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에도 이렇게 참석해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께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미국 국민들을 만나기를 마음으로 오랜 기간 고대하다가 이렇게 만났다고 어저께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오늘도 처음 온 분들, 이렇게 만나게 돼서 감사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고 하는 제목은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이상세계 또는 통일세계',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지금 세계에 살고 있는 인류는 누구나 마음으로 하나의 세계가 되었으면, 혹은 이상세계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이때에 있어서는 그럴 수 있는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것이, 우리 인류 앞에 슬픔이 아닐 수 없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그러한 이상세계, 또는 하나의 세계를 바랄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이나 인간이나 바라는 것은 모두가 하나의 세계요. 이상세계라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능력이 있는 하나님이 계시면 기필코 그러한 세계를 이루어 놓아야 될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있으면 기필코 이 일만은 성사하지 않으면 안 될 일로 생각할 것입니다.
인간은 그 누구나 평화의 세계를 바라고 하나의 세계를 바라지만, 이 세계 그냥 그대로는 하나를 이룰 수 없다고 다 자인하고 있는 것입니다.민주세계는 민주세계대로, 공산세계는 공산세계대로 자기가 주장하는 입장에서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정인 것입니다. 그러면 민주세계 앞에 공산세계가 합할 수 있느냐, 혹은 공산세계 앞에 민주세계가 합할 수 있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지극히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민주세계는 하나의 신을 숭상하는 반면, 공산세계는 신이고 뭣이고 없다고 하면서 물질을 숭상하는 사상이 되어 있습니다. 공산세계가 물질을 숭상하더라도 신이 있다고 한다면 가망성이 있을는지 모르겠는데 신이 없다고 부정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물론자들이 신이 없다고 한다면, 있는 신 앞에 원수가 누구냐 하면 신이 없다고 하는 공산주의자, 즉 유물론자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싸움이 언제 끝날 것 같습니까? 이 싸움이 계속되는 한 하나의 세계, 혹은 평화의 이상세계는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계를 중심삼고 통일을 모색하고 이상세계를 모색하기 전에, 한 국가를 중심삼고 우리 나라는 통일된 나라요, 이상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나라가 있습니까? 그것도 가능하지 않은 것입니다.
통일된 세계가 있기 전에 통일된 나라가 있어야 되고, 통일된 나라가 있기 전에 통일된 종족, 통일된 종족이 있기 전에 통일된 가정, 통일된 가정이 있기 전에 통일된 개인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통일은 어디서부터 해야 되느냐? 이 세계는 결과의 세계인 고로 그 결과의 세계에서부터 할 것이 아니라 원인이 되는 개개인을 중심삼고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제 저녁 여기에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우리 개인은 상반되는 두 가지 목적의 방향을 가진 인간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음은 선한 곳으로 가기를 원하는데 몸뚱이는 그 반대로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은 틀림없이 마음과 몸이 합해져서 되어진 나인데, 이 둘이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 즉 그러한 남자와 그러한 여자가 합하면 가정이 됩니다. 그런데 속사람과 겉사람이 있기 때문에 두 부부가 만나면 네 사람의 형이 벌어져 별개의 다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한 가정에 여덟 식구가 있으면 그 여덟 식구는 상반된 열 여섯 식구와 같은 방향을 가진 가정이 된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의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가정 가정끼리 상반된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씨족이면 씨족,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세계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마운 것은 수백 갈래, 수천 갈래로 갈라지지 아니 하고 크게 두 개로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계시면 이러한 인간들을 그냥 버려 둘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모르는 역사의 배후에서 활동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반면 우리 인간을 악으로 몰아넣은 사탄이 있다면 그 사탄도 하나님이 끌어가는 방향의 반대의 방향으로 끌어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아무리 반대하는 사탄이 있다 하더라도 사탄에게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세워 놓은 원칙을 반대하고 나설 수 있는 권한은 없는 것입니다. 옳은 것은 하나님이 관리하는 것이요, 나쁜 것은 사탄이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의 결과가 어디에 미쳐지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에도 물론 그렇겠지만, 우리 개인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악의 모체가 될 수도 있고, 선의 모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즉, 사람은 선의 출발지가 되는 동시에 악의 출발지도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높아지는 것은 좋은 것을 상징하고 내려가는 것은 나쁜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사람들 앞에서 칭찬 받을 일이 있을 때는 크게 뽐내고 싶은 것입니다. 자기가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쑥 들어가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할 때는 선전을 하고 나를 본받으라고 세계적으로 외칠 수 있습니다. 나쁜 일을 할 때는 알려질까 봐 감추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쁜 짓, 즉 도둑질을 한 사람이 당당하게 선전하고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숨어서 가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 가운데는 높아지고자 하는 부분과 낮아지고자 하는 두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양심작용인 것입니다. 낮아지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양심이고 뭐고 내 멋대로 하면 되지' 하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고 양심의 고통을 안받는 장사나 위인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양심은 하나님의 초소요 우리 몸뚱이는 사탄의 초소이며, 양심은 천국의 기원이요 몸뚱이는 지옥의 기원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선악의 본질을 보게 될 때 그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은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요, 악은 전체고 무엇이고 없다고 하며 자기 개인만을 위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에게는 가정이고 친척이고 나라고 세계고 없는 것입니다. 그 반면 선한 사람은 나보다도 가정을, 가정보다도 동네를, 동네보다도 나라를, 나라보다도 세계를 위하려 합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자기를 위하는 면과 남을 위하는 공적인 면을 중심삼고 싸움으로 엮어져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볼 때는 이 몸뚱이를 중심삼은 악의 근거를 파탄시키고 뿌리를 빼 버리는 것이 절대적인 요구인 것입니다. 그 반대로 양심이니 무엇이니 하는 것을 무자비하게 파탄시키려 하는 것이 사탄을 중심삼은 악의 요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싸우면서 역사를 엮어 왔습니다. 양심을 위주한 하나님의 편과 몸뚱이를 위주한, 하나님은 없다고 하면서 그저 먹고 보자는 물질을 위주한 악의 편이 대립하여 싸우는 것으로 보아 이 세상 인류는 이렇게 유물주의와 유심주의로 나누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없다면 이러한 결과의 세계는 올 수 없는 것입니다. 악은 질투, 분열, 투쟁을 강조해 가지고 자멸을 초래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이상이니 통일이니 하는 것이 어디서 벌어져야 되느냐? 결국은 세계보다도 근본에 들어가서는 '나'인 것입니다. 근본에 들어가서는 우리인 것입니다. 개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통일의 세계요 이상의 세계이기 때문에 인간도 그것을 바라야 할 것인데, 인간이 그렇게 못 되어 있으니 인간을 대해서 가르쳐 주는 교리나 방법이 있으면, 통일시키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방법을 알고 싶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원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누구도 원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첫째는 양심 앞에 반대되는 물건을 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대신 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칠 수 있다면 사탄도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간에 사람을 놓고 빼앗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시간관계로 여기서 못 하고 나중에 때를 찾아서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르침은 양심을 중심삼고 몸뚱이를 '쳐라! 쳐라! 쳐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동을 세계적으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싫어하는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르치는 기관이 어제 저녁에 얘기했듯이 종교인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의 가르침은 무엇이냐? '몸뚱이를 쳐라!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말라! 행하고 싶은 것을 행하지 말라! 몸뚱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전부 다 부정하라고, 어떠한 종교든 고차적인 종교는 다 이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도 고행을 중요한 가르침으로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도 희생을 모토(motto)로 하고 있습니다. 혹은 유교도 어떠한 종교든지 이것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종교 축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가지 방법인 것입니다.
이대로 실천하려면 이것은 인간에게 지극히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냥 그대로 놔 두고 하나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의 힘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그 기준이 한 번은 이리 갔다가 한 번은 저리 갔다가 하며 왔다갔다한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5대 1의 비율이라면 하늘은 마음에 한 15쯤의 강력한 힘을 주입하여 15대 5쯤 만들어 놓아 자동적으로 몸뚱이를 끌고 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끌고 가서 거기서 습관이 되게 해가지고 몸뚱이가 행하고자 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나 만들기 위한 사람을 찾는 운동이 아닐 수 없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 몸뚱이를 위하는 악편을 미워하고 그것을 청산지을 수 있는 입장에 서면 그 사람은 하늘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가르침은 몸뚱이가 원하는 것을 부정하고, 그 반면에 정성을 들이게 해서 하나님의 힘을 받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해 나온 종교의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러한 개인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정으로, 종족으로, 민족으로 해서 하나의 나라를 바라 나온 것이 이스라엘 나라요, 이스라엘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즉 선민, 선민이었습니다. 역사상에 선민이라는 말, 택한 나라라는 말이 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대로 몸과 마음이 개인적으로 완전히 하나되고, 가정적으로 완전히 하나되고, 종족적으로 완전히 하나되고, 민족적으로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세계까지 완전히 하나 만들 수 있는 대표자를 보내 주기로 택한 이스라엘 선민 앞에 오랜 기간을 약속해 나온 것이 메시아 사상입니다. 하나님이 패턴(pattern)으로 고대하던 개인, 가정, 나라, 세계를 몽땅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되게 해 가지고 하나의 나라를 만들고, 하나님편의 세계를 만들어 이 세계를 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메시아를 맞아서 잘살게 하기 위한 목적도 물론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한민족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서 세계를 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를 보낸 목적이었습니다, 그때의 이스라엘 민족이 바라는 것과 하나님의 섭리방향이 일치가 되어야 했는데 엇갈렸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통일적인 세계의 패턴으로 왔던 개인 예수는 그 패턴을 중심삼고 가정적인 패턴을 만들어야 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패턴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것을 못 만들고 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이스라엘 나라는 주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 밭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는 이 돌감람나무 밭에 참감람나무로 와서 이것을 다 잘라 버리고 하나님이 마음대로 개인으로부터 가정으로부터 한 국가를 하나님의 패턴형에 접붙이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단은 참감람나무가 되겠습니까, 돌감람나무가 되겠습니까? 틀림없이 참감람나무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나라를 중심삼고 주권을 가지고 유대교와 하나되어 세계적으로 선교를 했더라면 오늘날 2천년의 기독교 역사는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하나 못 된 인간세계 앞에 하나의 패턴형으로, 하나 만들기 위한 통일의 기본으로 이 땅 위에 예수를 보냈지만,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는 그를 십자가에 메달아서 잡아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수천년 동안 세워 놓은 나라와 터전은 사탄편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세계의 수많은 민족의 말발굽에 밟혀 신음하는 민족이 되어 싸워 나온 것입니다.
이러던 이스라엘 나라가 1948년에 독립했습니다. 이처럼 독립할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은 재봉춘하여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세계적 시대로 들어온 것임을 우리는 짐작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때가 왔다는 것은 주님이 재차 오실 때가 가까왔다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 이스라엘이 하늘을 배반하고 난 후에 하나님이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개인의 터전, 혹은 가정의 터전, 종족의 터전, 나라의 터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없었습니다. 이것을 인계 받은 것이 기독교이니, 이 기독교는 제1이스라엘은 뜻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제2이스라엘의 사명을 받아 가지고 뜻을 이루어야 할 텐데, 땅과 영계가 하나된 자리에서 터전을 닦는 기독교가 못 되고, 땅은 부정하고 영계만 위주한 나라를 찾기 위한 운동을 지금까지 해 나온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나라다' 하고 주장할 수 있는 나라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미국이 2억 가까운 국민을 갖고 있고, 국민의 3분의 2가 기독교인이라고 자랑하지만 이 미국이 하나님의 나라입니까? 아닙니다. 민주세계의 수많은 나라 가운데 아무리 적더라도 이것은 내 나라요, 내 백성이요, 내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나라는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래도 나라를 가지고 교회를 가지고 오실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했지만, 지금 기독교는 나라는 준비하지 않고 영적으로만 바라고 있으니, 오실 주님을 영적인 만왕의 왕으로 고대하는 입장에 있으니 문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에 그런 나라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매일같이 하나님에 대해서 '내가 정성을 들이는 이 나라를 대신 받으소서! 우리 가정이 정성을 들이는 이 나라를 대신 받으소서!' 할 수 있는 터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하고 의논을 했지만,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자기 몸뚱이와 전부를 바쳐 하나님과 의논한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미국의 위대한 목사 혹은 주교들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안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미국의 대다수의 목사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목사가 많은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의 수양을 하기 위한 종교다. 수양하는데 하나님이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때?'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공산당이 좋다고 하는 목사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이 있다면 그것을 원하겠습니까? 그것은 내 몸을 중심삼고 몸뚱이가 좋다는 말입니다.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해도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요전에 미국에 WCC집회를 했을 때 6백여 명의 목사들이 모여 가지고 '중공 지지다! 중공 지지다!'한 것을 여러분도 알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심각한 때에 살고 있습니다. 물질을 중심삼은 사상이 세계를 제패하기 위한 꿈을 꾸고, 꼭대기부터 저 밑창까지 통일된 사상을 가지고 민주세계에 대비하고 나선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미국의 교단 중에 '나는 미국을 대표해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땅을 가졌다'고 자랑할 수 있는 교단이 있습니까? 그 교단에 속해서 '내 집도, 내 살림살이 전체도 하나님의 것이요, 내 아들딸도 하나님의 백성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교인들이 있습니까? 하나의 나라를 중심삼은 터전이 없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문제는 큰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것과 같이 주님이 공중으로 재림해 가지고는 그와 같은 패턴에 통일된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세계를 이룰 수 있겠는가? 없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이 이룰 수 있는 목적지는 공중이 아니라 땅, 땅, 이 지상, 이 세계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가 하나의 패턴을 이룬 남성으로서, 몸 마음이 완전히 통일된 남성으로서 통일된 여성을 맞아 가지고 통일된 가정을 어떻게 이루느냐? 이것을 해결해야 통일된 나라와 세계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 중에 '내가 신부가 되어 가지고 신부로서 주님이 원하는 가정을 이렇게 이루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습니까?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로 올지도, 어떻게 올지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구름타고 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바라는 하나의 가정을 찾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 가정을 찾기 위해서는 그 가정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할 수 있는 종족이 있어야 되고, 종족을 위할 수 있는 민족이 있어야 되고, 민족을 위할 수 있는 나라가 있어야 됩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이룰 수 있는 패턴을 만들어 놓지 않고는 제3이스라엘 나라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현재의 기독교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돌이켜 개인이 영원히 남아지기 위한 길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개인으로서 세상에 존경받는 사람이 되려면 자기를 높이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높임을 받으려면 희생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열 명의 친구가 있으면, 그 열 명의 친구를 위해서 오랫동안 희생하는 사람은 그 열 명의 친구 앞에 중심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친척과 그들의 친구까지도 그와 하나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 열 명의 친구를 위해서 '너희들은 나를 위해라. 나를 위해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친구들은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외톨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자기도 갈 곳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요것이 우리 사회에 있어서 선과 악의 구별점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한 나라의 애국자를 두고 봅시다. 여러분은, 미국을 놓고 생각할 때 링컨 대통령이라든가, 요전에 돌아가신 케네디 대통령이지만 지극히 존경합니다. 왜 존경합니까? 대통령은 마찬가지 대통령이지만 미국을 위해서 생명을 바쳤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입니다. 대통령 가운데서 미국을 위해서 비참히 죽은 대통령이 있으면 비참히 희생될수록 그는 미국에서 지극히 높은 애국자요, 지극히 높은 대통령의 자리를 차지하고 말 것입니다.
만약 다섯 사람의 대통령 가운데서 제일 나라를 위한 대통령을 뽑는다면 죽지 않은 대통령은 축에도 못 들어갑니다. 생명을 바쳐 나라를 사랑한 사람일수록, 그것도 비참히 희생당한 사람일수록 위대합니다.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그것이 한때는 비참하지만 역사시대가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점점 환경의 범위는 넓게 그를 중심삼고 뭉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가 누구를 위해서 희생했느냐 하면 세계의 인류를 위해서, 세계의 나라를 위해서 희생한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인류를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한 입장에서 복을 빌고 비참히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름없이 죽은 예수가, 그 당시 민족 반역자로 몰렸던 예수가 오늘날 세계적인 기독교 문화권을 창건할 줄은 그 누구도 몰랐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원칙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큰 무대를 위해서, 공적인 큰 일을 위해서 희생한 사람은 망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역사적인 성현들입니다.
그러면 남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것이 나쁜 것이냐? 희생하고 나면 결과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자연히 그를 중심으로 모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자기를 위해 주는 사람에게 지배를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도해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악의 세계를 대해 싸울 수 있는 작전이 있으면 그 작전법은 어떠한 작전법이냐 하는 것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악은 그 반대인 것입니다. 자기 때문에 남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인적으로 그렇게 되면 개인의 반대를 받는 것이요, 가정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그렇게 나가면 반드시 역사 앞에 규탄받는 독재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악의 전법은 남을 희생시켜서 자기가 출세하려는 전법이요, 하나님의 전법은 남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가 희생되는 전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과정에 선을 주장하고 나왔던 사람들이 그 시대에는 환영을 못 받고 희생을 당했지만,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간 사람들은 역사가 지나간 이후에 그 이름은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인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사상은 무엇이냐? 봉사의 사상이요. 희생의 사상인 것입니다. 기독교가 하나의 교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 교단만 위하는 기독교가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만일 미국의 어떠한 기독교단이 활동하는 모든 목적을 미국을 구하는 데 두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온갖 희생을 각오하고 나선다면 하늘은 협조할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을 구해서 기독교화한 국가로 만들어 가지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 미국 국민을 희생시킬 수 있는 기독교가 되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기독교 세계가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편에 있어서는 미국을 사랑하느냐, 세계를 사랑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미국보다는 세계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을 내세워서 세계를 구하기 위한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할 때는 미국을 내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국민 여러분! 미국 나라에 있어서 '우리 나라의 사상적 전통은 이렇다'고 할 수 있는 전통이 있다고 봅니까? 지금의 청년들 가운데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미국을 개척한 사람들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퓨리턴(Puritan)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마음대로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갈 수 있는 길을 국가가 막기 때문에 국가를 뒤로 두고 이 신대륙 미국 땅을 찾아온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때 소수의 미국 국민들은 현지에 있던 인디언들과 싸우기 위해서 생명을 내맡기고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숭상하면서 하나님을 붙들고 싸워 나왔던 그 사상이 미국의 건국사상이 된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를 먼저 세우고, 학교를 세운 다음에야 자기 집을 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반대받는 환경에서 끌어내어 이 땅에서 보호를 해 가지고 2백년도 못 되는 기간에 세계적인 나라를 창건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무엇하려고 축복을 했겠습니까? 미국에 사는 여러분을 잘살게 하기 위해서 축복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를 구하기 위한 대표적인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축복했다고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국민이 '이제 우리가 단합해서 세계를 구하자' 하는 통일된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원수인 공산세계는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사상을 가지고, 미국을 문제없이 삼켜 버릴 수 있는 자신을 갖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나라를 흑백의 싸움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백인이 반대하는 흑인들을 중심삼고 공산당의 기반이 넓혀져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요즘에 와서는 아시아의 백성들은 전부 다 중공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공산세계의 팽창을 저지하고 공산세계를 막아서 하늘편을 옹호할 수 있는 나라가 아시아의 국가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시아의 국가는 누가 해줄 줄 알고 있습니다. 미국은 아시아에 원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을 역사시대에 없었던 역사적인 사건이예요. 옳은 일을 하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결판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라면 이것은 지극히 좋은 일입니다. 남을 위하여 희생하고 남을 위해서 도와준다는 것은 하늘이 언제나 축복하고 칭찬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그것이 20년이 지나와 가지고 뒤로 돌아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자신을 찾으려고 돌아섰지만 세계를 잃어버린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국민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될 것은, 미국의 국책에서 아시아의 원조라든가 외국 원조하는 것을 삭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외국 원조를 삭감하기 시작한 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 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 함마슐드씨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참사를 당해 갔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가 모르는 어떠한 배후의 동기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1965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그때 내가 '당신이 한국동란에서 휴전한 것은 잘한 것같이 생각하겠지만 역사적인 오류요' 하고 지적했습니다. 당신이 공산당을 믿느냐? 공산당은 말과 행동이 다른 무리라고 말했습니다. 행동과 말이 다르다구요. 이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휴전협정을 한 후 20년 지난 지금 북괴는 온갖 힘을 다해서 국민 무장을 시켜 놓은 것을 우리 눈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부정하겠습니까?
오는 2월 21일이 모택동하고 닉슨 대통령의 회담일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모택동은 닉슨 대통령에 대해서 공격을 하든 무엇을 하든 손해볼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미국 국민은 이것만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공산당은 미국과 얼마든지 '친하다 친하다' 하다가도 그냥 그대로 돌아설 수 있습니다. 이만큼 나갔다가 이만큼 후퇴할 수 있는 독재 체제입니다.
그렇지만 미국 국민은 그렇지 못합니다. 미국 전체가 좋다고 해 가지고 국민이 전부 다 나간다고 합시다. 여기에서 만일 후퇴하게 되면 전미국 국민이 전부 다 후퇴할 것 같아요? 절반은 갈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에 미국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을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40대 대통령, 210년까지의 역사는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는 역사로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1976년이 미국 건국 2백년인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는 42대가 됩니다. 40대 2천년 역사를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담당해 왔습니다. 대수로는 42대지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3대에 걸친 하나님을 1대의 하나님으로 잡기 때문에 40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탕감의 역사를 미국을 중심삼고 이 끝날에 한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간에 책임을 못 하게 된다면 금후의 미국은 하나님이 계속적으로 보호하는 나라가 되지 못한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0세기 후반기에 있어서 세계적인 주도국가적 책임을 지던 그 미국을 자랑하지 말고, 미국 나라가 없어진다 하더라도 미국 국민이 자랑할 수 있는 사상, 30세기 40세기에 가서도 그 사상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이러한 사상을 갖는다면 미국 국민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국민이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우리 통일교회는 무슨 사명을 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될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오시는 주님 앞에 신부를 모시고, 이런 초국가적인 운동을 세계적으로 준비해서 하나님이 요구하는 소망의 천국을 이 땅 위에 이루어 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이 통일교회는 통일교회 자체를 위해서 일한다는 사상을 빼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전이 세계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국가를 요구하는 것이거늘, 이러한 개인을, 가정을, 종족을, 민족을 편성해서 하나님이 바라는 나라의 터전을 만들어 드리자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한 통일의 원칙을 가지고 앞으로 올 메시아를 중심삼고 통일된 개인으로, 신부로, 가정으로, 종족으로, 민족으로, 이러한 것을 누가 선두에서 해야 되느냐? 믿지 않는 사람이냐, 믿는 사람이냐? 종교를 가진 사람이냐, 안 가진 사람이냐 묻게 될 때에 이것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요, 종교인들이 규합해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운동을 지금 세계에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기 교파를 중심삼고, 내 교파를 중심삼고 하나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세계를 구하기 위한 모토(motto) 밑에서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운동을 함으로 헤게모니(hegemonie)를 쥐겠다는 것이 아니라 밑에 들어가서 봉사하자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수단 방법을 가지고, 자기의 금력, 혹은 권력, 혹은 지식력을 동원해 가지고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주적으로 추대해 가지고 중심으로 세울 수 있는 운동을 세계적으로 새로이 하지 않으면 이 세계는 구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선 이 사람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에는 수많은 핍박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기독교를 위하고 기독교의 갈 길을 제시하겠다는데 기독교의 반대를 받았고, 나라의 갈 길을 제시하겠다는데 나라의 반대를 받았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미국도 앞으로 이 움직이는 무리를 대신해서 비판받을 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은 자기편을 희생시키면서 세계를 구하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통적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땅 위에서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가지고 자기의 측근자를 세계를 위해서 평면적으로 희생시키면서라도 남을 구하겠다는 운동을 전세계적으로 제시하지 않고는 이상적인 어떠한 방향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남을 위해서 세계적인 운동을 하는 그런 사상을 가진 단체, 자기 자체를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구하겠다는 운동을 하는 그런 사상만이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공산주의가 세계 제패를 꿈꾸고 나왔지만 중공과 소련이 왜 분립됐느냐?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공산당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소련은 슬라브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헤게모니(hegemonie)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중공과 소련이 갈라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 나라의 국민보다도 딴 나라의 공산당원이 세계 공산당을 위해서, 공산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자기 나라의 백성보다도 더 높이 추대할 수 있어야 했는데 이런 내용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갈라진 것입니다. 즉 자기 나라 국민과 국가관을 초월한 사상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갈라진 것입니다.
민주세계를 대표한 미국을 생각해 봅시다. 미국이 세계를 위해서 원조하는 것으로 일방적으로 나갔으면 미국은 언제나 세계가 추앙하는 국가가 됐을 것입니다. 미국 국민을 넘어서, 미국 나라를 넘어서 세계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운동을 했더라면, 미국은 오늘날 이런 자리에 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세계를 대표한 국가로서, 외국을 원조해 가지고 흥한 나라가 없는 것이 역사적인 실정이니 우리 나라도 역사적 전통을 따라가야 된다고 하면서 자기 나라를 위주하고 돌아서게 될 때, 미국은 고립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미국은 세계보다도 미국을 더 중요시하고, 세계 인류보다도 미국 백성을 더 사랑하자는 입장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견해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국을 동원해서 세계를 살리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을 넘어서 세계를 사랑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한 것인데, 방향이 엇갈렸기 때문에 민주세계도 이 이상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최후에 남아질 사상이 무엇이냐? 결론을 지읍시다. 세계를 위해서는 자기 나라나 백성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운동,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운동만이 최후에 남을 수 있는 주의가 될 것이고, 사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넘어설 수 있는 초민족적인 운동을 세계적으로 제시하고, 초민족적으로 하늘이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혹은 세계인이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자유롭게 갈 수 있게끔 어떻게 모색하느냐 하는 주의만이 문제인 것입니다.
만일에 주님이 오신다면 한 나라를 구하려고 오지 않습니다. 한 나라를 구하려고 오지 않아요. 세계를 구하려고 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가까와 오면 끝날이기 때문에 국가를 넘어서 더 사랑할 수 있는 세계를 발견하고, 국가를 넘어서 하늘의 사람을 더 존중시하고, 국가를 넘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운동을 하지 않고는 세계는 망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세계 인류가 바랄 수 있는 통일의 길이요, 사상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피부색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문화의 배경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는 세계를 위해서 하나되는 것만이 우리들의 소망이요. 우리들의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이 바라는 이상세계가 벌어지리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인으로서 가는 길, 가정으로서 가는 길, 종족으로서 가는 길, 민족으로서 가는 길, 국가로서 가는 길, 세계로서 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을 통일교회의 사명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오늘 말씀드린 제목인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이상세계 혹은 통일세계'가 이루어진다고 믿고, 지금 이 땅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고 모든 것에 치밀하신 분이기 때문에 맹목적인 섭리를 하시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원칙에 따라서 새로운 세계까지 섭리의 결과를 바라보시면서 역사과정을 거쳐 나오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아무리 봐도 선한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악한 세계이기 때문에, 선하신 하나님은 이 악한 세계를 그냥 둘 수 없어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사탄, 즉 선한 신(神)과 악한 신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이번 이틀 동안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신데 그 절대자 앞에 반대되는 존재가 어떻게 생겨 났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그 반대되는 존재를 일시에 제거시켜 버리면 될 텐데 왜 그렇게 못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만일 사탄이 본래부터 하나님과 같이 있었다면 이원론(二元論)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선하신 하나님께서 아무리 인간을 구해서 선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악한 사람은 언제나 남아질 것이고, 또 악은 언제나 선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운동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탄이라는 것은 옆으로 들어온 것이지, 하나님이 그런 사탄, 즉 악을 지었다고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원수까지도 용서하라고 하시는 분이시지만 사탄을 용서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수를 용서하라는 말이 사탄을 용서하라는 말이 아니라, 사탄 편에 있는 사람을 용서하라는 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결국 구원섭리, 즉 역사과정을 통해서 해 나오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이냐 하면 사람에게서 사탄을 추방하기 위한 일인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 세상의 임금은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또 우리 인간에게는 원죄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 인간이 사탄주권 세계에서 어떻게 벗어나느냐 하는 것이 첫째 문제인 것입니다
둘째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원죄를 어떻게 뿌리뽑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인간에게 원죄가 있게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타락되었기 때문에 원죄가 옆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원죄를 심어 놓은 존재가 누구냐? 그 존재가 원죄를 개인에게 심고 가정에 심어 번성케 해 가지고 세계에 심어 놓았기 때문에, 즉 원죄를 심어 놓은 주인이기 때문에 그가 세상의 임금이 됐다는 것입니다.
이 원죄를 심어 놓은 원흉이 무엇이냐, 어디서 왔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존재가 지상에 있었던 존재냐, 영적인 세계에 있었던 존재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성경 요한 계시록 12장에 보면, '큰 용이 하늘에서 내어 쫓기니 옛뱀이요.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니, 이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고 했습니다. 결국 큰 용은 옛뱀이고, 옛뱀은 마귀요, 마귀는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우리 인간 시조가 뱀에게 꼬임을 당해서 타락을 했다고 비사(比辭)로 말한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뱀이라는 존재는 땅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쫓겨났다고 했으니 하늘에 있었던 존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뱀이 인간을 꼬였다고 한 말은 결국 사탄된 마귀가 인간을 꼬였다는 말이요, 그 마귀는 큰 용으로서 쫓겨난 뱀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이 사탄은 영물(靈物)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아담이 말하는 것을 다 알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뱀은 세상에서 기어 다니는 뱀이 아닌 것입니다. 이 사탄이라는 존재가 문제가 되어 가지고 인류가 타락되었으니, 여기에 대한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사탄이 지은 죄가 어떠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가 확실히 알게 될 때는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얼른 참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죄를 지은 살인강도도 자기가 죄를 지었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 사실을 확실히 알기 전까지는 어디 가서든지 당당히 행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살인강도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어린 소년이라 해도 그 앞에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이 계시는 나라의 백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탄이 무엇인가를 알아서 잡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끌고 가 참소해서 옥에 처넣든가 추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 유다서 1장 6절을 보면, '간음한 천사를 흑암에 가두어 심판날까지 기다리게 한다' 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천사가 범죄한 사실과 아담 해와가 범죄한 사실이 서로 관련성이 있지 않나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해와가 선악과를 따 먹을 때 손으로 따 먹었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 먹고 나서 가린 데는 하체였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손이요 입인데, 왜 손과 입을 가리지 않고 하체를 가렸느냐? 욥기에 보면 '내가 언제 아담처럼 부끄러운 곳을 가렸느냐'는 말이 있습니다, 가린 곳이 부끄러운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탄 마귀가 우리 인간의 무엇이 되었느냐 하면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불신하는 자들을 대해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악신인 사탄 마귀와 인간 사이에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볼 때 이상한 것이 무엇이냐면 첫째 아들은 축복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둘째 아들을 축복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빼내기 위해서 애급 민족을 칠 때에도 장자를 전부 쳤습니다.
또, 성경에서 이상한 것이 무엇이냐면 '할례' 라는 법입니다, 할례. 양부(陽部) 끝에서 피를 빼야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법은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탕감하는 법이었습니다. 구약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섭리의 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제물을 드리게 될 때, 하나님은 쪼개서 바치라고 했습니다. 피를 빼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하면, 그릇된 피가 우리 인간에게 침입해 들어왔기 때문에 그것을 빼 내지 않고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예고한 것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결론적으로 말하면 해와와 천사, 천사 중에서도 천사장과 불륜한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그렇게 타락한 해와는 자기와 관계 맺은 천사가 자기의 남편이 아닌 것을 알고, 본래의 자기 남편이 아담인 것을 알고는, 철모르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강요를 해서 또 다시 아담과 불륜한 정조관계를 맺었던 것입니다.
자, 이러한 혈통적인 문제, 이러한 혈통적인 문제가 아니었다면 구원섭리를 그렇게 오랜 시대를 거치면서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살에는 사탄의 피가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의 피가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피를 빼야 되는 것입니다. 피를 빼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뜻을 세우기 위해 언제나 이 몸뚱이를 치는 놀음을 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하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첫날 저녁에 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이 최고로 사랑하는 아들딸의 자리에 두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아들딸의 자리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자리까지 바라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은 자리를 부여함과 동시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던 것과 같이 창조의 위업과 창조하실 때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인간이 아들딸을 낳아 체험하게끔 지었다고 말씀했습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그렇게 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하나님이 아담 속에 들어가시고 해와 속에 들어가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을 보면,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도 구원의 자리에 나가면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있는데, 타락하기 이전의 아담 해와는 두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아담 해와의 몸에 들어가셔서 내적인 하나님이 되시고 인간인 아담 해와는 외적인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아담 해와가 장성해서 사랑을 하여 가정을 이루면 그 가정은 아담 해와의 가정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가정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류는 그 하나님의 혈통을 받아 가지고 태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몸과 마음이 싸우는 인간이 안 되었을 것입니다. 내 몸에 악이 침범하고 악이 들어올 근거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되었더라면 여기가 곧 지상천국이요. 여기에서 살다가 천상천국에 갈 때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전체가 가는 것입니다.
성경 로마서 8장을 보면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양자되기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양자, 우리 인간은 아무리 구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양자밖에 못 된다는 것입니다. 양자밖에 못 된다는 거예요. 이것은 핏줄이 다르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누구 때문에 인간이 이렇게 되었느냐? 사탄과 더불어 혈연관계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그릇된 혈통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받아 돌아가더라도 양자밖에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탄과 하나님은 어떠한 관계의 원수냐? 그것을 알아봅시다.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가정을 파탄시킨 사랑의 원수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탄을 하나님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용서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용서하는 날에는 천지가 뒤집어지는 거예요. 전부가 파탄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피를 이어받은 개인이 가정을 이루고, 종족을 이루고, 민족을 이루어 혈통적으로 퍼져 나갔기 때문에, 사탄이 세계 만민의 왕이 되는 것은 자연 이치라는 것입니다. 본래 주인의 아들이 되어야 할 우리 인간이 종의 아들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길러 가지고 장래에 하나님의 가정을 만들려고 하던 것을 사탄이 가로챘습니다. 그러기에 사탄은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원수요. 우리 인간의 본래의 이상을 빼앗아간 원수라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혈통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있는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인류는 신음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그 길을 바라며 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결국 우리 인간은 사탄의 아들딸이 되었기 때문에, 사탄의 품에 품겼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종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종의 종들을 사탄에게서 끌어 내어 하나님의 종과 같은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양자와 같은 자리에 세워 가지고 점점 끌어올리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시대부터 종의 종의 자리에 있는 인간을 양자의 자리에까지 끌어올리는 역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것은 양자권을 만들어 놓자는 것입니다. 그 양자권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사탄세계에서 골라 낸 하늘편의 종과 양자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돌감람나무 밭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종의 종에서부터 종으로, 양자로 끌어올려 가지고 아들이 올 때까지 이스라엘 나라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런 터 위에 메시아를 참감람나무로 보내 돌감람나무 밭과 같은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접붙여 가지고 하나님이 주관하실 수 있는 선주권의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섭리역사를 해나오신 개관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양자밖에 못 되기 때문에 반드시 직계 아들이 와서 접붙여 주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나라에 메시아를 보내 준다고 약속하시고 2천년 만에 예수님을 보내셨지만, 이스라엘 나라와 교회가 하나되어 가지고 예수님과 완전히 일체가 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돌아가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일체가 되었더라면 예수는 유대교의 대제사장이 되었을 것이요, 유대 나라의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예수가 독신이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되는 데도 독신이요, 왕이 되는 데도 독신이어야 되겠어요? 그것은 그럴수 없다구요. 만일 예수님이 결혼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예수님을 중심삼고 예수님의 가정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또,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이루어야 했던 참된 부모의 자리를 예수님이 대신 이룰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크리스찬이 왔으면 '오! 예수가 그럴 수 있느냐' 하며 놀랄 것입니다. 여기 서 있는 이 사람도 장로교를 다니면서 예수를 믿던 사람입니다. 그 내용을 헤치고 들어가 알고 보니 내용이 이렇게 된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많은 반대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인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영계에 가서 맞추어 봐도 이 길밖에 없고, 이것이 사실인 것을 내가 알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 이 길을 나서서 핍박의 길을 개척해 온 것입니다.
예수님도 남자인데 신부를 맞이해서 아들딸을 낳고 싶었겠어요, 안 낳고 싶었겠어요? 이 땅 위에서 아버지라는 말을 예수가 듣고 싶었겠어요, 안 듣고 싶었겠어요? 물론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자기에 대해서 아버지라고 하는 말을 듣고 싶었을 거예요. 또 할아버지라는 말도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면 하나님이 친히 지배하실 수 있는 황족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오늘날 이 세계에 예수님의 직계 후손이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보다 예수님의 직계 후손을 더 사랑하겠습니까, 덜 사랑하겠습니까? 누구를 더 사랑하겠습니까? 그렇게 되었으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기독교인들은 하나의 왕권국가, 선의 주권국가를 이루어 세계로 퍼져 나갔을 것입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남자로서 예수와 같은 입장에 서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그런 것을 원하지 않겠느냐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 섰던 예수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에 가야 할 돌변지사가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는 심각한 기도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죽기가 싫어서 그런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구요. 구주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되면 구주를 믿는 사람들도 피를 흘리는 길을 가야 된다는 거예요. 자기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후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하고 세계를 유리하며 비참한 죽음을 당할 사태가 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간곡히 세 번씩이나 하늘 앞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사정을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와서 무엇을 해야 했느냐? 사탄주권국가 이상의 주권국가를 이룩함과 동시에 우리 인류의 원죄를 빼 버려야 했습니다. 원죄를 빼 버려야 했다는 겁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접붙임을 받고 원죄를 뺀 자리에서 예수님과 하나된 사람의 자녀는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아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이 없었더라면 우리에게는 구주가 필요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니 기도니 하는 것이 다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구주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구주가.
타락이 없었다면 지옥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집을 짓기 전에 쓰레기통부터 만들어 놓는 사람이 있습니까? 못 쓸 것이 생겨나니 쓰레기통을 만드는 것이지요. 지옥은 폐품, 폐물의 보관소입니다. 하나님은 지옥을 지은 분이 아니예요. 지옥은 인간의 타락 때문에 생겨난 것이지 하나님이 지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거짓된 사탄의 피를 받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 핏줄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사탄을 따라 그 곳으로 가야 합니다.
만일 예수님의 피를 받고 태어난 예수님의 후손이 있어서 그들이 기독교의 신부가 되고 목사가 되었다면, 이렇게 부패한 기독교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4천년 동안 이스라엘 선민을 고이 길러 가지고 예언자를 통해 메시아를 보내 준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보냈겠어요? 어림도 없는 말이라는 거예요. 그럴 수 없다는 거라구요. 이스라엘 민족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가 죽었어요.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가 죽었다는 거예요. 이것은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었기 때문에 뜻을 못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만 뜻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교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기독교의 도리는 십자가의 도리가 아니라 부활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를 죽게 한,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예수를 탄식하게 한 죽음의 형틀이지, 그것이 구원의 도리가 아닙니다. 예수가 죽음 가운데서 부활했기 때문에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구원의 길이 생겨난 것입니다. 예수는 그런 십자가에 달려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과 적대하며 하나님만을 위주로 하여 나가고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갔습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은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를 고대하던 것과 딱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땅 위에 주권을 갖춘 나라가 있어 가지고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는 터전을 준비해 놓고 메시아를 고대했지만, 오늘날의 기독교는 땅 위에 어떠한 주권국가를 갖추어 놓고 그 기반 위에서 메시아를 기다릴 수 있는 입장에 있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합하여야 합니다. 내 교파니 네 교파니, 구교니 신교니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악주권을 이루고 있는 사탄세계에 하나님이 주관하실 수 있는 선주권의 터전을 준비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온 다음에 그 분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신부가 있어야 되고, 그분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종족이 있어야 되고, 그분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민족이 있어야 되고, 그분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나라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이 주관하는 악주권을 이 세계에서 몰아내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선주권을 만들어 가지고 인류의 원수요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을 이 지구성에서 몰아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사탄 마귀가 누구냐? 우리 인류의 참부모가 될 수 있는 부모의 인연을 가로채 가지고 거짓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원수요, 역사 이래 우리 인류가 용서할 수 없는 원수라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의 살림살이의 터전인데도 불구하고 악한 마귀가 자기의 소유로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인 여러분들은 어떠한 입장이냐 하면 양자의 입장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양자입니다. 여러분은 양자예요. 양자의 자리에 있습니다. 여기 목사 되는 양반들이나 신부 되는 양반들 가운데 '나는 예수를 믿어 가지고 완전구원을 얻었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예수를 잘 믿던 사도 바울이 결혼을 해서 아들딸을 낳았다면 그 아들딸이 예수를 안 믿고도 천국에 갈 수 있겠어요?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목사, 장로들이 아무리 예수를 잘 믿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낳은 아들딸은 또 예수를 믿어야 돼요.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목사나 장로의 아들딸이라고 해서 구세주 없이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메시아, 다시 말하면 재림주가 이 땅에 와야 된다는 거예요. 양자와 같은 입장에서 아들이 되려면, 돌감람나무와 같은 우리 신자들이 참감람나무가 되어야 하는데, 그 참감람나무의 열매를 맺으려면 메시아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들은 지금 원죄를 공중에 갖고 있어요, 몸뚱이에 갖고 있어요? 땅 위에 있는 몸뚱이에 갖고 있는 거라구요. 몸뚱이에 있는 원죄를 빼 내기 위해서는 재림주가 구름을 타고 와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재림주는 지상에 와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과 육이 합한 하나의 주권국가와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지고 이 지구성에서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인 사탄 마귀를 추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상의 천국과 천상의 천국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지상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 누구나 원죄를 다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종족도 없습니다. 민족도 없습니다. 국가도 없습니다. 세계가 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출발을 어디서부터 해야 되느냐? 하나의 신부를 찾는 가정에서부터 해야 됩니다. 영육 아울러 원죄를 벗어난 가정을 세우지 않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가 안 나오는 것이요, 세계도 안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에서 이루려 하신 뜻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요한 계시록에서 이룬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원죄 없는 아들딸을 낳아 그냥 그대로 천국에 갈 수 있는 가정을 가졌을 것입니다. 거기에 선 부모는 참된 부모라구요. 또, 그 가정은 하나님과 하나된 가정이라구요. 그 아들딸은 하나님 가정의 후손이라구요. 이러한 뜻을 창세기에서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요한 계시록에 와서 신랑신부의 이름을 세워 가지고 다시 이루자는 것입니다.
그 신랑은 누구냐? 완전한 참아버지로 오는 분입니다. 그 신부는 누구냐?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참어머니로 등장하는 분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결혼식을 했을 것인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중심삼고 결혼식을 해 버렸으니, 그것을 다시 찾아 비로소 하나님을 중심삼고 성례식을 이룬다는 것이 요한 계시록에 있는 어린양 잔치라는 말인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참된 부모의 아들딸이 아닙니다. 타락한 거짓 부모의 아들딸입니다. 그러므로 모델 케이스로 하나의 가정이 이 지상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 나타나지 않고는 이 세계에 새로운 이상세계가 출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참부모가 출현할 수 있는 나라는 하나님이 지으신 타락하지 않은 에덴이요, 이 지구성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가정이 있고 종족이 있고 민족이 있고 국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가 하나님의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 때도 지금과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또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또'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라고 했습니다. 또 '나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병기를 일으키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병기를 일으켜 무엇을 하려고 했겠습니까?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전통을 세우고 하나님 나라의 주권을 세우기 위한 혁명을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문화와 역사와 전통이 거짓 문화요, 거짓 역사요, 거짓 전통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참문화와 참전통과 참이상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주장하는 가정은 이래야 되고, 내가 주장하는 종족은 이래야 되고, 내가 주장하는 민족은 이래야 되고, 내가 주장하는 나라는 이래야 되고, 내가 주장하는 세계는 이래야 된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갔습니다. 단지 예수님은 '내가 할 말이 많지만 너희가 감당치 못한다'는 말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내가 세상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들이 믿지 못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며 탄식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뜻이 지상에서 이루어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남아진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나라는 지금 이대로, 이 문화 그대로는 안 돼요. 지금의 내 생활 방법 그대로 하면 하늘나라가 안 돼요. 내 마음대로 자유 행동을 해 가지고는 하늘나라를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인생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또, 새로운 국가관과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우주관이 필요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만민이 공히 원죄를 벗은 해방된 자리에서 영원히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로, 하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셔서 가정을 이룬 후 그 가정을 본따서 많은 가정들을 해방시키고, 그 해방시킨 가정들을 합해 가지고 종족을 만들고, 그 종족을 중심삼고 또 종족을 해방시켜 하나 만들어 가지고 민족을 만들고, 그 민족을 중심삼고 또 민족을 해방시켜 하나 만들어 가지고 국가를 만들고, 그 국가를 중심삼고 또 국가를 해방시켜서 하나 만들어 가지고 세계를 만드는 새로운 역사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이념을 가지고 오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 문제되는 것은 이스라엘 나라가 주권 국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독교가 땅 위에 터전이 없는 기독교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지상에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옛날에 이스라엘 민족이 그 나라를 찾아 세우려던 역사적인 인연을 다시 이땅에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같은 나라를 기독교권내에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사탄세계를 이겼다는 뜻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어 그것을 중심삼고 민족과 국가를 이루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기독교는 영적인 나라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땅 위에 발판이 없으므로 발판을 다시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있는 이스라엘 나라를 그대로 갖다가 여기에 세워 놓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안 됩니다. 기독교인을 통해 가지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새로운 가정을 편성하고 세계의 신자들을 규합시켜 종족과 민족을 초월한 세계적인 새로운 민족을 편성하자고 나선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주장하고 나가는 길입니다.
그럼 이제 오늘 말씀의 제목인 '하나님의 공식섭리와 새로운 메시아'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영적 세계만 바라고 나오는 기독교는 땅에 기반이 없기 때문에, 그 땅에 기반을 편성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었던 길을 재차 걷는 놀음을 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직후에 하나님은 그들을 추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본래는 영원히 영원히 같이 있어야 할 자신의 아들딸이요, 자신의 혈육인데도 불구하고 같이 있을래야 있을 수 없는, 악한 사탄의 피를 받고 불법의 사랑에 더럽혀진 몸들이 되니 하나님은 같이 있을 수 없기에 쫓아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담 해와와 더불어 천사장도 쫓아낸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섭리노정의 공식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지 못했습니다. 그 말씀을 지켜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이루려 하시던 성전인 몸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3대 요건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의 아들딸이 되어 버렸습니다. 전부가 사탄편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편에는 사람이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문제가 컸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빼앗아갔으니, 훔쳐갔으니 이것을 다시 찾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사장과 같은 종을 잃어버렸으니, 그의 후손 가운데에서 천사장이 충성하지 못한 것 이상으로 충성을 하는 종을 찾겠다고 탄식하며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그 종을 찾은 다음에 아들딸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탄세계에 사랑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신앙하는 사람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더 절대적으로 믿는 무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게 했던 천사 이상으로 신임할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탄세계에 있는 몸뚱이를 빼내 와야 됩니다. 몸뚱이를 찾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사탄세계의 그 누구보다도 사랑할 수 있는 종을 가졌다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에서부터 양자로 끌어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타락한 세상의 인간들 가운데 사탄을 배반하고, 사탄을 저버리고, 사탄을 부모로 모시지 않고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기 위해 사탄세계로부터 빠져 나오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로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양자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접을 붙여 줄 메시아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원죄를 뽑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원죄가 숨어 있기 때문에 원죄를 뽑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원죄를 뽑지 않고는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원죄를 뽑아 줄 메시아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원죄를 뽑기 위한 싸움은 아담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 가정의 두 아들인 가인과 아벨을 갈라 놓고 섭리역사는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벨한테 제물을 바치게 하셨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데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반대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아벨은 있는 정성을 다하여 환경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뜻에 맞게 제물을 드렸던 것입니다. 제물을 드리는 그 아벨은 타락한 아담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응해야 됩니다. 그 아벨은 하나님하고 하나되지, 사탄하고는 영영 관계가 없는, 하나님과 영원히 하나될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악한 주권내에서 해방을 받아 선주권내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이 가야 할 전통을 세워야 되고, 가정이 가야 할 전통을 세워야 되고, 민족이 가야 할 전통을 세워야 되고, 나라가 가야 할 전통을 세워 대표의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과 절대적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입장에 세워진 아벨이 가인한테 맞아 죽었습니다. 아벨의 후손을 통해 하늘의 계대(繼代)를 이어 가지고 하늘편에 설 수 있는 사람을 세우려 하시던 하나님의 뜻이 깨져 나가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또 다시 1600년 동안 수고하여 노아를 찾아 세운 것입니다.
여러분, 노아 할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이면 산 꼭대기에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믿겠습니까? 배를 지으려면 강가에 지어야 할 것인데, 산꼭대기에 지으라니, 이것은 상식에 벗어난 일이라는 거예요. 반대, 반대, 그 반대라는 거예요.
그것은 왜 그러냐?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타락했기 때문에 그 후손에게 반대의 명령을 했을 때 그것까지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았던 아담 해와의 실패를 복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목사님이나 신부님이 계시거든,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120년은 고사하고, 12년 동안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시면 지을 사람 있겠어 요? 상식에 벗어난 일을 하라면 하겠어요? 그렇지만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계속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위대하다는 거라구요.
여기 부인들이 와 계시지만, 만약 여러분들이 매일같이 120년 동안 방주를 짓기 위해 나가는 노아의 마누라가 된다면 후원하겠어요? 미국 국민 2억 가운데 절반이 여자인데, 1억 가까운 여자들 가운데 120년 동안 그렇게 미친 노릇을 하고 다니는 노아를 남편으로 받들고 충성껏 모실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찾아보기 힘드리라고 봅니다.
생각해 보세요. 노아의 부인이 불평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불평했다는 거라구요. 한번만 불평하는 날에는 영영 반대라구요. 영영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동네에 아는 사람들은 '그 노아, 미친 영감. 뭐 120년 후에 하나님이 심판한다고? 하며 미친 사람 취급하게 되어 있다는 거라구요. 그러니 그의 아들딸들도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가야 할 길로 알고 그 길을 가려고 하는데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이 반대하며 그 길을 막으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불신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기준을 세우고, 하나님과 절대적으로 하나되었다는 기준을 세운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억척같은 반대의 놀음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원통한 사실을 우리는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대를 하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사탄세계로부터 빨리 격리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반대가 나쁜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반대를 받으면 절대적인 자리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노아의 아들딸이 노아에 대해 불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내려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벌거벗고 있는 것을 그의 아들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여 뒷걸음질해서 옷을 갖다가 덮어 주었습니다. 그것이 죄가 되어 40일 홍수심판을 거친 노아의 위업은 깨져 버렸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되지 못한 가정적인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40일 동안 홍수심판을 보았으면 자기 아버지의 명령이 얼마나 훌륭하고 자기 아버지의 믿음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를 알고 그 아버지가 죽으라면 죽고, 또 그 아버지가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하늘같이 모셔야 할텐데도 불구하고 습관성을 가지고 아버지를 비판하여 종의 종이 되는 억울한 역사가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다음에는 아브라함을 보자요. 아브라함은 우상 장사의 아들입니다. 잘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야! 아브라함아, 너의 집에서 나오너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두말도 하지 않고, 어디 가면 잘산다는 보장도 받지 않고, 자기가 살고 있던 고향산천인 갈대아 우르를 전부 다 버리고 떠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됐느냐 하면 국경을 넘는 집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오라면 나오는 것입니다. 나온 후에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나온 것을 후회하거나 하나님을 대해서 원망하면 안 됩니다. 원망하면 또다시 타락한 아담과 같은 입장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담보다도 더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아무리 끌고 다니고 그래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갔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를 사랑하시고 그에게 '너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알과 같이 번성하리라' 고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또 야곱을 보세요.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받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그 축복을 받기 위해 인간 세계에 없는 놀음을 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절대적으로 믿고 하란 땅으로 도망가서 있는 정성을 다하고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21년 동안 싸웠던 것입니다. 아무리 반대를 받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사랑의 자리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죽음 앞에 가일보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이나 옛날에 자기가 호화롭게 살던 생활을 그리워하지 않고 미디안 광야 생활 40년 동안 단지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택해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또한 세례 요한을 보라요. 그도 자기의 사랑하는 집에서 나와 가지고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가정, 세상의 인연을 분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절대시하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길을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면에서 아담 해와보다 더 훌륭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한 천사장 이상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할 수 있는 기준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생활을 하도록 내몬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세례 요한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이스라엘 나라에 가 보았으면 알겠지만 그곳은 석청이 많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닙니다. 언제나 메뚜기를 잡아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세례 요한은 30년 동안을 살면서 먹을 것이 없으면 부락에 가서 얻어먹기도 했을 거예요. 그래서 동네방네에 미친 녀석이라는 소문이 나서, 그가 골목을 다니면 아이들이 따라다니면서 별의별 흉을 다 봤을 거라구요.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하나님과 하나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역사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오던 선지자들을 정상적인 길로 인도할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지 못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자리에 세워야 되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자리에 서지 못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되는 자리에 세워야 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세워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갖은 수난을 다 겪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선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이 하나님의 원수이므로 하나님은 원수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 대신 사탄 세계를 찾아오라고 명령하실 것입니다. 그 사탄세계를 찾아오는 데는 치고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사탄세계보다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을 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하나되게끔 해 가지고 끌고 와야 됩니다. 악한 사랑으로 얽매여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선한 사랑으로 끌어오지 않고는 데려올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사탄세계는 주권 국가가 있기 때문에 하늘편 사람을 번번이 때려죽이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오는 사람들은 희생의 길을 거쳐 한 나라를 찾아 가지고 세계와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터전을 닦아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공식노정이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역시 마찬가지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절대시하여 세상에서 갈라져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대신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 되어 가지고 인류의 원수요,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을 이 세상에서 추방하기 위한 공작을 해야 됩니다.
사탄은 이 세상의 임금이기 때문에 그런 공작을 할 때마다 피를 흘려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수많은 피의 대가를 치러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서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은 지금 이때가 교파끼리 서로 싸울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파가 서로 합해 가지고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을 이 땅에서 추방해야 하는 것이 기독교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미국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미국은 하나님이 사탄세계로부터 새로이 끌어내어 분별된 자리에 세운 민족인 것입니다. 이 민족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되어야 될 민족으로 알고 있습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더 절대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적으로 믿을 수 있는 이 나라, 이 민족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되는 민족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지금까지 선을 쳐오던 악의 세계에 나가서 당당한 권위의 주권국가로서 사탄세계를 빼앗아 와야 됩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사탄세계의 어떠한 나라보다도 이 미국에 모든 축복을 해주셨던 것입니다.
이제 미국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나라를 떠나 세계 만방에 하나님의 사랑을 펼친다면, 본국을 떠나 외로운 길을 자처해서 나가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하나되기 위해 죽음길을 가려 나가는 운동이 벌어진다면 미국은 절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미국의 청년남녀들 가운데에는 미국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많지만,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고,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펴기 위해서 떠나는 젊은이들이 못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와 반대되는 히피의 무리가 많다는 사실로 보아 금후의 미국을 여러분이 염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하여 하나님과 하나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악한 사탄세계를 무찌르기 위해, 사탄세계의 주권을 하늘 주권으로 돌리기 위해 싸우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오시는 주님이 그 싸움을 다시 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이 세상의 외로운 자리에 서 가지고 그런 일을 당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내가 고립된 자리에서 하나님을 위해, 혹은 하늘나라를 세우기 위해 어떠한 수고의 길이라도 자처해서 가겠다고 하는 운동이 이 지상에서 기독교를 통하여 세계적으로 벌어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금후의 기독교의 갈 길은 막혀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그 공식의 원칙에 따라 아담 해와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는 무리가 되자는 것입니다. 첫째되는 무리가 되자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탄세계의 반대가 있더라도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되자는 것입니다. 아무리 반대의 위험이 있더라도 하나님과 하나되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가지고 사탄세계에 사랑을 줘서 사탄세계를 해방시키는 운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이 지상에 민족을 초월한 하나의 새로운 기독교의 기반이 없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그런 기반을 닦자는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이루지 못한 주권 형태의 기준을 이 지상에서 갖추어 가지고, 다시 오시는 주님이 새로운 세계적인 역사를 할 수 있는 터전을 닦자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 드립니다.
그러한 국가 기반을 중심삼고 오시는 주님으로부터 새로이 접붙임을 받아 죄 없는 선의 주권 국가 밑에서 원죄 없는 아들딸을 낳을 수 있는 가정을 만들고, 원죄 없는 종족을 만들고, 원죄 없는 나라를 만들고, 원죄 없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그것이 끝날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금후의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에 대해서 여러분이 지금까지 들은 말씀을 통해서 마음으로 협조해 주시고, 또 뜻을 같이하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바라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저녁에, 이와 같이 신사 숙녀 여러분들이 참석해 주신 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곳 필라델피아는 미국 역사에 있어서 최초로 기념할 수 있는 곳이며, 역사과정에 있어서 자랑할 수 있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여러분과 같이 회합을 갖는 데 대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저는 보다시피 동양 사람입니다. '한국'하면 여러분은 한국 동란의 인상을 잊지 못하리라 봅니다. 그 한국에서 미국까지 와 가지고 여러분을 이렇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인은 한 20년 동안, 다년간 여러분을 이와 같은 공식 석상에서 만나기를 바라왔었는데,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된 데 대하여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면서 여러분들에 게도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여러분에게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 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해 보겠습니다.
현재의 세계정세를 보게 될 때에 이 세계를 누가 책임져 주겠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이 세계를 올바로 지도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계를 지도해 주어야만 되겠다는 것이 절박한 우리들의 욕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구상에는 그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안다면 그분을 따라가지 말라고 해도 개인은 물론이요, 수많은 국가, 세계 전체가 그분이 가시는 곳과 그분이 목적하시는 곳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있어야만 그분의 뜻을 바라보고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방향을 따라가는 종교도 필요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없다면 세계 종교니 무엇이니 하는 말은 우리에게 필요치 않습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하고 넘어갑시다.
이 세계는 존재하고 있는 세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크게는 태양계가 존재하는가 하면 작게는 원자까지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기는 존재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힘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힘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힘이 먼저냐, 존재가 먼저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힘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힘이 있기 위해서는 작용을 해야 됩니다. 작용을 하지 않고는 계속하여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힘이 있으려면 작용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작용하지 않는 데는 힘이 존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작용을 하는 데 있어서 혼자는 작용할 수 없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통령이 혼자 말을 하면서, 혹은 혼자 노래를 부르면서 기뻐한다면 누구나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말을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그만 시계라든가 그 어떤 것을 보면서 웃을 때는, 그분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다고 합시다. 그 하나님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혼자 있어 가지고는 기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절대적인 그분이 혼자 좋아하고 웃는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도 정상적인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절대적인 그 하나님이 요만한 상대에 대하여 '야!' 하며 감탄을 하고 춤을 추며 좋다고 하게 될 때는, 그 하나님에 대해서 미쳤다고 하는 사람이 미친 것이 됩니다.
그러니 대상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 대상 없이는 작용이니 무엇이니 하는 것이 전부 다 무가치하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없을 때 작용하는 것은 헛작용입니다. 좋아하고 하는 것도 다 헛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절대적인 주체자가 계시고 그 주체자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작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용하는 데는 손해나는 작용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어서 주체의 목적과 대상의 목적이 엇갈려 가지고는 작용을 안 하는 것입니다. 작용하는 데는, 주체에게도 플러스되고 대상에게도 플러스될 수 있는 것을 발견한 그때에만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 필라델피아의 번화가의 이름이 무엇인지 난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마켓 스트리트가 있다면 그 마켓 스트리트에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마켓 스트리트에 나가게 될 때 '지금 내가 마켓 스트리트에 나가는데, 일전이라도 손해보기 위해서 나간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미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나가게 될 때에는 반드시 내게 플러스가 될 수 있는 그 무엇을 바라고서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손해나는 행동이라면 절대 안 하려고 합니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안 하려고 하며 또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큰 우주가 생겨날 수 있었던 것도 작용을 하면서 더 플러스될 수 있는 목적의 가치를 추구했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더 큰 것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작아지는데도 행동을 한다면 이 우주는 언제인가는 없어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작용하는 데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다 하는 관념을 여러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작용하는 데에는 주체와 대상이 필연적으로 있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자, 우리 처음으로 돌아가서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도 혼자 있어서는 안 되겠으니 상대를 취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 우주에서 무엇을 상대로 취하겠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식물? 동물? 동물이 식물보다 조금 낫다구요. 그러니 절대적이요, 최고이신 하나님이 이 만물지중에서 상대를 무엇으로 취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묻게 된다면, 이건 유치원 아이들이라도 우리 인간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람은 이 우주의 피조 만물 가운데에서 걸작품입니다. 얼마나 걸작품이냐 하면 여러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고도 멋진 걸작품입니다. 그러면 그 주체자, 즉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사람을 만들었다면 하나님 자신이 말한 것, 보는 것, 느낀 것을 사람이 모르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작가로 비유해 봅시다. 작가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머리로 구상하여 최고의 작품을 만들려고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작품을 만들려고 구상을 해 가지고 만든 작품이 그야말로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 되게 될 때는 무한히 기쁜 것입니다. 만일 그 작품이 자기 생각보다도 더 멋지게 되었다 할 때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됐기에 깨뜨려 버린다. 이놈!' 하며 깨뜨려 버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더 잘 될 때는 자기 일생의 보물로 여기고, 가나 오나 놓아 두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작가의 마음인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절대적인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어 놓았다면….그런 인간인데 하나님을 몰라요? 하나님의 내성적인 마음을 느끼지 못해요? 우리 인간이 그 이상의 것을 바라면 하나님도 그 이상의 것을 바라실 텐데, 그렇게 인간을 지었다면 얼마나 멋지게 지었겠어요. 여기에서 하나님도 우리 인간을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들고 싶어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온 청중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면 그 하나님을 내 것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 있습니까? 손들어 보세요. 남자나 여자나,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병신이나, 누구나를 막론하고 최고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소원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있어서 그런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면, 목적 달성의 가능성이 없는데 작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지은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이 바라는 목적과 인간이 바라는 목적이 엇갈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에 귀결될 수 있는 귀결점을 세워 놓아야만 하나님이 '아! 뜻을 이루었다. 아! 걸작품이다' 할 수 있는 것이요, 비로소 그것을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바라고, 인간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올라가야 됩니다. 우리 인간이 없어 가지고는 당연코 안 되겠기 때문에 이런 방향성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며, 이것이 양심작용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있어서 하나님도 사람을 만나 가지고 손해나는 것이 아니요, 사람도 하나님을 만나 가지고 손해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서로가 좋겠기 때문에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양심작용은 자고로 인류가 생겨난 이후 그 누구를 막론하고 세계를 지배하고 싶어하고 최고의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양심작용의 방향성이 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작용하는 데는 상대가 있어야 되고 상대가 없는 작용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이 작용을 하려면 그 양심의 주체적인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양심 자체가 손해나는 작용을 안 한다는 거예요. 주체가 없는 작용, 상대가 없는 작용을 한다는 것은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절대로 계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구요.
여기의 청중 가운데 '그래도 하나님이 있는지 나 잘 모르겠다' 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진짜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우리가 이제 실감나게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 인체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머리입니다. 여러분, 머리 중에서도 눈을 가만히 보라구요. 얼마나 재미있게 되어 있는지. 자, 이거 눈이 왜 이렇게 생겼을까요? 그것이 생겨난 것은 우리 아버지가 있었고, 우리 할머니가 있었고, 또 그 할머니의 할머니, 할머니 해 가지고 맨 위의 우리 인류시조가 이런 눈을 가졌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시조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태어날 때, 눈이 지구가 있는지 천체가 있는지 알았겠어요, 몰랐겠어요? 이 눈은 땅 위에 태어나면서 땅뿐만이 아니라 태양계가 있는 것까지 알고 벌써 거기에 준비를 했다는 거예요. 그럼 이 눈 스스로 지구를 알고 태양을 알았을까요?
