가 눈물을 흘리겠다고 해야 됩니다. 땅 위에 하늘의 전통을 남기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에 당신이 가야 할 곳이 있으면 나를 보내달라고 해야 합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그러한 사연을 지니고 이 땅 위에 왔다가 그 사연을 소원성취 못 하고 죽어 간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그런 뜻을 협조해야 할 여러분인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일을 못한 입장에서 죽어 간다면 영계에 가서 선생님을 찾을 자신이 있을 것 같아요? 그때는 선생님과 관계맺었던 과거가 다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어요?

선생님이 원리를 찾은 것은 그런 심정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타나야 할 이 아들, 아무개가 과거에 수고하신 하나님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는 부끄러운 사나이로 어떻게 나타날 수 있겠느냐고 몸부림치며 기도하다 보니 복귀원리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면할 수 있는 영광의 한날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찾다 보니 역사적인 심정을 넘어설 수 있는 자리까지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또, 섭리적인 역사에 관해서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나이로서 살다가 죽으면 섭리를 대하시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타날 것이냐고 하며, 하나님의 이 세계에 대한 정성된 심정을 알고 싶다고 누구보다도 몸부림쳤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에 대한 모든 하나님의 섭리관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모든 것을 신중히 생각합니다. 알고도 무책임할 수 있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알면 행합니다. 선생님에게는 믿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사상과 정신을 통일해 남북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전달해야

만일에 사탄이가 하나님의 이름을 가장해 가지고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것을 하나님의 말로서 믿고 소화시키고 지상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결의를 한 사람입니다. 사탄이는 장성급밖에 못 올라갑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탄의 말을 하나님의 말로 믿고 장성급 이상으로 올라서게 되면 사탄이가 벼락병이 나 가지고 자기에게 있는 복까지 갖다 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늘 앞에 소개해 주면서 '이들이 내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이 자리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이젠 할수없습니다. 당신이 복을 빌어 주되 내 복까지 다 갖다가 빌어 주소' 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관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선생님 앞에는 믿지 못할 것이 없어요. 통일의 나라를 위해서 어머니 아버지를 잡아 제사 지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잃어버리지 않은 아흔 아홉마리의 양보다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보다 중요시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두고 볼 때, 한 마리를 남겨두고 그냥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안 간다면 목을 끌고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안 가면 망합니다. 알겠어요?「예」 그 통고의 의미가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바로의 그 강퍅한 주권을 박차고 일시에 그곳을 배척해 가지고 이스라엘 창건의 기수로 출발해야 할 무리입니다. 그렇지요?「예」 이것이 현재 전국에 널려 있는 중심 책임자들인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여러분이 식구들과 하나되어 가지고 그런 놀음을 하라는 것입니다. 집집마다 다녀요. 한 집도 그냥 넘기지 말고 다니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데 수가 없어서 큰일났습니다. 수가 없으니 돈을 주고 사서라도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겠다고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이 놀음을 하지 않고는 통일의 세계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년 동안 연장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남북이 통일되려면 우리가 7년노정에 그것을 다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한 동네라도 남아지고, 우리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 가지고는 통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 통고하고 이북까지 가야 우리가 아벨 국가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도 안 듣고, 하늘이고 무엇이고…. 아벨 국가권에 서려면 모든 면에서 공동보조를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아직까지 통일교회를 모르는 입장에 서 있는데 어떻게 아벨권에 설 수 있겠어요?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남한에도 가인이 있습니다. 남한의 가인을 완전히 하나 만들지 않고는 북한의 가인을 굴복시킬 길이 없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지요?「예」그래서 제물이라는 것을 세우는 것입니다. 제물은 동네의 대표자가 와서 무릎을 꿇고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이장이라든가, 면장이라든가, 군수라든가 하는 대표자가 와서 전부 다 머리 숙이면 된다는 거예요. 도(造) 대표가 우리 도에서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몇천 몇만의 사람이 여기에 참석했다는 선서를 하게 되면 전체가 했다는 탕감조건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그것이 안 될 때는 우리가 피땀을 흘려 가지고 전부 다 전달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 전달 책임을 우리가 안 하면 갈 길이 막혀 버립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최후의 사명이라고 선생님은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맞습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맞습니다」

그러한 공의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군을 맡으라는 거예요. 밤을 새워 뛰어서라도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통일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그 누구보다도 최고의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제 3의 활동무대가 될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의 나라와 하나의 민족을 넘어 서 가지고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사상이 있어야 됩니다. 사상통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신통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우리는 나섰습니다. 이 일을 하는 데는 많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사상과 정신을 통일해 가지고 남북을 통일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전달해 줘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그러려면 우리 통일교회에서 하는 승공활동에 가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설명해야 됩니다. 알겠지요? 이거 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하겠습니다」 자기 군을 남에게 맡길래요, 안 맡길래요?「안 맡기겠습니다」 맡기겠어, 안 맡기겠어?「안 맡기겠습니다」 그 책임을 못 하겠으면 여기에 다 내놓고 가라구요. 그 책임 하겠어요, 못 하겠어요?「하겠습니다」 전도를 못해도 이 놀음은 해야 됩니다. 전도를 하지 않더라도 이것을 목적으로 해서 움직이게 되면 전도는 자동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통일나라 만세를 부르기 위해서 열성을 다하라

비가 오겠으면 오고, 눈이 오겠으면 오고, 밤이 되겠으면 되고, 낮이 되겠으면 되라고 하며 이 마을 저 마을 다녀야 됩니다. 빠른 길을 취하려니 이장을 규합하고, 반장을 규합해 가지고, 언론계에 앞잡이 될 수 있는 길을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한 외적인 기반을 닦기 위한 것이 승공연합입니다. 알겠어요?「예」 통일된 나라에 대해서 3천만 전 민족이 손을 들어 만세를 불러야 됩니다. 여기에 구경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얼마나 고대하던 이 시대의 통일의 나라입니까? '몇천년 고대한 통일의 나라 만세' 이것이 제2해방입니다. 그 다음엔 제3해 방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가 통일되는 것입니다. (잠시 동안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원리강의를 세 번 이상 해야 합니다. 또, 열두 집 이상 다리가 부러져도 찾아가 만나야 됩니다. 찾아갔는데 말을 듣지 않거든 눈물을 머금고 기도하고 지나가라구요. 자기를 환영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버지여!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하고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을 위해서 염려하던 그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돌아서라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에 하늘이 같이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했다 할 때는 여러분이 그 동네에서라도 하늘나라를 건국할 것이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이러한 중차대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부인은 물론이요. 자기의 사돈의 팔촌까지…. 자기의 제일의 상대는 누구냐 하면 자기의 친척이라구요. 그래서 부모들이 협조하게 해서 그 군 전체에 확대시키는 데 동조할 수 있는 길을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러자면 사람이 부족하니까 빨리 빨리 전도해 가지고 이것을 실행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남한에서 제일 섬이 많은 군이 어디예요?「신안군입니다」 신안군 지역장이 누구예요? 목포? 목포 큰일났구만. 이거 안 하면 안 됩니다. 이제는 전도가 목적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전국민에게 '앞으로 하나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가졌던 정신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일체를 다 버리고 희생하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으면 공산당에게 밀립니다' 이렇게 통고해야 됩니다. 이 사상을 빨리 전파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우선 지방에서부터 하세요. 서울에서도 이제 하려고 합니다. 서울의 5백 50만 시민은 라디오 방송으로 세 번만 하게 되면 다 통합니다. 이래서 앞으로 지방의 기동대들을 서울로 총공격작전하려고 합니다. 알겠어요?「예」 한 1년 동안 그 작전하게 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전국이 거기에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주체와 대상권을 만들어서 '자, 남북을 통일해야 되겠습니다' 하게 되면 김일성이 문제가 아닙니다. 알겠어요? 그 다음엔 남북을 통일하여 우리가 넘어갈 수 있는 거라구요. 그까짓 당나귀 새끼 같은 것들 통째로 잡아 버리지 뭐. 알겠어요?

이런 놀음을 해서 우리가 삼팔선을 넘어가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우리의 소원은 삼팔선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전에 삼팔선을 넘어가는 식도 했습니다. 심각한 때가 왔습니다. 알겠어요? 이러한 역사적인 사명을 앞에 놓고 하나님이 긴장한 자리에서 바라보시고 계시는데, 최후의 싸움터를 앞에 놓고 있는 우리들은 얼마나 심각해야 되겠느냐는 거예요. 이것은 현실적인 해결 방안입니다. '하루에 세 번 이상 다녀야 되겠다, 하루에 열 사람 이상 만나야 되겠다'는 결의를 하고 돌아가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결의했어요, 안 했어요?「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결의했다는 사람은 양손을 들어서 맹세합시다. 자, 내리라구요. 자 이제 아침 식사하고 또 집합하자구요. 「예」

(아침 식사 후 말씀) 만일 우리가 여기서 실패하게 되면 이 나라는 공산당 판국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 통일교회에 얼마나 많은 죽음 사태가 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일본작전이니 뭐니 해 가지고 손이 닿고 힘이 닿는 데까지 최대의 노력을 했습니다. 이 사명은 선생님대(代)에서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죽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러한 비운의 역사가 우리 눈앞에 다가옵니다. 그때 작전에 실패하는 날에는 여러분은 다 끝장을 볼 각오를 해야 됩니다. 남북이 통일하는 데 있어서 공산당으로 통일하게 되면 여러분이 남아질 것 같아요? 남아질 자신이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남아질 것 같아요. 안 남아질 것 같아요?「안 남아집니다」 못 남아지게 되어 있다구요. 이런 판국인데 잠을 자고, 밤이 그립고, 자식이 그립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어때요? 그러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 민족을 붙안고….

요전에 교구장들을 통해서 보고를 들었겠지만 말예요. 여러분 지역장들을 전부 이북과 상대적으로 조직편성을 해 가지고 기도하라는 말을 들었어요. 안 들었어요?「못 들었습니다」 왜 못 들었어요? 누가 못 들었어요? 그것이 이번 특별지시입니다.

이제 선생님은 남한 땅보다도 북한 땅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공산당과 이론적으로 투쟁하려면 반공하던 사람들이 나가서 해야 될 것이 아녜요. 그런데 대한민국에 누가 있어요? 우리밖에 없지 않느냐 이거예요. 이 남한은 누가 지킬 것이냐? 우리밖에 없지 않느냐는 거예요. 그러니 아벨인 통일교회는 일선으로 가야 되고 남한은 가인인 기성교회한테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한테 맡기겠어요? 우리가 일선에 서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러한 때를 대비해서 미국의 CIA(중앙정보부)를 어떻게 말아 넘기느냐 하는 것을 연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적 신세를 지우는 작전

이런 긴박한 입장에 있는 여러분은 이제 마을 마을을 못해도 세 번은 전부 다 방문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그것이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식구들을 믿을 수 있어요? 믿을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그러는데 누굴 믿겠어요? 그래도 현재 입장에서는 여러분과 기동대밖에 없지 않느냐는 겁니다. 여러분은 하늘의 밀사로서 밀명을 받았으니, 그것은 여러분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손길로 책자를 만들어 부락 부락에 가지고 가서 밤이든 낮이든 만나 가지고 밀명을 주고받는 놀음을 해 가지고 우리의 환경을 확대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 준비를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번에 돌아가게 되면 60년대를 재출발하는 마음으로 출발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처음 들어올 때 가졌던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기도하고 본부의 선생님을 생각하던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출발해야 되겠습니다.

