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류는 타락의 역사를 엮어 온 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생활권도 타락의 생활권이기에 우리는 타락의 생애노정을 거쳐가야 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타락권에 포위되어 있는 인류

​현재 여러분들이 처해 있는 입장을 두고 볼 때, 여러분이 삼십, 혹은 사십대의 연령층에 있다 하면, 여러분들은 그 연령이 되기까지에는 타락의 생의 과정을 거쳐온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그런 입장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의 생애노정을 바라보고 싸워 나가야 할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과거도 그랬고, 처해 있는 현재도 마찬가지이고 미래도 역시 마찬가지의 운명에 귀결되어야 할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우리가 타락의 권을 어떻게 해결짓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에도 이 타락권내에서 탈피해 보려고 하였고, 현재도 그러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타락권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래에 이 포위망을 어떻게 뚫을 것이냐, 미래에 이 포위권을 어떻게 해소시킬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우리 자신들이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의 후손들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해결지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타락권내에서의 승리는 진정한 승리라고 할 수 없어

인류역사는 타락권내에서 시작하여 타락 과정을 거쳐온 역사, 타락의 결과의 세계를 다짐지어 온 역사임을 우리는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 한 개인을 놓고 생각할 때, 한 개인이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어떤 목적을 성취하고 승리하더라도 그 환경을 넘어서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환경에서 보장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승리의 권한이라는 것은 일시적인 권한밖에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승리했다 하더라도 그 승리는 개인에 제한된 승리로, 혹은 일시적인 승리로는 남아질는지 모르지만, 전체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승리를 가정의 승리로 대응시킬 수 없는 것이요, 가정의 승리를 민족이라든가 국가를 대표한 승리권까지 확대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국가가 어떠한 국가들과 싸워 승리했다 하더라도, 그 승리의 권은 자기 일국의 승리권으로서 남아질 수 있을지언정 세계적인, 혹은 전체의 승리의 기준으로는 남아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오늘날 이 시대에 세계는 국가를 넘어서 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하고 서로 대치하는 입장에 있는데, 그들이 싸워 가지고 어느 한 쪽이 자기들이 바라던 바대로 승리를 했다고 할 때, 그 승리가 과연 세계적인 승리로 남아질 수 있겠느냐, 혹은 세계적인 가치의 내용으로서 전인류가 승리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기준에 설 수 있겠느냐?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공산주의면 공산주의가 세계를 제패하게 되더라도 그 세계에서 추구되어지는 그 승리권에는 일면을 타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분야가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또, 민주세계면 민주세계에서 그 승리의 권한을 차지했다고 하더라도 그와 반대되는 세계의 잔재가 남아 있는 한 민주세계를 중심삼고 그 세계를 제거하고 타도하기 위한 정지작업(整地作業)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승리라는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승리의 결과가 얻어지는 데는, 어떠한 직접적인 입장에서 정면으로 투쟁하는 과정을 거칠는지 거치지 않을는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거기에는 그것을 소화시키는 투쟁 과정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어떠한 기준에서 소화시켰다 하더라도 소화시킨 그것이 영원한 승리권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 또한 새로운 어떠한 이론과 새로운 어떠한 실천생활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전세계 인류 앞에 부합되지 않는 지경에 부딪칠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지금까지 인류가 추구해 온 사상체제 앞에 전체 인간들이 동원되어 가지고 승리의 결과를 가져 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길이길이 찬양될 수 있고, 인간 세상 앞에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승리적 가치권으로 조성된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타락권내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개인으로부터, 가정으로부터,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자기 자신이 살아 나가기 위해서 투쟁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무엇인지 모르게 경쟁과정을 거쳐 나갑니다. 그런데 그 경쟁과정을 거쳐 가지고 자기가 소원하는 기준을 성사시켰다 하더라도, 그 성사시킨 기준을 중심삼고 기뻐하는 그 기쁨은 어느 한계점에서의 기쁨 밖에 되지 못합니다. 그 승리의 가치는 영원을 두고 보장할 수 있고, 전체가 입증할 수 있는 그러한 승리의 내용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기준이 자기에게 제한된 일시적인 영광의 기준은 될지 모르지만 역사성을 초월하여 전체의 영광의 기준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여러분이 생활 가운데서 많이 보고 느끼고 있는 바입니다.

어떤 사람이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자기가 표준한 것을 중심삼고 그 목적을 성사했다고 했을 때, 자기가 기뻐할 수 있는 그 목적 성사의 가치를 전체의 분야에 적응시킬 수 있고, 또 그것을 하나의 요인으로 삼아 활용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이 극히 제한된 한계 권내에 속한다는 것은 불가피한 사실이라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욕망은 제한된 어느 한계권내의 승리의 가치만을 추구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 승리의 전체화가 문제

하나의 기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각해 볼 때, 동기가 되고 전체와 내적인 인연을 맺고 있다 할 때, 그 동기나 혹은 전체와 인연맺은 그 관계가 제한된 한계권내에서의 동기나 관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어떠한 승리의 내용을 결정지었으면, 그것이 전체에 활용될 수 있는 모체로 작용하여 그 결과가 전체에 미쳐져 가지고 전체의 승리의 가치로 결실되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욕망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개체가 어떠한 성공을 하거나 혹은 어떠한 목적성사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제한된 환경내에서의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현실사회에서 보게 됩니다. 그것 가지고는 우리 인간은 완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승리를 했다 하더라도 그 승리의 터전 위에서 보다 더 큰 승리를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 승리에서 보다 더 큰 승리를 다짐하여 기필코 세계적인 무대에까지 연결시켜 나가고자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욕망입니다. 지금까지 인간들은 그러한 욕망을 중심삼고 추구하고 노력해 나왔기 때문에, 세계적 종말시대가 나타나야 된다는 것은 우리의 욕망을 중심삼고 볼 때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자기가 바라는 목적 성사의 어떤 기준을 가졌다 할 때, 그리고 그 기준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 것이 있다고할 때 그것에서 자기의 승리의 기준이 이탈되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최후의 승리의 기반을 중심삼고, 영원을 중심삼고, 보다 큰 내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일시적이 아닌 영원한 관계를 맺어 승리를 다짐한 자기의 기준이 언제까지나 남아지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욕망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과연 그럴 수 있는 기준이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오늘날의 철학이면 철학을 두고 볼 때, 그것은 하나의 이론을 중심삼고 실천을 요하는 학문인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천을 해야 되는데, 그 실천의 한계점이 어디냐? 그것은 세계입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실천을 다 했다면 그것으로 끝날 것이냐?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 새로운 이론 체제를 중심삼고 새로운 것을 모색하고 추구하는 놀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닦아진 승리의 터전이라는 것은 영원히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과연 인간들이 추구하는 이상세계, 인간들이 추구하는 영원한 세계, 인간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세계가 과연 있을 것이냐 없을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이 세계가 타락권내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될 때, 그것을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이 타락권에는 어떠한 고착된 승리의 터전으로서 장구한 전통의 내용을 흡수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으로 우리는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승리했다고 해서 그것을 전체화시킬 수 없습니다. 어떤 특정한 내용이 없어 가지고는 전체화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이 찾아 나가는 이상세계라고 하는 것은 타락한 세계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개개인의 승리라고 하는 것은 부분적인 승리로 끝나기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전체화시킬 수 없게 될 때는, 즉 전체의 승리로 보장받을 수 있는 내용이 없게 될 때는 그것은 어느땐가는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결과에 부딪치기 때문에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승리가 개체면 개체의 승리로부터, 가정의 승리, 종족의 승리, 민족의 승리, 국가의 승리에 이르기까지 전체의 승리의 요인이 되고, 한 모체가 되고, 하나의 필요요건이 될 수 있는 내용이 결여되게 될때는 그 승리는 분립적인 결과로서 언젠가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참사랑에 의한 진정한 승리 없이는 이상세계는 현현되지 않아

이러한 타락세계에 있어서 타락시켜서는 안 된다고 하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이 세계에 무엇을 가지고 찾아오실 것이냐? 장구한 승리의 터전을 남길 수 있는 그 요인으로 무엇을 가지고 찾아오실 것이냐? 우리 인간적인 견해에서 세계의 모든 존재물을 보면, 이 세계에는 물질이 있고, 그 다음에는 사람이 있고, 그 다음에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을 중심삼고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할 때에 물질이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가운데에는 마음이 있고 몸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볼 때, 마음과 몸이 언제나 싸우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권에 있어서 우리 인간 개체를 중심삼고 볼 때 제일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생활의 장(場)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생활해 나가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요건이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가 생활하는 데는 의식주와 같은 것도 문제이지만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정서적인 생활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상대가 있는 것입니다.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남자와 여자는 타락한 남자와 여자입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살아가고 있는 생활권도 역시 타락권내에 있는 생활권입니다. 그러면 타락하지 않은 남자와 여자, 타락권내에 있지 않은 물질은 어떤 것이냐? 이러한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인간이 타락하지 않은 인간이고, 우리가 타락권내에 있지 않은 물질을 가졌다 할진대는 우리 인간의 생활의 장과 관계되는 그 물질은, 그것이 소용되고 소모되는 데 있어서 탄식과 한의 입장에서 소용 되고 소모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찾기 위한 투입이 되고 소모는 될는지 모르지만, 자체를 희생시키는 소모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게 될 때에, 과연 타락하지 않은 세계의 물질과 타락 하지 않은 세계의 사람은 어떠한 입장일 것이냐? 타락하지 않은 세계의 사람이 어떤 승리를 다짐했다면, 그 승리는 일시적인 승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승리는 반드시 물질세계와 더불어 보다 높은 차원의 인연을 계승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서 흡수되어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 상충이 벌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물질이라든가 사람이 되어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하게 되면,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세계라는 것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상세계는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실천된 이상세계는 현현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 하는 것입니다.

승패의 요인

그러면 여기에 있어서 패(敗)의 요인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타락권내의 내용, 그 내연을 지닐 것이 패의 요인이 될 것입니다. 반면에 승(勝)의 요인은 무엇일 것이냐? 그것은 타락권과 관계되지 않는 것일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참다운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그 요인은 어디에 있을 것이냐? 타락권내에 있을 것이냐, 타락하지 않은 권내에 있을 것이냐? 오늘날 이 세계는 이미 타락한 권(圈)이기 때문에 아무리 승리했다 하더라도 온전한 승리의 권한으로 보장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벼랑에서 떨어져 가지고 서로가 좋아하고, 벼랑에서 떨어져 가지고 서로가 주고받는 것은 물론 동정할 수 있는 사연은 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리에서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벼랑에 떨어지지 않았을 때의 좋은 입장과는 상관할 수 없는 것이며,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패의 요인은 어디서 찾을 것이냐? 패의 요인은 타락한 세상 가운데 꽉 차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승리의 요인을 타락한 세상에서 찾을 수 있겠느냐? 그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락하지 않은 자리에서 찾아야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통일교회 원리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하나님이 있어 가지고 사람을 지었고 만물을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궤도를 따르지 않는 데서는 정상적인 승리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사람을 지었고, 그 사람을 중심으로 만물과 인연이 맺어져 있다면, 하나님이 제일 중심인 핵심이 되고, 그 다음 중간 위치가 사람이며, 맨 바깥이 만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승리의 요인이라는 것은 사람만으로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느냐? 그것은 기필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되었느냐? 인간이 어떠한 방향을 따라, 어떠한 내용을 세워서, 어떠한 발판을 거쳐 가지고 승리의 길을 개척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과 제일 가깝고, 제일 든든하고, 제일 강하게 묶어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 길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 길이 먼저 결정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냐? 하나님의 일을 중심삼고 우리가 생활권에서 연결되는 것이냐? 그것은 외적인 연결은 될지 모르지만 내적인 연결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내적인 연결의 기준이 무엇이냐?

어떠한 것을 놓고 사람이 그것을 붙들거나 하나님이 그걸 붙들면, 그것을 하나의 표준, 하나의 잼대로 삼아 거기에서 하나가 되어 가지고 그것이 둘, 셋, 넷, 사방으로 방향성을 갖춰 나갈 수 있고 수와 양도 가릴 수있는 핵의 기준이 무엇일 것이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우리 인생에 있어서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행복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행복의 요인

그러면 그 행복의 요인은 무엇이냐? 그것은 돈도 아닙니다. 혹은 상대될 수 있는 어떠한 외적인 것도 아닙니다. 반드시 심정적 내연을 갖춘 것만이 행복의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게 될때,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 내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그 무엇, 제일 근본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정서적 문제입니다.

정서적 문제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서적인 문제도 상대적 여건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나라를 찾기 위한 입장에서 나라를 대표하여 충신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느냐, 아니면 가정적인 입장에서 가정의 충신이 될 수 있는 그런 효자를 찾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물론 효자도 충신이 될 수 있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때, 그것은 상하관계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상대적 관계는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하관계도 되고, 상대적 관계도 될 수 있는 그런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관계를 두고 볼 때, 상하관계는 무엇이냐?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우리 인간은 아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상이면 인간은 아들이니까 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하관계만 갖고 될 것이냐? 상하관계는 하나의 중심점은 결할 수 있지만 좌우관계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들은 아들만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버지의 아들만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간을 상하적 관계도 되고 상대적 관계의 자리에까지 세울 수 있는 그것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은 '상대적 세계'를 창조하지 않을 수 없는 내적 인연이 있었다고 보는 거예요. 하나님은 상하적 관계뿐만 아니라, 상대적 관계까지 추구하시기 때문에 '상대적 세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아들이라면 그 아들의 입장만 가지고는 안되고 여기에는 반드시 횡적인 상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아들은 아들로서의 자식만이 아니라, 딸로서의 자식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세워야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아들만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횡적인 관계에 있어서 당신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상대적 관계로서 인연맺게 한 것입니다. 그것도 분립된 개체가 아니라 일체화한 개체로서 결속시키고 대표적인 자리에 세우고자 한 것이 남성입니다.

그 남성은 하나님의 아들도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몸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아들이 있으면 그 아들을 중심삼은 상대가 있어야 됩니다.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종적 사랑과 횡적 사랑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자기 사랑을 중심삼고 횡적 터전의 상대로 만든 것이 남자에게는 여자요. 여자에게는 남자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그러면 먼저 나오는 것이 무엇이냐? 상대가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냐? 아들이요 딸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창조함을 받은 그때는 상대 시대가 아니라, 자녀의 시대입니다.

그러면 자녀의 시대 가운데서도 최고봉의 요인이 될 수 있는 사랑의 결착점이요, 종착 기준이 될 수 있는 그 자리는 어떤 자리이냐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완전한 종적 기준이 결정지어진 후에 횡적 기준의 출발이 이루어져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소원하던 그 창조적 원리 기준을 오늘날 인간 자체에서 확정지을 것이 아닙니까?

그 기준의 때는 어떤 때냐? 아들로서 완성할 수 있는 그때가 언제냐? 사춘기 시대입니다. 사춘기 시대는 일반적인 감정을 표준하여 가지고 바라는 때가 아닙니다.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전부 다 사춘기가 되면 자기 마음의 상대를 그럴 수 있는 세계로 접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춘기 시대는 봄절기와 마찬가지로 사방으로 전체의 분야와 인연을 맺기 위해서 그 마음이 세계화되는 때입니다. 그때에는 시인이 아닌 사람이 없고, 문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또한 사랑을 중심삼고 최고의 중심으로서 서지 않기를 원하는 존재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든지 자기가 제일인 시대입니다.

마라톤 시합에서 일등한 사람이 있으면 그 일등이 그 사람의 것으로 남겨질지는 몰라도 자신을 빼놓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전부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세계적인 중심으로 세우고 싶은 마음이 어느때보다도 강하게 사방성으로 드는 때가 사춘기 시대입니다.

이 사춘기 시대는 그 무엇을 중심삼고 전부 다 바라는 욕망권을 갖고 있는 때이지만, 정서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상대적인 요인을 절대시하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자기 전체의 생명을 기울여 가지고…. (녹음 잠시 중단됨 )

인간의 마음은 종·횡적 인연의 출발 기점

역사를 초월해 가지고 뻗어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녹음 잠시 중단됨 )

이와 같이 몇천 분의, 몇만 분의, 혹은 몇억 만 분의 일, 그 선에서 일체가 되는 그 기준에 딱 들어맞는 남자와 여자가 있으면 하나님도 그들을 보고 폭발적인 기쁨을 느끼실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에게서 태어나게 되는 그 아들딸은 하나님이 볼 때는 손자 손녀도 되지만 아들딸도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 그 다음에 아담이 있습니다. 그 아담의 마음이 하나님을 싸고 있는데 이것을 생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생심이 무엇이냐 하면, 종적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은 횡적인 아담의 마음 가운데 임재하시는데 바로 하나님을 모시는 마음입니다. 그것을 생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라구요?(판서하심) 이 점은 하나입니다. 둘이 있을 수없습니다. 둘이 있으면…. 우주의 중심이 없는 데서는 존재가 확정이 안됩니다. 대상 세계에 있어서 중심이 없는 데는 존재가 확정되지 않는다 구요. 창조가 되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소모되어 깨져 나가게 마련입니다. 창조가 한번 되면, 빨리 되면 될수록 그것은 더욱 빨리 깨진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중심은 둘이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 우주를 보게 되면 이 우주에는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이 있습니다. 그걸 횡적으로 보게 되면 하나님, 사람, 만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형이 우리 인간의 몸에서도 마찬가지 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보면, 만물보다 한 차원 높기 때문에 횡적으로 보게 되면 하나님, 사람, 만물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한 개인을 놓고 보면, 하나님 자리가 우리 중심의 자리요, 인간 세계를 대표한 자리가 마음 자리요, 그 다음에 만물 세계를 대표한 자리가 몸 자리입니다. 그렇게 축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있을 것이 아니냐. 그 기준이 무엇이냐? 그것은 심정입니다. 사랑입니다. 그 기준이 연결되었을 때는 어떻게 될 것이냐? 슬픔이 출발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기쁨만이 출발될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일이 잘되어 가면 좋아하거든요. 마찬가지라구요.

여러분도 말을 할 때는 생각을 해서 하지요? 말을 하기 위해서 생각을 하는데 생각 가운데 생각이 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생각 가운데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관리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닙니다. 생각 가운데의 생각인데 그 차원이 높은 생각은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 생각으로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적인 체험을 통해서 신령한 권내에 들어가게 되면 마음을 보고 이야기를 합니다. 뭐 있다구요. 마음을 보고 속에서 이야기를 한다구요. 마음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있고, 마음이 몸을 보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영적인 체험을 해보면 그렇지 않아요? 대개 영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되면 자기도 알지 못하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조금 더 발전하게 되면 가만히 앉아서 마음속에서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한번 해보라구요.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개 이런 원칙을 모르는 사람은…. 최수운(최제우) 같은 사람은 인내천주의(人乃天主義)를 중심삼고 '하나님이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곧 하나님이다'고 했습니다. 그거 맞다는 거예요. 단지 그것을 분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종적인 인연을 따라서 핵을 결정지어야 비로소 하나님도 여기에 따라오는데, 하나님이 따라오시는 그 거점이 사람의 마음의 중심이니까 결국은 하나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것을 몰랐다는 거예요. 횡적 기준만이 아니라 종적인 인연의 횡적 출발기점을 우리의 마음 중심에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니 불교도 그 분야에 들어가서는 애매했다는 거예요. 석가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말을 했지만, 그 자리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되면 하나님이 임재하신다

하나님은 무엇을 가지고 좋아하시느냐? 하나님은 정서적인 주인공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좋아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담의 마음을 보고 좋아할 수 있는…. 그 마음은 영인체를 말하지요? 마음사람이 있지요? 그렇잖아요? 여러분은 몸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은 뭘 닮았느냐? 마음사람을 닮았다고 하지요? 그 마음사람이 뭐예요? 영인체입니다. 영인체 사람입니다. 영인체 사람은 몸사람을 지배합니다.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요소가 상충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명체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음차(音叉, 소리굽쇠)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를 딱 치게 되면 둘이 공명합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되게 될 때는 하나님이 임재했다고 하지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판서하시며 말씀하심), 이것하고 저것하고 공명하면 하나님도 같은 음차, 즉 공명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분이 지상에서 이것을 일체화시키기 위하여 노력해야 됩니다. 그것을 일체화시키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화시키기 위하여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사상의 기점이라구요.

현세의 실상은 타락으로 인한 결과

우리는 타락한 세계에 살고 있는데, 이 세계는 무엇으로 타락되었느냐? 세계뿐만 아니라 나라도 있습니다. 국민도 있다구요. 가정들도 있다구요. 이 전부가 무엇으로 타락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정서적인 타락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행복을 추구하고 평화를 추구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외적인 세계를 중심삼고 추구해 나왔지만 이것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외적인 세계를 중심삼고 추구해 나오다 보니 결과에 가서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더우기 자유 민주주의 사상이 노골화된 현시대에 있어서는 전부 다 개인주의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개인주의가 안 될 수 없다고요. 자기 맘대로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개인을 존중시하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세계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다 잃어버렸다고요. 나라가 어디 있어요? 나라는 누구를 위한 거예요? 자본가들을 위한 것이며 권력자들의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지금이 그런 거라구요. 그 권력은 사람을 대신한 것이요, 자본은 물질을 대신한 것입니다. 이거라구요. 그 물질을 대표하는 세계의 사조를 우리 인간의 이상으로 맞아들일 수 있겠느냐? 그것을 맞아들이게 되면 영영 망하는 것입니다. 권력을 중심삼은 세계를 우리 인간이 받아들여야 되겠어요? 그것을 받아들여도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악으로부터 출발 했기 때문에 추방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은 부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를 민주세계니 공산세계니 해 가지고 안팎으로 갈라내는 그런 형태가 벌어지는 거라구요, 또, 지금까지는 권력적인 주권자 앞에 경제적인 자본가가 지배를 받고 나왔습니다. 지금은 자본가가 권력자를 지배합니다.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겁니다.

좋다고 하던 사랑 문제에 지배를 받아오던 세상이 좋다고 하는 사랑을 다 깨뜨려 버렸습니다. 이것은 뭘 말하느냐 하면 끝 중의 끝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뒤집어지려면 끝에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꿔치는데 엇바꿔친다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렇게 되느냐? 인간이 원치 않거든요. 그걸 누가 원하는 사람이 없다구요.

미국에 가 가지고 장년들에게 '지금 이 시대가 좋소, 아니면 옛날 2차대전 전이 좋소? 하고 물어 보면 전부 다 2차대전 전이 좋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됐느냐? 그런 사람들이 지금까지 권력을 가지고 국가를 지배해 나왔고, 가정도 다 그들에게 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러냐? 원치 않는 게 됐기 때문인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느냐? 그 나라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 제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만일 젊은 청년 남녀들이 만들었다고 하면 그들만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천운이 만든 것입니다. 전세계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보게 될 때 물질이 귀하냐, 권력이 귀하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물질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자는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지금까지는 인간을 중심삼고 물질을 지배해 온 것이 아니라, 권력을 중심삼고 물질을 지배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습니다. 세계적 사조가 물질을 중심삼고 인간을 지배하게 돼 있습니다, 이것이 끝나면 마지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세계의 결과로서 빚어질 수 있는 최종점은 기필코 그런 결과를 발생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승을 몰라보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몰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도 몰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에 돈이 있고 땅이 있으면 뭘합니까? 지옥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보다 가치적인 것을 맞을 수 없다면 죽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지금 북구(北歐)의 스웨덴 같은 나라는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 유복한 환경을 누리고, 사회제도에 있어서도 모순과 상충이 없는 그야말로 외적인 천국상은 이뤄 놓았지만 그 나라 국민들은 '살 가치가 없다. 살아서 뭘하느냐, 무엇에 애착을 갖고, 무엇에 희망을 갖느냐?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다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타락권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자랑할 만한 부의 결과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역사시대는 남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정반대의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승리의 요인은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완전한 승리자는 어디에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만일에 이것이 틀렸다고 한다면 하나님도 없는 것이요, 역사는 무엇 때문에 있으며. 옛날 성인은 무엇 때문에 나왔으며, 또한 우리 부모는 무엇 때문에 나왔으며, 나라의 제도는 무엇 때문에 나왔겠습니까? 인간들은 '어떠한 한 타입으로 만들기 위해 나를 얽어매고 나를 구속하는, 가상적인 구상에 의해 제재를 받는 나의 모습은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을 타파해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반응을 갖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를 바라볼 때, 이 땅 위에서는 영원한 승리의 요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승리의 요인을 어디서 찾아야 되느냐? 하나님 한 분에게서밖에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길이 어디냐, 그 요인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과 참사람에게 있습니다. 또 승리의 요인점이 되는 그 기준, 그 경계선, 한계선이 어디냐? 남성신(男性神)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요, 우리는 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종적 중심의 기준은 되지만, 횡적 기준은 못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격인 자리에 서야 되겠으니, 우리는 내적인 입장에서 하나님의 마음의 상대적 입장에 서야 합니다. 이것을 소망으로 갖고 나서게 될 때…. 하나님의 종적인 창조의 심정이 횡적으로 재현되는 출발 기준이 무엇이냐 하면, 상대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정을 중심삼고 말하는 거예요. 사춘기라는 것은 심정을 중심삼고 말하는 거라구요.

그러한 부부, 그러한 아들딸을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어 그 가정에 어느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는, 영광의 승리의 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한 기준이 없다고 하면 이상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은 이상은 있을 수 없다구요. 가정을 중심삼은 이상이 있어야 합니다. 개인의 이상보다도 가정을 중심삼은 이상만 성립되면 우리 인간은 가정에 속해 살기 때문에 개인적 이상은 필요 없다구요. 개인적 이상이 없더라도 가정적 이상권이 성립되면 거기서부터 세계는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 기점을 찾아 나가는 것이 통일사상에 있어서 심정문제의 터전이요, 사위기대의 이론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하나님도….

그것을 결정짓고 가는 곳은 하나님이 갈라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은 계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계시니 아담을 대해서 하나님이 느꼈던 기쁨, 해와를 대해서 하나님이 느꼈던 기쁨, 아들딸에 대하여 하나님이 느꼈던 기쁨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를 대해서 나쁠 수 없는 것이요, 아내를 대해서 나쁠 수 없는 것이요, 자녀를 대해서 나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식이 하나님을 대해서 나쁠 수 있어요?

우리 통일교회 사상은 사위기대 사상인데 그 사상의 터전이 될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그것은 시작인 동시에 과정이며. 과정인 동시에 결과입니다. 그 결과는 나쁠 수 있는 결과가 아니라, 기쁠 수 있는 결과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죽고자 해야 승리할 수 있어

그러면 이상세계는 어디서부터 시작될 것이냐? 어떠한 나라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한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이냐? 타락한 세상을 가지고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왜 하나님께서 오늘날 세계를 버리고, 나라를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부모를 버리고, 형제를 버리고, 자기를 버리게끔 하는 일을 이러한 종말 시대에까지 끌어오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을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찾기 위한 것입니다. 돌아 가서 찾기 위한 것입니다. 외적인 것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찾아지는 데는 누가 먼저 찾아져야 되느냐? 외적인 세상 사람이 먼저 찾아져야 되느냐, 종교인들이 먼저 찾아져야 되느냐? 종교인들이 먼저 찾아져야 됩니다.

요전에 예수 혁명패라는 것이 나왔지요? 종교인 히피족 말이예요. 그거 재미있는 현상이라구요. 현재 외적인 히피족들이 끝을 맺으려고 하니 내적인 히피족이 나온 거거든요. 예수 혁명패…. 어제도 선생님이 미국에서 온 식구들한테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예수 혁명패라고 하는 그패들, 뭐 예수의 히피족이라나요? 그러니 세상이 참 재미있어요. 그런 걸보면 우리 뜻이 점점 퍼져 나갈 거라구요. (웃으심)

그러면 요 끝에는 뭐가 올 것이냐? 혁명가가 오겠지요, 혁명가. 혁명가는 자리가 없습니다. 혁명하는 데 자리가 있습니까? 자리잡고 혁명하나 요? 자리가 없다구요. 떠돌아다니는 겁니다. 이런 입장에서 비종교인과 종교인을 비교해 볼 때, 모두 버리고 야단하는 이 판국에서 종교인은 그히피족을 평하고 비판만 해서는 안 됩니다. 종교인은 그 이상 되어야 됩니다. 그들 이상으로 세계를 버리고 나라를 버리고, 부모를 버리고, 자녀를 버리고, 그 다음에는 자기를 버리고….

사탄세계는 '아' 하고 입을 벌리고 있지만 하늘편은 다 참고 가야 됩니다. 한편은 축 떨어지지만 한편은 승리를 다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지금 다 잃어버려 가지고 낙망, 절망, 그저 '꽝'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판국을 누가 왜 이렇게 만들어 놓았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는데 그러한 자리에서 다 잃어버리더라도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세계를 다 잃고 나를 찾았습니다' 할 수 있는 그 자리로 나가야 됩니다.

그것은 결국 아담을 찾는 것 아니냐? 그렇지요? 해와 찾는 것 아니냐? 끝에 와서는 '하날이여, 나만 잃어버리고 다 찾았습니다' 해야 된다구요. 그리하여 다 찾고 나를 잃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될 때에 여기서부터 세계를 다시 이어받을 수 있는 주인의 자격이 결정될 것이 아니냐? 알겠어요?

그리하여 '세계를 준다 해도 바꿀 수 없고, 나라를 준다 해도 바꿀 수 없고, 가정과도 바꿀 수 없고,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찾아진 나는 내 것이 아니오라, 당신 것으로 바쳐져야 되겠습니다'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마음, 나의 자각을 촉구할 수 있는 최첨단에 서서 내 전체를 하나님의 기쁨으로 긍정하고 웃을 수 있는 하루가 있어야 합니다. 타락권내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그런 하루가 없어 가지고는 소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랬어요? 보라구요. 세상의 히피족들은 자기의 체면이나 위신도 다 버리는 놀음을 하고 있는 판국인데, 오늘날 기독교는 체면이니 위신이니 하는 것을…. 탈을 딴 데에 쓰고 있습니다. 사탄의 물이 든 체면, 위신 그런 것…. 세계의 종교권내의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하지만 통일교인들은 그런 놀음을 할 수 없다구요. 알겠어요?

세상은 그만큼 나와 있는데, 그 세상 끝을 안고 추고, 그것을 끌고 가야 할 사람들이 종교인이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지금 세상에서 다한 것을 뒤따라가면서 못 하겠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붙들고 패의 요인 가운데에 서 가지고 승리의 요인권내로 들어갈 수 있어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내가 이 세상에 찾아온 것은 이땅을 화평케 하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 하는 말이 딱 들어맞는 거라구요.

세상에서는 히피족, 이피족 이러는데, 우리는 심정의 히피족이 되어야 합니다. 심정의 히피족이 되어야 한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오늘날 지상권내에 나라를 사랑하는 충신의 지조는 어디 갔으며, 부모를 사랑하는 효자의 지조는 어디 갔으며, 박애를 주장하던 종교의 지조는 어디 갔느냐, 어디 갔느냐? 국가의 중심도 하나님이요, 세계의 중심도 하나님이요, 도의 중심도 하나님이요, 내 생애의 중심도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 전체를…. 그럴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데에서 새로운 세계관은 발전될 것입니다. 그렇게 발전되는 데에서, 하나님에게 귀일되어 가지고 타락하지 않은 심정적, 원칙적 인연이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에게 맺어지는 데에서 새로운 승리의 세계는 출발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내 개인의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가지고 사춘기 시대를 거쳐 상대를 취하게 되면 그것은 패의 요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영원히 영원히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찾아지는 아들딸은 타락과 낙망의 요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랑의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아들 딸이 영원토록 자랑의 요인이 되어야 될 텐데 그렇게 못 됐거든요. 그래 가지고 갖추어진 종족은 낙망과 탄식과 분열의 요인으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랑과 통합과 일체의 요인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한마음과 같이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교회 교인들은 결국에는 다 하나님을 통해야 됩니다. 결론이 그렇다구요.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을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초감각적인 권내에 있어서, 초감각적인 심정이야 있을 수 없겠지만, 타락적인 감각 세계를 초월하는 자리에 있어서 본연적인 감각의 기원을 획득해 가지고 그 행복을 찬양하게 될 때는 세계가 무색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를 희생시키고 세계를 희생시켜서라도…. 나라와 세계도 이걸 이루기 전에는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버리고라도 이걸 찾아가야 됩니다. 세계나 나라는 이 사랑의 터전 위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라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비원칙입니다. 그러니 부정의 결과에 도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참사랑을 찾아가려면 세계를 버려야 됩니다. 그 사랑은 참사랑을 두고 말하는 겁니다. 세상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사랑이 좋다고 하지만 지금까지는 깨져 나가는 사랑이었습니다. 여기서는 그런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본래의 참다운 사랑을 갖기 전에는 가정도 아들딸도 없습니다. 본래의 참다운 사랑의 가정을 갖기 전에는 종족도 없고, 민족도 없고, 국가도 없고, 세계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참다운 사랑을 중심삼는 데서부터 국가도 출발하는 것이요, 세계도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 태어난 아들딸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아들딸이고, 그 종족들은 세계를 관리할 수 있는 종족이라구요.

이러한 기반을 중심삼고 이러한 사위기대권이 갖추어져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하나님, 아담, 해와…. 여기에서 중심이 딱 결정되어 가지고 서로 사랑을 주고받게 되면 도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중심이 결정되어 가지고 주고받게 될 때는 돈다구요.

여러분, 팽이를 보십시오. 팽이를 돌릴 때 중심이 딱 잡히게 되면 그것은 살아서 돌아갑니다. 중심이 안 잡히면 들다가 빨리 넘어집니다. 마찬가지라구요. 완전한 중심의 자리는 오래가는 것입니다. (녹음 상태 불량으로 약간 부분 정리하지 못했음)

통일교회 복귀사상의 핵심

하나님은 왜 아담을 지으셨느냐? 그것은 종횡의 자극적인 상대적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였습니다. 일방적인 사랑은 이상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재미가 없다구요. 사방으로 횡적으로 연결되어 돌아야만 360도 방향에 따른 감격과 감미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상적인 사랑입니다. 그럴게 아니예요? 이것이 평면이 아니라 구(球)입니다. 그렇게 구가 되어 가지고 움직이게 되면, 여기에는 하나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요, 영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체화하는 것입니다. 일체화한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높은 것이 남이 아니라 내가 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하나가 되어야, 그런 세계가 되어야 이상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높은 데는 언제나 높고, 낮은 데는 언제나 낮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신입니다. 무형의 신으로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아담을 통해 가지고 비로소 형상을 입은 것입니다. 형상이라는 것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통해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도 남자와 여자, 즉 주체와 대상이 합해야만 완성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완성도 보이지 않는 내적 하나님과 외적 아담 해와가 합해짐으로써,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하나가 되어 내적인 형도 외적인 형을 대신할 수 있고, 외적인 형도 내적인 형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형상을 지녀 가지고 인간의 중심된 하나님으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뭘할 것이냐? 사랑의 감미를 입체적인 세계에서 느끼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이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사랑으로 이룩된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감도에 적응될 수 있는 소성 비준에 따라 원근의 거리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나무를 보면 태양빛을 많이 받는 나무는 빨리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빨리 무성해집니다. 그런 나무는 꽃이 피어도 많은 꽃이 피게 되고. 열매를 맺어도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감도를 흡수하는 입장에서 보게 되면 그 줄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전체가 느낄 수 있는 사랑의 요인이 그를 통해서 거쳐 나가기 때문에, 그는 그 분야, 그 환경에 해당할 수 있는 사랑의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기쁨의 결과가 하나님의 전체의 기쁨과 어떠한 상대적 입장에 해당될 수 있는 기쁨의 기준이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는 내일에 이와 같은 승리를 남기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승리의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 여자들한테 있는 거예요. 이래서 종교는 지금까지 상대적 세계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찾은 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에, 상대 세계를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상대적 이상세계를 허락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가 그것을 계승해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을 축복해준 것입니다. 그러면 축복받은 여러분이 과연 완성한 아담 해와의 자리에 선 사람으로 축복받았느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 각국을 묶어 가지고 대신 탕감하는 노정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7년 과정 이후에 가야 할 탕감노정이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 탕감노정을 가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본연의 부모보다도 나을 수 있는 가정적 기반 위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 가정들이 바라보는 표준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지금의 상태 그냥 그대로는 안 되는 거예요. 여기에는 새로운 부정이 필요하고 개혁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데 있어서 싸워 이긴 것은 일시적인, 지나가는 승리의 기준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영원한 승리로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영원히 남겨지는 그 자리에 서기 위해 서라구요. 누구와 더불어? 하나님과 더불어. 그러면 한 개인으로 싸웠지만 그 승리의 기준은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역사 과정에 있어서 그러한 승리의 기준을 세워 놓으려 하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는 복귀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타락한 아담 해와보다 나아야 됩니다. 아벨보다 나아야 됩니다. 혹은 노아면 노아보다도 나아야 되고, 아브라함보다도 나아야 됩니다. 그들보다 낫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모세보다 나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보다 나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보다도 나아야 되는 것입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임과 동시에 안식일이옵니다. 한 달을 보내고 새로운 한 달을 맞이해야 할 이날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지나가는 날들이 뜻과 저희 일생의 노정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는 날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당신과 저희와의 사이에 있어서 생명의 인연이 다시 맺어지고, 당신이 소원하시는 그 나라 앞에 당신으로 하여금 신뢰할 수 있는 책임자들이 되기를 얼마나 바라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땅 위에 살고 있는 저희들은 늘쌍 하늘 앞에 빚진 자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 아침 여기에 모인 당신의 어린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본래는 당신을 경외하는 당신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할 자신들이었던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온 천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아버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된다는 거룩한 자리를 그리워할 적마다 지극히 낮고, 지극히 천하고, 지극히 악한 후손임을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본이 선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치 아니한 악의 터전 위에 뿌리를 박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무한하신 당신의 긍휼이 저희들과 같이하지 않고는 소망도 가질 수 없는 인간인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이 아침에 저희들을 찾아오시어 같이하시옵소서. 개개인의 사정 사정은 다를지라도 당신을 그리워하는 마음만은 같아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고 싶어하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소원이자 저희의 소원의 한 표준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의 태어남도 이것을 위해 태어난 것이요, 사는 것도 이것을 위해 사는 것이요, 일생을 가려 가는 것도 이것을 위한 것인 줄 아오니, 이 목적을 위하여 모든 생애를 바쳐 나가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아버지의 존전에 모인 어린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이 자리의 주인은 아버지밖에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희의 생명의 인연을 맺을 분도 아버지밖에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어린애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이 하늘 앞에 사무칠 수 있는 마음이 솟구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립고 그리워 당신이 흠모하시는 심정에 일치될 수 있는 점을 더듬어 갈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 앞에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는 것을 느끼오며, 현재의 자신이 아버지 앞에 내놓기에 얼마나 미급한 모습인가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전체를 아버지께서 맡으시옵소서. 당신이 보시기에 합당하고, 당신이 바라시는 소원에 일치될 수 있는 그 무엇으로써 붙들어 주시옵고, 그 자리에 도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체를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 저희 일체의 마음을 사로잡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 앞에 기억되고 싶은 마음 간절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일생을 가려 가는 생활노정에 있어서는 아버지만을 의지하고 살아야 할 것이 저희의 생활이요 저희의 생애노정인데도 불구하고. 사악한 이 땅 위에 살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당신이 원치 않는 생활을 번번이 하고 있는 저희 자신인 것을 잘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자비와 긍휼의 손길을 펴시어서 최후의 승리를 결(結)할 수 있는 생애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생활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날 아버지여, 10월을 지내고 마지막 날을 맞은 이 시간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은 또 새달, 새날을 맞아야 할 입장에 섰습니다. 지나가는 세월을 덧없이 보내서는 안 되겠습니다. 환란을 당하든가, 혹은 선두에 서서 싸우든가 하는 과정에 있어서 아버지와 인연 맺어지고, 아버지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그 무엇을 남기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을 더더욱 느끼게 되오니, 지금까지 당신과 더불어 나왔던 생애가 있사오면, 아버지여, 다시 한 번 찾아오시어 저희들을 격려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원하시는 소원 앞에 필요한 아들로 서게 하여 주시옵고, 딸로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 1971년도는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맹세한 해였습니다. 이해야 말로 역사상 중요한 해로 만들겠다고 저희들이 다짐하였습니다. 이제 이 10월을 보내게 되었사옵니다. 나머지 두 달을 통하여 아버지께서는 저희들 앞에 무엇을 제시하시겠습니까?

아버지여, 서울교회를 비롯한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가고 오는 모든 섭리의 노정 앞에 필요한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싸움터를 지킬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가정에 있어서의 당신의 심정을 모아 아버지의 기쁨을 상징할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지금까지 저희들을 지켜 주신 아버지, 후덕하신 손길을 길이길이 펴시어서 최후까지 상처를 입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딸로서 고이 남아지고 책임을 다하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 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모인 저희들은 아무것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부족한 자체로서 아버지 앞에 나와 연약한 손길을 아버지를 향하여 벌리고 있사오니, 아버지, 붙들어 주시옵소서. 부족한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면서 아버 지의 긍휼을 바라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찾아오시어서 저희의 마음과 몸에 친히 군림하시옵고, 새로운 창조의 손길을 펴시사 아버지의 뜻 앞에 여의치 아니한 일체를 제거시켜 당신과 더불어 화합하고, 당신과 더불어 남아질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온전히 아버지의 장중(掌中)에 쥐시어서 원하시는 뜻 앞에 당신이 맡기고 싶어하시던 사명을 맡게 허락 하여 주시옵고,최후의 일선을 사수하여 승리의 영광을 찬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하늘나라의 정병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을 우러러보고 정성들이는 곳곳마다 당신이 친히 동참하여 주시옵고, 더우기 일선에 나가 있는 어린 딸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원하고, 그들이 정성들이는 모든 것을 긍휼히 보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를 위하여 그와 같은 자리에 섰는가를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함은 물론이요, 이 시대의 불쌍한 인류를 위해 선두에 선 걸음걸이이오니, 힘차고 가치 있는 걸음걸이를 갖추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역사시대의 책임을 짊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는 선조들의 참소와, 인류의 참소와, 후손의 참소를 받는 비참하고도 불쌍한 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러한 자들이 되지 않게끔, 아버지, 현재 입장을 지키시고, 현재의 승리를 다짐하고, 한 순간 한 순간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기에 온갖 충성을 다하는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을 통하여 이 민족 앞에 세워져야 할 기성교회를, 아버지, 긍휼히 보시옵소서.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는 갈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이 원리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통일교단은 기성교단과 하나되어야 될 것이 필연적인 운명의 길이옵니다. 이것이 하나 안 되고는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길이 없기에 하나되기 위해서 가는 길이 원리가 가는 길이요, 당신의 섭리가 이런 원칙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 자신들 앞에 맡겨진 중차대한 사명을 감당해 내기 위해 각자가 책임을 다하게 도와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교단이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불쌍한 민족을 아버지 뜻 가운데 품고 갈 수 있도록 금후에도 아버지께서 이 교단을 보호 육성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상이 바라는 소원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고대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남북한이 통일된 한국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이여, 저희들이 나날을 조는 자리에서 보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정성을 다하고 깨어서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온갖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저희 생활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생활이 되려면 싸움이 되풀이되는 노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각자의 심중에 보다 깊이, 보다 크게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후의 이 세계 정세를 두고 볼 때, 한국이 갈 수 있는 길, 아시아가 갈 수 있는 길, 세계가 갈 수 있는 길을, 아버지여, 인류와 더불어 의논하시어 갈 바를 개척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가는 길 앞에 있어서 하늘의 기수가 되어야 할 무리들은 딴 곳에 있는 무리들이 아니옵니다. 보기에는 미미하고 아무것도 아닌 여기에 모여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통하여, 외로이 널려 있는 통일교단을 통하여 이 중차대한 사명을 가리고자 하시는 당신의 뜻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이여, 저희들을 버리지 마시옵고, 당신이 선두에 서시어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이 민족 앞에 책임을 진 이 종단이 책임을 다함으로 말미암아 당신 앞에 부끄러움을 면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남겨진 민족적 사명을 감당하여 후대 후손 앞에 참소를 받는 저희들이 돼서는 절대 안 되겠사오니, 아버님이여, 있는 정성과 있는 마음을 다할 수 있게끔 저희의 몸 마음을 채찍질해서라도 가야 할 곳과 해야 할 일을 감당해 내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당신의 자녀들이 모인 곳곳마다 당신이 축복하여 주시옵고,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당신 앞에 속해 있는 수많은 권속들을 살피시옵소서. 최후의 시기에 있어서 한 나라의 백성이 되고, 한 시민이 되는 데 있어서 당신의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늘 권속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부족한 모습들이 모여 앉은 이 자리를 당신이 살피시옵소서. 그 누구를 바라보고 나온 자리가 아니옵니다. 당신이 그립고, 당신의 사정이 간절하여 나온 자리이옵니다. 이제 털어놓고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저희들 앞에 전달하고 저희들의 소원의 일념을 당신 앞에 통고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저희들이 화합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겨진 시간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이름을 갖고 모이는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이 시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영광과 승리와 권위가 이 땅 위에 나타나길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이 시간도 아버지께서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어떠한 표준을 정해 놓고 살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은연 중에 자기 스스로의 목적을 바라보고 살려고 하는 것이 오늘날 인간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개인도 그러하고, 한 단체면 단체, 한 나라면 나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 세계면 세계도 역시 그러한 것을 향해서 바라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 바라고 있는 자리, 자기가 현재 처해 있는 자리를 중심삼고 볼 때, 갑이라는 사람이 있으면 갑이라는 사람, 을이라는 사람이 있으면 을이라는 사람, 각양의 사람의 사정이 다르니만큼 각기 다른 사정에서 자기 스스로의 목적을 바라고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늘땅을 대표하는 중심존재

역사과정을 두고 보면, 특정한 사람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바랄 수 있는 소망의 뜻이라든가, 혹은 목적을 구사해서 살아간 사람들의 생활이라 든가 생애가 있으면 그것을 통해서 역사는 한 곳으로 수습되어 나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잘난 사람, 혹은 크나큰 사상을 품은 사람, 혹은 천운이 있으면 천운을 따라가는 사람, 혹은 보다 높은 이념을 가진 사람이 살아간 길이 있으면 그 길을 은연 중에 표준으로 바라보면서 따라 나오는 것이 역사의 노정인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 바라보고 나오는 역사의 노정이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역사적인 목적이 있으면 그 목적에 내적인 인연이라든가, 혹은 외적인 사정이 일치 되게 될 때에는, 그 역사노정에 세워진 인물이 바라는 소원은 몇 세기 또는 몇천 년의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인류의 하나의 표준상으로 남아 나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정한 사람들로서 우리가 흠모 하는 사람들이 성인들인 것입니다.

그 성인들을 중심삼고 보면, 반드시 하늘을 소개하지 않고, 하늘을 중심삼고 세계를 생각지 않은 사람들은 성인이 되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성인 하면 모두 종교를 대표하는 종주(宗主)들이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만을 대표한 입장이 아니라, 하늘과 인간과의 인연을 가지고 그것이 그 일대에 한할 수 있는 목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종말시대까지 최후의 인간으로서 참된 전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그때를 바라보고 나온 것입니다. 모든 성인들은 그 목적에 일치화시키기 위하여 자기의 생애를 투입했고, 자기가 세워 놓은 종교를 통해서 지금까지 인류를 그 길로 이끌고 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잘 아는 바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개인 개인의 소원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하늘과 일치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지 않게 될 때는 그 개인은 가다가 중단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나라라 하더라도 역사의 목적을 이어받을 수 있는 세계적인 하나의 국가, 세계적인 사상의 체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국가의 방향을 갖추지 못하는 그 한계선에 도달하게 될 때는,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하게 되는 사실도 우리는 미루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인들 가운데서 성인으로서 바랄 수 있는 최고의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성인 자체라는 것은 인간을 대표해서 역사적인 인간의 자리를 차지함과 동시에 세계사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즉, 인간을 대표해서 역사적 중심이 되는 동시에 세계사적인 목적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대표한 자리에서 그래야 되고, 만일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을 대신한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소원 일체를 이어받음과 동시에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이 있으면 그 목적 전체를 이어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역사를 대표하고, 역사적 목적을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땅 위에 그러한 소망과 그러한 책임감을 느낀 성인 중의 성인이 누구냐? 그 성인은 인류를 대표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륜을 중심삼고 인류를 움직여 나가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인정인 것입니다. 인륜과 인정을 갖추어 완전히 하나의 세계사적인 중심의 자리에서 세계의 목적을 대신할 수 있는 인간 대표의 모습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천륜이 있으면, 하늘이 찾아 나가는 길이 있으면 그 하늘을 대신해서, 하늘이 인간세상에서 심정적 내연을 찾아 나오는 그런 길이 있으면 천정을 대신해서, 천륜과 천정을 대신한 섭리노정에 있어서 개인을 대표한 천륜의 자리를 지키고, 하나의 국가와 세계를 대표한 천륜의 자리를 대신한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동시에 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륜과 인정을 대표할 수 있고, 천륜과 천정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하늘을 대표함과 동시에 인간을 대표한 그러한 한 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분은 어떠한 사람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 앞에 제일 가까운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늘나라의 가정이 있으면 그 가정의 제일 중심존재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나라가 있으면 그 나라의 제일 중심존재가 되어야 될 것이고, 하늘나라의 세계가 있으면 그 세계의 제일 중심존재가 되어야 될 것은 물론이지만, 인간을 대표해 가지고도 가정에 있어서 세계적인 대표의 자리에 서야 되는 것이요. 나라에 있어서 세계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중심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전세계를 대표해 가지고도 중심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 세계 따로 하늘 세계 따로 분립된 자리에서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륜과 천륜이 하나된 자리에서, 인정과 천정이 교차되어 하나된 자리에서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중심에 선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개인이 바라는 세계적 중심의 표준을 가려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혹은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세계적 중심존재를 가려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혹은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중심존재로서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개인적인 중심은 전체 하늘나라의 개인을 대표하고, 나라의 중심은 하늘나라의 중심을 대표하고, 세계의 중심은 천국 전체를 대표한 중심으로서 나타나기에 부족함이 없어야 됩니다.

그는 바로 세계의 중심임과 동시에 나라의 중심이요, 나라의 중심임과 동시에 개인의 중심입니다. 그는 천륜과 천정을, 혹은 인륜과 인정을 개인으로서 결합시킨 사람이요, 혹은 국가면 국가를 대표해서 결합시킬 수있는 사람이요, 세계를 대표해서 결합시킬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에서부터 전체를 대신해서, 인륜과 천륜, 혹은 인정과 천정이 분립되지 않고 하나의 궤도를 따라 가지고 그의 생애노정에 남기고 갈 수있고, 생활환경에 나타내 가지고 살 수 있는 분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분, 그런 한 사람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맞음으로 말미암아 인류역사는 완성을 바라볼수 있는 것입니다. 인정과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그 누구보다도 이 세상에 있어서 중심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고, 중심자리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정(天情)을 유발지킬 수 있는 동기의 자리에 선 그러한 분이라야 될 것입니다.

예수의 소원

이렇게 보게 될 때, 역사상에 그러한 책임을 짊어지고 왔던 분이 누구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을 대표해서 말하게 될 때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외아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독생자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있어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첫번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독생자는 하나님의 사랑 전체를 받을 수 있는 대표자인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 앞에 누구보다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표적 자리에 섰다는 입장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어느누구도 발언하지 못하였던 것인데, 예수님은 천정과 인정을 대표해 가지고 발언하는 데 있어서 제일인자가 아닐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바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대해 가지고는 신랑의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신봉하던 모든 신자들은 신부의 인연을 맺기 위해서 예수님과 같은 공적 생활을 거쳐갔던 것입니다. 그 신랑 신부라는 것은 인정과 인륜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천정과 천륜을 중심삼은 그런 신랑 신부를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종이 되지 않고 친구가 된다' 더나아가서는 '형제가 된다'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예수님이 주장한 교리의 중심은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의 자리에 서는 것이요, 그런 아들로서 하나님이 바라는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형제지권을 바라 나왔던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인륜과 인정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거기에 천륜과 천정을 플러스시켜서 천주가 공인할 수 있는 세계관을 중심삼고, 하나의 섭리관을 중심삼고 일치된 노정에서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가정적으로는 가정의 주인이요, 생활적인 면에서는 형제적 인연을 갖추는 것이 또한 하나님이 예수에게 바랐던 소원이요,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실천해야할 사명이 아니었더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가야 했던 길

그러면 여기서 가야 할 예수의 노정이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예수가 가야 할 길은 어떠한 길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독생자의 길을 지키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데 있어서는 소년시대, 청년시대에만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장년시대, 노년시대를 거쳐 이 땅 위에서 사랑을 받는 것은 물론이지만, 저세계에 가서도 영원히 하나님의 독생자의 입장에서 사랑을 받아야 할 입장에 서서 그 길을 다 가야 하는 것이 예수가 가야 할 노정이 아니냐.