또 보라구요. 눈을 보면 깜박깜박합니다. 이 땅은 태양이 비추게 되면 복사열이 생기기 때문에 수분이 증발합니다. 여러분의 눈에 있는 수분이 이 열에 의해 증발해 버리면 큰일난다는 거라구요. 증발하면 안 돼요. 그렇게 되면 큰일나기 때문에 증발하는 것을 막고 축여 주기 위해서 눈까풀이 깜박깜박하는 것입니다. 눈이 그걸 스스로 알았어요? 또 눈썹을 보라구요. 눈썹은 땅에 나오기 전에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구요. 먼지가 들어가기 때문에 눈썹을 만들어 놓았다구요. 이게 어떻게 알았어요? '먼지가 있기 때문에 나는 요렇게 나겠다'고 하며 나왔어요? 눈썹은 벌써 사람이 서서 다닐 것을 알았다구요. 땀이 날 것을 알았다구요. 눈이 움푹 들어갔으니까 땀이 나면 하수구처럼 물이 들어가게 되어 있기 때문에 못 들어가게 방어선을 쳐 놓은 거라구요. 이것을 눈썹이 스스로 알았어요? 또 이 코를 보라구요. 이 코가 꺼꾸로 붙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웃음) 꺼꾸로 붙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붙은 거라구요. 이 코도 공기 가운데 먼지가 있는 것을 알았다구요.
여러분, 이건 왜 이렇게 해 놓았어요? 여러분, 이거 생각해 봤어요? 사람마다 금이 왜 이렇게 되어 있어요? 입에 무엇이 들어가면 안 되겠기 때문에 금을 떡 갈라놓은 거라구요. 눈도 싹 드러나게 해 놓고 입도 싹 드러나게 해 놓았다구요. 또 귀를 보라구요. 귀는 상대방으로부터 소리를 전부 다 들어야 할 것을 알고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듣는 데는 그냥 들으면 큰일나겠으니 큰 산맥 작은 산맥을 거쳐 다 조정해서 듣게 되어 있다구요. 이렇게 다 알고 나왔다구요.
여기에 대학교수든가 혹은 유명한 학박사가 왔더라도 그들 가운데 '그거 다 모르고 나왔소. 그렇게 되고파서 나왔소'라고 말할 사람 있어요? 나기 전에 완전히 알고 나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알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뱃속에서 태어나는 사람이 알았어요? 사람이 이렇게 알고 나왔어요? 이 몸뚱이는 수백 개, 수만 개의 의학박사 주식회사라구요. 무엇이든지 다 알아요. 박물학적, 천문학적 내용에 박자를 맞추게끔 다 알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나온 그 자체는 모르지만, 그건 누가 알았느냐? 아는 그분의 이름을 붙인다면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자, 그래도 하나님이 없다고 하겠어요? 자, 어때요. '하- 그거 있을 것 같다' 그래요. 하나님은 있다는 결론을 완전히 내리고 넘어갑시다.
주체와 대상이 작용하는 데는 서로서로의 목적이 있어야 된다고 했으니, 하나님도 목적없이 작용할 수 없고, 인간도 목적없이 작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목적의 귀일점이 하나님이냐, 어떠한 개인으로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알아보고 넘어갑시다.
여러분들 가운데 영적인 체험을 한 분이 계시겠지만, 영계에 가도 하나님은 안 보입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의 힘과 같은 분이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상을 갖지 않으신 분이기 때문에 형상적인 대상을 상대할 수 없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세계를 중심삼고 영원히 우리 인간과 더불어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갖기 위해서 인간과 같은 이 체(體), 형상을 갖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자신이 실체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완전한 대상자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실체를 하나님 자신은 쓸 수 없다는 거예요. 사람과 하나되어 가지고 쓸 수 있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체를 입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대상의 자리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상대로 지은 인간을 두고 볼 때, 우리 인간은 하나님에게 어떤 가치를 요구할 것이냐? 또, 하나님은 인간에게 최고의 가치를 줄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크냐 하면 하나님을 우리 인간이 만나 점령했더라도, 그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만났더라도 만난 것 가지고는 만족을 못 하는 것입니다. 내 하나님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 하나님으로 만들기 전에는 기뻐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을 영원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 서적에서 사랑에 대해 말하기를 '영원한 사랑, 불변의 사랑, 유일의 사랑'이라 하면서 최고의 형용사를 갖다 붙여 말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났더라도 하나님 속에 있는, 인격적인 신 속에 있는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점령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점령하는 것 외의 딴 것은 뭐 다 필요 없다구요. 그것만 점령하면 그분 것은 자동적으로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인간의 욕망을 볼 때, 이 우주지간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 앞에 어떠한 사랑을 받고 싶겠느냐 하는 것을 추구해 보면, 그 최후의 자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자리 이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아버지라 부르는 것과 같은 막연한 입장에서의 하나님 아버지가 아닙니다. 진실되고 사실적인 입장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입장에 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인류의 소망이요, 우리 인간 욕망의 종착점이 아닐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인간의 가치는 이러한 자리까지 크려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보면 아버지는 위에 있고 아들은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욕망은 그 아버지 자리까지도 내가 가졌으면 하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럴 때 하나님이 '야, 이놈!' 하시겠어요? 그럴 수 없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과 같은 자리까지도 허락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밖이라면 하나님은 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보게 된다면 사람이 몸뚱이라면 하나님은 마음의 입장에 서서 인간과 동등한 자리에서 계시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어머니 아버지에게 좋은 게 있으면 그것을 갖고 싶지요? 그것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높은 곳, 하나님과 같은 자리를 인간에게 허락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똑같이 됐는데, 가만히 보니까 하나님은 창조의 능력이 있다 이거예요. 우주를 창조한 창조의 능력이 있어요. 그러니 인간은 '그 창조의 능력까지도 내가 한번 가졌으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야말로 최고의 걸작품인 인간을 만들어 왔다구요. 그러니 우리 인간도 '내가 그런 것을 한번 만들어 보았으면, 내가 동기가 되어 가지고 가져 보았으면…' 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 인간은 남자와 여자가 사랑으로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주체 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대상의 자리에 설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아들딸을 낳게 하는 것은 재창조의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닳았기 때문에 그렇다구요.
아담 해와 두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신 결과의 존재입니다. 대상의 존재입니다. 인간이 이렇게 생겨난 것은, 동기의 하나님이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생겨난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은 닳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콩 같은 걸 보라구요. 콩은 결과예요, 씨예요? 원인이 동기가 되어 가지고 하나의 전체적인 생명체로 결합된 것이 씨인 것입니다. 하나의 콩은 두 쪽으로 되어 있습니다. 둘로 갈라져 있다구요. 그것을 사람으로 보면 남자 여자와 마찬가지예요. 또 우리 마음과 몸과 같은 것이요, 상대적인 입장에 선 남자 여자와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하나가 됨으로 말미암아, 즉 원인적이요 주체적인 하나님과 대상관계가 됐기 때문에 이 두 성(性)이 합해 가지고 움직이게 되면 하나님이 창조의 역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을 낳게 되는 거예요. 시간이 많이 갔기 때문에 세부적인 이야기를 짧게 하는 것입니다.
자, 이렇듯이 우리 인간은 하나님 속에 있는 사랑을 전부 다 갖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속에 있는 사랑의 종류를 보게 된다면 자녀의 사랑, 상대적 사랑인 부부의 사랑, 부모의 사랑, 이 세 가지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있는 이 사랑을 우리 인간은 전부 다 갖고 싶어한 다는 거예요. 가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인간으로 하나님이 지었다는 거예요. 이 세 사랑을 완전히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어야만 완전한 사람이요, 완숙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 없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결혼은 했지만 아들딸은 필요 없다' 하는 사람이 있어요? 없습니다. 이것은 숙명적으로 다 원하는 일이예요. 이것이 위대한 인간 본연의 가치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가정에서, 그런 사랑권내에서 아들딸을 낳는 가정이 벌어졌다면 그 가정에 구주가 필요합니까?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분이 가진 권한과 그분이 가진 소유와 그분이 가진 모든 사랑은 우리 것입니다. 이것이 본연의 기준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권리인 것입니다. 이 우주에서 제일 높아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욕망인 것입니다. 세계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우리 인간을 한번 살펴봅시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은 하나의 생각,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인간을 지었을 터인데, 우리 인간을 두고 보게 되면 마음과 몸이 상반되는 방향의 목적을 따라가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이리 가자 할 때에 몸뚱이는 가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걸 보고 어떤 사람은 몸과 마음은 서로 상대적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내적인 플러스라면 이것은 외적인 플러스 요인이 되어 있습니다. 서로 주체가 되겠다는 거라구요. 언제나 이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목적을 가진 하나님은 이것을 그냥 놔 둘 수 없기 때문에 이 반대 것을 잘라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냥 그 자리에 있어 가지고는 앞에서 말한 본연의 이상 인간은 절대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여기에 하나님은 새로운 작전을 투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귀섭리요, 구원섭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현재까지 사람은 마음과 몸이 싸우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타락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장났다는 것입니다. 고장났기 때문에 수리 공장에 집어 넣어야 되는 것입니다. 고장난 물건으로서 수리 공장에 가기 싫다면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거예요. 수리를 하지 못하고 갖다 놓는 곳이 지옥이라는 거예요, 지옥!
여러분, 집을 지을 때 쓰레기통을 먼저 만들어 놓고 집을 짓는 사람이 있어요? 집을 지어 놓고 살다보니 쓰레기가 생겨나기 때문에, 그때야 그걸 만드는 거라구요. 그때 쓰는 거라구요. 그러니 지옥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의 타락 때문에 생겨난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기도고 종교고 이거 다 필요가 없는 거라구요. 여기에 기도 생활을 하고 싶고, 종교 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은 손들어 보라구요. 너도 나도 원치 않는다구요. 그건 누구나 원치 않는 것입니다. 본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타락권내에 있기 때문에 이 타락권내를 벗어나려니 구주가 필요하고 기도가 필요하고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는데, 병나지 않았는데 의사가 필요해요? 병이 났기 때문에 필요한 거예요.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은 병이 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병났으니 구주가 필요하다구요. 틀림없이 병이 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역사를 통해 수리공장 제작운동을 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운동입니다. 어떤 놀음을 하느냐 하면 손을 만들고, 발을 만들고, 귀를 만드는 놀음을 하는 거예요. 전세계적으로 이 운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화의 배경이 다르니만큼, 국가와 민족이 다르니만큼, 환경이 다르니만큼 이렇게 수습하면서 하나하나씩 종교를 규합해 가지고 지금까지 4대 종교 문화권을 만들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4대 종교 가운데 어떤 종교가 중심이냐? 그냥 그대로, 즉 4대 공장만 가지고 되겠어요? 한데 모아 가지고 재교육할 수 있는 하나의 운동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 가운데 어떤 종교가 끝까지 남느냐 하면, 하나님의 전체 목적에 규합될 수 있는 내용을 가진 종교일수록 끝까지 남아지는 것입니다. 큰 종교는 전부 다 '세계 인류를 구하자, 세계를 구하고, 인류를 구하자'는 목적을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나라를 중심삼고 자기 나라부터 찾자는 종교, 나라를 중심삼은 종교는 세계 시대까지 못 나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은 국가주의자가 아니라 세계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주의자. 세계를 구하자는 하나님입니다.
그럼, 4대 성현들을 한번 살펴봅시다. 이들은 전부 다 그 나라, 그 국가권내에서 핍박받은 사람들입니다. 공자도 그랬던 것이요, 예수도 그랬던 것입니다. 불교의 석가모니도 부정하는 자리에 서서 자기의 궁중을 버리고 수도의 길을 떠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마호메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 국민 앞에 환영받았던 사람이 없어요. 그러나 국민이 반대하지만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생명을 던져 가지고 그 길을 개척해 왔기 때문에 오늘에 와서 성인의 이름을 남긴 것을 알고 있습니다.
4대성인을 꼽을 때 어떤 사람은 소크라테스를 꼽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성인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는 철인이예요, 철인. 지식을 가지고는 인간의 생명을 좌우할 수 없어요. 생명을 좌우하는 것은 하나님뿐이예요. 하나님만이 좌우한다는 거예요.그렇기 때문에 4대성인을 두고 보면 전부 다 교주들입니다. 성인은 하나님을 위주로 해 가지고 세계를 구하자는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또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세계적으로 인류를 포섭해 가지고 발전해 나올 수 있게끔 보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개 국가의 문화라든가, 교육이라든가, 이런 모든 것의 지침이 되는 것은 전부 다 성인의 도리를 본받은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성인이 하나님을 위주로 살며 하나님을 중심삼고 죽고 살았던 것을 존중시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젊은 청년들이 '종교는 필요 없다. 종교는 필요 없다' 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4대 종교 가운데 최고의 중심 종교가 무엇이냐? 이걸 알아야 돼요. 중심없이 세계는 잘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중심되는 종교를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가려낼 것이냐? 그것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된 것이어야 됩니다. 하나님에게 맞는 종교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맞는 종교가 되려면 하나님에게 맞는 것을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최고 목적은 무엇이며, 하나님이 바라는 최고의 목적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최고로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되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가 되어 가지고 아들딸을 낳아서 하나님의 전체 사랑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심 종교를 가려내는 기준입니다.
이런 원칙에서 볼 때 불교면 불교, 유교면 유교, 회회교면 회회교, 기독교면 기독교 가운데 어느 종교가 거기에 맞는 내용을 가지고 그것을 가르쳐 주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유교를 보면 신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합니다. 불교를 보면 법적인 세계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인격적인 하나님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습니다. 또 회회교를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기도하고 나온 것이 아니라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것은 원칙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만은 어떠했느냐? 문제가 다릅니다. 예수님은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으로서 최고의 바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자리를 설파했던 것입니다. 이런 주장을 예수님만이 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맨 처음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과 인류가 지향하고 소망하는 목적이 서로 일치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요한복음 14장에 '하나님은 내 안에 있고 나는 하나님 안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을 대해서 '나도 네 안에 있고, 너도 내 안에 있으니까 너희들도 나와 같이 하나님 안에 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동등한 자리를 말했습니다. 안팎을 말했어요. 그것을 표준했던 것이 예수님의 사상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말했느냐? 하나의 남자가 완성하여 가지고 하나의 상대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바라는 목적과 인간이 바라는 목적의 최고의 귀착점을 완결지을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것을 바라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국가가 보호하고, 교회가 보호하고, 종족이 보호하고, 가정이 보호하고, 전체가 보호하여 사탄권을 막아 줌으로써 예수님이 자유스런 환경에서 신부를 맞아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예수님은 남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하나밖에 없는 죄 없는 남자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돌감람나무이지만 예수님만은 참감람나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남자이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여자를 만나야 됩니다. 여기 남자들 중에 나 혼자 살다가 죽겠다 하는 사람 있어요? 그건 창조원칙에 위배되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그런 비원칙적인 역사는 안 하시는 거라구요.
만약에 예수님이 가정을 가졌으면 이스라엘 나라의 제사장이 되었을 것이요,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게 될 때, 예수님이 왕이 되었더라도 혼자 있는 왕을 바라겠어요? 어림도 없다는 거라구요. 반드시 거기에는 황후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랬으면 예수님에게 아들이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예수님도 '아버지' 소리를 듣고 싶었다는 겁니다. 예수님도 '할아버지' 소리를 듣고 싶었다는 거라구요. 여기에서의 할아버지는 죄 있는 할아버지가 아니라 죄 없는 할아버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을 중심삼고 기독교가 출발했으면 오늘날 기독교는 이렇게 안 됩니다. 이렇게 안 돼요. 뭐, 구교니, 신교니, 네 교파니, 내 교파니, 이렇게 싸우는 기독교는 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또, 예수님의 후손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주권국가를, 세계적인 판도를 이루면 공산당이니 무엇이니 하는 이런 것이 나올 수 없다는 거라구요.
현재의 기독교는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반사회에서는 목사, 혹은 신부 하게 되면 전부 풀이 죽어 있습니다. 또, 뉴욕에서는 '뭐, 하나님? 하나님 없어. 하나님이 죽었다'라고 합니다. 미국 사회에서 하나님이라는 맡을 하게 되면 안 된다고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미국 국민은 자각해야 됩니다. 신부가 부패해 가지고 일반인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정을 중심삼은 인간의 도리와 종족을 중심삼고 사회가 갈 길, 나라가 갈 길, 세계를 치리 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구요. 타락은 땅에서 한 것입니다. 땅에서 잃어버렸으니 땅에서 찾아야 된다는 거예요. 땅에서 하나님의 한 아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땅에서 찾아진 것이 예수님입니다. 한번밖에 올 수 없는 아들이 악한 세상에 와서 죽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4천년 동안 이스라엘 선민을 준비하여 예수님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이스라엘 민족이 믿었으면 그가 죽어요? 안 죽는 것입니다. 믿지 않았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정을 찾다가 못 찾고 십자가에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신랑이요 너희들은 신부다' 하면서 다시 찾아와야 할 가정의 이상을 남겨 놓고 십자가에 돌아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다시 회생할 재림의 날을 찾아 나온 것이 2천년 기독교의 수난길임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와서 예비된 신부를 찾아야 된다구요. 그래야 가정을 중심삼고 이루려는 세 가지의 사랑 목적을 결론지을 수 있는 자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찾아 나온 것이 요한 계시록에 예언된 어린양잔치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인간시조가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 인류는 거짓 부모를 모셨습니다. 거짓 조상을 모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일치된 참부모가 안 나타났어요. 하나님은 알파요. 오메가이기 때문에 첫번에 구상했던 것을 끝에, 창세기에서 실패한 것을 요한 계시록에서 갖다 맞추려는 것입니다. 6천년 전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성혼식을 이루어야 할 것을, 참부모를 세워야 할 것을 못 했기 때문에 이것을 이뤄서 맞추자는 것이 기독교의 골수적인 가르침이요, 예수의 중심 사상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를 중심삼은 신부와 예수를 중심삼은 새로운 부모와 하나님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종교가 필요 없고, 구세주가 필요 없고, 원죄가 없는 입장에서 가정 전체가 하나님과 같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곳이 우리 인류가 바라는 소원의 곳이요, 우리 인류가 믿고 나오던 종교의 목적지요, 하나님이 섭리해 나오시는 최종적인 목적지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종주 한 분만을 모셔 왔으니 앞으로는 부모를 모셔야 됩니다. 부모를 중심삼은 가정의 전통을 받아 가지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씨족적인 문제, 민족적인 문제, 흑백의 인종문제 등 세계 인류의 모든 문제를 초월해서 하나의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의 식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전세계가 그 모든 문제를 넘어 가지고 새로이 하나되어 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우리 인류가 바라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하나의 세계적 종교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하나의 하나님을 중심삼은 하나의 세계종교가 출발하는 것이요. 그 세계종교를 중심삼고 지상에 새로운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 천국을 중심삼고 살던 사람이 그냥 그대로, 가정 전체가, 종족 전체가, 민족 전체가, 국가 전체가 그냥 그대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가 세계적인 종교 시대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목적을 중심삼고 나가야 할 것이 우리 인생인 것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으로써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란 제목의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에도 이와 같이 모여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녁에 말씀 드리려는 제목은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이상세계 혹은 통일세계' 입니다.
이상세계 혹은 통일세계라고 하게 되면 누구나 다 관심은 갖고 있지만 그러한 세계가 쉽게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러한 이상세계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우리 인류도 역시 하나님이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상세계를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의 세계를 가만히 바라보게 될 때에 하나의 세계를 이루려는,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어떤 중심이 서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이 중심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중심된 사람들이 세계가 어떻게 어떻게 되어졌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완전히 세계를 움직여 나갈 수 있는 중심국가로서 하나된 국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그런 나라가 있기 전에 중심이 되는 어떤 민족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민족이 있기 씨족이 있어야 되고, 씨족이 있기 전에 한 가정이 있어야 되고, 한 가정이 있기 전에 하나의 개인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하나된 세계, 혹은 이상세계를 구하기 전에, 이것을 구하는 우리 개인들이 이상적인 자리에 섰느냐 하는 것이 구하려는 이상세계보다도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을 바라보게 되면 우리 개인은 어떠한 방향, 혹은 목적을 중심삼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내 한 개체를 두고 볼 때, 두 목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 있는 개체가 부부가 됨으로 말미암아 네 목적으로 벌어지고 그 가정에 아들딸 합하여 열 식구가 있다면 스무 방향으로 벌어진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30억이나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이상세계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사람들을 대해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모색하고 통일된 세계를 바란다고 하면, 하나님 자신은 어디서부터 이 일을 시작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개인을 중심삼고 출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교를 세워 가지고 우리 인류역사 배후에서 교육을 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지금까지 종교는 개인 교육의 완성을 표준해 가지고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에게는 둘이 상충되어 있기 때문에 상충된 이것을 그냥 두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를 제거시키든가 혹은 통일시키는 방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하나로 만드는 데는 맹목적으로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동기가 이렇게 되어 떨어졌으니 그것을 반대로 추구해 가지고 시정하는 방법을 가려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잘못되었을 때, 즉 처음 타락하였을 때에 어떻게 하여 그렇게 됐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경로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사탄이 뱀을 통해 해와를 꼬였고, 해와는 아담을 꼬였습니다. 그리하여 우주의 중심인 하나님을 중심삼은 아담 해와가 되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중심의 자리에 서 있지 못하고 사탄에게 중심 자리를 점령당한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인 것입니다. 악이라는 존재가 중심이 되어 가지고 본래의 중심을 부정한 자리에 선 것이 타락입니다.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그와 반대의 방향을 통해 가지고 중심의 자리를 찾지 않으면 바로잡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의 마음과 몸을 비교해 볼 때, 어느 것이 하나님 앞에, 중심에 가까우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몸을 어떻게 굴복시키느냐 하는 원칙을 세워 놓지 않고는 중심을 되찾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악이 중심을 제거시키는 놀음을 했기 때문에, 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악을 제거시키는 놀음을 해서 몸을 굴복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양심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양심이 원하는 방향, 즉 몸이 원하지 않는 반대의 방향을 중심삼고 교육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중심삼고, 중심된 하나님과 반대된 사탄이 싸움을 시작한 것입니다. 악은 몸뚱이를 끌고 몸뚱이가 좋아하는 대로 하자는 것이요, 하나님은 마음이 좋아하는 대로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중심과 하나될 수 있는 몸을 만들려니 몸이 원하는 대로 놔두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몸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교육을 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종교입니다.
비법적으로 중심의 자리에 서려고 하는 것이 사탄이기 때문에, 이러한 비법적인 사탄의 근거지인 몸뚱이를 분쇄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의 본질은 비법적으로 높아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남을 희생시켜서라도 자기가 성공하겠다고 하는 것이 사탄의 본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이와 반대의 경로를 가려니 절대 희생과 봉사를 강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식을 하느니 절제를 하느니 하면서 몸이 원하는 것은 전부 다 부정하는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육신을 약하게 만들어 가지고 마음 앞에 굴복시키는 길을 닦는다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은 힘의 비율이 서로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언제나 싸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서로가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싸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비슷하여 싸우기 때문에 마음에다 몇 배가 되는 강력한 힘을 충만하게 해 놓으면 몸을 굴복시켜 가지고 끌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하며 정성을 들이고 온갖 희생을 각오한 가운데 하늘이 힘을 갖다 준다면 몸을 굴복시켜 가지고 끌고 갈 수 있습니다.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하라고 가르쳐 주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종교가 아닌 것입니다.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고행을 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서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몸을 끌고 가면서 육적 세계, 몸적 세계의 침범을 받지 않기 위해 생활해 나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전세계의 종교를 중심삼고 수많은 역사노정에서 희생의 대가를 치르면서 키워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자라 가지고 그런 신앙생활을 하는 하나의 모델 케이스의 사람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하나의 모델 케이스의 남성이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인간이 돌감람나무와 같은 입장에 섰기 때문에, 참감람나무와 같은 분이 오셔서 인간을 접붙여 가지고 마음과 몸이 하나된 하나의 완성한 인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를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개인으로서, 가정으로서, 종족으로서, 민족으로서, 국가로서, 한꺼번에 접붙일 수 있는 준비의 환경으로 마련해 놓은 것이 이스라엘 선민, 택한 백성이라는 이스라엘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메시아가 와 가지고 가정을 출발을 해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가정을 찾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만이 주관할 수 있는 종족이 없어졌고, 민족이 없어졌고. 국가가 없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를 받들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은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서 세계에 유리고객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메시아를 위한 나라와 메시아를 위한 교회와 메시아를 위한 백성이 메시아와 하나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메시아는 죽어서 영계에 가고 백성들은 갈라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해 놓았던 선민권이 지상에서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믿는 신자들은 지상에 있어서 메시아를 모실 수 있는 나라라든가 교회라는 관념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기독교는 지금까지 지상을 부정하고 영계만을 위주로 해 가지고 믿고 나왔던 것입니다. 이 땅 위에 기독교를 믿는 국가들은 많지만 이스라엘 나라와 같이 하나님이 주관하고, 하나님이 인도할 수 있는 하나의 주권국가가 있느냐?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이 고이 키워 가지고 반대하는 악한 나라가 있으면 그것을 방비해 가지고 메시아를 맞을 수 있게끔 하나님이 보호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입장에 선 나라가 오늘날 기독교를 믿는 나라 중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미국이 그러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닌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제 주님이 오신다면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다시 오시는 주님은 옛날에 예수를 바라던 이스라엘 나라 이상의 세계적인 나라를 바랄 것이요, 옛날 유대교 이상의 교단인 세계적인 기독교를 바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중심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없고, 가정적으로도, 민족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세계적으로도 나갈 수 있는 길이 다 막혀 있는 것입니다. 전부가 자기 멋대로입니다. 수많은 개인들을 보더라도 자기 멋대로, 수많은 가정을 보더라도 자기 멋대로, 수많은 민족을 보더라도 자기 멋대로, 수많은 국가를 보더라도 자기 멋대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 인류가 바라야 할 것은 절대적인 중심입니다. 인류의 모든 이상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이 영원히 같이 살고 싶은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의 케이스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것을 아무리 봐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 인류에게 하나의 세계적인 중심 지도자, 혹은 하나의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오늘날 민주세계나 공산세계나 세계를 지배할 수 있고, 세계를 거느려서 이상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책임적인 사상 철학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후퇴하고 있습니다. 공산세계는 둘로 갈라져 싸우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미국은 세계를 향해서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하나의 이상세계, 혹은 하나의 통일세계를 이루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 우리 가정이 세계 중심을 대표할 수 있는 모델 가정이라고, 하나의 패턴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가정이 있습니까? 우리 나라가 그런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또 그런 나라를 이룰 수 있다고 하는 종교가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통일할 수 있는 방안과 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에 전부 다 불합격입니다.
어제는 개인이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완전한 개인,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상대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완전한 개인이 바라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가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고 여자라는 것이 필요 없습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결국은 가정에서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어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주체와 대상이 되어 가지고 주체의 목적과 대상의 목적, 즉 개체 개체의 목적을 위할 뿐만이 아니라 둘이 합할 수 있는 목적의 가치기준을 존중시하는 데 있어서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락이 없었던 가정은 남자와 여자가 완전히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사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된 사람들입니다. 그런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 부부는 부부로서의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를 위한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사방을 갖추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종적이라면 여기서부터 횡적으로 세계 목적을 향해서 가려면 자식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는 것입니다. 결혼하는 부부의 목적은 후손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녀의 사랑, 부부의 사랑, 부모의 사랑, 이 3사랑을 여기에서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래 하나님이 모델 가정을 통하여 세우고자 하셨던 원칙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부를 두고 볼 때에, 남자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는 아들이요, 하나님 앞에 있어서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는 완전한 남편이요, 하나님 앞에서 자녀를 완전히 사랑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여자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는 딸이요, 남편의 사랑을 받기에 부끄럼 없는 신부요, 하나님 앞에서 미래에 아들딸을 완전히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부끼리의 사랑은 어떤 것이냐? 가정을 중심삼고 부부의 사랑은 어떤 것이냐 하면, 아내에게 있어서 남편은 하나님의 대신자요, 자기의 절대적인 남편이요. 그 다음에는 앞으로 아들을 사랑할 수 있는 중심 존재라는 것입니다. 아내는 그 남편을 대하면서 이 세상을 상대적으로 느낄 수 있고 상대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남편은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서 영원히 하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남편에게 있어서 아내는 어머니의 대신자요, 세계를 대표한 절대적인 상대입니다. 세계를 대신한 딸로서, 사랑의 실체로서 사랑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떼어 버리면 미완성이 됩니다. 이 중에서 하나라도 결여되면 미완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없다든가 상대가 없든가 자녀가 없으면 우리는 슬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완전히 받아야 되고, 신랑 신부가 서로 상대적 사랑을 완전히 받아야 되고, 그 다음에는 자식을 완전히 사랑해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인데도 불구하고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어서 완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아들의 자리에 선 사람이 누구냐? 이 세계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청중 가운데 '내가 그런 사람이다' 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도 받지 못한 자가 제멋대로 아내를 얻어 사랑을 하고 하나님의 사랑도 받을 수 없는 남자가, 아내 자격도 없는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들딸을 낳고 제멋대로 사니 이것이 엉망진창의 세계가 된 것입니다. 금후에 미국의 가정이 그렇게 가다가는 큰일난다고 나는 보는 것입니다. 이 원칙에 비교해 보면 형편없이 망할 권에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정을 이루신다면 아까 말한 바와 같이 타락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그런 가정을 만들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가정을 세워 가지고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하나의 기틀, 하나의 터전은 메시아가 다시 와서 맞추어야 가능한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메시아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가정을 개인으로서 가정으로서 종족으로서 민족으로서, 혹은 한 국가를 중심삼고 한꺼번에 이룰 수 있는, 즉 옛날 유대교를 중심삼은 주권국가와 같은 그런 형태가 있느냐? 이스라엘 국가와 같은 그런 형태가 없게 될 때는 또다시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을 찾고, 민족을 찾고, 국가를 찾고, 세계를 찾는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비극이 남아 있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또 싸움이 벌어져야 됩니다. 가정의 기준을 가졌다 하더라도 또 싸워야 됩니다. 비참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 기독교인들을 규합해야 합니다. 자기 교파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가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와 세계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이상적 가정을 이루고 거기에 접붙여 가지고 새로이 편성하려고 할 때, 세계 크리스찬 전체를 어떻게 규합해서 순응할 수 있는 국가와 민족을 준비시키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이상적인 가정이 생겨났다면, 그 가정은 무엇을 향하여 가야 되느냐? 나라를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은 우리 인류의 부모의 입장에 계심과 더불어, 가정을 중심삼고는 부모의 자리이지만 나라를 중심삼고는 주권자의 입장입니다. 가정을 연장한 형의 나라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를 만들어 가지고 어디로 갈 것이냐? 하나님이 바라는 하나의 세계, 즉 하나의 이상세계를 향하여 나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계획과 그런 준비를 하는 나라가 있으며, 교회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통일의 길은, 통일의 원칙은 개인에서 가정으로, 종족으로, 국가로, 세계로 가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패턴은 주님이 오셔야만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는 국경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흑백의 인종 문제가 문제되지 않을 것입니다. 선악의 투쟁도 그때는 필요 없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우리가 사는 세계에 국경이 없습니까? 각국마다 국경이 있습니다. 흑백의 인종문제뿐만 아니라 가정에 있어서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지간에 전부 다 분열이 벌어져 있습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정세를 두고 볼 때, 오시는 주님은 국경이 없는 나라를 만들고 인종문제를 초월해 가지고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야 됩니다. 분열된 가정을 전부 다 통일해야 되고, 선악이 싸우는 이 세계에 평화의 왕국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오셔서 누구를 내세워 가지고 이 일을 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우리 미국만, 우리 백인들만, 우리 가정만, 혹은 그들은 악한 것들이니까 하며 자기만 생각한다면 이 장벽을 어떻게 청산짓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개인보다도 가정을 더 존중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락은 중심을 무시하고 자기가 중심이 된 것이니, 이것을 다시 복귀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무시하고 보다 큰 중심 앞에 굴복해 들어가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은 가정 앞에 희생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 세계에서 우리 미국만이 제일이고 우리 가정만이 제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정은 앞으로 올 나라 앞에 희생할 수 있어야 됩니다. 나라 역시 나라대로 나아가려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라는 하나의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고 굴복하고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모색하지 않고는 앞으로 올 하나의 세계까지 나갈 길은 완전히 절단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지금 사상이 필요하다고 하는 때가 왔습니다. 사상은 국가 관념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사상가는 자기 가정도 초월 하는 것이요. 자기 민족도 초월하는 것이요. 자기 국가도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요구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외적으로 닦으려니 역사적 섭리를 이와 같이 해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사상세계에 있어서 세계적인 이상국가를 이어받을 수 있는 사상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 관념을 초월하지 못하는 사상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소련과 중공이 싸우고 있습니다. 소련이 슬라브 민족을 중심삼고 자기 민족만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공산당의 주권을 닦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서로 갈라진 것입니다. 세계를 더 생각하는 공산당원이라면, 누구든지 민족적 감정을 초월하여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공산당 책임자가 되었다면 갈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미국 입장을 보면 하늘은 미국을 축복해 가지고 민주세계의 선두 국가로 세웠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월남문제라든가 한국문제라든가 아시아 전체, 혹은 전세계 문제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대표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나온 것입니다. 미국은 지금 이 세계에서 민주세계를 대표하여 공산세계와 대치한 입장에 있습니다. 하늘이 하늘의 권위를 대신한 자리에 미국을 세웠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미국은 전진해 넘어가야 합니다. 미국은 하나의 세계에까지 인류를 인계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세운 국가입니다. 그런데 만일 여기에서 후퇴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미국에 무한하고 방대한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여기에 있는 미국 사람들,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미국을 축복해 준 것은 미국 사람만이 잘살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미국을 축복해 준 것은 세계 사람들을 잘살게 하기 위해서 축복해 준 것임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미국에 계시면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미국만을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세계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하나님이면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국 사람 2억을 희생시켜서 30억 인류를 구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미국 사람을 희생시킬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반대할 수 있는 사람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미국을 통해서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세계를 위하여 무거운 짐을 지고 고개를 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 고개를 못 넘겠다고, 그냥 그대로 가겠다고 할 때는 하나님이 세워 준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이 됩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국을 물질적 과학문명의 모든 안팎에까지 축복을 해주어 가지고, 지금 월남 전쟁에 50만 명에 가까운 군인을 투입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1700만 명의 월남 국민과 더불어 싸우던 이 거대한 미국이 거기에서 다리를 빼어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미국을 거기에 내보냈던 것인데 그렇게 소식도 없이 후퇴를 한 것입니다. 그런 민족에게 하나님은 그 이상의 축복을 안 해주십니다. 미국이 나가 싸운 것은 단지 월남이라는 한 나라를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닙니다. 공산당하고 싸운 것입니다. 공산세계는 망하게 되더라도 서로가 협조할 수 있는 길이 되어 있지만 민주세계는 안 그렇습니다.
공산세계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민주세계는 하나님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엄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벌받아야 할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자식이 '우리 아버지 어머니 없어! 절대 없어'라고 주장한다면 부모인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만일에 그런 아들 옆에 형제들이 있다면 '이 녀석아, 왜 아버지 어머니가 없느냐?'라고 비장하게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제거시키는 것이 정의인 것입니다. 그때에 부모가 '얘야, 없다면 어떠니?'라고 할 부모가 있어요?
미국 국민은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이라고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평화는 전쟁이 끝난 후에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이 후퇴한다고 공산당도 후퇴할 줄 압니까? 아시아에서 미국이 후퇴함으로 말미암아 인도는 소련의 계획권내에 말려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 그 인접국가 전체를 소련과 중공이 나누어 먹기 싸움을 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저 사람은 아시아 사람이니까 저런 얘기 하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시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적인 하나님을 대표해 가지고 볼 때에, 하나님의 갈 방향을 중심삼고 볼 때에 인연이 많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국이 아시아에서 후퇴한다고 월남전쟁이 끝날 줄 압니까? 아니올시다. 그런 일이 쿠바를 통해서 벌어지고, 멕시코를 통해서 벌어지고, 남미를 통해서 벌어질 때, 미국은 어디로 가겠어요?
미국의 흑백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흑인들을 중심삼고 공산당의 마수가 이미 뻗쳐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나는 1977년, 1978년도까지를 미국이 공산당 마수에 말려들어 갈 수 있는 최후의 고비로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사상적인 면에서는 미국세계, 민주세계를 삼켜 버리고도 남을 수 있다고 자처하기 때문에 평화공세로 나오는 것입니다.
군사전략면에 있어서 미국을 능가한 나라는 세계를 요리할 자신을 갖고 나올 것입니다. 원자무기라든가 혹은 군사문제에 들어가 가지고 볼 때에 아직까지 미국이 소련보다 군사면에서 뒤떨어지는 분야가 많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들은 지하조직을 통해서 미국에 있는 가정들을 파괴시켜 놓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미국을 자기들의 밥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젊은 청년들의 도덕 관념을 희박하게 하고 퇴폐적인 사상을 집어 넣는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후퇴하는 것이 미국을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을 더 어려운 문제 속에 빠져들게 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부정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사람에 대해서 '그것은 미국한테 전쟁하라고 하는 말이냐? 당신은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전쟁을 하라는 과격적인 선동분자가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은 친구가 없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만일 미국 국민이 세계를 위해서 얼마든지 희생하고 가겠다고 할 수 있는 국민이 된다면 미국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때가 되어 오기 때문에 각 나라들은 전부 다 형제 국가들입니다.
성경에는 끝날이 되게 되면 면양과 산양을 갈라놓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는 쪽이 면양편이라면, 하나님이 없다는 쪽은 산양편인 것입니다. 면양은 주인이 있고 산양은 주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은 주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세계는 주인이 있어야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있어서 종교와 하나님에 대한 얘기를 하면 안 된다고 하니 큰일났습니다. 미국은 무슨 패가 되려고 하느냐? 하나님이 있다는 패예요, 없다는 패예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간입니까? 그런 패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마디 얘기를 하고 넘어갑시다. 참 것이 심어졌으면 그대로 참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어제도 말했지만,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아들로 와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세우려고 했던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심으러 왔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갈 때 십자가를 지는 환경에서 갔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그런 환경이 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을 때에 무엇이 있었느냐 하면,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로 말미암아 살아난 바라바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몰려 가지고 예수는 죽었습니다. 그렇게 죽은 것이 한이 되었기 때문에 그 한을 풀기 위해서는 그런 환경을 세계적으로 만들어 놓고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심었으니 그렇게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갈 때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가 있었습니다. 또 바라바가 있었습니다. 바라바는 죽을 자리에서 예수의 은덕을 입어 구원을 받았지만 예수에게 무슨 말을 했습니까? 그 다음에 왼편 강도가 예수를 비난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나님을 모시고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목적이다 이 녀석아!' 라고 비난했습니다. 그것을 들은 오른편 강도가 '야, 우리들은 당연히 죄를 지어서 이런 자리에 나오게 됐지만 이분은 죄가 없는 분이다. 이분은 죽어서는 안 된다' 고 변증했기 때문에 오른편 강도는 낙원에 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심은 것을 거두어 들여야 할 때가 지금이기 때문에 오늘날이 그러한 결과의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왼편 강도를 대표하는 것이 좌익입니다. 좌익이라는 것은 지금 나온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을 누가 갖다 붙였느냐? 왼편 강도 때부터 나온 것입니다. 끝날이 되었기 때문에, 열매 맺힐 때가 왔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민주세계는 왜 우익이라고 합니까? 그 말은 누가 갖다 붙였어요? 싸우는 가운데 민주세계가 질 때는 우리는 죽더라도 예수는 죽이지 않겠다고 주장해야 민주세계의 살 길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시는 주님까지도 왼쪽은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좌익 우익이란 말은 지금 나온 것이 아니예요. 그것이 50년 역사를 두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끝날이 되니까 나온 것입니다. 사탄은 60년을 전후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1977년, 1978년이 공산세계가 생긴 지 60년이 되는 때인 것을 여러분이 다시금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의 역사는 6수를 채워 나오는 역사입니다. 한국에 있어서 금년은 김일성이 60세가 되는 해입니다. 이 해는 전세계적으로 넘어가는 때인 것입니다. 이렇게 배후의 천적인 비밀 얘기를 짧은 시간에는 다 얘기할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바라바입니다. 회회교입니다. 바라바는 예수한테 혜택을 받았으면서도 예수를 치는 대표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1965년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 가지고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당신이 한국 전쟁을 휴전시켜 공산주의와 싸우는 것을 후퇴시켰지만, 만일 민주세계가 공산세계를 쳐서 이긴다 하더라도 공산세계는 회회교권과 손을 잡습니다. 지금도 손잡고 있습니다. 공산세계는 종교의 원수이기 때문에, 그런 때가 오기 전에 당신이 해야 할 것은 빠른 시일내에 그들을 규합할 수 있는 세계적 조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미국이 큰일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몇 십억이라는 돈을 세계에 널려 있는 종교단체들에게 주며 복지세계를 만들자고 했으면 수많은 종교 단체의 우두머리들은 규합되었을 것입니다.
결국은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갈 때에 바라바 패하고 왼쪽 강도 패가 합해 가지고 오른쪽 패를 친 것입니다. 이렇게 쳤기 때문에 이것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기를 가지고 싸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힘의 비중에 있어서 악보다도 우세할 때, 악은 행동을 못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이 무엇이냐? 쫓겨가신 예수의 한을 민주세계와 규합해 가지고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른편 강도가 죽어서 낙원가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죽지 않고 보호권을 만들어 가지고 지상에서 천국을 만드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공산세계는 물러가지 않습니다. 앞으로 회회교권은 기독교를 봉쇄하는 것을 중지하지 않습니다. 하늘은 이것을 무슨 방법으로 막을 것이냐?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서 볼 때에, 오늘날 기독교는 이와 같은 세계정세 앞에 있어서 신교와 구교가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가 되었기 때문에 신교가 합동운동을 시작해야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신교하고 구교만 합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유대교까지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불교와 유교권까지도 포섭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에는 17억에 가까운 인류가 종교권에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가 합해 가지고 악의 세력을 방지해야 할 때가 온 것을 그 누구도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하나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비사로 말했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내용이 많습니다. 이것을 다 파헤쳐서 현실에 맞는, 원인과 결과를 타진해 가지고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이 공인할 수 있는 하나의 사상체계를 찾아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공산세계의 유물사관을 이론적인 면에서 격파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하는 종교가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종교의 배경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내적으로는 기독교를 키워야 되고, 외적으로는 공산세계를 방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에 있는 많은 기독교의 책임자들한테 핍박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기독교는 가만히 두더라도 3년 이내에 녹아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제 문닫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현실교회가 그렇게 되어 있잖아요?
우리는 반공투쟁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우리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에 예속된 여러 단체가 우리 앞에 밀려 나가고, 꺾여 나갈 환경이 되니까 반대했습니다. 그 기관장들은 별의별 압력을 통해서 우리의 목을 자르려고 하고, 당국간에 절충해 가지고 수많은 핍박을 했습니다. 그러나 진리와 공의는 승리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작년 한해 동안만 해도 천 명 이상의 기성교회 목사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교육을 받고 갔습니다. 한국에서는 5년 동안 650만 명이라는 사람을 교육시켰습니다. 이제 와서 한국에 있어서는 반공전선의 교두보가 우리 통일교회인 줄 알고 전부 다 몰려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학가에서도 우리가 중심이 되어 있고, 사상계에서는 이미 중심이 되어 가지고 공무원 혹은 교육기관의 사상강좌는 우리가 전부 담당하고 있습니다. 작년 1년 동안에도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한국의 저명한 교수들 400명을 교육시켰습니다.
내적으로는 기독교를 옹호하고, 외적으로는 공산주의를 방어하지 않으면 죽은 예수의 입장과 같은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지켜 줄 것이냐는 겁니다. 반공전선에서는 일본과 자유중국 등 아시아의 최첨단에서 지금 투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유엔 총회가 열리고 있을 때에 아시아 사람들과 미국 청년들이 중국문제 때문에 4일 동안 금식투쟁하는 모습을 텔레비젼을 통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내가 주도했습니다. 이번 4월 말이나 5월 중에 중국에 들어가게 되면 장개석을 만날 계획입니다.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정치고관들도 만날 것입니다.
종교인들이 나라를 보호하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라를 보호하지 않고 세계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은 것과 같은 입장에서, 그와 같은 시점에서 주님이 오신다면 민주세계, 공산세계가 또 쫓아낼 운동할 것 아니예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미국은 어디로 갈 것이냐? 생각해 보셨어요? 여러분, 케네디 대통령과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함마슐드씨가 왜 그렇게 상상할 수 없는 비참한 사건으로 죽었는지 생각해 봤습니까? 내가 알기로는 케네디 대통령 때부터 외국 원조를 줄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일에 세계에 문제될 것이 있으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세계를 어느 나라에 맡기겠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 보았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기가 막힌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실정을 알기 때문에, 미국에 있어서 새로운 퓨리턴 운동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미국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미국 국민이 알지 못하는 길을 우리가 가르쳐 주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핍박을 받든 고통을 받든, 모험을 각오하고 나서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내가 미국에 와서 이 단에까지 나서게 된 동기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 6년이 남았습니다. 1978년도까지 6년 동안에 미국을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될 어려운 때가 온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온 것입니다. 미국 정부가 하지 못하고, 미국 교회가 하지 못하고, 미국 사람이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몰리고 쫓기는 외로운 무리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우리가 책임을 지고 나서자는 결의를 하고 이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내년까지 400명을 동원하고, 3년 이내에 2천명 이상을 동원하고, 각 주에 버스 기동대원을 40명 이상 배치하여 어떻게 하면 미국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시대 감각을 상기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두에서 만난 이러한 젊은 사람들을 볼 때, 미국의 젊은 청년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들은 나라를 위하고, 미국을 이끌어 가지고 세계를 사랑하는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체면과 위신을 다 버리고 나선 무리인 것입니다.
오른편 강도 국가인 민주세계를 대신해서 오시는 주님을 위해 무슨 명령이든지 순응하겠다는 절박한 신념을 가진 국가, 혹은 세계적인 무리를 하나님이 필요로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의 세계는 인간만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혼자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나라만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해서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운동을 제시해야 합니다. 거기에서만이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가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작년에 신문지상을 통해서 소식을 접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인종을 초월하고, 국가적인 감정을 초월해서 하나의 하늘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777쌍의 합동결혼식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이 찾아 나오는 통일적인 개인과 가정과 국가와 세계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원칙에 일치될 수 있는 가정의 기원을 우리만이라도 만들기 위해서 갖은 조소와 핍박을 극복하고 그런 일을 했던 것입니다.
나라와 세계를 초월하여 앞으로 하늘 대신 민주세계를 수호해 가지고 오시는 주님이 자유의 천국과 평화의 천국을 건설하는 데 지장이 없는 터전을 만들고자 나타난 무리가 통일교회와 통일교회를 인도하는 이 사람이며, 그것이 또한 이 사람의 사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망하더라도 세계를 살리자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망하더라도 세계를 살리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적 동기를 갖고 나오지 않고는 현재 분립된 이 세계에 있어서 하나의 이상세계나 통일세계는 꿈꿀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길을 준비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시고, 새로운 이상세계, 통일세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거들랑 여러분이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기를 바라서 오늘 저녁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저녁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녁을 마지막으로 해서 필라델피아를 떠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섭섭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금후에도 많은 복을 받기를 마음으로 축원하는 바입니다.
오늘 저녁에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하고자 하는 제목은 '새로운 메시아와 공식적인 섭리' 입니다. 이런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니, 혹은 새로운 메시아가 와야 되느니 하는 문제들은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필요 없다는 것을 요전에 말씀드렸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침범했기 때문에, 이것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섭리가 필요한 것이요, 메시아가 필요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를 순식간에 구원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수천년 역사를 거듭하면서 구원역사를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악을 지배하는 악신이 있다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니 그것을 일시에 제거시키는 것이 가능할 텐데, 왜 이렇게 오랜 기간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잘못한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용서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왜 사탄 마귀를 용서하지 못하시느냐? 대관절 어떠한 사탄이기에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는 원수가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라고 한 것은 사탄까지 용서하라는 말은 아닌 것입니다. 이 말은 사탄 품에 있는 사람을 빼내기 위해서, 그 사람을 빼낼 때까지는 아무리 그가 잘못하더라도 용서해 주고, 또 그 빼내려는 목적을 위해서는 용서해 주어야 된다는 말임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구해 주기 위해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대관절 하나님하고 사탄하고 무슨 원수가 졌습니까? 무슨 용서할 수 없는 원수가 져서 이렇게 오랜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도, 그 지루한 구원 섭리를 해 나오면서도 용서 못 하시는 이유가 어디 있느냐? 이것은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존재가 죄를 지어 가지고 사탄이 되었느냐, 아니면 본래부터 사탄이란 존재가 있어 가지고 하나님과 원수시하게 되었느냐? 만일에 인간을 짓기 전부터 본래부터 있던 사탄이라면, 본래부터 사탄이 이렇게 인류를 역사과정을 통하여 유린해 나왔다면, 오늘날 세계상에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존재가 어떻게 잘못되어 가지고 생긴, 횡적으로 투입된 사탄이라면, 그 사탄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용서받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사탄이 어떻게 해서 사탄이 되었느냐 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아봅시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을 보면 '하늘에서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세상을 유혹하는 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내어 쫓긴 큰 용이 무엇이냐 하면 옛뱀 이라고 했습니다. 그 옛뱀이 무엇이냐 하면, 인류를 타락시킨 근본이 되는 뱀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 뱀의 정체는 용인데, 이 용을 사탄이라고도 하고 마귀라고도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인 옛뱀은 하늘에서 내어 쫓겼다고 했습니다. 옛뱀의 본래 거처가 땅이 아니고 하늘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내어 쫓기었으니 그는 영적인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뱀이 해와를 꼬였다고 했지만 그것은 비사(比辭)인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아담이 얘기하는 내용과 약속하는 것을 미리 다 알았습니다. 그러니 사탄은 하나님하고 아담 해와하고 제일 가까운 자리에 있었던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그 가까운 존재가 누구일 것이냐? 그때에는 하나님이 있었고, 아담 해와가 있었고, 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아담 해와에게 제일 가까운 존재는 천사장밖에 없었습니다. 이 가까운 존재가 수상하다는 것입니다. 유다서 1장 6절과 7절을 보면, '간음을 행한 천사들을 흑암에 가두어 심판날까지 기다리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천사가 간음으로 타락했다는 내용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되면, 간음은 상대가 있어야 가능한데 천사가 간음할 때, 그 상대가 누구였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해와도 타락을 했습니다. 해와도 범죄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여기에 무슨 관련성이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데는, 그것을 먼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따 가지고 입으로 먹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눈을 가리거나, 손을 잘라 버리거나, 입을 찢어 버리거나 해야 할 텐데, 얼토당토 않게 하체를 가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허물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특히 여자들은 조그마한 허물이 있어도 가리려고 합니다. 즉, 흠이 있는 곳을 가리려고 한다는 겁니다. 욥기 31장을 보면 '내가 언제 아담처럼 허물을 가렸더냐?'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가린 것이 허물이 되었다는 뜻임을 알 수있습니다.
해와는 왜 부끄러움을 느끼고 하체를 가리게 되었는가? 또 그 다음에는 아담에게도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강요했습니다. 또, 아담도 손으로 따서 입으로 먹었는데 해와와 같이 하체를 가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아담 해와가 다 커 가지고 타락한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완성하게 되면 타락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과로 말하면 사과가 열매맺혀 가지고 익어 가는 과정에는 떨어질 수 있으되 완전히 익은 다음에는 주인이 따서 차지하는 것입니다. 만약 아담 해와가 완전히 완성해 가지고 타락했다면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완성을 바라볼 수 있는 미욱한 단계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완성을 표준해 가지고 다시 수습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완성하기 전에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아담 해와하고 천사장이 음행한 사건에 관련이 있다 할 수 있는 비근한 자리에까지 우리는 부정할 수 없게끔 찾아갔습니다.
또 성경을 통해서 알아봅시다.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딱 결론을 지어서 말했습니다. 우리 인간들, 즉 불신하는 사람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면 마귀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라는 말은 그냥 친구지간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핏줄이 관계되어 있습니다. 핏줄의 인연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바리새인들을 대해서 '독사의 새끼들' 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 인간이 독사의 새끼로 뱀과 관계가 되어 있고, 혈통적으로 사탄과 부자관계로 인연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심은 것은 그냥 그대로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아담 해와는 사탄을 중심삼고 비법적인 불륜의 정조관계를 맺어 가지고 타락했습니다. 그러면 몇 살 때 타락했느냐? 내가 알기에는 15세 정도에 타락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틴에이저일 때에 타락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무 아래서 우리 조상이 불륜의 사랑관계를 뿌려 놓았기 때문에 이 세계의 가을 고비, 즉 끝날이 되게 될 때는 이런 비극적인 불륜의 정조관계를 나무 아래서 맺는 현상이 세계적으로 벌어지게 됩니다. 그와 같은 때가 되거든 끝날인 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끝날에는 악으로 심은 것은 전부 다 거두어서 처단해야 됩니다.
끝날은 무엇의 끝날이냐? 선의 끝날이 아니라 악의 끝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그냥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 세계적으로 틴에이저들의 윤리문제가 큰 사회문제로 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나무 아래서 타락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동기가 된 것이 아니라 그릇된 것이 동기가 된 것입니다.
요즘에 사탄이 좋아하는 춤을 추는데. 끝날에는 그런 춤이 나오는 것입니다. 뱀과 같이 꼬는 춤, 트위스트 춤이 나오는 것입니다. 트위스트, 두 유 라이크 자? (Twist, Do You like it?) (웃음) 이것은 웃을 일이 아닙니다. 사탄이 세계를 망치기 위해 최후의 마지막 요동을 하는 것을 우리는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트위스트, 뱀춤에 다 걸려 드는 것입니다. 여기에 걸려들었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망한다는 거예요. 이것을 끊어서 사랑의 전통을 세워 놓지 못하게 될 때에는 인류에게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선진국가의 고민이 무엇이냐 하면, 빵 문제가 아닙니다. 가정을 중심삼은 사랑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기본 원칙에 갖다 놓지 못하면 평화의 나라와 평화의 세계는 절대 올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편에 서 있으면 사탄과 더불어 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 사회의 실상을 바라볼 때, 문제가 크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우리가 죄를 짓기는 지었습니다. 그 죄가 지독한 죄이기에 아버지가 지은 죄가 아들에게로, 아들이 지은 죄가 자손만대로 계승되어 내려온 것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죄는 혈통으로 유전되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나는 그렇지 않은데 왜 그러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죄가 없다면 '나는 예수를 믿지 않고도 천당갈 수 있다' 고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사도 바울을 예로 들어 봅시다. 사도 바울 하게 되면 오늘날 기독교에서 으뜸으로 꼽는 분인데, 만일 그분이 결혼해서 아들딸을 낳았다면 그분의 아들딸들은 예수를 믿어야 천당갈 수 있겠어요, 믿지 않아도 천당갈 수 있겠어요? 예수를 믿지 않으면 그들도 절대 천당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야 간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원죄가 남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무슨 지독한 죄이기에 수천년 동안 뽑을래야 뽑을 수 없이 우리 인류에게 결탁되어 가지고 고통의 터전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다시 한 번 관찰해 봅시다. 성경을 보게 되면, 장자는 축복을 받은 예가 없습니다. 본래 타락하지 않았다면 아들딸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태어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사탄을 중심삼고 장자로 태어났으니, 그것을 하나님은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자를 제일 미워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들딸을 찾아가는 데는 첫번, 즉 먼저 태어난 아들을 찾아갈 수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두번째 태어난 아들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 중에 아벨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애급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나오게 될 때에는 사람의 장자로부터 짐승의 맏것까지도 다 빼앗았던 것입니다. 또 야곱이 요셉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할 때에, 맏아들이 므낫세인데도 불구하고 동생인 에브라임을 바른손으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왜 그랬느냐 하면, 둘째 번의 사람을 사랑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구약시대에 제물을 드릴 때는 전부 다 쪼개서 드렸습니다. 피를 보지 않고는 제물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원래 잔인하기 때문에 피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냐? 아니올시다. 왜 그러느냐 하면, 사탄의 피가 들어왔기 때문에, 사탄의 피를 빼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이 거룩한 성물로 취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피를 본다는 것은 원통한 일이지만 사탄이 혈통적으로 침범하지 못하게 이것을 빼 버리지 않고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성물(聖物)은 반드시 쪼개야 된다는 원칙이 서게 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피에는 피로서 탕감하는 것이 법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 때부터 할례법이 나옵니다, 할례법. 즉, 양부를 째고 피를 빼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악의 피를 끌어 들였기 때문에 악의 피를 빼지 않으면 성물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데에 할례를 했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조건이 되느냐? 이것이 무서운 거라구요.
이러한 것을 볼 때, 혈통적인 입장에서 거짓 피를 끌어들였으니 탕감하지 않고는, 죄를 속죄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조건을 제시해 가지고 하늘가는 길을 다시 가르쳐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사랑관계를 맺게 되면, 가장 먼저 사랑받은 사람이 주관하는 것이 천리의 원칙입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이 원칙에 걸려 있기 때문에, 수천년 역사과정을 통해라도 이것을 해결짓지 않고는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오랜 역사를 통해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탄한테 주관을 당해서 끌려왔기 때문에, 반대로 우리가 사탄을 포박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끌어다가 공판하여 처단하지 않고는 천국에 못 간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사탄을 끌고 가 참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상에서는 사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을지라도 사탄이 무슨 죄를 지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전지전능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여, 이 죄를 지은 사탄을 당신의 전지전능하신 권한을 가지고 처단해 주소서'라고 참소한 사람은 하나도 안 나왔던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죄를 지은 범죄자나 살인강도라도 자기가 죄지은 것을 다른 사람이 모를 때는 그것을 커버해 가지고 얼마든지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그마한 소년 소녀일지라도 그가 살인한 것을 보고 '내가 당신이 이런 죄를 지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할 때는 그는 그 아이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 아이가 경찰에 고발하면 그는 대번에 처단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인류가 사탄이 된 동기를 모르기 때문에, 사탄이 세상에서 행세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사탄이 된 동기를 확실히 알아서, '하나님이여, 이런 역사적인 범죄자를 처단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게 되면 사탄은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말을 들으면, 여러분의 피살이 사탄의 혈통을 받고 태어났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쁘지요? 하나님이 이것을 사랑하겠어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리는 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치고 돌아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희생하고, 금식하고, 고행하는 반대의 길을 가르쳐 주어 하늘로 돌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얘기를 한번 해봅시다. 맨 첫날 이야기한 거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이요, 하나님과 한 몸이 될 수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받아 가지고 창조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최고의 절대자 앞에 단 하나의 상대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몸을 성전으로 삼아 가지고 그 마음속에 들어와 계시려고 인간을 지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 16절을 보면 '너희들은 너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 된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타락했지만 믿어 가지고 구원받은 사람도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하물며 타락하지 않은 우리 인류의 선한 조상이 성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요전에 내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아무리 전능하다 하더라도 혼자 있어 가지고 춤을 추고 웃는다면 그것은 미친 하나님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렇지만 조그마한 존재라도 보고 하나님이 좋아하고 웃고 춤을 춘다면, 미친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하면, 하나님도 대상이 없어 가지고는 기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피조만물 중에서 최고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인간을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하시려고 지으셨느냐? 아담의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가고 해와의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가서 하나님이 보기에 서로가 다 성숙되었으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그냥 갈라놓으려고 지으셨겠어요, 결혼식을 해주시려고 아담 해와를 지으셨겠어요? 아담 해와가 성숙하게 되면 하나님은 둘이 하나가 되도록 결혼시켜 주시려고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모로서 여러분의 그 아들딸이 다 컸는데도 불구하고 '야, 너 남자로 태어났지만 틀려 먹었다' 해 가지고 남자 혼자 두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또 여자면 여자 혼자 두는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없다는 거라구요. 반드시 부모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도록 둘이 착….
그랬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마음에 들어가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내적인 하나님이요, 아담 해와는 실체를 쓴 하나님의 외적인 몸인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혼식을 했으면 그 속에서 태어난 아들딸은 아담의 아들딸인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어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아버지라는 말이 바로 거기에서 나온 거라구요. 그렇게 되었으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가정이 나와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씨족, 하나님의 민족, 하나님의 국가가 나오게 되면,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을 아무리 할래야 할 수 없는 지경이 됩니다. 이렇게 되었다면 이 세계는 내 것이요, 하나님의 권한도 내 것이요, 또한 온 천지가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아버지의 것은 우리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오늘날 소위 목사님들, 신부님들 중에서도 하나님이 있다고 절대적으로 믿는 신부가 얼마나 되고 목사가 얼마나 되느냐? 요전에 통계를 보니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48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하나님의 양자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성경 로마서 8장을 보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으며 양자 되기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양자 된다고 그랬습니다. 양자라는 것은 핏줄이 다른 걸 말해요. 성경의 내용이 이런 걸 보게 될 때에, 우리 인류시조가 그릇된 불륜의 정조관계를 맺어 가지고 오늘날의 세계 인류를 이렇게 사탄의 새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요한복음 12장 31절을 보면 '이 세상의 임금이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어떻게 인류의, 이 지상의 임금이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다 지어 놓았는데 사탄이 어떻게 이것을 빼앗아 가지고 주인이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이 세계, 이 우주는 인류를 위해서, 즉 사람을 위해서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사탄이 혈통적으로 점령해 버렸으니 세계는 자동적으로 사탄의 것이 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처럼 사탄이 이 세상의 임금이 되었는데, 만일 하나님이 사탄을 처단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룰 수 있는 세상을 언제까지나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탄이 아담 해와를 혈통적으로 묶어 놓았기 때문에 사탄은 자동적으로 인간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어떤 나라의 왕이 되려면 그 나라 전체가 그 나라의 왕과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하나되어야 하느냐? 핏줄입니다. 핏줄.
자, 이제는 결론을 짓자구요. 타락한 인간은 전부 다 사탄의 핏줄을 물려 받았습니다. 사탄의 새끼라구요. 독사의 새끼라는 것입니다.
