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2년 5월 21일, 이달을 맞이하여 세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에 모인 자녀들 위에 당신의 영광이 임하시옵소서.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평화와 새로운 통일의 세계를 뜻하시는 대로 성취하시옵소서.
여기에 모인 어린 자녀들은 몸 마음을 다 바쳐 당신이 원하시는 뜻 앞에 새로운 제물로서 완전히 바쳐지기를 맹세한 무리들이오니,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받으시옵소서. 영광의 나라에 없어서는 안 될 백성이 되고 자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곳을 우러러보면서 머리를 숙이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삼천리 반도에 널려 있는 자녀들은 물론이지만, 해외에 널려 있는 수많은 어린 자녀들도 이곳을 마음의 본향으로 그리워 하고 있사오니. 눈물어린 심정으로 당신을 그리워하고 당신의 승리의 나라를 그리워하는 곳곳마다 무한하신 자비와 승리가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저희들에게 새로이 분부하여 주시옵소서. 본국에 돌아와 두번째 맞는 이 안식일이 당신 앞에 기쁨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역사적인 계획 밑에서 새로운 운동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저희들의 사명인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일체를 당신의 뜻 가운데서 시작하고 당신의 경륜 가운데서 귀결되게 하여 주실 것을 바라옵니다.
인간만 가지고는 크나큰 뜻을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아옵니다. 역사를 통해서나 시대를 통해서나 미래를 통해서나 이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당신이 여기에 개재하지 않고는 승리의 과거가 없었고 현재가 없으며 미래가 없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먼저 하늘을 위주하고 하늘의 뜻을 바라보면서, 일체를 뜻과 더불어 수습하고 일체를 뜻에 순응하고 일체의 소망을 뜻에 귀결시키는 생애를 사는 거룩한 무리들이 이 땅 위에 많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 당신의 뜻이요 소원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타락된 인간은 당신과 먼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한스러운 복귀의 길, 탕감의 길을 걸어 다시 당신의 품에 품기지 않으면 안 될 불쌍한 무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무한하신 당신의 능력과 무한하신 당신의 자비와 사랑만이 저희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불쌍한 것들을 그냥 그대로 두지 마시옵고 찾아오시어서 저희의 마음을 일깨워 주시옵고, 본성의 심정을 일깨우시어 당신을 그리워할 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거룩하심을 찬양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존귀하신 그 모습을 흠모하고 사모할 수 있게 저희의 마음을 일깨워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랑하시는 당신의 모습 앞에, 어전에 불리움받은 자로서 당신이 분부하신 말씀 앞에, 생명과 모든 것을 바쳐 당신이 원하시는 뜻 앞에 완전한 승리의 제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가지고 이 아침에 모인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언제나 부족하고 언제나 미흡하고 언제나 미완성권내에 있는 저희들을 늘 채찍질하셔서 승리의 기준까지 가게 지도하여 주시옵소서. 만약에 미급한 자리에 머물러 있거든 채찍으로 쳐서라도 그 고개를 넘을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인도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금번 세계노정을 통하여 어린 자녀들을 사방에 헤쳐 놓고 새로운 소망과 새로운 나라를 위하여 싸우게 했사오니, 그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만나기를 고대하고 만났다 헤어지는 그 곳에는 당신을 중심삼고 그리움이 연결되어, 당신을 그리워하고 당신의 뜻 혹은 말씀에 따르고 노래로 아버지 앞에 찬양하는 무리가 불쌍하고 죄악된 이 땅 위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역사적 슬픔을 품고 오시던 아버님이시여, 위안받으시옵소서.
젊은이들이 아버지 앞에 생명을 각오하고 나서는 곳곳마다, 당신의 나라와 당신의 소망의 세계가 싹터 오는 것을 희망으로 삼으시사 언제나 가는 길에 협조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드러내시어서 만민 앞에 혹은 만방에 당신의 승리를 떨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누구를 위하여 태어난 것이 아니옵니다. 누구 때문에 부름받은 자들이 아니옵니다. 오로지 아버지를 위하고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서 부름 받은 자요, 태어난 모습들이옵니다. 뜻 앞에 기쁜 승리의 날을 다짐할 수 있는, 당신이 자랑하고 역사노정에 남아질 수 있는 하늘의 용사가 되기 위하여 부름 받은 몸들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선의 노정에서 싸움의 길을 걸어왔사옵니다. 금후에도 또다시 저희들은 이 길을 달려가고자 하오니, 외롭거나 슬픈 곡절에 부딪치더라도 당신만이 저희들의 중심이요, 저희들의 표준이요, 흑암의 세계에서 광명의 등대로서 늘 빛을 비춰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진실로 바라옵니다.
아버지, 부족한 저희들의 모습을 살피시옵고, 선한 마음 앞에 일치되지 못한 죄악의 뿌리를 제거시키시옵고, 당신의 불꽃같은 능력으로 저희의 심정을 통찰하시옵고, 최후의 승리의 모습을 다시 빚어낼 수 있게끔 현현하시어서 관찰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구라파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대표하여 이번에 여기에 와 있는 22명의 당신의 자녀들과 같이하시어서 지켜 주시옵고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전국을 순방하면서 일으켜 놓은 모든 움직임이 당신 앞에 수습되고 당신의 승리의 터전 앞에 보탬이 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날이 거룩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는 죄악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일생을 아무리 선하게 살았다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최후에, 즉 임종시에 자기의 생애를 반성해 볼 때 자기가 얼마나 선하게 살았는가를 생각한다면, 선하게 산 것보다 선하게 살지 못한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일생에서 선한 일과 악한 일을 하나하나 빼낸다면 최후에 남은 것이 선이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소망이지만, 선보다는 악이 남기 쉬운 것이 우리 인생의 행로가 아니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시대의 수많은 인류를 총합해 볼 때, 개인 개인의 선과 악을 제하고 나면 선보다도 악이 남아진다고 본다면,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 아니라 악한 사람이고, 또한 이 사회는 선한 사회가 아니라 악한 사회라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노정을 두고 기나긴 인류사를 관찰해 보더라도, 개인 개인이 연결 되어서 이루어진 것이 역사인데, 그 역사노정에 있어서 참을 이어받아 가지고 참의 역사가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도리어 참보다는 악이 남아져 가지고 악의 역사가 이어 나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은 선한 세상이 아니라 악한 세상이라고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이 왜 이렇게 악하게 되었느냐? 선이 먼저 출발해서 선의 씨를 심었더라면, 심어진 대로 거두어지므로 선의 결과가 반드시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이 심어진 것이 아니라 악이 먼저 심어졌다는 것입니다. 선한 바탕 위에 악이 심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악한 바탕 위에 악이 심어졌다면 그건 악만으로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선한 바탕 위에 악이 심어졌기 때문에 선한 면과 악한 면이 뒤넘이치면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선한 바탕 위에 악이 심어졌기 때문에, 최후에 남아지는 것은 선이 아니라 악이 남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전체를 미루어 봐서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악의 지배권내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이 전체를 주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악이 주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악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악할 수밖에 없지만, 만일 선한 절대자가 계시다면 그 절대자는 어떠할 것이냐? 혹은 절대자가 있는 반면에 그 절대자를 반대하는 악한 사탄이 있다면, 그 사탄은 어떠한 존재냐?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볼 때, 하나님만은 절대적인 입장에서 선해야 될 것입니다. 그분은 처음도 선해야 되고 과정도 선해야 되고 끝도 선해야 될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분이 걸어온 과거도, 섭리를 추진시키는 현재도, 미래도 그분에게 있어서는 선과 악이 합한 모습이 아니고, 혹은 선과 악이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있어서는 선만이 남아지는 것이고 악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반대적인 사탄이 있다면 그 사탄은 어떠한 존재냐? 그에게 있어서는 선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출발부터 악한 것이요 과정도 악한 것이요 결과도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만일 사탄이 선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면, 우리 인간이 선한 길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악은 어디까지나 악한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작도 끝도 사탄은 악해야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결론을 짓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한 하나님과 그 반대적인 악한 사탄 둘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두고 내가 선을 추구하며 가게 될 때는 선하신 하나님이 같이하는 것이요, 그 반대에 서게 될 때는 악한 사탄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일생노정에 있어서 선하신 하나님을 그리워하면서 선만을 남길 수 있는 그 길을 어떻게 세워 나가느냐 하는 것이 인간이 무엇보다 희망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선하신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악한 편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선을 중심삼고 계시는 하나님을 우리 인간들이 절대적으로 믿고 그분과 하나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데서만이, 우리 인생행로가 선으로 시작되고 선의 과정을 거쳐 선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다 살고 나서 선과 악을 하나하나 제하고 났을 때, 악이 선보다 많게 되면 악한 주관권내에 귀결되는 것이고, 선이 악보다 하나라도 더 남아질 때에는 선한 주관권내에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무엇이냐? 악한 분야를 방지하고 선한 분야를 생애노정에 남기려고 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 믿고 나가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희망이 무엇이냐? 완전히 선한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에 '하나님의 온전함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했습니다. 절대적이요 선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진정코 사랑하기를 바란다면, 그 사랑의 대상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 인간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상대적인 존재로서 선한 존재로 서는 것을 최고로 바랄 것이 아니냐. 그 상대적인 존재가 악한 입장에 서 가지고 신음하고 사탄 앞에 참소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 선한 주체로서 소원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선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은 인간에 대하여 완전한 대상적인 선의 실체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태어나면서부터 그러기를 바라느냐? 물론 그럴 것입니다. 또, 태어나 가지고 일생 동안 그렇게 살기를 바랄 것이냐? 물론 그럴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랬지만, 미래에 있어서도 선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일생 동안 선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이 아니냐. 현재뿐만이 아니라 미래의 인간들을 대해서도 선하기를 바랄 것이 아니냐. 현재와 미래도 그렇다면 과거도 그랬기를 소망하셨던 하나님임에 틀림없을 것이 아니냐?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에 하나님이 선한 터전을 남기기 위해 노력한 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이후에 어떻게 되었느냐?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서 스스로 악을 제거시켜 버리고 선한 입장을 결정지어 선한 자리에 나가야할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 자체로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선의 주체되시는 하나님이 여기에 개입해 가지고 하나님과 아담 해와와 연결할 수 있는 하나의 선의 기준을 결정지을 수 있는 그 자리를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정되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그 자리는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소망기준을 중심삼고 결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또 자라서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인데, 인간이 바라는 그 행복의 최고의 중심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부모로 모실 수 있는 아들딸의 입장으로 아담 해와가 지음받았다면, 부모 앞에 아들로서 최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 자리가 아담 해와가 바라는 최고의 희망의 자리일 것입니다.
문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사랑한다면 아담 해와는 어떠한 자리에서 사랑받고 싶겠느냐? 혹은 최고로 희망하는 자리가 어떠한 자리냐?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딸로서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일 것입니다. 사랑은 어떠한 사랑이냐? 완전한 사랑입니다. 아들로서 딸로서 완전한 사랑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타락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일생 동안 완전히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 자리를 완성하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다면 아담 해와는 절대적인 하나님을 부모로 모셔 가지고 자식으로서 일생 동안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을 받았을 것이고, 완전한 사랑을 받았다면 사랑의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한 출발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출발을 해야 할 우리 인간시조가 그걸 하지 못하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완전한 사랑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 인간을 지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못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후회 혹은 슬픔의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 때문에 슬픔의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고 우리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획한 일도 절대적인 결과를 가져와야 될 것인데도 불구하고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결과를 못 가져왔고,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출발을 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타락된 인간으로 말미암아 그 출발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기필코 성사시키지 않으면 절대적인 하나님으로서의 권위와 위치를 유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러한 기준을 다시 찾기 위해서 어려움을 극복하며 나오지 않을 수 없다고 우리는 여기에서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들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한 출발을 보지 못한 것이 타락입니다.
그러면 아들로서 완전한 사랑을 받고 난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완전한 부부로서 사랑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은 태어나기를 남자로 태어났고, 해와는 태어나기를 여자로 태어났습니다. 이들이 타락했으니 말이지 타락하지 않고 완전한 사랑을 받는 자리에서 성숙해 가지고, 즉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나고 자라고 그야말로 하나님의 완숙한 사랑권 내에서 성숙했다 할진대는, 이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부부로서 완전한 사랑권내에서 출발을 보았을 것이 아니냐. 이것은 두말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그 부부는 불행했을 것이냐? 아닙니다. 그 부부야말로 절대적인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더불어 그 부부가 하나되었기 때문에,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은 상대적인 입장에 서 있는 아담 해와는 그야말로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갖고 있는 물건은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그들의 물건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기쁨은 하나님만의 기쁨이 아니라 상대적인 존재의 기쁨도 되기 때문에,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의 기쁨은 아담 해와와 기쁨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기쁨이 아담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해와의 기쁨이 되고, 아담의 기쁨이 해와의 기쁨이 되고, 해와의 기쁨이 아담의 기쁨이 되고, 아담 해와의 기쁨이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는 그야말로 통일된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이 어떤 면에 있어서라도 서로가 부족함이 없고 치우침이 없이 충만된 사랑의 면을 갖출 수 있는 자리가 완숙한 부부로서 사랑받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는 그러한 출발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타락이 가져온 결과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다음에는 부모로서 완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 부모가 자식을 낳더라도 자식으로서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부모가 완전한 사랑을 체휼했다면 자식에게도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을 체휼하지 못한 입장에서 자식을 낳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자기들이 체휼한 이하의 사랑이지 그 이상의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참된 부모로서 자식을 사랑할 수 있는 자식을 사랑해 봤느냐 하면 사랑해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서도 부모의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세상의 부모들도 생명을 잃으면서도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타락의 사랑으로 인연된 그 부모도 생명을 희생하면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볼 때, 타락하지 않고 완전한 자녀로서 완전한 부부로서 완전한 부모로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아 가지고 자식을 낳았다면 그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얼마나 강했을 것이냐? 그것은 완전한 기준이기 때문에 강하다면 최고로 강했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 사랑을 밀어제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랑 앞에 하나님도 눈물을 흘리고 그 사랑이 없으면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사랑으로 절대자도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상대적 요건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정서적인 분야를 제거시킨 행복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행복은 완전한 상대적 요건을 갖추어 가지고 주고받는 정서적인 기반을 연결시키게 되면 여기에서 사방성이 자기와 관계를 맺게 되지만, 상대적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게 될 때는 고독한 것입니다. 고독에는 만족이니 희망이니 하는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인간이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부자의 관계를 맺어 가지고 횡적으로 자녀가 되는 역사가 벌어졌다면, 그 역사는 얼마나 놀라운 역사가 되었을 것이냐? 그렇게 되었더라면 종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하나님과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연결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 종적인 사랑이 다시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횡적으로 자기 후손에게 연결되는, 즉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된 자리에서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 서 가지고 횡적으로 자녀를 사랑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 자녀에 대한 자리도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은 결국 아담 해와를 통해서 그 자녀에게 가는 것입니다.
그 자녀의 사랑은 자녀의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녀의 사랑은 부모를 통해서 인연되기 때문에 그것이 부모 앞에 돌려드리는 기반이 되었다면, 그것은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사랑을 중심삼고 이상적인 사위기대인 것입니다, 사위기대.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분에게 사람이 필요하냐?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누가 지었느냐? 하나님이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필요로 하기는 하지만 사람을 얼마든지 지을 수 있는 능력의 주체자입니다. 이걸 두고 볼 때, 하나님은 사람 그 자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질이 필요하냐? 물질도 하나님이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사람을 필요로 하느냐? 사람 자체는 필요하지 않으면서 왜 필요로 하느냐?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사람이라는 것은 사랑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다른 목적이 있어서 필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물질이 필요하겠어요? 권력이 필요하겠어요? 하나님에게는 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니만큼 그의 권한을 능가할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은 존재세계에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은 권력도 아니요 돈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슨 지식이 필요해요? 필요한 것은 지식도 아닙니다.
그러면 사람을 왜 지었느냐? 사람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지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보면 뭐 훌륭한 것이 있어요? 얼굴이 어떻게 보면 이상 야릇하게 생긴 것이 인간이라구요, 한번 보게 되면. '왜 저렇게 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그걸 보고 미칠 수 있는,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의 모습을 좋아해서 지은 것이 아니라구요.
그럼 왜 지었느냐? 자기 속에서 상대를 갖추어 가지고 작용을 하고 자극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그 무엇을 느끼기 위해서 지은 것입니다. 그 외에는 이미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사랑의 감정을 유발시킬 수 있는 대상의 실체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람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 속에는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 이상의 아름다움이 없을 정도로 다 갖고 있습니다. 자기 자체보다도 그러한 내성적인 것을 상대에게 반영시켜 여기서 반응되는 자극으로 말미암아 범위가 넓은 이러한 사랑의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서 사람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과 먼 곳에, 땅 끝과 끝에 갈라져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갈라진 것이 아닙니다.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사랑이 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갈라지면 갈라질수록 가까와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기에 거리라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에서만이 거리를 초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한한 하나님, 무한한 존재이신 하나님이 그 무한권을 통할수 있는 소성(素性)이 무엇이냐? 능력이 아닙니다. 권세라는 것도 그 한계권을 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한계권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의 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한한 세계, 영원한 세계를 관리할 수 있는 그 본질은 권세가 아니요, 무슨 지식이 아닙니다. 사랑의 힘이 아니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하나님은 대상적인 사랑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인간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어떻게 나타나느냐? 백성의 사랑으로 먼저 나타나느냐? 백성의 사랑으로 먼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구요. 형제의 사랑으로 먼저 나타나는 것도 아니라구요. 사랑이 나타나는 길을 추구해 볼 때, 사랑이 나타나는 맨 처음의 길은 하나님이 진정으로 사랑의 주체라면…. 우리 인간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부모의 사랑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절대적인 하나님이 참된 사랑의 전통을 세우는 데는 어떠한 전통부터 세워야 되느냐? 부모로서의 사랑의 전통을 먼저 세워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버지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로서 아들을 사랑하는 전통을 계승하여 참된 사랑의 출발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자식을 완전히 사랑하고 자식으로서, 즉 아들딸로서 완전한 사랑의 인연을 맺기를 바랐을 것이 아니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냐? 그것이 이루어진 후에는 부부의 사랑을 맺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그 부부가 하나님을 닮아 가지고 하나님과 같이 기뻐할 수 있는 권을 가져야 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부모의 사랑을 갖추고 자식의 사랑을 갖추고 부부의 사랑을 갖추어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그들도 자녀를 품에 품고 사랑하게 될 때, 여기서 하나의 궤도를 갖추어 가지고 횡적으로 발전할 것이 아니냐? 이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로서 완전한 사랑을 해야 됩니다. 완전한 사랑을 받는 그 아들딸이 완전한 부부로서 사랑을 이루기를 하나님도 바라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을 이룬 다음에는 부모로서 사랑을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사랑하듯이 그 인간들도 자기와 똑같은 입장에서 자식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야 이것이 종횡으로 일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여기에서 비로소 같다는 것입니다. 즉, 종과 횡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랐을 것이 아니예요?
그렇게 되었다면 세상 어디에 행복이 있겠느냐? 인간을 떠나 미래의 세계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자기가 출발한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행복을 찾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따라서 나가는…. 행복의 기준 앞에 보조를 맞추는 역사가 되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원칙의 기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미래의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그런 인간이라면 인간은 비참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타락이라는 운명권내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래서는 안 될 입장에 떨어졌기 때문에, 어느 한때에 참의 기준을 추려서 재현시켜야 인간이 비로소 본연의 소망의 기준, 행복의 기준, 이상의 기준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완전복귀란 언제 이루어지느냐? 완전복귀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끝날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끝날은 무엇이냐? 잃어버렸던 완전한 이상적인 사랑의 기준을 찾는 때입니다. 그 기준이 뿌려지고 심어져서 과정을 거쳐 결과를 이루었다면 그것은 어느 때나 언제나 하나님 앞에 대상적인 입장에 설 것인데,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일치될 수 있는 곳, 일치될 수 있는 그때를 바라보고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완성을 볼 수 있는 것이요, 하나님이 완성을 보게 될 때, 인간도 비로소 완성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타락한 인간, 떨어진 인간이지만 다시 복귀하는 완전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소망을 성취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기준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을 재현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소망을 두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 외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 기준을 갖지 못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이상적인 사랑의 근본 기준을 우리는 재현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만일에 가능하지 않다면, 인류는 비참한 세상에서 비참으로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다면, 인류는 처음에는 비참하였지만 나중에는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 났으나 그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딸이 죽은 것입니다. 죽은 아들딸을 다시 살리고자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기 때문에, 부모인 하나님은 그들을 살려 놓는 운동을 해온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역사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완전복귀, 완전복귀라는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말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에서 생명이, 생명에서 소망이…. 그 소망 가운데서 우리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사랑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할 때, 생명이 먼저가 아닙니다. 사랑에서 생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무엇 때문에 창조했느냐? 그 아들딸의 생명을 보기 위해서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그 아들딸과 더불어 사랑을 하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 바탕에서 생명이 창조된 것이지 생명을 만들어 가지고 사랑을 유발시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본래 하나님의 마음에 사랑이 싹트기 시작해서 생명이 시작하고 그 생명이 사랑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결과도 사랑으로 되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시작이 사랑이었기 때문에 끝도 사랑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빼면 우리 인간은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이냐? 자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말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둘 이상,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무엇을 위해서 태어났느냐? 사랑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다는 거예요.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대상을 백 퍼센트 위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야 사랑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사랑이 성립되는 데 있어서 '아, 내가 있어 가지고 나를 위한다' 하는 데서는 완전한 사랑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백 퍼센트 남을 위하는 자리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이예요. 알겠어요? 자기를 중심삼은 데서 사랑이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상을 완전히 위할 수 있는 자리에서 완전한 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남자 여자는 누구를 위해서 태어났느냐? 남자는 누구를 위해서 태어났느냐? 남자가 남자를 위해서 태어났어요? 남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를 위해서 태어났어요? 여기 김 전무, 몸은 뚱뚱해 가지고 말이야, 뭐 때문에 태어났어요? 여자 때문에?「예」 그렇게 태어났어요? 기분 나쁘잖아? 남자가 그렇게 태어난 것은 남자 때문이 아닙니다. 절대적으로 누구를 위해서 태어났느냐? 이렇게 내가 태어난 것은 절대적으로 누구 때문에?「여자 때문입니다」 김 전무, 정말 그래요? 얼마나 그렇게 생각해 봤어요? 이게 문제라구요. 남자는 절대적으로 여자를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인데, 이것을 모른다구요.
'남자들 가는 길에는 사랑이 있다' 자기의 사랑인 줄 알고 있다구요. 그런 것은 미친 놈이라구요.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남자가 남자 때문에 태어났다, 자기 때문에 태어났다 하는 녀석은 일생 백년 살더라도 없어지고 만다구요. 일세기도 못 간다구요. 죽으면 그만이예요. 그렇지만 '나는 여자를 위해서 태어났다' 하는 사람은 그래도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자는 누구를 위해서 태어났어요? 여자가 태어날 때 여자를 위해서 태어났어요? 누구를 위해서 태어났어요? 여기 할머니들, 누구를 위해서 태어났어요? 남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겠다는 관념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사랑이고 뭣이고 다 없습니다. 생명을 위해서 태어났다 하지만 본질적인 우리의 생명을 추구해 볼 때, 자기를 위해 태어났어요? 남을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걸 볼 때 우리 인간은 사랑을 중심삼고 출발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완전히 남을 위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태어났다는 데에서 사랑이 성립되는 것이지, 나를 위해서 태어났다는 데에서는 사랑이고 뭣이고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부면 부부끼리 서로 위하는 데에서 사랑이 성립되지, '너는 나를 위해라' 하는 데서 사랑이 성립돼요? 그것은 일시적입니다. 그것은 상대의 기분을 맞추는 사랑이지 진정한 사랑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사랑의 이상을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남을 위하는 것이 어째서 좋은 것이냐? 아버지나 어머니나 혹은 학교에서 교육을 할 때에 전부 다 '너 착한 일을 해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착한 일이냐? 나가서 남을 주먹으로 때려눕히는 것이 착한 일이예요? 남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희생하라는 것은 자기를 소모시켜라, 남에게 줘라…. 착한 사람이나 좋은 사람은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희생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사랑을 유발시킬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그렇지요?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은 나라의 사랑을 유발시킬 수 있고,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은 가정의 사랑을 유발시킬 수 있고, 동지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은 동지의 사랑을 유발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모르지만, 남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종교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고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을 달성해야 할 사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종교는 희생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종교가 자체를 중심삼고 세계를 제패하려고 한다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통일교회는 희생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몽땅 묶어서 통일교회보다 큰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라고 그럽니다. 이 나라, 이 민족에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은 희생의 마음을 가지고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게 된다면, 지금까지 역사상에 나타나지 않은 애국정신이 여기에서 현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국민을 사랑하는 새로운 전통이 여기에 세워지게 될 때, 그 전통을 세운 단체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론적입니다. 맹목적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라를 위하는 것은, 나라를 완전히 품어 가지고 그 나라로 하여금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되느냐? 세계 인류 앞에 새로운 고차적인 세계의 사랑, 애국이 아니라 박애주의적인 세계의 사랑의 전통을 새로 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만 심어 놓게 되면 만민은 그 사랑의 길을 너도나도 좋아할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에도 좋아했을 것이고 현재도 좋아하고 미래에도 좋아할 것입니다. 이것을 능가하는 시간성, 관념성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이것을 표준하고 종착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모체요 기원이기 때문에 그 사랑만이 인류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 사랑을 위주로 한 평화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통일교회 사상은 대한민국이 복귀되는 날에는 대한민국의 백성을 묶어서 세계 인류를 위해서 희생하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찾고자 하는 나라입니다.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그렇게 되면 망하느냐? 망하라 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왜 망하지 않느냐? 하나님이 미칠듯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데는 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면 사탄이 와서 치고 악당의 침범도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이 미칠듯이 좋아하는 데에 누가 침범했다가는 용서가 없는 것입니다.
악신과 선신의 투쟁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한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결국 남을 위하여 보다 큰 것을 위하여 희생하게 될 때, 희생하려는 사랑의 마음을 갖고 가는 날에는 선신이 관리하는 것이요, 그렇지 못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남을 희생시키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반대로 악신이 주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딱 갈라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것을 가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를 위해서 태어났고 너는 나를 위해서 태어났다'고 하면 그는 도깨비입니다. 낮도깨비라구요. 대한민국의 위정자들도 여당 야당하고 싸우게 되면 낮도깨비밖에 안 되는 거예요. 이러한 것을 우리가 가려 가지고 잘 정리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본래 인간이 태어나기를 남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면 어떻게 되느냐? 사랑의 전통이 설 뿐만 아니라 그는 사랑의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뭐가 돼요? 틀림없이 사랑의 중심자가 되는 것이다.
학교로 말하자면 그 학급 전체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반장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남을 위하는 입장에 선 사람이 반장이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을 위해서 살았고,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을 위해서 살고 있다면, 그는 자연히 민족적인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중심자가 되어 가지고는 무엇을 할 것이냐? 꼭대기에 올라서는 것입니다. 중심자는 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꼭대기에 올라가게 되면 자동적으로 무리를 지도할 수 있고 주관할 수 있습니다. 주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원칙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악당은 어떤 사람이냐? '너희들은 나를 위해서 있다' 하는 사람이 악당입니다. 공산당식은 말이예요, '네 것은 내 것이고 내 것도 내 것이다' 하는 것이라구요. 그것은 일시적으로는 흥합니다. 올라갔다가는 내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선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면 또 올라가는 것입니다. 내려오지 않고 또 올라가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세계 제패, 하나님까지 굴복할 수 있는, 하나님에게까지 미칠 수 있는 자리까지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까지도 바라는 자리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남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흥하는 것이요,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완전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느냐? 인간의 완전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느냐 하면,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 완전은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돈 중심삼고 완전이 있으면 좋겠어요,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이 있으면 좋겠어요? 대답해 보세요. 돈을 중심삼고 완전이 있으면 좋겠어요,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이 있으면 좋겠어요? 혹은 지식을 중심삼고 완전이 있으면 좋겠어요,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것은 물어 볼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리 타락한 인간이 무지한 두뇌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구요.
사랑을 중심삼고 출발할 수 있는 완전한 기준이 어디냐? 그것이 나입니다, 나. '나'라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본래 태어나기를 남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렇지요? 남을 위하는 자리가 어떤 자리라구요?「완전한 자리입니다」 완전한 자리입니다.
남을 위해서 살아야 된다고 하면 기분 나쁘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완전한 자리는 남을 위해서 출발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면 복귀완성, 완전복귀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남을 위해서 미친듯이 산 사람입니다. 결론이 그렇게 나오는 것이라구요.
하나님은 지금 어떻게 계시느냐?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남을 위해서 지금까지 계셔 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절대적인 기준에 도달한 상대가 없기 때문에 상대가 절대적인 기준에 도달할 때까지 수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다구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완전복귀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냐? 자기를 중심삼은 데서? 아니예요. 자기를 완전히 부정하는 자리에서입니다. 이것도 기분 나쁘지만 할 수 없다구요. 그래서 예수님 같은 양반은 참 위대하신 분이라구요. 그가 한 말을 보면 죽고자 하는 자는?「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죽는다」이렇게 얘기한 것을 볼 때 예수님이 위대하고 성경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아주 딱 들어맞는다구요.
죽고자 하는 것이 부정이요, 긍정이요?「부정입니다」 완전부정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살고」 사니까 그는 소망이 있다구요. 생명이 있으니 소망이 있지요. 살고자 하는 자는?「죽는다」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말한 대로 살았느냐? 사랑했느냐?
그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걸 볼 때 그분이 자기 마음대로 산 사람 이예요?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고 했으니 누구 뜻대로 산 사람이예요?「아버지 뜻대로요」 태어나기를 아버지를 위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게 됐다는 거예요. 그거 맞지요?
그 다음에 그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아버지여, 저들이 행하는 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원수를 위해서 복을 빌었다구요. 그게 누구를 위해서였어요? 자기를 위해서예요? 원수를 위해서였다는 거예요. 원수지만 원수가 소망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는 그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았다구요, 이러한 원칙을. 그야말로 완전히 남을 위해서, 원수를 위해서 복을 빌었으니 그는 완전히 남을 위해 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전통은 역사를 지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분인데, 하나님을 닮은 그분이 망하게 되면 천도(天導)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그러한 분인데, 그분을 닳은 아들의 모습이 땅 위에 나타나니 그의 움직임이 하나님이 바라는 소원을 이루는 행동임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의 사상은 세계를 제패했다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돈을 벌면 '아! 이건 내 돈이다' 하는데, 그게 자기 돈이예요? 자기가 돈을 벌었다 해도 자기 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 돈이 아니라구요. 그건 남의 돈이예요. 그렇지요? 대한민국의 돈이 대한민국의 돈이예요? 세계의 돈이지요. 그러면 세계의 돈의 주인은 누구예요? 미국 대통령이면 미국 대통령이 주인이 아니라구요. 어림도 없습니다.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내가 가졌으니 내 것이라구요. 내 것 가지고 또 내 것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내 것이 되었으니 주려고 해야 됩니다. 그것이 부잣집 아들의 도리라구요. 졸장부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하나님은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딸도 그렇게 생각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사랑의 등급은 어떻게 돼 있느냐? 더 큰 것을 위해서 희생할수록 사랑의 등급은 높아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보다도 가정까지도 나라를 위하여 희생시키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애국자가 되는 것이고 애국자의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애국자의 가정만 되어 가지고는 안 되는 거라구요. 또, 가정과 종족을 이끌어 가지고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게 되면 애국자뿐만 아니라 애국종족이 되는 것입니다, 애국종족.
대한민국에 애국종족이 있어요? 대한민국에 김해 김씨가 많다고 자랑하지만 자랑할 게 못 된다구요. 이 녀석들, 순 돼지 새끼같이 많으면 무얼 하느냐 이거예요. 많으면 좋긴 좋은데 애국종족이 되었느냐? 애국종족이 아니라 나라를 도둑질하려고 한다 이거예요.
나라를 세워 가지고 내 손아귀에 넣겠다는 것과 나라를 세워 가지고 세계 안에 넣겠다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내 손안에 넣으려고 하면 악이요, 이것을 세계에, 하나님 앞에 갖다 바치려고 하게 되면 선이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대한민국을 만들려고 해야지 김해 김씨의 대한민국을 만들면 쓰겠어요? 대한민국 자체에 물어 보세요. '너 김씨의 나라가 될래, 세계의 나라가 될래?' 하면 그건 물어 볼 것 없이 세계의 나라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사람 될래요. 세계에서 유명한 사람 될래요? 물어 볼 게 어디 있어요? 세계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그렇지요? 개인이 그러하듯이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도 문 아무개 통일교회 만들려고 하면 그 문 아무개는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 아무개도 통일교회를 세계적인 통일교회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구요. 그래서 여러분을 세계적인 수난길로 몰아내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라는 겁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통일교인들은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더 큰 것을 위해서 희생하는 데에는 망하지 않고 남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무리로 말미암아 완전복귀를 계획할 수 있지, 그 외의 것을 가지고는 완전복귀라는 것은 꿈도 못 꾸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사상은 나는 그대를 위해서 있고, 나는 가정을 위해서 있고, 가정은 나라를 위해서 있고, 나라는 세계를 위해서 있고, 세계는 하나님을 위해서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위해서 있느냐? 하나님이 무엇을 위해 있다니,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 있지 할지 모르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위해서 있습니다. 이래야 평화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남자는 누구를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즉 상대를 위해서. 부모는 누구를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가정은 누구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있어야 합니다.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가정만을 위하는 자리에 서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는 징조라구요. 그러므로 보다 더 큰 것을 위하는 이 고귀한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민족사상을 일원화시켜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라가 이루어지면 그 나라는 이러한 사상을 중심삼고 세계화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이고, 그 세계는 하나님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체이시고 세계는 상대이니까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있다구요. 하나님은 누구를 위해서 있느냐? 하나님은 상대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 주체와 상대는 무엇을 위해서 있느냐? 사랑을 위해서 있다구요. 여기에서 비로소 모든 것이 완성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 완성의 출발은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세계를 위해서 희생할 때 완전 완성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완전 완성의 출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보다 한 차원을 높여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게 되면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왜 사랑을 뺐어요? 앞으로 통일교회가 성경을 개정한다면 선생님은 사랑을 집어넣을 겁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사랑이다'라고 말이예요. 사랑을 집어넣게 되면 하나님도 좋아하고 예수님도 좋아할 것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사랑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갈 자가 없고 하나님도 행복할 수 없다' 이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원칙이라구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 틀렸어요, 맞았어요? 오늘 아침에 말하고자 하는 결론이 이것입니다.
기성교회 교인들이나 목사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는지 모르지만 기분 나쁠 것 없다구요. 하나님에게 물어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하나님은 묻기 전에 대답하려고 하실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세 가지는 항상 있을진대 그 중에 제일은 믿음이예요? 소망이예요? 사랑이다. 왜 사랑인지 그걸 몰랐다는 거예요. 왜 사랑이라고 강조했느냐? 그러한 전통적인 역사가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제 알았다구요. 알았지요? 알았으니 그대로 살아야 됩니다.
성경에 보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놓아 주리라' 했습니다. 타락은 했지만 이걸 알고 이대로 행하는 사람은 해방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렇게 살았던 것입니다.
보라구요. 성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 중에 자기를 위해서 산 사람이 있어요? 성인을 보게 되면 제일 약자고 제일 못난 사람입니다. 자기 잘났다고 자기를 주장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구요. 성인은 무엇을 주장했느냐 하면 신(神)을 주장했습니다. 전부 다 신의(神意)를 중심삼아 가지고 산 사람들입니다. 신의 뜻. 그래서 성인들은 전부 다 종교의 종주(宗主)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독교의 종주요, 석가모니는 불교의 종주요, 공자는 유교의 종주요, 마호메트는 회회교의 종주입니다. 그들은 전부 다 자기를 주장하던 사람들이 아니라구요. 주체 되시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알겠어요? 주체 되시는 신을 위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의 중심은 절대적인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주는 그 절대적인 하나님을 위해 있어야 한다' 하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장한 것입니다. 그것이 내면적 심정적 기준에 있어서 얼마나 넓고 깊으냐에 따라서 성인의 등위(等位)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의 예수라는 분을 볼 때, 그는 갈릴리 해변가에서 어부들을 데리고 살던, 그때에는 믿을 수 없는 사나이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독생자뿐만이 아니라 '나는 인류의 신랑이다. 참된 아들의 사랑의 전통을 세워야 되겠고, 참된 남편의 전통을 세워야 되겠다. 나는 인류의 아버지다'라고 했습니다. 다 말했다는 거예요. 이런 의미에서 참된 아들의 사랑, 참된 부부의 사랑, 참된 어버이의 사랑, 이 세 가지에 대해서 기독교만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논의했다는 것을 볼 때,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성인들이 전부 다 그렇지요?
영웅은 세상에서 추앙하지 않아요. 힘으로 세계를 내 마음대로 해보겠다 하는 영웅이 뭐냐 하면 히틀러 같은 존재라구요. 자기 마음대로 되나요? 안 된다구요. 힘이 있는 한 또 다른 플러스입니다. '완전한 절대자가 플러스인데, 야! 이 녀석아. 네가 또 다른 플러스가 될래'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발입니다. 반발되니까 멀어지지요? 멀어지니까 인간 세계에서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절대적인 그분 앞에 마이너스가 되라고 가르치는 거예요.
악은 무엇이냐? 절대자 앞에 또 다른 플러스의 입장을 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은 뭐냐? 다른 플러스가 아니라 절대적인 플러스 앞에 절대적인 마이너스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나는 아무것도 없다. 남을 위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라는 것은 자동적으로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압으로 말하면 저기압권입니다. 하나님이 고기압권이면 나는 저기압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저기압권인데 저기압권이 되었으니 기압권에서 고기압을 보고 아무리 오지 말라고 해도 오기 마련인 것입니다. 저기압이 되면 될수록 불어 닥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태풍이라구요, 태풍. 그렇게 되는 날에는 사랑의 태풍이 불어옵니다. 알겠어요? 이것을 볼 때, 종교의 가르침이 위대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종교라는 것은 마루 되는 가르침입니다. 이름도 잘 지었다구요. 내가 그 이름을 지어 주려고 했는데. 누가 그걸 지었나? 종교라는 것은 마루 되는 가르침입니다. 마루가 제일 으뜸 아니예요? 그렇지요? 종교의 가르침의 골자는 뭐냐? '죽어라 이놈아. 희생해라'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느냐? 망할 것 같지만 망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망하는 날에는 도리어 뒤집어진다구요. 태풍이 불어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절대적인 주체 앞에, 절대적인 플러스 앞에 절대적인 마이너스가 되어 하나되는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이 우주 종말시대에는 이 태풍이 불면 역사가 날아가고, 인류가 날아가고, 세계가 날아가고, 공산주의가 날아가고, 민주주의가 날아가고, 다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태풍이 불어오면 아무리 튼튼한 철탑도 날아가지요? 바람에 무슨 철탑이 날아가느냐고 생각해요? 여러분은 이걸 알야야 됩니다.
이러한 원칙에서 우주는 형성되었고 그것이 미완성이 되었기 때문에, 재차 완성을 보기 위해서는 남을 위해서 존재하는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 데서만이 승리가 완전할 수 있습니다.
타락은 무엇이냐? 자기를 완성의 기준으로 보고 자기를 주장하고 자랑한 것이 타락입니다. 자기를 주장한 것이 타락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높아진다' 이것은 자기 자랑이라구요. 그것이 타락의 동기라구요. 그런 인간이 하나님을 다시 만나려면 자기를 중심삼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주체인데 그 주체 앞에 자기는 상대적 입장에서 자리를 찾아가야 됩니다. 완전한 자리가 무엇이냐 하면 상대적 자리이기 때문에, 남을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그 자리 외에는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완전복귀의 출발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나가는 사람은 완전복귀의 과정을 가는 사람입니다. 완전복귀의 과정뿐만 아니라 완전복귀의 완성까지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 실질적인 문제로 들어와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떻게 가야 되느냐?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책임자인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대학 교수든, 선생이든,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몽땅 합쳐 가지고 죽으라고 내몰아야 됩니다. 누구를 위해서? 통일교회를 위해서 죽으라고 하게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이치에 안 맞아요. 그럼 통일교회 교인들은 누구를 위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이상(理想)의 나라를 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이상의 나라가 이 땅에 있어요? 없다구요.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이상의 나라를 위해서 통일교회 교인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기에 이의가 있어요, 없어요? 이의가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내 하나 물어 보게요.
그렇게 해서 통일교회가 망한다면 선생님의 목을 자르라구요. 망하는 것 같지만 결과는 어떻게 된다구요?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개만 넘는 날에는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돌아가던 것이 꺼꾸로 뒤집어진다는 거예요. 고기압이 될 때에는 바람이 모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기압의 경계선만 넘어서는 날에는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느냐? 대한민국만을 잘살게 하려는 생각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구하겠다는 사상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쁜 패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대한민국이 세계를 구하는 날에는 대한민국은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중심자가 된다고 그랬지요? 중심자가 되지 말라고 해도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관자가 되지 말라고 해도 주관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빠른 길이기 때문에 이 길을 취해서 나가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지혜로운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얼마만큼 지혜로운 사람이냐? 하나님만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만큼 지혜롭다고 하니까 '야, 이거 하나님만큼 지혜롭다니' 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렇다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그 길을 따라 나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끄떡없이 당당코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한테 '나를 위해서 당신이 있소?' 할 때, '그렇다' 하게 만들 수 있는 지혜를 따라가자는 것이 통일교회 패들입니다. 패라고 말하면 좀 이상스럽지만 패들입니다. 패라고 말하는 것이 실감나거든요. 많은 패들 가운데 으뜸가는 패라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완전복귀는 내 개인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밥을 먹어도 자기를 위해서 밥을 먹는다 하는 패는 완전복귀의 길을 못 가는 것입니다. 밥을 먹어도 세계를 위해서 먹자, 일을 해도 호미 자루로 땅을 파지만 세계를 위해서 판다는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무엇이든지 나라를 위해야 됩니다. 나라를 찾은 후에는 세계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는 나라를 찾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에서만이 완전복귀의 길이 열리는 것이지 그 가외에서는 그 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보는 관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도 그렇게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밥을 먹어도 오늘은 내가 무엇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이 나라를 위해서, 이 세계를 위해서 먹고 자는 것이다. 알겠어요? 그것이 여러분 앞에 본이 못 되거든 통일교회는 거꾸러지는 것입니다. 이걸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여러분에게 빚을 지려고 하는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일생 동안 빚을 지우고 살았다구요. 그것이 달라요.
여러분을 고생시키더라도, 통일교회 교인들을 깨깨 고생시키더라도 삼천만 민족을 구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거 기분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그래서 입은 옷도 벗으라 이거예요. 있는 것 다 빼앗고 고생시키는 거예요.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희생시키고 나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풍조가 이 민족에게 사상으로 심어지면 북괴가 무서워요? 김일성이 무서워요? 이놈의 자식들. '너는 너를 위해서 국민을 착취하고 너를 위해서 국가를 유린하는 입장에 있다. 그건 오래 못 갈 것이다. 그 반대의 존재가 나올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이런 놀음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돼요.
역사는 지극히 멸망하는 도상에서 새로운 것이 발전해 나오는 것입니다. 지극히 흥하는 가운데서 새로운 것이 태동되는 것입니다.
사탄 세계가 흥하게 될 때에는 선이 패하는 자리에 있는데, 흥하는 세상에서 배척받는 선한 패가 나오는 것입니다. 망해 내려가도 거기에서 또 선은 발전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기 골짜기가 아니면 절정시대에서 새로운 문화는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인류 문화세계를 보면….
공적인 기준이 퇴폐하게 될 때에는 반드시 새로운 공적인 사조가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공적인 사조가 퇴폐하는 것이 뭐냐 하면, 이 세상적인 면이 흥한다는 말입니다. 어느 문화권이든지 흥하고 나면 반드시 망하는 법입니다.
왜 그러느냐? 인륜 도덕이, 남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사상이 없어지기 때문에 내려가는 거라구요. 그리고 망하는 사람, 못사는 사람들이 돈 한푼이라도 더 긁어 모으려고 하지요? 눈이 뒤집어져 가지고 남을 밟고 자기가 올라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은 망하기 마련입니다. 거기에서 반대되는 사상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극과 극에서 새로운 선의 문명이 출발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금후에 어떻게 될 것이냐? 이런 점에서 볼 때, 모든 것이 확실해야 합니다. 사람을 쓰는 데도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말하는 투를 보면 '너의 한계선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을 압니다. 선생님이 통일교회 교인들을 쓰는 데 있어서도 자기를 중심삼고 꼬리를 틀어 돌아가는 녀석들은 안 씁니다. 써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희생시키고 자기의 전체를 잊고 공적인 면에 나가려고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발전시켜 줘야 합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관이라구요. 이것이 하나님이 보는 관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니 통일교회 교인들은 먹으나 자나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됩니다. 이 원칙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완전복귀의 길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기 바랍니다.
아버님, 당신이 찾아 나오신 소망의 터전이 세계에 있는 줄 알았는데, 오늘 저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버님의 사랑은 고귀한 사랑이며, 그 고귀한 사랑은 세계가 직선상에서 통할 수 있는 사랑이기 때문에 세계를 위하는 자리에서만 성사될 수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도 원수를 사랑하는 데에는, 자기 나라인 이스라엘이 원수가 아니라 로마나라가 원수이기 때문에, 로마나라를 사랑했습니다. 극과 극에서 사랑했다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죽으면서도 남을 위해서 죽었기 때문에 로마 자체가 그의 무릎 앞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역사적인 사실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이것이 선이 존재하는 원칙적인 기반이요, 선이 승리해 나가는 원칙적인 노정이요, 선이 결정적인 승리를 결할 수 있는 승패의 기준인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아버님, 사람이 태어날 때 자신을 위해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높고 귀한 이 기준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세상이 성립되지 못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습니다. 아버님을 모실 수 있는 자리도 이 기준이 성립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아버님이 계실 수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기준에 일치되지 않게 될 때에는 악이 관리하는 것이요, 아버님은 떠나고 악한 사탄이 임재한다는 사실을 알았사오니, 저희들은 이를 악물고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이 자리를 사수하기에 온갖 정성을 다하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아침에 완전복귀가 이러한 터전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사옵고, 사랑을 중심삼고 미치는 자리에서, 자기를 망각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모든 것을 사랑하는 자리에서 완전복귀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님께서 그러하시기 때문에,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같은 모양이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원칙이 그런 자리를 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노정을 끝까지 갈 줄 아는, 개인에서부터 세계를 복귀할 생애노정 끝까지 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의 은사와 사랑이 당신의 경륜 가운데서 길이길이 승리로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방금 협회장을 통해서 이번 기동대 편성은 우리 국내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무대를 중심삼고 여러 나라에서 이미 벌어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하나님편에서 보게 되면, 역사 이래 지금까지 완전히 승리하여 그 승리의 날을 찬양한 적이 없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날부터 수천년 동안 복귀섭리역사를 더듬어 왔지만,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두고 볼때, 하늘이 승리했다, 혹은 하늘이 영광을 차지했다고 하는 자리는 아직 까지 미도달의 과정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참된 승리, 즉 참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그 권한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 행사는 한때뿐만이 아니라 역사성을 지녀 가지고 과거도 그래야 하고 현재도 그래야 되고 미래에도 연결될 수 있는 승리로 하늘을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런 때를 아직까지 맞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노정 혹은 역사시대의 어느 한 부분에서는 승리한 적이 있지만, 그 승리도 또다시 역사과정을 거쳐 나오게 될 때는 실패의 결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절대적인 승리의 기반, 그야말로 참된 승리의 기반이 개인에게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 인류에게서, 또 지상에서 뿐만이 아니라 영계 어디서든지 통할 수 있고, 그 승리의 존재가 있는 곳, 살고 있는 곳, 혹은 행하고 있는 어떠한 분야에 있어서도 승리로 거두어질 수 있고 승리로 나타날 수 있는, 뜻에 대해 완전한 터전을 가려 잡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 것은 참된 승리의 터전을 고대하기 때문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편성한 것도 개인 승리의 터전을 외적으로 닦아 가지고 그것을 가정적으로 연결시키고, 그 다음에는 종족, 민족, 국가 기준까지 외적인 승리의 터전을 닦아 가지고 그것을 내적인 승리와 일치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야 분립된 우리 인간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귀섭리의 원칙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최후의 승리의 기준으로 세계를 바라기전에 한 나라를 중심삼고 안팎이 하나되기를 바라시면서, 이스라엘 민족 앞에 메시아를 보내셨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메시아라는 분은 개인을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혹은 민족을 위해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자그마치 악한 사탄권내의 수많은 국가 가운데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뭉쳐서 외적으로 완전히 하나된 나라에 메시아를 보내줘 가지고, 메시아와 그 외적인 터전이 완전히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의 출발을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메시아를 보낸 하나님의 소원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는 가정을 중심삼고 출발하기 전에, 민족을 중심 삼고 출발하기 전에 하늘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이 직접 주관할 수 있는 하나의 국가를 가지고 출발해야 됩니다. 그러한 나라로부터 세계로 향하여 가도록 하려는 것이 4천년 역사노정을 탕감시켜 가지고 준비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메시아를 보낸 목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가야 할 길은 민족을 넘어서 국가라는 기준을 중심삼고 세계를 향하여 횡적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예수를 보낸 섭리의 목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는 국가적인 기준을 갖지 못했습니다. 국가적 기준을 갖지 못했다는 것은 민족적인 기준도 갖지 못했다는 거라구요. 민족적 기준은 커녕 종족적 기준, 더 나아가서는 가정적 기준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 가서는 자기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 말미암아 일신에 있어서 영과 육이 갈라지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메시아로서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본연의 사명을 감당한 자리에서 간 것이 아니라 감당하지 못한 실패의 자리에서 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는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대표해 가지고 예수와 하나될 수 있는 선각자로 세운 세례 요한이 예수와 하나 못 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을 잃어버린 운명에 봉착한 연고로, 십자가를 지는 자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실패한 그 기준을 다시 연이어 놓아 가지고 재차 수습하여 이스라엘권을 편성하기 위해 열두 제자를 통해 가지고 많은 무리를 이끌어 규합했던 것이 예수의 3년 공생애노정의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따르고 있던 열두 제자들마저도 예수와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중에서 수제자라고 하는 세 제자들까지도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2차적으로 수습하려던 이스라엘권, 다시 말하면 잃어버린 유대교와 잃어버린 이스라엘 국가권을 예수로 말미암아 복귀시키려던 계획도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개인적인 이스라엘권 기반은 물론 거기에 동반하여 가정, 종족, 민족, 국가적인 기반 이'없어지게 되어 예수가 설 기반이 없어졌습니다. 주체가 주체로서 왔더라도 상대적인 기반이 없게 될 때는 주체도 없어지게 마련이라고요. 이러한 연고로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서 홀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운명길을 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늘이 준비했던 개인적 승리는 예수 앞에 외적으로도 나타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가정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닦아진 외적인 터전도 예수 앞에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준비한 것은 전부 다 쓰러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는 예수 자신까지도 땅에 기반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영적인 기반만이라도 남겨야 되겠다는 입장에서 사탄과 대결했습니다. 사탄과 대결하는 데에는 개인적 사탄과 대결하고, 가정적 사탄과 대결하고,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사탄과 대결하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적 사탄이 가담한 자리에서 대결했습니다. 그런 과정에 몰려서 돌아간 것이 십자가의 노정입니다. 예수를 반대하는 데 있어서는 이스라엘 나라 전체가 동원되었고, 로마제국까지도 가담해 가지고 반대했던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는 그 순간은 어떤 순간이었느냐 하면, 세계를 대표한 개인적 사탄, 세계를 대표한 가정적 사탄, 세계를 대표한 종족적 사탄, 세계를 대표한 민족적 사탄, 세계를 대표한 국가적 사탄, 더 나아가 서는 세계를 지배하는 전체 사탄이 예수님 한 분을 놓고 총공격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마당에서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입장에서 가지고 공격받는 것을 밀어낼 수 있는 터전이 예수에게는 없었던 것입니다. 하늘이 준비한 외적인 이스라엘권, 즉 개인적 기반, 가정적 기반, 국가적 기반이 있으면 밀어낼 수 있는 입장이 될는지 모르지만, 이런 기반이 완전히 없어졌기 때문에 자기 일신으로는 도저히 막아낼래야 막아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영계를 중심삼고…. 구약시대부터 그때까지 하늘의 공을 세우고 간 영인체, 즉 천사세계권에 해당하는 선조들 외에는 예수의 편이 될 수 있는 무리가 없게 되어 있었 다는 것입니다.
지상세계가 사탄세계로부터 공격을 받는데 방어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기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기반이 있어야 할 텐데 없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예수는 영적 기반, 지금까지 4천년 동안 하늘을 위하여 정성들이다 갔던 선조들, 다시 말하면, 영계에 가 있는 구약시대의 영인들과 하나될 수 있는 영적 기반 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그 영적 기반을 남길 수 있는 터전을 추구하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래서 육적인 기반은 잃어버리고 영적인 기반만을 남기고 간 길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영적 기반은 있다는 거라구요, 영적 기반.
지상 이스라엘권을 대신해서 영적 이스라엘권, 다시 말해서 예수가 나타나기 전까지 하늘 앞에 충성을 하고 간 수많은 영인들은 영적인 세계에 가 있지만 예수를 메시아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를 메시아로 알고 개인적 혹은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으로 협조하려던, 이스라엘 선민권에 있던 사람들은 영계에 가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협조할 수 있는 기반만이 예수편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기반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하늘이 협조할 수 있는 길은 그 기반을 중심삼은 길밖에 없기 때문에, 육적 세계의 것은 전부 던져 버리고 영적 세계의 길을 남기기 위하여, 영적 세계를 계승시키기 위하여,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권을 중심삼고 구약시대에서부터 신약시대를 거쳐 영적인 신약시대를 발전시키고 영적인 성약시대까지 연결시키는 영적인 세계의 발전형을 남기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간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영적인 십자가의 길을 통해 가지고 사명을 하여 전세계의 기독교를, 혹은 기독교 문화권내에 민주세계를 창건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적인 것입니다. 영적 신약시대의 종말까지 끌고 와가지고 형성한 것이 민주세계권, 즉 민주세계와 기독교를 중심삼은 현재의 우익권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는 육적인 기반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 당시에는 국가적 기준에서 이루려 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세계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국가에서부터 세계로 출발하는 그 기준이 본래 메시아가 갈 수있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끝날에는 실패한 것을 기필코 복귀해 가지고 승리의 터전을 마련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세계적 승리권을 연결시킬 수 있는 터전이 생겨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와 마찬가지의 특정한 민족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예수를 믿는 나라가 아니어도 된다는 겁니다. 그런 어떤 특정한 민족이 나와 가지고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하지 못했던 것을 새로이 해야 됩니다. 새로운 기독교가 그 민족을 중심한 나라를 중심삼고 사명을 충당할 수 있는 수난의 노정을 거쳐야 됩니다. 끝날에는 이 특정한 나라가 등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특정한 그 나라를 통해서 1차 이스라엘권의 실패를 다시 수습하기 위한 지상섭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나라가 나와야 됩니다.
그 나라가 어떤 나라냐? 오늘날 우리 원리에서 지적했듯이 한국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기독교는 짧은 역사시대에 기독교 문화권을 가지고 국가를 움직일 수 있는 기반까지 형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민족을 중심삼고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것을 다시 수습할 수 있게끔 그런 터전을 갖춰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필연적인 운명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영적인 기준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기반을 갖추었지만, 육적인 기준에 있어서는 개인적인 기반은 물론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인 기반이 아직까지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 2차적인 면에 연결시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민족을 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민족이 한국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의 기독교는 어떠한 기독교가 되어야 하느냐?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하나되어야만 메시아를 모실 수 있었던 거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는 그 택한 나라와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나라의 주권을 중심삼고 오시는 메시아와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야 할 한국이라면, 한국이 해방 이후에 어떠했느냐? 한국 자체로 보면 가인 아벨과 같은 입장에 서 있지 않았다는 거예요. 해방 직후 자유당을 편성할 때, 누가 주동적인 역할을 했느냐 하면 기독교 입니다. 자유당 정권의 내각을 누가 움직여 나갔느냐 하면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기독교인 시대였다는 거예요. 그때에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단결해 가지고 나라를 형성한 것입니다.
만일 해방 직후에 기독교가 재림이상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었다면, 거기에서부터 종적인 입장에서의 가인 아벨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횡적인 입장에서 하나되어 가지고 종적인 예수와 하나됨으로써 가인과 아벨이 일치되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인데, 해방 직후 에는 나라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나라를 대표하여 선두에 선 사람이 누구였느냐 하면 기독교 교인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만 하나 되었으면 횡적 관계에서 가인 아벨이 일치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영적입니다. 영적이지만 여기에서 주권을 세웠더라면, 영적 기반을 중심삼고 실체를 찾은 예수시대에 국가적인 승리의 터전을 연결시켰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유대교가 하나되면 유대교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나라가 자동적으로 수습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재림이상을 중심삼고 하나만 되게 되면 주권국가는 자동적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는 출발 당시부터 반대 받아 왔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시간이 없어서 세밀한 얘기를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반대를 받았습니다. 기독교회와 통일교회는 하나되는 것이 본래의 사명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되지 못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통일교회는 기독교회의 반대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기독교가 주권은 형성 했지만 그 나라는 사탄에게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반대를 받는데 그것도 거국적인 반대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던 것과 마찬가지로 거국적인 반대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반대를 받아 가지고 십자가로 넘어갔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반대를 받는 날에는 십자가에서부터 받아야 합니다. 죽을 자리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온 국민과 온 교회가 단결해서 반대를 하고 죽이려고 하는 자리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쫓김을 받고 죽임을 당하면서 실패를 거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반대 받는 자리에서도 제 2차적으로 하류계급을 통하여 수습하는 역사를 한 거와 마찬가지로, 사탄 주관권의 맨 밑창에 가서 다시 복귀역사를 한 거와 마찬가지로, 반대받는 통일교회는 사탄세계에 찾아 들어가 사탄세계의 맨 아래에서부터 길을 닦아 가지고 올라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이 이북에 가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거긴 사탄세계라구요.
잃어버리게 되면 반드시 사탄세계에 가서 찾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제일 어려운 데에 가서 찾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감옥에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한 나라의 주권을 중심삼고 세계를 향하여 종횡으로 전진해야 할 통일교회의 운명은 사탄세계에서 비참한 운명을 가려 가지고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구약 시대, 신약시대에 살다 간 영인들이 전부 다 기반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영인들이 영적인 기반이 돼 가지고 예수님을 영적으로 협조해 준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선생님에게 있어서도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살다 간 수많은 영인들이 배후에서 협조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계를 대표한 이스라엘 민족권이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로마까지 총동원해 가지고 예수를 공격한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회의 운명도 재차 육적인 면에 있어서 예수가 실패하였던 그 기준을 복귀해야할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사탄 앞에 넘겨 준 자리에 서는 것과 같은 공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유대교권을 다시 편성하려 했던 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회는 영적인 것만이 아니라 영육을 대표한 기독교권을 다시 이 땅 위에 형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의 출발입니다. 이렇게 되면 외적으로 전부 다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핍박받는 과정에 있어서 예수 때에는 그를 따르던 수많은 군중과 열두 제자들이 전부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갔지만, 우리는 반대를 받더라도 철석같이 하나로 뭉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로 뭉치는, 그때와는 반대적인 현상을 통해 가지고 우리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예수는 영적인 기반에 있어서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협조기반이 있었지만, 육적인 기반에 있어서는 한 사람도 발판이 없는 자리에서 몰려갔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는 세계적인 영적 협조기반 밑에서 육적인 협조기반으로서 새로운 한 사람, 새로운 세 사람, 새로운 열두 사람, 그뿐만 아니라 가정과 종족을 중심삼고 단결된 터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기에서 육적 세계의 복귀권을 마련해 가지고 반대한 기독교권을 탕감해 나오는 역사가 지금까지의 통일교회 역사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예수를 반대하던 것을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복귀해 가지고 유대교를 재차 편성하여 실체적으로 탕감 복귀하여 놓은 형과 같은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이 영적인 세계를 중심삼고 개인적,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책임을 결정적인 자리에서 승리한 후에는 육적인 면에서 개인적 기준, 가정적 기준, 종족적 기준, 민족적 기준, 국가적 기준까지 넘어서야 합니다. 이것을 넘어서기 전에는 예수가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새로운 세계의 출발을 보려 하던 뜻을, 이루지 못한 그 자리를 탕감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것이 탕감되는 날에는 국가기준을 중심삼고…. 예수를 중심삼고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완전히 하나된 것이 로마 제국의 주권과 로마 백성이 하나된 것 이상 되어야 하나님이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사탄세계는 타락한 천사장의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천사장의 자리입니다. 복귀된 메시아는 어떤 자리에 있느냐? 복귀된 아담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타락한 종의 자리 이하의 나라를 가지고 주관한다고 하면 주인의 아들로서 위신이 서지 않는 것입니다. 종 앞에 주인의 권한을 가지고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보다 높으신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딸, 타락하지 아니한 본연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아담 해와도 종인 천사장보다 더 높은 자리잖아요? 본연의 원칙적인 기준이 그러하기 때문에 높은 자리에 서지 않고는 아담이 행사를 할수 없는 것이요. 하나님이 행사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느 기준이냐? 국가라는 기준입니다. 국가가 나오기 전까지는 올라가야 합니다. 개인에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이렇게 올라가는 것입니다.
만일 그 국가 기준에 있어서 주권자가 한 사람이라도 사탄편에 서게 되는 날에는 아무리 민족이 잘 믿는다 하더라도 모가지를 자르는 것입니다. 민족도 모가지를 자를 수 있고, 종족도 모가지를 자를 수 있고, 가정도 모가지를 자를 수 있고, 개인도 모가지를 자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랬다는 거라구요. 이 국가가 나을 때까지는 거꾸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수직으로 반대로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국가를 형성해야만 합니다. 사탄국가가 제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사탄이 제일 자랑할 수 있는 나라는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사탄이 사랑하는 그 한 나라보다도 위에 설 수 있는, 사탄 나라보다도 높은 자리에 설수 있는 하늘의 주권국가가 나오는 날에는, 하나님은 사탄보다 낫게 되고 사탄세계보다 나은 아담 해와의 주권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 기준이 지구상에 형성되는 날에는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이기 때문에 능력을 행사하실 수 있고 악을 처단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국가 위에 서 가지고 사탄국가를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국가를 형성시키기 위해 4천년 동안 이스라엘 나라를 편성한 것이요. 유대교를 만든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기에 메시아를 보내 가지고 그들과 메시아와 하나되어 로마제국까지도 능가하여 세계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평등화 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통일된 지상천국을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냈던 본의(本意)의 목적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만일에 그러한 나라가 형성됐다면, 악한 나라를 대해 하나님이 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형성되면 지금까지 수세에 있던 하나님이 공세를 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로소 하나님께서 능력 행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악은 악으로 처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도 없이 악을 처단할 수 있겠어요? 재판을 할 수 있어요?여러분은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4천년 동안 그렇게 수난의 노정을 거쳐오면서도 참아 나온 것은 메시아를 보내서 하나의 나라를 세워 가지고 사탄세계의 대표적인 국가, 즉 로마 이상으로 하나된 민족과 국가 주권을 형성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비록 작은 이스라엘 나라이지만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악한 사탄세계인 로마를 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럴 수 있느냐는 거예요. 그렇지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무능한 하나님으로 계시느냐? 이러한 기준이 지상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 자기를 숭배하고 자기를 신망하는 수많은 종교인들을 희생시켜 나온 원인은 이런 나라 하나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원인입니다.
4천년 동안 고이 준비해 가지고 하나님편에 모인 종족 민족을 편성해 가지고 국가를 형성하려던 것이 이스라엘 나라요 유대교였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이 하나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4천년의 희망의 터전이 완전히 전복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것을 탕감복귀하지 않고는, 지상에 승리한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지 않고는, 하늘편을 중심삼고 완전 승리한 민족을 바라볼 수 없는 것이요. 완전 승리한 종족이 나올 수 없는 것이요. 완전 승리한 가정을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종교인들에게 있어서 그 종교인들이 자기가 의지할 수 있는 나라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없다는 거라구요. 그 나라가 있어요? 여러분, 이것은 참으로 중대한 내용 입니다. 나라가 있어요? 뭘하러 여기에 왔어요? 자, 여러분이 이제부터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나라예요. 나라! 나라!
나라라는 문제에 대해서 (판서하심) 생각해 볼 때, 내가 살 나라가 대한민국이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면 문선생이 지금 살아야 할 나라가 대한민국이예요? 만일 그렇다면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핍박받을 리가 없다구요. 내가 인도할 교회가 기성교회예요?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까지 반대받을 리가 없다는 거예요? 반대해서는 안 될 입장에 있는 것들이 반대를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시대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죽임으로 말미암아 섭리가 2천년 연장된 것을 2천년 동안 탕감했다가는 뜻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2천년을 20년에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20년, 알겠어요? 20년에 탕감하자는 겁니다. 그것이 1960년도부터 1981년까지 21년 기간입니다. 알겠어요? 「예」 2천년 역사를 이기간에 재현시켜 가지고 탕감하지 않고는 잃어버린 제1차 이스라엘을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1차 7년노정, 2차7년노정, 3차 7년 노정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1차 7년노정은 무엇이냐? 부모의 자리를 못 잡고 쫓겨났던 자리, 다시 말해서 사탄의 침범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서 있는 이 자리를 완전히 정비해 가지고 승리해 나와야 되는 기간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가정을 중심삼고, 부모가 되었으니 아들의 가정이 완전히 해방되어 나와야 하는데, 그 기간이 2차 7년노정입니다.
그러면, 그 해방의 한계점이 어디냐? 어딜까? 세계예요? 어디 같아요? 나라입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나라로부터 핍박을 받지 않아야 된다 그 말이라구요. 이스라엘 민족이 환영하고 유대교가 환영해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녜요? 그렇기 때문에 2차 7년노정에 있어서 반대하던 이스라엘 나라가 반대하지 않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다시 말해서 유대교는 예수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 말이지요? 재림시대에 있어서 기성교회는 통일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라는 거예요.
타락했기 때문에 개인을 복귀하는 데는 개인적인 가인 아벨, 가정을 복귀하는 데는 가정적인 가인 아벨, 종족을 복귀하는 데는 종족적인 가인 아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아벨이라면 기성교회는 아벨 앞에 순종하는 가인이 되어야만 하나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이때는 어느 때냐? 종족적 기반을 중심삼은 유대교와 예수교가 하나되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통일교회와 하나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를 중심삼고 유대교가 하나되는 날에는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통일교회와 하나되는 날에는 대한민국은 복귀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둘로 나누어진 것은 통일교회를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남한은 복귀될 것입니다. 남한만 복귀되어 가지고 연결되는 날에는 세계 기독교권은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속하게 된다면 공산주의는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공산주의와 이 자유세계의 기독교를 연결시키고, 외적인 자유세계는 세계적 이스라엘 나라와 마찬가지 입장 이고 기독교는 세계적 유대교와 마찬가지 입장이기 때문에, 한 나라에서 이 기준을 중심삼고 기독교만 연결되게 되면 자연적으로 세계는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전세계 기독교는 땅에 떨어질대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라가는 것만큼 떨어져 내려가는 거예요. 기독교는 떨어져 내려가고 우리는 올라가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을 중심 삼고 보게 될 때에 통일교회가 앞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서적이요 하나님 뜻 가운데서 그래야만 되겠다는 것을 전세계가 알게 될 때에는 한꺼번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섭리적인 터전을 넓히기 위해서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초교파운동이니 무슨 종교운동이니 하는 것을 7년 전부터 계획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려가는 그들 앞에 그냥 망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그들이 망하면 유대교가 없는 자리에 메시아가 오시는 것과 마찬가지 입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3년 기간에 있어서 그 종족적인 가정들을 하나로 만들어 가지고 유대교를 품지 못한 한을 풀어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한을 못 푼 것이 누구 때문이냐? 여자 때문입니다. 신부가 없었다구요. 그렇지요? 개인적인 신부, 가정적인 신부, 종족적인 신부, 이러한 한을 풀어 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재차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통일교회에서 개인적인, 가정적인, 종족적인 한을 풀어 드리는 여자들의 사명을 해야 됩니다. 이것이 3년간 천 이백 명을 동원한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천 이백 명이 전도를 나갈 때 선생님이 명령한 것이 무엇이냐? '여러분이 전도하러 가는 것은 안 믿는 사람을 위해 가는 것이 아니다. 기성 교회를 위해서 전도하러 가는 것이다.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찾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3년 동안 정성을 들여라, 목사를 붙들고 정성들이고, 장로를 붙들고 정성들이고, 집사를 붙들고 정성들여 그들이 우리를 본받게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통일교회의 원리 가운데 재림론 하나는 확실 하지 않지만 그 가외의 것은 전부다 좋다고만 하게 되면 꼭대기에서부터 전부 다 눌러 가지고 통일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상하에서 작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자, 지금 때가 어떤 때냐 하면 바로 이러한 때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기성교회는 이스라엘 나라에 있어서 유대교와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그 방향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민주세계권과 기독교권이 자연히 연결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만 하나되는 날에는 공산세계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 우리는 어떤 자리에 와 있느냐? 유대교가 예수를 반대하고 죽음의 자리에까지 몰아냈지만 예수는 죽지 않고 다시 기반을 닦고, 반대하던 유대교가 몰림당할 수 있는 자리에 섰더라면…. 그 자리는 예수님이 얼마나 고대하던 자리였던가! 그 자리를 통일교회는 지금 갖추고 나선 것입니다. 지금이 그때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 미국에 가 보면 알겠지만 아직까지 유대교가 어디든지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가 보면 기독교인은 17퍼센트밖에 안 됩니다. 그 외에는 전부 다 유대교인입니다. 기독교인은 20퍼센트도 못 된다구요. 그러면서 지금까지도 예수를 반역자로 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단자다. 가짜 메시아다' 이렇게 보고 있다구요.
거기에 반해서 오늘날 통일교회를 두고 보면 20년 내에, 우리 통일교 회는 20년도 못 됐다구요. 원칙적으로 보면 사실 14년도 못 됐어요. 12년 내에 기성교회 목사들이, 소위 제사장들이 천 명 이상이나 통일원리 공청회에 와서 원리를 공부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래서 머리가 있고 지성이 있는 사람은 통일교회를 반대할 수 없다고 하고 있으며, 또 그렇게 공인받을 수 있는 환경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는 거예요. 지금이 그런 때라는 거라구요. 쫓김을 받던 예수가 이스라엘의 내적 중심인 유대교 앞에 몰려가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가 예수를 따라갈 수 있는 형(型)과 같은 기준이 이루어지는 때, 그 시대를 재탕감하는 때가 바로 이때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 지금 정부도 갈 데가 없어요. 또 기성교회도 갈 데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3년 동안만 단결해 가지고 냅다 미는 날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예수를 몰아내던 유대교의 기준을 넘어갈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어떻게 생각해요? 넘어가는 날에는 나라, 이 대한민국은 살 길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로 보는 관입니다.
여러분, 선생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 축복가정은 편성된 종족인 거예요. 이 축복가정들이 완전히 하나돼 가지고 14년 후에 편성한 민족 기준이 가인 아벨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기준만 되면 한국에는 새로운 희망이 동트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적인 관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차제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기성교회를 복귀해야 됩니다. 그와 동시에 이 민족 앞에 새로운 갈 길을 모색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북괴의 남침을 두려워하는 차제에 있어서 '공산주의가 문제가 아니다. 저것을 담판지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길이다' 하는 사실을 보여 줘야 합니다. 이것이 현재의 통일교회요. 2차 7년노정이 2년 반 남은 현재의 우리들이 해야 할 각오와 사명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만일 여기서 하나되는 날에는 대한민국은 살 길이 열립니다. 보라구요. 남한이 지금 위기일발의 입장에 서 있지만 완전히 통일사상으로 무장했다고 한다면, 북괴가 문제가 아니라구요. 북괴가 전방에 아무리 무장을 해 놓았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아니라구요. 그들이 땅굴을 판다면 우리는 반석에다 굴을 파야 되겠다구요. 그렇잖아요? 사탄보다 못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들이 김일성을 중심삼고 단결한 그 이상으로 우리 남한 국민은 단결해야 됩니다. 공산당 이상으로 단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국가의 어떤 정당이면 그 정당 이상으로 단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권자를 중심삼고 국민이 단결하는 데 있어서 생명의 위험을 받아 가지고 단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환경에서, 자각된 환경에서 그 이상 단결할 수 있는 국가체제, 국민정신이 형성되는 날에는 북괴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탄세계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하늘의 섭리는 지금까지 수십만년의 지루한 역사를 거쳐왔다는 것을 여러 분은 알아야 됩니다. 복귀역사는 6천년만이 아니라구요. 인간의 역사는 80만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루한 수십만년 동안 하늘이 참고 참고 바라고 나온 그 기준만 나타나는 날에는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결처분한다는 거예요. 즉결처분, 그때부터는 공세라는 것입니다. 악한 것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야 될 것 아녜요?
하나님과 아들이 완전히 승리하여 완성된 자리에 섰으면 종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습니다. '야, 이놈아! 굴복해' 하면 '예' 하게 되어 있다구요. 안 그러면 쫓아내 버릴 수밖에 없어요. 그게 원리의 관입니다.
그러면 왜 그 놀음을 못 하느냐? 사탄이 이미 높은 자리에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 이상의 자리를 가져야 원리의 기준에 설 수 있는 하나님인데, 원리적 기준으로 보면 하나님이 사탄보다 높은 자리에 서야 될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사탄보다 낮은 자리에서 출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따로따로 갈라놓은 것입니다. 이 세계는 전부 다 부정하는 거라구요. 따로 갈라서 개인을 만들고 가정을 만들고 종족을 만들고 국가를 만들어서, 사탄세계에 몇백 개의 국가가 있더라도 사탄이 자랑할 수 있는 나라는 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 나라보다도 위에 설 수 있는 하나의 나라만 세우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자랑하는 그 나라는 깨져 나갑니다. 이것이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지금 까지 바라던 소망의 기준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나라 없는 백성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세계 도처에서 피를 흘렸던 것입니다. 피를 흘려도 호소할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호소해도 하나님은 어찌할 수가 없다구요. 사탄 이하의 자리에 들어가 있는 아들딸을 도와줘 가지고 성공해 봤자 하나님의 위신이 서지 않습니다. 당당한 권위의 자리에서, 종이 모시고 부러워하는 자리에서 아들과 어버이가 만나고 어려운 것을 도와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사탄의 수하에나 사탄보다 낮은 자리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세계에서 사탄세계보다 위에 설 수 있는 국가, 민족, 그 민족 가운데 살고 있는 종족, 가정, 개인을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타락한 세상에서 역사해 온 하늘의 제일의 소망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라가 없으면 국적이 없는 것입니다. 나라가 없으면 입적할 수 있는 터전이 없는 거라구요. 우리는 민족 편성을 해서 새로운 입적을 해야 됩니다. 이 지상에 하늘나라를 편성해서 그 국적을 가지고, 애국애족하는 참되고 선한 부모의 혈통을 이어받은 승리적 아들딸로서 자기의 족속 혹은 가족을 거느리고 살다 가야 천상세계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리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언제 개인적으로 참된 승리를 해보았느냐? 해보았어요? 아들까지, 예수까지 보내 가지고도 개인적인 참된 승리를 해보지 못하고 바랐던 그 기준마저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소원은 개인적인 승리가 아닙니다. 국가적인 승리의 기준에서 떨어져 가지고 국민적 승리를 해도 서러운 일인데, 종족적인 승리를 해도 더 서러운데, 가정적인 승리를 해도 더 서러운데, 개인적인 승리마저도 잃어버리고 영적인 승리밖에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기가 막힌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된 승리의 터전이 어디에 있었느냐? 이 지상에서는 없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개인적 참된 승리를, 가정적 참된 승리를, 종족적 참된 승리를, 국가적 참된 승리를 다시 형성하고 싶은 소원을 아니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해야 된다는 겁니다. 재림해야 된다는 거예요.
재림주님은 어떤 분이냐? (판서하심) 재림주님은 이러한 참된 승리를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이룰 수 있는 분이라야 됩니다. 사탄세계와 비교해 볼 때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항상 사탄세계보다 높아야 됩니다. 낮아서는 안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심) 사탄편이라면 하늘편은 이것보다 높아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높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오늘날에는 이것이 직선상에서 개인도 사탄보다 나아야 되고, 가정도 사탄보다 나아야 되며, 종족도 사탄보다 나아야 되고, 민족도 사탄보다 나아야 되고 국가도 사탄보다 나아야 됩니다. 이와 같이 전부 다 사탄보다 높아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참된 개인적 승리가 없어 가지고 참된 가정의 승리적 출발이 나올 수 있어요? 안 나오지요?
아예, 국가에 있어서 대번에 이 기준을 중심삼고 여기서 내려가면 이것은 걸리고 맙니다. (판서하신 것을 지적하심) 이것은 이래 가지고 이렇게 된 거예요. 그렇지요? 개인의 중심이자 국가의 중심이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예」 만일에 이러한 터전에서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예수가 개인적으로 승리했다면 전체가 하나되고 전체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가정적 개인에게 참된 승리의 기반이 세워지게 되면 전체 가정의 승리적 기반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전체 종족의 승리적 기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었던 것이 깨어졌으니 다시 이 놀음을 해야 된다. 복귀해야 된다는 거예요. 재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놀음을 통일교회는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적으로 참된 승리의 기반을 닦았느냐? 여러분 닦았어요? 통일교회 교인들 닦았어요? 사탄세계에 있어서 영적인 승리의 권한을 기반으로 하여 개인적 승리의 기반을 세우려 할 때, 사탄세계의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가 전부 다 동원해서 공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밀려 나면 승리할 수 있어요? 안 되는 거라구요. 전세계적인 사탄을 대해 가지고 밀리면 승리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승리하려면 반대받는 자리에 서서 저끄러지지 않고 남아져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그런 반대를 받는 겁니다. 국가 전체가 동원되고 교회 전체가 동원되고 국민학교 학생들까지, 심지어 여든 살 먹은 늙은이까지도 동원되어서 '통일교회 나쁘다. 저 놈의 교회 없어져야 된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세계에서 제일 좋다는 것이 악한 것이예요. 선한 것이예요? 「악한 것입니다」 악한 것이라는 겁니다. 악한 세계에서 제일 나쁘다는 것이? 「선한 것입니다」 반대라구요. 여기서 선한 세계의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종교는 악한 세계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입니다. 세계도 부정하고, 나라도 부정하고, 민족도 부정하고, 가정도 부정 하고, 개인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사탄의 공세를 받아 가지고 꺾여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예」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밀려났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밀어내야 된다구요. 그리고 사탄세계의 어떠한 가정보다도 나은 가정을 이루어야 된다구요. 신랑 신부의 목적을 달성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개인의 승리와 더불어 그것이 완전히 기반을 닦으려면 부부를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부부를 이루어 가지고 죽지 않고 아들딸만 낳으면, 아버지는 죽더라도 아들딸만 잡아죽이지 않으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지요? 그렇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권과 유대권을 복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상적인 신랑 신부 기준이 사탄세계의 모든 기준을 능가할 수 있는 전통적 승리의 기준에서 역사적으로 사탄의 참소권을 벗어나고, 시대적으로 사탄의 참소권을 벗어나고, 미래에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고, 하늘이 소망을 둘 수 있는 그런 가정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간단하지가 않다는 거라구요. 간단할 것 같으면, 요즈음과 같이 처녀 총각들이 약혼한다고 해 가지고 그저 목사한테 찾아가서 주례해 달라고 하면 되는 것과 같게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는 거예요. 역사적으로 사탄의 참소를 벗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시대적으로 사탄한테서 벗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과정을 거쳐서 온 어떠한 과거보다도 나은 가정이 되어야 하고, 현재보다도 나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낫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그뿐만 아니라 미래의 어떠한 가정보다도 더나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이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 이하의 가정이 된다면 사탄세계 앞에 자랑할 가정이 못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예」
개인적으로 참된 승리의 터전을 닦고 가정적으로 참된 승리의 터전을 닦아 가정이 승리하게 된다면, 그 다음에는 그것을 자꾸 번식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놀음이 바로 통일교회의 축복이라구요. 알겠어요? 그러니 자꾸 축복을 해주고 해주고 해주고 해주고, 그들이 자식을 자꾸 낳고 낳고 낳고 낳고 하면 그 수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번식시켜 지금 우리 통일교회는 어떤 기준까지 만들었느냐 하면,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적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세계적으로 10개 국에 벌여 놓았다는 것입니다. 10개 국에, 어느 한 나라가 망한다고 해서 통일 교회가 없어지겠어요? 「아닙니다」 모가지를 자르더라도 10개국이 전부 공동보조를 맞추어 자르지 않는 한, 통일교회는 남아진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은 열두 지파 가운데에서도 축복의 기반을 못 닦았다구요. 그런데 통일교회는 세계 10개 국가 앞에 이미 축복의 기반을 닦아 왔다는 것입니다. 12수와 10수는 맞먹는 수입니다. 열 나라는 열두 나라, 세계 앞에 이미 묶어 놓았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런 기반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운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민족뿐만이 아니라 나라가 움직이지 않을 때는, 세계에 들어가서 간접적인 공격을해 가지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선생님이 이번에 미국과 서구문명권에 가서 한 일이 그것입니다. 서양에서 뺑 때리면 여기 한국에 와서는 픽….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우리는 예수가 실패했던 시대권을 넘어설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지금 어디하고 맞서 있느냐? 미국이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미국도 상대가 안 됩니다. 단지 하나 뭐가 있느냐 하면, 공산세계가 있습니다. 공산세계만 무너지는 날에는 통일교회는 세계를 통일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왜, 선생님이 3차 세계순회노정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공식적인 집회를 갖고 공적인 입장에 나타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을 알겠어요?예수님이 출발할 것은 국가기반에서부터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세계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횡적으로 세계로 출발할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통일교회를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영적인 기준에서는 벌써 대한민국을 능가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영적인 기준에서는 벌써 대한민국을 승리했다는 거예요. 대한민국에서 사상을 가진 집단 중에는 통일 교회를 당할 집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영적인 기준에 서는 국가 기준을 넘어섰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 기독교는 영적 세계 국가형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는 그러한 영적인 주체 국가형을 넘어섰기 때문에, 사탄세계보다 나은 영적 기반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 기독교 문명권내에 가서 당당코 '이것으로 하나 돼라, 이 녀석들아'라고 할 수 있다구요. 그렇지요? 「예」
우리 통일교회는 예수님을 쫓아내던 유대교와는 다르다는 거예요. 영적인 기준에 있어서 영적인 기독교 세계형이, 영적 주체국가로서 그 기준이 높게 되었으니 이는 사탄세계의 개인보다 높은 자리에 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로소 공세를 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선생님이 3차 세계순회노정을 다녀온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영적으로는 승리가 다 결정됐다는 것입니다. 승리적 결정을 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비로소 공석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것이 아녜요? 선생님의 위신상 사탄세계를 대해 가지고 개인적 기준도 세우지 못했는데 공석에 나가서 큰소리칠 수 없다는 거예요. 종족도 만들지 못하고, 국가 이하의 자리에서 무슨 대한민국을 찾겠다고 공석에 나타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위신상 나타날 수 없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분을 내세워 준비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 나라를 내세웠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예수시대의 유대교인과 마찬가지지요? 유대교를 내세워서한 거와 마찬가지로 그 놀음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는 영적인 기준에 있어서 국가적 기준을 능가한 기준에 섰기 때문에, 영적인 기독교에 대해서 주체적인 사명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서구 문명은 영적 기독교 문명이지요? 원리적으로 딱 들어맞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이 하나되어 움직이는 날에는 한국은 흔들립니다. 지금이 바로 이러한 때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2차 7년노정은 아들의 사명을 복귀하는 때입니다. 이때는 예수의 실패를 영육으로 복귀할 때이기 때문에, 우리의 뜻을 중심삼고 이 나라를 영육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참된 개인적 승리의 자리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국가와 종족과 가정과 개인이 동원해 가지고 통일교 회를 핍박하고 반대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감옥에 끌려 다니고 고문을 받고 별의별 사지사판을 거쳤지만, 거기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하던 무리들이 밀려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리하여 1960년도에 비로소 땅 위에 가정적 기반이 닦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지상에서 예수의 소원을 해원성사 할 수 있는 제일 터전이 된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을 가져 가지고 사위기대의 복귀기반을 닦고, 과거에 실패 했던 모든 기준과 현재에 걸려 있는 가정적인 모든 내용을 탕감하여 비로소 해방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을 7년 동안에 설정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타락하지 않았으면 한 날이 하나님의 날이자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지요? 「예」 그런데 이것을 부모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다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가 먼저 나와 가지고 자녀를 찾고 만물의 날을 찾았으니, 비로소 하나님 앞에 올라가 가지고 하나님을 모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만 7년이 지나고 8년만인 1968년 1월 1일에 하나님의 날을 선포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의 날을 선포했다는 것은 이제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제는 망하지 않는다구요. 이러한 승리의 터전을 닦았기 때문에, 부모로 말미암아 자녀들이 탄식권내에 들어갔던 것을 부모가 해원성사하여 승리의 터전을 완전히 닦았기 때문에, 그냥 이대로 가면 그 아들딸의 가정들도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받은 가정들이 가야 할 제2차 7년노정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가정들, 알겠어요? 가정을 이루지 않은 사람들도 이걸 알아야 돼요? 이 원칙을 중심삼고 이 기준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2차 7년노정에는 뭐가 있어야 하느냐? 2차 7년노정 이 기간에는 축복받은 여러분의 자녀를 중심삼고 부모의 날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늘땅을 대표하여 선생님을 중심삼은 것이 종적인 부모이고, 여러분 가정을 중심삼은 것은 횡적인 부모인 것입니다. 선한 조상을 중심삼은 새로운 부모입니다. 새로운 조상이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을 중심삼고 새로운 조상이 되는 의미에서 여러분에게 씨족적 메시아가 되라고 했던 것입니다. 알겠지요? 새로운 조상이 되는 의미에서 선한 조상이 되는 부모의 날을 가져야 될 것입니다.
선한 후손의 자녀의 날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자녀의 날뿐만 아니라, 타락했기 때문에 만물의 날이 없어서 만물이 탄식하고 있으니 만물의 날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선한 조상의 한을 해원성사 할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닦음으로 말미암아 선한 조상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입증하는 하나님의 날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르다는 거예요.
선생님을 중심으로 해서 여러분들은…. 중심은 하나입니다. 중심은 하나이지만 사방 360도를 만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360도 사방을 갖추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횡적으로 종족이, 자녀들이, 후손이 탕감복귀하는 기간이 제2차 7년노정입니다.
제2차 7년노정이 끝나서 완전히 나라가 하나되는 날에는 만물복귀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권과 백성을 찾으면 땅은 자동적으로 찾아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어렵게 산다고 하더라도 한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것은 세계적 대표형입니다. 이것을 공식으로 적용하여 이 한 나라를 중심삼고 세 나라만 찾는 날에는 세계는 꼴까닥꼴까닥 넘어갑니다. 언제 천국이 이루어지겠어요? 그때는 대사들이 대통령을 전도하고, 왕을 전도 하게 된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어느 나라의 왕실에 들어가서 왕한테 일대일로 그 사상을 이야기했을 때, 왕이 홀딱 반해 가지고 '아! 이 사상은 우리 국민사상이 되어야겠다'고 하면 그 국민은 한꺼번에 복귀되는 것입니다. 법적으로 다 복귀해 버린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라가 문제인 것입니다.
자! 그러면, 참된 승리라는 이 참된 개인적 승리의 터전을 통일교회는 닦았느냐? 선생님이 그런 사명을 지금까지 해 나온 것입니다. 가정도 그런 사명을 해 나온 것이며 통일종족도 그런 사명을 해 나온 것입니다.
이제 종족으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민족을 움직여 가지고, 새로운 나라를 찾아 가지고 남북통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남북통일을 해야만 비로소 실체복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실체복귀라는 것은 아벨이 가인을 복귀한 다음 메시아를 맞이해 가지고, 참감람나무인 메시아와 접붙여 가지고 참감람나무로 맺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메시아의 대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남북이 하나되는 날에는, 이남은 아벨이요 이북은 가인인데 이 남북이 하나되는 날에는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메시아를 맞이해야 타락한 이 땅 위에 비로소 완성된 아담국가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횡적인 가인 아벨이 아닙니다. 이 나라 백성은 종적인 의미에서 아들의 자리에 있습니다. 본래 아담 해와는 종적인 자리에 있지요? 아버지의 아들딸이 횡적인 자리에는 없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런 자리에서 비로소 나라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해와 국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해와 국가는 그때 가서 준비하면 바쁘겠으니 미리미리 준비해야 된다는 거예요. 남자가 태어나면 여자도 태어나서 자라고 있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국가를 미리 준비해야 된다는 겁니다. 한국을 중심삼고 그렇게 된다면 상대국가인 해와 국가는 일본인 것입니다.
그러면 천사장 국가는 어디냐? 자유중국인 것입니다. 지금 자유중국은 유엔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렇잖아요? 사탄이 쫓겨나야 할 텐데, 누가 쫓겨났어요? 「자유중국요」 자유중국이 쫓겨났다구요. 이와 같이 악한 세상, 사탄세계가 복귀되는 데 있어서는 외적인 것이 먼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공산당도 이제는 맞는 자리에 섰다구요. 그러니 이제 공산당의 운명도 멀지 않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련하고 중공은 싸워야 되니까, 지금까지 그렇게 서로 대치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라구요. 거기에 대한 세밀한 이야기는 그만두고….
이러한 의미에서 여러분은 참된 개인의 전통을 이어받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이어받았어요? 그것을 이어받기 위해서 통일교회를 믿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참된 승리적 개인의 전통, 참되게 승리한 개인의 전통을 이어받기 위해서 남자나 여자나 통일교회를 믿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전통을 이어받았다 할 때는 참된 개인적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참된 승리자가 되었을 때는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있습니다.
선생님은 세계적인 중심이니까, 중심에 앉아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개인을 복귀하더라도 그 울타리인 가정은 사탄이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종족도 사탄이 풀어야 됩니다. 그러나 현재에 있어서 자유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는 국가도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반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유세계는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개인적으로 핍박을 받는 자리에서 참된 승리를 계승받는 것이 아니라 핍박받지 않는 자리에서 참된 승리의 자리를 계승받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타락하지 않은 부모의 공적을 그 후손이 이어받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선생님은 여러분보다 한 단계 앞서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세계적 사명을 할 수 있는 출발을 하게 되면, 여러분들은 국가적 사명을 이어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지금까지 선생님이 한 것은 무엇이냐? 여러분이 선생님을 대해서 부모님이니, 선생님이니, 아버님이니 말을 합니다. 그렇지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아버님으로서 행세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아버님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종적인 중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분은 하나입니다. (판서하심) 그런데 이 기준이 되려면 종적인 중심을 이어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나와야 합니다. 가인 아벨은 횡적이라구요. 그렇지요? 횡적 관계가이 기반 위에서 하나되는 거예요. 이것은 왜 그러냐? 가인 아벨은 원래 하나의 사랑의 열매가 되어야 하는 것인데 둘이 된 것입니다. 창조원리로 보면 사랑의 열매는 한 사람이 맺기 때문에, 하나되어야만 본연의 기준을 찾아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적 기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닦아 준 터전을 그냥 그대로 계승받으면 가정도 순순히 대를 이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대신 7년노정은 다 가야 됩니다. 7년노정, 알겠어요? 「예」 7년노정은 어느누구 에게나 다 있는 것입니다. 7년노정은 가야 되는 것입니다. 7천년의 역사를 7년에 탕감복귀하는 거라구요. 7년노정은 다 있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예」 야곱이 라헬을 취할 때도 7년 동안 종살이했지요? 그것이 다 우연이 아닙니다. 천지의 이치가 그런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고….