예수는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나야 되는 것이요, 자라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야 되는 것이요, 철이 들어 가지고 생활하는 환경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환경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청년시대에도 역시 그래야 되고, 장년시대에도 역시 그래야 되고, 노년시대에도 역시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생애노정을 다 마치고 난 후에도 역시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은 예수가 날 때부터 생애노정을 통해서 사랑하셨지만, 예수를 사랑했던 인간을 대표한 개인은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런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진정으로 사랑한 개인이 누구였더뇨 할 때 요셉도 아니었습니다. 마리아는 물론 어머니의 입장에서 사랑한 것은 틀림없었겠지만,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인간을 중심삼은 입장에서 사랑하기가 쉬웠지 천정을 대표한 자리에 서서 나면서부터 생애 노정을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의 자리에 섰느냐? 그렇게 못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칫집에서 그 어머니를 대해서 예수가 한 말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인간으로서 하지 못할 그런 말을 한 것은 그 누구 앞에 내놓을 수 없는 슬픔을 품고 있었기 때문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가정적 배경을 두고 보면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한 단계에서 태어난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 아버지는 오늘날 세상적으로 보면 의붓아버지입니다. 의붓아버지 품에서 자라고 있는 예수님의 입장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사이를 두고 보면 예수란 존재는 언제나 기쁨의 존재가 되는 것보다는 도리어 의심의 존재요, 마음을 혹은 심정세계를 엇갈리게 하는 존재로 자라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과연 예수가 기뻐할 수 있는 아버지가 있었느냐? 그렇지 못한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예수가 기뻐할 수 있는 어머니를 맞았느냐? 그렇지 못한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사이는 예수로 말미암아 언제나 트러블이 생기고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많이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심정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가 천정의 인연을 대표할 수 있는 아들로 태어났으면 그 천정을 예수 자신에게만 미쳐지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받는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 자신에게만 멈춰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횡적으로 아버지면 아버지를 중심삼고 연결시켜야 되고, 어머니면 어머니를 중심삼고 완전히 연결시켜야 됩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사랑을 연결시킴과 동시에 형제를 중심삼고 연결시키고, 친척, 교회, 이스라엘 나라까지 그 사랑을 횡적으로 연결시켰더라면 예수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과연 정면적으로 인간을 대해서 '내사랑이 이렇다' 해 가지고 그 사랑을 전부 다 퍼부었던 사람이 있었느냐할 때, 우리가 성경을 보면 서러운 내용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30세에 공생애노정을 나서서 제자들을 찾아다닌 예수의 입장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혹은 열두 제자를 볼 때, 그들이 과연 인간세상에서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그리움의 대상들로서 모여진 제자였더냐? 그렇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제자들은 그 시대에 있어서 상류계급으로서 어떠한 권위를 갖춘 사람들이 아니었으며, 외적 환경에 있어서 존경받을 수 있는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이 땅 위에 와서 공생애노정을 거칠 때, 세리의 친구요, 먹고 마시기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평을 받았습니다. 그는 죄인들과 더불어 동거하기를 즐겨하고 같이하기를 즐겨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해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수님이 대하던 무리는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존경할 수 있는 대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에 멸시받던 세리와 예수의 어부들이 친구의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 일파들은 전부가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냐. 여러분이 성경을 봐서 잘 아는 바입니다.

12사도들이 오늘날에 와서는 우리가 존경할 수 있는 입장에 섰지만. 이것은 역사적인 과정에 있어서 기독교의 발전과 더불어 기독교 문화권이 발전함에 따라 그 비례적인 가치로 세워진 기준이지 예수님 당시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랑하지도 받지도 못한 예수

3년 공생애노정을 거쳐 십자가의 길을 가는 도상에 서게 될 때, 예수님이 지극히 사랑했던 모든 제자들은 예수를 저버렸습니다. 진정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예수가 죽어가는 길을 가게 될 때 죽기를 다짐할 수 있는 참다운 제자가 있었더냐? 예수와 더불어 죽기를 맹세했던 베드로, 모든 제자들이 전부 다 선생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죽더라도 버리지 않겠다고 철석같이 맹세했던 베드로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하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아는 예수가 과연 천정의 일념을 다짐할 수 있는 자리에 서서 수제자 베드로 이하 열두 제자들을 사랑할수 있었겠느냐? 그런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심정으로부터 인연 되어 있는 참아들로서, 하나님의 심정을 대표한 자리에서 인간을 진정히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앞에 놓고 저버린 제자들을 바라보는 예수님은 얼마나 고독했을 것인가? 이 땅 위에 찾아온 것은 사랑을 받기 위함인 동시에 사랑을 하기 위해서 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려니 사랑할 사람이 없고, 사랑을 받으려니 사랑해 줄 사람이 없는 입장에서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예수의 고독한 심정을 그 누가 알았겠느냐? 그 누구도 몰랐더라 이거예요. 그 누구도 그것을 헤아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산정을 거쳐 죽음의 자리에 임할 그때까지, 어려움을 극복하는 그 순간만이라도 그 마음속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땅 위에 한 사람이라도 있었던들, 예수를 위해서 애절한 심정을 가지고 당신이 가는 길을 나도 가야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하나의 사랑의 대상이 있었던들. 죽음의 십자가의 길은 그렇게 고독한 길이 되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

고독이 극한 자리에서, 좌우의 강도들과 같이 죽음의 길을 가는 도상에 있어서 오른편 강도가 위로하는 몇 마디를 중심삼아 가지고 위로받고 '너는 오늘 나와 같이 낙원에 가리라'고 말씀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그것이 기쁜 것이 아니라 지극히 고독한 자리에서 이 땅 위에 인간을 찾아왔다가 떠나가야 할 입장에 선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인정의 일면을 남기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예수님으로서는 오른편 강도에게라도 그러한 심정적인 내연을 남겨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다시 인간세계를 찾아와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을 도리가 없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오른편 강도를 중심삼고 동정하는 자리에 섰던 사실을 생각하면 얼마나 비참하냐? 아무 인연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강도, 죽음의 자리에 동참한 오른편 강도를 대해서 동정의 마음을 남기고 가려 했던 예수님의 사정을 두고 볼 때, 얼마나 비참했던고?

예수님이 땅 위에 찾아온 것은, 4천년 동안 수고해서 하나님이 예수를 보냈던 것은 오른편 강도 하나 만나게 하기 위해서 보낸 것이 아닙니다. 어림도 없는 말입니다. 4천년 동안 수많은 선지 선열들을 보내 죽음길을 가려 가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고이 품어 키운 것은, 이스라엘 나라를 세운 것은, 유대교를 만드신 것은 유대교 자체를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민족 자체를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남아짐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가 남아지는 것이요, 예수님이 남아짐으로 말미암아 그 교단이 남게끔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하나님으로부터 세워진 것이지, 예수님 이외에 남아질 수 있는 교단이나 나라를 위한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나라는 반기를 들고, 그 교단은 죽음길로 내모는 입장에서, 혹은 자기 부모마저 가는 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동정하지 않는 외로운 자리에서, 제자마저도 배척하는 심각한 죽음길에서 동정의 한마디를 남길 수 있었던 사람이 누구냐? 오른편 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 오른편 강도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수를 보냈던 것이냐? 그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라 전체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고 하나님의 심중의 사랑을 대표한 예수는, 그 나라 전체를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어하던 자리에서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 예수가 바라던 사랑의 심정이 아니었겠느냐.

자기가 받던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가지고 지금까지 수난길을 가려 나오면서 참고 남아진 무리들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 예수의 소원이 아니었겠느냐. 요셉의 일족과 사가랴 일족, 자기의 친척 전부도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아들로서의 권위를 대신하고, 또 같은 사랑을 받는 자리에 서서 그 일족을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 예수의 마음이 아니었겠느냐. 더 나아가서는 자기 부모는 물론이요, 자기 사랑하는 형제들까지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내 형제라고 내 부모라고 붙안고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 예수의 심정이 아니었겠느냐. 이렇게 볼 때, 언제 어느때 예수가 그러한 사랑을 해봤느냐? 사랑을 못 해봤다는 거예요. 사랑을 못 해본 예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죽음길을 예수 앞에 맞게 하기 위해서 섭리해 나오신 것이 아니지 않느냐. 그건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서 3일 후에 부활해 가지고 흩어진 제자들을 다시 찾아간 예수에게는 그 길이 기쁜 길이 아니었습니다. 죽기 전에, 생전에 이 땅 위에서 심정적 인연을 맺어야 했는데, 그 누구도 하나님이 준비한 자리에서 맺지 못하고, 이 터전을 다 쓸어 버리고 난 이후에 맺었는데, 그때가 부활 직후가 아니었더냐. 그러면 예수님이 부활하자마자 사랑할수 있는 사람이 있었더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을 때 부활한 예수를 만났습니다. 부활한 그분이 동산지기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야 주님인 것을 알고 반가와 예수를 붙들려 할 때, 그리 말라고 거부한 것을 우리가 알지 않느냐. 그건 왜 그랬느냐 이거예요. 사랑하는 데는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고 나서, 형제를 사랑하고 나서, 친척을 사랑하고 나서, 교회를 사랑하고 나서, 나라를 사랑하고 나서 세계를 사랑해야 될 것이 아니냐. 사랑하는 데는 질서가 있을 것이 아니냐.

부활한 자리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찾아와야 할 것은 예수 앞에 지극히 가까와야 할 예수의 어머니 아버지 형제가 돼야 되고, 제자가 돼야 될 것이 아니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 앞에 나타난 한 여인의 모습을 보게 될 때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예수는 부활 후 40일간 배반하였던 제자들을 다시 수습하는 자리에 나섰던 것입니다. 그리고 떠날 날이 가까와 오자 예수는 베드로를 대해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다짐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또다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게 될 때, '주여! 주께서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아시나이다' 하고 막연하게 대답했습니다. 첫번에는 얼굴을 들고 반겨 대답했지만, 다시 예수님이 심각한 자리에서 쏘아보며 두 번 묻게 될 때에 베드로의 마음에 자신이 있었느냐? 문제라구요.

여기에서 당당한 자신을 갖고 '그 무엇이 맞부딪쳐 오더라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천지가 요동하더라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꺾어 놓을 수 없습니다' 하고 주장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베드로가 대답한 자리였느냐? 엇갈린 입장에 서 가지고 왜 이렇게 물을까 하는 반면에, 며칠 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배반하였던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직각적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자리가 아니었더냐. 세번째 물음에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고 대답했을 때는 틀림없이 얼굴을 들고 대답한 것이 아니라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안 그렇겠어요? 세 번씩이나 배반했던 녀석이 그렇게 묻는 장본인 앞에서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줄 당신이 알지 않소. 그 무엇이 반대하더라도 다부숴 버리고, 다 제거시켜 버리고 이것이 이렇지 않습니까' 하고 도리어 스승에 대해서 반문할 수 있는 그런 자신 있는 자리냐? 두 번 묻고 세번 묻게 될 때, 머리를 점점 숙일 수 밖에 없는 베드로가 아니었더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이 땅 위에 왔던 예수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묻는 그 말 속에는 지극히 고독했던 예수님의 생애를 종결짓기 위한 최후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입장에서 와 가지고 그 사랑을 인간 대해서 몽땅 부어 놓고 가야 할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 위의 그 누구를 사랑했단 말이냐. 사랑했다는 자리가 오히려 사랑하느냐고 묻는 자리가 되었더라 이거예요. 이 얼마나 비참한 자리냐 이거예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것을 내가 안다'고 그렇게 칭찬하는 말로 부활 이후 찬양할 수 있는 사도를 못 가진 기독교는 비참한 종교다 이거예요. 그렇게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제자를 못 가진 예수, 제자마저 사랑할 수 없었던 예수였습니다. 그러니 누구를 사랑할 수 있었겠느냐?

마리아와 요셉이 책임 못하여 집을 떠난 예수

마리아가 책임 못 한 것을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더더구나 요셉은 의붓아버지로 예수를 못살게 굴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친척들도 예수가 사생아라는 소문을 듣고 손가락질하고 저주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게 되면 예수님이 열두 살 때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 가서 제사장과 교법사들을 만나 토론한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는 좋은 일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거 왜 그랬느냐?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 성전에 갈 때 예수를 데리고 간 것은 틀림없습니다. 어린 예수를 데리고 가는 요셉과 마리아는 어머니 아버지로서 예수를 지켜 봐야 하고 예수와 함께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셉과 마리아는 사흘 동안 고향길을 돌아갔다가 와 가지고 예수를 만나게 됐어요. 사흘 동안이나 예수를 성전에 남겨 두고…. 어미 아비라는 작자 들은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왜 돌아갔느냐 이거예요. 좋아서 돌아간 줄 알아요? 예수 때문에 트러블이 생겼다는 거예요, 예수 때문에.

요셉이 마리아한테 예수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게 될 때, 거기서 언제나 문제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남자로서 그 아기의 아버지를 추궁하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느냐? 물론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요셉이 마리 아를 데려왔지만, 그 여편네가 자기도 모르는 아기를 배어 가지고 낳았는데 그 아기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지 않을 사내가 어디 있겠어요? 트러블이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틈바구니에서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을 아신 예수는 집을 떠나갔다구요. 집을 버리고 나갔다구요. 3년 공생애노정은 떠벌이꾼으로서 동네방네 소문을 내놓으면서 교회와 나라 앞에 선동분자로 몰려 가지고 죽을 것이 아니라구요. 누구도 모르게 뜻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요셉과 마리아가 하나되어 만들어 가지고 예수를 협조했더라면 뜻은 이루었을 것인데 요셉과 마리아가 책임 못 했기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복중에 있을 때부터 요셉과 마리아가 서로서로 불화했던 것이 동네에 소문나게 됐다는 거예요. 그럴 게 아니예요? 마리아 복중에 있는 아기가 요셉의 아기가 아니라고 낳기 전에 이미 동네에 전부 소문나 버렸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친척들마저 전부 다 예수를 의붓자식으로 취급하고 사람 취급을 안 했다는 거예요.

그와 같은 동네에서 예수를 태어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할수없이 그 누구도 모르는 베들레헴 같은 데서 예수를 탄생케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라구요.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탄생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타나지도 않았다는 거예요.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까지 거리가 얼마냐 하면 시오리밖에 안 돼요, 시오리.

배후에 그러한 서글픈 사정이 있는데 제자들이 성경을 썼으니 그걸 누가 알겠느냐 이거예요. 곡절에 묻혀 있는 사실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모르고 있다구요.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와서 그러한 미지의 사실들을 밝힐 수 있는 때를 가졌기 때문에, 기독교가 광명한 새아침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예수님이 제자를 대해서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한 사실, 이게 얼마나 비참하냐 이거예요. '너는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했다' 이럴 수 있기를 하나님은 바랐을 것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한 것이 예수의 소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디서 그런 사람을 만났느냐? 자기 가정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서 만났느냐? 못 만났어요. 자기 형제를 통해서 만났느냐? 못 만났어요. 자기 일족을 통해서 만났느냐? 못 만났어요. 자기 교회를 통해서 만났느냐? 못 만났다 이거예요. 이스라엘 나라를 통해서 만났느냐? 못만났습니다. 그 나라의 위정자들, 주권자들, 혹은 교회의 교법사들을 통해서 만났느냐? 못 만났습니다. 상류계층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만났느냐? 못 만났다 이거예요.

할수없이 중류계층의 사람도 아닌 맨 하류계층의 지지리 못난 어부들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지금도 대한민국에 있어서 어부 하게 되면 사람취급을 안 하는데 2천년 전 그때는 어떠했겠어요? 여러분, 갈릴리 해변가에 가 보면 우습다구요. 옛날 베드로가 살던 집을 가 보면 토굴이라 구요. 형편이 무인지경이라는 거예요. 그런 세상에서 아주 비참한 무리들, 할수없으니까. 죽기 전에 있는 정성을 다해서 땅 위에 사랑의 인연을 펴고 가야 할 텐데 불구하고 펼 수 없게 되니까, 몰리고 몰렸으니 인종지말(人種之未)들을 붙들고 최후의 소원성취의 일념을 바라 가지고 허덕이던 노정이 예수의 3년 공생애노정이더라 이겁니다.

비참했던 예수의 공생애노정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알기를 거룩한 노정…. 그래 가지고 천국 가겠다고? 예수의 공생애노정이 거룩한 노정이 아니라 비참한 노정이라구요. 4천년 이스라엘의 역사가 뒤집히는 순간이요, 유대교의 역사가 깨져 나가는 순간이요, 요셉 가정의 축복의 터전이 폭파되는 자리라구요. 제자들과의 인연이 전부 다 갈래갈래 찢겨져 소망이 없는 순간이라구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과 더불어 결속시켜 놓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예수였기 때문에, 인간을 붙들고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죽고 난 후에도 원한의 터전으로 남았기 때문에, 배반했던 제자들을 찾아가 사정을 토로하자 않을 수 없었던 예수였다는 것을 그 누가 알았겠느냐 이거예요. 기가 막히는 장면이었다는 거예요. 그걸 보게 될 때, 예수는 이 땅 위에 와서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배반했던 무리들인 열두 제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수습했던 것입니다.

사랑의 인연을 찾아왔던 예수를 죽음길로 몰아냈기 때문에 그런 무리는 벌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예수가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남기기 위해서 가던 길이 십자가의 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이어받기 위해서 찾아가는 무리는 십자가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생겨난 것이 구원의 도리가 아니예요. 기독교의 수난의 도리예요. 그걸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뭐, 십자가로 구원을 받겠다구요?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수난의 길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못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갔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가지 않고는 사랑할 수 있었던 자리를 찾아갈 수 없습니다. 사랑한다고 말을 하기 이전의 베드로의 자리에 찾아갈 수 없습니다. 베드로의 자리는 예수님이 죽기 전이 아니라 죽고 난 후의 일이기 때문에, 죽고 난 후에 사랑의 약속이라도 받겠다고 찾아 나온 것이 지금까지 2천년 기독교 역사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예수는 신랑이요 자신들을 신부라고 믿고 나왔습니다. 사지사판에서 순교의 시련 역사를 거쳐온 선지선열들이 많았지만, 그들이 죽기 전에 예수를 만나 가지고 '내 사랑하는 신랑이여, 하나님의 사랑을 나에게 퍼부어 주시옵소서' 할 수 없다는 거라구요. 살아서 못 한 사랑을 죽어서 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비참한 것입니다. 예수를 영적으로 한번 만나려면 7년 이상의 수난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7년 이상,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이 영적으로 예수를 만나 봐요? 어림도 없다는 거라구요. 죽을 힘을 다하고 나서 부활의 권한을 찾아 가지고 거기에 동참자가 돼서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사랑의 인연을 거칠 수 있는 자리를 거쳐 가지고 오른편 강도 이상의 자리에 서지 않고는, 오른편 강도와 더불어 넘어가서 사랑을 잃어버렸던 예수를 잃어버리기 전 자리로 끌어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죽을 고비를 넘어가서 베드로와 같은 자리에 서야만 사랑의 약속을 받고 돌아올 수 있는 것이지 그전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기막힌 사정을 알아야 되겠다

그러면 예수의 슬픔이 무엇이었느냐? 부활 후에 예수를 만난 것이 기뻤느냐? 기쁜 반면에 배후에는 슬픔이 개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보낸 뜻은 죽고 난 후에 부활해서 제자들을 찾아가 가지고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반문을 바랐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소원이 아닌 것은 당연하다구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를 남기기 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했던고. 아들이 피해를 입을까봐 준비했던 터전은 산산조각으로 다 깨져 나가고…. 인종지말(人種之未) 이 일당들을 거느리고 소원을 다시 이루어 보겠다고, 수습해 보겠다고 결심했던 길 가운데서 배척받기 일쑤고, 몰려 죽은 예수가 무덤을 헤치고 다시 찾아와서 소원을 이루고자 했던 기막힌 사정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주인 되시는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 가지고 사랑의 도리를 이어받겠다는 사람이 있을진대,'나는 십자가를 지지 않고 이 너머에서 따라가겠소' 하게 되면 이것은 전부 다 배반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없이 십자가를 지고 넘어가야 됩니다.

하나님도 거부했다는 거예요.'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나님도 예수를 버렸어요, 왜 버렸느냐? 하나님이 예수를 보낸 것은 그렇게 죽으라고 보낸 것이냐? 하나님은 예수를 사랑했는데 예수는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못 가지고 죽기를 바란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 아니지 않느냐, 안 그렇겠어요? 죽기를 바랐다면 4천년 동안 유대교니 이스라엘 민족이니 하는 것을 준비할 필요가 뭐 있어요? 이방 나라에 태어나게 하면 대번에 죽을 것인데….

하나님도 기가 막혔다 이거예요. '내가 너를 보낼 때는 인간 세상 앞에 사랑받게 하기 위해서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망해 가지고 돌아올 줄이야…' 하나님이 그걸 보고 좋다고 바라보시겠어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구요? 이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의 십자가는 다 잘라 버려야 돼요. 없애 버려야 됩니다. 십자가가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십자가가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고는, 우리가 죽지 않고는…. 그런 길이예요. 억울하고 원통한 길이예요.

억울하고 원통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가슴에 품고 십자가를 끌고 골고다 산정을 향하던 예수의 애달픈 심정을 체휼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활권에 못 들어갑니다.

그래 누가 예수를 사랑했어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면 막달라 마리아가 사랑한 것은 어떠한 내용으로 사랑했을 것이냐를 볼 때, 하늘나라, 혹은 전세계의 구도자의 사명을 짊어진 메시아의 심정과 일체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하려고 했겠느냐?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입장에서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컸댔자 이스라엘 아무개 아무개 족속, 내 친척을 대표해서 예수를 모시고 싶다, 이 정도지, 교회를 대표하고 이스라엘 나라를 대표한 자리에서 예수를 사랑한다는 마음은 못 가졌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대표한 자리에서 '예수를 이렇게 사모합니다. 사랑합니다' 못 했을 거라구요.

예수가 대했던 사람들

보라구요. 예수가 대했던 사람들을 보라구. 고작해야 베드로 같은 어부였습니다. 베드로 보고 사랑을 얘기한 것입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이나 물어 봤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가 대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마리아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과부고 좋지 못한 배후를 가진 사람이라구요. 그 다음에는 누구냐 하면 말이예요, 사마리아 여인, 야곱의 우물가에서 물을 달라고 하던 그 자리에서 제자들이 의심할 정도로 다정스럽게 이야기했던 사마리아 여인이 있었어요. 그 다음에 누가 또 있어요?

이 땅 위에 사랑의 주인공으로 왔다가, 신랑이니 사랑의 주인공이 아니예요, 그 사랑의 주인공 되시는 분 앞에 상대로 나타났던 무리가 어쩌면 그렇게도 껄렁껄렁해요, 껄렁껄렁해? 그것이 예수가 바라던 소원이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라던 소원이었느냐? 아닙니다. 못난 사람도 잘난 사람을 요구하는데, 아무리 못난 여자라 하더라도 잘난 남자를 신랑으로 얻으려고 하잖아요? 못난 남자도 잘난 여자를 부인으로 얻으려고 한다구요. 사망권내에 살고 있는 인간들도 그렇게 반대되는 입장을 바라 보는데, 하물며 하늘나라의 왕자로 태어난 예수가 그렇게 지지리 못난 어부들을 모아 가지고 무슨 대장 노릇을 했다는 거예요? 창녀 패거리들이 뭐 사랑한다고 표시했다는 거예요?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돼 가지고 어쨌다구요? 성경이 그거 아니예요? 기가 막힌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나라의 대제사장을 중심삼고 '야! 아무개야,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했지? 할 때, '예, 주께서 내가 사랑하는 것을 다 보았나이다' 이런 대답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빌라도가 예수의 문도들을 찾아오기 위해서 자기의 시종들을 앞에 세워 통고해 놓고 '이제야 찾아와 뵙게 되었습니다' 했다면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기분 나빴겠어요? 그렇게도 지지리 망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그렇게 망하게 하려고 4천년 동안 선지자들을 통해서 메시아를 보내 주겠다 했겠어요? 선지자들도 편안한 자리에서 선지자 되는 것 아니예요. 죽임을 당하고 별의별 희생을 다 당하면서도 앞으로 이렇게 된다고 증거한 것이 풍습화 될 수 있는 기반으로 닦기까지 얼마나 천신만고했던고. 그렇게 무가치하게, 그렇게 외롭게 죽게 하기 위해서 그 길을 닦았느냐 이거예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불쌍하신 예수님, 불쌍하신 예수예요.

예수가 그 눈으로 바라던 부모는 어떠한 표준의 부모였던고. 하나님 앞에 '내어머니 아버지는 천상천하에 둘도 없는 어머니 아버지이오니, 하나님이시여, 이 부모를 나 이상 사랑해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축복의 한 시간이 어디 갔던고. 자기의 사랑하는 형제들을 대해서 '하나님이여, 내 사랑하는 형제들은 천상천하의 그 어떤 형제보다도 고귀한 형제이옵니다.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다가 이와 같은 형제를 가진 것은 하늘의 자랑이요, 인류의 자랑이옵니다' 하고 찬양할 수 있는 그 자리는 어디에 있었던고. 혹은 제자들을 대해서 '나는 인간 세상의 스승 가운데 대스승으로서 사제지간을 중심삼고 천하에 자랑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제자를 사랑했노라. 사랑하겠다'고 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 있었던고. 자기의 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내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사돈의 팔촌, 우리의 일족 전체는 하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일족이요. 당신 앞에 소개하지 않을 수 없는 일족이니, 이 일족을 내놓고서는 하늘의 갈 길이 없나이다' 하며 기쁜 자리에서 맹세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소개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바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던고.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4천년 동안 수난의 엇갈린 길을 거쳐 나오면서. 악한 무리와 악한 나라의 핍박을 받으면서 남겨 놓았던, 당신이 사랑하고 싶었던 이 교회와 이스라엘 나라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섰으니, 이날을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소원성취의 사랑의 날로 맞아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었느냐? 하나도 없었다는 거예요.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막달라 마리아 같은 천비(賤婢)가 와서 발에다 향수를 부어 머리털로 닦을 때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세상 남자 같으면 발길로 차 버렸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 그 나라에서 특별한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난 미녀가 와서 그랬어도 귀찮았을 텐데 그 꼬락서니가 뭐냐? 그렇지만 가롯 유다가 그 행동을 보고 탓하는 자리에서 예수는 도리어 편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롯 유다 너보다 낫다. 너에겐 내 생명을 노리는 간교한 심정이 깃들어 있지만 그 여인은 너보다 낫다. 너보다 나은 사람을 어떻게 탓하느냐?'고 책망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모든 전체를 희생하는 길에서만이 복음이 발전한다는 것을 예고하면서 '이 복음인 전파되는 곳에 이 여인의 일을 전하라'고까지 다짐하였던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것이 좋은 자리라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만일 거기에서 가롯 유다가 그렇게 나오지 않았으면 예수는 어떻게 했을 것이냐? 그런 말을 안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생각해야 됩니다.

예수는 사랑의 도리를 펴기 위해서 오셨었는데

예수는 사랑할 수 있는 나라와, 교회와, 종족과, 부모, 형제의 권을 거느려 가지고 제자들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이 이루어 놓은 나라를 중심삼고 그 나라의 중심되는 것은 교회요, 교회의 중심은 요셉 족속입니다. 요셉 족속의 중심은 요셉 가정입니다. 요셉 가정의 대표자는 누구냐 하면 마리아입니다. 마리아 앞에 나올 수 있는 중심존재는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어디서부터? 예수로부터, 마리아로부터, 요셉으로부터 …. 형제는 없어야 되는 거예요. 시시하고 껄렁껄렁한 형제는 없어야 된다는 거예요.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인 동시에 사탄의 어머니가 될 수 없다구요. 예수를 반대하는 동생을 낳았다는 그런 어머니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장막절이 되어 모두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예수는 가지 않으니까 예수의 동생들이"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요 7:4)"하고 비소했습니다. 이런 껄렁껄렁한 동생들을 낳아 놓은 마리아가 잘못이라구요.

순서가 그래요. 세계의 중심은 이스라엘 나라요, 이스라엘 나라의 중심은 유대교요, 유대교의 중심이 뭐냐? 제사장이 아니라구요. 요셉지파라구요, 요셉지파. 하늘의 족속을 대표할 수 있는 지파. 지파 가운데 요셉 가정이라구요. 가정 가운데 마리아라구요, 마리아. 마리아 가운데 예수라구요. 예수 가운데 사랑이라구요. 예수의 몸뚱이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가 왜 왔느냐? 사랑의 도리를 펴기 위해서 왔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을 인간세계 만민 앞에 횡적으로 적응시킬 수 있는 사랑의 진액을 주어야 합니다. 사랑의 길을 헤쳐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진리가 문제가 아니라구요. 예수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예수가 남길 수 있는 사랑이 문제라구요. 그 사랑을 예수가 그냥 가져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냥 가져 가게 되면 예수는 망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랑을 남기고 가야 할 사명을 갖고 이 땅 위에 왔다가 못 남기고 갔으니 다시 와서 남기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이 땅 위에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뭐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온다구요? 구름 타고 다니면서 반대를 받았나요? 한을 풀려면 그냥 그대로 그 원수들 앞에 실체로서 다 풀어 놓아야 원한이 풀리지, 뭐 구름 타고 와요? 그런 허황된 무리들이 세상에 꽉 찼다는 것입니다. 구름 타고 온다고?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얼마나? 구름 타고 오면 얼마나 좋겠어요?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반대받기 좋아서 그러는 거예요? 알고 보니 참이니까, 반대가 문제 아니라구요. 반대하는 사람은 두고 보라는 거예요, 누가 깨져 나가나.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은 예수님의 상대가 있어야 되는 거라구요. 신부가 뭐예요? 신부가 무슨 허깨비예요? 그 무슨 작대기예요? 지팡이 같은 거예요? 신부가 뭐예요? 어디, 아줌마들, 신부가 뭐예요? 예수님 앞에 신부가 뭐예요?「예수님의 부인입니다」 예수님의 부인보다도 상대지. 상대가 되어 가지고 부인이 되는 거라구요. 보라구요. 예수님의 부인이 있게 되면 예수님이 신랑이라는 말이, 성경이 틀려요? '저 예수님은 아무개 신랑이야' 하는 말이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신랑이라고 하는데 신부도 없이 아무개 신랑이라고 그래요? 남자 가지고 '예수님은 김 아무개 저 남자의 신랑이야' 그런 말 있어요? '아무개 아가씨의 신랑이 예수다' 이 말은 통한다는 것입니다. 자, 예수의 신부가 아주머니가 될 수 있어요? 예수의 신부가 남편 있고 자식 낳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할머니가 될 수 있어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신부의 종밖에 안 되는 거예요, 종 종. 섭섭한 말이지만…. 뭐 여기에 또 남자들이 신부가 되겠다고? 주님은 뭐….

성경에 보면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우리 중에 칠 형제가 다 형의 아내를 취하였으니, 일곱 형제가 부활 때에 그 여인은 뉘 아내가 되리이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부활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때는 시집 장가를 가지 않는 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장가가게 되면 예수님 혼자 살림하겠어요? 예수가 장가간 다음에는 그의 족속 일파를 시집 장가 보내는 거라구요. 종지 조상이 돼 가지고 그 놀음 못 했으니 지금까지 금지령이 내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전부 다 독신생활을 하는 거라구요. 지금 기독교에서는 남자가 신부가 되겠다고 하지요? 그것은 도둑놈들이라구요. 남자가 신부되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예요?

예수님의 신부를 준비하지 못한 유대교

여러분, 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무슨 종교냐 하면 여자종교입니다. 신부종교라구요. 남자들은 곁다리라구요, 곁다리. 잔칫날을 준비 하기 위한, 떡도감 되고 고기도감 되기 위해서 모인 패들이라구요. 잔칫날을 준비하기 위한 대표적인 종들이라구요. 천사세계의 패들이라는 거예요.

보라구요. 역사는 어떻게 발전했느냐? 여러분, 타락할 때 천사세계의 천사장이 있었어요.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그 다음엔 아담 해와가 있었어요. 그 다음에 하나님이 있었어요. 거기에서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하면 천사를 잃어버렸고, 아담 해와를 잃어버렸어요. 요걸 잃어버린 거라구요. 복귀, 구원하려면 고것을 다시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구원하려면 아담 해와만 구원해서는 안 됩니다. 천사를 구원해야 된다 그 말이예요. 안 그래요?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사세계도 타락했다구요. 둘이 꽝 하고 나가자빠졌다구요. 이것이 정상적인 자리에 가려면 둘이 나가자빠진 것을 전부 다 일으켜 놔야 된다구요. 그렇잖아 요? 그것이 복귀라구요, 복귀. 구원이라구요. 구원이라는 것은 병이 나기전 원상태로 돌이켜 놓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종교는 무엇을 찾아 나왔느냐 하면 아담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천사세계를 통해서 천사장이 아담을 사랑할 수 있는 인연의 도리를 찾아 세워 왔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아담을 짓기 전에 천사를 지었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라는 것은 뭐냐 하면 천사세계권을 지상에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세계입니다. 그 종교세계권내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아담을 만들어 내는 놀음을 해야 된다 그 말이예요. 그러면 종교 중에 세계적 중심은 뭐냐? 그것이 유대교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종교 가운데 세계적 중심이 유대교입니다. 그 유대교는 무엇을 하는 종교냐? 신랑을 소개하는 종교라는 거예요. 그것이 메시아 사상이요, 구주사상입니다.

구주 사상이란 무엇이냐 하면 타락하기 전 아담을 다시 만들어 놓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 종교가…. 그 가외의 종교들은 3천사장권 종교형을 대표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 종교는 3대 종교예요, 기독교는 빼놓고, 유교, 불교, 회회교, 3천사장을 대표한 3대 종교로 남아진 것입니다. 거기에서 무엇이 나와야 되느냐? 메시아가 나와야 됩니다. 요것이 뭐냐 하면 구세주라구요, 구세주.

그러면 세계적인 종교를 대표한 유대교는 어떤 종교냐? 타락할 때, 누구하고 타락했느냐 하면 해와하고 천사장하고 타락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이 땅 위에 어떤 종교권이 나와야 되느냐 하면 천사장격 종교가 나와야 되는 동시에 빼앗긴 해와를 찾아서 신랑 앞에 바치기 위해 준비하는 교단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유대교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유대교 가운데서는 무엇이 있어야 하느냐? 사탄세계에 빼앗겼던 해와를 찾아서 오시는 메시아 앞에 바칠 수 있는 신부 한 사람이 준비되어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그것을 준비시키는 가정을 만들기 위해 마리아를 택했고, 마리아를 통해 세례 요한의 가정인 사가랴 가정을 택했습니다. 이 두 가정을 통해서 신부를 빼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수작해 가지고 쓸데없이 헤롯 왕의 연애 사건에 끼어들어 이러고저러고하다가 목베여 죽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시시하게 죽을 세례 요한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예수 때문에 죽어야 된다구요.

지금까지 종교는 천사권 사명의 터전을 닦기 위한 종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 인연을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혼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독신생활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차적인 종교 일수록 독신생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본래의 주인이 아직까지 사랑의 길을 가지 못했는데, 그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은 입장에 있는 인간들이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느냐? 못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리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신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부, 수녀, 비구승, 대처승 문제라든가…. 이제부터는 천주교도 독신생활을 했다가는 지옥간다는 겁니다. 앞으로 로마 교황청이 결혼을 반대했다가는 신부들이 전부 다 보따리 싸가지고 노동판으로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목사들 어디 가서 취직할 데 없습니다. 예수가 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종지말의 세계에서 노동판 외로운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목사들도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뜻을 몰랐다간 전부 다 밥바가지를 찾아서, 예수는 하늘을 찾아서 노동판에 갔지만, 목사들은 밥바가지를 찾아서 노동판에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기 목사들도 왔구만. 목사들이뭐 할 게 있어요? 늙어서 어디 갈 거예요? 새끼들이 줄줄 달려 있으면 별수 있어요? 역사는 그렇게 엇바꿔 돌아가는 거라구요. 통일교회가 고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성교회 목사들도 지지리 고생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늘을 위해서 배고픈 자리에 나갔지만, 이것은 자기, 사탄세 계를 위해 밥바가지를 찾아 가지고 다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유대교는 신부를 마련해 가지고 오시는 메시아 앞에 신부를 중심삼은 신부 족속, 신부 민족, 신부 교회, 신부 나라가 돼 있어요? 그 자리를 마련해 놓아야 되는 것이 유대교라구요, 유대교. 예수 앞에 신부의 가정, 신부의 족속, 신부의 교회, 신부의 나라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신부를 위한 나라요, 신부를 위한 교회요, 신부를 위한 족속이요. 신부를 위한 가정이기 때문에 신부가 시집가는 날 모두 함께 신랑 앞에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나라의 중심은 교회요, 교회의 중심은 요셉의 씨족이요. 요셉 씨족의 중심은 요셉 가정이요, 요셉 가정의 중심은 마리아요, 마리아의 중심은 예수이기 때문에 예수 앞에 신부를 중심 삼고 관계되어 있는 그 나라와 그 교회와 그 종족과 그 가정은 전부 다 신부가 시집가는 날 같이 가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신랑을 맞아야 할 기독교

시집가는 날 같이 가야 할 운명에 서 있는 신부가 '아이고 우리집은 이렇게 부자집이고, 우리집은 이러이러한 법을 갖고 살았는데, 신랑집은 왜 이렇게 가난해' 하고 불평하다가는 쫓겨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던 법은 이런데 이 집 법은 왜 이래' 하고 반대했다간 쫓겨나는 것입니다.

신랑이 세우려 하는 도(道),신랑이 생활 무대를 갖추려는 환경을 부정하다가 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망한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위에 다시 오기 전, 재봉춘시대가 되기 전까지는 이스라엘 나라는 망할 나라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는 예수를 죽인 죄로 2천년 동안 나라없이 유리고객하는 민족으로 수많은 민족의 발굽아래 희생 당하는 민족이 안 될 수 없었습니다. 당연하다는 거예요. 그것이 1948년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이 자주적인 국가 형태를 갖추었다는 것은 때가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죽었기 때문에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느냐? 종교로 말하면 천사장권 종교내에 해와권 종교가 생겨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복귀니까….요게 뭐냐 하면 기독교예요. 그리고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적 판도를 만들어 놓은 것이 민주세계입니다.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옛날에는 국가적 이스라엘권이었지만 지금은 예수가 죽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영적 이스라엘권이예요.

옛날에는 이스라엘 나라라는 나라가 있었어요. 지금 기독교는 나라가 있어요? 하나님이 '이 나라는 내 나라다' 할 수 있는 나라가 있어요? 없다는 거예요. 공중에 떠 있다는 거예요, 뜬구름과 같이. 기독교는 나라가 없다구요. 나라가 없다는 거예요. 나라를 잃어버린 비참한 기독교가 지상에 실제로 없는 영적 나라, 예수가 나라의 기반, 땅의 기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땅을 대신한 몸이 십자가에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영적 제2이스라엘권을 개척하여 세계 기독교 문화권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기에서 기독교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죽더라도 다시 오시는 신랑을 맞아야 됩니다. 뭐, 공중잔치를 해요? 공포 쏘지 말라는 거예요. 죽어 보라는 거예요, 누구 말이 맞나. 그야말로 사교(邪敎)라구요, 사교. 그 패들이 통일교회를 대해서 사교라고? 두고 보라구요, 누가 사교인가. 땅에서 잃어버렸으면 땅에서 찾아야지 공중에서 찾을 수 있어요?

지금 세계의 종교를 두고 보면 천사장격 종교와 해와격 종교가 있습니 다. 이래 가지고 해와 앞에 아담이 와야 됩니다. 이것이 기독교로 말하면 재림주라구요, 재림주.

재림주가 뭐냐 하면, 1차 아담이 실패했기 때문에 2차 아담으로 오신 분이 예수요, 3차 아담으로 오시는 분이 재림주입니다. 아담이 누구냐? 인류의 참된 조상이 되어야 되는 사람입니다. 참된 조상이 돼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거짓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와 가지고 희미한 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희미한 조상이 뭐냐 하면 기독교입니다. 알겠어요? 한꺼번에 확실한 조상이 못 나왔기 때문에, 확실한 조상이 되려고 예수가 왔다가 신랑 신부의 인연을 못 맺었기 때문에 부모가 안 나왔다구요. 부모가 안 나왔는데 조상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할수없이 예수님은 영적으로 부모 노릇을 한 것입니다.

남자는 하늘 대신이요, 여자는 땅을 대신한 입장입니다. 영적인 입장에서 하늘을 대표한 남자의 자리를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승천하고, 성신은 땅을 대표했기 때문에 어머니 신 되는 성신은 땅에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신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그랬지요?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야 중생하는 거예요. 다시 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성신이 뭐냐 하면 어머니 신이라구요, 어머니 신.

참부모를 중심한 통일문화권인 하나님의 이상

오늘날 기독교에서 성부(聖父)는 뭐예요? 하나님. 성자는 뭐예요? 예수님. 성신은 뭐예요? 성신은 성신이지. 비둘기 같은 성신, 물 같은 성신, 기름 같은 성신…. 수작들은 잘하고 있습니다. 그래 무슨 신이냐? 어머니 신이라구, 어머니 신, 이 어머니 신이 영적으로 기반을 닦아 가지고 실체의 몸을 쓰고 오시는 주님과 실체로 상봉할 수 있는 때가 바로 어린양잔치를 하는 때라구요. 그래서 6천년 동안 선한 부모의 출발을 보지 못하였던 것을 6천년 역사적 종말시대에 까꿀잡이로…. (판서하시며 설명하심) 이건 거짓 부모가 됐다구, 이것 안 되겠으니 여기서 다시 와 가지고 요 참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여기서 요 모양을 다시 만들어 가지고, 세계가 이렇게 됐으니. 이게 세계라구. 36억이 살고 있으니 이걸 어떻게 해? 다시 낳아야 된다구요. 다시 낳는 데는 어떻게 낳느냐? 이미 낳아져 있는 것을 다시 낳을 수가 있어요? 그러니 접붙이는 방법 밖에 없다구요, 접붙이는 방법밖에. 전부 다 돌감람나무가 되었으니 참감람나무의 가지라든가 눈을 접붙이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을 전부 다 버려야 된다는 거예요.([그림 1]참조)

그러면 앞으로의 역사는 어떻게 되느냐? 신랑 되시는 주님이 와서 신부를 만나 가지고 신랑 신부 종교권 시대가 온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참부모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건 종교가 아니지요. 종교가 아니라구요. 종교라는 것은 그때는 없어지는 거라구요. 참부모를 모심으로 구원을 얻는 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시의(侍義)의 구원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가 하는 말은 자기가 하는 모든 말의 근본이 되어야 되고, 참부모의 생리적 모든 감정은 자기의 모든 생리적 감정이 돼야 되고, 참부모의 생활은 자기 가정의 전통적인 문화기반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부모를 중심삼은 문화형태가 어디 있으며, 참부모를 중심삼은 역사적 전통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어요? 전부 다 사탄의 인연을 통하여 타락한 후예로 태어나 갖추어진 세계요, 문화권이요, 나라요, 교회가 되었지요? 이것을 전부 다 한번 소제해 버려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가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복귀라구요.

끝날에는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 한다고 하지요? 그러면 요것이 내려간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되느냐 하면 아담을 중심삼고 해와, 천사장, 이것이 에덴 동산의 본연의 기준이라구요. 요 세 사람하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요것이 전부다 하나되어야 됩니다. 천사장도 하나되고, 해와도 하나되고, 아담도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림 2] 참조)

타락이 무엇이냐? 전부 다 갈라진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는 그렇게 돼 있어요. 기독교 문화권시대, 천사장 문화권 시대에서 기독교 문화권 시대로 흡수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탄권 문화가 공산권이라구요. 여기에 있어서 참부모를 중심삼은, 재림주를 중심삼은, 참부모를 이상으로 하는 세계가 세계의 종말시대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공산주의도 물러가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도 물러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들이 주장하던 세계적인 사조도 지나가 버리고, 최후에 남아질 것은 뭐냐 하면, 재림주로 오시는 신랑을 중심삼고 신부들이 만나는, 그런 새로운 세계적 문화권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 세계는 언어도 통일이요, 생활도 통일이요, 행동도 통일이요, 소원도 통일이요, 심정도 통일된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통일문화세계를 통해 가지고 하나의 세계로 수습되기 때문에 그 기준을 바라봐 가지고 출발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는 구원받는 데 있어서 개인으로는 절대 구원 못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개인으로서는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혼자 못 간다구요. 원칙이 그래요. 에덴 동산의 아담 해와가 둘이 같이 천국가게 되어 있지, 남편만 천국가게 돼 있어요? 아내도 천국가게 돼 있지요? 부부가 합하고, 가정이 합하지 않고는 천국 못 가는 거라구요. 그것이 이상(理想)이지, 아버지는 지옥가고 어머니는 천국가면 좋겠구만? 어머니 아버지는 천국에 가고, 아들딸은 지옥에 가면 좋겠구만? 그것이 무슨 천국이예요?

천국은 부부가 가야 되는 것이요, 가정이 가야 되는 것이요, 가정뿐만이 아니라 가정의 팔촌 일족이 가야 되는 것이요, 그 국가 전체가 가야 되는 것입니다. 전체가 갈 수 있는 그 세계가 천국이더라 이거예요. 그것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입니다. 통일교회는 개인 구원이 목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합동결혼식도 이 원리원칙에 일치시키기 위해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합동결혼식이 조롱의 대상이요, 구경거리로 알고 있지만, 내용을 알고 보니까 기가 막힌 놀음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지요?

요 종교시대(천사장권 종교시대)에는 장가가야 돼요, 안 가야 돼요? 못 가지요? 예수가 죽었기 때문에 두 패로 갈라졌다구요. 여기서 갈라져 나온 거예요. 이게 기독교예요. ([그림 3] 참조)

여기에 신랑이 와 가지고, 아담이 와 가지고 해와하고 하나되고, 이 부부는 천사장을 사랑해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림 4] 참조) 역사는 그렇게 되어 있어요. 두고 보라구요. 그런가, 안그런가.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천국에서도 결혼시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땅 위에서 비구승이 승리하느냐 대처승이 승리하느냐 할 때, 대처승이 승리할 때가 왔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구교의 신부 수녀가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천주교도 그냥 그대로 가다가는 전부 다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지금 천지운세가 신랑 신부의 인연을 찾을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천주교도 시집 장가를 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할 때가 왔기 때문에 시집 장가가는 것을 반대했다가는 그냥 그대로 몽땅 망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겠다고 신랑 신부를 찾아 축복해 주는 거예요. 그러니 예수가 구름을 타고 와서 되겠어요? 허깨비로 와서 되겠어요, 허깨비 ! 그까짓 것은 오나마나인 것입니다.

예수를 사랑하지 못한 마리아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가야 할 예수의 노정, 예수가 갈 길은 뭐냐? 예수의 갈 길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 위의 사람들에게 옮겨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의 갈 길이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움켜쥐고 어릴 때부터 그대로 옮겨 줄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어머니의 품에 품겨 젖을 먹을 때, 철모를 때 어머니의 가슴에 파고들어 젖을 먹으면서 어머니의 얼굴을 만지고 어머니를 좋아하는 자리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좋아하는 데는 세상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좋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좋아하지 못하게 될 때는 원수가 되는 거예요.

보라구요. 마리아가 진정한 의미에서 이 땅 위의 어떠한 사탄세계의 어머니보다도 예수를 사랑하지 않고는, 사랑의 길을 찾아가게 되면 천리 법도에 어긋난다는 게 맞아요, 안 맞아요? 마리아는 예수 때문에 선택된 여인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로서 예수를 잉태해서 낳았으면 누구보다도 예수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데는 세상에 어떠한 어머니보다도 더 높고 높은 자리에서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바치고, 자기가 찢겨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죽음과 엇바꾸는 일이 있더라도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흐지부지하면 발길로 차 버리고서라도, 예수 때문에 대판 싸움을 하고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를 사랑하는 데에 미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뭐 요셉하고 살아요? 예수를 사랑했다는 자리에서 키워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때가 되면 장가 보내어 사랑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내보내야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런데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칫집에 떡 갔어요. 예수는 할수없이 자기 친척이 잔치를 하게 되면 얻어먹으러 가야 된다구요. 그렇지 않겠어요? '아 뭐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배고플 때는 이적을 행해서 무엇을 만들어 먹지' 그래요? 그것은 천법에 위배되는 행동입니다. 집을 나간 예수는 친척집에서 혼인잔치를 한다 할 때는 다 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차 타고 네 시간이면 다 돕니다. 그 동네가 그 동네라구요. 성경 66권을 보게 되면 말이요, 전부 20리 안팎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 아는 거라구요. 거기에 가 보게 되면 절망이라구요. 목청 좋은 사람이 이 동네에서 소리를 지르게 되면 저 동네에 들릴 만한 그런 안팎의 동네에서 성경 66권이 전부 다 이루어졌다구요. 성경은 굉장한 줄로 알고 있지?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사돈 사는 동네 거리만큼도 안 된다구요.

그러니 그 바닥에서 예수가 집을 나갔댔자 빤히 알지요. 자기 친척이 무엇을 하는지 다 알거 아니예요? 그래 자기 친척이 잔치를 하니까 궁한 예수 별수 있어요? 잔칫집에 가면 얻어먹게 돼 있으니 얻어먹으러 안갈 수 없다구요. 그래서 슬슬 친척집에 갔다구요. 갔더니 거기에 자기 어머니도 왔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어머니가 예수한테 와 가지고는 포도주가 떨어졌다구 이러고 저러고 부산스럽게 염려하는 것이 기분 나빴다는 거예요. 내가 장가가야 할 날을 염려해야 할 마리아를 대해 '여인이여. 언제 그것을 염려했느냐. 나를 위해서 이 이상 생각한 적이 있었느냐' 그런 꼴을 보고 '여인이여, 너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 잔칫날이 나와는 상관이 없다 그 말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여러분이 모르는 곡절의 사연이 얽혀 있다는 거예요.

보라구요. 이 땅에 와서 '내가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노니 그 불이 이미 붙었으면 좋을 뻔했다. 그 불이 붙지 않는 것을 볼 때, 예수의 마음의 답답함이 어떠했겠느냐?' 이런 탄식의 말을 했지요? 그거 편안해서 그런 말 했어요? 그 불이 뭐예요, 불이? 사랑의 불을 붙이려 했다구요.

예수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 가지고 '우리 어머니는 천상천하에 둘도 없는 어머니입니다. 단 한 분밖에 없는 어머니입니다. 하나님이여, 이 어머니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내 어머니오니 당신의 나라에 나의 어머니로 입적해 주시옵소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결정해야 마리아도 하늘나라에 입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입적 못한 마리아를 천주교에서는 성모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모는 무슨 성모예요? 하늘나라에 입적 못 했다는 거예요.

세례 요한 그 녀석, 예수를 위해서 생애를 바쳐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동네 안팎으로 소문을 내며 돌아다니다가 예수님 만났으면 그만이지, 뭐, 나는 망해야 되겠고 예수는 흥해야 돼? 예수를 따라가면 예수가 흥하는데 자기가 왜 망하느냐 이거예요.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했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힘쓰는 자가 빼앗는다고 했는데 그 힘쓰는 자는 베드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베드로보다도 세례 요한이 힘을 썼다면 수제자가 되는 거예요. 수제자 중의 왕수제자가 되는 거예요. 세례 요한은 나면서부터 예수님의 수제자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이 작정해 가지고 보낸 것입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을 제자들이 유대교 전체의 판국을 중심삼고 선지자로 모시고, 환경을 가려 가지고 예수를 모실 수 있게끔 되었더라면 유대교는 슬렁슬렁 소리도 없이 전부 다 예수 앞에 끌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유대 나라도 할수없다는 것입니다. 유대 나라만 딱 잡게 되면 그 당시 로마 나라는 말단 조직이 전부 다 마비상태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아랍권 12지파의 족속을 한꺼번에 동원되게 해 가지고 로마를 쳐부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좋은 천지운세를 놓쳐 버렸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걸 생각할 때, 어머니가 예수를 사랑했어요? 남편도 모른다, 그 누구도 모른다 하는 자리에서 예수만을 사랑하기에 미쳐야 됩니다. 세계사에 없는 어머니로서 외적인 환경이야 어떻든간에 예수 앞에 사랑을 퍼부을 수 있는, 예수를 위해서 일생의 정성을 다 바쳐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가 되어야 했습니다. 일등 어머니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랬어요? 그것을 못 했기 때문에 예수로부터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하는 말을 들어도 싸다는 거예요. 싸도 깨깨 싸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예수가 조금 철들 만할 때 형제들이 태어나 가지고 자라는 가운데 동생들이 예수를 천대했다구요. 가만히 보니까 예수는 의붓아들이고 그 형제들은 진짜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하고 요셉하고 예수 때문에 번번이 트러블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생겼겠어요, 안 생겼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사생아로 태어난 예수는 기가 막혔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들과 싸우게 되면 동생들이 번번이 누구한테 가느냐 하면 어머니한테 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한테 가서 형이 어떻고어떻고하게 되니 본래부터 마음이 편안치 않은 입장에서 좋은 말을 했겠느냐 이거예요.

