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음력으로 1971년 10월 1일, 양력으로는 11월 18일입니다. 1960년에 이날을 설정하여 이 땅 위에 새로운 날을 선포한 지 만 11주년이 되옵고, 회수로는 12회가 되는 자녀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이날 하늘과 땅, 온 천주가 주시하는 가운데서 아버지 앞에 식을 치르고, 이 본부에 당신의 영광이 임하기를 바라면서 어린 자녀들이 이 시간 다시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같은 은사와 사랑으로, 아버지, 찾아와 주시옵고, 무한한 자비와 사랑과 긍휼로 길이길이 이들과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생명을 다하여 아버지 뜻을 받들고 수고하다가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애혼들이 지상을 통하여 탕감, 해원성사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또한 이땅 위에 있는 자신의 후손들을 동원하여서 하나의 세계로 갈 길을 모색 하기에 온갖 정성을 다 들이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거기에 대비하여 오늘날 지상에 있는 통일교단에게는 민족과 세계의 사명을 대표한 자리에 있어서, 당신이 요구하는 상대적 기준을 결정하여 온 천주적인 내적 외적 일치점을 결하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사명이 남아 있는 것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명을 짊어지고 수십여 생애노정을 통하여 이 길까지 나왔사옵니다. 아버지, 그간 염려하던 때도 많았사옵고, 어려운 고빗길도 많았사오나 당신이 가호와 사랑으로 지켜 주신 연고로 오늘 이 시간까지 남아지게 되었사오니, 그 은사를 감사드리옵니다.

이날은 1971년을 대표하는 날이옵니다. 저희들이 중요하게 지내는 4대명절 가운데서 이날이 금년에 마지막으로 맞는 명절이오니, 이해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 이 엄청난 역사적인 기원을 저희들이 부족한 정성을 모아 결정지었다는 사실은 비단 인간세계에서만 결정되어진 것이 아니라 영계에서도 결정되어진 것이기에, 영계를 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날을 추구하고 이날을 증거 하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여기에 모인 통일의 무리의 사명이 자못 크다는 것을 더더욱 느끼게 되옵니다.

이날을 맞게 되기까지 아버지께서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더우기 자녀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종의 종의 노정을 거치고 종의 노정을 거치고 양자의 노정과 아들의 노정을 거쳐 가지고 부모의 자리까지 올라오기 위해서, 저희 선조들이 역사노정에서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자녀의 명분을 지키지 못했던 에덴의 한을 풀기 위하여 수난길을 극복해 나와야 했던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저희들이 무관심한 자리에 처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적 사명이 저희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저희 목전에 다가온 세계적인 현실 사정과 사회 사조를 바라보게 될 때에, 긴박한 때에 놓여 있음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런 때일수록 저희들에 대한 신임도가 강하고, 저희들이 하늘의 사명을 감당해 주기를 얼마나 바라시는지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당신의 간곡한 심정이 저희의 배후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이날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통일의 무리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과 이 세계 앞에 엄숙히 제단을 쌓고, 하늘 앞에 심정의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실체의 제물로서 전체 앞에 탕감시켜야 할 엄숙하고도 역사적인 사명이 저희에게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가는 노정을 지금까지 지켰을진대 끝까지, 승리가를 부를 때까지 아버지께서 동참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을 사탄세계에 내놓지 마시고 수난길로 몰아쳐서라도, 아버지, 영광의 자리에서 승리의 한날을 당신과 같이 찬양할 수 있는 그때까지 참고 싸워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날 이곳을 향하여 마음을 다하여 정성들이는 무리 위에 무한한 사랑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일률적인 은사를 가하시어 생명의 인연을 붙들고 찬양할 수 있게끔, 아버지, 격려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전세계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많은 정성을 들인다는 소식을 받았사옵니다. 그들 위에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아버지, 외로운 자리에서 이날을 기억하고 마음으로 눈물 흘리며 통곡하는 자들이 있사오면, 거기에 당신의 무한한 사랑과 몇 배 이상의 은사를 가하시어 외로운 자의 입장을 제거시키시고, 강하고 감사한 은사로 품으시어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날 이 시간 부족한 정성을 가다듬으면서 아버지 앞에 추구하는 모든 일체가 아버지의 영광과 소망 앞에 어긋나지 않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만만세의 은사의 길이 저희들 가는 길 위에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여러분들이 다 알다시피 자녀의 날입니다. 이 땅위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고 수많은 종교단체가 있지만, 우리 통일교회에서 지키는 자녀의 날, 부모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과 같은 날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이 4대명절이 있는데, 1971년을 중심삼고는 오늘 자녀의 날이 마지막 명절이 되겠습니다.

종교를 중심삼고 복귀섭리를 해 나오신 하나님

여러분이 알다시피 인류 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의 뜻,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을 지은 목적을 성사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사하지 못한 그 뜻을 그냥 그대로 남겨 둘 수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류역사를 경과하면서 타락한 인간과 더불어 이것을 다시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타락하였던, 실패하였던 자리에 서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 번 성사시키기 위한 역사적인 싸움을 계속해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싸움을 하는 데 있어서 누구와 더불어 해 나오셨느냐 하면, 하나님을 신봉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싸움을 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과정에 있어서 그 싸움을 맡은, 그런 사명을 짊어진 무리가 누구냐 하면. 종교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종교 가운데는 여러 가지 종교가 있겠지만 그 중에도 중심적인 종교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한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자기를 제일 생각하는 사람은 부모 밖에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에게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혈통적 인연이 맺어져 있고, 부모의 심정적 모든 요인이 자식에게 결과되어 있습니다. 자식은 반드시 부모로 말미암아 결과되어 있기 때문에 심정의 인연을 갖춘, 그런 관계를 가진 부모는 자식을 생각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누구가 생각해 주지 않더라도 부모는 언제나 자기 자식을 밤이나 낮이나 사시장철을 개의치 않고 생각해 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개인 개인의 생활권내에서 잘 느끼는 바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적 인연이 연결될 수 있는 곳을 따라서, 하나님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심정적 인연이 연결되는 곳을 따라 가지고 복귀역사를 추진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구원역사를 추진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심정적 내용이 어떠한 종교에 더 많으냐, 더 간절하냐 하는 문제, 역사시대에 있어서 얼마만큼 심정적 내면을 책임지고 하나님 앞에 효의 도리와 충의 도리를 다짐해 나오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사랑의 하나님은 심정의 인연이 더 긴밀한 종교를 중심삼고 방향을 갖추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런 종교가 어떤 종교냐 할 때, 이것은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의 교리를 보면, 예수가 주장한 내용은 사랑입니다. 거기에 최후의 결론을 지어 놓은 것이 뭐냐 하면 신랑 신부의 이념입니다. 이 이념을 다짐 해 놓았습니다.

복귀섭리의 중심 종교는 기독교

예수 자신이 자기는 하나님 앞에 독생자라고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들이 있더라도 독생자를 먼저 사랑하고 나서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몽땅 그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다고 선언한 예수의 입장을 두고 볼 때에, 예수가 자랑할 수 있는 전폭적인 중심이 무엇이냐? 독생자라고 자랑한 그 자랑이 무엇이냐? 하나님 앞에 누구보다도 먼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요, 전폭적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표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특이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 인간들을 대해서, 자기를 신봉하고 따르는 신자들을 대해서 '나는 신랑이고 너희들은 신부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신랑 신부라는 것은 상대적 관계로서 인간세계의 신랑 신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신랑 신부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남성으로,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로, 이 땅의 상대세계를 대해서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중심존재로 자처하고 나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따르는 신자들을 대해서 신부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신랑 신부라는 정서적인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최고의 길이요, 단 하나밖에 없는 길이 아닐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형제의 인연을 말했습니다. 종이라고 하지 않고 친구, 혹은 형제라는 말까지 했던 것입니다. 친구와 형제라는 것은 세상의 인연을 따라 가지고 나타난 친구나 세상의 자기의 혈육의 인연을 통해 가지고 태어난 형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은 형제적 내연을 가지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볼 때,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주해 가지고 첫번째 아들이라고 말했고, 하나님을 위주해 가지고 그 아들로서 상대적 대상인 신부의 기준을 요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형제와 친구의 내연을 소개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중심삼고 그런 내용을 소개했다기보다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소개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이것은 그 어떤 종교가 갖지 못한 사랑을 중심삼은 핵을, 핵심을 제시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역사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었지만 과연 하나님이 역사노정에 있어서 중심적인 종교로 생각할 수 있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소개한 기독교 외에는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기독교는 발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탄은 극성맞게 반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과 불효하는 사람이 있다면, 효도하는 사람은 불효하는 사람에게 규탄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효자가 열심히 부모에게 효도하면 그 효도하는 조건들이 불효자를 규탄할 수 있는 재료와 요건이 되어 가지고 반대적으로 규탄해 버리기 때문에, 불효자일수록 효도를 하는 사람을 원수시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하나님 앞에 효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의 원수 되는 사탄은 누구보다도 그 사람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악한 세계에서 살면서 하나님 앞에 효도하겠다고 하는 무리들을 사탄 마귀는 그냥 둘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최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제일 극심한 죽음길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종교역사 가운데서 비참한 역사의 운명을 다짐하면서 그 길을 극복해 나온 종교가 어떤 종교냐 하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선열들의 순교의 피를 연이어 가지고 역사적으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 앞에 효도하는 사람을 어떤 사람보다도 싫어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서 어떠한 종교보다도 가혹한 시련과 핍박을 백방으로 가해 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역사과정에서 순교한 선열의 터전 위에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역사의 전체적인 섭리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할 수 있는 중심적인 종교는 기독교일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희생을 치러 나온 목적

그러면 기독교가 역사 가운데서 그런 희생을 치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그 시대에 있어서 개인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 목표하는 바는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최후의 한날에 사탄세계를 굴복시키고, 하늘을 원수시하고 반대하는 무리를 완전히 제압하고 완전히 굴복시켜 가지고 그들의 입을 통해서 '그대들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충성과 효성을 다했다'고 증거할 수 있는 그때를 바라보고 헤치고 나오는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증거하는 효자는 이 세계, 혹은 역사시대의 종말에 남아질 수 있는 효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부모가 자기에게 효도하는 아들을 들어 효자라고 말하는 부모가 많을 것입니다. 그의 친척들도 거들어 그를 효자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으례 역사적으로 효성의 도리는 그렇게 해야 된다고, 인륜 도덕을 통해서 그 환경에 있는 백성이면 백성의 무리가 그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효자라고 긍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진짜 효자는 어떠한 사람이냐? 그 사람과 원수가 되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내가 효자를 추린 다면, 나하고 원수이긴 하지만 그 원수의 아들인 아무개 외에는 효자가 없다'고 증거를 할 때, 비로소 그 사람은 세상에 없는 최고의 효자가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사탄세계에서 종교를 믿고 나오는, 기독교면 기독교인들 가운데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효자, 혹은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한 충신을 누가 결정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그것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결정했더라도 그 사람은 완전한 효자나 충신이 못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이라고 칭찬하더라도...

여러분이 욥에 대해서 알겠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좋은 입장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때에는 사탄이 참소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복을 줬으니 누구든지 하나님을 좋아하고 다 그럴 수 있다고 참소할 수 있다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사탄에게 맡겨 가지고 '너 어디 이 사람이 하늘 앞에 효자인가 아닌가 한번 테스트해 봐라' 해서 사탄이 '예, 알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해 가지고 갖은 수욕을 당하게 하고 역경에 몰아넣고, 이리 치고 저리 치고,이리 끌고 저리 끌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앞뒤로 가고, 좌우로 가고 아무리 죽을 고비에 몰아넣더라도 변함없는 정성을 다하게 될 때에는, 사탄이 '나는 손댈 수 없다' 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이여, 당신이 말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이 사람은 틀림없는 효자요` 하게 될 때에 그 사람은 세계적인 효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는 최후의 십자가의 길을 향해서 갈 때에 무엇을 붙들고 나갔느냐? 예수는 사탄 마귀까지도 부정할 수 없는 길을 가기로 다짐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를 원수들 편에 세워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시키게 했던 것입니다.이런 내면적 사연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기독교를 믿고 나오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효성을 다하는 진정한 효자의 도리를 이어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하나님 앞에 효자의 도리를 다하기 위하여 왔고, 하늘나라를 건국하기 위한 대표자로서 충신의 도리를 다하기 위하여 왔다가 생명을 바치고 갔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사상을 이어받은 기독교인이라면 그 범위를 좁힐 것이 아니라 넓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 나라를 중심삼고 증거되는 것보다도 세계적으로 증거되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그간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르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요, 하늘의 효자요, 하늘의 충신이다`고 증거할 수 있는 판도를 넓혀 왔습니다. 이것이 넓혀질 수 있는 싸움을 할 때, 기독교는 언제나 발전했습니다. 그런 투쟁이 벌어질 때는 하나님이 협조했지만, 안락한 자리에서 교권을 주장할 때에는 하나님이 언제나 협조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의미에서 오늘날 하나님이 바라는 효자, 하나님이 바라는 충신이 어디에 있느냐? 인류역사 과정에 그런 분이 있었느냐? 이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 가지고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주장하면서 독생자로서의 효는 했을는지 모르지만, 하늘나라를 세우는 데에 있어서의 충신의 책임은 다하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세우기 위한 싸움의 무대에 선 예수님은 한마디도. 한 가지의 행동도 하지 못하고 갔습니다. 또한 인류를 초월하여 세계를 하나님 앞에 바치기 위해서 세계를 대해 '하나님 앞에 세계는 이러해야 된다' 하고 만민을 대해 '너희들은 내가 가는 길을 본받아라' 하며 세계를 위해 사탄과 대결하여 그 사탄이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충신이라고 공증할 수 있는 무대에 서 봤느냐? 못 서 봤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무대에도 못서 봤고, 세계의 무대에도 못 서 봤습니다. 개인으로서 독생자로서 하나님 앞에 효자의 자리에는 서 봤지만, 나라를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하는 충신의 자리에 서 봤느냐 할 때 못서 봤다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자녀가 되는 것이 문제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딸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 다음에는 뭐냐? 하나님이 진짜 사랑할 수 있는...여러분, 사랑도 많다는 거라구요. 타락권내를 보면 사탄 마귀도 있고 하나님도 있고 그 다음에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가만 보면 말이예요. 사람들이 가정을 중심삼고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사람 끼리끼리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마귀와 짝해서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요, 하나님과 짝해서 사랑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이 세 종류의 사랑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사람들 끼리끼리 사랑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또, 사탄 마귀와 짝이 되어 사랑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구요. 다만, 하나님과 더불어 사랑할 수 있는 길만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의 기준을 생각지도 않고 생활하고 있는 것이 이세상 사람들입니다. 또,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뭐 예수 믿고 천당 가면 되지'라고 합니다. 문제가 심각 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부모와 사랑의 인연을 못 가진 사람들이 클 수가 있어요? 그런 사람은 고아라구요. 컸다 하여도 고아예요. 부모 없는 사람은 길러졌다 하더라도 고아와 마찬가지입니다. 고아가 아니라는 특정적인 결정이 내려지려면,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 아버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밤이나 낮이나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랑권내에서 자라게 될 때, 그는 부모를 가진 행복한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 부모는 밤이나 낮이나 자식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거두어 가는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부모의 사랑 권내에 있기 때문에 그는 고아보다 행복하다는 거예요.

또, 부부면 부부를 중심삼아 가지고 행복한 아내라든가,행복한 남편이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부부의 사랑을 중심삼은 사랑권이 자기의 활동무대와 더불어 일상 전체의 분야에 관여해 있고, 그 사랑권이 거두어지지 않고 늘 같이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 그 부부는 행복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서로서로가 사랑하는 형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형님이 가는 곳에는 동생이 같이 가야 된다구요. 사랑의 인연이 같이 맺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동생을 사랑하는 형님이 있으면 동생이 가는 곳에는 형님이 언제나 같이 갈 수 있고, 어디를 가더라도 거기에 같이 머무를 수 있게 될 때, 그 형제를 서로 사랑하는 형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가 있다면 그 애국자는 어떤 사람이냐? 사랑하는 마음이 국가와 더불어 늘 있는 사람입니다. 비참한 사람이든 잘사는 사람이든 혹은 사고를 낸 사람이든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나라의 국민 전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언제나 떠나지 않는 생활을 하는 사람을 애국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인류시조가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습니다. 사랑했다가는 야단나는 거예요. 참소를 받는다는 거예요. 이것이 인간의 타락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려면 거기에 맞는 내용을 갖추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이렇게 된 것이 타락입니다.

아무리 인간들이 가정을 가졌다 왜도 하나님은 그 가정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인간들이 나라를 이루어 놓았다고 해도 그 나라의 주권을 하나님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세계를 이루어 놓았다고 해도 그 세계에 하나님의 사랑이 같이할 수 없습니다. 그 주권과 더불어 하나님이 같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면 거기에는 어떤 사랑이 같이하고 있느냐? 사탄의 사랑이 같이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사랑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개인이 살고 있는 환경이라는 것은 사탄이 사랑할 수 있는 권내에 싸여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탄의 사랑권...

사탄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하나님이 오른쪽으로 가려고 하면 사탄은 왼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이렇게 엇갈리는 입장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일을 하라고 하면 사탄은 나쁜 일을 하라고 합니다. 나쁜 것을 사랑하라는 거라구요.

요즈음 젊은 청년남녀들이 카바레를 찾아 다닌다든가 댄스홀을 찾아 다니고 있습니다. 10대 청소년들이 그러고 있다구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서 자기 본심이 기뻐하느냐 이거예요. 자기 본심은 싫지만 할 수 없이 밀려 다니는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위협이 있고 강압이 있고 공갈이 개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안 가면 자기 생명을 노린다는 거예요. 그러한 사회적 환경이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에 얼마든지 있는 것을 여러분이 엿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지 않습니다. 그 악하고 나쁜 결과가 일반화되어 가지고 국민 사상이 거기에 침식당하게 될 때, 그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악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을 전부 다 방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상의 길을 제시해야 되는데, 제시할 길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큰일났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양심과 배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느냐? 양심과 화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은혜를 체험하게 되면 그래요. 은혜받는 곳에 가게 되면 마음이 괜히 봄날을 맞이한 것 같다는 거예요, 봄날. 봄날이 무엇과 같으냐고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하면 이래저래 좋더라고 하며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구요. 어떻게 보면 봄날은 여름날보다도 가을날보다도 안개가 자욱이 낀 것 같고 말이예요. 또 아지랭이가 피어 오르는 것을 보면, 하늘과 땅이 마주 닿은 것 같아 답답한 기분이 든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오히려 봄날은 겨울같이 시원한 맛이 없고 그저 답답한 기분만 든다는 겁니다. 앞산도 잘 안 보이고 사방을 둘러봐도 트인 곳이 없이 포위된 것 같은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볼 때, 봄날이 뭣이 좋겠느냐고...

그렇지만 봄날은 좋습니다. 왜 좋으냐? 새로운 생명이 싹트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모든 운동이 거기서부터, 입체 세계를 향하여 동작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체의 가치를 자기 나름대로 드러내고 자기 본연의 미를 스스로 드러내면서, 앞으로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출발을 가름하는 때이기에 봄날은 좋은 것입니다.

봄날에는 꽃이 핍니다. 꽃은 반드시 향기를 동반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원리 술어로 말하면, 다른 계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입체적인 수수작용이 벌어지는 때입니다. 또 그것이 일방적이 아니라 사방으로 융통될 수 있는 때입니다. 이렇게 느낌에 있어서 사방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내 몸이 들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내 몸이 무엇인지 모르게 고차적인 분야에 감전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봄은 좋더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은혜받는 자리에 가게 되면 여러분의 마음은 무한히 올라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본심이 요구하는 것은 인간 사랑을 표준해 가지고 인간 사랑권내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인간이 그 아버지의 사랑권내에 젖어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권내에서 느끼며 살게 하려는 것이 본래 하나님이 인간을 지은 목적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러한 생활을 할 수 있게끔 부여받은 본성이 있기 때문에 양심은 그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소성(素性)이 자기 마음에 접하게 되면 폭발적인 충격과 감동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사의 자리는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가야 할 자리는 어떤 자리이냐?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 자리를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뜻을 이룬 자리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그 자리를 밟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넘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되고 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밤낮으로 자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경지에 들어가야 됩니다.

자유와 행복과 반대되는 환경 가운데 태어난 인간

본래 인간은 이 땅에 태어날 때 사방으로 자유로운 환경과 인연이 맺어져야 했습니다. 그러한 사람으로 태어나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타락한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와는 정반대 되는 환경에서 나면서부터 고통받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말이예요. 나오자마자 얼굴을 찡그리고 우는 아기들을 볼 때 타락한 후손이기 때문에 저렇구나, 만약에 인간이 타락하지 않아서 태어날 때에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웃으면서 우는 놀음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 때가 있어요. 어머니가 아기를 낳은 직후에 곡소리를 내는 아기를 볼 때, 그 애기가 울 때 심각하다구요. 손발을 전부 다 위로하고 그저 휘젓습니다. 날마다 그래요. 아주머니들 잘 보라구요. 발이고 무엇이고 하늘을 들이 차고 다 휘젓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우는 소리를 들을 때 타락한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항거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하늘을 끌어당기고 오라고 손짓하고 하는 기분이 안 든다구요. 울긴 울더라도 우는 모양이 좀 달라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아주머니들은 기도하라구요. 아기가 태어나서 울 때 기분 나쁜 울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기분 좋은 울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끔….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세상 사람들이 우는 걸 가만히 보면 말예요. '너, 왜 눈물 흘리니? 하고 물으면, 전부 다 자기 때문에 찔찔 짜고 있다구요.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우리 색시 때문에, 우리 남편 때문에, 우리 형님 때문에'라고 하는 사람 봤어요? 눈물 흘리는 걸 보면, 그 본바닥을 가만히 보면 '내가 섭섭하니까 눈물 흘리지' 하며 전부 다 자기 타령이구만요.

자, 그러면 왜 눈물의 역사가 자기 타령으로부터 시작되었겠느냐? 눈물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어떻게 되었느냐?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어머니 아버지 때문에 눈물 흘리는 거야. 그렇지요? 어머니, 아버지' 라고 할 때 '그럼, 그렇고 말고' 그러면 나쁘겠느냐는 거예요. '내가 눈물 흘리는 것은 형님 누나 때문에 눈물 흘리는 거야. 형님 누나 그렇지? 할 때 그렇고 말고' 한다면 그 눈물이 좋은 것이예요, 나쁜 것이예요? 어때요?

만일에 그러한 울음으로 세계가 꽉 찼다면 여러분은 그 세계에서 살고 싶어요, 안 살고 싶어요? 그거 생각해 봤어요? 만일에 그런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 한복판에 들어가서 한번 살아 봤으면 좋겠다고 할 거예요.'내가 어머니 아버지를 위하고 사랑하는데 왜 내 사랑을 안 받아 줍니까? 하며 울어 보라는 거예요. '내가 형님 누나를 사랑하는데 왜 몰라줘?' 할 때 그 몰라준다고 하는 것은 자기에게 귀결되는 것이지만, 하여튼 이 세상에는 그런 종류의 울음도 없다는 겁니다. 전부 자기 때문에 눈물을 찔찔 짜고 있습니다.

난 하나님이 죽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여러분, 기쁠 때도 눈물이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나옵니다」 슬플 때는 눈물을 버젓이 흘립니다. 슬플 때는 목을 놓고 버젓이 울지만, 웃음이 터져 가지고 눈물이 찔찔 요? 아주 웃음이 지나치게 되면 눈물이 나옵니다. 그렇지요? 그 눈물이 나올 때는 웃으면서 '아, 이놈의 눈물이 안 나왔으면 좋겠는데 왜 자꾸 나오느냐' 한다는 거예요. 눈물 나오는 걸 싫어하면서도 웃으면서 눈물 흘리는 놀음이 벌어진다구요. 자, 웃으면서 눈물 흘리는 것은 좋은 눈물이예요. 나쁜 눈물이예요? 좋은 눈물인 거라구요. 좋은 눈물인데, 사람들은 이 눈물이 나오는 것은 싫어하고 슬퍼서 우는 눈물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이상하다는 거예요. 이런 등등의 문제가 엇갈리는 것이 참 많아요. 그러나 이번 시간은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러면 눈물의 역사를 만들어 낸 조상이 누구냐 할 때, 그 조상이 누구예요? 여러분들도 눈물 흘리지요? 또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눈물 흘리는 것을 봤어요, 안 봤어요? 봤을 거예요. 여러분의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증조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지가 눈물 흘리는 것은 못 봤지만 눈물 흘렸겠어요, 안 흘렸겠어요? 안 흘렸다고 하는 사람은 정신이 조금 모자라는 사람이라구요. 다 흘렸지요?

그러면 맨 종지 조상으로 올라가면 눈물 흘리게 된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눈물 역사의 조상은 누구냐? 제일인자가 누구냐 하면 아담 해와라구요. 그 아담 해와의 눈물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심은 대로 거두어지기 때문에, 뿌린 대로 심은 대로 눈물을 흘려야 되기 때문에, 만민도 그렇게 울어야 된다는 결론밖에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눈물을 흘리게 된 동기

그러면 아담 해와가 어떻게 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느냐? 이게 문제예요.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보고 좋아서 '아이구 아버지, 참 좋소' 하고 눈물을 흘렸느냐는 거예요. 그런 눈물을 서너 방울이라도 흘려 봤느냐 이거예요. 울기는 그만두고 눈물을 한 방울이라도 흘려 봤어요. 안 흘려 봤어요? 어때요? 우리 아주머니들은 정서적인 면에서 그저 쩍해도 울고 쩡해도 울고 쨍해도 울잖아요? 울기의 선수, 챔피언은 대개 남자들보다 여자들입니다.

아담 해와가 기뻐서 눈물을 흘려 봤겠어요, 어떻겠어요? 생각해 봤어요? 만일에 하나님을 만날 적마다 기뻐서 눈물 흘렸다면 그들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꽁무니를 따라다녔을 거라구요. '아, 아버지 못 갑니다. 난 안 놓겠소. 어딜 가요? 그랬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사탄이 따라다니고 그럴 시간이 있었겠어요? 뭐 천사장이 와 가지고 뭐 이러고저러고 할 여유가 있었겠어요? 그럴 틈이 있을 수 없다구요. 안 그렇겠어요? 그런데 빈둥빈둥 자기 멋대로 돌아다니다가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될 때도 눈물 흘렸을 것입니다. 쫓겨날 때 눈물 흘렸겠어요, 안 흘렸겠어요? 여기 뭐 잘사는 아주머니를 한번 비유해 봅시다. '우리 집 남편이 나를 진짜 사랑하고 우리 아들딸이 나를 사랑하니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할 수 없이 남편에게 쫓겨나게 됐다면 행복하겠어요? 불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에게 쫓겨나서 섭섭하지만 기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곳이 있다 하게 될 때는 불행하지 않다구요. 그 슬픔보다도 기뻐할 수 있는 한 곳, 기쁨의 눈물을 지을 수 있는 곳을 가진 여인이라면 그 여인은 아무리 쫓겨나더라도. 아무리 당장은 비참하더라도 비참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이 눈물을 흘릴 때는 자기를 위해 흘리지 말아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눈물을 흘리게 된 동기는 무엇이냐 하면, 자기 배짱을 내밀려고, 자기 배를 채우려고, 자기가 높아지려고 하다가 눈물을 찔찔 흘린 거라구요. 아주머니들, 이것을 잊어버리지 마세요. 아담 해와는 자기를 중심삼고 깃발을 들고 나와 가지고 춤추다가 그렇게 됐다구요. 그래서 종교세계에서는 '교만하지 말라. 자기를 들고 나오면 큰일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간단하다구요. 자기를 들고 나왔다가는 틀림없이 조상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슬픈 눈물에 싸여 가지고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는 판국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개인적으로 우는 판국이 벌어지고 그 다음에는 장례식에서 우는 판이 벌어집니다. 거기에서는 공동적으로 '어엉 어엉' 하고 우는데, 그것도 뭐 엉터리로 운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말이예요. 그것은 예외로 하고 그렇게 공동적으로 우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죽든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뭐 체신이고 위신이고 생각하지 않고 네 다리를 동동 구르면서 마구 우는 패들이 있다구요. 그 다음에는 울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눈물 흘리는 사람이 되라

그런데 종교 믿는 패들은 별 패가 되어 있다구요. 괴상한 패라구요. 이들은 그저 엎드리기만 하면 운다구요. 울긴 우는데, 다르다는 거예요. 우는 것이 다릅니다. 예를 들면, 통일교회 패들은 쩍하면 웁니다. 우는 데는 물론 회개하니까 울겠지요? 회개하고 울 때는 하나님이 가만히 보시며 '응, 너 그렇구나' 하시는 것입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릴 때는 하나님이 돌이켰던 얼굴을 싹 바로잡으시고 감았던 눈을 뜨시고 '응, 그래' 하며 웃으십니다. 이럴 때가 회개할 때라구요. 회개하는 눈물을 흘릴 때는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런 회개를 하고 나서 '하나님, 내가 이제 회개했으니 높아야 되겠소' 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야 너는 또다시 제 2의 아담 해와 같은 조상이 되겠구나' 하면서 또 눈을 감아요. 눈을 감기 마련이라구요. 그렇게 되면 아담 해와와 마찬가지가 아니예요. 알겠어요?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해와도 자기가 높아지겠다고 하고 아담도 자기가 높아지겠다고 해 가지고 하나님을 섭섭하게 만들고 자기들도 울고 그렇게 망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것이 싫다고 해 가지고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겠소. 하나님의 뜻의 길을 가겠소'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회개해서 하나님이 눈을 뜨셨는데, 거기에서 다시 '난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알았소. 그러니 하나님도 나를 위하는 하나님이 되어야 되겠소'라고 하게 되면 하나님은 후퇴하신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자리는 타락한 아담 해와의 자리와 딱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죽을 죽을, 망할 망할, 욕 중에서도 세상에서 제일 나쁜 욕의 레테르를 전부 갖다가 붙이더라도, 그렇게 욕을 먹고 그렇게 매를 맞고 그렇게 찢기더라도 나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뜻을 이루시는데 개인적으로 이루지 마시고 세계적으로 이루소서'라고 하면 하나님이 '야 이녀석 쓸 만한데' 그런다는 거예요. 내가 알아보니까 그렇다고 해요. (웃음) '저는 죽을 녀석이기 때문에 당신은 나를 대하실 수 없지만, 당신께서 수고하시고 고생하실 것이 있으면 나를 패 먹든, 잡아 먹든, 독수리 밥을 만들어도 좋소. 백번 천번 세계를 위해서 당신의 수고의 길 앞에 있어서 나는 비료가 되고 거름이 되겠소'라고 하면 하나님의 눈이 번쩍 뜨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면 회개하고 기도하는 장본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굴 위한 거예요? 하나님을 위한 거라구요. 그러니 타락한 인류의 조상 아담 해와와는 다릅니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인류의 종자로 남기려고 하신다는 거예요.

예수가 어떤 양반이냐? 이제 돌아가서, 예수가 어떤 양반이냐 하면 예수님이 눈물 흘렸어요, 안 흘렸어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눅 10:15)"하고 탄식하였고, 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를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를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마 23:37)"하고 탄식하면서 우셨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입장에서 예수님이 눈물지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상에는 예수님이 울었다는 기록은 두 군데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못해도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에 나갈 때에 울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울음이 자기를 위한 울음이냐, 남을 위한 울음이냐? 이게 문제예요. 예수는 자기를 위해서 울지 않았습니다. 내가 죽게 되면 이스라엘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나라를 위해서 울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위해서 울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위해서 울게 될 때, 이 세계에 있는 인간들, 나사로같이 사망권내에서 부활의 손길을 바라는 만민을 대신하는 입장에서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생명이 다하는 죽음길, 최후의 절벽에 부딪히는 자리에서도 '내 생명이 스러지더라도 당신의 소원을 성취하시옵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비참하고 극한 자리에서도 '당신의 승리의 한날을 위해서 나는 가나니, 내 변하지 않는 효성의 마음을 받아 주시옵소서' 하며 눈물을 흘리고 가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다르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자기를 위해 울지 말고 남을 위해 울라

아무리 미녀라 하더라도 시집을 가 가지고 남편에게 '당신은 나를 데려올 때 사랑해 주기로 해 놓고 왜 사랑 안 해주오. 기분 나빠요' 하면서 찔찔 짤 때는 뉘시깔을 빼 버려라 이겁니다. 여러분에게 자극적인 얘기를 하려면 뉘시깔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극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냥 눈이라고 해서는 자극이 안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런 뉘시깔은 즉석에서 빼 버려도 괜찮습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도 '나를 사랑해 주고 출근해야지요' 하면서 사랑의 표시도 안 해주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것도 안 된다구요. 우리 아주머니 들도 생각해 보라구요. 만일 '아, 나는 괜찮습니다. 당신이 하시는 일, 나라를 나보다 더 사랑하십시오'라고 말하는 여자가 있다면 살림살이는 재미없을 것입니다. '무슨 마누라가 저러냐'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는 사람이 볼 때는 '야, 그 여편네 훌륭하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 남자들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남자들은 그저 결혼하게 되면 전부 자기만 위하라고 그럽니다. 여기 너희들 이번에 축복받았지? 「예」 이 집사 보고 자기만 위하라고 그러지 않아? 소질이 있다구. 소질이 있어. 그래요, 안 그래요? 내가 볼 때 소질이 있다구요. 눈, 코를 보면 알아요. 내가 그런 거 볼 줄 안다구요. (웃음) 주의하라구.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기를 위해 눈물을 쫄쫄 짜는 사람은 절대 싫어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먹을 것을 나누어 줄 때에, 자기만 더 달라고 아무리 울어 보라구요. 옛날에 내가 참 많이 울어 봤어요. 어디 동정 해주나 안 해주나 하면서 한번 심술을 부려 보는 거예요. '나에게 더 줘야지, 내가 이집에서 제일 잘난 사람인데 좋은 것을 주더라도 날 먼저 줘야지' 하면서 땡강을 부리는 거예요. 울어도 시시하게 몇 시간 우는 것이 아니라 울었다 하면 하루가 보통입니다, 하루. (웃음) 그렇게 울어 보는 거라구요. 그렇게 울다 보면 나중에는 눈물도 안 나고, 콧물도 나오다가 나올 게 없어지면 나중에는 목이 아파요. (웃음) 배도 아프고, 안 아픈 데가 없는 거라구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되겠지만, 할 수 없다구요. 솔직하게 얘기를 해야지요.

그렇게 울고 있으면 아침에 들에 나갔던 누나가 점심 때쯤 되어 가지고 밥을 하러 들어옵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누나가 와서 나를 위로하고 달래겠지. 누나가 와서 달래면 첫마디에 스톱해야지' 하고 눈치를 쓱 보면 '저 애는 버릇이 저런 걸. 뭐' 그럽니다. (웃음) 호외꾼 취급받는 거라구요. 선생님은 우는 데 대해서는 잘 압니다. 연구를 많이 했어요. 울어도 보통 하루를 울기 때문에 별명이 '하루울이'였습니다. (웃음)

우는 데도 그냥 앉아서 울지 않는다구요. 드러누워 가지고 울기 때문에 뒤통수 머리털이 다 빠지고 발뒤꿈치의 가죽이 다 벗겨지도록 우는 거예요. (웃음) 울어도 그렇게 울어 봤다구요. '어디 한번 울어 보자, 피가 나오도록 결사적으로 울어 보자' 해 가지고 우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울어 봤자, 그 보답이라는 것은 처량하더라. (폭소) 자기를 위하여 울어 보니까 처량하기 짝이 없더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반대적으로 울어 보는 거예요. 그래서 형님하고 동생하고 형제끼리 싸움을 하게 되면 말이예요. 형제들이 많으면 싸움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싸움을 해야 발전하는 것입니다. 싸우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구요. 싸우고 나서 수습을 못 하게 되면 나쁘지만, 수습할 수 있는 환경이면 싸움도 해봐야 된다구요. 나도 싸움을 많이 해봤다구요. 나는 누님들이 많다구요. 8남매니까 판국이야 잘되어 있지요. 그러니 싸움도 해보는 거라구요.

형님과 누나가 싸움을 하지요? 그러면 눈치를 싹 봐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서 보고를 하는 거예요. 형님하고 누님하고 뭘 어떻게 해서 싸우는데. 이렇게 이렇게 됐기 때문에 형님이 나쁘고 누님이 나쁘다고 한바탕 일러바치는 거예요. 그러면 형님이 와서 '야, 이녀석아 내가 그랬으면 그랬지, 네가 그렇게 고자질해야 되겠어?라고 하면서 꼬집고 치고 합니다. 그러면 엉엉 우는 거예요. 한번 울어 보는 거라구요. 그렇게 울 때는 당당합니다.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아요. 얼마나 마음이 통쾌한지 몰라요. 한바탕 울어 보는 거예요. 그렇게 울면 울수록 형님은 야단이라 구요. 울면 울수록 야단이기 때문에 원병을 보내는 거예요. 다른 형제를 보내 '야, 가서 동생 좀 달래 봐라'고 합니다. 그래도 그것을 안 듣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어머니 아버지까지…. 자꾸 울어대는데 별수 있어요? (웃음) 그래도 안 되니 그 다음에는 형한테 자복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형님 누나한테 자복받아 봤습니다. 그때의 통쾌감, 그것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위해 운다는 것은 참 멋지구나. 자기를 위해서 울게 되면 답답하고 형편없구…. 그거 말할 수 없다구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그거 이해돼요? 남을 위해 울면 편당이 벌어져서 천하가 다 내 판국이라는 거예요. 옛날 같으면 우는 소리가 듣기 싫다고 고개를 돌리고 할 텐테, 그렇게 울게 된 것을 아는 집안 식구들이 볼 때 '그거 울만하지, 울만하지'라고 한다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도 와서 '야야, 울지마라' 하며 동정하는 거예요. 이건 간단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내가 이런 길을 나서게 된 것도 '하루울이' 덕인지도 모릅니다. 우는 데 있어서 자기를 위해서 우는 사람은 동정 못 받습니다. 그러나 남을 위해서 우는 사람은 동정 받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세계와 인류를 위해 희생의 길을 가야 할 통일교회

통일교회에서는 지금까지 울고불고 별의별 놀음을 많이 했습니다. 그것은 누구 때문에 그랬느냐? 통일교회 자체 때문에 그랬다면 통일교회는 망하는 거라구요. 그것은 동정 못 받아요. 그렇지만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울고불고했다면, 하나님도 나중에 와서는 '야, 네가 잘했다. 어쩌면 그럴 수 있니. 네가 우는 것은 하루만이 아니라 천년도 울만하지'라고 하면서 위로해 주고, 다른 사람들도 와서 전부 다 이렇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게 맞아요, 안 맞아요? 맞을 것 같아요, 안 맞을 것 같아요? 「맞을 것 같습니다」 맞을 것 같아요? 「예」 안 맞으면 안 맞다, 맞으면 맞다, 둘 중에 하나 해야지요. '맞을 것 같아요, 알 맞을 것 같아요' 하는 건 낙제라구요.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그래야지, 맞을 것 같다는 게 뭐냐구요.

타락한 인간들은 말이예요. 자기를 위해서 나발을 불고 우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을 위하고, 인류를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종족과 그런 종족을 위하는 가정과 그런 가정을 위하는 개인은 적습니다. 개인으로 세상에 없는 눈물을 흘리고 가정으로 세상에 없는 눈물을 흘리고, 종족으로 민족으로 국가로 세계로 세상에 없는 눈물을 흘리는 패가 나오거든, 그 패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나는 갖고 있습니다. 자, 그것이 틀렸어요. 안 틀렸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이것을 알았다는 거라구요.

예루살렘에 가 보면, 선생님은 겟세마네 동산이 깊숙한 산골이고 호랑이가 드나들고 늑대가 들락날락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예루살렘에 가보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옛날에는 그랬을는지도 모르지만…. 그 겟세마네 동산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보면 한 오백 미터밖에 안 된다구요. 성경을. 보고 겟세마네 동산이 깊숙하고 은근한 곳인 줄 알았더니 가서 보니 예루살렘 성전에서 바로 보이는 곳이더라구요. 여기서 저기 있는 목욕탕 거리밖에 안 된다구요. 그리고 성경에 시온 산성이니 뭣이니 기록된 곳도 다 20리 안팎에 있습니다. 성경 66권은 20리 안팎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지고 뭣이고 가지 말라구요. 가 보면 기가 막히다구요. 몇천 년 역사를 기록한 것이 조그만 판국이라는 거예요. 전부 다 앞동네 뒷동네에서 벌어진 일들이예요. 기분이 나쁘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예수님은 혼자서 안타까운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겠어요? 예수님이 '아이고 내가 집에서 천대받아 가지고 눈물 흘리지' 하면서 눈물을 흘렸겠어요? 아닙니다. '내가 천대받는 것이 극심하더라도, 나는 일신의 고통과 핍박을 받을지언정 이 나라의 해방과 이 세계의 해방이 있으면 된다. 내 눈물은 핍박받는 나를 위한 눈물이 아니라 해방의 그 나라와 그 세계를 위한 눈물이다' 하면서 흘렸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눈물을 흘린 그런 뜻과 같은 뜻을 가진 주의와 단체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결국 자기가 사랑받기 위해서 눈물을 흘렸느냐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 눈물을 흘렸느냐 하는 문제를 볼 때, 자기가 사랑받기 위해서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고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또 피를 흘린 것도 자기를 위해서 피를 흘린 것이 아니고 남을 위해서 피를 흘린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패는 망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망하지 않을 자리에서 살다가 죽어 간 사람들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남을 위해서 산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천당가겠다고 하는 심보는 틀렸다는 거예요. 그런 기독교인들은 뿌리를 뽑아 버려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가게 하자'는 운동을 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그러한 개인주의적 사상을 초월하여 가지고 자기를 희생시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여 천국 보내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신앙관인 것입니다. 다르다구요.

눈물 흘려도 시시하게 자기가 구원받기 위해서 눈물 흘리지 말라구요. 그런 눈물의 기도는 안 해도 되는 거예요. 일생 동안 자기를 위해서 기도 한마디 안 하고 눈물 한 방을 안 흘리더라도, 남을 위해서 일생 동안 기도하고 남을 위해서 일생 동안 눈물 흘리고 간 사람은 천국 중에서도 제일 상층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럴 것 같아요, 안 그럴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들이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내가 알고 보니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어려운 문제와 자기 가정의 어려운 문제를 두고 볼 때, 자기 가정보다도 교회가 보다 공적이기 때문에, 교회의 어려운 일을 붙들고 밤을 새워 기도하는 것은 용허하더라도 자기 가정의 어려운 문제를 중심삼고 밤을 새워 기도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 나라의 어려운 문제를 중심삼고 기도하는 것은 허락되지만, 통일교회면 통일교회 종단의 어려운 것을 중심삼고 기도 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런 기도 안 해요. '내가 핍박을 받으니 하나님이여, 나를 치는 이 원수 들을 전부 다 목을 잘라 주소서' 하는 기도는 안 해요. '나를 치는 원수도 앞으로 이 나라를 위할 때는 같은 백성이요, 한 민족이요, 동족이니, 그때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해야지' 그래야 참 애국자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관이 다르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자체를 위해서는 눈물 흘리며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지 말고 통일교회보다 높은 이 나라를 위해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눈물 흘리고 희생하라는 거예요. 이렇게 될 때에, 대한민국이 남아 있는 한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은 대한 민국만을 위해서 있지만, 앞으로 통일교회가 이 나라 이 민족을 하늘 뜻 앞에 세우게 되면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눈물 흘리는 때는 지나가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세계를 위해서, 세계 인류를 위해서 눈물을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보다 차원 높은 입장에서 눈물을 흘리고 정성들이는 무리는 그 시대에는 망하는 것 같고, 그 시대에는 연약하고, 그 시대에는 핍박받으며, 그 시대에는 그늘에서 살아가지만 그들이 위하고 눈물짓던 그러한 상대 세계가 올 때는 그들의 이름이 천상천하에 들리기 마련입니다. 만일 지상에서 그 이름을 알지 못하여 들려지지 않았더라도 천상세계에 가서는 틀림없이 들리기 마련입니다. 오늘날의 지상세계는 일시적이요, 천상세계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 영원한 세계에서 들리기 마련이니, 그 세계를 위해서 이 세상이야 알아주건 말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는 것이 도인들이 가는 길입니다. 참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생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에 있어서 핍박을 받고 조롱을 받던 사람들 가운데에 성인 군자 혹은 위인들이 많은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자녀의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자격자가 되려면

그러면,자녀의 날과 그 사명은 무엇이냐. 오늘날 타락한 인류를 바라 보시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 그 하나님이 찾는 사람, 하나님이 만나고 싶은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 것이냐? 타락하여 눈물을 흘리던 아담 해와와 같은 사람일 것이냐? 그 눈물은 누구를 위하여 흘린 눈물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그들은 잘못된 눈물을 흘렸으니 이제는 좋은 눈물, 정상적인 눈물을 흘려야 되겠다구요. 자기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세계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후손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자기 일대를 위해서 눈물 흘리고, 자기 일대의 행복을 찾아가다가 망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자기 일대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눈물을 흘려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자녀의 날을 맞는 의의를 다짐하게 될 때. 여러분이 자녀가 되고 싶다면 어떠한 자리에 서야 되겠느냐?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려 봤느냐? 하나님이 하신 수고 앞에 대신 수고하기 위해 사지가 찢기우는 길이라도 찾아가려고 발버둥이쳐 봤느냐? 못 해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라는 그 자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그런 공적인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서 '아버지여, 당신의 아들인 나를, 혹은 우리 조상을 잃어버렸을 때 당신의 마음에 얼마나 슬픔이 사무쳤습니까? 또한 그 후손을 통하여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당하시던 수욕과 고통과 극난한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라고 위로해 드리면서 무한히 동정의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권한으로 온 세계와 사탄까지도 심판해 버릴 수 있는 하나님인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지지리 수고하는 입장에 서서 손을 댈래야 댈 수 없고, 하나님 자신이 가져야 할 환경을 갖지 못한 채 고독단신으로 사탄 앞에 참소받고 사탄세계에 발판을 몽땅 빼앗겨 가지고 신음하시는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하게 될 때,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입장을 동정하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려 봤느냐? 문제는 여기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사적인 눈물을 버리고 후손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공적인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입장에서 하나님을 대해 나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자녀의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자격자가 될 것이 아니겠느냐? 자녀로서의 자격을 가져야만 자녀의 날을 축하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 지금까지 눈물을 흘렸습니다. 인간이 매일 눈물만 흘리고 살 수 있겠어요? 안 그래요? 그런데 인간이 눈물을 흘리게 된 동기가 무엇이냐? 우리 통일교회 원리가 가르쳐 준 것과 마찬가지로 눈물을 흘리게 된 동기는 자기들 멋대로 사랑의 길을 찾아가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부모 친척이 다 있는 명문가에서 태어난 아들딸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멋대로 나가서 행동하다가 잘못하게 되면. 누구도 거기에 대해 절대로 보장을 안 해줍니다. '이놈의 자식 같으니라구. 네 멋대로 하더니 꼴이 잘 됐다' 하며 눈앞에 얼씬도 못 하게 하고 쫓아냅니다. 그렇지만 부모가 거들고 일가 친적, 동네 전체가 거들어서 결혼을 시켜 뒀는데도 불구하고, 만일 결과가 좋지 않게 됐다 할 때는 그의 어머니 아버지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서러움을 당하게 될 때는 나보다 먼저 울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어머니 아버지가 먼저 울어 줄 것입니다. 혹은 삼촌이나 사촌, 친척들이 전부 다 동정할 것입니다. 자, 여러분 어떤 것이 지혜로운 것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원칙을 따라서 움직여야 됩니다. 원칙을 따라서 움직이는 입장에 섰다 하게 되면 아무리 외롭더라도, 아무리 외로운 자리에 섰더라도 자신의 울타리가 자기를 사랑해 줍니다. 그렇지요? 내 사랑의 울타리가 외로움에 비례하여 환경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다시 소생하는 것입니다. 부활하는 것입니다. 부활하는 데도 옛날보다 못한 자리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자리로 부활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외로운 자리, 슬픔의 자리, 당장 깨질 것 같은 자리이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거기에는 큰 사랑이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혼자 멋대로 할 때에 사랑이 있어요? 사랑의 환경이 있어요? 없다는 거예요. 사방을 둘러봐도 살풍경이라구요. 전부 다 저주하고 원망하게 되어 있지, 동정받는 환경을 못 가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들은 언제나 동정적 환경을 생각하면서 가려 가는 것입니다. 동정 가운데는 물론 역사적인 선조들의 동정도 동정이지만 하나님의 동정, 사회의 동정, 혹은 후손들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인연을 갖고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 같은 양반은 그렇게 살다 간 사람입니다.

진실로 사람을 사랑해 보지 못한 예수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진짜로 사람을 사랑해 봤어요? 사랑해 봤다고 생각해요? 예수님이 어머니 아버지를 진짜로 사랑해 봤어요?

그걸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래요? 해봤다고 생각해요? 또 예수님한테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으면 그들을 사랑해 봤어요? 그 다음에 형제들이 있는데 그들을 사랑해 봤어요? 형제들의 핀잔을 받았습니다. 동생들이 예수에게 '형님이 나타나기를 바란다면 예루살렘에 먼저 올라가지 왜 이렇게 틀어박혀 있느냐'고 하면서 핀잔했습니다.

예수님은 30여년의 생애 동안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눈이 있어도 바로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바로 듣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참고 가면서 후대의 길을 닦기 위해 묵묵한 가운데서 바쁜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때를 맞아 길을 나섰지만 그 도상에서 사랑할 수 있는 제자들을 찾았어요? 3년 동안 제자들을 끌고 다니면서 별의별 일을 다 했지만, 그저 예수님을 이용해 먹으려고 했지 예수님편에 선 사람이 누가 있었어요?

예수님이 사지사판에서 그들의 사랑을 받았다면 예수님이 그들을 대해 '나는 너희들과 같이 있고 싶지만 너희들은 나와 같이 있고 싶어하느냐?고 했겠어요. 그런 걸 두고 볼 때, 여기에는 상충적인 요인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서 얼마든지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마에 수건을 동이고 세수대야에 물을 떠놓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면서 '너희들도 이렇게 하라'고 한 것은 제자들이 귀여워서 그랬겠어요? 제자들 끼리 모여 앉으면 그저 선생님이 누구를 사랑하고 뭐 어떻고 어떻고, 이런 수작을 하고 있으니까 예수님이 직접 모심의 도리, 받듦의 도리를 가르쳐 준 겁니다. 그걸 볼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다구요.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수제자도 나중에는 전부 다 도망갔지요? 수제자들이 예수를 왜 사랑하지 않았느냐고 하겠지만 보라구요. 예수님이 부활해 가지고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고 한 번 묻고 두 번 묻고 세 번 물을 때, 베드로는 '내가 이 사람들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 것을 선생님이 아시나이다' 라고 세 번씩이나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이 한 번 묻고 두 번 묻고 세 번 물을 때, 베드로가 미욱했기 때문에 세 번씩이나 대답했다구요. 지혜롭고 약삭빠른 사람은 한 번 묻고 두 번만 묻게 되면 벌써 고개가 딱 수그러졌을 거라구요. 그걸 볼 때 베드로가 미욱했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은 것은 과거에 네가 나를 세 번씩이나 배반하지 않았느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 번씩이나 묻는데도 버티고 서서 대답을 했다는 것은 베드로가 미욱했다는 것입니다. 곰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지혜롭고 약삭빠른 사람이 아니라구요. 두번째 물었을 때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예요. 또 모르지요, 베드로가 '나는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제자들이 그렇게 썼는지. 그러나 세 번씩이나 버티고 서서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걸 보면 베드로는 미욱하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들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정한 역사를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눈을 부릅뜨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다구쳐 묻는다면 얼굴을 떨구고 허리가 구부러지고 다 이렇게 되게 되어 있지, 얼굴 들고 허리를 펴고 버티고 서서 '내가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는 줄을 선생님이 아시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여기 남자들 가운데 그럴 수 있는 사람 있어요? 그걸 보면 베드로가 미욱하다는 거예요.

그걸 볼 때,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했어요? 부활해 가지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아, 내가 너희들 때문에 찾아왔다, 죽고 나서도 한이 맺혀서 너희들을 찾아왔다'고 말을 했다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했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만나자마자 제자들을 들이 갈긴 것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했어요? 또 어머니를 대해 '여인이여,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고 들이 제겼다는 거라구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와 가지고 자기 어머니도 들이 제기고, 자기 제자들도 들이 제겼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누구를 사랑했겠어요? 막달라 마리아를 사랑했겠어요? 어림도 없다는 거라구요.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나아갔을 때, 예수님은 '나에게 손대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를 사랑했다면 그랬겠어요?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간 분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이 찾아오는 곳

예수님이 살아 생전에 사랑하지 못한 사람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느냐? 믿는 기독교인 가운데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오겠다고 한 거라구요. 다시 오는 데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계적으로 오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고, 가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고, 종족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고, 국가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예수님으로 오실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오실 수 있게끔 이런 놀음을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전부 다 자기 배통들을 끌고 다니면서 하늘 뜻을 이용해 먹으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전부 다 배때기를 갈라 버려야 됩니다. 그런 요사스런 무리가 오늘날 세계 교회를 지배하고 있다구요. 그놈들의 다리를 잘라 버려야 된다구요. 내가 그런 녀석들한테 지금까지 천대를 무지무지하게 받았다구요. 보라구요. 그래, 기성교인이 왔거든, '우리 교회 목사님은 예수님이 사랑하고 말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오늘 자녀의 날이라고 해서 나와 말씀할 텐데 한번 가보자 해서 온 사람 있거든 손들어 봐요, 내가 하나 물을 테니. 있어요, 없어요? 있다면 내가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놓을 거라구요. 수작들 그만두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찾아온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신랑으로서 신부를 찾아오는데 한 개인만을 찾아오고 싶겠느냐, 신부의 어머니 아버지, 삼촌, 사촌, 팔촌, 일족뿐만 아니라 씨족, 민족 등의 배경을 중심삼은 일등 신부를 찾아오고 싶겠느냐? 아니면 아무도 없이 혼자 달랑달랑 거지 모양으로 되어 가지고 지게꾼한테 업혀 오는 신부를 찾아오고 싶겠느냐? 어느 신부를 만나고 싶겠어요? 우리 아주머니들, 어때요?

어느 기독교인들은 '아이고 주님이 언제 오실지도 모르는데….'라고 합니다. 그래 예수님은 나라가 전부 틀거리가 되고 교회가 전부 틀거리가 되고, 또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을 다 갖추고 거기에서 사랑을 받고, 그중에도 안팎으로 다 갖춘 신부를 원하겠어요, 아니면 미인이요 학식도 갖췄는데 혼자 달랑달랑해 가지고 눈만 깜박깜박하는 신부를 원하겠어요?「다 갖춰 가지고….」 그것은 물어 볼 것도 없다구요.

교회가 서로 싸움하는데 거기에 예수님이 와요? 나라가 둘로 갈라져서 싸우는데 그 나라에 예수님이 와요? 그 가운데 오게 되면 복잡한 문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서로 싸우지 않나요? 싸워요, 안 싸워요? 싸우더라도 선생님이 척 나타나면 다 그만두지요? 기성교회 교인들이 싸울 때 목사가 나타나더라도 그 싸움은 그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투덜투덜하더라도 선생님이 '왜?' 하면 뚝 그치지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죽기 전에 얼른 일을 해야 된다구요. 문제가 크다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찾아오실 수 있는 곳이 어디냐? 목사가 단상에서는 큰소리치고 집에 들어가서는 여편네한테 '뭐 우리 목사는 따라지다. 왜 그렇소' 하는 말을 듣게 되면 안 되는 거예요. 목사 부인은 교회 권사보다도 목사를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가짜라구요. 이런 말을 하니까 어떤 사람은 벌써 척 어머니를 쳐다보고 있구만. (웃음) 만일 자기 부인이 그렇지 못하다면 교육을 해야 한다구요. 눈물이 쭉 빠지도록 교육을 해야 됩니다. 시시한 남자로 나타나면 안 된다구요 자, 교회가 하나된 곳에 주님은 와야 된다, 이렇게 되지요? 독수리가 어떻다고 했습니까?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인다, 냄새 나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인다, 은혜가 있는 곳에는 싸움을 하라고 해도 싸움을 하지 않고 하나된다, 그거 아니예요. 그렇지요? 그러므로 싸우는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뜻을 기대할 수 있다? 「없다」 없다. 예수님이 기대할 수 있는 교회도 그렇지만 나라가 싸울 때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남북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는 한국으로 주님이 올 수 있다, 없다? 없어요? 「….」 (웃음)

통일식구들을 고생길로 내모는 이유

세계가 지금 싸우고 있는데 그 세계가 점점 달라져 가고 있습니다. 자, 이거 어쩌자고 이러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어제의 원수가 오늘은 친구가 되어 손목을 잡으니 이것은 미치지 않았으면, 지랄이 아니면 무슨 천지 개벽이 벌어진 거라구요. 나는 그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래서 남북한이 교류해 가지고 가족찾기운동을 하자고 하는 거예요. 가정이 싸워서는 안 된다는 바람이 부는 거예요. 동독과 서독이 서로 유통하지요?그렇지요? 만통이 벌어지는 거예요. 서로 통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아래에 있는 사람은 위로 올라가고 위에 있는 사람은 아래로 내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제일 꼴찌가 일등 되고 일등이 꼴찌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와 같이 이상한 때가 됐다구요. 보라구요. 20년 전에는 중공이 유엔으로부터 침략국이라고 규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20년도 채 안 된 지금은 그 중공이 유엔에 가입해 가지고 주체국인 중국을 축출해 버렸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여러분이 살림살이 하는 가정에 있어서도 말이예요. 자식들이 어머니 아버지 좋다고 하다가 축출할 때가 올 것 같아요, 안 올 것 같아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내가 좋다고 하던 남편, 아내를 축출할 때가 올 것이냐, 안 올 것이냐? 내가 사랑하던 아들을 축출할 때가올 것이냐, 안 올 것이냐? 보라구요. 세계가 그러니 가정에서도 그럴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아무리 여러분이 싫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축출당할 때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축출당하는 데도 망할 곳으로 축출당하는 패가 있는가 하면 흥할 곳으로 축출당하는 패가 있습니다. 흥할 곳으로 축출당하는 패가 하나 정도는 있을지 모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축출당하는 것은 다 나쁜 것인데도 불구하고 도리어 그 화가 복이 된다는 말이 있지요? 그럴 수 있다구요.

그러면 통일교회가 대한민국으로부터 축출당했어요, 안 당했어요? 기성교회로부터 통일교회가 축출당했어요, 안 당했어요? 당했지요? 또 통일교회로부터 문선생이 축출당했어요, 안 당했어요? (웃음) 대답해 보라구요. 「안 당했습니다」 안 당했지만 축출하려고 하는 패들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그거 있는 거라구요. 그런 패가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그런 패가 있고 그렇지 않은 패가 있게 될 때, 그런 패보다도 그렇지 않은 패가 높다는 거예요.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같은 자리에 있으면 하나님도 둘을 못 다루겠으니, 하나를 택하기 위해서는 둘 중에서 하나를 보다 높은 간격으로 싹 올려놓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거기에서 일등한 사람에게 상을 주든가 뭘 주든가 해도 불평이 없게끔 하기 위해서 그런 놀음도 시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을 사랑하오, 안 하오? 사랑한다는 말을 쓴다고 해서 옛날에 벌거벗고 춤췄다는 그런 관념을 가지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그런 생각하지 말고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오, 안 하오?「합니다」 자신들이 없구만. 자. 사랑합니까, 안 합니까? 「합니다」 뭘 사랑해요? 나 안 사랑해요. (웃음)

그래서 여러분을 축출해야 된다구요. 축출해야 하는 역사시대가 왔기 때문에 여러분을 쫓아내야 되는 거라구요. 선생님은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지리리 고생을 시키려고 한다구요. 보라구요. 언제는 축복해줘 가지고 잘살라고 하더니... 쟁개비 짜박지니 무슨 뭐 사발 짜박지니, 또 옷이니 뭐이니 해 가지고 이제부터는 축복받은 가정이 잘살아야지 하면서 한 가지 두 가지 준비해 가지고 발 붙일랑 말랑 하는데, 선생님이 댕그랑댕그랑 다 뒤집어 엎는 거예요. (웃음) 축출하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축출하고, 그 다음에는 가정적으로 축출하고, 그 다음에는 종족적으로 축출하는 거예요.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가정들은 통일종족이라구요. 그래서 통일종족을 축출하는 거라구요. 그거 좋소, 나쁘오?

축출하게 되면, 앞으로 이 민족과 대한민국도 세계 앞에 축출당할 때가 온다구요. 그런 때가 지금 오고 있다는 거예요. 남북한을 중심삼고 통일을 논할 수 있는 때는 이미 지나가 버리고 만다구요. 그런 때가 오거들랑 통일교회는 축출당하는데 무엇을 위해서 축출당하느냐? 얻으러 가는 거라구요. 개인을 축출하는 것은 가정을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가정을 축출하는 것은 종족을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반대라구요. 이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가정을 축출하는 것은 무엇을 찾아오기 위해서라구요? 「종족을 찾아오기 위해서입니다」 종족을 축출하는 것은 무엇을 찾아오기 위해서라구요? 「민족을….」 그 다음에 민족을 축출하는 것은 무엇을 찾아오기 위해서라구요? 「국가를….」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이 축출당하는 단계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저쪽에서는 내쫓으니 우리는 맞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겠지요? 그게 보니까 맞은 것이 아니라구요.

지금까지 아시아를 움직이던 나라들이 아시아에서 축출당하는 입장에 섰으니 우리는 아시아를 맞을 수 있는 입장에서 축출당하는 것입니다. 즉. 아시아를 맞기 위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반대지요? 반대라구요. 알겠어요? 여러분은 반대 입장에 선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나라로부터 축출당한 것이 나쁜 것이냐? 기성교회로부터 축출당한 것이 나쁜 것이냐? 형제 자매, 혹은 친구들로부터 축출당한 것이 나쁜 것이냐? 그것이 나쁜 것 같았지만, 축출당하는 반면에 여러분에게는 더 좋은 형제와 친구를 갖다 줬습니다. 갖다 줬어요, 안 갖다 줬어요? 「갖다 줬습니다」통일교회에는 더 좋은 친구, 더 좋은 형제를 갖다 줬다구요. 형제 아닌 형제를 갖다 줬고, 더 좋은 가정을 갖다 준 거라구요. 자, 통일교회에는 축복가정이 있지요? 그렇지요? 「예」 이거 대답들이나 잘하지. 눈만 꺼벅꺼벅하고…. 그래, 더 좋은 가정이 있어요? 「있습니다」 저기, 황서방, 있어, 없어?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그래,누가 여러분에게 가정을 갖다 줬어요? 누가 갖다 줬어요? 임자네들이 갖다 줬어요, 하나님이 갖다 줬어요? 「하나님이요」 하나님 봤어요? 봤어요, 못 봤어요? 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갖다 줬는지 알아요? 그건 누가 갖다 줬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갖다 줬지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럼 통일교회 문선생은 어디에서 가져 왔느냐? 도둑질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건 강도라구요. 알겠어요? 하나님으로부터 가져 왔다면 거기에는 수난이 있었을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을 하늘나라에서 가져 왔는지 사탄세계에서 가져 왔는지 선생님도 모르겠소' 하면 여러분이 감정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연구해야 된다구요.

확실히 알고 가야 할 복귀의 길

지금 세계가 이렇게 엇갈려서 돌아가는 거예요. 어떤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선인지 악인지 헤아릴 수가 없게 됐다구요. 그렇지요? 여기에 통일교회가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새로운 두각을 나타내 가지고 소용돌이치는 이 세계 가운데 쓱 끼게 됐다구요. 돌아가는 거라구요. 이것을 어디로 뽑아낼 것이냐? 저 지옥 밑창으로 내려갔다가는 용솟음쳐 가지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쫓겨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많이 올라왔지요? 앞으로 대학가는 우리가 아니면 수습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요, 정세를 보는 최고급에 있는 사람들의 판단입니다. 알겠어요? 이제는 기성교회가 아무리 통일교회를 반대해 봤자 그것은 행차 후에 나팔 부는 격입니다. (웃음) 행차 후에 나팔 부니 그거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예요. 나팔 불려면 들리게끔 불어야지요. 행차 후에 나팔 불고 있어요. 기성교회가 아무리 콧방귀 뀌어도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그런 채찍과 비난 비소에 쓰러져 갈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면 출발도 안 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요즈음 내가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위급한 정세를 수습하는 데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모르지만 말예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연구해 볼 문제라구요. 여러분은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선생님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얼마만큼 갔는지 모르고 있다구요. 봄철인지, 여름철인지, 가을철인지, 겨울철인지 모르고 있다구요.「주님 말씀에 아버지 하는 일을 아들이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잠자는 아들이니까 모르지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데 왜 모르냐구요. 아버지를 따라다니지 않는 아들이니 모르지 따라 다니면 왜 모르겠어요?

요즈음에 우석대학을 우리가 인수한다고 하니까, 큰 파문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석대학만 인수하게 되면 일시에 재벌로 등장하는 거예요. 그걸 사려면 당장에 현찰로 한 십억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문 선생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십억을 쓸 줄은 안다구요. (웃음) 하나님이 보실 때, 천상천하에서 돈 쓸 줄 아는데 제일 가는 사람 이라면 그것을 주시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난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이 나팔 불고 춤추신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면 좋겠지요? 그러면 된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밤잠을 주무시지 않고 운동을 하시게 되면 된다는 거예요. 그 참 멋지지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요? 「예」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렇게 산다구요.

내가 지금까지 '된다. 된다' 하는 것을 끌고 나왔어요? 다 '안 된다. 안 된다' 하는 것을 끌고 나왔지요? 지금가지 따라 나온 녀석들 중에서 내 배포에 시원하게 한번 상대된 녀석이 없었다구요. 쑥덕쑥덕 쑥덕공론이나 하고 뭐 어떻고, 안 될 것을 가지고 저런다고 하다가, 쓱 되면 '후-후 -후' (웃음) 그러고는 '선생님은 우리와 다르니까 그렇지 뭐'라고 합니다. (웃음)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구요. 입이 시퍼래 가지고 변명은 잘해요. 선생님이 여러분하고 다르다고 하지만, 다르기는 뭐가 달라요? 하루에 밥 세끼 먹는 것은 마찬가지라구요. 숨쉬는 것도 마찬가지라구요. 생각이 좀 다르지요. 그 생각은 딴 생각이 아닙니다. 자기를 위하는 생각이 아니라 남을 위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 차이라구요. 여러분하고 다른 것이 없어요. 결론지어 보면 간단하다구요.

울되, 자기를 위해서 우는 눈물을 보고는 동정도 하지 말싸. 울되, 남을 위해 우는 눈물을 보고는 같이 울싸. 이것이 지금까지 역사를 가려 나오는 하나의 가름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사랑을 받되, 자기를 위한 자리에서 사랑에 도취하는 사람은 망하는 거예요. 자기는 사랑을 못 받아도 남을 사랑하겠다고 도취하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2천년 동안 찾아 나오는 복귀의 길이요, 구원의 길입니 다. 그렇지 않아요? 그리워하면서 살 때가 좋은 것입니다. 사춘기는 모든 분야의 그리움이 내 사방을 에워싸는 때이기 때문에 그때가 좋다는 거라구요.

한 사람을 희생시켜 여러 사람을 살리는 것이 뜻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은 지금까지 양지에서 못 살아 보고 그늘에서 살아온 사나이라구요. 안방에서는 큰소리하지만, 여기 찾아왔으니 내가 큰소리하지만 어디 공석에 나가서는 큰소리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큰소리할 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하려고 하면 잘한다구요. 그러나 그렇게 하게 되면 여러분이 몽땅 빼앗겨 버린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거지 떼거리들 같은 여러분들을 전부 다 모아 놨기 때문에, 그렇게 해 놓는 날에는 여러분은 가다 말고 중간에서 전부 빼앗겨 버리고 만다구요. 안 그렇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들과 이마를 맞대고 약속을 하고 나왔지만 그 약속을 세울래야 세울 수 없는 처량한 판국이 돼 버리고 만다구요. 그러니 할 수 없이 여러분을 끌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도까지 해보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도 안 되게 될 때는 할 수 없지 않느냐 이거예요. 안 되게 될 때는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때는 바꿔치는 거라구요.

그래서 요즈음에 우리를 반대하던 기성교회에 주력하여 공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하는 기성교 목사들을 공청회에 참석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반대하던 자들한테 한번 지도를 받아 보라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반대하는 목사 장로들을 통일교회 패에 처넣어 가지고 통일교회 패들로 하여금 명령하게 할 것입니다. 이런 말 들으면 기분 좋지요? 좋아요, 나빠요? 그렇게 될 것이라는 거예요. 이것이 선생님의 관이예요. 또 선생님이 그렇게 만들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 교인보다 기성교회 목사들을 더 사랑했다는 조건도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래저래 뜻이 있어 그런 놀음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통일교회를 위해 십년 동안 고생하다가 이렇게 죽게 됐는데, 우리를 반대하는 목사들은 쇠고기 갈비에 늘어지게 먹여 주면서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에게는 보리밥 한 숟갈도 못 먹게 해준다. 그게 뭐야?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 통일교회 문선생이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했습니다」 그럼, 그런 말을 하는 통일교회 교인은 잘했어요, 못했어요? 「못했습니다」 대답은 올바로 하는구만. 잘했다고 하면 대가리를 까려고 했는데…. 내가 통일교회 전도사들하고 책임자들하고 무슨 원수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요셉이 자기 형제를 도와 주게 될 때 말이예요. 그동안의 역사를 형제들에게 말해 준다면 형제들은 요셉 앞에서 얼굴을 못 대하는 거라구요.

많은 무리가 사지사판에 서 있으니 한 사람을 희생시켜서라도 많은 무리를 해방시켜야 되는 거라구요. 그것은 당연지사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더욱이나 교회 책임자들을 깨깨 고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디 몇 사람이나 남아지나 보자는 것입니다. 이 길을 도피해 가는 사람들을 내가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수룩하게 보이지만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저 녀석은 이렇게 하고 있구만….' 다 알면서도 잘 속아 주는 것입니다. 심통을 다 들여 다보고 있지만 어수룩하고 모르는 척하고 잘 속아 준다구요. 그것도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는 양보해 주는 거라구요. 그 다음에는 소리도 없이 잘라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통일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도 많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왜 떨어졌는지 모르지요. 그 정도 되면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이곳은 공판정인 동시에 심판정이라구요. 무서운 곳입니다.

많은 도인들이 겨루기 위해 나한테 왔다가 몽땅 들려 넘어갔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모르지요? 한다 하는 도인들이 와서 설치면 박자를 잘 맞춰 줍니다. 잘났다고 하는 녀석에게는 '어디 끝까지 한번 해봐라' 하고 잘 분석, 비판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하면 최후에 가서 못 하게 되어 꺾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선생님한테는 여러분이 모르는 그런 전법이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내 손아귀에서 녹아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런 걸 알아야 돼요.

'나'라는 것이 이 세상에서 제일 원수입니다. 나 자신이 원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는 누구 때문에 통일교회 못 가겠다'는 말을 듣지 말라구요. 자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못 가는 것입니다. 누구는 뭐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남의 말 하듯이 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대하지 말라구요. 요사스러운 것들입니다. 그런 사람 만나 가지고 뭐가 나오나 보라구요.