양자는 그냥 상속권을 받을 수 없는 거라구요. 상속을 받으려면 주인인 하나님 앞에, 또는 큰 부자면 그 부자 주인이 가지고 있는 전체를 상속받으려면 그 부자 주인 앞에 완전히 신임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고는 상속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양자가 직계 자녀가 될 수 있는 법이 있습니까? 본래 우리 인간은 양자가 아니라 참아들딸이 되어야 할 것인데, 참아들딸 되어야 하는 인간이 양자가 되어 돌아올 수 없는 길이 생겨 버렸기 때문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려니, 그 길을 만들기 위한 중간 매개 존재로 보내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내용적으로 다시 말한다면 돌감람나무를 바뀌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돌감람나무가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관하는 돌감람나무 밭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사탄이 갖고 있는 돌감람나무 밭을 하나님편에 달아매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는 데는 그냥 맹목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공식적인 섭리의 원칙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사탄편으로 타락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지 않은 데에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말씀과 하나가 안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몸뚱이까지 끌려갔습니다. 그 다음에는 본연의 사랑도 빼앗겼습니다. 결국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고, 실체를 잃어버렸고, 사랑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사탄편에 하나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좋다고 했다가는 나올 길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탄편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빼내기 위해서 다시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와 천사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자리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다시 절대적으로 믿고 굴복하는 운동이 벌어지지 않고는 거기에서 나올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빼내게 될 때에, 하나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하나님과 절대적으로 하나되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이 세 조건을 갖추지 않고는 나올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아담 가정에 있어서 가인 아벨 가운데 둘째 아들 아벨을 중심삼아 가지고 제물을 바치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그때의 아벨은 하나님 말씀을 누구보다도 믿고 누구보다도 정성을 들여서 하나님편으로 완전히 돌아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아벨은 사탄세계에서 나왔기 때문에 말씀을 절대 믿고 순종하는 자리, 즉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된 자리에 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이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고 아벨을 때려죽임으로 말미암아 섭리역사는 연장되어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벨 대신 노아를 세워서 이것을 다시 계승하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명령을 하실 때, 믿을 자리에서 믿게끔 명령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지 못하게끔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노아에게는 120년 후에 이 세계를 심판할 테니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런데 방주를 바닷가에나 강가에 지으라고 해야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저 높은 산꼭대기에다 지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배를 지으려면 강가에다 지어야 할터인데 산꼭대기에다 지으라고 하니, 그걸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인류시조가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믿는 입장에 세우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믿는 자를 세우려니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명령을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고 '아, 노아 할아버지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니 그 노아 할아버지의 부인은 얼마나 복이 많았을까? 노아 할아버지의 부인이 한번 되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인들이 많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 노아 할아버지의 부인을 보라구요. 그 부인은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는지도 모른다구요. 그리고 노아 할아버지가 매일같이 산꼭대기에다 방주를 지으려고 까뀌를 메고 장도리를 들고 올라갈 때에, '어서 올라가소,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뜻을 위하소'라고 칭찬했으리라고 믿습니까? 만일 한번 반대하기 시작하는 날에는 영영 해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부인들 가운데서 나는 반대하지 않겠다고 자신하는 사람 있습니까? 아마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단언을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 기간이 1년도 아니요. 2년도 아니요, 10년도 아닌 120년간이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반대하게 되면 그 아들딸 역시 반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40일 홍수심판 이후에 노아가 벌거벗고 잠자는 모습을 보고 함이 부끄럽게 여겨서 형제들을 충동질해 가지고 뒷걸음쳐서 덮어 준 것이 죄악이 되어서 형벌을 받아 가지고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 홍수심판이 깨져 나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함에게 '너는 종들의 종이 되라'고 저주를 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120년 동안 그렇게 믿지 못할 일을 하던 노아 할아버지가 그런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다 망하는 세계에서 자기들이 구원받았으면 '아이고, 우리 아버지에게는 절대로 복종해야 되겠다. 무슨 뜻이라도 감사히 받아야 되겠다'고 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불평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런 행동을 한 것을 볼 때, 노아가 생활환경으로부터 얼마나 불신당해 나왔던가 하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에서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 다음에는 아브라함을 봅시다. 아브라함은 우상 장사인 데라의 맏아들인데, 하나님이 이 아브라함을 대해 가지고 '야 아브라함아, 너 내 말을 듣고 너의 집에서 나와라. 전부 버리고 나와라. 전부 버리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하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행하지 못할 명령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그 말을 듣고 자기가 사랑하는 부모 형제를 뒤에 두고 정처없이 국경을 넘어 집시의 무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집을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하나님의 말씀과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이 무슨 행동을 시키든지, 무슨 일을 시키든지간에 그 자신이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을 단계에 가야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은 축복받은 선조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부러워하던 사람입니다. 이 축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21년 동안 어디든지 가라 하더라도 불평하지 않는 자리에 서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라반이 맨 처음에는 라헬을 야곱의 아내로 주기로 약속을 해 놓고는 7년이 지난 다음에는 라헬 대신 레아를 줘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불평을 했다가는 하나님의 뜻이 깨질까 봐 염려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불평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라반은 21년 동안 야곱을 열 번씩이나 속이면서 갖은 놀음, 갖은 사기를 다하며 야곱이 축복받는 재물을 빼앗으려고 간교한 행동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라반하고 싸우지 않았습니다. 단 하나의 목적은 하나님의 축복을 어떻게 길이 남기느냐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만을 절대적으로 여기고, 다른 것은 문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탄세계 안에 있더라도 사탄세계에 참소조건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탄권내에서도 하나님편에 서 가지고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또한 절대적으로 하나님편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야곱은 고향에 돌아가게 되면 형님인 에서가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21년 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을 형의 것으로 돌리고, 또한 자기까지도 형님의 종이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고서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야곱은 돌아가는 길에 하늘을 붙들고 담판기도를 했습니다. 또, 얍복강 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왜 야곱이 천사와 씨름해야 되느냐? 본래에 사람이 천사를 지배해야 할 권위를 잃어버리고 타락되었기 때문에, 사람이 천사와 싸워 가지고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환도뼈가 부러졌어도 '네가 나를 축복하지 아니하면 놓지 않겠다'고 하며 밤새껏 싸워 가지고 이겼다는 입장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사가 왜 환도뼈를 쳤는지 아십니까? 아담이 환도뼈를 잘못 써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야곱이 천사를 이김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즉 승리했다는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비로소 사람으로서 사탄과 싸워 승리한 단 하나의 인간이 이 지구상에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서 이긴 것은 아담 가정에서 천사장을 굴복시킨 셈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만약 가인이 아벨을 죽였던 것을 에서가 이어받아 가지고 그렇게 했다면 사탄의 뜻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이 아벨을 죽이려고 하던 거와 마찬가지의 입장, 즉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한 그 자리에서 도리어 야곱이 에서를 굴복시킴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이 출현하게 된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는 형제끼리 살육전을 벌었지만 여기에서는 형제가 하나된 조건을 세웠기 때문에,에서도 야곱과 더불어 축복받는 자리에 나가게 되었고, 이 가정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족속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편을 들다가 40년동안 잘 닦은 호화찬란한 바로 궁중의 영광을 포기해 버리고 일시에 목동의 신세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그러나 미디안 광야 40년 간의 고독한 생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구해 주시는 한날이 온다는 믿음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습니다. 이렇게 홀로 나와, 아무리 외로운 입장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절대 믿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구할 수 있는 책임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광야에 나와 30년 동안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살았다고 한다면, '아 하나님이 보우하사 잘살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이스라엘에 가 보면 알겠지만, 거기에는 석청이 많이 있는 복스러운 곳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배가 고플 때에 부락 부락을 다니면서 얻어먹는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실을 우리는 여기에서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어머니가 세례 요한이 잘한다고 칭찬했을 줄 아십니까? 약대 털옷을 입고, 뭐 띠를 매고 동네방네를 돌아다니니 아이들의 조롱거리와 비난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를 불러 세우신 하나님을 믿는 데는 단 하나의 생명만 있으면 아무리 그 누가 뭐라 하더라도, 그 누가 반대를 하고 조롱을 하더라도 그것을 문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편에 섰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선지자 중의 선지자요 누구보다도 복받을 수 있는, 메시아를 증거할 수 있는 제일인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이 섭리노정에 공식으로 남아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이러한 원칙을 밟지 않고 그냥 올라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있을 수 있는 말이예요? 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반대입니다, 반대. 전부 반대인 것입니다. 메시아를 맞았으면 살아야 될 텐데 죽긴 왜 죽어요? 반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것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세계의 사랑권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야, 너 나를 따라오라' 하고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명령하시게 될 때, 여러분이 '그 원칙은 좋은데, 나는 싫소' 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심판 때에 있었던 롯의 아내와 같은 결과를 우리는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미련을 두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까 말한 사탄의 돌감람나무 밭에서 빼내어 하나님 밭에 심어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 가지고 키워 보기 위한 선민이었습니다. 선민이라는 말은 사탄세계에서 분리된 민족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보다도 더 나은 개인이 되고, 가정이 되고, 종족이 되고, 민족이 되고, 국가가 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사탄이 이 세계의 왕이 되어 있으니 하나님을 중심삼은 본래의 왕권을 회복하여야 할 것이 하나님의 사명이기 때문에, 이것을 선민을 중심삼고 다시 이루기 위한 것이 구원섭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개인, 가정, 종족, 민족, 나라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또한 나라를 만들어 놓고 중심 존재인 메시아를 보내겠다고 예언을 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수천년 동안 그날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메시아를 보내는 데는 나라 가운데에 보내지 개인 가운데에 보내지 않습니다.
이 나라와 유대교가 예수하고 하나되었다면,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예수를 중심삼은 나라와 이스라엘을 중심삼은 새로운 세계적 기독교 문명권은 없어지지 않고 남아졌을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고, 싸우고 하는 일이 없이 이 땅 위에 세계적인 기독교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유대교가 지금 뉴욕에 남아 있겠어요? 지금 미국에는 유대교인이 많더라구요.
예수는 영과 육을 가지고 유대 나라의 제사장이 되고, 유대 나라의 통치자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비로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이 왕이 될 수 있는 터전이 이루어졌을 것인데,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는 아직까지 하나님이 이 세상의 왕이 될 수 있는 권한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 지상에 예수님이 다시 올 때까지, 유대교와 같은 입장의 기독교와 유대 나라와 같은 입장의 이스라엘 나라가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몸뚱이는 잃어버리고 영적인 세계, 영적인 천국만을 바라보고 나온 것이 오늘날의 기독교인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올 줄 알고 있습니다. 타락은 공중에서 안 했다구요. 땅 위에서 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 18장 18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땅 위에 있는 베드로한테 열쇠를 주고 가셨지, 가지고 가시지 않았다구요. 그러니 땅 위에서 잃어버렸으면 땅 위에서 찾고, 땅 위에서 풀 일이 있으면 땅 위에서 풀어야지요.
예수님이 죽으면서 신부를 찾아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이것이 뜻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다시 오겠다고 한 것이예요? 그 뜻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다시 오겠다고 한 것입니다. 어디 출장한 사람이 가서 일을 다 끝냈는데 '다시 출장 오겠다'고 하는 사람 있어요? 없다는 거라구요.
그러면 기독교인들이 믿듯이 주님이 공중으로 안 오고 사람으로 온다면, 옛날과 같이 또 잡아죽이는 일을 할 것입니다. 옛날 제사장들이 갈릴리에 살고 있는 요셉의 아들이 무슨 메시아냐고 반대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신학자, 신부, 세계에 이름난 목회자들이 선두에 서서 반대하고 나설 것입니다.
예수가 죽고 난 후에 이스라엘 민족이 2천년 동안 유리고객하는 민족이 되어 가지고 히틀러한테 6백만 명이 학살당한 것이 이러한 역사적인 곡절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 것임을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 기독교가 만일에 다시 오시는 메시아를 반대하는 날에는 기독교 역시 이스라엘 민족과 마찬가지로 비참한 죽음의 길을 밟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룰 때까지는 하나님편에 선 돌감람나무 밭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주관하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 나라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이 같이 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 밭이 어디 있느냐? 그런 나라가 있어요? 미국이예요? 어떤 나라가 있어요? 없다는 거라구요.
예수님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기 위해 다시 끝날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와 같은 국가적 기준을 조성해 놓으십니다. 하나님이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 밭을 만들어 놓은 후에 비로소 참감람나무를 보내어 가지고 돌감람나무를 다 잘라 내고 한꺼번에 접붙여 가지고 참감람나무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밭의 나무여야 자를 수 있지, 사탄 밭의 나무는 자르지 못한다는 거라구요.
참감람나무가 되는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직계 아들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원죄 없는 분입니다. 원죄가 없다구요. 우리에게는 원죄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원죄를 벗기 위해서는 기필코 메시아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오셔서 원죄를 잘라 버리고 접붙여 가지고 원죄가 없는 참감람나무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오시는 메시아가 바로 새로운 메시아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메시아라는 분은 어떤 분이냐? 여러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한몸이 되어 가정을 이루었다면, 그 가정의 주인 되는 아담 해와는 인류의 참된 부모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짓 부모, 타락한 부모와 인연을 맺었지만 참부모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다시 와 가지고 신랑 신부로서 무슨 할 일이 남았느냐?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아담 해와가 잃어버린 것을, 아담 해와가 완성하지 못하였던 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온 제2의 아담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구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을 보게 되면 예수를 '제2의 아담'이라고 말했습니다. 잃어버렸으니 찾아야지요. 그건 틀림없는 거라구요.
예수가 뜻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다시 와서 뭘 해야 되느냐? 잃어버린 참부모를 결정지어 가지고 사탄의 혈육을 받은 거짓 부모의 자식들을 다시 접붙임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세계 인류를 낳아 주는 운동을 해야 됩니다. 가까이서 보면 하나님의 아들딸이요, 멀리서 보면 하나의 세계 중심존재로서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바로 새로 오시는 분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어린양잔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6천년 전에 하나님께서 사랑을 중심삼고 해주실 성혼식을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끝날에 되찾아 가지고 부모의 자리에 세우기 위한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해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우리들도 이 공식노정을 안 갈 수 없기 때문에, 사탄세계에서 어떻게 빠져 나오느냐 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가지고, 어떠한 핍박과 어떠한 수난이 있더라도 거기에 일체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 서자는 운동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들이 가는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새로운 메시아와 공식노정'이란 제목으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것은, 새로운 메시아와 공식노정, 둘 다 이 지구성에 있어서 당위의 원칙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는 의미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이와 같이 모여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녁에 이 볼티모어에서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을 무한히 영광으로 생각하며, 금후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과 같이하기를 마음으로 비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여기에 나선 본인은 동양 사람입니다. 본인이 새로운 하늘의 말씀이니, 혹은 새로운 시대의 계시니 하는 이런 내용을 가지고 이 단에 나섰는데, 이것이 여러분들에게는 처음 보는, 혹은 처음 대하는 일이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영계의 일이니 계시니, 혹은 영적인 사실이니 하는 말을 듣게 될 때, 그 영적인 사실이라는 것은 한때, 일시적인 일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엇보다도 이러한 영적인 사실을 체계화시켜 가지고, 이것을 우리 일상생활에 적용되는 진리로 어떻게 규정지어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영적인 일은 잠깐이지만 진리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본인도 영적인 세계의 여러 가지 복잡한 내용을 보고 듣고 하는 것을 문제시하는 것보다도, 이것을 어떻게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과 일치시켜 체계화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가 문제인 것을 여러분 앞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 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이 세계정세를 바라볼 때, 금후의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민주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금후의 세계도 희망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공산세계도 역시 분열된 방향을 취해 나가는 것을 보게 될 때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정에서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어 가지고, 인류의 금후의 문제를 책임지고 세계가 나아갈 방향을 친히 인도해 주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는 것을 누구나 다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사람들이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분이 목적하는 바와 그분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 가운데는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기독교를 믿는 지도자 층에서도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알고 지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의심스러운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길을 가는 것도, 혹은 교회가 부패하는 것도 하나님이 확실히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먼저 문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 해도, 하나님 혼자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이 만물지중에서 인간을 제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그 사람의 갈 길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방향에 있어서 하나의 종교니 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이 하나님인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있어서 이 세상을 지었다면, 하나님을 작가로 볼 수 있고 이 세상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우주가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누구나 말하고 있습니다. 힘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힘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힘이 있기 전에 여기에는 반드시 작용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작용을 계속하지 않고는 힘은 중단되는 것입니다.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주체와 대상 관계입니다. 그러니까, 힘이 있기 위해서는 작용을 해야 되고, 작용을 하려면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작용을 하는 데는 둘 중에 어느 한 편이 손해를 보는 입장에 서서는 작용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용을 해서 벌써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은, 거기에는 주체의 목적과 대상의 목적이 보다 자기들에게 플러스될 수 있는 요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플러스되는 요건이 없게 될 때는 작용을 안 하는 것입니다. 즉, 손해 되는 데는 작용을 안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저녁 여기에 찾아왔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올 때는 손해보기 위해서 오신 분은 한 분도 안 계신다고 보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플러스될 수 있는 것을 바라서 온 것은 틀림없습니다. 여기에 올 적보다도 마이너스가 될 때는 이 작용을 계속하래도 안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볼티모어에 번화가가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거리에 나가는 사람 중 '나 오늘 손해보기 위해서 거리에 나간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전부가 플러스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 보탬이 될 수 있는 그 무엇을 바라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보탬이 없게 될 때에는 그 움직임은 계속되지 않는 것입니다. 중단되는 것입니다. 무슨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도, 갑과 을이 서로 주고받으며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역시 자기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목적을 발견해야만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아무도 없는데 이런 행동(몸짓 하심)을 하면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잡기 위해서라면 미친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만일에 이 나라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혼자 방에서 웃으면서 춤을 춘다면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누구나 말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컵을 하나 들고 소리를 치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면 그는 미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우주의 중심되는 절대자인 하나님이 있다고 합시다. 그 하나님이 만약에 아무것도 없는데 혼자 웃고 지껄인다면 그 하나님은 이상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있는 조그마한 무엇 하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걸 보고 하나님이 말씀을 한다든가 웃는다든가 하면 그 하나님은 정상적인 입장에 선 하나님인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든 작용과 힘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으면서 서로 자기들이 이익될 수 있는 원칙에 입각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화학실험실에서 어떤 원소면 원소를 중심삼아 가지고 화학실험을 한다고 합시다. 인간이 아무리 자기의 힘을 가해 가지고 어떤 원소면 원소끼리 합하려고 해도 절대 합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두 원소가 상대가 돼서, 서로서로 주고받아 가지고, 합해 가지고 자기 자체가 지금보다도 더 플러스될 수 있는 요건만 생기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남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하고 여자, 그 둘이 합하는 데는, 남자에게 조금만 마이너스되든가 여자에게 조금만 마이너스되든가 하게 된다면 암만 합하라 해도 안 합니다. 그렇지만 그 둘이 지금보다 조금만 나은 것을 바라보게 될 때는, 혹은 나아질 수 있는 곳을 향하게 될 때는 작용을 하고 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합하는 것이 무한한 가치가 있게 될 때에는 영원히 영원히 갈라질 수 없는 자리에서 하나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되고, 힘이 있기 위해서는 작용을 해야 되고,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결국은 주체와 대상이 더 커질 수 있는 곳에서만 존재가 계속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작용이 있기 때문에 작은 것이 커 가지고 큰 우주를 형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대가 되고 또 상대가 돼 가지고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작아지는 데도 작용을 하게 된다면 원소의 가치도 파괴될 것입니다. 상충되는 작용이 있어 가지고는 하나되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서로 보강하고, 서로 더 발전할 수 있는 힘이 있는 데서만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어 있는, 공산주의자들이 중요시하는 철학, 변증법이라는 것은 크나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 관념을 갖지 않는 존재는 없는 것이요, 보다 나은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 곳에는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을 두고 보면, 우리 인간은 결과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그 무엇인가 원인이 있어 가지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양심작용이 있습니다. 양심작용은 우리를 선한 곳으로 가라고 재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양심작용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나를 관리하면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밤에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가지고 나쁜 짓을 하려고 해도 양심은 '야!' 하고 제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적으로 나를 관리하면서 작용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작용하기 위하여는 주체와 대상 관계가 설정되지 않는 데는 작용을 안 한다고 아까 말했습니다. 손해날 수 있는 결과를 바라보면서는 작용을 안 한다고 했습니다. 작용함으로 말미암아 보다 나을 수 있는 가치가 설정될 수 있겠기 때문에 작용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작용을 두고 볼 때, 양심이 결과가 되든가 주체가 되든가 하는 어떠한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주체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되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또 이제부터 수천년이 흘러가더라도 양심의 작용에는 혁명이나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그 주체가 절대적이니까 그 주체가 변하지 않는 한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양심이 작용할 수 있는 주체가 있다는 것을 볼 때, 그 주체가 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주체를 우리는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주체를 하나님이라고 하든가 뭐 갓(God)이라고 하든가 그건 국가 국가마다 다 있어요, 이름은 무엇이건 그 주체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분을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구요. 아까 말한 거와 같이 우리 인간은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결과는 원인을 따라서 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인체를 가만히 보게 된다면, 이것은 신비의 왕궁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몸뚱이 하나로 의학박사 된 사람이 아마 세계에 수십만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에 대한 것을 연구해 가지고, 되어진 결과를 증거하는 입장에서 학위를 딴 것입니다. 그 닥터(doctor)들이 스스로 만든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의 조상을 따져 올라가면 맨 처음 조상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자, 그러면 우리 인류시조를 아담이라고 한다면 그 아담 할아버지 한 분을 중심삼고 생각해 봅시다. 그분은 태어날 때에 땅에 태어났습니다. 땅에 태어난 사람인데, 그 사람이 '내가 땅에 나가게 되면 천체에 태양이 있기 때문에, 그 태양을 보기 위해서 눈은 요렇게 생겨야 된다' 하는 생각을 해보고 태어났다고 봅니까? 땅에 태어날 때 그 눈이 땅뿐만이 아니라 공중의 태양빛을 볼 수 있게끔 준비해 가지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은 깜빡거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복사열에 의해 가지고 땅에서 수증기가 증발되고 눈에서 수증기가 증발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증발되면 안 되겠으니까 축이기 위해서 깜빡거리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깜빡거리겠습니까? 여러분, 눈을 한 30분 깜빡거리지 말고 그냥 있어 보라구요. 큰일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속눈썹을 보라구요. 이 속눈썹이 뭐하러 여기에 붙어 있어요? 이 눈썹이 공중에는 먼지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이렇게 돼 있겠어요? 벌써 공중에는 먼지가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여기에 와 붙었다구요. 여러분, 눈썹을 보라구요. 이놈이 없게 될 때는 어떻게 되겠어요? 이것이 없다고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여기서 흘리는 땀은 틀림없이 여기에 저장된다구요.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렇긴 때문에 벌써 사람이 서서 다닐 것을 알고, 떡 잘 만들어 왔습니다. 이 눈썹이 요렇게 나지 않고 이렇게 났다구요. 여기에 들어가면 안 된다구요. 잘 해 놨다구요.
그 다음에 눈을 보게 되면, 눈이 움푹 들어가지 않고, 쏙 들어가지 않고 요게 살짝 드러나 있다구요. 눈은 그렇다 하고, 또 이 코를 보라구요, 코. 코는 왜 이렇게 생겼어요? 이게 뒤집어져 있으면 어떻겠어요?(웃음) 여러분, 코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코가 왜 위에는 좁고 밑으로 내려오 면서 이렇게 넓어지느냐 하면 좁은 대로 내려왔다가는 큰일나기 때문입니다. 입에 전부 들어가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넓게 골을 쳐놓은 것입니다. 여기에 금이 없는 사람 있어요? 이게 이렇게 안 되고 요렇게 된 사람 있어요?(웃음)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금을 그어 왔습니다. 그리고 입은 쑥 안 들어 갔다구요. 잘 되어 있다구요.
이런 것을 보게 되면 그 무슨 장난으로, 자기 멋대로 한번 해보고파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코까지도, 눈은 그렇다 하고, 코까지도 공기 중에 먼지가 있는 것을 알았어요. 요 귀까지도 먼지가 있는 것을 알았어요. 귀에 털이 나 있거든요. 또, 사람의 귀는 정면으로 말을 들어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높은 산맥, 낮은 산맥 잘 해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자, 손도 보라구요, 손. 전부 다 앞을 중심삼고 활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 멋대로 적응하기 위해서 됐다고 하는 작자들이 세상에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돼서 그러느냐? 보면, 전부 다 보면 신비의 왕궁입니다. 신비의 왕궁이라구요. 그것이, 제멋대로? 어림도 없다는 거예요. 박물학자도 당치 못하고 어떠한 학자도 당치 못할, 상충이 없는 구체적인 내용의 지식적인 기반 위에서 인간이 모든 것을 알고 거기에 맞춰 가지고 태어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자, 이런 사람이…. 우리 조상이 나올 때 전부 모르고 나왔지만, 그 나온 사람은 몰랐지만, 나오기 전에 안 분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없었다는 사람 있으면 대답해 보라구요? 다 알았습니다. 다 안 결과로 태어났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을 안 분이 누구냐 하면, 맹목적이 아니예요. 하나의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인생으로 태어날 수 있게끔 한, 구체적인 지식의 중심이요 모든 앎의 근본되는 그분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데, 그분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제부터는 얼굴을 씻고 거울을 볼 적마다 '아, 신비스럽구만' 하며 자기 얼굴서부터 자기 사지를 감상하면서, 오늘 저녁 말씀드린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있는 것을 느껴 보시기를 바랍니다.
자, 그러니까 이제는 하나님이 있다고 같이 결론을 내립시다. 하나님은 있다! 자,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추진합시다. 아까 말한 대로 하나님은 절대자이신데, 그 절대자도 혼자 있으면 재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아마 여기 이 나라의 닉슨 대통령도 혼자 있어 가지고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웃음) 여기에 온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과되는 사람이 그러니까, 원인 되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하나님도 혼자 있어서는 기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도 상대가 필요한데, 상대를 취하는 데는 이 만물지중에 누구를 상대할 것이냐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다이아몬드를 상대로 하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보다는 식물이, 생명이 있는 식물이 하나님 앞에는 더 가까울 것입니다. 그러면 식물을 상대로 하겠습니까? 그것보다도 조금 나은 것이 있으면 하나님도 나은 것을 상대로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동물? 동물 중에 누구를 상대로 하겠느냐 하고 묻게 될 때는 유치원 학생들도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사람 가운데는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 악한 사람도 있고 선한 사람도 있는데 어떤 사람을 상대하겠습니까? 그거야 물어 볼 필요도 없이, 사람 중에도 최고의 존재를 하나님이 상대로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서나 다 마찬가지의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여기에 어떤 큰 교단의 총회장이 있으면, 그 총회장이라고 해서 그를 상대로 하겠느냐 할 때, 그렇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바라보는 요러요러요러한 조건에 부합되어야 됩니다 그러한 원칙에 부합되지 않으면 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그러니까 하나님도 안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남자나 여자들도 결혼하게 될 때는 세계 제일가는 여자, 제일가는 남자를 얻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절대적인 주체이니만큼, 그 절대적인 주체 앞에 상대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바라는 어떠한 원칙에 부합될 수 있는 사람이라야 된다는 결론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지었다고 하게 될 때, 지은 그분의 목적과 지음을 당한 사람의 목적이 달라서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좋고 사람도 좋아할 수 있는 제 3점의 자리에서 만나야 됩니다. 최고의 하나님이니까 중간쯤 되는 자리를 바라지 않는다 이거예요. 최고, 최고를 바란다구요.
그 최고의 자리까지 도달할 수 있는 상대적 존재가 인간이라면, 인간이 그 최고의 자리에 도달하려면 최고의 자리까지 자기를 이끌어가는 욕망이 있어야 됩니다. 여기에 온 사람 가운데 아무리 못생긴 부인이라도 세계 대통령이 있다면, 그 세계 대통령의 부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또, 높은 자리뿐만 아니라 높은 자리에 서 가지고 세계를 한번 뒤흔들어 봤으면….여러분들은 안 그렇습니까? 뭐 웃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니까 다 그런 모양이군요. 그 다음에는 온 세계 만민 앞에 들림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 시대에 와서만 허락됐느냐 이거예요. 자고이래로 지금까지, 영원히 우리 인간에게 그런 양심작용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상관할 수 있는 최고 절정의 표준을 하나님도 만나려고 하고 우리 인간도 만나려고 하기 때문에, 주체를 대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그러한 양심적 지향성을 주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 사람의 욕망이 도달할 수 있는 종착점이 어디냐를 생각해야 돼요. 여러분이 하나님이 있는 것을 발견해 가지고, 하나님을 알아서 모시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모시는 것도 물론 행복이겠지만, 하나님 속에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하나밖에 없는 사랑의 보화가 있다고 합시다. 즉, 하나밖에 없는 사랑이 있다고 합시다. 그럴 때에는 고 사랑을 점령하고 싶겠어요, 점령하고 싶지 않겠어요?
만일에 하나님을 점령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게 될 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한 사람한테 하나님을 내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평화니 행복이니 무슨 이상이니 하는 것이 사랑을 빼놓고 있을 수 있어요? 하나님이 하나의 표준으로 바라는 최고의 자리요, 우리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최고의 자리가 어디냐 하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밖에 없는 사랑의 자리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무엇이 되고 싶어요?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받을 수 있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예요? 그 자리를 찾아보니, 그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싶다는 거예요, 아버지. 그것이 인류가 바라는 최고의 욕망의 종착점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비천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지만, 이 우주를 창조하신 절대자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영광의 한날이 있음을 확실히 알고, 그럴 수 있는 길을 알았다면, 여러분은 춤만 추겠어요? 그 길을 확실히 알아 가지고 눈에 볼 수 있게끔 해서, 그렇게 되자면 이렇게 해야 된다고 하게 되면, 세계적으로 무슨 가입을 한다든가, 갈 수 있는 길을 신청하라고 하면 아마 세계 30억 인류가 한꺼번에 동원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4년만에 한번씩 바뀌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도 별의별 놀음을 다 하는데, 영원히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면 무슨 짓을 안 하겠느냐 이거예요.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이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면 여러분은 결사적으로 놓지 않을 겁니다. 내가 놓으라 해도 안 놓을 거예요. 만일 내가 가르쳐 주게 되면 놓지 않을 거라구요.
그러한 고귀한 가치의 자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본심은 도달하기에, 미치기에 불가능한 것 같은, 꿈 같은 소망과 꿈 같은 욕망을 지니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우주의 주인이 하나님인데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으면 그 아들딸은 아버지의 것을 상속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내 것 만들고 싶고, 세계를 뒤흔들고 싶고, 누구보다도 높고 싶다는 것은 창조원칙으로 부여한 인간의 당연한 특권인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그런 인격기준이 아닌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절대자 하나님과 관계된 사람을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절대자가 만약에 우리 인간을 사랑한다면 얼마만큼 사랑하겠습니까?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끼리 붙안고는 요렇게 가만히 서 있는 사람 있어요? 붙안고 돌아가는 거예요. 사랑하는 아기가 있더라도 이래 가지고 이러구 좋아하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너와 나라는 거예요. 나, 대상은 제2의 나예요. 그리고 제2의 나와는 하나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새로운 희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절대자인데 우리 인간은 그의 아들이 되어 있습니다. 상하관계입니다, 상하관계. 가만히 보니까 아버지는 위에 있고 나는 아래에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 인간의 욕심은 아버지의 자리에 나도 한번 올라가야 되겠다고 하는 거예요, 아버지의 자리에. 우리 인간의 욕망은 그런 겁니다. 그걸 하나님도 알고 있다는 거예요. 더구나 이렇게 상하관계만 있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자리까지도 우리 인간에게 부여하고 싶은 것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결국은 어디에 계시느냐 하는 것이 문제됩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랑받는 그런 인간이 되었더라면, 하나님은 아담의 마음에 들어가고 아담은 하나님의 밖에 있다는 거예요. 안팎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무엇이냐?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안팎이 될 수 있는, 실체를 가진 외적 하나님의 자리가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자리요, 해와의 자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 이 우주를 창조한 그 하나님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큽니까, 작습니까? 조그마해요, 커요? 하나님이 암만 크다 해도 그 큰 하나님까지도 전부 다 몰아넣고도 남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타락되어 가지고 예수믿고 구원받은 사람, 구원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도 성전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대상의 입장에 선 사람이야 성전 중의 성전이지요.
지금까지 기성교회의 신앙을 하는 사람들 혹은 다른 종교인들은 창조주와 피조물과는 하나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창조주는 거룩한 분이요, 우리는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락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이 몸이 거룩한 것입니다. 이 몸이 거룩하다는 거예요. 우리 인간의 가치가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상대적 하나님으로서 등장할 수 있는, 이러한 본연의 인간의 가치를 우리는 몰랐습니다.
그러면, 하나님하고 우리 인간이 안팎으로 하나가 되었으면 그것으로 끝날 것이냐? 그것으로 우리 인간이 가만히 있을 것이냐? 하나님 가운데 더 좋은 것이 있으면 인간이 '아, 그것도 내가 갖고 싶다'고 생각할 것을 하나님은 알았다는 거예요. 더 좋은 것이 있으면 그걸 또 갖고 싶어할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자,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 있는데, 가만 보니까 하나님은 창조주고 나는 지음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도 내가 한번 가져 봤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또, 만들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했느냐 하는 것도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우리에게 주겠다는 이 놀라운 일이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여러분, 창세기 1장 27절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니 1남 1녀더라' 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도 계시기 위해서는 하나님 속에 주체 대상 관계가 있어야 됩니다. 즉, 하나의 하나님 가운데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모든 씨는 그 근원을 닮는 것입니다. 이 우주의 근본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인이기 때문에 그 원인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지고 모든 씨는 열매맺히는 것입니다. 씨를 보면 무슨 씨든지 두 쪽이 한 꺼풀에 씌워져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나님이 그렇게 생겼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거기에 플러스 마이너스 성격이 있어 가지고 생명의 근원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을 상대적으로 지어 놓았는데, 그 주체적 형상이 아담이요 상대적 형상이 해와인 것입니다.
이걸 왜 갈라놓았느냐? 이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남자 여자를 완전히 별개로서 완성하게 하기 위해서 갈라놓은 것입니다. 남자가 완성하고 여자가 완성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둘이, 주체와 대상이 서로서로 합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서로 합하기 전에는 완전히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랑을 받고 나서 장성한 다음에는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서로 만나 가지고 부부가 되는데, 그것이 가정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둘이 이렇게 합하니까 누구를 닮았느냐 하면 주체되는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똑같은 하나님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가 하던 일을 대상권내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강한 사랑의 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처럼 주체와 대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리로 가기 때문에 새로운 생명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사랑의 힘을 통해 가지고 아들딸을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아담 해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도 아들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아담 해와를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영원히 살 수 있는 아들 딸을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갖출 뿐만이 아니라, 천지 만물을 짓고 사랑하던 그 재미, 그 묘미까지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 아들딸을 사랑하는 사랑의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결국 하나님 가운데 자녀의 사랑이 있고 부부의 사랑이 있으며 부모의 사랑이 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몽땅 인계받아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의 원칙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부모가 없는 사람을 불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고아라고 합니다. 혼자 사는 사람을 불행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아들딸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 세 가지를 영원히 갖추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인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가정이 딱 갖추어 놓으면 하나님이 우리 가정내에 들어와 출발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서, 절대적인 하나님으로서 인간을 대하고 싶었던 하나의 모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온 사람 가운데 '그렇게 된 사람 있소. 나 그렇게 되었소'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결론 내려도 섭섭해 하지는 않을 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는 지금 간단히 몇 분 동안에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를 탐구해 들어가서 알아보고 알아보니 여기에 결론 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특권의 가치, 본연의 가치를 상실하여 자기의 존재 위치까지 상실한 세계인류가 얼마나 비참한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지은 물건은 절대적인 하나의 목적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을 보면 마음과 몸이 상반된 목적 방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우리는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었다고 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간은 마음과 몸이 왔다갔다하는 싸움을 하면서 죽어가고, 왔다갔다하는 싸움을 하면서 죽어가고…. 그러면서 인류역사는 엮어져 내려오는 것입니다. 내용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결과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내일 모레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여튼 몸과 마음이 싸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 안에서 두 목적을 지향하는 요소가 싸우고 있습니다. 가정을 이루면 이것이 넷이 됩니다. 열 사람이 되면 스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세계는 불행의 세계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인간들이 되어 있는데,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다면 이러한 인간을 그냥 내버려 두실 수 없습니다. 만일 그냥 내버려 두는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렇게 고장이 났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류역사의 배후에서 이것을 수리하기 위한 수리 공장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게 무엇이냐? 그것이 종교입니다. 종교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을 중심삼지 않은 종교는 없는 것입니다.
신하고 관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관계를 맺지 않으면 돌아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화가 다르고, 전통이 다르고, 인종이 다른 그런 배경을 통해서 수많은 종교 형태를 벌여 놓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이 원하는 목적을 지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비교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취하게 마련입니다. 여러분, 맨 처음에 이 양복을 만든 사람이 세계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양복을 만든다고 생각해 가지고 만들었겠어요? 맨 처음에 이 양복을 지은 사람은 세계 사람들이 다 입을 줄 몰랐다구요. 편리하니까 입게 된 거라구요. 이것보다 더 편리한 것이 나오면 이것을 집어치우고 더 편리한 것으로 또 바꿔 입는다는 거예요. 오늘날 선진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후진국이 따라가려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다 그런 방식에서 좋은 것을 따라가려는 것입니다. 즉, 좋은 것을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종교도 저급한 종교에서부터, 샤머니즘 같은 종교에서부터 시작해 가지고 좀더 좋으면 바꿔치고 좀더 좋으면 바꿔치고 하면서 올라온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지금에 와서는 4대 종교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수리 공장을 네 개 남겨 놓았다 그말이라구요. 종교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하나님이 없다고는 말 못하는 것입니다.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와서 요 몇 해 동안에 하나님을 저버리는 운동이 급속적으로 세계화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게 이상한 징조라구요.
그것은 20세기 후반기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하게 될 때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지금보다 좋을 수 있는 그 무엇을 발견하게끔 못 되어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게 되면, 외적인 세계보다도 몇 배 가치 있고, 더욱 훌륭하고, 좋다는 것만 가르쳐 주면 오지 말래도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부터 종교인들이 해야 할 세계적인 숙제 입니다. 종교의 최고 책임자들은 이것을 해결해야 할 세계적인 사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이루어 놓은 전통이니 틀이니 하는 것이 깨질까봐 급급하고 있는데, 그러다가 망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보더라도 그렇게 되어 가지고는 안 되겠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을 통해서 들이치는 것입니다. 치워 버리는 거예요. 지금 목사나 신부 하게 되면 '에헴' 하고 있지만, 그들은 구세대에도 뒤떨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과학자까지도 요리해야 돼요. 누구든지 요리해야 됩니다.
자, 결국은 하나님이 종교를 통해서 규합해야 되는데, 이제 4대 종교끼리 싸우고 있다구요. 서로 내가 잘났느니 네가 못났느니 하고 있고, 같은 교파끼리도 네가 못났느니 내가 잘났느니 하고 있다구요. 여기 선 사람도 지금까지 이치에 맞는 논리를 터로 해서 새로운 종교를 주장해 나왔는데, 전통을 자랑하는 기성교회들은 지금까지 반대했다구요. 반대하기 전에 터놓고 연구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현재의 4대 종교 가운데서 제일 좋은 종교가 어느 종교냐, 으뜸되는 종교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우리는 고려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세계 4대성인을 봅시다. 세계 4대 종교라 하면 첫째는 기독교요, 그 다음에는 불교요, 그 다음엔 유교요, 그 다음엔 회회교를 꼽습니다. 그 책임자들을 4대성인으로 우리는 꼽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크라테스가 4대성인 중의 한 사람이 아니냐 하는 사람도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철인인 것입니다. 지식을 중심삼고는 생명을 좌우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좌우하는 것은 하늘만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종교 지도자의 가르침을 통해 가지고 우리 타락한 인간을 죽고 사는 길로 가려 나오기 때문에 종교 지도자가 아니고는 성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도, 공자도, 석가도, 마호메트도 전부 다 종교의 도주라구요, 도주, 그들의 사상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상이요, 그들이 바라는 사상은 세계적 사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세계를 구하겠다는 사상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성인이라는 것은 한 나라를 위주해 가지고 난 사람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주한 사람입니다.
성인들 가운데는 한 나라의 백성이 되었지만 그 나라의 백성들로부터 배반받은 성인들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구요. 공자 같은 양반도 그랬다구요. 마호메트 같은 양반도 그 당시에는 그 사회로부터 규탄을 받았다구요. 석가모니 같은 양반도 궁중을 버리고 자처해서 나갔지만, 그도 역시 괴로운 자리, 외로운 자리에 나선 사람이라구요.
이렇게 볼 때, 그러면 하나님이 세운 세계적 종교지도자들 가운데서 누가 중심이 되느냐 하는 것을 알아봐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몇 가지 종류가 있어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있어야 됩니다. 아들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종이 있어야 돼요, 종. 종의 자리에서 출발해야 됩니다. 떨어졌기 때문에, 어디까지 떨어졌느냐 하면 종의 자리까지 떨어졌기 때문에 종의 자리에서 출발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양자의 자리, 그 다음에는 아들의 자리, 최후의 자리는 부모의 자리, 부모….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종교 가운데는 종의 종교가 있고, 양자의 종교가 있고, 아들의 종교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공자 같은 양반은 하늘을 가르치는 데는 막연히, 선을 행하면 복받고 악을 행하면 벌받는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몰랐습니다. 석가 같은 양반은 신을 긍정했지만 법을 중심삼은 신으로서 인정했지, 인격적인 신은 설파하지 못했습니다. 마호메트교는 기독교를 이어받은 종교지마는 코란경과 칼을 가지고 세계적으로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칙적인 기준에서는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어땠느냐?
그러면 우리가 제일이 될 수 있는 책임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표준해 가지고 골라내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아까 말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되고, 하나님과 한 몸이 되어야 되고, 그 다음엔 가정을 이루어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하나님이 다시 찾고자 하기 때문에, 그러한 내용을 얼마만큼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 중심 종교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을 가르쳐야 될 것입니다. 예수도 그 원칙을 바라보고 일치화시키는 일을 했다면 그야말로 중심적인 종교책임자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종교의 가르침을 보게 된다면, 어느 종교나 고행을 안 가르쳐 주는 곳이 없습니다. 몸을 쳐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을 하나 만드는 놀음을 시키는 것입니다. 방법은 다 같습니다. 내용에 들어가 가지고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자격을 우리가 알아봅시다. 예수는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했습니다. 역사 이래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사랑받을 수 있는 자는 나밖에 없다고 설파했습니다. 즉, 예수는 자기는 틀림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하고 나하고는 한 몸'이라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을 보게 되면,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스라엘 나라와 새로운 하나의 주권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하나의 가정으로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남자로 태어났으니 그 남자 앞에 설 수 있는, 예수님과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신부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러한 엄청난 하늘의 사명을 책임지고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나아가 나라와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가정을 갖춘 세계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목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가정적 터전을 갖지 못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돌아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면서 남긴 소원이 무엇이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가신 이후 2천년 동안 기독교는 오실 주님을 바라면서 신부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준비를 지금까지 해 나왔습니다. 이제 끝날이 되면 주님이 온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독교에서는 주님이 오게 될 때에 구름 타고 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을 보게 되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승천할 때, 땅에 있는 베드로한테 천국 열쇠를 주고 갔습니다. 땅에서 잃어버렸기 때문에 땅에서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님이 구름 타고 와 가지고는 이런 것을 전부 다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신랑이니까 신랑 앞에 신부가 있어야 됩니다. 남자는 신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전도서를 보게 되면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지만,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주님이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신부를 찾는다면, 그 신부는 여자인 것입니다.
묵시록에 있는 어린양잔치라는 말은.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었다면, 완전히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부부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인데 그것이 깨졌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맞추기 위한 놀음을 하기 위해서 주님이 이 땅 위에 와서 신부를 맞아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결혼식을 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락했기 때문에, 타락한 조상, 타락한 부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에서 잃어버렸으니 묵시록에 와서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비로소, 지금까지는 종의 종교, 혹은 양자의 종교, 혹은 아들의 종교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부모를 믿고, 부모 앞에 사랑만 받으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 부모를 중심삼고 새로운 문화의 출발을 볼 것이며, 새로운 전통이 설정될 것이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인류를 다시 낳아 주는 역사를 해서 새로운 종족을 편성할 것이고, 새로운 민족, 국가, 세계를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본래 하나님이 구상하고 이상하였던 가정의 터전이 땅 위에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관념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생활을 지도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러한 가정을 이 땅 위에 이루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자 인간의 뜻이 여기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요, 우리 인류가 바라는 최후의 행복의 세계와 희망의 세계는 여기서부터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서, 하나님과 같은 창조의 능력을 같이 감미할 수 있는, 이런 최대의 권한을 소유할 수 있는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지상천국이요, 그것을 통해서 천상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세계종교가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인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갔기 때문에 오늘 저녁은 이만 끝내려고 합니다.
일기도 불순한데 이렇게 모여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는 제목은 '하나님과 사람을 위한 이상세계, 또는 통일세계' 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어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현재의 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 이 세계 그냥 그대로는 우리 인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온 인류가 평화를 바라고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있지만, 이대로 있어 가지고는 그런 세계는 올 성싶지 않은 것도 사실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하나의 세계, 혹은 이상세계라는 것은 오늘날 인류가 절박히 바라는 소망으로 되어 있습니다. 자고로 어느때든지 인간은 그러한 사상을 가지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하나의 세계와 평화는 인류가 바라는 절박한 희망임과 동시에 이것은 어차피 이루어져야 할 일인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 더더욱 이와 같은 세계를 그냥 그대로 보고 있고 싶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의 세계를 바라는 것과 같이 하나님도 하나의 세계를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가만히 보면 수많은 국가와 수많은 종족과 수많은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세계에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는 하나의 중심적인 국가가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는 어떤 국가가 그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지적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국가는 없지만 세계를 대표한 민주세계라든가 공산세계를 통하여 하나의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겠느냐 하면 이것도 현재에 있어서 이미 희망을 갖지 못할 단계에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즉, 민주 세계의 선두에 서서 지도하던 미국이 하나의 세계를 향해서 민주세계를 끌고 나가는 자리에 서지 못하고 후퇴하는 현상을 우리는 엿보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세계를 보더라도 소련과 중공이 하나되어 세계를 리드할 수 있는 입장을 향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도 역시 분립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어떠한 사상적인 체제를 갖춘 주의를 가지고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이상적인 터전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는 중심이 이 세계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세계는 없지만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는 하나의 나라가 있느냐 하면 나라도 없는 것입니다. 나라가 없으면 그럴 수 있는 어떠한 민족이라도 있느냐 하면, 우리는 어떤 민족을 '그 민족이다' 라고 지적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가정이라도 있느냐 할 때, 그 가정이 누구누구의 가정이라고 지적할 수 있는 가정도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 개인 가운데 이러이러한 사람이 있는데 이러이러한 사람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는 이상세계가 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이상세계의 하나의 모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개인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막연한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갖고 있는 이상적인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로 갈 수 있는 어떠한 모델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누구인지, 그러한 모델의 노정을 갖춘 곳이 어디인지 우리는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만두고 우리 인간 개인으로 볼 때, 우리 인간들로서 이렇게 이렇게 가야 한다는 어떠한 구상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상세계, 하나의 통일된 세계를 이루려면 절대적인 하나님이 바라시는, 개인으로부터 세계까지 나가는 패턴을 중심삼고 우리는 절대적으로 이렇게 가야 한다는 확실한 길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을 발견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하나의 세계는 모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하나의 이상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어디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완전한 개인을 표준으로 하고 출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리 인간을 두고 볼 때, 절대적인 하나님이 지은 인간이라면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는 인간이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 가지의 배치되는 방향을 지니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을 세워 가지고 그 개인을 세계적 중심을 향해서 끌고 나가야 합니다. 개개인들의 중심은 가정이 되는 것이요, 가정의 중심은 씨족이 되는 것이요, 씨족의 중심은 민족이 되는 것이요, 민족의 중심은 국가가 되는 것이요, 국가의 중심은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상세계라 하면 전세계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러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우리 개인에서부터 작전을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몸과 마음 중에서 어느 것이 중심이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마음이 중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개인을 중심삼고 몸을 마음 앞에 굴복시키는 놀음을 하시지 않고는 하나의 통일된 개인을 완성시키실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여러분의 몸과 마음은 매일같이 싸우고 있습니다. 마음이 이리로 가자고 하면 몸은 저리로 가자고 하고, 마음이 공적인 길을 가자고 하면 몸은 사적인 길을 가자고 하고, 마음이 공적인 일을 위하여 희생하려고 하면 몸은 자기를 중심삼고 사적인 입장에 서려고 하는, 서로 상반된 입장에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 인간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들을 어떻게 교육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몸뚱이를 마음 앞에 굴복시키는 교육을 하는 데는,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쳐서 마음 앞에 굴복시키는 놀음을 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 앞에 완전히 하나되게끔 몸을 제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드는 데는 종교를 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언제나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치라고 가르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몸은 낮아지기를 싫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생봉사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몸이 마음 앞에 순응할 수 있는 입장을 계속적으로 취해 나가기 위해 신앙생활, 종교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람은 왔다갔다하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볼 때, 마음이 강하고 몸이 약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나 이것이 비슷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을 강구하기를, 몸뚱이는 그냥 두더라도 마음을 몇 배 더 강하게 만들면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몸을 마음대로 지배하여 끌고 갈 수도 있고 몸이 가려는 길을 막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간섭할 수 있는 길을 트라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이고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있는 정성을 다 들이게 되면 하나님의 힘은 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개구리에게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이 그 힘만 들어오게 되면 문제없이 그 힘에 지배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하늘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정성을 들여서 하늘과 통하는 길을 갖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세상과 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리라' 하는 반대 방향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 아들딸을 데리고 자기 아내와 재미있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해 가지고 '누구보다도 하늘을 더 사랑하라.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은 내적인 문제를 중요시했습니다. 외적인 것은 희생시키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몸뚱이를 완전히 그 중심 앞에 결속시키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기에는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 하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개인이 그렇게 가정 앞에 하나되고, 가정이 종족 앞에 하나되고, 종족이 민족 앞에 하나되고, 민족이 국가 앞에 하나되고, 국가가 세계 앞에 하나되기 전에는 세계적인 이상세계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길을 모색하시는 하나님은 불가피하게 그런 교육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악이 가는 길과는 반대의 방향인 것입니다.
악이 출발할 때 어떻게 출발했느냐 하면, 사탄이 해와를 꼬여서 망하게 하고 해와는 아담을 꼬여서 망하게 해 가지고 중심 되시는 하나님을 부정했던 것입니다. 결국 중심과 멀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제삼자를 희생시켜 중심과 멀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하나님과 사탄이 우리 한몸에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나님이 접하고, 몸은 사탄의 점거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몸과 마음은 상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이렇게 마음과 몸이 상반되어 있는 것이 주체와 대상관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마음이 플러스라면 몸은 마이너스가 되어야 할 텐데 몸이 또 다른 플러스 작용을 하기 때문에 반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플러스와 플러스는 반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플러스 앞에 또 다른 플러스가 되는 것을 제거시켜야, 마이너스가 되게 해야만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치는 역사를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뚱이는 지옥의 초소요, 마음은 천국의 초소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저울대와 마찬가지여서 여러분이 몸뚱이로 가면 지옥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요, 마음으로 가면 천국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기 위한 이런 일을 시키기 때문에 기필코 몸뚱이를 쳐서 하나님과 하나되어 이겼다는 사람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자기의 마음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하나되어 승리했다는 터전이 나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세밀한 이야기는 못 하겠지만,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싸워서 이김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즉, 천사와 싸워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형님인 에서가 죽이려고 하는 자리에서 환영을 받았습니다. 천사를 이긴 야곱을 중심삼고 야곱의 식구를 하나 만드는 놀음을 한 것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종족편성을 해 나오는 것이요. 민족편성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대교를 중심삼고 안팎으로 하나되는 일을 시켜 나오는 일인 것입니다. 이래서 메시아가 오면 그 메시아를 중심삼고 한 나라가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모델형을 하나님은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사탄편이 국가를 갖고서 하나님을 반대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탄편보다 나은 국가를 갖지 않고는 중심의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와 대상 관계가 되기 때문에 사탄국가를 능가할 수 있는 하늘편 국가가 나와야만 국가적 주체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2천년 동안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하나의 중심존재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중심국가를 길러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선민사상을 가진 민족이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이 없다고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나라의 주목적은 뭐냐? 사탄세계의 어떤 국가보다도 하나님을 위해 충성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되고, 그 나라를 지배할 수 있는 중심존재를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수천년 동안 메시아를 보내기로 약속하고 거기에 대한 교육을 해 나왔습니다.
즉, 메시아가 옴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의 패턴에 맞는 나라가 성립될 수 있게 하고, 민족도 가정도 개인도 그 메시아를 중심삼고 일치될 수 있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에 이스라엘 민족이 서고 유대교가 서 가지고 오신 메시아 예수님과 하나되었더라면 오늘날 이스라엘 나라는 세계의 어떠한 나라보다도 복 받은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수많은 핍박을 받고 희생하면서 발전하여 세계적 민주세계를 이루어 놓은 것을 생각할 때, 만일 그때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맞아 가지고 받들었다면 단시일 내에 세계를 하나님의 뜻 앞에 세울 수 있었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만일 그때에 이스라엘 민족과 예수님이 하나되었다면 로마의 행정력은 마비되었을 것입니다. 빌라도가 민란이 날까 봐 무서워한 것을 보면 당시 로마의 행정력이 쇠퇴한 단계에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구요. 또 이스라엘 민족과 예수님이 하나만 되었더라면 그때 아랍권은 자동적으로 거기에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한테 축복받았던 열두 지파 전체가 하나될 수 있는 터전이 되었을 거예요.
그건 왜냐? 그들에게는 강력한 원수인 로마가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하나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졌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었으면 이스라엘이 1947년에 독립한 후로 아랍과 싸우는 이 싸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유대 사람이 왔는지 모르지만 왜 유대 민족이 2천년 동안 수난길을 갔는가 하는 것은 심상치 않은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계에 이스라엘 나라가 그 주권을 자랑할 수 있었던 때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그러하지만 아직까지 싸움의 길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볼 때, 비참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옛날에 메시아를 맞을 수 있었던 나라와 교단이 한 땅을 중심삼고 결속된 그 터전을 지금 전세계에 널려 있는 이스라엘 민족은 갖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은 어느 때나 기필코 세계적인 중심국가를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나라를 세우는 데는 무력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까 말한 중심을 세워 그 중심 앞에 상대를 희생시킴으로써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지배할 수 있는 이스라엘 나라가 생겼다 하더라도 그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를 쳐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강제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 희생하면서 개척의 노정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이 이스라엘 나라의 백성 앞에 있었다는 것을 그 시대에는 몰랐던 것입니다. 이 원칙에 일치될 수 있는 국가가 오늘날 이 세계의 종말시대에 나타나지 않고는 하나의 세계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
악은 자기가 출세하기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며 나왔습니다. 개인으로, 가정으로, 종족으로, 민족으로, 국가로, 세계에까지 남을 쳐 가지고 성공의 길을 닦아 왔습니다. 역사과정에는 가정이나 민족, 혹은 나라끼리의 싸움이 많이 있었지만 그 싸움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상대를 희생시키는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악이 가는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반대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을 쳐서 자기가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희생해 가지고 상대를 살려주는 운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뚱이를 쳐 가지고 몸뚱이는 가정을 위해, 가정은 종족을 위해, 종족은 민족을 위해 희생해 나가게끔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민주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에, 이 민주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민주세계를 지도하면서 이 세계를 살리기 위해 자기의 국민과 주권을 희생하더라도 당당코 이 길을 가겠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사상을 가진 국가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미국 국민 여러분, 미국은 지금까지 민주세계의 선도적인 책임을 지고 왔습니다. 2억에 가까운 미국 국민이 하나되어 가지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우리가 희생하더라도 끝까지 싸워 나가자고 한다면 미국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미국이 닉슨 독트린을 중심삼고 자기 나라만 중시하는 입장에 서게 된 사실을 볼 때, 만일에 하나님이 하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미국을 세웠다면, 하나님은 섭섭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의 이익을 무시하고 세계를 도와주어서 흥한 나라가 없다는 역사적 사실을 바라보고 미국이 방향을 바꾸어 되돌아간다는 것은…. 남의 나라를 원조해 줘 가지고 잘된 나라가 없으니까 자기 나라를 중심삼고 그 역사적 전통을 따라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적인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 앞에 지극히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미국이 그렇게 가게 되면 미국은 세계가 가는 역사의 방향과 갈라질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이 이 세계에서 미국을 믿고 이만큼 축복을 해줘 가지고 세계를 개척할 수 있는 나라로 선두에 세웠는데도 불구하고 이 미국이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은 이제 어느 나라를 믿어야 되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 미국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 퓨리턴(Puritan )들이 중심이 되어 규합해 가지고 세운 나라로, 2백년 동안 세계에 없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그러한 미국이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이 이 세계에서 믿을 나라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있더라도 하나님은 슬프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큰 나라를 잃어버리고 조그만 나라를 붙들었다 할 때 그 하나님의 분함은 클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앞날이 멀지 않았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현재 미국 사회에 있어서 하나님 얘기를 하게 되면 다 싫어한다구요. 여러분은 이런 말이 무섭고도 두려운 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새로이 각성하여 한 사람이라도 이런 미국 국민 앞에 새로운 핵심이 되어 가지고, 금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운동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 저 사람은 한국 사람이고 아시아 사람이니까, 미국의 원조를 받다가 원조가 끊어지니까 국가적인 감정이 있어서 저런 얘기를 하겠지' 할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한국 정부로부터 반대를 받아 온 사람이요, 한국 교회로부터 반대를 받아 온 사람입니다. 바른말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작전이라는 것은 사탄의 작전과는 다르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작전은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시켜 가지고 남을 구하는 거예요. 자기편을 사랑하기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남을 살려주기 위해서 자기편을 희생시키는 거라구요. 이것이 원칙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냈을 때도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과 합해서 세계 앞에 희생하여 세계를 구하는 운동을 해야 했는데. 이스라엘 민족의 사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상치(相馳)되었다구요. 그 대를 이은 기독교도 기독교 자체를 희생시켜 가지고 세계를 구하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계적인 기독교권을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 왔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가 단합해 가지고, 교파가 단합해 가지고 세계를 하나님의 뜻 앞에 세우기 위해 죽음길을 각오하고 나설 수 있는 기독교가 되면 기독교는 망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기독교는 언제나 희생의 핏자국을 밟은 그 곳에서 부흥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교권의식을 가지고 나라의 권위자들과 권력 다툼을 하고, 자기들의 권위의식을 가지고 대접받기를 원하는 그러한 사상, 그러한 지도자들 가지고는 앞으로 기독교의 갈 길은 막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최고의 종교 지도자가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 교단을 이끌고 죽음길을 찾아갈 수 있는 운동을 한다면 기독교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종을 희생시키고, 가정을 희생시키고, 민족을 희생시키고, 나중에는 아들까지 희생시키면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거기에 사탄이 굴복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 반대라는 거예요. 남을 희생시키고 자기 개인이 출세하려고 합니다.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세계적으로 지금까지 그렇게 나왔습니다.
마음을 중심삼은 운동을 하나님께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러한 운동이 세계적으로 열매맺히는 시대와, 또 몸을 중심삼고 사탄이 출발했기 때문에 이것이 열매맺히는 시대가 반드시 이 땅 위에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심었고, 사탄도 우리에게 심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류의 수확시기를 끝날이라고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물질을 위한 세계와 마음, 즉 하나님을 위한 세계, 두 세계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아, 저 사람은 정치강연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사실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물질을 위주하고, 몸뚱이를 위주하게 되면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마음은 처음부터 그걸 반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편, 마음을 중심삼은 세계는 외적 세계를 부정해야 된다구요. 지금까지의 종교생활이 전부 다 그렇게 해 나왔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보게 되면 기독교 목사들 가운데는 '아, 유물주의도, 공산주의도 좋다'고 하는 목사가 있습니다.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니라며 다 섞어 버렸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물질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절대 부정한다는 거예요. 종교는 아편이라고 한다는 거예요.
성경에 말하기를, 끝날에는 면양과 산양으로 갈라진다고 했습니다. 면양은 주인이 있는 것이요. 산양은 주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민주세계의 기독교에 있어서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 있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믿습니까? 오늘날 교회를 책임진 목사들 이나, 혹은 신부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48퍼센트에서 53퍼센트에 불과하다는 통계를 내가 본 적이 있습니다. 문제가 크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공산세계도 그래요. 중공과 소련이 갈라지는 것은 세계를 하나 만들고자 하는 것보다도 슬라브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적 공산권의 헤게모니(hegemony)를 안 놓겠다고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계를 위해 가지고 자기 민족을 초월할 수 있는 국민사상이나 개인사상이 설정되지 않은 곳에서는 하나의 세계를 바라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세계를 향해 가는 데에 있어서 최후의 장벽이 무엇이냐? 나라! 나라인 것입니다. 미국도 자기 나라를 생각하다가 세계를 못 넘어갔다는 거예요. 공산세계도 못 넘어가고 있다는 거예요.
이제 이것을 넘어갈 수 있는 하나의 사상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냐? 자기 민족과 자기 주권을 합해 가지고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본위로 알고 세계를 구하기 위한 운동, 그런 움직임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하나의 움직임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악은, 사탄세계는 '내 것도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고, 네 나라도 내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내 것은 그 나라의 것이고, 그 나라의 것은 세계의 것이고,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은 내 것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의 세계로 연결될 것이 아닙니까? 개인에서부터 국가 세계 천주까지 연결될 수 있는 길이 아니면 통일이 있을 수 없다구요.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어 보자구요. 역사는 심어진 대로 거두어진다는 거예요. 세계로 보게 되면 민주세계권과 공산세계권이 있고, 종교권으로 보게 되면 기독교권, 아람권, 그 다음엔 중간권이 있습니다. 크게 보면 그렇게 분류된다구요. 그것이 왜 그래야 되느냐? 심은 대로 거두어지는 결과가 나와야 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탄이 세계적으로 크게 싸워 가지고 심은 것이 어느 때냐 하면 예수 때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간 그 자리는 이 인류 세계에 하나님과 사탄이 심은 자리라구요. 그것이 수확기, 즉 끝날이 되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나타나야 된다구요.
예수 한 분을 중심삼고 볼 때, 패가 네 패입니다. 예수가 있었고, 오른편 강도가 있었고, 왼편 강도가 있었고, 바라바가 있었습니다. 이들 사권 (四圈)이 죽고 사는 문제를 중심삼고 관계된 사람들입니다. 여기에서 육적으로 부활한 것은 바라바요. 영적으로 부활한 것은 예수입니다.
그 다음은 오른편 강도하고 왼편 강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는 예수님을 놓고 싸웠습니다. 왼편 강도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우리를 내려 구해다오. 하나님이 어디 있어' 하며 참소했다구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거예요. 그렇지만 오른편 강도는 '야, 이놈아! 우리는 이렇게 죽어 마땅하지만 이분은 죽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변호하고 나섰습니다. 그렇게 둘이 싸웠다는 것입니다. 또, 바라바는 죽을 수밖에 없는 괴수인데 예수님 때문에 살아났으니 예수님편이 되어 가지고 예수님을 지지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딴청을 하던 사람이라구요. 예수님을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끝날이 되면 이것이 거두어져…. 예수님이 다시 오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세계적으로 나타날 때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세계는 면양과 산양이 갈라져 가지고 좌우가 부딪치고 싸우고 있습니다. 공산당을 좌익이라고 하는데 그 좌익이라는 말은 언제 나온 말이냐? 지금 나온 말이 아니라구요. 예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때 왼편 강도에서부터 시작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은 '신이 어디 있어?' 하며 신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세계는 그러지 않는다구요. 오른편 강도는 신을 옹호하고 예수님을 옹호했습니다. 그것이 우익이 되었다구요, 우익.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럼 바라바는 뭐냐? 바라바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혜택을 받아 살아난 사람인데도 예수님을 반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종교집단이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회회교입니다. 회회교는 코란경과 칼을 가지고 전하는 종교입니다. 본래의 순수한 종교와 반대라는 것입니다.
외적인 면에서도 공산세계가 있는가 하면 내적인 면에서도 그런 종교 형태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되려고 할 때가 되거든 끝날인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거기에 반해서 민주세계와 기독교가 하나되어야 할 텐데 이것이 긴가민가하다는 거예요. 불확실하다는 거예요. 그것보다 더 강한 주체성을 가져야 할 텐데 주체성을 잃어버리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는 '끝날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세계를 정복하고 우리의 뜻은 기필코 없어지지 않고 이루어진다'고 주장할 수 있는 기둥이 있고 대표자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민주세계와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 끝날에 있어서 미래의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교회요, 그런 민주세계라고 주장할 수 있는 대표자가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1965년도에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을 만나 가지고 앞으로 민주세계가 공산세계를 이기더라도 공산세계가 모슬렘과 손을 잡고 나올 때가 있다는 것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소련이 인도를 중심삼고 이집트라든가 회회교권과 손잡고 남방작전을 해 나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미국이 후퇴하는 자리를 차지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사탄편, 악한 편은 그렇게 하나되어 가지고 민주세계를 삼키려고 하고 있는데, 민주세계는 뭐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하고 있다는 거예요.
자,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은 미국의 사명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짐작하시리라고 봅니다. 이 거대한 민주세계의 맨 선봉에 섰던 미국이 1700만 밖에 안 되는 인구를 가진 조그만 나라(월남전쟁)에 전력을 투입했다가 후퇴하게 될 때에, 하나님이 보시고 잘 한다고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아들딸이 있으면 말이지요. 돈 있고 능력 있고 힘 있는 아들딸이 종 중에서도 제일 못난 종한테 가서 싸우다가 쫓겨 가지고 집에 와서 그걸 보고하게 될 때 어떻게 하겠어요? 그 부모는 '에이, 이놈의 자식아' 하면서 차 버린다는 거라구요. 이런 말을 하는 나를 전쟁 선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악은 자기가 우세할 때는 언제나 공격합니다. 공격해요. 여러분, 한국동란이 끝난 1953년 후의 20년 동안 김일성을 보라구요. 평화? 어림도 없다구요. 뱀은 혓바닥이 둘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그러면 순진한 미국 국민에게 준 하나님의 특권적인 권위를 이제 어디에 가서 찾을 것이냐? 하나님의 위신과 권위를 위주로 해서 악한 세력을 막아내는 방파제를 삼으려 하던 기반을 어디에 가서 찾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남이 모르는 이 길을 가는 저로서는 분통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내가 대한민국의 사람이요 아시아의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이나 아시아에서는 한 번도 공석에 서 보지 못했는데, 왜 미국 땅에 와서 처음으로 단상에 나서는 이 놀음을 하느냐는 거예요. 1977년부터 1978년까지는 미국이 공산세계의 위협을 받는 절정시대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공산세계가 창립된 지 60주년이 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국가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지금 한국이 세계 제일 위기의 초점에 놓여 있습니다. 한 국가를 두고 볼 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결할 수 있는 제일 위험한 때입니다. 금년 4월 15일이 김일성이가 만 60세를 넘어가는 날입니다.