전부 다 화근이 됐다는 것입니다. 요셉도 그렇고, 동생들도 그렇고, 그 환경이라는 것이 기가 막힌…. 여러분. 그렇잖아요? 의붓아버지 밑에 들어가면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 예수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봤어요? 동생들 사랑을 받아 봤어요? 그랬으면 왜 집을 나왔겠어요? 집을 나올 필요가 없다구요. 뭐,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12제자가 뭐 필요해요? 자기 친척들을 중심삼고 이끌어 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요셉 족속은 깨깨 망했지요. 그들이 예수를 옹호하고 예수를 중심삼고 나갔더라면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지 않았을 것이고, 유대교가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식구라는 말의 뜻

그러면 예수 할아버지 있었어요? 예수의 할아버지라는 말 들어 봤어요? 이 땅 위의 누구보다도 손자로서의 사랑을 받아 봐야 돼요. 그래야 이땅 위에 사랑의 인연이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 할아버지 할머니 있었어요? 삼촌 아저씨 있었어요? 있긴 있었지. 있었지만 그들이 마리아하고 요셉이 자꾸 싸우는 것을 보고 그랬을 것 아니예요? 요셉 저 총각이 악혼한 처녀를 데려다 놨으니까 동네 아이들까지 전부 다 손에 침 발라 가지고 문구멍을 뚫고 다 구경하지 않았겠느냐 말입니다. 그 속닥속닥하고 싸움하는데 그 배안에 있는 애기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그런 말을 하면서 싸우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다 들었다는 것입니다. 낳기 전에 벌써 소문이 퍼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의 부모와 형제들이 예수가 사생아라는 소문을 듣고 요셉을 불러다가 공갈 협박을 하면서 사실을 대라고 할 수 있는 환경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랬겠어요, 안 그랬겠어요? 그때 당시 모세 율법에 의하면 처녀가 애기를 배면 당장에 때려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법을 어긴 그런 사람이 자기의 가문에 있다는 것은 하늘의 법도에 어긋나는 수치라면서 별의별 놀음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삼촌으로서 예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겠어요? 그런 아주머니가 있었겠어요? 그런 예수의 누이 동생은 있었겠어요? 뭐 직계의 동생은 없어도 사촌 누이동생은 있었을 것이 아니냐? 아버지는 어디 갔고, 동생들은 어디 갔고, 친척들은 어디에 갔느냐! 다 원수라는 거예요. 이놈의 일당패들이…. 그랬을 것 같아요, 안 그랬을 것 같아요?

만일에 예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말이야, 예수가 집을 나갈 때에 따라가야 되겠어요, 안 따라가야 되겠어요? 따라가야지요. 그런데 친척들이 예수를 잡으러 다녔지요? 전부 다 예수가 바알신이 들렸다고 잡으러 다녔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그 누구보다도 사랑을 받아 가지고, 그 사랑이 고마와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선물로 돌려줘야 할 예수의 가정적 터전이 이렇게 종결될 줄이야 하나님은 생각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가정이 종결되니 교회, 교회가 종결되니 나라, 나라가 종결되니 세계가 종결 되어 사망세계가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기독교는 덮어놓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었다'고 하는데, 영계에 가 보라는 거예요. 그런 목사 떼거리들은 영계에 가서 재교육을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영계에 가서 재교육을 받을래요, 재교육을 안 받을래요? 재교육을 받겠어요. 안 받겠어요?「안 받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러분이 되라는 거예요. 그래, 통일교회의 '식구'라는 말은 거기서 나온 거예요.

예수를 중심삼고 삼촌의 연령이 된 사람은 어린 예수와 같은 연령의 소년이 있으면 옛날에 사랑하지 못했던 예수의 삼촌 입장에서 오늘 이때의 현실에서 그 소년을 예수와 같이 사랑해라, 누님의 연령이 된 사람은 예수와 같은 연령의 동생이 있으면 그 동생을 예수와 같이 사랑해라 이거예요. 또 어린 예수와 같은 소년 연령이 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예수의 입장에서 누나를 사랑하고, 아줌마 아저씨를 사랑해라, 할아버지 할머니의 연령이 된 사람은 자기 손자와 같은 사람이 있으면 예수와 같이 생각하고 사랑해라, 손자와 같은 사람은 예수와 같은 입장에서 예수가 사랑하지 못한 할아버지 할머니를 사랑해라 이거예요. 이래서 예수가 사랑하지 못한 원한을 사랑을 중심삼고 풀지 않고는 천국에 못 간다는 것이 통일교회의 식구관(食口觀)입니다.

예수가 백성을 사랑하지 못했고 예수가 나라를 사랑하지 못했으니, 그 백성이면 백성을,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나라와 같이 백성과 같이 사랑해라…. 그 나라와 그 백성은 예수를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한 소년을 중심삼고 사랑할 수 있는 나라가 되고 백성이 되어라…. 그리하여 예수와 하나되어 기뻐할 수 있는 사랑의 교류권이 세계화되면 그 세계가 지상천국인 것입니다, 지상천국. 알겠어요?

이게 식구라는 말이예요, 통일교회의 식구. 식구라는 게 부모 형제를 말하지요? 싸움을 하는 형제가 아니라구요. 천도를 배반하는 형제가 아니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보다 나아야 됩니다. 마리아보다 나아야 됩니다. 요셉보다 나아야 되고, 예수의 형제보다 나아야 됩니다. 예수의 제자들보다 낫지 않고는 천국에 못 갑니다.

훌륭했던 오른편 강도

저기 목사님, 어때요? 마리아보다 나아요? 여러분은 그걸 생각해야 돼요. 예수가 가야 할 길은 어디냐? 예수가 가야 할 길은 어머니 아버지와 더불어 가야 돼요.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서 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 가지고 올라가고, 그 다음에는 친척을 통하고, 교회를 통하고, 나라를 통해서 세계로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가족과, 친척과, 교회와, 나라가 왕창 떨어져 나갔으니 어디로 가요? 갈 길이 있어요? 없다는 거예요. 어디로 가? 제자한테로? 제자도 믿을 수 없는 자리로 왕창 내려갔으니 앞에는 사탄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사탄 앞에 아무런 승리의 조건도 못 가졌기 때문에 사탄이 잡아다가 죽이게 되어 있지, 별수 있어요? 하나님이 예수를 죽이고 싶어서 죽였나? 아니라는 거예요. 안 내놓을 수 없는 사정에 몰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4천년 동안 준비했던 그 이스라엘 나라는 어디 갔으며, 교회는 어디 갔으며, 요셉 씨족은 어디 갔으며, 동방박사 세 사람은 어디 갔으며, 베드로와 야고보 그 일당은 다 어디로 갔느냐? 외로운 황천길에 있어서 홀로 가는 예수의 신세를 그 누가 지켰던고! 오른편 강도가 인간 세상에 있어서 예수의 심정을 휘어잡지 못했던들, 예수는 이 땅 위에 소망을 두고 다시 부활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이거예요.

강도가 낙원에 먼저 들어갔습니다. 강도가 오늘날 예수를 배반한 후예들 앞에 제2의 구세주 입장에 섰다는 것을 생각할 때,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죄인이 예수를 동정한 것이 남았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었던 사람들은 더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 아닙니까? 그것 때문에 예수는 천도를 중심삼고 사탄 앞에 조건을 제시하여 물러나야 했던 이 땅을 다시 찾아올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자기 죽는 것을 잊어버리고 예수의 편이 되고, 예수를 옹호하는 자리에 선 오른편 강도가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보다 낫지요? 못해요, 나아요? 왼편 강도는 예수를 비난 비소하는데…. 이것이 좌익과 우익으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진리를 심었기 때문에 열매를 거둘 수 있는 수확기의 가을절기가 오게 되면 오른편 강도는 우익으로, 왼편 강도는 좌익으로 거두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좌익인 공산세계가 오른편 강도 민주세계를 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딱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러므로 민주세계가 끝까지, 죽을 때까지 우익에 서서 하늘을 옹호하고 오시는 주님의 이름을 따라 정성껏 가게 되면, 그때는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지상 낙원의 출현을 보는 조국광복의 날을 맞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불신하던 때와 비슷한 현실

그 다음에 그 당시의 바라바는 뭐냐 하면 회회교권입니다. 예수를 팔아 가지고 출세한 패라구요. 알겠어요, 바라바는? 회회교는 신구약 성경을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교를 빙자해서 기반을 닦은 거라구요. 그러면서 총칼을 가지고 도를 닦은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적 사탄입니다, 종교적 사탄, 외적 종교형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공산당자 직결되는 것입니다. 지금 그렇지 않아요, 아랍권하고 공산당하고는?

외적 세계의 종교형이 아랍권의 회회교요, 내적 세계의 종교형이 기독교입니다. 또 내적 세계의 외적형이 민주세계요, 외적 세계의 외적형이 공산세계인 것입니다. 이렇게 안팎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민주세계가 책임 못 하게 되면, 공산세계가 아랍권(國)과 합해 가지고 쳐 나오게 됩니다. 이때가 되면 끝날이라구요. 그렇잖아요?

지금 세계는 민주와 공산권으로 좌우가 벌어져 있고, 바라바권과 예수권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것은 사위기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벌어진 것입니다. 타락할 때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 천사장이 사위기대를 중심한 자리에서 타락했습니다. 해와권의 터전이 무엇이냐 하면 오늘날의 민주세계요.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보면 유대교권인 것입니다.

해와를 품을 수 있는 국가권이 아담권의 국가권이예요. 이것이 하나되어 가지고, 사탄권내에서 바라바권인 회회교권과 공산세계가 연락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회교권과 공산세계를 서로 연락하게 만든 낫세르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데려간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세계 정세를 두고 볼 때, 중공이나 자유중국이 진정되었다고 그만두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금후에 소련과 중공사이에 있어서 볼 만한 문제가 벌어질 것입니다. 미국도 새로이 반성하여 세계를 결속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중심삼고 세계 앞에 후원받을수 있는 길을 찾아야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통일교회가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다 예수를 거부하던 종말시대의 입장과 같지 않으냐. 예수를 유대교가 거부했고, 이스라엘 나라가 거부했지요? 그렇지요? 지금이 그와 같은 때입니다. 지금 유엔이 어떻게 돼 있느냐?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의 뜻이고 의리고 도리고 다 필요없다'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미국 자체가 어디로 가느냐, 기독교가 어디로 가느냐? 공산권한테 휘말린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기 직전에 누구한테 맞았어요? 죽기 직전에 왼편 강도가 참소했지요? 그 권능 앞에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서 자기의 권위를 당당히 주장해 가지고 좌익을 눌러야 됩니다. 말로 세상을 눌러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해야 할 텐데 닉슨 대통령이 그것을 못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정치가 중에 제 2급도 안 된다는 거예요. 미국 사람들이 들으면 기분 나빠할는지 몰라도 할수없습니다. 내가 미국에 가서도 당당히 그런 얘기를 할 거라구요.

끝날에 남아질 사람

그러면 앞으로 남아진 문제가 어떻게 되느냐? 죽을 일밖에 없습니다. 예수가 죽으니 오른편 강도, 왼편 강도도 죽을 일밖에 없습니다. 기독교도 마지막이요, 민주세계도 마지막이요, 공산세계도 마지막이다, 다 이렇게 되지요? 그렇지요? 회회교권도 다 마지막입니다. 천지의 주인이 없어 졌기 때문에 전부 비참한 운명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운세에 지금 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부활의 권한을 가지고 이 땅 위에 재림사조가 올 것이다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역사관입니다.

그러므로 가정 가정이 갈라지걸랑 하늘의 가정이 규합될 수 있는 때가 온 줄 알아라, 어머니 아버지가 서로서로 칼침을 놓거들랑 사탄세계가 서로 싸워 가지고 망할 때가 온 줄 알아라, 교단에서 목사와 장로들이 칼부림을 하거들랑 그 교단에는 이미 하나님이 떠난 줄 알아라, 교인이 목사에게 칼질을 하고, 목사가 교인에게 칼질을 하는 그때가 되면 마지막인 줄 알아라…. 앞으로 세계에 그런 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제일 복닥불나고 세계에서 대표적으로 저끄러진 자리가 예수가 피흘리던 자리요, 그 자리가 예수가 부활할 수 있었던 자리가 아니냐?

그런 자리에 처해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으로 재림주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좌우가 부딪치는 경계선인 남북을 중심삼고 공산권과 민주권의 교차로가 생긴 것입니다. 거기에서 민족적으로 가정이 산산조각으로 뻐개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게 되면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지 않았으면 오늘날 한국은 이렇게 안 되고, 기독교도 이렇게 안 된다구요. 여기에 서서 말하는 이 사나이가 이만한 연령이면 세계정세는 내가 움직여 나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저께도 일본에서 모모한 사람들이 '앞으로 일본의 정세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는 문의를 하려고 나를 찾아왔어요. 대한민국에서는 꿈도 안 꾸는데 딴 나라에서 찾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남아지는 무리는 어떻게 해야 남아질 것이냐? 예수를 위해 미친 사람, 예수를 위해 미친 가정, 예수를 위해 미친 교회가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 통일교회는 예수를 사랑하기에 미쳐라 이거예요. 통일 교회에 오면 다 미친다고 하지요? 잘됐다 이거예요. 죽기 아니면 살기 내기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죽고 아내가 나가자빠지게 되었는데 죽기 아니면 살기 내기지 뭐 다른 소원이 있겠어요? 우리 통일교회는 죽기 아니면 살기 내기하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그러면 신랑이 오는 길을 따라가야 되겠어요. 안 따라가야 되겠어요?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처녀가 치마가 벗겨지면 속바지 바람으로라도 따라가야 되겠어요, 안 따라가야 되겠어요? '어허 ! 치마가 벗겨져 흉한데 어떻게 가겠노? 또 바지가 벗겨지면? 보라구요. 주님을 찾아가기 위해서 치마가 벗겨지고, 바지가 벗겨지고, 발가숭이가 되고, 피투성이 되어 가지고 주님 앞으로 가다가 쓰러져 죽게 되면, 그때 주님이 그것을 보고 '어허 잘 죽어라! 네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너는 그것으로 마지막이다' 그럴 것 같아요?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심정에 묻힌 사랑의 폭탄을 폭발 시킬 수 있고, 유발시킬 수 있는 하나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 환경이 어려우면 주님의 몸으로써 그 어려움을 도맡고 싶어하고, 상처를 입었으면 자기의 십자가의 시련 고비를 대신 짊어졌다고 동정해 줄 수 있는 자리라고 축복해 주지 않겠느냐? 내 몸이야 찢기건, 내 위신이야 땅에 떨어져 밟히건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의 처신과 위신을 가리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못 가는 것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정신을 발휘해서 어머니, 형제, 친척들이 예수의 죽음 앞에서 빌라도면 빌라도, 바로면 바로, 그때의 교법사면 교법사들을 대해 가지고 죽음을 각오하고 길을 막고 나섰더라면 폭동이 벌어졌을 것이 아니냐? 폭동이 벌어졌으면 예수는 안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미쳐라. 미치는 길을 가는 데는 누구를 위해서냐? 오시는 주님을 위해서 일체의 모든 전부를 거부하고 나서야 됩니다. 나서는 데는 자기를 위해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오시는 그분의 소원과 그분의 갈 길을 닦기 위해서 나서야 되는 것입니다. 달라요. '내가 요렇게 해야 주님을 만나 가지고 잘살지' 하는 사람은 천국 못 갑니다.

주님이 나를 만나 가지고 어디로 갈 것이냐? 가정을 거느리고, 종족을 거느리고, 민족을 거느리고, 국가를 거느리고, 세계를 거느리고 십자가의 길을 개척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동조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축복해 준 가정까지도 일선으로 다 쫓아내는 것입니다. 만일에 축복받은 가정들이 일선에 나가지 않고 들어와 있다면 그런 가정은 앞으로 샅샅이 선생님이 법대로 치리할 것입니다. 그때 가서 '아이쿠! 나는 몰랐습니다' 하게 되면 나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통일교회에서 지시한 말에 대해서 누가 가장 철저했느냐 하는 것을 전부 다 밝혀 놓고 넘어갈 것입니다. 어떤 녀석이 이런 모진 말을 했고, 어떤 녀석이 이런 모략질을 했는지 전부 밝혀 놓고 넘어갈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민족이 규탄할 것이고, 세계 인류가 돌무더기로 묻어 버릴 때가 올 것입니다. 기성교회의 목사나 장로들도 그냥 그대로 나가다가는 앞으로 그 아들딸들이 그들의 무덤을 파 버릴 때가 올 것입니다. 그들이 했던 말이 지당한 말이 아니라면 내가 시키지 않아도 사실을 밝혀 놓게 되면 그렇게 되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안일하게 살 때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지금 무얼 논할 경황이 아닙니다. 어영부영 적당히 바람이나 쏘이러 다니기 위해 온 패들이 아닙니다. 사생결단하기 위해서 온 패들입니다. 여러분, 그래요? 예수편에서 죽을래요, 여러분 남편, 여러분 아들딸편에서 죽을래요? 여기 아줌마들, 어느 편에서 죽겠소? 「예수편요」 너희들도? 예수 오빠편에서 죽을래요? 어때요?'아이구, 시집도 한번 못 가보고 죽으면 되나?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시집은 무슨 시집이예요? 장가는 무슨 장가예요? 다 집어치우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터전이 되지 않고는 망하게 마련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일생을 바쳐 수난길을 가면서 핍박받은 것도 그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람아 불어라. 그 부는 바람이 꺾여져 나가면 나갔지 내가 꺾어질 수 없다. 모진 광풍아 휘몰아쳐라. 나는 돌아가길 원치 않는다. 직행한다' 그런 모진 풍파에 시달렸지만 아직까지 기력과 여력은 당당합니다. 이 길을 가다가 지쳐서 떨어져 나간 사람 있지만, 쓰러져가는 것을 내 눈으로 직시하면서도 쓰러지는 것을 동정 안 하고 나는 갔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만큼 걸어왔습니다. 여기서도 앞으로 많은 탈락자가 생겨날 거라구요.

그 누구를 위해 움직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은 떨어지는 거예요. '나는 세계를 위해서 살고, 나는 나라를 위해서 산다. 그 나라가 살기 전에는 나는 살 수 없고, 그 세계가 뜻을 이룬 나라를 갖지 못하고는 나는 살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죽더라도 하루바삐 그 나라와 그 세계의 뜻을 펴기 위해서 나는 간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야 되는 거라구요. 편안한 잠자리나 찾고, 좋은 음식이나 찾고, 편히 쉴 곳만을 찾아다녀 보라구요. 일년 방초가 따뜻한 봄을 맞아 잎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기까지는 사시장철 다른 것과 같이 같은 기간 안에 자라야 되는 것입니다. 진액이 있으면 그 진액을 흡수하고, 결실하기에 충분한 모든 환경적 요건을 흡수해서 소화시켜야 된다구요. 그러지 않고는 아무리 잎이 무성하고 꽃이 피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결실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가만히 보게 되면 말이예요, 어떤 아주머니 무슨 아주머니 슬슬…. 아주 편안하더구만. 그렇게 안 되어 있다구요. 오시는 주님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개척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당대에 있어서 가야 할 길이 아니었더냐? 통일교회에 들어온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교회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사랑해야 되느냐? 예수의 친척과 예수의 족속 이상 사랑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러지 않고는 천국 못 가는 것입니다.

이 교회가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구요. 이교회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위해서 여러분을 전도 보내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거예요. 나라를 위해서 전도를 보내는 거라구요. 나라가 하나님의 뜻 앞에 서면 그때는 나라를 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가야 되는 거라구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는 나라를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죽고자 하면 나라 때문에 산다

예수가 언제 사랑할 수 있었던고. 예수가 언제 부모의 품에서 잠들어 안식할 수 있는 때가 있었던고. 그런 것을 갖추지 못한 예수를 생각하게 될 때에, 여러분이 자리에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목을 놓고 통곡할 수 있는 심정을 갖지 않고서는 예수의 남기신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한 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주권,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백성,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국토가 어디에 있었느뇨? 없었다는 거예요. 찾아왔던 이스라엘 주권, 민족, 그 국토 위에서 피를 흘려 갔고, 죽음이라는 서글픈 낙인을 남기고 갔던 것이 아니냐? 그러면 여기에서 이 땅 위에 부활하여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하나의 민족이 있어야 되고, 하나의 주권이 있어야 되고, 하나의 땅이 있어야 될 것 아니냐?

그 나라가 어떠한 나라가 될 것이냐? 그 나라는 영광의 나라가 아닙니다. 십자가로 갔기 때문에 십자가로 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때에 좌우편 강도와 같은 기로를 중심삼고 거기서 갈라졌던 민족이 금후에 다시 상봉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가지고 와야 되는데, 세계적으로 그런 곳은 한국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판문점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사탄과 하나님이 참소하는 초소입니다. 금문점이 못 되어 가지고 판문점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임시라구요, 임시. 사탄과 하나님이 딱 마찬가지라구요. 여러분, 판문점에 가 보라구요. 아이들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병아리새끼가 싸우는 것처럼…. 세계적으로 그런 곳은 지상에 한 곳밖에 없습니다. 그곳은 사탄하고 하나님이 참소하는 막사입니다. 성전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인이 언제나 먼저 쳤던 것과 마찬가지로 1차, 2차, 3차까지 거쳐야 합니다. 2차까지 쳐내려 왔지요? 이제 3차를 두고 국가적 운명을 가려야 됩니다. 세계적 운세와 더불어 맞부딪칠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 대한민국은 하늘이 가는 노선을 중심삼고 조야가 일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뭐 야당 여당 찾다가는 둘 다 망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 다. 위정자들이 바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바쁘게 되어 있다구요. 승공, 반공전선의 일선에 섰기 때문에 같은 운명이 된 거라구 요. 같은 운명에 자진해서 나선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죽자' 나라를 위해서 죽으려면 나라를 더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죽고자 하는 자는 나라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남들은 다 도망가더라도 이 나라를 지키고 공산당의 최후의 뿌리를 뽑고 남아지는 무리가 되겠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결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총공장도 만든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총공장을 만든다고 해서 기성교회 목사들이 지금도 정부에다 투서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총 만드는 것을 보고는 '통일교회는 사상적으로 강력한 단체이며 더구나 세계적인 기반을 가졌으니까 앞으로 정당을 만들어 가지고 혁명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드는데 정부는 왜 가만 놔 두느냐? 수작들은 좋다는 거라구요.

한국이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대통령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늘땅이 왔다갔다하는 놀음이 벌어진다는 것이 문제라구요. 대통령 해먹기 전에 이민족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세울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하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무슨 대통령이고, 정당은 무슨 정당이예요? 정당은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나중에. 가인 아벨이 참소하는 권내에 있어서는….

우리가 바라는 세계는 그런 세계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도 민주주의가 있어요? 민주주의가 영원히 남을 것 같아요? 대답해 보라구요. 하나님 앞에도 민주주의가 있어요? 절대자 앞에 민주주의가 있다면 절대자라는 명사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세계는 민주주의세계가 아닙니다. 민주세계는 돈을 가지고 사고 팔고, 악당들이 별의별 놀음을 해서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서로가 주권을 빼앗기 위해 약탈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뜻이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예수가 가야 할 노정을 생각해 볼 때, 예수가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는 어디 갔느뇨? 형제는 어디 갔느뇨? 우리가 그들을 대신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어머니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고, 형제를 대신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 껄렁껄렁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시시한 껍데기들은 그만 두고, 사도고 무엇이고 다 그만 두고, 우리는 사도의 머리가 되자, 사두(使頭)가 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기 남편이 통일교회의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여보, 뜻도 뜻이지만 왜 나를 버리고 가오? 하는 이런 시시한 아내가 있으면 발길로 차고서라도 뜻길을 가야 합니다. 알겠어요? 이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쁠는지 모르지만…. 또 남편이라는 작자가 '아이구, 뜻도 뜻이지만 남편이 그래도 제일 가깝지 않아? 하겠지만 가깝긴 뭐가 가까와? 남자는 다 도둑놈이라구요. 물건을 빼 가는 데 있어서 제일 가까운 데서 빼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예수님은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늘길 가는 데 있어서는 그 남편이 도둑놈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뜻 이외에는 믿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뜻이 무엇이냐? 요전에 어떤 신학박사라는 사람이 왔을 때, 우리 식구가 '하나님의 뜻이 뭐요?' 하고 물으니까,'쉽고도 어려운 문제인데…' (웃음) 신학박사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도 몰라 가지고는 할수없는 일이요, 알 수 없는 일로써 결론짓는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뜻을 간단하게 결론짓습니다. 뜻이 뭐냐? 세계를 복귀하는 것이다. 세계를 복귀하는 기준은 무엇이냐?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창조이상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완성이다. 딱 나와 있다구요.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1차, 2차, 3차의 딱 단계적으로 거쳐가게 돼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알고 나면 바쁘다는 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나라 앞에 반대받고, 교단 앞에 반대받고, 교인들 앞에 반대받고, 친척들한테 반대받고, 선생들한테 반대받고, 친구들한테 반대받고, 아들딸한테 반대받는 자리에 선 것입니다. 결국은 '나만 남았나이다' 하는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이제 반대받았던 자리에서 거꾸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반대받았던 자리에서 좋다고 하는 가정패, 좋다고 하는 패…. 점점 넓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한국이 반대하게 되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뜻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반대받으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반대받으면서 발전했지요?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받으면서 발전하는 것이 하늘나라의 일입니다. 반대가 없게 되면 발전을 못 하는 것입니다. 왜? 탕감법이라는 것은 사탄하고 하나님하고 삼인 대조해 가지고 이루어지기 때문에 반대가 없어 가지고는 발전의 동기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교역자들이 배고파 죽겠다고 해도 절대 한푼도 안 도와주는 것입니다. 딴 데에는 별의별 놀음 하면서 돈을 많이 쓰지만…. 배고픈 사정을 알아 가지고 배고픈 이상 나라를 사랑하라 이거예요. 거기에서 틀어지게 되면 너는 망하는 것이다, 어려운 이상 나라를 사랑하라, 하늘나라가 어렵고 하늘나라가 더 긴박한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그 환경을 감수하라, 그 자리를 거쳐 나가면 너는 나라를 위해 충을 다한 충신의 반열에 동참할 것이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더우기 교역자들이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나도 그 길을 갔습니다.

내가 쇠고랑을 차고 원수들에게 몰리고 그랬지만, 원수들 대해서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목사들 대해서 '하나님, 통일교회 문선생을 감옥에 잡아넣은 원수들에게 불벼락을 내려서 전부 다 몰살박살시켜 버리소서' 그런 기도를 세 번만 하게 되면 다 걸려들어간다구요. 그런 무서운 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이제는 다 손을 들고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일반 사회 사람들이 기독교의 목사들 대해서 규탄하게 되어 있습니다. 목사, 눈 '목(目-)'에 죽을 '사(死)'자…. 별의별 소리를 다 하고 돌아 다닌다구요.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다고 좋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망하는 것을 보고 히히히히 웃다가는, 잘되었다고 박수를 보내다가는 화살이 내게로 날아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놈, 하늘이 좋아서 치는 것이 아니다. 법이 있기 때문에 치지만 인간이라면 정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니냐? 동정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신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총살시켜 놓고서도 돌아설 때는 '이놈의 자식' 할 것이 아니라 인사를 하고 돌아서야 할 것이 법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쳐부수고도 거기에다 예를 갖추고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는 그 나름대로 자기가 바라는 길을 위해서 생명을 바친 엄숙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주장과 바라는 기준은 다르지만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은, 악한 자리에 서더라도 그것만은 귀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요전에도 얘기했지만, 지금도 목사들 공청회를 계속해서 하고 있는데 이들을 가만히 보면 참 불쌍해요. 불쌍하다는 거예요. 내가 쭉 보고 듣고 있지만, 불쌍하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

그러면 여러분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렇지요? 「예」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를 못 가진 것을 해원성사해 주라는 거예요. 예수가 사랑하지 못했던 그 일족을 중심삼고 사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라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있으면 예수의 할머니와 같이 사랑하고, 어머니가 있으면 예수의 어머니와 같이 사랑하고, 형제가 있으면 예수가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형제와 같이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을 가려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족속,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민족,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나라,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세계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 나가야 합니다. 그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가신 예수의 길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을 바쳐서라도 그 사랑의 인연을 따라 '나는 사랑했노라'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죽을 때 다시 와야 되겠다는 미련을 갖고 죽게 되면 천국 못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가 다시 와야 되는 것은 낙원밖에 못 가고 천국 못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낙원은 어떠한 곳이냐? 천국가기 위한 대합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이상으로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고는 예수의 한을 해원성사시킬 수 없는 것이요, 예수의 한을 해원성사 못 시키면 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거예요. 남자들은 천사장의 사명을 감당해야 되고, 그 다음엔 예수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신부를 길러 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딸이 있거들랑 딸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하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전통을 이어 가지고 사랑해야 되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예수를 사위로 삼든가 예수와 사돈을 맺을 수 있는 일족을 만들어 놓지 않고는 하늘나라의 권속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이것을 우리 통일교회가 하자는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다 못 해…. 그래서 '식구'라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누렁이고 흰둥이고 검둥이고 없어요. 세계는 하나입니다. 일본 사람이 과거에는 원수였지만 통일교회에 들어와서는 하나예요.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이 결혼도 하는 거라구요. 독일 사람과 영국 사람이 원수지만 결혼도 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에서는 말도 통하지 않는 자리에서, 자기들이 원해 가지고 통역하는 사람을 세워 놓고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통역을 하는 사람을 세워 놓고 사랑하는 부처(夫妻)끼리 재미 좋겠어요? 그런 것을 통일교회 문선생이 강제로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자원해 가지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할 수 있는 때를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 끼리끼리 하는 것은 얼씨구나 좋구나지. 그렇기 때문에 잘나고 못나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남자 같으면 되는 거고, 여자 같으면 되는 것입니다. (웃음)

자, 그러면 신랑으로 온 예수가 이 땅 위에서 각시를 맞아 소원성취할 수 있는 한날을 갖지 못했던 것을 오늘날 우리가 대신 해원해 줘 가지고 깃발을 들고 예수의 혼인잔치에 들러리로 설 수 있다면, 행복이 아니겠어요? 본래는 처녀 총각들이 들러리 서는 법이 없습니다. 요즘엔 그런 패들이 더러 생겨나지만 본래 들러리라는 것은 결혼해서 재미있게 사는 모범적인 부처가 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신랑으로서 각시를 맞아 혼인잔치할 때, 들러리 설 수 있는 신랑 각시가 되면 불행하겠어요, 행복하겠어요? 그런 들러리감을 만들기 위해서 찾아 세운 것이 열두 제자였습니다. 예수가 혼인잔치하게 되면 들러리들도 전부 다 잔치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앞으로 딴 얘기 없다구요. 축복, 축복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얘기하게 되면 커다란 화제거리가 될 거예요. 오늘 저녁에 축복행사 기록 영화를 한번 보자구요. 문화부장, 어떻게 되었나?「예, 문제없습니다」 그 일본말로 된 부분은 잘 안 됐더구만?「혹 한두 군데…」 노래할때 그렇게 소리는 안 나오고 입만 벌떡벌떡해서는 안 된다고. 그게 전부다 노래할 때 노래가 나오고 그래야 할 텐데 다 잘라 버린 상태가 되었더라고. 「입을 제대로 맞추기 힘들었습니다」 그것을 해야 되는 것이지 힘들다고 해서…. 밥 먹는다 할 때 입은 닫혔는데 밥 숟가락만 가면 돼요? (웃음) 한국어하고 일본어가 서로서로 바꿔 곳이 많던데….「오늘 밤에 여러분들 오시면….」나는 오늘 저녁에 회의가 있기 때문에 못 온다고. 「예, 알겠습니다」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리자

자, 여러분이 그런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예수가 살아 생전에 이루지 못한 그 모든 애달픈 심정의 사연을,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독생자의 애달픈 심정을, 오늘날 여러분이 그와 같은 심정의 자리에 올라가서 이 땅 위에서 그것을 해원성사해 줘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무당들이 원풀이한 다는 말이 있지요? 세상에 악한 신(神)도 그러는데 선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도 그 원풀이를 해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땅 위에서 그럴 수 있는 부모를 모시고, 그럴 수 있는 일족을 거느리고, 그럴 수 있는 식구를 거느려 가지고 '하나님이여 우리 종족을, 우리 교단을, 우리 나라를 사랑하시옵소서'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축복을 받고 가게 된다면, 여러분은 예수가 이루지 못한 이상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시 말하면 예수가 하지 못한 것을 가름하지 않고는 천국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구요, 믿음으로. 바울이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고 했지요? 그것은 바울이 잘 몰랐다는 거예요. 사랑으로 구원을 얻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예수님도 사랑으로 구원해 주고 싶겠어요, 믿음으로 구원해 주고 싶겠어요? 예수가 믿음을 좋아하는 예수예요, 사랑을 좋아하는 예수예요? 믿음 좋아하는 예수지요? 기독교로 말하면 사랑을 좋아하는 예수가 아니고 믿음을 좋아하는 예수지요. 그러니까 믿음으로 구원 얻지 사랑으로는 구원 못 얻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구원 얻을 수 있겠어요? 그 신부가 나를 잘 믿어 준다 하면, 사랑은 안 하지만, 그거 좋아요?(웃음) 그렇게 살래요? 밤이나 낮이나 믿어 준다고 해서 사랑도 없이 그렇게 살래요? 사랑으로 살래요, 믿음으로 살래요?「사랑으로요」 유치원 애들 보고 물어 봐도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믿음으로 어떻게 살아. 사랑으로 살지' 틀림없이 그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예요.

사랑으로 구원받는다

예수를 미치도록, 눈이 빠지도록 사랑해야 됩니다. 눈이 물커지도록 사랑해야 돼요. 오늘날 세상에 있어서 처녀 총각들이 첫사랑을 중심삼고 사모한다고 하지만 그까짓 것은 곁에도 올 수 없고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심정이 고조되어 가지고 콧물, 눈물을 쑥쑥 흘리고 머리야 어떻게 되든, 신세야 어떻게 되든 그걸 개의치 않을 수 있는 처지가 돼야 합니다. 눈물 흘리는 처지가 나쁜 처지예요, 좋은 처지예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못 만나서 그러니까 만날 수 있는 가망성이 있지만, 그렇지 않고 눈이 반들반들한 사람들은 아예 만나지도 못한다는 거예요. 만나더라도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주님이 오시는 데는 고생을 해 가지고 피를 흘리고 상처를 입어 형편없는 모습이 될 거라구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는 고운 옷을 입고 방긋방긋 웃으며 '아하하 오시나이까, 오시나이까' 해 보라구. 눈물을 흘리고 오시는 판인데 그거 재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우리 남자들, 만일 그런 신부가 있으면 기분 좋겠어요?'이거 무슨 요사스러운 요런 간나가 있어? 할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이 편안하게 오게 안 돼 있다구요. 편안하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사랑의 뜻을 이루지 못한 그 예수가 수천년 동안 고생하다가 온 그 주제가, 그 모양이 어떻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그러니까 주님이 와 가지고는 도리어 '야야, 울지마라. 네 주제가 이게 뭐냐. 네 머리가 왜 이렇게 됐노. 옷이 왜 이렇게 됐노. 왜 이렇게 피골이 상접하도록 고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느냐. 모든 것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되었구나' 하시며 머리를 가눠 주고, 옷을 가눠 주면 그것이 영광이예요, 슬픔이예요?「영광입니다」 도리어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 자리에서 가눌 것이 무엇이고, 자기 주제를 가눌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렇게 되면 도리어 힘들게 오시던 주님이 서 가지고 나를 대하여 위로해 줄 수 있는 그 시간이라는 것은 천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위로받는 것보다 위로해 줄 수 있는 자리가 도리어 행복한 자리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끝가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갖고? 믿음을 갖고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어요? 무엇을 갖고? 「사랑요」알긴 아누만. 사랑을 갖고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예요. 믿음이란 길잡이 역할을 해줄 뿐입니다. 요 문턱까치 길잡이라는 거라구요. 신부를 신방까지 데리고 가서 '저 남자가 네 신랑이다' 하고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믿음이라구요. 그 다음에 살림은 믿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예요. 뭘로 하는 거예요?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끝날이 되었기 때문에 믿음의 시대는 지나가고, 사랑화한 신부 단장하여 그 절개 지조를 모든 생활환경 가운데에서 빛낼 수 있는 때가 된 것입니다. 그때를 우리가 맞아 가지고 세계적인 기독교 앞에, 오시는 주님 앞에 새로운 꽃다발을 드려 보자, 꽃다발을 못 가졌거든 우리의 몸이 향기를 풍기는 꽃다발이 되고, 우리 단체가 몽땅 꽃다발로 드려지자는 거예요. 알겠어요?

우리 자체가 향기를 풍길 수 있는 꽃이 되자는 거예요. 그것이 뭐냐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와서 동정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는 모습이 되자는 말입니다. 그 자리는 웃고 춤추는 자리가 아니예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길을 지키고,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된다면 예수가 가야 할 노정에 동반자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의 상속자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라서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 도

​아버님, 통일교단이 이 자리까지 나올 때에 당신이 싫어 하는 자리를 걸어 나왔걸랑 당신의 마음에 사무친 원한을 가지고 경책 (警責)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당신이 분부하신 최후의 정상을 넘기 위한 싸움의 길을 지금까지 가려 가면서 나왔습니다. 이제 7부 능선, 8부 능선, 9부 능선, 정상을 향하여 전진하는 세계적인 사조 위에, 아버지여, 동정하여 주시옵소서.

슬픔과 낙망과 탄식과 한숨이 엇갈린 십자가의 정상으로 이어받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소망과 부활과 승리로 이어받을 수 있는 순간이 오늘날 통일교단이 가는 도상에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아버님, 생각하면 지루한 길이었습니다. 생각하면 기막힌 길이었습니다. 생각하면 차마 갈 수 없었던 사연들이 많았습니다만, 땅 위에 있는 저희들의 사연보다도 하늘의 사연이 더 큰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망할 수 있는 길일지라도 당신이 가는 길이기에 따라 나왔습니다. 그렇게 따라 나오다 보니 망할 줄 알았던 무리가 망하지 않는 자리에 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모두가 그 누구의 공(功)이 아니요, 아버님의 피눈물 나는 희생과 심혈을 기울인 결과로 얻어진 승리인 것을 생각할 적마다 몸을 굽혀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당신을 대해 나의 아버지라고 밤을 지새우며 애달피 호소하는 아들딸이 있거들랑 당신이 모른다 하시면 안 되겠습니다. 그 자리에 영영 같이 하시옵소서.

이 땅에 오셔서 30여 년의 생애를 거쳐갔던 예수의 행로에 있어서, 겟세마네 산정을 더듬으면서 밤을 지새워 기도할 적마다 미래의 사연들을 통고하시던 아버지의 내정이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깊은 자리에서 하늘의 권고가 늘 떠나지 마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아버님, 이 자리는 그 누구의 자리도 아니었습니다. 이 아들이 바라는 것은 당신이 원하는 나라를 위해 싸워 나가야 할 개척의 노정을 어떻게 보람 있는 전통의 노정으로 전개시키느냐 하는 것이고, 당신이 염려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염려의 마음을 갖고 지금 이 자리를 지키려 하는 것이 옵니다. 이것을 당신은 알고 계신 줄 아옵니다.

부디 저희들이 가는 길을 당신의 뜻 앞에 합당할 수 있는 결과로 이끄시옵소서. 그렇지 못한 입장에 서거든, 아버지여, 징계를 내리시어서 당신 앞에 합당한 자리를 언제나 붙들고 나갈 수 있는, 하늘을 버리고 하늘을 떠난 우리가 안 되게끔, 거느려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지금부터 2천년 전 이 땅 위에 오셨던 예수의 사연을 붙들고 저희들이 얼마나 동정을 하였으며, 그 애달픈 심정을 부여안고 얼마나 하늘땅을 가려 나가기 위하여 마음을 다짐하였던 저희 스스로가 되었는가를 다시 한번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될 이 시간이 된 것을 알았습니다.

통일가에 있어서 식구라는 이 고귀한 이름을 더럽히는 개개인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오니, 아버지여, 각 개인의 마음을 통치하시옵고 통찰하시어서, 매양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승리의 일로만을 아버지 앞에 봉헌해 드리기 위해 온갖 정성과 지성을 다 기울이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이달의 마지막 날이오며, 이달에 있어서 다섯번째 맞는 안식일 이옵니다. 10월을 보내고 내일 11월을 맞게 되오니 10월 한달을 반성하고 이해 이후의 모든 것을 반성하면서 당신 앞에 한걸음 진일보할 수 있는, 자기의 영광의 모습을 구비하여 싸움의 길을 더디 하는 무리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개인의 싸움을 이기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싸움터를 향하여 전진에 전진을 더 다짐할 줄 아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예수의 한을 풀어 드리고 예수의 싸움터를 사수할 줄 아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어야 될 것을 확실히 깨닫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땅 위에 남아진 세계는 사탄세계인 것을 알고, 있는 정성을 다하여 세상을 직시하면서 내일의 승리의 영광을 하늘 앞에 수습해 드리기 위한 온갖 준비의 충성을 다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고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자기 스스로를 정비하고 자기 스스로를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정병으로 가꾸어 내는 데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는 하늘의 권속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나라가 망하기 전에 그 족속이 망해야 되고, 그 족속이 망하기 전에 그 가정이 망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가정이 망하기 전에 우리 개인이 망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가 찾아 나온 것은 개인이 아니라 가정이었습니다. 가정이 가야 할 길은 종족을 위한 길이기 때문에 종족을 찾으려면 가정은 희생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민족을 찾으려면 종족은 희생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국가를 찾으려면 민족은 희생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세계를 찾기 위해서는 국가가 희생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는 국가가 없는 것을 보게 될 때, 이것은 필시 악한 세계인 것에 틀림없사오니, 이것을 걷어치우고 세계를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국가 주권 민족을 편성하기 위한 싸움의 준비를 더디 하지 않는 통일신도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한 사상적 일념을 지니고 온갖 지성을 다하는 무리가 있으면, 그 무리는 망하지 않고 역사를 지배하고, 천주사에 새로운 전통적 문화를 남길 수 있는 거룩한 국가를 지닐 수 있고 거룩한 민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당신을 위로하고, 그 자리에서 당신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끔 끝까지 싸워 참아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날을 기억하시옵소서. 금년 10월까지의 모든 사연들이 당신의 흡족한 일로로 귀결되고, 남아진 두 달을 통하여 재차 정비하고 수습함으로써 이해를 승리의 해로, 찬양의 해로 민족과 하늘 앞에 바쳐 드리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오늘의 전체를 친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남한 각지에 널려 있고,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과 수많은 형제들을 중심삼은 교단들 위에, 당신의 소원을 가지고 하늘의 권속의 인연을 흠모하는 수 많은 신자들 위에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의 손길을 펴시사 승리의 날들이 빨리 그들 앞에 전개되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만만세의 은사와 축복이 당신의 뜻을 위하여 희생의 길을 다짐하는 그들 앞에 영원히 같이하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올 때에,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오늘은 1971년 11월 1일입니다. 이해의 만 10개월을 보내고, 새로운 이 달 이 아침에 저희들이 이 거룩한 성지에 모였습니다. 이 성지는 세계의 모든 땅을 연결하는 120개 성지와 더불어 하늘의 축복을 받은 땅이요, 그 중의 중심 성지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이 시간에도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은 이 땅을, 이 거룩한 성지를 찾고 싶어 아버지 앞에 정성들이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곳에는 아버지께서 언제나 같이 하신다고 약속하신 대로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마음이 당신이 거하실 수 있는 거처가 되고, 그들의 몸이 당신이 활동하실 수 있는 터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생활환경이 당신이 주관하고 통치할 수 있는 생활적 환경과 국가적 터전이 되게 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하늘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이 한국을 그리워하며 정성들이는 무리들 위에 당신의 무한한 사랑의 손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원래 당신께서 바라시던 하나의 세계와 하나의 민족과 하나의 종족과 하나의 가정을 얼마나 얼마나 고대해 오셨는가를 저희들은 아옵니다. 혈통이 다르고, 역사의 배후가 다르고 혹은 문화가 다르고 모든 풍습이 다르다 하더라도 당신의 섭리의 심정을 이어받은 정성스런 마음은 다 같은 방향에서 있고, 같은 뿌리에 연결돼 있고, 같은 인연을 맺고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버지 앞에 호소하는 것은 그들 개인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옵니다. 그들이 정성들이는 것은 어떤 일개 민족이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옵니다. 오로지 아버지가 원하시는 그 나라와 그 세계를 위해서 정성들이는 무리들이오니, 그들이 정성들이는 곳곳마다 온전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렇게 정성들이는 무리를 대표하고 있는 이 한국의 사명과 한국 식구들의 사명이 얼마나 중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정성의 터전 위에서 오늘 저희들도 이 성지에 모여 아버지 앞에 가까이 나섰사오니, 아버지, 찾아와 주시옵소서.

저희 각자의 마음은 아버지 앞에 사랑 받을 수 있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딸로서의 확고한 약속과 인연을 갖추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계시지 않으면 저희는 가치가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더불어 하나되는 거기에서부터 원수의 세계를 초월하고, 승리의 터전 위에 당신이 등극하실 수 있는 모습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둘러 서 있는 당신의 자녀 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복잡다단한 세계 정세를 앞에 놓고 있습니다. 격동하는 한국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이 같은 파문 가운데에 휘몰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방향을 갖추지 못하는 이런 세계상 앞에서 저희 들만이라도 아버지가 원하시는 나라를 향하여, 아버지가 원하시는 심정의 터전을 저희 생활 터전에서부터 세계에까지 개척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것은 저희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지중하고도 엄청난 사명감을 느끼게 되옵니다. 하오나 그것은 인간의 힘 가지고는 되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같이 동행하시지 않고는 모든 일이 성취되는 한날을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버지 앞에 흰옷을 입고 정성들이는 무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하루를 편안히 쉬는 것보다도 하루를 고달프게 하늘과 더불어 정성들이는 생활을 갖는 것이 영원에 접근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의 생활을 통하여 수난길을 가는 데 있어서도 자기를 위한 수난길이 아니라 민족과 뜻을 위한 수난길을 가는 것이 영생으로 통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와 같은 뜻을 알고 있는 저희들은 이 아침에 당신의 새로운 분부와 후덕하신 사랑의 손길을 의지 하여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저희들을 찾아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남산을 중심삼고 둘러 있는 서울 도성을 당신이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도성은 사망의 깊은 골짜기에서 허덕이고 있는 도성인 줄 아옵니다. 생명의 인연을 가누기 위하여 당신의 심정을 부여잡고 고고한 뜻의 노정을 붙안고 가는 무리가 이 도성에 많지 않은 것을 아옵니다. 저희들만이 캄캄한 밤중에 촛불을 켜고 아버지를 향하여 정성들이는 무리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 폭풍우가 휘몰아치면 불이 꺼질 까봐 그 촛불을 품에 품고 아버지를 향하여 정성들이는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당신이 언제나 지켜 주시옵고,당신이 언제나 보호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언제나 지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 갈 길에 있어서 소망의 표준은 그 누구도 아닌 하늘이요, 아버지 이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운명의 해결점도 그 누구의 손으로, 그 누구의 능력으로, 그 누구의 수완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아옵니다. 당신의 긍휼하심과 당신의 자비와 당신의 능력의 손길이 아니고는 이 나라의 갈 길도 가려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 이 나라를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북이 갈라져 가지고 수십 년 동안 애달픈 사연을 남기고 있는 역사적인 인연을 아버지께서, 불쌍한 이 민족을 아버지께서, 불쌍한 이 무리를 아버지께서 다시 한 번 기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민족이 갈라졌기 때문에 하늘의 뜻을 위하여 준비하였던 저희와 기성교단이 갈라져 있습니다. 이 담을 부수기 전에는 이 민족의 담을 부수어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저희들이 책임 다하지 못한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정성이 부족하였던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세계를 잃어버리고 아버지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는 것이요, 나라를 잃어버리고 아버지 앞에 설 수 없는 것이요, 종족과 가정을 잃어버리고. 내 몸을 잃어버리고 아버지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아옵니다. 나를 통하여 가정을 거치고, 종족을 거치고, 민족을 거치고, 국가와 세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당신이 이상하는 나라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아옵니다.

그 길은 원수들과 싸워야 할 길임을 아옵니다. 지금까지 홀로 싸워 나오신 아버지이신 것을 앎과 동시에, 원수를 대하여 방어진이 되고 울타리가 돼 가지고 모든 힘을 모아 원수세계에 위압을 가하면서 전진할 수 있는 승리의 권을 아버지께서 얼마나 얼마나 고대하였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내 가정이 아버지께서 안심하고 가실 수 있는 가정이 되지 못할 때에, 아버지께서 또다시 가시밭길을 헤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아버지께서 안심하고 가실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한 것을 볼 때,저희들은 수난길에 있어서 혹은 가정을 대한 싸움에 있어서 선봉에 서야 되겠습니다.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대한 싸움 앞에 아버지를 대신하여 선두에 서서 원수 사탄을 대하여 싸울 수 있는 결의라도 가져야 되겠습니다.

골리앗 대장 앞의 다윗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생명을 넘어설 수 있는 충절의 마음에 사무쳐 아버지를 믿고 나서는 마음을 가지고서, 아버님이 가실 수난길을 가로막고 슬픔과 고독의 길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선두에 서서 싸움길을 감수하고 수난길을 감수 하면서, 고독한 길을 스스로 개척하기를 필생의 운명으로 알고 가는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있어야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일구 월심 한 순간이라도 잊어버리지 않고,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이 시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곳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는 무리가 많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들이는 정성이 결코 헛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이 알지 못하는 길을 찾은 저희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저희들은 많은 조롱과 비소를 받는 자리에서도 죽지 않고, 망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남아졌습니다.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앞으로 싸워야 할 싸움은 쉬운 싸움이 아닙니다. 생사를 판가름 지어야 할 최후의 싸움터가 우리와 접경(接境)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에 저희는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원수의 본영을 향하여 전진 또 전진할 수 있는 하늘의 용기가 필요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모인 무리들, 또한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에게 하늘의 전통적 용맹심을 부여하여 주시옵소서. 강하고 담대하게 믿고 나서는 곳에 능치 못함이 없다는 신념을 갖고 그 환경을 지키고 나설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이 전해 오는 소식마다 상봉의 한날을 그렇게도 고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만나기 전에 만난 것의 몇 백 배 은사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만나는 그 자리는 개인 개인의 인간적인 사정을 통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아버지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고, 세계적 인연을 맺고, 하늘의 자유가 평화의 기치를 드높이고, 승리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늘과 땅이 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상봉하기를 아버지께서 얼마나 얼마나 바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소수의 무리들에게 그날을 대신할 수 있는 본향의 한때를 갖출 수 있도록 당신이 상봉의 날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달에는 그들과 더불어 만날 수 있는 인연을 따라서 한국을 떠나야 할 입장에 있사옵니다. 이 한국을 지키시옵소서. 이제부터 가야 할이 한국 강토를, 아버지, 사랑하시옵소서. 저희들은 현재도 나라를 위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그 누가 나라를 맡아 가지고 하늘이 원하는 길로 가게 할 사람이 없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저희들에게 맡겨진 사명이 얼마나 지중한 것인가를 알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밥을 먹기 전에 나라를 생각하여야 되겠고, 옷을 입기 전에도 나라를 생각하여야 되겠고, 길을 가기 전에도 나라를 생각하여야 되겠으며, 잠이 들기 전에도 나라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당신이 찾아 나오시는 승리의 그날을 이루어 드리는, 당신이 품고 싶었던 승리의 자녀들이 다 되어, 승리의 백성을 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승리의 동산을 찾기 위해 얼마나 수고해 오셨다는 것을 저희들로 하여금 잊어버리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나이가 어린 자나 나이가 많은 자나 생활을 통해서 일구월심 충절의 마음을 가지고 당신 앞에 있어서 당신의 마음을 부여잡고 당신의 사정과 더불어 살며, 당신의 소원을 향하여 전진에 전진을 거듭하는 자녀 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앞에 아무 말도 아뢰올 면목이 없는 저희들이옵니다. 얼굴을 들고 당신을 대해서 감히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저희들이옵니다. 그러한 저희들에게 누구보다도 더한 소망을 두고 싶으신 것이 아버지의 마음인 것을 알게 될 때, 불쌍하신 아버지를 동정해야 되겠습니다. 불쌍하신 아버지의 사정을 저희들이 마음으로 체휼하면서 눈물로써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고, 정성어린 충절로써 아버지를 받들어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없어서는 안 될 모습으로서 아버지가 찾아오시지 않을 수 없고, 아버지가 기억하시지 않을 수 없고,아버지가 내세워서 부탁하시지 않을 수 없고, 더 나아가서는 승리의 자리에 섰기 때문에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는 아들딸의 자리까지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땅 위에 있는 우리뿐만 아니라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도,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선한 선조들을 동원하여 땅 위에 있는 만민의 인연을 개척할 수 있는 때가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지상을 대하여 영계가 접근해 오는 이때에 있어서 저희들이 가야 할 길을 가려 가지고 자기 일족 혹은 자기 씨족 앞에 민족 앞에 선한 선조들을 임재시켜 그들과 공동작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영육을 통한 합동작전을 하여 영육으로 접해 있는 이 원수세계를 몰아 내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음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영계에 있는 수많은 선한 영인들이여, 땅 위에 있는 수많은 후손들과 접선하시고 결집하시어 최후까지 싸움터를 지키고 원수의 본영을 몰아낼 수 있게끔, 승리의 깃발을 드높이 들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이제부터 찾아오는 세계적 정세를 당신께서 가로막으시옵소서. 격동하는 세계가 오면 올수록 거기에 있어서 저희들은 물 위에 떠 있는 하나의 거품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무리 파도가 세어도 바다 가운데에 솟아 있는 하나의 바위와 같이 폭풍우가 몰아치더라도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서, 아버지가 언제나 거기에 한 터전을 삼아 가지고 사해와 같은 이 땅을 수습하시는 데 하나의 발판이라도 만들어 드릴 수 있는 저희 자신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자신이 되고, 하나의 종족, 하나의 나라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러한 교단과 그러한 나라를 바라보며 나가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땅 위에 있는 저희들을 기반으로 하시어서 승리의 개척, 영광의 건설을 시작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립니다.