오늘날 통일교회는 종족적 기반이 닦아진 터전 위에 섰기 때문에 여러 분이 종족복귀할 때에는 핍박 없이 할 수 있습니다. 따라 올라오면 되는 거예요. 민족이 복귀되게 되면 종족은 자동적으로 핍박 없이 복귀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국가가 복귀될 때, 민족은 자동적으로 핍박 없이 복귀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핍박을 받아 가며 사탄과 싸워 가지고 세계적인 승리적 기반을 닦는 데 있어서 수고해 나왔지만, 여러분은 선생님이 닦아 놓은 그터전 위에서 통일교를 믿고 선생님 말씀과 하나되어 가지고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핍박도 받지 않고 부모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에게서 태어난 아들딸은 자동적으로 선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선생님이 닦아 준 터전을 전통으로 삼고 생명시하고 이념시하고 생활 감정에 일치화시키면, 그 자리에서 그것을 그냥 그대로 백 퍼센트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지금까지 선생님은 유대교를 재편성하는 일을 해 나왔습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의 역사입니다. 기성교회와 하나되었으면 유대교의 편성이 대번에 되었을 것인데, 반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유대교를 잃어버린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재차 편성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이 실패한 것을 예수가 재차 한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횡적인 관계에 있어서 통일교회는 아벨이요. 기독교는?
「가인요」 가인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종적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타락하지 않을 때는 부모와 아들딸의 관계가 종적입니까, 횡적입니까?횡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종적인 관계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못 되었기 때문에 종적 기반의 기준을 우리가 맞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와 통일교회가 하나되어야 비로소 종적인 기준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되면 국가는 자동적으로 말려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내적 기준인 유대교 앞에 외적 기준인 이스라엘 민족은 지배받기 마련이고, 몸은 마음에게 지배받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갈라진 것을 국가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그 형태를 갖추어야 됩니다.
민주세계는 유심사관이요 공산세계는 유물사관이니, 유심세계가 주인인 하나님과 종적으로 일치되는 날에는 외적인 공산세계는 자동적으로 일치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교회와 완전히 하나되는 날에는 공산세계는 꼼짝없이 하나되게 마련이 라는 것입니다. 공산세계는 나타나지 않는다구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 자신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우리 통일교회에서 개인의 참된 승리의 기반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가정의 참된 승리의 기반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을 따라야 되고, 선생님의 가정과 하나되어야 됩니다. 일체가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종족적 승리의 기반은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못 됐어요. 여러분이 이제 그것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가인 아벨을 복귀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기성교회와 통일교회가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와 통일교회가 하나되는 날에는 민족과 주권은 한꺼번에 말려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이것이 하나의 플러스가 되고 삼천만 민족은 마이너스가 되어 하나된다는 겁니다. 즉,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하나되어 아벨이 되고 민족은 가인이 되어 가인과 아벨이 자동적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유대교를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되게 되어 있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자동적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렇게 하나되면 이남이 플러스가 되고 이북이 마이너스가 된다는 겁니다. 만 일 이북이 또 다른 플러스가 되면 서로 반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북을 마이너스로 만들어 가지고 남북이 하나되면 대한민국 전체가 플러스가 되어 아담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또 다른 마이너스 국가로 일본을 삼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삼국만 하나되면 세계 인류는 돌아가는 것입니다.
자! 그러니까 우리 통일교회에는 참된 승리적 개인과 가정은 있습니다. 종족도 아벨 형은 되어 있습니다. 종족 완성은 안 되어 있어도 종족 출발은 했다구요. 출발은 했지만 완성은 안 돼 있어요. 종족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가인 아벨 종족권을 통합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하나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지금 이것이 하나될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어 오고 있습니다. 하나될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어 온다는 거예요.
기성교회 목사들이 통일교회를 반대하고 몰아내게 될 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시래기죽을 먹어야 되고 보리밥을 먹어야 됩니다. 그렇지요? 제일 어려운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통일교회가 점점 자리를 잡아 가지고 올라오게 되면 기성교회 목사들은 우리를 따라와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그들이 우리를 몰아냈는데 우리가 올라왔으니, 그들은 우리 뒤를 따라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인은 아벨의 뒤를 따라가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치가 그렇다구요. 그렇지요? 그들이 하늘을 중심하고 나아가려고 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 통일교회가 고생하던 것을 이어받아서 보리밥 먹고 시래기죽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기성교회 목사들이 그렇게 하는 시대권으로 들어가게 되고 우리의 때가 가까와 오는 것입니다. 지금 기성교회 목사들이 그렇게 되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들이 없으면 좋겠다. 딸이 없으면 좋겠다. 아내가 없으면 좋겠다' 하는 운명이 그들 앞에 그냥 그대로 벌어질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그냥 내버려 두게 된다면 그들은 거지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거지 떼거리가 되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야곱이 축복받아 가지고 에서를 구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의 놀음을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교회에는 돈이 많이 생깁니다. 알겠어요? 조금만더 지나가 보라는 것입니다. 나라만 움직이게 되면 돈은 얼마든지 있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삼천만 민족이 통일교회 사상으로만 무장돼 보라는거예요.
'자! 우리 한번 세계를 멋지게 움직여 보자'라고 하면, 여러분은 움직 이겠어요. 안 움직이겠어요? 「움직이겠습니다」 움직이겠어요? 「예」 '전부다 팬티만 입고 다 벗어 버리라'고 하면 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뭐 조금 부끄러우면 어때요? 나라를 찾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해야 됩니다. 공산당보다 못하면 안 됩니다. 사탄한테 져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악착같아야 된다구요.
그러면, 우리 때가 얼마나 남았느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지금까지 목사와 장로들한테 몰리고 쫓겼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 아들딸들, 2세들은 전부 다 공격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성교회 목사 장로의 아들딸들은 전부 다 후퇴하려고, 도망가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런 때가 왔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공세를 취하기 위하여 사령관이 제일선에 명령을 내리는 것입니다. '자, 진군이다' 그런 명령을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런 명령을 어디서부터 해야 되느냐?세계 선두에 선 미국에서부터 순차적으로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 놓고 사령관은 본부로 돌아온 거예요. 사령본부가 위협을 당할 수 있기에 방어를 해야 되겠으니 여기 한국에 새로운 기동대를 편성한 것입니다.
기동대라고 하게 되면 긴급 동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이 땅' 하면 즉시 행동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예」 군대의 특공대와 마찬가지입니다. 특공대는 잘 때도 언제나 준비를 하고 잡니다. 테러만 발생하면 순식간에 비행기로 날아가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역사 이래 처음으로 비로소 하나님께 충성을 발휘할 수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시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이렇게 나가 싸워 가지고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을 탕감복귀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거예요.
영적으로 때려잡을 수 있는 때가 왔으니, 이때에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늘의 용사다운 기개를 갖추어 가지고 무찌르면 무찌른 대로 허물어져 나가고 밀면 미는 대로 평야가 되게끔 당당히 싸우기를 바라겠습니까, 아니면 지지리 못난 기동대가 되어 '기동대가 저게 뭐야? 아이쿠, 저게 뭐야? 이러기를 바라겠습니까? 「당당히 싸우기를 바랍니다」 지지리 못난 것? 「아닙니다」 그러면? 지지리 잘난 것? 「예」 지지리 잘나고 당당하게, 천지가 두려워서 떨고 하나님도 속으로 기뻐서 웃음 보따리가 터져 너울너울할 수 있게끔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하늘의 깃발을 들고 기동대라는 이름을 가지고 나섰다는 것은 지금까지 역사상에 없었던 놀라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선생님 말이 거짓말인지, 어지간히 맞지요? 들어보니까? (웃음) 어지간히 그럴듯하지요? 그릴 듯한데, 세계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제는 빨리 세계를 한 품에 품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공산당의 공세를 받기 쉬운 것입니다. 이 시대에 있어서 우리가 전진해 가지고 국경을 넘어서 적을 아예 쫓아 버려야 합니다. 아예 일격에 적이 놀라 자빠지게끔, 놀라 도망가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6천년 동안 수세에 몰렸던 하늘이 비로소 공세를 취할 수 있는 역사적인 대열에 여러분이 참석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참된 나라의 승리적 터전을 닦기 위해 모인 의용군입니다. 의용군이라구요. 의용군이 뭔지 알아요? 의용군은 강제로 끌려 온 사람들이 아니라 자원해 온 사람들입니다. 강제로 끌려 왔어요? 강제로 끌려온 사람이 있다면 손들어 봐요! 그런 사람이 있으면 지금 당장 보따리 싸 가지고 가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의용군으로서 사탄세계에서 비수를 들고 생명을 위협하는 그들이 무색하게끔 당당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공산당 이상으로 자기 생명을 투입해야 됩니다. '내 생명은 이미 이와 같은 공세를 위하여 태어났다. 내 생명은 전진의 도상에 있어서 백전백승하기 위해서 당당하게 하늘 종족의 기개를 갖추어 가지고 악한 무리를 일시에 정복하겠다' 그러고도 남음이 있는 늠름한 대열의 일원으로 참석하기 위해서 모인 무리가 여러분입니다. 그렇게 모인 여러분에 의해서 국가적인 참된 승리의 터전을 맞이하게 되면, 여러분은 건국의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싸운 전통은 하늘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영원한 나라에 있어서 천추만대의 전통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후손들은 여러분이 싸워 나온 그것을 새로운 역사적인 전통으로 이어받아 충신의 도리를 곧바로 세워 나갈 것입니다. 그러한 주류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생이 여러분을 중심삼고 시작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나깨나 나라를 복귀해야 됩니다. 나라를 찾기 위해서는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나라가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 못 되는 날에는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둘 다 망하는 운명을 가겠느냐, 둘 다 사는 운명을 가겠느냐? 어차피 둘이 망할 바에야 살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 가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둘 다 살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가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을 유대교를 대신하여 재편성하려는 입장에 서서 그 무리들에게 가르친 중요한 말씀 중의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죽는다는 거예요. 나라를 위해서 죽고자 하면 나라를 찾음과 동시에 자기 자신은 나라의 주인이 되지만, 나라를 내버려둔 채 자기만 살겠 다고 도망을 가게 되면 앞으로 그 나라 전국민이 원수시할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역적 도당이 된다는 거예요. 당연히 역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동대라는 것은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이제부터는 내가 보는 것도 나라를 위해서 봐야 되고, 내가 듣는 것도 나라를 위해서 들어야 되고, 나의 모든 사지백체도 나라를 위해서 움직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감정도 나라를 위해야 하고, 눈물도 나라를 위해서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민족을 위했다고 말할 수 있고 행복한 종족과 행복한 가정을 거느릴 수 있지, 나라가 없게 될 때는 아무리 행복한 가정이라도 언제 모가지가 달아날지 모르는 것입니다. 언제 파탄이 오게 될지 모르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있어서 천추의 한인 그 소원의 나라를 목전에 두고, 내 두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그 한을 풀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다짐하기 위해서 모인 무리가 이번 기동대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몸은 공적인 일에 바쳐야 됩니다. 삼천리 반도 방방곡곡을 달리며 그 산야와 길을 바라보고 '너는 나를 알아 다오'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옛날에 지나가던 손님과 다르고 우국지사와 다르다구요. 과거에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나라를 위할 때에 40년 압제하의 왜정 때 나라를 염려하고 눈물을 흘리며 이 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과는 종자가 다르다구요. 수천년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늘이 찾아온 그 길을 내가 이어받아 가지고 눈물을 흘릴 수 있고, 이것은 역사에 비로소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거룩한 것임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땀을 흘려도 역시 마찬가지요. 잠을 자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잠을 자던 자리에는 앞으로 후손들이 비석을 세워 놓을 것입니다. 또, 내가 싸우고 전도하고 정성들인 자리에는 우리 씨족이 울타리가 되어 가지고 도성을 쌓아 올릴 것이고 우리의 씨족은 기필코 이 나라에 자랑할 수 있는 전통적인 하나의 민족이 될 것입니다. 하나의 씨족이 민족으로 발전되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거룩한 역사가 여러분의 일신이 그려 가는 생활노정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밥을 먹어도 자기를 위하여 먹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에 충신의 절개를 남기기 위해서, 잠을 자도 자신을 위해서 자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서…. 나라가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을 닦고, 내일에 있어서 소망의 터전을 개방시키기 위하여 잠을 자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방비하기 위해서 자는 거라구요. 여러분의 모든 것, 일체는 이 기준을 중심삼고 움직여야 됩니다.
그리하여 참된 승리적 나라를 이 지구상에 형성하는 날에는 이 지구성은 불원간에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고 통치하는 천국이 된다는 것을 여러 분이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악한 영들이 병 주고 약 주고 별의별 놀음을 다 했지요? 그렇다는 거라구요. 선한 영이 동원되게 되면 무슨 시험을 당할지 모릅니다. 단지 나라가 없기 때문에 그런 놀음을 못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 삼천리 반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금년도 표어와 마찬가지로 통일전선을 수호해야 되겠습니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에 있는 모든 기동대는 누구를 위해 싸우느냐? 자기의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위주로 하여 세계를 위해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상을 가지고 싸우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일본에서 싸우는 사람은 일본을 위해서 싸우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에 영향을 미치기 위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미국의 기동대도 미국을 위해서 싸우고 있지만 그것은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도 영국을 위해 싸우고 있지만 대한민국을 옹호하고 수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대한민국을 침범할 수 있는 공산권을 막아내기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독일이 싸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은 어느 나라를 위해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한국을 위해서, 선생님이 있는 나라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선생님 휘하에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있는 나라를 수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터전이 깨져 나가면 개인도 가정도 종족도 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오면서 천신만고 끝에 닦아 놓은 국가 기준을 그냥 그대로 각 나라에 심어 줬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상대적 기준에 서서 주체를 위하고, 주체를 그리워하고, 주체와 하나되겠다고 점점 접근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통일적인 내적 심정의 터전이 영계로부터 지상으로 이루어져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한국의 기동대 여러분은 미국의 기동대한테 마이너스가 되어야 되겠어요. 플러스가 되어야 되겠어요? 「플러스가 돼야 합니다」 플러스가 되려면 이겨야 되겠어요. 져야 되겠어요? 「이겨야 됩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길래요? 무엇으로 이길래요?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라를 직접 구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본국을 직접 구할 수 없다는 거예요. 간접적으로는 구하지, 그렇지만 우리는 직접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주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일하는 데에 있어서도 그들이 열 시간 일하면 우리는 열두 시간, 스무 시간을 해도 부족함을 느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잠을 잘 때에도, 그 자는 시간을 아까와하면서 자야 되겠습니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소위 4대 강국에서 기동대를 편성해 가지고 달리고 있는 이때 잠을 자도 우리가 그들보다 더 자야 되겠지요? 「아닙니다」 그들보다 밥을 먹어도 더 잘 먹어야 되겠고, 옷을 입어도 더 좋은 옷을 입어야 되겠고, 사는 데도 더 좋은 데서 잘살아야 되겠지요?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낫잖아요? 그러면 무엇이 나아야 돼요? 무엇이 나아야 된다는 말이예요? 그들보다 나으려면 그들이 밥 한 그릇 먹을 때, 나는 두 그릇 먹어야 되지 않아요? 무엇이 나아야 돼요? 「정성을 쌓아야 됩니다」 그들이 밥 한 그릇 먹고 한 사람 전도하면, 나는 반 그릇 먹고 반사람 전도하면 되겠네요? 그렇지요?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밥을 반 그릇만 먹고 두 사람을 전도하면, 한 그릇 먹고 한 사람 전도하는 사람에게 지겠어요. 이기겠어요? 「이깁니다」 거꾸로 해야 된다는 거예요. 반 그릇 먹고 두 사람 전도해야 됩니다.
그 사람들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전도를 하는데, 우리는 11호차를 끌고 다녀야 된다구요. 그들이 차 타고 다니면서 하루에 한 사람 전도를 하니, 우리는 걸어다니면서 그들의 10분의 1인 열흘에 한 사람만 전도하면 되겠어요? 「안 됩니다」 이런 긴박한 문제가 여러분의 목전에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실질적인 문제가 여러분의 발판에 부딪쳐 왔다는 거예요. 자, 이것을 타고 넘어갈 거예요. 차고 넘어갈 거예요? 발부리에서 피가 나오고 발톱이 빠지더라도 그것을 차고 넘어갈 거예요? 차고 넘어가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타고 넘어가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대우를 해줘도 싫다는구만, 알았어요. 몰랐어요? 「알았습니다」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차고 넘어가나 보겠어요.
선생님도 그런 놀음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편할 것 아녜요? 가만히 있으면 말예요. 그렇지만 가만히 있어 가지고 뜻이 이루어져요? 「안 이루어집니다」 가만히 앉아서 암만 기도를 했댔자 안 됩니다. 기도했댔자 거기에는 플러스밖에 없어요. 마이너스는 생겨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마이너스는 다리를 버등버등해야 생긴다구요.
죽을 때, 그냥 '짹' 하고 죽습니까? 다리를 바둥거리는 증상이 벌어진 후에야 죽는 거라구요.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어떤 일에 있어서 춤을 추든가 웃음이 터져 나오든가 무엇이 있어 가지고 잘 되는 거예요. 뭔가 다르니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러니 그저 얌전하게, 조용하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무슨 도깨비 나발이 붙었나? 왜 젊은 녀석이 고함을 지르나? 할 정도로 목청이 터지도록 떠들어 봐야 되겠다구요. 눈알이 빠지도록 응시해 보고, 코가 빠지도록 숨을 내쉬든가 들이마셔 보고, 이놈의 손이 얼마나 힘 있는지 한번 쥐어 보고 말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만하면 알겠어요? 「예」
내 손이 억천만 명을 패서라도 나라를 찾을 수 있다면, 당연히 패서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 나라를 찾기 위해 죽을 때까지 가야 하는 거예요. 만일에 공산당들이 남침을 했다면, 책임을 못한 인물들이 있을 때, 한칼에 쓰러뜨리겠어요. 안 쓰러뜨리겠어요? 눈알을 빼겠어요. 안 빼겠어요?
지금 때는 노는 때가 아니라구. 천지가 왔다갔다하는 때라구. 6천년의 역사가 왔다갔다 하는 판국이라구! 아슬아슬한 첩경을 넘나들고 있는 거라구요. 한 발자국만 잘못 내디디면 벼랑에 떨어지는 거라구요. 이런 심각한 때라는 겁니다. 나쁜 녀석 같으니라구. 대가리통에 된장 집어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라는 거예요. 통일교회는 건달패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예」 잠이 와서 뒤에 들어온 녀석하고 조는 녀석이 있으면 국물도 없다구.
기동대는 그런 거라구. 강력한 훈련을 시킬 것입니다. 사실은 내가 좀훈련을 시켰으면 좋겠어요. 오리새끼 모양으로 추운 데 데리고 가서 밤이나 낮이나 물속에 처넣고 건너오게 하는 것입니다. 안 건너오면 왼다리를 나일론 줄로 매 가지고 거꾸로 끌어와서라도 조건을 세우는 훈련을 시켜야 되는 겁니다. 제일 강력한 훈련을 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이 모든 것은 전부 다 나라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없기 때문에 이 놀음을 하고 있는 거예요. 자유의사에 맡겨 가지고는…. 하늘이 지킬 수 있는 나라만 있다면, 꼼짝달싹 못하게끔 전부 다 한 모습을 만들어 제낀다는 겁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자!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어요? 이것을 타고 넘어가겠어요. 차고 넘어가겠어요? 「차고 넘어 가겠습니다」 밭을 갈려면 어떻게 합니까? 거꾸로 갈아야지요? 갈 거예요. 안 갈 거예요? 거꾸로 끌고 바로 해야 됩니다. 나라를 세우는 데에는 별의별 죽음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탄세계에서 나라를 찾기 위하여 비록 비참하게 죽어 가더라도 당당한 영광으로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나라를 찾다가 비참하게 죽은 사람은 그 나라의 애국자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만일 눈을 하나 빼앗기고 죽은 사람과 두 눈을 빼앗기고 다리까지 꺾인 사람을 놓고 등수를 매긴다면 누구를 일등으로 뽑겠어요? 보다 비참하게 죽은 사람입니다.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애국자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러한 역사를 거쳐 나왔습니다. 왜정 때부터 고문을 당했습니다. 꺼꾸로 매달리고 손발이 전부 다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고문을 당했지만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놈, 쳐라! 때가 되면 나는 너를 열배 이상 칠 것이다'라고 다짐하며 나왔습니다.
통일교회가 무슨 뭐 흘러가는 놀이를 하기 위해서 모인 곳이 아닙니다.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내가 먹히느냐 네가 먹히느냐, 내가 지느냐 네가 지느냐 하는, 양자택일을 하는 곳입니다. 둘이 공존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생애를 바쳐서 나온 것입니다. 공산세계에서도 그랬고, 민주 세계에서도 그랬습니다. 3대 주권으로부터 고문과 핍박을 받아 나왔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아무리 쳤어도 선생님을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아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당 정권을 비롯해서 민주당 정권, 혁명 정부, 이들이 통일교회를 전부 다 갈아 먹으려 했지만, 먹히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 아직까지 무슨 놀이 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들어 오게 될 때는 비록 끌려 왔고 혹은 사정을 해서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들어와서 입회원서를 내고 수련을 받는 마당에서는, 새로운 차원에 입각해 가지고 소망의 천국을 건설하기 위한 하늘의 의용군으로 등장했 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자! 역사 이래, 지금까지 없었던 참된 애국의 승리의 터전을 우리의 손으로 닦고, 건국의 승리의 깃발을 휘날릴 수 있는 내일의 소망 앞에 졸장부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열국이 한국을 위해서 정성들이는 이판국에 있어서 주체 국가로서 닦아 놓은 터전을, 다 익은 곡식을 그냥 그대로 그들에게 옮겨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우리 부모가 가꾸어 가지고 가을을 맞이하여 무르익은 황금벌판, 이 수확의 터전을 외국에 물려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으로 거두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 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 「하겠습니다」 하겠다는 사람들은 양손 들어 봐요! 틀림없이 하겠지요? 「예」 정말이예요? 「예」 됐습니다. 그래야 되는 거예요.
숭고한 역사적인 개인 승리의 터전과 가정 승리의 터전을 도모하기 위한 2천년 기독교의 슬픔, 선생님이 50여 평생을 다 투입해 가지고 오늘의 이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이것은 영계는 물론이요. 지상에서도 소망하는 낙원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이 엄숙한 터전을 이어받아 가지고한 고비를 못 넘긴다면, 그런 후손이 되어서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한번만 결심하고 여러분이 손에 손을 잡고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여 이 한 고비만 넘기는 날에는, 대한민국은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가 되는 것이요. 비참했던 이 국가의 운명이지만 세계 선진국가를 지도할 수 있는 특권적인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쌍했던 이 민족이 해방을 주도할 수 있는 세계적인 민족으로 등장할 수 있고, 찬란한 문화의 기원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엄숙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참된 국가를 찾아 가지고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면서 하늘이 원하였던 참부모를 중심삼고 새로운 혈족과 새로운 민족과 국가를 형성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늘 앞에 봉헌 할 수 있는 국가적인 승리의 날을 갖지 않고서는, 국가를 중심삼은 복귀섭리의 승리를 다짐할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도 이것을 위해서 지금까지 모든 생애를 바쳤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수난길을 극복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날을 위해서 당신이 사랑하는 수많은 아들딸, 종족, 민족들을 희생시키면서 참아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은 자신의 시선을 따라 나가는 발걸음, 거동거리 일체가 하늘을 잃고 떠나가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누우나, 일어서나, 보나, 행동하나, 쉬거나, 일체 나라를 건설하기만을 다짐해야 됩니다. 역사 이래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건국지사로서의 투지와 애국심과 천민사상을 가지고,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총진군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것만이 기동대의 사명인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한과 소원을 영원히 해원 해 드릴 수 있는, 참된 국가의 승리를 다짐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드렸습니다. 틀림없이 여러분이 그런 사명과 책임을 다해 주기를 바라는 선생님의 간절한 마음을 기억하고, 그렇게 싸워 주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알겠지요?「예」 그렇게 싸워 나가겠다는 사람은 양손을 들고 맹세합시다.
사랑하는 아버님! 아버지여, 제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원수의 나라였던 일본이 저희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는 것이옵니다. 일본에 있는 식구들이 한국 식구들한테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을 저는 잘 보고 왔나이다.
저 독일 국민은 구라파 전지역을 점령하고 지성적인 터전 위에 승리의 민족이라고 자처하고 나서는 민족으로서, 그 어떤 민족한테도 지지 않겠다는 자신을 갖고 맹세와 선서를 하는 것을 보고 왔나이다.
또, 영국 국민은 오랜 전통을 중심삼은 서구문명의 창건자로서, 기수로서 늠름한 권위와 자세를 가지고 '최후의 승리는 우리만이 할 수 있다'고 단단히 맹세하는 모습을 보고 왔습니다. 저 미국 국민은 현대문명의 첨단에 선 기수로서 승리의 왕권을 가지고 세계를 내려다보면서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수많은 국가를 무시하고 있는 사실을 보고 왔나이다.
오늘날 비참한 이 한국 민족, 아버지여, 긍휼히 보시옵소서, 헐벗고 퇴폐한 이 정상(情狀)을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시옵소서, 저희는 죽되 배가 불러서 죽은 무덤을 남겨서는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죽되 비단옷을 입고 쓰러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죽되 자기 부모를 부르면서 죽을 사람이 아니라 나라를 부르면서 죽을 사람인 것을 스스로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와 같이 생명을 바치는 자리를 중심삼고 볼 때는 저희가 제일 비참할 것이어늘, 뜻을 위한 일편단심 일념을 가지고 쓰러지는 날에는 저희만이 하늘의 영광된 터전 앞에 제일 가까이 설 수 있다는 것만을 믿고 이 자리까지 찾아왔습니다.
오늘 한국에 있는 어린 아들딸들이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이 3백여 명의 가슴 가슴에 아버지여, 불을 지르시옵소서, 역사적인 한을 탕감해 내겠다는 승리의 왕자의 권한을 가지고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왕녀의 권위를 가지고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죽더라도 왕가의 모든 전통을 흐리게 하는 수치스러운 아들딸이 안 되겠다고 이 시간 맹세한 결심을 아버지께서 받아 주시옵소서.
오늘부터 시작하는 이 수련회를 아버지께서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되겠습니다. 자나깨나 무릎을 꿇고 아버지 앞에 바라는 것은 당신께서 원하시는 나라를 찾게 해 달라는 것이옵니다.
원수가 엿보고 있는 이 원통한 사실을 저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을 가려 가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슬픈 사실에 봉착한 것을 알고, 이제라도 저희들은 회개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가 되어 아버지의 뜻 앞에 절대복종하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어린 아들딸들이 손을 들어 당신 앞에 맹세하였사오니, 이 맹세가 헛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집회가 끝나면 삼천리 동산 위에 새로운 하늘의 함성이 울려 나오고 영계에서는 땅을 위해 빈번한 교류가 벌어져, 이들이 이 민족에게 광명의 새 아침을 소개해 줄 수 있는 영광의 날이 벌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로 말미암아 통일교회 전통의 터전 위에 무한하신 당신의 섭리의 뜻을, 종횡으로 승리를 성취할 수 있는 수적인 기준을 확대하게 하시고, 기성교회가 하나되게 하시어 아버지의 소원을 해원성사하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나라까지 아버지 앞에 봉헌하는 그날까지 저희들은 싸우고 싸우고, 전진하고 또 전진하기를 이 시간 맹세하오니, 아버지여, 고이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의 영광과 사랑과 권위가 길이길이 같이하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사랑하는 아버님! 이 아침, 여기 모인 자녀들 위에 당신의 은사와 사랑을 내려 주옵소서. 전국에 널려 있는 식구들이 이곳을 바라보면서 마음 모아 기도하고 정성들이는 곳곳마다 당신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이 임하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시대적 사명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염려하고 있는 어린 자녀들이오니,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고 승리를 다짐해야 할, 복귀의 길을 더듬어 가고 있는 불쌍한 자녀들이오니, 아버지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은 이달의 마지막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에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무한하신 은사가 모인 자녀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마음을 온전히 아버지의 품에, 아버지의 존전에 드렸사오니, 당신이 명령하시고 싶은 소심(素心)을 피력하시옵소서. 최후의 사명길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고, 최일선에 서서 당신 앞에 기억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나라를 아버지께서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역사노정의 숱한 눈물 어린 골짝길을 더듬어 온 이 민족을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시옵고, 이 시대적인 난국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셔야만 되겠습니다.
이 나라에 당신이 사랑하실 수 있는 자녀들이 많이 있게 될 때, 이 나라는 결코 하늘 앞에 버림받지 않는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밤이나 낮이나 이 나라의 운명을 위해서 생명을 내놓아 가며 당신 앞에 호소하는 자녀들이 소수라도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여, 이 나라를 기억하여 주시옵고, 이 백성을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세계정세 가운데서 불쌍한 고아와 같은 입장에 있는 이 한국 땅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여기에서 수난길도 걸으셨고, 눈물 어린 역사노정에 비참한 사연 사연도 남겼사오나, 그 모두가 당신의 승리를 찬양하고 영광의 한날을 기념할 수 있는 것이 되지 못할 때에, 이 나라와 이 민족은 불쌍한 나라와 민족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기에 통일의 자녀들이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방에 널려 있는 어린 딸들이 일선에 서서 3년노정을 개척하는 도상에 있는 것을 당신도 잘 아실 줄 믿습니다. 각자 사정과 처지가 다른 입장에서 당신을 위하여 눈물 어린 심정을 다짐하면서 삼천리 반도를 지키려는 가냘픈 여인들의 사정을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들이 흘리는 눈물과 땀이 헛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의 승리의 나라를 찾고, 당신의 승리의 세계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될 시대적이요 역사적인 사명이 이들 앞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들을 대하시는 당신이 불쌍하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크고 능력 있는 민족과 나라를 뒤에 두고 연약한 이 민족 이 나라를 찾아오신 당신의 뜻이 얼마나 불쌍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여! 당신은 능력이 많으신 아버지이시지만 능력의 권한을 행사 하실 수 없는 슬픔의 자리에 처해 있는 아버지이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의 아들딸인 저희들도 불쌍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의 인연을 갖고 있는 저희들이 사경을 밟고 넘어가는 자리가 있다 하더라도 당신을 위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될 길이 복귀의 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와 같은 자리에서 대를 잇기 위해 오셨던 분이기 때문에, '아바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태어난 것도 아버지를 위해서 태어났고, 산 것도 아버지를 위해 살았으며, 죽는 것도 아버지를 위해 죽은 예수님의 전반적인 생애노정을 생각하게 될 때, 불쌍하신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탕감복귀해야 할 종말적인 사명이 보잘것없는 저희들 개인 개인의 두 어깨에 지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통일의 무리들은 이 날 이 아침에도 남겨 놓은 아버지의 뜻길을 향하여 돌진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걸어가는 길이 아무리 험하더라도 낙망할 수 없는 사정이요, 현재 처하여 있는 자리가 아무리 고단하더라도 당신을 저버릴 수 없는 사정인 것을 잘 알고 있는 저희들의 장래를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시옵소서. 죽으나 사나 당신을 위하여 서 있기 때문에, 당신은 지키시고 임재하시어 저희들과 같은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불쌍하신 분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눈물짓는 장면을 바라보시며 당신의 가슴에 맺힌 슬픔과 더불어 역사시대를 반영하면서 오늘까지 참아 오셨고, 슬픔을 품으시고도 슬픈 표정을 할 수 없는 아버지의 입장인 것을 아옵니다. 도리어 더 많은, 숱한 곡절과 사정에 처해 있으면서도 사소한 저희들의 입장을 동정하고 갈 길을 가려 주지 않으면 안 되시는 아버지의 사정을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이 아침에, 450만 명이 살고 있는 이 서울 도성에서 소수의 무리가 당신 앞에 엎드려서 기념하고 기억하여야 할 5월의 마지막 성일을 맞는 시간이오니,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의 생애노정을 지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생애가 아버지의 뜻과 더불어 자랑할 수 있는 생애가 못 될 때,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다'고 가룟 유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이 몸을 굽혀 당신의 거룩하심을 마음으로 흠모하면서 내일의 축복의 한날을 개척하기 위한 개척자의 사명을 다짐하오니, 친히 당신이 저희들과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전국에 널려서 이 아침 이곳을 바라보면서 마음 졸이고, 아버지 앞에 기도하는 무리들을 아버지 긍휼히 보시옵소서. 흰옷 입은 긍휼의 자녀로 기억하시옵소서. 당신의 마음 가운데 슬픔이 있어도 이들을 위하여 참으시고, 고독함이 있어도 이들을 위하여 참으시며, 쓰라림이 있어도 이들을 위하여 참으시고 대신 당하시는 아버지이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세상 어느누구보다도 고귀한 아버님을 모신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당신을 모신 그 가치를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당신이 분부하시는 새로운 약속의 인연을 저희들에게 베풀어 주시옵소서. 현재의 입장에서 저희들은 무한하신 하늘의 자극이 필요하고, 하늘을 위하여 스스로 개척자의 사명을 다짐하고 보다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현실을 능가할 수 있는 자극적인 힘이 필요하옵니다. 저희들의 힘만 가지고는 현실을 타개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당신이 원하시는 내일의 승리의 터전을 넓히기 위해서는 당신의 힘이 가중되어 오늘을 넘어설 수 있는 승리의 출발이 필요하옵니다. 그러니 여기에 하늘의 가호가 같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과 이 땅 위에 있는 수많은 후손들을 일치시키시어 소망의 나라요, 평화의 나라요, 희망의 근거지인 당신의 창조이상세계를 이 땅 위에 실현하여, 만세에 최고의 중심인 아버지의 권한을 가지고 온 피조세계를 통치할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만사에 당신의 은사와 사랑이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복귀의 길은 싸움의 길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역사의 노정은 하나의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기 위해서 걸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노정은 싸움의 노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가 그러하듯이 복귀의 행로를 걸어가는 우리 개인의 생활도 싸움의 노정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싸움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느냐? 우리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에,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 국가간의 싸움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섭리를 직접 주관해 나오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도 하나님 자신에게 있어서 이익될 수 있는 한날을 위해서 싸워 나오고 계신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이와 같은 싸움의 역사를 엮어 왔고, 이와 같은 싸움의 무대를 거쳐 나오면서 각자의 생활을 영위하는 마당에 있어서. 각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점이 어떠한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를 중심삼고 볼 때에, '나'라는 존재가 이익을 바라는 자리가 하나라면 좋겠지만 '나'라는 존재 자체를 두고 보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몸이 있는가 하면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의 목적이 있는가 하면 몸의 목적이 있어서 서로 다른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이 항상 싸우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는 이유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몸은 몸을 중심삼은 이익을 바라는 것이요, 마음은 마음을 중심삼고 이익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충되는 양면이 부딪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개인들의 생활이요, 양심을 중심삼은 몸을 가진 우리 인간들의 생애노정인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양면의 대립된 입장에서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인간 그 자체는 비참한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여 보다 가치적인 기준에서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게 될 때 비로소 인간은 거기에서 보다 나은 내일의 희망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이 생길 수 있겠지만 도리어 보다 나을 수 있는 양심적인 기준에서 승리를 추구하지 못하게 될 때 거기에는 비참이 벌어지는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개인이 그러하듯이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를 바라보면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싸우고 있습니다. 악한 사람들도 자기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면을 중심삼고 주장하고, 선한 사람들도 자기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면을 중심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서로 상충된 입장에 섬으로써 투쟁이라는 싸움의 행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국가간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두고 보더라도, 남북이 엇갈린 두 목적의 기준에 서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북쪽은 북쪽으로서 가는 방향이 있고, 남쪽은 남쪽으로서 가는 방향이 있습니다. 각기 가는 방향이 다른 것입니다. 가는 방향이 다르지만 둘이 될 수 없는, 하나의 민족형을 갖춘 이 민족이 어느 한면으로 이익이 될 수 있는 기준을 추구할 때에 통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둘 다 서로 각이(各異)한 입장만을 추구하는 자리에 서 가지고는 보다 나을 수 있는 행복이 이 민족에게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전세계도 그러한 입장에 서 있습니다. 우익이 있는가 하면 좌익이 있습니다. 이런 편이 있는가 하면 저런 편이 있습니다. 이쪽 방향을 바라보고 가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반대방향을 바라보고 가는 무리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회에는 투쟁과 전쟁의 인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역사적인 비참상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활적인 면에서, 혹은 매일매일의 현실 생활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의 전반을 주관하시고 관리하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도 역시 하나님 편에 이익이 될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입장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선하신 하나님에게만 귀결될 수 있다면 문제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악신(惡神)이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또 다른 하나의 방향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그 배후에서 인간과 인간세상을 움직이는 주체적인 존재가 있기 때문에 그에게 지도받고 주관받는 권내에서는 반드시 상충적인 것이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반적인 문제, 개인에서부터 가정, 사회, 국가, 세계까지 싸움의 마당으로 되어 있는, 이러한 전반적인 문제를 해결하여 과연 인생이 추구하는 행복의 기점을 어디서 마련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오늘보다는 내일, 현세를 넘어서 미래의 세계 가운데서 행복을 바라고 나갑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노정에서 새로운 소망을 바라는 인류가 추구해 나온 방법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아무리 행복을 바라고 나간다 하더라도 현시점에서 과연 우리 인류가 바라는 행복의 세계, 즉 인류가 바라는 최후의 승리점이 있을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오늘날 우리 인간 자체를 중심삼고는 그러한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답할 수 없는 현재의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미래의 승리의 한날을 바라보고 나가고 있지만,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도 인류가 살아 나가는 행로를 따라가면 미래에 행복의 세계가 있을 수 있다고 보시겠느냐를 생각할 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세상이 바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바라실 수 있다면, 하나님은 고독할 수 없는 것이요, 다시 새로운 무엇을 추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가는 길과 인간들이 바라는 미래와 하나님이 바라는 입장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과 같은 노선에서 그 목적을 추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상반된 면에서만 하늘의 이익과 하늘의 승리의 종착점을 바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입장이므로 세상과 보조를 맞출 수 없는 자리에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무리가 있다고 하면, 오늘 이 세상과 더불어 짝을 하고 이 세상 사람들이 미래를 바라보면서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과 같은 입장이 아니라 반대의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현재의 입장은 행복의 세계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 현세를 부정하고 현세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더 높은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가 나타나기 전의 새로운 선의 나라를 하나님은 찾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세계를 버리고 선의 나라가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의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선의 나라를 소망의 나라로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선의 나라를 이룰 수 있는 기준이 이 땅 위에 있느냐 하면 그것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의 나라를 추구하시는 입장에 서시기 때문에, 아무리 지상에 국가적인 기준을 소원하시는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국가적 기준을 바랄 수 없는 자리에 서셨기 때문에, 하나의 특정한 민족을 소망으로 삼고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계를 대표해 가지고 악의 세계를 능가할 수 있는 하나의 선의 민족이 있었느냐 할 때에, 하나님이 바라시는 절대적인 선의 민족이 이 지상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민족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민족을 갖기 전에 하나의 씨족이라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선을 중심삼고 미래의 소망을 촉구시킬 수 있고 현재의 승리점을 이익되는 결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하나의 족속이 있느냐 할 때에, 우리는 그런 족속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모르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족속이 없다면 선의 목적을 추구하시는 하나님의 입장은 불쌍한 것입니다.
이러한 족속, 하늘편의 씨족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씨족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을 중심삼고 볼 때 그것을 찾을 수 없는, 그런 방향을 가질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우리 인간이 불쌍하다는 것을 느끼는 반면, 그런 인간을 통하여 선의 나라, 선의 세계를 이루려는 소망을 갖는 하나님이 더 불쌍하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내일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터전이 이 땅 위에 어떤 씨족 가운데 있느냐 할 때, 이렇다 할 수 있는 씨족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럴 수 있는 씨족이 있다면 모르지만, 그러한 씨족이 없다면 하나님은 그런 씨족을 구하기 전에 하나의 가정을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씨족을 대신하고, 그 다음에는 민족을 대신하고, 국가와 세계를 대신해 가지고, 하나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가정이라고, 여기서부터 새로운 국가 형성의 출발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가정이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타락한 이 세계에는 그러한 가정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정은 없었지만, 그러한 개인은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께서 '악한 세계를 버리더라도 이 한 사람만은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람만이 하늘의 사람이다. 이 사람만이 최초의 출발점으로 삼고 승리의 기점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의 생활 전체가 하늘의 완전한 승리의 터전이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그러한 중심적인 존재가 역사시대에 왔다 갔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이 사람이다'라고 확정지어 공인할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거기에 대하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반 사람들은 제외하고라도 종교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종교인 중에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완전한 승리의 출발자로서,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할 수 있는 개인이 있어서 '이는 역사적인 결실자요 현실의 중심이며 미래의 출발이 될 수 있다. 이분이 아니면 안된다'고 하는 중심존재가 있느냐 하는 것을 종교인에게 묻게 될 때, 수많은 종파로 갈라져 있는 종교계에서는 자기가 숭상하고 있는 종교의 종주가 그렇다고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 종주들을 비교하여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중심존재가 이분이다'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결정해 놓고 신앙해 나가는 신앙인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후의 승리를 바라기 전에 우리 개체에 있어서 승리의 출발점을 다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성인들이 있습니다. 성인은 대관절 어떠한 사람이냐? 이들은 인간을 중심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의 입장에서, 자기를 중심삼은 주장을 가지고 하나의 국가 형성을 꿈꾸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순전히 하나님, 신(神)이라는, 또 다른 하나의 주체적인 존재를 자기의 전체 생활과 이상 가운데 개입시켜 가지고, 그로 말미암은 생활관과 그로 말미암은 국가관과 그로 말미암은 세계관을 제시하고 나섰습니다.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싸움의 도상에서 몰려 가지고 희생과 제물의 자리를 지키며 간 사람들이 성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더라도 예수님은 당시대에 이스라엘 민족과 로마 나라 앞에 용납받을 수 없는 반역자로 몰렸던 것입니다. 그분은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오시리라고 바라던 메시아요, 바라던 중심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유대교 자체가 그분을 핍박의 자리로 몰아 넣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를 따른 무리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각오했던 모든 무리가 예수님이 죽음이라는 최후의 자리를 맞이했을 때는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을 갔던 것입니다. 예수만이 홀로 이 땅 위에 있었습니다. 예수만이 홀로 죽음길을 지켰습니다. 죽음길에서도 자기가 주장했던 일념을 남기기 위하여 끝까지 싸우다가 간 대표적인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수많은 의인이나 선열들도 역시 그들의 나라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고 반역자로 몰려 죽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한 나라만을 위하고, 자기의 인간적인 주장을 펼치다 죽은 사람, 자기 나라를 위해 죽은 애국자는 많을는지 모르지만, 인간을 초월하여 신을 위하여, 신의 생활관이라든가 신의 국가관이라든가, 신의 세계관을 위하여 이 땅의 인류를 대표하여 역사시대에 있어서 자기 생명을 하나님이 바라는 가치적인 자리에서 뜻 있게 바치고 간 사람은 적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성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석가, 공자, 마호메트가 4대 성현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대관절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자기를 주장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인간을 위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주한 것입니다. 신을 위주로 하여, 신이 바라는 소망의 세계관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누구보다도 생명을 개의치 않고 싸워 나간 무리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자그마치 이들이 주장한 것은 국가주의가 아니라 세계주의입니다. 이들이 싸운 것은 자기를 위하여 싸운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 싸웠으며, 세계를 위해서 싸웠을 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을 위해 싸웠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들은 개인주의를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가정주의를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개인주의를 주장하되, 세계와 연결시킬 수 있는 개인주의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가정주의를 주장하되, 자기 민족만을 위한 가정주의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가정주의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개인주의를 버린 것이 아닙니다. 개인주의를 주장하되 보다 높은 차원의 개인주의를 주장했고, 가정주의를 주장하되 보다 높은 차원의 가정주의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이들이 씨족주의를 부정했느냐? 아닙니다. 씨족주의를 주장하되 보다 높은 차원의 씨족주의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씨족주의를 주장한 것은 세계를 이어받기 위한 씨족주의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민족주의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 민족주의는 현재 자기 민족에게만 규합되어 가지고 그 가운데 포괄될 수 있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그 민족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지도할 수 있는 민족주의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국가주의를 부정했느냐? 아닙니다. 국가주의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주장한 국가주의는 단일민족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국가주의가 아니라, 세계의 공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차원 높은 입장에서 국가주의를 주장했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분들이 주장한 것이 국가주의뿐이었더냐? 아닙니다. 국가를 넘어서…. 국가주의를 필요로 한 것은 그 국가를 기반으로 하여 보다 높은 차원의 이상적 세계를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기대가 필요해서 국가주의를 주장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들이 주장했던 국가주의가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지, 그들은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국가주의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주의의 현현과 더불어 세계주의의 출발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국가주의가 현현되기 전에는 세계주의의 이상은 나타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타락된 인류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바라는 것, 즉 우리 개인들이 바라는 욕망은 전부 다 세계적인 인물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내에서 기억될 수 있는 인물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적인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또,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공통적인 심성(心性)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가야 할 최후의 목적점은 국가주의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민족관념을 벗어나지 못하는 국가주의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국가주의를 주장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그런 국가로 형성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미래의 이상적인 세계 앞에 주체성을 갖고 나타날 수 없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최후의 승리점을 찾기 위해 어떤 개인을 추구하시는데, 그 개인은 자기 가정을 위한 개인이 아닙니다. 그 개인은 가정을 이끌어 가지고 세계를 위할 수 있는 개인이어야 개인적인 최후의 승리자로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 앞에 필요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 개인은 자기 가정만을 위한 개인이 아닙니다. 그 가정을 이끌어 가지고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주체적인 가치의 존재이어야만, 하나님이 최후에 바랄 수 있는 승리자로 등장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최후의 승리자로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권내에 세워질 수 있는 개인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새로운 관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악한 세계를 수습하려면 개인에서부터 수습하여 가정을 수습해야 되고, 민족을 수습해야 되고, 국가, 세계를 수습해야 됩니다. 그래야 이상적인 세계가 온다고 보게 될 때에, 그 수습의 출발은 개인에서부터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개인은 어떤 개인이어야 하느냐? 가정내에 포괄된 입장에서 가치를 추구하는 개인이 아니라, 가정을 이끌어 가지고 씨족 앞에 주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을 이어받을 수 있는 입장에서 주체적인 사명을 다해야 개인적 가치에서 하늘의 승리적 출발이 현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외의 길이 있다면, 이 땅 위에,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길 가운데 나타났어야 되는 것입니다.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가는 방향이 틀렸고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생활 자체가 틀렸음을 말해 주는 것임을 여기서 우리들은 시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차원 높은 입장에 서서 우리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하늘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출발할 수 있는 개인적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개인이 하나의 가정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승리적 주체가 되는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이 완전히 일체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은 자기 가정의 이익만을 위하여 사는 가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가정은 씨족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개인이 주체가 되어 가정을 상대로 해 가지고 하나되어야 됩니다.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완전히 통일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체의 목적이나 상대의 목적이 보다 높은 세계를 추구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악한 현재의 세계를 초월한 입장에서 천주주의(天宙主義)라고 하는 입체적인 세계관을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된 주체가 있어야만 대상의 세계를 바라서 진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체적인 내용이 갖추어지지 않고서는 상대적인 세계가 올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러한 원칙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가정이 되면, 그 가정은 또 다른 하나의 플러스가 되어 가지고 씨족권내에 있는 수많은 가정들을 하나 만드는 놀음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로 만드는 것은 씨족들이 잘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되어 가지고 나라를 형성하고, 나라를 형성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형성하기 위한 하나의 씨족권을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 주체적인 가정이 가는 길을 다른 가정들이 절대적으로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씨족 형성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너면 너고 나면 나지 하면서 서로 관계가 없다고 하는 부정적인 요인이 나타나게 될 때는 이상적인 민족 형성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선한 주체를 중심삼고 상대적권에 있는 모든 가정들은 절대 복종하라는 운동을 하나님이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씨족이 그 가정과 하나되면, 비로소 통일권을 이뤄 가지고 또 다른 하나의 플러스적인 사명을 하여, 보다 차원 높은 씨족권을 중심삼고 같은 공식적인 원칙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의 씨족이 있다면, 그 씨족이 바라는 국가, 그 씨족이 바라는 세계, 그 씨족이 바라는 천적인 이념의 세계를 중심삼고 다른 씨족들은 규합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주체되는 것, 플러스되는 것이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상대되는 것이 따라와야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이것은 개인의 중심이요, 가정의 중심이요, 씨족의 중심이기 때문에, 이동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중심이 이동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음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종교가 나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종교를 중심삼고 이런 뜻을 이루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 종교를 중심삼고 그런 교육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종교의 교리를 통하여 교육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교리는 중심을 대한 절대적인 신앙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적 대표자, 그러한 개인이 없는 세상에 개인을 대표하고, 그러한 가정이 없는 세상에서 가정을 대표하고, 그러한 종족이 없는 세상에서 종족을 대표하고, 그러한 국가가 없는 세상에서 국가를 대표한 그와 더불어 하나되게 될 때는, 개인의 형성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주체적 개인의 형성권이 가정의 중심으로 확대되게 될 때에는 가정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 발전하게 될 때 씨족, 민족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음을 하나님은 바라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라든가 불교라든가, 혹은 유교라든가 회회교라든가,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이상형을 이어받을 수 있는 개인적인 가치관을 주장하는 종교, 가정적인 가치관을 주장하는 종교가 있느냐? 있을 성싶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악한 세계에 인류가 절충하여, 확실한 하나의 경계선을 그어 선과 악이 공동보조를 취해서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좌익이니 우익이니, 민주세계니 공산세계니 하면서 공존을 주장하고 있지만, 공존의 원칙을 포기하기 전에는, 좌익이면 좌익이 된 원인을 부정하기 전에는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원인을 강조하는 한 공존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민주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존하기 위해서는 출발점이 달라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대하는 곳곳마다 추구하고 주장하는 면이 다르게 나타나게 될 때는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상극과 상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생활적인 면에서 자기 입장을 부정하고 자기를 주장하지 않을 수 있는 또 다른 무엇을 발견해 가지고 그것을 주장할 수 있는 생활적인 요인이 된다면 거기서부터 공존의 이념은 있을 수 있으되, 상충적인 내용 그 자체를 가지고는 공존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선과 악이 손을 잡고 같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선은 어디까지나 절대적인 것입니다. 선은 악이 될 수 없습니다. 또, 악이 선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은 절대적인 선이기 때문에 선은 일방통행입니다. 악은 절대적인 선 앞에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쌍방통행이 아닙니다. 이것 역시 일방통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악과는 절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악이 아무리 하나님과 공존하기를 바란다 하더라도 공존할 수 없습니다. 공존하려면 하나님이 자체를 부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은 절대적인 상대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되는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종교인들이 절대적인 플러스 되시는 하나님 앞에 또 다른 하나의 플러스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플러스와 플러스는 반발합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 입장이냐? 인간에게는 양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플러스 입장으로 계시기 때문에 인간은 양심을 중심삼고 마이너스 입장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이 없었다면 자동적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자체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본성이라는 주체 앞에 또 다른 주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상충이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마음이 원하는 것을 몸뚱이가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싸움입니다. 본래 인간은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어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마이너스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인간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비로소 마이너스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기 전에는 절대적인 분 앞에 마이너스가 못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래의 창조원칙입니다.
그런데 몸이 또 하나의 플러스가 되어서 상충이 벌어지니까 마이너스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이 몸의 플러스를 제거시키고 마이너스권내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몸을 쳐라, 때려잡아라 하는 것입니다. 몸을 때려잡으면 어떻게 되느냐? 인간의 본성에 완전히 몸이 끌려가는 사람이 되면 비로소 마이너스권이 벌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가르침은 전부 다 몸뚱이가 바라는 것을 끊어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금식을 하라. 자지 말라. 혼자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먹지 말고, 자지 말고,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요구하는 것에 절대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것은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인 마이너스권을 찾지 않으면 하나님과 하나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대되는 몸이 플러스의 영향을 받는 존재형들을 제거시키는 것입니다.
육(肉)은 사탄을 중심삼은 또 다른 하나의 플러스요, 마음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또 다른 하나의 플러스입니다. 플러스가 둘이라는 거예요. 이게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양심아 이겨라' 하고, 사탄은 '몸아 이겨라' 하면서 둘이 조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몸뚱이를 중심삼고 또 다른 마이너스를 만들려고 하고, 하나님은 마음을 중심삼고 또 다른 마이너스를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이 가는 길과 종교인이 가는 길은 방향이 다른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기껏해야 자기만을 생각하는 거예요. 기껏해야 자기 중심삼고 살고 자기 이익만을 취합니다.
그러면 선악이 다른 점은 무엇이냐? '나'라는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악은 자기를 위하여 세계를 굴복시키겠다 하고 나로 말미암아 너는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의 출발점은 어디냐? 사탄입니다. 사탄은 왜 생겨났느냐? 타락으로 인해 생겨났습니다. 타락은 왜 생겨났느냐? 중심을 부정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중심을 부정한 것이 타락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사탄이 인간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선악나무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하더냐?' 하니, 인간은 '그게 아니다!'고 했습니다. 중심을 부정했습니다. 악은 중심을 부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선은 무엇이냐? 개인적인 중심이 아닙니다. 전체의 중심을 시인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선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돼요. 전체의 중심을 시인하는 데서부터 선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전체의 중심을 대표할 수 있는 개인이 중심의 자리에 서게 될 때, 그는 선한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이것을 확실히 결정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혼돈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악은 무엇이냐? 전체의 중심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뭐, 나라가 어디 있어! 어머니 아버지가 어디 있어! 주체가 뭐야. 나 하나면 되지' 이것이 악입니다. 그렇게 출발한 것이 악입니다. 악의 본질은 그렇게 동기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동기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면 악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라구요. 히틀러 같은 사람, '히틀러가 왜 독재자야. 당당한 영웅이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즈음 청년들이 말하듯 '훌륭한 사나이지. 이 악한 세계를 그대로 놓아두는 것보다 칼을 들어서라도 전부 제거하고 하나 만들면 하나되지 못하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럼 왜 그가 독재자라고 낙인찍혔느냐? 그렇게 낙인찍힌 것이 잘못이냐? 아닙니다. 그는 구라파는 게르만 민족을 위해서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게르만 민족이 구라파를 위해서 있어야 한다는 관념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독일 민족을 위해서 구라파가 있는 것이지, 그 외는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구라파의 평화를 위해 독일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구라파의 이익을 위해 독일이 있다고 했다면 그것은 악이 아닙니다. 만약 그가 그러한 통치자였다면, 그는 역사적인 정치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거예요.
선악은 한 자리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럼 악은 뭐냐? 악은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도 나를 위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상충이 벌어지면 지면 '뭐야? 어머니 아버지' 하고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효입니다, 불효.
나라가 서야 할 자리는 세계를 위하는 자리입니다. 세계를 위해 서야 할 본래의 원칙적인 자리에 나라와 주권자가 서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라와 주권자가 그런 자리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천륜을 따라가는 백성은 나라를 위해서 가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세계를 향하여 갈 수 있는 길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날 땅 위에 사는 백성들이 나라를 위해 충성을 해야 하는 것은, 세계로 가는 교량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밖에 없기 때문에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 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그 나라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를 넘어서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통치하실 수 있는 절대적인 중심이 결정되고, 그 절대적인 중심인 하나님으로부터 절대적 상대가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절대적 중심이 되고,인간은 절대적인 횡적 존재가 되어, 이 세계내에 종횡의 일치점이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권이 종적으로 형성될 때, 비로소 인류가 바라는 희망의 세계가 현현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 중심입니다. 중심은 하나입니다. 절대는 하나입니다. 중심이 왔다갔다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이 이 땅 위에서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자리가 내가 설 개인의 자리다'라고 할 수 있는 자리, 그 자리는 영원한 개인의 중심도 되는 것이요, 가정의 중심도 되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씨족의 중심도 되는 것이요, 민족의 중심도 되는 것이요, 국가의 중심도 되는 것이요, 세계의 중심도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 위에 하나의 중심점이 자리잡아 가지고 그 중심과 개인이 하나되게 될 때, 그 개인은 절대적 주체 앞에 하나님이 공인하는 절대적 대상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 주체 앞에 절대적 대상의 가치를 지닌 개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개인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 비로소 가정을 형성하게 되면 가정적 이념의 주체되시는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대상의 가정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되는 데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하나님이 절대적 중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정을 형성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정이 벌어지면 씨족을 형성하고, 그 씨족이 벌어지면 민족을 형성하고, 민족이 벌어지면 국가를 형성하고, 세계까지 형성하자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요, 복귀섭리의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 종교가 찾아 나온 길은 이 세상에서는 '나'라는 것을 절대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개인도, 세상의 가정도, 세상의 씨족도, 세상의 민족도, 세상의 나라도, 세상의 세계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부정하고 나가는 거예요. 그건 왜? 가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악한 세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장하는 개인과 다르고, 가정과 다르고, 민족과 다르고, 국가와 다르고, 세계와 다르니까 이 모든 세상에 대하여서는 관심을 갖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러니까.
그래서 종교와 정치는 분립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이냐? 영원히 분립한다? 아닙니다. 선의 절대적인 중심을 중심삼고 개인적인 인격이 형성되었을 때는, 그 인격을 관리 보장해 줄 수 있는 법적인 체제가 필요할 것이 아니냐 ?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 가정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제도가 필요할 것이 아니냐? 필요합니다. 씨족과 민족을 보호할 수 있고 국가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체제가 필요할 것이 아니냐? 주권체제가 필요할 것이 아니냐?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가르침은 '몸을 때려잡아라. 절대적으로 몸을 부정하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죽고?「살고」 산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이 세상에서 살겠다고 하는 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모두 다 망한다는 거예요. 다 잃어버리고 마는 입장입니다. 이것은 이율배반적인 입장에서 가르쳐 준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인간이 보기에는 허위요, 맹랑한 사실 같지만 원리원칙을 따져 보게 될 때는, 이것은 진리 중의 진리요, 그릇된 현세를 바로 잡을 수 있는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종교인들은 왜 절대복종을 해야 하느냐? 절대적인 주체 앞에 절대적인 상대가 되려니 절대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을 대해서는 죽더라도 절대 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하고 절대 짝하지 말라는 거예요. 사랑하라고 하면서…. 인간을 사랑하되, 인간과 하나되어 있는 죄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해요.
종교에서는 신을 중심삼은 교주, 도주 앞에 절대순종하라고 가르칩니다. 여러분, 왜 그런지 알겠어요? 그들의 주장은, 하나님의 주장을 본받아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보게 되면 그들은 못난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의 가르침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을 보더라도 예수님 자신의 가르침은 없습니다. 전부 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르친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그의 주장은 자기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주장한 것입니다. 세상에 무슨 정치가니 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중심삼고 주장하는데 그것과는 다릅니다. 색깔이 다릅니다. 위인과 성현은 레벨이 다릅니다. 출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걸 알아야 돼요.
절대적인 주체 앞에 절대적인 상대권을 추구시키려니 그러한 절대적인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종교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개인을 통해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그 종시(家長) 앞에, 그 종교의 가르침 앞에 절대 뭐라구요?「순종입니다」 순종이 아니예요. 순종은 누구든지 따라가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을 순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순종이 아니라 복종이라는 것입니다. 복종은 그렇게 할 수 없는데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밥을 먹어야 사는데 금식을 하라고 하고, 졸음이 오는데 자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불행한데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것을 갈라서 오늘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을 확정지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세계로 가는 것이다,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현재는 가지 않고 미래에 갈 것이다 하는 것은 기성교회의 신앙인입니다. 믿고 있으면 천국에 간다는 식입니다. 회개하고 뭐 야단하고는 나오자 마자 싸움을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는 천국에 갈 길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내적 생활 기준으로부터 외적 생활을 체휼해 가지고 대사회에 있어서 주체적인 절대적 존재로서, 여기에 침범받는 종교가 아니라 침범하는 종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체적 권한을 가진 개인이요, 가정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이 연결된 교회가 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씨족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앞으로 미래 민족을 편성하기 위한 씨족임을 알아야 됩니다.
장로교라든가 감리교라든가 성결교라든가 하는 것이 누구를 위해 있어요? 무슨 총회장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총회장의 가는 길은 자기 욕심대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욕심대로 가 보라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면 틀림없이 걸려 버립니다. 그것은 지옥행이라구요. 총회장이 아니라 아무리 별의별 놀음을 다 하더라도…. 총회장은 전체를 대신하여 앞으로 나라와 민족을 형성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단이요 종파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종파의 이익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에 민족을 이루기 위한 종파라는 관념을 못 가졌다면, 그 종파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망해 나오는 것입니다. 종교는 이렇게 세상과 다른 길을 제시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현재 여러분 자신들에게로 돌아와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현재 여러분 자신들은 어디에 서 있느냐? 지금 자기가 주장하는 것이 내 주장에 서 있느냐, 아니면 하나님 한 분만을 위주한 주장에 서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내 주장에 서 있게 될 때는 세상과 같습니다. 사탄의 활동권내에 속해 있는 끄트머리 아니면 중간이요, 중간이 아니면 머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머리나 꽁지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자신은 싫다고 하지만 여러분들에게는 그런 꽁지가 달려 있습니다. 이것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그 꽁지를 끊어 버리고 다른 것으로 이어야 합니다. 그 놀음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 현실적인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그 전에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공적인 일을 위해…. 공적인 길을 가야 합니다. 자기 가정을 이끌어 가지고 종족을 편성하고, 종족을 이끌어 가지고 민족을 편성하고, 민족을 이끌어 가지고 국가를 형성해야 합니다. 국가를 이끌어 가지고 세계를 복귀하고, 세계를 이끌어서 천주를 복귀해야 합니다. 천주를 복귀해 가지고 뭘할 것이냐?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하나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최후에 남는 것은 그것입니다.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 그 다음에는? 통일교회의 말로는 천주복귀(天宙復歸)입니다. 천주복귀해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체로 하여 영계와 육계가 통일된 대표적인 입장에 나서게 될 때, 절대적인 그 주체 앞에 비로소 나는 세계를 대표하는 절대적인 대상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내가 대상자로 등장하면 그것으로 끝나느냐? 아닙니다. 최후에 남는 것은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하나님도 사랑이 아니면 안 되고 인간도 사랑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여기에 귀착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고 설파한 바울의 말이 맞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최후에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보면 뭘해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면 뭘하느냐 말입니다. 그저 심심하고 재미가 없는데 뭘해요? 안 그래요? 배가 부를 수 있어서 하나님을 믿는다? 배가 부르고 나면 뭘해요. 배가 부르도록 먹어 보라구요. 그러면 죽을 지경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겠다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영원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을 만나 관계를 맺어 가지고 그 인연의 도수(度數)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리가 바라보는 인간 자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접붙임을 받게 되면 전세계의 이상적인 중심형을 대신할 수 있는 자리로 확대됩니다. 그렇게 확대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내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서 최후의 승리점을 어디에서 발견할 것이냐? 오늘날 이 세계에서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세계에서 발견하기 전에 나라에서 발견해야 됩니다. 이러한 논리적인 결과에 따라 현세계에서 최후의 승리점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떠한 특정한 나라에서 발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 수 있는 특정한 나라가 있느냐? 만일 특정한 나라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없다면, 특정한 민족에서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갈라져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있기 때문에 특정한 민족은 반드시 이렇게 둘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 다음 민족에서 최후의 승리점을 발견하지 못할 것 같으면 씨족에서 발견하고, 씨족에서 발견하지 못하면 가정에게서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또, 가정에서 발견하지 못하면 개인에서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개인에게서 최후의 승리점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은 종주(宗主)를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 종주의 가르침은 무엇이냐? 세상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개인적인 생활관, 가정관, 국가관, 세계관을 제시하는 심정적 내용의 입체성의 비례에 따라 종교의 등급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말이 좀 어려운 말인데….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고자 할 것이냐? 하나님도 하나님을 중심삼은 하나님적 생활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럴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은 주체와 대상을 겸한, 이성(二性)이 일체가 된 중화적 존재이시기 때문에, 이성이 일체가 된 중화적 대상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하나님에게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성이 일체가 될 수 있는 대상적 중화적 존재가 무엇이냐? 아담 해와는 분립된 주체와 대상인데, 이들이 완전히 하나되어 상대적 중화적 존재로 나타나게 될 때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 마이너스가 되어 플러스인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하나되기 마련입니다.
남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서로 주고받는 운동을 영원히 일으키기 위해서는 내가 너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관점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어떤 운동이든 영원히 계속되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위해 있다 할 때는 스톱입니다. 그렇지요? 내가 너를 위해 있다, 상대를 위해 있다는 관념이 원칙이기 때문에, 동작은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운동은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있는 세계는 운동이 계속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추구하여 올라가게 되면, 하나님은 누구를 위해 계시느냐?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 있지' 하겠지만 아닙니다. 하나님도 별수없이 상대를 위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니까 절대적으로 고독한 자리에 있어야 된다? 아닙니다. 내가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이렇게 얘기 한다면 미친 녀석이라구요. 그렇지만 조그마한 상대를 가지고 그 상대를 보고 웃고 좋아하면 미친 사람이라고 해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을 내가 보고 히히 웃고 춤을 춘다면 미친 사람이예요? 여러분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나만 보이는 것을 보고 춤을 추더라도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상대의 가치에 절대권을 시인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절대적인 주체자가 아니요? 절대적인 주체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적 요인을 총합한 영원한 중심적인 대상의 결정이 벌어지지 않고는 절대자가 될 수 없지 않습니까?'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을 대해 가지고 당당코 '당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부처끼리 서로 당신이라고 하지요? 당신이라고 한다 해서 남자가 여자에게 '기분 나쁘게 당신이 뭐야' 그래요? 그러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승리점은 오늘 이 세상에서는 발견할 성싶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젊은 청년들 '서울 대학교에 들어가야지' 그럽니다. 그래서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우쭐해 합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해 우쭐하는 거예요. 나라를 위해 우쭐하는 거예요? 이 녀석들, 자기가 우쭐하기 전에 나라가 우쭐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서울대학교에 들어간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이제 들어가서 공부해야 할 더 큰 짐이 남아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필요한 인재가 되기 위해 들어가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해 자기가 선출되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내가 출세하기 위해서 대학에 들어갔다고 하는 녀석들은 기껏해야 그런 귀신밖에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한번 걸려 나가자빠지면 거기서 미끄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끝이 오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세계를 위하고 하늘땅을 위해서 살면 끝이 오래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살 거예요? 남을 위해서 살 거예요?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은 자기로 끝나는 것이요, 남을 위해 사는 것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이 존속하는 방법은 내가 주체의 자리에 서더라도 전체의 대상권을 위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 인물이 되겠다는 욕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세계적 인물이 된다면 그는 세계적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권을 밟아 치우는 세계적 주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세계적 주체는 세계적 상대의 형을 빛내기 위한 주체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주체는 주체를 위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인물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상대세계를 위해 태어나고 상대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적인 길은 자기를 부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자기를 부정한다고 해서 자기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또 다른 상대가치에서 찾고자 하는 데서부터 선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이 발전하는 원칙적인 법도요 길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 그러면 개인을 위해 살던 사람이 가정을 버리고, 자기 동네를 버리고, 나라를 위해서 살면 어떻게 되느냐? 여기에는 비약이 벌어집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데, 개인으로서 살던 생활을 벗어나서 대번에 국가를 위해 살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어떻게 되느냐? 국가를 위해서 산다고 하는 그 길이 세계로 연결될 수 있고, 하나님이 보장할 수 있는 길이 될 때는 비약이 벌어집니다. 개인 자체를 부정하고, 가정 자체를 부정하고, 씨족 자체를 부정하고, 민족을 위해서 살게 된다면 비약이 벌어집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본래는 비약이 벌어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래는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기준까지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를 지향하는 주체가 있어서 그 주체가 국가를 위해 나가게 될 때, 자기를 부정하고, 가정을 부정하고 그가 세워 놓은 전통을 따라가고 거기에 보조를 맞추게 되면 비약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건 왜? 전통적 기반이 닦아지면 내가 국가적 기준에 접붙일 수 있는 기반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적 종교를 중심삼고 그 시대에 있어서 완전히 하나되는 사람은 혜택을 받게 됩니다. 통일교회 원리에 의하면 시대적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통일교회가 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는 어떤 길을 가느냐?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와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기성교회는 어떤 길을 가느냐? 기성교회는 기껏해야 영적인 나라, 영적인 이상세계를 바라보면서 가고 있습니다. 믿고 천당가자는 것입니다. 믿고 천당을 이루자고 하면 그것은 현실적이지만, 믿고 천당가자 하는 것은 현실을 중요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천당가는 데 어떻게 가느냐? '나만 간다'고 생각할 때는 천당에 못 가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을 데리고 천당에 가겠다고 하면 천당에 갈 수 있지만, 나만 천당에 가면 된다고 하면 아무리 천당가려고 해도 갈 수 없습니다. 못 갑니다. 못 가는 것입니다. 천당에 가려면 남을 전부 다 데리고 가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같이 데리고 떨어졌기 때문에, 그 이상의 자리에 가려면 데리고 가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을 전부 다 데리고 떨어졌기 때문에, 아담 해와 이상 승리한 자리에 올라가려면 세계를 전부 다 데리고 가려고 해야 합니다. 역사 이래 충신이나 성현들 이상의 심정을 갖고 남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 혼자 가야지' 하는 것은 통하지 않아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개인을 위해서 사는 것보다 국가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대한민국만을 위해 살라는 것이냐?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나라로 서기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가 아닙니다. 이와 같은 나라가 아니라구요.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 수많은 국가가 바라보고 밤이나 낮이나 환영할 수 있는 나라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환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과거 세계에서도 소망의 실체였고, 현재 세계에서도 이상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미래 세계에 우리가 이어받을 수 있는 영원한 출발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나라를 추구해 나가라고 가르쳐 주지 않는 도(道)는 참된 도가 아닙니다. 그러한 종교가 아니면 최후의 승리점까지 뚫고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개인은 누구를 위해 사느냐? '누구를 위해서 살아? 나를 위해 살지' 하면 그것은 낙방입니다. 자기를 위해 산다는 사람 앞에 가정이 있을 수 있어요? 소망의 가정이 없는 것입니다. 나라가 있을 수 있어요? 나라는 안 나옵니다. 거기에 세계가 있을 수 있어요? 세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세계가 나올 수 있는 자리가 없습니다. 있어요, 없어요? 천지의 공약은 '이 개인주의 악당이여 물러가라' 하고 제지하는 것입니다. 개인을 위주하는데 거기에 가정이 들어갈 수 있어요? 거기에 어떤 이상적인 나라가 들어갈 수 있어요? 송곳 끝같이 좁은 데를 들어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이념은 대한민국보다도 세계를 위해서, 지금 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위하여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과는 다르다구요. 누구를 위해 살라구요? 남을 위해서 사는 범위가 크면 거기에는 남을 위해 사는 가정이 들어가요, 못 들어가요?「들어갑니다」 거기에는 남을 위해 살 수 있는 국가가 들어가요, 못 들어가요?「들어갑니다」또, 거기에는 남을 위해 사는 세계가 들어가나요, 안 들어가나요?「들어갑니다」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위해서 살아라 하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이라 하면 피해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 피해를 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피해를 입히는 사람 가운데에는 착한 사람이 없습니다. 피해를 입는 사람이 착한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그것만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어린애들에게 아침 저녁 동네방네에 나가서 아이들과 어울려 싸움을 하면 나쁜 아이가 된다고 말하지요?
그렇지만 피해를 입히기보다는 이익을 입히면 뭐예요? 악이요, 선이요? 선입니다, 선. 선한 사람들은 이익을 입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자기의 이익입니까? 상대에게 이익을 주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산다는 거예요. 그럼 이게 왜 좋은 거예요? 그 가운데서는 이상적인 가정이 생겨날 수 없다?「있다」이상적인 사회가 생겨날 수 없다?「있다」있다는 거예요. 거기에서 이상적인 나라, 이상적인 세계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상형이 나타나는 곳은 하나님이 기대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 선 사람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안 받겠다고 해도 받는 거예요. 그런 작전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게 망하게 되면 역사는 갈 데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같은 사람들은 땅따라지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지 중에서도 맨 끝따라지인 땅따라지라는 거예요. 그것에서 끝나 가지고 바람에 휙 날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는데,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렇게 죽은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 죽은 것이 아닙니다. 만민을 위해서 죽었기 때문에 그는 멋진 사나이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도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교회가 되지 말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지금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우리는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일하고 난 결과 통일교회가 망하느냐? 지금 통일교회 자체에서는 마이너스입니다. 우리 자체를 회상해 보게 된다면, 통일교회를 위해서 일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망하게 될 수 있느냐? 망하게 될 수 없습니다. 망하게 될 수 있다? 「없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대한민국은 그만두고 세계를 위해서 살고, 살기를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 사람들이 공인할 때까지 살게 될 때는 세계는 세계를 위해서 산다는 무리들의 지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계가 지도를 받으면 세계의 주체가 되는 것이요, 지상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찾아오시는 데도 중심을 찾아오시기 때문에, 지상의 중심이 되면 여기에 오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세계에서 제일 빠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개인은 가정의 중심이요, 민족의 중심입니다. 그 개인은 국가의 중심이요, 세계의 중심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하기 위해 지상에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러면 메시아는 어떻게 오실 것이냐? 만일 그분이 개인적인 기반만 갖고 오신다면 그분은 개인적 주체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남자만으로서는 주체가 못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것이 종적인 주체라면 종적 기준밖에 없기 때문에 횡적인 기준이 필요합니다. 종횡이 합하지 않고서는 조화가 벌어지지 않습니다. 십(十)자는 사방으로 종횡을 합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사방으로 종횡을 규합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오시는 메시아는, 예수님이 진짜 인류의 메시아라면 그 예수님은 무엇을 찾아오시느냐? 예수님이 남자니까 신부를 찾아오시는 것이 천지이치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가정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 가정은 자기 가정만을 위한 가정이 아니고, 자기 종족만을 위한 가정이 아닙니다. 세계의 가정을 대표한 가정입니다. 그렇게 세계적인 가정을 대표한 가정이 합하여 종족을 형성할 때, 그 종족은 특정한 민족을 위한 종족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종족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 종족이 규합되어 민족을 형성할 때, 그렇게 형성된 민족은 특정한 민족을 위한 민족이 아니라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 민족이 규합하여 국가를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국가는 특정한 나라를 위한 국가가 아니라 세계를 대표하는 국가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상적인 국가입니다.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가는 데 있어서 걸림이 없어야 합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이 승리점을 이어받고, 가정으로부터 민족이 승리점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러한 패턴으로 가정의 승리점을 종족이 이어받고, 종족의 승리점을 민족이, 민족의 승리점을 국가가, 국가의 승리점을 세계가 이어받아 넘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패턴이 출발과 동시에 변함없이, 개인에서부터 세계까지 이어받을 수 있는, 일관된 인연을 갖춘 터전이 지상에 벌어지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섭리적 최후의 승리점은 이 땅 위에 현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것이 없이 이 땅 위에 평화의 세계는 올 수가 없습니다. 희망하는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자그마치 그런 소망의 개인으로 일깨우기 위해 나타난 단체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자그마치 개인뿐만 아니라 그런 가정을 창설하기 위해 불리워진 무리인 것입니다. 가정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종족을 편성해야 합니다. 이 종족은 민족 감정을 초월하여 세계적인 종족을 편성해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10개 국의 민족들을 규합하여 합동결혼식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나라의 자식이 아닙니다. 새로운 이상을 중심삼고 새로운 승리점을 이어받을 수 있는 가정을 형성하기 위한 세계적인 무리인 것입니다. 이렇게 국가와 민족감정을 초월한 종족을 편성해 가지고 그 수가 확대되어, 이 악한 사탄세계의 그 어떠한 나라보다도 우위에 설 수 있는 나라,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주권국가가 형성되는 날에는, 비로소 사탄 앞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대행할 수 있는 지상기반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때가 되면 심판법도시대가 올 것입니다. 절대적인 법을 중심삼고 세계를 치리하는 주체적인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지상심판시대가 될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민족을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찾아 오시는 것입니다. 사탄이 지금까지 악한 세계를 만들어 가지고, 수십 수백개 국가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 자랑할 수 있는 나라는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라톤 선수가 수백 명이라도 거기에서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일등 한 사람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악한 세계에 있어서 사탄이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수난길에 몰아넣을수 있는 대표적인 나라는 사탄을 위하여 가장 충성하는 한 나라입니다. 다시 말하면 많은 사탄국가 가운데서 세계적인 대표국가 한 나라를 중심삼고 악을 추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악한 사탄세계의 한 나라보다도 우위에 설 수 있는 선한 나라가 나오는 날에는 당당히 사탄세계를 때려부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기독교가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탄세계를 대표한 것이 공산당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민주세계에서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고 공산세계의 주권 국가 이상의 주권 국가를 형성해야 합니다. 공산세계에서는 생명을 위협하고 협박을 해 가지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를 걸어서 세계적인 발전을 시켜 나오지만, 오시는 주님은 그런 사상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타의에 의해서 생명을 위협받고, 자기 생명을 바치는 것보다도, 자진해서 생명을 바치고 나서는 무리로 말미암아 형성된 주권 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나라가 공산당을 능가할 수 있게끔 주권자와 국민이 일체가 되어 공산세계의 국가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하나의 국가 형성의 터전이 이 땅 위에 벌어지는 날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한 공산당을 때려부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불려가고 모택동이 불려가고 3대만 교체되는 날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부름받은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찾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실 수 있는 하나의 나라를 위하여, 보다 가치 있는 하나의 나라를 위하여…. 역사 이래 어떠한 나라보다도 우위에 서서 역사적 전통을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국가와 국민이 되어 한 분의 주권자를 모시는 것이 기독교의 사명이요, 수많은 종교의 사명입니다.
그 주권자로 오시는 분이 누구냐? 그분이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는 개인을 지도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메시아는 국가와 민족을 치리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개인의 터전이 없기 때문에 개인의 길을 닦아야 되고, 가정의 터전이 없기 때문에 가정의 길을 닦아야 되고, 종족, 민족, 국가의 터전이 없기 때문에 그 길을 닦아야 됩니다.
왜 그러냐?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그 터전을 닦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스릴 수 있는 나라의 기반이 깨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 나라의 기반을 갖지 못한 예수님은 비참하게도 가정적인 기반도 갖지 못했을 뿐더러, 개인적인 기반도 갖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형성하는 데는 가정이 출발의 기원이기 때문에, 가정을 찾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예수님은 '나는 죽지만 다시 찾아와서 가정을 찾아야 되겠다'는 최후의 유언을 남기셨던 것이 기독교의 신랑 신부의 이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출발도 못 했다는 것입니다.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사내로서 사내 노릇도 못 하고 가신 예수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가정을 가져 가지고 예수님의 직계 혈족이 있었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누구의 통치권에 있을 것이냐? 예수님의 선한 직계 후손에 의해 치리를 받기 때문에, 바오로 6세와 같은 천주교 교황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장로교, 감리교, 혹은 구교 신교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의 체계화된 세계적인 주권국가 형태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세계적 판도가 되었을 것이고, 그러한 기반만 되었다면 공산당은 나올래야 나올 수 없습니다.
이렇게 비참하게 된 원인이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동기가 되었고,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역사적 비운을 맞게 되었다는 것을 기독교 신자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운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국가와 세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 출발의 기원을 개인으로 다짐하고, 가정으로 다짐하고, 종족, 민족, 국가로 다짐하는 나라는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민족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민족이 망하게 되면 하나님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무리를 옹호하고 발전시켜 놓아야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한 무리들을 제거시키는 날에는 하나님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한 그러한 무리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승리의 최종점, 최후의 승리점은 여러분이 닦아야 합니다. 그 발판이 어디로 가야 하느냐? 개인은 가정 전원에게 넘겨주고, 가정은 종족 전원에게 넘겨주고, 종족은 민족 전원에게 넘겨주어야 합니다. 민족이 그것을 넘겨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새로운 이스라엘의 출애급노정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해서 그 민족이 거국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계승 민족이 될 때는 세계를 대표하고, 세계를 주관하는 것입니다.
한국을 통하여 그러한 나라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한국으로부터 세계로 이어받아 가지고 영계와 육계까지 완전히 이것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이 하나님 앞에 결속되어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결정되었다는 평화의 기점이 이 천주간에 형성되는 날이 와야만, 비로소 천상천하에 최후의 승리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비로소 웃으실 수 있고 , '아! 다 이루었다'고 하실 수 있으며, '내 앞에는 행복만이 있을 뿐이다. 내 앞에는 더이상 억울하고 분한 소모와 희생의 역사적인 탕감노정과 구원섭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낙인이 찍혀야 합니다. 이 지구성과 영계에 있는 영인들을 해방시켜 가지고, 그들이 완전히 해방된 자리에서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을 가져야만 최후의 승리점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야만 영원히 천상천하에 평화의 왕국시대. 그야말로 행복이 시작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가야 됩니다. 난 것도 그것을 위해….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봐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교회도 있고 다 가진 것 같지만, 갖고 있는 것은 전부 다 남을 위해서 또 세계를 위해서 갖고 있습니다. 돈이 있다고 해서 내가 양복을 해 입고 집을 사겠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 이런 집에 살고 있지만 돈이 있다면 나라를 위해 쓰려고 합니다.
내가 이번에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수십만 달러를 쓰고 왔습니다. 한국을 위해 그 돈을 썼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렇잖아요? 못사는 한국의 통일교회. 지금도 지방에 가 보면 도깨비집 같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끄러워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농부가 초야에서 자고 일어나 그 손으로 생명을 지닌 씨를 뿌리는 것은 허망하고 처량한 놀음이라구요. 한 되밖에 안 되는 밑천까지 다 뿌린다고 그가 어리석은 사람이예요? 그 결과를 모르고 뿌린다면 그는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딱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통일교회인데도 불구하고 세계를 위해 돈을 뿌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런 것을 두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십만 달러를 어떻게 쓴다느니, 돈을 얼마나 많이 쓰고 다닌다느니, 별의별 소문이 났습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는 거예요. 망하려고? 한 되밖에 안 되는 씨를 뿌리는 농부와 마찬가지로, 그것밖에 없는데도 세계를 위해서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뿌리고 나서 쫓겨나느냐? 아닙니다. 내가 쫓겨날 길이 생길 때 세계의 사람들이 내 대신 쫓겨나겠다고 하게 되는 날 세계는 통일교회를 위해서 있게 될 것입니다. 왜 그러냐? 통일교회가 세계를 위해서 있었으니까 세계도 통일교회를 위해서 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자연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이것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입은 옷이 초라하다고 해서 그걸 보고 슬퍼하는 사람은 망해야 됩니다. 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대하고 있는 실상이 처량하다고 해서 눈물지으면 망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관념을 초월했습니다. 누운 자리가 초라하다고 해서 이것을 원망하고 지난날을 생각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누가 통일교회 자체를 보고 통일교회 본부가 왜 이렇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뭐 어떻고 어떻고, 세계적인 그 무엇이 되었으니 본부를 새로 지어야 될 것이 아니냐고 권고하기 전에 내가 너무나 잘 아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끝까지, 세계에 갈 때까지 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는데도 통일교회가 망한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가짜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 문선생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어디에 가든지 거처할 집이 있습니다. 어디 가든지 남부럽지 않는 터전이 다 되어 있습니다. 내가 원치 않아도 그 나라에서 제일 고급차를 주려고 합니다. 그것은 왜 그러는 거예요? 주고받는 주체와 대상은…. 대상은 주체의 원동력에 해당하는 상대적인 가치자로 등장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상대자가 주체의 기준 앞에 미치지 못하게 될 때는, 마음에 미안함을 느껴서라도 비례적인 기준 앞에 서려는 것이 천리 원칙입니다. 인간이 타락했을망정 이 본성이 있기 때문에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외국 식구들이 선생님을 위해서 잘한다고 하면서 하고 나서도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서…. 선생님이 무서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본심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여러분 본심이 그러한 것을 볼 때에 그런 길은 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이상은 지옥까지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이제 알겠어요? 지옥까지 해방하자는 거예요. 지상의 공산당 해방은 물론이고 영계의 지옥까지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방하느냐? 그것을 해방하는 것은 선생님이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만 들으면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상적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지옥을 만들어 인간에게 고통을 주고 기뻐하실 분이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기쁨의 날이 오면, 잔칫날이 되면 지나가는 거지도, 관계없는 거지까지도 기쁘게 해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녀와 마찬가지의 입장에 있는 인류를 그와 같은 신음의 자리에 두고 하나님만이 영원한 태평왕국의 주인공으로 군림하고자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만국 만민 어느누구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기준이 세워지게 될 때에, 비로소 승리의 종착점을 맞게 된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그곳을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은 어떤 자리에 있습니까? 개인을 위해서 산다면 이 다음에 영계에 가더라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게는 가정도 없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가정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상적인 종족권내에 인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될 게 아니예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전세계 인류와 더불어 공통적인 이상을 갖고 형제와 같이 살겠다고 한다면, 그것을 위해서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사랑하기를 바라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기쁨으로 뛰어다닐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는 영계에 가서 막히는 무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세계적인 뜻을 이루시옵소서. 통일교회 이념이 세계로 가는 문이 열리소서'라고 기도하는데, 세계 사람들이 오면 얼마나 관심을 가졌습니까? 자기의 조카사위나, 조카며느리만큼이라도 생각해 봤습니까? 아주머니들! 사촌동생, 사촌형님만큼이라도 생각해 봤어요? 다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가 왔으면 '야, 우리의 이상의 때가 왔구나. 대한민국 사람이 세계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역사시대에 처음 있는 때가 왔구나' 하면서 있는 성심을 다해서 한 조각의 비스켓을 대접해도 괜찮다는 거예요. 한모금의 보리차라도 좋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정성들여 가지고 하나의 조건물로라도 그들과 더불어 관계맺겠다고 움직이는 데서만이, 앞으로 주체적인 통일교회인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만일 외국 식구들이 여러분보다 더 정성을 들여 그렇게 하게 될 때는, 여러분들은 그 자리를 물려줘야 되는 것입니다. 물려줘야 되겠어요, 안 물려줘야 되겠어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물려주게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대답해 보세요. 물려줘야 되겠어요, 안 물려줘야 되겠어요?「……」 '아, 통일교회라는 것은 한국에서 나왔기 때문에 한국을 빼놓으면 안 됩니다'라고 할 수 있어요? 천만에요.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기 때문에 보다 낮은 곳에 길이 열리게 되면 조금 높은 길을 비켜 놓고 보다 낮은 길로 흘러 안가는 것이다?「가는 것이다」 그건 아누만.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서 누가 세계를 더 사랑하느냐? 세계를 더 사랑하는 사람을 통하여 세계의 주류사상이 흘러가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지금까지 그렇게 핍박을 받고, 그렇게 욕을 먹고 비틀걸음을 걸어오다가 그날을 맞이하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눈을 바로 뜨고 외국 식구들을 눈물어린 심정으로 대하고, 감사하는 심정으로 대하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통역을 세워서라도 한마디의 말을 하고 싶고, 무엇이라도 주고 싶은 생활적인 유대가 결핍되어 들어가게 되면, 이 새로운 이념은 하나님이 바라는 상대적 생활권을 유지해 나가는 무리들 앞에 옮겨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옮겨져야 되겠어요. 옮겨지지 않아야 되겠어요?
지금 여러분을 가만히 보게 되면 교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뭐가 어떻게 되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구요. 하나님은 대한민국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계의 통일교회 교인들을 위한 하나님입니다.
선생님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기가 막히다구요. 좋은 의미에서 기가 막힌 것이 아니라 기가 막힌 의미에서 기가 막힌 것입니다. 한국 민족은 저주로 벌을 내리라고 하늘 앞에 호소할 수 있는 내용이 얼마든지 있는 민족입니다.
보라구요. 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지만 대한민국으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을 위해서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이 나를 핍박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내가 미국 같은 곳으로 이민을 가겠다고 광고를 내게 되면 '아 문선생 가지 마소'라고 할 때가 올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가고 난 후에 십년 아니 몇년도 못 가서 눈물을 흘리는 무리들이 많이 나타날지 모릅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싸운 것은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닦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길을 닦지 못하면 세계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천신만고 수난길을 극복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내 개인의 승리점을 다짐하고, 우리 가정의 승리점을 다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그것을 못 한다면, 우리 가정에서 종족을 대표하고, 우리 가정에서 민족을 대표하고, 우리 가정에서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중심기준을 남겨 가지고 이 길을 가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활철학입니다.
여러분은 잠을 자고 쉬고 있었지만 선생님은 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 있어서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가정이 자랑할 수 있는 본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돼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통일교회에 나온 지 오래되었다는 사람들, 소위 오래되었다는 사람들이 도리어 교회가 가는 길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떡잎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떡잎밖에 될 수 없습니다. 자기 후계자들을 존중하지 못하는 선배들은 제거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로 가는 승리점, 민족적이요 국가적인 승리점을 이어받아 가지고 언제든지 선두에 서고, 주류에 설 수 있는 행로를 상실하는 여러분이 된다면 비참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선생님과 더불어 같은 민족이요, 같은 길을 나섰을 바에는 끝까지 동참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인류를 해방하고 하나님을 해방해 드려야 합니다. 효자는 부모를 해방시켜 드리는 사람, 완전히 해방시켜 드리는 사람입니다. 충신은 군왕을 완전히 해방시켜 주는 사람입니다. 성인은 뭐냐? 하나님의 충신입니다. 성인은 하나님 앞에 충신의 절개를 남기고자 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성인들이 실패한 자리 이상의 자리에서 영계와 육계, 다시 말하면 천주를 해방하자, 보다 심정적인 이상, 하나님의 이상적인 해방자로 등장하자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입니다. 엄청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여러분 가운데는 구더기보다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시시한 패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선이 가는 본래의 노정을 정상적으로 가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의 세계까지 관철할 수 있는 행로를 자기 마음의 세계에서부터 가려 놓고 가지 않으면 이상적인 천국이상세계는 여러분과 관계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개인적 승리점, 가정적 승리점, 종족적 승리점, 민족적 승리점, 국가적 승리점, 세계적 승리점, 천주적 승리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 8단계까지 넘어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이 세상에는 그런 승리점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돌아서서 새로운 출발점, 즉 새로운 개인에서부터, 새로운 가정에서부터 이 길을 닦아 나가야 됩니다. 이제 우리 통일교회가 많이 올라왔습니다.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기준을 중심삼고 이제는 민족편성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때에 들어왔습니다.
주체는 상대를 창조해 내야 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원칙입니다. 주체는 상대를 창조해 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상대를 창조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주체는 새로운 상대를 창조해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통일교회 씨족은 새로운 민족을 창조해야 합니다. 새로운 민족이 찾아지는 날에는 새로운 국가를 창건해야 합니다. 새로운 국가를 창건한 후에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형성해 가지고, 천상천하에 통일적인 기반을 닦아서 하나님을 지상에 모셔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 앞에 효도를 하고, 하늘나라의 애국자가 되고, 하늘나라의 충신이 되어 가지고 가는 곳이 하나님의 이상세계인 천국입니다. 이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상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효자가 되고, 애국자가 되고, 세계적인 충신이 되어야 합니다. 애국자는 국가적인 충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계적인 성현보다 나아야 됩니다. 어떠한 성인보다 낫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낙원에 갔지요? 낙원은 천국가기 전에 머무는 대합실입니다.