자녀의 날을 선포하기까지의 복귀과정

자, 그러면 여러분 오늘이 자녀의 날이니만큼,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자녀의 날에 대해서 잘 알지요? 본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이 기쁨을 가질 수 있는 날, 하나님의 날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한꺼번에 시작되는 거예요. 그리고 인류의 시조 아담 해와는 인류의 선한 부모로 등극하게 되는 거예요. 선한 부모의 자리가 결정되면 부모의 날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부모의 자리에서 사랑을 갖추어 가지고 아들딸을 낳게 되면, 그 아들딸은 태어나자마자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부모의 사랑권내에 누울 수 있는 아들딸이 되는 거예요. 그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아들의 날이요, 딸이 태어나자마자 딸의 날이라구요. 그 다음에 만물은 그 자체가 사랑받는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화합하여 얽히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만물 자체는 그 아들딸을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한꺼번에 되어야 할 것인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다 갈라졌다구요. 인류의 시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된 부모의 날을 유린해 버렸고, 참된 자녀의 날을 유린해 버렸고, 참된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날을 유린해 버렸고. 하나님의 날까지도 유린해 버렸습니다. 이것을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날에서부터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가려 가지고 1967년을 지나 비로소 1968년 정월 초하루를 기해 가지고 하나님의 날을 책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상에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통일교회 하나님의 날이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렇게 무가치한 날이 아니예요. 자녀의 날이 그렇게 무가치한 날이 아니라구요. 자녀의 날이 나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했느냐? 타락한 모든 것을 복귀해야 했습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심정적 문제에 걸렸고, 실체적 문제에 걸렸고, 그 다음엔 천사장한테 걸렸습니다. 그렇지요? 타락한 순서를 보면 천사장이 문제가 되어 있고, 그 다음에는 몸뚱이와 마음을 통해서 심정에까지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전부 다 걸려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3단계가 전부 걸려 있다구요.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일치되는 심정을 가지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는 심정부활의 날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거 알아요? 그런 말은 들어 봤죠? 저기 있는 이영감 알아, 몰라? 「잘 모릅니다」 말은 들었지? 「예」 심정부활의 날이 선포 안 되고는 안 됩니다. 타락한 순서의 거꾸로, 심정부활이 먼저라구요. 타락은 사탄과 몸뚱이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심정이 피해를 입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노정에서는 반대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심정적 부활을 먼저 선포하고 실체부활을 선포하고 그 다음에는 천사장을 선포해야 되는 것입니다. 천사장 선포는 뭐냐 하면 세례 요한적 입장의 대표자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모르는 가운데 이런 일을 다 해 나오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아들 앞에 완전히 일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 앞에 신부의 사명을 해야 할 기독교

오시는 주님 앞에 해와 될 수 있는, 신부 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거꾸로 여자가 남자를 끌고 간 것이 타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신부는 남자가 아닙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이 '아, 신랑 되시는 주님이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하지만 주님이 누구한테 와요? 목사한테 와요? 목사가 여자예요? 그들은 운세도 모르고 그래요. 생각해 보라구요. 만일에 남자가 신부여서 신랑 되시는 주님이 신부를 찾아와 가지고 결혼식을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이 '예수, 네가 일등 신부 맞이했으니 축복해 줘야 되겠다. 어린양 잔치하자' 그러시겠어요? 주님이 신랑으로 오신다면 여자가 필요해요, 남자가 필요해요? 「여자요」 남자가 필요하지요? (웃음)

남자가 필요한 것은 신랑의 들러리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남자가 나타난다면 큰 태풍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지요? 태풍이 인다구요. 종은 결혼식장에 못 나타나는 겁니다. 그렇지요? 들러리 남자라면 결혼식장에 나타날 수 있지만, 만일 다른 남자가 결혼식장에서 서성거렸다가는 큰 사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목사들은 신부가 아닙니다. 목사들은 신랑 들러리로 못 서게 되면 종도 못 되는 것입니다. 종은 신랑 신부 잔치 자리에 못 나타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뭐냐? 심부름꾼입니다. 잔치 떡을 하고, 지짐을 지지고, 닭 잡고, 돼지 잡는 데 심부름이나 하고 백정 놀음이나 하지 별 거 있나요?

그러므로 기독교는 여자 종교라구요. 요사스런 여자 때문에 타락은 했지만, 한때 여자들을 출세시키는 거라구요. 왜? 주님이 신부를 찾으러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신부의 때를 맞이하는 거라구요.

그러면 신부가 어떤 입장에 있어야 되느냐? 신랑의 집안과 신부의 집안이 서로 맞아야 됩니다. 신랑 나라하고 신부 나라하고 상대적 관계가 갖추어져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서로 원수 되는 나라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전부 다 갖추어야 된다구요. 그러니 그러한 내용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 기독교라구요. 세계가 같고 나라가 같은 그러한 권을 만들려니 민주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기독교 국가, 기독교 국가 가운데서도 일등 국가를 택해 가지고 그런 놀음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심정적인 문제를 두고 보면, 천사장으로부터 몸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정까지 유린당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자녀로 등장하려면 반대로 해야 됩니다. 심정부활, 그 다음에 실체부활, 그 다음에 세례 요한 책정, 즉 천사장을 부활시켜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수님 앞에 있어서 천사장은 누구냐 하면 세례 요한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책임을 못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 앞에 당신이 찾아온 신부라고 하면서 신부를 모셔다 드림으로써, 가정이 울타리가 되고 친척이 울타리가 되고 교회가 울타리가 되고 이스라엘 나라가 울타리가 되었다면 왜 예수가 죽어요? 왜 죽어요? 누가 죽이겠어요? 이스라엘 나라 백성이 죽이겠어요? 만일 그렇게 됐다면, 로마 병정이 예수님을 죽이려 할 때는 반대하는 거라구요.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심정부활을 찾고 실체부활을 찾고 천사장 부활권을 다시 찾아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나라와 민족과 교회와 종족, 가정의 터전을 갖추어 가지고 예수님을 모시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준비했던 것이 몽땅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것을 다시 찾아와야 합니다. 이것을 다시 찾아 나오기 위한 것이 세계적인 기독교인 것입니다.

민주세계의 기독교, 이는 특정한 나라를 중심삼고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할 수 있는 새로운 문명권을 만들어 가지고, 오시는 주님을 나라가 환영하고 교회가 환영하고, 종족과 가정과 개인이 환영할 수 있는 터전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못 가지게 되면 수난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2천년 동안 수난길을 갔던 거와 마찬가지로, 만약 끝날에 오시는 주님을 배반하게 될 때, 그것을 다시 찾으려면 2천년에 해당하는 수난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최소한 21년의 복귀노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21년 과정을 거쳐 기성교회와 나라와 세계가 재봉춘할 수 있는 권내에 서게 될 때, 그들이 서로 반대하지 않고 만나게 되면 한 나라를 접함과 동시에 세계적으로 갈 수 있지만, 서로 반대하게 되면 개인적 원수요, 가정적 원수요,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 원수가 평면상에 나타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알겠어요? 바로 요 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권을 이루는 것이 주님의 뜻

그러면 예수가 제일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느냐? 우리 원리로 말하면 첫째는 개성완성, 둘째는 가정완성, 세째는 종족완성, 네째는 국가완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바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다른 것이 없다구요. 예수님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설 수 있는 자리, 자기 땅에서야 될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땅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나라를 말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의 보호권내에,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는 이스라엘이어야 되는 겁니다. 즉 나라도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어야 되고, 교회도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어야 되고, 종족도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어야 되고, 가정도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어야 되고, 개인도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 가정도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요셉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었느냐? 못 있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었느냐? 못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었느냐? 못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개인으로서 설 수 있는 자리까지 없어졌다는 거예요. 그러니 할 수 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구요. 이방에 쫓겨가 가지고 다시 2차 작전을 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다니다가, 세례 요한이 닦지 못한 그 기반을 다시 닦다가 몰려 가지고 죽음의 길을 간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억울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2천년 동안 나라가 없었던 거라구요.

그러면 우리는 앞으로 오시는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문제가 이거예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왜 교파를 많이 만들어 놓았는지 알아요? 이 세계에 사탄의 나라가 몇 나라나 될 것 같아요? 생각해 봤어요?

우선 유엔에 가입한 나라가 현재 몇 개 국인가요? 「132개 국요」 자, 132개 국입니다. 그 가외에 가입하지 못한 나라가 얼마나 많을 것이냐?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지금 교파가 이 세계의 국가 수에 해당하리만큼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기독교의 교파를 분열시켜 놓은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 세계에는 수백 교파가 있지요? 수백 교파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에는 수백 국가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특정한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가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국가가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가정이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개인이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가도록 하나님의 사랑권내로 유도해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권을 만들기 위한 것이 민주세계예요, 민주세계.

주님이 오실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그러므로 민주세계 권내에서 특정한 나라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특정한 나라는 기독교를 잘 믿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사상을 올바로 받은 나라입니다. 그러한 나라 가운데 기독교가 있어야 됩니다. 마치 예수님이 오셨을 때의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와 같은 입장의 나라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니 어떠한 민족이 대표해야 하느냐? 하나님은 특정한 민족을 대표해 가지고 특정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종파로 분열시켜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교파가 클수록 좋은 것이냐? 아닙니다. 교파가 작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나라가 클수록 하나님의 뜻성사가 가능하냐? 아닙니다. 작을수록 가능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강원도만큼밖에 안 됩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일주하는 데 네 시간 반. 다섯 시간도 안 걸렸습니다. 그렇게 조그마한 나라입니다. 하루면 소문이 다 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특정한 나라를 중심삼고 하나님은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오랜 기독교 역사를 통해 가지고 터전을 닦은 나라에서는 힘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몇 천 년 동안 기반을 닦아 나온 유대교 터전에서는 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갑자기 은혜를 받아 가지고 은혜의 불길이 붙은 터전 위에 선 나라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120년 이상의 기독교 역사를 가진 그런 나라는 주님이 올 수 있는 나라가 못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올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구요. 여러분 지금 기독교에서 몇 년 축하라고 하지요? 한국에 신교가 건너온 지 몇 년째인가요? 백년이 못 될 거라구요. 30년에서부터 60년 단계로 넘어갈 때 기독교는 핍박권 내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때가 왜정 때예요. 기독교가 핍박을 받아왔기 때문에 한국의 기독교도 국가적인 핍박을 받아야 됩니다. 또 지금까지 기독교가 유린을 당해 왔기 때문에 특정한 나라로서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나라는 압정과 압제를 받는 국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때 이스라엘 나라가 그랬습니다. 그런 조건에 부합되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주님이 오신다는 것을 신령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갈라진 나라에 오시게 되어 있지 않은 이 나라는 갈라져서 제일 비참한 운명이 벌어졌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독교인데도 불구하고 제일 비참한 운명이 되어 땅에 떨어졌습니다. 도리어 이 세상 사람들 보다도 못사는 자리에 섰고, 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절망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왜? 통일교회를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유엔에도 가입 못 하고 있지요? 기독교가 지금 비참하게 되었지요?

통일교회가 세워야 할 승리권

그러면 통일교회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통일교회 문선생이 개인적으로 설 땅이 있었어요? 삼천리 반도 어디를 가든지 설 땅이 없었다는 거예요. 가정적으로 설 땅이 있었어요? 또 국가적으로 설 땅이 있었어요? 세계적으로 설 땅이 있었어요? 누구보다도 세계를 위하고, 누구보다도 나라를 위하고. 누구보다도 가정을 위하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위하는 자리에 서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전부 배반당했다구요.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서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세계적으로 하늘의 섭리를 유린해 나오던 사탄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사탄을 굴복시키려면 사탄의 모든 비밀을 폭로해야 됩니다. 사탄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천사장이 아담 해와를 타락시켰기 때문에 사탄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탄을 굴복시켜 가지고 실체복귀, 심정복귀를 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비로소 개인적인 아들의 자리에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자(子)의 자리는 나왔지만, 여(女)의 자리가 있어요? 그래서 선생님을 중심삼고 1960년도에 부모의 날을 책정한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와 하나되어야 하는 거라구요. 여기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절대 하나되는 데서 만이 자녀의 날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1960년도에 자녀의 날을,1963년도를 중심삼고는 만물의 날을 책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7년 복귀의 한계선을 거쳐 가지고 가정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날을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정이 하나님의 뜻 앞에 있어서 해원성사 할 수 있는 승리의 날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있어서 이 땅 위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가정을 이루어 그 가정을 중심삼고 비로소 하나님을 면접할 수 있고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날이 바로 하나님의 날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거기서부터 통일교회시대 권내로 들어가는 거라구요. 1968년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는 4년간이예요. 68, 69, 70, 71, 72, 73, 74년까지는 통일교회로 말하면 2차 7년노정 기간입니다. 2차 7년노정 기간은 세계적으로 뒤넘이치는 때입니다. 그 가운데 3년 반이 되는 기간은 세계적인 환란시대와 맞먹는 기간입니다. 이 7년 동안에 세계가 뒤넘이치는 거라구요.

정상에 올라가게 되면,7년 사이에 맨 꼭대기에 올라가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원수와 원수끼리 만나게 되지요? 거기에서 둘이 만나 가지고 싸우면 둘 다 망하는 거라구요. 그러니 할 수 없이 화해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중공을 중심삼고 화합하는 놀음이 벌어져 나가는 거예요. 이것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은 여러분이 원리를 조금만 더 알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 여기에 나타나는 것은 둘 뿐만이 아니라 한 분이 또 나타납니다. 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둘이 화합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화합하면 할수록 와르르 밀려 나가는 것입니다. 전부 떨어져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떨어져 내려간다구요. 떨어져 내려가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정상의 주인은 딴 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치는 어디서 나오느냐? 세계를 대표한 개인적인 승리자.알겠어요? 개인적 승리자, 그 다음에는 가정적 승리자가 가정을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되어 보다 높을 수 있는 가정의 기반을 갖고 나오는 가정적 승리권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국가적 승리권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1, 2, 3이예요. 이렇게 해서 소생 장성 완성만 이루게 되면 세계는 대등한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개인적으로 보게 될 때, 그 개인은 하나님 앞에 효도하는 데에 있어서 대표적이어야 합니다. 사탄세계의 수많은 민족, 수많은 인류의 그 누구보다도 나아야 합니다. 하늘을 중심삼고 하늘을 위해서 효도하는데 있어서, 사탄을 위해서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 30억 인류보다 더 정성을 들여 사탄이 부러워하게 해야지 하나님이 사탄의 아들딸을 부러워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이 사탄세계의 인류를 보고 '야, 너의 아들 가운데에는 잘난 아들이 있어서 그 아들이 충성을 하는구나. 효도를 하는구나' 하고 사탄을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사탄에게 당당코 자기 아들을 자랑하셔야 됩니다. '네 아들딸, 네가 자랑할 수 있는 인류 가운데에서 이 이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내놓아라' 고 할 때, 사탄이 '없나이다' 하는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승리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이 땅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된다구요.

하나님이 예수를 세워 가지고 자랑하시려고 할 때, 예수 개인만 자랑 하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가정을 중심삼고 자랑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예수 가정을 중심삼고 자랑해 보셨어요? 예수는 그러기도 전에 사탄한테 밟혀 죽었습니다. 자랑은 무슨 자랑이예요. 아무리 밝히고 아무리 맞더라도 결국에는 이겨야 된다구요. 예수가 죽지 않고 이겨야 할 텐데 죽어 가지고 이기는 길을 닦아 왔지요? 그러니 예수는 다시 와야 된다구요. 다시 와서 그 일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개인적인 승리자, 가정적인 승리자, 국가적인 승리자, 삼면의 작전을 거쳐 가지고 발전해 나가야 할 오실 주님의 갈 길이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만일 국가가 세계의 보좌 밑에서 활약하게 된다면 그 국가는 가정을 위할 것이요, 가정은 개인을 위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개인이 선 자리와 더불어 가정이 통하고, 가정이 선 자리와 더불어 국가가 통하며, 국가가 선 자리와 더불어 세계가 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민주세계권 위에 기독교를 중심삼은 가정권이 생겨난다면 오시는 주님은 수난의 길을 가지 않을 것입니다. 핍박을 안 받아도 된다는 거예요. 만일 이것이 설정되지 않는다면 오시는 주님도 예수님이 간 길과 마찬가지의 운명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오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역사입니다. 그렇게도 반대를 하고 그렇게도 망하라고 야단했지만 개인적으로 설 자리를 잡고, 가정적으로 설 자리를 잡고,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설 자리를 잡아 나왔습니다. 이제는 너와 내가 봄날을 맞이할 수 있는 새로운 사명을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서로가 분립되었다가는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가인이 아벨을 쳤지만 아벨이 때를 맞아 대등한 자리에 올 때는 가인이 아벨을 칠래야 칠 수 없는 자리에 들어갑니다. 그런 때가 현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자녀의 날을 맞이하면서 다짐해야 할 사명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이제 가야 할 길이 어디냐? 지금 북괴는 완전히 전체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일치화 되어 있습니다. 공산주의 사상이 골수에 딱 들어박혀 가지고 자르면 자를수록 빨깽이라구요. 이렇게 모든 면에 있어서 우세한 기반을 닦아 가지고 남침을 엿보고 있는 이때에 우리 대한민국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그 이상의 사상무장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별수 없습니다. 통일사상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통일사상으로 삼천만 민족이 일체화하는 날에는 일시에 북괴를 분쇄시키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그래서 1960년도부터 이러한 기반을 닦기 위해 별의별 놀음을 다 했지만, 기성교회는 통일교회를 그렇게 천대하고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막으려고 백방으로 반대했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그 길을 갈고 닦아서 밟고 넘어 세계적인 원수 공산당과 대결하고, 국가에 비운이 깃들어 오는 이런 시대에 그야말로 애국애족하겠다는 사상을 가지고...이것은 국가기관에서 다 알고 있다구요. 통일교회 사람들같이 애국애족하면 이 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이며, 공산당이 문제가 아니라고 알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허락하지 않을 수 없는 촉박한 시기에 임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언제나 칠 수 있고, 언제나 자기가 잘났다고 하다가는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잘났다고 하다가는 망하는 거라구요.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서로서로 손을 잡아야 합니다. 지금 시급한 정세가 우리 앞에 몰려왔다는 거라구요.

금년에 대만이 축출당한 것은 뭐냐? 천사장이 축출된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다음에는 한국이 그렇게 걸릴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가 바쁘다는 거라구요. 그것은 민주세계가 하늘을 배반했던 그 기준에 있기 때문에 그 자리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마지막 고비에 왔습니다.

이런 때에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자녀의 날을 맞이하면서 다짐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냐? 세계는 이제 정상에 다 왔습니다. 원수와 원수끼리 손을 잡지 않을 수 없는 이것이 웬 일이냐? 망할 운세냐, 흥할 운세냐?

오늘날 통일교회는 원수도 해방하자는 말을 합니다. 원수도 사랑하자는 말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와 기성교회는 둘도 없는 원수지간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지내 온 과거를 생각해 볼 때, 칼이나 무슨 무기가 있으면 그들을 난도질하여 전부 다 살더미를 오려 가지고 독수리의 밥이 되게 해도 복수를 다 못 한다구요. 그렇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감정입니다.

천운이 가는 길은 혼자서는 안 됩니다. 수레는 수레바퀴 하나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양 바퀴가 있어야 된다구요. 그러지 않고는 갈 수가 없다는 원리적 입장에서 보게 될 때, 통일교회는 기성교회하고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기성교회가 살 수 있는 데도 통일교회와 손을 잡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기성교회는 망하는 거예요. 한국의 기성교회가 망하게 될 때는 내가 미국의 기성교회와 손을 잡을 것입니다. 지금 그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보라구요. 이번에 닉슨이 저렇게 나왔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 배후에 뜻 있는 기독교인들은 미국이 공산당과 손잡는다고 해 가지고 반대를 많이 할 것입니다. 그런 무리들이 많이 생겨난다구요. 그것이 우리 통일교회가 나갈 수 있는 기반이예요. 그러므로 이것을 어떻게 잡느냐 하는 것이 지금 선생님이 생각하는 문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순회, 순방노정은 크나큰 의의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지금 비장한 역사적 순간이 우리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육천년의 한스러웠던 세계사적인 사조가 하늘과 더불어, 국가적인 원한의 터전이 국가와 더불어, 교회적인 원한의 터전이 교회와 더불어, 가정적인 원한의 터전이 가정과 더불어, 개인적인 원한의 터전이 개인과 더불어 일시에 평면적으로 접할 수 있는 세계적인 정세권내에 지금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없었던 충효의 길을 가라

이것을 밟고 넘어서 남아질 수 있는 무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예수님이 부활권을 갖추었다는 단 하나의 신념, 그 신앙적인 신념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늘 위한 충절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비록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십자가의 이슬로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천도를 밝힐 수 있는 사명을 중심삼고 나가야 합니다. 생명에 위협받는 길이 있다 하더라도 당당코 직행해야 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본질적인 사상입니다. 그와 같은 사상을 갖지 않으면 통일교회는 망하게 됩니다. 그런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입장에서 효를 행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충을 행해야 합니다. 효를 하는 데에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도 감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면에서 보나 사탄이 감복하지 않을 수 없어야 하며, 사탄이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을 써서 방비하고 대결해 가지고 싸우더라도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하게 해야 합니다. 몇 번씩 시험해 봤지만 이미 시험해 가지고 실패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사탄이 '그대만이 승리할 수 있고 그대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공인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간부들은 그런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선생님은 허재비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밤이나 낮이나 사탄세계 수억의 사람들을 대표해 가지고 그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절개와 지조를 가지고 충절을 다해 왔습니다.

충신의 마음을 가지고 나서는 데는 자나깨나 나라뿐이라는 거예요. 딴게 있을 수 없다구요.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가정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여편네가 문제가 아니고 자식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어미 아비가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형제가 문제가 아니라구요. 그들을 일시에 시궁창에 몰아넣을 수도 있고, 잡아서 제사도 드릴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들을 붙들고 휘적휘적거리고 그들을 붙들고 후퇴하고 그러는 사람은 뜻 앞에 있어서 그 선을 못 넘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개인적으로 그러해야 하고, 가정적으로 그러해야 합니다. 둘이 합해 가지고 일체가 된 입장에서 하늘 앞에 효도해야 합니다. 또한 둘이 합해 가지고 한 나라 앞에 충성해야 합니다, 역사상의 어떠한 충신의 가정을 능가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통일교회가 바라는 나라의 건국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남북을 통일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둘이 하나가 되어 가지고 역사상에 없었던 효의 길, 충의 길을 가는 데에 있어서는 이의가 없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기준에서 그 가정은 세계의 수많은 가정, 혹은 역사시대의 우리 선조의 가정, 마리아의 가정이나 사가랴의 가정, 성인 위인의 가정이 나라를 사랑하고 하늘을 사랑한 것보다 더 나은, 그들이 따라오지 못할 만큼 충절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러한 가정들이 합해 가지고 종족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종족에서 나라를 위해서 제물을 드리고 나라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종족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축복가정을 동원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

그런 종족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가정들이 합해 자지고 편성한 그 종족적인 기반을 나라를 위해 희생시켜야 되겠다. 내몰아야 되겠다' 하는 것이 통일교회가 지향하는 목표이기 때문에 축복받은 가정의 부인들을 전부 다 뽑아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천 이백 명을 동원한 거라 구요. 여러분, 이번 동원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사건입니다.

복귀역사에 있어서 민족을 찾아가는 데 교량의 역할을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통일교단이면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뜻과 개인적으로 일치 못 했고 가정적으로 일치 못 했기 때문에, 그런 모든 것을 탕감시킨 것과 같은 입장에 세우려니 산산조각으로 갈라 놓는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전부 갈라놓는 겁니다. 자식들도 다 갈라놓는 거라구요. 산산조각으로 갈라놓는 거라구요.

갈라져 가지고 어디에 가서 하나되어야 하느냐? 일선에 가서 하나되어야 됩니다. 자기 어머니가 가 있는 곳에 아버지도 따라가고 자식도 따라가서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 자체내에 있어서 책임 못한 것을 탕감함과 동시에, 이 민족이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저끄러뜨린 모든 것을 전부 다 탕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팎의 탕감을 하기 위해서…. 이 탕감은 누가 해야 하느냐?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해야 합니다. 타락은 누가 했느냐? 개인이 한 것이 아니라 가정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남편도 일치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협회에서 제시한 방향에 일치되지 못한 사람은 축복가정이라 하더라도 축복가정으로서 등장을 못 하는 것입니다. 통곡을 할 것입니다. 번민할 것입니다. 뜻 앞의 공적인 기간에 자기 책임을 못한 사람은 전부다 통곡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두고 보라구요. 복귀역사는 선생님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리원칙을 따라 가지고….

이 자리는 국가적인 비운과 세계적인 정세를 가로막아서 국가적 운명을 해방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을 하늘 앞에 세워야 할 비장한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호흡을 같이하고 행동을 같이해야 할 것이 통일가의 사명이요 우리 개개인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불참하고 여기에 불찬성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심판이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가혹한 심판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심각한 시대에 놓여 있습니다. 통일교회의 천 이백 가정이 망하더라도 대한민국이 망해서는 안 된다구요. 남북을 통일시켜야 됩니다. 이렇게 절박한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효 중의 효를 해야 된다구요. 그 효는 가정을 끌고 나가야 되고, 종족을 끌고 나가야 되고, 민족을 끌고 나가야 되는 거라구요. 민족을 끌고 나가서 하늘을 위해 충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효와 충이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내정일치화가 되어서 하나님이 '네가 아니면 안 되고, 네 가정이 아니면 안 되며, 네 종족이 아니면 안 되고, 네 나라가 아니면 세계를 구할 수 없다'라고 할 때 하늘이 바라는 주체적 해방권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앞에 놓고 가는 것이 통일교회의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라는 명분을 가지고 의의 있는 이 자녀의 날을 축하한다는 입장에서 볼 때, 심각한 날이 우리 눈앞에 다가온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직 나라를 위해 하늘을 중심삼고 싸워 나가라

여러분은 자나깨나 듣고 보고 느끼는 것, 옷을 입든 벗든 어떻게 하든 전부를 통해 남북통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이북에 있는 공산당 이상으로 강력한 훈련을 시켜서 일치단결하게 하여, 물이 마른 곳에서 고기를 잡듯이 그들을 잡아 치우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잡아 치울 것이냐?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사상의 단결체로 결합시켜 힘의 비율을 강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사상과 이념을 남기기 위해서 내가 총공장을 만든 것입니다. 악한 녀석들은 상대의 힘이 자기보다 약하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나 침공하는 것입니다. 미국을 믿지 말라구요. 우리는 우리대로 자결해야 합니다. 스스로 결의해서 하나되어야 됩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늘을 중심삼고. 이제는 갈 길이 없습니다. 갈 길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때를 준비하기 위해서, 이런 때를 넘기 위해서 벌써 몇 년 전부터 특정한 기간을 정해 가지고 하늘 앞에 정성들이고 나온 것입니다. 그 정성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제야말로 절정에 다가온 것입니다.

위기일발에 놓여 있는 세계정세 앞에 통일교회 무리는 어디에 설 것이냐? 행동을 개시해야 할 때가 왔다구요.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당당하게 하늘의 권위를 내세울 때가 왔습니다. 그 자리는 옛날 몰렸던 때의 서러움을 품고 자기 스스로 하늘 앞에서 승리의 천국을 고대하고 참고 나오는 자리가 아닙니다. 해방의 기수가 되어 가지고 민족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사명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북 공산당 김일성의 일파와 우리 통일교회 일파와 비교해 보게 될 때, 공산당을 위해 충절을 다하는 골수분자들보다 통일교회를 위하여 충절을 다하는 여러분이 낫지 않으면 망하는 거라구요. 자기의 살림 보따리나 싸 가지고 다니면 망하는 거라구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뒤통수를 치지 않으면 사탄이 칠 거라구요. 자기 자식이나 여편네를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온갖 정성을 집약시켜 가지고 개인과 가정과 국가적 기준 앞에 있어서. 과거의 어떠한 애국자면 애국자 그 누구도 국가적 비운의 때에 있어서 우리의 심정을 따라올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결의된 종족권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종족권을 만들기 위해 여러분 가정들이 선발대로 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금년 정월 초하루부터 지금까지 선생님은 될 수 있으면 그들을 찾아가고... 그런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8월부터는 외국식구 수련문제 때문에 못 했지만... 기필코 뜻이 가야 할 그 길대로 역사는 수습될 것입니다. 여러분이야 가든 안 가든 나는 가는 거라구요.

여러분, 남한, 이 대한민국을 보라구요. 이 부패한 대한민국의 실상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내적인 단결을 촉구해야 합니다. 전국민 앞에 새로운 사상적인 방향을 고취시켜서 내일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조직 강화를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문제가 아닙니다. 김일성이가 문제입니다. 김일성이가 내려오는 날에는 통일교회 패들이 먼저 모가지 달아날 것입니다. 못 사는 거라구요. 공산당이 통일교회를 남겨 놓을 것 같아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구보끼 회장이 세계순회를 할 때도 블란서에 가 가지고 문제가 생겼던 것입니다. 인도에서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이 구보끼 회장을 납치하려고 한 거예요. 우리를 그렇게 무서워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국제적인 공산당 조직을 통해서 우리가 가는 방향을 전부 가로막는 행동을 개시하고 있다구요. 그걸 보면, 우리의 존재가 그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요, 우리의 활동이 금후에 아시아나 세계에 있어서 그들에게 얼마나 큰 암적 존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실을 대한민국은 모르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알고 있다구요. 중국도 알고 있다구요. 대한민국은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가 강력한 단체이기 때문에 그냥 두었다가는 대한민국을 말아먹는다고 합니다. 공화당이면 공화당이 전부 다 먹혀 버릴까 봐 통일교회가 무서워서 못 키워 준다는 수작 좋은 말을 하고 있다구요. 좋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무슨 대통령을 꿈꾸는 곳이예요? 통일 교회에는 세계가 문제라구요. 남북이 문제라구요. 당이 문제가 아니라 나라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 말들을 듣게 되면 기가 막히다는 거라구요. 그래? 보라는 거예요. 너희가 안 들으면 내가 포위작전을 할 것입니다. 깨깨 망신을 당하고 국민 앞에 규탄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밥을 먹고 숨을 쉰다고 해서 남들과 똑 같이 산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폭탄을 가졌다면 누구보다도 무서운 폭탄을 가진 것입니다. 말은 안 해도…. 사무친 원한을 풀고야 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쓰러지더라도 뜻의 길이라면 개의치 않고 가는 것입니다. 잠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일생을 그렇게 싸워 나왔습니다.

때를 바로 알고 중심과 하나되어야 할 때

1971년도는 하늘의 위신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내가 이런 때가 올 것을 알고 여러분을 믿고 지시했지만, 여러분이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선두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 간부들의 수치입니다. 저나라에 가서 책임추궁을 받을 수 있는 두려운 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이런 때에 있어서 내가 오래지 않아 한국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생각해야 된다구요. 이 나라 이 민족을 대신하여 하늘을 부여안고 금후에 갈 수 있는, 이 민족의 운명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책임질 수 있는 간부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없을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망한 뒤에는 후회도 못 하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렇게 되는 날에는 영계에 가서 여러분이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것 같아요? 못 부른다구요. 선생님과는 상관이 없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이러이러한 준비를 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유사시에도 내가 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생명이 아까워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없으면 금후에 복귀의 행각노정을 갈 사람이 없는 거라구요. 여러분, 한국 간부가 모르는 사실을 외국 사람에게 지시하고 있습니다. 기가 막히는 놀음 이라는 거라구요. 자기의 처신과 입장이 어떻게 되어 가는 줄도 모르고 잠을 자요? 쉬어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오늘 아침에도 그런 말을 했지만, 사상계에 있어서 우리 통일교회를 능가할…. 이제는 우리 통일교회가 최고에 올라와 있습니다. 이 통일교회 패라는 것이 옛날과는 다르다구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금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개인적으로 은혜의 생활을 하고 기뻐하던 그 이상 여러분의 가정이라든가 단체를 중심삼고 더 기뻐해야 됩니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은혜를 받고 통일교회에 취해서 다니던 그때보다도 더 선두에 서서 미칠 듯이 날뛰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을 희생시켜서 가정을 찾고자 하고, 가정을 희생시켜서 종족을 찾고자 하고, 종족을 희생시켜서 민족을 찾고자 하는 것이 뜻이기 때문에, 개인 때에 기뻐하는 것보다도 민족과 국가를 위하는 때에 더 기뻐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한 자세를 못 가진 사람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낙오자가 되는 것입니다. 슬슬 다니면서 세월이나 보내는 그런 사람들은 낙오자가 되는 거라구요.

선생님은 바쁘다구요. 여의도 본부 기지만 하더라도, 대학교를 짓기 위한 수택리의 십만 평의 기지만 하더라도, 청평의 많은 토지를 산 것만 하더라도 그것이 그냥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필사의 정성을 들여서 되어진 것입니다. 새벽별을 바라보면서 흑은 저녁별을 바라보면서 하늘 앞에 기도하며 한때를 중심삼고 적중시켜 나온 것이 바로 맞은 거라구요. 이러한 상황에서 여러분은 동냥은 못 주나마 쪽박 깨뜨리는 놀음을 하고 있다구요. 이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고 말이예요.

여러분은 못 가더라도 선생님은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가는 흉내라도 내야 할 거 아니예요. 여러분이 때를 알아야 됩니다. 보라구요. 이제 중국이 어떻게 될 것이냐? 일본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한국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이런 절박한 때에 왔습니다. 옛날의 정세와는 다르다구요. 이렇게 시급한 때에 왔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60년에 개인적으로 은혜 받았던 그때가 좋았다고 하는 그런 시시한 생활태도는 집어치우라구요. 옛날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은혜 받았던 그때가 그리워요? 그런 시시한 인연은 다 집어치우라구요. 나는 모릅니다. 그때보다는 지금이 문제라구요. 뜻이 요구하는 지금이 문제라구요. 최고의 정성을 다 퍼부어야 할 이런 때가 온 것을 여러 분이 알고 새로이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내가 필요로 하는 길을 협조해 나왔습니다. 금년은 자그마치 이러이러한 기준까지 가야 되겠다고 하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가게 되어 있다구요. 금년은 이렇게 안 되면 안 되기에 될 수 있는 환경으로 몰아치는 거라구요. 소용돌이쳐서 돌아갈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없으면 더 크게 넘어가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여기에 기둥이 있기 때문에 기둥을 감싸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명을 해야 된다구요.

승리의 그날까지 정성을 다해 싸워 나가자

보라구요. 일생 동안 이런 일을 하면서 생애를 바친 사나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그러나 이날을 위해서 참아온 것입니다. 이때를 맞기 위해서 참아온 거라구요. 여기에 보조를 맞추어야 할 여러분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승리한 개인, 승리한 가정, 승리한 종족, 그런 기반을 통하여 제물을 요구하는 시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서라면 우리 통일교회는 망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나라를 위해서 망하더라도 그것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서 통일교회를 투입할 것입니다. 앞으로 이북에서 삼팔선을 넘어오게 되면 선두에 여러분을 내세워서 이북 놈들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게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안 되겠기 때문에 지금까지 정성을 들여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삼팔선을 넘어올 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다시 넘어올 것이다'라고 다짐했습니다. '내가 남한 땅을 위해서 내려가는 비참한 사나이의 모습이지만 반드시 다시 올 것이다'라고 결의했습니다. 그때 그런 결의를 표명했기 때문에 그 표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시아와 세계에 우리 사상적인 기반을 확대시키기 위하여 지금까지 천신만고의 수난길을 극복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내가 공산당에게 몰리고 고문을 받는 억울한 자리에서 맹세했던 것을 여러분은 모르는 거라구요. 만나야 할 사람들을 다시 만나 가지고 항복을 받는 그날까지 통일교회는 가는 거라구요.

선생님의 부모가 정주 땅에 묻혔을 거라구요. 내가 내 손으로 묻지 못하고... 어머니 아버지께 효도를 못 한 사람이라구요. 어머니 아버지나 친척보다도 여러분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부모를 희생시키고. 친척을 회생시키고, 처자를 희생시켜 가지고 여러분을 더 사랑한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때가 되면, 내가 비로소 무덤 앞에 가 가지고 천년 사연을 푸는 자리를 마련하게 되면 하늘의 특사를 내려 부모 앞에 효를 못한 것을 영적인 입장에서나마 풀어 주어야 할 책임을 느끼고 있는 사나이라구요.

내가 이 자리까지 나오는 데에는 수많은 가정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내가 복귀하기 전에 여러분이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못 하게 되면 내가 해야 합니다. 그때를 바라보며 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죽을 자리에 가서 죽는 것이 보람 있는 생애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건하기 위한 혁명군입니다. 혁명아들이라구요. 시시하게 밥통이나 밥바가지를 찾기 위해서 그러는 것은 시시하다는 거라구요. 월급 줄을 찾아 다녀요? 그런 것은 시시하다는 거라구요.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제 남은 것은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허리가 굽도록 하늘을 위해서 정성을 들이고, 무릎이 닳도록, 옷에 구멍이 뚫어지도록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길 앞에 동정할 수 있는 하나의 인연이 남아지게 되면 망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벗어날 것입니다.

이런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미국에 있는 구보끼를 내가 불러온 것입니다. 그에게 이러이러한 사명을 하라고 특명을 내렸습니다. 그가 민족을 대표하고 뜻을 대표하여 선두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외국 사람이 그런 선두에 섰다는 것이 우리 한국의 간부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수치스러운 일인 것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것을 알고, 이 자녀의 날을 맞으면서 우리의 사명이 얼마나 절박한가를...

다시 말하면,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역사시대의 어떠한 충신의 가문에도 지지 않는 정성과 지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라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사람 손들어 봅시다. 내려요.

​기 도

아버지, 금년은 자녀의 날을 제12회째 맞으며, 돌로는 열한 돌을 맞는 해입니다. 열두 돌을 맞는 1972년의 고빗길을 넘게 될 때, 이 나라 이 민족의 운명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당신의 한 많았던 역사를 제가 알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잃어버린 그 비참한 정경을 제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것을 풀기 위한 해원의 한날을 바라면서 갖은 수욕과 갖은 어려운 길을 거치 면서도 당신과 더불어 지금까지 죽지 않고 남아지게 된 것을 감사하옵고, 제가 해야 할 책임을 다 못 하고 이러한 자리에 서게 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옵니다.

아버님, 몇년 동안에 세계가 이렇게 급변될 것을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뜻과 섭리의 길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그 때가 우리 눈앞에 찾아와도 그때를 맞아들이지 못하게 될 때는 망하는 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이 통일가를 수난 가운데에서도 길러 나오셨고, 핍박 가운데에서도 다짐짓게 하셨으며, 환란 가운데에서도 극복의 도리를 갖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들이 선 자리를 아버지께서 굳건히 지키시옵소서.

60만 대군을 이끌고 나오던 제 1세 이스라엘 민족은 망하고, 제 2세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해서 새로운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나오던 여호수아와 갈렙에 대해서 아버지께서는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통일가는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에게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희의 판도는 너무나 작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다가오는 정세는 너무나 촉박하다는 것을 느끼옵니다. 이제 저희가 교두보가 되어야 되겠고 토성이 되어야 되겠으며 성벽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를 위하여 뜻을 위하여 최후의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눈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느끼옵니다.

아버지, 오늘은 1971년 10월 초하루입니다. 이날을 맞아 10수를 넘으면서 새로운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때라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님, 몇 달 동안 이 본부를 떠나고자 하오니, 아버님, 지켜 주시옵소서. 지켜 주시옵소서. 당신이 보호해 주셔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그렇게도 소원하시던 그때가 우리의 눈앞에 왔기 때문에, 이때에 저희는 아버지께 충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벌거벗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몸을 아버지께 제물로 바치고 죽겠다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굶는 자리에서 그 일신을 바치고 죽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쫓겨 망하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아버지를 붙들고 망하겠다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통일가의 전통적 주류사상인 것을 확실히 알고 마음에 결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나라가 없는 무리였기 때문에 나라 앞에 배반받았고, 백성이 없는 무리였기 때문에 백성들 앞에 배반받았고, 역사적인 교단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역사적인 교단들 앞에 배척받았습니다. 이제 그러한 모든 외적인 환경은 스러져 가고, 석양길을 맞이해서 그들이 수습하지 못한 이때를 바라보게 될 때 저희들은 가중된 사명과 책임이 얼마나 절박 한가를 느끼옵니다. 금후의 갈 길을 아버지께서 맡으시옵소서.

많은 수가 문제가 아니라 중심의 팻말이 되어 단단히 붙들라고 외칠 수 있는 당신의 사연이 있느냐가 문제였사옵니다. 당신의 심정적 인연이 남아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사옵니다. 이들의 마음에 새로운 불을 붙이시옵소서.

이제 남은 1971년도를 의의 있게 넘어가도록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1972년도를 맞아 1972년까지 3년노정을 결정한 이때에 있어서 가정 가정들이 해야 할 민족적 사명과 국가적 사명을 부끄럽지 않게 아버지 앞에 다해 넘길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제 손을 들어 당신 앞에 선서하고 맹세한 무리들의 이 결심이 약해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는 죽더라도 나라는 망해서는 안 되겠사옵고, 우리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나라는 망하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대한민국이 없어지더라도 세계는 남아져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 자리를 지키시옵소서.

이 보잘것없는 무리들을 개인에서 가정으로, 종족으로 이끄시어서 당신이 소원하시는 터전 위에 승리를 다짐하게 하시어 온 천지 앞에 영광의 개가를 드높이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러한 것을 다 이를 때까지 저희들은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행군을 해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아버님이여, 직접 지도하시고 직접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날을 기념하는,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과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소수의 무리를 앞에 놓고 이 역사적인 사명을 촉구하시는 당신은 불쌍하신 분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불쌍하게 되셨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천추의 한을 머금고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 효의 도리를 다짐하는 통일의 무리요, 충의 도리를 다짐하는 통일교단의 무리인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사옵니다.

지금까지 지켜 주시고 이끌어 주신 아버님, 금후에도 당신이 이끄시는 길 앞에 저희들이 추호라도 어긋남이 없게끔, 승리의 길에 접붙임을 받을 수 있게끔 저희들을 몰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과 저희 선조들이 땅을 통하여서 해원성사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세계 정세의 극난한 문제를 밟고 넘어서게끔 영계를 동원하여 방비하여 주시옵고, 협조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의 갈 길을 가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영육 합동 공세를 통하여 승리권의 새로운 문화세계를 아버지 앞에 창건해 드릴 수 있는 의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날들도 당신과 더불어 그리워하면서, 아버지의 보호권내에 빨리빨리 전진해 나아갈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축복하여 주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통일의 노래 합창)

축 도

역사의 우리 선조들과 현재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만민과 미래에 나타날 후손들이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승리의 실체를 갖추어서 당신 앞에 영영 발등상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통일권의 새로운 천주주의의 역사적 인연이 저희들과 더불어 당신이 계획하고 바라는 소망의 세계에까지 힘차게 뻗어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영인들이 바라는 승리의 종착점에, 만민이 귀일된 자리에 서서 만세의 승리의 한 축을 결정지을 때까지 통일적인 기반을 형성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오늘 이 거룩한 날을 맞을 수 있게 하여 주신 은사에 감사하면서, 전체의 뜻 앞에 부끄러운 자신이오니 새로이 다짐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권위와 능력이 늘 같이하여 주옵기를 바라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1월 21일, 이달 들어 세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에 당신이 찾아오시어서 저희들 개개인의 심령을 살피시옵고, 당신의 마음에 합당한 개개인을 만나시어 일일이 당신께서 저희들에게 요구하는 뜻이 무엇이며, 인간이 가야 할 책임노정이 어떠하다는 것을 밝히 가르쳐 주시옵소서. 보다 높은 가치의 존재로서 아버지 앞에 접근하려 하는 저희 개체들이 어떠해야 된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고 체득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겸손히 아버지를 부르면서 엎드린 이 자리에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같이하시길 바라옵나이다.

당신께서 하늘의 권한을 가지고 이 땅 위의 인간을 찾아오신 것은, 낮고 천한 인간을 슬프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높고 귀하신 하늘의 권한을 무조건 저희들에게 주고 싶어 찾아오신 것을 아옵나이다. 당신이 지존하심에 따라서 저희는 겸손해야 될 것을 이 시간 깨달으며, 당신이 저희를 사랑하고 싶어하시는 그 마음 앞에 저희는 순응의 제물이 되어야 될 것을 다시 한 번 느끼옵니다.

새로운 약속과 더불어 당신이 분부하실 수 있는 내적 인연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저희들에게는 당신의 아들로서 당신의 분부 앞에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될 자녀의 명분이 있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께서 슬픈 역사노정 위에서 덧없이 수고하여 나오셨다는 것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역사과정을 두고 볼 때, 아버지의 집을 떠난 고아의 신세가 얼마나 처량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깨닫게 되옵니다. 부모가 있는 줄 모르던 이 인류 앞에 부모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사실, 이 이상 복된 소식이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탕자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자기의 길을 찾아간다고 하였지만 그 결과는 비참과, 고독과 생사가 엇갈리는 도상에서 갈 길이 막혀 돌아서지 않을 수 없는 처량한 자신을 발견하고, 하늘을 향해 되돌아선 무리들의 모습이 당신의 소원과 일치된 모습이 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옵니다. 상처가 심하고 남루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되돌아온 모습은 처량하지만, 부모를 그리워하고 옛날을 추구하는 간절한 마음이 그 속에서 싹틈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부자의 인연을 다시 맺을 수 있는 봄절기가 시작된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저희 마음에도 탕자된 자신들이었음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스스로 각자 나름대로의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동쪽을 향하여, 서쪽을 향하여, 혹은 남쪽, 북쪽을 향하여, 어떤 방면을 따라서든 걷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옵니다. 골짜기에 떨어져 허덕이는 자가 있는가 하면, 끝도 방향도 알지 못하는 산정을 향하여 한없이 수고로운 길을 가고 있는 무리들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상하의 노정을 더듬는 자가 있는가 하면, 산중턱을 중심삼고 돌고 도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런 천태만상의 모습이 세상의 인류가 살아가는 모습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와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는, 향방을 가려가야 할 저희 자신들임을 생각하게 될 때, 나는 지금 어떤 방향을 향하여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스스로 명시해야 되겠습니다. 스스로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이 방향이 중심으로부터 무한히 떨어져 나가는 방향인가, 혹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슬픔의 방향을 거쳐 나가는가 하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자신이 나가는 방향이 틀렸거든 여지없이 돌아설 수 있는 새로운 결의의 마음을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혹은 자기의 방향이 아버님의 방향과 일치된 노정에 있거들랑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달려가고 또 달려가야 할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돌아가야 할 운명길에 있어서, 이제 개인으로서 가정을 추어 가지고 가정은 종족을, 종족은 민족을, 민족은 국가를, 국가는 세계를, 세계는 천주를, 그 천주는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의 사랑의 곳까지 되돌아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될, 비운의 역사 속에 있는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삼자의 입장에서 직시하게 될 때에, 자기에게 수고로운 과거가 있었으되 그것이 가야할 이 길 알에 아무런 보탬이 못 되었다 할진대는 그 수고로운 역사적인 사실들은 슬픔이요 고통이요, 아버지 앞에 기쁨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부끄러움의 자극을 남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저희들의 하루의 생활, 일년의 생활, 일생의 생활이 얼마나 신중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현재 내가 처하여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하늘이 기뻐하는 자리인가, 인간으로서 슬퍼하는 자리인가, 혹은 나 자신이 슬퍼하고 있는 자리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슬퍼하는 그런 자리이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자리는 하늘이 기뻐함과 동시에 인간들이 기뻐하고 또한 나 자신이 기뻐하는 자리이어야 되겠습니다. 자신이 기뻐함과 더불어 환경 전체와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위치를 갖지 못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천국의 말을, 천국의 소원을, 천국의 욕망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곳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비록 가진 것이 없고 스스로 자랑할 것이 없다 하더라도, 하늘과 일치된 방향에서 자신의 갈 길을 가기에 바쁜 걸음을 걷는 사람은 고독단신이라 해도 불쌍한 사람이 아니요, 굶주리는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불쌍한 사람이 아니요, 혹은 원수와 싸우는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그 싸움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을 것이기에 그는 불행한 사람이 아닌 것을 알게 되옵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생명을 다하는 입장에 있다 할지라도 하늘의 방향을 향하여 생명을 던지고 가는 사람이라 할 때. 그는 세상에 있어서 실패자가 아닌 것을 아옵니다. 그는 고독한 사람이 아닌 것을 아옵니다. 그는 비참한 것 같으나 비참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왜냐하면 그의 고독은 당신의 고독을 대신한 것이요, 그의 눈물은 당신의 눈물을 대신한 것이요, 그의 처량함은 당신의 처량함을 대신한 것이기 때문에, 그의 자리는 온 만물이 동조하는 자리요, 역사의 심정을 더듬고 있는 수많은 인생이 있다 할진대 그 인생들이 동업자의 입장으로서 편되어 주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을 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이 시간 여기에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 지금까지 20, 30, 40, 50, 60, 70, 80의 생애노정을 거친 각자의 모습이 여기에 나타나 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표준하고 나왔는가를 다시 한 번 비판해 봐야 되겠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지금까지 살아 나왔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나'라는 가치의 결정기준을 어디에 두고 나왔는가를 다시 한 번 분석해야 되겠습니다.

현재 저희의 입장이 당신과 대하는 방향에 있어서 직선의 방향이 아니라 180도 다른 방향에 서 있지 않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불러도 들을 수 없고,볼래야 볼 수 없고,갈래야 갈 수 없는 자리에 있다 하면 이는 얼마나 비참한 무리이겠습니까? 아버님, 그래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당신을 향하여 얼굴을 돌려야 되겠고, 당신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겨야 될 것이 당신으로부터 지음받은 인간의 생애노정이 아니겠습니까?

아침 해가 떠오르면 미물인 곤충들도 그 빛을 반기고, 어두운 밤 가운데서도 빛이 발하면 그 빛을 따라 모든 곤충들이 집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만물까지도 빛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아버지, 하늘이 있고 당신이 계신다고 할진대, 어이 저희들의 발걸음은 당신을 향하여 움직이지 않을 수 있고 저희들의 시선과 감정은 당신의 마음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하온데 그러지 못한 것이 타락이었습니다. 빛을 보고 그것이 빛임을 알지 못하고, 생명의 근원이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하는 처참한 타락의 후예임을 탄식해야 할 자신들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만 되겠사옵니다.

내 손이 얼마나 선하였으며, 내 발이 얼마나 선하였으며, 내 보는 눈과 내 얼굴이 얼마나 선하였던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선이라는 것의 근거지가 어디인가를 생각할 때, 결코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당신을 중심삼지 않고는 선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자식에게 있어서는 부모가 전체의 중심인 것을, 기쁨의 중심이요 소망의 중심이요 생명의 중심인 것을 저희들이 어린 생명을 두고 깨닫게 될 때, 태초에 우리 인간의 선의 중심이 어디였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아니요 환경도 아니요 당신이었다고밖에 대답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고 당신으로부터 빚어질 수 있는 선한 자리를 갖지 못한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 가를 저희들은 깨닫고 있습니다.

아버님, 당신이 진정으로 저희를 만나고 싶어하시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그 자리를 마음으로 무한히 무한히 그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과 더불어 앉아서 먹고 말하고 자고 깨고 오고 가고 좋아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할 때, 그 자리는 천상세계도 아니요, 이 세계를 넘어선 그 어떤 세계도 아닌 줄 아옵니다. 그 자리는 자신의 오관을 통하여 느낄 수 있는 감각과 감정의 세계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런 자리는 직접적인 대상권인 것을 깨닫게 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이 자리에 왔사옵니다. 저희들이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하늘의 인연을 가졌기에 아니 올래야 아니 올 수 없는 내적인 충격을 받고 왔사옵니다. 그것은 당신이 같이하신 연고이옵니다. 밤길을 헤치고 준비하여 나서는 남다른 그 걸음은 고독한 것이로되 지극히 고독한 당신의 입장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이요, 하늘의 무한한 지식의 세계를 추구하기 위해 남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밤길을 헤치고 나서는 그 길은 망하는 길이 아닌 것을 저희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아버지의 거룩한 제단 앞에 봉헌할 수 있는 제물이 되게 될 때는, 숫것으로서 바쳐질 수 있는 제물 되기를 그리워해야 하겠습니다. 그 누구라도 가치적인 것을 중심삼고 바란다 할진대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을 자가 없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늘과 인간이 제단을 놓고 엄숙히 대하는 그 자리 위에 바쳐질 수 있는 첫것이 얼마나 귀한가를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안식일이 찾아와 그 새벽에 고요히 무릎을 꿇고 당신 앞에 사연을 아뢸 때 제일 좋은 내용을 가지고 아뢰고 싶으나 그럴 수 있는 내용을 갖지 못한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를 느끼는 자리가 비록 비참한 자리일지라도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의 거룩한 제단 앞에 숙명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죽어야만 될, 희생해야만 될 제물의 모습으로서 오늘도 바쳐지고, 내일도 바쳐지고, 일년도 바쳐지고, 생애도 다 바쳐질 수 있다 할진대는, 심각한 제사장의 손길 앞에 있는 제물이라 할진대는, 그 제물이 거동하는 자리에는 당신의 시선이 따라다닌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그런 제물의 입장에 있는 사람의 전체는 당신의 심정을 반영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대상이 되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그런 자리를 그리워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있거든 찾아 주시옵소서. 그 자리를 그리워하면서 자기 생명의 가치를 거기에 다 투입시키고,전체의 가치를 거기에 집결시켜 당신 앞에 한꺼번에 바쳐 드리고 향기로운 모습으로 사라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당신의 심정 세계로부터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는, 언제까지고 당신이 지켜 주시는 아들딸이 아니 될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아옵니다.

아버님. 통일교단을 사랑하십니까? 교단을 사랑하기 전에 가정을 사랑 해야 될 아버지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통일교단 가운데 사랑하는 가정이 있사옵니까? 그런 가정이 있기 전에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립고 또 그리워 아니 만날 수 없고, 아니 찾아올 수 없는 그런 아들과 딸이 이곳에 있다 할진대는, 이곳이 사막과 같이 고독한 자리라 할지라도 이곳은 황무지가 아닌 것을 아옵니다. 당신이 모든 창조물의 주체의 자리에 계시고 모든 실권의 주체이시며 행.불 행의 요인을 좌우할 수 있는 주인인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자리는 아무리 초라하다 하더라도 초라한 자리가 아닌 것을 아옵니다.

당신의 온유한 마음 가운데 그려지는 말씀을 통하여 부르시는 당신의 부드러운 음성을 그리워하는 이 자리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손을 내밀어 저희들을 더듬어서 사랑하고 싶어하시는 그 모습과, 그 부드러운 감촉을 그리워해야 되겠사옵니다. 언제 그런 당신의 품에 품길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겠느냐고 하게 될 때, 그런 자리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이요, 그런 내연을 갖지 못한 사람은 고독한 사람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이제 저희들은 천년 한, 만년 한을 품고 그러한 자리를 추구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자리를 알지 못할진댄 무한히 외로운 고아요, 무한히 고독한 사람이요, 비참한 죽음길에 선 사람인 것을 깨닫고 내 몸이 여위더라도 그 자리를 찾아가야 되겠사옵니다. 그 자리를 찾아가다가 죽게 되더라도 그 무덤 앞에 하늘을 그리워하다 죽은 사람이라는 비석이 라도 세우게 될 때, 당신이 그것을 인정하게 되면 그 사람의 후손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제단 앞에 부복할 수 없는 것을 잘 알면서도, 불초한 몸들을 가누어 후하신 당신의 은사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아침에 아버지 앞에 찾아온 무리이오니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마음에 부끄러움 없이 자유로운 입장에서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타락의 후예 된 이 원한으로부터 이를 악물고 벗어나야 되겠사옵니다. 어떠한 희생을 천번 만번 치르고, 수없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이름과 더불어, 최후의 음성과 더불어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길에 처하여 있는 저희들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누구를 위하여 있습니까?'나는 누구를 위하여 존재 하는가' 하는 문제는 심각한 문제이옵니다, 세상의 권위를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도 싫습니다. 세상에서 자랑할 수 있는 외적인, 물질적인 요인을 갖추었다는 사람도 싫습니다. 외적으로 아무리 호화찬란한 입장에 있더라도 당신의 마음의 그리움이 저희들에게서 사라지고, 당신의 자비와 동정이 저희의 환경에 없다 할진대는, 이곳은 사막 중의 사막이요, 저희는 고독한 사람 중의 고독한 사람이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이 자리에 찾아오시옵소서. 통일교회를 사랑하시거든 이 자리를 지키시옵소서. 아버지, 1971년도도 이제 40일을 남기고 있사옵니다. 가고 오는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옵니다. 남겨야 할 뜻도 이 덧없는 세월과 더불어 흘러 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산을 바라보고도 그 뜻을 염려할 줄 알고, 흐르는 물을 보고도 혹은 물소리를 듣고, 바람소리를 듣고도 그 뜻을 염려할 줄 아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뜻을 그리워 그리워하며 허덕이고 사는 당신의 아들딸을 수많은 종교인들 가운데서 찾다가 못 찾고, 배척받고 있는 무리인 통일교단에 와서 찾을 수 있다면, 저희들은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옵니다.

이 자리는 당신이 소심(素心)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한스러운 마음이라도 다 풀고 말할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렇지 못하거든 당신의 억울함과 슬픔을 저희들을 쳐서라도 풀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자리가 되면 이 자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그런 자리에 처해 있다고 해서 몸부림치며 원망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머무를 수 있는 승리의 길을 닦는 데 무슨 일은 없겠느냐면서, 내일의 희망을 다짐하는 통일의 역군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이 시간 잘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갈 길은 오직 당신만이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것은 당신과 더불어 가느냐, 안 가느냐 하는 데서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통일가를 이끄시옵소서. 이들이 그리워하는 나라가 어떠한 나라이며, 이들이 그리워하는 세계가 어떠한 세계이옵니까? 저는 아버지 앞에 원하고 있사옵니다. 나라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생애를 기울여 지금까지 나왔으나 정성이 부족하여 그 나라를 보지 못하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을 원망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고, 그리워하던 세계를 바라고 나가다가 쓰러지는 자리에 처하더라도 당신을 원망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모든 것을 당신의 뜻에 맡기고, 당신의 이끄심에 감사드리며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타락한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느낄 줄 아는 통일가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변명을 잘합니다. 저희들은 자기 자신을 수호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 반면 하늘을 변호하기 위하여 얼마나 심각하였으며, 하늘을 지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과연 부끄러운 모습들이옵니다.

아버지, 이 통일가를 지켜 주시옵소서. 세계 도처에 있는 당신의 자녀 들이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사오니, 만나 가지고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버지를 중심삼고 드높은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조건이 되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당신께서 사랑하신 역사적 인연을 따라서 이 민족을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한국 땅을 지켜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이 땅을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할 통일의 무리들은 비참한 자리에 서게 되더라도 또 가야 되겠사옵니다. 끝까지 싸워서 남아지는 자가 되고, 끝까지 영광의 존재로 남아져 당신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된다는 사실, 당신의 승리를 찬양하는 그때가 되면 그날을 영광으로 찬양하기에 부끄럽지 않는 모습이 반드시 되어야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당신의 한 아들은 지금 중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사명을 완수 해야 할 입장에 있사오니, 그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시아와 세계를 연결시키고 당신이 가실 그 길을 닦기 위해 어려운 자리에 서 있는 자녀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또한 일선에 나가 있는 어린 딸들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하늘이 바라는 그 기준에서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몇 명이라도 남아야 된다는 것을... (녹음이 중단됨)

말 씀

사람은 누구나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름 있는 사람이 되고, 권위 있는 사람이 되고, 무게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즉,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소원(가치의 기준)이 실현되는 자리

그러면 우리가 바라는, 누구나 바라는 그 가치의 기준, 그 가치는 어떠한 곳에서 찾아질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종교인들이 바라는 것은 천국입니다. 그들의 소원은 어디에 귀결되느냐 하면, 천국에 들어가고,천국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소원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치 있는 인간이 된 후에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어디냐 할 때, 그곳이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다 가치 있는 인간이 되지 않으면 보다 높은 단계의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도 단계적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 사회에도 계급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상 중 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영계에도 상 중 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울이 삼층천을 보았다는 그런 체험적인 내용을 보나, 성서에서 가르쳐 주는 해의 영화, 달의 영화, 별의 영화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별과 별의 영화도 각각 다르다는 것을 두고 볼 때에도, 거기에는 여러 계층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질서라는 것은 반드시 주체에서부터...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직적인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질서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질서라는 것은 선후관계를 통하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선후관계, 상하관계, 좌우관계를 중심삼은 상중 하의 계층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에도 여러 가지의 계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계층은 무엇으로 좌우되느냐? 그것은 가치 문제입니다. 그 사람이 얼마만큼 가치 있는 존재냐 하는 문제가 그 계층을 결정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바라는, 보다 가치 있는 인간의 기준과 천국으로 출발할 수 있는, 하늘이 바라는 기준이 일치되어야 될 것이 아니겠느냐? 만일, 하늘이 바라는 가치의 기준과 인간이 바라는 가치의 기준이 다르다 할 때는,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세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이 기뻐하고 우리 인간이 기뻐하려면, 하늘이 바라는 것과 인간이 바라는 것이 일치되어서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같이 이루어져서 우리 인간도 기뻐하고 하늘도 기뻐할 수 있는, 양면의 기쁨으로 화(和)하여 가지고 하나의 기쁨으로 연결되면 거기에서 비로소 행복의 터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혼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혼자는…. 제아무리 세상에 없는 권위를 가졌다 하더라도, 권위를 가진 그 자리가 고독단신이 된 자리라 할 때에는, 그는 행복한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자기가 중심의 자리에 서 있으면, 그 중심과 더불어 관계되어 있는 분야가 넓고 크면 클수록 그 넓고 큼에 따라서 그의 행복의 기준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많은 것을 갖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더 귀한 것을 갖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보다 가치 있는 것과 관계를 맺으려고 일상생활에서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보다 행복할 수 있는 환경과 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이란 홀로 있는 고독한 자리에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행복은 상대적 관계를 맺는 데에서만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대적 관계는 상충적 관계가 아니라 상응적 관계이어야 합니다. 서로가 화하고, 서로가 위하는 상대적 관계를 맺는 데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상대적인 관계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서로가 자기를 위하려는 자리에는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서로서로가 상대를 위하는 자리,그 자리가 노골화되면 노골화될수록. 표면화되면 표면화될수록, 그것이 전체에 긍(亘)하면 긍할수록 그 행복의 자극이 전체에게 높게 전개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 자리가 축소되게 될 때는 행복도 축소된 한계선으로 제한 되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 자신을 두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이 광대무변한 대우주를 창조하셨겠는가? 하나님께서 광대무변한 우주를 창조 하신 것은 조그마한 분야에서 행복을 찾고자 한 것이 아니라, 보다 광대한 행복권을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광대무변한 우주를 그 주체 되시는 하나님, 즉 창조주와 피조물이 그 어느 누구도 영원히 침범할 수 없는 자리에서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행복의 요인으로 만들었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 만들어진 피조물과 만드신 창조주가 서로 상극이 아니라 상응할 수 있는 입장에서 피조물이 가치 있게 될 때는 창조주도 가치 있게 되는 것이요, 피조물이 기뻐하고 행복해 하게 될 때는 창조주도 기뻐하고 행복해 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서만이 창조이상의 기쁨이 실현될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인격 기준

하나님이 그러한 인연을 따라서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에 인간 자신들도 그러한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크다면 얼마나 큰 것을 바라느냐? 무한한 것을 바랍니다. 자기의 상대적 인격을 추구하는 그 무엇이 있다 하면 그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권내의 인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몇 천 년 몇만 년이 되더라도 생각할 수 없는, 그 이상의 큰 인격을 자기도 모르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남의 생각도 미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도 미치지 못하는 그 이상의 가치적인 인격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인격을 추구하는 인간 자체이기 때문에 그러한 인간이 주체가 되었다면, 그러한 인간이 주체로서 바라는 상대물도 무한히 무한히 큰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무엇을 갖더라도 하나 가지고는 만족을 못 하는 것입니다. 이 세계 전체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 세계 이상(以上)의 것까지도 바라는 마음이 여러 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 자신들의 생각으로는 추구할 수 없는, 그 이상(以上)의 인격의 기준을 마음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 세계를 바라는 데도 그렇게 바란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 인간의 인격의 가치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 것이냐? 그 가치의 기준이 제한된 시간이나 공간권내에 일정한, 한 표적과 같이 나타난 것을 두고 '이것이다' 할 수 있느냐? 물론 '이것이다' 라고 할 수 있더라도 어떠한 선내에 혹은 어떤 권내에 싸여진 것을 이것이라고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한과 연결된 대우주의 중심적인 입장에선 자기 자체를 인정하는 기준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이다' 하더라도 어떤 선내에서가 아니라 전체가 연결된 것을 '이것이다' 라고 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이 무한하다면 그 인간이 바라는 인격의 기준도 무한과 통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한계선내가 아니라 그 한계선을 넘나들 수 있는 기준까지 확장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인격의 기준이 그렇게 방대하게 확장되어 나간다면 그 중심이 될 수 있는 핵은 무엇이냐? 그것이 '나'라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나 자체만 가지고는 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방대한 대우주권내에서나 홀로 있어 가지고는 중심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나와 더불어 상대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뭐냐? 그것은 나와 같은 것이어야 됩니다. 나와 같은 것인데 그것이 상대성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남자와 여자가 있는 것입니다. 남자도 그러한 가치의 기준을 바람과 동시에 여자도 그러한 가치의 기준을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치의 출발이라는 것은 나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나와 더불어 관계를 맺으려면, 그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제일의 기준이 무엇이냐? 나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크다 하는 인격 기준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도 그 제일 기준은 결국 자기와 같은 사람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것은 사랑

인간 세상에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습니다. 그 남자와 여자가 가치적인 존재임에는 틀림없는데, 그 가치적인 존재가 어디를 근거로 하고 있느냐 할 때에 그런 문제는 그를 중심삼고, 또한 나를 중심삼고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와 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일 것이냐? 이것이 문제됩니다. 그도 그 자리에 두면 좋겠고, 나도 그 자리에 두면 좋겠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일 것이냐 하는 것을 추구하게 될 때, 그 자리는 그저 좋다고 하는 막연한 자리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가 어디일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좋다고 하는 명사를 여기에 적용시켜 보면, 그것은 마음속 깊은 자리라는 것입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선이 있으면 그 선한 자리가 중심이 될 것입니다. 그 마음속 깊은 자리는 우리가 볼 수 없습니다. 그럼 그 마음속 깊은 자리는 어떤 곳이냐? 나 홀로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도 같이 있을 수 있는 자리여야 됩니다. 그런 자리라면, 그도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어야 되고, 나도 그의 마음속에 들어가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둘이 아닌 하나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는 어디가 될 것이냐 할 때, 그 자리는 사랑의 자리가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마음속 깊이 사랑하느냐, 마음속으로 진정히, 참된 마음속으로 사랑하느냐 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좋다고 할 때 그냥 좋다고 하면 맛이 안 나는 거예요. 그렇지만 '내 마음속 깊이 진정으로 사랑한다' 이러면 맛이 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서로가 경계선을 타파해 버리고 둘이 아닌 하나로 결속되어야 합니다. 그 결속점은 서로 가만히 마주 보는 자리가 아니라구요. 서로 화하여 안팎이 하나인지 둘인지 알 수 없는 자리라구요. 만일에 그런 자리가 벌어졌다면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아까 말한, 인간이 바라는 가치의 기준과 하늘이 바라는 기준, 천국이 출발할 수 있는 그 기준이 일치되는 자리입니다. 만일 이것이 어느 한 곳이라도 맞지 않는다면 기쁨의 세계가 못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기뻐할 수 있는 기원이, 기뻐할 수 있는 동기가 없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디에서 출발을 하여 하나로 결속될 것이냐? 그 결속점은 어디일 것이냐? 그곳은 아까 말했듯이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여러분, 성경 요한복음 14장을 보게 되면 말예요.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무엇을 중심삼고 한 말이냐? '진리' 하게 되면 이것은 상대적 관념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말예요. '선' 하게 될 때 그 선이란 것도 상대적인 관념이지만 '사랑' 하게 되면 벌써 그 감이 어때요? '사랑'하게 되면 나와 더불어 한꺼번에 부딪히는 감이 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말(요 14:20)은 사랑을 중심삼고 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인데 무슨 사랑이냐? 하나님이 바라는 사랑에 표준을 두고 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마음의 경계선을 타파하여 일치시켜 가지고 하나로 결속시키는 누룩과 같은 것, 즉 원인이요, 동기요, 모체가 뭐냐 하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작다면 지극히 작은 것이요, 크다면 지극히 큰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그렇잖아요?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 눈만 한번 깜박해도, 힐끗 흘겨만 봐도 그것이 천지가 뒤집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라구요, 또 사랑하는 사람이 방긋하고 한번 웃는 표정만 지어도 천지가 들락날락하는 거라구요. 예민하다면 그렇게 예민하고, 작다면 그렇게 작고, 크다면 그렇게 크고, 보인다면 보이고, 안 보인다면 안 보이는... 그 경계선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점령되어 있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도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삼고 시작하려고 합니다. 안 그래요?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삼고 주고 싶은 것이요,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삼고 받고 싶은 것이요,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삼고 속삭이고 싶은 것이요.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삼고 만사를 인연맺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사람과 끊어지게 되면 이 우주 전체가 다 귀찮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자리

사랑하는 사람을 놓고 모든 것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 등의 모든 것들도 사랑하는 사람을 놓고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우리 실제 생활에서 한번 예를 들어 보자요.

자, 백만장자인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다 갖춘 할아버지입니다. 아들딸도 있고, 돈도 있고, 권력도 있고 외적으로 볼 때 부러울 것 하나 없이 전부 다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감이 어떤 영감이냐면 홀아비 영감이다 할 때, 그 할아버지를 보고 '아. 그 영감은 천하를 대표할 수 있는 행복한 영감님이다' 그래요? 혼자 사는 할아버지들, 그런가 생각해 보라구요. 아마 그렇지는 않을 거라구요. 아직 그 자리까지는 못 갔지만 말예요. 세상에 아무리 잘생긴 남자 여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미남 미녀가 혼자 산다면 그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라구요. 그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행복의 출발은 어디서부터냐? 이것은 지극히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가치적 기준이 성립되지 않고는 나타나지 않는 것인데, 그 가치의 기준이라는 것이 어디서부터 세워지는 것이냐? 나부터야? 나부터는 될 수 없습니다. 가치의 기준은 나에서부터 세워질 수 없습니다. 나와 너 사이, 나와 너 사이에서부터 세워지는 것입니다. 나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내가 그를 완전히 사랑할 수 있고, 그로 부터 완전히 사랑 받을 수 있는 자리, 완전히 줄 수 있고 완전히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생각해 보게 될 때, 아무리 혼자 굴속에 갇힌 몸이라 하더라도, 자기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고 죽음길을 가면서라도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그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 시간에는 불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고독하고, 비참 하고 생사가 엇갈리는 자리에 있더라도 그 자리를 극복하고, 그 모든 환경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은... 사랑하는 사람이 틀림없이 나를 위해 노력 하고 있고, 내가 이 길을 감으로 말미암아 그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할 때는 죽음의 길에서도 강한 것입니다.