이제 11월 한 달이 오늘서부터 출발하게 되옵니다. 1971년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한 많은 복귀의 사연들을 거치면서 이미 10개월을 지냈습니다.또한, 저희들은 금년에 있어서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대학가를 중심삼고 집중적인 공세를 하기 위하여 아버지께서 목표하시던 모든 기초작업은 끝났습니다.

아버지, 이 나라 이 민족을 대신하여 북괴의 모든 전력을 밀어 넘겨야 할 대한민국 국군들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이들이 사상무장 할 수 있는 길을 바랐던 것도 이제는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 전체를 아버지께서 주관하시옵소서. 저희들은 당신이 살아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 생활의 이면에서 저희의 안팎을 보호하시고 지도하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지금까지 정성들인 일체가 아버지 뜻 앞에 합당하게 인연 맺어지기를 바랍니다. 외적으로는 이와 같은 일들과 인연 맺고, 내적으로는 지금까지 수차례의 목사 공청회를 통해 인연된 8백여 명의 목사들의 마음이 아버지를 향하여 가까워지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말과 그들의 마음을 당신이 이끌어 주시옵소서. 서 있는 그 자리 자리에서 자기의 마음이 아니라 아버지가 이끌어 가시는 운세에 보조를 맞추어 자기도 모르게 전체의 환경과 한 기준을 통하여 하늘의 인연과 연결되게 하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소원의 곳을 향하여 갈수 있고, 스스로 아버지께서 격동하실 때에 마음에 자극을 받으면서 아버지가 기뻐하실 수 있는 곳으로 결집할 수 있게끔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나라를 수습하기 전에 교회를 수습하여야 할 복귀의 형극의 노정을 잘 알고 있사오니, 그 노정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해의 모든 전체를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1970년대의 복잡한 모든 인연을 아버지께서 가려내 주시옵고, 승리의 방패를 세워 주시옵소서. 남북이 갈라져 있는 인연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삼팔선을 지켜야 되겠습니다. 명년까지 저희들이 정성들이는 도상에 있어서 아버지의 보호하심과 가호하심이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11월 초하루를 맞이하여 우리가 금년도 표어로 세웠던 '통일기반 확보' 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내외적으로 완전히 일치될 수 있는 가정을 찾아오신 하나님

통일이라는 것은 과연 어려운 것입니다. 둘이 하나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개체를 두고 보면, 몸과 마음이 하나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를 두고 지금까지 도의 길을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싸워 나온 것, 희생의 대가를 치러 나온 것도 단지 우리 몸과 마음을 하나되게 만드는 싸움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수많은 인간들이 동원되고, 수많은 종교인들이 희생되어 가면서 이 몸과 마음을 통일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얼마나 애썼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에 있어서 그것이 얼마나 어렵더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생애를 두고 그 싸움을 계속해 왔어도 아직까지 통일했다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리에 서지 못한 자신을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임을 보게 될 때, 한 가정에 있어서 부부면 부부끼리 하나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여러분이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를 가하면 가할수록 거기에는 배가되는 수고의 길과 어려운 문제들이 가로놓이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에, 지금까지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것은 하나의 사람을 찾고 하나의 가정을 찾아 가지고, 그 가정이 완전히 하나님과 안팎으로 일치될 수 있는 터전이었습니다. 그런 터전을 마련하지 않고는 새로운 횡적인 세계 무대를 향하여 전진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정의 발판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개인이나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생각하게 될 때에, 이것은 더더욱 부정할 수 없는 어려운 점인 것을 우리는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중심 가정이 나오지 않으면 이상세계 건설은 불가능해

그러한 주체적인 가정이 나오지 않고는 자기의 친척이라든가 종족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완전한 중심이 없어 가지고는 완전한 상대적 여건을 결정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옳고 그른 것을 결정짓기 위해서는 옳다는 중심의 핵을 결정지어야 됩니다. 그 중심은 일시에 변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성을 초월해야 됩니다. 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가지고 어느 때든지 그 모습이 변치 않는 자리, 절대적인 자리에 있어서, 전후좌우 사방에 있어서 그 모습은 표준임에 틀림없다는 결정적인 요인을 갖추지 않고는 중심으로 결정될 수 없습니다. 표준으로 결정될 수 없습니다.

하나의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에, 국가에도 그런 하나의 중심이 있어야 되는 것이요, 하나의 종족을 중심삼고 볼 때도 그런 중심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종족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가정 입니다. 가정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고 자녀가 있습니다. 원리 용어로 말하면 사위기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사위기대는 동서남북을 대신합니다. 따라서 동서남북이 이지러지지 않고 완전히 수평이 되어야 됩니다. 중심을 중심삼고 볼 때, 중앙에서 동쪽 끝이나 서쪽 끝, 남쪽 끝이나 북쪽 끝, 혹은 남서쪽 끝이나 북동쪽 끝, 남동쪽 끝이나 북서쪽 끝, 어느 쪽의 끝을 보더라도 그 간격이 같아야 되고 길이도 같아야 됩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결한 통일적인 핵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자리가 결정되면 그 중앙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이 임재하려면 완전한 주체와 완전한 대상이라는 조건이 첨부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냥 주체와 대상보다도 완전한 주체와 완전한 대상이 주고받는 데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중심이 결정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동서남북, 즉 동에서부터 남으로 서로 북으로 돌아 가지고 다시 동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 길이가 같아야 되고, 또 각 사방에서 중심을 대하는 그 길이가 전부 다 같아야 됩니다. 그래야 치우치지 않는 하나의 중심이 결정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하나의 가정, 수평과 수직의 중심으로서 하나님이 임하실 수 있는 가정이 있겠는가? 그렇게 결집된 중심, 그 핵은 평면세계의 종합적인 기점이요, 혹은, 입체세계의 지상의 중심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중심입니다. 그 중심은 세계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수평선과 수직선이 결집된, 이것이 안팎이 되어 가지고 90도 각도로 집약된 하나의 핵을 이를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그래야만 완성을 결할 수 있는 주체와 상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리에 반드시 임재하신다는 것을 원리는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하나님이 하나의 수직선이라면 여러분의 가정이 그 수직선을 중심삼고 동서남북 사방이 평형을 이룬 수평선을 갖추어 가지고 사방의 비중이 통일된 형태를 갖출 수 있겠느냐? 그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이 한 점을 바라보고 지상섭리를 해 나오셨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 가정이 성립되지 않고는 그러한 하늘 수직선을 중심삼은 종족권, 민족권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혹은, 삼천리 반도를 중심삼고 볼 때,중심이나 말단에 있는 개개인이 마음 기준에 있어서 수평선을 이루어 수직선과 접할 수 있는, 즉 90도 각도의 직각선에 처할 수 있는 국민의 자세, 국민사상이 갖추어져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천태만상의 요인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혹자는 올라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자는 내려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서 있는 여러분들도 마음 자세가 전부 다르고 처해 있는 환경이 전부 다른 개체들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뜻을 알고 뜻길을 간다는 우리 자신들마저도 그러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을 볼 때, 삼천만 민족은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범위를 더 넓혀 가지고 주권이나 전통, 문화의 배경이 다르고 습관과 풍습이 다른 역사성을 지닌 수많은 나라, 세계 인류를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수직선과 이 수평선을 그려 가지고 완전한 중심과 일체적인 이상권을 이루기를 바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창조이상이란 무엇이냐? 중심으로부터 끝에까지 힘의 작용이 있게 될 때에 도는 힘의 작용과 마찬가지로 이 끝이 저 끝과 접하고, 저 끝이 이 끝과 연락될 수 있는 힘의 배열이라는 것은 같아야 될 것이요, 그 방향도 중앙이 제시하는 방향을 따라 움직여야 될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지금 지상의 한 중심의 핵점에 현현하셔서 세계 만민에 힘의 수수작용을 요구하고 계시다면, 과연 저 땅 끝에서 그것을 받아 가지고 평면상을 유지시킬 수 있는 수수작용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 이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렇다' 하고 말하기도, 생각하기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상세계의 실현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오늘날 인간 자체들로서는 불가능하다, 인간의 힘 가지고 안 된다 하는 결론이 내려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를 바로 인도할 중심이 없는 현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오늘날 이 세계를 바라볼 때에, 지금 세계에 중심이 있느냐? 중심이 없는 것입니다. 민주세계도 중심이 아니요, 공산세계도 중심이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새로이 논하고, 미래의 세계를 추구하는 어떠한 정치 사상, 정치 이상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세계를 우리가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언제나 파동과 같이 움직여 나가고, 혼란상태, 혹은 격동하는 와중을 거쳐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이 세계의 운명을 생각해 보게 될 때에, 과연 이 세계의 중심이 있느냐? 막연한 중심이나마 있느냐 할 때, 우리는 막연한 중심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이 금후의 세계 정세에 대해서 어떻게 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미국 자체가 '이렇게 간다'고 확실치 않지만 막연한 방향이라도 제시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느냐? 그러한 입장에 서 있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혹은, 공산주의 자체가 그럴 수 있겠느냐?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된다. 하나의 세계를 향해 가는데 있어서는 틀림없이 이렇게 가야 된다' 해 가지고 모든 국력을 동원하여 국가가 망하더라도 그 길을 가는 자주적인 국가가 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지난달 23일인가, 자유중국이 유엔총회의 결의에 따라 유엔에서 축출 당했습니다. 20년 전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중공을 침략자로 규탄할 때에 자유중국과 함께 이마를 맞대고 결의하던 나라들이 20년만에 자유중국을 축출하는 이런 급변하는 세계 정세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20년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자신할 수 없는 세계 정세권내에 몰려 있는 것입니다. 세계 정세를 따라 가지고 우리의 감정과 사회의 풍조는 변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과연 하나의 중심을 중심삼아 가지고 변하지 않는 방향을 갖추어 나갈 수 있는 입장에 섰다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느냐? 이것은 크나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국가 가운데 막연하나마 '세계의 방향은 이래야 된다'고 하면서 모든 생명을 투입하고, 국권을 동원해 가지고 죽음길을 가더라도 이 길을 가야 되겠다고 하는 어떤 주권자. 어떤 국민이 있느냐?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민주세계보다는 공산세계가 좀 낫습니다. 공산당들은 세계 제패를 위해서 국가 전체가 동원해 가지고 생사를 결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 목적을 위해 가겠다는 무리입니다. 그렇지만 국가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에, 공산권은 이미 분립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다원화, 다극권을 향해서 흘러 나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세계 가운데에 그러한 단체가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그러한 국가는 없지만 장구한 세월을 통해 막연한 방향이지만 전체의 생명을 투입해 가지고 가겠다는 하나의 무리가 있었습니다.그것이 뭐냐 하면 종교라는 것입니다. 수천년 동안 역사의 역경을 거쳐 나오면서 막연하나마 앞으로 자기들이 가는 그 끝날에는 이러한 하나의 세계, 이상세계가 온다고 하며 생사를 걸고 투쟁해 나온 종교가 있습니 다. 종교 중에도 어떤 종교냐? 기독교입니다.

그러면 그 기독교가 지금은 어떻게 됐느냐? 이때에 있어서 결속해 가지고 혼란된 세계상을 넘어서'이렇게 가겠다' 는 방향을 확고히 제시해 가지고 세계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독교가 됐느냐? 기독교 자체도 다원화되어 버렸습니다. 수많은 교파로 나뉘어 투쟁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기독교가 막연하나마 지금까지 하나님을 중심삼은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수평선을 향하여 하나의 방향을 가리기 위해 투쟁해 나온 역사적인 사실을 공인할 수 있는데, 이렇게 횡적으로 뻗어 나온 역사적인 첨단은 어디서 스톱당했느냐? 20세기 후반기입니다. 20세기 후반기의 문명과 보조를 맞추어 휴식단계에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걸 바라보게 될 때, 금후의 종교는 어떻게 될 것이냐, 금후의 기독교는 어떻게 될 것이냐? 종교계의 혁신을 부르짖지 않으면 안 될 차제에 놓여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늘 부모를 중심삼은 심정의 인연으로 결속해야 할 통일식구들

이러한 입장에서, 오늘날 종교계를 새롭게 각성시키고 세계적인 사상계를 새롭게 각성시킬 수 있는 이 2대 사명을 결속시켜 가지고 하나의 목적관을 제시한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통일사상은 막연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수직적 방향을 취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 수직적 방향은 어떠한 것이냐? 심정의 터전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심정의 인연이라는 것은 역사가 변천해 나간다고, 혹은 시일이 지나고 연한이 길어진다고 해서 희미해지는 법이 없습니다. 역사가 오래 되면 오래 될수록,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이 두터워지는 것입니다. 결집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부모와 자식이 떨어져 있을 때에, 아들이 있는 곳에서 부모에게 소식이 온다든가, 혹은 부모가 아들에게 소식을 전한다면, 그 소식은 지금까지의 모든 소원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자극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 소식이 제2의 출발의 요인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부자관계의 심정세계를 통해 체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고 오늘날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녀라고 하게 될 때에, 하늘 부모와 땅의 자녀들이 가는 길 앞에 있어서도 그것은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하늘 부모를 중심삼고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우리 통일가의 자녀들은 이와 같은 심정적 인연을 결속시켜야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고받는 그 마음은 인간세계의 어떠한 심정의 내용보다도 국가라든가 천주를 중심삼은 방대한 심정적 인연이어야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주고받는 그 심정적 터전은 '만민이 통과하더라도 그 방향이 교차될 수 없다 가는 도상에 있어서, 도중에서 끊어질 수 없다' 할 수 있는 그런 확고한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과 외국의 선교본부를 중심삼고 볼 때에, 한국을 통한 섭리의 인연이 그 선교본부를 통하여 전달되게 될 때는 지장이 없는 것입니다. 전달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전달되면 그것을 자기 나라의 전국에 확장시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확고부동한 심정의 다리가 연결되어 있다면 그 다리를 통해서 역사세계에 새로운 천운을 끌어 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이면 한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뜻적인 입장에서 볼 때, 과연 중심은 한 점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중심의 받침이, 혹은 터전이 기울어지면 안 되는 거예요. 이것이 기울어지면 도리어 파동이 일고 파탄의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가 생각하는 사람으로부터, 자기를 생각하면서 정성들이고 눈물을 흘리면서 쓴 편지를 받아 보면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완전한 주체 앞에 있어서 완전한 대상이 있으면 반드시 창조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주체가 어디냐? 대상으로부터 주체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체로부터 대상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섭리적인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오늘날 한국의 본부에 있는 책임자들이 언제나 주체성을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중심삼고 수평선상의 수직선이 돼 가지고, 하나님과 자기와 90도 각도의 인연을 사방으로 갖춰 가지고, 정성들이는 세계 사람과 국경을 초월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윌해 가지고 평행선적 세계의 무대를 갖출 수 있는 정상적인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켜 하나되려면

통일사상에서 말하는 개인 복귀, 가정 복귀, 종족 복귀, 민족 복귀, 국가 복귀, 세계 복귀를 하기 위해서는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누구와 더불어 하나되어야 되느냐?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 무엇과 하나되어야 되느냐? 제물과 하나되어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과 하나되고 제물과 하나되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내 마음이 수직관계가 되어야 되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내 개체를 중심삼고 제물과 평면관계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말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제물과 하나되어야 됩니다. 제물과 하나되려면, 제물과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제물과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영적인 존재인 동시에 육적인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가 바로 가인입니다. 가인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제물과 하나되지 못하는 거예요. 가인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제물이라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제물은 무엇이냐? 희생을 말합니다. 자기의 피를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희생하여 피를 흘리지 않고는 하나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복귀도상에 있어서 공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두고 보면 마음은 아벨의 입장이요, 몸은 가인의 입장입니다. 이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데에는 그냥 그대로는 안 됩니다. 제물을 드려야 됩니다. 몸도 고달파야 되고 마음도 고달파야 됩니다. 몸과 마음이 서로 부딪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반드시 마음이 고달프지 않고는 몸을 구원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일구월심 몸을 제압하여 마음과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피를 흘려야 됩니다. 희생당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가 대상에게 그 힘을 나눠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힘의 영향을 미쳐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대상이 조성되지 않는 것입니다. 주체 되시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기 위해서는 힘을 소모시켜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중심이 될 수 있는 존재는 재창조의 기준을 평면적으로 대신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지상에서 중심의 자리에 설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힘을 투입하고 자체를 소모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체의 힘을 소모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상대적인 여건을 창조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의 법도입니다.

복귀역사는 재창조역사이기 때문에 제물은 희생하는 것입니다. 아벨이면 아벨을 중심삼아 가지고 볼 때에, 아벨이 얼마만큼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하느냐? 그것은 비유를 들자면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말이란 자신이 없는 말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차라리 뺨을 한대 맞는 것이 쉽지, 책임 있는 말을 하기란 힘든 것입니다.

반드시 삼각관계를 중심삼고 상대적 세계를 만들어 가지고 사각관계 이상을 표준해 가는 것이 사위기대의 이상권입니다. 더욱이 오늘날 타락한 세상에 있어서 중심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체 되는 사람이 창조력을 소모해야 되는 것입니다.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지 않고는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그것이 원리입니다. 복귀역사에 있어서는 이것이 하나의 공식인 것입니다.

개인에서부터 세계까지 전부 다 이렇게 되어진 것입니다. 영적 사탄세계의 가인과 실체세계의 가인형이 개인적 가인, 가정적 가인, 종족적 가인, 민족적 가인, 국가적 가인, 세계적 가인까지 널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중심삼고 본다면 개인적 아벨, 가정적 아벨, 종족적 아벨, 민족적 아벨, 국가적 아벨, 세계적 아벨이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에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나'라는 개인을 중심삼고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통일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통일기반의 모체는 나

그렇기 때문에 통일기반의 모체가 어디냐 하면 '나'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먼저는 내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어야 됩니다. 하나되었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수직관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수직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횡적으로 내 몸과 하나되어 횡적 선을 그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완전히 하나되었다 하는 자리는 종적으로도 결집되고 횡적으로도 결집된 자체로서 안팎이 하나되었기 때문에, 안은 안만으로의 안이 아니요, 밖은 밖만으로의 밖이 아닙니다. 둘이 합해 가지고 너와 내가 상응되는 자리에서, 서로가 자체를 공인할 수 있는 입장에서 새로운 제3의 목적점을 중심삼은 '나' 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자리에 있어서 대상을 중심삼은 입장에서 '나'라는 자각이 생기는 것입니다.

나를 자각하고 나선 후에는 나 혼자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몸 마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상대를 중심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창조원칙은 그렇게 발전되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나'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정성들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전에 내가 하나님과 더불어 올바른 자세로 마음과 몸을 중심삼아 가지고 완전히 중심 핵에 설 수 있는 개체를 확보하느냐 못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이 결정되는 날에는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적인 핵, 통일 자체를 중심삼은 통일기반이 확보되는 것입니다. 통일기반이 확보되게 되면 나는 찌그러지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된 '나'인 것입니다.

사랑은 중심이요, 뜻은 상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 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빼놓은 뜻은 없는 것을 알아야 돼요. 사랑 아니고서는 하나 만들 수 없습니다. 둘을 하나 만드는 데는 말 가지고 안 되는 것입니다. 둘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물질 가지고 하나되었다면 물질이 떠나게 되면 도망가는 거라구요. 제삼자의 소개로 말미암아 무슨 사연을 통해서 하나됐다면 그 사람이 없어지면 떠나 버리는 거라구요. 둘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영원히 하나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 아니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둘째 되는 계명이 아니고 첫째 되는 계명인 것입니다. 모든 가르침의 첫번째입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종적 기준의 중심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핵의 내연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거예요. 그것은 왜냐? 통일기반을 생활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것이요, '뜻' 하면 나로부터 세계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뜻이 머물 수 있는 곳은 가정만이 아니라 세계라구요, 세계.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느냐? 뜻을 위해 살아야 하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도 뜻을 위해서 섭리하시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서 섭리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희생되더라도 세계를 위해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만민을 중심삼고 희생하면서 뜻의 권을 다시 한번 개척하기 위해서 제2 개척의 수난길을 당해 나온 것이 하나님이 걸어 나오신 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에 있어서 남북이 떡 갈라져 나갔다는 것은 중심이 될 수 있는 자리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심은 어디서부터 잡아야 되느냐? 중심을 잡으려면 맨 처음에 어떠한 한 지점에 대어 가지고 중심을 잡아 나와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땅에 중심을 잡으려 할 때, 경사지에서는 대번에 못 잡으니 어느 곳에다 닻을 대 놓아 가지고 중심권을 찾아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 수 있는 촛점이 어디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남한이 먼저냐, 북한이 먼저냐? 대한민국 전체가 한꺼번에 들어가 있을 수 있는 곳이 어디냐? 그 곳은 한 점인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한 개인을 통해서 그 중심점을 잡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가진 개인을 발전시켜 가지고 하나의 가정이 되어야 된다구요.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그래서 삼천만 민중 가운데 어느 개인 대표를 통해서, 삼천만 민중 가운데 어느 가정 대표를 통해서, 삼천만 민중 가운데 어느 종족 대표를 통해서, 삼천만 민중 전체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중도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 종족…. 이렇게 점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권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핵은 하나지만 그것을 중심삼고 가정이요, 종족이요, 민족이요, 국가요,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개인으로부터 시작해 가지고 점점 커져 가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개인 복귀, 가정 복귀, 종족 복귀, 민족 복귀, 국가 복귀, 이렇게 해 가지고 결국은 개인 중심, 가정 중심, 종족 중심, 민족 중심, 국가 중심, 세계 중심으로 점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럼 그런 자리를 어느 기점을 통해서 잡아 갈 것이냐? 그것은 우리 교단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그 중심 기점을 중심삼고 이것이 정지될 수 있는 그날까지 전진해야 됩니다. 그렇게 가다가 정지되는 날 그것은 개인적인 세계 중심이 되는 것이요, 가정적인 세계 중심이 되는 것이요, 민족적인 세계 중심이 되는 것이요. 국가적인 세계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국가 전체가 수직선 앞에 90도 각도를 이룬 사방성을 갖추어 가지고 동서의 거리가 같고, 혹은 동과 중앙, 서와 중앙의 거리가 같을 수 있는 기준만 되면, 이것을 똑 떼어 놓았다가 어느 때라도 다시 갖다 맞추면 수직 각도의 중앙과 맞아떨어지는 기준이 됩니다. 그것이 하나의 민족이 되고, 하나의 국가가 되어 그러한 사방 120개 국가들이 합해 가지고 세계가 됐다 하면, 그렇게 합해진 세계의 권은 지상천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상세계가 아닐 수 없다고 보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해 볼 때에, 여러분들이 여러분 개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중심점을 결정하려는 힘이 여러분 자신에게 없다 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어요? 가다 말겠어요? 가다 말게 된다면 이 세계의 중심, 혹은 대한민국의 중심은 어느 때에 나타나겠어요? 영영 나타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에 중심이 결정되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부다 방향을 갖추어 따라가야 됩니다. 따라가야 되는 거라구요. 중심을 따라가서 중심이 자리를 잡게 되면 둘레가 되어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중심이 자리잡았다 할 때는 중심을 따라오던 것이 이북이면 이북, 삼팔선을 넘어서, 아무리 강한 힘이 있어도 전부 다 제거시켜 가지고, 그 중심을 중심삼고 방위수가 같은 거리에, 도수가 같은 거리에 서게끔 만들어 놓지 않고서는 그 중심권은 세계의 중심권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이북을 흡수해 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의 터전이고 몸은 하나님의 뜻의 무대

이런 점에서 여러분은 통일의 원칙이 '나'로부터임을 생각해야 됩니다. 자기 하나를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대로 받을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이 세계를 위해서 마음대로 일할 수 있어요? 그것은 모순입니다. 내 자체를 마음대로 할 수 있고,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어서 주체의 사랑을 받는 대상은 주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라구요. 이런 말 처음 듣지요?

부부를 두고 보면, 아내는 남편 앞에 대상적인 입장이지만 완전히 하나된 입장에 서게 되면 아내도 남편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공동적인 노정을 위한 것이라면 응당히 응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완전히 하나되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내가 상대적 자리에서 사랑 받았다 하는 자리에 서게 된다면,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그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움직이는 자리에 서면 하나님의 뜻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뜻이 지금 북쪽으로 가고 있어도 '남쪽으로 가라' 하면 남쪽으로 가는 것이요, '동쪽으로 가라' 하면 동쪽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가 우리 일신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중심 삼고 내가 마음대로 하겠다는 자체는 모순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식구들에게는 그런 폐단이 있어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 상대적 결정을 한 자리에서는 자기 마음 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하되 마음대로 한 그것이 원리원칙에서 이탈되는 것이 아니요, 둘이 공동목적을 지향할 수 있는 제3의 지침을 대하는 데 있어서 상충의 요인을 제시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내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의 터전이요, 내 몸은 뜻의 무대입니다. 내 몸은 뜻과 더불어 상대적 관계에서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내 몸이 가는 곳에는 뜻 아닌 것은 있을 수 없다, 보는 것도 뜻을 위해서 보는 것이요, 느끼는 것도 뜻을 위해 느끼는 것이요, 자고 먹고 입고 행하는 모든 것도 뜻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게 될 때, 여기서부터 비로소 통일의 요인권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내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뜻을 품고 가는 사람으로 살게 된다면, 지상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바라던 아들의 자리를 이어받은 지상의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통일의 주체가 되라

그 사람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임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무엇인지 모르게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희망의 모체가 될 수 있습니다. 만나게 되면 희망이 깃들고, 대하게 되면 세계의 인연이 발로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남자 여자가 합해 가지고 인간 '나'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결합하게 될 때에 세계적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아들딸이요, 또한 남자나 여자나 몸은 다르지만 하나님의 뜻의 무대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뜻의 무대니 뜻의 결과를 그 생활무대에 나타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가는 것은 자기 개인을 위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는 것도 개인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뜻을 나타내고, 뜻을 사랑 하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되어야 되고, 그러한 가정은 그러한 종족이 되어야 됩니다. 그 종족도 전부 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의 누룩으로 삼아 사랑하고, 그 몸들은 뜻으로 화해 가지고 하나될 때, 하나의 결집된 새로운 주체가 되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뜻과 사랑이 합한 가운데에 하나님의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기쁨은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현실에서 느끼기 때문에 기쁜 것이요. 뜻을 품었기 때문에 소망스러운 것이 아니냐. 그렇잖아요? 기쁜 소망은 사랑을 떠나서는 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가는 통일종족입니다. 따라서 통일종족권내에 그 어떠한 종족도 떼어갈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머물 수 있는 기쁨권내에 있어서 하나님의 소망의 뜻의 출발점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이 먹고 사는 일생노정은 전부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체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주체가 하나의 주권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가인 아벨을 복귀해야 됩니다. 그래서 남북이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빼놓고는 통일될 수 없다

이제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아벨적인 입장에 있는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와 하나되어야 됩니다. 기성교회와 하나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뜻에 화합할 수 있는 권을 이루게 되면 하나의 새로운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걸 보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도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보면 마음에는 내성(內性)이 있고 외성(外形)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몸에도 내성이 있고 외형이 있습니다. 이렇듯 안팎이 있습니다. 그 안이 무엇이냐면 사랑의 보금자리요, 밖은 희망의 터전입니다. 그 안팎이 합한 곳이 이상동산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빼놓고는 이상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고는 통일방안이 성립되지 않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기반은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넓어지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기반이 이렇다면 가정적 기반은 이렇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평면으로 넓어지는 거예요. (행동으로 설명하심) 사방으로 넘어지는 거라구요. 개인이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랑과 뜻의 화합체가 된다면 또 다른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또, 종족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또 다른 주체가 되는 것이요,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또 다른 주체가 되는 것이요, 국가를 중심삼고 하나되면 또 다른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세계를 사랑과 뜻의 권으로 화합할 수 있게 될 때에, 통일세계는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여기에 미터자가 있다고 합시다. 실제 1미터는 이만한데 자기 멋대로 자를 만들어 가지고 '이만큼이 1미터다' 하고 재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멋대로 재면 안 되는 것입니다. 미터자는 반드시 미터의 원기(原器)를 중심삼고 제작된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재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중심을 놓고 비교된 자리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이와 같이 말을 하더라도 그것을 중심삼고 재 가지고 해야 됩니다.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에 맞추어 가지고 해야 됩니다. 그래야 평화의 터전이 닦아지는 것입니다. 통일의 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생활을 뜻을 중심삼고 하라

통일교회 식구들 가운데에는 가짜 미터자를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통일교회 식구라고 하면서 자기 멋대로 자를 만들어 가지고 잰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루에 몇번씩이라도 중앙에 와 가지고 틀리지 않았나 비교해 봐야 합니다. 한 번 재 보고 감정하고, 두 번 재 보고 감정해야 됩니다. 재는 상대가 점점 달라진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되면 될수록 '모이기를 힘쓰라`, '합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모여서 뭘 하는 거예요? 먹고 노는 거예요? 그 중심과 얼마만큼 기준이 맞아 들어가느냐, 평면적만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일체되어 가느냐 하는 것을 재 보아야 됩니다. 언제나 중심과의 수직관계를 중심삼고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그 기준을 여러분의 생활무대라든가 활동의 터전 위에서 하나의 중심 모델로 세워 가지고 거기에 기준하여 일체를 결정지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만사를 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벗어난 생각은 틀렸다 이겁니다. 뜻을 벗어난 행동은 틀렸다 이겁니다. 대개 인간세계에 있어서 자고, 깨고, 오고, 가고, 좋고, 나쁘고, 이 여섯 가지에 세상 만사가 다 들어갑니다, 그런 일체의 움직임을 이것을 모체로 하여 해야 합니다. 자기 멋대로 할 수 없다구요.

여러분이 그러한 핵심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체화된 입장에 서서 세계 어디에서나 혹은 높든지 낮든지, 나쁘든지 좋든지간에 그 심정을 적응할 수 있는 불변체가 되게 될 때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딸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되었을 때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가정이요, 그러한 종족이 되었을 때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종족이요, 그러한 나라가 되었을 때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에, 앞으로 여러분이 '통일교회' 라 하면 언제나 아벨이 남길 수 있는 주체적 사상을 이어받기 위한 교회라는 것을 생각 해야 합니다. 아벨이 되려면 먼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에덴 동산에서의 타락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타락은 뭐냐? 뜻의 소망인 아들딸, 세계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랑과 뜻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복귀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뜻은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둘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결심하고 나서면 언제나 사랑만 하겠다고 이마를 맞대고 가만 있어요? 그 다음에는 뜻을 위해 가는 거라구요. '야! 우리 아들딸을 위해 가자' 그러잖아요? 뜻은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 하면 섭리인 것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과 뜻입니다. 그것이 어디에 결집되어야 되느냐? 내 마음과 몸에 결집되어야 합니다. 내 마음은 사랑의 터전이 되고 내 몸은 뜻의 터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벨은 어떤 사람인가

아벨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고, 그 사랑에 비례된 뜻을 품고, 그 뜻을 사랑받은 만큼 행하여 뜻을 세워 놓는 사람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의 뜻을 가리기 위해서는 희생하면서라도 가야 됩니다. 뜻의 터전만큼 사랑받을 수 있는 상대적 권을 죽어서라도 이루어야 되기 때문에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세계는 상응적 세계가 아니라 타락권내의 상충적 세계입니다. 그 상충적 세계를 제거시켜 버리고 상응적 세계권을 바라 나오기 때문에 그 세계는 지금의 이 세계가 아닙니다.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러한 세계의 정세에 있어서 새로운 주체적 방향을 제시하는 여기에서 점프해 가지고 세계 끝에 가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체에서부터 정립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방안은 내 자체에서부터 정립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돼요.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 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이 내포된 나, 뜻과 사랑이 결집되어 자체에 화한 나를 생각해야 됩니다. 이 타락권내에서 그냥 그대로 죽어 자빠지면 개도 안 뜯어 먹을 거라구요. 그렇게 망할 자체를 두고 말하는 '나'가 아니라구요.

오늘날 우리 통일식구들이 말하는 '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개재되고, 하나님의 뜻을 결집시킨 주체의 입장에 서 있는 '나'입니다. 얼마나 통쾌 합니까?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겠다고 할 필요도 없다는 거라구요. 이미 받고 있다구요. 뜻의 길을 가겠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가고 있다구요. 그럴 수 있는 나…. 그럼 되는 것입니다.

아들이 있으면 아들이 부모의 사랑을 받겠다고 해요? '엄마, 나 사랑해 줘' 그래요? 이미 사랑받고 있는 거라구요. 부모의 뜻이 아들한테 있는 거라구요. 또 부모는 자식들의 뜻의 주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뜻을 받들어 나가게 되면 아들의 뜻도 이루어져요. 안 이루어져요?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하는 김 아무개, 박 아무개의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포괄한 '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움직이게 될 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발로되어야 되고, 하나님의 뜻이 발로되어야 됩니다.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감정에는 그것이 인연되지 않은 것이 없다, 내가 땅 위에 살더라도 하늘나라의 백성이 아닐 수 없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나로서 가정을 이루게 되면, 그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뜻을 품은 가정입니다. 너와 나 둘이 사랑하며 사는 것이 자체들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하고 뜻을 중심 삼고 사랑한다면, 이것이 얼마나 멋지겠어요? 그럴 수 있는 가정, 그럴 수 있는 씨족, 그럴 수 있는 민족, 그럴 수 있는 국가,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소원이 아닙니까?

그런 권내에 내가 포괄되어 살고 있는 입장, 즉 환영하고 호흡하고 주고받는 권내에서 내가 주체적 입장에서 거동하며 산다는 입장에 설 때에 그야말로 통쾌한 일이 아니겠어요?

무한한 세계가 뻗어갈 수 있고, 무한한 세계가 축소될 수 있는 주체로 서의 조화의 인연을 제시할 수 있는 나요, 맥박의 기원을 파동시킬 수 있는 나라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통쾌한 자리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가 어디를 가게 되면 하나님도 따라오십니다. 내가 숨어 버리면 하나님도 곤란하다구요. 그럴 수 있는 자각된 자리에서부터 통일의 요인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아벨의 책임

그러면 무엇으로 통일할 것이냐? 뜻 가지고 통일하겠다고 하지요, 뜻! 그렇죠? 「예」 뜻 가지고 통일하는데 하나님의 사랑은 빼 버리고 통일할래요? 여러분들을 보게 되면 뜻길을 간다고 하면서 전부 다 자기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구요. 뜻의 주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뜻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세상을 창조한 주체성이라든가 동기는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지은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오늘날 인간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식 때문에 되어진 것이 아니라구요? 지정의(知情意)가 아닙니다. 정(情)이 먼저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벨이 바로 그런 거라구요.

아벨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벨은 혼자 천국에 못 갑니다. 타락한 세계가 있기 때문에 그 세계를 수습해 놓고 가야 됩니다. 그런데 그냥 수습이 됩니까? 수습하려니 거꾸로 꽂아야 됩니다. 재창조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이 맞고 희생하여 가지고 가인을 수습해서 하나되지 않고는 한걸음도 못 나가는 거라구요. 통일교회도 그렇다구. 종족이 민족을 하나 만들지 못하고는 한걸음도 전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과 가인이 하나되지 않고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둘이 하나되지 않고는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그러니 여러분은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됩니다. 여러분 자체를 중심삼고 보면 통일교회 선생님과 여러분이 관계되어 있습니다. 남자끼리도 선생님과 여러분이 하나가 되어야 되고, 그 다음엔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사위기대가 안 되면 안 된다구요. 선생님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렇죠? 사탄세계에 있어서도 사탄과 가인이 하나된 것이 사위기대라구요. 형태가 같습니다. 사탄세계의 국가면 국가라든가, 모든 것이 반드시 하나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되어야 된다 이겁니다.

그럼 어디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되느냐? 세상이 동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세상적인 머리가 높아 가지고는 망하는 거라구요. 선생님과 더불어 하나된 것은 높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권력, 명예 혹은 어떤 물질도 다 그 아래에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야 되는 거라구요. 원칙이 그래요. 그렇게 안 하는 사람은 전부 다 통일교회의 반역자입니다. 사탄의 초소와 같습니다. 사탄의 초소는 사탄의 미끼입니다. 통일교회 식구라고 하지만 사탄의 미끼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좀 곤란한 것이 있습니다. 뜻을 절대시하다 보니 가정도 무시하게 됩니다. 따라오지 않으면 무시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싸움이 벌어져서 갈라지든가 깨지든가 그렇지 않으면 합하든가 하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그런 것을 알고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제물을 드리라고 한 것입니다. 깨지면 안 되겠으니…. 그렇잖아요? 상충되면 갈라져서 나중에는 부딪히든가 싸우든가 깨지든가 돌아오든가 하는 거예요.

번번히 깨지고 나서 돌아오기 때문에 복귀할 수 없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깨뜨린 제물을 드리게 해 가지고 깨지지 않은 조건을 세우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물도 나온 거예요.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여러분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을 중심삼은 것이 주체입니다. 통일교회 뜻을 중심삼고 주체적인 뜻 앞에 배치되는 것은 전부 다 없애야 됩니다. 가정을 출동시키는 데 자기가 좋으면 가고 안 좋으면 말고, 그렇게 해보라는 거예요. 뭐 누구는 좋아서 시키는 줄 알아요? 여러분과 내가 원수지간이예요? 안 그러면 안 되겠기 때문에, 안 그러면 갈 길이 없기 때문에 시키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에서 올라가기를 바라거든 내려가라

여러분, 강원도에 있는 높은 산을 올라가게 되면, 높이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더 험해집니다. 왜 험하겠어요? 평지 같으면 사람이라도 다니지만 높이 몰라가면 개 한 마리 안 보이고, 새 한 마리도 안 보인다구요.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험하다는 거예요. 그러니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아이쿠…. 걱정이 태산 같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산을 오를 때 꼭대기를 올려다보면서 '저기를 어떻게 올라가나? 하다가는 못 가는 거라구요. 발부리를 보고 가야 됩니다. 그래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도 '내가 천당에 가겠다' 해 가지고는 못 간다구요. 올라갈 생각을 해보세요. 못 간다는 거예요. 발부리를 보고 그저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는 비결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절대 꼭대기를 바라보고 가지 않습니다. 꼭대기 바라보고 가다가는 지쳐 나가자빠집니다. '이게 얼마나 높아? 암만 높다 하더라도, 이거 한 발짝 높아 봐야 이만큼도 안 되는데' 그렇게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꼭대기를 쳐다보면 '아이쿠 저렇게 높은데…'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발부리만 보면서 걸어가는 겁니다. '여기 내 눈 아래 보이는데…` 하면서 말이예요. 올려다보고 가다가는 나가자빠진다는 거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도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럼 무슨 마음을 가져야 하느냐? '이웃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저 사람들을 좋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천국가는 길이예요. '나는 저 사람들을 살려주기 위해서 이러는 것이다' 하는 것이 천국가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내려가는 것 같지만 내려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올라 가는 거예요.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거꾸로 올라간다는 거예요. 그렇게 좋은 법이 어디 있어요?

올라갈수록 올라가면 모르겠는데 내려갈수록 올라가는 것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 길 있으면 내려가겠어요, 안 내려가겠어요? 여러분, 산을 한번 타 보십시오. 산꼭대기에 올라서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공기야 고개 넘어 공기나 이쪽 공기나 한걸음 차이인데 뭐 다를 게 있겠어요. 그렇지만 꼭대기에 올라선 기분하고 올라가기 전의 기분하고는 다릅니다. 꼭대기에 척 올라서서 숨을 들이쉬면 별천지의 공기라는 거예요.

그런데 내려갈수록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내려가겠어요, 안 내려가겠어요? 내려가지 말래도 내려갑니다. 내려가면서 올라갈 수 있다니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 길이 있으면 그 길을 안갈 사람이 있겠어요? 안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복귀노정에서는 올라가기를 바라거든 깊이 내려가라는 거예요. 이거 좋은 일이지요? 그건 꼭 고무줄과 같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어떤 나무의 큰 가지에 다 고무줄을 매고 잡아당기면 늘어나서 자꾸 내려갑니다. 내려 가기도 쉬운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내려갔다가 늘렸던 힘만 빼면 휙 올라가는 거예요. 올라갈 때에는 고무줄을 매어 놓은 곳보다 낮게 올라가겠어요. 높게 올라가겠어요? 높이 올라갑니다. 자동적으로 매어 있는 위치보다 높이 올라가는 겁니다. 복귀역사는 그 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희생이 좋다는 거예요. 내가 통일 교회 교인들을 전부 다 죽도록 고생시키려고 정성들이고 있습니다. 기분이 나빠요. 좋아요? 여러분이 희생하려면 내려가야 됩니다. 깨깨 망하도록 내려가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붙들고 내려가느냐? 뜻을 붙들고 내려가야 됩니다. 마치 고무줄과 같다구요.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등등의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통일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개인을 두고 볼 때에도 개인이 하나되기가 얼마나 힘들어요? 또 가정이 하나되기가 얼마나 힘들어요? 나 자신으로는 그렇게 못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뜻을 품고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더냐?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난 다음에는 통일방안은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떻더냐?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면 통일방안은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그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통일교회라면, 통일교회는 좋고 좋고 좋더라, 이렇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내건 '통일기반 확보' 라는 표어를 중심삼고 볼 때에, 기반을 확보하라는 것은 수평선이 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개인으로서 수직선을 중심삼고 수평선을 그어 가지고 가정으로, 교회로 점점 확대시켜야 됩니다. 거기에 보조를 안 맞춰 가지고 수평선에 구멍이 하나 뺑 뚫어져 떨어져 내려갔다면, 그 내려간 것은 상대로 하지 말라구요. 그건 돌아볼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아 가지고 1971년도 마지막 2개월을 남겨 놓은 이때에 '통일기반 확보'라는 금년 표어를 중심삼아 가지고 심정적 일치점 이라도 갖추어 놓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11월 초하루 오늘을 맞기를 바라서 몇 말씀드렸습니다. 아시겠지요? 「예」 우리, 통일의 노래 한번 해보자구요.

[기 도]

아버님, 1971년도도 이제 40여 일을 남기고 있사오니, 이 기간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길 바라옵니다.

'승리적 통일기반 확보' 라는 표어를 바라보고, 이해를 아버지의 뜻에 합당할 수 있는 해로 거두어들이기 위해서 저희들은 부족한 정성들을 모아 10여 개월을 지내고 이 자리에 당도했습니다.

아버님, 어린 것들을 이끄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미숙한 것들을 가누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아버지께서 이 미급한 것들을 목적의 자리까지 재촉하시기에 노고가 얼마나 많으셨다는 것을 생각 하게 될 때에, 아버님을 대할 적마다 항상 부족한 것이 저희 자신들인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임하는 곳에 진정한 아들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당신이 마음으로 그리워 찾아오는 당신의 참다운 아들의 모습이 기쁜 자리에 있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한 자녀들을 찾아오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늘쌍 외로와야 되고 늘쌍 슬퍼야 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런 아버지를 아는 저희들은 어서 속히 한스러운 복귀의 노정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나이다.

개인을 찾아 싸워 나오시던 아버지의 슬픔의 길도, 가정을 찾아 민족을 찾아 국가를 찾아 나오시던 아버지의 수난의 길도 저희들은 잘 아옵니다. 수많은 생명을 잃어 가면서 세계적인 최후의 승리의 길을 다짐하시던 아버님이 절대적인 각오를 하고 절대적인 승리를 결정하려는 신중한 자리에 서실 적마다, 땅 위에 있는 인간들은 항시 당신의 바람 앞에 상대의 자리를 결정하지 못한 채 올라갔다가는 떨어지고 가다가는 지쳐서 후퇴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사옵니까? 아버님, 저희들도 그와 같은 운명길을 따라서 이 자리까지 찾아왔습니다.

오늘날 아버지 품안에 있는 것을 자랑할 수 없는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게 될 때, 또 나머지의 길을 지켜야 할 책임이 저희 앞에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타락한 인간들은 언제나 타락권내의 환경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요, 습관성과 그 인연을 벗어나기 힘든 것을 잘 아시는 아버지, 그러한 환경을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개인을 몰아내신 아버지의 입장이 참으로 불쌍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옵니다. 그 몰림 받은 개인을 따라 나서는 과정이나마 아버지께서 사랑하고 품고 갈 수 없는 한스러운 복귀의 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수를 가하여 가게 될 때는 원수들이 진을 치고 막아 같이 갈래야 같이 갈 수 없는 길이기에 항상 헤쳐 놓고 자기 스스로 가려 가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수난의 길, 아버지의 노고의 노정을 저희들이 생각하게 될 때, 저희 눈앞에 보이는 높은 산정이 있으면 그 산정은 당신이 가야 할 길을 대표한 것임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사옵고, 험한 행로가 있으면 복귀의 행각의 노정에 있어서 슬프신 아버지의 정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사오며, 또한 그것이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저희의 환경이요, 사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노정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늘쌍 승리권에 서서 만민을 통치하는 권위의 자리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뒤에 두고 수난길을 따라서 타락한 인생들을 수습하면서 오시는 아버지의 비참함을 저희는 진정한 의미에서 동정해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이 걸어가시는 도상 앞에 당신의 슬픔을 제거시키기는커녕 고통과 비참을 가해 주었던 역사과정의 선조들을 저희들은 연상하게 되옵니다.

그러한 선조들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손들인 것을 자인하게 될 때, 오늘날 처해 있는 초췌한 자기의 모습이 불쌍하다면 불쌍한 모습이요, 처량하다면 처량한 모습이요, 그 누구도 사정을 보아 줄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하늘에 계시는 저희 아버님은 이와 같은 무리를 찾아오셔서 이 길을 가야 된다고 얼마나 재촉하셨는가 하는 사실을 느끼게 될 적마다, 가기는커녕 도리어 짐을 가해 드리던 저희 자신들이었음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님, 해가 가고 때가 지나감에 따라 당신 앞에 효의 도리를 세우지 못할까 봐 염려하는 무리들을 그리워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과연 불쌍하신 분은 아버지이심을 저희들은 진정으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한 인생을 맞은 그날부터 수난의 나그네의 생활을 계속하시던 아버지의 사정을 돌아보고 다시 한 번 저희 스스로를 회고해 보게 될 때, 당신 앞에 면목없는 무리인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와 같이 역사노정을 이끄시어 복귀의 한계선까지 끌어오기 위해 얼마나 얼마나 수고하신 아버님이신가를 생각하게 될 때. 저희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버지 앞에 결의하고 나서지 않으면 안될 자신들인 것을 다시 한번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내 손이 쉬기를 바라는 자리에는 아버님의 손길이 가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가야 할 발걸음을 주저하는 자리에는 아버지의 눈물의 발자국이 남아진다는 것을 저희들은 늘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내 몸이 쉬기를 바라는 자리에서는 아버님께서 나를 업고 험한 골짜기와 산정을, 수많은 수난을 넘어야 되는 것을 알고, 복귀의 운명길에 들어서신 아버지를 저희들은 동정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이 쉬시기 전에는 쉴 수 없는 인간이 되어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쉬지 못하시는 아버님을 더욱더 쉬지 못하시게 하는 불쌍한 것들이 우리 인류였고 저희들 자신인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편안한 한날을 맞아 가지고 활기찬 자세로 웃어 보는 자리에서도 그 웃을 수 있는 자리를 기쁨으로 맞이할 수 없는 아버지이시요, 도리어 그 웃음길을 통하여 사탄의 조종과 저주가 남아질 것을 염려하시는 아버지이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얼마나 심각하고 얼마나 기막힌 사정으로써 저희를 다짐하게 하시지 않으면 안 될 아버님인가를 생각할 적마다, 불쌍한 분은 아버님이요 고독한 분도 아버님이요 비참한 분도 아버님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생사의 접경에서 자유의 모습을 가리지 못하여 우왕좌왕하는 입장에서 아버님이 찾으시는 하나의 모습, 아들과 딸을 그리워해야 할 아버님이라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그런 정상을 참작하지 못하는 저희들로서는 아버님의 심정을 바랄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버려지면 저희들은 원수들 앞에 찢길 것이고 원수들 앞에 제물로 사라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길은 포기할 수 없는 복귀의 길이요 포기할 수 없는 인생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수많은 선조들은 죽을 고비를 넘나들면서도 이 길을 이어왔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아버님이 가시는 그 길을 따라가는 길은 용이한 길이 아닌 것임을 느끼게 되옵니다.

그러나 용이한 길이 아니더라도, 그 길이 아무리 험하고 길다 하더라도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그 길이 일생, 일세기 이내에 멎어지는 길이지만, 아버님에게는 수천년 역사의 고비를 넘고 또 넘어야 할 책임이 있었사옵니다. 그러기에 아버지의 그 책임이 얼마나 지중한가를 생각하게 될 때, 저희 자신 앞에 가중되는 십자가가 아무리 과중하고 크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노정을 확실히 알고 당신의 아들딸이 됐다는 것을 자인할 적에, 그 길은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인생길인 것을 깨닫는 저희들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는 길이라는 것은 눈물의 길이요 고통의 길이요 한숨의 길이 아닐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신앙 길을 더듬어 나오면서 이 땅 위에서 행복을 그리는 그 자체가 어리석다는 것을 저희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의 존영을 바라보게 될 때, 과연 수십억 인류를 당신의 나라에 이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당신에게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생각 하게 될 때, 내 한 생명이 언제나 당신 앞에 지름길로 달려가지 못하는 생활과 생애노정을 더듬어 온 것을 보게 될 때, 저희가 가는 길을 가로 막고 가로질러서 저희를 이끌어야 할 아버지의 입장이 얼마나 불쌍한가를 저희들은 느껴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여기에 모여든 어린 자녀들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저희 마음에 무엇을 지니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저희 자신들이 어떠한 길 모퉁이에 서 있으며, 어떠한 형상으로 가고 있는가를, 다시 산 자의 입장에서 응시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내가 어떠한 자리에 서 있으며 어떠한 길을 가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하늘 것이 아니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지팡이를 짚더라도 하늘이 넘겨 준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옷을 입더라도 하늘로부터 이어받은 옷을 입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생활하는 모든 일체가 하늘과 화합되지 않고는 어느 때 원수의 화살에 맞아 쓰러질까 염려되는 저희의 자리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야 말로 조심스러운 인생길이요, 신앙길이요, 복귀의 행각의 노정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나는 어떠한 자리에 섰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사옵니다.

아버님이여, 깊은 심정으로 아버지를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심정을 기울여 당신의 거룩하심을 찬양할 수 있는 그런 때가, 자기 생애에 있어서 모든 것을 잊고라도 그럴 수 있는 때가 있었느냐고 묻게 될 때, 그런 때가 없었거들랑 불효막심한 자식이었던 것을 다시 한 번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과 저희들 사이에 한치의 거리를 남겨 놓고 붙들어야 할 손이 맞붙여지지 못하는 순간에 서 있다는 것을 느끼는 자리에 얼마나 있었느냐 할 때, 자기 일신이 죽음의 구렁텅이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기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는 때가 있었느냐고 반문하게 될 때에, 저희는 그러한 때가 없었지만 아버님은 얼마나 얼마나 그런 때가 많았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과연 아버지 앞에 부끄러움밖에 갖지 못하는 자신들인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찾아오시옵소서. 저희의 부족한 마음들을 당신이 점령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부디 부디 저희가 사탄에게 삼켜지게 되어서는 안 되겠사오니, 아버님만이 주관하시고 아버님만이 임재하시옵소서. 내일의 승리를 바라는 무리가 되고 오늘의 험산준령을 타개하는 데 있어서는, 자신의 일체를 희생시켜 가면서 오늘 이 시간을 사수하는 무리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철모르는 사이에 한 해가 가고 십년이 지나가고 청춘시대와 장년시대가 지나고 장년시대가 노년시대로 바뀌어 인생의 석양길, 혹은 숙명길을 바라보는 그런 길 앞에서 아버님으로부터 위로 받을 권한을 갖지 못하고 승리의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덧없는 자리에 서 있다 하게 될 때는 얼마나 비참한 인생이 되는가 하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는 청년시대가 무서운 것임을 느껴야 되겠고,오는 장년시대가 무서운 것임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노년시대가 찾아와 황혼길에 접어드는, 인생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그 자리가 두려운 자리라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때가 오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죽고 죽고 또 죽는 한이 있더라도 슬픔의 최후를 남기지 않겠다고 모진 싸움에서의 승리를 다짐하는, 아버지의 마음속에서 사라질 수 없는 아들딸이 되고. 당신이 점령한 고지를 지키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가지고 여기 불초한 몸들이 아버지 앞에 부복하였사오니, 저희의 연약한 손길을 다시 더듬으시사 붙들어 주시옵고, 저희의 고독한 몸들을 아버지께서 찾아와 안아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은 당신의 입김으로부터 나오는 말씀과 권고의 사연을 듣고 당신이 바라시는 소원을 저희의 소원으로 이어받아야 되겠고, 당신이 승리를 다짐하신다면 그 승리의 도상에 일치될 수 있는 하늘의 용사가 되어야 되겠고, 당신의 최후의 승리의 영광과 당신의 최후의 결정을 다짐하는 판정의 노정이 있다 할지라도 저희들은 그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이 그러한 복귀의 노정을 아시는 당신이 말씀하신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사실을 과히 짐작할 수 있는 길인 것을 알겠나이다.