이런 엄청난 과제를 앞에 놓고 가는 여러분인 것을 알고, 그곳까지 가려면 갈 길이 바쁜데 일생은 짧습니다. 그러니 밤이나 낮이나 쉬고 난 뒤에는 회개해야 합니다. 잠을 자고 나서도 회개해야 합니다. 일을 하고 난 뒤에도 하늘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더 해야 할 책임이 우리 앞에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더 하지 못하고 돌아선다고 눈물지을 수 있는 걸음을 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하는 신앙 생활인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고, 최후의 종착점까지, 최후의 승리점까지 극복하며 넘어가 주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님! 이 자리는 초라한 자리이지만,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의 어린 자녀들이 눈물로 사모하는 자리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런 내용은 세상 사람들은 알래야 알 수 없는 것임을 생각할 때. 이것이 원통하면서도 도리어 이것이 복됨을 느끼옵니다.
이 자리는 악한 무리가 알아서는 안 되는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진짜 순수하고 참된 심정적 유대를 거치지 않고서는 이 자리를 진실로 알 수 없는 자리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가치적인 존재만이 가치의 세계, 가치의 행로를 더듬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얼마나 당신이 역사적인 운명을 지니고 오셨는가를 생각하면, 천번 만번 우리 조상의 실수를 참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역사이래 잘못된 선조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수십 억이 살고 있는 이 땅 위의 사악한 현실을, 자비의 아버지여,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금후에 우리 후손들이 이어받을 수 있는 역사적인 비참상이 어디에서 종결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통일교회 무리들이 이것을 돌이켜 후대 앞에 아버님께서 기뻐하시고 아버님께서 소망하시는 전폭적인 환경을 상속시키고자 하는 것이 일체의 관념이요 일체의 생활의 희망인 것을 당신이 아시사, 아버지께서는 이들이 가는 길을 지금까지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들은 불쌍한 무리옵니다. 당신이 불쌍하시기 때문에 당신을 위하여 효의 도리를 지키고 충의 도리를 지키는 자들도 불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 통일교인은 불쌍한 무리이옵니다. 나라의 3정권으로부터 핍박을 받아 왔고 수많은 교단 앞에 고아의 신세, 의붓자식 취급을 받아 왔습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는 성경 말씀과 같이 이제 이 민족이 저희들을 붙들지 않고서는 갈 길을 모색할 수 없는 단계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이날이 오기를 얼마나 고대했사옵니까? 당신이 이때를 만나기 위해 마음으로 얼마나 바라오셨는가를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사방으로 벌어진 환경을 바라보게 될 때, 이 땅 위에는 잘난 사람도 많이 있사옵니다. 잘난 나라도 많은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어쩌자고 당신께서는 불쌍한 이 민족을 찾아오셨습니까? 인간 쓰레기와 같은 무리들을 붙들고 이 엄청난 소망의 세계를 더듬어 가지 않으면 안 될 불쌍한 아버지이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는 외적으로 가진 것이 없사오나 당신이 걷고 있는 모습을 보고 눈물로 동정할 수 있는 심정적인 아들딸이 되려고 하는 것만은 틀림없사옵니다.
아버지! 아시아 정세를 직시하게 될 때에, 금후에 한국 민족이 가야할 길은 막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후에 한국이 회생될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세계를 더듬으면서 안간힘을 다 써 오신 당신의 뜻이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을 또다시 찾아와 오늘 20일째를 맞는 이날, 이달의 마지막 안식일을 맞이하였사옵니다.
아버님! 지나가는 날 가운데에 있어서 웬일인지 이 민족을 중심삼고 하늘의 운세가 몰려오고 있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아버지, 통일교회 무리들이 자리를 깔고 베옷을 입고서 최후의 담판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될 때가 된 것을 절절이 느끼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최후의 승리점이 어디냐고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추구하고, 찾아오고, 소원하고, 희망하는 최후의 승리점이 어떠한 자리냐고 묻고 싶습니다. 그 승리점에서 살기를 바라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요, 그 승리점에서 죽기를 바라는 것이 당신의 소원일진대 그것이 자신에게 있어서 어떠한 자리인가를 반문해야 되겠습니다.
이제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어떻게 가야하고 어떻게 해야 됨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알고 행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고 하늘은 경고하였습니다. 보다 큰 것을 위하여…. 통일교회보다 큰 것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통일교회를 희생시키더라도, 그 나라를 중심삼고 찬양할 수 있는 자리를 위해 가고 있는 교회가 되기를 저는 지금까지 바라왔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 앞에 이 전통적 기개를 이어받으라고 호소했습니다. 주류적인 사상을 고이 접어 이어받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새로운 세계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사오니, 아버지, 새로운 기동대 편성을 지켜 주시옵소서. 이 일을 당신이 지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한 곳밖에 믿을 수 없던 무리들이…. 한 곳에 중심이 된 이 선생의 명령을 받고 출발한 일이, 만일 실패하는 날에는 저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사옵니다.
아버지, 이 길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당신 앞에 맡겼사옵니다. 무리하고 과분한 짐을 지운 연유는 당신을 사랑한 나머지 불가피한 것임을 당신이 잘 아실 것이오니, 그 진심을 받으시옵소서. 이들의 갈 길 앞에 핍박도 많을 것이옵니다. 그 핍박의 길 앞에 패배자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끝까지 싸워 승리하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미국이 그러하고, 영국이 그러하고, 독일이 그러하고, 일본이 그러하듯이, 이제 한국도 그러한 대열을 편성하고 있사오니, 아버지,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여기 통일교회의 문이라는 자식을 사랑하시거든, 제 정경을 보아 사랑하는 자리에 서지 마시옵고, 통일교회 불쌍한 무리의 정경을 보아서 당신이 사랑하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에서 열, 열에서 백, 통일교회 전체 무리를 당신이 동정하시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무리가 되면 저희들이 소원하는 것은 기필코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뜻을 이어받고 축복의 한날을 즐거워하는 것보다도 당신의 마음속에 깊이 다짐될 수 있는, 당신이 동정적인 심정의 눈물을 가지고, 당신이 내심으로 결의하고 소망의 마음을 갖고 '참아라. 참고 극복하여라. 내일의 소망의 자리를 위해 최후까지 싸워 나가라'고 권고해 주는 무리가 통일의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5월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다음 주일이면 6월을 맞게 되옵니다. 아버지, 가는 세월을 슬퍼하지 말고 당신의 심정에 두터이 인연 지을 수 있는 곳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하면서 가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늘 지키시옵고, 늘 이끄시고, 늘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식구는 물론이요, 세계에 널려 있는 식구, 아니 더 나아가서는 공산권 국가에서도 통일교회의 이름을 갖고 이 시간 생명을 걸고 싸우고 있는 무리가 있는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그들까지 지켜 주시옵소서.
제가 새로운 길을 결정하여 그들 앞에 지시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입장을 당신은 잘 알고 계십니다. 스승의 말과 더불어 생명을 다짐하는 길도 개의치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는 무리가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본국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새로이 각성을 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불쌍한 무리들이 가는 길을 당신이 지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이 그러하기에 당신을 따르고 있는 무리도 불쌍한 무리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붙들고 눈물을 흘리고 붙들고 사정해야 할 무리들이 이들밖에 없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사옵니다.
제가 그런 길을 거쳐올 때에 당신이 지도해 주셨듯이, 세계에 널려 있기 때문에 직접 지도하지 못하는 그들을 같은 자리에서 지도해 주시옵소서. 저와 더불어 인연지었던 심정을 그들에게도 인연지으셔서 싸워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당신의 이름을 갖고 모이는 곳곳마다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통일교회는 안간힘을 다해서 아벨과 가인이 하나되는 역사적인 사명을 하고자 하는 3년노정에 들어섰사오니, 나머지 6개월 기간에도, 아버지여,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부터는 기필코 합할 수 있는 길이 있으리라고 저는 알고, 또 믿고 있사옵니다. 온갖 충성과 지성을 다하여 최후의 경계선을 돌파하고도 남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민족적인 승리점을 국가적인 승리점으로 이어받고, 국가적인 승리점을 세계적인 승리점으로 이어받고, 세계적인 승리점을 천주적인 승리점으로, 천주적인 승리점을 아버지의 심정적 승리점으로 이어받게 하시옵소서.
완전히 포괄된 자리에서 심정적 일치점을 이루어 당신이 해방되고 이땅 위에 만민, 만우주, 피조세계가 해방될 수 있는 그 날을 맞이해야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그때까지 전진밖에 모르는 무리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 이 통일교회의 사명인 것을 확실히 깨닫는 이 아침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이 원리 원칙을 중심한 형을 표준해 가지고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우주의 힘은 그런 사람 앞에 반드시 상대를 만들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주위에 있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사람을 추구하고 그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자동적으로 알기 마련입니다. 주위에 다섯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일년이 가도 떨어져 나가지 않습니다. 시일이 가면 갈수록, '네가 죽을 자리에 있으면 내가 대신 죽어 주겠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달라지는 거예요. 시일이 가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중심으로 하나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악의 분기점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계를 보면 이 세계에는 중심이 없습니다. 세계 인류가 가야 할 중심된 곳이 어디냐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선인지 어떤 것이 악인지를 가리지 못하고 있다구요. 개인이 가야 할 선의 자리가 어떤 곳이고, 가정이 가야 할 선의 자리가 어떤 자리이며, 민족과 국가가 가야 할 선의 자리, 세계가 가야 할 선의 자리가 어떤 곳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는 동서남북이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천운도 동서남북과 같은 계절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쪽 절기에 해당하는 국가의 운세가 있는가 하면 서쪽 절기에 해당하는 국가의 운세가 있고, 또 남쪽과 같이 흥하는 운세에 처한 국가가 있는가 하면 북쪽과 같이 얼음이 얼어붙는 것과 같은 운세에 처한 국가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간이 모른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콤파스 끄트머리에서 선을 긋는 연필대가리만 바라보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 콤파스 대가리가 콤파스의 꼭대기에서 조종하는 어떤 것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에 있어서 과연 어떠한 나라가 중심 나라냐 하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중심을 못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주의가 참된 주의로서 만민이 거기에 머물며 중심으로 모셔야 할 주의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선전을 해 가지고 중심을 만들려고 하고 선전을 해 가지고 상대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전부 다 가짜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남을 위해 희생하는 친구를 대하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이 '야야, 너 저 친구를 따라가지 마' 한다고 해서 그 친구를 따라가지 않습니까? '저 녀석은 나쁜 놈이야 저렇게 하다가 나중에는 너를 이용해서 몽땅 삼켜 버리려고 저러는 거야' 이렇게 선전하더라도, 선한 친구에 대해서는 마음이 알아요, 마음이 괜히 좋다는 거예요.
선이 가는 길은 중심을 연결시키기 위한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의 본질은 자기를 위하는 데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대상들을 위하여 평면적이고 공통적이며 통일적인 입장을 결하기 위해 나가야 하는 것이 선입니다.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중심의 자리를 결정지어 놓아야 할 것이 선이 추구하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에는 반드시 하나되는 놀음이 있는 것입니다. 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선에는 반드시 평등이 있습니다. 평등하지요, 전부 다? 동서남북이 엇갈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은 평등한 것입니다. 선은 반드시 남을 위해서, 상대를 위해서만 존속한다 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선은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악은 어떠냐? 악은 중심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선한 자리에 중심이 남아진다고 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선은 중심을 요구하는 반면 악은 중심이 서 있으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중심이 서게 되면 그 주위에 있는 전부가 그 중심과 하나되기 때문에 중심이 생겨나는 날에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중심이 없는 데서 또 다른 중심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악이라는 것입니다. 중심이 아닌데 또 다른 중심과 같은 놀음을 하겠다는 것이 악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본래 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은 절대자 한 분밖에 안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셨으니 지으신 분이 중심으로 계셔야 하는 것입니다. 주인으로 계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원칙이라구요. 그럼 그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하나님이라는 분은 우리 인간의 아버지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하면, 우리 인류 앞에 아버지 입장에 설 수 있는 분입니다. 아버지가 되니까, 자기 아들딸 앞에서는 중심인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중심이기 때문에, 그가 인간을 지었다 하더라도 부모의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자식을 대하는 자리에서는 자식을 위해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있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밤이나 낮이나 자식이 침해를 받을까봐 걱정하고, 자식에게 무슨 문제가 생길까봐 보호해 주고, 또 어떤 반대적인 요건이 나타날까봐 방어해 주는 것이 부모가 아니냐? 그런 부모의 본질을 찾아 나가는 것, 부모의 본질에 연결될 수 있는 것이 선의 길, 즉 사랑의 길입니다. 이런 부자관계의 사랑의 인연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 선이기 때문에, 그런 선의 자리를 통해서 목적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에는 반드시 사랑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사랑이로되 어떤 사랑이냐 하면 중심적인 사랑이 임재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지상에 사랑의 중심이 결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중심적인 사랑은 어떠한 사랑이냐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맨 처음 사랑이 이 땅에 나타난 순서로 볼 때, 부부의 사랑이 먼저 나타났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나를 중심삼고 내 아들딸의 사랑이 먼저 나타났느냐? 아닙니다. 그러면 사랑의 뿌리는 어디냐? 인간은 태어날 때. 그 어떠한 중심 앞에 아들딸의 입장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뿌리는 바로 그것이며, 그 사랑이 순서로 볼 때 맨 먼저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만일 하나님이 인격적 신으로 계셔 가지고 그 이념으로 인간을 당신의 아들딸로 지으셨다면, 그 아들딸을 지어 놓고 어떻게 하셨을 것이냐? 물론 좋아하셨겠지만, 좋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는 반드시 사랑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데는 무엇으로 사랑할 것이냐? 아들딸로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거예요.
하나님은 절대적인 하나님인데, 그런 분이 아들딸을 사랑하는데 한 50 퍼센트만큼 사랑해 가지고 되겠어요? 아닙니다. 백 퍼센트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백 퍼센트 사랑하기 위해서는 일생 동안을 거쳐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일생 동안 사랑을 해야 그의 아들된 인간이 행복하지, 소년 시기에만 사랑하고 장년 시기에는 사랑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사랑을 중심삼고 이상을 바라고 나가는 한, 소년 시기에는 행복했을지 모르지만 그 후로는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사랑해야 하느냐?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커 가지고 완성해 가는 일생 동안 쭈욱 사랑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아들딸로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아야 된다는 거라구요.
그런데 아들로서 완전한 사랑만 받아 가지고는 하나님과 종적 관계밖에 안 됩니다. 아들딸로서 하나님과 주고받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면, 다시 말해서 하나님하고 나하고만 좋아하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면 종적인 사랑밖에 생겨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아담도 하나님만 좋아하고, 해와도 하나님만 좋아하고, 그러게 되면 종적인 사랑으로 끝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횡적인 사랑이 생겨날 수 없다는 거예요.
사랑이라는 것은 이 한 줄기 종적인 사랑만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이 이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사랑이라는 것은 최고로 좋은 것이기 때문에, 최고로 좋은 것은 반드시 전체의 범위를 덮고도 남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최고로 좋은 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종적인 사랑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된다구요. 그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종적으로 사랑을 하시는 것도 최고도로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아들딸로서의 인간은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끝나면 종적인 사랑 관계만 벌어지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살다 죽으면 한 가닥 한 가닥 없어지기 마련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지요? 「예」 그러면 하나님이 또 사람을 지어야 된다는 것인데 하나님은 그러한 놀음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한 번 지어 놓으면 그 표본대로 모든 것이 돌아가면서 그냥 그대로 되어 나가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공장에 가 보면, 자동 설비라는 것이 있지요? 어떤 원형(原型)이 있어 가지고 그 원형대로 찍어내는 프레스가 있는데 때까닥 할 때마다 물건이 하나씩 생겨나지 않아요? 한 바퀴 돌아가게 되면 때까닥 하고 하나 생기고, 또 때까닥 하면 하나 생겨난다구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자동기계도 그러하거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한번 만들어 놓은 인간이 없어질 때마다 매번 다시 만드는 일을 귀찮아서 하실 수 있나요? 자동적으로, 자연적으로 때까닥 때까닥 사람이 나올 수 있게 만들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생각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 자체들이 싫어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서로가 좋아서 그럴 수 있게 되면 그것이 이상적이라는 것입니다. 서로가 싫다고 도망가는 녀석들을 잡아다가 그렇게 하라고 하면 큰일납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서로가 좋아하면서 때까닥 때까닥 사람을 만들 수 있게 만들어 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여 볼 때, 종적인 사랑만 가지고는 안 되겠으니 하나님은 인간들 앞에 또 다른 사랑, 즉 횡적 사랑을 설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의 횡적인 사랑과 여자의 횡적인 사랑이 서로에게 생겨나게끔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 놓지 않으면 횡적인 사랑으로 묶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남자가 동쪽으로 간다면, 여자는 북쪽으로 가게 되어 있나요? 어떻게 되어 있겠어요? 남자가 동쪽으로 가면 여자의 사랑도 동쪽으로…. 여자와 남자는 반대니까 이렇게 (몸짓하심) 꺼꾸로 붙어야 되겠어요? 그래요? 이렇게 되면 되겠어요?「안 됩니다」 안 된다는 것입니다. 까꾸로 붙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마주 붙어야 됩니다. 이렇게 마주 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만 좋아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싫다 하게 되면 영원히 상봉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서로 마주 봐야 하는 겁니다. 하나는 동쪽에 있고 하나는 서쪽에 있어 가지고 서로 마주 봐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면 누가 중심이냐? '야, 난 가기 싫으니까 네가 오라구' 하고, 또 저쪽에서도 '내가 가기 싫으니 그쪽에서 오라구' 하는 그런 놀음이 벌어지게 되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안 그러겠어요? 언제나 둘이 이렇게 돌아다니면 중심이 생기겠어요? 그 누군가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여자가 중심이 되면 좋다구요. 중심은 한 곳에서 뺑뺑 돌아야 됩니다. 여자가 중심이 되었으면 그 여자는 거기에서 뺑뺑 도는 놀음을 해야 되는 거예요. 이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구요.
누군가가 한 곳에 서 가지고, 요렇게 뺑뺑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이렇게 했다간 (몸짓하심) 큰일난다는 거예요. 어느 누가 한 곳에 서 가지고, 동쪽이면 동쪽, 서쪽이면 서쪽으로 뺑뺑 돌아가는 놀음은 허락할 수 있습니다. 중심이 이동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랑도 어떠한 중심을 결정해 놓고 상대적 관계의 인연을 맺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원칙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중심은 이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심은 하나밖에 없는 거라구요. 중심이 둘인가요?「하나입니다」 중심이 둘이 생겼다가는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싸움이 벌어지겠어요, 안 벌어지겠어요? 중상모략이 벌어지는 거예요. 참사가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행복이예요, 불행이예요? 불행의 여건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게 될 때에, 사랑은 이상적이요, 행복의 누룩과 같은 요인이기 때문에 그 사랑이 있는 자리는 절대적인 주체와 더불어 하나될 수 있는 완전한 기반, 부동의 기반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 기반을 터전으로 해서 움직이는 작용이 시작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군가가 딱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에 계시고 사람은 아래에 있는데 그 중심의 힘이라는 것이 어디에 붙나요? 위로 붙나요, 아래로 붙나요? 중심의 힘을 받는 것이 위예요, 아래예요?「아래입니다」 아래에서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력이라는 것은 뭐냐? 하나님이 우주의 중심의 힘으로서 모든 것은 그 중심으로 모여 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힘이 중력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중심의 힘이라는 것은 올라붙는 것이 아니라 내려붙기 때문에 하나님도 별수없이 내려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예」
그러면 내려와 가지고 접선하는 자리가 어디일 것이냐? 맨 아래 중심이 엇갈리는 곳이 접선하는 자리가 되겠습니까? 틀림없이 수직점 되는, 아담이 중심이라면 그 아담의 맨 깊은 자리에 접선이 될 수밖에 있다? 「없다」 없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그렇게 된다구요. 그러니까 아담이라는 존재는 싫든 좋든간에 하나님하고 하나 되어야 됩니다. 중심의 자리에 서야 될 사람이라면 싫든 좋든 하나님하고 둘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절대적으로 하나 되어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상인 제일 귀한 사랑이 땅 위에 나타나는 데는 누구를 통해서 나타나야 되느냐 할 때에, 인간의 대표적인 중심존재로 서 있는 그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는 수밖에는 다른 길이 있는 것이다?「없는 것이다」 뭐라구?「없는 것이다」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을 통해 나타나는 데는, 이러한 우주적인 중심 대표자를 통해서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이거 알았지요? 그렇게 되는 날에는 완전한 중심이 결정돼 버리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종적이기 때문에 위와 완전히 일치되면 딱 떼어 놓더라도 돌아갑니다. 여러분, 팽이 알지요? 팽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중심을 딱 잡아 놓으면 위를 잡아 주지 않아도 섭니다. 서요, 안 서요? 또, 시계를 보면 뎀뿌(テンプ:손목시계 따위의 유사의 속도를 조절하는 톱니바퀴)가 있잖아요? 그거 있잖아요. 왔다갔다하는? 그거 있지요? 그것의 중심이 완전하게 딱 중앙에 잡히게 되면 떼어 놓더라도 움직이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서 작용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중앙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상하관계에 완전히 중심이 잡혀 가지고 그것이 통일되면, 그 자리는 하늘이자 땅이요, 땅이자 하늘로 화(化)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주가 혼돈되거나 바꿔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상에 내려왔다고 해서 영계가 텅 비게 되느냐? 비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없어졌다고 해서 영계가 요동하고 넘어져 가지고 '야, 하나님이 없으니 마음대로 하자' 이러겠어요? 그렇게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더라도 완전히 하나되면 서게 마련입니다.
또, 하나님이 이왕에 도는 물건을 만들었다면, 그것이 서는 것이 좋겠어요, 떼굴떼굴 굴러가는 것이 좋겠어요? 인간이라도 서 가지고 영원히 돌 수 있는 그 물건이 있으면 '야, 고거' 하면서 신나게 들여다 볼 겁니다. 아이들도 그렇지 않아요? 팽이를 돌리더라도 빳빳이 서 가지고 오래 도는 것일수록 자랑하는 거라구요.
이렇게 생각해 볼 때, 그럴 수 있는 자리, 그럴 수 있는 터전…. 뾰족한 축이 있으면 그 축이 여기에 서 가지고 넘어지지 않게끔 닿는지 안 닿는지 모르게 달려 가지고 돌아갈 수 있는 완전한 받침, 그러한 하나님의 받침이 있다면, 그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그런 무엇이 있어야 할 게 아니예요? 그것이 이상적인 받침입니다. 그 이상이 뭐냐? 돈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에게 돈이 필요한가요? 하나님이 돈을 필요로 해요?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것을 인간들이 가공해 가지고 '돈이다, 금이다' 하고 시시한 이름을 붙여 놓고 야단들 하는 거지요. 하나님에게는 돈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권세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식도 얼마든지 없다?「있다」 그럼 다 아니예요? 인간들이 바라는 것을 크게 말하면 그게 다 아니냐구요. 여러분은 뭘 바래요? 돈, 그 다음엔 권력, 출세해야 되겠다, 그 다음엔 공부해야지, 지식이 필요하지 이러고들 있지요? 그런 것은 전부 다 하나님이 생각지도 않는 걸레 짜박지 같은 것입니다. 시시한 거라구요. (웃으심)
그러면 하나님이란 분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아무리 연구를 해봐도 없습니다. 자녀? 자녀 있으면 뭐 해요? 자녀를 왜 필요로 하느냐? 왜 필요로 해요?「사랑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을 갖기 위해서라…. 그거 참 잘 대답했어요. 자녀를 갖게 될 때에 비로소 자녀에 대한 사랑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사람을 지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그것은 사랑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지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건 뭐냐? 그만큼 인간은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밀하게 이야기하려면 한정이 없습니다. 그만 하면 알겠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돈이 필요하냐, 권력이 필요하냐, 지식이 필요하냐, 사랑이 필요하냐? 여러분은 어떤 것을 위할 겁니까? 학박사의 권위를, 서울대학교 총장 박사님의 권위를 하루 아침에 네게 줄 터이니 네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과 바꾸자고 하면, '아이구! 좋습니다' 그래요? 그런 녀석이 있거들랑 벼락을 맞아 죽어라 이거야. (웃음) 이런 욕을 해도 섭섭해할 녀석은 하나도 없다구요. 때려죽이라고 해도 때려죽일 녀석이 없다구요.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에 있어서 상대적 인연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의 본질로서 찾아 세운 상대적 존재라는 것은, 사랑이란 것이 영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이상적인 본질이기 때문에 그것이 천리에 위배되지 않는 한, 어긋나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서도 사랑하는 자식을 팔아 가지고 주권을 사려고 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 하는 아들을 팔아 가지고 주권을 사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다 가짜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사랑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야, 생명이야?「사랑입니다」 사랑? 죽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없습니다」 죽더라도 사랑할래?「예」 누구를?「하나님요」 하나님 같으면 모르겠구만. 하나님이고 두나님이고 나 모르겠다구.
왜 사랑이 먼저냐 하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생명으로부터 사랑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맨 처음에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게 될 때, 인간을 대상으로 세운 것은 사랑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을 위해서 만든 거예요, 사랑 때문에. 사랑 때문에 아담 해와가 생겨난 것이지 생명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예」
사랑이 생명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생명으로 말미암아 생겨났나요,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겨났나요?「사랑으로 말미암아…」누구의 사랑으로 말미암아?「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부모님의 사랑으로부터 생겨났지, 너들 아빠 엄마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겨났다는 거야. 아버지 어머니가 아무리 힘센 장사라고 해도 장사인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고는 생겨나지 않는다구. 그 생명들이 좋아서 놀아나는 사랑에서부터 너희들이, 내가 생겨났다 이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생겨나게 된 바탕은 생명이 아니고?「사랑」사랑이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거치지 않고는 생명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출발은 어디서부터?「사랑에서부터….」 그래요.
그러면 참된 것은 어떤 것이냐? 시작과 끝이 같은 것이다. 시종여일한 것이 참이다. 그렇지요? 참된 것은 영원히 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랑을 바탕으로 출발한 인간은 사랑을 바탕으로 끝을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시작과 끝이 다른 것은 선이 아닙니다. 사랑은 시일이 가면 갈수록 더 본질적인 선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생겨나기를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겨났으면, 그 인간이 살아가면 갈수록 사랑이 플러스되게 마련이지, 마이너스되는 법은 없는 것이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좋겠지요?
하나님도 행복하려면, 아담 해와를 지어 놓으시고 그들을 대하는 자녀의 사랑만으로 시작해 가지고 그것으로 끝나면? 뭐 그래도 괜찮겠지만, 사랑은 하면 할수록 커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종적인 사랑이 다 찬 후에는 하나님과 인간이 수수작용을 하기 때문에 횡적인 사랑이 시작되기 마련입니다. 돌아가니까요. 그렇지요? 수직적인 관계에 있더라도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어 가지고 이것이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힘이 통하게 됩니다. 힘이 어떻게 통하느냐 할 때에, 서로 당기면 여기의 힘도 요렇게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모여 가야 되는 것입니다. 지남철을 보면, 이렇게 되기 때문에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을때 힘이 당기면 여기에서 요렇게 가운데로 들어가야 될 텐데, 어떻게 돼요? 힘이란 똑바로 되게 되면 직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기에 있는 것이 이렇게 가지, 이리로 가려고 하지 않는 겁니다. 여기에 있는 것도 이렇게 들어가 가지고 결국은 이러한 곡선이 벌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반대로 이렇게 되느냐? 이것이 수수께끼라구요. 그렇잖아요? 잡아당기는데 늘어진다 그 말이예요. 그것이 왜 그렇게 되느냐 이거예요. 그거 생각해 봤어요?「안 해봤습니다」 왜 안 해봤어요?(웃음) 서로 잡아당기는데 왜 늘어지느냐 이거예요. 이 힘이 이렇게 가까이 가면 갈수록 이 힘은 줄어드는 것입니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웃으심) '그거 여기에서는 심각한 거야' 이렇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다구요. 실험해 봤지요?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구요. 그것이 왜 그래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우주의 중심이 없으면 모든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요렇게 (몸짓으로 설명하심) 받지만 힘으로 말하면 두 배가 되는 것이요, 요렇게 되지만 힘으로 말하면 한 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대신 길이가 이렇게 되는 것은 결국은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예」 그것을 승산해 보면 답은 언제나 이퀄(equal:=)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원칙입니다.
참된 것을 중심삼고 존속하려면 반드시 평등(균형)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작용을 하지 않고는 우주의 원칙이 다 파탄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존재 원칙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결국 통일적인 기반과 평등적인 기반은 어디를 가든지 적용된다 이말입니다.
자, 금덩이와 은덩이가 있는데, 이것을 친구에게 나눠준다면, 은덩이는 금덩이의 두 배쯤 주면 됩니다. 알겠어요? 그와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결국은 같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플러스 마이너스, 종횡을 덧붙이게 되면 모든 것이 같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석만 그와 같은 작용을 하느냐? 아닙니다. 모든 존재물은 다 그와 같은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자석이 그런 작용을 하는 데는 지구 인력권보다도 강한 힘의 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작용이 나타날 뿐이지, 모든 원소는 그와 같은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과학이 발달되면 선생님이 말한 것을 증명할 때가 올 것입니다. 알겠어요?「예」그래야 이치에 맞는 것입니다. 그게 왜 그러나 할 때, '그건 몰라. 모르는데 우연히…' 이러면 안 됩니다. 우연이 아니라구요. 어떠한 원리원칙에 입각해 가지고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까지 우리는 캐치(catch)해 알고 있어야 됩니다.
여덟 시가 다 됐구만. 밥이 선생님을 부르누만, 단에서 내려오라고. 젓가락이, 숟가락이, 반찬이, 밥이 '이제는 시간이 됐으니 그만 했으면 됐습니다' 하는 경고가 울려온다구. 여러분의 배안에서도 꾸르륵꾸르륵하는 경고가 울려오지요? '이제는 그만두소' 하고 말예요. 그만둘까요?「아니요」
선이 가는 길, 이거 하나만 알아도 됩니다. 우리의 갈 길에 있어서 선이 가는 길, 그것만 알아도 되는 겁니다. 좀 더 하자구요?「예」 이런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 두어야 됩니다. 확실히 알아 둬야 돼요.
그럼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구요. 이 우주는 상응과 상충형으로 형성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이것을 몰라 가지고 '아, 투쟁이다 투쟁' 이러는데 그게 아니라구요. 이 우주는 상응과 상충으로 이루어진 거예요. 상응세계에 상충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상충세계에 상응형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응세계에 상충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이 순서를 알아야 돼요. 상응세계에 상충적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상충은 뭐냐 하면, 하나는 이렇게 들어가겠다는데 하나는 나오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흐린 날을 보면 그렇습니다. 오늘같이 흐린 날은 벼락을 치거나 갑자기 비가 오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렇지요? 그렇지만 검은 구름이 뭉쳐져서 하늘이 새까매지면 반드시 우뢰질을 한다구요. 그렇지요?「예」 우뢰, 그러니까 천둥이 치고 그 다음에는?「비가…」비야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고, 번개가 치기 마련이라구요. 번개가 치고 우뢰질하더라도 비는 안 올 때가 있다구요. 그 뭐 번개 치고 우뢰질하면서 오기야 오지요. 그렇지만 천둥이 치는 바람에 흔들려 가지고 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구요. 나무에 있는 열매를 흔들면 떨어지는 것같이 생각하면 안 된다구요. 우뢰질하고 번개가 나야만 비가 오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자, 그게 왜 그러나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기를, 플러스 전기하고 마이너스 전기가 합해져서 수억 볼트 수억만 볼트가 돼 가지고, 공기 중의 절연권이 '야, 너 오지 마' 하더라도, '야, 이놈아 치워라' 하면서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이렇게 맞부딪치는 소리가 우뢰 소리요, 너무 강하게 부딪치니까 불이 나게 마련인데 이것이 번개라고 했지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의 이마도 부딪치면 불이 난다구요. (웃음) 부딪쳐서 불이 나는 게 돌뿐이라고 생각했다가는 큰 야단난다구요.
비행기를 타고 다녀 보세요. 구름 속으로도 쑥 쑥 들어가지요? '아이구! 저 구름 속으로 들어가다니 저게 모래판 같으면 큰일나겠는데…'(웃으심) 그렇지만 그 구름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그것들이 서로 부딪치면 불이 나거든요. 여러분의 이마도 부딪치면 불이 난다구요. 그만큼 빠른 속도로 못 부딪치기 때문에 그렇지. 불이 나도록 한번 부딪쳐 보라구요. (웃음) 부딪치면 불이 나기 마련이라구요. 알겠지요?
보통 지상에서 한 1만 미터 올라가게 되면, 거기에는 영하 70도 이하가 됩니다. 거기서 살을 내밀었다가는 대번에 얼어 버립니다. 그렇게 추운데도 불이 난다구요. 그렇게 춥더라도 그 이상의 열을 띤 불이 나게 되면 불은 붙기 마련이라구요. 그렇지요?
플러스 전기하고 마이너스 전기가 합하는데, 맨 처음부터 큰 플러스가 척 생겨나고 큰 마이너스가 왁 생겨나 가지고, '야, 너는 플러스로 생겨나라' 하면 '오냐 오냐, 너는 마이너스로 생겨나라. 재미있겠다' 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구요. 전기의 원리로 보면, 플러스 플러스는 반발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또 마이너스 마이너스는 서로 끌어 당기게 마련이다?「아닙니다」 아니지요. 반발하기 마련이라구요.
그러면, 서로 반발하고도 대관절 어떻게 큰 전기가 생겨나느냐? 그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어떻게 생겨나느냐 이거예요. 이 공기 중 어느 한 면에서 플러스 전기가 생겨나면 마이너스는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거예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거예요. 이것이 우주의 이치라구요. 만약 마이너스만 많이 있고 플러스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플러스는 자동적으로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여자가 하나 생겨나면 남자도 자동적으로 하나 생겨나기 마련이라구요. 세계 인류의 호적을 전부 조사해 가지고 비교해 보면 얼마만큼 틀리느냐? 원래는 하나도 안 틀리게 되어 있어요. 중간에 사고로 죽든가 무슨 병이 나서 죽기 때문에 틀리게 되었지, 우주의 원칙은 틀리지 않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대한민국을 보면, 어떤 집은 딸만 들입다 낳고, 어떤 집은 아들만 들입다 낳습니다. '아이구, 딸은 싫어' 이러는데도 딸만 낳아요. 딸이 싫다고 하면 어떻게 돼요? 딸이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틀린 거라구요. 우주 공법의, 이치의 치리법에 의해 딸을 배급받게 되면 딸은 싫다고 해도 딸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웃으심) 부모가 싫다고 울든불든 나오기 마련이라구요. 우주 공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우주 치리법에 걸리게 됩니다. 그런 녀석들은 상대도 한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딸은 싫다면서도 7선녀 8선녀 들입다 낳게 되는 거라구요. 여기 딸만 낳기를 원하는 여자 있으면 손들어 봐요. (웃음) 이것 보라구요.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여자니까 딸을 좋아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왜 딸 낳는 것을 싫어해요? (웃음)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자,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하나되느냐? 플러스 플러스끼리 뭉치는 놀음을 하지 않고는 커질 수 없습니다. 커질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전기 원리에서는 플러스 플러스는 반발하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합하느냐, 이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이것을 갖고 선생님이 논문을 썼다면 박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걸 여러분한테 이야기해 주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전기라는 것이 어떠한 것이냐?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어 가지고 이것이 완전히 주고받아서 하나되면, 그 후에는 플러스가 와도 '네 이 녀석, 가라'고 하고, 마이너스가 와도 '이 자식아 가라' 하는 것입니다. 마이너스는 자식이 아니구만. 자식의 반대가 뭐든가? 여자든가? (웃음) 아뭏든 가라고 한다구요. 그러나 상대가 결정되기 전에는 합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상대를 결정한 후에는 반발하지만 상대를 결정하기 전에는 합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상응 상극성을 지녀야만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합하기 전에는, 상대를 결정하기 전에는 합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만일 이것이 합하지 않는다면 우주는 형성이 안 됩니다. 아까 선생님이 원소가 전부 다 그렇게 되어 있다고 말했는데, 이렇게 합하지 않으면 우주도 형성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원소가 합해지지 않으면 큰 물건이 나올 수 없는 거예요.
그것이 실감이 안 나거들랑…. 어이, 노랑치마, 내가 무슨 말했나? 밥 생각이 나서 졸음이 오는 모양이구만. 그러면 그만두자구요. 「아닙니다」 실감나는 예화를 하려는데, 그만두자구. 「아니요」 에이 그만두자구. 「아닙니다」 (웃음) 절대 아니야?「예」 정말인가?「예」
우리의 갈 길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지금은 과학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하여튼 과학을 통해서도 우리의 갈 길을 찾아야 됩니다. 종교라는 것은 망상적인 내용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우리 원리를 세밀히 쓰려면, 창조론 하나만 가지고도 몇천 페이지를 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얼마나 많이 해야 되겠는가 생각해 보라구.
노란 치마, 노란 샤쓰가 있다더니 노란 치마가 왔구만. 통일교회이니까 노란 치마가 나왔겠지요, 반대니까? 그렇지요?
상대가 결정된 후에는 프라스끼리는 반발하기 마련입니다. 상대가 결정되었는데도 프라스끼리 합할 수 있는 원칙이 있다면 우주는 형성되지 않는 것입니다. 번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렇지요?「예」
이것을 실감나게 예화를 들어서 말할 테니 들어 보라구요. 총각들, 더벅머리 총각 때는 '야 자식아 와라, 와 오라구' 하면서 남자 친구를 좋아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만, 이 더벅머리가 떠꺼머리가 되어 가지고 결혼을 했다 하게 되면, 친구가 오는 것을 좋아합니까? (웃음) 좋아해요, 나빠해요? 「나빠합니다」 친구가 오면 '야, 이 녀석아, 가!'(웃음) 이러기 마련입니다. 또, 요 아가씨들도 처녀 때는 '얘 얘, 너 왜 우리 집에 안 와? 나하고 친구면서 왜 안 오니?' 하면서 야단합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살짝 해 놓으면, 친구가 한 번 오는 것은 용서하지만 두 번 세 번만 오게 되면 눈이…. (웃음) 나중에는 발길로 차 버리는 겁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여자들은 더 그렇겠지?「안 그래요」(웃음) 발길로 차나요?「아닙니다」 그럼 좋아하나?「예」 좋아해?「예」 신랑이 그 친구한테 돌아가 버리면 어떻게 할거야? (폭소) 친구를 경계하나, 안 하나? 경계 해, 안 해?「합니다」 그럼 끝날에는?「안 옵니다」 안 와요. 경계하니까, 씨암탉이 돼? (폭소) 이것을 몰랐다구, 요걸.
이제는 과학 책에 요걸 집어넣어야 됩니다. 그래 놓아야 과학자들을 앞으로 이 통일원리에 다 집어넣을 수 있다구요. 그러지 않고는 이론적으로 성립 안 됩니다. 그렇게 해야 우주가 전부 다 맞아떨어진다구요. 실감나지요?「예」 사람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이 우주도 사람의 대상권으로 지었기 때문에, 사람의 모양을 닮아 있기 때문에 전부 다 사람 하는 대로 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대상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요거 알겠어요?「예」
여기에 플러스 전기가 생겨나서 방대한 플러스권이 꽉 차 있다면, 총각들로만 꽉 차 있다면 그 총각들을 보고 여자들이 따라가는 겁니다. 여자들이 쭉 따라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남자들과 합하는 데는 몇억만 분의 1분도 안 걸려요. 플러스권에 마이너스가 쭉 따라가서 '아이쿠, 끝났다' 할 때는 화닥닥 벼락이 치는 것입니다. 끝나자마자 합해지기 때문에, 끝나자마자 같아지기 때문에 천둥이 나고 벼락이 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남자와 여자가 서로 완전히 하나되게 될 때는 불이 나지요? 불난다는 말을 들어 봤어요? (웃음) '내 가슴에 불이 탄다' (웃음) '사랑하면 불이 통한다' 그런 말 들었지요?「예」 왜 거기에 불이 나나요? (웃음) 모든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딱 맞서 가지고 일치되게 될 때에는 죽자사자하게 되는 거예요. 하나되지 말라고 모가지를 잘라도 목을 못 붙잡으면 발이 가서 붙는다는 거예요. (웃음) 이렇게 얘기하면 실감이 날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주의 공법은 상대적 이념이 갖추어지게 되면 완전 보호하기 마련입니다. 완전한 하나의 플러스가 있으면, 그것은 지극히 작은 하나이지만 하나의 마이너스와 완전히 주고받을 때는 영원한 존재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존재이기 때문에 그분은 주체성과 대상성을 가지고 하나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것이 형성된 데에는 불가침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러한 성상을 닮아난 존재도 하나님이 하는 그러한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런데 플러스 혼자, 더벅머리 총각이 혼자 살다가 괜히 쓸데없이 남이 재미있게 사는 곳에 와서 꺼떡꺼떡 방해놓으려고 할 때 그를 쫓아 버리는 것이 나쁜 것이냐? 지극히 좋은 것입니다. (웃음) 지극히 좋은 것이라구요. 왜 좋은 것이냐? '야 이 녀석아, 그렇게 떠돌이 별로 살지 말고 너도 가서 나같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터전을 잡고 살아라' 하는 말이거든요. 그렇게 쫓아 버리니까 할수없이 다른 데로 가서 마이너스를 찾아 가지고 자기 존재권을 갖출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가만두면 그 일을 못한다는 거예요.
결국 쫓아 버린다는 것은 무엇이냐? 딴 데 가서 영원한 존재가 되라고 권고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니 고마운 거예요, 나쁜 거예요? 「고마운 것입니다」 또, 이러한 작용이 있기 때문에 더 달라붙는 겁니다. 떨어졌다가는 큰일난다는 거예요. 어디를 가든간에 따라 다녀야만 합니다. 여자는 결혼 후에 그저 남편 궁둥이만 졸졸 따라다녀야 됩니다. '제까짓 거 뭘 따라다니노? 안 따라가도 갔다가 또 올 텐데…' 이랬다가는 완전히 하나가 안 된다구요. 상충적인, 나꿔챌 그 무엇이 있기 때문에 따라다녀야 하는 거예요. 그것이 도리어 보호의 작용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보호의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반발작용은 나쁜 것이 아니라 보호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작용이 있음으로 말미암아-여러분, 분해작용이라는 것을 알지요?-분해작용이 더디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영구히 보존할 수 있는 입장을 성립시켜 주는 작용도 되는 것입니다. 우주는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상응이 시작되면 상충작용이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상충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예요. 상충에서는 그런 것이 나올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예」 딱 들어맞는 거라구요. 상충작용이 없게 된다면 와해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 아픔을 느끼지 못하지만 1기압 1,013밀리바라는 방대한 힘이 우리의 몸뚱이를 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충이라구요. 몸 자체는 내미는데 기압이 있어 가지고 그것을 밀어 주고 있다는 거예요. 이 균형에 의해 영원한 안전치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마찬가지 이치라구요.
만약 기압권이 필요 없다 해 가지고 그것을 빼 버리는 날에는 우리 몸뚱이는 다 날아가 버리게 됩니다. 진공상태가 되니까, 뼈고 물이고, 무엇이고간에 다 날아가 버립니다. 우리의 몸은 4분의 3이 물입니다. 물주머니라구요. 그것이 날아간다는 인사도 하지 않고 한꺼번에 다 날아가 버린다구요. 뼈고 뭣이고 다 갈 데로 가 버린다는 거예요.
그런 반대작용이라는 것은 결국 하나의 완전한 물건을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 절대 필요한 힘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공산주의자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우주는 서로가 투쟁적인 목표로 되어 있다는 거예요. 상충적인 존재끼리 서로 싸워 가지고 통일된다는 거예요. 그런 모순된 논리는 근본적으로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유되고 난 후에 침범하는 것은 악입니다. 그걸 도적놈이라고 하는 거예요. 왜? 벌써 플러스 마이너스가 우주 공법에 적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상을 닮은 상대권을 이루었는데 여기에 침범하면 반발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도둑이 되는 것이요, 파탄분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전부 다 과학적이라구요. 알겠어요? 법이 왜 저렇게 생겼느냐 했던 것들이 전부 다 해결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심이 설정되는 것입니다. 그 중심을 부정하는 것은 악입니다. 악이 뭐예요? 도적놈이 악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걸 알아 두라구요. 알겠어요? 요건 실감이 나지요? '아! 그렇구만…' 하고 말예요. 이제 선생님한테 가서 물어 보세요. 물리 선생님한테…. 이런 걸 가르치는 선생님을 뭐라고 하나? 자연 선생님이라고 하나? 과학 선생님? 여러분이 젊은 사람들이니까 이렇게 얘기해 주어야 골치 아픈 줄 몰라요.
사탄은, 사탄이란 존재는 중심을 시인하려 하지 않는 것이요, 선한 사람은 중심을 시인하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릅니다. 젊은 녀석들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중심 중에 무슨 중심이냐? 만물의 중심이냐? 만물에도 중심이 있습니다. 만물의 중심 중에서도 보다 가치 있는 금이라든가 뭐 그런 게 있을 거예요. 아니면 인간의 중심이냐? 인간 가운데에도 중심이 있다구요. 인간만의 중심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과 인간이 합한 중심, 하나님과 인간이 일치된 중심이 세계적 중심으로 등장해야만 영원한 사랑권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생겨납니다. 인간만 가지고는 그 사랑권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사랑만 가지고는 언제나 싸우기 마련입니다. 인간의 사랑만 가지고는 부부끼리도 이혼하기 마련이요, 부모와 자식간에도 싸우기 마련입니다.
그래, 사랑이 무엇이 좋으냐? 본질적으로 헤쳐 보게 되면 나쁜 것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것은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진짜 순수한 사랑의 본질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개재하게 될 때는 절대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런 중심자리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이상이 될 수 있지 인간끼리 무슨 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그려 나가는 어떤 목적 세계에는 이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변하는 것이 이상인가요?「아닙니다」 이상이 방대하고 놀랍도록 큰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자리를 잡게 되면 영원히 가는 것입니다.
상대를 못 정했을 때는 이 남자 저 남자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동쪽 플러스가 싫거든 서쪽 플러스와 같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를 한번 딱 결정해 놓은 후에는 남자의 눈이 어디에 부딪쳐 가지고 병신이 되었다고 해도 '당신 병신이니, 난 당신과 안 살겠소'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쌍년이 되는 거예요. (웃음) 그런가, 안 그런가? 정해지기 전에 눈이 그렇게 되었다면 돈 아니라 금을 준다 해도 결혼을 안 하겠지만. 일단 정해진 후에는 남편의 눈이 그렇게 되었더라도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우주의 공법을 모르고 가정의 중심을 무시하는 그런 여자들은 쌍년이 된다는 거예요. (웃음)
여러분 보고 얘기한 게 아니예요. 쌍년들 들으라고…. 한 번 결혼하게 되어 있지, 두 번 결혼하는 것은 미물만도 못한 것입니다. 알겠나?「예」여자들, 알겠어?「예」 이 도깨비 같은 남자들, 알겠어?「예」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세상이 왜 이렇게 되어 있느냐 하면, 인간이 이 공법을 찾아 맞추기 위해서 지금까지 더듬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방을 다 더듬어도 구멍은 하나라는 거예요. 바늘 구멍 같은 것 하나뿐인데 들여다보니 '아, 이렇게 됐구나' 해서 그걸 더듬어 나가려니 그런 형을 따르지 않으면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역사는 그 목적을 향해 더듬으면서 발전해 나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여기 이 도깨비 같은 사내들, 사랑은 귀한 거예요. 자, 우리 총각님들, 사랑은 귀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요?「아닙니다」
남자가 태어나게 될 때 누구를 위해 태어났느냐?「여자요」(웃음) 남자 몸뚱이를 가만 보면 그렇게 생겼어요. '난 황소를 들이받으면 황소가 물러나게 할 수 있는 장사다. 이만한 장사는 천하에 나밖에 없다. 난 나를 위해서 태어났다' 이러는 녀석은 미친 녀석입니다. 남자가 그렇게 생겨난 것은 누구에게 맞게 생겨났느냐? 남자에게 맞게 생겨난 거예요?「아닙니다」 뭐예요. 그럼? (웃음) 무엇에 맞게 태어났어요?「여자요」
남자라는 동물은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게 아니라는 녀석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구. 자기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구요. 생겨나기를 그렇게 안 생겨났다는 거예요. 이걸 알아야 돼요. 자기를 위해 태어난 것이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본질을 두고 볼 때에, 자유주의 사상, 이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망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시작부터 자기를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거 확실히 알아야 되겠다구. 그런가, 안 그런가?「그렇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본래부터 자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구요. 남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났고 여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누구를 위해 태어났느냐? 하나님을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자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예요, 주체를 위해 생겨난 거라구요. 그러면 인간이 왜 남자와 여자로 태어났느냐? 주체되시는 그분의 완전한 대상권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 대상권을 남자면 남자, 혹은 여자면 여자로만 되면 되지, 왜 둘을 합해 가지고 이루어야 되느냐? 그것은 하나님이 이상적인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입체적인 사랑을 체휼하고, 그 사랑을 즐거워하고 주관할 수 있는 주체가 되려니 남자만의 사랑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남자의 사랑만 가지고는 종적인 사랑밖에 안 되기 때문에, 할수없이 남자와 여자가 합하게 해 가지고 별다른 두 존재가 횡적인 인연으로 연결된 또 다른 사랑의 자극적인 형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로 갈라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실감이 나지요? 아하! 그렇게 되어 있구나….
그러면 그 둘이 하나되어 가지고는 어떻게 되느냐? 그때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자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따로 따로 생겨났지만, 남자와 여자가 합한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인간으로부터 차원 높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부부의 사랑은 어디서 나오느냐? 또 다른 하나님의 차원 높은 횡적인 사랑에서 벌어진 것이 무슨 사랑?「부부의 사랑」 부부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건 횡적인 사랑입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은 종적인 사랑이요, 부부 끼리의 사랑은 횡적인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로소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살아서 부부가 됐다고 해서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닌가요? 하나님의 아들딸로서의 종적인 사랑은 언제나 남아지는 것입니다. 종적인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여기에 횡적인 사랑이 뭐냐? 이것이 뭐라고요?(판서한 것을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심) 플러스, 이렇게 하나되는 날에는 요것은 땅 위의 중심추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은 그 위에 있게 됩니다. 그렇지요? 위에 이런 주체로 서고 인간이 그 받침이 되어 똑같지요? 똑같기 때문에 우주는 도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땅이 이렇게 돌면 하늘도 그렇게 돌기 때문에, 땅의 기쁨은 하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땅이 뺑뺑 돌면 하늘도 마찬가지로 돕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천상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지상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지상의 모든 무게가 여기에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하나님은 이러한 종횡의 사랑을 중심삼고야 비로소, 종횡의 사랑의 인연을 다 갖춘 거기에서 비로소 하나의 중심축을 결정지어 가지고 천지가 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완성은 상대 이념을 결정해야 된다는 통일교회의 원리적인 이론이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인간 완성은 성혼식을 함으로써 되는 것입니다. 성혼식이 무엇인지 알아요? 결혼해야 된다는 거예요. 남자도 반쪼가리지요? 그러니 절반을 찾아와야 되는데, 어디 가서 찾아오느냐? 여자한테 가서 찾아와야 된다구요. 또, 여자도 반 쪼가리인데 어디 가서 그 절반을 찾아와야 하느냐? 남자를 훔쳐와야 됩니다. 그래야 절반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를 훔치려고 하고 남자는 여자를 훔치려고 하는 거예요. 왜 히히히 웃노? (웃음) 그 둘이 비로소 딱 하나되어 가지고, 다리는 넷이지만, 남자 다리는 요렇게, 여자 다리는 이렇게 걸어가는 거예요. (몸짓하심)
이것을 통일교회식으로 말하면, 내적인 존재에도 성상과 형상이 있고, 외적인 존재에도 성상과 형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딱 들어맞는 거예요. 이런 것을 세밀히 이야기하면 한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원리는 재미있고도 멋지고도 놀라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할수없이…. 완성이라는 것은 결혼을 해야 되게 되어 있다 이런 것입니다.
아까 악한 사탄세계에 개인이 포위되어 있고, 가정이 포위되어 있고, 국가가 포위되어 있고, 세계가 포위되어 있다고 했지요? 이것을 터뜨리려면 개인으로서 터뜨려 봤자 터지지 않습니다. 왜? 사탄세계의 구성 요인이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세계의 가정보다 나은 가정을 찾지 않고는 터뜨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간이 있으면 요것에 대해 세밀히 이야기하겠는데, 여덟 시 20분이 됐구만. 내가 10분 동안에 결론을 지으려고 그래요. 세밀히 이야기하려면 한정이 없기 때문에….
그러면, 지금까지의 성인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어요. 조금 더 깊게 이야기해도 되겠어요?「예」 밥 안 먹어도 괜찮아요?「예」 밥을 안 먹으면 3, 4백 그릇에 가까운 밥이 다 쉴 텐데…. 늦게라도 먹기는 먹겠지, 또 안 먹으면 어때? 딱 9시까지 할 텐데…. 협회장이 들어오면 기리까에(きりかえ:교대) 시키려고 하는데 어때요?「좋습니다」 좋아요?「예」 그 약속 밑에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원해서 안 먹는 것이기 때문에 난 모른다구요. (웃음) 사람이 참 이상하지요. 손해날 것 같으면 안 들으려고 할 텐데, 가만히 생각하니까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 재미있거든. 그러니 밥 한끼니쯤은 문제가 없다는 거지요. 손해날것 같으면 어림도 없을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 성인 좋아하나요?「예」 성인이라고 해서 이 성인(成人)이 아니예요. (판서하심) 성인 중에도 이런 성인(聖人)이 좋은 거라구요. 역사상에 성인을 대개 몇 사람 꼽나요?「네 사람입니다」 하고많은 사람, 수십억 수천억이 왔다갔을 텐데 왜 네 사람밖에 안 꼽을까요? 한 천 사람 꼽으면 좋을 텐데 말예요. 또, 한국에도 성인이 있으면, 여러분은 다른 나라 성인을 모시겠어요, 한국의 성인을 모시겠어요?「한국의 성인을 모시겠습니다」 그럴 터인데, 왜 외국의 성인을 모셔야 돼요? 기분 나쁘다 이거예요.
왜 하필 네 사람밖에 없어요? 그래, 성인이 어떠한 사람들이예요?「예수님」 예수님, 「석가」 석가, 「공자」 응? 공자,「마호메트」 마호메트. 그럼 대관절 그 성인이라는 사람들이 어디서 간판을 붙이고 나온 사람들이냐 이겁니다. 그 시대에는 모두 미친 녀석이라고 했습니다. 반역자라고 했어요. 지금에 와서는 성인이라 그러지만….
그런 사람들을 분석해 보면…. 여러분, 잘 알아두라구요. 대개 성인의 가르침을 따다가 그것을 조직화시키고 체계화시켜 가지고 헌법을 만든 거예요. 그렇지요? 성현의 가르침은 이 세계 나라들을 형성하는 데 기틀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또,학교에서 교육을 시키는 데도 옛날에 좋았던 사람들, 혹은 성인들의 가르침을 교육 목표로 해 가지고 거기에 맞게끔 교육을 합니다. 그렇지요? 대관절 왜 그러느냐? 다시 말하면 왜 그것을 인륜의 표준으로 세우느냐 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성인의 가르침은 무슨 주의냐? 개인주의가 아닙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개인주의 가지고는 아까 말했던 사탄의 포위권내에 있는 개인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물론 가정주의도 아닙니다. 가정주의로만 있게 된다면 사탄세계에는 종족권이 있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가정주의로만 끝나게 된다면 사탄세계의 씨족권을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씨족주의만 가지고는 사탄세계의 민족의 포위망을 뚫을 수 있습니까?「없습니다」 또한 민족주의만을 가지고서는 주권자를 중심삼은 국가주의권의 포위망을 뚫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국가주의에만 속해 가지고는 국가를 포위하고 있는 세계의 포위망을 뚫을 수…? 「없습니다」 다 잘 알고 있구만.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런 모든 포위망을 일시에 격파해 가지고 뚫어 버리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겠어요, 없겠어요?「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대해 바라기를 개인주의, 가정주의, 씨족주의, 종족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세계주의가 되지 말고, 즉 인간이 바라는 세계주의자가 되지 말고 이것들을 넘어선 초세계주의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초세계주의자. 왜 그래야 되느냐? 인간이 타락됐기 때문에 타락권을 벗어나지 않고는 인간이 이상하는 곳에 접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상이라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고 하나님이 개재되어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세계 판도내에서는 하나님과 관계맺을 수 없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야만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에 초세계주의자가 되라는 말은 원리적인 말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대개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초세계주의라고 해서 인간만을 위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만을 위주해 가지고는 초세계주의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성인이 추구해 나간 길은, 인간을 중심삼되 거기에 보다 중심으로 신이라는 존재를 세우는 길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절대적인 중심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신이라는 존재를 자기 생명보다도 자기 사랑보다도 자기의 모든 것보다도 더 존중시하는 운동이 시작되지 않고는 악한 세계를 넘어설 수 있는 초세계주의의 출발을 할 수 없습니다. 신을 빼놓고는 출발을 해봤댔자 그것은 사탄의 세계주의권을 벗어날 수 없다구요. 인간 자체 주의에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탄의 소속권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바라지 않는 초세계주의 기준을 중심삼고 사탄세계권을 탈출하려면 신이라는 존재를 접선시키는 놀음을 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성인의 반열에 동참한 사람들은 전부 다 신을 중심삼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자 그러면, 그런가 안 그런가 사실을 한번 알아봅시다. 예수를 보라구요. 여기, 서른 살 된 사람 있어요? 서른 살 이상 된 사람 손들어 보세요. 있구만요. 서른 살이란 것은 젊고 아무것도 아닌 연령입니다. 예수는 그런 나이에 한 사람의 민족 반역자로 몰려서 죽었습니다. 그렇지요? '이 녀석 네가 뭐야? 괜히 조용한 이 세상에 나타나 가지고 바람을 일으키고 말이야, 이 녀석 죽여 버리면 그만이다' 해 가지고 사람들이 공작을 해서 죽여 버렸다구요. 예수는 그렇게 죽여 버렸지만, 하나님도 죽일 수 있나요? 하나님을 죽일 수 있어요?「없습니다」 하나님은 죽일 수 없다구요.
완전한 플러스인 하나님 앞에 완전한 마이너스가 이미 책정되어 가지고 수수작용을 하는 자리에 서게 되면, 침범을 받게 되어 있나요? 아니지요? 그때 침범을 했다가는 대대로 손해배상을 해야 됩니다. 손해배상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남의 물건, 공적인 물건을 파탄시켰을 때는 그 쪽에서 요구하는 대로 주어야 됩니다. 딱 그와 같은 원칙이라구요.
예수가 발견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가 뭐 국민학교 다녔다는 기록이 있어요? 또, 예수가 대학 나왔다, 박사학위 받았다는 말 들어 봤습니까? 일자 무식도 좋다는 거예요. 사랑이면 그만이지…. '대학을 나와야만 남자이더냐' 하는 노래도 있지요? 사랑이면 누구나 녹아나는 겁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원칙에 의해서 아들의 권위를 갖고 나타나는 날에는 하나님에게는 없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상대권이 만약에 또 다른 플러스형에게 이렇게 했다가는 제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바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 26:39)"한 것입니다. 아버지와 온전히 절대적으로 하나되려고 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가, 안 그런가?「그렇습니다」 그랬다구요.
성인을 보면 성인도 인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 성인들을 보면, 그들도 인간임에는 틀림없지만 가만 보면 지지리 못난 사람들이 성인이예요. 그들이 남자로서 자기 마음대로 해봤어요? 예수가 자기 마음대로 해봤어요? '하나님이 어디 있어, 하나님이?' 이렇게 해봤냐 말이예요. 세상에서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데, 하나님에게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난 죽더라도 당신을 위해 죽겠습니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입니까? 이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은 것은 누구를 위해 죽었느냐 하면 하나님을 위해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주의를 위해 죽은 거예요. 그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하나님은 개인주의가 아닙니다. 개인을 구하는 것보다도 가정을 빨리 구하려고 하는 것이요, 가정을 구하는 것보다도 민족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요, 민족을 구하는 것보다도 세계를 구하려고 하십니다. 보다 큰 것을 빨리 구원해 주시고 싶을 게 아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 하면 뭐이냐? 뜻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 사는데,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은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뜻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뜻이 무엇이냐? 뜻의 한계점, 뜻의 목적지가 어디냐? 개인을 구하는 것, 그것은 개인적인 뜻입니다. 개인을 구하는 것도 뜻은 뜻이지마는, 뜻이 원하는 것은 개인을 구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무리인 가정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가정을 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가정을 희생시켜서라도 종족을 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이 가는 공식적 노정이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으로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개인보다도 가정을 남길 수 있는 길입니다. 참된 가정을 남기기 위해 우리는 희생의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또. 자기 가정이 선한 가정이 됐더라도, 선한 종족 혹은 선한 씨족을 남겨야 됩니다. 선한 씨족을 남기기 위해서는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을 희생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법입니다. 나아가 씨족을 남기는 것보다도 민족을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선한 씨족은 선한 민족을 남기기 위해서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제물의 역사, 가인 아벨의 역사가 나옵니다. 세밀히 이야기해 주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선한 국가가 남아지는 것도 물론 좋지만, 하나님의 뜻은 선한 국가보다도 선한 세계를 남기는 것입니다. 하나의 국가와 민족을 희생시켜서라도 세계의 수많은 국가를 구하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결국 최후의 뜻의 한계점은 무엇이냐? 세계 만민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
그러면 여기에 덧붙여서 통일교회의 뜻은 무엇이냐? 지상의 인류를 구하는 것은 물론이요, 지금까지 이 땅에 왔다가 영계에 가 가지고 지옥에 사로잡혀 있는, 아직까지 지옥의 쇠사슬에 매여 있는 영인들까지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이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주주의(天宙主義)를 논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법적 조건을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울릴 수 있고, 하나님의 심정을 통해 가지고 하나님 속에 있는 역사적인 모든 한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효자가 나오기 전에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효자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 있는 가정이 나와 가지고 '하나님이여, 예수님이 개인적인 아들로서 인류를 용서해 줬거들랑, 하나님의 가정 된 부부, 하나님의 아들딸이 가정을 이룬 부부가 합하여 가지고 속죄의 제물을 드릴 수 있는 입장에 섰사오니 영계에 가 있는 영인들까지도 구원해 주옵소서' 하여야 그 일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가정이 합해 가지고서야 영계와 육계의 전반적인 인류를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것이 안 되거들랑 씨족이 합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구할 도리를 찾아야 합니다. '당신이 예수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세계를 용서해 줬거들랑, 남자와 여자를 합하여 가지고 땅의 인류와 영계에 가 있는 영인들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해 가지고도 그것이 안 되거들랑 선한 종족이 합하여 가지고 '하나님이시여, 우리 종족이 원하노니 천상에 가 있는 모든 영인들과 지상에 있는 모든 인간을 구원해 주시옵소서'라고 하면 구해 주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안 되거들랑 선한 나라가 합해 가지고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과 지상에 있는 수많은 백성을 구해 달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점점 넓어지는 거라구요 만일 하나의 선한 국가를 가지고도 안 되거들랑 세계가 합해 가지고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아들 예수와 같은 선한 세계 인류가 구하오니, 천상세계에 있는 지옥을 해방시켜 주시옵소서' 해야 됩니다. 그렇게 구하고 나서는데, 하나님이 그 말을 안 들어 주실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예수와 같은 자리에 서서 하나님 앞에 구하게 될 때는 천상의 지옥권까지도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논법입니다.
지상에서 하나의 나라를 해방시키면 천상세계에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천상에 나라가 없어서는 안 되겠으니, 땅 위에 나라가 있기 때문에 천상에도 그런 주체적인 나라가 있어야 되겠으니, 천상에 그런 나라를 형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땅 위의 세계를 구원할 때는 하늘나라 전체가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전체를 구해야 하는 것은 자동적인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이념은 천상세계와 지상세계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짊어지고 나오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여기에서 두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터전을 중심삼은 아버지와 어머니, 즉 참부모의 인연이 설정되는 것입니다. 남자는 하늘을 상징하고 여자는 땅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 둘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늘과 땅을 부여 안고 호소하여 구원하는 사명을 책임지고자 하게 될 때에 영계의 해방은 물론이요 지상의 해방도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론이 맞지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천주주의라는 말을 공상적인 말이 아닌 실질적인 말로 받아들여 가지고 소화할 수 있는 길이 여기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나만을 위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 영계를 해방시킬 수 있느냐? 없습니다. 빨리 빨리 해방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고,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종족, 즉 김씨, 박씨, 문씨, 조씨 등등의 수많은 씨족은 민족을 위해서 서로 희생하려고 해야 하고,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려고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남북으로 갈라져 가지고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라의 이상을 위해서 서로 먼저 죽을 수 있고, 희생할 수 있다는 각오를 가진 민족이 됐더라면, 통일된 나라로서의 주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국가가 세계를 위해 희생하는 길을 거치지 않고는 선이 갈 수 있는 목적의 한계점, 즉 세계적인 한계점을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초세계주의적인 신을 찾아서 만나려면 오늘날 지상의 인간들이 말하는 세계주의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넘어 초세계주의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천주주의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판서하심) 뭐라구요?「천주주의요」
천주주의(天宙主義) 할 때 왜 집 주(宙)자를 쓰느냐? 집이 없어 가지고는 이상적인 터전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힘든 일을 한 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어디로 갑니까? 회사로 가나요? 어디로 가요?「가정입니다」 집으로 가는 거라구요. 집은 모든 행복의 보금자리요, 세계의 출발의 기점이요, 만복의 동기가 되는 기틀입니다. 아까 말했지만 하늘이 주체라면 땅은 대상입니다. 그 주체와 대상을 중심삼고 볼때에, 대상적인 입장에 있는 인간 가운데 사랑을 논하게 될 때는 아담이면 아담을 중심삼고 아담의 주체로 되어 있는 하나님 앞에 완전히 수직 관계로서 일치점에 규합할 수 있는 그 점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가정입니다. 그렇지요? 우주의 중심축이 비로소 땅 위에 자리를 잡기로 결정지을 수 있는 곳이 가정이기 때문에, 가정을 찾지 않고는 우주의 중심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주주의(天宙主義)라는 것입니다. 왜 집 주(宙)자를 쓰는지 알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개인이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는 거라구요. 개인적인 구원은 받았댔자 저나라에 가 가지고 하나님 앞에 종적인 사랑을 받을 수는 있지만 종횡의 사랑은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종적인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종적인 사랑만 받으면, 들락날락하는 문으로 말하면 동쪽 문으로 들어간 사람은 영원히 동쪽 문으로만 들락날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방이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인 이념을 갖추어 가지고 주고받을 수 있는 심정적 체휼의 터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플러스 마이너스의 중화적 주체이신 하나님 앞에 대상으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을 닮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 가지고서야, 즉 본성의 주체인 하나님 앞에 하나된 남자와 여자가 대상적인 입장을 결하고 나서야 비로소 종횡이 합해진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완전한 사랑이요, 이상적인 사랑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이것의 반복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자녀가 있는 것입니다. 자녀가 나와 가지고 또 그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종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 횡적인 사랑의 인연으로 묶어지는 그 자리에서 이상적인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 났지요? 하나님은 절대적인 주체이시기 때문에 절대적인 대상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지을 때 그러한 주체와 대상의 중화적 주체로서 아담과 해와를 지으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그런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그 전지전능한 사랑의 힘에는 무엇이든지 허락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창조하신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창조의 능력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창조의 능력을 부여받아 우리도 사람을 창조할 수 있는 자리가 아들딸을 낳는 자리인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지었다는 자리에 우리도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아들딸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사랑하던 그 사랑을 실제로 느끼게 해준 것이 부모가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사랑하는 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사랑을 인간 앞에 다 주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우리는 부모의 자리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횡적인 사랑과 종적인 사랑을 모릅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주체로 계시기 때문에 주체적인 사랑의 감미를 느낄 수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횡적인 사랑을 통해서 또 다른 종적인 사랑의 인연을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사랑하는 자리가 바로 그런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중심삼고 하나된 아담 해와를 짓고자 하신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이 바로 아들딸을 낳기 직전의 단계다 이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예」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가정을 절대시하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는 것이 통일교회의 이상이라구요.
그러면 지금까지의 도인들은 무엇을 중심하며 생활해 왔느냐? 예수도 불쌍한 사람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아무 주장이 없는 사람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하나님의 뜻만…. 자기의 뜻은 없다구요. 하나님 뜻 앞에 절대 복종이였어요. 절대복종! 왜 절대복종했느냐? 절대적인 주체, 원형적인 주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른 삼각형적 주체의 권을 이룬 것이 사탄이기 때문에 그 사탄을 제거시키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은 사탄권내에 예속되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사탄권내에 예속되어 있는 인간을 탈출시키기 위해서는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어떠한 존재냐? 자기를 내세웁니다. 또 다른 주체니까 중심을 부정합니다. 이게 중심이지요? (칠판에 판서한 것을 가리키시며) 중심이 있다구요. 없는 게 아니라구요. 중심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정하고 자기가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사탄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됐느냐? 본성이라는 것은 하늘로부터 왔기 때문에 악이 주관할 수 없습니다. 하늘편에 선 것은 악이 주관할 수 없는 거예요. 본성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몸뚱이는 변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청년시대의 행동과 장년시대의 행동이 다르고, 청년시대의 마음과 장년시대의 마음이 다르지요? 마음도 그렇게 달라지는 겁니다. 마음도 발전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본성은 발전하지 않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인간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의 주체 된 하나님의 본성을 이어받을 수 있는 터전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마음입니다, 양심입니다. 순수한 양심입니다. 순수한 양심은 무엇을 따라 가려고 하느냐? 선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그럼 선은 무엇이냐? 중심을 절대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선한 마음의 바탕이 여기에 있어 가지고 (칠판에 판서한 것을 가리키시며) 중심의 자리로 나가려니 선은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있어야 될 입장에 있기 때문에, 자기를 주체적인 입장에 세우지 않습니다. 전체 앞에 자기를 희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의 본질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선한 사람이 되라고 자꾸 촉구합니다. 그렇지요?
만약에 내가 대한민국 사람들을 전부 다 잘살게 만들었다면, 양심은 대한민국 사람뿐만 아니라 세계 30억 인류도 잘살게 하라고 한다구요. 한 사람 앞에 몇천만 원씩을 나누어 줘 가지고 잘살게 만들어 주었다고 하더라도, 그 가외의 인류가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만 잘살게 만들고 그만두라고 하지 않는다구요. 세계 인류가 못살고 있으니 그들도 잘살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마련이라구요.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전체를 위해서 있으라는 것입니다. 전체를 위해 있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은 전체의 중심이니까 전체를 위해서 있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닮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으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내 속에 찾아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닮은 것에 비례해서 하나님의 성품이 나한테 점령되어 온다 이겁니다. 절대적인 주체로부터 점령당하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 이상입니다. 최고의 가치가 그거예요. 세상의 그 무엇에 점령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종교는 양심을 중심삼고 절대복종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양심과 마음이 본래는, 하나님이 절대적이니, 절대적인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다 그렇게 되어 있었어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절대적으로 하나되게 만들려니 종교 세계에서는 마이너스가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복종하는 것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복종하고 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됩니다. 하나되고 나면 어떻게 되느냐? 악은 반발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악은 반발하는 것입니다. 악이 제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이예요.
몸뚱이와 마음은 서로 싸우는 입장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빼 놓으면, 마음이 본래는 주체입니다. 본래 지을 때는 마음이 주체고 몸뚱이는 대상이었어요. 그런데 타락하고 나서는 어떻게 됐느냐? 이게 (몸뚱이가) 플러스로 됐다는 것입니다. 몸뚱이도 마음도 플러스가 되니 상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본연의 원리대로 복귀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려니 몸뚱이를 때려 잡아라, 먹지 말고 금식하라, 장가도 가지 말라, 자지도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자려고 하고, 먹으려고 하고, 또한 정적으로 사탄이 뿌린 사랑을 막 미친개처럼 하려고 든다 이거예요. 질서를 따르지 않는 사랑을 하려고 하고, 질서를 따르지 않는 먹이를 먹으려고 하고, 질서를 따르지 않는 잠을 자려고 야단이예요. 그러니 이걸 때려잡아야 됩니다. 몸뚱이에 제재를 가해 가지고 완전히 마이너스시켜서 플러스를 위하게끔 해야 합니다. 그렇게 3년 경계선을 넘어 가지고 습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습관화 알지요? 이 습관이라는 것은 참 무서운 것입니다. 늦잠 자는 사람은 언제나 늦잠 자기 마련입니다. 밤을 먹는데도 습관이 있지요? 한국 사람은 밥을 먹는데, 고추장을 먹고 된장찌개를 먹고 김치를 먹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김치' 하면, '후…' 하면서 보기만 해도 싫다고 합니다. 고추장을 먹어도 '퉤' 하고 뱉아 버립니다. (함께 웃음) 선생님도 서양의 양식을 좋아하느냐, 한국의 밥식을 좋아하느냐? 서양식보다도 한국식을 더 좋아하는 거예요. 그건 뭐냐? 습관입니다. 습관이 이렇게 무서운 거라구요.
이 습관을 뜯어고친다는 것은 참 어려운 것입니다. 이 습관, 이 본질적인 타락성을 제거시키려면 3년 이상, 7년 정도는 가야 돼요. 3년 이상, 7년노정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년 이상, 7년 정도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상부의 명령대로 살아라…. 이게 통일교회의 방법이라구요. 알겠어요?「예」
자, 초세계주의를 주장하는 성인들은 전부 다 자기 주의가 없는 사람들이라구요.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민족주의자도 아니라구요. 세계주의자라구요. 세계주의자인데, 이 땅 위에 인간들이 바라는 그런 이상적인 세계주의자가 아니예요. 거기에 하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개재시킨 초세계주의자입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사람들이 성인이 됐느냐? 오늘날 종교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성인들은 전부 다 종교의 교조(敎祖)이더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패가 교조인데, 그런 패들이 어떻게 해서 성인이 됐느냐? 그것은 하나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종교를 좋아해요? 종교를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라구요. 통일교회에 들어와 앉았으면서도 종교를 좋아하지 않는다구요. 사실 종교는 싫은 거예요. 타락했기 때문에 할 수 없어 종교 생활을 하는 거지. 선생님도 종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어서 하는 거라구요 안그래요? 본래는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먹고 싶으면 먹고, 놀고 싶으면 놀고, 춤추고 하면서 살면 좋지요. 뭐, 그것이 질서에 들어맞으면, 하나님의 천지법도에 들어맞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좋은 차는 아무리 달려도 고장이 안 납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나쁜 차는 천천히 달려도 고장이 납니다. (웃으심) 마찬가지라구요. 좋은 사람은 아무리 놀고 먹고 춤을 추어도 고장이?「안 납니다」 그래요. 좋은 사람이 못 됐기 때문에 고장이 나지요. 지금 타락한 세계에서는 조금만 춤을 춰도 고장이 나게 되어 있어요 이게, 허허허허…. 그런 사람 될래요? 그런 놀음놀이를 할래요, 영원히 멋지게 춤을 추고 노래해도 고장이 안나는 그런 놀음을 할래요?「고장 안 나는…」 고장 안 나는 입체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놀이를 하려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수룩하지만 그런 도적놈 같은 심보를 가진 사람들이 종교인들입니다. 여기서 도적놈은 나쁜 의미의 도적이 아니라 선한 의미의 도적놈이예요. 알겠어요?「예」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 들어온 녀석들은 다 괴상한 패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일면은 고집불통이요, 일면은 도적놈 심보를 가진 녀석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녀석들을 잘 가르쳐 주지 않으면 큰일난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훈련을 단단히 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밥죽이 되게끔 훈련을 시키자고 해서 이번에 기동대를 편성한 것입니다. 알겠나?
하나님이 계시는 한 세계주의보다도 초세계주의입니다. 거기에다 통일교회는 초심정세계주의를 보탭니다. 통일교회는 이것이 다릅니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초진리세계주의를 부르짖으며 나왔습니다. 진리를 중심삼은 인격만을 찾아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종교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정을 이어받은,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완성한 인격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르다구요. 알겠어요?「예」 이것이 통일교회의 가야 할 길입니다. 심정적 세계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지금까지는 진리를 따라 가지고 인간 완성, 세계 완성을 표방했지, 여기에 사랑이라는 것을 갖지 못했습니다. 진리로써 인간의 행복을 소개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은 심정만이 인간의 행복을 소개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초심정세계주의를 부르짖고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이 논리적인 가치라든가 철학적인 가치를 말하게 될 때, 지(知) 정(情) 의(意)를 말합니다.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철학에서는 지식이 있어야 정(情)을 유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근본문제에 있어서, 하나님 편에서 보게 될 때, 지식이 필요해서 인간을 만들었느냐? 아닙니다. 그럼 목적이 필요해서 인간을 만들었느냐?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사랑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情) 지(知) 의(意)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식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우리 어머니는 이화대학교의 총장이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우리가 어머니를 좋아하는 것은 못났든 잘났든, 그 속에 보이지 않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래야 어울리지요. '지식이 있기 때문에 좋아한다' 이러는 사람은 미친 녀석이라구요.
자, 억만가지 책을 저장한 도서관을 가지겠어요, 아니면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상대를 가지겠어요? 어떤 것을 가질래요?「사랑하는 상대를 가지겠습니다」정말? 「예」 일자무식이라도?「예」그런 거예요. 일자 무식쟁이라도 몽땅 사랑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이거예요. 그런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우리 통일교회에서 주장하는 우리의 갈 길은 물론 선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는 그 길의 최후의 종착점이 어디냐? 인류역사에 있어서 성인들이 주장해 나온 것이 무엇이냐? 요걸 알아야 돼요. 무엇을 주장해 나왔느냐? 진리를 중심삼은 세계의 인격을 주장해 나왔어요. 그러나 통일교회는 그것이 아니예요. 지식은 없어도 좋다, 하나님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통일교회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세계주의적 심정의 길을 찾아 나가는 것이 오늘 통일교회의 우리들이 가는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첫 기반이 되는 지상 기반이 무엇이냐? 먼저는 내 개체가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횡적인 사랑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인간 아담 해와를 창조하신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대상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닮은 입장에서 하나되어 가지고 아담 해와와 같은 아들딸을 지어야 하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사랑하던 본래의 그 사랑, 역사적인 부모가 사랑하던 그 사랑의 전통을 받아 가지고 아들딸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완전히 복귀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복귀노정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그렇지요? 하나님이 플러스지요? (판서해 놓은 것을 보고 말씀하시면서) 여기에서 아담…. 플러스 마이너스는 서로 사랑하지요? 그렇지요?「예」 그래 가지고 여기에서 횡적인 사랑을 주고받아 가지고 (칠판을 가리키면서)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되면 이것이 플러스 되고 이것이 마이너스 돼 가지고 하나됩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되면 여기에서 무엇이 나오느냐? 아들딸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됐지요? 이 아들딸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이것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칠판을 가리키시면서) 하나된 자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형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이것은 사랑을 대신한 자리이기 때문에, 이것이 알파요 이것이 오메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알파와 오메가, 요것이 하나님에서부터 출발을 해 가지고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도 하나님과 같이 아들딸을 사랑하고, 그들이 결혼해 가지고 서로 좋아하는 것을 보고 부모의 입장에서 '야! 너희들도 나를 닮았구나' 하는 것입니다. 응? 그래서 종적인 아담 해와의 전통을 이어받아 가지고 횡적으로 전개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역사노정에 있어서의 선조들의 공적을 왜 이어받아야 되느냐면 그 이치 때문입니다. 종적인 역사의 공적을 이어받아 가지고 횡적인 세계에 전개시키는 놀음을 어떤 나라든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사를 배우고 나라의 애국자를 추모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라구요. 모든 존재 이치가 여기에서 우러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놀음을 왜 했느냐?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 때문에….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오느냐? 사랑은 자기로부터 오는 법이 없습니다. 사랑이란 상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은 어디서부터 온다구요.「상대로부터 옵니다」 상대가 없게 될 때는 사랑은 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보면 상대적이지요? 남자 앞에 여자도 상대적이요, 또 부모 앞의 자식도 상대적입니다. 사랑 이라는 것은 상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에 서는 '삼대상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삼대상 사랑을 체휼하지 못한 자는 완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 체험했다는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만들어 놓고 좋아했듯이, 나도 아들딸을 낳아 놓고 그만큼 기뻐하자. 이것이 통일교회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좋아하시고 '이제부터 세계를 주관하겠구나. 우리 집이 세계의 중심 가정이 되겠구나. 어서 커라 어서 커라' 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보호 육성하는 가운데 기쁨과 만족을 느끼면서 그들이 자라서 결혼할 날을 바라시던 것이 하나님의 소망이 아니었더냐? 이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어머니는 아들딸을 잘 길러 가지고 훌륭한 상대를 골라 좋은 부부를 맺어 주어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좋은 부부를 맺어 주면 그 집이 망하나요?「흥합니다」 흥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사랑하시듯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그 사랑을 본받아 아들딸을 사랑해야 되겠다' 해 가지고 어디든지 데리고 다니고 싶어 하고, 언제든지 안고 다니고 싶어 하고, 출근할 때도 데리고 가고 싶어하고, 밥을 먹을 때도 같이 먹고 싶어한다면, 그런 아버지 어머니를 아들딸이 나빠하겠어요. 좋아하겠어요?「좋아합니다」
친구 중의 친구가 누구냐? 이웃 동네의 더벅머리 총각이 자기 아들딸의 친구가 아니라구요. 친구 중의 친구가 누구냐 하면 바로 아버지 어머니라구요. 이렇게 돼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런 의미에서 될 수 있으면 아이들을 차에 같이 태우고 청평에도 데려가려고 합니다. 그런다고 남들이 흉을 본다구요. 저 사람은 아침 저녁 아무 때나 그저 어디든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려고 한다고 말이예요. 그래서 그런 거라구요. 친구보다도 더 좋아하는 부모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생각해야 된다구요.
친구 중의 친구요, 스승 중의 스승이다,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누가? 「어머니 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그렇게 돼야 돼요. 아버지 어머니가 '야 야, 너 그렇게 하면 안 돼' 이러고, 선생님은 '야 이놈아, 안 하면 종아리 때린다.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해서 '잉잉' (표정지으심) 하게 만드는 것은 좋지 않아요. 사랑의 교육을 해야 된다구요. '야 야, 너 그러면 되겠니?' 하면 '그래 내가 이렇게 하면 아버지 어머니가 슬퍼하니까 안되겠지' 하게 되어 있다구요. 이렇게 교육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는 자식의 친구 중의 친구요, 스승 중의 스승이 되어야 됩니다.
에덴 동산에 있는 아담 해와에게 있어서 친구가 있었어요? 아담에게 친구가 있다면, 누구예요? 해와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천사장하고는 친구하지 말기를 바랐다구요. 그렇잖아요? 천사장은 종이라구요. 그런데 잘못 친구 삼다가 망한 것입니다. 그러니 뭐라구요? 스승 중의 스승이요, 친구 중의 친구요, 그 다음에는 사랑 중의 사랑이 되어야 됩니다. (웃음) 그렇잖아요?
사랑은 하나님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결국 상대사랑도 누구로 말미암은 것이냐면 부모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야 야, 아들딸들아. 너희들이 좋아하는 것은 너희들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은덕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할 때 자녀들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이렇게 길러 줘 가지고 이런 상대를 얻어 주지 않았다면 큰일날 뻔했다'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결혼은 낙방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 사랑의 교육은 누구로부터 받아야 되느냐? 부모로부터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하나되어 가지고 비둘기같이 재미있게 구구구구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본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야,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까 나 혼자는 외로워. 나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같이 구구구구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상대가 필요하다' 이렇게 돼야 되고 부모는 그렇게 되도록 가르쳐 줘야 됩니다. 알겠어요? 결혼하여 사랑하는 것을 본받을 수 있도록 가르쳐 줘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아들 딸들이 아버지 어머니가 하던 놀음을 반복하게 되니, 세계는 선한 세계가 되는 것이요, 인류역사는 선한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통일교회에서 이것을 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주체의 사랑은 대상에 대한 사랑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을 수 있는 내가 되어서,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사랑하던 그 사랑을 가지고 자기 아들딸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상대 이념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묶어 주려 하셨던 것처럼 묶어 주면 횡적으로 넓어지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번창하기 마련이라구요. 이때 좋은 상대를 묶어 주면 그 집안이 번창하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선한 선조의 후손을 빨리 그 집안 안에 몰아넣음으로써 악한 선조를 가진 혈통을 변경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은 거리의 여인들과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리의 여자라고 해서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그런 여자들이 많아서 그런다구요. 될 수 있으면 그 나라의 명문집, 될 수 있으면 순수한 혈통, 선조로부터 선한 씨를 받은 그런 후손을 자기 집에 빨리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결혼은 심각한 문제요, 될 수 있는 대로 좋은 상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상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 분은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 마음이 무엇이냐? 망하겠다는 마음인가요?「아닙니다」 빨리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마음입니다.
함부로 결혼했다가는 큰일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가장 귀한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한 것인데, 그러한 영원한 사랑의 출발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첫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사랑이 귀한 것입니다. 첫사랑을 함부로 하는 것은 지극히 원통하고 분한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첫사랑을 잘못 했다간 그리 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영원히 그리 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영원히 악한 혈통을 따라 그 곳으로 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첫사랑을 잘못 발휘했다가는 영원히 잘못되어 버릴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이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의 원리는 윤리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 근본적인 윤리문제가 해결되면 그 기반을 통해 역사적인 모든 사회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것을 반복하게 되면 가정도 나오고 나라도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가 나올 뿐만 아니라 세계도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너나 나나 똑같습니다.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평등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다 같은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평등의 세계가 사랑을 중심삼은 세계에서 비로소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정의 초세계주의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길이 우리의 갈 길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연결시켜 가지고 본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비록 악한 세계가 되었고 악한 사람이 되었을망정 그들이 악하다고 악한 법으로 치리하는 것이 아니라, 악하지만 그들에게 선의 치리 법을 적용해 가지고 선에 흡수시켜 선화(善化)시키기 위한 놀음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인들이 해야 할 놀음입니다.
그런 사랑의 가족은, 비록 가정이지만 세계적입니다. 또한 그 가정은 천주적입니다. 그런 가정이 없어 가지고는 천상 천하에 행복의 기점이 없겠기 때문에, 먼저 내 개인으로부터 이런 가정을 완성 기준으로 해 가지고 세계로 뻗어 나가자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래서 개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담같이 해와같이 종적으로 사랑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포위망을 뚫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선 주의가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무슨 주의냐? 초심정주의, 초세계주의입니다. 그런 사상을 갖지 않고는 그 포위망을 벗어난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사상은 초세계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므로 여기에 들어오면 초세계주의를 갖기 때문에 하나님의 끈을 붙들고 들어온 것이 됩니다.
하나님하고 완전히 관계된 것을 사탄이 침범했다가는 사탄이 망하게 됩니다. 그것을 쳤다가는 3배 이상의 손해배상을 해야 됩니다. 그것을 건드리는 날에는, 희생시키는 날에는 7배 이상의 손해배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작전을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편의 사람을 사탄권에 들여보내 가지고 거기에서 공작을 하게 하는 거라구요. 그걸 반대해서 때려죽이는 날에는 '야 야, 천리공법에 있어서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된 사람을 칠 자가 어디 있느냐? 이놈아, 너는 반드시 손해배상을 해야 된다' 이러는 겁니다.
옛날의 아담은 세계주의자가 못 됐지요? 아담 해와는 자라는 과정인 소년소녀시대에 타락했기 때문에 세계주의자가 못 됐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세계주의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아담 해와보다도 더 높은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아담 해와보다 높을 수 있다는 거예요.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종적으로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중심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중심을 시인하고….
아담은 중심을 부인하고 타락했습니다. 중심을 확실한 신념으로 소화 하지 못한 자리에서 타락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주의적인 심정을 가지고 '그 누구도 내 자신을 빼앗아 갈 수 없고 나를 부정시킬 수없다, 하나의 또 다른 상대가 있어도 절대로 나를 부정시킬 수 없다' 하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딱 서게 되면, 하나님 편에선 대상의 자리를 확보하게 되기 때문에 사탄세계에서 그를 침범했다가는 3배 이상, 혹은 7배 이상의 손해배상을 해야 합니다.
하늘은 선한 사람을 희생하는 입장에 세워 가지고 사탄세계에 손해배상을 청구해 가지고 발전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점점 넓혀져 가지고 세계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되느냐? 세계라는 무대를 걸고 하나님과 하나된 그런 무리가 나올 때, 사탄이 이를 쳤다가는 세계를 몽땅 넘겨주고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초심정세계주의이기 때문에, 이것을 치는 날에는 사탄세계의 근본 전부를 청산해 주고도 갚을 도리가 없으니 사탄은 아예 상대하지 말고 돌아서라, 통일교회가 가는 곳에는 사탄세계가 남아지지 않는다, 이러한 논법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통일교회에 들어오면서부터 여러분은 아무개 집 아들딸이 아닙니다. 아무개 집 형제가 아닙니다. 그 관념 이상으로 '나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아들딸이다' 하는 신념이 더 강해야 됩니다. 눈 똑바로 뜨라구요. 보다 강해야 됩니다. 강해 가지고 아담 해와보다도 낫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담 해와보다 나아 가지고 하나님을 절대적인 중심으로 믿고, 그분이 원하는 모든 일체를 내 생명보다도 존귀하게 여기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를 절대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신념에 입각하여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는, 자기보다 못한 아담을 끌어 가서 타락시킨 사탄이기 때문에 아담보다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놔 줘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초세계주의적인 심정을 가지고, 아담 이상의 중심을 중심삼은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천하에 그 누가 나를 굴복시킬소냐' 할 수 있는 신념이 확정되지 않는 자리에서는 하나님은 역사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다'는 자각이 아무개 집 아들딸이라는 자각보다도 덜 강해야 되나요?「아닙니다」 더 강해야 됩니다. 강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태어나기를 이것을 위해 태어났고 살기를 이것을 위해서 사는데, 아담 해와보다도 못해서는 안 됩니다.