생명과 사랑

이렇게 볼 때에 생명의 동기는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철학계에서도 생명과 존재가 문제되고 있습니다. 존재가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하는 것이 문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어 가지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명이 먼저냐, 무엇이 먼저냐? 생명은 반드시 상대적 인연을 통해야만 생겨나는 것입니다. 상대적 인연을 통하지 않고는 생명이 생겨나지않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기 전에 상대적 인연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상대적 인연은 무슨 인연이냐? 사랑의 인연입니다. 상대적 사랑의 인연을 통해야 생명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있기 전에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생명을 갖는 데에도 그러한 상대적인 인연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상대적 인연이 무엇이냐 하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 부모의 인연을 쭉 거슬러 올라가면 아담 해와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아담 해와까지 올라가면 어떻게 될 것이냐? 아담 해와도 역시 생명을 갖고 존재하려면 거기에 상대적 인연인 그 무엇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자 하는, 사랑스러워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내적인 인연을 거칠 수 있는 상대적 그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연될 수 있는 상대적인 그 무엇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이성성상이라는 말이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됩니다.

그 이성성상은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하나된, 절대적인 가치의 기준을 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은 막연히 홀로 있는 분이 아닙니다. 상대와 더불어 일치되기 위한, 주체적인 입장에 계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과 일치되기 위한 상대적 입장에 있는 것이 누구냐? 사람입니다.

그 하나님과 사람이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규합점이 어디냐? 다시 말하면 셋이 하나로 합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 넷이 하나로 합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 하나로 화해 가지고 서로가, 그가 나요 내가 그라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그 사랑의 자리가 어디냐? 혼자 살고 있는 남자, 혹은 혼자 살고 있는 여자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사랑이 임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완전한 가치를 갖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한 가치의 결정을 보았다고 하는 첨단에 서서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사랑은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말한 신랑과 신부라는 말도 거기에 기점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들이 사랑으로 결합하게 될 때, 횡적인 주체와 대상인 남자와 여자의 사랑에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개입해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입체적인 사랑권이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기원을 보지 못한 것이 타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의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겠는가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인간의 가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될 것이냐? 지식이냐?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고 할 때, 그가 석사 학위나 박사 지위를 가졌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하나요? 사랑할 때는 그런 것 다 없어진다고요. 사랑하는 데는 그런 것들이 다 필요 없다는 거예요.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거예요. 그의 눈이 지식보다 나은 것이요, 그의 모습이 지식보다 나은 것입니다. 그 사람 자체가 무엇보다도 낫다는 거예요. 그래야 됩니다. 그 자리는 지식이라든가 권력과 같은, 상대적 세계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더 가치적인 기준의 자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 외의 것이 보이는 자리는 참된 사랑의 자리가 아닙니다. 돈을 따라 결혼을 하고, 권력을 따라 결혼을 하고, 지식을 따라 결혼을 하는 것은 참사랑이 아니라는 거예요. 지식이 사랑 앞에 서고, 권력이 사랑 앞에 서고, 돈이 사랑 앞에 서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직접적인 관계는 사랑이 앞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인간의 가치기준은 무엇일 것이냐? 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가치기준이 설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상대적 관념권내에서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의 가치기준도 상대적 관념권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만큼 그 핵에, 창조원칙을 통해 주체와 대상이 합할 수 있는 그 핵에...

하늘이 바라보는 수직선이 있으면. 그 수직선이 머물 수 있는 핵은 한 점입니다. 요건 남자와 여자, 예를 들어 말하면, 거 뭐라고 할까? 이렇게 나무를 매달아 놓은 거와 마찬가지로? 이것이 딱 중앙에 가게 되면, 요 점에 달린 나무에다 중심만 잡으면 평형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기울어지면 큰일나는 거라구요. 기울어지면 전체가 엇갈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것이 수직선에 중심만 딱 잡게 되면 평행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평행이 되어서 도는 데는 수직을 그대로 영원히 보존하며 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거 있을 거아녜요? 인간이 몰라서 그렇지 그런 자리가 있을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인 동시에 변치 않는 것이기 때문에 외곬입니다. 한 길로 가는 거예요. 오직 한 길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수직을 중심삼고 일치될 수 있는데, 그렇게 일치되는 데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점에서 일치되는 거예요. 부부면 부부간에, 이건 옛날의 아담 해와를 두고 말하는 거예요, 서로 사랑하여 결합해야 됩니다. 그 결합점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수직선에 딱 맞아 가지고 세 점이 딱 달라붙는 자리, 그런 자리가 있었을 거라구요. 만일 옛날 아담 해와가 그런 자리에 섰더라면 어땠을 것이냐? 그랬더라면 하나님은 많은 힘이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새로운 힘을 내기 위한 작용이 필요 없는 거예요. 그냥 그대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거라구요. 그 둘이 조금만 쳐들면 전체가 들려 올라오고, 조금만 늦추면 전체가 내려가고, 넓어지면 올라가고, 좁아지면 내려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기울어지면 전체가 틀어지는 거라구요. 그와 같은 수직선과 평면적인 중심이 접할 수 있는 그 기준이 있을 것이 아니냐.

그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중심삼고 보는 가치기준일 것입니다. 그런 가치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느끼고 그외의 것은 원치 않는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갖고 난 다음에. 그것을 이루고 난 다음에 보다 울타리가 되고, 보다 기쁠 수 있는 인연을 전체에 적응시키기 위해서, 또 다른 상대적인 감동의 세계를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필요할는지 모르지만, 제일의 조건은 그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찾아가는 것이요, 여자는 남자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건 인간세계에서 틀림없는 거라구요.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그렇게 된 거라구요. 아담은 여자를 찾아 나가고 해와는 남자를 찾아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이 해와를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해와를 중심삼고 찾아 나가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또 해와가 아담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도 아담을 중심삼고 찾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수직선을 중심삼고 상대적 입장에서 서로를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세 점이 접하는 자리를 찾아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격의 기준이라는 것은, 가치의 기준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결합점에서 비로소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틀림없는 원칙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제일의 기준입니다.

세계를 사랑하려면 먼저 사람을 사랑하라

그러면 우리 타락한 인간들은 서로서로가 무엇을 바라고 나가야 될 것이냐?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수직선으로 되어 있으면 그 수직선을 중심삼고 남자나 여자를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찾아가는 데 있어서 사람이 여기 서 있으면─서서 다니는 동물은 사람 하나밖에 없다구요─ 서 있는 그 사람이 바라는 방향과 하나님이 바라는 방향이 직선상에 있어야 됩니다. 그럴 거 아니 예요? 언제나 직선상에 서 있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야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루가 되고 일년이 되고 십년이 되고, 혹은 일생이 돼 가지고 죽어 가는 거라구요. 그런 무엇이 있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방향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역사는 지금까지 방향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방향을 찾아 나오는 거예요.

인격의 기준이 무엇이냐 할 때, 지금까지는 철인들이라든가 성현들이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사상이나 세계관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주장한 내용은 무엇이냐,가치 기준에 있어서 그들은 무엇을 중심삼고 말했느냐? 그것은 외적인 나라라든가, 세계를 중심삼고 말했습니다. 막연하다는 거예요. 내가 나라를 직접 사랑할 수 있어요? 세계를 직접 사랑할 수 있어요?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나라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대표적 중심이 무엇이냐? 세계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누구부터 사랑해야 되느냐? 개인부터 사랑해야 됩니다. 개인부터 사랑하는 데는 어떻게 사랑해야 되느냐? 물론, 남자면 남자 끼리끼리 사랑하는 것은 어떤 목적관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떤 결과를 추구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것이지 그 외에는 없는 거라구요. 남자들끼리 서로가 사랑을 해요? 그 뜻이 맞아서 그렇지요. 친구는 그래서 생기는 거예요. 목적을 중심삼은 입장에서 서로 사랑하는 거예요. 여자끼리 서로 좋아하는 것도 어떤 목적관을 중심삼고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없다면 사랑도 안 한다는 거라구요.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어떤 목적관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목적관이 없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동기적 사랑이라고 보는 거예요.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세계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세계를 진짜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먼저 사람을 진짜 사랑해야 됩니다. 사람을 진짜 사랑하는 데는 자기의 상대를 진짜 사랑해야 됩니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는 남자를 사랑해야 돼요. 그것이 부부입니다. 부부가 된 사람들은 자기의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세계를 사랑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여자는 자기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계의 남성을 사랑하고, 또 자기가 남성으로부터 사랑받는 가치적인 존재인 줄로 알고 세계의 여성을 그렇게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의 여자들을 자기 아내와 같이 귀한 여성으로 사랑하고, 또 세계의 남성을 아내가 사랑하는 자기를 대신한 입장에 세워 가지고,아내를 위하는 입장에서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은 이렇게 더듬어 나가야 되는 거예요. 막연해서는 안 된다구요.

그래서 가정이 국가 형성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세계를 형성한다 하더라도 가정이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오늘날 통일교회는 천주주의(天宙主義)를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늘의 가정주의라는 거예요. 천주, 하늘의 집이라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가 그렇게 사랑하는 거예요. 그렇게 사랑했으니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은 절대적 사랑이 되었을 것입니다. 절대적 사랑의 자리에 들어간다는 거라구요. 왜?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수직으로 되어 있는 거기에 접선될 수 있는 상대적 입장에 들어갔으니 절대와 하나될 수 있는 상대적 사랑권내에 들어갔으니 그것도 절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자는 시집을 잘 가면 남편의 권위의 자리에 아무런 공로도 없이 점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국민학교밖에 못 나온 여자라도 남편이 대통령이라면, 그 남편이 가는 데는 어디든 무사통과라는 거예요. 이와 같이 대등한 가치를 아무 조건 없이 한꺼번에 점령할 수 있는 수법이 무슨 지식세계에 있어요? 권력세계에 있어요? 그것은 사랑세계에만 있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사랑세계에만 비약적으로 점령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하늘나라도 직행인 것입니다. 모든 전체의 가치권을 직행할 수 있고, 간섭하는 데 있어서 무리를 제시할 수 없게끔 될 수 있는 방법이 사랑의 세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해와가 만일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었다면. 상대적 자리에서도 절대자와 하나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그런 절대적 사랑권내에서 태어난 아들딸도 절대적인 사랑을 받게 되니 자연히 절대적 상대권에 있게 되는 거예요. 절대적 상대권에서 모순, 상충이 없이 순응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거기에 절대적 사랑이 같이 있는 것이요, 그들은 절대적 사랑의 치리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아들딸들은 평화로운 사랑의 울타리권내에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서로 화합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이며, 거기에서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사위기대 기준, 즉 이상적(理想的)인 가정의 형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머니 아버지와 그 아들딸이 하나되어 사위기대 기준이 이루어지면 어떻게 될 것이냐? 어머니 아버지가 이렇게 딱 되었으면 그 아들딸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요렇게 딱 붙는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사위기대니까. (그림을 그리심) 어머니 아버지가 이 기준에 있으면, 요것(하)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것(A)과 이것(B)도 같고, 이것(C)과 이것(D)도 같고, 요것(E)과 요것(G)도, 요것(F)과 요것(H)도 전부 같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것(A)이 절대라면 요것(B)도 요것(C)도 요것(D)도 요것(E)도, 뭐예요? 「절대요」 요것(F)도 마찬가지예요. 요것 (G)도 요것(H)도 절대입니다. 하나의 절대적 가치가 입체적으로 절대화 될 수 있는 그 권이 천국이 아닐 것이냐.

인간의 가치 기준이 무엇이냐 할 때에, 오늘날 세상에서는 지식을 두고, 사상세계를 두었습니다. 그 사상세계의 가치의 내용은 목적을 중심삼고 추구될 수 있으나 그 목적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그 세계가 어디로 갈 것이냐? 전부가 그 세계의 최고의 꼭대기를 놓고서 싸울 것이냐? 그렇게 되면 큰일 난다구요. 목적을 이룬 그 세계에 갔으면 거기서 돌아올 수 있어야 된다구요. 그것이 가정이더라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은 천국의 모국(母國)이라고 볼 수 있는 거예요. 이상한 말이지만, 가정은 뭐라 구요? 「천국의 모국요」 천국의 모국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출발한 종교가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는 가정천국 구원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두고 볼 때, 신랑 신부의 이름을 통해서 찾아온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가치 기준은 무엇에 두어야 되느냐? 이상세계에 두는 것이 아닙니다. 이상적인 세계에 두는 것이 아니예요. 이상적인 사람에게 두어야 됩니다. 그래서, 세계를 사랑하려면 사람을 사랑해야 된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그러면 사람을 사랑하는 데는 어떻게 사랑해야 되느냐? 방법을 알아요? 어떻게 사랑해야 돼요? 그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요. 그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이냐?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듯이,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듯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여자 앞에는 아버지가 있고 남편이 있고 오빠가 있는 거예요. 그것이 가정이지요. 남자 앞에는 어머니가 있고 아내가 있고 누이동생이 있는 것입니다. 요거라구요.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세계를 사랑하려면 사람을 사랑해야 되는데, 어떻게 사랑해야 되느냐? 사랑하는데는...

내가 생겨나려면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부모만 있으면 되느냐? 아닙니다.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상대가 없으면 영영 마지막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닮을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있는 동시에 상대가 있어야 되고, 상대가 있는 동시에 아들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 앞에는 아버지, 남편, 오빠 아니면 동생이 있다구요. 형제라구요. 아담을 해와보다 먼저 지었으니 아담이 오빠가 되지요. 아담 앞에는 누가 있어야 된다구요? 어머니가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엔? 아내가 있어야 되고,그 다음엔? 누이동생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에게는 누나는 없다구요.

그러면 태어날 때는 어떻게 태어나느냐? 어머니 아버지를 중심삼고 태어날 때, 신랑 각시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딸로 태어나서 사랑의 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된다구요. 그 부모는 아들딸에게 무슨 교육을 해야 되느냐? 지식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교육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싸우는 사랑의 교육? 싸우는 사랑이라는 말은 없겠지요. 서로서로가 하나되는 교육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좋아하는 어머니 아버지이고, 또 어머니가 좋아하는 아버지이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어머니이고, 둘 다 좋아하는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어머니 아버지이고,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좋아하고... 내가 아버지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렇게 보게 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봐도,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봐도 사위기대지요? 전부 사위기대라는 거예요.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모두 사위기대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의 기원이 어디냐? 인간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모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아담 해와는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아담 해와의 가치 기준의 설정은 어디서부터 되어지느냐? 하나님의 사랑의 교육에서부터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교육을 받는 데는 어느 때까지 받느냐? 아버지가 아는 모든 가치의 기준을 헤아릴 수 있을 때까지, 다시 말하면 성숙할 때까지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기록이 성서에 있어요? 이거 찾아봤어요? 있어요, 없어요? 사랑 받았다는 얘기는 없고 기분 나쁘게 타락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했다는 거예요. 이거 산통이 깨졌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의 교육

그러면 사랑의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했던 아담 해와의 사랑의 교육 기준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없었다면 하나님의 이상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 사랑의 교육 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여러분, 천국가고 싶지요? 그러나 천국가서는 그런 교육을 못 받습니다. 이 땅에서 교육을 받고 살다가 가야 되는 거라구요. 이 땅에서 그 교육을 안 하면 큰일나는 것이요, 안 받으면 큰일난다는 거라구요. 그 교육이 무엇이냐? 어떤 게 교육이예요? 여러분, 알아요?

그러면 아담 해와가 교육을 받으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되느냐? 부모와 자식간이니까 부모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가게 되면 어디까지나, 언제나 따라가야 된다구요. 부모가 산에 오르면 산으로 따라가고 골짜기로 내려가면 골짜기로 따라가고 굴속으로 들어가면 굴속으로 따라가야 돼요. 언제나 부모와 같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안 보면 보고 싶겠어요, 안 보고 싶겠어요? 만일에 하나님이 아들과 떨어져야 한다면 떨어질 수 있겠어요?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보고 싶어한다는 거라구요. 절대적인 분이기에 좋아해도 절대적으로 좋아한다는 겁니다. '뭐 하나님,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고, 거 어디 있겠으면 있고 말겠으면 말고...' 그러면 되겠어요? 절대적이어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이들의 생명의 모체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부모는 그 아이의 생명의 모체지요? 생명을 키워 준다고요. 생명의 모체요. 사랑의 모체요, 보호의 모체입니다. 생명을 보호해 주고, 키워 주고, 사랑해 준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이거예요. 보호권이 성립 안 되면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생명이 위협받으면 사랑도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죽게 되었는데 사랑이 성립되겠어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보호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호권을 만들었는데 보호해야 할 것이 누구냐 하면 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생명의 기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고 천사장의 보호를 받아 가지고 사랑의 교육을 받고 있는 도중이었던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그 교육을 다 받았더라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을 것이냐? '내가 너희를 이렇게 사랑했으니, 해와도 이렇게 사랑했고 아담도 이렇게 사랑했으니, 너희 서로서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보다 더 사랑하라'고 명령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 둘이서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한 것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어떤 길일 것이냐? 그들이 성숙하여서 둘이 서로를 사랑하는 길 외에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럼 왜 하나님보다 자신들끼리 더 사랑해야 되느냐? 서로가 더 사랑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를 더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그 집안이 잘되고, 더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주체적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크다는 것을 더더욱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너희가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도 너희들끼리 더 사랑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신다는 거예요. 그것이 신랑 신부의 사랑입니다. 결국 그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에 못지 않은 사랑인 것입니다.

거기에서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던 것, 즉 종적인 사랑이 비로소 횡적인 인연의 사랑으로 출발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종적인 사랑이 약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종은 주체요, 횡은 상대이기 때문에 이 상대적 가치가 보다 가치 있게 되면 그 주체는 보다 큰 가치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 자체가 서로 성숙해 가지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보다 자기들끼리 더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시기 마련인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주체이기 때문에, 상대가 멋진 사랑의 실체로 화하면 주체는 보다 큰 사랑의 가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기에서 불행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은 아담 해와가 서로 사랑 하기를 얼마나 바라셨겠습니까?

하나님 자신은 한 몸입니다.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주체로 계시기 때문에 자체내에서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생각으로는 '남성적 주체의 자리다. 여성적 대상이다' 해 가지고 사랑을 느낄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남성과 여성이 분립된 입장에서는 자극적인 충격을 느끼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아담 해와가 하나님 자신을 제쳐 놓고 자기들끼리 더 충격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볼 때, 사랑의 주체되시는 하나님은 나빠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 둘이 하나된 그 자리를 상대로 해 가지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주체자이시기 때문에, 그 상대가 보다 가치적인 사랑을 느끼게 될 때, 하나님도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를 중심한 사랑의 제일 법도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랑의 교육을 받지 않고는 그 자리에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재림주는 어떤 분으로 오셔야 하느냐

그러면 통일교회에, 우리 통일교회에,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받아야 했던 사랑의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심정적 내연이 깃들어 있다면, 이는 세계적 종교가 되지 말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그런 무엇을 느껴야 됩니다. 느끼는 데는 어떻게 느껴야 되느냐? 여자는 최고의 아버지를 찾았다는 기쁨을 느껴야 됩니다. 최고의 상대의 가치로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의 기준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오빠 중에 세계 제일의 오빠를 찾은 기쁨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으로 오시는 분이 누구냐? 재림주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뭐라구요? 재림주라고 하면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재림주가 좋아요, 초림주가 좋아요? 「재림주요」 재림주가 좋아요? 어떤 것이 좋아요? 사랑을 중심삼고 재림주가 좋아요? 첫사랑이 좋아요. 두번째 사랑이 좋아요? (웃음)

재림주라는 말은 초림주가 뜻을 성사해서 나온 거예요, 못 해서 나온 거예요? 「못해서….」 못해서 나온 거라고요. 그러므로 재림주는 어떤 분으로 오셔야 되느냐 하면. 인간세상에 있어서 최고의 아버지로 오셔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돼요. 세상을 구할 도리가 없어요. 사랑세계의 이상으로써 천국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러한 가치의 내용을 가져야 됩니다. 아버지로서, 신랑으로서, 오빠로서의 이 3대 심정적 내용을 완전히 종적으로, 횡적으로, 그리고 45도로 펼 수 있는 그러한 입장의 가치를 종합한 내용을 가지고 오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주님이 못 된다는 거예요.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아버지의 참사랑을 못 받아 봤습니다. 받아 봤어요? 「못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남편의 참사랑을 못 받아 봤습니다. 그 다음에는? 「오빠의 참사랑….」 오빠의 참사랑을 못 받아 봤습니다. 이것을 누가 깨뜨렸느냐? 누가 그걸 깨뜨리는 동기가 되었느냐? 요 여자들입니다. 해와가 그랬다구요, 해와가.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역사과정에서 그것을 찾을 때까지 지지리 고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눈물을 흘릴 때에는 전부 다 사랑의 짓밟힘을 받아 가지고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탕감해야 됩니다. 사랑의 탕감을 해야 돼요. 여자의 눈물은 무엇이더냐 할 때, 사랑의 엇갈림길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 여자의 눈물이더라, 이렇게 돼 있다구요.

그러면 남자들은 무엇이냐? 도둑놈입니다. 담을 넘어왔다가 넘어가는 손님이라는 거예요. 그게 뭐냐면 남자들이 지금까지도 천사장 대신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넘어왔다가 넘어가는 거 책임을 못 지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책임을 안 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둑놈 같은 남자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담을 넘어왔다가 넘어가는 것이 남자들이라구요. 그런 것들을 믿었다간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러니 여자는 울고 살게 마련입니다.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비참하게 눈물을 줄줄 흘리고 사는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을 통해서 주님이 오시기 쉬운 것입니다. 여자들이 수많은 남자들에게 유린당한 역사를 가진 민족을 통하여 주님이 오시기가 쉽다는 거예요. 담 넘어온 사내들에게 짓밟힘을 많이 당한 여자일수록 오시는 주님으로부터 제일 동정받을 수 있는 패입니다. 그런 거예요

주님은 어떤 민족에 오실 것인가

세계적으로 가만히 보면, 여자들이 달랑거리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순박해 가지고 집안에 가만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자들이 담을 넘어 들어와 가지고 유린하는 거예요. 그러한 민족, 여자들이 그렇게 유린당하는 비참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 있다면, 주님은 그 민족 가운데에 오실 것입니다.

여자가 알랑알랑거려 가지고 나가는 그런 여자는 사탄편 여자입니다. 타락된 여자라고요. 그런 나라가 일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사탄편 해와 국가입니다. 그 말이 맞다는 거예요. 그러면 한국 여자들은 어떠냐? 그저 집안에 들어박혀 가지고 지금까지 수많은 남자들에게 유린당해 왔습니다. 여자가 유린당하기로는 아마 한국이 세계적인 대표일 것입니다. 며느리가 아들딸을 셋이나 낳았는데도 방에 들어와서 밥을 못 먹게 하는 시어머니를 내가 봤어요. 아들딸을 셋이나 낳아, 그 아들딸이 컸는데도 불구하고 그 며느리는 부뚜막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고생만 하는 것입니다. 종살이 한다구요. 그 집에 시집가는 날부터, 시아버지한테 종살이, 시어머니한테 종살이, 그 다음에는 남편한테 종살이, 시동생한테 종살이, 시누이한테 종살이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종살이를 하는데도 가만히 두나요? 그저 좋고 나쁘고간에 뜯는다는 거예요. 옷을 조금 잘입으면 잘입어서 탈이고 조금 못 입으면 못 입어서 탈이고, 또 잘생겼으면 잘생겨서 탈입니다. 그렇게 생겨 가지고 남편만 호려 먹는다고…. 이래 탈이고 저래 탈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지긋지긋한 종살이 중의 종살이를 시집 간 그날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한국역사가 세계의 대표일 거예요.

그러면 왜 그래야 되느냐? 그 주인들이 전부 다 사탄세계의 천사장 족속들이고 해와들은 앞으로 자기 갈 길을 찾아가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시 잡아다가 심부름을 시키는 여편네이기 때문에 그렇게 안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게 맞다는 거라구요. 그래서 지지리 고생을 시키는 거라구요.

영계에 가서도 '세계적으로 고생을 많이 한 여인상' 하면, 한국의 여인이 대표일 것입니다. 그런 사실이 일면으로는 나쁘지만 어느 한때에 가서는…. 가물 때에는 제일 깊은 골짜기에서 수가 나는 것입니다. 깊은 골짜기에는 가물 때에도 물이 있거든요. 안 그래요? 그것이 반대라는 거예요. 꼭대기가 좋은 줄만 알았더니 가물 때는 큰 사고라는 거예요. 가물면 가물수록 물이 점점 없어지기 때문에 꼭대기는 나쁘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가물면 가물수록 골짜기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다는 거예요. 비가 오면 그 물을 전부 다 골짜기로 배급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세상이 아무리 메마른 땅이요, 사망의 세계, 백사장의 꼭대기와 같은 세상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저 깊은 골짜기에서는 목을 축일 수 있는 물이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제일 아래로 내려가라, 내려가라, 내려가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 이러면서 내리 모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간 꼭대기에서 나는 생수가 있어요? 그건 예외지요. 그것을 바라는 사람들은 호외 꾼들입니다. 생수라는 것은 깊은 곳에서 솟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골짜기로 쳐 모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도 골짜기로 쳐 모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입을 벌리게 하고 몸뚱이를 패 가지고 생수가 터져 나올 수 있게끔 그저 아래 위로 눌러 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래 위로 나갈 데는 없고 몸뚱이를 밀고 눌러 대면 몸뚱이가 터져 가지고 몸뚱이에서 생수를 쏟을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 식입니다.

그것이 망하는 식이냐? 절대 안 망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통일교회의 지도방침이 나쁜 것 같지만…. 어때요? 「좋습니다」 좋다는 거예요. 세상에서는 전부 다 '야, 야. 밟고 올라가자, 올라가자' 고 이러는데 물 보따리를 지고 올라가지 않고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올라가서 10년을 살겠어요? 몇 대 살겠어요? 어림없다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올라갔던 사람은 나중에 내려와 가지고 내 종이 돼야 된다는 거라구요. 빌어 먹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돼 있다는 거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여인들이 영계에 가게 되면 '고생을 제일 많이 했다'라고….그러면 거 불행한 거예요? 불행한 것 같지만? 「행복한 것입니다」 왜? 동정을 해주려면, 같은 사람 가운데서 도움의 손길을 펴려면, 그래도 벌거벗고 피를 흘리고 매를 맞아 가지고 죽게 된 사람부터 도와 줘야 될 것 아니예요? 거 순차가 그렇다구요. 그래도, 헌 옷이라도 입은 사람은 나중이라는 거예요. 옷을 갈아 입힐 때도, 상처가 나서 옷을 못 입었던 사람을 제일 먼저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 입히고, 좋은 옷을 입었던 사람은 제일 나중에 입혀야 된다는 거예요. 가엾게도 꼴찌가 된다구요. 그래서, 성경에 먼저 된 자가 먼저 되고 나중 된 자가 나중 된다고 했어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또,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지고」 높아진다고 했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죽고 살고자 하는 자는 살고, 그랬어요? 반대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거예요.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래서 내가 죽으라고 하는 거예요. 눈을 부릅뜨고 '죽어라. 안 죽겠어? 이러는 것입니다. 그런 스승이 멋진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기분 나쁘지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절개와 지조

오늘날 인류역사에 있어서 절개에 대해서 말하게 되면, 남자가 절개를 더 지켜야 됩니다. 그런데 여자는 절개를 지켜야 된다고 하고, 남자는? 「지조입니다」 (웃음) 지조, 배짱인지 모르겠어요. 지조가 뭐예요? 뜻을 위한 절개를 말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목적을 위한 절개입니다. 그리고 여자의 절개는 사랑을 위한 절개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목적을 위한 사랑이 좋소. 사랑을 위한 사랑이 좋소? 아까 남자끼리는 목적을 중심삼고 사랑한다고 했지요? 그리고 남자와 여자, 즉 부부끼리는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이 먼저냐? 목적을 중심삼은 사랑은 나중이고 사랑을 중심삼은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절개를 지켜야 한다고 했으니 한 사랑밖에 몰라야 됩니다. 또 남자는 지조를 가져야 한다 했으니 한 목적만을 향해 가야 되는 겁니다. 이랬다저랬다 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한번 정했으면, 남아일언은 중천금이라고 했으니. 한번 한다고 했으면 망하더라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도리입니다.

왜 그러냐?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볼 때, 천사장은 지조를 지켜야 했습니다. 자기의 갈 길을 알고 지조를 지켜야 했던 것입니다. 종이면 종의 지조를 지켜야 되는 거라구요. 그런데 그 지조를 못 지켰기 때문에 타락했지요. 여자는 절개를 못 지켰기 때문에 타락했다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본 남편이 아담인데도 불구하고 천사장에게 끌려갔지요?

그러니 통일교회 원리는 사랑을 중심삼고 말을 하는데, 이렇게 추구해 보게 될 때,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역사를 통해 볼 때, 음란이 팽창하면 반드시 그 나라는 망했습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뭐냐 하면 음란입니다. 음란을 제일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뭐냐? 지조를 깨뜨려 먹고. 절개를 깨뜨려 먹은 데서 왕초 망운이 싹텄기 때문에. 이렇게만 되면 들이치는 것입니다. 오늘날이 세계도 윤리관계가 말할 수 없이 문란해져 있고, 음란이 팽창되어 있으니 들이맞을 때가 올 것이라고 보는 거예요.

여기에서 통일교회에서는 남자는 지조보다도…. 지조라는 말은 천사세계에서 하는 말입니다. 천사장인 종을 대해 지조라는 말을 쓰지 주인이 지조를 지켜야 된다는 말이 있어요? 주인은 목적적 상대이념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구요. 사랑의 상대를 위하여 주인이 오게 되면 그 주인에 대한 절개를 존중시해야 되는 때가 오는데, 그때가 이상시대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초림주가 좋아요. 재림주가 좋아요? 「재림주요」 초림주가 좋지요. '할 수 없이 두번째 장가를 가게 됐다. 약혼을 하려다가 다 그어 버리고 할 수 없이 두번째 했다' '그것이 좋아요? 두번째 결혼하는 사람은 첫번째 사랑의 십자가를 넘어가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초림주가 실패한 사랑의 십자가를 넘어 가지고 하늘 앞에 승리한 자리를 갖지 못하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로 가신 주님이 다시 오실 때는 영광으로 못 오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오셔야 되는 거예요. 오늘날 기성교회 교인들은 주님이 영광으로 오실 줄로 알고 있지요? 십자가로 와 가지고 승리한 후에야 영광의 주님이 되는 거라구요.

하늘 부모를 모시려면

자, 그러면 다시 돌아가자요. 세계를 사랑하려면 인간을 사랑해야 됩니다. 인간을 사랑하지 않고는 세계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을 사랑하는 데는 어떻게 사랑할 것이냐? 어디서부터 사랑해야 될 것이냐? 뿌리부터 사랑해야 됩니다. 뿌리가 어디냐? 하나님입니다. 그 다음 뿌리는 어디냐? 아담 해와입니다. 그 다음 뿌리는 어디냐? 아담 해와의 아들딸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을 여러분 자신들을 중심삼고 보면, 여러분들은 타락한 인간의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여러분의 부모를 그냥 붙들고 있으면 하늘 부모는 들어올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부모를 모셔 들이려면 여러분의 부모를 옮겨 놓아야 합니다. 기분 나쁘지요?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아,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르치는 교리는 가정파탄 교리다' 그럴는지 모르지만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구요. 더 좋은 것을 원하거든 덜 좋은 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눈이 있고 비교할 수 있는 지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갖다 놓고 둘 중에 어느 것을 갖겠느냐고 선택의 자유를 줄 때, 나쁜 것을 갖는 녀석이 있으면 그 녀석은 돌대가리입니다. 모자란 녀석이라는 거예요. 팔부 예요, 팔부. 팔삭동이라는 것입니다. 어린애들도, 한 살 먹은 애들도 같은 모양인 큰 것과 작은 것을 갖다 놓고 하나 가지라고 하면... 우리 국진 애기도 이제 한 살 조금 지났는데 뭐가 있으면 한번 딱 보고 대번에 감정을 합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을 형님들이 가지려고 하면 그저 빼앗으려고 한다구요. 그 어린애 한 살박이도 그러는데, 아, 뭐 열 살, 스무 살, 쉰 살박이가 왜 안 그러겠습니까? 그럴 거 아니예요?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엄마 아빠보다 더 좋은 엄마 아빠를 가르쳐 주면, 그게 틀림없다면, 지금의 엄마 아빠를 치워 버리고 더 좋은 엄마 아빠를 모셔 들이겠어요, 안 모셔 들이겠어요? 모셔 들이겠지요? 또 지금의 남편이나 아내보다 더 좋은 남편이나 아내를 가르쳐 주면, 지금의 남편이나 아내를 버리고 더 좋은 남편 아내를 모셔 들이겠어요, 안 모셔 들이겠어요? 여자들, 어때요? 지금 남편이 바로 옆에 앉아 있어도 할 수 없다고요. 이럴 때는 모셔 들인다고 큰소리로 대답해야 복받는다구요. (웃음)

자, 오빠가 있는데 개구장이 오빠입니다. 이래도 익살맞고 저래도 익살 맞고 꿈에 생각해도 지긋지긋한 오빠, 그런 오빠와 천지간에 하나뿐인 멋장이 오빠가 있다면 바꾸겠어요? 바꿀 수 있다면 바꿔야 되겠지요? 그런데 만일 그 오빠가 울고불고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오빠가 '아이고 너는 내 동생이 아니냐? 나는 너하고 같이 살고 싶으니 제발 그러지 말아 다오' 이러면서 울고불고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응, 그러자' 이러면 돼요? 발로 그냥 차 버려야지요. 그런데 발로 차 버려도 붙들면 어떻게 하겠어요?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거예요. 더 좋은 신랑 더 좋은 각시가 생겨날 수 있는데, 지금의 신랑이나 각시가 자기를 붙들고 놓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또, 어머니 아버지가 '야 이 녀석아, 이 불효막심한 녀석아, 내가 너를 낳았는데 너를 낳은 부모를 반역할 수 있느냐? 이러면 어떻게 하겠어요?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겁니다. 이것은 말하고 싶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예요. 사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의 사상으로 사랑의 질서를 세워야

타락이 됐으면, 고장이 났으면 고쳐야 된다구요. 고치려면 분해해야 됩니다. 분해하지 않고 고칠 수 있어요? 분해해야지요? 그러면 분해하는 것이 뭐냐? 현재의 오빠와의 인연을 그냥 둔다는 거예요, 끊어 버린다는 거예요? 또, 지금의 신랑 각시의 인연을 뜯어 놓는다는 거예요, 그냥 놔둔다는 거예요? 분해는 어머니 아버지와의 인연을 뜯어 놓는 거예요. 전부 뜯어 놓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개인주의 세계 역사는 전부 뜯어 놓은 역사입니다. 오늘날 민주세계는 기독교 문화권이요, 기독교 문화권은 통일 문화권인데, 박애주의 세계가 되어 인류 전체가 서로 사랑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 반대 사조인 개인주의가 세계화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들 앞에 나라가 어디 있어요? 나라를 다 뜯어 버린 거라구요. 나라가 어디 있으며, 민족이 어디 있으며, 부모와 가정이 어디 있어요? 다 끊어졌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재미있는 놀음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 아파트에 열 집이 산다면 거기에서 자기들끼리 남편 바꾸어 살기 놀음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이 사람은 내 아내다' 라고 금을 긋는 것은 독재라는 거예요. '뭐 그럴 것 있느냐? 그것은 옛날 우리 선조들의 생각이 모자라서, 재미있게 살 줄 몰라서 그렇게 정한 것이다. 그것은 독재다. 시시하지 않느냐' 이거예요. '한 달에 한 번씩 바꿔 살면 일년 동안 재미있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그런 패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별의별 역사가 벌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전부 뜯어 버렸다고요. 아버지 어머니가 어디 있고, 형제가 어디 있어요? 전부 다 뜯어 왔다는 거예요.

이것을, 이렇게 제멋대로 분해된 것을 우리가 다시 뜯어 고쳐야 됩니다. 갈고 닦고 해 가지고 조립을 해야 된다구요. 이런 면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조립공 훈련 장소입니다. (웃음)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 안에 들어오면 대번에 분해 작업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 느껴 봤어요? 여기에만 들어오면 자기 집에 가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집에 간다고 해 놓고는 쓱 돌아와서 일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렇다구요. 그렇지 않다면 이곳은 소망이 없는 곳이라고요.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은 잘 듣게 되어 있다구요. 내가 너희 어머니 아버지에게 가지 말라고 하면 '예' 하게 되어 있지, '선생님. 왜 그래요? 이러게 되어 있어요? 그런 말을 안 해서 걱정이지요.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그것을 막은 거라구요. '야야, 네 멋대로 수작 부리지 마라. 부작용이 벌어지니까' 하며 브레이크를 거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 여기 들어오면 전부 자기 남편 생각을 안 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 남편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원수시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래서 욕을 많이 먹었다구요. 욕을 많이 먹었어도 패이거나 망하지는 않았소만. 한번 거 수리공장에 집어 넣어 가지고...

수리공장에 들어가면 분해해야 되는데 왜 그래야 하느냐?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첫째는 참아버지를 잃어버렸습니다. 둘째는 참남편을 잃어버렸고, 셋째는 참자녀를 잃어버렸습니다. 다 잃어버렸다고요. 누구 때문에? 해와 때문에, 천사장 때문에. 그러면 오늘날 이땅 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참아버지와 참남편과 참오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생겨난 남자는 천사장뿐이라는 것입니다. 천사장 아버지, 천사장 남편, 천사장 오빠, 이렇게 천사장만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자는 그들에게 붙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자들은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를 들어 말하면, 부자집 고명따님이 머슴한테 붙어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됐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머슴의 핏줄을 받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래의 아버지 사랑, 본래의 남편 사랑, 본래의 오빠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여자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게 여자예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라는 분은 그러한 사랑을 갖고 오시는 분입니다. 아버지 대신, 남편 대신, 그리고 오빠 대신. 그 세 가지의 사랑을 갖고 오신다는 것입니다.이 세 가지 사랑의 인연을 에덴에서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기에서 행복한 딸로서의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이 타락이기 때문에, 주님이 그 세가지의 사랑을 종합해 가지고 이 땅 위에 찾아오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남자들은 무엇이냐? 전부 다 사기꾼입니다. 남자는 사기꾼이라는 거예요. 천사장 패라구요. 남자들은 사기꾼들이라는 거예요, 사기꾼. 무슨 사기꾼이냐? 여자 속여먹는 사기꾼입니다. 여기 남자들,그런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지금 뭐 나이 많은 사람들도 다 웃고 앉았구만요. 남자들은 전부 다 여자 속여먹겠다고 하는 사기꾼이라고요. 그렇지요? (웃음) 그렇지 않다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그 자리에 안 나갔기 때문에 몰라서 그러는 거라구요. 남자들은 그럴 수 있는 성격이 농후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사랑의 질서가 지금까지 유린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질서를 세우지 않으면 본보기가 못 돼요. 행복의 세계는 오지 않는 거예요.대한민국이 경제부흥을 해서 돈이 많아진다고 천국이 될 것 같아요? 노르웨이 같은 나라는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 세계 제 1위라고 할 수 있지만 자살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것입니다. 덴마크 같은 나라도 그렇습니다. 부유하면 부유할수록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살율이 더 높다고요. 또, 사랑의 질서는 더욱 혼란되어가는 거라구요. 그것을 무엇으로 수습할 것이냐? 오시는 주님의 사상이 아니고는 그것을 수습할 수 없습니다. 참부모 참부부와 참자녀의 사랑을 가지고서 수습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여인들 중에 현재의 남편과 사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여인들은 진짜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할 수 없어서 남편하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좋아서 사는 여자는 앞으로 오실 주님의 신부될 자격이 없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남편과 마음이 맞지 않아야 누가 와서 추파를 던지더라도 휙 달아나지요. 전부 다 이러한 분해 작용이 벌어지기 때문에 끝날에는 가정을 가진 여인들에게 화가 있다고 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누가 하느냐? 남자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는 호외로 치는 것입니다, 호외. 주님은 신부를 찾아오시기 때문에 가정을 가진 여자, 젖먹이는 여자에게는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가진 여인보다도, 아이에게 젖 먹이는 여인에게는 3대 화가 있습니다. 부모를 저버려야 하고, 남편을 저버려야 하고, 자식을 저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연의 세계를 못 찾아간다는 거예요.

젖먹이는 여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남편이 있는 여인이요, 자식이 있는 여인이요, 부모를 가진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여인에게는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자는 혁명을 해야 됩니다. 역사적인 혁명을 해야 돼요. 남편이 원수시하고, 부모가 원수시하고, 자녀가 원수시할 수 있는 길을 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엇갈린 역사의 종말을 세계가 거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사람을 사랑하는 데는 어떻게 사랑해야 되느냐? 통일교회 교인들은, 축복받은 여러분들은 부모와 같이, 아내와 같이, 믿음의 아들딸과 같이, 그리고 여러분의 아들딸과 같이 인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그렇게 인류를 사랑하라는 거예요. 그것이 천국의 모체이기 때문에, 누룩이기 때문에, 그 누룩을 갖다 옮겨 놓는 곳곳마다 전부 다 누룩이 되는 것입니다. 밀가루 떡은 누룩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이것을 요만큼 집어 넣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결국 누룩이 되게 마련입니다. 그렇지요? 사랑의 누룩을 세계화시킨 그 자리가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천정과 인정은 엇갈리는 것

그러면, 그 아버지 보고 싶어서…. 우리 한국 말은 좋은 것을 전부 다 죽겠다고 표현합니다. '아이고 좋아 죽겠다. 아이고, 맛있어 죽겠다. 슬퍼 죽겠다' 이러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예요? 그러나 그 말이 얼마나 멋진 말인지 몰라요. 죽겠다고 했으니 살 놀음밖에 없다는 거예요. (웃음) 성경에 '죽겠다고 하는 사람은 산다'고 했기 때문에 살 놀음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라구요. '아하, 끝날이 되면 한국 백성은 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와야 된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거 계시적인 말이라구요. 그저 전부 다 죽겠다고 합니다. 맛있어 죽겠다고 하지요. 그런 말이 어딨어요? 맛있어서 죽겠다, 좋아서 죽겠다, (웃음) 슬퍼서, 기가 막혀서 죽겠다고…. 여러분들, 가만히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 말을 씁니다. 수십 번씩 그 말을 쓰면서도 다들 모르지요? 그런 거라구요. 아이고 재미있어 죽겠다, 통일교회 힘들어 죽겠다…. (웃음) 그렇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살 일이 벌어진다는 거라구요.

이제부터는 '통일교회 못 가게 해서 죽겠다. 가고 싶어서 죽겠다' 이런 말이 다 통해야 된다구요. '아이고 저 영감이 옛날에는 그렇게 좋더니 이제는 죽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남편이 결국은 종의 새끼고. 자기가 그 종 새끼한테 겁탈을 당해 가지고 붙들려 산다 하게 되면 거기서 계속 붙어 살겠어요? 그러므로 끝날에 가게 되면 천지개벽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천지개벽이 뭐예요? 아버지가 아들이 되고, 할아버지가 손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때는 어머니 아버지가 살려면 자식한테 '살려 주소, 살려 주소' 해야 살 수 있는 거라구요. 그것 천지개벽이지요? 예수님이 어머니에게 '당신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뇨? 라고 했지요. 그 말 잘했어요. 못했어요? 예수님은 '천정을 세워야 할 마리아, 너는 인정을 따라 천정을 세워야 할 아들의 길을 대하고 있느냐? 이 요사스러운 여인이여, 너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라고 했는데, 그 말 잘했어요, 못했어요? 못했어요? (웃음) 잘했지요. 못했다는 것은 인정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천정과 인정은 엇갈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돼요. 사람이 좋다고 하는 데에는 하늘이 없는 것이요, 하늘이 좋다고 하는 데에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좋다고 하는 데에 추파를 던지고 박자를 맞추어 가는 종교는 오래 못 가는 것입니다. 죽기 내기를 하고, 피를 흘리고, 그저 쓰러지고 하는 종교는 세계의 끝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사니까…. 그래서 기독교는 지금까지 죽음을 연이어 가지고, 순교한 선열들의 피의 공적을 따라 가지고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도 그런 전통적 역사를 세워야 됩니다. 핍박이 있게 될 때만이 발전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럴 때만 하늘이 같이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극성스런 원수가 극성스럽게 동원되어 가지고 부딪히는 자리를 박차고 솟구쳐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하늘이 같이하시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통해서, 그 길을 통해서 본연의 부모, 본연의 부부, 본연의 형제, 본연의 자녀가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길을 찾아가게 될 때에는, 세상이 전부 다 가로막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버리라고 하는 거예요.

사랑할 수 있는 식구가 없었던 예수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식구'라는 말을 합니다. 그렇지요? 이 식구라는 말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중심삼은 식구가 있었느냐? 어머니가 식구예요? 예수의 가는 길과 하나된 자리에 서지 못한 그 어머니가 식구예요, 식구 아니예요? 그 어머니는 어차피, 같이 가겠어요, 갈라지겠어요? 「갈라집니다」 아버지가 그런 입장에 있으면 갈라지겠어요, 같이 가겠어요? 「갈라집니다」 형제도 갈라지고, 아버지도 갈라지고, 종족도 갈라지고. 나라도 갈라지고, 교회도 다 갈라지는 것입니다. 예수와 영영 같이 죽을 수 있는, 한길을 가야 할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자란 가정에 예수의 식구가 있었느냐? 식구라면 아버지 어머니가 있고, 아내와 남편이 있고, 자녀가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말로는 사위기대라는 거예요. 그것이 예수의 식구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식구가 있었더냐? 예수가 어머니를 사랑했어요? 사랑 못 했다구요. 아버지를 사랑했어요? 아버지는 의붓 아버지였다구요. 동생들을 사랑했어요? 동생들도 사랑 못 했다구요. 그 누구를 사랑했느냐? 사랑의 주인공으로 온 장본인인데도 불구하고, 어머니 아버지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려고 했는데 사랑 못 했다는 것입니다. 본래의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교육을 못 받았기 때문에 예수가 그런 사랑을 어머니 아버지에게 '이렇게 사랑하고 살아야 됩니다' 하고 가르치려고 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예수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교육하는 데는 유대교 예법을 거친 자리에서, 성전 이상을 완성한 자리에서 해야 됩니다. 예수는 하나님 대신으로, 아버지 대신, 신랑 대신, 오빠 대신 사랑의 주인공으로 왔기 때문에, 마리아 가정 전체는 예수를 하나님 대신으로 모셔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는 요셉을 대하여 '야, 요셉아!' 이래야 했습니다. 요셉이 아버지가 아니라고요. 또 마리아를 대해서도 '마리아야!' 이래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교육을 받아야 했던 거라구요.

그런데 그들이 교육을 받게 되어 있었어요? 인정을 통해서 볼 때는 부자의 관계였지만 천정을 통해서 볼 때는 예수가 주체이기 때문에, 예수가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해서 왔기 때문에, 그 사랑의 도리를 따라서 그의 부모에서부터 그의 형제까지 모두 예수에게 교육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이렇게 살아야 되고, 형제들은 이렇게 살아야 되고, 형제들 가운데 내 상대는 이러이러한 여자라야 된다고 교육을 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그렇게 교육을 해봤어요? 성경에 그런 말이 있습디까? 이건 진잎은 다 빼놓고 떡잎들만 가지고 천국 가겠다고 야단하고 있다구요. 요사스러운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언제 아버지를 사랑해 봤느냐?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아버지,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어머니,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동생들, 혹은 형님, 이웃 사촌들이 있었더냐? 없었다는 거예요. 그것이 예수의 한이라는 것입니다. 또,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나라와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민족과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교회와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종족과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가정과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상대가 있었느냐? 있었어요? 나라가 몰아대고, 민족이 몰아대고, 교회가 몰아대고, 종족이 몰아대고, 친척이 몰아대고,부모가 몰아대고, 형제가 몰아대니 죽을 수 밖에요. 다 잃어버리고 기가 막혀서 죽어 갔는데 나를 위해서 죽었다고요? 좋아서 죽었다고요? 이런 허황된 패들이 세계에는 많다는 거예요. 자기들이 죽여 놓고 자기들을 위해서 죽었다고…. 다 미친 것들이라구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이 자리에서 식구의 인연을 실현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었겠어요, 안 되고 싶었겠어요? 장가가서 아들딸 낳아 가지고 일가 문중의 족장이 되고 싶었겠어요, 안 되고 싶었겠어요? 죽지 않았으면 그렇게 됐을 것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예수는 어디 갔으며, 남편 예수는 어디 갔으며, 아버지 예수, 가주(家主) 예수는 어디 갔으며, 형으로서의 예수는 어디 갔으며. 친척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예수는 어디 갔느냐? 예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친척은 어디로 갔으며, 교회는 어디로 갔으며, 나라는 어디로 갔느냐? 비운에 몰려 가지고 고독 단신이 되어 쫓기면서 서글픔의 길을 간 것이 예수의 행각인데도 불구하고, 기독교에서는 그걸 좋은 일로 생각하고 있으니 그게…. 영계에 가 보라구요.

우리 통일교회는 예수 할아버지를 모실 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예수 할아버지를 만나야 모시지요? 예수 할아버지를 모셔야 된다구요. 그것을 못 한 것이 예수의 한입니다. 나라를 모시지 못했고, 교회를 모시지 못한 것이 예수의 한이라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는 그 한을 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유대교를 대신하자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수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그 하나밖에 몰라야 합니다, 방향을 제시 하는 데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가자고 하면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되어 있어요? 「예」 그러면, 남편을 버리고 자식을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가자고 하면. 가야 되겠어요, 가지 말아야 되겠어요? 「가야 됩니다」 통일교회를 위해서는 그 놀음 안 한다구요. 나라를 위해서 그 놀음을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지금 이북에서는 가정의 호적을 전부 다 뜯어고치지요? 그게 무엇인 줄 알아요? 사탄 세계가 먼저 하는 거라구요. 나라를 위해서는 자기 남편이니 아내니 부모니 자식이니 할 것 없이 전부 다 버리고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소망의 나라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찾게 될 때, 그 나라와 더불어 부모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를 찾지 못하게 되면 피 흘리는 부모를 봐야 되고, 피 흘리는 아내를 봐야 되고, 피 흘리는 자녀를 봐야 됩니다. 그 이상 비통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찾기 전에는 아내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부모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자식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가야 할 길이요, 통일교회가 가는 길입니다.

축복가정들이 가야 할 길

여러분의 골수에는 오직 나라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를 해원 하는 길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나라가 없으니 그러한 이상적인 나라를 그려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의 종족을 편성해 가지고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친척을 대신하고, 요셉 족속을 대신하고, 유대교를 대신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짊어진 것이 바로 통일교회입니다. 알겠어요? 이 통일교회를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찾고 싶었던 그 소원을 성취하는 그곳까지 가야 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아저씨 다 있지요? 그 할머니를 예수 할머니로서, 즉 예수님의 상대가 되어서 아들딸을 낳고 저렇게 머리가 허옇게 되었다고 생각하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리고 할머니는 '나는 예수님의 신부와 같은 사명을 하려고 늙었다'고 생각해야 되는 거라구요. 예수의 상대된 할머니니까 자기보다 손아래의 젊은 사람들을 보게 될 때는 예수 아들딸과 같이 사랑하라는 거라구요. 무슨 얘기인지 알겠어요?「예」

그리고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아저씨 아줌마로서의 예수와 같은 입장에서 그 시대를 대표해 가지고 자기보다 윗사람에 대해서는 예수 할머니 할아버지로 섬겨야 되고, 그 다음에 젊은 사람이 있거든 예수 시대에 예수 부부가 사랑하여야 할 아들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은 전부 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라는 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자기 남편은 어떠한 남편이냐? 하나님의 사람이지 자기가 사랑하는 남편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 남편은 통일교회를 사랑하고, 통일나라를 사랑하고, 통일가정을 사랑해야 할 대표적인 남편이라는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통일교회를 사랑하고, 통일종족을 사랑하고, 통일가족들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고 난 자격자로서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상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할머니 할아버지로서의 예수 부부, 아저씨 아주머니로서의 예수 부부, 청년으로서의 예수 부부의 입장으로 세웠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서 자기보다 높은 사람을 먼저 모시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가정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어디 축복받은 남자들 손들어 봐요? 내려요. 너희들, 교회를 아내보다 더 사랑했어? 했어, 안 했어? 만일 자기 아내보다 교회를 더 사랑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식구의 자리에 서지 못하는 거라구요. 할아버지 예수, 할머니 예수, 아주머니 예수, 아저씨 예수를 못 모신 거라구요. 예수 시대에 있어서 그 부부를 못 모신 사람이라구요.

그렇게 돼 가지고 하나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될수록 그것이 예수의 가족권이 되고, 예수의 종족권이 되는 것이 아니냐? 그것을 여러분이 이루지 않고는 예수의 한을 해원할 수가 없습니다. 아까 말했지만,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맺힌 것을 풀지 않고는 다시 해원성취 할 수 없겠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에는 그 길을 가기 위해서 식구라는 명사가 생겨난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만일 여자들이 시집을 와 가지고 '당신은 교회보다 나를 더 사랑해야지요' 이러거든 입을 찢어 버려야 돼요. '나를 사랑하기 전에 당신은 교회를 사랑해야지요. 종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서는 선조들의 가정을 사랑해야지요' 그래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나를 사랑하기를 바라야 내가 가정에서 사랑받고, 종족으로부터 사랑받고, 교회에서 사랑받고, 교단에서 사랑받는 승리의 사랑권을 일시에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인연을 따라 사랑을 받고자 해야 할 것이 통일가의 시집 간 아가씨들의 입장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사랑해야 할 남편들, 그런 아내가 아니거든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여자들은 요사스러운 것들이라는 거예요. 네 눈에는 너밖에 보이지 않느냐 이거예요.

예수는 사랑의 주인으로서 아버지 대신이요, 신랑 대신이요, 오빠를 대신해서 왔기 때문에 그와 더불어 일체가 되어 가지고, 그의 일생 동안, 아기에서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의 그를 아버지로서, 신랑으로서, 오빠로서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늙어 죽을 때까지 뿐만이 아니라 몇 천 년 동안이라도, 기독교까지, 본연의 세계까지 발전시켜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를 사랑하고, 기독교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교회, 종족, 가정, 개인까지 축소시켜 들어와 가지고, 세계적 대표 부부로서 예수의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아 신랑 신부의 이상을 완성한 자리에서 사랑하자는 것이 통일교회에서 축복해 준 가정적 사랑의 기반입니다. 개돼지 새끼들처럼 사랑하는 녀석들은 두고 보라구요. 내가 가만히 안 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아내와 자식들까지 끌고 나가서 나라를 사랑해야 됩니다. 나라를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게 되면, 종족을 사랑했고, 가정을 사랑 했고, 전체를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게 된다는 거예요. 세계를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게 되면, 나라도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게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나라 없이는 세계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시에 탕감할 수 있는 세계적 무대로 나가려면 나라를 기반으로 해야 되겠기 때문에 예수가 찾아온 나라가 천국입니다. 천국이라는 것은…. 나라를 이루려면,국토가 있어야 되고, 백성이 있어야 되고, 주권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국가 형성의 3대 요소입니다.

참된 부모, 부부, 자녀의 자리가 천국의 기원

그러면, '인간의 가치와 천국의 기원' 이라고 했는데 그 기원이 어디냐? 가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 상대, 오빠 이 삼사랑입니다. 이 삼대사랑을,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유린하여 잃어버린 이 삼대사랑을 내 일대에 어떻게 실현시키느냐? 하나님같이 인류를 사랑하고, 죽어 간 예수같이 인류를 사랑하고. 살아 생전의 예수같이 인류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총각 때의 예수의 자리에서, 그 다음에는 영적인 신랑 신부. 예수와 성신을 통해 가지고 영적인 부모의 자리에서 인류를 사랑해야 되고, 하나님의 자리에서 인류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육을 중심삼은 상대기반입니다.

이것이 아까 말한, 아담 해와와 하나님이 일치될 수 있는, 세 점이 결합할 수 있는 천정과 인정이 상봉할 수 있는 핵심적 결정점입니다. 이 결점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끝날에 비로소 신랑 신부의 인연을 중심삼고 천정과 인정이 결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거기에서 하늘이 찾고 있던 참된 부모, 참된 아버지, 참된 남편, 참된 자녀의 자리를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 천국의 기원이라는 것은 인격적 기준인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정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천국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막연하지 않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오늘날 사탄세계보다도 여러분의 형제를 더 사랑해야 됩니다. 세계를 대표한 국가적 승리 기반 위에서, 그 국가적 보호 아래서... 그 국가적 보호권이란 무엇이냐? 아까 말한 거와 같이, 타락하기 전의 에덴 동산은 보호권이라고요. 첫째는 생존권,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곳이요, 두번째는 보호권이요, 세번째는 사랑받을 수 있는 권이라는 거예요. 그것이 국가적 보호권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의 보호권은 무엇이냐? 국가입니다. 하나님이 치리 할 수 있는 국가. 그 권내에 살고 있는 통일교회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살게 될 때, 그것이 천국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람을 못 사랑하면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려면

그러면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과 같이 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열두 사람의 마음을 맞추기 위하여 3년 공생애노정을 갔으며, 죽어서도 갈 길을 가지 못하고 부활해 가지고 40일 동안 그것을 수습하고 갔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열두 사람을 규합시켜야 됩니다. 열두 사람의 마음을 맞출 수 있는 자격자가 못 되면 춘하추동 사계절을 중심삼은 열두 달을 못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위기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녀의 입장에서 열두 사람의 마음을 맞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렇게 살다 갔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지지리 못난 사람들을 중심삼고 삼년 공생애노정을 간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심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해 가지고 제자들의 머리도 씻어 주고 발도 씻어 주고 한 것이 뭐냐? 그게 부모의 자리라구요. 부모의 자리에서 교육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교육을 잘못 받았다구요. 죽을 때는 부모와 같이 죽자는 것이 예수가 가르친 사상의 골자였다고요. 자식은 부모가 죽기 전에 부모 대신 죽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모가 죽을 자리에서 도망을 간 것입니다. 그놈의 자식들 그런 자들은 남겨 준 것만으로도 하늘에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자들은 전부 다 쓸어 버리고, 전부 다 지옥으로 거꾸로 꽃아 넣어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보다 먼저 죽지 못한 사람들은 천국에 못 갑니다. 예수를 위해 살겠다는 사람은 천국 못 가는 것입니다. 예수는 죽었기 때문에 그 죽은 부모랑 같이…. 예수는 아버지로 왔지요? 신랑으로 왔지요? 오빠로 왔지요? 아버지가 죽는데. 신랑이 죽는데, 오빠가 죽는데 거기에서 살겠다고 하는 여편네는 벼락을 맞아야지요. 그런 여편네를 그냥 둬서 뭘 해요? 독수리밥이 되게 해야지요. 또, 어머니가 죽고 아내가 죽고 동생이 죽는 자리에서 자기는 살겠다는 자식이 있다면, 그놈의 자식은 벼락을 맞아야지요. 죽어도 같이 죽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통일교회 패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죽을 자리에 가서 같이 죽어야 된다구요. 내가 명이 다해서 죽을 때 말고 싸우다가 죽을 자리에 서게 되거든 다 같이 죽을 패라구요. 같이 죽을래요, 안 죽을래요? 「같이 죽겠습니다」 내가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할래요? 내가 싫다면 어떡할 테예요? 그래도 같이 죽을래요? 「예」 예수가 강도하고 같이 죽고 싶어서 죽었나? 싫다고 해도 옆에서 같이 죽다 보니 사정을 아니까…. 싫어도 같이 죽게 되면 수가 나더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한 구덩이에서 같이 죽어서 썩어지면 물이 합할 것 아니예요? 선생님이 생각해도 기분 나빠요. 얼룩덜룩한 별의별 녀석들, 아이쿠 그런 녀석들이 죽어 썩은 물까지도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그런 생각 안 해요?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은 좋아요? 선생님이 죽어 썩은 물과 여러분이 죽어 썩은 물이 합수가 된다면, 기가 막힌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 생각해 봐요. 그것이 공동 운명체라는 것입니다. 나무의 뿌리가 죽으면 가지가 죽고 싶어서 죽나? 나무 뿌리를 뚝 잘라 버리면 가지고 뭣이고 다 죽겠어. 안 죽겠어? 「죽습니다」 다 죽는 거라구요. 통일교회가 잘리는 날에는 여러분도 다 죽는 거라구요. 또 기독교가 잘리는 날에는 다 죽는 거라구. 그렇지만 그 뿌리는 '죽지 않습니다. 그 뿌리는 하나님이니까. 자꾸 잘라도 자꾸 살아나는 것입니다. 천년이고 만년이고 더 싱싱해 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뿌리를 못 박게 자르면, 자르면 자를수록 죽는 것이 아니라 더 싱싱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작던 뿌리가 줄기를 자르면 뿌리는 점점 번성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더 자라난다는 거라구요.

그래, 선생님이 죽을 사지에 가면 다들 따라갈래요? 「예」 최재만! 「예」 그렇게 늙었는데도? 「예」 그렇게 마음 결정을 했나, 생각하고 있나? 「결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보다 먼저 죽을래, 나중 죽을래? 「먼저나 나중이나 뜻을 위해서라면….」 아 그거 물어보는 거 아냐. 죽는데 그렇게 기도하라고 했어? 먼저 죽겠나 나중 죽겠나 물었는데 뭐 뜻이 뭐야? 그렇게 대답하라고 했어? 먼저 죽을래, 나중에 죽을래? 어떻게 죽을래? 「먼저 죽겠습니다」 먼저 죽겠으면 먼저 죽을 자리를 찾아 나가라구. 선생님보다 먼저 죽을 자리를 찾아 나가려니 우리 대한민국에서 죽을 곳이 있어요? 통일교회에서 죽는다면 목 자를 곳이 있어요?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반공전선에 나서라는 겁니다, 반공 전선에. (웃음) 나는 가만히 있지만 일선에 서라는 거예요.

뜻을 위해 생명을 바칠 것을 각오하라

조금만 더 나가게 되면 통일교회 패들을 전부 다 반장 만들어 가지고 샅샅이 뒤지게 할 거라구요. 그럴 날이 올 거라구요. 밤잠을 안 자고 뒤지는 거라구요. 이 동네 저 동네, 면과 면, 동과 동을 넘나들면서 서로가 '너희 동네는 자신 있니?','우리 동네는 자신 있다','아무래도 너희 동네는 자신 없어 보여','그럼 어디 한번 알아봐라','그래 그럼 한번 알아보자' 이래 가지고 엇바꿔 가지고 서로가 빨갱이 잡아내는 운동을 해야 되겠다구요. 거기다가 영통인까지 내세워 가지고 순방하게 해 가지고 전부다 그 영통인을 거쳐가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빨갱이들은 씨알맹이도 없이 잡아낼 수 있다고요. 지금 한국에 영통하는 사람들이 약 3만명쯤 됩니다. 사주 관상 보는 패들. 그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을 듣게 된다면 빨갱이를 잡아내게 할 것입니다. 종로 네거리 같은 곳에 딱 가서 팻말을 박아 놓고 서서 오가는 사람을 쓱 봐 가지고 전부 다 색출하게 할 것입니다. 문제없다구요. 보이지 않는 안테나로써 전부 다 심통을 찔러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겠지요? 「예」

그렇게 되면 부정부패를 못 해서 굶어 죽게 된다구요. 그래도 좋아요?「예」 그래서 굶어 죽을 때가 오기 때문에 우리는 굶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웃음)

지금 선생님 주위에는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오늘 아침에 무슨 얘기를 하는지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켜 놓고 듣고 보듯이 다 듣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구요. 내가 어디에 쓱 갔다가 방에 척 들어와 앉으면 '지금 바로 들어오셨지요?'하고 전화가 온다구요. 그러면서 '오늘 무슨 무슨 일을 하는 어떤 사람을 만나던데 그 녀석은 도둑놈이요' 이럽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도둑놈이고 뭐고 아무도 안 만났는데' 하면서 잡아떼는 거예요. 선생님이 농을 잘 한다구요. '뭐야, 요사스럽게, 아침부터 재수 없이, 당신의 보고 나 필요 없다구' 이런다구요. 영계에 있는 그들의 주인 양반들이 보고를 하지 않으면 선생님과 인연을 맺을 수 없기 때문에 자꾸 보고하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귀찮을 때가 많아요. 그러면 내가 '만나긴 뭘 만나? 이 요사스러운 것 전부 집어치워' 하고 잡아떼면, 아니 그와 만났으면서 뭘 그럽니까. 그 사람의 눈은 어떻게 생겼고, 목소리는 쉬었고, 콧수염이 어떻게 생겼고, 허우대가 이렇다는 것을 내가 보고 있었는데 안 만났어요? 합니다. 그러면 나는 '몰라! 나는' 이럽니다. 그러면 '거 모르면 좋소. 그 양반이 이러이러한 말을 먼저 했지요? 이러는 거예요. 그쯤 되면 선생님도 양심이 있지, 끝까지 버틸 수 있어요? 사실 앞에서는 약한 거라구요. 한두 번 정도는 농삼아 그랬지만, 그쯤에 가서' 아 그래도 아니예요? 하면 '글쎄…' 이러는 거라구요. (웃음) 그들이 얼마나 세밀히 아는지…. 선생님이 소변 보러 갔던 지역까지 다 안다구요. '가다가 왼쪽 무슨 바위 밑에서 소변 봤지요?' 한다구요. 그런 것까지 알고 있다구요. (웃음) 세밀하다구요. 이런 조직이 우리 통일교회의 배후에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죽을 곳을 거쳐왔지만 안 죽고 살아 남은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 그때가 돼 보라는 거예요. 여기에 들어오려면 수십 년…. 그런 텔레비전 장치 같은 것이 된 남자들을 세워 놔 가지고 들어 오려고 해도 마음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런 놀음을 하고 있다구요. 여러분들, 그런 사실을 알아요, 몰라요? 임자네들 알아요? 통일교회가 그렇다는 것을 아는 사람, 어디 사실이 그렇다는 걸 아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 외에는 다 모르는구만.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선생님 하나 놓고 지금 영계가 총동원하고 있다구요. 선생님이 지금 말하는 것도 설교하고 싶어서 제목을 정해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고요.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생명을 걸어 놓고 싸워 나온 그 행적의 노정을 보고하는 것입니다. 보고. '그럴 것이다' 가 아니라구요. '그렇다' 입니다. 실험한 결과를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렇게 살았느냐? 살기만 해요? 이것 때문에 내가 생애를 바쳐 나온 사람이예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런 길을 가기 위해서는 그런 심각한 입장에서 생명을 바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못 가는 길이라구요.

예수가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하신 뜻

천국은 어디 있느냐? 천국은 딴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고 했지요? 천국이 네 마음에 있다고 했지요? 그것이 뭐냐 하면 사랑을 두고 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한 말이라구요. 네가 홀로 있지만 하나님의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홀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까 하던 말이예요. 절대적인 사랑의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사랑만이 그대를 점령하고 그대의 마음과, 거리와 모든 공간 세계를 초월해 가지고 같이 있을 수 있는 절대적 요인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에서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한 거예요. 천국이 네 마음에 있다는 거예요. 마음이 그리워하는 천국을 못 가진 사람은 실체로 살 수 있는 천국을 보지 못하는 거라구요.

그래 천국이 그리워요? 여러분들, 천국이 그리워요? 「예」 천국은 어디에서부터예요? 여러분들 안에서부터입니다. 형제간에 있는 거라구요. 이는 어머니 아버지 대신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를 대하게 될 때 어머니 아버지의 선물이며 그분들의 딴 면을 나에게 보여 주시기 위한 선물로 알아야 되는 거라구요. 남자를 보게 될 때도 어머니 아버지의 딴 면을 보여 주는 선물로 알아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야 그것이 모든 행복의 기원이 깃들 수 있는 우주사적인 하나의 기틀이 되는 거라구요. 통일기반확보라는 것도 그 기반 위에서 벌어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열두 사람을 미칠 듯이 사랑해 보지 못한 사람은…. 천국가는 데에는 열두 진주문이 있다고 하지요? 그 문을 마음대로 통과하지 못한다구요. 열두 사람을 미칠 듯이, 어른인지 아이인지 모르고 사랑하며 산 사람은 어느 문 앞에 가도 막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미쳐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도 미치는데, 하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더 미쳐야 된다구요.

밤이 낮과 같이 그립고 낮이 밤과 같이 그리울 수 있는, 밤낮을 움직일 수 있는 정서적인 심정의 기준을 하나님을 중심삼고 어떻게 체득하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생활과 선생님의 생활은 다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내용과 선생님이 기도하는 내용은 달라요. 여러분의 기도는 막연하지만 선생님의 기도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피부에 느껴지는 감정을 가지고 '아버지!' 하게 될 때는, 그것이 말은 간단하지만 거기에는 억천만세의 사연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천국의 존재가치도 사랑에서 기원돼

자, 결론을 짓자구요. 천국의 기원은 어디냐? 먼저 내가 내 마음에 부모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해야 되고, 형제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해야 되고. 가정을 가졌으면 서로서로 최고로 사랑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꽃 중의 꽃이요, 향기 중에 제일의 방향(芳香)을 가진 향기로서, 우주를 대표한 가치의 결실이 거기에서 맺어질 것을 그리워하면서, 서로서로가 하나로 결집되는 그 인연이 공고화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거기에서 완전한 씨가 발발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기원도 그러한 사랑에서부터, 존재 가치의 기원도 그런 내재적인 사랑을 기반으로 한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가치는 상대를 중심삼고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된 사람은 아내 앞에 하나님보다 더 훌륭한 분이라고 기억되어야 됩니다. 남편 되는 사람들, 알겠어요? 아내가 '나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지만 우리 남편을 통해서 하나님을 봤고, 세상의 순수한 사랑을 몰랐지만 남편을 통해서 세상의 순수한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알았다. 또, 남편을 통해서 오빠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알았다. 또, 남편을 통해서 형제의 사랑을 내가 알았다. 남편은 모든 사랑을 가르쳐 준 장본인이다' 할 수 있는 남성이 되어야 합니다. 또, 그러한 어머니 대표요, 신부 대표요, 누나 대표의 심정을 유발시킬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체휼하면서 살아가는 남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교육을 받아 가지고, 그러한 교육이 아니고는 질식하겠다고 할 만큼 그것이 생활습관이 되어 가지고 어느 사회에서든 나이 많은 사람을 대하게 되면, 내 할아버지요, 그렇지 않으면 내 아버지 어머니요, 내 형님 누나요. 내 누이동생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심정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한 심정이 세계 도처에 보편화되면, 그러한 가정에서의 심정이 보편화될 수 있는 환경이 벌어지는 곳이라면 그곳은 틀림없이 천국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반대를 받지 않습니다. 그가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은 그와 같이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디를 가도 외롭지 않는 것이요, 어디를 가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 기준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정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기원은 타락한 우리 인간 세상의 정서적인 모든 문제를 초월한 기준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보다 생명선에 접근시키고, 보다 전체의 가치에 일치시킬 수 있는 자리에서 내가 어떻게 체휼했느냐 하는 데서…. 내가 살아 있는 것은 세계를 위해서라는 심정과 내 사랑의 울부짖음이 세계에 파급된다는 심정을 느껴야 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생활 감정과 통하고, 역사적인 모든 성인들의 생활 감정과 통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고 하게 될 때, 그 한 사람은 역사의 완성이요, 시대의 완성이요, 미래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천국을 중심삼은 인격의 가치를 가지고 사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하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기 도

아버님, 세상에서도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하려고 하면 고독단신으로 남아지는 것을 우리의 일상생활 환경의 느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을 위하여 무한히 세계적인 가치의 내용을 제시하며 남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은 홀로 외로운 자리에 서고자 해도 환경이 그를 외로운 자리에 서지 못하게 하는 것을 저희는 보고 있습니다.