국가적으로 그런 거와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미국을 중심삼고 볼 때 그런 시대가 되는, 공산세계가 60년이 되는 1977년과 1978년이 위기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것을 아는 한 그냥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미국에 있어서 새로이 이런 운동을 제시하기 위해서 기동대, 부흥단을 만들어 전미국으로 출발시키기 위한 시작에서 여러분을 이렇게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지금까지 권위를 자랑하던 미국교회가 환영보다는 반대를 많이 할 줄 알고 있습니다. 또, 정부에서도 관심을 갖기보다는 도리어 비판하는 입장에서 볼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안 하면 안 되는 역사적인 사정이 있기 때문에, 현재에 환영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운동을 해서 이런 사실을 역사에 남겨야 할 것이 무엇보다도 우리가 해야 할 시급한 일이기 때문에 이 운동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장하는 주의는 뭐냐? 개개인이 민족을 초월할 수 있는 하나의 사상을 가지고, 자기 교회의 발전만을 위해서 일하는 무리가 되지 말고 그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는 무리가 되자는 주제를 가지고 나선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과 세계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런 운동이 거국적으로 미국에서 벌어지면 미국은 망하지 않습니다. 이 미국이 망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은 그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입니다. 국가 이상을 넘어 세계를 사랑하기 위하여 국가와 국민이 희생할 수 있는 주의 사상을 찾아 나가지 않으면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하나의 이상세계, 통일세계는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에도 이와 같이 참석해 준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녁으로써 이 볼티모어에서의 강연을 끝내고 떠나게 된 것을 섭섭히 생각하면서, 여기 참석한 여러분들과 이 볼티모어 전체 위에 하늘의 축복과 가호가 있기를 비는 마음 간절합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새로운 메시아와 공식적 섭리'입니다.
지난번 강연회 때 우리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종교가 필요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종교가 필요 없으면 우리에게 메시아, 즉 우리를 구해 줄 사람이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도 생활이니 하는 그런 어려운 신앙 생활도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가느니, 지옥을 두려워하여 가지 않겠다느니 하는 생각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새로운 메시아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직까지 타락한 사탄권내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 가지고 죄인들을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지은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원수요, 인륜의 원수가 되는 사탄 마귀를 용서하라는 말은 아님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탄권내에 있는 사람을 빼내려면 한 번 두 번 용서해서 안되니 몇 십 번을 용서해서 빼내야 할 책임이 있는 입장에서 그렇게 말씀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사탄 마귀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수천년 동안 원수시하면서 용서해 주지 못하시느냐?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끝날에 심판이니 무엇이니 하는 말도 새로운 메시아가 올 때 사람들을 멸망시킨다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공동적인 적, 사탄을 퇴치시키고 영영 제거시켜 버리기 인해서 끝날 심판이 있다고 봐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사탄 마귀가 잘못했으면 왜 처단을 못 하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탄이 어디서 생겨났느냐 하는 것이 또 문제되는 것입니다. 요전에 어떤 유명한 목사를 만났는데, 그 목사가 사탄은 하나님과 같이 본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깜짝 놀랐습니다. 역사시대에서 하나님을 6천년 동안 골탕먹이던 그 사탄한테 이길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탄이 본래부터 있다고 하게 되면 이원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탄은 어떠한 횡적 경로로 침범해 들어왔다고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횡적으로 들어왔으면 무슨 죄를 지었는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 가지고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고소할 수 있는 입장에 서면 사탄을 처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인 강도라도 그 죄의 진상을 아는 사람이 없게 될 때는 어디 가서든지 자기의 권리행사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그마한 사람이라도, 그가 언제 어느 때에 어떻게 했다는 것을 확실히 보고 아는 사람이 있게 될 때에는 그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천국 가는 길을 사탄이 막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을 굴복시키지 못하고는 천국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탄 마귀는 하나님한테 도대체 무슨 원수냐 하는 것을 이제부터 성경을 통해서 좀 알아봅시다.
첫날에 본연의 사람이 어떻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 되고, 하나님과 한 몸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이 갖고 있는 창조적인 능력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본연의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리고 이 모든 것을 파탄시킨 괴수가 누구냐 하면 사탄 마귀인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 요한복음 12장 31절을 보게 되면 '이 세상의 임금은 사탄 마귀'라고 했습니다. 사탄 마귀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요 하나님이 이상했던 세계에서 왕이 되었느냐 이겁니다. 이 세계는 사탄 마귀가 주관하는 악주권의 세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뭐냐 하면 우리는 원죄를 갖고 있습니다, 원죄. 아담 해와가 무슨 죄를 지었기 때문에 몇 천 년 전에 그 할아버지가 지은 죄 때문에 오늘날 우리까지도 메시아를 필요로 하는 죄악권내에 떨어졌느냐? 그 원인이 무엇이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은 혈통적으로 상속되어 내려오는 것임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탈피하기 전에는,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제거시키기 전에는 이 땅 위에 천국이라든가 천상에 천국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즉 말하자면 사탄을 추방하든지 내게서 죄악의 뿌리를 빼 버리든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 요한계시록 12장 9절을 보게 되면 '하늘에서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큰 용이 즉 뱀이요, 뱀이 즉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탄이자 뱀이요, 뱀이자 사탄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탄 마귀의 거처가 어디냐? 그는 하늘에서 내쫓겼다고 했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뱀은 오늘날 땅 위에 기어다니는 뱀이 아닌 것입니다. 그 뱀은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말하는 것을 다 알아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말한 것을 알았던 것을 볼 때, 그것은 누구보다도 가까운 데 있는 존재인데, 그 존재가 무엇이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것은 천사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천사가 실수하지 않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성경 유다서 1장 6절 내치 7절을 보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천사가 간음을 했다고 하는 내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간음을 하려면, 사랑을 하려면 혼자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상대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인 것입니다.
이런 관계를 염두에 두고 아담 해와의 타락한 사건을 생각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는 아담 해와가 사탄한테 꾐을 받아 가지고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했습니다. 따먹는 데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따고 입으로 먹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눈을 가리고 손을 가리고 입을 막아야 할텐데 난데없는 하체를 가렸습니다. 이래 가지고 해와가 타락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담 대해서 선악과를 강제로 따먹으라고 했습니다. 손으로 따고 입으로 먹었을 텐데 따먹고 난 후에 아담도 하체를 가렸습니다.
사람은 흠이 있는 곳을 가리는 것이 본성인 것입니다. 남자가 얼굴에 흠이 있으면 어떻게 하든지 가리고 싶어합니다. 더욱이나 여자들은 조금만 흠이 있으면 그걸 가리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은 흠이 있는 곳을 가리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하체를 가렸다는 것은 그 하체가 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욥기 31장 33절을 보면 '내가 언제 아담처럼 내 죄악을 품에 숨겨 허물을 가리었던가'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결국은 부끄러운 곳을 가리었다고 했습니다.
자, 그러면 인류 조상이 불법적인 불륜의 정조관계로 말미암아 저지른 사건이 있는 것 같다는 관점에서 성경을 또 찾아 봅시다. 요한복음 8장44절을 보면, 예수님이 불신한 사람들을 대해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단적으로 결론지어 말했습니다. 지적해서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 불신하는 바리새인을 대해서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지적해서 선포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타락한 우리 인류는 혈통적인 관계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우리 인간은 완성해 가지고 성전(聖殿)이 되고 하나님의 몸이 되어 하나님의 신성(神聖)을 받을 수 있는 거룩한 몸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 몸에 사탄이 침범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종이 되어 악성(惡性)을 받은 인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몸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하나되어 가정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아들딸이 태어났으면 그 아들딸은 하나님의 아들딸이자 아담 해와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는 가정이 되고, 종족이 되고, 민족이 되고, 세계가 되고…. 이렇게 되면 지상에 자동적으로 천국이 이루어질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탄 마귀가 들어와 혈통적으로 유린함으로써 아담 해와와 하나되어 가지고 후손을 번식한 것이 타락이요, 그 후손이 세계적으로 번식해 놓은 것이 지금까지의 인류인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우리 인류는 하나님과 같이 살 수 있는 참된 부모를 중심삼고 참된 가정이 에덴에서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이루어졌을 것인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거짓된 부모와 거짓된 아들딸이 생겼습니다. 참된 세계 대신 악한 세계가 된 것은 우리 인류의 원통한 일이요, 하나님에게도 원통한 일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핏줄을 타고 들어왔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번식해 나갔습니다. 사탄 마귀가 인류의 중심이 되니 이 세상의 왕이 안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게 됨과 동시에 우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탄 마귀의 핏줄을 받고 태어났습니다. 혈통적으로 원죄를 갖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땅에 와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반대예요, 반대. 예수님과 니고데모가 만나서 얘기한 말 가운데서도 '너희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 고 했습니다. 잘못 났다구요. 잘못 태어났다구요. 난 것을 부정해야 된다구요. 부정해 가지고 긍정받을 수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낳는 것마다 전부 다 사탄의 새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몸뚱이가, 하나님의 혈통을 받고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몸이 하나님의 원수요 본연의 인간 앞에 원수되는 사탄 마귀의 피를 받아 가지고 지옥으로 끌려가야 할 원통한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평화로운 천국에서 이상적으로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가정을 사탄이 채어 덮쳐 가지고 불행과 지옥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쫓겨났다는 거예요.
사랑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사랑의 관계를 맺게 되면 온 우주가 그 앞에 주관을 받게끔 되어 있습니다. 창조원칙이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먼저 점령한 것을 하나님이 그 원칙을 무시하고 그냥 빼앗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어 있다면 누가 끊어요, 누가 끊어? 끊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 마귀는 무엇이냐? 결론을 내립시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의 원수입니다, 사랑의 원수. 즉, 간부(姦夫)라는 거예요, 간부. 이걸 용서했다가는 천지가 뒤집어지기 때문에, 본연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걸 심판하지 않고는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륜한 사랑관계를 하나님이 제일 원수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팽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륜한 사랑관계는 아담 해와가 철모르는 10대에 타락해 가지고 심어졌습니다. 그렇게 심어진 결과는 반드시 열매로서 세계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어 있는 청소년 문제가 바로 그것이란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조상이 자기 멋대로 틴에이저(teenager)시대에 불륜한 사랑의 관계를 맺었으니, 이것이 세계적인 풍조로 열매맺힐 때가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의 10대 청소년의 윤리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청산하고 새로운 사랑의 질서를 세우지 못하면 이 세계는 망하는 것입니다.
지금 뭐 트위스트니 하는 춤을 추는 것을 보면 전부 다…. 트위스트는 꼰다는 얘기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에덴 동산에서 타락할 때 뱀이…. 이 풍조가 10대 청소년들을 전부 다 잡아먹고 있습니다, 잡아먹고 있어요. 그래 가지고 몸뚱이를 사랑하고 몸뚱이를 자랑하고 이 놀음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사탄의 함정에 빠져 가지고 야단하고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춤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미국 국민 여러분은 유복하게 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유복하게. 먹고 입는 것에 대해서 문제시하지 않습니다. 사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부 다 병이 어디서 나느냐 하면 사랑 문제 때문에 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전부 다 사랑의 주인공은 자기인 줄 알고 있다는 거예요, 자기. 사랑의 주인은 남자도 아니요 여자도 아닙니다. 사랑의 주인은 하나님이예요, 하나님. 최대의 것이라구요. 최대의 것이요, 최고의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 있을 때 생겨나도, 혼자 있을 때? 사랑은 상대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의 근거지가 어디냐 하면, 내가 아니고 상대방이라는 걸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고귀한 사랑이 나한테 미쳐지기 위해서는, 그것을 받으려면 머리를 숙여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사랑은 전부 다 그릇된 사랑입니다. 이러한 혈통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6천년 동안 수고해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로마서 8장을 보게 되면 '아무리 잘 믿는 성령의 열매인 우리까지도 아바 아버지라 불러 양자 되기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양자 되겠다고 했어요, 양자. 하나님 앞에는 직계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양자라는 것은 핏줄이 다른 거예요. 핏줄이 다르다구요. 성경을 보면 그렇게 돼 있다구요.
성경을 보게 되면 장자는 축복받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하나님이 사탄 마귀 새끼가 처음 난 걸 보았을 때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때려 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담 해와도 한꺼번에 다 때려 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지을 때에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상대로 지었기 때문에, 깨뜨려 버리면 하나님의 창조원칙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창조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때릴래야 때릴 수 없고, 칠래야 칠 수 없고, 파괴시킬래야 파괴시킬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인간을 다 죽여 버리고, 다 쓸어 버리고 다시 짓는다면…. 누구 때문에 실패했느냐 하면 사탄 마귀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빼앗아 와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세밀히 얘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빼앗는 데는, 사탄 마귀가 전부 다 가졌기 때문에 사탄이 앞에서 끌고 가면 하나님은 뒤에서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아들을 사탄이 끌고 간다면 하나님은 다음 아들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찾아오는 계획을 누구부터 해야 되느냐 하면 첫째 아들이 떨어져 나가면 둘째 아들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찾아온 아들이 가인보다 못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천사가 아담을 주관했습니다. 종이 아들딸을 지배했으니 반대로 하늘 편의 사람이 종 새끼들을 거꾸로 지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3절을 보게 되면 '너희가 천사를 심판할 줄 알지 못하느냐' 하는 말이 있습니다. 천사까지도 심판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엄청나고 이렇게 고귀한 인간인데, 오늘날 인간들이 말하기를 미인이라든가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아! 그거! 천사같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천사가 비할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탄보다도 나아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본래 주관해야 할 것은 사탄보다도 나중 났다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사탄보다도 먼저 났다는 사람을 주관해야 된다구요. 나기는 사탄편이 먼저 났지만 하늘편이 먼저 낳아 가지고 사랑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왼쪽에 있어야 할 사탄 마귀가 바른쪽으로 가고, 바른쪽에 있어야 할 하나님이 왼쪽으로 왔다는 거예요. 이걸 거꾸로 바로잡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잡는 데는 나중 낳아 가지고는 안 되겠으니 먼저 났다고 하는 자리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탄 마귀보다도 더 사랑해야 된다는 거예요. 사탄 마귀편의 아들보다도 하늘편의 아들을 더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려면 사탄과 혈통적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어머니 뱃속에 다시 집어넣어 가지고 아들이 나오게 될 때, 사탄이 참소조건을 갖지 않고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을 찾기 위한 운동을 한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아들딸이 나왔습니다. 먼저 낳은 아들이 가인이요. 나중 낳은 아들이 아벨인 것입니다. 제물을 드리는 데 있어서 아벨을 하나님이 사랑했습니다. 그건 하나님편에 있으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구요. 그러니 가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아벨을 통해 가지고 들어와야 됩니다. 사탄이 아담의 자리를 거꾸로 뒤집었기 때문에 그것을 거꾸로 바로잡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동생을 세워 가지고 형님을 주관하게 하자는 거예요. 이 놀음을 한 거라구요. 여기서 바꿔치려고 했던 것인데, 아벨이 맞아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이걸 바꿔치려니, 동생이 먼저 난 입장에 세워 가지고 사탄의 참소조건을 벗어날 수 있는 자리를 다시 찾으려니 형제를 낳아 가지고 찾는 것보다도, 쌍태를 통해서, 같은 감각과 같은 사정에 처해 있는 쌍태를 통해서, 찾으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와 야곱 대에 그 일을 하고자 한 것입니다. 동생과 형의 감각이, 쌍동이는 같다는 거예요. 슬픔을 느끼면 슬픔을 느끼고….
그래서 에서의 장자 기업을 야곱이 빼앗은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21년 동안…. 장자의 기업을 산 야곱을, 아벨을 죽였던 가인과 같이 에서가 죽이지 않고 환영함으로 말미암아 같은 축복의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야곱이 하늘편에서 장자의 기업을 이어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야곱과 에서는 커 가지고 그 놀음을 했습니다. 커 가지고 자랄 때까지는 사탄이 주관하는 권내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시 복중까지 끌고 들어가서 근본을 뒤집어 놓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의 며느리 다말을 통해서 이 놀음을 다시 하신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 때도 복중에서 둘이 싸울 때 리브가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니까 '네 복중에는 두 나라가 있음이요, 그 중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하셨었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다말도 쌍태를 배었습니다.
그래서 다말이 아기를 낳는데 장자가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건 여러분이 창세기 38장을 보면 알 겁니다 거기에서 산파가 있다가 그 손에다가 빨간 실을 매 주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형을 밀치고 먼저 나오게 되었습니다. 바꿔쳐 가지고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밀치고 나왔다고 해서, 세라가 나오려고 하는 걸 밀치고 나왔다고 해서 베레스라고 하는 것입니다. 비로소 베레스가 복중에서 동생으로 첫째 아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붉은 실을 맨 것은 끝날에 좌익이 나올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역사 이래 비로소 베레스라는 사람이 복중에서부터 차자가 아닌 맏아들로 태어난 것입니다. 복중에서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물리치고 나왔기 때문에 비로소 사탄의 참소조건을 벗어나 가지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말의 복중을 통해 승리한 베레스를 중심삼고 유다 지파의 전통이 형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다 지파를 통해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을 이어받아 가지고 2천년 동안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해서 메시아를 보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사탄세계는 나라가 있으니 사탄세계의 나라보다도 더 훌륭한 나라를 이루지 않으면 하늘의 권위가 안 서기 때문에 나라를 표준해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번식시켜 나왔던 것입니다.
다말이라는 여자는 그 시대로 보게 된다면 당장에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여자인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내용은 여러분이 성경을 보면 아니까 그냥 넘어가자구요.
그와 마찬가지로 마리아 역시 그랬습니다. 예수 시대에 와 가지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봅시다.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자기의 위신이고 체면이고, 죽고 사는 문제를 초월한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약혼 단계에 있을 때 사탄이 해와를 빼앗아 갔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도 정혼한 때에 하나님이 마리아를 취한 것입니다. 깊은 내용까지 얘기하면 상당히 복잡하고, 부정할 수 없는 내용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시간 관계상 이렇게 넘어가자구요.
그때 처녀가 애기를 밴다는 것은 당장에 모가지가 달아나는 일이라구요. 마리아는 유다 지파를 통해서 맑히어진 다말과 베레스의 신앙적 혈통을 상속받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자리에 서 가지고 그 시대에, 누구로부터도 용납받지 못하는 일이라도 뜻을 위해서는 일신을 내놓음으로 말미암아 예수가 잉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혈통적으로 바꿔진 전통적 인연을 통해 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잉태되었기 때문에, 복중에 있더라도 사탄은 복중에 있는 예수에 대해서 '내 아들'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아들로서, 하나님과 혈통관계를 맺어 가지고 태어난 분은 역사상에 비로소 한 사람 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에 수많은 종교 지도자가 있지만 이와 같은 역사적 전통을 통해 가지고 혈통적으로 맑히고 온 사람은 예수님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에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왔기 때문에 예수는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요, 죄악된 이 땅 위에, 양자들만이 사는 이 땅위에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 태어난 것입니다. 그때의 이스라엘 민족은 뭐냐? 양자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돌감람나무, 돌감람나무 밭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가 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참감람나무가 와 가지고 돌감람나무를 한꺼번에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에 접붙여 가지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메시아를 보낸 목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가 이 땅 위에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중심삼고 하늘이 준비한 터전을 바라고 왔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과 유대교인들이 받들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를 모셨더라면, 예수를 중심삼아 가지고, 수많은 세계 국가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나라를 차지하고, 하나의 새로운 유대교와 기독교가 합한 하나님의 종교를 중심삼고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길이 출발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이 땅 위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주권 국가는 지금도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 주권국가를 중심삼고, 예수님이 죽지 않았더라면 예수 자신이 남자니만큼 가정을 갖고 싶었을 것이고, 아들딸을 갖고 싶었을 것이고, 제사장이 되고, 그 다음에는 왕이 되었다면 자기 혼자이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가정을 중심삼고 그 나라와 교회가 모실 수 있는, 하나님이 직접 지도할 수 있는 나라가 생겨났을 것입니다.
돌아갔기 때문에 그 나라와 그 땅은 없어졌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죽지 않았으면 예수님의 후손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로마 가톨릭은 교황 바오로가 통치하는 그런 교단이 아니고 예수님의 직계 후손이 지도하는 교단이 됐을 거라구요. 지금처럼 바오로 6세가 교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직계 자녀가 지도하는 교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400개나 되는 교파는 하나도 생겨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지금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적으로 어떠한 민족보다 축복받은 민족이 되었을 거라구요. 예수가 죽어감으로 말미암아 땅의 터전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오늘날 전세계에 기독교인이 있지만 그런 나라의 터전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는 영적인 세계만 바라보고 나오고 있습니다. 몸은 사탄이 침범했기 때문에 사탄에게 내주고 영적으로 부활해 가지고 영적인 나라를 희망하고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주님이 구름 타고 올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구름 타고 와 가지고 예수님 시대에 잃어버린 이스라엘 나라를 찾을 수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이제 합해서 해야 할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단합해 가지고 오시는 주님을 맞기 전에 잃어버렸던 이스라엘 나라의 터전을 회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명을 책임지고 나온 교단이 없습니다. 지금 유대 사람들이 독립했다고 해서 그 나라에서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을 것이라고는 믿고 있지 않습니다.
그 나라를 다시 찾아 세우는 데는 그냥 그대로 찾아 세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탄세계에서 나오던 공식적 법도를 다시 되찾아가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일을 누가 해야 되느냐 하면 기독교인들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양자권 국가 형태를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제 1이스라엘 때에 실패했던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위신을 세울 수 있고, 오시는 주님의 위신을 세우고 사탄 앞에 나설 수 있지, 사탄에게 빼앗겨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역시 그 원칙을 찾아 나가는 데는 그냥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맹목적으로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사탄한테 끌려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몸뚱이를 잃어버렸어요, 몸뚱이를 잃어버렸고 그 다음에는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세가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떨어진 아담보다도 해와보다도 천사장보다도 낫지 않고는 못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기에서 사탄세계에 있는 사람을 불러내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 아벨을 통해 정성들여 제물을 바치게 해서 사탄세계에서 갈라내기 위한 역사를 했습니다. 아벨은 죽더라도 하나님을 붙들고 죽었습니다. 절대 믿고, 사탄세계에서 분립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희생하는 자리에 들어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아벨은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아벨 대신 셋을 세웠습니다. 셋의 후손 가운데서 노아가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노아한테 120년 후에 홍수심판을 할 것이니 배를 지으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그리고 배를 강가에 지으라고 하지 않고 몇 천 미터나 되는 높은 아라랏산 꼭대기에다 지으라고 했습니다. 믿지 못한 선조를 가져서 망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믿는 신앙자를 하나님은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세계에서 뛰쳐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와 격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과 관계가 없으니 비로소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 할아버지한테 믿지 못할 명령을 한 것은 모든 사람이 반대하라는 거예요. 세상이 다 들어 반대하더라도 믿고 나가니까 너는 전체보다 낫다는 자리에 세우겠다는 거라구요, 전체보다 나은 자리에, 반대할수록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들! 120년 동안 노아 할아버지의 치다꺼리를 한 부인이라든가 아들딸을 한번 생각해 보시라구요. 성경을 보게 되면 노아의 부인과 아들딸은 참 좋았겠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진짜 좋았겠느냐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자, 여러분! 노아 할아버지의 부인이 되고 아들딸이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120년 동안 그저 밥먹고 그 놀음을 하는 아버지, 혹은 남편을 가졌다면, 120년 동안 그 치다꺼리를 할 사람 있어요? 10년도 못 가는 거예요. 10년도 못 가는 거라구요. 그건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번만 반대해도 틀어져 나가는 거라구요. 그런 입장에 선 노아 할아버지가 자기의 피살을 나눈, 같이 가고 같이 따라가야 할 가족들이 반대했다면,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여러분, 40일 심판 후에 노아가 발가벗고 누워 있을 때에 함이 형제들을 충동해 가지고 뒷걸음으로 들어가서 옷을 덮어 준 것이 화근이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노아는 함에게 '너는 종의 종이 되어 형제를 섬기리라'고 했습니다. 그걸 보면, 120년 동안 수고해서 심판 때에 구원받은 아버지를 보고 그 아버지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믿어야 하는데 아버지가 안됐다고 그런 행동을 한 것을 보면, 배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 얼마나 반대했는가를 우리는 예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을 봐도 그래요. 우상 장사 데라의 아들을 빼앗아온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할 때, 아브라함이 '나는 싫소' 하면 다 틀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믿고, 자기 형제 친척들이 막고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이것을 끌고 가겠다는 스스로의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집을 나왔습니다. 국경을 넘어. 앞으로 갈 길에 보장도 받지 않은 입장에서 국경을 넘고 넘는 집시의 무리가 된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믿고 사탄세계는 다시 들어가지 않고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어 '너의 후손은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이 번창하리라'는 사랑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모세를 봐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뜻을 위해서는 호화찬란한 바로 궁중의 40년 생활을 집어 던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미디안 광야 40년 생활에 있어서 어려움이 부딪쳐 오더라도 어느 한때 하나님을 배반하는 놀음을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세례 요한을 봐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믿고 사탄세계에서 뛰쳐나온 거예요. 광야 생활을 하며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는 성경을 보게 된다면 그가 잘산 줄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렇지가 않다구요. 석청이 많아서 매일같이 먹을 것도 못 되었을 것이요. 메뚜기가 매일같이 먹기에 충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가 고프면 거리거리에 가서 얻어먹기가 일쑤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의 생활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 가운데서 세상에 미련을 갖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 말씀을 절대 믿고, 하늘편에 서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 희망을 가지고 30여 년의 생애를 싸워 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메시아를 생전에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증거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됐던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기 때문에 메시아가 동으로 가면 동으로 가고, 서로 가면 서로 가고, 언제든지 메시아와 생사를 같이하고 행동을 같이해야 할 것이 세례 요한의 사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신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 편에서 죽더라도 예수와 더불어 죽고, 예수의 말씀을 절대 믿고, 예수와 더불어 같이 있고, 예수의 사랑을 절대 받았더라면 세례 요한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을 보게 되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은 궁전에 있느니라'고 이렇게 빙자해 가지고 세례 요한에 대해 예수님이 책망 비슷하게 얘기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고 말했습니다. 즉, 반대라구요. 반대, 반대로 말했다구요. 여인이 낳은 아이가 이 세상에서 크면 영계에 가서도 클 터인데 왜 지극히 작은 자도 저보다 크다고 했는가.
모든 선지자의 소망은 메시아 한 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은 미래에 올 메시아를 보지 않고 예언을 통해 증거했지만, 세례 요한만은 눈으로 직접 보고 증거했던 것입니다. 증거했으면 생사를 같이하고 따라야 되는 거라구요. 세례나 주며 돌아다니는 것이 세례 요한의 사명이 아니라는 거예요.
성경을 보게 되면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선생님이 큽니까, 당신이 세례를 준 그 사람이 큽니까? 라고 했을 때, '나는 쇠하여야 되고, 그는 흥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아! 세례 요한이 훌륭해서 그렇게 말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절대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구요. 따랐으면 예수가 흥하면 자기도 흥해야지, 왜 쇠하느냐 이거예요.
성경에서는 '모든 선지자와 율법의 예언한 것이 세례 요한까지니, 세례 요한 때부터 천국은 힘씀으로 얻나니 힘쓰는 자가 빼앗는다'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따랐으면, 베드로 같은 무식장이가 수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틀림없이 세례 요한이 수제자가 되고 그 제자들이 예수의 제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은 힘쓰는 베드로한테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례 요한과 예수의 관계는 이종사촌간입니다. 예수는 자기의 동생이라구요. 그래서 사생아라는 소문을 다 듣고 있었다는 거예요. 복잡한 내용, 성경에 없는 복잡한 내용을 빤하게 다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가 메시아가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 세례 요한이 옥에서 제자들을 보내 예수님에게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딴 사람을 기다리오리까? 할 때,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벌써 세례 요한이 범죄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모셨으면 그는 영계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영계에 가 있는 지극히 작은 사람도 땅 위에 있는 예수를 메시아로 모시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정작 모셔야 할 세례 요한이 못 모시니 영계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이런 것을 절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미지의 사실들이 성경에 얼마든지 있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타락한 우리 인간들이 가는 데 있어서 공식이 무엇이냐 하면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믿는 것입니다. 믿는 것이 아담보다도 해와보다도 천사보다도 나아야 됩니다. 낫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뭐냐 하면 생활이 없어야 합니다. 완전히 격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해도 안 갈 수 있어야 된다구요. 그 무엇이 가래도 가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세째는 뭐냐 하면 사탄의 사랑보다도 더한 사랑을 할 줄 알아야 되는 겁니다. 사탄세계의 사랑보다도 높지 않으면 하나님이 찾아오실 수가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편에 와 가지고 하나님편의 사람이 되어 가지고 하늘세계에서 그냥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편에 가서 사탄세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원수를 망하게 하기 위해서 사탄편의 사람을 뽑아내는 작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세계의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의 사랑보다도 높은 사랑을 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의 사람이 끌려오는 것입니다. 하늘의 뜻을 대하는 우리의 선조들은 누구나 이 원칙대로 갔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이 원칙대로 못 갔습니다. 예수를 증거했으면 예수하고 절대 하나가 되어야 했습니다. 세상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새로운 이스라엘을 형성할 수 있는 운동을 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땅 위에 그런 기반이 없이는 오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터전이 생겨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원칙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믿고 세상을 뛰쳐나오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한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오시는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하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이 운동을 하는 놀음이 이 지구성에서 벌어지지 않고는 만일에 주님이 오셨다 하더라도 큰일 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올라갔댔자 양자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메시아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와야 되느냐? 땅에 와야 됩니다. 땅에 와야 된다구요. 땅에 오시는 그분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 혈통적으로 다른 자체들을 전부 다 잘라 버리고 새로이 접붙이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운동을 끝날에 구교가 합니까, 신교가 합니까? 하늘의 뜻을 위해서 이 운동을 할 수 있는 단체가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보다도 하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믿고, 하나님과 더불어 죽더라도 같이 죽고 살더라도 같이 살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가지고 세계를 구하고, 인류를 위해서 사랑을 품고 나서는 운동을 해야 됩니다. 이런 운동이 벌어지지 않고는 큰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자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면 결론을 짓자구요. 에덴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그들이 참부모가 되었을 것인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부모의 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참아버지의 입장에서 참어머니를 찾아 가지고 새로운 가정을 중심삼고 새로운 세계의 출발을 보려고 했는데 그것을 못 이루었습니다. 즉, 예수는 아담이 잃어버린 참가정, 참부모의 자리를 다시 맞추려고 했지만 못 맞췄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와 가지고 세번째로 이것을 맞춰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을 중심삼고 보면, 전승 국가가 패전 국가를 해방시키는 운동을 하는, 역사상에 없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참된 부모가 오기 때문에 그 부모를 맞기 위해서는 나라라는 나라들은 하나의 형제의 자리에 서야 되기 때문입니다. 참부모 앞에 서려면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놀음, 원수시하는 놀음, 약자를 치는 놀음, 먼저 나왔다고 나중 나온 자를 치는 놀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서로서로가 돕는 운동이 벌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새로운 참부모를 맞을 수 있는 역사적인 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형제끼리는 싸웠지만 부모가 오면 싸우지 않게 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기준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참부모를 맞기 위해 서는 공식 노정,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믿고, 절대 분별되고, 절대 사랑을 받아 가지고 대신 하나님의 사랑을 해줄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으로써 '새로운 메시아와 공식적 섭리'라는 제목의 말씀을 끝마치고자 합니다.
오늘 일기도 불순한데 이렇게 모여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은 우연한 인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금후에 하늘의 많은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여러분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여기 이 사람은 벙어리와 같은 입장이고, 나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여러분은 듣지를 못하니 귀머거리와 같은 입장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웃음) 이 두 간격을, 아니 두 환자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을 낫게 해줄 사람이 여기에 있는 이 사람인 것입니다. (웃음) 이것을 고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에, 여러분의 많은 후원과 동정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 입니다. 이런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이 세계의 많은 지성인들이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문제시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볼 때, 금후에 민주세계가 갈 길이라든가 혹은 반대되는 공산세계가 갈 길은 인간으로서는 수습할 수 없는 차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전세계 인류가 알게 된다면 그분이 목적하는 바와 그분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지 않을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제일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자, 그러면 그 문제에 대해 잠깐 말씀을 하고 지나갑시다. 이 우주는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된다는 것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힘, 힘은 아무런 내용 없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힘이 존재하려면 반드시 선행조건이 있어서 작용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작용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작용하는 데는 혼자서는 작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혼자, 혹은 나 혼자 손을 이렇게 저으면 미친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무엇이 있어 가지고 그것을 잡으려고 하게 될 때는 미친 사람이 아니고 정상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은 작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적 여건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세계의 유명한 분이 있다 할 때, 그분 혼자서 아무도 없는 이런 큰 강당에서 말을 하고 웃고 노래를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없다 하더라도 컵을 하나 들고 말을 하며 흥분하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면, 그 사람은 극히 정상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웃음) 더 높이 올라가서 이 우주에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 절대자가 계시다 하더라도 그분도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는데 혼자서 웃고, 좋아한다면 정상적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극히 작은 조그마한 무엇 하나를 가지고, 그것을 보면서 세상이 놀랄 만큼 기뻐하고 소리를 치더라도 그것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상대가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없을 때 작용을 하거나 행동을 하는 것은 누구나 다 부정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절대 선(先)의 조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주체와 대상 관계가 있어야만 된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있기 위해서는 작용이 필요한 것이요, 주체와 대상 관계가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의 관념에 넣어 두기를 바랍니다.
주체와 대상이 작용하는 데는 그 주체나 대상이나 서로 손해보는 자리에서는 절대 작용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용함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더 나을 수 있는 어떤 목적이 제시되게 될 때에는 곧바로 작용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나 대상이 작용을 하는 데는 서로서로가 플러스될 수 있는 목적의 결과를 향하여 작용한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두 존재가 작용해 가지고 손해나는 데는 절대 작용을 안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워싱턴 번화가에서 왕래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아침에 여기 나올 때 일전 손해보기 위해서 나왔느냐?'고 묻게 될 때,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나오게 될 때는 반드시 이익, 플러스될 수 있는 어떠한 요건을 바랬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손해나기 위해서는 오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이익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 즉, 이익이 되기를 바라서, 무엇이 얻어지기를 바라서 온 것입니다. 여기에서 만일 마이너스가 됐다 할 때는, 암만 오라고 해도 다시 안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작용하는 데는 반드시 서로가 좋은 목적의 결과를 바라 가지고 작용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남녀간에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서로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게 되는 동기도 두고 보면, 서로서로가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서로가 손해 될 수 있는 것이 보여지는 자리에서는 암만 사랑을 하려고 해도 흩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플러스될 수 있는 자리라면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자연적으로 묶어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존재하는 이 세계를 볼 때, 작게는 원자세계에서부터 크게는 태양계까지 서로서로 작용하는 데 있어서 자기들이 영원히 자기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둘 사이에 관계를 가지고 작용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예서 보게 될 때 주체와 대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화학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원소끼리는 합하기를 원치 않는데도 대번에 합하고, 어떤 원소는 합하게 하기 위해서 아무리 힘을 가해도 합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것은 서로서로가 합함으로 말미암아 이익될 수 있게 될 때는 작용하지만, 손해될 수 있는 자리에서는 절대 작용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만일 손해될 수 있는 세계 인데도 하나될 수 있다면, 이 세계는 파괴될 것입니다. 작용해 가지고 보다 상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데서만이 대우주의 형성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 사람으로 돌아와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는 양심작용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눈을 번쩍 뜨고 나서 좋지 않은 일을 하려면, 마음은 언제나 파수꾼인 양 '야 이놈!' 하고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그 양심 작용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양심을 가진 우리 사람은 결과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결과적인 존재가 끊임없이 양심작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작용을 하는 데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 관계가 있어야 된다면 거기에서 어떠한 주체를 공인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 양심작용은 내려가라는 것이 아니라 최고로 올라가라고 재촉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어떠한 높은 주체자 앞에 하나되고자 하는, 보다 가치적인 요구를 작용시키는 플러스적 요건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런 작용을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작용하는 데는 반드시 주체가 있어야 되고 대상이 있어야 된다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양심이 없다고 부인할 수 없는 사람일진대는 반드시 거기에는 주체인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을 긍정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 주체가 누구냐 하면 이름은 아무래도 좋다는 거예요. 각국 나라 언어가 다르니만큼 백 나라면 백 개의 이름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 이름은 아무래도 좋지만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이 있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거 확실하지 않은데,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좀더 실감적으로 한번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해 보자구요. 우리 눈이면 눈을 한번 예를 들어 보자구요. 우리의 조상의 조상을 쭉 찾아 올라가면 태초의 조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 최초의 조상이 태어난 것은 이 지구성인 것입니다. 우리 조상의 눈은 이 땅 위에 태어나면서부터 천체의 태양이 있는 것을 벌써 알고 볼 수 있게끔 태어났습니다. 태어나기 전에 벌써 '아하, 태양이 있고 땅이 있으니 이런 세계를 볼 수 있게끔 되어야 되겠구나' 하고 알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 자신은 그걸 몰랐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안 것과 같이 돼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눈을 깜박깜박하고 있습니다. 이 깜박깜박하는 것은 복사열로 인하여 수분이 증발하기 때문입니다. 눈의 수분이 복사열로 인하여 증발되면 안 되겠기 때문에, 이것을 축이기 위해서 깜박깜박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전부 다 알았다는 거예요.
그 다음 여러분의 눈썹을 보라구요, 이 눈썹. 이거 뭐하려고 스크린 같은 것을 만들어 놓았어요? 이건 반드시 공중에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만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 보라구요. 벌써 사람이 땀 흘릴 것을 다 알았다는 거예요. 만약 몰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것이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될 수도 있는데 다 막아 놨다구요. 여기가 깊기 때문에, 중요한 눈에 땀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서 이렇게 배치되어 있는 것입니다. 눈썹 자신이 이렇게 나올 수 있어요? 전부 다 이게….
여러분의 코는 왜 아래가 이렇게 퍼졌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게 이렇게 붙지 않고 거꾸로도 붙을 수 있다구요. (웃음)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되면 큰일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게 이렇게 붙어 있다는 거예요. 직선이 되면 입이 위협하니까 이렇게 넓혀 가지고 커브를 치기 위해서…. 이 금 없는 사람은 없다구요. 그래서 입은 쏙 들어가지 않고 드러났다구요. 그 코가 알아서 그렇게 나왔느냐, 입이 있을 것을 염려 하여 코 자신이 그렇게 되어져 나올 수 있느냐 이거예요. 여기 또 콧수염이 있다구요.
여러분, 이 입을 보라구요. 입술이 발바닥같이 딱딱한 살이었다면 어떻게 될 뻔했느냐 이거예요. 말을 하는 데는 이게 얼마나 자유자재인지…. 또 혓바닥을 보라구요. 얼마나 기기묘묘한지 ….
오늘날, 그것이 맹목적으로 자기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저절로 그렇게 됐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이 그것을 알아서 전체에 대비하여 나설 수 있는 지식적 기대 위에 서 가지고 출발한 존재가 아닌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의학박사가 수십 만이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은 전부 다 한 부분 부분을 연구해서 박사니 무엇이니 하고 있다구요. 지금껏 연구해 가지고도 아직까지 밝혀 내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얼마든지 있는데…. 태어나는 우리의 눈 자체, 코 자체, 지체 자체가 그걸 전부 다 알고 대비할 수 있게 태어났다구요? 그건 말이 안 되는 거라구요.
자, 그 모든 것을 모르고 그렇게 태어났어요, 알고 태어났어요? 모르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전부 다 알고 태어났습니다. 먼저 전부 알아 가지고 그렇게 될 수 있게끔 지식적 배열을 한 것을 볼 때, 박물학적이고도 천문학적인 견지에서 우리 자체의 존재성을 이루게끔 하게 한 그 주체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아 그거 모르고 태어났다'고 하는 사람은 바보라구요.
그러면, 그것을 알고 그럴 수 있는 대비적 여건을 배치한 그분은 누구냐? 그분을 왈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진화적인 문제니, 혹은 사상적인 면에 있어서 변증법적 발전이니 하는 내용이 문제가 되겠지만, 목적관이나 기준이 출발 당시부터 제정돼 가지고 존재하기 시작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침 저녁으로 세수를 할 적마다, 얼굴을 볼 적마다 깊이 생각을 해보면 참 재미있는 일들이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계신다 했는데, 하나님이 계시면 그 하나님은 가만히 계실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대자라도 혼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외로운 거라구요. 자기의 상대자를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그 하나님은 무엇을 하실 것이냐? 창조를 하지 않으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적인 하나님이 상대적인 존재로 필요로 하는 존재는 이 만물지중에 어떠한 존재냐?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동물도 아니요. 식물도 아니요, 사람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상대를 필요로 하시는데 만물지중에 사람이 최고이니까 사람 외에는 상대하실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했다면, 창조한 만물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이 사람인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는데 일남 일녀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인간을 만든 것입니다.
신의 실존문제를 두고 볼 때 인간 문제는 지극히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조금 전에 미국 책임자가 나와서 이 문선생에 대해 소개했는데, 영계를 통하고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본인도 상당히 심각한 면에 들어가 가지고 고민했던 사람입니다. 하늘을 대해 신비스런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우주의 최고의 궁극적인 진리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따지고 들어갔습니다.
거기에 답이 오는데, 그 답이 뭐냐 하면 우주의 근본 진리는 부자의 관계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지금 집에 모시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딸의 관계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가정제도나 나라제도는 하나님이 소망하는 패턴의 제도 위에 서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근본에 있어서 하나님이 창조 당시의 패턴으로 인간을 세우려 하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으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이 있는 것이요, 인간도 지음받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치점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 일치점이, 하나님은 인간에게 어떤 가치의 자리를 부여하려고 하고, 인간은 하나님을 대해서 어떠한 가치의 자리에 도달하려고 하느냐 하면, 그 자리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욕망은 지극히 큰 것입니다. 잘못된 우리도 세계를 한번 내 것 만들고 싶어하고, 세계를 한번 뒤흔들어 보고 싶어하고, 세계의 최고 권위의 자리에 나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다 바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통치하는 주권자가 있으면 그 주권자와 더불어 하나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친구가 되고 싶고, 더 들어가서 그의 아들딸이 있으면 그의 사위가 되거나 며느리가 되고 싶고, 그보다도 더 들어가서 그의 아들딸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세계적인 주권자를 대해서만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높은 분이 있으면, 이것을 버리고 그 높은 분을 따라가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자리에 있는 분이 절대적인 하나님인데, 자기가 누구보다도 그 하나님 앞의 가까운 자리에 가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대로 모시고 다니고, 하나님을 마음대로 섬길 수 있는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 속에 감춰진 사랑, 하나밖에 없는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까지 점령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인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의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여자라고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애기라고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병신이라고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사람은 그 자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고 나야만 인간의 욕망은 비로소 안정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바라는 자리요,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분이 요구하시는 자리는 어떤 자리이겠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의 자리를 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러한 자리를 맺기 위해서는 어떠한 관계를 가져야 되느냐 하면 부자의 관계 이외의 길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천지를 창조하신 절대자인 그분이 내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라구요. 그 권위가 타락하지 않은 인간이 차지할 수 있는, 인간이 공동적으로 가져야 하는 권위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아들이 되어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아들이 된 자리에서 보게 될 때, 아버지는 위에 있고 아들은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부끼리 살림하는 사람은 잘 아는 바이지만, 가정에서도 그래요. 자기를 닮은 아기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잘난 아기가 있으면 전부 다 자기 닮았다고 그런다구요, 어머니나 아버지나. (웃음) 그건 여러분도 잘 알 거라구요. 그런 것을 볼 때 하나님도 우리 사람을 자기 닮게 안 만들 수 없다는 거라구요. 아들을 만드는 데는 자기 닮게 안 만들 수 없다는 거예요. 또 아버지의 마음은 자기 아들이 자기보다 못난 것을 싫어하는 거예요. 자기보다 더 잘났으면 좋아하지.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관계를 추구해 들어가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하나님보다 못한 자리에 놓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 인간의 욕망은 하나님과 같은 자리까지 올라가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앞에서 말한 대로 아버지가 위에 있고 아들이 아래에 있으면 '왜 언제나 아버지는 위에 있고 아들인 나는 아래에…' 하면서 아들은 아버지 자리에 한번 올라가 보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이런 욕망을 가진 인간인 것을 아시고, 하나님은 제일 귀한 것을 주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 닮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어떤 자리에 놓아두려 하시느냐 하면, 안팎관계, 내적 외적 관계에 놓아두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 신앙자들은 '우리 몸이 성전이라'고 한 고린도전서 3장 16절의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타락했던 우리도, 잘못됐던 우리도 그걸 바라는데, 아무것도 잘못하지 아니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의 관계에서 태어나는 그 아들딸이야 두말할 것 없이 본성전…. 하나님이 그들 속에 들어와 계신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첫째로 하나님의 사랑을 차지했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안팎의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내적 하나님으로 등장한 것이요, 우리 인류 조상인 아담 해와, 즉 본래 타락하지 않은 인류의 조상은 보이는 하나님으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 신앙계에 있어서 혁명적인 말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성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절대자요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창조주와 피조물은 엄격히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라는 거예요. 하나, 그 자체를 보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 자체 몽땅, 전체를 보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거라구요.
하나님의 몸이 될 수 있는 권한, 우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을 우리는 상실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담이 모든 만물을 주관하고 아담이 이름을 짓는 대로 되더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 자체가 전부 주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담 속에 천지를 지으신 주인이 들어오기 때문에 한 몸으로서 주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영적 체험을 하면 이 사실을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속에서 말하는 것을 다 듣습니다. 또 자신이 원치 않는데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영계에 가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안 맞으면 천국도 좋지 않다는 거라구요. 안팎이 딱 들어맞아요. 딱 하나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세계에 가면 영원히 하나님과 같이 살고 싶고, 또 같이 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첫째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고, 둘째로는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세째는 뭐냐? 가만히 보면 사람의 욕망은 최고 자리까지 바라기 때문에, 인간은 '아하!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걸작품인 우리 인간을 만들어 놨구나. 나도 한번 사람을 저렇게 만들어 봤으면…' 하는 욕망도 갖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계시는데, 남성 성품과 여성 성품을 합해 가지고 계시다는 것은 아담 해와를 형상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되어 가지고 아담 해와를 창조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그와 같은 하나님의 자리에서 주체와 대상인 사람, 즉 완전한 남자와 완전한 여자가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창조하시던 것과 마찬가지의 사랑을 중심삼고 비로소 거기에서 아들딸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최고의 걸작품인 인간도 인간이 창조했다는 결론의 자리에 세워 주기 위해서 우리 남자 여자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부부가 완전히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아들딸은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기뻐하시던 그러한 기쁨의 위업까지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랑까지 주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적인 하나님이 갖고 있는 전체를, 사랑하는 아들딸의 입장에 있는 우리 인간이 몽땅 부여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가치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하나된, 우리 인간의 욕망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다 갖춘 자리에 선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이 이 땅에 있느냐? 없는 것입니다. 안팎으로 하나되어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위업을 완전히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아들딸을 낳은, 하나님의 창조위업을 그냥 그대로 계승한 가치적인 자녀를 낳아 본 사람이 있느냐? 그런 부부가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기뻐하던 그 기쁨을 대신 느낄 수 있는 가정을 가져 가지고 서로 사랑해 본 부부가 있느냐? 그런 부모가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대신자로, 아들의 대신자로 설 수 있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성전이 돼 가지고 하나님의 신성을 지닐 수 있는 인간이 됐을 것입니다. 신성을 가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됐더라면 영원한 신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살 것인데,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개인이 되고, 그러한 가정, 그러한 종족, 그러한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됐으면 그 세계가 다름 아닌 지상의 천국이요, 이 천국에 살던 사람들은 그냥 그대로 천상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지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그분을 중심삼고 그 후손은 전부 천국가게 된다는 거라구요. 그러나 우리는 그런 세계에서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세계에서는 기도도 필요 없고 구주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지옥도 안 생겨난다는 거예요.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이 땅은 지상지옥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다면…. 타락은 어떻게 어떻게 되어졌느냐 하는 것은 내일과 모레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은 시간 관계상 이야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지으신 물건은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고 하나의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할 터인데도 불구하고, 결과적 존재인 우리 자신들을 두고 볼 때 우리 자체는 두 가지 목적 방향을 지향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뿌렸기 때문에 그것이 세계적으로 거두어질 때가 끝날인 것입니다. 그 현상이 열매 맺힐 때가 된 거예요. 그래서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를 그냥 둔다면 하나님은 없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구해야 됩니다. 아들이 죽었으면 다시 살리는 놀음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것을 구하는 기반을 세계적으로 만들어 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역사적인 종교입니다.
사람이 얼마만큼 떨어졌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 자리를 상실해 가지고 여지없이 떨어졌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종도 못 되리만큼 떨어졌다는 거라구요. 거기에서 끌어올려 가지고 양자의 자리로, 양자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로, 아들의 자리에서 부모의 자리로 하나님은 끌어올리는 운동을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시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수많은 종교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돼요. 그 종교 가운데는 세계적인 대표로서 종적인 사명을 하는 종교가 있고 양자적인 사명을 하는 종교가 있고 아들적인 사명을 하는 종교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이러한 종교를 세워서 교육을 하시는 데는 어떻게 교육하시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마음과 몸, 이 둘이 싸우고 있으니 한쪽 편을 굴복시키는 작전을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치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종교든지 몸을 치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종교는 참된 종교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몸을 굴복시키는 첫째 방법입니다. 그 다음 둘째 방법은 뭐냐? 몸과 마음이 일대 일로 비슷비슷하니까 왔다갔다하는 놀음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람들이 몸을 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비슷비슷한 싸움을 하는 여기에서 마음 편에 힘을 두 배, 세 배 강하게 주입해 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몸뚱이를 끌고 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 힘을 주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심정적 일치점을 하나님은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척 들어 보면 하나님은 완전히 사랑의 독재자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랑하면 그렇게 사랑해 주겠다는 말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의 자리에 못 선 것을, 사랑의 인연을 통해서만 그런 악을 제패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이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강한 힘이 오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문제가 아니라구요.
여러분,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의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하나님의 자식과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의 체험이 얼마나 강할 것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이렇게 되면, 즉 몸뚱이를 사탄세계에 못 가게 하고 여기에 끌고 와서 습관만 들이면, 하늘이 찾고자 하는 본연의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모든 것을 역설적으로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그게 왜 그래야 되느냐는 거예요. 결국 하늘의 생명을 찾으려면 몸뚱이를 죽이는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이 몸뚱이를 살리겠다고 하다가는 하나님을,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높아지기를 좋아합니다. 자기 배를 위하려고, 자기만을 위하려고 하는 것이 몸뚱이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인간에게 금식을 하라, 절제를 하라, 몸을 쳐라 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종교의 가르침이 그런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오늘날 역사를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기관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역사적 입장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할 수 있어야 됩니다. 여기에 여러분들이 문제가 있을 거예요.
여기 워싱턴이면 워싱턴에 꺼떡했다 하면, 뭐 뉴 에이지니 뉴 프런티어니 해 가지고 별의별 사람이 다 왔다고 합니다. 뭐 감리교면 감리교가 나올 때 그랬고, 몰몬교의 조셉 스미스면 조셉 스미스를 중심삼고 그랬고, 전부 다 자기가 뉴 에이지라고 말했기에 보통 사람들은 이것을 분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워싱턴 신문에도 나고 하는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도 옛날과 마찬가지로 다 그렇고 그렇지'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은 찾아 올라가는 섭리를 해 나왔기 때문에, 세계적인 대표의 종의 사명을 짊어지고 온 사람 다음에 양자의 사명을 짊어진 사람이 나와야 할 때에 가서는 반드시 새시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단계가 높아진다는 거예요.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용은 비슷하다는 거라구요. 그러면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최후에 부르짖는 새 시대에 와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들을 중심삼은 종교이념이 아니라 부모를 중심삼은 종교이념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중심삼은 종교시대가 오게 될 때는 마지막 시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필코 인류를 구하려고 섭리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 중에 어느 종교가 제일 중심된 종교냐, 최고의 종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선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알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형태를 중심 삼고 찾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계 4대 종교로는 기독교, 불교, 유교, 회회교가 있습니다. 이 종교의 교주들은 전부 다 국가주의자가 아니고 세계주의자입니다. 오늘날 미국에도 위인은 있습니다. 여기 죠지 워싱턴이면 죠지 워싱턴은 미국을 중심삼고 볼 때는 위대한 사람이지만 영국을 중심삼고 볼 때는 원수라구요. (웃음) 참사람은 어디든지 원수가 없어야 된다는 거예요, 원수가. 세계를 위해서 희생한 사람이 아니고는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기독교만 해도 국경을 초월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국경은 못 넘어서 가지고, 자기 종족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크리스찬이 아닙니다. 4대종교 종주들을 4대성인이라 말하고 있는데, 그 성인들 전부가 종교의 교주들이 되어 있다구요. 이게 우스운 일이라구요. 그가 서 있다면 그것은 자기 혼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서 있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죽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 그런 사람들 가운데 누가 제일이냐? 누가 하나님이 제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냐?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되고, 하나님이 내적 하나님이면 사람은 외적 하나님이 되어 안팎으로 하나되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완전한 부부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이 창조한 아담 해와와 같이 사랑할 수 있는 본연의 가정을 이루어야 된다는 내용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종주라야만 최고의 종주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종파가 다른 사람들, 즉 불교 신자가 오고 회회교 신자가 오고 유교 신자가 오고 기독교 신자가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의 어떤 종파를 지적한다고 해서 '그건 미스터 문이 좋아하니까, 그가 크리스찬이니까' 라고 생각하지 말고. 원칙을 통해서 볼 때 그렇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들은 후에 섭섭해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불교를 보게 된다면 영계와 하나님을 가르쳐 줬지만, 인격적인 신보다도 법적인 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교를 보게 되면 하나님을 그저 도덕적인 중심이라는 관점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면 망하고 선을 행하면 하늘이 복을 준다고 그랬습니다. 또, 회회교는 한 손에 코란경을 들고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종교는 하나님을 중심한 본질적 종교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럼, 기독교를 알아봅시다 왜 기독교가 세계적 종교가 아니 될 수 없다는 내용이 여기에서 결정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했습니다. 역사 이래 처음으로 인간세계를 대표해 가지고 하늘 대해 아버지라고 제창한 분은 예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에서 말한 하나님과 인간이 상봉할 수 있는 자리인 부자의 관계입니다. 그 자리를 적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독생자이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나로부터다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은 '내 아버지는 내 안에 있고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나는 너희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다'라고 일체(-體)됨을 말했습니다.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앞에서 말한 둘째번 내용인데, 이와 같이 하나님과 안팎의 관계에 일치점을 제창한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뭐냐 하면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창조의 위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신랑 신부의 길을 찾아 나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결속시키고 출발하여야 했는데, 십자가에 돌아가게 됨으로 말미암아 '내가 다시 오나니 나는 신랑이요, 너희들은 신부로서 기다리라'는 약속을 남기고 갔던 것입니다.
지상에서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창조하신 것과 같이 예수님이 그것을 이루어 가지고 기쁨으로 이 땅 위에서 아들딸을 보았더라면, 오늘날 기독교의 중심 책임자는 예수님의 후손이 됐을 것입니다. 그렇게 됐다면 기독교는 하나됐을 겁니다. 여러 가지 잡동사니 시시한 것이 안 되고…. 이렇게 못 된 것이 비통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창조는 공중에서 한 것이 아닙니다. 공중에서 한 것이 아니예요. 땅이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에 천국문 열쇠를 가져 가지 않고 땅에서 열 수 있도록 베드로에게 주고 갔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을 보게 되면 예수님은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했습니다. 땅이 문제라고요. 이것은 문이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의사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계에 들어가 알아보니 그렇더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어디로 와야 되느냐 하면 땅으로 와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목사 되는 양반들, 혹은 신부 되는 양반들이 있으면 '아, 저 사람은 이단자다'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영계에 가 보면 알 거라구요. 여러분, 기도해 보라구요. 기도해 보라구요. 그렇지 않은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하늘만 바라보면 기독교의 발판은 다 빠져 나가고 껍데기만 남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다년간 기독교를 위해서 누구보다도 많은 눈물을 흘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기독교에게 핍박을 받아 왔습니다. 그렇다고 기독교를 원수로 대해서 칠 수 없는 입장인 것입니다. 기독교를 깨우쳐야 할 책임을 느끼기 때문에 오늘 미국 땅에 와서 이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반대하지만, 어디 선진국가의 기독교인들은 어떠한가 보자구요.
여러분, 주님이 오실 때는 그가 신부를 맞아 어린양잔치를 한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나님이 계획했던 창조본연의 타락 하지 않은 인류의 참부모를 가져야 할 터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거짓 조상이 되었으니, 이것을 제거시켜 버리고 다시 참부모를 대신하는 존재를 세워 세계적인 부모의 자리를 갖다 맞추어야 하겠기 때문에, 그 사명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재림주요 재림주와 상봉하는 날이 어린양잔치날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둘째번 아담으로 왔다고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세째번 아담으로 오신다는 거예요. 둘째번 아담인 주님이 올 때는 이스라엘 나라가 있었지만, 세째번 올 주님 앞에는 나라가 있느냐? 나라도 없고, 종족도 없고, 가정도 없고, 어느 교파를 믿고 올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알파로 시작한 것이 실패되었기 때문에 오메가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참부모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문화의 창건과 새로운 전통적 역사가 시작될 것이요, 천상 지상세계에 새로운 세계가 시작될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 입니다. 지금 전세계의 종교에 있어서는 구세주가 오는 것이 절박한 소망으로 남아 있습니다. 외적인 민주세계나 공산세계를 막론하고 세계 만민 앞에 있어서 외적으로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세계적인 지도자를 요구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 한분, 그 한 중심이 종교의 세계와 외적 세계, 이 둘을 합해 가지고 하나의 세계로 이끌 수 있는 사명을 짊어지고 오시는 분이 메시아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분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비로소 이분과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개인적인 패턴과 가정적인 패턴과 국가적인 패턴과 세계적인 패턴을 대신할 수 있는 터전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터전을 이루기 위해 오시는 분이 부모로 오시는 분임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개인적으로 종이나 양자나 아들의 입장에서 가르쳐 주었지만, 이제 최후에 남아질 하나의 우주종교로서 등장할 것은 부모를 중심삼은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전통과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 새로운 종교입니다. 이것만이 하나의 우주종교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부모를 찾자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오늘 말씀을 끝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와 같이 모여 주신 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실례지만, 어제 오셨던 분이 오늘 다시 오신 분은 손을 한번 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이상세계 혹은 통일세계' 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이 짧은 시간에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말한다는 것은 무리인 것을 알고 비약이 많을 것을 알면서도 이런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말씀 중에 의심되는 문제가 있으면 거기에 대한 책자도 나와 있으니 차후에 참고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날 현실에 살고 있는 인간들로서 이상세계를 바라지 않는 이는 없다고 봅니다. 이것은 비단 금세기뿐만 아니라 역사 이래 지금까지 인류가 소망해 오던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만일에 이것이 금세기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의 후손도 이와 같은 소망을 가지고 이상세계를 그리워하면서 나갈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도 인간 못지않게 이 세계를 바라고 계실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이상세계를 바라고 나간다면 그 이상세계는 어디서부터 출발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묻게 될 때, 그것은 인간으로부터 시작한다기 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상의 중심존재는 하나님임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혼자 있어 가지고는 이상세계를 실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상 세계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도 인류, 즉 인간을 빼놓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결국은 인간이 하나님과 더불어 협조해서 이상세계를 이루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상세계를 이루는 데 있어서는 맹목적으로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개인은 이러해야 되고 이상적인 가정, 이상적인 국가, 이상적인 세계는 이러해야 된다는 이상적인 하나의 목표, 혹은 패턴이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제 잠깐 말씀드린 바와 마찬가지로 최고의 분이 계시다면, 우리 인간이 바라는 것은 그분과 더불어 영원히 같이 있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태어나고 자라나서 일생 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살며,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자녀를 낳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친척을 갖고 산다면 인간에게는 그 이상의 자리는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부자의 관계에 있어서 최고의 자리요, 부부의 관계에 있어서 최고의 자리요, 형제의 관계에 있어서 최고의 자리입니다. 가정, 종족, 민족, 국가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도 최고의 자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중심으로 계시는 하나님이 아버지도 되고 혹은 나라의 중심으로 계시더라도 그 나라의 대표자는 백성을 자녀와 같이 사랑하고, 또 하나님이 세계의 중심으로 계시더라도 그 세계의 대표자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있기 때문에, 만민을 형제와 같이 사랑하는 대가족 사회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일생은 몸만 가지고 사는 일생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더불어 사랑관계를 맺어 가지고 영원히 사는 것이 이상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과 첫사랑의 인연을 맺은 자녀들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자녀를 영원히 버려 둘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타락한 세계에서도 첫사랑의 인연이라는 것은 언제나 남고 언제나 추억의 대상이 되고 언제나 그리워하는 것이 사실일진대, 하나님이 계셔서 첫사랑의 인연을 맺었다면 그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몇 십년 동안 같이 있다가 떼어 버리는 그런 일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첫사랑의 인연을 맺은 인간들을 영원하게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에게 영생을 부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도 참된 사랑을 그리워합니다. 남녀지간의 사랑이라든가 문학소설에 나오는 사랑을 두고 보더라도 사랑을 말하게 될 때는 영원한 사랑, 불변의 사랑, 유일의 사랑, 절대적인 사랑 등 최고의 형용사를 갖다 붙여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사랑의 원칙에 따라서 영생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 두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가 이상세계입니다. 이 세계는 하나님도 원하시는 것이요, 우리 인간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까지도 모르는 인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많으냐 할 때, 선한 사람보다 악한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은 공통적인 결론일 것입니다. 악한 개인이요, 악한 가정이요, 악한 씨족이요, 악한 민족이요, 악한 국가요, 악한 세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중에 선한 사람은 얼마나 되느냐? 선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인간이 출발할 때 선하게 출발했느냐, 악하게 출발했느냐? 우리 인간들은 타락했기 때문에 악하게 출발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이 주관하는 세상이 아닌 것입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두 패로 나누기 운동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취하실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그 사람이 사탄세계의 악한 사람보다 못해 가지고는 하나님은 위신상 취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악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 악을 주관하는 사탄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실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제도 말했지만, 우리 인간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마음은 하나님의 처소가 되어 있고 몸은 악의 처소가 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사람 하나를 놓고 빼앗기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한 가지 알아야 될 것은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선하신 분이기 때문에 언제나 선을 주장하고 선의 입장에서 변호하고 선만을 옹호하시는 분이지 악한 행동은 절대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악한 신이 있다면 그 악한 신은 악의 주인이기 때문에 악을 주관하고 악을 번식시키는 것이지 선이라는 것은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악만을 행하는 것이 사탄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편에 가게 되고 하늘을 이롭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탄편에 가게 되면 하나님을 망쳐 놓고 사탄편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도 망칠 수 있고 사탄도 망칠 수 있는, 두 가지 놀음을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 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무서운 것이 누구냐? 하나님도 무서워하고 사탄까지도 무서워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도 망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 못 해봤을 것입니다.