부락이면 부락, 군이면 군의 책임자들은 전부 다 1분이라도 시간이 있으면 걸어다니라는 것입니다. 한 집이라도 더 방문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방문해야 할 마을은 누구에게 책임 안 지우고 내 스스로 이렇게 방문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열 식구가 있으면 열 부락을 맡기라는 거예요. 그래서 열 부락을 중심삼아 가지고 움직이는 그 부락에 가서 강의를 하라는 것입니다. 강의를 할 때 그들이 수고하는 것을 칭찬하라는 것입니다. '젊은 청년들이여! 당신들도 젊은 청년들이지만 이 청년은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부락이 있으면, 자기를 맞아 주는 어떠한 기준보다 반기는 마음을 가지고, 밤이 가겠으면 가고 세월이 가겠으면 가라고 하며, 있는 정성을 다해 가지고 그들을 우리의 동료로 만들기 위해서 호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여러분의 말을 듣고 그렇게 하겠다는 젊은이들이 나오면 그들을 규합해 가지고 교육시켜서 점점 넓혀 가게 되면 우리의 터전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터전을 닦으면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짓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 자기의 활동 터전을 남에게 맡기지 말라구요. 자기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알겠어요?「예」

선생님이 1960년도를 중심삼고 7년노정에 전도하기 위해 불철주야 밤을 새워 가면서 하던 것과 같이 여러분도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누구에게 속했느냐고 할 때 어떤 전도대원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어떤 교역장에게 속했다고 할 수 있는 철석같은 신념을 집어넣어야 합니다. 그의 명령이라면 십리 길, 백리 길이라도 멀다 않고 갈 수 있고 밤에라도 사람을 보내서 오라 하면 반드시 찾아올 수 있게 만들어야 돼요. 열 부락의 책임자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한 사람씩 데리고 오라 하게 되면 데려올 수 있게 해야 돼요. 그래 가지고 사람들을 데리고 오게 해서 과자 짜박지라도, 사과라도 사다 놓고 말예요. 이 시대의 절박상이나 인생이 가야 할 절박한 비운의 사정을 통고해 가지고 새로운 인연을 맺어서 보내라는 거예요.

그러면 정신적으로 인연됐던 것이 외적인 물질적으로도 인연되기 때문에, 열 사람이 여러분의 신세를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그들에게 백 원을 쓰게 되면 천 원 벌이가 되는 것입니다. 정성을 다해 가지고 그들 앞에 백 원씩의 신세를 지우면, 그 열 사람이 그 신세를 갚아야 된다는 마음을 가지기 때문에 천 원짜리 환경적 터전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신세를 지게 하고 물질적인 신세를 지게 하면 그건 갚아 달라는 얘기를 안 해도 갚아 주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빚지고는 못 사는 것입니다. 신세를 지면 갚아야지요?「예」 그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니 그런 작전을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먹을 것이 있으면 자기가 먹지 않고 주고 싶어서 안달하는 것을 본 식구들은 그 교역장이 굶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밤잠을 못 자는 것입니다. 자연히 와서 쌀독을 열어 보기도 하고, 아침을 해 먹었는지 어쩐지 알려고 솥을 만져 보기도 하고, 아궁이도 살펴보려고 한다는 거라구요. 그런 심정적 유대가 벌어져야 돼요. 열 사람만 그렇게 연결되면 밥을 왜 굶어요.

장날에 눈물어린 심정으로 나라 사랑과 통일을 외치라

여러분은 애기가 한 명 있는 것도 힘들다고 전부 다 머리를 젓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서 사느냐 하면, 자기를 위해 살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머리는 젓는 것이 진리입니다.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 머리를 안젓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안 젓게 만드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의 진리 형태입니다. 내가 그들을 위해서 살게 될 때는 그들은 서로서로가 머리를 안 젓고, 자기가 책임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입장에 서야 그 사상이 확대되어 국가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들이 배출될 것 아닙니까?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돌아가게 되면 표어를 작성하세요.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우리는 사상이 하나되어야 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누구보다도 민족의 누구보다도 더 나라를 사랑하고, 미래의 하늘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해야 됩니다. 미친 사람 모양으로 다니면서 삼천만 가슴가슴에 그것을 표어로 남겨 줘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나라를 사랑하는 그런 애국심을 가지고는 통일을 못 합니다. 우리와 같이 해야 합니다. 공산당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통일방안이 안 나옵니다. 그러니 우리를 따라오시오?' 하는 운동을 해야 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삼천만 누구를 막론하고, 애기나 어른이나 할것없이 스피커와 같이 불어대야 합니다. 이렇게 시급한 것을 느끼는 심정을 가진 여러분이 수많은 마을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고 싶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일시에 만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자리가 시장입니다. 그러니 장날을 고대하고 고대하다가 그 장날이 되면 찾아가 가지고 마이크를 들고 눈물어린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이여 !저 사람들이 나를 만나지 못한 입장이지만 이 심정적 인연을 저들이 갖게 해주시옵소서' 하는 애절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퍼붓게 되면 그 소리가 포목상에서 앉아 잣대를 가지고 물건을 파는 사람의 귀에도 들릴 것이고 음식점에서 음식을 푸는 사람의 귀에도 들릴 것입니다. 한마디 한마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가슴에 심어질 것 아닙니까? 그런 애달픈 길, 그것이 애국자의 가는 길입니다. 이것을 하지 않고는 나라를 살려 낼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 한꺼번에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요? 장터에 찾아가서 마이크를 들고 그런 심정에 사무쳐 가지고 호소해 보세요. 그 자리에는 하나님이 같이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듣지 않는 것 같지만 그들의 뼈속으로 골격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말, 그 생각을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서 아들딸을 대해 '야! 너희도 그와 같은 자녀들이 되어라' 할 수 있도록 교훈이 되는 자료를 제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운동을 여러분이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삼천리 반도 위에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터전이 넓혀져 나가는 것입니다, 1년, 2년, 끝없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 같지만 그 뒤에는 먼데서부터 내주위로 점점 접근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10년 세월을 지내게 된다면 그 환경은 상당히 가까와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이 이제는 자기가 책임진 군의 어디든지 다 가 봐야 됩니다. 못 가 본 곳이 있으면 시간이 없어요. 나서야 합니다.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한 집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 번은 가봐야 합니다. 십자를 그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졌지요. 예수님이 피흘린 것을 우리가 탕감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방에 있던 사람들이 환영하지 못한 것을 우리가 막아내야 합니다. 십자를 그리고 원형을 그리려니 세 번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동서로 가고 한 번은 남북으로 가야 됩니다. 이런 입장을 거쳐 가지고 그 다음엔 한바퀴 돌아서라도 찾아가 봐야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이 안식할 터전을 남기고자 한, 하늘나라를 찾아가던 예수의 사상을 이어받은 신자들의 사상이요, 그 뜻을 재차 이어받아야 할 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길인 거예요. 선생님은 예수님에 대해 그러한 기도를 했기 때문에 삼천리 반도를 안가본 데 없이 21일 노정을 중심삼고 다닌 거예요. 여러분도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그런 놀음을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이 울고 다니고, 그렇게 하게 되면 반드시 그 동네 사람들이 벌써 몽시로 보고 여러분을 협조하고 여러분의 선조들이, 영계가 동원하는 것입니다. 참된 아담은 천사세계가 모셔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을 가진 자리에는 천사세계가 협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될 때는 천사세계와 관계가 맺어지고 천사세계는 동원하게 됩니다. 천사세계라는 것이 자기의 선한 선조들이기 때문에 그 선한 선조들이 땅 위에 와 가지고 '부디 아무개가 오거든 그는 하늘의 뜻을 대신한 사람이니 박대하지 말고 대접하라'고 통고를 해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가기 전에 다 계시를 받고 몽시를 보고 해서 여러분을 맞이하는 무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교회가 발전하는 것입니다. 아무 집을 척 찾아갔는데 '아 당신이 올 줄 알았소' 하는 거예요. 사무친 마음으로 기도하고 정성들이고 다녀 보세요, 그런 일이 벌어지나, 안 벌어지나. 그런데 똥강아지 모양으로 전부 다 냄새나 맡고 자기 이익될 곳만 찾아 다니니까 안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종합적인 배우가 되어 전도하라

그러면 이번 행사를 마치고 이제 교역으로 돌아들 가게 되면 하루에 몇 집씩 방문할래요? 저 기동대들이 하루에 몇 집씩 방문해요? 그 이상은 해야 될 것이 아니예요? 기성교회 목사들이 방문하는 이상은 해야 될 것 아니예요. 전도대원들이 활동하는 그 이상은 해야 될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것이 교역장의 책임입니다. 선생님 말이 틀렸어요? 틀렸어요, 안 틀렸어요?「안 틀렸습니다」 자,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렇게 하는 날에는 수습이 될 것입니다.

기동대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온다면, 하루에 열 사람씩 만나면 30일 이면 몇 명이예요? 3백 명이 아닙니까? 하루에 열 시간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한 시간에 한 집씩은 다닐 것 아니예요? 한 집에 한 시간씩해서 열 시간 다녀보세요. 뺑뺑 돌아보세요. 한번 가고 두번 가고 열 번 가고 한 3백 번 그 집을 돌아보세요. 문전에서 박대를 해도 그 집을 남의 집으로 생각하지 말고 자기 집같이 생각하며 척 들어가세요. 들어가서 빗자루로 뜰도 쓱쓱 쓸어 주고, 부엌에 들어가서 물이라도 들어다 주게 되면 동화되는 거예요. 그러면 화목덩이가 되는 것입니다. 화목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했지요? 왜 못해요, 왜 못해? 체면 때문에 못해 이놈의 자식들. 그런 자식들은 망해야 합니다. 망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어딜 가든지 그런 생활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생활 해 나왔어요.

우물가에 아주머니들이 있으면, 쓱 봐서 전도하고 싶은 아주머니 옆에가서 물 한 바가지를 달라고 해요. 그래 가지고 아주머니가 물을 떠서 주면 '아이고, 고맙습니다' 하고는 마시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라도 벌컥 벌컥 들이켜 마십니다. 다 먹고 난 다음에 '아주머니 신세를 졌으니 내가 잊지 않겠다'고 하고 나중에 찾아가면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작전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전도하고 싶은 아주머니가 시장 가는 것을 알게 되면 장에까지 찾아가 아주머니가 참외 사려고 할 때, 나도 참외 사 먹으려고 했었다면서 참외 장수 앞에 가서 턱 하나 깎아 주면서 잡수라고 하는 거예요. 뚝 잘라서 맛보라고 해 가지고 신세를 지우는 것입니다. 왜 못 하느냐는 거예요. 알고 보니 통일교회 전도사였다는 것입니다. 순진하면서도 진실된 그 모습에 무엇인지 모르게 마음이 가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전도를 하는 거예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예요. 방법은 무수해요. 일부러 사건을 만들어 가지고 전도도 할 수 있는 거예요.