아버님, 저희는 당신이 찾아 나오는 참된 남성이 되어야 하고 참된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그런 남성과 여성이 일체화될 수 있는, 사랑의 기원이 성립될 수 있는 곳이 가정이라는 사실도 알았사옵니다. 그 가정, 위로는 부모를 모시고 아래로는 자녀를 거느리는 본래의 사위기대권을 추구하는 것이, 원리가 찾아 나가는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시간 저희들이 그 자리와 얼마나 먼 자리에 있는가를 알고 스스로를 비판해야 되겠사옵니다.

예수가 그리워하던 신랑 신부의 기준, 하나님과 더불어 일체화될 수 있는 상대적인 절대권, 그 자리를 통하여 세계적인 횡적 국가관과 세계관이 형성된다는 것을, 즉 천국은 남자와 여자가 하늘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가정으로부터 기원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격의 가치도 그 자리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은 그 자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생각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자리에 있게 될 때는 내 개체의 마음 가운데 천국이 있게 된다는 것을, '천국은 네 마음 속에 있느니라' 하시던 예수님의 말씀이 증거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우리 통일가의 식구들은 서로서로를 위할 수 있는 환경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식구 가운데서도 자기는 못살면서도 다른 식구를 위하겠다고 허덕이는 사람들은 망하지 않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것이 십 년이 가고, 이십 년이 가고, 삼십 년이 가고, 사십 년 고개를 넘어가게 되면 반드시 그 후손을 통해서 무한한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여, 그들을 고이 지켜 주시옵소서. 그들을 조롱하던 사람은 그때가 되면 그 반대적인 탕감을 받을 것이요, 그들을 편든 사람은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남을 위하고, 몰리는 사람과 외로운 사람을 편드는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알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이 민족의 미래의 처참상을 바라보면서 이 민족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것이요. 세계의 처참상을 바라보면서 민족감정을 넘어 인류와 더불어 살고자 하는 것이옵니다. 또한 그것이 통일사상이옵니다. 이 사상의 모체는, 기원지는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 사랑의 원리인 줄 아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화신체로서, 사랑하기 위하여 세계로 뻗어 나가야 하는 통일교단의 발전을 아버지께서 직시하고 계시다는 사실과 그 사랑을 위해서, 그 뜻의 길을 위해서 가는 곳곳마다 하늘이 가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그것은 통일교회의 문 아무개를 위한 것이 아니요, 인간 개개인을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이요, 그 나라 앞에 보호권을 세워 가지고 우리를 잘살게 하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인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위하여 불철주야 쉬지 않고 시간시간 다짐하면서 가야 할 것이 저희의 운명길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세상 사람들은 '좋다구나' 하며 자기를 중심삼은 생활의 평면적인 향락을 추구하고 있지만 그런 것은 반드시 기울어진다는 것을, 석양이 되면, 혹은 가을이 되면 어두워지고, 잎이 진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저희는 그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들의 갈 길을 확실히 제시하셨사오니, 그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식구가 그리워 찾아 더듬는 데 있어서 자기의 자식 이상으로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는 가정은 발전할 것이요, 그 가정에는 화가 미치지 않을 것이나, 식구야 어떻게 되든, 교회야 어떻게 되든간에 자기 아들딸만 붙들고 사는 가정에서는 하늘이 떠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이 통일교단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여, 보잘것없는 이 자식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심을 제가 알았사옵니다. 제가 가야 할 길, 숙명의 길이 어떤 길인가를 이미 알았기 때문에 갔다가 후회하는 자리에서 죽기를 바라지 않사옵니다. 일선에서, 하늘이 협조하는 자리에서 생명을 다하여 최후를 고하게 되더라도 나라가 해방되고 세계가 해방되는 자리에 나설 그때를 바라보고 있사옵니다. 그때가 되기 전까지 이들을 교육시켜야 될 것이 저의 책임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가르쳐 줘야 할 것이 저의 책임인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자녀들이 자녀의 이름을 갖추어 하늘을 아버지라 부르고, 땅을 존귀하신 어머니의 대상으로 섬기는 마음을 가졌거들랑 아버지, 이제는 이들이 자녀로서 가야 할 도리를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 부모를 그리워하고, 하늘 부부와 하늘 자녀의 가치를 그리워 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고, 오늘날 타락한 인간의 후손들에게 그러한 가치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신 은사는 그 무엇으로도 다 갚을 수 없는 감사의 인연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절절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 길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큰 것이옵니다. 과거의 삼십 년, 사십 년의 생애노정에서 뜻과 더불어 태어나지 못하고, 뜻과 더불어 자라나지 못하고, 뜻과 더불어 살지 못한 것을 원통하게 느껴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저희들은 사랑의 표적으로서 죽는 시간까지 팔 다리를 움직여 가지고 자기가 아는 만큼 민족을 대신하여 외쳐야 되겠습니다. 세계 인류를 붙들고 통곡을 하며 하소연을 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날들이 계속되어서 사람을 사랑하기에 미치고, 인류를 사랑하기에 자기 일신을 망각할 수 있는 자리에서 온갖 충성을 다하면, 하늘이 자기를 대하여 그렇게 충성해 주시는 것이요, 그렇게 보호해 주시는 것이요, 그렇게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체험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금후의 움직임 일체를 당신 앞에 맡기고, 오늘 이 시간 천국의 기원과 우리의 가치 기준이 일치되어야 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옵니다. 이제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삼대사랑의 인연을 세워야 되겠고, 그것을 전체의 생활적 동기로 활용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해 나가는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들이 이미 알았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러한 결의 위에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사로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에게 한마디 더 하고 싶은 말은 선생님이 외국으로 순회 간다고 해서 너무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관심을 갖는 것도 좋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각해 주면 좋겠어요

​내가 없더라도 더더욱 정성들이라

​지금은 옛날과 달라서 분분한 때입니다. 이번에 구보끼 회장이 세계를 돌아올 때에도 조총련들이 납치하려고 한 사건이 두 번씩이나 있었어요. 그런 사건들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선생님이 가는 길을 광고하고 가게 안 되어 있어요.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겠습니다. 공산당들이 우리의 내막을 알고 우리가 어떤 노선을 취해 가지고 나가고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전세계의 조직망을 통해 가지고 어떤 면을 통해서라도 방해하려고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며칠날 간다' 할 수 없어요. 그럴 수 있는 때는 지나갔습니다. 앞으로는 선생님이 어디에 갔는지, 언제 돌아왔는지 모르게 왔다갔다할 것입니다.

이런 때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은 좋다면 좋은 것이요, 나쁘다면 나쁜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섰으니만큼 여러분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 여러분이 얼마나 절박한 사명권내로 들어가고 있는지를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번에 일본에 들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현재 일본에는 데모가 한창 벌어지고 있습니다. 데모가 벌어질 때에는 그 나라의 주권자들도, 책임진 요인들까지도 자기 집에 그냥 있는 것이 아니예요. 더욱이나 요즈음은 그들이 국제승공연합을 중심삼고 총재인 나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많습니다. 좋은 의미에서보다도….

이런 문제 등등을 생각하고 선생님이 어디를 가든지 알리지 않고 살짝 떠났다고 해서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되겠어요. 떠나는 날은 선생님만이 아는 거라구요. 몇 시간 전에 준비해 가지고 떠나려고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갈 때는 동경에 간다고 말해 놓고 대판으로 가 내릴지도 몰라요. 이러한 때가 된 것을 알고, 여러분에게 통고도 없이 떠났다고 해서 그렇게 떠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박 대통령도 그렇잖아요. 몇 월 며칠에 어디 간다고 해 놓고는 다른 날에 가고…. 이런 문제들을 생각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것을 이해하시고, 주일 새벽에 선생님이 말씀해야 하는데 선생님이 안 나오거든 '오늘 아침에는 안 나오시나? 어디 가셔서 못 나오시는가 보다, 몇 개월 동안 못 만날지도 모르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라는 겁니다. 선생님이 없더라도 새벽 예배는 여러분이 나와야 되는 거라구요. 더더욱 정성을 들이고 그래야 돼요. 더더욱 정성들여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국제적인 활동을 준비해야 할 때

그리고 이번이 제3차 순회노정이니만큼, 여러분은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세계적인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한국 기독교를 구하려고 했지만 앞으로는 한국 기독교보다도 세계 기독교와 미국을 구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새로운 각도로 방향을 전개시켜 가지고 국제적인 활동을 준비하려고 그래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원이 필요합니다. 자원이 필요해요. 그리고 각 국가와 국가…. 현재 각 강사들이나 젊은 사람들은 준비해 놓으라고요.

멀지 않은 장래에 한국을 대표한 세계적인 부흥단이 출현할 때가 올 것입니다. 전세계를 대표한 부흥단이 세계를 순방함과 더불어 국가를 대표한 부흥단이 세계를 순방할 수 있는 조직을 불원한 장래에 만들 것입니다. 그리하여 몇 개국의 부흥단이 한 팀이 되어 가지고도 할 것이고, 혹은 몇 개국이 일시에 세계를 공격하는 작전을 하려고도 합니다. 그러려면 한국 부흥단 팀은 남미의 몇 개국, 일본 부흥단은 북미면 북미, 구라파면 구라파, 미국이면 미국, 이렇게 각국이 분담해 가지고, 몇 개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세계를 움직이는 이러한 부흥활동을 해야 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닉슨 행정부가 중공에 대해 강력히…. 유엔총회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세계 평화를 위하여 결성된 조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상임 이사국으로 등장한, 새로운 입장에 선 중공이 좋은 발언을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중공이 발언한 내용을 보고 세계가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유엔무대에 브레이크를 걸기 전에 미국민들의 배후를 어떻게 정비해 가지고 대비 작전을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미국 기독교인들의 반박이 벌어지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앞으로 미국에 있어서의 우리 통일교회의 갈 길이 전국적으로 열리리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를 찬스로 삼으려고 지금 준비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은 모르지만 거기에 대비한 준비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든 조직을 편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이 제3차 세계 순회노정과 세계정세가 맞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때이니만큼 세계적인 조직 편성을 중심삼고 활동체제를 강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인 사명이 우리 통일제단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길을 위해서 준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준비됐다고 할 때는. 앞으로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한국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그때가 되면 내가 선두에 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한국에서는 사태가 복잡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공석에 자주 나가지 않았지만 외국에 가서는 공석에 나서서 바람을 일으키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늘이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 생각도 하고 있는 거예요.

이러한 문제를 두고 생각할 때, 여러분 자신들이 준비해야 될 일이 크다면 크고 많다면 많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이 주체국이니만큼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 어렵더라도 최저의 생활을 해 가지고 우리가 외국을 도와주는 조건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못 하니까 선생님이 그런 조건도 세워 줘야 된다는 거예요. 못해도 약 3백만 달러 이상의 예금을 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국제적 활동을 전개할 수 없습니다.

전국적으로 식구배가운동을 전개하라

그러면, 약 10억 원 가까운 자금을 어떻게 예금해 놓느냐? 한국에 들여다가 예금해 놓는 것이 아니예요, 그렇다고 한국의 돈을 갖다가 예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몇 해 이내에 해 놓지 않으면 하늘의 섭리에 큰 지장이 생깁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구라파도 그렇게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 선생님은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내적인 고충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비해야 할 안팎의 책임을 짊어졌으니만큼 이번에 가게 되면 그 정비작업을 해야 된다구요. 이러한 사명이 있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한국이 있을 때보다도 여러분들이 기도를 많이 해야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 있을 때보다도….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이 한국을 떠나면 여러분은 허전함을 느낄 거라구요, 그렇지요? 선생님 자신도 그렇게 느끼는 거라구요.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도 그렇고 교회를 중심삼고도 그렇고, 여러분이 이 기간에는 각별히 기도를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김일성이가 지금부터 '72년의 동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흉계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될 수 있으면 금년 겨울에는 얼음이 얼지 말기를 바라며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문제들을 볼 때에 우리의 사명이 절정에 긍할 수 있는 때가 온 것을 알고, 이때에는 여러분들이 60년대에 처음 교회 들어와 가지고 기뻐하던 그 이상으로 심각한 자리에서, 그때는 상대적 입장에서 키움 받는 아무것도 모를 때였지만, 이제는 책임을 진 입장에서 나라를 대표하여 사생결단을 내서라도 우리가 가는 하늘 길을 어떻게 유리한 입장으로 가져 가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이것이 여러분 개개인이 생각 해야 될 중대한 문제인 것을 알고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기도를 많이 하고 정성을 많이 들여야 되겠어요.

또, 이번 기간에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식구배가운동을 해야 되겠어요. 그렇게 알고, 총무부장이 협회장 일을 대신할 것이니 여러 교회장들과 헙력해서 서울시내에서부터 시작하여 전국적인 붐을 일으켜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이 없더라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고요.선생님이 떠나기 몇 시간 전에 전화하고 갈 거예요. 그때 여러분 가운데는 자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하늘은 그런 때에 오고 가고 하는 거라구요. 그러니 섭섭히 생각하지 말라고요. 알겠지요? 「예」 이렇게 이야기를 해놓고 떠났는데도 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지 내가 잘못했다고는 말하지 못할 거라구요.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1년 11월 28일, 이달 들어 마지막으로 맞는 안식일 아침이옵니다. 당신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여기 모인 어린 자녀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자리에 참석한 개체 개체는 스스로의 몸이 아닌 것을 늘 깨닫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역사적인 인연을 연결시키시어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나라를 넘어 대한민국에 태어나게 한 인연을 따라 특별한 당신의 섭리의 뜻 앞에 선택받았고,저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당신의 수고의 터전 위에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 하나만의 인연을 따라 이 자리에 남게 되어진 존재들이 아닌 것을 저희들은 깊이깊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내 한 자체가 아버지 앞에 맡은 바의 책임을 다함으로 말미암아 위로는 아버지의 소원이 연결되고, 그 소원을 따라서 선한 선조들이 선을 추구하기 위해 생애를 바치고 희생의 대가를 치렀던 공적과 실적과 아버지께서 저희 민족을 통하여 혹은 저희의 조상들을 통하여 갚아 주시려는 전체의 결실이, 보잘것없는 저희 한 몸들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는 엄청나고도 엄연한 사실에 대해 저희들은 마음 깊이 다시 한 번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 자신이 위로는 영계를 대신하고 아래로는 인류를 대신하며,역사과정에 있어서는 과거를 대표한 자리요, 현재를 대표한 자리요, 미래를 대표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몸은 비록 한 몸이로되 3시대의 사명을 연결시켜야 할 중심점이요, 결정적인 결실의 자리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얼마나 엄청나고 얼마나 두려운 자리에 있는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이 시간 느껴야만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이날 아침에 무릎을 꿇고 아버지 앞에 엎드리게 될 때,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을 바라보고 당신 앞에 정성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수많은 선조들이 이 시간 저희들을 직시하고 있음을 느껴야 되겠사옵고, 수많은 선조들이 마음 죄면서 뜻 앞에 충효의 도리를 결실 시켜 달라고 고대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하늘 아버님이 그들의 마음과 더불어 같이하며 저희들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는 정성스런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부복하여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사무친 심정과 흠모의 심정을 다짐하면서 아버지의 뜻의 성취를 위해 온갖 지성을 다 들인 선한 선조의 고대에 어긋나지 않아야 될 것이고, 이 시대 자기의 종족의 대표자로서 부족함이 없어야 될 것이고, 후대 후손 앞에 있어서 부끄러움이 있어서는 안 될 엄청난 자신임을 발견해야만 되겠습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혹은 모든 감각을 통하여 느껴지는 모든 일체의 인식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옵고, 당신께서 입체적인 사연을 연결시켜 최후의 결실을 다짐하고 있는 엄청난 자신임을 발견하면서, 아버님이여, 이때에 있어서 나 자신에게 요구하시는 당신의 뜻을 완결시켜 가지고 하나의 결실체로서 바쳐 드림으로써, 선조들의 한을 품과 동시에 역사적인 한을 풀고 시대적인 욕망과 시대적인 소원의 실체로서 등장하여 당신이 찬양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당신이 축복하기에 부족함이 없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당신께서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내 아들이요 내 딸이라 할 수 있는 모습이 그리워서 부복한 이 자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

그 동안 아버지께서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르셨으며, 얼마나 그리움의 심정을 지니셨으며, 얼마나 간곡한 사정이 얼크러졌었습니까? 그것들을 하나의 결실로 좌우할 수 있는 운명이 자기 자신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될 때, 저희들은 당신 앞에 진실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당신 앞에 나서는 걸음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알게 되옵니다. 내 하나의 거동이 잘못됨으로 말미암아 억천만세 선조들의 공적을 밟아 치울 수 있는 것이요, 역사적인 소원의 실권을 유린할 수 있다는 사실과 아버지의 희망의 전폭적인 사연을... 아버지, 두려운 자리인 것을 느끼면서 당신의 심정을 유린했던 선조들의 전철을 다시 밟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 되겠사옵니다. 이 길이 심각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길인 것을 저희들이 미처 몰랐다면 뼛골에 사무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 앞에 가까이 부복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 손을 펼 때 아버지의 옷자락을 만지고 싶고, 저희 얼굴을 들 때 당신의 성상이 그리워 몸부림치는 그 모습을 보고 선조들도 영계에서 눈물로써 동정할 수 있고. 아버지께서도 동정의 심정을 퍼붓지 않을 수 없게 되기를 저희 자신들이 얼마나 얼마나 그리워했고 얼마나 얼마나 요구 했으며 얼마나 얼마나 간절히 바라 왔던가를 생각할 때 부끄럽기 짝이 없는 저희 자신들임을 통탄해야 되겠고,아버님 앞에 수고만 남기고 걱정만 끼쳐 드리는 저희 자신들이 되게 될 때 얼굴을 들고 이 만상 앞에 나타날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인 것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당신을 바라보고 아버지라 부를 수 없고 자기의 모든 것을 후대 앞에 고대할 수 없는 비참한 무리인 것을 저희들은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종족 복귀라는 엄청난 과제를 앞에 놓고, 종족을 복귀하는 데 있어서 저희 자신의 힘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 것임을 미처 몰랐습니다.종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영계가 동기가 되어야 하고. 영계가 동기가 되기 위해서는 땅 위에 남아 있는 종족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한 선조들이 규합하여 놓은 보조적 기반이 없어 가지고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홀로 서 있는 몸으로는 종족을 복귀하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없는 인연을 지니고 있는 저희 자신들임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죽으나 사나 영적인 후원을 받지 않으면 안 될 불쌍한 무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자기 일생 앞에 남아져 있는 욕망의 길을 가지 못하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선조들과 이 시대적인 욕망에 보조를 맞추어 가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저희에게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지, 저희는 일체를 아버지 앞에 내놓은 무리였습니다.

저희가 호흡하는 일체로부터 모든 느낌, 감각 일체가 당신의 감정과 통하고 심정과 동맥의 고동과 연결되어 그 자극을 느껴야 할 것이 오늘날의 저희인데도 불구하고, 사악된 습관에 얽매여 가지고 그 그물에서, 그 환경에서 해방받지 못한 자신인 것을 슬퍼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과거의 선조들이 그런 생활 가운데서 참고 갔던 그 길을 생각하고, 아버지께서 이와 같은 악한 원수의 세계를 개척하기 위해 역사적인 수난의 길을 홀로 개척해 오신 것을 생각할 때, 놀라우신 아버지의 공적 앞에 제 몸이 가담할 수 있고 제 발걸음이 보조를 맞출 수 있으며 제 행동이 당신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역사적인 사실인가 하는 것을 저희들은 깨닫게 되옵니다.

그 누가 뭐라 하더라도 보람 있는 가치를 무한대까지 느껴야 될 것이고. 그 영광을 무한대까지 찬양해 드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오늘의 저희 자신들임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저희들이 아버지라고 부를 때 얼마나 사연이 엉클어진 내정을 가지고 아버지라 불러 보았습니까? 저희 감정이 얼마나 예민한 자리에 서서 아버지라 불러 보았습니까? 저희가 생명의 절정에 서 가지고 아버지가 아니면 안 된다고 얼마나 몸부림쳐 보았습니까? 선조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들 앞에 져서는 안 될 것이 통일의 무리의 사명이요, 이 엄연한 숙명적 인연을 갖고 태어난 무리가 저희들임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기필코 이 시간 이것을 다짐하고, 이 시간도 아버지께서 주시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느끼며, 아버지 앞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 이 아침에도 이 자리에 부복하였사오니 당신이 분부하고 이끄실 곳으로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옵소서. 만일 저희가 게을러서 갈 길을 가지 못하거든 채찍을 쳐서 라도 이끌어 주시고자 함이 당신의 소원이시고... 저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선조들의 공적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따라 저희들에 대한 당신의 책임도 클 것을 생각할 때, 이 자리는 엄숙한 자리이고 이 자리는 두려운 자리이옵니다.

아버지, 이 자리를 지키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여기에 서 있는 아들도 이 자리를 생각할 적마다, 아버지, 두려운 자리인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곳은 아버지의 소원이 깃든 자리요, 만민의 소원이 깃들어야 할 자리요, 천상세계의 천천만 성도들과 역사적인 희생을 치러 왔던 수많은 성인과 선조들의 소망이 깃들어야 할 자리임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 정성의 터전을 밟고 서 있는 이 자리는 과연 두려운 자리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매양 땅 위에 살고 있는 연고로 아버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생각과 그러한 생활습관을 갖고서 나타날까 봐 두렵게 생각하는 것이 이자식의 마음인 것도, 아버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가야 할 최후의 목표를 제가 알았고 가야 할 단계적인 과정을 제가 알았기 때문에, 일체의 심정을 다 모아 이 길을 따라온다고 하며 지금까지 따라왔습니다. 이 아침, 이 시간도 이 자리에 섰사오매, 아버지께서 네가 누구를 데리고 와서 내 앞에 자랑할 수 있느냐?'고 물으실 때 아버지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자신의 모든 것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런 것을 원할 수 없는 자신인 것을 느끼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만일 여기에 당신이 축복하시고 싶고 사랑하시고 싶은 아들딸이 있거들랑 천배 만배 축복하시고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심정을 더듬어 생애를 바쳐 가려 하는, 정성을 다 기울이는 당신의 아들딸이 있거들랑 당신이 살을 에이는 심정을 가지고 그들을 찾으시옵고, 뼛골이 마주치는 심정으로 연결시키시옵소서. 최후의 승패를, 생사를 놓고 스스로 결의할 줄 아는, 당신의 피살이 되고 당신의 실체가 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의 외모가 어떻든 앉아 있는 자리가 어떻든간에 그 자리에 피어오르는 생명의 인연이 고귀하오니 이것을 도리어 거름삼아 자랄 수 있는 하나의 터전으로 삼아 주시옵길 바라는 것이 저희의 소원이옵니다.

이 시간 당신이 찾아와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대한민국 삼천리 반도를 바라보게 될 때, 아버지의 심정을 넓고 크고 높게 할 자들은 이 땅 위에 그 누구도 없사옵니다. 보잘것없는 이들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이 찾아오셨던 소망의 터전이 여기서 끝나서는 안될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단 한 사람부터 시작하고자 하는 참의 심정의 기원을 흠모하고 나오시는 분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딸이 있거들랑 품어 주시옵소서. 당신이 사랑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이 땅 위의 만민 앞에 혹은 만우주 앞에 칭찬하고 싶은 아들딸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요, 그러한 인연을 따라 사방에 당신이 사랑하는 무리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이 당신의 뜻인 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내일도 생애를 바쳐 그 길을 개척하고 그 길을 이끌어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동시에 또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아침에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앞으로 추운 날이 찾아올 것을 생각할 때, 일선에서 갖추지 못한 환경 가운데 싸우고 있는 당신의 외로운 아들딸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인간과는 타협할 수 없고 인간과는 의논할 수 없는 길이 아버지께서 가시는 길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홀로 남모르는 밤 시간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넘이치는 그 사연으로 인해 당신의 부활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생명의 인연에 의한 터전이 높아진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자리를 흠모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당신의 아들딸이 있으면 제가 그들에게 빚지 기를 원치 않고, 당신이 빚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 자리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자기가 한 대로 갚아 주시는 아버지이신 것을 아오니 그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메말라 가는 이 땅 위에서 저희들마저 메말라서는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소망이 끊어진 이 땅 위에서 저희들마저 소망을 잃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세계를 아버지께서 사랑하시옵소서. 대한민국을 아버지께서 사랑하시옵소서. 당신께서 저희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인연인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이 시간 청파동, 이곳을 그리워하며 정성을 들이는 자녀들이 있으면 그들에게 만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세계에 널려서 이곳을 흠모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또 외로운 싸움길을 가기를 다짐할 적마다 이곳을 생각하고 그 일들을 성취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당신의 자녀들이 많이 있음을 압니다. 수난길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가려 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무리가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자리가 두려운 자리인 것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이 자리에는 아무나 참석할 수 없습니다. '네가 마음에 그리는 것이 무엇이며, 아버지의 심정을 따라서 아버지와 인연맺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게 될 때, '이것이옵니다'라고 제창하고 각자 내놓을 것이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여기에 모인 개개인의 처지요 사정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께서 찾아오셔서 검토하시옵고 각자의 마음을 살피시어서 흡족한 자녀와 상봉하는 거룩한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나님의 한을, 예수의 한을, 통일교회의 한을 풀어 드리지 않으면 안될 사연이 인류의 생애노정에 얽혀져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자리는 초라하지만 그 인연을 따라 여기에 모인 무리는 엄청난 무리임을 느끼게 되고 이 무리가 짊어진 역사적인 책임도 얼마나 지중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를 부르더라도 세계적이요 천주적인 심정을 가지고 불러야 되겠고, 효도를 하더라도 지금까지 효성을 다한 수많은 효자 효녀들을 대표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거룩한 자리에서 효성을 다해야 되겠고, 충성을 하는 데 있어서도 최고의 자리에서 충성을 다해야 되겠고, 생명을 다하는 데 있어서도 최고의 자리에서 다해야 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거룩히 찾아오시어서 은은한 가운데 저희들 마음마음에 생명의 빛으로 스며드시사, 각자의 마음을 격려하시어 내일의 희망과 더불어 힘차게 달려갈 수 있는 하늘의 용사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한국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오늘은 11월 28일, 이 달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본부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은 이 교단을 지키고 이 자리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한국의 운명을 책임지고 밤이나 낮이나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아버님 앞에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 그 자리에서는 채찍을 들고 나설 사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통일교단만이 아버지의 뜻 앞에 이 시대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제물적인 제단을 쌓고 있사오니, 눈물을 뿌리면서 이 나라이 민족을 대신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동시에 분향할 수 있는 당신의 사랑받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 제가 없는 기간이라도 이 한국을 지키시옵고, 불쌍한 통일교회 교인들을 살펴 주셔야 되겠습니다. 세계 어디에 가든지 당신께서 뜻과 더불어 같이해 주실 것을 생각하지만 그래도 염려되는 이 한국 정세와 더불어 아시아의 운명을 아버지께서 책임져 주셔야 되겠습니다.

제가 기도하는 것을 당신이 알고 계시는 것과 이 뜻이 이 세계 인류 앞에 공고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도 '내가 언제 나라를 사랑해 보았는가? 언제 인류를 사랑해 보았는가? 언제 세계와 더불어 아버님을 모시고 살고 싶어 그리워한 때가 있었는가?' 하는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 스스로 비판해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그 무엇을 자랑하기 전에 아버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뜻을 세워 놓고 자랑해야 되겠고. 무엇 무엇을 중심삼고 도취하기 전에 뜻과 더불어 도취해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갖고 싶어하는 것보다도 아버님의 뜻을 갖고 싶어하고, 어떠한 자리에 가고 싶어하는 것보다도 하늘의 자리에 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 앞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아버지께서 이 교단을 지켜 주시옵소서. 축복받은 가정들과 어린 자녀들이 고생하고 있는 것을 제 눈으로도 많이 보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그들이 그러해서는 안 될 것을 알지만 그런 자리에 세워 두시는 것은 이들이 비참하고 이들이 고독하고 이들이 슬픈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와 이 민족이 남아질 수 있는 길이 있게 되기 때문임을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을 당연지사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자체가 비참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자유롭고 그 무엇보다도 하늘 앞에 감사할 수 있고 만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날을, 아버지여, 저희들이 마음 변치 않는 한 당신은 반드시 이루어 놓으시고 말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서 저희들은 비약해야 되겠습니다. 다른 차원의 심정세계로 저희들은 돌입해야 되겠사옵니다.

말 씀

본부가 더 좋은 입장에서 바라던 기준보다도 엄청나게 외적인 분야에 있어서 혹은 세상적인 분야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본부 앞에 외적인 분야의 책임을 느끼지 않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초라한 입장의 본부를 바라보게 될 때 자기의 책임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본부가 초라하면 초라할수록 도리어 그것을 자기의 수치요 자기의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움으로 느낀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통일교회 식구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어떤 심정의 자세로 본부를 대해야 되겠는가

본부를 대해 가지고 자기가 바라던 기준과 차이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중심삼고 나쁜 의미의 평을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지금까지 본부를 그리워했던 그 그리움이 일시에 다 해소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만일에 '아! 우리들이 바라던 곳이 이곳이냐? 하는 생각을 하고, 입을 열어 그런 말을 한마디라도 한다면 그 사람은 그때까지 아무리 정성을 들여 왔다 하더라도 그 정성을 들인 것이 거기에서 무효가 되고 말 것입니다.

초라한 본부를 바라보면서 '내가 정성들여 나오던 곳이 이래서야 되겠느냐! 내가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본부를 어떠한 교회의 본부보다도 훌륭한 본부로 만들겠다'고 결의하고 눈물과 더불어 이 자리에서 하늘 앞에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누구보다도 차원 높은, 하늘의 품에 품길 수 있는 좋은 동지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외국 식구들이면 누구나 대번에 그러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을 간접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많이 들어 왔습니다. 외국 식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본국에 있는 통일교회 식구로서 이 본부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장이 그 외국 식구들과 비교해서 뒤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바라볼 때, 외적인 교회는 수다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속해 있는 구(區)면 구, 동(洞)이면 동, 예를 들어 이 청파동이면 청파동 내에 있는 교회를 바라보게 될 때에, '우리 교회가 이 청파동에서 정상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늘쌍 앞서야 되겠어요. 그런 생각도 없이 그냥 그대로, 습관적으로 어제 들렸던 교회요, 오늘 또 들리는 교회라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교회가 이래서는 안 될 것이 아니냐. 이 교회가 세계의 본부니만큼 어떠한 교회의 본부보다도 훌륭한 본부로 만들어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자신이 신앙길에 들어 서서 뜻길을 알고 난 그날부터, 일년이면 일년 그 지내는 햇수가 증가함에 따라 심정적 다짐도 보다 차원을 높여 가지고 내일의 한 때에 손수 이 교회를 건설하고...

여러분이 이 본부가 어떠한 곳이라는 것을 안다면 눈물이 앞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외국 식구들을 심정적 기준에서 리드해야 하고, 그들에게 본이 되어야 하며, 그들 앞에 어떠한 자극적인 요건을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심정적 자세에 있어서 습관적인 입장에서 교회를 출입하는 생활을 해서는 안 될 것이 아니냐?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 통일교회 이 본부가 외적으로 갖추지 않고 있는 것이, 나는 도리어 생각하는 사람들 앞에 있어서는 자극적인 터전이 된다고 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세계적인 본부요 대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있는 통일교회 본부 하게 되면 굉장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 본부를 시가로 치면 몇 푼 안 되는 거라구요.몇 푼 안 되지만 그 몇 푼 안 되는 그것에 머물러 있는 본부는 아닙니다. 내가 언젠가 공석에서 여러분 앞에, '이 자리는 앞으로 어떠한 훌륭한 사람이 아주 많은 돈을 주고서도 마음대로 머물 수 없는 곳이 될는지 모른다'는 말을 한 적이 있지만서도... 여러분은 이 자리를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심각한 입장에서 생각하고 분석하고 비판해 볼 때에, 이 자리는 여러분이 습관적인 감정을 가지고 출입할 곳이 못 됩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그런 배후는 제쳐 놓고, 외국 사람들이 보는 입장에 있어서의 본부와 우리들의 입장에서 보는 본부에 대한 차이를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들이 좋은 면에서의 차이를, 높은 의미에서의 차이를 가져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주시하고 있는 것은 이 본부에 와 있는 외국 사람 중에 친히 새벽에 나와서 소제를 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난 뒤에는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이 본부에 와 가지고 자기가 있는 동안 이곳에서 역사적이고 천주사적인 내용이 결정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원리를 통해서 알면 알수록, 이 마루바닥이 비록 좁은 마루바닥이지만 여기에 얼크러져 있는 사연은 역사적인 것이 깃들어 있는 것을 알고, 그 역사적인 사연 전체와 더불어 접하고 신고 그 인연과 화합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마루나 유리창을, 혹은 이 주위를 자기 몸보다도 더 깨끗하게 닦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이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여기 본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소제는 전부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어요. 이 젊은이들의 앞길은 막혔다 이거예요. 정성을 들이는 것을 볼 때, 나이 많은 할머니들만 들이고 있지, 젊은 놈들은 다 어디 갔어요? 도피 상태가 벌어지고 있어요. 내가 다 알고 있다구요. 요것들... 그러면 앞날이 좋지 않을 거라구요.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본부에 있지만 본부를 빛내고 본부가 지닌 역사적인 사연을 지탱시켜 만민 앞에 넘겨 줄 수 있는 책임적인 사명을 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그 길을 가로막는 무리가 아니냐?

전세계 식구들에게 본이 되어야 할 본부식구

여기 관리과장 있나? 임자의 책임이 크다구. 관리과장이 직접 걸레를 들고 소제를 해야 되는 거라구요. 우선 저 변소부터... 관리과장의 책임이 중한 거라구. 임자네들이 관리과에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관리과장은 문 열어 주는 문지기가 아니라구. 응? 일반 기성교회의 문지기와는 다른 거라구. 어떠한 회사의 문지기와 다른 거라구.

여기는 선생님의 피눈물이 엮어진 곳이예요. 책임자가 그런 면에서 본이 되게 수행해서 그것을 자기 부하들에게 교육해야 되는 거라구요. 남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하는 것이 책임자가 아니예요. 할머니들이 미리 와서 예배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내가 2층에서 다 듣고 있다구요. 내가 만약 시간이 늦게 되면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누구의 피를 빨아먹기 위한 흡혈귀가 아니다 이거예요.

엊그제는 석온 할머니가 넘어졌다나요? 넘어져 가지고 얼굴에 상처를 입은 것을 보고 내가 기가 막혔습니다. 그 뭐 나이 많은 할머니 여기 있는지 모르겠구만. 있어요? 안 보이는데. 며칠 동안 못 봤더니 얼굴이 핼쑥해 가지고 뭐 쓰러졌었다나? 거기에 대해 내가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거라구요.

할머니들이 기도를 하는 건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냐? 여러분은 기도하는 할머니들을 존중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슨 뭐 지나다니는 이웃 동네 할머니로 생각하면 안 된다구요. 나이 많은 사람들을 모시고 존경하지 못하는 무리는 망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제일 나이 많은 분이 누구냐? 하나님이 아니냐 이거예요. 그분 앞에 찾아가고 그분 앞에 다리 놓고 싶기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을 존경해야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들도 알겠지만 윤씨 할아버지, 풍(風)을 맞은 이후 양로원에 가있는 그 할아버지. 또 조영감. 그들은 내가 아무런 미련도 가질 것 없는 영감들이라구요. 그들은 전부 다 쓰레기가 된 사람들이라구요. 그렇지만 지금도 내가 어디 가 있느냐고 물어 보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그들은 나이 많은 사람 가운데 제일 비참한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 전체를 생각해 주지 못할 바에는 이 사람들이라도 생각해 줘야 하나님 앞에 나이 많은 사람을 대하는 체신을 갖출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한때는 리어카를 사 주었더니 리어카를 사 주었다고 평하는 사람도 다 있더구만.

여러분은 본부를 위해서 생각해야 됩니다. 한국에 있는 통일교인뿐만 아니라 외국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이 본부를 위해서 정성들이는 데는 여러분 이상 심각하다는 거라구요. 심각하다는 거라구요. 본부의 소식에 대하여 얼마나 심각한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향을 떠나 외지에 나가 보면 고향의 소식이 그립지요? 그걸 잘 느낄 거예요. 고향에서는 아무 인연도 없던 이웃 동네의 사람이라도 자기가 거하는 곳에서 만나기만 하면, 그 사람이 전하는 '아무 동네'란 그 말만 듣더라도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누구보다도 가까운 것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본부 소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본부에서 무슨 일이 있다는 거, 본국에서 무슨 일이 있다는 사실은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생명선이다 이겁니다.

내가 엊그제 여기 있는 김 전무보고도 얘기했지만, 수택리 식당에 처녀를 하나 데려다 놓았다구요. 내가 얘기한 겁니다. 마음대로 데려다 놓은 것이 아니라구요. 선생님을 가까이 모실 수 있는 사람은 그 인연이 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구요. 그 사람이 하는 말 한마디, 하는 행동 하나가 전세계 앞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외모나 신앙면에 있어서나 본 될 수 있는 사람을 데려다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제 기분 나쁜 것이, 들려 오는 소문에 그 수택리 식당에 있는 처녀들이 둘이서 싸움만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소식을 전해 듣게 될 때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모릅니다. 선생님을 모시는 측근자들이 그런 소문을 남겼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인 상처입니다. 동냥은 안 주고 쪽박을 깨뜨리는 격입니다.

통일교회의 주류사상을 이어받아야 할 본부 식구들

여기 본부에 있는 임자네들이 밥을 못 먹더라도, 지방에서 온 식구들이 있으면 관리과에 있는 녀석들은 그들을 돌봐 줘야 할 책임이 있는 거라구요. 내가 십여 년 동안 이 청파동에서 지나가는 거지에게까지 밥을 먹여 준 사람입니다. 내가 안 하면 여러분들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밥을 먹여 놓았다 이거예요. 여기에 들어왔다 나가는 사람이 있게 되면 그 사람에게 이 집안, 이 울타리 안에 대한 인식을 올바로 심어 줘야 되는 겁니다. 올 때의 마음보다도 돌아갈 때의 그 마음에 다시 와야 할 곳이요, 마음에 그리워해야 할 곳이라는 인연을 남겨 주어야 할 책임이 여기에 속해 있는 여러분의 책임이라구요. 그런데 이거 보면 뻣뻣하기가 짝이 없어요. 세상의 일반 회사의 수위와 비교하더라도 여러분은 낙방이예요, 낙방. 이놈의 자식들.

인간 세상에는 윤리가 있는 거예요. 또, 상하를 중심삼고는 예가 있는 거라구요. 예법이 있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아무 말을 안 하고 다니니까 모르는 사람일 줄 알지만 예민한 사람이라구요. 비판하자면 무자비하게 비판할 수 있을 정도로 관찰을 하고 있다구요. 다만 말을 안 하는 거라 구요. 여러분 가운데서 본부에 한 번 있다가 돌아간 사람은 앞으로 본부에 와 있지 못할 거예요. 본부는 일대의 심판장이요, 역사적인 심판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부의 식구들과 외국 식구들을 비교해 보게 될 때, 심정적인 입장으로 보나 생활적인 입장에서 보나 통일교회의 주류사상을 이어받아야 할 사람은 오늘날 본부 가까이 있는 측근자가 되어야 할 것이요, 본부에 출입하는 식구들이 되어야 할 것은 당연한 사실이 아니겠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여러분 자신들이 외국 식구들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끔 그들 앞에 자극적인 요인을 제시해야 할 것이 본부에 속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임에 틀림없는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그런 면에 관심이나 가져 봤느냐 이거예요.

그런 관심을 가졌다면, 외국 식구들이 오게 되면 서로서로 앞을 다투어 그들을 방문하여 사과 하나라도 전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사과를 먹게 될 경우라면 그들을 생각해야 된다구요. 따뜻한 온돌 방에 눕게 될 때 와 있는 외국 식구를 생각해야 된다구요.

남을 생각해 주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자기를 생각해 주기를 바랄 수 있겠어요? 그것은 이치에 배반된다는 거라구요. 생각하지 않는 일에 인연이 맺어질 수 있어요? 생각하지 않는 일에 그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어요? 천만에!

부장이란 직책을 가진 간부들도 전부 다 와서는 선생님에게 떠맡기기가 일쑤입니다. 여러분이 본부에 있으면서 본부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책임하지 못했어요. 못 하고 있다구요. 보라구요. 선생님이 없다면 여기 본부에 외국 사람이 찾아올 것 같아요? 그거 생각해 보았어요? 책임자들은 생각해 보라구요. 한국에 선생님이 없을 때, 여러분의 은덕을 잊지 못해 눈물어린 심정을 가지고 한국에 오고 싶어하는 내적인 인연을 외국 식구들한테 남기고 있는 누가 있느냐 하는 거예요.

보라구요. 이번 10월부터 명년 10월까지 1년 동안 못해도 한 달에 2백명 이상 일본 식구를 데려다가 여기서 교육시킬 계획입니다. 선생님이 '너희들은 매달 2백명 정도 한국에 와서 교육을 받고 가야 되는 것이다' 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거기서 문의가 오기를' 선생님이 오래지 않아서 외국 떠나실 터인데 선생님이 안 계실 때는 뭐 갈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순회 갔다가 돌아오신 다음에 곱배기로 한 4백 명씩 해 가지고 때워 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하는 거예요.

부모를 잃어봐야 부모가 고마운 줄을 안다는 그 말이 딱 맞다구요. 그래도 여러분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뜻이 한국에서 이루어질 것이고, 통일교회 중심삼고 세계가 어떻게 될 것이다 하는 생각은 다 하고 있지요? 선생님만 없으면 청파동이 문제가 달라진다는 거라구요. 선생님 가족이 미국으로 가게 되면 미국이 본부가 된다는 거라구요. 아무리 한국이 본부라고 큰소리한다 해도 한국이 본부 될 것 같아요? 본부가 될 것 같으냐 말이예요. '선생님, 우리들을 버리고라도 한국에 가야 될 것 아닙니까? 하고 권고하는 미국 사람이 있을 것 같아요? '여기에 몇 달 계셨으니까 한국 몇 달 가 계셔야 될 것 아니예요? 그래야 원리원칙이 맞을 것 아니예요? 그 누구누구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럴 것 같아요? 한국에서 누구누구라고 손꼽힐 수 있는 책임을 다한 사람들이 그 누구냐 이거야. 있느냐 이거예요.

부모가 살아 있을 때 효도해야 효자

만일에 그런 사람이 없게 되면 선생님이 외국에 가서 살다 죽었다 할 때, 일족이 거기서 죽었다 할 때 한국에 갖다 묻으려고 할 녀석이 없을 거라구요. '우리가 선생님을 더 사랑하는데, 그 무덤을 누구에게 뺐겨! 우리보다도 책임을 못 하는데? '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자기들의 조상의 땅에 묻히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시했어요. 왜 그랬느냐? 그들은 어떤 민족보다도 하나님의 축복받은 선민의 조상이라는 고귀한 사상을 가지고 조상을 추대하는 데 있어서는 어떤 민족보다도, 어떤 종족보다도 우월한 자리에서 추대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대표적 정성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가서 동화해야 되고 하나되어야 할 입장에 있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요셉이든 야곱이든 전부 죽을 때 유언이 그거라구요. 자기가 죽은 후에 자기 본 고향, 조상이 살던 땅에 묻어 달라고….

그러면, 여러분은 이 본부를 축복받은 땅으로 거룩하게 여겨 천년 만년 정성어린 심정을 가지고 이 자리야말로 하나님이 떠날 수 없는 자리요, 하나님의 심정적 인연이 뿌리박고 있는 자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이것을 더럽힐세라 옹호하고 보호하면서 생명시 할 수 있는 전통적 인연을 현재 갖고 있느냐? 말들이야 하고 있지. 그 말하는 것도 자기가 바라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라시는 견해와 일치되고 섭리적 뜻이 바라보는 견해와 일치가 될 수 있는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느냐?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겁니다.

여기 본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무슨 뭐 유물을 존중하고 그립니다. 국가에서도 그런 것이 있잖아요? 국보를 존중하고 그러잖아요? 사람이란게 간사한 거라구요. 만일에 선생님이 당장에 죽었다 하면 그 이튿날부터 '아! 선생님이 사랑하던 교회' 하는 패들이 생겨날 거라구. 또, 선생님이 갖고 있던 유물이라면 떨어진 신 짜박지 하나라도 그때에야 비로소 '아! 거 귀한 거로구나'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다니던 골목길도 '아! 그분이 다니던 골목길' 하며 요사스러운 놀음을 하는 패들이 많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효자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 효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충성도 군왕이 살았을 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죽은 후에는 천 만 배의 효성이 쓸데없고, 천 만 배의 충성이 쓸데없다는 거라구요. 그렇게 하는 것들은 간사한 패들입니다. 죽어서 큰 제사상을 해 올리는 것보다 살아서 한마디의 말로라도 위로하는 것이 낫고, 자기가 슬픔의 상대가 돼 가지고 그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 오히려 천만 가지로 진설해 놓은 그 제단보다도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죽음길을 추모하면서 가는 사람보다도 그 죽음길을 가기 전에 목적을 위해서 가는 사람이 더 귀한 것입니다.

기독교도 그렇다는 거예요. 기독교도. 예수를 죽여 놓고…. 이 간사스러운 것들, 그 앞에는 엄연한 심판이 있다는 거라구요. 죽게 된 동기를 중심삼고, 왜 죽었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그 일념에 일치되지 않고 위배되게 될 때는 거기에 배가적인 심판이 가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만일에 외국 식구들이 본부를 보고 내 앞에서 본부가 왜 이러냐고 하게 된다면 뺨을 갈겨 버릴 거라구요. 이놈의 자식 같으니라구. 네가 본부를 이 집 보고 아느냐? 이 집 보고 말하지 말고 선생님을 보고 말하라고….

선생님이 오늘 이 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거지 노릇도 했다구요. 노동자 노릇도 했고, 안 해본 것이 없다구요. 뜻길을 위해서 여복(女服)까지도 입고 활동한 사나이라구요. 노동자 때의 그 아무개, 얻어먹을 때의 아무개, 천대 받을 때의 아무개는 싫어하고 오늘에 있어서 드러날 때의 통일교회 선생을 필요로 하는 그러한 사람은 나는 필요 없다구요.

그런 사람은 역사와 하나 못 돼 있다구요. 과거와 하나 못 돼 있다구요. 과거와 하나 못 되어 있으니 현재가 공고하지 않다는 거예요. 기반이 확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과거로부터 얼마만큼 오랜 기간을 통해서 하나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가 현재의 신임도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을 고생시키는 이유

오늘날 통일교회의 폐단이 무엇이냐 하면…. 지금은 탕감복귀시대라구요, 복귀니까 교회 안에서부터 사회에 나갔다가, 저 끝에까지 나갔다가 돌아 들어와야 된다구요. 교회 밖에서 선생님이 도의 길을 나서 가지고는, 교회 밖에서부터는 구원 못 한다구요. 그런데 여러분은 선생님이 도(道) 안에 들어올 때까지의 길을, 들어오기 전을 잊어버리고 있다구요.들어와 가지고 구원해 주기 위해서 찾아 나가는 길만 보았지, 본부에 들어와 가지고 중앙에 자리 잡을 때까지의 결정적 과정을 추구해 나오던 것은 모르고 있다구요. 또한 교회 바깥에서, 외부에서 이 자리까지 들어와 가지고 다시 나가기 전까지의 하던 놀음을 모르고 있다구요. 선생님이 도의 길을 가기 위해서, 하나의 뜻길을 가리기 위해서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여러분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길을 걸어 왔다구요.

여기 통일교회에 들어온 패들을 보면 전부 다 젊은 패들인데, 들어온 그날부터 극장 가길 싫어하고…. 옛날에 여기 서 있는 사람은 학생시절에 극장 앞을 지나다니지 않았다구요. 놀이터 앞을 지나다니지를 않았다구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구요. 그러한 길을 다짐하며 오늘까지 나왔습니다. 세상을 구하려니 할 수 없이 세상에 보조를 맞춰 줘야 되기 때문에 요즘엔 극장에도 가는 거라구요. 그것을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는 길로 알아서는 큰 오해입니다. 뿌리는 없이 잎만 되어 가지고 되느냐 이거예요. 그 자리에 나설 때는 내가 아무런 일을 하더라도 걸리지 않을 수 있는 내적인 결정을 받고 나타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들도 그래요? 그런 수양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수양 과정이 있어야 되는 거라구요. 모두 7년 이상의 시련을 받아야 된다구요. 앞으로는 이것을 공식화시킬 것입니다. 몇 개월 몇 개월, 공식화시킬 것입니다. 복귀의 길이니…. 복귀는 최하에서부터 복귀해 가야 된다구요. 종의 종 자리에서부터 종의 자리로, 양자의 자리로, 아들의 자리로…. 아들의 자리에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불쌍한 삼천만 민족의 군상을 바라볼 때 여러분이 따르고 있는 스승이 한때에 그런 길을 대표적으로 갔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노동자를 보면 그 노동자가 바로 선생님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안 해본 것이 없다구요. 내가 이 길을 출발하기까지는 회사를 만들어 책임자도 다 해봤던 사람이라구요. 급사도 해본 사람이라구요. 남의 필생(筆生) 노릇도 다 해본 사람이라구요.

인간 세상에 와서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내가 체득하지 않고는 그러한 분야의 사람을 지도할 수 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만반의 모든 준비를 갖추고 나선 것입니다. 그러니 훤하다구요, 훤해요. 별의별 사람이 와서 얘기하더라도 훤하다구요. 척 보면 벌써 판단해 버린다구요. 그 판단이 엉터리가 아니라구요.

들어왔다가 나가는 도상에서 구원의 도리를 고취시켜야 할 입장에서 여러분을 만난 것입니다. 그래 '선생님이 가는 길을 우리는 그냥 그대로 따라가야 된다' 할지 모르지만 그게 아닙니다. 다르다구요. 여러분은 다시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잡기 위해, 제2차 자리를 잡기 위해서 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패들을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이 고생을 회피하는 녀석들은 통일교인이 아니예요. 그런 놀음은 나하고는 상관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전도를 나가라' 하면서 고생시키는 거라구요.

역사적인 인연이 깃들어 있는 본부

여러분이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는 옛날 어떤 절간 자리라구요. 왜정 때의 적산 건물이었습니다. 이것이 또 역사적인 건물인 것이 뭐냐면 내가, 이 1955년도로구만. 그때 한참 사건 때문에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다 나와 가지고 갈 데 올 데 없어서 비상대책을 취해 가지고 마련한 곳입니다. 손수 만든 거라구요. 전부 다 여기가 도깨비 장터 같았다구요. 전부 다 새까맣게 되어 가지고, 기둥도 전부 다 새까맣게 된 것을 전부 양잿물로 닦은 것입니다. 그런 집에서... 역사적인 인연이 맞부딪친 집이라구요.

'이 집에서부터 원한에 사무친 원수를 갚아야 되겠다. 채찍을 쥐고 치던 무리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 해야 되겠다. 몰아내던 무리를 몰리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신념을 갖고 나온 것입니다. 지금도 그 신념을 잃어버리지 않았다구요.

내가 감옥에서 누구누구한테 듣던 말, 어떤 취조관한테 듣던 말을 안 잊어버리고 있다구요. 피곤하고 어려움이 있으면 빨리 그걸 회상하는 거라구요. '너는 이렇게 결심을 했는데 그 결심을 다 실행했느냐? 아무리 혼자 있더라도,여러분이 다 없더라도 천하를 휘어잡고 칠 수 있는 기백은 언제나 깃들어 있다구요. 지쳐요? 그 원수를 갚지 않고는... 그렇다고 세상 사람들같이 총칼을 가지고 목을 짜르겠다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 일족을 거느려 가지고 눈물과 더불어 '종의 새끼가 되더라도 감사하겠다' 하는 말을 듣고야 말 것이다 이겁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는 길은 바빠요. 바쁘다구요. 시간이 있게 되면 도리어 바쁜 생활을 재촉하는 사람이예요. 사람은 시간이 있으면 허황된 생각을 하는 게 보통이라구요. 피곤한 것이 도리어 복이라는 겁니다. 잘 때는 '오늘은 이것으로써 하늘 앞에 면목을 세우고 잘 수 있다'고 하는 그 무엇을 남기고 자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보게 된다면 빚지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빚진 사람의 생활을 하고 있다구요. 하늘 앞에는 빚진 사람의 생활을 하고 있다구요.

그러한 인연을 따라 가지고 만난 곳이 이곳입니다. 그래 가지고 여기서 역사에 없는 성혼식을 거행한 거라구요. 여기에서 별의별 소문거리를 남기고 별의별 소문거리를 거쳐가면서 역사에 없는 놀음을 했다구요. 여기서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책정했다구요. 여기서 1960년도에 성혼식을 했다구요. 36가정을 축복했고, 72가정의 축복을 했다구요. 역사적인 자리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더럽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본부를 심정의 샘터가 되게 하자

여기에 교회를 지으려면 당장에 지을 수 있습니다. 이 건물을 헐어버리고 한국에서 어느 교회에 뒤지지 않는 교회를 당장에 지을 수 있다구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해요. 선생님은 자기가 정성들이지 않는 곳에 서는 뜻 성사나 무엇의 성사를 바라지 않는 사나이입니다. 자기가 동기가 되지 않고서는 거기에 욕심을 갖거나 무엇을 바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실된 전통의 역사라는 것은 참과 진실을 통해서 엮어지는 법이지 슬쩍해 가지고, 수단방법을 통해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통일교회 본부에 와 가지고 '통일교회 뭐….' 통일교회는 임자네들이 보는 눈앞에 있는 통일교회가 전부가 아닙니다. 그 배후에 무엇을 바라보고 있느냐 하는 거예요.

내가 세계의 수십 개 국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궁전을 다 구경한 사람입니다. 가서 볼 적마다 '아, 이놈의 자식들 같으니라고, 잘살았구만! 잘 거드럭거렸구만. 그래 가지고 해놓은 꼬락서니가 뭐야? 크다는 집에 서는 세계를 다 망치지만 작다는 집에서 세계를 살릴 것이다' 그러고 돌아온 사람이라구요. 이 작은 집에서 세계의 호화로운 집에서보다도 더 정성을 들이고, 정성에 사무쳐 가지고 하나님이 기억하실 정성과 심정의 샘터를 만든다면 목마른 사람이 이 샘터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바위굴이든, 산등성이의 높은 어떤 곳이든 개의치 않고 생수가 쏟아져 나오는 곳이면 모두들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나오는 물이 참된 생수라면 거기에 도회지도 생기는 것입니다. 그곳은 문화의 발상지가 될 수 있는 것이고, 역사의 기원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부는 지방과 하나되어야

못난 것들이, 가난뱅이 아들딸들이 잘 입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부자집 자녀들은 해진 누더기 옷을 입고 다녀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구요. 미국 사람들을 보라구요. 그 녀석들은 작업복을 입고도 어디든지 휘적휘적 잘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보라구요. 어디에 가면 뭐 옷 치닥거리는 잘 하지요? 바자 대문을 하고 살면서도 옷은 최고의 옷을 입으려고 합니다. 그게 못사는 사람의 증거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못사는 나라를 대표한 이 통일교회가 못사는 민족의 그런 민족성을 따라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 그래요. 좋은 것만을 바라며 꿈을 꾸고 하는 사람들은 좋은 것을 만나지도 못하고 죽는 것입니다. 나쁜 것을 좋게 만들겠다고 애쓰는 사람은 그래도 죽을 때에 흙이라도 한 줌 쥐고 죽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가 흥하려면 농촌의 농민들을 위한 생각을 많이 하는 상부층의 사람들이 주권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가 앞으로 망하지 않으려면 본부의 간부들이 그렇게 해야 됩니다.

본부는 지방과 더불어 하나가 돼야 합니다. 저 끝과 더불어…. 높다는 것은 낮은 것을 대표한 것이 아니냐? 낮은 것을 무시하는 자리가 높은 자리가 아닙니다. 앞으로 서울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지방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 선생님의 주의(主義)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입장에서 본부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복귀역사에 전무후무한 본부교회

'본부의 사명과 책임'이라 여러분 보라구요. 이 본부라는 곳이 어떠한 곳이냐? 우리 원리의 가르침대로 본다면 세계에서 둘도 없는 곳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해요? 여기 부인들도 그렇게 생각해요? '통일교회 본부라는 곳은 세계에서 둘도 없는 곳이다' 하는 생각을 해요? '아이고, 오늘 본부에 갔다 왔다' 하고 자랑해요? 서로 본부에 갔다 와야 되겠다고 경쟁해요?

요즈음 사회에서 뭐 장관 짜박지들이 무엇무엇 한다 하면 거기에 참석하려고 눈에 횃불을 켜 가지고 야단들이예요. 부정부패의 누더기를 쓰고 있는 장관들인데,그들을 만나고 와 가지고 그걸 영광으로 자랑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들이 역사적인 대표예요? 그 자리가 세계에서 한 곳밖에 없는 곳이예요? 그런 건 많고도 많아요. 어디에 가서도 구할 수 있는 거예요. 이 나라 저 나라 어디라도 있는 것이예요.

그렇지만 통일교회 본부라는 것이 어디든지 있어요? 세계에, 혹은 역사시대에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지요? 본부는 그만두고라도 통일교회 원리라는 것은 역사에 처음 나온 것이라는 그것만은, 여러분, 알지요? 그러니 '이곳은 전무후무한, 역사적인, 단 한번밖에 없는 일이 생겨난 곳이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본부에 와 가지고 '아이구 좋아라' 하고 감사의 눈물을 흘려 봤어요?

여러분, 너무 기쁘면 눈물이 나지요? 너무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눈물이 나지요? 그걸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인생살이를 모르는 사람이라구요. 인간 생활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헤어질 때 눈물도 흘려 봐야 되겠지만, 만날 때는 헤어질 때 이상의 반가운 눈물을 흘려 봐야 합니다. 그래 봤어요? 여러분, 너무 반가워서 웃어도 눈물이 나지요? 또, 너무 슬퍼도 눈물이 나지요? 눈물이라는 것은 슬픔과 기쁨의 경계선입니다. 한편은 무한히 슬픔으로 흘러가는 것이요, 한편으로는 무한히 기쁨으로 흘러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구원받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저 눈물을 흘리지요? 싸움도 안 했는데 찔찔 운다구요. 그러지요? 세상에서는 싸움하고 찔찔 울고, 이쪽에서는 싸움도 하지 않고 눈물 흘립니다. 한쪽에서는 싸움을 하고 눈물 흘리고. 이쪽은 매도 맞지 않고 혼자서 눈물을 흘리고, 저쪽은 둘이 싸움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다르다구요. 그러면 혼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잘난 사람이요, 못난 사람이요? 세상적으로 보면 잘난 사람이요. 못난 사람이요? 세상적으로 보면 그건 못난 사람이라구요. 왜 눈물 흘려요?

그렇지만 종교인들, 더우기나 기독교인들은 '회개하라! 회개하라? 하는데, 회개할 때 회개는 무엇으로 표시하느냐? '아, 맹세문으로 표시한다?' 그거 안 되는 거라구요. 회개하는 데 맹세문, 회개문 쓰라는 소리 들어 봤어요? 기독교에서는 회개 기도하라고 하지요? 그러면 회개 기도할 때 '히히히히' 하고 웃으면서 기도해요? 회개 눈물을 흘릴 때는 콧물 눈물 침물, 세 가지의 물이 범벅이 되고 사색이 되어 가지고 죽을지 살지 모르고 체면이고 위신이고 무엇이고 없다구요. 대가리를 휘젓고, 뒹굴어 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눈물을 흘려 보지 못한 사람은 죄의 뿌리를 뽑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무 뿌리를 뽑을 때 그냥 그대로, 강다짐으로 뽑겠어요? 어떻게 하겠어요? 그걸 매 가지고 뽑아야 되는 거예요. 그래 물을 치면서 매 보라구요. 잘 뽑힌다구요. 마찬가지로 눈물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거라구요.

보라구요. 여러분은 타락한 후손입니다. 그러면 그 타락한 인간의 아버지는 어떤 입장이냐? 초상집 주인입니다, 초상집.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이냐면 초상집 주인이라는 겁니다. 그거 생각해 봤어요? 그래 초상집에 문상가 가지고 끼득끼득 웃으면 되겠어요? 이것은 폐풍거리라구요. 우는 흉내라도 내야지. 그러지 않으면 쫓겨나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어떤 입장이라구요? 「초상집 주인 입장입니다」 초상집 주인의 입장이라구요. 그런데 그 초상이 아직까지 치러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뭐냐? 그 초상집에 간 문객이라구요.

그러니 하나님 이상 슬픈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들딸이 한꺼번에 죽어 가지고 6천년 동안 기다려도 영영 살아나지 않는데, 그 아들딸이 살아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기가 막히시겠어요? 하나님은 그들이 부활되기를 바라고 계신다구요. 다시 완성되기를 바라고 계신다구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야 되는 것이라구요.

그런 하나님 앞에 가 가지고 '나 무엇 해주소. 무엇 해주소' 그렇게 하게 돼 있어요? 엎드리면 눈물이 앞을 가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이상 눈물을 홀린다는 심정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야. 이제 그만 울자' 해야 돼요. '너도 날 닳았구나. 울기를 그쳐라. 이제 그만 울자' 이렇게 하나님이 울기를 그만두라고 해도'아니예요. 당신이 얼마나 슬펐는지 제가 알기 때문에 울지 않을 수 없어요. 아버지, 그러지 말아요' 하면서 싫다고 손을 뿌리친다고 해서, 싫다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불효입니까?

울지 말라고 하는 아버지를 뿌리치는 자가 불효자요, 효자요? 아버지는 그러한 아들이 있기를 바라고 그러한 딸이 있기를 바란다는 거예요.아버지가 '이제 울지 말라'고 할 때 '아버지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소. 헤헤 고맙습니다' 하는 사람이 효자예요? 어떤 사람이 효자예요? 초상집의 울음을 거둬 치울 수 있는 울음을 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 누구보다도 복을 받을 사람입니다. 그러한 문제를 발견한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입니다.

본부의 강단에 나서는 선생님의 마음 자세

내가 공석에 나타나서 기도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입니다. 기성교회 목사 장로들처럼 그저 뭐 습관적으로 하는 놀음으로... 나는 그러지 않는다는 거예요. 보라구요. 초상집 주인과 같은 아버지를 모시고 뭇 생명을 생사의 기로에서 생명권으로 옮겨야 하는 입장에 있는 거예요. 그건 심각한 문제예요. 그건 놀이가 아니라구요. 장난거리가 아니라구요.그것은 결판이요, 담판이요, 생사의 결정을 가름하는 금을 긋는 거라구요. 최후의 금을 긋는 자리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를 책임지고 이 자리에 나온다는 것은 형장에 나오는 것과 같은 거라구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구요. 공판정에 나서는 그러한 심정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동정을 바라야 되겠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이 있어야 되겠으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가 감도는 입장에 서야만 생명이 윤택할 수 있는 혜택의 자리가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싸워 나오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될 수 있으면 공석에 나타날 때는 '무슨 설교할까? 하고 제목을 미리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사(私)된 결과를 가져오는 거라구요. 그것은 내 지식과 내 조직적인 계획이나 머리를 자랑할 수 있는 기준은 될는지 모르지만 심정을 토로할 수 있는 것은 못 됩니다. 그 대신 설교하기 전에 열 시간 이상 정성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내용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말할 제목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이 기성교회 지도자들과 통일교회 문선생의 다른 점입니다, 뿌리를 깊게 자라게 해 가지고 나오자. 순은 아무래도 좋다. 벌레 먹었더라도 좋다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뿌리만 튼튼하면 그 순은 벌레 먹어 쓰러지더라도 또다시 나온다는 것입니다. 말이야 다듬지 않고 가꾸지 않아도 좋다는 겁니다. 진실된 심정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생사지권을 결정합니다. 그렇다고 노라리가락으로 자기 웅변 하기 위하여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보라구요. '아버지' 하는 것도 여러분이 부르는 아버지와 선생님이 부르는 아버지는 다르다구요. 다르다는 거예요.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구요.다르다구요. 다르다고 보는 것입니다.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전문가가 있다구요. 서도(書道),글씨 쓰는 것을 보게 되면 그런 게 있다구요. 국민학교 학생들이 하늘 천(天) 자를 쓰게 되면, 줄을 딱 맞춰 가지고 이렇게 쓰지요?(칠판에 써 보이심) 이걸 시로우도(비전문가) 가 보면 잘 썼다고 그런다구요. 그렇지만 전문가가 본다면 그게 글자 같겠어요? 그렇지만 어떤 전문가가 이렇게 썼지만. (칠판에 써 보이심) 전문가가 보게 된다면 '히야. 거기에 뭐가 있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필요하다구요. 그게 필요하다구요. 그 누가 터치할 수 없는, 그 누가 따라올 수 없는, 그 누가 거기에 비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눈물로 지탱해 온 하나님의 섭리역사

여러분, 이제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초상집 주인입니다. 왜 초상집 주인인지 보라구요. 복귀섭리를 볼 때에, 하나님이 아담 가정에서부터 아벨 가정,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이삭, 야곱, 모세, 예수, 지금 통일교회 시대의 문선생에 이르기까지 언제 기뻐하고 춤추고 해보았어요? 그래 봤어요? 그래 봤어요? 언제든지 초상집이 아니냐 이겁니다. 번번이, 섭리권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이 이겨 왔어요. 져 왔어요? 져 왔지만 이겨 왔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번번이 져 왔다구요, 져 오긴 져 왔지만 하나님이란 절대자의 입장에서 볼 때 지지 않고 이겨 나왔다는 입장을 세워야 된다는 거라구요.

그러면 무엇으로 그것을 지탱시킬 것이냐? 여러분, 그걸 생각해 봤어요? 싸움으로? 아니라구요. 눈물로 지탱해 왔습니다. 나라가 망한 국민이 됐지만 그 국민이 국가 주권을 지탱시킬 수 있는 동기는 어디에 남아 있느냐? 나라를 추모하면서 눈물로써 얼크러져 가지고 손에 손을 붙드는 거기에서 제2의 건국의 기원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눈물을 흘리는 초상집의 주인과 같은 하나님이 다시 결심해 나오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 눈물과 더불어 결심해 가지고 더 높을 수 있는 신념을 가지고 나서는 사람이 있게 될 때 거기서는 망했지만 망하지 않고 이길 수 있다고 하는 조건을 남겨 나오는 것이 복귀섭리의 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 눈물로 지탱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비참으로 지탱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칠 수 있으면 쳐 보아라! 그 채찍이 가해지면 가해질수록 아버지를 사랑하는 맹세의 눈물이 결속되는 것이다. 죽음의 교차로가 가해지면 가해질수록 거기에서 하늘의 충효의 도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찬스가 생기는 것이다'라고 해야 합니다.

망하는 것 같지만 흥하는 인연을 이어 나오면서 역사시대에 있어서 이겨 나오는 하늘의 섭리의 뜻이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실수했을 때 아브라함의 뜻을 받들어 이것을 이어받은 이삭이면 이삭, 야곱이면 야곱이 아브라함이 실수하던 이상의 자리까지 가더라도 눈물을 머금고 이 뜻을 성취하겠다는 결의의 심정을 가지게 될 때 거기서부터 역사는 지탱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큰 섭리의 뜻을 이어 받은 사람들은 누구더냐 하면 보다 고생한 사람들입니다. 보다 고생한 사람은 무엇을 남겼느냐? 보다 많은 눈물을 남겼습니다. 무엇 때문에? 자기 때문이 아니라 공적인 뜻을 위하여...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이 노아시대에 노아를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셨지만, 그 하나님 앞에 있어서 하나님 이상 슬퍼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에게 새로운 섭리의 바톤을 이어줘 가지고 노아가 하지 못한 일을 고차적인 입장에서 계승시켜 또다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다시 하더라도 사탄이 참소 못 한다는 거예요. '이 사람은 정성에서부터 노아보다 나은 사람이다. 나은 사람을 내가 사랑하는데 네가 참소할 수 있느냐? 이렇게 하면 사탄도 꼼짝못해요.

그러니 모세보다도 나은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재림역사에서는 예수보다도 나은 사람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분은 예수가 흘리지 못한 눈물을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예수가 당하지 못하던 억울함을 당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위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시여, 저를 믿고 안심하소서' 할 수 있는 자신을 가지고 낙망하시는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든가,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슬퍼하는 이상 더 슬퍼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방법밖에 없더라 이겁니다.

낙심하는 하나님을 대하여 다 쓰러지고 없더라도 '하나님이시여.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제가 있지 않습니까? 하며 당당한 기백과 여력을 갖고 하나님을 위안해 드리는 방법과, 그 다음 슬픈 자리에 당도하여 우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더 슬프게 울게 될 때 하나님이 나를 도리어 위로해 줄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섭리의 길은 연결되어 나옵니다.

본부는 참부모가 계시는 곳이기에 더 없이 귀한 곳

이러한 등등의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될 때, 여러분이 이 통일교회 본부를 찾아왔다는 거예요. 이 본부는 일반 본부와 다릅니다. 내가 아는 본부는 여러분이 아는 본부와 다르다구요.

보라구요. 참부모라는 말은 통일교회에서 나온 말입니다.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입니다. 역사시대에 수많은 인류가 도의 길을 가고 참의 길을 가고자 해서 참진리는 찾아 나왔지만, 참진리보다도 참사람은 왜 찾지 않았느냐 이겁니다. 그게 문제라구요. 참진리는 찾아 봤지만 참사람은 왜 안 찾아 봤느냐? 참진리가 이 땅 위에서 깃들기를 바라는 그런 소원을 가진 인간이 있다면 참진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참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이게 문제라구요. 참사람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참사람 가운데 있어서 참사람을 낳아 줄 수 있는 참된 부모는 어디 있느냐? 단계가 높아지는 거예요. 그분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입니다, 참부모. (칠판에 쓰심 ) 참부모라는 말은 간단합니다. 간단하지만 통일교회에서 구체적으로 그것을 공인할 수 있는 입장까지 올라왔다는 사실, 이것은 엄청난 사실입니다. 엄청난 사실이라구요.

'참부모는 왜 참부모가 되어야 하느냐? 이러이러니까 참부모는 이래야 된다. 참부모와 하나되는 참자녀는 이래야 된다' 하는 것이 딱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세계사에 없었던 새로운 씨족과 새로운 문명권이 발발할 수 있습니다. 그 참부모가 나오는 것은, 그 참자녀가 되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바라지 않을 수 없는 표준이 아니냐? 참부모와 참자녀는 하나님의 섭리사의 목적이요 인류사의 목적이며, 과거 현재 미래의 중심형이어야 될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간들은 미래의 통일의 세계,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며 미래의 소망을 가지고 살았지만 참부모를 모신 효자 효녀들에게는 미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부모와 더불어 어떻게 행복하게 사는가 하는 것이 문제라구요. 그것이 제일 희망이요, 제일 소망이요, 제일 욕망입니다. 현실은 불행하면서 미래의 행복을 찾고자 하는 곳이 천국이 아니더라 이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세계는 타락한 세계이니 현실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미래를 추구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참부모가 없기 때문에, 고아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고아의 신세인 사람은 부모를 만나는 것이 최고의 소망이기 때문에 부모를 찾는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현재의 입장을 부정하고, 현재 살고 있는 환경을 부정하고,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부정하고, 그 주권을 부정하고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방향이 아니었더냐?