죽어도 하나님은 내 중심이요, 우리 가정의 중심이요, 우리 씨족의 중심이요, 우리 민족의 절대적인 중심이요, 우리 국가의 절대적인 중심이요, 이 세계의 절대적인 중심이라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신념을 가지면 하나님과 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길을 취해 보자고 나선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 길을 출발한 동기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은 통일교회 교인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입니까?「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통일교회의 교인이 되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위해서 일하기 전에 누구를 위해서?「하나님을 위해서」 여러분이 나가서 일할 때도 교회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통일교회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의 일을 하는 거예요?「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예요?「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일을 하면서 월급을 안 준다고 해서 불평할 수 있어요?「없습니다」 월급이라는 말은 비참한 것입니다. 밥을 굶더라도 아버지가 하여야 할 일을 안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들의 도리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활동하는 데 본부에서 5천 원씩 후원하는데 그 5천 원을 받을래, 안 받을래?「안 받겠습니다」 받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 당당코 받아야 되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라구. (청중과 함께 웃으심) 안 받겠다고 하는 사람 손들어 봐. 손 내리라구. 받겠다는 사람은 안 주고, 안 받겠다는 사람은 줘야만 되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잖아요? 사랑이라는 것은 받겠다고 하게 되면 '싫어 이 자식아, 그러지 않아도 줄 텐데. 가만히 있으면…' 아들딸이 많은 사람은 그래요. 나도 그렇습니다. '엄마 아빠, 나 사 먹을래, 잉- ' 하는 애보다 구석에 가만히 있으면서 오빠에게 뭘 줘도 그냥 놀고, 동생이나 누나에게 뭘 줘도 가만 있는 애에게는 더 주고 싶은 거라구요. 그렇지요?「예」
떡은 줄지 말지 한데 김칫국부터 청한다 그말이야. (웃으심) 남의 잔칫집에 가 가지고 그것보다 더 기분 나쁜 것이 없는 거라구요. 떡은 줄지 말지 한데 '여보, 김칫국 한 그릇 가져오소' (웃음) 그 얼마나 밉살스럽겠어요? 야. 이 자식아. 누가 떡을 주겠대? 떡 가져오기 전에 상부터 바쳐 오라는 거예요. 떡만 달라는 게 아니라구요. 상을 차려 오라는 거예요. (웃음) 줄지 말지 한데 김칫국부터 청하는 녀석은 죽이고 싶은 것입니다. (청중과 함께 웃으심) 줄지 말지 한데 주겠거니 하는 녀석은 죽이고 싶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원조를 안 해줘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통일교회의 문선생은 하나님한테 월급받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청중과 함께 웃으심) '하나님 아버지, 내가 50평생 요만큼 일했는데, 그것을 하루에 얼마씩 값으로 쳐서 주면 내가 먹고 살고 벽돌양옥집도 짓고 남을 텐데 그것 주시오' 그런 걸 생각도 안 해봤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돈이 있으면 하나님을 위해서, 아버님을 위해서 쓰려고 그러지 나를 위해서 쓰려고 안 합니다. 효자가 뭐예요? 자기 것 전부를 아버님 것으로 돌리겠다는 것이 효자지요? 그래야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한테 만물을 주관하라고 했다고 해서, '하나님, 됐어요. 내가 주관할 테니까 이제 하나님은 관둬요' 그래요? 아니라구요. 주관하게 되어 좋을 때는 '아버님, 저 이렇게 주관하는 것이 좋아요. 이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이렇게 해주셔서 좋은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강사들도 원리말씀을 전할 때, 청중이 좋다고 박수를 치며 환영하면 '아, 내가 강의를 잘해서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녀석들은 전부 다 도적놈 심보를 가진 것입니다. 그것을 좋아하기 전에 '하늘의 은덕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렇게 됐습니다. 이 좋은 것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옵소서'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효자의 마음이라구요. 알겠어요?「예」
'내가 3년 동안 교회를 위해서 일했는데 선생님이 날 몰라줘' (웃음) 그런 사람은 누구를 위해서 일했어요? 이런 녀석은 몰라주는 것이 원형이정(元亨利貞)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위해 일한 것이 돼요? 자기를 위해서 일한 것이 됩니다. 자기를 위해 일한 것은 자기가 이미 다 받았다구요. 하늘을 위해서 일해야 동정을 받는 것입니다. 이치는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효자란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충신 또한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도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효자가 되어야 하고, 충신이 되어야 하고, 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여러분은 성인보다도 더 나아야 됩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왜 믿느냐? 믿는 목적은 간단한 거라구요. 이제 결론을 짓자구요, '우리의 갈 길'에 대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종적인 사랑을 받고 그 하나님을 중심삼고 횡적인 사랑을 이루어, 즉 종횡의 사랑을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던 놀음을 횡적으로 하기 위한 것이 인간이 태어난 목적입니다. 우리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그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찾는 것이 복귀의 사명입니다. 알겠나요?「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지 못했습니다. 받았어요? 아들로서 완전한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받아 봤어요? 못 받아 봤으니, 아들로서 완전한 사랑을 받아 봐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또, 딸로서 완전한 사랑을 받아 봤나요?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완전한 사랑을 받기 전에 타락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완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자는 것인데 그러려면 아담 해와보다 못해 가지고는 안됩니다.
우선 사상적으로 나는 세계를 위해 태어났다는 자각을 가져야 합니다. 초세계주의적 심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초세계주의적 심정을 갖고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담보다 나아야 되니까 '아담은 사탄한테 끌려갔으나 나는 사탄한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사탄을 끌어다가 하나님 앞에 고소하자'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사탄을 끌어다가 하나님 앞에 고소할 수 있어야 됩니다. 다르지요?「예」
그러려면 원리를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원리를 배우는 것은 아담이 사탄한테 끌려갔던 것, 즉 사탄한테 주관받았던 것을 복귀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이 사탄을 주관할 수 있는 본연의 기준을 탈환하기 위해서 원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아담은 초심정적인 기준을 못 가졌습니다. 천사장을 지배하지 못했습니다. 그랬지요?「예」 그러니까 우리가 초심정적인 기준에 서서 사탄 마귀가 된 천사장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갖자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완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들로서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날에는 이 두 가지 목적을 다 완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완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사탄을 굴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가면 사탄이 어디로 가느냐? 우리를 보고 도망갑니다. 그러면 세상 끝까지 따라가서 추방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은 다 없어지게 됩니다. 다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돌아가는데, 어디까지 돌아가느냐? 비로소 하나님 앞에까지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탄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아담 해와보다도 나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보다 낫지 못하면 아담 해와가 완전한 아들딸로서 받아야 했던 사랑, 즉 완전한 아들딸로서 다 받지 못한 그 나머지 부분의 사랑이 우리 인간세상과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맺는 일을 우리들이 해야 됩니다. 아담 해와는 사탄한테 끌려갔지만 우리는 사탄을 주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탄을 주관하려면, 사탄하고 싸워서 이겨야 됩니다. 힘의 기준에서나 능력면에서나, 모든 면에서 우월하면 사탄은 굴복하는 것입니다.
사탄과 싸워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사탄과 싸워야 되느냐? 일선에서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일꾼들은 어디로 가야 되느냐면 일선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일선! 사탄이 제일 반대하는 일선으로 찾아가는 거라구요.
일선에 찾아가서 뭘할 것이냐? 원수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영토를 빼앗고 사람을 빼앗고, 그 다음에는 주권을 빼앗아야 됩니다. 이것이 원수를 굴복시키는 비법입니다. 사탄세계의 영토를 빼앗아야 되고, 사탄세계의 사람을 빼앗아야 되고, 사탄세계의 주권을 빼앗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탄편 사람들을 죽이고 목을 잘라 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맞고 빼앗아 오는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맞고 영토를 빼앗고 백성을 빼앗고 주권을 빼앗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싸움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메시아가 와서 무엇을 할 것이냐? 비로소 역사상에 있어서 한 나라의 주권과 국토와 백성을 찾아 가지고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횡적인 세계를 빼앗기 위한 싸움을 코치하는 사령관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메시아의 사명입니다. 알겠어요?「예」 이것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이런 이야기는 대개 엊그제 했던 것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을 줄 압니다.
사탄을 굴복시키려면 국가만 굴복시켜서는 안 됩니다. 사탄은 세계적인 주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세계주권까지도 추방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이 지구성에 해방권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지구성 어디를 가든지 사탄이 반대하는 그늘이 있어 가지고는 하나님이 자유와 평화의 동산으로 지은 에덴 동산의 이상이 실현되지 않습니다. 지구성에 사탄이 반대할 수 있는 그림자가 없어져야만 지상천국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그 일이 완료되어야 천상세계의 해방운동을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나요?「예」 이것이 통일교회의 식구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확실히 알았지요?「예」 확실히 알았지요?「예」
먼저는 아담 해와 이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완전한 아들딸이 되라. 그 다음엔, 그런 아들딸로 맺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있는 가정을 이루어라. 이것이 중심입니다. 그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빼앗아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무엇이라구요?「길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죽더라도?「가야 합니다」 이 길을 안 가고 죽는 날에는 영원을 두고 이 놀음을 반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뜻의 입장에서 지금의 때를 두고 보면, 한 번만 단결해 가지고 넘어서는 날에는 역사가 뒤넘이칠 수 있는 때입니다. 그런 때가 우리 목전에 와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오늘날 세계적으로 출동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기동대가 출동을 해봤나요?「아니요」 전무후무한 일을 하는 이 현장에 우리는 불리어진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역사에 전쟁이 많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과 사탄이 피어린 투쟁을 했던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싸움이 치열한 일선에 서 가지고 최고의 승전을 다짐할 수 있는 한때를 맞이한 하늘 군대로, 하늘 정예대로 불리움받은 이 권위를 우리는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각해요?「예」
이제 여러분은 아담 해와로부터 받은 그릇된 혈통을 여러분의 손으로 일시에 청산짓고, 여러분의 권한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해부해 놓고 선악을 판단짓기 위해, 하늘나라의 심판관이요, 하늘나라의 검사로서 사탄세계를 공의의 법정에서 심판하기 위해 나섰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사탄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고, 인간은 해방시켜야 되겠다 이겁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라구요.
이것을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발전시켜 가지고 세계에까지 확대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중심삼고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때가 멀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 길을 달려가는 데 있어서 스스로가 선두에 서서 누구한테도 지지 않겠다는, 먼저 희생하겠다는 각오 밑에서 싸움을 하면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서로가 죽을 자리에 먼저 가겠다고 멱살을 잡고 싸우다가 상대를 죽였다고 하면 그것을 다스릴 법은 없습니다. 알겠어요?「예」 서로가 먼저 희생하겠다고, 동생은 '형님, 그 길은 당신이 갈 것이 아니라 내가 가겠소. 그 길은 동생이 갈 길이 아니요' 하면, 형님은 '너는 나만큼 못 살았다. 나는 너보다 먼저 죽어도 괜찮아. 그러니 너는 네 자리를 지켜라' 이러고…. 이렇게 형제끼리 싸움을 하다가 서로 잘못 때려 가지고 한 사람이 죽었다 할 때에, 이거 재판할 수 있는 법이 있어요? 없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생명을 각오하고 서로 앞을 다투어 나가는 데는 천상 천하에 이길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법이 성립 안 된다구요. 참소할 조건이 없다는 거예요. 결국 선을 위해서 남보다도 희생하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우주의 주권을 주장하고 나설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이러한 결의와 이러한 놀음을 하지 않고는 이 세계를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기 바랍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고, 중심을 중심삼고 개인과 가정을 확정지어 가지고 그 가정을 횡적으로 종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 '우리의 갈 길' 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우리의 갈 길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아버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아야 될 자리를 찾아 나가야 되겠고, 부부로서 완전한 아버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가야 되겠고, 부모로서 완전히 자녀를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으로서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중심점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리에서 가르쳐 주는 삼대상목적이 여기에 있고, 창조목적인 사위기대완성이라고 하는 것이 아버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연결되는 자리가 이 자리인 것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아버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주체적인 개인과 상대, 그리고 그 자녀들이 아버님을 중심하고 삼대상사랑의 주체권을 형성하는 데서 승리의 권한이 성립되어 평화와 영광의 세계가 벌어진다는 것을 저희들이 비로소 알았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들은 원치 않는 부모를 갖고 있습니다. 원치 않는 형제를 갖고 있습니다. 원치 않는 자녀를 맞이해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은 죽더라도 원치 않는 이 길을 다시 가지 말아야 되겠사옵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고 아버님을 중심삼은 자녀의 입장과, 아버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새로운 부부의 입장과, 아버님을 중심삼은 종횡의 사랑의 실체가 되어서 그것을 합한 사랑을 가지고 자녀를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서는 선한 부모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자식과 부모지간에 있어서, 부모가 자식에게 둘도 없는 사랑의 중심이요. 둘도 없는 스승의 중심이요, 둘도 없는 친구의 중심이 되는 자리가 여기에서 설정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가정은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자나깨나, 남자는 자기만을 중심삼은 남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고, 여자도 자기만을 중심삼은 여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고, 부부도 자기들만으로 맺어지는 부부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요. 부모를 중심삼은 자녀의 관계에서도 자기들만을 중심삼은 부자의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개인에서부터 상대, 그리고 자녀까지의 삼대상사랑은 아버님을 바탕으로 한 사랑의 터전을 이어받지 않고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을, 이제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나를 불러야 되고, 아버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상대를 찾아야 되며, 아버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자식을 낳아 사랑하고 길러야 될 이 엄청난 사명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타락권내에서는 그것으로서 모든 것을 대신한 것같이 나왔지만, 하늘은 그 사랑을 끊어 버리기 위해 지금까지 역사노정에서 수고하신 것을 아옵니다. 끝날이 되면 이 사랑을 산산조각으로 헤쳐 버려야 되기에, 남편이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고, 아내가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며, 자식이 부모를 알아보지 못하고, 부모가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 또한 아옵니다. 이제 그러한 때가 왔기 때문에, 이것으로 끝나면 인류는 망하게 되어 절망밖에 남아질 것이 없을 것이나, 이와 같은 파탄적인 종말의 시대가 눈앞에 나타남과 더불어, 본연의 심정을 중심삼은, 아버님의 참다운 사랑을 중심삼은 아들딸의 인연과 부부의 인연과 부자의 인연을 새로이 설정해 놓고 접붙이는 작용을 하여 그 모든 것을 다시 복구하려는 당신의 뜻이 지상에 현현함으로써 상대적인 악의 세계, 악의 권한이 무너지고 있는 사실을 목전에 바라보는 현시점에 당도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입장에서, 하늘이 바라던 소원의 한때가 우리 시대에 집중적으로 나타난 것을 알고, 이제는 이상적인 개인을 찾고, 이상적인 가정을 찾고, 이상적인 자녀를 찾아서 이상적인 세계에 연결시켜야 되겠습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1972년을 기하여 아버님을 중심삼은 주권 옹호와 인류 옹호와 평화의 기원을 바라보면서 세계에 없는 기동대를 편성하게 된 이 놀라운 사실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얼마나 얼마나 수많은 성인들이 이날을 고대했지마는 목전의 이날을 맞지 못하고 슬픈 낙엽과 같이 서러운 죽음길에 쓰러져 갔습니까? 그렇게 쓰러져 간 애혼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기동대를 편성하여 그들의 해원성사는 물론이요, 눈앞에 다가오는 목적의 때를 맞아 최후의 일격을 가함으로써 사탄주관권을 넘어서 세계적인 승리의 권한을 세우고, 하늘주관권을 세울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이런 사실들을 이 시간 저희들이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결심하였습니다. 중심을 부정하는 사탄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중심을 절대적으로 시인하는 나 자신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자신을 자각할 수 있음에 스스로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중심을 사랑하지 못하였던 사랑의 원한의 터전을 알았으니, 중심을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을 빼놓고, 참부모를 빼놓고 사랑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인연을 오늘날 이 현실적인 생활무대에 전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하늘을 중심삼고 하나되고자 하는 마음이 자기들끼리 하나되고자 하는 마음보다도 앞서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무리이옵니다. 그들이 하나되는 것은 아버님을 모시기 위한 것이요, 부모의 발판을 넓히기 위한 것입니다. 그 발판을 넓힘으로 말미암아 자식들이 해방의 터전을 갖추게 되고, 후손이 수난길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에, 부모를 위하는 것이 곧 미래를 위하는 결과가 되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님이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에게 이와 같은 인연으로 역사하시는 사실을 보고 있는 저희들, 그것을 감사히 여길 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가정들이 연합해 가지고 사탄세계의 가정을 빼앗아 오고, 사탄세계의 백성을 빼앗아 오고, 사탄세계의 만물과 사탄세계의 주권을 빼앗아 옴으로 말미암아, 세계 만민을 복귀하고자 하는 데 있어서 그 복귀의 한의 절정을 밟고 넘어설 수 있는, 승리의 개가를 올리기에 마땅한 결의를 하고 나서는 통일의 아들딸들이 됨과 동시에, 세계로 향하는 본연의 길에 천명을 받은 통일된 기동대의 명분을 갖추는 참된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흘러가는 역사 속에 물거품과 같이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물건들이 되기 위해서 모인 무리가 아니옵니다. 역사의 축을 바로잡고, 역사의 방향을 바로잡기 위한 엄숙한 과제를 앞에 놓고 명령받기 위해 모인 무리가 통일의 기동대임을 자각하고 나서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비록 연한은 짧을지라도, 뜻을 안 심정의 인연은 얕을지라도 새로운 결의가 그 어떤 결의보다도 강할 때,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야 할 이 민족 앞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운동이 이들로 말미암아 벌어질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여기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자나깨나 자기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 하늘과 더불어 가는 길이요, 싸우는 것도 하늘을 위해 싸운다는 것을 자각하게 하시옵소서.
하늘의 작전은 맞고 빼앗아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희생하는 데서만이 하늘의 판도가 넓혀질 수 있다는 원칙을 이들이 알아서, 희생하는 것을 숙명적인 과제로 알고 이 길을 개척하여 국가와 민족을 해방하고 세계 주권을 아버지 앞에 봉헌할 수 있는 하늘 앞에 효자 충신이 되고, 하늘 앞에 남아질 수 있는 성인의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의 갈 길을 똑바로 알았사옵니다. 나를 참다이 희생시키는 데서 참다운 가정의 출현이 벌어지는 것이요, 참다운 부부를 희생시키는 데서 참다운 자녀의 교육과 더불어 종족 후대가 성립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가정은 종족을 위해 희생하고, 종족은 민족을 위해 희생하고, 민족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국가는 세계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선이 이어지는 발전적 단계의 노정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심중에 깊이 지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오늘도 내일도 젊은 시대에도 장년시대에도 노년시대에도, 생애 전체를 바쳐서 그렇게 살게 될 때 그 생애는 아버님과 마찬가지의 행로를 걸은 입장으로 보장되어 아버님 앞에 상대적인 입장을 취하게 됨으로써, 이는 아버님의 아들이요, 아버님의 남편이요 아내요, 하늘 부모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늘나라 이상천국에 머물 수 있고, 어디서든지 환영받을 수 있는 주체적 존재로 남아진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역사의 사명을 저희들이 책임을 지고 완수하겠다고 하늘 앞에 결의하는 시간이오니, 당신이 기꺼이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우리의 갈 길에 있어서는, 아버지여, 염려 마시옵소서' 하는 효자가 되고, 충신이 되고, 성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기쁘신 뜻 앞에 영원히 사랑할 수 있고, 영원히 자랑할 수 있고, 영원히 내세워 모든 권한을 상속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하늘의 왕자 왕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나만은 틀림없이 기동대의 선두에서 희생을 각오하고 달리겠다' 하는 사람 손들어 보자구. 이렇게만 되는 날에는 한국은 빨리 복귀되는 거라구.
일하는 데 있어서 보다 희생하고자 하고 나의 모든 것을 투입하는 것은 하늘의 판도를 넓히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은 희생을 치러 가지고 대가를 찾아온다는 원칙을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앞으로 며칠 아니면 이 수련회도 끝날 터인데, 그동안 바빠서 못 왔고, 오늘 이 자리에 나오는 데도 그래서 늦었습니다.
이번에 세계를 순회하고 돌아왔기 때문에 그동안 처리 못 했던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처리하느라 바쁜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그런 일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을 자주 만나지 못했고, 여러분을 대해 가지고 많은 말씀을 해주지 못한 것을 섭섭히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선생님의 본심을 알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틀림없이 가 주기를 바랍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이 맹세한 것은 선생님하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하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누가 보나 안 보나 가야 합니다. 우리는 나라를 찾아야 되고 세계를 찾아야 됩니다. 알겠어요?「예」그래야 비로소 초세계주의자의 발판을 찾을 수 있는 거라구요. 그때까지 우리는 쉴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일생을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그렇게 싸워 나오셨거든요.
하나님은 개인을 희생시켜서 가정을 찾고, 가정을 희생시켜서 종족을 찾고, 종족을 희생시켜서 민족을 찾고, 민족을 희생시켜서 국가를 찾고, 국가를 희생시켜서 세계를 찾아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가는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이러한 주의를 갖고 살면 하나님과 같은 결과의 세계에 머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통일교회 개인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더우기나 기동대는 앞으로 통일교회의 주체세력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에게도 뒤져서는 안 됩니다. 누구보다도 사랑했다는 자리를 닦아 놓지 않고는 그런 권위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0대인 여러분 시대는 참 좋은 때입니다. 이 좋은 시대를 맞이해서 여러분 손으로 통일된 세계를 갖추어 가지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 가지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다 잘 달려주길 부탁드립니다. 알겠지요?「예」
한 사람의 실수가 그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길이 길이 청사에 남아질 수 있는 원한의 터전이 된다는 것을 바라본 예수님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막 14:21)"고 하셨습니다. 나지 않았으면 만나지 않았을 것이요, 만나지 않았으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요, 시작하지 않았으면 행하지 않았을 것이요, 행하지 않았으면 실패가 없었을 것이 아니냐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 이런 말을 한 것을 보면, 출발은 잘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던 도상에서 거꾸러졌기 때문에 차라리 가지 않았던 것만 못하다고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여러분은 현재 우리 대한민국이 얼마나 긴박한 정세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시간이 있으면 거기에 대해서 내 얘기를 하겠지만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만두겠어요. 보세요. 우리 대한민국은 원통하기 짝이 없는 이런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본래 우리 대한민국은 1948년 12월 12일, 유엔총회에서 주권을 공인받고 난 후 지금까지 하나의 국가로서 세계에 인정을 받아 왔습니다. 북괴는 예외의 존재입니다. 침략자로 규탄받고 있습니다. 삼천리 반도에서는 공인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도리어 북괴를 동정하는 나라가 세계에 많아져 가는 현실에 놓여 있다는 것은 지극히 원통한 사실입니다. 대한민국이 출발은 잘했는데, 좋게 출발했는데 오다가 중간에 왜 유엔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자리에 떨어지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물론 한국 자체도 비참하지만 세계정세가 비참한 구렁텅이로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에서 엿보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 자신들이, 세계가 그렇게 가고 우리 대한민국의 정세가 그렇게 돌아가지만, 우리 자신들이 정의에 입각한 민족적 기개를 가졌다 할진대는 어떠한 방해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밟고 뚫고 본래 출발한 좋은 이념을 중심삼고, 통일이란 목적을 중심삼고 끝까지 달려가야 됩니다.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사상을 가지고 밀고 나가게 될 때는 통일을 가져올 수 있지만, 환경에 따라가고 혹은 주위를 살피고서 자기 일신의 불행을 생각하는 입장에서 적당히 생각하는 민족이 됐다가는 대한민국이 바라는 소망의 나라, 유엔이 바라는 소망의 나라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되면 차라리 남북이 갈라지지 않았던 것만 못하게 된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전부가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볼 때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왜 나왔느냐? 통일교회가 나온 목적은 대한민국의 통일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하나 만들고, 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를 하나 만들고, 세계뿐만 아니라 영계까지 하나 만들고, 영계뿐만 아니라 영계와 육계를 통일해서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고, 하나님과 하나되게 할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하자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일을 하기 위해 통일교회가 출발한 겁니다.
새로 말하면 말이예요, 여러분, 황새 알지요? 황새가 어떻게 생겼어요? 모양이 학과 비슷하지요? 그런 황새가 있다구요. 또 짝새가 있습니다. 여러분, 짝새라는 것을 알아요? 논두렁 같은 데 가게 되면 황새보다 아주 작은 조그마한 짝새가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보게 되면, 황새하고 학하고 모양은 비슷해요. 그리고 짝새도 황새하고 모양은 비슷해요. 그러나 짝새가 아무리 황새를 따라가려고 해도 못 따라가고, 황새가 아무리 학을 따라가려고 해도 못 따라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알겠어요? 짝새는 아무리 뛰어도 짝새입니다. 황새가 아무리 뛰어도 황새입니다. 황새가 학을 타고 넘을 수 없고, 짝새가 황새를 타고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대한민국에 있는 통일교회는 새로 말하면 짝새보다도 작은 새입니다. 물떼새 같은 거예요. 그런 패가 어디를 달리겠다구요? 어디를 달려 보자구요? 어디를 달려 보자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사랑 세계까지 점령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거야…. 여러분들, 여기에 처음 온 사람은 그런 말을 듣지도 못하고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일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잖아요? 그런 놀음을 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대관절 어떻게 갈 거예요? 뭐 개인을 통일하고, 가정을 통일하고, 종족을 통일하고, 그 다음엔 민족을 통일하고, 국가를 통일하고, 세계를 통일하고, 천주를 통일하고, 하나님까지 통일하자는게, 이게…. 언제나 팔자가 좋아 가지고 통일만 할 수 있는 운이 떡 붙었으면 모르지만, 그게 그렇게 쉬워요?
원리를 아는 사람은 일생 사는 가운데서 스물 한 살 때는 삼칠은 이십 일(3×7=21)이기 때문에 '이 한 해만은 일년 365일 내가 계획한 대로 틀림없이 하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래 가지고 정월 초하룻날 '천지신명이시여! 이 아무개라는 사내를 살피소서. 21세를 맞은 이해의 365일만은 제가 계획한 대로 하겠습니다'라고 선서하고, 맹세하며 출발했다고 합시다. 그래서 그날 아침에는 심각하게 눈을 부릅뜨고 배꼽에 힘을 주고 야단했지만, 하루를 살고 나면 그런 기분이 어디로 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리기 일쑤라구요. 눈을 부릅뜨고 아랫배에 힘을 주고 결심했으면, 그 이상의 힘을 주고 눈을 부릅뜨는 심각한 자리에 서지 않고는 결심한 것을 이루어 나갈 수 없는 것이 우리 생활주변의 현상입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그렇습니다」 알겠어요? 결심한 이상 밀어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발동기가 도는 데 있어서 더 빨리 더 힘차게 돌려면 점점점점 힘이 많아져야 되지 적어지면 안 됩니다. 그렇지요? 그래야 발동기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니까 매일 아침이나 점심이나 저녁이나, 혹은 한 주일, 두 주일, 세 주일, 네 주일, 혹은 한 달, 두 달, 반년, 일년 삼백 예순날을 나아갈수록 출발할 때에 굳게 결심했던 그 이상의 기백을 가져야 됩니다. 그 기백이 약해져 가지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요? 처음보다 조금이라도 약해져 가지고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없는 거예요. 삼백 예순 닷새를 이와 같은 결의를 하고 첫날에 결의를 하던그 이상의 결의를 플러스시켜 그 이상의 박력을 가하는 자체가 되어야 365일을 지내고 난 후에 '야! 21세 되는 금년은 참 멋지고 행복하고 기념할 만한 해였다' 그럴 수 있지, 결심을 조금이라도 늦추는 날에는 어떻게 되겠어요? 올라가요, 떨어져요?「떨어집니다」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한 눈은 이렇게 되고, 또 한 눈은 이렇게 되어 (표정을 지으시며) 떨어 집니다. 알겠어요?
일년 동안 사는 데 있어서는 여러분이 눈을 부릅뜨고 맹세해도 갖다 맞출지 못 맞출지 모르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인생살이라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래요?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그렇습니다」
그러면 천주 복귀하겠다는 패들이여, 대관절 역사는 얼마나 그릇되게 거꾸로 굴러 내려왔느냐? 인간 역사가 6천년이 아니라 한 80만 년이 된다고요, 이게. 인간 역사가 그렇게 됐다고 봅니다. 그렇게 굴러 떨어져 나온 거예요. 구르는 데는 이렇게 자동차 바퀴가 구르듯 굴렀겠어요? 반듯한 땅에서 굴렀겠어요? 평평한 땅에서 굴렀더라도 한곳으로 일직선으로 구르지 않았을 거예요. 이렇게 구르고 이렇게 구르고…. 어떻게 굴렀겠나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제멋대로 몇천 년, 몇천만 년 굴러 내려온 인간사를 탕감복귀하겠다고? 이 미친 것들. (웃음)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뒤적뒤적해야 한 바퀴요, 한 바퀴 뒤집어 놓았댔자…. 그것이 크다면 얼마나 큰 거예요? 이 지구 덩어리가 전부 돌아 가고 있다구요. 그런데 여러분이 일생 동안 안고…. 여러분, 쇠똥구리 알지요? 쇠똥구리 봤어요? 쇠똥구리. 이 욕심 많은 쇠똥구리가, 뒷발로 앞발로 자꾸 똥을 굴려 가지고 크게 만듭니다. 그것을 내가 재미있게 잘봤어요. 쇠똥구리를 바라보면 알겠지만, 작업하는 것이 아주 영리하거든요. 그것을 착착착 해서 착착착 굴려 갑니다. 솔직한 말로 야, 멋지더라 이거예요. (웃음) 이 녀석을 가만히 보면 자꾸 커집니다. 요만큼 한 놈이 이만큼 크게 만드는 거예요. 욕심 많게 말이예요. 이래 놓고는 밀어도 안되니까 그 다음에는 뒤로 차고 가는 거예요. 그렇게 하여 그게 도르륵 굴러가게 되면 말이예요, 그것을 놓지 않고 함께 굴러가는 거예요. 그런 것보다 우리의 일은 더한 놀음입니다.
자, 쇠똥구리는 쇠똥 뭉치가 굴러갈 때 같이 굴러갑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들이 이 쇠똥 뭉치 같은 것을 붙들고 탕감복귀하려면 이것을 놓아야 되겠어요, 안 놓아야 되겠어요?「안 놓아야 됩니다」안 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까꾸로 굴려야 됩니다, 까꾸로. (웃으심)
생각해 보라구요. 산으로 말한다면 얼마나 큰 산이겠습니까? 그런 것을 요 조그마한, 개미 새끼만한 것이 혼자 꺼꾸로 밀겠다고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기가 막히겠어요, 안 막히겠어요?「기가 막힙니다」 다리의 힘줄이…. 쥐난다는 말이 있지요?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해서 끝날 것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장딴지만이 아니고 무릎, 발가락으로 전부 다 버티더라도 될지 말지 한데…. 어때요? 될지 말지 하지요?
그런데 이것을 하겠다고 달라붙었다면 이것들이 미치광이예요, 미치광이가 아니예요? (웃음) 이렇게 달라붙어 하겠다는 녀석들이 미치광이예요, 미치광이가 아니예요? 미치광이 중에도 역사적인 미치광이입니다.(웃음) 생각해 보라구요. 옛날에 공자, 석가도 못 하고, 예수님도 못 하고 나가자빠진 놀음인데, 여러분들이 뭐 탕감복귀하겠어요? 그것이 가당한 일이예요, 가당치 않은 일이예요? 자, 까놓고 얘기하자구요. 쉬운 일인가 말이예요?「어려운 일입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얼마나 어려워요? 어- 어 자를 천년 하고 려- 려 자를 천년 하고 운- 운 자를 천년 하고, 3천 년이 걸려서 '어려운 일' 하더라도 안 끝날 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웃으심) 그렇잖아요?
그렇게 어려운 것을 지금 하겠다고 멋모르고 뛰쳐 나온 패들이 누구라구요? 「기동대입니다」 기동대는 그대 이름이고 우리, 우리입니다. 기동대는 대 이름이예요, 대. 여러분과 사람과 다르다구요. 그렇지요? 누구라구요? 「우리요」 우리, 돼지 우리라구요, 돼지우리. (웃음) 그렇게 생각하라는 겁니다. 야, 우리라면 무슨 우리일까? 뭐 좋은 우리? 우리라는 것이 좋은 것이 없다구요. 그러나 돼지우리와 같은, 시시한 여러분 되자는 게 아닙니다. 그래 미치광이 중에 무슨 미치광이? 상미치광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미치광이 학위, 박사면 박사 학위를 줄 수 있는 미치광이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 정도면 말겠지요? 뭐 최고다, 미치광이 중에 최고의 미치광이다 이겁니다. 알겠어요?「예」 미치광이다.
그러면 대개 미치광이 중에 어떤 미치광이, 무엇에 미친 미치광이를 고치기가 어려우냐? 그것을 생각해 봤어요? 술 먹다 미친 미치광이는 술만 실컷 먹여 준다면 눈을 번쩍 뜨는 거예요. (웃음) 돈이 그리워서 미친 녀석은 돈만 갖다 주면 눈이 뜨인다는 거예요. 미치광이 중에서 제일 고치기 어려운 미치광이가 누구냐 하면 상사병이 들어서 미친 녀석입니다. (웃음) 여러분은 상사병을 알아요? 설명 안 해도 되겠지요? 중학교 이상 다닌 패들이니까 다 알 거예요.
그놈의 미치광이는 약물 써도 안 낫는 거라구요. 누가 말을 해도, 도깨비가 와서 도깨비 방망이로 후려갈기더라도 낫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미치광이는 도깨비가 방망이로 때리려다가도 그냥 스톱한다는 거라구요. 이게 야단이라는 거예요. 사랑에 미친 미치광이를 고치기가 제일 어려운 것입니다. 그 말이 비슷하게 맞아요?「예」 또, 미치는 사람들 비율을 볼때에, 무엇 때문에 미치는 사람이 많으냐? 돈 때문에 미치는 사람도 뭐 있겠지요. 그렇지만 미치는 대다수의 사람이 사랑 문제 때문에 미치더라는 거예요. 그거 비슷해요? 그렇다구요. 대다수의 사람이 사랑 문제 때문에….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든가, 혹은 이혼을 했다든가, 혹은 처녀가 어떤 사내 녀석을 신랑으로 맞고 싶다든가, 사내 녀석이 어떤 아가씨를 신부로 맞고 싶다든가….(웃음) 이러다가, 그런 어떤 일이 틀어지게 될 때 거기에서 딴 생각을 하다가 미치게 마련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러면 통일교회 패들은 무엇에 미치자는 거예요? 이게 미친 것들이예요, 이게. 무엇에 미친 거예요? 무엇에 미치려고 해요? 통일교회 패들은 전부 다 욕심에 미치려고 한다는 거예요, 욕심에. 통일교회 패들은 욕심이 많다구요. '야, 천주 복귀하자? 우선 욕심이 많지요?「예」 이건 남들은 꿈도 안 꾸는데, 아닌 밤중에 나와 가지고 이 야단이라는 거예요. 뭐 천주를…. 뭐 지금 나라도 복귀 못 해 가지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데, 나라도 복귀 못 한 판국에 뭐 천주복귀를 하겠다구? 지금 대한민국 복귀했어요, 못 했어요?「못 했습니다」 그런데 천주복귀를 하겠다구? 미친 것들이라구요. 그렇지요?「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웃음)
대한민국을 복귀 못 하겠다고 손을 떼고 후퇴하게 될 때에는, 그거야 말로 진짜 미친 녀석이지만, 그것을 붙들고 싸우게 될 때에는 끝 안 난거예요. 씨름판에 가서 씨름하는 것을 볼 때에, 아무리 동쪽으로 넘어지려 하고 또 서쪽으로 넘어지려고 해도 넘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끝이 안 난 거예요. 남쪽으로 넘어지려고 해도 끝이 안 난 것입니다. 오히려 넘어뜨리려고 하는 사람이 자기 수에 넘어가는 수도 있다구요. 그렇지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미치광이는 미치광이인데 아직까지 미치광이가 됐다는 결정은 안 난 거라구요. 알겠어요?
아까 쇠똥구리 얘기를 했지요? 여러분들한테 쇠똥구리 얘기 해서 안됐지만 말이예요, 그 쇠똥 뭉치가 아무리 크더라도 쇠똥구리가 그것을 붙들고 굴러가게 될 때에는 그것의 주인은 쇠똥구리입니다. 그렇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금 복귀를 하는데, 천주복귀를 하기 전에 대한민국을 붙들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죽어 나자빠지기 전에는 끝나요, 안 끝나요?「안 끝납니다」 지금 비사로 말한 것과 딱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굴러 떨어져 엉킨 것이 얼마나 크겠나 생각해 보세요. 지금 그놈을 붙들고 복귀하자고 하는 거예요. 뒤집어엎자는 거예요.
뒤집어엎는 데도 고개에서 굴러 내려오기 시작한 그것을 거꾸로 굴려서 그냥 그대로 올라가자는 거예요. 그것이 굴려 올라갈 때에 하나 하나 떨어져 나가면 좋겠지만, 그냥 그대로 밀고 올라가서 꼭대기에서 굴려 버려야 됩니다. 이것이 복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쉬운 거예요, 어려운 거예요?「어려운 거예요」 얼마나 어렵겠느냐? 내 눈이 있으면 눈이 뒤집혀질 듯이 어려운 것입니다. 이가 있으면 혀를 안 깨물 듯이 어려운 것이고…. 그래요?「아닙니다」 혀를 깨물 뿐만 아니라. 혀를 지근지근 깨물어 그 피를 쩝쩝쩝 마시면서라도 버터 나가야 할 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내 코가 있으면 코가 짜부라져 막힐 듯이 어려운 거예요. 손에 힘을 너무 주고 주먹을 쥐면 버드러지는 경우가 있어요. 너무 세게 쥐게 되면 이게 말을 안 듣는다구요. 그렇게 손이 굳어지리만큼 힘을 주고도 가능할지 모를 만큼 어려운 일이다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밥을 한 끼, 두 끼 혹은 한 주일쯤 안 먹고라도 싸워서 이길 수 있다면 그것은 약과입니다.
자, 그런 판국에 여러분들이 들어와서 한번 씨름하겠다고 이미 맹세를 했고, 이제는 자신 있다고 아까 말했는데, 정말 그래요?「예」 정말 그래요?「예」 녀석들! 너희들 이마의 정면을 방망이로 들이갈기면 어떡할 테야?「맞겠습니다」 맞고는, 맞고는 어떻게 할 테야?「그래도 가겠습니다」맞고서 '아이고 이마야!' 했다가는 큰일난다는 거예요. 붙든 것을 놓치는 날에는 큰일난다는 거예요. '이놈의 이마야, 깨지려면 깨져라' 하고 더 힘껏 붙들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마에서 피가 튄다고 '아이쿠' 했다가는 안 된다구요. '이놈의 이마야, 그래도 붙들겠다 이놈아'라고 해야 됩니다. (웃음)
이제 여러분이 길을 떠나야 되겠기 때문에 실감나게 얘기하려니 할수 없습니다. 잊지 말라구요, 이거. 이마를 맞게 된다면 '아이쿠, 이마야' 이래서는 안 된다구요. 더 붙들어야 됩니다. 붙들고 잡아당겨서 죽더라도 너를 위해 죽는다 하는 입장에 서야지, 나를 위해 죽는다는 입장에 서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자, 그것을 알겠지요?「예」
자, 이렇게 엄청난…. 얼마나 엄청나냐? 역사 이래에 전무후무한 사실입니다, 전무후무한 사실.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다면, 언제 있다는 거예요?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다는 거예요.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으니까 지금은? 있을지 없을지 두고 봐야 알지요. (웃으심) 그런 거예요, 전무후무하다는 말은 쉬워요.
'전무후무한 나다' 그러려면 전에도 이겼고, 후에도 이긴다는 말이다, 그 말 아녜요? 여러분, 그래요? 「예」 여러분이 그래? 어디 주먹을 한번 내서 쥐어 보라구요. 보라구요. 그 주먹이 어제와 지금이 달라요?(웃음) 내일 달라져요? 같아요, 달라요? 「같습니다」 같지요? 「예」 모양은 같지만 내용은? 「달라요」 달라야 된다구요. 요놈의 주먹이 모양은 같지만 내용은 절대 달라야 된다구요.
그러면 역사 이래에 자기 주먹을 자랑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느냐? 자기 얼굴을 자랑하고, 자기 자신을 자랑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느냐? 여러분은 '역사 이래에 자랑한 자들아! 너희들은 나한테 와서 배울지어다' 할 수 있는 이런 배포를 가져야 됩니다. '다 너희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역사 이래 내가 나타나서 한번 이것을 평등하게끔, 무사통과하게끔 해치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선조는 누구든지 내 본을 받아라' 그래야 됩니다. 그럴 수 있어요?「예」 그런 마음 있어요?「예」 이 녀석들, 뭐? (웃음)
전무후무하니까, 나밖에 없으니까 말이예요, 자기 후손들도 '이놈들, 내말 들어라' 할 때에 '예, 예, 예, 듣고 말구요. 그러고 말구요' 그럴 수 있는 후손들이 되겠느냐? 아담 해와의 후손들은 어떠했어요? 아담 해와의 말을 들었어요, 안 들었어요?「안 들었습니다」 여러분의 후손은? 여러분의 후손은 여러분의 말을 들어요, 안 들어요? 안 듣게 마련입니다. 「듣게 만들어야죠」 듣게 만들어야 됩니다.
듣게 만드는 것은 출발에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끝에 가서 다 승리하고 나서 승리했다고 하는 면허장을 갖다 주어야 '아' 하고 인정하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말을 듣게 되지, 지금은 암만 골백번 뒤넘이치며 '나 죽는다'고 야단해도 듣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자,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얼마나 여러분의 결심도…. 전무후무한 이 일을 해치우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결심이 전유후무한 것이어서 되겠어요, 전무후유한 것이어서 되겠어요?「안 됩니다」 안 된다구요.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것을 해치우기 위해서는 전, 전에도 없고 금후, 후에도 없다고 할 수 있는 여러분 자신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지요?「예」
인간이라면 전부 다 내 발 아래에서 놀아난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예수도 공자도 석가도…. (웃음)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그래요? 아가씨들 그래요? 그런 아가씨가 있으면 예수님이 홀딱 반할 것입니다. (웃음) 자, 우리 남자 양반들, 그래요?「예」 그랬으면 예수님이 홀딱 반했지. '당신들이 가는 대로 나는 적극적으로 따라가겠습니다' 그랬을 거예요. 적극적이란 말 좋지요?「예」 임자네들 그래요?「예」 이 녀석들, 그렇기는 뭐가 그래? 그래?「그렇습니다」 뭐가 그래? (웃음) 말만 하면 다인가?
그래 예수님 이상 할래요? 「예」 안 했잖아요? 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렇지 못한 거라구요.「앞으로 하겠습니다」 그래 이제부터 하겠다니 뭐가 그런가 말이예요. 그것이 예수보다 나은 거냐 이거예요. 낫지 못한 것이 아니냐구요. 낫게 해봐야 될 게 아니예요? 나은 자리는, 챔피온의 기록은 예수가 갖고 있잖아요? 아직까지 기록을 따겠다고 하고 있는 녀석들이 낫기는 뭐가 나아? 해보고 나서야 나은지 어떤지 결정되는 것이지. 그것을 알아야 돼요.
우리는 전무후무한 사건을 다루기 위해서 나섰기 때문에 모든 면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 보는 눈도 전무후무한 눈이 돼야 되고, 코도 전무후무한 코, 입, 귀, 팔, 사지백체가 전부 전무후무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어요? 그렇게 됐어요, 안 됐어요? 「안 됐습니다」 안 됐으면 그냥 둬야 되겠어요?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이 좋겠어요, 그냥 두면 좋겠어요? 「만들어 주면 좋겠습니다」 만들어 주면 좋겠지요. 그러려면 그 훈련법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러려면 눈이라는 눈은 다 맞아야 됩니다. '역사의 그놈의 눈깔 봐라, 눈깔' 이렇게 눈을 깔고 미워한 이상 훈련을 시켜야 될 것입니다. 코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놈의 코통 봐라, 코통…. 이 코 때문에 별의별 사건이 다 벌어졌습니다. 만약 남자가 코가 없으면 여자가 시집을 안 가려고 합니다. 그렇지요? 남자들도 코 없는 여자한테 장가가고 싶은 사람 있어요? (웃음) 그렇잖아요? 코 하나에 희비극이 다 걸려 있다구요. 그렇잖아요?
그런 역사를 지닌 몸뚱이를 두고 볼 때에, 모든 면에 으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애국자 가운데서, 세계 역사에 애국자의 반열이 쭉 있으면 가운데에서 일등 해야 되겠어요, 중등 해야 되겠어요? 「일등 해야 됩니다」 일등? 충신 반열 가운데에서도? 「일등」 일등. 성인 반열 가운데에서도? 「일등」 일등. 우리가 예수보다 낫고, 공자보다 낫고, 석가보다 나아야 된다구요. 나을 자신 있어요? 나을 자신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있기는 뭐가 있어요? 예수님은 열두살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 서기관들과 성경 토론을 해 가지고 그들을 꼼짝못하게 했다구요. 그런 실력을 가진 예수님이었는데, 어릴 적부터 그렇게 지혜가 뛰어난 예수님이었는데… (잠시 녹음이 중단됨)
아, 이거 차라리 발을 안 내밀었으면 좋을 뻔했다구요. 발을 내밀어 이놈의 쇠사슬에 걸렸다구요. '차라리 발을 안 내밀었으면 좋을 뻔했도다' 하는 말이 벌어진다구요. '아이고, 차라리 수택리를 몰랐다면 좋을 뻔했도다' 한다구요. (웃음) 정말이라구요. '차라리 안 갔다면 좋을 뻔했다'고 하는 그런 일이 많지요? '야, 그때에 참 잘 갔어, 잘 갔어' 이렇게 하는 것과 '아이고, 그때에 차라리 안 갔으면 좋을 뻔했다'는 이 두 가지가 여러분을 끈다는 거예요. '아, 잘 갔어' 하는 데서도 끌고 가려 하고, '차라리 안 갔으면 좋을 뻔했어' 하는 데서도 끌고 가려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런 가운데에 있습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이런 중간 입장에 있어서 '차라리 안 갔으면 좋을 뻔했다'라고 하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출발을 잘못한 자리요」 그래, 출발을…. 그렇지. 그러니까 그런 사람은 아예 오지 말았어야 된다구요. 그러나 이왕에 왔으니까 '잘 갔다, 잘 갔어' 하며 끝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차라리 안 왔으면 좋을 뻔했다'는 것은 죽더라도 생각해서는 안 된다구요. '이놈의 자식아! 네가 뭐냐 이놈. 고향이 어디 있느냐? 사나이가 정한 목적을 위해서 출발한 걸음인데 어디 고향이 무엇이고, 이웃 친척이 무엇이고, 어머니 아버지가 무엇이고, 그들이 다 보고 싶고 그리운 것이 무엇이냐? 그래야 합니다. 그것을 다 하고 언제 가요?
참 잘 갔다 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이자리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예요. 이 자리가 옛날보다 좀 나으니까 참 잘 왔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진짜 세계에 들고 나가 가지고 '나 좀 봐라. 내가 잘 왔다'고 자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저 끄트머리에 가야 됩니다.
출발은 잘했다구요. 출발했으니 6월부터…. 6수는 사탄수입니다. 아담도 엿샛날에 지어졌습니다. 노아 홍수심판도 6월 초하룻날부터지. 이렇게 보면 6월 초하룻날은 뜻이 있다구요. 아담도 엿새만에 지어졌지요?「예」그러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6수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6천년 동안 복귀를 못 했기 때문에 6수는 사탄수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도 출발은 잘했다구요. 지금 모여 가지고 뭐 기동대라고 해 가지고 출발은 잘했습니다. 좋은 출발은 했지만 이제 '참 잘 왔다. 그러면 그렇지'라고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여기에는 역사 이래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구렁텅이가 있습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뿐만이 아니라구요.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쉽다구요. 올라갔다 내려갔다, 동으로 갔다 서로 갔다, 이렇게 동으로 갔다가 이렇게 북으로 갔다가 이렇게 서로 갔다가 별의별 놀음을 해야 됩니다. (몸짓하심)
여자들은 '여자이니까 언제나 얌전하게 지내야지. 여자로서 예절을 갖추어 가지고 요렇게 살아야 된다' 이래 가지고는 합격이 못 된다구요. 여자이지만 눈썹은 장군 같은 눈썹을 하고, 눈은 노기 띤 장군의 눈과 같이 해 가지고 원수를 공격할 수 있는 용장과 같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들, 자신 있어요?「예」 암만 '예!' (굵게) 해도 '예' (가늘게) 소리가 난다구요. (웃음) 여자들 자신 있어요?「예!」(웃음) '예' 암만 그래야 남자 음성이 안 나온다구요. 자신 있어요?「예」 남자 음성을 한번 내보라구요. 자신 있어요? 「예!」 (웃음) 그러면 남자들에게 한번 물어 보자구요. 자신 있어요, 없어요?「자신 있습니다」 다르다구요. (웃음) 사내 용장다운 모습을 가지고 사탄을 넘길 수 있는 여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사탄이라는 이 왕초는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인간 새끼라는 새끼는 마음대로 해먹던 녀석입니다. 여러분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지금 이 땅 위에 있는 세계의 인류 가운데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전부 다 그 품에서 놀아나고 있다구요. 이놈을 후려갈기기 위해 지금 가냘픈 여자가 쓱 이러고 나타난 거라구요. (웃음) 골리앗 앞에 다윗은 당당하다구요. 여기에 빈대 같은 여자가 나와서 '당신이 뭐 어떻다고 그래?' 이런다는 거예요. 할 수 있어요?「예」 자신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다 없어. 「있습니다」 없다구. 「있습니다」 다 없다고 하는데 너희들만 있어? (웃음)
자, 우리 남자들은 어때요? 자신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남자는 도깨비 같은 것들이예요. (웃음) 난 남자들이 자신 있다는 건 믿지 못하겠다구요. 여자들, 절대로 남자 말을 믿지 말라구요. 나도 남자지만 말이예요. 선생님 말도 믿지 말라구요. (웃음) 분석해 가지고 실속이 있거든 믿으라는 겁니다. 두고 봐야 돼요. 그렇지요?「예」
말 잘한다고 그것을 그냥 믿었다가는 큰일납니다. 그렇지요?「예」 원수가 만든 떡은, 기름을 발라 제일 맛있게 생긴 절편에 독약이 들어가 있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제일 가장자리에 곤두박힌 것, 그놈을 집어 먹어야 됩니다. 제일 나쁜 것만 주워 먹으면 안 죽는다는 거예요. (웃음) 그렇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원수가 좋다고 하는 것은 나는 싫다고 해야 되고, 원수가 이래야 된다는 것은 나는 그 반대로 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 세계는 원수의 세계이기 때문에 이놈의 원수들이 좋다는 길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고 절대 반대 길로 가려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래요?「예」 안 가려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예요?「가려고 하는 것이 통일 교회입니다」 이것들 말들은 잘한다. 나 이거 기분 나빠서 말을 못 하겠다. (웃음) 대답을 습관이 되어 가지고 '예!' (웃음) 하고 입버릇처럼 대답해 가지고는 안 되겠다구요. 그러게 말을 잘 들으라구요. 이번에 시험친 것도 전부 다 빵점이예요. 에이-그…. 전부 다 50점도 못 되누만. 몇점이야? 평균을 내 봤어? 전체 평균?「아직 못 내 봤습니다」 저렇게…. 그걸 내 봐야지. 아마 20점도 못 될 거야. (웃음) 「20점쯤 될 것입니다」20점쯤? 난 못 된다고 생각하는데. (웃음) 그것은 낙제꽝이예요, 낙제꽝. 한꺼번에 문 바깥으로 집어 내던질 낙제꽝이예요. 낙제꽝이라구요.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말하니 내가 밑져서 다 안 되겠다구요. 그만둬야 되겠어요. 말을 해도 위신이 서야지. 어디 여러분들을 무엇에 쓰겠어요? 말했댔자 뭘하느냐 이거예요. 「이제 조그만 있으면 오릅니다」 올라? 가만히 있는데 오르나?「오르게 하겠습니다」 눈이 이렇게 내려가 가지고 올라와요? (웃음) 올라가려면 눈을 올려 떠야 돼. (웃음) 이래야 된다구요. 가만 보니까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와 세상과는 반대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악착같이 세상이 가는 대로 가는 것이다, 그래요?「아닙니다」그럼 어떻게 해요? 악착같이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남이 잘 때에 우리는?「안 잡니다」 남이 안 잘 때에는?「일합니다」(웃음) 자, 보라구요. 세상에서는 먹고 자고 이래 가지고 나가지만 우리가 남과 같이 먹고 자고 이래 가지고는 6천년 걸려서도 복귀 못 한다구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야 돼요. 남과 같이 먹고 남과 같이 살면서 이 길을 가겠다는 사람은 진짜 정신이 돈 사람입니다. 그것은 외(外)로 돌았다구요, 외로 남이 먹을 때에 먹지 않고, 남이 입을 때에 입지 않고, 남이 잘 때에 자지 않고 미리 다 해치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식입니다. 알겠어요?「예」
30이 되기 전에 20대에 해치우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래요?「 예」 40이 되기 전에 30대에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마음은 언제나 마찬가지라구요, 언제나. 지금 선생님은 60대를 향해서 가지만 말이예요. 10대에 결의했던 것이 60대까지 연장되어 나오고 있다구요. 그러면 10대의 기분과 10대의 정성과 10대의 각오와 10대의 결의 이하를 가지고 될 수 있겠느냐? 안 된다구요. 그 이상, 그 이상의 원동력이 가중될 수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지, 그 이하의 힘이 가해져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이 원칙이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결심을 했습니다. 이제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잘 출발하기를 바라서 결심을 했다구요. 했지요?「예」 선생님하고 약속했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 눈을 감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렇지요? 그래 출발을 안 하면 안 했지, 가다가 중도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떨어질 거예요?「안 떨어집니다」 안 떨어지겠다고 맹세한 사람들은 손들라구요. 그것은 내가 하라고 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겠다고 해서 한 거지. 넌 안 그러지?「예」 내리라구. 손 안 든 사람 손들어 봐요.
자, 여러분들은 죽더라도 안 떨어지려고 하지요?「예」 안 떨어지려고 할래요?「예」 그래. 떨어질래요. 안 떨어질래요?「안 떨어지겠습니다」 하나님이 떨어뜨리려 해도 안 떨어져요?「예」 하나님이 떨어뜨리려 하는 데도 안 떨어져요?「예」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하려는데 안 떨어진다구요?「안 떨어집니다」 하나님이 하려고 해도 안 된다 말이예요?「우리가 안떨어져야 하나님도 안 떨어지십니다」 안 떨어지긴 왜 안 떨어져? 그것은 네 말이지 하나님한테 물어 봤어? 이 녀석아! 하나님이 떨어뜨리려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안 떨어지면 좋을 성싶다 (웃음) 하는 그 마음이 있어요?「예」 그럼 안 떨어질 수 있는, 좋을 성싶은 내용이 있다면 그것을 잡아당길래요, 안 잡아당길래요?「잡아당기겠습니다」 그것을 잡아당기면 하나님이 떨어뜨렸다 가도 할수없이 하나님도 떨어져 와 가지고 주워 가지고…. 알겠어요? 떨어뜨려 왔다가도'가고 싶으면 가라' 해 가지고 떨어져 갈라졌더라도 하나님이 갔다가 다시 와 가지고 주워 올려 주실 수 있으면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예」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돈이예요?「아닙니다」 여러분 같은 상통이예요? 남자 상통? 또는 여자 상통이예요? 뭐예요? 그 얼굴도 아니라구요. 그 모양도 아니라구요. 그 가운데에 있는 오직 하나, 사랑, 사랑, 사랑. '하나님이여 ! 저하고 당신은, 당신하고 저는, 저는 아들이고 당신은 아버지입니다' 하는 이 사랑. 아무리 나를 버리고 가더라도 '아버지, 나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런 말을 하기 전에 아버지를 아버지로 사랑했던 효자의 자리에서 버림받으면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예수님도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했는데, 하나님이 예수님을 버렸나, 안 버렸나? 하나님이 예수를 버렸어요, 안 버렸어요?「버렸습니다」 그랬으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못 됐게요? 버렸지만, 버렸던 예수를 또다시 거느려 가지고 세우게 되니 부활이 벌어진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이렇게 된 거라구요.
여러분이 뭘 갖겠다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또, 뭘 얻겠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물론 갖겠다고 생각하고 얻겠다고 생각해도 좋다구요. 그러나 '내가 통일교회에 가야만, 통일교회 이것을 믿고 가야만 앞으로 복귀노정에 있어서 개인을 복귀할 수 있고, 축복받을 수 있지' 남자든 여자든 그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그 사람은 망해라 이겁니다, 축복받기 전에, 하나님 앞에 효자가 되어라 이거예요. 알겠어요?「예」 효자가 돼라. 효자가 됐다 하는 날에는 부모는 효자 됐던 자식을 잊어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처녀 총각들도 첫사랑은 못 잊는다고 하지요? 그렇다구요. 여러분들은 모두다 결혼을 안 해봐서 모를지 모르겠지만, 첫사랑은 못 잊는 것입니다. 그래요.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효성을 했다는 효자로서 기억된 아들딸은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절대 떼어버릴래야 떼어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아담 해와보다도 나은 자리에 섰기 때문입니다. 아담 해와가 효자 됐어요? 효자가 못 됐습니다.
효자가 되는 길은 어떤 길이냐? 효자의 길을 가려면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야 됩니다. 아버지 뜻대로 산 사람이 아니고는 효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냐?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가지고 완전히 하나되어서 아버지와 더불어 가정을 이루고, 그 다음에 종족을 이루고, 민족을 이루고, 국가를 이루고, 세계를 이루고, 하늘땅이 평화의 천국이 되어 하나님을 그 나라의 왕으로 모시기를 바랐던 것이, 또 우리 인간이 그렇게 모시려고 하였던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아버지의 뜻 가운데는 무엇이 있느냐? 천지가 하나되어 가지고 사랑으로 시작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사랑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예요. 그 사랑 가운데에 영계가 있고, 그 사랑 가운데에 세계가 있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는 겁니다, 아버지의 뜻 가운데에…. 그렇지요? 그 사랑 가운데에 있는 세계 안에 나라가 있고, 나라 안에 민족이 있고, 그 민족 안에 종족이 있고, 그 종족 안에 가정이 있고, 그 가정 안에 개인들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꼭대기에서부터 개인까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전부 다 합해 놓으면, 천지가 전부 다 들어가서 서로가 더 좋아할 수 있게끔 된 통일의 사랑동산의 천지(天地), 즉 하나님을 모신 천상 천국이요, 지상 천국이 되는 겁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들딸이 잘 살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간단한 술어로 말하면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 그렇지요?「예」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럼 여러분, 효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그뜻은 어디에 있느냐? 내 개인을 대한 하나님의 뜻도 있고, 가정을 대한 하나님의 뜻도 있고, 그 다음에는 씨족을 대한 하나님의 뜻도 있고, 민족을 대한 하나님의 뜻도 있고, 나라를 대한 하나님의 뜻도 있고, 세계를 대한 하나님의 뜻도 있고, 하늘땅을 대한 하나님의 뜻도 있고, 하나님의 사랑만을 독차지할 수 있는 최후의 영광의 뜻도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여러분은 어디를 바라고 가고 싶으냐? 어느 분량의, 어느 계급의, 어느 한계내의 뜻을 바라고 가려고 하느냐? 먼저 이것이 문제라구요. 어디예요?「최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최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 거 말 잘 했소. (웃음) 최고의 사랑. 그 최고의 사랑을 어떻게 받나요? 동서남북에 최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있긴 있습니다, 동서남북에. 그러면 남에 사랑이 있다면, 동에서 남으로 가면 되느냐? 동에서 최고의 사랑은 받았지만 남에 그냥 가 가지고는, 그렇게 해가지고는 못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동에서 최고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중앙을 통해 가지고 남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 코스라구요. 알겠어요?「예」 그것이 원리원칙입니다. 원리원칙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자, 그러면 오늘 이 세상을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의 자리가 아닙니다. 개인이 뜻의 자리가 아닙니다. 또, 가정을 살펴보면 가정이 뜻의 자리가 아니고, 자기 동네가 뜻의 자리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자체도 뜻의 자리가 아니고, 이 세계 자체도 뜻의 자리가 아니라구요. 영계 자체가 뜻의 자리가 아니라구요. 다 안 됐습니다. 다 불합격입니다. '불합격돼도 나는 좋다' 그거예요? '불합격패를, 불합격품을 나는 좋아한다' 그거예요? 「아닙니다」 절대로 「싫어한다」 그러니 합격자가 돼야 되겠다는 겁니다. 합격자가 되려고 하니 합격할 수 있는 표준이 없다, 견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견본을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만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 견본이 있어야 된다구요.
그러면 개인의 뜻에서 가정의 뜻으로, 가정의 뜻에서 종족의 뜻으로, 종족의 뜻에서 민족의 뜻으로, 민족의 뜻에서 국가의 뜻으로, 국가의 뜻에서 세계의 뜻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만을 갖고 가게 되어 있느냐?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화한 자리에서 가게 마련입니다. 그렇지요?「예」 복귀노정도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통하여 연결될 수 있는 횡적인 내용과 종적인 기반을 갖추지 않고는 안 됩니다. 말이 좀 어려울 거라구요.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님은 상대를 찾아야지요? 상대를 찾아 가지고 종적인 내용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갖다 묶어 놓아야 되는 겁니다. 종적인 환경과 횡적인 내용을 갖추어야만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거 알겠지요? 「예」 사랑을 세워 나가는 길 외에는 뜻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 있다?「없다」 있다, 없다?「있습니다」 사랑을 세워 나가는 길외에는 뜻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없다」 그렇게 대답해야지. 없다, 있다? 「없다」
그래서 수많은 종교는 사랑을 들고 나오는 거라구요. 그 중 사랑을 들고 나온 대표적인 존재가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일반 성인과 다른 것은 무엇이냐?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의 소원과 목표는 무엇이었느냐 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정에서부터 출발하려고 한 것이 예수가 출발한 길입니다. 그 가정에서부터 출발하여 그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친척이 그냥 그대로 화해서 하나되고, 이스라엘 민족이 그냥 그대로 화해서 하나돼야 되는 거라구요. 그랬으면 예수는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간 것은 뭐냐 하면, 가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텐데 가정이 막혀 버리고, 종족이 막혀 버리고, 민족이 막히고, 국가가 막히고 다 막혀 버렸기 때문에, 이렇게 막은 패가 사탄이기 때문에 사탄편에 밀려나서 죽어간 것입니다.
예수는 하려고 했던 계획 중 제 1차적인 출발도 하지 못하고 죽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출발하려던 본래의 출발점을 다시 각성 시켜서 남겨 놓아야 되겠기 때문에, 그 출발의 기준이 가정이므로…. 가정이 출발하려면 남편이 있어야지요. 즉, 신랑이 있어야지요. 그 다음엔 신부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내가 다시 올 때에는 신랑으로 오겠다'는 말을 남겨 놓고 간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그러면 신랑 신부라고 했는데, 신랑된 자는 있었지만 신부된 자가 있었어요?「없었습니다」 없었다구요. 그래 예수가 신부를 만났어요, 못 만났어요?「못 만났습니다」 그러면 신부는 없었지만, 결정은 안 했지만, 여자를 보고 '저 여자를 내 상대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해봤을까요, 안 해봤을까요?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런 여자가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없었으면 좋겠어요, 있었으면 좋겠어요? 「있었으면 좋겠어요」 있었으면 좋겠는데, 없었다면 여러분이 그때에 있었으면 여러분이 못 된게 한이 되겠지요, 우리 아가씨들?
그럼 예수는 어떤 분이냐? 예수는 역사적인 열매입니다. 예수는 (판서 하심) 뭐라고요? 「역사적인 결실요」 역사적인 결실입니다. 예수는 역사적인 결실체인데 타락한 세계의 역사적인 결실체가 아닙니다. 타락한 세계를 두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복귀섭리를 해 나오신 하나님을 중심삼은 역사적인 결실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사탄세계의 결실과 다르다구요.
그 다음에 예수는 시대적 중심입니다. (판서하심) 알겠어요? 예수는 뭐라구요? 「시대적 중심요」 어느 시대? 그 당시 시대에 있어서 섭리를 중심삼고 볼 때에 대표자다 이거예요. 그러니 세계는 예수와 더불어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또, 예수는 뭐냐? (판서하심) 뭐예요? 「미래적 출발자요」 미래적 출발자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돼요. 예수가 있으므로 비로소 새로운 미래, 이 타락한 세계의 미래가 아닌 새로운 미래의 출발이 벌어지는 것이요, 예수가 있으므로 새로운 중심적 세계가 벌어지는 것이요, 예수가 있으므로 역사를 가로막고 비로소 이겼다는 승리의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이 예수님이었다 이거예요.
그런데 예수가 죽고 나니 시대적 결실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또, 시대적 중심이? 「없습니다」 미래적 출발자는? 「없습니다」 없으니 이것을 그냥 그대로 연장한 것입니다. (판서하심) 이것이 2천년 중심삼아 가지고 기독교를 세워 해 나오는데 여기가 말세인 것입니다. (판서하심) 알겠어요? 「예」 이것을 못 했으니 말세에 와서 재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끝날에 와서 말입니다.
그래서 6천년 역사의 결실체로 오시는 분이 재림주요, 30억의 인류가 사는 현세의 시대적인 중심으로 오시는 분이 재림주요, 그 다음에는 신천(新天) 신지(新地)를 이어받기 위해서, 새로운 이상적 천국을 출발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재림주님」 무슨 주?「재림주」 뭐라구?「재림주님입니다」 재림주입니다.
그분을 만나면 좋겠어요?「예」 그분은 아마 코가 세계에서 제일 클 거라. (웃음) 그렇겠지요? 안 그래요? 눈도 제일 클 거라구.「아닙니다」 손도 제일 클 거라.「아닙니다」 그럼 뭐가 어떻다는 말이예요?「똑같습니다」 똑같은 데 뭐가 달라요? 다르기는 뭐가 달라요? 같지. 그분은 와 가지고 밥 냄새만 먹는다구요. (웃음) 물 냄새만 마시구요. 달라요, 같아요?「같습니다」
예수님이 변소에 갔을까요. 안 갔을까요? (웃음) 예수님이 사는 곳에, 성인이 사는 곳에 무슨 변소가 있었겠어요? 하나님의 아들이 사는 데에 무슨 변소가 있었겠어요? 변소가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예수님이 살던 집은 아마 변소가 없었을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있었어요?「예」그랬을까?「예」 그럼 다르기는 뭐가 달라요? 같아요, 달라요?「같습니다」외모는 똑같습니다. 그럼 뭐가 다르냐? 내용이 다른 것입니다. 내용이 다르다는 것은 뭐냐 하면,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출발점이 달랐고, 거쳐온 과정이 달랐고, 머문 결과가 달랐습니다. 그것이 달랐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내용 하면 그렇다구요.
자, 이 세계가 사탄이 기뻐할 수 있는 세계라면 오늘날 이 사악된 세상, 악한 이 땅 위에서 출발하는 통일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출발을 다짐하는 교회라면, 그 출발은 세상과 같다?「다르다」 어떻게 달라야 되느냐? 180도 달라야 되는 것입니다. 다르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처녀 총각들, 사춘기에는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서로서로 만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마음이 싱숭생숭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난 여러분의 마음을 모르겠다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이 진짜 그런가요? 여자만 보면 괜히 눈이 이렇게 되지요? (웃음) 안 보려고 하지만 봐진다는 거예요. 그런 일이 벌어지려고 하지요? 그런가요, 안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솔직해야 돼요. 요 우리 아가씨들도 그렇지요? 남자가 있으면 남자한테 '치- 피-' 하고 시치미떼면서 이러는 거예요. (몸짓으로 표현하심. 웃음) 안 그래요? 그렇다는 거예요.
남자들은 17,8세면 벌써 꺼떡꺼떡하고 저 철길 연변 같은 데 있다가 여학생이라든가 참한 색시가 가는 걸 보게 되면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구요. 여자들은 '이 다음에 시집갈 때 저런 남자 같으면 가겠다' 그런 생각한다구요. 그런 생각밖에 없다구요. (웃음) 웃음을 웃으려면 똑똑히 웃지. 황소 웃음같이…. (웃음) 어디 가서 그런 생각 들면 선생님은 기분 나빠요. (웃음) 감정이 빠르다구요. 쓱 보면 벌써 알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여러분,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그래요」너희들도 그렇구나! (웃음) 사춘기는 그렇기 때문에 위험한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프리섹스니 무엇이니 야단하는 때라구요. 그런 바람이 부는 이 천지에서 통일교회 패들은 절대 그럴 수?「없다」 없다. 요놈의 사춘기(思春期)가 (판서하시며) '생각 사(思)'자 사춘기(思春期)가 아니라 '죽을 사(死)'자 사춘기(死春期)입니다. (웃음) 알겠어요?「예」 뭐라구요?「죽을 사춘기」 기분 좋아요, 나빠요? 어디 요걸 택할래요, 요걸 택할래요? 야, 기가 막히구만. (웃음)
그러니, 그놈의 눈깔을 도려내라 그 말이라고요. (웃음) 죽으니까 쓱 이놈의 눈깔을 도려내라는 거예요. 이놈의 콧등을 비틀어 놓아라 이거예요. 이놈의 구멍을 막아 버려라, 이놈의 혀를 오그라뜨려 버려라 이거예요. 그래야 죽을 것 아니예요. 야. 이거야…. 이걸 해먹을 수 있어요?
그러면 예수님에게는 사춘기가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있었습니다」아, 예수님에게도 사춘기가 있었지요. 예수님에게도 사춘기가 있었는데, 무슨 사춘기? 이 사춘기를 걸어갔겠어요, 이 사춘기를 걸어갔겠어요? 어떤 사춘기를 걸어갔겠어요? 요 사춘기예요? 아무한테나 휘파람을 휙 불고 (웃음) 신호하는 그런 사춘기?「아닙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소망을 못 갖는 것은 죽었다는 것, 시대에도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 미래에도 소망은 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한 거예요. 어떻게 생각해요? 고개를 들고 꺼떡꺼떡하는 놀음을 했겠어요, 처량한 걸음을 걸었겠어요?「처량한 걸음을 걸었겠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옛날에 한국에서는 열두 살만 되어도 장가를 갔다구요. 여러분들 그런 말을 들어 봤어요?「예」 여러분들 아버지, 혹은 삼촌, 혹은 할아버지 가운데에도 열 살, 열두 살에 장가간 사람도 더러 있을 겁니다. 그런데 떠꺼머리 총각이 서른 세 살까지 장가를 못 갔으니 그 얼마나…. 집안 다 되지 않았어요? 그래 장가가고 싶지 않아서 못 갔겠어요? 나이 서른 세살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간 노총각이 장가가고 싶지 않아서 못 갔다는 노총각 있어요? 그런 사람의 눈에는, 그런 사람의 생각에는 '아하, 방문 앞에 신 두 켤레 벗어 놓기는 허사가 되었군, 만사가 틀렸구나' 하고 낙심하게 되는 거라구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신 두 켤레가 뭐예요? 하나는 남자의 신발, 하나는 여자의 신발입니다. 신 두 켤레가 뭐 좋은가요? 여러분들도 그것을 원해요? 원해요, 안 원해요? 솔직히 까놓고 얘기하자구요. 원해요, 안 원해요?(웃음) 원해요, 안 원해요?「지금은 안 원합니다」(웃음) 지금은 안 원해요? 언제 원할래요? (웃음) 언제 원할래요?「때가 이르면요」 그때가 80년 후면 어떡할 테예요? (웃음) 그러니까 사고라구요. 80년 후면 안 되겠지요? 거 죽을 지경이라구요.
우선 여러분들은 이 사춘기를 잘 지내야 됩니다.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시며) 살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요, 죽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죽고자 해서 이것을 벗어나면, 한 바퀴 뒤집어 놓으면, 180도 돌려 놓으면 사춘기(死春期)가 변해서 사춘기 (思春期)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은 사춘기를 통해서 소망의 봄날, 새로운 산 봄날인 신랑 신부의 사춘기를 향해서 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것이 역사입니다.
인간의 타락이 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봄날을 못 맞이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봄날이 오게 되면 아, 효자 되겠다는 녀석들이 자기들만 봄날을 맞이해요? 부모를 중심삼고 '어머니, 아버지! 오늘은 봄입니다. 우리 같이 나가서 오늘을 즐깁시다' 이래야 효자지. '어머니. 아버지! 오늘은 봄인데 봄에는 낮잠 자는 것이 적당합니다'라고 해 놓고, 떡 낮잠 재워 놓고 자기들 끼리끼리 가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하는 녀석들이 효자예요, 불효자예요?「불효자입니다」 불효자일 뿐만 아니라 때려 죽일 자식이라구요. 그렇지요?
타락이 뭐냐?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 편에 있어서는 사춘기 (死春期)로 시작한 것입니다. 죽을 사(死)자 사춘기라구요. 사춘기(死春期) 역사가 시작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에게는 봄이 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이런 놀음을 지금까지 해나오는 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자, 지금까지 소망은 이거지요?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시며) 이것이 다시 와야지요?「예」 이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다시 오는 거라구요. 그러면, 이러한 때가 오게 된다면 그때에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이냐? 주님을 만난 후의 미래는 어떨 것이냐 할 때, 미래가 없다구요. 미래가 주님이 온 후의 미래라는 것은 뭐냐? 모든 것은 주님이 중심이라구요. 이게 중심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이것을 찾아 나오기 위해서 '빨리 가라, 빨리 가라. 세계적으로 빨리 빨리 발전해라' 이렇게 나왔지만, 앞날은 그렇지 않다구요. 그때에는 이렇게 바라보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중심삼고 그 전통을 이어받아 가지고 나가는 거예요. 달라진다구요.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자기 소망과 사상을 중심삼고 절대시하는 때가 아니라구요. 허락한 전통과 명령을 절대시할 때가 천국시대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소망은 어디 있느냐? 오시는 주님 앞에 있습니다. 천국은 어디에 있느냐?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망의 주님과 더불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오시는 주님은 모든 것의 중심이요, 모든 것의 핵심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그것을 떠나 가지고는 중앙이 설정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을 떠나 가지고는 아무리 먼 데에 갔다 하더라도 존재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중앙과 반대로, 혹은 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중앙을 향해 가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거꿀잡이가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 여러분들이 지방에 가게 되면…. 지방에 가더라도 자기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교회 본부를 중심삼아 가지고,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고무줄을 늘이면 늘일수록, 고무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어떻게 되나요?「팽팽해져요」 팽팽해지면 팽팽해질수록 힘은 강해지지만 끊어질 수 있는 한계선이 오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기에서 고무줄을 탁 놓는 날에는 딱 부딪혀 가지고 이마가 깨지는 것입니다.
멀리 늘이면 늘일수록 힘이 약한 거예요, 강한 거예요? 어떤 거예요?「강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 가까이 있을래요, 멀리 있을래요?「멀리 있겠습니다」 멀리 가면 갈수록 강해지는 것입니다. 끊어지지 않는 줄에 얽매여 가지고 멀리 가면 갈수록 나는 강해지는 거예요. 저기서 부딪치려는데 하나님이 싹 숨어 버리게 되면 나는 휙휙휙 이러면서 돌기 때문에, 휙휙휙 (웃음) 해 가지고 어디에 머무느냐 하면, 중앙을 만들어 놓고 가운데에 머물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쏙 들어갔다 나오게 되면, 하나님이 곱배기로 사랑해 줍니다. (웃음) 이렇게 된다는 거예요.
이렇게 보면 먼 곳, 먼데 있는 모든 것은 나한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생각하면 먼데 갈래요, 가까운 데 갈래요? 「먼데 가겠습니다」 먼데 가서 잘살래요, 지긋지긋하게 고생할래요? 자, 어디 알아보자구요. 먼데 가서 잘살래요, 지긋지긋하게 고생할래요?「지긋지긋하게 고생하겠습니다」 이것을 잡아당기면 죽음의 경계선에 가는 거라구요. 죽기까지 견뎌야 되는 겁니다. 그래 그것이 쉽겠나요, 어렵겠나요?「어렵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죽기까지 끊어지지 말라, 죽지 말고 끊어지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그놈이 자빠지는 날에는, 나를 당기던 사탄이가, 나를 고생시키던 사탄이가 자빠지는 날에는 나는 그 반동으로 대번에 천국에 간다는 거예요. (웃으심)
천국은 무엇을 타고 가느냐? 제트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게 아니라구요. 천국은 사랑의 궤도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실감나지요?「예」 그 사랑의 줄은 당기면 당길수록 가늘어지는 것이 아니라구요. 고무줄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얘기예요. 사랑의 줄이라는 것은 지독해 가지고, 고무줄은 당기면 당길수록 가늘어지지만, 이놈의 사랑의 줄은 당기면 당길수록 반대로 굵어지게 마련입니다. 이거 일거양득이 벌어집니다.
그러니까, 이런 판점에서 볼 때, 뜻을 위하여 고생철학박사 왕초가 되는 것이 세계를 점령할 수 있는 비법인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온다구요. 알겠어요?「예」 고생 뭐요?「고생 왕초」 고생 왕초라구요, 고생 왕초. 여러분들은 이런 말을 해야 실감이 난다구. 젊은 녀석들이 꺼떡꺼떡하며 살았기 때문에 말이예요. 고생 왕초, 고생철학박사가 되는 것이 하늘나라의 뭐라고요? 영광을 독차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먼데로 쫓아 보내라. 자, 그러면 여러분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먼데로 가라. 먼데 가서 고생을 안 해야 된다?「해야 된다」 해야 됩니다. 고생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게 될 때에, 중심에서 이렇게 뻗어 나왔으면 눈물을 흘리게 될 때 이렇게 흘려야 되겠어요? 가면 갈수록 심각하게 흘려야 됩니다, 심각하게. 어떻게 해야 되느냐면, 맨 처음에 이랬던 것이 잡아당기면 잡아당길수록 낮춰 가야 되는 것입니다. 낮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잡아당기면 당길수록 그것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낮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맨 먼데에 가게 되면 땅에 딱 붙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고 앞으로…. 자, 고생길을 출발했다구요. 사랑 길이 아니고는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구요. 그렇지요?「예」 사랑의 궤도가 아니고는 갈 수 없다는 거예요.
자, 이제부터 뭐냐 하면, 이제 여기서부터 제물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제물. 제물을 써 놓고 선생님이 무슨 얘기를 하는가? 선생님이 써 놓은 것에 대해 이제부터 얘기해요. 제물, 자, 그것 좋다구요.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는 것은 어떻게, 무엇 때문에 그래야 되느냐? 무엇 때문에 이 놀음을 해야 되느냐 이거예요. 무엇 때문에…. 내가 잘 되기 위해서 그런 놀음을 하는 것이 절대?「아니다」 되어서는?「안 된다」 원칙이 다르다구요. 세상에서는 자기가 출세하려고 고생하지요? 이것은 다르다는 겁니다. 무엇을 하기 위해서 고생하느냐? 남을 구해 주기 위해서 고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표 그리심)
자, 요전에도 얘기했지만, 우리는 악주권에 포위됐다고 그랬지요?「예」이것을 어떻게 점령해 나가느냐? 이것을 넘기 위해서는? 내가 무슨 얘기 했어요? 초 무엇이라구요? 이틀 전에 내 무슨 얘기 했어요? 초세계관을 가져라, 우선 사상적으로 벗어나라 그랬지요?
그러니까 여기에 말뚝을 박고, 이 말뚝에 나일론 줄을 동여매 가지고, 줄을 달아매고 나는 여기에 지금 들어갔다 이거예요. (판서하심) 들어간 것은 왜 들어갔느냐?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왔던 것과 딱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은 하나님의 줄입니다. 하나님의 줄을 가지고 여기에 들어왔습니다. 그렇지요? 이 줄은 역사적 승리의 줄이라구요. 하나님의 심정과 연결된 끊을 수 없는 줄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들어왔다가 그냥 가야 되겠어요? 온 목적이 뭐냐? 온 목적이 뭐냐 하면, 악주권을 철폐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악주권을 철폐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찬가지라구요. 통일교회가 이 땅 위에 나온 것은 무엇 때문이냐? 악주권을 철폐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기동대가 출발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악주권을 철폐하기 위해서입니다. 전부 마찬가지라구요.
자, 그러려면 원리에서 말이예요. 원리를 얘기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기 때문에…. 자, 여기에 들어온 이 사람, 이런 자리에 선 사람, (판서하시며) 즉 중심존재는 복귀원리를 보게 되면 아벨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요? 「예」아벨은 누구 대신이냐? 아담 대신입니다.
그러면 이 악주권은 왜 생겨났느냐? 가인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그렇지요?「예」 가인은 누구편이냐? 사탄편입니다. 즉, 사탄 때문에 악주권이 생겨났습니다. 아담 해와와 사탄 때문에 선주권 악주권이 기원된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담이 사탄한테 거꾸로 주관받은 것이 악주권의 출발 동기입니다. 그렇지요? 따라서 선주권의 출발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아담이 사탄을 굴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 놀음을 해야 된다구요. 선주권을 대표한 존재가 아벨이라면, 그 아벨은 이 땅 위에서 악주권을 해방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떻게 해야 돼요? 가인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선주권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이것이 아벨이지요, (판서하시며) 아벨. 아벨이지요?「예」 이것은 가인이고, 이것은…. 보여요?「예」 안 보이면 선생님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저것은 '가'고 저것은 '아'구나 이렇게 알라구요. 가운데 것은 아벨이고, 이것은 가인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된 그 자리는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지 않은 자리와 마찬가지의 자리로 설정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예」 가인과 아벨이 하나된 자리는 타락하지 않은 아담하고 타락하지 않는 천사장하고 하나된 자리이기 때문에 타락이란 인연을 벗어난 자리입니다. 복귀라는 것은 원리원칙. 본연의 원칙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벨이 왜 와야 되느냐? 아담이 땅 위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아담이 타락한 것을 대신 복귀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인이 나타난 것은 무엇이냐? 가인이 없어 가지고는 아담이 승리의 터전을 지상에서 닦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인이 사는 세상에 아담 후보자들이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땅에서 타락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섭리는 땅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섭리의 대표자는 아담의 자식으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노아는 뭐냐? 아담 가정 대신이지요? 아브라함도 전부 다…. 이들이 커 올라오는 거예요. 아담을 키우는 놀음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아벨 역사라는 겁니다.
그럼 가인은 뭐냐? 가인은 천사장의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이 열 살이면 열 살 때에 천사장이 하나되어야 되는 거라구요. 아담이 스무 살 때면 스무 살 때에 하나되어야 되고, 50살 때면 50살 때에 하나 되어야 되고, 늙어 죽을 때까지 하나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됐더라면 그 자리는 영원한 지상천국의 세계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형이라구요. 복귀라는 것은 원리를 떠나서는 할 수 없습니다.
가인 아벨 역사를 왜 해야 하느냐? 아담이 천사장한테 굴복함으로 말미암아 악주권이 생겨났기 때문에 하나님은 선주권을 세우기 위해서 타락하지 아니한 아담과 같은 존재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가 메시아입니다. 알겠어요?「예」 하나님은 메시아를 보내 줘 가지고 가인세계를 굴복 시킴으로 말미암아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천사세계가 하나된 것과 같은 입장을 찾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을 이 지상에서 다시 이루어 맞추기 위해서 메시아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메시아의 역사와 가인의 역사는 다른 것입니다. 가인의 역사는 사탄세계이니까 그냥 그대로 세상의 역사요, 메시아의 역사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오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나님과 사탄이 대립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플러스라면 사탄은 마이너스가 되어야 될 텐데 플러스가 되어 있으니 반발한다는 거라구요. 그래서 이것을 마이너스권으로 만들어 사탄이 절대 굴복할 수 있는 인연을 통하지 않고는 통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통일이 되지 않고는 에덴 동산, 평화의 세계는 출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러한 본연의 원칙에, 그 원리형에 맞추기 위해 뭘해야 된다구요? 너! 저 웃는 녀석, 이 녀석아, 너 말이야, 너! 뭘해야 된다구? 뭘해야 된다구? 솔직해라.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하고, 알겠으면 알겠다고 하고…. 왜 안 들었어. 귀가 없었어? 눈깔이 어디 갔다 왔지? 「…」넌?「모릅니다」 네가 몰랐나, 그 녀석이 모르게 만들었나? 「제가 몰랐습니다」그 녀석은 가만히 있는데?「예」 이 녀석 같으니라구. 저 녀석이 뭐라고 그랬기 때문에 둘이 맞받아 얘기하다가 모른 게 아니야?「아닙니다」 그럼?「제가 조는 걸 깨우다가 그랬습니다」 무엇이? 졸아서?「예」 누가?「제가요」 응-. (웃음) 그러지 말고 아 그 연필 있잖나, 연필, 그것 가지고 옆구리를 찔러 이 녀석아. 왜 그것을 그렇게 해? 네가 못 듣고 그런 것은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그거. 들으면서 그렇게 했다면 내가 칭찬할 만하지만 못 들으면서 그러는 것은 안 된다구.
뭘해야 된다구요? 아까 뭘해야 된다고 그랬나요? 자, 이거 그렇게 다 잊어버렸으니 말할 재미가 있어? 뭘해야 된다고 그랬어요? 이 세상은 그대로 가인이니까, 하늘편이 아벨이 되어 가지고 이 세상에 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아벨이가…. 알겠나? 그래서 가인 아벨 역사가 문제되는 거예요. 그건 뭐냐 하면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지 않았던 본연의 형을 갖다 맞추기 위해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하나되는 데에는 평화가, 싸우는 데에는 전쟁과, 그 다음엔 파괴와 멸망이 찾아오는 것이 원칙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아벨은 뭘하러 오는 사람이냐? 싸우러 오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통일을 해서 평화를 이루려고 오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싸우지 않고 평화를 이루려니 사탄세계에 들어와 가지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 무슨 방법으로 해야 될 것이냐? '야, 너, 나를 위하라' 하는 방법으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죽는 방법밖에, 희생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악한 원수도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도와주다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머리 숙이고 굴복하지요? 원수로 알고 죽이려고 했는데 결국 그 사람은 나를 살려 주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을 그 사람을 죽이고 나서 알게 될 때에는, 매해 그 사람이 죽은 날 그 무덤에 찾아가서 '아, 나는 당신이 원수인 줄 알았는데…. 내가 이렇게 저지른 죄를 용서해 주시오'라고 그 원수는 누구보다도 일생 동안 죽을 때까지 성묘해 주면서 빌어야 된다구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구요. 그렇지요? 이 외에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사탄은, 가인 끼리끼리는 싸우게 마련이라구요. 서로가 물고 뜯고 죽이게 마련이라구요. 자기를 중심삼고 서로가 죽이려 하는 이 세상에 아벨이 와 가지고 평화의 세계를 이루고, 통일의 세계를 이루려니, 결국 싸우지 않고 통일하는 방법은 아무리 골라 보고 찾아 봐도 원수를 위하여 복을 빌고 희생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원수를 위하여 복을 빌어 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전법에 있어 정당한, 주류적인 사상을 그냥 그대로 전통으로 이어받은 세계적인 대표자로 살고 간 분이었다 이거예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원수는 무슨 원수냐? 세계적인 원수입니다. 세계적인 원수인데도 불구하고 사탄이 죽이고 나서 보니 자기를 위해 복을 빌고, 자기를 위해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와서 자기를 위해서 죽었고 자기들에게 원수를 갚아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랑하고 갔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여기에서 모든 싸움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래의 터전이 복귀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터전 안에서만 비로소 하나님을 중심삼은 통일의 세계가 벌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요걸 알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예」
그래서 아벨이라는 존재는 반드시…. 아벨이 와서 쳐 가지고 굴복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가 가인이 아벨을 쳐 가지고 출발되었기 때문에 끝날까지 치는 역사로서 결실할 때까지 아벨이 맞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심은 대로 심은 것을 거두어야지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까지 맞고 나가는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는 세상 사람들 앞에 핍박받아 나오기 일쑤입니다. 이걸 보게 될 때에, 하나님이 없다고 말 못 한다구요. 알겠어요? 요 원칙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그러면 여기에서 가인 아벨이 하나되면 어떻게 되느냐? (판서하시며) 요것이 가인의 담이지요? 요 가인의 담이 무너져 버리면 가인은 어디로 들어가느냐? 아벨이 가에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요것(가인)이 들어가 달라붙는 것입니다. 중심이 이동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하나되는 데는 아벨이 여기에 나와 가지고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아벨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것(가인)이 달라붙는 것입니다. 아벨을 중심삼고 가인이 달라붙게 되니, 비로소 굴복해 가지고 하나되니, 다시 말하면 아담 앞에 천사장, 타락한 사탄이 굴복하지 않았던 것이 굴복의 역사가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본연의 에덴 동산, 타락하지 않은 원형세계가 현현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개인 끼리끼리의 사탄의 성벽은 왕창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벽을 허는 해방의 비결이라구요. 알겠어요?「예」 이걸 알아야 돼요. 그렇지요?「예」
이럼으로 말미암아 두 형제 가운데의 개인적인 담벽은 우루루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요래 가지고 둘이 하나되니까, 요 둘이 합해 가지고 가정권이 벌어지는 거예요. 요것이 아벨 형제라구요. 그 다음에는, 가인 아벨이 하나된 다음에는 무엇이 벌어지느냐?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릇된 사랑의 씨를 뿌림으로 말미암아 가인과 아벨이 갈라졌지요?「예」 이들이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도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거예요. 이것을 세밀히 얘기하면 좋겠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구요. 세밀히 얘기하자면 한 서너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 다음에, 나중에 얘기하자구요. 여기서 신·구약에 대한 내용이 전부 다 풀려 나게 되어 있다구요.
그러니까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거짓 사랑으로 말미암아 갈라졌고, 갈라짐으로 말미암아 아담하고 천사장하고 싸우는 놀음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어떻게 하나되느냐 하면, 싸우지 않고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려니까 어머니 뱃속을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어머니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타락하지 아니한 형제는 싸우는 거예요, 안 싸우는 거예요?「안 싸우는 겁니다」 본래 안 싸우는 것이 원리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싸우는 아들딸을 낳아 놓았는데, 그들이 안 싸우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원리적인 형제권이 생겨 나는 것입니다. 그 원리적인 형제와 더불어 하나되는 사람은 원리적인 부모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예」
이래서 아벨을 통해 가지고 가인과 아벨이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부모복귀가 가능하게 되는 겁니다. 알겠어요?「예」 이 둘이 하나되어 가지고 뭘해야 되느냐 하면 '우리는 부모를 위해서 죽습니다' 이래야 됩니다. 형제가 비로소 하나되어 가지고 '우리는 부모를 대신해서 죽습니다. 우리는 부모 앞에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라고 해야 됩니다. 아담 해와 앞에 가인 아벨이 반대하는 입장에 서지 않았어요? 반대하는 게 아니라, 타락한 아담 해와 앞에 반대의 자리에 선 형제가 아니라 타락하지 아니한 부모의 계통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의 형제로서, 절대적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부모를 위해서 효성을 다하고, 우리가 죽으면 죽었지 부모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런 본연의 자리에 들어감으로써 아벨을 통해서 부모복귀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요?「예」
그렇게 되어 가지고,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올라가서 비로소 부모와 하나되게 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형제복귀, 그 다음에 부모복귀, 하나님복귀. 이렇게 아벨에게는 3대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첫째 뭐예요? (판서하시며)「형제복귀요」 형제복귀. 둘째 뭐예요?「부모복귀」 세째 뭐예요?「하나님복귀」
자,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 뭐냐? 사랑이지요?「예」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 뭐예요?「사랑입니다」 진짜예요?「예」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 자기지, 자기. 그렇잖아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 뭐라구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 뭐냐 할 때에 '나다' 그러는 사람이 있어요? 없어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 뭐냐? 그것은 나를 넘어가서 있는 거예요. 그게 뭐냐? 사랑입니다. 참사랑이라구요. 그렇지요?
효자의 길이 여기서 나오는 것이요, 충신의 길이 여기서 나오는 것이요, 성인의 길이 여기서 열매맺는 것입니다. 싸우지 않고 정복할 수 있고, 태평왕국의 행복의 터전이 여기서, 이 원칙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이 원칙을 따라서 세계까지 통과하자는 것입니다. 자, 가능성이 있나요, 없나요?「있습니다」
그래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두들겨 맞았어요? 선생님이 이 일을 위해서 감옥을 얼마나 많이 들어갔는지 모르지, 너희들은? 고문도 많이 받고 별의별 일을 다 당했지만, '내가 가는 길은 철석같다. 소망의 나라를 이룰 때까지 싸워 남아져 내가 희생의 길을 가더라도 지금 죽어서는 안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이렇게 해서 지금 개인을 굴복시키고 가정을 굴복시켰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하늘 부모를 모실 수 있는 터전과,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 가정과 하늘 부모를 모실 수 있는 터전과, 종족을 중심삼고 하늘 부모를 모실 수 있는 터전을 넓혀 나온 것입니다.
