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는 잘못된 동기에서 시작된 잘못된 세계

지금까지 인류역사는 아무런 목적이나 동기도 없이 흘러왔습니다. 현시점에서 볼 때, 하나의 큰 의문점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상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까? 그리고 지금 같은 세계가 계속된다고 해서 이상세계가 오겠습니까? 이 나라 미국은 매우 거대한 나라입니다. 또한,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도 매우 큰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두 나라가 싸우고 있는 이 세계는 이상세계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미국이 언제 어떤 상태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것은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끄는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평화가 넘치는 하나의 이상세계를 갈망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와 같은 갈망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세계의 추세로 봐서는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소망하는 그런 이상세계에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재의 목표는 대단히 불분명하고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그런 이상세계를 건설하는 책임을 질 만한 어떤 한 국가를 찾아 볼 수 있습니까? 선생님은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 세계를 그러한 이상세계로 끌어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산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련이 성장하는 나라지만, 그들이 그런 통일세계를 이룩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하나님은 작은 나라들을 통해서 더 많이 역사해 오셨습니다.

미국에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자신의 국가보다 세계를 더 사랑하게 할 수 있는 이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그와 같은 이상세계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지도적인 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공산국가인 소련도 역시 그런 이상세계를 건설하는 지도적인 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온 인류와 전세계의 이익을 위해서 그들 자신을 희생할 수 있을 때까지는 번영의 세계, 행복의 세계 또는 평화의 세계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소련 역시…. 만일 그들이 전세계의 이익을 위해 그들 자신의 나라를 희생시킬 수 없다면, 하나님의 섭리가 완성될 수 없고, 평화의 세계 또는 이상세계도 완성될 수 없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계신다면 세계보다 미국을 더 사랑하시겠어요, 미국 보다 세계를 더 사랑하시겠어요? 만일 한 국가가 나와서 자기 나라를 희생시키고 자기 나라보다 세계를 더 사랑한다면, 그 나라는 전세계를 지배하는 국가가 됩니다.

발전하고 있는 모든 것은 본래의 동기로부터 발전하고 있는 것인데, 지금의 이 결과의 세계는 모든 인류가 소망하는 그런 세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세계의 동기가 올바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계는 잘못된 동기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이상세계를 이루기 위해 한 나라를 찾아 나오신 하나님

우리는 이 역사를 바로잡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 뜻은 이 결과의 세계를 바로잡는다고 해서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출발 동기, 그 원점부터 바로잡아야 달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래의 잘못된 동기에서부터 잘못된 세계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뜻이나 섭리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려고 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악의 주체는 천사장이고, 이 천사장이 자기 자신의 쾌락과 이익을 위해서 해와와 아담을 희생시켰습니다.

해와와 아담은 인간의 시조이기에, 천사장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간의 씨를 희생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 씨가 그런 잘못된 동기로부터 싹이 텄고, 그럼으로 해서 세계가 그와 같은 식으로 발전해 온것입니다. 천사장은 자신의 욕망이 그릇된 욕망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켰습니다. 이 세상의 통치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강한 사람이 통치력을 지녀 왔습니다. 개인간에 시작된 싸움이 가족, 종족, 국가 그리고 세계의 싸움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동기와 욕망에 의하면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이상세계가 있을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악의 목적과는 반대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시작에서부터 파탄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현실 세계는 희망적인 방향성을 가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타락세계에 대한 대응책으로 하나님은 종교를 만드시고, 이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역경을 헤쳐 나가게 하셨고, 하나님의 섭리의 어려운 길을 따르게 하셨습니다. 종교인들은 자기 스스로의 선택으로 선의 목적을 위하여 자신들을 희생 시켜 왔습니다.

세계의 여러 종교들 중에서도 기독교가 하나님의 목적에 가장 가까운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제물로 내주었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께 그의 원수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기까지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뒤를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학살당하고 희생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심지어는 가정들이 희생되고, 종족과 국가가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전세계를 위해서 자기 나라를 희생 시키겠다고 하는 하나의 국가가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세계의 번영과 온 인류의 축복을 위해서 자기 나라를 희생할 수 있는 그런 하나의 국가가 나오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의 국가를 필요로 하십니다. 그런 대표적인 국가가 전세계를 위해서 제물이 되어야합니다.

세계를 위해 제물 국가가 되어야 할 미국

이런 입장에서 볼 때, 미국은 민주세계를 지도하는 대표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전세계를 위한 제물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미국으로 하여금 그런 입장에 서서 그런 나라의 사명을 완수하게 하려고 계획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청교도들을 이 땅에 보내셨고, 그리고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이와 같이 짧은 기간에 이와 같이 위대한 나라를 만들게 하신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처음 이 나라에 왔을 때, 그들은 제일 먼저 교회를 지었고, 그 다음에 학교를 지었으며, 그런 후에야 그들은 자기들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그렇게 번영하고 위대한 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배후에 개인의 목적보다도 공적인 목적을 더 강조했던 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있어서, 항상 문제가 되어 왔던 것은 국가였습니다. 왜냐하면 국가는 모든 것의 근본 단위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세계에서 조차도, 국가는 사탄이 활동하기 위한 토대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대표적인 국가를 찾고 계시며, 그리고 그런 나라를 통하여 이 세계를 상속하려고 하십니다.

미국이 더 위대하게 되기 위해서는, 미국보다 작은 나라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면 많은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미국이 외국에 대한 원조를 삭감하면, 그런 존경을 잃게 되고 다른 나라들로부터 고립되게 됩니다. 만일, 미국이 자국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외국에 도움을 준다면, 그리고 민주세계의 우방국들에게 희생을 하면서까지 원조를 하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지겠어요? 만일 그런 원조정책 때문에 미국이 약해지게 된다면, 다른 모든 나라들이 동정을 하게 될 것이고 더욱 가까운 우방이 되어서 미국을 도와주게 될 것입니다.

지금, 무엇 때문에 기독교가 온 세계에 전파되고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희생정신이 하나님의 섭리의 근본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즉,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가 수많은 박해를 받아 왔지만, 더 많은 박해를 받으면 받을수록, 그만큼 더 많이 번성했습니다. 예수는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어떤 이념은 남기지 않았지만, 그 정신 하나만으로도 세상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 자신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과 협조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와 인류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하나의 국가입니다. 그 국가로부터 예수에 의해서 비롯된 하나의 조직이 생겨날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이상세계가 전개되어질 것입니다. 그러한 국가는 세계의 이익을 위해서 그 나라와 그 나라의 주권을 희생하는 국가입니다. 그러나 지상에 그런 국가가 없습니다.

미국은 이런 입장과는 거리가 멉니다. 개인과 개인주의가 좋기는 하지만, 미국과 서양 사람들은 대부분 이 두 가지를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그들의 나라, 민족, 가정, 부모, 그리고 그들 자신까지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매와 같이 바람 부는 대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서구 세계에 평화가 없는 이유입니다.

미국이 하나님의 섭리에 보조를 맞추려면, 미국내에서 새로운 토대를 건설하는 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개개인으로서의 미국인과 한 국가로서의 미국은 하나님의 정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따라야 하고, 이 나라를 하나님의 이상을 실현하는 토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개인들이 연합하면, 이상세계를 이루는 데 있어서 다른 나라들을 위한 희생의 제물이 될 것입니다.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도시의 어디에서 새로운 정신운동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많은 교회는 텅텅 비어 있거나 아니면 노인들만 출석하고 있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활기도 없고, 전통적인 정신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교회들을 떠났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교회들을 떠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교회들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섭리가 전파될 수 없습니다. 이들 교회는 가정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종족을 위해서 가정을 희생하고, 미국을 위해서 종족을 희생하고, 세계를 위해서 미국을 희생하려는 그런 개인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계를 이끌 수 있는 이상은 더 큰 목적을 위한 희생정신에서 나와야 합니다. 전세계의 이익을 위해서, 한 국가는 하나의 이상세계를 추구하는데 기꺼이 자기 나라를 희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어디에서 그런 국가, 그런 종족, 그런 가정, 그런 개인을 찾을 수 있겠어요? 우리는 이와 같은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끝날입니다. 그래서 악의 세계, 즉 사탄세계에 끝날이 오게 되었고, 교회, 국가, 종족과 개개인에게도 끝날이 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의 종말을 보고있습니다.

통일교회의 역할과 가야 할 길

우리가 찾아야 할 중요한 것은 통일교회의 역할과 우리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밝히고 하나님의 섭리를 발전시키기 위해 통일교회는 생겨났습니다. 통일교회의 정신은 가정을 찾기 위하여 개인을 희생시키고, 종족을 찾기 위하여 가정을 희생시키고, 국가를 찾기 위하여 종족을 희생시키고, 하나님의 세계를 찾기 위하여 국가를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역할입니다. 지금 우리 통일 교회는 전세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식구들은 하나되어야 하고, 전세계를 위한 제물이 될 수 있는 하나의 민족으로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이 통일교회의 운동이 한국에서 처음 시작되었을 때, 모든 사람과 모든 가정, 종족, 국가가 우리의 운동에 대해서 회의적(懷疑的)이었습니다. 모든 교회와 종파가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개의(介意)치 않았습니다. 그들의 박해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과 정부와 심지어 개신교조차도 우리 운동의 정신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우리의 운동 없이는 한국이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운동은 통일교회를 위해서 개인, 가정, 종족, 또는 국가를 희생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 전체와 다른 교회들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희생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운동과 그 운동의 실례(實例)에 의해 과거에 우리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우리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우리의 운동이 우리 나라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진실한 운동이요 정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열 명의 친구를 가졌다고 합시다. 만일 이 사람이 매일 친구들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자기를 위해 뭘 해달라고 하면, 그 친구들이 한두 번은 해주겠지만, 그 뒤에는 그로부터 멀어질 것입니다. 굳바이라는 인사조차 안 할 것입니다. 만일 이 사람이 그의 모든 친구들에게 봉사하고 그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친구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준다면, 그때는 그 친구들이 그에게 가까이 할 것이며 심지어 자기 친구들과 가족들까지도 그에게 데리고 올 것입니다. 첫번째의 경우에는, 모든 사람이 도망가 버립니다. 따라서 그는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두번째 경우에는, 모든 사람이 그에게로 몰려옵니다. 그래서 그는 강해지고 커질것입니다.

선과 악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악은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자기를 위하기를 요구합니다. 모두가 자기를 위하여 살고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실히 해야 되겠고, 이것이 선악의 분기점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선의 공식을 따르게 될 때, 우리는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만약 우리가 첫번째의 길을 따른다면, 우리는 독재자가 되는 것입니다. 위인들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그들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이고, 성인들은 인간뿐만 아니라 신을 위해서 산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공자, 석가모니, 마호메트 등 4대 성인을 기억 합니다. 그들은 모두 신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 자신의 나라에서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 네 성인들은 주요 종교의 창시자들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며, 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종교를 부정합니다. 종교는 이세상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종교가 도덕과 규율 등의 상징이 되었습니다만, 세상은 이것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는 자체적으로 복귀될 수가 없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이 사상을 전적으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래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들은 가장 시시한 것 또는 가장 작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위해서 가장 위대한 것 가장 큰 것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나라의 것이고, 나라의 것은 세계의 것이고,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내 것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면, 하나님은 전세계를 우리에게 맡기실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 희생하는 전통을 세우자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 미국에 와서 통일교회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선생님 자신, 어머니, 또는 자녀들을 위해서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중심한 국가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집과 여러분의 가정도 영원히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국가 또는 나라의 크기는 문제가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가 사랑하는 아들, 가정, 국가를 사탄 앞에 드러내서 자랑하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실 수 있는 나라를 갖지 못하신 분입니다. 당신이 사랑하실 수 있는 종족도 가정도 개인도 갖지 못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2천년 전에, 그런 사람을 갖기를 바라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 이스라엘 종족과 함께, 유대 나라와 함께 그런 나라를 세우시기 원하셨지만, 유대 나라는 자기 나라의 이익만을 구했습니다. 세계의 이익보다는 자기 나라만의 이익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는 연장되게 되었고, 그 아들을 통한 복귀섭리는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자기들은 하나님을 독실하게 믿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그들 개인, 그들의 가정, 종족, 그리고 그들의 국가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예수를 죽이게 된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선민의 자격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선민의 자리에 세우기 위해서 예수가 기독교를 세웠는데, 지금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한 이스라엘의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러한 나라는 없습니다. 또한 기독교 내에서도 그런 교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오시는 재림 주님도 예수가 유대인들에 의해서 돌아가신 것과 같은 길을 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미국과 미국 교회가 세례 요한과 같은 사명을 하도록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미국과 미국 교회는 하나님의 목적보다도 오히려 자기 자신들의 이익을 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던 과거 유대교와 같은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만일 미국이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또 다른 나라를 찾으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관하실 수 있는 하나의 국가가 건설될 수 있도록, 통일교회 모든 식구들은 자기 자신들뿐만 아니라, 자기의 가정과 친구들과 심지어 통일교회까지도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당면과제는 우리가 일상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성인들처럼 행동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로스앤젤레스 교회 식구인 여러분은 미국에 머물러 있으니 미국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만일 미국이 자기 나라를 희생시켜서 세계를 사랑하는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면 세계를 지도하는 위치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됩니다. 통일교회는 미국이 세계를 위해 자기 나라를 희생할 수 있게 하는 환경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민족을 대표하고, 세계를 위한 원형으로 기여할 모델 개인·모델 가정·모델 종족을 만드는 초민족적인 하나의 개인·가정·종족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의 세계를 이끌어 갈 개인과 종족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할 수 없으면, 국가간의 장벽과 국가적인 감정을 허물어뜨릴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 세계를 놓고 보면, 스탈린과 소련은 그들의 슬라브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를 정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중공에서도, 모택동은 전체 공산권의 이익보다 자국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련과 중공이 분열된 것입니다. 자유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국가가 다른 나라를 친구처럼 존중하게 되면, 다른 나라들이 그 국가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 국가를 세계의 지도적인 국가가 되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프랑스, 그리고 영국이 서로 자기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들간의 사이가 점차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조직내에서는 누가 하나님을 위해서 큰 일을 하게 되면, 그가 비록 동양인이라고 하더라도, 미국이나 영국의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어떤 지도자의 위치에도 설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전통을 세워야 됩니다. 미국인은 대개 우월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그런 감정을 느낄 때는, 그것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계가 미국 교회 식구들 없이는 복귀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그것이 여러분의 미래에 장애물이 될 것입니다.

미국이 살고 세계가 살 수 있는 길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이기에 가난하고 불쌍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동정과 사랑을 느끼십니다. 우리의 가정에서도, 부모들은 보다 못한 자식에게 더 많은 걱정과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보다 낫거나 아주 뛰어난 자식에게보다는 못한 자식에게 더 많은 애정을 느낍니다. 하나님도 똑 같이 느끼십니다. 이런 자세를 갖춘 운동이 미국에서 일어난다면, 하나님이 아프리카와 같은 불쌍한 나라와 개발도상국들을 동정 하시기 때문에 미국이 그런 나라들을 도와주는 데 있어서 일등국가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나라의 국민을 사랑하게 되면, 이 나라가 전세계에서 제일가는 국가가 될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여러분이 좋은 자리에서 잠을 잘 때에 하나님을 위해 충실히 일하는 일꾼들은 좋지 못한 곳에서 잠자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좋은 음식을 먹을 때에도, 더 열심히 일하는 형제들은 나쁜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더 나은 생활 수준을 누릴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세계를 리더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한 친구가 열 친구를 위하게 되면, 그들은 결국 그를 지도자로 받들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국가가 다른 나라들을 위해 주게 되면, 그 국가는 그 모든 나라들의 지도국이 될 것입니다. 그것도 일시적으로가 아니라, 영원히 지도국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큰 학교와 집들을 지어 주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분이 사는 것처럼 살 수 있게 해준다면, 세계는 얼마나 달라지겠어요? 그들이 여러분 앞에 와서 절을 하고 여러분을 존경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싸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미국이 살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외국에 원조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순환하는 것입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그 다음에는 겨울이 오고, 그리고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옵니다. 만약 여러분이 올라간다면, 그 다음엔 내려와야 합니다. 인간은 계속해서 올라갈 수만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돌고 돕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꼭대기에 올라가면, 다시 내려올 줄도 알아야 됩니다.

미국은 저개발국가들을 지도해야 하고 그리고 저개발국가들은 미국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 때 전세계가 존속할 수가 있고, 영원히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점점 빠르게 돌아가면 결국 하나가 됩니다. 그때 그 중심에 하나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의 평화의 세계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통일교회인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 조상이 타락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역사는 슬픔으로부터 출발되었습니다. 그 출발점에서의 가장 슬픈 사실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과 생명과 모든 것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하여 행복과 생명과 모든 것이 인간으로부터 잘려 나가 버리고, 인간은 깊은 절망과 어둠과 불행 속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인간들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은 완전한 절망과 어둠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요, 부모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슬픔이 인간이 느낀 것보다 말할 수 없이 더 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자녀를 잃어버림으로 인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인간은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행복하고 생기에 넘치는 즐거움 속에서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타락 때문에 정반대의 세계가 만들어 졌고, 하나님께 큰 슬픔과 비탄을 안겨 드렸습니다.

인간은 출발에서부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즉시 사탄을 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못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용서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용서해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봐야 됩니다. 거기에 타락하지 않은 또 다른 한 인간이 있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타락하지 않은 본래의 모습으로 있는 아담의 형제가 있어서, 그가 아버지에게로 나아가 타락한 그의 형제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랬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예를 들어 타락하지 않은 그 사람이 하나님에게 가서 그의 형제가 타락한 것을 용서해 주길 빌면서, 타락한 형제를 위해서, 그가 대신 하여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다고 했다면, 즉 타락한 그를 위해서 처벌 받는 것은 물론 어떠한 일이라도 기꺼이 하겠다고 했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그를 용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타락한 인간을 용서하고 구원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타락하지 않은 사람이란 사탄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갖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를 구원섭리의 중심 인물로 세워서, 그와 함께 구원섭리를 전개하실 수 있습니다. 원리에서는 이런 형의 인물을 아벨, 또는 아벨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도록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탄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류를 위하여 그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담 가정에서부터 이러한 섭리가 전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벨은 사탄에게 희생되지 않은 제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제단 위에 놓여진 그의 제물은 하나님께 바쳐졌습니다. 그는 죽은 것으로서 제물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산 제물을 바쳐야 했던 것입니다. 노아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을 동안에, 인간들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였습니다.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하나님이 우상 장사 데라의 품에서 아브라함을 불렀을 때, 하나님은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의 기대 위에서 부름을 받고 사탄의 품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그는 인간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사탄의 역사를 변화 시킬 수 있었고,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긴 후에,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구주의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는 그의 가정, 그의 출생지, 그의 고국,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것이 희생의 출발점입니다.

야곱도 그랬습니다. 이것이 공식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로 가족을 버리고 하란 땅으로 가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섭리의 중심이 되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사탄세계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사탄을 이길수 있는 조건을 세울 수 있었고,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희생을 통하여 모든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중심인물을 희생시켜 구원섭리를 발전시켜 나오신 하나님

이런 경우에, 그는 죄에 물들지 않고, 사탄 또는 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형제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런 입장에 있는 그와 함께, 그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구원을 위한 제물을 드릴 수 있는 입장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에, 야곱은 아담의 입장에서 또는 아담을 대신한 고난을 당하고 희생하였기 때문에 죄가 없는 아담, 승리한 아담의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타락하기 전의 아담보다도 더 사랑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 지점에서 더욱 타락의 선을 넘어서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가정적인 구세주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가정적인 수준을 넘은 점에서 사탄을 이긴 다음에 종족적인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사랑하시는 국가로 선택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이란 말은 사탄을 이겼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슬픔 속에 계시는 하나님을 그 슬픔으로부터 해방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하나님은 행복하였습니다. 이것이 선민 이스라엘이 어떻게 출현했는가 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선택받은 나라 이스라엘은 사탄에게 다시 침범당하고,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런 국가를 통해서는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실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나라를 애급의 노예로 희생시키셔야만 했습니다. 그 힘든 고역을 겪음으로 인해,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을 선택받은 국가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선민 이스라엘을 애급으로 부터, 사탄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었고, 섭리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을 대표하는 아벨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모세는 아벨의 입장에 있었고, 하나님께 가서 그의 형제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해야 하는 타락하지 않은 형제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모세의 믿음과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은 중심인물인 모세와 더불어 그 민족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그는 그의 민족을 괴롭히는 애급 사람을 쳐죽였습니다. 그때, 그는 사탄을 이긴 아담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애급인을 쳐죽였을 때, 모세는 하나님의 슬픈 심정을 해방해 드리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타락할 때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죽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비로소 오랫동안 품어 왔던 원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모세가 사람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중심 인물로 세우셨습니다. 애급인으로 대표된 한 타락 인간을 죽임으로써, 모세는 하나님의 심정을 해방시켜 드릴 수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죽일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죽이거나 전멸시켜 버리고 싶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 구원섭리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에 대한 원한을 품어 나오셨는데, 타락한 인간을 대표한 애급인을 모세가 쳐죽임으로써 하나님은 그러한 감정에서 해방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미워하기는커녕 그를 더 사랑하였으며 섭리의 중심인물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야곱은 천사와 씨름할 때 개인적인 기대 위에서 그와 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이겼고, 가정적인 수준으로 인간구원의 역사를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가고, 사탄을 정복함으로써 종족적이고 민족적인 기준에서 그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사탄세계로부터 애급인들의 손으로부터 해방시키신 후에야, 그들은 사탄의 침범과 상관 없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완전히 인간을 구원할 때까지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함께하실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른 종족, 즉 사탄세계의 7족과 서로 결혼을 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섭리의 중심 기반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만일 그들이 바깥 세상과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고 사탄세계에 물들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은 곧바로 그 민족에게 세상의 어떤 지도자들보다도 훨씬 뛰어난 한 지도자를 보내 그를 통해서 그 민족을 구원하실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사탄으로부터 완전히 분립되어서,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성별되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하는 유대교의 책임을 해야 할 기독교

예수를 중심인물로 보내심으써, 하나님은 그 민족이 사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지켜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하나님은 그 민족을 통해서 전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민족적으로 다시 실패함으로써, 그들은 다시 사탄의 지배하에 떨어지게 되었고, 하나님은 선민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타락 전의 아담의 입장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타락함으로써,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가서 그의 형제의 용서를 빌어야 하는 입장이 되어 형제를 대신해서 십자가 위에서 희생되신 것입니다. 타락한 형제를 대신해서 희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육 양면으로 인간을 구원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실패했다는 것은 인간이 오직 영적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는 자신을 버렸습니다. 즉, 그의 육신을 십자가에 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육적인 구원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기준을 넘어 육적인 구원을 하기 위해 다시 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유대 민족이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민족적인 구원의 기대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민족을 구원하기 전에, 그는 종족을 구원함으로써 구원섭리를 발전시켜야 했고, 종족을 구원하기 전에 가정을 구원할수 있어야 했고, 가정을 구원하기 전에 개인을 구원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중심인물로 보내셨습니다. 그가 다시 세상에 보내지게 될 때, 그는 다른 방법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를 중심삼고 볼 때, 그는 가정적인 구원을 이루어야 하고, 그리고 나서 종족, 국가, 세계적인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계의 입장입니다. 현재 기독교계는 사탄세계로부터 그 자신을 분립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하며, 그리고 기독교계 밖의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 기독교계의 사람들 역시 인간을 복귀하고 구원하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기독교계는 그것을 실패한 입장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탄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반복해서 섭리해 오신 바대로, 하나님은 지금 기독교계를 치는 입장에 계시고, 그 대신의 다른 중심인물을 찾고 계십니다. 요셉이 12형제들 중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사람이었던 것처럼, 사탄과 대항해서 싸울 수 있고, 자기 자신을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에게 희생할 수 있는 한 교파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교파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실 수가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의 선민을 택하실 수 있으며, 그리고 구원섭리를 전세계적으로 전개하실 수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 유대교와 하나되었을 때, 그들은 구세주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교파는 그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중심종교의 역할을 하는 통일교회가 되려면

선생님은 전세계를 둘러보고,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안길 수 있고, 국가와 세계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교파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교파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결론을 짓고, 스스로 그 사명을 감당하고 나섰습니다. 선생님은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나설 것을 결심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생님이 통일운동을 시작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먼저 사탄세계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바깥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감정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이 사랑하는 것을 증오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세계를 위하여 우리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서 여러분이 개인, 가정, 종족, 국가, 그리고 세계적으로 승리하게 되면, 우리는 제3의 이스라엘, 이스라엘 선민, 또는 영적인 이스라엘을 다시 건설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온 인류를 영육 양면으로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통일교회 식구들은 하나님에게 나아가서 형제의 죄를 대신해서 용서를 빌어야 하는, 사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형제의 입장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고, 타락한 형제들을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하는 일이 있더라도 어떤 일이든지 하겠다고 하나님에게 말씀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세계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고 원수까지도 축복할수 있었던 예수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타락한 형제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심정입니다.

예수는 죄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예수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안 그래요? 그는 그의 행복을 버렸고, 그의 세상적인 권력을 버렸고, 세상 사람들이 행복을 위해서 취하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는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 자신을 희생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는 자기를 죽이는 죄인들을 꾸짖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들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입장에 서야 합니다. 죄악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을 위해서 여러분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인류가 여러분을 통해서 구원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밝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으로부터 떨어질 수 없고 여러분을 도와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공식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즉, 첫째로 우리는 사탄을 이길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품겨야 하고, 그 다음에 더 넓은 차원을 위해서, 온 인류를 위해서 우리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섭리에 있어서 어떻게 중심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원리요 공식입니다.

세계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희생의 길로 나아가라

지금까지, 기독교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바라시는가 하는 정확한 배경과 원리도 알지 못하고 일을 하여 왔습니다. 기독교 이외에도 성인, 선지자, 또는 위인들도 이와 같이 비슷하게 일을 해나왔습니다. 우리는 역사상 제일 위대했던 지도자의 경우에서도 그가 세상과 더불어 가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가는 대로 걸어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편에, 선의 편에 섰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사랑의 보호 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국가와 세계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역설이나 진리입니다. 이것은 원리요 진리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찾아낸 진리와 원리의 하나입니다.

먼저 된 사람이 나중 되고, 나중된 사람이 먼저 됩니다. 여러분이 세상과 더불어 가게 되면 죽음,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세상과 분립되고 타락한 인간들이 흘러가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여러분은 구원받게 될 것이고, 그리고 여러분이 세상을 구원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모순되는 말처럼 들리지만 진리인 것입니다.

사탄세계는 죽음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사탄세계와 분립되어짐으로써, 여러분은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 후에야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되고, 그런 여러분을 통해서 인류가 구원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권에 거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타락한 형제들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형제들을 위해서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그들의 죄를 위해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하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서라면, 그들을 대신해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겠노라고 하나님께 말씀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을 희생하려고 하는 이유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뜻을 위해서 여러분 자신을 희생할 때, 하나님은 여러 분들을 타락 전의 아담보다도 더한 존재로 여기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참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여러분이 죄지은 형제들을 위해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하여 인간들을 구원하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공식, 가장 중요한 3단계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개인적으로 사탄으로부터 여러분 자신을 분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탄을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여러분은 타락한 여러분의 형제들을 위해서 여러분 자신을 기꺼이 희생해야 합니다.

오늘 아침에 나는 이러한 공식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제3이스라엘인 한 나라를 이뤄야 합니다. 이 공식을 통해서, 한 개인이 가정의 중심이 될 수 있고, 그런 가정들을 합하여 제3이스라엘을 이룸으로써, 전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시려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신 있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소원은 같아

​모든 인간은 각자 지향하는 목적을 틀림없이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간이 이루어 주기를 바라시는 하나의 최후의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과 인간이 바라는 것이 서로 다르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 둘,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과 인간이 바라는 것을 하나로 합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이 둘을 하나되게 하느냐?

타락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진실되고, 유일무이하고,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절대자이시고 그리고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도 똑같은 것을 바라십니다. 그 핵심, 또는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소원이 만나는 점은 하나의 점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무엇일 것인가? 그것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인간의 소망과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명예, 지식, 물질적인 부에 있지 않고, 인간 존재 그 자체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적은 무엇인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이 영원을 두고 하나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영원히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하나인 것입니다. 사랑만이 인간의 소망의 핵심입니다. 그것은 변할 수 없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자리

인간은 어디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해요?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기를 바라는 첫번째 자리는 어디일 것 같아요?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을 자녀로서 만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 자리는 가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성장하면 무엇을 합니까? 만일 남편과 아내가 하나가 되면,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경험을 토대로 하여 가정에서 사랑의 전통을 세울 것입니다. 그들은 남편과 아내로 살아가게 될 것이며, 각기 경험한 사랑을 통해서 사랑의 전통을 세울 것입니다. 첫 단계에서, 개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종적인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남편과 아내로 합하게 되면, 그들은 서로 횡적으로 사랑을 주고받게 됩니다. 그 다음에 자녀를 낳게 되면, 종적인 사랑이 내려가는 것입니다. 부부가 자녀를 낳게 되면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하게 됩니다.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본다면, 우리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사랑하고, 자녀에 대해서는 사랑을 주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 인연이 변함없고 또 그것이 확고한 것이라면, 바로 그 가정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것이고, 그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가정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것이 실현되었더라면,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어떤 것을 믿기 위한 신앙이나 기도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 조상들이 잃어버린 것입니다. 즉, 그들의 가정이 어떠해야 했던가 하는 이상형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인간 타락에 관해서 배웠을 것입니다. 여기서 인간 타락을 강의할 시간은 없습니다. 아뭏든, 인간의 타락으로 우리는 그러한 이상적인 가정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창조본연의 위치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타락으로 잃어버린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

물론 인간은 물질적인 것이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게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들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적인 부, 가정, 친구들, 이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빼앗기게 될 때는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인간조상이 타락했을 때 잃어버렸던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을 상실했던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등 세 종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남편과 아내로서 참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우리의 자녀들과도 참사랑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러한 경험을 한 자녀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손자의 자리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와 같은 세가지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그러한 세 가지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은 그가 잃어버린 사랑이 어떤 종류의 사랑이고, 또는 어떤 가치가 있는 사랑인지조차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세 가지 사랑의 가치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자신과 인간 사이의 사랑을 상실하고 난후, 대단히 고통스러워하셨고, 슬퍼하셨습니다.

맨 처음의 부부를 상상해 봅시다. 그들은 하나님의 참자녀들이었으며,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들 사이의 사랑은 단절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슬픈 감정을 그렇게 크게 느끼지 않았지만, 그들이 타락할 때, 하나님의 심정이 얼마나 슬펐고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상상해 볼 수 있어요?

인간에 대한 용서의 심정에서부터 구원섭리가 시작돼

하나님은 아버지이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어겼습니다. 인간의 아버지이셨던 하나님은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려고 해도 그들을 그의 사랑권 밖으로 내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계명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렇게 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두려움을 느꼈을까를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인간의 사랑과 생명과 행복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섭리를 발전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실체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나 버렸습니다. 인간들도 역시 모든 희망과 행복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비극이었고, 가장 슬픈 일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분노의 감정을 하나님께서 인간을 타락시킨 원수 사탄에 대하여 가졌겠어요? 인간의 타락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이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은 것을 의미합니다. 타락세계라 할지라도,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사랑 관계에 빠지게 되면, 다른 인연들은 다소간에 단절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셨습니다. 아버지이셨던 하나님이 그의 자녀를 너그러이 봐 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안 가졌겠어요?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용서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용서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구원섭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해와말고 또다른 한 자식이 거기에 있었다고 생각해 봐요. 그 자식이 사탄한테서 그의 형제를 빼앗아와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왔다면 하나님의 기분이 어땠겠어요? 그 자식을 벌주었겠어요, 내쫓았겠어요, 아니면 반가워했겠어요? 하나님이 그 형제를 다시 데리고 왔다고 그 자식을 벌주었겠어요? 그 자식도 같이 내쫓아 버렸겠어요? 아니면,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 상관도 안 했겠어요?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겠어요. 그것이 문젭니다.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세워야 할 조건

만일 하나님께서 그 자식을 칭찬해 주셨다면, 우리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그리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것이다'라고 한 예수의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약속하실 수 없었습니다. 왜? 잃었던 것을 되찾는 데는 원리원칙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냥 빼앗아 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의 법칙, 즉 탕감법칙이 있는 것입니다. 사탄을 부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조건을 인간 자신이 세우지 않으면, 하나님은 자기를 배반하고 돌아섰던 인간을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본래,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사탄의 품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돌아오는 데 있어서도 스스로 사탄을 부정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조건입니다.

형제나 혹은 누가 사탄의 꾐에 빠졌을 때, 그 타락한 형제를 되찾아 오려고 하면, 사탄은 그를 아무런 조건 없이 가게 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형제를 되찾기 위해서는 사탄이 그 형제를 되돌려 주는 것보다 더 좋다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을 사탄에게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되찾아 오는 것보다 사탄이 더 좋다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을 사탄한테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해서, 타락한 형제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그 형제를 대신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한 형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희생적인 형제가 제2의 그리스도가 될 것입니다. 타락한 형제는 그런 조건에 의해서만 해방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효성스러운 마음과 타락한 형제를 잃어버렸을 때의 하나님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형제가 있다면, 그는 아버지의 슬픔을 덜어 드리고 그의 형제를 되찾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만일 그런 생각을 가진 형제가 있다면, 그는 형제를 대신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고자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잃어버린 형제를 위해 울 때 구원의 문이 열려

인간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갈라져야 했을 때, 양쪽이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슬픔과 타락한 형제의 슬픔을 모두 경험하고 그 슬픈 심정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기꺼이 하려고 하는 하나의 남자, 하나의 형제가 반드시 와야 합니다.

그 형제의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닐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도 슬픔의 눈물을 흘렸고, 인간도 똑같이 슬픔의 눈물을 흘렸습니다만, 인간의 눈물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잃어버린 형제를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눈물은 희망의 눈물이 될것입니다. 인류 가운데 그런 사람이 나오게 될 때, 비로소 구원의 희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구원섭리의 문은 하나님의 슬픔과 인간의 슬픔을 덜어 줄 수 있는 눈물로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 점이 이해가 돼요? 여러분이 자신을 위해서 울 때, 그 눈물은 사탄에 속한 것이 됩니다. 인간이 자신을 위해서 우는 한 어떠한 구원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아벨이 걸어가야 할 공식

아벨은 사탄을 물리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탄과 싸워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사탄으로부터 분립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벨은 타락한 그의 형과는 달랐던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만 대신에 아벨은 가인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다음 세 단계는 중요한 공식입니다. 먼저, 세상을 구하겠다는 사람은 사탄과 대항해 싸워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사랑권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런 후에는, 하나님과 타락한 형제의 심정을 체휼하면서, 하나님과 타락한 형제의 슬픔을 덜어 주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그 형제를 대신하여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조건 위에서만이 타락한 형제가 돌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원리에서 가인 아벨의 문제에 관해서 배웠습니다. 아벨은 사탄 혹은 가인으로부터 자신을 분립해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들어와 가지고 하나님과 형의 슬픔을 느끼고 체휼함으로써, 그들을 대신 하여 자신을 기어이 희생하겠다는 각오를 해야 했고, 생명을 걸고, 생명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형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아벨은 가인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통일 식구들은 원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은 아벨의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우선 사탄을 대항해서 싸울 수 있어야 하고, 사탄세계로부터 여러분 자신을 분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권내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때부터, 여러분은 하나님의 슬픔 심정과 사탄세계에 묶여 있는 형제자매의 슬픈 심정을 풀어 드리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명, 여러분의 희생을 대가로 사탄세계에서 그들을 기꺼이 구해 내려고 해야 합니다. 아벨이 희생하는 데서부터 복귀섭리는 진전될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공식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섭리의 한 단위가 됩니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한 노아

우리는 120년 동안 산에서 방주를 지었던 노아의 행동에서 또다른 예를 보게 됩니다. 그는 그 긴 기간 동안 사탄과 싸워 나왔습니다. 노아는 아내를 비롯한 가족, 이웃과 친척들로부터 배척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의 나라로부터 그리고 온 세상으로부터 조롱과 반대를 받았습니다. 한번이라도 그 일을 포기하려고 했더라면, 그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는 사탄과 대항해 싸워서 자신을 사탄으로부터 분립시켰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그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를 사탄세계에 내보내어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서 그 자신을 희생하게 하십니다. 물론 그를 단련케 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전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는 그를 통하여 하나님은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노아, 의인이었고, 정직한 사람이었고, 선한 사람이었던 노아는 항상 슬픈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축복받을 수 있었던 배경

아브라함을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우상 장수인 그의 부친으로부터 그를 분립시켰습니다. 그는 가족, 조국, 물질적인 부 그리고 모든 것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사탄세계로부터 그를 단절시킴으로써, 그는 가나안으로 들어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단련시키고, 그로 하여금 그 자신의 민족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 심지어 원수를 위해서도 울 수 있게 하시면서 섭리를 발전시켰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조국을 떠나 타국으로 가게 하면서 이 일을 하셨습니다. 그는 집시처럼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는 항상 간절한 심정으로 울며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통해서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땅의 모래알처럼 번성할 것이라고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성서를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고, 그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가족, 조국, 물질적인 부, 그리고 기타 모든 것을 뒤에 남겨 두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미지의 땅으로 가서 항상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 눈물 흘림으로써 사탄으로부터 자신을 분립해야 했습니다. 그는 민족을 위해서 많은 기도를 했으며 나라를 위해서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한 조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울 수 있었으며, 수많은 후손이 번성하도록 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축복하셨던 것은 그와 같은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복귀의 공식을 거쳐나온 야곱과 모세

야곱은 집을 떠나 하란으로 가서 종과 같이 지냈습니다. 그는 삼촌 라반으로부터 속임을 당했습니다. 그의 삼촌은 그가 원했던 라헬 대신 레아를 주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취하게 되자, 그곳을 도망쳐 나와 집으로 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21년에 걸친 어려움의 터전 위에서, 비로소 하나님은 그를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라반은 그를 열 번이나 속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고생을 겪음으로써, 그는 하란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를 속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천사와 씨름하였던 그의 행동은 그가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되었던 사탄에 대항해 싸운 행동이었습니다.

똑같은 일이 모세에게도 있었습니다. 바로 궁전에서 40년을 보낸 후, 모세는 모든 영광과 부를 버리고 자신을 사탄의 세계로부터 분립해야 했습니다. 그는 조국을 위해 자기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희생하려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공식을 거쳐 나왔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위대한 점과 그가 가진 메시아관의 한계점

예수님을 살펴보기에 앞서, 세례 요한을 살펴봅시다. 세례 요한은 광야로 인도되었습니다. 즉, 그는 집을 떠나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분립해서 광야로 나가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지냈던 것입니다. 그는 오실 메시아, 하나님, 그의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것이 그가 자기보다 앞서 왔던 선지자들과 다른 점입니다. 그는 메시아가 온 세계를 통치하실 것을 소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기도할 때는 남다른 의미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나라를 위하여 눈물 흘렸고, 유대 민족이 사탄세계를 다스리기 위해 오시기를 바랐던 메시아가 오시기를 바라며 눈물을 흘렸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울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그는 선지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선지자들은 오시는 메시아를 맞이할 수 없었지만 세례 요한은 오시는 메시아를 위해 그의 갈 길을 곧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오실 분을 위해 기도를 하지 못했지만, 세례 요한은 그분을 위해 기도하고 그분을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그가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 자신의 나라의 통치자를 위하여 기도를 했지만, 반면에 예수님은 전세계의 통치자로 오셨던 것입니다. 요한의 관점은 하나님의 심정과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던 시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요한의 메시아관은 자기 나라를 위한 메시아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메시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오실 것이라고 꿈꾸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가 이스라엘 민족의 규칙이었던 모세의 율법을 지킬 것으로 기대 했지만, 예수가 그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세계를 구하려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시야는 더 넓었으며, 요한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시야에는 하나의 국가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서로 다른 길로 가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를 반대했던 이스라엘 민족 편에 서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죽음을 자초하였습니다.

만일 그가 예수님 편에 서서 예수님과 하나되었더라면, 그는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을 것이며, 따라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사도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세례 요한의 추종자들과 그리고 세례 요한을 모든 선지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믿었던 온 민족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알겠어요?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목적을 몰랐던 이스라엘 민족

선민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으로부터 분립되어서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온 모든 사람들을 다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선민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시민이 되어서, 선택받은 국가가 건설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는 그런 선별된 민족,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그런 민족 가운데 오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만일, 그 민족이 예수를 영접하여 예수와 그 민족이 분립된 국가를 형성하였더라면, 구원섭리는 모든 인류에게로 확대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분립된 국가는 아벨이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랬듯이, 다른 타락한 나라와 하나님을 위해서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그들을 위해서 자신들을 희생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오시면 예수님은 그 나라의 주권을 가지고, 그들은 그 통치권 밑에서 영육 양면으로 풍족한 축복을 받아서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전세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소망했던 것입니다. 하나의 국가만이 아니라 전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구세주를 보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에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 22:37-39)'는 귀절을 읽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 각자가 남을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아벨과 같은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전세계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첫째 계명이요, 이웃인 전세계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이 둘째 계명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희생하는 사람이 이긴다

여기서 공식을 한번 더 반복해 봅시다. 사탄으로부터 자신을 분립하여 사탄을 이겨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여러분의 이웃과 형제와 전세계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여러분을 희생시키려고 하시는 그 심정을 체휼해야 합니다. 이 삼단계가 하나님의 공식입니다.

이 땅의 위인과 성인 또는 성자들은 그들이 속하여 있던 타락세계로부터 자신을 분립했고, 어떤 새로운 것을 주장하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그들 자신을 희생하여, 온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그들을 구원하려고 애썼습니다. 항상 그들은 하나님을 갈망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그들은 지금까지 설명해 나온 그와 같은 노정을 걸어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 공자, 석가 그리고 마호메트 이 4대 성인들도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동경하고 인류를 사랑했기 때문에 인간들을 위해서 역경과 박해를 헤쳐 나갔습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예를 들어 봅시다. 열 명의 친구가 있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그 친구들이 자기를 위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의 이기주의 때문에 친구들은 모두 도망을 가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사람이 자기를 부정하고, 친구들에게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어하고, 더 큰 가치가 있는 것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한다면, 그들은 자연적으로 그에게 끌려 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열 친구들은 그를 그들의 친척과 그들의 이웃에게 데려가 소개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무리는 점점 숫자가 불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하나님도 그러한 무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무리와 함께하시며, 그런 무리를 위하여 존재하고 계십니다. 좁은 소견으로 보면 남에게 봉사하고 남을 위한다는 것이 어리석게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어떤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그는 중심의 자리에 서게 될 것이고, 사람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들게 될 것입니다. 그는 그 단체의 중심이요 핵심이 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게 될 것이고, 또한 그에게 그들의 생명을 구해 주고, 이끌어 주고, 주관해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의 주관을 받고 싶어할 것이고, 그의 지도를 받고 싶어할 것입니다. 만일 나라의 지도자들이 그렇게 한다면, 그 국민들은 무릎을 꿇고 그들을 주관해 줄 것을 빌 것입니다.

그들은 그러한 사람들로부터 기꺼이 지배받고 싶어할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공식에 입각한 개인이나 단체 또는 국가는 존재할 것이지만, 그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은 사라질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자유 민주주의 세계에 만연되고 있는 개인주의적인 사상은 그러한 점에서 위험한 것입니다. 이러한 공식에 근거해 볼 때,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이 공식과는 다릅니다.

생명을 걸고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라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여러분이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또한 사람들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속 깊이 바라시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셨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그의 자세는 아버지만을 사랑하는 아들의 자세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원수조차도 사랑했으며, 그를 위하여 기도까지 하였습니다. 역사상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것은 곧 전인류를 사랑하였다는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

그 점이 예수님을 위대하게 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예수의 친구, 혹은 예수의 신부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를 여러분의 아버지로 모실 수 있고, 그가 가졌던 모든 것을 여러분이 가지게 됩니다.

이제 결론을 내려 봅시다.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자는 어리석은 자들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은 자인 것입니다.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자가 현명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전세계를 소유할 수 있고 하나님과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서게 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상속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모든 것을 소유함으로써, 여러분은 모든 사람들 중에서 최고의 부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이상, 그리고 인간의 목적을 소유한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사랑으로, 참사랑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통치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여러분은 삼 단계의 공식을 기억해야 됩니다. 즉, 사탄으로부터 자신을 분립시킨 후에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들어와서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이 삼단계 공식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할 때에도, 여러분 자신만을 위해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전세계를 구할 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인류를 위해,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결혼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망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기도를 할 때에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렇게 할 때, 그 결과는 여러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와 통일교회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명을 희생시켜 캐나다와 세계를 구원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길 바랍니다.

문:우리가 사탄세계에 있을 때, 어떻게 사탄으로부터 자신을 분립할 수 있습니까?

분립에는 삼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탄의 환경으로부터 여러분 자신을 분립해야 하고, 둘째는 사탄으로부터 여러분의 몸이 분립되어야 하고, 세째는 사탄으로부터 여러분의 심정(사랑)이 분립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의 심정이 하나님과 통해야지 사탄세계와 통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물질로써 하나님께 나아갔고, 신약시대에는 우리의 몸을 제물로 해서, 우리의 몸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만, 마지막에는 심정(사랑)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삼단계를 통과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육신적인 부모의 환경을 끊어야 하고, 그리고 심지어 타락된 남편과 아내의 관계까지도 끊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알았으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복귀섭리를 하고 계시는가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원리에 의해서 복귀섭리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섭리를 시작하신 심정적 동기

​우리 조상들의 타락 때문에, 우리도 타락한 입장에 떨어지게 되었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 아담 해와, 그리고 천사장은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나되지 못한 세계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 세계가 만들어지게 된 동기는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동기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아담, 해와, 천사장이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 천사장을 내쫓았습니다. 이때, 쫓겨난 그들은 분명히 슬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더욱 슬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 곁을 떠나게 되었고, 그것이 인류역사의 출발이었습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더라면, 그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은 슬픔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아담 해와는 돌아갈 희망도 없이 하나님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희망마저 없게 되었을 때 그들의 슬픔은 얼마나 컸겠어요? 또한 크나큰 곤경에 처한 그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어떠했겠어요?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영원히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을 복귀할수 있는 희망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처한 하나님의 슬픔이 얼마나 컸겠어요?

하나님에게 있어서 아담과 해와는 귀중한 아들과 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아담 해와가 원수 사탄 때문에 쫓겨나서 사탄의 자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도 그들을 구할 수 없게 되었으며, 천사도 그들을 구할수 없습니다. 누가 그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은 아담 해와의 부모였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해 주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는 위치에 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아픔은 더욱 컸던 것입니다.

만일 거기에 타락하지 않은 또다른 아들 혹은 딸이 있어서, 이 아들이 하나님께 나아가서 타락한 형제자매를 에덴 동산에서 내쫓거나 벌주지 말고 그들을 구해 달라고 했더라면, 하나님이 그 아들에 대해 어떻게 느꼈겠어요? 그 타락한 한 쌍의 남자와 여자를 용서해 달라고 하는 그러한 형제가 거기에 있었더라면,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할 마음을 가지셨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심정이 타락인간을 구원하시려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아벨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 서려면

원리에서 우리는 가인과 아벨의 문제를 가르칩니다. 가인을 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벨이 있어야 됩니다. 이 아벨을 하나님께 자기를 생각해서 타락한 아담과 해와를 용서해 주시도록 간구해야 할 타락하지 않은 형제의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사탄의 타락권을 빠져나와야 합니다. 아벨이 사탄의 손에서 빠져나오면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사탄세계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아벨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아담 해와, 그리고 가인을 구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을 희생해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에 있어서 중심적인 원리가 됩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 곁을 떠났을 때, 그들은 슬픔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것은 가인의 심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은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잃었을 때의 심정을 생각하면서,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와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위해서 희망의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복귀섭리에 있어서 중심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노아가 섰던 자리

가인과 아벨 이후에, 하나님은 노아에게서 희망을 찾았습니다. 오랫동안 노아는 방주 지을 생각만 하면서, 그 일을 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여러분은 십 년을 그런 남편과 참고 살수 있는 여자가 있을 것 같아요? 미국인 아내는 남편이 6개월만 어디 다른 데 가 있어도 이혼소송을 제기할 것입니다. 노아의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이래로 가장 큰 사건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만일 그의 아내가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다면, 아이들도 그녀와 똑같이 아버지를 멸시했을 것입니다. 가족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할 때, 노아의 심정은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어요?

이것 때문에 노아는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가족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부탁했을 때, 그들은 노아를 마치 거지처럼 대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나 민족으로부터 오는 박해 등 집 밖으로부터 오는 박해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로부터 오는 고통과 핍박은 견디기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그러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자기의 일을 끝까지 해내야 했습니다.

노아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크나큰 확신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노아의 삶은 핍박과 반대로 가득찬 생활이었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모든 것은 버릴수 있더라도, 하나님만은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은 노아가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위로부터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심정은 점점 더 깊어 갔습니다. 그는 주위 환경과 사람들로부터 분립되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분립되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수 있는 자리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만일 노아가 그를 핍박했던 사람들을 배척했더라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를 핍박했던 사람들을 위해서 그는 자신을 희생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고통당하게 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하나님에게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는 타락한 형제자매를 용서해 주도록 하나님께 부탁드리고, 그들을 위해서 기꺼이 모든 어려움을 감당하는 타락하지 않은 형제의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노아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노아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복귀섭리를 계속하실 수 있었습니다. 완전한 자기부정의 자리, 그것이 노아가 섰던 자리였습니다.

아벨이 가야 할 길을 걸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아브라함 역시 같은 노정을 걸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조상들의 땅으로부터 떠나라는 명령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장래의 어떤 보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 집시처럼 낯선 땅으로 갔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가지 않겠다고 했더라면, 복귀섭리는 진전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자기 집과 고향, 혹은 자기 친척을 버리고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더라면, 복귀섭리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좋은 환경을 버리고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계속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집을 떠난 아브라함이 더 많은 고통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나님은 그를 더욱 사랑하셨습니다. 그러한 어려움에 처하여 있으면서도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아픈 심정을 위로해 드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타락한 아담 해와를 위해서 고통을 당했지만, 자기 희생을 통해서 그들을 복귀시킬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낯선 땅으로 인도하시고, 큰 어려움 가운데 두셨던 것입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항상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타락한 사람들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그의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땅위의 모래알처럼 번성케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삭 또한 같은 노정을 걸어갔습니다. 이삭이 태어날 때 아브라함은 나이가 100살이나 되었지만, 사랑하는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데 주저 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 즉 사탄과 분립된 자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런 아들까지도 바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그의 자식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것을 거절했더라면, 복귀섭리에 어떤 일이 일어났겠어요? 이삭도 그의 아버지가 그를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을 때 아무 반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용서받을 수 있는 희생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야곱도 같은 노정을 걸었습니다. 야곱은 형으로부터 장자권을 샀고, 후에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는 하란땅으로 가서 외삼촌집에서 21년 동안 종처럼 일했습니다. 외삼촌은 그에게 라헬을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7년 후에 야곱을 속여 레아를 주었습니다. 여러분 같았으면 대번에 달려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무 소리 않고 또 7년을 더 일하여서 결국 라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외삼촌 라반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야곱을 속였습니다. 그래도 야곱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야곱이 가장 외로운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지만, 더 많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21년 후에는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모든 것을 도로 찾아서 가나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의 모든 종들과 재산을 형 에서에게 주리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벌어 모았던 모든 것을 형 에서에게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형 에서를 벌하지 말고 자기에게 축복하신 것처럼 형을 축복해 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해서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에서도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았습니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원리의 길을 걸은 모세와 세례 요한

모세도 같은 원리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궁중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자기 형제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서는 바로궁전을 떠났습니다. 그는 자기 동포를 친 애급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 애급 사람은 사탄을 상징했고, 모세도 그런 마음으로 그를 죽였습니다. 유대 민족은 타락한 아담 해와와 같았습니다. 타락하지 않은 형제가 하나님께 아담 해와의 용서를 구해야 했던 것과 같이, 모세도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구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구하려고 노력하는 모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핍박했으며 미디안 광야로 내쫓았습니다. 거기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그리워했고, 하나님을 사랑했고, 자기 민족을 구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이 모세를 택하셔서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구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모세도 같은 노정을 갔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세례 요한을 생각해 보세요. 그는 친척들이 있는 고향을 떠나 광야에서 30년을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타락하지 않은 형제가 그러해야 하는 것과 같이 타락한 형제를 구하기를 바라면서, 집을 나와 광야로 갔습니다.

성경에는 세례 요한이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의 그의 생활은 힘들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가 단지 메뚜기와 석청만으로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에 가 보면, 그 곳이 석청이 많이 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집저집 문전을 전전하며 걸식하는 거지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줄줄 따라다니고…. 하지만 그의 마음은 메시아의 강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 메시아의 강림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생활이 하나님의 동정을 얻게 되었고, 그는 메시아를 증거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아담이 되신 예수

예수도 같은 노정을 걸었습니다. 유대민족은 2천년 동안 메시아를 기다려 왔습니다. 만일 유대민족이 예수를 알아보았더라면, 그들은 그를 따랐을 것입니다. 예수에게 와서 예수와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고대했으며,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와 같은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다른 민족과는 분립되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처럼,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와 하나되어 이러한 하나의 주권국가를 이루어서, 전세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에 로마제국은 쇠퇴해 가고 있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과 아랍 여러 나라가 하나되었더라면, 그들은 로마제국을 쳐부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제국을 정복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룰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 민족이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는 홀로 국가와 세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예수는 가족을 떠나야 했고, 외롭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결국 그는, 타락한 아담 해와의 구원을 위해 타락하지 않은 형제가 희생해야 했듯이, 남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타락한 아담 해와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제물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그들을 축복해 주시도록 청을 드리고 빌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하나님과 타락한 아담과 해와 사이에 중보자로 섰던 것입니다. 예수는 타락하지 않은 아담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전세계 인류의 구원을 위한 공식적인 길을 갔습니다. 그래서, 그-그를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는-는 대표적인 아담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벨들이 가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복귀섭리는 진전돼

예수로부터 새로운 구원의 세계가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기독교인들도 예수와 같은 노정을 거쳤습니다. 기독교가 다른 나라에 전파되게 되면 언제든지 처음으로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온갖 수모를 당해야 하고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그때 죽은 사람들은 세상과 사탄으로부터 분립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수 있고,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자신들을 죽이는 사람들을 저주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더라면, 복귀섭리는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도 그들은 자기들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런 마음이 없었더라면 기독교는 발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타락한 형제자매의 고통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괴로운 심정을 위로해 줄 수 있는 타락하지 않은 형제가 하나라도 나오게 된다면, 하나님이 타락한 아담 해와를 용서해 주시려는 심정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그런 일이 계속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우리는 예수로부터 남겨진 모든 조건들을 탕감해야 합니다. 예수가 박해를 받고 십자가에서 돌아갔기 때문에 재림주님은 십자가로부터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복귀섭리사의 정점이 된 1960년

복귀섭리에 있어서 최고점, 정점은 1960년에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모든 교회로부터 그리고 우리의 식구들로부터도 박해를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던 것입니다.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불려다니기도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선생님은 36쌍을 축복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선생님은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처지였습니다. 그때는 통일교회가 살아남느냐 망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어려움들을 뚫고 나가면서 성혼식을 거행했습니다. 그 시점에서 새역사가 출발하였습니다. 그때는 역사의 전환점이었습니다. 많은 역사가들이 1960년은 역사의 전환점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 문제를 풀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7년노정 이후에는 확고한 기반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제1차 7년노정 동안에 선생님은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그리고 하나님의 날을 선포하였습니다. 또한 36가정, 72가정, 124가정, 430가정을 축복하였습니다. 1965년에는 40개 국가에 120개 성지를 정했습니다.