아버님, 이제 부족한 저희의 마음들을 수습하시고 이 아침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11월 중순을 또다시 맞이한 이때에 당신의 사랑으로 더욱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남아진 이해를 빛나고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 당신의 터전 위에서 최후의 길을 지키고 나서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어린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일선에 나가 있는 어린 딸들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이 나라 이 민족의 운명을 아버지,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준비하지 못하는 백성은 불쌍한 백성이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준비하지 못하는 가정이나 개인은 불쌍한 무리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안일 도식하는 자리에서는 평화의 기원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이요. 승리의 권한이 있다 하더라도 자기가 공고한 승리의 자리 위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만이라도 스스로 책임을 다하여 아버지 앞에 은사를 갚아 드리고 남아지는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싸움의 길, 수난의 길도 달갑게 가는 모습들이 되어야 될 것을 다시 느끼오니, 부디 부디 당신이 가는 길 앞에 일체를 맡기고 의논하고 따라가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충성하여 당신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자리에 섰거든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가고 싶지 않은 길을 당신이 저희들 앞에 맡기지 않으면 안 될 사연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을 아는 저희들이 그런 길을 원치 않는 자신들이 되었다면 이 이상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내 몸이 으스러지고 마음이 상심되더라도, 아버지를 중심삼고 그러하기를 바라는, 효자의 인연을 따라가고 효녀의 인연을 따라가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지금 수택리에는 대학가의 무리들이 모여서, 이 시대적인 사명을 결정하는 기로에 서서 수련을 받고 있사오니. 그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얼마나 수고로운 역경을 거쳐 가지고 그 자리까지 찾아왔사옵니까? 이 나라와 접하고 대학가와 최후의 고비를 넘어야 할 이런 숨 가쁜 시점에 놓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내일의 이 나라 운명을 가름지어야 할 그 젊은이들을 아버지께서 품고 길잡이로 할 수 있는 때가 이제 다가왔사오니, 당신이 원하시는 뜻대로 당신이 그렇게 바라던 승리의 그 한 길로 수습하시사, 내일의 소망을 드높이고 영광을 다짐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한날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1971년도도 이제 석양길을 달리고 있사옵니다. 여기서 저희들이 각각 지니고 있는 염원이 무엇이며 남긴 선물이 무엇이며 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아무것도 갖지 못한 가벼운 몸을 가진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나라를 바라볼 때 숨 가쁜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 교회를 바라볼 때 역시 수난의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선 것을 느끼고, 자기의 가정과 개인에게 남아진 십자가를 다 청산짓고, 교회와 나라를 위하여 일신 전체를 바치고 나서야 할 시급하고 위급한 시대에 처해 있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님이여, 당신이 대한민국을 삼팔선으로 갈라 놓았사오니 삼팔선을 아버지께서 치워 주시옵소서. 남북이 갈라져 가지고 숱한 심정적인 사연이 엇갈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북녘 땅을 바라보면서 눈물짓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또한 이 시간 이북에도 남녘 땅을 바라보면서 한스러운 환경에서 신음하고 있는 무리들이 있을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불쌍한 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이와 같은 비참으로 끝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을 당신 앞에 이끄시어 민족적 회개의 때가 오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제물이 되어야 할 책임을 짊어진 무리가 있어야 될 것을 생각하오나, 지금까지 그러한 그 어떤 단체도 그 어떤 종교 단체도 없었다는 것을 저희들은 여실히 알고 있습니다. 기성교단도 그러한 무리가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저희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생각할 적마다, 저희들이 가는 이 길 앞에 가중된 십자가의 노정이 아버지와 더불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 십자가의 노정을 기꺼이 책임지고 나서겠다는 격동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비참한 곤경의 자리가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일신의 안일을 바라는 자들이 있사오면 아버지 앞에 면목 없는 무리들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을 느껴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무리들은 아버지와의 인연을 두터이 하고 아버지의 분부를 받기 위해서 모였사옵니다. 저희의 빈 마음 가운데 아버지의 은사만이 꽉차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소심한 마음 위에 강한 아버지의 마음이 임재하시어서, 암흑의 자리에서 방황하던 저희들이 해방의 함성을 지를 수 있는 기쁨의 모습을 갖추어 가지고 최후의 결전장을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는 아버지의 믿음직스러운 자녀들이 될 수 있게끔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지 못하게 될 때는 아버지께서 또 슬퍼하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느끼면서, 빛을 남기고 가는 무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 빚을 청산짓고 뭇사람에게 빛을 지우고 가는 당신의 자녀들이 될 것을 다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이 시간 굽어 살피시옵고, 해외에 널리어서 분투하고 있는 어린 자녀들을 이 시간 당신의 심중에 기억하시옵소서. 어두운 이 땅, 험악한 이 땅 위에 당신이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을 그 누구도 모르는 고요한 자리에서 개척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것을 맡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아멘.

말 씀

신앙길을 가는 사람들은 신앙길을 가지 않고 있는 일반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들이 동쪽으로 가고자 한다고 해서 우리도 동쪽으로 갈 수는 없는 것이요, 그들이 자기를 중심삼고 살고 있다고 해서 우리도 그와 같은 생활을 따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는 길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우리

신앙자와 비신앙자는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서로 가는 길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세계에 있어서도 그런 것을 쉽사리 헤아릴 수 있는 것을 미루어 보게 될 때, 하나님과 우리, 하나님과 타락된 우리 인간, 혹은 하나님과 타락된 세계에서 신앙길을 가고 있는 인간, 또 하나님과 모든 종교를 대표한 자리에 섰다고 하는 우리 통일교회의 개개인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고자 하는 길과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고자 하는 길이 일치되면 좋겠지만, 하나님과 우리는 사이가 먼 자리에 있고 또 거기에는 거리가 있으며 자유롭고 순조롭게 연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하나님이 가는 길 앞에 우리의 신앙자들은 언제나 보조를 맞추는 자리에 서지 못한다는 것을 쉽사리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가는 길, 즉 우리 통일교회 식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고 있는 길과 하나님이 가고 있는 길이 같지 않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이냐? 하나님이 머무는 자리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머무는 자리가 일치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일치할 수 없다는 결론이 자연히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 통일교인들이 지금까지 걸어 나온 역사와 이 통일교회를 이끌고 나오는 하나님이 걸어 나온 역사와는 일치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은 하루의 생활을 미루어 볼 때도, 아침에 결심하고 나선 하루의 길에서도 여러 가지의 변태상을 우리는 느끼게 됩니다. 그러한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 자신들로서 하나님이 가는 길 앞에 나섰다는 나 자신의 결심이 얼마나 지속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우리의 변화무쌍한 하루 생활을 중심삼고 미루어 보더라도 하나님이 우리 들을 믿고 이끌고 가기에 합당하지 못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이 가는 길이 높은 길이라 하면 우리들이 가는 길은 낮은 길일 것이요. 하나님이 가는 길이 똑바른 길이라 하면 우리들이 가는 길은 꾸불꾸불 돌아가는 길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슬퍼하시며 간다 하게 된다면, 우리들은 슬픔의 길을 동경하는 것보다도 자기 개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스스로 기쁨의 길을 동경하고 찾아가는 자들이 아니겠느냐? 우리들이 좋아하는 것과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 늘쌍 일치 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밥을 먹고 사는 하루의 생활에서, 혹은 시대가 가고 있는 사실을 두고 볼 때, 그 시간 시간이 언제나 하늘이 같이하는 자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전체의 생활 환경을 미루어 봐 가지고 알 수 있는 사실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있는 우리라는 것을 결정지어 놓고 보게 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고 가는 데에는, 그 환경이 변모함에 비례해 가지고 하나님의 수고의 길밖에 남을 수 없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는 것을 우리가 아는 바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내가 기뻐하기를 바라고 원하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 바라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것이 못 되고 도리어 하나님에게 가중된 짐밖에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는 이 신앙길에 들어온 후의 시일이 길면 길수록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을 남기는 것보다 도리어 슬픔의 내연을 많이 남기는 무리가 아닐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길을 가려면

하나님이 붙들어 줘 가지고 나를 대하여 기뻐하던 한때가 있었다면, 우리는 그 기뻐하던 한때를 언제나 그리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날에 그런 일이 있었으면, 언제나 그 지난날을 그리워하면서, 그때는 좋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고 비교하는데, 그리워하는 지난날이 언제나 나에게 좋은 것으로 남아 내적인 사연으로 묻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해일 것입니다. 지난날에 기뻐한 한날이 있었거든, 하나님이 그 기쁨을 다시 맞이하고 오늘날의 환경에 사는 우리 앞에 그런 기쁨을 갖다 주기 위해서는 얼마만한 수난의 길을 거치고 얼마만한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되느냐? 그런 기쁨을 자극하는 한때의 체험을 갖지 않고는 수난길에서 각성할 수 없는 인간인 것을 잘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한때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배가되는 희생의 대가를 치러서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모종의 결정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기쁨의 한때를 그리워할 적마다 좋은 마음을 가지고 그리워하는 것보다 얼마나 부끄러운 수난을 하나님 앞에 짊어지웠던가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다시는 그런 입장에 서서는 안 되겠다고 조심스럽게 스스로를 다짐하면서 하루하루의 신앙길을 가누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연속적으로 우리로 말미암아 슬픔을 푸실 수 있는 그런 무엇을 스스로 다짐하지 못하는 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은 평탄하게, 기쁨으로 남아질 수 있게, 바라는 대로 찾아올 수 없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을 수 있는 한때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있을수록 현실에 있어서 하나님이 염려할 수 있는 길을 가서는 안 되겠다 해 가지고 스스로를 치고 스스로를 죄어 구속할 수 있는 입장에 서서 하나님을 부를 수 있으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고 옛날보다도 더 좋을 수 있는 무엇을 바라고 나가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의 수고를 보다 가중시키게 되고 슬픔만 재촉하게 되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그러한 신앙태도를 가지고는 보다 깊은 신앙길을 갈 수 없다 하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이 가는 길과 우리가 가는 길이 언제나 엇갈리는 것을 생활에서 잘 느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루의 생활에서 자신을 중심삼고 그것을 완전히 비판할 수 있는 거와 같이 환경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한 내 뒤에는 가정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 내 뒤에는 국가 혹은 세계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나 자신이 내 뒤에 연결되어 있는 가정을 거느리고 혹은 국가나 세계를 거느리고 갈 수 있겠느냐 할 때, 거느리고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내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의 인연이 가중하면 가중할수록 내 한 자체의 변모를 느끼게 되고, 하나님과 상관된 자리에서는 환경이 넓어지면 넓어 질수록 여기에는 더 어려운 결과가 첨부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신앙자의 가는 길은 간추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간단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복잡한 환경을 가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간단한 자리에 처해 있다고 해도 자기 스스로가 바라는 소원을 세워 가지고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이러이러한 계획을 세워 가지고 이렇게 간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그가 가는 길의 방향이 하나님과 언제나 일치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앞에 세우고 따라가야 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박자를 맞춰 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박자를 맞춰 드려야 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올바른 신앙길을 가려 갈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 자신들이 혹은 젊은 시대에 처해 있는 청년들이 '내가 이 길을 가야 되겠다' 할 때는 그 젊은 청년들이 바라는 그냥 그대로, 혹은 사회환경에 있어서의 일원, 한 사람의 젊은이로서 어느누구나 가는 그대로 갈 수 있겠느냐? 그냥 그대로 갈 수 없는 것입니 다. 반드시 그 환경과 고립된 자리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고립되면 고립될수록 신앙길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는 방향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쉬우면 쉬울수록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로 인해서 어려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그 사람은 신앙길에 가까와질 것입니다.

신앙길은 하늘이 가는 길을 따라가야 하는 길

우리가 보는 데도, 수평선 이하를 봐도 90도가 있는 것이요. 수평선 이상을 두고 봐도 90도가 있는 것입니다. 반대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90도, 90도, 360도가 여기에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시는 그 방향이 라는 것은 한 일면을 취하고 있지만 그것을 중심삼고 360도가 둘러 있는 것입니다. 평면적으로만도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시는 데는 평면적인 입장에서만 가시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 입장에서 가시고 있으니, 그 가야 할 길의 엇갈리는 도수라는 것은 몇 배, 몇 십 배 가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려 가야 되는 길이 하나님이 가시는 길이기 때문에 그 한 길만 맞추어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고생을 한다고 해서, 고생만 한다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고생 하면서도 또 찾아가야 됩니다. 고생하며 찾아가는 데 있어서는, 고생을 당하는 쓰라림을 느끼는 자리에서 거기에 포위되어 가지고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연구를 해 가지고 그 쓰라림을 극복하고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그런 무엇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이 가시는 방향과 맞추기란 힘들 것이 아니냐 할 때,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대로 먹고 사는 그 환경이 하나님이 나와 마음대로 접할 수 있는 자리냐 할 때, 그렇지 못한 자리입니다. 또 내가 좋아하는 친구와 만나는 그 자리가 하나님이 좋은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자리냐 할 때 역시 그렇지 못한 자리인 것입니다. 내가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스러워하며 살고 있는 그 가정이 하나님이 보시게 될 때 행복하다고 공인할 수 있는 가정일 것이냐 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혹은 내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가 나가고 있는 방향에 맞추어 나가는 그 길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길이냐 할 때 그렇지 못한 것도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이 가는 길이 하늘과 엇갈린다 할 때는, 환경이라든가, 전체가 가는 길은 더더욱 하늘과 엇갈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얼마나 어려운 길일 것이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길일 것이라고 우리는 결론짓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생각해 보게 될 때, 그럼 우리만 그런 것이냐? 신앙길을 가고자 하는 우리만 그럴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가는 길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우리의 뒤에서 가야 되느냐? 아닙니다. 우리보다 앞서가야 됩니다. 우리는 따라가는 것입니다. 앞서가는 것과 따라가는 것은 달라요. 앞서가는 하나님은 개척의 사명을 해야 되는 것이요, 우리는 개척의 사명을 하지 않고 그 개척한 것을 본받아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 다. 만약에 하나님이 높은 데로 올라가면 우리도 따라 올라가야 되는 것이며, 하나님이 낮은 데로 내려가면 따라 내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평지를 향해서 한없이 가게 된다면 그 평지를 한없이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혹은 평지를 따라가는 데 있어서, 자기 마음이라는 것을 일푼이라도 갖고 비판하면 할수록 그것은 손해 되는 길이 될 것입니다. 단, 가야 할 그 길은 따라가는 길일 것이다, 거기에 보조와 박자를 맞추어 가야 될 것이다, 하라는 대로 해야 될 것이다 하는 결론밖에 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길에 있어서 '내가 이제 이 신앙길에서 올 곳에 다 왔다, 나로서는 바라는 대로 이미 다 이루었다'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한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스스로의 주장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이것은 여러분이 미루어 생각할 때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주장을 세우기 전에 하나님이 주장하는 그 주장이 무엇이냐, 이것을 모색 해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기뻐할 수 있는 자리를 맞게 될 때 그 기쁨의 자리가 도리어 하늘의 길을 막을 수 있는 원수의 제물이 되는 자리가 아니냐, 하나님에게 슬픔을 가할 수 있는 자리요 사탄에게 기쁨을 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냐 할 때, 그걸 생각만 해도 180도 돌아설 수 있는 나 자신, 그걸 생각만 해도 그 자리를 일시에 초월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길이 얼마나 잘못됐었나를 반성해 보라

내가 오관을 통하여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감각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의 생활을 중심삼고 볼 때에, 이것을 어떻게 수습해 가지고 하나님과 박자를 맞출 것이냐? 이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년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하루에 있어서도 24시간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시간 오관으로 느끼는 그 감정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을 향해서 수직으로 올라가고 있느냐, 수평선과 비교하여 볼 때 올라가는 방향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을 늘쌍 조정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수평선 이하로 내려가고 있느냐, 혹은 사탄이 끌어당기는 선 이하로 끌려 내려가고 있느냐? 만일에 그러한 자리에 있다 할진대는….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서 가지는 못하더라도 상대적 입장에서 보조라도 맞추고 상하의 방향이라도 일치되고 있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의 신앙길이 얼마나 모호했고, 얼마나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자리였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나를 하나님은 끌고 가는 것입니다. 끌고 가는 데 있어서는 기쁜 길, 좋은 길로 끌고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이 가는 길에는 기쁨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만 이끌고 가면 별문제 이겠지만 인간 외에 원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는 길에는 반드시 원수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원수를 보게 되면, 개인보다도 가정보다도 국가, 세계가 원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세계적인 발판을 동원하여 가고자 하는 신앙길을 막으려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판도라는 것은 하늘편이 아닙니다. 사탄의 도구요, 사탄의 장비요, 사탄의 무기인 것입니다. 사탄이 어느 때든지 명령을 내려서 하늘이 가고자 하는 길을 백방으로 막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가는 길은 어떤 길이냐? 하늘이 한 발자국씩 가야 할 때는 환경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로막고 있는 환경을 제거하고, 거기에 충정된 환경을 개척해 놓지 않고는 한걸음 한걸음 갈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는 혼자 갈 수 없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인간을 데리고 가야 할 것입니다. 데리고 가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우리 인간만 중심삼아 가지고는 전폭적으로 방향을 갖추어 앞으로 전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을 뒤에 두고 원수와 싸우면서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따라가지 못하면 못할수록,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뒤에서 사탄의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 포로가 세 사람 이상만 되는 날에는 아무리 능력이 많은 하나님이라도 후퇴해야 되고, 하나님 앞에 탄식의 조건을 세워 가지고 항서를 남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이 되어 있다 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가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 얼마나 빛을 지고 얼마나 부끄러운 자체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생활과 생애노정을 미루어 보게 될 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사탄은 6천년 기나긴 세월 동안 하나님이 가는 길을 그렇게 막아 나왔습니다. 그렇게 막아 왔던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평탄한 자리에서 갈 수 있는 그때는 어느 때냐? 그때는 지금까지 역사시대에서는 없었던 시대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때는 어느 때가 되어야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때는 이지구성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그야말로 제 2의 해방을 완전히 받아 가지고 선두에 서서 하나님을 뒤에 모셔 놓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사탄을 대해 싸울 전폭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전체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그때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이 자기 앞에서 안식하기를 바라는 것은 망상인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는 거예요.

끝까지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은 이 절박한 세계정세를 앞에 놓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민주세계와 기독교 문화권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민주세계와 기독교 문화 권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 기독교면 기독교를 보게 될 때, 자기 마음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특정한 종단이 있으면 그 종단은 그 종단을 창시한 창시자의 뜻을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파가 있습니다. 종파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 진정한 종파가 가야 할 길은, 하나님과 더불어 가는 길은 두 길이 아니라 하나의 길입니다. 그 하나의 길은 어떠한 길일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가 찾아내려면 쉽사리 찾아낼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 이냐? 이 시대에 있어서 어떠한 종교보다도 하늘이라는 명제를 앞에 놓고 고생하고 수난길을 즐거이 가겠다고 나선 무리가 있다면 그게 일치된 것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종교 가운데 제일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겠다고 뒤넘이치는 무리가 아닐 것이냐. 만일 지상에 하나님이 인연을 두고 생각할 수 있는 단체라면 그러한 곳 외에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끝까지 참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끝까지 참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끝이라는 것이 나 혼자 죽을 수 있는 입장에서 죽어 갔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가정이 전부 다 희생될 수 있는 가정의 끝도 있는 것입니다. 혹은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의 끝도 있는 것입니다. 또 세계의 끝도 있을 것이 아니냐.

그래서 끝까지라는 말은 가정적인 기준에서 싸울 수 있는 입장에 선 그런 끝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자리에서, 민족적인 싸움 이내에서의 끝이 아니라 그 제일 끝에서 바라보는, 그래 가지고 세계를 향한 노정을 남긴 자리에서의 끝이 아니라 세계의 끝을 지내고 나서 이제는 이 이상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의 끝이 아닐 것이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신앙길을 따라 하나님과 더불어 개인을 넘고, 가정을 넘고, 종족을 넘고,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 세계 끝까지 갈 때까지의 그 수난이 얼마나 클 것이냐? 그 길을 일생 동안, 혹은 생애를 통하여 가야 되는, 필시 가야 할 그 누군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길을 모색하는 사람은 평안이니 안식이니 희망이니 소망이니 영광이니 하는 것을 바라는 마음 가지고는 그 끝에까지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내세워 가지고 그 무엇을 그리는 자리에서 산다는 것이 아니라구요. 죽고자 하는 자가 사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만이 산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승리의 자리에서 개인의 끝을 결할 수 있는 사람도 죽고자 하는 각오를 하지 않고는 개인으로서 승리를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정과 더불어 죽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가정으로서 가야 할 끝을 하나님과 더불어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두말할 것 없습니다. 또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와 더불어 죽고자 하는 이런 일체가 통일된 자리에서 그런 것을 결하지 못하게 되면 그 국가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끝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한 결론을 두고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여러분들은 언제 그 끝 된 자리에 서 봤느냐? 개인이 아니고 가정, 가정이 아니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끝 될 수 있는 자리를 찾으려고 노력해 보았느냐? 하나님은 그 끝이 오기를 얼마나 바랄 것이냐? 내 개인의 끝이 이 순간에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이 순간에 있기를 바랄 것인데, 여러분은 이 순간에 내 개인의 끝을 결정짓는다고 맹세한 입장에서 얼마나 자기 신앙길을 다짐해 나왔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렇지 못한 나 자신임을 발견하거든 다시 한 번 전폭적으로 자신의 신앙태도를 뜯어고쳐야 됩니다. 자신을 죽여 버려야 됩니다. 지금의 내 신앙자세는 근본적으로, 본질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하며 그것을 무자비하게 타파해 버리고 새로이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미루어 헤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은 언제 끝을 결할 수 있는 자리에 섰던고? 혹은 민족과 더불어 언제 끝까지 왔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서 봤던고? 혹은 세계와 더불어 언제 그런 자리에 서 봤던고? 그러한 자리가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는 자리가 아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 하는 그 말을 하늘이 누구나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교육할 수 있는 자리에서 말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말은 하늘을 증거한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증거한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생활의 내막을 선포한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하늘은 죽음을 각오한 투쟁의 노정을 엮어 가고 있다는 배후의 사실을 우리는 새삼 깨달아야 될 것입니다. 죽기를 원하면 될 리 없는 것입니다. 이 말 자체가 모순된 말입니다. 그러나 이 타락한 세계는 엇갈린 세계, 반대의 세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서 완전 부정할 수 있는 최후의 극점이라는 것은 죽는 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죽는 그 자리에서부터 세상의 인연이 끊어지고 하나님과 새로운 인연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는 이별하게 되고 하나는 상봉하게 되기 때문에, 하늘이 바라는 제일보의 기준이 그 자리밖에 없다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단연코 그런 명령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가는 길과 우리 인간이 가는 길은 다를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과 사탄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하늘과 사탄이 정면적인... (녹음 테이프 잠시 끊김 )

신앙생활의 본질

적병을 뒤에서 맞아 싸워야 하는 하나님의 입장인 것을 알고 '하늘이여,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 내가 앞장서서 싸우겠나이다. 정면에서 저를 돌봐 주시지 않더라도 저는 당신이 가시는 길을 당당코 가겠나이다. 어서 이 길을 갑시다' 하고 재촉하고 권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나에게 대드는 원수를 방어해 주고 대신 싸워줄 수 있고, 또 내가 거기에 보조를 맞추어 행동을 같이함으로 말미암아 원수세계에서 탈피할 수 있고 사탄의 포위망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이 데리고 가지 못해요.

이렇게 보게 될 때에 '하늘이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하는 그 자체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가? 위험천만한 자리, 자기의 생명이 다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하늘이여 나를 돌보지 마시고 당신이 가셔야 할 이 이상 심각한 자리로 어서 가시옵소서'라고 하게 된다면, 그 자리는 하나님이 적진을 향하여 전진해 나가기 전에 이 무리를 끌고 가는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자리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가야 할 길 앞에는 원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조금만 방향이 틀어지면 언제든지 공격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하늘이 나를 피해 주고 나를 돌보지 말고 전진하기를 바라는 것이 신앙자가 가야 할 길이요. 신앙생활의 본질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오늘날 기독교 교인들 혹은 목사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전부 다 하나님에게 뭘 해달라고 합니다. 자기 아들딸 중심삼고 '뭐 해주십시오' 혹은 자기 교회 중심삼고 '뭐 해주십시오' 그렇게 수천년 동안 기도해 온 교단이 어찌하여 지금 와서는 무력해졌는가? 그것은 이미 하나님이 계획하는 방향권과 하나님이 전투하고 있는 전쟁 마당과는 별도의 환경에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대해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미칠 수 없고 올 수 없는 거리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그 환경적 터전이 세상과 다른 것이 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냥 그대로의 방향이요 그냥 그대로의 환경이요 그냥 그대로의 생활체제요 그냥 그대로의 모임이라 할진대는, 그 가운데에 하나님이 갈 수 있고 하나님이 있을 수 있겠느냐 할 때,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이미 떠나 지나간 자리가 아니냐 하는 것은 두말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은 어떠냐? 그런 환경에서 다시 한 번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해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이 어려울 때에는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는다구요. 무슨 문제가 생겨 가지고 자기가 수습하지 못하게 되면 '하나님 날 도와주시옵소서, 제가 이제야 진짜 깨달았습니다'라고 합니다. 자기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과 더불어 어려움을 당했다면 거기에는 기도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일한 자리에서 '아이고, 어렵습니다. 하늘이여, 구원해 주시옵소서' 하면, 하나님이 전진해 나가던 그 전선을 뒤에 두고 후퇴하여 자기를 이끌어 주라는 입장에 서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는 아무리 기도를 하더라도 여러분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번번이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전체를 위해서 선두에 서 가지고, 국가적인 최후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고, 혹은 세계적인 최후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보조를 맞추어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그 입장을 버리고 후퇴해 가지고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한다면 아무리 불러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건 가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잘못을 했으면 잘못한 것을 솔직히 고백하고 각오하라는 것입니다. 잘못을 했으면 잘못한 만큼 벌을 받아야 된다구요. 벌을 피해 가려는 자세보다 자기가 행한 데 대한 응보를 당연한 것으로 맞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벌을 주는 데있어서 열만큼의 벌을 줘야 하는데, 사탄이 '에이 요녀석, 잘못했다`고 하면서 열 이상 혹은 백만큼의 벌을 주는 날에는 하나님이 동원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접근시킬 수 있는 길은 그 외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중요한 책임을 짊어지고 선두에 서서 전진하고 있는 하나님은, 낙오된 입장에 있는 사람이 아무리 부르짖는다고 하더라도 그 전선을 지켜야지 개인을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입장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아무리 기도해 보라는 거예요. 그건 일각이라도 도와줘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런 자리에서는 전우가 아무리 '아무개야, 내가 죽게 되었으니 같이 가자'고 해도 안 된다는 거예요. 그 전선에 있어서 승리를 촉구하고 국가에 충의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결의가 불타면 불탈수록, 그런 심정이 앞서면 앞설수록 그 동지를 제하고 가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전선에 있어서 최후를 결하는 그 순간에 있어서, 동지가 부르짖는 그 말을 중심삼고 거기에 관심을 갖다가는 도리어 자기 스스로가 불리한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냐.

그럴 때에 자기의 아무리 가까운 동지라 할지라도 그를 뒤에 두고 네가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배가의 책임을 내가 다해 내겠다고 도리어 선두에 서서 달려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동지에게는 원수처럼 보이고 위해 주는 친구가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그 동지를 위하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그 동지 때문에 보다 나을 수 있는 승리를 다짐했다면 그 승리는 그 동지와 더불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 아니냐. 그렇게 되면 그 동지는 죽은 후에라도 나로 말미 암아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남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이렇게 볼 때, 자기를 돌보는 것보다 자기를 돌보지 않고 버리고 간 사람이 도리어 자기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신앙길에서 언제나 끌려 다니는 무리가 아니었느냐 '가자' 해도 가겠으면 가고 말겠으면 말고 하는 마음자세를 가진 사람은 하늘길을 못 갑니다. 그런 사람은 이미 사탄한테 걸려 있는 사람입니다. 사탄한테 걸리게 되면 사탄은 삼면에 닻을 걸어 움직이지도 못하게 꽁꽁 묶어 놓는 것입니다. 만약 통일교인이 그렇게 되었다면, 번번이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사람이 그렇게 되었다면, 닻만 달아 놓겠어요? 꽁꽁 묶어 놓고 삼면으로 구속해 놓을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거기서 항거를 했다, 끊고 갔다 할 때는 그것을 끊고 가면 갈수록 차후에는 점점 용서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을 믿고 따라 나왔지만,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사탄세계에서도 갈래야 갈 길이 없는 구속된 입장에 처하게 된다면 그 누가 동정할 것이냐. 하나님도 동정을 못 하고 사탄도 동정을 못 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에서 충성을 다해 정성을 들여 가던 사람들이 끝까지 못 가게 될 때는 그 사람들의 말로가 비참한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 후손까지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흥강사의 자녀들 중에는 훌륭한 사람이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알아요? 그것을 알아야 돼요. 책임자의 자리라는 것은 참 두려운 자리라는 거예요. 부흥강사면 부흥강사가 자신이 잘나서 하나님의 은덕을 입었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부흥회면 부흥회 가운데에서, 역사적으로 선조의 선한 공적이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을 만나도록 택해 세워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택해 세우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어떤 선도자가 있어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될 때 책임진 부흥사를 내세워서 그 사람을 찾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흥사는 자기가 잘나서 은혜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그 한 사람을 끌어내기 위해서, 그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일으키기 위해서 자기를 통해 역사한다는 것을 언제나 생각해야 됩니다.

자기가 동기가 되어 가지고, 움직임이 전부 자기로 말미암았다고 생각 하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신령한 사람들이 몇 년, 한 7년쯤 가다가는 다 내리닫아 꺼꾸러지는 것입니다. 전부 다 자기로 말미암아 시작되었고 자기로 말미암아 거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응당 자기가 받을 은사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사하며 교역자면 교역자, 부흥사면 부흥사에게 제물을 바치게 될 때, 그 제물을 하늘에 직접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책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늘의 제물을 받았으면 대신 하늘 앞에 드려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 제물을 하늘 앞에 드리지 않고 자기가 타고 앉아 가지고 자기가 소화시킬 때는 자기만 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족이 걸려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짊어진 사람이 하나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그와 관계되어 있는 나라면 나라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가정이면 가정. 일족이면 일족 전체가 걸려 버립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건 안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부흥회면 부흥회 때에 인연 되는 그 한 사람이라는 것은 그 시간을 통해 인연 된 것이 아니라 수천년 동안, 선조들이 그 한때를 맞기 위해서 인연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는 얼마나 심각한 자리인지 모릅니다. 그 한 사람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전체가 가려 갈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어려운 배후의 사연을 중심삼고 신앙길을 가는 개인과 하늘의 인연이 묶어져 나간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신앙길을 간다는 우리의 생활을 반성해 보면 볼수록 하나님 앞에 슬픔을 많이 남기고, 빚을 많이 졌다고 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앙인은 세상적인 욕망을 버려야 돼

여러분, 통일교회를 믿게 되면 그래요. 통일교회를 믿게 되면 복을 받을 줄 알지만 복을 받는 것보다 오히려 점점 꼬여 들어갑니다. 가만히 보면 잘될 것 같은데 도리어 꼬여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건 왜 그러냐?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꼬여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믿고 나오며 열만큼의 욕심을 가졌는데 백만큼의 물질이 생겼을 때, 또다시 백만큼을 바랐다가는 영영 엇갈리는 길을 가고 마는 것입니다.

열만큼의 욕심을 가졌다면 그 열만큼의 것을 꺾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꺾어 버림으로 말미암아, 열만큼의 외적인 욕심을 침으로 말미암아, 내적 하나님과 열만큼 밀접하게 할 수 있는 불가피한 결과를 다짐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복을 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복이라고 하는 것을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싫다고 하는 것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세상 사람들이 웃고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의 인연을 가지고 사는 것을 그냥 그대로 공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을 다 파탄시키는 것입니다.

만약에 파탄시키지 않으면 그들이 나를 물어뜯는 것입니다. 안 끊을래야 안 끊을 수 없게끔 그들이 다 물어뜯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물어뜯기 전에 끊기 싫어도 끊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충이 벌어집니다. 여기서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종교는 참된 길을 찾아가는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가는 길이 엇갈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 앞에 서 가지고, 6천년 동안 우리 '인생길을 가로막고 하나님의 섭리를 그르치고 파탄시켜 나왔던 사탄과 대결해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싸움이 언제 끝날 것이냐? 끝날 수 없을 것 같은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지금도 그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 왔으며 지금 이 시간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밤이면 밤, 여러분이 자는 시간이라고 해서 휴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밤이 되면 될수록 배수진을 치고 최후의 결전을 다짐하는 시간이 자기 앞에 가까와지는 것입니다. 나에게 편안함이 있을 때 하나님은 고통 중에 있는 것을 알면서 우리는 가야 되겠습니다. 나에게 고통이 극하면 극할수록 하나님의 권세는 나로 말미암아 유일한 입장에 설 것이 아니냐.

내가 하나님 앞에 빚지는 자리에 서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빚을 갚고 빛을 지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빚을 지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이냐? 자기의 역량이 미치지 못할 과중한 십자가의 길 외에는 하나님께 빚을 지을 수 있는 길이 없다고 하는 것은 자연적인 결론입니다.

이렇게 볼 때,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네 집안식구가 원수다,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고는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등등의 말씀을, 이건 심각한 말이라구요. 왜 이런 심각한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하면,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보조를 맞추며 살아 나갈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가려니 돌아서 가야 됩니다. 돌아서는 데는 옆을 봐서는 안 됩니다. 180도 돌아서야 됩니다. 이런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가는 길 앞에서 싸움을 책임지고 여러분을 이끌고 가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쉽겠어요? 그 싸움은 어떤 싸움인가 보라구요. 나 한 사람의 개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싸움을 해야 되느냐? 세계를 막아내야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세계 뿐만이 아니라 그 나라를 방비해야 할 것입니다. 또 나라 뿐만이 아니라 종족이라든가 가정의 환경을 방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들을 방비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나를 못 데려갈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나 한 사람을 이끌기 위해서 세계적인 전선을 사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승리권

이게 사탄권입니다. (판서하심) 이게 세계라구요. 여기서 싸워 가지고 이걸 방어해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를 방어하기 전에는 국가기준을 마음 대로 왕래할 수 없습니다. 국가의 기준을 방어하기 전에는 마음대로 씨족의 기준, 종족의 기준을 왕래할 수 없습니다. 올 수 없다구요. 또 씨족을 방어하기 전에는 가정을 찾아올 수 없고 가정을 방어하기 전에는 개인을 찾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효의 도리, 충의 도리가 무엇이냐? 이 길을 단축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특정한 개인을 통해 특정한 가정을 남기는 것이요, 특정한 종족을 남기는 것이요, 특정한 나라를 구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것이 안팎으로 하나되어야 될 텐데 안팎으로 갈라진 자리에 있기 때문에 안팎을 중심삼은 나라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 외적인 것이 이스라엘 나라요, 내적인 것이 유대교입니다.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는 죽어도 같이 죽어야 되며, 망해도 같이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승리해도 같이 승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갈라져 있는 것이 이와 같이 국가기준을 중심삼고 통일성을 갖출 수 있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 기준은 무엇을 중심삼고?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중심삼고.

그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완전한 하나님의 사상을 이어받은 것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개인적으로 가고자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이끌고자 하는 것이요, 가정적으로 가고자 하는 것은 가정적으로 싸우지 않고 사탄의 참소에 걸리지 않는 가정을 만들기 위한 것이요, 민족적. 국가적으로 가고자 하는 것 역시 싸우지 않고 사탄의 참소에 걸리지 않는 민족과 국가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적 기준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국가는 예수를 따라서 그와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늘과 땅이 갈라져 있었지만 예수가 하늘의 품격을 지니고 땅에 와 가지고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영육을 중심삼은 국가 승리권이 비로소 사탄세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권내는 사탄이 통치할 수 없습니다. 사탄이 침입할 수 없는 이런 나라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게 되면... 그렇잖아요?

만일에 그런 나라를 가졌으면 하나님은 종족이라든가 민족을 중심삼고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라를 중심삼고 싸워서 이기게 되면 하나님은 하나의 종족장으로서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종족이 싸워서 이긴다면 하나님은 가장으로서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국가적 승리권을 갖지 못하고는 하나님이 민족적인 안식권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민족적 승리권을 갖지 못하면 종족적 안식권이 생겨날 수 없는 것이며, 종족적 승리권을 갖지 못하면 가정적 안식권이 생겨나지 못하는 것이며, 가정적 승리권을 갖지 못하고는 개인적 안식권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서 하고 간 일이 무엇이냐? 그런 일을 다 못 했습니다. 예수 개인마저 사탄에게 침범을 받아 가지고 십자가에 돌아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찾아오는 데는 나라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천주 주의(天宙主義)를 중심삼고 바라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싸움을 책임지고 사수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끌어 주고 있다는 것을 실감해 보았느냐? 우리는 여기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가정을 넘어가야 되고, 민족을 넘어가야 되고, 국가를 넘어가야 됩니다. 국가기준의 선두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전선에 국가를 대표한 수많은 하늘의 정병들이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커 가면 커 갈수록 하나님은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겨 나기를 하나님은 얼마나 고대했던고! 이것이 넓어지고 넓어져 하나의 입장에 다 흡수되게 되는 것입니다. 승리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날을 얼마나 고대했던가를 생각해 볼 때, 여러분은 이런 나라를 생각해 봤어요? 지금까지 땅 위에 이런 승리권을 갖겠다고 다짐하는 신앙자들이 있었어요? '그저 나야 믿으면 천국가겠지' 하며, 예수 믿고 천당가겠다고...천당에 가게 되어 있느냐 말이예요. 믿기만 해 가지고 천당가게 되면 큰일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잘 믿는 사람의 종자를 남겨 가지고 이 땅 위에 승리권을 만들어, 개인이 안식하고 가정이 안식하고 종족 민족 국가가 일시에 안식할 수 있는 권을 이루어, 하나님이 주권을 잡고 명령해 가지고 그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한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선조들의 공적에 보답하는 길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길은 개인으로 싸우는 길입니다. 개인으로서 싸우는 자리에 서게 될 때, 그 자리는 세계를 방어하고 나온 하나님이 찾아오는 숨 가쁜 자리입니다. 그 싸우는 시간은 짧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 시간은 짧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간이 여러분에게는 은사의 시간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면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지금까지 체험해 보지 못한 내적인 체험이 있으면 그 체험은 길게 가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기쁨을 느꼈으면 그 기쁨은 하나님이 보다 가중된 십자가를 맞게 하기 위한 기반으로 주신 은사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그런 사람이라야 전진하지 그렇지 못하면 가는 길이 전진하는 길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서 가지고 언제나 하나님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 데, 그러면 하나님을 종으로 보느냐? 사탄의 종새끼 된 우리 인간 앞에 하나님이 늘쌍 종의 자리에, 심부름꾼의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 그런데 찾아오라고요?

여러분은 기도 가운데에 하나님이 무엇을 가르쳐 주는 일이 있으면 그것이 쉬운 일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여러분이 은사의 체험을 하게 될 때, 그 은사의 체험은 자기가 공을 안 들이고도 그렇게 되었으니 쉬운 것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천만에요. 그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그런 자리에 서기까지는 수십 수천의 선한 선조 들이 희생되어 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갚아 주고 통과시키게 하려니 할 수없이 그런 인연을 맺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짧은 인연 가운데서 그런 체험을 했지만, 역사적으로 배후의 수천년 동안 투입된 희생의 대가로 말미암아 그 인연이 맺어졌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자리는 두려운 자리입니다. 자기가 좋다고 해서 웃을 수 없습니다. 선조들을 모시고 그들의 공적을 찬양 하는 자리에서 그들이 기뻐하고 난 후에 자기가 기뻐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은사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시일이 가면 갈수록 자꾸 옛날로 돌아가고 있다구요. 그거 왜 그러냐? 하나님의 은사 앞에 보답하고 감사할 줄 모르고, 하나님이 가중된 십자가를 짊어지고 자기를 찾아왔다는 것을 모르고 여기에 보답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이유입니다. 선조의 공적인 결과, 실적의 자리에 세움 받은 그 은사에 보답을 못 하기 때문이요,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이 자리를 맞게 해주기 위해서 배후에 배수진을 쳐 가지고 자기를 방비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보답을 못 하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선한 선조에게 보답을 할 줄 모르고 하나님이 찾아준 그 공적 앞에 보답할 줄 모르는 자리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보답할 줄 모르는 사람은 망합니다. 받았던 것을 도로 빼앗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가지고 여러분이 빼앗기는 자리에 서 가지고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됩니다. 빼앗겼으면 빼앗긴 그 자리를 다시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내가 보기에 우리 통일교회에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때는 뭐 요령을 부리고 야단하다가 몇 해 지나고 나서는 휘주근하고 기진맥진해져서 도리어 그러지 않았던 것만도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지 않았던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미련도 있고 해서 나라라도 생각하고 나라가 위급할 때는 울고불고하기라도 하는데, 이런 패들은 여기에도 못 끼고 저기에도 못 끼어요. 처치하기 곤란한 그런 패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왜 그렇게 되느냐? 그 은사가 자기 때문에 생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은사는 여러분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세계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영계에 있는 수많은 선조들 때문에 생긴 것이며, 인류 때문에 생긴 것이며, 하나님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하나님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과거를 위하고 현재를 위하고 미래를 위하고 세계를 위해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세계를 섭리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끝까지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런데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중도도 못 가 가지고 허위적거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 들은 수습할래야 수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미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길

여러분이 기도할 때 '아버지여, 내가 불쌍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이 불쌍하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쌍하게 만들었는데 자기가 불쌍하게 되었다고 불평해 보라구요. 불평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 과는 멀어지는 것입니다. 불쌍하게 만들었는데, 불쌍하게 되는 것은... 불쌍하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불쌍해야 되는 거라구요. 왜 불쌍해야 되느냐?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보다 큰 것을 위할 수 있는 자리에서 불쌍해야 됩니다. 보다 큰 것을 위하는데 불쌍하게 되나요, 안 되나요? 그렇게 되는 법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희생시키고 가정을 희생시키고 종족을 희생시키고 민족과 나라까지 버려라, 거부해라 이겁니다.

하나님이 찾아 주고 싶어하는 새로운 민족을 위하여, 새로운 나라를 위하여 모든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자리를 거치지 않고는 하늘나라의 경계선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하나님이 자기만 위해 주거나 자기만을 붙들어 달라는 입장에 서면 안 됩니다. 하늘의 전선을 남겨 놓고 자기를 위해서 희생해 달라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같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자기를... 사실 선생님이 심각한 기도를 할 때는 통일교회 교인들에 대해서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하늘이 찾아야 할 이 나라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며, 하늘이 찾고자 하는 이 세계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그것은 남아집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전선입니다.

적진의 본영을 타파해 버리고 승리의 주도권을 거기로 옮기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에, 그 권을 어떻게 격파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매양 그것을 위해 나가고 그것을 위해 연단하고 그것을 위하여 상대하고 그것을 위해 훈련하고 투쟁하고 다짐하는 그런 자리에 하나님도 찾아오는 것이지. 뒤로 돌아가는 데에 하나님이 올 게 뭐예요?

신앙세계는 어떤 의미에서는 미친 무리가 모여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처해진 환경에서 가정을 바라보고 '아이고, 이젠 됐다. 내가 이룰 수 있는 가정이 되었으니 좋다' 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국가적 세계적 기반을 닦기 위해 내 가정 전체가 가야 되겠다. 나 혼자 싸우던 것을 너와 내가 합해서 싸워야겠다. 사탄을 대해서 부부가 싸우던 것을 자녀까지 사위기대가 합해서 싸워야 되겠다' 이래야 되는 겁니다.

내 개인이 당하던 그 이상의 시련이 있더라도 우리 가정은 가야 되겠다, 가정이 당하던 시련 이상의 시련이 교회가 가는 길 앞에 있더라도 가야 되겠다, 교회가 당하던 그 이상의 시련이 있어야 민족이 갈 수 있고 국가가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민족이 당하던 시련 이상의 시련을 자청해 가야 되겠습니다. 국가가 당하던 시련 이상의 시련을 자청해 가야 되겠습니다. 이런 길만이 하나님께 접근하는 길이요 해방권을 화장하는 길입니다. 그 가외의 길은 해방권을 축소시키는 길이요, 하나님께 고통의 십자가를 지우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기가 무섭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걸 느껴 봤어요? 기도하기가 무섭다는 거예요. 쓸데없는 기도를 하려고 하면 입이 잘 안 떨어져요. 붙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걸 볼 때에,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단체면 단체를 보다 큰 것을 위해 희생시키려고 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통일교회를 사랑한다면 이 통일교회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나라를 위해 희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한번 해보라구요. 그러면 대번에 하나님이 '오냐, 바라던 길이 그 길이다' 하는 거예요. 대번에 그러는 거예요. 통일교회 사상을 가진 수많은 사람이 세계에 널려 있으면 그 사람들을 몽땅 잡아다가 세계 앞에 회생시키겠다고 할 때, 하나님이 '그래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기뻐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야 천리원칙이 바로잡히는 거라구요.

심정세계에서는 죽고자 하는 자가 산다

하늘은 부모요, 땅은 자녀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자녀가 알 수 있을 때까지 키워 주는 것입니다. 철모르니까 키워 줘 가지고 그 자식이 철든 후에는 부모의 책임을 대신하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 앞에 진짜 효자가 되려면 부모가 죽기 전에 부모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효자입니다. 하나의 군왕이 있으면 그 군왕 앞에 생명을 바쳐야 됩니다. 그것이 충신입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는 충신이 못 된다고 했지요? 효자 중에도 진짜 효자는 누구냐? 늙어 죽을 때까지 일생 동안 부모 앞에 효도를 했다고 하더라도... 젊은 청춘시대에 부모 앞에 효하다가 죽어 간 사람과 일생 동안 늙어 죽으면서 효도한 사람, 어떤 사람이 낫느냐? 생명을 바쳐 효도한 사람이 낫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심정세계에서는 죽고자 하는 자가 산다는 것입니다. 반대, 역리를 중심삼은 섭리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 말은 보다 당연한 발언이요, 세계사적이고 혁명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은 여러분을 더욱 쳐야 되겠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도망가서 선두에 서는 것입니다. 그게 사는 길입니다. 그 외에는 살 길이 없습니다. 편안하겠다는 녀석들은 앞으로 내가 전부 다 뭉그려 버려야 되겠다구요. 내가 손댈 때는 여지없을 것입니다. 그것 생각하라구요. 내가 이것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이 틀을 짜고 등지를 틀고 있는 그것이 남아진다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그것이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한 것이면 남아져야 되지만, 자기를 위한 것일 때는 전부 들이 맞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지금 모르고 있다구요.

창조이상세계 복귀라는 말을 중심삼고 볼 때,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후에야 나의 소유로 되는 것이요, 모든 가치의 결정은 하나님의 가치의 결정을 기반으로 하여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내 존재 의식도 내 존재 가치도 하나님을 위주한 데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면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대한민국이 살 길은 어떤 길이냐? 그런 자리로 몰아넣을 것입니다. 국민이 단결해 가지고 주권자와 더불어 '그렇다, 옳소' 하면, 대한민국은 안 망하는 거라구요. 안 죽겠다고 피하는 위정자가 있으면, 전부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놈의 자식들은 망한다구요. 그놈의 자식들은 칼침 맞아 죽어야 된다구요. 그런 사람은 도망가기 전에 국민이 목을 자르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상시대에 처해 있는 오늘날 이 정세 앞에 있어서 통일교회는 어떻게 할 것이냐? 꽁무니를 빼고서 그저 적당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할 수 있어요? 그게 아닙니다. 우리는 일선에서 있는 것입니다. 공산당과 이마를 맞대고 총칼을 겨누어 최후의 판결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라든가 중국을 중심삼고 지금 그런 행동을 개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환경이 부정하더라도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부정을 긍정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 놀음을 하는 거라구요. 여기에 보조를 못 맞추고, 이 젊은 녀석들이 말이예요, 꽁무니를 빼고 길길하는 녀석들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잘된 녀석이 있나 보라구요. 통일교회 믿다가 그런 사람들 보라구요. 잘된 사람이 어디에 있나. 될 것 같지만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신뿐만이 아닙니다. 자기의 아들 딸까지 피해를 입고 돌아가는 사실을, 이제 여러분이 그만했으면 주위를 한번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게 되면 나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자리에 서 있는지를 잘 아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가는 길도 엇갈려 있지만, 하나님과 사탄은 정면적으로 엇갈려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려고 하면 사탄이 반격을 합니다. 그렇게 반격한 것이 6천년입니다. 인간역사가 시작된 그날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전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을 때려부술 수 있는 통일사상

하나님이 언제 쉬어 보았겠어요? 그것을 생각해 봤어요? 여러분은 피곤하면 잘 시간이 있습니다. 밤이라도 찾아오지요. 하나님께도 밤이 있어요? 사탄에게도 밤이 있어요? 보라구요. 사탄은 어떤 입장에 있느냐? 만일 후퇴하는 날에는 영영 영멸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대한 민국이 일본에게 압제를 받았을 때는 해방될 수 있는 날이 있다는 소망 이라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탄은 한번 후퇴하면 영영 영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언제나 결사적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사탄은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결사적입니다. 사탄이 생명을 걸고 있으니, 생명을 건 사탄을 굴복시키고자 할 때는 생명을 아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러니 죽고자 하라는 것입니다. '죽고자 해라. 그러면 이기느니라. 사느니라' 이건 당연지사입니다.

사탄이 쉬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이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을 하게 되면, 사탄은 꽹과리를 치고 북을 치며 '야 됐다 됐어' 하는 겁니다. 사탄은 좋아하고 하나님은 물러가게 됩니다. 사탄은 '네가 그럼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땅 위에서 좀더 존속할 수 있는 발판을 확대시키고 연장시킬 수 있게 되었구나' 하는 거예요. 이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위주해 가지고 산다 하는 사람은 전부 다….그렇지 않아요?

타락한 세상은 자기를 중심삼은 개인, 자기를 중심삼은 가정, 자기를 중심삼은 종족, 자기를 중심삼은 민족, 자기를 중심삼은 나라, 자기를 중심삼은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전부 다 나라를 중심삼고 야단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 나라가 잘못되어 하나님의 아들도 때려잡은 것입니다. 하늘 앞에 있어서 나라 없는 백성은 서럽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못 가진 하나님은 개인적인 시대에는 언제나 제재를 받는 것입니다. 가정이 안식하게 되려면 종족이, 친척이 있어야 됩니다. 하늘 친척이 없게 되면 가정이 안식할 수 없습니다. 종족이 안식하려면 하늘 민족이 있어야 됩니다. 민족만 있어 가지고…. 여러분은 민족만 있으면 국가가 있게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천만에요. 대한민국도 가인과 아벨로 갈라져 있는 거라고요. 민족이 둘입니다. 나라도 둘입니다. 다 그렇게 된 거예요. 세계도 둘이예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언제든지 둘이예요. 사탄 세계, 사탄 나라, 사탄 민족, 사탄 종족, 사탄 가정, 사탄 개인, 그것이 나를 대해 가지고 세계적으로 전개되어 있다구요. 이것을 전부 다 때려부수려면 개인을 중심삼은 세계관을 때려부수어야 하고, 개인 중심삼은 국가관을 때려부수어야 하고, 개인 중심삼은 민족관을 때려부숴야 하고, 개인 중심삼은 가정관, 개인 중심삼은 인격관을 때려부수어야 합니다. 우리 통일사상이 그거 하는 것입니다. 통일사상만 가지면 전부 때려부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지금까지의 세계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국가관이 달라지는 거라구요.종족관이 달라지는 거라구요. 가정관이 달라지는 거라구요. 개인의 인생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선 때려부수고 새로운 차원에 있어서의 하나님을 중심삼은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일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출발했던 것을 전부 다 하나님을 위주해 가지고 다시 출발하게 되었으니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엄벙덤벙해요? 누가 엄벙덤벙해? 누구를 망치려고! 자기 한 사람 망하는 것은 좋다구요. 그러나 자기 한 사람 때문에 전체가 피해를 입는 거라구요. 그 가중된 십자가를 피할 수 있는 길이 뜻길 앞에 어느 때도 없지만, 그럴 수 있는 때가 있다면 그때는 오늘날 이 통일교회에서 통합된 사명을 하는 때입니다. 그것을 잘못하는 날에는 세계적인 공판정에서 사탄의 참소와 더불어 하나님 앞에 판정을 받아야 할 그런 운명길이 가로놓여 있는 엄청난 시대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적 판국에 머물러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일 것이냐? 하나님은 그렇게 엇갈린 자리에서 싸우는데, 하나님이 싸움하는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양심적인 사람 일수록 싸움을 좋아합니까, 안 좋아합니까? 싸움을 좋아해요, 안 좋아해요? 좋아하지요? 양심적인 사람일수록 싸움을 좋아하지요? 「아니요」

그러면 이 우주 간에 있어서 최고의 양심적 중심이 누구냐 할 때, 누구예요? 하나님이예요, 하나님. 그렇지만 아무리 양심적이라고 하더라도 불의를 보고 '아이 좋다, 가만히 있어야 되겠다' 그래요? 불의를 보게 될 때는 분노가 폭발하는 것입니다. 양심적인 하나님이 불의를 보고 6천년 동안 격분해 가지고 싸움터를 준비해 나온 것이 아니냐.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개인을 위주해서 세계를 망치는 놀음, 가정을 위주해 가지고 세계를 망치는 놀음, 종족을 위주해 가지고 세계를 망치는 놀음은 하나님 앞에 불효하는 놀음입니다. 그런 일체를 하나님은 용서할 수 없어서 때려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맞는 선두에 선 기독교를 쳤던 로마제국이기에, 400년 동안 세계를 휘어잡고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로마제국도 돌아가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400년 이내에 굴복당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이 세계가 기독교로 말미암아 굴복권내에 들어왔지만, 아직까지 차원을 높여 세계 국가, 하나의 이상세계를 촉구해야 할 현 단계에 들어와 가지고 허위적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도약을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위로 올라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거꾸로 내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미국정세입니다. 하나님이 세계를 버리고 미국을 찾고자 하겠어요? 하나님은 미국을 희생시켜서 세계를 찾으려고 합니다. 미국의 운세는 꺾여 버리는 것입니다. 공산세계도 마찬가지요, 사탄세계도 마찬가지라구요. 하나님이 세계를 위해 세계적 주도권을 남기고자 하시기 때문에 국가적 기준을 중심삼고는 전부 다 허위적 거릴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전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이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주의 사상은 무엇이냐? 자기 국가를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구하겠다고 하는 주의 사상입니다. 그런 사상을 가진 나라, 그런 새로운 운동을 중심삼은 국가와 국민이 등장하게 될 때, 이 세상에는 새로운 희망의 세계가 현현할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통일의 세계, 이상세계는 현현 될 것입니다. 나라를 넘어서지 못한 국가관, 역사관은 하나님의 이상세계를 인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걸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뜻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불가피한 결론입니다.