이래서 자그마치 우리 통일교회가 이제 영적으로 기독교에 승리했습니다. 영적으로는 승리했다구요. 나라를 중심삼고도 대한민국에 있어서 통일교회의 사람은 전부가 애국자가 다 된다고 생각한다 이거예요. 또 통일은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영적인 면, 사상적인 면에 있어서는 으뜸이다 이거예요. 그렇지요?「예」 영적인 나라, 영적인 천사세계형이 기독교지요? 그렇지요?「예」 영적인 사상의 세계형이 기독교 문화권이지요? 그렇지요?「예」 그러니 영적으로 아벨인 우리 통일교회는 이 나라에 있어서 기독교를 능가했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를 능가했다는 것입니다.
가인적인 기독교 문화권과 자유세계를 영적으로는 제패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세계적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놀음이 선생님의 3차노정입니다. 선생님은 국가 기준 이상에서 출발하는 것이 본래의 사명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공석에 나타나 가지고 집회를 안 한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적입니다, 알겠어요?「예」
아까 부모는 어디서 나와야 된다고 했어요? 형제들이 싸움하는 땅에는 안 나타납니다. 그렇지요?「예」 가인 아벨이 싸우는 역사권내에는, 나라 이하의 자리는 형제가 해결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부모가 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유대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 유대교는 아벨이요, 이스라엘 나라는 가인이기 때문에 이들이 하나되면 형제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 형제가 하나된 터전 위에 부모가 임하는 것입니다.
부모로 오시는 분이 메시아요, 국가에서부터 세계로 가는 것이 메시아의 길이기 때문에 영적으로나마 그러한 세계적인 기반을 닦기 전에는 선생님은 공적인 집회를 못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내세워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벨 역사를 닦아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벨 역사를,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아벨을 내세워 가지고 발전시켜 나왔는데 그 아벨을 내세울 때에 부모가 나서면, 그것은 원리원칙에 어긋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지금까지 뒤에서 그늘에서 살아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비로소 얼굴을 세계에 드러내고, 자유세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 가인 아벨이 하나됐다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인 면에서는 사상적으로 자유세계와 한국이 합했다는 말입니다. 알겠어요?「예」 이제 실체적으로 한 고비만 넘으면 다 되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이제 남은 것은. 앞으로 통일교회가, 여러분이 가야 할 것은 이 나라를 위해서 육적인 아벨노정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넘게 되면 기독교인들이 많이 들어온다구요. 영적으로 합했으니까 들어오게 되지요. 이제 나라도 우리와 손잡을 때가 되어 옵니다. 1974년까지가 요 고비입니다. 3년노정, 이 3년의 고비를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님이 실패했던 것을 갖다 맞추어야 합니다. 알겠어요?「예」2차 7년노정…. 전부 다 어쩌면 그렇게 수리적으로 들어맞느냐 이거예요. 과학적이라구요.
그래서 1974년까지가 대한민국에 있어서 문제의 해입니다. 김일성이가 63세까지는 큰소리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야, 이 자식아!' 말 안 들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말 안 들으면 영계에서 데려가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호출명령을 하면 대번에 가게 되어 있지요?「예」 나가 뻐드러지는 거라구요. 그것을 왜 안 하느냐? 김일성이가 없게 된다면, 그 악착같은 사탄이가 없게 된다면 남한에 있어서 가인 아벨이 하나 안 된다구요. 알겠어요? 가인 아벨이 하나 안 된다구요.
자, 결론을 짓자구요. 제물의 왕자로 태어난 불쌍한 기동대원들이여! (웃음) 기분 좋아요, 나빠요?「좋아요」 기분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자, 너희들과 선생님을 생각해 보라구. 너희들과 선생님을…. 선생님은 깜깜한…. 본래는 기독교에서…. 그때는 나라가 없을 때입니다. 그때는 해방 직후니까 나라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벨이요, 가인은 종적인 면에서 된 거예요. 알겠어요? 종적인 면에서, 그때 자유당 시대에 기독교를 중심한 기독교인들이 국가의 주권자였습니다. 자유당 창설 때에 선생님도 거기의 한 주요 위원이었습니다. 알겠어요?「예」 여기에서 기독교와 하나되었더라면….
그때에는 나라가 없었고, 횡적인 가인이 없었다구요. 그렇지요? 종적으로 횡적으로 딱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영육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적인 기반이 있는 터전에 이스라엘 민족이 자동적으로 설 수 있는 것과 같은 그때가 대한민국의 해방 직후였습니다, 그때 도리어 주권이 없었던 것이 고마왔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새로운 주권이 출발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반대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유대교가 예수님을 몰아냈던 것과 마찬가지의 놀음을 되풀이해 가지고 2천년 이스라엘 역사를 21년에, 1960년부터 복귀해 맞추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를 보면, 유대교하고 예수교가 지금까지 원수지간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기독교인이 얼마나 되느냐? 17퍼 센트밖에 안 됩니다. 그 외에는 전부 다 유대교인입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대접을 못 받는다는 말이 그냥 그대로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예수를 이단자로 몰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2천년 전에 이단자라고 몰아 가지고 망했다가, 지금 근근이 살아가면서도 또 원수시하고 있습니다. 그대신, 예수는 이단자로 몰지만, 앞으로 오시는 재림주님은 메시아로 모실 때가 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하나님도 그것이 소망이기 때문에 그 민족을 내버려 뒀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다 용서해 주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통일교회와 기독교의 관계를 말하게 되면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와 마찬가지죠? 2천년 동안 이스라엘 나라에 있어서 기독교인의 비율이 17퍼센트밖에 안 되는데, 한국에 있어서 우리 통일교회를 보게 되면 12년 동안에 이렇게 됐습니다. 알겠어요?「예」이제 한 2년만 지나면 선생님이 어디에 가든지 기독교는 전부 다 환영할 거예요. 그럴 때가 온다구요, 틀림없이. 두고 보라구요. 나라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걸 보면 얼마나…. 기적. 기적 해도 이런 기적이 없다는 거예요. 그렇지요?「예」
야, 2천년 역사를 21년 동안에 재봉춘…. 이스라엘 민족이 2천년이 지나 가지고 재봉춘해서 이스라엘의 주권을 회복했지요? 우리는 20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재봉춘 시기를 맞기 위한, 소망의 천국을 향해 뻗어 갈 수 있는 좋은 때에 있습니다. 그대신 피땀 흘리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안 싸울 싸움을 선생님이 하고 있다구요. 그것은 여러분들이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무슨 놀음을 했느냐 하면, 지금까지 해 나온 것은 부모의 놀음을 한 것이 아니라 아벨의 놀음을 한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예수가 세례 요한의 노릇을 한 것과 똑같이 해서 그걸 탕감복귀하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아벨권 국가 기준까지 세워 가지고 부모권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에게 인계받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기동대로 내세워 나라와 교회를 미는 거예요. 알겠어요?「예」2천년의 한, 예수의 죽음의 원한을 지금 탕감복귀하기 위한 전체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나서는 무리들이 누구냐 하면, 하늘의 대표로 부름 받은 기동대원들이다 이거예요.
이것은 국가적이 아니예요. 예수님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대해서 출발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세계적인 출발을 볼 수 있는 때가 왔다 이거예요. 알겠어요?「예」 안팎으로 영적인 세계적 승리권을 닦았기 때문에 기동대를 세계적으로 편성했습니다. 5개국이예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이 사위기대권의 중앙에 한국이 들어가자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기분 나빠요, 좋아요?「좋습니다」 절대 져서는 안 되겠다구요. 절대 져서는 안 되겠다구요, 절대. 져야 되겠어요, 안 져야 되겠어요?「안 져야 되겠습니다」
조국 광복이 여기서 벌어지는 거라구요. 치열한 일선 중의 일선은 여기라구요. 그야말로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는 놀음이라구요,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몰아 치우고, 유대교가 예수를 몰아 치우던 것, 대한민국 백성이 통일교회 선생님을 몰아 치우고 기독교가 선생님을 몰아 치운 이 역사적인 원흉들을 최후에 판가리하기 위한 아벨적인 사명을 짊어진 자들이 누구냐 하면. 누구라구요?「기동대입니다」 기동대. 제물의 자리, 국가의 전체 운명을 책임지고 나서는 제물의 자리가 기동대의 자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알겠어? 이 녀석아! 여기서 여섯 번째. 무슨 말인지 알겠어? 뭐가 기동 대라고? 「…」
우리가 이런 중차대한 사명을 오늘날 이 시점에서 그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 이 엄숙한 자리에서 결의할 수 있다는 사실, 이 결의가 나타나게 될 때에 세계가 움직여질 수 있는 인연이 여기에 깃들어 있는 걸 그 누구도 모른다구요. 이 전통을 더럽히게 될 때에는 예수를 죽게 한 가룟 유다보다도 더 악당이 되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때는 하나님이 국가적인 시대를 중심삼고 출발하려고 했던 때였지만, 이제는 세계적인 시대를 통해서 출발하는 때입니다. 여기에서 충신의 절개, 나아가 성인의 기개와 절개를 가지고 충신의 도리, 효성의 도리를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배반하고 이것을 어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용서 받을 길이 없고, 피해 나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전체를 대신한 입장에서 지금 기독교와 이 나라가 우리와 연결 되려 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우리가 몽땅 산 제물로서, 죽는 것이 아니라 살아 가지고 제물적 부활체로서 가인권 교계와 가인권 국가를 굴복시키고 나서게 될 때에, 비로소 여기서부터 하늘나라의 세계는 횡적인 세계로, 세계적인 무대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엄숙한 순간인 것을 여러분이 가슴에 깊이 지녀 가지고 6월 초하루부터 힘차게 출발해 주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알겠어요?「예!」이 자리가 제물의 자리요, 제물의 뜻을 성사시켜야 하는 아벨의 자리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야말로 예수가 실패했던 것을 나로 말미암아 탕감할수 있는 역사적인 시점이구나. 이것을 탕감하는 날에는, 예수는 나라를 보지 못하고, 나라를 위해서 하늘의 법도를 세울 수 있는 교회를 갖지 못했지만, 우리는 이제 세계 만방에 자랑할 수 있는 교회와, 세계 만방에 자랑할 수 있는 주권국가를 갖고 당당히 하나님의 한 나라를 땅에 모셔 드릴 수 있는 건국 용사들이 될 수 있다'는 이 엄숙한 사명이 하늘 군인 들의 두 어깨에 짊어져 있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은 올바로 출발된 길이기 때문에, 자나깨나 나라와 세계를 위하는 충절의 마음을 가지고 과정에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최후치 승리의 때까지…. 만일에 거기에서 잘못되면 큰일입니다. '차라리 출발하지 않았더라면 좋을 뻔하였다'는 한스러운 역사적인 구렁텅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이것을 못 하는 날에는 여러분의 후손 들은 아담 해와 이상 여러분을 참소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선조는 선생님 시대에 선생님의 명령을 받고, 사명을 분부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천륜을 배역한 배도자의 조상이 되었다'고 하는 참소의 한을 남긴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죽더라도 그러한 조상이 되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기동대 활동을 해주기를 바라서 여러분 앞에 말씀드린 것을 명심해 주길 바라는 바입니다. 알겠어요?「예!」틀림없이 그러겠다는 사람, 손들라구요. 내리라구요.
잘 출발했습니다. 그러면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도다 '하는 한의 말을 남긴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절대 가룟 유다와 같은…. 죽더라도 가룟 유다를 저주하고 가룟 유다를 책망하고 간 예수와 같은 사람으로서 죽어가야 할 것이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인 것을 확실히 깨달아 주길 바라면서, 오늘 선생님의 말씀을 끝마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이제 대한민국이 가는 곳이 어디냐고 묻게 될 때에, 하늘을 향하여 가던 걸음을 멈추게 될 때에는 이 나라 이 민족의 운명은 비참밖에 없을 것을 생각하옵니다.
오늘 가인의 운명을 잘 아는 저희들은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가인과 같은 민족적인 비운 앞에 아벨의 형태를 갖춘 보잘것없는 어린 무리들로서, 붉은 심정을 갖추어 아버지 뜻 앞에 제물적인 행각의 노정을 출발하고자 하여 이 시간 각오하고 다짐하는 자신들이 된 것을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천번 만번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을 배반하는 배도자의 역사를 다시 이어받는 일이 없기를 맹세하였 사오니, 아버지여, 이들을 지키시옵소서. 이들의 선한 선조들을 동원하시어서 최후의 승리의 종착점까지 가서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아들딸들, 미국을 위주로 하여 영국, 독일, 일본에 있는 아들딸들, 그리고 이제 내일 출발하는 한국의 기동대의 권위를 아버지께서 세워 주시옵소서. 불쌍한 이들에게 남겨지고 맡겨진 책임이, 국가와 민족을 복귀해야 할 사명이 어느 누구보다도 더 크고 직접적인 사명임을 알고 있사오니, 충정의 지조와 절개를 가지고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바치고 아벨의 길을 지켜, 가인을 굴복시키는 데 있어서 승리적 종착점을 가려 가지고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갈 운명의 길을 지도하여 주시옵소서. 가는 길에 눈물이 없을 수 없고, 가는 길에 어려움이 없을 수 없사오니, 천년 만년 수난길을 가려 나오신 이 터전을, 아버지,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끝까지 싸워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결심하였사오니 이 출발 위에 복을 빌어 주시옵소서. 이제 내일부터 가는 기동대의 행로를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이 겨레와 기성교회를 복귀하여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때까지 기필코 가고 남아지는 무리가 되어, 당신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무리가 되어야겠사오니, 끝까지 아버지, 이들을 내세워 가지고 자랑할 수 있고, 아버지께서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역사를 홀로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이 나가서 활동을 하다가 행동을 잘못했을 때에는 통일교회 전체에게 영향이 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행동으로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전도대원, 기동대원 가운데 아무개 한 사람이 잘못한 것이 통일교회 전체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한마디의 실수는 그 한 사람의 실수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통일교회 기동대의 실수로 낙인 찍히는 것입니다. 기동대의 실수는 통일교회의 실수요, 통일교회의 실수는 문선생의 실수요, 문선생의 실수는 하나님의 실수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인연이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 나오던 생활과는 다른 면에서 이중 삼중으로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고 듣고 자고 먹고 행동하는 일체에 있어서 하늘을 보여 줘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늘을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하늘은 이래야 될 것이 아니냐. 이것이 하늘이다'라고 하더라도 하늘이 그렇지 않다고 할 때에는 하늘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는 것을 다 압니다.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다 압니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하든가, 어디에 가서 쉬든가,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하늘은 이래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하게 되면 다 알게 마련입니다.
친구지간, 혹은 40명의 여러분이 이렇게 모였으면 남자나 여자나 팔도 강산에서 돌팔이가 모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별의별 사람이 다 모여사니. 가인 아벨의 원칙을 몰랐다가는 큰일나는 거예요.
악은 무엇이냐? 선은 무엇이냐? 악은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한마디 말이라도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사람은, 요전날까지 아벨이었더라도 그 시간에 감정의 상함을 받은 그 사람 앞에서는 악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한마디 잘못해 자지고 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옆 사람이 자기 기분 나쁜 것과 관계가 있다고 '뭐야? 하며 딱 때리게 되면 그는 악한 사람입니다. 이 기동대원이 40명이면 40명 전체의 어려움을 내가 홀로 당하겠다는 사람은 40명을 대표한 선한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사람이 40명을 대표한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하는 데서만이 하늘이 있고 하늘이 보여지지, 그러지 않는 데서는 악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옛날에는 이 젊은 녀석들이 그저 지부럭거리며 방향 없이 막 저으면서 다녔습니다. 이제부터는 똑바로 가야 합니다. 달라져야 한다구요. 지금까지는 더벅머리 총각같이 되는대로 다녔지만. 이제는 아침에 싹 일어나면 머리에 물을 착 바르고 다니라는 거예요. 기름이 있으면 발라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는 데에 있어서도 말이예요, 이런 걸 알아야 됩니다. 전도받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아침에 척 나가 보니 머리가 부시시하고, 세수도 안 하고 죽을 상을 해 가지고 나와서 '오소' 하며 전단지를 주는 것과, 새벽같이 나와서 언제 준비했는지 머리를 싹 빗고 그 차림 차림이 자기를 만나기 위해 벌써 어젯날부터 준비한 것처럼 해 가지고 방실방실 웃으면서 '미안하지만 전단지 한 장 받으십시오' 하며 주는 것과 그 느낌이 어떻겠어요? 만일 전도 나간 사람이 기분 나쁜 인상을 해 가지고 들어가게 되면 일생 동안 그 사람을 싫어할 거라구요. 그렇지만 기분 좋은 인상을 해 가지고 들어가게 되면 전도받는 사람에게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을 거예요. 여러분이 사람을 처음 대하게 될 때는 상대에게 어떤 인상을 주게 되는데 그때에 나쁜 인상을 주게 되면 그건 선이예요, 악이예요? 그것은 악인 것입니다. 인상을 좋게 주면 대할 때마다 전보다 나아집니다. 인상이 좋아야 하나님이 협조하시지, 그러지 못해 가지고는 하나님도 협조를 못 하십니다. 결국은 그 말이라구요.
어젯날까지 여러분은 굴레를 벗은 송아지 떼였습니다. 이 젊은 녀석들, 그랬잖아요? 이놈의 코를 뀄습니다. 여러분, 시골에서 송아지 코를 꿰는 걸 봤지요? 이놈의 코를 꿰려면 제일 단단한 뭐 참나무로 꼬챙이를 만들어 뚫습니다. 나도 코 꿰는 것을 상당히 많이 봤다구요. 그거 질기다고 막 이래야 구멍이 뚫어지는 거라구요. 여러분도 기동대라는 것으로 코를 꿰기는 뀄다구요. 코를 꿰 가지고 팔려 가는 송아지 떼처럼 지금 여러분의 코를 꿰 가지고 끌고 가는 거라구요.
그런데 이게 자기 멋대로 '코가 째지겠으면 째져라' 이래 가지고 달아나는 날에는, 주인이 귀여워서 그냥 놔 주면 모르지만 주인이 성이 나는 날에는 '이놈의 송아지 새끼, 네가 가서 살 것 같애?' 하며 다리를 부러뜨려 놓을 것입니다. 그럼 별수 있나요? 다리가 부러져야지요. 다리가 부러지면, 데리고 가지 않고 내버립니다. '이 따위 것' 하며 내버리고 가요. 그러면 더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굴레 벗은 송아지처럼 마음대로 했지만 이젠 코를 꿴다 이거예요. 그러니 이리야 낄낄 하면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논바닥에 들여 놓고 '가!' 하면 가야 됩니다. 아이코, 이거 들어가는 것도 기분 나쁜데, 또 가라고 한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이 랴' 하면 가야지 할수없 다구요. 가는 데에 있어서 그저 주인에게 들이 맞고도 쓰적쓰적 가게 되면, 쓰적쓰적 하루 일을 해 놓으면, 저녁에 주인이 돌아와서는 회개하는 거라구요. '아, 내가 아침에 잘못했다. 오늘 저녁에 여물을 주더라도 좋은 여물을 주어야 되겠다'고 하며 대접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여러분도 그럴 줄 알 거라구요. 마찬가지라구요.
그러니까 이제는 여러분 마음대로 두리번두리번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우리는 소망의 백성을 찾아 나선 무리다. 소망의 나라를 소생시키기 위한 무리다. 우리가 손대는 날에는 나라를 소생시킬 수 있는 하나의 요소가 되는 국민이 소생된다. 우리는 나라의 전통적 사상을 이어 받은 자들로서 우리가 바라는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나섰기 때문에, 올바른 전통적 사상으로 그들과 합해 가지고 올바른 나라를 찾아 나가야 한다. 우리는 그런 무리를 모집하기 위한 모병 책임자들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된다구요.
거기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야 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백성으로서 나라를 사랑한 자리와는 달라야 합니다. 지금까지 자기 친척, 혹은 부모 형제 처자를 사랑하던 것과는 달라야 합니다. 다른 의미에서 백성을 사랑하고, 다른 의미에서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지지 않고는, 하나님이 찾아 나오시는 소망의 이상세계를 여기서 재현할 수 없습니다. 이상세계를 이룰 수 없어요. 이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렇게 알고, 여러분이 이제 나가는 그 시간부터는 옛날과 같아서는 된다? 「안 됩니다」'자유로다, 자유. 아이고, 이놈의 10일이 환장할 기간이었다. 이제 자유 천지구만!' 이래서는 안 돼요. 돌아서 나가는 그때부터 달라져야 돼요. 수련을 받을 때까지는 괜찮았다구요. 잘못되면 충고받고, 또 용서받을 수 있지만, 이제 입장이 달라졌습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나서는 그 시간부터 무엇을 보여 주자구?「하늘요」 하늘을 보여 주자! 내가 하늘을 잘 보여 주어야 그들이 나를 따라와 가지고 하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 모여드는 백성을 잘 연결시켜야 하늘의 조국 광복이 소생되는 것입니다.
이 나라 백성이 아직까지 하늘나라의 백성이 못 되었습니다. 이 나라가 하늘나라가 못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그런 인연을 새로이 연결시키기 위한 대표적인 기수로 등장한 일당이 뭐냐? 기동대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 기동대는 조국광복을 위해서 나선 하늘의 용사들입니다. 그러므로 기필코 그것을 쟁취할 때까지 하늘의 전통을 보여 줘 가지고 그런 인연을 연결시켜야 할 사명이 기동대 여러분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 사명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그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해야 됩니다.
지금까지는 자연을 보게 되면 아무 감각이 없었을 것입니다. 제비 새끼를 보게 되면, '아이고, 그놈의 제비 새끼, 돌아와 가지고 기분 좋게 재재거리는구먼. 한 놈을 잡아 가지고 어떻게 생겼나 털을 뜯어 가지고 배때기를 째 보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구요. 이제는 옛날과 달라져야 됩니다. '아, 아름다운 제비가 나를 보고 속삭거리는구나. 가만히 들어 보니까 저 제비가 나를 보고 당신은 어서어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딸이 되게끔 빨리빨리 활동하소 하는구나' 이렇게 들으라는 거예요. 달라야 됩니다. 해석을 달리해야 돼요. 또, 황새라든가 백로가 지나가면서 꽥꽥 하고 우는 소리도 예사롭게 듣지 말아야 됩니다. '아, 나를 보고 저녁 때가 되어 오니 어서 빨리 복귀의 길을 가려 가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걸음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신호해 주는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전부가 달라져야 된다구요. 졸졸졸졸 흘러가는 물을 보고도 옛날과 달리 생각해야 된다구요. '아, 이 물이 나에게 뭘 가르쳐 주기 위해 흘러가는구나' 하면서 보면 볼수록 신기한 무엇을 느껴야 돼요. 전체가 옛날과 달라져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저 시골에 가게 되면, 논두렁이나, 산중 도로가에 못이 있을 거예요. 못에는 가물치라든가 여러 종류의 고기가 있지요. 청평에 가게 되면, 음력으로 4월이 지나 5월쯤 되면 잉어들이 떼거리로 나와 가지고 풀이 있는 데 들어가서 대가리를 내 놓고 껌벅껌벅 이러고 있다구요. 그것을 보고 옛날 같으면 '야. 저것, 배가 고픈데 잡아먹으면 보신이 되겠구먼' 이렇게 생각하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달라져야 됩니다. '야, 저것 봐라! 내가 오는 것을 환영하는구먼' 이렇게 전부가 달라져야 된다구요. 그래 가지고 그 옆에 가만히 서서 손짓을 하면, 옛날 같으면 보기만 해도 금방 들어가던 잉어가 말이예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손짓을 하면 껌벅 껌벅 껌벅 이러면서 좋아하는 거라구요. 그런 일이 있다는 거라구요.
또, 옛날에는 동네방네 지나만 가도 개가 왕왕 짖어 댔다구요. 문지방 밑에서부터 왕왕 짖고 나와 가지고 대문 밖에 오면 벌써 입에 거품을 품고 왕왕왕왕왕 짖는다는 거예요. 그것도 기분 나쁘게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짖더라도 '어서 짖어라, 네가 얼마만큼 사람을 보고 짖고 싶었으면 그렇게 짖느냐? 짖고 싶은 대로 힘껏 한번 짖어 봐라. 짖는 것 소원성사해 봐라' 이래 가지고 가만히 끝나기를 기다리면 짖다 말고 이러구 쳐다본다구요. 이렇게 모든 것이 다 달라져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듣는 것, 보는 것, 느끼는 것, 행동하는 것 전부가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달라지지 않고는 하늘을 보여 줄 수 없는 거예요. 세상에서의 모습 그대로, 옛날의 그 모양 그 꼴로, 달라지지 않고 무슨 하늘을 보여 줄 수 있어요? 옛날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최 아무개면 최 아무개로 그냥 그대로는 망할 모습밖에 보여 줄 수 없지…. 그러니까 달라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너무 유순해 가지고 사람을 만나면 말도 못 하던 사람, 가슴이 두근두근해 가지고 말을 못 하던 사람도 달라져야 됩니다. 그렇다고 가슴을 벌렁거리며 춤추라는 말이 아니예요. 다 달라져야 된다구요. 여러분 자신을 통하여 무엇이든지 달라지는 것을 발견해 가지고 그것이 좋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에는 반드시 하늘은 보여지기 마련입니다. 하늘은 거기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알겠지요? 「예」
밥을 먹더라도 옛날과 달라야 됩니다. 변소에 가더라도 옛날과 달라야 됩니다. 요즈음에 기차를 타고 가다가 변소에 가게 되면 휴지가 달아매져 있습니다. 에라 이렇게 쓴다고 누가 보나? 이러면서 함부로 쓰기도 했을 거예요. 그래 이제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옛날보다도 더 해야 되겠나요? 더 하는 것도 달라진 거지. (웃음) 그래 어떻게 해야 돼요? 옛날보다 덜 해야 되겠어요, 더 해야 되겠어요?「안 해야 됩니다」 남의 것이니까 와르륵 와르륵 한꺼번에 쓱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면 안 된다구요. 절약해 가지고 한번에 해야 돼요. 달라져야 됩니다.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거예요. 그러니 달라져야 된다구요. 그리고 휴지를 오른손에 갖고 닦던 사람은 왼손으로 닦아야 됩니다. (웃음) 내일부터는 달라져야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오른손으로 사용하던 사람 손들어 봐요. 내려요. (웃음) 대부분이 그럴 거라구요. 왼손으로 사용해야 됩니다. 더러운 것은 왼쪽으로 들고 가야 됩니다.
내가 우스운 얘기 하나 하지요. 아직까지 어머님한테 그런 교육을 안했어요. 같은 변소를 쓰는데 말이예요. 지금 쓰고 있는 변소가 요마만큼 틈새기에다 휴지를 놓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손으로 잡으려면 이렇게 돌아가야 돼요. 휴지를 걸어 놓지 못하게 되어 있다구요. 반드시 놓아 두어야 됩니다. 수세식이어서 하얀 데다 할수없이 옮겨 놓는데, 나는 왼손을 쓰기 때문에 언제든지 왼쪽에 갖다 놓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오른손을 쓰니까 오른쪽으로 갖다 놓는 거예요. (웃음) 매번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하루는 불러 앉혀 놓고 원리강의를 했어요. (웃음) 원리적으로 한마디 했더니 그 이튿날부터 실천하더라 이거예요. 원리가 좋긴 좋아요. (웃음)
여러분, 사탄에게 줄 때에는 오른손으로 주지 마세요. 왼손으로 주라구요. 알겠어요? 「예」 더러운 것을 가릴 때에는 오른손으로 하지 말고 왼손으로 하라는 거예요. 그것이 원리적이지요?「예」 그것도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기 때문에 변소에 들어갈 때에 성별하고, 또 나올 때에 성별해야 됩니다. 전부 다 달라져야 합니다. 여러분, 성별식 알아요? 「…] 몰라? 모르면 이번 기동대 교육에 하나 덧붙여요. 전부가 달라지지 않으면 다른 새로운 나라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제 가는 것은, 하늘을?「보여 주기 위해 갑니다」 '하늘이 좋다. 그들이 보여 준 것이 좋다'고 하며, 누구나 진심, 참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다 원한다 하게 될 때에는, 여기서부터 새로운 운동이 벌어지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새로운 조국은 소생되는 것이요, 여기서부터 새로운 민족은 소생되는 것이요, 민족과 조국이 소생되면 삼천리 반도는 새로운 하늘편으로 소생되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시대에 시대를 대표하고, 역사를 대표하고 전무후무한 미래의 사명을 짊어진 당당한 기수로서 달려야 됩니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일등한 사람은 기록 제 1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 것 아녜요? 그 다음부터는 그것이 전통이 돼 가지고 '아무개가 챔피언인데 이러이러한 기록을 냈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록이 문제입니다. 무엇으로 기록을 낼 것이냐? 밥 많이 먹는 것을 기록해요?「아닙니다」 기록을 내는 데에 무엇으로 낼 것이냐? 내가 땀을 많이 흘린 것으로 기록을 내겠어요? 땀을 흘리는 것은 결실을 위해서지요. 결실이 뭐냐?「전도입니다」 '전도' 하게 되면 기분 나쁘다구요. 배운 말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그 말을 쓰지, 딴 말 있으면 딴 말을 쓰면 좋겠어요. 전도를 거꾸로 하면 도전이 되는데, 도전하기 위해서.(웃음)도전 하게 되면 싸우는 것인데, 전도는 전도라구요. 문제는 무엇으로 챔피언의 기록을 낼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실천 기록카드에는 무엇이 기록될 것이냐? 하늘을 보여 준 실적이 기록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만큼 진지하게 하늘을 보여 주었느냐, 또 보여 준 그것이 평면적이냐, 입체적이냐, 얼마나 컸느냐 하는 그 비례에 따라 가지고 그 자체의 실적이 기록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누구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입니다. 자기의 기록이 제삼자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법이 있어요? 자기로 말미암아 자기의 기록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지 말라는 거예요. 먼저 내가 나를 믿어야 되겠습니다.
거울을 척 보면서 '야 아무개야, 나는 너만 믿는다. 어저께까지는 싸움보, 울보, 고집보, 뭐 뚱보였던 아무개였지만, 이제부터는 너를 믿는다' 이러고 또 자기가 '응, 믿어라' 이래야 돼요. 믿는 데는 어떻게 믿느냐? 이러이러한 기록을 내기 위해서 나는 너를 믿고 이제 한번 말을 타고 달려 보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눈도 '예', 입도 '예' , 귀도 '예' 손발도 '예' 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달리는 거라구요.
자, 그럼 달려 보자 이거예요. 한 달을 달려 보고, 자, 기록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자 해 가지고 '나는 철저하리만큼 틀림없이 혼자 나왔다. 내가 나를 믿고 결정한 기준은 이것이다' 하더라도 그것은 누구한테도 얘기하지 않아야 됩니다. 절대 얘기하면 안 된다구요. '나는 이렇게 간다. 나는 기록을 깨뜨려야 된다' 그것을 정해 놓고 거기에서 그만둬서는 안되겠다 이겁니다. 밥을 못 먹을지언정 해야 되겠다 하는 각자의 기록기준을 정해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남이야 쉬겠으면 쉬라고 하고, 나는 새벽같이 찾아가서 그 일을 실천하는 거예요. 그리하여 한 달 계획한 것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할 때는, 기분이 나쁘다?「좋다」 '야, 기분이 좋아' 그 기분은 싸움이 어려웠으면 어려웠을수록 통쾌한 거라구요. 알겠어요?「 예」 싸움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것이 하기 힘든 일일수록 신나는 거라구요. 이러한 맛을 봐야 하늘 도둑놈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하늘 도둑놈이라니까 눈을 이러는데, 선을 위한 도둑놈이 되라는 거라구요. 남보다도 선하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하나님 속에는 선이 많으니까 내가 그것을 전부 다 훔쳐다 놓겠다고 하는 하늘 도둑이 되라는 거예요. 그런다고 해서 하나님은 철문을 꽝꽝 닫지 않습니다. '어서 개(가져)가라. 어서 개가라' 하고 열어 놓는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환영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예」 남보다도 선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창고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훔쳐 가도, 하나님은 '나한테 인사하지 않고 가져가도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여러분 자신이 그와 같은 기록을 남겨야 됩니다. 그렇지요?
이제부터 10년 후에 보라는 거예요. 제1회 기동대원 차출이 3백 몇명?「360명입니다」360명. 그럼 왜 360명을 차출했느냐? 음력으로 하게 되면 1년은 360일이라구요. 360명은 1년 360일을 대표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날이 죽어 나가자빠졌다 하게 된다면 일년 열두 달이 완전한 해예요, 미완전한 해예요?「미완전한 해입니다」 미완전한 해라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여러분은 공동책임을 짊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360명 가운데서 '나는 360번째 해야지' 이럴 사람 손들어요. 없어? 「예」 그러면 '나는 일등 해야지'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리자구.(웃음) 서로가 일등 하려고 해야 돼요. 스타트 라인에 나선 마라톤 선수들 중에 꼴찌 하겠다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놈은 잡아죽여야 된다구요.(웃음) 그렇지요? 잡아죽여야 돼요. 잡아죽인다고 해도 분하다고 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구요.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거기에 나서는 사람은 전부 다 일등 하려고 나서지 꼴찌 하려는 종자는 없습니다. 여기에 기동대로 나서게 될 때에, 일등 하려고 나섰어요, 꼴등 하려고 나섰어요?「일등 하려고 나섰습니다」 일등 하려고 나서지 꼴찌 하려고 나서는 종자가 있다?「없다」 꼴찌 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라니까? 아무도 없잖아요. 이제부터 달리는 거라구. 달리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기록을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무계획적으로 일했다구요. 생각없이 그저 뭐 이렇게 되면 되고 뭐 안 되면 하다 말지, 이랬다구요. 이제는 안 되면 안 된다, 안 되면 큰일난다고 하면서 되게끔 만드는 거예요. 낮에 해서 안 되거든 밤에까지 하고, 하루 해서 안 되면 이틀 하고 쉬지 않고 되게끔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각자 자기가 자기를 믿고 기록을 정하라는 것입니다.
자, 자신의 기록을 정하는 거예요. 내가 1분 동안의 시간을 줄께요. 뭐1분도 안 가지. 약속하자구요. 「예」 기록을 정하는 거예요. 정하는 데는 꼴찌가 되게끔 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너무 욕심이 많아 가지고 눈이 뒤집어지게끔 정해도 안 돼요.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잖아요. 자기가 자기를 알아 가지고 기록을 정해야 되겠습니다. 자, 정하겠다는 사람 손들라구요, 정하겠다고 하는 사람! 내려요. 옛날과 달라지는 거라구요. 달라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이제부터는 달리는 것입니다.
자, 삼백 예순 날을 지내고 난 후에 어떻게 될 것이냐? 내 주위를 쓱 돌아보니 나는 잠을 자고 있는데 사방에서 편지가 날라와요. 그 편지의 내용이 '아무개 선생님! 고달픈 기동대 생활 가운데 이와 같이 못난 사람을 정성 모아 전도해서 생명길로 인도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내 대신 싸워 주십시오. 만일에 당신이 가다가 지치거든 내가 대신 가서 성사시킬 테니 끝까지 잘 싸워 주십시오' 이런 거예요. 이런 편지가 날아오게 되면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햐! 그 맛은 또 별맛이라구요. 남들은 뭐 따라지가 되어 가지고 힘없이 이러고 있는데, 장문의 편지를 바람에 휘날리며 쓱 보는 거예요. 옆에 있는 시시한 것들한테는 절대 보여 주지 말라구요. (웃음) 그 충고한 것을 힘들 때에 혼자 떡 펴놓고 '야, 그러면 그렇지' 하는 거예요. 이런 것이 필요하다구요.
그래 가지고, 1년 후에 내가 '차렷' 하게 될 때 자그마치 몇명은 틀림 없이 나보다 먼저 차렷 할 거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나쁘겠지?「좋습니다」나쁘지 않다는 거예요. 나쁘지 않으니 좋은 것과 마찬가지지요. 기분이 좋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생각하라구요. '3년만 되면 나도 뭐 기동대 대장쯤은 문제없다. 대장이라고 40명을 데리고 다니면서 큰소리치고 그러지만 그런 것이 부럽지 않다. 3년 후에는 대장 실력쯤은 부럽지 않아'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한다고 대장이 '얘, 이놈아! 너 대장인 나한테 승락받지 않고 왜 그런 결심 했어?'라며 주먹질 한다면, 그놈 가슴패기를 쥐어 뜯으라구요. 그것은 뭐 의논할 필요도 없다구요. 그러면 그럴수록 좋은거라구요.
한 3년쯤 되게 되면, '내가 한 40명 정도 전도를 해서, 즉 믿음의 자녀들을 만들어 가지고 기동대 대장을 한번 해보겠다' (웃음) 왜 웃어요? 아, 3년에 그것도 못 해 가지고 뭘하겠어요? 다 집어 던지고 말아야지. 사내들이. 이거 보라구. 젊으나 젊은 녀석들이, 제일 귀중한 세월에, 청춘의 제일 알맹이 같은 이 귀중한 세월에 그것도 못 하고, 뭘하며 허송세월을 하겠다는 거예요? '3년이 되게 되면 틀림없이 기동대 대장 하나는 내 따 둔다' 그런 결심 정도는 이미 했으리라고 봅니다. 했지요?「예」 대답은 잘한다. (웃음) 정말 했어? 「예」 정말이야? 「예」 야. 이거 내가 놀라 자빠지겠구만. (웃음)
3년 이내로 그렇게 해야 된다구요. 자, 그렇게 되면 360개 기동대가 됩니다. (웃음) 360개 기동대가 된다면 40명씩 해서 360에 40을 하게 된다면 4곱하기 6은 24, 4곱하기 3은 12, 14,400명 기동대원 동원이 가능합니다. (판서하심) 몇년 동안에?「3년 동안에요」3년 동안에, 야! 그러면 한 도(道)에 몇 명씩이예요? 8개 도니까 한 도에 1800명이 되겠구만, 그러면 무슨 문제가 벌어질 거라구요. 그렇지요? 아침 저녁으로 동네 방네 메가폰을 들고 다니며 '여러분…' 아무개 부락. 김씨네 부락에서도 '여러분…' 하고, 이렇게 왔다갔다하며 떠들게 될 것이니 살지 못할 거예요. (웃음) 통일교회 때문에 큰일났다고 (웃음) 하게 될 거예요. 암만 그만두라고 해도 중지를 안 하고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들이 전부 다 노이로제에 걸리든가 미치든가, 그러지 않으면 죽든가, 그러지 않으면 통일교회를 믿든가 하는 거예요. (웃음)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국가 복귀는 문제 있다?「없다」 간단하다구요. 이거 말은 몇분 동안에 다 끝났지만, (웃음) 사실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예」
그래 적어도 3년 후에는 여러분들 각자가 기동대 대장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급변해 가는 이 정세를 대비해 가지고 방어할 수 없을 때가 될 것입니다. 또, 앞으로 선생님이 많은 사람들을 미국에 데려 가려고 합니다. 너희들, 미국 가고 싶어?「예」 가고 싶은가, 안 가고 싶은가?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전통을 기동대 대장 출신이 아니고는 안 데려간다 할 때에는? 1년 후에 대장이 되게 되면 미국에 가는 거라구요. (웃음) 웃을 얘기가 아니예요.
기동대 대장을 했으면 잘 생겼든 못 생겼든, 영어야 하든 못 하든, 영어 A자를 쓸 줄 모르더라도 좋다는 거예요. 미국에 데려가면 미국에서 새로 태어나는 거예요. 어머니 뱃속을 통하여 머리가 큰 30세 40세의 나이로 재차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절대 한국말을 못 하게 하고 순전히 영국 사람, 혹은 미국 사람들만, 영어로 말하는 사람들만 사는 데에 집어던지는 거예요.
밥을 먹으려면? (몸짓, 웃음) 식사 때가 되어 무슨 말을 중얼중얼하면 밥을 주거든.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중얼중얼하면서 밥을 달라고 하는 거예요. (웃음) 그렇게 배우는 거예요. 틀림없이 배우는 거예요. 아이들이 뭘 배울 때 그런다구요. 물이 먹고 싶을 때 쭉 (소리냄, 웃음) 이렇게 되면 이것이 물이라구요. (웃음) 그 다음에는 물이 먹고 싶으면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물' 하는 거예요. 한번 하면 갖다 주거든. 그래 편리하거든. 사람은 편리한 방법을 취하게 마련입니다. 그렇지요?「예」
아이들도 6개월이면 말을 배운다구요. 그렇지요? 그런데 너희들은 둔한 거야. 그렇지만 아무리 둔재라도 1년이면 말을 배운다구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그럼 됐지, 뭐 생긴 것을 가릴 것 있어요? 하기야 뭐 미국에도 벙어리가 살지요? 벙어리보다는 낫지요. 안 그래요? 눈치가 훤하고, 벌써 '딱' 하는 소리 알고 '찍' 하는 소리 알고 다 아니까…. 닭 소리, 쥐소리, 새 소리는 다 알아들을 줄 알잖아요. 그렇지요? 미국 새라고 다르지 않아요. 미국 참새라고 '꽥꽥' 우는 것이 아니라 '짹짹' 운다구요. 마찬 가지예요. 그러니 새 소리는 들을 줄 알고, 닭 소리도 들을 줄 알고, 소 소리도 들을 줄 압니다. 사람 소리만 못 듣지요. 그러니 친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구요. 벙어리보다 낫다구요. 그렇지요? 벙어리도 사는데 뭐…. 이렇게 되면 영어 배우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그럼 기동대 대장 출신이 아니고는 미국에 안 데려갈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고 싶어요?「예」 가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라구. 내리자구. 여자는 왜 안 드나?(웃음) 그때에는 기동대 대장의 마누라 되는 거라구.(웃음) 웃을 것이 아니라구요. 그러니까, 여러분 자신은 누굴 믿을 수 없습니다. 기동대 대장도 못 믿는 거라구요. 반장도 못 믿는 거라구요. 그들은 그저 매일같이 방망이질 하고, 매일같이 들떼리질 하게 되어 있지 동정 안 한다구요. 그래 믿는 것은 내가 낫다고 해야 돼요. '하나님! 나,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그러니 나에게 지독하게 기합을 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 사람이 저 사람이죠? 반장이죠?' 이래야지. 공부를 안 한다고 야단하면 '에이, 종일 나가서 전도했으면 됐지, 또 밤에 공부하라구. 사람이 잠자기 위해 살지 공부하기 위해 살아? 공부 하면 밥이 나와, 떡이 나와?' 이러면 안 된다구요. 그들이 그러는 것은 여러분을 빨리빨리 기동대 대장이 되라고, 출세하라고 재촉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마운 분들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결의하고, 이렇게 작정해 가지고 3년 후에는 이렇게 되기를 결심했는데 그것이 못 되면 안 되니까 그것 되라고 하는 권고요, 충동이구나' 이렇게 소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각오로 움직여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그런데 요전에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일주일에 한 사람씩 전도 못 하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일주일에 한 사람씩을 전도하게 되면 몇 명이 되느냐? 일년이 52주예요. (판서하심) 3년이면 156주, 156명 전도해야 됩니다. 그러면 기동대가 몇 개 되겠어요? 네 개에서 조금 모자랍니다. 조금 모자라도 그것은 네 개로 쳐도 괜찮다구요. 한 사람씩 모자라니까. 그렇지요?「예」 야, 3년에 기동대 네 개쯤 만들면 틀림없이 내가 미국에 데려갈 거라구요.
자, 이런 운동이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세계 사람들에게까지 퍼져 지금 경쟁이 벌어졌다구요. 기록을 내기 위해 달리고 있습니다. 그래 한국은 꼴찌 될래요?「아닙니다」 일주일에 한 사람씩 전도하겠다는 결심을 못 하게 되면 일년 동안에 한 사람도 전도 못 한다는 결과가 벌어집니다. 왜? 일주일에 못 하는데 일년이라고 하겠어요? 그러니 일주일에 한 사람씩 꼭 하라는 것입니다. 자, 요전에 계산했지요?「예」 하루에 열세 시간씩 90시간 잡아 보게 된다면, 하루에 열두 시간, 열세 시간만 하게 되면 일주일에 90시간이 넘는다구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루에 열세 시간이 문제입니다. 밥 먹고 전문적으로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눈뜨면서부터 잘 때까지 그 일을 위해서 싸워야 하는 병사입니다. 그렇지요? 「예」 죽어도 그 일을 못 하면 안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자기가 자기를 믿고 표준을 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그런 기준을 향해 달려갈 것을 하나님 앞에 결심해야 합니다. 내가 결심한 것이 100명인데 150명을 해 가지고 '하나님, 나 이렇게 했소. 모르겠소?' 하는 거예요. 100명을 결심했는데 150명을 해 가지고 큰소리로 기분 나쁘게 하나님을 대해 반말을 하면서 '하나님, 기분 나빠도 할수 없소' 하면, 하나님이 보시고 '이놈, 고얀지고' 그래요? (웃음) '야! 저놈, 저것 봐라'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웃음)
그 반면 100명을 결심했는데 그것을 못 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 사정이 이렇고 저렇고 이렇게 했기 때문에 요렇게 됐소' 하면 어떻겠어요? 그때는 아무리 공손하더라도, 아무리 공손하고 아름답고 묘하게 나타나더라도 하나님은 '이놈 사내 녀석이 결심했던 것을 하지 못한 것을 보면 그 이상의 일은 결심할 수 없을 것이 아니냐? 너는 여기서부터 물러갈지어다' 이러시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그 이상의 큰일을 못 한다구요. 그 이상의 일을 결심해서 할 수도 없고, 그런 사람에게는 그 이상의 결과를 나타낼 수 있는 길이라는 것도 없어요. 그러니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그 이상의 소망을 갖지 않아야만 되는 것이다.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만약에 백 사람을 전도하겠다고 결심했는데 불구하고 백 한사람을 전도하고서 '하나님! 할 수 없습니다. 백 사람을 결심했는데 요것밖에 안 되었소' 할 때에는 하나님도 '야. 저 녀석이, 저거, 저놈의 자식 같으니라고. 왜 그러느뇨?' 하고 보니까 한 사람을 더 전도했다는 거예요. 그러니 큰소리해도 용서하십니다. 한 사람만 더 전도하면 큰소리를 해도 용서받지만, 한 사람이 모자라게 될 때에는 '에이 이 녀석아! 큰소리하면서 나타났지만 한 사람이 모자라지 않느냐?' 하는 거예요. 딱 걸립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천지 차이가 벌어진다구요.
내가 만났던 한 사람이 전도 실적에 플러스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함부로 다루어 가지고 뺑소니치게 했다면 어떻게 되느냐? 그 한 사람이 내 앞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나는 하나님 앞에 원수가 되는 거예요. 그 한 사람을 소흘히 다룸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모든 공든탑을 한꺼번에 왕창 무너뜨리는 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심각한 문제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이제 여러분 각자 결심을 했지요?「예」 했어요?「예」 몇 사람씩? 「150명 하겠습니다」 정말이예요?「예」 쉽지가 않아요. 쉽지 않아요. 새벽에 눈을 비비면서 엉금엉금 기어 나가야 되고, 들어올 때에도 피곤해 가지고 기어 들어와야 합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래서 그 일을 완성했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그 이상 복된 자리에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겠지요?「예」 그러니까 여러분, 이것이 힘들어도 어떻게든 포기하지 말고 해보라구요.
내가 몇 퍼센트까지 갈 수 있는지 보자 해 가지고 그저 힘껏 해보는 거예요. 밤이나 낮이나 있는 힘을 다해 가지고 '나 이 이상 더 못 합니다. 하나님! 아무리 명령해도 하나님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할 만한 정성을 다해 가지고 한 주일 동안 기록을 내기 위해 노력해 보는 거예요. 밥도 안 먹고, 자지도 않고 새벽부터 눈물, 콧물, 입물까지 좔좔 흘리며 정성 들여 기도해 가지고, 하나님도 이 이상 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최대로 하면 얼마만큼 도달하나 한번 해보라구요.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한꺼번에 50명을 하루에 전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구요.
만약에 운동장에 운동하려고 온 사람들이 몇만 명쯤 있으면 메가폰을 들고 '당신들. 조금 기다려요' 하는 거예요. 그때는 여러분이 춤도 출 줄 알아야 돼요. 거기서 춤도 출 줄 알아야 돼요. (웃음) 쓱 나가서 재미있는 곡조도 한번 뽑을 줄 알아야 된다구요. 재미있는 유행가도 그때는 부르는 거라구요. '여러분, 이렇게 기분 좋은 날에 파장이 제일 멋져야 재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 내가 이 파장에 한번 원맨쇼를 하겠습니다' 해 가지고 쓱 노래가락으로 해치우는 거예요. 그것도 할 줄 알아야 된다구요. 아리랑을 '아리랑 아-리랑…' 하는 그 포즈에 와스스 하던 전체가 '원맨쇼를 한다는데 들어 보자' 하며 다시 앉게 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몇 곡조를 뽑고, 그 다음에는 재미있는 얘기도 하고, 춤도 추라는 거예요.
그런 다음에 '자 이것은 서곡이요, 장을 보는데 이것은 아침 장이요, 이제 본장으로 들어갑시다' 그러고는 '여러분!' 해 가지고 그저 눈이 이만큼 커져 가지고 깜짝 놀라 벌렁 나가자빠지게 하는 거예요. (웃음) 그래 가지고 분위기를 새로이 수습하는 거예요. 노래할 때의 기분으로는 안 되거든요. 그 다음에는 기관포를 들이 쏘는 거예요. '이 나라는 망하게 됐다. 청중 여러분이 이렇게 운동을 하는 것도 좋고, 이런 청중이 모여 즐거워하는 것도 좋지만, 이 시간에 북괴는 이러한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남한은 이래 가지고 안 되겠다. 젊은이들이 일어나 가지고 새로운 조국을 불러일으켜야 할 때가 됐다'고 하며 눈물을 흘려 보라는 거예요.
이때에는 여자들이 실속 있다구요. '아! 사랑하는 형님, 누님, 부모, 자매들이여!' 이러면서 들이 죄기는 거라구요. 눈물을 흘리면서. 사람은 눈물에는 강하다?「약하다」 알기는 아누만. (웃음) 사람은 눈물에는 약한 거라구요. 내가 엉엉 울게 된다면 그들은 조금 운다는 거예요, 따라가겠다고. 이때 여러분은 조금 울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저 목이 메어 가지고 호소하게 된다면 거기에서 일시에 몇백 명도 내편이 될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런 것도 할 줄 알아야 돼요.
선생님도 옛날에 그런 일을 많이 했어요. 노방전도도 많이 해보고, 뭐 다 해보았습니다. 어디 술 먹는 좌석에 쓱 들어가서 '술잔을 들고 있는 할아버지가 술을 마시지 못하고 술잔을 떨어뜨리게 해보겠다'고 해 가지고 그 실험에 성공한 일도 있습니다. 내가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요. 그럴 때에는 삼국지라든가 춘향전의 좋은 장면을 골라 얘기해 주는 거예요. 이런 일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지금 우리 통일교회 체제에 있어서 아주머니들이 3년 동안 나가 일을 하는데 본부에서 얼마씩 도와줍니까?「천 원요」 천 원, 한 달에 천 원씩 도와줍니다. 그런데 5천 원 도와주면 위법이예요, 정법이예요?「위법입니다」 4배를 도와주니, 한 사람이 네 사람 몫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남편이 얼마나 도와줍니까? 「2천 원요」2천 원을 도와주니까, 남편들이 꼬박꼬박 보내 오는 전액을 틀림없이 다 받고 사는 기준으로 석 달동안은 본부에서 3천 원씩을 지불할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자립하라는 거예요.
자립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전부 다 기동대 대장이 돼 가지고 자립할 수 있는 전통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를 뭘로 세워요? 통일교회는 돈 많지 않습니다. 알겠어요?「예」 세계를 향해 쓸 돈이 많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자립할 수 있는 전통을 어떻게 세우느냐? 한 7개월쯤만 끌고 가게 되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선생님의 관입니다. 알겠어요?「예」
그 대신에 본부에서 벌어 쓸 책자를 대주겠어요. 제목이 '한국전쟁'인데, (판서하심) 이것을 동아방송국에서 특집프로로 방송했어요. 그게 상당히 많이 팔리리라 보고 있습니다. 그 책을 파는데 그 와리(할당율)를 보면, 저작자가 4퍼센트, 인쇄소가 20퍼센트 가량, 출판사가 30퍼센트 가량, 책을 파는 사람, 소매상이 30퍼센트 가량, 나머지 20퍼센트 가량은 도매상이 배당받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것을 전부 우리가 하면 어떻게 되느냐? 여러분들에게 원가로 나눠 줄 것입니다. 원가보다 조금 비싸게 나갑니다. 기부하는 책, 나눠 주는 책들이 많기 때문에 원가에 그 비용을 첨가해서 나눠 주려고 합니다. 그러면 몇 권이 나오느냐? 아홉 권입니다. 아홉 권인데 13,000원에 팔면 됩니다. 한 권에 얼마냐? 얼마인가? 천원? 천원이 넘지요? 천 오백원 정도 됩니다. 이것을 원가로 계산하게 되면 그 절반 가량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 사흘에 한 권을 팔아도 먹고 삽니다. 알겠어요? 나흘에 한권 팔아도 먹고 삽니다. 하루에 150원이면 삽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니까 문제없습니다.
판매 시간을 딱 정해 가지고 저녁이면, '저녁 때에 하자'고 해서 판매하는 거예요. 하루 종일 전도하러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한 명도 전도를 못 해서 '어휴' 이러고 있을 때에, 저녁에 한두 시간이라도 나가서 딱 한권이라도 팔게 되면 힘이 나는 거예요. 미국에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올 때에, 두 달치의 책값을 전액 지불하고, '다음달에는 절반을 보내 줘라'고 지시하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나서서 하던 일을 위신상, 체면상 그만둘 수 없는 거예요. 그렇겠지요?「예」 안 할 수 없다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여러분에게 장사하는 법도 가르쳐 줘야 되겠습니다.
왜 그러느냐? 여러분은 어디에 가든지 자기 직업, 보급로가 언제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어디에 가든지 한두 사람쯤 먹고 사는 것은 문제없다. 두 세 시간 일하면, 다섯 명은 먹고 산다'는 이러한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또, 장사를 잘하는 사람이라야 전도도 잘하는 거예요. 심리 분석을 해보면 그래요. 다방면으로 그것이 유리합니다.
자, 이런 것을 알고, 저기, 기동대 대장들. 정신차리라구. 알겠지?「예」 지금 여러분들이 생짜들이라 그 일을 시키면 안 되겠으니 훈련시켜 나가면서 이런 것을 차츰차츰 준비해 가지고 자립할 수 있는 전통을 만들어 놓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걸랑, 우리 통일교회의 기동대를 통하여 남북한을 통일시키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이것이 가능하냐, 가능 안 하냐? 가능하게 될 때에는 이 나라와 이 민족을 해방시키고 남을 수 있는 전통적 기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또, 이것이 성립되게 되면 한국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세계 도처 어느 곳에서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실증적 증거가 됩니다. 그때 너도 나도 할것없이 각국 나라에 '이렇게 하라'고 명령하게 되면, 못 한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볼 때, 한국은 제일 어려운 나라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한국에서도 했는데, 그 이상의 나라 백성들이 못 한다는 말은 절대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럴수록 하늘나라, 하늘의 세계는 빨리 복귀되어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왜 안 하겠느냐는 거예요. 안 그래요?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장사를 하더라도 우리는 하늘을 보여 주고, 하늘을 위해서 하는 거예요. 모든 일체는 이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런 결심을 통해 각자가 기록을 정해 가지고 최고의 노력을 해봐서 '나는 어느 정도의 역량이 있구나' 하는 것을 자기가 알아야 됩니다. 나는 이 정도까지 할 수 있구나' 하는 한계점, 하나님도 그 이상은 하라고 할 수 없는, 자기에게 있어서 최고의 경계선까지 몇개월 동안, 적어도 3개월 동안은 노력해 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3개월 동안은 지금 통일교회의 기준에 안 맞는 돈을 여러분들에게 지출할 것입니다, 지금 아주머니들도 나가서 전도하고 있지요? 3천 원을 가지고 전도하는데, 여러분들이 못 할 것이 뭐가 있느냐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유리하다구요. 각 교회에서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기동대가 왔다고 부흥회를 하게 되면 교인들이 있어서 여러분들에게 떡도 해주고 먹을 것이 생긴다는 거예요. 낫다구요. 아주머니들은 매일같이 그 자리에 엎드려 있기 때문에, 이건 뭐 생기는 것도 없다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여러분은 유리한 입장에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3개월 동안만은 여러분 각자의 실력을 중심삼아 가지고 최대의 한계선까지, 내가 얼마만큼 실력을 갖추었느냐 하는 것을 한번 테스트해 보라는 거예요. 이런 의미에서 3개월은 본부가 책임지고 이러한 우대를 해서 지출하겠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라구요. 알겠어요?「예」 이래 가지고 전도하게 될 때에, 척 사람을 보면 알 수 있으며, 그 다음에는 장사도 어렵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까 단단히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더라도, 식기에 밥이 가득 담아 있게 되면 이제부터 3개월 후에는 5분의 2가 줄기 때문에 5분의 2를 제해 버린 5분의 3을 먹고 만족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라는 거예요. 그래야 될 것 아녜요? 그래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무엇이든지 절약할 줄 알아야 돼요. 최고로 절약해서 얼마 가지고 살겠느냐? 이런 훈련을 최소한 3개월 동안은 각자 기록, 자기 스스로의 최대 한계점까지 해봐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게 해 가지고 어떻게 되는가 보자 이거예요.
자, 석 달 동안이 선생님은 참 궁금합니다. 궁금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여러분이 '나는 이렇습니다'라고 하늘 앞에 보여 줌과 동시에, '우리는 이렇다. 하늘 길은 이렇게 가는 것이다. 밤이나 낮이나 개의치 않고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다'는 것을 이 민족 앞에 보여 줘야 합니다. 그래서 '나라와 민족을 해방하기 위해 이렇게 간다'고 하는 것, 이것을 삼천만 민족이 전통적 사상으로 이어받게 된다면 김일성은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기 위해 여러분이 새로운 결의를 하고 노력을 해 가지고 하늘 앞에 제시한 그 기준을 중심삼고 활동하여 하늘을 보여 주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좋다는 것을 공인받음으로 말미암아 대중이 여기에 흡수되어 하늘의 국민과 국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알겠지요?「예」 자, 기도로써 폐회하자구요.
사랑하는 아버님! 저희들이 10일간의 색다른 수련 기간을 갖게 된 것은, 저희들이 소원하였던 바는 아니었사옵니다. 하오나 아버지께서 오랫 동안 수고하시어서 이와 같은 기간을 설정해 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지, 이 시간도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동대원들이 어떠한 초야에, 혹은 어떠한 장소에 머물러서 한국에 편성되는 기동대원 소식을 듣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날 통일교회는 민족적인 통일교회가 아니라 세계적 통일교회임을 느끼며, 이런 권한을 맞을 수 있는 시대적인 총아로서 불러 주신 아버지 앞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희들은 죽으나 사나 일체를 아버지께서 보이고 싶었던 사람의 인격을 가지고 나타나야 되겠고, 아버지께서 거두고 싶었던 결과를 아버지 앞에 보여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 책임이 저희에게 있기 때문에 이제 각자는 자기 스스로의 한계적인 결의를 하여, 기록을 작정해 가지고 3개월만이라도 최대의 역량을 발휘하여 '나는 이러한 사람이오' 할 수 있는, 그 기간에 아버지가 동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결과적인 인연을 기필코 가져오고야 말겠다는 신념을 갖고 하늘 앞에 출발하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곳을 떠나면 어떤 곳에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사옵니다. 다시 만나는 날까지 하늘 앞에 영광을 드러내고 금의환향하는 승리자의 모습으로 상봉할 수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사옵니다. 아버지여, 다시 만날 때까지 어떤 사정의 변화가 있더라도 늘쌍 아버지께서 이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더더우기나 아버지께서 이들의 건강을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이들이 건강한 몸을 지니도록 아버지께서 품으시고 보호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 기동대를 편성하여 출발함과 동시에, 이 6월이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7월, 8월은 염천의 기간이오나 그 기간에 저희들은 온갖 정성을 더하여 연마하겠사오니,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내 스스로 이겨낼수 있는 자주력을 지닌, 역량있는 당신의 아들딸로서, 용사로서 부족함이 없는 자리에 세워 주옵소서.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민족과 이 나라 앞에 새로운 환희의 환성을, 환영을 받을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고, 가는 곳곳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직접적으로 주관 지도하시어 당신이 계신 것을 보여 주는 능동적인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체를 당신께서 맡으시어 지도하시옵고, 지켜 주시옵기를 부탁드립니다. 영광과 존귀와 사랑이, 흩어져 나가는 이 무리들에게 길이길이 같이 하기를 바라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통일교회 기동대 만세하자구. 통일교회 만세라고 할까? '통일교회 기동대' 하면 다 들어간다고. 통일교회 기동대 만세! 만세! 만세! 「참부모님, 만세! 만세 ! 만세 !」 잘 싸우자구. (박수)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2년 6월 1일, 이해를 맞이해서 여섯번째 맞는 달의 첫날이옵니다. 이 아침 위에 당신이 자비와 긍휼과 사랑으로 같이하시옵소서.
전국에 널려 있는 어린 자녀들이 새로운 달을 맞이할 적마다 성지에 집합하여 이달이 복되기를 축원하는 이 아침을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가운데 맞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들이 머무는 곳곳마다 당신의 가호가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오늘 이 아침은 어린, 젊은 기동대원들이 새로이 출발하는 날입니다. 역사적인 사명을 앞에 놓고 판가리를 지어야 할 사명이 보잘것 없는 이 통일의 무리들 위에 짊어지워져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님께서 역사시대에 참고 나오시던 모든 소원의 한 표준이 오늘날 자신들과 더불어 성취되어야 된다는 엄청난 사명이 있는 것을 절감하면서, 삼천리 반도를 향하여 힘차게 진군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높고 귀하신 그 뜻이 낮고 천한 이 땅 위의 이 무리들에게 연결시켜질 때까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당신의 수난길이 엇갈려 있었다는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개인을 찾기 위한 오랜 역사의 노정 속에 당신의 슬픔이 얼마나 컸으며, 가정을 세워 놓고 당신이 소원하시는 종족과 민족과 나라를 그려 오는 싸움의 길이 얼마나 고달펐겠는가를, 아버지여, 수십여 년의 통일의 통해서 너무나도 절감하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저희들은 가다 말고 하늘을 원망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든지 최후의 정상을 넘어서서 '하늘이여 영광되옵소서. 하늘이여, 당신의 권위를 세워 만피조세계를 주관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은 당신이 소원하시던 본래의 뜻을 성취하시어 해원 성사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라고 있나이다.
인간은 타락의 권내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연약하고 습관화되기 쉽고 상습적인 생활이 되기 쉬운 것을 잘 아시는 아버지여, 믿어야 할 인간인데도 본연의 뜻을 앞에 놓고 믿을 수 없는 인간을 가려 나와야 하는 그 고달픔이 얼마나 처참하고 불쌍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각케 되옵니다. 믿을 수 없는 인간을 믿어야 되고, 안심할 수 없는 인간들 앞에 맡기고 바라보시는 아버지시여, 직접 개재할 수 없는 복귀의 행각의 노정을 원리에 입각해서 처리해 나오시는 아버지시여, 그렇게 고달프고 그렇게 비참하였던, 하늘의 입장과 뜻을 대하는 사람의 입장을 저희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하옵니다.
역사에서 패자의 서러움을 맛보게 하고 하늘에 한을 안겨 주었던 그러한 무리들을 저희들은 다시 회상하면서, 이 시대에서만은 맡겨진 당신의 사명과 바라시는 당신의 소망앞에 일치되지 않는 자리에 서지 않겠노라고 몸부림치는 무리들이 이 땅 위에 있다고 한다면, 그들은 보잘것없는 통일의 무리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1960년도부터 지금까지 엮어 오다 1972년을 맞이하였습니다. 만 12년을 지내고 13년을 맞이한 이 해 위에 당신의 새로운 역사의 인연이 연결되어야 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이 21년 기간을 통하여 역사적인 정상을 다시 가려야 할 탕감복귀노정인 것을 생각할 때에 오늘날 종적인 면을 횡적으로 전개시켜 탕감복귀하여야 할 역사적인 엄숙한 숙명의 과제를 짊어지고 있는 무리가 세계에 널려 있는 보잘것없는 외로운 통일의 무리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을 일깨우시고 저희를 불러 인도하시는 아버지의 고달픈 사정을 저희들이 생각해 볼 때에, 인간은 하늘을 동정하지도 못한 것을 아옵니다. 하늘을 위해 충정의 절개를 가지고 최후의 전선을 지켜서 하늘 앞에 안위의 안식처를 마련해 드리겠다며 몸부림치는 무리, 생명을 잃는 자리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타개해 갈 수 있는 무리가 많지 못한 것을 저희들이 생각하게 될 때, 언제나 자기 자신권내에서 주관받는 것이요,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아 구속되어 버리는 것이 타락한 인간들의 상례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지여, 저희들만은 예외적인 본향의 무리로서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남이 가는 길을 이미 배척하고 나섰고, 남이 바라는 소원을 저버리고 이미 돌아선 자리에서 새로운 소원을 품고 나왔습니다. 엇갈리는 수난길을 보람 있는 생명의 길로 이어받은 그날부터 엄숙한 싸움의 길을 더듬어 나오던 이들이옵니다.
그 과정에 있어서 혹자는 약하게 되고 혹자는 주저하며, 하늘 앞에 슬픔을 남기고 떨어지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혹자는 하늘을 시험하는 자리에서 한 해, 다음 해 자기의 귀한 청춘시대를 걸어 놓고 기다리는가 하면, 혹자 중에는 자기의 모든 정성을 다 바쳐 가지고 하늘을 위하여 미칠듯이 몸부림치는 충효의 아들딸들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이여, 여러 군상이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람들을 믿지 마시옵소서. 당신의 사랑의 마음 앞에 위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많은 무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 생명이라도 간곡히 아버지의 마음을 부여안고 자녀의 모습을 다짐하면서 당신의 심정을 자기 아픈 가슴 이상의 심정으로써 대치하여 가지고, 천만 수난길을 홀로 책임지고 맞아야 할 채찍을 달갑게 맞기 위하여 머리를 숙이고 몸을 구부려 나서는 모습이 하나라도 있다 할진대, 거기는 하늘의 소원이 깃들 수 있고, 하늘이 소망을 다시 추구할 수 있는 자리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 모인 어린 자녀들이 그럴 수 있는, 전통적 절개를 지킬 수 있는 하늘의 효자 효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라 없는 저희들은 아무리 부모의 사랑을 받고 아무리 부모 앞에 효성을 다한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 악당의 손길이 펴지게 될 때는 파탄될 수밖에 없는 비참한 섭리의 운세권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하오니 부모 앞에 효의 도리를 따라 나라를 맞이하여야 할 사명이 저희 들에게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자나깨나 잊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 원수의 주권과 나라를 바라볼 때, 원수의 무리들이 그 쇠한 모습을 가지고 하늘이 없다고 울부짖는 이런 세계적인 정상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저희는 손에 손을 잡고 다짐하면서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온갖 힘을 집중시켜 가지고, 전진에 전진을 하라고 호령할 수 있는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시어 힘써 나오신 아버지시여, 이 나라를 버리지 마시옵소서. 저희들만으로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습니다. 하늘이 협조하여 주고 하늘과 더불어 일치되어야만 에덴의 이름을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이 나라의 운명을 당신이 책임져 주셔야 되겠습니다.
6월 초하루를 맞을 적마다 저희들은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에 있었던 6.25동란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때에, 이 나라 이 민족이 처참하였던 모든 것은 이 민족이 하늘을 배반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지 못하였기 때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부족하고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로 하늘을 슬프게 한 그 보응의 결과가 이 나라의 탕감의 증상으로 나타나게 되어 비참하고 눈물어린 역사의 날을 남기게 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슬펐던 과거의 수난길에서 수많은 백성이 상해를 입어야 했던 것은 하늘 앞에 잘못하였던 과거를 청산짓게 하기 위한 아버지의 채찍질이었음을 아옵니다. 그러나 아버지, 그것은 온 세계를 대표해서 하늘 앞에 제단을 쌓아 올려야 할 기독교가 책임 못한 때문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저희들이 홀로 다짐하며 나오던 외로운 이 길을 수습하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이 가인적인 제단 앞에 아벨적인 제단을 쌓아 올렸사오니 여기에 주인은 아버지가 되시옵소서. 여기에 아버지의 간곡한 심정에 불타는 마음을 연결하시옵소서. 최후의 싸움터를 정비할 수 있는 하늘 정병의 모습을 아버지께서 고대하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가 하늘의 병사가 되고 군관이 되게 하시어서, 최후의 전선을 직시하며 원수가 패망의 슬픔을 맞는 그날을 위해서 전진에 전진을 가하여야 할 역사적인 사명이 저희 앞에 촉구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러한 세계사적인 사명의 촉구에 의해 세계적으로 이루어 놓은 기동대를 아버지께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미국에 있는 당신의 어린 아들딸들, 혹은 영국에 있는 아들딸들, 독일에 있는 아들딸들, 일본에 있는 아들딸들, 이제 의의 길을 떠나고 있는 당신의 이 어린 자녀들을, 아버지, 지키시옵소서. 이들이 밝아 오는 조국의 광명한 새아침을 마음으로 그리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패운의 슬픔 가운데 쓰러져 가는 역사적인 사탄의 운명과 악의 옛 도성을 바라보며 하늘의 영광의 존전을 찬양할수 있는 승리의 성벽을 쌓고, 영광의 개선가를 온 천주와 아버지 앞에 드높이 봉헌해 드릴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6월 초하루를 맞이하였사오니 이제 이 한 달을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달에 복잡한 사건들이 있다 할지라도 하늘의 뜻을 중심삼고 주류적인 원칙에 의해서 이것을 수습할 수 있는 이달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고, 하늘의 최대의 염원을 이 나라로부터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수 있는, 기억되는 이달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1972년을 중심삼고 보면 6월은 이제 정상을 넘어서는, 7월을 향하는 경계선이기도 한 일련의 최후의 달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전반기에 있어서 마지막 달을 맞는 첫날 이 아침에 아버지, 복을 빌어 주시옵소서. 여기에 저희들 소수의 무리가 참석하였사옵나이다. 혹자들은 성지에 참석한 어린 자녀들도 있을 줄 알고 있습니다. 뜻을 위하여 미칠듯이 시간을 점령하고 끝날이 되면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였사옵니다. 모이기를 꺼려하는 무리들은 반드시 떨어지기 쉽사오니, 뒤에 따라오기 힘든 그런 길을 가고 있는 저희들이 이 시대에 있어서 일치단결하여 시대적 사명이 촉구하는 바의 자극을 느끼면서 모이기에 힘쓰는 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의 길에는 많은 사람이 출발하였지마는 최후의 골인은 소수의 무리가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통일교회의 운세에 따라 가지고 출발한 저희들이 그 운세의 인연을 받아서 천천만 성도들과 천추의 역사노정에 빛날 수 있는 승리의 기점을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 무리는 많은 무리가 아니고 소수의 무리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끝까지 견디는 자라야만 아버지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옵니다. 하오니 먼저는 여기에 서 있는 아들로부터, 이 뜻을 따르고 있는 수많은 형제자매들까지 끝까지 참고 남아지는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흘러가는 세월 앞에 뒤따라 흘러가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고, 환경에 에워싸여 거기에 품겨 밀려 나가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저희가 알고 있사오니, 저희 스스로 하늘과 더불어 보조를 맞추고 어떠한 난관이 부딪쳐 오더라도 전면적으로 직행해 나가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삼천리 반도를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남한의 삼천만 민중이 일치가 되어서 하늘을 추앙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봉화를 드높이 들어 어둠에 있는 무리들을 깨우쳐야 할 사명이 저희 앞에 있사오니, 아버지,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이달부터 시작하는 기동대들 위에 불을 붙여 주시옵고, 생명의 불자국을 그 마음으로 튕기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혁명으로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말씀으로 이것을 선포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말씀이 아버지의 직접적인 창조의 능력의 말씀이 되시게 하시옵소서. 듣는 귀를 깨우치고 그 마음의 본성을 일깨워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 제단 앞에 자기도 모르는 눈물과 더불어 속죄의 제물로서 봉헌할 수 있는 인연들이 횡적으로 벌어지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해지는 소식들을 듣고, 보고되어지는 내용들을 접할 적마다 당신이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그렇게 해주시기를 바라옵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금후에도 당신이 놀랍게 역사하여 주셔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 한 달을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오니, 부디 이달이 아버지 앞에 자랑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무리들을 밟고 선한 무리들이 승리하는 달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담 해와를 짓던 6일을 탕감할 수 있는 달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오니, 부디 이달이 승리의 달이 될 수 있게끔 인도하여 주시옵시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아버지, 전체를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타락한 인류를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인류시조가 타락한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 섭리의 노정이 귀결되어 하나의 종착점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고 나오시는 입장이요,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오던 우리 선대 조상들이 고대하던 입장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이것은 선을 추구하는 수많은 사람들한테 고대되어 나오던 입장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서 그것이 하나의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기준까지 고대되어 나오던 입장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소망의 터전이 되어야 할 민족 앞에 하늘은 이것을 총체적으로 결산짓기 위해서 보내신 분이 있었으니, 그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 그 입장은 예수 그리스도 개인만을 중심삼은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는 그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개인적인 자리임과 동시에 그 시대에 있어서의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대표한 자리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 시대 전체를 대표한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의 중심이 됨과 동시에 만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이었음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분의 자리는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이스라엘을 남겨 오던 전체 소원의 입장을 대표한 자리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가 연결되는 미래의 세계에 언제나 중심의 한 터전으로 남아져 가지고 그 중심과 더불어 일치되는 자리를 연결시키지 않고는 하나님이 임재할 수 없는 중심적인 자리도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듯 예수가 소망하던 것은 로마를 정복하고 세계를 하나님의 뜻 앞에 봉헌하기를 바라던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라는 것은 예수 자신이 상상할 수도 없었던 뜻이라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듯 소망하던 그 예수의 뜻이 그 민족과 더불어 혹은 유대교와 더불어 하나되어 가지고 이루어져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도리어 이것이 서로 엇갈린 자리에서 유대교는 유대교대로, 이스라엘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대로, 예수는 예수대로 나뉘어짐으로 말미암아 비참한 결과가 초래되었다는 것을 오늘날 그 어떠한 신자들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하나님만이 알았고, 예수님 이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연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를 사랑하고 예수를 길러 준 마리아면 마리아, 부모면 부모, 형제면 형제들이 그 예수의 슬픔을, 예수를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는 그 내적인 슬픔을 알고 있었느냐?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있었지만, 예수가 품고 있는 내정(內情)의 뜻을 알고 길을 닦아 주며, 그가 당할 수난의 길이 있으면 먼저 그 수난의 길을 가려가며 그 수난을 방지해 주려고 한 부모였느냐 하면 그러한 부모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형제가 있었느냐? 그러한 형제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교회나 혹은 나라가 있었느냐? 그러한 교회도 나라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마저 그런 입장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그 외에는 일체의 누구도 예수의 입장을 지켜 줄 수 있는, 그가 당하여야 할 수난길과 해결해야 할 어려운 길을 책임지고 대신해 줄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를 따르고 있던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 수제자들마저도, 즉 지상에 제1차적인 소망의 터전을 희망하면서 3년 동안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길러 나오고 인도해 나오던 제자들마저도 예수를 배반하는 입장에 섰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인간세상에서는 예수가 당하고 예수가 느끼고 있는 그 내정을 안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에 예수를 보낼 때, 죽기를 바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준비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와 더불어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통일적인 무리를 갖추어 가지고, 온 세계를 대표하여 승리의 환성과 더불어 하늘의 개선가를 봉헌해 드려야 할 입장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맞아야 할 백성을 잃어버리고, 교회와 가정과 형제를 잃어버리고, 더더욱 이나 제2의 소망으로 세웠던 제자들마저 전부 다 잃어버리고, 생각지 않은 십자가의 운명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예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비참했겠는가 하는 것을 여기서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죽음길을 가는 예수 앞에 그 누구도 그의 사정을 알아줄 수 없는 입장이었는데, 하늘이 있다면 하늘은 예수의 사정을 알아줄 수 있는 입장이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하늘이 그 사정을 알아줄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그런 자리에 서게끔 보낸 것이 아니라 그런 죽음의 길을 당해서는 안 되는 입장에서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런 예수가 반대의 결과로 나타나는 그런 면을 대하는 하늘은 진심으로 예수를 맞아줄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최후의 울부짖음인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이 말씀에는 지극히 비참한 내용이 숨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스며드는 고통, 그 고통과 더불어 북받쳐 오르는 한의 사무침은 자기 부모에게 미쳐질 것이고, 자기의 친척과 이스라엘 교단과 이스라엘 나라에 미쳐짐과 동시에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제국에 미쳐질 수 있는 것이 되었지만, 그것을 전부 자기 스스로 제압해 버리고 잊어버려야 할 예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늘 앞에 책임 못 하고 가는데 대하여 부끄러움과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버리시는 하늘의 마음을 도리어 동정을 하면서, 버리지 않을 수 없는 아버지의 내정까지 생각하며 하늘 앞에 버림받는 자신을 다시 한 번 반성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늘이 자기를 생각해 주는 일면을 느낀 예수는 자기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하늘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하늘이 자기를 버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지만, 즉 형제들과 이스라엘 교단과 이스라엘 나라와, 로마제국으로부터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자기의 입장을 그래도 하늘이 기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예수는, 그 환경에서 그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운 입장이 아닐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자기 하나를 중심삼고 해결될 문제가 사방으로 엇갈려 있었기 때문에, 하늘의 동정을 바라기보다는 도리어 하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런 예수는 누구보다도 고독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이 통일교회와 예수…. 역사적인 기독교는 따로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와 예수님, 예수님과 우리 개인 개인들을 비교해 볼 때, 시대적인 사명으로 보아 우리 자신들은 어떠한 책임을 가졌느냐?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간 예수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할 책임이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의 입장을 해원성사해 드려야 할 책임을 하지 못하겠거든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 앞에서 알아주지 못하던 그 마음이라도 해원성사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자체의 입장은 못 되더라도 제자의 입장에는 서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혹은 제자의 입장이 못 되거들랑 지금까지 믿어 나오던 기독교인들 이상의 자리에는 서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돌아보게 될 때, 그 당시 고독한 자리에 섰던 예수, 지극히 절망적인 입장에 섰던 예수와 그의 한을 해원성사해 드려야 할 우리 입장을 두고 볼 때, 예수의 자리를 탕감해 드릴 수 있는 내가 되어 있느냐? 아니면 제자의 입장에서 탕감해 드릴 수 있는 어떠한 자세라도 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유대교의 한 교인으로서 예수의 입장을 해원성사해 드릴 수 있는 입장이라도 되어 있느냐? 아니면 이스라엘 나라의 한 백성으로서 예수의 입장을 이해해 주고 예수가 소원성취하는 데 있어서의 책임을 질 수 있는 우리가 되어 있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대관절 우리의 책임은 어떠한 자리에서 해결지어야 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예수의 입장을 내가 대신 해원성사해 드리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질는지 모르지만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예수 이상의 자리에 들어가지 않고는 해원성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슬픈 사람이 있다 할 때, 즉 아들이 죽어서 스르르 눈물을 흘리는 사럼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겠느냐? 아들딸이 죽지 않고 다 살아 있고, 그 아들딸을 사랑해 주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을 위로해 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한 아들이 죽어서 눈물 흘리고 있는 어머니가 있으면, 그 어머니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들 둘, 셋을 한꺼번에 잃은 입장에서 슬픔을 느끼는 부모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 부모 앞에서 아들 하나 잃어버리고 슬퍼하는 부모는 위로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들 하나 잃어 버리고 슬퍼하는 그 부모 이상으로 남편까지 죽거나 일가족이 몰살하여 홀로 남은 여인이 있다면 그 여인은 당당히 그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아들 하나 잃어버리고 슬퍼하지만 나는 둘을 잃지 않았소! 나는 셋을 잃지 않았소! 그뿐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까지 잃어버리고서도 이렇게 살아 나가고 있는데 뭘 그러우?' 할 때에 '당신은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항의할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은 그 이상의 슬픔과 비통을 당한 사람이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를 위로해 줄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이 세상에 있어서 상례로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를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시대적인 탕감의 역군이 되겠다 하는 생각을 가진 우리라 할진대는 오늘날 여러분이 자식을 가지고 모든 것을 이끌어 가는 환경에서 '당신은 이렇게 슬펐으니 내 슬픈 것을 풀어 주시옵소서' 하고 아무리 기도해도 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밖에 결론지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 아니냐?
그러면,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입장을 해원성사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 베드로면 베드로, 야고보면 야고보의 입장을 탕감 해원성사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 혹은 마리아 요셉과 같은 입장, 그의 친척이나 그 시대의 교인 한 사람,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해원성사해 줄 수 있는 입장에 있느냐? 그 중에 어느 급에 처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구요.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해야 할 책임은 무엇이냐? '아! 예수가 남겨 놓은 일을 해야지 ! 그가 소원하던 것은 개인복귀요, 가정복귀요, 종족복귀요, 민족복귀요, 국가복귀요, 세계복귀이니 그 소원 일체를 내가 탕감 해원성사해 드리면 좋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은 응당 너나할것없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내적인 슬픔을 풀어 줄 수 있는 터전을 닦기 전에는 아무리 개인복귀를 했다 하더라도 그 개인복귀로는 그 대상을 통해서 그의 내적인 슬픔을 풀 길이 없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가정을 외적으로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의 내적인 슬픔에 동참해 가지고 그 이상의 비참함을 체휼하지 않은 사람은 그의 한을 풀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지금의 때는 어떤 때냐? 지금은 종족으로부터 민족을 이끌어 가지고 넘어가야 할 때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그 당시에 있어서 유대교 앞에 몰리던 입장을 다시 탕감하여 가인적인 유대교 일당을 대하여 아벨적인 예수의 일파가 하나되어 가지고, 가인 아벨로서 탕감복귀할 수 있는 시대적인 자리를 이어받은 때가 오늘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3년노정을 중심삼고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예수의 일파와 유대교가 합하는 역사적인 사명을 재현시킨 자리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것이 현재 통일교회가 이어받은 책임을 짊어진 자리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현재의 통일교회의 아벨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것도 좋고, 기성교회와 인연맺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겠지만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내적인, 심정적인 기준을 가지고 유대교를 대하던 예수님의 비장한 심정과 그들의 반박을 받던 고충된 심정을 어떻게 여러분이 다시 재현해 가지고 체휼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전체, 근본 탕감을 해드리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오늘날 이러한 시대적 환경에 서서 유대교와 예수의 일파가 탕감복귀되기를 바란다면, 예수를 위주해 가지고 그것이 재현되기를 바라지 예수를 남겨 놓은 주위에서부터 재현되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우리들의 책임이라는 것은 심각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대하는 유대교를 대해 가지고 '화 있을진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여…' 하고 7화(禍)의 저주를 퍼붓던 예수의 사정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던 때와 엇갈린 결과에 처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여러분들도 이러한 자리에 선 것이 아니냐? '화 있을진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라고 저주의 말을 퍼부을 수 있는 자리에 선 예수의 입장이라는 것은, 마음 세계에 있어서 그 누구도 그려 갈 수 없는 갖은 수난길을 극복해 나온 자리에 서 가지고, 다만 예수 홀로 하늘을 위해 있고 하늘을 위해 나오는 그 터전을 완전히 이어받아야 할 유대교가 반대의 입장에서 하늘의 터전의 중심인 자기 자신을 여지없이 몰아내게 될 때에 하늘의 슬픔이 사무치는 것을 느끼는 자리였습니다. 그러한 예수가 자신의 슬픔 때문에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슬픔을 염려하는 입장에서 7화(禍)를 퍼부은 것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염려하고 하늘을 사랑하는 의미에서 '화 있을진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한 말은 하나님을 옹호하기 위해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효성의 도리를 다 하고자 하는 예수에게 있어서는 당연히 있을 수 있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의 뜻이 남아질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정지되는 과정에서는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이 정지되는 마당에서 당한 십자가의 최후에 있어서 '화 있을진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했다면 모든 것을 다 끊어 버리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뜻이 남아지는 자리가 아니라고요. 뜻이 결단을 봐야 할 입장에서 예수가 '내가 천만번 죽더라도 뜻을 남겨야 할 것이 나의 책임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감안하게 될 때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불쌍한 처지의 예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구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예수보다 나은 자리에 서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보다도 외적인 면에서는 나은 자리에 선 우리가 진정한 의미에서도 예수를 능가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예수를 능가할 수 있는 자격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그 당시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편답하던, 즉 전도 노정에 나섰다 할 때, 그 전도노정 이상을 내가 더듬어 와야 할 책임이 있지 않느냐? 그 전도길에 있어서 예수님이 하늘을 위하여 밤잠을 자지 못하고 제자들을 키워 나가던 그런 간절한 심정을 가지고 갔으면 내가 그런 하나의 터전을 넓히기 위해서 예수 이상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밤을 새울 수 있는 내 생애로 이어받아야 될 것이 아니냐? 이런 놀음을 여러분이 자체에서 재현할 수 있도록 다시 일깨우지 않고는, 그런 운동을 하지 않고는 그때 당시 수난과 고통 가운데서 개척자의 선봉에 서 가지고 나가던 예수의 내적 사정을 해원성사해 드릴 수 있는 제자, 혹은 그누구보다도 가까이 설 수 있는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해원성사해 드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우리는 그때의 그런 자리를 갖지 못했습니다. 외적으로 볼 때 그 이상의 자리를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그 내적 심정이 해원성사될 수 있겠느냐?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자유스러운 환경에 있다 하더라도 자진하여 그 이상의 자리를 찾아 나가려는 기간이라도 설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나는 이렇게 가기를 원한다, 나는 이 표준을 넘기 위한 이런 소원이 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 예수가 남겼던 내적인 슬픔의 심정을 해원성사해 드릴 수 있는 외적 환경, 그 이상의 자리가 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내적인 마음으로 그리는 추모의 심정에 있어서 혹은 사모의 심정, 흠모의 심정에 있어서는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라도 찾아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문제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때 시대에 있어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며 화가 있을 것을 예고하던 예수의 심정, 배반해 나가는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바라보면서 슬퍼했던 예수의 그 심정을 여러분들도 같은 처지의 자리, 같은 입장에서 느껴야 할 것입니다. 혹은, 로마제국의 지배 하에서 핍박받는 이스라엘 민족의 서러운 입장을 그 누구보다도 절감하고, 저 원수들을 몰아내야 할 개척자 혹은 선각자의 입장에서, 애국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그 시선은 또한 얼마나 심각했겠는가 하는 것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이 밤이 그럴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밤을 새우는 것은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면 아침, 점심 때를 잊어버리고 그 저녁을 당장 끌어다가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언제나 앞설 것이 아니냐? 뜻을 대하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에 뜻에 위배되는 마음에 대해서는 촌시라도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때가 오면 깨끗이 정리 정비하겠다고, 역사에 악의 흔적을 뿌리도 남지 않게 제거하겠다고 얼마나 내적으로 다짐했을 것이냐? 가중되는 핍박의 길, 어지러운 환경을 대하는 예수의 3년 공생애는 그렇게 내적으로 다짐하며 사무치는 아픔의 심정을 품고 지내던 때가 아니었을 것이냐? 그 심정을 몽땅 토로하며 인자가 바라는 때는 왔다고, 또 이제 당신이 슬퍼할 수 있는 내정적 사연을 전부 제거시켜 버렸다고, 또 이날이 당신이 원하는 날이요, 이때가 바로 제가 바라던 때라고 자랑할 수 있는 그 자리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얼마나 내적으로 다짐했겠는가 하는 문제를 우리가 생각해 보게 될 때, 그것은 여러분들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어려운 문제라는 것입니다.
밥을 먹으나, 자나깨나 그 마음에 있어서 당신의 소원, 그가 짊어진 책임적인 분야를 촌시라도 밀쳐 버리고 잊어버린 때가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혹, 그리운 사람이 인사를 하게 되면, 그리운 자리에서, 반겨 주는 자리에서 인사를 받는 것이 소원이 아니라, 그리워하고 반겨 주는 이 자리가 한날을 차지하고 뜻을 이룬 자리에서 반겨 주고 그리워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기쁨이 있으면 모든 조건을 걸고서라도 전부 다밝혀 놓고 싶은 마음을 내적으로 다짐해 가며 나왔던 생활이 아니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혹은 슬픔이 있다면 그 슬픔을 이어받을 수 있는 그 누가 없거든 나에게 남아지더라도, 소망의 그 나라에는 이 슬픔을 남겨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을 다짐하는 생활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활적인 철학을, 생활적인 주체사상을 갖고 나가는 예수였기 때문에 자기 일신은 십자가에 달려 쓰러지는 자리에서도, 자기는 망하더라도 당신이 소원하는 나라에는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되겠다는 입장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단 하나의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이 두절된 환경에서 바라보게 될 때, 소원하던 나라를 돌아서서 찾을 수 있는 길도 없거니와 앞으로 나가더라도 찾을 수 있는 길도 없기 때문에 원수를 대해서 소원의 나라를 다시 심어 놓아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했던 예수였습니다. '나는 죽더라도 그 소망의 나라는 남겨야겠다'는 일념만은 간절했기 때문에, 그 원수의 배후를 통해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한 예수는 거기에서 눈물을 머금고 다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쓰라림은 그러한 자리에 선 사람 외에는 모를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모든 내정적인 해원성사를 해드리지 않으면 그때 하늘에 맺혔던, 예수에게 맺혔던, 혹은 하나님과 그 아들되는 예수님 사이에 맺혔던, 즉 부자관계의 심정 가운데 맺혔던 그 사연이 언제 풀려 나갈 것이냐?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심정에 슬픔이 맺히게 된 것은 예수 개인의 실패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예수의 실패도 실패지만 그때에 잃어버린 이스라엘 민족과 세계사적 인연을 걸어 놓고 맺혀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슬픔이요 예수의 슬픔으로 맺혀진 이것을 터쳐 내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성사할 수 없는 것이요. 예수의 소원을 재현시켜서 땅 위에 지상천국을 성사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이렇게 맺혀진 그 내정적 사연을 타파해 버릴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길이요, 통일교회가 해야 할 책임이 아니겠느냐?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는 만나고 싶었던 교단과 치리하고 싶었던 그 나라를 얼마나 소원했겠는가, 얼마나 그리워했겠는가, 얼마나 사랑하고 싶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맞이할 수 있는 때가 됐다면, 천 번을 죽더라도 그 한 나라를 갖기 위해서 서슴지 않고 나설 수 있는 결의가 되어 있다면 그 자리가 예수님의 자리가 아니겠느냐? 또, 이 한때를 이루기 위해서는 천만인을 희생시켜서라도 예수를 남겨 놓고 그 뜻을 이루어 주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런 때를 다시 재현시켜 지상에 나타내야 할 것이 예수가 세워 놓은 기독교의 사명, 즉 지금까지 수많은 피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남겨 놓은 기독교의 사명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됩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숙명적 과제와 천륜적인 내정적 사정을 해결지어 가지고, 엉클어진 이것이 하나의 평지, 하나의 자연스러운 환경으로 하늘의 기쁜 마음으로 연결되고 하늘의 자랑만으로 연결될 수 있는 내정이 되고 사정이 되어 엉크러질 수 있다면, 거기서 비로소 하늘이 기뻐하고 기독교가 기뻐하고 예수가 기뻐할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러지 않고는 하늘이 기뻐할 수 없는 것이요, 예수와 역사적 기독교의 순교자들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다시 각성해야 할 때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소위 오래되었다는 무리들 가운데 현재의 입장 그 자체를 가지고 짜증내고 싶으면 마음대로 짜증내는 사람이 있는 것은 통일교회의 본질에 위배되는 입장인 것입니다. 자기 개인적인 사정을 가지고 전체의 뜻인 양, 전체의 사정인 양 적용하려는 무리가 많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다 흘러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만 남을 것이냐? 외적인 나라를 위해서 흠모하고 나서는 자보다도, 외적인 출세를 그리워하여 통일교회에 인연맺고자 하는 무리보다도 오직 이 슬펐던 내정을 붙들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고독의 자리를 더듬으며 탐지해 나가는 것을 생활의 전체 임무로 느끼고, 책임으로 느끼는 사람입니다. 만일 그런 길을 오늘도 계속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 할진댄, 그는 앞으로 올 이상의 새로운 승리적 개인의 터전으로부터 국가적, 세계적 해방의 터전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늘 앞에 외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 사람은 될는지 모르지만, 내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 사람은 못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의 책임' 하게 되면 여러분은 어떠한 자리에 서서 책임을 추구해야 되느냐?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하루 24시간의 생활을 했다 할 때 그 생활이 어디로 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저 그렇게 해 가지고 어제와 오늘이 차이가 없고, 한 달과 두 달을 지낸 생활이 차이가 없다 할 때는 외적으로 흘러가기가 일쑤인데 그러한 습관성과 폐단성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본부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본부라는 이 자리에 오기 위해서는 모든 지방에서 가려 가지고 와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본부면 본부에서 같이 살고 있다면 자기가 어떠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자기의 책임은 중요시하면사도 본부의 입장은 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구요. 자기의 개인적인 위신이 상실되는 것은 도도히 옹호하려고 하면서 본부교회의 위신이 상실되는 것은 망각하는 이러한 퇴폐적인 무리가 많다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우리는 다시 한 번 정비해야 될 것입니다.