또, 어머니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하니까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불러서 과자를 사 먹이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거예요. 돈도 많이 필요 없습니다. 새우깡 하나에 50원 아니예요? (웃음)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가 다 듣고 집에 돌아가서 아무 집에 가니까 좋은 얘기도 해주었다고, 우리 엄마보다 낫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한테 얘기해 달라면, 얘기를 해주나요? 또, 말 안 해도 새우깡 사다 줘요? '엄마, 과자 사다 줘요' 해야 '에이, 이놈의 자식아' 하면서 사 주지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사 달라는 얘기도 안 했는데도 사다 주는 거예요. 세 번만 사다 주면 우리 엄마보다 아저씨가 낫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에 떡 같은 것이 있으면 '엄마, 저 아저씨 좀 갖다 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건 어머니도 막지 못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만 한 백 명 모이게 되면 밥은 안 굶고 얻어먹을 수 있다구요. (웃음) 그런데 여러분들은 왜 못 하느냐는 거예요. 왜 눈이 시퍼래 가지고 굶고 앉아 있느냐는 거예요. 왜 굶어요, 왜? 그놈의 체면 바가지 때문에? 그런 녀석들은 굶으라구. 그러니 무엇이든지 배워 두라는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논뚝을 쓱 거닐자면 낚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람 쏘이러 나왔다가 전도하러 가는 것입니다. 낚시터로 가는 거예요. 그때는 낚시대 2개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낚시질은 잘 못하지만 나도 한번 잡아 보자고 하는 거예요. 낚시질하는 데는 선수거든요. 그 사람이 한 마리 잡을때 두 마리 잡고, 두 마리 잡을때 네 마리 잡고, 세 마리 잡을때 여섯 마리 잡으면 그 다음에는 '당신은 낚시 선수십니다. 당신 이름이 뭐요' 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는 통일교회의 이런 사람이요'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낚시질 가지 않아도 낚시질 갈 때 '어서 가십시다' 하는 거예요. 그럴 때는 낚시질해도 죄가 아니라고요. 낚시로 전도하려고 하는 거니까, 도둑질도 전도하기 위해 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구요. (웃음) 그러니 전부 다 알아두라는 거라구요.

김을 맬 때는 밭고랑을 타고 김을 매는 거예요. 선생님은 못 하는 것이 없다구요. 사나이 가는 길은 평탄치 않습니다. 알겠어요? 쓴 것도 있고 단 것도 있는 거예요. 무엇이든지 하는 거라구요. 그래서 밭고랑 타고 앉아 가지고 김을 매주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며 팔도강산 유람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전부 다 순회사가 되어 다녀 봤으니 경상도가 어떻고 전라도가 어떻고 하며 이야기하는 거예요. 얘기하되 객관적으로 얘기해야 돼요. 전라도 사람은 풍습이 이런 것이 안 좋고, 경기도 사람은 어떻고…. 충청도 사람이 제일 좋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또, 전라도에 가게 되면 전라도 사람은 성격이 이렇기 때문에 지혜롭기로는 첫째라며, 다른 도 사람들이 미욱하기 때문에 전라도 사람한테 속는 것이 당연하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속이는 사람이 잘난 사람이고, 속는 사람이 못난 사람이라고 전라도 사람을 칭찬해 주는 거예요. 그러면 전라도 사람은 좋아합니다. 우선 좋게 하고 나서, 전도를 해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종합적인 배우가 되어야 합니다.

생각하고 연구하면 전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돈을 빌려쓰는 것은 싫지만 돈을 빌리는 방법도 연구해야 됩니다. 저 사람이 나하고 정말 친구인지 알아보기 위해 먼저 말을 건네 보는 거예요. '당신 나를 얼마나 믿는지 모르겠소. 진짜 나하고 친구요?' 라고 하는 거예요. 그가 '친구고 말고' 그러면 '어느 정도까지? 사생결단할 수 있소?' 하는 거예요. '있고 말고' 그러면 따라지 모양으로 가서 '친구, 오늘 내게 3만 원이 필요한데, 저 소새끼 하나 팔면 한 7만 원쯤 될 텐데 저것 팔아 가지고 나누어 쓰세!' 하는 거예요. (웃음) 그래 가지고 나중에는 4만원으로 돌려주는 거예요. 그러면 보통 친구로 알지 않는 겁니다. 완전히 친구 만들 수 있는 거라구요. 그런 후에 정 돈이 필요할 때 '나에게 한 30만 원만 빌려주소' 하게 되면 빌려주겠어요, 안 빌려주겠어요? 콧구멍을 뚫어 놓았기 때문에 그때는 30만 원이 대번에 나오는 것입니다. (웃음) 그게 작전이예요, 돈 빌리는 작전. (웃음) 사탄세계에서 돈 빌리는 것도 수법이 좋아야 잘 빌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맨손 가지고도, 전부다 이 구멍 막기 위해 저 구멍에서 빼 오고 이래 가지고 메꿔 나가더라도 위신을 세우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꼬리를 깔고 뭉개 가지고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 외톨이로 뭐가 될 것 같아요? 임기응변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런 생활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것을 연구하라구요. 알겠어요?「예」

이렇게 전도하는 방법은 무한합니다. 변소에서도 전도되는 거예요. 남자가 여자 변소에 들어가는 것은 실례지만 그럴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들어가기 전에 아주머니와 이마를 마주치는 거예요. '아이쿠 아주머니 미안합니다' 하고 인사하는 거예요. 그때는 수법이 인사하는 거예요. (웃음) 이마를 마주쳤으면 그 남자도 안됐지만, 따라가면서 '참 미안했다, 실례가 많았다'고 하는 거예요. 아주머니에게는 얼마나 수치스런 일이예요. 그러니 얼마든지 따라가서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한번 마주쳤던 자가 알고 보니 통일교회 전도사더라는 거예요. 그렇게도 겸손히 사죄하는 남자는 처음 봤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면 전도가 되는 거예요. 얼마든지 전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날 선생님이 동경에서 한국에 오기 위해 차표를 사러 나왔는데 돈계산을 깜빡 잘못해 가지고 돈이 모자라는 거예요. 회계를 잘못했던 것입니다. 일제식으로 말하면 일원짜리를 십원짜리로 본 것입니다. 큰일난 거예요. 돈을 빌려 줄 사람을 찾아야 할 텐데 큰일이 난 거예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혼자 해결할 도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살펴보니 어느 중년 아줌마가 있었어요. 저 여자는 어떠 어떠한 남자의 기분을 알 것이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남자의 포즈를 취하고는, 내가 보기에 당신은 이러 이러한 사람인 것 같고, 남달리 위하는 마음이 참 많은 것처럼 보이고, 내 맏누님 같다고 했어요. 맏누님 같다니까 인사할 수 있을 만큼 됐다구요. 난데없는 젊은 사람이 와 가지고 얘기를 해도 기분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 거예요. 그 누님은 내가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누님이었는데, 어떻게 하다가 병이 나서 쓰러졌기 때문에 한국에 간다고 했어요. 그리고는 그 누님은 내가 어려울 때 이렇게 이렇게 도와주었으니, 내가 이제 가면 매일같이 닭을 잡아 주며 대접을 할 것이라고, 그 누님을 만날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이렇게 좋은데 당신을 보니까 더 기다려진다고 떠억 말한거예요. 그랬더니 아 그러냐고 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런 누님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누님은 없고, (웃음) 사실 나는 바쁜데 돈이 좀 모자라니 빌려주면 내가 틀림없이 찾아가든가 보내서 갚겠다고 했습니다. 배 탈 돈이 모자라서 그러는데 빌려 주면 3배 이상으로 갚아 주겠다고 한거예요. 가만히 보니 돈 잘라먹을 청년은 아니거든요. 그래 가지고 그때 돈을 빌렸습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당장에 편지를 쓰고 그 3배를 부쳐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 집에 찾아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랬지만 안 갔습니다. 언제든지 바쁠 때는 그렇게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연구하면 길은 많이 있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괜히 따분하게 짭짭하고 앉아 있어 봐야 물 한 모금 안 생깁니다. 생각하고 연구해야 살 길이 생긴다고요. 알겠어요? 전도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풀장에 가서도 전도할 수 있는 것이고, 운동장에 가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학생을 전도하고 싶으면, 전철역에서 발을 턱 걸어 넘어뜨려 가지고 코피를 흘리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업어다 주는 거예요. (웃음) 전도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구요. 식구가 없으면 억지로라도 만들어서 전도해야 합니다. 자, 그래도 안 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뭐든지 할 줄 알아야

선생님은 어떤 특정한 섭리적인 아주머니를 빼내기 위해서 1년 반 동안 그 집에 찾아가 가지고 그 남편과 그 집 식구 전부를 전도한 적도 있습니다. 남편이 죽이겠다고 눈에 불을 켜 가지고도 반대를 못 했습니다. 잘못한 것이 있어야 반대를 하지요. 속으로는 킁킁하지만 아들딸이 전부 선생님을 좋아하게 만들어 놨기 때문에, 반대를 하면 결국 아버지가 나쁘다는 결론이 딱 내려지는 거예요. 그러니 별수 있나요? 그 아들딸과 여편네가 밥을 먹여 주자고 설득 공작을 하는데 밥 한 그릇 먹었다고 해서 가정 파탄을 일으킬 수는 없는 거예요. 그래서 1년 반 동안 그 집 밥을 숟갈로 재서 그저 꾹꾹 먹으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 집 밥을 먹으면서 전도를 했어요. 그래 가지고 매일 저녁 남편 방에 못 들어가게 하면 교육해도 불평을 못 하게끔 전도했습니다. 뜻을 이룰 수 있는 길이라면 그런 것도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그 동네를 구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뭐든지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운동도 할 줄 알고 말예요. 선생님도 말은 탈 줄 모르는데 이제 그것도 배워야 되겠어요. 뭐든지 할 줄 알아야 하는 거예요. 운동도 할 줄 알아야 되고, 노래할 때는 노래도 할 줄 알아야 되고, 노는 데 가서는 춤도 출 줄 알아야 된다구요. 선생님은 춤을 추라고 하면 춤도 춘다고요. 춤을 배워서 하나요? 춤을 추고 싶으면 마음대로 추면 되는 거지요. 마음대로 추면 춤이 되는 거라구요. (웃음) 춤이 어디서 나오느냐? 민족의 예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민족의 예술은 다른 게 아니예요. 전통적 생활 환경에 젖어 가지고 마음대로 표시를 하면 그것이 민족예술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별것 아니라구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춤 출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춤 출 줄 모를 게 뭐예요? 춤을 잘 추어야 춤이예요? 사람들을 웃게 만들면 춤이지요. 좋아하게 만들면 춤이라구요. 그렇게 생각하면 무슨 춤이든지 출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춤 출 줄 알아요, 몰라요? 이제는 알았잖아, 이 녀석들아. (웃음)

노래를 불러야 되는데 곡조를 모르겠으면 자기가 작사 작곡하는 거예요. 일장 복귀섭리의 심정을 가지고 아담 가정에서부터 쭉 이름을 붙이는 겁니다. 아무 동네에 김 아무개가 있고 호박댕이가 있었다고 말예요. 거기서 이름 붙여지는 건 아담 해와가 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서글픈 마음으로 창조원리에서부터 풀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노래가 되는 거예요. 노래가 별스러운 게 아니예요. 그러니 이제 못할 것이 없는 거예요. 하지 않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지 하게 되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안 그래요?「예」 왜 젊은 녀석이 앉아 가지고 입맛만 짝짝 다시고 있어? 왜 그래 왜?(웃음)