섭리에 따라 선생님이 그러한 조건을 세움으로써, 역사는 우리의 활동을 따라 방향을 전환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1차 7년노정은 선생님의 가정을 희생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세계 구원을 위해서 선생님의 가정을 희생했습니다. 그때는 가정적 차원에서 공식노정을 완성하는 시기였습니다.

축복가정 부인 3년 동원의 의의

우리는 지금 제2차 7년노정 가운데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축복 가정들이 그러한 어려움을 통과해야 합니다. 세계의 구원을 위해서 그들이 자기 가정을 희생해야 합니다. 제1차 7년노정 동안에 선생님은 믿음의 자녀들을 구하기 위해서 선생님의 가정을 희생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국가를 구하게 되면, 그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또한 희생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2차 7년노정과 국가의 운명은 동일합니다. 이 노정은 장성기에 해당되고 예수님 시대에도 해당됩니다.

이 7년노정 안에 우리는 국가, 국민, 그리고 기성교회들을 우리의 운동과 하나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가 3년 공생애 노정을 걸었듯이, 3년 안에 이루어야 합니다. 1970년에서 1972년까지가 이 3년 기간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축복가정 부인들을 일선에 내보냈습니다. 그것은 예수가 그의 사명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아내를 맞이할 수 없었고, 가정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서. 부인들이 가정을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신부가 찾아지고, 가정이 예수와 하나되었더라면, 유대나라와 유대교도 그와 하나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970년에서 1972년까지의 3년노정이 그것을 탕감하기 위한 기간입니다.

지금이 복귀역사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때

유대민족은 남과 북으로 국가가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한국도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 둘은 가인과 아벨같이 싸우고 있습니다. 북쪽이 가인이고, 남쪽이 아벨입니다. 북한의 독재자 김일성은 지독한 공산주의자입니다. 그가 가장 지독한 공산주의자라는 것은 전세계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악은 하나님이 이루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이상형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북한 김일성이가 가장 철저한 공산주의자입니다. 그는 북한 동포들 앞에서 '아버지'라고 자칭하고 있고, 그들도 그를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통일교회 식구들이 선생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지금 거짓 아버지와 참 아버지가 서로 맞서 있습니다.

사탄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참 아버지와 국가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타락한 아담과 해와, 타락한 부모는 그들의 자식인 가인과 아벨, 이 둘이 하나가 되면 그들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국가와 교회가 하나될 때, 참부모가 거짓 부모를 주관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이것을 위해 싸우고 있으며, 1972년까지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1972년부터는 우리의 노정이 평탄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복귀역사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때입니다.

제3차 세계순회도 큰 의의가 있어

1971년, 올해는 그 7년노정의 중간 해입니다. 이해에 선생님은 제3차세계 순회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을 떠나서 일본에 갔다가 캐나다를 들러서 미국에 왔습니다. 여기에 오기까지 많은 장애물과 싸워야 했습니다만, 지금부터는 그러한 어려움들이 차츰 줄어질 것입니다.

캐나다는 미국에 대해 해와의 자리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캐나다는 해와의 자리에 있는 영국의 연장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한국에서 싸워 얻은 승리적인 기반을 일본, 캐나다, 그리고 미국에 연결시켜 주려고 합니다. 선생님은 캐나다를 거쳐서 미국으로 오게 되었는데, 캐나다가 미국에 대해 해와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미국에다가 그 승리적 기반을 연결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사탄은 그것을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던 것입니다. 여기에 오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또한, 미국무성도 그냥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그러한 조건들을 타파함으로써, 하늘이 한국에서 복귀한 그 승리의 기반을 여러분이 상속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 다음에는 독일로 갈 것입니다. 그것도 문제라구요. 영국을 거쳐서 가야 합니다. 그것이 성공되면 그러한 조건들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계와 민주세계가 하나님의 섭리를 박해한 결과

복귀섭리는 공식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공식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예수와 유대민족이 건설해야만 했었던 그런 국가를 원하고 있습니다. 만일 한국이 그러한 국가라면, 남과 북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한국은 아담국가가 됩니다.

한국이 2차 대전 후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미군정이 들어섰습니다. 만일 그때 기독교가 선생님을 받아들였더라면, 기독교와 선생님과 미국이 하나됨으로써 세계 복귀가 급속하게 진전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기독교 교파들이 미국에서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선생님과 하나되었더라면, 미국에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도 선생님과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을 하나로 만드는 데에도 아무 어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단번에 개인, 가정, 종족, 국가, 그리고 세계가 복귀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더라면 공산주의 세력이 지금처럼 팽창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로부터 핍박을 받고 배척을 당함로써, 선생님은 뒤로 돌아서서 개인에서부터 시작해서 가정, 종족, 그리고 국가로 차례차례 복귀해 나와야 했습니다.

개인에 있어서도 가인 아벨이 있고, 가정에도 가인 아벨이 있으며, 종족간에도 국가간에도 가인과 아벨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모든 것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싸워 왔습니다. 세계도 역시 가인과 아벨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공산주의가 세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1950년에 중공은 유엔으로부터 침략자, 평화의 파괴자로 비난받았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중공은 유엔의 회원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안전보장이사회의 이사국까지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어요? 민주세계, 기독교세계가 선생님을 배척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탄에게 그러한 힘을 주어야 했습니다. 과거 20년간 민주와 공산세계 사이의 싸움을 봐 왔습니다. 전세계가 침략자로 낙인을 찍었던 그 악한 국가가 올해 유엔의 최정상에 설 만큼 지금 지위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국가가 가장 강한 사탄의 힘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민주세계와 기독교계가 하나님의 섭리를 박해했기 때문에 일어난 불가피한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예수 한 사람을 죽임으로, 유대 민족은 2천년 동안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예수님 시대부터 내려온 유대민족의 모든 죄를 청산하기 위해서 2차 세계대전 동안 6백만 명이라는 엄청난 사람들이 대량 학살당했습니다. 그 후인 1948년에 비로소 이스라엘 민족이 독립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유엔으로부터 쫓겨난 자리에서 20년대에 최고 높은 자리까지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편도 20년내에 모든 박해를 받던 자리로부터 가장 높은 자리로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중공은 동양의 한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동양의 한 국가가 하나님편의 자리로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해

제3차 7년노정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20년 기간의 끝입니다. 우리는 지금 2차 7년노정의 중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간은 예수가 하나의 국가를 놓고 사탄과 싸웠던 기간과 맞먹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나라는 한국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아담 국가가 되면, 해와 국가와 천사장 국가도 있어야 됩니다.

만일 주님이 왔을 때 기독교가 그 주님을 반대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이 아담 국가, 영국이 해와 국가, 그리고 미국이 천사장 국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동시에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전쟁이 휴전되었을 때, 소련과 손잡은 국가가 해와 국가인 영국이었습니다. 미국도 지금 영국을 따라 소련의 작전에 말려들고 있습니다. 미국이 월남에서 병력을 철수시킴으로써 인도지나 반도를 소련에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아시아 문제에 대해 큰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편에 있어서는 한국이 아담, 일본이 해와, 자유중국이 천사장 국가입니다. 사탄편에 있어서는 북한이 아담, 중공이 해와, 그리고 소련이 천사장 국가가 됩니다. 그들은 지금 서로 맞서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문제가 이 나라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소련, 중공, 미국 그리고 일본이 서로 맞서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외적으로는 가까와진다고 하더라도 내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내적으로는 사탄세계와 민주세계 사이에는 여전히 많은 벽이 있습니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병력을 철수함에 따라서 미국은 일본과 사이가 멀어졌고, 한국과 자유중국과도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공이 유엔 회원국이 됨에 따라서 중공과 북한, 중공과 소련 그리고 소련과 북한의 사이도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하늘편 천사장 국가가 사탄편 해와 국가를 만나고 있습니다. 닉슨 대통령과 모택동과의 정상회담이 그것입니다. 만일 닉슨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면 미국은 중공으로부터 어떤 타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마치 타락한 해와가 아담을 끌어당겨 타락시킨 것과 같이, 중공이 유엔의 회원국이 된 것만으로도, 미국은 이미 한 대 얻어맞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미국은 적극적으로 나가지 못하고 자신을 잃고 멍해 있습니다.

닉슨이 중공에 간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겠나요? 여기서 그 결론을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여러분이 미국정부에 대해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그에 의해서 세계의 방향이 결정될 것입니다.

그 결과는 우리의 운동으로 인하여 바르게 되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의 나라가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비참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차 7년노정이 끝날 때까지 우리 교회는 국가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이산가족 찾기 운동이 역사상 처음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가족을 찾고 나면 하나의 나라를 복귀할 수 있기 때문에, 사탄과 하나님이 지금 가족을 찾기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에 판문점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하나님과 사탄이 대면하여 싸우는 지상의 유일한 장소입니다.

한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예수의 종족과 예수가 하나되어야 했고, 온유대교가 그들과 하나가 되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것을 복귀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분기점의 정상입니다. 그래서 올해 1천명 이상의 기성 교회 목사들을 초청하여 원리수련을 시켰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 았던 유대인들이 여전히 땅 위에 남아서 예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20년 노정 동안에 우리는 그것을 탕감해야 합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목사들을 초청했던 것입니다.

하늘편 해와 국가로 선택받은 일본

우리는 원래 하나님편이었는데, 그에게서 떨어져 나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도망쳐 나왔다가 지금 되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어떤 어려움 없이 우리가 도달해야 할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자리에 나아가기 위해서 모든 탕감조건을 치러야 합니다.

만일 이 기간에 선생님과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우리를 박해하는 모든 기독교인과 국가를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면, 이 섭리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께 우리 운동을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을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 했다면, 이 기회에 회개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용서해 주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한 사람 있어요?

그런 핍박은 좋은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의 박해가 도리어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리를 악으로부터 분립하게 해주었고, 하나되게 해준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 가서 우리는 공산주의자들까지도 구원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아담과 해와를 복귀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천사장이 해와를 말을 가지고 타락시켰기 때문에, 우리도 말씀을 가지고 천사장을 복귀시켜야 합니다. 즉, 우리는 자유세계 사람들은 사랑으로 구원하고 공산주의자들은 진리로 구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공산주의자와의 대화에서 지면 안 됩니다. 우리는 원리로 민주주의 세계와 싸우고 있고, 승공이론으로 공산주의 세계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리와 승공이론은 복귀의 두 기둥입니다.

한국이 아담 국가가 되면 어느 국가가 해와 국가가 돼요? 민주세계와 기독교계가 선생님을 핍박했기 때문에, 원수들 가운데서 해와를 택해야 됩니다. 그래서 한국의 원수이자 하나님의 섭리의 원수였던 일본이 선택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때 일본은 사탄편에 섰습니다. 해와로 택함 받기 위해 일본은 영국과 같은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두 나라가 다 섬나라입니다. 섬은 항상 대륙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와 국가입니다.

한국이 40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았지만, 지금은 선생님이 일본에 말씀을 전파해서, 일본을 통해서 아시아의 제반 문제를 조종하고 있습니다. 일본 통일교회와 국제승공연합을 통해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중국의 문제가 유엔에서 거론되었을 때, 후꾸다 일본 외무장관이 미국 정부와 협의하기 위해서 미국에 왔습니다. 그는 일본을 자유중국을 위한 공동 후원국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이 구보끼 협회장한테 후꾸다, 사또 수상 부처, 그리고 기시 전수상을 만나서 그렇게 하도록 설득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비밀리에 선생님은 일본 사람들과 같이 장개석 총통과 자유중국을 위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 일본, 자유중국은 같은 운명

한국, 일본, 그리고 자유중국은 같은 운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섭리는 아시아에서 세계로 뻗어가고 있습니다. 아시아를 중심삼고 보면 자유중국이 천사장 국가이지만, 천사장은 국가를 가질 수 없습니다. 자유중국은 유엔에서 축출되었기 때문에 국가를 잃어버린 자리에 있습니다. 그것은 천사장의 때가 끝이 온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 이 천사장 국가를 구해야 되겠어요? 해와가 해야 됩니다. 해와가 아담과 천사장을 타락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세에는 해와 국가가 아담 국가와 천사장 국가를 복귀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한국과 자유중국이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이들 나라는 지금 타락 당시의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에 서 있습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와 국가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아담의 주관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천사장 국가는 해와 국가의 주관을 받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 나라가 분리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결합하기 위해서는 한국 통일교회와 일본 통일교회가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큰 세력들이 가까워지면, 내부가 분열됩니다. 그러나 하늘 국가의 내부는 결합될 것입니다.

일본은 지금 미국이 한 것처럼 중공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막아야 합니다. 일본의 정부와 모든 정당, 그리고 모든 국민이 중공의 유엔 가입을 지지했습니다. 우리 교회와 국제승공연합만이 유일하게 이것을 반대했습니다. 일본 국민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운동은 미친 짓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악과 분리되면서 앞으로 전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중국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호소를 했습니다. 일본 식구들은 거리에서 7일간 금식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금식하는 것을 보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지나감에 따라서 사람들은 달리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많은 동조자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천사장은 해와가 구원해야

아시아의 천사장 국가를 구해야 하는 국가는 세계의 천사장 국가입니다. 그래서 구보끼 협회장이 미국에 와서 유엔에서 자유중국을 구하기 위해서 우리 식구들과 같이 금식을 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얼마나 많은 식구들이 금식하기 위해 뉴욕에 갔었어요? 여러분은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을 가지고 했어요? 일본에서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유중국을 위한 우리의 책임을 다한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자유중국을 위한 우리의 책임을 다한 것입니다.

천사장 국가는 원래 하나가 되었어야 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셋으로 쪼개져 있습니다. 자유중국은 아시아에서의 천사장 국가이고, 미국은 민주 세계에서의 천사장 국가이며, 그리고 독일은 세계적인 천사장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천사장 국가는 둘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즉, 자유중국과 중공, 민주주의 세계를 대표하는 미국과 공산주의 세계를 대표하는 소련, 동독과 서독입니다. 만일 미국 사람들이 그들의 책임분담을 다할수 없게 된다면, 그들의 나라도 역시 둘로 갈라질 것입니다.

공산주의 세력을 막는 방법

여러분은 흑백간의 갈등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관계가 좋아진 이래, 공산주의자들이 들어와 흑인들을 통해서 그들의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만일 소련이 미국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그들이 이곳에서 기반을 닦는 것은 대단히 쉬울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것을 대단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마침내 미국을 구하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싸워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아 있는 하나의 방법은 미국에 있는 기성교회들을 재정비하여 우리의 운동과 하나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흑인과 백인 사이의 싸움을 막고 미국에 침투하는 공산주의 세력을 막는 방법입니다. 그럴 수 있을것 같아요? 핍박을 받더라도, 여러분은 미국 사람들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미국에는 흑인, 백인 그리고 황인종 등 모든 인종이 다 모였습니다. 가인, 아벨, 그리고 셋의 후손들입니다. 가인, 아벨, 그리고 셋의 싸움으로 인하여 이 세계가 요 모양 요 꼴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평화로운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민족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 그들을 하나되게 할 수 있어요? 그것은 재림주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선생님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미국의 주요 도시들에서 대중 집회를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몇 개의 도시에서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여러분의 나라를 위해 유익할 것입니다. 그러한 계획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해요?

이번의 대중집회는 공적 말씀선포노정의 첫출발

선생님이 그러한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탄이 선생님을 막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장애물들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일본을 거쳐서 왔습니다만 원래는 미국에 직접 올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말씀도 없었고 집회도 없었습니다.

만일 이번에 대중 집회를 열게 된다면, 그것은 선생님의 생전에 처음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번 방문의 중요성은 나중에 말 해줄 것입니다. 선생님은 적어도 7개 도시에서 이러한 집회를 가질 계획입니다. 각 도시에서 3일간씩 해서 21일이 걸리게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것을 원한다면, 계획을 세우라구요. 여러분이 계획을 안 세우면, 선생님이 직접 세울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공적으로 말씀을 선포하는 노정의 첫출발입니다.

여러분이 이 계획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반대 혹은 핍박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라디오와 신문을 이용하라구요. 그래서 여러분이 각 도시의 세부 계획과 일정을 세우면, 선생님이 말씀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또한 독일과 영국에서도 집회를 개최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에게 이것은 큰 사건입니다. 선생님에게는 이것이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이번이 3차 세계 순회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직접 말씀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 날을 기다려 왔습니다.

선생님이 영어를 잘하면 직접 말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통역관을 통해서 생각을 전달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선생님이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은, 학교에 다닐 때 영어 공부를 많이 못해서 그렇습니다. 중학교 때에는 한 학년 동안에 영어 시간이 15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던 2차대전 때였습니다. 지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데 참 어렵습니다.

같은 공식적 복귀노정을 걸은 일본 식구들

일본에서도 똑같은 공식적인 복귀노정을 걸었습니다. 식구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들을 세상 사람들로부터 분립하게 하고, 박해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 식구들이 유엔 건물 앞에서 금식을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일본에서도 그랬습니다.

지금 자유중국과 일본의 국제승공연합이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자유 중국 혼자서는 어떤 나라와도 맞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승공연합이 그 일을 한 것입니다. 한국, 일본, 그리고 자유중국에서 우리는 영적인 승공운동으로 서로 결속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자유중국 국민들을 승공사상으로 무장시킬 때, 한국 정부도 한국 국민에 대해 사상무장을 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일본과 자유중국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본 통일교회는 이 일을 위해 많은 독자적인 임무를 맡아서 하고 있으며, 1970년에서 1972년까지의 3년간을 경제적인 활동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해와편 국가가 한국에서 이루어진 승리적 기반을 이어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700가정의 부인들을 동원해서 지방으로 보냈습니다. 이들 부인들을 통해서 일본식구들이 선생님과 영적으로 하나되었으며,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승리의 기반을 상속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그 축복가정 부인들은 한국 축복가정 부인들이 간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사탄편을 굴복시키려면 하늘편 사람들이 강력히 결속해야

우리는 일본과 자유중국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닉슨과 모택동 간의 회담은 역사가 하늘편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사탄편으로 갈 것이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입니다. 김일성은 1972년 4월이면 60이 됩니다. 60은 사탄의 완성수입니다. 그래서 김일성이에게도 이 수가 최정상이 되는 것입니다. 북한이 남침을 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 하는 것이 결정될 것입니다.

북한 공산당과 주민들이 김일성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결속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남침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 식구들과 축복가정들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더욱 강력하게 결속되어야 합니다. 우리편이 결속되어서 사탄편을 능가한다면 그들은 침략할 수 없습니다. 한국 식구들은 지금 그것을 막기 위해서 헌신적으로 특별 정성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자들이 김일성이와 결속되어 있는 것 이상으로, 여러분 미국 식구들이 강력하게 선생님과 결속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식구들이 사탄편 사람들보다 더욱 강력하게 결속됨으로써, 하늘편이 공산주의 국가를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국가가 없습니다. 국가가 없으므로 우리는 항상 사탄주권으로부터 공격을 받기가 쉽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의 국가를 복귀한다면, 우리는 모든 국가에 사절단을 파견하여 전세계를 순간적으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파견하게 될 사절단과 통일교회가 하나되어진다면, 아벨 그룹 혹은 아벨권이 우리 나라에서 형성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 복귀는 몇년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선생님과 하나되어지는 것입니다.

777쌍 합동결혼식도 3차 세계순회를 준비하기 위한 것

작년에 한국에서 10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777쌍 합동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번의 3차 세계순회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한국에서 닦여진 기반을 그러한 나라들에 연결시키기 위한 것이고, 그 기반을 다른 국가들에 횡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축복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한국으로 와야 했던 것입니다. 이미 선생님이 설명했듯이, 복귀섭리는 원리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계의 그 축복가정들은 무엇을 해야 되겠어요? 그들이 선생님의 말씀을 따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마구 몰아댈 것입니다. 여러분은 공식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7년 노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가정에서 가야 할 노정이 아닙니다. 세계를 대표하는 자리에서 가야 할 노정입니다.

그것이 미국에서 수행되겠어요? 그것은 가장 어려운 처소에서 수행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모든 가정들의 일이 아니라 몇몇 축복가정들이 맡아야 할 일입니다. 이런 가정들이 역사에 남아지는 가정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그런 가정이 나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인들을 내몰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요?

언제라도 한번 여러분의 가정이 세계의 구원을 위해서 책임을 져 본적이 있었어요? 지금 하나님편과 사탄편이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한 가정이라도 하나님편에 들어오게 되면, 그만큼 하나님편이 더 많아지게 됩니다. 지금이 그렇게 심각한 때입니다.

우리는 세계를 구해야 합니다. 1974년까지 120개국에 선교사를 파송해야 합니다. 이것은 꼭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120개 성지를 정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2차 7년노정 동안에 그러한 것들을 이루어야 합니다. 누가 파송되겠어요? 축복가정을 보내게 되면, 박해가 덜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식구들보다는 축복가정들을 보내야 되겠다고 선생님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합당한 축복가정이 없으면, 그 나라에서 태어난 부모나 조부모가 있다든지 해서 그 나라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식구를 선발할 것입니다. 그 나라와 어떤 혈통적 관계를 맺고 있는 식구가 있으면, 그 식구를 파송할 것입니다.

세계복귀의 책임이 우리의 어깨에 걸려 있다

3차 7년노정에 들어서면, 우리는 이들 120개국을 기반으로 해서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2차 7년노정 동안에 3차 7년노정을 준비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지금 세계적인 부흥단을 조직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 부흥단은 일본, 한국, 중국, 미국, 독일, 영국, 그리고 프랑스의 7개국 식구로 구성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재정적인 기반을 갖추어야 합니다. 적어도 7년 동안은 그 세계적인 부흥운동을 계속해야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려면 7백만 달러가 필요합니다.

1980년대에 가면 우리 통일교회는 1970대와는 다른 차원에 올라설 것입니다. 지금 같은 조그만 집단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은 그런 1980년대를 위해서 준비하는 때입니다. 출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세계 복귀를 위한 책임이 우리의 어깨에 걸려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완수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영계에 가서라도 그것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해낼 수 있겠어요? 모든 미국의 남자 식구들은 각자가 예수의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의 종족을 구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여자들은 자신을 예수의 신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종족을 구원해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는 여러분이 축복받을 때에 여러분의 종족을 모두 데려와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축복받을 자격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결혼식이 있게 되면, 모든 친척들이 그 신랑 신부를 축복하기 위해 찾아오잖아요? 우리의 축복은 더 많은 친구들과 친척들이 찾아오는 더욱 나은 분위기 가운데서 더욱더 창조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지금과 같은 섭리의 때는 역사에 있어서 한 번밖에 오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에게서도 직접 지시를 받고, 선생님의 심정 가운데서 활동할 수 있는 때가 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이런 기회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만일 선생님이 전세계 복귀를 위한 책임을 진 사람이라면, 여러분의 모든 조상은 선생님에게 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여러분의 종족을 대표하도록 선택받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선조들이 모두 여러분에게 협조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행동과 여러분의 사명 성취 여부가 여러분의 조상들-산 조상이든 죽은 조상이든-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여러분의 후손들에게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지극히 심각한 자리에 서 있음을 명심하라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선생님이 가는 길을 가지 않으면, 즉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여러분의 조상들, 친척들, 그리고 후손들이 여러분을 참소할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여러분이 얼마나 심각한 자리에 서 있는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조상보다도 더욱 심각해야 하며,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어떠한 목사나 기독교인보다도 뛰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의 후손들이 따르기를 열망할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가 무서운 자리인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면, 우리가 아담 해와를 참소하는 것처럼 우리의 후손, 친척, 그리고 조상들이 우리를 참소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얼마나 오래 살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이런 시간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여러분은 이 시간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두고 심각해야 되겠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러 갔을 때의 예수가 이처럼 심각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보다 더 심각해야 됩니다. 예수는 십자가를 질 것을 결심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십자가를 지겠다고 결심을 해야 할 때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바라는 그 기준을 성취하지 못하고 영계에 간다면, 여러분은 영계에서 선생님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더구나 영계는 영원한 세계입니다.

이 지상에서의 삶은 길지 않지만, 이 짧은 기간 동안에 여러분이 한것에 따라서 영계에서의 여러분의 자리가 결정됩니다. 순교를 당했던 기독교인들이 영계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면서 '만일 자기들이 지금 이땅에 태어난다면 선생님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하겠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영계에 가면, 그들이 여러분을 참소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으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선생님은 이 모든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선생님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런 생애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친구, 친척, 혹은 부모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들을 기꺼이 제물로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그 이상을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으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을 바치라고 하면, 바칠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선생님은 일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부모도 버릴 수 있고 아내와 자식도 버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재의 심정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노정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헌신적인 추종자라면, 선생님에게서 이러한 사상을 상속받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자녀라면, 세계를 구원하고 지상에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그런 사상을 상속받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 선생님은 땅 위의 어느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누구에게 진다는 생각은 결코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결정됩니다. 옛날에 기적이 일어났듯이, 지금 여기서도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원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듯이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통해 하나될 때, 번식이 일어납니다. 그러한 수수작용은 선생님이 살아 있는 동안에 절정에 달해야 합니다. 그 시기가 이번 7년노정인 것입니다. 이것은 2차 7년노정 3차 7년노정까지 연결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정보다 국가와 세계를 더 생각해야 할 때

지금은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보다 국가와 세계를 더 사랑해야 할 때입니다. 이번 기간에 여러분이 세계보다 여러분끼리만 더 사랑하고, 세계를 무시한다면, 영계에 가서는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입니다. 영계에 가면, 여러분 모두는 선생님을 만나러 선생님이 있는 곳에 오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때 선생님은 원리에 따라서 여러분을 만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원리에 합당한지 아니한지를 선생님이 판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기간은 여러분이 전심전력을 다해서 헌신해야할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모임을 갖고 계획을 짜고 하는 이때에는 여러분은 만사를 제쳐놓고서라도 여기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는 여러분이 미국이나 세계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앞으로 선생님이 계획한 일이 있으면, 여러분을 거기에 참석시킬 것입니다.

선생님이 전에 설명한 공식이 여러분에게 적용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정이 핍박을 그치고 여러분과 하나되게 되면, 여러분은 여러분을 핍박하던 다른 가정들과도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런 방법으로 여러분이 공식을 통해서 갈 수 있습니다.

섭리를 생각하면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여러분이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희망의 눈물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과 모든 성인들, 그리고 모든 기독교인들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는가를 생각해 보면, 여러분은 이 섭리를 생각하면서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올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예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면서, 타락한 아담 해와를 불쌍하게 여기고 그 형제자매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는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어요?

하나님은, 타락하여서 사탄의 주관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울고 계십니다. 타락한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죽으면 지옥에 가는 거예요. 그들은 영원히 죽게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의 부모나 친구가 병이 나게 되면, 여러분은 그들을 병원으로 옮기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나 죽음은 육체적인 것입니다. 이 죽음은 영원한 죽음이고, 육신만 없어지는 죽음과는 비교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을 동정하는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생명을 바치지 않고서는, 우리는 참사랑을 주었다고 할 수도 없고 참된 최고의 아들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 최고의 자리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20년 내지 30년 동안 국가를 위해서 일해 온 사람과, 그리고 일년을 일했으나 국가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사람 중에서 어느쪽이 더 가치가 있어요? 생명을 잃지 않은 사람보다는 생명을 잃은 사람이 더 높은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더라도 팔이나 다리가 잘리는 등 더 비참하게 죽으면 죽을수록, 더욱 높은 자리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죽고자 하는 자는 살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가 생명을 내주었을 때, 그는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까지, 자신의 영광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의 영광까지 내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자신의 생명 외에도 다른 모든 것들도 내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도, 자기들의 생명은 물론이고 자기들이 모든 것을 바치는 길을 가야 했던 것입니다.

한국, 일본, 자유중국, 이 세 아시아 나라 중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노정을 걷고 가장 희생을 많이 하는 나라가 앞으로 주도국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그러한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면,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더 축복을 받게 됩니다. 만일, 선생님의 지시가 없이도 여러분이 스스로 그 길을 가게 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문: 만일 지금부터 내년 4월까지 매우 중요하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닉슨과 모택동의 회담에 영향을 줄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라구. 선생님은 이것을 위해서 3년 동안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문: 지금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만일 유대 민족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이 아랍국가들과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써. 그들은 아랍국가들과 계속 싸우면서 이 길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그들이 우리의 운동과 하나되어질 때 해결될 것입니다. 우리는 제3이스라엘입니다. 제1이스라엘은 유대민족이었고, 제2이스라엘은 기독교였습니다. 우리는 제3이스라엘입니다. 이들 제1이스라엘, 제2이스라엘, 그리고 제3이스라엘이 모두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한국의 역사 속에는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이 할 수 없었던 것을 세째 아담이 복귀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제3이스라엘이 제2이스라엘과 제1이스라엘을 복귀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복귀된 후에 제1이스라엘이 복귀될 것입니다.

문: 저는 두 번 화가 난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속으로 자신을 용서하세요. 선생님은 가끔 한국의 목사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때때로 선생님은 라디오를 듣는 것같이 영계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들의 기도를 들어보면, 선생님이 그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

왜, 원수를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의 길을 넘어갈 수 없는지를 선생님이 지금 설명하겠습니다. 이것은 원리책에는 없지만, 아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알아두어야 합니다. 타락한 천사장이 하나님을 참소하더라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비록 천사장은 타락했더라도, 하나님이 세우신 법도를 준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장이 이미 타락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피조물을 그가 세우신 법칙 또는 규칙에 따라서 주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타락 이전의 천사장에게 하시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타락 이후에도 여전히 그렇게 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천사장은 하나님께 '하나님, 당신은 저를 완성기까지, 완성기 이후까지라도 사랑하시기로 되어 있습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천사장은 장성기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에는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비록 내가 사탄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나를 여전히 사랑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천사장이 참소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셔야 할 바를 완수하실 때까지, 천사장을 몰아낼 수 없습니다.

이것이 천사장의 존재입니다. 천사장은 '하나님 자신 뿐만 아니라 그아들 아담과 딸 해와도 역시 나를 완성기까지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원칙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천사장을 몰아내려면, 먼저 여러분의 책임분담을 완수해야 합니다. 그럴 때까지는, 여러분이 천사장을 쫓아낼 수 없다 이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과 그 자녀가 천사장을 충분히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이 예수님 때에 성사되었습니다. 사탄이 예수를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은 사탄을 미워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보다 천사장을 더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셔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가 사탄에 의해서 살해되었지만, 그는 사탄을 사랑했고, 사탄을 위해서 기도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수를 사랑하시고 예수가 원수를 위해 복을 빌어야 하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 천사장을 사랑해야 하는 책임분담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지점으로부터 사탄의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가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원리에 의해서,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편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때에 사탄편에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복귀되기를 바라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책임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타락세계를 벗어나려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역사적 내용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적인 역사의 흐름은 외적 세계 그 자체로부터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에 보이지 않는 원인자가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입니다. 역사를 통하여, 그리고 섭리의 노정에는, 진리가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진리에 의한 개인, 사회, 또는 국가를 추구해 나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역사과정은 타락권내에 놓여 있습니다.

타락세계에서 벗어 나오기 위해서는 맹목적으로 나올 수 없고 그 원인자와 일치하여 우리의 방향성을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인간세상에 나와서 그 동기를 알아야만이 끝까지 남아질 수 있기 때문에), 이 인간 세상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남을 수 없습니다. 타락의 원점에까지 돌아가 보면, 그때에도 영원한 진리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한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리의 실체를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아가, 참된 인간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참된 사랑도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 세 가지

타락의 경로를 살펴보면, 하나님 이외의 어떤 다른 것이 거기에 침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타락의 역사는 사탄, 타락한 천사장과 더불어 출발하였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처음으로 수수관계를 맺었을 때, 그것은 말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가 처음에 한 그 말들은 그들의 말이 아니라 천사장의 말이었습니다.

인간 타락의 역사에 있어서, 이 타락의 동기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탄, 천사장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그래서 그 말은 주체적인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아담이 그 말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사탄을 굴복시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극복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그 말에 굴복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담이 천사장의 말에 넘어갔기 때문에, 그때부터 그도 역시 굴복당하게 되었습니다. 천사장에게 굴복당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동(動)하기 시작한 쪽은 천사장이 아니라 아담이었습니다. 원래는 아담이 자기의 말로 천사장을 움직였어야 했는데, 실제는 그 반대로 아담이 천사장에 의해, 천사장의 말을 통해 움직인 것입니다. 원래 아담은 인류의 중심이 되고, 우주의 중심이 되었어야 했는데, 그 자리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에, 천사장이 그 자리에 섰습니다. 그때부터, 사탄이 온 인류 위에 그 세력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이 나타나서 움직일 수 없는 중심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여 천사장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이런 일이 벌어질 때까지는 복귀의 진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가정의 중심도 하나님편이 아니라 사탄편으로 끌려갔습니다. 이들 세가정의 중심이 역사를 통해서 계속되어 온 사탄과 하나님간의 투쟁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타락으로 인해, 처음에 그들이 잃어버렸던 것은 진리입니다. 둘째, 그들은 중심을 잃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인간성을 잃었다는 의미합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그들은 사랑을 잃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사탄편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늘편 사람들은 이것들을 사탄편에서 하나님편으로 복귀해야 됩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이 세 가지를 복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먼저 진리를 복귀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으로 잃어버린 것을 찾을 분은 참부모뿐

지금까지, 인류역사를 통해서, 인간은 개인 생활에, 가정 생활에 그리고 세계에 적용될 수 있는 진리를 추구해 나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갈망하고 추구해 나왔던 그런 진리는 아직까지도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그러한 진리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성을 찾아볼 수가 없었고, 또한 인간은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을 원하지만 진리를 잃었기 때문에, 인간만이 이상적인 사랑을 소유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 세 가지, 그런 상태에 있는 바깥 세상에서는 진리, 인간성, 그리고 사랑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있는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종교를 세우시고 그 종교를 통해서 이것들을 찾아 세우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오면, 잃어버린 진리를 찾아 세울 자는 다름아닌 주님, 아담, 그리고 참부모뿐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이 진리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해와를 위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자만이 진리에 대한 주체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그분들만이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깥 세상에서 진리를 구하게 될 때는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진리는 종교적인 세상에서 찾아질 수 있습니다. 철학과 과학이 진리를 찾는 데 중심 역할을 해왔지만, 주체적인 자리에는 과학보다는 철학이 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과학이 주체적인 자리에 있는 반면에 철학은 대상적인 자리에 처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자리바꿈이 일어나는 때가 말세입니다. 원래는 철학이 과학에 대해 주체적인 자리에 서야 했습니다. 그러나 철학은 과학에 대해 주체적인 자리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다른 것이 출현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철학을 대신하여 그 주체적인 자리에 설 수 있는 어떤 것이 세계적인 것으로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과학과 철학이 서로간에 수수작용을 하면서, 그 둘은 진리를 찾아나왔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진리를 중심한 종교가 출현할 때에는, 그 진리의 종교에 대한 대상의 자리에서는 어떤 것, 영적인 감각을 통해서 경험되고 종교에 대해서 대상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어떤 것이 틀림없이 있어야 됩니다.

이 진리와 영적인 경험이 서로간에 수수작용을 합니다. 그때 이 진리가 전세계로 전파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편의 진리가 넘어지고 하늘편의 진리가 일어나는 현상, 이것은 진리를 찾는 데 있어서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하였던 인류의 첫 부모가 이제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이 처음에는 그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말세에 무엇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말세에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메시아라는 말은 앞에서 말씀드린 그 세 가지를 복귀해야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영원한 진리, 영원한 인격 그리고 참부모로서 자녀를 위한 참사랑. 그래서, 예수가 신랑으로 왔다고 하였으며, 그리고 자신의 신부를 구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세에 재림주는 반대의 경로, 타락의 반대 경로를 가야 합니다.

주님은 주체입니다. 그래서, 그가 타락한 세계에 오실 때는 진리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람이 그 진리를 들으면, 몸과 마음이 그에게 속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했을 때, 그들은 울면서, 슬픔의 눈물을 흘리면서 사탄에게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돌아올 때는 기쁨을 갖고 주님께로 이끌려 와야 합니다. 그러한 운동이 끝날에 일어나야 합니다. 즉, 정반대의 일입니다. 인간은 사탄의 말에 이끌려 넘어갔기 때문에, 타락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재림주의 말씀, 그의 메세지에 이끌려 넘어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씀은 천사장의 말보다 뛰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권위를 갖고 모든 인간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는 3단계를 거쳐 나옵니다. 그래서 주님은 구약시대, 신약시대 그리고 성약시대라는 세 시대를 대표하는 개인과 가정을 복귀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잃어버린 아담과 해와를 복귀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아담 가정, 예수님 가정, 재림주님 가정을 대표하는 세 가정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정들은 온 세계 인류를 대표합니다.

여러분은 횡적인 역사를 통해 종적인 역사 속에서 잃어버린 모든 것을 탕감짓는 원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횡적인 것으로 종적인 모든 것을 탕감합니다. 그것은 대단히 복잡합니다. 간단한 설명을 하나 해줄까요, 말까요?「해주세요!」그렇다면, 선생님이 한 가지 말씀해 드리겠습니다만, 어떤 것은 생략해야 될 것 같습니다. 현재 여러분이 어떤 자리에서 있는지를 여러분 자신이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설명하지 않는 것입니다.

재림주님은 세계를 구할 수 있는 말씀을 가지고 와야 해

현재의 위치에서, 우리는 적어도 두 개의 방향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위치를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선생님이 짧은 시간에 말씀하지만, 이 말씀에는 모든 역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담은 천사장의 말에 이끌려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참부모가 오시면, 타락한 모든 사람들은 참부모의 말씀에 끌려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타락한 인간을 구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거기에는 인간을 붙잡고 있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사탄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개인으로부터 사탄을 몰아내려고 할 때, 만일 이 타락세계에 하나의 개인만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오직 하나의 개인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개인, 가정, 종족 그리고 국가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사탄에게서 한 인간을 찾아 온다 하더라도, 만일 사탄이 한 개인을 잃는다 하더라도 이 단계에서 사탄은 나머지 다른 가정, 종족, 국가 그리고 세계를 여전히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가정을 복귀한다고 하더라도, 사탄은 여전히 종족과 국가를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사탄으로부터 개인을 복귀할 수 있는 진리, 사탄으로부터 가정을 찾아올 수 있는 말씀, 사탄으로부터 종족을 찾을 수 있는 말씀, 국가, 세계 그 모든 것을 찾아올 수 있는 말씀을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주님은 세계, 국가, 종족, 가정 그리고 개인을 복귀할 수 있는 말씀을 가지고 이땅 위에 오셔야 합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날 때, 사탄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자리를 포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타락세계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될 것이며, 주님 앞으로 나가는 것말고는 다른 방향이 없을 것입니다. 인간 첫 부모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세계 온 인류가 사탄의 주관하에 들어갔기 때문에, 참부모님이 오셔 가지고 실패한 모든 것을 회복하시고 사탄을 굴복시켜서 잃어버린 자녀를 사탄으로부터 되찾으셔야 합니다.

주님이 모든 인류, 전세계를 주관하고 있는 사탄을 굴복시키게 될 때, 그때부터 인격의 중심이 주님에 의해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말세에 진리의 중심과 인격의 중심이 이 땅위에 출현하게 되는 데, 곧 그분이 재림주님이십니다. 주님이 그런 자리에 설 때, 사탄은 더 이상 간섭할 수 없고 주님을 반대하는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참부모는 역사의 종착점이자 섭리의 목적점

타락은 여자를 통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여자에 의해 남자도 끌려갔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그는 여자에게 주관을 당하려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여자를 주관하러 오십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주님은 신부를 찾으러 오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것같은 하늘이 아닙니다. 주님이, 하늘이 인정하는 한 인격체로 서면, 천사장을 굴복시키고 신부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신부와의 결혼을 통해 이 땅 위에 참사랑이 실현될 것입니다.

그 결혼, 그것이 곧 어린양 잔치입니다. 그래서, 6천년의 몸부림 끝에, 주님이 잃어버린 죽었던 자녀를 다시 찾고, 그래서 에덴 동산에서 잃은 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이런 기대가 세워질 때까지는, 어떠한 구원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 기대를 찾아 세우시기 위해서 오랫동안 수많은 세월을 역사해 나오셨으며, 이 기대를 찾아 세우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희생해 나왔습니다. 오늘날의 10억 기독교인들도 이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이 기대를 접하기 위해서 신앙을 해 나오고 있으며, 모든 신앙과 모든 종교가 바로 이 점에 집중되어 있고,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상에 일어났던 모든 비참했던 전쟁과 싸움, 그것들도 모두 이 문제, 이 기대를 위해 일어난 것들이었습니다.

역사의 종착점도 바로 이 기대, 이 초점인 것입니다. 하나님 섭리의 목적도 바로 이 점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이 실현되는 자리도 바로 이 자리 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부모, 잃었던 참부모님을 만날 수 있는 곳도 바로 이곳입니다. 그래서 이 기대가 모든 것의 중심입니다. 이 자리, 그것이 '참부모'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상에 많은 자리가 있었지만 이 자리가 가장 가치있는 자리입니다.

참부모가 얼마나 귀중한지 아는가

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봐요. 모든 성인들이 이 기대, 이 문제를 위해서 싸웠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영계에 있는 모든 영인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의 모든 인류도 이것을 중요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이것을 중요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까 그런 것 같지, 이전에는 몰랐을 거예요. 여러분은 이것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수천 개의 땅덩어리를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땅덩어리만한 다이아몬드를 주고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바꿀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바꿀 수 없는 거예요. 미국 전체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은 그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한 번 생각해 봤어요? 여러분의 눈으로 직접 그 자리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또한 볼 수 없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불행한 사람이 되겠어요?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 모든 영인들과 모든 사람들의 눈이 여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를 보게 되면, 역사라는 것은 없는 거라구요. 역사는 이것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이 자리는 타락하기 이전의 인간 첫 조상을 위한 자리이기 때문에, 이것 이후에는 어떠한 역사도, 타락한 어떠한 역사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종말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민주주의도 이러한 관점에 의해서, 참부모님에 의해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스스로 그것을 판단해 봐요. 국민학교 어린이라도 100점을 받을 것입니다. 웃을 일이 아니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면, 공산당이 어떻게 되겠어요? 공산당은 아무것도 인정 안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역사가 없습니다. 어린애같이 인생관도 없고, 아무런 주관(主觀)도 없습니다.

참부모로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것이 출발될 것입니다. 즉, 모든 것의 중심, 모든 것의 내용, 그리고 모든 것의 결과가 여기서부터 출발할 것입니다. 여기에 참여할 수 있는 자들이 지상의 첫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섭리가 횡적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어서, 사탄의 주권을 물리치고, 이 땅위에 새로운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출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부터 역사의 열매가 맺혀지게 될 것입니다. 이 자리가 전세계의 중심점입니다.

이 자리가 미래를 위한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과거 역사의 완성이 이루어질 것이고, 현재 역사의 완성이 보전될 것이며, 미래 세계의 완성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 점, 이 자리를 붙잡을 수 있으면, 여러분은 한 인간으로서 모든 것을 정복한 정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럴것 같애요?「예!」

그러면 가치가 얼마나 크겠어요? 그것이 얼마나 멋있을 것이며, 여러분이 그것을 얼마나 사랑할 것이며, 얼마나 찬양하고, 얼마나 존중하고, 또한 얼마나 좋아하게 되겠어요? 이 자리는 최고로 높은 자리가 되어야 하며, 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높은 자리에 놓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모든 위대한 사람들, 그들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하더라도, 이것에는 비교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보게 되면, 틀림없이 기뻐서 감격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잠자는 동안에 꿈속에서 춤을 춰 본 적이 있어요? 여러분이 이 자리, 이 위치를 생각하게 되면, 그때마다 여러분이 그런 감정을 갖게 되어서 잠을 자면서도 춤을 출 수가 있게 됩니다. 여러분은 다른 어떤 자리보다도, 여러분의 생명이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자리에 마음이 더 끌려야 합니다. 다시 보고 싶어하고, 같이 살고 싶어하고, 이것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그러한 감정을 가져야 합니다. 설명을 들었으니, 참부모가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 것을 이해했을 것입니다.

참부모를 사랑하는 데 지지 말라

참부모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느냐? 그것을 한 번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이 죽었다는 것에 대해 누구라도 항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부모를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상으로 사랑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그래서 여러분이 이런 사람을 만나서 참부모를 사랑하게 된다면,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 사람이 제일 똑똑한 사람이라면,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영계에 있는 영인들에게 절대로 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참부모를 사랑한다면, 절대로 질 수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영인들에게 '나는 참부모를 이토록 사랑하는데, 여러분 영인들은 무엇을 했소?' 라고 하면서 그들을 참소할 수 있다면, 여러분이 제일가는 부자가 될 것입니다.

만일 참부모를 서로 더 사랑하겠다고 식구들간에 싸움이 벌어지게 되면, 하나님이 그 싸움을 보시고 뭐라고 하겠어요?(웃음) 그렇게 싸우다가, 만일에 하나가 죽게 되면, 하나님이 어떻게 심판하겠어요? 여러분이 생각해 봐요. 하나님이 그를 교수대로 끌고 가실 것 같아요? 의심할 것도 없이, 하나님은 그 두 사람을 불러서 그들을 참부모를 사랑하는 모델로 세우시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들이 사랑했던 것처럼 참부모를 사랑하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준입니다. 즉, 하나님과 영인, 모든 사람들은 참부모를 주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생활 가운데서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참부모 살아생전에 새로운 전통이 시작돼

선생님이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 문제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그 기준으로부터 얼마나 동떨어져 있어요?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참부모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눈물 없이는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표정이 밝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우리가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늘에 대해서 죄송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이 어떠 해야 하는가를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참부모는 모든 역사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고, 이 타락한 세계를 극복해야 합니다. 참부모는 미래를 위해 길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일들을 해 나왔습니다. 그런 천사로부터 존경을 받으려고 일하여 왔습니다. 그런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자격을 인정해야 됩니다. 여러분 중에서 몇몇이라도 그것을 인정해야 하고, 그래서 선생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 남편과 아내가 서로 싸울 수 없는 거라구요.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런 싸움이 일어날 수 있어요?

다투거나 싸운 적이 있는 부부들이 있으면, 손들어 봐요. 그런 사람들은 매를 맞아야 됩니다. 사람들이나 후손들이 보면, 하나님 앞에, 영인들 앞에 얼마나 부끄럽겠소? 이런 것을 생각하면, 아내를 하늘같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편을 하늘같이 받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없었더라면, 축복받을 수 없었습니다. 절대로 그들이 남편과 아내로 축복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내나 남편이 얼마나 귀해요? 그들은 참부모 다음 가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들이 참부모 다음 가는 가치를 지닐 수 있기 때문에, 참부모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그런 전통적인 역사가 시작되겠어요? 참부모가 살아 생전에 그 새역사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의 뼈대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봉하는 참부모와 참자녀의 삶이 궁극적으로 중심적인 전통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 그것은 이 세계를 원형운동으로 이끌게 될 것입니다.

참부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

옛날부터, 인간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희망의 한 날을 찾아 나왔습니다. 그러니 완성된 중심은 참부모 안에 있기 때문에, 이 중심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 것이며, 여기로부터 모든 전통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주장될 수 있는 자리가 그 외에는 다른 자리가 없으며, 우리의 소망을 둘 수 있는 자리가 그 외에는 다른 자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참부모에게 모든 성실과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으로써, 여러분이 새 전통을 창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생애가 모든 역사에 대한 표준자가 될 것입니다. 이때에 여러분이 살아있기 때문에, 참부모와 협조하면서 함께 살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그런 방법으로 살지 못한다면, 영계에 가서 얼마나 후회하겠어요! 또한 여러분의 후손들은 얼마나 여러분을 참소하겠어요? 그들 친구의 조상들은 참부모에 대해 헌신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에 어떤 자리를 얻어서, 그들의 후손들이 그 영광스러운 자리를 상속받을 수 있게 되었는데, 반면 여러분이 참부모를 섬기지 못하면 여러분의 후손들은 그 영광된 자리를 상속받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이 시대에 살았던 자기들의 조상들을 얼마나 참소하겠어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참부모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참부모의 가치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러한 자리까지 나올 수 있었으며, 그러한 자리에 나오기까지 어떻게 싸웠는가를 알고 있어요? 여러분은 그것을 모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어떻게 가정을 이루었고, 어떻게 자녀를 가르치고 있으며, 어떻게 종족을 이루었고, 어떻게 국가와 세계를 복귀할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참부모를 협조해야

그런데, 아직 아무도 국가와 세계를 복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가와 세계의 복귀노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살아 생전에 국가와 세계를 복귀하지 못한다면, 우리 후손들 모두가 그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며, 국가와 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제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가 죽기 전에, 모든 사람들이 도와주고 협조하면서 국가와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 함께 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후손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되는 다른 큰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느 자리에서 협조하고 싶습니까? 국가복귀의 자리입니까, 혹은 세계복귀를 위한 싸움의 자리입니까? 어느 쪽이예요? 얼른 생각하면, 세계복귀의 자리에 협조하는 것이 더 위대할 것 같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국가가 없으면, 세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국가적인 기준, 국가, 하나님 나라를 복귀하는 데 있어서 참부모는 어느 국가를 중심삼을 것이냐? 하나의 국가를 복귀하지 않고서는 세계의 복귀를 위해 일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교각(橋脚)도 없이 다리를 놓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만일 참부모가 미국에 살러 오면 미국이 그 나라일 것입니다. 미국에는 2억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를 복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나라가 작을수록 쉬울 것입니다. 또한, 미국에는 수많은 인종이 뒤섞여 있습니다. 독일계 사람들은 독일사람을 중심삼고 미국을 통치, 지배하려고 할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같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한 미국 식구들의 책임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은 그런 나라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유감스럽게 생각하더라도 어쩔 수 없어요. 여러분은 참부모의 자녀가 아닙니다. 참부모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면, 참부모가 살고 있는 나라가 그 국가가 될 것입니다. 그 국가가 참부모의 말씀을 듣게 된다면, 그 국가가 바로 그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둘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한국, 중국, 베트남, 그리고 독일 이 네 나라가 갈라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나라를 갖고 싶어요? 지금, 미국은 베트남에서 철수하고 있고, 중공과 자유중국은 바다를 가운데 두고 갈라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들은 될 수 없습니다. 독일은 어때요? 독일은 2차 세계 대전 중에 사탄편 아담 국가였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아담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 나라는 한국 이외에 다른 나라가 될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닉슨 대통령이 향후 2년간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을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적 상황을 볼때, 닉슨 대통령이 미국을 위해서 그러한 정책을 취했기 때문에, 미국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미국은 천사장 국가의 사명을 가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아담 국가, 해와 국가 그리고 천사장 국가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이 국가들은 복귀섭리가 끝날 때까지 필요한 것입니다. 그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모든 나라가 동등한 자리에 설 것입니다. 반대로, 그러한 사명을 위해 선택되지 못한 나라들이 한편으로는 더 행복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선택된 나라가 겪는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 식구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고, 한국식구들이 하는 대로 여러분들도 하게 되면 여러분도 한국과 같은 혜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미국 식구들이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면, 이것을 해야 됩니다. 여러 외국 정부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여러분이 한국 정부와 한 국민들로 하여금 통일교회와 하나될 수 있도륵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한 운동이 여러 국가에서 일어나게 되면, 한국은 그런 영향권에 둘러싸이게 될 것이고, 그래서 한국의 복귀가 점점 빨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미국에서 하는 것을 한국을 복귀하기 위해서 이용해야 합니다, 현 시점에서는, 전세계를 위해서 봉사할 길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여러분은 하나의 국가를 복귀하는 데에 여러분의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이 한국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이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미국에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여러분을 박해하고 여러분들을 죽음의 자리로 몰아갈지도 모릅니다. 완전한 하나의 국가, 하나의 주권을 가진 국가라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미국이 이것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나라의 정부를 전복시키려 하고 있으며, 모든 종류의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약소 국가들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그 조그만 나라에 대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이들 정부는 우리의 단체에 대해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이나 일본에서 선생님이 무엇을 할 때는, 매우 신중하게 해야 했습니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작전을 짜고 계획을 세워야 했습니다.

한국 기독교 전도의 중요성

지금까지, 선생님은 한 번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늘에서 지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이런 기반을 닦아 나왔습니다. 그 동안 선생님이 그늘에서 지내왔던 까닭은, 식구들이 사명을 완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한 가정을 다시 찾을 때 우리는 그것을 다시 찾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정 뒤에 있는 온 세계가 우리의 원수가 됩니다. 종족을 복귀시키면, 그 종족 뒤에 있는 국가가 우리의 원수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의 국가를 복귀시키면, 그것은 아벨편이 되고 나머지는 가인편, 우리의 원수가 됩니다. 이 모든 원수들, 우리가 그 국가를 복귀할 때까지는, 우리는 사탄적인 나라와 다를 나라들을 통해 가지고는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사탄세계에서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들끼리 서로 우호적인 경우가 드뭅니다. 바로 여기, 멕시코는 어때요? 잘 지냅니까? 카나다도 다를 게 없습니다. 미국과 카나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의 국가들인 공산국가들에서는, 무력으로 위협함으로써 사람들을 하나로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자유를 만끽하면서, 그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침으로써 스스로 통일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두 나라가, 하나는 강제적으로 통일되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스스로 참여함으로써 통일되어 돌아가게 될 때, 이 나라가 사탄의 국가보다 힘이 강해지게 되고,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님이 이 나라를 간섭하고 조종하실 수가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 두 힘이 있습니다. 하나는 김일성을 중심한 공산권이고, 다른 하나인 우리는 정부가 없고,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나라에 흩어져 있는 우리 식구들, 한국뿐만 아니라, 우리 미국 식구들과 독일식구들, 여러 나라에 널려 있는 우리의 모든 식구들, 그 식구들이 선생님과 하나될 것입니다. 참부모와 하나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힘이 북한보다 더 강해질 때, 힘을 지닐 수 있고 주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나게 되면, 그 나라의 주미대사는 여러분 가운데서 나올 수 있습니다. 아마도 주독 대사도 여러분 중 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선생님이 독일계 미국식구를 독일에 보낼 생각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에는 유태인을 보낼 것입니다. 여기 작전이 다 짜여져 있다구요.