보라구요. 수요일 저녁이면 말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을 나는 믿지 않아요. 믿을 수 없더라 이거예요. 숱한 말을 했고 숱한 맹세를 시켰지만…. 이러한 무리들을 바라보게 될 때. 외국 사람들을 데려다가 이들을 들이 쳐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하늘의 감정에는 먼 사람을 통해서 하늘의 슬픔이 접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무리들로 말미암아 직접적인 생활 감정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까이 나타난다는 것은 지극히 무서운 것입니다. 가까이 서 있다는 것은 지극히 무서운 것이라구요. 따라서 하루 24시간 그 마음은 하늘 뜻 앞에 조금이라도 오점을 남기지 않는가 염려해 가지고, 한 발자국, 한 거동, 일체에 자기의 온 정성을 기울여 가지고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은 뒤로 두고 언제나 자기가 나타나는 거라구요. 이것은 하늘이 요구하는 본질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여기 젊은 사람들은, 우리 할머니들이 기도하고 하는 것을…. 물론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할머니들이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는 데 마지못해서…. 기도하는 것은 밥먹는 일과 같습니다. 신앙자의 기도생활은 밥먹는 것과 같습니다. 밥을 안 먹으면 배고프지요? 그와 마찬가지라구요. 그 누구에게도 형용할 수 없는 굶주림을 느끼는 것과 같은 그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사람만 대해 가지고는 자기의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숨막힐 것 같은, 질식할 것 같은 환경을 느낄 수 있는 생활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런 거라구요.
여러분이 이런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진정 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염려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눈과 같은 시선으로 이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유대교와 같은 입장에 선 기성교회를 바라보면서 저들이 어떻게 될 것이냐? 틀림없이 통일교회 식구들이 가던 걸음을 재차 걸어오지 않을 것이냐? 우리가 먹을 것을 먹지 못하며 수난길을 가면서 밥을 얻어먹는 놀음을 했고, 나중에는 개밥을 먹으면서까지 뜻을 위해 쫓던 비참한 생애를 남긴 역사가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간 것은 통일교회가 원해서 간 것이 아니라 기성교회가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간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 책임자들은 그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 자리를 안 가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그 아들딸에게서 피해를 입는 것입니다.
수택리에서 목사 공청회를 할 적마다 선생님이 느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불쌍한 것이 목사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밥목사라는 거예요, 밥목사. 그와 마찬가지로 요즈음의 통일교회 교인들이 통일교회에 처해 있는 것은 밥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냐, 밥식구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밥식구. 갈 데가 없어서 여기에 붙어 있는 무리들은 앞으로 선생님이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은 나가는 그런 사람들을 달가와하지 않습니다.
나무의 잎은 일년 동안 아무리 그 줄기와 열매에 이익 되는 놀음을 했을지라도 가을이 되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바라보는 통일교회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통일 교회와 다릅니다.
여러분들을 볼 때, 저와 같은 무리를 위해서 내가 일생동안 이 길에 정성을 투입했던가, 저 같은 할아버지면 할아버지, 할머니면 할머니, 젊은이면 젊은이의 무리를 찾기 위해서 내가 저들을 만나 왔던가 하는, 후회의 일면을 자극시키는 불쌍하고도 퇴폐적인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연한이 길면 길수록 자랑할 수밖에 없고 불러 의논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지, 찾아와 가지고 의논하려고 할 때 힘이 없는 모습을 보이는 그러한 무리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10년 20년이 흐르더라도 서로 서로가 찾아오기를 바라고, 서로서로가 존중시하고, 서로서로가 그리움이 남아질 수 있는 자리에서 만나는 그러한 무리를 바라는 것이지, 만나 가지고 자기 개인들 사정만 늘어놓는 그 따위 무리들은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책임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은 습관화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저 그렇게 교회에 나가는 거라고, 내가 어제도 교회에 이렇게 나왔으니 그것으로 됐고 오늘도 이렇게 나가니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습관화된 거라구요. '하늘이야 슬프든 말든 내가 뭐 아나? 내가 믿는 통일교회는 이런 것이다' 이렇게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을 통일교회의 전부로 아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배후에 수많은 사연이 엇갈린 입장에서 뒤넘이쳐 가고 있는 하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뒤넘이치는 하늘이 언제나 그것을 앞에 내세워 가지고 해결하려는 표준 밑에서 전진하며 따라가게 되어 있지, 그것을 다 잊어버리고 내가 앞장서게 안 되어 있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은 내정적 안식의 터전을 어떻게 확보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며 간절한 기도를 하던 예수까지도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절망적인 일면을 남겼습니다. 그 절망적인 입장을 오늘날 우리가 재현해 나감으로써 '야야, 이제는 그만큼 노력했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려 줄 수 있는 그런 자리를….
그것이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슬펐던 역사를 잊고 '이제야 됐다! 이제야 내 뜻이 이루어졌구나! 이제야 그토록 불쌍하게 죽었던 예수의 소원이 성사되지 않았느냐'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그것을 그냥 남겨 놓고서 뜻이 이루어졌다고, 해원성사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까지 못 가서는 쳐박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해야 되느냐? 외적인 것부터 하는 것이 아니고 내적인 것부터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인격 체제를 우리의 책임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내적 인격을 단장해야만…. 외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은 다 일소해 버리고 내적으로 숨어서, 그 누구도 모르게 가슴이 메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면서 전체가 동정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잠들고 깨며, 그 자리를 적셔 가는 생활을 하는 무리가 먼저 되어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집에 들어가서 제멋대로 살다가 나타나 가지고는…. 그런 가증스러운 무리가 많지요?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책임이 문제가 아닙니다. 외적인 책임은 전부 다 흘러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예수의 내적인 심정을 해원성사하고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해원성사해야 됩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있어서 예수가 무엇보다도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아픈 심정을 남겨 주었던, 불효된 죽음길을 갔던 예수가 오늘 이 시대에 있어서 우리로 말미암아 해원성사해 드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후원해 주고, 하늘이 후원해 주고, 사도들이 후원해 주고, 기독교가 후원해 주고, 역사적인 선조들이 후원을 해줘야만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지금까지 그렇게 생활해 나와 가지고 후원을 해줄 것 같아요? 어림도 없다구요. 미급한 자리에서 된 듯한 무리는 망하는 것입니다. 가지도 못하고 중간에서 썩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그러기에 때가 가까와 오면 올수록, 끝날이 되면 될수록 두렵게 알고 해야 될 것은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거예요. 진실된 자리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진실된 자리. 밤이 되어 여러분이 밤하늘을 바라볼 때 그 별은 어젯날의 별과 다르다는 거예요. 너는 나에게 소원의 별로써 나타나고 내일의 소원을 촉구하는 빛으로 비추어 주느냐…. 깊은 심정의 인연 가운데서 모든 사연을 포괄해 가지고, 하늘을 향한 깊은 동정의 마음이 어려 가지고 하늘을 위로해 드리는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눈물과 더불어 그 환경을 에워쌀 수 있는 그런 자리에 들어가서 그 자신이 아들로서 하늘을 아버지라 불러야 됩니다.
여러분,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제자들을 뒤에 두고 홀로 외로운 자리에, 정숙한 자리에 가 가지고 기도 시간을 찾아 나섰던 예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따르던 5천여 무리를 다 뒤에 두고 홀로 하늘 앞에 기도 드린 예수…. 5천여 무리는 하늘을 위로해 주고 싶어서 나타난 무리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 앞에 자기 내정적인 심정으로, 하늘 앞에 5천여 무리를 맞는 이상의 기쁨으로 나타날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을 어떻게 대신하느냐는 것이 언제나 문제였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는 표준은 무엇이냐? 내 갈 길, 내 갈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내가 갈 길,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이래야 된다고 하는…. 이래야 된다고 하는 그것이 뭐 잘먹고 잘살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정적 기준 앞에 있어서 빚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선 이러한 내적인 책임을 다하는 데서 외적인 책임이 정리되는 것이지 내적인 책임을 못 하는 데서 외적인 책임이 정리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표준을 놓고 볼 때, 예수님과 예수님 제자들의 입장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최고로 절정의 자리에서 긴장해 가지고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제자들은 내적인 면에서 천리 만리라는 거예요.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오늘이 6월 초하루인데, 2차 7년노정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이 3년간을 중심삼고 여러분들이 무엇을 해야 되니나? 예수의 해원성사를 해야 됩니다. 이 3년 기간은 예수님 해원성사의 기간이요, 하나님 해원성사의 기간입니다. 십자가에 내가던 예수, 유대교를 잊어버렸던 예수, 이스라엘 나라를 잊어버렸던 예수의 슬픔을 해원성사하기 위한 이 기간과 맞먹는 것이 2차 7년노정이라구요. 그러므로 그것을 이 땅 위에서 이 민족과 수많은 기독교를 중심삼고 재현해 가지고 예수의 책임을 해원성사해 드려야 할 이번 기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외적인 것이 되었더라도 내적으로 성립되지 않으면, 외적인 것도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게 제일 문제가 크다는 거예요.
불원한 장래에 사람들이 많이 올 텐데 여러분들의 그런 생활 모습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본부에 있는 할머니들도 다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 가만 안 둔다고요. 나이 많은 사람들 전부 다 아주 안 돼먹었다구요. 들어와 가지고 본(本)이 되지 못하면 스스로 물러가야 됩니다. 자기가 본부에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물러가야 된다구요, 쫓겨나지 말고 그 누구든지 맛있는 거나 먹으면 '헤헤' 하고 좋은 거나 있으면 '헤헤' 하고…. 주둥이나 끌고 다니면서 좋은 것이나 얻어먹겠다고 하고, 몸뚱이를 끌고 다니면서 대접이나 받겠다고 하면 망해요. 내가 그러한 무리를 만나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36가정이면 36가정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36가정의 권위를 알아달라고 생각하는 무리가 있다면 이것은 36가정 전체 책임이라는 거예요. 눈물을 흘려도 누구보다 많이 흘리고, 노력을 해도 누구보다 많이 해야 됩니다.
지금 통일교회를 위해서 진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 남자 녀석들 가운데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 아니냐? 선생님이 지금 어떠한 입장에서 뒤넘이쳐 가고 있는지 생각하는 녀석이 없다고요. 뭐, 그것을 알아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라구요.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지금은 때가 때이니만큼 안팎으로 정비할 때가 아니냐는 겁니다.
이러한 것을 알아 가지고 본부에 있는 선생님으로부터 새로운…. 여러분은 지방에 나가 활동하는 기동대와 전도대원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구요. 일년 열두 달이 가도 '전도대원 나가면 뭐 하느냐? 하며 어떻게 되어 가는지 교회가 발전하는지, 전도대원들이 굶는지 사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이 없는 데서는 뜻의 성사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잃어버린 이상의 관심을 갖고 출발하는 것이 종교의 길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들이 협회장에서부터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은 무슨 사무를 보거나 직장에서 자기 책임을 정해서 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고요. 그 책임이라는 것은 6천년의 심정을 이어받아 가지고 뜻을 이루어야 할 책임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내적인 사연을 해결하는 자리에서, 그런 기반 밑에서 나는 나홀로 있지 않다고 하는 사고방식을 갖고 나가야 되겠어요. 더우기 6월 초하루, 이달에 있어서는 그러한 문제들을 청산짓고, 이 1972년도에 있어서 6수를 넘어 가지고 7수를 맞이해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우리의 책임은 어디서부터냐? 내정적 심정에서부터입니다. 여기가 아담이 타락할 때의 슬픔의 자리,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갈 때의 슬픔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이 2대 슬픔이 하나님의 심정에 못박는 슬픔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의 무슨 기독교에 있어서 순교니 하는 것은 이것에 비하면 문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후손된 우리들이 이것을 탕감하여 해원성사해 드리지 않고는 해방의 터전이 나에게 있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요. 그런 것을 여러분이 알고 그런 면에 주력해 가지고, 앞으로 협회장으로부터 전체 책임자들은 기도 시간을 중요시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내정적 심정문제를 보다 중요시하고, 또 교회가 그런 면에서 더욱 박차를 가해 나가기를 바라면서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 통일교회는 일반 교회와 다릅니다. 통일교회에서 흘리는 눈물은 일반 교인들이 죄를 회개하고 자기 개인이 구원받기 위해 흘리는 눈물과는 다릅니다.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흘리는 눈물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심정을 부여안고 위로해 드리는 눈물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가 책임해야 할 분야가 이것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여기에 서 있는 이 자식도 뜻을 따라 나오면서 지금까지 싸워 왔습니다. 당신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그때를 바라보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분풀이하고 싶은 일을 다 하지 못하고 가슴에 꽁꽁 싸 두고 나오고 있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사옵니다. 스스로 회개하는 자리에서 '너는 이러한 슬픈 사연을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해원성사 하지 않고는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자가 아니냐' 하고 다짐하며 지금까지 걸어 나온 것을 아버지께서는 아십니다.
이제 반세기의 생애를 넘기고 이제부터 남은 여생을 통하여 달려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청춘시대와는 달리 피곤함을 느낄 적마다 자신도 모르게, 이런 자리를 차지해 하늘을 위로해 드린다고는 하나 이런 연령에 하늘에 효의 도리를 다 끝내지 못한 것이 얼마나 원통한가 하는 것을 느끼고 있는 불쌍한 사나이인 것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라 부르는 말의 내용에는 천만 사연이 있고 천태만상의 차이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스승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통일교회 교인이 있거들랑 평면적으로 나타난 기쁨으로 연결된 그것만으로서 남아질 것이 아니라, 배후에 연결시키어서 역사적 사연이, 거쳐온 곡절이 스승과 자기의 사연을 통하여서 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스승을 통하여서 그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마음들이 그런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선생을 바라보고는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만 뜻을 바라보고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아버지여, 선생은 뜻을 위해 태어난 것을 내가 알고 있는데 이들은 뜻의 길을 가기를 원치 않사옵니다. 선생만을 원하는 자리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섭리를 알고 난 후에는 선생과 더불어 뜻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와 인연을 맺은 저희들의 운명길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엮어 온 역사적인 사연을 미처 몰랐고, 역사적인 탕감의 내용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선생과 절대적으로 하나되어야만 혜택의 인연으로 그의 가지로서, 잎으로서, 생명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천부의 시대적 혜택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그 자리를 염원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반겨 맞는 그 자리, 자기가 간곡한 사연을 생각하고 있는 그 자리가 하늘의 마음과 일치된 자리가 못 되면 스스로 자기가 나타나 가지고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껴야 할 통일의 무리인데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을 느낄 적마다, 아버지여, 나만이라도 아버지 앞에 그래야 된다고 하는 것을 지금까지 생애를 통해 다짐해 왔습니다.
아버지여, 1972년 6월 초하루를 맞으면서 이달이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6수를 탕감할 수 있는 달이 되기를 바라옵니다. 그러한 달이 되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하고 이달을 의의 있게 보내고 싶은 마음 간절하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은 아담이 타락하던 그 슬픔을 상기하여야 되겠고, 예수가 십자가 도상에서 못박힘을 받아 피를 홀리고 쓰러져 운명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비참해 하던 부모의 심정을 동정해야 되겠습니다. 자식들이 잘못하여 죽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것을 보고 극복해야 할 아버님이 얼마나 불쌍한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천년을 하루같이 눈물로써 위로해 드리지 못하는 자신을 대해 슬퍼할 줄 아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무리가 통일교회의 평신도가 되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러는 자가 희귀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가 하늘의 일대 심판이 가해져야 할 입장을 피하지 못할 자리라는 것을 저희들은 더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무리를 이렇게 이끈 것은 이런 자리에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가 무엇을 하든 자기들만으로 이루어야 된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하늘과는 반드시 엇갈릴 것이고, 하늘과는 반드시 분열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끝까지 참아 나가는 자리, 끝까지 동참하는 자리에서 승리의 날이 초면 기뻐 찬양하며 환성을 지를 수 있는 사람보다도 그날을 맞게 될 때, 엎드려 땅에 얼굴을 대고 얼굴을 들지 못하며 통곡을 하는 무리를 하늘이 더 찾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 내가 바라던 그날이 지금 왔다'고 할 수 있는 무리보다도, 그날을 맞게 될 때, 하늘 앞에 하늘의 수고를 치하드리고 그토록 하늘이 그리던 날을 늦게 맞이하게 된 것을 민망하게 생각하며, 눈물로써 하늘을 위로해 주기 위해 얼굴을 드는 그런 무리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지 않고는 예수의 한과 하늘 아버지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당신이 원하시는 나라를 저희들도 그리워하고 있사옵니다. 당신이 원하고 당신이 찾고자 하는 백성과 그 땅을 저희들은 미친듯이 그리워하고 있사옵니다. 밥을 먹지 못하고 주린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혹은 영어의 몸이 되더라도 이 마음을 빼갈 수 없는 사연이 남아 있기 때문에 오늘의 통일교회가 남아진 줄 알고 있사옵니다. 숱한 곡절의 세월을 지내 가는 가운데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릴 수 있지만 당신이 원하시는 소원의 나라와 그 소원의 이념만은 잊어버릴 수 없사옵고, 당신의 마음 앞에 맺혀진 원한만은 잊어버릴 수 없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그 원한을 풀고 당신의 뜻인 소원의 나라를 찾기 위한 것이 저희의 필생의 삶이요, 밥을 먹기 전에 다시 한 번 부끄러운 자신을 수습하고, 길을 나서기 전에 혹 하늘이 같이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하며 자신을 수습해 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가야 할 정상적인 생활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제 이 6월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저희들의 걸음은 이미 생명을 각오하고 나선 걸음이옵니다. 더우기 일본에 있는 당신의 어린 아들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치열해 가는 싸움의 대기선이 벌어져 나오고 있사옵니다. 하늘이여 여기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약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통일의 무리가 패자의 서러움으로 귀결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그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더우기 이번 기동대가 이 아들의 위신과 체면을 세우게 하시옵소서. 지켜 주셔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가려 나왔사옵니다. 이것이 만일에 당신이 소원하는 대로 되지 않게 될 때는 당신의 위신은 물론이고 이 아들의 위신과 통일교회의 위신도 서지 않을 것이옵니다. 당신이 염려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아들도 염려하고 움직이고 있사오니, 아버지,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포위망을 뚫고 나가 하나의 개방도로를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을 저희가 붙잡고 있사오니, 저희가 머무는 곳곳마다 마음으로 다짐하던 내정을 아시는 아버지여. 이제 저희들을 믿으시옵소서. 저희들은 기필코 이길을 완수해 내야 되겠습니다. 만일에 그들이 못 하게 될 때는 우리 한국에, 뜻을 위하여 있는 무리들이라도 또다시 나서야 되겠습니다.
세계의 책임자들이라도 규합하여 다시 정비해 가지고 이 일을 재출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부디 지키시어 이 일을 성사하시옵기를 바라옵니다.
만일에 이 한국에 통일교회가 없게 될 때는, 만일에 통일교회에 이 아들이 없게 될 때는, 만약에 아버님이 여기에 계시지 않게 될 때는, 이 무리는 쑥밭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대한민국의 통일교회가 기세를 떨칠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통일교회에 있어서 책임을 진 제가 아버지 앞에 책임하는 데에 지칠 줄 모르는 기백이 넘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가고 오는 세월 앞에 빛되는 자랑의 한날을 세워 놓고 승리와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려드리고 가야 할 필생의 사명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지금까지 이끌어 주신 아버지, 그 배후는 숱한 피의 대가와 수난의 대가로 엮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대가의 터전 위에 부름 받은 통일교회 무리들은 이것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자기들이 받을 수 있는 복으로 받았 다고 생각했다가는 큰 화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는 지극히 두려운 자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적인 참소의 조건이 깃드는 자리이기 때문에 하루하루의 생활에서의 승패의 절정이 자기의 생명을 노리고 건너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본부를 아버지께서 사랑하시옵소서. 본부를 위해 기도하는 무리들은 여기에 사는 그 누구를 위해 기도한 것이 아니라 하늘을 위해 기도한 것이었사오니, 그들을 동정하시어서 최후의 승리의 한날까지 남아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로부터 이 한 달을 향해 힘차게 출발할 것을 아버지 앞에 약속하면서, 내내 우리의 책임인 내적 책임을 강화하고 외적 책임분야를 정비해 갈 줄 아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체를 뜻과 더불어 승리하기를 바라면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아버지, 오늘 이 아침은 1972년 6월 4일, 이달을 맞이하여 첫번째 맞는 안식일 아침이옵니다. 이 아침에 당신의 자비와 영광과 사랑과 승리가 같이하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아침 이곳에 모인 자녀들은 물론이요, 전국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 무한한 승리의 영광이 깃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개개인의 심령이 당신이 원하시는 소원 앞에 일치가 되고 당신의 뜻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 생활과 생애노정이 빛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자녀들 가운데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자녀가 있사옵거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뜻 앞에 일치되지 못한 자녀들이 있으면 아버지께서 인도하시옵고, 수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길 수 있는 하나의 뜻, 남길 수 있는 하나의 사랑, 남길 수 있는 하나의 가정, 남길 수 있는 하나의 국가와 세계를 찾아오신 아버지 안에 효자의 도리와 충신의 도리와 모든 영광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겸손히 엎드린 자녀들 위에 당신이 찾아와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아버지 앞에 이 시간 부복하여 당신의 영광을 바라는 백성이 되고,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이 세계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최후의 승리를 기대하고 있는 이때에,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이 이 땅에 일치될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한국은 물론이요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고 있사오니, 거기에 늘쌍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기신 복귀의 사명 앞에 충성을 다짐하여서 내일의 승리의 기점을 아버지 앞에 찾아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아버지 뜻 가운데서 온전히 저희들을 지도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바라는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거룩한 모습들로 몽땅 바쳐 드리는 거룩한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날, 아버지의 성호를 찬양하고, 아버지의 뜻을 추종하는 모든 자녀들 위에 깊고 넓고 높으신 당신의 사랑이 찾아오시어서 지도하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모든 전체가 뜻 가운데서 하나가 되고 순응하여 그 뜻을 성사해 드리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참부모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루의 생활을 맞이하고 생애의 노정을 바라보면서 나가고 있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생활 가운데서 선하고 악한 일이 결정되고, 이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과 사탄의 역사가 연결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하루의 생활에 있어서 선한 편을 어떻게 남기느냐 하는 것과, 우리 개개인의 생활 가운데서 악을 어떻게 퇴치시켜 버리느냐 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뜻의 길이라고 할 때 뜻은 막연한 뜻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뜻입니다. 그 뜻이 지향하는 목적이 있다면 그 목적을 향해서 갈 수 있는 방향이 있어야 됩니다. 아무리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방향이 일치되지 않게 될 때 그 목적은 우리와 관계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멀면 멀수록 소홀히 할 것이 아니라 그 방향에 대해서 우리는 더 각별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목적이 가깝다면 그 방향을 맞추기가 쉬울지 모르지만, 목적하는 바가 멀면 멀수록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그 목적과 일치되는 결과를 얻기 위한 그 방향을 맞춰 나가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 목적이 눈앞에 보인다면 방향을 무시하고, 방향을 생각지 않고 대번에 갈 수도 있지만 그 목적이 멀면 멀수록 그 방향이 애매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이 뜻 가운데는 개인적인 뜻도 있는가 하면 가정적인 뜻도 있을 것이고, 민족적인 뜻도 있을 것이고, 세계적인 뜻도 있을 것이고, 최후에는 우리 통일교회가 말하는 천주주의라는 뜻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이 하나될 수 있는 뜻을 중심삼고, 그 목적을 중심삼고 가고 있다면 우리 인간들도 그 목적을 달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가는 방향과 우리가 가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바라는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란 불가능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개인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성공하느냐 못 하느냐, 또 생활을 통해서 목적한 일을 성취시킬 수 있는 하루 하루를 남기느냐 못 남기느냐 하는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그 목적을 중심삼고 그 목적에 대한 확실한 관점을 세워서 거기에 적중될 수 있는 방향, 일치될 수 있는 방향을 어떻게 갖추어 나가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아무리 한 목적을 가지고 출발했다 하더라도 그 방향이 어긋나면 그 목적과는 상관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적을 갖고 나설 때에는 언제나 방향의 일치라는 문제를 우리는 주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방향 일치라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 그 목적과 나는 직선상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목적과 나와는 언제나 상대적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는 직선상에서 그 목적과 상대를 갖춘 자리에 서지 않고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오른발을 옮기고 왼발을 옮길 때, 그 목적과 직선으로 일치되는 자리를 취하지 않고는 반드시 엇갈리기 마련입니다. 벌써 한 발짝을 잘못 디디면 엇갈리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바른쪽으로 치우쳐도 안 되고 왼쪽으로 치우쳐도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용을 취해 가지고 그 목적과 그어지는 직선상에서 일치화시킬 수 있는 자기를 발견하는 데서부터 목적의 결과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지, 그 직선을 무시하고 그 직선과 일치되지 못하는 시간적인 기대 위에 서게 되면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그 길은 이미 탈선이 되어 나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우리가 말을 하든가 혹은 보고 느끼는, 즉 오관을 통해 느끼는 데 있어서도 자기 홀로 느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홀로 느낀다는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목적과 일치하는 방향을 가진 자리에서 느끼게 될 때, 그 자리는 공동적인 목적을 향하여 공동적인 입장에서 공동적인 방향을 취한 자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필코 같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엇갈리게 되면 하나님은 같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방향이 잘못되면 수고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협조하게 되면 협조한 만큼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서로 소모가 되는 것입니다. 헛일이 되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 서게될 때는 하나님이 협조할 수 없고 같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난 이후 느끼는 모든 감각이나 동작이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언제나 직선상에 귀일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점을 상실하게 될 때에는 뜻과 나와는 관계맺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루가 24시간인데 이것을 반으로 가르면 주야가 됩니다. 그 주야를 다시 가르면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이 됩니다. 밤도 자정을 중심삼고 반으로 가르면 밤과 새벽으로 갈라집니다. 하루를 중심삼고 보면 아침이라든가, 낮이라든가, 저녁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도 작기는 하지만 춘하 추동을 갈라놓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은 봄절기와 마찬가지요, 낮은 여름절기와 마찬가지요, 저녁은 가을절기와 마찬가지요, 밤은 겨울절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더 세분해서 보면 한 시간 가운데서도 그러한 시작이 있고 과정이 있고 종점이 있고 다음에는 성패의 영욕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이와 같은 관계에서 연결된다고 본다면 우리 인간의 일생도 마찬가지 입장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유년시대가 있는가 하면 청소년시대가 있고 청년시대가 있고, 장년시대가 있고, 노년시대가 있습니다. 작거나 크거나간에 그 형태에 있어서는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가고 있는 것입니다.
생애라고 하게 되면 일생을 말합니다. 생애라는 것은 긴 것을 말합니다. 태어나 소년시대를 거쳐, 청년시대를 거쳐, 장년시대를 거쳐 노년시대까지 즉, 태어나서부터 운명할 때까지의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생활을 통해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 생활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활이 그릇되게 될 때에는 생애도 그릇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생애를 남기려고 해도 하루하루의 생활이 그릇되게 될 때에는, 그 생애가 기필코 그릇된 결과에 도달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결론인 것입니다.
이걸 두고 볼 때, 신앙자로서 제일 중요시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자기 일생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바치겠다고 맹세하더라도, 그 맹세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올바르게 바친 하루하루의 생활이었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 터전을 이어나갈 수 있는 하루의 생활을 생애의 어떤 가치보다 더 중요시하지 않고는 보람 있는 생애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우리는 하루를 무심코 시작하지만, 이 하루가 우리가 바라는 영원한 뜻의 목적과 방향이 엇갈려 가느냐 바로 가느냐 하는 놀음을 하는 하루라는 것을 언제나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불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뜻의 길 앞에 반역자가 될수 있는 일도 그 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더 세분해 보면 한 시간권내에도 그런 일의 경계선이 좌우되는 것이요, 그 한 시간, 혹은 한 분, 한 초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 한 분, 한 초가 잘못되면 이 방향이 영원히 엇갈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가 오늘 하루보다는 한 시간, 더 나아가서는 한 분에 있고, 한 순간에 좌우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오늘 하루를 중요시하는 것보다 한 시간을 중요시해야 되겠고, 한 시간을 중요시하는 것보다도 한 분, 한 초를 중요시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우리에게 걸려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나침반은 남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무리 동쪽으로 혹은 서쪽으로 돌려 놓더라도 그것은 남북을 향하는 것입니다. 다른 힘의 제재를 받아 불가피하게 그러한 자리에 있더라도 그 힘의 작용이 없어지게 되면 자동적으로 남북을 향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반대로 돌려 놓는다 해도 거기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대항하여 자기 본래의 방향을 향해서 돌아가고자 하는 힘의 작용이 언제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 자체도 하나님을 중심삼아 남북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과 같이 한 방향을 지시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방향이 만일 엇갈리게 되면 엇갈리는 차이만한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나침반을 동서의 반대 방향으로 돌려 놓으면 자기 위치로 돌아가고자 하는 힘의 작용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하는 양심의 방향성이 있어 가지고 우리를 반대적인 방향으로 돌려 놓으면, 내적인 면에서 자기의 마음이 그 반대의 작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작용이 없다면 우리 인간은 일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수 없고, 그 목적에 귀일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작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떠한 사람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그 작용이 뭐냐? 양심작용입니다. 보다 순수한 자석으로 만든 나침반일수록 보다 남북에, 일치되는 방향을 지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양심을 가진 사람일수록 그 방향은 언제나 일치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매일같이 방향을 일치시킬 수 있는 생활을 그려 가야 됩니다. 여기에 선악의 환경이 부딪치는 것입니다. 왼쪽으로 치우치는 일도 있고, 바른쪽으로 치우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 나침반 위치를 조금만 이동하게 되면 중심을 찾기 위해서 왼쪽, 오른쪽을 왔다갔다하면서 남북과 일치되는 방향을 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들도 언제든지 하나의 목적, 그 목적과 일치되는 자리를 그려 가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인간 생활이 그와 같은 입장에 서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의 하루가 중요한 하루가 아닐 수 없고 한 시간이 중요한 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순간의 경계선이라는 것은 하루, 한 시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분, 한 초라는 순간을 중심삼고 선악이 판결되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루를 영원과 같이 느낄 수 있는 가치가 이 하루 가운데 있는 것이요, 한 시간을 하루와 같은 가치의 내용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그 한 시간에 있는 것이요, 한 시간은 분, 초로도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이 보다 작은 순간에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뜻은 변할 것이냐? 뜻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변하고 환경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은 변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변할 수 없는 뜻에는 개인이 가야 할 뜻도 있고, 가정이 가야 할 뜻도 있고,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가야 할 뜻도 있을 것이요, 혹은 세계의 36억 인류가 공동적으로 가야 할 뜻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세계에 가서 영원히 하나님의 뜻 가운데 생활하게 될 때에 맹목적이요, 무질서요, 무방향인 입장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어떠한 뜻을 중심삼은 생활로부터 영원한 생애가 시작될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우리가 살고 있는 하루의 생활이라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생활이냐는 것입니다. 죽는 것도 한순간에 결정되는 것이요, 나는 것도 한 순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나고 죽는 것이 한 순간에 벌어지고 우리 일생의 운명이 한 시간, 한 분, 한 초, 한 순간에 좌우된다고 할 때 우리가 사는 하루의 생활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슬퍼하는 것도 이 순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루를 계획해서 그 계획대로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슬픔의 동기는 있겠지만 슬프다는 사실은 순간에 결론지어지는 것입니다. 기쁘다는 것도 역시 아침과 같이, 낮과 같이, 저녁과 같이 밤과 같이 과정을 거치겠지만 그 기쁘다는 것의 종점을 볼 수 있는 시점은 순간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가 한번 호흡을 하고 한번 동작하는 것도 뜻과 더불어 일치될 수 있는 놀음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격장에 가서 사격을 해보면 알지만 총을 쏘아 표적을 맞추려면 총 끝하고 타겟트가 일치되어야 합니다. 앞의 가늠자와 끝의 가늠쇠와 타겟트가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엇갈리는 날에는 동서 사방으로 벗어 나는 것입니다. 잘 보이지 않는 타겟트의 중심점을 때린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사격장의 거리는 대개 10미터인데 10미터 거리에 있는 중심점도 맞추기가 어려운 일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런데 영원을 두고 일생 동안 표적을 맞추어야 된다면, 영원을 두고 표적을 맞추어야 된다면, 다시 말해 출발한 것이 영원히 가 가지고 적중시켜야 된다는 입장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어렵겠어요? 어렵다기보다는 말도 할 수 없으리만큼,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인공위성을 달을 목표로 쏠 때도 달의 위치와는 다른 방향으로 쏘아 올리는 것입니다. 이동하는 달을 맞추기 위해서는 그래야 됩니다. 순간에 맞아야 됩니다. 거리를 계산하고 달의 이동하는 속도를 계산하여 방향을 맞춰야 달나라에 착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달나라에 도착한다는 것도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쏘아진 총알과 같이 일생을 통해서 한 목적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냐. 가긴 간다고요. 먹고 자고 깨고 반복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무엇인가를 향하여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가는데 어디로 가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하루는 어디로 가느냐? 또 하루는 어디로 가느냐? 이달은 어디를 향해 가느냐? 다음 달은 어디를 향해 갈 것이냐? 일년 열두달 365일은 어디를 향해 갔느냐? 섣달 그믐날 가서 회상해 볼 때, 내가 출발한 점과 결과의 점이 일치되었느냐, 내가 해 나온 생활이 그 뜻이 가는 방향과 일치되었느냐 하는 것을 두고 볼 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태어난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그게 문제예요. 역사의 흐름을 따라 자기 선조로부터 뜻을 중심삼은 한 길을 남기었는데 내 조상들이 나를 낳아 준 자리가 어디냐? 어떤 사람은 남쪽 끝에서 태어났고 어떤 사람은 동쪽 끝에서, 어떤 사람은 서쪽 끝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 끝에서, 모든 사람이 각각 다른 자리에서 태어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낳아진 모습은 비슷하지만 가야 할 모습 모습들은 동서 사방으로 엇갈려서 가는 것입니다. 이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인류라는 것입니다. 이런 길을 가야 된다, 혹은 이러한 사상을 가져야 한다고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본다면 인간들이 서로서로가 가고자 하는 그 방향과 하나님이 뜻을 중심삼고 가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의 선을 중심삼고 보면 천태만상이라는 것입니다.' 뜻은 이렇게 가는데, 이렇게 가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가는 사람도 있고 별의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만큼 가다가 일치되고, 어떤 사람은 저만큼 가다가 일치되고, 천태만상일 것입니다. 또 출발점이 동서남북으로 각각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서 출발하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출발하고, 모두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이 가고자 하는 뜻의 출발점, 이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출발점에서부터 어떠한 선을 그어서 갈 것이냐? 그 선과 일치되는 생애를 남기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 방향과 일치되는 비례에 따라 가지고 그 사람이 선을 중심삼든가, 혹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천태만상의 차이가 벌어질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공평치 않다고 주장해도 이러한 원칙을 두고 볼 때, 공평치 않다고 주장하는 그 자체가 불공평한 자리에 선 입장일 수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공평치 않다고 보는 그 자리가 어떤 때에는 뜻의 방향과 일치되는 공평한 자리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 행로라는 것이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 행로를 바로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그 행로를 바로 가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보는 것도 그 행로와 일치하기 위해서 보아야 할 것이 원칙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아야 할 중심점이 어디냐?
그 목적과 직선이 될 수 있는 방향을 올바로 보기 위해서 눈이 있는 것이 아니냐? 그건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럼 코는 왜 있느냐? 그 직선과 언제나 상대적 관계를 갖고 방향을 잃지 않게끔 선두에서 리드하기 위해 코가 있지 않느냐? 전부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입은 왜 있느냐? 그 목적을 향해 가는 데 있어서 영양을 보급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럼 왜 가느냐? 물론 무엇을 하기 위해서 오고 가지만, 그 자체가 그 목적의 방향과 일치될 수 있는 걸음걸이를 남기기 위해서 오고 가는 것이 아니냐. 이 직선과 관계맺게 하고 그 결과에 일치될 수 있는 점을 가리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이목구비와 사지백체는 생긴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어야 할 내 자체가 거기에 일치되지 못하게 될 때에는 아무리 내가 귀중하고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무가치한 것으로 떨어져 파탄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말하거나 혹은 잠을 자고 깨는 것 전부가 이 하나의 선을 기준으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을 그래프로 그려 본다면 별의별 그림이 다 그려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하루를 그래프로 그려 본다고 합시다. 어떤 일을 했느냐? 어떤 때에는 친구하고 만나고, 어떤 때에는 누구와 만나고, 어디서 누구와 싸움을 하고, 이런 것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그야말로 만물상을 그리면서 살 것이 아니냐. 또, 보고 듣는 하루의 모든 느낌과 행동하는 전부가 다른 것이 아니냐? 그것을 종합해 보게 될 때, 그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 그 방향이 결정되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인간은 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왼쪽으로 얼마만큼 왔으니, 바른쪽으로 가려면 몇 도의 각도로 왔으니 몇도의 각도로 꺾어 가지고 돌아가야 된다' 하는 것을 오늘날 인간들이 생각하느냐?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으례히 올바른 방향에 일치된 자리에서 출발했고 지금도 가고 있다 하는 습관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우리 인간 생활이 아니냐? 그것이 폐단입니다.
나침반과 같이 어느만큼 각도가 틀렸다는 것을 알아 가지고 이것을 자연적으로 조종할 수 있는 작용을 하면 모르지만, 작용을 못 하게 될 때에는 내가 고의적으로 그 작용을 해 가지고 방향을 맞추는 일을 해야 될 것이 아니냐? 이것이 이 세계의 인간 가운데에서 그들과는 다른 생활을 하고 있는 신앙자의 생활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 뜻, 뜻이 무엇이냐? '뜻이 뭐야, 뜻이 뜻이지…' 이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뜻 가운데에는 완성한 개인이 있어야 됩니다. 뜻과 일치될 수 있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어야 됩니다. 또, 뜻과 일치될 수 있는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그건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그 가정이 가야 할 목적지는 어디냐? 나라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뜻과 일치될 수 있는 나라가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뜻 가운데 일치될 수 있는 세계가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 인간 세상에는 평면적인 세계뿐만이 아닌 뜻 가운데 일치될 수 있는 수직선이 있어야 됩니다. 그 수직선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수직선에 90도가 되는 평행선이 있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입체적인 세계와 평면적인 횡적인 세계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입체적인 세계와 횡적인 세계가 수직이 되어야 할 것인데 60도가 되어 가지고 '나는 됐다'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60도는 동서 사방이 맞지 않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동서남북의 사방이 맞으려면 90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렇게 맞추더라도 90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원칙적인 입장에서 보면 평행선에 수직을 그을 수 있는, 남북을 그을 수 있는 하나의 점은 90도인 것입니다. 90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90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수직선이 머무를 수 있는 것은 한 점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다른 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1도 2도 각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각도가 달라지면 수직이 아닙니다.
통일교회에서 천주주의라고 하는데 그 천주주의라는 것이 무엇이냐? 수직선과 횡선이 90도에서 일치될 수 있는 방향을 말합니다. 그것은 낮이나 밤이나, 옛날이나 현재나 미래나 마찬가지의 각도에 있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든지 갖다 맞추더라도 90도에 일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일상 생활에서 그런 생활을 해 나가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볼 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뜻 하게 되면 개인이 머물 수 있는 뜻, 가정이 머물 수 있는 뜻, 국가가 머물 수 있는 뜻, 세계가 머물 수 있는 뜻, 하나님과 인간이 같이 머물고 싶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존재요, 인간은 횡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종횡이 영원히 공존할 수 있는 그 점이 중심점인 것입니다. 뉘어진 것을 중심이라고 하는 말은 없습니다. 중심이라고 하게 되면 반드시 수직선인 것입니다, 횡선에서는 중심이 없는 것입니다. 횡선 위의 한 점을 중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점만이 점유하는 곳이 중심점이 되는 것입니다. 중심이 둘이 될 수 있어요?
하늘이 있고 땅이 있으면 하늘과 땅이 축이 되어 가지고 딱 맞아 가지고 한 점에 모이는 곳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중심은 위에도 하나밖에 없고 아래도 하나밖에 없는 것이 원칙인 것입니다. 이것은 둘이 아닙니다.
이 하나의 점 가운데에 개인이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한 점 가운데에 가정이 서야 되는 것입니다. 다만 범위가 커지는 것입니다. 범위가 다를 뿐입니다. 하나의 점을 중심삼고 개인이 있고, 하나의 점을 중심삼고 가정이 있고, 하나의 점을 중심삼고 국가가 있고, 하나의 점을 중심삼고 세계가 연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중심은 영원히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야 서더라도 그 한점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가지고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팽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무리 무거운 팽이일지라도 돌기 시작하면 가벼운 팽이보다 더 잘 도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그런 축이 설 수 있는 자리가 있느냐? 그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설 수 있는 뜻의 자리, 혹은 개인이 갈 수 있는 뜻의 길,가정이 설 수 있는 뜻의 자리, 혹은 가정이 갈 수 있는 뜻의 길, 국가가 설 수 있는 뜻의 자리, 혹은 국가가 갈 수 있는 뜻의 길, 하늘땅이 일치될 수 있는, 종횡이 일점에 귀결될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지고 인간의 뜻이 다 이루어졌다 할 수 있는 그 점은 하나님과 인간이 일치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갈라져 가지고는 이상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상이라는 것은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 혼자 앉아 가지고 '나는 이상적인 사람이다'고 아무리 했댔자 혼자서는 이상이 벌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상은 상대적 관계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나 혼자 기쁨이 이루어지느냐?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혼자만으로 기쁨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지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 다시 말해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상이라는 것은 혼자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상대적 관계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상대적인 존재가 서로 엇갈린 자리에서 기쁨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 점을 중심삼고 똑같은 자리에서 만나야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주체와 대상은 남북과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그 남북은 서로 바라보면서 기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라보면 소망적인 기쁨은 있을는지 모르지만 진정한 기쁨이라는 것은 서로가 하나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는 데는 어디에서 되어야 하느냐? 남쪽을 중심삼고 한 3분의 1쯤에서가 아니고, 북쪽을 중심삼고 3분의 1쯤에서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딱 중앙에 와서 만나야 좋은 것입니다. 왜 그래야 좋으냐? 딱 중앙에 와야만 수직선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왜 그 자리를 바라느냐? 그 자리에 임해야만 비로소 중심이 결정되어 이상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 이상적이냐? 평면적인 감각을 초월해 가지고 입체적인, 수직적인 감각의 세계가 오기 때문에 보다 행복한 것입니다.
동서남북이 있으면 (판서하심) 여기에서 둘이 만나 가지고는 기쁨이 안 됩니다. 불평이 벌어집니다. 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부부끼리 서로 불평하는 것을 보게 되면, '당신과 나는 같지 않다. 생활하는 것도 같지 않고 생각하는 것도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같지 않다면 '나는 여기에 있으니 당신이 여기까지 오소. 여기서 만납시다. 나는 여기 있으니까 여기까지 오소' 하는 불평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불평(不平)이 뭐냐?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불만(不滿)이 무엇이냐? 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금을 그으면 요것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직 차지 않았다는 자리에서 불평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럼 평(平) 될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중앙입니다. 여기서 보아도 같고, 저기서 보아도 같고, 돌아서 보아도 같고, 옆으로 보아도 같고, 사방이 같게 될 때에는 불평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불평하는 놈은 망하는 겁니다. 중앙에 와서 불평하면 상대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평 될수 있게 되면 서로가 같다는 거예요. 같으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가 되어야지요. 거기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보아도 남자가 여자에게 '와라' 혹은 여자가 남자에게 '남자가 먼저 와라' 이렇게 되면 절름발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벌써 불평의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 중심에…. 이 점은 무엇이냐? 이 점은 이상적 기점이요, 하나의 근본된 점입니다. 근본적인 것이 무엇이냐 하면 중심점이요, 수직점입니다. 그것이 결정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결정짓지 않는 한 돌면 돌수록 빨리 넘어지게 마련입니다. 안 돌아야 그렇게라도 있지요.
중심 각도에서 요만큼 (손짓하심) 틀어진 각도에서 돌기 시작한다면 나중에는 배 이상이 벌어진 각도에서 돌아갈 것입니다. 각도가 없으면 없을수록 이렇게 도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 거리가 좁으면 좁을수록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치점인 것입니다. 운동하는 모든 존재는 반드시 중심을 따라서 운동을 하게 마련입니다. 중심으로부터의 거리 여하에 따라서 그 거리가 멀면 빨리 넘어지는 것이요, 가까우면 늦게 넘어지는 것입니다. 멀면 멀수록 잘 움직이지도 않는 것이요, 움직인다 하더라도 한두 바퀴 돌다 대번에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뜻을 중심삼고 개인이 설 자리라는 것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는 수직점, 중심점이기 때문에 그 중심점에 개인이 서야 됩니다. 그 중심에 하나된 부부가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이 서야 될 자리이고 다음에는 가정이 설 수 있는 자리가 이것입니다. 조금 클 뿐이지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도 조금 클 뿐이지 마찬가지입니다. 세계가 서는 자리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설 자리도 역시 그렇습니다. 이렇게 서야 하는 것입니다.
천주주의라는 것은 무엇이냐? 영계와 육계가 별도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영계가 윗축이라면 육계는 아랫축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엇갈려 있는 것이 아니라 수직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 수직점은 천주(天宙)의 중심이 되는 것이요, 영계의 중심도 되는 것이요, 세계의 중심도 되는 것이요, 국가의 중심도 되는 것인데, 일개 국가뿐 아니라 전체 국가의 중심도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중심도 되는데 일개인의 가정만이 아니라 전체의 가정의 중심이 되는 것이요, 세계를 대표한 개인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완성한 자리, 즉 세계적으로 완전한 자리는 가정이 완성할 수 있는 방향과 자연히 일치되는 자리입니다. 가정이 완성되는 자리는 자연적으로 국가의 완성점과 일치되는 것입니다. 국가가 완성된 그 자리는 세계가 완성될 수 있는 자리와 일치된 자리요, 세계가 일치되었다는 그 자리는 결국 영계까지도 일치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이걸 원으로 그려 볼 때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일직선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이 가는 길이지만 뜻이 가는 길과 일치된 개인이 가는 길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뜻과 일치된 길을 가는 개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개인이 뜻과 일치된 그 길을 가는 것을 우리는 일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개인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 동참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행복한 사람은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인간으로서 행복한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이 갈 수 있는 완전한 자리에 동참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개인적으로 이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가정 자체도 역시 뜻의 길과 일치된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당신도 그 길을 가야 하고 나도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고 갈라질래야 갈라질 수 없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아무리 돌아가려고 해도 다른 길이 없는 그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자, 여자는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방법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뜻이 가는 길입니다. '옛날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이렇게 달라졌다'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변화나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시작과 끝이 같은 것입니다. 참은 전무후무한 것입니다. 역사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변하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는 변하는 것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는 변하는 것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 다음에 가정이 가야 할 것은 무엇이냐? 민족을 편성해 가지고 하나의 주권을 찾아야 됩니다. 국가 하게 되면 주권자가 있어야 되고, 국민이 있어야 되고, 국토가 있어야 됩니다. 우리 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것은 세계 공통입니다. 주권자가 있어야 되고, 국민이 있어야 되고, 국토가 있어야 된다는 원칙은 말할 것도 없는 거예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데, 민족이 다르고 국가가 다르다고 해서 민족별로 국가별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목적과 방향하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한꺼번에 날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와는 상관없이 오는 것이 아니냐! 천만에! 하나님의 나라가 나와 상관없이 찾아와서는 언제 관계를 맺을 것이냐? 죽어 가지고? 뜻이 가는 방향에는 개인이 가야 할 길이 있고, 가정이 가야 할 길이 있고, 종족이 가야 할 길이 있고, 민족이 가야 할 길이 있고, 나라가 가야 할 길이 있고, 세계가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서 나라를 이루어 내 세계를 만들어 가지고 거기서 같은 민족처럼, 같은 종족처럼, 같은 가정처럼, 같은 개인처럼 살고 갈 수 있는 나라가 우리 인간이 바라는 나라가 아니냐? 그 세계를 통일된 세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봐요?
하나님도 개인을 따라가게 될 때, 천국의 행로를 가는 사람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 개인을 따라가려 할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길을 가는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을 오라고 하더라도 따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나라로 갈 수 있는 길을 가는 가정이 있다면 따라 나서지 말라고 해도 하나님이 따라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도 그렇지 않아요? 좋은 것이 있으면 마음이 달라진다구요. 옷을 살 때를 보더라도 좋은 옷, 덜 좋은 옷을 놓고 보면 벌써 좋은 옷에 눈과 마음이 가게 됩니다. 그렇지요? 좋지 않는 옷은 내 마음이 머무르려고 하지 않는다구요. 보다 좋은 것, 보다 새로운 것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왜 보다 좋은 것을 찾아가려고 하느냐? 최고로 좋은 것, 최고로 가치 있는 것, 최고로 권위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요? 결국은 하나님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돈이 필요해요? 하나님도 금덩이가 필요하겠어요? 하나님은 금덩이를 만들 수 있는 주인공이라구요. 하나님에게도 권력이 필요하겠어요? '예이, 이놈들아!' 명령을 하게 되면 '예-' 하고 천하가 일시에 굴복하게 되니 기분이 좋겠지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권력이 필요없습니다. 하나님 이상의 권력자가 있어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니 안 되는 것이 없다고요. 권력이 필요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이 필요하냐? 돈도 필요없고 권력도 필요없다! 그럼 지식이 필요하냐? 하나님은 지식의 주인입니다. 지식 하게 되면 없는 지식이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무슨 지식이 필요하겠어요? 여기 가도 꼭차 있고 저기 가도 꼭차 있는데 무엇이 필요해요?
그러면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도 혼자는 싫다는 것입니다. 혼자를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돈이 많고, 권력이 있고, 지식이 많으니 나 혼자서 됐다 하는 사람 있어요? 여자가 아무리 됐다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남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혼자는 안 되는 것입니다. 혼자는 외로운 것이요, 혼자는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왜 지었느냐? 왜 짓긴 왜 지었겠어요. 좋아하기 위해서 지었지요. 오늘날 기성교인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 인간은 피조물인데 창조주와 피조물이 같을 수 있느냐? 다른 것이다' 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은 언제나 홀로 절대적인 자리, 상대가 없는 자리에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 이상 불행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나라의 대통령의 권한을 가졌을지라도, 어머니가 죽어 혼자 살고 있는데 '혼자 사니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하는 아들이 있다면 '이놈의 자식아, 무엇이 행복해?' 할 것입니다. 그런 상황인데 아버지가 세계적인 대통령이라고 해서 '아버지, 행복하지요?' 하면 '오냐, 오냐, 행복하다' 그러게 되어 있어요? 효자라면 혼자 있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내가 어머니 한 분 모셔다 드릴까요?' 이래야 효자지요. (웃음)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은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세계 만물 앞에 언제나 절대자이시고 우리 인간들은 피조물이고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면 큰일난다. 그러니 언제나 엇갈린 길로 가야 된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은 어떻겠어요? '내가 비록 자격은 없지만 하나님은 이런 분이 아닙니까? 그러니 내가 잘되어 하나님의 상대를 한 분 소개해 주겠습니다' 하면 하나님께서 관심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마찬가지라고요. 아무리 잘났으면 뭘해요? 아무리 미인 아가씨가 있으면 뭘해요? 그 미인 아가씨도 아침도 그렇고 저녁도 그렇고 일생 동안 혼자 아름답게 산다고 하면 미인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결국은 무엇 때문에 사람을 지었느냐? 상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상대의 세계가 없어 가지고는 이상의 세계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일치될 수 있는 생활, 가정이 일치될 수 있는 생활, 씨족이 일치될 수 있는 생활, 민족이 일치될 수 있는 생활, 국가가 일치될 수 있는 생활, 다음에는 세계가 일치될 수 있는 생활, 이것은 전부 다 뜻이 있습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개인은 이렇게 가야 된다'는 줄이 있다면 그 줄로 가려는 사람입니다. 가정은 이렇게 가야 되는 것이다 하는 그 표준대로 틀림없이 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물론 현재는 불행할는지 모르지만 그 불행은 행복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라는 이렇게 가야 된다고 하는, 하나님이 그어 놓은 패턴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세계는 이렇게 가야 된다' 하는 그것이 없어요. '천도는, 하나님은 이렇게 와야 된다' 하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엉망진창입니다. 중심이 없고 방향이 없는 혼란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죄는 무엇이냐? 중심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방향을 부정하는 것이 죄입니다. 아담 해와가 에덴 동산에서 타락할 때 천사가 나타나서 '야 야, 아담 해와야! 하나님이 에덴 동산의 모든 과일을 다 따먹으라고 하더냐?' 했을 때 '아니올시다. 다른 것은 다 따먹어도 선악과라는 열매만은 따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는 대답을 듣고 사탄이 '그것이 아니다' 하고 중심을 부정한 것입니다. 중심을 부정하는 것이 악의 기원이라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그것을 안 따먹겠다는 방향으로 그렇게 행하려고 하는데 천사가 '야, 야, 그런 것이 아니다. 방향이 이렇게 이렇게 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이 무엇이냐? 중심을 부정하는 것이요, 방향을 엇갈리게 하는 것이 악입니다.
대한민국에 있어서 악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대한민국에는 헌법이 있습니다. 거 중심된 무엇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심이 틀렸다.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악당이 되는 것입니다. '사회니 뭐 종족 혹은 동네면 동네 어른이니 예법이니 그런 것이 뭐 필요해! 그건 필요없다'고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뭐 동네도 없고 나라도 없이 중심을 부정하는 사람은 악당입니다. '방향은 뭐 동쪽으로 갈 게 뭐야? 그거 틀렸어. 내가 서쪽으로 가면 무슨 관계가 있어? 이렇게 중심과 방향을 혼란시키는 데서부터 악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목적이라는 것은 완전한 중심의 자리에서, 올바른 자리에서 출발하여 더 크게 발전시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출발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이렇게 각기 출발하여 어디에서 만나느냐? 만나는 점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결혼입니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면 그 가정을 중심삼고 본래의 가정이 가야 할 길이 있을 것입니다. 바른쪽으로 돌아가며 이것을 찾아가는 가정도 있고, 요렇게 가는 가정도 있을 것입니다. 그 가정들이 합해야 할 점이 나옵니다. 가정들이 합해지면 뭐냐? 이게 국가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요 국가들이 합해서 본연의 뜻에 따라 세계를 중심삼고…. 자기 멋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요것이 일치되는 것이 어떤 자리냐? 세계라는 것입니다. 세계가 하나로 귀결될 수 있는, 상봉할 수 있는 하나의 나라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래야 이상적인 세계가 나오는 것이지 혼자서는 안 됩니다.
뜻의 길은 개인의 길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을 향해 가지고…. 내가 중심, 즉 주체라면 목적이 하나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가는 길은 언제나 직선상에서 왕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 관계에서 가야 됩니다.
목적을 향해 가는 데에 있어서는 목적과 나와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오늘 아침에 밥을 먹는 것도 목적을 위해서 먹는 것이고 지금 내가 일하는 것도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주체는 대상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대상은 주체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출발은 목적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목적은 출발과 더불어 있는 것입니다. 그 둘이 가중되면 될수록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하나되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희생이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사랑이라는 것은 그 자체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상대를 위해서 있다는 거예요. 이 관념을 확실히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보다 큰 대상을 찾아가려는 것이 인생의 길이요, 보다 큰 주체를 찾아 나가려는 것이 인생의 길입니다. 내 개인을 중심삼고 보면 마음과 몸이 주체와 대상으로 되어 있지만, 가정을 중심삼고 보다 큰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보다 넓고 보다 큰 주체와 대상을 그리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왜 그러냐? 개인의 몸 마음이 이만하다면, 다음에 가정은 이만하고 이것이 점점 커져서 세계가 벌어지게 될 때 이 세계와 하나될 수 있게끔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이 머무를 수 있는, 주체와 대상이 일치된 이상권인 것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사랑의 보따리를 풀어 놓고 그 사랑이 사방으로 풍겨 나올 수 있는 뭐라고 할까, 구멍을 뚫은 고무공에 물을 채워 넣고 손으로 꼬옥 누르면 분수 모양으로 틀림없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전부 같이 물이 뻗어 나가지요? 그와 같은 사랑권을 만들려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냐? 그런데 손의 힘을 받는 것이 다르면 물이 쭉 나가요? 똑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영계와 육계가 하나의 축을 중심삼고 운동을 하더라도 같이 하고 힘을 받아도 같이 받기 때문에, 하나님과 구멍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같은 힘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상적입니다. 그것이 조금 차이가 있게 되면 찌그러지기 때문에 어느 곳은 물이 찔찔 나오고 어느 곳은 물이 삑 나간다구요. 그것은 이상적이 아닙니다. 그래서 영계와 육계는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서 천국 생활을 하지 못한 사람은 천상 세계에서 천국 생활을 할 수 있다? 있다, 없다?「없다」 없다! 왜? 찌그러지기 때문에! 불공평하기 때문에! 그것은 절름발이라는 것입니다. 절름발이는 거꾸러지기 마련입니다. 떨어진다 이겁니다. 이러한 놀음을 오늘날 우리 생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눈으로 보는 데 있어서 언제나 봐야 할 중심이 어디냐? 눈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봐야 된다 하는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코로 냄새를 맡을 때도 중심이 있어야 됩니다. 귀로 들어야 할 중심도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 중심은 개인적인 중심인 동시에 가정의 중심도 될 수 있고, 가정의 중심이 되는 동시에 국가의 중심도 될 수 있고, 세계의 중심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것은 수직의 중심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작지만 전체의 기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 눈은 적은 부분을 보더라도 세계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지상에서 보고 느낀 것은 영원한 세계에서 영원히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가는 데에도 중심, 인간은 이렇게 가야 된다 하는 그것이 있어야 됩니다. 지금까지 이것이 애매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 혹은 큰소리치는 사람도 '오늘 무얼 하고 살았소?' 하면 '뭘하고 살기는 뭘하고 살아.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이럽니다. 자기 멋대로 목적도 없이 방향도 없이 흔들거리다 죽어간다면 흔들흔들하는, 유리고객하는 영이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어디로 가느냐? 나그네, 여러분 뭐 나그네와 같은 인생이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그네와 같지도 못합니다. 나그네가 가는 데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가는 길이 멀어지면 나그네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하루에 갈 수 있으면 나그네 신세가 안 되는 겁니다. 사흘, 나흘, 닷새, 일주일을 가다 보면 자기 집이 없으니 나그네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목적이 없는 나그네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그네만도 못한 인생길을 지금까지 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은 가는 목적이 있어요, 없어요?「있어요」 뭐 있어요? 그 목적이 어디예요?
개인을 위한 목적이면 가정도 그 목적을 위해 가야 됩니다. 개인 목적을 부정하는 가정은 없습니다. 개인 목적을 살리는 가정입니다. 민족의 목적은 가정의 목적을 살리는 것이요, 세계의 목적은 국가의 목적을 살려 주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은 세계의 목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살려 주는 것이 되어야 이상적입니다. 가자 마자 전부 다 집어치워야 된다, 이게 아닙니다.
여자가 시집을 갔는데 '야 네 집에서 가져온 것은 집어 던져 버려라. 이것은 전부 다 새것이니 집에서 가져온 것은 전부 다 불살라 버려라' 할 때에는 불만이 벌어지고 불행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누더기 보따리일지라도 고이 싸 가지고 왔으면 그걸 펴놓고 장사를 하든지 춤을 추든지 그게 좋다고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가정이요, 가정의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국가요, 국가의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세계요, 세계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영계요, 천상 천하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는 싫다고 하면 불행하게 됩니다. 하나님 가운데에는 세계의 중심도 들어가 있고, 나라의 중심도 들어가 있고, 가정의 중심도 들어가 있고, 개인의 중심도 들어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절대적인 주체가 될 수 있지 그렇지 않고는 절대적인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개인이 가는 길은 가정과 직통한다, 안 한다?「한다」 한다! 참된 가정이 가는 길은 나라가 가는 길과 직통한다, 안 한다?「한다」 한다! 나라가 가는 길은 세계가 가는 길과 직통한다, 안 한다?「한다」 그러면 세계가 가는 길은 하나님과 영계가 직통한다, 안 한다?「한다」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개인이 가야 할 뜻의 길과 방향이 일치되는 패턴이 있어야 됩니다. 가정은 어떻게 가야 된다는 그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요? 국가는 어떻게 가야 된다는 패턴이 있어야 될 거라구요. 세계는 어떻게 가야 된다 하는 원칙이 있어야 됩니다. 그 원칙이 지금의 공산주의냐? 아니다. 그럼 민주주의냐? 아니다. 그 원칙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중심을 모르고 방향을 모르고 있습니다. 중심이 없는 자리에 섰고, 방향이 없는 자리에 섰으니 선한 세계냐, 악한 세계냐? 중심과 방향이 흐려지면 흐려질수록 그 세계는 악한 세계입니다. 중심이 뚜렷하고 방향이 뚜렷한 세계는 선한 세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한 세계의 사람이 되려면 중심이 뚜렷해야 되고, 방향이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은 선한 사람이다, 악한 사람이다?「선한 사람」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가정은?「선한 가정」 그러한 국가는?「선한 국가」 그러한 세계는?「선한 세계」 그렇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개인적으로 틀림없는 중심과 한 방향을 가지고 간다, 갔다, 서 있다, 산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대답하라고요. 여자들,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남자들,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안 되어 있습니다」 안 되어 있으니 미친 녀석이야, 올바른 녀석이야? 남자 아니라, 대통령 아니라 뭐 교황이라도 미친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사탄이 와서 천대해도 불평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불합격 품은 어디에서나 천대받고, 동네방네에서 쫓겨난 미치광이, 거리에 있는 미치광이, 별의별 녀석이 와서 건드려도 누구도 항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심 없는 존재, 방향 없는 존재는 별의별 녀석이 침을 뱉더라도 불평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도 중심도 방향도 없이 건들건들하는 자는 불평할 여지가 있다, 없다?「없다」 그건 모르고 '왜 천대해, 나를 몰라보고…' 이럽니다. 중심과 방향이 엇갈리게 될 때에는 악의 통치 하에 안 들어간다? 「들어간다」 그래 중심이 서 있어요, 여기 할머니? 아주머니, 중심이 서 있어요, 안 서 있어요? 서 있어요, 안 서 있어요?
병원에 가서 의사가 '어디가 아파서 왔소? 무엇 때문에 왔소?' 하고 물어 보는데 '그냥 왔지요' (웃음) 그런 환자는 치료해 주고 싶어도 못해주는 겁니다. 왜 왔느냐고 물어 보는데 가만히 있으면 돼요? '나 이래이래 왔어요' 이래야 되는 겁니다. 자기를 감추려고 하는 사람은 미욱하고 땅거미보다 더 둔한 사람입니다. 우리 아가씨들, 누가 자기 흉만 보게 되면 '이거 왜 그래, 너는 뭐야? 재재재재…' 이럽니다. 거 안 된다는 겁니다.
중심에 어긋나게 될 때에는 무자비하게 제재를 받아라. 방향이 전부 틀리게 될 때에는 무자비하게 제재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제재가 가해지더라도 방향만 바로잡아 주게 되면 고마와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심을 잡아 줄 때에는 고마와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뜻의 길을 가려내자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뜻의 길을 알지 못하고는 통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개인이 가야 할 뜻의 길을 어떻게 가야 되느냐? 그 표준이 있어야 됩니다. 그 표준을 누구로 잡느냐? 하나님을 표준으로 했으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다! 그러니까 제일 대표적인 사람을 표준해야 될 것이 아니냐? 그러면 그 분이 누구냐?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 하나님의 몸을 닮고,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그러한 사람이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몸 닮고, 마음 닮고, 사랑을 닮으면 다 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가는 길이 하나되고…. 몸 마음이 하나님의 가는 길을 닮았으면 하나되는 거라고요.
다음에 사랑은 무엇이냐? 상대적인 세계의 이상적인 존재끼리 일치될수 있는 절대적인 중심 요인인 것입니다. 거기에서 이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됩니다. 내가 몸과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사랑만 그리워할 수 있는 방향만 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내가 땅 끝에 있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자연히 오기 마련입니다.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뭐냐? 개인이 가는 길은 이래야 된다 하는 대표적인 표준인물이 누구냐? 그래도 역사상에 제일 대표적인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될 수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 이상 중심의 내용을 소개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했느냐 하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 하나가 됐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하나님과 하나는 되었지만 이루지 못한 것이 사랑,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사랑을 이루시려고 오시는 것입니다. 사랑을 혼자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죽으면서 '신랑 신부'라는 유언을 남긴 것입니다. 그 유언이 성취되는 그 날, 이 땅 위에 소망의 가정과 소망의 나라와 소망의 세계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고요.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누구보다도 최고의 내용을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중심을 제시했고, 방향을 올바르게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로 나가는데 있어서 그 방향과 중심이 엇갈리지 않고 언제나 같은 입장에서 일치되어 나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나가야 되느냐? 중심을 맞춰 나가야 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 보고 그리는 것이 좋아요, 안 보고 그리는 것이 좋아요? 글씨를 쓰는 데에도 체가 있습니다. 거 글씨 본(本) 말이예요. 요즈음에는 글방이 없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옛날 글방 같은 데서는 장지에다 썼다구요. 스승이 장지에다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루 황 이렇게 쓰면 (판서하심) 그 스승의 글씨체를 본받아 천번이고 만번이고 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연히 습관이 되어 그렇게 쓰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 무슨 체가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 본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예요?
그렇지만 본을 만들긴 만들어야 하는데 여러분은 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본될 수 있는, 백 퍼센트에 해당될 수 있는, 만점짜리를 본받아 가지고 점점점점 그것에 가깝게 원형(原型)을 만들어 놓는 놀음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역사노정의 성인들이 그런 놀음을 했습니다. '나는 누구를 좋아한다' 여러분은 그러지요? '나는 누구의 사상을 본받는다' 이런 것이 있다고요. 혹은 '나는 공산주의를 좋아한다. 나는 민주주의를 좋아한다' 그런 것이 있다고요.
통일교회는 무슨 주의를 좋아해요? 선생님 주의가 아니라고요. 하나님 주의라고요. 하나님 주의인데, 무슨 주의냐? 뭐 씨름하고 달리기를 하자는 그런 주의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랑하기 위한 주의입니다. 영원히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받을 수 있는 주의, 이것을 꿈꾸는 패들이 통일교회…. '패' 하면 기분 나쁘지요, 분패가 생각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통일교회 패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통일시킬 수 있는 원칙입니다.
그 사랑은 어디에 나타나야 되느냐? 개인에게 나타나야 되고, 가정에 나타나야 되고 민족에 나타나야 되고, 국가에 나타나야 되고, 세계에 나타나야 되고, 하늘땅에 충만한 사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 사람들이 바라는 욕망이라구요. 그렇게 보면 제일 큰 욕심을 가진 패들이라고요. (표정을 지으시면서) 고개를 이러고 가만히 앉아 있지만 심상치 않은 패들이라고요. 지지리 쫄아빠진 옷을 입었지만 이 다음에 왕녀가 된다는 거예요. 모양은 형편없지만 이 다음에 하나님의 왕자 왕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참, 본때가 있지요.
여러분 그 마을에서 유명한 상대를 얻고 싶어요, 군에서 유명한 상대를 얻고 싶어요? 그런 것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빠르게 안다구요. 감성은 여자가 더 빠르다는 거라구요. 그 부락에서 유명한 상대보다는 군에서 유명한 상대, 군에서 유명한 상대가 있지만 또 도의 유명한 상대가 있다면 군의 상대를 놔두고 도에서… (웃음) 도도해 간다구요. 도에서 유명한 존재가 제일 중심인 줄 알았더니 나라에서 제일 가는 큰 중심존재가 있어서 그 존재의 상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할 때에는 도에 대한 중심존재를 버린다는 것입니다.
버리는 데에는 미련을 두고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울고불고 해도 '울겠으면 울고 말겠으면 마라. 나는 간다' 하는 거라고요. 그렇지요? 또, 대한민국의 제일 가는 사람이 마지막인 줄 알았더니 세계에서 제일 가는 존재가 있다면, 대한민국의 상대를 버리고 그것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그렇지요?「예」 또 세계보다, 백년 세계권의 일생을 중심삼은 그것보다 영원을 중심삼고 처음 나오는 주체적인 존재가 있다면, 세계적인 존재도 버리고 그것을 취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 같은 양반들은 그러한 꿈을 꾸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다 버리고, 나라도 버리고, 남편도 버리고 아들 딸도 버리고, 나 한 사람 따라오라고 하는 광고를 붙이고 가는 것이 신랑된 예수님을 찾아가는 놀음이라는 것입니다. 그거 됐어요, 안 됐어요? 거 기분 좋아요, 나빠요?「좋아요」
더 좋은 것 앞에서는 덜 좋은 것을 버리고 바꿔쳐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패턴을 따라서 바꿔쳐야지 자기 멋대로 바꿔쳤다가는 파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원칙은 그래요. 하나님의 패턴을 따라 가지고, 공식적인 원칙에 따라서 그렇게 바꿔치는 것이 원칙인데, 그런 자리, 그런 환경에 서지 못했으면서도 바꿔쳤다가는 전체가 깨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건 자체도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야! 가정을 버리고 나와라, 나라를 버려라' 하는 것입니다. 중심을 못 가진 나라, 중심을 못 가진 가정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다! 도리어 없었던 것이 좋을 뻔하였도다! 가룟 유다는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가 아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나쁠 뻔하였도다? 나쁠 뻔이요, 좋을 뻔이요?「좋을 뻔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을 대표하여 하나의 표본적인 길, 즉 뜻의 방향과 목적을 취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은, 중심이 없고 방향을 모르는 곳에서 중심을 찾고 방향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하나님이 절대 지지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중심이 없는 것은 흘러가 버리지만 중심이 있는 것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중심이 없으면 아무리 큰 환경도 흘러가 버리지만 아무리 작은 개인도 중심에 방향이 일치되면 남아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역사는 수습되기 때문에 수습될 수 있는 그 자리를 찾아가는 것은 선(善)입니다.
총각 처녀들의 얘기를 자꾸 하면 이상한 기분이 나는데, 할 수 없다고요. 사람은 총각 처녀부터 시작되니까 말이야. 처녀들은 참된 남자를 찾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렇지요? 술 먹고 길거리에서 껄렁거리는 깡패는 싫지요? 참된 남자를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참된 남자를 찾아갈 자격자가 되려면 내가 참된 여자가 되어 가지고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여자가 됐어? 못 되었기 때문에 시집가려는 생각을 말라는 거예요. 남자도 참된 남자가 되어서 참된 여자를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남자가 됐어? 그러니 시작부터 혼란이 벌어지는 거라고요. '아이구 나 죽는다. 내 이럴 줄 몰랐구만' 그런 요지경판이 사회에는 숱하게 많습니다.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의 길이 있어야 된다고요. 참된 남자와 여자들이 가는 길, 그게 있어야 될 게 아니예요? '참된 남자, 참된 여자가 가는 길, 그걸 부부라고 하느니라. 부부를 중심삼고 자녀를 낳아 가지고 가는 것을 가정이라고 하느니라' 이렇게 되지요? 가정이 참되게 가야 할 길은 뭐냐 하면 자기 동네에서 손가락질을 받으며 가는 것이 아닙니다. 동네 방네 사람들 앞에, 중심의 자리에서 가야 되는 것이 아니냐? 저 사람을 바라보고 저 사람을 따라가겠다고 하게 될 때, 그 사람은 그 동네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동네방네 사람들이 '저 가정을 따라 가야지' 하며 전체가 동원되어 따라가게 될 때 그 가정은, 그 사람은 중심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김해 김씨가 많다고 하지요? 여기도 김해 김씨가 많을 거라고요. 나 김해 김씨 좋아하지 않소. (웃음) '우리 김해 김씨 동원해 가지고 대통령 해먹자' 이러면 기분 나쁘다구요. 김해 김씨가 누구를 위한 대통령을 뽑자는 거예요? 김해 김씨를 위하는 대통령을 뽑았다가는 그 나라는 망한다는 거예요. 김해 김씨를 중심삼고 독재하는 거예요, 독재. 그런데 김해 김씨를 통해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김해 김씨를 배반하고라도 그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대통령이 된다 하면 김해 김씨의 추천받아된 그 대통령은 올바른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또 올바른 씨족이 되려면, 김해 김씨에서 대통령을 출마시키더라도 우리보다 모든 씨족을 위하는 대통령이 되라고 출마시켜야 됩니다. 그랬을 때에는 김해 김씨는 올바른 중심 씨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들이 불평을 안 합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했다가는 동네방네 싸움만 벌어지고 대통령도 때려죽이려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자기의 씨족만을 위해서 대통령을 세우겠다는 패들은 도둑놈입니다.
본래 주체라는 것은 대상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김해 김씨가 주체의 자리에 서고자 하거든 대상된 다른 수많은 씨족들을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 것은 존재의 원칙을 망각한 것이기 때문에 천도는 그런 사람을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제거당해야 할 운명이 되기 때문에, 그 운명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당하기 마련입니다. 쫓겨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복받기 마련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서 자고로 선을 행하라고 했습니다. (판서하심) 선(善) 자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이것은(羊) 양을 뜻하고 이것은 (刀) 칼을 뜻하며, 이것은(口) 말씀을 뜻합니다. 이렇게 보면 양이 목적이고 저렇게 보면 말씀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칼이라는 것은 양 칼이라는 것입니다. 딱보면 이렇게 해석한다고 해서 기분 나빠하지 말아요. 한번 해보는 거라고요. 자기 멋대로, 내 멋대로 해석해도 기분 나쁘지 않으면 된다는 거예요. (웃으심) 이렇게 보면 양(羊)인데, 이렇게 보면 말씀(口)입니다. 말씀의 목적은 양(羊)이요. 양이 결국 가야 할 것은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걸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칼을 맞아야 됩니다. 양 칼을 맞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의 칼, 하나님의 칼을 맞고 있는 인간이라고요. 이것이 싫더라도 둘다 감수하면서 가는 사람은 선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해 봤다고요.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고요. (웃음)
때로는 사탄의 칼을 맞아 봐야만 하나님이 어떻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채찍을 맞아 봐야만 악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선악을 가리기 위해서는 선이 어떻다는 것, 악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게 맞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한 사람이 될래요? 선한 사람이 되려거든 맞고 가라는 거예요. 형제끼리 싸움을 해도 맞은 아들에게 어머니가 '너는 착한 아들이다' 하는 거예요. 어떤 것이 선이냐? 선한 자리는 어떤 자리냐? 피해를 받는 자리가 선한 자리입니다. 둘이, 전부가 나쁘더라도 보다 나은 사람은 피해를 받고도 가만히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선입니다. 한 대 쥐어 맞고도 참는 녀석이 선한 사람입니다. 가해자는 아무리 잘났더라도 악한 것입니다. 요 관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부처끼리 살 때, 아무리 덩치가 큰 남자, 혹은 큰소리하는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가만히 있는 아내에게 말 한마디라도 가해하여 감정을 자극하게 될 때에는 악은 아니지만 악한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해를 받는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선한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자리에 선 피해자가 악한 자리에 선 가해자에 대하여 불평하는 날에는 둘다 망하는 것입니다. 참고 용서할 때는 악한 사람도 자기를 본받고 선하게 교육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윤리의 근본이요, 사회질서의 원칙이 되어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고요. 그렇게 안 되어 있으면 세상은 벌써 망했을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 두 사람만 있으면 말을 해도 서로 다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지만 가정적으로는 나는 싫어' 그러는 사람도 있어요. 또, 통일교회 총각들 혹은 아가씨들 중에는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축복받기 위해서 전도했다'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웃음) 축복받아 부처가 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요. 뻣뻣이 목석이 되어서 죽겠어요? 그게 아니라고요. 남자, 여자가 축복받고 난 후에는 아들딸을 낳아야 됩니다. 아들딸을 낳아서 무얼 해야 되느냐? 나라가 없다면 아무리 좋고 행복한 가정이라도 황마적단이 나와 가지고 모가지를 자를 수 있다, 없다?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를 찾아야 됩니다. 이것을 종교인들이 모르고 있어요. 종교인들이 확실히 모릅니다. 선한 나라를 찾아야 됩니다. 이것이 종교의 목적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한 나라만 찾으면 악한 나라가 대들면 쳐 버릴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이런 놀음을 한 것입니다. 나라를 찾는 날에는 법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안할 때는 쳐 버린다는 거예요. 그런 때가 온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왜 비참한 죽음을 당했느냐? 나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라만 있었으면 전도 안 한다는 거예요. 전도하되 대사관을 통해서 그 나라의 왕을 전도하는 거예요. 왕궁의 황족을 위해서 전도하게 되어 있어요. 황족이 된 것은 그 나라의 선한 역사적 전통의 인연을 이어받았기 때문입니다. 왕만 딱 전도되어 복귀되는 날에는 그 나라 전체가 자동적으로 복귀되는 겁니다. 그러니 세계는 순식간에 하나님의 뜻세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몰랐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뭐냐? 가정을 이루어 가정이 잘살기 위해서 나가자, 그거예요? '아이구! 천대가 뭐야, 천대가? 언제는 선생님이 축복해 주면서 잘살라고, 이상상대는 이렇다고 설명은 참 잘하여 주시더니 이게 뭐야? 축복해 주자 마자 또 뭐 나라를 위해서 보따리 싸 가지고 나가라구?' 이럽니다. 그것은 가정이 잘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가정보다는 친척, 씨족이 잘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김해 김씨만을 위해서 나가는 패들은 쫓김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회도 한 씨족이 되어 있는데,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가겠다 할 때에는 대한민국에서 쫓겨나기 마련입니다. 통일교회는 대한민국 전체를 잘살게 하기 위해서 가자 하기 때문에 대한민국 백성이 싫어하더라도 천운이 오면 봄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꽃이 피게 마련인 것입니다. 싫다는 겨울절기는 지나가고 좋다는 봄동산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서 축복해 줬어요. 통일교회를 위해서 살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통일교회 패들은 하나님이 찾고자 하시는 선한 나라를 위해서 살라고 가르쳤다고요. 그래요, 안 그래요? 대한민국이 복귀되면 또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사는 그런 대한민국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백성이 삼천만이면 삼천만을 희생해서라도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나가라고 때려 모는 그런 주권자라면 일시에는 대한민국 백성 앞에 반발을 받고 쫓김을 받을지 모르지만 세계 인류는 그 지도자를 환영할 것입니다.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선은 남을 위하는 데에서만이 나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본래 존재하기 위한 시작은 상대를 위하는 데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알겠지요?
그러면 개인은 무엇을 바라고 나가야 되느냐? 가정을 바라고 나가야 됩니다. 가정은 종족을 바라고 나가고, 종족은 민족을, 민족은 국가를, 국가는 세계를 바라고 나가야 됩니다. 이걸 그려 보면 (판서하시며 말씀하심) 그 안에는 개인이 있고, 가정이 있고, 종족이 있고, 민족이 있고, 국가가 있고, 세계가 있습니다. 이렇게 될 때 이 전부가 하늘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큰 것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이 가는 공식적 노정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노정이라는 말 많이 쓰지요? 복귀 노정이다, 공식적 노정이다….
개인보다 큰 것이 가정이기 때문에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선입니다. 가정은 종족, 종족은 보다 큰 그 동네를 위해서 희생하라, 가정은 동네를 위해서 살라 그 말이라구요. 그 친척을 위해 살라 그 말이라구요. 그렇게 살면 절대 망하는 법이 없느니라. 종족은 민족을 위해 살라! 시골 가면 김씨네 문중하고 박씨네 문중하고 싸우지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 동네에서도 그런 걸 봤어요. 개울 하나를 놓고 싸우는 패들이 있다구요. 그 패들은 나라를 모르는 패입니다. 나라가 망하더라도 관계없다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김씨와 박씨가 싸울 때에 어느 편이 한번 져주고 위해주는 날에는 위함받은 놈은 굴복하게 마련입니다. 요걸 알아야 된다고요. 통일교회는 핍박을 받았지만 위해주는 놀음을 하게 될 때는 승리하게 마련이다. 이게 지혜로운 길이더라 이거예요. 문선생님이라는 사람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에 있어서 땅따라지 됐다고요. 뭐 삼천만이 반대하고, 낫다는 대학 교수 혹은 대학생들 전부가 침을 뱉고 그랬지만, 요즈음에 와 가지고는 '대한민국에서 기대할 것은 통일교회밖에 없소' 하는 말이 내 귀에 자주 들어온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이런 소리가 항간에 많이 들려 온다고요. 기성교회 목사들 20여 년 동안 단에 서서 그저 죽으라고…. '이단 문 아무개 이것 때문에 전통적인 기독교는 망합니다. 하나님!' 하고 별의별 기도를 다 했지만, 망하라고 한 녀석들은 망하고, 망하라고 쫓김받던 사람은 꺼떡댄다고요. 거 이상하지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된다고요.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이 원칙을 안다고요.
가정을 버리고라도 종족을 위해서 나서야 된다면 틀림없이 나설 줄 압니다. 종족을, 통일교회를 버리고라도 나라를 위해서 가야 할 길이 있다면, 여러분이 아무리 가지 말라고 손을 잡더라도 갑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사상이라구요. 세계를 위해서는 나라를 버리고 이민을 가라, 세계를 위하는 길이 있으면 대한민국을 구해 놓고 보따리를 싸 가지고 이민을 가라 해도 갑니다. 나빠요. 좋아요? 세계를 위해서는 이민이라도 갈 것입니다. 미련없이 세계를 위해서 떠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구, 선생님 가면 안 됩니다' 하면서 민족이 엉엉 울게 될 겁니다. 그러면 따라가면 될 것이 아니냐? 그렇게 해서 따라 나서면 세계적인 대이동이 벌어질 것입니다. 새로운 문명권은 새로운 이동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야곱도 이동에서부터….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가정이 출발했고, 이스라엘 민족도 이동으로부터 이스라엘이 건국되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이동을 위해서 메시아가 나왔는데 세계적인 대이동을 출발 못 한 것이 예수님의 한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대이동의 바람을 일으켜야 합니다. 미국놈도 '한국으로 와라? 하면 '예, 갑니다' '독일놈도 '와라!' 하면 '예, 갑니다' 이렇게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한국놈, 한국 사람도…. (웃음) 오기만 바라고 가기는 싫다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오기를 바라거든 가기도 좋아해야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끌어오는 것만큼 그렇게 보내준다는 겁니다. 처녀 총각들을 보내줘야 되겠다! 보내주는 데는 어떻게 보내느냐? 제일 좋게, 시집 장가로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국제 결혼을 많이 시켜 주겠다니 좋아하는 패들이 통일교회의 총각, 처녀들이다! 그래요? 이왕지사 까만 머리의 여자로 태어났으면 상대는 노랑 머리, 알록달록해야 좋지요? 꽃도 노란 꽃만 좋다는 사람은 미의 감각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웃음) 왜, 웃어요? 선생님 말이 좋아서 웃어요, 틀려서 웃어요? 좋은지 틀렸는지 모르지만 그럴 듯하면 웃어도 괜찮다구요. 그래야 되는 거라고요.
예수님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있다?「없다」 없다! 자기를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의 몸을 사랑해 봤어요? 나는 나만 사랑한다. 나만 붙들고 살겠다고 하면 혼자 죽었지 별수 있어요? 여러분이 이런 걸 알아야 됩니다, 문제는 어디 있느냐? 자, '뜻과 우리의 생애' 이렇게 되어 있는데 여러분이 하루의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하루는 1초, 1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 이 자리에 들어와 앉아 말씀을 듣는데 어떤 사람은 '통일교회 문선생님은 가만히 보니까 배우 소질이 많다' 이렇게 봅니다. 이런 녀석은 중심을 위하는 녀석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내가 이런 표정을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자극적인 인상을 남겨 주려니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요건 기필코 알아야 될 말인데 어떻게 해야 될것이냐…. 그럴 때는 책상을 치면서 이러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해 보이시면서 말씀하심) 이래야 인상에 남기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그걸 평하는 사람은 반동분자라는 겁니다. (웃음) 여러분이 손수건을 들고 춤을 추는데 그 손수건이야 찢어졌든 구멍이 났든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서 즐거워하며 춤을 추면 그 찢어진 것이 더 예술적이라고요. 그렇게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다방면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바탕을 지닌 사람입니다.
결론을 지읍시다. 생활은 생애의 중심을 세우기 위해서 생활하는 것이요, 생명의 중심을 확정짓기 위해 생활하는 것입니다. 또, 생애의 방향을 엇갈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뭘하는 거라구요? 생활하는 것입니다. 생활은 하루 하루의 활동을 통해서 쌓아지는 것이요, 그것이 올바로 쌓아지지 않게 될 때에는 생애도 엇갈리게 됩니다. 생활과 생애는 다릅니다. 생애는 일생의 전체를 두고 말하는 것이고, 생활은 하루, 한 시간 혹은 일분 일초도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이걸 생각해야 합니다.
악은 무엇이냐? 중심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중심을 갖지 않고 행동하는 것은 악입니다. 또, 중심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방향이 틀리게 행동할 때에는 악입니다. '나는 틀림없이 통일교회 식구다'라고 하면 중심이 같습니다. 그렇지만 '돈을 벌어서 통일교회 가야 되겠소' 하면 중심은 같지만 방향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그것은 악이 되는 것입니다.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류와 비주류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된다고요. '내가 이래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해도 교회의 가는 방향과 일치되지 않게 될 때에는 벌써 절반은 악한 권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날이 되면 될수록 모이기를 힘쓰지 말라고 했다? 그래요?「힘쓰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느냐? 방향을 밤이나 낮이나 맞추어라 이것입니다. 낮이나 밤이나 24시간을 맞추어라, 모이기를 힘써서 언제나 중심과 한 자리에 서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날이 되면 될수록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 참고 견디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끝날을 맞이해서….
'선생님이야 가겠으면 가고 말겠으면 말아라. 나는 선생님을 아는데 선생님은 나를 모른다' 이거 안 된다고요. 나는 하나님을 아는데 하나님은 나를 모른다 하는 집에 들어가면 쫓겨나겠어요, 환영받겠어요? 틀림없이 쫓겨납니다.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안 쫓아내면 그것은 불법입니다. 비원리적입니다. 불합격품은 합격품과 동참할 수 있다? 「없다」 그건 아는구만. 불합격이 뭐냐? 백 미터를 뛰는데 99.9미터에서 스톱했다 할 때는 일등으로 뛰었더라도 낙제꽝이 안 되는 것이다? 「되는 것이다」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합격권에 못 드는 것입니다. 합격품의 자리, 기록에는 오르지 못합니다. 그것이 원칙이라고요. 그러니 끝까지 그걸 마쳐야 합니다.
그것이 언제 결정되느냐? 굴다리 밑을 지나가는데 생각지도 않게 지나가던 버스가 대가리를 들이받았다 할 때 (웃음) '아이구 하나님, 나는 이렇게 하려고 했습니다. 탕감조건 하나는 배웠기 때문에 통일교회 원리 고맙습니다. 나 탕감조건 세우고 죽으니 구원해 주십시오' 할지라도 그것이 방향과 중심에 일치되지 않을 때에는 수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방향과 중심에 일치되면 조건이 성립될 수 있는 가망성이 있다는 것이 아니냐구요.
탕감조건을 내가 세울 수 있느냐? 죄인에게는 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나 이렇게 하겠소'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것입니다. 판사와 검사에 의해서 그럴 수는 있지만, 여러분 자신들이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천도를 책임지고 밝힐 수 있는 중심존재가 그러한 관리권, 주관권내의 법도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이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어 가면서 '우리 통일교회 원리가 좋기는 좋아. 나는 천국에 가야지. 하나님, 내가 지금까지 선생님의 명령대로 못 했습니다만 내 마음으로는 다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나를 탕감조건을 세운 걸로 해주소' 하면 하나님도 공평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천국가려고 하는 자리에 갖다 놓는다는 것입니다. (웃음) 무슨 자리에 갖다 놓는다고요? 가려고 했기 때문에 천국가려고 하는 자리에 갖다 놓는 거라고요. 알겠어요?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거예요. 가긴 가는데 천국가려고 하는 자리에 갖다 놓는다는 거예요. 그 자리는 낙원 이하의 자리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도 천국가려고 한다구요, 지옥까지도. 그렇지요?
이렇게 무자비한 놀음이 여러분의 초, 분, 시간권내에서 뒤넘이치면서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살이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온 지 몇년이나 됐소?' '들어온 지 10년 됐지' '10년 되었으면 햇수는 나보다 많은데, 뭘했소?' '뭘하긴 뭘해, 통일교회 믿었지' '믿었는데 어떻게 되었소?'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두고 보면 그냥 그대로지' 예이 이 녀석아! 안 믿는 것만 못하다는 거예요. 혹을 떼야 됩니다. 그리고 고약을 붙여야 됩니다. 싫든 좋든 뒤넘이쳐야 되는 거라고요. 가만히 있어 가지고 되겠어요? 안 되는 거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가는 데는 개인이 가는 길, 가정으로 가는길, 종족으로 가는 길, 국가로 가는 길, 세계로 가는 길, 하늘땅으로 가는길,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는 길, 이렇게 딱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틀림 없이 가려 가지고 가야 되는 것이라면, 세상은 통일 안 되어 있지만, 영계에 가서는 몇억천만 년 걸려서라도 그 길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원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어서 가면 억천만년 걸리지만 살아서 가면 7년 동안에 갈 수 있다! 어떤 것을 택할 거예요? 살아서? 살아서 가는데 그저 웃고 춤추며 가면 얼마나 좋겠나?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죄를 짊어진 사람은 복역을 해야 탕감이 되는 것입니다. 탕감은 여러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대로 좋아하는 길, 좋아할 길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들어오면 신물이 도는 것입니다. 반대라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져야 악한 세상에 새로운 무엇이 나올 수 있는 가망성이 있지, 그냥 걱석걱석 춤추는 데 같이 박자를 맞추어 춤추었다가는 그냥 그대로 흘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강력한 반대 운동을 제시하는 곳이 나와야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 역사적인 세계 위에 비로소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가망성이라도 생겨나지 않겠느냐 이거예요. 자, 그럼 이 길을 따라가고 싶은가, 안 가고 싶은가?「가고 싶습니다」 싶어, 안 싶어?「가고 싶습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거들랑, 통일교회를 믿거들랑 자기 마음대로 가는 것이다? 그래요?「아닙니다」 틀림없이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어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못생기긴 못생겼고 싫기는 싫지만 선생님이 주체라면 여러분은 대상이 될 수 있게끔 밤낮으로 조정해서 맞추어야 됩니다.