산골에는 장마철이 되게 되면 버찌가 많아요. 한 바구니 따다가 넣어 두고 먹을 수도 있는 거예요. 배가 고프면 고기를 잡아 가지고 어죽도 쑤어 먹을 수 있다구요. 젊은 놈들 몇몇 데리고 가서 고기를 잡아다가 전부 다 배를 따 가지고 펄펄 끓이는 겁니다. 생선만 끓이면서 아무개 오라고 기별하는 거예요. 생선을 다 집어넣고 간도 하지 않고 끓이는 거예요. 가시하고 살이 전부 다 녹아지도록 펄펄 끓이는 거예요. 뭘 하려고 하느냐고 물으면 흰죽을 쑤려고, 어죽을 쑤려고 한다고 하면 기분이 다른 거예요. 그러면서 자네도 와서 나누어 먹자고, 그런데 쌀을 조금만 가져오라고 하는 겁니다. (웃음) 죽을 쑤려는데, 보리쌀밖에 없는데 보리쌀을 넣으면 맛이 없으니 쌀 좀 가져오라고 하는 것예요. (웃음) 보리쌀이 있긴 뭐가 있어요, 보리쌀도 없지요. 없지만 그 말이 맞는 거예요. 죽에 보리쌀을 넣어서는 안 되거든요. (웃음) 그러니 보리쌀 대신 입쌀 한봉지 가지고 오라고 해서 흰죽을 쑤는 거예요. 그러면 점심 먹고 저녁까지 먹을 수 있다구요. (웃음) 그렇게 해서 먹게 하면 죽을 얻어먹고 그 쌀을 빌려 줘서 아깝다고 생각하는 녀석이 어디 있어요? '또 해먹자, 또' 하는 거예요. 가시 빼 버리고 어죽 쑤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알아요? 그렇게 사는 거라구요. 그릴게 살지 않으면 이 궁한 녀석들이 어떻게 살 거예요? (웃음)

오이밭을 뭐 배추밭으로 만들려면 오이를 다 딴 후에 오이밭 갈이를 합니다. 그럴 때 한 세 집만 오이 넝쿨을 거두어 주면 1년동안 먹을 찬거리가 생깁니다. 그때는 바쁘기 때문에 주인이 오이 넝쿨을 걷지 못합니다. 따금따끔하지만 그때는 웃옷을 떡 벗고 한 아름씩 안고 일을 하는 거예요. 오이 몇 개 붙은 것을 따갔다고 뭐라 하겠어요? 오이 넝쿨을 전부 다 걷은 다음에, 주인 양반 나 이제 갈 터인데 이것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가져가라고 하지 가져가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따 놓은 오이까지 가져가라고 할 거예요. 그럴 때는 정중히 '아, 놔 두세요. 주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넝쿨에 붙은 새끼 오이나 주시오' 하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가 거둔 것에서만 따 가지고 오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은 내가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다 하는 거예요. 그렇게 세 집만 거두면 한달 먹을 오이지를 만들 수 있는 겁니다. 있겠어요, 없겠어요? 그걸로 오이지를 만들어 먹으면 참 맛있다고요. 여러분도 해보세요. 얼마나 맛있는지 알아요?

가지 밭갈이 할 때가 왔으면 또 미리 밭갈이를 해주는 겁니다. 또, 고추 밭갈이를 하면 그것도 전부 다 해줘 가지고 고춧잎, 고추새끼 전부 다가져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일년 반찬거리를 만드는 거예요. 간장 같은 것은 얻어다가 할 수 있어요. 헌데 왜 반찬거리가 없어요? (웃음) 돈이 없다구요? 못 나서 소금 간장을 붙들고 야단하고 있는 거라구요.

보게 되면, 춘하추동 얼마나 계절이 좋아요. 가을이 되면 밤을 딸 때, 한번 쓱 따고는 다시 누가 따지 않습니다. 그거 이삭밤이라고 해요. 절반만 털고 그 맨 꼭대기에 알 굵은 것은 전부 다 못따는 거라구요. 그럴 때는 쓱 나무에 올라가서 따는 겁니다. 나무에 올라가는 것도 배워 두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나무도 참 잘 올라갑니다. 그때는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서 회초리 하나를 가지고 톡톡 따면 다 내 것이 되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큰 밤나무 몇 개만 올라가면 밤 한두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알밤하고 쌀하고 얼마든지 바꾸어 먹을 수 있다구요. 알겠어요? 그런데 밥을 왜 굶어요?

논갈이할 때도 가 가지고 쓱 걷어붙이고 논갈이하는 거라구요. 그러고는 밥도 얻어먹는 거예요. 일을 다 해주고 나서 가겠다고 하면 그 주인은 고마워서 그냥 보낼 수 없다는 거라구요. 고마워서 그냥 보낼 수 없다고 하면 '좋다구. 그러면 나에게 벼 한 단만 주소' 해 가지고 그것을 메고 동네에 가다가 누굴 만나면 아무 동네의 누구네 일을 좀 거들었더니 고맙다고 하면서 주더라고 선전도 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좀 털어서 삼분의 일만 달라고 하는 거예요. 만약에 볏단 세 개만 되면 그것을 쌀 한 됫박하고 바꾸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어디 가든지 바꿀 수 있다구요. 안 그래요? 자 이거 나 아무 동네 뉘집 일을 해줬더니 고맙다고 준 것인데, 안 받을 수 없어 받아 왔는데 곤란하게 됐다고 하면서 어느 아주머니 만나 가지고 내 쌀이 없으니 이것 가지시고 삼분의 일 정도의 쌀좀 주소 하면 얼마든지 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티끌을 얻어서 쌀한 됫박하고 상환할 수 있는 겁니다.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거예요.

정 급하면 투전판에도 찾아가는 거라구요. (웃음)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런 놀음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투전판에서도 전도하는 거예요. 천 원쯤 있으면 가만히 봐 가지고 수가 좋은 사람에게 미리 빌려주는 거예요. '내 5백 원밖에 없는데 한번 해보시오' 하면서 5백 원을 빌려주는 겁니다. 돈을 따게 되면 그 5백 원이 열배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5백원 투자한 것을 돌려받을 때는 2천 원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도 할 줄 알아야 된다구요.

그 다음엔 돈을 딴 녀석이 있으면, 난 공적 생활을 하는데 여기를 지나가다 투전판에 찾아오면 실례가 되겠지만 하도 속닥속닥 재미있게 얘기를 하길래 구경하러 들어왔다고 하는 거예요. '투전을 어떻게 하는가 연구해 보려고 왔더니 아! 돈이 왔다갔다하누만요' 하면서 '임자네들은 전부 다 돈이 많아 가지고 쓸데없이 장난하는데 우리같이 돈이 필요한 사람한테 조금 기부하지' 하며 쓱 집어넣고 '에헴' 하고 나서는 거예요. (웃음) 그러면 어떻게 하겠어요? 싸움을 하겠어요? 이것은 나라를 위해 쓰고, 승공활동하는 데 좀 기부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농을 슬슬 치면서 돈을 한줌 집어 쥐고 나올 수도 있는 거예요. 너희들은 배가 불러 그러는데 난 배가 고프니 쌀 좀 사 먹어야 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웃음) 그런 비위도 필요하다는 거예요.

진짜 거지 노릇도 해보고

동네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으면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들어가 가지고 손자 노릇도 해줄 줄 알아야 됩니다. 얼마든지 그런 놀음을 할 줄 알아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선생님은 왜정 때, 지하운동을 할 때는 별의별 놀음을 다 했습니다. 농촌에서 머슴살이도 하고, 배 밑창에 들어가서 노동도 했습니다. 그래야 피신하기 때문에 그런 놀음도 곧잘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훈련도 받아 둬야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밥이 필요해요? 밥이 필요해요? 정 필요하면 전부 다 거지 모양으로 '적선이요' (웃음) 하면서 장타령도 하면서 진짜 거지 노릇도 한번 해보세요. 그래도 먹을 것은 있는 거예요. 통일교회 누구라는 것을 모르게 변장해 가지고 장타령도 할 수 있잖아요? 그래 가지고 먹고 사는 사람도 있는데 무슨 짓은 못 하느냐는 거예요. 뭐 체면? 살고 봐야지. (웃음)

선생님은 이런 적도 있었습니다. 어떤 원두막에 떡 갔는데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원두막에 앉아 있는 그 할아버지를 가만 보니까 고생한 사람이 아니라 풍류주의자예요. 배통이 이렇게 나왔는데 허리띠를 여기다 떡매고, 바지는 배꼽이 쓱 나오도록 입고, 적삼을 이렇게 떡 걷어올리고 있어요. 배꼽을 내놓고 다니는 남자들은 전부 다 바람끼가 있다구요. 그런 뚱뚱한 할아버지가 원두막에 척 앉아 있었어요. '할아버지 풍채 좋구만요' 하며 이 원두막이 이 동네에서 제일 좋다고 칭찬해 주는 거예요. 나쁘더라도 제일 좋다고 하면 좋아하는 겁니다. 어떻게 이렇게 잘 지었느냐고, 할아버지 솜씨가 좋다고, 우리 아버지 솜씨보다 더 좋다고 칭찬을 들이 해주면 기분이 싹 풀리는 거라구요. 요전에 아무 동네에 갔는데 그 동네의 할아버지가 참외를 줘서 먹었더니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고, (웃음) 참 그 할아버지 얼굴을 보니 비쩍 말랐는데 일심은 좋더라고 하는 거예요. (웃음) 그렇게 비교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자기보다 못한 할아버지가 인심 쓰는데 인심 안 쓸 수 없는 것이예요. (폭소) 또, 땅을 비교하면서 '이 땅은 전부 다 옥토 같고 그 땅은 박토 같은데, 박토 같은 땅의 참외 맛이 그렇게 좋았으니, 옥토 같은 땅의 참외 맛은 얼마나 좋겠소'라고 쓱 하는 거예요. '이집 참외 맛을 선전해 주겠다'고 하고선 '할아버지 미안하지만 참외 하나 따 오소. 맛 좀 봅시다' 하는 거예요. (웃음) 그건 인사로도 통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해 가지고 참외 얻어먹는 거예요. 그래도 안 따오면 슬슬 참외 밭에 들어가서 '나 참외 하나 따먹습니다. 참외 맛 좀 봅시다' 하며 따먹는 거예요. (웃음) 그런다고 욕을 하겠어요, 어쩌겠어요? 맛 보겠다고 따먹었으니 욕하면 뭘해요? 참외 값이 10원이면 5백 원 어치의 칭찬을 받았는데 욕이야 안 나오겠지요. (웃음) '우리 아들도 저랬으면 좋겠다'고 자기 아들을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우리 아들도 있으니 다음에 또 오소'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여 인연을 맺을 수도 있는 거라구요.

또, 콩밭 같은 데 지나가다가는 따서 여기 넣고 여기 넣고 하고는 '주인 양반 갑니다' 하게 되면 '또 오소' 하게 되는 거예요. 한가방 얻어 가지고 가서 저녁에는 새끼들에게 구워 먹이고 삶아먹이고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까지 내가 가르쳐 주어야 되겠어? (폭소) 이러다간 선생님의 밑천이 전부 도망가 버리겠어요. (웃음) 이런 놀음을 해서라도 왜 못 사느냐는 거예요. 왜 못 살아요? 그러지 않고 어떻게 개척자가 되겠어요? 밥 굶을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렇게 하는데 밥 굶겠어요, 안 굶겠어요?「안 굶습니다」 따분하게 새끼들 만들어 놓고 걱정 하면서 다 죽는 척하는 녀석은 ‘아이쿠 이게 다 뭐야. 통일교 선생님이 뭐야? 아버지가 뭐야? 이것 다 개판이지…’(웃음) 한다구. 왜 그런 걱정 하느냐는 거예요.