자, 지금까지는 그렇게 바라고 나왔지만, 이제는 그거나마 전부 포기하고 자포자기하지 않을 수 없는 비운의 역사 가운데 감도는 것이 세계 정세가 아니냐. 그러한 처지에 선 개인을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세계가 세계 자체를 수습 못 하고, 나라가 나라 자체를 수습 못 하고. 단체가 단체 자체를 수습 못 하고, 개인이 개인 자체를 수습 못 하니 이러한 것은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망운권내에서 세계보다도 귀하고, 나라보다도 귀하고, 자기 자체보다도 고귀할 수 있는 것을 중심삼고 그것에 도취될 수 있고, 그것에 도취할 수 있는 경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 아니냐? 그러한 자리는 무엇보다도 행복한, 역사상에 없는 행복한 자리가 아니냐? 그가 누구냐?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행복한 한날을 가진 사람, 그 외에는 딴 무엇이 없지 않느냐? 이것은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대로 사실이 그렇다면 얼마만큼 손을 들어 가지고 찬양해야 할 것이냐?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영계에서 그것이 확실히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영인들이 그것이 얼마나 고대하고 간절히 소망하는 소망의 표준이겠는가 생각해 보라구요. 그러한 곳은 모든 최고가 결실된 자리입니다. 모든 최고가 부활할 수 있는 핵심의 자리입니다. 그러한 곳에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중심삼고 최고의 사람이 결정될 것이고. 심정이 있다면 그것을 중심삼고 최고의 심정이 결정될 것이며, 좋고 나쁜 모든 기원이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분립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여기가 종말에 처한 인류가 비약할 수 있는 최후의 기지가 될 수 있는 거예요.

그러기에 여기에서는 차원이 달라져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입장이 달라질 수 있고, 족보가 달라질 수 있고, 국적이 달라질 수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곳이 있어요?

그곳을 싫어하면서 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몰려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원하고 심신이 결의한 자리에서 자청해 가지고 간절히 요구하고, 그래도 안 되면 눈물까지 흘리고, 그뿐만 아니라 죽어서라도 가고 싶다 할 수 있는 소원의 기준이 현실 목전에 현현했다 할 때에 여러분이 손을 들어 춤을 추면 얼마나 추어야 되느냐 이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사실 춤추어야 할 곳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이 이것을 알기 때문에 통일교회서는 춤춘다는 소문도 내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가는 걸음걸이에서는 춤 가락이 흘러나와야 되고, 온 마을에서는 노래가락이 흘러나와야 되고, 얼굴에는 웃음 가락이 활짝 피어 있어야 할 것인데, 여러분들은 그래요? 요즈음 어떤 간부가 지방 순회를 다녀와서 통일교회 믿는 사람은 전부 한결같이 사는 게 어렵기 짝이 없다고, 다 망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거 잘 망했다는 거라구요. 그 망한 것이...

진정한 부모의 사랑

자기 부모가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을 어떻게 감정할 수 있느냐? 잘 먹고 잘 입고 다닐 때는 부모의 사랑을 받더라도 그걸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남들과 같은 입장에서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부모의 사랑을 언제 알게 되느냐? 내가 최고로 불행할 때에 어머니 아버지가 어떻게 하느냐? 그 다음에 내가 최고로 행복할 때 어머니 아버지가 어떻게 하느냐 하는 데서 감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최고로 행복할 때 나보다도 부모가 더 기뻐하게 되면 틀림없이 자기를 사랑하는 부모입니다. 그렇지 않고 '야, 네가 나보다도 높아져서야 되겠니? 야 야 나보다 더 기뻐해서 되겠니? 엄마 아빠 앞에서 너무 기뻐하면 그거 실례다' 하는 부모라면 그들은 의붓 에미 애비입니다. 자기 아들딸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야! 좋구나. 좋구나. 아이구! 더 기뻐 하는 날을 보았으면 좋겠는데, 지금보다 더 기뻐하면 좋겠는데 할 수 있는 마음의 여력을 갖고 자기를 대하는 부모는 틀림없이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입니다. 진짜 사랑하는 부모입니다.

형님들도 부모들이 자기 동생들만 너무 좋아하게 되면 픽 토라진다구요. 누가복음 15장을 보게 되면 탕자의 비유가 있지요? 아버지가 자기 동생을 좋아한다고 휙 토라졌지요.

또, 자기가 슬플 때 자기는 잠을 자지만 슬픈 입장에 처해 있는 자식을 보고 잠을 못 자는 부모. 그 부모는 자식을 진정 사랑하는 부모입니다. 또, 나는 먹고 있지만 그 부모는 먹지 못하고 있다면, 그 부모는 틀림없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럴 때에 비로소 부모가 진짜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감정할 수 있는 거예요.

인간생활에서 진짜 내가 기뻐할 수 있는 길이 있느냐

자, 그러면 인간생활에서 진짜 내가 기뻐할 수 있는 길이 있느냐? 찾아보라구요. 뭐 자기가 시집가고 혹은 장가가는 날이 진짜 기뻐요? 기쁘긴 뭘 기뻐요. 수십년 동안 순정을 꽁꽁 동여 매어 가지고 지켜 오던 아가씨들이 그 몸둥이를 도둑놈 같은 남자들한테 맡기고 시집가는 날이 좋을 게 무엇이 있습니까? 운명의 판결을 내려 금긋는 날이라구요. 옛날에는 승교(가마) 타고 시집을 가지만, 요즈음은 택시를 타고 갑니다. 택시를 탈 때 택시 문이 철컥 하는 순간 '아이구머니야' 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여자라면 심각한 거라구요. 철딱서니가 없고 분수를 모르는 것들이나 그저 헤헤헤헤 좋아하지, 심각한 자리라구요.

시집간 색시 앞에는 누가 나타나느냐?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부모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내가 지금까지 사랑하던 부모를 버리고 사랑해야 할 부모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부모는 자기가 사랑하던 부모보다도 더 치열한 명령을 할 것입니다. 자고 싶을 때 자지 못해요. 시어머니가 자게 내버려 두나요? 그렇지요?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해요. 먹는 것도 감정 봐 가지고 먹어야 되고, 자는 것도 감정 봐 가지고 자야 되고, 입는 것도 감정 봐 가지고 입지 않으면 낙방이라구요. 시어머니의 눈총에 어긋나게 되면 시집살이 다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시어머니만 그런가요? 시아버지, 능구렁이 같은 시아버지가 있습니다. 그 동네의 명문집 시아버지일수록 능구렁이라구요. '야, 누구야' 해 가지고, 좋은 듯하지만 밸까지 다 빼보는 거라구요. '뭐 눈이 그렇게 생겼으니까 요럴 것이다. 입술이 고러니깐 뭐 말이 빠를 것이다' 하면서 다 감정해 보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허 내가 봤던 것과는 다르구만. 그래도 쓸 만하구만'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시집가서 6개월 동안은 그저 평화스러운 얼굴을 하고, 입은 딱 봉하고, 몸뚱이는 종처럼 움직여라' 이것이 시집가는 아낙네의 철칙이예요, 철칙. 그러지 않으면 시누이가 '아이고, 뭐 오빠는 색시 얻을 때 나보다 좋은 사람 얻는다고 하더니 뭐야. 상통만 봐도 나보다 못하고 행동을 봐도 늦잠만 자고...' 하며 갉아 뜯는 거라구요. 자, 그런 것 저런것 전부 다 딴 나라가 같고 또 전부 다 철창을 들고 나타난 사람들이고 자기 편은 없다구요. 그것이 좋아요?

자, 그런 인생살이 가운데 지극히 행복한 때가 있어요? 행복한 때가 없다는 거라구요. 더우기나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물어 보면, 여러분은' 저 분이야, 통일교회 문선생이니 이렇고 저렇고 하니까 좋겠구만' 하고 생각 할는지 모르지만, 천만에요.

여러분더러 통일교회 문선생 해먹으라면 못 해먹는다구요. 사흘도 못 가 도망갈 거라구요. 행복이 무슨 행복이예요? 일생 동안 불행이라구요. 감옥에 드나들기를 자기 삼촌네 집 드나드는 것보다 더하는 놀음을 해야 되고, 욕을 먹는 것을 오뉴월 참외밭에서 색은 참외 맛보듯 해야 된다 이거예요. 생각해 보라구요. 좋을 것 같아요?

마갈(늦가을) 이 되면 거둔 곡식단이 모이니까 좋아 보일는지 모르지만 수확될 때까지의 과정은 간단한 게 아니라구요. 그거 수확할 때까지는 모르겠지만 곡식만은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은 도적놈이라구요, 도적놈. 그것은 도적놈이라구요.

부모의 사랑이 위대한 것을 알게 된 사건

자, 통일교회 진짜 식구는 언제 알아보느냐? 마찬가지라구요. 진짜 부모는 언제 어떻게 알아보느냐? 자식이 지극히 행복할 때 그것을 보고 얼마나 기뻐하느냐? 이런 걸 보고 아는 겁니다.

외아들과 둘이 살던 과부 노친네가 그 외아들을 장가 보냈어요. 아, 이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아랫방에서 과수 노친네 혼자 자야 할 처지가 된 겁니다. 그래도 장가 보내기 전에는 아들이 자기 손을 보듬고, 웃목에서라도 같이 잤는데. 며느리가 시집을 오자마자 웃방에서 '어머님 저희들은 자야 되겠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하며 문을 탁 닫아버리는 거예요. 그거 기분 좋겠어요? '자거라, 자' 할 수밖에... 그래 놓고 잠만 자면 좋겠는데 속딱속딱 얘기를 한다 이거야. 혼자 누워 생각하면 화통이 터질 거라구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우락부락한 얼굴로 '야, 이놈의 자식아. 혼자 사는 에미 생각은 못 하고...' 그런 어머니는 어머니 자격이 없다구요.

자기가 괴롭더라도 그 모습을 보고 찬양할 줄 알고 '그래도 우리 집의 장래가 지금부터 시작되는구나' 하면서 도리어 복 빌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 부모가 진짜 부모라구요. 그런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식은 도리어 천벌을 받는 겁니다. 그것을 보면 복을 받을 수 있는 최후의 테스트는 그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사는 과부 노친네가 며느리를 얻은 첫날밤부터 한 달. 두 달, 석 달 동안에 자기 집을 복 받을 수 있는 집으로 만드느냐 못 만드느냐 하는 결정이 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과수댁이 있거든 그런 걸 생각해 두라구요. 이렇게 볼 때 사람에게는 행복보다 불행이 많은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나는 압니다. 왜정 말기, 대동아전쟁 때 그 곤륜마루라고, 곤륜환(崑崙丸)이라고 하는 배지요. 이 배가 깨져나간 일이 있었다구요. 내가 그 배를 딱 타고 오려고 전보를 치고 동경역에 나가서 차표를 끊으려니까 영감(靈感)이 오는데 안 되겠더라구요. 막는다 이거예요. 간다는 전보는 쳐 놓았는데... 내가 간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환송 나왔는데 내가 안 간다고 하거든, 그러니까 환송 나온 친구들이 하는 말이 다행히 학교도 다 끝나고 했으니까 자기네 집에서 기념 삼아 최후로 송별회도 하자 해 가지고 사흘 동안 진탕 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집에 다시 전보하는 것을 잊어버렸어요. 누가 뭐 배가 깨져 나갔는지 생각이나 했나요? 그런 것은 알지도 못했다구요.

그런데 고향에서는 큰일났던 것입니다. 아들이 딱 그 배를 타고, 아무날 몇 시에 온다는데 안 왔으니 큰일이 났거든요. 야단이 벌어졌던 거예요. 어머니가 얼마나 자식을 사랑해요. 그러니 어머니는 환장할 지경이지요. 저 평안북도 정주에서 경찰서에 그저 이틀 간이나 들락날락했던 것입니다.

부인이 치마도 안 입고 홋바지 바람으로 행차했으면 그거 다 된 것 아니예요? 정신이 없었던 거예요. 맨발인지 치마를 벗었는지 그거 볼 게 어디 있어요? 그래도 문중에서는 그렇지 않은 어머니인데 왕발(맨발)로 치마를 벗어 제치고 홋바지 차림으로…. 그 주제야 어떻든 내 아들이 죽었다는 걸 생각할 때 아찔했을 거라구요. 이렇게 왕발(맨발)로 한 20리 거리를 뛰어가다가 아카시아 가시가 발에 박혔다구요. 그것이 발바닥에 들어가 가지고 곪아서 굳어질 때까지 몰랐다는 거예요. 그러니 위대한 부모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어머니를 대해서 선생님 자신은 효도를 못 해봤습니다.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를 가진 사람이라구요. 그 어머니에게 효도를 못 해봤다구요. 왜 그랬느냐? 임자네들을 사랑하려고…. 통일교회 이 영신(靈神)들을 사랑하려고…. 부모처자 다 버리고 생명을 걸고 이 놀음 해 나왔다구요. 이 사실은 여러분이 영계에 가 보면 그것이 표준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내가 말은 하지 않지만 그 사실만은 엄연히 통일가에 있어서 절대적 기준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그런 사실을 알 것입니다. 원리대로 산 스승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거라구요. 그런 것을 볼 때 '아! 부모의 사랑' 내가 그러한 큰 교훈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통일교회의 교인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의 뜻을 사랑하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하고 있느냐? 내가 사랑하기에 미쳐 가지고 발에 아카시아 가시가 박혀 그것이 곪아서 굳어질 때까지 아픔을 못 느끼고 허덕여 봤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생님에게 있어서 일대의 교훈입니다. '너는 아직 갈 길을 못 닦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는 자리

그런 비참한 자리에서 부모의 사랑이 드높이 드러나지 않느냐 하는 것을 볼 때, 통일교회 자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 자체를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가 행복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증거가 될 것이냐? 그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위배되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어디서 동정받을 것이냐? 비참한 자리에 선 통일교회를 대하여 하나님이 멀다 하지 않고 지상의 천한 자리까지 왕발로 군림하셔서 붙들고 사연을 나눌 수 있는 역사적인 인연을 남겼느냐? 이러한 인연을 남겨야겠다는 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의 생활철학입니다.

내가 눈물을 흘릴 때 아버지께서 오셔서 '같이 울자'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내가 책임 지고 이 길을 갈 테니 하나님이여,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는, 두 갈래 길에서 싸워 나가며 다짐해 놓은 것이 지금까지의 통일교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것만이 망하지 않는 천륜의 심정을 남길 수 있는 터전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길을 걷다 보니 망한다고 수백 번 생각했지만 망하지 않은 것입니다. 망하게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도 망한다면 이것은 천리가 위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다른 소원이 없는 것입니다. 내게는 영광도 필요없다는 거예요. 그 누구의 동정도 필요가 없습니다. 단 한가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눈물 흘릴 수 있는 그 길을 내가 막아 주고, 하나님이 눈물 흘리는 이상 내가 눈물을 흘리는 길을 가야 되고, 내가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시고 친히 나타나셔서 '이젠 그만 울어라. 네 사정을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느냐?'라고 할 수 있는 그 자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 생애를 투신해서 모험적인 행동을 한 사나이가 있다면, 세계적인 대표의 자리에서 그렇게 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통일교회의 문선생 빼놓고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통일교회가 이단으로 규탄받고 별의별…. 그러나 해보라는 거예요. 누가 망하나 두고 보라는 거예요. 이 심정을 우주 앞에 만민 앞에 공개하게 될 때, 사실이 그렇다는 공증이 있게 되면 사람이라면 넘어가는 것입니다. 밀려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을 만난 여러분들에게 선생님이 가는 곳에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같이하기 때문에 그 자리는 누구나 다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봄볕이 깃들 수 있는 찬바람은 찬바람이더라도 소망의 바람입니다. 아무리 거슬리는 바람이 불더라도, 아무리 핍박의 사연이 남아 있더라도 그것은 소망을 자극시킬 수 있는 바람이요, 소망을 격려할 수 있는 자극이 되기 때문에 그 바람을 맞더라도 망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혼자 있을 때는 심각한 사람입니다. 또한 불의를 보고는 못 참는 사람이라구요. 여러분들이 그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언제 나를 사랑하느냐 할 때, 타락한 인간으로서 자기가 기뻐하고 행복한 길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기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비참한 경지에 가게 될 때 그 비참한 것을 바라보고 방치해 두는 하나님이더냐, 그러지 않고 도리어 눈물로써 위로하는 하나님이더냐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훈련장으로서, 그 길을 생활적인 인격연마의 터전으로 표준하고 여러분을 훈련시키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 선생님의 지금까지의 지도 방법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백 사람 앞에 핍박을 받으면 하나님은 백 대 일이 아니라구요. 세상적으로는 백 대 일의 외로운 자리에 서 있지만 하나님은 그 백배 이상의 심정을 갖고 나를 보호하더라 이겁니다. 천 대 일이라 해도 외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천 대 일 이상의 심정을 가져 가지고 '싸워라! 강하라! 담대하라! 불의를 대해선 강해라! 생명보다 더 강해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기점

한때는 삼천리 반도 전국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을 반대했습니다. 교계가 합하고 수많은 가정, 수많은 사람이 합하여 민족적으로 공격하여 삼천리 반도에 내가 설자리가 없었지만, 또 삼천만의 조롱과 비소가 땅 위에 충천되어 있고 나는 홀로 서 있었지만, '내가 비바람에 부대 끼고 불에 탄 나무같이 그을리더라도 타서 죽는 나무는 될 수 없다. 그을린 그 나무가지에도 봄이 되면 새싹이 나올 것이다' 하는 신념을 가지고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의 비소가 크면 클수록 그 슬픔이 삼천만 이상의 자리에 섰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나와 인연을 맺고 나를 버리지 않는 아버지의 자리에서 삼천만의 심정 이상의 심정으로서 대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감옥에 들어 가서도 슬픈 얼굴을 가지려고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쇠사슬에 매여 끌려가며 뭇사람들의 조롱을 받을 때도 '오냐, 비난 비소해라. 내가 교육이 안 되어 있어서, 배울 것이 있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배웠습니다.

그것이 내가 가는 길 앞에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격려가 되고 생애를 걸고 투쟁해 나오는 데 있어서 격분의 심정을 자극시키는 찬란한 동기가 됐으면 됐지, 나를 좌절시키는 함정이 안 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을 기쁨으로 알고 도리어 내가 장사 밑천을 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알 수 있었고.,거기에서 하나님이 같이하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가 거기서 입을 열지 않으면 하나님이 밤에 계시로 혹은 몽시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입을 열지 않고도 전도할 수 있는 환경을 감옥 가운데서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거기에 하나님이 같이했다는 증거 중의 증거인 것입니다. 그런 증거적 사실은 얼마든지 있다구요. 그렇게 가 가지고 망하는 사람이 있거든 내 목을 짜르라구요. 안 망한다구요. 안 망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받기를 바라거든, 참된 행복의 자리를 원하거든 전체의 불행의 자리를 대신하여 나 홀로 불행한 자리에 가라는 겁니다. 그런 자리에 가면 하나님이 나를 위하고 내가 열 대 맞으면 백 대 천 대의 수난을 개의치 않고 나의 앞을 미리 닦아 나가면서 싸움을 다해준다는 것을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단이 오늘날까지 그러한 고독한 길, 그러한 골짝 뒷길을 걸어 가지고 표면까지 나서는데 있어서 망하지 않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 여러분은 하나님을 울려 봤어요? 효자는 부모를 울리는 거예요. 그렇지요? 충신은 군왕을 울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 이라면 하나님이 붙들고 '오냐, 네 소원이 무엇이냐? 네 소원을 가로막는 사람을 쳐서라도 소원성취시켜 줄 것이다' 하는 결의와 맹세를 하늘 아버지와 더불어 한 시간이 있었느냐? 그것이 필요하다구요.

그러한 자리에서의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을 갖지 않고는 저나라에 갈 자격이 없지 않느냐? 하늘나라는 여러분과 같이 습관에 젖어 있는 생각과 인습적인 자극을 통한 환경을 초월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될 수 있다면 사탄권이 그냥 그대로 하나님과 접할 수 있다는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비장한, 차원이 다른 교차로, 즉 평면적이 아닌 입체적인 면에서, 각도가 상이한 자리에서 여러분이 자극을 받고 결의할 수 있는 새로운 기점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중심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합동하여 결의한 새로운 기점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 그것이 효도했다는 자리요, 충성을 했다는 자리인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천국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상적 지주가 없는 민주세계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이 자리는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자리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영적인 체험을 많이 했을 거예요. 그 영적인 체험을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주머니들은 전부 다 체험했을 거라구요. 그렇지만 그 영적 체험이 누구에게나 다 있다고 해서 그것이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공을 들이지 않는데 그런 일이 생겼다고 해서 공 안 들인 입장에서 생각 하기가 일쑤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나는 아무런 공도 안 들였지만 영계에서 가르쳐 주어서 내가 인연이 됐고, 공을 안 들이고 수고하지 않는 입장에서 그런 체험을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통일교회에는 상습적으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는 안 된다구요.

보라구요. 그러한 한때가 나타난 적이 역사시대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수천년 인류역사의 배후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계속되어 왔지만 그런 체험적인 행동이 언제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한번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6천년 걸려온 것입니다. 초점이 여기 있는데. 이것이 교차로입니다. 요 때는 이것도 저것도 다 한 점에 집중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심)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세상의 갈 길이 막힐 때가 온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미국이 갈 데가 어디고, 공산당이 갈 데가 어디고, 대한민국이 갈 데가 어디냐? 다 그렇게 돼 있어요. 중공이 갈 데가 어디냐? 중공도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럴 때가 온다구요. 완충지대, 어떤 것이 참인지 갈피를 못 잡을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옳으냐, 민주주의가 옳으냐. 종교인이 옳으냐? 갈피를 못 잡게 될 것입니다.

종교권에서는 아랍권과 기독교권이 맞서게 될 거예요. 외적인 세계에 서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맞서게 될 것입니다. 또 앞으로 통일교회가 기독교회를 흡수하게 될 것입니다.그럴 때가 멀지 않았습니다. 그래 가지고 통일교회와 아랍권이 맞설 것입니다. 이번에 유엔에 중공이 가입한 것은 공산권과 아랍권이 손잡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벌써부터 이런 이야기를 해 나왔지요? 이번에 중공이 유엔에 가입하는 데 있어서는 아랍권의 대표들이 거수권 행사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겁니다. 그거 틀림없지요? 그거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과 하나될 수 있는 기독교 문화권 국가들은 어떻게 됐느냐? 전부 다 깨져 나갔습니다. 사탄세계는 안팎이 없이 세계적으로 합해 손을 잡고 있는데, 하늘편인 민주세계는 세계를 대표하여 손잡을 수 있는 상황이 못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있어서 그 주체적 자리가 통일 교회입니다. 미국도 통일교회와 손잡아야 되고, 대한민국도 통일교회와 손잡지 않으면 안 됩니다. 두고 보라구요. 그러니 어차피...

민주세계는 앞으로 곤란하게 돼 있습니다. 사상적인 지주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포위작전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두고 봐라 이거예요. 앞으로 세계와 더불어 손잡고 최후의 결의를 하여 실력 대결을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는 무기 가지고 싸우지 않습니다. 말로 싸우는 겁니다. 말로 싸워 이겼다 하게 되면 전부 다 도망간다구요. 알겠어요?

그렇지만 말만 하게 되면 배가 고픈 거라구요. 그렇지요? 말만 하고 나면 재미가 없는 거라구요. 말을 한바탕 하고 나면 재미있어요? 말하고 나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의 떡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생명보다 앞서는 것은 심정

앞으로 무엇이 문제되느냐? 인류를 누가 더 사랑하느냐가 문제가 됩니다. 그 싸움이 남아 있다구요. 누가 참이냐? 지금까지는 지식을 가진 사람, 말 잘하는 사람을 제일로 생각했습니다. '아무 교수가 제일이다' 하는 것입니다. 말을 팔아 먹는 것이 기수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때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말은 무엇을 대표해야 되느냐? 심정을 대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와야 합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앞으로 역사를 요리할 수 있는 중심, 누룩이 무엇이냐 할 때 그것은 말이 아니라구요. 그 말 가운데 눈물이 있어야 하고 눈물 가운데 행동이 있어야 됩니다. 말로만 해먹는 사람 중에는 사기꾼이 많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서는 심정의 철학을 논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보다 앞서는 것이 심정입니다. 실존보다 앞선 것이 생명입니다. 요즈음에 실존철학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구요.

아무리 쓸쓸한 방이라도 사랑이 깃든 방이면 그 방은 행복의 접경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무리 쓸쓸한 방이라도, 아무리 찬 마루바닥이나 찬 방이라도 어머니의 사랑이 넘쳐 흐르는 곳이면 두 사람이 붙들고 밤을 새우더라도 그곳은 행복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사람은 그걸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심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도 알지 못하는데,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심정을 어떻게 알아? 보지도 못했는데... 그렇지만 알 수 있다구요.그러한 인연이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인연, 이러한 자리에 나왔기 때문에 역사적인 모든 전체가... 이러한 시대에 통일교회가 서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러한 경지에 임하는 것입니다. (판서하면서 설명하심 )

일본 식구들은 기도 가운데나 몽시 가운데 선생님을 본다는 사람이 98퍼센트입니다. 그걸 볼 때 일본 식구들은 한국 식구들보다도 차원이 높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오래가지 않아 그들의 심부름꾼이 되기 쉬울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여러분들이 지금 그렇다구요. 무슨 일이 있게 되면 선생님이 가르쳐 줍니다. 오늘날 미국이나 독일 등 딴 나라에 살고 있는 식구들에게도 국경을 넘어 선생님이 직접 영적으로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영계를 통하는 수많은 영통인들이 통일교회 문선생 휘하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런 말 들으면 이상하지요? 그 사람들은 전부 다 통일교회 문선생의 꼬붕이라구요. 여기 서울 장안에 있는 유명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물어 보라구요. 선생님 이름 석 자만 대면 머리 숙이게 돼 있습니다. 믿기 어렵거든, 통일교회 믿기 어려운 사람들은 그렇게 찾아 다니면서 물어보라구요. 대번에 알 거예요. 영통인들 사이에 요즈음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경쟁한다구요.

그러니까 앞으로 통일교회 패들, 임자네들은 그저 어물어물하다간 떨어지기 일쑤일 때가 옵니다. 따라가기가 바쁠 때가 올 것입니다. 그것을 막고 그 길을 피하게 해주려니... 여러분이 보조를 맞추어 핍박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내가 누구보다도 여러분을 나은 자리에 세우려니 그 방비책으로서 여러분이 고생했다는 조건을 세워 주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원수로구만. 그게 원수지요? 고생하니까 어때요? 그것이 원수가 아니예요?

보라구요. 옛날에는 예수를 믿어도 예수님 한 번 보려면 7년 이상 20년, 40년까지 정성을 들여야 했습니다. 한 7년 정성들이게 되면 십자가에 돌아가신 비참한 예수님은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신랑 같은 예수님을 만나려면 20년 이상,즉 두 배 이상의 정성을 들여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일주일 이내에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일주일 이내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도 방법을 통해 가지고 신랑 같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데 그런 자리를 맞이하게 된 것은 여러분이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역사적인...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인연이 있어서 들어왔다구요. 자기 선조들의 공적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선조들이 하늘 앞에 정성들였지만 뜻을 못 이루어 한을 못 풀고 갔기 때문에 끝날에 그 한을 풀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들어온 것입니다.

신앙과 선조와의 관계

그러면 여러분의 심정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여러분 마음은 안 그러고 싶은데 할 수없이 그런 때가 있다구요. 그것은 여러분의 선한 선조, 즉 1대,2대, 혹은 수백 대, 수천 대까지 선을 위해 살겠다고 한 선조 한 사람 한 사람을 복귀과정을 통해서 탕감시키는 놀음을 하기 때문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입니다. 참, 때로는 뜻이고 뭣이고 그것 다 훼방하고 싶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이것이 언제나 올라가게 되면 없어지는 거예요. 알겠어요? 땅에 있는 우리하고는 관계없어지는 거예요. 관계가 없어지니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라가다가 반드시 인간세계에 관계를 맺기 위해서 내려왔다가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분의 선한 선조가 많이 있어서 끌고 나가지만, 영계에서도 악한 선조들이 '너희들만 이러기냐' 하며 반드시 참소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제사를 드릴 때는 악한 선조에게도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여기에 가담할 수 있는 악한 선조도 몇 대에 하나씩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아무리 잘 믿던 사람도 환장하는 거라구요. '뜻이고 뭣이고 남 잘사는 세상에 내가 이럴 게 뭐야' 하면서 세상 중심삼고 달콤한 깻내가 보솔보솔 난다는 것입니다. 몰콘몰콘 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어제까지 정성들였는데 언제 그랬냐 하고 싹 달라지는 거예요. 아무리 기도해도 캄캄한 천지가 되는 것입니다. 정성을 아무리 들여도 힘이 안 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가 있어요. 만일 악한 선조가 많으면 그것이 배로 늘어납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악한 선조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선한 선조가 '이제는 내 때다'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보라구요.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데도 선생님이 나타나서 가르쳐 준다는 거라구요. 그것은 왜 그러느냐? 선한 조상이 있기 때문에 가르쳐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나중에 영계에서 선조들을 만나면 그 말이 맞나 안 맞나 물어 보라 구요. '통일교회를 직사하게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 문선생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에게 여전히 가르쳐 주더라' 할 겁니다. 그것은 왜? 조상은 자기 후손들이 잘못하더라도 그 후손 앞에는 여전히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조상은 언제나 후손에게 올바른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천륜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도 안 가르쳐 주면 좋겠는데 지지리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믿다가 떨어진 사람들이 죽고 못 사는 것이 그것 때문입니다. 이것을 싹 씻어 버리면 씻겨지면 좋겠는데... 뜻 때문에 들어왔으면 나갈 때는 그것을 씻어야 된다구요. 그것이 씻겨지지 않고 나가게 되면 잡아채니까 언제나 편안치 않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잘못하면 대번에 '아이고! 탕감이지' 한다는 거예요. 통일교회를 믿다가 나간 사람들이 더 잘 느낀다는 것입니다. 한번 그러다 보면 '아이구! 탕감이지, 가야 할 텐데 큰일이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가 안 그런가 지금 그런 사람들에게 물어 보라구요. 통일교회에서 나가 자기 멋대로 별의별 일을 하다가 다시 들어온 사람들이 직고하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어느 때에 가서는 선한 조상이 '야야야야 이리 와' 하고 끌어올린다는 겁니다. 획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 거리를 어떻게 맞추느냐? 이 거리가 문제 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그렇기 때문에 '천국을 몰랐으면, 몰랐으면 더 좋았을 걸...'하는 것입니다. 알고 못 가는 길이니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놀음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심령 상태가 고르지 않은 것은 그러한 영적인 선한 선조와 악한 선조의 결실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기도할 때 '아! 우리들은 6천년의 역사적인 결실체입니다' 하고 기도하지요? 6천년의 역사의 결실체라면 좋은 선조의 진액도 나쁜 선조의 진액도 미쳐져 있겠지요? 그러니까 그러한 실체 자체는 그런 영향을 반드시 받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때는, 이 자리는 타락되었지만 전체의 역사에 있어서 나쁜 것이나 좋은 것이나 전부 다 여기서 교차되는 것입니다. 교차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좋은 것은 알맹이를 만들고 나쁜 것은 껍데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때는 좋은 것은 전부다 알맹이를 만들고 나쁜 것은 모두 껍데기로 만든다구요.

먼저 개인적으로 승리해야

교차되어 있다는 말을 크게 세계적으로 확대하면 나는 하나님과 같이 있지만 주위는 전부 사탄세계라는 말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출발할 때 그러한 자리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이 세계에 사탄이 제일 득세할 때입니다. 사탄이 제일 득세하니 선은 골짜기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제일 높으니까 선은 제일 낮잖아요? 그렇지요? 사탄은 꼭대기이고 선은 밑창이라구요, 이러한 입장에 섰으니 '나만 남았나이다'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엘리야도 '나만 남았나이다' 그런 기도 했지요? 이 우주에 '나만 남았나이다' 하는 그런 때가 있다구요. 그 자리에 있을 때는 온 악한 세상이 뿌리까지 뽑아 버리려고 한꺼번에 내리치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내리 족치는 것입니다. 거기에 밀려나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서는 하늘이 지탱해 가지고 받들어 줘야 합니다. 그런 때가 있다구요.

여러분은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는 절대적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있다. 외적인 어떠한 핍박이 가해 와도, 세계가 요동하더라도 그것을 격파시키고 나간다' 하는 신념을 확실히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래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치더라도 안 넘어가고, 가정적으로 치더라도 안 넘어 간다고 하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사랑하는 여편네가 치고 자기 자식이 치는 것입니다 '쳐라! 나는 안 넘어간다. 사랑하는 부모가 치고 일족이 쳐라! 안 넘어간다'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와 제일 가까운 사람이 치는 것입니다.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했지요? 그러면 그 시험에 합격 해야 되는데 시험 문제를 누가 내느냐? 내 앞에 제일 가까운 사람이 내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승리하지 못하면 360도를 중심삼은 주위 환경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 반대하는 대표는 한 사람입니다. 그가 누구냐?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편 앞에는 여편네가 원수인 것입니다. 여편네가 사내 뺨을 치는 거라구요 치기만 하나? 칼로 목을 찌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짜 사탄이 격발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꺾여 나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자식까지 거기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 그러느냐? 타락이 뭐냐 하면 사탄을 중심삼고 사위기대권을 형성한 것입니다. (판서하심) 사위기대권에 아들딸, 여편네, 그 다음엔 천사장이 들어갑니다. 하나님까지 들어가는 것입니다. 들이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나만 남았나이다' 하는 절대적인 신념을 가질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지에서 비로소 씨가 돼 가지고 커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전부 하나님을 중심삼고 모든 문제가 중심에 결집되어 가지고 커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이 공격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을 출발할 때 선생님은 10분을 마음 놓지 못했습니다. 알겠어요? 마음만 놓으면 벌써 검은 구름이 와서 점령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뉴월에도 명주 바지 저고리를 입고 기도했어요. 그렇게 기도한 후 옷을 짜면 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피땀을 흘려가며 기도하던 때가 있었어요. 여러분은 그런 걸 모를 거예요. 이제는 다 됐다구요. 다됐어요. 내가 외국에 갈 때는, 그 나라가 역사적인 원수의 국가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사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었어요. 그만큼 우리의 세계는 눈안에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럴 때가 돼 있다구요. 그러니 개인적으로 승리하는 싸움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선한 열녀의 남편이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반대인 사람의 남편이 될 경우도 있습니다. 잘하면 열녀의 남편이 되는 것이요, 못하면 뭐요? 열녀의 반대는 뭔가요? 있어요, 없어요? 아는 사람 있으면 말해 봐요? 열녀 반대가 뭐예요? 악처?(웃음) 열녀의 남편이 못 되면 악처의 남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효자의 아버지가 못 되면 불효자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이렇게 전부가 엇갈려진다 이겁니다.

봄날을 맞아야 하는데 가을날부터 맞았다는 것입니다. 가을을 맞이하면 서리를 맞지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출발과 더불어 서리를 맞았다구요. 그러면 그 서리를 누가 먼저 퍼부었느냐? 여편네가 퍼붓고, 그 다음에 자식이 퍼붓고, 부모가 퍼붓고, 일족이 퍼붓고, 친구가 퍼부었던 것입니다. 심정적 계열에 따라 가지고 그것이 비례되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기성교회가 퍼부었고 나라가 퍼부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을날에 아무리 험상궂은 찬바람이 몰아치고 서리가 내린다 하더라도 씨를 갖춘 열매는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딴딴한 씨일수록 추위가 심해야만 그 껍질이 잘 벌어집니다. 잣나무 씨 같은 것도 미지근한 상태로는 안 됩니다. 얼어 터지고 변화가 무쌍해야 껍질이 빨리 빠개진다는 것입니다. 춥고 못사는 것이 불행이 아니라 도리어 생명을 유발할 수 있는 동기도 될 수 있더라 이겁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에 대한 핍박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통일교회가 생명의 깊은 뿌리를 가졌기 때문에 어떠한 포악한 시련 무대도 뚫고 나올 수 있는 생명의 터전이 여기에 결부됐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판도를 넓혀 온 것이며 그렇게 반대를 받던 통일교회는 나날이 커져서 이제는 기성교회 목사가 한 9백 명 가까이 우리한테 와서 교육까지 받고 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기적. 알겠어요?

우리는 굶더라도 원수를 살리자

지금까지 유대교와 기독교는 역사적인 원수지요? 예수는 이스라엘 나라 사람이지요? 만국이 기독교 문화권을 이루고, 수많은 나라가 기독교를 국교로 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나라 사람들은 지금 예수를 얼마나 믿느냐 하면 13퍼센트도 안 된다구요. 그 가외는 아직까지 유대교를 믿고 있습니다. 유대교. 그리고 아직까지 유대교의 제사장들은 예수를 이단자 라고 하고 있습니다. 2천년 동안 기독교인들을 이단자라고 해서 한 동네에 살아도 서로가 맞서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나왔다구요. 요즈음엔 좀 달라졌지만 말이예요. 세계적인 풍조가 연합기구로 편성되어 들어가니 종교도 연합할 수 있는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하늘의 운세가 왔기 때문에, 즉 재봉춘할 때가 왔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입니다. 제사 장과 기독교인이 2천년 동안 한 동네에서 살아도 전부 원수처럼 여겨 가지고 영원히 합할 수 없었던 것과 같은 것이….

그런 것을 보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한국에 있어서 역사는 한 20여 년 되었습니다. 한 20여 년 동안 반대를 받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옛날 제사장과 같은 패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원리공부를 하고 나서는 비밀문서를 쓰는 것입니다. '나 협회에 가입하겠소' 하는 사람들이 많다구요. 알겠어요? 별의별 사람이 많다구요. 기성교회는 지금 모르고 있지만, 한쪽에서는 보따리를 싸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한 2천 명….

처음엔 통일교회의 소위 간부들이나 지방 교회장들이 '선생님은 돈도 많지. 목사 원리공청회나 아카데미 하우스 집회 때는 매번 한 사람 앞에 평균 만원씩 들어간다는데 우리 교회장들이 한 달 생활하고도 남을 돈을 쓰면서, 그 원수 패들 데려다가 그 놀음을 하다니….' 이렇게 불평했지만 그것은 모르는 소리예요. 여러분이 별의별 소리를 다 했겠지만, 지금 와서 보니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했습니다」 왜? 기성교회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그저 통일교회 교인이 나타나기만 하면 눈에 횃불을 켜 가지고 죽이겠다고 야단하던 목사들이 이제는 통일교회 교인들을 보고 오라고, 쏙닥쏙닥하자고 합니다. 이제는 환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요즈음에는 통일교회 간부들이나 교회장들도 목사 원리공청회를 더 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제는 목사만 하지 말고 장로까지 하자고 합니다. 이 사람들. 변덕이 왜 그렇게 많아요. 목사만 한다고 했는데. 장로들까지 해 달라고? 그렇게 많은 장로들을 어떻게 다 하나? 그렇지만 장로도 하자구요. 돈 벌어 가지고 뭐할 거야? 우리가 조밥 먹고, 죽 쑤어 먹고 그런 놀음을 했다고 해서 천벌을 받겠어요? 벌 안 받는다구요.

자, 기성교회 목사나 교인들을 만나 가지고 한번 말해 보자구요. 내가 사연을 터놓게 되면 배꼽이 떨어지도록 통곡해 버릴 것입니다. 누가 울게 돼 있어요? 우리는 울리고 그 사람들은 울게 될 것입니다. 울리는 사람이 못났어요, 우는 사람이 못났어요? 울리는 동기가 되는 사람이 잘난 사람이요, 우는 사람이 잘난 사람이요? 역사적인 선물로서, 혹은 유물로서 남기려면 어떠한 사람을 남겨야 되겠어요? 우는 사람을 남겨야 되겠어요, 울게 만든 동기를 가진 사람을 남겨야 되겠어요? 「울게 만든 동기를 가진 사람을 남겨야 되겠습니다」 뻔한 놀음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역사과정에 남는 것입니다. 기성교회는 흘러가더라도….

여러분이 이 시대에 뜻과 인연된 것은 기적

요런 말 들을 때는 기분 좋지요? 그렇지요? 말은 간단하지만 내용은 복잡하고 사실은 어려운 것입니다. 지금 그런 때가 온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한번 영계를 가르쳐 주게 되면 6천년 수난의 정성이 여러분 앞에 꽃이 피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이 꽃피는 순간입니다. 나무에 열매맺기 전에 꽃이 피는 것이라구요. 알겠어요? 그래서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꽃 피는 시절이 있습니다. 그거 맞소, 안 맞소? 꽃 피는 시절이 오는데, 인생에 있어서 꽃 피는 시대가 언제냐? 사춘기 시대라구요. 그렇지요? 인간으로 말하면 사춘기 시대라구요.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괜히 교회에 가고 싶어집니다. 와도 아무것도 없다구요. 그런데 괜히 가고 싶어집니다. 뭘 주지도 않는데 괜히 가고 싶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잘나지도 못했다구요. 뭐, 석온 노친네는 선생님이 외국 가면 보따리를 싸 가지고 같이 가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며칠만 안 보면 보고 싶어 죽겠다더구만 옛날 영감이 죽어서 장사할 시간이 됐는데도 선생님 보고 싶은 생각에 못 견디겠다더구만. 그것이 왜 그러냐 이겁니다.

선생님에게는 그런 할머니가 어머니 같은 분입니다. 그런데 세상적으로 그리워 가지고 그러겠어요? 그거 이상하다구요. 밥을 한 끼 안 먹으면 안 먹었지 선생님 안 보고는 못 살겠다는 것입니다. 요것이 통일교회의 병이라구요. 그런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에서는 몰라요. 아무리 연구해도 모르는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암만 조사해 봐도 모른다구요. 그걸 알아요? 속속들이 그렇게 된 것을 누가 알아요? 그걸 볼 수가 있나요? 암만 무슨 뭐 요즈음의 컴퓨터를 갖다가 조사해 봐도 모릅니다. 자, 그러한 체험을 하는 때가 인생에 있어서 사춘기라고 말할 수 있는 거라구요. 봄절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로소 꽂 피기 시작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사춘기는 어떤 때냐? 온 세계의 만물이 나와 더불어 인연 맺고자 하는 때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10대의 청춘 남녀들이 사춘기 때에는 뭐 운동회를 한다고 하면 '마라톤 선수는 나야' 합니다. 자기들이 다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하나에서 백까지 전부 다 하고 싶어하는 겁니다. 여자들도 그럴 때가 있지요? 「예」 여기 아주머니도 그래 보았어요? 그렇게 못 되긴 했지만…. 그렇지요? 전부 다 좋은 것은 내 것이다. 내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와 더불어 세계를 안고 좋아하고 다 나와 관계 맺고 싶어하는 때가 사춘기라구요. 그 때가 지나가게 되면 그것이 점점 작아져 가지고 맨 나중엔 '나….' 이렇게 죽으면 그건 망하는 것입니다. 이 사춘기를 확대시켜 가지고 세계와 더불어 그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심정의 인간이 되면 그는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을 갖고 왔던 사람이 예수 같은 양반입니다. '죽더라도 세계 사람들과 꽃동산에서 살자'고 제창한 분이 예수 같은 양반입니다. 그러한 때가 여러분에게도 영적으로 있게 되는데, 그것을 '내가 며칠 동안 믿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해라구요. 그것은 몇 천 년만의 운을 타기 위해서 그런 일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그런 것을 꽁꽁 묶어 보관해야 합니다.

언제 선생님이 나에게 그런 내용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 보세요. 내 선조들에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이 시대에, 이 짧은 생활권내에서 접선됐다는 사실이 기적입니다. 씨족을 중심삼고 큰 기적을 일으켜 그 기적의 은덕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이때에 통일교회에 가입한 사람들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것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때에야 비로소…. 요것은 어떻게 되느냐? 다른 것은 망해서 나가자빠지더라도 요것만은 남는 것입니다.

요것이 무엇이냐? 요것이 심정적 역사방향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아담 때의 슬픈 심정이 깃들어 있고, 노아 때의 슬픈 심정, 아브라함 때의 슬픈 심정, 모세 때의 슬픈 심정. 예수 때의 슬픈 심정, 통일가 시대의 슬픈 심정이 깃들어 있는데, 그것을 중심삼아 그것으로 열매 맺어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청산짓고 기쁜 심정으로 승리하고 난 후에 '나를 좀 봐라! 이 권위 앞에 모든 것은 머리를 숙일지어다'할 수 있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적으로 소원성취할 때는 어떤 때냐? 이때에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의 일가가, 일족이 혹은 국민이 아무리 많더라도 개인적으로 성사할 수 있는 때는 이때가 아니면 역사상에서 다른 때에는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가르쳐 준 도리가 사실이라면 요때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전무후무한 때입니다.

예를 들면, 태평양 가운데에 던진 모래 한 알을 한 번 곤두박질해 들어가 그것을 손가락으로 집기보다 더 힘든 일이 여러분의 눈 앞에 벌어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바늘 끝을 서로 맞대는 데있어서 한 번,두 번 대 보지 않고 단번에 딱 맞대어 그 끝이 들어맞게 하는 것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그 일이 쉬운 일이냐 이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것은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일입니다. 여기서 맺혀진 심정이라는 것은 새로운 이상시대의 역사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문화세계의 창조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전무후무한 충신 효자가 될 수 있는 때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행복이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에는 없는 것입니다. 부모를 맞아 형제와 더불어 나라를 찾고 세계를 찾을 수 있는 때가 최대의 행복점입니다. 알겠어요? 그때가 행복의 극치입니다. 부모를 잃고 친족을 잃고 종족을 잃고서는, 아무리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못 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부모와 더불어,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사랑하는 자식과 더불어, 사랑하는 백성과 더불어, 사랑하는 인류와 더불어, 사랑하는 하늘과 더불어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 아니냐? 그렇게 되어야 행복의 극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는 요때밖에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고 난 후에는 영영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역사적인 기원과 더불어 영원세세토록 그 사회의 기원이 될 수 있고, 인류생활의 모토가 될 수 있고, 생애의 표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기원이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길이 빛났던 것은 인류역사에 인격적인 표상으로 등장하는 것이요, 여기의 공신은 인류역사를 지배할 수 있는 공신의 표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건 꿈 같은 이야기라구요. 사실이 아닌 꿈 같은 얘기 같지요? 수많은 수증기가 합하여 구름이 되어 떠돌아다니는데 그 구름 가운데 한 수증기와 같은, 한 수소 분자와 같은 분자가 나와 더불어 딱 마주친 거라구요.

인류역사 시대에 있어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조화시켜야 살 수 있는 최고의 희망봉이 여기서부터 결정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라구요. 대학이 문제예요? 세상의 그 무엇도 문제가 아니라구요. 희망봉이 결정될 수 있는 순간이 여기서부터입니다.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찬란한 문화의 기원이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공신이 되고 효자 효녀가 된다면 청사에 길이길이 빛날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그러면 내가 거기에 있어서 뜻을 따라 모시고 나가는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그 척도에 맞을 수 있는 놀음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옷을 입으나 밥을 먹으나 자나깨나 행동거지 일체에서 모시고 사는 생활을 함으로써 '내가 이렇게 만나기를 바라던 그 인연을 내가 왜 놓치고, 내가 왜 떠날 것이냐? 밤인들 한 순간이라도 놓칠 수 없는 것이 내 필생의 운명이 아니냐?하며 운명적으로 감지할 수 있고, 감정을 체득할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이, 신앙생활보다도 실제의 생활적인 내용을 갖추어서 생애노정을 살아야 할 것이 통일가에 속한 여러분이 아니겠느냐?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그렇게 삽니까? 그 기준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 기준이 여러분의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이요, 척도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선생님이 그렇게 사랑하려고 하던 그 나라가 어디 있느냐 이거예요. 선생님이 사랑하고 선생님이 눈물 흘리며 따라 나오던 그 나라가 비참하게 됐다구요. 남북이 갈라졌다구요.

여러분은 모를 거라구요. 내가 삼팔선을 넘으면서 내 마음으로 다짐했던 것은 그 누구도 모를 것입니다. 또한 이북의 감옥에서 3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면서 삼팔선 이남을 중심삼고 하늘 앞에 기도하던 것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슬픈 환경이지만 오늘을 맞아 가지고 삼팔선을 넘는 다고 눈물을 머금고 기도하던 것은 같이 오던 사람도 모르는 것입니다. 내가 슬픔을 남기고 부모 형제를...나를 위해서 정성을 들이던 고향에 있는 어머니 아버지를 뒤에 두고 떠나 오면서 이 불효자식이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려 달라고, 죽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하고 떠나온 것을 내가 잊지 않고 있다구요.

또 내가 공산당에게 고문을 받으면서 '이놈의 자식, 내 이 시퍼런 눈을 뜨고 네 일족을 굴복시켜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찬양하는 것을 네 입으로 증거하는 그날을 갖고야 말 것이다. 내가 죽지 않고 그날을 볼 것이다' 하고 다짐하고 결의했던 사실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까지도 선생님에게 사무친 심정으로 남아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승공을 들고 나와 천대를 받으며 지금까지 이 놀음을 하고 있다구요. 명실공히 이제는 국가에서도 우리 단체가 아니면 승공할 길이 없다는 결정적인 기준에까지 끌어올린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이 대열을 삼팔선 이북으로 몰고 들어가서 김일성 도당의 모가지를 전부 자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어떻게 천세 만세토록 사죄를 하게 하고 만민 앞에 속죄의 기수로서, 세계 앞에 굴복의 대표자로 세우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그 누구가 애국자라고 하더라도 내가 그들 앞에... 내가 나라를 위해서 누구보다도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하나님이 찾는 그 나라, 세계 만민이 흠모하는 그 나라, 우리 선조들이 소망하던 그 승리의 조국을 어떻게 창건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아직까지 결정적인 그날을 보지 못하였지만, 그늘에서 싸우며 지하에서 터전을 넓혀 나가고 있는 것이 통일가입니다. 여기에서 안일도식해 가지고 자기 일신의 행복을 그리는 자들은 모가지를 잘라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앞으로 법을 세워서 처치할 것입니다. 외국을 치기 전에 이 원수들을 칠 것입니다. 분함 중의 분한 마음을 그들 앞에 돌리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업을 상속받은 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가

여러분, 이 엄청난 역사적인 하나님의 위업을 상속받은 상속자로서 부끄럽지 않느냐 이겁니다. 처신을 어떻게 하고, 위신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선생님은 일생을 바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요전에 내가 청평에 가 있으면서 산을 쭈욱 다녀 보았습니다. 내가 건강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싸워야 할 기간이 남아 있습니다. 내가 산에 쭈욱 다녀 보니까 40대가 다르고 50대가 다르더라구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면 세계의 정세는 급변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습하기 어려우리만큼 뜻 앞에 가까울 수 있는 무대를 촉구할 것입니다. 어느때까지라는 수리적인 탕감역사를 해 왔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서 바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30대 젊은 이들이 밥을 양껏 먹고 좋은 자리에 누워서 잘 수 없다구요.

통일교회 선생님은 30세 전까지는 배고프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돈이 없어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에... 내가 30세 전까지는 학생시절에도 새 양복을 사 입은 적이 없습니다. 고물상에 가서 헌옷을 사 입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로 불쌍한 사람을 도와준 사람입니다. 혹은 애국자의 가정에 남편이 수욕을 당하든가 어려움이 있으면 이름도 없이 도와주던 사람입니다. 그런 생활을 해 나온 것입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찬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추웠어요. 그리고 방학 때는 고향에 안 돌아가는 것입니다. 고향 떠나 처음 맞는 여름방학 기간이라는 것은 제일 그리운 거라구요. 그렇지만 고향에 안 가는 것입니다. 그 그리움을 머금고 나라를 위해서, 내 갈 길을 위해서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겨울에는 찬 방에서 자는 것이 일쑤였습니다. 불을 안 때는 것입니다. 이불을 덮어도 사방으로 스며드는 찬바람을 안고 새우잠을 자면서도... 하도 추워서 내가 전구를 안고 자다가 데어서 흠집이 생겼는데 지금도 그것이 여기에 남아 있어 그때를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닦아 온 길이라구요.

요즈음에 와서는 뭐 통일교회가 돈이 있어 활동하고 뭐 한다는 소문이 나고 있지만, 내가 그 돈을 자랑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돈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뜻은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뜻 때문이라면 아낄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뜻 때문이라면 염치도 모르고 체면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뜻을 위해서는 망신도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집안의 부모가 망해 들어가는데 위신 세우고자 하는 효자가 있을 수 있느냐 이거예요. 나라가 망해 들어가는데 자기 위신을 세우겠다고 하는 충신이 있느냐?

거지 노릇도 해야 합니다. 수의를 입고 교수대에 나가는 비참한 모습이 될지라도 당당히 나갈 수 있는 각오가 돼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망하는 나라에 소망이 깃드는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여러분들은 그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지나가는 통일교회가 아닙니다. 여러분 앞에 있어서는 선생님의 일생이 귀하다면 가장 귀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두 번도 없는 때일 것입니다. 그래 선생님을 만날 때에는, 맨 처음에는 뜻을 중심삼고 야단하더니 몇 해 안 가서 뜻이고 무엇이고 나 잘 되어야 되겠다고... 이것은 약혼녀가 자기 약혼자를 버리고 딴 사람을 만나 시집가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죽고 난 다음에 그 사체가 참소받는다구요. 이놈의 고기덩이 무엇이 될 것이냐 이거야. 나이가 많아서요? 나이 많으니까 더 해야지요. 또 젊은 녀석들은 젊으니까 더 해야지요. 삼천만 민족의 젊은이들을 생각하고 삼천만 민족을 대표한, 앞으로의 역사를 대표한 젊은이들을 볼 때, 그들이 지금 썩어가고 있지만 여러분은 뜻을 위해 더 노력해야지요.

입교 당시의 심정을 회복하라

여러분이 뜻을 통해 가지고 느꼈던 그 심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여러분들, 그렇지 않아요? 학교 다니는 학생들도 통일교회 들어오면 집보다 교회에 먼저 들리고 싶어진다구요. 그건 여러분이 다 체험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왜 그러냐? 병이 난 것입니다. 6천년 만에 비로소 봄절기를 맞이할 수 있는 한때, 수천 년 운세권내에 말려들어온 것입니다. 몇 년 운세가 아닙니다. 수천 년 운세라구요. 수천 년 운세를 탈 수 있는 한때에 모였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심정은 지극히 귀한 것입니다. 그것을 유린하게 될 때는 역사를 유린하는 것이요. 천륜을 유린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 사연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사정을 붙들고 앉아서 '내 집 살림살이, 무슨 무슨 사연 때문에 못 하겠소' 하는 사람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수작을 했더라면 통일교회는 나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문선생은 벌써 다 흘러가 버렸을 것입니다.

우리 성진이 난지 60일도 못 되어서 이 길 떠날 때는 먹을 것도 없이 타향살이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하늘은 그때 내모는 거라구요. '이런 자리에서 하나님의 명령이 기필코 있을 것이다' 하는 것을 내가 알았다구요. 그 명령을 하는 데 있어서도 너 남한 땅 어디에 가서 전도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패들은 전부 다 북한 땅에 갔다 와야 된다구요.

가는 데는 생명을 내던질 각오를 하고 가는 거라구요. '내가 삼팔선을 넘어 북한으로 갈 때는 자유롭게 가지만 다시 넘어올 때는 어떠한 몸으로 넘어올 것이냐? 패자의 서러움으로 넘어오게 되면 마지막 길이요, 하늘이 보호하사 승리할 길이 있걸랑 여기서 새로운 길이 나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직접 인도했다구요. 뭐 옛날에만 불기둥이니 구름기둥이니 하는 말이 있는 줄 알아요?

이래 가지고 감옥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감옥을 향해서. 그러니까 그 감옥에 있을 때도 하나님은 죄수들의 조상들을 동원시켜서 죄수들을 전도하게 한 것입니다. 내가 외로와서는 안 되겠으니까, 하늘은 동정을 참 많이 해줬어요. 그 가운데서도 희망을 갖게 하시고... 어떤 때는 난데 없는 사람들이 미싯가루 자루를 갖다 주기도 했습니다. 아닌게아니라 거기서 미싯가루는 자기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입니다. 선조가 나타나서 후손에게 영적으로 기합을 주니 안 할 수 있어요?

그런 초자연적인 힘을 가해 가지고 오늘날 우리 가는 길을 지켜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 엄청난 배후의 인연이 여러분과 횡적으로 인연된 것입니다. 그렇게 간단하고 그렇게 노라리가락 같은 놀이의 내용을 가지고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몽시로 무엇을 가르침받으면 그 몽시를 기록해 놓고 일년 동안 검토해 나가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렇게 해야 된다구요. 그 시간이 그리워 가지고 누워서 잠자기보다는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잠을 자는 가운데서도 그런 일이 있기를 바라면서 온 밤을 엎드려 지새워 가면서 그 시간을 바라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저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혹은 저희 일족 앞에 가르쳐 줄 수 있는 내용이 있으면 가르쳐 주시옵소서' 하면서 무릎에 굳은 살이 박히고 팔굽에 굳은 살이 박히도록 엎드려 밤을 지새우는 것을 일쑤로 삼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과거에 그런 놀음을 해 나왔다구요.

요즈음엔 뭐 미니스커트니 뭐니 해 가지고... 선생님은 이북 감옥에서부터 이남으로 나와 가지고도 이 아래 종아리를 안 보였습니다. 안 보였다구요. 내 일신을 하나님 앞에 승리의 자리에서 드러내 놓아야, 영광의 한날을 맞이하여 떳떳하게 내 몸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 놓아야 하는 입장에서 그 몸을 함부로 다를 수 있느냐 이거예요. 거기에는 규례가 있는 것입니다.

감옥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오뉴월 삼복지간에도... 여러분, 유산(流酸)하게 되면 알지만 가마에서 찐 것같이 김이 무럭무럭 납니다. 그러니 동지달에도 옷을 벗고 전부 다 팬티 바람으로 일을 해야 할 상황입니다.그리고 흥남은 여기보다 더 덥다구요. 그러한 비료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장바지를 입고 일했다구요. 요즈음에 여자들이 허연 종아리를 들어내 놓고 네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보게 되면 '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도 요즘엔 화장도 곧잘 하더구만요. 요즘은 어머니가 화장하니까 내가 용서해 주는 거라구요. 시집간 사람들은 시집갔으니까 용서합니다. 그렇지만 처녀들은 누구 때문에 화장을 하는 거예요. 화장품 살 돈이 있으면 나에게 갖다 달라구요. 누구 때문에 하는 거예요? 잘해 가지고 다니면 사내 녀석들이 데려가 가지고 요사스러운 일을 하라고 하는 거예요?

처녀는 털털하구 순박해야 합니다. 된장찌개 김치찌개가 맛이 있는 거라구요. 그것이 한국 사람의 기호에 맞는 것입니다. 또 양념장에다 상치쌈 싸 먹는 것이 맛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요? 김치찌개가 맛있지요? 된장찌개가 맛있지요? 털털한 것이... 순박하고 털털한 것이 필요하다구요. 그래 요놈의 여자들, 처녀들 전부 다... 손에다 횟가루를 바르면 되겠나요? 또 뭐 메니큐어인지 뭔지...

시집간 색씨들은 하라구요. 그건 왜? 경쟁을 해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남편 앞에 선 여편네는 남의 여편네보다 못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며느리는 남의 며느리보다 못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시어머니 시아버지도 잘난 것을 바란다구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빠지지 않으려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집가서 하는 것은 괜찮다구요. 그렇지만 그 전에는 안 된다는 거라구요. 그 전에는 자기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만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된다

자, 이러한 통일교회, 여러분이 인연되어 있는 이 자리는 심각한 자리라구요. 보라구요. 선생님을 청춘시대에 만나 가지고, 선생님이 산에 가면 같이 가고 들에 가면 같이 가고 한 사연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람은 우리 통일세계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있는 세계무대에 가 가지고 언제든지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구요. 그래야 되는 거라구요. 최창림이가 일본에 가 가지고 야목 저수지에서 고기잡던 이야기 잘 하더구만…. 그런 일화가 많다구요.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몰랐다면 모르지만 이왕에 알았다면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놀음을 하든가 울든가 매를 맞든가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딴뚜(딴전) 부리는 사람들은 정신이 돌았습니다. 난 그렇게 봅니다. 정신이 돌아도 이만저만 돌지 않았다구요. 나사가 넘고도 또 넘었다구요. 세상에 관심 둘 데가 어디 있어요? 살 데가 어디 있어요? 갈 데가 어디 있어요? 가 보라구요. 놀음놀이들 참 잘하고 있더라구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무엇을 하든지….

'처음 된 자가 처음 되고 나중 된 자가 나중 되느니라' 그거 맞아요, 안 맞아요? 「안 맞습니다」 그럼 어떻게 돼 있어요?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됩니다」 그러니까 거꾸로 되어 있는 것이 타락세계에서는 정상적이다 그 말 아니예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맨 마지막에 나왔지요? 그렇지만 뒤로 돌아서니까 일등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뒤로 돌아서지 않았어요?

여러분은 지금 전부 다 뒤로 돌아선 거라구요. 학교도 뒤로 돌아서 다니니까 퇴학을 맞고, 남편에게 소박맞는 것도 뒤로 돌아서 있으니까 소박맞는 것입니다. 또 부모가 자식에게 천대 받는 것도 뒤로 돌아섰기 때문에 천대 받는 것입니다. 꼴래미 되기 위해서 그렇게 했어요, 처음 되기 위해서 그렇게 했어요? 「처음 되려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처음 되겠다는 패가 '아이구, 그저 살다 보니 뭐 통일교회 식구보다도 내가 옛날에 낳은 자식이 제일이다' 그래야 돼요? 여기 할머니들 중에 그런 할머니도 있다구요. 요사스러운 패들이 있다구요. 그래 떨레들 찾아가게 돼 있어요, 선생님 찾아가게 돼 있어요? 대답해 봐요.

보라구요. 선생님은 요 일생밖에 없습니다. 요 일생에서 되어진 사실은 앞으로 통일세계에 있어서 역사적인 전통이 되는 동시에 시대적인 전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는 뭐 들고 나와서 이러고 저러고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뜻을 안다고 하지만 진짜 뜻을 아는 것 같지 않다구요. 못생긴 할머니가 선생님을 만났다면 오히려 그 못생긴 얼굴을 가졌기 때문에 선생님을 만났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라구요. 또 병신인 사람이 선생님을 만났으면 왕초 병신이기 때문에 병신을 대표하기 위해서 선생님 앞에 왔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절뚝발이라도…. 여기 지팡이 짚고 다니는 사람 이름이 뭔가? 「오원석입니다」 오원석, 오원석인지 십원석인지 난 모르겠다구. (웃음) 그를 보게 되면 다리를 이렇게 들고 오는데, 성한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어느 석상에든지 잘 나타납니다. 나는 그 사람을 탓하지 않습니다. '자, 빨리 와라 빨리 와라' 하는 것입니다. 그걸 밉다고 하는 녀석은 내가 미워할 것입니다.

언젠가는 못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없는 돈이지만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요즈음엔 침술을 배워 침을 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장로집 무남독녀 귀동 딸이 홀딱 반해 가지고 '당신만 보면 남자 중의 최고의 남자요 미남으로 생각돼요. 시집갈 상대가 많고 많은데 그들은 뒷전이고 밤이나 낮이나 당신 생각만 나니 야단났소' 한다나요. 그것 참 통일영신이 붙었구만. 이상하다구요. 이처럼 일체의 심정을 다 쏟는 사람에게는 은인이 안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이 통일교회의 전통적 사상입니다. 내가 그렇게 살아왔다구요. 알겠어요?

최후에 빛내자, 하나만 더 하자

죽음길에 들어가도 반드시 은인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내가 공산당 세계에 갔을 때, 한 녀석이 죽어라고 두들겨 팼는데, 어떤 사람이 뭘 사가지고 와서 모시면서 하는 말이, '아무개 그 형사 녀석의 성격이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너무 맞았습니다. 그렇다고 보안서원들을 전부 다 그 사람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하고 위로하면서 떡도 사다 주고 맛있는 것을 사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속닥속닥하고 심부름까지도 해주려고 그런다구요. 그 이상하다구요. 반드시 억울함을 당하는 고비에는 그런 일이 있다구요. 이스라엘 역사를 보더라도 한번 맞고 나면 은사가 있었는데, 그 역사라구요.

내가 저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을 때 일인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어요. 평양에서 나를 따라 나온 아주머니였는데, 그때 소위 어느 교파를 세워 가지고 자기는 그 교파가 아니면 안 된다고 야단하던 아주머니였어요. 그 아주머니를 남한에서 만났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렇게 됐다니까 구경삼아 온 거지요. 만나 가지고 하는 말이 '지금도 그런 일을 하고 있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내가 '그럼! 영계에 가서도 하지' 했어요. 지금 그 아주머니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구요. '보자, 그 교단보다 통일교회는 우세할 것이다. 그 교인들보다도 통일교인들이 우세할 것이고, 통일교회 여자들이 너보다 우세할 것이고, 통일교회 말단에 있는 사람도 저나라에서는 너보다 앞에 설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 등등의 잊을 수 없는 사연들이 많습니다. 알겠어요?

뜻 때문에 투입시킨 그 정성이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과 대비됐던 원수들이 많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내가 죽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뜻을 이루고야 죽지... 돈이 필요하면 돈을 버는 것입니다. 돈 버는 일에 있어서도 내가 둘째 안 간다구요. 단에 나서서는 신앙적인 책임자로서 대중을 지도하지만 경제적인 면, 돈 버는 데 있어서도 누구에게 지지 않습니다. 그런 모든 센스가 있다구요. 내가 돈을 벌었다면 대한민국에서 일등 부자가 되었을 거라구요. 그러지 못했으면 죽든가 했을 거예요. 죽든가 일등 부자 되든가 그랬을 거라구요. 성격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을 보라구요. 그래 어머니가 언젠가 하는 말이 보조를 못 맞추겠다는 거예요. 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손을 들고 있는 사람을 또 내모는 거라구요.

언젠가 한참 예전에, 1961년도에 노루사냥을 간 일이 있었습니다. 거, 노루가 잘 뛴다구요. 잘 뛰는 노루를 사냥하는 거예요. 젊은 놈들을 데리고 새벽같이 나가는 것입니다. 해가 밝을 무렵 먼동이 트자마자 산에 올라가서 패당몰이를 하는 거라구요. 산을 몇 십 리, 백여 리 이상을 가다가 돌아오려면 큰 야단이라구요. 사냥에 대해서 내가 잘 안다구요. 따라온 사람이 몰이를 하고 나서는 전부 다 '아, 이제 이것이 마지막이지'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또 해! 하는 거예요. (웃음) 그렇게 되면 그 자리에서는 불평을 못 하지만 내려가면서 '선생님이 돌았지, 어쩌자고...' 하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지만 그것이 결정적 찬스라구요. 사냥의 역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불평이 없었던 사람은 말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지만,'선생님 돌았지' 하는 그 인식이 남아 있는 한...

'최후에 빛내자!' 이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사상입니다. '하나만 더하자!' 남이 열을 하면 나는 열 하나는 못하더라도 열을 하고 요만큼이라도 더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못하는 일이 있으면 숨이라도 훅훅훅 하고 한번이라도 더 쉬지, 그냥 안 둔다는 것입니다. 악착같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산에 올라갈 때도 내가 둘째로 올라가면 싫어하는 사람이라구요. 옛날 젊었을 때는 누가 내 앞에 올라갔다가는 '이 녀석, 왜 내 앞에 가' 하고 때려 눕히고 올라갔습니다. (웃음) 지금은 세상에 의리가 있고 예가 있으니까 그렇게 못 하지만 올라가서는 반드시 조건을 세우는 것입니다. 만일에 어쩌다 뒤진 경우에는 '내가 이러이러했기 때문에 뒤지게 됐고 체면상 위신상 이렇게 했지만 내용적으로는 내가 일등이다' 하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구요. 이등을 하면 잠을 못 자는 사람입니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생활을 하라

오늘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란 사람이 일등 간판을 붙이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살지, 그렇지 않으면...요전에는 살이 두두룩했는데 요즘에는 살이 좀 빠지긴 빠졌다구요. 그렇지 않으면 바짝 말랐을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 생각하면 걱정입니다. 나는 다방면에 소질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하는 것에는 다 소질이 있습니다. 도둑질을 해도 잘할 수 있습니다. (웃음) 거짓말을 해도 잘할 수 있습니다. 소질이 많다구요. 그런 면으로 나갔더라도 대한민국의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사기꾼의 왕초가 됐을지 모릅니다. 소질이 많아요. 그것을 내가 압니다. 뭐 체육을 하나 뭘하나 전부 다 소질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대신 성격이 고약하여 한번만 손에 붙들게 되면 머리가 깨지든 목이 뽑아지든지 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애들도 그렇습니다. 요 조그마한 국진이만 보더라도 청평에 데리고 갔더니 그래요. 아, 이만한 데 올라 갔으면 그것으로 됐지 또 올라가려고…. 자꾸 올라가려고 그래요. 그것이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구요. 선생님은 동네에서 아무도 못 올라갔던 제일 높은 나무가 있으면, 올라가고야 말았어요. 밤잠을 안 자고, 밤인데도 거기를 올라가는 겁니다. 어떤 때는 올라가다 떨어지면서 가지를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던 때도 있었다구요. 하나님이 보우하사. 죽으면 큰일이 나니까. (웃음)

우리 집 앞뜰에는 큰 나무가 있었습니다. 상당히 큰 나무였는데 거기에 까치등지가 있었습니다. 아 요놈의 까치가 알을 낳는데 매일같이 그것이 궁금한 겁니다. 선생님의 성격이 그렇다구요. 그것을 확실히 알기까지 밤잠을 못 자는 거라구요. (웃으심) 어제 저녁에 올라가 보고 또 새벽부터 까치가 나오기 전에 스윽 올라가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올라가 보면 한 알 낳고 두 알 낳고 세 알 낳고 매일 알이 불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매일같이 오르내리니까 까치와 친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죽겠다고 깍깍거리며 야단을 치더니 매일같이 올라와도 지장이 없으니까 그저 이러구 있더라구요. (웃음) 그래서 새끼에게 무엇을 잡아먹이고 무엇을 하는가를 전부 다 관찰을 했습니다.

또, 새로운 새가 나타나면 내가 다 잡아 보았습니다. 안 잡아 본 새가 없다구요. 색다른 새가 있으면 밤을 새워 가며 며칠이라도 가서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무엇을 하는지,무엇을 잡아다 먹이는지 보는 것입니다. 그게 궁금하다구요. 한번 한다 하게 되면 끝을 내야지 그러지 않으면... 어머니가 욕을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고, 욕하는 것은 어머니의 책임이고 나는 내 책임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웃음)

내가 또 쥐도 많이 잡았다구요. 또, 족제비 알지요? 족제비 왕초를 잡으러 다녔다구요. 눈이 오면 족제비를 잡으러 다니는 것입니다. 우리 동네만이 아니라 몇십리고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전부 다 잡아 봤다구요. 호랑이는 못 잡아 봤지만 말이야.