그 대사가 그런 나라 정부 관리와 같이 예배를 보기는 대단히 쉬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본래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그 대사와 우리 교회 식구들이 하나되어 가지고 손을 뻗어서 그 정부를 포섭해서, 우리가 그 정부를 보호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국가를 복귀한 후 전세계를 복귀하는 데는 그렇게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의 어떤 지역에서 발생하는 어떤 사건이라도 30분이내에 전세계의 다른 곳에 알려질 수 있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편으로 복귀된 한 나라가 있으면, 매체를 통해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지금 미국의 소득은 한국 소득의 10배 가량이나 됩니다. 그래도 미국식구들은, 그럼에도 한국에 가고 싶어요?「예」 여러분은 한국을 위한 기쁨의 눈물과 한국을 위한 슬픔의 눈물을 흘려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그 나라에서 슬픔과 기쁨의 눈물을 흘렸기 때문입니다. 슬픔의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무것도 여러분이 한국에 가면, 기쁜 것은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식구들이 많아서 전방의 모든 군인들을 우리 식구로 바꿀수 있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어요? 그리고 미국 정부가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하게 될 때, 비록 그런 때라고 하더라도, 미국 식구들이 한국 전방에 남아 있게 된다면, 미국 정부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미군을 철수하면, 이 나라 한국이 곧 위험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민주 세계를 책임진 자리에 있는 민주 우방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야기된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 식구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모든 식구들도 한국에 가서 전선을 지키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북한 김일성이는 어떻게 하겠어요? 싸움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전선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독교인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에게 진리를 전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공산주의에 대해 항상 힘의 우위를 유지해야

악은 항상 균형을 잃게 될 때 침범합니다. 지금 어떤 분야에서는 소련이 미국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잠수함이나 비행기의 수에 있어서나 혹은 미사일의 어떤 종류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감을 갖게 될 때 소련이 미국의 미사일을 능가하게 될 때, 공격할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또다른 전쟁을 준비하여 언제라도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2차 대전 중에 일본이 항복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소련은 즉각 만주를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전략을 짜놓고 있었습니다. 문서상 기입하는 동의나 협정은 힘의 우열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의 우위를 유지해야 할 큰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이제 선생님이 이곳에 와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참부모를 따라야 합니다. 전도자로서, 개인, 가정, 종족, 참된 전도자로서 따라야 합니다. 그 나라가 쓰러지는 어느 한 순간 거기엔 이상도 없을 것이고 지상에 건설된 천국도 없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국가적인 기대를 못 보고 죽으면 영적으로 다시 와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당해야 되겠어요? 그리고 또, 참부모가 죽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나라가 없습니다, 영원히. 여러분은, 그 나라가 여러분의 생전에 건설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예」

서둘러 그 나라를 복귀해야

그래서 결국, 우리는 서둘러 그 나라를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항상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됩니다.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빨리 이 나라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 이것이 선생님이 밤낮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일년의 사망율을 1퍼센트라고 가정해 봅시다. 지상에는 현재 36억이 살고 있으며, 매년 3천 6백만 명이라는 사람이 지옥에 갑니다. 만일 10년 동안 우리가 3억 6천만 명을 잃게 된다면, 우리는 사탄에게 지게 됩니다. 이렇게 지옥에 간 사람들은 우리를 참소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 나라를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게 된다면, 그들은 기다릴 것이고 참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나라를 기다리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참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지상에서 참부모를 통해서 한 나라를 복귀할수 없게 된다면 그 영인들이 참부모를 참소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참소할 것입니다. 그리고, 섭리의 연장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선생님과 우리의 운동을 박해한 기독교인들을 참소합니다. 따라서, 길을 잘못 든 기성교인들, 그들은 지옥으로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영인들이 그들을 참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국가 복귀 성공의 가능성을 보게 되면, 기다릴 것입니다. 거기에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아벨의 자리에 서 있고, 완고한 기독교인들은 가인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가인과 하나가 될 때, 국가가 복귀될 것입니다. 국가가 복귀되면, 천상의 모든 영인들도 이러한 국가 복귀의 혜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그들이 참소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까닭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국가를 복귀하지 못하게 되면, 영계의 모든 영인 들이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고, 그들은 길을 잘못 든 기성교인들, 그리고 우리들까지 참소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서, 만일 우리가 열 배로 더 많은 희생을 하면, 그 다음에는 우리 식구들을 위해서,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 그것은 번창해 갈 것이고, 더 큰 희생으로 국가를 복귀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나라를 복귀하지 못하면, 공산주의 국가들이 전세계를 장악할 것이고, 그들은 우리의 모든 식구들과 기독교인들을 학살할 것입니다. 우리가 국가를 복귀하지 못할 경우에, 이렇게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가 하나의 국가를 복귀하기 위해서 왔지만, 그것을 실패하였기 때문에, 모든 유대민족이 그와 같은 비참한 기간을 거쳤습니다. 만일 예수가 하나의 국가를 복귀했더라면, 예수는 살아 생전에 만왕의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참부모를 찾으려고 해야 되고, 참부모와 하나되어야 하고, 참부모와 함께 국가를 복귀해야 됩니다.

참부모와 하나되어 국가를 복귀해야

여러분이 이것을 잊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그런 나라를 볼 수 없고, 우리가 그런 나라 안에서 살 수 없고, 우리가 그런 나라 안에서 만들어 낸 상품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원통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염으로 성별을 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성염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성염을 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만든 물건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성별된 것들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자녀들이 가야 할 길이며 선생님에게 충성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만든 물품을 가지고 살게 하시려고 지금까지 역사해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생각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도 역시 그것을 생각하고, 그 길을 찾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보호 아래서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그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은, 영계에서처럼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거기서 살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이상입니다.

그러면, 어떻겠어요? 천국을 이루어서 거기서 같이 산다는 것! 그러므로, 여러분도 하나님과 선생님같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나라를 찾게 되면, 우리는 완전한 진리 안에서 살 것이고, 완전한 인격을 회복해서 살 것이며,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 가운데서 살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 그리고 여러분은 완전한 권리, 원리의 권위를 보장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모든 국가들과 전세계가 이 나라에 정복당할 것입니다.

전도를 할 때, 우리는 핍박을 받고 반대를 받습니다. 또한,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이것이 사탄의 주권을 꺾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롭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 나라의 기대 위에서라면, 진실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고, 천품을 가지고 자유로이 살 수 있고, 거기서 마음껏 하나님의 사랑을 즐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러한 것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자유를 가질수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별난 사랑을 보게 됩니다. 미국은 다양한 유색인종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세계, 그 나라, 그 국가에서는 모든 민족이 서로 믿고,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하면서, 모두 함께 살 것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살아야, 여러분이 영계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국가가 완전한 진리, 완전한 인격 그리고 완전한 사랑의 나라가 됩니다. 그것이 천국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의 주체를 반대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반대했어요? 여러분이 미국을 반대해요? 천국에 가기 위해서, 우리는 하늘국가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참부모를 대신해서, 참부모의 자녀로서 활동해 주기를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 나라의 복귀를 위해 온 정성을 다 바쳐 주기를 바랍니다.

​크리스마스인 오늘은 지난 저녁에 언급했던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계속하겠습니다.

성경에는, 누가 예수한테 그의 아버지에 관해서 물어 본 구절이 하나도 없습니다. 누가 예수의 아버지였어요? 그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의 배경에 관해서 이미 잘 알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많은 어려움을 당한 예수

​성경에서 우리는 예수가 모든 것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고 한 구절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 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와 같은 구절이 그것입니다. 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 12:49)'하는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들은 예수가 지상에서 완수하지 못하고 남긴 어떤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추측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한 사람이 그에게 와서 당신의 모친이 밖에 와 있다고 했을 때, 예수는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48-50)'고 대답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그에게 협조하지 못했다는 것과 그래서 그들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에서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초막절 축제가 열리고 있는 동안 예수가 집에 있는 것을 보고, 제자들과 이웃 사람들이 그의 사명에 대해서 약간의 의심을 가졌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그의 형제들도 그를 의심했습니다. 또한, 예수는 그의 어머니에 대해 '여인이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까지 했던 것입니다. 이런 구절들이 있는 것을 보아서, 성경에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알아 봅시다. 지난 밤에 드린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은 하나님이 예수가 탄생할 수 있는 기대를 조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던가 하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그 기대를 조성하는 사명을 수행했던 사람들 모두 예수가 올 때까지 그토록 힘들게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어려움을 겪으신 후에 세워진 기대 위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는데,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거나 또는 그렇게 많은 고통을 받기를 원하셨겠어요? 예수 이전에 그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많은 선지자들이 이 땅에 왔습니다. 그들은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감수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수가 또다시 고통받기를 원하셨겠어요? 수천년 동안 하나님은 예수를 위한 기대를 준비해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민족으로 하여금 예수를 박해하고 반대해서 결국 십자가에 매달게까지 하기를 바라셨겠어요? 만일 예수님을 위해 좋은 환경이 준비 되었더라면, 예수님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받들고 섬겼더라면,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어떤 일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굿간에서 태어났고, 그때부터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 왕이 그를 죽이려고 했었고, 그래서 이리저리 피해 다녀야 했습니다. 예수가 30세가 될 때까지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능히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생애 3년노정에서도 유대교와 친척들과 모든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수많은 어려운 상황을 그가 겪어야 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예수를 편들어 주었던 사람, 그의 편에 섰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약혼관계에 있던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 보내신 이유

요셉 가정으로 돌아가 봅시다. 요셉은, 어제 밤에 말씀드린 대로, 천사장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타락 전의 아담과 해와는 남매관계, 혹은 약혼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러한 처지에 있을 때 천사장이 먼저 해와를 취해갔기 때문에, 예수 때에 요셉과 마리아가 그것을 거꾸로 복귀해야 했습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하나님편이 타락 전 해와의 입장에 선 한 개인을 복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리아로 하여금 임신하게 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런 경우에 필요한 인물로 선택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요셉 이라고 한 번 상상해 봐요. 마리아는 여러분의 약혼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을 깜쪽같이 속이고 임신을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겠어요? 여자들, 대답해 봐요. 화가 난다구요! 여자인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요셉은 어땠겠어요? 요셉이 그 소식을 듣고서, 마음속으로 얼마나 괴로워했겠어요?

그런 경우에, 어떤 남자도 그런 여자를 아내로 맞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것입니다. 요셉이 괴로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자 식구 있으면 손들어 봐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 봐요. 긍정적인 대답을 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를 그런 배경과 더불어 보내신 이유가 무엇이었겠어요? 우리는 하나님이 그런 환경 가운데 메시아를 보내신 이유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속에서 자기의 아내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도록 천사를 보냈던 까닭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녀에 대해 친절해야 했고, 해산 후에 맞아들여야 했습니다.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누구나 잊어버릴 수 있는 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꿈속에서 들었던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실천에 옮겼던 요셉은 확실히 올바른 사람, 의인이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런 마리아를 맞아들일 수 있겠어요?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맞아들이고 나서 기뻐했겠어요? 아닙니다. 매우 기분 나빴고, 마음 내키지 않았어요. 요셉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부정한 여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율법을 알고 있었고, 거기에 임신한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것을 꿈속에서 들었지만, 믿을 수 있었겠어요?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마리아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온 동네에 소문을 내면서 받아들였겠어요? 그랬을것 같아요? 선생님은, 요셉이 비밀리에, 그리고 마지못해서 그녀를 데려 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요셉에게 어떤 형제나 부모, 또는 친척들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것을 얘기해 주지 않습니다. 요셉의 가정적인 배경에 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요셉의 가족들이 마리아와 요셉을 찬성했더라면, 그들에 관한 기록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에서 마리아나 요셉이 조부모라든가 아저씨들, 또는 다른 어떤 친척들에 대해서 예수에게 들려 주는 어떤 얘기나 경우도 보지 못합니다.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데려와야 했을 때, 그의 친척이 있었더라도 그의 부모와 그 문제를 의논할 수 있었겠어요? 그럴 수 있었겠어요? 모세의 율법에 비추어 볼 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아직 약혼 단계에 있을 동안에는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올 수 없었습니다. 엄한 모세의 율법이 있기 때문에 그녀를 데려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더군다나 결혼전에 임신까지 했는데….

그가 비밀리에 그녀를 데리고 왔다 할지라도, 그녀가 임신했다는 소문이 퍼졌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들은 한 방에서 같이 살았을 거예요. 소문과 험담은 금방 번집니다. 특히 친척집 아이들이 끼어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요셉은 그의 심정 가장 밑바닥에서 마리아를 임신시킨 남자가 누구일까 하고 이상스럽게 생각하지 않았겠어요? 그는 이리저리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의인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에 관해서 아내에게 물어 본 적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매우 마음이 넓고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그녀의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돌에 맞아 죽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고, 그런 남편을 무척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 마리아라도, '그럼요! 내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잉태되었어요'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할 수 있었겠어요? 또 마리아가 그렇게 대답했더라도 그가 그것을 믿을 수 있었겠어요?

요셉과 마리아의 갈등 속에서 어렵게 성장한 예수

자, 선생님은 여기에 있는 여러분 대부분이 기독교가정 출신이고, 지금까지 믿음의 생활을 해 나오고 있지만, 그래도 여러분에게는 그것이 믿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말을 믿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어요? 만일 마리아가 그런 식으로 대답했었다면 요셉은 엄청난 화를 냈을 것입니다. 비록 그가 그와 똑같은 말을 꿈속에서 들은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마리아가 그 아이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대답했다면, 요셉은 그것을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더욱 화를 내고 분개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마리아의 얘기는 남편인 자기를 속이고 사실을 감추는 것이라고 짐작하거나 상상했을 것입니다. 그런 요셉의 얼굴 표정을 상상해 볼 수 있지요? 행복한 표정이었겠어요? 분개한 표정이었겠어요, 화난표정이었겠어요?

이때부터 둘 사이에 다툼이 있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그와 같은 질문을 여러번 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런 질문에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트러블(trouble)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한번만 일어나고 말았겠어요, 아니면 그때부터 계속해서 일어났겠어요? 당연히 그들간의 싸움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들 주위에는 주시하는 눈과 의심하는 귀와 손가락질이 있었습니다. 온 마을에 소문이 안 퍼졌을 것 같아요? 그 부부가 다투는 소리를 엿듣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그 사람은 그 소문을 퍼뜨렸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일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런 상황에 있었습니다. 얼마나 외로운 처지였겠어요?

이제 베들레헴을 향하여 가는 그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때는 그녀가 해산할 무렵이었습니다. 만일 주위 환경이 출산을 준비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었더라면, 그녀는 출산할 준비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아기를 위해서 아무것도 준비할 수 없었습니다. 그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녀는 아기를 강보에 싸 가지고 말구유에 눕혔습니다. 만일 예수에게 마리아와 요셉과 하나된 육신의 친척이 있었더라면, 그들이 마리아가 미리 출산 준비를 하도록 도와주지 않았겠어요? 그런 모든 것을 통해서 볼 때, 우리는 마리아가 외롭고 외로운 처지에서 아기를 낳았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기가 태어난 후에 곧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이 아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동방에서 별을 보고 인도된 세 박사가 그에게 경배하기 위해서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또한 아기에게 경배하러 온 목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요셉을 위로하였고, 그가 달리 생각을 하도록 했습니다. 분만 후에 그들이 애급으로 피난가야 했을 때, 거기에 또 길을 인도하기 위해서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또한 그들이 돌아갈 길도 지시하여 주었습니다.

그러한 배경을 가지고 예수는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어린 아이였지만 그들 사이에 얽힌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요셉과 예수 사이에는 혈통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완전히 남남이었습니다. 마리아 쪽에서는, 그녀가 아들을 위해 옷과 같은 그 무엇을 해주고 싶어도, 그런 날에는 요셉의 기분이 어떤지 그 눈치부터 살펴야 했습니다.

예수는 부모가 자신 때문에 내적인 갈등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수 있었습니다. 미국에는 많은 이혼가정들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아이들이 그들의 진짜 부모가 아닌 의붓 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 그 의붓 자녀들은 자주 그들의 의붓 부모에 대한 어떤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현대에 살고 있는 여러분이 그러한데, 2천년 전 그 당시에는 얼마나 더 심했겠어요? 그때 그는 옷을 입든지, 먹거나 잠을 자든지 할 때에도 부모의 눈치를 살펴보아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가 12살 때에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갔었다는 성경구절을 읽었을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를 데리고 갔었습니다. 축제가 끝난 다음에 부모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3일 후에야 아이를 잃어버린 것을 알고, 그를 찾으려고 되돌아갔습니다.

그것는 단순한 하나의 기록에 지나지 않지만, 그 배후에는 슬픈 사연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가 율법사들과 성경구절을 놓고 토론할 정도로 현명하고 영리한 소년이었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작 12살이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그를 데리고 오려고 찾지 않았겠어요? 그런 부모는 없는 것입니다.

역시 요셉과 마리아도 그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것에 관해서 마음을 쓰지 않았고 말도 안 했습니다. 마리아도, 비록 마음은 몹시 아팠다고 하더라도,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야 되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그녀는 돌아와서 3일 동안의 괴로운 날을 보냈습니다. 3일후 요셉은 그 아이에 대해 너무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웃들이 어떻게 생각했겠어요? 선생님은 그런 예를 많이 열거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홀로 자기의 사명을 위해 준비하는 불행한 생활을 했다

그러한 것을 마음속에 감추고, 이 아이는 성년으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의 형제들이 왔습니다. 그의 형제들은 예수를 중심하여 어떤 알려지지 않은, 얽힌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형제들조차도 예수가 하고 있던 일을 신뢰하거나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요셉뿐만 아니라 모든 예수의 친척들도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내적으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목수인 아버지의 조수로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앞으로 큰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때때로 예수는 어머니에게 '나는 왜 이와 같은 취급을 받아야 되나요? 누가 내 아버지예요? 어머니의 문제는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되어 가는 거예요?'라고 묻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결코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모자간에는 일종의 감정적인 거리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예수는 결국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어떤 것들에 관해 가르침 받았음에 틀림없지만 스스로 자기가 다른 소년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사명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명을 행함에 있어서, 그는 준비 기간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즉, 그는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예수는 그런 기반이 없이는 사람들이 자기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는 항상 자기의 부모, 형제, 그리고 친척들이 자기의 사명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의 부모가 그를 도울 수 없었다면, 다른 누가 도우려고 했겠어요?

예수는 중심 인물, 하나님이 4천년 동안을 준비하신 끝에 보내신 거룩한 사명을 지닌 중심인물이었습니다. 거기에는 그를 영접하기 위해 준비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가정에 바로 천국을 세울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는 하늘 가정의 천법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자신의 가정이 그 법 아래 서야 했습니다.

그 천법에 따라서,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말할 것도 없고, 요셉은 예수를 사랑하고 섬겨야 했습니다. 예수는 그의 부모와 형제 자매들까지도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어느누구보다도 예수를 더 사랑해야 했고, 예수가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그를 받들고 도와야 했습니다. 예수는 하늘 왕국의 왕자였습니다. 그는 지상의 보통 왕자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 즉 하나님의 유일한 왕자였습니다. 그는 이 사명을 하도록 하나님이 보내신 유일한 중심인물이었습니다.

그때 그의 가정은 그의 법을, 천법을 세우는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그가 자기들의 아들이기는 했지만, 그 아이를 섬김으로써 전통을 세우고 그 본보기가 되어야 했습니다. 음식을 준비하고, 옷을 준비 하고, 그를 위해 그 무엇을 해주는 데 있어서 그들은 매우 진실하고 충실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다른 자녀들도 예수가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도록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그와 같지 않았고, 오히려 갈등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가정에서 자기의 사명과 하늘나라에 대해서 얘기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환경 가운데서, 그는 서른 살이 되기까지 홀로 자기의 사명을 위해서 준비하는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예수가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까닭

그러나, 우리는 예수가 어머니한테는 자기의 사명에 관해서 몇 번 얘기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가 그렇게 하였고, 모자간의 사이가 다소 가까왔다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자기의 사명을 알고 자기에게 협력할 수 있는 협조자를 찾았습니다. 그가 어머니한테도 말 안 하려고 했겠어요? 주위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른 각도에서 보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사명을 털어놓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겠어요?

그는 적어도 자기의 어머니만은 자기에게 순종하고 협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요셉보다도 다른 형제들보다도 자기를 더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는 어머니가 다른 어느누구보다도 더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편이 자기를 그만큼 사랑할 수 있게 만들고 형제 자매들이 자기를 사랑하도록 하는 데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주인으로, 사랑의 왕자로, 그리고 사랑의 중심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어느누구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받아야 했습니다. 부모로부터, 형제자매로부터, 그리고 친척들과 이웃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어느누구로부터도 그런 사랑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편에서 보면, 그는 자신의 부모를 부모의 유일한 본보기로서 사랑할 수 없었고, 다른 사람보다도 더 자기의 형제자매를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시면서 슬퍼하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예수의 마음이 슬펐겠어요! 하나님 나라는 사랑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는 사랑의 중심으로 왔기에 무엇보다도 먼저 그러한 가정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그것은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그는 그때 서른 살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적당한 신부를 구해 주지 못한 마리아

예수의 부모는 예수의 결혼에 대해서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에게 마음이 곱고, 순수한 혈통을 지녔고, 가문이 좋은 집안의 신부를 구해 주는 것에 관해서 예수와 의논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 가정에서 그의 신부를 구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그런 기록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마리아에게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남편과 다른 아이들의 주의를 환기시켜야 했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만일 요셉이 천사장의 입장에 있고 마리아가 해와의 입장에 있는 것을 자각했다면, 요셉이 예수를 낳은 후에 마리아를 취했겠으며 부부로서 살았겠어요? 그들은 그러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는 하늘의 뜻을 알았고, 그것을 어머니한테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만일 마리아가 그 사명을 완수할 것을 각오했더라면, 그녀는 아들과 함께, 비록 그들이 집에서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그 가정을 변화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것을 주의깊게 생각해 본다면, 여러분은 마리아가 그녀의 사명을 정확하게 수행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의 신부는, 마리아말고는 아무도 선택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리아가 그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보나 세상 이치로 보나 그녀가 예수에게 가장 가까웠습니다.

하나님은 마리아가 예수의 탄생시부터 사명을 완수하도록 협조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에게 마리아는 중요했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신부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었겠어요? 그들은 어느 가정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 적당한 여자가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태어난, 특정한 가정, 그리고 특정한 배경을 가진 여자가 있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예수의 신부는 친척들 중에서 선택되어야 한다는, 같은 혈통이어야 한다는 하나의 조건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책임 다하지 못한 친척들

그런데 우리는 요셉이 의로운 혈통 출신이라고 봅니다만, 다른 누구를 더 들 수 있겠어요? 우리는 요셉 가정과 사가리아 가정을 들 수 있습니다. 가정적으로, 한 가정은 가인의 자리에 있었고, 다른 한 가정은 아벨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사가리아의 부인인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그들의 두 아이들 세례 요한과 예수에 관해서 서로 의논을 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고, 아이들을 키우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 같은 것들을 서로 얘기를 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두 아이 모두에게 관심을 가졌어야 했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자매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와 세례 요한은 사촌간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태어날 때부터 이상한, 범상치 않은 아이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태어나기 전에도 아주 신기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사가리아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사가리아가 지성소에서 제물을 드리고 있었을 때, 주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아이가 태어날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이미 늙었는데도…. 그래서 그가 그 말을 믿지 않자 그는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태어난 후에, 그가 주의 천사에게서 들은 그대로 그 아이의 이름을 가르쳐 준 후에야 말하게 되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이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도 또한 똑같은 경로로,그와 같은 이상한 방법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둘은 서로 사촌간이 었습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마리아가 오직 한 번밖에 엘리사벳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또다른 복잡한 이야기입니다. 만일 그들이 가까운 자매였다면, 그들은 여러 가지 의논을 하려고 서로 왔다갔다하였을 것입니다. 사가리아와 엘리사벳도 성스러운 아기인 예수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동네 사람들의 쑥덕공론 때문에 마리아가 자주 찾아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집을 더 이상 방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 둘, 즉 엘리사벳과 마리아가 하나님의 뜻 아래에서 하나가 되어서 예수의 사명에 관해서 서로 오가며 상의할 수 있었더라면, 일은 매우 쉬워졌을 것입니다. 예수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해서 온 세례 요한을 놓고 볼 때, 만일 그가 참으로 주 예수를 증거할 수 있었더라면, 그를 높이 받들던 그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를 더욱 쉽게 따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 두 어머니도 하나가 되었더라면, 일은 훨씬 쉽게 되었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사명을 다할 수 없었던 것은 엘리사벳의 무지 때문

세례 요한은 영계가 역사했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예수를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진짜로 주님 또는 구세주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30년 동안 그의 생애의 대부분을 바쳐 주를 위한 길을 준비해 나오면서, 그는 흔히 사람들이 상상하듯 주는 굉장해 보이는 사람이요, 외적으로 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일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사람은 실제의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야 했고, 훨씬 숭고해야 했고, 훨씬 훌륭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사촌이 주가 되고, 세계의 구세주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예수는 여러 면에서 요한과 비교도 안 됐습니다. 세례 요한은 믿음의 길을 걸었고, 높은 교육을 받았고, 사람들에게 많은 놀라운 것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목수의 조수인 예수에게서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특별한 것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미국에서는 목수가 괜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예수가 세례를 받으려고 세례 요한에게 왔을 때, 세례 요한은 영적으로 감동되어서 예수를 증거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 위에 내리는 것을 보고, '이는 내가 기뻐하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가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예수를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는 달랐습니다. 성령이 자기에게서 가버리고 나자, 그것은 꿈만 같았습니다. 여기에 영적으로 계시받는 식구가 있으면, 여러분도 그와 같은 경험을 하였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예수가 올 때까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증거한 후에는 기쁘게 자기의 모든 제자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를 따라야 했습니다. 온 이스라엘 민족이 그를 가장 위대한 예언자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증거하고 난 후에, 무엇이 요한이 예수를 따르지 못하게 했겠어요? 거기에는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가 서자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를 사촌으로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그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 그리고 세례 요한과 예수 사이에는 어떤 감정이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고등 교육을 받아 존경을 받았고, 위대한 예언자로 인정받았는데, 예수는 일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무식하고, 충분히 교육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여러분은 그런 모든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감옥에 있을 때, 예수에게 제자를 보내어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는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이미 실족한 세례 요한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마 11:7-8)'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세례 요한이 나를 주로 증거하는 것을 보지 않았느냐. 벌써 잊었느냐?'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세례 요한이 예수를 증거하고 난 후에 바로 그를 따랐더라면, 그는 수제자의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제자의 영예는 베드로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인생 마지막 순간에 세례 요한이 비참해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감옥에 갇혔고 목이 잘려서 죽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대신하여 목이 잘렸다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그것이 예수가 '여자가 낳은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마 11:11)'고 말한 까닭입니다. 과거의 성인들과 예언자들은 주를 오직 먼 거리에서 증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직접적으로 육신을 쓰고 그를 증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 요한은 모든 선지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영계에서는 어떤 영인도 예수를 주로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 목적을 위해서, 그 사명을 위해서 준비되었던 세례 요한이었으나, 주를 따르지 않았고, 주를 모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그를 가장 작은 자로 만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가 예수의 모든 한(恨)을 풀어 드리고 그가 지상에 와서 이루려고 했으나 이룰 수 없었던 것을 완결짓지 못하는 한 그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선생님이 우리 통일교회가 이 땅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책임을 떠맡아 가지고 무엇을 해결하려고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세주가 필요한 것으로 보아 인간이 타락의 후예인 것은 사실

​우리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서 이 땅에 왔던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 땅위에서 그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새로 온 사람들은 예수가 그때 지상에서 그의 사명을 완수할 수 없었다는 것을 듣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예수의 사명에 관해서 간단하게 말씀하려고 합니다.

원래,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구세주는 인간에게 필요없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나 병든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구세주는 사람들이 타락한 이후로 타락한 사람들을 위해서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구세주란 말은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구원받아야 되는 자리에 놓여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구세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세주는 인간이 타락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타락이 없었다면, 우리는 전혀 구세주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을 때 그들은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서 한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세주가 필요한 것으로 보아 우리가 타락한 조상들의 후손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참부모로 오시는 메시아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겠어요? 우리는 참다운 후손들이 되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축복을 상속받았을 것이며,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실현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참부모, 타락하지 않은 부모의 참자녀가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타락되지 않은 부모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있어요? 타락한 사람들은 결국 거짓 부모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참부모는 어디로 갔습니까? 하나님은 참부모를 사랑하시지 거짓 부모를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참부모가 있는 곳으로 가실 것입니다. 참부모를 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으로부터 한 남자와 여자를 찾아 오셨습니다.

복귀의 원리노정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들을 참부모의 위치에 세우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맨 처음 아담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참부모를 복귀할 때, 먼저 아담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은 하나의 씨 아담을 찾기 위해서 역사해 나오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런 식으로 말을 한다면, 그 씨 아담을 완성한 아담으로까지 키우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서 역사하고 계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담 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을 통하여 섭리하셨고, 노아의 아들들을 통하여, 아브라함을 통하여, 그리고 야곱과 에서를 통하여 섭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적인 차원으로부터 가정, 종족, 그리고 국가적인 차원까지 섭리해 오셨고, 드디어 재림주님의 때에 이른 것입니다.

참부모는 모든 사탄의 세력을 정복하셔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 지상에 싸우려고 오실 수는 없습니다, 그는 국가적인 싸움터에서 사탄을 이겨 승리를 쟁취한 터전 위에서 오셔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국가적인 기대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약속 하셨습니다. 그것이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메시아는 모든 인간을 해방시켜 그들을 이 땅 위에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오십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거짓 부모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참부모가 그들을 중생시키기 위해서 와야 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를 찾아 왔을 때 예수는 그에게 '너는 거듭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중생론(重生論)이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가 되었습니다.

중생하려면 인간은 참부모를 맞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거짓 부모를 통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거짓 부모와는 다른 부모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주는 후아담으로 오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후아담은 타락한 아담이 아닙니다. 원래 완성하게 되어 있던 아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끝날에 타락하지 않은 아담을 통하여 타락한 아담을 복귀하십니다.

참아버지로 왔으나 신부를 찾을 수 없었던 예수

그러면 그 아담이 다시 올 때 그가 해야 될 것이 뭐겠어요? 아담은 사탄에 의해 해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는 타락한 인간을 새롭게 탄생시키기 위해서 해와를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그의 신부를 통하여 타락 인간은 참사랑을 받아야 하고, 그들을 통해서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것을 잃어버렸을 때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그곳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한 남자와 여자를 잃어버렸다면…. 그들을 복귀하려면 여러분은 그와 같은 남자와 그와 같은 여자를 찾아야 합니다. 이해가 돼요? 주님이 오실 때, 먼저 그는 신부를 찾아야 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하나님은 더 사랑하시겠어요? 혼자 사는 독신 남자입니까, 그들의 사랑받는 자녀들과 더불어 완전한 사랑 가운데서 하나가 된 한 남자와 아내입니까? 어느쪽을 하나님은 사랑하고 싶어하시겠어요? 하나의 가정-남편, 아내 그리고 자녀-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신 후에 3대축복을 해주셨습니다. 예수가 왔을 때 그는 신부를 찾아서 가정을 이루고 싶어했습니다.

만일 그가 왕이었다면, 혼자서 왕이 되기를 원하였겠습니까? 왕비를 갖고 싶어하지 않았겠어요? 그는 자기 아내를 갖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가 완성된 아담의 자리에 갔었다면, 그것이 참아버지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머니 없이 참아버지가 될 수 있어요?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의 신부를 찾으려고 왔지만, 그의 가정이 그를 부인했습니다. 유대민족이 그를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과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이 그를 부인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의 신부를 찾을 수 없었고, 그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박해와 불신 때문에, 그는 십자가로 가야 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도 예수는 다시 오기를 바랐고, 그래서 그는 약속을 남겼습니다. 예수는 신랑으로 올 것입니다. 그리고 신부를 찾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의 어린양 잔치가 신자들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가 만일 신부를 찾았다면 십자가는 없었을 것이다

만일 참아버지와 참어머니가 하나가 되어서 서로 사랑하게 된다면, 하나님이 내려와서 지상에서 그들과 하나가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상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것은 행복한 가정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참부모를 복귀하신 후에, 인간들을 하나하나 참부모에게로 인도하실 것이고, 그들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복귀의 뜻입니다.

지금, 처음으로 온 사람들도 선생님이 지금까지 말씀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는 자기의 사명을 완수할 수 없었습니다. 지상에서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이 땅 위에 신부를 찾으려고 오는 것입니다. 이해가 돼요? 선생님이 지난 밤에 예수가 사명을 완수하는 데 실패했던 것들에 관해서 자세하게 말씀을 했습니다. 실패된 것들을 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의 때와 같은 상황을 만드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지난 밤에 선생님은 예수의 가정적인 기반을 복귀하기 위해서 통일교회가 필요하게 되었다고 말씀했습니다. 만일 예수가 그때 죽지 않고 신부를 맞았더라면, 예수에게 그것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러면 왜 예수가 신부를 찾을 수 없었어요?

그는 제자들을 데리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자기의 제자들에 의해서 반대받기를 원했겠어요? 예수는 12제자와 70문도가 자기의 신부를 환영해 주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그는 신부를 맞이하고 싶어했습니다. 만일 유대민족과 유대교가 그때에 예수를 따랐더라면 무슨 일이 일어났겠어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것 같아요? 그런 환경 속에서는 결코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

그러므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주님의 신부를 환영하고 주님의 신부를 준비하는 제자들과 종교 단체가 유대교에서와 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시는 주님의 신부를 준비하는 종교 단체가 있어요?

많은 제자들과 많은 교회, 그리고 오실 메시아를 맞기 위한 국가적인 기대가 갖추어져 있는 곳이 어디에 있어요? 예수의 초림 때엔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불신했기 때문에 예수는 자기의 사명을 완수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예수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준비하고 그의 재림을 기다리는 하나의 조직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땅 위에 그러한 기독교 단체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단체가 없기 때문에, 이런 모든 것을 준비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이 통일가입니다. 이제 처음 오신 분들도 통일교회와 그 사명의 윤곽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가 완수할 수 없었던 것, 세 제자가 실패한 것, 또한 유대민족이 예수를 영접하는 데 실패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모든 것들이 재림주님을 영접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명백하게 이해되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성경에서 이런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여기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가정에서 잃어버린 8수를 복귀해야 했던 예수

아담과 해와가 타락했을 때,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식들인 가인, 아벨, 그리고 셋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그는 먼저 신부를 복귀하고 나서 아담이 타락했을 때 잃었던 세 아들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여덟 식구를 잃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해와 그리고 세 아들과 그들의 신부들, 이렇게 여덟 식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 때 하나님이 노아에게 여덟 식구를 주셨는데, 왜냐하면 8수는 아담 가정에서 잃었던 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복귀역사는 정확한 원리에 의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세 제자를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때에 아담 가정의 여덟 식구를 복귀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덟 식구가 복귀된 하나의 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 여섯 식구들(세 아들들과 며느리들)은 타락세계에서 복귀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참부모가 낳은 참자녀가 아닙니다. 참자녀가 참부모에게서 태어날 때, 이들 복귀된 여섯 식구들은 그들을 모셔야 하고 그 참자녀들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타락은 이것입니다. 세 천사장들이 아담에 의해서 굴복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아담 가정의 세 자녀들이 참부모에 의해서 복귀되어야 합니다. 이 세 아들들과 그 아내들이 참부모에게서 태어난 참자녀와 하나되어 가지고 말입니다. 그래서 가정적으로 아담을 섬길 수 없었던 세 천사장 입장을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할 때, 천사장이 해와를 유혹했습니다. 천사장이 해와와 하나돼 가지고, 천사장이 아담을 굴복시켰습니다. 타락한 인간들, 천사장의 자식들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타락한 인간들은 타락한 영적인 천사장들과 육적인 천사장들이 연합한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복귀되어져야 합니다. 주님에게는 아담 가정에 있어서의 세 천사장과 타락한 세 아들과 같은 자리에 있는 세 아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에 섰던 사람들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었습니다.

그들은 직접적인 혈통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양자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양자인 이들이 주의 참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의 참자녀에게 접붙임을 받아야 됩니다. 그들은 주의 자녀들을 사랑함으로써, 그들을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가 결혼을 하였더라면, 이 세 아들도 결혼을 했을 것입니다. 이래서 여덟 식구의 가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하나됨으로써, 그 가정은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모든 식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기 위한 조건이 되었습니다.

주의 재림에 관해 무지한 기독교인들

우리는 적어도 믿음의 세 자녀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는 두 유형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즉 믿음의 세 자녀와 자기들을 통해서 태어난 세 참자녀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계를 총괄적으로 보게 되면, 이 세계에는 하나님의 직계 자녀의 자리에 있는 아들이 있고, 양자의 자리에 있는 타락한 인간들이 있는데…. 구원은 개인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가정적인 레벨에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세 자녀를 가져야 하고, 그들을 우리 자신의 직계 자녀와 하나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공식입니다.

여러분은 예수가 결혼을 해서 자녀를 가진 경우를 생각해 봤어요. 그리고 이 세계가 망할 수 있다고 생각해 봤어요? 이 세계는 망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손자 손녀들인 것입니다. 그 손자 손녀들이 번식될 때,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 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됩니다. 그들이 참가정, 참종족, 참국가, 그리고 마침내 참세계를 이룰 것입니다. 그 세계가 망할 수 있어요?

여러분이 이 땅 위에서 예수의 혈통을 찾을 수 있어요? 여러분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만일 기성교인들이 예수가 결혼을 했어야 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절초풍을 할 것입니다. 어린양 잔치가 뜻하는 것이 주 예수의 결혼식입니다. 그것은 2천년 전에 행해졌어야 했는데,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2천년이나 연장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가정을 이루어야 되는데, 그것이 구름을 타고 오는 예수에 의해서 실현되어질 수 있겠어요? 그러한 섭리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믿고 있어요. 그것이 오늘날의 기독교가 실패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에 패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독교의 개혁 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위기에 처하여 있습니다.

그러한 사명 가운데서, 통일교회는 인류를 위한 세계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가 그의 생애에서 이룰 수 없었던 그 모든 것들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의 그 세 제자들은 십자가에서 동시에 예수와 같이 죽어야 했습니다. 이 8수는 아담 가정과 노아 가정을 복귀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수입니다.

1960년에 있었던 성혼식은 예수의 결혼을 복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960년이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던 이유는 새로운 참부모의 기대가 그때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성혼식과 동시에 세 제자들의 결혼식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결혼식들이 1960년에 있었습니다. 이들의 축복에 의해서, 우리는 타락한 직후의 아담과 해와와 같은 자리에 놓인 세 가정을, 밑으로 향하는 가정이 아니라 위로 향하는 가정을 복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복귀하는 데 필요한 기대

아담부터 노아까지 10대가 있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을 더하면, 12대가 됩니다. 우리는 그 12대에 해당되는 모든 조상들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부터 노아까지 12대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복귀하셔야 했습니다. 또한 노아부터도 10대가 있었지만, 이삭부터 야곱까지 연장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 12대를 복귀하셔야 했습니다. 거기에 10대와 같은 12대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3대는 1대와 길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복귀하는 기대를 이룹니다. 이런 것들을 함으로써 우리는 인간을 복귀합니다. 다음 단계는 땅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인간과 땅 사이의 유대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성지를 복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1965년에 행해졌습니다.

성지 축복 후에 우리는 430가정을 축복했습니다. 그것은, 유대민족의 애급에서의 430년에 해당하고, 한국 역사에 있어서의 4천 3백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의미했습니다. 또한 430가정은 세계의 가정들을 대표합니다. 그 후에, 선생님이 제 2차 세계순회때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에서 43쌍을 축복했습니다. 그것으로서 선생님은 그 43가정을, 세계적인 차원에서, 430가정에 연결시킨 것입니다. 43가정을 430가정과 연결시킴으로써 선생님은 한국에서 이룩했던 승리의 기반을 세계에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기대를 서구세계-비록 실제로 서구세계에 이루어진 승리의 기대는 없었다고 하더라도-에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함으로써, 통일교회 식구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가정들은 그때에 천적인 운을 받을 수 있는 입장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은 이 땅 위의 모든 가정에게 열려 있는 것입니다.

제 1차 7년노정이 1967년에 끝났습니다. 1968년 새해 첫날에 우리는 하나님의 날을 제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제1차 7년노정을 통과함으로써 우리는 참부모의 날, 참자녀의 날, 만물의 날, 그리고 하나님의 날을 제정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그리고 만물의 날은 동시에 세워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잃어버린 6천년을 7년 안에 복귀하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그리고 하나님의 날을 해방하였습니다. 이 제1차 7년노정을 통하여 아담 가정이 이 땅 위에 견고한 기대를 세웠습니다. 그 제1차 7년노정은 사탄의 영역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참부모의 가정이 이 땅위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참부모의 가정은 정착할 수 있었지만, 그 자녀들의 가정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제2차 7년노정은 자녀들이 가야할 노정

이 자녀들의 가정을 위해서 제2차 7년노정이 있습니다. 자녀들의 가정을 위해서 또한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그리고 하나님의 날이 설정되어야 합니다. 만일 그들이 참부모에게서 직접 태어났더라면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양자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런 날들을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은 쉽습니다. 왜냐 하면 여러분은 참부모님을 따라감으로써 그런 날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71년, 이해는 제2차 7년노정의 중간 해입니다. 올해가 가장 고비입니다. 올해는 선과 악이 서로 맞서 싸우는 해입니다.

미국과 UN은 20년 전에, 1950년에 중공을 침략자로 낙인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20년 후에 그들은 중공을 UN의 회원국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에 의해서 우리는 이해가 고비를 넘어가는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닉슨 대통령과 중공의 모택동 간의 대화는 세계적인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그때에는 볼 수 없었습니다. 다음 해부터 역사는 내려갈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통일교회는 올라갈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에 대한 원리운동과 공산세계에 대한 반공운동입니다. 우리가 이들 두 세계를 통합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세계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사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를 두려워합니다. 기독교인들도 우리를 두려워합니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기만 한다면, 곧바로 우리는 그들을 우리편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념적으로 우리와 맞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지점까지 왔습니다.

지금 선생님은 제3차 세계 순회 중에 있습니다. 이곳에 오기 위해서 선생님은 일본과 카나다를 거쳤습니다. 그래서 지금 미국에 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한국을 포함해서 4개 국가를 거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이 기간 동안에 말씀한 것은 역사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말씀한 것을 알 수 없을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제2차 7년노정은 자녀를 위한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 자녀의 가정들은 정착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우리는 축복받은 부인들 1200명을 일선에 내보냈습니다. 인간이 타락했을 때 그 첫번째 책임이 해와에게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여자가 국가의 안전을 위해 책임을 졌던 그런 때는 없었습니다. 항상 남자가 그 책임을 졌습니다. 우리 때에는 여자들이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운동에서 남자와 여자가 전도를 나가면, 여자들이 남자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한국, 일본, 그리고 미국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70년 동안은 여자가 남자보다 우월한 지위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우월한 지위를 갖지요? 여자가 남자 뺨을 때릴 수 있지요? 만일 남자가 여자 빰을 때리면 어때요? 잡혀가지요? 꺼꾸로 되었습니다. 그것은 여자가 복귀된 해와의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천사장의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더 높은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해와가 그들이 타락했을 때 했던 것같이, 프리섹스를 하고 싶어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 끝날입니다.

그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70년 이상은 계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은 그런 것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성상위시대가 도래한 이유는 참어머니가 남자들에 대하여 어느누구 보다도 더 높은 자리에 서야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남자들이 최일선에서 싸웠습니다. 그것은 천사장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여자가 하늘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일선에 서야 합니다. 인간의 타락이 발생했을 때, 가정이 파괴됨으로써 인간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가정, 종족, 국가, 그리고 세계, 그러므로 국가와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희생해야 됩니다. 싸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자기의 가정을 떠나 사탄과 싸우기 위해 일선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에서 축복가정 부인 1200명이 세계를 위해서 그들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를 이기지 않고는 천국은 안 이루어져

사탄세계는 공산주의 세계입니다. 공산주의 세계를 대표하는 세 국가가 있습니다. 하나는 북한인데 북한은 사탄편 아담의 입장입니다. 중국은 사탄편 해와의 입장입니다. 소련은 사탄편 천사장의 입장입니다. 이 국가들은 해와의 타락에 의해서 생긴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에 해와는 사탄으로부터 그 모든 것들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가정 부인들이 실제로 무기를 가지고 일선에서 사탄세계와 싸우는 때가 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산주의 병사들을 이겨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무기를 가지고 싸워서 그 병사들을 쳐부술 때가 올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기독교회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사탄세계와 싸울 것입니다.

하나님편의 세계를 위해 일본은 해와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편 세계, 소련과 중공이 일본을 침략하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막아야 됩니다. 또한, 우리 역시 그것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세계 정세는 공식적인 원리를 통한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서 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통일교회 모든 여자 식구들은 하나되어서 공산주의 세계를 쳐부숴야 합니다. 모든 여자들, 자신 있어요? 그것은 꼭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런 사명을 완수하지 않고는 여자들은 해방될 수 없습니다. 제2차 7년노정의 남아 있는 3년 동안 남자들은 자기 아내들한테 복종해야 됩니다. 그것을 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탕감을 통과해 갑니다. 그런 과정을 거침으로써, 자녀의 가정들이 사탄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참부모의 가정과 일체됨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국가, 자유의 국가가 건설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늘 세계, 천국의 기대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완수해야 할 과업이 있습니다. 공산주의 세계를 이겨 내지 않고서는, 천국은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왜 공산주의 세계가 사탄편인가를 설명해 주려고 합니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지금까지, 우수한 두뇌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인생에서 성공하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 우수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습니다. 제 1차세계대전 후에는 힘을 가진 자들이 통치권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군사적인 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즉, 군인들과 장군들입니다. 머리에서 어깨로 내려왔습니다.

다음에는 노동자에게 내려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노동자 단체들이 세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공산주의자들에게 내려왔습니다. 다리(노동자 계층)는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윗부분을 가지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내려갑니다. 그래서 사탄이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토대 위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탄이 여기에서 쫓겨난다면, 갈 곳은 아무데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사탄은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산주의는 사탄의 지혜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쳐부숴야 합니다.

공산주의 세계는 우리와 싸우게 될 것입니다. 이 싸움은 무기가 아닌 입으로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양쪽 다 무기를 가지고 싸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싸움은 말씀, 즉 이데올로기로 수행되어질 것입니다. 일본에는 공산주의자로부터 전향해온 많은 식구들이 있습니다. 우리 식구들 가운데는 공산주의자가 된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공산주의 세계가 붕괴되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힘을 가진 사람들과 다리를 가진 사람들(그것은 노동자들을 의미합니다)이 세력을 가졌습니다. 그들이 세계를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세력을 가질 수 없었던 한 계층이 있었는데, 그것은 양심가들입니다. 양심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가장 높은 사람들이 통일교회 식구들입니다. 공산당은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의 모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양심 있는 사람들이여, 하나되고 단합하자'라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중상류 계층의 사람들을 부정하지만, 우리 양심가들은 세 계층을 단결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싸움터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 즉 흑인, 백인, 황인 모두를 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동원하여 공산주의자들을 이겨낼 때, 그때에 참다운 평화의 세계가 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운동의 승리를 선포할 때까지 싸워 나가자

북한에서는 수상 김일성이가 그의 백성에게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에는 삼팔선이 있습니다. 그 선상에 판문점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하나님과 사탄이 대치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이 땅 위에서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우리 모든 식구들은 그곳에 가야 되고, 김일성이를 쳐부숴야 합니다. 그는 가장 흉악한 공산주의자입니다. 우리는 북한을 쳐부숴야 합니다. 북한을 쳐부숨으로써 우리는 다른 모든 공산주의자들을 쳐부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게릴라들을 훈련시킵니다. 그들은 게릴라들을 남아메리카와 전세계에 보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편의 게릴라들로서 공산당과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 모두를 온 세계에 보낼 것입니다. 이렇게 북한 공산당과 우리 운동이 외관상 서로 비슷합니다.

중공이 20년만에 UN을 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회도 20년 안에 그것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명을 완수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 운동의 승리를 선포하실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원한을, 유대민족의 원한을, 민주세계와 기독교인들의 원한을 풀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서 공산주의 세계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것을 함으로써 우리의 사명이 끝나게 될 것입니다.

통일교회사 (Ⅰ)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한국은 일본의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한국의 애국지사들 가운데에는 일본의 압제에 대항해서 싸웠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배워서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사위기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목적은 이 사위기대를 복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과 하나님의 섭리 속에 4수가 많은 것입니다. 성경에는 40년과 400년 탕감기간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복귀, 탕감이 이 원리에 따라서 이루어졌습니다.

아담 국가로 서기 위해 많은 탕감을 치른 한국

한국이 하나님의 섭리에서 아담 국가가 되려면 해와 국가의 통치하에 놓여져야 합니다. 해와 국가를 이겨냄으로써 독립을 쟁취해야 됩니다. 일본은 독일과 이태리와 결합되었는데, 그들 나라는 모두 사탄편 국가들이었습니다. 민주주의 편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가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에 독일은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이 20년 안에 복구될 수 있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감당해야 할 큰 의의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항상 패했던 나라가 먼저 공격합니다. 그 세 나라, 즉 미국, 영국, 그리고 프랑스가 연합해서 사탄 국가들을 이겼습니다.

한국은 40년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 일본은 사탄편 여성국가였습니다. 그 40년 기간에 일본은 한국의 모든 문화적 전통, 그리고 심지어 한국의 언어까치 없애려고 했습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 기간 동안에 일본인들에 의해서 투옥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일본정부에 의해서 투옥되고 억압받았던 한국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부름받기 위해 그 사람들은 애국자, 효자, 또는 그들 사회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했습니다. 애국자들은 나라를 위해서 그들 자신들을 바치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서도 그러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섭리를 위한 기대를 찾으시고 넓히실 때는 항상 사탄의 반대 아래서 역사하십니다. 그때 선생님은 한 청년으로서 다가오는 공생애를 위해 자신을 준비했습니다.

시간이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말에 가까워짐에 따라 압박은 더욱더 가혹 해졌습니다. 일제 말기에 일본인들은 그들의 압박을 가중시켰고, 기독교인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지하로 숨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만주로 갔고, 어떤 사람들은 소련으로 갔고, 어떤 사람들은 산으로 가서 숨어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일본으로부터 해방의 그날을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와 내통했던 기독교 목사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본의 지시에 따라서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하에서, 산에서 여전히 믿음을 지키며 해방의 그날을 기다리면서 싸운 애국적인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계시를 받기 시작한 기독교인들

전쟁의 끝이 가까이 오고 있을 때,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더욱 심각해졌고, 그들은 결정적인 심판, 또는 결정적인 판결을 한국에 내려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에 의해서, 또는 영계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인도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일본 경찰들이 자기들을 붙잡으려고 할 때 피하거나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일본인들이 언제 패배할 것인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세계의 역사가 한국을 중심삼고 전개될 것이라는 계시를 하늘로부터 받았습니다.

또한, 선생님도 그러한 몇몇 단체들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선생님이 그런 집단들과 연결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때 선생님은 여러분이 지금 배우고 있는 원리의 어떤 것도 결코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의 말씀도 있었거니와 선생님이 한국의 해방 직후에 이일을 시작하기로 하나님께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때에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한 사람만에 의해서 성취될 수는 없습니다. 함께 일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모든 기독교회가 분열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기성교회와 더불어 일하지 말라는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원산에서 일어난 기독교 운동

한국의 땅은 동과 서로 구별됩니다. 동쪽에는 산이 많고 서쪽에는 평야가 많습니다. 또한 한국에 에덴동산을 복귀하려는 특별한 사명을 가진 하나의 집단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동쪽 부분은 남성적인 모습을 하고 서쪽 부분은 여성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도 한국의 땅 모양과 같은 형태를 취했습니다. 즉, 동쪽 부분에는 남성적인 특질을, 그리고 서쪽 부분에 여성적인 특질을 갖게 했던 것입니다.

북한 동해안에 원산이라고 불리는 한 도시가 있습니다. 이 도시에서 하나의 기독교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서해안에는 철산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었는데 여기에서도 하나의 기독교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동해안 지방의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을 따랐습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자신의 과거와 앞으로 닥쳐 올 일과 앞으로 일어날 것들을 말했습니다.

원산에서 일어난 운동의 지도자는 백남주였습니다. 또한 거기에 그 남자의 상대였던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한명화였습니다. 그녀에게 예수가 나타나서 그녀를 통해서 예수가 백씨에게 말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주가 나와 함께 계시고, 주가 나를 통해서 말씀하신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백씨는 무릎을 꿇고 그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말씀하려고 하는 것을 저에게 말씀하십시오'라고. 그것으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둘에게 일어났던 그 일이 목사들에게 전해졌고, 목사들은 그것을 듣고 그 둘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영적인 단체들과 기성교회들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계시를, 또는 말씀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영적인 운동의 내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영적인 현상을 콘트롤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단은 그 여자가 하는 말에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하늘로부터의 말씀에 의해서 서해안 지역에 어떤 또 다른 집단이 있다는 것과, 그 집단과 관계를 맺으라는 것이 그녀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씨는 그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갈 때, 하늘이 그에게 신발을 신지 말라고 해서, 맨발로 서해안 지방으로 갔습니다. 그 거리는 약 130마일이 될 것입니다.

철산에서 일어난 기독교 운동(새주님파)

서해안 지방의 철산에는 그리 늙지 않은, 약 쉰 살 정도 된 한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김성도라는 부인이었습니다. 김성도를 중심삼고 한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녀에게 남편이 있었는데, 그녀가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기 시작하자 그 남편은 그녀를 박해하여 거의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습니다. 그 당시에 한국에는 유교가 널리 보급되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면 그는 자기의 조상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녀는 항상 밤 1시에 일어나 아침 나절까지 기도를 했습니다. 모르는 자에게는 그런 행동이 이해될 수 없었습니다. 남편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런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녀는 신앙을 위해서 생명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영계에 의해서 그 당시에 한국에서 특별히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과 직접적인 대화를 가졌습니다. 그녀는 직접 계시를 받았습니다. 즉, 그녀는 하늘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한국 해방의 정확한 날짜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재림주가 육신을 쓴 인간으로 한국에 올 것이라는 것도 들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주님에 의해서 한국이 특권을 가진 나라가 될 것이며, 한국에 의해서 온 세계가 하나님에게 복귀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가 하늘로부터 받았던 12가지의 중요한 가르침이 있었는데,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일본으로부터 한국의 해방.

2. 재림주님은 한국으로 오실 것인데,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육신을 쓴 한 인간으로 오실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한국인이다.