통일교회의 여러분들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에 내가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가 커 갈수록, 내가 자리를 못 잡았는데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것은….

미국이 그렇지 않아요? 퓨리턴들이 미국 대륙에 상륙하여, 첫번째 한일이 무엇이냐? 인디언과 싸워서 피를 가려 가지고 그 영토를 점령한 후에 무엇을 했느냐? 자기 집을 짓지 않았어요. 자기 집을 먼저 지었다가는 그 나라는 망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을 이루지 못했을 거예요. 먼저 뭘 했느냐? 교회를 지었습니다. 인디언 민족과 싸워 피를 뿌린 것은 인디언 민족을 제물삼아 세계국가를 창건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맞다는 거예요. 그것은 의에 섰다는 것입니다. 당당하다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인디언들은 토착민입니다, 토착민. 하나님은 이런 백성을 중심삼은 제물을 촉구한 것이기 때문에, 이들을 회생시켜 가지고 하나님이 찾는 신앙의 해방을 하라고 한 것입니다. 자유 신앙과 해방의 세계를 촉구하는 자리에서 하늘 것을 찾기 위해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여 초민족적인 기준 앞에 새로운 국가관, 세계관을 모색해 나온 것이 현재의 아메리카 대륙입니다. 수많은 민족, 복합성을 가진 민족들이 합해서 하나의 국가형태를 이루고 자유의 천국을 꿈꾸어 나온 것이 미국입니다.

거기에 있어서 인디안 일족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민이 해방 받을 수 있는 자유의 천국을 해방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일족을 희생시키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이 하늘이 가는 길이기 때문에 인디언의 희생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늘을 위한 것이요 학교는 후손을 위한 것

그래 가지고 그 터전을 닦았습니다. 그렇게 피를 흘리게 한 후에 뭘 했느냐? 자기 집을 지었다면 그 민족은 인디언한테 벌써 망했을 것입니다.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을 쳐 가지고는 망하지 않는 법이 없는 거라구요.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자기 종족을 중심삼고 미국을 세워 나오는 입장에 섰더라면 망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점령한 후에는 반드시 교회를 지었습니다. 교회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자유의 천국을 그리며, 신앙의 이상 동산을 꿈꾸면서, '하늘이 찾아가는 나라가 그런 나라가 아니겠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교회를 짓고 그 다음에는 학교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늘을 위한 것이요, 학교는 후손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후대를 위해서 남기는 것입니다. 개인을 희생시켜 더 큰 후대를 바라보기 때문에, 지금은 망하더라도 후대에 더 큰 나라와 세계가 찾아올 것을 알고 그것들을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 들인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자기가 머무를 수 있는 집을 지은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이 세계 문화를 움직일 수 있는 축복의 내용이 된 전통적인 사상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 자체는 어떠해야 할 것이냐? 나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내 집을 마련하기 전에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교회를 먼저 마련해야 할 깃이 아니냐. 세계 만민이 추앙할 수 있는 교회를 마련해야 할 것이며 학교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를 마련 하여 기쁨을 느끼는 그 환경에서, 학교를 세워 기쁨을 느끼는 그 환경에서 그들이 바라는 자리, 쉴 수 있는 터전을 찾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쉬게 하고 후손들이 안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가 쉴 수 있는 자리를 잡아 정착하는 것이 인간의 본연의 자세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타락한 권내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해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도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1970년도에 들어서면서부터 때가 가까와졌습니다. 통일교회의 위신과 체면을 세울 수 있는 촉박한 시대가 왔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전국, 혹은 전세계를 대표한 본부를 설정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우리의 피눈물을 개의치 않고 모두가 정성을 다해 모금을 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공장이면 공장을 지어 가지고 한 15년 동안 정성을 들여 왔습니다. 여러분은 모를 거예요. 어떤 회사의 어떤 기업주보다도 더 정성을 들여 왔습니다. 정성을 들이는 데는 상대적 무대가 커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단 한치의 땅도 좋고, 한 짜박지의 산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걸고 세계적인 경제권과 하나님의 해방의 터전을 모색하고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곳을 중심삼아 가지고 정성들여 나왔던 것입니다.

정성들여 나왔던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이 찾을 수 있는 외적인 성전 건설에 있어서 나는 그 이상 정성들이는 모험을 해야 되겠다. 지금까지 정성들인 터전에 있어서 스스로의 모험을 해야 되겠다' 라고 생각해서 지금 여의도 기지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모험을 한 거예요.

내가 세상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일신의 안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안식을 위해서 세계적인 전당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대학교 부지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청평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수련소를 지으려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생각해 볼 때, 1972년도만 지나가게 되면 나 자신이 자리를 잡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안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생활철학입니다.

하나님이 불쌍한 길을 가고 계심을 알라

그날이 올 때가 되면 세계의 인류 앞에, 어떠한 사람이라도 어떤 사상 주의자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세계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라는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눈물을 흘려라. 네 자식을 잡아서 제물로 드리고, 아내의 배를 갈라서 제물로 드리라는 거예요. 자식 한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는 쉬울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 자식까지 사위기대를 만들어 가지고 한꺼번에 칼로 쳐서 아브라함 이상의 자리에서 제물 드릴 수 있는 자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문선생의 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정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망해 떨어지고 극에 달해 타락하더라도 통일교회의 책임자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이것이 여기에 서 있는 사나이의 결의예요. 그렇게도 망할 수 있는 길에 몰아치고 그것으로 통일교회가 끝났다고들 하지만 그것을 깨치고 통일교회는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눈에 좋은 집이 보이거든 제일 수고한 사람에게 그 이상 좋은 집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되는 거예요. 내가 그 이상 좋은 집에서 살겠다고 하면 안 돼요. 혹은 길에 다니는 좋은 차를 보거든 하나님 말에 수고한 사람을 그 이상 가치 있는 것에 태우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놈의 악한 세계... 이런 사상을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이 악한 세계에서 보여지는 것과 자각 일체는 하나님과 엇바꿔 가지고, 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세우겠다는 그리움과 사무침에 살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전통사상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내 집을 잘 지어 놓고 잘산다고 자랑하는 그런 놀음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안팎으로 꿀리지 않는 기반을 닦아 놓고 자기 스스로의 안식의 터전을 가지고자 하는 것이 여러분을 지도하고 있는 스승이 가는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거라구요. 이 1971년도를 중심삼고 내 할 일을 다해 나가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녹음테이프가 잠시 끊김 )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야망을 가져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백번 천번 망해도 좋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하나님의 소원과 일치한 소원을 갖고자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망은 망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나도 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죽을래야 죽을 수 없다고 다짐하는 생애노정을 달리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빚 안 지고 여러분 앞에 빛을 안 지기 위해서 밤이나 낮이나 불철주야 기도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1970년도부터 1973년은 세계적으로 최고 정상의 시대입니다. 보라구요.이 기간에 왜 세계정세가 급변해 들어오는지 알아요? 하늘이 바라는 단한 길, 하늘과 땅이 외로운 자리에서 서로 맞부딪혀 가지고 둘이 몸부림 치고 설 수 있는 한 거점이 이 땅 위에 찾아오는 세계적인 시대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격동하는 그런 사조가 오늘날 아시아와 세계를 대표한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그 가운데에 있는 통일교회와 연결되어 있는 이 심각하고 숨 가쁜 이 한때, 한 순간을 남북이 분립된 입장에서 서로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밤이 있다고 해서 밤이 아니요 낮이 있다고 낮이 아닙니다. 언제나 일체의 모든 것을 바쳐서, 이 거점을 어떻게 확보하고 이 뜻길을 어떻게 사수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일체를 부정하더라도 이것만은 남겨 놓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나라도 없는 것이요, 교회도 없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가는 길은 불쌍한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배고파하고 눈물 흘리며 탄식하는 그런 자리에 서게 될 때는, 거울을 바라보고 '이놈의 자식, 칼로 배를 쨀 거야? 하는 격분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자기 자식들을 먹이지 못하는 부모의 입장, 물론,그거 알아요, 알아. 온 세상 사람이 다 아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심각한 자리에서 느껴 본 사람이라구요. 처자를 뒤에 두고 삼팔선을 넘게 될 때, 누구 이상 창자를 끊는 듯한 아픔을 느꼈지만, 하나님에게 그 이상의 슬픔이 있기 때문에 나는 당연한 도리로서 보다 더 수난길을 찾아 나가야 된다는 결의를 하고 나선 것임을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전통적 기반을 흐려 놓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위하고 인류를 위하라

하나님은 언제나 불쌍한 분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눈물짓는 그 이상의 눈물을 짓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안식하는 때에도 하나님은 슬픔으로 이중의 한을 남기고 여러분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너희들을 그렇게 대했고, 너희들 앞에 은사로 찾아와 그렇게 인연을 맺었는데도 불구하고 고작 그 꼴이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서푼짜리도 못 된다는 거라구요.

그렇게 해 가지고 밥을 먹어? 차라리 똥을 먹는 것을 좋아하라는 것입니다. 자리에 누워 있어요? 똥바닥에 누운 것보다, 개똥바닥에 누운 것보다 더 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죽어지내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악착같은 사탄들이 와서 더욱 신나 가지고 잡아갈 것입니다. 보라구요. 여러분에게 나라가 있어요? 세계가 있어요? 뜻이 있어요? 돈 몇 푼, 몇 만원에 팔려 다니고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는 그런 무가치한 패들이 여기에 자리를 잡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조종하여 이용해 먹겠다고 하는 패들은 망하는 거라구요, 망해요. 그 자리는 하늘 앞에 심각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눈물 없이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없는 것입니다. 밥을 먹더라도 밥상이 전쟁마당입니다. 빚지는 밥을 먹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얼굴을 더럽히는 밥을 먹지 말라는 거예요.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 나온...

여러분 그거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다 체험했을 거예요. 기성교회의 예수 믿는 양반들 말이요. 그 기성교회와 우리들은 다르다구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올라가면 우리는 내려가는 거예요. 반대예요. 다르다는 거예요. 예수 믿는 사람이 기도 가운데서 예수님을 한번 만나려면 7년이상, 20년 이상 정성들여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수를 믿지만 예수를 꿈에라도 한번 보기가 힘들 다구요. 못해도 20년 내지 40년은 정성들여야 되는 거라구요. 7년을 목숨을 걸고 생식하는 놀음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사실은 이렇게 정성을 들여야 볼지말지하다는 거예요.

보라구요. 이 세상은 사탄권내에 에워싸여 있어요. 사탄은 공중권세를 잡은 자라고 말을 하지요? 어두운 세계의 왕이라고 하는 사탄이 하늘 보좌만 남겨 놓고 전부 다 점령하고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마음 대로 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타락하여 혈통적으로 씨알머리가 글러 먹었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씨를 뿌린 것이 사망의 뿌리로부터 줄기를 뻗어 가지고 잎사귀가 되어 세계에 꽉차 있는 것이 세계 인류입니다. 이것을 뽑아 내고 하나님과 인연을 맺게 하기가 쉬울 것 같아요? 보라구요. 잎을 부정 하고 가지를 부정하고 줄기를 부정하고 뿌리를 부정해 가지고 나온 새로운 씨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에 기초를 두고 그리워 눈물을 흘리되 눈이 물크러지도록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젊은 청년들이 사랑하는 애인을 그리워하며 우는 것은 문제도 아닙니다. 남자 앞에 여자가 문제되어 우는 그런 시시한 울음이 아니라구요.

지금 나라와 세계를 한꺼번에 잃고, 여편네와 아들딸을 몽땅 빼앗긴 비참한 입장에 선 것이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요? 그 원수가 하나님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칼을 들고 들어가 잘라 버릴 수 없어요. 잘라 버리면 영영 마지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이 나라를 보고 이 세계를 볼 때, 잘사는 민족이...그렇기 때문에 인류역사 가운데에는 수많은 문명이 발전되었다가 다 꺾여 나갔습니다. 그것은 전부 다 인간을 중심삼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국가까지 발전할 수 있는 축복이라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 쭉 정성을 들이면 발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성들이면 말이예요, 타락했더라도. 그렇지만 나라를 이루었다가는 나중에 전부 다 꺾여 나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 삼은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그 나라의 문화권이 세계를 위하고 인류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한 입장에 서게 되면 망하지 않습니다. 왜 인류문화가 변천하는 곡선을 그리며 발전해 나왔는가를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국가가 되지 못하고, 세계를 위할 수 있는 문명권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사탄 중심삼고 영광의 자리를 찾으려고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이 7단계를 넘어 가는 것입니다. 7단계를 넘어가면 자동적으로 때려부순다는 거예요. 이러한 발전적 과정을 거쳐 나오기 때문에 과거의 문명권은 망했다는 거예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렇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 주의는 세계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그런 것은 이방 사람이 원하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의(義)를 구하라' 라고, 이것이 표제라구요. 네 새끼들과 네 어미를 중심삼고 족속을 생각 하지 말고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겁니다. 그 나라와 의가 무엇입니까, 대한민국의 의가 무엇입니까? 세계의 대표가 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의입니다. 세계 국가의 중심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통일교회의 패들 가운데 그 골수에 배어야 할 사상이 무엇이냐? 죽게 될 때 부르짖을 말, 남길 말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위하고 세계를 위해서 죽지 못했던 내가 하나님을 위하고 세계를 위해 죽으니 감사하다고 하는 말입니다. '아버지여, 저는 당신을 위하고 세계를 위해서 왔다 가나 이다'라고...그런 사람은 천국에 가겠다고 생각할 필요도, '아버지, 날 붙들어 주소'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미 천국에 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계를 위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위하지 못하면, 저나라에 가서도 그 세계를 찾기 위해 또 싸워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나라와 세계와 하나님을 위하지 못하고 자기 가정을 위했다면, 저나라에 가서 그 가정을 끌고 갈래야 갈 수 없는 싸움길을 억만 년을 허덕이며 가야 됩니다. 그 억만 년을 중심삼고 보면, 요 지상생활은 아무리 긴긴 시간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똑딱하는 순간입니다. 돌아갈 때는 복귀예요, 복귀. 그렇지요? 돌아갈 때는 이것은 똑딱하는 순간이예요. 제일 짧은 시간입니다. 안 그래요?

이 기준에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개인이 있어야 되고, 가정이 있어야 되고, 종족이 있어야 되고, 민족이 있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국가가 있어야 되고 세계가 있어야 됩니다. 요자리엔 이것이 있어야 된다구요. 다 깨지더라도 이것은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여기서부터... 그 개인이 돌아가는 것은 가정을 대표해 돌아가는 것이요. 종족을 대표해 돌아가는 것이요, 국가를 대표해 돌아가는 것이요, 세계를 대표해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될 때는 세계를 향하여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해서 돈이 생겼을 때도 자기 아들딸에게 쓰겠다고 하면 망합니다.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써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돈이 있으면 통일교회 발전을 위해서 쓰지 않습니다. 그것을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단체는 망하지 않고 나라와 더불어 승리의 종족권을 이룰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앞으로 돈이 생기게 되면, 대한민국이 뜻 앞에 서는 날에는 대한민국을 위해서 무슨 계획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할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세 나라만 되면 한 나라는 매년마다 복귀된다는 것입니다. 경제정책도 한 3분의 1씩 나누어 미개한 나라를 위해서 세워 놓으면, 한 세 국가가 그렇게 하면 그 나라를 대번에 천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 일본 같은 나라, 독일 같은 나라, 세 나라만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일년에 세계를, 조그만 나라부터 대번에 천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렵지 않다구요. 열 나라만 되게 된다면 일년에 몇 개 국가를 복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뜻의 세계를 가려 하는 그런 무대를 바라보면서, 여러분들이 지금 등지를 틀어 가지고 행동하는 사실을 다 비판해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패들 앞에 그런 사상을 가지고 나선 스승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만이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보다 더 수고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나 자신도 밤에 잠을 잘 때는 회개하는 거라구요. '아버지, 저에게는 피곤하면 자기도 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지만, 당신께서는 6천년 기나긴 세월을 쉴 수 없는 뜬눈으로 최고로 신경을 곧게 세우고 제 갈 길을 더듬으면서 저를 위해서 수고하신 분인 것을 생각할 때, 제가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 부끄럽사옵니다' 하는 거라구요. 자고 나서도 눈물을 홀리면서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모르고 있는 통일교회의 사상적 밑바닥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이용하고, 여기에서 잘못하다가는 크게 걸린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자신의 신앙의 자세를 재검토하라

여러분이 알다시피 어떤 대학을 우리가 지금 인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돈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사무친 심정이 하나님을 울릴 수 있는 입장에 서면 기적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땅 위에서 하나님을 얼마나 통곡하게 했느냐,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눈물을 지으셨느냐?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지극한 정성을 다하는 효자 앞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새워 가며 그 아들을 축복해 주고 싶어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러한 마음을 갖고 가는 단체, 그러한 입장에 선 사나이가 있다면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결심한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은 꺾여 나가더라는 겁니다. 그것이 안 되더라도 하나님은 그 이상의 것을 갖다 주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것을 결정해 놓고도 걱정을 안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나와 있는 여러분들이 만일에 통일교회를 못 따라가게 된다면 여러분은 망할는지 모르지만 통일교회는 안 망한다구요.

이러한 등등의 문제를 두고 있는 시급한 현시점 위에서, 앞으로 남북 통일을 민족의 과제로 삼고 그 운명길을 가려 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길입니다.

가인 아벨의 복귀를 못 하면 하늘나라에 못 가지요? 부모를 못 만나지요? 그렇죠? 「예」 가인 아벨의 싸움으로 뿌려진 것이 국가적인 가인 아벨로 열매맺어 이북은 가인이요, 이남은 아벨인 것입니다. 이것의 통일권을 갖추어야 할 아벨의 사명을 완결하지 못하고는 부모를 복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복귀를 못 하게 될 때는 부모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가인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는 부모를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여러분을 대신해서 선생님이 이중적인 책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것이 좋아요? 여러분은 빚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가리느라 일생 동안 뼈가 녹아나더라도, 일생 동안 정성을 다해도 갚을 수 없는 빛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주제에 뭐 어떻고 안 알아주고…. 그것은 다 행차 후에 나발 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보다 내가 더…. 내가 여러분보다 더 고달픈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매를 맞아도 더 맞고 있는 것이요, 수난의 길을 가도 더 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을 중심삼은 사정을 가지고 가는 사람이 하늘의 수난길을 짊어지고 가는 그분 앞에서 알아주지 않는다고 탄식을 해요? 그 탄식이 얼마나 가는지 보라구요. 애원할 수 없는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가는 길은 여러분이 가는 길보다 7년 앞서 있습니다. 한 단계 앞서가는 거예요. 종족적 시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하늘은 민족적 수난의 길을 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민족이라든가 국가적 시대를 맞기 위해서는 세계적 수난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세계와 더불어 싸운 터전 위에서 복귀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현재 여러분의 신앙의 자세를 재검토해야 되겠습니다. 민족적 비운을 목전에 두고 앞으로 여러분의 결의와 이 해결점이 엇갈리게 되면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보다 여러분이 희생하고 자신을 다짐하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하늘이 가는 길에 협조할 수 없고, 따라갈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 도

아버님, 아버지께서는 통일가를 사랑하시되 세계를 위하여 희생시키고 싶은 마음을 갖고 찾아오셔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저희는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지, 이 길에 든 저희는 당신께서 저희 한 사람을 위해서 이 길을 알고 나서게 하신 것이 아니라, 삼시대를 대표해서 이 길을 맞게 하신 것임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길을 가는 도상에 있어서 저희가 '아버지여, 저를 지키시옵소서' 하는 것보다도, 아버지께서 저희를 얼마나 동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하고 계시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을 알았습니다. 동정을 받는 자리는 저희 스스로를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옵니다. 눈물을 머금고 참는 자리요 대중을 위해서 맞는 자리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자리가 '아버지여, 통일가를 그런 길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하고 또다시 바라야 할 심각한 자리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남북으로 엇갈려진 이 민족을, 아버지여, 지키시옵소서. 세계의 그 누구도 믿지 말라고 저는 외쳐 왔습니다. 미국도 믿지 못하고 아시아의 그 누구도 믿지 못한다는 것을 외쳐 왔습니다. 자주적인 민족이 안 되면 안 되는 것이요, 당신을 등에 지고 가는 민족이 안 되면 망한다는 것을 외쳐 왔습니다. 그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목전에 그 한계선이 드러나는 시기를 맞게 될 때, 등골이 보이고 살이 여윈 자리에 선 불쌍한 처지에 있는 이 나라 이 민족이 정상에 서서 그것을 알 때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알아야 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알지 못하는 현재의 참사를 직시하면서 이것을 알고 있는 저희들이 이제 결속해야 되겠습니다.

그야말로 나라를 위하여 충성할 때요, 부모를 위하여 효성을 다할 때인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의 생명을 다 바치고 전체를 제물삼아 고이 아버지 앞에 맡기고 당신을 위하여 최후의 길을 감수하며 걸어가야 하는, 마치 예수가 '다 이루었다'고 하던 그 기준을 향하여 가야 하는 심각한 자리에 놓여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를 사랑하려거든 세계를 사랑하고 나서 통일교회를 사랑하기를 바라는 것이 통일사상이 부르짖어 온 것입니다. 하오니, 아버지여,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통일교회를 채찍질하여 이끌어 주시옵소서. 통일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채찍질하는 것보다도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통일교회를 채찍질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이것이 전통적 사상이요, 아버지가 찾아오신 길인 것을 생각하옵니다.

이 시간 저희들이 마음으로 아버지께서 가시는 길을 바라볼 때, 불쌍하신 아버지라는 것을 느끼옵니다. 불쌍하신 아버지이옵니다. 저희가 아무리 비참한 환경에 몰아침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연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 몸뚱이를 중심삼고 아내 앞에 자기의 사랑을 강요하는 그런 불쌍한 사나이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식을 중심삼고 볼 때, 부모의 사연 대로 효의 도리를 다짐하게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종교를 지도하는 책임자의 입장에서 자기의 행복과 자기 종족 일당의 행복을 위해서 그들의 갈 길을 다짐하게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전체를 위하여 다짐하게 하고, 전체 앞에 희생할 각오를 하게 해 가지고 내몰아야 될 길이 복귀행각의 슬픈 노정인 것을 저희들은 압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지금까지 손발을 움직였던 것과 오관을 통하여 느낀 모든 감정이 아버지와 상치되었음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제 이 눈을 통하여서는 아버지를 직시해야 되겠습니다. 뚫어지게 응시해야겠습니다. 그 가운데 아버지의 형상을 또렷또렷하게 바라보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손으로 모든 것을 만져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추악한 사탄권내의 것을 만져 왔지만, 이제는 아버지의 사람을 만지고, 아버지의 제단을 만들고 아버지의 것을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크든 작든간에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저희의 일신 전체가 그러한 과거를 지내 왔기 때문에, 이것을 밟고 올라서 가지고 당신과 일체화할 수 있는 승리의 모습을 다짐하여, 아버지께서 따라오셔서 의논하고 싶을 수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그리워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 이곳을 그리워하면서, 스승을 그리워하면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고 있사오니, 그 곳곳마다 당신이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후는 녹음되어 있지 않아 정리하지 못했음)

​보리밥을 먹든 하꼬방에서 살든 그건 문제가 아닙니다. 온갖 참사를 개의치 아니하고 전부를 투입시켜 가지고 그 환경을 수습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다가 죽었다면, 자기 명(命)이 다 되어 죽은 것이 아니라 원수에게 죽었다면 '그 사람 잘 죽었다' 그러겠어요? 그 사람이 자기 때문에 죽었는가, 남 때문에 죽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전체를 위해서 싸우다가 침해를 받아 죽었다 할 때는, 전체를 위한 그 내용이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그의 이름은 빛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남을 위해 산 사람은 많은 사람의 추앙을 받는다

사람은 누구나 잘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게 뭐 있어? 그저 적당히 해 가지고 살지, 국민을 위해 살면 뭘 해? 까짓 거 내가 일생 동안 잘살기 위해서 국민들을 좀 고생시키면 어때?' 하는 군왕이 있다면 온 국민은 그 왕을 추방할 것입니다.

자기의 영광만을 위해 수고한 그런 왕이 죽었다면 국민들은 잘 죽었다고 하겠지만, 전체의 영광을 위해서 희생한 군왕이 있다 하면 그 군왕의 이름을 청사에 길이 남기고자 하는 것이 인간들의 바람이 아니겠느냐?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예」

자기를 위해 살다가 죽으면 이름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다구요. 그렇지만 남을 위해서 살다가 죽으면 남아요, 안 남아요? 남을 위해 살았던 터전이 마을이었다면, 그 마을의 이장이나 뜻 있는 사람들이 그의 죽은 날을 기념해서 추도식을 해줍니다. 혹은 군을 위해서 살다가 죽은 자가 있다면, 그 군민들이 합해 가지고 추도식을 해주는 것입니다. 혹은 전라남북도를 위해서 살다가 죽은 사람이 있다면 전라남북도의 유지들이 합해 가지고 추도식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추도식을 하면서 무엇을 하느냐? 그분이 남겨 놓은 사상과 그분이 남겨 놓은 공적인 모든 행적을 우리들도 이어받겠노라고 선서하면서, 그와 더불어 사상적으로 일치되고 생활적으로 일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분의 생애 가운데 투쟁과정에서의 모든 내용을 다시한 번 그리면서, 그렇게 되기를 다짐하면서 추도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또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서 희생한 사람이 있다면, 더 나아가 대한민국 대통령보다 더 희생한 사람이 있다면…. 대통령으로서 자기 개인의 향락을 위해서 살아간 대통령과 비록 평민이지만 대한민국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 자기 일생을 바쳐 죽어간 애국자와 비교해 보게 될 때, 같은 시대에 살았더라도 자기를 위해 살았던 대통령의 이름은 남지 않지만 전체의 영광을 위해 산 그 사람의 이름은 남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중이면 삼천만 민중이 그를 중심삼고 추도를 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지요?「예」

아까 말한 마라톤 대회에 참석한 선수와 마찬가지로, 뛰다가 한 5분 동안 자기를 중심삼고 쉬었다면 그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쉰 것으로 끝나지만, 남을 위해서 5분 동안 쉬었다면 그것은 청사에 길이길이 빛나더라. 그것은 틀림없어요. 알겠어요?「예」

'생각하니 기분 나쁘다. 뭐 남을 위해 살아?' 할지 모르지만 역사적으로 보게 되면, 남을 위해 산 사람의 자료는 수집해서 남기려고 하고, 자기를 위해 산 사람의 것은 아무리 자료가 많더라도 쳐 내려고 하는 겁니다.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그렇게 되어 있어요?「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역사가 그렇게 걸어왔습니다.

나를 위해 사는 사람과 남을 위해 사는 사람

여러분, 동네의 어떤 한 사람이 자기를 위해서 밤낮으로 일을 한다고 합시다. 요즘에는 새벽 몇 시에 해가 뜨나요? 다섯시 지나서 여섯시 전에 뜨지요?「예」 해가 여섯 시 전에 뜨는데 그 사람은 네 시면 일어나 가지고 남이 자는데도 불구하고 소리를 내며 부산스럽게 자기를 위해 일을 해요. 또 밤에도 열두 시가 지나도 쉬지 않고 일을 해 가지고 근근히 돈을 모으고 해 가지고 재미있게 살게 되었다 이거예요. 그 사람은 일생 동안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집간이나 갖게 되고, 요즘으로 말하면 차도 한대 갖게 되었을 거고, 쌀독에 쌀 몇 가마니는 들어 있을 거라구요.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고 보자는 거예요.

그런데 그 동네에 또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자기 집은 돌보지 않아요. 자기 부인이나 자식은 생각지도 않고, 눈만 뜨면 그저 남을 위해 봉사를 해요. 그 동네뿐만이 아니라 면을 위해서, 군을 위해서 새벽부터 일어나 가지고 다니면서 좋은 일을 하는 거예요. 이렇게 일생 동안, 나중 에는 밥을 얻어 먹으면서도 그 놀음을 했다 합시다. 예를 들어 말하면 그렇게 됐다 이거예요.

일생 동안 봉사하다 보니 주머니에는 돈 한푼 없고, 손수건 한 장 남지 않았어요. 난 손수건 좋은 것 갖고 있는데 말야. 지갑을 꺼내려고 손을 넣어 보면 주머니를 무사통과하여 손이 나오는 그런 옷을 입고 있어요. (웃음) 그 뿐만이 아니라 여름에는 베옷을 입고 살아야 할 텐데 솜옷을 입고 살고. 옷이 없으니까. 얻어 입는데 자기 마음에 맞게 얻어 입을 수 있어요? 또 겨울에는 솜옷을 입고 살아야 할 텐데 베옷을 입고 사는 거예요. 여러분 그거 원해요?

오늘 여기에 온 사람들 '내 오늘 여기 왔더니 기분 나쁜 말만 한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 섭섭하다구요. (웃음)

이렇게 살다가 죽게 되었을 때 여편네나 아들딸이 밥 담아 먹을 밥바리가 있어 가지고 밥을 담아 먹게 안 되어 있다구요. 깨진 사발 하나 남겨 놓고 숟가락도 부러지다 부러지다 더 부러질 데가 없는, 부러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숟가락이 전부 다라구요. 뭐 그런 숟가락이야 없겠지만 말이야, 남비 쪼가리 하나 남기지 않고 다 쓸어 먹고 다 닦아 먹고 갔다는 거예요.

이런 두 부류의 사람이 있을 때, 여러분은 누구를 따라가겠어요? 저대로 살다가 집칸이라도 남기고 간 사람 따라갈래요, 지지리 망해 가지고 알거지가 된 사람 따라갈래요? 어느 사람 따라갈래요? 똑똑히 대답해 봐요. 물어 보면 대답 좀 하고 넘어갑시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손님 대접을 잘해야 복받는 거라구요. 자, 어느 사람 따라갈래요?'왜 하필 그런 비사의 말을 해놓고 대답하기 어렵게 물어 보는 거예요? 하겠지만 그게 재미있다구요, 그게. (웃음) 여러분은 너무 커서 점수를 많이 받을 만해서 그럴지 모르지만, 국민학교 아이들이나 유치원 어린이들한테 이렇게 물어 보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생각해 봤어요?

일생 동안 자기를 생각지 않고 매양 남을 위해 살다가 죽어간 사람과 남은 어떻든간에 매양 자기만을 중심삼고 살아간 사람, 이 두 사람의 결과를 두고 볼 때에 어떤 사람이 더 나으냐? 남을 중심삼고 산 사람은 형편없다구요. 그건 어느누구든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 분도 그럴 겁니다.

그런데 국민학교 학생이나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어느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냐고 물으면 어느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겠어요? 남을 위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왜 자기를 위해서 살면 훌륭한 사람이 아닌가요? 밥도 잘먹고, 옷도 잘입고 잘살지 않아요? 배도 안 고프고, 겨울에는 따뜻한 방에서 자고, 여름에는 시원한 데로 피서도 갈 수 있는데, 왜 그래요?

왜 역사는, 먼저 사람보다도 나중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느냐? 그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이의 있어요? 이의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 말이 틀렸다면 손들어 보세요. 손드는 사람은 모듬매 맞아 죽어야 된다구요. (웃음) 그것만은 여러분이 다 안다구요. 그렇지요? 틀림없지요?「예」

아하! 세상사가 다 어쩌자고 이렇게 되었나? 이게 무슨 놀음이야? 자기 혼자 잘살겠다고 해서 잘살다 간 사람하고, 잘살려고 하면서도 지지리 못살고 간 사람하고 두 종류가 있는데, 잘살다 간 사람과 지지리 못살고 간 사람은 표준이 다릅니다. 후자가 바라보는 목적관은 전체를 위해 있는 것이요. 전자는 자기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거예요.

그러면 역사상의 성인 군자들은 어떤 사람이냐? 이게 문제라구요. 이렇게 말하다가는 시간이 많이 가는데 시간을 좀 짧게 할까요, 길게 할까요?「길게 해요」 나도 힘드는데 여러분도 많은 사람이 오래 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아플 텐데, 아프지요?「안 아픕니다」 수고로운 사람을 동조하는 것이 선한 일이니까 될 수 있으면 시간을 짧게 하는 것이 타당한 일이지요?(웃음) 그렇지요?「아닙니다」 아니예요?「예」 말씀을 짧게 하면 여기 서 있는 사람은 좋다구요. 이제 이마에 땀이 나려고 하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임자도 힘든데 뭐 그렇게 할 필요 있어?'적당히 넘어가면 되지' 그거 원해요, 원하지 않아요?「원하지 않습니다」 원하지 요?「아닙니다」 힘든데도 원하지 않아요?「예」 이게 이상하다는 거예요. 힘드는데 무엇 때문에 원하는 거예요?「얻는 게 많습니다」 얻는 것이 많아요?「예」 그거 얻어서 뭐 하려고요? 머리가 능숙해 가지고 도둑질하고 사기꾼 되면 어떻게 하라구요?(웃음) 그래서 그래요? 그렇다면 아예 내가 나타나지도 않아야 된다구요. 아무 때 아무개 그 양반이 나와서 말할때 우리 동네 누가 갔다 오더니 머리는 뭐. (녹음이 잠시 끊김)

같은 행위라도 동기에 의해 그 가치가 달라진다

그러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여기 온 사람을 다 악한 사람이라고 하면 기분 나쁠 거예요. 눈을 요렇게 뜨고 보는 사람을 보게 되면 선한 것 같지만 진짜 선한 사람이 있을 성싶지 않다고 아까 말했지요? 그럼 전라남북도 도지사 두 양반이 합의해 가지고 전라남북도를 대표할 수 있는 인격자를 뽑았다고 할 때, 그가 대한민국에서 일등할수 있어요? 각도의 대표들과 겨루면 요것 될 수 있지요, 요것? 요게 무언지 알지요? 꼴래미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꼴래미 될 수있다구요.

그러면 대한민국에서 일등 되는 사람이 세계에 나가 일등할 수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뭐 전혀 없다는 말이 아니예요. 일등할 가능성은 있지만 지내 봐야 안다는 거예요. 해봐야 아는 것입니다. 일등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 사람이 이만큼 두껍다면 대한민국에서 뽑힌 사람이 그 사람보다 한 꺼풀만 더 두꺼우면 일등이예요, 일등 아니예요?「일등입니 다」 한 꺼풀이 아니라 종이 한 장만큼만 더 두꺼워도 일등이예요, 일등 아니예요? 한 장의 백 분의 일만 두꺼워도 일등이예요, 일등 아니예요?「일등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일등하고 이등하고의 차이가 얼마나 되느냐? 거의 없습니다. 요즘에는 그렇잖아요? 야구 경기할 때 아웃(out)하고 세이프(safe)를 잘가리지 못할 때는 그 장면을 빠른 속도로 촬영해 두었다가 일초의 몇백 분지 일의 기준내에 잡힐 수 있게 해 가지고 그것을 가립니다. 그런 식으로 일등 이등을 가려 가지고 이등이 되면 기분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세계적인 무대에 나가 그렇게 해서 일등을 차지하지 못했다면 기가 막히겠지요?

거 일등 못 한 원인이 뭐냐? 연습을 하다가 동무가 와서 '야 아무개야, 오늘 좋은 일 있으니 나하고 가자'고 하면,'친구들 끼리 사연 들어주지 못할 게 뭐 있나' 하며 바랐던 듯이 '어 그래. 어서 가세' 해 가지고 하루 동안 연습 못 함으로 말미암아 이등이 될 수 있다구요. 안 그래요? 하루동안 연습 못 한 것이 천년 한을 맺히게 하는 결과가 되더라는 거예요. 하루 뿐만이 아니라 한 시간, 한 순간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천년사가 망쳐질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 감옥에 들어가 보면 말이예요. 선생님은 경험자입니다. 감옥을 들락날락하고 지금까지 이런 놀음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감옥에 척 들어가 보면 말이예요. 형무소 들어오겠다고 생각하고 들어온 사람은 한명도 없다구요. 있을 것 같아요? 감옥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그 놀음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또 감옥이 얼마나 지독하다는 것을 안다면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안 하지요?「예」 감옥에 들어오겠다고 해 가지고 들어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구요.

감옥에 들어오게 된 동기를 헤쳐 보면, 계획적으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배워 가지고 나온, 그런 동기를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어느 시장 거리 지나다가 친구를 만나 가지고, 친구가 '얘, 아무개야, 이렇게 한번 하면 수가 난다. 내 말만 들으면 그저 일생 동안 다리 뻗고 편하게 살 수 있다'고 하니까 '그래? 한번 가 보자'고 했던 욕심 많은 패들이 들어온 거예요. 한마디 말을 건넬 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쪽으로 따라가기 시작한 것이 동기가 되었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는 집안 다 망쳐 버리고, 자기 일신 다 망쳐 버리고, 자기 여편네 아들딸 할 것 없이 다 망치게 해 놓고는, 감옥에 들어와 앉아 가지고 '아이구' 하며 후회하는 사람 참 많이 봤습니다. 혼자 한숨 쉬고 있다구요. 생각해 보니 기가 막히거든. '그 순간만 안 움직였으면 죄를 짓지 않았을 텐데. 아이고 요 순간이 문제로구만…' 이러면서 신음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흥망성쇠의 동기는 몇 천년 중심삼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똑딱' 하는 순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거예요. 알겠어요?「예」

똑딱하는 순간에 결정되긴 되는데, 같은 사건, 같은 현장에서 자기보다 남을 위하다 그렇게 된 사람이 있다면 오로지 자기 욕심을 채우려다 그렇게 된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생각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고아원 원장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고아원 원장은 수백 명의 원아들을 거느리고 먹이고 입히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는 사람인데, 겨울은 다가오고 입힐 옷가지는 없는 딱한 사정에 처해 있을 때, 좋은 수가 난다고 하니까 따라가 동조를 해 가지고 사건에 걸려 들어갔 다면, 이렇게 될 때는 내용이 다르므로 결과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공판정에 나가 재판을 받는다 할 때,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 죄를 저지른 사람은 그 걸어온 길이 어느누구에게도 비판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소질이 있기 때문에 동정의 여지가 없지만, 고아원 원장의 경우는 그 걸어온 길이 자기의 욕심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 수백 명 원아들의 생명을 책임진 입장에서, 다가오는 동절에 입힐 것을 마련 하기 위하여 허덕이다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친구라고 믿고 나섰다가 이런 결과를 당했으니 재판장의 판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 두 사람이 똑같이 그런 자리에 갔더라도 한 사람은 용서할 수 없으니 처단의 형을 선고할 것이지만, 다른 한 사람에게는 '이 사람은 선의의 피해를 입은 자며, 우리 국민 중에는 이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많아야 될 것이다'고 강조하고 나서 무죄를 선고할 것입니다. 재판장이 이런 선고를 했다고 해서 거기에 모인 청중이 5백 명, 5만 명, 5십만 명, 5천만 명이라고 해도 '때려죽여라, 이놈의 재판장. 쳐버려라' 그러겠어요? 오히려 청중은 불쌍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의 진술을 들을 때, 동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청중이 그 사람을 구해 주기를 바랐던 찰나에 그런 선고를 했다면 모두 좋아할 거라구요. 그렇지요? 이러한 결과가 벌어진다는거예요.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왜 대중이 그 사람을 옹호하려고 하고, 왜 대중이 그의 앞길이 펴지기를 바라고, 왜 대중이 그 사람의 변호인의 입장에 서고자 하느냐?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뇨? 그것을 부정히하는 날에는 역사의 가는 길은 꺾어지고 마는 것이요, 인간들이 소원하는 선의 작용은 종말이 나 버려 가지고 함정에 떨어져 사망의 세계로 추락되고 만다는 것을 은연 중에 우리 양심은 알기 때문에, 그러한 편에 서려고 하는 것이요, 그러한 것을 추구하는 본성의 작용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남을 위하려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점수를 주신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은 모두 '오늘 선생님이 광주에 오신다니까 가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오신다니 가야지. 그럼 안 가? 통일교인인 내가 가야지. 가긴 가야 되는데 어떻게 가나, 타고 갈 차가 있나?' 하는데 여기 차 있어요, 없어요? 여기는 외길이니 들어왔다 가는 나갈 데가 없지요? '그냥 차를 타고 갈 것이 아니라 차 가운데에 일등 차를 타고 가야지. 가다가 점심이나 저녁 때가 되면 식당에 가서 고급요리를 먹으며 가야지' 해 가지고 온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반면에 선생님이 광주에 온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때부터 여기에 오기 위해서 밤잠을 못 자고, 그런 사람도 있다구요. 가진 것이라고는 옷 한벌밖에 없고 그걸 팔아 봤자 차비의 절반도 안 되겠으니 부족한 차비를 보태기 위해 노동판에 나가 땀을 흘리고 수고를 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나마 한푼도 없어서 소식을 듣자마자 여기에 오기 위해 피땀을 흘리며 노동을 하는 등, 차비를 준비해 가지고 오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인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어머니가 가겠다고 할 때에 아들딸이 혹은 남편까지 '당신이 갔다 오소. 어머니 다녀오세요' 하면서 그 가족 전체가 하나되어 가지고 어머니를 보내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인 가정도 있을 것입니다. 또 우리 교회에서는 다 못 가니까 한 사람이라도 보내자고 해 가지고 교회 전체가 단결해서 한 사람을 보내기 위해서 정성을 들인 교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여기에 참석한 5백 명이면 5백 명의 사정적 배경이 전부 다 다르다는 거예요.

여기 올 때, 어떤 사람은 일등 차에 일등 양요리를 먹으면서 광주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광주교회까지 편하게 쓱 와 가지고, 맨 앞에 앉아 선생님의 얼굴에 있는 기미까지 보겠다고…. (웃음) 왜 웃소?(웃 으심) 사람은 자극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인상에 남으라고 내가 표정을 지어서 이렇게 하는 거예요. 잊어버리지 말라 그 말이라구요. 보기 싫지만 이런 인상을 안 할 수 없다구요. 알겠어요?「예」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예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한게 아니예요. (웃으심)

자,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늦었다고 안달복달하다가 택시를 잡아 타고 '아이구, 시간이 몇 시인데, 어서 가요, 어서' 하면서 차간에서 싸움을 해 가지고 '이놈의 시골 여편네가 광주 처음 오는 모양인데, 왜 이리 급해? 아이구 기분 나빠. 아이구 기분 나빠' 하는 운전수의 푸념을 들으면서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자, 이랬다면 오는 길에 그 운전수에게 좋은 일 했어요, 나쁜 일 했어요? 하루 종일 기분 나쁘게 했으니 좋은 일 했어요, 나쁜 일 했어요? 일대일로 보면 나쁜 일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가는 목적이 뭐냐? '내가 전체를 대표해 가지고 남편을 대표하고 아들딸을 대표하고 교회를 대표하여 왔는데 제일 첫 시간부터 한 말씀이라도 놓칠소냐? 선생님의 표정까지 그대로 보고 돌아가 전해야 하니 일 초라도 늦으면 안 되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운전수를 재촉하여 못살게 했다면 거 잘했어요, 못했어요?「잘했습니다」 정말이예요?「예」 난 모르겠는데. 암만 생각해도 잘 모르겠어. (웃음)

자기를 위해 그랬다면 그건 나쁜 거예요. 처녀로 말하면 말씀 들으러 가서 좋은 신랑을 만날 수 있는 가망성이 있겠기 때문에 그랬을 때는 빵점입니다. 내가 이렇게 가는 것은 전체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이럴 때에는 남을 위하지 않는 사람을 천대해도 죄가 안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좀 고통을 준다 하더라도 그것은 벗어날 길이 있더라 그 말이예요. 그런 것은 알지요?「예」

자, 그러면 하나님은 다 아시는 분이라 할 때 여기에서 어떤 사람을 일등으로 뽑으실 것이냐? '아, 나는 아무 군의 군수를 하던 존재다' 혹은 '나는 무슨 소장하던 경력이 있는 양반이다. 그래도 내가 면에서 에헴하면 예이하고 대답하는 사람인데,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이 와 가지고 이야기를 뭐 그렇게 하누' 하면서 줄거리가 닿느니 안 닿느니, 말을 잘하느니 못 하느니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구요. (웃으심) 이런 사람 저런 사람, 한 5백 가지 뭐 요지경이 있을 거라구요.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내가 이 하루를 맞기 위해서 일생 동안 수고한 것이 얼마나 보람이 있는고! 조금 더 수고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며 눈물을 흘리며 훌쩍훌쩍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정반대라구요.

이런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할 때, 하나님께서 점수를 매기신다면 어느 쪽에 점수를 높이 주시겠는고? 여러분은 어때요? 이랬다면 여러분은 자리를 못 잡을 게 아니냐 이거예요. 그렇지요? 하나님이 일등을 준다면, 제일 비참한 자리에서 수고를 하면서 올라 온 사정이 딱한 사람, 자기 개인 사정이 아니라 전체의 사정을 대표해 가지고 기가 막힌 사연을 가지고 온 사람일수록, 몸들 바를 몰라 그 사정 앞에 자기 일신을 망각해 쓰러질 순 있는 환경에 처한 사람일수록 그 사람에게 일등을 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 말이 맞소, 안 맞소?「맞습니다」 그런 사람을 빼놓고 다른 사람에게 일등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일등을 준다면 하나님의 멱살이 있다면 내가 그 멱살을 잡아당길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여보, 여보'라고 한다구요. 그러면 하나님은 '이놈?' 할 것인데 그때'왜 이래' 하며 반말도 할 수 있다구요. 그럴 때는 그렇게 해도 걸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공적인 입장에 선 사람이예요, 사적인 입장에 선 사람이예요? '왜 이래' 한 사람은 정당히 공의를 판단해 가지고 공적인 입장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야, 이놈아. 내가 졌다. 이 미욱한 자식' 그러시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도리어 칭찬하셔야 한다는 거예요. 그럴 게 아니예요?

자, 그러면 선생님 말씀을 가만히 들어 보니까 고생스럽게 온 사람일수록 점수가 낮다?「높다」 높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고생하고 온 사람이 점수가 높고, 고생을 하면서도 남을 위하는 마음, 전체를 위하는 마음의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점수가 획 올라가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것은 비약하는 거예요. 도약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역사는 이렇게 되어 가지고 분별되어 나오고 생활 환경에 있어서 선악은 이런 환경을 통해 제정되고 설정되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활 감정이나 환경에서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연들이 엉켜 있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누구나 선한 사람 되기 원하나 많은 노력이 필요해

아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얘기를 했는데, 나쁜 사람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가 죽어 넘어지면서 '아이구. 여러분이 손을 안 드니까 내가 죽겠소. 손들어요' 한다고 해서 손 들겠어요? 만약 나쁜 것을 원하는 사람 손들라고 했는데 한 사람도 안 들어 선생님이 죽게 되었다고 해서 손들겠어요? 그런 때는 죽어도 들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렇지요? 들겠어요, 안 들겠어요?「안 듭니다」 안 들어요? 무정하구만. (웃음) 무정해도 좋다는 거예요. 무정하다고 선생님이 기분 나쁘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래야 되는 겁니다. 그 무정은 내가 환영하는 바입니다.

'선한 사람 되기를 원하는 사람 손들어라'할 때 안 올리는 사람 없겠지요? 가만 보니까 전부 손들 준비를 하고 있군요. 이러다가 선생님이 손들라고 할 거라고 생각하고 손을 들 준비를 다 하고 있어요. 그건 물어 볼 것도 없습니다. 선한 사람이 안 되고 싶은 사람은 없는 거예요. 다 되고 싶지요?「예」

선한 사람이 다 되고 싶은데 되었어요, 못 되었어요? 되었어요, 못 되었어요?「못 됐습니다」 왜 못 되었어요, 왜? 그래서 다시 되어 보려고 하는 겁니다, 악한 사람은 안 될려고 해도, 어때요? 악해지는 것은 원하지 않아도…. 악한 사람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구요. 지금 이런 말을 듣고 나가다가도 아기 밴 아주머니가 있으면 '이게 뭐야'하며 차 버리면 그거 악한 사람이예요. 아니예요? 생각은 무슨 생각이예요? 순식간에 악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러나 선한 사람은 순식간에 돼요?「안 됩니다」 선은 순식간에 안 돼요.

악은 순식간에 결정되고 순식간에 판결되고 순식간에 거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선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은 순식간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이라는 것은 순식간에 밑도 뿌리도 없이 되는 법이 없다는 겁니다. 악은 밑도 뿌리도 없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후다닥하면 악이라구요. 안 그래요? 악은 밑도 뿌리도 없이 순식간에 되지만 선은 밑도 뿌리도 없이 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선을 바라는 사람은 일시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가 입증하는 것입니다. 전후 좌우 상하 생활을 중심삼고 인연을 만들어야 됩니다.

앞을 바라보게 될 때 막히게 되면 막힐 때까지는 선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뒤를 바라볼 때도 막히면 막히는 범위만큼 선입니다. 앞을 바라볼때 영원히 막히지 않는다면 기분 좋아요, 안 좋아요?「좋습니다」 또, 뒤를 바라볼 때 영원히 막히지 않는다 하면 기분 좋아요, 안 좋아요?「좋습니다」 그 다음에 좌우를 바라볼 때 영원히 막히지 않는다면 좋아합니다. 또 아래 위를 바라볼 때 영원히 막히지 않는다 하는 자리를 좋다고 합니다. 그거 원해요, 원하지 않아요?「원합니다」 야, 그럼 얼마나 신날까?

여러분 잘 알아야 돼요. 선은 순식간에 되는 법이 없습니다. 선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과거로부터 이어받아 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한 거예요. 그렇지요? 학교에 가서 배워야 됩니다. 뭘 배우느냐? 자고로 역사과정에 있어서 선의 길을 닦기 위하여 희생한 사람들은 잘살고 간 사람이 아니라구요. 그러니 희생하고 간 사람들의 역사적 사상을 이어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일등 충신

그러면 대한민국에 있어서 애국자는 어떤 사람이냐? 충신은 살아서는 될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죽기 전에는 충신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살아서 충신이지 왜 죽어서 충신이야' 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충신이 많아서 한 백 명쯤 된다고 합시다. 그 중에는 실적으로 볼 때 맨 꼴래미(꼴지), 그때까지 뭐 충신 될 만한 역사가 없는 그저 맨 비리비리한 꼴래미가 있었는데 비상시국을 당한 한때에 그 나라를 위해서 백 사람의 충신이 같이 싸우는데 지지리 못난 충신이 그 전쟁에서 죽었고.

그 사람이 죽고 나서 그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합시다. 그렇게 될 때는, 물론 참전은 충신 백 명이 다 했고, 싸우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도 전과를 많이 올렸겠지만, 이 전쟁에서 제일 충신은 아흔 아홉명을 다 제쳐 놓고 생명을 바친 지지리 못난 충신이 최고의 충신의 자리에 올라가는 법입니다. 돈을 바치고 생애를 바쳤다 하더라도 생명을 못 바치면 생명을 바친 사람 앞에는 충신의 면목을 갖추고 나설 수 있다, 없다?「없다」 알긴 아는구만, 없다는 거예요.