환경을 선동해서 자기 발판을 만들어야

선생님을 보세요. 여의도 땅 사게 될 때 선생님에게 돈 한푼 있었어요? 엊그제도 이야기했나? 여러분들한테 이야기했나?「안 했습니다」 천 오백만 원을 빛을 냈다구요. 협회장은 '어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십니까' 했지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땅 없으니 땅 사려고 그러지. (웃음) 그런 것을 하기 위해서 벌써 몇 년 전부터 계획했던 것입니다, 얘기는 안했지만. 그래서 축복가정을 전부 다 몰아넣은 거라구요. 전 일본 축복가정들만 우려 가지고 그 땅을 사고도 남게끔 1차 계획, 2차 계획을 해 가지고 산 거예요. 알겠어요? 그래 가지고 땅을 사고도 남았다구요. 여러분들은 생각지도 못했겠지만, 사람은 때를 포착할 줄 알아야 됩니다. 이런 것을 얼마든지 소화시킬 수 있는 능동적인 사나이가 되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은 노동판에 가더라도 따라지 노동자가 되지 말라는 거라구요. 왕초 노동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노동판에서도 점심때가 되게 되면 전부 다 내가 앉아 있는 데로 따라와서 먹게끔 만들라는 거라구요. 그러면서 자기의 사정을 얘기하는 거예요. '본래 나는 이런 사람이다. 어디 출신이고 어떠 어떠한 경로를 거쳐 나온 사람인데 이 동네에 와서 이런 놀음을 하는 것은 당신네들을 살려 주기 위해서다' 이러면서 동네의 아무개 집, 부자집하며 그들이 싫어하는 사람들을 전부 다 집어내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싫어하는 집들을…. '아무개 부자집은 나도 싫소. 아무개 집, 아무개 집은 나도 싫소. 그놈의 자식들은 망해야 돼' 하게 되면 그 말이 그들 마음에 쏙 들거든요. 그러면 그들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 단결해 가지고 한번 해보자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러자구' 하는 거예요. 그렇게 환경을 선동해 가지고 자기 발판을 만들 줄도 알아야 됩니다. 그 얼마나 좋아요?

그러다 보면 노동자들은 자기들의 서러움을 전부 다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 동네에서는 땀을 흘리는 우리를 보고 누가 인상을 쓰고, 누가 기분 나빠하고 길거리에 지나가던 애들까지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데 이러한 천대를 받고 살 수가 있느냐고 하는 거예요. 이렇게 전부 다 구슬러 가지고, 이제 우리가 잘살 수 있는 길을 개척하자고 선동해 가지고 여러분이 그 앞에 나서서 하자고 하게 되면 불이 붙는 것입니다.

그렇게 선동한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 사상을 집어넣어서, 이 사상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서 단결시켜 가지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푼이라도 모아 기금을 만들자고 하는 거예요. 열 사람이 단결하여 자금을 모으게 되면, 1인당 1년에 만 원씩 모으면 십만 원은 바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집 한칸이라도 구할 수 있지요. 그것은 수리하면 교회가 되고 집집마다 잘살기 운동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왜 안 하느냐는 거예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연구를 해야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가만 있지 말라구요. 가만 있으면 아무 일도 안 된다구요. 아무리 상감마마 될 수 있는 팔자를 타고났다 하더라도 가만히 앉아 있어 가지고는 감 따라지 하나 굴러들어오지 않는다구요. 노력해야 되는 겁니다. 되게끔 노력해야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몰이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 고기몰이 알지요? 몰이 해야 됩니다. 몰이를 해야 된다구요. 몰리는 녀석들이 다 자기가 도망갈 수 있는 길이 좋다는 생각이 있어야 몰리는 것이지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지 모양으로 처량하게 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저기 통일교회 귀신 온다. 저것이 오는 것은 뭐 얻어먹으려고 오는 것이다. 저것을 데리고 갔다간 내가 한푼이라도 손해 보겠다'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사람들은 손해나는 일은 절대 안 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알고 이제는 자기 보자기를 풀어놓고 사방에 출구를 만들어야 돼요. 남자는 비위가 좀 좋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저 사람 없으면 안 된다'고 할 수 있게 해야

아이구 내가 뭐 교회장인데 군수니 과장이니 뭐 기관장들과 짝짝꿍 하겠느냐…. 그게 문제가 아니예요. 서장을 찾아가서 '오늘은 내가 아무 고아원을 좀 도와주고 싶소. 내가 가두에서 모금 운동을 할 테니까 서장부터 내소. 과장 좀 내소. 계장도 내소' 이렇게 거기서부터 모금운동을 하는 거라구요. 그 다음엔 '군수 내소. 내무과장 내소. 소방과장 내소' 하는 거예요 '군수 영감도 얼마 내구 서장도 얼마 냈는데 앞으로 그 후계자가 되려면 얼마는 내야 하지 않소? 그들이 천 원 냈으면 5백 원은 내야지' 하며 내라고 하는 거라구요. 그러면 진짜 해주는 거라구요. 그렇게 1차 2차 3차쯤 해주게 되면 그 다음엔 내가 일하지 않고도, 밥 먹을 기반을 닦을 수 있습니다. 왜? 고아원을 중심삼고 후원해 주게 된다면 전부 다 동네방네에 소문이 나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좋은 데 쓴다는 소문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동네에서 어떤 캠페인 같은 것을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 사람이 하는 것은 대사회 공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거기에 후원하면 보람을 느낀다고 선전도 해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누가 누가 이렇게 해줬다고 헌금한 사람들을 선전해 주는 거라구요. 모금한 것을 고아원에 인계해 줄 때는 서장, 군수들을 초대하여 축사해 달라고 하는 거예요. 누구 누구 얼마, 누구 누구 얼마, 틀림없이 정확하게 기록해 두는 거예요. 그때는 사람들 전부에게 청첩장을 보내서 초대하는 겁니다. 여기 성심껏 성금한 사람 손들라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선전하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전도하는 겁니다. 알겠어요?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는 거예요. 거기에 모인 청중들을 때려잡을 수 있을만큼 원고를 써 가지고 암기해 둬야 됩니다. 그렇게 준비해 가지고 그런 자리가 마련되면 레코드판 모양으로 심정에 호소하게 되면 걸려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사회복지화운동을 하기 위해서 지방 유지들 회를 만듭시다'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걸 누가 책임지느냐? 내가 선동은 했지만 내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고 사무총장이나 인사국장이나 감사 같은 것은 좋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름을 딱 붙여 가지고 돈을 관리하게 되면 월급을 주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히 월급을 받게 되는 거라구요. 월급을 안받겠다고 해도 받으라고 권고하는 거예요. 내가 충성할 만큼 하게 되면 서장하고 군수들이 뒤에서 밀어 주는 겁니다. 부업적으로 그것을 만들어 놓고도 전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니까 하지 말라고 하게 안 되어 있거든.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되니까 그 사람을 세워 가지고 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전부 다 취직 아닌 취직을 해 가지고 월급을 받으면서 먹을 것 다 만들어 놓고도 전도를 할 수 있다구요. 가능해요, 안 해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선생님이 지금 교수회니 무슨 회니 하는 것도 내가 밑지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이렇게 해서 걸려들게 되면 이렇게 이렇게 할 계획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통일교회는 본부에 비상한 머리 가진 사람이 있어서 이런 일을 한다고 합니다. 비상하긴 뭐가 비상해요? 그런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을 잘할 뿐이지요.

그 동네에 청년들 있으면 청년들을 모아 가지고 청년회도 조직하고 말예요. 동네 운동장이 없으면 운동장 같이 넓은 밭을 운동장으로 만드는 거예요. 처음에 조나 옥수수를 심은 밭이었으면 젊은 사람들이 잡초라도 뽑아 주고 가을에 운동장으로 쓴다면 그 주인이 욕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인이 욕하게 되면, 젊은 사람들이 전부 다 해줬는데 우리가 거기서 뛰어 놀면 먼지라도 더 불어 나니까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것이 뭐냐, 봄에 가서 갈아 주겠다고 하고는 갈아주는 거예요. 그러면 쓱 들어갈 거예요.

그 다음 2년쯤 뒤에는 할아버지, 이 밭을 우리가 사야 되겠소 해 놓고, 그 손자가 있으면 손자를 끌어다가 운동팀에 집어넣고 책임자를 만드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그 손자를 시켜서 할아버지한테 떼쓰게 하는 거예요. 그래도 안 되면 땡깡이라도 부리게 하는 거예요. 선동하기에 달린 거예요. 이래 놓고 그 밭을 사는데 그 집 손자와 같이 가서 사게 되면 얼마든지 싸게 살 수 있는 거라구요. 절반 주고도 살 수 있고…. 그 다음엔 손질하면 되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운동장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놓고 그 다음에는 다른 마을에 가 가지고 청년들을 규합하는 거예요. 처녀 총각들을 모이게 하는데 제일 빠른 것이 유행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레코드판하고 축음기 하나를 사 가지고 틀어 주면서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노래 부르기 운동을 시키는 거예요. 그런 다음 배운 걸 쓱- 불러 보게 하고는 다시 진취적인 노래를 가르쳐 주는 거예요. 앞으로 젊은 사람들이 보다 발전할 수 있는 자극적인 노래를 가르쳐 줘 가지고,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발전시켜 나가는 거예요. 그렇게 하여 청년회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운동팀을 만들어 가지고 부락 대회를 하게 될 때 그 부락에 대해 한 번 이기고, 두 번 이기고, 세 번 이겼다 하게 되면, '야, 아무개가 가면 큰일난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통일교회 아무개 교역장이 가면 안 된다. 그러니 우리 부락에 있도록 붙들고 있어야 되겠다. 저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저 사람이 없으면 큰일나니까 우리 부락 위신 세우려면 저 사람을 잡아 두어야 되겠다' 하게 되면 그 부락은 내품에 들어와서 놀아나는 거라구요.

그 다음엔 이럴때 부락후원회를 만들자고 하는 거예요. 동네 이장부터, 반장을 비롯해서 전부 다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개 집 할것없이 전부 다 들어오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밭을 살 때 금액의 3분의 2를 덜 주었으면 그것도 일시에 다 물어줄 수도 있는 거라구요. 이래 놓으면 그 동네에서 쫓아내려고 해도 쫓아내지 못한다고요. 왜? 동네와 동네끼리 경쟁심이 일어나 가지고 운동 경기를 하려면 그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동네에서 못 떠나게끔 하는 거예요. 왜 가느냐고 물어 보고, 생활이 어려워서 간다면 '우리가 생활을 책임져 주겠소' 이러는 거예요. 그렇게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다 할 수 있는 거라구요. 얼마든지 길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운동에 취미도 있고 그래야 합니다. 운동에 취미 있는 사람 손들어 봐요. 이것 봐 운동에 취미 있는 사람 얼마 안 되잖아. 선생님은 레슬링도 좋아합니다. 무엇이든지 좋아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만사를 다 알아요. 옛날에는 내가 손을 안 댄 일이 없었습니다. 이것도 내가 일등해야지, 저것도 내가 일등해야지 하면서 자신을 갖고 산 사람이라구요. 하면 되는 거예요.

생각하고 실천하라

내가 축구하는 운동장에 나가서 응원을 할 때도 '이놈의 자식아, 거기서 다리를 몇 각도만 꺾었으면 틀림없이 들어갔을 텐데, 저놈의 자식, 연습도 안 했구만' 하고 소리를 칩니다. 그래서 내가 우리 통일대학에 축구 팀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면 내가 코치가 될 겁니다. 코치가 되어서 어떻게 연습시키느냐? 중앙 센타에서 10미터, 20미터, 30미터, 50미터 되도록 표시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중심에서 10미터 거리에서는 어떻게 차고, 그 방법을 전부 다 훈련시키는 거라구요. 10미터에서는 몇 각도, 20미터에서는 몇 각도로 차면 된다는 것을 전부 다 알아 가지고, 천번 만번 들이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50미터에서는 어느 각도로 차면 몇 퍼센트 적중된다 하는 자신을 전부 다 갖게끔 할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동서남북으로 빙빙 돌아가게 장치를 해 가지고 전부 다 훈련시키려고 합니다.