국가와 국가간에는 이중 간첩이 있습니다. 이중 간첩과 같은 놀음을 인간이 지금까지 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무서운 제약 조건을 세워 가지고 저쪽 세계에 접속하지 못하게끔 시련을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가만히 보라구요. 하루 24시간 쭉 혹은 젊어서부터 늙을 때까지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되면, 사람에게 진짜 선한 것이 있더냐 할 때 선한 것보다는 악한 것이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자유를 준다면 하나님을 따라갈 사람이 있을 것 같아요? 이런 관점에서 자유라는 이름을 다시 분석 비판하여야 할 시대가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말은 참고로 한마디하고 넘어가도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사탄보다 높으신 분이기 때문에, 사탄세계에서 이기고 나오는 사람을 찾아 나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을 이기고 악을 이겼다는, 승리했다는 한 사람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에게 세밀한 이야기는 못 하지만 오늘날 성경상에 나타나는 야곱의 역사를 알아봅시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중심삼고 자기 할 일을 하느라 21년 동안 무지무지하게 고생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붙들고 싸워 나온 대표자였습니다.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얍복강가에서는 천사하고 씨름하여 이겼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천사보다 못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관을 직접 받으려면 천사보다도, 천사는 종인데 종보다도 높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사를 이긴 자리에 서면 사탄을 이긴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야곱이 집에 돌아가면 에서가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일을 남기기 위해서 자기가 21년 동안 번 재물과 종과 아들딸을 전부 다 포기하더라도 뜻만은 버릴 수 없다는 입장에 섰습니다. 그래서 에서 앞에 전부를 내줌으로 말미암아 에서를 굴복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인류역사에 처음 있었던 사건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서부터 이겼다는, 승리했다는 이름을 가진 선민이 출발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기는 데는 맹목적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고 어떠한 구체적인 내용의 법도를 따라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조건을 가지고 하느냐? 인간이 하나님의 품에서 떠나 떨어졌을 때, 그것을 끌어올리려면 반대적인 작용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뱀이 와서 해와를 꼬여 해와가 타락하게 될 때에 타락한 동기가 무엇이냐? 하나님은 창조세계의 절대적인 중심이요, 인간세계에 있어서 아버지의 입장에 선 절대적인 중심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사탄은 중심 되시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말을 하고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사탄은 자기의 뜻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을 중심적인 위치에서 뽑아 내기 위한 놀음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심에 대해서 중심이 아닌 것으로 주장하게 될 때는 악이 되는 것입니다. 악은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를 내세웁니다. 중심을 부정해 버리고 자기가 그 자리에 나서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가 동기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은 언제나 중심에 대해서 부정하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를 내세워서 전부 부정하고 자기가 중앙에 서겠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그런 사람입니다. 한 나라에 있어서 악한 사람은 나라고 헌법이고 모두가 필요 없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부터 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중심에 서 있는 것을 다 치우고 자기를 세워 내가 제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악입니다.
그러나 선은 이와 반대의 자리에 섭니다. 중심에 대해서 절대적인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이 중심을 세우기 위해서 나는 죽더라도 그 중심을 옹호하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사탄이 목을 잘라 가더라도 당당하게 나는 하늘의 중심존재를 저버릴 수 없다'고 강조하는 자리에서는 악은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야곱이 에서를 이기는 데는 무엇으로 이겼느냐?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그 축복을 중심삼고 장자의 기업을 되찾고 그 축복을 절대시했다는 것입니다. 축복을 자기 생명의 중심이요, 자기 생애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취하면 취했지 이것을 잃어버릴 수 없다'는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파탄하는 원수가 있게 될 때는 아무리 어려운 자리라도 이것을 공인시키는 자리까지 밀고 나가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천사와 싸워서 승리하여 그것을 재공인 받는 놀음을 한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뜻을 따르고 중심을 절대시하고 환도뼈가 부러지고 자기가 망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섰기 때문에 천사가 야곱을 축복해 가지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준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타락하여 떨어졌고 인간이 서 있던 자리에는 사탄이 있으니, 사탄을 이기고 본래의 자리를 회복하려면 떨어진 것과 반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 한 길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야곱뿐만이 아니고 노아도 그렇게 산 분입니다. 하나님 명령을 절대시 했기 때문에 120년 동안 어떠한 고통과 수난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죽어도 좋다 하는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런 사람이요, 모세도 그런 사람이요, 세례 요한도 역시 그런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물론 그런 대표적인 분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공적인 중심을 세우기 위해서는 나는 희생해도 좋다 하는 데에 승리의 길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악한 사람이냐? 지금까지 이것을 확실히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 출세를 위해서는 상대방을 희생시켜도 좋다는 것이 타락의 기원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개인적으로 가정 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판도가 컸을 뿐이지, 그 내용을 분석해 보게 될 때는 자기의 출세를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고 남을 쳐가지고 출세를 도모한 악의 역사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악의 세계가 발전해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것을 수습하기 위해서 반대의 작전을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공적 중심을 위해서 지금까지 희생시켜 나오는 작전을 해 나왔습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인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탄세계의 악한 개인과 악한 가정보다 더 강한, 사탄을 승리한 하나의 개인과 가정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이것이 선민 이스라엘의 야곱 가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은 나라를 갖고 나라의 주권자를 세워 가지고 세계를, 수많은 국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사탄 국가보다 나은 국가를 선민이 만들어야 됩니다. 나라가 생겨날 때까지는 거꾸로 올라가야 합니다. 개인에서 가정으로, 종족으로, 민족으로 국가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사탄이 나라 가지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라의 주권을 가지고 선을 쳐 나오기 때문에, 이 주권을 칠 수 있는 절대적인 하나의 나라를 하나님은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야곱을 통해서 가정을 만들었으면, 야곱의 후손을 통해서 종족 민족 국가를 만들었으면, 그 국가에서 또 승리를 해야 됩니다. 나라를 중심삼고 거기서부터 나라를 확대시켜 사탄세계를 점령해 나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어떻게 사탄을 이기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이스라엘 선민이 있었던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를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준비해 가지고 비로소 하나의 중심존재를 보내게 될 때에는, 그 나라가 그분과 완전히 하나가 되고 그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 그 민족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분이 하나님과 더불어 살 때에 그 민족도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그분이 하나님과 같이 일할 때 그 민족도 같이 일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가지고 세계를 되찾는 역사를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메시아를 보내 주마 하고 약속하셨습니다. 4천년 동안 유린당하고 억제당하던 원수의 품을 벗어나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복수할 수 있는 새로운 국권을 세운다는 것을 약속하기 위해서 대표자로 보낸 것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메시아는 어떤 분이냐? 어제도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아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한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내정을 완전히 알고, 개인 완성은 이렇게 해야 되고 종족 완성은 이렇게 해야 되고 민족, 국가, 세계 완성은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하나님이 가르쳐 가지고 보내신 분이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적인 모든 내정을 그냥 그대로 계승해 가지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모체로 오신 분이 메시아입니다.
지금 세계에는 수많은 국가가 있습니다. 그 국가를 전부 다 악이 지배하고 있더라도 결국 그 악한 국가는 하나인 것입니다. 그 사탄세계의 악한 주권이 '이놈 이거 안 하면 죽인다'고 생명을 위협해 가지고 그 국민이 할 수 없이 별의별 놀음을 다 하더라도, 하늘의 뜻을 위해서는 자유스런 환경을 내놓고 그 이상 희생하더라도 감사하다고 할 수 있는 국민이 생겨나야 사탄세계를 삼켜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구세주로 오기 전에 만왕의 왕으로 오셨던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구세주는 나중이라구요.
만일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주권을 가지고 왕이 되어서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 앞에 진군을 했다면 그 앞에 설 나라가 이 땅 위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를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굴복하는 날에는 나라가 한꺼번에 구원받는 것입니다. 개인 구원이 아니라 나라가 한꺼번에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계가 얼마나 오래갈 것 같으냐는 것입니다. 하나의 주권자가 굴복만 하면 나라는 자동적으로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열 개 나라의 주권자가 굴복하면 열 개 나라가 굴복하고, 그렇게 되면 세계는 자동적으로 와르르 굴복하여 그 뜻과 사상권내에 아니 품길래야 아니 품길 수 없게끔 되었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쯤 되었다면 예수가 '내가 할 말은 많지만 너희들이 감당하지 못할까 봐 말을 못 한다' 하는 이런 시시한 말은 안 했을 것입니다. 또, '내가 세상 일을 말하여도 믿지 못하거든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하는 말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땅 위에 불을 던지러 왔노니 불이 이미 붙었으면 좋을 뻔했도다' 이런 말을 하는 예수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 털어놓고 이야기합시다. 여기에 기독교 신자들 많을 텐데, 내 말이 맞는지 여러분 입장이 맞는지 이야기해 보자구요. 하나님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4천년 동안 메시아를 보내겠다고 그렇게 예언했겠습니까?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보낸다면 그냥 보내서 죽이면 되지 4천년 동안 준비는 뭐 하려고 해요? 유다에 대해서 '저가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는 그 말은 무슨 말이예요? 또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를 왜 해요? 죽기 위해서 오신 메시아가 그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도 육신을 가졌기 때문에, 약하기 때문에 기도를 했다고 말합니다. 기가 막히다는 거라구요.
예수는 구세주입니다. 구세주가 가는 길은 만인이 따라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예수가 죽으면 후대에 예수를 따라갈 사람도 전부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십자가를 넘지 않고는 갈 수가 없기 때문에 역사적인 희생을 앞에 놓고 하나님께 담판 짓는 내용의 기도를 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전부 십자가의 죽음길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피를 흘리고 순교의 선혈을 흘리게 된 동기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자신 있게 하는 것은 나름대로 생각을 해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유대교인들이 예수를 믿었으면 예수가 왜 죽어요? 여기에 유대인이나 히브리인들이 왔으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고요. 이것은 내가 지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기 때문에 얘기하는 것입니다. 한 분밖에 없는 만왕의 왕으로 보낸 하나님의 독생자요, 이상세계의 하나의 중심패턴으로 보낸 그분을 죽인 죄가 얼마나 큰가를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예수가 가고 난 후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수난길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주님이 다시 올 때까지 그런 유랑의 국민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걸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만일에 예수가 죽지 않았으면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되어 가지고 '빌라도가 무엇이고 헤롯이 뭐냐, 이 녀석들아' 하며 돌아가라고 쫓아 버릴 수 있었다구요. 이스라엘 민족 앞에 중심이 누구냐 하면 교회도 아니요, 나라도 아니요, 예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중심과 절대 하나되는 것만이 이스라엘이 복을 받는 길이요, 하나님 앞에 승리한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 원칙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중심을 위해서 전부 다 죽을 각오를 했더라면 로마제국도 점령했을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었다면 열두 지파로 분배되었던 그 민족은 동원되어서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아랍권의 이슬람교, 즉 회회교는 안 생겼을 것입니다.
예수가 죽은 다음 죽은 예수를 믿어 가지고 2천년 동안 8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만약 예수가 죽지 않고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라구요. 전세계는 벌써 예수화되고 기독교는 해먹을 대로 다 해먹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민주세계, 공산세계의 분열현상이 왜 있으며, 교회의 교파분쟁이 왜 있으며, 민족과 민족간의 분쟁이 왜 있겠습니까? 다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전부 다 예수를 죽인 보응이라구요. 벌을 받은 거라구요.
예수를 죽임으로 말미암아 이상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국가적 중심, 민족적 중심, 종족, 가정, 개인적 중심이 깨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있기 때문에 다시 와야 된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나라를 중심삼고 악의 나라를 이긴 주권국가는 땅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예수가 죽어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지상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영적인 천국을 흠모하면서 2천년 동안 피의 대가를 뿌려 가지고 수난의 길을 개척해 나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땅 위에 기반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하나님을 중심삼은 하나의 교단과 하나의 주권을 중심삼을 수 있는 나라의 발판이 땅에서 없어졌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국가 기준을 중심삼고 뜻을 이루기 위해 왔던 예수를 죽여 버린 것이 원통하시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의 위신을 세우셔야 되기 때문에, 세계적인 무대를 개척해 가지고 세계적 대표국가의 권한을 다시 찾아 가지고 끝날까지 몰고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제1이스라엘권은 망했는데 제1이스라엘권의 대를 이어 제2이스라엘권을 개척해 온 것이 기독교 문화권입니다. 제1이스라엘권은 없어지고 영적인 나라만을 추구해 나온 것이 현재 기독교인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나라가 미국이예요? 오늘날 세계에 그런 나라가 있어요? 권위가 있고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땅에서 나라의 주권을 중심삼고 원수의 나라보다 더 강하고 원수의 나라를 이길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고 하시는데, 사탄 때문에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하나님은 실패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렇게 기독교를 중심삼고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 고생과 역경의 노정을 2천년 동안 걷게 해서 사탄세계보다도 나은, 축복할 수 있는 민주세계권을 만들어 나오신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이 공산세계와 맞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을 대항할 수 있는 세계적 기반을 갖추고 서 있는 그 사탄세계보다도 민주세계가 단합하여 우위에 서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옛날 제1이스라엘 때에 나라를 잃어버린 하나님의 서러움을 모면하기 위하여 세계적인 권위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탄세계의 사상을 중심삼고 뭉친 것보다도 더 강력히 뭉쳐서 이것을 능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세계를 대해 가지고 위신을 세울 수 있는 때를 바라보고 기독교를 발전시켜 나오신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야곱이 21년 동안 하란에서 수난길을 가면서도 하나님이 축복하신 뜻길을 위해서는 생사를 개의치 않고 극복해 나와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계승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미국은 민주세계를 대표하여 신앙의 자주권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만을 위해서는 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무리로서 편성된 것입니다. 퓨리턴 사상을 받아 형성된 것이 미국이라는 것입니다.
또, 야곱이 고향에 돌아가는 길에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해야 되는 운명이 가로놓여 있는 거와 마찬가지요, 자기 형이 자기 생명을 노리는 거와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 공산세계와 대결하는 민주세계의 현재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끝날이 되면 면양과 산양으로 갈라진다고 했습니다. 면양은 주인이 있는 양이요, 산양은 주인이 없는 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세계는 유심사관(唯心史觀)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붙들고 나오는 사관(史觀)이요, 공산세계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주인이 없다고 하는 사관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국의 운명은 독립 후 200년에서부터 210년 이후까지에서 좌우된다고 나는 보고 있습니다. 이 기간은 야곱의 21년 고역생활과 맞먹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40대 대통령을 중심삼고 금후에 세계적인 판가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나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두고 보세요. 그래서 1977년, 1978년이 공산세계와 최고로 맞서는 때가 될 것입니다. 이제 아메리카는 단결해서 사탄세계인 공산주의를 능가해야 됩니다. 국내, 국외를 중심삼고 조직적인 단결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승패를 좌우하고, 금후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사탄세계한테 져서는 안 됩니다. 사탄세계보다 못해서는 안 된다는 거라구요. 만일에 하나님이 계셔서 이렇게 후대한 축복을 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책임을 못 하는 민족이 될 때에, 아메리카는 산산조각으로 깨지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은 특정한 민족을 중심삼은 전통적 국민성을 자랑할 무엇이 없는 종합민족 국가입니다. 미국은 전통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망하더라도 수천년 끌고 나갈 수 있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국가를 다시 찾았지만, 이 나라는 어떠한 특정 민족으로서 자랑할 전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미국이 전통으로 이어받아야 할 그 사상이 무엇이냐 하면 기독사상입니다. 기독사상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을 위해 여러분에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미국을 살릴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만이 미국이 죽고 사는 문제를 좌우한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천사하고 씨름할 때에 환도뼈가 부러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그저 최선을 다해 싸워서 이겼습니다. 그리하여 천사가 축복해 줄 때 하나님이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인데, 오늘날 미국이 월남전쟁이라든가 사탄권인 공산권과의 대결에서 언제든지 후퇴한다면 이거 하나님의 위신이 서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나는 호전주의자도 아니고 전쟁 지지자도 아닙니다. 이 거대한 나라가 월남전쟁에서 10분의 1도 안 되는 게릴라들, 아무것도 없는 게릴라들한테 50만 병력을 투입했다가 보따리 싸 가지고 돌아서게 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이 계시다면 '아, 너희들 잘한다'고 웃으시겠습니까? 그럴 것 같아요? 미스터 문은 빼놓더라도 하나님이 그것을 방비하라고 내세웠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놀음 해 가지고 나간다면 하나님이 이 나라 이 민족을 믿으시겠어요?
그들이 그것으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 보라구요. 쿠바를 통해 가지고 멕시코를 통해 가지고 또 이 놀음을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렇게 안 된다고 자신해요? 사탄은 이길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후퇴하는 법이 없다구요. 이길 가능성이 있는 곳을 보고 후퇴하는 악이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본다면 흑백관계의 분열을 무엇으로 방비할 거예요? 공산당들은 가정의 파탄을 기하고 나옵니다. 또, 똑똑한 청년 남녀를 전부 다 마약 부대에 쓸어 넣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사상이 뿌리 박을 수 있는 개인과 가정의 틀을 자연히 깨뜨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인 것을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미국 국민들은 성경을 붙들고 하나님을 붙들고 공적인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 나라는 희생되더라도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단결하는 운동을 제시해야만, 하나님이 미국을 세운 체면과 위신을 지키는 나라가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서 있는 사람은 반공주의자가 아닙니다. 반공이 아니라 승공을 부르짖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계 사상에서 기독교 문화권에 선 이 민주세계가 공산세계를 능가할 수 있는 권위를 갖고 나서야만 하나님이 이 세계에 손을 대 가지고 평화의 세계로 이끄실 수 있는 길이 생긴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민주세계인 이 나라 오늘날 미국에 하나님이 요구하는 교단, 제1이스라엘권을 잃어버린 지상기반을 편성할 수 있는 국가적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교단이 있느냐 할 때 그런 교단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지상에 그런 기반이 될 수 있는 터전이 없다는 걸 생각해 볼 때, 만일 앞으로 주님이 오게 되면 어디를 중심삼고 역사할 것 같아요? 주님은 공중으로 안 오는 것입니다. 공중으로는 절대 오지 않습니다. 주님은 땅으로 오는 것입니다. 땅을 위해서 오는 거예요. 세계를 위해서 오는 거예요.
자, 그러면 여러분, 역사는 되돌아 가지고 심은 대로 거두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 봅시다. 지금 이때는 마음과 몸이 싸우는 이것이 씨가 되어서 거둘 때입니다. 그래서 몸뚱이형(型) 세계와 마음형(型) 세계가 있습니다. 이것이 민주권과 공산권입니다. 그런 사람을 심어 놓았다는 거예요. 그렇게 거둘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때는 인류역사에 있어서 가을 절기입니다. 수확기요, 끝날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시대에 예수가 왔다가 성사 못 했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삼고 주님이 다시 올 것을 약속했습니다. 기독교는 새로운 역사시대의 출발입니다. 예수를 심었다는 거예요. 예수는 참된 사람이기 때문에 참된 사람을 심은 거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을 때 혼자 완전하고 깨끗한 것으로 심을 수 없었습니다. 사탄들이 참소하는 조건에 걸려 가지고 심었다는 것입니다. 심은 그것이 세계적으로 열매맺힐 때가 되거든 마지막 때인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갈 때에 오른편 강도가 있었고, 왼편 강도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 앞에 바라바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익이니 좌익이니 하는 이런 말이 지금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시대에 심었던 그것이 열매맺힐 때가 되어 드러나는 것입니다. 왼편 강도는 예수를 대해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우리를 살려 달라고 하면서 예수를 부정했습니다. 오른편 강도는 왼편 강도에게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 마땅하지만 이분만은 죄 없으니 죽어서는 안 된다고 예수의 편에 서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왼편 강도를 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른편에 있던 강도는 예수와 같이 낙원에 있는 것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바라바는 어떤 사람이냐 하면 예수로 말미암아 살아났지만 예수를 반대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문화권이 생겨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회교권이라는 거예요. 회회교는 한 손에는 코란경,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순수한 종교의 입장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이는 구약성경을 믿으면서 그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몸적 사람에게도 몸적 마음이 있고 몸뚱이가 있으며, 마음적 사람에게도 마음적 마음이 있고 몸뚱이가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외적 세계와 내적 세계를 두고 볼 때, 예수는 내적 입장에 있었습니다. 내적인 입장은 예수와 오른편 강도가 한 패이고, 외적인 입장은 왼편 강도와 바라 바가 한 패입니다.
내가 1965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 가지고 한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당신네들 민주세계가 공산세계를 능가하여 가지고 승리한다 하더라도 공산세계는 또다시 민주세계를 공격하기 위해서 아랍권 회회교를 통해서 나올 것이다' 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현재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인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애급과 통할 수 있는 회회교권이 소련 정략권내에 몰려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와 기독교와 민주세계가 하나되어서 그들을 염려해야 합니다. 왼편 강도를 반박해서 무색하게 만들던 오른편 강도와 같이 민주세계에서 그것을 담당한 국가가 어느 국가가 되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익이니 좌익이니 하는 것은 여러분이 지은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전통적 역사가 실적으로 나타나 가지고 열매맺혀야 되기 때문에 불가피적으로 나타난, 그 운명을 대표하여 선도국가의 입장에 있는 미국은 금후에 갈 길이 얼마나 지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른편 강도 놀음은 누가 할래요? 하나님이 계셔서 미국을 축복했다면 미국만 잘살라고 축복한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을 축복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금후에 미국의 갈 길과 악한 세계에 대비한 하나님의 작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구요. 중심을 절대적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공산세계보다 나은 민주세계가 되어야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상, 세계를 구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상이 확실히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미국은 희생되더라도 하나님의 아들은 희생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소원은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국민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한번 돌아섬으로 말미암아 민주세계에 가져오는 피해가 있다면 미국 국민이 책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렇게 추궁하실 것입니다.
이런 실정에서 보면 미국에 그러한 판도의 터전이 없는 것을 바라보게 되기에, 나는 동양 사람으로서 미국 사람하고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찾아온 최후의 나라로서 세웠던 미국이 이렇게 된 것을 염려한 나머지 이렇게 나서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말을 하지 못하고 통역을 세워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입장에 선 것도, 당신들을 위하고 뜻을 위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여러분들과 유창하게 말을 못 하는 것이 한입니다. 여러분과 말을 하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내가 공부할 때는 왜정 때요, 일본이 미국과 싸울 때였기 때문에 한때라도 영어공부를 시켰다가는 큰일났던 때였다구요. 그래서 못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세계, 다시 말하면 사람과 하나님을 위한 이상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때는 이미 문전에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대신한, 민주세계를 대표한 국가가 어디 있으며 민족이 어디 있으며 교단이 어디 있느냐? 이러한 국가, 민족, 교단이 없는 것은 지극히 비통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메시아는 이상세계의 중심존재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와 기독교가 분열된 이곳에 오신다면 또다시 쫓겨나고 또 망할 수 있는 운세가 되겠기 때문에,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단결하고 준비하는 하나의 교단이 있어야 되고 무리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중심사상을 위해서는 내 한 몸이 죽을 수 있고, 국가와 세계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일시에 희생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을 중심삼고 하나님만을 위하는 이런 운동이 세계적으로 벌어지지 않고는 세계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 뜻으로 본 견해입니다.
여러분이 소문을 듣고 아는 바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국가 민족을 초월 해서 세계적으로 하나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인종이 문제가 아니요, 피부 색깔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 가지고 하나의 가정제도를 형성하는 운동을 해야 되겠다고 해서 우리는 777쌍의 대대적인 합동결혼식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운동을 제시하기 위해 이제부터 3년 동안 금후의 미국에 대한 작전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고 그들이 싸울 수 있는 길을 내가 친히 보여 주어야 되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시고, 마음으로 혹은 사상적으로 위해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분이 있으면 물심양면으로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운동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뜻이 이 지상에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사람을 위한 이상세계가 실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그때를 위하여 준비하자는 것이 우리 운동인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상적인 하나의 패턴으로 설 수 있는, 가정적이요 종족적이요 민족적이요 국가적이요 세계적인 이념을 갖고 오시는 그분 앞에, 오늘날 우리 자체는 그 상대적 자리에 서기 위해서 단 하나 뜻만을 위하는 야곱과 같이, 뜻만을 위하는 우리 신앙세계의 조상들과 같이, 중심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고 나라와 세계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운동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의 이상세계는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여러분 나라의 국민들이 하나되어서 하나님이 원하는 이러한 이상세계를 건국하는 국민이 되기를 바라면서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에도 이와 같이 여러분들이 참석해 주신 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새로운 메시아와 하나님의 공식 섭리역사'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메시아라는 말은 곧 구주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류가 자기를 구해줄 수 있는 주인공을 바라게 된 것이 기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이틀 동안 말씀을 듣고 깨달았으리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우리 인류의 시조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메시아가 필요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인류시조가 타락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여 구원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천국에 가기를 희망할 필요도 없는 것이요, 또 지옥에 간다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은 타락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구주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이 끝날에 있어서 기독교 신자들은 주님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메시아가 와야 되느냐, 안 와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확실히 '그렇다', '안 그렇다' 하는 결정을 해 놓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교파 중에는 재림이라는 문제가, 지금에 와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고 주장하는 교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메시아는 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용서하는 데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메시아가 이 땅에 오면 심판을 하고 택한 자를 구원하여 천국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 와야만 되는 것은 결국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요, 그 최후의 목적은 악을 굴복시키고 인류를 타락시켜 나온 사탄 마귀를 처단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는 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를 지은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말씀은 사탄 마귀를 용서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 말씀은 사탄편에 있는 사람을 빼내서 구원하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잘못하더라도 끝까지 용서해 가지고 구해 주기 위해서 그러한 말씀을 하신 것이지, 하나님의 원수요 우리 인류의 원수인 사탄을 용서해 주기 위해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아들되는 예수님도 사랑의 중심존재입니다. 그러한 하나님과 예수님이 어떻게 되어 사탄 마귀를 용서할 수 없느냐 하는 문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여튼 용서해서는 안 될 죄를 지은 것은 틀림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 반대되는 사탄 마귀가 본래부터 있었다고 말합니다. 저는 미국의 유명한 목사를 한번 만나 보았습니다. 그 목사는 사탄 마귀는 본래부터 있었다고 결론을 지어 말하였습니다. 지금까지 6천년 동안 하나님의 섭리를 막아 오고, 예수 이후 2천년 동안 기독교 신자들을 천국가지 못하게 막아 온 이 사탄 마귀가 본래부터 있었다면 우리 인간은 구원받을 도리가 없다고 봐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섭리해 온 역사과정에서 아직까지도 제거하지 못하여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사탄을 오늘날 여러분 신자들의 힘으로 제거하고 그를 능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런 입장이라면 우리는 천국에 가서도 또 싸워야 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중심으로 계시는 하나님이 지금까지 사탄과 싸우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싸워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지금까지 사탄을 대하여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원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 마귀가 어디서 왔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가 없다면 예수도 올 필요가 없는 것이요, 하나님의 복귀섭리니 구원섭리니 하는 것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이 모두는 사탄 때문에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사탄이 있는 한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계속되는 것이요, 사탄이 있는 한 구주는 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탄 이라는 존재는 기필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가운데에서 생겨났다고 봐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는 고장이 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병이 났다는 말입니다. 누가 타락시켰느냐 하면, 사탄 마귀가 동기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탄 마귀의 정체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사탄 마귀가 저지른 정죄의 근본을 파헤쳐 가지고 하나님 앞에 참소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을 때는 사탄 마귀를 처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범죄한 자는 자기 죄의 실상을 아는 사람이 없을 때에는 어디 가서든지 당당하게 죄짓지 않은 사람의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극히 조그만 소년이 그 사람이 죄를 범하는 현장을 보았다고 그 지적하게 될 때는, 그 범죄자는 거기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 마귀를 굴복시키려면 사탄 마귀의 정체를 파헤쳐 가지고 천상과 지상에서 추방운동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의 정체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 살펴봅시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 보면 '하늘에서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뱀이요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사탄 마귀의 거처(居處)는 하늘이었던 것입니다. 지상(地上)이 아닙니다. 그 사탄을 옛뱀이라고 했습니다. 아담 해와를 타락시킨 뱀이기 때문에 옛뱀 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로 그 뱀, 즉 옛뱀이 마귀요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뱀이 사탄이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 뱀은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 말씀하는 내용을 알았던 것입니다. 영적인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말하는 것을 알았으니 그 뱀은 영물(靈物)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땅에 기어 다니는 뱀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이 뱀, 즉 사탄 마귀가 우리 인류시조를 타락시켰다는데,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유다서 1장 6절을 보게 되면 '간음을 행한 천사들을 흑암에 가두사 심판날까지 기다리게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사탄 마귀가 범죄한 동기가 무엇이냐, 범행한 내용이 뭐냐 하면 간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탄 마귀가 인류시조를 타락시킴으로 말미암아 무엇이 되었느냐? 성경 요한복음 12장 31절을 보면 '이 세상의 임금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우주를 지으신 주인공이 하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그 주인공을 제쳐 놓고 어떻게 사탄이가 인류를 주관하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임금이 됐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선한 하나님이 주관하는 선주권(善主權)의 세계가 아니고, 악한 사탄이 주관하는 악주권(惡主權)의 세계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악주권, 사탄 수하(手下)에서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첫째 문제입니다.
그 다음 문제는 우리 인간이 원죄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류의 조상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성경에 의하면 그 조상이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무슨 지독한 죄이기에, 인류가 수천년 동안 그 죄를 계승받아 나와야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 그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직까지 이 원죄의 뿌리를 뽑아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 원죄의 뿌리가 있기 때문에 사탄 마귀는 이 세상의 임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그 피의 공로로써 완전구원을 얻었다'라고 하는 크리스찬들이 많으리라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내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잘 믿어 가지고 완전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목사님 신부님 혹은 어떤 교구장님이 계신다고 할 때, 그들이 낳은 아들딸은 예수를 안 믿고 천국에 갈 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없는 것입니다. 지극히 예수를 잘 믿는 사도 요한 같은 사람이 결혼을 해서 낳은 아들딸이라 하더라도 역시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것을 볼 때, 우리 인간 가운데에서 죄의 뿌리를 완전히 뽑지 못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죄의 뿌리를 심어 놓은 타락의 기원이 무엇이기에 그리도 지독한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혈통적인 문제에 그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 마귀는 간음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간음을 하는 데는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에덴 동산에는 하나님과 천사와 아담 해와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천사가 범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범죄는 혼자 할 수 없다고 했으니 상대적인 대상이 있어야 된다는 결론은 자동적으로 나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해와도 타락했다고 했습니다. 타락하는 데는 사탄을 동기로 하여 해와와 아담에게도 계통적인 연결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데는 눈으로 보고 그 다음에는 손으로 만져서 입에 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에 어떻게 했습니까? 입이나 손, 눈을 가리지 않고 하체를 가렸던 것입니다. 얼토당토 않는 부분을 가렸다는 것입니다. 천사가 간음했다는 사실과 해와가 하체를 가린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는 여기에 공통된 내용이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해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부끄러운 것을 깨닫고 아담한테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강요했습니다. 해와는 천사와 불륜의 정조관계를 맺고 보니, 자기의 본 남편이 천사가 아니고 아담인 것을 안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가야 할 자기 자신이 두려우니까 자기가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자리를 찾기 위하여 아담을 유인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 해와 둘이 관계를 맺고는 둘 다 하체를 가리고 숨었습니다. 가렸다는 사실은 결국 부끄러운 곳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드러낼 수 없는 허물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성경 욥기 31장 33절에 보면 '내가 언제 아담처럼 부끄러운 곳을 가리었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 있어서도 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얼굴에 무슨 흠이 있으면 가리려고 합니다, 그 흠을 가리려고 하는 것은 본성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아담 해와에게 흠이 생긴 곳은 입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눈도 아니요 하체라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럴 성싶다고 하는 관점에서 또다시 성경을 참고해 봅시다.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예수님이 불신하는 사람을 대해서 책망하기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결정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우리 인류의 조상은 사탄 마귀라고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도 불신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대해서 '독사의 자식들아' 하고 지적했습니다. 즉, 그것은 뱀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요, 뱀은 사탄과 관계가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꾸며서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알아보니 이런 내용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의 시조가 사탄 마귀에 의해 타락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탄의 피를 받는 후예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살에는 용서할 수 없는, 하나님이 제일 무서워하는 원수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빼내느냐 하는 문제, 이것을 어떻게 수선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타락인간만으로는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수천, 수만년의 역사를 거쳐오면서도 아직까지 해결을 못 보고 섭리역사를 연장시켜 나오시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고충을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성경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반대로 가르쳤습니다. 결국은 사탄의 피를 빼내지 않고는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너희 어머니나 아버지나 처자나 그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즉 사탄세계의 사랑보다도 더 높은 사랑의 인연을 발견하기 전에는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에 가려면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나 처자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서서 하늘의 생명과 인연맺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국에 못 간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찾아온 이유를 대번에 아시고 '천국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지 않고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에 니고데모는 '선생님이여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유대인의 선생이면서도 그것을 모르느냐'고 반박을 하셨던 것입니다. 결국은 잘못 태어났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야 하는 놀음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게 될 때, 지금까지 우리가 믿고 나오던 하나님의 뜻과 지금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내정(內情)과는 천양지판인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장자는 축복을 못 받았습니다. 차자만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인 야곱에게 축복을 받게 할 때, 야곱은 손을 엇갈리게 해서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요셉이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右 手)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하자 야곱은 '나도 안다'라고 단언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할례라는 것이 있습니다. 구약에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써'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그냥 그대로 탕감하는 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어찌하여 하체에서 피를 빼야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하체의 피를 뺐다는 조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주체적인 사명을 다해서 뜻 앞에 섰다면 그런 범죄를 지어 사탄의 피를 끌어들이지 않았을 것인데, 아담이 잘못하여 사탄의 피를 끌어들였기 때문에 남자는 피를 빼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맹세를 할 때에 환도뼈에 손을 대고 맹세합니다. 거기에는 허리를 잘못 쓰고 타락한 조상과 같은 무리가 되지 않고 그것을 지키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밤새껏 씨름해 가지고 축복을 받게 될 때, 천사는 그냥 축복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환도뼈를 치고서야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이것은 환도뼈를 잘못 썼으므로 그 동기가 되었던 것을 되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 조건으로 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제물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 제물은 사람 대신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피를 좋아해서 그랬느냐?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죄악의 피를 받았기 때문에 그 피를 갈라내지 않고는 거룩하게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체 문제를 보게 될 때, 선악과 하나 따먹은 것을 부정하고, 그 동기를 씻기 위해서 그런 놀음을 한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은 사탄의 혈통을 불륜한 사랑관계로 말미암아 받아들여 가지고 그 핏줄을 이어 온 인간인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자신을 다시 한 번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이 사탄의 혈통을 통해서 번식되었기 때문에 사탄은 자동적으로 이 세계의 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왕이 되려면 모든 면에 있어서 그 나라와 하나될 수 있는 내연(內緣)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륜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원죄가 심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메시아가 안 오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을 그냥 버려 둘 수 없기 때문에 구하는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이 세계는 사탄이 주관하고 있는 돌감람나무 밭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을 하나님이 마음대로 끌어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탄한테 이긴 사람, 야곱을 통해서 이스라엘 선민권을 만들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택한 나라가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 밭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탄보다 나은 돌감람나무 밭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밭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끔 만들어 가지고 그 백성들 앞에 메시아를 보낼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의 참감람나무가 있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2천년간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했던 메시아인 깃입니다.
그러면 메시아는 어디로 올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을 때는 사탄과 혈연관계가 절대 없었던 것입니다. 이 땅 위에 메시아로 올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탄세계의 혈통의 인연을 밟고 넘어선 자리에서 오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의 배에 배는 사람은 다 사탄의 종자인 것입니다. 이것을 맑힌 터전을 만들지 않고는 메시아가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 그릇된 혈통을 맑히기 위해 어떠한 역사를 해 나오셨는가 하는 것을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문제는 타락 때문에 이런 어려운 길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첫날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인간 시조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과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의 창조위업을 이어받아 가지고 아들딸을 낳고, 하나님의 모든 권한을 이어받을 수 있는 가치적인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마음에 들어가면 하나님은 내적인 하나님이 되고, 아담 해와는 실체를 쓴 외적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을 보면, 우리 타락한 인간이 구원을 받아 이루는 것에 대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聖殿)인 것과 같이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타락한 인간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타락하지 않은 아담이야 더더욱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으신 것은 사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도 혼자 계셔 가지고는 기쁨이 없으니, 그 사랑의 실체로 만들어 놓으신 것이 우리 인류의 조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 속에 들어와 가지고 부부를 이루었다면 하나님이 직접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다면 처음에 태어난 아들, 즉 장자는 하나님의 사랑의 혈통을 받고 태어났을 것입니다. 둘째번 아들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제물이니 싸움이니 하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처음에 태어난 아들이 누구의 아들이 되었느냐? 사탄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태어난 아들을 가지시는 것이 본래의 원칙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밖에 없는 사랑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설 자리를 사탄이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사랑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두 주인을 모시는 것과 같은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사탄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그 아들딸을 전부 데려갈 수 없는 것입니다.
첫째번 사랑은 사탄과 관계한 사랑이요, 둘째번 사랑은 타락은 했지만 아담과 관계한 사랑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아담은 본래 하나님이 허락할 수 있는 남편이요, 사랑의 주인입니다. 아들은 사랑의 열매이므로 그 아들을 전부 사탄에게 넘겨주면 구원이니 무엇이니 하는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창조위업이 파탄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찾는 섭리를 하기 위해서 둘째번 사랑의 열매인 둘째 아들을 하나님이 취하고, 첫째 사랑의 열매인 첫째 아들은 사탄에게 넘겨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이것을 다시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시작하겠다는 것입니다.
원칙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 장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둘째 아들로 하여금 어떻게 장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탄편을 쳤던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렸을 때, 왜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만을 받으셨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오늘날 신학계에서는 아벨이 피 있는 제물을 드렸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인도 제물을 드렸던 것입니다. 만약 가인이 절대적으로 아벨을 통하여 일방적으로 돌아갔으면 거기에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렸을 것입니다.
본래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가 천사를 지배해야 할 것이었는데, 천사가 아담 해와를 지배함으로 말미암아 거꾸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담편에 있는, 하나님편에 있는 둘째 아들을 통해서 천사장편에 있는, 사탄편에 있는 가인을 굴복시킴으로 말미암아 탕감을 하자는 것입니다. 아벨이 그런 입장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을 기쁘게 받으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쁨을 돌려드리는 아벨을 대해서 가인은 자기의 제물을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았다고 섭섭해 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아벨을 대해서 사랑하고, 그 아벨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거기서 구원섭리의 발판은 성립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는 아벨을 원망하면서 때려죽였습니다. 결국은 천사장이 아담을 지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탄편 천사장의 입장에 선 가인이 하늘편 아담의 입장에 선 아벨을 때려죽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영육 죄악의 결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생이 형의 자리에 서고 형이 동생의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날 수 있는 아벨이 앞 자리에 서고 가인이 동생의 자리에서 섬길 수 있으면 저끄러진 것을 뒤집어 가지고 바로잡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악의 결과가 열매맺혔습니다. 열매맺은 뿌리의 터전이 어디냐 하면 사랑입니다. 사랑이 그 터전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어머니 뱃속까지 찾아 들어가 가지고 바꿔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 아벨을 통하여 바꾸어 놓으려던 것을 실패했기 때문에 점점 좁혀 들어가는 것입니다. 형제끼리 태어난 형제의 싸움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형제의 인연을 만들어 가지고 돌이켜 놓자는 것입니다. 하나의 사랑의 씨가 되었어야 할 것이었는데, 두 사랑의 씨가 됨으로 말미암아 갈라졌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의 사랑의 결과와 마찬가지로 몰아넣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느 때에 했느냐 하면 이삭의 아들 야곱과 에서의 시대에 했습니다. 죄악을 심은 근본 중심자는 해와요, 열매를 맺히게 한 자는 가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와 아들의 협조를 통하지 않고는 돌아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리브가가 에서와 야곱을 잉태했을 때, 뱃속에서 그들 형제끼리 싸웠습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하늘 앞에 나아가 '하늘이여, 이 아기들이 싸우는 것이 어쩐 일입니까?' 하니, 하늘에서 가라사대 '네 복중에는 두 나라가 있느니라. 그 중에 큰 자는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야곱과 에서가 태어났습니다. 야곱은 하늘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하늘의 기업을…. 다시 말하면 야곱은 하늘의 축복을 받은 계대를 진실로 사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하늘의 축복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데 축복을 해줘야 할 때가 왔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그것을 알아 가지고 야곱과 합동하여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기업을 빼앗았습니다. 사탄이 해와와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축복을 빼앗아 갔으므로, 사탄 앞에서 장자를 빼앗아 나오는 놀음을 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양가죽을 쓰고 형을 대신해서 아버지를 속여 가지고 이삭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에서는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을 판 어리석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형의 자리를 허락하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섭리역사가 출발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고 나서는, 가인이 아벨을 죽이던 것과 마찬가지로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것을 세밀하게 얘기하려면 30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시간이 없으므로 이것으로 넘어갑시다.
쌍태에서 태어난 쌍동이는 동생이나 혹은 형님이 슬퍼하거나 하면 감정이 통한다고 합니다. 야곱과 에서를 그렇게 바꿔치기를 하기는 했는데, 태어나 가지고 바꿔치기를 했습니다, 만일에 에서와 야곱이 40대에 바꿔쳤다고 하면 그전, 즉 복중시대에서부터 40대 전까지는 사탄권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복중에서부터 형제의 핏줄을 바꾸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가운데에 유다가 있었습니다. 그 유다의 며느리 다말은 유다의 아들 가운데에서 그 누가 축복의 계대를 이을 줄 알고 기다렸지만 그 계대를 이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시아버지와 관계해 가지고 아들을 낳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밀한 내용은 창세기 36장에 있기 때문에 시간관계로 잠깐 몇 마디만 더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다말은 애기를 배기 위해서 생명을 내던질 각오를 했습니다. 사탄세계에 대해서 생명을 내던질 각오를 할 수 있는 터전이 되지 않고는 안 되었습니다. 즉, 사탄세계의 생명을 받을 것을 부정하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자기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고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다말이 해산을 할 때, 먼저 한 아들이 나오려고 손을 내밀어서 산파가 거기에 빨간 실을 처맸습니다. 여기에서 끝날에 공산주의가 출현하는 원인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동생이 먼저 나오려는 형을 밀치고 바꾸어 나왔습니다. 즉 세라가 나오려고 하는 것을 베레스가 밀치고 먼저 나왔습니다. 베레스라는 말은 밀치고 나왔다는 뜻입니다. 이래서 사탄의 혈통을 받아 가지고 심어졌던 두 갈래의 줄기를 비로소 어머니 복중에서 바꿔치기한 결정적 터전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말의 아들과 같은 전통적 인연을 이어받은 하늘의 맑은 혈통이 예수님 때까지 내려온 것입니다. 왜 그랬느냐 하면, 어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탄세계가 이미 나라로 되어 있었으므로 하늘편에서도 국가기준을 만들 때까지는 메시아가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메시아가 올 것을 약속해 가지고 국가 형성의 기대(基臺)를 이룰 때까지 기다려 온 것입니다.
마리아도 다말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생명을 바치기를 각오하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님은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를 찾아야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시기는 약혼시기와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그 시기에 사탄이 그들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그러한 때에 그것을 탕감복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리아를 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복중에서 태어난 예수에게는, 다말을 통해서 베레스와 세라의 핏줄을 맑힌 그 기준이 있기 때문에 사탄이 자기와 혈연관계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조건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복중에 잉태하더라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배후의 전반적인 얘기를 하려면 다섯 시간이 걸립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사탄의 핏줄을 전환시킨 깨끗한 내적 혈통적 터전 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시대에 처음 나오신 분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과 한몸이다' 라고 하셨고,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첫날 얘기한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부부를 이뤄야 된다는 입장을 예수가 거쳐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핏줄로 말미암아 더렵혀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러한 역사를 배후에서 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역사상의 그 누구도 안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하늘나라, 아버지 앞에 갈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수가 없다'고 당당하게 선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종교 지도자가 있다 하더라도 역사적인 사탄의 더러운 피를 맑혀 가지고, 혈통을 전환시켜 가지고 하나님과 인연을 맺고 태어난 사람은 예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석가도 공자도 마호메트도, 그 누구도 이러한 배경을 받아 가지고 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분이 이 땅 위에 태어났다는 사실은 인류 앞에 있어서 희망 중의 희망이요, 생명의 새로운 기원과 부활을 맞을 수 있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 밭이 이스라엘 민족이기 때문에, 그 돌감람나무 밭에 하나의 참감람나무를 심어서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적으로 일시에 잘라 가지고 접을 붙여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참감람나무 동산을 이루자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접붙인 돌감람나무도 참감람나무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접을 붙이고, 가정적으로 접을 붙이고, 종족적으로 접을 붙이고, 민족적으로 접을 붙이고, 국가적으로 접을 붙여 가지고 그 중심의 자리에 서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참감람나무 혼자서는 안 됩니다. 상대자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신부를 택하여 지상에서 안팎으로 완전히 뿌리를 내리는 가정적 기틀을 닦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틀을 준비하기 위해서 세계 요한과 유대교를 세워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예수님을 받들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것을 어제 강연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은 기분 나쁘게 생각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의 내용을 보게 될 때, 예수님이 그러한 입장으로 태어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이제는 유대교인들도 믿어야 할 때가 왔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 절대적으로 와야 된다는 결론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참감람나무로서 이 땅 위의 돌감람나무에 접을 붙이고 가셨느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다시 온다는 약속으로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지상기반, 즉 4천년 동안 수고한 터전을 잃어버리고 기독교는 영적인 천국을 숭상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에 메시아가 다시 오지 않으면 우리는 참감나무를 접붙일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여기에서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 관계된 문제는 시간관계상 약(略)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제는 메시아가 오시는 끝날이 되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공중으로 오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사랑하는 베드로에게 천국문 열쇠를 주고 가셨습니다. 천국에 못 가게 한 것은 공중이 아니라 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서 열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에 보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고 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하나님의 아들이 못 되는 것입니다. 양자밖에 못 됩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되기를 기다리느니라'고 했습니다. 양자니까 핏줄이 다르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양자가 아들을 통해 접붙임을 받아 가지고 아들을 대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양자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의 돌감람나무 밭은 영적인 밭입니다. 이스라엘 선민과 같이 하나님이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는 실체의 돌감람나무 밭이 지상에는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나라를 대신할 수 있는, 선민을 이어받은 어떤 주권국가가 땅 위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준비를 하는 단체도 없으며, 교단이나 개인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가르쳐 주어서 준비하는 일을 하늘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우리 같은 사람이 태어난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요, 인류 앞에 새로운 무엇을 가르쳐 주기 위한 뜻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오실 때에는 틀림없이 지상으로 와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5절을 보게 되면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땅에서 올라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자는 오시는 주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메시아를 맞지 않으면 우리는 접붙임을 받을 길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메시아가 지상으로 와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스라엘 나라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 땅 위에서 이루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던 길을 다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것을 갈라 나오는 데는, 이스라엘을 택하는 데는 그냥 택하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과정을 통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 가지고 몸뚱이가 사탄한테 끌려갔습니다. 끌려가 가지고는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첫째는 불신이요. 둘째는 실체(實體)를 잃어버린 것이요, 세째는 사랑을 파탄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반대로 찾아 나오셔야 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을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아벨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 시대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물을 드리는 데에 있어서도 절대적으로 믿고 드려야 사탄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즉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탄세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지 못할 자리에서 믿고, 나오지 못할 자리에서 나와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 때를 두고 보더라도, 믿지 못할 일을 하나님은 노아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배를 강가에서 지으라고 하지 않고 산 꼭대기에서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전부가 반대할 수 있는 입장에 내세운 것입니다. 10년도 아니고 120년 동안 방주를 지을 때 노아의 부인, 아들딸, 친척, 동네 사람들 전부가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전부 미친 사람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노아의 부인이나 아들이라면 120년 동안 노아를 믿고 따라갈 수 있겠어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전부 다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믿지 못할 때에 믿고 나서야 되고, 반대하는 환경에서 벗어나야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아브라함은 가정에서 사랑하면서 재미있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명하시기를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우상 장사를 하는 아버지, 데라의 집을 떠나라고 명령했다는 거예요. 그럴 때에 아브라함이 그냥 거기서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더라면 일이 다 틀어졌을 것입니다. 그런 얘기를 어머니 아버지한테 의논하고 형제들한테 의논했다면, 그 형제와 어머니 아버지가 어서 떠나라고 했을 것 같아요? 붙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틀림없이 몰래 도망을 나왔다는 것입니다. 장래에 축복을 받는다는 약속도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집시의 무리가 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불신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믿는 마음을 가지고, 곤궁에 빠지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이국 민족들에게 배척을 받더라도 하늘 앞에 더 가까이 서기를 바라며 믿고 따라 나온 아브라함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후손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리라고 축복을 해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야곱을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축복을 받아 가지고는 죽고 사는 문제를 개의치 않고 집을 떠났던 것입니다.
모세를 보더라도,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선민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믿고 그 선민을 위해서 바로 궁중을 뛰쳐 나왔던 것입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그 어떤 수난길이 닥쳐도 그것을 전부 다 극복하고 이겨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하는 입장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라고 다시 보내지 않으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 요한도 자기의 집을 나와서 광야에서 30년 동안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갖은 고난의 길을 극복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나왔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사에 나타났던 이러한 신앙의 모든 선조들을 바라볼 때, 그들은 믿지 못할 자리에서 믿었고, 싸움으로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극복해 나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이것이 공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끝날에 이스라엘 나라를 재편성하여 오시는 주님의 터전을 마련 하는 무리가 있다고 하면 그 무리도 이 공식적 법도를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끝날, 혼탁한 사상이 세계를 물들이고 있는 이때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나갈 수 있는 무리가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라든가 하는 어떠한 철학이나 사상이 문제가 아니라 이것을 극복해 가지고 하나님만을 믿을 수 있는, 새로운 말씀을 중심삼고 나서는 무리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무리가 그 길을 반대하고, 아무리 죽을 길로 내몬다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그 길을 따라 나설 수 있는 무리가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나서서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메시아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양자밖에 되지 못하였던 우리가 직계의 아들로 하늘의 새로운 나라를 맞이하는 백성이 되어야 지상에 천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교회를 거치고 세계적인 운동을 거쳐 나오는 그러한 무리가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교가 분열되고 이스라엘 민족이 분열됨으로 말미암아 뜻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현실의 기독교 분열상을 바라볼 때, 지금과 같은 터전에서는 소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새로운 메시아가 오실 때에는 그분이 피해를 입는다든가 혹은 가시는 길에 있어서 방해를 받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세계를 대표한 국가형태를 빨리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가 와야 될 것을 예상하고 우리는 여러분이 알다시피 국경을 초월해서 새로운 가정편성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대대적인 합동결혼식도 이러한 뜻을 받들기 위한 준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개인적으로 접붙이고, 가정적으로 접붙이고, 종족적으로 접붙이고, 국가적으로 접붙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나온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주면 고맙겠습니다.
여러분, 현재 미국을 두고 보면 가정을 뛰쳐 나온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든가 혹은 이 땅 위에 오시는 메시아의 길을 닦기 위해서 그렇게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젊은 남녀들이 갈 길을 모르고 절망의 함정인 히피의 무리가 된다는 사실을 볼 때, 미국 국민은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은 산산조각으로 깨져 나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곳에는 오시는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신앙의 가정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정,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민주세계면 어떻고 공산주의면 어떠냐 하면서 양방면에서 자기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자리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국민과 나라가 될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나라만을 위하는 국민이 아니라 자기 나라를 넘어서서 세계를 위하고 새로운 세계적인 운동을 할 수 있는 미국이 될 성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젊은이들은 그와는 반대로, 히피의 무리가 아니라 하늘을 위하여 가정을 떠나는 운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히피들은 자기 부모를 대해서 반박과 불평을 가지고 집을 떠나지만, 우리는 부모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장래의 한 가정을 소망으로 가지고 떠나자는 것입니다. 가야 할 방향을 알지 못하고 잠자고 있는 이 민족 앞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잠을 깨워 주기 위해서,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처럼 축복했던 미국이 메시아가 올 때에 딴 나라보다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기반이 못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염려하면서, 이 나라를 하나님 앞에 선두에 세워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나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길을 떠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미국이 갈 길을 못 가는 날에는 하나님의 섭리에 크나큰 지장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늘이여, 미국을 버리지 마옵소서. 저희가 미국을 위해서 제물이 되고, 미국을 위해서 싸우고, 미국을 위해서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고 하면서 가자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3년 이내에 수천 명을 동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벅찬 십자가의 길을 나서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통하여 느낀 바가 있거들랑 자나깨나 그들을 마음으로 동정하고, 여러분이 하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거들랑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은 3월 14일에 이 나라를 떠나게 됩니다. 내가 떠나게 될 때, 그 젊은이들이 통곡을 할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미국을 더 사랑하라'는 말을 최후의 말로 다짐해 놓고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편안한 잠을 잘 때 고생의 길을 갈 것이고, 여러분이 편안한 생활을 할 때 굶주린 생활을 해야 할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차후, 1977, 1978년도에 찾아올 위기를 대비해서 방파제가 되자고 맹세하며 떠나는 무리들을, 여러분이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서 이 나라의 운명을 이끌어 나가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와 같은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가누지 못하더라도 오시는 메시아를 모셔야 되고, 여러분의 나라를 가누지 못하더라도 오시는 메시아를 맞아야만 된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부디 오시는 메시아를 맞아 가지고 하나님의 직계 자녀로서 창조본연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가정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국민이 되어 주기를 바라서 오늘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박수) 질문이 있으면 하시기 바랍니다.
문 :지금까지 들은 내용이 저에게는 많은 혼동을 주었고, 여러 가지 이해가 안 가는 데도 많고, 또 전후가 맞지 않는 것 같은 곳도 많은데 이 계시가 어떠한 계시, 무슨 계시인지 근원을 확실히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즉 제가 오늘 저녁에 들은 말씀이 꼭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자기가 기도를 해서 하나님과 통하든가, 혹은 영계에 들어가 체험을 하고 하나님과 직접 문답할 수 있는 경지에 가기 전에는 모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기도를 해보거나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과 문답을 해보면 압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체제, 역사적인 실증을 봐 가지고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 시일내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먼저 진리를 공부해야 되고, 그 다음에 기도를 해보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영계와 통하는 사람에게 문선생에 대해서 물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문: 교파 분열 현상을 원리로 어떻게 보십니까?
성경에 상징과 비유로 되어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피하게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를 봐야 합니다. 재미있는 현상은 영계에서 이것을 가르쳐 주어서 연락이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 생활을 많이 하면 영계에서 다 가르쳐 줍니다. 영계를 통해 보면 성경을 해석하는 길이 자연히 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이제까지는 전부 다 부분 부분만을 봤기 때문에 몰랐지만, 전체를 보면 참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이런 일이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전부 다 하나님과 통하게 되면 자연히 종적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열 사람이 전부 통하게 되면 횡적으로는 자동적으로 풀립니다.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을 대해서 테스트도 많이 하는데, 아담의 타락이 어떻게 해서 되었느냐고 물으면 사랑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고 말합니다. 영계를 통해 보면 독신생활을 하라고 가르쳐 줍니다. 신부가 독신생활 하지요? 인류의 참된 부모가 아직까지 결혼을 못 했는데 아들 되는 사람이 결혼을 하면 거꾸로 되기 때문에 못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차적인 종교, 불교라든가 천주교는 독신생활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신부님들은 희망을 가지십시오. (웃음)
문: 1977년, 1978년이 위기의 때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공산당이 1917년 창립했으니까 그때가 공산당 창립된 지 60년이 되는 때입니다. 6수는 사탄수이므로 그때가 되면 다시 사탄이….그래서 위기의 때라고 한 것입니다.
문: 꽃이라든지, 새라든지 아니면 다른 짐승을 예로 드시지 않고 왜 감람나무를 예로 드십니까?
성경 로마서 11장에 그런 비유가 있습니다. 거기에 지혜가 있는 것입니다.
문: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에 대해서 대단히 혼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유를 가지고 있는 미국에서는 그 자유가 방종이 되어 있고, 더구나 물질주의는 이상을 향해 가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실망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공같이 정치적으로 자유는 주지 않지만 건전하고 모두가 공평하게 살고 있다는 데에 대해서 젊은 사람들이 동경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에드가 케이스라는 사람은 중공 같은 제도가 장차 기독교의 제국형인 것처럼 얘기를 하는데 이것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두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유세계를 상대해 가지고 성서의 미지의 사실을 밝혀 하나의 길을 모색하고 있고, 두번째는 공산사상이 지금까지 세계를 제패해 나온 것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공산사상이 그르다는 것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공산세계에서는 우리가 큰 암적인 존재로 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우리가 그러한 문제에 있어서 학계나 사상계에 최고의 자리에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역시 그렇고 나아가 아시아 전역에 있어서도 그런 입장이 되어 있습니다. 불원한 장래에 미국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벌써 공산당의 간부들까지도 많이 넘어오고 있습니다.
1971년도 일본 공산당의 3대 목표 가운데 제일이 우리를 타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연차 계획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이론으로 못 당하니까, 우리 쪽의 간부들을 대하지 말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와서 그런 점에 대해서 공부를 해보기 바랍니다. (웃음. 박수)
이제 11시가 가까왔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갔기 때문에, 언제 다시 올지 모르지만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면서 이만 질문을 끝내고 작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박수)
모여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제가 소개받은 문선명입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과 나 사이에는 통역이 절대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벙어리와 같고, 내 입장에서 보면 여러분은 귀머거리와 같습니다. (웃음) 통역을 해본 사람은 통역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통역을 중계로 하지 않고는 나와 여러분은 서로 마주 보고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합니다. 이러한 것을 완전히 듣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통역입니다.
미국 책임자가 나와서 나를 소개하기를 영계를 통하느니, 혹은 계시를 받느니 하는 내용을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영적 세계의 현상도 필요하고 그런 내용을 우리가 깨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영적 세계의 일이 어떻게 우리 인간생활에 적용되며, 또 진리를 어떻게 우리 생활권내에 실천시키느냐 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영적 현상이라는 것은 특정한 사람을 통해서 한때의 일로 그치지만, 진리라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에 진리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 앞에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본인도 그런 관점에서 근본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많은 고심을 해왔습니다. 오늘은 영적 세계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도 말씀 제목이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 이므로 이 내용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현재 세계정세를 두고 볼 때, 인류가 금후에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문제가 세계인류로서 궁금하게 생각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만일 절대적이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 세계를 올바로 지도해 주실 것은 틀림없는데, 하나님이 계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세계 문제에 대해서 고심하는 사람들이 내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하나의 하나님, 하나의 세계종교라는 이 문제를 두고 볼 때도, 우리 인간을 빼놓고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 민족, 국가, 세계, 이 전세계 인류를 빼놓고는 그러한 것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인류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고, 인류를 통해서 경륜하신 뜻을 이루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종교적 형태를 거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세계적 종교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사람은 여기에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하나님이 계시냐 안 계시냐 하는 문제는 오늘날 전세계 인류 가운데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시느냐 하는 것을 잠깐 얘기해 봅시다.
이 우주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뭇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조건으로 작용이 필요합니다. 작용을 통하지 않고는 존재를 계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작용을 하는 데는 그 자체가 혼자 작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용하는 데에 있어서 절대 필요한 것이 뭐냐 하면 주체와 대상입니다. 주체와 대상 이라는 관계가 인연되어 있지 않은 곳에는 작용이 벌어지는 현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반드시 주체가 있고 대상이 있는 곳에서 작용이 벌어져야 계속적인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서 있는 내가 아무것도 없는데 손을 이러고 이러면 여러분은 웃으며 저 사람 이상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조그마한 대상이라도, 눈에 보일락말락하는 그런 하나의 상대가 있어서 그것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보고 이러면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미국 대통령이 제일 되시는 분인데 그분이 아무도 없는 데서 크게 혼자 '하하하' 웃고 춤을 추고 한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대통령이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그마한 무슨 상대라든가 여기 이런 물잔이면 물잔 같은 것을 하나 들고 감상하면서 웃고 춤을 춘다면, 그때는 이상한 대통령이 아니라 정상적인 대통령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적인 존재, 대상이 얼마나 귀한가를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온 우주의 중심존재가 되시는 하나님, 절대자가 계시다면 그 절대자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혼자 좋아하고 웃으면 하나님도 역시 이상하다고 아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위대하시고 유일무이 하신 하나님이지만 지극히 조그마한, 먼지만한 것 하나를 가지고 웃고 좋아하시면, 그 하나님은 정상적인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도 역시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절대자로서 그 대상을 이 피조세계에서 취한다면 어떤 것을 취할 것인가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그것은 식물이 아닐 것입니다. 동물도 아닐 것입니다. 물론 식물보다 동물은 좀 나을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니만큼 최고의 것을 상대해야 할 입장에 서 계시기 때문에…. 만물 중에서 최고의 존재가 무엇이냐 하면, 이것은 유치원 학생에게 물어 보더라도 다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피조만물 가운데에서 사람은 걸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품이라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절대적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피조세계를 짓고 인간을 지었다면, 하나님과 인간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어떤 인연을 갖지 않고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으면 피조물인 우리 인간의 목적과 지으신 그분의 목적이 따로따로 달라서는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결합할 수 있는 일치점을 찾지 못한다면 사람과 하나님이 공동으로 기쁠 수 있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최고의 그분이 바라는 최고의 목적점인 그 곳은 우리 인간의 소원의 기점이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 그 목적점에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작용이 벌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람의 마음은 최고의 목적을 바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은 최고의 목적을 바라고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훌륭한 분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분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분과 만나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분과 사랑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욕망입니다.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을 자기 것 만들고 싶지 않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남녀를 물론하고, 아무리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을 물론하고, 병신이나 병신이 아닌 사람을 물론하고 그 자체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 없는 것이지, 가능하다면 누구나 다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최고를 바라는 데에 있어서는 평등합니다.
하나님을 점령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만일 하나님 속에 숨겨져 있는, 하나밖에 없는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까지도 점령하고야 말겠다는 욕망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인간의 최고 욕망의 종착점은 어디냐 하면 하나님만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까지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점령하는 날에는 하나님의 모든 소유는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했듯이 작용이라는 것은 주체와 대상 관계에서 벌어집니다. 작용이 계속되는 데에 있어서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양심의 작용이라는 것은 방대하고도 위대한 목표를 향해서 돌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심은 얼마나 크냐? 작게 보면 지극히 작고, 넓게 보면 온 우주보다도 넓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욕망은 하나님보다도 더 크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 욕망은 우리 인류가 생겨난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변동 없이 역사의 방향과 더불어 작용하며 움직여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작용을 하는 데에 있어서는 서로서로 손해나기 위해서 작용하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여러분이 여기에 올 때, '아, 미스터 문이 로스엔젤레스에 왔다는데, 어떤 사나이인가 한번 가 보자' 해 가지고 왔는데, 자신이 손해보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닐 것입니다. 혹은 사람들이 번화가에 나가면서 '나는 오늘 십전 손해보기 위해서 나간다'라고 하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잠시 녹음이 안 됨)
작용을 하는 데 있어서 손해가 나게 될 때는 계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는 데도 그런 것입니다. 상대를 대해 가지고 자기가 손해를 보겠다고 하는 녀석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남자 여자 둘이 합하려면, 두 사람이 일치될 수 있는 기준만 영원히 남는다면 하나되어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손해나는 길에서는 망하는 것입니다. 왕창 망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작용하는 데 있어서 작아지는 원칙이 있다면 이 방대한 우주는 형성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므로 둘이 작용해서 플러스될 수 있는, 서로가 이익이 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우주는 큰 목적을 향해서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화학실험을 할 때에도 실험하는 사람이 원소와 원소끼리 아무리 강제로 작용을 시키려고 해도 작용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두 존재가 서로서로 보다 나을 수 있는 상대가 나타났을 때에는 작용하지 말라고 해도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작용의 원칙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중심삼고 하는 것이요, 이 주체와 대상이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두 존재가 보다 플러스될 수 있는 목적적인 내용이 없이는 작용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나 변증법을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말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이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양심작용이 있다는 것은 절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양심이 없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 녀석아, 너는 양심도 없는 녀석이다'라고 하면 전부 다 화를 내게 됩니다. 따라서 양심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이 양심은 최고의 권위와 최고의 자리와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최고의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까지 점령하고 난 후에 양심작용이 또 있을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만 점령하면 몽땅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전부가 그 안에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작용은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어서 손해나는 데에는 작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우리 양심작용은 믿지 못하는 작용을 하는 것 같고, 손해나는 작용을 하는 것같이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면 최고의 자리에서 만날 수 있게끔 작용하는 거예요. 하나님도 손해가 나고 인간도 손해가 나면 그 작용은 중단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어느 한때에 이것이 이익 될 수 있는 가치적인 내용이 있게 되면 우리의 양심은 역사를 통해서, 우리의 생애를 통해서 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런 양심작용을 볼 때, 작용이 있기 위해서는 손해가 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주체와 대상 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 이 양심작용을 부정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언제나 주체적 존재가 아니라 결과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어서 이익 될 수 있는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추구하는 것을 두고 볼 때, 그 주체 되는 분이 없다고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계실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그래도 잘 모르겠는데?'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제일 가까운 인체를 중심삼고 예를 한번 들어 봅시다. 우리 인체 중에서 제일 귀한 곳이 어디냐 하면 손보다도 머리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단계로 보면 3단계로 되어 있고, 구멍으로 보면 일곱 구멍이 나 있습니다. 이 귀는 사방을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7수가 완성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에게 일곱 구멍이 있는 것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척 일어나면 거울을 바라봅니다. 이 모양이 어떠냐 하고 말이예요. 이 눈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입니다. 우리 얼굴 가운데에서 이 눈은 하나님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코는 아담 해와로 우리 인간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입은 만물, 음식을 섭취할 수 있는, 만물을 상대할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만물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여러분이 절대적으로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번 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이 우주는 무엇 때문에 돌아가느냐? 즉, 머리는 무엇 때문에 돌아가느냐 하면 눈 때문에 돌아가는 거예요. 눈이 있기 때문에 움직이지 눈이 없으면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가 돌아가는 데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얼굴 가운데 제일 앞장선 것이 뭐냐 하면 코입니다. 이 우주에서 제일 선두에 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입니다. 이 코는 두 구멍이 모여서 하나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람도 남자 여자가 완전히 하나되지 않으면 코가 하나 막힌 것과 마찬가지로 답답하게 되는 것입니다. (웃음) 입을 통해서는 만물을 섭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넘어갑시다.