또 근처에 못이 있으면 그 못에는 무슨 고기가 있는가 하고 전부 다잡아 보는 것입니다. 큰 놈을 잡는다고 하게 되면 뭐 일년 열두달이라도 낚시질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성질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한번 무엇을 붙들었다 하게 되면 죽지 않으면 그 일이 해결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성질이 있기 때문에 이 힘든 통일교회 책임자 노릇도 하고 있다구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을 따라가려면 팔자를 뒤집어 놓아라 이겁니다.

내가 이런 말을 왜 하느냐 하면, 여러분이 청춘시절에 할 것 다 하고, 가꿀 것 다 가꾸고,놀 것 다 놀고, 재미있는 것 다 보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 된다 이겁니다. 그런 놀음 하다가는 떨어지기 일쑤고 못 가기가 일쑤라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또 선생님 따라와 보면, 그저 무미건조한 사나이가 아닙니다. 어디 외국 같은 데 척 가게 되면 가는 날부터 내가 그곳의 주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벌써 눈치를 보거나 심정 검토를 하고 상통을 보고 나면 저 녀석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다 압니다. 말을 하게 될 때는 저 녀석이 무슨 말을 할 것이다 하는 것을 알고 대답부터 먼저 하려고 하는 사람이라구요. 그런 무엇이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별수 있어요?

또 재미도 있고 놀기도 잘 논다구요. 다방면에 소질이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런 면에서 나쁘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이 딴 데 가서 무엇을 하는 것보다도 선생님과 같이 가는 것이 손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말이예요.

우리 축복가정들, 축복가정의 아들딸들, 그 아들딸의 아들딸들, 즉 3대가 어떻게 선생님과 같이 살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3대가 공신이 된다면 천하에 없는 천상세계의 공신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아들딸들을 안고 나와서 지금부터 그런 사상을 집어 넣기 위해 교육을 하고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축복가정들은 자녀들에게 전통 사상을 심어 주어야

1957년도부터 전도기간을 정해 놓고 했지만, 21일 노정 같은 때에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예물 주고 한 것은 모두 귀한 것들입니다. 서로서로 길가에서 만나서 기뻐하던 그 시간, 또 서로가 헤어질 때 산허리를 돌면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눈물로 상별하던 그런 시간, 그런 시간들은 여러분이 억천만금을 주고도 못 살 시간입니다. 그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통일교회 임자네들이 알고나 있느냐 말이예요. 지극히 귀한 사연들을 전부 흘려 버리고 이제 무엇이 귀할 것 같아요?

요즈음 가만 보면 '통일교회가 돈이 많으니 좋은 집이나 지어 주면 거기서 살고 싶어'라고 하는데, 그것은 똥개 죽 먹는 소리라구요. 그렇게 바란다면 내가 집을 안 지을 것입니다. 앞으로 국내뿐만이 아니라 세계적 무대까지 여러분이 선생님과 같이 동보해 가지고 만민 앞에 하늘의 전통을 자랑하고 새로운 사상을 심어줄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때에 여러분이 그 재료를 만들고 어느 때에 그 재료를 수습할 것이냐? 이때밖에 없다구요. 외국 식구들이 관심이 있는 것은 한국 통일교회의 임자네들이 아니라구요. 여기에 아무리 누구누구가 있다 해도 관심을 안 가지고 있다구요. 단 선생님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건 알지요? 「예」 딴 데 관심이 없다구요. 선생님에게 관심이 있다구요. 선생님이 하라고 하면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 땅에서 사는 기간에, 재세시(在世時)에 세계적인 경제기구라든가 국가적인 전통이라든가,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놓아야 할 엄청난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을 못해 놓게 되면 여러분의 후손인 대한민국 백성들은 지리리 고생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터잡고, 그런 놀음을 가려 놓기 위해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여기에 여러분이 보조를 맞춘다는 사실은 역사가 찬양할 수 있는 놀음이라는 것입니다. 그일이 오늘날 이 청파동 본부를 중심삼고, 선생님의 생활과 더불어 세계에 파급될 수 있는 인연이 뻗어 나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생활권, 같은 생애 무대, 같은 민족, 같은 문화적인 배경을 가진 동족적인 입장에서 사는 여러분들이 외국 사람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 내정적인 인연을 갖지 못하고서는 앞으로 무엇을 갖고….

뜻 때문에 자식 한두 사람 죽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여편네 하나쯤 죽어도 괜찮다는 거라구요. 요즈음에 어떤 축복가정이 자기 여편네가 죽었다고 못살겠다고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이놈의 자식, 여편네가 천국을 대표해? 아버지의 뜻 대신이야? 여편네야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는 것이지, 여편네가 죽었다고 뜻 대해 휘척휘척해? 그런 사내 녀석들은 기분 나쁘다구요. 그런 사람은 선생님의 안중에 없다구요. 뜻에 어긋나게될 때는 무자비하다구요. 여러분은 본분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뜻과 선생님과 인연되는 그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예」

지금 이때가 얼마나 무섭고 귀중한 때인지 아는가

이 본부에는 처녀 셋이 있는데 전부 다 2층에 올라가서 숨어 자고 있습니다. 왜냐? 아랫방에서는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예배다 무엇이다 하고, 또 새벽 일찍 일어나 예배를 보니까 귀찮아 가지고 숨어 자야지 하고 있다는 겁니다. 요 간나들, 어디 두고 보자구요. 내가 신랑을 얻어줄 때는 그런 신랑을 얻어 줄 것이다 생각하고 있다구요. 그거 잘 생각 했어요, 못 생각했어요? 남자들 생각해 봐요. 잘 생각했어요, 못 생각했어요? (웃음) 별수 있어요? 요거 눈앞에서 보던 것, 보고 그러던 것….

내가 우리 집에 데리고 있던 처녀들 가운데서 정성을 들인 처녀들에게는 좋은 신랑을 다 얻어 줬다구요. 땡땡이 부리고 하는 것들은 오래지 않아 지옥 꼬리표를 달아 보내는 거라구요. 내가 그런 것 안 보는 것 같지만 다 보고 있다구요. 말하는 것까지 전부 다 감정하고 있다구요. 내가 집에 들어와서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뭐 왱강댕강 상을 뒤집어 엎고 사발을 깨뜨리고 뭐 밥바리를 집어던지고 하더라도 잔소리는 하지 않는다구요. 그렇지만 훤히 다 알고 있다구요. 안 보는 것 같지만 다 보고 있다구요. (웃으심) 공장에 가도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뭐 그 공장에서 묵는 것도 아닌데 내가 하는 얘기를 듣고 보면 공장장도 꼼짝 못한다구요.

여러분이 있는 이 마당이 무서운 자리입니다. 여러분의 선조들이 아무리 공적을 세웠다 하더라도 여러분 간판 여하에 따라 선조의 공적들이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기서 꽃피지 못하고 뭉그러지는 날에는 십년 공부가 아니라 몇 천년 공부가 나무아미타불이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뜻을 놓고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운명의 길을 가는 것이 우리의 길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 자리가 얼마나 무서운 자리인지 알아요? 이제 조금만 더 두고 보라구요. 앞으로는 여러분이 선생님을 마음대로 못 만난다구요. 지금까지도 통일교회 문선생을 마음대로 못 만난다고 하는 말이 있지만 그 말이 맞다구요. 뭐 내가 한국에서만 살 줄 알아요? 외국 식구들이 전부 자기 나라에 와서 살아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일본 식구들은 자기 나라에 선생님이 오셔서 살았으면 하는 것이 일생의 소원이라구요.

앞으로 120개 국가에 선교본부가 설치될 경우 그 중에 70개 국가에 가서 3개월씩만 살고 돌아와도 17년 이상이 걸린다구요. 여기서 이제 한번 떠나면 지팡이 짚고 이빨이 빠진 하얀 백발노인이 돼서 돌아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앞으로 선생님을 마음대로 만날 것 같아요? 선생님이 언제나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것 같아요? 천만에.

또 선생님이 대한민국 백성만 특별히 사랑했다가는 조건에 걸린다구요. 참소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대표적으로 40개 국에 1백 20개 성지를 택정한 것도 다 방패막이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 이때가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귀중잔 때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본부의 사명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라

내가 아직까지 통일교회 교인들이 뜻을 위해 충성하고 정성을 들이는 현장에 가서 그들을 붙들고 통곡해 보지 못했습니다. 한이라면 그게 한입니다. 그러한 효성을 하고 그러한 충신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내가 부족하지만 일신의 생명을 바쳐 가면서라도 깨끗이 하늘 앞에 선한 실적을 남기고 가겠다고, 일생을 희생시키더라도 감사하겠다고 하는 무리를 못 만나 봤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일생에 있어 비참한 역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어서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런 놀음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 망하지만 너만은 남겨 놔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는 다 망하더라도 종자를 남겨 놓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선생님에게는 애기들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애기들을 많이 낳을 것입니다. 앞으로 선생님의 사돈 될 사람이 누구냐 하는 걸 생각하는 거라구요. 36가정만 중심삼고 사돈을 맺을 것이냐, 72가정 중심삼고 맺을 것이냐. 혹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건 여러분이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나 선생님과 사돈 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 있겠지요? 내가 여러분의 입장이라면 정성을 지극히 들여서 틀림없이 선생님과 사돈 맺겠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렇게 생각해 봤어요?

'내가 통일교회 누구보다도 정성을 들이고, 누구보다도 더 훌륭히 아들딸을 교육시키고,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 가지고 만일에 선생님이 딴 생각을 하면 하나님이 명령을 해서라도 사돈 맺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가정적 기반을 닦아야 되겠다' 해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생애를 바쳐서 부부가 한 몸이 되고, 그 부부와 자녀가 한 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기억할 수 있는 놀음을 해온 가정이 있느냐를 생각해 보니까, 없어요, 없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 본부의 사명이….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지금까지 느꼈던 그 은사가 보통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을 알겠지요? 「예」

다음에 여러분 자신이 지금까지 느꼈던 은사가 보통이 아니라면, 본부는 어떠한 곳이며 본부의 사명이 어떠한 것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본부는 세계 사람들이 이곳을 위하여 기도하는 곳입니다. 무서운 곳입니다. 남의 굿하는 데 잘못 갔다가 급살맞는다는 말이 있지요? 그런 말 들어봤어요? 그곳보다 더 무서운 곳입니다. 세계인들이 이곳을 향해서 정성들이는 곳입니다.

선생님 자신에 대해 내 솔직히 이야기하겠습니다. 나 자신이 누워 자다가도 일어나면 머리에 대번 기억되는 것이, 이 시간도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가(統一家)의 식구들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정성들이는 사람이 많고, 선생님을 중심삼고 생사를 걸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걸 언제나 느끼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빚을 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빚지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늦잠을 자는 사람이 아닙니다. 언제나 새벽 세 시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시에 자더라도 두 시간 동안에 몇 번씩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어났다가 그냥 자는 것이 아닙니다. 엎드려서 기도하다가 자기가 일쑤입니다. 그런 생활의 계속이라구요. 그런 것을 어머니가 선생님과 같이 살면서도 몇 해 동안 몰랐습니다. 청평에 데리고 다니며 낚시질하는 바람에 알았지요. 선생님은 윗방에 있고 어머니는 아랫방에 있으니 선생님의 생활을 알 게 뭐예요.

지금도 청평 같은 곳에 가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머니는 언제나 미안하지요. 자기가 일어나 보면 언제나 기도하고 있고 말이야, 잠은 언제 자구…. 그렇다고 내가 쓰러지지 않는다구요. 남들이 잘 때 자고, 놀 때 놀고, 할 것 다해 가지고 정성을 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먹고 남은 것, 쓰다 남은 것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정성이 안 되는 거라구요. 자기의 귀한 살을 에이고 생명을 에여 가지고 가야 됩니다. 그것은 틀림 없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생사를 걸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교회책임자는 식구들에게 심정적인 빚을 지면 안 된다

복을 받겠다고 하는 식구들에게 다리를 놓아 주어야 할 책임자의 입장에 선 사람이 빚을 져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빚져 가지고는... 어저께도 일본 식구가 일본 밀감상자를 갖다 왔어요. 내가 일본 밀감이 맛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어제 그것을 보면서도 손을 안 댔다구요. 정성들인 물건은 함부로 다루지 말아야 되는 겁니다. 그것은 독약보다 더 무서운 거라구요, 독약보담...

여러분이 선생님에게 연보를 하고 그러지만 선생님은 그 돈을 받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안 받는 주의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모으기 위해서 무슨 일을 했느냐? 그것을 내가 알고 그것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 주체적인 입장에 서지 않고는 못 받는 거라구요. 본부에 연보한 돈을 마음대로 꺼내 쓰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독약보다도 무서운 것입니다. 마음 자세가 그렇기 때문에 주고 나서도 또 주고 싶은 마음이 하나님에게 깃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그저 사람이 오면 손바닥만 바라보누만, 뭘 안 가져 오나 하고... 그런 교역자는 망하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 자신들이 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개인을 중심삼은 인연도 크지만 세계의 식구들과 연락되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세계의 식구들과 여러분은 개인 복귀, 가정 복귀, 종족 복귀, 민족 복귀. 국가 복귀, 나중에는 세계 복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세계 복귀할 수 있는 이런 인연을 가지고 내 나라 땅에 앉아 가지고 그 외국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고, 그 사람들과 내정을 통할 수 있는 일이 오늘날 내 살아 생전에 벌어졌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예수보다 얼마나 더 행복하냐 이거예요. 그렇지요?

예수님은 국경을 넘어 세계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입장에 못 서지 않았느냐 이거예요, 그런 입장에서 보면 외국 사람을 대하여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그러니 외국사람을 대해 가지고... 여기에 어떤 나라의 대표자가 왔으면, 일본이면 일본, 미국이면 미국의 대표가 왔다고 하면 그들 나라 전체의 식구들은 '아, 오늘 몇 시에 한국 도착이다. 주일이니까 몇 시간은 보고할 것이다'하면서 기도하는 거라구요. 더구나 자기의 친족이나 자기와 직접 관련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새벽이면 새벽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 여러분이 그 사람의 보고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보고를 받는 것입니다. 하늘의 뜻 가운데서 거기에 파송됐던 하늘의 병사가 본국에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보고를 받는 입장에 서야 되는데, 그들의 보고를 듣고 오히려 여러분들이 자극받아요? 그거 됐어요, 안 됐어요? 그 사람에게 감동받은 뒤에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무엇을 줄 거예요? 줄 것도 없는데, 도리어 감동받았다 하면 되겠어요? 그걸 감정하고 비판해야 돼요. 비판하고 감정을 하려면 그 내용을 알아야지요. 거기에 관심을 가졌어야지요.

다시 말하면 외국 교회가 발전할 수 있는 역사적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러분이 관심을 가져야 하고 거기에 전부 다 관계를 맺기 위한 간절한 마음이 앞서야 되는 거라구요.

우리가 밤일 때는 그 사람들은 낮입니다. 그렇지요? 여기가 낮이면 그 사람들이 있는 곳은 밤이라구요. 그러면 여러분이 낮에 일하면서도 우리 통일교회 본부에서 일하는 영향이 그 사람들에게 밤에, 혹은 몽시 가운데서라도 한국을 그리워할 수 있는 자극적인 운동으로 제시되기를 바라며 기도를 해요?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심정적 인연이 본부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본부의 인연을 따라 발전하고자 하는 외국 식구들 앞에 내 움직임이 하나의 주파가 되고 파동이 되어 마음의 선율을 자극시켜 가지고 그들의 꿈에라도, 그들이 자는 이 시간이라도 하나님이 그 일족의 선조들을 동원시켜 역사할 수 있는 인연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움직여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렇게 하고 있어요? 외국은 생각도 안 하지요? 생각해요? 생각하긴 뭘해요? 그러나 선생님은 여러분과 다르다구요.

어떤 때는 일본에서 편지가 많이 오는 거예요. 시간이 없으니 읽을 수가 있나요? 그래서 정 읽지 못하게 되면 최선생에게 읽어 보라고 주는 거라구요. 최선생까지 시간이 바빠서 못 읽게 되면 이름이라도 전부 다 보고, 내용은 대개 인사내용이기 때문에 대충 뽑아서 보는 거라구요. 탕감낭독법으로 하는 거라구요. '하나님께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의 것을 뽑게 해주십시오' 하고 난 뒤 그 가운데서 뽑혀진 것을 심각하게 읽는 거예요. 빚져서는 안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 무슨 회합이 있게 되면 그것을 위해 선생님은 반드시 기도해 주는 거라구요. 그래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면 그것이 누구의 일이냐? 우리 통일가(統一家)의 집안일인데, 우리 집안일이 아니예요? 한 국가로 말하면. 그 나라의 대사가 나가서 그 나라를 대신해 접촉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본부의 일원으로서 외국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본부의 사명을 못 하는 거라구요. 빚지는 입장에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이 교회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은 외국 사람들보다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본부에 속한 요원들이 느껴야 할 것입니다.

지방 교회의 표준이 되어야 할 본부

더욱이 책임에 있어서는 어떻게 되느냐? 본부에 나오는 사람들의 움직임의 일체는 외국 사람들의 표준이 되는 것입니다. 요전에 순회사들이 지방에 다녀와서 하는 말이 뭐냐 하면, 본부의 할머니들이 밤낮없이 기도한다는 소문이 지방에 퍼졌더라는 거예요. 기도하는 할머니들은 몇 명 안 된다구요. 두세 사람밖에 없다구요. 그런데 그 할머니들이 정성들인다는 말을 들은 지방의 모든 사람들은 '본부에서 이렇게 한다니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전체가 그들을 따라가야 할 것이 아니냐. 나이 많은 사람들이 그러니 젊은 사람들도 따라가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동이 전국으로 벌어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본부에서 하는 것은 전체, 국가면 국가에 있어서 활동적, 행동적 표준형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부의 할머니들과 본부의 청년들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면 그것이 전국으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부 학생부장은 책임이 중한 것입니다. 내가 요전에 가두선전하라고 했는데 선전하고 있나요? 노방전도하라고 했는데 하고 있어요? 여기 순회사, 지방에서 그렇게 하고 있어? 「안 하고 있습니다」 왜 안 해? 선생님이 시키는 일에 대해 책임이 있는 줄 몰랐어? 안 하면 안 된다구.

보라구요. 지금 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구요. 국가의 위정자들 가운데는 이 나라가 절박한 정세에 처해 있기 때문에 보따리를 쌀 꿍꿍이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구요. 기성교회도 마찬가지라구요. 다 침체되어 있는데 우리까지 침체되어서야 되겠느냐 이거예요.

그래서 요전번에 순회하면서 세웠던 표준이 1960년대와 마찬가지로 전체가 가두선전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종교라는 것은 집안의 종교가 아니라 대사회의 종교이니만큼 대사회활동을 생명시할 수 있는 무대를 그리워하고 나서게 될 때, 그 종파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떠나 자기 가정으로 찾아들게 되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 발전의 원칙입니다.

여기 교회장 알겠어? 「예」 그렇게 하라구. 황현수! 「예」 그런 말 들었나? 이번 순회사들이 수택리에 전부 다 모였을 때 얘기한 게 아니야. 너희 학생들도 나가서 활동하라구. 중·고등학생들도….

이 녀석들은 어떤가? 너희들도 새벽 예배에 참석하나? 내가 새벽 세시에 모아 놓고 일년이고 몇 년이고 전통을 세워 잠을 재우지 않을 거라구요. 옛날에는 이 본부가 잠을 안 자기 때문에 무서운 곳이라 생각했지요? 사람은 나태해지면 안 되는 거라구요. 편안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편안한 세계에서는 발전이 없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 국가든지 새로운 부흥이 벌어져 거기에 도취하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본부가 어떤 표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움직이게 되면 그 표제를 중심삼고 전국,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조영감, 영감은 지금 여기 쓰레기통 도감 노릇하고 있나요? 조영감, 그것 누가 하라고 했어요? 「누가 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자발적으로 했습니다」 그런 놀음 하지 말고 나가서 전도하는 것이 낫다구요. 전에 내가 역두에 나가서 전도하라고 그랬지, 누가 그 놀음 하라고 했어요? 그럴 때가 지나갔다구요. 다시 한 번 하기만 해봐요. 영감! 「예」 통일교회의 위신을 세워야 된다구요, 본부에 드나들려면. 「알겠습니다」 이 동네가 합동해 가지고 얼마나 통일교회를 반대했는지 알아요? 권위를 가지고 나타나야 돼요. 집집이 다니면서 말씀을 전해요. 쓰레기통 뒤지지 말구 말이예요.시키지 않는 놀음을 하고 있어요.

영감, 영감은 선생님 말 들어요. 안 들어요? 「들으려고 합니다」 들으려고 하지만 안 들으려고도 하지요? 「무지하기 때문에 잘 깨닫지 못합니다」 뭐야? 「미욱하기 때문에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럼, 미욱한 녀석이면 모가지를 짤라야지. 안 들을 때는 귀를 잘라 버리고, 손가락을 잘라 버리고라도 깨달은 표적을 세워 놓아야 되겠구만? 「그러기 위해서 시키시는 일이라면 감사하게 하겠습니다」

임자가 축복을 해달라고 그랬지요? 「예」 그래 축복해 줬어요, 안 해줬어요? 축복을 해줬는데 산보라도 더러 가 보았어요, 산보? (녹음이 잠시 중단됨) 나이 많은 사람이지만 젊은 사람보다 더 사랑하게 되면 하늘의 축복을 더 받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영감 보라구요. 63세나 된 영감이 고집이 세어 가지고 참 곤란하다구요. 고집이 땅고집이라서 누구의 지시를 제일 받기 싫어한다구요. 어디 가든지 자기 고집대로 하겠다면 누가 좋아하겠나 이거예요. 집에 들어가면 여편네가 대답도 안 하고 그럴 거라구요. 그 아주머니를 내가 봤기 때문에 안다구요. 영감이 불쌍해 가지고, 잠을 못 자고 불쌍하게 되어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그 아주머니가 모든 면에서 능하다구요. 그 아주머니는 통일교회의 공신이라구요. 영감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라구요. 영감이 불쌍해서 묶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또 이러구 저러구 말을 만들고 다녀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본부의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축복해 주었다는 사실이 전통에 남아질 것입니다. 일단 결정했으면…. 그거 내가 강제로 시켰어요? 강제로 하라고 그랬어요? 영감이 하는 말이 '뭐 나이 많은 할머니도 좋습니다. 80 난 늙은이도 좋습니다' 그러지 않았어요? 「그랬습니다」 그랬으면 됐지…. (잠시 녹음이 중단됨)

통일교회에 나와 가지고 여러분이 죽기 전에 땅에서 부부의 인연을 맺고 가는 것이 저나라에 가서 낫다구요. 가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선생님의 말이 거짓말인가 사실인가.

내가 슬쩍 영감을 장가 보내기 위해서 그러는 줄 압니까? 내가 영감들을 장가 보내면 무슨 이익이 있어요? 귀찮기 짝이 없는 거라구요. (웃음) 아이구, 죽을 지경이라구요.

요전에 뭐 여든 네 살 된 늙은이를 내가 장가 보냈지만 말입니다. 죽어 공동묘지나 가라고 쫓아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모아 가지고 축복을 해준 거예요. 생각을 좀 해보라구요.

그것을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저 세계에 가면 어떻다는 것을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는 자가 그릇되게 가르쳐 주면 안 된다구요. 틀림없이 땅 위에서 그렇게 맺고 가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든 네 살 된 늙은이면 뭐 공동묘지에 다 간 늙은이 아니예요? 그걸 보면 통일교회가 이상한 놀음을 하고 있다구요. 내가 꿈에라도 그런 일을 하겠어요, 이런 일을 하고 있는데 여기 전부 다…. 그러다가는 전부 다 참소를 받는다는 거라구요. 더구나 다른 교회에 나간다면 모르겠는데 본부에 나와 가지고….

본부가 권위를 가지려면

이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본부의 책임과 사명이 중하다는 거라구요. 무엇이 한번 소문나게 되면 그것이 전세계에 파급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본부라는 것은 여러분들의 일신에만 영향이 미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본부에 지금 출입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난 사람들이 아니라구요. 본 되는 사람들이 아니라구요. 그래서 교회를 나누려고 합니다. 내가 집을 짓든가 사든가 해야 되겠다구요. 이제 여러분에게 새벽에 나와서 이야기해 줄 수 있는 때도 지나간다구요. 선생님이 그 시간에 홀로 하늘 앞에 기도하고 우리 가정 애기에 대한 교육을 좀 해야 되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 보라구요, 아버지라고 새벽에 일어나 자식들 대해서 교육도 못하고 있다구요. 그렇다고 여러분이 교육을 시켜 줘요? 이제는 가정의 아이들도 철이 드니까 교육을 해야 된다구요. 안 그래요?

이제 여러분들을 위해 정성을 들이는 것, 여러분에 대해서 내가 해야 할 책임을 거반 다해 갑니다. 1972년도까지, 늦어야 1974년까지 가는 것입니다. 2차 7년노정만 지나면…. 그 다음에는 교회에 대한 책임은 일단 끝나는 것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 대신 우리 가정에 있는 자식들에 대한 교육을 잘해야 되겠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그거 틀렸어요? 거기에 이의가 있어요? 그러려면 여러분이 교재(敎材)거리가 돼 가지고 본이 될 수 있게끔 울타리가 잘 돼 주어야 하는 거라구요. 여러분의 문제가 세계적인 문제가 되는 것을 보면 선생님의 직계자녀가 세계적인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등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원리적 기준에 있어서의 가는 길이 달라진다구요.

이런 것을 두고 볼 때에 앞으로 여기 본부에는 선생님이 있게 되면 아무나 들어올 수 없어요. 축복받은 가정 아니면 못 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특별교육해야 되겠습니다. 특별교육을 해야 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일반 교육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도 소생교회, 장성교회, 완성교회가 있다구요. 그런 때가 온다는 거예요. 현재 그와 같은 입장에 서는 본부에 출입하는 여러분들의 행동 일체는 외국 사람들이나 타도 사람들, 타인들에게는 본부를 대표한 것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배경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본부에 있는 여러분의 책임과 사명이 중요 하다는 것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이 본부는 신세를 지는 본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세를 끼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본부로서의 권위를 갖는 것입니다. 모든 시작은 본부에서부터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본부가 안 하면서 지방에 지시할 수 없는 거예요. 본부로부터 해야 하기 때문에, 지방에서 하기 전에 본부에서 시작해야 된다는 겁니다. 모든 대외활동 같은 것도 전부 다 본부에서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부 교회장의 책임이 중한 것입니다.

요즘 이제희가 와 있는데 가냘픈 입장이라서 몸이 상당히 피곤할 거라. 피곤하지? 「괜찮습니다」 본부교회에서 1963년도까지 내가 지도하다가 그 이후에는 유협회장에게 맡겼던 것입니다.

내가 통일교회 여러분들을 고생시켰기 때문에 거지 떼거리가 국가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기반을 닦아 나온 거예요. 이제는 고생한 사람들에게는 일년에 몇 백 명에게라도 집을 지어 줄 수도 있다구요. 그거 멀지 않아 하려고 한다구요. 그런 기반은 닦아 왔다구요. 그 대신 끝까지 뜻과 더불어 고생하고 뜻과 더불어 수난길을 계속적으로 가겠다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집을 지어 줄 것입니다. '아이구, 나 이제 가지 못하겠소' 하며 쓰러지는 사람은 관계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떡잎이 되어 가지고 제거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전통적 사상이라 하게 될 때, 그 사상을 지킨 사람들이 없고 다 지쳐 떨어지게 되면 그 계승자들이 그러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관이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노아의 대를 잇기 위해서는 노아 이상의 눈물을 흘리고, 노아 이상의 정성을 들이겠다고 나서 가지고, 당장에 하루도 좋고 일년도 좋다고 하며 움직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노아 이상의 축복을 해준다고 해서 사탄이 참소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혜로운 통일교회 교인들이 되려면, 여러분이 전통적인 사상을 이어받으려면 처음 들어왔더라도 이 주류사상을 이어받아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생애를 걸고 달려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복받는 것입니다.

공석에서 책망받는 건 탕감받는 것

이제부터 10년 후의 통일교회상이 어떻게 될 것이냐? 그거 생각해 보았어요? 지금까지는 불쌍한 통일교회였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안 될 것입니다. 10년 후의 통일교회를 두고 보자구요. 작년 일년만 하더라도 상당히 올라왔지요? 10년 후엔 어떻게 될 것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80년대의 통일교회, 그거 생각해 봤어요? 선생님에게는 '내가 요렇게 요렇게 만들 것이고, 또 요렇게 될 것이다. 그때의 통일교회는 이래야 되는 것이다' 하는 관(觀)이 있다구요. 그 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 찾고 있는 거라구요.

선생님은 여기 책임자들이 그 기준에 몇 퍼센트나 접근했느냐 하는 것을 전부 다 감정하고 있다구요. 세상의 지식을 표준으로 하여 보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두고 보는 거라구요. 어떤 사람은 일부러 고생길로 내모는 거라구요. 인사조치할 때 그러한 사람은 엉뚱한 곳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이 녀석, 두고 보자. 선생님의 특별 명령이다' 해서 난데없는 곳에 배치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구. 내가 지금까지는 이렇게 했는데 좌천이구만….' 할 거예요. 좌천? 그 좌천 인식이라는 것을 누구한테 교육받았어요? 선생님이 무슨 직책 갖고 있어요?

요즈음 통일교회를 보면 무슨 사장이니 무슨 이사장이니 하는 그런 책임자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 보면 전부 다 아무개라고 이름 불러주는 것은 싫어하고 무슨 사장, 무슨 이사장이라 해줘야 좋아합니다. 사장이 무엇이냐 하면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것이 사장이라구요. 선생님은 아무 이름도 없다구요. 허울 좋은 이름 팔아먹고 사는 사람 필요 없다구요. 여러분은 이런 것 저런 것을 생각해 가지고 높은 데 올라가면 말없이 또 내려갈 준비를 하고, 내려가면 또 올라갈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멋진 사람이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지금까지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지금 통일교회 문선생이라 하면 말이요. 구라파 같은 데서도 미스터 문이 상당히 소문이 났다구요. 나 자신이 뜻적인 입장에서 볼 때 내 인격 기준이 어떠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구요. 위신을 세우고 체면도 세워야 할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말도 점잖게 해야 되고, 사리를 가려 가지고 조금도 꺼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자연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즉석에서 반말도 하고 욕도 잘합니다.

그러면 그 욕은 무엇이냐? 그런 욕을 그 사람에게 해줌으로 말미암아 심판해 주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것이 용서해 주는 길 가운데 제일 빠른 길이라구요. 한번 공석에서 들이칠 때 잘못된 것을 뉘우치면서 '예' 하고 순종하는 한마디만 하면 그것으로써 전부 영계나 육계에서 탕감받는다구요. 알겠어요? 여기 처음 온 사람이 그런 말을 듣고 오해한다면 그 사람이 잘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오해하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렇게 욕을 하는 것은 하늘의 특사를 내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책임자에게 공석에서 책망을 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봤지요? 옛날에 유협회장에게도 선생님이 공석에서 욕을 잘했다구요. 그 사람은 그것이 자랑이었습니다. 욕을 하더라도 잘 받아넘겼다 이거예요. 왱 해 가지고 '선생님이 책임자를 그렇게 책망하면 책임자가 어떻게 책임자 노릇을 해먹겠나, 위신과 체면도 못 세우고' 할지 모르지만, 선생님도 체면과 위신을 못 세우는 판국인데 이런 형국에서 여러분이 위신을 세우게 되어 있어요? 누더기 보따리나 뒤적거리는 판국에 위신이 뭐예요. 이제는 선생님이 위신을 세울 때가 온다구요. 일년이 가도 말하지 않을 때가 온다구요. 그때는 들들거릴 것입니다. 잘못하면 찝어 가지고 지적할 때가 올 거라구.

내가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몇 개월 동안 입을 열지 않고 사는 훈련도 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석에서 책망받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입니다. 알겠어요. 영감? 「예」 처음 온 사람이 보면 '어이쿠, 책임자가 말하기는 문선생이 이름난 사람이고 고명한 사람이라고 하더니 공석에서 반말을 한다. 이거 뭐 삼촌 같고 아버지 같은 연령의 사람에게 반말을 찍찍 한다' 하겠지만, 여기는 공판정인 것입니다. 공판정에서 판사는 죄수가 할아버지라 할지라도 반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말을 듣고 보니 조영감은 내가 이야기한 것이 고마워요, 나빠요.「고맙습니다」 고마우니까 고마운 말과 더불어 고마운 사람이 되어야 된다구요. 아내에게 고마운 사람이 되어야 된다구요. 임자의 여편네가 선생님의 누나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김영순이가 선생님의 누나면 어떡할 테예요? 그거 생각해 보았어요? 선생님의 이모라면 어떡할 것인지 생각해 보았어요? 생각해 봤어요, 안 해봤어요? 그러니까 머리가 부족하다는 거예요. 통일원리를 아는 사내로서 머리가 부족하다구요.

이모라면 어떡할 것이고, 누나라면 어떡할 것이냐 이거예요. 자기 아내가 선생님의 이모나 누나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번에 선생님한테 와서 '선생님,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의논했을 것 아니냐 이거예요. 그렇지요? 「예」 이 영감이 소문 낼 게 뭐예요? 선생님한테 의논했으면 대번에 해결됐을 것 아니예요. 그러니 영감이 사고방식이 틀렸다 그 말이예요.

그러니까 공석에서 책망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뭐라구요?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제일 빠른 길이 그거라구요. 어떤 때는 내가 공석에서 나이 많은 사람에게 '이놈의 자식' 하면서 뺨을 갈긴다구요. 그것이 사랑이라구요. 그것을 잘 넘겨라 이거야. 그것을 잘 넘기라는 것입니다. 잘 넘기는 것이 자랑이 되는 거라구요. 보통 사람은 못 넘기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 영계를 중심삼은 신앙생활에는 여러분이 모르는 법도가 많은 것입니다. 작전법이 많다구요. 여러분이 아는 척도와 선생님이 바라보는 척도가 다르다구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법에 걸리는 놀음은 안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망할 고비에서도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앞으로도 선생님이 모험도 많이 할 것이고, 여러분이 모르는 놀음을 많이 할 거예요. 지금도 그러한 놀음을 시키고 있습니다. 한 국가가 왔다갔다하는 놀음을 시키고 있다구요. 여러분은 모르지만….

본부에 나오면서 얼마나 본부를 사랑했는가

여러분은 선생님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요? 보기에는 선생님이 한가로운 사람 같지만 세계를 요리하기 위한 놀음을 지금 하고 있다구요. 여기에서 지시하면 일본이라든가 외국의 최고 간부가 편지로 선서하는 거예요. 선언문이 왔다갔다하는 놀음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지금까지 여러분이 알고 있던 선생님으로 생각하지 말라구요. 김영운이가 한 말이 있습니다. 자기는 지금까지 남자들을 우습게 보았었고 선생님도 처음에는 그렇게 보았는데, 선생님이 그런 선생님인줄 처음 알았다고 하면서 여자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내가 들었다구요.

선생님은 첫째부터가 다르다구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문선생' 하게 되면 뭐 아무것도 모르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은 선생님을 잘못 알았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정세 문제라든가 모든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도 민감한 사람입니다. 그것을 모르면 앞으로 세계적인 복귀섭리를 치닥거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면을 중심삼아 가지고 돌아가서 포위작전을 해 나가야 된다구요. 내가 말한 것이 한국 내의 통일교회 식구들에게 들어맞고 세계의 통일교회 식구들에게 들어맞기 때문에 통일교회 식구들이 남이 가지 못하는 처량한 길, 개척자의 길을 가면서 지칠 뻔하다가도 안 지치며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본부에 있는 여러분들이 긍지를 지니고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위해서는 현시대에 우리의 권위와 체면과 위신을 세워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자신이 정성을 들여서 이 전체의 판도 앞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날과 때를 가졌다는 이 자랑스러움이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외국 식구들이 한국에 왔다가 돌아가서 '아! 본부의 아무개 아씨' 할 수 있는, 그들의 인상에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구요. 본부에 가면 그 아씨가 어떻다든가 혹은 젊은 청년이 어떻다든가 하는 인상을 남겨 주어야 합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그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겨 줘야 합니다. 그 인상을 어떻게 남게 하느냐 이거예요.

이거 본부 관리과에 있는 녀석들을 보면 전부 다 이건 마른 전선대 같아서 감정도 표정도 없어요. 사람을 대하는 꼴을 보면 전부 다 낙제야, 낙제. 전부 다시 교육을 해야 되겠어요. 그런데 그 교육은 앞으로 좀더 있다가 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정성을 들이는 자를 체크해 들어갈 때는 아무나 여기 파수꾼을 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월급을 주게 되면 세계에서 제일가는 월급을 줄지 모른다구요. 그러니만큼 본부에 있는 사람들은 책임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여기 본부에 들락날락하면서 유리창을 얼마만큼 사랑했으며 여기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느냐 이거예요. 여기 처녀들, 본부에 와서 소제들 해봤어요? 너, 소제해 봤어? 아주 머니들은 해봤어요? 자기 집 마루바닥은 많이 닦았지요. 그래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물질에 관한 올바른 관을 가져라

내가 수억의 돈을 갖고 있지만 그 돈을 내 지갑에 넣겠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내가 어떤 때는 그렇게 돈 타령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나를 위해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우리 조상들이 정성 모아 남긴 터 위에 후대에 남길 것을 위해서…. 선생님이 재세 당시에 한 것은 역사적인 유물이 되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 돈이 있으면 무엇을 남길 것이냐? 후대를 위한 것을 남겨 줘야 할 것입니다. 임자네들을 고생시키는 것은 후대를 위해서 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무엇인가 남겨 놓고 가야 된다구요.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못 하니까 내가 대표적으로 하는 거라구요. 내 지갑에는 돈이 없지만 하루에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도 쓰고 있습니다. 그런 놀음을 하고 있다구요. 그것은 무엇을 위해서냐? 여러분들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1980년대의 통일가(統一家) 의 모습이 어떻게 될 것이냐? 전국적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 선생님에게는 계획이 있습니다. 그 계획을 맞추기 위해서는 바빠요. 지금 전체를 투입해야 된다구요. 이런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방해되는 놀음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돈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여러분이 선생님을 얼마나 도와주었어요? 선생님을 도와주고 싶어요. 안 도와주고 싶어요? 도와주고 싶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진정 도와주고 싶어요? 「예」 정말이예요? 「예」 그럼 도우라구요.

이번에 내가 외국 갔다 와서는 무엇을 할 것이냐? 통일교회 여러분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이대로 두었다가는 망하는 거라구요. 망하게 되어 있다구요. 그러면 망하게 놔 두어야 되겠어요, 망하지 않게 해야 되겠어요? 「망하지 않게 해야 됩니다」 망하지 않게 해야 된다구요. 그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무리는 망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또 역사시대의 그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현재의 책임을 지니고 가는 사람은 망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앞으로 어떤 문제가 벌어지느냐? 물질적 문제, 인격적 문제, 심정적 문제, 이 세 가지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하면, 물질과 인격과 심정, 이 세 가지 문제에 관계된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 것보다도 교회 것을 중요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것까지도 보다 중요한 것에 예속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내 물건이 누구를 통해서 왔느냐?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서, 나의 노력을 통해서 나에게 직접 들어온 것입니다. 그렇지요? 뜻을 통해서 들어오지 않았다 이거예요. 그러면 뜻을 통해서 들어올 수 있는 길은 무엇이냐? 교회를 통해서 인연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물건을 교회의 물건과 일치시킬 수 있는 마음의 터전이 되어야 됩니다.

내가 지금도 인상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현재 우리 통일교회의 어떤 간부에게 '야, 네 방을 비워서 누구에게 주어라' 하고 명령해 본 것입니다. '네가 살고 있는 방을 아무에게 주고 너는 이렇게 하라' 고 해보았다구요. 그러고는 가만히 두고 보았어요. 그거 못 하면 점수가 빵점이다 이거예요. 방을 사랑하느냐, 식구를 사랑하느냐? 문제는 그거라구요.

자기를 사랑해야 되느냐, 식구를 사랑해야 되느냐? 자기를 사랑해 가지고 구원받을 길이 있어요? 「없습니다」 가인을 복귀하지 않고는, 아벨은 구원받을 길이 없다 이거예요. 그렇지요? 가인은 원수요, 사탄입니다. 사탄을 사랑하지 않고는, 사탄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 아닌 자기의 사랑하는 형제를 사랑하라는데 그것도 못 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런 놀음을…. 선생님은 뜻 때문에 전부 다 바뀐 사람이라구요. 굶고 있는 원수, 통일교회의 원수라고 소문난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는데. 그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내가 남모르게 쌀을 사다가 보냈어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굶고 있는데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식구들은 자기의 새끼들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울타리 안에 있는 자기 편이다 이거예요. 식구들은 굶어 죽더라도 나는 안 걸린다구요. 식구가 굶다 죽으면 하늘의 동정이 있지만 원수가 죽으면 내가 걸려 들어간다구요. 내가 원수를 사랑하기 전에 그들이 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대해서 극성맞게 반대하는 몇 사람은 통일교회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남아졌으면 하는 것이 선생님의 바라는 바예요. 안 죽는다구요. 그런 사람이 몇 사람 있지요?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도와주는 데 있어서도 쓰고 남은 것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제일 귀한 것, 가운데 도막을 잘라 주는 놀음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하늘이 허락할 때는 자기 여편네까치 양보할 수 있는 아량을 가져야 하는 거라구요. 여편네까지 넘겨 주고 축복을 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이 사탄 앞에 자기의 상대를 넘겨 준 이후 지금까지 홀로 나오고 계시지 않느냐 이거예요. 그렇지요? 물건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여러분, 오늘의 통일교회가 그렇다구요. 지금 등기 문제를 예로 들어 보면, 우리가 지금 땅을 많이 샀습니다. 지금 청평에서 제일 값진 땅을 굉장히 많이 샀다구요. 지금은 '청평' 하게 되면 통일교회가 넘버원이라구요. 그런데 그 땅의 등기가 선생님 앞으로 올라 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 이름으로 올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간부들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등기를 내야 한다는 거예요. 왜? 믿을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다는 거예요. 자기들 끼리끼리 전부 다 믿지 못하고 있다구요. 그거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 앞으로 등기를 다 내주고 싶다구요. 여러분에게 내주고 싶지만 식구들이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구요.

선생님이 수십 억에 가까운 재산을 갖고 있지만 인감도장이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가 그것을 꽁꽁 챙겨 가지고 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통일교회 교인들, 누가 그거 사기해 먹겠으면 해먹어 보라구요. 해먹고 나서는 절대 소화를 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니 내가 정성을 들여 쌓아 놓은 소유는 절대 누가 못 가지고 가요. 갔다가 돌아올 때는 몇 십 배 붙어 가지고 돌아옵니다. 이런 사실을 가지고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갖고 내가 잘 먹고 살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꿈에도 없다구요. 지금 선생님은 가정의 생활비까지 전부 다 갖다 쓰는 사람이라구요. 뭐, 애들이야 먹겠으면 먹고 말겠으면 말고…. 그건 여러분이 생각해야 될 문제라구요. 내가 여러분을 생각하면, 여러분은 선생님의 가정을 생각해야 됩니다. 안 그래요? 다른 건 못 하더라도 선생님의 가정만은 여러분이 멱여 살려야 된다구요.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최소한 그것은 해야 된다구요. 그런데 그렇게 하고 있어요? 자, 얘기해 보자구요. 해요, 못 해요? 「못 합니다」 이러다간 망한다구요. 망하자는 이 무리를 데리고는 못 갑니다. 여기에는 혁명이 벌어져야 되고, 차원이 다른 행각의 노정으로 반드시 교차해 놓아야 합니다. 망하게 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물질에 대한 것을…. 자기의 사적인 물질을 공적인 물질보다 더 중요시하는 사람은 천도에 위배되는 사람입니다. 사적인 자기의 인격을 공적 인격보다 더 중요시하는 자리는 뜻에 위배되는 자리입니다.

공석에서 내가 비판하는 것은 그런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입니다. 사적인 인격은 내가 들이까는 거라구요. 창피하면 안 하겠지요. 그렇지만 공적인 인격은 다르게 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양심적으로 가책 받을 일을 하면 안 된다구요. 내가 사적인 입장에서는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참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공적 문제에 들어가서 욕을 먹게 되면 못 견디는 사람이라구요. 이를 악물고 복수하는 것입니다. 칼침을 놓아야 된다구요. 그 사람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하느냐? 안 되게 되면 포위작전을 해서 굴복시키는 놀음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한국의 위신을 세워라

기성교회가 우리를 반대했지요? 그렇지만 기성교회는 두고 보라는 거예요. 대들보가 무너져 나가고 기둥이 뽑혀 나갈 것입니다. 바작바작 치고 들어가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이번에 기성교회 중진들 수십 명을 일본에 데리고 갈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위신을 생각하니 안되겠기에 일본에 데려가서 통일교회 원리공부를 시키는 거라구요. 1월에 갈 겁니다. 일본의 교단 책임자들을 중심삼고 아시아적인 운동을 하기 위해서…. 자기들은 싫지만 말려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놀음을 하고 있다구요. 그들하고 우리하고 피장파장할 때는 우리가 실력이 더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구걸하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그들에게 주고 살지…. 그것이 아벨권의 도리라구요.

야곱이 고향에 돌아갈 때 에서에게 몽땅 주었지요? 몽땅 다 주고 한가지 요구가 뭐냐. 내가 다, 몇 수십 억의 재산이 있다 하더라도 한꺼번에 전부 다, 기성교회 한 교단을 몇 억씩 주고 살릴 수 있다면 한꺼번에 다 정리해 버린다구요. 그런 생각하고 있다구요. 돈은 쓸 때 써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좋은 옷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좋은 옷은 안 입는다구요. 입던 옷이나 입는 것입니다. 또 넥타이가 수십 개가 되지만 안 매는 겁니다. 수수하게 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내가 할 책임을 아직까지 다 못 했다는 거예요.책임 못한 입장에 서 가지고 밥을 잘 먹었다고 트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지개 켜면서 '아이구 잘 먹었다'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공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앞으로 집을 사겠다는 것은…. 여의도에 세계 본부를 지을 땅을 마련해 놓았고 대학을 지을 수 있는 10여 만 평의 땅을 사놓았습니다. 또 세계 수련소로 쓸 120만 평 이상의 땅을 사 놓았습니다. 이렇게 해 놓았기 때문에 이제 내가 집을 사더라도 괜찮은 것입니다. 이제는 내 차례입니다. 그 집은 여러분이 사줘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집을 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자리잡는 역사적인 기점에 있어서 그래도 한국 사람이 먼저 집을 지어 주어야 그 권위와 위신이 천추만대에 서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어떤 녀석이 이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당장에 집을 살 수 있는 돈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치가 다르다는 거예요. 지금도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따로 살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따로 살고 있습니다. 한번 만나려면 옷을 갈아입고 왔다갔다해야 하는 놀음을 하고 있다구요. 그러니 여러분의 위신이 서질 않아요. 이런 등등의 문제를 놓고 볼 때, 집은 될 수만 있으면 여러분의 손을 거쳐서 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위신이 서는 거예요. 여러분이 지금까지 부모의 집을 사 주려고 별의별 놀음을 다 했는지 모르지만, 한국 사람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이 한때의 특권을 외국 사람들에게 넘겨 주고 싶지 않다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 그거 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하겠어요? 「예」 여러분들에게 지금까지 매일 1원씩 저금하는 운동을 하라고 시켰는데 그렇게 하고 있어요?「예」 선생님은 본부건립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벌써 10년 전부터 특별 모금을 하라고 준비시킨 것입니다. 그래 하고 있어요? 「예」

이번에 갔다 와서는 (제3차 세계순회) 1974년까지 3년밖에 없다구요, 3년 동안에 여러분이 해야 할 책임을 해야 합니다. 책임을 못 하면 큰일 난다구요. 내가 이런 공석에서 집지어 달라고 하는 것이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예요. 조건이라도 세우게 해주지 않고는 큰일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선생님의 집을 사주겠다고 벌써부터 여러 번 연락이 왔습니다. 미국에서도 선생님 집을 미국 사람들이 사겠다고 하고, 독일에서는 독일 사람들이 사겠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집만은…. 자, 이러고 있는 판인데 한국은 불쌍한 나라니까 후퇴해야지요, 그렇지요? 「아닙니다」 여러분이 자기의 단벌 옷이라도 벗어 팔고 팬티만 입고 사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한다면 놀랍다는 겁니다. 그러면 청사에 빛나는 거라구요. 그 한 사건은 수 천년 역사시대에 있어서 수많은 재벌들의 가슴을 조여지게 할 수 있는 하나의 표준이 될 것입니다.

심정이 성숙하는 자리

자, 그러면 여러분이 선생님 도와 줄래요? 「예」 진짜 도와 줄래요? 「예」 한국 협회본부에서 쓰는 돈은, 한국에서 쓰는 돈은 한국에서 책임져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내가 떠나게 되는데, 몇 천 명의 특별요원을 빼내려고 그래요. 거기 가담할래요? 「예」 자기의 최대의 정성을 들여 일년에 얼마씩 선생님과 약속해 가지고,누가 받으러 가지 않더라도 딱딱 본부에 바치는 운동을 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 준비를 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망해야 되겠어요, 안 망해야 되겠어요? 「안 망해야 합니다」 망하지 않아야 되는 거라구요.

물질을 갖고 하나님 앞에 정성들여야 할 것을 가르쳐 준 시대가 제물을 드리던 구약시대요, 몸뚱이를 가지고 정성을 들여야 할 것을 가르쳐준 시대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으로서 희생적 사상을 보여 준 신약시대입니다. 그 다음에 통일교회에서는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심정은 어디서 열매 맺히느냐? 편안한 자리에서가 아니요, 더운 방이 아닙니다. 못 살고, 춥고, 가고 싶지 않는 죽음의 교차로에서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진리는 좋고 통일교회의 말씀은 좋고 통일교회의 내용이 좋은데, 통일교회의 행동은 싫다 하는 그 길로 선생님은 여러분을 보내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할 수 있는 길이 거기에서 열리고, 나라에 충할 수 있는 길이 거기에서 열리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고독단신이 되어 외로운 자리에서 국가와 전민족을 바라보고 삼천리 반도를 바라보고 눈물을 짓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밤이나 낮이나 눈물 흘릴 수 있는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심정적으로 제물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르쳐 주는 곳이 통일교단이예요.

그런 심정적 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과 여러분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심정적 인연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물질은 자기의 몸뚱이를 중심삼은 것이니 심정을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합니다. 자기 여편네를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고, 자기의 혈육을 사랑하기 전에 세계 인류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렇게 사랑했다는 공증을 받아 가지고 오라는 것이 하나님의 사상이요. 예수의 사상입니다.

보라구요. 막달라 마리아가 그렇게 그리워하고 그렇게 사모해 가지고 누구도 나타나 주지 않는, 총각의 원한이 맺혀 있는 예수의 무덤 앞에 혼자 나타나서 부활하신 예수를 볼 때 얼마나 울었겠어요? 그녀가 '선생님이여? 할 때에 예수는 '야, 나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자기가 부활하여, 하나님을 보필하지 못하고 세계의 인류를 사랑하지 못한 입장에서 여인을 사랑할 수 없다는 거룩한 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가까이 와서는 안 된다고 한 거라구요.

그리고는 다시 오겠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는 수천년 동안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여 하나님을 사랑한 증거의 실권을 세계의 무대 앞에 결부시켜야 하나님의 뜻이 허락하는 자리에 선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세계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는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 수많은 자기의 부하를 희생시켜 세계를 사랑했다는 실천권을 만들어 기독교 문화권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것이 양이 차고 수가 차면 비로소 사랑했다는 실권을 갖고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계인의 대표요, 만민의 심정 대표자로 이 땅에 현현하게 되는 것이니 그날이 재림의 날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시집 온 여인들의 사랑을 받겠다고 생각하는 이놈의 남편들, 여편네를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고 세계를 사랑해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그 마음을 갖고 사랑하는 부인을 대하여 하늘땅을 대표하고 만민을 대표한 대표자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가정이 오늘날 축복가정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자, 그러니까 이번에 갔다 와서 전국적으로 한 3천 명 정도 뽑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일년에 3천 명이 한 사람 앞에 만 원씩만 내게 되면 3천만 원이지요? 3만 명이 만 원씩 낼 경우에는 얼마가 돼요? 3억인가요? 3억, 거 무서운 돈이구만. 11월 말까지 3억이란 돈을 만들어 놓아야 할텐데…. 3만 명이 만 원씩이면 3억이지요? 그렇지요? 또, 3만 명이 여기서부터 늘어서면 어디까지 갈까요? 외줄로 서면 아마 저 중앙청까지 갈 거예요.

선생님의 집을 짓게 되면 좋게 지을까, 나쁘게 지을까? 「제일 좋게 지어요」 제일 좋게? 「예」 제일 좋게 짓는데, 제일 작은 걸로요? 「제일 큰 걸로요」 그래 좋게 한번 지어 봐요. 여러분이 지어 주는 집에서 한번 살아 보자구요.

내가 요즈음에 기분 나쁜 것이 있어요. 지방 교회에 한 4천만 원 도와 주었더니 고래 새끼가 뛰니까 송사리도 뛴다는 식으로 구역에 나가 있는 교회장들이 전부 다 선생님에게 편지를 해서 '우리 구역에 지금 얼마가 필요하니 돈 좀 보내 주십시오' 하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들, 안 되겠다구요.

본래는 금년에 3억의 예산으로 150개 교회를 지을 계획이었어요. 통일 교회의 위신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아예 거둬 치워야 되겠다구요. 그런 퇴폐적인 사상을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선생님이 교회 짓는데 돈 대주는 왕초가 되어야 돼요? 그 부락에 제단을 지으려면 자기들이 지어야지요. 그렇지요? 그렇게 알고, 이제 여러분이 본부에 공을 세울 수 있는 때가 오는 거예요. 선생님이 임자네들을 위해 고생을 했지요? 여러분이 선생님에게 빛을 졌어요. 안 졌어요? 「졌습니다」 얼마나 졌나요? 갚을 수 없을 만큼 졌다구요.

나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대학을 세우려고 합니다. 한국에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려고 한다구요. 여러분, 힐튼이라고 알지요? 세계적인 호텔왕이 있다구요.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슨 왕이 될 것이냐? 대학 왕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거라구요, 대학 왕.'통일교회의 대학은 세계에 어디든지 있다' 할 수 있게 만들어야 되겠다구요. 그래서 그 놀음하고 있다구요. 앞으로 대학을 만들어서 서울대학생들이 우리 대학에 전입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게끔 할 거예요. 멀지 않아 그렇게 만들 수 있다구요. 어떻게? 외국 식구를 몇백 명 데려다가 우리 학교에서 같이 교육시키면서 서울대학생들에게 '너희들 전부 외국에 데려다가 아무 대학에 공부시킬테니 오라'고 하면 서울대학이고 뭐고 집어던지고 올 것입니다. 이렇게 몇 백 명만 서울대학을 버리고 통일대학에 왔다 하는 소문이 나게 되면 한국에서 일등 되지 말라고 해도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선생님이 손을 대는 날에는 세계에서 일등이 되지 않고는 잠을 못 자는 것입니다. 우리 어린이 무용단도 세계에서 일등이 됐지요? 「예」 일등이 되었기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는 거라구요. 아무데 내보내도 일등인데 무슨 관심을 갖겠어요. 우리 승공연합도 이젠 뭐 세계의 일등으로 공인되어 오고 있습니다. 이번에 가서 그 일을 할 것입니다. 우리 가정들도 일등이 되어 잘살아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이제 조금 더 가면 잘먹고, 잘살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소 한 마리씩 잡아 먹었으면 좋겠지요? 통일교회에서는 소고기 안 먹는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나도 이제 외국 나가야 될 텐데 고기 안 먹으면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그래서 고추장 통조림을 만들어 가지고 부치라고 했는데, 그거 부쳤어요? 고추장이나 손가락으로 찍어 먹자구요. 그거 맛있다구요. (웃음) 캐비지에다 이렇게 발라 가지고…. 젓가락이 없으니 할 수 없다구요. 거기는 포크밖에 없는데 포크 가지고는 바르지 못하거든요. 숟가락은 옴폭해서 잘 안 발라지니 손가락으로 그저…. (웃음) 여행하며 먹는 그 맛이 진짜 양념을 해서 양고기 구워 먹는 것보다 더 맛있다구요. 자, 아무튼 우리는 좋은 것을 안 먹고 세계를 살려 보자는 것입니다. 그게 더 멋있다구요.

우리의 고생은 빛난 내일을 위한 것

이제 여러분이 1980년대 통일교회를 한번 상상해 보라구요. 이번에 내가 미국에 가는 것은 미국을 어떻게 살릴 것이냐 해서 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이만큼 했으면 터를 닦아 놓았다구요. 내가 없더라도 이제는 될 수 있다구요. 그래서 이제는 미국을 중심삼고 계획하는 것입니다. 1970년대를 보낸 1980년대의 통일교회를 생각해 보자구요. 그때에는 우리에게 자가용 비행기가 몇 대쯤 있을 것 같아요? 한 백 대? 백 대는 기분 나쁘지요? 앞으로 이 본국에 올 때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지 않고는 못 오게 할 것입니다. 그 말은 전부 다 비행기 한 대씩을 마련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적인 비행기 회사가 되지 말라고 해도 자동적으로 되는 거라구요. 틀림없다구요.

내가 이제 조금 있다 헬리콥터 한 대를 사야 되겠습니다. 시간이 바쁘니 말이예요. 내가 아무개에게 헬리콥터 한 대를 사 보내라고 연락만 하게 되면 사 보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것 같아요, 안 그럴 것 같아요? 그럴 수 있겠지요? 「예」 그 다음엔 고급 비행기를 사 보내라면 사 보낼 때가 올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선생님이 비행기를 타게 되면 큰 비행기를…. 요전에 뭐 몇 백명이 타는 비행기를 만들었다고 그러지요? 그거 이름이 뭐예요? 「점보 제트기입니다」 점보인지, 무슨 보인지 난 모르겠구만….

그래 그런 몇 백 명 타는 비행기를 선생님 혼자서 타고 다니면 재미가 없겠지요? 그래서 그때는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가정 전부 다 싣고 다녀도 된다구요. 음악 패, 노래 패, 춤 패, 강의 패, 복싱 패, 무슨 패 할 것없이 전부 싣고 다닐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나라에나 그 한 대만 내리면 그 나라에 대회장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전국적으로 경기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다 하고 있다구요. 선생님이 혼자 다니면 좋겠어요. 데리고 다니는 것이 좋겠어요? 내가 데리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구요. 그렇지요? 그와 같은 생리가 죽기까지 없어지면 좋겠어요. 안 없어지면 좋겠어요? 안 없어지면 좋겠지요?

1980년대를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되면 내가 되게끔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이 올 일년 동안 지내 보니까 어때요? 선생님에게 수완이 있다면 있지요? 여의도 세계본부 부지도 마련되었고, 수련소도 마련되었고 말이예요. 벌써 계획을 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우는 작전이 10년 후에 들어맞게끔 계획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화성에 가는 위성을 쏠 때는 화성이 저기에 있는데 쏘기는 이쪽으로 쏘지요? 반대 방향으로 쏘지요? 그것이 돌고 돌아가서 들어맞는 거라구요. 이상하지요? 그와 같은 작전을 하고 있다구요. 여러분이 생각지 않는 놀음을, 여러분이 꿈도 안 꾸고 있는 놀음을 지금 하고 있다구요. 이것을 공석에서 말하면 작전상 지장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1980년대의 통일교회, 1980년대에 가서 합격된 통일가정은 어떨 것이냐? 잘살아야 되겠다구요. 잘살고 싶어요, 잘 안 살고 싶어요?「잘살고 싶습니다」 잘살아야 되겠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통일촌을 멋지게 계획하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서 몇 천만 평의 땅을 사려고 합니다. 요즈음 한 8백만 평 사려고 연락을 하고 있는 중이예요. 몇 천만 평은 사야 되겠다구요. 세계적인 판도를…. 그때 가서 울고불고하지 말라구요. 알겠어요? 틀림없이 그런 날이 온다구요.

그때 가서 울고불고하지 말고 지금 울고불고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때 가서 웃고 살려면…. 매를 맞더라도 남보다 먼저 맞으라고 했지요? 학교에서 상을 받는 사람은 밤잠 자지 않고 울고불고 노력한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에서도 상장을 받으려면 남들이 잘사는 세상에서 못사는 듯이 보따리를 싸 가지고 고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본부는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은 제일 바탕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사명적 분야에 있어서 기수가 되어야 할 곳이 본부입니다. 책임을 지는데 있어서도 영원히 변치 않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 본부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본부가 지닌 긍지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야의 것을 전통적으로 이어받을 수 있는 자리는 화려하고 찬란하게 찬양받는 자리가 아니라, 비참하고 울고불고하는 자리입니다. 세계를 대신해서 울고, 민족을 대신해서 울고, 통일교회를 대신 해서 울며 밤잠을 안 자고 야단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것을 통하지 않고는 빛나는 높은 산정은 있을 수 없습니다. 깊은 골짜기가 있지 않고는 높은 산정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등등을 놓고 볼 때, 여러분이 고생하고 혹은 고생시키려고 하는 이런 작전은 망하지 않고 빛날 수 있는 미래를 보장시킬 수 있는 작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통일교회가 영광의 날을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갖출 때까지 틀림없이 여러분들로 하여금 이 길을 가게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길을 가야 할 운명임을 알고, 이것을 본국에서 혹은 본부에서 실천하게 되면 세계국가는 그냥 그대로 따라올 것입니다. 거기에 여러분이 얼마만큼 관계를 맺고 충성을 하느냐 하는 것이 여러분의 천적 가치를 결정하는 내용이 된다는 것을 알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저희들의 갈 길은 바쁜 길이옵니다. 아버지, 제가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 청춘시대도 다 지나갔습니다. 이제, 반세기의 고개를 넘고 난 현재의 입장에서 내일의 뜻이 촉구되는 그 무대를 바라보게 될 때에. 마음은 마냥 바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사람이 많아야 할 것을 절절히 느끼옵니다. 쓰려고 보니 사람이 없는 것을 느끼는 이 자리옵니다. 하늘 앞에 내세워 자랑할 수 있는,'당신이 찾아온 아들은 이런 아들인 것을 알았기에 이 아들을 당신 앞에 드리오니 서슴지 말고 받아 주시옵소서' 하며 하늘 알에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지극히 희귀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때, 오늘도 내일도 제가 선두에 서지 않으면 안 될 책임감을 더더욱 느끼옵니다.

아버지, 당신이 그것을 바라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또, 또, 또 가야 할 책임을 다짐하는 현재의 입장을 생각하게 될 때, 지금까지 지탱할 수 있게 해주신 아버지의 보호하심에 감사를 드리옵니다. 내일의 여생을 아버지의 뜻 앞에서 염려의 여생으로서 맡기고 가는 것보다는 보람있는 희망과 더불어,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환경과 더불어 당신 앞에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 거기에는 당신이 또 수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러한 터전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다시금 부끄러움을 금할 바 없나이다.

아버지, 저희들은 아버지의 혈육을 이어받은 아들딸이옵니다. 당신이 슬퍼하시면 저희도 슬퍼해야 될 것이고, 당신이 기뻐하시면 저희들도 기뻐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당신의 손목을 붙잡고 당신의 손길과 더불어 당신 대신 맞고 상처를 입기를 바라고, 저희 몸이 당신의 손길을 가려 줄 수 있고 저희 뼈가 당신이 피해받는 것을 가로막을 수 있기를 바라고, 당신이 흐느끼면서 붙안고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자리까지 가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닌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죽음이 엇갈리는 수많은 고갯길을 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따라서 살겠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죽겠다고 믿는 사람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습니다. 복받겠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복을 전부 다 헤쳐 주고 종의 자리를 찾아 나가기 위해서 믿는 통일교회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런 길이 세상적으로는 비참한 길임을 아옵니다.

아버지, 한국을 사랑하시옵소서. 이 민족이 반대하는 통일교회 무리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외로울 때 당신이 기억하여 주셨듯이 이들이 당신을 위한 일편단심, 그 소신이 변치 않는 자리에 있을 때 당신이 찾아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눈물 가운데 당신의 심정을 알아 가면서 당신의 아들이라 딸이라 하는 자를 당신이 얼마나 찾아오셨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통일교회의 식구들에게 그런 심정이 식어지거들랑 그러한 자들이 있는 자리는 하나님이 떠나가시는 자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사회에 나쁘게 여론화되었던 통일교회가 그렇지 않는 통일교회로 변화될 때까지 불쌍하신 우리 아버님이 얼마나 수고하셨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의 노고와 공적을 저희가 찬양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편안한 자리에서 밥을 먹고 심려가 떠난 자리에서 하루의 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하늘 앞에 빚지는 일이라는 것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아버님이 그리워서 자기 일신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아버지의 심정이 솟구치게 하여 진정 아버지를 위하여 미칠 수 있는 마음이 그려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사모의 심정, 흠모의 심정에 불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은 11월 마지막 주일이옵니다. 며칠 후에는 한국을 뒤로 두고 저를 그리워하는 외국 식구들을 만나는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바쁜 한국을 아버지여 맡아 주시옵소서.

제가 일신의 그 무엇을 바라고 뜻을 책임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미래에 당신이 머물 수 있는 국가의 체면과 세계의 위신을 생각하게 될 때, 고달픈 생을 다짐하면서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외로운 자리에 서서 눈물지으며 스승을 만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색다른 민족들을 바라보게 될 때, 이 인연은 오늘 제 자신의 일생을 통해서 얻어진 공적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아버님의 수고와 결정적 희생의 대가를 몽땅 결실시키기 위한 인연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압니다. 색깔이 다른 이색 민족이 아무것도 아닌 한국에 있는 스승을 생각할 수 있게 된 것도 하늘의 황공한 은덕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민족 감정을 초월하고, 역사와 전통의 배후를 초월하여 하늘가정의 심정적 인연을 자랑하면서 내일의 조국 광복을 위해 단결할 수 있는, 혈족과 민족을 초월할 수 있는 새로운 움직임이 통일가의 움직임인 것을 생각할 때, 여기에 당신의 희망과 포부가 크고 여기가 당신이 안식할 수 있는 희망의 초점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입장이 엇갈렸다는 것을 느끼옵니다. 1960년대는 싸움의 역사요 슬픔이 감도는 역사였지만, 1970년 대는 수습하는 기쁨의 역사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통일교회와 더불어 이 민족을 사랑하시옵소서. 이 민족과 더불어 세계를 사랑하시옵소서. 그렇게 바라고 나오던 한계선이 저희 목전에 다달았나이다. 경계선 너머 저 피안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하늘의 권위를 자랑해야 할 때가 저희 눈앞에 다가왔나이다. 젊은 가슴의 동맥의 고동 소리를 들을 적마다 하늘의 소리에 사무칠 수 있고 그것을 자극적인 충격으로 느낄 줄 아는 피 끓는 젊은 남녀들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통일교회 청년이 아니면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함성을 지르는 무리의 드높은 소리로 세계 만민의 가슴 가슴에 새로운 파장을 일으키고 파문을 일으켜야 된다는 이 엄연한 책임이 저희 앞에 있음을 저희들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님, 오늘 이 성일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이날을 위해서 모이는 곳곳마다 하늘의 사랑이 깃들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12월, 마지막 달이오니 당신의 슬픔을 남겨 그것으로 끝을 맺는 이해가 되지 말게 하시옵고, 민족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교회적으로 기쁨을 맞이할 수 있는 이해의 마지막 달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1971년도는 역사상에 있어서 최대의 해라고 했던 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년에는 말할 수 없이 바쁜 날들을 보냈습니다. 많은 일들을 저희 들이 저끄리고 치러 냈습니다.

그렇게 담이 막혀 있던 기성교단과 대학가의 문을 열기 위해 일년을 투쟁했습니다. 아버지의 수고와 공적으로 말미암아 저희가 머리를 들어 바라볼 때에, 높은 산정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저 고개 너머 골짜기가 바라보이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이제 힘차게 산정을 올라서 가지고 잠들어 있는 이 민족의 갈 길을 깨우치고,남북의 분열상을 규합하고, 세계의 혼합상을 수습하여 내일의 소망의 기수들로서 부족함이 없는 자세를 갖출 수 있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부디 허락하신 뜻과 더불어 당신의 안위와 승리의 날을 보잘것없는 저희들의 정성어린 피눈물을 통하여 이루시옵소서. 수고로운 피땀을 통하여서 응결시키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본부의 사명과 책임이 얼마나 지중한가를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고이 스스로 반성하면서 아버지 앞에 몽땅 아뢰어 바치고 새로운 명령을 받아 가지고 힘찬 내일의 출발자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다시 만나는 시간까지 아버지께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부모님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오늘은 1971년 12월 1일, 이해의 마지막 달을 맞는 첫날 이 아침에, 당신의 어린 자녀들이 120곳의 성지를 대표한 이 중앙성지에 모였사옵니다.

오늘날 세계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당신이 계실 수 있는 처소가 없고 당신이 사실 수 있는 하나의 거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 종족권을 중심삼은 나라조차도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섭리도상에 있어서 뜻을 대신하여 2천년 전에 지상에 왔다 갔던 예수의 생애를 미루어 보게 될 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한 말이 생각되옵니다. 그의 깊은 심정 위에 아버지의 뜻을 염려하는 초조한 그 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그 시대에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예수님이 처했던 그 환경이 얼마나 고독하고 슬픈 자리 였는가 하는 것을 회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옵니다.

그로부터 2천년의 역사를 피와 눈물을 흘리며 희생의 제물로써 골짝길을 메워 오신 아버지의 복귀노정을 생각할 때, 그 선도적인 책임을 대신 지고 세계적인 원수와 맞서서 생사를 걸고 싸워 나온 기독교를 생각할 때, 당신의 수고와 당신의 노고가 하나의 나라와 하나의 종족과 하나의 가정과 하나의 개인을 중심삼고 그런 터전이 결정지어지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었음을 저희들은 알게 됩니다.

그러한 환경의 터전을 환희와 기쁨과 영광을 갖추어 만민이 시위(侍衛)하는 자리에 서서, 당신의 즐거움이 온 천하에 충만한 자리에 서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과 더불어 맞고 싶었던 그 뜻이 피어린 슬픔의 역사를 돌아서 수십여 년 동안 찾아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이 얼마나 외로우셨고 얼마나 슬프셨나 하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 책임적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곳이 이 땅으로는 세계에 연결되어 있는 120개의 성지이고, 이 성지에서 정성들이는 자녀들과 더불어 그들이 바라는 마음이 합하여 세계 앞에 하나의 국가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남달리 이 아침에 저희들이 여기에 모인 것은 이곳을 통하여 당신이 약속하시고 당신이 명령하시던 역사적인 인연을 저희들이 알기 때문이옵니다.