그런 훈련 방법으로 하는 데가 없거든요. (웃음) 이것은 과학적인 훈련 방법입니다. 몇천 발을 쏘면 몇천 개 들어가고, 몇만 발 쏘면 몇만 개 들어갈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훈련을 시키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이제 세계의 축구팀을 하나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분 좋아요?「예」 그게 되는 거예요. 되는 거라구요. 몇 각도에서 손을 어떻게 하면, 어떤 포즈로서 이렇게 차면 얼마를 나가서 몇 각도로 들어간다 하는 것을 전부 다 기하학적으로 자동적인 훈련을 시키면 안 될 것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훈련을 시킬 것입니다.

지금 세계의 축구 선수, 저 브라질의?「펠레」 펠레축구팀이 몇 번의 공을 찼느냐 하는 것을 알아 가지고 십배만 하게 되면 일등을 해 둔 것입니다. 연습을 십배를 했으니까 이기는 거 아녜요. 키가 얼마나 크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구라파식 축구, 남미식 축구는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런 훈련을 얼마나 시키느냐에 따라서 승패를 가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는 내가 축구 코치가 되려고 해요. 밤이고 낮이고 새벽이고 없는 거예요. 잠은 식사시간에 자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침시간, 점심시간, 저녁시간 해서 하루 세 시간은 잘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안자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루 세 시간 자면 되지요, 뭐. (웃음) 그렇게 몇년만 하게 되면 별수 있어요?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10미터, 20미터, 30미터, 50미터, 70미터 거리에서, 각도를 정해서 어느 정도의 높이로 얼마만큼 차면 어느 거리에 떨어진다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훈련을 시켜 가지고 세계를 한번 잡아 쥐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분 좋아요?「예」 그러려면 또 내가 피땀을 흘려야 된다구요. 그런 것까지 해야 되니 기가 막히지요. 선생님은 그런 생각까지 다 하고 있다구요. 자, 그런 일이 가능할 것 같아요. 불가능할 것 같아요?「가능합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불쌍한 사람이라구요. 그렇지요? 그런 전부를 선생님이 창작해서 하는 거예요. 앉아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하라는 거예요. 생각을 하고 실천을 해야 됩니다. 자기 생각대로 실천하게 되면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의 묘미를 느끼던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해봐야 재미가 나는 것입니다.

왜 일어나나? 거기 앉아, 이 녀석아! (웃음) 여기서 똥 오줌을 싸면 기록에 남아 역사에 남는다구, 이 녀석아. (웃음) 좋은 거야. 일생의 기록에 남는 거야. `내가 청평수련소에 가서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데 나갈래야 나갈 수 없을 만큼 말씀에 감동해서 오줌을 쌌다'고 할 때 '그놈 벼락맞을 자식' 이러겠나? (웃음) '야, 나도 그런 한때를 가졌으면 좋겠다'하는 거예요. 만민이 다 부러워한다는 거예요. 역사적인 문제가 될 자료가 생겨나는데 왜 나가는 거야? (폭소)

지금 몇시야? 「열한 시입니다」 점심 먹을 때가 됐구만. (웃음) 너희들, 밥 생각 했어, 안 했어? 「안 했습니다」 미친 녀석들이지 뭐야. (웃음)

하나님이 후원해 주고 싶어하는 자리에 서라

자, 이제 가게 되면 동네방네 내 신세 안 지고는 못 산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내 신세 안 지고는 못 산다, 이 뜨락도 이 길도, 골목도 내 발바닥 신세 안 지고는 안 된다, 동네 사람들도 내 얼굴 보지 않고는 못 살 것이다. 나를 좋아하지 않고는 못 산다고 하기 위해서 새로운 결심을 하고 돌아갈 패들이 소위 통일교회 청평수련소에 모여 가지고 수련받는 요 일당이다! 그럴싸, 안 그럴싸?「그럴싸」 자, 이걸 환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고맙구만. 고맙구만. 전부 그럴 거야?「예」

너희들이 정말 그렇게 해 가지고 '선생님 우리 군에 와 주소' 하면 내가 갈 거야. 그때는 한 보따리 지고 갈 거야. 내가 가자마자 눈물을 술술 흘리고 거기에 교회도 지어 줄 거야. 알겠어, 무슨 말인지?「예」 미국에 가 있다 하더라도 그런 보고 오게 되면 날아올 거라. 왜? 자료를 취재해다가 미국 가서 선전해야 되니까. 그렇게 되면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것이 아니겠느냐. 이런 각오 밑에서 힘차게 나가자구. 맡겨진 천부의 사명을 다하기로 맹세했다구?「예」

자, 여러분 이번 수련소에 잘 왔어요, 못 왔어요?「잘 왔습니다」 무엇 때문에?「상대를 위해서…」'아이구, 잘 오긴 뭘 잘와? 죽을 고생 또 났구만!' 이러지 않아? 죽을 고생밖에 더 있어요? 여러분, 보세요. 지금까지 기성교회가 은혜가 없지마는 저렇게까지 틀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교역자들이 전부 다 방문하는 도수가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 공헌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구요. 통일교회가 부흥회를 하고, 순회사니 기동대니 해 가지고 전도 다니니까 자기들도 져서는 안 되겠으니 그러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에 공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이 밤낮 쉬어서는 교인들을 빼앗겨 밥 바가지가 깨지겠으니 방문을 자주 하게 된 것입니다. 천정보다 인정이 엉클어져 가지고 저렇게 움직이고 있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렇지요?「예」 그러니 여러분들이 그 이상 되면 되는 것입니다. 우선 천정을 모르니까 인정으로 그 이상 되어야 되겠습니다.

기성교회의 제일 큰 교회 목사를 보고도 '야, 목사 너는 하루에 몇 시간 전도하느냐?´ 해 가지고 그가 기도하는 시간의 통계를 내고, 그가 전도하는, 혹은 순방하는 숫자의 통계를 내 보라구요. 그가 심방하는 순회사라든가 권사라든가 모아 가지고 전도하는 사람으로 20명을 세웠으면 나는 40명을 세우는 거예요. 그러면 그들이 나한테 지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다섯 시간 하면 나는 열 시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한테 지는 거예요. 이것은 과학적인 데이터입니다. 그렇게 여러분이 작전해 가지고 승리할 수 있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인간끼리끼리 지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도 후원해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지지리 못나 가지고 어디 가든지 몰매 맞을 자식인데, 그 자식이 어디 가서 몰매맞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도와줄 것 같애요? '하나님이여, 나 몰매맞게 되었습니다. 사정상 이러니 도와주소' 이렇게 아무리 기도해 보세요. '아이고 이 자식아 맞아라' 하지 '도와주겠다' 그러지 않는 거예요.

상통을 보나 심통을 보나 몰매를 안 맞을 수 있는 자격자인데 하늘을 위하다가 하늘 때문에 몰매를 맞게 될 때는 '하나님!' 하게 되면 도와주는 것입니다. 지지리 못나 가지고 지지리 무력해 가지고 지지리 무용지물이 되어 가지고 도와 달라면 도와주나요? 하나님이 그런 것이나 도와주는 분이예요? 무엇이든지 잘난 데가 있어야지요. 그러니 신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신념. 알겠어요?「예」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신념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믿는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이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념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사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상은 어떤 것이냐? 세계를 체계화할 수 있는 가치관을 설정하는 데서 사상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개인적인 가치관, 가정적인 가치관, 민족적인 가치관, 국가적인 가치관, 전부 다 가치관의 차이에 들어가 가지고 그 신념을 가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런 관점에서 통일사상은 위대한 사상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교회장 바람을 일으켜 보라

이래 가지고 한번 바람을 일으켜 놓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전도대원 바람 일으켰지요?「예」 기동대원 바람 일으켰지요?「예」 그런데 우리 교역장들은 바람 일으켰어요? 못 일으켰지요?「예」 전도대원들 바람에 놀아났지요? 놀아났어요, 안 놀아났어요?「놀아났습니다」 전도대원들 바람에 놀아났어요. 안 놀아났어요?「놀아났습니다」 놀아났지요?「예」 대답을 해야지, 부끄러워? 체면 때문이야? 자, 전도대원들 바람에 놀아났어요. 안 놀아났어요?「놀아났습니다」

그러면 기동대들한테 놀아났어요, 안 놀아났어요?「놀아났습니다」 놀아났지요. 그러면 그들이 여러분들 바람에 언제 놀아날 거예요? 기가 막히지요? 그렇게 천대받고도 죽어 돌아갈래요? 이제는 여러분의 바람에 놀아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기동대가 못 자게끔 해야 됩니다. 정 잠을 자고 싶어하는 잠꾸러기라면 기동대가 오기 수일 전부터 잠을 자 두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기동대가 오면 잠 못 자게 훈련을 시키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백번 끌어내라는 것입니다. 네시 반에 일어나지 말고 세시 반에 일어나 가지고 '조장, 갑시다, 갑시다. 정성들이러 갑시다' 하며 끌고 가는 거예요. '어디 가요. 어디 가요' 하면 '성지 가야지 왜 잠자는 거요?' 하는 거예요. 아무래도 남자가 여자보다는 기력이 더 있지요, 여자한테 질 거예요? 그때 '아이구 교회장님, 교역장님 오늘은 좀 늦게 갑시다, 하면 벌써 진 거라구요. 그래도 '얼른 갑시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 몇 시에 갑시다' 하면 나한테 지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그 시각을 중심삼고 '내가 여기에 정성을 들여야 할 것이지만 내가 전부 다 할 수 없으니 이 분야는 그럼 조장이 대신 책임지고 하소' 하는 거예요. '나는 강의도 해야 되고, 한 몸 가지고 3역 4역을 어떻게 하겠소? 그러니 분담을 해 가지고 합시다' 하는 거예요. '정성들이는 것은 당신이 맡으소' 하고 떼어 맡기게 되면 그것을 천직으로 알고 '아! 우리 교회장님 고마우신 분, 정성들이는 데 나보다 앞선 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전통은 세워지는 것 아녜요? 그래요, 안 그래요? 이렇게 며칠만 하게 되면, 일주일 동안만 결심하면 완전히 자기의 발바닥 밑에 집어넣고도 남을 수 있습니다.

금식하자고 하면 그래 당장 하자고 해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물 먹고 하면 자기는 물 안 먹고 하는 거라구요. 일주일 동안 금식했으면, 일주일 동안 우리 교회장이 금식하는 데 있어서 뭐 어떻고 어떻고 하게 되어 있어요? 물 안 먹고 금식하는 교회장 앞에 물 먹고 금식한 조장 패들, 전도대원들이 이러고 저러고 할 수 있겠어요?

또, 전도를 하자고 하는 거예요. 하루에 백집을 끌고 다니면서 '이만 하면 됐소?´ 하면 '아이구 교회장님 그만 합시다' 하는 거예요 그러면 '아니야, 아니야, 뜻적으로 얼마나 바쁜 때인데 이래 가지고 언제 뜻을 이루겠어요?' 하는 것입니다. (웃음) 한달 이내에, 두달 이내에 이렇게 전부 다 훈련을 시켜서 꼬붕을 만들어 가지고 가라고 하면 '예 예' 하고, 오라고 하면 '예 예' 할 수 있도록 왜 못하느냐는 거예요. 듣고 보니 그렇지요?「예」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여편네들한테 전부 다 달려 가지고 이러고 이러고 하게 되어 있어요?