목숨을 바치는 데도 얼마만큼 비참하게 바쳤느냐 하는 내용에 따라 등급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만일 세 사람이 같이 죽었다 하게 될 때, 한 사람은 유탄에 맞아 죽고, 또 한 사람은 접전하다가 수백 군데를 찔려 가지고 죽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적진 맨 앞에서 싸우다가 포로가 되어 귀를 잘리고, 눈을 뽑히고, 코를 찢기고, 혀를 잘리고, 손가락도 마디마디 잘리고, 팔다리를 잘리고 해서 몽동발이 사람이 되어 그 몸뚱아리가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나중에는 개밥이 되어 죽었다 할 때, 총을 맞아 죽은 사람하고 찔려 죽은 사람하고 개밥이 되어 죽은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일등 충신이예요?(웃으심 ) 그런 경우는 없겠지만 지독하면 지독할수록,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가치가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정말 그래요?「예」 나 여러분한테 배웁니다. 정말 그래요?「예」 정말?「예」 알기는 다 아는구만, 나만 아는 줄 알았더니, (웃음) 그렇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한 거라구요.

그런데 끌려 다니다가 개밥이 되어 죽은 충신이 '아이 내가 할수없어 죽소. 군왕님, 나 좀 도와주지 않고 이렇게 모른 체하여 죽게 하십니까' 하면서 죽었다고 합시다. 그럴 때는 충신이 돼요? 충신이 될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사실이 다 드러나는 날에는 '이놈, 고약한 놈, 충신의 역사를 흐려 놓고 충신의 희생의 제단을 빼앗아 가려는 도둑놈'이라고 한다구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야, 내가 집회에 나오는데 이렇게 천지가 뒤집혀지는 결과가 나올 줄 미처 몰랐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자기가 모시는 군왕을 중심삼고 '그분의 팔이 찢기는 대신 내 팔이 찢겨야 되고, 그분의 눈이 뽑히는 대신 내 눈이 뽑혀야 되며, 그분의 비참한 죽음 대신 내가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고 죽었다면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 사정을 알아 '나를 제물삼아 군왕이 해방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죽나이다' 하고 죽은 그 사람을 억천만세에 길이 길이 빛나는 충신의 반열 중에서 첫째로 꼽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충신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은 충신이 있다고 하면, 그 이후에 아무리 치열한 전쟁이 있어 거기에서 총을 맞아 쓰러진 충신들이 있다 해도 이 충신 앞에 얼굴을 들고 나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으뜸 되는 충신의 반열을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군왕을 모시기 위한 으뜸 되는 사상과 군왕이 다스리는 국민을 위해서 제물이 되겠다는 사상을 가지고, 자기는 털끝만큼도, 먼지 하나만큼도 없이 전체를 바치는 자리에서 죽어갔다 할진대는, 그 충신의 절개는 그 역사가 없어지더라도 다른 나라에서라도 모셔다가 ㅠ그 정신을 자기 나라의 정신으로 이어받을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생겨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건 기가 막힌 겁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인물은 어떤 사람이냐? 세계적으로 우승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누구보다도 극한 고생을 극복할 수 있는 절정에 서 가지고 자기 나라를 위하고, 자기의 신념을 꺾지 않고 원칙적인 표준에서 일방통행하는 사람입니다. 일방통행 좋아요? 일방통행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여러분, 택시 타고 갈 때, 바쁠 때 이렇게 가면 금방 갈 수 있는데 일방통행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그럴 때 우리 통일교인 같으면 '아이구 이놈의 사탄아' 그러지요?(웃음) 그거 기분 나쁘다는 말이예요.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 일방통행, 사방통행이 아닌 일방통행한 사람은 청사에 길이길이 남아지고 성인의 반열에까지 무난히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인가

이렇게 보게 될 때 도대체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이고, 도대체 악이 뭐예요, 악이? 요걸 알아야 되겠다고요. 악이란 대관절 어떤 것이냐? 악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세워 가지고 세계를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이 악입니다. 하늘과 땅의 원리원칙도 모르고, 모든 이치도 부정하고, 사회의 모든 공법도 부정하고, 내가 나가서 내 마음대로 이 세상을 어떻게 해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순식간의 일생을 갖고 태어난 한 생명체가 과거도 몰라보고, 현재도 몰라보고, 미래도 몰라보고, 나만 잘되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장구한 인류역사를 두고 보면 인간의 일생이라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순식간이지요?「예」 그렇게 순식간의 짧은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고 성인이고 뭣이고 나는 몰라. 내 주먹이 제일이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모도 모르고…. 인간의 심판은 죽어서도 받지만 살아서도 받습니다. 살아서도 받고 죽어서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영원에 비하면 순식간입니다. '내가 태어나기는 잘살려고 태어났는데…. 내가 제일인데' 그러는 청년들 요즈음 많지요? 여기에도 그런 사람 참석했을는지 몰라요. 참석 안 했기를 바라지만 그런 사람이 없다고 믿고 싶지만, 그랬던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구요. 그렇지요? 통일교회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안 됐지, 여기에도 내가 아는 사람이 있다 구요. '내 주먹밖에 없지. 하나님이 뭐야. 대통령이고 나라가 뭐야. 전주 바닥 광주 바닥에서는 내가 제일이지. 주먹만 휘두르면 즉각 효과가 백퍼센트 난다. 배고플 때도 소리 한 번만 지르면 밥도 몇 그릇씩 날라온다' 하는 거예요. 그거 기분 좋지요. 뭐, 사실 기분 좋지요? 이런 패들은 어떻게 되느냐?

즉각적인 행동, 즉각적인 행락을 추구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선은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법이 없더라 이거예요. 알겠어요? 요걸 알아야 돼요. 선에는 역사가 있는 거예요. 선에는 의리가 있는 거예요. 의리가 있기 때문에 시대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미래가 있는 거예요. 역사에 치우치지 않아야 되고, 수많은 역사상의 위인들이 가려 간 공적인 생애노 정을 이어받아야 됩니다.

위인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 자기를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이 위인이 된 경우는 없습니다. 남을 때려 눕히다가 칼침 맞아 죽은 사람이 위인이 됐어요? 나라라든가 민족이라든가 하는 전체를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친 사람이라야 위인이 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역사의 주추가 되어 그 역사를 통해 가지고 높은 데로 발전시키는 데 공헌했더라 이겁니다.

공적 생활을 하면서 공적 희생과 공적인 파괴를 영광으로 알고 자기 스스로 맞아 간 사람 '나는 희생되지만 내가 바라던 세계는 목적하던 것이 필시 이때를 지나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그때가 올 것을 바라면서 자기를 희생시켜 간 사람의 그 범위가, 국가적인 입장에 서게 될 때는 애국자가 되는 것이요, 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세계적인 입장에 서게 될 때는 위인을 넘어서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인은 세계적인 사람입니다. 사랑을 해도 민족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현재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까지, 영원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과거로부터 소원의 실체로서 바라던 현재의 입장, 만민이 그러한 중심을 요구했던 대로 현재의 입장에서 살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는 데 있어서 자기 일신이 잘살겠다는 관념을 처음서부터 뿌리치고, 무한히 희생을 하겠다는 관념을 가지고 나 하나를 희생하여 전체가 잘될 수 있는 하나의 기초를 혹은 초석을 놓고 죽겠다고 한 사람들이 역사상에 남은 성현들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성인치고 세계적인 사람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성인의 반열에 들 수 있으려면

여러분, 성인이 몇 사람입니까? 한번 불러 보라요. 「예수」 통일교회 패들은 예수부터 부르는 게 아니라구요. 남을 먼저 생각해야지요. (웃음) 여지껏 듣고서 그래요? 들었으면 응할 줄 알아야 맛이 나지요. 예수도 성인 이지만은 그래도 의리가 있고 미래를 생각한다면 말이야….

동네에 잔치가 벌어지면 잔치상을 받을 신랑이 오기 전에 거지들을 먼저 잘 대접해야 된다구요. 신랑이 잔치상 받을 때 부산 피우면 어떻게 해요?'주인이 나 떡 한개 안주었으니, 신랑님, 나 떡 한 개 주소'하면 그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면 큰일나거든요. 그렇지요. '아이구, 집안 망신이구만','아이구, 장가 잘못 왔구만' 한다는 거예요. 색시가 아무리 미인이고 뭐가 어떻다 하더라도 '아이고 잘못 왔구만' 그런다는 겁니다. 뜻이 있는 사내 같으면 '이거 막 되었구만' 그런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큰일나기 때문에 잔치날이 되면 거지 대접을 잘해야 된다는 말 알겠어요?

거지가 잔치상 받은 신랑이나 색시 앞에 가서 '나 떡 한개 주소. 내가 많은 잔치집을 다녔어도 떡을 못 얻어먹은 적이 없는데, 요놈의 집에서는 떡을 못 얻어먹었기 때문에 그 주인은 믿을 수 없소. 어디 신랑님 색시님 인품 좀 보세. 떡 한 개 수소' 이렇게 되거든 신랑이라도 그저 '어서 오십시오' 해 가지고 좋은 옷을 입고서 좋은 차림을 하고 좋은 방에다 상을 들여서 '어서 드십시오' 해야 된다는 겁니다. 통닭이 있으면 통닭도 가져다가 주면서 '어서 드십시오' 이래야 된다구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거 되겠어요? 만일에 신랑하고 거지하고 싸우면 어떻게 되겠어요? (웃음)

그렇게 잘 대접하면 신랑을 잘했다고 하겠어요, 잘못했다고 하겠어요? '야, 그 남자, 아무개 사위. 쓸만하다, 쓸만해' 그런다는 거예요. 보통 사람 같으면' 뭐야 뭐야, 기분 잡치게. 일생에 한번 장가가는데 이게 뭐야? 이놈의 자식아' 하겠지만. (웃음) 그랬다가는 큰 실수입니다. 그럴수록, 그럴 성싶은 환경일수록…. 여기에서 천지가 갈라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잔치 때는 거지 대접 잘해야 돼요. 알겠어요?「예」 통일교인들은 그런 것을 알라구요.

하기야 합동결혼식하게 되면 거지들 얻어먹을 것도 없지요?(웃음) 그러니까 피로연할 때 과자 봉지라도 사 가지고 가서,'오늘 우리 잔치하는데 여러분이 이렇게 와서 구경도 했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죄송하다'고 하면서 좋은 양복 주머니에서, 색시의 품에서 과자 봉지를 꺼내서 드시 라고, 오늘 이 합동결혼식 좋은 것 같지만 섭섭한 마음이 있을 텐데 하나 드시라고 해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이 보시고 가라사대 '오늘 축복받은 신랑님 각시님 가운데서도 으뜸되는 신랑님 각시님이요' 하신다는 거예요. 그거 맞소 안 맞소?「맞습니다」 그런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성인이 몇 사람이라구요? 이름을 부를 때는 그걸 다 알아 가지고 부르라고요. 한 5백 명의 학부모들이 앉아 있는 데에서 학생들에게 '부모들중에 누구의 부모가 잘났어? 할 때, '우리 엄마 아빠예요' 그래 봐요. 그러면 '저 자식은 자기 부모밖에 모른다'고 하는 거예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부모들은 다 좋지만은 우리 엄마 아빠가 제일이요'하면 '아하, 고놈' 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렇게 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성인은 누구라구요?(웃음) 쑥스러워요? 그럼, 내가 불러 주지요.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마호메트」 마호메트, 그 다음에 누구?「예수」 예수가 꼴래미가 됐구만. (웃음) 나중에 한다고 꼴래미가 아니라구요.

친구가 오더라도 말이예요. 학급에서는 자기가 반장이고 우등생이더라도 '야야, 너 왔으니. 내 심부름 좀 해줘' 해서는 안 돼요. 왔을 때는 '들어와. 들어와. 내가 본래는 이런 일 잘 해. 내가 지금 먹는 상인데 이리 앉아라' 하면서 상을 바쳐 주고 심부름도 해주고…. 그래야 뒤에 친구들이 '참 그 친구 좋다' 하게 됩니다. 그러지요? 그런데 집이 잘산다고 해서 '야. 식모야 식모야. 우리 친구 왔다. 떡 해 가지고 와라' 이러면 안된다구요. (웃음) 그런 것 저런 것을 보게 될 때, 여러분은 사회의 모든 생활면에 있어서 이렇게 선악이 엇갈리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왜 이렇게 이야기하는지 그걸 알아야 되는 거예요.

자, 그러면 아까 말한 거지만, 마호메트하고 소크라테스가 있는데 소크라테스는 성인 축에 들어가느냐? 소크라테스는 못 들어간다 이거예요. 오늘날 대학교 철학과 학생들은 소크라테스가 못 들어간다고 하면 기분 나빠할 겁니다. 그래도 할수없다구요. 그러나 무조건 못 들어간다고 하면 실례거든요. 쭉 설명을 하고 나서 이래서 소크라테스는 성인축에 못 들어간다고 해야 된다고요.

자, 그러면 설명을 한번 해보자구요. 소크라테스는 철인입니다. 철인은 지식의 왕은 될 수 있지만, 생명의 왕은 못 되는 것입니다. 지식으로 생명을 좌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맞소. 안 맞소?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만이 생명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기반으로 해야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느냐? 하늘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칠판을 치심)

아이구, 큰일날 뻔했구만. (웃음) 이쁘장한 백묵이 이렇게 산산조각이 났으니…. 아이구, 이게 내 아들 같으면 어땠을까? 큰일나지요. 부러졌다고 동정해줘요. 이 다음엔 선생님이 올 때는 밑에다 받침대를 받쳐 놓으라구요. 선생님이 이런 버릇이 있는 줄 알잖아요?(웃음) 책상을 치고 흑판을 쳐야 할 때는 쳐야 되는 거라구요.

성인치고 사람의 입장에서 인륜도덕만을 논한 사람은 없습니다. 결론이 나왔어요. 하늘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성인은 성인의 반열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그럼 사실이 그런지 안 그런지 알아봅시다.

역사적인 성인을 가만 보면 말이예요…. 석가도 가만 보면 어떤 인물이냐? 종교의 종주(宗主)입니다. 맞소. 안 맞소?「맞습니다」 또 공자도 보게 되면 뭐예요? 유교라는 종교의 교조입니다. 맞소, 안 맞소?「맞습니다」 마호메트도 종교의 종주입니다. 그렇잖아요? 그 다음 예수도 기독교의 뭐예요? 교주입니다. '기독교' 하면 교주라고 해야지요. 이렇게 보면 성인이라는 패들이 전부 다 어떤가? 성인을 패라고 해서 실례지만 말입니다. 성인이란 분들을 가만히 보니까 모두 패당의 왕초예요, 패당의 왕초. 그렇잖아요? 패당의 왕초인데 무슨 패당의 왕초냐 하면 종교 패당의 왕초예요. 나라의 왕초가 아니예요. 무슨 패당의 왕초라구요?「종교 패당의 왕초입니다」 왕초라는 말은 기분 나쁜 말이지만 할수없다구요. 그래야 실감나니까. '왕초' 하게 되면 여러분들은 좋은 왕초라고 생각해야 돼요. 왕초 중에는 나쁜 왕초도 있다구요.

역사의 주류 사상이 된 성인들의 사상

자, 이게 왜 이렇게 됐어요? 여러분들은 종교를 다 좋아해요? 성인 좋아해요, 나빠해요?「좋아합니다」 성인은 좋아하지만 성인이 닦아 놓은 터전은 싫어합니다. 성인은 종주니까, 어떠한 터를 닦아 성인이 됐느냐 하면 종교의 터를 닦아서 되었어요. 그렇지요? 그런데 지금까지 일반 사람들은 종교의 말씀이 성인의 가르침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종교는 싫어 합니다. 그게 모순이라구요.

오늘날 대학가의 소위 엘리트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꺼떡꺼떡하는 패들, 돼먹지 않은 패들이 많은데 기분 나쁘겠지만 공격하는 거라구요. 공격받아 기분 나쁘면 들어 보라구요. 역사를 보면 오늘날 헌법 같은 것도 전부 성인의 도리를 중심삼고 만들어진 거예요. 대한민국 헌법도 마찬가 지예요. 성인의 가르침을 추려 가지고 인륜도덕관에 입각해 가지고 헌법을 설정한 거라구요. 그 골자를 어디에서 취했냐 하면 성인들의 가르침에서 취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세계의 사조는 그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려져 나가는 겁니다. 때문에 성인의 사상은 역사의 주류사 상에 접근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건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성인의 가르침 권내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종교는 싫어합니다. 요즘에 와 가지고 말이예요, 목사, 스님 하면 좋아해요? 좋아해요, 싫어해요?「싫어합니다」 그럼 통일교회 문선생 싫어해요, 좋아해요?「좋아합니다」 금방 싫어한다고 해 놓고 그게 뭐예요? 싫어해요, 좋아해요? 「…」 좋아할지 어떨지 두고 봐야 안다구요. 좋아한다고 금방 말 못 하는 거예요? '인심은 조석변이요, 산색은 고금동(人心朝夕變 山色古今同)이라'는 말도 있듯이 사람의 마음은 조석으로 변한다고 했으니 지금 여러분이 암만 좋아한다고 해도 난 믿기 싫어요.

이런 것을 볼 때 아주 이상야릇한 현실이 아니냐는 거예요. 성인의 도리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성인이 닦아 놓은 그 본 판국은 싫다고 하니, 사고 난 인간들이라는 거예요. 요즘에 와 가지고는 '조상은 구세대이고 우리는 신세대이니 세대 차원이 달라' 하면서 청소년들, 떠꺼머리로 히피 사촌이 되어 가지고 잘 날뛰더니, 장발을 짧게 깎는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내가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좋았는지, 좋았는지 나빴는지 모르겠지만 좋더라는 거예요. (웃음) 나쁘다고도 말 못 하고 좋다고도 말 못하지만 결국은 좋더라 이겁니다. 여기 히피 되려고 하던 녀석 있으면 기분 나빠도 할수없다구. 그런 녀석들은 그저 스님처럼 면도칼로 그저 뿌리까지 깎아 버려야 돼요. (웃음)

우리 통일교회 패들이 이렇게 해 가지고 깎기 시작하면 누구 한 사람도 빠질 사람이 없을 거예요. 그렇지요? 빠질래요, 안 빠질래요? 자, 남자들 빠질래요. 안 빠질래요? 선생님이 만약 '그런 패들은 하나도 남기지 말고 깎아라' 할 때 깎을래요, 안 깎을래요?「깎겠습니다」 만약 안 깎겠다고 하여 주먹질하게 되면 어떻게 할래요? 맞고 나서 '아이구, 선생님 말 듣다가 기분만 잡쳤어요. 광대뼈를 다쳤으니 약값 주세요' 그럴래요? 자, 선생님이 명령하면 악착같이 하겠어요, 유하게 하겠어요?「악착같이 하겠습니다」 정말?「예」 남자들은 틀림없지?「예」 여자들은?「예」 여자 들은 못 하는 거라구요. (웃음) 못 한다고 했다고 안 할래요?「합니다」

해야 된다구요. 남자 머리를 깎게 해야 됩니다. 혼자서 안 되면, 두 사람, 두 사람이 안 되면 세 사람이 합동 공작하라 이거예요. 그렇게 하라면 할래요?「예」 이렇게 되면 통일교회가 뭘 하나 해먹을 만하지?

지금이 일곱 시 20분 전인데 몇 시까지 할까요? 여덟 시까지 할까요? 여기서 그만 둘까요? 결론을 5분 내에 낼까요? 더 해요?「예」 뭐 어느 교회에서는 30분 내에 예배를 끝내도 길다고 하는데, 벌써 두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그래도 괜찮아요?「예」 통일교회는 열두 시간이 보통이라구요. (웃음) 그러니 여기서 말하는 사람도 지독하지만 듣는 사람도 지독하구요. 열두 시간을 넘긴 것이 기록이라구요. 열두 시간을 이야기해 봤어요. 그 열두 시간을 말했으니 무슨 말인들 안 했겠어요? 열두 시간 앉아서 말씀을 들으면 사람 아닌 사람이 됩니다.

미안합니다. 이것 좀 치우세요. 나는 테이블이 옆에 있는 것 싫다구. 의자고 뭐고 다 싫어요. 좀 휑 한데서…. 이래 놓아야지, 답답해 가지고 …. 아가씨 아주머니들, 왔으면 말이야, 선생님이 이렇게 땀을 흘리면 생각 있는 아주머니들 같으면 문을 열어 주어야 된다구요. 그러면 '어이?' 하고 나무라겠어요? '야! 광주는 참 그 이름도 좋더니 대접도 내가 받아본 중에 제일 좋은 대접을 받는구나' 할 겁니다. 무슨 쥬스를 갖다 주고 물을 갖다 주고 하는 것이 대접이 아니라구요. 문을 열어 신선한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게 해주면 그게 얼마나 고마운 대접인데요. 말할 적마다 그 아주머니, 복받으라고 할 텐데 그걸 할 줄 모른다구요. 가르쳐 줘 가지고 점수를 따나요.

시험을 치는데 다 가르쳐 줘 가지고 백 점 맞으면 그게 백 점이예요? 「아닙니다」 빵점. 빵점보다 못하다구요. 이렇게 한마디하고 문을 열게 해야 내가 그래도 대중 앞에 면목이 서는 거예요. 그렇지요?(웃음) 그저 덥다고 해서 왈카닥왈카닥하고 나간다면 그런 실례가 어디 있어요? 그렇잖아요? 사람을 시켜 문을 열면 나는 좋은데 여러분은 흉보지는 않겠지요? 여러분 흉을 보오, 안 보오?「안 봅니다」 안 볼 거라구.

성인들의 중심사상

성인이라는 사람들을 분석해 보면 그들의 사상은 무엇이 주된 사상이냐? 종교가 아닙니다. '세계 인류를 어떻게 나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꼬.' 하는 것이 주된 사상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나와 같은 사람을 만드는데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나는 하늘의 도리를, 천도를 이어받은 대표자로서…'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천도를 이어받은 대표자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권위를 갖추어 가지고, 악한 이 땅 위에 있는 만민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성인이 가진 골수 사상입니다. 틀렸어요, 안 틀렸어요?

그러려면 그와 같은 사람을 어떻게 만드느냐? 교육을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교육 장소로 끌어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교육 장소가 무엇이냐 할 때에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종교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똑똑히 기억해 두시오. 밥을 잊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만은 잊어버리지 말라구요.

성인을 따라가려면 성인 중에서 2등 성인 따라갈래요, 1등 성인 따라 갈래요? 「l 등 성인이요」 욕심들은 가득 찼구만. (웃음) 가득 차서 펄펄 넘치는구만. 그게 나쁜 거예요, 좋은 거예요?「좋은 겁니다」 아이구, 얼마나 좋아요! 나도 좋고 여러분도 좋고, 그러니 성인 중에 2등 성인은 싫다 이거예요. 그렇지요? 이왕이면 1등을 따라가지…. 만일 복싱 체육관 이라든가 레슬링 체육관에 나간다면 참피온을 지낸 사범을 따라가겠어요, 아무것도 안 지낸 사범을 따라가겠어요? 아무것도 아닌 사범이라면 자기 형님이라도 거기에는 안 가는 거예요. 그렇지요? 형님이라고 해서 가겠어요? 안 가는 거라구요. 형님이라도 1등 아니면 싫다, 아버지라도 1등 아니면 싫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암만 체육관을 운영하더라도 그 아들은 다른 데 보내야 되는 거라구요. 다른 데로 보내야 되고 또 다른 데로 가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러면 성인들 가운데 일등 성인은 누구겠느냐? 여기 오늘 선생님 처음 보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봅시다. 아이구 꽤 많구만. 얘기 좀 하고 넘어갑시다. 없으면 얘기 안 할 텐데. 자, 성인 가운데 일등 성인을 가려 주면 좋겠지요? 가려 주면 좋겠어요, 안 좋겠어요?「좋겠습니다」 좋겠다니까 한번 가려 주고 넘어가자구요.

자, 일등이다. 일등을 다 좋아하지요?「예」 세상 만사에서 전부 일등 하고 싶지요?「예」 남자에게 있어서, 자신은 일등을 했지만 자기 색시가 꼴등일 때는, 어떻겠어요? 기분이 좋겠어요, 기가 막히겠어요?「기가 막힙니다」 기가 막히는 거예요. 상이고 뭣이고 한꺼번에 왕창 집어던져 부숴 버리고 싶을 거예요. 그러나 자기 상대가 일등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바꾸겠어요, 안 바꾸겠어요? 생각해 보라구 요. 바꾸겠어요, 안 바꾸겠어요?「바꿉니다」 못생긴 여자라도, 추남이라도 바꾸려고 합니다. (웃음) 거기에는 통일이라구요. 통일이예요. 불통일 이예요?「통일입니다」 통일이라구요. 그걸 싫다는 사람은 사람도 아니라 구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라구요.

그러면 참피온 중에 무슨 참피온 될 것이냐? 시집 장가가는 데 일등이 되고 싶소? 체육관에서 나가 가지고 레슬링 해서 일등 하고 싶소? 대답해 보라구요. (웃으심) 이런 걸 물어 보는 것이 안 되긴 안 됐지만 솔직이 까 놓고 얘기하자구요. 자, 어느 참피온 될래요?「장가가는 데 참피온 되겠습니다」(웃음) 다 하하 웃는 거 보니 전부 공감하는구만. 그거 틀림없는 거라구요. 그것은 왜 그래요, 왜? 그건 사고인 동시에 사건이라고요. 그거 왜 그래요? 좋아서 그래요. 나빠서 그래요?「좋아서 그럽니다」 좋은데 얼마나 좋으냐? 최고로 좋아서 그래요, 중간쯤 좋아서 그래요? 「최고로 좋아서요」 그거 다 알긴 아누만요. 좋은데 이만큼 좋아요, 이만큼 좋아요?(손뼉을 치시면서 말씀하심 ) 처음 거예요, 나중 거예요?「나중 거요」 탁 쳤다 이거예요. 불거지게 쳤다면 불거지도록 치는 것을 원하는 만큼 좋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냐 할 때, 그 귀결점이 뭐예요? 인간 세상에서 참피온 중에 최고로 귀한 참피언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아까 말한 그 참피온이예요. 뭐라구요?(판서하심) 「사랑」 사랑방이 아니예요?(웃음) 자는 방이예요? 사랑방은 싫지요? 사랑이 좋더라는 거예요. 우주에 챔피언 되기를 바라는 사람 가운데 멋진 사나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사랑을 중심삼은 챔피언이 되겠다는 사람입니다. 이거 싫다는 사람은 다 죽으라구요. 깨깨 죽어지라구요. 암만욕을 해도 그런 사람은 없거든요.

여러분들도 사랑은 다 필요하지요?「예」 필요해요. 안 해요?「필요합니다」 사랑 가운데는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무슨 사랑 무슨 사랑 많이 있습니다. 이걸 전부 다 가려야 하는데, 내가 시간이 있으면 전부 다 가려 주며 이것은 빨강 사랑이고 노랑 사랑이라고 얘기해 주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구요. 하여튼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꿀떡을 먹어 보니까 기가 막히는 것처럼 재료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저 좋다는 겁니다. 그것을 알아야 돼요.

그러면 도주(道主)들의 가치 평가를 무엇을 중심삼고 할 것이냐? 일등에 소속할 수 있는 성인 중의 대성인이 어떤 사람이냐, 성인 중에 중심될 수 있는 성인이 어떤 사람이냐 할 때에, 그 가르침의 주류사상을 돈 모으는 사상에 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알겠어요? 그저 선한 사람 되라고 하는 사람도 등수에는 들어가지만 일등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에 있어서 사랑의 팻말을 들고 개인을 대신해서 세계의 챔피언이 되고, 가정을 대신해서 세계의 챔피언이 되고, 종족을 대신해서 세계의 챔피언이 되고, 이건 전부 사랑을 중심삼고 말하는 거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민족 앞에 챔피언이 되고, 세계 앞에 챔피언이 되고, 하늘땅 앞에 챔피언이 되고, 하나님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챔피언이 되려는 성인이 있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할까요?

진정한 통일은 사랑을 바탕으로 해야 이루어지는 것

우리 인간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하나님은 제일 싫어하지요? 거 생각해 보라구요. 인간이 좋아하는 것을 하나님이 싫어할까요?「좋아합니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하고 인간하고 영영 만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인간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하나님도 제일 좋아하지 않으면 하나님 노릇 못 한다는 거예요. 개인으로부터 세계에까지 챔피언, 사랑의 챔피언 기수가 되어 가지고, 개인에 있어서도 그분이요, 가정에서도 그분이 중심이요, 종족에서도 그분이 중심이요, 민족, 국가에서도 그분이 중심이요, 인류역사상에 있어서도 그분이 중심이요, 혹은 천지가 생겨난 후에도 그분만이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의 챔피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올라온다면 하나님이 좋아하시겠어요, 싫어하시겠어요?「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은 뭘까요? 돈이예요?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다 지으셨는데 돈을 좋아하겠어요? 사람도 하나님이 지으셨는데 사람이면 뭘해요? 남자 여자 전부 하나님이 지으셨는데 사람이 필요하겠어요? 사람이 사랑스러워지려면, 무한한 최고의 가치를 지니려면 절대적인 사랑의 인연으로 묶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도 별수없이 사람을 필요로 하시는 것이며,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사랑의 인연을 찾으시려고 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결론지으면 모순입니까. 들어맞았습니까?「맞았습니다」 맞지요. 별 도리가 없다구요. 사람이 그러니만큼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도 그러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을 지으셨느냐? 왜 존재세계를 만들고 인간을 지었느냐? 사랑의 이상세계에 있어서 중심존재가 되도록 인간을 지었고, 그 인간의 살림살이에 필요한 재료로 활용하기 위해서 천지를 지으신 것입니다. 이럴 때는 기분이 좋지요?

그럼 통일은 어디서 벌어지느냐? '통일이야 뭐 통일에서 벌어지지' 할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예요.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냐? 인연이 있어야 돼요, 인연이. 그렇지요? 인연이 없어 가지고는 관계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그 관계는 어떤 관계냐 하면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관계가 맺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요? 여기서 '야' 하면 '오냐' 하고, 여기서 '와라' 하면 '그래' 할 수 있는 상대적인 환경에서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상대적 관계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느냐? 여기에는 공동목적이 있어야 됩니다. 공동목적이 있을 때는 하나될 수 있습니다. 하나되는 데는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목적이 하나되어야 하고, 목적이 하나 안 되더라도 서로서로 사랑하게 될 때는 하나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습니다. 사업하는 데 있어서도 갑과 을 두 사람의 목적이 같을 때는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용적으로는 하나가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식회사 같은 것을 볼 때, 이사니 뭐니 하는 사람들 사이에 서로 싸움이 벌어지지만 회사 운영의 목적이 같다면 외적 으로는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목적이 일치될 때는 하나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장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깨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한 일시적인 목적을 중심삼은 통일은 누구도 원치 않습니다. 통일이 되더라도 영원히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는 그 요소가 뭐냐?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틀렸어요. 안 틀렸어요?「안 틀렸습니다」 사랑은 통일하는 데 있어서의 바탕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추구해 나갈 수 있는 행복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어 가지고는 행복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어 가지고는 평화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일이 상충이 되지만, 사랑이 충만하게 될 때는 모든 일이 화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권자는 사랑의 표준을 세워서 무엇을 주장하느냐? '나라를 사랑하라, 애국애족하라'고 주장하는 거예요. 물론 대통령이면 대통령을 사랑하라고도 하겠지만 '나는 죽더라도 영원히 남을 것은 나라이니, 일대의 대통령, 군왕을 사랑하는 것보다 영원히 남을 수 있는 나라를 더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런 군왕이 선군(善君)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서 나라님을 모셔야만 국민을 대표한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틀리지 않지요?「예」

왜 사랑을 바탕으로 해서 통일의 인연을 찾아 나가느냐? 사랑이 없으면 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영원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심) 영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남편이 죽었다고 아내 사랑이 청산돼요? 남편이 죽었지만 아내의 가슴에는 그 남편이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애달픈 사랑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 부모라면 자식이, 그것도 독자가 죽었다면 죽은 지 10년이 되고, 20년이 되고, 5,60년의 세월이 흘러 늙어 죽을 때가 되더라도 옛날 그 아이를 키우던 그때의 심정을 생각하게 될 때는, 그 아이와 같은 이름을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그 아이와 모양이 비슷한 사람만 지나가더라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고 눈물이 체면을 차리지 않고 흘러나오는 법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뺄 수 없습니다. 죽더라도 뽑을 수 없습니다. 영원히 영원히 잡아당겨도 영원히 영원히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게 어디 있느냐고, 영원히 잡아당겨도 영원히 나오는 게 어디 있느냐고 하겠지만, 부모의 심정에서 사랑하는 마음을 자꾸 끌어내고 또 끌어낸다고 해서 그것이 없어져요?「안 없어집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나서 '오늘 사랑했으니 사랑은 이제 오늘로 스톱이다. 너를 대한 사랑의 마음은 오늘로…. 사랑의 세계에 혁명을 일으킬 것인데 오늘로 스톱이다' 이런다고 그렇게 돼요? 돼요, 안 돼요?「안 됩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끌어내면 낼수록 무한해지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부부끼리에 있어서 서로 사랑하는 데 간판 붙이고 사랑하나요?(웃음) 밤이나 낮이나, 가나 오나, 언제나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길을 떠나게 되면 아내는 밤잠을 못자며 남편 가는 길이 편안하기를 비는 거예요. 무한히 자기를 투입시키는 데에는 불만이 개재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한히 자기를 희생시켜 나가는 그런 골짜기에 들어가더라도 그것을 응당히 할 일로, 책임으로 느끼는 길은 사랑의 길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멋지다는 거예요.

누가 일등 성인인가

자, 이렇게 볼 때, 도인들 가운데서 제일 으뜸가는 도인 혹은 성인은 누구냐? 공자 같은 양반은 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분이 가르쳐 준 것을 보면 하늘을 소개한 것이예요. '위선자는 천보지이복하고 위불선자는 천보지이화니라(爲善者 天報之以福 爲不善者 天報之以禍). 선을 행하는 자는 하늘이 복을 주고 선을 행하지 않는 자는 하늘이 화를 준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하늘이 있는 것은 알았어요. 그러나 하늘이 있는 것을 알기는 알았는데 막연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석가 같은 양반은 모든 이치를 법에 귀일시켰습니다. 법의 대상은 인간의 대상적 관계인 환경이지 인간이 아닙니다. 사랑을 표준한 것이 아니라 법을 표준한 것입니다. 그래서 법문(法門)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석가는 자각(自覺)을 말합니다. 자각을 하면 뭘 할 것이냐? 자각으로 끝나는 것이냐? 그렇기 때문에 입산수도를 하며 고독한 생활은 하지만 사랑적인 이상세계에 대해서는 역시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마호메트는 회회교라는 종교를 만들었지만, 이 회회교는 본질상 종교 하고는 상충된 거라구요. 칼이 아니면 코란을 받으라는 거거든요. 칼을 들이대 가지고서 코란을 안 받으면 생명을 뺏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에서 이탈한 것입니다. 그리고 회회교는 마호메트가 신구약 성서를 중심삼고 여기에 재간을 피워 가지고 만든 종교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순수한 종교는 못 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런 위협적인 방법을 통하여 종교적인 배경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판도를 넓혔기 때문에 마호메트가 성인의 물망에 오른 것은 틀림없습니다. 종교라는 것은 하나님을 설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골자 사상은 뭐냐? 예수는 아무것도 안 남겼습니다. 예수가 팔만대장경 같은 것을 써 놨어요? 공자와 같이 논어니 하는 것을 편집해 놨어요? 주역이니 뭣이니 하는 것과 같은 걸 편집해 놨어요? 예수는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습니다. 예수가 가르쳐 준 게 뭐냐? 예수를 보면 아무것도 안 했다구요. 또 죽을 때 편지 한 장, 서간집이라도 만들어 놓고 죽었어요? 그저 떠돌아다니다가…. 그것도 공자처럼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었어요. 젊으나 젊은 30대 새파란 청년이었습니다.

또 그렇다고 뭐 명문가에서 자라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가정을 보면 복잡하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생아 신세였습니다. 복잡한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살아 생전 진짜 아버지를 모르고 살았다구요. 그렇지요? 그의 형제도 친형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복잡한 환경에서 태어난 예수였습니다.

그래, 예수가 대학교에 다녔다는 말 들었어요?(웃음) 고등학교 다녔다는 말 들어 본 적이 있어요? 국민학교에 다녔어요? 다니지 않았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성경을 쓰는데 예수가 학교에 다녔다는 경력이 있으면 자랑하고 싶겠어요, 안 싶겠어요? 그런 것이 없어서 못 썼어요. 있기만 하면 왜 안 썼겠어요?

선생님이 이렇게 살다가 죽은 다음 우리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이 선생님의 역사를 쓸 때 좋은 것만 기록하겠어요, 나쁜 것도 같이 기록하겠어요? 될 수 있으면 나쁜 것은 빼 놓고 좋은 것만 기록하려고 제자들은 끙끙댈 거라구요. 그렇지요?「예」 예수 시대나 지금이나 인간은 마찬가지 이기 때문에, 자기 선생편이 되기 때문에 나쁜 것은 빼고 좋은 것은 넣으려고 할 것입니다. (웃음)

그러니, 예수의 가문이 훌륭했으면 왜 가문의 역사가 안 나왔겠어요? 마리아가 그렇게 훌륭했으면 '우리 성모 마리아는 이러이러한 역사를 가진 훌륭한 어머니요, 만국의 여자 가운데 으뜸이요, 어머니의 대장이다' 했을 겁니다. 이런 것이 성경에 있어요? 여러분은 생각해야 됩니다. 덮어 놓고 믿어 가지고…. 이런 얘기를 하려면 한정이 없다구요.

또 예수가 태어나기는 유대 베들레헴의 어느 마굿간에서 태어났지만 자라면서 비단옷을 입고 진수성찬을 매일 먹고 백명 천명의 신하들이 정성들여 모셨다면 기록에 남겼겠어요, 안 남겼겠어요? 30여 생애를 뚝 잘라 버린 것은 왜 그랬느냐? 이건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형편이 무인지경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이게 가당한 말이라구요.

모두 합한 3년 동안의 행적을 보라구요. 동네방네 소문이 나고, 어디를 가든지 여자들만 수두룩하게 따라다녔습니다. 남의 여편네, 할머니, 딸, 과부 이런 패들만 따라다녔습니다. 가만 보니까 여자들만 따라다녔지 남자는 별로 안 따라다녔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사회에 물의가 일어나겠어요, 안 나겠어요?「납니다」 남자들이 가만 보면, 자기도 남자인데 자기 여편네가 사흘만 다른 남자를 따라다니게 되면 못 나가게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못 나가게 했을 게 아니예요. 그래도 부인들은 말씀을 가르쳐 주니 안 나가면 안 되겠다고 머리를 쳐들어 서로 싸움이 벌어지겠어요, 안 벌어지겠어요? 그 남자 떼거리들과 싸움을 하는 환경이 벌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되어 들어간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도 그런 거라구 문선생도 거룩한 소문 잘 냈지요, 뭐. '여자들은 통일교회 가면 문선생한테 홀딱 반해서 녹아난다더라' 그런 소문들 들었지요? 그래 내가 껍데기 벗기듯이 그렇게 녹여대던가요?'녹아라 녹아라' 하면서 녹이려 하던가요? 그런 소문 들으니 여자들을 보면 귀찮다구요. 저것, 요귀 사촌이 또 왔구나. (웃음) 내용적으로 이러고 나오는데, 세상에는 괴상한 소문이 다 났다는 거예요.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에 대해 그런 소문이 났다고 해서 제자들이 '아무개 여자가 그렇게 따라다녀 가지고 우리 선생님 소문을 이렇게 냈다, 잘했다' 하면서 역사에 남기겠어요? 될 수 있으면 빼려고 할 거예요. 그렇지요?「예」 그건 나쁜 것이 아니고 사실 인간의 정이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아! 우리 엄마 아빠가 어저께 남의 집에 가서 오이 몇 포대, 도둑질해 왔다' 그래요? 철부지한 아이들이라면 그러겠지만 쉬쉬한다구요. 그렇지요?(웃음)

이렇게 보게 될 때, 예수님의 역사가 근사하고 훌륭했으면 그것을 모두 기록에 남겼겠어요, 안 남겼겠어요? 성경을 보라구요. 혈루증이 있는 여인의 사건까지 그렇게 세밀하게 적어 놓았으면서, 예수님이 30세에 공생애 노정을 떠나기 전의 가정적 배경이 훌륭했다면 왜 안 남겼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남길 게 없다는 거예요. 형편이 무인지경이라는 거예요. 그 형편이 무인지경인 것을 나는 잘 안다구요, 여러분은 모르지만. 이런 얘기를 하면 기성교회가 나가자빠질까 봐 얘기하지 않는 거예요.

예수님은 어떤 분이었나

예수가 얼마나 불쌍한 사나이인지 생각해 보라구요.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오(눅 12:49)", 이 말씀은 일이 됐다는 말이예요, 안 됐다는 말이예요?「안 됐다는 말입니다」 또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 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이런 말씀을 해야 하는 예수는 기가 막혔겠어요, 안 막혔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기가 막힌 사연들이 많다는 거예요. 기가 막힌 사연들을 다 덮어놓고 믿자구요? '뭐 아무래도 좋아, 시집만 가면 돼' 그래요? 과거가 너저분한데, 시집가서 들통나면 쫓겨나지요? 덮어놓고 믿어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문선생은 덮어놓고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그렇게 시시하고 껄렁껄렁하고 허황된 집단이 아닙니다. 그런 교회가 아닙니다. 까놓고 해결지은 다음 믿자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분석해 봅시다. 예수가 사람이예요, 하나님이예요? 잘난 사람이예요, 못난 사람이예요? 예수는 잘난 사람이 아닙니다. 잘난 사람이면 죽긴 왜 죽어요? 못난 사람이니 죽었지. (웃음) 그렇지 않아요? 원수인 다른 나라와 싸우다가 죽었으면 그건 잘난 사람 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국민에게 비판받아 죽었으니 그 나라에서는 잘난 사람이예요, 못난 사람이예요? 못난 사람이라구요.

비판받지 않고 행차를 하여 세상에 판국을 넓혀 가지고 천지를 주름잡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수를 보냈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졸장부가 되어 가지고 나중에 외톨이가 되어 죽으라고 보냈겠어요? 예수가 죽게 될 때에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동정하소서" 하니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42-43)"했습니다. 일생 동안 강도 하나 구원하고 갔다 이겁니다. (웃음)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목사나 장로가 왔더라도 할 수 없습니다. 나도 성경을 그들이 읽은 만큼 읽었고 볼 만큼 봤고 알 만큼 압니다. 그렇게 됐어요, 안 됐어요? 또 제자들이 얼마나 못났으면 선생을 팔아먹었겠어요? (웃음) 생각해 보라구요.

내가 기독교라는 간판을 붙이고 이런 얘기 하면 안 됐지만 자기 아버지가 잘났으면 잘났다고, 못났으면 못났다고 하지 않고는 그 고개를 못넘어가는 것입니다. 짐을 풀어 놓고 가야 되는 거예요. 옷이 더러우면 벗어 놓고 발가벗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실을 밝히고 넘어 가야 되겠기에 기독교의 너저분한 것을 전부 끌어내 가지고 가려내야 됩니다. 안 입어도 될 것 같으면 전부 불살라 버려야 됩니다. 그러니 교회 꼭대기의 십자가를 떼서 불살라야 됩니다. 목사들 들으면 '아이구, 진짜 사교 괴수구만' 할지 모르지만, 그래 내가 사교 괴수요. 사교 괴수만이 아니라 사교 교수라구. (웃음)

보세요. 중공은 20년 전, 1951년도에 유엔총회에서 침략자로 규탄받았는데, 요즘은 그들이 눈이 시퍼렇게 살아서 유엔 가입한다고 그럽니다. 이놈의 자식들, 이게 뭐야? 지금 통일교회를 이단이라고 하지만, 중공이 유엔에 가입하는 것처럼 앞으로 통일교회가 기독교 연합에 가입하는 날이 불원간 올 것입니다. (웃음) 이러면 기독교가 휘청휘청할 겁니다. 그렇게 되는지 안 되는지 두고 보라구요.

맨 처음 한국종교협의회를 만들 때는 물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암만 그래 보라는 거예요. 우리가 가는 데 있어서 깔고 딛고 넘어가려고 만든 거예요. 그렇게 가입했는데 이제는 통일교회가 빠지면 한국종교협의회가 성립되지 않겠으니 부디부디 나가지 마소 하는 거예요. 요전에는 어떤 일까지 벌어졌느냐 하면 종교협의회의 중심 책임을 통일교회가 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거 일이 되는 거예요. 안 되는 거예요?「되는 겁니다」 통일교회 패들은 좋아서 '히히히' 하며 된다고 하지만, 일반 기성교회는 기분 나빠서 된다고 하겠어요? 이게 아이러니한 것입니다. 이상하다는 거예요.

예수의 밑천이 뭐냐? 밑천이 뭐냐 하고 따져 보면 아무것도, 뭐 신통치가 않아요. 그 나라에 있어서 민족 반역자로서, 폭동분자로서 몰려 가지고, 나중에 교법사 제사장 총독 할 것 없이 전부 합동공세를 받아 가지고 죽이려는 데에 손들었어요, 안 들었어요?「들었습니다」

저기 뒤에 서 계신 분들 미안합니다. 여러분도 서 있지만 나도 서 있어요. 가만히 서 있는 사람하고 서서 말하는 사람하고 비교하면,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이 서서 말하는 사람보다 조금 더 힘들 거예요, 그렇지요?「아닙니다」 정말 덜 힘들어요?「예」 그럼, 미안하기는 하지만, 인사를 차려야지요. (웃음)

자, 보세요. 그래 가지고 나중에 예수는 민족 반역자라고 몰려 십자가에 못을 땅땅 박혀 죽었습니다. 그럴 때, 누가 예수의 편이 된 사람 있었어요? 어머니, 아버지, 형제도 예수의 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세상 같으면 말이예요….

요전에 내가 청평에 가서 이런 사람을 봤어요. 내가 청평의 우리 집회 장에서 잠깐 쉬고 있었습니다. 강 건너 편에 모타 수리하는 공장이 있는데 그 공장의 책임자라는 사람이 모타를 수리해 가지고 조그마한 모터보트를 타고 왱왱왱 하면서 기분좋게 뺑뺑 돌고 있는 거예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서 모터보트를 시험하고 있었던 거예요. 강 저쪽에서는 몇 사람이 서서 기분좋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획 하더니 배가 벌떡 뒤집어지는 거예요. 모터는 무겁고 보트는 가벼운데, 그 모터보트가 자꾸 뱅뱅 도니 돌아가던 물살이 부딪치잖아요? 그러다가 벌떡 뒤집힌 거예요. 보트가 뒤집어졌는데 그 사람이 수영을 할 줄로 알았는데 허우적허우적 하다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배는 떡 뒤집어져 가지고 둥둥 떠내려 가고 말이예요. 그러니까 건너편에서 벼락불이 일어났어요. 건너편에 있던 너댓 사람이 놀라서 모터보트를 시동걸어 가지고 획 가서 물 속에 첨벙 첨벙 들어가 휘젓는 데 간 곳이 없었어요.

이래 가지고 한 10분, 20분 지나니까 저쪽에서 곡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게 누구겠어요? 누구 소리겠어요? 그 죽은 사람의 여편네예요. 그렇게 한 사람이 갔다구요. 그 다음엔 사람 죽었다는 소문이 나니까 동네방네 그 일대에서 사람들이 다 몰려들었습니다. 나도 우는 정경이 하도 기가 막힌 것 같아서 모터보트를 타고 건너갔습니다. 가서 보니 그 여편네만 그렇게 나가 넘어져 통곡하는 줄 알았는데 그 동생은 아예 까무라쳤어요. 울지도 못하고 새까맣게 죽어 나자빠졌어요. 그러니 형은 죽었지만 동생까지 죽게 되었으니 야단났다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이 또 죽는다고 하면서 동네 사람들이 업고 병원으로 데려갔어요.

그래 몇 시간 만에 깨어났다나요. 그걸 가만히 바라보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갈 때 이와 같은 정경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 있나.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잘 모릅니다. 가치로 따지자면 서 푼짜리도 안 될 사내 하나 빠져 죽었는데 그 여편네가 그렇게 사생결단을 하고 통곡을 하고, 형이 죽었다고 동생이 기절을 하고 나가자빠지는 걸 볼 때, 과연 예수 앞에 그렇게 할 만한 동생이 있었느냐? 만일 사랑하는 여편네라도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랑하는 동생이라도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진정 예수를 사랑하는 어머니라든가 아버지, 친척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기가 막힌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예수가 33년 생애 가운데 3년 공생애노정에 있어서 제자들을 그렇게, 먹을 것이 생기면 자기는 굶더라도 먹이려 하고, 입을 것이 생기면 자기는 벗더라도 입혀 주려고 하면서 고이고이, 3년 공생애노정 기간에 그렇게 있는 정성을 다하고 있는 정 다 퍼부어 길렀는데도 불구하고 스승이 사지에 나가기 전에 팔아먹었다는 사실, 또 스승이 잡혀가기 전에 베드로를 보라구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마 26:35)",별의별 재간을 피우고 별의별 말로서 세 번씩이나 맹세했지만, 조그마한 여종들이 와서 '당신은 저 사람을 알지 않느냐, 저 사람의 제자가 아니냐.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오지 않았느냐'고 할 때,'아 니요, 아니요' 하면서 세 번씩이나 멋지게 인사성 바르게 대답했지요? 그런 걸 보면 기가 막히다구요.

이렇게 졸장부가 되고, 이렇게 망해 가지고 갈 줄 누가 알았습니까? 그것으로 끝난 거라구요. 죽었으면 그만이라구요. 그렇게 죽은 예수가 요동을 해 가지고 오늘날 이 민주세계, 문화세계를 창건한 것이 아니냐? 거 이상하지요? 삼년 동안 해변가의 못난 어부들을 데리고 떠벌이며 돌아다니다가 죽었는데, 어떻게 그 사람을 동기삼아 가지고 세계가 이렇게 됐느냐? 그것이 문제라구요.

예수 사상의 골자

그러면 예수의 사상의 골자가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예수는 누구냐? 예수는 자기를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발표한 내용 가운데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제일 중요한 것이 '나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 독생자다'라고 한 말입니다. 독생자란 무엇이냐?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그 사랑을 몽땅 독차지할 수 있는 대표자라는 것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맞습니다」 예수가 주장한 골자가 그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나는 여기서 가는데 너희들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기다려라. 내가 다시 오는데 무엇으로 오느냐? 신랑으로 온다. 그러니 너희들은 신부가 돼야 된다' 이거예요. 이것이 기독교의 사상인 것입니다. 하나는 독생자 사상, 하나는 신랑신부 사상. 그 다음에는 '나중에는 너희들이 종이 되지 아니하고, 나의 제자가 되지 아니하고, 나의 형제가 되고 친구가 된다'는 형제가 되고 친구가 된다는 사상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독생자, 혹은 신랑 신부, 혹은 형제가 된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무엇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예수를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이 땅 위에 수많은 남자들이 왔다 갔고, 수많은 남자들이 있고, 앞으로 수많은 남자들이 올 것이로되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그 많은 남자 중에 하나님의 사랑을 첫번 받을 수 있는 대표자라는 말입니다. 그런 예수에게 '예수여, 사랑받을 수 있는 대표자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소? 하고 물으면, 예수는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받았다고 하겠어요, 안 받았다고 하겠어요? 예수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했습니다. 여기에 한마디 더 해야 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사랑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아버지 앞에 갈자가 없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말을 못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개인적으로 물론 사랑을 받았겠지요. 그렇지만 그 개인적인 사랑 이상을 못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사랑을 집어 넣어야 합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성경을 수정해야 되겠다구요.

하나님의 사랑을 모체로 해 가지고-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최고의 이상도 사랑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중심삼고-만국을 대표한 사랑의 대표자, 단 하나의 사람으로 등장한 결정적인 사나이가 독생자라는 것입니다. 비로소 하나님이 인간을 대해 아들로서 사랑할 수 있게 된 입장이 예수의 자리라는 것이예요.

독생자가 있으면 차생자가 있어야지요? 하나님도 아들이 하나만 있는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하나님은 욕심이 많으십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신 것은 예수와 같은 사람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 보내셨겠어요, 예수 하나만 남기기 위해서 보내셨겠어요?「많이 남기기 위해서…」 여기 아주 머니, 기성교회 다녀요? 대답해 봐요. 하나님이 예수 하나 남기기 위해서 보내셨겠어요, 예수 같은 사람이 많기를 바라고 보내셨겠어요? 어때요? 이왕 대답할 바에야 첫번에 대답하는 것이 좋지요. 그럼 딴 사람 대답해 봐요. 「많기를…」

여러분들 시집가서 딸을 많이 낳고 싶어요, 아들을 많이 낳고싶어요? (웃음) 남자들은 모르는 거라구요. 부끄러울 것 없어요. 세상이 다 그런거 아니예요? 대답해 봐요. 낳을 바에는 아들을 많이 낳고 싶어요, 딸을 많이 낳고 싶어요?「아들을 많이 낳고 싶습니다」 그래요. (웃음) 이렇게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여자를 원치 않고 남자를 원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외동아들을 원해요, 적어도 둘 셋을 원해요? 결혼한 아주머니들, 외아들을 원해요, 둘 셋을 원해요? 우리 남자들은?「둘 셋을 원합니다」 물어볼 것도 없이, 얼른 대답하는구만. (웃음)

그럼 사람이 누굴 닮았느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아들 많은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적은 것을 좋아하시겠어요?「많은 것을 좋아하십니다」 생일 잔치를 할 때에 외아들이 까딱까딱 와 가지고 '아버님, 오늘 생신인데 이거 선물입니다' 하는 것을 좋아하겠어요, 한 백 명의 아들들이 와 가지고 풍성풍성하게 선물 주는 것을 좋아하겠어요? 하나가 좋아요?「많은 게 좋습니다」 많을 수록 좋다는 거예요.