3.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과일이 아니고, 타락은 사랑의 행위였다. 즉, 타락은 사랑의 잘못 사용으로 일어났다.

4. 남자와 여자는 결혼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결혼은 참된 결혼이 아니라 거짓 결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미 결혼한 부부들에게는 성생활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5. 주님은 새로운 혈통을 세우려고 오신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주님을 영접하려는 모든 사람들은 마음과 몸을 정결케 해야 한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 사이에 성생활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많은 여자들이 그녀에게 와서 하늘로부터 많은 은총을 받고 지상에 에덴동산이 도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큰며느리는 한 목사의 딸이었습니다. 그 목사는 매우 독실한 목사였습니다. 그녀의 며느리 또한 영적인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그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하늘로부터 받는 계시를 이해했습니다. 큰아들은 그의 어머니가 하는 일을 믿기는 하였지만 그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늙은 부인은 그녀의 아들과 며느리에게 부부 생활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의 말에 복종하지 않고 아내와 같이 생활했습니다. 그 결과 영계가 그녀를 데려 갔습니다. 그 당시에 그 늙은 부인은 탕감의 원리를 몰랐지만 그것은 남편이 그토록 자기를 가혹하게 핍박했기 때문에 남편의 행동을 탕감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자기 아들과 며느리를 통해서 그것을 탕감하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남편이 그녀의 아들에게 했던 그 모든 잘못된 것들을 탕감하고, 또한 자기의 사명을 며느리에게 넘겨주고 싶어했었습니다. 며느리가 그녀의 사명을 상속받는 데는 혼자서는 상속받을 수 없고, 자기 남편의 협조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그녀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아들과 며느리를 묶어 줌으로써 그 부인은 남편의 핍박을 탕감하고 자기의 사명을 넘겨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부인의 말에 의해서 그녀의 둘째아들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녀의 다른 딸들도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들이 그녀의 아들에게 일어났을 때, 동해안 지방에 있던 그 사람이 그녀가 있는 곳에 왔습니다. 그것은 가정적으로 결합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종족적으로 결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들이 결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서쪽 집단과 동쪽 집단이 결합함으로써 그런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복귀의 관점에서 볼 때, 동해안 집단은 천사장의 자리에 있었고 서해안 집단은 해와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또한 하늘은 그 천사장 집단에게 해와의 집단으로 가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해와의 집단이 아니라 천사장의 집단이 찾아간 것입니다.

주님이 한국으로 강림하신다는 계시를 받은 허여인

그런 일들에 의해서 이 운동은 온 한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모든 기성교회들이 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일본인의 압박이 가장 극심한 때였습니다. 얼마 후, 일본인이 망하게 될것이라는 것을 계시받았습니다. 그들이 계시받았던 것을 그들은 해를 거듭하여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런 것들이 목사들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목사들은 이 집단을 멸망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일본 정부 관리들에게 가서 그런 것들을 말했습니다.

그 당시에 많은 기성교인들은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그러나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거부했는데, 왜냐하면 모세의 율법이 우상 숭배를 금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이 이 집단을 따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목사들은 그들이 이 집단에 가는 것을 막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목사들이 일본의 관리들에게 갔던 이유입니다.

그 목사들의 고발에 의해서 그 늙은 부인은 투옥되었습니다. 그녀는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석방 후에 그녀는 죽었습니다. 한편으로 그녀의 죽음에 의해, 지하에서 계획되었던 하나님의 일에 행운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똑같은 운동을 시작하시기 위해서 다른 부인을 선택했습니다.

그 부인은 김성도 여인을 따랐던 대단히 독실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부인은 허호빈 여사였습니다. 그녀의 남편도 역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 역시 김성도 여사를 따랐습니다. 이 부부는 하나로 결합되었고, 단호했으며, 그리고 어떠한 어려움이 앞에 놓인다 하더라도 전진하기로 굳은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부부는 진지하게 하나님에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김여인의 일을 이어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김여인을 통한 이 일이 하나님의 참 섭리라고 믿으면서 열렬하게 기도했습니다. 이 부인, 허여사도 또한 계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예수가 그녀에게 나타났습니다. 예수는 그 부부에게 지상에서 마지막 사명을 이어받을 수 있는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찾으려고 애써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는 김여인을 찾을 수 있었고, 그녀를 통하여 마지막 사명을 준비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녀를 받아들여야 했던 목사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이 부부에게 계시를 내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는 그들에게 어떤 처지에서도 모든 어려움을 참고 견디고 자기의 뜻을 받들 것을 부탁했습니다. 김여인은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핍박을 받았으나, 이 부부는 일체가 되어서 남편으로부터의 박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박해는 외부 세계로부터, 밖으로부터, 기성교회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녀는 특별한 계시들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부는 하나님의 심정과 아담의 타락을 하나님이 얼마나 슬퍼하셨는가 하는 것과 예수 때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섭리를 가르침받았습니다. 모든 것을 가르침 받았습니다. 또한, 마리아에 대한 것과 자기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의 그 상황을 얘기했습니다. 예수는 자기의 어린 시절에 관한 것과 어머니 마리아가 그녀의 사명을 완수할 수 없었던 것에 관한 것도 말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세례 요한이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것들을 미루어 볼때,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원인은 유대 민족의 불신이었습니다.

그렇게 이 부부가 계시를 받을 때, 그들은 전체적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단편적으로 받았습니다. 그들은 또한 주님이 한국 사람으로 오실 것이라는 것도 가르침받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하늘의 왕자로 오신다는 것과 6천년 역사의 희생 후에 오시는 분이라는 것을 계시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지상의 모든 것 또는 과거 역사의 모든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분을 영접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모든 한을 해원하고, 복귀하고, 해결한 사람들이어야 되고 예수가 그의 생애에서 완수할 수 없었던 모든 것을 결말지은 사람들이어야 됩니다.

주님과 재림주님의 옷을 만든 복중교 신도들

또한 그들은 예수가 하늘의 왕자로 태어났었다는 것을 하늘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생애는 왕자의 생애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예수는 그의 생애에서 어떤 어려움도 겪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그가 입는 모든 옷은 가장 좋은 옷들이어야 했습니다. 예수는 최고의 것들로 식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민족의 실수로 말미암아, 예수는 음식과 옷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가 그의 생애에서 가질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을 탕감하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집단은 그 모든 것들을 탕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위해 모든 것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어릴 때부터 서른세 살 때까지 입을 옷들을 만들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예수가 3일마다 갈아입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옷들을. 여러분은 그것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 가지씩이 아니라 한복 한벌과 양복 한벌씩이었습니다, 한번은 한복으로 그리고 한 번은 양복으로 매 3일마다 입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이 그의 옷을 만들 때에 그들은 재봉틀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한 번에 세 바늘 이상 꿰매지 말라고 들었고,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 그들은 온 방을 깨끗이 청소해야 했으며 한 벌을 다 만들 때까지는 일어설 수가 없었습니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너희가 그런 대가를 치른다고 하더라도, 너희는 주를 영접하지 못하리라' 하늘은 그렇게 그들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것에서 실수를 했을 때에는 하늘로부터 가혹하게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의 지시들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그 집단은 추종자들이 천 명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천명의 사람들이 7년 동안 일했습니다. 그들은 하루에 세 끼를 마치 잔치상같이 준비했습니다. 하루에 세 번 고기를 먹었습니다. 옷들의 크기는 예수의 성장에 따라서 점점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그들이 예수의 옷 만드는 것을 끝낸 후에, 그들은 오실 주님을 위한 옷을 만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 주님의 옷을 만드는 데 더 많은 정성을 들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그 주님을 위한 식사를 가지고 왔을 때, 300번의 절을 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때로는 3천번까지 절을 하라고 했습니다. 하늘은 말하기를 '비록 너희가 예의를 갖추고 3천번까지 절을 하여 주를 받든다 하더라도 그것이 주에 대하여 너희의 존경을 표하는 데 있어서 충분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3천 번 절하려면 거의 열 시간이 걸립니다. 절을 마친 후, 그들은 쓰러졌습니다.

하늘은 그들에게 소매의 길이 등 모든 크기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또한 그녀의 남편도 그녀가 들었던 것을 들었습니다. 재림주는 그녀의 남편보다 더 몸집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학문적인 배경을 비롯한 모든 것을 하늘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주님을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기를 날마다 날마다 기다렸습니다. 그녀의 추종자들은 만일 그들이 명령을 받으면 언제라도 쓰러져 죽을 준비가 되어 있을 만큼의 각오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생명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면에 훈련되어 있었습니다.

허 여인을 중심한 교단이 '복중교'로 불린 이유

그 부인은 남편을 특별히 훈련시켰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당신은 해와를 타락시킨 천사장이예요. 그 천사장에 의해서 해와의 순결이 더럽혀졌어요. 나는 재림주님을 영접해야 할 사람이인데, 당신에 의해서 나의 순결이 더럽혀졌으니, 당신은 죽어야 돼요'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내보내며 죽으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그녀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그녀가 죽으라는 말을 하자 그는 나가서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으려고 하자 그녀는 그에게 죽지 말라고 했습니다.

겨울에 그녀는 자기 남편을 삼베옷을 입혀서 내쫓았습니다. 그녀는 맨발로 남편을 내보냈고 6개월 동안 돌아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얻어먹으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천사장으로 인해서 생긴 6천년을 탕감지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떠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일주일 후에 그녀는, 그를 다시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는 6일만에 6개월을 탕감지었습니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들을 때마다, 만일 그가 그녀를 믿고 순종하면 탕감이 되었고 그 기간이 단축되었습니다.

특이한 일은 그녀가 계시를 받을 때마다 그녀의 배가 그녀가 받는 말씀에 따라서 경련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왜 그녀가 그런 체험을 했던가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녀는 기독교인이었고 주님이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늘은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그녀에게 주님이 한 어머니의 배를 통해서 오실 것이라는 것을 그녀에게 상기시켜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집단은 기성교회들에 의해서 '복중교'라고 불렸습니다. 그녀의 배가 움직일 때마다 그녀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런 체험에 의해서 하나님은 그녀로 하여금 주님이 어머니의 배를 통해서 오실 것이라는 것을 믿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일본이 1945년 8월 16일-음력으로는 7월 7일-에 항복할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그녀는 하늘로부터 받았던 것을 자주 공공연하게 얘기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날이 음력으로 7월 7일에 떨어진 것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녀가 공개적으로 얘기했던 이유는 만일 그녀가 감옥에 갇히더라도 그녀는 곧 풀려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들었고, 그래서 그녀는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일본 경찰에 의해 석방되기 전날, 그녀는 천황의 머리 위에 한천사가 서서 천황한테 '너희는 하늘의 원수들, 그래서 너희는 멸망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바로 그 다음날, 일본의 천황은 라디오 방송으로 항복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또한 다음날 몇시에 천황이 방송할 것이라는 것도 들었습니다. 그 다음날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녀가 하늘로부터 받았던 모든 것이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녀의 추종자들은 그녀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해방의 날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또 '일본이 멸망할 때, 너희는 재림주를 만날 것이다'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감옥에서 풀려났을 때 기뻐서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기성교회들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한국이 해방되었을 때, 일본인에 의해서 투옥되었던 많은 독실한 목사들이 풀려났습니다. 그들은 기성교회의 재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기성교회도 내적 외적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주를 위한 길을 준비하신 하나님

동해안 지방에서 일어난 영적인 운동에는 또 다른 후계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용도였습니다. 그는 목사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많은 성령의 불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런 일들을 함으로써, 하늘은 그런 영적인 일꾼들을 하나로 묶고자 했습니다.

영적인 운동들도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졌습니다. 즉, 하나는 내적이었고 다른 하나는 외적이었습니다. 이목사를 중심하여 새로운 예수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이들 두 교회, 즉 '복중교'와 새로운 예수교회를 통일하라는 하늘로부터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쪽 집단이 하나되기 위해서 동쪽 집단이 있는 곳으로 갔으나 동쪽 집단은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들 두 집단의 통일을 이루는 데 실패함으로써 하나님은 하나의 새로운 운동, 새로운 분야의 개척자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지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또 다른 한 사람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는 김씨였습니다. 그 이후에 이목사는 죽었습니다. 이목사의 영이 김씨에게 와서 영적으로 자기의 사명을 인계했습니다. 이 김씨로부터 새로운 집단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그것을 성장과정의 관점에서 본다면, 첫노정은 소생단계였고, 이씨는 장성단계, 그리고 김씨는 완성단계였습니다. 그래서 이목사는 장성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와 같은 자리였습니다. 그는 1932년에 33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한국의 해방은 1945년에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12년이 있었습니다.

이것에 의해서 여러분은 하늘이 주를 위한 길을 준비하기를 얼마나 원했던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본인의 압제를 이겨내게 하려고 그렇게 일찍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런 환경 가운데서, 선생님은 선생님의 길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허부인을 중심한 그 서쪽 집단은 해방 후에 재림주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오시는 주님은 신부가 있어야 하고, 그분은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오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신부와 가정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준비했고, 12제자와 70문도를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평양에서 제일 좋은 집을 샀습니다. 좋은 집을 사서 주를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그 당시에 선생님은 남한에 있었습니다.

김백문과 이스라엘 수도원

복귀섭리로 볼 때 자신을 여호와의 부인으로 선언하는 한 여인이 있어야 합니다. 이 여인을 찾지 않고서는 섭리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그러한 한 여인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남한에서 선생님은 그러한 한 여인을 찾기 위해서 모든 종교 집단과 유명한 목사들을 방문 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해방 후 3개월이 되던 1945년 11월에 김씨 (김백문)를 만났습니다. 선생님은 그에게 큰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 당시에 그는 개신교 수도원을 하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늘로부터 하나의 수도원(이스라엘)을 소유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재림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세력을 준비하라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하늘로부터 들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 집단을 찾아가서 그를 만났고, 그와 함께 6개월 동안을 머물렀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거기에 김씨를 따르던 많은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그곳에 가기 전에는 김씨를 따르라는 계시를 그들은 받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그곳에 간 후로 그들은 김씨가 아니라 선생님을 따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 선생님은 원리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서 축복을 받았던 것처럼 선생님은 김씨로부터 모든 것을 상속받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6개월 후에 김씨는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았고, 그는 선생님의 머리에 자기의 손을 얹고, 전세계의 솔로몬왕의 영광이 선생님에게 임하게 될 것을 축복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선생님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가장 천한 일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손수 앉은 자리를 청소하는 등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선생님은 끝자리에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김씨를 만난 것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당시에 매우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만일 김씨가 하늘로부터 선생님에게 그러한 축복을 해주라고 들었다면, 그는 선생님에게 모든 것들을 알아내기 위해 질문들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5퍼센트의 책임분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전에 그를 따르던 독실한 추종자들이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그도 그것을 알았고, 그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선생님은 그로부터 축복을 받았고, 그래서 선생님은 그가 가지고 있던 것을 상속받았습니다.

안나와 같은 여인을 만나다

선생님이 김씨로부터 축복을 받은 후로 선생님은 안나와 같은 한 늙은 여인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 여인은 그녀 자신을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주장하는 여인이어야 했습니다. 그 당시에 남한과 북한 사이를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북한에 자신이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주장하는 한 여인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들 집단 외에도 구약시대적인 집단들과 같은 많은 집단들이 있었습니다. 그 집단은 하나의 신약시대적인 집단이었습니다. 거기에 구약시대적인 집단의 역할을 했던 백씨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모든 집단에 대해서 언급할 시간이 없습니다. 끝날에는 구약과 신약에 기록된 모든 것들이 횡적으로 실현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그 여인이 북한에 있고, 거기에 그런 집단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탕감복귀의 원리에 따라서 선생님은 선생님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는 그 집단들을 만나러 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유는 그가 신부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를 맞이할 신부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죽음의 원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주가 올 때, 그 준비된 집단들은 신부의 위치에서 준비한 것을 가지고 그들이 찾아와야 합니다. 만일 그 준비된 집단의 지도자였던 그 여인(허부인)이 주님이 계신 곳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했더라면, 하나님이 그녀에게 그곳을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 하늘은 그녀에게 그곳을 가르쳐 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들이 올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 선생님은 안나와 같은 여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양쪽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때때로 그녀는 하늘편에서 일했고, 때로는 중간 입장에서 일했습니다. 하늘편이 아니면 중간입장, 그러나 사탄편은 아니었습니다.

허여인의 불신

그 나이 많은 여인을 만난 이후 선생님은 그 집단에 사람을 보내서 허부인에게 선생님의 집단이 무엇인지를 기도해서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허부인은 하나의 큰 징후를 기대했지 한 젊은 남자 따위는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난 그녀는 그가 큰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돌려보냈습니다.

그 후에 선생님은 한 젊은 여자를 그 집단에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집단으로부터의 반응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허부인은 그녀의 집단의 간부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또 다른 계시를 받았는데, 그것은 춘향이가 감옥에서 그녀의 남편을 만난 것처럼 그들이 주님을 만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너는 춘향이가 감옥에서 그녀의 남편을 만났던 것처럼 주님을 만날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북한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점령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공산주의자들은 이 집단이 사람들로부터 많은 기부금을 모금해서 좋은 옷들을 만들고 좋은 집을 샀다는 것을 알아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집단을 그때의 종교적 사기꾼으로 고발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간부들을 감옥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때에 선생님도 그 집단과 관련되어 있다고 고발되었습니다. 실제로 선생님은 아무런 관련도 없었으나 그런 식으로 고발당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집단의 지도자와 같은 방에 갇혔습니다. 허부인 밑에 그집단을 이끌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선생님과 같은 방에 있었습니다. 그 날이 1947년 8월 11일이었습니다. 그 집단의 간부들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매우 가혹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허부인에게 만일 그녀가 계시를 받을 때 그녀의 배가 경련을 일으킨다는 것을 부인한다면 그녀는 풀려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김일성의 시대였고, 그는 종교를 박해했으며 모든 종교를 말살시키고자 했습니다. 허부인의 남동생이 심한 고문으로 죽었습니다. 허부인도 또한 심하게 고문을 받았고, 그녀의 옷들이 거의 다 찢어졌습니다.

그 당시에 선생님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고문을 당했습니다. 선생님은 10월 31일에 석방되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거의 죽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선생님이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다시 살아난 것은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허부인 다음 가는 사람이 있었던 방으로 들어갔던 때는 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밤 11시에 그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날 밤 그 사람은 선생님에 관해서 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선생님이 그 방으로 들어갈때 그들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전에 그런 경험들을 했고, 그래서 선생님은 그런 환경들에 매우 익숙했었습니다. 선생님은 변소 옆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 방 안에는 많은 죄수들이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감방장(監房長, 허부인 집단의 지도자)이 말했습니다. 그 방의 규칙은 가장 늦게 들어온 사람이 가장 나쁜 자리에서 잠을 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감방장은 일어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새로 오신 분은 특별한 분이니 자기 옆에 앉게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그 사람 옆에 앉았을 때 그는 선생님에게 절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무엇 때문에 절을 하느냐고 물으니, 그는 지난밤에 한 계시를 받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계시에서 선생님에게 절을 하는 허부인을 보았고 그녀가 '이제 내가 만나고 싶었던 그 사람을 만났다'고 했는데 선생님의 얼굴을 보니 선생님이 그 사람이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아침에 선생님은 그에게 '나는 당신이 체험해 온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으니, 나에게 당신이 경험해 온 모든 것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의 집단에서 일어났던 모든 것을 설명했습니다. 선생님은 모든 복귀의 원리를 알았지만, 그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그 정도까지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선생님도 그들이 얼마나 고생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공산주의자들이 만일 그들이 하늘로부터 계시받았던 것을 부인한다면 그들을 석방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에게 '만일 당신이 공산주의자들 앞에서 당신이 체험해 온 모든 사실들을 부인하기만 한다면,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그에게 '만일 허부인이 거짓말이라도 해서 그녀가 체험했던 것을 모두 부인한다면 한 젊은 사람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한다는 것을 허부인에게 전하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 말을 허부인에게 전달하도록 그에게 부탁했습니다. 점심시간에 점심이 배급되었을 때 그 젊은이는 허부인에게 얘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말했던 모든 것을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허부인은 춘향이가 감옥에서 그녀의 남편을 만났던 것같이 그녀가 주님을 만날 것이라는 것을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아무도 못 보았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말을 따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부인했기 때문에 석방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석방된 뒤에 허부인의 남편이 선생님의 방으로 왔습니다. 선생님은 그녀의 남편에게 선생님이 그 젊은이에게 말했던 것을 얘기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자기 아내를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생님의 말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 자신이 한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선생님은 편지를 쓰면 그것은 다른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9월 18일 아침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식사 때에 밥을 배달하는 사람한테 그 편지를 허부인에게 전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녀가 그 편지를 읽고 나서 찢어 버리려고 하였으나, 그때 그녀는 공산당 감시원한테 들켰습니다. 그것은 그 종이를 갖다 준 그 사람이 간수에게 알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쪽지를 쓴 사람은 하늘의 사명을 가진 사람이다. 당신은 기도를 해서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 봐야 한다. 만일 당신이 계시받았던 모든 것을 부인한다면, 당신은 석방될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그 쪽지는 간수에게 발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1947년 9월 18일 오후 2시의 일이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남한에 있는 미군의 스파이로 고발되었고, 선생님이 소련 조사관에 의해서 심문을 받았으나, 선생님은 무죄라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선생님은 10월 31일 오후에 풀려났습니다. 선생님이 자세한 것을 얘기하려고 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입니다. 허부인과 그녀의 추종자들은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들은 모두 학살당했습니다.

평양에서의 교회운동과 옥중전도

그 집단의 실패 때문에,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을 찾아야 했습니다. 선생님은 조건적인 수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거기서 일을 했습니다. 감옥에서 석방된 후로 선생님은 다른 집단들과 관계를 맺었고, 또한 그 집단의 사람들을 이끌었습니다. 선생님이 교회운동을 하자 식구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북한 정부의 정책은 모든 종교를 말살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성교회 목사들은 그들 교회의 많은 신도들이 선생님에게로 왔기 때문에 선생님을 고발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세번째로 투옥되었습니다. 그날이 1948년 2월 22일이었습니다.

감옥에서 선생님은 선생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을 따르라는 계시를 하늘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교회를 따랐던 사람들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감옥에 들어갈 수 있는가?' 하고 물으면서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고, 그래서 그들은 흩어졌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열 두 제자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감옥에서 그들 열 두 제자들을 복귀해야 했습니다. 감옥에도 죄수로 변장한 많은 공산당의 스파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감옥에서 한마디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계가 사람들에게 증거하였고, 그래서 그들이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선생님이 배고플 때 선생님이 알지 못하던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에게 주먹밥을 가지고 왔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조상들이 꿈에 나타나서 주먹밥을 선생님에게 갖다주라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 방법으로 20명 이상의 사람들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1950년에 유엔군이 북한을 공격했고, 맨 먼저 북한 흥남부두에 상륙했습니다. 선생님의 감옥이 근처에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유엔군에 의해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에는 많은 내력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동해안에 있는 흥남에서 평양까지 걸어서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은 서해안 지방의 평양까지 걸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의 이전 추종자들 모두에게 선생님이 돌아 왔다는 것을 알리는 사람들을 보냈으나, 대부분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몇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이남에서의 통일교회의 출발

선생님은 남쪽으로 피난 갔던 선생님의 추종자들을 찾으려고 부산까지 갔습니다. 선생님은 기성교회 목사들을 만나보려고 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회 재건 운동이 매우 활발했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새로운 식구들과 함께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선생님을 보지도 않고 선생님을 따른 첫사람이 전 유협회장이었습니다. 그는 원리의 원본을 보고, 그것을 읽음으로써 선생님을 보지도 않고 선생님을 따르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선생님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유협회장은 선생님보다 여섯 살 위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보다 6개월 위였습니다. 그래서 유협회장은 세례 요한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는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원리를 해설해야 했습니다. 유협회장이 썼던 책은 유협회장의 책이 아닙니다. 유협회장이 그 책을 쓸 때 선생님이 그에게 이런 식으로, 또는 저런 식으로 쓰라고 지시했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자세하게 그 책을 공부해야 합니다. 유협회장으로부터 통일교회가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중단하고 다음에 계속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은 통일교회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역사를 얘기하기는 이것이 처음입니다. 선생님이 이전에는 결코 이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기도)

많은 영적인 운동이 일어났던 한국

영계는 매우 활동적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많은 영적인 의식들을 거행해 왔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떡을 만들게 합니다. 나중에 우리는 그것을 식구들간에 서로 나눕니다.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모릅니다. 선생님은 원리를 가지고 일을 두 배가 넘게 할 수가 있었고, 선생님은 그런 일들을 영적인 법에 따라서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그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것인가를 모릅니다.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구요. 그 땅에는 그렇게도 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한 인간을 복귀하려고 6천년의 역사가 걸렸습니다. 여러분은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얼마나 불쌍하게 지내 왔던가,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보다 그들을 얼마나 더 사랑하셨던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그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거나 또는 그들이 계시받은 것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영적인 사업은 그만큼 연장될 수 있습니다. 지금 이런 이야기들은 여러분 자신들과 관계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많은 그러한 영적인 운동들이 일어났었습니다. 신도가 십만이나 되는 한 집단까지도 그들의 사명을 수행하지 못하고 멸망했습니다. 그들은 계시를 받았으나, 그들의 사명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대표적인 두 집단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포함하여 세 집단이 있었습니다. 그 두 집단이 멸망 또는 파괴되어짐에 따라, 우리의 교회가 유일하게 되었습니다.

새식구 교육문제와 대학교 설립계획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매우 두려운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심각하게 느끼지 말아요. 여기에 선생님과 여러분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해야할 모든 것은 선생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보통 사람같이 보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선생님을 따르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많은 사람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옵니다. 문제는 이들을 맞이하는 방법입니다. 이 새로 오는 사람들을 맞아 들여서 우리 식구로 만드는 방법이 문제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훈련소, 그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수련소를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한국을 떠날 때 새로운 대학교를 인수하거나 설립하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어떤 대학교를 인수하려고 접촉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한국에 대학교를 세운다면, 그 다음에 일본과 미국과 독일에도 대학교를 세워야 될 것입니다. 일본에는 매우 나이가 많은 사람, 사사까와 씨가 있습니다. 그는 선생님과 매우 가깝습니다. 그는 일본에 새로운 대학교를 설립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면 미국은 어떠합니까? 미국은 부(富)에서 첫째입니다. 그러나 우리 운동에서 대학교를 세우는 데는 미국이 마지막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독일의 앞이 되고 싶어요, 아니면 뒤가 되고 싶어요? 대학교를 세우는 것은 식료품 가게에서 빵을 몇 개 사는 것같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돈을 가지고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어요? 어떻게 여러분이 대학교를 세울 수 있어요? 여러분이 지금 당장에는 지불할 수 없더라도, 여러분이 장래에 하나를 짓겠다는 결심이 되어 있어요? 몇년도에?

여러분이 결심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여러분의 결심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만일 한사람이 결심하고 20년 동안 노력해 대학교의 총장이 된다면, 만일 우리가 그런 사람 20명을 가지고 있으면, 아마 우리는 1년 안에 대통령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결심한다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일본에서 WACL대회를 개최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지금까지 개최한 어떤 집회보다도 더 훌륭한 집회를 개최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선생님은 식구들에게 그것을 위한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들은 그 집회를 위해서 백만 불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구보끼한테 '그 집회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돈을 네가 모을 수 있겠느냐?'고 물어 봤습니다. 구보끼는 8만 불이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구보끼에게 '네가 그것을 믿느냐?' 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꽃 판매 운동을 지시했습니다. 그들은 거리에서 꽃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노상에서 하는 싸움 중에서 가장 치열한 싸움이었습니다. 5개월에 그들은 약 140만 불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돈을 사용할 수 있었고, 다른 집회도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기적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작년에 우리는 약 5백만 불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사막에서 풀을 모으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는 얼마나 많이 여러분이 선생님의 명령에 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생명보다도 그 명령에 더한 중요성을 두게 된다면, 그것이 쉬워지게 될 것입니다. 사형을 선고받은 한 죄수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만일 그에게 살 수 있는 어떤 방도가 있다고 한다면. 그는 무엇을 못하겠어요? 만일 그가 머리 위에 물 한 컵을 이고서 한 방울의 물도 흘리지 말고 길을 내려가라고 하는 말을 듣는다면 그는 그것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진지하다면, 하나님이 기적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여기에 대학, 또는 대학교를 만들 수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모든 생애를 포기하고 대학교를 설립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여러분이 대학교를 만들 수 없습니까? 그거 찬성하는 사람들, 손들어 봐요.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해야겠습니까? 그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이 따르고 싶어하고 동정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된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간단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찬성하는 그 일을 할 수 있어요?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으로 하여금 감사하는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한다면….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무엇이든지 창조 하실 수 있습니다.

전국적인 승공운동이 시급한 미국

파키스탄에서 재앙이 있었을 때, 우리는 일본에서 우리의 운동을 했습니다. 수입의 최고 기록은 1인당 400불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미국에서도 그런 운동에 대단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조그만 일이 아니라 큰 일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지도자 회의의 의장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미국에 자주 선생님이 오는 것이 좋아요?「예」 그러면 그것을 합시다.

우리가 가톨릭 신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1년에 16만 불씩 해서 12년 동안의 년부(年賦)로 팔기를 원합니다. 계약금으로 우리는 3년 동안에 48만 불을 지불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 정도의 돈을 지불할 수 없다면 그들은 우리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신학교를 다른 사람에게 잃고 싶어요, 아니면 그것을 갖고 싶어요? 만일 선생님한테 돈이 있으면, 선생님이….

한국에서 우리는 공산주의 이론을 제시하고, 다음에 우리는 그것을 비판하고, 다음에는 하나의 대안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캠퍼스 집회를 개최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공산주의 학생들이 우리의 집회에 와서 자기들의 공산주의 이론을 배우고, 또한 그 이론의 결점들을 배웁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일본의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우리가 가장 두려운 조직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토론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만일 그런다면 우리가 그들을 이길 것이고,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식구들과 다른 미국인들을 수련시켜서 그들을 모든 주, 50개 주에 보내 가지고 승공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여기서 충분한 회원을 모집할수 없다면, 우리는 유럽과 아시아에서 사람들을 모집할 것입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대학교 졸업생들을 데리고 올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식구들이 미국을 공산주의자의 손아귀로부터 구하기 위해서 싸울까요? 미국 사람들도 따라올 수 있겠어요?

또한 우리는 기성교회의 부흥운동을 개최할 것이고, 기성교인들을 조직할 것이며, 그들의 힘을 통해서 정치적인 방향으로도 활동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미국 정부를 움직일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 정부가 자유세계를 구하기 위한 올바른 정책, 올바른 길을 취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3개년 계획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많은 재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의 부자들이 기부해 주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쓰는 돈은 우리가 스스로 벌어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돈을 버는 방법을 여러분에게 가르쳐 줄 것입니다. 만약에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선생님이 다른 나라들로부터 돈을 가져올 것입니다. 만일 미국이 다른 나라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인 것입니다.

또한, 미국 식구들은 유색 인종들을 전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앞으로 선생님은 아시아-아메리칸 정치 연합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이 일에 돈을 기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업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의 원리를 그들에게 전하여 그들을 우리 조직의 간부로 활동하게 할것이고, 그들을 보수없이 일하게 할 것입니다. 아시아계 미국인 조직을 이용함으로써 우리는 흑인과 백인을 결합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흑인들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들과 함께 일하지 않는다면, 미국인이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들어갈 것입니다. 만일 황인종이 백인과 흑인 사이에 선다면, 우리는 양 민족을 결합할 수 있습니다. 그런 방법으로 우리는 흑인들을 통하여 들어오는 공산주의의 침투를 체크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와 같은 하나의 조직을 만든다면, 미국 정부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미국을 이념적으로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만만합니다. 그들이 군사적인 힘에서 능가할 때, 그들은 공격할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싸우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공산주의자들이 공격적인 입장을 취한다면 미국인들은 물러서야 될지도 모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지하운동을 강화시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파괴활동들을 통해서, 만일 그들이 미국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면, 그때 그들은 완전히 정복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을 취할 것입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소련은 군사력에 있어서 미국을 훨씬 앞지르고 있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이 세계가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면 우리 식구들은 모두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학살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이냐, 아니면 생존이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는 사회를 단순히 현재와 같이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공산당에 대해서 당당히 맞서는 다른 단체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공산주의와 싸울 각오가 된 자신있는 사람들입니까? 「예」

통일교회사(Ⅱ)

​우리의 결혼식은 다른 결혼식과는 다르지요? 우리는 역사적인 모든 것들을 탕감을 통하여 복귀해야 합니다. 원래 그들은 완성을 향해서 3단계, 즉 소생·장성·완성을 통한 복귀의 과정을 상징하는 스물 한 번의 발걸음을 걷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소생·장성·완성을 통과함으로써 완성 단계에 이르는 과정을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각 단계의 끝에서 세 번 절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열두 번이 됩니다. 여러분은 처음에 세 번 절을 하고 각 단계의 끝에서도 세 번 절을 합니다.

합동결혼식과 성주식

부부가 됨을 상징하는 13수는 예수의 수인데, 이 13수를 채우기 위해 여러분은 마지막에 또 한 번 절을 합니다. 이 마지막 의식 전에 우리는 많은 다른 의식들을 행하는데, 성주식(聖酒式)은 사탄의 혈통을 하늘의 혈통으로 전환함을 뜻합니다. 여러분은 오직 여러분이 지난 6천년을 통하여 저질러진 모든 것들을 푸는 복귀의 노정을 통과한 후라야만 그 의식을 거칩니다. 그 합동결혼식을 본 후에 어떤 부인은 그것이 전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아들 중의 하나도, 그가 우리 식구는 아니지만, 선생님이 그를 결혼시켜 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내아들 장가 좀 보내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777쌍 결혼은 10개국을 상징했습니다. 그것을 함으로써 선생님은 세계에 열두 문을 열었습니다. 삼 칠은 완성수입니다. 사실은 선생님이 791쌍을 결혼시켰습니다. 선생님이 누군가가 군복무 때문에 없을 경우를 대비해서 더 많은 쌍들을 추가했던 것입니다.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Revolution Revisited'라는 중국영화를 관람한 후 다시 말씀하심)

공산당의 선전방식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공산당의 감옥살이가 어떤지를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에트 혁명 후 많은 러시아인들은 강제노동에 시달렸습니다. 공산주의의 이론은 그들 앞에 어떠한 유산계급이나 반공산주의 분자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으로는 그들이 모든 반대자들을 죽이고 싶어하지만, 세계의 여론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공산당들은 그들을 강제노동에 동원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든 노동으로 그들이 죽을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감옥에 있을 때, 선생님은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혔습니다. 김일성은 소련의 경험을 본받아서 모든 죄수들을 3년 동안 힘든 노동에 동원했고, 그들을 죽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선생님이 그들의 선전에 관해서 얘기하겠습니다.

강제노동수용소에는 대략 800명의 죄수들이 있었습니다. 일요일은 휴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산당들은 그들을 쉬게 하지 않았습니다. 소위 세뇌시간이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 그들은 모든 죄수들이 다 알고 있는 거짓말만 했습니다. 실제로 죄수들은 거의 죽어 가게 되는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죄수들을 잘 대우하고 있다고 선전하는데, 모두 거짓입니다.

그들은 면회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선전에서는, 그들은 언제든지 면회객들이 올 수 있고, 모든 종류의 음식과 죄수들을 위한 것들을 가지고 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들은 국경일에 생선을 가져다 주고, 죄수들을 쇠고기와 돼지고기 그리고 모든 것들을 먹게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일년 내내 그런 선전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그 죄수들이 김의 정권에 대한 반동분자들이었지만, 그들에게 그런 것들을 가르치고는 그 강의에 대한 각자의 감상문을 쓰게 합니다. 그들은 그런 보고서들로써 책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감상문을 보존합니다.

그들은 좋은 감상문을 쓴 사람들을 뽑아서 죄수들 앞에서 낭독하게 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김일성을 찬양하게 하고는 그들에게 훌륭한 좋은 대우를 해줍니다. 그들을 김일성과 일체가 되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죄수들 앞에서 훌륭한 연설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보고서를 쓸 때마다, 죄수들에게 박수를 치게 합니다. 만일 한 죄수가 박수를 계속 치지 않는다면 그는 체크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연사를 뽑을 때, 그들은 가장 영향력이 있고, 김일성을 가장 반대하는 그런 사람들을 뽑습니다. 그들은 그런 사람들을 뽑아서 연설하게 합니다. 그것을 함으로써 그들은 죄수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이날 그들의 연설이 끝난 후에 공산당들은 그 연사와 같이 지낼 젊은 죄수들을 보내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어떻게 그런 것을 말할 수 있었느냐고 묻게 합니다. '당신은 진정으로 말했습니까?'라고.

만일 그 연사가 자기는 그런 식으로 말하도록 강요당했다고 하면 공산당들은 그를 붙잡았습니다. 그들이 바로 공산당의 앞잡이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을 독방에 가두고 고립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서운 형벌을 가했습니다. 그런 선전에 의해서 그들은 죄수들이 자기들의 마음을 바꾸게 강요합니다.

적은 식사와 중노동으로 비참한 수용소 생활

그들은 식사 때에 밥을 줍니다. 그들은 단지 세 입 정도의 밥을 줍니다. 그것은 심각합니다. 충분하지 않은 밥이예요. 국으로 그들은 무우잎과 소금을 넣은 물을 줍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하루에 8시간 일하게 합니다.

그들은 매일 작업량을 정해 줍니다. 그 일은 황산 암모늄을 부대에 담아서 차에 싣는 것이었습니다. 동양에서는 짚가마니를 사용합니다. 각 가마니에 황산 암모늄 40킬로그램을 넣어서 새끼로 묶어 가지고 짐차에까지 운반합니다. 그들은 창고에서 가마니들을 가져오고 새끼들을 가져옵니다. 그러면 그 가마니에 황산암모늄을 채우고 묶습니다. 그런 모든 일들이 죄수들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교도소 밖의 일반 노동자들은 돼지고기를 먹는데, 왜냐하면 그 암모늄이 피부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피부가 그 영향을 받으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일반 노동자들에 대한 최대의 할달량은 70가마였습니다. 그러나 죄수들의 작업량은 돼지고기도 없는 적은 밥을 먹는데도 하루에 130가마였습니다.

여러분, 짚가마니를 본 적 있어요? 우리는 그것들에 벼를 담습니다. 그일을 하기 위해서, 열 사람이 한 조를 이룹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루에 1300가마를 합니다. 비료 더미에서 그들은 그것을 가마니에 담고, 새끼로 묶습니다. 그 이전에 그들은 저울을 대기시켜 놓습니다. 그것을 저울에 올려 놓습니다. 그들은 그 가마니들을 저울에까지 지고 와야 합니다. 어깨에 멍이 듭니다.

공산주의자들은 3년 후에 죄수들의 80퍼센트 이상이 죽는다고 판단합니다. 그렇게 부족한 식사를 하고 그런 중노동을 하기 때문에, 6개월간 작업을 하면 피부가 매우 상하게 됩니다. 나는 여러분이 유대인 포로 수용소가 나오는 영화를 보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아랫다리가 넓적 다리보다 커집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런 일을 한다면 여러분의 넓적다리가 아이들보다 작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시체들 같아 보입니다. 그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게 적은 양의 식사와 그와 같은 중노동으로 항상 힘을 공급받지 못하고 소모하고 있습니다. 그의 위는 항상 작용을 해야 하는데…. 다음날 일어나면 자기 배가 널판지같이 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공산주의 노동자 수용소의 생활입니다.

만일 각자의 작업량을 완수하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는 식사 배급량이 반으로 줄어드는 것입니다. 죄수들에게 있어서는 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교도소에서 작업장까지의 거리가 10리 길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그들이 감옥을 떠날 때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네 줄로 서야 하고 옆에는 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경비원들이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느슨해진다면, 만일 그들이 손을 잡지 않은 것이 발견된다면 그들은 탈출하려는 것으로 고발당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머리를 똑바로 쳐들 수 없었습니다. 항상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들을 3년 안에 죽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신력의 중요성

선생님이 그러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겠어요? 사람은 육신만이 아닙니다. 만일 죄수들이 음식만을 먹고 살게 되어 있었다면, 그들은 죽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은 결심했습니다. 선생님은 정신력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이 영적으로 어떤 것을 먹는 경험을 하게 될 때 여러분은 배고프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정신적으로 특별한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선생님이 먹는 음식의 절반으로도 살 수 있다고 마음에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후 선생님은 그 생각에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생님의 음식의 절반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3주 동안 계속했습니다. 선생님은 절반의 음식을 먹고도 선생님의 작업량을 완수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열 사람이 한 조이기 때문에, 그들은 일을 나누어서 합니다. 거기에는 더 쉬운 일과 더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가장 어려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가장 힘든 일을 할지라도, 선생님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년 후 또는 10년 후에라도….3주 후에 선생님은 그것에 익숙하게 되었고 아주 자신만만해졌습니다. 그때부터 선생님은 선생님 몫의 식사를 모두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선생님은 선생님의 식사는 절반이고, 다른 절반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정신적인 위안을 가질 수 있었고, 그 위안이 매우 큰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은 다른 사람의 두 배 정도까지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일을 할 때마다 선생님이 항상 시험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이 더 열심히 일을 할 때 선생님의 육신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가를 분석하고 연구했습니다. 때때로 선생님이 속도를 높일 때 선생님의 몸이 변했습니다. 만일 선생님이 보통으로 일했으면 선생님의 몸이 어떻게 반응했겠어요?

열 사람 중에는 몇몇 약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선생님은 자기의 할당량을 완수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일을 보충하기 위해서 선생님의 할당량 이상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선생님은 매일 그런 일을 계속했습니다. 작업하는 동안에 밥 생각을 한다면 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일할 때 밥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그것을 하도록 운명으로 정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일을 하려고 태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선생님은 마치 선생님이 복귀섭리를 하는 것처럼 모든 심정과 모든 성의를 그 일에 쏟았습니다.

밥으로 사람들을 조종하는 공산세계

선생님은 작업하는 동안에 항상 선생님이 영계에서 경험했던 것을 생각했고, 훗날 선생님의 후손들과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보여 줄 영화에서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들과 후손들은 선생님의 일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하게 될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8시부터 일을 시작했으며 10시에 10분 휴식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그들은 변소에 갑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결코 그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휴식시간이라는 벨이 울려도 못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그때에야 비로소 휴식시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몸은 일하고 있었으나 선생님의 영은 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와 같은 정신으로 일했기 때문에 선생님의 체중은 거의 유지되었습니다. 선생님은 거의 체중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간수들이 매우 놀랬습니다.

선생님이 일하러 갈 때마다 선생님은 항상 가장 어려운 일을 찾았습니다. 몇 개월 후, 선생님은 최고의 노동자로 불리웠습니다.

매일 조원들은 탈출음모를 꾸미지 못하도록 바뀌었습니다. 조가 바뀔때, 모든 죄수들은 그 최고의 노동자가 있는 곳으로 오기를 바랬습니다. 선생님의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선생님은 결코 한마디도 안 했는데, 왜냐하면 선생님이 공산주의자들의 조직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에게 가장 힘든 일은 거짓 연설을 들은 후에 소감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감시원들은 그들의 주의를 선생님에게 집중시켜서 선생님을 고발할 조건을 찾고 있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선생님의 방에 스파이를 놓아 두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감시원들이 한 죄수에게 밥을 조금 더 주어서 그 죄수를 앞잡이로 이용하는 것은 매우 쉬웠습니다. 공산주의 세계에서 그들은 밥으로 사람들을 조종합니다.

얼마나 죄수들이 밥을 갈망하는가에 대해서 예를 들겠습니다. 여러분이 밥을 먹을 때, 여러분은 가끔 돌을 씹을 때가 있을 텐데, 어떤 사람은 그것을 뱉어낼 것입니다. 그러나 죄수들은 뱉어낸 그것도 모조리 핥아먹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만일 한 죄수가 병이 나서 일을 할 수 없으면 그의 밥 배급량이 깎였습니다. 그 죄수에게는 그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가혹하고 서글펐습니다. 그들의 밥 배급량이 반으로 깎일 때 그들은 마치 그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래서 병든 죄수 라도 자기 방에서 기어 나와야 밥 배급을 다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열과 많은 고통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어 나오려고 애를 썼습니다.

점심은 작업장에서 주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점심을 먹기 위해서 그들은 작업장으로 가야 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일을 할 수 없더라도 그들은 밥을 먹기 위해서는 일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쓰러질 수 없었습니다. 또, 저녁밥 배급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서라도 수용소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배급을 받을 때, 그릇에 밥을 받습니다. 밥 그릇을 받자마자 무의식적으로 밥을 입속으로 털어넣습니다. 자기의 밥을 우물거리면서 두 눈은 다른 사람들의 밥 그릇에 고정됩니다. 배식이 끝나기도 전에 다 먹어 버립니다.

그들은 자기가 먹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이 밥 그릇을 받는 것을 보고는 자기 밥 그릇이 비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때때로 옆 사람과 싸우기도 합니다. '네가 내 밥을 먹었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밥을 자기 입속에 털어 넣다가 목구멍이 막혀서 바로 죽어 버린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한 비참한 생활이 공산당의 감옥소 생활입니다. 그것은 모든 반동주의자들을 제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한 죄수가 그의 밥을 다 먹기 전에 죽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 죽은 사람의 입에서 밥알을 꺼내 먹기 위해서 싸웁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해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비참한 생활이었는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계의 가르침으로 제자가 된 사람들

가장 어려운 일은 비료를 가마니에 담은 후에 그것을 저울에까지 나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는데, 선생님이 그것을 했습니다. 다른 어느누구도 이것을 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한 가마니는 88파운드의 무게가 나갑니다. 이것을 저울까지 나르라는 겁니다. 선생님은 1300가마니를 저울에까지 날랐습니다.

숙달이 되면 요령이 생깁니다. 일이 진행됨에 따라 더미는 줄어들고, 결국 그것은 없어집니다. 그러나 저울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맞추는 데는 적어도 3내지 5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루의 작업량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울을 이동시키지 않고 비료 가마니들을 나르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가마니를 들어서 던지는 것입니다. 한 해에 한 번 모범수를 뽑았는데, 선생님이 뽑혔습니다.

죄수들 중에서 선생님을 따른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영계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20명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선생님을 따랐지만 선생님은 그들에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휴식시간에 그들은 변소에 갔다가 옵니다. 비록 그들이 말을 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선생님 곁으로 와서 선생님에게 자기들이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비료더미는 한 덩어리가 이 집만큼 높았습니다. 한 더미에서 일을 하는 몇 팀이 있는데, 그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단지 변소에만 갔다 올 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체했습니다. 그러나 감시원들은 하늘편 사람을 따라 다녔습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눈치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들에게 선생님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침에, 그들이 감방에서 좁은 복도로 나올 때 그들은 네 줄로 섭니다. 그 복도는 좁은데, 그때 따르는 사람들이 선생님에게 와서 윙크를 하는 것처럼 선생님을 껴안았습니다. 그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때 만일 선생님이 그들에게 명령을 했으면 그들은 무엇이든지 했을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죄수들에게 면회가 허용되었습니다. 친척들이나 가족들이 올 때 그들은 미싯가루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이 미싯가루를 받을 때마다 자기 혼자서 그것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같은 감방에 있는 죄수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선생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서 그런 미싯가루를 받았던 사람들은 그것을 종이에 싸서 숨겨 두었다가 과자를 만듭니다. 왜냐하면 매일 그 교도소 간수들이 몸수색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간수들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숨깁니다. 그들은 그것을 작업장으로 가지고 와서 휴식시간에 선생님에게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같이 나누어 먹습니다. 그리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 일이 가장 잊혀지지 않습니다. 감옥에서는 콩 한 조각이라도 사고 팔 수 있습니다. 감옥에서는 귀한 것이 쌀이나 콩알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귀한 음식들을 선생님을 위해서 아꼈습니다.

그들은 유엔군에 의해 수용소에서 풀려난 후 평양으로 갔습니다. 그길에는 단지 4명만이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그외 다른 사람들은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그들 네 사람들은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이런 일들을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공산주의자들

공산주의자들은 말과 행동이 다릅니다. 미국은 소련이나 중공에게 속지 않아야 됩니다. 비록 그들이 조약(핵군비축소조약)에 사인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핵무기를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은 북한을 봄으로써 그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휴전 협정에 양측이 어떤 무기나 어떤 군사력도 증강할 수 없다는 조약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핵무기들을 증강시켰습니다.

선생님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일제 시대에도 일본에서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선생님은 일본 정부에 대항해서 싸웠습니다.

공산당 교도소 조직은 대단히 강력했습니다. 북한에서 그들은 배급으로 모든 백성을 통제합니다. 만일 그들이 반동의 사상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면 배급을 줄여 버립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을 바꾸게 하거나 아니면 자살을 하게 만듭니다.

소련 군대가 만주와 북한에 도착했을 때 공산주의자들은 공장의 모든 기계를 떼어내서 시베리아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조그마한 모터까지 가져갔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활수준으로서는, 여러분의 사고방식으로서는 공산주의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앞에서는 자연스런 태도를 취할는지 모르지만, 여러분 뒤에서는 여러분의 팔, 다리, 목을 묶어서 끌어당깁니다.

오늘 밤 선생님은 이것을 깨우쳐 주고 싶었습니다.

통일교회사(Ⅲ)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께서 그러한 투쟁을 통해서 아담과 예수를 복귀하기시 위하여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셨는가를 이해할 것입니다. 예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하나님 편의 아들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말고 누가 예수 편이예요? 그것이 문제가 됩니다. 완전히 복귀된 아담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 해와와 복귀된 세 천사장을 가져야 합니다. 그는 타락 전에 에덴동산에 있었던 본래의 식구들을 복귀해야 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타락으로 인해 해와와 세 천사장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해와와 세 천사장들을 복귀해야 했습니다.

재림주가 이 땅에 나타나려면

재림주가 이 땅에 나타나기 위해서 그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잃어버렸던 모든 것들을 복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아담, 해와 그리고 세 천사장을 복귀하기 위한 것이라고 간단히 얘기되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그분은 제일 먼저 천사들을 창조했습니다. 그 다음에 아담을 창조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해와를 창조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세 제자들은 믿음의 자녀들이었고, 동시에 복귀된 천사장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타락은 세 천사장들이 아담을 섬기는 데 실패함으로써 야기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천사장들이 예수와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해와를 복귀하기 위해 예수와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그 세 천사장들은 예수의 일을 위해서 그들의 생명을 희생해서라도 그 길을 가야 했습니다. 그 천사장들이 아담을 섬기지 않았고, 아담과 하나님과 더불어 일체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절대적으로 복종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탕감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담이 어디를 가든지간에 따라가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세 제자들도, 심지어 십자가의 선까지도 예수와 함께 가야 했습니다. 만일 예수 때에 그 세 제자들이 그 십자가에까지 예수와 함께 갔더라면 영적으로 예수가 이 지상의 해와를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는 영적으로 사위기대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가 영적으로 이 사위기대를 이룰 수 있었더라면 사탄이 그의 일에 끼어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세 제자들을 잃게됨으로써….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그를 따르지 않고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세 영적 천사장들을 잃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복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활 후 40일 동안 도망갔던 그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영적으로는 예수가 세 제자들을 복귀하였으나 예수를 위한 복귀된 해와는 없었습니다. 그의 죽음 후 세 제자의 불신 때문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사탄의 주관권 아래 놓였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항상 끼어들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비록 사탄이 예수 자신을 참소할 수는 없었다고 할지라도 예수가 제자들을 데려오려고 할 때마다 그들이 예수를 불신하였기 때문에 그 조건에 의해서 사탄이 항상 그들을 데려갈 수 있었고, 간섭, 침범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거 이해할 수 있어요? 그들은 불신하였기 때문에 사탄의 주관권으로 떨어졌고, 거기서부터 예수는 그들을 되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항상 그들을 참소, 또는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해와를 복귀하려고 할 때에도, 그는 그녀를 사탄의 주관권으로부터 복귀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역사를 위해서 분리된 아담과 해와는 함께 와서 재결합되어야 했습니다. 예수 자신은 사탄에 의해서 참소당할 아무런 조건이 없었기 때문에 천국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와는 지상에서 잃었던 그 세제자들을 복귀함으로써 놓여지는 기대로부터 복귀되어져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와의 영이 지상에 와야 했습니다. 여기까지 이해돼요?

문: 그리스도가 낙원이 아니고 천국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예요? 혼자서 천국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문: 예수와 하나되어야 했던 그 세 제자들의 관계는 무엇이고, 해와를 복귀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만일 그들이 예수가 죽기 전에 그와 하나되었더라면 사위기대가 복귀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불신했고 부인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홀로 남았습니다. 예수는 그 사위기대를 복귀할 수 없었습니다. 부활 후에 그는 그들과 함께 그의 일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제자들은 사탄주관권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그들을 침범할 수 있었습니다.

문: 어떻게 그것이 해와를 복귀하는 일과 관련이 됩니까?

만일 예수에게 세 제자가 있었고 그 세 제자들이 예수와 일체가 되었더라면, 그 기대 위에서 예수가 해와를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해와가 영적으로 예수와, 그리고 그 세 제자와 함께 머물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와 성령이 함께 천국에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이 지상에 역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적으로 사탄에게 침범당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육적으로는 침범당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영적으로는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더라면, 기성교인들이 예수를 보기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기성교인들은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 매우 열심히 기도해 왔습니다. 그들은 시련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쉽게 예수를 만날 수 없었고 그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사위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예수나 성령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 영적인 사위기대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유대민족은 그들의 나라를 잃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독립된 채로 남아져 왔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더라면, 하나님이 그 나라를 복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인들이 유대나라를 정복했더라면 로마 제국도 이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 제자들이 믿었더라면 예수가 종적으로는 그리고 횡적으로 사위기대를 이룰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승천하였고, 그래서 사위기대가 종적으로는 이루어졌지만 횡적으로는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기대를 위해서 기성교인들이 성령을 받아서 그 성령과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예수에게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예수와 일체가 됨으로써 영적으로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와 성령 사이의 공간이 사탄에 의해서 점령되었습니다. 예수와 하나되기 위해서 그들은 이 공간을 돌파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개인은 사탄의 주관권을 통과해 가야 합니다. 인간들이 열심히 기도할 때마다 사탄이 와서 때때로 그들의 목을 눌렀습니다. 이렇게 사탄의 간섭은 그 세 제자의 불순종 때문에 초래되었습니다.

문: 실제의 해와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성령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다른 어떤 여자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만일 예수가 지상에서 세 제자와 하나되었더라면, 육적으로 해와를 복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문: 어떤 사람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담과 같이 있었던 해와요?

아닙니다. 예수가 아담 자신은 아닙니다. 해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문: 누구를 예수가 선택하려고 했던 것입니까? 어떤 여자예요?