또, 교인들 자는 데 가 가지고 이 녀석들아 일어나라고 큰소리로 깨우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무서워 교인들은 거기에서 불평 못 하는 것입니다.

회사 출근도 세시 반에 하는 거예요. 통행금지 시간에 선생님이 청파동에서 신설동까지 가는 데 15분 걸리더라구요. 네시 싸이렌이 아무데서나 불어도 돼요. 고속으로 달리는데 순경이 어떻게 하겠어요? (웃음) 선생님이 청파동에서 세시 반에 출발해 가지고 네시 10분경에 도착하여 이불 쓰고 자는 것들을 발길로 들이 차면서 '이 자식아 일어나라'고 한다고 하면 불평하겠어요? (웃음) 그 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작전상으로 그래야 된다구요. 세시 반에 출발했기 때문에 그 전에 출발한 사람은 이러고 저러고 할 말이 있지만 그 후에 출발한 사람은 아무말도 못 하는 겁니다. 그것이 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사람은 자기 살 줄을 알아야 됩니다. 체면을 세우려면 체면이 세워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지 여자들한테 밀려나요? 한 주일 동안 정성들였으면 이제 지쳐 있다구요. 그러니 교회장은 전도대원들에게 '시간 됐소. 어서 일어나소' 해 가지고 끌고 다니는 것입니다. 전도대원들을 끌고 다니고 기동대원들을 끌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국적으로 소문 나겠어요, 안 나겠어요?' '야, 그 교회장, 그 교역장 얼굴은 저렇게 생긴 분이 우리들이 오자마자 얼마나 끌고 다니는지,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다니누만. 잠도 없이 악착같이 부려먹누만. 지독하다' (웃음) 하며 전도대원, 기동대들이 돌아설 때 욕하고 돌아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니 교육하기 쉽지 않느냐는 거예요. 지금 전국적으로 순회하는 사람들이 전부 다 면회해 가지고 교구장들을 심판하려고 계획하고 있다구요. 충청북도는 누구다, 경기도는 누구다, 벌써 보고를 받아 다 알고 있는 거예요. 순회사도 보고하지만 전도사도 보고하게 되어 있다구요. 교역장은 왜 그런 놀음을 못 하느냐 이거예요. 그렇잖아요?

전도하러 간 부락을 완전히 휘어잡으라

시집을 가면 별수없다구요. 시집을 가게 되면 시아버지 눈치를 봐야 되고, 시어머니 눈치를 봐야 되고 그 다음에 시누이 눈치, 시동생 눈치를 봐야 합니다. 이것만 잘하면 그 다음에는 내 활개 펴고 편히 자더라도 그냥 무사통과라는 거예요. 안 그래요? 시어머니가 앵앵앵 하면 시어머니 성격에 무엇을 시키고 싶다 하는 것을 알아서 미리 전부 다 해 놓는 거예요. 시어머니 일을 전부 다 대신해 주고 시어머니를 쉬게 해주면 시어머니는 입을 열어 칭찬하는 거라구요. 일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이렇게 되면 시어머니가 수고하는 며느리에 대해서 '아이구, 나도 대신 해줘야 되겠다'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시어머니는 자기의 꼬붕이 되는 거예요.

시아버지도 간단하다는 거예요. 시아버지는 여자라고는 자기 여편네하고 딸밖에 모르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만 여편네가 앵앵거리면 '난 며느리가 좋아' 하며 반대적인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또, 시누이가 앵앵하고 신경질을 부리면 돈경질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 말이 많은 시누이들이 앵앵거리며 말을 빨리 하면 반대로 말을 천천히 하는 거예요. 전부 다 반대적으로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시아버지의 연구의 대상이 되는 거라구요. 연구해 본 결과 며느리가 자기 딸보다 낫고, 자기 여편네보다 낫다고 생각되면 아이구 며느리 잘 얻었다고 선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아버지가 선전하게 되면 그의 여편네도 반대 못 하는 거라구요. 그 다음엔 아들딸 전부 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그 다음엔 시누이 작전, 시동생 작전을 하는 거예요. 그것만 해 놓게 되면 다 되는 거라구요. 그 다음엔 자기가 마음대로 판도를 틀어 가지고 작전하는 것입니다. 며느리 잘 얻었다고 자기 집안에서 선전하면 동네방네, 친척들에게 다 선전되는 거라구요.

내적 작전을 했으니, 그 다음엔 밖에 나가 가지고 일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농촌에 시집가게 되면 그 동네에서 아무개 집 며느리가 김을 잘 맨다 하는 소문이 나 있을 것입니다. 논 김도 잘 매고, 밭 김도 잘 맨다 하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을 때려잡는 거라구요. 손을 천천히 놀리지 말고 그를 이기기 위해 그보다도 더 잘해야지 하며 악착같이 땀을 흘리며 열심히 하는 거예요. 이기는 법이 별 게 없습니다. 이를 악물고 일등을 해야 되겠다고 하면 되는 거라구요. 맨 처음에는 훈련을 해야 되는 거예요.

또, 바느질도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이상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독이 오르면 못할 게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3년 이내에 전부 다 훤히 길을 닦아 놓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 집에 며느리가 들어가서 그 집을 전부 다 휘어잡고 주인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3년 계획을 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구요.

여러분이 전도하러 부락에 갔으면 3년 내에 그 부락을 완전히 휘어잡아 가지고 묵탕을 만들 수 있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하지 않아서 안 되는 거라구요. 끝까지 해봐 가지고 안 된다고 그래야지, 해보지도 않고 앉아서 타령만 하는 것은 안 통한다구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도 안 도와준다구요. 다 해야만 도와주더라는 거예요. 다 해보고 나서 포기하고 돌아 서려고 할 때 도와주더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합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 가지고 이번에 돌아가면 과거의 생활을 비판하고 우선 사람을 대하는 데 시간을 80퍼센트 이상 소모하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하루 세끼를 굶어도 말씀은 세 번 이상 하라

말을 많이 해야 됩니다. 하루종일 말을 하면 혓바닥이 이렇게 붓습니다. 그래 가지고도 말을 하다 보면 혀가 자꾸 이에 물리고 그래요. 이런것도 느껴 봐야 한다구요. 또, 입안이 부으면 입술이 자꾸 물립니다. 그래 가지고 밥을 먹으려면 깔깔해 가지고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다구요. 그것이 다 자기의 재산입니다. 그런 것을 하나님은 기억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너희들, 강의하기 싫어하지? 강의하기 싫어하는 패들 아니야? 강의하기 싫어해, 좋아해? 「좋아합니다」 뭘 좋아해? 얼마나 좋아해? 밥보다 좋아해? 밥먹는 것보다 좋아하냐구?「그럴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나쁜 때도 있다는 말 아냐?(웃음) 좋아하면 얼마나 좋아해? 밥보다 더 좋아 해야 되겠나, 밥보다 덜 좋아해야 되겠나? 「더 좋아해야 되겠습니다」 하루 세끼를 굶어도 말씀은 세번 이상 해야 된다구. 한 사람이 오더라도 강의를 해야 돼. 밥 한끼를 먹었으면 한 사람을 붙들고라도 밥값을 해야될 것 아냐? 그것도 싫어? 그러지 않으면 도둑놈이라구. 그런 녀석은 비료통이나 되라구. 쓰레기통이나 되라는 거야.

그래 하루에 세 번 이상 강의해 봤어? 세 사람 붙들고…. 여러분, 밥먹을 때 보면 아이고 맛있다, 아이고 맛있다, 아이고 맛있다 하지? 배고픈 녀석들이 밥 먹을 때 보면 복닥불이지? 그런데 이렇게 배고플 때 밥먹으러 들어왔는데 밥이 없으면 얼마나 궁해? 여러분, 식구가 없어서 궁하지? 얼마나 흉년 들었어? 그러니 배가 고팠어, 안 고팠어, 영적으로? 배가 불렀어, 고팠어? 「고팠습니다」 그러면 육적으로는 밥 맛있다고 하면서, 말씀을 통한 영적 밥은 안 먹겠어? 그저 식구들을 대하고 사람을 대할 때 밥먹을 때보다 재미가 나야 된다구.

아침에 일어나게 되면 오늘은 어디 가서 말씀을 전할까 하고, 젖먹이는 어머니가 젖먹이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걱정을 해야 합니다. 이 집으로 갈까, 저 집으로 갈까 하다 '하나님! 오늘 전도하러 가려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정 모르겠으면 점을 치는 거라구요. 손바닥에 침을 놓고 탁 쳐 가지고 제일 큰 침방울이 떨어지는 곳으로 가면 되는 거라구요. (웃음) 그게 맞는다구요. 그렇게 점친 것이 맞는다구요. 그런 일이 자꾸 벌어진다구요. 아하, 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에 가까웁구나…. 내가 점쟁이는 아니지만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에게 가깝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는 거예요.

길가에서 어느 집에 가야 할지 모를 때는 그저 볼펜을 차서 '볼펜이 왼쪽으로 가게 되면 이 집이고, 오른쪽으로 가게 되면 저 집이다' 하고 정하는 거예요. (웃음) 그렇게 해서 '땅' 하고 한 번 차 보라구요. 가운데를 찼는데 볼펜이 오른쪽으로 가게 되면 오른쪽으로 가는 거라구요. (웃음) 그게 맞는다구요. 그렇게 생활적으로 뜻을 환경에 적용시키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되어야 실감이 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우리 효진이 그 녀석이 말입니다. 국민학교 다닐 때인데 그때는 지프차를 타고 다녔어요. 언제나 차를 타고 다녔으니까 혼자서는 가는 길을 못 찾는 거예요. 중앙청이 어딘지 알게 뭐예요? 그런데 지프차가 안 오니까 집에는 가야 하겠는데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 갈 거예요? 그때 '하나님이 있지 않느냐. 모르겠으면 하나님이 있지 않느냐.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가면 될 것이다'고 생각하고 두 갈래 길에서 '하나님! 어디로 가야 됩니까' 하고 기도하고 '이쪽으로 가야 되겠다'고 생각한 대로 오다 보니 집에 왔다는 거예요. 그렇다는 거예요. 아이구, 큰일났다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보시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겠어요? 그것이 원리입니다, 원리.

해와가 타락하게 될 때 '하나님! 천사장이 이렇게 하라는데 어떻게 합니까' 하고 진심으로 물어 보았더라면 하나님이 가만 있었겠어요? 그때는 하나님이 가르쳐 줄 수 있는 거예요. 해와가 순진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게 될 때는, 하나님도 사랑하는 어린애가 그렇게 된다면 큰일나겠으니까 물어 보는 대로 얼른 대답해 주게 돼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효진이 선생님이 '효진이는 신앙적인 아이입니다' 하고 평가하는 거예요. 하나님께 기도하면 된다는 것이 뇌리에 박혔다구요.