눈을 가만 보면 말입니다. 내 눈이 어디서부터 생겨났느냐 하고 묻게 된다면, '그것 물어 볼 게 뭐 있나. 우리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생겨났지'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너 어머니 아버지의 눈은 없었어'라고 하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머니 아버지에게도 틀림없이 눈이 있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눈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쭉 올라가서 그 눈의 근본조상이 누구냐 할 때, 태초의 인간조상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태초에 인간조상이 태어나게 될 때, 눈이 생겨난 것입니다. 눈을 가지고 땅에 태어났습니다. 땅에 태어났는데 그 눈은 땅을 보기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빛을 보기 위해 생겨난 것입니다. 태어나기 전에 벌써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눈 자체가 알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벌써 천문학적인 견해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또, 더 재미있는 것은 여러분의 눈이 깜빡깜빡합니다. 태양열에 의해서 눈에 있는 수분이 증발되면, 복사열에 의해 눈에 있는 수분이 증발되면 큰일이기 때문에 눈을 축이기 위해서 깜빡거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벌써 알고 양쪽 눈꺼풀이 깜빡깜빡하게 되어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눈이 이렇게 깜빡깜빡하는 것을 알고 태어났어요? 태어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거라구요. 태어나고 보니까 그런 거라구요.
여러분, 여기에 눈썹이 있습니다, 눈썹. 이 눈썹은 공기 중에 먼지가 있어 가지고 눈에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방지하기 위해 준비해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이 눈썹이 공기 중에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겠어요?
또, 눈 위에 큰 눈썹이 있는데 이것은 왜 보기 싫게 시커멓게 돼 있어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뭐하려고 눈썹을 이렇게 시커멓게 붙여 왔어요? 사람은 서서 다니는데 땀이 흘러내려 귀한 눈에 고이면 큰일이 날것을 벌써 알고 방어선을 그어 놓은 것입니다. 눈썹이 없으면 틀림없이 이 깊은 골짜기에 물이 모여들게 되어 있는데, 이것이 이렇게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이렇게 싹 비켜나가게 되어 있다구요. 이게 이렇게 해서 이렇게 들어가게 안 되어 있다구요.
여러분 코는 왜 이렇게 되어 있는지 알아요? 만일 이 코가 뒤집어졌으면 어떻겠어요?(웃음) 코는 이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또 이 코가 위에보다 아래가 넓으냐 하는 것을 생각해 왔습니까? 아래쪽이 넓어야 길을 터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땀을 흘리더라도 전부 다 옆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금이 없는 사람 있어요?
입을 봐요. 입도 땀이 흘러내리면 옆으로 가게 되어 있어요. 이렇게 되어진 전부가 알고 갖추어 태어났습니다. 어떤 과학자가 연구해 가지고도 다 알지 못할 만큼 완전무결하게 알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뚱이 전체를 보면 우주의 신비의 왕궁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수만 수억의 의학박사의 연구재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것이 자기 멋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터전 위에서 우리가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결론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이 태어날 때 그것을 몰랐어요. 태어날 때 알고 태어났소. 모르고 태어났소? 모르고 태어났다구요. 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는 몰랐지만 알고 있는 분을 동기로 해서 결과적인 존재가 태어난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완전히 안 분이 누구냐? 하나님이든, 뭐 절대자든 이름은 뭐 아무거나 붙여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시는 것 같다, 혹은 계시다고 하고 넘어갑시다.
하나님은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 인간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의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있을 때는 큰일이 날 것입니다. 지금 미국과 소련의 무슨 사상 전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하나님을 빼앗기 위한 세계적인 전쟁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도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을 점령 안 하겠어요? 점령하려고 하지요? 보이기만 하면 큰 사태가 벌어진다구요. 그러니 이런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안 보이는 하나님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웃음)
만일에 여러분이 보이는 하나님을 점령했다면, 세계가 그것을 알고 전부 다 빼앗으려고 할 텐데 어디에 감추겠어요? 감출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점령할 사람도 연구를 해보면 '아,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자기만이 알고 남은 모르는 곳에 감추어 둘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도 그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만이 알고 남에게 보이지 않는 곳이 어디냐 하는 것이 문제 입니다. 그곳은 우리 양심인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을 점령했다면 여러분은 남이 볼 수 없는 양심 속에 두어 자기만이 알 수 있는 자리에 하나님을 감춰 두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나만이 알려고 나만이….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 마음이 그럴 수 있기 위해서 무한히 커야 합니다. 우리 마음은 무한히 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배워 왔습니다. 또, 우리 인간은 최고의 사랑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린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데는 누구를 사랑하느냐?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상대적 주체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근접한 자리에서 사랑하려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대적인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그 하나님은 인간과 더불어 사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사랑하는 자리가 어떠한 자리가 되겠느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위가 되면 좋겠어요, 며느리가 되면 좋겠어요, 양자가 되면 좋겠어요, 양녀가 되면 좋겠어요? 인간은 그보다 더 높은 것이 있으면 그것이 되려고 합니다. 결국 아들딸의 자리가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딸의 자리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라구요. 여기 오신 분들 가운데 기독교를 잘 믿는 분이 있으면 '아,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딸이다' 하고 자신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된 사람이 있습니까? 되려고 하지,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 되려고만 하고 된 자리에 못 섰느냐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만일에 그 자리에 섰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간은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소망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창조의 능력이 있는 분이므로 인간은 그 창조의 능력까지도 갖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부자의 관계를 중심삼고 보면 아버지는 위에 있고 아들은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즉, 상하관계입니다. 아들이 '나, 아버지 자리에 한번 오르고 싶소'라고 할 때, 하나님이 '야 너 그만두어라'고 한다면,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알고 상하관계뿐만이 아니라, 동등한 안팎관계, 마음과 몸과 같은 관계에까지 우리를 놓아 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아들로 만들고, 둘째는 하나가 되고, 세째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까지 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면서 기뻐하시던 것까지도 갖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 나이가 많으신 분이나, 혹은 젊은 사람들도 다 경험이 있겠지만 부모가 좋은 것을 갖고 있으면 전부 다 자기가 갖고 싶어합니다. 자기 것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되면 아버지 것은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부모도 자기보다 못한 아들을 낳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어요? 아기를 낳은 부모는 그 아기가 못생겼더라도 어머니 아버지보다 잘생겼다고 하면 좋아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부처끼리도 첫 아기나 둘째 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를 예뻐하고 귀여워하면서 잘생긴 아이면 잘생긴 아이일수록 서로 자기 닳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웃음)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면 아들딸을 짓는 데에 있어서 시시하게 만들고, 못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전지전능한 하나님과 같은 동등한 자리요, 동위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은 최고의 것을 희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작가로, 인간은 작품으로 한번 비유해 봅시다. 자기가 무엇을 정성을 다해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생각대로 안 되었을 때는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들고 보니 생각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되었다고 할 때, 그것을 보고 '야, 이녀석아 생각한 대로 안 되고 왜 더 잘됐어? 라고 하면서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잘 만들어진 것은 잠을 잘 때도, 혹은 전쟁이 나 가지고 피난을 갈 때도 품에 넣어 갖고 다니고, 어디 가든지 사랑하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닮아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능력이 없다면 모르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내버려 둔 것과 같이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절대자이니 하나님이 좋아하면 인간도 좋은 것을 느껴야 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인간도 들어야 되고, 하나님이 가면 인간도 같이 갈 수 있는 존재로 만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영원히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부자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타락한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도 그 아들딸들이 성숙할 때까지는 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없을 때, 어머니 아버지가 어디에 갔느냐고 야단인데, 더구나 본연의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그 자녀들이 하나님과 떨어질 수 있고 갈라질 수 있어요? 꿈에도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과 안팎으로 한몸과 같은 관계가 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창조능력을 받고 하나님의 창조의 기쁨을 중심삼고 사랑 가운데에 사는 인간이 됐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 인간이 이 땅 위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있는 인간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조금 전에 말한 그런 자리가 인간본연의 가치의 자리라면 그것이 얼마만한 가치인가 생각해 보라구요. 최고의 가치인 것입니다. 그것은 남자에게 한한 것도 아니요, 여자에게 한한 것도 아니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영원히 인간에게 부여된 특권적인 절대의 가치인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살고 있는 사람 중에는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 한분이신 그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에 있어서 목적은 하나밖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보면 마음과 몸이 서로 배치되는 목적권내에 살고 있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것은 몸이 거부하고, 몸이 하고자 하는 것은 마음이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양면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이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대상으로 설 수 있는, 하나의 목적을 향할 수 있는 본래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입장에 있는 인간을 타락한, 혹은 고장난 인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 인간의 마음과 몸이 싸우는 것은 본래부터 그랬다, 선과 악은 본래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입니다.
악과 선은 상대관계가 아닌 것입니다. 선이 플러스라면 악은 또 하나의 플러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반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가 마이너스면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인류역사의 출발과 더불어 시작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도 그런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싸우는 사상을 씨라고 하면, 씨를 심었으면 세계적으로 거둘 때가 되면 인류의 가을절기, 끝날이 되는 것입니다. 끝날이 되면 면양과 산양을 갈라 세운다는 말씀이 성경에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산양은 주인이 없는 양을 말하는 것이요, 면양은 주인이 있는 양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런 두 갈래의 길을 심었기 때문에 그것을 거둘 때가 되면 양심을 중심삼은 세계와 몸뚱이를 중심삼은 세계가 자연히 발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즉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한편에서는 몸을 거부하는 이 싸움의 결과로 세계는 갈라져 있습니다. 이것이 전복, 혹은 연결되면서 역사는 전쟁사로 결과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인류를 그냥 버려 둘 수 없기 때문에 여기에 새로운 작전을 생각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 다 죽였다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중심삼고…. (녹음 잠시 중단)
마음은 선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몸뚱이는 악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여러분은 '나'라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마음은 하늘, 천국의 초소가 되어 있고, 내 몸뚱이는 지옥의 초소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여기에서 선과 악이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과 일치하려고 하고 사탄은 선에게 져서는 안 된다고 투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새로운 작전을 인류 앞에 가르쳐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고장이 났기 때문에 수리공장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종교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어떠한 운동을 하느냐? 종교는 양심을 절대적인 자리에 놓고 몸뚱이를 때려치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싫다고 하는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높아지는 것을 좋아하고, 잘 먹고, 편한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그 반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종교를 통하여 희생하고, 고통의 자리로 들어가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반대인 것입니다. 이 몸뚱이를 때려잡으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금식을 하라. 고생을 하라' 하고 밤낮 몸뚱이에 브레이크를 거는 거라구요. 이렇게 가르쳐 주지 않는 종교는 세계적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불교나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몸과 마음이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싸우니까 몸뚱이를 강제로 굴복시키는 하나의 법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몸은 고행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래서 마음에다가 2배 3배의 힘을 퍼부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음이 몸뚱이를 끌고 가서 거기에 습관화시켜서 마음의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몸뚱이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있는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본질적인 자리에 들어가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의 자리에 들어가려면 무한히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두 가지 방법을 종교를 통해 가르쳐 준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역사적인 종교라는 것은 하나님이 설정했고, 그 종교를 통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해 가지고 끝까지 떨어졌기 때문에 종교 가운데에는 단계적으로 여러 가지 종교가 있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종의 종교가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양자의 종교가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아들의 종교가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중에는 아들뿐만이 아니라 부모를 중심삼은 이념을 가지고 나오는 종교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서 그런 세계적 종교권을 만들어 가지고 나온 것이 4대 종교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뉴에이지(newage)니, 무슨 새시대니 하는 이런 말을 알 것입니다. 종의 시대에서 양자의 시대로 넘어갈 때도 새시대요, 양자의 시대에서 아들의 시대로 넘어갈 때도 역시 새시대요, 아들의 시대에서 앞으로 올 이상적인 부모를 찾아 나가는 시대도 새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 가운데에서 우리는 어디에 가서 머물 것이냐?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종교, 제일 중심적인 종교를 우리는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은 불교를 중심삼고 세계가 하나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기독교인은 기독교가 세계를 하나 만들어야 한다고 하고, 회회교는 회회교, 유교는 유교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통일을, 혹은 세계를 하나로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심 종교가 되려면 그냥 그대로 주먹구구식으로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본래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의 목적과, 인간 본연의 목적에 일치될 수 있는 본래의 원칙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치 평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종교가를 봅시다. 세계에는 4대성인이 있습니다. 하나의 인격을 위한 종교관념을 가지고는 세계적인 성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종교의 종주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계를 규합할 수 있는 주의를 가지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국가를 중심삼고 뜻을 이루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구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맞는 종교라면 세계적인, 세계를 위하는 주장을 갖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이 타락하기 전, 고장나기 전 그 원칙기준에 일치된 내용을 갖고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유교를 보면 하나님에 대해서는 상징적입니다. 하나님의 인격에 대해서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악을 행하면 벌을 받고 선을 행하면 복을 받는다'고 행동적인, 윤리적인 면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법적인 하나님은 가르쳐 주지만 인격적인 기준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마호메트를 중심한 회회교를 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의 본질은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한 손에는 코란경을 들고 한 손에는 칼을 잡고 지금까지 포교를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바라는 종교의 입장과 같다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상한 것은 4대성인들이 전부 다 인간을 중심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주주의를 주장한 대표자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주장을 들고 나와서 가르친 성인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르쳐 주는 데 있어서 하나님을 제일 깊이 똑똑히 가르쳐 줄 수 있는 종교가 어떤 종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나 우리 인간이 바라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의 자리요, 하나님과 한몸이 되는 자리이며, 그 다음에는 창조능력까지 갖는 자리입니다. 그런 내용을 가르쳐 주는 종교 지도자가 누구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라는 양반을 우리가 좀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태어나 가지고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역사 이래 처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데는 자신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결정적인 선포를 했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바라는 최고의 기준을 설파했고, 그 자리에 섰다고 자부하고 나선 이는 단 하나 예수밖에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하나님은 내 안에 있고 나는 하나님 안에 있으며, 너희는 내 안에 있고 나는 너희 안에 있다'고 하며 하나님과 자신과의 일체를 말했습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봤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제1과 제2의 내용을 설파한 분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째번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니, 아담과 해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 가운데에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 안에 주체성과 상대성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서로 주고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실체로 전개시킨 것이 아담 해와입니다.
하나님이 주체와 대상으로 하나된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도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체적인 능력이 상대적인 능력에 의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체와 대상되는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연결됨으로 말미암아 여기에서 새로운 창조의 능력을 계승할 수 있는 자리에 서서 그것을 위업으로 받은 것이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씨든지 두 조각이 한 꺼풀에 씌워져 있습니다. 콩 같은 것도 두 조각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주의 근본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지 않고는 근본의 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앞에 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요, 하나님과 한몸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과 같이 창조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신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유대교를 중심삼고 4천년 동안 섭리하신 것은 메시아 한 분을 보내기 위해서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준비한 것은 예수를 죽이라고 준비한 것이겠어요? 믿으라고 준비한 것이겠어요, 믿지 말라고 준비한 것이겠어요? 틀림없이 믿게 하기 위해서 준비했던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믿었더라면 오늘날 유대교는 이 땅 위에서 없어졌을 것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합한 새로운 종교형태를 갖추어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예수님은 틀림없이 유대교의 대표적인 제사장의 자리에 올랐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선민이 예수님을 중심존재로 보내주마 약속하신 메시아인 줄 알고 모셨더라면 예수님은 유대 나라의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오늘날 기독교가 수백의 교파로 되어 구교니 신교니 하고 싸우는 종교, 퇴폐적인 종교 형태는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죽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은 틀림없이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예수님이 왕인데 혼자 사는 왕을 바랐겠어요? 혹은 제사장인데 혼자 사는 제사장을 바랐겠어요? 하나님도 틀림없이 신부를 바라셨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가정을 가지고 왕이 되었다면 안 죽는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것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한몸이 되고 하나님의 창조능력을 받아 가지고 태어난 아들딸이 되어 자녀를 가졌다면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손자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으라고 보냈어요, 죽으라고? 천륜의 인연을 갖추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된 아들이 되었고, 한몸이 되어 아버지를 대신한 첫째 사람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창조위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절대적인 창조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상대를 찾지 못하고 죽어 갔기 때문에, 죽는 그 시간에 신랑이요 신부라는 말씀을 남기고 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탄식한 곳이 많습니다. '내가 땅에 불을 던지러 왔노니, 이미 붙었으면 좋을 뻔했다'고 하는 탄식은 그 불이 붙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예루살렘성을 바라보면서 '내가 이 예루살렘을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품으려 했지만 너희들이 품기지 않았다'고 탄식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최후의 기도를 세 번씩이나 하게 된 곡절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구주가 가면, 구해 주는 사람이 가면 그 뒤를 구원받는 사람도 따라가는 것이 원칙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기 때문에 자기를 따라 나오려는 사람은 십자가의 죽음길을 걷지 않고는 올 수가 없기 때문에 후대의 수많은 사람이 학살당할 내정을 알고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3차 기도를 드렸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을 다 잃어버리고, 기독교의 수많은 사람이 몸뚱이를 말할 수 없이 찢기고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4천년 동안 준비한 국가적인 기반, 혹은 종교적인 기반은, 땅에서 실천할 수 있는 승리적인 터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산산조각 나 버리고 오늘날 기독교는 공중을 중심삼은 국가의 새로운 이념을 찾아 나서는 비참한 운명에 섰습니다. 기독교는 이스라엘 나라와 같이 교회를 중심삼고 영육을 중심삼은 땅의 기반이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나라만 바라보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잃어버린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와 같은 기반을 새로 찾아 가지고 이 땅 위에서 사탄세계를 승리할 수 있는 나라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묵시록에 보면 어린양잔치, 혹은 신랑 신부가 만나서 잔치하는 날이 온다고 예언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오신 예수님을 중심삼고 뜻을 다 이루었으면 다시 올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 신랑 신부가 만나는 자리가 어디냐 하면 인류역사 이래 처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 여자가 만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처음으로 지상세계에 가정적 이념이 성립되는 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사는, 죄 없는 가정의 중심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인류는 타락한 선조를 가진 인간들인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부모를 못 가진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알파로 인연맺었던 것이 저끄러졌기 때문에 오메가와 같은 묵시록에 가서 맞춰 놓은 것입니다. 참된 부모를 맞는 날이 인류의 소망이요, 수많은 종교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인류의 참된 부모가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부모 없이 형제끼리 싸우던 이 세계에 비로소 새로운 질서를 세워 가지고 천륜에 맞는 인류의 이상적인 가정의 기원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타락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문명권과 역사성을 지니고 왔지만, 이제 새로운 부모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된 부모의 전통에 입각한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국가가 형성되고,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인들은 공중에서 주님을 맞겠다고 합니다. 땅에서 잃어버렸기 때문에 땅에서 찾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탄 마귀한테 실패했던 하나님이 권위 있는 하나님이요. 승리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런 때가 오는 것입니다. 부모를 모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세계적인 운동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개인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구원받는 때가 되어 새로운 역사시대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이 비로소 가정에서 만나고, 하나님의 뜻이 비로소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세계의 출발이 비로소 가정에서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출발의 기원이 되어 새로운 종교형태로 나타나면 그 결과로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오시는 참된 부모를 국가 민족을 초월하여 모시고, 그와 더불어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야만 하나님이 바라는 하나의 세계종교의 형태를 이루어 평화의 세계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부모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이 되어 새로운 세계의 개척자들이 되기를 바라서, 오늘 여러분 앞에 이와 같은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에도 여러분이 이와 같이 참석하여 주신 데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실례지만 어저께 오셨던 분이 오늘 저녁에 또 오신 분이 계시면 한번 손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이상세계'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해 볼까 합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은 물론이고, 미국 국민 전체나 인류 전체가 바라는 것이 하나의 이상세계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개인들을 중심삼고 생각해 볼 때 아무리 봐도 이상세계는 올 성싶지 않음을 우리는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우리 한 개인을 두고 볼 때에 마음과 몸이 싸우는 입장에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개인이 가정을 이루면, 부부를 중심삼고 볼 때 부부가 각각 몸마음이 싸우면 싸우는 패로 말하면 네 패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의 식구가 열명 있으면, 싸우는 패는 스무 패가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거쳐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 이르기까지 갈라질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있는 인간들을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를 생각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만으로서 이상세계를 도래하게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그분이 바라시는 목적이 하나의 세계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분이 동조하시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다 하더라도 이상세계는 사람들이 사는 세계이기 때문에, 사람과 공동적인 협조를 거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만 가지고도 역시 안 됩니다. 그리고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는 방향을 인간은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 방향은 반드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제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상세계라는 것은 선과 악이 같이 합한 자리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악이 청산되는 터전 위에서만 이상세계를 모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를 보면 선한 사람보다 악한 사람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방향을 제시하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선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을 트지 않으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한 사람은 이렇게 이렇게 가야 된다'는 방향을 제시하시지 않으면 이상세계는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악을 승리하지 않은, 악을 제거시키지 않은 입장에서는 이상세계를 바랄 수 없습니다. 뚜렷이 방향을 알아 가지고 악을 제거시킬 수 있는 승리의 기점을 어디서 찾느냐 하는 문제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상세계를 제시할 수 있는 기점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이상적인 기점을 찾을 수 있는 나라가 있느냐 하면, 그런 나라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종족을 중심삼고 그럴 수 있는 길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가능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기점을 마련할 수 있는 가정이 있느냐 하면 그럴 수 있는 가정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나 혹은 어떠한 나라나, 종족이나, 가정을 보아도 전부 다 개인들이 그 구성 요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그 기점이라는 것은 우리 개인에서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 개인이 선악의 분기점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흥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선한 편에 서면 흥하는 것이요, 악한 편에 서면 망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선한 편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국가, 세계를 통해서 하늘이 지향하는 방향을 거쳐가는 입장을 말합니다. 반면에 악편이라는 것은 그 반대의 방향을 거쳐가는 입장을 말합니다.
그러면, 선한 길과 악한 길이 그 내용 면에서 어떻게 다르냐 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규명하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도대체 악이 무엇이냐? 악의 기원은 천륜의 뜻을 배반한 것입니다. 그런 기원을 갖고 출발한 것이 악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타락으로부터 악이 초래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악을 제거시키려면 악이 발생하던 반대의 방향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악을 제거시킬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악의 출발점이 어디냐?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최초의 인간 시조에서부터 기원이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타락이 없었으면 악의 기원은 생겨나지 않고, 선의 기원을 통해서 선의 결과의 세계가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악의 기원이 생겨났기 때문에 선의 결과의 세계를 우리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가 사탄으로 말미암아 타락했다는 것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사탄은 파의 주체적인 존재인데, 이 사탄이 행동하던 방향을 따라가게 되면 언제나 악한 입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의 길을 따르는 데서부터 선의 길은 모색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타락하기 전의 입장을 생각해 봅시다. 태초에 하나님과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가 있었습니다. 그외는 천사가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과 우리 인류시조 아담 해와의 관계를 두고 보면, 우리의 생명의 기원은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사랑의 주체도 하나님입니다. 우리 일체의 생활적인 표준도 하나님인 것입니다.
우리가 말을 하고, 보고, 느끼고, 또 감정적으로 체감하는 일체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연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자라는 것도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자라고, 장성해서 결혼하는 것도 하나님의 보호권내에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결혼을 해 가지고 아들딸을 낳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에서 낳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 즉 남자나 여자나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받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결혼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참된 부부의 사랑이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부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에서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아들딸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남자 여자는 개체로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아들딸의 입장에서 완전히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의 입장에서 여자를 대하게 될 때, 아담 해와 둘 뿐이니까 아담은 남편의 자리요 해와는 아내의 자리에서 완전한 사랑을 주고받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사랑에 일치되는 부부의 사랑을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부부가 완전히 하나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들딸을 영원히 변치 않고 사랑할 수 있는 3대사랑의 인연을 완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개인도 하나님이 중심이요 가정도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아들딸, 가족 전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강력한 사랑의 인연을 갖출 수 있는 터전이 결정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나왔으면 그 가정을 중심삼고 번식되는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는 자동적으로 통일된 세계요, 이상의 세계가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류는 그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과는 관계없는 입장에 떨어졌습니다. 여기 참석한 사람 가운데서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아 보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대표한 완전한 아들로서 상대를 얻어 가지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완전히 사랑을 했고, 완전한 부부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아들딸을 사랑했다'는 사람이 있느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은 비참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자리는 참된 선의 자리요, 이 자리는 이상적인 자리요, 이 자리는 하늘과 영원히 같이 할 수 있는 사랑의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이 자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모든 일체의 중심은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여기에 부정적 여건이 제시됐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중심인데도 불구하고 사탄은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사람을 떼어내기 위한 공작을 했습니다. 중심과 갈라지게 한 동시에 아담 해와를 희생 시켜서 자기의 종의 자리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결국 타락은 무엇이냐 하면 중심을 부정한 것입니다. 사탄은 중심이 아닌 존재로서 중심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아담 해와를 굴복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류조상은 악을 중심삼고 출발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아담 해와에게 중심을 멀리하게 하고, 그 다음에는 아담 해와를 희생시켜 가지고, 자기가 중심이 되기 위한 놀음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이 반대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절대 신앙하고, 절대적인 중심존재로 모실 수 있는 운동을 하면서 사탄세계에서 갈라내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은 사탄이 자기가 높아지기 위해서 인간을 타락시켰기 때문에 반대의 길을 가지 않고는, 낮아지고 희생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절대시하는 길을 모색하지 않고는 돌아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온유겸손과 희생봉사를 강요하고 하나님을 절대시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개인은 가정을 수습하고, 그 다음엔 종족을 수습하고, 민족을 수습해 가지고 사탄세계를 뚫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개인이 사탄과 대립하여 사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운동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절대시하는 자리에서만 시작되는 것입니다. 교만이 사탄의 본질이기 때문에 그 반대의 자리에서 겸손과 희생을 지니고 나서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 개인을 중심한 분립역사를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선한 사람은 하나님을 절대시하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있어서 자기를 절대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이 가는 단계를 보면,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절대 복종해야 되고, 가정은 하나님을 위한 씨족을 위해서 절대 복종해야 하며, 씨족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민족을 위해서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또, 그 민족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나라, 그 나라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세계를 위해서 절대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절대 중심으로 하여 사탄을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인적으로 이겨야 하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으로까지 이겨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개인의 생활을 놓고 이것을 한번 비교해 봅시다. 그러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구별은 확실해지는 것입니다. 악이 가는 길은 선의 반대입니다. 악은 자기를 중심삼고 상대를 희생시키면서 가는 길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 하게 되면 자기를 중심삼은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하는 자리에서 비로소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를 중심삼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려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굴복시키는 곳에서부터 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선은 남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시키려는 것이요, 악은 자기를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려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열 명의 친구가 있다고 합시다. 그 열 명의 친구를 위해서 그 사람이 일생 동안 희생하고 봉사한다면, 그 열 명의 친구는 일생 동안 그 사람을 위해줄 수 있는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열 명의 친구는 자기 친구들에게까지 자기를 위해서 희생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선전해서 그와 하나되게 하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악은 그 반대입니다. 만일에 그 사람에게 열 명의 친구가 있는데 그들을 만나면 매일같이 자기의 뜻대로 하라고 명령을 하고, 전부를 주관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그들을 희생시키는 자리에 선다면 그 친구들은 도망가는 것입니다. 시간이 감에 따라 혼자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편, 남을 위해 먼저 희생하는 곳에는 시일이 가면 갈수록 점점 수가 불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열 사람에서 점점 없어져 한 사람밖에 안 남는 쪽은 점점 없어지는 것이니 망하는 것이요, 열 사람에서 열 사람 이상이 되는 쪽은 점점 불어나니까 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면 손해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열 친구를 위해서 희생하고 나가면 나갈수록 그 열 친구는 누구보다도 자기들을 위해주는 그 사람을 중심자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자연히 중심존재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자기들을 지도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길을 통하여, 하나의 중심 존재를 통해 사람들을 규합해 가지고 하나의 클럽을 형성하여 발전시켜 나가는 길을 모색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가정에 있어서 가족 전체 앞에 대표적으로 희생하는 아들이 있게 될 때는, 그가 아들이라 하더라도 부모를 넘어 그 가정을 지도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종족을 위해 대표적으로 희생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종족의 대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나라면 나라를 중심삼고 대표적으로 희생하고 생명을 바치는 사람이 있으면 나라도 그 사람을 위해 하나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도 마찬가지의 원칙에 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얼마만큼 희생하는 종교가 됐느냐 하는 그 내용의 비중에 따라 가지고 자연적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많은 종교 중에서 기독교는 지금까지 이 세계 역사 가운데서 가장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르면서 봉사하고 피를 흘려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세계적인 중심종교로 등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와 민주세계가 하나되어 새로운 사상을 모색해 가지고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희생하는 자리에 선다면 세계는 자동적으로 민주세계에 규합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거쳐온 수많은 국가들을 볼 때, 그러한 입장에서 나오지 못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특정한 민족을 중심삼은 국가가 형성될 때까지는 반드시 강한 민족이 약한 민족을 쳐 가지고 자기에게 예속시키는 싸움을 해 나온 것입니다. 즉, 자기 이익을 위해서, 자기가 세계적인 주권을 쥐고자 하여 다른 사람이나 다른 민족이나 다른 국가를 희생시켜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역사는 전쟁의 역사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의 대결을 목전에서 직시하고 있습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어느 때든지 이처럼 국가의 주권을 중심삼고 싸워 나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민족이나 국가든지 자기 국가와 국민을 넘어설 수 있는 사상을 가진 민족이나 국가를 발견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여러분이 현재 미국을 두고 보더라도, 미국 자신이 민주세계를 대표한 세계적인 주도 국가의 입장에 있지만 자기 국가와 국민을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구하겠다고 싸워 나갈 수 있는 입장에 서 있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계를 목적으로 하는 나라의 입장에 서지 못하고, 세계를 뒤에 두고라도 자기 나라를 위주해 가지고 돌아서는 입장에 선 것이 현재의 미국인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미국을 중심삼은 세계로 가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산세계도 민족과 국가의 관념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에 두 패로 갈라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의 세계를 모색하는 이념을 갖고 나왔다고 하지만 국가나 민족, 즉 슬라브 민족을 중심삼은 소련이 세계공산권 헤게모니를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중공과 갈라지게 된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찾는 데 있어서 국가와 민족이라는 자주적인 사상을 가졌다는 것이 그들 앞에 있어서 하나의 장벽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계를 구하는 것이지 한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나라를 희생시키고 한 국민을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구해야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가는 선한 방향을 중심삼고 국민 전체가 단결하여 하나가 되어 가지고 이 세계를 위해서 전체를 바치고 그 국가 주권을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뜻을 위한 길이 나온다면 거기에서는 하나의 세계를 모색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성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의와 사상이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그것이 현재 민주세계의 방향을 통하여 나올 수 있느냐 하면, 이미 그 실험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공산세계를 중심삼고도 나올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실험이 끝난 증거적 사실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운동이 어디서 나을 것이냐? 이것은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데서 나온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개인적으로 출발하는 데 있어서는 내가 가는 목적지가 세계 끝까지라는 사상을 가진 운동을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도 우리 가정끼리 잘살자는 자리가 아니라 세계를 구하자는 자리까지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민족도 역시 나라를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 가는 민족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국가도 세계를 위해 가는 국가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위한 개인, 세계를 위한 가정, 세계를 위한 종족, 세계를 위한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이 제시하는 이러한 하나의 사상적 체제가 나와야 된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로 묶기 위해서는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고, 가정은 씨족과 종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종족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민족은 국가,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그 길 이외에는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세계는 그 반대입니다. 자기가 희생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개인을 희생시켜 가지고 판도를 넓혀 나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씨족이면 씨족을 중심삼고도 다른 씨족을 쳐서 굴복시켜 가지고 판도를 넓혀 나오는 것입니다. 한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고도 약한 국가를 쳐서 점령해 가지고 판도를 넓혀 나오는 것입니다. 한 주의는 그런 악한 주의를 중심삼고 국가를 점령해 가지고, 세계적 주의까지 발전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사람 가운데 몸과 마음이 갈라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수확되는 가을 절기와 같은 끝날이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민주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이것은 기독교 사상 문화권을 중심삼은 세계입니다. 그 반대로 공산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신이 없다는 세계입니다. 이것은 신이 없다는 부정적인 주의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몸뚱이를 중심삼고 양심을 부정하는, 외적 물질주의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이와 같이 선악을 중심삼고 볼 때, 두 세계가 갈라진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외적인 사탄세계는 공격적이요, 하늘편은 방어적인 작전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사탄세계의 사람보다 하늘편의 사람이 나아야 되고, 사탄세계의 가정보다 하늘편의 가정, 사탄세계의 민족, 혹은 국가, 세계보다 하늘편의 민족과 국가, 세계가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을 역사과정을 통해서 발전시켜 나왔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얼마만큼 하나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사탄은 언제나 공격해 가지고 이것을 하나되지 못하는 결과의 자리에 내세우려고 핍박해 왔다는 것입니다. 먼저 사탄편이 국가와 세계를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사탄편은 개인에서 가정, 종족, 민족, 국가의 기준이 동원돼 가지고 하늘이 갈라 나온 개인이나 가정을 확대시키려는 것에 대해 언제나 공세를 취해 가지고 핍박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싸움을 계속적으로 해 나오는 것입니다.
결국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경지, 죽더라도 하늘을 붙들고 중심을 위해서 희생하는 자리까지, 나라가 반대하면 생명을 바쳐서라도 그 나라를 능가할 수 있는 자리까지 넘어서지 않고는 하늘의 판도를 넓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으로서 사탄을 세계적으로 승리한 대표자, 사탄의 국가와 사탄의 민족과 사탄의 가정 전체가 반대하더라도 승리한 대표자가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역사과정에서 그런 한 사람을 내세우기 위해서, 2천년 동안 수고한 역사적 열매로서 야곱을 세워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축복을 해주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밤새껏 씨름해 가지고,에서로부터 축복을 인계받은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에 선 천사와의 싸움에서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결국 야곱은 죽더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이루어야 되겠다는, 자기가 희생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생명을 각오하고 싸웠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류역사노정에서 승리했다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기쁘고 복된 소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하늘편에서 안아 가지고 가정을, 종족을, 민족을 키워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2천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중심삼고 하나의 주권 국가를 마련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비로소 이 땅 위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중심삼고 이 땅 위에 사탄권 나라에 대항할 수 있는 하나의 판도권을 형성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을 세워 놓고 하나님은 메시아 보낼 것을 수천년 동안 약속해 오셨던 것입니다.
이 메시아는 어제 저녁에도 말했지만 참된 인류의 조상입니다. 우리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된 부모를 못 가졌습니다. 사탄세계에서 찾아온 우리 인간은 어떠한 입장이냐 하면 양자와 같은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고아와 같은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 서(롬 8:15,23)를 보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된 우리들도 아바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양자 되기를 기다린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부모 앞에 설 수 있는 양자일 뿐만 아니라 부모 없는 고아와 마찬가지 입장으로 하늘권내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와 가지고 이 양자와 같은 우리 인간들과 새로이 부모의 사랑의 인연을 맺어서 새 시대의 하나의 가정과 국민과 국가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를 대하여 사람이 중생해야 된다는,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서 다시 낳아야 된다는 말을 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때에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예수님은 '네가 이스라엘의 스승으로서 그것도 모르느냐'고 말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만일 그때에 이스라엘 민족이 고아와 같은 민족권내에 오신 메시아를 참부모로 모실 수 있었더라면 참된 가정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 참된 가정이 표본이 돼 가지고 그 가정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가정을 복귀하여 하나님이 본래 이상하셨던 국가 형태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자 했던 것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일체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성부는 하나님이요, 성자는 아들이요, 성신은 그저 성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신은 뭐냐 하면 어머니 신인 것입니다. 타락하기 전 본래의 입장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 인류는 하나님과 참된 부모만을 맞이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신은 신랑되신 예수 앞에 신부의 신인 것입니다. 이것은 성신을 방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신은 어머니 신이기 때문에 어머니를 통해서 나지 않고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신이 우리 마음에 임하여, 신랑되신 예수를 지극히 사모하는 사랑의 힘이 우리의 마음에 있어서, 신부의 입장에서 신랑되신 예수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사랑인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새로운 영적 생명이 주입된다는 것입니다.
타락을 누가 먼저 했느냐 하면 어머니입니다. 죄를 뿌리게 한 것이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 신인 성신이 와서 죄를 씻는 역사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와서 죄 있는 우리를 다시 품어 가지고 신랑되시는 예수의 사랑을 통하여 다시 낳아 주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비로소 본연의 부모를 가진 자식의 자리에 서게 되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믿는 사람들은 이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원래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되었더라면, 예수 가정을 중심삼고 전국가는 하나님의 보호권내에서 통치받는 나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하나되면 이스라엘 민족은 사탄세계의 어떤 나라보다 강하고, 사탄세계의 어떤 나라도 능가할 수 있는 자리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상의 주권을 가지고 로마제국을 굴복시키고 세계적인 이상의 한 나라를 형성 하여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사탄보다도 나은 자리에 설 수 있는 입장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에 의해 개인적으로 이긴 이스라엘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정적으로 이기고, 국가적으로 이기고, 세계적으로 이겨야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근근히 이스라엘 민족까지 보호해 가지고 예수님을 중심삼고 국가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판도를 마련하여 세계 국가를 제압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한 중심존재로 예수님을 보냈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죽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과는 상관없는 자리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대로 하늘의 뜻 앞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4천년 동안 이스라엘권 국가 형태와 유대교 형태를 만들어 놓은 것이 일조일석에 하늘의 뜻 앞에 설 수 없는 입장으로 화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나라를 대신하여야 할 예수의 입장이요, 유대교를 지도하는 대제사장이 되어야 할 예수의 입장이요, 수많은 민족을 지배해야 할 예수의 입장이었는데, 한 사람도 그를 위하는 사람이 없게 되어서 예수는 죽어 간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독교는 다시 세계적인 판도를 향하여 출발하면서 다시 사탄세계로부터 공격을 받으면서 싸워, 개인적으로 이기고 가정적으로 이기고 종족적으로 이기고 민족적으로 이기고 국가적으로 이겨 가지고 세계까지 싸워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의 기독교 세계인 것입니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이 기독교인들이 승리한 제2이스라엘권, 세계적 사명을 짊어진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2이스라엘 사명을 짊어지고 나오는 데 있어서는 땅의 기반이 없는 것입니다. 영적 이스라엘의 권한에 의지해 가지고 세계까지 발전해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영육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땅 위에서 내가 승리한 이스라엘의 한 개인이요, 가정이요, 종족이요, 민족이요, 국가라는 의식을 가진 크리스찬이 돼 있느냐 하면 그렇게 못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버리고 영적 세계만 의지해 가지고 싸워 나오는 것입니다.
제1이스라엘이 국가적 기준을 중심삼고 실패했는데, 그 기준을 세계적 기준에서 성사시키기 위해서 닦아 나오는 것이 민주세계의 기독교 문화권입니다. 그러면 민주세계에 있어서 선두에 선 그 나라가 어느 나라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러면 미국 국민에게 옛날 제1이스라엘권 시대에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 고대하던 것과 같은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다시 오시는 메시아를 맞기 위한 사상이 있느냐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하나되어서 예수를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한 나라가 깨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에 있어서는 그 나라와 기독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다시는 전체가 깨지지 않게끔 보호하겠다고 하는 단결된 국가 형태를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면에서도 승리한 이스라엘 국가 형태를 갖추어 사탄세계의 어떤 나라도 이길 수 있는 강한 자주권을 가지고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나라 미국은 특별히 퓨리턴 사상을 중심삼고 형성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만을 위할 수 있는 신앙의 절개를 가진 무리들로 말미암아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 미국은 야곱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는 내가 죽더라도 이 뜻을 이루겠다는 신념을 가진 민족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있어서 야곱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사탄을 대해 가지고 싸워서, 씨름을 해서 이겨 가지고 자주권을 세울 수 있는 나라가 하늘편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영적인 천사를 굴복시키고 자기 형을 굴복시킴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이룬 거와 마찬가지로, 미국 자체도 영적인 사탄을 굴복시키고 에서와 같은 입장에 선 공산세계를 굴복시켜야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만반의 축복을 다 해주었던 것입니다.
미국을 사랑하는 동시에 교회를 사랑할 줄 알아야 됩니다. 교회와 나라는 공동 운명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하나되어 가지고 오시는 메시아를 위한 하나의 세계적인, 사탄을 이긴 국가로 등장할 수 있는 권위를 갖추어 놓아야 됩니다. 그런 자리가 되지 않고는 다시 오시는 메시아가 이 땅 위에 오시더라도 실패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미국과 교회가 하나되었다 하더라도 메시아를 맞지 않고는 이상세계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메시아라는 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개인적으로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대표적인 표준형이요, 가정적으로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표준형이요. 국가적으로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표준형이요, 세계적으로 완전히 통일사상을 세울 수 있는 표준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을 맞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미국 국민이, 미국 나라가 혹은 미국 교계가 그렇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은 지극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이 민주세계의 대표적인 국가가 될 때까지는 그 배후에서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이만큼 끌어올린 하늘의 공적이 있는 것을 이 국민들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세계인류의 동경의 대상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은 국가 형태로 보더라도 그런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하나되어야 할 텐데,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 하면, 분립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개인과 가정이 하나되어야 하고, 가정과 종족이 하나되어야 하고, 종족과 민족이 하나되어야 하고, 민족과 국가가 하나되어 완전히 일치될 수 있는 단결된 국가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고대할 때에 바라던 그 이상의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되는 자리에 서는 나라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국은 어떠한 나라도 능가할 수 있는 자주력을 갖고 있는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소련이 문제가 아니요, 중공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편에만 있으면 이것은 문제없이 능가할 수 있는데, 하나님을 멀리하게 된다면 그때부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미국을 중심삼고 볼 때, 미국 국민이 이제 이 외적 세계의 자주권을 어떻게 형성하느냐 하는 문제가 지극히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이 나라의 주체적 전통사상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유대 민족은 2천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린 민족이 되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서는 지금까지 전통을 지키고 나오는 민족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상의 전통적 사상을 세울 수 있는 국민사상이 미국 국민에게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적 사상이 있어야 하는데 딴 곳에서는 가져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독교 사상, 기독교 사상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은 가정적으로 희생하고 가정은 민족적으로 희생하고 민족은 국가적으로 희생하고 국가는 세계적으로 희생할 수 있는, 서로서로 남을 위할 수 있는 전통을 이어받은 가정 혹은 사회가 형성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시는 주님을 만나 가지고 비로소 이스라엘에서 실패했던 것을 여기에서 승리했다는 결과를 가져 왔다는 기준을 세워야만 하나님의 뜻이 세계적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실천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하고 넘어갑시다. 역사는 심은 대로 거두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세계 역사에 있어서 문제의 중심존재가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간 그 사건은 예수 일인에 해당하는 사건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전체적인 사건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세계를 전부 다 제패하고 세계를 주관해야 할 예수가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슬픈 일이요, 예수 일대에 있어서는 지극히 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갈 때,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와 바라바가 있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라바는 예수로 말미암아 혜택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돌아가는 예수의 편이 되지 않고 비난했던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는 왼편 강도가 예수를 비난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으며,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우리를 구하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오른편 강도는 그 왼편 강도를 대하여 힐책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으니 당연히 죽을 만한 죄의 대가를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죄가 없는 이분을 네가 어떻게 참소하느냐'고 변호하고, 옹호하고 방비하기에 급급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예수가 낙원에 이를 때에 오른편 강도는 예수와 더불어 낙원에 들어간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역사적 중심존재가 그와 같은 환경에서 죽어 갔기 때문에, 그와 같은 사연을 심어 왔기 때문에 그와 같은 실정이 주님이 오실 끝낱에 재현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세계를 보면 좌익, 우익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람이 갖다 붙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좌익이라는 말은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갈 때 있었던 왼편 강도에서부터 출발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하나님 믿는 사람을 원수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른편 강도는 여기에 반대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이것이 좌익에 반대되는 우익인 민주세계인 것입니다. 이 민주세계가 민주세계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슨 사명을 해야 하느냐 하면, 왼편 강도를 쳐서 이를 제압하고, 하늘을 높이고 하늘의 사명을 짊어진 사람을 위해서 싸울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바라바와 같은 무리가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회교권입니다. 바라바가 예수로 말미암아 혜택을 받고도 예수를 반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 회회교는 구약 성경을 믿으면서도 기독교의 원수 입장에서 지금까지 싸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지금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를 반대하던 바라바와 왼편 강도, 즉 반대하던 패끼리 합하는 때가 오거들랑 끝날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는 1965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 가지고 '당신네 민주세계가 공산세계를 능가하여서 공산세계가 패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다시 민주세계와 대립해서 싸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인데, 그것을 모색하는 데는 이 회회교권을 통해서 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또, '1953년에 당신이 한국동란의 휴전협정을 체결했지만 그것이 민주세계에 지대한 손해를 가져왔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휴전협정을 하고 2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남한을 치고도 남을 수 있는 군비를 확장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악은 사탄편이고, 사탄은 인간을 타락시킨 뱀입니다. 뱀은 혀를 둘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일방적이 아닙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금후에 민주세계가 갈 길은…. 여러분이 역사적 실증을 보아서 알듯이 우익편 민주세계, 오른편 강도의 입장에 선 민주세계는 좌익편 공산세계를 능가할 수 있는 입장에서 하늘을 위하고 예수를 위하여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런 각오를 하지 않고는 민주 세계가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외적인 사탄편, 악한 편에서는 좌익을 중심삼고 회회교권과 공산권이 하나되어 들어오는데, 우익에서는 민주세계와 기독교가 하나되어야 할 텐데 오히려 갈라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닉슨 대통령이 중공을 방문하고 돌아온 소식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하나님이 없는 입장에서 자립한 나라라면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어 가지고 오른편 강도의 사명을 하라고 내세웠던 나라라 할진대는 여기서 문제가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미국 국민들은 공산주의면 어떻고 좌익사상이면 어떠냐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풍조가 만연되어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누구를 믿으실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민주세계의 개인을, 가정을, 종족을, 민족을, 국가를, 그 누구를 믿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세계를 대표해 가지고 택한 미국이라 하더라도 이 미국이 세계적 사명을 하지 못하고 후퇴하게 될 때는 하늘과 격리되는 것은 두말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미국을 내놓고 조그만 나라를 믿게 된다면,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큰 나라를 잃어버리고 작은 나라를 대하는 입장에 선다면 하나님은 슬픈 하나님이 아니 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악은 언제나 힘이 우위에 서게 되면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악의 본질입니다. 자기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남을 희생시키는 것이 악의 본질인 것입니다. 공산당들은 민주세계를 사상적으로 제패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둘째로는 미국의 군사력을 어떻게 능가하느냐 하는 것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지하조직을 통해서 흑백문제를 어떻게 선동하여 파괴공작을 하느냐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미국에 있어서 흑백문제가 국가적으로 지극히 큰 문제가 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만일에 중공이 아시아 전역을 제패하게 되면 아시아인을 중심삼고 여기에서 공산조직을 강화시킬 수 있는 길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황인종과 흑인종이 규합해 가지고 백인종과 대결하는 운동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 중공은 독재국가입니다. 백 보 나갔다가도 국가가 뒤에서 한번 명령하면 그 전체가 후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백 보 나갔다 돌아서려면 절반 이상 반대하는 무리가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시점에 놓여 있는 현정세를 우리는 다시 한 번 직시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들 중에는 '저 사람은 아시아 사람이고,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미국이 지금까지 원조하던 길을 전부 다 끊고 후퇴하는 것을 비난조로 저렇게 얘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섭리로 보거나 영계의 깊은 내용을 통해서 볼 때, 금후의 미국 국민이 일대 각성을 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알기로는 1977년, 1978년도를 미국의 일대 위기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 워싱턴에 있으면서 10여 명 가까운 상원의원을 만나서도 그런 면을 강조했습니다. 미국 국민이 일대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타고 다니는 차, 즐비한 도로 혹은 호화스러운 문화주택이 여러분 잘살라고 축복해 준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축복해 준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민족이 오른편 강도 입장에 서서 공산권을 능가할 수 있는 승리적 민주세계권을 창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늘을 옹호하고 오시는 주님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하여 바칠 수 있는 각오를 가진 국민과 국가, 민주세계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 본인이 미국 전역을 순방하면서 이러한 공식적 집회를 갖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인의 일생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가는 선의 길을 이 국가 민족 앞에 남기지 않고는 세계가 망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이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보다도 이 나라를 중심삼고 이 나라 국민에게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종족은 민족을 위해서,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어 가지고 하나님의 통일적 세계를 이루겠다는 사상을 어떻게 심어 놓느냐 하는 것이 하늘이 바라는 간절한 요구인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미국의 젊은 청년들을 80여 명 동원하여 기동대를 만든 것입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이 나라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희생을 각오하고, 세계 인류를 위해서 누구보다도 희생을 각오한 입장에서 개인적,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으로 사상이 결핍된 미국 국민 앞에 새로운 이 사상을 주입시키고자 나선 것입니다.
지금의 계획으로는 명년에 400명, 내명년에는 2천 명을 어떻게 하든지 동원하여 각 주에 적어도 버스 한 대를 중심한 기동대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1977년, 1978년의 미국의 위기를 막아낼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는 규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국민은 기독사상을 중심삼고 새로운 전통을 확립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금후의 미국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아니, 미국 하나 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운명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뜻을 알고 하늘을 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국가와 국민을 초월하여 여러분을 대하여 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흑백관계에 있어서 백인으로 하여금 흑인을 붙들고 사랑하게 하는 운동을 하고 황인을 붙들고 사랑하게 하는 운동을 하고, 황인도 백인과 흑인을 위해 희생봉사할 수 있는 운동을 제시해 가지고 융합할 수 있는 길을 닦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교회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살리기 위해 있다는 사상을 가지고 출발한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각오를 가지고 나선 것입니다. 미국 국민 앞에 이러한 사상을 연결시켜 가지고, 이 미국이 세계를 위해서 하늘의 뜻을 대표하고 나설 수 있는 희생의 국가, 봉사의 국가로 나서게 되면, 미국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본래는 다른 민족이란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민족인 것입니다. 국경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생활적인 방편이나 문화적 방편이 다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극복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1970년도에 10개국의 청년남녀들 777쌍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뜻 앞에서 사랑을 중심삼은 새로운 가족, 새로운 종족을 편성하여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뜻의 길을 개척하는 가정을 형성하기 위해 777가정 축복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시는 주님 앞에 새로운 세계적인 국가체제를 갖추어서 그분이 계획하는 뜻 앞에 어떤 나라와 어떤 국민 앞에도 봉사할 수 있는 기본되는 요원을 형성하자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는 언제나 국가가 문제되기 때문에, 국가를 넘어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을 심어 가지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자가 세계인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아들딸의 입장에서 사랑하고, 새로운 사상을 중심삼고 국경을 초월하고 종족을 초월하여 부부가 결속할 수 있고, 이렇게 결속된 부부에게서 태어나는 아들딸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딸로 직접 사랑하실 수 있는 전통적 기준을 준비하자는 것입니다.
악은 내 것은 내 것이요 네 것도 내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은 반대입니다. 내 것은 네 것이요. 네 것은 나라의 것이요. 나라의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에서 상대로, 나라로, 세계로, 하나님께로 갔다가 오지 않고는 이상적 개인과 가정과 국가와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에, 선을 지향하는 길은 희생을 통하여 개척하는 길 외에는 성사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길을 취하여 섭리해 나오신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사람을 위한 하나의 이상세계'는 이 길 외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저녁에도 이와 같이 모여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녁으로써 이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집회는 끝나게 됩니다. 이렇게 만난 인연이라는 것은 우연한 인연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금후에도 진리의 길을 찾는 데 많은 노력을 투입하여 주시기를 바라면서, 여러분 앞에 무한한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여러분들 앞에 '새로운 메시아와 공식적 섭리노정'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세계의 인류는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 단체에서도 역시 새로운 지도 이념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세계를 지도하고 종교계를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는 두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세계정세를 바라보면 누구를 막론하고 이때를 말세라고 하고, 끝날이 다 됐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때를 맞이하여, 더욱이 기독교 신자들은 새로운 주님이 오시기를 마음으로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메시아가 와야 한다느니, 혹은 공식적 섭리노정이니 하는 말들은 인간시조가 타락한 연고로, 사탄이 있는 연고로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인간시조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우리에게 종교생활이나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직접 모시고 태어난 아들딸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생활할 수 있는 선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며칠 동안의 말씀을 통해서 선한 하나님이 있는 반면 악한 사탄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사탄 마귀를 처단해 버리지 못하고 기나긴 인류역사과정을 통하여 수고의 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느냐 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사탄이 없다면 메시아니 혹은 구원섭리니 하는 것이 필요 없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어디에서 생겨났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어떤 사람들은 본래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반대하고 본연의 인류시조를 타락시킨 사탄이 본래부터 있어서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면, 이 사탄이 있는 한 우리 인간의 완전한 구원은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이원론이 되고 두 목적을 가지고 세계는 영원히 계속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로서 횡적으로 투입된 존재냐 하는 문제를 여기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아들 되는 예수 그리스도도 사랑의 구주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죄를 지은 자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도 그와 같은 사랑의 주체자인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인데 '사탄이 무슨 범죄를 했기에 용서할 수 있는 길이 없는가' 하는 것도 문제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탄이 무슨 죄를 지었느냐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해 주라는 것은 사탄 마귀를 용서해 주라는 것이 아니라, 사탄 마귀에게 속해 있는 인간을 구원될 때까지 용서해 주기 위해서 하신 말씀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사탄은 무슨 원수지간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요한복음 12장 31절을 보면 '이 세상의 임금은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사탄이 이 세상의 주인이 되었느냐 하는 문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이 세상의 주권자는 사탄이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선한 주권자의 지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사탄 마귀를 중심삼은 악한 주권자의 지도를 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악주권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은 원죄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 원죄는 사탄 마귀가 동기가 되어 가지고 침입해 들어온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지은 이 원죄는 수천년 동안 대를 이어가며 유전돼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빠져 있기 때문에 구주가 필요한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 원죄를 뽑아 치우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인간에게 원죄가 없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천국가는 데 구주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지상에 태어나 살다가 죽으면 영계의 천상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을 중심삼고 볼 때에, 그가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는다 하더라도 그의 아들딸들 역시 예수님을 믿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원죄를 뽑아 버리고 완전히 죄 없는 자리에 섰다면 그의 아들딸들은 구주 없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바울 같은 분이 결혼해서 아들딸을 낳았더라도 그들도 역시 구주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아직까지 인간에게 원죄가 완전히 청산되지 못했다는 증거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사탄 마귀가 인간에게 가져다 준 것은 무엇이냐? 첫째는 악주권의 세계요, 둘째는 원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극복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큰 범죄를 저지른 주체자가 사탄 마귀이기 때문에 사탄 마귀를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 마귀가 도대체 어떠한 존재인가를 성서를 통해서 알아 봅시다. 묵시록 12장 9절을 보면 '하늘에서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했습니다. 옛뱀이라는 것은 인류시조를 타락케 한 뱀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뱀을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창세기에 아담 해와를 타락시킨 뱀이라는 것은 사탄 마귀를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탄의 본래 거주지는 어디냐 하면 하늘입니다. 하늘에 있던 것이 내어 쫓긴 것입니다. 땅에 기어 다니는 뱀이 아닙니다. 이 사탄은 하늘에서 내어 쫓겼기 때문에 영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존재는 하나님, 아담 해와, 그리고 천사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하나님과 아담 해와 사이에 말한 내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존재였기 때문에 이는 영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탄 마귀가 동기가 되어 가지고 인류시조가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탄 마귀, 즉 천사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유다서 1장 6절을 보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천사가 무슨 죄를 범했나 하면 간음죄를 범했습니다. 간음은 혼자 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타락을 하는 데는 간음으로 했고, 죄를 짓는 데도 간음으로 지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간음은 혼자 범할 수 없고 상대자가 있어야 되는데, 사탄과 해와 사이에 타락의 인연이 맺어졌다는 것을 두고 보면 여기에 수상한 내용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해와는 선악과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따서 입으로 먹었습니다. 죄를 범한 것은 손이요 입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범죄한 것이 들킨 후에 손과 입은 가리지 않고 하체를 가렸습니다.
욥기 31장 33절을 보면 '내가 언제 타인(아담)처럼 내 죄악을 품에 숨겨 허물을 가리었었던가'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결국 아담이 허물을 가린 곳으로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얼굴에 흠이 있으면 그것을 가리려고 합니다. 흠 있는 것을 가리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결국 하체를 가렸다는 것은 그 하체가 흠이 되었다는 뜻임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해와는 타락을 해 가지고 아담한테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강요했습니다. 철모르는 10대의 아담은 해와한테 유인을 당해 불륜의 사랑을 맺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사하고 해와가 어떻게 사랑관계를 맺을 수 있겠느냐 하는 이 문제가 이상하게 생각될 것입니다.
사라가 아기를 못 낳을 나이에 천사가 나타나 떡을 먹으면서 사라가 잉태할 것을 예고해 주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려고 내려왔던 천사들이 롯의 집에 들어갔을 때에 사람들이 모여와 가지고 우리가 그들을 상관할 테니 내어 달라고 했습니다. 또, 여러분은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하고 밤새껏 싸울 때 천사에게 맞아 가지고 환도뼈가 부러진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영적 체험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일을 틀림없는 사실로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부부가 재미있게 살다가 남편이 먼저 돌아갔는데, 그 남편이 영적으로 와 가지고 부부처럼 같이 사는 일도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인류시조가 사탄 마귀와 불륜의 정조관계를 맺어 가지고 타락 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불신하는 무리를 대해서 사탄 마귀의 아들이라고 꾸짖었습니다. 세례 요한도 불신하는 무리를 대해서 '독사의 새끼들아' 하고 책망했습니다.
이러한 성서적 내용을 관찰해 보게 될 때에, 인류시조가 불륜한 사랑을 함으로 말미암아 사탄 마귀를 중심삼고 부자의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핏줄을 받아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가운데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로 태어나야 할 가치적인 인간이 사탄 마귀의 혈통을 받아 가지고 사탄의 아들딸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 '성신의 처음 익은 열매 된 우리들도 마음으로 아바 아버지라 불러 양자 되기를 기다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양자는 핏줄이 다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정체인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다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딸로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성혼식을 올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의 내적인 마음의 중심이 되어서, 곧 성전(聖殿)처럼 계시고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담 자신은 실체를 쓴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두 사람은 부부가 되어 내적인 입장에서는 하나님이요, 외적인 입장에서는 인류의 참된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혈연적 인연이 심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랬으면 그의 아들딸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양자가 아니라 직계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사탄 마귀가 하나님이 임재해야 할 자리를 점령해 가지고 아버지의 자리에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룰 수 있는 모든 가정적인 이상을 완전히 파탄시킨 괴수가 누구냐 하면 사탄 마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하나님과 무슨 원수냐? 사랑의 원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 있어서 용서를 받을 수 없는 간부(姦夫)와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용서한다면 천지가 뒤집어진다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로 태어나야 되는데 사탄이 침입해서 자기의 아들딸로 태어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 애비의 자리에 섰지만, 우리를 사랑하는 자리에 세워 주는 것이 아니라 종의 종으로 유린시켜 가지고 지옥으로 끌고 가는 원수가 됐다는 것입니다. 만일 사탄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사랑의 관계를 맺어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사랑은 하나님과 상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강제로 우리 인류를 유린하고 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인류는 혹은 수많은 종교인들은 사탄 마귀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몰랐습니다. 이 사탄 마귀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사탄 마귀를 참소하게 될 때는 사탄 마귀를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이 하나님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이 살인이나 다른 범죄를 했더라도 범죄한 내용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될 때는 당당히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한 현장에 있었던 지극히 작은 소년이나 소녀라도 나타나서 참소하게 될 때는 머리를 숙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 사탄 마귀는 인간의 종으로 지음받았던 것입니다. 종으로 지은 이 사탄 마귀한테 '종의 종' 노릇도 못 하고 있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를 보게 되면 '우리 인간이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들이 알지 못하느냐'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 이요, 천사는 종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천사장을 하나님 앞에 끌고 가서 담판할 수 있는 당당한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그러한 근본을 완전히 파헤쳐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탄 마귀를 끌어다가 고소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되면 지구성의 인간들은 해방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볼 때 사탄 마귀가 얼마나 기가 막힌 원수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서의 많은 부분에 사탄이 음행(淫行)의 신(神)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음행이 팽창하게 될 때 하나님은 쳤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음행이 팽창하므로 쳤습니다. 하나님의 이상을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거룩한 사랑이 사탄의 무대가 되어 가지고 천륜을 망칠 수 있는 기원이 되니 하나님이 용서할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 인류시조는 10대 청소년 시절에 불륜한 사랑을 맺어 가지고 씨를 뿌려 놓았습니다. 이것을 심었기 때문에 반드시 가을절기와 같은 수확기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시대에 왜 이렇게 세계적으로 10대 청소년의 문제가 크게 대두되는가를 생각해 봐야 됩니다. 여기에는 성(性)을 중심삼은 불륜한 행동이 문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와 마찬가지로 나무 아래서 타락의 행동을 세계적으로 저끄리는 청소년들이 생겨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든지 막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상세계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근년(近年)에 세계적으로 유행한 춤이 뭐냐 하면 트위스트입니다. 트위스트는 꼬는 것을 말합니다. 뱀춤, 뱀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랑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공의의 법도를 세우기 위한 사랑이 아니라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통해 가지고 사랑의 길을 찾기 위한 놀음을 하는 것이며, 트위스트는 그러한 길을 찾기 위한 동기의 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미국 국민의 책임이 중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구약시대에는 인간이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물을 드렸습니다. 제물을 드릴 때는 반드시 피를 흘려야 합니다. 갈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피를 좋아하시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사탄 마귀의 피를 이어받은 연고로 그것을 빼지 않고는 용서할 길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반드시 인간 대신 피를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이는 이, 눈은 눈, 코는 코, 손은 손, 이렇게 일대일의 탕감법을 적용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할례라는 법이 있었습니다. 할례! 무엇 때문에? 양부(陽部)를 째서 피를 내야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양부로 말미암아 사탄의 피를 받아 들였기 때문에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맹세를 할 때 환도뼈에 손을 대고 맹세합니다. 환도뼈를 잘못 샜던 아담과 같은 조상이 되지 않겠다는 맹세입니다. 야곱이 밤새껏 천사하고 싸울 때 나중에 천사가 축복해 주기 전에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그것을 잘못 씀으로 말미암아 사탄한테 져 가지고 구속 되었던 것을 다시 이기기 위해서는 그것으로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서는 이러한 혈통적인 문제로 엉클어져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맏자식은 축복을 못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본래 타락하지 않았으면 맏자식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아들입니다. 그러나 사탄 마귀를 통해 가지고 태어난 첫 자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눈에서 불이 나도록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 땅에서 나올 때 맏것은 짐승까지도 쳐 버렸던 것입니다.