기분 나쁘지요? 남자들 기분 나쁘지요? 기분 나빠도 할수없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의 마음대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하나님이 가는 방향을 맞추려고 뺑뺑 돌아가는 거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뺑뺑 돌아가기 때문에 나도 딱 달라붙어서 뺑뺑 돌아가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상이 뒬 수 있는 거라구요. 종교는 그런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도주(道主), 종주(宗主)를 중심삼고 절대 하나되라는 것은 도주, 종주가 가는 대상권을 독차지, 점령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가라, 가라' 하고 싫은 말을 하면 '선생님 또 그렇게 하누만. 이번에 외국 갔다 왔기 때문에 틀림없이 또 냅다 몰것이다' 딱 점치고 있다가 내몰게 되면, '아이쿠, 봐라! 내가 생각하던 대로 된다. 기분 좋다' 하는 사람은 먼저 벌받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라고 하는 길이 틀렸다면 선생님이 먼저 벌받을 것이고 선생님이 가라고 한 길이 옳다면…. '그것 봐라. 내가 판단한 것이 옳지' 하는 녀석은 직격탄을 맞을 것입니다. 그 녀석은 맞는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하겠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라구요. 선생님이 도둑놈인지 모른다구요. 사기꾼인지 모른다구요. 까놓고 이야기하자구요. 선생님이 사기꾼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 원칙만 알라는 거예요. 선생님만을 위해서 가라고 할 때는 보따리 싸가지고 도망가라고요. 그렇지만 자기를 위하지 않고 보다 큰 세계를 위해서 가라고 가르쳐 줄 때는 그것은 정도(正道)에 가까운 거라구요. 이것은 공식적인 노정입니다.
보다 큰 것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공식적인 노정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 원칙에 입각하게 되면, 선생님은 망하더라도 여러분은 망하지 않습니다. 만일 선생님이 그릇된 길을 가게 되면 여러분은 선생님 이상의 올바른 길을 가겠다고 끝까지 참아 가지고 선생님이 죽으면 장사하고 난 후에, '문선생님은 나라를 위해서도 가지 못했으니 문선생이 가지 못한 길을 내가 가겠다'고 하며 나서게 되면, 문선생이 닦아 둔 모든 유산을 하나님으로부터 걸머지워 가지고 몽땅 인계받을 수 있습니다. 알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도주를 믿는 사람들이 도주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이 도의 욕망인 것입니다.
세상의 주권자라는 것은 자기 이상 높아지는 사람을 모가지 자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의 세계의 주권자, 즉 도주의 소원은 사람들이 자기 이상의 자리에 나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의 세계의 요구인 것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자기 이상 잘나기를 바라고, 자기 이상 복받기를 바라고 길을 가는 것이 선의 길이요, 자기 이상 가서는 안 된다고 모가지 자르려고 하는 것은 악의 길입니다. 자기 이상 선한 길, 더 좋은 길, 중심 혹은 방향을 찾아가라고 제시하는 것은 선한 것이요. 그 이상 되는 것을 막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독재자는 그러한 부류의 사람입니다. 종교 지도자는 전자의 사람입니다. 다르다고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절대 복종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라를 위해 나가라고 명령하면 '아이구. 선생님! 왜, 나라만을 위해 명령해요. 나는 빨리 대한민국을 거쳐 가지고 세계로 나가려고 하는데, 기분 나쁩니다'라고 항의하였다면 그것은 정당한 항의가 되는 것입니다, '너는 대한민국만을 위해라' 하면 '나는 세계를 위할 것입니다' 이래야 됩니다. 한국에서 믿는 통일교인보다는 세계 개척 선교사로 출발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이 망하더라도 세계의 운세권에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초월적인 방향성을 가려 가지고 가는 사럼이 머리가 좋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알겠지요?
지금 아주머니들 3년노정을 나가 있는데 '3년만 되는 날에는 1972년 섣달 마지막 날에는 보따리 싸 가지고 집에 돌아간다' 이렇게 생각한다구요. 그것은 뭐야? 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라를 연결시키려고 하는데 아직까지 남북을 통일시킬 수 있는 애국자의 반열에는 동참 못 한다는 것입니다. 아예 처음 나설 때부터 '남북이 통일될 때까지 가정이고 뭣이구 남편이고 뭣이고 뜻을 위해서 다 바치겠다. 그러니 볶아 먹겠으면 볶아 먹고, 구워 먹겠으면 구워 먹고 마음대로 하소 나는 갑니다' 이러는 사람, 또 남편이 오라고 편지를 하고, 아들이 죽는다고 악을 쓰더라도 남북통일을 위해서 끝까지 싸우다 죽은 사람은 영계에 가도 심판에 걸릴 조건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3년노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성들이 가야 할 일선지대가 도래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것은 난 싫어, 나는 책임을 다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은 모른다' 하는 사람들은 그때 가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주객이 전도되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일을 하더라도 대한민국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땅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하늘땅을 위해서 개인이 있고, 하늘땅을 위해서 가정이 있고, 하늘땅을 위해서 종족이 있고, 하늘땅을 위해서 민족이 있으니 그야말로 하늘땅을 사랑하고 중심인 하나님을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식모살이하는 아가씨가 되어 있다 해도 천명(天命)에 의해 원수의 장손 집에 들어가 식모살이한다면 그 나라의 운명이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식모살이하고 있지만 식모가 아니라 애국자의 반열에 드는 것입니다. 그 생활이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역사적인 터, 무대와 권을 넓힐 수 있고 호령할 수 있는 주체적 권한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선생님도 그래요. 선생님이 뜻을 품고 감옥살이했다는 사실은, 오늘날 세계 통일교회 신도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수직으로, 분수와 같이 핏줄을 내뿜게 할 수 있는 동기가 됩니다. 몇십년 전에 그렇게 했던 것이 지금에 와 가지고 눈물을 줄줄 흘리게 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건 왜? 자기 때문에 살아서예요? 내가 밥먹기 위해서, 자기 출세하기 위해서 살아서 그렇지요? 아닙니다. 다르다고요. 그것은 전통으로 이어받아야 할 하나님의 법도라는 것입니다. 중심에 세울 수 있는, 정상적인 정도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역사는 지나가더라도 그러한 사상적 전통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역사와 더불어 사라진 것 같지만 전통적인 그 사상의 표준은 세계를 점령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자, 그러니까 중심의 자리에서 죽을 거예요. 안 죽을 거예요?「죽을 겁니다」 죽더라도 중심의 자리에 붙어서 죽어야 된다구요. 중심을 붙들고 죽어야 됩니다. 내 사지백체가 다 잘리더라도 중심의 자리에서 가닥 하나라도 놓지 않고…. 생명이 끊어지기 전에는 놓아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이걸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하다가 죽었다 할 때는 중앙에 붙게 되는 거라고요. 천국 들어갈지 말지 하다가 들어간다 이것입니다. 아슬아슬한 일이라는 거예요. 순간적이라는 겁니다. 죽을 때에도 놓지 말고 죽어야지 죽으면서 놓아도 안 됩니다. 물러나는 날에는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죽을 때까지 놔서는?「안 돼요」 놓는 것이 일년 걸려요? 순식간에, 눈 깜박할 새에 운명이 판가름되어 천지 차이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심각하다구요. 어떤 때에는 행동하기가 무서워요.
선생님도 그렇다구요. 무엇을 하나 새로이 시작하려면 그 초조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공판정에 나서는 기분이예요. 죄인들이 판사, 검사 앞에 나가 가지고 구형을 받고 판결을 받는 그 순간과 같은 초조함, 운명의 판결을 받는 것 같은 심정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한 발자국이 틀어지는 날에는 천지가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그걸 느껴 봤어요? 순간에 엇갈리게 될 때에는 역사적으로 우리 선조가 아무리 옳았었다 차더라도 천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입니다. 십년 공부, 이것은 문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수천년 동안의 하나님의 섭리가 일신의 운명과 더불어 좌우되는 이 엄청난 갈림길을 나로 말미암아 조정해 가지고, 개인을 지나고 가정을 지나고 종족, 민족을 지나는 데에 내가 그 기수가 되어 이런 일을 제시할 수 있다는 놀라운 가치관을 지니고, 놀라운 그 자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천지의 인연을 좌우할 수 있다 하는 사실을 느끼게 될 때, 통쾌한 자리가 아니냐? 그렇잖아요? 여러분의 생활권내에서 방향을 가리기 위한 일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어요. (녹음이 잠시 중단되어 약간을 정리하지 못했음)
'하나님 아버지, 나를 동정하시사 우리 아기를 낫게 하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기보다는 아들은 죽더라도 이 나라, 이 세계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됩니다. 자기 아들을 버리고, 나라를 위하여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나라를 위하다 보니 비록 자기 아들이 죽어가게 됐지만, 하나님 앞에 제물로서 바쳐 드린다는 기도를 함으로써 효자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요. 요런 것이 있다는 거라구요.
선한 사람은 자기편을 희생시키고 나갑니다. 보다 큰 것을 위해서 희생시켜 보다 큰 뜻이 이루어지게 되면, 희생당했던 아들딸은 역사에 선전되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기에 안중근 의사의 아들딸이 있다면 그들이 안중근 의사가 하던 일을 꿈에나 보았겠어요? 보지 못했지만, 상관이 없지만 그의 직계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영원한 가치를 인계받기 마련이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버이를 잘둔 사람은 복을 받게 마련입니다. 스승을 잘둔 사람은 화를 받기 마련이다 그래요?「아닙니다」 종교의 도주를 잘 모시는 사람은 복을 받게 마련입니다. 다 맞는 말이라구요. 그 시대와 상관은 없지만 그가 세계를 위해서, 뜻과 더불어 살았기 때문에 그와 더불어 영광의 자리에 서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결론을 지읍시다. 그러니 언제나 중심을 놓치지 말라는 겁니다. 중심을 놓치는 날에는 몇천년 공사가 나무아미타불 되는 것입니다. 중심을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은 중심이 흔들리는 거예요. 그 다음에 죽더라도 선생님이 가는 길을 따라 나라를 위해서, 방향이 일치되어 죽으라는 것입니다. 중심을 붙들고 방향이 일치된 자리에서, 다리 하나라도 그것을 위해서 움직이고 죽게 되면 그것이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심과 방향이 엇갈리게 될 때에는 아무리 큰소리하고 아무리 했댔자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에덴 동산에서 중심을 부정하고 방향을 부정한 데서 악이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원리적인 기준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반대되는 자리에서 가야 할 것이 천리의 법칙, 천도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그런 입장을 취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해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사람은 망하기 마련입니다. 공산당들은 내것도 내 것이요, 네 것도 내 것이다 합니다. 하지만 우리 통일교회 사상은 내 것은 네 것이요, 네 것은 나라의 것이요, 나라의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하나님 것이요, 하나님 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통일사상의 정도라고요. 알겠어요?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 봐요. 내가 중심의 자리에 서 있느냐? 방향을 갖추고 가느냐? 스스로를 냉정하게 비판해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려 가지고, 옳은 것은 남겨 놓고 그른 것은 정비하여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 여러분들 가운데는 교회 일에 관심조차 없는 패들이 많다구요. 이런 패들은 흘러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선생님이니까 그렇게 바쁘게 살지. 선생님이니까 그렇지' 할지 모르나 선생님이니까 그럴 이유가 있어요? 선생님이 가만히 있는데 이렇게 되었어요? 가만히 있는데 이렇게 되었어요? 어제 어머니가 하는 말이 '아빠는 몸이 참 튼튼하고, 뭐 보게 되면 놀랍게 건강체'라는 거예요. 놀랍게 건강체가 뭐예요? 놀랍게 건강체가 될 수 있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피곤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요. 피곤하다구요. 피곤하지만 그 피곤에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언제나 얘기를 하지만, 이북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 삼팔선을 넘게 될 때, '틀림없이 삼팔선쪽에 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세를 볼 때 말이예요. 가만히 영적으로 생각해 보니까 사태가 불리하다는 거예요. 마음이 자꾸 이남으로 넘어가려고 하더라는 거예요. 그것을 여러분은 모르지만 선생님에게는 뭐 있다고요. 뭐가 있을 게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큰 일을 하는 거예요. 그리하여 딱 접경지대에 왔는데 파수대, 경비대들이, 아랫방에는 경비대원들이 있고 우리는 윗방에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이남으로 가려고 한다. 우리는 공산당이 아니다. 당신들은 삼팔선에 있으면 언제 공산당들이 모가지를 잘라갈지 모를텐데 우리 친구가 되는 게 좋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이래 가지고 하루 저녁 넘어가려다 못 넘어가고, 이틀 저녁 못 넘어가고, 사흘만에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 때에는 재치가 있어야 되고 눈치가 빨라야 된다구요. 그렇지요? 그런 때는 보따리를 싸더라도 먼저 싸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주인들보다 앞서야지 주인들보다 뒤떨어져서는 안 되는 거라고요. 그럴 때는 날쌔야 되는 거라구요.
아 이래 가지고 제일 먼저 배를 탔는데 떼거리들이 몰려와서 아우성이 벌어지게 되니까, 어떻게 됐느냐 하면 순경, 경사, 그리고 경사보다도 계급 높은 사람하고 일반 사람들을 체인지하는 거라고요. 바꿔치기를 하는 것입니다. 군경의 가족이 아니면 끌어내는 거라구요. 이런 판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니 난데없는 사람들은 어쩔수없이 쫓겨나야지 별수 있어요? 용매도에 갈 때의 제일 기수가 결국은 다시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일화가 많다구요. 그럴 때는 날쌔야 됩니다, 날쌔야 돼. 환경에 몰려서 그렇게 되었지 틀림없이 선두로 이남에 나올 뻔했습니다. 조수가 한 시간만 빨리 들어왔더라도 나올 뻔했는데, 딱 걸렸다고요. 이래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구요. 갈 때는 소망을 삼고 가니 힘든 줄 몰랐다구요. 사흘 동안 밤잠을 못 자고 갔던 것입니다.
여기 원필이가 있지만 원필이는 그때 열아홉 살, 철모르는 때이니 뭘 알아요? 그저 먹고 배불러야 좋아하고, 고단하면 잠자야 좋아할 때라고요. 그런데 새벽 두 시에 깨워 가지고 가게 한 것입니다. 삼팔선에서 청단까지 80리 길입니다. 그 길을 달밤에 가는데…. 그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얼마나 고단한지 이 사람(원필)은 보따리를 메고 가면서도 조는 거예요. (웃음) 모르는 사람은 그렇다구요. 그러나 선생님은 한 발자국이 바쁜 거예요.
오늘 저녁 중으로 임진강 턱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그런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는 선생님이 비상 작전, 비상 조치를 하는 것입니다. 안테나를 최고로 뽑아 보는 거라고요. 보통 때에는 그런 놀음을 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들은 저녁이 되었다고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전부 다 부락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우리들만 열두 시를 지나 한 시에 임진강 접경 밑 집에 도착한 것입니다. 거기는 뭐 사람들이 전부 이남으로 갔기 때문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빈집에 들어갔는데 자긴 뭘 자요.
그런데 그날 임진강이 얼지 않았다고요. '이 강이 얼지 않으면 안 될텐데…'하고 걱정을 했는데 하나님이 보호하사 그날 저녁에 딱 얼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벽같이 첫번에 넘어왔다고요. 그런데 우리가 제일 빨리 온 줄 알았는데 그 동네에 미리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래 가지고 유엔군이 철수하면서 우리 일행을 마지막으로 막아 버렸습니다. 그 뒤 사람들은 전부 뒤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럴 때 한 1분만 서성댔더라면 어떻게 되었겠나? 사람 팔자 시간 문제가 아니라구요. 아예 망쳐 버리는 거라고요. 그런 일들이 우리 인생살이에도 많이 벌어지는데 천도를 가려 가는 길 앞에 없겠느냐 이것입니다. 얼마나 심각하냐 이거야! 그걸 여러분들은 모른다구요.
선생님이 3차노정으로 세계를 돌아왔지만 떠날 때, 문공부에 결재를 받아야 했습니다. 서류에 문공부 장관의 도장을 찍어서 첨부해야 할 텐데 못 했기 때문에 딱 걸려 버렸습니다. 그런데 주일날이었기에 문공부는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니 큰일났다는 것입니다. 다 된 줄 알았는데 딱 걸렸으니 큰일났거든요. 시간은 조여 오는데 말이야. 오늘 안 가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는 거예요. 오늘 안 가면 안 될 텐데 딱 걸렸다고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가야 돼!' 했더니 쫓아 뛰어다니는 것입니다.
책임자인 여권과 과장이라는 사람이 원래는 비행장에 나와 근무하는데 그날은 주일이기 때문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책임자인 그 과장은 그날 계원들과 춘천 호수에 가서 하루 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나요? 그런데 그 과장이 아침에 일어났는데 죽어도 가고 싶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참 고맙고 감사하지요. 이런 때는 고맙다고 한다구요. (웃음) 자기는 책임자이니 가긴 가야 될 텐데 발이 안 떨어지더라는 거예요.
그래 '에라 모르겠다' 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자는 판인데 난데 없는 사람이 문을 두드리며 과장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여권과에 열쇠가 세 개나 채워졌는데 열쇠는 전부 다 과장이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정문과, 사무실, 철궤의 열쇠를 과장이 가지고 있으니 그가 아니면 일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가 과장을 찾아가서 만나 악착같이 쫓아 다녀 가지고 떠나기 15분 전에야 가까스로 해 가지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공항에서는 '어떤 사람들이기에 쉬는 날까지 과장이 이렇게 나와서 일을 하나' 그러는 거예요. 안 된다고 반대하고 싸우다가 그렇게 되니 할 수 있어? 푹 주저앉는 것이지. 그렇게라도 해서 나가야 된다구요.
그날 안 나가면 문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오는 것도 그래요. 가만히 생각도 않고 있다가 간다, 준비해라…. 복닥불이 나는 거예요. 사흘 전에는 꿈도 안 꾸었다고요. 그날 안 하면 안 된다구요. 영계를 통하는 사람이 와서 보고하는 거예요. '이 날이 틀어지면 이렇게 될 것인데, 선생님은 어쩌면 그렇게 잘 아느냐'고 합니다. 어쩌면 잘 알다니? 그런 걸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선생님이 잘 알지! (웃음)
선생님이 이렇게 세계를 돌아오니까 하는 말이, '선생님은 세계를 순방하니까 얼마나 좋겠나? 이곳 저곳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니 좋으시겠다' 이럽니다. 좋아? 그야말로 이럴까 저럴까,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서 싸워 나가는 거예요. 초긴장 상태에서 생활하는 거예요. 그걸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뭐, 우리가 본부에서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잘 돌아왔지…. 천만에요. 여러분의 기도 신세 지고 다니는 선생님이 아니라고요. 여러분의 기도를 받아 가지고 민족 앞에 돌려주기 위해서, 장단을 맞추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는 것이지, 여러분의 기도에 죽고 사는 운명을 건 사람이 아니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의 정성과 수고를 민족의 것으로 남기고 세계의 것으로 남기려니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세워 가지고 세계적으로 그 환경권을 포위, 포괄하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한 것이지, 내가 여러분의 기도 때문에 죽고 사는 사람인가요? 여러분의 신세를 지지 않고 가는 사람이라고요. 그렇다고 '오늘부터 선생님 위해서 기도 안 해도 된다' 그렇게 하겠으면 그렇게 하라고요. (웃음) 그런 것을 여러분은 모른다구요.
자, 6천년 동안 하나님을 녹여 먹던 사탄이가 그냥 순순히 '아이고 나는 하강이요' 눈 내리깔고 돌아갈 것 같아요? 여러분은 걸레 짜박지도 버리려면 아까와하지요? 걸레 짜박지도 뒤집어 봐 가지고 냄새를 맡아 보고 버릴 거예요. 사탄이가 그냥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고요. 그러니 악착같은 싸움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심에 맞추어야 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중심에서 어긋나게 될 때에는 꺾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발전 안 한다구요. 방향이 맞지 않으면 발전 안 한다구요.
그러니 그 나라를 찾기 위해서 밤이나 낮이나…. 그 나라를 찾는 것은 세계를 찾기 위해서, 세계를 찾는 것은 영계를 위해서입니다. 그래 가지고 뭘 할 것이냐? 하나님을 모시고 지상에 와 가지고, 자리를 잡아 가지고, 만국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그 하나님 앞에 승리의 영광을 돌려드리고 바쳐 드리기 위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통일교회를 위해서 이만큼 일을 했는데 선생님은 왜 나를 몰라주느냐고 당당하게 말을 합니다. 그거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만일 그렇게 나왔다가는 그 즉시에 그 후손들, 그 사람의 아들딸의 씨앗까지도 거두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정성을 들이게 되면 그 사람에게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후대, 후손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이 책임자를 세워 정성을 들이게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요. 그 사람의 후대에게 복을 주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 복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 후손에게 복 주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는 거예요. 후대를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후대고 무엇이고 필요 없으니 나에게 다 해주소' 그러면 '그래' 하고 다 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라는 거라구요. 내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안 알아주면 안 된다고 당당하고 거침없이 불평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만약에 이러한 조로 나와도 된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하나님에 대하여 얼마나 참소했겠느냐 이것입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서 죽을 자리에도 갔고 일생을 다 바치지 않았소! 별의별 놀음을 다 하면서 수난길도 선의 표적으로 알고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나오지 않았소! 그걸 당신이 몰라주면 되겠소! 왜, 아직까지 이러한 고생을 시키고, 이런 자리에 두십니까, 능력이 많으신 분이?' 그랬다면 거 어떡해요?
그건 불효라구요. 죽어도 그분 안에 있고 살아도 그분 안에 있어야 됩니다. 그 자체 가운데 있다 해도 그 자체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목적이라는 것은 보다 더 큰 것입니다. 대상으로서 그 자체 앞에 있는 것은 희생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땀을 흘려야 됩니다. 수고를 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가정이 동원될 때에 동원되지 않은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럴 때가 온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지도하던 것은 공식적으로 여러분이 가야 하는 법도가 되어, 앞으로 기성교회가 들어오든가 남이 들어오든간에 전부 다 이 공식적인 노정을 가라 하면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가지 않으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때에 가서 천대를 받으며 가지 말고 지금 동정을 받으며 가라는 것입니다. 같은 자리에서 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처음 출발에서부터 중심과 방향을 일치시켜 가는 사람은 나중과 시작을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최후의 승리는 주체의 것인 동시에 처음부터 끝까지 간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여러분은 중심을 가지고 살라, 중심을 가지고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녹음 상태 불량으로 약간의 분량을 정리하지 못했음)
20년 전에는 통일교회 식구들과 선생님이 새벽 한 시까지 기도하고 정성을 들이며 한 방에서 지냈습니다. 그때는 선생님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으니 지금도 선생님의 방에 들어와 마음대로 앉아 가지고…. 천만에. 이제부터는 그렇게 안 됩니다. 앞으로는 선생님을 만나는 데 있어서 체계를 세우려고 합니다. 토요일 하루를 면담하는 시간으로 하고 그 외는 만나지 않을 때가 옵니다. 내가 할 일이 많아요. 그렇다고 여러분을 멀리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큰 일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개인의 사소한 문제는 총무부를 중심삼아 가지고 해결하고, 교회장을 통해서 해결짓게 되면 본부까지 올라올 일이 없게 될 거예요.
어떤 사람이 선생님과 약속도 안 하고 '나 선생님을 한 시간만 뵈어야 되겠소' 하는 것입니다. 만나 주지 않고 쫓아 버렸다고요. 그렇게 했다고 내가 양심의 가책을 받지도 않습니다. 그럴 수 있는 때는 옛날에 다 지나갔다 이거예요. 옛날에는 개인을 위해서 밤을 새워 상대해 주고 눈물을 흘리면서 상대해 주었지만 언제나 그렇게 해 가지고는 내가 일을 할 수 없어요. 내가 큰일을 해야 된다구요. 개인적인 사정을 들어줄 수 없습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전체적인 문제를 다루어야 되니 그건 불가피 하다는 거예요.
이럴 때에는 아무리 참소를 하더라도 선생님은 참소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요. 보다 큰 것을 위하려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 이해되지요?「예」 선생님을 만날 때 함부로 들어와 누구와 얘기하고 있는데 눈치를 보고…. 불청객으로 와서 떡 쌍통을 벌리고 앉아 있는 돼먹지 않은 패들이 많았다구요. 지금까지는 좋았다고요, 살림살이할 때이니까. 그러나 이제는 나라를 위하는 사람끼리 의논하는 거라구요. 그렇지? 가정과 나라는 다르다고요. 앞으로 이런 것을 가려야 되겠습니다.
이제는 만나는 시간도 정하려고 합니다. 몇 시에서 몇 시까지 사람들을 만나고 그 다음에 문제가 있으면 조직 책임자들과 의논해야지 선생님에게 올 필요 없다구요. 그런 때가 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또, 새벽 다섯 시만 되면 언제나 선생님이 이야기한다…. 그럴 때는 지나가는 거라고요.
여러분 대해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큰 책임을 수행해야 할 때에는 여러분에게 이야기 안 해줄 수도 있다고요. '주일날 선생님이 예배에 참석하지 안 했으니 나도 안 해도 된다' 할지 모르지만 여러분과는 다르다구요. 서 있는 자리가 다르다고요. 그걸 같이 생각하면 안 된다구요.
통일교인들 중에 선생님이 가끔 영화 구경간다고 '우리들도 영화 보러 가야지' 합니다. 천만에요. 옛날에는 선생님이 극장 앞에 돌아다녀 보지도 않았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런 훈련을 거쳐서, 그런 자리에 가더라도 내가 더럽힘을 받지 않고 지배받지 않을 수 있는 자주적인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가더라도 문제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하려고 하는 대로 다 하겠다고…. 내가 지방에 갔는데 어떤 녀석이 내가 반말을 한다고…. 그래도 책임자인데 반말을 하다니…. 이런 시시껄렁한 패들이 있습니다. 내가 반말할 때까지는 어린 삼척동자까지도 섬기고 경배하고 하나님 앞에 모심의 생활을 했던 몸이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뜻을 알고 나면 선생님이 자기들에게 경어를 쓰면 거북해서 얼굴을 들고 말을 못 한다고요. 깍듯이 대해 줘 보라고요, 얼마나 거북한가? 해보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지요? 박정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감옥에서 데리고 나온 사람 말이예요. 이 녀석에게는 선생님이 생명의 은인이라고요. 그에게는 선생님이 어떻게 하나 보자 하고 깍듯이 예를 하고 공손히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쩔 줄을 몰라서, 설 자리를 몰라 가지고 선생님이 무서워 나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선생님에게는 아무것도 없지만 그런 뭐가 있다구요. 상대를 척 대해 가지고 내가 자리를 잡고 나면 자유스럽지 못하다구요. 암만 자기 세상이라고 해도 자리를 딱 잡으면 나는 태연하게 앉아 있지만 무엇인지 모르게 어색하다고요. 손을 이렇게 드는 것도 (손짓) 다시 생각하게 되고 목을 이렇게 할 때에도 '내가 이렇게 해도 되나?' 이렇게 된다구요. 그런 무엇이 있다구요.
거 왜 그러냐? 권위라는 것은 공의의 권위라는 것은 자기가 취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천도가 가려 주는 것이라구요. 영계에는 수천억의 영인들이 있는데 거 언제 등급을 매기겠어요? 세상같이 네가 먼저냐 내가 먼저다 해 가지고 어떻게 영계가 통일되겠어요? 벌써 척 대하면 아는 거라구. 아무리 몇천년 전의 조상이라도 척 봐서 후손의 등급이 위가 될 때에는 머리를 숙이게 되어 있다구요. 알겠어요?
저나라에 간 돼먹지 못한 조상이 후손에게 '야! 너는 나의 몇십대 후손이 아니냐? 야 이놈아, 네가 잘 되었다지. 나를 몰라보면 안 돼' 이럴 때에는 어떻게 되겠어요? 어느 동네에 신세를 지면서 어렵게 살던 사람의 아들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야! 너는 옛날에 내 신세를 지고 지금은 몰라봐?' 그러면 나라 정치가 되겠어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고요. 매정하다구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몇십 대의 할아버지라도, 원칙적인 질서는 천도에 의해서 가려지게 되어 있으니, 자기 후손이라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고요. 그런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은 내가 너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자유스러운 환경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도리어 선생님에게 무관심해졌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절대 무관심한 자리에 내몰아 나오면 눈이 둥그래 가지고 관심을 갖게 마련입니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총무부에 가라는 겁니다. 선생님을 만날 사람들 함부로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비서실을 만들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1년 열두달, 3년 아니라 5년 동안 암만 만나자고 해도 안 만나 주는 사람도 있다구요. 그런 사람을 만나 주면 그 사람이 손해니까. 자기 이상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만나 줘야 손해라구요. 돈을 투입하면 투입할수록 손해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만큼 내가 할 일을 다 했다고요. 가정을 위했고, 종족을 위했고, 민족을 위했습니다. 이제는 두 가지 남았습니다. 그것은 이야기 안 하지만, 간단한 것입니다. 몇 사람만 만나서 해결지으면 내 책임은 다하는 거라구요. 대한민국을 위해서 눈물 한 방울 안 흘려도 영계에 가서 대한민국의 선조나 후손 앞에 참소 안 받을 일을 내가 다 해 놓았다고요. 알겠어요? 그런데 여러분을 보기는 언제 봐요? 선생님은 무정한 사람이라고요.
감옥을 찾아와 눈물 흘리는 어머니를 쫓아버린 사나이라고요. 아내를 쫓아버린 사나이요, 자식을 모른다고 길거리에 거지와 같이 버려둔 사나이라구요. 그걸 생각해야 된다구요. 오직 뜻 때문에 그런 무자비한 사람이 됐다구요. 불효라면 세상에 없는 불효자가 됐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불효가 아닙니다. 남편이면 남편, 아버지면 아버지 노릇을 못 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천도의 길을 가려니 할수 없지 않느냐…. 둘다 할 수 없기 때문에,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세워 가는 길이 지혜로운 길이기 때문에, 만약에 세상에서 치리가 안 되거든 영계에 가서는 틀림없이 치리된다는 원칙을 알았기 때문에 그 원칙적인 길을 지상에서 실천해 가는 노상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돈을 벌어 가지고 쓰는데 내 개인을 위해서 쓰지 않습니다. 보다 큰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한국을 위해서 돈을 써 왔지만 이제는 세계를 위해서 쓸 때가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자립해야 됩니다. 조금만 더 가면 브레이크 거는 거예요. 모든 경제력을 쪽 빼다가 세계를 위해서 돌리는 날이 불원한 장래에 올 것입니다. 그러한 준비를 해 놓고 지금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니 한국은 빠른 시일내에 자립해야 될 것입니다. 선생님의 신세를 질 때는 지나갑니다. 그럴 때가 오는 거라구요.
그러지 않고는 이것도 저것도 안 되는 거라고요. 매일같이 거지 패들 같은 사람들을 데리고 뭣이 되겠느냐? 안 됩니다. 본부에서부터 전부 다 깨끗이 정리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내가 직접 얘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부 다 영계를 통해서 직격탄을 쏜다는 거예요. '너는 뭘하러 다니는 녀석이야' 안팎을 딱 짜 가지고 꼼짝을 못 하게 하여 제거해 버릴 것입니다. 앞으로 여기에 들어오려면 파수꾼 24명을 통과하지 않고는 들어오지 못할 때가 올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꼼짝도 않고 가만히 앉아 가지고도 저쪽에서 무얼 하는지 배속까지 들여다 보는 사람들을 파수꾼으로 세우고 살고자 하는 것이 선생님의 이상입니다.
그러한 기반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이 기반을 닦으려고 지금 이렇게 천신만고의 수난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가 온다구요.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선생님을 만나자고 자꾸 전화하는 사람이 많은데 다 끊어 버렸다구요. 통일교인 여러분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통일교회의 시대는 지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엄벙덤벙하다가는 '아이쿠! 아이쿠! 이럴 줄 몰랐구나, 이럴 줄 몰랐구나' 그럴 때가 온다고요. 그걸 여러분이 확실히 알고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때를 아는 사람입니다. 때를 맞이한 사람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맞추는 사람입니다. 때를 맞추는 사람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때를 맞추기 위해서 모험을 하고 생명을 내놓고 대드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천도의 가는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뜻과 우리의 생애…. 중심의 가는 방향을 중심삼고 1분, 1초를 직시하면서 가야 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뜻을 배반하고 가는 길이 어떨 것이냐? 이번에 일본에 들렀을 때 우리와 관계를 맺었던 어떤 사람이 우리와의 관계를 그만두겠다고 하기에 그만두겠으면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나는 사실 당신을 위해서 이렇게 해나오는 것이지 내가 당신을 믿고 나온 사람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너 같은 사람은 흘러가더라도 내게 손해 안 된다. 너 자신이 손해가 날 것이다. 두고 봐라' 했어요. 그건 걸리는 거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선생님이 참 좋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무서운 사람인 줄 나 자신도 안다고요. 나도 모르게 '고약한 녀석' 이런 생각이 들어 가지고 말 한마디가 나오게 되면 6, 7개월 이내에 난장판이 벌어지는 걸 많이 봤습니다. 거 이상하다구요. 이런 것을 생각하면 선생님이 좋긴 좋은 사람이지만 무섭다면 무서운 사람이라고요.
아이들에 대해서도 그렇다는 걸 내가 압니다. 내가 아버지 노릇 하기 힘들다구요. 아버지는 자식을 어떻게 대해야 되느냐? 친구 중의 친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친구하고 놀다가도 아버지가 나타나면 친구를 다 버리고 아버지를 향해 달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승 중의 스승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심정에 있어서는 언제나 지주, 즉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선생님은 이상도 하다. 애들을 데리고 공장에 다닌다'고 흉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구요. 공장을 다니는 것이 놀러 다니는 사람 같다고 말입니다. 앞으로 우리 공장은 가정을 발전시킨, 한 단계 차원 높은 터전이 된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구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그러려고 한다구요. '우리 아버지는 대통령보다 제일이다. 하나님 다음 가는 것이 우리 아버지다' 이래야 된다구요, 전부 다. '친구를 주고도 못 바꾸는 우리 아버지다. 어떠한 스승을 주고서도 못 바꾸는 우리 아버지다.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면 버렸지 아버지는 버릴 수 없다' 이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 예진이를 보면 이제 자기 엄마만큼 크다구요. 선생님은 지금까지 어느 한날도 빼지 않고, 피곤하더라도 자고 있는 방에 들어가서 뽀뽀를 해주었다구요. 그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구요. 애기들에게 될 수 있으면 그렇게 한다구요. 그런데 이제는 커서 그런지 자기도 어색하고 나도 어색하다구요. (웃음) 그런 것을 느낀다구요. 철들 때까지 그렇게 했다구요. 잠이 안 든 그런 순간에는 아버지가 와서 자기를 이렇게 (손짓하심) 쓰다듬어 주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 것이 필요하다구요. 이러한 새로운 정서적인 전통을 만들어야 됩니다. '세상의 대통령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 아버지가 최고다' 이래 돼야 되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 아버지가 최고다. 친구가 문제 아니고 우리 아버지가 최고다'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 효진이가 아, 아버지 가는 데 따라가겠다고 지금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오면 함께 어디를 가겠다고 어디 가게 되면 링컨차를 타고 가자고 합니다. 어떤 때에는 '주일날 경주에 한번 데려가 주지 않겠어요?' 합니다. '주일날 무슨 경주야. 주일날은 어디에 가게 되어 있지 않으니까 가려면 대구에 간다는 조건을 해 가지고 살짝 들러가면 갔지 그냥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냥 경주에 간다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구요. 예배를 다 보고 난 후면 모르지만 말이예요. 아버지를 따라가겠다고 지금 우리 국진이까지도 나서고 있습니다. 그게 나쁜 것이 아니라구요, 그러지 못해서 문제지. 교육이 참 힘든 거라고요. 아버지 노릇 하기가 힘듭니다. 쉬운 게 아니라구요.
이러한 모든 문제를 중심삼고…. 문제는 뜻 하나라구요. 뜻 하나 이루자는 거예요. 아들딸에게 뜻길을 어떻게 가르쳐 주느냐? 내가 아들딸을 위해서는 정성을 못 들였는지 모르지만 내 마음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는 거예요. 그걸 하나님이 보게 될 때, 그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잘되지 말래도 그 가정의 후손은 자연히 하나님이 보호해 주는 거라고요. 그렇지 않아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되지 못했다고 한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부모가 충신이 되었거들랑 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충신의 아들딸이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랐다면 그 나라 군왕이, 그 나라 나랏님이 사랑해 주기 마련입니다. 알겠어요? 자기 어버이의 신세는 못 받지만 나랏님의 신세는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복이냐? 자식이 나랏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면, 부모가 자식을 위해 가는 이것이 복된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구요. 이것이 정도요 공식적 노정입니다. 뜻의 길이라구요. 알겠지요?「예」 중심이라구요. 방향, 낮이나 밤이나 방향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아직까지 내 아들딸을 위해서 기도 한 번 안 했다고요. 그런 기도하려면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뜻이 이루어지면, 내 아들딸을 위해서 기도는 안 했지만 아까 말한 대로 제일 먼저 승리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거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가까운 아들딸을 돌보지 않았다구요. 희생시켰다구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광의 날에 자동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을 깜박깜박하고, 숨을 쉬고 하는 일체를 중심의 방향에 일치시켜야 합니다. 먼길을 하루종일 가거나 달리고 나서 처음으로 쉬게 될 때도 '뭘하고 왔나?' 생각하고, 눈만 뜨고 있으면 뜻의 길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뜻. 반성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쉬더라도 경치를 바라봐도 마음이 편하지. 그렇지 않다면 눈물을 흘리고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언제나 중심과 방향을 맞추기에 온갖 신경을 집중시키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언제 어느때에 탈선될 지 모를 위험천만한 현실인 것을 알고, 뜻을 위한 생애를 시정해 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바라면서 말씀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여기에 모인 자녀들의 마음 가운데 부풀어 오르는 방향이 의롭기를 바랍니다. 밤도 이 방향을 위하여 이 중심을 위하여, 낮도 이 방향과 이 중심을 위하여, 젊은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 운명길을 지나 가지고 영원한 세계에까지 가더라도 이 원칙은 변치 않는다는 철칙을 지닌 사나이 아낙네로서 자신을 가진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아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신자가 가야 할 확실한 길인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뜻을 위한 생애의 걸음이 빛되고 자랑이 되기를 간곡히 고대하는 이들이 되기를 바라서 말씀하였습니다.
아버지! 세계적인 싸움의 노정이 저희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천신만고 수난의 행각을 통하여서 엮어진 이 무리들이, 낮이나 밤이나 소식을 그리워하고, 그 한마디의 소식이 자기의 생활 감정을 자극시키고 하루의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생활을 가져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현재 처해 있는 우리들의 입장인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중심과 더불어 하나되고. 그 방향과 더불어 일치되어 아버님께서 기뻐할 때 그 자리에서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지 않고는, 앞으로 찾아오는 이상세계는 나와 더불어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약관화한 사실인 것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이제 과거를 시정하고 현시점에 있어서 내일의 행로를 바로잡아 가지고 보람있는 자기 가치를, 아버님이 먼저 인정하고 역사가 인정하기에 서슴지 않을 수 있는, 오늘의 자체를 자랑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이 비운 가운데 사로잡힌 현시대에 있어서 통일의 무리들을 보시사 이 민족의 운명을 지켜 주시옵소서. 한스러운 삼팔선을 중심삼아 남북으로 갈라져 가지고 수많은 곡절의 인연을 남겨 놓은, 이 역사적인 분통함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을 넘고 이것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옵니다. 이러한 천적인 기원이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은 그 중심과 그 방향을 향해서 밤이나 낮이나 싸워 나가는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다시 깨달았사오니 그러한 나, 그러한 무리로서 태어났고, 그러한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천주주의 인연을 통한 영계와 육계가 통일권에 동참하여 아버님을 해방시켜 가지고 주체와 영원한 사랑 일체 이상을 그려 가야 할 것이 뜻의 길인 것을 확실히 알고 가는 통일의 무리들 앞에 당신의 가호의 손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당신은 주체적인 입장에서 대상적인 기준만 벌어지면 언제나 공존, 공영, 공의의 법도를 적용하시는 주체자인 것을 알고 이것을 위해서 가는 사람들은 망할 수 없다는 것은 천리이오니,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악의 중심보다도 강한 중심, 어떠한 악의 방향보다 강한 방향성을 갖추어 가지고, 어떠한 대립적인 장벽이 가로놓여 있어도 뚫고 나갈 수 있는 철저한 하늘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이날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복받을 수 있는 6월의 첫 주일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과 땅의 화합이 실현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선생님이 귀국한 다음 이번에 처음 보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옛날에 많이 왔었구만. 내려요. 여기 축복가정들 손들어 보세요. 축복가정들…. 내려요.
제목이 좀 어려울지 모르겠는데, '섭리적 현시점'이라는…. 섭리란 지금까지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간을 구하기 위한 뜻의 노정을 말하는데, 그러한 노정으로 본 현재, 즉 이때라는 뜻입니다. 섭리적 현시점!
흔히 세상에서 말하기를 아무리 영웅이라 하더라도 때를 맞이하지 못하면 뜻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왕왕 듣습니다. 때가 준비된 터전 위에 인재가 나타나면 그 인재와 때가 합해 가지고 하나의 새로운 역사가 창조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때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거예요.
아침이 되면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고 일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점심 때가 되면 점심을 먹어야 됩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의 일을 시작합니다. 또, 저녁이 되면 저녁 식사를 하고 밤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규칙적인 어떠한 때를 중심삼고 새로이 변천하는 환경을 맞이해 나가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을 보더라도 소년시대가 있는가 하면 청년시대가 있고, 청년시대가 지나가면 장년시대, 장년시대가 지나가면 노년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하나의 인생을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일생이라는 것이 언제나 일정하지 않다는 겁니다. 소년시대나 청년시대나 장년시대나 노년시대나 때를 잘못 맞이하게 될 때에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는 결과를 가져오고 맙니다.
그러나 만일에 소년시대나 청년시대나 장년시대나 노년시대, 일생을 때를 잘 맞이하여 의의 있게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일생은 가장 귀한 일생으로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를 잘못 맞이하게 되면 거기에서 실패의 동기가 시작되는 것이요, 때를 잘 맞이하게 되면 성공의 출발이 되어진다는 사실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물론 절대자이십니다. 그분이 계획하신 모든 것이 성사되지 않은 것이 없고, 모든 것이 성사되어야만 되고 또 성사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섭리를 추진해 나오시는 데도 하나님 혼자 해 나오신다면 문제가 없다는 거예요. 그분은 절대자이기 때문에 시작했다 하면 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시작한 것은 모두가 성공으로 끝나게 되어 있는데, 다시 말해 하나님만이 섭리를 추진시킨다면 문제가 없지만, 섭리라는 것은 하나님 혼자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그 죄를 인간 스스로 탕감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아요? 자식이 죄를 지었는데 부모가 대신 복역하여 죄의 대가를 치를 수 없습니다. 부모가 대신 탕감해 줄 수 없습니다. 죄를 지은 장본인이 죄의 대가를 치러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일을 두고 볼 때 이것을 우리가 잘 아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 스스로가 타락을 했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을 구하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 자신이 선두에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섭리의 뜻을 이루어 나오는 데 있어서도 어디까지나 인간을 앞에 내세워 가지고 인간으로 하여금 섭리의 뜻에 협조할 수 있는 면을 가려 나오도록 하면서 역사해 나오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내적인 면에 계시면서 외적인 면의 대표자는 언제나 인간을 세워서 역사하셨습니다. 사람을 세워 역사하는 데도 맹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떠한 계획 밑에서 한때를 예정해 놓고 거기에 알맞는 인간을 찾아 세우시기 위해 역사노정을 섭리해 나오시는 하나님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를 들면, 아담이 타락한 이후 노아를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1600년 기간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1600년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였지만 그 수고의 대가를 성사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것을 결정짓기 위해서는 한 사람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라는 한 사람을 세워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수고하신 그 기간 전체의 공적을 그냥 그대로 노아 자신이 이어받아 가지고 영광된 자리에 서면 좋겠지만, 하나님은 때를 맞이하여 노아를 세웠어도 노아 앞에 영광의 생활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노아를 택해 가지고 도리어 이해할 수 없는 자리에 내몰았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라랏 산 꼭대기에 배를 만들라고 한 것입니다. 배를 지으려면 강가든가 바닷가에 지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얼토당토 않게 정반대인 산 꼭대기에 지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인 것입니다.
더더우기나 세계적인 책임을 짊어져야 할 노아마저도 그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출발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노아는 믿지 못할 그 말씀을 믿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면서 120년 동안 방주를 짓기에 온갖 충성을 다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노아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그 기간에는 즐거운 때가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방주를 짓는 일도 물론 귀하겠지만 그 방주를 지어 나가는 매일매일의 생활에 있어서 노아의 심적인 태도가 더더욱 문제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만일 삼천만 민족이 살고 있는 한국 땅에 그런 할아버지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배를 짓는 데 있어서 충청도면 충청도, 강원도면 강원도 어디든지 좋아요. 어떤 곳에서 배를 짓는데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배를 짓는 사람이 있대' 하면 여러분이 그 말을 믿겠어요? '그 미친 녀석이야! 말도 하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도리어 말하는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할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까지도 미친 사람으로 취급할 텐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은 더더욱이나 미친 사람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것을 정상적으로 보는 사람은 돈 사람이라는 거예요.
하늘은 이렇게 한때를 마련하기 위하여 16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준비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한 사람을 세워 그에게 명령하여 그 일을 하게 해야 할 하나님이지만, 여기에는 정상적인 입장에서 명령을 하지 못하는 연유가 개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자, 그러면 왜 그래야 되느냐? 하나님하고 사람만 있다면 문제는 간단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람을 세워서 섭리적인 뜻을 이루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뜻을 이루어 놓기를 무엇보다도 바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그런 자리에 내세우지 못하느냐?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면 그것을 할 수 있는데 왜 못 하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렇게 간단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참되신 하나님이 '내가 이렇게 하겠다'고 말했으면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 하나님이 본래 인간을 타락하라고 지은 것이 아닙니다. 타락해서는 안 되게끔 지은 것입니다. 그런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렇게 하겠다'고 한 것을 못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못 했느냐? 하나님 때문에 못 한 것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못 했다는 거예요. 사람의 무엇 때문에 못 했느냐? 불신 때문에 못 했습니다. 믿지 못했기 때문에 못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정상적인 자리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자연적으로 믿을 수 있는 자리에서 믿어야 했던 아담 해와가 믿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정상적인 자리에서 믿어야 할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반대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믿지 못할 자리에서 믿어야 된다는 겁니다. 정상적인 자리에서 죄를 지었지만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비정상적인 자리에서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도 만일 죄를 짓게 되면, 5년이면 5년, 10년이면 10년 형을 받아 형무소에 들어가서 복역을 해야 됩니다. 복역하는 것은 정상적이 아니라 비정상적입니다. 거기는 모든 체제가 자유를 허락지 않고 제재권내에서 자기 스스로의 입장을 바라보면서 그 형기가 찰 때까지는 그 환경을 정상으로 여기며 돌파해 넘어가야만 해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노아 할아버지에게 하나님이 그러한 명령을 제시한 것은 노아 할아버지가 미워서가 아니라, 타락하였던 근본, 그 원칙이 어긋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러한 명령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심정이 얼마나 비참하였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그러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이 얼마나 비참하였겠느냐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노아 할아버지에게는 외로울 때, 어려울 때, 슬플 때, 고독이 극심할 때…. 여러 가지 사정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생각한 것이 무엇이었겠느냐? 그 일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울컥 솟아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그것을 극복한 내정적인 승리의 심정적 터전을 갖지 못하였더라면 노아 할아버지도 역사시대에 실패한 인물로 흘러가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노아 할아버지가 그런 어려움이 부딪쳐 올 때마다 내적으로 새로이 결심하고 다짐하였던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틀림없는 분이다. 나에게 이렇게 명령하고 나를 이런 자리에 세워 준 것은 나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세상 인간들이 하지 못하는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한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하는 내정적인 결의와 심정을 누구보다도 강하게 가졌기 때문에, 어려움이 부딪치는 그 환경에 있어서 하루하루 개척자의 사명을 연이어 나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반대하던 사람들이 한 10년쯤 지나서는 노아 할아버지를 상대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다가 한 20년쯤 지나가면 바라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제일 문제이냐? 동네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을는지 모르지만, 집안 사람들이 제일 문제라는 것입니다. 자기 어머니라든가 자기 아내라든가 자기 아들딸이 있다면 그 가정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노아 할아버지의 어머니가 있었다면 노아를 칭찬할 수 있었겠느냐? 반대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 할아버지의 아내는 어떠했겠느냐? 그 아내도 반대했을 것입니다. 그의 아들딸은 어떠했겠느냐? 아들딸들도 반대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우리 아버지는 돌았다'고 했을 것입니다.
만일 노아 할아버지가 이와 같은 가정의 반대에 타격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하나님의 뜻은 여기서 좌절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반대하더라도 이것을 극복하고 밀고 나갈 수 있는, 그러한 신념을 다짐할 수 있는 노아 할아버지가 안 되었다면 그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이 반대하더라도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자각된 자기를 갖고 있지 못할 때는 그 환경에서 꺽여지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그의 아내가 말을 듣지 않고 반대하기 시작했으면, 노아에게 옷을 제대로 해줬겠어요, 밥을 제대로 해줬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노아 할아버지가 아랫방에서 자면 아내는 웃방에서 자려 하고, 번번이 상충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러한 환경에서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고 이렇게 몇 해가 지나 반대해 봐야 끝장이 안 날 것을 알게 되면, 더 이상 반대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를 해 가지고 꺾을 가망성이 있을 때는 반대하지만, 아예 가망성이 없게 될 때는 여편네나 자식들도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성이 되어 가지고 반대하지 않는 자리를 지나 가지고서야 하나님의 뜻과 소망이 남아진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엿볼 수 있습니다.
동네방네 사람들이 반대하다가 전부 지쳐 떨어졌고, 자기 아들딸이 반대하다가 지쳐 떨어졌고 자기 아내마저 반대하다가 지쳐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일 것이냐? 가까운 데 있는 사람은 다 지쳐 떨어졌다는 거예요. 더 이상 반대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나라일 것입니다. '너 이놈의 영감, 영감이 하는 행동은 우리 국민과 민족을 망하게 하는 행동이다'라고 하며, 그 때 나라의 군왕이 있다면 왕권을 가지고 반대했을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그랬더라면 노아 할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그때는 환경이 어려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죽음을 각오하고 생명을 일시에 투입하더라도 그것을 넘어선다는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노아 할아버지를 세워 가지고 큰 섭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노아 할아버지가 뜻을 따라 승리하는 날에는 사탄세계가 왕창 무너진다는 것을 잘 아는 사탄은 여러 가지 계교를 세워 가지고 '하나님, 저 노아 할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을 안 들었소. 자기의 아들딸이 반대하는 것을 안 들었소.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가 반대하는 것도 안 들었소. 그러나 나랏님이 권력을 휘둘러 목을 잘라 버리겠다는 위험한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틀림없이 하나님 뜻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도망갈 것입니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렇게까지 참소하게 마련입니다.
그럼 왜 그러느냐? 노아 할아버지의 뜻은 한 가정만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가정도 구해야 하겠지만 나라를 구하기 위한 것이요, 사탄세계를 몽땅 빼앗아 가지고 하늘세계를 이루기 위한 뜻이기 때문에, 사탄도 그렇게 큰 조건을 가지고 노아 할아버지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랬으면 노아 할아버지는 어땠을까요? 그런 것을 한번 생각해 봤어요? '노아 할아버지가 아라랏 산에 올라가서 120년 동안 수고하여 배를 다 짓게 되어 이제 내일 모레가 낙성식하는 날이다. 만 120년 기간이 차는 날이다' 할 때 그 전전날 그 나라가 동원되어 노아 할아버지의 목을 자르려고 할 때에는 어땠을 것이냐? 홍수 심판은 커녕 도리어 자신이 심판을 받을 수 있는 때가 됐다면 어떻게 했을 것이냐? 노아 할아버지가 보통사람이라면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했을 겁니다. 120년 동안 그렇게 죽을 고생을 다하여 이제 남은 밑천이라고는 늙어 빠진 몸뚱이 하나밖에 없고, 기력도 쇠진한 이 할아버지, 동정도 안 해주던 하나님이 이제는 동정을 해줄 줄 알고 희망을 가지고 내일 모레를 기다리고 있는 판인데 목을 자르겠다고 하는 악한 왕이 있다 하게 될 때, 노아 할아버지는 어땠을 것이냐? 그거 기가 막히겠지요?
만일 사탄이 노아 할아버지가 승리하게 되면 큰일난다는 것을 알았다면, 노아의 목을 졸라매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사탄의 참소에 응해서 하나님이 '너 하는 대로 한번 해봐라' 해 가지고 사탄이 자기 휘하에 있는 악한 왕을 시켜 가지고 '네가 하는 일은 나라를 망치는 것이고, 네가 해온 모든 것은 이 나라 이 민족으로서는 너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하며 목을 자르려 할 때, 노아 할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자, 후퇴해야 되겠어요, 그대로 밀고 나가야 되겠어요? 대답해 보세요. 「가야 됩니다」 가야지, 그게 쉬운 일이예요?
통일교회를 믿는데 어떤 사람은 '나 10년 믿었소' 어떤 사람은 '나 20년 됐소' 이럽니다. 20년 된 사람들은 이제 뭐 전도를 안 해도 되는 줄 알고 있다는 거예요. '이제 뭐 그만큼 전도했으니 나는 좀 쉬어야겠다'고 작정해 놓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또다시 명령하게 될 때 '그 명령이야 뭐 그저 그렇지'라고 했다가는….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있는 자격자로서 설 수 있어요, 없어요? 그때까지가 문제입니다. 비록 하루 밖에는 안 남겼더라도 완성되는 그 시간까지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채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노아 할아버지는 이미 일을 시작할 때에 '내가 성공은 커녕 가다 죽더라도 나는 깨끗이 죽겠다'고 각오했을 것입니다. '내가 죽어도, 나 혼자 짓다가 못 지어도 하나님이 계시니까 열 사람 혹은 백 사람을 동원해 가지고 지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면 노아 할아버지는 신이 났을 것입니다. '야, 이 배를 짓다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혼자서 120년 동안 지어도 완성할 가망이 없게 될 때 있는 정성을 다해서 배를 짓다가 중도에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완성할 수 있는 동지들이 빨리 생겨나기만 한다면, 노아 할아버지는 죽을 시간을 목표로 해서 열심히 일을 했을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가진 노아였더라면, 내가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새로운 출발이 벌어진다는 신앙을 노아가 갖고 있었더라면, '이 죽음의 자리가 일대의 수난길을 가는 것보다 도리어 간단하고 행복한 길이 아니냐'라고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한 이틀쯤 남기고 배는 다 지어놨는데 죽으라니, 하나님도 무심하다는 생각이 가능한 자리입니다. 배를 짓기 시작한 지 10년이나 20년 후에 죽으라고 했으면 모르지만, 이제는 다해 놓고 한 이틀쯤 남기고 죽으라고 할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꽁무니를 빼고 원망할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내심으로는 이제 상을 받고 하나님 앞에 무슨 좋은 수가 나고 세상은 다 망하더라도 나만은 살아 남을 줄로 알고 있는데 죽을 자리에 내놓는다고 하게 되면, 자! 원망하겠어요, 안하겠어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솔직이 대답해 봐요!「원망합니다」 원망하지요. 원망하고 반대하는 날에는 뜻이고 뭣이고 어떻게 됩니까? 제로(zero)가 됩니다. 틀림없이 제로가 된다는 겁니다. 자, 그러면 '차라리 하지 않은 것이 낫지, 그게 뭐야?' 그럴 수 있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거예요.
자! 노아 할아버지의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아브라함으로 넘어갑니다. 아브라함도 할아버지입니다. 옛날에는 전부 다 할아버지 시대라구요. 요즈음 통일교회 시대는 할아버지 시대가 아니고 무슨 시대라고 합니까? 「청년시대」 청년시대라고 해서 할아버지들은 섭섭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청년들이 싸워 이겨 가지고 상금을 받게 되면 할아버지한테 갖다 보관해요. 그러면 된다구요.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아브라함 할아버지도 갈대아 우르의 자기 고향 집에서 잘살고 있는데, 하나님이 끌어 내어 이방으로 데리고 다니다가 제물 드리라고 해서 제물을 드리는데, 그 제물도 아브라함이 드리겠다고 했어요? '하나님! 제가 제물 드릴 제단을 다 준비했으니 당신께서 받아 주시겠습니까, 안 받아 주시겠습니까? 하고 기도도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바라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와서 '야 네가 그만큼 수고했으니 내가 너를 축복해 주겠다. 너의 후손이 하늘의 별보다 땅 위의 모래보다 더 번창하게끔 축복해 줄 테니 3대 제물을 드려라'고 했기 때문에 제물을 드렸던 것입니다.
또, 제사를 드리려고 제물을 쪼개는데 조그마한 비둘기 한 마리쯤이야 쪼개지 않았으면 안 쪼갠 것이지 그게 뭐 큰 문제가 되느냐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그 조그마한 비둘기를 쪼개려니 칼이나 댈 데가 있어요? 그거 하나 안 쪼갰으면 안 쪼갰지. 그렇게 노발대발이예요? 축복해 주겠다는 하나님이 비둘기 한 마리 안 쪼갰다고 '너의 후손이 4백년 동안 종노릇을 하게 되리라!'고 하셨으니 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았겠어요? '이거 사탄이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 할아버지의 훌륭한 점이 무엇이냐? 그것을 무엇보다도 두렵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벌을 내리시게 될 때, 그것을 자기가 죽는 것보다도 더 심각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할아버지가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실수를 저질러 놓고 무엇보다도 큰 충격을 받은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받드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 아들을 잡아 죽이라는 명령을 받게 될 때, 자기 아들을 잡아 죽여 가지고 충격받았던 그것이 해소될 수 있다면 당장 실천하겠다는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러한 결심을 하기 까지 내적으로 하나님이 분부한 말씀을 얼마나 신중히 생각했겠느냐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세에 독자로 얻어진, 그것도 하나님이 축복해서 기적적으로 얻은 아들을 잡아 제물로 드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언제는 주더니 이제는 또 잡아 제사드리라구요? 그것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애요? 전부가 모순입니다. 전부 다 인간의 머리로 사람끼리 하는 일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의 아버지도 그렇게 복을 빌어 주고 그랬으면 그렇게 안할 것인데, 하물며 하나님이 왜 그런 일을 해야 되느냐? 여기에는 우리 인간이 알지 못하는 곡절이 있더라 이거예요. 대개 인간은 자기 이상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 이상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자기를 빼 놓고는 사랑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자기를 플러스 시켜 가지고 사랑하려고 합니다. 자기를 부정해 가지고는 무엇이든지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자기를 부정하는 자리에서 사랑의 길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무슨 사랑을 찾으려 했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의 씨족을 부정하고 자기의 친족을 부정하고, 무슨 가정과 무슨 씨족을 찾았느냐? 세상이 반대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가정과,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씨족을 그려 나왔던 대표자가 아브라함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자식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즐거워할 수 있는 하나의 씨족을, 하나의 나라를 그는 마음속 깊이 바랐던 것입니다. 그 바람이 어떠한 어려운 환경보다도 컸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숱한 집시의 행로도 무난히 돌파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컸기 때문에, 또 그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언제나 강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자신이 확실하게 서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환경을 다 제쳐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이 지시한 길만을 따라갈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애급에 가서 자기 아내까지 빼앗기는 자리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게 될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얼마나 원망했겠어요? 집에서 끌어내더니 나중에는 아내까지 바로한테 빼앗기게 되었으니, 될대로 다 되었다구요.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바로에게 사라를 빼앗긴 것을 원망하지 않고 '하늘이여!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당신이 나를 사랑하심이 틀림없거늘 나를 세워 가지고 이런 일을 시키는 것은 기필코 손해보기 위해서는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사라를 빼앗기고 나서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언제는 집을 떠나라 해 가지고 수십년 나그네 생활을 하게 하시더니 이제는 아내까지 빼앗기고 이국 땅에서 완전히 몰려 죽게 됐구만. 원망스러운 하나님이여!'라고 참소를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사랑이고 뜻이고 난 다 모르겠소. 하나님이고 뭐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소. 이건 뭐 갈수록 태산이구만' 하고 참소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믿을 수 있는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구요.
그렇지만 아브라함이 훌륭했다는 것은 조건없이 믿었다는 점입니다. 만일 아내를 잃어버리고 '하나님, 내 마누라 찾아 주소'라고 항의하는 쪼로 기도했다면 그 사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이 찾아 줬을까요? 사탄이가 틀림없이 사라의 모가지를 맸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라를 바로의 품안에서 빼앗아 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감복되고 하나님 앞에 참소하던 사탄까지도 감복되었기 때문입니다. 눈을 부릅뜨고 응시하던 사탄의 입장이 무색할 수 있는 자리에서 축복을 해주어야만, 자랑의 축복이 되고 참소의 축복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대하고 싶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아브라함은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라 도리어 '당신의 뜻을 위해서 내 가족을 끌고 나오게 될 때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각오를 했사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당신을 위하는 마음만을 가지고 있사오니 당신이 쓰고 싶은 목적이 있거들랑 마음대로 처리하시옵소서. 당신의 깊으신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던 것입니다. 사라를 제물삼아 가지고 하늘의 뜻을 이룰 수 있으면 그 이상의 축복이 없을 것이라고 믿고 아브라함은 기도했을 것입니다. 반대하는 입장에서 기도를 했다면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라는 틀림없이 바로 궁중에서 귀신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체되는 아브라함 자신이 뜻을 대하는 태도, 어려운 환경이면 어려운 환경에서 그 때를 수습하는 태도야말로 원수가 참소의 조건을 세울 수 없는 태도였고, 인간의 사정을 잘 알지만 눈물어린 심정을 가지고 어려운 자리로 명령을 하는 하나님이 도리어 내정적으로 더 격한 자리에서 붙안고 싶고 모든 것을 주고 싶은 심정의 자극이 일어났기 때문에, 거기에서부터 불신의 후손된 아브라함을 통해 가지고 신의의 새로운 심정적, 동정적 기원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이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역사가 땅에 머물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만약에 그것이 없다면 그냥 그대로라는 겁니다. 사탄세계와 다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아브라함의 위대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끌어 나오던 아브라함이 그런 위대한 심정을 가지고 모든 시련 기간의 때를 넘김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그 이상의 축복을 받기에 당당한 아브라함이 됐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또, 모세를 두고 봅시다. 바로 궁중의 왕자처럼 호화찬란한 영광을 누리고 있는 모세로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고생하면 했지 자신과 무슨 관계가 있어요? 또,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들끼리 서로 싸우면 싸웠지, 모른척 하면 그것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하늘이 택한 선민을 어떠한 나라나 국민보다 더 숭배하고 존중시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는 하늘이 택해 세운 그 선민 한 사람을 어떤 주권 국가의 왕자나 왕보다도, 주권 국가 전체보다도 더 가치 있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늘이 모세를 훌륭하게 본 동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는 매일같이 애급 민족으로부터 채찍을 맞고 애급 민족의 호령에 움직이고 있는 비참한 이스라엘의 한 개인을 동정할 때 한 개인으로 안보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가는 길에는 장차 하나님의 나라가 싹틀 것이다. 그 개인이 억울한 자리에 설 때 그것을 방관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저들을 위하고 옹호하는 자에게는 기필코 하늘이 같이하게 될 것이다. 저들을 위해서 생명을 각오하고 나서게 되면 기필코 하늘이 같이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책임지고 나서는 모세가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동기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편이 되어 애급 사람을 때려 죽였다는 거예요. 때려 죽인 것을 자기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높이고, 미래에 하나님이 가는 길이 평탄한 노정이기를 바라고, 하늘이 승리한 터전을 바라고, 하늘이 하나의 승리적 주권을 가지고 애급까지도 지배할 수 있기를 소원하고, 그 나라의 충신과 그 나라의 애국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법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거라구요. 땅은 비록 사탄세계요, 이스라엘의 원수의 나라요, 그 국가의 치리를 받는 국토이지만, 하늘을 위하는 충성의 심정을 가지고 오직 하늘을 세우고자 행동하고 그 나라의 주권을 위하여 생명을 각오하고 싸우는 사람은 애국자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으로 싸우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당하는 고역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애국자의 고역의 길인 것입니다. 그 나라가 있고 그 나라의 주권이 있다면 그를 옹호해 줘야 되고 보호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책임이 하늘에 있다는 것,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깊은 곳까지는 모세가 생각하지 못 했을지라도, 모세를 대하는 하늘은 모세의 충절과 절개와 지조를 바라보고 모세의 행동이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고 미래의 축복의 나라를 그리는 애국심의 발로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홀로 목자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언제나 모세를 보호해 준 것입니다.
때 아닌 때에 하늘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근원과 동기를 지닌 모세는, 미디안 광야의 40년 생활 가운데 있어서도 언제나 애급 사람을 때려 죽인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애급 사람을 때려 죽임으로 말미암아 내가 광야 생활을,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내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 생명이 끝나더라도 나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잊어버릴 수 없다' 이것이 틀림없이 모세의 전통적 사상이었을 것입니다.
하루하루의 생활은 궁핍했을 것이고 부딪치는 환경은 위험하고 부자유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한 환경에 몰리면 몰릴수록 과거를 회상하는 때가 얼마나 많았겠느냐는 것입니다. 호화찬란한 바로 궁중의 영광스러운 생활에서 비참한 이스라엘 민족의 편이 되어 가지고 애급 사람을 죽이기까지에는 '내가 여기서 쫓겨나더라도,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버릴 수 없다'는 결심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난 후에 그런 일을 단행했을 것이 아니냐?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늘을 위한 것이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그 애국자를 버릴 수 없었던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모세가 40년 광야 생활 중에 쓰라린 환경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모세의 생활에 고독이 깃들고 눈물어린 환경이 찾아와 그 환경이 억세고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배후에는 하늘의 동정의 마음이 가중되어 들어가는 내적인 인연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모세는 밤이면 홀로 외로이 누워 자는 잠결에도 이스라엘 나라를 잊어버릴 수 없는 그 심정, 하루하루 고달픈 생활권내에서도 그 누구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애급을 원망하는 그 마음, 자기에게 부딪쳐 오는 모든 자극을 자기 일신의 고통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고역 가운데로 몰아넣는 악의 주권자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연속되는 생활을 해 나갔기 때문에, 40년의 세월이 지나고 난 후에도 하나님은 또 다시 모세를 세웠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데 있어서 모세 이상의 신념을 가지고 모세 이상으로 이스라엘의 나라와 주권을 위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비록 초라한 목동의 생활을 하더라도 하나님은 모세를 일깨워 가지고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는 책임자로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목자로서의 40년 생활은 어떤 생활이었냐? 이스라엘 선민을 거느리기 위한 준비생활이니, 40년 이상의 수난길이 앞으로 부닥쳐 오더라도 그것을 극복할 힘을 기르는 연단(鍊鍛)과 시련 기간으로 하나님은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를 다시 내세워서 이스라엘 민족 앞에 보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모세가 고독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인연을 이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뭣이냐? 소망의 이스라엘 나라를 사랑하고 소망의 이스라엘 국민을 보호하는 것을 자신의 생활 환경을 넘어 내일의 희망의 돛과 같이 그 마음속에 추구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어려운 40년 미디안 광야 생활도 무난히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만일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자기의 지난 일을 생각했다면 바로 궁중의 호화스러운 생활을 꿈꾸었을 것이니, 그 환경이 그리워졌을 것이고, 자기의 환경과 비교하여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서러워졌을 것이로되 그것을 꿈에도 생각지 않는 입장에 선 모세였기 때문에, 버림받은 자리에서 다시 이스라엘 민족의 주인의 자리에 불리울 수 있는 인연이 엮어졌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외적으로 보면 모세는 완전히 때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궁중에서 때를 잃어버렸고,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하늘앞에 때를 갖지 못한 사나이처럼 고독하게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모세에게는 때를 고대하고, 하늘이 약속한 그날을 고대해 나가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 주고자 하는 마음과, 잃어버린 때와 환경을 극복해 넘어갈 수 있는 충열의 지조가 남아져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다시 묶을 수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를 구해 낼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남모르는 내정적 심정이 얼마나 하나님과 가까운 자리에 있어야 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 심정을 따라서 동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숱한 심정적 내연이 배후에 묶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사람은 기필코 하늘을 대표한 하나의 때를 맞게끔 해줘야 되는 것이 하늘의 책임이요. 또 맞아야만 되게끔 되어 있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자! 우리의 역사적 선조를 보면 이와 같이 역사적 인연의 뜻을 계승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섭리적 역사시대에 있어서 우리 조상들의 대표자가 이러한 축복의 터전을 이어받은 것이 평탄한 자리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믿고 나선 그날부터 '내가 이 길을 알았으니 틀림없이 간다' 하는 결심과 더불어 축복의 때를 맞이하는 것이 아님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축복의 때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난 길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선조들도 탕감조건을 다 제시해 놓고 사탄의 모든 참소의 조건을 넘어선 후에, 참소에 걸리지 않고 그것을 무난히 돌파한 충절을 갖고 있는 데서만이 축복의 때를 맞았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세례 요한 같은 사람도 보라구요. 세례 요한은 고을과 동네를 소란스럽게 하며 태어났습니다. '저 아이가 커서 앞으로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이냐' 하는 동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환경에서 세례 요한은 자랐습니다. 더구나 대제사장인 사가랴 가정에서 세례 요한이 태어나 얼마나 잘자랐겠느냐는 겁니다. 그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얼마나 사랑을 받았겠어요? 그렇지만 세례 요한은 집을 나왔습니다. 광야에 나가 30년 동안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돌아다녔던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청년 남녀들도 동네 사람들로부터 '저 녀석, 대학을 간다고 하더니 저렇게 됐구만!' 하든가, 또 '아무개 딸이 잘났다고 소문 나더니 겨우 저렇게 됐구만! 기껏해야 저 꼬라지로구만! 자기 아버지 어머니 주제가 그렇기 때문에 별수없어. 종자가 종자 따라가지…' 하는 별의별 비난을 듣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저 녀석 그저 그러다 말지 뭐 별수 있어! 뭐 통일교회에 들어간 지 10년이 됐다는데, 고향에 돌아온 꼴을 보니 얼굴의 살은 쪽 빠지고 눈은 똥그랗게 돼 가지고…' 이게 뭐 초라하기 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보면 눈은 살아 있다구요.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그 눈마저도 흐려져 가지고, 눈 정기나마 다 잃어버리고 기운 없는 신세가 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자!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고생을 했다고 하는데 고생을 얼마나 했어요? 생각해 봐요. 통일교회 들어온 지 10년 이상 된 사람, 손들어 봐요! 뭐 많지도 않구만. 아, 손을 들었으면 요러고 있나? 이게 뭐야, 이게. 내가 보이나, 이게. 시원하게 들어 봐요! 내리세요. 얼마 안 된다구. 한 5분의 1도 안 되누만.
자! 그러면 10년 이상 된 자 가운데 '나는 통일교회 들어와서 고생을 했어…'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면 따져 보라구요. 그래 고생을 얼마나 했어요? 옛날 왜정시대에 만주라든가 시베리아 벌판을 누비고 다니던 애국자들과 비교하게 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의 머리 꼭대기에 총칼이 따라다녔어요? 잡히는 날에는 죽는다 하는 경지를 거쳐 보았느냐 이거예요. 나 싫으면 말고 나 좋으면 하고, 이 놀음해 나온 것이 소위 통일교회 패들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싫으면 말고 내가 좋으면 하겠다'는 무리가 되어 가지고는 뜻을 절대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못 이루게 되어 있다구요.
자! 노아 할아버지가 여러분과 같았다면 20년인들 나갔겠습니까? 20년은 그만두고라도 3년이나 갔겠어요? 못 갔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교회 원리와 같이 '이렇게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세밀히 알고 노아 할아버지가 나갔어요? 노아 할아버지는 주먹구구식이었다구요. 어느날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서 '아! 노아야. 앞으로 120년 후에 너를 주인으로 만들어 놓고 세상 사람들을 모두 다 심판해 버릴 테니 방주 지어라'고 말씀하시니, '예!' 하고 대답한 그날부터 매일같이 120년 동안 방주를 지은 것입니다. 뭐 일년이 지나고 난 후에는 '앞으로 119년 남았다'고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구요. 10년이 지났으면 '110년 남았으니, 이 녀석아! 기운을 내라'고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게 했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왜? 절대적인 하나님이면 절대적으로 믿어야 할 텐데 매일같이 참견하면 그것이 절대적으로 믿는 자리예요? 매일같이 가서 '야! 네가 어제는 그랬지만 오늘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그것이 절대적으로 믿는 자리예요, 절대적으로 안 믿는 자리예요? 절대적으로 못 믿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주체가 되고 그 주체 앞에 절대적으로 믿는 상대가 되기 위해서는, 두 번도 아닌 딱 한 번 명령하면 그것으로 절대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120년 동안 매일 찾아와 가지고 노아를 격려하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못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120년 동안 절대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노아가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있어 가지고 무슨 뭐 섭리적 현시점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얘기를 해주지만, 그때 사람들은 그런 것을 알았어요? 몰랐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현재의 여러분과 옛날 역사시대에 그 터전을 넓혀 온 우리 조상들과 비교하면 비교도 되지 않으리만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원리를 너무 세밀히 가르쳐 줬습니다. 손가락 발가락을 한꺼번에 쓰라고 했기 때문에 손가락 발가락이 전부 다 마비되어 가지고 한 가지밖에 쓰지 못하는 놀음을 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급하니까 한꺼번에 세계복귀 천주복귀까지 가르쳐 줬는데, 밤낮 쉬지 않고 한꺼번에 다해 가지고 빠른 길을 가라고 가르쳐 줬는데, 마비가 다 되어 가지고 전부 다 못 쓰게 된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차라리 조금씩, 타락론도 머리만 조금 가르쳐 주고 그 다음에 조금 죽어가면 조금 요거 요요 눈만큼 또 가르쳐 주고, 그 다음에 코만큼 가르쳐 주고, 그 다음에는 머리만큼 가르쳐 주고 이렇게 살살, 내리내리 가르쳐 주었더라면 지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꺼번에 냅다 먹으라고 했더니, 체하고 설사가 나고 별의별 요지경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병이 난 사람이 없나 앓다가 병신된 사람도 많다는 것입니다. 약이 좋기는 좋지만 보자기로 싸놓았던 것을 한꺼번에 들이 삼켜 가지고 소화를 못 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정당한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자! 그러면, 지금 통일교회 여러분과 옛날 노아나 아브라함 혹은 세례 요한을 비교할 때, 누가 더 복되냐? 누가 더 복되요? 통일교회 여러분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복될 때가 오긴 왔다구요. 보라구요. 귀하게 자란 세례 요한이 매일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세례 요한이 가만히 앉아 있는데 메뚜기가 입으로 슬슬 들어오나, 뛰어 들어오나? (웃음) 그러니 논두렁 같은 데 마구 잡으러 다닌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거 훌륭해 보여요? 이런 모습을 그의 어머니 아버지 친척들이 보게 될 때, 기가 막히겠어요, 안 막히겠어요? 생각을 해보라구요. 얼마나 기가 막히겠나. 석청을 얻겠다고 돌바위 틈을 얼마나 헤매고 다녔겠습니까? 말을 들어 보니 근사해 보이지요? 사실 하는 모양을 보면 미친 녀석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스라엘에 가 보면 알겠지만, 뭐 그렇게 석청이 많고 메뚜기가 많게 생기지 않았다구요. 반 사막지대라구요. 사막지대라구요. 요즈음에는 풀이 하나도 없이 다 말라 있을 것입니다. 요것이 9월부터 10월, 10월부터 11,12,1,2,3,4월을 지나, 5월만 되면 마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요전에 우리들이 갔을 때 마르기 시작한 때라구요. 기가 막힌 곳이라구요.
자!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좋았겠어요? 저 녀석 저것 뭐, '용이 될 줄 알았더니 번데기가 됐다'는 말이 있잖아요, 번데기? (웃음) 용될 줄 알았더니, 번데기 알지, 번데기? 번데기도 나비가 될 번데기 말고 나비도 못 될 번데기 되는 거야. 그러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어요?
또, 세례 요한 자신으로 보게 된다면, 참! 이거야, 언제 끝날지 알아, 언제? 오늘도 그만이고 내일도 그만이고…. 이건 뭐, 가만히 생각해 보니 까마득하기가 뭐 이건 뭐 한이 없다구. 이건 무슨 맹장염 수술하듯이 '24시간 내로 승부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겁니다. 시원하게 얼른 째 버리든가 말든가 하는, 그렇게 시원스러운 복귀역사는 없는 것입니다. 그저 꼬드라지고 말라 빠지게 지루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또 죽어서는 안 됩니다.
세례 요한 자신도 기가 막혔을 거예요. 뭐 앞으로 메시아가 온다는데 언제 올지 모르니, 구세주를 맞기 위해서 보따리를 싸 들고 광야를 돌아다니며 동네방네 소문내고 돌아다녔는데, 언제 메시아를 만날지 알았어요? 꿈도 꾸지 않았는데 자기의 이종 사촌 동생 예수가 떠억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꿈에도 상상치 않았던 그 사나이에게 성신이 비둘기처럼 내려 와서 동생인 예수가 메시아라고 가르쳐 주며 증거를 하는데, 동생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자신으로서는 기가 막혔다는 거예요. 사생아로 태어났고 자기 동네에서 보잘것없는 마사거리의 한 아들로 태어난 예수가 메시아라니 기가 막혔을 겁니다.
기가 막힌 거기에 기가 막힌 내용이 있다는 것은 모르는 법입니다. (웃음) 기가 막히게 쓴 맛을 본 사람은 조금만 달아도 기가 막히게 안다는 것입니다. 극과 극은 통하게 마련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고멸을 한번 먹어 봤어요? 그거 쓰다구요. 얼마 전에 이씨가 고멸을 갖다 줘서 '이게 얼마나 쓰나' 해 가지고 콩알만 한 것을 입에 쓱 넣어 봤습니다. 사나이 체면에 집어 넣은 것을 뱉을 수는 없고 쓰지만 할수없이 삼켜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얼마나 쓴지 눈물이 나올 지경이 되었습니다.(웃음) 그러면 알 거예요. 눈물이 날 만큼 쓴데 물로 양치질을 하고 문을 열고 찬바람을 쐬며 공기를 들이마셔 보니까 이번에는 신비스럽게도 달콤한 맛이 나더라는 거예요. 별스럽다는 거예요. 아하!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약이 되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저 쓰기만 하면 사람이 배척하고 달라붙지 않을 텐데 달라붙을 수 있는 어떤 요인이 있기 때문에,흡수될 수 있는 무엇이 있기 때문에 약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극과 극은?「통합니다」 통한다는 것입니다. 망할 자리에 들어가면? 둘 중의 하나예요, 망하지 않으면 흥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이 계산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타락해서 망할 무리를 망할 자리에 들여 보내 가지고 흥할 수도 있는 길이 있다면, 거기에 처넣겠어요. 안 처넣겠어요? 요행수가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다 망하다가도 안 망하는 입장이 되면 흥할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귀역사를 사실상 전부 다 그러한 각오 밑에서 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다가는 한정이 없으니 이젠 통일교회 얘기로 돌아가자구요.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선조들이 전부 다 그런 생활을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메시아를 증거했는데 어디에서요? 요단 강가에서 했습니다. 병이 나 죽게 되면 장사를 지내는데, 그때 기독교인들이 부르는 노래가 무엇이냐 하면 '요단강 건너서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서 만나리' 한다는 거예요. (웃음) 도대체 요단강이 얼마나 신나고 훌륭하기에 '요단강 건너가 만나자' 하느냐는 거예요. 거기에는 초원과 꽃밭이 있고 요단강은 물이 맑아 가지고 지나가던 모든 새들이 날아와서 목욕하고 싶을 만큼 훌륭한 강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렇게 생각하지요?「예」 절대 그 반대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거기에 가 들여다보면서 '아! 이렇기 때문에 요단강이구만, 요단강!'(웃음) 요단강이라기보다는 요란한 강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구정물, 사막지대의 기나긴 거리를 흘러 나오니, 사막의 모래속을 흘러 나오니, 물이 될 대로 다 됐다구요.
요단강을 처음 가 보니 기쁜 마음이 있어 가지고 그 강물에 세수라도 한번 해볼까 해서 손을 넣었는데 이게 어디 씻을 수가 있어야지요. 기가 막히다구. 또, 요단강이 대단히 큰 줄로 알았더니 크긴 뭐가 커요! 큰 아이들이 수영하여 건너기에 딱 좋겠더라는 것입니다. 자! 성경에 보면 성신이 비둘기같이 임해 가지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뭐 그랬다고 하니 요단강이 훌륭하게 보이는 것이지….
또 사막지대인데 예수가 왕자처럼 좋은 옷을 입고 나타났을 것 같아요? 생각해 보라구요. 예수는 틀림없이 요셉의 아들로 형편없이 살았으니, 이건 뭐 주제가 형편없었을 거라구요. (웃음) 동생뻘 되는 그 사내 녀석, 보던 얼굴 그 주제가 형편없었을 거라구. 틀림없이 광야에 나가서 기도하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을 것이니, 얼굴이며 꼬락서니하며 형편없었을 거라구요.
그런 판국에서 세례 받겠다고 어정어정 걸어 나오는 것을 볼 때, 세례 요한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세례 요한은 예수의 역사를 잘 알고 있었다구요. 사생아인 줄, 요셉의 아들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 사생아 녀석이 기분 나쁘게 뭐 때문에 나타나나!' 라고 생각했는데도 하나님이 가르쳐 주니 할수없이 세례를 주었지만 주고 난 후에도,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세례 요한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겁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예수를 메시아로서 맞이해야 할 줄은 꿈에도 생각했겠어, 못 했겠어? 못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상이 엇갈려도 이만저만 엇갈린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 눈이 휙 떠졌겠어요, 획 돌아갔겠어요? 눈이 떠지기 전에 획 돌아가 버리고 말았을 겁니다. 기분이 좋았겠어요, 기분을 잡쳤겠어요? 기분이 잡쳤을 거라구요.
하나님의 명령이 있으니 안 할 수는 없고 그래서 세례를 해주고 나니 이게 수수께끼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감옥에 딱 갇혀 가지고 예수에게 두 제자를 보내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오리까, 당신이 오실 그이입니까?'라고 물어 보는 수작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세례 요한도 그렇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30년 동안 생애를 바쳐 준비한 것이 겨우 예수 하나를 세례하기 위해서였던가를 생각하면, 세례 요한은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집안은 다 망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역사는 이런 사연을 통해 가지고 연결되어 발전해 나온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하나님의 뜻을 두고 볼 때, '그럴 성싶다' 하는 곳에서 뜻이 이루어진 역사적 전례가 있었습니까?「없습니다」 '그럴 성싶다' '그럴 뻔하다. 그럴 수 있겠다' 하는 자리에서 뜻이 이루어진 역사가 없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전부가 부정, 전부가 비참, 전부가 몰이해, 전부가 사실이 아닌 것 같은 자리에서 역사는 연결되어 나온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니 번번이 성공하기 마련이예요, 실패하기 마련이예요?「실패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번이 실패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섭리적 현시점'이라고 했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이야기합시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책임져야 할 사명이 어떤 것이냐?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요? 원리를 통해서 알지요, 원리를 통해서 배웠지요? 배워서 안다고 하고 있지요? 사실 알아요, 아니면 그저 안다고 하나요?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했을 때, '예, 떠납니다' 하며 틀림없는 결심을 하고 고향산천을 떠났던 아브라함, 이는 확실히 알았어요, 몰랐어요? 알겠다고 하는 자리예요, 아는 자리예요? 이것은 믿는 자리가 아닙니다. 믿고 알고 행하는 자리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이었어요. 또, 노아 할아버지를 두고 보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나서 '그럴까 말까' 하는 자리에서 행동했던 것이 아니라구요.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는 확실히 몰라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는 것을 벌써 알았다, 안자리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 믿고 안 그 기준을 그저 뭉개 버리려고 사탄은 백방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인간이 절대적인 신앙을 가지고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대상자가 될 수 있느냐, 불신한 조상의 후손인 인간이 영원히 틀림없는 믿음의 조상으로 설 수 있느냐 없느냐를 시험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상도 할 수 없는 반대의 세계로 처넣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는 전부 다 죽고자 하는 거라구. '나는 뜻을 위해 죽습니다' 틀림없이 그런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섭리적 시대의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으로 등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뜻과 더불어 이미 죽었다' 이러지 않고는 사탄의 참소를 받게 마련이라는 겁니다. 언젠가는 가다가 꺾이게 마련이라는 거예요. '늙어서 죽는 것보다 젊어서 죽으면 더 보람 있겠소'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3년 공생애노정을 나서게 될 때가 몇 살이었습니까? 서른 살이었지요. 서른 살이면 꽤 늙었어요, 젊었어요?「꽤 젊었습니다」 꽤 젊다니, 싱싱하게 젊었지. 그런 사람이 떡 나타나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라고 선포했습니다. 또,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니라' 하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니까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되어야 해요, 안 되어야 해요? 예수 앞에 집안 식구가 원수예요, 원수가 아니예요? 「원수입니다」 원수라는 것입니다. 집안 식구가 원수니 그 나라의 백성도 원수요, 그 나라의 주권도 원수요, 전부가 원수라는 겁니다.
원수의 나라요, 원수의 주권이요, 원수의 백성이요, 원수의 땅에서 살겠다고 한다면 뜻을 이룰 길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이북의 간첩들이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뜻을 가졌다면 자기가 살겠다 해 가지고 됩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죽겠다고, 죽음의 길을 빨리 찾아 나서겠다고 하면 할수록 행동개시가 빨리 벌어지는 것이요, 길이 개척되는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아! 나는 살아야 돼'라고 생각한다면 행동하겠어요, 못 하겠어요? 행동 못 하는 거라구요.
그러한 비장한 예수님의 입장을 우리는 꿈에도 생각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지, 하나님이 언제나 사랑하고 보호해 줄 수 있는 자리에 있어야지, 편안한 자리에 가야지…' 언제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그 나라의 유대교도 원수요, 이스라엘의 모든 위정자들도 원수요, 로마도 원수요, 전부 다 원수인 판국에 홀로 나타나 가지고 나라를 뒤집어 놓겠다는 예수의 입장, 주권자를 돌이켜야 되고, 국민을 돌이켜야 되고, 국권과 국토를 돌이켜야 할 예수의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살겠다고 하는 예수가 돼 가지고 뜻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해요, 없다고 생각해요? 노골적으로 까놓고 이야기해 보자는 거예요. 있다고 생각해요. 없다고 생각해요? 절대로 없다는 것입니다.
가슴속에 묻혀진 사연을 헤쳐 놓고 말 못하는 예수요, 알기는 확실히 알고 있지만 결론만을 내려서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예수였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나라이기 때문에, 하늘을 걸어 가지고, 하늘을 위해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막연한 결론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말할 수 없는 예수가 아니냐. 그것은 당연한 말이라는 거예요.
젊디 젊은 예수가 말한 것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뜻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 말이지요? 그렇지요?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서 행동하지 않는다면 살아 있는 실체가 성결되지 않는다, 그 말이 아니냐? 말만 그렇게 한 예수가 아닙니다. 말과 사정과 환경이 전부 다 그런 고독 단신의 입장에 세워졌던 예수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자! 그 자리에서 '살고자 하는 자는 살고 죽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라고 했으면, 뜻의 길이 생겨났을 것 같아요? 엇갈리고 역설적인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되돌아 올라갈 길이 없다는 겁니다. 악의 세계에 몰려 들어가는 이 세상에서 되돌아 올라갈 길이 없다는 거라구요. 그래서 '끝날이 되면 끝까지 참고 이기는 자가 복받는다'고 한 것입니다.
'끝까지 참는 자가 되면 구원받는다'고 하니까 기독교인들은 자기 구원 받기 위해서 끝까지 참고 이겨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물론 개인을 구원하는 것도 목적이지만 그 보다는 하나님의 최대의 소원인 하나님의 나라를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붙드는 것이 소원입니다. 나라가 없이는 그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자기 개인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2차적, 3차적, 4차적, 5차적, 6차적인 문제라는 겁니다. 예수를 믿어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님의 나라를 붙들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붙들어 가지고 그 나라가 만일에 피해를 입을 위험한 자리에 있거든 자기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기독교는 지금 나라가 없지요? 그러니 어디를 가든지 목이 잘리고 피를 흘리게 되더라도 입을 놀려 항의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나라 없는 종족은 비참하다는 겁니다. 왜정 때 대한민국에서 났다 하는 사람들은 주권을 잃어버린 그 날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났다 하는 사람은 피를 흘려야 했던 것입니다. 왜? 나라가 없기 때문입니다. 났다 하는 사람은 피를 흘리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나라가 없는 세계권내에 있어서는 '났다' 하는 교회 책임자는 나라를 위해서 희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라를 위해서 희생해야 되는데 내가 구원을 얻기 위해 죽겠다는 무리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영계에 가면 전부 다 시시한 무리가 되는 겁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그러지 말라구. 알겠어요?「예」 우리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국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이룩해야 됩니다. 목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천번 죽더라도 그 나라가 남아지는 날에는 천번 죽은 것보다 배가되는 영광의 자리에 드높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위해서 백번 죽었다면 백번 죽었다가 살아난 가치 이상의 영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라를 잃어버리고 내가 살겠다고 백번을 나선다면 그 나라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이 틀리다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말은 예수님도 세례 요한도 말씀 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했지, '회개하라! 너희들의 구원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근본적인 내용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무엇이 가까이 왔다구요?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나라 백성이 무엇을 찾아 나왔느냐? 구원을 찾아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늘이 주관할 수 있는 하나의 나라를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이 그것을 몰랐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데, 하나님의 아들이 종노릇을 하기 위해서는 이 땅에 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사탄세계의 종새끼 노릇을 시키기 위해서 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아요? 자신의 아들딸을 원수들의 노예가 되라고 보내고 싶어요? 그런 부모가 있어요? 그것은 부모의 심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낼 때는 하나님의 위신을 세울 수 있어야지, 그렇지요? 하나님의 위신을 세우려니 하나님의 아들이 위신을 세워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 위신을 세울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사탄세계의 나라보다도 더 나은 나라가 생겨나 가지고 거기의 왕이 돼야 위신이 서지, 그렇지 못해 가지고 위신이 서요? 하나님 위신이 서겠어요?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종으로 수고시키기 위해서 4천년 동안 준비하여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당한 권위와 영광을 갖추어, 만국의 주권자들이 그 앞에 머리를 숙이게끔 하기 위해서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인 것이요, 또 응당히 아들로서 그러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소원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것은 틀림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와 민족을 야곱 때부터 2천년 동안 길러온 것입니다. '불신의 땅 위에서 너만이 하나님을 믿었구나!' 하시며…. 이래 가지고 이스라엘을 세웠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승리자라는 말이지요? 그리하여 '야! 야곱의 열두 아들을 중심삼은 열두 지파야 망하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쳐서 없애려고 하는 민족이나 이 나라를 쳐서 없애려는 이방이 있게 될 때는, 그 나라와 그 민족을 하늘이 친 것입니다. 그렇게 보호 육성하며 2천년 동안 수고한 결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한 것이 뭐냐 하면 '메시아를 보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왕의 왕으로 메시아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선민인 너희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만국이 치리를 받게 할 것이다'라고 하며, 이스라엘 민족 앞에 메시아를 보내주기로 약속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은 메시아를 세상 나라의 주권보다도 더 존중시해야 되는 거라구요. 세상 나라의 어떠한 주권자나, 어떠한 나라보다도, 혹은 세상 나라의 어떤 백성이나, 세상 나라의 어떤 땅덩어리보다 더 존중시해야 할 대표자가 누구냐 하면 메시아라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메시아는 세상 나라의 주권보다 큰 자예요, 작은 자예요? 또, 이스라엘 민족하고 메시아하고 바꿀 거예요. 안 바꿀 거예요?「안 바꿉니다」 또, 이스라엘 땅하고 메시아하고 바꿀 거예요?「안 바꿉니다」 메시아는 이스라엘 주권과도 안 바꾸는 거예요. 이스라엘 국민과도 안 바꾸는거요. 이스라엘 국토와도 안 바꾸는 거예요. 더 나아가 이 셋을 합한 것과도 바꿀 거예요, 안 바꿀 거예요? 안 바꾼다는 거라구요.