물론 남자는 아닙니다. 여자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민족이 그들의 나라를 잃고 흩어졌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로마 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그들이 복귀되어집니다.

그래서 재림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면 그분은 잃어버린 세 제자를 복귀하셔야 합니다. 그 세 제자는 복귀된 천사장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해와를 복귀하실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워야 했던 조건들

아담을 복귀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구약시대, 신약시대, 그리고 성약시대를 거쳐 나오셨습니다. 왜 그 분이 이 세 단계를 거쳐야 했던가 하는 이유는 아담을 복귀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해와를 복귀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바로 그것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 해와의 자리와 신약시대 해와의 자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약시대 해와의 자리를 복귀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것은 본래 하나님께서 아담과 해와를 함께 사랑하시기를 원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오직 아담의 자리에 있는 남자들만 택하셨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등…. 신약시대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은 해와의 자리에 있는 여자들은 바른 조건들이 세워질 때까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끝날에 그러한 조건들을 복귀해야 합니다. 이해가 돼요?

한국에서 천사장들의 영역에 섭리의 3단계가 있었습니다. 세 천사장들을 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세 단계의 섭리노정을 통과하셔야 했습니다. 선생님이 그저께 설명했던 것처럼 한국의 동해안 지방에는 한 남자의 집단이 있었고, 서해안 지방에는 한 여자의 집단이 있었습니다. 그 남자의 사명은 3단계로 계승되었습니다. 백씨, 이씨, 그리고 김씨로…. 그 여자의 사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일 선생님이 그 영적 집단으로부터 한 남자와 그리고 그 남자와 일체가 된 세 여자들을 복귀할 수 있었더라면, 그것에 의해서 해와의 복귀를 위한 모든 조건들을 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늙은 여자, 결혼한 늙은 여자에 비유될 수 있고, 신약시대는 약혼은 하였으나 결혼할 수 없었던 여자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한 가정에서, 그 늙은 여자는 할머니에 비유될 수 있고, 신약시대의 여자는 어머니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약시대의 여자는 딸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 여자는 예수의 자매를 뜻합니다)

이북 선교를 시작한 이유

선생님이 김씨의 집단으로 갔는데 그는 세번째 단계의 남자였습니다. 김씨가 선생님을 축복하기 전에, 거기에서 선생님에게 주님을 증거했던 세 여인이 있었습니다. 만일 이들 세 여인들과 김씨가 선생님과 하나되었더라면 모든 그 조건들이 그 자리, 그 시간에 복귀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김씨 집단이 선생님과 하나되었더라면 바로 그것이 완성단계의 집단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또 다른 기독교 집단을 찾아야 했고, 그 집단과 함께 기성교회 목사들을 연결시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정부를 연결시켜야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한국에 대통령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아직 정부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 연결해야 할 것들 중의 하나가 정부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3수를 만듭니다. 그것은 김씨 집단이 완성단계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종적인 섭리가 끝날에 횡적으로 복귀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김씨 집단이 완성단계의 집단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신약시대의 집단이 여기로 오고 (몸짓), 그리고 구약시대 집단이 마지막 집단이 됩니다. 그러므로, 중심은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세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장성단계가 됩니다. 정부집단은 소생단계가 됩니다. 구약시대가 소생, 신약시대가 장성단계인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은 완성단계입니다. 이들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 세 여인들이 선생님을 증거했습니다. 그 후 그들은 선생님과 하나가 되어야 했으나 선생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북한으로 가야 했던 것입니다.

북한에서 선생님은 그러한 세 여인과 한 남자를 복귀하기 위해 모든 조건들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예수가 그 기대를 잃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 위에 못 박힌 것은 선생님의 투옥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감옥은 육적인 지옥입니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 같은 상황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선생님이 투옥되었습니다. 그 감옥에서 선생님은 그런 인물들을 모두 복귀해야 했습니다.

이때 선생님편에서가 아니라 그들편에서 그들이 선생님에게로 와야 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스스로가 선생님에게로 와야 합니다. 북한에 가는 것은 감옥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지옥이었습니다. 예수의 죽음 후에 기독교인들은 로마 제국으로 갔습니다. 그들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예수가 로마 제국 치하에서 죽었는데, 그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로마 제국으로 가야 했고, 거기서부터 복귀역사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북한은 사탄편 로마 제국입니다. 민주세계는 영적으로 복귀된 제자들의 입장입니다. 현 기독교 세계로 오기 위해서 기독교인들은 핍박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만일 김씨 집단이 선생님과 하나되었더라면 결국에는 모든 민주세계가 선생님과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더라면 공산주의 세계가 오늘날과 같이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 기성교인들이 선생님과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한국은 미군정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성교인들을 통하여 선생님이 정부와 결합할 수 있었다면 그 기성교인들을 통하여 선생님이 정부와 결합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정부를 통하여 선생님이 민주세계와 결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민주세계를 통하여 선생님이 그 당시에 공산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소련은 1948년에 원자폭탄을 개발했습니다. 소련이 원자폭탄을 개발해내기 이전의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후였기 때문에 약했습니다. 우리는 1981년에서 1985년까지 공산주의를 일소해야 합니다. 북한에 도착한 이후로 선생님은 고난과 고통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통일교회 식구들도 역시 그와 같은 길을 통과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식구들이 고생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사탄세계로부터 만물을 되찾아야 합니다. 부모가 복귀되면 자녀들은 자동적으로 복귀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가정의 혈통을 통해서 복귀될 것입니다. 그것이 실패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을 복귀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나가서 사탄세계와 싸워야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도상(途上)에 있습니다. 그 길은 우리의 봄절기인 국가 복귀의 때에 이를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가 국가와 자유세계를 복귀하는 때에도 여전히 공산주의 세계는 남을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두 가지의 일

우리가 이 사명을 완수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즉, 하나는 기독교 국가들에 대해 필요한 원리이고,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자들에 대해 필요한 승공이론입니다. 여러분, 자신 있어요? 그리고 여러분이 원리를 통해서 기성교인들을 복귀시킬 수 있다고 믿어요? 우리가 승공이론을 가지고 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겠어요?

이 길을 가기 위해서 우리는 한국에서 두 가지 방법으로 활동합니다. 첫번째 축복이 1960년에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줄곧 선생님은 승공활동을 하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우리는 승공운동 그리고 원리운동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국가와 세계에 적용할 때 섭리는 완성될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을 위한 승공수련소를 건립해야 합니다.

미국은 민주세계에서 천사장 국가입니다. 선생님은 미국 부부들의 80%가 이혼을 했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미국 가정들이 파괴 된다는 뜻입니다. 천사장들이 파괴된다는 뜻입니다. 천사장들은 결혼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혼 이후는 타락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깨진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즘은 미혼의 남자 여자들이 성관계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복귀해야 하고, 그 관계도 역시 복귀 해야 합니다. 가족들, 부부들이 헤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혼하지 않은 그들을 분립시켜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것들을 쓸어 버릴 수 없다면 섭리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원래, 재림주님은 미혼 남녀들을 축복하시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지 기혼 부부들을 축복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모든 가정들이 깨지게 되었으므로 그 조건 위에서 선생님이 결혼한 부부들까지도 다시 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두 역사(役事)를 미국에서 결합해야 합니다. 기성교인들을 복귀시키는 일도 미국에서 되어져야 하고, 공산주의 세계를 이기는 일, 공산주의 지배를 막는 일도 되어져야 합니다. 지금 공산주의 세계는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이 일어나서 싸워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미국을 복귀시킬 수 있다면 비록 우리가 한국과 일본을 잃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비록 우리가 한국과 일본을 공산주의 세계에 잃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전세계를 복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견고한 기반을 닦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그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여기 미국에서 부흥회를 하겠다고 여러분에게 말한 것입니다.

감옥에서 한 제자를 찾은 경위

이제 선생님이 북한에 있었던 때로 돌아가 보도록 합시다. 선생님은 감옥에서 그들 잃었던 세 제자를 복귀해야 했습니다. 감옥에서 선생님이 그저께 밤에 말씀했던 것과 같이 허부인 집단을 만났습니다. 거기에 그녀의 남편과 남자 멤버들도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선생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다시 감옥에 가야 했습니다. 예수의 세 제자들이 예수를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들어간 감옥에 죽음 앞에서도 선생님을 따를 수 있는 세 제자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감옥에 갈 때 선생님은 그들 세 제자들을 만날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선생님은 그들을 만났습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은 원래 남한에서 살던 젊은이였습니다. 전쟁 후 그는 월북해서 북한 인민군 포병장교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계급이 중령이었으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남한에 연고(緣故)가 있어서 남한의 스파이로 고발당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 당시에 사형선고를 받고 있었습니다. 집행의 날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심각했겠어요.

감옥에 갇히기 전에 그는 인민군 포사령부의 사령관 밑에서 일했습니다. 그 사령관의 이름은 무정이었습니다. 그가 체포될 당시에 그 사령관은 만주에 있었고 북한에 없었습니다. 그가 돌아온 후 그의 부하가 감옥에 갇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 사람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을 훈련시키면 매우 훌륭한 장교가 될 것이며, 앞으로의 전쟁에서 크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김일성에게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그때 그는 이미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차분하게 처형당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낮에 환상을 보았는데 백발 노인이 그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노인이 그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남한에서 오는 한 젊은 선생을 만날 것이며 그러면 그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다지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환상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그 환상에서 보았던 것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두번째로 그 백발 노인이 나타나서 왜 그 말을 믿지 않느냐고 나무라면서 다시 남한에서 온 선생을 만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꿈속에서 그 노인에게 얻어맞는 꿈까지 꾸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꿈속에서 더 이상 때리지 말라고 빌고는 마침내 그 환상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후 그의 형량이 4년으로 감형되었습니다. 그런 일들이 하늘의 인도에 의해서 되어졌습니다. 선생님은 그 감옥에 가기 전에 거기에 어떤 준비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대단한 희망을 가졌습니다.

1948년 2월 22일에 처음으로 선생님은 평양에 있는 감옥에 투옥되었었습니다. 그후 같은 감방(흥남)에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이 그 사람이 있는 그 감방에 수감되었습니다. 선생님은 4월 2일에 공개 재판에 회부되었고, 그후 그 감방에 수감되었는데 그것이 4월 10일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그 감방의 감방장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그러한 것들을 발설하려고 하였다면 그렇게 마무리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거기서 선생님이 그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비록 그가 선생님을 보았다 할지라도 그는 선생님이 그가 환상속에서 보았던 그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그 감방에 들어가도 그는 선생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래서 그는 다시 환상을 보았습니다.

다시 그 백발노인이 그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백발노인은 '내가 너에게 이 사람을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궁전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그 궁전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는 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계단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세 계단을 올라갔을 때에는 절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반복하면서 옥좌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너무 눈부신 광경이었기 때문에 머리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옥좌에 앉아 있는 사람이 그에게 머리를 들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큰 집회가 있었습니다. 즉, 큰 회의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옥좌에 앉아 있었고 그 옆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끝자리에 앉았고 머리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그 백발노인이 그에게 큰 절을 올리라고 하였고, 그래서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 노인은 그에게 머리를 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옥좌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을 보았는데, 그것은 선생님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다음 날부터 그는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면 여러날이 걸릴 것입니다.

흥남감옥에서 열두 사람을 복귀시킨 의의

영계로부터의 그러한 가르침들에 의해서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했는데, 그 사람들도 세 번 부인했습니다. 매번, 하늘이 그들을 가르쳤고 그들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 환상이나 꿈 등 여러 가지로 역사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은 감옥에서 2년 8개월, 예수의 공생애에 해당되는 기간을 보냈고 열두 사람을 복귀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두 사람을 복귀시킴으로써 예수가 잃어버렸던 모든 조건들을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 사람들이 선생님을 따르지 않으려고 했더라도, 선생님은 석방되었을 때 그들의 자리에 다른 사람들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이 하기로 되어 있던 모든 것을 완수하였기 때문에 천사장 국가(미국)와 유엔군이 북한을 공격해서 선생님을 해방시켰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감옥을 나왔습니다. 네 사람이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유엔군이 남한을 해방시켰기 때문에 그 조건으로 하늘의 운세는 다시 민주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고, 다시 기독교를 복귀하기 위한 역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가기 전에 평양에 있던 선생님의 집단에서 선생님을 따르던 많은 멤버들이 있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도망을 갔기 때문에 그 집단 가운데 누군가가 선생님을 믿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김씨(동쪽 집단의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한 사람을 복귀시키기 위한 조건들을 세우기 위해 선생님을 따르던 멤버들의 수는 선생님이 감옥에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돌아왔을 때에도 똑같이 그대로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 김씨의 역할을 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김원필이었습니다. 또한 거기에 세 여인도 있었습니다. 한 남자와 세 여인이 있게 됨으로 말미암아 선생님이 김씨 집단에서 복귀하기를 원했던 네 사람을 복귀시킨 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따르는 네 사람(세 여인과 한 남자)이 생기게 되었고, 선생님을 감옥에서부터 따르던 네 사람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월남할 때 그들 중의 한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 사람은 다리가 부러진 사람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를 부산까지 데리고 내려왔습니다.

선생님이 남한에 내려올 때의 일화가 상당히 많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수의 사람을 복귀하였기 때문에 남한에서 영적인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으로부터 통일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을 완수함으로써 선생님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잃었던 것을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후의 섭리는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가 죽지 않았더라면 이 지상에서 복귀할 수 있었을 것이었습니다. 1960년부터 선생님은 그 일을 시작했습니다.

수난의 50년대와 성장의 60년대

어머님은 그 집단의 출신입니다. 서해안 지방에 김여인의 집단이 있었습니다. 김여인이 죽은 후에는 허여인이 계속했습니다. 어머니의 어머님은 허여인을 독실하게 따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어머님이 어머니를 4살때 그 집단으로 데리고 갔는데 허여인이 어머니를 축복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로 사명이 승계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물론 그것을 몰랐습니다. 선생님이 1960년에 어머니를 만났을 때 선생님은 그러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준비되었던 모든 것들이 1960년에 하나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참부모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자녀의 축복이 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북한을 떠날 때는 1950년 겨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1951년에 남해안에 있는 부산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때부터 10년 동안 선생님은 선생님이 성공했던 1960년까지 심한 박해와 싸웠습니다. 1960년 이후에도 우리는 박해를 받아 왔지만 우리의 일은 차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복귀섭리는 가인과 아벨 사이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일에 있어서 항상 문씨가 가인편에서 나타납니다. 항상 선생님을 박해하는 사람은 문씨입니다. 또한 가정적인 레벨과 국가적인 레벨에서도 문씨가 반대했습니다. 우리가 정부에 등록을 하려고 했을 때 문교부가 등록을 취급하였는데 그때 문교부 장관이었던 문씨가 우리의 신청을 거부했습니다. 우리는 그것과 싸워야 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그것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일주일은 70년, 700년 또는 7,000년에 해당합니다.

그 당시에 그것이 번복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어떤 종교적인 운동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번복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1963년 5월 31일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36가정과 72가정을 축복했습니다. 그때는 국가와 싸우던 때였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겪음으로써 우리는 현재의 위치까지 왔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이런 것들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책을 내게 될 것입니다.

통일운동을 완수하기 위한 네 가지 조건

이제 우리 식구들이 선생님을 따르는 방법에 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야곱의 노정이 모세의 노정이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도 모세의 노정을 따라야 했습니다. 또 예수의 노정이 선생님의 노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노정이 우리 식구들의 노정이 됩니다.

선생님이 우리의 운동이 완수해야 하는 네 조건들을 설명하겠습니다. 첫째는 개인의 완성입니다. 둘째는 가정의 완성입니다. 세째는 국가의 복귀입니다. 네째는 세계의 복귀입니다. 이들 네 가지는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 각자에 의해서 완수되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선생님이 이 시점에서 죽는다면 우리 식구들이 모든 이런 것들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선생님이 없으면 우리 식구들은 지금보다 세 배의 어려움을 겪어야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만일 여러분이 원리의 내용을 자세하게 알지 못한다면 여러분이 완수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에게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얼마나 여러분이 선생님을 필요로 하는가를 생각해 봐요. 여러분은 선생님을 가정보다 더, 국가보다 더, 그리고 세계보다도 더 필요로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완전하게 알아야 합니다.

새로운 전통과 문화를 이루어야

여러분은 여러분 좋을 대로 선생님을 생각해 왔다고 선생님은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동양적이고, 선생님의 사고방식은 다르다. 그리고 선생님은 동양적인 세계에서 태어났고 자랐기 때문에 서군적인 사고방식은 모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이 서양식을 따라서 실현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새로운 개인들 새로운 가정들 새로운 종족들이기 때문이요. 우리는 이 땅을 복귀할 최초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통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정해져 있는 스타일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문화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새로운 관습, 새로운 전통,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삶, 새로운 생활방식, 새로운 도덕,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준비됐어요? 여러분은 더욱 자신만만해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보다도 더 자신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길입니다. 그것은 변경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사명은 새 전통, 새 도덕, 새 생활방식을 확립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비록 선생님이 수천만 명을 잃을지라도, 그들의 생명을 걸고서라도 선생님은 새 전통, 새로운 문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선생님같이 여러분도 그런 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결혼도 또한 선생님의 목적을 위해서 되어져야 합니다. 여러분 이해해요?

이 시간 선생님은 선생님의 방문 목적이 여러분을 이것에 관해서 확신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느낍니다. 여러분은 항상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할 때, 우리는 그것을 분별된 방법으로 해야지 세상적인 사람들과 같은 방법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이 무엇을 하자고 할 때, 거기에 뛸 준비가 되어 있는 누가 있어야 됩니다. 만일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라면 섭리가 단축될 것입니다.

여러분을 언제 선생님을 모시지 못하게 될지 알 수 있어요? 선생님이 여러분과 항상 모든 시간을 같이할 수는 없습니다. 10년, 20년…. 아무도 얼마나 더 오래 여러분 곁에 선생님이 있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지상에 그러한 사명의 완수가 없으면 우리의 후손들이 고생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국가를 복귀할 수 없으면 다른 나라들, 세상적인 나라들이 우리를 반대할 것입니다. 만일 하나의 국가를 복귀할 수 있다면, 그 기반에서부터 우리는 세계적인 차원으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움에 처해 있는 한국

현재 세계의 상황을 놓고 볼 때, 가장 어려움에 처한 국가가 한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나라를 구원해야 합니다. 지금 북한 김일성이가 남한을 침략하려 하고 있습니다. 특히 선생님이 남한에 있지 않은 때 공격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것이 30일에서 100일까지가 되리라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의 세계 순회기간이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한국을 떠날 때 그러한 것들을 한국 식구들에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특별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에 있는 본부교회에서는 매일 밤 축복받은 식구들(남자들) 다섯 명 이상이 다른 식구들과 같이 교회에 와서 철야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한국을 떠난 바로 그 다음 날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또한 선생님은 올해가 추운 겨울이 되지 않기를, 강물이 얼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여러분이 지금 따뜻한 날씨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2주가 지나면 날씨가 괜찮아질 것이고 얼어붙는 추위는 아닐 것입니다. 1972년 4월 15일은 김일성의 60회 생일입니다. 사탄을 위한 완성수가 60입니다. 만일 그가 그해를 넘기고나면, 그는 차츰 내려가게 될 것입니다.

1970년부터 1972년까지의 3년노정은 대단히 중요한 시기입니다. 제2차 7년노정이 1974년에 끝납니다. 그래서 1974년까지 우리는 남한에서 어떤 조건들을 세워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우리가 한 나라를 복귀할 수 없다면 크나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나라는 선생님이 전에 설명한 것처럼 둘로 쪼개진 나라이어야 됩니다. 또한 거기에는 하나님과 사탄이 서로 참소하는 판문점 같은 곳이 있어야 됩니다.

지금 서양 문화가 하나되기 위해서 동양 문화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서구세계에는 동양것들을 연구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동양에 인도, 중국 그리고 많은 다른 나라들이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나라들은 그 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나라는 둘로 나뉘어 있는 국가이어야 하고, 하나님과 사탄이 서로 참소하는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김일성을 아버지라 부르고 우리 교회에서는 선생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동서양의 두 문화가 다른 곳이 아니라 한국에서 하나되어야 합니다. 한국 동란에 미국을 포함한 16개국이 남한을 도우려고 왔습니다. 그와 같은 생각은 역사에서 이전에는 결코 있을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남북간의 내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많은 나라들이 도우려고 왔어요?

그 당시에는 트루먼이 대통령이었습니다. 유엔의 결의가 통과되었습니다. 소련이 거부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당시에 소련 정부는 안전보장 이사회에 대표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소련이 불참한 가운데서 그것이 통과되었습니다. 유엔군으로서는 처음으로 다른 나라를 돕기 위해서 온 것이었습니다. 16개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그들은 지상의 모든 민족을 위하여 그 나라를 복귀하는 데 참가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했습니다. 또한 16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에 사를 곱한 것(4×4)입니다. 그 수는 모든 국가들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한국인과 미국 국민, 그리고 다른 민족들이 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처음으로 회생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외적으로 본다면 한국과 미국과 다른 나라들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것을 섭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 싸움, 한국전은 그들 자신의 나라를 복귀하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한국의 복귀(통일)는 전세계의 통일을 이루는 관건이 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한국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한국은 외적인 면에서 빠른 진보를 하고 있습니다. 내적인 복귀를 위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는 세 정권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이승만 정권이었습니다. 그다음은 윤정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당총재는 여자었습니다. 그녀는 해와의 입장이었습니다. 지금은 박정권이고, 박은 군인으로서 천사장의 상징입니다. 이 군정(軍政)은 우리의 운동을 지지합니다. 박대통령은 7대(代) 대통령입니다. 그것은 이승만이 세 번, 윤대통령이 한 번 당선되었고 지금 박대통령이 세 번째 임기 중에 있는데, 그의 세번째 임기는 1975년, 2차 7년노정의 마지막에 끝납니다. 8수는 새 출발의 수입니다. 그러므로 그때는 세계를 위한 새로운 운의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섭리의 역사가 이런 식으로 일치합니다. 그것은 1년뿐만이 아니라 수천 년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다시 이와 같은 때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한국을 잃어버린다면, 어디에서 우리가 그와 같은 한 나라를 다시 이 지상에서 찾을 수 있겠어요? 그러므로 지금이 가장 심각한 때입니다. 선생님은 얼마나 그것이 심각한지를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과 한국 국민들에게만 심각한 것이 아니라 온 세계의 모든 민족은 물론 하늘과 땅을 위해서도 심각한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을 능가해야

우리 식구들, 한국인과 서양인이 선생님과 일체가 되어야 하고, 북한의 상황을 충분히 압도할 수 있도록 함께 열심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북한 주민들과 김일성이 하나된 그 정도를 능가해야 합니다. 우리는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을 능가해야 되고, 중공과 소련도 능가해야 합니다. 우리는 공산주의자들보다 더욱 강력하게 결속되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되어진다면 자유세계는 망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볼때, 미국은 아시아에서 철수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큰 손해를 볼 것입니다. 결국 미국은 아시아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인도가 소련으로 기울고 있는데 동남 아시아는 중공이나 또는 소련으로 기울어질 것입니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제 2차 세계대전 전, 즉 일제 때 미국이 직면하였던 그 상황에 다시 직면할 것입니다. 그 당시에 영국 수상은 '만일 미국, 영국 그리고 일본이 하나되면 자유세계가 구제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미국이 일본과 달러의 엔화에 대한 평가 절하와 무역에 관련된 마찰을 빚고 있지만 그래도 일본을 붙들여야 합니다. 미국은 일본을 통하여 한국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합니다. 그것이 섭리의 관점입니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철수하지 못하도록 붙들어 매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 식구들을 통해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식구들을 전 50개 주에 보내야 합니다. 우리는 각 주에서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순회기간 동안에 선생님은 그것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운데서 많은 지원자들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원하는 것이 나이 든 사람들보다 훨씬 좋습니다. 여러분은 천사장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진해서 그것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담을 도와야 합니다. 선생님의 말을 이해해요? 지원하겠어요?

우리는 예수에 의해 성사되지 못하고 남겨진 것을 성사시켜야

만일 여러분이 미국에서 여러분의 사명을 완수한다면 여러분은 미국을 복귀할 수 있고, 한국이 복귀되도록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50개 주에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상원의원들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각 상원의원에게 세 명의 젊은 아가씨들을 할당할 것입니다. 상원의원들은 천사장들인데, 복귀는 해와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300명의 젊은 아가씨들이 필요합니다. 상원의원들을 복귀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먼저 그들의 친구들, 특히 비서들의 도움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거 이해해요? 그들은 장래가 어떻게 될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만일 여러분이 원리를 알고 그것을 잘 전할 수 있다면….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방향을 앞으로 지시해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많은 젊은 아가씨들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상원의원들을 복귀한 후에는 그 아가씨들은 또 해외로 파견될 것입니다. 이것을 함으로써 여러분이 미국을 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개인으로서도 선생님을 따라야 하고, 여러분의 가정은 선생님의 가정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는 그의 종족을 복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종족을 복귀해서 예수의 사명을 능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국가를 복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개인, 가정, 국가, 그리고 세계, 이것들이 항상 문제입니다. 예수로서도 역시 그의 목적과 사명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 자신을 복귀하는 것이었고, 그 다음에는 그의 가정, 종족, 국가, 그리고 전세계를 복귀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에 의해서 성사되지 못하고 남겨진 것을 성사시켜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사명이고,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은 여러분도 또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엘리야같이 완전히 홀로 남았고, 그때부터 선생님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자신을 완성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선생님의 가정, 종족, 국가와 전세계를 복귀하려고 하였습니다.

세 정권, 3시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성약시대를 통과함으로써, 그런 모든 단계들을 통과함으로써, 선생님은 탕감을 통하여 복귀섭리를 이루어 나오면서 종족적인 기준을 세워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횡적으로 다른 모든 형태나 영역들이 해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지금 제물을 드리는 도중에 있습니다. 여러분들, 헌신적인 식구인 여러분 자신들을 희생하게 함으로써 선생님이 전세계를 구원하려고 합니다.

종족을 복귀해야 할 입장에 있는 통일교인들

여러분의 사명은 종족적인 차원에 있는데, 왜냐하면 선생님이 이미 종족적인 레벨에 그 기대를 닦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선생님은 국가적인 차원에 그 기대를 놓을 것이고, 그러면 여러분의 차원도 넘어져야 할 것입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복귀를 획득할 때까지 우리의 길을 싸워 나가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에게서 태어난 후손들은 어떠한 탕감노정도 통하여 가지 않고 어디서든지 자유롭게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거 이해돼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선생님이 여러분들 앞에, 여러분들보다 한 시대 앞서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은 아직 종족적인 단계에 있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의 종족적인 차원은 선생님의 국가적인 차원에 해당됩니다. 만일 선생님이 국가적인 차원의 목표에 도달한다면 여러분은 거기에 점프해서 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가 국가적인 단계를 복귀하지 못했기 때문에 로마 제국 밑에서 겪어야 했던 만큼의 많은 고통은 겪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심지어 죽기까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의 죽음은 이스라엘 민족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를 핍박하고 죽였던 이스라엘 민족을 복귀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했을 때 비로소 세계적인 차원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430쌍을 축복한 것은 세계적인 차원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여러분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그 목표를 달성한 후, 그것은 여러분이 종족적인 차원에서 메시아가 되는 입장에 있다는 뜻입니다. 축복을 받은 사람들로서 여러분은 지금 죽은 예수의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축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종족을 복귀하기 위해서 다시 온 예수의 입장에 있습니다.

선생님은 국가를 복귀하기 위한 복귀노정을 전개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만일 한국에 있는 축복가정들이 그들 자신의 일족과 종족을 복귀할 수 있다면 국가적인 복귀가 훨씬 쉬워질 것입니다. 축복가정들이 종족이나 일족을 복귀한다는 것은 마치 예수가 그의 가정과 유대교를 하나로 만들어야 했던 것처럼 가정과 교회를 복귀한다는 의미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종족을 복귀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재삼 강조해야 되겠습니다. 가정들을 축복하면서, 선생님은 그들을 복귀된 종족과 가정적인 복귀노정을 복귀한 자리에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그들의 조상들이 과거역사에서 아브라함이나 모세같이 하나님이 선택하셨던 그런 인물들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사명을 수행해 왔던 그런 사람들의 자리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 경우에 여러분 축복가정들은 가정적인 복귀를 달성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여러분의 일족이 구원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죽은 조상들은, 만일 그들이 선하다면, 그 시대에 속하는 역사적인 인물들에 해당합니다. 아브라함, 노아, 야곱, 또는 그 모든 사람들의 시대에 속하는 여러분의 조상들은, 여러분이 그 조상들의 열매로서 그만큼 달성했기 때문에 같은 차원에서 같은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지상에 내려와서, 재림해서 여러분을 통하여 그들 자신의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서 역사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영계는 천사세계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아담과 해와의 자리에 있고, 그들은 여러분을 통해서 역사하기 위해서 복귀된 천사장의 자리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분과 결합하기에 자유롭고, 어느때든지 여러분과 접촉하기에 자유롭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서 그들이 이 지상에서 여러분의 친척과 일족을 복귀하는 데 역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적인 기대가 넓어지는 만큼 여러분의 조상들이 역사하기에 자유롭습니다. 세상은 죄악으로 어두워져 있습니다. 만일 그 선한 영들이 내려와서 악한 영들에게 잡혀 있는 사람들과 대항해서 싸운다면 그들을 항복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선한 조상들은 복귀된 천사장의 자리에 있습니다. 악령들과 싸우는 것같이 온 영계가 동원된다면 세계의 복귀가 아주 가까운 장래에 가능할 것입니다.

430쌍과 777쌍 축복은 예수의 기대를 성공적으로 닦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777쌍들은 전세계를 대표합니다. 그 경우에 그 쌍들은 그들의 나라에서 메시아의 입장에 섭니다. 축복받은 각 가정 식구는 그들 일족에 대한 메시아의 자리에 서야 되고, 그의 세 아들을 세우는 자리에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각 아들은 더 많은 사람(적어도 12명)을 데려와서 36수를 만들면서 그들을 축복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우리는 그 범위를 70으로 넓힐 수 있고, 그 다음엔 120쌍들…. 그 숫자는 예수가 십자가에서의 그의 죽음의 원인이 된 그의 일족을 잃어버렸던 숫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 점에서부터 복귀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종족적인 차원에서 메시아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새로운 식구를 데려와서 여러분이 그들을 축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가정, 친척들, 사촌들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 자신의 가족을 전도하거나 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 자신의 형제, 부모나 어떤 친척들에게도 원리에 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 선생님은 자기 민족에게 버림받은 예수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혈혈단신으로 바깥 세계에서 그러한 인물들을 복귀해야 했습니다. 선생님이 바깥 사람을 복귀해서 축복함으로써 일족을 형성하고, 종족적인(거의 국가적인) 단계를 형성한 지금부터는 선생님이 친척들을 전도하여 데려올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일족과 친척을 복귀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라

여러분에게는 여러분 자신의 일족과 친척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친척들을 복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을 데려올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전도함으로써 여러분은 3제자, 12제자, 그리고 종족적인 단계의 사람들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족을 전도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선생님보다 더 나은 입장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전 생애를 통하여 획득한 것을 상속받았습니다. 여러분은 3년 이상을 활동한 후 축복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3년노정만을 통과함으로써 여러분은 그렇게 축복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크나큰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이 해 왔던 것보다 10배 이상 더 무거운 십자가를 지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감옥에 있을 때, 선생님의 부모님이 찾아오면 선생님은 그분들을 바로 돌려 보냈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의 형제들을 결코 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형제, 가정, 친척들을 희생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의 부모, 형제, 또는 친척들을 사랑했던 것보다 여러분들을 더 사랑해 왔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와 같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희생하여서 전세계를 구하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의 생명까지 희생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전세계를 구원하려고 했습니다. 선생님도 그러한 본보기를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하나님의 본보기를 따라서 그 자신을 십자가에 내주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십자가 위에서도 그를 부인하고 핍박했던 사람들을 축복하여야 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도 역시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께서 많은 순교자들을 희생하면서까지 세계를 복귀하기를 바라셨던가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선생님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희생하여 이방세계를 구원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이 여러분도 그 같은 것을 해야 하는가? 그러나 여러분은 그것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지시하는 것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특권을 가진 입장에 있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에게는 부모, 형제자매 그리고 친척들을 데려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이방 민족들에 대해서 했던 것 이상으로 그들을 사랑해야 하고, 그들을 데려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만큼 많은 고통을 통과할 필요는 없는데,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연히 그들 자신의 친척들에게 달라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것을 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우회해야 했으며 선생님 자신의 가족은 복귀하지 못하고 바깥 세상에서 사람들을 찾아야 했습니다. 지금 선생님의 부모는 학살당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북한을 떠나기 전에 그 모든 것들을 짐작했지만 선생님의 친척들은 버려 두고 제자들을 데리고 내려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축복받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것입니다.

선생님의 어머님은 어느누구보다도 자기 아들을 사랑했던 사랑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매우 사랑과 이해심이 많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어머니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했던 예수의 자리에 선생님 자신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선생님을 돕고 협조하는 자리에 있었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등을 돌렸습니다.

복귀의 노정에서는 한치도 가감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지난 며칠 동안 말씀하는 것을 들어 온 지금, 여러분은 선생님이 뜻하는 바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 형제자매와 친척들을 사랑해야 하며, 선생님을 대신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할 수 없었던 것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부모, 형제자매 그리고 친척들을 선생님이 하려고 했던 것처럼 사랑하려고 노력하라구요. 선생님이 얼마나 그들에게 전도하고 싶었고 그리고 얼마나 원리를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싶었던가를 상상할 수 있겠어요?

선생님의 형님은 영적으로 일치했습니다. 그는 영계의 가르침을 받았고, 어느 정도는 그 동생인 선생님이 세상에서 최고의 동생이며, 어느 누구가 가질 수 있는 형제들보다도 그리고 그의 형제 중의 어떤 형제보다도 낫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막연하게 자신의 사명을 느꼈을 뿐 그것을 자세하게는 알지 못했습니다. 형님은 동생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동생을 그토록 사랑했기 때문에 동생을 위해서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형님에게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형님에게 전도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가 그의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았고, 선생님이 그런 예수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선생님의 마음은 괴로웠습니다. 만일 선생님에게 허용되었더라면, 선생님은 여러날 밤을 새우면서라도 그들에게 전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횡적으로 그러한 사람들을 복귀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아는 한 그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열심히 활동해야 합니다. 만일 선생님이 여러분들의 입장이라면, 선생님은 밤을 새우면서 이야기했을 것이고 매일 많은 편지들을 썼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밖에 있는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보다 친척들을 전도하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집단에 들어왔기 때문에 축복받고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부모를 여기에 모시고 와서 여기서 생활하는것 등 모든 것들을 보여 준다면 그들은 몹시 기뻐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의 부모가 그 사실을 알고, 여러분들이 그들에게 여러분들이 축복 받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얘기한다면, 여러분들의 형제자매를 데려오기는 훨씬 쉬워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집에 갈 때 여러분들은 부모로 하여금 모든 친척들을 모으게 할 수 있고-여러분들의 부모의 생일날 등에-또 여러분들은 그 모임에서 부모에게 사회를 보게 해서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어머니에게 찬송을 인도하게 하고, 아버지에게는 그 모임의 사회를 보게 해서 여러분들이 원리를 강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져 가지고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핍박한 것이 큰 잘못이었구나. 그들이 그런 축복받은 자리에 있고, 그들이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유능한 딸들이라는 것을 알겠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것이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동양의 전통은 복귀를 위해서 매우 좋습니다. 나이가 적은 동생들은 형들에게 복종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두들겨 맞을 것입니다. 부모가 허락한다면, 형은 동생을 데려올 수 있습니다. 조카나 조카딸도 문제가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그들의 가족을 데려오는 것은 훨씬 쉽습니다. 이곳 상황은, 선생님이 보기에,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친척들을 복귀하지 않으면 참소받아

미국에서는 청소년들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의 부모가 여러분들이 이 집단에 가담한 후에 정신적으로 성장하였고,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그들의 문제가 있는 자식들을 여러분들에게 기꺼이 보낼 것입니다. 왜 여러분의 친척들을 데려오는 것이 더 쉬운가? 여러분들이 부모 또는 형제자매들에게서 인정을 받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은 데려오기가 쉬워집니다. 여러분들의 형제자매들이 지켜 봐 가지고 만일 이 집단에 들어온 후의 여러분들에게서 어떤 좋은 것을 발견한다면 그들이 끌려오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외부 사람들을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해 봐요. 그들이 원리를 배우고 상당한 시간 동안에 공부를 했다고 할지라도 아직 그들은 머리를 치켜들고 의심하게 될 것이며, 여기의 생활을 바깥 생활과 비교할 것입니다. 그러면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결실을 맺으려면 일년 이상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형제자매들은 한번 따르기로 결심하고 이 운동에 들어오면 그들을 바로 내몰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친척들을 데려오는 것이 쉽습니다. 이제부터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형제자매들에게 가능한 많은 편지를 쓰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여기 정원에서 꽃을 따서 끼워 보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형제자매 중에서 누가 여러분이 이 곳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렇게 감화를 받게될 것입니다.

그들이 여러분들을 방문하러 오도록 비행기 표나 기차 요금을 보내주면 어떻겠어요? 그러면 대단히 기뻐할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환경에 여러분들이 들어와 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외부 사람들에게 전도하는데에도 그만한 돈은 들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분들이 종족에 대하여 메시아의 자리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서도 왜 그 사람들을 안 데려오는 거예요? 예수의 입장으로부터 그 사명을 완수해야 돼요. 자, 여기에 모든 사람들은 총동원해서 그 목표를 향해 돌진하도록 하자구요.

여러분들이 축복받은 부부의 자리에 있다면, 한 사람은 아담의 자리에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신부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 여러분들의 친척들을 데려오는 것이 좋아요, 아니면 외부 세계로 나가는 것이 좋아요?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식구들은 비록 축복을 받지 않았다 할지라도, 남자는 자신을 예수의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야 되고 여자는 신부의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예수가 그의 친척들이 신부를 위한 기대를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려야 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 편에서도 그가 종족적인 기대를 못 세웠기 때문에 신부를 취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복귀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친척들을 데리고 올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종족적인 기준을 복귀한 남자와 종족적인 기준을 복귀한 여자가 서로 만나서 축복을 받는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복되겠어요! 그들은 절대로 서로 헤어질 수 없습니다. 서로 돌아선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갈 수 있는 다른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친척과 종족의 범위 내에서 그 사람은 수천 쌍을 축복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외부 세계에서는 세 사람을 데려올 수 있는데 친척들 가운데에서는 한 사람도 데려올 수 없다면 영계로부터 참소를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3대(여러분을 포함하면 4대)에서 사람들을 데려와야 합니다. 조부모, 부모, 여러분 부부 자신, 그리고 축복 후에 낳은 여러분들의 자녀…. 여러분이 3대의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18세가 되면 부모에게 등을 돌립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타락한 천사장의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천사장에게 부모는 없는 것입니다.

동양인들은 복귀를 더 쉽게 합니다. 각 단계는 앞 단계 위에 세워집니다. 3단계 후, 여러분들에게 자녀들이 주어지고 또 천국이 상속됩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는 타락 전 아담과 해와의 자리에 있습니다. 타락 때문에 선생님이 복귀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축복을 받은 후 여러분들은 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식을 낳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3대, 3단계의 사명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말입니까, 아니면 원리입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자신 이상으로 조부모와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자식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전통을 세우는 것입니다. 조부모, 부모, 그리고 자식들과 함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조부모가 안 계신다면 노인분들께 그것을 실천하라구요.

모든 사람들은 부모의 사랑으로부터 태어나고, 부모의 사랑 안에서 자랍니다. 그런 경우에 그들은 사랑 가운데서 죽기를 원합니다. 여기에 모든 사람들이 나이를 먹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완전히 혼자서 죽고 싶어요?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대신하여 여러분들의 조부모와 부모를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부모와 조부모가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몹시 기뻐할 것입니다. 나이 든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장 나이가 많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종적으로 그리고 횡적으로 우리는 역사상에 있었던 모든 선한 것들은 상속받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포함한 모든 오래된 것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이런 것들의 결실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정을 방문하면 그 사람들에게 지금의 여러분들은 과거의 여러분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는 것이 중요해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사탄권으로 떨어졌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생각을 못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지식이 없이 성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서 죽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서조차도 하나님의 실존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식구들 중에도 두 가지 형태의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실존, 그리고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다소 의심하는 형태의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실존에 관해서 확신을 갖고 있는 형태의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확실하게 알고 있어요? 「예」

그래서 하나님의 실존에 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그들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 사랑의 가치를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완전하게 아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자신있게 아는 것이고, 그 다음은 하나님과 우리 자신들과의 관계를 아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가 가장 근본적인 관계

모든 사람은 우주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갈망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 모두도 마찬가지라 믿습니다. 그것이 사실이죠?「예」 아무도 꼴찌가 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모두 첫째가 되고 싶어합니다. 또한, 친구를 사귈때에도 제일 좋은 친구들을 사귀기를 바라지 좋지 않은 친구들을 사귀기를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그들의 선생을 선택할 때에도 보다 나은 선생들, 또는 훌륭한 선생들을 원하지 열등한 선생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이끌 대통령도, 그들은 특별한 사람, 모범적인 사람을 원할 것입니다. 만일 여기에 한 유명한 대통령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와 가까운 관계를 맺고 싶어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기를 바라는 이유는 그로부터 모든 좋은 것들을 흡수하고, 그로부터 모든 장점들을 이어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만은 여러분이 그에게서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 즉, 대통령과 그 아들 사이에 놓여 있는 사랑의 관계만은 상속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의 문제는 외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가장 근본적인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외적인 권위나 외적인 것들에 의해서 상속되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삼자는 아무리 그의 지식이나 경험이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그 대통령과 그 아들간의 그 관계를 능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비록 그의 아들이 매우 허약하거나 어리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 대통령 자신도 그의 아들이 다른 사람들의 아들 보다 뛰어난 자리에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는 그의 아들이 그런 식으로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는 그의 아들과 협력할 것이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를 도울 것입니다, 만일 그가 그를 도울 수 있다면. 그래서 그것에 의해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그 대통령의 사랑을 상속받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생각을 하나님, 절대자에게 적용하여 봅시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일을 하고, 여러분이 하나님과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다고 합시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만일 그보다 더 좋은 자리가 있다면, 친구의 자리보다 더 좋은 자리가 있다면 여러분은 그 더 좋은 자리에 가기를 원하겠어요, 아니면 친구의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겠어요? 누구든지 친구의 자리보다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를 바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그렇게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에 대한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알아야

그래서 여러분 자신들이 얼마나 가까이 하나님께 나아가느냐, 얼마나 많이 하나님을 아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고 있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백 사람이 있다면 백 사람이 다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 관계를 아는가 모르는가, 그리고 여러분이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가 하는 것이 그 백 사람들 가운데서 여러분의 위치를 결정할 것입니다, 즉 첫번째 자리가 될 것이냐, 15번째 자리가 될 것이냐, 또는 100번째 자리가 될 것이냐 하는.

여러분이 어떤 자리에 있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모르고는, 여러분은 여러분이 올라가고 있는지 또는 내려가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이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는가에 따라서 여러분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에게도 네 방향, 네 측면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한 측면 위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래쪽이나 위쪽, 또는 오른쪽이나 왼쪽에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각 측면에는 단계들이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선생님을 오른쪽에서 본다면, 여러분은 선생님의 얼굴이 이와 같이 보이는 것으로 알 것이고, 또한 여러분은 선생님의 오른팔을 볼 것입니다. 선생님이 걸으면, 여러분은 선생님의 팔과 다리가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바로 그런 식으로 움직이신다고 이해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리는 선생님의 모습은 각도나 관점에 따라서 달라질 것입니다. 선생님의 둘레에 그렇게 360도가 있고, 여러분의 위치에 따라서, 그 모습은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뒤에서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그쪽 측면에서만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옆이나 위에서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하나님을 다르게 볼 것입니다.

지금 이 땅 위에는 36억의 인구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얼굴 모양이 다 다르듯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관도 다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정면을 볼 수 있는 곳은 단지 한 군데밖에 없습니다, 어떤 특정한 레벨 위에 있는. 여러분은 하나님을 정면에서 볼 수 있는 방향이 둘이 있다고 생각해요?「아니요」 하나님과 연관된 여러분의 위치를 모르고서는 여러분은 참다운 대답, 참다운 해결책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디에 있어요? 어떤 위치에 있어요? 어떤 방향에 있어요?

선생님에 대해서도, 모든 우리 식구들의 포지션이 다릅니다. 선생님과 여러분과의 관계는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관계와 같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한 자리를 원합니다. 그렇찮아요?「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남쪽, 아니면 북쪽, 아니면 오른쪽에 앉아 있는지를 분별할 줄 아는 지식이나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능력, 그러한 힘을 가져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서쪽에 있으면, 여러분은 북쪽으로 올라가야 되고, 여러분은 시계 방향으로 봄절기를 향해서 돌아 내려와야 합니다. 북극 지방은 추운 곳이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쪽으로 가려고 하지 않고, 남쪽, 따뜻한 곳으로 내려가려고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리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지금 영계는 그런 관계 속에 얽혀 있습니다. 역사적인 인물들은 모두 그들이 추구해 온 한 인격체와 어떤 관계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 문제는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지점 또는 어떤 방향에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이해하는가 하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길

이제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하나님께서 아시는 어떤 자리에 도달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다음 문제는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길을 찾을 것인가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어떤 길이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에 도달하는 최선의 길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해결되어야 할 문제 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가장 좋은 자리, 하나님의 모든 사랑을 줄 수 있는 자리에 두시고자 하실 것입니다.

많은 젊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있지만 한 남자에게는 오직 한 여자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즉 한 여자만이 그의 배우자가 될 수 있지, 하나에 둘은 아닙니다. 수천, 수만의 여자가 있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여기에 십만 명의 여자가 있다면, 그리고 한 남자가 그의 배우자로 한 여자를 선택한다면, 그는 그가 사랑할 수 있는 최고의 여자를 고를 것입니다. 남자는 그의 배우자에 대한 하나의 이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어떤 특정한 키, 특정한 얼굴, 특정한 코, 특정한 입을 가진 여자를 원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짝에 대한 그와 같은 하나의 상(像)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타락한 남자라도 그런 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얼마나 더 많이 사랑하는 자녀들에 대한 상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또한, 하나님은 절대자이시고, 지곤(至高)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최고의 아들, 절대적인 아들을 바라실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어떤 아들이 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장자가 되고 싶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장자, 차자나 세째아들이 아니라.

타락 후, 하나님은 그 타락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에게로 와서 하나님의 장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 지상의 모든 남자들이 장자가 되기 위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장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생각해 봐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장자는 이와 같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방법을 따를 것입니다. 누구는 10년, 100년, 아니면 1000년까지라도 그 방법을 따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지 않고 쉬운, 평탄한 길을 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시는 사람

하나님은 오직 한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여러분이 다수가 가는 길을 따르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상, 여러분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선택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그 사랑하는 아들을 가장 쉬운 길로 온 사람들 중에서 고르려고 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대학교들 중에서도, 만일 여러분이 최고로 좋은 대학교를 가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을 선발하기 위한 시험이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는 지난 세대의 사람들과 비교될 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과거의 그들보다 못하다면, 영계에 있는 그들 과거의 영인들이 그를 참소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 아들이 가장 쉬운 길로 온 사람들 중에서 선택된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끌어내리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가장 어려운 길, 그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극복할 수 없는 그런 길을 극복한 사람이어야 됩니다.

그 사람은 모든 후손들에게도 역시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그를 자랑할 것입니다, 과거에, 현재에, 그리고 미래에.

그렇다면 지금까지 여러분이 그런 사람,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온 인류의 본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상상해 본 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러한 사람을 상상하면서, 여러분은 그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해 봤어요? 또한 지금까지 여러분은 그와 같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 봤어요? 그와 같은 한 자리가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람을 역사 상의 과거의 인물들과 비교해 보아야 되고, 성인들 중에서 어떤 사람이 그 사람에 비교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과거에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아니면 오늘날에, 아니면 장래에 그런 사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과거에 존재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가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었는가를 연구해야 합니다. 만일 그가 이 세계에 살고 있다면, 어떻게 그가 그런 자리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를 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여러분은 미래의 사람들이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표준형을 연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가장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었던 성인은 예수

석가, 공자, 또는 예수와 같은 성인들은 애국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우주주의보다 더 큰 이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늘과 땅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인들은 모두 종교를 생각했습니다. 종교 지도 자들이 성인이 되었습니다. 안 그래요7「그렇습니다」 그러면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성인이 될 수 있어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식이 생명을 지배할 수 없고, 콘트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생명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통해서 사람의 생명에 차원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성인들의 자리가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통하여, 모든 도덕적인 기준들과 모든 이상적인 기준들은 성인들의 관념에 의해서 설정되었습니다. 역사는 성인들의 길을 따라서 우리를 끌고 왔고, 지금 우리는 이상국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역사가 목표를 향하여 감에 따라서, 세계도 성인들이 생각했던 이상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아놀드 토인비가 말한 것처럼, 인류의 문화는 기독교 문화, 불교 문화, 이슬람 문화, 힌두교 문화 등 4대 문화가 있습니다. 많은 군소 문화들이 있었으나 그것들은 끝날까지 남아질 수 없었고, 이들 4개 문화들만이 아직까지 이 땅 위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4개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우리는 여러 위치에, 즉 어떤 것은 동쪽에, 그리고 어떤 것은 서쪽, 남쪽, 또는 북쪽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 넷 가운데서, 하나님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는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대할 수 있는 자리는 단 한 곳뿐일 것입니다. 그 자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가장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곳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의 창시자들, 즉 예수, 석가, 공자, 그리고 마호멧트 가운데서 우리는 누가 하나님과 가장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었던가를 알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창시자들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의 정도에 따라서, 어떤 종교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 설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결정될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불교는 하나님에 대해서 막연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유교는 하나님을 도덕적인 하나님으로 가르칩니다. 이슬람교도 그런 면에서 보면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다른 성인들과 다릅니다. 예수는, 그가 지상에 있을 때 가장 놀라운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어느 누구도 이런 식으로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내 아버지고 그리고 나는 그의 독생자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자신 외에는 다른 아들이 있을 수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였고, 또한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던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는 그러한 주장을 했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그러한 느낌, 그러한 관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러한 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남에 틀림없습니다. 또한, 그는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의 제자들을 친구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가 우리를 '신부'요 '친구'라고 말한 목적

그러면 어떤 점에서 그는 우리를 '신부'요 '친구'라고 말했습니까? 그는 그와 하나님이 일체가 된 자리에서 그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그는 우리를 '신부'요 '친구'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의 이 말의 목적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부'나 '친구'라고 말한 그의 첫째 목적은 개인들을 구원해서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지상에 첫 가정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로서는 하나님이 충만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첫가정을 세우려고 생각한 것은 당연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독생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생녀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 둘, 그 아들과 딸이 부부로서 결합해야 했습니다. 그런 부부를 이루어 예수는 가장 깊은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 자녀를 낳기를 원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천국에 가게 된다면, 여러분은 천국에 혼자서 가고 싶겠어요, 아니면 천국에 가기 위해서, 지상에 그러한 가정을 이루고 싶겠어요? 어떤 것이예요?「가정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아요?「그렇습니다」첫 조상들로부터 마지막 후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그와 같은 것을 바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때요? 하나님도 역시 그것을 바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소중한 소망인 동시에 또한 하나님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직접적인 사랑의 관계를 갖고 싶어하시는 그 대상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가정이 될 것입니다. 아무것도 다른 것은 그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다른 어떤 것이 하나님의 대상의 자리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소리로 얘기해 봐요. 결론을 내립시다. 그것이 사실이예요, 아니예요?「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360도 방향들 가운데, 거기에는 오직 한 방향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가정만이 그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예수도 또한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만일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다면, 천국이 이 땅 위에 세워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독생자, 그리고 독생녀의 자리에 도달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

예수는 오직 33년밖에 못 살았습니다. 우리가 그의 생애를 다른 사람들의 생애와 비교해 보면, 말하자면, 100년 동안 살았던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이들 가운데서 누가 더 하나님을 더 사랑했어요? 예수예요, 100살 먹은 사람이예요?「예수님입니다」 어떻게 예수가 그런 사람일 수 있어요? 예수보다 더 오래 산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을 더 사랑했다고 주장할 수 있어요? 어떻게 여러분은 예수가 하나님을 더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가 다른 사람보다 더 짧은 생애를 살았기 때문에요?

그것은 사랑의 농도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사랑의 정도가 그것을 결정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세 배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했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그 사람에게 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 동안 만일 이 사람은 하나님을 세 번, 네 번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하나님을 오직 한 번만 생각한다면, 그래서 이 사람이 하나님을 세 배 이상 생각을 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이 사람에게 임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단지 생각으로 하나님을 보고 싶다고 했지만, 예수는 울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잠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으며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예수는 그런 식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먹고 잠자는 것 등 사사로운 것은 모두 희생했습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입니다.

선생님은 예수가 이런 식으로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예수는 어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저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어떤 소식을 전해 주는 사람일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또는 어떤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저 소리는 하나님을 소개해 주거나 하나님의 소식을 전해 주는 목소리일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모든 그의 지각력을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집중시켰고, 다른 것들, 그의 모든 총력을 그 목적을 위해서 집중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이런 식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는 옷가지들을 가질 때마다 하나님께 그의 옷들을 드리고 싶어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육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먹을 것이 있을 때에도 그는 이 음식을 그가 먹기 전에 먼저 하나님에게 드리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똑같은 식으로 했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는 길을 열어드리고 싶었고, 그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 유일한 분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그리고 그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들을 사랑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하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모든 사랑을, 하나님이 가진 모든 것을 그 사람에게 주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입니다. 예수의 삶이 그런 식이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실 때에도 그의 생명을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바쳤습니다. 그는 '하나님이시여 내 뜻 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 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지시면서도 하나님의 심정, 하나님이 그의 십자가에 못박힘을 보시고 얼마나 슬퍼하실 것인가를 생각했고,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염려했습니다.