1965년을 기하여 이 땅 위에 '성지'를 택정하였고, 이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 40개국에 120개의 성지를 택정하였습니다. 그 곳에는 한국의 땅과 한국의 얼이 심어져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모국이 되어야 할 한국이요, 그 조국의 백성이 되어야 할 이 백성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안팎의 모든 내용을 결정지어 하늘 앞에 초소로서 묶어 바쳐질 수 있는 자리가 세계에 널려 있는 성지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아침에도 수많은 자녀들이 성지를 찾아가 아버지 앞에 같은 심정을 묶어 축수하는 무리가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 자리에 당신이 친히 찾아 주시옵소서 ! 그들은 외로운 무리요, 그들은 불쌍한 무리요, 그들은 최후의 전선을 사수하지 않으면 안 될 무리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늘이 자랑해야 하는 무리인데도 불구하고 자랑할 수 없는 지극히 소수의 무리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 무리를 가누어서 하늘나라를 건국하셔야 되고, 새로운 세계의 문화권을 창건하시지 않으면 안 될 당신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또다시 당신이 슬픔의 싸움에서 봉화를 들고 어두운 세상을 밝히시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담 해와의 한 날의 실수가 이렇게 역사적 한을 이끌고 온 것만 해도 원통한데 또다시 수고의 봉화를 들고 이 땅을 대하여 싸움길을 가시지 않으면 안되는 당신의 사정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여! 그러나 참으시옵소서. 그러나 최후의 승리를 각오한 이상 성사시켜야 되겠습니다. 어린 자녀들이 몸을 굽혀 당신의 거룩한 성상 앞에 역사적인 부끄러움을 체휼하면서, 그 시대적 사명을 재차 자각하면서 내일의 소망의 터전을 향해 가는데 약자가 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기를 바라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여기에 모인 자녀들에게 당신의 마음과 더불어 어릴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책임감에 불타는 심정으로 그리움에 사무쳐 본연의 나라를 찾고 자녀를 찾게 하여 주시옵고, 소망하시던 당신의 가정들을 찾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들의 권위를 가진 몸으로, 자랑할 수 있는 가정의 주인의 몸으로, 나라를 지녀 충효의 도리를 다했다는 권위의 몸으로, 당신이 지으신 자연을 바라보고 동녘 하늘에 떠오르는 아침 햇빛을 바라보면서, 밝아진 세상을 찬양할 수 있는 한 날의 인연이 당신의 뜻과 더불어 저희들 앞에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저희는 외롭다고 해서 외로운 표정을 지을 수 없는 것이요, 억울하다고 해서 억울한 표정을 지을 수 없는 저희의 노정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1971년도, 이해는 역사적인 해라고 하셨습니다. 이해는 6천년 역사의 탕감을 결정지어야 할 정상의 고개를 넘지 않으면 안 될 해인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사실 그대로 세계는 그와 같은 정상의 자리에 도달 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을 놓고 세계는 가름길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악의 권한이 실권을 갖추어 만국을 자기 것인 양 유린하는 실정을 저희들은 눈 앞에서 목도하고 있나이다. 아버지여, 당신은 이 정경을 아시고 악의 권한이 드러나는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한때로 지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바라던 1971년도 마지막 달을 맞이했습니다. 이해에는 저희들이 모임을 중심삼고 여러 가지 일을 해 왔습니다. 저희들이 해야 할 가인 아벨 복귀의 노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개인이 그러해야 되고, 가정이 그러해야 되고, 종족과 민족이 그러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교단이 그러해야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은 기성교단을 책임지고 있는 제사장과 같은 그들을 모아 아버지의 인연의 터전을 넓히려고 노력해 나왔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의 장래를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표준해 나가는 정상의 고비까지 아버지는 수고로운 노정을 개의치 않으시고 개척해 주신 것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나라 이 민족을 당신이 맡아 주셔야 되겠습니다. 그 누구도 이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엇갈린 민족적 정경이 나타났사옵니다. 아버지, 한 민족이니 한 노선을 가야 될 것이고, 하나의 땅에, 하나의 통치하에, 하나의 주인을 모시고 살아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두 갈래 길이 엇갈린 것은, 아버지여, 역사적인 귀추로서 필연적 운명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늘을 따르지 못하고 하늘을 받들지 못하게 될 때는 하나가 둘이 되는 것이요, 둘이 넷이 되고, 넷이 여덟 이렇게 분립되어 최후에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수습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저희 통일교회의 사명인 것을 생각 하게 될 때, 저희들은 최극단적으로 분립된 자리에 서서 개개인을 묶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가정들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종족적 환경을 개척하기 위해 지금 노력하고 있사오며, 국가와 국민 앞에 사상적인 힘과 생활적인 힘, 바라는 행각의 노정을 단일화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투쟁하고 있사옵니다. 여기에 주인은 아버지가 되셔야 할 것을 저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이 나라 이 민족을 맡으시옵소서. 이 나라의 주인은 당신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부디 맡으시옵소서.

아버님, 12월 새 달 새 아침을 맞이 하였사오니 통일의 무리들을, 아버지, 긍휼히 보시옵소서. 서울을 향하여 그리운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무리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같이하시옵고, 더욱이 동절이 찾아왔사오니 일선에 나가 있는 당신의 어린 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뜻을 위하여 책임을 지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그들의 갈 길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남달리 고립된 자리에서 싸우는 그 자리가 슬픈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고독한 자리에서도 스스로 고독을 느끼는 저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슬픈 자를 구할 수 없는 것이요, 고독한 자를 구할 수 없는 것임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그들의 갈 길을 지키시옵고, 내일의 소망의 터전 앞에 불쌍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오니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해의 끝 달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아버지 영광의 존전에 부끄러움을 남기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오니, 마지막 달을 장식할 수 있는 저희의 마음과 정성을 가다듬어 일체를 아버지 앞에 바치어 충성을 다짐하는 달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년의 마지막 달을 이곳에서 지내지 못할 것 같사오니, 아버지여, 당신이 더더욱 같이하여 주셔야 되겠습니다. 영계에 있는 모든 영인들과 예수를 중심삼은 사도, 천천만 성도들을 규합하여 통일가와 더불어 남한땅, 대한민국을 지켜 줘야 될 것을, 아버님,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통일가의 인연을 따르다가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일치단결하여 땅을 협조하고,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하늘 앞에 정성을 드리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슬픔이 극하고, 고독이 극하는 때는, 자정이 지나는 깊은 밤이 된다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새로운 아침의 정기가 감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대한민국을 사랑하시옵소서. 아버지, 삼천리 반도를 지키시옵소서. 이 땅은 그 누구도 주관할 수 없는 땅으로서 아버지께서 결정지을 땅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자녀들이 가정을 버리고 이 나라 이 민족을 대신하여 싸우고 있사오니, 이 불쌍한 무리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악의 세력을 밟고 선의 터전을 넓히어 당신의 영광의 존전을 빛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 사람이라도 당신의 마음 앞에 선한 자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소돔과 고모라를 대신하여 아브라함이 최후까지 호소하던 그심정의 내용이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더욱이 축복가정의 자녀들이 자라고 있사옵나이다. 아버지, 그 자녀들을 지켜 주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준비하지 못한 무리는 언제나 슬픔을 당할 것이고 초조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역사적 원칙인 것을 알고 있기에 저희들은 1960년대부터 이 나라를 염려하고 나섰던 것이옵니다. 환경을 갖추지 못하여 오늘의 이와 같은 외로운 입장에 서 있는 아시아의 고립된 한국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시고 통일의 무리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한국을 기억하시어, 부디 당신이 수호권내에서 모든 일을 주도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을, 아버님,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서로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개인 개인의 만남을 행복으로 여기고 즐거워할 것이 아니오라 하늘을 중심삼고 인연되어지고 하늘의 심정을 체휼하며 감사하는 자리에서 만나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사람들로 인연된 상봉이 아니라. 하늘땅을 대표하고 역사를 대표하고 시대를 대표하여 하늘의 인연을 따라 상봉하고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를 대표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어느 곳에 머물든지 당신이 안위와 권위로 같이하시옵고, 존귀하신 당신의 영광의 세계 앞에 부끄러운 인연이 남아지지 않게끔 지키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나이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더구나 원한에 사무친 수많은 영인들의 개인은 물론이요, 가정과 민족을 통하여서도 풀지 못했던 한을, 예수의 한과 더불어 풀 수 있게끔 저희들은 단결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의 일체를 아버지 앞에 봉헌해 드려야 되겠습니다. 목적지를 향하여 총진군하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사명이 저희 앞에 놓여져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인도하여 주시옵길 바라옵니다.

이제 이 12월에도 아버지께서 허락하시는 권내에서 모든 일이 성취되고 일취월장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자녀들도 같은 은사로 대하여 주시옵길 부탁 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말 씀

오늘은 12월 초하루, 1971년 이해에 있어서 마지막 달을 맞는 첫날 아침입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식구들도 이날 이 아침을 기억하면서 이해에 있었던 지난 모든 일들을 회상하며 남아진 이달을 새로이 뜻과 더불어 다짐하는 식구들이 많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의 생각을 가지고 여러분들도 이 시간 여기에 참석하였을줄 압니다.

통일기반 확보를 위해 벌였던 금년의 활동들

이 1971년도에는 '통일기반확보'라는 표제 아래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노력해 왔습니다. 금년에 내가 바랐던 것은 대학가를 우리 뜻과 어떻게 결속시키느냐 하는 문제, 군 관계에 있어서 앞으로 교육할 수 있는 길을 어떻게 트느냐 하는 문제, 그 다음에는 국회, 이 나라 이 민족을 대표한 국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문제, 이 3대목표를 중심삼고 주력해 왔습니다. 대학가는 대학가대로, 군은 군대로 여러분이 알다시피 1군의 사단 장병에서 최고 장성들까지 교육하는 일로부터, 요즘에는 국방대학까지 우리가 강의할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이것이 지속적인 길로 결정되리라 보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자리까지 올라오는 데 있어서는 하늘이 많은 수고를 해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기준이 전체에 연결되면, 이것은 국가면 국가에서 혹은 국회면 국회에서 관심을 갖지 않을래야 갖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 서리라고 보아 왔던 것이 내 자신의 바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국가는 국가대로 그런 기준에 연결시켜야 되겠지만, 우리 교계를 중심삼고 볼 때, 먼저 기성교회와 우리 통일교회가 어떻게 인연을 맺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통일기반확보라는 것은, 개인에게 있어서는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되고, 가정에 있어서는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이러한 주체와 대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횡적인 면에서, 부모를 중심한 것이 종적인 기준을 대표했으면 종적인 기준을 대표해서는 자녀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사위기대가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중심삼고 통일가가 일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교회와 더불어 연결되고, 교회는 나라와 더불어 연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복귀의 발전적 단계가 진전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금년 정월부터 지금까지 목사들을 중심삼고 원리 공청회를 개최하여 지금까지 8백여 명의 목사들이 공청회를 거쳐갔습니다. 또 대학가를 중삼삼아 가지고는 교수초청원리공청회를 4회 했습니다. 이번에는 5회째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대학가는 우리가 아니면 학생들의 새로운 갈 길을 제시할 수 없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을 줄 압니다. 문교 당국도 그런 견지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또, 승공노선을 중심삼고 볼 때도, 어느 정도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입장이 부각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실정을 두고 볼 때, 뜻을 중심삼고 절정에까지 왔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가 왔으니만큼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 개체가 지녀야 할 입장은 개인에서 멎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런 개인이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개인으로서 그 가치를 드러내야 할 때가 바로 이때가 아니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를 두고, 우리가 전국적으로 새로운 활동체제를 갖추고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우리 축복가정의 부인들이 지금 전국에 나가서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인들이 나가서 활동하는 것과 더불어 이 가정과 관계되어 있는 식구들도 여기에 보조를 맞추라고 강조한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가를 자각해야

하나님은 후방에서 같이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는 반드시 전방에서 개척되는 것이요, 전방에서 새로운 역사의 발전이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전방이라는 곳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아벨을 중심한 섭리의 때에도, 아벨 자신은 자기가 하나님의 섭리 앞에 하나되어 최일선에 섰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노아도 마찬가지입니다. 120년 간 방주를 짓는 꾸준한 생활권내에 섰지만, 자기가 세계를 대표해 가지고 최일선에 섰다는 것을 자각하기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요,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한 지역적인 환경에서 벌어지는 것으로서, 자기가 대하는 매일 매일의 생활적 감정과 더불어 연결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 그것이 역사적 전반에 긍(亘)하여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세면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 자신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 운명을 대신함과 더불어, 전체 복귀섭리의 운세를 좌우할 수 있는 세계사적인 대표의 자리에 섰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기가 개인 개인을 대하는 환경, 처해 있는 생활환경에서 부딪치는 모든 외로움이라든가 어려움이라든가, 혹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여러 가지 슬픔이라든가 기쁨이 그 한 날 한 날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했지, 그것이 역사적인 생애 혹은 미래적인 소원과 더불어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세 자신도 그 당시에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모든 생활은 사람 한 개인에게만 한한 생활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활은 역사적인 생활을 대표했던 것이요, 섭리의 뜻을 대신해서 섰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를 바라보고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당사자는 하나님이 그러한 관점에서 자기를 보시고 자기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계시다는 것을 늘 생각하기가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 요한이 역사시대의 4천년 인류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섭리 앞에 대제사장의 책임을 대신할 수 있는 입장에 섰다는 것을, 세례 요한 자신이 30여년의 생애를 통해 갖은 어려움의 생활을 해 나가면서 수도의 생활을 해 나왔지만 그 깊은 심정 가운데 자신이 그러한 자리에 섰다는 것을 자각하고 살 수 있는 자리에 서기가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요단강 가에서 예수 앞에 세례를 베풀어 주고 난 후에 그 사건을 그 한 날 특별한 사건으로 느꼈을는지 모르지만 역사가 뒤넘이칠 수 있는 중차대한 시점이었다는 것을 세례 요한 자신이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예수와 더불어 하나되지 못하고 분립되어 예수와 함께 죽음의 길, 혹은 뜻의 길을 가지 못한 사실은 그러한 인연, 그러한 감정, 그러한 생활터전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은 자기가 역사를 대표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했다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전체의 역사를 대표해서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천년의 인류역사 가운데서 비로소 인간을 대표해 가지고 예수 한 분만은 자기가 역사적 섭리시대에 세계사적인 책임을 전체 앞에 지고 있다는 사실, 또 하나님을 대표해서 섰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 누구보다도 전체를 책임진 입장을 알았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자각된 새로운 시대의 중심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발족시킬 수 있는 하나의 기원이 될 수 있었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오늘 우리 통일교회의 내 자신은 어떠한 자리에서 있느냐 하는 것이 언제나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시대를 대표한 자각된 자리에서 자기가 어떠한 위치에 섰다는 것을 확정지어 가지고 그것을 결정적 운명으로서 다짐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을 짊어졌느냐, 안 짊어졌느냐 하는 것을 먼저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그 자각과 더불어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데는 자기 개인의 생활권내, 자기 개인적인 감정권내에 긍(亘)하여 가지고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감정, 세계적인 새로운 역사적 감정과 더불어서 관계맺도록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인을 대표한 개인적 감정을 개개인이라든가, 가정이라든가, 종족이라든가, 민족이라든가, 국가에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심정의 터전 위에 하늘의 역사적 섭리를 어떻게 일원화시키고, 섭리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소원하던 심정의 결과를 오늘날 생활권내에 어떻게 제시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만약 자각하지 못하고 그와 같은 책임을 수행하지 못하는 자리에 섰다면, 통일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은 역사와 상관없는 분립된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적 감각뿐만이 아니라 역사적 감각을 대표하고 앞으로 미래의 감각을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서 언제나 주체적인 사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차대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우리의 입장인 것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교인들에게 어떠한 폐단이 있느냐 하면 그러한 자각이 희박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각이 희박하게 될 때, 하늘의 섭리는 반드시 크나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시대의 우리 선조들의 과거를 통해서 우리는 누구보다도 잘 아는 바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을 볼 때, 말하기는 쉽지만 이 말을 책임지고 실천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실천을 해야 되겠다, 책임을 져야 되겠다' 하는 자리는 자기 홀로의 자리가 아닙니다. 책임을 지겠다고 결심하는 그 자리는 비록 자기 혼자 일지라도 역사와 더불어 결의하는 자리요, 시대와 더불어 결의하는 자리요, 하늘과 더불어 결의하는 자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하늘은 반드시 같이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악의 권세에 대해 강하고 담대한 신념을 가져라

오늘날 세계 정세가 복잡한 차원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북괴가 중공을 중심삼고 외교 무대를 강화해 나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악이 세계를 밝고 올라서는 결과의 세계가 우리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에 원리의 가르침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악이 선의 모양을 대신하여 나타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악은 한때뿐이지 오래 못 가는 것입니다. 이 악의 권세를 대해 가지고 누가 선의 입장에서 세계사적인 사명을 중심삼고 악의 권한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느냐 하는, 이 악과 대결할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하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것을 밝고 올라설 수 있는 결의, 그것을 밀고 나갈 수 있는 확고한 신념의 터전이 생기지 않으면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시대의 사명을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가 증명한 사실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개개인 생활에서도 여실히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루의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문제에 부딪쳤을 때 이것은 어려운 문제이니까 후퇴해 버리자 혹은 두고 보자 한다면 그 어려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각오하고 자기 일신을 투입하여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내가 그것을 꼭 해내겠다고 하는 마음을 일체화시켜 가지고 이 문제에 부딪치게 될 때, 거기에서 해결의 출발점은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국내외의 어려운 정세를 앞에 놓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악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이때에 있어서 우리는 이것을 대비해 가지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갖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골리앗 대장 앞에 선 다윗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같이하시니,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그 앞에는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7족을 앞에 놓은 여호수아, 갈렙을 대해서 하나님은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하늘이 같이할 것이다' 하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강해야 하는데 얼마만큼 강해야 되느냐? 악이 강한 것 이상 강해야 되겠습니다. 담대하긴 얼마만큼 담대해야 되느냐? 악이 담대한 이상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비록 혼자의 몸일지라도 그러한 심정을 갖고 나가는 데는 하나님은 반드시 같이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자각하고, 결의하고, 혹은 맹세하는 그 자리는 흘러가는 역사의 한 인연과 더불어 환경의 한 터전을 대표해서 결의하고 다짐하는 자리가 아니라, 전체 역사를 대신해서 다짐하는 자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다짐하고 결의한 것은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와 더불어 이것을 세워 나가야 되고 역사와 더불어 지탱시켜야 할 사명이 우리 앞에 있기 때문에, 내가 가다가 만일에 쓰러지는 날에는 후손을 통해서 이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가야 되겠다는 신념을 갖고 투쟁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길이 금후에 우리 통일가가 가야 할 노정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세계사적인 사명을 중심삼고 새로운 신념과 더불어 자각을 강화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통일전선을 수호하기 위한 바른 자세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러한 결의 밑에서 통일전선을 수호해야 됩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통일전선을 수호하는 데는 여러 가지 여건도 있겠지만 단 한 가지 핵심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들이 역사적인 사명을 책임지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홀로 서 있지만 홀로 선 그 자리는 세계사의 정상이라는 신념을 언제든지 가져야 되겠습니다.

내가 바라보고 나가는 길은 스스로를 위해서 가는 길이 아니라, 역사의 방향을 고취시켜 줄 수 있는 하나의 목적관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고 나면 그 목적은 반드시 성사되는 것입니다. 그 성사의 결과는 개인에게만 긍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하는 신념이 여러분의 마음에 드높아 가지고 매일매일 환경을 정비해 나간다면 하나님은 여러분과 더불어 같이 하실 것입니다. 거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부딪혀 올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부딪혀 오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기쁨이 아닙니다. 큰 성공을 바라고 나가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앞에 매일 매일 부딪치는 것이 기쁨이 아니라, 그 결심에 비례되는 어려움이 부딪쳐 오는 것입니다. 그 어려움이 부딪쳐 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어려움이 부딪쳐 오는 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악의 세력과 판가리를 지을수 있는 최후의 순간이 가까와지는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대한민국이 현재 이런 입장에 있다고 해서 우리는 낙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만이라도 결속해야 되겠습니다. 결속해 가지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리가 이런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해서 통일전선을 수호해야 되겠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앞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 입장이라는 것은 여러분 개개인이 혼자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에 선생님이 없으면 여러분이 책임을 져야 됩니다. 그 누가 책임을 져야 될 것이냐? 어느 특정한 개인뿐만이 아니라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이라도 그러한 신념을 갖고 단결하여 그런 책임을 질 수 있다면 문제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한 10여 년 전을 생각하지만 10년 동안에 우리 교회가 이만한 기반을 닦았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것입니다. 기적에 가까운 것만이 아니라 기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지금 여러분이 홀로 결의하는 것이 10여 년전 선생님이 홀로 결심하던 것을 대신하여 여러분이 뜻 앞에서 세계사적인 책임을 중심삼고 새로운 역사방향을 향해 각자가 전섭리 혹은 전인류 역사를 대표한 책임자적인 입장에서 결의를 하여 10년, 20년 세월을 한결같이 싸워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일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적 국가가 되리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통일전선을 수호해야 되겠습니다. 수호하는 데는 여러분의 자세가 문제입니다. 하늘을 믿음과 더불어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언제나 중심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하더라도 혼자 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삼천만을 대표하고 인류를 대표해서 한다는 심정에 사무쳐 가지고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를 앞세우지 않고, 나와 더불어 일하지 않고는 하늘 앞에 남아질 수 없다' 하는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는 자리는 반드시 하나님이 같이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믿고, 여러분이 최후의 12월을 중심삼고 우리 교회가 싸워 나온 이 터전을 사탄세계 앞에 보람 있는 승리의 한 제단으로 연결시켜 가지고, 민족과 세계적 사명을 감당 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결의해 주기를 바라면서 몇 말씀 드렸습니다. 아시겠지요?「예」

축 도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영광이 여기에 모인 자녀들과 축복 받은 통일가와 축복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이와 이 민족 이 나라와 세계와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의 소원에 하나되어서 승리의 개가를 아버지 앞에 불러드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만세의 권한을 가지고 당신의 영광된 주관의 천국이 이 천지에 성사되기를 바라옵니다.

이날과 더불어 이달과 이해가 복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참부모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아버지, 당신의 인연을 따라 형제들이 모인 곳에는 당신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자녀들이 당신의 사랑의 상징이요, 당신의 승리의 상징이요, 당신의 영광의 상징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인연이라는 것은 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영원히 남아지는 것이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요, 끊을 수 없는 것임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 인연의 주추가 되는 것은 사랑이옵고, 그 사랑은 당신과 자녀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 홀로는 사랑의 인연을 세울 수 없는 것이요, 자녀들도 홀로는 사랑의 길을 찾을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당신이 바라는 소원의 실체로서, 당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녀의 몸으로서 아버지를 대하고 모인 이 자리가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인연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부자의 인연이라는 이 관계는 무한한 자랑의 관계요, 이 관계로 말미암아 횡적 세계의 인연이 맺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이 관계는 세상의 어떠한 관계보다도 가까운 관계요 큰 관계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 인연을 따른 관계야말로, 자랑할 일이 있다 할진대는 이것 이상 자랑할 일이 없고, 기뻐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할진대는 이것 이상 기뻐할 일이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자기가 있어서 기쁜 것보다도 부모가 있어서 기쁜 것이요, 자기가 잘나서 좋아하는 것보다도 부모가 보아 줄 수 있기에 좋아하는 것임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모는 자식으로 말미암아, 자식은 부모로 말미암아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고 보다 높은 이상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 누구도 갖지 못하는 이상,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이상은 진정한 사랑으로 엮어진 어버이와 자식 간의 도리에서만 빚어지는 것임을 아옵니다.

여기는 숭고한 미를 갖추어야 할 자리요, 그 자리가 보기에는 무미건조한 자리 같으나 깊은 마음의 흐름이 엇갈리는 인연을 서로서로 드러내고자 하는 터전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터전이오나 세계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인연이요, 하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인연이요, 절대자의 권한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자리인 것을 아옵니다. 그 자리는 사랑만을 가지고 행사할 수 있고, 사랑만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고, 사랑만을 가지고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러기에 부모의 사랑이 고귀한 것이요, 자식을 그리워하는 부모의 마음이 고귀한 것임을 저희들은 깨닫게 되옵니다.

하늘 높이 계시는 아버님이여! 지극히 천한 자리에 있는 만민을 자녀로 삼으려 하시는 아버지의 소심(素心)을 더듬어 봅니다. 당신이 원하고 그리워하는 사랑을 그 누구로 말미암아 시작하실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에, 당신이 잊을 수 없는 아들로 말미암아 시작하실 것이고 딸로 말미암아 시작하실 것임을 알게 되옵니다.

역사시대를 통하여 바라보게 될 때, 당신은 순결하고 고귀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자체의 모든 것을 잊어 가면서 사랑하고 싶었던 진정한 아들딸, 뼛골이 우러나오고 심정이 녹아 흐르는 당신의 전체 가치의 인연을 대신한 그리움의 아들딸. 당신의 즐거움으로 상징할 수 있는 중심 적인 아들딸, 보아도 또 보고 싶고 말하면서도 영원히 말하고 싶고 함께 있어도 영원히 데리고 있고 싶은 당신의 고귀한 아들딸, 천지에 무한한 것보다도 제한된 하나의 몸으로 나타나는, 대중보다도 고독한 한 몸으로 나타나는, 전체의 모습을 대신하지 못하더라도 한 존재로 나타나는 진정한 아들딸을 아버지께서는 바라셨다는 것을 오늘 다시 한 번 회고해 볼 때, 당신은 그리움에 사무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자리에서 아들딸을 품고 사랑하는 입장에 서기를 얼마나 바라셨던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렇지 못하셨다면, 아버지께서 심정과 사랑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서글픔을 느껴야 되고 누구보다도 서운함을 느껴야 되고 누구보다도 애달픔을 느껴야 될 분이 아버지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역사시대에 있어서 저희의 선조들이 잘못한 것을 저희들은 여실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여, 그런 소원을 갖고 찾아오신 아버지의 마음 앞에 저희의 조상은 원치도 않았던 타락의 길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사랑의 음성으로 부르는 당신 앞에 얼굴을 나타낼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이 되고,인자하신 당신의 말씀이 그렇게도 무섭고 당신을 대하기가 그렇게도 초조한 자리에 선 저희 조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타락의 그 원한의 한 시간, 한날이 얼마나 엄청나게 지긋지긋하고 싫은 시간이었고 날이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도 꿈에도 원치 않으셨고 아들도 원치 않았던 타락의 결과의 사연들을 가져 온 그날인 것을 저희들은 누구 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수욕을 몸에 지니고 고독한 추방의 행로를 더듬기를 수천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사철의 때가 변함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에 앞서 자기의 부족함을 책임지고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회개의 눈물과 더불어 아버지 앞에 인연을 구하여야 할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그나마 자기 자신들이 어떻게 되어 있는 것도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허덕이고 있는 인간들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느끼옵니다. 나를 찾아 달라고 당신 앞에 호소하는 아들딸들이 있거들랑, 그들이 호소하기 전에 당신 앞에 대면할 수 없는 역사적 인연을 저희들이 대신하여 속죄하고 따라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아옵니다.

당신의 뜻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뜻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30억 인류가 있는 이 땅 위에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성상을 그리워하면서, 당신이 기쁘지 않을 요인을 이 세상에서 제거시키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하늘의 족속이 얼마나 되느냐를 생각해 볼 때에, 진정한 의미의 아들이요 진정한 의미의 딸이 있느냐를 생각해 볼 때에, 여기 부복한 저희 인간의 살림살이가 어떻고, 저희의 마음을 중심삼은 생애의 노정을 더듬고 있는 저희 자체들이 어떻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시는 아버지의 입장을 생각해 볼 때에, 완전한 참의 기준을 바라시는 당신은 과연 불쌍한 아버지인 것을 만사에서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고, 그러한 처지에 저희들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원통한 것인가를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저희의 이 손이, 이 사지백체가 혹은 저희의 감각과 감정 전체가 아버지와 인연되어 있는 것이 아니옵고, 원수 사탄과 인연되어, 아버지 앞에 슬픔의 노정을 가중시킨다는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 그러한 자리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에, 아버지 앞에 앞모습, 뒷모습도 보이기에 부끄러운 자신임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저희들은 하늘의 종보다도 더 낮은 자리로 하늘나라에서 추방을 받아 가지고 하늘나라에 있어서 영어의 몸이 되어 수의를 입고 천년 한을 품고 회개의 눈물과 더불어 당신의 후대하신 덕을 바라는 입장에 서야 할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옵니다. 아버지, 그러나 철창을 넘고 넘어 더듬는 본성의 인연의 길은 당신이 존재하는 이상 없어질 수 없는 것이옵니다.

저희들이 탕자의 인연의 자리를 생각하게 될 때, 고독할 때는 부모를 찾는 것이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처량할 때는 부모와의 사연이, 부모의 품이 그리운 것이 인지상정인 것을 아옵니다. 저희는 아무리 천지가 넓다 하여도 자기가 설 수 있는 한치의 땅이 없는 것을 느끼고, 바라 보이는 만상이 아름다울수록 그 미물을 대하여 부끄러운 자신임을 자각하고, 인간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그 많은 인간들이 자신보다 높고 훌륭한 것을 느끼는 고독한 자리에 있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나 흐르고 있는 본성의 마음은 본연의 하늘 부모를 찾고자 하는 마음에 사무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런 자리에서 허덕였던 과거의 수많은 종교인들도 있었을 줄 알고 있사옵고, 참을 추구하는 무리들도 많이 있었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진정 자기를 놓고 그와 같이 생각해 주고 그와 같은 인연을 지니고 배후에서 자기를 응시하고 있는 당신이 계시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던 사람이 얼마나 많았사옵니까? 아버지, 그러나 통일가의 저희만은, 통일교회 식구라는 이름을 가진 저희만은 이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사실만은 알고 있사옵니다.

무한한 생명의 가치를 위해 일신의 고통과 더불어 사망선상에서 투쟁 해야 하는 기로에 서 가지고 오늘이냐 내일이냐 하는 순간을 놓고 참된 생명의 승리의 길을 다짐하는 무리가 있고, 참된 생명을 찾고 있는 무리가 있더라도, 승리한 자신이 되기를 바라는 인간이 있다 하더라도, 인간 자신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인간이 자기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보게 될 때, 너무나 무력한 인간이요 주체의 자리에서 전체를 책임질 수 없는 인간인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옵니다. 그러기에 길은 골짜기에 떨어져서 높은 산정을 바라보면서 한과 더불어 그 산정을 향해 올라가야 할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고 한다면, 올라가야 할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비참한 운명인 것을 깨닫고 나가야 되겠사옵니다.

여기서 바랄 것은 자기의 힘만이 아니라, 다른 힘의 주체가 있거든 그 힘의 주체를 바라야 되겠습니다. 소원하고 바라야 할 자리가 있어야 하는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그 자리를 대신해서 나타난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그 하나님을 붙들기 위해서는...정상을 바라보면서 그 과정에 있는 모든 험산 준령을 넘고 계곡을 건널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출발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정상을 제패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그 길을 찾는 데 있어서 길이 없을 때에도 당신을 믿는 마음을 가지고 앞에 보이는 험산 준령을 넘겠다는 신념보다도 더 강한 신념을 갖고 나서지 않으면 하늘을 붙들 수 없는 인생길인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되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사랑하는 부모를 불러 보고, 그러한 자리에서 사랑하는 형제를 불러 보고, 그러한 자리에서 사랑하는 친척을 불러 보고, 사랑 하는 남편을 불러 보고, 사랑하는 주권자를 불러 보고, 사랑하는 세계의 책임자를 불러 볼 수 있는 자신들이 되지 못한다면 당신이 저희들을 찾아올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어린 자녀들이 모인 이 자리가 고요하고 깊은 밤을 지나 새로운 인연을 빚어낼 수 있는 창조의 아침을 맞는 자리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사옵니까? 여기에 새로운 힘의 움직임이 있거들랑 당신으로 말미암은 힘이요, 새로운 인연이 태동하걸랑 당신을 근거로 하여 이루어지는 태동의 기점인 줄 알고, 그 기점에 나 자신이 휘감기고 나 자신이 움직여질 수 있고 나 자신이 상대적 실체가 될 수 있다 할진대는 그 얼마나 얼마나 복되고 그 얼마나 바라던 자리인가를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는 당신 앞에 천년사의 한을 품고 부끄러움을 가릴 길이 없어 회개의 심정을 더듬으면서, 아버지라는 이름을 마음으로 천번 만번 외다가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라는 말을 하고 나서 부끄러워할 수 있는 자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어떤 때는 당신이 분부하시던 그 말씀이 기억되옵니다. 외로운 아들을 찾아오는 부모는 더 외롭다는 것. 아버지, 옳습니다. 자식을 잃어버린, 독자를 잃어버린 부모는 자기가 땅 위에서 아무리 권위 있는 사람이요 세계 만민이 추앙하는 자리에 섰다 하더라도, 자기의 위신과 체면은 생각지 않고 자식을 찾기 위해서 눈물짓고 몸부림치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자식을 잃어버리는 부모는 일시에 아들딸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소원하던 전체를 일시에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천년 만년의 한과 더불어, 억천만세를 수난길과 더불어 죽음의 장벽에 부대끼고 홀로 해결할 수 없는 역사의 복귀의 길을 앞에 놓고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기준 앞에, 아버지의 소원 앞에 칠흑 같은 흑암이 가리워졌다면 그 이상의 캄캄함이 없었을 것이고, 절벽이 가리워졌다면 그 이상의 절벽이 없었을 아버지의 그 사정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사옵니다.

아버지, 이러한 몸을 이끌고 그래도 현재의 입장에서 살기를 바라고, 현재의 입장에서 가증된 행복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무리들이 사망길을 다짐하고 있는 인생인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그런 길을 피해 가지고 당신의 품과 당신의 사랑의 동산이 그리워서 홀연히 찾아 나온 고독한 무리들이옵니다. 저희들은 외적으로 단장하기 전에 내적으로 단장해야 되겠사옵니다. 내적으로 단장하는 데는 기쁨과 더불어 단장할 수 없는 인연을 가진 타락의 후손이오니 눈물과 더불어 단장을 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을 슬프게 하였고 당신을 몰아댄 역사적인 사연들을 중심삼고 무한한 눈물의 인생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인연이 억울한 인연이요, 비참한 인생길인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사옵니다.

아버지, 이러한 개인을 수습하기 위해서 6천년이 걸렸다 할진대, 가정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수고를 하셨사옵니까? 그 가정들을 규합하여 이상적인 종족을 찾으려는 당신의 마음은 얼마나 초조하였사옵니까? 당신의 모습은 얼마나 긴박감에 사로잡혔사옵니까? 원수로부터 조롱을 받고. 원수의 무리 앞에 참소의 인연을 남기면서 가셔야 할 당신의 입장임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그리워하시는 그 나라는 어디에 있사옵니까? 당신이 주관하실 수 있는 주권은 어디에 있사옵니까? 아버지, 선의 주권을 위하여 저희들은 악의 주권을 타도하는 방망이가 되어야 되겠고, 총탄이 되어야 되겠고. 포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포탄은 그 존재 자체를 가지고서는 일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거리를 측정해 가지고 가야 될 입장에 서 있습니다. 제자리에서는 아무런 효과를 발생하지 못하는 것이옵니다. 비약의 과정을 거쳐 가지고 부딪혀서 자기 존재를 상실하는 데에서 포탄은 사명을 다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오늘날 저희는 빠르고 빠른 포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멀리 떨어진 이 함정, 이 계곡에서 일시에 산정을 넘을 수 있는 포가 있기를 바라는데, 그런 포가 있으면 얼마나 고맙겠사옵니까? 일시에 산을 넘어서 원수의 본영을 폭파할 수 있는 길이 있다 할진대는, 타락한 인간으로서 소원이 있다면 그 이상의 소원은 없는 것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이 땅에 와 가지고 살고자 하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하였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하였사옵니다. 옳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를 바라던 추한 모습을 폭파시켜야 되겠고, 자폭해야 할 입장에 있는 것이 오늘날 저희의 인생행로인 것을 저희들은 다시 한 번 깨닫고, 추한 몸을 가다듬고 옷깃을 여며 거룩하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자리에 설 수 있는 은사가 있다면 그 자리는 필생을 다하여 감사드려야 할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여,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날부터 오늘까지 당신이 수난길을 걸어 이 자리를 찾아 나오신 역사적 사연 사연이 얼마나 괴로왔사옵니까? 그 역사적 인연은 오늘 이 순간과, 저희가 당면한 이 자리에 연결되어 있사옵니다. 이제 당신과 저, 저와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맞는 이순간이라는 것은 저희들만의 순간이 아니옵니다. 당신이 연이어 나온 6천년의 역사적 인연을 계승하는 순간이요, 더 나아가서는 역사적 슬픔의 결정적인 결실을 다짐하는 자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심정을 갖고, 저희의 마음속에 저희 자체가 결실되어 있는 구성된 소성 혹은 질 가운데에 있어서 당신이 전폭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할진대는, 이것을 갈래갈래 찢고 뽑아 버리고 싶은 불타는 마음이 폭발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에 당신은 저희들에게 회개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때가 가까왔나니 지금이 그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그렇게 절박한 자리에서 이 시간이 그때요, 이 시간이 승패의 결정적 찬스라는 것을 저희 생애에서 얼마나 느껴 보았느냐고 묻게 될 때에, 저희들은 그런 것을 생각도 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자를 벌할 줄 모르시는 아버지의 인연을 생각하면 할수록, 아버지께서 걸어오신 뜻길은 자녀를 찾기 위한 길이요, 자녀를 만나기 위한 길이었사옵고, 그 길은 슬픔의 길이었다는 결론이 지어집니다.

아버지, 이제 당신이 여기에 찾아오시겠사옵니까? 당신이 이 자리에 찾아오셨사옵니까? 오셨거든, 당신이 필시 이러셔야만 되는 것이옵니까? 아들딸이 못났으면 부모도 못난 부모의 행세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아니옵니까? 못난 자식 앞에 나타나는 부모에게 '아버지여, 여기에 오시면 안 됩니다, 이 자리에 오셔서는 안 됩니다' 하고 오는 길을 막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효의 심정을 지닌 자식된 도리를 잃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자리는 '아버지여 오시옵소서. 아버지여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하기에는 너무나 먼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그 수치스러운 인연과 환경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아버지는 얼마나 얼마나 몸부림치셨사옵니까?

천지의 권한을 가진 대주재이신 당신이 어쩌다가 오늘 이렇게 슬픔의 입장에 떨어졌으며, 만물만상의 소원이요 생명의 기원이신 당신이 어쩌다가 이런 입장이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하늘의 주인 되시는 아버님은 목을 놓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지극히 비참한 자리에 계시다는 것을 저희들은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제가 이 자리에 섰사오니, 당신의 마음에 슬픔이 있거들랑 제 가슴이 젖도록 당신의 슬픔을 체휼시켜 주시옵소서. 당신의 아픔이 있거들랑 당신의 아픔을 체휼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를 바라면서 지금까지 나온 모습이옵니다. 그간 얼마나 아버지 앞에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었는지...

통일가가 더듬어 온 노정 가운데에는 이 민족과 더불어 인류와 더불어 남긴 수욕의 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제가 잘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을 사랑할 아들딸이 이 땅 위에 없는 것을 생각하면서, 당신을 가리켜 이러한 분이라고 가르쳐 줘야 할 책임을 지고 가는 사람이 없는 것을 생각하면서 통일가를 붙들고 지금까지 나왔사옵니다.

아버지, 영광의 한날을 그리면서 저 자신을 내세워 가지고 자랑하고자 하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자신인 것을 발견한 그날부터, 당신의 슬픈 길을 알고 그 슬픈 길을 대신해 가야 할 것을 안 그 시간부터, 당신의 자리가 고독한 자리인 것을 생각하고 헤아릴 수 있었던 그때부터, 당신이 죽음길에서 엇바뀌는 죽음을 대신해 나오는 사랑의 본체인 것을 안 그때부터 당신의 뒤를 어떻게 바로 따라가느냐 하는 것이 저의 고민이었사옵니다.

아버지, 오늘날 이 사회 앞에 통일교회가 남긴 것이 무엇이오며, 저희의 마음에 가진 예물이 무엇이옵니까? 자랑할 수 있는 예물로서 이 터전 위에서 받았노라고, 생명을 에이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잊을 수 없는 만민 앞에 남겨 주고 이 민족 앞에 남겨 주고 우리 후손 앞에 남겨 줘야할 예물이라고 하면서, 이것만은 내가 죽더라도 남겨 주고 가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책임을 다짐하는 무리가 없어 가지고는 뜻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뜻을 위한다고 하였던 과거지사가 얼마나 어리석었고, 뜻을 따라 나오는 저희의 입장이 얼마나 체면 없는 것인가를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오늘은 1971년 12월 5일, 1971년의 마지막 달에 첫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날, 삼천리 반도에 널려 있는 외로운 딸들이 혹은 아들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모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 모이는 목적이 자기들을 위해서라면, 자기들이 복을 받기 위해서 모이는 무리가 되면 망하고 마는 것이옵니다. 이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당신을 위하여 모여야 되겠사옵니다.

저희가 느끼는 모든 감각, 모든 인식이 당신에게 귀의하고 당신에게 귀결될 수 있는 자리에서 느끼는 것이 되어야만 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오늘 모인 저희들에게 있어서 정상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 오니, 부디 이날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대한민국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불쌍한 이 민족, 아버지께서 사랑하시지 않으면 안 될 인연을 갖고 있는 철부지한 이 민족을 지키시옵소서. 그 가운데 더 불쌍한 무리는 여기에 모인 통일의 무리이옵니다. 이들의 피와 살을 아버지 앞에 바칠 뿐만이 아니라 이 민족 앞에 바쳐야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성민(聖民)이 되지 못한 미흡한 무리들인 것을 아오니, 아버지여, 이들을 키워 주시옵소서. 당분간 아버지께서 이들을 맡아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욱이 축복가정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 가운데 뜻을 따라 이어 받은 어린 생명들이 많이 자라고 있사오니, 아버지, 그들을 불쌍히 보시옵소서. 그들이 고생하고 그들이 안된 입장에 선 것은 이 민족을 위한 것이고 세계를 위한 것이오니, 아버지여, 그들을 지키시옵소서. 당신이 자랑하실 수 있는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어린 아들딸이 자라길,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자리에서 당신을 모시고 살 수 있는 생활권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아버지, 이 본부를 지키시옵소서. 제가 길을 떠나면 영계도 그 길을 같이 가려고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대한민국 전체의 중심적 사명을 다하여야 할 이 자리가 쓸쓸해서는 안 되겠사오니, 이때만은 통일의 역군들이 정성을 가중시켜 가지고 손에 손을 붙잡고 만나 인연된 고귀한 한때를 상실해 버리는 불쌍한 무리들이 절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합니다.

당신이 통일가를 사랑하시는 것은 당신의 뜻이 있기 때문이요, 아들딸들이 당신의 뜻을 자랑하는 것은 뜻을 따라가고자 하는 소망의 대상이 있기 때문인 것을 아오니, 부디 부디 이들을 당신이 맡으시옵소서. 원수들 앞에 몰리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원수들 앞에 선 저희 들은 정성을 들여 당신을 편삼아 가지고 악을 굴복시킬 수 있는 승리의 요건을 언제나 제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신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또 이것이 절대적인 승리를 할 수 있는 요인이요, 당신을 여기에 우거하시게 할 수 있는 비법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 하루가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달의 남아진 날들이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1972년을 저희들이 3년노정의 한계점으로 하고 있사오니, 삼팔선으로 갈라져 있는 이 원한의 터전을 당신의 주관권내에서 소화시킬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맡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에, 아버지의 영광이 온 천하에 찬란히 빛날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저희들이 하늘 정병의 모습을 갖추어 치열한 전쟁마당을 향하여 용진할 수 있는 용사들이 될 수 있도록 안팎으로 격려하고 다짐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전체를 당신이 뜻하신 대로 이루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에 불쌍한 사람 혹은 그렇지 않은 사람 등 여러 가지의 군상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개인이 있고 그러한 가정이 있는가 하면. 어떠한 동네가 그러하고 어떠한 지방이 그러한 것을 보게 됩니다. 더 나아가 망하는 나라가 있는 반면 흥하는 나라가 있는 것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또 잘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못 되는 사람이 있는 것도 보고 있습니다. 웃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울고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상반된 환경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슬픔의 생활을 그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통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고독한 환경을 그리는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홀로 있기를 바라지 않고 전체와 더불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또 기쁨을 찾고 있는 것이요, 영광의 자리를 찾아 나감과 동시에 뭇 사람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서기를 바라고 나가는 것을 우리의 생활을 통해서나 우리 자신의 마음을 통해서도 잘 아는 바입니다.

하나님의 소원

사람이 그러하기 때문에 사람이 살고 있는 제일 기반인 가정도 그러한 것입니다. 어떠한 사회단체도 그러한 자리에 서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라도 슬픔의 자리를 피해 영광스러운 자리를 추구하고자 싸워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세계 자체도 그런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계보다도 더 높고 더 큰 어떤 것이, 이 지구성이 작다면 이 지구성보다 큰 것이 있고 거기에 사람과 같은 어떤 존재가 있다 할진대는, 그 존재도 역시 지구성에서 바라는 인간과 마찬가지의 욕망의 길을 더듬고 있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은 누구든지 그렇다고 긍정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어떠한 중심 존재가 계실진대는 그분도 역시 슬픈 날을 맞아 지내고 싶은 마음을 갖고 계시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분도 역시 승리와 영광이 깃든 가운데서 모든 만물을 치리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 최고의 자리는 위험과 더불어 고독과 더불어 슬픔과 더불어 짝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 반대의 자리에서 전체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그런 자리를 추구하신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있다 할진대는, 하나님도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랑하는 마음은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사랑하고 싶지 않은 마음인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자유롭고 평화가 깃들고 만유의 존재가 그 사랑을 영광과 더불어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의 길을 찾을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생애를 미루어 볼 때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유스러운 환경, 평화스러운 천국의 본원지에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되 어떠한 사랑을 하려고 할 것이냐? 최고의 사랑을 하고 싶을 것이 아니냐, 그 최고의 사랑. 그 사랑이 이루어졌다 할진대는 하늘땅이 그 사랑 앞에 머리를 숙일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하고 싶을 것이 아니겠어요?

사랑의 주체자의 입장

그러한 자리에서 그러한 개인을 찾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일 것이냐? 또, 그러한 개인은 어떠한 개인일 것이냐? 이것을 우리가 은은한 가운데 생각해 봐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을 사랑하고 나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에게 영광이 있으면 이것을 개인의 영광으로 끝 맺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보다 발전적이요 보다 고차적인 영광으로 연속시키고 싶은 소망이 우리 인간에게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이 개인을 중심삼고 다할 수 있는 사랑을 하고 기뻐했다면, 그 기쁨은 그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보다 차원을 높이고 환경을 넓혀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가정을 모색할 것이 아니냐. 그리하여 그 가정을 대해 사랑하는 데 있어서 개인보다도 못한 사랑은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 가정에 열 사람이 있으면 그 열 사람 개인 개인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한 사람을 대하여 사랑하던 그 이상의 깊은 사랑을 개인 개인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이 사랑의 주체자의 입장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을 통해서도 예상할 수 있는 바로서, 하나님도 그런 입장에 섰다 할진대 첫번 사람을 사랑하던 절대적인 사랑을 전체 앞에 절대화시킬 수 있는 그 사랑을 추구하시는 것입니다. 옛날과 다른 차원의 것, 옛날보다 차원이 더 높은 자리의 것을 추구할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아내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하나님이 그를 사랑했다 하면 그 아내를 사랑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사랑에 하늘이 있다면 하늘의 사랑을 플라스시켜 가지고 자식이면 자식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낮을 것이냐?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아내와 더불어 느꼈던 그 사랑을 빼놓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에게 느꼈던 사랑의 자극적인 본질을 그대로 가지고 거기에 사랑을 더 가중시켜 새로운 면의 사랑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자리는 대상적인 입장에 선 아내를 사랑하던 진지한 입장보다 못한 자리가 아닙니다. 사랑의 욕망이 있다 할진대는, 더 진지한 자리에서, 더 깊은 자리에서 보다 가치적인 사랑의 내용을 추구하면서 사랑할 수 있는 길을 다짐할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을 사랑하다가 두 사람을 더 사랑한다면, 두 사람의 사랑의 인연을 빼 버리고 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을 사랑한 인연을 기반으로 해서 세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세 사람을 사랑하던 사랑의 인연을 빼 버리고 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세 사람을 사랑하던 마음을 총합한 기반 위에서 네 사람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합해 가지고 열 사람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이 불행한 것이냐?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고통스러운 자리이며,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럴 수 없는 자리일 것이냐? 만일 그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누구든지 하나를 사랑할 수 있는 자리보다도 열을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서고 싶을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욕망을 통해서 볼 때 가당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이 있으면 이러한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이 있어야 됩니다. 내 가정을 이렇게 사랑했기 때문에 이렇게 사랑한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을 사랑하게 될 때, 그것이 진짜 종족을 사랑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가정을 통해서 체휼된 사랑의 모든 요인들을 빼 버리고가 아니라, 그것을 근거로 해서 종족을 사랑하고 싶을 것입니다.

종족을 사랑했다면 민족을 사랑하게 될 때에도, 종족을 사랑한 요인들을 빼 버리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민족의 사랑의 크기만큼 더 플러스시켜 가지고 사랑의 길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민족과 국가의 기준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 나라요 천지 가운데 영원히 남아야 할 하나의 민족이요 하나의 국가라는 것을 알고 사랑했다 할진대는, 세계를 사랑한 때도 국가를 사랑한 터전을 빼놓고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의 욕망

국가를 사랑한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를 사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 이하의 사랑을 가지고 세계를 사랑하고 싶다 할진 대는, 그것은 사랑의 법도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볼 때, 한 국가면 국가를 대해 사랑하는 사람이 세계를 사랑하려고 할진대는, 국가를 사랑하던 경험과 체휼적인 모든 요인을 그냥 그대로 가지고 그 이상의 사랑을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사랑의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사람은 나라보다도 세계를 찾기를 바라고 세계를 사랑하고 싶어하는 본성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국가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그러면 세계를 지배하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인간이 그 하나님을 사랑 하는 데 있어서 세계를 사랑하던 것을 떼어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자리가 있고, 세계를 사랑하던 것을 누룩으로, 터전으로 하여, 세계를 사랑하던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주체로 사랑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하나님은 어떠한 자리를 찾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세계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찾으실 것이냐, 그렇지 않은 자리를 찾으실 것이냐? 그것은 물어 볼 것도 없습니다. 세계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찾으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욕망이 처하는 최후의 종착점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자식을 많이 키워 본 부모는 무엇인지 모르게 사랑의 심정이 넓고 큰 것을 우리가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식을 많이 길러 낸 사람은 악한 원수를 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그건 왜? 그만큼 무엇인지 모르지만 넓은 터전에 서 있고, 넓은 법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사랑의 주체자입니다. 사랑의 주체되시는 하나님과 내가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사랑한 것을 다 빼놓고 하나님과 나만이 사랑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바라실 것이냐? 나 하나만을 중심삼고 그러하기를 바랄 것이냐? 하나님이 부모라면, 공평한 마음을 가지고 주체적인 입장에서 공동적인 사랑을 분배시키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계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의 부모의 입장이 아니겠어요? 이것은 당연한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세계를 빼놓고 나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겠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세계와 더불어 사랑을 받겠다 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만 사랑을 받자 하는 것은 원하시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관념을 떠나 가지고 세계와 더불어 사랑을 받고자 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만을 사랑해 주소' 하고 나만이 사랑을 받자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너희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그것은 다 이방 사람이 구하는 것이다. 먼저 너희들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먼저 개인을 위하고 가정을 위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라는 것은 우리 개인이 가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가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욕망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나라에 대한 욕망이요, 그의 나라에 의를 세우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그 욕망을 충족시킨 터전 위에서 사랑을 성립시켜야 기쁨이 있는 것인데. 욕망을 다 빼 버리고 소원을 다 빼 버리고는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 혼자 살고자 하는 것은, 자기 혼자 잘되고자 하는 것은, 잘되었다 하더라도 그런 사상을 갖고 가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잘되었더라도 저들로 말미암아 내가 잘되었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그는 저들과 더불어 망할 수가 없습니다. 저들과 더불어 흥하기를 바라 가지고 내가 흥했다 할 때는, 망하게 되더라도 저들이 망하기 전에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저들과 더불어 망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뜻은 없어진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저들과 더불어 남아 있는 한, 내가 저들과 더불어 같이 있게 된다면 나는 망하지 않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위주한 생활을 표방해 가지고 인륜도덕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공사(公私)라는 말을 하게 될 때에, 공(公)을 먼저 말하지 사(私)를 먼저 말하지 않습니다. 사공(私公)이라고 하지 않는 다구요. 부(副)가 정(正)일 수는 없다는 거예요. 공(公)이라는 것은 전체를 위하여, 그대들을 위하여 상대권을 인정하는 데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상대권을 인정하지 않는 데에서는 사(私)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상대권은 공(公)이 처하는 곳입니다. 공(公)이 처하는 곳에는 '그대들' 이 있는 것입니다.

'그대들'이 소원하는 것은 개인적인 소원이 아니라 전체적인 소원인 것입니다. 전체의 소원을 중심삼고 기뻐하는 자리는 개인의 슬픔을 가지고 좌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잔치가 벌어졌다면. 그 잔치를 중심삼고 환경이 전부 다 기쁨으로 싸여 있는데, 그 가운데 개인의 슬픔이 있다 하여 '나 슬프다' 하며 아무리 야단을 쳐도 그것은 제거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쁜 날을 맞이했거든 전체 사람들의 기쁨에 맞추어 움직여 가지고 자극을 줄 수 있는 주체적 자리에 서게 될 때에 거기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기쁨의 자리에서 그 기쁨을 삭감시키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기쁨을 고취시키고 자극시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영속적인 주체성을 남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냐? 공적인 분이십니다.

지혜로운 사람

그러면 여기에 '승패와 현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승(勝)이라는 것은 무엇을 두고 말하는 것이냐? 앞에서와 같은 견해로 보게 될 때, 자기를 위주한 승(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개인을 위주하여 승리를 다짐한다는 것은 개인 자체의 울타리권내에서는, 자기 휘하에서는 필요 할는지 모르지만 전체와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앞날을 헤아려 가는 것입니다.

앞날이라는 것은 어떤 날이냐? 앞날이라는 것은 희망이 깃들어 있는 날입니다. 희망이 깃들어 있는 데는 개인적인 희망이 아니라 전체적인 희망이 깃들어 있는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망을 가진 사람은 지혜로운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생활이란 뭐냐? 현재에 살고 있지만 현재의 승리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승리를 어떻게든 이루려고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현재의 환경에서 제한된 개체를 중심삼은 승리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와 더불어 인연된 승리권을 요구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적인 승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 공적이라는 것은 전체화하는 것입니다. 전체화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이라는 것은 사(私)적인 기준에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공(公)적인 기준에서만 성립되는 것입니다. 선(善)이라는 것은 전체를 상대하는 자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체를 상대하는 자리에서 주고받아야 되기 때문에, 열 사람을 대하는 입장에 있으면 내가 열 사람의 대역을 해야 됩니다. 열 사람의 상대역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되는 거예요. 백 사람을 공적인 대상으로 가졌으면 백 사람의 대역을 해야 됩니다. 백 사람 앞에 상대역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

하나의 국가면 국가, 국민이면 국민,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중심삼은 공적인 무대 앞에서 '나는 공적으로 살겠다. 애국애족하겠다. 나라를 사랑하겠다' 하고 살게 될 때는 대한민국 전체와 더불어 방향이 일치되는 것입니다.'너는 너고 나는 나가 아니라, 너는 나요 나는 너다' 하는 심정적 마음을 보편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성립되는 데에서만이 그야말로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의 인연이 발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승리를 표방하고 나설 때에 이 승리는 내 개인의 승리다 하면... 개인이 승리했으면 개인만 좋아하는 거지요, 뭐. 개인이 바라던 목적을 중심삼고 좋아하는 것은 극히 일방적인 것입니다. 360도 쭉-확대시켜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것은 작아지는 것입니다. 극히 제한된 권내의 승리입니다. 그 승리로는 360도와 인연을 맺어 가지고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360도 같은 도수,자 기를 중심삼은 좌우의 도수권을 넘어설 수 없는 승리입니다.

하나는 둘을 이를 수 있는 단위가 되기 때문에 하나는 둘과 접할 수 있습니다. 둘은 셋을 이를 수 있는 단위가 되기 때문에 셋과 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의 승리는 이런 입장의 단위가 아니라 제한된 단위입니다. '나'만을 중심삼은 단위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나'만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전체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개인적인 승리를 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내 것으로 관리하지 않고 전체 앞에 나누어 주게 되면 개인적으로 승리한 것을 공적화시킬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뭐냐 하면 희생하는 길입니다. 희생하는 길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희생하는 길은 또 하나의 승리의 비결을 현실 무대에 연결시킬 수 있는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혜로운 주체자이기 때문에 도(道)의 세계를 치리하시면서 도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그렇게 희생하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거 일리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 것을 내 것으로 존중하는 것보다 그렇게 존중하는 내 것을 전체를 위해서 희생하는 자리에 세워야 합니다. 그런 희생을 해야 된다구요. 공(公)이 되려면 사(私)적 기준을 중심삼고는 안 되기 때문에, 희생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공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道)의 길은 희생의 길을 추구하는 것이 본질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만일, 무슨 도고 뭐고 그런 것은 모르지만, 나라를 위해서 정성 들이고 온갖 희생을 하면서 내가 기쁘기 전에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기쁠 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 삼천만 국민이 웃기 전에는 내가 웃을 수 없다는 마음을 갖고 일생 동안 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사람의 얼굴은 웃어 본 적이 없다구요. 보기 싫고 추악하고 일그러져 있어요. 얼굴을 찡그리고 살았다구요. 찡그린 얼굴 가운데 바라는 소원은 무엇이냐? 아무리 추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바라는 소원이 무엇이냐? 대한민국의 전국민이 기뻐할 수 있는 그날을 바라다가 얼굴이 찡그러졌다면, 그 얼굴은 보기 싫게 되어 있을수록 대한민국의 국민이 좋아할 수 있는 얼굴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나타난 그 모습이 흉하면 흉할수록 보기 싫은 것이 아니라 흉하면 흉할수록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비참할수록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길이 있다는 거예요.

사지(四肢)가 있는 건강한 몸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다리가 없고 팔이 없고 눈도 없는 병신이 되어 가지고, 전체로 볼 때 사람의 형상을 갖출 수 없는 입장이 되어 가지고 나라를 사랑했다면, 그렇게 된 모든 동기가 자기를 위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되었다면, 그 모습이 비참한 절정에 있으면 있을수록 그는 대한민국의 애국정신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모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길은 희생을 각오하고 나서는 길입니다. 그것이 정당한 길인 것입니다.

승리의 길은, 승리를 다짐하고 나서는 데 있어서는 수단 방법을 통해 가지고 안 되는 것입니다. 진실되고 심각한 자리에서 희생을 각오하고 나서지 않고는 승리의 길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수단과 방법을 가지고 승리를 했다 하더라도, 그는 제거당할 것입니다. 자기보다 더 심각한 사람이 있으면 그 심각한 사람에게 계승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승리를 찬양했더라도 계승해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계승해 주면 슬픔에 부딪힐 것이 아니겠느냐? 이런 것을 헤아려 보게 될 때, 우리는 어떠한 자리의 승리를 원하느냐? 내 개인적 승리가 귀하더냐? 가정적 승리가 귀하더냐? 그것도 귀하기야 귀하지만, 그것 가지고 동네방네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동네 사람들에게 혹은 동네의 가정들에게 '우리 가정의 기쁜 승리를 찬양해 주소'라고 하게 될 때, 그 승리가 동네 사람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면 찬양은 커녕 비웃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정의 승리가 조금이라도 동네와 인연을 갖고 있는 승리라면, 그 동네 사람들은 '찬양합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승리가 절박한 내연을 가지고 결정됐다면 상대방도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기뻐할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는 생활주변을 통해서 볼 때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승리를 표방하고 나서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공적인 입장에 서신 예수님

보라구요.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30여세 청년으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말했습니다. 개별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개인주의 같은 생각입니다. '나는 독생자다'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 이상의 개인주의자가 어디 있어. 왜 너만 독생자야. 너만? 그럴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그런 내용의 말을 한 예수님의 입장은 인간의 입장과는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누구보다도 확실히 알았고, 그 하나님이 공적인 사랑의 주체로 계심을 확실히 알았고, 그 하나님이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아들을 찾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 아들은 이러이러한 본질과 이러이러한 조건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안 것을 결실하고 성사시킬 수 있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면, 나라를 사랑하고 나아가서는 세계를 사랑해야 한다, 자기 생명이 끊어지더라도 나라를 사랑하고, 자기 생명을 투입해서라도 세계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하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그런 자각된 입장에 서서 하나님 당신이 찾으시는 아들은 이와 같은 아들이 아니냐고...그 아들은 세계를 대표한 사랑의 하나의 표제요 하나의 표상이요 하나의 주체입니다. 그 주체상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그때에 있어서 공적인 중심이요 만민이 바라는 하나의 공적인 중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을 느끼는 자리에서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선포한 그 자리는 지극히 공적인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독생자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까지도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독생자의 사랑의 절개를 세우기 위해 환경에 에워싸인 수난의 길도, 생명이 엇갈리는 길도 당당히 밀고 나가 그 지조를 세우기 위해 일념을 다했다는 것을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보다 공적인 입장의 자각된 자리에서 혼자 죽었지만 혼자 죽은 것이 아닙니다. 죽은 그 자리가 혼자 망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늘세계로부터 인간세계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인간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을 증거하는 실체로 간 자리입니다. 그러한 내연이 맺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여기에서 나타나야 되고 인간의 사랑이 여기에서 나타나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이름이 가는 곳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현현하는 것이요, 인간의 사랑이 현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결부되어 가지고 새로운 기독교를 창건하게 된 것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예수님은 개인주의자가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보다 공적인 입장에 선 분입니다.

고차적인 소망과 고차적인 사상을 가져라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여기 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위해 사느냐? 밥을 위해 사느냐, 옷을 위해 사느냐, 집을 위해 사느냐? 나는 그런 것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통일교회를 위해 사느냐? 통일교회를 위해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 사느냐? 통일교회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것이 공적인 노정이요. 단계적인 노정입니다.

개인보다도 가정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가정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식구들은 자기 한 개인만 사랑하는 식구를 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 전체를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식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개인을 희생시켜서 가정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희생시켜야 할 개인을 가정 앞에서는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개인이 희생하더라도 가정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善)이 가는 길이요, 공적인 진전 단계입니다.

선(善)은 어떻게 발전해 나가느냐? 선은 보다 개인을 사랑하는 데서 발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이 선(善)하려면, 몸을 중심삼고 몸이 하고 자대로 마음이 따라가면 안 됩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희생할 줄 알아야만 개인 자체가 사랑받을 수 있는 거예요. 희생이 없는 곳에는, 더구나 타락한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는 희생의 조건을 가중시키지 않고는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가정에 있어서의 효자는 효자 자체로 보면 비참한 것입니다. 왜 비참한 것이냐? 먹을 것이 있어도 마음대로 못 먹는 거라구요.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그것을 붙들고 눈물을 흘려야 된다구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칠십 팔십이 다 되었는데, 그분들이 이 땅에서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는가, 잡수시면 얼마나 잡수시겠는가, 밥상을 몇 번이나 받으시겠는가, 돌아가실 날이 나의 몇 분의 일밖에 안 남았겠구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오래 살지 못할 부모를 자기 생애를 기울여 정성을 다해 가지고 봉양해야 됩니다.

효자는 먹을 것도 먹지 못하고 목이 메어 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다가 혼자 흐느껴 울면 미친 사람이라고 할 거라구요. 어떻게 보면 미친 사람 같다는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먹지, 얼마나 먹고 싶은 음식이었을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러고 있어! 저것' 할 거라구요. 거 얼마나 비참한 것이예요? 그 울고불고 하는 꼴을 누가 좋아 하겠어요? 그렇지만 효자는 생활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좋은 경치, 좋은 산야를 바라보게 되면 아, 우리 어버이와 더불어…. 좋은 계절이 찾아와서 그 계절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에 서면 아, 나 혼자가 아니라 어버이와 더불어 보았으면 좋겠다고... 그것이 그리움으로 표상되고 눈물로 드러난 그 자리는 비참한 자리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자리, 그 자체를 보게 되면 괴로운 자리입니다. 그렇지만 그 자리가 불행한 자리냐 하면, 행복이 깃드는 자리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눈물 흘리는 생활이 나쁜 생활이 아니라구요.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어도 나라와 공적인 것을 염려하면서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고생하는 무리가 있다면, 보기에는 비참하겠지만, 거기에는 영원한 위로의 눈물이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찬양의 송영과 노래가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영원한 희망의 천국이 선물로서 마련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불쌍합니까? 불쌍한 것 같지만, 비참한 것 같지만 승리의 권한을 얻은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자리가 그 자리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예수님이 생각했다는 거예요. 비록 민족의 반역자로 국민 앞에 반동분자로 몰려 가지고 규탄받는 비참한 자리에서 쓰러지더라도, 십자가에 초라하게 사라져 가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 내가 주장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억천만세를 중심삼고 꺾을래야 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철석같았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들을 위했다는 것은 절대적이다. 이것은 내 생명을 꺾더라도 부정할 수 없다' 그랬던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도 그것을 사실로 공인하셨습니다. 비참한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공적인 길을 간 예수님을 망하게 한다면 하늘도 망하는 거예요. 뜻이고 무엇이고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비참한 결과로 갔지만, 거기에서 소망이 절단된 것이 아니라 차원 높은 제 2차적인 소망의 출발기지가 그 비참한 무대로부터 싹터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됩니다. 역사는 이렇게 발전하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통일교회를 위해 산다면 통일교회는 망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통일교회 울타리 안의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런 사람들은 망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 울타리 안에서 사랑 한다고 하다가 싸움이 벌어진다면 수습방안이 없습니다. 통일교회 안에서 최고의 기준을 바라다가 싸움이 붙으면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두 조각이 나는 것입니다. 힘이 2분의 1로 약화되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통일교회의 목적이 나라를 찾기 위해서 모인 것이라 할 때는, 싸움을 했더라도 나라를 위해 찾아가야 할 길을 또 가야 되겠기 때문에 다시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차적인 소망을 가져라. 차원 높은 사상을 가져라 하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최고로 남아질 수 있는 것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와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서로 최고의 희망봉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끝나고…. 그것을 최후의 이상이라고 주장하기 전에…. 그것은 최후의 이상을 접할 수 있는 전단계의 이상이라구요. 그런 사상권내에 민주세계나 공산세계가 나왔더라면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가 천주주의라는 타이틀을 가졌다는 것을 볼 때, 이 주의(主義)가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자각된 한 면을 가르쳐 주고 그것을 느낄 수 있게만 한다면, 이는 뒤넘이치더라도 발전할 것입니다.

애국자는 매를 맞으면서도 그 채찍 아래서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채찍이 가해지면 가해질수록 애국 정기가 뼛골에 사무치는 것입니다. 매를 맞는 자리에서도 소망을 품고 매를 맞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망하는 자리에서도 소망을 갖고 망할 길을 찾아 나가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망하는 땅 위에서 승리적 천국을 건설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사상이요,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도 죽음길을 다짐하였던 선열들의 피의 역사를 엮어온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기독교 역사는 승리적 개인을 다짐하고 승리적 가정, 승리적 종족, 승리적 민족, 승리적 국가, 승리적 세계, 승리적 천국을 다짐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망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가 승리를 바라는 데 있어서 통일교회에 한한 승리를 바라면 통일교회는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통일교회를 위주한, 통일교회 교인들을 위주한 세계를 꿈꾸지 않으십니다. 세계를 위한 통일교회, 다시 말하면 주체적인 통일교회를 인정하더라도 개체가 전체를 대신한 입장을 옹호할 수 있는 주체를 인정하지만, 전체를 옹호할 수 있는 개체적 환경을 공인시키지 않는 그 주체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자기 집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배고플 때에 집에 들어가 보니까 조밥에 된장찌개밖에 못 먹고 산다고 해 가지고 '아이구, 밥이 이게 뭐야' 그럴 수 있어요? 자기 집이 잘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어머니 아버지가 푼푼이 모아 아껴 놓은 돈이 있으면 꺼내다가 먹고 싶은 것을 먹어야지' 이러면 되겠어요? 집안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은 먹고 싶은 것을 참는 것입니다. 자기가 먹을 수 있는 것까지도 먹지 않고 식구를 위해 나누어 주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주인이 되느냐? 나이가 어리더라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가, 아가' 하는 데는 그 사람만 바라기 때문이예요. '우리 집안에서 너만은, 너만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간단한 거라구요.