그러나 메시아 홀로 남게 된다면, 이건 다…. 메시아를 죽였기 때문에, 그 나라의 주권은 땅에 떨어지고, 백성은 헤쳐 버리고, 나라는 잃어버린 입장이 되고 만 것입니다. 왜? 그분(메시아)을 위해서 만들었는데 죽여 버렸으니 이것(이스라엘)은 없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메시아는 어떠한 자리에서 출발해야 하느냐. 자그마치 나라의 왕으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의 출발점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또, 이스라엘 나라의 왕으로 출발하는 데도 어떠한 왕으로 출발해야 하느냐? 로마의 지배를 받는 왕이 아니라 로마에 대해 명령을 할 수 있는 왕으로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지요. 그렇게 못 되거들랑 이스라엘 나라 사람들이 단결하고 아브라함의 열두 지파, 즉 아랍권 전부가 단결해야 합니다. 그때는 로마의 행정능력이 상당히 마비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조그마한 이스라엘 나라에 민란이 일어날까봐 벌벌 떨었지요? 그러니 얼마만큼 행정력이 마비되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때에 만약 예수와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교법사들이 하나되어 죽든지 살든지 항거를 했더라면 로마는 말려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선수를 써 가지고 기수가 되었더라면, 그때 아랍권은 이스라엘의 지배권 내에 있었기 때문에 너도 나도 쉽게 단결이 될 수 있었다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하나로 단결할 수 있는 좋은 찬스였다는 거예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그렇게 단결만 되었다면 로마의 군대쯤은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애급권이나 전반적인 로마의 판도가 동의해 들어 왔을 것입니다.
메시아는 어디에서 출발해야 된다구요? 로마 왕이 두려워 가지고 쫓겨 가는 자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고요. 로마 왕을 대해 가지고 당당하게 공격할 수 있는 자리에서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가 떨어야지 예수님이 떨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출발해야 되는 거라구요.
자! 그렇게 됐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 옛날 메시아가 오지 않았을 때에도 믿고 따르면 하나님이 협조하여 별의별 강한 나라를 전부 때려치웠는데, 4천년 동안 약속한 해원성사의 때를 맞이했는데, 메시아와 하나된, 일치단결된 그 민족을 망하라고 하나님이 가만두었겠어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예수님과 하나만 되었더라면 예수는 명실공히 만왕의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메시아가 출발해야 할 본래의 출발점입니다. 알겠어요?「예」
다시 말하면, 악주권 세계보다도 선주권 세계의 출발을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악주권 세계를 능가해 가지고 선주권 세계의 출발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메시아가 출발하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대해야 할 상대, 싸워서 굴복시켜야 할 상대는 누구냐? 유대교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누구야?「로마 왕입니다」 로마 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가 가야 할 출발점이라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합해 가지고 예수님과 하나되어 삼위일체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렇게만 되었더라면 이 세상은 전부 다 뜻 가운데서 소화될 것이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영웅이라도 때를 맞아야 됩니다. 때는 무슨 때냐? 반대하는 때를 맞아야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환경이 순응하는 때를 맞이해야 된다는 겁니다. 아무리 영웅이요, 장사일지라도 터가 있어야 발을 디디지. 그렇지요? 그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긴 왔지만 메시아 자신도 터가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인공위성을 날리려면 기지가 있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터가 있어야 된다구요. 환경이 이루어지고, 때를 맞추어 가지고 나타나는 날에는 세계로 달릴 수 있는 것인데, 예수가 뜻을 이룰 수 있는 때와 환경이 수습되지 않았습니다. 유대교 신자와 이스라엘 백성이 때를 맞추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찾아왔던 때와 이루어 놓은 환경이 일시에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때와 환경을 잃어버린 예수는 반대의 환경에 몰림을 당하여 십자가의 희생자가 된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는 그렇게 비참하게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그러면 섭리적 현시점이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시대 말고 예수시대에 딱 갖다 놓으면, 그 자리는 어떤 자리일 것이냐? 예수 당시에 섭리적 현시점은 어떤 자리냐?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와 예수, 이 삼자가 서로 분리되는 현시점이 되어서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도, 이스라엘 나라도, 유대교도 망하고 만다는 거예요. 예수와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되는 것이 예수 당시의 섭리적 현시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현시점에서 분리되기를 절대 바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바랄 수가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 당시의 섭리적 현시점을 두고 볼 때는 셋이 하나되는 것을 최고로 바랐던 것입니다. 그것을 얼마나 바래왔느냐? 4천년 동안 하나님은 바라고 나왔던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거 틀림없지요?
그것을 위해서 아담 이후 4천년 역사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노아 할아버지도 이때를 이어놓기 위해서 피어린 죽음길을 극복하면서 싸워 나온 것이요. 아브라함도 이 전통적인 길을 남겨 놓기 위해서 이국 땅을 넘나드는 집시 생활을 모면하지 못한 것이요, 모세도 이 길을 민족적으로 넓히기 위해서 이방 나라의 궁중에서 스스로 뛰쳐나와 어려운 길을 자처해 갔던 것이니, 애급 나라의 호화찬란한 궁전 이상가는 소망의 궁전을 바라보며 그런 생활을 했던 것이 아니겠느냐. 이러한 모든 역사적인 시점을 예수 당시의 그 현시점을 두고 볼 때도 하나님이 원하는 그 환경과 때로서 수습될 수 있는 귀결점 하나를 바라보면서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완결할 때 역사는 승리의 역사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아가 실패했더라도 그것은 성공의 대가를 지닐 수 있는 실패로 등장하는 것이요, 아브라함이 아무리 수난길을 걸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도리어 영광을 상정시킬 수 있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현실의 시점, 새로운 문화창건에 있어서 천국의 전통으로 남아질 수 있을 것이 아니냐, 천국 백성의 전통으로 남아질 수 있는 좋은 역사적 기준이 될 것이 아니었더냐.
모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궁중보다도 하늘의 궁중을 그리워하던 마음을 중심삼고 뜻이 이루어졌다면, 여기에서 비로소 몇천년 소원해 온 뜻이 꽃과 같이 활짝 피어 가지고 만국을 향하여 향기를 풍겨낼 수 있는 이상적인 궁전이 벌어졌을 것이 아니었느냐. 또, 세례요한의 30여 생애에서 비참했던 모든 운명과 조롱받았던 나날들…, 그 서러움이 비로소 여기에서 해소되어 도리어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자극적인 조건 들로 등장할 것이 아니었더냐.
그러나 예수 당시의 현시점이 그 모든 것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중차대한 기점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생각지 못했고, 유대교도 생각지 못했고, 수많은 사람이 메시아를 고대했지만 고대한 사람 가운데 그 어느누구도 그때를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고 온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안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것만 가지고 되느냐? 그것만 가지고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환경의 터전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때는 있게 마련입니다. 때를 찾아 세운 것은 한 개인이 승리를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때를 아무나 대신할 수 있다면 자기 혼자도 때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혼자 개인적으로 맞이할 수 있는 때, 하나님 앞에 사랑의 아들로서 세워질 수 있는 때는 언제나 갖고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찾아야 할 때라는 것은 나라와 민족을 기반으로 한 권내에서 종족과 가정들을 연결시킨 개인적인 평화의 터전을 갖는 때라는 겁니다. 그것이 예수가 갖추어야 할 때였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예수가 하나님 앞에 백 번 감사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될 때, 예수를 모시는 백성이 있다면 그 백성도 하나님께 천번 만번 감사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가 하늘 앞에 백 번 감사할 수 있는 자연적인 환경의 터전을 갖게 되고 성취하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가 됐다는 거예요. '아바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 이것은 비참한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있어서는 안 될 비참한 기도였습니다.
그 시간은 역사시대에 나타나서는 안 될 비참한 사연이 엮어지는 절박한 순간이었고, 절박한 찰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 찰나를 잃어버리게 될 때는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늘의 뜻이고 예수의 뜻이고 무엇이고 다 쓰러져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2차 타락과 마찬가지이니, 예수로 말미암아 이루려던 이상 전체가 타락해 버리는 결과가 되어 버릴 수 있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비장한 순간이요, 비통한 찰나가 아니었더냐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는 아담과 같은 자리에 설 수 없기 때문에 죽더라도 하늘을 붙들고 하나님의 사상과 이상을 남겨놓고 죽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만민을 구하는 것도 목적이지만 그것은 2차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이상과 그 나라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구원하는 섭리의 이상이 근본적으로 깨져 나가는 찰나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아들로서 이어받아야 할 것은 나라요, 세계이기 때문에 그 나라와 세계를 이어받기 위한 자리에서 싸워야지, 실패해 가지고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 기준까지 다 없어져, 망해 떨어지는 나라를 붙들어서는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래에 갖출 수 있는 소망의 나라, 소망의 천국, 소망의 지상 천국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고 미래의 뜻이지, 아브라함으로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찾아 나온 그 뜻이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건국의 이념을 중심삼고 나오던 것이 아브라함의 뜻이지만 예수의 뜻은 그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금후에 갖출 수 있는 그 뜻을 바라면서 예수는 담판기도를 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 나라는 망하지 않아야 됩니다. 망하지 않고 영장 가운데 맞이해야 할 이스라엘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 천국을 기반으로 해서 로마제국과 세계를 하나의 평화의 천국세계로 만들어 통치권을 갖추어 가지고 이것을 이상적인 영광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봉헌해 드리려는 것이 예수가 바라는 뜻이지, 십자가에 쫓기어 이스라엘 민족이 자랑하는 유대교나 이스라엘 민족이나 로마 제국의 치리하에 있는 그 나라를 봉헌해 드리려는 것이 예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남기고 갔기 때문에, 예수는 죽었지만 예수의 소원만은 살아 있기 때문에, 이 소원을 중심삼고 재생 운동을 가려 나온 것이 2천년 기독교 역사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게 뿌려진 기독교에 이제 결과의 때가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기독교문화권의 가을절기입니다.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게 마련입니다. 가을에 거두어진 그 수확의 열매는 겨울을 거치고 난 후에야 새로운 봄날을 맞이하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것이 순환의 원칙을 따른 계절의 변화가 아니냐?
다시 말해, 예수로 말미암아 심어진 전통적 기독교 문화권의 역사적 수확기가 지금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주인이 잘라 버릴 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또, 열매맺힌 나무의 잎이 떨어질 때입니다. 그 줄기와 가지만 앙상히 남아지는 때라는 거예요. 지금이 그런 때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새싹이 나오던 소망의 봄절기와 잎이 무성하여 희망에 벅차던 여름절기와 소망의 결실 시기는 지나가고 이제는 늦은 가을이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고 잎은 전부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잎은 떨어지지만 열매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떨어져야 되겠어요, 거둬들여야 되겠어요? 열매는 거둬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 열매를 거두는 데는 누가 거둘 것이냐? 종이 거두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거두는 것입니다. 주인이 아니거든 주인의 아들딸이 거두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인의 아들딸이 와서 거두어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뭘하자는 곳이냐? 수확기에 있는 기독교문화권 세계에 땅을 고른 그 터전 위에 올바른 씨를 심어 가지고 지금까지 가꾸어 온 그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주인의 아들딸로 보내지는 무리가 이 세계 가운데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내고자 하는 무리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무리가 이땅 위에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한 무리로서 나선 무리가 바로 통일교회 무리라는 것입니다. 기분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수확을 하려면 수확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하는데, 종새끼들을 잡아다가 주인의 아들딸 명패를 달아주지 않고서는 수확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러려면 '너는 종이라도 종이라고 하지 말고 아들딸이라고 해라' 하는 내약(內約)이 전에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놀음을 내약적으로 시작해 가지고 그것을 세계화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런데 만일 불평불만을 하게 되면 사탄이 이것을 알고 복병했다가 가짜 약속 패를 주었다고 참소해 가지고 죽여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들이 될 수 있는 내용을 갖추고 그 명패를 달고 가게 되면 종은 종이지만 내용적인 약속에 있어서는 아들딸인 것입니다. 사탄이 그러한 아들딸을 습격했다가는 몇백 배 손해배상을 해야 됩니다. 몇백 배의 손해배상을 문다는 것을 원수 사탄이가 알게 될 때는, 공격해 주기를 바라면서 뻐기고 나서더라도 공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명패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는 무엇을 가르쳐 주는 곳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참아들딸이 되는 길을 가르쳐 주는 곳이다, 그렇소, 안 그렇소? 그래서 여러분은 참자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말하고 있는 무리가 통일교회 무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설명을 구구하게 하자면 한정이 없지만, 그러한 결과의 자리에 선 것이 통일교회 무리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전부 다 명찰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떠억 붙였습니다.
아들딸 중에는 불량배 같은 아들딸도 있을 것이고, 말썽꾸러기 아들딸도 있을 것이고, 형제를 못살게 구는 아들딸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무리 그렇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그 자식들을 전부 싹 쓸어 버리고 싶을 것이냐, 그래도 두고두고 '행여나' 하고 바랄 것이냐? '행여나' 하고 바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했더라도 하늘이 벌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이라고 해서 다 잘하고 있는 줄 알아요? 당장에 벼락을 맞아 옥살박살되어야 할 사람도 눈을 뻗대고 잘살고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있으면 나를 벌 줄 텐데, 나 이렇게 살고 있다고…' (흉내 내심, 웃음)
통일교회 들어왔던 사람은 못된 녀석일수록 벌을 안 받습니다. 도리어 통일교회 사람들이 먼저 죽어갑니다. 이번에는 김 권사가 죽었더군요. 선생님이 일본에서 들었습니다. 그 김 권사에게 한바탕 일을 시키려고 했었는데 어느 사탄이 왼쪽 눈알을 쐈느냐는 것입니다. 못쓸 것들은 남겨 놓고 쓸만한 것들은 착착 데려가니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나쁩니다」
그렇지만 탕감법을 생각할 때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땜질한 그릇 백개와 깨지지 않은 그릇 하나를 바꾸자고 하면, 여러분은 바꾸겠어요, 안 바꾸겠어요?「안 바꿉니다」 가난한 집 살림살이 같으면 안 바꾼다고요. 알겠어요? 그저 쓸 것이라고는 그거 하나밖에 없는 가난뱅이 살림살이는 안 바꾼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천하를 거느리고 큰 잔치를 해야 될 살림살이를 가진 주인은 바꿀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까 '아하! 하늘이여,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 나오더라는 거예요. 탕감복귀의 내용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가 큰 잔치를 하려고 해요, 한 사람 잔치하려고 해요?「큰 잔치요」 큰 잔치를 하려고 합니다. 깨져서 더덕더덕 점질한 그릇이라도 큰 것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 그런 뜻이 하나님께 있을 수 있지' 하고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김 권사의 죽음을 놓고 잘 갔다고 하는 겁니다. 여기에 그의 아들딸이 왔으면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뭐 통일교회 문선생이 우리 엄마가 죽었는데 잘 갔다고 한다' 하겠지만, 그 내용이나 설명은 다 잊어버리고 '잘 갔다'는 말만 기억하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김 권사가 나쁜 곳에 안 간다는 겁니다.
선생님이 탕감복귀역사를 하면서 늘 마음을 졸이는 것이 뭐냐? 반드시 탕감이 있다는 거예요. 선생님의 가정에 없으면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있는 거라구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번 기간에도 불의의 사고로 떠나간 사람이 여러 명 있는데, 그것은 할수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살리고 만국을 구하시려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터전을 넓히어 백성을 구하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충신이라고 할지라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렇지요? 제일 가까운 사람을 희생시켜서 그 나라의 충신의 지조를 남겨 나온 것이 역사적 전통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명찰을 어디에 달아요?「오른쪽에 답니다」 세상에서는 훈장을 왼쪽에 달지요?「예」 사탄세계에서는 훈장을 왼쪽에 달지만 우리 통일교회는?「오른쪽에 답니다」 여러분이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훈장은 왼쪽에 다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우리 통일교회 훈장은 바른쪽에 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바른쪽에 달았어요?「예」 틀림없이 사탄이가 보고 '어! (웃음) 훈장 달았구먼' (웃음) 한다는 거예요.
훈장을 달았는데 그 훈장 단 아들딸은 어디를 들락날락해야 되느냐? 그 훈장을 단 사람들은 어디서 살고, 어디를 들락날락해야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들락날락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통일교회를 들락날락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구요. 통일의 나라에 행차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싫어요? 싫어요, 좋아요?「좋습니다」 좋기는 좋지만 까마득한 놀음이라구요. (웃음)
아들딸이 행차하는 길은 어떤 길이냐? 요전에 축복받은 가정들이 지방에 전도 나가 가지고 기성교회 목사를 찾아 갔다가, 기성교회 목사 집사들한테 발길로 차이고 별의별 수난을 겪었다는 소리를 듣고 선생님은 '잘 차였다. 어서어서 차여라'고 했습니다. 재탕입니다. 약도 재탕할 때에는 무지무지하게 힘이 듭니다. 초탕은 혼자 짜지만 재탕은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짜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약이 효과가 있지 소문을 안 내게 되면 짜나마나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재탕하는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한국이 하지 못한 이 원통스러운 실패를 복귀해야 할, 재탕할 패들이니까 들이 짜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보자기도 터지고 알맹이도 비실비실 삐져 나온다는 겁니다. (웃음) 나 그런 생각 하는 사람이라구요 '뭐 언제는 축복해 줘 가지고 같이 살라고 하더니…' 하겠지만, 재탕할 때는 이거 뭐…. 초탕할 때에는 약 봉지에서 그대로 슬그머니 약탕관에 넣어 가지고 보글보글 끓입니다. 그러나 재탕이 무슨 선미(先尾)가 있습니까? 거꾸로 올라가고, 아버지가 밑으로 가고 아들이 꼭대기로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마구 섞여져서 짜이는 겁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아버지의 권위가 있는지 남편의 권위가 있는지 아내의 권위가 있는지, 밥을 먹고는 남편을 생각하나, 자식을 생각하나, 그저 줄달음쳐 가지고 동네방네 개집 차고 돌아다니고, 잠자던 고양이까지 '야옹, 너 왜 왔어' 하면서 재수없게 인사하는 놀음을 하며 돌아다니는 거라구요. 형편이 무인지경이라는 것입니다. (웃음) 주부로서, 혹은 어머니로서 해야 될 노릇을 못 하고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니 신세가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완전히 짜서, 다시 재탕을 끓여서 먹고 병이 완치된 후에 약탕관을 옥살박살 깨트려 버리는 날에는 수가 난다는 것입니다. 병이 완치된 후에는 그 약탕관이 보기만 해도 싫어져야 합니다. 알겠어요? 그때 가서도 그것을 주머니에 차고 다니면 안 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지금 우리는 그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선생님의 나이가 몇 살이예요?「쉰 두 살입니다」 쉰 둘이 아니야, 스물 둘이예요, 스물 둘. (웃음) 예수님의 30년 생애를 탕감해 버리고, 끊어 버리는 거라구요. (웃음) 그래서 스물 둘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스물 둘이니까 이제부터 30세까지 8년 동안 하면,8년 하면 1980년 된다구요. 즉 30대가 되는 날에는, 내 실제 나이가 60세가 되는 날에는 내가할 수 있는 놀음이 벌어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라구요.
탕감복귀라고 했지요? 이만큼 큰 것을 요만큼 도리고 잘라 버리면 남는 것은 요것밖에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60세쯤 되면 예수님을 재탕감하는 연령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나도 재탕감 놀음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형편 있었어요? 지나가던 마차꾼까지 침을 뱉고 지나갔습니다. 그렇지요? 교법사들은 물론 말할 것도 없고, 농사꾼 마부뿐만이 아니라 끌려가는 말까지도 괜히 예수가 주척주척하니까 그 앞에서 방귀를 뀌고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 통일교회 문선생이 말예요, 세상에서 유명하다고요. 어떻게 유명하냐? 뭐 잘난 사람으로 유명한 것이 아닙니다. 제일 못난 사람으로 유명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전부 다 '저 녀석 때려 죽여라' 민족 반역자니 뭐니 별의별 얘기를 하고 있다고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바알세불이 들렸다, 사탄의 왕이다'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소문을 전부 다 들었습니다. 또, '뭐 통일교회 여자들은 문선생한테 반해서 살림살이를 전부 다 파탄시킨다'라고 하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반했는지 얽매여 다니는지 나는 모르겠어요. 반하기는 뭘 반해요? 별의별 소문을 다 들었습니다.
옛날에 예수님 따라다니던 무리 가운데 아주머니들이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있었다는 거예요. 따라 다니다가 보니까 저녁밥 지을 시간이 늦었겠어요. 안 늦었겠어요? 자기 남편 만나 봐야 뭐 술상이나 갖다 주는 따분한 일밖에 없었던 겁니다. 자기 남편들을 봐 봤자 그게 그거라는 거예요. 그렇지만 예수를 보면 그래도 소망이 있다는 겁니다. 영감 대하는 것보다 재미있으니까 재미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구요. 그러다 보니 해가 지는 것도 모르고 인사성도 못 차렸다는 거예요. 못 차렸다고 해서 못 할 짓을 한 것이 아니라구요. 그렇지만 부르튼 사내들이 도적놈 심보를 가졌기 때문에, 자기만을 위한다고 하던 아내가 그렇게 되니까 깔죽깔죽 긁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내가 또 그렇게 하게 되면 이번에는 여기를 잡아당기고 그 다음에는 얽어맨다는 거예요. 그래도 아내가 그것을 끊고 도망을 가게 되면 동네방네 광고를 해 가지고 '우리 여편네 어떻다'라고 소문을 내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도 선동분자로 소문났는데 그것이 왜 그런지 알아요? 예수는 여자들이 미쳐서 따라다닌다고 소문이 안 났을 것 같아요? 생각해 보라구요. 소문이 안 났을 것 같아요? 동네방네 5천여 무리가 한꺼번에 '와와' 하면서 몰려 다녔는데, 그들이 남자들뿐이었겠어요? 거기에는 뭐 절름발이에서부터 병자, 얼룩덜룩한 것에 이르기까지 전부 다 들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무슨 소문인들 안 났겠습니까? '저 녀석 저래 가지고 나라를 말아 먹으려고 그런다, 로마 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그런다, 꿍꿍이 속을 가진 녀석이다' 별의별 소문이 다 났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날 수 있는 소문은 다 났다는 거예요.
자! 통일교회는 그것을 탕감복귀해야 된다는 거예요. 탕감복귀 원칙을 두고 볼 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그 소문을 잘 냈어요, 못 냈어요? (웃음) 탕감복귀 원칙을 두고 볼 때, 그런 소문을 내야 되겠어요, 안 내야 되겠어요?「내야 됩니다」 또, 그런 소문이 자동적으로 나야 되겠어요, 고의적으로 나야 되겠어요?「자동적으로 나야 됩니다」 자동적으로 나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욕을 좀 얻어먹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그것이 거꾸로 된다는 거예요. 제일 나쁘다는 사람이 제일 좋은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보따리가 바뀐다는 거예요. 요즈음에 와서는 점점 그런 일이 많이 벌어집니다. 어저께 구보끼 협회장이 말하기를, 통일교회와 인연을 맺은 지 한 5년 내지 6년쯤 되는 한국의 모대학교 총장되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과거에는 어느 곳에서나 통일교회를 선전하려고만 하면 그저 대하는 사람마다 눈에다가 불을 키면서 '통일교회는 말도 하지 마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요즈음에는 바꿔졌다는 겁니다. 요즈음에는 한다 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교회 안 믿으면 안 된다구' 이렇게 말을 한다는 겁니다. 유명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디를 가든지 간판을 내붙이고 선전하겠다면서 기분 좋아서 이야기를 하더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옛날과 달라졌다구요. 알겠어요?「예」
나라의 주권은 이미 항복해 가지고 보따리를 다 뒤집어 박았다 하더라도 패잔병은 어느 나라나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은 패잔병하고 싸우겠어요, 큰 주력부대하고 싸우겠어요? 이제 한국에는 패잔병 소탕전밖에 필요 없는 때가 왔습니다. 기분이 좋아요?「예」 패잔병 소탕전밖에 필요없는 때가 왔다는 거예요. 자! 패잔병 소탕 대장이 되고 싶어요, 주력부대의 대장이 되고 싶어요?「주력부대의 대장요」
선생님이 예수님이 반대받던 것을 탕감하는 내용을 갖추고 나서는 데 있어서, 그 탕감조건을 대신 세울 수 있는 준비는 돼 있지만, 예수를 반대하던 유대교와 같은 입장에서 또 반대해서 되겠습니까? 탕감이 안 되지요? 탕감은 그와 같은 장소를 재현시켜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예수님이 하려고 하던 모든 것을 재탕감하기 위해서는 그 책임자인 문선생이 예수와 마찬가지로 몰리는 자리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죽이려고 하는 자리에서부터 그것을 복귀해 나와야 합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을 민족이 죽이려고 했고 교회가 죽이려고 했지요? 죽이려고 하는 자리에서 죽으면 예수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와 같이 되어 가지고서는 뭐 재탕감이고 뭐고 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반대하던 교회와 나라가 반대로 환영하게 될 때가 무슨 때라구요? 그때는 새로운, 국가적인 때가 아닙니다.
예수는 국가를 위해 출발했다는 거예요. 예수 시대는 국가를 위해 출발한 때입니다. 자기 민족을 중심삼고, 자기 국가를 중심삼고 출발한 때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비록 예수가 죽었을망정 정상적인 출발점에서 출발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나아갈 때 싸우는 대상은 그 나라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다르다는 거예요. 선교하기 위해 한 사람이 드나들어도 그것을 문제시하는 것은 그 나라의 주권자이지 백성이 아닙니다. 언제나 주권자가 모가지를 친 겁니다. 기독교는 언제나 나라를 대해 가지고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그렇지요? 대원군 시대를 보더라도 예수 믿는 사람들을 나랏님이 전부 다 문제시해 가지고 모가지를 자른 거라구요.
이와 같이 기독교는 국가적 기준에서 세계로 출발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곳곳마다 그 나라의 주권자와 부딪치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을 지금까지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하여 지금은 영적으로나마 세계적인 판도를 갖추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본래 통일교회 문선생이 출발해야 할 곳은 어디냐? 지금처럼 대한민국에서 반대받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나라에서, 나라를 기점으로 하여 출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제1차 이스라엘이 실패한 것을 제2차 이스라엘이 영적복귀 기반을 넓혀 나온 그 터전 위에서, 제1차 이스라엘의 육적 실패 기준을 제3차 이스라엘이 탕감 해원성사하지 않고서는 예수의 부활 혜택권이 다시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이게 이스라엘 나라지요? (판서하심) 이스라엘을 중심삼고 재림주님이 오시는데, 오시는 재림주님하고 삼자가 일치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영육을 중심삼은 출발을 보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세계의 출발만을 본 것입니다. 땅에는 기반이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는 지금 어디에 가 있느냐? 여기(낙원)에 가 있습니다. 예수가 여기에 가 있기 때문에 예수를 믿다가 영계에 가 있는 기독교 교인들은…. 또 예수를 믿고 있는 지상의 기독교 교인들, 이것을 형(型)으로 보면 어떻게 되느냐? 영계와 육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와 같이 되면 세계형이 되지만, 영적인 내용으로 보게 되면 이것은 (도표를 그리시면서, 말씀하심) 영적인 낙원, 예수가 가 있는 낙원권에 해당합니다. 지상 기독교인이 아벨이라면 영계에 가 있는 예수 믿던 영인들은 가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형태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계, 지금까지 기독교를 믿고 간 영인들, 즉 가인형(型)은 무슨 세계에 해당되느냐? 천사세계에 해당됩니다. 천사장 치하에 있는 천사세계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가인이 누구냐? 천사장 복귀하기 위한 대표자가 가인입니다. 그렇지요?
영적인 세계를 두고 볼 때, 기독교를 믿고 영계에 가 있는 조상들은 천사세계권에 해당하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가인권이요, 지상에 있는 기독교인은 천사세계인 영계가 협조해 가지고 완성시켜야 할 아담권이라는 것입니다. 영계는 지상 아담권을 후원해서 뜻의 완성을 돕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예수를 믿고 영계에 가 있는 영인들은 천사세계의 입장이요, 지상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아담 해와의 입장입니다. 알겠어요?「예」 이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유대교를 중심삼고 보면 예수 앞에 유대교가 아벨이고 유대민족이 가인입니다. 그렇지요? 이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기 전에는, 일체가 되기 전에는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가인과 아벨의 소망은 무엇이냐? 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부모가 무엇이냐 하면 메시아입니다, 메시아. 이것이 하나되지 않고는, 삼위일체가 되지 않고는 부모를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영계와 하나되지 않고서는 재림주를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적인 기반이 지상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이 기독교 문화권의 세계요, 민주세계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영적인 세계가 문제가 아니고 영적으로 통일될 수 있는 기반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기반에서부터 재림역사는 영적인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육적인 세계보다도 영적인 세계에서 협조해 주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알겠어요? 영계에서 가르쳐 줘 가지고 실체기반을 닦아 나온 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영계의 영인이 기독교를 믿는 신자들 가운데 특별한 사람에게 가르쳐 줘 가지고 그가 아벨의 자리에 서면 기독교와 영계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된 거기에서 비로소 영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이것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심 ) 알겠어요? 하나되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이 하나된 것은 무엇이냐? 여기에서 비로소 유대교와 같은 지상기반이 출발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복귀니까 그래야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하나되지 않고는 지상 유대교와 같은 지상 아벨적인 존재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 놀음을 해서 이것을 발전시켜 가지고 탄생한 것이 통일교회 식구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여기에 들어오게 되면 대번에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영적인 세계가 나를 협조하여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하면, 대번에 선생님에 대해서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 어떤 지배권에 들어가느냐 하면 선생님의 지배권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계의 협조를 받아 하나된 터전 위에서 선생님의 지배를 받는 생활권내에 접어들게 됩니다. 어디에서? 지상에서. 지상에서 벌어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여기에서부터 실체 이스라엘권이 형성되기 마련입니다.
만일에 기독교가 일시에 믿기 시작했으면 일시에 그런 일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일시에 벌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반대했기 때문에 이것을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던 것입니다. 반대하지 않았으면 대번에 국가적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대번에 국가적 기준에서 하나되어 가지고 세계적으로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세계의 대통령 혹은 군왕들이 영계의 지시를 받아 가지고 통일교회와 하나로 합하는 운동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가 얼마나 빨리 통일되었을 것이냐? 몇 해나 걸릴 것 같아요? 한 나라만 성립되면 7년, 7년에 안 되면 21년이 걸리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영적구원 기반인 기독교의 지상 실체권이 이루어지느냐? 반드시 영적인 가인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는 영적으로 승리한 부모로서 이 땅 위에 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승리한 부모로서 이 땅 위에 임해 가지고야 비로소 실체적인 부모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독교를 중심삼고 일시에 했더라면 일시에 승리적 국가권이 벌어졌다는 거예요. 그때에는, 해방 직후에는 선생님이 출발할 당시에는 대한민국이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영적인 국가만을 중심삼고 땅에는 가인이 없을 때였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종적인 입장에서만 가인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만 자리를 잡았으면 그냥 그대로 그것이 국가적으로 넘어가고 세계적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때는 가인 아벨이 벌어졌습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선생님이 아벨이면 영계는 가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영계와 하늘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단체를 구성해 가지고 준비한 단체가 참 많았습니다. 여러분 그거 알아요? 시온파라든가, 새주님파라든가, 복중교라든가 하는 것들이 전부 그런 준비를 했던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만일에 기독교가 반대하게 되면, 하늘은 그들을 중심삼고 2차 작전의 승리적 터전을 만드는 놀음을 하려고 했는데, 자기들 욕심 때문에 전부 다 깨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지금, 평면적 기준에서 소생, 장성, 완성의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가인이 실패한 것, 영적인 아벨이 실패한 것을 복귀하고, 그 다음엔 실체 가인이 실패한 것을 복귀하여 이것을 연결시켜야 실체 아벨 복귀권이 벌어지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러면, 이렇게 기독교 가운데에서도 반대받은 통일교회는 어디로 가느냐? 전부 다 통일교회를 반대했지요? 그렇지만 영계는 통일교회를 따라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는 이 뜻을 펴려면 반드시 영계가 협조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기독교를 부정하고 그 대신 지상의 아벨적인 존재를 실체로 세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 한 사람을 중심삼고 국가가 동원되어야 합니다.
예수가 아벨이지요?「예」 지상의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에 예수가 아벨의 자리에 섰을 때 모두에게 반대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반대받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반대하고 국가적으로 반대하고 전부 다 반대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들이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내 모가지를 자르시오. 나는 죽어도 간다' 이래야 그들이 통일교회를 믿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머리를 깎이고, 여기 이 자리에도 머리를 깎인 여자가 있을 텐데, 없어요? 아뭏든 머리를 깎이고도 '안 된다'라고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별의별 구경을 다 했습니다. 여자들 머리 깎이는 일이 없나, 얼굴이 깨지지 않나, 다리가 부러지지 않나, 나중에는 팬티 바람으로 집을 쫓겨나오지 않나, 별의별 구경을 다 했다구요. 안 그랬어요?「그랬습니다」 한 사람을 중심삼고 나라가 동원되어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가는 길 앞에는 영적으로 하나된 기반이 생기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이 기반만 되었으면, 대번에 개인적인 영적 기반, 가정적인 영적 기반, 국가적 영적 기반, 세계적인 영적 기반이 한꺼번에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반대했기 때문에 재탕감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는 영계의 협조를 받아 죽을 길을 걸어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2천년 동안 수고한 것을 통일교회는 만 21년만에 탕감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기간을 중심삼고 볼 때, 지금의 때는 1960년도부터 12년이 지나고 13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알겠어요?「예」
예수는 소생 장성이지요? 그렇지요? 비둘기와 양의 제물시대와 맞먹기 때문에 2차 7년노정이 끝나게 될 때는, 국가와 국민 앞에 예수의 해원을 완결해야 하는 것이 섭리적 관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2차 7년노정을 앞두고 3년 전부터 이것을 준비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의 3년 공생애와 맞먹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1974년까지가 이것이 넘어가는 고비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섭리적으로 볼 때, 통일교회의 현시점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1960년대를 역사시대라고 하느냐? 그거 역사시대라구요. 1960년도부터 지금까지 세계의 많은 나라의 해방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지금까지 무려 40여 국가가 해방된 것입니다. 유엔에 가입한 나라의 3분의 1에 가까운 국가가 1960년도부터 해방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60년도 이후를 역사시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자면 시간이 많이 가니까 그냥 넘어갑시다.
그것이 왜 그렇게 되느냐? 복귀하는 데는 잘사는 사람보다도 못사는 사람이…. 물론 기독교가 받들었으면 잘사는 사람이 복받는 것입니다. 또, 민주세계도 그냥 복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반대했기 때문에 하늘이 비참한 자리에서 다시 길을 닦아 나와야 했던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비참한 권내에 있는 사람들이 동정받을 수 있는 터전이 벌어집니다.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시대를 향하여 나오기 때문에 아프리카권이 해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잘사는 아들보다도 못사는 아들을 더 사랑해야 되겠지요? 그와 같은 원칙에 따라서 지금까지 복귀돼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의 시대를 소련과 중공과 미국의 3국 시대라고 말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건 3국이 아니라 한패라구요. 가인과 아벨이니까 한패라는 거예요. 미국과 공산권과 아랍권입니다. 아랍권은 회회교권입니다. 이렇게 3패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 그리고 아랍권, 이렇게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 더 나와야 하는데 그것이 무슨 권이냐 하면 천국권이라는 것입니다, 천국권. 천국권이 나와야 예수가 승리할 수 있는 부활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참이라는 것은 심으면 그대로 많이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조 한 알을 심으면 가을에 조가 많이 거두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요? 심은 대로 거두는 거라구요.
예수님은 인류의 참된 부모입니다. 예수는 우리 인류의 부모지요? 예수님은 누구라구요? 참된 부모입니다. 그렇지요? 효자는 부모가 죽을 때 가봐야 안다는 말이 있잖아요? 효자는 부모가 죽을 때 가봐야 안다구요. 그렇다는 거예요. 부모된 예수가 십자가에 지금 죽게 됐다는 거예요. 거기에 몇 아들이 있느냐 하면 말예요, 세 사람의 아들이 등장하는 겁니다. 하나는 오른 편 강도, 하나는 왼 편 강도, 그 다음에는 바라바라는 것입니다.
자! 지금 운명하는 아버지 앞에 세계적으로 세 패가, 세 사람이 몰려 들었습니다. 이 바라바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예수 대신 목숨을 살려 준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그는 그 당시에 반동분자로서 나라에 민란을 일으킨 대역 죄인이었기 때문에 당장에 죽음을 당할 입장에 있었는데 예수 때문에 살아난 것입니다. 그렇지요? 바라바의 부모가 예수라면, 바라바는 예수 대신 자기가 구원을 받았으니까 생명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님을 위해서 충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거예요.
이와 같은 세 사람을 중심삼고 예수는 십자가를 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보라구요. 여기 오른편 강도가 있지요? 여기 왼편 강도가 있고 그 다음에 바라바가 있습니다. (판서하심) 이 바라바는 예수가 편이 되어 협조를 했는데 오히려 반대를 했습니다. 자기가 예수 때문에 살아났으면, 또한 혁명을 하던 그런 의협적인 사람이라면,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 뒤라도 따라 다니면서 '예수가 나를 살려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예수의 편이 되어 그 군중들을 대하여 싸워 줘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도리어 예수를 비난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패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왼편 강도가 예수님을 반대했지요? '당신이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야, 뭐 이런 놈의 하나님의 아들이 다 있어, 딴 사람은 다 살려 주면서 당신은 살아나지 못하느냐,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어서 십자가에서 내려가서 나를 구해 보라'고 하며 반대했다구요. 거기에 또 누가 있었느냐 하면, 오른편 강도가 있었습니다. 그 오른편 강도만이 예수를 지지한 것입니다. 오른편 강도만이 효자가 된 것입니다. 오른편 강도는 '야, 왼편 강도야, 우리는 죽어도 마땅하지만 이 분만은 선한 사람 중의 선한 사람이 아니냐!'고 하며 죽을 때까지 변호했습니다. 결국 오른편 강도는 끝까지 예수와 더불어 간 대표자입니다. 이와 같은 실정 속에 심어진 것이 예수입니다.
이렇게 심어져 가지고 예수는 죽어갔지만 다시 부활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부활하는 데는 자기만 부활해서는 안 됩니다. 전체를 부활 시켜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죽지 않은 바라바의 무리, 즉 회회교권이 이스라엘 나라를 지배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축복받은 12지파의 그 민족을 누가 지배해야 되느냐? 예수가 지배해야 될 것인데, 바라바가 예수 대신 살았기 때문에 회회교권이 아랍권을 지배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게 역사적인 사실이지요? 이 회회교권은 죽지 않은 바라바의 뒤를 계승하여서, 축복받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인계받을 수 있는 그런 터전을 닦아 아랍권 중동 전체 지역을 지배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예수가 죽었다가 다시 소생해 나왔기 때문에, 오른편적 우익이 소생할 수 있는 때가 됨과 동시에 왼편적 좌익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 우익과 좌익이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인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래야 될 것이 아니겠어요? 예수는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가 죽었던 것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복귀시대가 되면, 이 두 패가 나타나 가지고 서로 원수와 같이 싸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늘을 위하는 싸움을 하다가 죽음을 당하고 매장이 되었지만, 이제는 부모가 와서 이 두 세계를 화해시켜 가지고 평등한 통일을 이루어야 지상천국이 벌어질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은 대로 거둘 수 있는 세계적인 때가 바로 이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익이라는 말이 어디에서 출발했느냐? 오른편 강도에서부터 출발을 한 것입니다. 봄에 씨를 심었는데 어떤 것이 가라지 씨인지 알 수 있어요, 없어요? 모르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심기는 예수 시대에 심었는데 결실은 가을이 돼야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가을이 되면 그냥 그대로 나타나는 거예요. 필연적으로 이러한 역사적인 환경이 세계적으로 나타나는데, 세 아들권과 같은 권, 즉 불효의 아들딸들이 다시 한 번 하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만, 비로소 부모가 기쁜 낯으로 생활을 출발할 수 있고, 효자와 축복을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때가 지상천국 이상세계가 벌어지는 때입니다. 알겠어요? 또, 반대하던 모든 것을 세계적으로 탕감하기 위한 때가 지금이라는 겁니다.
좌익에서 하나님이 있다고 합니까? '하나님이 뭐야, 예수가 뭐야, 내가 제일이다' 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우익인 민주세계는 '왜 하나님이 없느냐' 이거예요. 왼편 강도가 죽을 때까지 즉, 좌익이 없어질 때까지 하나님을 옹호해야 할 것이 민주세계요, 기독교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못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을 못 하는 날에는 지상에 예수님이 올 수 있어요, 없어요? 예수님이 죽어갈 때에는 낙원 문을 열어 가지고 비로소 낙원에 있을 수 있는 한 사람, 오른편 강도를 데리고 들어갔지만, 이제 다시 오른편 강도와 같은 실체적 존재가 지상에 남아져야만 부활권이 벌어질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좌익을 대해서 싸울 수 있는, 외적인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교회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책임 못 하면 가인한테 끌려가게 됩니다. 그렇지요? 기독교가 통일교회를 반대했기 때문에 책임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2천년 동안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전부 다 사탄에게 끌려가 가지고 신음하고 고생한 것과 마찬가지로 2차 대전 때 폭탄 하나 안 떨어진 대한민국이 이렇게도 수난이 큰 줄을 누가 알았습니까? 나라를 가졌지만 아직까지 유엔에서 공인도 못 받고 있습니다.
재탕감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지금이 14년 시대를 향하여 들어가는 3년 기간의 첫해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왜, 하필이면 지금의 때에 와 가지고 민주세계에 대해서, 한국에서 공식석상에 나타나서 말도 안 하고 대중집회도 안 열던 선생님이 미국에 가서 통역을 세워 가지고 그런 일을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국가에서부터 세계로 출발해야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메시아는 국가에서 세계로 출발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예수의 갈 길이었습니다. 자기 민족을 대해서, 즉 이스라엘 민족을 대해 가지고 메시아가 이렇게 온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자리에 서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국가에서 출발해서 세계로 가야 하는 것이 메시아가 가야 할 본연의 전통적인 길이더라는 겁니다. 예수가 그 길을 가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그와 같은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국은 뭐냐? 예수 시대의 로마에 해당하는 나라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을 배반하는 로마가 아니라 하늘을 지지할 수 있는 영적인 세계권을 갖춘 로마형 나라입니다. 그와 같이 반대하지 않고 환영할 수있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비록 통일교회가 한국에서는 기독교의 반대를 받고 나왔지만 기독교 문화권의 본산지인 미국에 가 가지고 말씀을 선포하게 될 때, 반대받지 않게 되는 날에는 반대했던 기독교가 회생할 수 있는, 재봉춘할 수 있는 역사적인 시대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이러한 때가 됐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러한 놀음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기독교 문화권은 무엇이냐 하면 영적인 세계의 문화권입니다. 그렇지요? 한국에 있어서 통일교회는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기독교한테 밀리는 통일교회가 되면 안 됩니다. 아벨이 못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기독교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들에게 지지 않을 수 있는 통일교회 기반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 목사들을 천 명 가까이 모아 가지고 공청회를 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나라에 가보면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13퍼센트 내지 17퍼센트 정도 됩니다. 통계적으로 그렇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회회교를 믿는 사람과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이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도 유대교인들은 '예수는 이단자이다, 우리가 바라는 메시아는 예수가 아니다. 다시 와야 한다'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나라가 어떻게 독립이 됐느냐? 이것은 재봉춘할 때가 왔기 때문에, 봄날이 다시 왔기 때문에 독립이 된 것입니다. 그것을 볼 때 이 땅 위에 주님이 다시 올 수 있는 역사적인 터전이 마련됐다는 것을 증거함을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 대한 세밀한 이야기는 그만둡시다.
옛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제일 무서워하던 것이 뭐냐 하면, 기성교회 목사요, 기성교회 교인이었습니다. 그렇지요? 그 다음엔 나라였습니다. 순경 나부라기 한 사람만 통일교회에 찾아오면 그 교회 책임자는 가슴이 철렁했다는 거예요. 또, 통일교회 다닌다고 기성교회가 동네방네 소문내고 반대하고 나서면, 집안은 쑥밭이 돼 가지고 죽인다 산다 하고 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제일 무서운 것이 기성교회요,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무서워하던 통일교회 교인들이 이제는 점점…. 요즈음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아줌마들이 기성교회 목사를 첫번째 찾아갈 때에는 뭐 이러고저러고 하지만, 두 번 찾아가고, 세 번 찾아가고, 찾아가면 찾아갈수록 반대로 목사들이 무서워한다는 것입니다. 턱 눈앞에 나타나면 가슴이 철렁한다는 거예요. (웃음) 딱 반대로 되었다는 겁니다. 누가 그렇게 되느냐 하면, 옛날 우리 통일교회의 지방 교인들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성교회의 사람들이 철렁한다는 겁니다. 보따리를 바꿔 쥐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또, 지금까지도 유대교가 기독교를, 예수를 반대하는데, 그 유대교 사제들이, 제사장들이 마음을 돌이켜 가지고 기독교의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와 기독교의 관계는 유대교와 예수교의 관계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기성교회 목사들이 여기에 와서 수련을 받고 내밀적으로 통일교회 패가 된 목사들이 많다는 겁니다. 그들이 나타내지 않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많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이제 깃발을 들고 나서자고 하는 날에는 없는 것 같았던 통일교회가 한꺼번에 와글와글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은 모르지만 그런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라가 통일교회를 그렇게 못 살게 굴었지만, 이제는 우리 승공연합이 활동을 안 하고 나가자빠지는 날에는 한국이 곤란하게 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상적인 면에 있어서는 통일사상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영적인 면에서,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는 최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면에 있어서는 완전히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서 이스라엘 국가와 유대교를 찾지 못했던 기준을 복귀하고, 영적인 면의 지상 기반을 차지할 수 있는 가치관을 가졌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영적인 민주세계를 대해 가지고 당당히 영적인 아벨 주체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왔다는 겁니다. 알겠어요?「예」 좀 어렵다구요. 여러분이 잘 연구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이루어진 것을 미국이라든가 구라파 문화권에 가지고 가서 상대적인 인연을 묶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묶어져 가지고 돌아오는 날에는 영적인 기준이 묶어졌기 때문에 실체적인 문이 열리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기성교회 교인들은 여러분의 움직임에 비례해서 쏟아져 들어옵니다.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이번의 3차 세계 순회노정이 그러한 역사적 의의를 가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의 문은 열려야 되는 거예요. 악착같이 반대하는 패들이 있지만 그들은 젖혀 버리고, 떡잎은 흘려 버리고 속잎만 뽑을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요전에도 어떤 목사 부부가 통일교회에 들어오겠다고 사정사정했지만 조금 더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런 기성교회 목사들이 많습니다. 신도가 천 오백 명 이상 되는 어떤 교단이 있는데, 그 교단의 전체 총회장과 부회장이 지금 생명을 각오하고 뛰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자기 혼자 반대하고 있는 기성교회 목사들은 나중에 가서 복닥불을 겪을 때가 올 것입니다. 기분 좋아요?「예」 남이 복닥불을 겪는데 기분 좋을 게 뭐예요. (웃음) 불쌍하지. 그냥 둘 게 아니라구요.
이렇게 되어지는 탕감복귀역사라는 것을 두고 볼 때, 원리관을 통해 볼 때,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이 역사적인 실정을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늘에서 살아왔습니다. 예수가 지금까지 그늘에서 살아왔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늘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이 있지만, 예수님이 왔다 갔지만, 신랑 같은 주님도 왔지만 이게 괴롭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그늘에서 살아온 거예요.
지금까지 하나님이 햇빛을 봤어요? 양지에서 살았어요, 음지에서 살았어요?「음지에서요」 하나님이 음지의 대왕 노릇 했어요, 양지의 대왕 노릇 했어요?「음지의 대왕요」 예수는 음지의 도주 노릇 했어요, 양지의 도주 노릇했어요?「음지의 도주요」 언제나 죽음을 당하고, 피 흘리는 제단을 따라다니는 예수입니다. 피 흘리는 것밖에 볼 수 없는 예수였던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비참한 자리에서, 울고불고하는 것만 보아 나왔습니다. 마찬가지지요? 똑같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음지가 변해서 양지가 되고, 양지가 변해서 음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역사적인 양지가 음지가 되고, 역사적인 음지가 양지가 될 때에는, 음지의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는 세계의 햇빛을 먼저 받을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지요? 이러한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통일교회의 세계라는 거예요.
닉슨 대통령이 지금 공산국가를 왔다갔다하고 있지요? 앞으로 공산당들이 세계를 대하여 평화 공세를 취하면서, '이제는 싸우지 않아도 민주 세계를 요리해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싸우지 않아도 세계는 우리 수중에 들어온다고 생각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통일교회가 있는 것만은 모른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가 나와 가지고 세계적으로 선전하기 전에 평화니 뭐니 하라는 거예요. 닉슨이 지금 잘 뛰어다니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가 자리잡고 나타나게 될 때는 공산당은 후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일본만 하더라도, 일본 공산당의 책임자한테 우리 통일교회에서 공한을 보냈습니다. '자! 공산당 너희가 세계적인 사상을 가졌다고 자랑한다면 어디 텔레비젼 방송에 출연해서 이론 투쟁을 해보자, 이러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답변이 없게 될 때는 너희들이 졌다는 것을 세계에 선포할 것이다'라고 공문을 보냈는데 아무런 답이 없어요. (웃음) 공산당은 우리를 제일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공산당 간부가 내린 명령이 뭐냐 하면, 국제승공연합과 이론 투쟁하면 목이 졸리니까 절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지시를 내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벌써 후퇴 명령을 예고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를 거라구요. 통일교회 교인들 보기에는 어수룩해도 악착 귀신 이상이라는 거예요. (웃음) 악착귀신이 뭐예요? 사탄이지요?「예」 사탄 이상으로 악착같은데, 자기를 위해서?「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탄은 자기를 위해서 악착같이 싸우지만, 우리는 자기를 위해서 싸우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악착같이 싸우지 않을 것이다?「싸울 것이다」 안싸울 것이다?「싸울 것이다」 안 싸울 것이다?「싸울 것이다」
나는 틀림없이 악착스러운 패다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웃음) 이거 기분 나쁘게 웃긴 왜 웃어? (웃음) 좋아서 웃는 거예요, 나빠서 웃는 거예요?「좋아서 웃는 겁니다」 결심하고 손드는데, 손이 이래서 되겠어요? 다시 한 번 나는 악착같은 패라고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려요.
그러면, 지금까지 하나님의 소원이 뭐냐?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악착같은 패를 찾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절대적으로 악착같은 패를 만나기 전에는 행차를 못 하는 것입니다. 명령을 못 하는 것입니다. 명령은 개인의 자리에서는 할 수 없습니다. 탕감시키기 위해서는 명령을 할 수 있습니다. 복을 주고 영광을 주고…. 개인적으로 혼자 복받아 가지고는 사탄한테…. (녹음 상태 불량으로 일부 말씀을 정리하지 못했음)
지금까지는 고통받고 죽을 자리에 세울 수 있기 때문에 명령했지만, 앞으로 영광의 시대를 맞이하는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나라 이상의 자리가 아니고는 하늘이 명령하지 못합니다. 통일교회는 그렇다는 거예요. 나라 이상의 자리를 갖지 않고는 하나님은 명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뭐냐?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소원이 뭐냐? 개인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을 구원하면 다시 그 개인을 희생시켜 가지고 가정을 찾기 위해 나아가야 할 하나님의 소원이 남습니다. 또 가정을 찾으면 그 가정을 희생시켜 가지고 종족을 찾아 나가야 할 소원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종족을 찾았더라도 그 다음에는 민족을 찾아야 할 소원이 남게 되고, 민족을 찾았으면 민족을 희생시켜서 나라를 찾아야 할 소원이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데 있어서 최후에 바라는 섭리적 시점이 무엇이냐? 메시아가 승리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승리할 수 있는 그 시점이 어디냐? 나라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라와 교회가 하나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 세계적인 사탄이 공산세계입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중공, 북한, 소련인데 이 3개국이 무색할 수 있는 통일된 나라를 성취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행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지상 최고의 뜻입니다. 여러분을 구원하고 축복해 주는 것이 뜻이 아니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무엇만을 바라고 나가느냐? 하나님이 지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만을 바라고 나가야 됩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맞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 뭐예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다 실패하고 패자의 쓴 잔을 마시며 죽음의 피를 흘리고 갔던 예수의 뜻을 지상에서 해원성사해 가지고, 전세계의 모든 원수의 주권자들이 무릎을 꿇고 '2천년의 모든 원한을 일시에 탕감해도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그것을 보는 날이 하나님의 최고의 승리의 날이요, 소원의 날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라를 찾아야 됩니다. 나라가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알겠어요?「예」 대한민국에 있어서 남한뿐만이 아닙니다.
자! 보라구요. 재미있는 사실은, 선이 오기 전에 먼저 악이 와 가지고 선을 빙자하여 선한 사람을 유린하는 것이 죄악된 역사의 실정이었더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일성 부인에 대해서는 어머니라고 안 부르지요? 가인은 천사장이기 때문에 아내가 없는 겁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부모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사탄이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사탄도 원리원칙을 따라가야 됩니다. 여러분, 김일성의 마누라를 어머니라고 부른다는 얘기 들어 봤어요?「못 들었습니다」 사탄도 원리원칙대로 가야 된다는 거예요.
통일교회는 무엇을 믿고 가느냐? 부모를 믿고 갑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에는 누가 있느냐? 아버지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아버지가 누구냐! 욕 많이 얻어 먹은 문선생이라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선생님이 그냥 갖다 붙인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악한 사탄세계가 아버지의 이름을 빌어서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도 공산당을 수출합니다. 그렇지요? 공산당 수출하지요? 게릴라를 훈련시켜 가지고 2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는 말을 요전에 선생님이 들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20여 개국에 수출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삼팔선을 중심삼고 뿔개질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나중에 가서는 통일교회 사람들이 싸워야 됩니다.
내가 삼팔선을 넘어설 때, '이 삼팔선을 넘어 다시 돌아오는 날, 이 나라에 해방이 있을 것이다' 그런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내가 살던 고향땅과 선생님이 사랑하던 고향 산천은 원수의 말발굽 아래 유린당했습니다. '그 땅의 원수를 깨끗이 청소해 가지고, 가려 가지고 거기에 복귀의 한 터전을 만들 것이다' 이것이 선생님 필생의 소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돼요.
자! 그러면 우리 자신을 두고 볼 때, 우리는 어떤 때에 서 있느냐? 역사시대를 두고 보면, 탕감복귀는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한다는 것입니다. 3시대를 거쳐서 복귀해 나옵니다. 그렇지요?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 이렇게 나오는데 이 기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종횡이 연결되는 데 있어서 남자만 가지고 되느냐? 남자와 여자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여자하고 여자가 있어야 되지요?「남자가 있어야 됩니다」 여자하고?「남자」 아들하고 있으면 돼? (웃음) 여자하고 누가 있어야 돼요? 남자가 있어야 됩니다. 신랑 신부의 상봉점이 지상 위에 벌어지지 않는 한, 횡적인 출발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랑되는 남편은 종적이고 신부되는 아내는 횡적이기 때문에, 종적인 신랑, 즉 예수님이 지상에 오셔서 횡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무엇이라구요? 어린양잔치라는 겁니다. 알겠어요?
우리 통일교회로 말하면, 이때가 언제라구요? 1960년부터 21년이 지난 1981년까지라는 거예요. 이때가 이 세계 최대의 변천기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 세계가 돌아가는 것은 무엇에 의해서 돌아가느냐? 선생님의 프로그램에 의해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결국은 하나님의 프로그램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계가 크다 하더라도 통일교회 프로그램대로 돌아가는 거라구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부터 한 십년 전, 즉 1960년대에 선생님이 7년노정만 끝나면 이렇게 이렇게 된다고 했을 때, 여러분 믿었어요? 한창 반대받던 그 당시에는 꿈 같은 얘기였을 겁니다. 12년 지나고 나니 세계와 대등한 자리에 왔다구요. 그렇지요? 이제 80년대를 넘어서는 날에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둘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죽을 쑬 것이냐, 밥을 지을 것이냐?「밥이요」 밥을 지으려면 죽에서부터 단단해 들어가야 됩니다. (웃음) 그렇찮아요? 밥을 지을 때 보면, 단단한 쌀에 물을 부어 죽같이 되어 가지고 나서야 밥이 되는 것입니다. 단단한 사람은, 죽고자 하는 자는 죽이 되는 거라구요. 죽이 되었다가 죽지 않고 복을 받아 단단하게 되는 겁니다. 밥이 된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밥이 되는 과정을 보고 '야! 복귀역사와 딱 들어맞는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자! 죽이 될 거예요, 밥이 될 거예요? 지금 통일교회 무리들은 전부 다 죽이라는 겁니다. 뭐 뜻이고 뭣이고 생활을 들여다보니 무슨 쟁개비 짜박지 하나도 성한 것이 없구만! 형편이 무인지경이라구요. 어디 가서 무슨 건덕지가 있어야지…. 밥 푸는 짓이나 했지, 밥 먹을 형편이 아니라구. 신세타령하기 쉬운 것이 통일교회 패들입니다.
그렇지만 밑창에서 달궈 주는 불이 꺼지지 않으면 죽이 됩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계속해서 궁둥이를 오도독오도독 소리가 나도록 지지면 그것은 틀림없이 밥이 됩니다. 밥이 되지 말라고 해도 밥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게 될 때, 궁둥이를 지지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둬서 변동이 없게 될 때는 그냥 그대로 죽이 되는 것입니다. (웃음)
통일교회 패들은 궁둥이에 불을 때고 있다는 것을 알아라 이겁니다. 방안에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편해 가지고 궁둥이를 방바닥에 그냥 붙이고 있는 사람은 그냥 그대로 죽이 되는 것입니다. 방안에 혼자 있더라도 속이 펄덕펄덕 끓으며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 없게끔 되거들랑 그것은 밥이 되는 징조입니다. (웃음) 왜, 웃어요? 사실 그렇다는 거예요. 남들은 전부 다 전도 나갔는데 혼자 쌀밥에 고기를 놓고 먹으면서도 꿀꺽꿀꺽 잘 넘어가는 사람은, 그렇게 먹는 사람은 틀림없이 죽도 못 됩니다. 밥을 먹으려면 눈물이 줄줄 흐르며 그 속이 끓어야 합니다. 밥을 가지고 오면, 벌써 눈물이 술술 나오고 속이 끓게 되어 밥을 못 먹는 사람은 그래도 밥이 될 가망성이 있습니다. (웃음) 그렇다는 거예요.
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둘 중의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죽이 될래요, 밥이 될래요?「밥이 되겠습니다」 뜻을 위해 가지 않아도 속이 편한 사람은 밥이 되겠다고 아무리 꿈을 꾸고 생각을 해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허사라는 거예요. 속이 뒤넘이치고 못 견디게끔 요동을 치는 사람은 그래도 가능이 없다?「있다」 있다. 그렇게 느낀 사람 손들어 봐요! 뭐 다 들 거예요. (웃음)
그런데 여러분이 병이 들었다구요. 병이라면 큰 병이라는 겁니다. 죽이 밥이 돼야지 밥이 죽이 되는 게 아니라구요. 그 병은 죽이 밥으로 되는 병이지 밥이 죽으로 되는 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병은 얼마든지 걸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안 걸려야 돼요?「걸려야 됩니다」
선생님이 우리 통일교회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으로부터 '아! 통일교회 믿지 않았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아이고 가슴이야? 하면서 안절부절 못 하더라는 말을 듣고 '그것 참 잘됐구만' 그랬습니다. 그런 마음을 선생님이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여기 이 자리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을 거예요.
오늘 여러분을 보니까 요전에 선생님이 왔을 때 왔던 사람이 태반인 것 같은데,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온 것이지 선생님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전부 모이라고 명령을 하고 나서 과연 얼마나 올 것인가, 많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뭐 이렇게 많이 왔어요. 참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선생님이 이번에는 전국에 있는 청년 남녀는 물론, 애기들까지 부산 부둣가로 집합하라고 명령하면 올래요, 안 올래요?「오겠습니다」 내일 모레 그런 명령을 해도 올래요?「예」 그때는 선생님이 일본에 가서 살기 위하여 보따리 싸 들고서, 부산 항구에 큰 배를 세워 놓고, 버튼을 누를 때가 될는지도 모릅니다. 또, 선생님이 떠나게 되면, 공산당이 전부 다 이 땅을 점령해 가지고 통일교회 교인의 목을 자를지도 모릅니다. 그런 때에는 그와 같은 비상명령을 내릴지도 모릅니다. 사람 팔자 시간 문제라고 했는데 알 수 있어요? (웃음) 언제나 따라다니고, 따라다니다가 하필 그런 때에 눈을 말똥말똥거리며 혼자 남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모이기를 힘쓰지 말라고 했다구요. (웃음) 끝날에는 뭐라고 했다구요? 웃는 것을 보니까 이상하구만. 모이기를 힘쓰라고 했지요?「예」
모이기를 힘쓰라고 했는데, 선생님이 산꼭대기 올라가자 했을 때, 올라 가지도 않은 채 '이 길은 외통길이니까 틀림없이 이곳으로 내려오기 마련이다'라고 생각하고 넓적한 바위 위에서 낮잠 자면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지혜로운 사람 같지만, 올라갔다가 내려오지 않고 승천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거 알 수 있어요? (웃음)
또, 승천하지 않고 내려오더라도 그 길로 오지 않고 다른 길로 내려가 버릴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천국에 들어가서 문을 꽝꽝 잠궈 버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다구요. 그건 모른다구요.
선생님은 때가 가까이 오면 올수록 여러분이 못 따라오게끔 재간을 피운다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진짜 사람을 고르기 위해서입니다. 열 번 해볼 것이냐, 스무 번 해볼 것이냐, 백 번 해볼 것이냐, 천 번 해볼 것이냐, 만 번 해볼 것이냐, 십만 번, 백만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인데, 할수없어서 만 번쯤만 하자는 마음이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역사적으로 수천년 동안 하나님이 찾아 나오던 진짜 사람 하나를 찾으려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여러분이 믿고 있는 선생님이라는 작자입니다. 기분 좋아요?「예」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싸늘하고 가슴이 아주 뭉클해 오지요? '어휴, 저런 사람 믿다간 밑천도 못 찾겠구만' 하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웃음) 선생님을 믿지 말라는 겁니다.
나는 감옥 문전에 면회온 어머니를 쫓아 버린, 불효자라면 그 이상의 불효자가 없을 정도의 사나이입니다. 어머니가 누군지 모른다는 겁니다. 내가 아무리 감옥에 있어도 공산당 앞에 어머니의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 사나이입니다. 내가 못할 일을 하고 감옥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구요. '이 돼먹지 않은 여자'라며 그저 벽력 같은 호령을 해 가지고 쫓아 버린 겁니다. 지극히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죽더라도 원수 앞에 조롱거리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것이 불효예요, 효예요? 하늘의 위신을 두고 볼 때는, 나라는 사나이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 어머니는 이래야 될 것이 아니오, 죽을 사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아들에게 천륜을 어기지 말라고 권고해 가지고 거기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듯이 힘차게 싸우라고 이야기해야 할 텐데, 그것이 뭐냐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어려운 입장에 있으면 눈물이 먼저 나오지요? 선생님은 그런 사나이라구요. 여편네를 대해서도 그렇고 자식을 대해서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를 지닌 선생님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뜻밖에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걸 알아야 되겠어요. 사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섭리적 현시점이 어떤 때냐 하는 문제를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야! 이 말씀을 듣고 보니까 전체를 탕감할 때로구나, 하나님이 비로소 얼굴을 들고 정력을 총집중할 수 있고, 힘줄이 더 이상 튕기지 못하리 만큼 손에 힘을 주고, 눈이 있어 들여다보게 된다면 응시하던 눈을 감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바라보는 최고 최대의 역사적인 현시점이구나'라고 느껴지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게 느껴져요? 이때야말로 우물쭈물할 때가 아닙니다. 거국적으로 전체를 동원해서 이 찬스를 놓치지 않고 어떻게 해서라도 이때를 열매맺히게끔 해야 하는 것이 현시점에 있는 우리 통일교인들의 최대의 사명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를 때,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부르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나라를 위해서 만세를 부를 때는 있는 힘을 다해서, 조상의 소원을 밑바탕으로 하여 시대적인 만민을 터전으로 삼아 대표적으로 만세를 불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말뿐이 아니예요. 그래도 안 죽는다는 겁니다. 그래야 될 것이 아니겠어요?
자! 우리의 섭리적 현시점이 어떤 때냐? 하늘이 나라를 찾을 수 있는 가망성이 왕래하는 때입니다. 알겠어요? 하늘이 잃어버린 민족을 다시 해원성사시킬 수 있는 기로에 서 있는 때라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종족이 여기에서 승리의 깃발을 다짐하고, 이상적인 가정이 가정으로서 권위를 갖고, 이상적인 개인의 권한을 천상천하에 자랑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보장될 수 있는 현시점이 아니냐? 다시 말하면, 종적인 6천년의 섭리역사를, 모든 종적인 원한과 수많은 희생의 대가와 지금까지의 수많은 탕감 제물을 일시에 부활시켜 가지고 전체적인 실패를 일시적으로 전체의 승리 가치 이상의 가치로 다짐할 수 있는 한번밖에 없는 때가 아니냐, 전무후무한 시점이 아니냐?
여러분, 운동장에서 백미터 달리기 해봤어요? 출발선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심각하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탕' 하는 소리가 나기 전까지는 심각한 나머지 숨도 잘 못 쉰다는 것입니다. 뛰어 본 사람은 안다구요. 그런데 헐떡헐떡거리는 사람은 벌써 볼장 다 본 겁니다. 몸과 마음 모든 전체가, 생활과 행동과 결의와 모든 표준이 이 시점에 전부 다 집중되어야 됩니다. 1초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1초가 문제라는 거예요. 그보다 더 심각한 때가 또 어디에 있느냐?
이렇게 볼 때, 이 한 점을 격파시켜 가지고 승리를 다짐하게 될 때에는 모든 나라가 사탄세계로부터 해방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세계만민이, 원수들이 화합해 가지고 평화의 국민으로서, 평화의 형제로서, 평화의 식구로서 묶어지게 되면, 거기에는 영계와 육계 사이에 놓여 있던 경계선이 완전히 제거되어 버리고 둘이 하나된다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인간과 만날래야 만날 수 없었고 전지전능하신데도 무능력했던 하나님이 최고의 권한을 가지고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행차할 수 있는 역사시대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잘못한 녀석들은 대번에 직격탄을 맞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탄보다도 못한 자리에서는 하나님이 행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소련의 공산당이나 중공의 공산당, 혹은 북한 김일성 이상의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위할 수 있는 만민의 양심의 해방운동을 제시하고 나서는 무리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무리가 바로 통일교회 무리라는 것입니다. 노동자 농민의 해방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급을 초월한 양심적인 인사들이여, 동원할지어다!'라는 세계적인 표어를 내세워 가지고 양심적인 대해를 건너서 양심적인 천국을 향하여 진군할 수 있는 명령을 내릴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는 하늘이 앞장서 가지고, 틀림없이 올바로 지도해 가지고 지상의 승리적 왕권 세계를 복구하고 말 것이다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이 우리가 찾아야 할 때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김일성이가 독재자의 이름을 남기면서 천 칠백만이나 되는 국민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갖은 어려움을 극복해서 저만큼 준비했는데,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 이상 희생해야 합니다. 통일교인들은 그러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정리하지 못했음)
그러한 세계적인 때가 돼 들어오기 때문에 이번에 선생님이 한 것이 뭐냐 하면 초민족적이요, 초국가적인 입장에서 세계적인 십자군을 형성한 것입니다. 그러고 돌아온 것입니다.
'세계통일십자군', 십자군이 무엇이냐? 이것은 하늘이 택해 세운 이스라엘 나라, 하늘나라의 성전을 지키기 위해서, 그것을 쟁탈하기 위해서 수많은 민족들이 규합하여 회회교권과 싸운 군대가 십자군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런 싸움을 만일 예수시대에 예수를 중심삼고 했더라면 실패했을까요? 그때는 지상나라가 허락치 않은 상태에서 싸움을 했기 때문에 실패를 했지만, 앞으로 우리 시대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판국이 포위되면 선생님이 미국에 가서 기반을 닦아 가지고 미국 청년들을 동원하여 '한국을 탈환할지어다'라고 명령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십자군을 편성해 가지고 이북 이상으로 동원하게 될 때는 문제없이 승리할 것입니다.
이제 이 나라의 해방을 위해서는, 남북한의 원한의 구렁텅이인 이 삼팔선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남한에 있는 한민족이 단결해야 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와 더불어 세계의 민족들이 가담해 가지고 대한민국을 협조할 수 있는 터전을 넓히자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원정부대가 곧 편성돼 들어옵니다.
역사 이래 세계통일십자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하늘의 직접적인 명령에 따라서 군대를 편성해 가지고 횡적인 자기 나라와 민족을 대하여 '하늘로 돌아갈지어다' 이런 싸움을 전개한 교회, 혹은 종교가 있었느냐? 없었다는 거예요. 난시에 있어서 일선에 나간 군대를 자신이 생활하는 것보다 더 중요시하는 민족이 되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망해요, 안 망해요? 안 망합니다. 난시가 됐는데도 불구하고 '십자군이고, 기동대고 무슨 군대냐,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아라'고 무관심한 패는 망하게 마련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 지금 이런 기동대를 만들었는데 무관심 패가 될 거예요. 유관심 패가 될 거예요?「유관심 패요」 유관심이 과해 가지고 유관순 패가 되어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젊은 아가씨들이 피를 뿌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 나라를 해방하고 말겠다는 신념을 가질 수 있는 유관심이 아니고 뭐라고요? 유관순 같은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자! 보라구요. 지금까지는 남자 편으로 보면 선생님이 나와 가지고 사탄과 싸울 수 있는 싸움은 다 싸워 가지고 이만큼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그래도 이만큼 기반을 닦은 것은 남자가, 선생님이 했다구요. 그렇지요?「예」 여자는 안 했다구요. 이 말을 들으면 어머니가 섭섭하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말이예요. (웃음)
인간이 타락할 때, 남자 여자 다 같이 했지요? 그것을 탕감복귀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때는, 전반기 20년은 남자인 선생님이 피눈물을 흘리며 싸워 가지고 기반을 닦는 때요, 후반기 20년은 여자들이 피눈물을 흘려 가지고 뜻을 성사해야 됩니다.
왜 그러냐? 남자가 먼저 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먼저 사명을 완수하고, 여자는 나중에 났기 때문에 나중에는 여자가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의 전반기 시대에는 남자들이 일을 했고, 후반기 시대에는 여자들을 내세워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반기 20년 기간은 무슨 때냐 하면, 여자들이 일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1차 3년노정은 전부 다 여자들을 내세웠지요? 지금까지 통일교회 여자들이 다 했지요? 기성교회를 가보면 3분의 2가 여자입니다. 남자는 3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야 되는 거라구. 소생기 장성기는 사탄권내라구요. 그렇지요? 복귀시대에 있어서는 여자들이 먼저 발판될 터전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3분의 2가 여자들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젊은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그것은 수절을 해 나오는 여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들딸이 있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성교회에는 젊은 사람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선생님이 처녀들을 고생시켰고 이제부터는 가정 주부, 즉 축복받은 여자들을 고생시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래 가지고 그들의 아들딸까지 고생시키는 날에는 이 세상에 새로운 소식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선생님의 관입니다. 처녀시대부터 어머니 시대까지 고생한 것은 어머니 탕감시대이고, 딸이 나와 가지고 그것을 인계받기 위해서는 20년 기간이 걸려야 된다는 것이 선생님의 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아가씨들을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기분 나빠요, 좋아요?「좋습니다」
얼마만큼 고생을 시켰느냐? 여기의 이 어머니들 얼굴이 핼쑥하지요? 고생을 해 핼쑥해진 얼굴이 그냥 회복될 수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예요? 이렇게 뒤바뀐 것이 고생을 해서 나을 수가 있어요? 병이 나서 쓰러져 가지고 얼굴이 부어 올라 일을 못 할 정도로 해야 된다는 거예요. (웃음) 왜 웃어! 그것은 내 말이 아니라구요.
선생님도 감옥살이 할 때, 이렇게 얼굴이 깡말랐습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했으니까 땅 위에 있는 여자들도 전체는 못 하더라도 그렇게 한 개인대표, 가정대표, 종족대표, 민족대표, 국가대표, 세계대표가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없으면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그렇게 됐다고 나쁜 것이냐? 그렇게 된 여자는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복받는 역사적인 여인이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렇기 때문에 나쁜 것 같지만 좋다는 거예요.
애국자가 백 사람 있으면, 그 가운데서 1등 애국자는, 지긋지긋한 고생을 두 번 한 사람보다는 세 번 한 사람이 등수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네 번은 더 높아지는 것이고, 백 번 하면 더 높아지는 것이고, 구천 번하면 더 높아지는 것입니다. 고생을 많이 할수록 등수가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생을 지긋지긋하게 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지긋지긋한 일등이 되는 것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자! 세상에서는 지긋지긋하게 고생했다 하더라도 일등을 못 하면 상이 없지만, 하늘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지긋지긋하게 고생해서 일등이고 뭣이고 아무것도 못 하고 죽어 자빠졌더라도 그는 등수에 드는 것입니다. 그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고, 죽어서 믿는 사람은? 산다는 거예요. 이래도 살고 저래도 산다는 것입니다. 세상 같으면 일등 안 해 가지고는 안 되지만, 하늘을 위한 사랑의 길, 효의 길, 충신의 길에서는 자기가 죽어질수록, 죽어서 흔적이 없을수록 일등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다구요. 세상과 반대의 길을 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에는 열녀가 있습니다. 여자들 가운데 열녀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 있어요? 그런 여자는 때려죽여야 합니다. 여자로 태어나서 열녀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렇지요?「예」 밤이나 낮이나, 젊어서나 늙어서나 죽을 때까지 열녀가 되고 싶어하는 것이 여자의 마음입니다. 틀림이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틀림없다구요.
그러면 여자가 열녀가 될 수 있는 제일 좋은 길이 있다면 소개받고 싶어요? 소개받고 싶어요, 받고 싶지 않아요? 소개받고 싶어요?「예」 여자로 태어났다가 남편을 위해서 죽을 때는 남편의 사랑을 받고 흥흥거리는 자리에서 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애국자이거든 그를 따라서 나라를 위하여 끝까지 싸워 원수 국가를 점령해 가지고 승리해 들어올 그때에 칭찬받을 수 있는 여자가 되라는 거예요. 그것이 열녀가 되는 길입니다. 기분 나빠요?「아닙니다」 기분 나빠요, 좋아요?「좋습니다」 그런 남자가 도대체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교육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그러한 남자를 만들기 위한 교육을 하려니 할수없이 여자들이 보따리를 싸 가지고 이런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웃음) 알겠어요? 남자들이 이 교육을 완전히 받고 나서게 되면 여자들보다 힘이 세고 능력이 더 있으니까… 그러니 남편들을 일선에 세워 자기가 코치하는 대로 싸워 가지고 승리하여 백마를 타고 금의환향 할 수 있는 남편이 되도록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남편이 '아이고 그대가 아니오' 하며 자기가 타고 달리던 말에 아내를 쓱 태워 가지고 그 나라의 왕궁을 향해서 달릴 수 있다면 그 아내가 최고의 열녀가 아니겠느냐는 겁니다. 그거 신나요, 안 나요?「신납니다」 죽더라도 그렇게 달리다가 죽었다고 한다면 불행한 거예요, 행복한 거예요? '살았다'고 하는 것이 행복이예요, '죽었다'고 하는 것이 행복이예요? (웃음) 만일 그렇게 달리다가 살았다고 하는 사람이 백 명 있다면, 그들보다도 더 높이 열녀의 팻말을 꽂을 수 있는 사람은 달리다가 죽은 사람이예요. 알겠어요? 말에 올라타고 달리다가 떨어져 죽은 사람보다도 타려고 하다가 땅에 떨어져 죽은 사람이 더 열녀라는 겁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심정의 세계는 반대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지금 때가 어떤 때냐? 섭리적 현시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인 나라를 찾아야 할 때가 우리 목전에 왔습니다. '이 나라가 우리에게 달렸구나, 내 손아귀에 달렸구나, 나의 용맹스럽고 기운찬 이 맹세의 소리와 더불어, 혹은 젊은 가슴에서 뛰는 고동 소리와 내가 부르짖는 함성 소리와 적진을 향하여 행군하는 대열과 더불어, 이 행차에 달렸구나' 이렇게 되면 그것을 바라던 영계의 수천억 영인들도 박수를 치며 환영할 것입니다. 지옥에 가 있는 영인들까지도 '제발 승리하소서, 제발 승리하소서, 나는 고개를 들고 가지만 엎드려서라도 할 것이요' 이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지가 동원될 수 있는 숨가쁜 찰나가, 이 한 나라를 중심삼고 몇년 안에 그런 일이 결정되어서 그 결전장에 나아가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사나이답게, 의의 있게 싸워 가지고 정의에 입각한 하늘의 공신으로서 자기의 생명을 바친다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한때를 표준해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이 하나를 다짐시키기 위한 하나의 소원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집에서 배척받고 나라로부터 배척받고 수많은 교단으로부터 배척받아 나온 것이 아니냐? 하늘이 바라고 역사가 바라고 인류가 바라는 최후의 결정적인 그 한날을 위해서, 장엄하고 멋지게 승리하라고 수많은 사람들을 억울한 운명길에서 희생시키며 가게 했던 것이 아니냐? 그것이 우리의 한칼로 말미암아, 내가 흘리는 땀과 내가 하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연결될 수 있다니,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사실이 아니냐? 그것을 내 눈으로 볼 수 있고, 내 감촉으로 느낄 수 있고 그것을 활동 무대로 삼아 가지고 싸울 수 있다면, 그 이상 보람 있는 인생이 어디 있을 것이냐. 그것을 느껴야 된다구요.
여러분은 선발대가 아니라구요. 뒤에 남아 있으니까, 후발대인가요? 후발대라는 말은 없잖아요? (웃음) 통일전선이기 때문에 전부 다 선발대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무슨 발대예요? 선생님은 후발대예요? 여러분만 시켜 먹고 가만히 있는 선생님이 아니라는 겁니다. 선생님도 선발대라구. 선발대 대장 노릇을 해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여러분은 악착같이 싸워서 삼팔선 이북으로 달려가고 싶어요, 달려가고 싶지 않아요? 여러분이 선생님의 고향땅을 밟아 보지 못하고 죽게 되면 영계에 가서 참소받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살던 고향산천에 한번 가보고 싶지요? 잘생기지는 않았습니다. 잘생겨서 가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그때에 가서 선생님이 역사를 이야기할 겁니다. 거기에 가 가지고 '내가 옛날에 여기서 이런이런 일을 했다'라고 하면 실감이 날 거예요. 요 자리에서 낚시할 때는 무슨 고기를 잡았고, 이 자리에서는 무슨 놀이를 했다고 이야기하면, 실감이 날 겁니다. 실험을 해봐야 확실해지지요? 한번 해보고 싶어요. 안 해보고 싶어요?「해보고 싶습니다」
내가 삼팔선을 넘어올 때, '내가 지금은 혼자 넘어오지만 다시 넘어갈 때는 공산당이 북만주로 도망갈 수 있게끔 수많은 군중과 함께 넘어갈 것이다'라고 결의를 했습니다. 그 결심을 아직까지 버리지 않았습니다. 알겠어요?「예」 한번 가보고 싶어요?「예」 그러려면 김일성 도당을 저 시베리아 벌판으로 몰아내고, 압록강 전선이 완전하다는 통고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선생님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잔치를 열 겁니다. 내가 요즘은 고기를 안 먹지만, 그때는 갈비를 네 손, 그림자 손까지 동원해서 쥐고 먹을 겁니다. 그림자 손까지 치면 손이 네 개가 되지요? 멋지게 한번 잔치를 해야 되겠습니다. 김일성의 환갑잔치 이상으로 잔치하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의 환갑잔치를 잘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환갑잔치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세운 해방의 잔치를 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잔치를 못 하고 죽는 날에는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소원은 뭐라구요?「통일입니다」 그래서 1965년도에 여러분이 임지로 떠나면서부터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언제나 이 노래를 부르게 했던 것입니다. 이 전통적 소원이 성취되는 날 하나님의 소원이 성사될 것이고, 원한을 품고 나왔던 수많은 종교의 비참한 역사가 해원성사하여 승리와 영광이 드높이 하늘땅에 넘쳐흐를 수 있는 지상천국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점이 지금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 대한민국을 지도하고 있는 위정자들을 대해서 '통일교회 교인 개개인은 그대들이 대한민국 백성을 사랑하는 그 이상으로 통일교회 교인 개개인은 대한민국 백성을 사랑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라는 겁니다. 그렇습니까? 「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심야에도 '나는 나라를 위하여 빗물과 더불어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는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그러한 사연들이 있어야 됩니다. 염천에 땀을 폭포수같이 흘리면서도 '나는 나라를 사랑하기에 이렇게 땀을 흘렸다'고 할 수 있는, 잊을 수 없는 추억 속의 자기를 발견해야 되는 것입니다.
농민을 바라보면 농민을 위해서 내가 자랑하고 싶고, 어부면 어부를 바라보고, 불쌍한 사람이면 불쌍한 사람을 바라볼 때 그들의 어버이, 그들의 피골에 흘러 들어가는 심정의 어버이가 되기 위해서 나는 지금까지 싸워 왔다. 비록 가냘픈 여성이요, 가냘픈 소녀이지만 내 뼈는 그대들보다 굵고, 내 정신은 그대들보다 높고, 내 피는 그대들보다 붉은 것이 틀림없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우리의 소신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이상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그들이 충성하는 이상으로 충성하면서 오늘도 달리고 있는 '나'라고 증거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면, 여러분의 가는 길 앞에는 빛나는 조국광복과 천지의 행복의 날이 여러분을 맞이해 줄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수천만 성도들과 더불어, 환희에 찬 우렁찬 함성으로 승리를 하나님 앞에 돌려드릴 수 있는 그날 그때, 나라와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때가 통일교회를 통하여 우리가 죽기 전, 젊은 청춘시대에 이루어져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통일교인들이 해야 할 현재의 책임이요, 사명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때를 위해서 선생님은 싸워 나왔습니다. 50여 평생을 싸워 나온 것은 이때를 위해서입니다. 원한이 많다면 많다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법원을 왕래할 때, 어떤 여인이 나에게 하던 말을 나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날의 비참한 한을 풀 수 있는 그때를 위해서 나는 간다고 맹세했습니다. 이북에 있을 때, 공산당한테 고문을 받고 쓰러지면서도 맹세하던 것을 나는 잊지 않았습니다. '내 운명의 기백과 기개를 다 바쳐 사나이답게 싸울 수 있는 땅이 이곳이다' 하며, 삼팔선을 넘어서서 그 땅을 붙들고 기도하던 것을 선생님은 잊지 않았습니다.
죽기 전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죽더라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뼈가 없는 무골충 같은 사나이가 아닙니다. 무조건 용서를 구하는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정당한 자리에서 승리를 표방하기 위해 나선 사나이지, 무능력자의 입장에서 무조건 용서를 구하는 사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쫓겨난 경험이 있습니까? 눈 내리는 겨울 날 가정에서 쫓겨난 경험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 휘날리던 눈발을 여러분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혹은 남편에게, 혹은 형제들로부터 여지없이 추행을 당하고, 자기 옷깃을 여밀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낀 아낙네들이 있거든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그때에 결의했던 한을 풀고, 이 나라 이 민족과 더불어 본래의 하늘의 자세를 보이고 죽겠다는 신념을 다짐해야 된다구요.
혹자는 통일교회를 믿다가 불쌍한 처지에 들어선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지만 절대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해방을 위하여 진군하고 있는 것이요, 통일교회 무리는 내일의 승리의 터전을 굳혀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내가 거기에 동참자가 되고 반려자가 돼 가지고 피가 통하거든 같이 통하고, 동맥의 고동이 울려 나오게 되면 같이 울려 나갈 수 있는 심정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낮이면 낮마다 틀림없는 하나의 주체로 서 있다는 사실을 갖고 그 처한 환경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모진 심정을 가지고 처리해 나가는 통일용사로서의 긍지를 갖고 나가야만, 하늘이 찾는 나라와 뜻이 이 나라에서, 여러분의 개인적인 생활무대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전체 소원성취가 오늘날 우리들이 움직이는 3년노정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심각하고 긴장된 순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숱한 사연을 엮어 오던 모든 그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훨훨 춤을 출 수 있는 그 시간을 그리며, 이 3년노정을 하루같이 생각하고, 있는 정성을 다해 싸울 수 있는 결의를 해야 할 때가 바로 섭리적 현재의 시점인 것을 똑똑히 알아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여러분 앞에 말씀드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죽더라도, 혹은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이 책임을 완수해 가지고 민족해방의 기반을 공고히 해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운명이요, 사명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종적인 구약시대, 신약시대를 거쳐오면서 국가적인 해원의 날을 바라 나오던 모든 것이, 내가 살아 생전에 있는 힘과 느끼는 감정을 통해 가지고 일시에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의 터전을 갖출 수 있다는 그 긍지가 통일교인에게만 허락된 천부의 은사인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은사를 배도자의 신세, 혹은 배역자의 신세가 되어 맞이할 것이 아니라, 순응과 충절과 절개와 지조를 가지고 맞이해야 되는 것이 통일신도가 가야 될 철석같은 노정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다짐을 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이 자리에 모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내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우리 손들어서 맹세합시다.
사랑하는 아버님! 그 누구도 모르는 한스러운 복귀의 행각의 노정이 이처럼 절박한 역사적인 인연을 연이어 나왔다는 것을 저희는 미처 몰랐습니다. 지금까지는 상대적 인연을 찾아 나온 기간이 아니라 개인, 한 아담을 찾아 나오기 위한 소모의 기간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한 지상종점을 바라보고 1960년도까지 숱한 곡절과 죽음을 각오하고 나온 것을 아옵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승리적 터전을 횡적으로 출발하던 그날이 있었으니 그것이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역사는 변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날서부터 역사적인 노정은 횡으로 횡으로 발전해 나왔사옵니다. 이 민족 앞에 몰리는 개인의 운명을 넘어서기 위하여 몸부림쳤고, 몰리는 가정의 운명을 넘어서기 위하여 몸부림쳤고, 몰리는 종족, 민족, 국가의 운명을 넘어서기 위하여 몸부림쳐 나왔사옵니다. 이렇게 몸부림쳐 나온 통일의 식구들이 현재 처해 있는 때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삼은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의 운명을 대신한 때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예수처럼 패자의 서러운 쓴 잔을 마셔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는 유대교와 같이 하늘을 배반하는 배도자의 후신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는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하늘을 배반하는 삼천만 민족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통일의 무리는 이 나라 이 민족을 붙들고 눈물지어 왔습니다. 이 나라를 구하자고 저희는 몸부림쳐 왔습니다. 그 누구도 모르는 사연을 품고 지금까지 싸워 나오기를 10여 성상, 혹은 20여 성상의 세월을 보냈나이다. 잊을 수 없는 사연 사연들이 엇갈려 가지고 지나갔지만 그 사연이 나를 낙망시킨 것이 아니라 내일의 소망을 향하여 결의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되었사옵니다. 그러한 과거지사를 감사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해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섭리적 현시점이 얼마나 엄청난가 하는 것을 저희는 미처 몰랐습니다. 내가 잘하면 나라가 사는 것이요, 내가 갈 길을 다 가게 되면 세계가 갈 수 있는 길이 생긴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이 땅 위에 기반을 닦아 가지고 사방으로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터전이 닦아진다는 이 엄숙하고도 긴장된 시점에 서 있다는 것을 저희는 이제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아버지여! 이제 저희는 손을 들어 결심하였사오니, 전국에서 선두로 달리고 있는 기동대들과 더불어 저희가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후방이 아니옵니다. 전체가 통일전선이옵니다. 전체가 하나돼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를 사랑하고 이 민족 전체를 아버지의 품안에 바쳐 드려야겠습니다.
아버지, 통일의 무리가 아니면 이 나라를 통일할 수 없고, 이 민족을 해방시킬 수 없는 실질적인 사실을 보여 줄 수 있는 운동을 해야 할 때가 이제 왔사오니, 아버님이시여, 저희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새로이 맹세하오니, 아버지여, 받아 주시옵소서.
당신의 축복이 지금까지 컸던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연이어 나라를 세우지 못하게 될 때는 그 컸던 축복이 전부 다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 어떤 어려움의 자리에 저희를 내몰더라도 저희는 있는 힘을 다해서 책임을 완수할 것을 결의하였사오니, 이러한 모든 결의를 아버지께서 기꺼이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번의 이와 같은 모임을 통해서 선을 위주한 사위기대 위에 당신이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자녀들도 많사오니, 아버지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이스라엘 나라를 향하여 출발하게 될 때, 그들 앞에 나라가 없었지만 광야로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던 사람은 망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총진군 명령이 내려진 것을 이 시간 저희가 알고 이제부터 하늘이 가는 길을 향하여 저희는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터를 잡고 정지해서는 안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나깨나 오나가나 일선에 설 것을 각오하고 하늘이 움직이는 방향에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새로운 내적 외적 이동이 벌어져야 할 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남한 땅의 사람들은 이북을 향하여 이동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못했기 때문에, 내적으로라도 그곳을 향하여 이동하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내를 옮겨 놓고, 남편을 옮겨 놓고, 자식을 옮겨 놓는 놀음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시대적 요구 앞에 순종의 법도를 세워 새로운 역사적 전통을, 천국건설에 영원하고도 길이길이 남을 수 있는 전통을 심어 놓는 데 본이 되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날, 이 저녁에 모인 전체 위에 당신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새로운 결의와 새로운 맹세를 다짐했사오니 다시 본래 각자의 처소에 돌아가더라도 쉬지 않고, 하늘도 쉬지 않고 일하는 반면에 사탄도 쉬지 않고 반대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희도 쉬지 않고 24시간 온갖 정성을 다 바치어 국가와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새시대의 역군의 사명을 다할 수 있게끔, 아버지여, 채찍질을 해서라도 내몰아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저희는 절대순종과 더불어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승리의 한날에 제물로 바쳐지기를 맹세한 몸이오니, 허락하신 뜻대로 이루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오늘의 이 모임을 감사드리면서 금후에 허락하시는 축복의 인연이 이들과 더불어 같이하시길 바라옵니다. 이 모든 말씀을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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