예수는 자기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에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저주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출생시부터 사망시까지, 그런 종류의 사랑을 했고, 그런 종류의 생애를 살았습니다. 항상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주려고 했고,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가는 곳에 하나님도 따라가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가 가는 곳에 모든 사람이 따라가야 했습니다. 이것이 천국에 갈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던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이 길을 알 때, 그들은 이 길을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한 방법에 의해서 복귀 섭리가 빨리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인류를 위해 생명을 바쳐야 천국에 가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기를 원할 때, 그들은 그들의 생명을 바쳐서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바친 생명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한 생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들이 천국에 가기 위해서 죽는다고 생각했다면,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서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만일 죽는 목적이 그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천국에 가기 위한 것이라면, 그곳에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 이러한 생각을 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하고 사람들을 위해서 죽는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주류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길을 간다면, 여러분은 예수가 하나님의 모든 사랑을 받았던 것과 같은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길들 가운데서 이 길만이 하나님께 가는 직행 길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최후의 길이며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는 33년 생애 동안 이 뜻을 위해 모든 것을 집중시켰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길을 갔습니다. 그는 역사상 이것을 행한 첫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는 그러한 노정을 걸었고, 하나님과 인간들을 위해서 그의 생명을 바쳤으나, 이 땅 위에서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한 날을 결코 갖지 못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서 큰 기쁨을 가지고 살게 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에게 크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그가 이 땅에서 가장 행복한 생애를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정일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또한 인간도 예수를 위한 그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재림 때에는 어느 누구보다도 그를 더 사랑해야

지상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시면서, 하나님은 재림주의 강림을 예정하시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했고, 그의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사람들을 사랑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은 자신과 그 아들을 희생하면서까지도 사랑하실 수 없었습니다. 또한 인간은 이 땅 위에서 그들의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환경을 만듦으로써 그것을 탕감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인간을 위해서 그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인간으로부터 그의 사랑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때가 와야 합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한 사람이 이 땅 위에 다시 올 때,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시면서, 틀림없이 밤낮으로 그를 따라다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도 밤낮으로 그를 사랑하면서 그를 따라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에게서 사랑받기만 원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욕심장이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또한, 인간들이 그에게서 사랑받기만 원한다면, 그들도 그와 같은 욕심쟁이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랑받기만 원한다면 하나님이 그 재림주에게 사랑을 빚지는 것이 되고, 사람들도 그에게 사랑을 빚지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게 사랑을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초림과 재림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초림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재림에서는 하나님과 인간이 그를 사랑하기를 원해야 하고, 그들이 빚진 것을 탕감해야 합니다.

예수는 신랑으로서 왔고, 신부를 사랑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다시 올 때는 인간들은 신부들로서 그 신랑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처음 예수를 보낼 때, 하나님은 예수가 사람들에 의해서 사랑을 받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들의 불신에 의해서 거꾸로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하나님이 그것을 복귀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그를 맞이하게 될 때, 우리는 그를 미치도록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는 그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 아들딸들, 또는 형제 자매들보다 예수 자신을 더 사랑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들을 겪을지라도 어느누구보다도 그를 더 사랑한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를 사랑하기 위해 먹는 것도 잊어버려야 하고, 많은 일들을 해야 합니다.

왜 그래야 돼요? 왜 우리는 그것을 해야 합니까? 그것은 주님이 아버지의 사랑, 아들의 사랑, 신랑의 사랑을 가지고 오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러한 세 가지 형태의 사랑을 가지고 옵니다. 그래서 그는 온 인류에 대하여 아버지의 자리에 서고, 모든 인간에 대하여 신랑의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재림주와 함께 세 가지의 사랑을 복귀해야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가장 귀중한 세 가지를 잃어버렸습니다. 한 가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의 위치를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또한 해와는 남편의 사랑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그들의 자녀를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세 가지 형태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은 이런 세 가지 형태의 사랑을 동시에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나 재림주와 함께 이 세 가지 형태의 사랑을 복귀해야 합니다.

우리 타락한 인간들은 이 세 가지 형태의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재림주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생각해야 하고, 그를 신랑, 즉 주체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분의 아들과 딸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를 대할 때, 그의 자녀, 즉 그의 아들 또는 그의 딸이라고 느껴야 합니다. 그다음에 여러분은 그의 신부라고 느껴야 합니다. 이것은 여자의 경우입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그의 형제와 같이 느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은 그와 함께 부모라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세 가지의 감정을 느껴야 합니다.

이러한 세 가지의 감정을 느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한 세대에서 그 세 가지의 심정들을 복귀할 수 있습니다. 아담이 그의 세대에서 이 모든 것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의 생애에서 복귀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도 재림주를 통해서 해야

우리는 타락되기 전의 아담과 해와로 느껴야 합니다. 우리들 사이의 사랑은 우리들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옵니다. 모든 사랑이 그에게서 옵니다. 그는 새 사랑의 근본입니다. 모든 사랑이 그로부터 출발합니다. 이 자리가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처음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받으셨으나, 그 아들을 사랑하실 수는 없었는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 하실 수 있고, 또한 인간들도 그를 사랑할 수 있는 처음의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통일된 세 가지의 사랑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아들의 사랑, 그리고 신부와 신랑의 사랑, 그리고 또 부모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일체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이상이 하나로 집결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다른 어느누구보다도 그를 더 사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여러분이 만나 보기를 갈망하는 바로 그 사람이라고 느껴야 합니다. 여러분은 가서 그와 함께 살고 싶어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처소에서 살 때, 여러분은 항상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것을 들을 때마다, 그 자리에 가고 싶다고 느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일을 할 때도 그와 함께 살기 위해서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항상 여러분의 처소에서 이 세 가지들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것도 직접적으로 서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를 통해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한 후에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모든 사랑들을 탕감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상대를 찾을 수 있고,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과 우리 자신 사이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이 우리 교회에 들어와 있지만, 그리고 여러분이 선생님을 만났지만, 여러분은 나가서 이러한 일들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돌아와야 합니다. 확실해요? 이해돼요? 여러분이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예」 선생님은 두고 볼 것입니다.

문: 어젯밤에 선생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어떻게 우리의 가족, 즉 조부모, 부모, 그리고 자녀들을 함께 데려와야 하는가에 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조부모가 영계에 계실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가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조부모가 영계에 있을 때 여러분은 여러분의 조부모의 자리에 있는 노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는 '만일 너희가 나를 대신하여 소자를 사랑한다면, 너희가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문: 언젠가 밤에, 선생님께서 사랑은 대상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것은 사랑이 대상이 없이는 나타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대상을 가져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사랑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상은 사랑의 근본이 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사랑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여러분의 사랑은 여러분의 대상을 통해서만이, 그리고 그 대상에 의해서만이 나타날 수 있고, 반영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사랑을 가지고 있으나 대상이 없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기 도]

어느덧 1971년도의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1972년 첫날 첫 순간을 맞이하는 이 시간과 이 자리를, 아버지, 축복하시옵소서.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제1차 7년노정을 끝마치고, 제2차 7년노정에 있어서 4년을 보내고 5년째 되는 이날 이해를 맞이했사옵니다. 당신이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철없는 어린 자녀들이 1971년도를 잘 넘자고 맹세하여 '통일기반 확보'라는 표어를 내걸고 온갖 정성을 다해 왔습니다. 1972년도에는 더더욱 아버지께서 많은 축복과 은사를 가해 주시옵소서.

이제 1971년을 보내는 이 시간, 역사적인 사명이 저희들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사명을 감당할 힘을 가진 사람이 없는 줄 아옵니다. 다만 당신이 선두에 서서 온갖 희생과 봉사로써 싸움을 홀로 책임지고 어린 자녀들을 이끌지 않으면 안 되는 중차대한 사명을 앞으로 가려 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제 새날 새 아침 새 시간이 되는 이 시간에 저희들은 당신 앞에 머리를 조아려 새로이 심각한 마음을 가지고 맹세로써 다짐하려 하옵니다.

당신이 바라시던 이 시간이요, 당신이 그리워하시던 이 시간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 시간 미국 땅에서 1972년을 맞게 됨도 당신의 섭리의 은사인 것을 생각할 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불쌍한 한민족을, 아버지 굽어살피시옵소서. 수난의 길 가운데서도 죽음길을 가리게 하시고, 최후까지 남아진 무리를 모아 가지고 비탈길과 험한 골짝길을 가려 가게 하시던 아버지의 섭리의 사랑 앞에 머리를 조아릴 적마다 아버지께서 숱한 고난의 길을 넘어섰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사옵니다.

당신이 남겨 놓으신 수난의 복귀노정이 이렇게 그 누구도 모르는 고독한 길이었고 싸움을 맞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었다는 것을, 지내고 보면 모두 아버지의 수고밖에 없었다는 것을 깨달을 적마다 그러한 아버지께서 어느 한때에 해방을 맞아 안식할 수 있는 날이 있겠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직까지도 아버지께서 그럴 수 있는 날을 맞이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효의 도리와 충의 도리를 다하여야 할 저희들은 아버지를 대할 면목이 없음을 다시 한 번 느끼지 않을 수 없나이다.

당신은 제3차 세계순회노정을 떠나게 하시어 이 미국에까지 이끌고 오셨습니다. 여기에서 당신이 소원하시는 뜻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새로운 역사의 창건을 맡겼던 인연이 있지마는 섭리의 방향과 섭리의 노정을 알지 못하는 이 민족과 국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라를 지도하던 사람들과 세계를 이끌어 가던 사람들이 번번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고 나갈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던 역사적인 사실과 더불어, 오늘 이 민족도 가야 할 운명길을 가리지 못하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아버지께서 어디에 머물고 어디에 가서 결실을 맺을 것이냐, 어느 한때 어떤 곳에서 이 민족이 아버지 앞에 서러운 모습으로 서게 될까봐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도 있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하오니 아버지여, 아버지의 손길이 여기에 남아져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손길과 보잘것없는 저희의 힘과 노력을 거치지 않고는 이 나라도 아버지가 원하시는 뜻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적마다, 아버지께서 불러 놓으신 뜻 있는 무리는 소수요, 아버지께서 찾아 나오는 무리는 너무나 외로운 무리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께서 이 나라 이민족을 개척시키던 퓨리턴 정신을 이어받을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이 이 나라 국민가운데에 또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가련한 민족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역사적인 민족의 재창업을 다짐해야 할 시대적 입장에 놓여 있는 이나라를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시사 보잘것없는 어린 무리들을 모아 놓으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 아버지께서 같이하시옵고 긍휼의 손길이 같이하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간 10여 일 동안에 복귀섭리가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저희들은 느꼈습니다. 아버지께서 수난길을 거치지 않고는 올 수 없었던 처절하고도 비통한 날들이 많았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들 앞에 전해야 할 말이 많습니다. 이들의 마음 가운데에 새로운 나라를 추구하겠다는 불길이 폭발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민족과 세계를 위하여 책임질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겠다고 하늘땅을 부여안고 결의할 수 있는 이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아침에 한국에 있는 어린 자녀들은 스승을 멀리 보내 놓고 새해를 출발하기 위하여 이 땅을 바라보면서, 아버지와 더불어 축하의 자리를 마련해 놓고 새날을 맞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날을 축하하였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눈물 어린 마음과 진정으로 하늘을 흠모하는 사모의 마음이 빨리 지구의 동반구 서반구가 엇갈리는 자리를 연결시키어 당신의 심정의 흐름이 갈라진 이 나라를 통일시키시옵고, 장벽으로 나뉘어져 있는 수많은 민족들을 통일민족으로 삼을 수 있는 하나의 기원과 동기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 이 시간에도 이 자리를 향하여 기도하고 있는 무리가 있을 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이여, 지금의 그들의 기도가 어긋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떠나올 때 다짐한 조국을 수호해야 된다는 것을 그들이 마음 속에서 잊혀지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선악이 분립된 최후의 정상에 서 가지고 내일의 생명을 각기 기약할 수 없는 자리에서 가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는 한국백성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만이 이들을 인도하고 아버지만이 이들을 지켜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때가 기필코 온다고 오랜 기간을 통하여 애달픈 마음을 가지고 하늘과 더불어 싸우면서 호소해 왔지만 바라던 환경을 갖지 못한 과거지사가 원통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사랑의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눈물과 더불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당신의 입장과 당신의 사정을 염려할 적마다, 이러한 무리를 통하여 큰 무리를 부끄럽게 하고 강한 무리를 굴복시켜 오신 하늘의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단 하나 이 나라 이 민족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어린 자식들이 간곡하게 호소하는 기도를 당신은 들으실 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1972년도를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3년 노정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하는 어린 딸들을 일선에 내보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처처에 널려 놓고 온 그들이 눈물 어린 사연을 가지고 뒤넘이치는 걸 볼 적마다 이 일이 헛되지 말게 해달라고 아버지 앞에 호소한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내를 일선에 보내 놓고 남편 홀로 가정을 이끌어 나가면서 어린 자식들을 품고 가려가는 그런 남모르는 애달픈 생활을 하는 것도 복귀의 서글픈 노정을 알고, 가정이라는 인연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그들의 눈물은 비참하였던 사실들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라는 것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보다 더 비참한 민족이 될까봐 염려하는 마음을 품고 미래의 염려거리를 없애기 위해 수난길을 다짐하며 일선에 선 어린 딸들을 기억하시옵고, 대한민국을 지키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아시아를 지켜야 되겠습니다. 일본과 중국을 중심삼은 섭리의 뜻이, 미국과 독일을 중심삼고 연결되어야 할 사명적인 전선이 남아 있는 것을 바라볼 때, 아버지여, 강하고 담대한 아버지의 능력만이 나타나게 하여 주옵고, 아버지의 힘만이 같이하여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생명을 바치기를 각오한 걸음이 혼신을 다해 생애를 지내고 다시 한 해를 맞는 이 시간을 대하게 될 때, 아버지여, 면목없음을 느끼옵니다. 하늘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시간도 아무리 강하고 흉악한 원수가 저희 앞을 가로막는다 하더라도 그 이상으로 강하고 담대해야 할 저희 자신들인 것을 언제나 언제나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자리에 미국의 어린 자식들이 모였습니다. 피부 색깔이 다르고 생활 풍토가 다른 저희들이지만 당신의 심정으로 얽혀 있습니다. 새로운 소망의 자리에 이들을 세우시어 당신의 새로운 소망의 천국을 건설하기 위한 용사로서, 온갖 수난길이라도 당연히 이어받을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선생을 만난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선생이 가야 할 길을 책임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싸워 나가는 길에 있어서 동조자가 되는 것이 더 귀하다는 것을 이 시간 깨달을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초하루인 동시에 다섯 번째 맞는 하나님의 날인 이날을 맞이하여 기념하고 축하하는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어린 아들딸들을 축복하시옵소서. 그들에게 아버지께서 같이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고, 당신의 승리를 그들 앞에 자랑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거치는 과정에 수난이 있다 하더라도 그 수난은 당신이 저희를 가르치기 위한 수난이요, 당신이 받은 고통을 체휼시키기 위한 것임을 아는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싸우고 있는 그 자리에 승리적 능력을 가진 아버지께서 언제나 현현하시어, 1972년도에는 보다 더 통일의 깃발이 온 세계에 휘날리고, 천지에 아버지의 명분을 드높일 수 있는 마지막 3년 기간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1971년에는 많은 일들을 거쳐왔습니다. 이제 1972년도에 있어서 아버지 앞에 저희들이 해야 할 것을 맹세하였사오니, 이 해에도 더욱 아버지께서 권고하시옵고 채찍질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금번 모인 당신의 자녀들 위에 축복하시옵소서. 영원하신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품어 주시옵길 재차 부탁드립니다.

새해 첫날 첫 시간이오니 이 시간을 기쁨으로 맞고 영광의 날로 남아 지도록 당신의 사랑이 여기에 같이하시옵고, 365일 전체를 아버지의 승리의 날로 아버지께서 대신 지키시어서 오로지 당신을 그리워하고 당신의 자랑을 남겨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이날 한국에 있는 전체 식구와 일본에 있는 식구와 중국에 있는 식구와 미국에 있는 식구와 구라파 전역에 널려 있는 식구 모두를 축복하시옵고, 내내 일선에 거하시어 당신의 거룩하심이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동양과 서양은 하루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어제 아침 10시를 기해서 새해 새날을 맞고, 하나님의 날을 기념한 줄로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 시간이 해를 나누는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에 우리는 본국에 있는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번에 미국에 와서 이와 같이 새로운 해를 맞고, 더욱이 하나님의 날을 맞을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작년에는 우리들이 '통일기반확보'라는 표어를 내걸고 1년 동안 싸워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는 1년 동안 많은 일을 했고, 또 하늘이 많은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통일전선수호'라는 표어를 제정한 동기

금년에는 '통일전선수호'라는 표어를 작정했습니다. 왜 이런 표어를 세웠느냐? 민주세계는 하나님의 세계를 위한 전선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세계 정세에 입각하여 볼 때, 민주세계는 상당히 절박한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공산주의의 위협으로 말미암아 전세계가 그러한 사조에 휩쓸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비단 미국뿐만이 아니라 민주세계의 전역, 즉 아시아나 서구를 막론하고 어떠한 국가나 어떠한 사회단체나 어떠한 개인을 막론하고 이러한 사조에 휘말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외적인 사명을 지우기 위하여 민주세계를 내세웠는데도 불구하고 민주세계가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도리어 위협을 받는 입장에 있게 될 때에는, 내적인 사명을 짊어진 것이 외적인 사명까지 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민주세계권내에 있어서 내적인 사명을 해야 할 것은 종교권이라고 보는데, 많은 종교권이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기독교가 내적인 사명을 해야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기독교가 실질적으로 공산주의의 위협을 능가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실질적으로 사회 혹은 세계에 방어적인 활동을 하느냐 하면, 그렇지 못한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못 한다면 그 어떠한 곳에서라도 이러한 사명을 내적으로 감당하는 하나의 종파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곳이 우리 통일교회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독교를 수호함과 동시에 모든 종교를 수호하고, 공산세계의 위협을 방어하는 책임을 전담하고 나선 무리들인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발전해 나온 과정에 있어서 이 두 가지 방향, 즉 기독교가 가는 방향과 민주세계에 있어서 공산세계에 대비할 수 있는 기준을 강화하기 위해 준비해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지금 현재에 있어서 우리 통일전선이야말로 하나님이 세계적으로, 최후로 믿는 전선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통일전선을 수호하는 것은 비단 개인이나 우리 통일교회나 어떠한 종파뿐만이 아니라, 기독교를 수호하고 민주세계를 수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전반적인 책임이 요구되는 입장에서 책임을 지고 그 수호에 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통일전선 수호'라는 표어를 금년에 세우게 된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내적인 사명

외적으로는 이러한 세계적인 사명이 있는 반면에 내적으로는 섭리적이고 세계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외적 섭리가 완결된다고 하더라도 내적 섭리가 여기에 동반하여 완결되지 않으면 하나의 전체목적을 완성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원리의 관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내적인 것이 중요하냐, 외적인 것이 중요하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둘 중에 내적인 것을 보다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내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위한 문제요, 외적인 문제는 사람을 위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과 더불어 내적으로 하나된 개인을 통해서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을 통해서 내적으로 하나된 종족을 이루고, 그 종족을 통해서 내적으로 하나된 민족을 이루며, 그 민족을 통해서 내적으로 하나된 국가를 이루어 가지고 발전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나 섭리의 목표를 나라에 두고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셨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나라를 표준했다고 하더라도 그 나라를 움직여 낼 수 있는, 전체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4천년 동안 하나의 나라를 중심삼고 준비시켜 놓고 그 나라 가운데에서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 다시 말하면 개인적으로 내적으로 하나된 책임자, 가정을 중심삼고 내적으로 하나된 책임자, 혹은 종족, 민족, 국가에 있어서 내적으로 하나된 전체의 책임자를 하나님은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그런 중심적인 책임자로 보내진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분은 4천년 역사를 투입해서 수고한 결과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믿지 못하고 예수님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내적으로 일치될 수 있는 개인적 승리 기반도 못 닦고, 가정적 승리 기반, 종족적 승리 기반, 민족적 승리 기반, 국가적 승리 기반, 전체를 못 닦고 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역사를 다시 2천년 연장시켜 가지고 오늘날 외적으로는 수많은 민주세계권, 내적으로는 기독교권, 이 기독교권 가운데에서도 보다 내적인 통일교회권을 중심삼고 섭리를 재차 내적으로 결정하고 성취시키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재림주를 개인·가정·종족·국가적으로 옹호할 기반을 닦아야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부터 2천년 전에 유대인들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나님의 내적인 뜻과 일치될 수 있는 입장에서 예수님을 수호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분은 개인적인 기반을 닦지 못하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요셉 가정이나 사가리아 가정-이 예수가 설 수 있는 가정을 수호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씨족 자체가 그 가정을 수호하지 못했습니다. 또 민족 자체가 그 씨족을 수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개인으로 수호하고 가정으로 수호하고 종족으로 수호하고 민족으로 수호하고 국가로 수호해야 할 그 기반을 재현시켜 가지고, 오늘날 우리들이 다시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고 개인으로 수호하고 가정으로 수호하고 종족으로 수호하고 민족으로 수호할 수 있는 터전을 공고화시키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님이 내적으로 공인할 수 있는 개인적 기반을 성취하고 가정적 기반을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개인을 옹호하고, 종족적 기반을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가정을 옹호하고, 민족적 기반을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종족을 옹호하고, 국가적 기반을 성취시킴으로 말미암아 민족을 옹호할 수 있는 길을 재차 닦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의 싸움의 노정인 것입니다. 새로운 내적 인연을 중심 삼고 새로운 종족을 편성하고 새로운 민족을 편성하고 새로운 국가를 편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전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승리의 기반을 갖추어 주님의 가정을 수호해야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 개인 개인을 두고 볼 때, 여러분은 사탄 앞에 있어서 자신을 수호해야 합니다. 사탄의 일선과 하나님이 일선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일선에 선 자기 자신을 수호해 가지고 사탄의 공세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승리의 결정권을 여러분 자신이 확정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베드로, 야고보, 요한보다도 더 나은 자리에 서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위의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을 보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 가정이나 혹은 사가랴 가정이 사탄세계의 일선에서 싸워 가지고 승리하여 예수의 가정을 옹호해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이 사탄세계에 승리의 기반을 갖추어 가지고 주님의 가정을 수호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예수의 종족을 보호하려면 예수의 종족을 구할 수 있는 수많은 민족적 보호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민족들이 사탄세계에서 승리한 터전 위에 서 가지고 예수편의 종족을 위할 수 있는 수호권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오늘의 기성교회라든가 혹은 민주세계의 그 누구도 이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체에서 만들어야 될 책임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 개인이 여기에 온 것이 여러분들이 구원받기 위해서 하늘을 찾아가기 위해서 온 것보다도…. 하나님은 오시는 주님을 개인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 왔다고 느끼는 사람을 더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녹음 잠시 중단)

전축복가정은 하나되어 새로운 종족적 기반을 닦아야

가인 아벨이 하나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적으로도 가인 가정과 아벨 가정이 연결되어 가지고 울타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종족 또한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우리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들이면 통일 가정을 보호하고, 가정들은 중심 되는 선배 가정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완전히 하나되는 데에서만이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는, 하나님이 임하시어 새로운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종족적인 기반을 닦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국가면 국가가 우리 통일종족을 수호할 수 있는 책임을 해야만…. 예수님 당시에 그 국가가 예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이상적 국가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망했던 것을, 다시 한 번 수호할 수 있는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이스라엘권 국가를 복귀할 수 있다는 거예요. 1972년도, 금년도에는 왜 '통일전선 수호'라는 말을 쓰게 되었느냐? 금년이야말로 한 고비 넘어가는 해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안 쓸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통일교회의 책임자로서 해 나온 역사는 여러분을 위해서, 즉 여러분을 보호하고 여러분의 가정을 보호하고 여러분의 종족을 보호하고 여러분의 나라를 보호하기 위한 싸움을 전개시켜 나온 역사 였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으로서 해야 할 어느 한계,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고 통일 족속이면 통일족속을 중심삼고 할 수 있는 한 한계까지는 다 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제는 반대로 여러분이 선생님을 위하고 뜻을 위하는 데에 있어서 보다 큰 범위에서 책임을 지고 전세계적으로 활동해야 할 때가 되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는 여러분이 선생님을 따라오면서 일을 해 나왔지만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이 찾아와서 일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선생님이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 선생님 개인을 보게 되면 아직까지 자리를 못 잡았습니다. 환경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선생님 가정이 자리를 잡아야 축복받은 가정이 순차적으로 자리를 잡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이 전부 다 자리를 잡아야 됩니다. 그런 기반이 넓혀져 가지고 하나의 국가가 마련이 된다면, 이러한 한 국가만 성립되게 되면 세계 복귀는 단시일내에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보다 큰 책임을 지고 활동해야 할 때

그러면 개인적으로 다시 한 번 따져서 이야기해 보자구요. 여러분 자신들이 선생님의 사명을 인계맡아 가지고 책임을 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나라를 위해 싸우고 나라를 위해 핍박을 받았으면,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서 핍박받는 것보다 세계를 위해서 핍박받을 수 있는 각오를 해야 나라가 보호받을 수 있는 권내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침범받는 어떤 문제가 있게 되면 그것을 여러분이 세계적으로 책임지고 방어할 수 있느냐, 수호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번 선생님의 제3차 세계순회노정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세계를 대해 순회노정과 같은 새로운 길을 3차 이상 가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가야하고 가정적으로도 가야 합니다.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선생님 가정이 당할 수 있는 수난길이나 혹은 외적으로 당할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을 책임지고 사탄으로부터 수호하겠다는 결의를 가진 그런 가정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전체, 즉 축복가정이나 축복받지 않은 교인이나 할 것 없이 우리 통일교회 전체를 위해서 외적으로 수호해 줄 수 있는 어떠한 교단이 있다면 통일교회는 여기서 쉴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통일교회를 협조하고 수호하는 그러한 종교단체를 어떤 나라가 수호하게 된다면 그 종교단체까지도 안식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호하는 나라가 있으면, 또 그 나라를 위해서 세계의 어떤 국가가 그 나라를 방어하고 책임질 수 있게 될 때 그 나라는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라가 세 나라, 열 나라만 있게 되면 세계는 순식간에 복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하나의 종족을 수호하고, 가정적으로 하나의 종족을 수호하고, 혹은 종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수호하면, 즉 따로 떨어지지 않는 한 나라를 중심삼은 그 나라 가운데 한 민족으로 한 종족으로 한 가정으로 한 개인으로 수호할 수 있는 입장에만 서게 되면 나라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국가를 대표한 대표자, 종족을 대표한 대표자, 가정을 대표한 대표자, 개인을 대표한 대표자 등 대표자가 한 사람씩만 있으면 됩니다.

나라와 제사장과 족장과 가정과 개인이 하나되어야

개인적 복귀는 가인 아벨 복귀를 하면 됩니다. 아벨을 중심삼고 가인이 굴복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벨 앞에 개인적 가인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 가인이 세례 요한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하나되면, 그 다음에는 가정적으로 요셉 가정과 사가랴 가정이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되면 아벨 종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유대교 교법사와 제사장이 예수와 하나되고, 나라가 예수와 하나되면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가인 아벨, 가정적인 가인 아벨, 종족적인 가인 아벨, 민족적인 가인 아벨, 국가적인 가인 아벨, 이런 사람들이 한 중심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즉 국가대표, 종족대표, 가정대표, 개인대표만 완전히 하나되면 한꺼번에 복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와 제사장과 족장과 가정과 개인이 하나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그런데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어떠했습니까? 나라의 반대를 받고, 기독교의 반대를 받고, 가정의 반대를 받고 전부 다 반대를 받았다는 거라구요. 그래서 외부에는 우리를 수호해 줄 것이 없으니까 그것을 우리가 만들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그런 패가 아니라구요.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패입니다. 축복가정들은 가정적 기반을 중심삼고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가정이 많아져 가지고 종족으로 벌어졌기 때문에 이 종족이 전부 다 합하여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이렇게 전부 다 합해 가지고 우리 통일교회가 아벨 교단이 되고 기성교회가 가인 교단이 되어서 이것이 나라와 더불어 절충 하는 단계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기성교회가 믿지 않을 가망성이 있기 때문에 중간 입장으로 유니언 처치(Union Church)라는 하나의 단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일본과 한국과 중국 합해 가지고 지금…. 그렇게 해서 기성교인들이 하나가 되어 가지고 나라를 중심삼고 아벨권을 만들어서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금년에 선생님이 미국에 와 가지고 집회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한국 기독교를 포위하려는 작전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한국 기독교를 망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를 구해 주자는 뜻에서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미국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게 되면 한국은 한꺼번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간접적 방어작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미국에서 집회를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미국 교회가 여기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종단을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미국 식구들은 한국을 중심삼고 활동한 것을 이해해야

하나님의 섭리작전은 그냥 그대로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방어선을 쳐야 될 때는 쳐야 되고, 준비가 필요할 때는 준비를 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다리를 놓아 가지고 발전해 나가기 때문에, 우리가 거기에 방어할 수 있고 전진할 수 있는 터전을 넓혀 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섭리를 진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망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와 같이 실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미국에 와서 여러분과 직접 손을 잡고 활동하면 여러분은 좋아할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다구요. 먼저 터전을 넓혀야 합니다. 개인적인 터전, 가정적인 터전, 종족적인 터전을 넓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민족적인 터전 위에 세계적인 터전을 닦아야 됩니다. 미국은 세계적 터전이 되는 입장이기 때문에 국가적인 터전을 닦지 못하고는 선생님이 올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만일 선생님이 한국을 떠나 가지고 한국이 전부 다 깨져 나간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건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도 깨져 나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국을 위주한 작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 미국 식구들은 미국에 있지만 미국 사람들이 아닙니다. 새로운 한 종족권내의 친척들이라구요.

뜻적인 입장에서 볼 때, 하나의 국가복귀라는 대업을 중심삼고 움직일 때에는 여러분은 온갖 정성을 다하여 외적으로 수호하는 입장에서 그것이 결정날 때까지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활동하는 데에 있어서 '빨리 50개 주에 선교센타를 세워 미국을 복귀해 가지고 세계를 복귀하자'고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의 국가를 복귀하기 전에는 세계를 절대 복귀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그래 가지고는 복귀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세계를 복귀하겠다고 자기 계획대로 하여 복귀해 갔다 하더라도 다시 이 코스를 거쳐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세계를 복귀하겠다고 한다면 세계로 가서는 안 됩니다. 먼저 나라를 해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 나라를 중심 삼고 가던 것을 '뒤로 돌아' 하게 되면 전부 다 깨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미국 50개 주를 통해서 세계복귀를 하는 데는 그 터전을 닦은 승리의 결과를 국가적 기준 앞에 돌려 가지고 그것과 합하여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닦아 나가야 됩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길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중요하다구요.

그와 같은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가더라도 가정을 중심삼고 살면 발전 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자기 종족을 구하려고 할 때, 아벨의 터전 없이 그것을 다 떼어 버리고 자기만이 가인의 입장에서 가면 된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안 됩니다. 가정도 그렇다는 거야, 가정도. 또 종족도 그래요. '우리 종족만이 민족을 복귀하면 된다' 해 가지고…. 그렇게 나가면 안 됩니다. 복귀를 하되 하나되어 가지고 해야만 정상적인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민족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통일전선을 수호하려면 완전히 하나되어야

우리가 일을 하지만 일하는 것은 무엇 하기 위해서냐? 하나의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서 보호해 가지고, 하나되어 가지고 같이 나가기 위해서…. 이런 관념을 가져야 됩니다. 이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까딱 잘못하면 사탄한테 걸립니다.

지금 우리가 터를 닦아 가지고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이것을 수호하자는 것입니다, 수호.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뼈와 살의 관계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맞더라도 뼈가 맞아서는 안 됩니다. 살이 맞아야지.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서 몸도 맞고 다 맞았지만 뼈는 안 맞았다는 거예요. 뼈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뼈가 꺾였다면….

세계를 복귀하기 전에 나라를 복귀해야

우리 통일교회가 20여 년 동안 세계 터전을 중심삼고…. 전부가 자기 나라를 빨리 복귀하고 세계를 복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세계를 빨리 복귀하는 데는, 그것도 복귀해야 되겠지만 그 주목적은 하나의 나라를 빨리 완결시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목적관이 확실히 서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원하는 거라구요. 우리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복귀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복귀하자는 것입니다. 한국은 우리가, 내가 원하는 나라가 아니라구요.

그러니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싸워 나왔고, 지금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과정을 거치며 혼자서 지금까지 싸워 나오고 있다구요. 여러분이 소생 장성까지는 괜찮지만 완성시대는 자녀시대이기 때문에 부모를 알아볼 때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고생을 하는데 자기만 편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불효자입니다. 부모가 고생하는 것을 자기가 대신 책임지겠다고 해야 부모를 수호하는 것이 된다구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의 현재 조직에 있어서 개인과 가정단계에 적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가인은 누구를 위해 있느냐 하면 아벨을 위해 있습니다. 가인 가정은 누구를 위해 있느냐 하면 아벨 가정을 위해서, 가인 종족은 아벨 종족을 위해서, 가인 민족은 아벨 민족을 위해서, 가인 나라는 아벨 나라를 위해서 있습니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수호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아벨을 위해서 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기가 전체를 책임을 진다고 하게 될 때 여기에서 비로소 안식권인 천국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이스라엘 민족이 망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이 사상에 반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고 죽였고 망하게 됐다구요. 전부가 예수님이 와 가지고는 자기들을 위해 줄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들을 전부 다 잘살게 해주고, 세계의 주도국가로 만들어 줄 줄 알았다는 거라구요. 자기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말이예요.

여기 우리 교회의 축복가정 중에 자기들 둘이 나가서 살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나가 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나 보자. 결국은 나갔다가 들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축복을 받은 것은 선생님 가정을 대표해서 아벨적인 입장을 세계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가정들이 한국의 가정은 뭐 어떻고 어떻다고 비난하면 안 됩니다. 도리어 한국 가정과 하나되기 위해서 전적으로 일선에 서서 활동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껴 가지고 나가야만 그 가정을 중심삼고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되어서 협조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전부 다 갈라져 가지고 자기 멋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는 가정적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앞으로 세계 120개국의 가정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아파트를 만들어 가지고 공동생활을 하는 훈련도 시킬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살 생각을 해봤어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도 다 버려 두고 살겠다는 양동이들, 그렇게 살겠어요?「예」(웃음)

1972년은 우리 교회의 역사적인 기점이 되는 해

그렇기 때문에 1972년, 금년에 '통일전선 수호'라는 말을 표어로 세울수 있다는 것은 금년이 우리 교회의 역사적인 한 기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집을 짓는다면 여기 잘사는 미국 사람의 집보다 못 지어야 되겠어요, 잘 지어야 되겠어요?「잘 지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집을 내손으로 지어야 되겠어요, 여러분이 지어야 되겠어요?「저희들이…」(웃음) 한국에서는 좋은 집을 짓겠다고 간부들이 헌금 운동을 했다구요. 그 계획을 내가 알아 가지고 계획한 그 돈을 전부 다 인류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써 나왔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선생님의 집도 지어야겠고, 본부교회도 지어야겠고, 세계적인 수련소도 지어야 하는 굉장한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한 계획은 한국에서도 필요하지만 미국에서도 하고 싶다 하는 생각을 선생님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 여러분은 좋아해야 되겠어요, 싫다고 해야 되겠어요? 어떤 입장이예요?

선생님이 지금 신학교도 사려고 하는데, '동양, 아시아에서 돈을 가져 와야 된다. 돈을 보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돼요? 그것을 당장 사고 남을 돈이 있어요?(웃음) 이런 말을 듣고 그야말로 단결해 가지고 그 몇배라도 우리 손으로 해내겠다는 결심이 더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종대라는 것은 맨 처음에 나온 것입니다. 이 종대가 똑바로 올라가야 가지들도 사방을 갖추어 가지고 잘 나오는 것입니다. 종대가 꼬부라지면 어떻게 되느냐? 가지도 전부 다 꼬부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종대가 어떻게 해야 똑바로 올라가겠느냐 하는 것을 언제든지 생각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염려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잎이 많다 하더라도 종대가 꼬부라져서는 안 됩니다. 잎과 가지가 많지 않더라도, 조금 자라더라도 종대가 똑바로 자라야 합니다. 종대가 꼬부라지면 가지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은 쓸데없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전통적인 기준이 틀림없는 그런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발전할 수 있는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전세계 식구들은 중심을 위해 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이제 결론을 짓자구요. '통일전선수호'라는 것은 내부를 안정되게 하는 것입니다. 외부의 사람이 전체를 책임지고 어떻게든지 내부를 안정시킬 수 있는 일을 하게 될 때 내부는 안정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전체가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에 있는 통일교회 식구들은 중심을 위해서 서로 서로가 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됩니다. 그러한 개인, 가정, 종족이 많으면 많을수록, 개인이 세계적이요, 가정이 세계적이요, 종족이 세계적이요, 국가가 세계적이 되는 것이요, 그렇게 될 때는 자동적으로 천국이 이루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통일전선을 수호하는 데에는 이런 원칙적인 사상적 기반, 생활적 기한, 활동적 기반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상적인 천국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1972년도부터 여러분이 그런 사명을 해야 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금년 표어를 '통일전선수호'라고 정하게 되었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제 세계는 당신의 섭리의 뜻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안팎으로 조여 들어오는 실정에 있음을 저희들은 직시하고 있나이다.

아버지, 아시아의 정세와 세계 정세를 감아 쥐고 책임질 사명자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통일교단이 지닌 역사적인 사명이 얼마나 지중(至重)한가를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그간 쫓김을 받던 무리들을 민족 앞에 환영받을 수 있는 시점에까지 끌어올리시기에 당신이 얼마나 큰 수고의 대가를 치렀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저희는 면목이 없음을 느끼옵니다. 이것은 민족의 수치요, 수많은 교단의 수치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복귀섭리역사노정에 있어서 그 누구가, 그 어떤 민족이, 그 어떤 나라가 어느 한때에 당신의 섭리의 뜻을 알아 가지고 협조하려고 했사옵니까? 그런 무리가 없음을 생각하게 될 때, 타락의 후손된 우리는 그런 결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여, 불쌍한 한국 민족을 당신이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이 민족이 정성들이는 수많은 제단이나 교단도 당신이 움직여 주시지 않고는 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이 이들을 도와주시지 않고는 세계 인류와 세계의 종교를 구할 수 없는 한스러운 복귀노정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20여 년 동안 울분의 수난길을 걸어온 불쌍한 무리들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배반하고 핍박하기에 급급하고 있는 무리들이 많사옵니다. 언제 어느때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올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겨울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는지 모르지만, 겨울은 기필코 올 것이옵니다.

우리 통일교단의 겨울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새로운 봄절기를 맞이하여 역사적인 동이 터 오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완연히 느끼고 있사옵니다. 세계정세가 그 어떤 정치가의 수완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복귀섭리의 관건을 다짐하고 그것을 제거시키는 그 결과로 말미암아 천적인 내용에 따라 변하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에 속한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1960년 이래 짧은 10여 성상 노정에서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수고를 하셨습니까? 1960년을 중심삼고 볼 때, 1972년도까지는 12년을 마감 지어야 할 중차대한 해이기 때문에 이 12년의 길을 저희는 넘어야 되겠사옵니다. 우리의 신념과 더불어 국가의 운세와 세계의 운세가 맞부딪치는 기간을 우리는 넘고 있는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남한과 북괴가 대결하여 최후의 판결을 지어야 할 때가 다가온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판정의 결과를 가릴 수 있는 그는 땅 위의 어떤 주권자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것은 오직 당신의 수하에 달려 있고 당신의 권위에 달려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단 한가지 문제는 당신의 축복의 인연으로 백성들을 살릴 수 있는 어느 교단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아버지, 당신이 한국 민족을 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전에 한국 민족을 수호할 수 있는 교단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기성교단을 버릴 수밖에 없는 입장에 선, 서글프신 아버지 앞에, 한국 민족을 수호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있다고 할진대는 아버지께서 이 민족을 버리는 것을 막아 낼 수 있을 것이옵니다.

지금까지 저희는 반대의 싸움을 해 나왔습니다. 나라가 쓰러지려고 하는, 혹은 교회가 쓰러지려고 하는 운명을 탕감하기 위해서 보잘것없는 통일교단이 삼천만 민중 앞에 새로운 기치를 드높이 들고 외로운 길을 개척해 나왔습니다. 개척자의 명분을 세우기 위해 싸워 나왔습니다. 그간 당신이 얼마나 수고해 나오셨는가를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힘 없는 사람들을 죽음길로 내몰고 참소와 조롱과 갖은 욕설을 퍼부었지만, 아버님은 그런 무리를 동정하면서 그런 무리와 더불어 통곡하면서 나오셨다는 것을 그 누구도 모르지만 저는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당신은 한국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모두를 참아 나오셨습니다. 저희는 당신의 넓고 높으신 사랑의 인연이 얼마나 고귀한가를 알았기 때문에, 그 사랑의 도리를 따르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당신은 원치 않는 외로운 자리에서 저희들이 더 높은 소망의 새로운 약속을 이루어 주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인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따르던 수많은 아들딸들이 반기를 들고 배반하는 환경에 설 적마다, 하늘 편에 서서 당신의 뜻은 기필코 성사된다는 약속을 믿고 그들 이상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지금까지 나오다 보니, 과연 당신은 약속대로 성사하시는 분인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몰리는 자리를 넘고 나와 오늘 이 자리까지 왔사옵니다. 이 땅을 바라보고 아버지 앞에 호소하던 일념을 당신은 알고 있사오니, 이제 미국의 어린 아들딸을 세우시어 하늘을 대표하고 30억 인류를 대표하여 책임질 수 있는, 십자가의 정상을 밟고 넘을 수 있는 결의에 사무칠 수 있는 아들딸로 세워 주시옵소서. 이들이 한마음 한뜻을 갖추고 나서게 될 때는, 이 거대한 미국도 아버지의 뜻 앞에 기필코 돌아오고 만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여기에 있는 이 아들을 세워 놓고, 외로운 길을 홀로 고고(孤孤)한 입장에서 슬픈 자체를 다짐하는 자리에서도 가야 한다고, 세계가 기다리고 하늘땅이 기다리고 있다고, 가야 할 길이 아무리 험산준령이 가로막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기필코 격파되리라고 약속하셨던 당신이었습니다. 오늘날 그 약속한 일정이 외적으로 현현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1972년도에는 저희들이 '통일전선수호'를 하기 위하여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어린 마음들이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새로운 생명의 인연을 다짐하는 자리에서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구국의 용사로서 건국의 출발을 위하여 나서기를 다짐할 수 있는 이 자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 누구를 믿을 것이 아니라, 아버지만을 믿고 아버지만을 바라보며 나가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한국에 있어서 저희들이 지켜야 할 아시아의 통일전선을 내가 먼저 알아 가지고 그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 수년 동안 밤이나 낮이나 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환경을 개척하기 위해 수고한 배후를 잘 아시는 아버지, 너무나 소수의 무리를 연결시킨 방황의 한 모습인 것을 생각할 때, 골리앗 앞에 선 다윗과 같은 입장에 있는 통일교회의 운명인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끄심에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남루하고 초라한 모습이 문제가 아니라 이 모습을 대하여 동정하는 하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원수 앞에 내 스스로 가치를 수호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모든 것이 안 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통일전선수호'를 다짐하는 이 자리에 있어서 사람들이 수호하기를 바라기보다는 당신이 수호하셔야 되겠습니다. 이 모두를 당신이 수호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거짓된 인연을 떠나 아버지가 바라는 원칙적인 원리의 노정을 수호할 때에 한 나라가 형성될 것이고, 하나의 통일된 세계관이 확립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1972년도를 새로이 아버지 앞에 결의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길은 그 어떤 사람을 믿고 갈 길이 못 된다는 것을 제가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 싸워야 되겠습니다. 검은 폭풍이 휘몰아치더라도, 수많은 원수의 화살이 일시에 날아들더라도 목표한 행각의 노정에 있어서 일보도 양보하지 않고 직행할 수 있는 복귀의 길을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맹세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을 동정하시옵소서.

사람의 협조를 중심삼아 가지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동정이 있고 당신의 협조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을 생활 철학으로 세워 나온 것이 이 아들이 지금까지 싸워 나온 노정인 것을 당신은 잘 알고 계시옵니다.

1972년도에도 선두에 서 가지고 또 가야 되겠습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심정의 골짜기를 개척하고 가야 되겠습니다. 때로는 힘들다고 투정도 하였지만 가슴 막히는 자리에서 아버지의 고독을 스스로 탄식하면서 극복하여야 할 그 길을 또 가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고독의 길을 가는 지도자를 따르는 무리도 고독한 것을 제가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 길을 가고 있는 장본인이기 때문에 더욱 저주할 일도 많은 것을 목격하게 되고 채찍을 가해야 할 환경이 많은 것을 느끼옵니다.

그러나 복귀의 노정을 걸어 오시며 아벨이 가인으로 말미암아 참사를 당하는 그 자리도 극복하신 아버지, 120년 동안 그렇게도 바라시던 소원의 한날을 잃으신 아버지, 심판 후에 남아지기를 기대하던 그 무리가 아버지를 배반해도 한을 가하여 심판해 버려야 할 입장에서 참으시고 암울한 행각의 노정에 있어서 슬픔을 남긴 것을 참아 오신 아버지, 가나안 복지를 앞에 놓고 이스라엘 민족을 거느려 나온 모세를 불러 가지 않을 수 없었던 억울한 자리를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예수를 죽이면서도 그 슬픔을 극복하시던 당신의 마음을 제가 알았기 때문에, 통일교단이 어려운 길을 아무리 참고 넘는다 하더라도 당신의 수천년 역사과정에 있어서 참아 오신 그 마음 앞에 저희가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의 최고의 귀한 뜻을 받들 것을 다짐하면서 쉴 새 없이 이런 놀음을 해 나왔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시옵소서. 당신의 뜻으로 인도하시옵소서. 저희들은 최후에 있어서 패자의 서러움을 당할 때에 당신께서 얼마나 비참할 것인가를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길을 나왔사오니 승리의 한 곳으로 몰으시옵소서. 당신이 선택한 무리들이 들림을 받아 하늘을 찬양할 수 있고, 인류의 해방의 권위를 책임졌다고 하늘땅 앞에 내세워서 당신께서 자랑하고 칭찬할 수 있는 무리가 될때까지 죽지 말고 쓰러지지 말게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통일전선 수호의 사명을 당신이 하셔야 되겠고, 뜻을 이루기를 바라는 내 자신이 해야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그 사명을 모두 다 달성하여 세계적인 승리권을 갖추어 가지고 대표적인 무리가 천지에 드높이 들려 하늘의 영광을 얼굴을 들고 찬양할 수 있고 바라볼 수있는 그날까지 저희들은 죽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쓰러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최후의 일각을 다짐하면서 전진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늘이 부르고 있고, 인류가 부르고 있고, 당신이 가라고 하신 길이었기 때문에, 책임져야 할 복귀의 노정이기 때문에 아니 갈 수 없는 이 길을 당신의 뜻대로 맡으시옵소서. 당신이 바라시는 승리의 결과가, 바라시는 결과가 나타나게끔 당신이 동조하여 주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이 시간을 접하는 수많은 무리 위에 복을 빌어 주시옵소서. 축복받은 가정의 자녀들과 앞으로 태어날 수많은 후손들에게 복을 빌어 주시옵소서. 승리의 새로운 운세를 온 인류와 더불어 같이 찾아오게 하여 영광 가운데서 그들을 깨우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의 통일된 세계와 통일된 국가권을 갖추어 이 영광을 직접 누리면서 거하실 수 있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주권, 하나의 민족과 하나의 국적을 갖추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전체를 맡으시어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5회째 맞는 하나님의 날입니다.

서구에 있는 식구들은 하나님의 날에 대한 의의를 책이나 문서를 통해서 알고 있었겠지만, 선생님을 직접 만나서 이 날에 대한 말씀을 듣기는 오늘이 처음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오늘은 '하나님의 날에 대한 의의와 그 유래'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 때까지의 복귀과정

​본래는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이 오늘 이 하나님의 날과 한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이 복귀노정을 거쳐 가지고 다시 그 날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우주의 중심은 사람이므로, 물건이 떨어질 때 무거운 것이 먼저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심되는 사람이 먼저 떨어져 내려가고 그 다음 만물도 떨어져 내려가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 만물을 보게 될 때, 하나님에게서 먼 자리에 서 있는 것이 타락한 사람이고, 하나님에게서 가까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만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본래의 인간의 자리까지 나아가는 데에는 그냥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가까운 물건을 다리 놓아 가면서 나아가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다리 놓아 나아가야 되느냐 하면 만물을 다리 놓아 나아가야 됩니다. 만물 위에는 무엇이 있느냐 하면 종이 있습니다. 부모가 떨어져 내려왔기 때문에 만물을 다리 놓아 나아가게 되면 만물 다음에 있는 종의 자리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가 결정되고, 그다음에는 아들의 자리, 그다음에 부모의 자리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복귀과정은 이러한 순서로 되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기 전까지는 종과 양자의 시대를 거쳐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종의 시대와 양자의 시대를 거쳐온 것입니다. 그 터전 위에 예수님이 오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승리한 터전 위에 부모가 현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이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에, 인류가 타락한 인류이기 때문에 인간이 그냥 그대로 하나님 앞에 다리를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 가운데서 특별히 선택해 가지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이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이 하나였었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하나님이 바라는 뜻을 중심삼고 사람이 만물과 더불어 하나되는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제물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은 섭리와 그 실패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이 일체가 되고 통일된 자리에서 비로소 범위를 넓혀 나가는 것입니다. 제물을 드리는 범위에 따라서 사탄세계에 범위를 넓혀 나가는 것입니다. 언제나 제물을 세워 가지고 종의 시대로, 양자의 시대로, 아들의 시대로 그 범위를 확대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4천년 동안 제물의 역사를 계승해 가지고 예수님이 비로소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올 때까지 많은 만물이 제물로 희생되었습니다. 그런데 제물은 반드시 잡아서 피를 낸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 복귀섭리를 세워 나오기 위해서 많은 종들이 희생되어 나왔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많은 양자들이 희생되어 나왔습니다. 그러한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비로소 예수님이 현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중심삼고 많은 대가를 치러 가지고 하나님 편에 뭉친 사람들이 계속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나되면 이스라엘 나라도 하나되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종의 도리, 양자의 도리를 해 나왔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되게 되면 나라가 하나되고, 백성이 하나됨과 동시에 만물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과 만물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뜻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물과 나라가 하나되게 되면 그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직접 주관할 수 있는 하나의 섭리적 주권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나라가 안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라와 주권과 백성과 만물이 하나 안 됐기 때문에, 세계가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길이 안 트여진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트기 위한 놀음을 책임자 되는 예수님이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일을 하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라와 백성과 주권을 대신해서 죽어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구약시대의 제물시대가 지나가고 예수가 직접 제물로 나선 결과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우리와 하나님이 하나되자고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인 것입니다.

기독교의 사명

그러면 예수님이 목적하는 바가 무엇이냐? 참다운 가정을 이루어 참부모의 자리에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정을 찾기 위해서 온 예수는 지상세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영적으로 지상세계를 재현시키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와 주권에 해당하는 어떤 특정한 민족과 국가와 주권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찾는 역사를 해 나온 것이 기독교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독교권내에는 땅도 없고 백성도 없습니다. 어떠한 나라를 중심삼은 국적이 있는 것도 아니요, 그 국적을 중심삼은 종족이 편성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구약시대와 같은 완성한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 전체가 구약시대에서 양자의 자리까지 전부다 찾아진 것과 같은 기반을 닦아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려면 만물과 자기 자신들이 합해 가지고 주님 앞에 바쳐질 수 있도록 결의된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오시는 주님을 위해서 전부 다 제물로 바쳐질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바쳐질 수 있는 터전이 없어 가지 고는 실체권을 이어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양자의 입장인 이스라엘 민족을 볼 때, 이들은 가인과 아벨의 입장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오시는 주님과 완전히 하나되고 그분에게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이걸 잘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지 않으면 다음 것을 모른다구요.

심정부활의 날과 실체부활의 날

다시 오시는 주님은 몸을 가지고 오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즉석에서 이어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세례 요한이 예수님 앞에 세례를 할 때에 모든 것을 상속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오시는 주님 앞에 참다운 아들딸과 참다운 만물을 합해 가지고 이것을 이어줄 수 있는 자리가 성립되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그때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보지 못했고, 또 실체를 잃어버렸으니 이것을 다시 부활시키는 역할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을 복귀하려면 기독교인들이 심정과 실체를 대신할 수 있는 터전이 되어서 그것을 이어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역사 가운데는 이런 인연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심정부활의 날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세워 놓고 그다음에 실체부활을 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지상에 기반을 닦은 한 중심자로서 현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1960년도 전에 그와 같은 터전을 닦아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통해서 그러한 기반을 닦느냐? 이것은 지금까지 기독교를 믿어 오는 기성교단을 통해서 기반을 닦는 것이 아니라, 통일교회의 교단을 통해서 닦아야 된다는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천년의 기독교의 사명은 끝나고 하나님의 역사는 기독교에서 떠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역사가 완성 역사라면 기독교의 역사는 장성 역사로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 못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근본적인 역사는 우리의 손에 달려 움직이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이런 말씀을 듣고도 알기에 힘이 드는데, 선생님은 이것을 맞춰 나오느라고 죽을 고생을 했다구요. 이것은 본부에 있는 사람들도 다 몰랐다구요. 십여 년 전부터 해 나온 것이 전부 계획에 의해서 했다는 것을 지내 놓고 난 후에야 알게 됐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런 과정을 이어받은 그러한 결과의 자리에서 축복이 성립된다는 것을 언제나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승리의 터전을 닦은 그 중심을 이제 결정했다고 하면 이것은 세계사적인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중심은 구약시대의 제물완성을 대표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종과 양자가 희생해 나오던 모든 것을 완성복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죽었던 예수가 비로소 다시 희생한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60년대에 있었던 중요한 섭리적 사건들

우리 통일교회는 지금 민족을 통일시키는 길을 찾아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혼자서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을 찾아 나선 것이 1960년에 있었던 성혼식이라구요. 그거 알겠어요?「예」 그렇게 하여 부모의 날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부모의 날은 타락권내의 침범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는 설정 못합니다. 본래 타락하지 않고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할 것이 창조목적입니다. 3년 간을 통해 가지고 외적인 가정들과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아들딸을 낳을 때까지 이것을 맞추는 놀음을 한 것이 3년 노정입니다. 이렇게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생님의 아들딸을 중심삼은 아벨 종족과 축복받은 여러분의 가인 종족이 언제나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세계가 복귀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날은 부모가 결정됨으로 말미암아 생겨났지만, 자녀의 날은 그때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이 자녀의 날을 세우기 위해서는 부모를 중심삼고 사위기대된 자녀들과 축복받은 가정의 자녀들과 하나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벨적인 자녀의 자리하고 가인적인 자녀의 자리를 역사적으로 잃어버렸기 때문에 잃어버린 종적인 모든 것을 찾아 가지고 참소권을 없게 한 이러한 외적인 자녀의 입장에서 하나되어야만 비로소 자녀의 날이 설정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참소권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리하여 비로소 3년 기간을 통해 가지고 하나될 수 있는 조건을 세웠기 때문에 자녀의 날이 설정된 것입니다. 그 날이 설정됨으로 말미암아 만물의 날은 자동적으로 설정된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인간만이 만물을 주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 국가에만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연결시키기 위하여 1965년에 성지 택정을 한 것입니다. 이 중심을 세워 놓은 것은 중심이 찾아 나오던 것을 반대로 세워 놓은 것입니다. 알겠어요?