오늘날 통일교회 여러분이 고대하는 것은 승리를 표방하게 될 때…. 통일교회가 오늘날 역사시대에 새로운 파문을 던진 것은 사실입니다. 새로운 문화세계, 새로운 역사적인 문화형태를 제시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우리는 개인을 위주한 사상을 지녀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개인이 승리를 했다 할 때는 그 사상은 흘러가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한 것이냐, 종족을 위한 것이냐, 국가를 위한 것이냐, 세계를 위한 것이냐, 하늘땅을 위한 것이냐? 하늘땅을 위한 것이라 해도 흘러가는 것입니다. 하늘땅을 위하되 하늘땅을 통일시킬 수 있는 사랑을 중심삼은 내용을 제시한 사상이라면 하늘땅이 깨지더라도 그 사상은 남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죽더라도 부모와 자식이 사랑했던 인연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심순애와 누구예요? 이수일, 이수일. 그 뭐 소설의 인물이지만 말이예요. 그것이 어떻게 해서 대한민국의 민족감정에 자극적인 내용으로 남아졌느냐? 사랑이란 과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누구보다도 애달프고, 누구보다도 처량하고, 누구보다도 고독한 자리에 있는데 그것도 믿어 주지 아니할 때. 그렇게 바라던 소원을 못 이루고 갈라지는데, 그 갈라진 이유가 뭐냐? 가정 때문에 갈라졌다면 그것은 한이라구요. 자기보다 낮은 인연 때문에 갈라지면 한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나라 때문에 갈라 졌다면 그건 자랑이 된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자기가 사랑하는 애인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죽을 자리에 찾아 나가기 위해서 그렇게 되었다면 그것은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 사랑의 인연이 세계 때문에 깨져 나갔다면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최고의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거 이상하지요? 그렇잖아요? 그것이 뭐 자랑이 되다니 이상하지요? 당장은 비참하지만, 역사시대에 있어서 최고의 순수한 사랑의 길은, 세계를 위해 슬픔의 골짝길을 다짐하면서 나누는 석별의 정이라구요. 그것은 생활의 교훈으로 남아지고 세계 역사에 있어서 자랑의 왕좌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바쳐야 새로운 차원의 승리가 결정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에 하나님까지도 얼굴을 돌리시어 캄캄한 어둠이 세 시간 동안 천지를 뒤덮었지만, 그 자리에서 결해지는 사랑의 인연이 비참하였더냐? 아니라구요. 사실 사랑하는 독자가 죽는 자리를 눈을 뜨고 바라보는 부모는 없는 것이 아니예요? 안 그래요? 자식이 죽기 전에 눈을 감고 통곡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죽는 데도 부모를 위해서, 부모의 소원을 위해 죽는다면 그 부모는 눈을 감았다가 뜨고 나서는 바라던 소망의 세계를 붙들고 눈물을 퍼부을 것이 아니냐. 소망의 세계를 사랑하고 싶었던 그 사랑을 갖고 죽은 아들의 시체를 사랑해 줄 것이 아니냐. 그런 입장에 설 때는 죽어서도 미래의 사랑의 눈물과 사랑의 품에 품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는 그렇게 죽음길을 간 사람 외에는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부자 중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지극히 비참하고 지극히 심각한 자리에서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차원 높은 인연이 연결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비참하였지만, 하나님은 비참한 눈물을 억제하시며 새로운 사랑의 흐름을 딴 방향에서 인연지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 세 시간 동안 캄캄한 어둠이 접해졌지만, 그것이 걷히는 시간에 새로운 부활의 천국이 개문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서 통일교회를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 사람은 나가라구요. 통일교회보다 더 크고 더 높은 것을 위해 죽겠다고 해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해야 할 일은 삼천만 국민을 교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선의 주권을 완성할 때까지 우리는 가야 되는 것이요,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 싸움의 길에 역사시대의 어떠한 치열한 전투보다도 더 치열하고 더 고독한 길이 가중되더라도 가야 되는 것이요, 죽음이 엇갈리는 길이더라도 가야 되는 것이라고 하며 생명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나서서 죽었다 하는 날에는, 망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휘어잡을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차원의 승리가 결정된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예수님이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한 말은 당연한 말입니다. 진짜 충신은 생명을 바치고 난후에, 진짜 효자는 생명을 바치고 난 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바치기 전에는 아무리 잘했다고 하더라도... 천년 세월을 다해서, 혹은 자기 생애를 다해서 효도하다가 그냥 죽은 사람하고 일년 동안 효성을 다하다가 생명을 바쳐 죽은 사람하고 누가 더 효자예요? 천년 살다 그냥 죽은 사람보다 일년이지만 생명을 바쳐 효성을 다한 사람이 효자라는 것입니다. 그거 그럴 것 같아요?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죽음길로 내몰아라' 하는 거예요. 그거 사랑의 말이예요, 저주의 말이예요? 무슨 말이예요? '죽음길로 내몰아라! 황천길로 들이 몰아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에도 역설적인 교훈이 많이 있어요. 역리적인 교훈이 많다는 거예요. 사리에 맞지 않아요. 뭐,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어요? 보라구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라'고 했는데, 그의 나라가 어디 있어요? 없다구요. 예수 나라가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허황된 말 같다구요. 이루지 못할 소망은 허황된 거라구요. 그렇지요? 소망에는 언제나 허황이 몇 퍼센트 개재되어 싸고 도는 거예요. 허황된 내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을 소화시켜 가지고 실현시키게 될 때는, 현실화시키게 될 때는 그만큼 승리의 비율, 가치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차원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승리할 수 있는 요건이 다 갖추어진 입장에서 승리한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누구도 못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했다고 할 때는 표창을 하고... 그렇잖아요?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때는 현재

통일가가 가는 길이 통일가의 성공을 위해 가는 길이라면, 가지 말라는 겁니다. 가지 말라는 거예요. 어떤 교회의 지도자는 자기의 교회만을 위해 가지고 '아, 우리 교회 사람들은 다른 교회에 가면 안 됩니다. 우리 교회에만 구원이 있습니다' 이럽니다. 이놈의 자식들! 그렇게 해도 꽃이 피게 되면 별 수 없다구요. 봄이 되면 꽃이 피기 마련이고, 가을이 되면 열매가 맺히게 마련이예요. 씀바귀도 꽃이 피는 거예요. 뭐, 장미만 꽃이 펴요? 함박꽃만 끝이 피나요? 내 꽃만 꽃이고 네 꽃은 꽃이 아니예요?

생명을 기울여 가지고 내가 죽어서라도 이 길을 가야지 하며,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보다 더 심각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위하고 사는 무리는 기독교인들이 가는 곳보다 더 훌륭한 데 간다는 거예요. 충신의 도리는 만고 표준이예요. 효자의 도리는 만고 표준이예요. 진실은 만고 표준이라구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나가게 될 때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실되지 못한 사람은 안 믿으면서 진실된 사람에게 핀잔을 받는 거예요. '이 녀석아, 너는 믿음도 있었고 잘살 수 있었는데, 왜 이 모양 이 꼴이야. 이놈의 자식아' 하고….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은 통일교회를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알겠지요? 「예」 통일교회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살라는 거예요. 그러려면 통일교회에서 어떤 명령을 하게 되면 누구든지 그 명령을 따라 넘어가야 합니다. 안 그래요? 통일교회에서 제시한 모든 것을 당장에 실천하지 않으면 낙방이예요. 그런 사람은 통일교회 교인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들은 통일교회를 망치는 패들이요,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나라를 망치는 반역 떼거지라는 거예요. 지독한말 같지만….

이것을 실천, 수행하게 되면 승리의 신앙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를 밟고 넘어가지 못하는 자리에는 패자의 서러움이 꼬리를 물고 들어올 것입니다.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도 슬퍼할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나라를 위해서 일해야 됩니다. '삼천만 민족을 위해서 거국적으로 거리에 나서라. 거리를 왕래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 앞에 통고해 줘라. 거국적인 활동을 주도해라. 복음을 전파해라. 나가자! 교회 사정이 내 사정이고, 내 사정이 남의 사정이다, 내 사정보다 교회 사정이 더 공적이다' 할 때, '내 사정이 더 공적인데' 하는 요놈의 패들은 망해야 됩니다. 망해 버려야 해요.

뜻을 위해 산다는 공적인 입장에 서서 자신을 극복하고 일선에 있는 그들을 중요시하지 못하고 후방에 있는 자기의 아들딸을 자꾸 생각하면 안 된다구요. 그런 사람은 망하는 거예요.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데는 언제 결정되느냐? 10년 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병이 나서 죽게 되는 사람은 '아, 나 죽는다' 하면서 갑자기 떨꺼덕 죽는 것이 아니라 벌써 오래 전부터 죽기 시작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거라구요. 대개 말라 죽지요. 말라 죽을 때 한꺼번에 싹 말라 죽어요? 마르는지 어떤지 알게? 「모르게….」 모르게 말라 죽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이에 말라 들어갑니다. 맨 처음엔 머리카락 하나가 마를 거라구요. 그때가 있을 거라구요. 죽음의 시작은 균 하나 때문이예요, 균 하나. 균 하나가 머리카락에 붙었을 거라구요. 이것이 말려들어가 점점 살을 파고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려들게 두면 점점 마르는 거라구요. 그래서 실체 보다도 병균이 파고드는 비중이 크게 될 때는 떨꺽떨꺽하는 거라구요.그러한 요인이 정착할 수 있는 때가 현재라는 거예요. 현재를 초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냐? 예수님이 '때가 이르렀나니' 라고 말씀하셨지요? 지금이 그때입니다. 어제 그런 말 했지요? 지금이 그때라구요. '천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 안에 있다'고 한 그 말이 뭐냐 하면, 사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이 땅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는 거예요. 그 말이 그 말이라구요.

승패는 언제 엇갈리느냐? 현재를 밟고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승리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현재를 밝고 못 넘어가는 사람은 승자가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그건 아는구만. 현재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미래의 승리가 영영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없는 것이다? 「없는 것입니다」 없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현재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명성이 아무리 자자하더라도 내일의 희망과 더불어 찾아오는 승리를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성취하려면 공적인 무대에서 겸손하라

통일가가 바라는 승리는 세계적인 승리입니다. 그렇죠? 「예」 세계뿐만이 아니라 하늘땅을 해방시키자! 하늘땅만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계신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리자! 이런 말을 하면 기성교회 목사들은 그저 기가 막혀 도망갈 것이라구요. '하나님을 해방시켜? 하구요. 해방받지 못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봤자, 그 구원이 뭐 쓸만한 구원이예요? 구원하나마나지. 이런 결론이 난다구요.

구원받으나마나기 때문에 영계에 가던 또 전도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도 지옥을 찾아가 가지고 노아 때 심판받은 사람들을 전도했다고 그랬지요? 예수님도 구원해야 된다구요, 예수님도. 예수 믿는 교인도 구원받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우리한테 달려 있고 예수님도 우리한테 걸려 있다고요. 그럴 수 있는 아들이라면 잘났어요, 못났어요? 그럴 수 있는 아들이 됐다면 하나님이 소원성취하실 수 있어요, 없어요? 있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 아들이 못 됐으면 하나님이 소원성취 못 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소원성취했어요? 이 땅 위에서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시면서 소원성취했어요? 기독교가 지금까지 2천년 동안 나왔는데 소원성취했어요? 망하게 됐는데…. 어림도 없다구요. 예수님을 구원 하겠다고 해서, 하나님을 구원하겠다고 해서 하나님 자신이 기분 나빠하실 것 같아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시지요. 하나님한테 구원받겠다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구원하겠다면, 그 사람은 충신 중에 최고의 충신의 도리를 하는 사람이요, 효자 중에 최고의 효자입니다. 부모를 교육시켜 가지고 박사 만들겠다는 아들이 있으면 그 아들이 불효자예요? 불효자예요, 효자예요? 그런 아들이 효자라구요.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도 구해 드리고 하나님도 구해 드리고 그 다음에는? 세계도 구해 주고, 나는 그만두고 남을 구원해 줘야지 하면서 나는 구원받지 않아도 좋다고 하게 될 때에 '야 이 녀석아, 그만했으면 자랑할 것이지 그게 뭐야, 이 녀석아? 그러겠어요? 그러면서도 '아이구….' 그런 사람이라면…. 이것이 내려가면서 올라가려고 하면 멀어져요? 멀어져요, 가까와져요? 그게 다르다구요. 승리는 보다 더 높이 반비례적으로 커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공적인 승리는 어디 가서 찾느냐? 이거 생각해 보라구요. '어디 가서 찾긴 어디 가서 찾아, 방안에서 찾지. 안방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 펴고 사랑하는 사람끼리 잠자는 자리에서 찾지' 그래요?' 아들딸들 데리고 지내고 이밥에 고기 먹는 자리에서 공적인 승리를 찾지' 어림도 없는 말이라구요. 그런 꿈을 꾸는 사람이 있다면 망해요. 망해야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면 문선생이라는 사람을 잘 알아야 돼요. 자기가 이익 보겠다고 덥석거리는 사람은 상대도 안 하는 사람이라구요. 자기 나름대로 잘났다고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사람, 부자가 돼 가지고 자기 중심삼아 가지고, 뜻도 자기를 중심삼고 감정한 후에 '뜻' 하는 사람보다는 감정하기 전에 딱 보고 믿는 사람을 선생님은 좋아합니다. 죄가 있더라도, 잘못된 점이 있더라도 '뜻' 하면 '아이구' 하는 사람, 허리 아픈 사람보다 더 큰 한숨을 쉬면서 '아이구' 하는 그 사람에게 도리어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겸손을 가르쳐 줬지만…. 공적인 무대 앞에서 겸손해야 돼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무엇을 위해 가느냐? 영광스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누구를 위해 하느냐? 내 처신을 다짐하고 통일교회 위신을 다짐해 가지고 어디 공석에 나서서 말을 하게 되면,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은 이러이러해 가지고 통일교회 체면, 위신을 생각해서 거룩해야지' 그러지 않습니다. 그 거룩거룩 뽑아 버려라 이거예요.

안 되면 미국 사람, 독일 사람들을 들이 까는 거예요, 공석에서. 내가 사람을 좋게 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구요. 들어왔던 천 명 가운데 구백 구십 구 명이 돌아가고 거기에 한 사람만 남게 되더라도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으면 승리라구요. 사고방식이 다르다구요. 안 되면 들이까는 거라구요. 내가 일선에 나가 가지고 가만히 보니까 이거 안 됐다구요. 책임자가 있는데 어떤 영계를 통한 아주머니가 있어 가지고 전부 다 안 된다고 한다고 해서…. 선생님이 뭐 자기 상상내의 선생님인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자기가 태어나 가지고 보지도 못했던만큼 무자비하게 들이친 것입니다.

나는 정치가가 아닙니다. 목적성사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이 모르는 가운데 슬쩍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참이면 참, 근본이면 근본, 실체면 실체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내가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나가지만 현재의 통일교회를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바빠요. 바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여러분이 다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망하지 않습니다. 안 망한다구요.

최후의 승리의 결정점은 천국을 이루는 것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대한민국을 거치고 세계를 거치고 하늘나라 까지 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세계적인 대표 단체가 되어야 됩니다. 이 단체는 국가를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하고 천주를 대신하는 자리까지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먹고 좋아 하더라도 그 좋아하는 것이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 아닙니다. 아직은 채다 좋아하지 못했어요. 기뻐해도 채 기뻐하지 못 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통해서 진짜 기쁜 날이 있었더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불행 하냐? 불행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맞아야 할 것은 지금 현재의 통일교회가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맞이할 것은 기성교회만이 아닙니다. 기성교회를 맞겠다고 하다가 싸우는 날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를 넘어서 기성교회가 바라고 있는 천국을 맞기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를 믿고 혹은 종교의 길을 가는 것은 천국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천국을 위해 믿는 것입니다. 목적이 천국입니다. 우리는 천국의 재료가 되어야 됩니다. 내가 천국을 가기 위해서 믿는 게 아니예요. 천국은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이 되어 있다면 다 편안히 갈 수 있지만, 천국이 되어 있나요? 인간이 타락한 후에 천국이 깨져 나갔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은 부모가 나오기 전에는 천국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타락하지 않은 부모가 나왔어요? 그런 부모를 찾았어요? 못 찾은 입장이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천국을 이루자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입니다. 천국을 이 땅 위에서 이루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후의 승리의 결정점입니다. 여러분, 천국이 이루어졌어요?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말이예요. 단체가 이만하면 단체로서의 규약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통일교회 식구들은 어떻게 해야 되고, 개인적인 생활에서부터 공적인 생활은 어떻게 해야 된다고 하는 규약이 있어 가지고 그 규약에 따라 움직여야 할 텐데 아직까지 규약이 없어요.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헌법이 있어 가지고 그 법에 의해서 각 부처면 부처가 움직이지요? 그렇죠? 우리들에게는 아직까지 법이 없어요. 우리들에게는 헌법이 없어요. 헌법이 있어요? 무슨 국제법이 있어요? 여러분은 그걸 생각해야 된다구요. 내가 밥을 먹고 살더라도 다 갖추어져 있어서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서 밥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나라가 없는 사람들이라구요. 나라가 없는 사람들이라구요.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지만 대한민국이 우리가 바라는 소망의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소망의 대한민국이 아니라구요. 다 지나가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어디에 세울 것이냐? 공중에 세우는 것이 아니고 이 땅 위에 세워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천국 만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어려운 환경은 선조들과 더불어 소화시켜라

천국이 안 되려고 하는 대한민국을 천국 만들려고 하니…. 그래 천국 만들겠다는 패보다 안 만들겠다는 패가 많게 되면 누가 먼저 지치겠어요? 누가 먼저 지칠 것 같아요? 통일교회가 먼저 지치게 마련이예요. 세상 사람들은 지친다는 말도 않거니와 생각도 안 해요. 그 지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우리들이 생각지도 않는 그들보다 못하냐, 나으냐? 우리의 자리가 있느냐? 만약 우리들이 지쳐 쓰러졌다 할 때는, 못 살지 별 수 있느냐. 그들이 '저 자식, 언제는 어떻더니 이제는 뭐 자기 아들딸 중심삼고 살자구, 수작 좋구만'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축에도 못 들어가고 처지는 것입니다. 머무는 거예요. 그래. 누더기 보따리 소굴로 찾아가겠어요? 찾아가 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반대를 받을 동안에는 기성교회를 찾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교회 당회장, 총회장을 찾아가 본 적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누구 위정자들을 찾아가 본 적이 없는 거예요. 만나자고 해도 안 만나는 거라구요. 원하기 전에는 안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고자세가 아닙니다. 내가 아직까지 내 할 일을 다 못 했다는 거예요. 내 갈 길이 바쁜 사람입니다. 시간만 있으면…. 내 갈 길에 바빠요.

자, 여기 지친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어요. 요즘에는 축복받는다고 하다가 축복에 지친 사람도 있다구요. 전도한다고 하다가 전도에 지친 사람도 있어요. 그래, 감옥에 가서 감옥살이하다가 지친 사람은 없지요? 통일교회를 믿다가 감옥에 간 사람이 있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통일교회를 만들다가 감옥에 여러 번 들락날락했지만, 통일교회를 믿다가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감옥에 간 사람은 없다구요. 자기가 잘못해서 감옥에 가는 것이야, 뭐….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청춘시대에 지칠 수 있는 때도 많았지만, 지치지 않으려고 얼마나 안달했는지 알아요? 그것이 그냥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어의 몸이 되어 영육으로 바쳐지는 자리일수록, '하나님이여. 나를 동정 하지 마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어렵게 될 때는 절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되면 기도를 안 한 사람이라구요. 심각하다구요.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이야기를 안 해요.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나의 최고의 지혜를 다하고 최고의 정성을 들여 가지고 어떻게 이 어려운 환경을 하나님이 나로 말미암아 녹여낼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느냐? 한 것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내가 구원받자 한 것이 아닙니다, 이 어려운 심정적 동기를 관련 시켜 가지고 하나님이 통곡하게 하고 분함과 원통함에 사무쳐 이것을 들이치실 수 있게 하는 놀음을 어떻게 하느냐? 다시 말하면 원수의 적진을 격파시킬 수 있는 심정의 폭발력을 어떻게 자극하느냐? 그런 면을 생각 했다는 거예요. '아이구, 내가 어서 빨리 나가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배가 고프면 '이놈의 배야 고파 봐라' 이거예요. 배고픈 자리에서 심각한 제목을 걸어 놓고, 앞으로 세계가 가야 할 탕감복귀노정을 걸어 놓고, 배고픈 것 이상 심각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부여안고 눈물 흘린 때는 있었지만, 그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다구요. 감옥에 들어가서도 누구보다도, 평상시보다도 더 정성을 들여서 기도하는 놀음은 했지만, 매맞고 들어와서 '아이고 다리 아파 죽겠다. 허리 아파 죽겠다' 하고 흥얼거리지 않았습니다.

아픔이 느껴져 올 때 '이 아픔을 누구와 더불어 소화시킬 것이냐? 역사상의 우리의 선조들과 더불어 소화시켜야 되고, 미래에 우리 민족이 가는 수난길을 내가 가로막기 위해서, 심정적 터전을 넓히기 위해서 소화시켜야 할 아픔이 아니냐. 아파라! 아픈 것이 정상이다' 하며, 아픈 몸으로 자리에 누워 오른손으로 왼손으로 민족을 품고, 나보다 더 불쌍하게 죽어 간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선조들을 위로하고 해원해 주기 위해서, 민족의 수난길을 다짐하는 입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때는 많았지만, '아이구, 못 살겠다' 그러질 않았습니다.

보리밥을 대할 때에도 선조들이 배 고팠던 걸 생각하면서, 이 밥은 우리 선열, 선조들의 피가 연이어 맺어진 결실인데, 내가 그것을 먹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젓가락은 부러진 젓가락이요. 밥은 찌꺼기 밥이지만…. 그 도시락이 나무통이라구요. 그 밥을 먹으려고 나무 꼬챙이로 쑥 이러면 말이예요. 찌꺼기가 이렇게 묻어 나와요. 그럴 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위신과 체면을 아는 나지만, 그렇다고 그걸 긁어내고 먹지 않았어요. 그냥 그대로 다 먹는 것입니다. 심각하다구요. 보리 한 알이 우리 선열들의 피의 결정체라고 하게 될 때 심각한 것입니다.

거기에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에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하지 않아요. 입을 다물고 있어도 하나님이 영계를 통해서 전도를 해주시는 거라구요. 그런 입장에서 나왔기 때문에…. 만약에 그런 사람들이 망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망해야 됩니다. 나를 치려고 하던 무리들은 어쩌면 그렇게 다 꺾여 나갔는지…. 내가 평양에 가 있을 때 나를 잡아 넣으려고 하던 사람들, 하나님이 그들의 자식들까지 전부다 쓸어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그걸 내가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선을 치는 사람은 지극히 빨리 망하는 것입니다. 벌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승리는 비참하고 심각한 자리를 거쳐야 얻어져

그러면 승리는 어디에서 오느냐?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는 데는 영영 승리는 없는 것입니다. 김인주! 옛날에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선생님을 문살 사이로 바라보고 울 때가 좋았지? 통일교회 선생님 만나러 다닌다고 붙들려서 쇠고랑을 차고 반대를 받으면서, 몸뚱이가 퉁퉁 붓고 다리도 붓고 목덜미가 부어 가지고도 있는 힘을 다해 벌벌 기어 문틈으로 내다보면서 통일교회 선생님이 문 앞으로 지나갈 것이 아니냐 하고 허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기다리던 그때가 더 좋았을 거라구요. 그때가 좋은 때야? 김인주! 좋은 때였어? 여러분 요즘엔 뭐 그래요?

내가 지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더라도 부러운 것이 없다구요. 그렇지만 거기에는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그것을 처결할 시간이 없어요. 무슨 뭐 돈 짜박지, 땅 짜박지, 집 짜박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구요. '방 한 칸이든 뭐든, 죽더라도 내 나라에서 죽어야 되겠다. 하나님이 보호할 수 있는 그 나라에서 죽어야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렇게 살다 가지 못하면 그 생애는 비참한 생애가 아니냐? 그러니 죽기 전에 하루라도 그 나라를 찾아가야 되겠다' 이것이 선생님 일생의 소원입니다. 그 한날을 위해서는 수천 날의 희생을 투입하자는 마음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쉬더라도 나는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못 하면 외국인을 움직여서라도 해야 되고, 대한민국이 못 하면 외국을 통해 포위작전을 해서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승자는 기쁜 것이요. 패자는 서러운 것입니다. 왜 기쁜 것이냐? 승리의 기쁨은 누구와 더불어 기쁜 것이냐? 가족과 더불어 싸웠으면 가족과 더불어, 동역자와 더불어 그 승리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반면에 같이 싸우다 망하게 되면 같이 싸운 그 무리 전체가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누구와 더불어 싸우느냐? 나 홀로 싸우지 않습니다. 다르다구요. 아버지와 더불어 싸우고, 천상세계에 가 있는 모든 선지선열들과 더불어 싸우고,기독교를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오다 순교한 선열들과 더불어 싸웁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도의 세계에 있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바라고 나오는 사람들이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사람들을 대표한 자리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들이 여기에 참전해 싸우지 않지만, 영계를 통하는 그들은 나와 더불어 싸우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나는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리를 초월해서 내가 움직이고 내가 가는 길을 영적으로나마 알고 있는 사람들이 무수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그러한 사람들과 더불어 입체적인 입장을 대표해 가지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싸움의 대상은 무엇이냐? 먼저는 개인이요, 그 다음은 가정이요, 그 다음은 종족이요, 그 다음은 민족이요, 그 다음은 국가입니다. 지금은 어느 단계까지 왔느냐? 종족을 제물삼아 민족과 국가의 해방을 위해 싸워 나가는 때입니다. 여기에 동참한 참전자들은 영계와 육계의 보호를 받으면서 같이 싸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패하는 날에는 지상에서의 아무개라는 이름과 관계되어 있는 통일교회가 패하는 서러움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천상세계와 도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 전체가 슬픈 비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갈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이냐? 아담 해와의 비참보다도 몇 백 배 비참한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거예요. 아담 해와는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 하였기 때문에, 완성기라는 한계선이 남아 있으므로 하나님이 손을 대셔서 소망을 줄 수 있었지만, 우리 때는 완성기에서 종결을 바라보는 때이기 때문에 만약 패자의 서러움을 맞게 될 때는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 이상 비참한 역사를 다짐해 가지고 승리의 터전을 개척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오더라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길이 없는 거라구요. 심각한 자리라구요. 한번 헛디디는 날에는 억천만사가 수포로 돌아가는 심각한 자리인 것입니다.

선생님이 뜻을 대해 가지고 심각한 기점에 나서게 되면 부들부들 떨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자리가 하나님이 바라시던 자리인가, 역사시대에 있어서 최고로 심각한 숨막히는 정상의 자리를 거쳐 나가는 순간인가, 생각해 보라구요. 전무후무한 역사적 인연을 하나님의 소원의 일점과 더불어 전체 앞에 긍할 수 있는 기초작업이 여기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내 한 숨결은 억천만의 생명을 죽음의 자리에서 살려 주는 부활의 호흡을 주입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각한 자리를 거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재림주는 타락의 경계선을 첫번째로 넘어가는 사람

보라구요. 인류의 소원이 무엇이냐? (판서하심) 이게 타락이예요. 타락의 부모가 나왔다구요. 그래 가지고 선과 같은 자리에서 개인이 전부 다 이렇게 떨어져 나갔습니다. 종족, 민족. 전부 다 갈라진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전부 다 여기서 이렇게 되어 갈라진 거라구요. 역사에 도인들이나 성현들도 전부 다 갈라진 것입니다. 이렇게 나오면 갈라지는 거예요. 수많은 국가가 쭉 세워졌어요. 여기서 국경선이 시작된 거라군요. 이것이 끝날입니다.

끝날이 있는데, 이 끝날에 국경선을 처음 넘는 사람이 누구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처음으로 국경선을 넘는 사람이 있을 것이 아니겠어요? 여러분은 모르지만 있을 거라구요. 타락했으니 말이예요. 타락하지 않은 선을 첫번째로 넘어갈 사람이 누구냐? 그런 사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완성시대는 오지 않습니다. 그 선을 첫번 째로 넘는 사람이 재림주라는 거예요. 그 선을 첫번째로 넘으려면, 요 자리를 넘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타락의 인연을 가지고는 절대 넘어 간다, 못 넘어간다? 「못 넘어갑니다」 못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와 가지고는 더 나가려니 나갈 수 있어요, 없어요? 지금 세계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로 갈라져 있습니다. 요걸 중심삼아 가지고 위쪽은 민주세계요, 아래쪽은 공산세계입니다. 이렇게 세상은 갈라져 있어요. 위쪽은 하늘편이요, 아래쪽은 사탄편입니다. 하나는 마음적이요, 하나는 몸적입니다. 사상적으로 볼 때, 민주세계는 마음적이기 때문에 유심사관이요, 공산세계는 몸적이기 때문에 유물사관입니다.

이 두 세계가 딱 서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딪치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부딪쳤다구요. 공산세계도 부딪쳤고, 민주세계도 부딪쳤습니다. 어떻게 될 것이냐? 공산당 그 자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부정해야 합니다. 부정해도 갈 길이 없습니다. 민주세계도 부정해라 이겁니다. 거기서 헤어날 길이 없다 이겁니다. 갈 길이 없는 거라구요. 못 간다 이거예요.만일 넘어갈 수 있다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민주세계 사람들이 나라를 가지고 있으니 먼저 넘어갈 수 있잖아요. 그렇잖아요?나라를 갖춰야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나라를 갖춘 민족이 먼저 넘어갈 것입니다. 그렇지요? 안 그래요? 세계에서 머리 좋은 민족이 넘어갈 수 있다면, 어느 민족보다 유대민족이 먼저 넘어갈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지만 넘어가는 데는 어떤 사람들이 넘어 가느냐? 세계의 주도적인 권한을 가진 나라도 못 넘어갑니다. 오늘날 공산주의가 세계적인 공산주의가 되었지만 못 넘어갑니다, 넘어가면 하나님이 없는 거라구요. 세계가 못 넘어가는 거라구요.

세계가 넘어가기 전에 무엇이 넘어가야 되느냐? 세계가 넘어가려면 그전에 어떤 나라가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세계가 넘어갑니다. 그렇지요? 안 그래요? 어떠한 나라가 넘어가려면, 나라가 한꺼번에 넘어갈 수 있어요? 어떠한 종족이 먼저 넘어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이렇게 따져 볼 때, 어떠한 종족이 넘어가려면, 종족이 한꺼번에 넘어갈 수 있어요? 어떠한 대표적인 가정이 넘어가야 됩니다. 어떠한 가정이 넘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떠한 개인이 먼저 넘어갔다가 와서 가정을 이뤄 가지고 그 가정을 인도해 가지고 가야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경계선을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은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입니다. 결국 한 사람이 넘어가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그 사람은 이 민주세계권내의 한 사람이요, 어떤 특정한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한 사람이요, 특정한 씨족에 속한 한 사람이요, 특정한 가정의 일원으로서의 한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그 가정은 세계적인 가정이예요. 그 가정이 속해 있는 씨족은 세계적인 씨족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지만 그 개인은 자신이 그러한 책임, 그러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만이 아느냐?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주께서 오실 날은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누구만이 안다구요? 「아버지요」 아버지밖에 모릅니다. 아버지만이 알 수 있는 데서, 아버지가 아는 그 뜻과 더불어 하나의 가정이 일치된 자리에 서 가지고 같이 좋아할 수 있는 정상에 서 가지고, 공동운명의 인연을 이어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아버지를 잘 아는 인연을 가진 사람이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포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소위 메시아라는 분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바라는 재림주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사탄을 이겨야 한다

재림주는 세계를 이기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외적 세계와 싸워서 이기고 오는 것이 아니라구요. 남들은 쉬지만 달려가는 것입니다. 안달복달 안달복달 안달복달 하면서 빨리빨리 경계선으로 가는 것입니다. 경계선에 부딪치는 것입니다. 사망선이 어떠한가, 생명선이 어떠한가 부딪쳐야 됩니다. 전체를 대표한 자리에서 홀로 부딪쳐 가야 되는 것입니다.

홀로 부딪치는 데에는 전체를 대표한 선한 신이 있는 것이요, 전체를 대표한 악한 신이 있는 것입니다. 악 중의 악이요, 선 중의 선이라는 것입니다. 전체를 대표한 선신이 세계를 버리고라도 그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고, 악신이 자기의 세계를 버리고라도 그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자리에서 출발하여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넘어가는 거예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사람이요, 사탄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승리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요, 사탄을 승리하게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하늘나라의 비밀도 알고 있고, 사탄나라의 비밀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하늘나라의 주권자라도 그 주권자가 여기에서 틀고 돌아가기 전에 그 사람이 사탄과 짜 가지고 틀고 돌아가게 되면 넘어가는 것입니다. 또 그가 하나님과 하나되어 틀고 돌아가게 되면 반대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누가 믿느냐? 하나님이 믿는 것이 아니요, 사탄이 믿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싸울 데가 있어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사탄을 이겨야 합니다. 사탄을 이기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비결이 뭐냐? 사탄한테 승리해야 됩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비결은 뭐냐? 사탄 앞에 승리한 것, 사탄을 굴복시킨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해서 이겼어요. 그것은 악한 사탄의 공격을 대신해서 하늘편이 먼저 친 것입니다. 왜? 사탄이 치게 되어 있는데 하늘이 먼저 쳤다면 야곱은 기회만 있으면 또다시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지더라도 '하나님이 협조를 안 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협조를 못 받았기 때문에 내가 졌다. 이제 내가 기도를 하고 협조를 받으면 나는 안 진다' 하고 또 씨름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과의 인연, 하나님이 사지 사판에 내몰아 들이쳤다는 것은 또다시 인연지어 가지고 싸울 수 있는 조건을…. 하나님이 쳤기 때문에 지고 나서도 '하나님은 나를 좋아하지 않고 나를 반대했기 때문에 내가 졌소. 하나님이 내 편이 된다면 난 안 져요' 하게 되면, 하나님이 '오냐. 그럼 다시 한 번 해봐라' 해서 또다시 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을 반대의 자리에 처넣는 때가 가끔 있습니다. 보통 책임을 안 지고 따라가는 입장에 있는, 사랑에게는 그런 놀음을 안 시킵니다. 책임진 사람에게 그런 놀음을 시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모세도 죽을 자리에 내몬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가 책임자라는 것입니다. 노아도 죽을 자리에 내몰았습니다. 아라랏산 꼭대기에 방주를 짓게 했어요. 아라랏산의 높이가 몇 미터예요? 5천 몇 미터나 된다는 거예요. 정신 없으면 죽을 수 있는 놀음이라구요. 이렇게 죽을 자리에 내몬 것입니다.

야곱이 21년간 도를 닦아 가지고 한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세일 땅 형님이 있는 고향산천을 찾아가는데, 21년 동안 그 한날을 기다렸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쁨으로 '잘 가라. 잘 가라'고 해야 할 텐데 천사를 보내 얍복강가에서 '야, 이놈의 자식아' 하고 씨름을 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천사한테 지는 날에는 21년 동안의 고생이 나무아미타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천사를 악착같이 붙잡고 내 손이 빠지기 전에는 놓지 못하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팔이 꺾어지더라도 못 놓겠다고 한 거예요. 이거 얼마나 지독해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그래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한번 잡는 날에는 팔이 뽑아지고 뼈가 한꺼번에 쑥 뽑아지는 한이 있어도 '오냐! 내가 못 놓는다' 하는 싸움 해봤어요? 생명을 내놓고 대들어야 된다구요. 천사가 씨름하자고 할 때, 야곱이 '좋소. 그러지' 그랬겠어요? 야곱이 얼마나 심각했겠어요. 천사는 심각하지 않았을는지 모르지만 야곱은 심각했다는 것입니다.

다윗하고 골리앗 대장이 싸울 때 누가 더 심각했겠어요? 골리앗 대장이 심각했겠습니까, 다윗이 심각했겠습니까? 골리앗은 다윗을 보고 '뭐야 돌팔매로 블레셋 장군인 나를 때려잡겠다고?' 하면서…. 그거 기가 막힌 놀음이라는 거예요. 그렇지요? 골리앗은 싸움을 농거리로 대했다는 것입니다. 싸움은 농으로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세계의 복싱 챔피언 누구예요? 클레이하고 싸운 사람 누구예요? 「프레이저입니다」 그 둘이 싸움을 하는데 '뭐야 이놈의 자식' 하면서 '클레이 시대라고 자랑하던 클레이 이 녀석, 교만이 하늘땅에 찼어, 이 자식아. 꺾여져라, 이놈의 자식…' 나는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조그마한 프레이저가 통일교회라면 클레이는 공산당이라구요. (웃음) '잘 싸워라' 하면서 나도 같이 쳤어요. '쳐라, 쳐라' 하면서 내가 신이 났었다구요. 그래, 그 큰 녀석이 나가 자빠져서 다리를 뻗을 때 '잘 넘어졌다, 이 녀석아' 하면서…. (웃음) 그런 것 보면 통일교회 문선생도 악착같은 데가 있고 지독한 데가 있다구요. 시간이 많이 갔구만.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사탄한테 이겼다는 영수증을 받아 와야 합니다. 그 영수증을 사탄한테서 받아 오기 전에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그런 말 들어 보았어요? 성경에 그런 말이 있어요? 사탄한테 영수증을 받아 와? 하나님한테 영수증을 받아오는 것이 아니고? 천국에 들어가는 티켓은 누가 주느냐? 하나님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이 주는 거예요. 사탄이 '나는 할 수 없어. 이 이상 난 할 수 없다. 만일 저 녀석한테 손을 대었다가는, 저 녀석이 입만 벌리게 된다면 내가 옥살박살난다, 다리만 잘리는 것이 아니라 모가지까지 잘릴 판이구나. 국물도 없겠다'고 하면서 그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가려고 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사탄이 제일 좋아하지 않을 거라구요. 좋아하지 않지 않지요? 어떻겠어요? 좋아한다고 그래요? 그런가 보라구요.

통일교인이 가야 할 길

민주세계에 원할 수 있는 것이 여럿 있지만, 그 민주세계를 지도하는 하나님이 안 좋아하실 수 없는 사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의 아들에게 이길 수 있게 하는 특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사탄을 이길 수 있게 하는 특권을 갖고 있는 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구요. 하나님이 대접을 잘 해주시지 않을 수 없다구요.

그러면, 사탄은? 사탄이 대접을 해주겠어요? 사탄은 극성맞게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구요. 극성맞게 반대하는 사탄은 세계를 갖고 있고 하나님은 한 사람을 가진 것입니다. 세계는 사탄편이고 하나님편은 혼자인 것입니다. 혼자 있는 하나님편에 세계는 반대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길을 가는 사람은 심각한 사명을 놓고 엘리야처럼 '나만 남았나이다….' 하는 자리에 서야 되는 거예요.

제물이 없으면 여편네라도 잡고 자식이라도 잡으라는 말이 실감나요? 그런 것 알아요? '이놈의 자식이 원수로구나. 이놈의 여편네가 원수로구나' 그런 것을 느껴 봤어요? 선생님은 그런 것을 다 느껴 본 사람이라구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아브라함이 칼로 자식을 잡아 제물로 드리려고 한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자식과 처와 어미 아비까지 한칼에 잡아 제물드려 가지고 하늘이 원하는 길을 갈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터전 위에 서 있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무서운 곳이라구요. 잘못 따라가다가는…. 이것이 불발탄이 된다면 더 이상 무서울 수 없는 원자탄 불발탄이 된다구요. 잘못 건드렸다가는 이것이….

지금 때로 보면 다 부딪혔다구요. 민주세계도 후퇴해야 되고 공산세계도 후퇴해야 되는데, 어디로 갈 것이냐? 그런데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후퇴하려고 해요? 민주세계 꼭대기를 밟고 올라가겠다고 생각하지요? 공산세계 꼭대기를 밟고 올라가겠다고 합니다. 그저 올라가 가지고 어떡할 것이냐? 두 발자국 밟고 올라서서 쳐 버려야 된다구요. 올라서면 그 놈들이 가만 있겠어요? 밟고 올라선다고 싫다고 하는 거예요.

밟고 올라서 가지고 무엇을 잡으려고? 하나님을 붙잡으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잠깐 밟고 올라서야 되는 거라구요.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구요. 밟고 올라서서 하나님을 붙들게 되면 죽더라도 안 놓는 거예요. 안 놓는다구요. 6천년 동안 그렇게 기가 막히게 찾아와서 겨우 만난 분인데, 놓겠어요?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못하는 것은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대표해서 나라와 더불어 붙잡은 것입니다. 그렇게 붙잡아야만 하나님이 할 수 없이 '야야, 내려가자 내려가자' 하게 되어 비로소 땅 위에 군림해서 자리를 잡게 되면 하나의 선의 주권국가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그럴것 아니예요? 하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살림살이를 한번 해보고 싶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민주세계의 기독교를 대해 가지고 선전포고를 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통일교회 앞에 굴복할 거예요. 통일교회 발길에 밟힐 거라구요. 이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신념입니다. 기가 막히지요. 기성교회 목사들이 여기에 왔으면 아주 배꼽이 들락날락할 거라구요. 들락날락해도 할 수 없어요. 배꼽이 터지고 튀어 나와도 할 수 없다구요. 사실이니까. 그리고 공산당을 때려잡는 것입니다. 이 두 놈들을 산채로 잡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죽을 수 없다구요. 그게 안 망하면 내가 죽을 수 없어요. 악한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 죽어야 돼요. 그렇게 반대하던 악한 나라, 그렇게 못 살게 굴던 공산당이 망하는 것을 보고 죽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억천만세에 한을 남기게 된다구요. 그러면 여러분과 여러분의 후손이 이 한과 더불어 또다시 비참한 운명길에서 투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통일가가,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승리의 영광을 이어받으려면

우리가 현재에 있는 것은 이 자리에 있기 위한 현재가 아닙니다. 미래를 이어받기 위한 현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이어받기 위해서는 미래의 모든 영광과 권한을 가로막고 있는 사탄을 격파해야 됩니다. 격파작전은 어떻게 시작해야 되느냐? 사탄을 격파하는 데는 포위작전이 아니면 격파할 수 없습니다. 그 길밖에 없다구요. 사탄을 때려서 굴복시키는 전법이 아니라는 거예요. 사탄에게 맞고 굴복시키는 전법이니까 포위 작전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포위작전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그러니 희생이 많은 것입니다. 적국이 부국이요 강국일수록 그 나라를 포위하려면 거기에 해당되는 희생을 치러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의 전선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치열한 전투를 여러분은 몰랐지만 하나님은 지금까지 개척해 나와 가지고 이만한 한계선에 왔기 때문에…. 이제야말로 숨가쁜 최후의 대결을 해야 될 때입니다. 세계의 모든 국가, 아시아 전부가, 여러분에게 얘기할 수 없지만, 최후의 판결을 내릴 때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되는 것은, 밤잠을 제대로 다 자고 승자가 된 사람은 그 승리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덟 시간 자야 할 것을 한 시간만 자고 일곱 시간을 전선을 위하여 장비를 준비한 장병이라면, 그러한 수고를 투입시켜서 승리했다면, 그러한 수고를 투입시키지 않은 사람과 비교할 때에 승리의 환희의 심정이 팔 배 이상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선에서 편안한 가운데 싸움을 하는 사람들은 그 전선에 있어서의 승리를 가져 올 수 있는 주체적인 병사의 사명을 못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자기 일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생사지권을 넘어서 적군을 대해 투쟁해 가지고 승리를 하게 될 때에는, 그 치열 하고 비참한 입장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가지고 승리를 가져 온 그 장병의 승리의 영광을 따를 자가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을 때 이 세상에서 제일 기뻐할 사람이 누구일 것이냐 하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제일 기뻐할 것입니다. 거기에 이의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님보다 더 기뻐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제일 기뻐할 수 있으려면 제일 심각한 책임을 지고 심각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최후의 판가리 지점에 서서 사령관의 책임을 해 가지고 승리를 하게 될 때, 제일 기뻐할 사람은 그 사령관입니다. 병사들이 죽음을 치러 가지고 승리했지만, 병사들이 전체적인 승리를 가져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령관이 승리했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사령관은 누구보다도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병사는 낮에 피 흘리는 싸움을 하더라도 밤에는 마음 놓고 잠잘 수 있지만, 사령관은 밤잠도 못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누구보다도 고생했다는 거예요. 심신을 통해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정성을 들이며 전체의 운명을 책임진 자리에서, 보다 공적인 자리에서 수고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승리의 영광은 사령관에게 돌아가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패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

싸우는 것은 자기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죽을 때도 안 죽겠다고 하면서 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최후의 패전이 벌어지게 될 때, 사령관은 병사들을 대표해서 고이 죽어 갈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됩니다. 대표로서 자기 하나가 죽음으로 전체를 사지에서 구하고 용서를 빌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는 비록 패자일망정 역사에 이어질 수 있는 미래의 소망을 남겨 놓고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요, 안 그래요? 패했다고 서러운 것이 아니라구요. 패한 자리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도 있어요. 아까 말한 것과 같이 패한 자리에서도 살아 있게 된다면 그 목숨은 환영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은 인생행로에 있어서 패자가 됐지만, 패자로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이 뭐냐? 자신이 만민을 대신해서, 사령관과 마찬가지로, 만민의 죄를 품고 자기 하나가 죽는 것입니다. 만민의 죄를 용서받기를 바라며 죽음길을 간 사람은, 패한 장군이 미래의 소망의 터전을 남기는 거와 마찬가지로, 패자일지라도 미래에 승리할 수 있는 소망의 자리를 남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희생의 도리를 강조하고 이 희생정신을 뿌리로 하고 있기 때문에 천국을 이룬다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이 민족이 하늘 뜻 앞에 서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여러분은 천년의 한을 품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심정에 사무치면서 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에 수난이 가해지면 가해질수록 그 배후에는 언제나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기도하는 것과 선생님이 기도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과 다르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세계적인 전선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예민한 생각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아시아의 문제를 중심삼고 대한민국내에 어떤 주권자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일본의 그 누구를 내세운 데에는 여기에 서 있는 이 사람의 말이 영향을 미친 것을 그 누구도 모르고 있습니다.

패자의 서러움을 맛보는 사람도 그 누구보다 책임을 졌던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지요? 또, 승리의 기쁨을 느끼는 사람도 그 누구보다도 책임을 졌던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패자는 될 수 없습니다. 내 일가를 망치는 놀음이 있더라도, 통일교회의 가정들이 망하는 놀음이 있더라도 통일교회가 패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전부 다 희생시키더라도 통일교회의 뜻을 망하게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걸 알아요, 몰라요? 그런 줄 알아요? 「예」 내가 현재에 있어서 삼천만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는 소수의 통일교회의 무리를 어떤 의미에서는 무자비하게 서슴지 않고 죽음의 함정에 처넣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이미 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실천과정에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의가 없는 거예요. 난 어려워서 못 하겠다고 그러지 못하는 거라구요. 이 뜻 앞에서는…. 이미 출전 명령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사정을 중심삼고 못 가겠다고 하는 말은…. 그런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패하는 운명의 전선에 선 도피자의 심정이요, 후퇴자의 심정입니다. 이런 사람은 즉결 처분하는 거예요. 세상에서도 그렇지요? 하나님의 뜻을 책임진 노정에서 그럴 수 없는 것이 기가 막히고 비참하다는 것을 내가 느낄 때가 많습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내 후손이 할 것입니다. 이게 더 무섭다구요. 이런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승패는 현재가 문제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역사적 유물인 흥운권을 인계받으려면

오늘 이 시간까지 나온 우리가 망할 수 있는 운세에 섰느냐 흥할 수 있는 운세에 섰느냐 하는 것을 두고 볼 때에, 망할 운세에 섰을 때에 끝까지 지키고 설 수 있는 책임자가 될 것이냐 흥할 운세에 있어서 책임을 다하고 위해 나설 책임자가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망운에 처했다면 생명을 각오하고 나서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흥할 운세권내에서는 일시에 원수를 공격하여 역사적인 한을 타파해 버리고 최후의 승리를 거두기 위한 최후의 결의를 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지금 통일교회가 망운에 섰어요, 흥운에 섰어요? 어때요? 「흥운에 섰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흥운에 섰어요. 망운에 섰어요? 통일교회는 흥운에 서 있는데, 여러분들은? 「흥운에 서 있습니다」 흥운에 섰어요? 「예」 그럼 여러분한테 당장에 북괴 김일성이 모가지를' 잘라 오라고 하면 따 오겠구만? 「그러겠습니다」 보다 공적인 입장에 서라구요.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이 도성을 지킬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나서면서 죽음을 각오한 사람입니다. 뭐 살겠다고, 시시하게 살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아직까지 최후의 모험을 못 해본 사람입니다. 내가 있는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맹세한 기준인, 이제야말로 때를 맞이했다고 하면서 내게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가지고 선두에 서서 총공격의 명령을 하면서 달리는 그런 날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내 일생에 군대생활을 못 해본 것이 한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앞에 최후의 전선이 전개될 때 그래야 되겠다, 내 나이 50이 넘었지만 선두에 서서 싸워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생각해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이미 흥운권에 서 있는데 누구로 말미암아 흥운권에 서게 됐는가를 생각해 보라구요. 통일교회가 흥운의 자리까지 왔는데, 이것이 여러분이 가져 왔느냐 역사가 가져다 주었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래, 여러분이 가져 왔어요? 이 운세권을 여러 분이 가져 왔느냐. 역사가 갖다 주었느냐? 「역사가….」역사가 갖다 준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유물이지, 여러분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은 억 천 만세의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피의 대가로 말미암아 우리 시대까지 고이고이 연이어져 온 전통적 제단으로서, 우리에게 남겨진 역사적인 유물로서, 우리는 이것을 보관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유물로 맞아진 것이지 여러분의 소유로 맞아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소유하려면 역사를 이겨야 됩니다. 그렇지요? 역사를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선지선열들이 이 길을 위해 죽음길을 다짐하고 죽어 갔던 피눈물의 억울함을 우리가 대신 전부 책임질 수 있는 책임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신념과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가 맡겠으니 맡기러 어서 오소서' 해 가지고 이어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현재 통일교회의 운세의 자리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것이 되게 하려면 역사적인 유물을 중심삼고 현재에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것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나도 역사적인 동참자로서 주체가 되든가 상대가 되든가 둘 중의 하나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런 운명에 서 있는 것입니다.

자, 동참하지 않고 인계받을 수 있어요? 여러분은 동참했지요? 그런데 동참해 가지고 '아이구, 좋아. 바라던 것을 다 찾았으니 이젠 됐어. 안방에 들어가 쉬면서 편안히 살자. 하나님도 나 위해 있지' 이렇게만 살아 보라구요. 그런 사람은 역사적인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 가외는 어떤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은 역사적인 원수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세계에도 없는 골동품이 있다고 합시다. 요전에 뭐라고 그러던가요? 다이아몬든가 그게 뭐, 희망의 반지라고 해 가지고…. 그게 돌고 돌다가 이리로 왔다구요. 그 골동품이 어떻게 인연이 되어 가지고 이 시대에 여기에 왔는데, 여러분이 지금 관리하고 있는 거라구요. 통일교회 뜻을 관리하고 있지요? 소유자는 아니라구요. 역사적인, 공적인 것이기 때문에 잘 관리해야 된다구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관리자가 여기에 흠을 냈다 할 때는 어떻게 되느냐? 그 사람은 역사에 길이길이 기억되는 것입니다. 좋은 의미에서?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은 영원을 두고 그 사람을 참소할 것입니다. '그 놈의 자식, 그 따위 녀석이 다 있었구만!' 그럴 거라구요. 그러겠지요? 혼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뜻을 세계에 없는 역사적인 골동품이나 유물단지에 비할 수 있어요? 이것은 역사 이래에 전무후무한, 한 번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의 관리권이 문선생이란 사람의 일생을 중심삼고 여기에 인연된 사람들에 한해서만 특권적으로 부여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이때는 역사의 기원도 되는 때요. 인생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소원은 참부모를 맞는 것

지금까지 역사적인 소원이 뭐냐 하면 참부모를 모시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맞기 위한 것이라구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세우신 것은 메시아를 맞기 위한 것입니다. 메시아가 누구냐 하면 참부모입니다. 또한 기독교와 기독교 문화권을 만든 것은 재림주를 맞기 위한 것입니다. 재림주는 누구냐 하면 제 3차 아담으로 오시는 참부모입니다.

참부모가 오실 때가 되면 세계의 모든 국가가 형제의 인연을 가지기 때문에, 제 2차 세계대전 후에 전승국가가 패전국가를 전부 다 해방시키는 놀음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형님된 입장에서 동생을 때려잡았으니, 동생에게 복을 빌어 주지 않으면 오시는 부모에게 벌을 받겠기 때문에, 그런 비정상적인 역사적 현상이 벌어져 나온 것입니다.

역사가 바라면서 찾아 나온 것이 뭐냐 하면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종교가 나오는 것도 참부모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세계가 나오는 것도 참부모를 찾기 위해서, 나라가 나오는 것도 참부모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참부모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부모가 둘이 있을 수 있어요? 오늘날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하고, 통일교회에서도 문선생을 뭐 '아버님' 라고 하고 있지만 말이예요.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아버님하고 북한에서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둘이 맞섰다구요. 귀한 것이 나왔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귀하다구요. 세계가 귀하다구요. 이 둘이 서로 자기가 부모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도 그 부모는 내 것이라고 하고, 사탄도 그 부모를 내 것이라고 하면서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을 공적으로 누가 공판지어야 되느냐? 인간이 지어 주는 거예요. 인간이 '우리의 부모는 이런 분이라야 됩니다'라고 해 가지고 부모를 선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타락한 부모는 이래서 악한 부모요, 선한 부모는 이래서 선한 부모입니다. 선한 부모를 찾아 나오는 것은 사탄이 아니고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한 부모의 아버지입니다' 이렇게 들고 나서서 결정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어디에 귀결되느냐? 참부모를 만나는 데입니다.

그래, 부모가 둘이 있을 수 있어요? 한번 죽은 부모가 천년 후에도 다시 벌떡 나타나요? 인류의 부모가 한 번 나타나는 것이 역사의 소원이요, 국가의 소원이요, 사상의 소원이요, 섭리의 소원이기 때문에 그 부모가 나타나는 때는 전무후무한 때요, 역사상에 한 번밖에 없는, 뭐라고 할까? 꼭대기라구요. 좁다면 얼마나 좁을까요? 영원한 세계를 두고 보면 인간의 일생이라는 것은 숨 한 번 쉬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렇지요?

여러분들이 재수가 있어 그런 건지, 복이 있어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해서 이 시대에 생을 지녀 가지고 이 한때를 만나 통일교회에 들어왔어요. 통일교회에 어떻게 들어왔어요? 여러분을 이 자리에 들어오게 하기까지에는 수많은 선조들이 정성을 들이고 또 들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망하고 선이 밟히는 자리에서 죽어 갔지만. 그 천 사람 만 사람의 인연을 거쳐서 돌고 돌아 그 인연이 하늘에 이어져 가지고 해가 떠오르는 높은 산과 같은 입장에 섰기 때문에, 거기에서 햇빛을 바라보고 모여든 사람들이 여러분인 것입니다.

이때는 인류역사에 있어서 사랑이라는 인연이 나온다면, 그건 처음 나오는 때라구요. 그러므로 생명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때가 있다면 이때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라와 세계의 주권을 보다 가치 있는 내용으로 긍정시킬 수 있는 때도 이때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때는 역사의 기원이요, 희망의 초점이요, 만복의 출발이요, 영원한 생명의 발원지라구요. 그럴 수 있는 때입니다.

타락한 세계는 미래의 소망을 찾아 나왔지만, 미래에는 이때가 영원한 소망의 기준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때를 중심삼고 여러분이 이렇게 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이때의 심정을 체득해 가지고 나가 세계를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때가 그러한 때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이 팔자가 드세서…. 그렇기 때문에 그런 정상의 실체로 온 참부모는 참부모의 심정의 자리에 속할 수 있는 규범을 따라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건 여러분이 모를 거예요.

부모와 자녀가 지녀야 할 심정적 자세

그 부모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한 부모이기 때문에 악한 부모와 달라야 되는 것입니다. 악한 자식을 대해서는 어떻게 대할 것이냐? 역사상의 어떤 부모보다도 후덕을 가지고 대해야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비참한 운명에 처한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입장에 섰더라도, 거기에 걸리지 않고 도리어 울면서 좇아가 천만세의 한과 더불어 애원하고, 비록 서로가 잘못했지만 이별하기 싫어 통곡하는 모습이 되어야 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야 될 참부모가 아니겠느냐는 거예요. 다르다구요. 부모로서 지녀야 할 심정적 자세가 어떻더냐? 거 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를 맞을 수 있는 자녀로서 갖추어야 할 심정적인 자세와 규범은 어떠냐? 그게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거지 새끼 모양으로... 만국의 효자를 대표한 모습이어야 돼요. 세계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각국의 챔피언과 마찬가지로 자기 종족 앞에 선출된 챔피언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무엇을 하기 위한 챔피언이냐? 효하기 위한 챔피언이요, 충성하기 위한 챔피언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챔피언의 무리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자녀는 이래야 되고 부모는 이래야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는 통일교회 선생이란 사람은 종자가 다릅니다. 그때를 놓치게 되면 억 천 만세의 한을 남길 것입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느냐, 자식을 가지고 살 수 있느냐? 자신의 그 무엇을 가지고 맞출 수 있느냐? 절대 안 됩니다. 자기가 걸려 있는 세계, 자기가 걸려 있는 민족, 자기가 걸려 있는 종족, 자기가 걸려 있는 가정에 있는 짐을 한꺼번에 진다고 해 가지고 그 자리를 인계받을 수 있느냐? 그것도 안 됩니다. 공산세계를 망하게 하고 민주세계를 망하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은 망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30억 인류를 전부 다 희생시키더라도 이것을 침해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하나님이 보실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이러한 초점상에 있는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효자 되는 법이 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하고 싶은 놀음을 다 하고 충신이 되는 법이 있어요? 어디 말해 보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하고 싶은 말을 다 못 하고 살았습니다. 내가 기도할 때 '아버지!' 한마디를 하고 밤을 새울 때가 많았습니다. 무슨 말을 할 것이냐? 내가 아버지께 보일 것은 추태요, 기가 막힌 사연을 엮어 가지고 아버지 앞에 서러움을 재촉할 수 있는 그 무엇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한없는 눈물이 쏟아진 때도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을 보면 뻔뻔한 데가 많다는 거라구요. 자화자찬하고 자기 선전하기에 급급한 사내 녀석들도 있다구요. 그런 사람은 효자가 아닙니다. 효자는 말에 앞서 부모의 심정을 생각하며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될 때는, 땅을 바라 보며 하늘의 은덕을 나에게 더하지 말라고 비는 사람입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계속 생활하지 않는 사람은 효자가 못 되는 것이요, 충신이 못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효자가 되고 충신이 되기 위해서 나 역시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통일교회 교인들과 통일교회 선생이란 사람이 이단자로 몰렸다구요. 이단자로 몬 녀석들은 어떻게 되느냐? 우리 통일교회 교인 이상 비참한 자리에서 얻어먹게 될 것입니다. 벌써 내가 말한 대로 그렇게 되어 가고 있어요. 그런 때가 되면 통일교회의 때가 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기성교회의 목사들이 밥 바가지를 들고 다니면서 동냥해 먹는 때가 되면, 통일교회 교인들이 동냥해 먹던 바가지는 황금 바가지가 될 것입니다. 흥부 놀부와 같은 역사가 벌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찾고 있는 사람

이 한때에 있어서 여자로 태어났다면 역사를 대표한 그야말로 늠름한 용사의 부인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났다면 용사의 모습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그 시선은 바라는 소원의 일국을 향하고, 충신의 거룩한 자세와 효성이 드높은 자세를 그리면서 하루의 생활을 시작하고 한날의 거동과 하루의 심정을 다짐할 수 있는 생활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청춘시대의 곱던 얼굴이 뜻을 위하다 그을렸다면 그것은 영광이요,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되었다 하더라도 뜻을 위해 살다가 저렇게 늙었다는 보장을 받을 수 있다면 그 흰 머리카락은 한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효를 하다가 병신이 되었고 그 몸에 흠이 생겼다면 그것이 한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심정으로 보면 그것은 태양같이 빛나는 것이요, 별같이 자극을 주는 초점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은 이런 때에 말없이 수고하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변명하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예요. 올라가라면 올라가야 하는 것이요, 내려가라면 내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변명이 많아요. 자기의 소신 기준이 확고한 사람은 남아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솔직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내가 그런 무리를 찾아 나온 것이 아니고, 내가 교육하는 것도 그런 무리를 만들기 위해 교육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그러한 입장에서 가려고 하고, 지금도 그렇게 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틀렸다면 정정하라는 거예요. 그러나 이것이 틀리지 않았다면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을 것이고, 나 홀로라도 통일교회가 발전할 수 있는 운명을 남기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라의 긴박한 정세에 대한 보도를 듣게 될 때, 준비하지 못한 민족은 그럴 수 있다고, 선생님이 1950년대부터 이러한 때가 온다고 예고하던 말이 여러분의 귀에 생생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어쩌자고 통일교회를 원수시해 가지고 오늘날 자기 안 다리에 힘이 없어 거리를 똑바로 걷지 못하는 입장에 서게 됐느냐?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알아봐야 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죄 때문인 것입니다.

이 민족의 누더기와 같은 정신 자세를 무엇으로 꿰맬 것이냐? 바늘이 있어야 되고 실이 있어야 됩니다. 그 바늘과 실로 썩어진 모든 것을 꿰매야 되겠습니다. 뚫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나가더라도 그 정체는 변함이 없어야 됩니다. 피가 묻고 녹이 슬더라도 또다시 가야 할 그 정체는 변하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꼬부라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용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기관장으로 만들게 될 때, 그가 반드시 썩어지지 않는 바늘이 되겠느냐? 이것이 여러분을 지도하는 스승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바늘이 못 되겠거든 실이 되라는 것입니다, 실. 실은 바늘이 꿰매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바늘이 못 되겠거든 내가 바늘이 되어 줄 것이니 여러분은 실이 되라는 것입니다. 흰 실이 되라는 거예요. 그 흰 실로, 즉 충신의 손이 상처를 입어 꿰매지 못하거들랑, 악한 실로 그 더럽혀지고 썩어진 것을 꿰매야 될 것입니다. 충신이 없거들랑 악한 사람들을 다시 교육시켜 가지고 충신을 만들어야 될 것이 아니겠어요? 이것이 현재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현재의 당면과제

통일교회가 아무리 승리했다고 해도 대한민국이 망하면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를 사수해야 되겠습니다. 공산당이 제시한 공산주의 이념을 중심삼고 공산당원들이 하나의 주권자를 중심삼고 규합하는 것은 위압적이요 공포적이요 제재적인, 생명에 위협을 받아 가지고 합하는 놀음이지만, 우리는 그 반대적인 입장에서 자유분방한 자리에서 자의로 다짐하고 결의한 것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그들을 능가할 수 있는 실천기반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문제가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입니다.

우선 국가의 방어선을 옹호하고, 민족적인 방어선을 쳐 놓고…. 또 자기 교단이 있고 종족이 있고 가정이 있고 개인이 있는 것입니다. 이 방어선이 무너지면 전부 다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는 제일 처음으로 공격받을 운명체 아니냐.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무기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벌거숭이의 몸입니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과 같은 심정을 갖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때에 있어서 누구에게 책임을 지라고 등을 치셨느냐? 기성교회냐, 통일교회냐? 내가 알기로는 통일교회가 그 지령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무엇으로 책임질 것이냐?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내 앞에 서시게 하고, 만군의 여호와요 승세의 주권 자요 참의 지도자이신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나라를 대하는 이상의 간곡한 마음으로 통일교회 앞에 서실 수 있도록 어떻게 모시느냐? 만일 하나님이 여기에 군림하셔서 책임을 지고 나서게 되면 우리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승리를 다짐해 가지고 이 교단을 대표하여 원수를 대해 일격의 공격을 가하게 하느냐 못 하느냐, 그것이 현재의 시점에서 가결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승패를 좌우하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심각한 문제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4년 동안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선생님은 1972년도까지 복귀섭리의 연한을 두고 지내는 것입니다. 김일성이가 60세가 되는 때를 중심삼고 통일가의 승패를 결정지어야 할 섭리적 운세권이 우리의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역사상에 한 번밖에 없는 전선이 우리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사나이의 기백을 가지고, 젊은 피가 심장을 통하여 동맥을 울리는 느낌을 느끼는 사나이의 감정이 어디로 향해 있느냐? 퇴폐와 부패의 방향을 걷어차 버리고 승리의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천운의 방위에서 필승의 자리에 섰다는 소위 통일교회 용사들, 오늘날 여러분의 자세가 그러한 것을 이어받을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느냐,못 되어 있느냐? 무자비하게, 냉정하게 비판해 봐야 됩니다. 그 눈이 무엇 때문에 깜빡거리고, 그 코를 통하여 숨을 쉬는 것은 무엇 때문이며, 그 손가락은, 내 사지백체는 무엇 때문에 움직이느냐, 밥을 먹고 사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생명의 기원을 어디에 뿌리박고 있느냐? 근본적인 것을 분석비판해야 되겠습니다.

이 나라 운명의 승패를 가릴 수 있는 여기에서 이 눈으로 정기를 뻗쳐 정력을 다해 가지고 응시하면서, 패자의 서러움을 당해서는 안 되는 민족적 운세와 더불어 승리의 한날을 다짐하는 내심의 결의와 신념을 각오할 수 있는 자아를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 현재 통일교회 청년들이 결정지어야 할 중대한 문제입니다. 돈 몇 푼에 눈이 끌려…. 이놈! 이놈의 망할 자식, 한날의 밥그릇을 따라서, 먹을 것을 따라서 입을 끌고 가는 이놈의 자식, 이놈의 아가씨, 그럴 수 없어요. 그럴 수 없다구! 남겨진 전통이 너무나 심각하였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구요.

현재를 극복하라

요즈음에 와 가지고는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의 문선생님은 애국자다'라고 합니다. 내가 그런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예요. 나는 애국자가 아닙니다. 애국했다는 것을... 삼천만 민족이 죽음과 더불어, 슬픔과 더불어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서 부르는 애국자는 애국자가 아니라구요. 승리권 안에서 애국자라고 찬양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군왕 앞에 책임을 다한 충신이요 애국자인 것입니다.

나는 그 자리까지 못 나갔어요. 비참한 사람이라구요. 여러분이 여기 있는 선생님을 바라볼 때, 선생님은 비참한 사람입니다. 그 누가 '당신의 마음은 이렇지요'라고 한마디만 하면, 천년 설움을 갖고 목을 놓고 토로할 심정을 언제나 갖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 누구도 모른다구요. 그런 어느 나라 사람을 만날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직까지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본부를 중심삼고 있는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고, 선생님을 위하는 마음이 있걸랑, 먼저 대한민국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염려해 주지 않아도 좋아요. 나를 위해서 염려해 주지 않아도 나는 내 갈 길을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죽더라도 이제 내 갈 길을 갈 수 있다구요. 그렇지만 여러분은 죽더라도 여러분의 갈 길을 못 가지 않느냐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을 위해서 염려하는 것보다도 대한민국을 더 사랑하고 세계 인류를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을 사랑하라는 거예요. 이것이 여러분의 갈 길입니다.

선생님이 그리워지는 때가 있거들랑, 그 마음을 돌려 가지고 대한민국 백성을 그리워하라는 것입니다. 삼천리 반도의 산을 붙들고 소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붙들고 선생님 대신 울 수 있는 사람이 그립습니다. 그리 되면 그 무리도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죽을 고비를 몇 십 번 넘었지만 안 망했고 안 죽었기 때문에, 여러분도 그런 심정을 가지면 안 망하고 안 죽습니다. 기가 막힌 놀음이라구요.

우리는 긴장감이 도는 이때, 얼마나 초조한지 모르는 때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3년 기간을 주셨습니다, 3년. 그 기간에 내가 책임을 못한 것이 아니고 이 민족이 책임을 못한 것이요,우리 통일교단이 책임을 못 한 것입니다. 3년 전에만 이와 같은 환경이 되었다면 이렇게 안 되었을 것인데, 그 3년이 이렇게 문제가 될 줄은... 그렇기 때문에 이날이 오기 전에 그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보다 노력하지 못한 것을, 보다 책임하지 못한 것을 이제라도 다하기 위해 배가의 노력을 다짐해야 할 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현재를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후퇴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넘어가는 데는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넘어가는 것이 책임이 아니라 넘어가 싸우는 것이 책임입니다.

현재를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보고 싶은 것도 극복해야 되겠고, 먹고 싶은 것도 극복해야 되겠고, 하고 싶은 것도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오로지 하나의 문제인 승리권을 위해서 가야 할 길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어려운 문제를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면 망하고 죽는 것입니다. 죽는 거라구요.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전체를 투입해 가지고 결의해서 현실을 극복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돈도 필요하고, 인재도 필요합니다. 힘도 필요합니다. 이런 것을 누가 갖다 주지 않을 것이니, 우리 자체내에서 보강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고, 선생님이 금후에 여기에 없더라도 선생님 대신... 그래도 선생님이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본부에 있었기 때문에 전국에 있는 통일교 식구들이 본부를 희망의 한 곳으로 생각할 수 있었지만, 이제 선생님이 외국에 가게 되면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로 갈 것이냐? 선생님이 있는 곳을 향해서 몽땅 옮겨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어디를 가든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것이고, 마음은 언제나 한국에 있을 것이니, 여러분은 그걸 알고 이 나라와 이 민족의 현재를 지키는 데 있어서 선생님 대신 책임하고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이 나라와 이 민족 전체에게 긍할 수 있도록 시대적인 사명을 완결 짓기 위해 노력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현재를 극복해야 됩니다.현재를 극복하지 않고는 승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아시길 바라서 말씀드렸습니다.

​기 도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맡으시옵소서. 이 아침을 기하여 다시 만나는 날을 그릴 수 있는 인연을 아버지께서 책임져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이제, 이때에 세계의 정상까지 가야 할 1980년대에 있어서의 방어선이 되고 도약의 터전이 되어야 할 기지를 마련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는 쉴래야 쉴 수 없는 자리에 선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일체가 공적인 일방으로 방향을 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생각할 때, 일면으로는 뜻의 길이 참 지루할 때도 있사옵니다. 그렇지만 이 길이 아니고는 길이 없기 때문에, 아버님, 또 가야 되겠사옵니다. 대한민국만으로만 가서는 안 될 사명이기 때문에 세계로 가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 누구의 보호도 원치 않습니다. 그 누구의 위로도 원치 않습니다. 당신의 보호와 당신의 위로를 국가와 세계에 남고 싶은 것이 저희의 절대적인 소원입니다.

저희들은 가야 되겠사옵니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가야 되겠고, 장년은 장년대로 가야 되겠고, 노년은 노년대로 가야 되겠사옵니다. 아니 가면 안 되는 운명권내에 있는 저희들이기 때문에, 세계의 역사시대에 유랑하는 피난민과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 통일교단이기 때문에, 원수들이 전방의 대로에서 지키고 있기 때문에, 험산준령의 협곡과 외롭고 고독한 음지가 저희들이 찾아 들어야 할 유일한 길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생애를 비쳐 그런 길을 걸어왔사옵니다. 과연 그것은 불쌍한 길이었습니다. 이 뜻길을 가는 사람들은 전부 다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아버지, 당신이 그런 길을 가시기 때문에 당신의 뒤를 따르는 저희들도 그런 길을 가는 공동적인 운명에 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눈물 골짜기는 저희의 눈물 골짜기가 아닐 수 없고, 당신의 비참한 자리는 저희의 비참한 자리가 아닐 수 없사옵니다. 당신의 공격 명령이 있을 때에 저희는 생사지권을 다 털어놓고 공격해야 될 때가 왔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결속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아벨이 가인을 규합 하지 않고는 부모와 상봉하지 못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국가적인 부모를 맞이하기 위해서 가인 나라와 아벨 나라로 분립하는 삼팔선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두 나라가 해방될 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 저희들이 늘어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의 거룩한 뜻이 승리의 깃발을 들고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웃을 수 있고, 모든 힘을 다하여 환희의 개선가를 부를 수 있는 한날을 역사를 대신하여 맞을 수 있게 해야 할 사명을 저희들에게 맡겨 주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부족한 저희들을 바라보시는 아버님은 불쌍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님은 저희들을 바라보시면서 얼마나 초조해 하시는가를 저희들은 미처 몰랐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저희들은 가겠나이다. 저희들은 이미 각오한 몸들이요. 당신이 남기신 운명의 길을 다 밟고 넘어가기를 결의한 몸들이옵니다. 이 고개를 죽기 전에 넘기를 바라는 것이 저희의 소원입니다.

병신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오니, 상처를 입더라도, 어떠한 수욕을 당하더라도 이 고개를 넘어야 되겠습니다. 지난날의 어려움을 논의할 때가 아니라, 내일의 어려운 길을 타파하기 위해 결의를 해야 할 때가 왔사옵니다.

이러한 사명을 아시는 아버지이시여 !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지키시옵소서. 금년과 명년에 저희들이 하여야 할 사명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그 책임노선을 가리시어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저희들이 패자의 운명을 맞는 것을 아버지께서 허락지 않으실 것을 아오니, 저희들이 패자의 운명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사탄세계의 공산당보다도 더 악착같아야 되겠사옵니다. 더 투지력을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더 효성의 마음을 가지고 충신의 절개를 가지고 싸워야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보다 단결해야 되겠사옵니다. 보다 체제를 강화시켜야 될 것이 저희의 사명이옵니다. 저희들이 그 어느 부서에라도 속하여 가지고 1970년대의 초반기를 장식하여서 당신께 기억될 수 있는 무리들로 남아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전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만날 때까지 아버지께서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만날 수 있는 무리들을 만날 적마다 당신의 영광이 같이하여 주옵기를 바라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5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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