우리 인진이도 재미있다구요. 밤에 청평에 가려면 우끼를 입어야 된다구요. 그때 '너에게 우끼 입혀 가지고 던지면 저 먼데 건너갈 수 있을 것 같애' 하니까. '건너갑니다' 하는 거예요. 밤새껏이라도 건너간다는 거예요. 여기는 무서운 곳인데 무섭지 않느냐니까 '무섭긴 뭐가 무서워요, 하나님이 있는데' 그러더라구요. 그걸 보고 '야, 애들이 이런 신앙을 가졌다니 훌륭하구나' 하고 내가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래요? 밤에 애가 멋도 모르고 그것도 혼자서 건너가자면 얼마나 고생을 하겠어요. 여기에 뭐가 있는지 아느냐고 물으니까 인진이가 하나님이 있지 않느냐고 대답했어요. 그런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은 어때요? 그렇게 해보라구요. 맞는다구요. 맞는 일이 자꾸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밤에 잘 때는 내일은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아버지여! 내일 갈 길을 아버지께 맡기오니 일어나자마자 내 생각하는 방향을 정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아침에 척 일어나면 '어디로 가야 되겠다' 하는 감이 들어온다구요. 아니나 다를까 가 보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제사장의 자리, 제물의 입장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영적 심정을 계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 생각이 자꾸 맞는다구요. '오늘은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다'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맞아요. 생각지도 않은 가운데서, 동기가 내가 아닌 데서 생각이 떠오를 때는 반드시 두고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두고 보면 계시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한 면을 여러분이 발전시켜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밥 한끼 먹고는 말씀 한번 해야지요? 알겠어요?「예」 적어도 밥 한끼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영적 밥을 먹든가 먹여 줘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이번 약속으로 지킵시다. 하루에 세 사람은 붙들고 간곡히 말씀을 전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교역장이라고 사람을 데려오라고 하지 말라구요. 데려오라고 하기 전에, 안 데려올 수 없게끔 동기를 만들어 가지고 판국을 다시 잡는 날에는, 여러분의 터전이 이제 몇 개월 이내에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때가 또 그런 때라구요. 알겠어요? 그러니 누구에게 맡기지 말라는 거라구요. 제사장이 자기의 제단을 마음대로 맡겨요? 제사장의 자리가 얼마나 귀해요?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직접 밀접한 관계에 있다면 설교 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 훈련도 필요합니다. 내가 유명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하루에 열번 이야기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장소에 따라 전부 다 내용이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준비해 가지고 하나요? 그럴 때의 마음은 완전히 제물로서의 자각을 하는 거예요. 제물의 자각…. '나'라는 것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의식이 없는 것입니다. 소유관념도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바쳐지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 자리는 엄숙한 자리라는 거예요. 제물 앞에 선 제객들은 머리를 숙여야 되는 것이 천법입니다. 알겠어요?「예」 그 제단에는 하나님이 임재 하셔서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심정적으로 오늘 이 제단 앞에 나는 정열과 모든 힘과 모든 노력을 다 바친다 하게 될 때는, 자기의 일생에 없는 성심성의를 다해 가지고 입을 열게 될 때는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제물은 심각한 자리에서 바쳐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에 없는 심각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바쳐진 이몸, 당신의 소용대로 사용하시옵소서' 하며 제물된 심정을 갖고 나서면 하나님은 언제나 같이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장소에 필요한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속죄를 받을 수 있는, 그 사람에 해당하는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벌써 아는 거라구요. 입을 열면 아는 거라구요.

그런 생활을 하게 된다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설명이 필요 없는 경지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여러분이 가는 곳이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여러분들이 정성을 들여 기도해 가지고 한 말, 자신이 감동되는 마음을 가지고 한 그 설교에 감명받은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없으면 안 된다구요. 은혜받은 사람이 세 사람이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이 같이하면 그 열 배 이상 몇 백 배 더 되는거예요. 성경에는 백배, 육십 배, 삼십 배로 한다고 나오지요? 그렇게 배가로 벌어져 나가는 거라구요. 그것이 수는 그렇다 하더라도 과학적인 것입니다. 데이터에 기록해서 틀림없는 비중으로 반드시 하나님이 역사해 나가더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과 인연이 되어 말씀을 전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얼마나 협조해 주느냐는 것이 문제예요. 심각한 자리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면 그 말씀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리고 여러분들이 언제나 주의해야 할 것은 선생님이 지금 어느 방향으로 통해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는 것이 여러분이 설교하는 데 있어서 제일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은사를 베풀 수 있는 동기가 되는 거예요. 선생님이 이 시간에 무엇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려고 하고, 상대적으로 심정적 기준을 선생님과 일치시키기 위해 내 마음을 끌어 올려서 선생님 마음을 어떻게 대신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전국의 여러분이 선생님 앞에 상대적 입장에서 움직이게 되면 천운은 거기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온 이래 최대의 기록을 내보자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주고받으면 번식이 벌어진다고 했지요?「예」 주체는 여러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직접 하나님과 통할 길이 없기 때문에 선생님이 다리를 놓아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떠한 사명을 지시하고 있는지를 알아 가지고, 언제나 그것을 중심삼고 상대적 입장에서 주고받는 자신을 확정짓게 될 때 하나님은 같이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문을 중요시하라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공문을 중요시하고 본부에서 보내는 발간물을 중요시하라는 말도 그래서 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금후의 미래상에 대해 누구보다도 예감을 느껴 가지고 그 방향에 대책적인 터전을 만들어 놓는 사람이 애국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 국가는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후에 하늘이 가야 할 길이 어떠한 길이냐 하는 것을 늘 생각하고 '저에게 하나님이 같이하셔서 그 길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선생님이 지금 뭘하는지, 앞으로는 뭘할 것인지 알고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알고 미리부터 준비하는 사람은 부모 앞에 효자가 아닐 수 없고, 나라 앞에 충신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신앙적인 체휼관을 생활적인 환경에 어떻게 관계맺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관계는 인연을 통하지 않고는 맺어지지 않습니다. 그 인연은 선생님의 인연과 여러분의 인연을 통하지 않고는 맺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의 뜻이 뭐냐? 사람을 모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나라를 건국하기 위한 국민을 모집하는 때인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창건하기 위한 새로운 군사를 모집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심각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밥 먹을 시간 됐나? 밥 먹고 또다시 모여야 되겠어요. 오늘은 신앙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이야기가 방대하게 되었구만.

자, 이제 여러분들이 돌아가면 말예요. 이제는 선생님이 걱정을 안 해도 될 만큼 하라는 것입니다. 나이 30을 넘어 40이 가까우면 이제는 믿어도 무방할 연령들이 아니예요. 안 그래요?「예」 이제부터 선생님에게 걱정 안 끼치겠다고 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틀림없이 그래요?「예」

자그만치 120명을 전도하려고 별의별 놀음을 지금까지 하지 않았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것이 1차 전도대원 작전, 그 다음에 2차 기동대 작전으로 들어가는 거라구요. 그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해야 됩니다. 안 하면 안 됩니다. 거기서 안 되는 것을 방비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기 위해서 현재 기동대 교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지금 원리연구회 5백 명 규합운동을 하고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이제부터 다시 휘발유 통을 갈아 가지고 거기에 화약을 집어넣어 가지고 불을 달아 놓아야 하겠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불쌍하게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는 안 되겠으니까, 여러분이 '이제야말로 통일교회에 들어온 이래 최대의 기록 세우겠다. 그것이 되도록 한번 실력을 발휘해 보자' 하는 결의를 갖고 돌아가 주기를 바랍니다. 알겠지요?「예」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하겠습니다」 하겠다는 사람 손드세요. 내리세요.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여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당신이 역사를 통하여 찾아오시던 나라와 세계와 천주를 수습하기 위한 중요한 책임자로 불러 모은 무리가 이 모양인 것을 생각할 때 면목없습니다. 아버지, 면목없습니다. 진정으로 면목없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심정의 세계를…. 이 땅 위에는 잘난 사람도 많고, 잘난 나라도 있지만 그 사람과 그 나라가 당신을 대하여 반기를 들고 있사옵니다. 죽고 쫓기는 무리이지만 당신을 추앙하며, 당신의 나라를 위하여, 당신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당신을 흠모하며 발버둥치다가 지친 모습으로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그 얼굴을 당신께로 향하여 울부짖고 있는 무리가 이 무리이기 때문에, 당신께서 불쌍한 입장에 서더라도 이들을 버릴 수 없는 입장인 것을 생각하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슬픔으로 이어 나오신 아버지여! 슬픈 저희들의 모습을 바라볼 때, 더더욱 슬프셨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들이 당신의 염려를 전부 다 막아 치우고, 금후의 사명을 다할 것을 아버지 앞에 맹세하였사오니, 이들의 갈 길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이들의 처자들을 중심삼은 금후의 역사를 당신이 불쌍히 보아 주셔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같이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떠나게 될 때는 아무 그림자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당신이 믿고 오셨던 걸음이 불신으로 귀결될 때는 그 누구보다도 당신이 슬픔에 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자리가 두렵고 떨리는 자리인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자신을 세워서 하늘에 빚을 지우는 내가 되었던 과거를 저희들은 무한히 슬퍼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늘에 빚을 지우는 자리에서 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까봐 마음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늘의 빚을 가려주고 하늘의 짐을 짊어질 수 있는 보람있는 아들의 모습이 되고, 보람있는 가정의 모습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면 저희들의 후손이 미래에 당산의 사랑의 보호권내에서 소망의 은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뜻을 위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길이 저희들의 갈 길인 것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나라를 걸고 밤을 새우고 세계를 걸고 몸부림치는 정상을 바라보시는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눈물지으신다는 것을 아옵니다. 저희가 나라를 찾기 위하여 앞장서는 그때만이 아버지께서 저희를 대신하여 세계를 찾아 주겠다고 앞장설 수 있다는 것 또한 아옵니다. 심각한 내용이 폭발되기 전에는 아버지의 소원성취가 금후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저희들은 아직까지 저희들이 당하여야 할 비참의 기준까지 도달하지 못하였사옵니다. 아직까지 저희들이 겪어야 할 핍박의 화살을 다 받지 못하였사옵니다.

저희가 당신의 소신과 일념을 이어받은 자격자로서 사탄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모습이 못 되었기 때문에 소망하시는 나라를 바라보면서 역경의 자리에 머물러 계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원통하고 안타까운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마음을 억제하시면서 찾아 나오고 기다려 나오신 아버지를 이제라도 동정하고, 그 마음을 이어받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이 되어 당신의 가정을 남기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제 팔도강산을 향하여 다시 출발을 하옵니다. 이제 돌아갈 때의 모습은 올 때의 모습과 달라져야 되겠고, 당신이 그리워 몸부림칠 수 있는 자식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아침이라면 아침을 그리워해야 되겠고, 낮이라면 낮을 그리워해야 되겠고, 저녁이면 저녁을 기다려야 되겠사옵니다. 그 시간이 지나 버렸거든 밤 시간에라도, 자는 시간에라도 당신을 만나고자 하는 일념으로 자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소원을 알고 당신의 밀명을 받은 사명자로서, 척후의 일로를 개척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당신이 마음속에 기억되고 당신의 생각 속에서 자랑하고 싶은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을 찾아가다가 쓰러지더라도 당신이 지켜 주시고, 더 높은 인격과 이상을 품은 당신께서 복 빌어 줄 수 있는 모습이 된다 할진대는 천하가 망하더라도 그 무리는 망하지 않을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사옵니다.

통일로 가는 길은 비참한 노정을 통하여 전통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중대한 책임을 짊어진 사람은 과연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는 아내가 있다 하더라도 마음놓고 사랑할 수 없고, 아들딸이 있다 하더라도 마음놓고 사랑할 수 없는 길을 가야 되겠기에 행여나 당신의 뜻 앞에 빚을 지고 당신의 뜻과 어긋날까 염려하는 자리에서….

땅 위에는 이들이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입니까? 이러한 무리가 있거들랑 당신이…. (이후는 녹음 되어 있지 않음)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6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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