중심을 세우려고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를 거쳐 나오던 것과 마찬가지로 중심이 그렇게 열매 맺히게 하는 자리에 서려면 세상에서는 반대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으로 성지택정을 해 놔야만 사람이 찾아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1965년도에 성지를 택정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옛날에는 죽여 가지고 제물드리던 것을 우리는 죽이지 않고 그냥 성지와 하나되어서 정성을 들이면 하늘과 일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지에 가서 정성들이면 좋다는 거예요. 세계적으로 120개 성지를 택정해 놓았는데, 이것을 세계적으로 지키고 정성들이는 수의 무리가 점점 많아짐에 따라서 하늘의 백성은 생겨 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선생님하고 최선생(최원복)하고 영운씨하고 최봉춘이가 거기에 참석했다구요. 그것은 뭐냐 하면 뜻적으로 보면 최상익(최봉춘)은 해와 국가인 일본을 대표하고 김영운은 세계적인 천사장 국가인 미국을 대표한 입장에서 아담국가를 중심하고 사위기대형이 갖추어졌기 때문에 이 네 사람이 세계를 순회하게 됐던 것입니다. 거기서 해와 국가는 남자(최봉춘)가 됐고 천사장 국가는 여자(김영운)가 됐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것이 엇갈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내적 아담 해와를 상징적으로 맞추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이러한 내용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들은 절대적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거기에 책임을 진 선생님은 그런 문제에 있어서 상당히 심각한 마음을 가지고 섭리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중대한 순회가 제1차 세계순회노정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 다음에 여러분이 영계에 가게 되면 선생님이 느끼던 이런 심정적 사실을 느껴볼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내가 주로 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나라의 중앙청이든지 박물관을 주로 방문했던 것입니다. 역사와 현실의 주권과 결부시켜서 보려고 한 것입니다. 세계를 순회하면서 주로 그런 곳을 방문한 것입니다. 성지를 택하면서…. 그러면서 한국에서 가지고 온 돌과 흙을 성지 곳곳에 심어 놓고 그 나라의 돌과 흙을 거두어 온 것입니다.

한국에서 부모된 선생님이 돌과 흙을 가지고 왔다는 것은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택정한 승리적 기반, 그 전체를 가지고 온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라구요. 또 거기에 심어 주었다는 것은 그 나라에 복을 옮겨 준다는 것과 마찬가지요, 거기에서 가지고 왔다는 것은 이 나라가 주고 받을 수 있는 헤택권내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기반이 된다는 것입니다.

3차 세계순회의 의의

여기서부터 세계의 운세는 돌아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즉 1965년부터 1972년까지 7년을 맞추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만 6년 지나 7년째를 맞는 해에 3차 세계순회노정을 맞추었다는 것은, 지극히 세계적인 의의를 가진 순회노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미국에서부터 거두어 들어가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 성지를 제일 많이 만들었다구요.

그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 미국을 위주해 가지고 사람들을 맺어 놓을 수 있는, 사람들을 복귀할 수 있는 국제적인 기원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작년까지 3년 동안은 일본을 직접 국가적인 입장에서 하나 만드는 놀음을 했습니다. 이번에 와 가지고 이제부터는 서구가 협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놔야 하는 것입니다.

즉, 유럽과 미국 등 서구의 나라가 아시아의 중국과 일본과 한국을 서로 협조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1972년, 1973년, 1974년, 이 3년 기간에 해야 할 일입니다. 3년 기간에는 중대한 사명이 있습니다. 또 이 기간은 2차 7년노정이 끝나는 해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왜 부흥회를 하려고 하느냐 하면 미국의 영적 운세라든가, 혹은 기독교 운세라든가 전체를 여기에 연결시켜야 하는 이런 뜻이 있기 때문에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모든 종교계의 운세와 국가의 운세를 선생님과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이 일본에서 한 사람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번 순회노정에서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는데는 그 누구도 모를 하늘의 프로를 맞출 사명이 있는 것을 그가 알아야 된다구요.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가졌었지만 이것은 완성 단계에 올라간 날들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장성기 완성급을 넘어 가지고 완성기 소생급에서 출발하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 부모와 자녀와 만물이 있는 것을 완성 단계로 끌고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제1차 7년노정입니다. 1차 7년노정은 혼자 갈 수 없습니다. 아담 해와가 같이 가야 할 길입니다. 완성단계는 결코 혼자서 갈 수 없는 것입니다.

1차 7년노정은 1960년부터 출발해 가지고 1967년까지 이 싸움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 기간을 통해서 어머니를 교육시켜 어머니를 하나 만드는 재창조의 역사를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머니의 연령이 20세가 넘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10대 안에 들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리하여 제2차 7년노정이 끝나게 될 때면 어머니 연령이 서른 세살이 되면서 해원성사를 하는 것과 같이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3차 7년노정이 끝나게 되면 어머님 나이가 40세 이내가 되어야 한다구요.

1960년도 축복을 시작할 때 선생님의 나이가 40세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3차 7년노정이 끝나게 될 때 우리는 세계적 기반을 닦으리라고 보는 것이 섭리적 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가만히 있어도 그렇게 되겠어요?「아닙니다」 그럼 얼마나 때려 몰아야 되겠는지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들이 그걸 결정해야 된다구요. 그것이 선생님이 지금까지 기도하는 주요목표가 되어 있습니다.

많은 시련을 거쳐서 찾아진 하나님의 날

하나님의 날은 1968년 오늘(1월 1일) 자정을 기하여 설정한 것입니다. 이 날을 책정하는 데에 있어서는 그냥 그대로, 여러분이 알고 있는 원리에 나타난 것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배후에서 여러분이 모르는 많은 시련을 거쳐 가지고 이 한 날, 하나님의 날이 설정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원래 하나님의 날을 축하한다는 것은 타락권내에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러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날을 축하하기 위해서는 이날이 미급하고 미완성한 자신에게는 얼마나 경건하고, 얼마나 존엄하고,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이날을 축하하지 않고는 축하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원리적으로 볼 때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그래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세상사람과 다르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소생, 장성, 완성은 본래 한꺼번에 되는 거라구요. 그렇게 한꺼번에 되어 가지고 완성한 부모를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면, 부모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면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권을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아무리 칼로 위협하고 별의별 짓을 다 하더라도 이것은 틀림이 없다는 신념만 가지면 여기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기 생명을 걸어 가지고 내 생명이 틀리면 틀렸지 이것은 틀리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기념식에 세계의 수많은 국가의 군왕들이 모여 가지고 축하해야 되고, 하늘의 모든 공신들이 여기에 화합해 가지고 축하해야 할 것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여러분도 말씀을 듣고 보니 이렇구나 했지, 여러분이 여기 올 때까지는 아무것도 몰랐다구요.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로서 참석했으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것을 알고, 다음부터는 하늘이 기뻐할 수 있게끔 이런 축하의 날에 대한 의의를 알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게끔 참석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금까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원래는 오늘부터 사흘을 축하하며 지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구요. 이제 하나님의 날의 의의와 유래에 대해서 알겠어요? 「예」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땅 위에 수많은 날들이 있지만, 그날 중에 하늘이 축하할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땅 위에 수많은 인간들이 아무리 훌륭하게 기념할 수 있는 날들이 있다 하더라도, 자기의 나라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그날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 혹은 그 나라의 백성 전체가 동원되어서 축하하는 그런 축하의 날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날들보다, 우리 교회에서 지키는 이 4대 명절 이야말로 이 땅 위의 어떤 날보다 가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설명을 듣고 보니 알게 되었사옵니다. 그러니 그런 역사적인 인연을 갖춰왔다는 것을 몰랐던 과거를 용납하시고 이제부터 앎으로 말미암아 저희에게 맡겨진 책임과 저희들이 감당해야 할 시대적 사명을 하늘 땅 앞에 부끄러움 없이 수행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 제2차 7년노정까지 저희들이 넘어야 할 고개 고개가 여기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복귀라는 엄청난 숙원을 앞에 두고 오늘과 내일 다짐하고 달음질 쳐 가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가로 놓여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믿고 순응하였더라면 헐어진 담벽을 밟고 올라서서 그 나라를 건국하여야 할 사명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뜻을 배반한 무리들로 말미암아 다시 싸움의 길은 계속되었습니다. 나라를 앞에 놓고도 또다시 싸움의 길이, 세계를 앞에 놓고도 또다시 싸움의 길이 가로막혀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아버님, 당신이 원하시는 그 최후의 승리의 기준까지 힘을 다하여 가고자 결심하는 무리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저에게는 선두에 서서 이 길을 개척하여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떠어떠한 길을 가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지내고 보니 철없이 따라나온 이 자녀들이 당신 앞에 실수도 많이 하였고, 당신의 원망과 저주 아래 채찍을 받을 일들도 많이 했지만, 여기서 있는 이 자식이 그들을 원수시하지 않고 도리어 복을 빌겠다는 마음을 갖고 나왔기 때문에 오늘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수많은 무리가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사랑이 아니고는 세계를 당신 앞에 복귀해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담 해와가 부모였기 때문에 그 부모의 사명을 완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이 교회가 가는 운명의 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짊어진 책임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불효막심한 무리들을 대하여 저주의 발언과 더불어 하나의 화(禍)의 근원을 제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그것이 형제지간에는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부모의 자리에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지금까지 참아나왔습니다. 당신만이 아시고, 당신만이 지키시어, 오늘까지 이끌어 준 은사에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이제 한 나라를 찾아야 할 당신의 뜻 앞에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은 모두 일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자기 스스로 그 무엇을 바라는 것이 있거들랑, 천상세계가 천년 만년 걸려도 이룰 수 없는 하늘의 길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오늘을 기하여 과거를 반성하고, 다시 당신 앞에 엄숙히 무릎을 꿇고 스스로 충효의 마음을 다짐할 수 있는 거룩한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오늘 통일교회를 따르고 있는 무리들의 입장이요, 사명을 짊어진 무리들이 가는 길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부디 하늘이 원하시는 뜻 앞에 일치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복귀노정을 개척하는데 있어서 그 자리들을 하늘이 다 당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외롭고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고통을 당하는 무리들을 위로하여야 하는 당신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채찍을 맞는 그들을 위해서, 채찍을 맞는 자리에서도 그들을 구해 줘야할 당신의 서러운 자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통일교회를 사랑하시거든 당신의 역사적인 심정을 잊어버리고 사랑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들의 마음이요, 통일교회를 지키고 싶으시거든 당신께서 타락으로 인한 인식을 잊으시고 지킬 수 있는 아버지로 모시고 싶은 것이 저희들이 소원이오니, 금후의 갈 길을 당신이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에서 이들을 이끄시옵고, 당신이 안식할 수 있는 이상적인 터전을 개척하기 위해 모인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 옵고 원하옵니다.

미국 땅, 미국의 중심인 수도 워싱턴에 통일교회가 서 있사옵니다. 이 무리들을 이끌어 어디로 끌고 가겠습니까?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는 당신의 복귀노정의 주류를 따라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누구를 바라보고 이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바라보고 이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누구의 권고를 받고 이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그러하기 때문에 아니 갈 수 없는 자신임을 발견하고 갈 수 있는 무리들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한국과 일본과 중국과 이 미국땅과 그 외에 연결된 수많은 나라들을 아버지께서 경륜하시는 뜻 가운데 세우시옵소서. 최후의 승패를 다짐하여야 할 격전의 한날이 저희 앞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우리는 전체가 통일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최후의 그 운세를 직시하지 않으면 안될 역사적인 사명을 불러일으켜야 될 것이 우리의 입장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자리, 그 날, 그 뜻을 완성할 그때까지 죽지 않고 참고 남아,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하고 쓰러질 수 있는 각오를 갖는 무리들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2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과, 더욱이 예수님을 위주한 12사도와 그 외에 2천년 역사과정의 수많은 선지 선열들, 기독교도들을, 아버지, 불쌍히 보시옵소서.

오늘, 이 땅 위에서 해원성사해야 할 국가의 표준을 놓고 가름질하는 이 마당에 있어서, 저희들에게는 천사세계권내와 같은 입장에 있는 온 영계를 동원하여 지상세계를 협조하게 하시어 악의 사탄권을 대해 싸워서 승리의 안식권을 마련하여야 할 천적인 사명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년에는 예수님을 중심삼은 상대를 결정하기 위한 뜻적인 의의가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또 다시 저희들이 영육을 통하여 일체화되어 가지고 당신이 협조 협력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가운데 해방의 국가기원을 이룰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럼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찾아오시는 복귀도상에서 한숨을 놓으시고 비로소 한자리를 잡고 안식하실 수 있게끔, 저희들이 정성을 다짐하고 결의를 다짐하는 이 시간으로 보내고자 하오니 기꺼이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1972년도가 승리의 해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충효의 도리를 다할 것을 맹세하옵니다. 그리하여 저희들은 아버지가 슬퍼하시는 자리에서 쓰러질 것이 아니라, 장엄한 투쟁 가운데 하늘이 바라보시고 칭찬할 수 있는 용맹스럽고 담대한 용사로서, 승리의 개선가를 아버지 앞에 돌려 드리는 승전장군이 되기 위한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만민 앞에, 온 천주 앞에 내세워 자랑할 뿐만 아니라 영원히 내 사랑권내에서 사랑을 받으며 나의 위업을 상속받아 천년 만년 행복할지어다 하는 자랑과 더불어 축복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 무리들 되게, 아버지, 지키시고 인도하여 주시옵고, 길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것을 뜻하신 대로 이루시옵소서. 저희들은 그 날이 가깝다는 것을 알기에 진심에서 그 날을 맞도록 아버지 앞에 간절히 바라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하나님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자리

​인간은 최고의 사랑의 자리에 있기에 소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그 최고의 자리에 있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자리는 현재 인간이 처해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또한, 현재 인간은 가장 어두운 고독 속에 처해 있는데, 그런 자리도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사람과 가까이 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에 대하여 종이나 양자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의 참된 아들이나 딸이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갖기를 소망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역시 그 자리는 또 다른 하나의 존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의 자리입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예수님도 역시 사랑의 이상을 가르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였던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도 사랑의 이상을 원하시고, 그와 같은 아들을 원하시고,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자리를 원하신다는 것을 말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이상이 만날 수 있는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그곳이 최고의 자리입니다. 종적으로는 상하의 관계가 됩니다. 그러나 그 아들의 욕망은 그 최고의 자리에서도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독생자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얻은 후에는 가능하다면, 더 높은 어떤 자리가 있으면 그 자리보다 더 높은 곳에 있기를 소망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비록 그것이 탐욕스럽게 들릴지라도 그것을 허락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횡적으로 나란히 서기를 바라시기도

하나님은 인간들로 하여금 종의 자리에서부터 사랑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종적인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인간이 하나님과 횡적으로 나란히 서게 되기를 바라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전심전력을 다하여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횡적인 입장에 있을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을 횡적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허락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전제에서 선생님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재평가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자신을 종적으로뿐만 아니라 횡적으로도 사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부자의 관계뿐만 아니라 돌로 분리되지 않은 하나로서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종적 관계는 상하의 관계이다. 반면에 횡적인 차원에서는 그들은 나란하게 있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하나가 된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무엇이 그 자리를 결정할까요?

여러분은 가장 소중한 것을 사람들이 보거나 만질 수 있는 곳에 두고 싶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어딘가가 감추고 숨기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아무도 훔쳐가지 못하도록 아주 깊숙히 숨기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고,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며, 가장 좋은 것이라면, 여러분 그것을 아무도 가져갈 수 없는 곳에 감추어 두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여러분은 그것을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두고 싶겠어요. 안 그러고 싶겠어요? 만일 여러분에게 소중하고 가치있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이 어디에 있어 주기를 원해요? 여러분 혼자만 만날 수 있고, 여러분 혼자만 알고, 여러분 혼자만 교제할 수 있는 그러한 장소에 그 사람이 있어 주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 사람을 그러한 곳에 감춰 두고서, 여러분은 그를 도둑맞고 싶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를 감출 수 있는 곳을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곳은 여러분이 그를 숨길 수 있는 장소이어야 합니다. 그 장소는 여러분 혼자만 갈 수 있고, 여러분 혼자만 그를 만날 수 있으며, 여러분 혼자만 아는 그런 곳일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곳이 어디예요? 대답할 수 있어요? 그곳은 인간의 마음이요. 양심입니다. 마음의 깊은 곳, 마음의 밑바닥 바로 그 곳에 여러분은 그 사람을 숨기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곳은 여러분 혼자만이 그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사람들마다 성질이 다르고 느끼는 방법도 다르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만이 여러분 혼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하나님도 여러분을 개방된 장소에서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독특한 인간성, 독특한 사고방식, 독특한 감정을 갖고 있는 개인으로서의 여러분을 만날 수 있는 한 장소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양심을 무형으로 지으신 이유입니다.

우리는 영안으로 무형의 몸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무형의 몸에는 영인체의 중심이 있는데, 그 부분은 인간의 마음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곳이 하나님과 여러분이 만족스럽게, 그리고 여러분이 거기에서 무엇을 해오고 있는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가운데 만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러한 장소에서 하나님과 여러분이 서로 사랑한다면, 여러분으로부터 그 사랑을 빼앗아 갈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 자리는 종적인 사랑의 종착점이면서 횡적인 사랑의 출발점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그러한 사랑은 그 어디에도 없고 오직 한 곳에만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마음속에서 그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아들 또는 딸의 입장에서 여러분은 종적인 사랑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주인과 종 사이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영적으로 하나님과 같은 차원에까지 올라가게 되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나란히 서서 횡적인 수준의 사랑을 요구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에 종적으로 슬픔의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는 그곳은 하나님이 아담이 있기를 원하였던 곳입니다. 아담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아담 안에 거하셨을 것이고, 그와 완전히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원리에 의해 우리는 이러한 경우에 하나님이 아담 안에 있고 아담이 하나님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담 해와가 성숙하여 완성하였다면

우리는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그리고 자녀의 사랑의 세 가지 사랑이 있음을 압니다. 만일 그 자리가 아담 안에 실현되었더라면 부모의 사랑과 자녀의 사랑이 바로 그 자리에서 만났을 겁니다. 부부의 사랑만이, 부부의 사랑이 이상만이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아담과 해와가 성숙하여 완성하였더라면 그들의 부부의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서로 사랑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담은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종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고, 해와는 아버지와 딸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아담과 해와가 소망했던 자리는 하나되지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해와도 하나가 되어 아담을 소망하였을 것입니다.

횡적으로는 하나님과 아담, 그리고 하나님과 해와 셋이 있습니다. 이 셋은 완전히 하나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그들이 만나겠습니까? 저 위에서, 아니면 이 아래에서? 아니예요. 그들은 횡적으로 함께 만나서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아담과 해와가 횡적으로 하나가 되었더라면,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완전히 일체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그들을 떼어놓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여러분은 만물세계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알고 싶지 않은 것이 없고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만물세계의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고 싶어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경기장에서 운동 경기를 관전한다면, 여러분은 챔피언이 되고 싶어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그런 식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청년기를 통하여 최고의 자리를 찾아 주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만물세계와 관계 맺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청년기는 여러분이 배우자를 만나서 사랑을 이상적인 자리에까지 끌어가고 싶어하는 때입니다. 한송이 꽂으로 말하자면, 그때는 향기를 발하는 때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잠깐 꽃 앞에 서 있는다면, 향기가 여러분을 맴돌 것입니다. 이렇게 청년기에는 여러분이 향기를 발산하게 됩니다. 그 향기는 널리 퍼져 갑니다. 벌 나비들이 그 향기에 이끌려 날아옵니다. 그러니 그 시기에 젊은이, 젊은 남녀들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그들은 최고의 챔피언, 최고의 학생, 모든 것에서 최고가 되고 싶어합니다.

이를 얻은 후에야 비로소 사랑의 자리에 대한 욕망이 생겨납니다. 남자들과 여자들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목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아담 그리고 하나님과 해와가 같이 있고 싶어하는 유일한 자리이기 때문에 최고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과 아담, 그리고 하나님과 해와가 하나가 될 수 없다면, 그들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나님을 중심삼은 아담과 해와 사이의 수수관계가 소원(疎遠)해집니다.

만일 하나님과 아담이 하나되고 아담과 해와가 하나되어서 그 자리에서 만나게 되면 그 자리에는 그들을 떼어놓을 수 있는 세력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들 둘이 만나는 자리는 넷이 만나는 자리가 됩니다. 하나님과 피조물…. 그 자리는 창조주와 피조물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들 둘이 결합하게 되면 하나의 새로운 창조가 벌어집니다. 사랑을 통하여 자녀가 태어납니다. 그것이 재창조역사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종적으로뿐만 아니라 횡적으로도 창조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담과 해와를 중심한 창조이상, 하나님의 이상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일체가 되고 해와가 하나님과 일체가 되면, 그들 사이에서는 아무도 내가 너보다 높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높고 낮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완전한 하나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과 해와의 사이 그리고 하나님과 아담의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타락으로 잃어버린 특권을 다시 찾아야

오늘날 남녀간의 사랑은 대부분 육체적인 사랑입니다. 말세가 되면, 여러분은 청춘 남녀들간의 이러한 문제가 만성적인 것임을 발견할 것입니다.

인간은 종적인 차원에서 하나님과 하나되게 되어 있고, 그뿐만 아니라 또한 배우자와도 하나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동일한 차원에서 하나님과 하나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란히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창조주가 저 높은 곳에 계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리에 있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창조주처럼 한 존재를 창조하기를 바라면서 자녀를 낳습니다. 그 경우에 여러분은 하나의 창조주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능력을 주셨는데, 인간은 타락하여 그 특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특권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과 동일한 가치와 창조 능력을 가지고서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최고의 자격과 가치를 지닌 존재인데, 여러분은 타락한 세계에 여러분 자신을 내버릴 수 있겠어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만 선생님이 앞에서 말한 그 자리에서만 여러분은 최대의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은 그 목표에 가장 잘 도달하기 위하여 모두 동원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지그자그로 비틀거리면서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와 같이 가는 사랑의 길을 좋아하겠어요? 여러분 가운데 어느 누가 사랑의 직행 길을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있으면, 손들어 봐요.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기 시작할 때,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시작할 때의 그 시점이 인간의 사랑의 출발점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처음으로 여러분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자녀를 가지게 되면 그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여러분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를 사랑하는 입장에 있으면 여러분은 '나는 이미 한 남성이다. 나는 이미 한 여성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성숙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서로 하나가 되어서 그들의 자녀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바라보실 때, 하나님도 하나님 자신과 같은 입장에 있는 여러분을 바라보면서 만족하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셨을 때의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피조물이 여러분을 창조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그의 입장에서 자녀를 낳게 될 때, 하나님은 만족해 하십니다. 그때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의 사랑은 종적, 횡적으로 다 실현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 되고,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의 뜻이 됩니다. 이것은 입체적인 사랑이요, 횡적인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그 자리를 차지할 줄 알아야 하고, 그 자리를 얻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나중에 여러분이 영계에 가면 그러한 사랑의 가치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육적인 생활을 하는 동안에 그러한 사랑을 얻지 못하면, 영계에서 그런 사랑을 하지 못하는 여러분 자신이 부끄럽게 될 것입니다.

통일교회 식구들로서, 만일 여러분들 중에서 '나는 하나님 아버지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선생님과 하나될 것이다'라고 말할 만큼 욕심이 많은 사람이 있더라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화내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행복한 가정 안에 있는 자녀들을 보시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실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 가운데 태어나는 아이들은 형언할 수 없이 훌륭한 것입니다. 그곳이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할 수 있고, 인간과 인간이 사랑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의 자리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그것을 안다고만 해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가슴으로 그것을 느끼고, 그것을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고 매우 소중한 일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가르친 것을 기억하라구요. 여러분은 그것이 이상적인 사랑, 최고의 사랑의 자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남성은 그것을 위하여 있고, 여성도 또한 그것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것을 마음속에 두고 있으면서도 여러분은 아내 이외의 다른 여자, 또는 여러분의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에게 한눈을 팔 수 있어요? 여러분이 '나는 내 남편을 사랑하리라.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하리라' 하는 심정을 가지게 될 때, 하나님은 거기에 임재 하실 것이고, 그렇게 느끼실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천국-이상적이고 완전한 사랑 안에서 마음을 다하여 여러분의 배우자를 사랑할 수 있는-으로 인도하는 키 포인트(key point)입니다. 미혼인 사람들은 타락하지 않도록 결심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순결을 지키세요. 이러한 모든 것들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허락없이 연애를 할 수 있어요?

모든 것은 하나님이 그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을 창조하신 방법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속에 그것을 간직하고 있다면 사랑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방식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문 : 어느날 밤에 선생님께서 연합교회(유니온 처치)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새로운 종파를 탄생시켰습니다. 일본에서 출발하여 지금 거기에는 20개 내지 30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성교회와 우리 교회 사이의 중재자가 될 것입니다.

문: 선생님께서 인간이 그의 배우자와 함께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어한다면 하나님은 대단히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그것을 옳게 이해한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그러한 경우에도 여러분은 하나님과 분리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둘 사이에 하나님을 모시게 되면, 여러분은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사랑보다 더 서로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성내지 않을 것입니다.

문: 어떤 식으로 새 시대의 정치와 경제의 구조가 가정을 닮습니까?

지금은 가진 나라와 못 가진 나라, 또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2개 경제권이 있습니다. 후진국들은 선진국의 방향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미국은 기술적인 면에서 최고의 국가였습니다. 미국에 뒤졌던 독일과 일본은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모든 국가들이 선진국이 되고, 그리고 모든 국가가 동일한 경제구조를 갖는다면, 그때의 문제는 발전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그때의 문제는 분배와 판매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경제 체제의 새로운 패턴을 창출하면서, 이런 문제가 어떤 국가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이 제도는 마침내는 아주 압도적으로 널리 보급되어서, 앞으로는 일본과 독일에서도 국민들이 자국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중앙집중식 제도에 의하여 구매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사상 또는 경제체제가 이 중앙집중식 명령을 내리는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종교가 그것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사상체제나 경제체제는 종교적인 조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경제체제를 위한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선생님이 다른 곳에서 들어온 상품을 사라고 하면 미국의 상품 들은 사지 말라구요. 여러분이 선생님이 말씀하는 내용을 믿고 그것을 실천한다면 여러분은 지구상에서 가장 잘사는 국민이 되고, 여러분의 나라는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이 장차 지명하는 회사의 물건을 사라구요. 그것이 작은 물건이냐 큰 물건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곧 그 상품은 우리들에 의하여 제조되어 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그 물건을 사야 합니다. 그러면 전세계의 경제는 우리의 편으로 기울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제품을 생산해 왔습니다. 이제 경제는 우리의 편으로 기울어질 것입니다. 협조체제가 두 경제권 사이의 경쟁체제를 능가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유럽의 몇몇 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공동시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편협한 경제체제는 지나가고 기회는 오히려 다른 국가에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분배와 판매의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될 것입니다.

현재의 추세는 공산주의 경제체제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제제도를 창출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공산주의 경제체제는 국가를 위한 것이고, 민주주의 경제체제는 개인을 위한 것입니다. 타협점을 찾아서 그 간격을 메워야 됩니다. 타협점을 찾아서 발전시켜 나가는 국가가 이상국가가 될 것이며, 그 국가가 이상적인 경제체제를 갖게 될 것입니다.

문: 공산주의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뜻입니까?

내가 알기로는 지구상의 인구의 약 3분의 1이 공산주의의 지배하에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50년만에 공산주의가 세계의 3분의 1이나 정복하리라고 짐작이나 했어요? 10억 인구가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가리라고 짐작이나 했습니까?

우리의 원리운동은 50년 동안에 얼마나 성장할 것 같아요? 공산주의보다 훨씬 빨라요. 여러분은 그것에 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영계에서는 지금 전체가 동원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일은 사탄의 일과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이 여태까지 확장되어 온 이유는 하나의 견고한 중심국가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국가를 중심삼고 모든 임무가 수행되고 모든 종류의 파괴 공작이 계획되고 있습니다. 비록 남미 또는 다른 곳의 위성국가 하나가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의 중심국가(소련)와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그래도 여전히 번창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그 거대한 세력과 맞설 수 있기 위해서는 그에 유사한 토대(국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똑같이 강력한 체제 즉, 하나의 중심국가와 하나의 중심조직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와 같은 성장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이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운동은 전통의 중심이 세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바뀐다 하더라도 그 전통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문: 닉슨 대통령의 중공 방문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모택동의 입장에서 보면, 닉슨 대통령의 방문을 수락한다고 하더라도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닉슨이 2월에 방문하면 그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중공은 그들의 정치적인 계획들만 고집스럽게 제기하고자 할 것입니다. 모택동은 닉슨으로 하여금 얻는 것이 없게끔 닉슨을 설득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짜맞춘 그 게임을 위하여 닉슨이 중공에 왔다고 세계에 과시하고 싶어합니다. 그것은 훌륭한 선전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유엔에서 중공은 그 약소 국가들로부터 신망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유엔에서 중공은 그 약소 국가들을 옹호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닉슨은 이것이 중공에 그의 입국을 허락하게 된 그들의 동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닉슨의 계획은 1972년의 선거에서 유리하도록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반대로, 이러한 방문으로 중공과 소련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번 방문 때문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반정부주의자가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새로운 운동, 새로운 정치ㆍ종교 조직이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나와야 합니다. 기독교정치연합(Christian Political Union)이 이런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민주당과 공화당 편에서 나오는 세력들을 통합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당들은 함께 당내의 반정부파를 가려내고, 우리의 조직을 중심삼고 결속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전략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전 미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지도급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지금 백인과 흑인이 서로 대결하고 있습니다. 내적으로는 이것이 문제이고, 외적으로는 공산주의가 문제입니다. 공산주의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이러다가는 공산주의자들이 이 나라의 흑인들과 결속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정부는 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겠어요? 그때 우리의 승공이념이 해답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준비하고 계획해야 합니다. 지금 준비해 두지 아니 하고 때가 되어서 준비한다고 하면, 그것은 너무 늦을 것입니다. 그래서 승공연합의 중심 일꾼과 지도자들은 이러한 생활에 대처하기 위해서 미국의 여러 분야에서 일해야 합니다.

앞으로 흑인과 노동자들이 결속할 것입니다. 그러면 흑인과 백인의 유산계급도 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새로운 이념으로 결속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역할은 그때가 올 때 그들이 결속해서 싸울 수 있도록 그들을 훈련시키고 교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념적인 방법을 통하여 공산주의에 대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경우에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는 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가오는 일을 대비하여 그들을 훈련시키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신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을 매입할 계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협력할 수 있어요? 여러분이 돈을 벌면 선생님이 그 일을 할 것입니다. 미국은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그래서 자본이 없으면 우리는 앞으로 나갈수 없습니다. 우리가 일백만 식구를 가지게 되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여러분과 같은 헌신적인 식구가 일백만 명이 있을 경우를 상상해 볼 수 있겠어요? 그럴 경우에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러나 공산주의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기독교인들과 협력해야 하고,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통한 통일이라는 우리의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제3차 7년 노정이 시작되는 1975년까지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의 짐이 지금보다 그때 더 무거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양 어깨에 걸려 있는 이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문 : 한국의 통일을 위하여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것에 대한 대답은 다음으로 미루도록 합시다.

​만약 여러분이 돈이 없다면 돈을 빌리라구요. 얼마 후에 그녀는 그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녀는 여러분에게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때 그녀가 경제적으로 도와 주고자 할지라도, 여러분은 그녀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해야 합니다. '나는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인생에 있어서 의문점이 있습니다. 나는 어딘가에서 새진리를 가르쳐 주는데, 그것은 아주 진지하고 흥미있고, 인생의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가 들어 보고 그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들어 보고 싶습니다'라고 제안하라구요.

전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그녀에게 평하도록 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 강의를 주의 깊게 들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와 함께 새진리에 관한 강의를 듣고 난 후에 여러분은 그녀에게 새진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보라구요. 놀랍도록 참된 진리인 것 같다고 그녀가 대답을 하거든 여러분은 오히려 '별것 아닌 거예요'라고 대답하라구요. 그 단계에서는 그녀가 여러분이 통일식구라고 생각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녀가 여러분이 통일식구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녀가 정말로 새진리가 훌륭하다고 하면 여러분은 그녀에게 다시 한 번 더 그것을 듣고 알아 보자고 제안하라구요. 그러면, 그녀는 자연스럽게 승낙을 하고 다시 들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아들이나 딸을 전도할 수 있다면 그들의 어머니도 쉽게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한 가정 전체를 원리에로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여러분은 그 가정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도는 여러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들을 확신시키기 위해 그 방법을 사용한 것은 나중에 비판 받을 것입니다. 그들이 배후의 동기와 여러분이 그런 방법을 취했던 것을 발견할지라도, 그들은 그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전도는 상황과 대상에 따라 여러 방법이 가능

전도를 하는 데는 그 상황과 전도하고자 하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여러 가지의 방법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몇번 만나 봐 가지고 멋진 남자거나 여자라고 생각이 들게 되면, 여러분은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들을 전도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라구요. 그리고 편지를 쓸 때 여러분 자신의 스타일대로 쓰지 말라구요. 훌륭하고 낭만적인 소설이나 위대한 사람들의 문구를 사용하고, 사랑과 인생에 관한 위대한 문학작품들을 동원해서 별스러운 문체를 만들어 써 보는 것도 좋을 거라구요.

세 가지의 문체를 준비하라구요. 오직 이 세 가지의 문체만으로도 여러분은 100명까지도 접촉할 수 있고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쓸 때, 이 세 스타일이 각각 어떤 반응을 얻게 되는지 실험을 하라구요. 여러분의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여러분의 훌륭한 편지에 매혹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들을 직접 만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혼자 가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그 편지의 답장을 받을 때 그들의 성격을 분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와 비슷한 형의 사람을 식구 중에서 데리고 함께 그를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발기자(originater)고, 그 식구는 여러분의 보조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 때로는 여러분들 세 명이 얘기를 나누게 되겠지만, 대개 여러분은 가끔 한마디씩만 던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여러분이 떠나게 될 때에는 그 식구가 그들에게 여러분이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라고 자랑을 하는 겁니다. 학교에서 우등생이라는 것 등…. 이와 같이 함께 세 번만 만나라구요.

여러분은 그때부터 시사에 관한 화제거리들을 비롯해서 도덕, 혹은 윤리에 대한 것도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때 그들의 얘기가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에 개의치 말아야 하고, 그들의 견해에 반박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때가 여러분은 '나는 그와 같은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많은 젊은 사람들이 있고, 그런 문제에 대해 강의하는 곳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신중한 방법으로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하여 '당신도 함께 가 보지 않겠느냐?'고 슬그머니 제안을 해 보라구요. 이렇게 되면 그 상대방은 여러분들 두 사람 앞에서 여러분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것에 관해 의견이 통일되는 두 사람이 있을 때 세번째 사람은 쉽게 동의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안 돼요?

한 가정을 전도하려면 무던히 애써야

만일 여러분이 100통의 편지를 쓴다면 여러분은 놀랍도록 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한 문체에 대한 회답 편지를 못 받는다면 더 이상 그 문체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각각 다른 문체의 편지를 세 번만 보내게 되면 분명히 어떤 반응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가정의 한 식구를 전도하기 위해서는 무던히 애를 써야할 것입니다. 심지어 일 년 반을 애써야 할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반대에 반대가 거듭될 것입니다. 그 식구들 모두가 여러분을 미워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 한 가정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소요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한 사람을 움직인다면 그 집 전체가 구원될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이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지금까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전도하는 것을 경험해 봤다면 여러분은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일이 일어나는 어떠한 상황에도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버스나 기차 속에서 또는 시장 같은 곳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이 이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에 관해서 연구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보면 그에 관한 어떤 것을 알 수 있고, 그에게 접근해서 말을 건넬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당신은 무엇을 그렇게 걱정하고 계십니까? 당신의 모습을 보니 무엇인가를 걱정하고 계시는것 같군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여러분은 하나의 친교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연구하고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의 걸음걸이를 보고 그 사람에 관해 말할 수 있어야 하고, 표정을 보고서도 그 사람의 기질이나 성격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에 대한 연구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어

모든 발전이라는 것은 하나의 단위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의 단위를 중심해서 다른 공식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공식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에서 여러분은 그 공식이 도출되는 내적인 단위를 귀납적으로 추리해 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알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과거에 알고 있던 세 사람을 선택하라구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세 부류의 다른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가-그들의 코, 눈, 개성 등이-를 연구하라구요. 이렇게 세 부류의 사람들의 연구를 다 했을 때 A라는 사람과 절반 정도 비슷한 사람과 또 B라는 사람과 절반 정도 비숫한 다른 한 사람을 선택해 보라구요. 그래서 A와 비슷한 사람부터 연구하라구요. 그 사람의 절반은 같으므로 그 사람의 절반에 대해서는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국민학교 때나 중ㆍ고등학교 때의 급우들을 잘 기억할 수 있다면,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그들을 그려 볼 수 있다면, 그들을 여러분이 연구한 3부류의 사람과 비교하라구요. 여러분은 비교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들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일하는가를 이해하는 좋은 참고자료를 갖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방법을 잘 적용하기만 한다면 여러분의 판단이 70퍼센트의 정확성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을 접촉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일지라도 즉시 판단하고 평가하는 빠른 방법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눈의 크기, 눈썹과 눈동자의 움직임, 걷는 모양, 또는 잠자는 태도가 각양각색입니다. 그것들이 가장 흥미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동물은 뜀질의 모양이 비슷하지만 인간은 모두 다릅니다. 먹는 것이라든지 잠자는 것 등 모든 행동이 다릅니다. 각 사람의 코를 보더라도 그 코는 모두 다릅니다. 그 크기도 다르고 그 위치도 다릅니다. 이런 모든 것을 바라보노라면 갑자기 그에 관한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때 여러분은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혹은 무엇을 말하는지를 진실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관찰을 하게 되면 거기에는 하나의 패턴인 있습니다.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따로따로 보지 말고…. 여러분이 전도하는 동안이 이렇게 해 보기에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정치인도 다르고 학자도 다르고 노동자도 다릅니다. 그들의 외적인 표현도 직업ㆍ조직 그리고 생각에 따라서 각각 다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다른 모든 형태를 알고 있다면, 오늘은 정치인을 만나고 내일은 경제인을 만나는 등 여러분의 친교범위는 대단히 넓어집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얘기를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해 왔던 사람들까지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이런 전도 방법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중점을 두고 있는 한 특정한 가정에 그것을 적용해 보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왜냐하면, 거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 가족들 중에서 접촉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 관한 연구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 연구를 할때 여러분은 만나는 사람이 어떤 형의 사람인가를 즉시 감정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산 인간'의 철학을 탐구해야 합니다. 항상 내가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선생님한테로 또는 여러분에게 인도해 올 수 있는가를 생각하라구요. 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로 끌려올 수 있도록 하라구요. 이렇게 하기 위한 오직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선생님이 그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정신입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그 쪽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접촉하고 있는 사람이 이익을 받고 여러분은 주면, 여러분은 자연히 다른 한 사람을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그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이익을 얻고자 하면 장애가 생기게 됩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섬기면 여러분은 그와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여러분은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전도는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한 사람을 대해서도 하나님과 같은 심정을 가져야

문제는 여러분이 한 개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에게 얼마만한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으며, 그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 얼마나 여러분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활동의 핵심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정을 알 것이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얼마나 많은 힘을 쏟으셨고, 또 아담을 복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을 쏟으셨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 사람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비록 여러분이 그 한 사람에게 여러분의 모든 에너지를 투입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은 '나는 이 선에서는 최선을 다 하겠다'라고 하는 것이 결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입니다.

그런 마음자세를 가져야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다시 찾았을 때의 그 기쁨의 눈물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전도를 나가서 사람을 만날 때 여러분은 그와 같은 슬픔의 눈물을 흘려야 될 것이고, 또는 하나님이 한 인간에 대하여 느끼셨던 사랑을 느껴야 할 것이며, 그 입장을 감지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와 같은 것을 경험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올 때 여러분은 그와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그는 슬픔의 그 순간, 기쁨의 그 순간, 그리고 고통의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여러분은 그 사람이 알고 지내던 과거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큰 감동을 그에게 주게 되어 여러분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그에게 그의 친구가 줄 수 있는 도움보다도 더 많은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가 기뻐할 때에는 그에 어울릴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말해 주고, 고통을 당하게 되면 그 고통을 걱정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전도를 할 때에는 이러한 것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러한 관계에 의해서 인간은 서로 어울려 있는 것입니다.

구경꾼이 될 것인가 주인공이 될 것인가

단체생활에서는 세 가지의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의ㆍ식ㆍ주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단체의 구성원들이 원하는 모든 것들이 공급될 만큼 그렇게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먹고자 하는데 그것은 단체생활에 있어서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나쁜 음식을 먹겠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차려 입겠다고 한다면 곤란한 입장에 처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은 더 좋은 방과 더 좋은 침대를 가져야 할 그러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세 가지의 문제들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러한 단체생활에서 모범 식구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단체생활을 할 때는 누구나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하여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그런 단체생활을 잘해 나갈 수 있는 또 하나의 열쇠는 그 단체를 위해서 매일 한 가지 이상 특별한 봉사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각 식구에게 2만 명의 생명이 할당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느쪽을 더 좋아합니까? 만일 여러분이 이 숫자를 달성하지 못하게 되면 선생님이 여러분의 목을 자를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목표를 1년 동안에 달성하겠어요, 7년 동안에 달성하겠어요? 7년이라는 장시간을 소모하는 대신에, 할수만 있다면 그 절반도 안 되는 기간 안에 이 할당량을 끝내고 싶은 것입니다. 각자가 하루에 36명을 접촉한다면 우리는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에 8명씩 해서 7년이 걸리는 대신에) 그래도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죽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 각자가 최선을 다하여 그 목표를 초과 달성한다면, 하나님이 같이하시지 않을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때 우리는 목표를 달성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보통의 상태에 있을 때에는 영적인 도움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자유시간이 없이는 활동할 수 없다고 한다면, 영이 돕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한끼의 식사만으로도 평상시와 같은 양의 일을 한다면 거기에는 영들이 도울 것입니다. 그래서 희생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이렇게 해 나왔으며 미래에는 여러분들이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희생 정신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데 작전 계획이 있었듯이, 우리가 미국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의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인간이 달나라에 처음으로 착륙하는 그 순간이 얼마나 영광스러웠어요? 그 순간은 달을 정복하던 순간이었어요. 얼마나 귀중했던 순간이었어요?

미국을 구원하고 세계를 구원하는 데 있어서도 동일한 가치가 있습니다. 같은 도전인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땅에 '원리의 깃발'을 꽂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와 같은 기수가 되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구경꾼이 되는 대신에 통일교회의 깃발을 미국땅에 꽂는 주인공이 되라구요. 그러면 여러분은 남자든 여자든 다 개인으로서의 가치를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섭리노정을 창출하고 있다

여러분은 영화를 감상하고 싶습니까? 영화를 제작하고 싶습니까? 감독과 관객 사이는 비교가 안 됩니다. 여러분이 훌륭한 영화를 볼 때에는 그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의 장면 뒤에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들은 새로운 섭리노정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이 업적은 후손들에게 전해질 것이며, 그 후손들은 자기들의 조상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했던가를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놀라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열심히 일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한 가지 얘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북한에서 남으로 내려올 때의 이야기를 알고 있지요? 만약에 선생님이 평양에서 부산까지 곧장 내려왔더라면 10일밖에 안 걸렸을 겁니다. 그때 한국 남자들은 홑바지와 흰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그 노정은 네 달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게 되었는데, 여러분은 선생님의 그 옷이 그 동안에 얼마나 더러워졌는지를 상상하지 못할 겁니다. 옷이 너무 더러워서 뒤집어 입고 다녔으니까요. 거기에는 잠을 잘 만한 곳도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홑옷을 입고 내려왔던 때가 12월이었으니까 몹시 춥기도 했어요. 부산에 도착했을 때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밤에는 기지부두에 가서 노동일을 했어요. 일을 하는 것이 잠을 자는 것보다 더 쉬웠으니까.

그리고, 낮에는 산에 올라가서 숲속에 잠자리를 정하고 잠도 자고 혼자의 시간을 갖기도 했어요. 선생님은 그런 것을 즐겨 했습니다. 밤에 다시 일터로 가면 선생님은 선풍적인 모습이 되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내 주위에 모였습니다. 선생님이 흥미로운 얘기를 해주면 그들은 음식을 가지고 와서 나눠 먹는 것입니다.

그러나, 늘 그렇게만 살 수는 없어서 조그만 오두막집을 하나 마련했는데, 개집보다는 조금 나은 것이었어요. 벽과 지붕을 진흙과 바위로 지은 아주 초라한 주거 장소였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집을 지을 만한 땅이 한 평도 없었어요. 산비탈에다 오두막집과 같은 것을 지었어요. 짓고 보니 마루 바닥 중앙으로 샘물이 흘러가더군요. 헌 박스로 임시 지붕을 만들었어요. 방의 크기는 이만 했어요. 이때까지도 그 누더기 옷을 넉달 동안 입은 그대로 입고 있었어요. 세탁할 곳이 없었으니까요. 그와 같은 처참한 상황에 있었는데 영적으로 선택받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찾아오더군요. 그러한 누더기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들은 선생님에게 왔습니다.

하나님은 소수의 통일신도들만 가지고는 전진하실 수 없어

선생님은 각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누고 우리는 그 세번째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야 할 길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가고 있는 이 길은 세상의 다른 사람들이 가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또한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도 어디론가로 향하여 틀림없이 자신의 길을 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 앞으로 가고 있는 하나님의 목적, 혹은 목표는 전세계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33억 인구와 비교할 때에, 이 특별한 길을 가고 있는 우리의 식구들은 너무 적습니다. 세계 인류는 좌측에서 전진하고 있고, 우리의 길은 우측에서 나아가고 있는데, 우리의 하나님은 어디에서 전진하고 계실까요?

우리가 이 상황을 생각할 때 세 길, 즉 하나는 세상이 가고 있는 길, 다른 하나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그 목표가 명확하지 않은 길, 그리고 세번째도 우리의 목적을 향한 길이 있는데, 그러면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은 어느 편을 도우시려고 하고 어느 편을 취하려고 하겠습니까? 물론, 우리의 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취하시는 길을 따르려 한다면, 자연히 우리는 자기들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세속 세계와는 다를 것입니다. 자연히,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예정된 길을 가고자 하실 때에, 하나님은 소수의 이 세번째 부류의 사람들만으로는 전진하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입장, 하나님이 어떤 길을 취하실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 즉, 어떤 분명한 목표와 그들 자신의 목적을 가지고 이기적인 방향으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생각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소수의 통일교회 식구들만 가지고는 전진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앞에서 말씀드린 세 부류의 사람들 중에서 한 부류의 사람들을 택하여 함께 가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하나님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우리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을 인도하려면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은 하나님이 이루기를 원하시는 그 목표를 자신의 목표로 삼고 있는 무리와 함께 역사해 나오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 길의 미래의 운명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줄곧 이러한 관념을 가지고 가기를 원하는 그 종교 그룹과 함께 가실 것입니다. 그들은 분명한 목표와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연적으로 이 그룹(집단)의 편을 취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종교인들은 하나님이 우리 그룹과 함께 가시길 원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가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겨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만일 이 그룹(세계의 종교인들)이 도망가려고 하면, 하나님은 이 그룹을 취할 수 없습니다. 이 그룹이 피하려고 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 자신의 곁에 취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가 제기됩니다. 즉,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이 이 그룹을 하나님 자신의 곁에 붙드실 것이냐? 그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우리가 그들을 우리의 곁에 붙들어 둘 것이냐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들 종교인들을 우리의 곁에 붙들어 두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할까요.

우리는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그들이 우리의 역할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알아내고, 우리와 함께 이 길을 가지 않고는 그들이 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편에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가? 다시 말해서 우리는 그들의 편이요, 그들이 슬픔, 고통, 불안의 상태에 있을 때에 우리는 그들의 친구라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슬픔, 고통, 고민 및 여러 문제들을 함께 나누어 가질 것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확신시켜 주면, 그 사람들은 마음이 동(動)하여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하여 고통을 겪고 있고, 우리가 그들의 입장에서 슬퍼하고 있고, 우리가 그들의 문제점들과 눈물, 그리고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것으로 그들을 납득시키는 방법 이외에는 그들을 우리편으로 끌어올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지금 제안하고 있는 이 방법 이 외에 세상 사람들을 우리편으로 데려오기 위하여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어떤 길, 다른 어떤 방법을 여러분이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이것은 하나님, 선생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취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즉,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 이 길을 걷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유리한 조건, 또는 입장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및 세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에 의해서 적용되는 연결적인 요소입니다.

개인적인 차원만으로는 부족해

비록 어떤 개인이 과거에는 독실한 종교인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가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이 시대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차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가 그 길의 최종 목적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를 거기에 세우실 수 없으며, 그리고 현재 그대로의 그를 받아들이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개인적인 차원의 실적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를 출발하였던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하여서,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게 하실 것입니다. 비록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 되돌아 와서 '이 길로 올라가는 그것이 위대한 목표와 목적의 길로 올라가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들을 설득하려고 하더라도 그러한 그의 노력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이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을 위하여 희생하는 방법을 통한 접근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비록 그 자신이 스스로는 장성급의 어떤 단계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는 선생님을 따라올 수 있도록 설명해 준 이 특별한 규칙을 준수하면서 하늘 가는 길을 가고 싶어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고, 그러한 사람을 발견해서 설득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정이요, 또한 사람을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등으로 인도하려고 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심정의 참된 자리입니다.

대개 종교인의 경향은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직접적으로 연결시켜서 그 자신을 개인적으로 성장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거기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하나님과 직접으로 연결되는 그러한 연결만으로서는 세계의 구원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만일 종교인이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하나님과 이러한 직접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면, 하나님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지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 그러한 종교인과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개인적인 종교인이 원하는 그 입장에 계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입장을 취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과 접촉하고 있는 이러한 개인적인 사람은 무시하고 선생님이 말씀한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찾으시면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이 말씀에 따라서 통일가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우리는 통일가의 개인들로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만, 개별적으로 나에게만 내려오셔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것은 또한 교회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통일교회로서, 우리들 각자는 오직 우리에게만, 그리고 우리 그룹에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을 좋아할 것입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인도하는 길은 희생하고 사랑하는 길밖에 없어

비록 하나님이 우리 통일가와 이러한 관계를 원하신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위치는 이 수준에서 머물 수 없으며, 우리는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망과 희망과 심정은 여러분을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하나님과 함께 머물러 있게 하는 대신에 세상으로 내려가서 보다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분이 다시 돌아오기를, 여러분이 식구의 수를 늘리기를 원하십니다.

섭리적인 노정에 있어서 우리는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자유롭게 이 길을 따라오게 해야 합니다. 성공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 사람을 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희생하고 그들의 눈물과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아무리 연구를 해 봐도,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로운 점을 취하면서 사람을 이기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국민학교 선생님이라고 가정해 보십시다. 어린이들을 교육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항상 그들 마음대로 하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자기들 마음대로만 하려고 하는 어린이를 훈련 또는 교육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선생으로서, 그 어린이를 사랑하고, 어려워도 참고, 관찰하고, 그리고 그를 도우려고 해야 됩니다.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한 명의 아이에 대해서도 선생님은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아이는, '나는 이 선생님으로 인하여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무엇인가를 얻고 있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나를 돌보아 주실 뿐 나를 이용하려고 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만일 그 아이가 선생님이 형님, 누나, 부모보다도 자기를 더 사랑하는 것을 느낀다면 그 선생은 참으로 자격있는 사람이요, 훌륭한 선생님일 것입니다. 국민학교 어린이의 이러한 예에서 본 것과 같은 것이, 우리가 생명들을 교육하려고 하는 데에도, 우리가 하고 있는 영원 불멸의 교육 훈련에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그 생명들을 데려와서 교육하고 훈련시키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얼마나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할까요? 그 생명들에 대한 우리의 봉사, 희생과 헌신이 없이는 이 역사적인 과업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탁월한 종교 지도자들은 선생님이 말씀하고 있는 이러한 봉사와 희생의 방법을 제외하고는 이 세계나 생명들을 지도할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가의 입장입니다.

전진하는 길만이 우리가 위안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위치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 길을 가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이 되돌아가서 우리가 원하였던 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우리의 위치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집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실제로는 우리와 함께 계시길 원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실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 되는 이유입니다. 이것은 왜 그럴까요? 그 까닭은, 세상의 어떤 사람들에게는 누군가가 그들을 위해 주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우리 편을 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외롭고 쓸쓸한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편안하게 해줄 어떤 방법을 갖지 않았는가요? 거기에 우리를 편안하게 해줄 어떤 방법이 있는가요? 이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즉, 전진만이…. 이러한 입장에서만이 우리편을 취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위안의 자리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한 사람을 여러분 쪽으로 끌어온다면 그 사람은 여러분 편이 되고, 여러분은 그를 소유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한 사람을 인도할 때, 하나님은 그만큼 여러분 편을 취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두 사람을 인도하면, 하나님은 그만큼 더 여러분의 편을 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틀림없는 입장입니다.

세계를 복귀하는 법칙

만일 우리가 우리의 가야 할 길로 개인들을 인도할 뿐만 아니라, 모든 기성교회 사람들을 인도한다고 가정하면 하늘의 기쁨과 즐거움이 얼마나 커지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에게 찾아온 기성교회의 성도들을 이용하려고 하면, 그들은 되돌아갈 것이고, 여러분과 함께 길을 가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들을 이용하려고 하면, 그들은 여러분으로부터 도망쳐 되돌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기성교인들이 올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적합하고, 평안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환경은 우리들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되돌아갈 것입니다. 더 좋은 환경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길로 함께 갈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소유하고 있는 가치없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더 귀중하고 더 가치있는 것을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그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과 함께 우리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개인, 가정 및 종족으로부터 발전하게 되면, 우리의 발전의 토대도 더 커지고 더 확장될 것입니다. 사람들을 우리와 하나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이것 이외의 다른 길이나 방법이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어요.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우리가 이 길을 가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이 길의 목적지인 종착지에 이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들, 모든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가 지나가게 될 이 영광된 길의 끝에 이르면, 심지어 하나님도 우리에게 다가오실 것입니다. 그 목적지에 도달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들을 위하여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창조물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그 길의 종착점에 이를 때까지 모든 것들을 단념하고 이 원칙을 지키면서 거꾸로 가야 됩니다. 그것이 세계를 복귀하는 법칙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 반대의 길을 걸으면서 사람들이 우리를 따라오길 기대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대신에 그들에게 모든 것을 주고,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그들을 섬겨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대로 우리가 그 영광된 길의 종착지에 도달하게 되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따라가야 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거기에 도달하면, 사탄은 우리가 그 지점에 도착하자마자 물러갈 것입니다.