요셉에게는 므낫세와 에브라임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요셉이 그들을 야곱에게 데리고 와서 축복해 달라고 할 때 야곱은 손을 엇갈려서 축복했던 것입니다. 요셉이 아버지한테 '아버지여, 이가 작은 아들이니 그리 마소서'라고 할 때, 야곱이 '내가 안다' 하고 바른 손으로 동생을 축복해 준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해와와 천사장 사이에 맺어진 사랑의 결과가 첫번 아들이요, 아담과 해와의 사랑의 관계에서 맺어진 아들이 둘째 아들인 것입니다, 이 두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에, 아담 해와의 사랑은 본래 타락하지 않고 성숙하였으면 하나님이 허락하는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원리적 관점에서 볼 때에,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중심삼은 사랑의 결과를 취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두 사랑의 열매로 태어난 아들이 하나는 사탄의 아들이요. 하나는 아담의 아들이기 때문에, 사탄도 사랑의 관계를 맺으면 주관하게 되어 있고 하나님도 창조적 원칙에서 주관할 수 있는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을 중심삼고 사탄도 취할 수 있고 하나님도 취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둘로 갈라야 된다는 거예요.
처음 난 아들은 사탄을 통해서 갖게 된 아들이기에 사탄이 취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난 아들은 아담을 중심삼고 사랑의 열매로 태어난 아들이기에 하나님이 원리적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이렇게 갖기 내기 하는 입장에서 갈라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 앞에 굴복하지 않고 아담 해와한테 굴복하지 않음으로써 사탄이 되었습니다. 사탄을 굴복시키려면 하나님 앞에 굴복시켜야 하고 아담 해와한테 굴복시켜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편에 선 둘째 아들을 중심삼고 첫째 아들을 굴복시키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형이 형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동생이 형의 자리에 가고 형이 동생의 자리에 와 가지고 동생이 형을 주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둘째 아들한테 첫째 아들이 굴복하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둘째 아들이 맏아들의 자리에 옴으로 말미암아, 맏아들이 동생한테 굴복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아담 해와 앞에 굴복하지 않았던 것을 굴복했다는 입장에서 다시 구원해 주려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을 타락한 본인 되는 아담 해와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쪼갤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아들 가인과 아벨을 통해 가지고 분립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아벨을 왜 더 사랑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리적인 입장에서 아벨은 아담의 두번째 사랑의 열매로 하나님편에 있기 때문에 응당히 하나님이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벨이 드리는 제물을 하나님이 받았던 것입니다.
그 다음 가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아벨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아벨을 통해 가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여기에서 구원역사가 성립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이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완전히 사탄 마귀의 주체적 사랑의 입장만이 남아진 결과가 되었습니다.인간이 더러운 피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형과 동생을 엇갈리게 바꾸어 놓자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가든지 그것을 완전히 뒤집어 회복해 놓자는 것입니다.
사랑의 열매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탄의 피를 받은 사탄의 아들이 태어나는 것은 여자의 자궁에서부터입니다. 뱃속에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걸 꺼꾸로 동생을 형의 자리로, 형을 동생의 자리로 바꿔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 형제를 중심삼고 그것을 돌려놓으려고 했던 것이 실패했습니다. 그것은 형제끼리, 형제의 입장에서 바꾸려 하다가 실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시 가까운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쌍태(變胎)를 중심삼고 야곱과 에서 시대에서 돌려 놓으려고 한 것입니다. 죄를 지은 장본인은 해와요, 그 열매를 맺히게 한 것은 가인이었던 것입니다.
야곱 가정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에서와 야곱의 자리는 아담 가정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의 자리와 같습니다. 형과 동생의 자리를 돌려 놓기 위한 형제였던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머니하고 아들하고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맏아들 가인과 어머니하고 하나되어서 죄를 뿌려 놓았기 때문에 야곱 때에 와서는 어머니하고 작은 아들이 하나님이 뜻을 이루는 입장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의 자리를 빼앗는 데 어머니가 협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해와와 가인이 실패한 것을 이삭 가정에서 복귀하자는 것입니다.
야곱은 떡과 팥죽으로 에서에게 장자(長子)의 기업(基業)을 빼앗은 것입니다.에서가 장자의 위업을 야곱에게 팔았기 때문에, 야곱에게는 장자의 상속권을 돌려받을 수 있는 당당한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에서로부터 사탄편의 모든 위업을 상속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가지고 어머니의 협조를 받아 아버지를 속이고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쌍태를 중심삼고 장자의 기업을 빼앗은 것입니다. 이때에 에서는 가인과 같은 입장에서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란에 있는 외삼촌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하란에서 21년 동안 고역의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속에는 하나님 앞에 축복받은 장자의 기업을 어떻게 성사시키느냐 하는 일념 외에는 없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21년 동안 모은 전재산과 가족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여기에서 야곱은 형이 자기를 죽이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일 야곱이 죽는 날에는 아벨이 희생당한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가 되어 천륜이 깨져 나가기 때문에, 뜻 앞에 있어서 이번 일이 성사 되기를 야곱은 밤을 새워 가면서 얍복강가에서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야곱의 자리는 하나님을 대신한 아담의 자리를 인계받은 자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은 아담이 천사 앞에 굴복당한 거와는 달리 천사 앞에 굴복하지 않고 천사를 굴복시킬 수 있는 승리의 주권을 가져야 되고, 가인인 형한테 죽었던 아벨의 자리에서, 죽을 자리에서 살아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싸워 이긴 것입니다. 그 다음 에는 천사와의 사랑의 열매인 가인과 같은 자리에 있는 에서를 굴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러한 조건을 알고 에서를 만나 자기의 모든 소유물을 드리면서 '나는 당신의 종이니 하나님이 축복해 준 것을 당신에게 모두 바친다'고 하면서 죽을 자리를 모면하였습니다. 형이 동생을 환영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천사장을 굴복시켜 장자의 기업을 복귀하게 되었고, 그 승리의 자리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아담이 영적인 천사한테 굴복당하고, 그 다음에 아벨이 가인에게 침범당한 것을 야곱이 뒤집어 놓은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이 간교한 사람인데도 하나님이 축복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미궁의 사실이 있게 된 것은 이와 같은 내용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오늘날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에서와 야곱을 바꿔치긴 바꿔쳤는데 장성한 뒤에 바꿔친 것입니다. 바꿔치려면 어머니 뱃속에서 바꿔쳐야 할 텐데 나와 가지고 바꿔쳤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그런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리브가가 잉태했을 때 복중에서 둘이 서로 싸웠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리브가가 '어찌할꼬' 하며 하나님께 묻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고 했습니다.
이것을 유다와 다말을 세워서 다시 바꿔치기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38장을 보면 유다와 다말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자세한 말씀은 시간 관계로 약하겠습니다. 다말이 유다로 인하여 잉태하게 되었는데 이도 역시 쌍태였습니다.
복중에서부터 바꿔쳐야만 혈통적 인연을 바꿀 수 있는 근본 터전을 닦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복중에서부터 바꿔치는 놀음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맏아들 세라의 손이 먼저 나오자 산파가 손에 홍사(紅絲)를 매었습니다. 이것은 끝날이 되면 공산당이 나올 것을 예시한 것입니다. 세라 손이 먼저 나왔는데 동생이 밀치고 나왔어요. 이가 바로 베레스입니다. 베레스란 말은 밀치고 나왔다는 뜻입니다. 비로소 엇끄러진 혈통의 위치를 어머니 복중에서부터 복귀한 것입니다.
베레스와 세라로 말미암아 비로소 장자를 굴복시킬 수 있는 터전을 갖춘 것입니다. 이렇게 승리한 터전을 기원으로 하여 유대지파를 형성했습니다. 그때 사탄세계는 국가적 터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도 나라가 될 때까지 스스로 이 원칙을 세워서 앞으로 올 메시아를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약혼 단계에 있는 마리아를 통해서 섭리하셨습니다. 이것을 탕감짓지 않고는 돌아갈 길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류시조 아담 해와의 청소년 시대는 약혼 단계와 맞먹는 시대입니다. 그것을 사탄이 빼앗아 갔기 때문에 하나님은 찾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다말과 같이 그때의 자기 위신과 생명을 각오하고 나섰습니다. 그때는 처녀가 잉태했으면 당장에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서 예언할 때 '주의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였던 것입니다. 다말이 가려 받은 혈통적 관계를 이어받은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게 될 때 사탄은 그 예수를 참소할 아무런 조건도 제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잉태하는 그때부터 참소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과정을 통해서 혈통을 맑히고 태어난 사람은 예수 외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독생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갈 자가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한 말씀이 여기 있는 내가 지어서 한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영계에 가 보면 미스터 문이 말한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관점에서 풀어야 미지의 모든 문제점이 풀려지는 것입니다. 그 외의 내용들을 전부 다 얘기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예수를 보낼 때, 어제 말한 것과 같이 개인적으로 이길 수 있고 가정적으로 이길 수 있고 민족적으로 이길 수 있는 주체자인 메시아를 보내마고 이스라엘 민족 앞에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국가 기준 위에 올라서서 상대적 기준을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국가가 되어 예수와 하나되었더라면 예수는 십자가에 돌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새로운 메시아가 필요하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오늘날에는 이스라엘 나라를 만드는 데 옛날과 같은 나라를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나라를 이루어 하나됐다 하더라도 혈통적으로 양자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녹음 상태 불량으로 일부 정리하지 못했음)
아담 해와가 한 번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수천년 동안 신음하고 고통당하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을 희생시킨 이스라엘 민족이 평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왔다 간 이후의 이스라엘 나라는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세계의 수많은 민족의 말발굽 앞에 혹은 채찍 앞에 쓰러져 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2차대전 때 히틀러를 통하여서 이스라엘 국민 6백만이 학살됐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에 없었던 비참한 일이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참한 일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다 청산시키기 위한 것이요,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한 하나의 경륜으로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자극제로 삼아 새로운 이스라엘 나라를 창건할 수 있는 단결의 요인으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사탄에게 내줬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1948년에 이스라엘 민족은 독립했습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억울함을 당했기 때문에 이제사 하나되어 가지고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극복하고 건국을 해야 되겠다' 하고 싸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처음 온 메시아를 희생시켜 보냈기 때문에 다음에 올 메시아를 맞을 준비라도 해야 된다고 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돌감람나무 밭과 같이 되어 있기 때문에 참감람나무, 즉 원죄 없는 주인에게 접붙여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원죄와 관계없는 사람, 하나님의 아들딸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데는 혼자 들어가는 것이 아니예요. 가정이 들어가고 종족이 들어가고 그 나라 전부가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왔다가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갔으니 천국에 가지 못한 것입니다. 낙원에 갔습니다, 낙원! 낙원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대합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혼자, 남자 혼자는 천국에 못 들어가는 거예요. 부부를 이루어, 가정을 이루어 종족과 민족과 나라를 거느려 가지고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올 때 자신만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있었어요? 교회가 있었어요?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을 죽인 형틀 입니다. 그것은 비참한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죽어서 부활을 하지 못했다면 십자가로 구원을 못 받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리가 아니라 부활의 도리가 기독교의 원칙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십자가는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다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몸의 세계는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몸과 연결될 수 있는 땅과 백성과 세계를 잃어버렸던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와 교회와 백성은 사탄이 취해 갔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만 승리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간 길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을 사람은 구주가 간 길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피를 흘렸기 때문에, 예수님을 진짜 따라가려는 사람은 피를 흘리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것을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3차에 걸친 눈물어린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학자들 가운데 예수님도 육신을 쓴 사람이니 고통을 못 이겨 가지고 그렇게 기도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인 줄 확실히 모르는 때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정했지만 메시아로 확실히 알고 난 후에는 꺼꾸로 매달려서도 당당히 죽어갔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예수님이 베드로보다 못해요? 항차 메시아라는 사람이 죽어 가지고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는 것을 싫어했다면 메시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그렇게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피를 흘리며 죽는 날에는 자기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은 수천년 역사를 통해 가지고 피를 흘리지 않고는 따라올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아는 예수님은 그 문제를 걸어 놓고 3차나 하나님 앞에 담판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를 흘리지 않고 기독교를 개척한 나라가 없었고 개인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수천년 동안 피를 뿌려 가며 준비해 가지고 이루어 놓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잃어버린 제1이스라엘을 대신한 영적인 제2이스라엘 나라입니다. 잃어버린 제1이스라엘은 영육이 있었지만 제2이스라엘은 영육을 갖춘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은 영적인 제2이스라엘권이 기독교 세계에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땅 위의 어느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것이냐? 그 나라는 미국도 아닙니다. 지금의 이스라엘도 아닙니다. 기독교인은 상상적인 천국, 영적인 나라를 바라면서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영적인 천국만 이루어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거예요. 이 땅 위에 지상천국을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원죄를 벗고 사탄을 지배하며 살던 사람이 아니고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천국을 이룬 개인과 가정과 종족, 민족, 국가가 있어요? 없어요, 없어. 새로운 메시아가 와야 하는 것입니다. 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천국이념을 가진 기독교의 이상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메시아가 올 때는, 예수님이 오셔서 실패한 것을 성사시키어 사탄세계를 능가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새로운 메시아가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메시아를 맞으려면, 그냥 그대로 예수님만 믿으면 되느냐? 오늘날의 기독교 신자들은 주님 앞에 신부가 되겠다고 하며 믿고 있습니다. 신랑이 어디로 오시는지 아느냐 이거예요. 어디에서 만나는지를 아느냐 이거예요. 내가 그와 더불어 어떻게 생활을 해야 하는지 아느냐 이거예요. 그와 더불어 어떻게 이 땅 위에 천국을 이루어야 될지를 아느냐 이거예요. 다 모릅니다. 다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새로운 메시아가 지상에 와서 해야 할 일은 잃어버린 제1이스라엘권을 다시 이 세계에 형성해 가지고 맺혔던 한을 풀 수 있는 세계적인 선의 주권을 세우는 것이요, 인류의 한인 원죄를 지상에서 뽑아 버리는 것입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제3이스라엘 나라입니다. 제3이스라엘 나라가 필요합니다. 제3이스라엘은 누구한테 선택되어야 되느냐? 그리스도를 통해 가지고 선택되어야 됩니다.
제1이스라엘 때에는 한 사람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예수님을 맞아야 되지만, 이제는 세계적인 때이므로 민주세계와 기독교가 하나되어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주동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있어요? 빨리 그러한 나라를 준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준비하는 데는 주먹구구식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서 주제 말씀으로 드리는 '공식적 섭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타락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습니다. 믿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지 못했습니다. 절대적으로 믿지 못하고 몸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3대요건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을 찾으려면, 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사탄세계에서 사탄을 능가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운동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2이스라엘권에서 이루지 못했던 것을 다시 꿰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볼 때, 아벨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탄세계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했습니다. 사탄과 하나되어 가지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는 거예요. 완전히 분립되어야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벨이 가인에게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노아에게 옮겨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120년 후에 물로 심판을 할 테니 배를 지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강가에다 배를 지으라고 하지 않고 아라랏산 꼭대기에다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믿지 못할 놀음을 시킨 거예요. 믿지 못할 놀음을 하라는 거예요. 그러니 모든 사람들이 노아 할아버지를 보고 '저 영감 미친 영감'이라고 말하게끔 되어 있다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는 마음은 절대적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노아를 대해 사탄세계에서 핍박하면 핍박할수록 노아는 더욱 절대적인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거기에 개인이 동원되고 가정이 동원되고 나라가 동원되고 전세계가 동원되어 반대할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온 여러분들이 노아 할아버지의 부인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그거 믿겠어요? 생활이고 무엇이고 다 집어던지고 매일같이 까뀌를 쥐고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때, 도시락을 싸주고 싶고 시중을 들고 싶었겠어요? 120일이나, 1년이면 모르겠는데 120년 동안…. 아마 환영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120년 내내 반대할 거예요.
노아의 자식들도 노아를 믿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느냐 하면 심판이 끝난 이후에 노아는 배에서 내려와 가지고 벌거벗고 잠을 잤습니다. 120년 동안 배를 짓고,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을 보았으면 하나님이 노아와 같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노아가 벌거벗고 잠을 잔다고 해서 함이 형제들을 충동질해 가지고 뒷걸음쳐 들어가 옷을 덮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아버지를 불신하던 습관적인 행동이 또 벌어진 것입니다. 여기에서 노아는 함에게 '너는 종의 종이 되어서 형제를 섬길 것이다'라고 저주했습니다. 결국 절대적으로 믿고 절대로 사탄에게 침범받지 않아야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아브라함을 보라구요. 우상 장사하는 데라의 맏아들로서 잘살고 있는데 아닌 밤중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아,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명령했습니다. 자, 떠나려고 할 때, 부모한테 의논하면 떠나라고 하겠어요? 형제들이 허락하겠어요? 할 수 없이 몰래 떠났을 거예요. 그리하여 국경을 넘어 어떤 보장도 없는 집시의 무리가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려움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더욱 믿고, 세상의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걸 극복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섰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사, '너희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리라'고 축복해 주었던 것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고역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축복의 뜻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호화찬란한 궁전의 생활까지도 버릴 것을 각오했던 것입니다. 애급 사람을 죽인 것이 발각됨으로 말미암아 미디안 광야에 가서 외로운 생활을 하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만을 절대 믿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절대 믿고 어떠한 핍박도 극복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이스라엘 민족을 지도할 수 있는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을 두고 보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보면 세례 요한은 약대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산 것이 잘 산 것인지 생각해 보라구요. 그는 장차 올 메시아를 만날 것을 마음으로 믿고 절대적인 신앙을 갖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런 놀음하는 것을 자기 부모가 좋아했겠어요? 그 형제들이 있었으면 좋아했겠어요? 그렇지만 세례 요한은 그런 환경을 극복한 대표자인 것입니다. 여러분,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하지만, 이스라엘 나라에 가 보면 그곳은 메뚜기와 석청이 많이 나는 곳이 못 됩니다. 언제나 그런 생활을 했기 때문에 메뚜기와 석청이 없을 때는 얻어먹기가 일쑤였을 것입니다. 아이들한테 손가락질 당하고, 이상한 사나이라고 동네방네 소문이 난 사람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세례 요한이 하나님을 믿는 마음은 절대적이어서 악의 세계에서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분립된 자리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는 자리에서 메시아를 맞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아무리 로마, 이스라엘 나라가 반대하더라도 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자리에 선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몸을 사탄세계에서 분립 해야 됩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새로운 메시아를 맞이해야 할 이때에 있어서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 복귀역사를 되풀이해 가지고 사탄세계의 어떠한 사상의 침범도 받지 않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자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어떠한 영광과 영화가 있더라도 거기에 흔들리지 않고 그것을 끊고 새로운 메시아를 위해서 나설 수 있는 분립된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설 수 있다는 역사적인 공식노정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여러분은 기독교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는 신앙인을 얼마나 만나 보았습니까? 세계 사람 전부가 반대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면서 죽더라도 당당히 가겠다는 신앙자가 얼마나 됩니까? 그런 신앙자가 되면 이는 틀림없이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맞던 거와 마찬가지로 이 시대에 있어서도 새로운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미국 국민들은 이상한 징조를 보고 있습니다. 젊은 남녀들이 집을 나가는 현상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집을 떠나서 행동하는 것을 보면 어느 누구에게도 실망을 주는, 사람도 못 믿고 하나님도 못 믿는 행동을 하는 무리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그러한 자기 자체를 지탱하지 못하여 자살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퇴폐적인 자리에 들어가 절망의 신음을 하는 데까지 떨어지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히피의 무리입니다. 이 무리들이 하나님이 뜻을 이루려던 선조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악의 세계에 대항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기 위하여 생명을 각오하고 나선다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그런데 반대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국의 운명을 짊어질 젊은이들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미국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나이 많은 여러분들이 혹은 신앙을 가진 기독교 신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방관하고 있으면 벌은 여러분들이 받을 것입니다. 이것을 돌려 잡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있다면 여러분의 피살을, 생사를 개의치 않고 그 길에 가담해서 내일의 미국을 옹호하고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대로 두면 미래의 미국은 망하기 때문에 역사적인 인연을 가지고 제3이스라엘이라는 엄청난 목표를 향하여 집을 떠나는 새로운 운동을 제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악한 이 사회의 모든 악의 권한을 반대하고 나서야 쉽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돌아와 가지고 이들을 구해 내겠다고 나서는 운동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형성된 요원들은 새로운 메시아를 맞기 위한 가정적인 터전이 되고 종족적인 터전이 되고, 민족적인 터전이 되고, 국가적인 터전이 되겠다는, 틀림없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새로운 운동을 벌여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배반했던 제1이스라엘과는 달리 하나님의 뜻을 풀어 드릴 수 있는 제3이스라엘권을 창건하자고 나서는 운동이 세계적으로 벌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메시아가 이 터전 위에 오셔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서슴지 않고 백 퍼센트 믿고 행동하며 사랑을 돌려줄 수 있게 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공식노정을 통하여 하나의 나라를 지상에 세우기 위해서 싸워 나가자는 운동을 해야 될 때가 오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이 운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기독교가 반대를 하면 두고 보라구요, 누가 망하는가. 지금의 교직자인 목사, 혹은 감독, 신부 이런 사람들은 까닥 잘못했다가는 옛날 이스라엘의 교구장, 제사장, 교법사들과 같이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말은 평면적인 말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전통적인 신앙을 두고 볼 때는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 같지만 성경을 중심삼고 볼 때는 부정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선포합니다.
지금 이때는 젊은 10대의 청소년들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 10대 청소년들의 불륜한 관계를 막아내야 됩니다. 이제 미국에 있어서 히피와 반대인 색다른 무리의 운동이 시작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릅니다. 틀림없이 저것은 망할 것이고 이것은 흥할 것입니다. 이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적인 감정을 초윌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국가를 초월해야 되는 것입니다. 국경을 초월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야 됩니다. 그런 기반을 닦아 가지고 새로운 메시아를 맞아 더러운 원죄를 벗고 악의 주관권을 벗어나 가지고 선의 주권을 세워 인류 본연의 세계를 다시 회복하자는 운동이 통일교회의 운동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찾아진 돌감람나무와 같이 되어, 오시는 메시아에게 일시에 접붙임을 받아, 죄를 뽑아 가지고 선의 주권을 세우고 지상천국을 이루어서 천상 천국까지 연결짓자는 의미에서, 오늘 여러분 앞에 '새로운 메시아와 공식적 섭리노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저녁 이와 같이 참석해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여러분을 중심삼고 보면 이 사람은 벙어리와 같은 입장에 있고, 나를 중심삼고 보면 여러분은 귀머거리와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이 두 장벽을 헤쳐 주고 의사를 소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 여기에 있는 통역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사람에게 많은 성원을 해주셔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나는 동양 사람입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입니다. 미국 국민들은 한국 하게 되면 한국동란의 인상을 절실히 느낄 줄 압니다. 제가 미국에 계시는 여러분들을 이와 같은 공식석상에서 만날 수 있기를 다년간 기도하였는데, 오늘 이와 같이 이루어진 데에 대해서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고, 여러분 앞에 진실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 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오늘날의 세계 정세를 바라보게 될 때에, 민주세계나 공산세계가 금후의 하나의 세계를 모색하는 데 있어서는 그 자체만으로써 해결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즉, 사람의 힘으로써는 수습할 방안과 대책을 강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만일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세계의 사정을 잘 아시고 금후의 우리 인류의 고역상을 잘 아시기에, 인간을 좋은 세계로 인도해 주시리라고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현재에 있어서, 하나님이 확실히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하는 것을 결정짓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하나님이니, 하나의 세계종교니 하는 문제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통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신 하나의 이상적인 종교를 추구하는 것도 사람을 중심삼고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반드시 사람을 통해서만이 하나의 세계종교를 찾을 수 있고 하나님의 권위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하는 것을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이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존재하려면 존재하기 위한 선(先)의 조건이 필요합니다. 반드시 작용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작용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재와 작용이라는 것은 뗄래야 뗄 수 없고, 갈라놓을래야 갈라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작용은 혼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작용하는 데는 반드시 상대가 필요합니다. 즉, 주체와 대상 관계가 절대적인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혼자서 이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게 된다면 '저 사람은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 거미줄에 조그마한 무엇이 매달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보고 손을 오르락내리락하면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미국의 대통령께서 이런 큰 홀에서 혼자 큰소리로 웃으면서 강연을 한다면, 누구나 대통령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평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컵을 하나 놓든가 이것보다 더 작은 것, 조그마한 종이 짜박지를 놓고 큰소리로 말하면서 껄껄 웃는다면 그때의 대통령은 정상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만일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신다 할 때 그 하나님이 아무것도 없는데, 대상의 존재가 없는데 혼자 웃고 춤을 춘다면, 절대적인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 하나님이 정상적인 하나님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극히 작은 대상을 놓고 좋아하고 껄껄 웃고 춤을 춘다 하더라도 그때에는 정상적인 하나님인 것입니다. 존재는 반드시 작용을 거쳐야만 계속되는 것입니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 관계가 이렇듯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인식했으리라고 봅니다.
주체와 대상이 있다면, 주체와 대상이 서로 주고받는 작용을 하는 데 있어서 손해나는 작용은 절대로 안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저녁 여기에 참석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스터 문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한번 왔는데, 자기가 손해날 것을 완전히 안다면 여기에 온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문선생을 만나서 무슨 말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조금이라도 플러스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 같아서 온 것입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이 돌아가게 될 때, '아이쿠, 괜히 왔구만. 손해가 막심한데' 할 때는 다시 오라고 해도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해나기 위해서 작용하지 않습니다. 손해나는데 작용이 계속되거나 존재가 계속 된다고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샌프란시스코를 두고 보게 되면, 사람들이 마켓 스트리트(Market Street)에 많이 나갑니다. 거기에 나가는 데 있어서 어떤 사람이 매일같이 십 전 손해보기 위해서 나간다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이라는 거예요. 무엇인가 이익을 얻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곳이 서로서로가 이익될 수 있는 이상의 자리를 유지하게 될 때에는 계속 출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주체도 이익될 수 있고 대상도 이익될 수 있는 공동목표를 발견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작용이 중지되는 것입니다.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요, 전진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보다 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일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는 작용을 하는 데 있어서 작아지는 것을 위해서 작용한다는 원칙을 세운다면 이 우주는 형성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고받는 데 있어서 보다 나아질 수 있는, 서로의 가치적인 내용을 발견할 수 있는, 보다 큰 목적을 대할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는 데에서부터, 플러스 방향을 향해서 작용한다는 원칙에서부터 우주는 형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작용의 원칙이라는 것은 대상적인 목적을 필요로 해야 가치적인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이 우주는 반드시 어떠한 절대적인 주체와 대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작가로 한번 비유해 봅시다.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자기가 구상한 바와 목적한 바를 중심삼고 만드는데, 만들어진 것이 자기가 구상하고 목적한 것보다도 더 잘 되게 되었을 때에는 그 작품을 영원히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 작품이 이 땅 위에 하나밖에 없는, 상상할 수 없는 걸작품이 되었다고 하게 될 때는, 자기가 도망을 가든가 이사를 가게 되면 먼저 그것부터 챙겨 가지고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 하나님이 우주를 만들었다면, 하나님도 대상이 없어 가지고는 좋아할 수도 없고 기뻐할 수도 없고 어떤 작용도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대상을 짓는데 광물을 대상으로 지으려 했겠느냐? 아닙니다. 그것보다도 식물? 식물도 아니요. 동물도 아닌 것입니다. 동물 중에 최고의 자리에 있는 인간은? 그 인간에 대해서는 하나님도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이 대상의 존재로 누구를 지었겠느냐고 물어 보더라도 두말할 것 없이 그것은 사람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걸작품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면 주인을 몰라보는 사람으로 만들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작가라면, 자신이 만든 작품에게 '얘야, 저기 좀 갔다 와' 하면 '예!' 하고 갔다 오고, 좋은 것을 보고 같이 웃자고 하면 웃는 그런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면 얼마나 자랑하고 싶겠어 요? 그렇기에 하나님이 하나의 걸작품을 만들 때에, 말이나 감정을 모두 통할 수 있게끔 만들고 싶었을 것임이 틀림없을 거라구요.
그것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이 바라는 목적과 일치될 수 있고, 언제나 하나님과 같이 있기를 바라게끔 아니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절대자가 우리 인간을 만들었다면 인간의 목적과 절대자의 목적이 엇갈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절대자인 높은 그분에게 올라가고 절대자인 높은 그분은 인간에게 내려와 가지고 일치될 수 있는 방향이 없어 가지고는, 즉 인간이 절대자인 그분과 일치될 수 있는 방향이 없어 가지고는 우리를 지은 창조주와 우리 자체들의 목적이 일치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작용을 하는 것이 뭐냐 하면 양심작용이예요.
인간의 마음은 누구나 최고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여러분, 남자나 여자나 세계의 대통령 한번 되어 보고 싶지 않은 사람 있어요? 다 있다는 거라구요.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최고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여자들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남자를 원합니다. 그러나 여자가 그 남자를 취했지만 그 남자보다도 더 높은 분이 있으면 그분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거예요.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그대로 두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 사람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만일 절대자가 있다면 그 사람을 내놓고 절대자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알게 되면 그 하나님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 안 만들고 싶어요? 그런 마음이 없다면 여러분은 그분과 상봉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있으면 틀림없이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할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하게끔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자고로 인간이 생겨난 그날부터 누구나 다 바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인간을 걸작품으로 지었다면, 걸작품인 그 존재가 하나님에게 점령하겠다 하고, 하나님을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고 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싫어하겠어요? 인간의 최고의 권위가 뭐냐 하면,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들고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어 최대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이 욕망이 없어 가지고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권한과 절대적인 하나님을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욕망은 어린 시대나 청년시대나 장년시대나 노년시대나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 속에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욕망을 가진 마음이 하나님을 소유하고도 남을 수 있는 크기가 되었느냐, 하나님을 소유하고도 남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도 전부 다 소유….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 그 하나님을 영원한 내 하나님으로 만들려면, 하나님을 전부 다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한 가지를 놓쳐 버리면 하나님을 놓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 속에 숨어 있는 하나의 사랑, 그 비밀의 사랑을 점령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영원한 나의 하나님으로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했다면 내 욕망은 어떻게 되느냐?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는 거예요. 여기가 인간의 욕망이 비로소 '아, 이제 내가 쉬어야 되겠다'고 할 수 있는 안착점, 즉 종착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적인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작용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그 목적을 연결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의 양심작용을 볼 때, 앞에서 말했듯이 주체와 대상이 없어 가지고는 작용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주체되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양심이 없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갖고 있습니다. 양심은 밤이나 낮이나 나를 대하여 옳은 길로, 공의의 길로, 선의 길로 가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손해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도 플러스되고 상대도 플러스될 수 있는 입장에서 작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인류를 찾아 나오시고 인류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찾아 나오고 있지만, 확실한 일치점을 못 본 채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날에는 그분은 내 것이요, 그분이 지은 모든 피조세계도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다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이 상봉할 수 있는 그 종착점에서는 무엇을 중심삼고 만나려고 했겠느냐 하는 것을 알아봅시다. 여러분들 가운데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대해 바라는 최고의 자리를 하나님은 알아주겠지 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았는데 그 하나님 앞에 딸이 있다고 합시다. 그 딸이 사랑하는 외동딸이라고 합시다. 내가 남자라면 그 딸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딸을 가졌지만, 그보다 더 나은 아들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면 그 아들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인간으로서 사랑을 중심삼은 최종착점의 포인트가 어디냐 하면 사위도 아니요, 며느리도 아니요,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들의 자리 이외는 없다는 거라구요. 우리 인정의 최종착점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길이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그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진짜 사랑하실 자리가 어디냐 하면 인간이 요구하는 최고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계시다는 거예요. 인정과 천정이 결합되는 자리는 하나님과 인간이 부자관계의 인연을 맺는 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단 시간내에 이런 말을 듣고 있지만, 여기 서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우주의 궁극의 진리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누구보다도 심각한 입장에서 오랫동안 추구했던 사람입니다. 최고의 자리에 들어가서 얻은 답은 뭐냐? 우주의 근본은 부자의 관계라는 결론입니다.
부자의 관계라 해서, 오늘날 우리를 낳아 주고 같이 사는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라구요. 그것은 천지를 창조한 절대적인 하나님과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우리 인간과의 관계인 것입니다. 인류가 도달하여야 할 본연의 가치의 자리는 하나님이 아버지요 우리는 자녀라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엄청난 자리를 우리에게 허락하셨다는 거예요.
부모는 자기 아들이 자기보다도 더 잘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욕망입니다. 여기 여러분들 가운데 부모 되는 분이 계시다면,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어요? 없다는 거예요. 자기보다 더 훌륭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들딸이 자기보다 더 높다고 해서 불평하고, 자기보다 더 큰 권세를 가지고 자기를 주관한다고 해서 불평할 수 없는 거예요. 그 마음이 누구를 닮았느냐? 인간이 타락했을망정 하나님의 본성을 닮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자식들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전부 다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거예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의 것인데도 불구하고, 자기한테 상속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살게 될 때는, 이만한 꼬마도 집이라든가 좋은 것이 있으면 '이거 우리 꺼야, 우리 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벌써 그 아들은 부모와 같은 소유관념을 가지고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야, 이 녀석아 내가 일생 동안 일을 해서 집을 사고 땅을 사고 귀한 것을 만들었는데, 언제 네가 하나 보태기나 했어? 왜 네 꺼냐? 이렇게 반문하는 부모는 한 사람도 없는 거예요. 부모는 그런 말을 하는 자식이 어린애일수록'이 녀석 봐라' 하며 도리어 더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으면 하나님이 가진 것을 전부 다 갖고 싶겠어요, 안 갖고 싶겠어요? 갖고 싶은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두고 보면 아버지는 위에 있는 것 같고 아들은 아래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아버지의 자리를 내가 갖겠습니다' 할 때, '야, 이놈아 안 된다' 하게 되면….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암, 그렇구 말구, 아무렴 그렇지' 한다는 거라구요. 아버지와 동등하다는 거예요.
우리 인간이 이 세계에 한 분밖에 없는 귀한 아버지를 어디에 모시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영계에 가 보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존재하고 있는 물건은 보이지만 존재하고 있는 힘이 보이지 않는 거와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이 그 귀한 하나님을 어디에 모시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귀한 분을 하늘 꼭대기에, 혹은 땅 구석에 갖다 놓을 수 없다는 거라구요. 제일 사랑하는 그분이 기쁘면 나도 기쁘기 때문에, 매일같이 보고 어디를 가도 함께 가고 언제나 같이 있을 수 있는 곳에 모시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자식을 길러 보면 그렇지 않아요? 한시라도 부모와 떨어지면 탈이 나는 거라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몸뚱이를 쓰고 있는 분으로 계시다면 문제가 크다는 거예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주의 중심이 되시는 하나님이 실제로 여기에 계시다면 전부 다 하나님을 빼앗기 위해서 싸움을 벌일 것입니다. 만일 민주세계를 대표한 미국과 공산세계를 대표한 소련이 우주의 주인인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하나님을 점령하기 위한 싸움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안 보이시기를 잘했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안 보이시기를 잘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안 보이셔야 됩니다. 안 보이시는 하나님을 나만이 볼 수 있고 나만이 대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된다는 거예요. 인간은 이런 자리, 이런 곳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위험천만한 이런 세상에, 만약 어떤 사람에게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있다면 그 사람은 이것을 어디에 감춰 둘 것이냐 해 가지고 야단일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곳에 감춰 두더라도 훔칠 수 있다구요. 그럴 가능성이 있다구요. 그렇지만 인간은 나만 보고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곳에 딱 감춰 두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 곳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 곳에다 감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났으면 어디에 모실 것이냐? 나만이 아는 곳에, 다른 사람이 모르는 곳에 모시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런 곳에 갖다 감춘다는 거예요. 그게 어디냐 하면 우리의 양심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양심을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양심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양심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면 나만이 자랑할 수 있고 나만이 하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와 같이 보이는 곳에서 최고의 사랑을 드러내고 사랑하고 싶어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최고의 사랑을 하는데 그것을 자랑하고 선포하고서 사랑하는 것은 위험천만이라는 거예요. 사람이 그러한 것을 요구할 것을 미리 아시고 하나님도 하나의 보좌에 있기보다도 인간의 마음 속에 있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마음의 중심이 되고, 우리는 그 마음과 하나된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마음은 주체요, 몸은 상대가 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같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떨어지지 않고 같이 있다는 거예요. 아들의 자리에서 고대하던 부모의 자리를 하나님은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원한 평등의 자리를 인간에게 부여하겠다는 것이 둘째로 우리 인간에게 허락한 최고의 가치의 기준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영원히 같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전서에는 '너희들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와 같이 됐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최고 가치의 자리요, 영광의 자리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 세째로는 무엇이냐?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한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 창조물 가운데서 제일 걸작품으로 인간을 창조했는데 인간도 그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섰다 하더라도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가지고 인간을 한번 창조하는 자리에 서 보았으면 하고 원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인간의 욕망이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도 허락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나를 닮을 수 있다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귀납적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님 가운데에는 남자 성품과 여자 성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되어 실체를 이룬 것이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관념이 없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씨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제일 알기 쉽게 콩을 보면, 콩은 두 쪽으로 붙어 있는데 한 꺼풀로 씌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굴 닮았느냐? 원인 되는 하나님의 모양을 닮은 것입니다. 거기에서 두 쌀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떠한 씨든지 그러한 내용을 결한 씨는 없습니다.
이 두 쪽이 완전히 하나될 때 싹이 나오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남자성과 여자성을 중심삼고 사랑으로 완전히 하나될 때 비로소 인간이 창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인간도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주체 형상을 닮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그 주체는 결과인 대상과 같은 모양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주고받는 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영원한 본체의 형상을 닮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을 하나 만들고, 하나님과 인간을 종적으로 하나 만드는 것은 사랑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 없이는 하나가 안 됩니다. 통일의 원칙도 사랑이요, 이상의 기반도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된 거기에 비로소 하나님의 종적인 힘이 같이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도 만물을 주관할 수 있고 하나님이 창조한 걸작품과 같은 인간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낳는 자녀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창조의 권한뿐만이 아니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이 느끼신 기쁨까지도 우리에게 위업으로 주셨습니다. 그런 느낌이 여러분의 자식에 대한 사랑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지만, 절대자로서 가진 최고의 사랑을,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인계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아들딸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고, 완전히 하나된 부부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랑 가운데에서 태어난 아들딸을 완전히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여러분, 사랑 가운데서도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요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대상이 되어 받는 사랑도 영원해야 된다는 거예요. 오늘날 타락한 인간들이 사랑을 찬양하는 데 있어서 형용사를 갖다 붙이는 것을 보면, 영원한 사랑, 불변한 사랑, 절대적인 사랑, 유일한 사랑 등을 갖다 붙이고 있어요. 여기에 대해서 좀더 세밀히 얘기하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어서 한 가지만 여러분 앞에 얘기를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것이요, 그 다음에는 상대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고 상대가 없어 가지고는 사랑이고 뭐고 없다는 거라구요. 오늘날 사랑에 대한 철학을 중심삼고 볼 때, 사랑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거예요. 이것은 방향이 틀렸어요. 절대적인 사랑은 상대를 통해서 오기 때문에,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머리를 숙여야 되고 온유겸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자식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대통령이라고 해서 아들을 대해 '야, 아들아 나는 대통령이다'라고 합니까? 아무것도 아닌 아들 앞에 머리 숙이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 앞에 오직 봉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여기는 거예요. 그것이 본질적인 사랑의 행위입니다. 희생봉사하는 거라구요. 그러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는 절대적인 사랑이 필요한 것이요, 절대적인 상대가 필요한 것이요, 절대적으로 만우주에 내세울 수 있는 아들딸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되어지는 이러한 고귀하고 숭고하고 절대적인 가치의 품성을 인간은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에게 앞에서 말했듯이, 첫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고, 세째는 상대와 일치되어 가지고 창조의 위업을 계승하는 것이고, 네째는 아들딸을 낳고 하나님이 만물을 지어 놓고 기뻐하신 것처럼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네 가지를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찾아가야 할 목적지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라구요. 양심작용에 의해 주체와 대상이 있다는 것은 그럴 듯한데,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을 인상적으로 기억해 두고 넘어갑시다. 우리 인체를 두고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사람에게는 눈이 있습니다. 이 눈이 어디에서 태어났느냐고 묻게 된다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거슬러 올라가 우리의 맨 처음 종지조상의 할아버지의 눈이 그렇게 생겼기 때문에 눈이 이렇게 생겨난 거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자, 이 눈이 지구성에 생겨날 때 땅이 있는 것을 알았겠어요? 또, 태양계가 있는 것을 알았겠어요? 몰랐습니다. 눈은 몰랐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눈은 이렇게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눈을 보면 깜박깜박합니다. 눈이 깜박깜박하는 것은 태양의 복사열에 의하여 눈의 수분이 증발하게 되면 큰일나기 때문에 수분을 축여 주기 위해서 깜박깜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증기가 증발하면 큰일나니까 깜박깜박해야 된다는 것을 눈이 알았어요?
또, 눈썹을 보십시오. 눈썹은 공중에 먼지가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스크린을 만들어 놓았다는 거예요. 이 눈썹이 공중에 먼지가 있는 것을 알았어요? 땀 흘릴 것을 알았어요? 땀이 이렇게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딱 이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코가 거꾸로 뚫렸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왜 이렇게 돼 있느냐? 벌써 코는 거꾸로 뚫리면 안 될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또, 이 코도 공기에 먼지가 있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코가 왜 이렇게 아래로 내려올수록 넓어진지 알아요? 물이 흘러내려 입안으로 들어가면 큰일나겠으니까 이렇게 된 거예요. 전부 다 그렇습니다.
또, 귀가 왜 이렇게 생겼어요? 이것도 거꾸로 붙어 있으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큰일날까 봐 큰 산맥, 작은 산맥 해 가지고 가운데로 휘어 몰아넣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사람의 몸뚱이는 신비의 왕국입니다. 이 몸뚱이 하나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박사가 몇 억이나 나올 것이냐? 몇 억이 나와도 끝이 안 날 만큼 신비의 왕국이라구요. 그들이 아무리 큰소리치더라도 그것을 따라가면서 결과를 통해 이익을 보고 있는 패들이라는 거예요. 박물학적이요 천문학적인 견해에서 볼 때, 모순과 상충이 없는 구체적이고 조직화된 인체가 그냥 그대로 모르는 가운데에서 생겨날 수 있어요? 그것이 그냥 그대로 될 수 있어요? 바보 천치들이라구요.
뭐, 진화라고요? 목적이 없는데 진화될 수 있어요? 진화되려면 그 이상의 힘이 횡적으로 보급되어야 되는 거라구요. 그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지만 결과가 이렇게 적응하게 되어 있으니까 진화라고 하는데, 그건 모르는 작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유물사관에서 말하는 변증법적 논리라는 것은 목적관만 밝혀 내면 깨져 나가는 거예요. 이것이 제멋대로 되었어요? 그냥 저절로 되었다구요? 저절로 되었다면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어떤 일에 대해 일년 계획을 세밀하게 세웠다 하더라도 그것을 하지 않는데 저절로 되는 것이 있어요? 그저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반드시 주체적인 힘의 작용이 그 목적을 향해서 밀어 주는 추진적인 기반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여기 있는 청중 가운데는 대학 교수도 있을 것이요 자기 나름대로 잘난 사람이 있겠지만, 이러한 인간의 모든 구조가 모르고 생겨났어요? 노(no), 그렇지 않습니다. 다 알고 태어났습니다.
안 것은 내가 아니라 주체되는 그 무엇이 알았다는 거예요. 그분의 이름을 테이블이라 해도 좋습니다. 혹은 돌팔이라고 해도 괜찮다는 거라 구요. 주체되는 그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분을 영어로 말하면 갓(God)이라 하고 한국말로 하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한 분밖에 없으니까. 자, 이만하면 하나님이 있어야 되겠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한 분의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한 분의 하나님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대상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그 목적을 성사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대상이라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네 가지의 무한한 가치의 내용을 추구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들 가운데 '나, 그런 사람 됐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구요. 내가 한 가지 물을 테니, 그런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절대적인 하나님이 지은 피조물이라면 하나의 목적을 지향해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상반되는 두 목적의 방향을 지향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이요 원통한 사실입니다. 어찌하여 마음과 몸이 갈라졌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찾는 행복은 어디로 갔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주체를 잃어버린 인간이기 때문에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중간에서 왔다갔다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면서 마음과 몸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선과 악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두 갈래로 되어 있으니, 이와 같이 뿌렸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결과로 나타난 것이 유심사관이요. 유물사관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뿌렸으니 뿌린 대로 거두어야 된다는 거예요. 유물사관과 유심사관의 싸움, 즉 공산세계와 민주세계의 세계적인 싸움을 누가 통일시키느냐? 하나님만 확실히 가르쳐 주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타락은 뭐냐 하면 떨어진 것입니다. 떨어진 것은 고장난 것입니다. 여기에 복잡한 내용이 많지만 여러분이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의 원리를 공부하면 세밀히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하여 아들딸의 입장에 있지 못한 것을 그대로 둘 수 없는 입장에 계시기 때문에, 구원섭리, 다시 찾아 살려주는 놀음을 안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이 거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처소입니다. 그러나 몸뚱이는 하나님과 반대되는 악신의 거처가 되었습니다. 양심은 천국의 처소요, 몸뚱이는 지옥의 처소라는 것입니다. 양심적인 사람은 자기의 몸뚱이를 제어하고 희생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흥하는 길과 망하는 길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선한 길과 악한 길을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열 사람의 친구를 갖고 있다고 합시다. 여러분 한 사람이 열사람을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고 그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자리에 서게 되면 그 열 친구는 떨어져 가라 해도 안 가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자기 친척이나 형제, 부모가 있으면 그들까지 관계를 맺어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열 사람뿐만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친한 사람들까지 관계를 맺게 되니 스물, 서른, 마흔, 백….수가 많아진다는 거예요. 그러나 반대로 열 사람의 친구에게 '열 사람 모두 나를 위하라!'고 한다면, 그렇게 하면 할수록 친구들은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이 가는 길은 내 것은 네 것이요, 네 것은 나라의 것이요, 나라의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더 큰 것을 위해 찾아가는 길입니다. 더 많아지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선이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된 다음에 내 것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악은 그렇지 않습니다. 네 것은 내 것이요, 내 것은 내 것이라고 한다구요. 말이 다르고 행동이 다른 사상이 이 땅 위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 시간이 없으니 그 얘기는 그만하고 넘어가자고요.
하나님은 고장난 사람들을 그냥 둘 수 없기 때문에 인간 역사를 통하여 수리공장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공장을 안 만들었다면 하나님은 없는 거라구요. 그 공장을 만들었다면 하나님은 있는 거라구요. 그것이 뭐냐 하면 인류역사 과정에 생겨난 종교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전세계의 문화권을 두고 보면, 종교 사상을 일으켜서 4대 문화권이 시작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4대 문화권은 기독교 문화권, 유교 문화권, 불교 문화권, 회회교 문화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한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세계.
4대성인을 보면,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수, 공자, 석가, 마호메트입니다. 어떤 사람은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꼽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철인이예요, 철인. 지식의 대표자예요. 지식 가지고는 인간의 생명을 좌우할 수 없는 거예요.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는 것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4대성인을 중심삼고 볼 때 그들이 가르쳐 주는 도리와 사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전부가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상이 골자입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뜻이예요. 그것이 민족주의가 아니라 세계성을 띤 세계주의적 내용을 완전히 갖추면 갖출수록 세계적인 종교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정치가, 많은 나라와 민족이 종교를 탄압해 왔지만 종교는 몇 천 년 동안 변천하지 않고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정치사는 역사와 더불어 변천해 나왔습니다. 이래서 4대 문화권에 세계인류를 규합해 넣었다는 것입니다.
네 패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의 하나님이 하나의 세계 목적을 이루어야지 네 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로 만들어야 됩니다.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내용의 종교가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높은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말할 수 없이 낮은 자리로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종의 종도 못 되는 자리로 떨어졌다는 거예요.
종교에는 여러 종류의 종교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종의 종교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양자의 종교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들의 종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부모의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종교도 필요하고 구세주도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예수고, 구세주고, 종교고 다 필요 없다구요. 대번에 하나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 땅에서 살 것이고, 그런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아들딸, 후손, 그 나라가 전부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상에서 살다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에 지상천국에서 천상천국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지옥이 생겨났고, 예수니 구세주니 종교니 하는 것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은 다 시시한 거라구요.
여기 샌프란씨스코는 동양이라는 아시아와 접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많이 발생하는 발생지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뉴에이지(newage)니 무슨 새시대니 하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것도 모르고 저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을 분간하느냐 이거예요. 그것을 분간할 줄 모르면 여러분들은 큰일난다는 거예요.
새시대라는 말은 맞다는 거예요. 종의 종교시대가 끝나서 양자의 종교시대로 체인지(change)되는 때가 되고, 양자의 종교시대가 아들의 종교시대로 체인지되는 때가 되고, 아들의 종교시대에서 부모를 만나 부모의 종교시대로 될 때는 반드시 새로운 시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중간에서는 언제나 새시대를 말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이런 것을 전부 다 알아 가지고 최후에 하나의 참된 부모를 모시고, 그 부모와 같이 살다가 천국 갈 수 있는 종교를 맞이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4대 종교 가운데 어느 종교가 제일가는 종교냐? 이것을 우리들이 찾아봅시다. 유교는 신에 대해서 막연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는다고 하는 도덕적인 관점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불교는 신이 있는 것을 가르쳐 주지만 실천의 신보 다도 법적인 신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격적 신에 대해서는…. 이슬람교는 한 손에는 코란을 들고 한 손에는 칼을 드는, 종교의 본질에서 어긋난 입장에서 신을 찾았습니다.
제일가는 종교의 기준을 무엇으로 결정할 것이냐? 인간이 타락하지 않은 본래의 선한 자리에서 창조주 하나님과 대상인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원칙적인 완전한 내용을 기준으로 해서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앞에서 말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과 한몸이 되는 것이요, 창조의 능력을 행사하는 것이요. 창조의 위업을 이어받아 가지고 기쁨을 느끼는 4대 요건인 것입니다. 그것을 중심삼고 거기에 부합되는 종교의 내용의 기준에 따라 등급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4대 종교 가운데 그런 종교가 어떤 종교냐? 우리가 기독교라는 간판 밑에 있는 것이 아니예요. 내가 이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기독교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무엇을 주장했느냐 하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독생자라고 주장했습니다. 인류역사노정에 있어서 처음으로 이분만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주장한 것은 인간을 창조한 당시의 본연의 최고의 기준을 설파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류시조가 타락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다 받지 못하고 떨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은 하나님 앞에 완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첫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첫번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받지 못한 부분을 완전히 받는 결정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나선 분이 예수님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을 보면,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둘째 번의 아담으로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첫째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과 한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하나님은 내 안에 있고, 나는 하나님 안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내적인 하나님이요, 나는 외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나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세째는 상대를 찾아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의 위업을 상속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서 맞아야 됩니다.
이런 말을 하면 기독교인들은 수긍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믿는 기독교는 나도 잘 믿고 왔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신학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기성교회의 반대를 받으면서 이 놀음을 하는 거예요. 이런 말은 미스터 문이 꾸며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한 번 발표하면 영원한 책임이 있는 것이요, 역사적인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아는 나입니다. 영계를 답습하여 궁극의 문제를 추구해 보니, 이것이 하나의 공정한 이치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세계를 대하여 당당히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남자입니다. 참된 남자인 것입니다. 지상에는 참된 여자가 없었습니다. 만일 참된 신부가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참된 신부가 있었으면,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예수님을 받들어 가지고 하나된 환경을 만들었으면, 예수님은 유대교의 최고의 대제사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유대인들이 많이 왔을 줄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들 가운데 저 사람은 예수님을 주장하는 사람이니 유대교를 비방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말을 이틀 동안만 더 들어 보고 결론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구약성경을 믿는 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확실히 알 것입니다. 시간 관계로 비약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결론에 가까운 논조로 말하고 있으니, 오해하지 마시고 좀 참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하나되어 예수님을 받들었으면 예수님은 유대 나라의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자, 그렇게 되면 예수님이 혼자 왕 되기를 바랐겠어요? 상대가 있어야지요. 그랬다면 예수님은 이스라엘 나라를 찾고 로마를 정복했을 것입니다. 죽은 예수가 400여 년에 걸쳐 로마를 정복했다면 산 예수는 40년 이내에 로마를 정복하고도 남는다는 거예요.
그랬으면 유대 나라가 나라를 잃어버리지 않고 기독교의 세계적 기반 위에서 세계를 지도하는 국가를 이미 형성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신교니 구교니 하면서 싸우는 종교 전쟁은 있을 수 없다는 거라구요. 또 예수님의 후손이 이 땅에 있어 가지고 기독교의 중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원했겠어요, 원하지 않았겠어요? 이렇게 수백 개 교파로 나뉘어져서 싸우고,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누더기 떼거지를 하나님이 바랐겠어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미국은 종합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나라인 것을 미국 국민 여러분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전통이 무엇이냐?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자유가 아닌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자유는 이제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민주주의가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것 같지 않습니다. 자유를 가지고 인류의 행복의 터전을 허락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갖고 있는 이 나라의 전통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에 하나의 전통이라는 것은 기독사상인 것입니다. 만약 그 사상을 전통으로 남기지 않고 전부 잃어버린다면 일시에 무너집니다. 미국 전역에 널려 있는 교권자들, 감독이니 신부, 혹은 목사 여러분들이 알아야 될 것은 자기의 교권을 가지고 주장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전통으로 남겨 줄 수 있는 기독사상인데 이것이 있느냐? 없다는 거예요.
교회는 깨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여기 워싱턴에 와서 구교의 조직에서 신학교를 판다는 말을 듣고 이제는 끝날이 다 됐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신교에서도 신학교를 판 교파가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퇴폐해 가는 청년들을 무엇으로 지도할 것이며, 분립된 가정을 무엇으로 지도할 것이며, 금후의 공산세계의 사상적인 위협을 무엇으로 방지할 것이냐 하는 것이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새로운 기독교관을 제시하는 운동이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여러분의 장래를 보장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동양 사람으로서 미스터 문이라는 한 사나이가 미국에 와 이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 이런 전통적 사상을 세우지 않아서 민주주의가 망하고, 하나님이 축복한 이 나라가 없어지면 하나님께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놀음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공석에 나서는 일은 한국에서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이 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금후에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되고, 하나님과 한몸이 되어야 되고, 신부를 맞아 신랑 신부로서 가정을 이루어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지상에 천륜의 법도를 세우고 민족과 국가 앞에 왕이 되고 교구장이 되어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은 당연한 이론적인 결론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실 수 있는 모델로 세울 수 있는 가정이 나오지 않고 서는 종족, 국가, 세계가 나올 수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처음으로 메시아 예수는 지상에 와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중심삼고 출발하는 가운데 십자가에 돌아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믿는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도리가 아니라 부활의 도리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형틀이예요, 죽음의 형틀.
원칙적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은 개인으로서 하나님과 하나된 완전한 남자의 자리에 섰지만, 상대를 찾으려 하는 자리에 있어서는 그 상대 기반을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부여하지 못하여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만약 이것을 찾지 못하면 나라와 세계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는 말을 남기고 가신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묵시록에 나타난 어린양잔치는 무엇이냐 하면, 우리 인류가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참부모를 잃어버리고 타락한 거짓 부모를 갖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류역사의 종말시대에 참부모를 찾아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간 조상으로서 결혼식을 해주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알파입니다. 인간이 알파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묵시록인 오메가에 가서 맞춘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무엇을 가르쳐 주셨느냐 하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 오시는 부모는 참된 부모로 오십니다. 종교의 목적도 참부모를 만나는 것이요, 역사의 목적도 참부모를 만나는 것이요, 인류의 소원도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참된 가정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모든 소원과 이상의 기점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2차 대전 직후에 전승국가가 패전국가를 독립시켜 주는 놀음, 역사에 없는 놀음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시는 참된 부모 앞에 불효하고 멸시 천대하던 입장에서 벗어나 공평할 수 있는 천륜의 때를 맞지 않고는 부모를 맞을 수 없기 때문에 역사적인 천운을 따라 그렇게 안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참부모가 올 수 있는 절대적인 측면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참부모가 옴으로 말미암아 인류역사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의 목적을 달성하고 새로운 문화 창건은 물론이요 민족, 국가, 세계를 넘어 하나님을 중심한 지상천국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지상천국은 천상천국과 영원히 통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거기에서 비로소 하나의 세계종교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 부모의 이상은 그 부모가 들어가면 그 가족과 종족이 한꺼번에 따라 들어간다는 거예요. 전부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하나님을 중심한 새로운 세계종교의 형태를 갖추어 평화의 천국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내용을 가지고 여러분께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오늘 저녁에도 이와 같이 모여 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대중 앞에 설 때는 강도상(講道床)이 있어서 이렇게 가리고 있어야 다리가 아프면 좀 쉴 수도 있다구요. (웃음)
실례합니다만 어제 참석하셨던 분으로서 오늘도 참석하신 분이 계시면 한번 손을 좀 들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들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제목은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이상세계, 혹은 통일세계' 입니다. 이러한 큰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 드려 보려고 합니다. 세밀히 이야기하면 광범위한 내용이 되기 때문에 이것을 간추려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러자면 비약이 많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걸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시는 한 그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또,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능치 못함이 없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무한한 가치와 욕망의 최고 요건을 전부 다 부여하신 것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반대되는 악신이 있으면 그 악신을 하나님 자신이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겠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사탄 마귀가 요구하는 것에 대해 '네가 할 수 있는 힘을 다해 한번 해봐라' 하고 그 마귀에게까지도 자유와 권한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악의 주체되는 사탄은 자기의 실력행사를 다 해보고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머리를 숙일 때‘아, 내가 요렇게 요렇게 해보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내용을 남겨 놓으면서 굴복해 가지고는 후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는 하나님편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 악한 사탄편을 중심삼고 출발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악한 편에서 선한 편으로 개인에서, 가정에서, 종족에서. 민족에서, 국가에서, 세계에서까지 갈라내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탄은 하나님이 선한 편으로 갈라내고자 하는 모든 분야에 대해 총력을 집중해서 이것을 끊어 버리려는 투쟁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개인으로 끊어 버리려고 하고, 가정으로 끊어 버리려고 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끊어 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개인으로 갈라내서 남기려 하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갈라내어 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되면 반드시 그것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 마태복음 25장 31절을 보면, '끝날이 되면 면양과 산양을 갈라 놓는다'고 하였습니다. 면양은 오른편으로, 산양은 왼편으로 갈라 놓는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현재의 세계는 두 패로 갈라진 것입니다. 오른편주의와 왼편주의로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이 자리까지 나오는 동안에 인류역사가 시작된 그 날부터 수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개인적으로 희생당하고, 가정적으로 희생당하고, 민족적으로 희생당하고, 국가적으로 희생당하고, 세계적으로 희생당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악한 편에서는 악을 중심삼은 개인이 동원되어 선을 쳤고, 가정이 동원되어 선을 쳤고,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동원되어 선을 쳐 나왔던 것입니다. 이 세계가 사탄권내에 있기 때문에 사탄이 자기 마음대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해 나오신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여, 우리 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동원하여 우리들의 지혜와 모든 권세를 가지고 당신의 아들딸이 가는 길을 방해하여 막을 테니, 이것을 허락하시옵소서' 하는 요구를 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허락해야 된다는 거예요. 허락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라는 거예요. 사탄은 머리를 써 가지고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이 하늘편으로 가지 못하게끔 방해하는 놀음을 역사과정을 통해서 해 나온다는 거예요.
사탄이 머리를 가지고 하던 그것을 하나님이 점령하게 되면, 몸뚱이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하나님이여, 힘을 가지고 한번 더하겠습니다' 하고 요구한다는 거예요.