믿음의 공식은 예외가 없어

질문 있어요? 여러분은 이러한 사명을 수행할 자신이 있어요?「예」 이따금 말하기는 아주 쉽지만, 행(行)하기란 지극히 어렵습니다. 이러한 길을 갈 때에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곁에 아주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선생님이 말씀드린 바와 같이, 가야 할 이 길을 따라서 여러분이 살아간다면 얼마나 고귀하고 숭고하겠습니까? 그 길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나를 위하여 생명을 잃는 자는 영생을 얻을 것이다'라는 말로….

예수 그리스도도 이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그 길을 다 걸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다시 와야 하고, 사람들을 그와 함께 갈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가 다시 와서 기독교라는 이 종교를 세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는 다시 와서 사람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법칙이 있기 때문에 그는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내가 예수를 믿으면, 낙원에 간다'고 하는 길을 따라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의 일상적인 신앙생활에서 여러분은 선생님이 설명한 이 믿음의 공식을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공식을 실천할 때에 비로소 행복과 기쁨이 오고 하나님이 가까이 강림하십니다. 이러한 결과가 오게 하는 다른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죽을 때까지 이 공식을 매일 반복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이 우리 가족의 수를 늘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교회의 오래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 공식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게 분명해요? 이제, 지도자의 위치, 우리의 운동에서 책임 있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 공식을 실천해 나가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동일한 믿음의 공식이 참부모님에게도 역시 적용되고 있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선생님의 공식은 여러분의 것보다 더 큰 범위에 적용되지만 그것도 역시 동일한 믿음의 공식입니다. 수정은 모서리가 많지요? 선생님의 공식은 그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이 공식을 기억하고 있으면 신앙생활이 고달프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처음 통일교회에 들어왔을 때 여러분은 흥분하였습니다. 그것이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안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침체되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는 것처럼 느끼고 전진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어디에선가 멈추게 됩니다. 왜? 여러분이 갑자기 개인적인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중심한 통일교회 식구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여러분 이외의 모든 사람들, 즉 잃어버린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희망과 행복은 이 사람들을 우리의 가야 할 길로 함께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여러분은 급속히 발전할 것이고, 세계에서 최고의 행운아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영적으로 번창할 것입니다.

진짜 통일교회 식구가 되려면

모든 축복가정들이나 오래된 식구들은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곤란한 입장에 처할 것입니다. 축복가정들은 축복을 받고 나면 모든 것이 완성된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신앙생활의 최고의 실적을 쌓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축복가정들은 자기들끼리 어떻게, 얼마나 많이, 얼마나 깊이 서로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함께 일할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그러한 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정의 이상적인 형태입니다. 만일 축복가정들 중에서 이 방법으로 활동하지 않는 가정이 있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전세계를 통해서, 이런 종류의 목적을 가지고, 개개의 국가뿐만 아니라 하나의 큰 프로그램을 가지고 세계적으로 활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개별 국가에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의 거대한 사업이요, 거대한 모험입니다. 나(개인)를 위한 모험이 아니라, 전세계를 위한 모험입니다. 진짜 통일교회 식구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관념, 여러분의 가치 기준이 달라야 합니다.

우리의 하늘 일은 항상 더 많은 사람을 인도해 와서 그들로 하여금 이길을 걸어가게, 전진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반복하고 있는 생활의 주기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반복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길로 모든 사람들을 한꺼번에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 명은 여기서, 또 다른 몇 명은 저기서, 또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곳에서 돌보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사람들을 인도해 올 때마다 그들을 위한 적절한 곳을 정해 놓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이 노정을 모두 관리해야 합니다.

그것은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등으로 올라가서 마치 하나의 피라미드처럼 보입니다. 한국 교회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로 지금 우리는 개인으로부터 기성교회까지 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계획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기성교회를 흡수하게 될 때, 그것은 우리의 계획대로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모든 기성교회, 거의 멸망할 입장에 있는 세계의 사람들, 또는 가야 할 길이 없어 어떤 한 장소에 머물러 있는 다른 사람들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이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상하 전후 좌우를 동시에 붙들어야 원형을 이룰 수 있어

이와 같은 거대한 스케일도 질서적인 성장의 삼단계처럼 구분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지배하시게 될 세계, 섭리권 속에 있게 될 세계입니다. 그리고 항상 그 정상에는 한 사람이 홀로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 처음의 자리, 개인적인 차원의 그 첫출발점에 세우고 싶은 누군가를 미국에서 찾고 있습니다. 이 정상에 접근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행로를 따르게 될 것이며, 더 많은 사람들이 복귀되어 이길에 합류할 것입니다. 미국 가정들과 더불어 그와 같은 패턴은 이러한 영역을 확장할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이 영원한 부부들로 성혼(聖婚)식을 거행하여 가정들을 축복하였던 까닭입니다. 이것은 개인으로부터 36가정, 72가정, 124가정, 430가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777가정입니다. 이것이 선생님과 선생님의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기대가 확대되어 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쉴 시간이 없습니다. 여러분, 선생님과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하여 복귀의 구조가 어떻게 확대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겠어요? 우리가 이러한 패턴을 따라서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등을 거쳐 세계 복귀의 차원에까지 이르게 되면 모든 국가들, 전세계가 포용되어 복귀의 정상 아래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이 패턴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선생님과 참부모와 하나님의 대신자가 될 뿐만 아니라, 이상세계의 이상적(理想的)인 부부의 대표자가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많은 성인과 종교 창시자들도 선생님이 닦아 세운 이 길과 유사한 길을 갔습니다. 그 완성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성인이 될 수 없었고 구원자가 될 수 없었고 신앙의 창시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공식적으로 가야 할 길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것에 관련된 질문 있어요? 그것은 이런 방법으로는 될 수 없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 있어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말씀한 모든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해방될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우리 통일교회의 입장은 전과 후, 좌와 우의 네 귀퉁이의 입장이면서도 그 중앙의 입장입니다. 상하, 전후, 좌우…. 만일 우리가 오직 위로만 매달리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래도 역시 붙잡아야 합니다. 즉, 위와 아래를 동시에 붙잡아야 합니다. 좌측으로만 매달리는 것도 부족합니다. 우측도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주고 받으면서 함께 매달려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의 원을 만듭니다. 상ㆍ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하나의 원을 만들어서 주고받아야 합니다. 앞과 뒤, 한 모서리, 한 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이 원(圓)형은 그 목적을 향하여 앞으로 이동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원리요, 공식이며 목표임을 명심하라구요.

이것은 중심을 세우기 위한 노력입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합니까? 중심 자리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 중심은 한쪽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양쪽 모두를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 중심이 되는 인물은 이미 희생을 치른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이론이요, 또는 법칙입니다. 질문 좀 해봐요.

문: 부흥회는 교회에 봉사하는 입장에서 열리는 것입니까?

이것은 오로지 기성교회를 위한 것이며, 그리고 그들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사람들을 인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대중 매체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여러분이 한번에 백 명 또는 천 명을 찾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성교인들에게 크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부흥회는 그들을 위한 것이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기성교회는 무엇인가를 찾고 있지 않아요? 지금 그들은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가 더 불쌍하고, 누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행복한 우리들이 현대의 불쌍한 기독교인들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그 방향조차도 모릅니다. 그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지요?

문: 미국에는 '좌익' 또는 자유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그리고 신앙의 부흥운동을 우익 정신이라고 깔보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들에게 봉사하고 그들을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인도할 수는 없고, 계속적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패배 또는 승리는 여러분이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노력하였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장시간의 노력, 점진적인 계획으로 그들을 인도할 수 있는 것이지, 한꺼번에는 불가능합니다. 만일, 우리가 노동자들, 또는 공산주의자들이 손잡고 있는 노동자 계급에 우리의 끊임없는 희생을 보여 준다면, 만일 우리가 공산주의자들보다 더 많은 사랑과 더 많은 관심을 보여 준다면 우리가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것입니다.

이 공식을 지키면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출발,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공산주의자들과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 중에서 누가 미국을 더 사랑하는가의 캠페인 또는 전쟁입니다. 이러한 시험을 거쳐서 그 둘 중 어느 하나가 결정될 것입니다. 이것은 시작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의 국가에 대하여 우리가 공산주의자들보다 더 많은 사랑을 보여 주고 더 많이 희생한다면 우리가 그 전투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희생을 예상해야 할 것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실제로 육체적인 희생을 당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희생될 것이라고 우리는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 일선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내리는 그 지시를 따른다면 여러분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만,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기만 하라구요. 또 다른 질문 있습니까?

지금은 새해 두번째 주(過)입니다. 1월의 둘째 주, 맞지 않아요? 이것은 1972년도 1월 두번째 일요일에 여러분에게 주는, 여러분이 명심해야 할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지금까지 비밀로 간직하여 왔었는데, 여러분에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공식을 지키면 결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렇게 함으로써 망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멸망할 수 없습니다. 모든 노정에서 언제나 이것을 생각하라구요. 항상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이것을 생각하고, 항상 이 관념, 이 공식 안에서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을 어떻게 섬길 것이냐 하는 관념과 이상을 이 공식을 따라서 실천하라구요.

여러분이 오늘 듣고 이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원리인 신앙적인 규범을 알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양심, 여러분의 정신은 갈등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짐을 지고 이 공식(公式)을 따라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비록 육신적으로 지쳐 있더라도, 여러분이 밖으로 나가야 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쫓아낼 것입니다.

이 일에서 직책을 맡은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책임은 이 조직내의 핵심 간부들에게도 또한 부여될 것입니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 24시간에 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으며, 내가 그 시간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이 일을 위해서, 또는 다른 그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보냈는가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지도자들은 식구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지도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나는 현재 내 자리에서 이익 또는 복을 얻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그복을 얻으려고 하는 대신에, 여러분이 그 일을 계속하여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고 그들을 위해 일하면 그 사람들이 인도자의 입장에 있는 여러분을 돕게 될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은 여러분을 도울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지도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기성식구들이 똑같은 위치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더 높은 차원의 발전을 향하여 노력하고 전진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분명히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에 의해서 향상 발전된 그 사람들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들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받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하면, 지도자인 여러분들에 대한 비판은 없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이 그렇게 행하면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도자로서 식구들과의 사이에서 남편과 아내처럼 느껴야 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이렇게 느껴야 합니다. 여러분은 빚장이, 하나님에게 빚지고 있다는 느낌을 느껴야 합니다. 교회 식구들에게도 빚지고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하며, 동시에 아직까지 전도되지 않은 세상 사람들에게도 무엇인가를 빚지고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이 빚을 어떻게 갚을 것인가? 선생님과 같이 여러분은 이 문제를 매일 이성과 사고의 규칙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산에 갈 때마다 하늘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똑같은 생각을 일개 지도자로서 느끼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 사람들을 구원할 것인가, 불쌍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선생님은 생각합니다. 똑같은 상황이 여러분에게도 적용됩니다.

누군가 이것을 실천하고 있는 지도자를 반대한다면, 그를 비판한다면, 결백한 지도자가 비판을 받는 경우가 되기 때문에 그 비판은 자가당착이 되어 자연히 사라질 것입니다. 지도자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마음의 이러한 상태 또는 조건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의 교회에서 여러분이나 기타 여러분의 가족이 그러한 지도자를 모시고 있다면 좋다고 생각해요, 나쁘다고 생각해요?「좋아요」그러면, 이와 같은 공식으로 그 교회는 발전할 것이고, 이와 같은 주고받음으로 그 교회는 번창할 것입니다. 거기에는 진보, 발전 및 번영이 없을 수 없습니다.

만일 새 식구들이 이곳에 온다면 여러분은 그들에게 달라붙으려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고, 심지어 밖에 나가서도 모든 것을 나누어 주면서까지 여러분은 그들을 붙들고 싶어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감정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만일 지도자의 자리에 새 식구가 오게 되더라도, 만일 누군가가 지방교회로부터 본부로 오게 되더라도, 여러분은 그들이 오게 된 것이 너무 기뻐 서로 부등켜 안고 진정으로 기쁨의 눈물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서로 비판하지 말고 격려하라

각 국가의 협회본부들 사이에서도 비판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서로를 비판하는 대신에 격려해야 합니다. 오직 긍정적인 결속만이 있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이 본부에 들러서 '나는 이 지저분한 곳에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곤란하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 지도자 때문에…. 나는 그가 싫어. 나는 본부에 안 올 것이다'라고 한다면, 더욱 곤란하게 됩니다.

여러분 일반 식구들은 비판을 위한 비판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여러분의 지도자를 위해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지도자 또는 책임자들로서 여러분들도 어떤 한 사람을 다른 곳으로 배치하기 전에 진정한 소망을 가지고 진지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진실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올바르게 처신하고 어떤 사람은 그릇되게 처신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용납되지 못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용서받을 것입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와 같은 인사이동의 문제를 다루게 될 때, 예상하지 못한 잘못이나 실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분은 기도를 하면서 그 문제를 아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 서부 저 먼곳에 있는 어떤 사람이 이 본부에 오고 싶어한다면 우리 교회는 발전할 것이고, 우리의 운동도 번창할 것입니다. 또한 마음이 흔들리거나, 어떤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주저하는 식구가 있다면, 그는 우리 본부로 찾아오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만일 본부에 기도하는 영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고 생명력이 넘치고 있다면, 그들은 원리를 포기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문제는 뒷전으로 밀쳐두게 될 것입니다 .

이웃에서도 사람들은 어떤 집이 번창하고 있는지 아니면 곤란에 처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몹시 찾아오고 싶어하는 집이 있습니다. 그 집이 화평하고 기쁨과 활력이 넘치고, 그 집이 선령(善靈)이 협조하는 좋은 집이라면 새들까지도 그 집의 정원으로 날아올 것입니다.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잘 대접해야

본부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중의 한 가지를 얘기해 보겠습니다. 어떤 거지, 어느 누구라도 본부에 오게 되면, 그들에게 음식을 대접해야 합니다. 누가 본부로 찾아오면, 걸인이라도 대접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에 걸인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런 사람들이 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부양해야 합니다.

1970년까지 우리는 본부를 찾아오는 걸인들을 위하여 문을 활짝 열어 놓았었습니다. 그들은 대접을 잘 받았을 것입니다. 진수성찬을 대접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영적인 음식을 대접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걸인들뿐만 아니라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는 봉사 정책으로 바꾸었습니다. 1954년부터 1970년까지 본부에서는 이것을 실천하였습니다. 걸인뿐만 아니라 모든 식구들에게도 역시 음식을 대접하였습니다. 그때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를 깨닫지 못하였고, 또한 공짜로 음식을 대접해 주는 본부에 고맙다는 기색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걸인들뿐만 아니라 본부 주변에 오는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우리는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그때에 그들은 그것에 대한 감사를 느낄 줄 몰랐습니다. 선생님은 여기서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본부의 문을 활짝 열어두게 할 것입니다.

한국에 아주 좋은 관습과 전통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집을 지을 때는 언제나 '사랑방' 하나를 만들게 되는데, 그 방은 손님을 위한 방입니다. 거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우리는 안채에서 떨어진 곳에 방 하나를 만드는 것입니다. 방 하나를 손님을 위한 방으로 준비를 해 두었다가 손님을 맞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습을 우리는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방문객 또는 뜻밖의 손님이 오게 되면 언제든지, 비록 그 집 주인은 먹을 것이 없더라도, 그들을 잘 대접하는 관습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의무요, 관습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주 좋은 관습입니다.

만일, 모든 우리의 복귀된 왕국의 마을들이 모든 시골 사람들, 모든 여행자들, 모든 방문객들에게 공짜로 음식을 나누어 주고 식사를 대접하여 모실 준비가 되어 있다면 얼마나 멋지겠어요? 그리고 다른 모든 이웃들이 이 길을 따라서 경쟁할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멋지겠어요! 이것이 우리가 이상세계를 건설하려고 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켄사스시 본부 요원들의 소개가 있음)

선생님은 일반 식구들로부터 직접 듣는 것이 아니라 책임자 및 지도자들로부터 보고를 듣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주를 위한 분명한 말씀입니다. 이해하겠어요?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체계를 세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체계라는 것은 어떻게 움직이는 것입니까? 선생님은 지부 또는 본부의 책임자 및 지도자들에게 귀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직접 일반 식구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그 지도자 또는 지부 책임자가 어떤 실수를 하는 경우에라도 그가 지도자 또는 책임자로 세워진 이상에는 본부나 선생님은 특정한 문제에 관하여 그 사람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체계이고 질서입니다.

상관, 감독자 또는 지도자를 비판하는 사람은 그들이 계속 그렇게 하는 한에서는 그 자신이 나중에 유명해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비판을 하기 전에 먼저 선생님이 말씀한 바와 같이 더 많은 것을 성취하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라구요. 그것이 여러분이 활동하면서 취해야 할 길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를 비판하는 방법을 취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외톨박이가 될 것이고 외로운 사람이 될 것이며 고립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위치를 재인식해야 할 축복가정들

여러분이 켄사스시 본부에 오게 된 이상, 켄사스시의 책임자와 여러분 사이에 어떤 말썽이나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선생님이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다고 불편하게 생각지 마세요. 모두 여러분의 이익을 위하고 여러분의 발전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선생님이 방문하였을 때 여러분이 대단히 성실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이런 것들을 얘기해 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켄사스시를 둘러볼 수 없는 것이 아주 유감입니다. 선생님이 당면하고 있는 몇가지 긴급한 계획들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캔사스시를 기억할 것입니다. 각 본부, 각 교회가 일정한 식구를 확보하게 되면, 그때는 선생님이 50개 주 전역을 순회하면서 이곳에도 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50개 주를 방문하는데, 각 주에서 7일간씩만 머무른다 하더라도 350일이 걸립니다. 거의 일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것에 대하여 어떤 대비책을 세워야 합니다. 만일 한 주(州)에 열 개의 교회가 있다면, 그들 모두 다 순회할 시간이 없게 됩니다. 그런 경우에 선생님은 미국에서 10년은 체류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선생님을 만나 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제 외국에도 120개 선교 현장이 있는데, 선생님이 각나라에 한번씩만 방문한다고 하더라도 몇년이라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그때의 선생님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늙은이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너무 많은 힘을 쏟고 있기 때문에, 이미 여러분에게 너무 많은 힘을 쏟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여러분을 찾아다니고 여러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에 많은 힘을 기울이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에는 선생님이 국가와 교회 복귀에 아주 바쁠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개인적으로 만나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중에 선생님의 자녀들이 성장하면, 모든 나라와 모든 도시에서 선생님을 직접 볼 수 없으니 선생님의 자녀들이나마 자기 나라에서 공부하게 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들이 그렇게도 못하면, 축복가정들이라도 자기 나라에 순회하러 오기를 고대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지상에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때에는 일부 축복가정들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선생님이 이 지상에서 천국으로 떠난 후에는 축복가정들이 얼마나 소중하겠어요! 그때 전세계의 사람들은 그들이 지상에 있는 동안에 그들과 함께 남아 있는 마지막 가정을 대표하는 이 축복가정들을 주시할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기형적인 성격, 육체적인 결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그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선생님이 영계에 간 후에는 지상에 남아 있는 축복가정이 대단히 소중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여러분 축복가정들은 여러분의 가치를 재평가 또는 다시 생각해야 하고, 축복가정으로서의 여러분의 위치를 바르게 인식해야 되겠습니다. 지금 당장에 여러분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더라도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지금 선생님이 죽는다고 가정하면, 그때에는 미국에 있는 미국 축복가정들이 보다 귀중한 조상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머무는 곳마다, 미국에 있는 여러분 축복가정들의 기념비들이 기억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지 않습니까? 만일 선생님이 지금 떠난다면, 여러분 축복가정들은 이 나라의 건국자들보다도 더 많은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항상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세계의 세속적인 가치보다 훨씬 더 높은 특별한 우주적 가치를 갖는 축복을 강조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들은 몇 가지 가정의 역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후손들에게 그 역사를 물려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들끼리 다툰 때라든가 또는 좋은 시간을 가지거나 한 때에, 여러분은 그것들을 일기로 기록하여 후손에게 전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선생님은 여러분을 갑자기 방문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너무 반갑고, 여러분을 만나는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며칠 전에 뉴욕을 순회하고 거기에서 3일 밤을 머물고 돌아왔습니다. 그곳의 우리 식구들은 부흥회 준비를 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링컨센터와 계약을 채결하였습니다. 이번 부흥회에 선생님이 처음 공식적으로 모습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영ㆍ육적으로 싸워야 할 싸움

한국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선생님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많은 고난과 핍박을 당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이곳 미국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대중 연설을 하게 된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선생님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미국에 있는 모든 식구들을 동원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는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전진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에 말씀드리고자 하는 제목은 '전투 개시'가 되겠습니다. 우리의 전투는 유형의 세계에만 바탕을 둔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는 무형의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영적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육적으로 싸울 것입니다. 육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은 인간만에 의해서, 가시적인 것만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육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그 일을 위하여 영계도 동원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양세계에 있어서의 승리를 얻겠다고 결의해야 합니다.

그러면 문제는 어디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인가입니다. 유형세계에 두어야 할 것인가, 무형세계에 두어야 할 것인가? 육적인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육적인 세계에 대한 영계의 협조를 받아야 합니다. 영계에서 오고 있는 그 협조는 개인적으로 연결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것은 가정, 종족, 국가 및 전세계적으로 범위가 넓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차원에서 승리한 사람은 그 다음에 그의 활동 범위를 가정적 차원으로, 그리고 그보다 더 넓은 차원으로 넓혀 가야 합니다. 그는 또한 가정적으로 승리한 다음에는 종족, 민족, 세계적으로 복음과 그의 활동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

참된 지도자가 되려면 그는 이 모든 차원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모든 차원에서 승리한 후에 그는 그것들을 영계와 연결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영계와 연결되지 않고서는 육계에서 일어난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탄을 어떻게 막느냐 하는 것이 문제

그러면, 문제는 무엇이 그 길을 가로막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그 길 앞에 가로놓여 있는 장애물이 무엇이냐? 그것은 사탄의 세력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탄이 개인, 종족, 민족 및 세계적으로 나아가는 길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탄의 세력은 우리가 하는 일에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우리들 사이에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한 개인의 주위에는, 그들의 조상들을 포함하여, 그들에게 또는 그들을 통해서 역사하고 있는 많은 영인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주관하에 놓이지 않기 위해 현명해져야 합니다.

몇 가지 실제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대적하는 것을 어떻게 막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이 오만해져서 자기 자신을 높은 자리에 두었을 때 악이 출발하였습니다. 오만함의 반대는 겸손입니다. 겸손해지는 것이 첫번째 문제입니다. 우리는 사탄이 기뻐하는 입장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오만해지는 대신에,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희생의 자리에 세우고 우리의 생명까지도 희생하면서 활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의 입장에서 한 생명을 인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타락 인간, 선과 악의 차이점 입니다. 한 개체로서 여러분은 선편 아니면 악편, 혹은 하나님편 아니면 인간의 편에 서게 됩니다.

개체들로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영혼과 보이는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보이지 않은 영계에 속해 있고, 육신은 육계에 속하여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이 양세계 모두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토대가 되도록 해야 됩니다. 우리는 이 토대를 인간의 양심이라고 합니다.

육신은 사탄이 활동하는 터전

우리의 육신은 사탄이 활동하는 터전입니다. 그래서 두 편이 서로 싸우는 투쟁이 있게 됩니다. 우리의 육체는 우리가 육적인 욕구를 추구하게 하기 위해 우리들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의 심령은 하늘에 속한 것을 지향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 속에 있는 이 두 세력이 서로 싸우기 때문에 우리가 갈팡질팡하게 된다는 것을, 때로는 육신의 길을 따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심령의 길을 따르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육신의 일들에 집착을 하면, 사탄이 우리를 육적인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영적인 일들을 지향하게 되면, 하늘이 우리편에 있게 됩니다.

종교 지도자는 항상 어떻게 이 두 세력을 하나로 묶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과 마음은 항상 서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선생님은 믿지 않습니다.

자, 여러분 중에 누가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있어요? 「없습니다」 없다구요? 그렇다면 우리가 이들 두 세력이 서로 싸우고 있는 싸움터에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이 육신을 극복하고 승리하느냐, 아니면 우리의 육신이 마음을 극복하고 승리하느냐 하는 것이 논점이 됩니다.

육신을 정복할 수 있는 방법

우리가 육신을 정복할 수 있는 방법에는 오직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강제적으로 육신의 욕구를 끊는 것입니다. 종교가 우리들이 육신적인 욕구를 누르고 승리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우리의 생명을 희생하여 봉사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모든 참된 종교는 그렇게 행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참된 종교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그렇고 불교도 그러하며, 기타 모든 종교들도 역시 그러합니다.

우리는 육신의 욕구를 정복하기 위하여 금식을 하고 고난과 고통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육적인 것들이 쇠하여지길 바랍니다. 우리는 육적인 것을 영적인 것으로 승화시키길 원하지만, 육적인 면이 항상 영의 길을 기꺼이 따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늘은 우리에게 한 가지 다른 방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것에 2배 또는 3배의 힘을 가함으로써 힘의 균형이 영혼으로 기울어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기도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열심히 활동해야 합니다. 고등 종교들은 육적인 욕구들을 끊고 보다 고차적인 영적인 일들에 역점을 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어떠한 자리에 이르게 되면, 하늘은 역사하시게 되고 우리는 우리의 심령에서 거대한 힘이 솟아 오름을 느끼게 됩니다.

육적인 면을 고난과 고통 가운데 두지 않아도 될 때에는 이와 같은 두번째 방법으로도 영적인 면을 따를 수 있습니다. 이들 두 가지 방법은 중요합니다. 즉, 육적인 면을 끊어버리는 방법과, 영적인 면에 보다 역점을 두는 방법 말입니다. 이처럼 갈팡질팡하지만, 우리는 결국에는 영적인면 또는 오른쪽이 최종에 도달할 수 있게 되도록 영적인 면 또는 오른쪽을 향하여 더 많이 노력하고 싶어합니다. 신앙생활은 우리로 하여금 노력을 통하여 영적인 면 또는 오른쪽으로 나아가게 인도하고 사탄쪽 또는 왼쪽으로는 넘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승리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의 육신 또한 사탄을 따르지 않는 습성을 가지게 되면 여러분의 생활은 오른쪽 또는 영적인 면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자신이 완전히 새로운 존재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사탄의 길을 반복하여 걷는 사람이 안 될 것이며 새 사람이 되어서 하늘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더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여러분이 추구하는 목표에 더 가까이 다가갈 것입니다. 비록 여전히 싸워야 한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은 보다 강해짐을 느끼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과 몸은 모두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있게 될 것입니다. 비록 열심히 기도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고 있는 우리 자신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때에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하나님이 기쁘고 행복할 때 우리도 행복해집니다. 하나님이 슬플 때 우리도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그 자리에 이르지 않고서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전인류역사를 통하여 인간은 의로운 목표로 향하여 나아가려고 노력하면서 암흑 속에서 더듬어 나오고 있지만, 때로는 그 싸움에서 승리하기도 하고 때로는 패배하기도 하였습니다. 불안정한 지그자그의 길을 가면서 어떤 사람들은 오른쪽에 있는 목표에 도달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오른쪽 길을 가도록 운명지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그 목표에 도달하였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래도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개인적 싸움에서 승리한 후에도 아직 가야 할 먼 길이 남아 있습니다. 사탄은 여전히 우리의 가정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가정을 하나님편의 가정으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만일 한 남자가 그 자리에 이르게 되면 자기 아내도 역시 그 자리에 데려오고 싶어합니다. 둘이서 함께 가정적으로 그 목표를 쟁취하기 위하여 노력하려고 합니다. 만일 어떤 가정이 승리를 거두게 된다면 분명히 그들은 사탄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싸움이 얼마나 오래 걸릴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한 쌍의 남녀가 축복을 받게 되면 그들 앞에 그 싸움이 남습니다. 이때 그 둘은 하나가 되어서 사탄에 대항하여 싸우는 용사가 될 것입니다. 남편이 그의 아내로 하여금 그에게 복종하게 하거나 또는 아내가 그녀의 남편으로 하여금 그녀와 완전히 일치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서로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단순히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 같은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진정 하나로 결합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희생의 길을 가야 합니다.

희생과 봉사! 그들이 가정적인 차원에서 그 싸움을 승리한 후에도 여전히 남게 되는 싸움이 있습니다. 즉, 자녀들을 중심한 올바른 길을 위한 싸움이 그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복잡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남편으로서 아내, 그리고 자녀와 함께 승리한 후에야 비로소 우리의 가정을 창조원리, 창조이상을 실현한 가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먼저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나가 된 다음에 자녀도 부모와 하나가 되어서 완전한 사위기대를 이룹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기대를 이룬 가정을 지상에서 단 한 가정도 찾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가정적인 범위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개인적으로도 사탄의 세력을 극복하고 승리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통일이념은 단지 개인으로 하여금 이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포함하는 가정으로 하여금 이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영계와 육계가 한데 어울려 싸우는 그 모든 싸움들입니다. 여러분은 이 싸움터에서 싸우고 있는 용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승리자가 되어야 하겠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과거의 여러분과 새로운 여러분, 둘로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새로운 여러분이 희망입니다. 가정도 오래된 옛 가정과 소망의 새가정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도 역시 참된 아들과 딸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와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못하면 개인, 가정, 종족, 국가 및 세계적으로 완전한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어디에서 싸움을 시작할 것이냐

이제, 그 싸움을 어디에서 시작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그 싸움은 바로 우리의 운동 안에, 우리 통일가 안에 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세부적으로 알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개인적인 차원과 그리고 여러분의 자녀가 포함되는 가정적인 차원에서는 세부적으로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 싸움에서 승리자가 될 자신이 있습니까? 선생님은 전생애를 통하여 이러한 싸움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 싸움에서 영계에 있는 수많은 사탄들의 공격을 받아 본 경험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물러서지 않고 정복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통일 운동이 나오게 된 방법입니다. 그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했더라면 선생님은 지상에서의 사명을 출발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상에서 사명을 시작하자 사탄이 땅 위에서 공격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타락 이후부터 지금까지 사탄과 싸워 나오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영과 육의 양면에서 사탄과 싸우고 계십니다. 사탄은 우리들과의 싸움에서 필사적입니다. 그 싸움에서는 무엇이 우리의 적입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 여러분과 아주 가까이 있는 그 사람들이 항상 관심의 대상입니다. 여러분이 외부의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을 인도해 오려고 할 때에 그가 인도되어 올 수 없도록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경우를 여러분은 종종 경험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험을 해봤어요? 내 생각으로는 여러분도 틀림없이 그와 똑같은 경험을 했으라고 봅니다. 그때 여러분은 여러분에 대항하여 싸우는 사탄의 세력과 싸워야 하고 그 싸움에서 승리한 후에야 그다음 것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통일 식구들은 만사에 있어서 개인, 가정, 집단, 국가 및 세계적으로 이러한 싸움들을 거쳐왔습니다. 선생님도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고난을 거쳐서 왔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지금 바로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 고난을 통과한 후에는 경계선을 넘어서 정의의 편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싸움의 정상에 오를 때까지는, 우리는 오히려 자신을 방어하려고 하지 남을 공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상을 넘어서면, 우리는 사탄의 세력을 공격해야 합니다.

미국은 민주세계의 선도국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우리가 공식 집회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일을 하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섭리와 인연맺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러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많은 공식 집회를 가졌으나 그곳에서는 선생님이 한번도 공개적인 연설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선생님에 대하여 듣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선생님을 만나 본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최근에 많은 유명 인사들이 선생님을 만나 보기를 원하지만 선생님은 거절해 왔습니다. 이번의 세계 순회는 세번째입니다. 두번째까지는 장성기를 뜻합니다. 그 둘은 타락권에 속합니다. 완성기는 사탄의 침범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합니다. 한국을 중심한 세계 정세는 악화되어 있습니다. 이번의 세번째 순회에는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늘편과 사탄편의 싸움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

우리가 지금 이 계획을 밀고 나가면 공산주의자들과의 싸움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일단 말씀하기 시작하면 시간과 모든 것을 잊어버립니다. 최선생은 선생님이 얼마나 오랫동안 말씀하실 것인지 묻습니다.

자, 결론을 내립시다. 미국은 공산주의에 대한 싸움에서 후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민주주의 이념이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주의 이념에 패배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에 대해 설명하겠어요. 섭리역사는 다음과 같이 흘러오고 있습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하늘의 섭리역사는 먼저 머리부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현재까지 역사는 머리부분에 있는 사람들(지성인들)이 지도하고 지배하여 왔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이와 같았습니다.

그후에는 조금 내려와서 역사는 팔의 시대에 이르게 됩니다. 이 시대는 제1차 세계대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군사통치 시대입니다. 그후에는 배의 시대가 됩니다. 이때는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시대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경제력으로 모든 일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다리의 시대로 내려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이와 같이 (몸짓을 하심) 멀어지고 땅은 더 가까워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반면에 물질적인 면이 가까워집니다.

그다음에는 발의 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그 시대는 새로운 공산주의의 시대입니다. 최하층 계급이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하나님은 영계를 동원하여 다른 길을 점령합니다. 사탄의 세력이 지상이나 '푸티즘(발주의)'으로부터 쫓겨나면, 그때에는 사탄의 세력에 종말이 옵니다. 그들이 갈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하나님을 부정한다는 말은 그들이 물질을 숭배할 때에 그들 자신도 부정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만일 그들이 민주세계를 현재 있는 그대로 놓아 둔다면 조만간 그들 모두가 하나님편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자신들도 부정하면서까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편에 속하여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사탄 세력을 섬멸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서 공산주의를 극복하고 마침내는 이 세계에 하늘의 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나는 1977년과 1978년 정도에 그 두 세력간의 싸움이 결정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통일 식구들은 그 전투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어떤 식으로 준비를 할 것인가? 첫째, 우리는 모든 기독교 교파를 통일해야 합니다. 그때가 되기 전에는 선생님은 여기서 지금 그 전투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선생님이 공식집회를 열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거슬러 올라가서 1960년도에 선생님은 이미 이 싸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이 공산주의와의 싸움을 대비해서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이 그때입니다. 그때가 왔습니다. 그 당시에 한국 정부는 우리의 운동에 비협조적이었는데, 이제는 그들이 그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들에게 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미국도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섭리노정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모를 것입니다. 미국과 세계의 다른 모든 나라들도 한국 정부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늦기 전에 그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의 목표

우리는 단지 통일가만의 승리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탄세력을 정복하여 전세계를 구하는 승리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5년 또는 6년 안에 여러분은 오늘 밤 선생님의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전투는 일단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승리해야 합니다. 영육 아울러 그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라야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과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동기에 의해서 동원되어야 하고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싸움에는 많은 사고도 생길 것입니다. 그런 것에 직면하면, 여러분의 태도가 어떨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부정할 수 없고 우리의 운동에 등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은 지금이 공산주의에 대하여 싸울 수 있도록 모든 통일의 식구들을 동원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통일의 식구들도 이 싸움에 동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는 통일가의 발전을 위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여러분의 나라 미국을 구하기 위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이 싸움을 하기 위해 우리의 경제력과 인력 등 모든 것을 희생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계속 싸워야 합니다. 여러분, 이 싸움에 동참하여 싸울 각오가 되어 있어요?「예」

그런데, 그것은 대답처럼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일단 전투가 개시되면 신속하게 그 전투를 끝낼래요, 이와 같이 질질 끌래요? 어느 쪽을 택하겠어요?「가능한한 신속히요!」그래서 여러분은 맹렬히 공격해야합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몰아대야 하겠는데, 그러면 여러분 '아, 그것은 동양식이다. 그래, 그것은 동양식이야. 동양식!' 그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또 여러분은 그렇게 말할지 모르지만 여기에 서 있는 선생님은 동양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어느 한 국가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하늘의 방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룻밤 사이에 미국을 복귀하겠다는 각오를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러면 안 된다고 야단칠 것 같아요? 하나님은 너무 기뻐하실 것입니다. 미국의 전인구와 비교할 때, 우리 식구들 가운데 한 사람당 얼마나 많은 사람을 책임져야 돼요? 7십만 명? 여기에 있는 식구가 150명이라면 한 식구가 7십만 명을 책임져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 있어요?「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7십만 명이 아니라 7백만 명까지도 인도할 수 있는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 자신은 악의 세력으로부터 패배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안 하겠다면 선생님이 언제든지 일선에 서겠어요. 선생님은 일단 어떤 일을 시작하면 먹지 못하고 잠자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일을 할 것이며, 그 일의 목표를 실현시킬 것입니다.

선생님은 자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습니다. 그런 각오라면 못 할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용감한 용사가 되고 그 싸움터에서 승리자가 될 각오를 해주길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 있어요?「예」 여러분, 가겠어요?「예」 여러분, 싸우겠어요?「예」 여러분, 그걸 하겠어요?「예」 그렇다면, 우리는 분명히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밤 이와 같이 날도 좋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많이 모여 주신 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방금 나와서 소개한 사람이 무슨 영계의 계시니 영적인 사실들을 많이 말했기 때문에, 아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는지 모르겠어요. 잠깐 한마디 말씀해 드릴 것은 영적 세계의 모든 현상도 필요하고, 그러한 영계를 통해 계시를 받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런 일들은 일시적인 사실일 뿐이고, 그런 일들을 통해서 그것을 어떻게 체계화된 진리로서 우리 인간과 관계를 맺어 주느냐 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한 문제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이렇게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은 수십년 전부터 해 왔습니다. 오늘 저녁 처음으로 여러분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 진심으로 먼저 여러분 앞에 감사를 드림과 동시에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하나님은 실존하는가

오늘 저녁 여러분들 앞에 말씀드리려고 하는 제목은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입니다.

여기 뉴욕에 사는 분들은 '하나님' 하게 되면 하나님은 죽었다 하는 것을 연상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있는데, 있는 하나님을 가지고 죽었다고 한다면 이 이상 죄가 되는 일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데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것은, 있는 하나님을 죽었다고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말씀드릴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라는 제목을 두고 보더라도 여기에 사람이 없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과 하나의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고,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과 하나님이 합해 가지고 이루어지는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만일 절대자인 하나님이 혼자 있다면, 그 하나님이 있는 자리는 행복한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미국의 대통령께서 혼자 있으면서 기뻐하고, 웃고,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그 하나님이 혼자 좋아하고 기뻐하고 뭐 이런다면 그 하나님도 정상적인 하나님이 아닐 수 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 하나님이 아무도 없는 데서 그러면 이상하지만, 조그마한 상대 하나를 보고 하하하 웃으면서 좋아하게 된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을 보고 웃는다고 하더라도 그 웃는 하나님을 대해서 미쳤다고 한다면 미쳤다고 하는 그 사람이 오히려 미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 존재가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여러분 앞에 먼저 말씀 드리는 바입니다. 불행이니 비참이니 하는 이러한 말들은 상대가 없는 데서 시작되는 말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상대를 좋아한다면 이 세계에서 대관절 어떠한 존재를 좋아할 것 같습니까? 감각이 없는 광물이요? 아닌 것입니다. 식물도 아닌 것입니다. 식물보다는 동물은 조금 관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관심거리가 될 수 있는 그 중심 존재가 무엇이냐 하고 묻게 되면, 그것은 유치원생이라도 사람을 지적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까 이렇게 보면 사람은 이 피조물 가운데서 최대의 걸작품이라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대상을 찾아간다면 인간을 내놓고는 찾아갈 대상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복잡한 정세 속에서 금후의 미국의 운명이라든가 혹은 세계의 운명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이 있으면 좋겠느냐 없으면 좋겠으냐 하는 문제는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자가 있어 가지고 참은 참으로서 악은 악으로서 처단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분이 없다면 금후의 세계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는 것보다도 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성성상의 하나님

이 우주는 존재세계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인정 하고 있습니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힘이 있기 위해서는 힘이 먼저냐 존재가 먼저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힘이 없으면 존재도 없는 것입니다. 힘이라는 것은 작용을 하지 않고는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힘이 있기 전에 작용의 천상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작용을 하려면 거기에는 힘이 있기 전에 선행의 조건으로 주체와 대상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는 데서 작용이 벌어지고, 작용이 벌어짐으로 힘이 존속하는 것입니다.

힘이 있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주체와 대상인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은 서로 다른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들이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서로가 상대적 내용에 맞아야지, 그렇지 않고는 작용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이 작용하게 될 때는, 주체의 목적과 대상의 목적이 합할 수 있는 기점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작용을 안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으로 말하면 무슨 일로 외부에 나간다 할 때 자신이 손해보기 위해서 나가는 놀음은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 뉴욕의 타임즈 스퀘어에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집에서 나올 때 '나 오늘 일전이라도 손해보기 위해 집에서 떠난다' 하고 나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나올 때는 반드시 자기에게 이익될 수 있는 것을 바라고, 자기에게 플러스될 수 있는 무엇을 바라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친구 친구끼리 만나는 데 있어서도, 혹은 좋아하는 데 있어서도, 서로가 마이너스될 수 있는, 지금보다도 나빠질 수 있는 자리에서는 절대 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갑이라는 사람과 을이라는 사람 둘이 서로서로 합하는 데는 지금보다도 나을 수 있는 서로의 목적을 바라보기 때문에, 거기에는 작용이 벌어지고 하나로 합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힘이 작용하는 데는 이중목적, 즉 주체와 대상의 서로서로의 목적을 플러스시키는 그러한 것이 있지 않고는 하나로 합하지도 않고 작용도 안 한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원자면 원자를 두고 볼 때, 원자에는 양자를 중심삼고 전자가 돌고 있습니다. 그것도 역시 두 목적을 결합할 수 있는, 주고받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의 원자형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자의 목적과 양자의 목적을 겸한 목적을 중심삼고 합해 있는 것입니다. 크게 보면 하나님도 존재자인 것입니다. 하나님도 존재한다면 실존체로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역시 주체와 대상 관계가 되어 있어서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이중 목적성을 중심삼고 결합된 자리에 서지 않고는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도 결국은 주체성가 대상성이 합해져 가지고 하나의 하나님으로 계신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양심작용으로 본 신의 실존성

우리가 성경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는데 1남 1녀더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을 귀납적으로 추구하면 하나님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을 합한 분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혼자 있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대상을 필요로 해서, 이 세계를 창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어진 것이 하나의 남자고 하나의 여자인 것입니다. 우리 사람을 두고 봐도 사람에게는 마음과 몸이 있습니다. 이 마음과 몸이 주고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일 틀려지게 될때는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이 기울어진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것이 합해 가지고 올라가게 되면 기뻐진다는 거예요. 이것이 완전히 하나된 남자가 있다면 그는 완전한 남자일 것입니다.

만일에 절대자가 있다면 어떠한 남자를 요구할 것이냐? 그러한 남자를 요구할 것입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된 여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러한 여자를 만나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자의 위신을 두고 보더라도 사람을 만나는 데는 최고의 남자, 최고의 여자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늘이 찾기를 바라고, 하늘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사람을 하늘도 요구하는 것이요, 우리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보게 되면 아무래도 원인적인 존재가 아닌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결과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존재하고 안 하고를 자유로이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원인이 못 되니 결과적인 입장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적인 존재도 원이 절대적이면 절대적인 상대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인체의 신비를 통해서 본 신의 실존성

여러분, 쉽게 하나님이 있느냐 없으냐에 대해서 잠깐 말해 보자구요. 우리가 쭉 인류 시조를 찾아 올라가면 최초의 인류의 시조가 나올 것입니다. 그 인류 시조는 땅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 태어난 최초의 우리 인간이 땅에 태어나면서 태양이 있어서 눈으로 봐야 된다는 것을 그 자체가 알아 가지고 준비해 나왔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그 자체가 모르고 나왔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이 땅에 나와서 눈이 태양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그 태어난 자신은 몰랐다 하더라도 벌써 천체에 햇빛이 있어 가지고 볼 수 있는 것을 알고 눈이 그렇게 생겨난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을 볼 것 같으면 깜박깜박거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땅의 열을 받아 지고 눈의 수분이 증발함으로 말미암아 축여 줘야 할 것을 알기 때문에 깜박거리는 것입니다. 또 눈썹은 먼저가 있으니 이 먼지를 방지해야 할 것을 알고 이렇게 생각났습니까? 이것을 보면 인간은 박물학적, 천문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눈을 보라구요, 눈을. 눈은 벌써 땀을 흘릴 것을 알았다구요. 알고 이 귀중한 데에 이물질이 들어가면 큰일나겠기 때문에 방파제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이 서서 다닐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또 귀를 보라구요. 이것은 벌써 상대 방향으로 음파를 듣게끔 다 알고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코를 보라구요, 코. 코가 왜 요렇게 되어 있느냐 이거예요. 입에 땀이 들어가면 안 되겠기 때문에 전부 다 입가에 이렇게 방파제를 만들어 놓았다구요. 도 코안의 코털을 봐요. 전부가 알고 만들어 졌다는 거에요. 그거 자기 멋대로 그렇게 생겨날 수 있느냐 이거예요. 우리의 인체 전체를 보면 신비의 왕궁같이 되어 있는데, 이것이 그냥 그대로 될 수 없다구요.

인간이 날 때에 그 난 자기 자신들은 몰랐지만 그것을 안 분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문제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태어날 것을 모르고 태어났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분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로 본 인간의 본연의 가치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다면 우리 인간을 어떠한 자리에 두고 어떤 관계를 맺기 위해서 지었고,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자 하느냐를 알아보자구요. 하나님이 만약에 인간을 지었다면, 지은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 그러게 지어진 사람이라면 그 사람 자신에게도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지어진 사람의 목적과 지은 하나님의 목적이 따로 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필시 어떤 일치점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도 바랄 것이고 우리 인간도 바랄 것입니다.

여기 온 사람들 가운데 세계적인 대통령이 계시면 그 대통령보다도 낮아지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높아지고 싶으냐, 낮아지고 싶으냐? 높아지고 싶은 것입니다. 최고로 높아지고 싶은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분이 있으면 그분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라구요. 그 높은 사람을 중심삼고 하나되었다 해도 그보다 더 높은 사람이 있으면 그분과도 하나되고 싶은 거라구요. 이것은 남자나 여자나 그러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일지라도 그러한 생각을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천지를 창조한 절대자가 계시다, 하나님이 계시다 하면, 여러분, 그 하나님과 관계맺고 싶겠습니까, 안 맺고 싶겠습니까?

그 하나님을 점령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속에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점령하지 못할 때는 안심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하고 하나님 속에 하나밖에 없는 사랑까지도 점령하고 난다면 만사는 다 오케이라는 거예요. 그분의 사랑만 점령하는 날에는 그분의 것은 내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양심에 우리를 그곳까지 내몰아 주는 작용이 있는 것은, 그럴 수 있는 본래의 인간의 가치적 자리가 있기 때문에 그런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어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어떤 자리에서 사랑하고 싶겠습니까? 또 우리 인간은 어떤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겠습니까? 이와 같이 추구해 볼 때, 그 자리는 부자관계, 즉 아버지와 아들의 자리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에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인간에 있어서 타당한 말입니다.

아버지고 아들이면 상하관계입니다. 상하관계, 인간의 욕망을 두고 볼 때, 그 높은 아버지 자리에 나도 한번 가고 싶다고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아버지가 안 된다고 하면 큰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까지도 염려해 가지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마음, 즉 내적인 자리에 들어오고 우리 인간 자신은 바깥, 즉 하나님의 몸과 같이 되는 그 자리까지 우리에게 허락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동등한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보게 될 때 그 아버지가 귀하다면, 하나밖에 없는 그 아버지를 어디에 갖다 건사할 데가 없다는 거라구요. 저 먼데에다 두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나와 더불어, 나만이 만나고, 나만이 좋아할 수 있는 자리에 갖다 두고 싶어 한다는 거라구요.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어디 딴 데 두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나만이 알 수 있는 마음속에다 두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욕망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주인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 인간을 같은 자리에 두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서 사랑받을수 있게끔 해 주고,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에….

그다음에 세째번은 무엇이냐 하면, 가만히 보니까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한 능력을 가진 분이니 그 창조의 능력까지도 갖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고 난 후에, 우리 인간을 지어 놓고 보니 얼마나 귀여웠는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그것까지도, 그러한 묘미가지도 우리 인간이 느끼게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즉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받으려면, 하나님은 한 분 가운데 완전한 남성과 여성의 모습으로 계시므로 갈라져 가지고 태어난 이 완전한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상대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상대가 됨으로 말미암아 창조적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창조 능력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 아기를 낳아 가지고 하나님이 또 얼마나 기뻤다는 것을 우리에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 자녀에 대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은 제일 좋은 것을 우리 인간 앞에 다 퍼부어 주셨다는 거예요. 이렇게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어 행복과 만족 가운데 평화스러운 에덴에서 살게끔 우리 인간을 지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상대되는 입장에서, 갈라질래야 갈라질 수 없는 행복한 사람으로서 살아야 할 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종교의 사명

이러한 절대적인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물은 하나의 목적을 가져야 될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까 말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적인 상대 입장에 선 인간이 이 땅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없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지었으니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는 인간이 되어야 할 텐데, 우리를 보게 된다면 이율배반된 반대적인 목적의 또 하나의 길에서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사람에게 있어서 주체와 대상 관계로 보고 있지만, 그것이 아닌 것입니다.

양심작용이 내적인 플러스라고 한다면 이것(사심)은 또 다른 하나의 플러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반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서 있는 것이 이 지상에 살고 있는 우리 인생인 것입니다.

아까 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귀한 그 위업으로 주셨던 사랑의 이념, 절대적 가치의 이념을 상실해 버리고, 오늘날 우리 자체는 반대적인 두 현상세계에서 신음하고 사는 비참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장난 사람들이 되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절대적인 하나님은 인간을 상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인간을 그냥 둘 수 없어서 역사과정을 통하여 재생시키는 운동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수리공장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종교라는 것입니다, 종교.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것은 문화가 다르고 혹은 민족배경이 다른 기준에 따라서 수많은 종교를 세워 가지고 규합해 나오는 것입니다. 종교가 바라는 목적은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목적도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구하려는 종교가 아니고는 오래 남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종교 지도자들은 민족주의자가 아니고 세계주의자요. 하늘을 중심삼은 세계적인 운동을 제시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지금 4대 성인이라고 해서 네 사람을 꼽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 공자, 마호메트를 꼽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소크라테스를 꼽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철인이지 성인은 못 되는 것입니다. 지식을 가지고는 생명을 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늘만이 생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4대 성인이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전부 다 세계적인 대종 교의 종주(宗主)가 되어 있습니다. 하늘을 섬기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 성인은 존중시하면서 하늘을 무시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 중심종교는 기독교

그러면 이 수리공장과 같은 사명을 종교가 하는데, 하나님이 절대자라면 절대자가 제일 좋아하는 종교가 어떠한 종교냐 하는 것을 이 4대 종교 가운데서 우리는 골라잡아야 됩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유교를 보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것을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선을 행하면 하늘이 복을 주고 악을 행하면 화를 준다는 정도밖에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불교를 보게 되면 법적인 신은 인정하지만 인격적인 신은 모르고 있습니다. 또 회회교를 보게 되면, 이것은 기독교를 이어받은 중간적인 종교입니다. 이것은 코란경을 받든가 칼을 받든가 하라는 무력적인 종교입니다. 그런 것은 하늘이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단지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장한 내용이 다릅니다. 그가 나타나서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주장했습니다. 인류 역사상에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주장한 사람은 예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네 안에 있고 네가 내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고 나는 아버지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누구를 중심삼고 이것을 이루려고 했느냐 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루려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들이 되고 가지고한 몸이 되고 하나의 신랑 신부를 이루어 가지고 하나의 가정을 이루자는 것이 기독교의 목적인 것입니다. 아까 말한, 우리 인간 앞에 최고의 가치로 주어졌던 아들의 자리와 동등한 자리, 그리고 창조의 위업과 창조한 그 이후의 기쁨까지도 느낄 수 있는 가정적 기원을 예수님은 가르쳐 주고 간 것입니다.

기독교의 한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있었고 하나님 아버지와 한 몸이 되었지만 상대할 수 있는 신랑 신부의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그때 당시에 예수와 하나된 자리에서 예수님이 신부를 맞이할 수 있게 했더라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직접적 상대가 되어 가지고 창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을 가졌을 것인데, 그것을 못 이루고 갔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중심한 아들딸이 나와 가지고 가정을 이루어 새로운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새로운 세계가 되었더라면, 이 지구성은 곧 하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하늘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 사람들이 믿지 못하고 유대교인들이 믿지 못해서 예수가 죽었지, 믿었다면 예수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그때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예수를 믿어 가지고 하나님이 이상하였던 신랑 신부를 모시고 새로운 출발을 봤더라면, 이스라엘 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헤쳐져 가지고 2차대전 중에 6백만 명의 유대교인이 히틀러한테 학살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역사 이래 처음 나왔던, 하나님의 대상이 되고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자를 쳐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이상 큰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많이 왔다고 봅니다. 지금 믿고 있는 기독교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다가는 이스라엘 민족같이 헤쳐 버리는 일을 당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가지고, 다시 오시는 주님이 이러한 사명을 갖고 오시기 때문에, 다시 추방하는 일이 없게끔 단결해 기반을 닦는 운동을 하지 않고는 앞으로 이 세계의 전망은 비참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분이 와서 신부로서 혼인잔치한다는 것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어린양 잔치인 것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는 타락한 거짓 부모를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모델로서 생각하였던 선한 참부모는 안 나왔습니다. 이 계획했던 것을 끝날에 와 가지고 다시갖다 맞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참부모가 나와서 다시 낳아 주고 다시 접붙여 주는 일을 하지 않고는 세계의 모든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새로운 사랑의 이상세계 건설을 위해 출현한 통일교회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무슨 사명을 갖고 오시느냐? 타락하지 않고 선한 부모의 자리에서 완성을 보아야 할 참부모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참부모의 가정에서부터 인류가 다시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재림주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들이 이 땅 위에서 살다가 가정적으로 천국 가는 것이 행복이겠어요. 오늘날 기독교에서 믿듯이 그저 잘 믿어 가지고 어머니 천당가고 아버지는 지옥가고 따로따로 헤어져 가는 것이 행복이겠어요? 부모로부터 자녀에 이르기까지 전체가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가정이 들어가고, 종족이 들어가고, 나라가 들어가고, 세계가 다 들어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부모를 중심삼은 세계적인 가정이 앞으로 생겨나 거기서부터 인연되어 가지고 인류역사상에 없었던 새로운 사랑 이상을 중심삼은 새로운 문화와 전통이 이 지구성에 현현하게 될 때, 오늘날 이 복잡하고 죄악된 세계가 아닌 새로운 지상천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기서 여러분이 어떻게 수속을 밟아 넘어가느냐 하는 것을 세밀히 모르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내용을 가르쳐 주는 것을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방대한 내용을 이렇게 추려 가지고 짧은 시간내에 이야기하려니 비약도 많았고 무리된 것도 많았지만, 여러분들이 양해하시고 들어주신 데 대해서 진실로 감사를 드립니다.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5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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