결국에는 상류계급, 중류계급, 하류계급을 통해 자기의 권한을 행사해 나오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맨 하부계급을 중심삼고, 상류계급, 중류계급, 하류계급을 중심삼고 선을 쳐서 그 길을 막을 테니 허락하시옵소서'라고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뭐냐? '자기 편에 있는 경제력을 가지고 항의할 수 있는 때를 허락하시옵소서'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요구를 하나님은 허락해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인류역사는 전쟁 역사로 발전해 나왔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머리의 시대, 즉 머리를 가진 사람이 지배하는 때로 보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는 힘을 가지고 있는 군부를 중심삼은 시대로 보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부터는 대중을 가지고, 하부구조인 노동자 농민을 가지고 선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경제적인 문제, 외적인 몸뚱이와 같은 문제를 중심삼고 선을 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늘편의 사람들이 이 세계에서 하나의 주권국가를 가지고 행사하던 때는 아직까지 없었다는 것입니다. 즉, 지금까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역사과정을 통해 수많은 희생을 치러 나왔지만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세계를 흔들어 본 때가 없었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은 상부, 중부, 하부가 있는데 하부, 즉 외적인 몸을 중심삼고, 경제력을 가지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시대는 맞이했지만, 내적인 사람을 중심삼은 종교 이념을 가지고 세계에 대해 논의하고 세계를 움직인 때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전부 다 지나가기 전에는, 사탄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을 모두 동원해 가지고 세계를 치는 것이 끝나지 않고는 하나님의 때를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수비전이요, 사탄은 공격전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1차 세계대전 때 먼저 공격한 녀석이 졌습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때에도 먼저 치던 녀석이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3차 세계대전을 운운하는 이때에 있어서 좌우가 갈라진 입장에 있어서도, 먼저 치는 운동을 하는 편은 앞으로 세계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단 하나 문제는 뭐냐? 사탄이 아무리 개인적으로, 어떠한 지혜로, 힘으로, 민중으로, 경제력으로 친다고 하더라도 깨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이 남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7년 대환난이 올 것인데 그때는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그렇게 공격하더라도 당당히 나가 설 수 있어야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고, 그에게 앞으로 하나님이 내세워서 최후에 맞을 수 있는 종교적인 출세시대의 세계적인 운세권을 맞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앞으로 종교인들은 세계적으로 단합해 가지고…. 이 세계는 하나님이 지으신 동산이요. 하나님이 농사 지을 수 있는 농토요. 하나님이 생활할 수 있는 무대인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여기에서 하나님편을 중심삼고 악한 머리와 악한 몸뚱이와 악한 모든 것을 능가해 가지고 당당히 제압하여 하늘의 때를 맞이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인류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고, 인간들이 희망하는 새로운 세계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한 편은 상류계급, 중류계급, 하류계급을 통해서 모든 경제력을 가지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때를 맞이했지만 종교인들은 한번도 그런 때를 맞이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피를 흘리며 희생해 나왔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앞으로 종교인들은 종교인이 맞아야 할 세계적인 한때를 바라보면서,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종교인들이 희생을 치렀고 하나님이 수고해 나오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인들은 양심적인 사람들이요, 하늘을 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양심적인 인사여! 세계적으로 동원할지어다' 할 때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산세계에서는 '노동자 농민은, 세계의 노동자 농민은 동원할지어다!' 하고 있습니다. 양심적인 사람에게는 계급이 문제가 아닙니다. 양심적인 인사는 계급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양심은 계급을 초월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계 만민이여, 양심적인 인사는 동원할지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수천년 만에 한번 오는 때를 잘 맞아야 된다는 거예요. 하늘편에 규합된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는 사탄세계의 어떠한 것보다도 우월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 종교인들이 하나님을 중심삼은 평화의 시대를 한번이라도 맞지 못하면 하나님은 없는 것이요, 우리 인간은 종교로 말미암아 기만당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계시면 그런 때를 대비해 가지고, 인간이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피해받지 않도록 교육을 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절대로 믿으라고 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끝날이 올 때까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치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 주기 위해 절대적으로 교훈해 놓은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다니…'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사랑의 독재자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는 말은 뭐냐 하면, 목을 내놓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사랑하라고 한 것은 그렇게 사랑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최후에 남아질 수 있도록 교육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와 가지고 '너희가 생명을 얻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잃고자 하면 얻는다'고 했습니다. 결국 죽음을 각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결심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사탄세계의 무리가 힘으로, 대중을 통하여, 혹은 물질을 통하여 공격할 때 깨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오늘날 하나의 세계, 즉 이상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개인으로서 이룰 수 있는 어떠한 패턴과 가정을 중심삼고 이룰 수 있는 어떠한 패턴, 그리고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통해서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어떠한 패턴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권내에서 우리가 쓰고 있는 그런 내용을 제시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의 세계에 있어서 민주세계를 지도하고 있는 미국이 그런 패턴의 국가라고 인정합니까? 공산세계의 어느 국가가 그런 패턴의 국가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어떠한 조그만 약소 국가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표준으로 세울 수 있는 국가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없는 것입니다. 더 내려가서 볼 때, 그러한 민족과 종족과 가정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는 개인적인 인격 기준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럴 수 있는 개인적인 패턴을 만들어 나오는 역사를 지금까지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계정세를 바라보면 민주세계나 공산세계 그 자체를 가지고는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이제는 실험이 끝난 결과의 단계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민주세계나 공산세계를 중심한 외적 세계에 하나의 지도자를 요구하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종교계를 바라볼 때, 즉 기독교, 불교, 유교, 회회교를 보더라도 이제는 전부 다 그 자체 가지고는 세계를 끌고 나갈 수 있는 역량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결국 종교계에서도 하나의 지도자, 하나의 사상과 하나의 종교로 통합해 가지고 하나의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는 분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세계를 구해 주고 종교를 구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책임자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인간세계에서, 인간을 통해 올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보내 주는 데는 어디로 먼저 보내줄 것이냐 하면, 외적 세계보다는 내적 종교계에 먼저 보내준다고 약속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종교든지 재림사상은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각 종파가 구하는 입장은 전부 다르더라도 그 오시는 분은 한 분인 것입니다. 또한 자유세계나 공산세계가 추구하는 세계의 지도자, 남을 지도할 수 있는 책임자도 결국은 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마음과 같은 사람, 몸과 같은 사람, 즉 두 사람의 형태를 이 땅 위에 심어 놓았습니다.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는 그 두 형의 사람이 열매맺은 세계인 것입니다. 싸움으로 시작하여 그런 결과의 세계가 됐기 때문에 그들도 싸우고 있는데 그 자체권내에서는 구할 도리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오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종교는 하나의 지도적인 남성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남성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어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상에 일치될 수 있는 완전한 한 사람이 와 가지고 완전한 가정의 패턴을 만들고, 그러한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종교인들을 통하여 인류 앞에 허락한 최후의 운세의 때를 맞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분이 올 끝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그분의 자리에까지 가는 데는 거리가 있습니다. 우리 혼자 대번에 그분을 접해 나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분의 자리는 세계를 지도하는 최상의 자리이기 때문에 우리 개인에게는 그 자리까지 닦아 나갈 수 있는 역사적인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길을 어디에서부터 닦아야 되느냐? 즉,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운동을 어디에서부터 해야 되느냐? 개인에서부터 훈련시켜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몸과 마음은 대립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볼 때에 하늘을 중심삼은 것이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굴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은 몸을 굴복시키는 작전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종교를 중심삼고 마음을 위주하여 몸을 굴복시키는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몫을 치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몸을 중심삼은 권에 대해서는 사탄이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사탄이 침입할 수 있는 루트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제거시키는 훈련을 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높아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하면 악이 출발한 동기의 반대적인 경로를 거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하면 중심되는 하나님을 부정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중심을 부정하고 자기가 중심 자리에 서기 위해서 아담 해와를 희생시키는 놀음을 한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를 중심하고 남을 희생시키는 것이 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은 반대 작전을 하기 때문에 자기가 아닌 하나님을 절대 중심으로 하고, 남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희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다시 찾자는 것입니다. 그런 싸움을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까지 확대시켜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은 반대로 개인적인 입장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남을 희생시켜 자기 주권을 넓히고 가정, 민족, 국가, 세계에까지 그 권을 확대해 나가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을 찾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내 개인이 가야 할 목적점이 어디냐 하면 가정인 것입니다. 가정을 찾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찾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을 당하더라도 끝까지 참고 남을 위해야 됩니다. 세계적 사탄이 아무리 공격을 하더라도 굴하지 않고, 자기가 희생을 하더라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극복할 수 있는 원칙적인 자리를 거쳐서 가정을 찾는 운동을 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면 세계를 사탄의 수중에서 구하는 것입니다. 악을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기에 역사과정을 통해 4대성인을 거쳐 가지고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들은 전부 다 국가주의자나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세계주의자입니다. 그러니, 결국은 하나의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세계를 구하자고 하는 귀결점에 다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입장은 자기를 중심삼은 입장이 아닌 것입니다. 교주를 중심한 것이 아니라구요. 또한 자기를 위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기들의 생명을 바치고 간 사람들이라구요.
선이 가는 길은,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요. 가정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요, 민족은 하늘이 찾고자 하는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요, 국가는 하늘이 소망하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걷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세계가 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국가가 나와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하고 일체가 되어 그 국가와 민족 전체가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겠다고 하는 나라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위해서 있는 사람들은 세계를 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백성은 개인적으로 볼 때도 역사시대의 사탄세계의 어떠한 개인보다도 나아야 되고, 가정적으로 볼 때도 역사시대의 어떠한 가정보다도 나아야 되고, 민족적으로 볼 때도 역사시대의 어떠한 민족보다도 나아야 되고, 국가적으로 볼 때도 역사시대의 어떠한 국가보다도 나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의 대표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사탄세계에서 갈라내려면 개인적으로 승리해야 되고, 가정적으로 승리해야 되고, 종족적으로 승리해야 되고, 민족적으로 승리해야 되고, 국가적으로 승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인류역사과정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빼낸 백성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민 이스라엘권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것은 이긴 민족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탄한테도 이겨야 되고, 천사한테도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뜻을 따라가는 야곱은 그 노정에 있어서, 형 에서가 죽이려고 하는 길을 앞에 놓고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얍복강가에서 기도하게 될 때, 천사가 와 가지고 야곱에게 시험을 했습니다. 세밀한 내용은 약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시간 관계상.
야곱은 천사하고 밤새껏 싸웠습니다. 그런데 씨름을 해 가지고 야곱이 진 것이 아니라 이겼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이 땅 위에서 승리했다는 개인이 등장한 것인데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임을 하늘편의 사람들은 알아야 됩니다.
거기에서 승리한 야곱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됩니다. 모든 생활이나 모든 사상이나 전부 다,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미래의 민족을 위하는 사상을 가지고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도 번식시켜 나온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점점 넓혀 가지고 하나의 국가를 형성할 수 있게 되면 그때에 메시아를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탄세계가 나라를 중심삼고 하늘편의 사람들을 쳤기 때문에, 그 사탄세계의 나라보다도 강한 힘으로 단결된 나라 위에 메시아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보다 못한 나라가 되면 그 나라는 하나님편에 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탄은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거쳐 나오면서 나라를 중심삼고 하늘편의 개인과 가정과 민족을 희생시켜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오시는 메시아와 이 땅의 백성들이 완전히 하나로 단결되어, 그것이 어떠한 국가의 군왕을 중심삼고 강력히 하나로 단결된 것보다도 우위에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권위를 가지고 이 땅을 지배할수 있지, 낮은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은 사탄보다도 못한 자리에 들어가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수천년 동안 메시아를 보낼 것을 약속하면서 교육해 나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오시는 메시아와 이스라엘 민족이 국가 기준을 중심삼고 일치단결하여 사탄 국가 이상의 주권국가로 등장했으면 하늘은 아무리 강력한 사탄세계 나라라 해도 때려잡는 것입니다.
그랬는데, 어제 저녁에도 잠깐 이야기를 하였지만,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안팎이 하나되어 가지고, 예수님을 대하여 이분을 위하여 우리들이 태어났고, 이분을 위하여 우리들이 선민이 되었으니, 우리는 그런 운명이니 이분이 죽으면 같이 죽고, 이분이 살면 같이 살겠다며 같은 노선을 가며 하나되었더라면 예수님은 안 죽는 겁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한 이후에 출발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오기 전까지는 영계와 육계를 대신하여 이 땅 위에 하나의 나라를 거느릴 수 있는 준비된 터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를 위해서 준비했던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에,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하고 갈라져서 그와 상관없는 입장에 서게 됨으로 이스라엘 민족도 분산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시대에서 제일 참기 어려운 분한 사건이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이요,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가 죽은 후에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땅 위에 있는 이스라엘권을 잃어버리고, 영적인 이스라엘권을 바라보면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기독교는 틀림없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3차에 걸친 기도를 하였습니다. 거기에 대해 지금까지도 신학자들은, 예수님도 육을 썼기 때문에 육에 대한 고통을 모면하기가 어려워서 그렇게 기도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자기가 죽어야만 인류를 구할 수 있고, 또 그것이 자기가 온 목적이라면 그 목적을 이루면서 하늘 앞에 '할 수만 있으면…' 하는 기도를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메시아의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줄 모르던 입장에서는 예수님을 버렸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줄 확실히 알고 난 후에는 베드로 자신이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죽기를 원해서 그렇게 죽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 되는 예수가, 자기가 죽어야만 구원을 성사할 수 있는데 그런 기도를 했다면 예수는 메시아의 자격이 없다는 거예요.
어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본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은 사탄한테 침범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의외의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죽어 가지고 만민을 구할 수 있다면 가룟 유다가 없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보고 '네가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세주인 것입니다. 구주인 것입니다. 메시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구해 주려고 끌고 가는 그 길을, 그 구주가 간 길을, 구원받는 사람들은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가 십자가를 지고 가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몸이 사탄 앞에 피해를 입은 그 자리에 서면 후대의 신앙자들의 몸도 전부 사탄 앞에 침범 받을 수 있는 조건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예수는 자기 하나 죽는 것은 괜찮지만, 자기가 죽고 난 후에는 땅 위의 기반인 이스라엘 나라가 깨져 나갈 것이고, 후대에 자기를 믿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피를 흘리지 않고는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늘 앞에 담판 기도를 한 것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3차 기도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피를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공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피의 대가를 세워 가지고,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탄 정권 하에서 피를 뿌려 가지고 남아진 무리가 하늘의 축복을 받아서 세계적인 문화권을 이룬 것이 기독교 문화권인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판도에까지 끌고 오기 위한 하나님의 수고와 기독교의 희생이 얼마나 막대하였는가를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가야 할 길은 어떠한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죽음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는 터전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영적인 나라와 영적인 교회만을 가지고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준비를 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늘은 사탄세계의 상부구조형을 싹 빼앗아 한 곳에 물고, 그 다음에는 중류계급과 싸워서 그것을 빼앗아 한 곳에 몰고, 그 다음에는 하류계급과 종교적인 모든 문제를 중심삼고 한 자리에 몰아 가지고 사탄보다도 우수한 기독교 문화권을 형성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중심국가를 세워 가지고 세계적인 원수를 굴복시키려면 그런 준비를 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라가 어느 나라입니까? 본인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미국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은 종교의 자유를 위하여 핍박의 화살을 피해 대서양을 건너 가지고 모여든 사람들이 만든 나라이며, 퓨리턴 사상이 건국이념으로 서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은 세계의 사람들을 여기에 모아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에 물질적인 축복을 해준 것입니다. 앞으로 사탄이 하부구조를 중심삼고, 경제라는 것을 들고 칠 때가 오기 때문에 그것을 대비해 가지고 미국에다 막대한 경제적인 물질 축복을 해줘 가지고, 이 나라 이 백성이 어떠한 민족보다도 잘사는 입장에 놓이게 해준 것입니다.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의 어떤 나라도 따를 수 없는 최대의 권한을 부여받은 나라는 미국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인은 단결해 가지고, 1차 이스라엘 때에는 교회와 민족이 하나되지 못하여 예수를 쫓아버렸지만, 이제 다시 오시는 메시아를 맞기 위해서 기독교와 자유세계를 대표하는 이 나라가 하나되어 가지고 그 앞에 단결될 수 있는 하나의 국가, 국민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미국 국민의 사상은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절대시하는 자리에 서 가지고 미국 자체를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철석같은 믿음을 가진 대표적인 국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알다시피 현재 미국에서는 '하나님' 소리를 하면 싫어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비참한 일이요, 지극히 무서운 놀음인 것입니다.
여기 미국의 기독교는 세계적인 교권을 자랑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희생시켜 세계를 구하기 위해 선봉에 서는 운동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중심삼고 단결하여 이 나라의 모든 책임자들을 끌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기독교는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나라와 한 교회를 중심삼고 사탄국가보다도 나을 수 있는 나라와 교회가 되기를 바라 가지고 예수님을 이 땅 위에 보냈는데,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다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영적인 세계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삼고, 하나의 땅을 중심삼고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야 될 시점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는 터전이 없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얼마나 슬픈 하나님이신가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미국은 미국의 전통인 기독교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옛날 유대 민족 이상의 강한 전통을 가진 민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미국의 전통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미국 국민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위한 제2이스라엘의 지상 기반이 될 수 있는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가 단결할 수 있는 터전이 있느냐고 할 때, 없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여기에서 자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의 10대 청소년들은 가정을 이탈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정도 없고, 사회도 없고, 나라도 없고, 세계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미국 가정의 이혼율이 70퍼센트에 이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가정이 파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회가 설 수 있는 기반은 공고하냐? 그렇지도 않은 것입니다. 국가도 그런 입장이 못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사상의 혼란으로 인해 난국에 처해 있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젊은이가 미국을 책임져야 할 텐데, 퇴폐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20년 후에는 이 나라를 책임져야 할 텐데, 이들이 미국을 책임지고 하늘의 뜻에 맞는 책임자가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위기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새로운 재종교교육운동을 제시하고, 재사상운동을 제시해 가지고 하늘이 금후에 바라는 제2이스라엘의 건국 이념을 들고 나오는 운동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세계의 종교를 이어받을 수 있는 국가가 되지 않고는, 세계의 종교인들은 최후에 찾아 오는 축복의 세계를 맞을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을 줄 알고 있습니다. 혹은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라를 찾고 난 후에는 네 종교니, 내 종교니 하는 시대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전부 다 형제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는 형제의 인연을 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때까지는 사탄의 공격을 받기 때문에 각자각자가 문화권이 다른 데에서 방어선을 책임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종교는 하나의 지도자 앞에, 모든 나라도 하나의 지도자 앞에 귀결되어야 합니다. 즉, 메시아를 다시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의 결과는 그냥 그대로 우연히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계가 좌우로 갈라진 것은 우리 인간이 타락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또한 여러분에게 예수가 죽었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간 것은 참을 대표해서 간 것입니다. 그러니 참을 중심삼고 그때에 뿌려진 환경이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가 있었습니다. 또 바라바가 있었습니다. 이 네 사람을 중심삼고 역사의 한 희생의 날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네 사람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을 지지하고 죽었더라면 모르지만, 그러지 못하고 여기에서 복잡한 문제를 제기하고 죽어갔던 것입니다.
바라바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혜택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돌아가는 데에도 편드는 입장에 서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실정의 역사적 결과가 이 땅 위에 나타나게 되면 끝날인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공산세계를 좌익이라고 하고, 이 민주세계를 우익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그저 나온 말이 아닌 것입니다. 오른편 강도를 대표한 것이 우익이요, 왼편 강도를 대표한 것이 좌익인 것입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이 두 패가 문제되었습니다. 우익이니, 좌익이니 하는 것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문제가 된 것입니다.
왼편 강도는 예수님을 대해서 말하기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우리를 구해 보라'고 하며 참소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며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오른편 강도는 이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우리는 죽어 마땅하지만 여기에서 같이 죽음길을 가는 예수님은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인데 이 길을 간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논박전에서 오른편 강도는 왼편 강도한테 굴복한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예수님의 편이 되어 가지고 죽음길을 갔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너는 나와 같이 낙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그것이 현재의 좌우익세계인 것을,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엔 바라바권 세계가 어떠한 것인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회회교 문화권입니다. 그들은 성경(구약)에서 많은 내용을 빼내어 코란경을 만들어 가지고 한 손에는 코란경을 들고,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싸우는 것입니다.
나는 1965년에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당신의 주권 하에서 공산세계를 제패할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공산세계가 민주세계에 대항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있나니, 그것은 공산권이 회회교를 규합해 가지고 공격해 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여러분, 지금이 그때인 것입니다. 전세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미국을 빼놓고 불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을 꺾기 위해서 몰아 불어오는 것입니다. 현재 공산세계와 아랍권이 하나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반대로 기독교와 전세계가 하나되어 가지고 외적인 세계를 능가할 수 있는 힘을 길러서 저들을 제거하고, 이쪽을 옹위해 가지고 저들을 굴복시켜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후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른편 강도의 책임을 해야 할 민주세계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죽었던 예수님의 한을 부활의 영광으로 맞을 수 있는 기독교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자유세계는 자유세계대로,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분립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탄의 외적 세계는 하나로 합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인이 지금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이 얼마나 비통하고 원통하겠는가를 여러분이 생각해 봐야 됩니다.
하나님은 200년 동안 민주세계를 대표한 미국에게 무한한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호화찬란한 문화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축복해 준 것은 미국 국민을 위해서 해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그것을 하늘을 위해서 써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이웨이룰 즐비하게 달리고 있는 자동차를 바라보면서 미국 문명, 혹은 미국의 부(富)를 자랑합니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해, 세계를 미국과 같이 부강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대표적인 국가로 미국을 이렇게 축복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망각하는 날에는 미국의 갈 길이 막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에서 말하는 이 사람이 동양 사람이고, 더욱이 한국동란으로 인해 피폐한 그런 실정에서 미국의 원조를 받다가 그 원조를 받지 못할까 봐 저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는 한국에서도 반대를 받아 왔습니다. 바른말을 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미국 국민 중에도 '저 사람, 뭐 편안한 얘기하고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역사가 증거할 것이니 지내 보라구요. 미스터 문이 하는 말이 맞나, 안 맞나 두고 보라구요. 이것을 알기 때문에 모험을 무릅쓰고 여러분 앞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1977년, 1978년을 위기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미국을 옹호하고, 미국의 갈 길을 가려 주겠다면서 어떠한 사상을 가지고 그 책임을 하겠다는 어떠한 종교나 단체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미국을 이렇게 축복했으니 미국은 사탄세계가 지혜를 가지고 치던 것을 굴복시켜야 되고, 힘을 가지고 치던 것을 굴복시켜야 되고, 부를 가지고 치던 것을 굴복시켜야 되고, 경제를 가지고 치던 것을 굴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승리해야만 최후에 올 종교의 해방시대에 있어서 종교인들이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세계를 위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각 나라를 희생적인 입장에 서서 원조를 하고, 남을 위해서 싸움의 총칼을 들고 나섰을 때 미국은 발전했습니다. 따라서 끝까지 그런 입장을 밀고 나갔다면 미국은 고립되는 입장에 안 섰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떠나 버리게 되면 사탄은 또 공격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미국의 수하에서 지배를 받았던 자유세계가 미국을 공격하는 단계에 들어온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정치 역사를 두고 볼 때, 남의 원조를 받아 가지고 흥한 나라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세계의 일관된 정치 역사관인 것입니다. 지금 미국은 그런 입장에 서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남의 나라를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각오를 가지고, 이 어려운 때에 국가 관념을 초월할 수 있는 미국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랬다면 세계는 미국을 통하여 하나의 세계로 규합되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나라인 것입니다. 국가라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은 이 나라를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그걸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붙들고 미국을 버리는 자리에 서면 이 나라는 영원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지만, 세계를 버리고 미국을 붙드는 자리에 서면 끝장이 되는 것입니다.
공산세계에 있어서도 슬라브 민족을 중심삼은 소련이 소련만을 위주한 헤게모니(hegemony)를 생각했기 때문에, 즉 자기 국가와 민족을 초월할 수 없었기 때문에 중공과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국가주의적인 관념을 가지고는 하나의 세계는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국가를 넘어 서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민족이 문제가 아니요, 종족이 문제가 아니요, 씨족이 문제가 아니요, 색깔이 문제가 아니요, 인종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어서는, 타락 전에는 경계선이 없었던 것입니다. 거기에는 종족이라는 것이나 인종차별이란 것이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네 나라, 내 나라가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높고 낮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전부 다 하나의 식구입니다. 하나의 가족이요, 하나의 종족이요, 하나의 민족이요, 하나의 국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인류를 내 가정과 같이 생각하고, 내 나라와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 나라는 자기 나라보다도 더 큰 나라이기 때문에 자기 나라를 희생시키더라도 이것을 찾기 위한 것이 하늘의 뜻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주의가 생겨나지 않고는 앞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합해 가지고 이룰 수 있는 하나의 이상세계는 올 성싶지 않다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오른편 강도를 대표한 민주세계의 기독교는, 오른편 강도가 예수님을 위해서 죽음을 잊어버리고 그분을 옹호할 수 있는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같이 낙원에 들어간 것을 알아야 됩니다. 끝까지 왼편, 외적인 것을 방어할 수 있는 것은 오른편 강도의 입장인 민주세계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때에 주님이 다시 올 것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있어요? 하나님이 지상천국을 모색하고 있고, 하나의 세계를 원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된다면 지금까지의 종교인들이 얼마나 불쌍하겠어요? 최후의 한때를 끝까지 기다려 가지고, 최후의 승리와 더불어 일률적인 한때를 만민 앞에 부여하려는 하늘의 때가 찾아오는 것을 기독교인들은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미국이 이런 책임을 못 하는 자리에 서면 미국으로 하여금 이런 책임을 하게끔 할 수 있는 기독교라도 남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기독교인들에게는 전세계를 살려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세계가 갈 방향을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책임을 망각한 기독교를 그냥 두면 안 되기 때문에 하늘은 헤쳐 버리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못하는 자유세계도 흩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헤쳐 버리고 있는데 헤쳐 버리자고 선동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가로막아 기독교를 단합시키고, 이 나라 이 민족을 단합시키는 운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오시는 메시아는, 하나님의 이상의 나라를 이룰 수 있는 개인적인 패턴이요, 가정을 세계적인 이상의 패턴 가정으로 만들 수 있는 대표자요, 민족을 세계적인 이상의 패턴 민족으로 만들 수 있는 대표자요, 국가를 세계적인 이상의 패턴 국가로 만들 수 있는 대표자요,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 지도할 수 있는 패턴의 내용을 갖고 오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재림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사탄세계보다도 우위에 설 수 있는 세계와 국가와 민족과 가정과 개인의 터전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터전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예수는 이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지극히 분하고 원통한 사실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한국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요, 미국 사람만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인류의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날, 그럴 수 있는 터전이 없기 때문에 미국을 대신해서 우리 통일교회의 청년 남녀들을 중심삼고 앞으로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는 하나의 개인이 오기 전에, 즉 세계를 대표한 모든 내용의 표준이 될 수 있는 분이 오시기 전에 그분을 받들 수 있는 지상의 제2이스라엘권을 만들어 가지고, 제3이스라엘의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의 이념을 이루기 위한 준비 운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은 앞으로 올 참된 모델의 가정을 위해서 희생해야 되고, 가정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되고,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희생해야 되고,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신문지상을 통해서 보았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민족과 종족을 초월하고, 혈족을 초월하고, 국경을 초월하고, 혹은 문화의 장벽을 초월하고, 모든 것을 초월하여 하나의 혈족과 같고 종족과 같은 것을 편성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합동결혼식이니 무엇이니 하는 것도 그런 원칙에 의해서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지금 단상에 서 있는 저 사람은 통일교회의 책임자이니까 통일교회를 선전하고, 통일교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이런 놀음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맹세하고 나서는 것은,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통일교회의 사상을 한 국가에라도 넘겨 주자는 것입니다. 또, 국가가 우리의 기반이 되거든 그 국가를 희생시키더라도 이 사상을 세계에 남겨 놓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국 사회를 바라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라를 버리고, 사회를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떠나는 젊은 청년들이 수다한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히피족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유를 원합니다. 그들은 자기 자유를 중심삼고 자기들의 목적이 이루어질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유를 가지고는 세계를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미국에는 새로운 운동의 불이 붙어 벌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세계를 붙들고, 나라를 붙들고, 민족을 붙들고, 사회를 붙들고, 가정을 붙들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움직임은 지금까지 반대적인 입장에서 집을 떠나는 무리보다도 더 강력히 움직여 나가게 될 때, 미국에는 새로운 소망이 싹트리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미국 국민을 각성시키고 때를 잃어버릴지 모르는 위기일발의 순간에 있는 종교인들을 각성시켜서 하나님이 찾아오신 자유와 평화의 세계, 축복의 세계를 상속시켜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미국의 흑백 분규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이 운동에 참가한 백인들을 대표자로 세워 가지고 흑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운동을 제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내가 필라델피아에서 흑인가를 거쳐올 때에 지극히 더러운 것을 미국에 와서 처음 보았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혹인가에 있는 너희들은 조금만 기다려라! 이제 백인들이 너희들의 집안을 위해서 빗자루를 들고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집보다도 더 좋게 만들겠다고 외치고 노력하는 운동을 하게 해줄 것이다' 하는 다짐을 하고 떠나왔습니다. 백인들이 호화찬란한 문화생활을 다 집어 던지고 그들을 위해서, 앞으로 올 세계를 위해서 사랑하는 운동을 한다면 흑백 문제는 완전히 해결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흑백 문제를 중심삼고 앞으로 좌익이 침입해 들어온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중공과 미국이 손을 잡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중공이 아시아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고, 아시아를 휩쓴 영향력을 미국내에 있는 아시아인에게도 미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만일 중공을 지지하는 아시아의 황인들이 결속이 되어 가지고 흑인과 하나되어 백인과 투쟁하는 때가 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 공산국가는 독재국가입니다. 두 말을 하는 나라입니다, 그들의 선전과는 다른 것입니다. 한국동란의 휴전 협정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확실히 증거된 사실입니다. 지난 20년간 김일성은 남한을 삼킬 수 있도록 완전무장 해 놓은 것입니다. 중공도 마찬가지 국가입니다.
금번에 닉슨 대통령이 중공에 가서 중공정권과 그 나라 백성이 하나되어 있는 것을 봤다는 것을 기사를 통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백보 전진했다가 언제라도, 백보 이상 후퇴할 때도 전부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미국은 백보 전진했다가 후퇴할 때는 삼분의 이는 떨어지고 삼분의 일밖에 안 남는다는 거예요. 어떡할 거예요? 그렇게 몇 번만 하면 큰일나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치가는 아닙니다. 특별히 공산주의자를 미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역사의 귀추가 그런 방향으로 간다는 것을 아니까, 제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을 위하니까 그 방향에서 방어할 수 있는 의의 길을 가르쳐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성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집에서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가정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을 못 찾겠거든 눈물을 흘리는 부부가 되어야 되고, 눈물을 흘리는 부모가 되어야 되고, 눈물을 흘리는 자식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종족과 민족을 대표하여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교회가 못 되거든, 그 교인들을 붙들고 나라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단결할 수 있는 운동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국민은 세계를 구하기 위해 손에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의 세계를 구하자고 하며 하나되기 위한 길을 모색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역사적으로 가리고, 기독교의 성서를 통해서 가려 가지고 새로운 평안과 새로운 길을 재검토하여 모색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미국이 그런 입장에 서면 세계에 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앞으로 수많은 종교를 사랑할 수 있는 주체적 사명을 하게 된다면, 예수가 죽을 때에 네 사람이 싸우는 자리에서 죽었던 것을 전부 다 규합해 가지고 하늘 앞에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의 세계가 온다는 거예요. 그런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준비가 안 될 때는 하나의 세계는 지상에 오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지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하나의 이상적인 메시아 앞에 일치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거기에 일치해야 하고, 우리 친척이 거기에 일치해야 하고, 우리 교회가 거기에 일치해야 하고, 우리 나라가 거기에 일치해야 한다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그분이 오면 개인은 물론이요. 가정, 종족, 민족, 나라까지도 세계를 구해 달라고 하며 자기들을 바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교권주의자들은, 혹은 미국의 지도자들은 이것을 발판삼아 미국을 통하여, 새 시대에 하나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이상세계를 찾을 때까지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종교인들이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을 치러 가지고 찾아온, 한 번밖에 없는 종교인의 축복의 때를 놓쳐 버릴 수 있는 위험한 때가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오늘 여기 참석했던 분들은, 하나님과 사람이 합해 가지고 하나의 이상세계를 이루는 과정을 거치고, 오시는 메시아를 하늘과 더불어 모시는 평화의 백성이 되어 평화의 주권자를 지지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서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에도 이렇게 참석해 준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집회가 끝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을 더 이상 만나 볼 기회가 없다고 봅니다. 금후에도 많은 복을 받고, 하나님의 가호가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하는 바입니다.
오늘 저녁에 발표하는 이 내용은 현재 기독교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놀랄 만한 내용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내용을 알기까지에는 상당한 수난이면 수난, 어려움이면 어려움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래 가지고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발표하면 전세계 기독교에는 상당한 반대적인 파문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세상에는 어느누구도 반대받는 자리에 서고 싶은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사실임을 알고, 나 스스로의 요구보다도 이후 후대를 위해서 선포하지 않을 수 없는 책임을 느껴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 자리까지 오기에는 25년 내지 26년의 세월을 흘려 보냈습니다. 그 동안 많은 핍박의 길을 거쳐 가지고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처음 온 분들께서는 반대할 분이 계실는지 모르지만 이 내용을 무작정 반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비로운 하늘, 하나님은 살아 계시니까 하나님을 대해서 담판기도를 하든가, 자기가 그 길을 해결하지 못하면 영계를 통하는 신령한 사람에게 문의해 가지고, 이 문제에 대하여 비판적인 자리에 서 주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법도를 가진 중심이시기 때문에, 나 자신이 거짓을 발표했다가는 이 한 시대뿐만이 아니라 억천만세에 역사적인 비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계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 영계는 특별한 세계입니다. 그것이 어떠한 원칙에서 기원이 되어 어떠한 결과로 운행한다고 하는 그런 방대한 배경을 깨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통일교회가 주장하고 있는 원리의 내용을 보면, 영계는 공식적인 법도에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권내로 들어올 수 있다는 원칙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원칙을 밝혀 냈다는 사실은 금후의 역사시대에 큰 문제가 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조금 소개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오늘 저녁에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는 말씀 제목은 '새로운 메시아와 공식적 역사섭리' 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말씀해 보겠습니다.
새로운 메시아니 혹은 무슨 공식적 섭리노정이니 하는 이런 말은, 인간이 타락한 결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도 원치 않고 인류도 원치 않는 사탄 마귀라는 존재가 생겨났기 때문에, 이 마귀를 제거하기 위해서 메시아니 혹은 공식적 섭리노정이니 하는 문제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신도들이 일반 사람들로부터 많은 질문에 부딪치는 말이 무엇이냐 하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인류가 수천년의 역사과정을 통하여 지내왔는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일시에 선한 세계를 못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만일에 하나님과 반대되는 사탄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사탄을 왜 제거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탄 마귀가 본래부터 있었느냐,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한 존재가 횡적으로 들어와서 인간을 타락시킴으로 말미암아 사탄 마귀가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이 있는지 혹은 사탄이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은 사람들 에게는 이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원칙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사탄이 있다면 그 사탄에게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해서 심각하게 기도를 하게 되면, 반드시 방해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존재가 있어 가지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반대작용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한번 들어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본래부터 사탄이 생겨났다면, 지금까지 6천년이라는 인류 역사를 중심삼고 인간을 고통 가운데에 붙잡아 놓은 사탄, 하나님이 구원섭리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구원섭리를 성취하지 못하게 해온 사탄, 하나님을 반대한 이 사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능숙한가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탄이 있다면 오늘날 타락한 우리 인간이 그 사탄을 이겨서 하늘나라에 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 서면 이원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적이 두 개가 됩니다. 상반된 목적이 두 개가 되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이 원하는 목적으로 간다는 것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이상세계는 꿈에도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래부터 사탄이 있었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탄은 어떠한 사고로 말미암아 중간에서 횡적으로 투입된 존재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그 사랑의 하나님은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왜 사탄 마귀는 용서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타락한 인류를 대해서, 죄를 범하거든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도 용서해 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중심되는 하나님의 외아들이기 때문에 그도 사랑의 주인공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죄를 지은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나 용서해 주라고 하면서 왜 사탄은 용서하지 못하느냐? 만일 사탄을 용서해 주고 구원섭리가 끝날 수 있다면 사탄 하나만 구원해 주면 인류는 자동적으로 구원될 것입니다. 그런데 대관절 이 사탄 마귀라는 존재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과 예수님이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자가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한 것은 사탄 마귀를 용서해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편에 있는 사람을 빼앗아 내기 위해서, 빼앗아 낼 때까지, 기필코 빼앗아야 된다는 입장에서 용서해 주라고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 인류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사탄 마귀에게 지배받는 인류를 사랑하라는 것이지 그 사탄까지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사탄과 분립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사탄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과 예수님이 사탄을 용서하지 못하느냐? 이것은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사탄은 죄 중에서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죄를 지은 것이요, 그 죄로 말미암아 천지가 뒤집어지는 결과를 가져오는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탄 마귀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성서를 통해서 좀 알아봅시다. 요한 계시록 12장 9절을 보면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이라는 존재의 본고장이 어디냐 할 때, 땅이 아니라는 것이 여기에서 밝혀졌습니다. 그곳은 하늘인 것입니다. 이 사탄 마귀는 옛뱀이라고 말했습니다. 옛뱀은 즉 사탄이요. 사탄은 즉 마귀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사탄, 즉 뱀이 아담 해와를 타락시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어 쫓기는 용이 무엇이냐? 뱀입니다. 그 뱀은 즉 사탄인 것입니다. 그 뱀이 아담 해와를 유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뱀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땅 위에 기어 다니는 그런 뱀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뱀이라는 존재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이 타락의 기원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범죄한 옛뱀, 즉 사탄이 본래부터 있지 않고 하나님이 지은 존재라면 대관절 어떤 존재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류시조인 아담 해와가 있을 당시에는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있었는데, 그 외에 제일 가까운 존재로는 영물(靈物)인 천사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인이요, 우리 인간은 그분의 아들딸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천사는 주인의 종이 되고 그 아들딸의 종도 되는 것입니다. 천사 중에서도 하나님 앞에 제일 가깝고 아담 해와와 제일 가까운 존재로서 그들의 사연을 알 수 있는 존재는 천사장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는 과정에 있어서 아담 해와를 창조하기 전에는 천사장과 의논하면서, 심부름을 시키면서 창조의 위업을 이루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장이란 흡사 무엇과 같으냐 하면, 부잣집의 종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주인의 아들딸, 철모르는 아들딸 앞에도 종의 입장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천사장 이외에는 인간을 타락시킬 수 있는 존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곧 아담 해와의 아버지이고 그들은 아들딸인데, 누가 타락시키겠어요? 타락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천사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 해와에게 따먹지 말라는 경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천사가 범죄를 하여 하늘에서 내어 쫓겨 가지고 옛뱀이 되고 사탄 마귀가 된 것입니다. 시간 관계로 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세밀한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시간을 내어 통일교회에 와서 원리를 들으면 충분히 알 것입니다.
사탄 마귀인 천사는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이야기한 것을 세밀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 천사가 범죄를 했습니다. 그러면 천사가 무슨 범죄를 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유다서 1장 6절을 보면, '범죄한 천사를 큰날의 심판까지 옥에 가두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천사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 하면 간음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사탄을 대해 음행의 신이라고 많은 곳에 지적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음란이 팽창하게 될 때 제일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도 음란이 팽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쳤던 것입니다.
그러면 천사가 간음을 행하여 하늘에서 쫓겨나 사탄 마귀가 되었다고 했는데, 간음을 혼자서 할 수 있어요? 간음이라는 것은 사랑관계에서 벌어지는 것인데 사랑은 혼자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아담 해와, 천사장 이렇게 넷밖에 없는 그때에 있어서 그 상대가 누구이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에덴 동산에 있어서 여자라고는 해와밖에 없었습니다. 그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하는 사탄의 꼬임을 받아 가지고 선악과를 따먹게 되었던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을 때는 보기에 아름답다고 했으니 먼저 눈으로 보고, 그 다음에는 손으로 따서 입으로 먹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범죄한 것은 손이요 입인 것입니다. 그런데 손을 싸매지 않았고 입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가린 것은 난데없는 하체였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해와는 철모르는 아담에게 따먹으라고 강요했던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둘이 하체를 가리고 하나님을 피할 길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성경에서 말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뭐예요? 그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데 무슨 열매를 먹어 가지고 죽을 이유가 있어요? 인류시조인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하나님 앞에 주관받는 인류가 되지 못하고 사탄 앞에 주관받는 인류가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 31절을 보면 '이 세상 임금은 사탄 마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라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행복의 기업을 남기기 위해서 지은 이 만물 가운데, 사탄 마귀가 주인될 수 있는 길이 어떻게 생기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 인간은 악주권내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첫째 문제입니다.
그 다음에는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무엇이 생겨났느냐 하면, 우리 인간에게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원죄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원죄는 아직까지도 청산됐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원죄 없는 자리에서 인간이 태어났다면, 그는 메시아니 무슨 종교니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예수님을 잘 믿는 목사나 신부가 왔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을 아무리 잘 믿는 분이라도, 그분의 아들딸은 또 예수님을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구주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병이 났기 때문에 의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타락을 안 했으면 지옥의 공포를 가질 필요도 없다는 거예요. 태어나 가지고 살다가 가면 천국에 가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천국의 주인은 아버지라는 거예요, 아버지. 자식이 아버지의 집에 가는 데는 무슨 표를 받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거라구요.
그러나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원죄가 생겼다는 거예요, 원죄! 그렇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죄 없는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그 아들딸을 하나님의 품에서 사랑하고 간 사람이라야 됩니다. 열매를 따먹어 가지고 원죄가 생겨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아담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 죄가 유전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 인류시조가 타락하게 된 동기는 사탄 마귀와 불륜한 사랑관계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 사탄과 더불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무엇이 되었느냐 하면 우리 조상이 되고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그런가 안 그런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알아봅시다.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게 되면, 불신하는 무리들을 대해서 예수님이 책망하여 말씀하기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버지가 행하는 대로 너희들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결정적인 결론을 못박아 가지고 타락한 우리 인류의 조상은 사탄 마귀라고 설파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도 불신하는 유대교인들,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하며 뱀의 새끼라고 폭로했던 것입니다. 에덴 동산의 옛뱀, 사탄 마귀의 새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절대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는 하나밖에 없는 사랑길을 사탄이 점령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을 보게 되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들도 마음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양자되기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온 인류가 제아무리 잘 믿는 사람이라도 양자밖에 못 된다는 뜻입니다. 양자라는 말은 핏줄이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핏줄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몸에 사탄 마귀의 피를 받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는 악신(惡神)의 피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다는 거라구요.
그러면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하는 것을 한번 얘기하고 넘어갑시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완전한 아들딸로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데는 다른 데 찾아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첫날에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준 특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 하나님의 창조의 권능과 창조의 즐거움까지 부여해 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을 보면 우리 타락한 인간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타락하지 않은 사람은 더욱이나….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 것이냐? 우리의 마음에 와 계십니다.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안팎으로 일치된 자리에 서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적 하나님이요 아담은 외적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과 아담은 마음과 몸의 관계와 같은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인간이 장성하여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성숙기가 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연히 부부의 인연을 맺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남자 여자의 내적인 자리에 들어와 가지고 결혼을 하게 되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신랑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인류의 시조인 아담 해와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 실체(實體)를 가진 외적인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해와는 아담의 상대이지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는 서로가 사랑의 상대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태어난 그 아들딸은 누구의 아들딸이예요? 아담의 아들딸이자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핏줄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같은 핏줄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의 핏줄로 연결된 그 인연은 끊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었다면 마음과 몸이 갈라질 수가 없고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알아보니까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 앞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인간의 몸을 빌어 써야 할 입장에 서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영계에 가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전에 말한 것과 같이 존재물의 힘과 같은 입장에 있는 것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체(體)를 입어야만이 체를 가진 인간을, 자식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그 몸이자 하나님의 체(體)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영계(靈界)의 중심이 되어 실체 대상(實體對象)을 주관할 수 있는 주체가 되려니 체를 입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본연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런 관계를 맺었더라면, 아담 해와는 하나님 대신 존재로서 실체를 가진 인류의 참된 조상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그 자리를 중심삼고 세계로 확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는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는 그들의 수하(手下)에 지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들어가야 할 그 자리에 사탄 마귀가 들어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말을 처음 들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핏줄이 다르게 됨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이 원죄를 수천년의 인류역사를 통하여 청산 하려 했지만 청산이 안 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청산될 때까지 기다리려니 오랜 연한이 걸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주권을 제거하고 원죄를 벗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 신구약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알아봅시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릴 때는 반드시 피를 흘리라고 했습니다. 즉, 피를 빼라는 것입니다. 악신의 피가 들어있는 제물 그 자체는 성물(聖物) 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피를 빼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 사람들에게는 생후 8일만에 할례를 받는 법이 있습니다. 양부(陽 部) 끝을 째 가지고 피를 내야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놀음이예요? 이것은 인간이 타락으로 인하여 악한 죄의 피를 끌어들였기 때문에 그걸 째서 피를 빼내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뜻입니다.
구약에 보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이 탕감법입니다. 그냥 그대로 탕감하는데 왜 하필 그것을 째야 되느냐? 인간 시조가 그것으로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욥기 31장 33절을 보면 '내가 언제 아담처럼 내 죄악을 품에 숨겨 허물을 가리었었던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담이 가린 곳이 허물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얼굴에 흠이 있으면 그곳을 가리려고 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자기의 부끄러운 곳, 흠 있는 곳을 가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미루어 볼 때에, 인류의 시조가 불륜한 사랑관계를 맺어 타락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느 때에 청산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핏줄을 바꿔 놓아야 합니다. 핏줄을 바꿔 놓아야 돼요.
죄는 누구 때문에 지었느냐? 죄는 사탄이 동기가 되었지만 아담 해와가 사탄을 지배하고 사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아들딸, 사람의 권위를 잃어버리고 죄를 지었다는 거예요. 위에 있는 사람이 책임을 했으면 타락을 안 했을 것인데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타락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자기 본연의 권위를 찾을 수 있는 사람, 즉 사탄 마귀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이 세상을 하늘편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사탄을 끌고가서 '하나님, 사탄 마귀가 이런 죄를 지었는데 왜 심판해 버리지 않으십니까?' 하고 고소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나 혹은 살인 강도가 있다 하더라도 그 현장에서 그 사람을 본 자가 없으면, 그 사람은 어디 가든지 당당코 자기의 행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극히 어린 소년 소녀라도 그 현장에서 범죄하는 사실을 직접 목격하고 그것을 증명하게 될 때에는, 그 앞에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탄 마귀가 인류 앞에, 하나님 앞에 무슨 죄를 지었는가를 확실히 알고 그것을 들이대면 사탄 마귀는 굴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탄을 이기지 못하면 천국에 못 갑니다. 구원을 못 얻어요! 사탄을 추방해야 사탄의 주권이 무너지는 것이요, 사탄을 쫓아 버려야만 사탄으로 말미암은 원죄가 뽑아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류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주인을 잃어버렸지만, 본래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그것은 사랑을 중심삼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과 완전히 하나됨으로써, 하나의 주관권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칙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는 사랑관계로 묶어졌으니 그 원칙적인 기준은 맞았지만 타락으로 인하여 그 반대의 결과가 됐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것을 일시에 몽땅 심판해 버리면,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중심삼고 인간과 더불어 행복의 에덴을 꿈꾸었던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할 수 없이 그것을 다시 수습하여 본연의 기준을 일깨워 되찾아 나오는 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섭리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는 본래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하나님 혼자 주인이어야 하는데 사탄까지도 사랑을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으니 하나님은 이것을 갈라놓을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한 사람을 중심삼고 둘로 나눠 놓는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몸뚱이는 사탄 앞에, 본연의 기준을 중심한 마음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둘로 갈라지는 입장에서 투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뚱이는 사탄의 피를 받아 가지고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탄의 무대가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러한 입장에서 본래의 주인을 따르는 마음을 대해 찾아온 것입니다. 어제도 잠깐 얘기했지만 종교는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몸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사탄을 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런 입장에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몸뚱이를 두고 한 말이요, 사탄 마귀의 무대를 두고 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반대의 길을 계획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어려운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사탄은 실체를 가지고, 세계적인 상대권을 가지고 이 세계를 지배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은 언제나 번번이 사탄 앞에 말려들어가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출발은 누가 먼저 했느냐? 원칙은 하나님이 먼저 출발해야 될 것인데 거짓된 사탄 마귀가 먼저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첫번 출발이 거짓된 사랑으로 말미암아 됐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할 수 없이 두번째 입장에서 인간의 마음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오른편에 있어야 할 하나님이 왼편으로 가고, 왼편에서 하나님을 시봉해야 할 사탄이 오른편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먼저 사랑을 맺으면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도 그렇지 않아요? 상대가 아무리 종이라도 자기의 사랑하는 딸을 겁탈하든가 정을 맺게 된다면 뽑아낼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와 같은 결과의 입장이 되어 버렸다는 거예요. 바로 그와 같은 입장이 지금의 입장입니다. 이 종이 우리 인류를 이끌고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혈통적으로 보면 종이 아버지와 같은 입장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종이 사랑하게 된다면 하늘로 돌아가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사탄의 후손도 결국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사탄 마귀는 인간이 아들딸과 같은 입장에 있지만 사랑하지 못하고 유린해 나오는 것입니다. 사탄은 인간을 종 새끼만큼도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놓아 주는 날에는 사랑의 길을 통하여 하늘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것을 막기 위해서 사탄은 언제나 유린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본래의 주인을 쫓아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그 아들딸까지 모두 죽음의 자리로 끌고 가는 괴수의 입장이 사탄 마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인 사탄 마귀를 용서할 길이 있을 수 있습니까? 결국 사탄 마귀는 하나님과 무슨 원수지간이 되었느냐 하면 사랑을 중심삼고 간부지간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용서할 수 있어요? 그런 사탄을 용서한다면 세상을 다 파탄시켜 버리고 마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그냥 그대로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다고 공인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바꿔치기 하는 날까지 하나님과 인류는 신음과 고통의 길을 모면할 수 없는 자리에서 역사를 엮어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세상에서 여러분이 복중에 아들딸을 배게 되면 그것은 벌써 사탄의 자식입니다. 그러한 사탄 마귀의 자식을 번식하기 때문에 고차적인 종교에서는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독신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구원역사가 자꾸 연장된다는 거예요. 어렵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6천년이 걸리겠어요, 안 걸리겠어요?
인간이 타락하는 데 하나님이 개재했더라면 그것을 고치는 데도 하나님이 고쳐 줄 수 있지만, 사탄 마귀와 인간이 저질렀기 때문에 자기들이 벗어나고 자기들이 고생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사탄 마귀의 이러한 것을 알아 가지고 굴복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본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참된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가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어제 말씀 드린 예수님을 중심한 신랑 신부의 기준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죄를 청산짓지 않고 태어난 아들딸은 어떠한 여자를 통해서 태어나더라도 복중에서부터 이미 사탄 마귀의 아들딸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죄의 근본은 불륜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출발한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거짓 아버지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거짓 어머니의 배를 빌어 나왔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어머니를 택정하여 복중에서부터 다시 태어나는 길을 모색해야 된다는 거예요.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문답하는 가운데 예수님은 '네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기독교의 부활이 뭐예요? 다시 나는 거라구요. 잘못 났기 때문에 다시 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서를 보게 되면, 하나님은 역사과정에서 맏아들을 미워하고 둘째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나올 때, 하나님은 맏것은 전부 다 쳐 죽였습니다. 첫 번째 사랑의 열매로 상징하는 맏것은 사탄 마귀편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이 좋아하실 수 없으니, 맏것을 전부 다 친 것입니다. 맏것을 없애야만 하나님편인 둘째 아들들이 살 수 있는 길이 있겠기 때문에 첫째 아들은 치고 둘째번 아들은 치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 가정을 보라구요. 아담 가정에 있어서 해와는 죄의 뿌리가 되고 그 맏아들인 가인은 죄의 열매가 되어서 인류의 근본적인 죄를 결정짓게 했습니다. 모자가 하나는 뿌리요 하나는 열매로서 결정적인 죄의 씨를 뿌려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 가정에서 둘째번 아들인 아벨을 세워 가지고 맏아들인 가인의 자리를 바꿔치기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첫째번 사랑의 열매되는 그 대표자가 사탄편이기 때문에 사탄편에 세울 수 있는 것은 첫아들인 가인이 되는 것이요, 둘째번 사랑은 아담을 통한 사랑인데 그 아담은 타락했을망정 본래 성숙하면 허락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편에 세울 수 있는 것은 그 아담과의 둘째번 사랑의 열매인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왜 아벨의 제물은 받고 가인의 제물은 안 받았느냐? 만약에 가인 아벨의 제물을 전부 다 받았으면 무슨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이러한 원칙을 몰라 가지고는 해결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벨은 아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인은 사탄 마귀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천사장 자리라구요. 천사장은 아담을 지배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되었기 때문에, 거꾸로 아담편의 아벨이 사탄편의 가인을 지배함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구원의 길을 마련하게 되는 거예요. 복귀가 되는 거라구요. 여기서는 사탄의 무리를 치지 않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본래의 하나님과 아담과 천사장의 자리를 되찾으려니, 아벨을 그런 자리에 세우고서 아벨만을 사랑하고 가인의 제물을 안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벨을 통해서 가인의 제물을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구주의 인연이라구요. 구주가 여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가인과 하나님이 통하는 길을 열어 놓는다는 거라구요. 메시아가 바로 그런 원칙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세계 전체를 보면 이 세계는 먼저 난 맏아들과 마찬가지인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원칙적인 아들로서 하나님의 둘째 아들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통해 제물을 바치러 가야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의 모든 인류는 예수, 즉 메시아를 통해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아담 자리와 사탄 자리를 회복하기 위한 원칙에서 그런 놀음을 안 할 수 없다는 거예요.
메시아의 자리라는 것은 본래의 아담 자리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것이 메시아입니다. 그 길을 통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기 때문에 성경은 장자를 미워하고 차자를 축복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뜻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태어난 것을 바꿔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냥 바꿔치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꿔치더라도 어머니의 복중까지 가서 바꿔치지 않고는 물려받은 악의 피를 돌이킬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과 아벨을 통해서 바꿔치기 하려고 했는데 못 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죄의 뿌리가 되고 아들은 죄의 열매가 되어서 시작된 죄악을 바꿔치는 놀음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 가인 아벨은 따로따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들은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능한 길을 찾아 나서려니 쌍태를 주어 가지고 바꿔치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쌍태는 서로 감이 통하고, 생각이 통하고, 감정이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실 거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한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두 사람이 되었으니 두 사람 가운데 하나를 버려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언제 바꿔쳤느냐 하면 야곱 에서 시대였습니다. 그 내용을 세밀하게 얘기하려면 세 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그 내용을 간단히 추려 얘기하겠습니다.
여러분 성경역사를 보면, 교활한 야곱이 장자의 기업을 빼앗았는데 하나님은 그런 야곱에게 기업을 계승시켰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야곱이 그런 자리에 서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차자인 야곱을 통하지 않고는 본래의 길, 옳은 길을 찾아갈 길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것을 원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야곱에게 복을 빌어 준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사장과 가인이 한패가 되었습니다. 두 세계가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자리에 세워 놓고 바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삭에게 축복을 받을 때 누가 어떻게 했느냐? 죄의 뿌리가 어머니에게 있기 때문에, 탕감원칙에 따라 어머니는 아들을 협조하여 아들과 하나될 수 있는 길을 가지 않으면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리브가는 하나님편에 돌아가기 위해서 작은아들을 붙들고 협조하여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장자를 바꿔치는 놀음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수식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야곱이 이삭을 속였고 아버지를 속였다는 것입니다.
해와는 타락할 때 하나님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리고 가인은 속인 어머니의 편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서 사탄과 해와가 하나님 아버지를 속인 것과 같이 하나님 대신과 같은 입장에 있는 아버지 이삭을 어머니와 아들이 하나되어 가지고 속였던 것입니다.
리브가가 복중에 야곱과 에서의 쌍태를 받게 될 때, 그 복중에서 둘이 싸웠습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하나님 앞에 '두 아이가 싸운다'고 하니, 하나님은 '네 복중에는 두 나라가 있음이요,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바꿔치지 않고는 천륜의 원칙이 바로 서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러한 내용을 리브가에게 통고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지혜로왔습니다. 장자의 기업을 빼앗는 데도 그냥 빼앗는 것아 아니라, 사냥갔다 돌아와 굶주린 에서에게 팥죽과 떡을 주고서 장자의 기업을 팔라고 했습니다. 때문에 에서가 그 조건을 중심삼고 다시 장자의 기업을 돌이키더라도 사탄이 외적인 면에서는 참소할 수 없는 조건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자협조 기준 앞에 야곱이 축복을 받으니, 야곱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결국 아벨이 제물을 드려 하나님편에 서게 될 때 가인이 아벨을 미워했던 거와 마찬가지의 입장에 야곱이 서게 되었으므로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때 야곱은 어머니의 협조를 받아 하란에 있는 외삼촌 집을 찾아가 21년 동안 수난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복을 받아 가지고 21년 만에 형인 에서한테 돌아옵니다. 야곱은 에서로부터 장자의 약속은 받았지만 실권을 못 가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이 장자의 실권을 갖기 위해서는 실체적으로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야곱은 돌아오는 도중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밤새도록 씨름하여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은 무엇이냐? 아담이 천사장에게 거꾸로 지배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장한테 아담이 지배받았던 것을 바로 뒤집어 놔야 합니다.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리를 결정하지 않고는' 공중권세를 잡은 천사장권, 즉 사탄 마귀를 막아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은 '나를 축복해 주겠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밤새껏 사탄과 싸웠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야곱의 환도뼈를 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축복을 해준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이 환도, 즉 허리를 잘못 썼기 때문에 탕감원칙에 의하여 타락한 그것을 치고서 비로소 천사가 축복을 해준 것입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영적인 천사를 이긴 권한을 가지고 실체대상이 되는 에서 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야곱은 자기의 모든 것을 에서에게 바치겠다고 해 가지고, 형인 에서가 때려죽이려는 자리에 선 것이 아니라 반대로 환영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이 아벨을 때려죽였던 것을 복귀하게 된 것입니다. 사탄의 아들편에 선 천사와 가인을 굴복시킴으로 말미암아 복귀한 기준이 벌어지게 되어 이스라엘 민족의 출발이 시작된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비로소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바꿔치긴 바꿔쳤지만 장년이 되어 가지고 바꿔쳤기 때문에 복중까지는 바꿔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꿔치기 한 장년 이하는 사탄편에 속하기 때문에 또 바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 유다를 중심삼고 다시 이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말은 뜻을 받드는 데 있어서 모험을 해 가지고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하고 나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말은 시아버지를 속여 쌍태를 받게 됩니다. 수태한 사실이 알려지면 당장에 죽게 되는 그러한 자리인데도 죽음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축복받은 대를 잇기 위해서 나선 다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말은 쌍태를 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기를 낳게 되는데 맏아들인 세라가 먼저 손을 내미는지라 산파가 그 손에 빨간 줄을 드리웠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오기 전에, 이 세상 끝날 무렵에 공산주의가 나온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님 세라가 먼저 나오는 것을 동생 베레스가 이를 뒤집어 가지고 형을 밀치고 먼저 탄생한 것입니다. 형을 밀치고 태어났다고 하여 베레스라고 하는 것입니다.
베레스는 다말의 복중에서부터 장자의 기업을 바꿔치는 승리의 기반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다말의 복중에서 동생 베레스가 형을 밀치고 본연의 자리를 잡고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여기서부터 엇갈렸던 모든 혈통적 인연이 올바로 맺어지고, 이스라엘의 전통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유다 지파에서 나와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승리의 기반이 닦아진 이스라엘의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아 가지고 한 나라를 이룰 때까지 기다리며 발전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악주권을 중심삼은 나라가 이 세계를 지배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악주권 나라 위에 설 수 있는 선주권 나라를 표준하고 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이스라엘 2천년의 역사를 거쳐 가지고 비로소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정혼한 요셉과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을 낳게 해야 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담 해와는 타락 직전까지는 약혼한 단계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사탄은 그런 입장에 있는 해와를 빼앗아 가지고 악한 세계의 조상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반대의 입장에서 마리아를 택해 가지고 하늘의 경륜을 시작해야 된다는 거예요. 여기에 대한 깊은 내용을 더 자세히 얘기하려면 몇 시간이 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간략하게 하고 넘어갑시다.
요셉과 마리아를 두고 볼 때 요셉은 천사장의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은 마리아에게 절대 복종해야 되는 거예요. 이런 것을 알게 되면 예수님이 죽게 된 동기도 확실히 나오는 것입니다. 타락은 모자가 했기 때문에, 예수의 어머니도 예수와 하나되어 가지고 나라를 세울 때까지 같이 행동하고 나라를 찾는 데에 협조해야 합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입장이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하나님이 가르쳐 줘서 데려왔지만,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을 놓고 그 남편이 누구냐고 추궁하는 문제에서는 트러블이 많았던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 예수님은 마리아의 복중에서 탄생했습니다.
마리아는 다말이 피를 맑혔던 승리의 전통적 기반을 이어받은 입장에서 예수님을 잉태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태어나더라도 사탄 마귀가 그 아들은 자기의 피를 받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로소 복중에서부터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이 이 지구상에 처음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독생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성경 내용을 살펴볼 때, 이러한 배후의 사건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미스터 문이 말하는 것은 꾸며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사실을 여러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지금까지 기독교인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어떠한 사명을 해야 되고 무슨 책임을 하려다가 죽어갔는지에 대해서는 다 빼놓고, 믿으면 천국간다는 조건만 세워서는 안 됩니다. 유대교인들도 성경을 읽고 예수님이 그렇게 태어난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될 때, 이제라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사랑은 역사시대에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에, 예수님은 종교를 대표해서 최고의 자리에 선 분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대표하고 하나님의 몸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선 분인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올 자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었지만 기독교가 그런 입장에서 세계적인 문화권을 수습하여, 이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경륜 앞에 최고의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이런 원칙에 따라서 볼 때 당연한 결론인 것입니다.
이러한 메시아가 이 땅에 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으니 이러한 분이 다시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새로운 메시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나라는 무엇과 같으냐? 하나님이 사탄세계에서 빼앗아 낸, 하나님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돌감람나무 밭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갈라 놓아서 준비하지 않고는 사탄 마귀도 내놓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입니다.
우리는 사탄 마귀의 피를 받았기 때문에 양자와 같은 입장에 선 돌감람나무입니다. 이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가 되려면 하나의 참감람나무가 와야 합니다. 참감람나무 하나가 와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한 나라를 중심삼고 그 가운데 참감람나무를 보내 가지고, 여기에 한꺼번에 접을 붙여서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참감람나무 밭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접붙이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의 길을 찾아갈 수 없기 때문에, 타락한 우리 인류에게는 절대 메시아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의 주권을 중심삼고 사탄 마귀의 나라보다 강한 나라,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나라를 세워 가지고 원죄를 청산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의 아들이 되고 하늘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 신자가 아무리 많고 기독교를 믿는 국가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중심삼은 이스라엘 나라와 마찬가지의 돌감람나무 밭과 같은 국가 형태가 있느냐 하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다시 오시는 주님은 기성 기반 앞에 반대받을 위험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 민주세계는 이스라엘 나라와 마찬가지요, 이스라엘의 유대교는 자유세계의 기독교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게 된 것은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 안 됨으로 말미암아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끝날에도 기독교와 자유세계가 하나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오시는 주님 앞에 핍박의 길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에는 외적인 입장을 대신한 유물사관을 중심한 공산세계를 능가해 가지고 그들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강제굴복이 아닌 사랑으로 굴복시켜 가지고 하나의 세계로 돌아감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희망하는 지상천국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우리 인간이 그러한 나라의 백성으로서 주권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그냥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이 왜 되었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지 않고 절대적으로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몸뚱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는 절대적으로 믿어야 되고 타락으로 인해 잃어버렸던 몸을 사탄세계에서 다시 찾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사탄세계에서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절대적인 신앙을 가지고 사탄세계에서 나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섭리역사의 공식입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적으로 믿어 가지고 사탄을 이겨 몸뚱이를 찾아 가지고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적으로 믿는 데는 누구를 믿느냐? 아담은 절대적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타락한 것입니다. 그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아담 자리에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는 하나님 앞에 완전히 믿고 나선 사람이요. 완전히 몸을 찾은 사람이요, 완전히 사랑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타락한 우리들도 메시아를 통해 접붙임을 받아 가지고 완전히 믿고 새로운 사랑을 받음으로써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두고 보면, 아벨은 자기의 생명이 끊어지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노아도 방주를 지으려면 강가에서 지어야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산꼭대기에 지으라는 반대적인 명령을 절대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할 때, 아무런 약속도 없이 집시의 길로 내몰았지만 절대적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야곱이나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도 역시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애급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절대적 신앙을 가지고 사탄세계에서 갈라져 나오는 것입니다. 미디안 광야 40년 동안 고난에 부딪치더라도 사탄세계에 동화되지 않고,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믿어 완전히 하나님편에 섰기 때문에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광야에 나가 그런 생활을 하는 것을 부모가 좋아하고 친척이 좋아할 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신앙으로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기준을 세워서 사탄세계에서 분립된 입장에 서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비로소 이 땅 위에 오신 메시아를 증거할 수 있는 대표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러한 공식원칙을 따라 역사시대에 있어서 그러한 기반을 마련한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제3이스라엘권의 기반을 닦아 나가는 데도 이와 같은 공식원칙을 따라가야 합니다. 세계 만민이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하나의 진리를 추구하 여, 사탄세계를 무자비하게 분립하고 사탄세계에 대항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의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메시아를 맞이해야만 1차 이스라엘이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유세계와 기독교 세계에 그러한 국가가 없는 이때에 있어서 그런 국가를 마련하지 않으면 오시는 메시아의 길이 열릴 수 없겠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이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 역사시대 앞에 등장한 것입니다. 그 국가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하나님편으로 완전히 돌아온 사람들로 구성된 국가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메시아가 오게 될 때에 사랑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한꺼번에 접붙임을 받아 천국의 아들딸이 되고 백성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로소 인류역사의 종말이 시작될 것이요, 하나님의 섭리의 승리의 날을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원죄를 뽑아 버린, 하나님의 혈통을 받은 사랑의 동산이 시작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한 분인가 하는 것입니다. 본래의 자리에서 자기의 아들딸을 가져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억천만세의 한을 품고 오늘의 승리의 길을 닦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자식들과 종들과 혹은 백성들의 피를 보아 나오기 일쑤였던 하나님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자기 나라를 원수에게 빼앗긴 망명객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나라를 대신해서 얼마나 고민하겠습니까? 하물며 한 나라도 아니요 이 세계와 우주를 사탄에게 빼앗기고 그것을 바라보고 찾아 나오는 하나님은 얼마나 내적인 고통을 받고 나오시겠습니까? 그러한 사실을 우리 인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공중에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직접적인 생활권내에서 우리를 지도하는 하나님이지만, 그렇지 못한 분한 입장에 계신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관념적인 하나님이 아니요 생활의 중심인 하나님으로 현현할 수 있는 그때가 우리 목전에 다가온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은 인류가 바라던 희망의 날이요, 역사적인 승리의 날이요, 만민의 해방의 날이요, 제2천국창건의 날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미국 국민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국가적으로 환영하고 세계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기 때문에, 미국의 기독교인 여러분들이 이와 같은 뜻 앞에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한을 다시 남기지 않도록 선두에 서 가지고 하늘 앞에 협조해 줄 수 있기를 바라서 오늘 저녁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우리의 어린 친구들과 함께 미국의 새로운 이상적인 터전을 넓히는 데 물심양면으로 협조해 주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서 있는 본인은 미국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못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 있는 이 젊은이들을 남겨 두고 떠나가게 될 때에는 여러분들이, 미국 사람들이, 미국의 기독교인들이, 미국의 지도자들이 협조해 줌으로 말미암아 하늘 앞에 무엇보다 복받을 수 있는 일이 있을 줄 알고 금년에 들어와서 그러한 운동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행복과 희망과 승리가 함께하기를 바라면서 오늘 제 말씀을 끝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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