요즈음 할수없어서 산아제한을 하지, 그거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구요. 많은 게 좋긴 좋지만은 먹여 살리고 공부시킬 것이 걱정되니까 할 수 없이 산아제한이고 가족계획이고 하지, 그런 계획은 좋은 게 아닙니다. 먹을 것이 많으면 왜 그러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살 땅이 많으면 왜 그러겠어요? 하나 있는 것보다 둘 있는 게 좋고, 둘 있는 것보다 셋 있는 게 좋지요. 셋 보다는 백 명이 있는 게 더 좋지요?(녹음이 잠시 중단됨 )

통일교회는 애국애족하는 단체인데 핍박받고 있다

'너희들이 내 등을 타고 어서 훌륭해져라' 하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입니다. 훌륭하게 되지 않으면 훌륭하게 만들 길을 내가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대학교를 인수하려고 하고,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을 지으려고 하는 겁니다. 임자네들은 잘살고 나는 죽을 고생을 그저…. 나는 죽을 고생이 수두룩하다구.

120층쯤 되는 건물을 지으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못해도 돈이 한 3백억 원은 필요하다구요. 한국에 그렇게 높은 빌딩을 하나 지어 놓으면 한국이 어렵게 사는 나라라고 하는 간판을 뗄 수 있다구요. 그런 빌딩을 지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좋은 생각이요, 나쁜 생각이요?「좋은 생각입니다」 세계에 없는 빌딩을 한국에 짓겠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잘하는 거예요. 못하는 거예요?「잘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기성교회 목사들에게 '통일교회가 세계에서 제일 가는 집 짓는 것이 잘하는 거요, 못하는 거요? 하고 물으면 '못하는 거지, 못하는 거지' 그런다구요. (웃음) 이단, 사교가 흥하니까 큰일났거든요. 그러니까 대한민국 삼천만 민족은 잘하는 것이라 하는데, 그 몇분의 일밖에 안 되는 기성교회는 '못하는 거지. 못하는 거야. 망해야 돼. 폭파시켜 버려야 돼. 불붙어 버려라' 하는 거라구요. 그거 잘하는 거예요, 못하는 거예요?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불붙어 버리라는 심보를 가진 사람들에게 불붙게 하실 거라구요. (웃음) 하나님도 그러실 거라구요.

내가 언제 기성교회 목사들에게 원수라고 뿔대질을 하자고 했나, 밥을 달랬나, 그들 집에 가서 폐풍을 일으켰나? 우리를 못 살게 구는 그들을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되겠다 싶어 교육을 해주려고, '나와 봐라. 한번 우리하고 결투해 보자, 맞서 보자' 해서 제일 하발이 여자들을 보내 본 거라구요. 그랬더니 기성교회 어느 총회에서는 문제가 되어 '통일교회 규탄해야지, 규제해야지 큰일났소. 보잘것없는 떼거리들이 모여 가지고 앞문으로 들어오길래 뒷문으로 나갔더니 뒷문에서 또 기다리니 죽겠소' 한다는 겁니다. (웃음)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래요? 입 다물라는 거예요. 입다물 때까지는 그들의 안방에 들어가 자면서까지 할 겁니다. 항복을 받을 때까지 할 거예요.

자, 이제는 우리도 이만큼 컸고 당신들도 그만큼 컸으면 씨름을 해보자는 거예요. 심판은 나라가 해라 이거예요, 통일교회가 기성교회보다 못하는지 잘하는지, 심판은 나라가 하는 거예요. 국민이 하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국민 앞에서 한번 겨뤄 보자는 겁니다.

요즈음에 대한민국에서 누구보다도 애국애족하는 단체는 하나밖에 없나니, 그것이 왈, 통통통 일일일 교회다. (웃음) 왜 세 번 얘기하느냐 하면, 그것이 통일교회식이거든요. 소생 장성 완성해야 된다 그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기분 좋지요?「예」 그렇게 기분 좋은 날이 올 때까지는 얼마나 기분 나쁜 일이 많은지 알아요? 모르지요? 울고불고 눈물 콧물이 나오고 하는 사연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기 서 있는 사람을 기성교회에서는 잡아죽이지 못해서 형무소를 보내지 않나, 파리 죽음이 되게 하겠다고 너나 나나 붙어 가지고 별의별 공작을 다 해서 모가지를 자르려 하지 않나, 다리를 얽어매려고 하지 않나, 내가 못났으면 벌써 그렇게 되었을 거예요. 잘났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 남은 거라구요. (웃음)

그렇게 통일교회의 기반을 닦아 놓았기 때문에 백주에 광주면 광주에 와서 이렇게…. 여기에 경찰서에 있는 양반들도 왔을는지 모르겠구만. 내가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요! 옛날에는 정보과하고 나하고 원수였습니다. 내가 어디에 가면 서울에서부터 '통일교회 문 아무개 어디 행차다. 가서 무슨 말을 하나 내용을 조사하라' 이래 가지고 파수꾼들이 와서 늘 째려보고 그랬습니다. 기분 나쁜 꼴 많이 봤습니다. 신물나는 꼴 많이 봤습니다. 그렇지만 기반 없는 사나이를 누가 알아주나요? 그렇지요? 천하가 내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고, 천하만민을 발가벗겨 태평양 한 곳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실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나라는 이 길을 막기 위해 갖은 곤욕을 다 당하게 했습니다.

'삼천만을 모아 놓고 내 심중을 토로할 수 있는 그날이여 오라? 그러면서 지금까지 필승의 목표를 세워 가지고 '누가 정의에 입각했느냐! 너희들이냐, 몰리는 사람이냐? 최후의 승리는…. 선악의 판가리는 천리의 공법과 천운이 할 것이어늘' 하면서 그때까지 그 공법과 하늘의 도리를 눈물을 흘리면서도 지키고 몰리면서도 지킨다고 했습니다. 일신은 쫓기고 비참하더라도, 그것이 당연한 역사의 귀결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악한 세계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골짝길을 개척하기 위해 생애를 바쳐 온 사나이가 여기 선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 통일교회 패들은 골수가 결착될 수 있는 사연, 혹은 뼛골이 녹아서 하나될 수 있는 사연이 있기 때문에 그 목적을 위해서는 생사를 걸고 무슨 일이라도 단행하겠다고 결의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소, 안 그렇소?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여기에서 선생님이 죽으러 가자고 하면 갈래요. 안 갈래요?「가겠습니다」 가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어디…. 내려요.

우리는 남북을 통일시키기 위한 거름이 되어야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비참한 민족의 운명을 누가 책임질 것이냐? 가족찾기운동을 중심삼고 안팎이 엇갈리는 사상적인 이런 혼란과 국민적인 해이성을 어떻게 방지할 것이냐? 이게 문제라구요. 삼팔선 저 너머에 원수들이 터를 닦아 가지고 남한을 노리고 있는 형상을 보고 우리는 벌써부터 선두에 서서 승공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국제적인 기반을 닦아 왔습니다.

중공이 유엔에 가입된 것을 바라보게 될 때, 그리고 그들이 금후에 전날 국부(국민당 정부)가 한국의 편이 되어 가지고 변명하던 그 이상의 간악한 반대의 결과로서, 한국을 꺾어 놓고 북한을 내세우기 위해 얼마나 치중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통일교회의 사명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이 그런 때입니다.

우리는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습니다. 원리가 지향하는 가인 아벨 복귀의 문제를 중심삼고 남한과 북한을 통일시키지 않으면 통일교회는 망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입니다. 요즈음에 와서 사람들이 통일의 노래를 잘 부르죠? 라디오 방송에서도 통일의 노래를 방송하더구만요.

우리는 벌써 몇 해 전부터 통일의 노래를 불러 왔습니다. 우리는 남북을 통일하기 위한 거름이 된다는 것입니다. 삼팔선에서 피를 흘리더라도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거룩한 피를 흘리고 쓰러지겠다는 각오를 갖고 가자, 이것이 여러분을 지도하는 스승의 사상입니다.

나도 친히 삼팔선을 넘어선 거예요. 이남에 처자를 남겨 놓고 삼팔선을 넘어갈 때는 가족을 부인하고 갔던 길이었습니다. 거기에 가서 동지를 규합해 가지고 소원의 한날을 바라는 그 마음을 가지고 갔다가 감옥 살이도 하고 나왔지만 말이예요…. 남한 땅을 찾아 나올 때까지 김일성 도당들한테 당한 것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정보원들한테 치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고, 머리를 깎이고 하던, 여러분에게 말하지 못한 사연의 날들, 내 기억에서 뺄 수 없는 날들을 지금까지 품고 살고 있습니다.

이 사연이 해원성사되는 날, '김일성이, 너만이 높은 줄 알고 너만이 잘난줄 알던 그 권위를 일시에 꺾어 버릴 그날을 위하여, 남한 땅 깊은 산골짜기에서부터, 토굴에서부터 준비하여 산골짝을 탈 것이고, 평원지대를 직행할 것이고, 도시를 점령하고, 서울에 영향을 미쳐 너와 나와 대결할 수 있는 한날을 준비하겠다'고 각오하며 내려온 사나이입니다.

친구를 필요로 하는 현실 사회요, 혹은 단체면 단체의 협동을 필요로 하는 현실 사회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기성교회와 손잡고자 염원했던 것이 필생의 소원이요 하나님이 엮어온 소원의 길인 데도 불구하고, 잡으려는 그 손을 악마의 손이라고 잘라 버릴 뿐만이 아니라 생명까지 노리는데도 지금까지 나왔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보우하사 죽을 곳에 몰리게 되면 살 곳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나를 반대하던 목사들은 내가 감옥에 들어갔다 나와 보니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죽어 버렸어요. 이것이 세상에 이상한 일이라구요. 죽으라고 보낸 사람은 죽지 않고 죽이겠다고 보내던 사람은 죽어 버린 결과를 볼 때, 역사는 이상한 방향의 결과를 다짐지어 놓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통일교회가 발전한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처음 온 사람은 통일교회의 내용을 모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통일교회도 도(道)입니다.

기독교는 신부의 종교

성인들이 가르친 근본적인 사상의 바탕을 헤아려 볼 때 하나님을 중심삼은 선을 기반으로 했는데, 그 도 가운데 하나님이 제일 바라시는 도의 골자가 뭐냐 하면 사랑이라구요, 사랑. 하나님 앞에 세계 만민을 대표해 가지고 '하나님이 그 가슴에 아들로서 사랑하고 싶었던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해 주시옵소서' 하고 이 땅 위에 자신 있게 나타난 성인이 예수라는 양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칭호도 거기에 맞게끔 독생자라고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요, 그 사실이 인류에게는 희망 중의 큰 희망이요, 사랑중의 큰 사랑인 것입니다. 더우기 남자들에게 있어서는 이 이상의 기쁜 복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고 싶었느냐? 그 깊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비로소 인간을 대표한 하나의 성인을 중심삼고 '당신이 실컷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 두시옵소서. 당신이 사랑하는 데 있어서 부족함이 없는, 전체를 대신하여 안팎으로 인격을 갖춘 세계적인 존재니이다' 할 수 있는 대표자, 하나님이 바랐던 그분이 누구냐 하면 독생자라는 칭호를 남기고 간 예수더라 이겁니다.

그렇게 독생자 되시는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랑을 받았으니 사랑을 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예수라는 양반이 받은 사랑을 이 땅 위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하고 가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원한에 사무친 부탁의 말을 남기고 간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신랑 신부라는 말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줄거리 사상입니다. 주님은 신랑으로 오고, 신자는 신부의 입장에 서 가지고 끝날이 되거든 어린양잔치를 하게 되느니라 이거예요. 어린양잔치란 뭐냐? 세계적인 혹은 우주사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남자가 이 땅 위에 그 사랑을 독차지한 남자를 모실 수 있는 대표적인 하나의 신부를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대표자가 나오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횡적으로 뻗쳐 낼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는 종적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횡적으로 그 사랑을 세계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는 아들입니다. 독생자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종적입니다, 종적. 예수 위에 아버지가 계십니다. 예수는 사랑을 중심삼고 종적으로 아버지와 하나되었지만 횡적으로는 없다는 거예요. 이 횡적인 제1인자가 누구냐 하면 신부라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기에서 비로소 사랑의 권, 즉 면적이 생기는 것입니다. 평면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 평면권내가 생기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체득하고 그 사랑 가운데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살 수 있는 천국권을 만드는 것이 예수의 소망이었는데, 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신부가 없었기 때문에 사랑을 못 하고 간 것입니다. 맞지요?「예」

사랑을 못 하고 죽어갔기 때문에 부활해 가지고 사랑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2천년 동안 수난의 피의 대가를 치러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 과정에 있어서 기독교 순열(殉烈)들의 희생 등 전체를 다 투입해 가지고 찾아 나온 것이 뭐냐?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신부, 그 신부 하나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자, 그러면 예수는 신랑인데, 신랑이 여자예요, 남자예요?「남자입니다」 신부는?「여자입니다」 신랑은 남자이고 신부는 여자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인 가운데는 여자만 있나요?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는 남자 여자 다 있지요? 그럼 신부가 여자라면 남자는 뭐예요? 남자도 신부예요?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남자는 들러리예요, 들러리. 남자는 들러리밖에 할 일이 없다구요. 그렇지 않으면 잔칫날 종 노릇하든가. 이 두 가지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주님이 신랑으로 오시는데 남자인 목사나 장로가 '내 신랑님 어서 오시옵소서' 남자가 이렇게 하면 재수 없다구요. (웃음) 남자가 신부 되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세상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고 그저 덮어놓고 믿자고 합니다. 신부가 어떤 여자인지도 모르고 덮어놓고 장가가라고 해서 무조건 가면 되겠어요. 거 됐어요? 덮어놓고 믿어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남자의 종교가 아니고 무슨 종교냐? 신부의 종교입니다. 신부의 종교이기 때문에 남자의 종교가 아니고 여자의 종교라는 겁니다. 여자들은 좋아하는데, 남자들은…. (웃음) 그래도 할수없다구.

그러면, 남자는 무엇을 할 것이냐? 들러리감도 못 된다면 잔치날을 준비하는 심부름꾼밖에는 길이 없는 거예요. 남자가 신랑으로 오는데 자기가 남자라고 해서 내 신부 찾겠다고 하면 되겠어요?'주님 내 신부…'이래야 되겠어요? 그랬다가는 '요놈 봐라' 하는 겁니다. 역적이 되는 거예요. 이걸 똑똑히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목사들이 단에 서서 '주여, 하나님의 종, 주님의 종, 아무개 목사 기도하나이다' 하는 것이 맞다는 거예요. 종밖에 못 된다구요. '아, 주님의 들러리 아무개 목사' 이런 기도 들어 봤어요? 그게 맞긴 맞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보다 남자가 낫다, 못하다?「못하다」 그러면 이거야 죽을 지경이 아니예요? 나도 남자 인데. (웃음) 하지만 할수없다구요.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여기 처음 온 양반들, 손들어 보세요. 타락은 뭐냐? 떨어진 것을 말합니다. 떨어지지 않았으면 그냥 그대로 있었을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있었으면 나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좋았더라면 너도 좋고 나도 좋았을 것입니다. 너도 좋았고 나도 좋았으면, 남자도 좋았을 것이고 여자도 좋았을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좋아하니 좋은 것을 가지고 나쁘다고 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느냐? 있어요?「없습니다」 오늘날 좋은 것을 나쁘다고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볼 때에,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좋아하게 되는 것을 하나님이 싫어하셨겠어요? 좋아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천사들이 싫어했겠어요? 천사들도 좋아하고 다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다 좋아하면 그것이 악한 세계예요, 선한 세계예요? 선한 세계입니다.

다 좋아져서 출발했다면 좋아하는 대표적인 천사장도 있었을 것입니다. 좋은 날을 맞아 본 천사장도 있었을 것이고, 좋은 날을 맞아 본 남자도 있었을 것이고, 좋은 날을 맞아 본 여자도 있었을 것이고, 좋은 날을 맞아 본 하나님도 있었을 것입니다. 좋은 날을 맞고 나서 그 이튿날 바로 나쁠 수 있어요? 좋은 날을 맞아 본 하나님이 있었고, 남자 여자가 있었고, 천사장이 있었으면 이들이 전부 다 달라붙어서 하나되었겠어요, 둘되었겠어요?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된 그 인연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었겠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되는 데 싸움하면서 하나되었겠어요? 사랑하면서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고 인간은 그 절대적인 사랑을 소망삼고 있으니 그 소망을 이룬 사람을 보고 하나님은 좋아하셨을 것이고, 하나님과 아들딸은 부자관계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와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천사장도 좋아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전부 다 하나되는데 깨뜨릴 무엇이 있어요? 깨뜨릴 수 있어요?

세상에서도 남자와 여자가 재미있게 사는데 거지 같은 게 와서 여자에게 추파를 던진다고 여자가 '해해' 하겠어요? 어때요, 여자들 끌려가겠어요? 끌려가겠어요, 안 끌려가겠어요?「안 끌려가요」 암만 봐야 자기 남편보다 못생겼거든요. 자기 남편보다 못하거든요. 그렇지만 자기 남편보다 다른 남자가 훌륭해 보일 때는 가지 말래도 솔깃해 가지고 눈이 싹돌아가는 거예요. 그럴 수 있다고요. (웃음) 우리 통일교회 아가씨 아줌마들은 그렇지 않지만 세상에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들었어요. (웃음)

그러면 하나님 이상 잘난 사람이 있어요?「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제일 사랑을 받는 아들 이상 잘난 사람 있어요?「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 이상 잘난 남자 여자 있을 수 있어요?「없습니다」 영계에서 하나님하고 하나된 천사장 이상 잘난 사람이 있겠느냐는 겁니다. 그러니 누가 깨뜨려요? 누가 타락시키느냐 이거예요. 타락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좋아해 보지 못했다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인간 아담 해와도 진짜 좋아해 볼 수 있는 날을 못 가졌다는 말입니다. 천사 세계에서도 진짜 좋아하는 날을 못 가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타락이 뭐냐? 미숙한 자리에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기에 일반 사람들이 많이 오셨기 때문에 인류역사에 종교가 왜 필요 하느냐 하는 얘기를 해야겠는데, 그러면 좀 길어지는데, 할까요, 말까요? 「하십시오」 그러면 열 두시가 될 텐데, 나는 내일 아침 다섯시 전에 일어나야 되는데 어떻게 해요? 내일은 네시 반에는 일어나야 된다구요. 그래도 괜찮아요?「예」 여러분은 괜찮지만, 난 괜찮지 않다구요. 그래도 해요?「예」 많은 사람이 하자면 할수없이 끌려가야 되는 것이 공익의 사업이라구요. 그것이 민주주의예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중심이 없을 때 민주주의지 중심이 있는데 민주주의예요? 중심을 세워 놓고 또 선거하자고 그래요? 중심이 없을 때 민주주의가 필요한 겁니다. 여기에서 중심은 내가 아니요? 그렇지 않소? 내가 중심이 아니예요? 여러분은 나 때문에 왔지요?「예」 그런데 나 내놓고 또 민주주의예요?

선거하자구? 그런 말 하면 기분 나쁘다구요.

자, 봅시다. 좋아했다면 몇 분이 좋아했을까요? 우리의 조상들이니까 몇 사람이 아니고 몇 분이지요? 옛날 우리 종지의 할아버지 할머니로 올라가니까 몇 분이라고 해야지요? 또 하나님이 들어가니까 몇 분이라고 해야지요? 세상 천지가 생겨난 후 좋아하기 시작했으면 몇 분이 좋아했을까요? 첫째는 누구예요?「하나님」, 둘째는 「아담」 아담.

아담은 왜 아담인지 알아요? 타락했기 때문에 아담이란 이름이 생겼다구요. 아담이 뭐냐? 아, 인간 세상에 담이 생기게 한 괴수이기 때문에 아담인 거예요. (웃음) 해와는 뭐냐? 전부 다 깨뜨려 버리고 다 고장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만드는 일을 해서 와야 하기 때문에 해와라구요.

(웃음) 지루하니까 이러고 가자구요. 그 다음에는 누가 좋아했다고요?「천사장」 천사가 있으면 천사가 좋아했을 거예요. 뭐 천사장도 좋고 천사 종도 좋다는 거예요.

좋아하게 되었다면 하나님이 좋아하시자마자 아담이 좋아했겠어요, 안 좋아했겠어요? 아담이 좋아하자마자 해와가 좋아했겠어요, 안 좋아했겠어요? 아담 해와가 좋아하는데 천사장이 찌뿌등했겠어요? 그랬다가는 추방당한다구요. 싫더라도 '허허' 해야 된다는 거라구요. (표정을 지으면서 말씀하심. 웃음) 좋아하기 시작했다면 하나님이 첫번째로 좋아하시고 그 다음에는 「아담」 아담, 그 다음에는 「해와」 해와, 그 다음에는 「천사장」천사장, 전부가 다 좋아했을 것입니다.

좋아했다면 무엇을 중심삼고 좋아했겠느냐? 사람이 제일 좋은 것 중심삼는다면 무엇을 중심삼겠어요?「사랑입니다」 이기려면, 승리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는 실력이 있어야 이기는 겁니다. 알겠어요? 그렇지요?

세상에서는 처음엔 힘이 주관했습니다. 그 다음엔 머리가 나왔습니다. 세상의 역사가 그렇다구요. 역사의 승리적인 판도를 분석해 볼 때 주먹 가지고, 힘 가지고 세계를 움직인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 시대가 지나가게 되면, 싸우는 데는 힘만 세어서는 안 되겠으니까 생각을 해가지고 '야. 칼을 만들어서 치면 되겠구나' 해서 머리가 가담해 가지고 이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던 거예요. 이런 역사를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제는 사랑이 지배하는 세계가 되어야 할 때

지금까지 역사를 볼 때, 힘의 기준이 승패를 결정했는데, 거기에는 먼저 체력을 중심삼고 그 왕초가 세계를 움직인 때가 있었고 그 다음. 거기에 머리, 지혜를 가담시켜 지혜에 따라 승패의 결과가 나온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힘을 통해서도 세계를 움직여 보았고, 머리를 중심삼고 세계를 움직여 봤는데 사랑을 중심삼고는 세계를 움직여 봤어요?「아니요」 이것이 문제라구요.

여러분들은 사랑을 빼앗기 위해서 생명을 걸고 결투하는 것을 봤지요? 그렇지만 그 사랑을 가지고 세계를 한번 움직여 보았어요? 위대한 힘이요. 절대적인 능력의 모체인 사랑을 가지고, 이 세상의 승패를 결정할 요인으로 결정타를 쳐 본 적이 있었느냐. 있었어요?「없었습니다」 이렇게 비판해 볼 때, 이 문제에 있어서 생명의 본체는 지식보다는 사랑인데 이 사랑을 투입할 수 있는 기반이 안 되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세계관이라구요. 거 멋져요, 안 멋져요?「멋집니다」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개똥 같은 사랑이 아닙니다. 뭐 사랑 가운데 개똥 같은 사랑도 많지요. 그것은 고양이 새끼도 안 돌아보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이걸 알아야 돼요. 이것은 싫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인이라는 패들은 무엇을 중심삼고 이 세상을 이기겠다고 나섰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늘의 도리를 가르쳐 줘 가지고 이겨 보자, 하늘의 힘을 이용해서 이겨 보자, 하늘의 지혜를 가지고 이겨 보자, 그 다음에는 하늘의 사랑을 투입해 가지고 이겨 보자는 것입니다. 이 싸움입니다.

그러나 인간 세상은 힘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고, 지식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직 사랑의 싸움을 할 수 있는 때가 안 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 지도자들은 말세가 되면 자기 때가 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말세가 되면 주먹의 힘은 다 지나가고. 지식의 힘은 다 지나가고, 사랑의 힘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런 최후의 세계적인 패권시대, 그때가 바로 끝날이 되나니라.

힘 센 형님이 집에 들어와서 대장 노릇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아무리 힘 센 형님도 집에 들어와서는 대장 노릇 하지 못합니다. 링에서는 세계적인 챔피언이 될 수 있어도 집에 들어와서는 대장이 못 되는거예요. 알겠어요? 또 박사학위를 몇백 개 가진 형님이라고 집에 들어와서 대장 노릇 할 수 있느냐? 우리 남자들, 할 수 있어요?「없습니다」 왜 없어요? 부모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대판절 뭡니까? 무엇 때문에 힘도 세계적인 챔피언이고 머리도 세계적인 챔피언인데 아들이 혹 같은 존재인 아버지 어머니를 한 손가락으로 그어 버리고 마음대로 다 하면 될 텐데 왜 마음대로 못하느냐?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부모가 없게 될 때는 힘으로도 제일이고, 머리로도 제일이니 힘 가지고 '야 이놈들아' 할 수 있고, 머리 가지고도 그렇게 하면 '예이'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의 기원이 어디예요? 사랑이 어디서부터 나와요? 자기에 서부터예요?「부모에게서부터 …」 부모에게서부터 나오기 때문에, 사랑의 기원은 자기가 아니고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몰라보는 결과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랑을 중심삼고는 주인이 자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못 하는 거예요. 그러니 부모 앞에 와서는. '예, 어머님 아버님, 그렇습니다' 하는 겁니다. 부모가 '네가 아무리 이름이 높고 힘이 세다 하더라도 어머니 아버지 앞에서는 해야 할 도리에 어긋나는 것은 안 된다' 하면 '예 예 예. 어머님 아버님 그렇습니다' 하는 거예요. 왜냐?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주체요, 자식은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주체는 대상을 위하고, 대상은 주체를 따라야 하는 것이 천리원칙입니다. 이것을 파탄시키는 날에는 그 집안은 몽창 무가치한 결과로 떨어지는 것이 천리원칙이라는 것은 아무리 무식한 인간이라 해도 천성을 따라 태어났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외적으로 힘이 센 챔피언이라 하더라도 부모 앞에서는 머리를 숙여야 되는 것입니다. 틀렸어요, 틀리지 않았어요?「틀리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법에 의해 세상 끝에 가서는 어떻게 되느냐? 지금까지는 큰 남자, 잘난 남자, 힘센 남자들에 의해서 역사의 투쟁이 계속되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최후에 남는 것은 무엇이냐? 힘을 가지고, 머리의 힘, 몸의 힘을 다해 일등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모두 승리로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또다시 싸워야 할 길이 있나니 그것이 뭐냐 하면 사랑의 길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와 같은 인연이 역사시대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날 인간 세상에 있어서 타락이 뭐나? 힘 중에 최고의 힘이될 수 있는 사랑을 중심삼고 출발의 기원이 되는 그런 터전이 되었더라면 혹은 그 터전을 능가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 가지고 사회, 국가, 세계가 그 사랑에 의해 조정받아야 될 것인데, 이 사랑을 몰라보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타락된 세상이라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들은 끝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뭘 하느냐? 사랑을 중심삼은 힘의 비중을 가려 가면서 가정의 가치를 다짐하고, 나라의 가치를 다짐하고, 역사의 가치를 다짐하고 혹은 미래의 가치를 다짐할 수 있는 그 세계가 오기 때문에, 그 사랑과 일치되지 않는 무리들은 심판을 받는다 하는 것이 종교인들의 관(觀)입니다.

어떤 성현보다도 만인을 더 사랑해야 한다

그러면 잘났다고 하는 성인들을 바라볼 때, 그 성인들의 소망의 표준은 어떤 것이냐? 이 흘러가는 악한 세계에서 죽지 않고 이 세상을 넘어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도 입산수도를 하라, 기독교도 독신생활을 하라고 하는 거예요. 혼자 외롭게 살면서 미래의 소망의 그곳을 바라보고 가라는 것입니다. 고독이 극하면 극할수록 그 미래의 소망을 갈망하는 힘이 배가되기 때문에, 세상에서 고립된 길을 가라고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건 틀림없어요. 알겠지요?

그러면, 종교가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세계에서 출세해 본 때가 있었느냐? 종교가 역사시대에 세계를 주름잡고 어떤 주권자를 이래라 저래라 마음대로 할 수 있던 때가 있었어요? 중세 때는 그랬지만 그것은 점심밥 먹는 때라구요. 점심밥 먹는 때, 한때 그랬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두고 볼 때, 종교가 바라는 것은 이 망할 역사과정에서 출세하기를 바라고 세계를 제패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전부 심판해 버리고. 절대 굴복할 수 있는 터전 위에서 한번 행차를 해보겠다는 것이 종교입니다. 이거 멋지지요?

우리 통일교회는 어떠한 교회냐? 고 나라를 위해서 결의를 새롭게 해가지고 나타난 교회입니다. 알겠어요? 그렇다고 여러분들에게 힘 있다고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몸뚱이의 힘을 가지고 자랑하는 통일교회 패는 망합니다. 머리를 가졌다고 자랑하지 말고 사랑을 가졌다고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역사 과정의 어떠한 충신보다도 이 나라를 더 사랑하고 어떤 성현보다도 세계 만민을 더 사랑하라는 겁니다. 그 누구보다 더 사랑하라는 겁니다.

개인의 입장에 서서 그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라… 이 사랑하자는 기준이 세계적이어야 되겠습니다. 역사의 어떤 성인들도 따를 수 없는 최고의 자리에서 사랑해야 되겠다 하는 것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의 출발 기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 세계가 '좋다' 하는 날을 갖지 못했으니 나쁘다는 거예요. '나쁘다' 하는 것이 타락한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러면 하나님은 어때요? 좋다는 거예요, 나쁘다는 거예요? 타락한 세계는 나쁘다는 거예요. 그것은 아담이. 해와가. 천사장이 나쁘다는 거예요. 다 원치 않았어요. 원하지 않았는데 맞아떨어졌다는 거예요.

나쁘다 하는 입장에 떨어졌으니 나쁜 부모가 출발했습니다. 그렇지요? 「예」(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나쁜 부모, 나쁜 자녀, 나쁜 가정 그렇지요? 나쁜 씨족, 나쁜 민족, 나쁜 국가, 나쁜 세계, 나쁜 하늘땅, 나쁜 천지가 됐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지요? 그렇지 않아요? 나빴으니까 나쁜 부모, 자녀, 가정, 씨족, 민족, 국가, 그 다음엔 세계, 그 다음엔 하늘땅이 되었다는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보라구요. 여러분 주위에 나쁜 것이 많소, 좋은 것이 많소?「나쁜 것이 많습니다」 나쁜 것이 많습니다.

그러면 그 나쁘다는 근거지가 무엇이냐?(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우리 나라는 선한 나라예요, 나쁜 나라예요?「선한 나라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물론 선한 것도 있긴 있지요. 비례적으로 보면 악이 많아요, 선이 많아요?「악이 많습니다」 악이 득세해요, 선이 득세해요?「악이 득세 합니다」 부정부패가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나쁜 것입니다」 부정부패하는 사람이 득세해요, 망세해요?「득세합니다」 그럼 그게 좋은 나라요, 나쁜 나라요?「나쁜 나라입니다」 나쁜 나라이기 때문에 그렇게 나가다가는 흥해요, 망해요?「망합니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라가 망해서는 안 되겠으니 국민이 합해 가지고 그것을 길러야 돼요, 제거시켜 버려야 돼요?「제거시켜야 됩니다」 제거시켜 버려야 됩니다. 통일교인은 부정부패하는 패에 편당된 패가 아닙니다. 이것을 제거하는 무리입니다. 제거시키는 데는 한 사람 가지고는 안 되겠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근거지를 찾아가자는 겁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실상을 바라볼 때, 좋은 나라가 되기를 바라지만 실상은 좋지 못한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그걸 걱정하지요? 나라가 그러면, 그런 나라권내에 있는 사회는 좋아요, 나빠요? 나쁜 것이 많지요? 그러니까 나쁜 데 걸려들지 말고 좋은 데 걸려들어라, 그러는 겁니다. 여러분, 사회가 그러면 단체는 어때요? 단체도 회사도 나쁜 풍조에 휩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여자들이 해야 할 일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는 어때요? 사회를 휩쓸고 있는 풍조에 바람을 타야 되겠어요, 안 타야 되겠어요?「안 타야 됩니다」 안 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처녀 총각이 연애도 못 합니다. 댄스도 못 합니다. 그런 거 하는 것을 보는 날에는 벼락 불이 나는 거예요. 남편 있는 여자들은 뭐 입술에 연지를 바르고 분을 발라도 괜찮지만, 시집가기 전의 처녀들은 무슨 짓을 하려고 연지 바르고 무슨 짓을 하려고 분을 바릅니까? 그것은 사된 것입니다.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얼굴에 바르고 다녔다면 전부 다 싹싹 긁어 버려라 이거예요. 그렇게 하는 것이 선이라는 겁니다. (웃음) 왜 웃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혼자 사는 아주머니는 화장도 못 합니다. 혼자 사는 아주머니들이 화장하는 것은 딴 마음 먹고 다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혼자 된 과수댁이 분바르고 교회 나온다는 것은 혹시 신랑감 있는가 하는 도둑 같은 시꺼먼 마음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 되기 때문에 화장도 못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여기 혼자 사는 아주머니들, 오늘 저녁에 집에 돌아가면 빡빡 씻어 버리라구요. 그게 다르다구요.

또 여자들은 요사스러운 것들입니다. 할머니. 실례합니다. (웃음) 옛날부터 여자는 요사스러운 사람이라고 들었소, 잘 알지는 못하지만. (웃음) 들은 말이 그래요. 여자들을 편하게 해주면 세상에 좋지 못한 퇴폐 풍조가 생겨나니, 여자는 될 수 있는 대로 부려 먹어라 하는 것이 과거 5백년 이조시대의 법이예요. (웃음) 그 법이 잘 생겼어요. 못 생겼어요? 여자들, 한번 대답해 봐요. 잘 생겼어요, 못 생겼어요? 대답을 하기 싫은 모양이지요? 나한테 물어 보면 못 생겼다고 하기보다 잘 생긴 것 같아 보인다고 하겠습니다.

여자는 놀리지 말고 고달프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런 집은 잘되는 것입니다. 여자가 만일 바람이 나서 명동 행차…. 무슨 거리인지 모르니 난 명동밖에 모르니 명동이라 한 거예요. 광주에 와서도 할수없다구요. 광주에서 제일 좋은 거리가 어디예요?「충장로입니다」 충장로? 신작로가 아니구요?(웃음) 여기 광주에 사는 여자들이 충장로 출입이 빈번하게 되면 그 집에 요사스런 바람이 부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될 수 있으면 잡아매 두라는 거예요. (웃음) 여자를 그렇게 하는 집안은 잘된다 이겁니다.

보라구요. 세 아들과 두 딸을 둔, 다섯 자녀를 둔 어머니가 되었다 하면 쉴 새가 있어요? 언제 충장로에 바람 쐬러 갈 새가 있겠어요? 정성을 들이고 들여도 부족할 텐데도 불구하고 소풍갈 틈이 있어요?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아무리 고달파도 불행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하게 여기는 그런 여자를 가진 가문은 흥하느니라,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여자들은 시집가면 그저 딱 가두어 놓고 바깥 출입 못 하게 하느니라, 이렇게 된 거예요.

그렇지만 나라가 망하게 될 때, 남자가 등신일 경우에는 여자들이 선두에도 서야 되느니라,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 여자들이 일선에 앞장선 것은 남자들이 등신감이기 때문이다…. (웃음) 거 등신인가 아닌가 비교해 보라구요. 이 남자들이라는 것은 정성들이는 데는 꼴찌입니다. 여기 소위 남자들, 교회장이라고 레테르 붙은 패들 중에도, 여자는 악착같이 새벽 집회에 나가 정성을 다해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 민족과 전라남북도를 사랑하시어 구원하시옵소서' 하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기도하는데, 나자빠져서 '드르릉 쿨쿨쿨' 이런 녀석들도 있다구요. 이건 날벼락을 맞아야 됩니다. 그건 등신이예요, 등신. 교회장들, 알겠어요?「예」 여기 광주 교회장 알겠어?「예」 광주 교회장, 등신이 아니야? 등신 축에 들어가지 않아?「등신은 아닙니다」(웃음) 등신은 아니면 무슨 신인가? 아니면 됐지 뭐…. 등신은 아니라면 조금 얼룩덜룩하다는 말이구만. 그 말은 경력 있다는 말이라구. 솔직하니까 좋다구.

할수없이 여자패거리를 내세우는 거예요. 남자들, 어디 그래 봐요. 우리 여자들이 한번 득세해 보자구요. 그렇지요?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여자들이 득세하고 있다구요. 남자들이 여자들한테 쥐여 가지고 여자들이 벌어다 주는 밥 먹고 살고 있구만. 교회장들, 그렇지? 그래, 안 그래?'뭐뭐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할수없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뭐 조금 모면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 같아요? 사실 근거지라 할수없다구요. 솔직해야 된다구요. 이럴 때는 눈을 내리깔고 '예' 하면 안 된다구요. 눈을 똑바로 뜨고 앞을 척 바라보면서 '예? 해야 된다는 겁니다. 등신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내가 나발 불어 여자를 출세시킨 거예요. 감사하지요?「예」

언제 대한민국에서 여자가 나라를 대표하여 '우리를 본받으시오. 대한 민국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장래에 희망이 있는 소망의 대한민국을 창건해야 됩니다' 하고 정성에 사무쳐서 여자가 사회의 선두에 서 봤어요? 이만 했으면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낫지요? 그렇지요? 그러니 고맙지요? 문선생을 만났기 때문에 그런 놀음도 한번 해보는 거라구요.

참의 근거지는 어디인가

이제 보라구요. 근거지가 어디냐? 이 나라입니다. 나아가 세계입니다. 보세요. 20년 전에 남한을 침략한 공산당, 침략자들. 공산당이 나쁜 거지요? 가만히 있는데 야간에 침범해 들어온 것이 잘한 거예요? 그러한 침략자들은 세계가 단결해 가지고 모가지를 잘라 버리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2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그때 침략자라고 규탄하였던 중공을 유엔에 가입시켜요? 이놈의 세상 다 됐지요? 이런 풍조를 잘라 버리고 싶은 통일교회 문선생입니다.

그래서 세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국부(국민당 정부)를 지지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와 국제승공연합이 일본의 용공화된 사회의 지탄을 받으면서 장개석을 지켜야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의 청년단원들이 가두에 서서 일제히 단식 투쟁을 했습니다. 이번 유엔총회를 할 때 유엔본부 광장에서 미국 코쟁이들을 끼워 가지고 국부 지지를 위한 4일 동안의 금식투쟁을 했습니다. 한국 신문에는 그런 기사 하나도 안 났지요? 봤어요?「못 봤습니다」 특파원들은 통일교회를 미워하거든요. 일본 신문, 중국 신문 등 세계의 신문에는 다났는데…. 그런 거 알아요, 몰라요?「모릅니다」

여러분, 그때 사또 수상이 중국을 옹호한다는 발표를 해 가지고 상당히 곤경에 빠졌었어요. 그게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줄 알아요? 난데없는 나라의 여기 선 사나이와 인연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여러분, 통일교회가 기분좋아 그러는 줄 알아요? 배후에서 세계적 정상을 표준해 가지고 줄을 달아 가지고 조종하겠다고 나선 통일교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이상은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통일교회의 이 시시한 것들, 이 통일교회에 시시한 패들이 많다구요. 이렇게 얘기하면 기분 나쁠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구요. 여러분이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 언제 매 한번 맞아 봤어요? 시시하다구요. 애국애족하기 위해서 밤을 새워 가면서 하늘을 바라보고 아픈 가슴을 안고 몸부림쳐 봤어요? 시시한 패들이라구요. 망할 운세에 놓여 있는데 잠만 자는 것들, 다 시시한 패들이예요. 시시한 패들이라구요.

'나라야 어떻게 되든 내 교회만 잘 되면 되지, 목사 생활에서 월급이나 잘 받아 가지고 자식들 공부시키면 되지' 하는 교직자는 퇴폐적인 종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은 석양의 그림자가 사라지듯이 하나 둘 사라질 것입니다. 석양에는 큰 그림자는 나오지만 오래지 않아 한꺼번에, 깜빡하는 순간에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석양의 그림자는 몹시 크지요? 그렇지만 깜박하는 순간에 그림자는 날라가 버립니다. 그런 것과 같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래서는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나서 가지고 일하는 것은 통일교회 전도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 전도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언제든지 간판을 뗄 수 있습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한 통일교회가 되지 않으면 통일교회는 망하는 겁니다. 오늘날 세계 국가는 세계를 살리기 위한 국가가 되지 않고는 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이라구요.

그러면 그 근거지가 어디냐? 오늘날 세계도 나쁜 세계입니다. 대한민국도 나쁜 권내에 싸여 있는 대한민국이라구요. 그렇지요? 오늘 사회에도 악이 많다구요. 그렇지요? 선한 것이 더 많았는데, 악이 큰 겁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악이 여기서 나와 가지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그 다음에 뭐예요?「세계요」 이렇게 된 겁니다. 선은 요만 하니, 요 선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요, 여러분? 모르겠지요?「예」 이것도 선인 것같고 저것도 선인 것 같고, 선이 무언지 모른다구요. 모르겠는데 있긴 있겠어요. 없겠어요?「있습니다」 있어요?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없으면 큰일난다구요.

그럼 악한 것은 뭐냐? 악한 나라라고 했습니다. 악한 개인이 수두룩하고, 악한 가정이 수두룩하고….부부끼리도 남을 사기쳐 먹을 것을 의논하고, 어떻게든 남을 때려 가지고 자기들 잘살 것을 의논합니다. 그것이 선한 가정이예요? 악한 가정인 것입니다. 이웃 동네를 어떻게 하든지 못살게 하려고 하는 그게 선한 동네예요? 이웃 나라를 어떻게든 못살게 하려고 하는 것이 선한 나라예요? 이러한 악한 권내에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가정을 벗어나 사회나 씨족권내에 가면 선이 있겠어요?

나가면 나갈수록 선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나가면 나갈수록 선이 가까와지는 것이 아니라 멀어져 갑니다. 요즈음 처녀 총각들, 퇴폐 풍조라 하는 것, 서울에서 보면, 고등학교 갓 졸업한 녀석들이, 귀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이 밤을 새워 가며 뭐 뭘 한다고? 춤을 추고 뭐….무슨 춤? 트위스트? 트위스트는 뱀춤이라구요. 뱀춤을 꼬불랑 꼬불랑 꼬불랑 추고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집을 떠나서 하는 거예요, 집안에서 하는 거예요? 나쁜 일을 할 때는 집 안에서 하려고 해요. 집 밖에서 하려고 해요?「집 밖에서 하려고 합니다」 그건 틀림없는 거라구요. 좋은 일 하려고 할 때는 울타리 밖에서 하려고 해요, 울타리 안에서 하려고 해요?「울타리 안에서 하려고 합니다」 좋은 일도 울타리 밖에서 해 가지고 들어오면 좋지만 그럴수 없다는 거예요. 우선 좋으려면 그 집의 사람들, 어머니 아버지한테 칭찬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구요. 그렇지요? 이렇게 돼 있는 거라구요.

자, 이렇게 보게 될 때 나가면 나갈수록…. 집을 나가 가지고 자기 맘대로 행동하는 패들이 좋은 데 서겠어요, 나쁜 데 서겠어요? 나쁜 데 서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거 알아야 돼요. 나가면 나갈수록 위험천만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나가면 나갈수록 위험천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근거지가 어디냐? 세계 끝에 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평화의 나라를 바라지만 앞으로 평화의 나라가 오리라고 생각하면서 미래를 바라보는 것은 꿈입니다, 꿈. 그건 다 실험해 본 거예요. 끝난 거예요.

공산주의도 중공과 소련이 분규 단계에 들어왔지요? 이들은 영원히 합하지 못해요. 미국과는 가까이 되지만, 소련과 중공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또 미국 자체도 민주세계에 있어서 마지막 때가 된 것입니다. 그렇지요? 한국이 미국을 좋아해요, 나빠해요? 중국이 미국을 좋아해요, 나빠해요? 약소국가들이 미국을 좋아해요, 나빠해요? 나빠하는 거예요. 왜? 약속을 해놓고는 지키지 않는 대표자가 되었으니 그놈 망해야 된다고 하는 겁니다. 미국인이 여기 와서 기분 나빠도 할수없습니다. 모가지를 짜른다 해도 할수없습니다. 내가 닉슨을 만나면 직접 대놓고 '당신 잘못했지' 하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내가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을 만나 가지고도 들이 쳤다구요. '당신 잘못했소' 하고 서슴지 않고 얘기했습니다. 내가 이번에 미국 가면 그럴 거라구요. 미국 시아이 에이(C.I.A )에서는 내가 미국에 오는 걸 꺼립니다. 미스터 문이 오게 되면 선동분자가 될지 모른다고 해서 대단히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가야 되겠다구요.

왜 옆으로 기분 나쁘게 요렇게 바라보는 거야. 옆에서 그렇게 머리를 내밀고 있으니 참 인상적이네 이거. (웃음) 못 들어와서 그러나? 아담이 됐구만. 아! 담이 있어서 못 들어간다 그말이지?(웃음) 자, 이제 웃지말자구요.

악의 근거지가 어디냐? 악의 근거지는 전체입니다. 그렇지요? 이거 큰일났구만요. 그럼 선의 근거지는 어디냐? 조그마한 요것밖에 없어요. 악의 근거지가 몽땅 이러니 그 악이 죽지 않으면 선이 득세할 수 있어요?

그 사회 풍조가 세계화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라는 것이 그 모든 위신과 체면을 팔아먹어 가지고 땅의 영락적(榮樂的)인, 세계적인 판도에 휘말려들게 될 때에, 그때에는 세계적으로 악이 팽창하는 때이고, 악이 세계적으로 팽창했다는 것은 악이 열매맺을 때가 되었다는 것이니, 그때가 되거든 끝날이 온 줄 알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끝까지 견디는 자가 지옥에 가느니라' 그랬던가요?(웃음)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느니라(막 13:13)"고 했습니다. 참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선이라는 것은 어제 좋다가 오늘 나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나쁘더라도 그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보다 큰 운세에 편승해야 망하지 않아

이렇게 볼 때. '세계를 다 버려라.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이 세계에서 사라져 버리게 해라' 이겁니다. 그것을 믿지 말라 그 말이라구요. 공산당을 믿을 수 있어요? 민주주의의 선도국가인 미국을 믿을 수 있어요? 미국을 믿을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렇게 돈이 많고 잘났다고 하는 나라도 믿을 수 없는데, 그보다 못한 나라가 나서면 믿겠어요? 대한민국을 믿겠어요? 자기도 못 믿는 주제에…. 믿지 말라는 거예요. 그럼 대한민국 자체는 북괴에 대해서 자신 있어요?

그러면 자기가 자기를 믿을 수 있느냐? 못 믿을 자리에서는 큰소리하지 말라는 거예요. 믿을 수 있는 길을 찾아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누굴 바라보지 마십시오. 악한 사람들은 동정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들은 전부 다 잡아다가 이용해 가지고 제물삼아 자기의 소모품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나라들은 지금까지 약소국을 전부 다 자기의 노리개감으로 알고 마음대로 밟고 죽이고 전부 다 약탈해 갔습니다.

그러니 외부를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계 어느누구도 믿을 수 없는 때가 왔습니다. 좋다고 했던 나라도 믿을 수 없고…. 다 믿을 수 없는 때가 되면 끝날입니다. 불신이 팽창한 세계가 여러분 목전에 다가오거든, 이놈의 세상을 한꺼번에 몽땅 싸서 태평양에 처넣고 싶은 때가 오거든 끝날이 온 것을 알라는 말입니다.

보라구요, 좋다고 하던 미국도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렇지요? 우리 나라의 주권자도…. 만약 북괴가 내려온다 할 때 보따리 싸는 패들이 많게 되면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나라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박대통령을 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공화당을 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국회를 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나라에 사망의 위협이 찾아올 때에 보따리 싸려고 하지 않고 일선의 선두에 서서 '삼천만아, 우리를 따라서 삼팔선으로 가자'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대한민국은 안 망합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이 보는 관입니다.

싫다고 해도 들이쳐야 되는 겁니다. 남들은 못 치지만 이렇게 쳐서라도 죽다가 남아져 가지고 쓸 만한 하나의 종교가 서게 된다면 다시 민족을 편성할 수 있습니다. 지금 공산주의를 믿을 수 있어요? 둘이 쩍 갈라 졌지요? 둘이 갈라져서 싸우는 판을 믿을 수 있어요? 민주세계도 믿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믿을 수 있어요? 믿을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없어요? 그게 대한민국 백성이예요?(웃음) 이건 웃을 일이 아닙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면 나라는 그렇다고 치고 자기 회사는 믿을 수 있어요? 나라가 없는데 회사를 믿을 수 있겠어요?

개인의 운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가정의 운세가 휩쓸어 들어갈 때는 개인의 운세는 밀리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가정이 그 동네에서 아무리 양반 행세를 했다 하더라도 그 동네의 운세가 망운에 들어가게 될 때는 그 가정이 남아져요? 큰 운세권내에서는 작은 운세를 차지했다 하더라도 밀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동네 운세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아무리 풍년이 들었다 하더라도 그 나라가 비운에 처하게 될 때는 그 동네 운세 가지고 나라의 운세를 못 막는 것입니다. 나라가 비운에 잠기면 그 동네가 행복하더라도 나라의 비운에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대한민국이 지금 2차 5개년 계획을 중심삼고 알뜰하게 경제 성장을 하여 세계에 주목거리가 될 수 있을 만큼 발전을 가져왔다 하더라도, 국가 운세를 세계 운세가 휩쓸어 가게 될 때에는 국가의 운세로 세계의 운세를 못 막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유엔 총회에서 중공이 저렇게 되니까 대한민국은 큰일났다구요. 그리 됐지요? 세계의 운세를 맞은 미국이 아무리 잘났다고 큰소리하더라도 천운이 몰아치게 될 때는 세계의 운세도 간데없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더 큰 운세가 땅 위에 찾아오면 작은 자리의 운세 들은 끌려가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세계 운세는 망할 운세권내에 들어와 그 운세권내에서 지금 우왕좌왕하지만, 여기에 천운이 감들 수 있는 천지의 운세가 한번 흔들어 놓는 날에는 이 운세는 천운을 막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유엔 총회도 산산조각이 나 깨져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이 망할 패들을 전부 다 깨뜨려 버리면, 혹은 대한민국이 단결해 가지고 유엔 총회를 전부 다 깨뜨려 버리면 좋겠죠?「예」 여기에 하나님이 '옳다. 네 편이 되어 주겠다'고 하면서, 천운으로 몰아치게 되면 할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만사 잘났다고 자랑하지 말라는 겁니다. 개인이 잘났다고 아무리 자랑하더라도 가정의 운세를 못 가지면 망조가 드는 것입니다. 그렇죠? 개인은 좋았지만 집에 들어가게 되면 엉엉 울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가정이 암만 좋다고 하더라도 동네에 비운이 젖어들 때는 '아이구' 하며 또 울어야 됩니다. 그 동네가 아무리 잘살고, 전라남도가 아무리 잘살게 되고. 전라북도가 아무리 잘살게 되더라도 국가에 비운이 찾아올 때는 잘살던 보따리를 다 집어 던지고 울어야 된다구요. 그렇지요? 나라가 암만 잘산다 해도 세계의 운세에 밀려나는 것이요, 세계 운세가 아무리 좋아도 천운 앞에 밀려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장은 천운입니다. 대장이 뭐라구요?「천운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아하 통일교회 문선생은 숙명론자구나'라고 할 거예요. 그러나 기분 나쁜 소리 하지 말라구요. 여러분이 밖에 나갔다 와서는 '오늘 재수 좋았다'라고 하지요? 그 재수 좋았다는 것은 오늘 운이 좋았다는 말이지요? 그렇지요? 요전에 축구할 때 한국이 어디한테 졌나요? 말레이지아한테 졌지요? 지니까 운이 나빠서 졌다고 하는 소리 들었어요, 못 들었어요?「들었습니다」'실력은 더 나은데 운이 나빴어' 요런 말 들어 보지요? 여러분도 그런 말 하지요?「예」 그러면서 왜 운명론자니 뭐니 하느냐는 거예요. 그걸 볼 때 큰 운한테 작은 운은 밀려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쁜 것은 왜 그러냐 하면 나쁜 부모가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예요.

오늘날 세계를 바라볼 때, 나쁜 부모로 말미암아 나쁜 아들딸이 나오고, 나쁜 아들딸로 말미암아 나쁜 씨족이 나오고, 나쁜 민족이 나오고, 나쁜 국가, 나쁜 세계가 되었으니, 이런 세계도 그냥 남아져야 되겠어요, 안 남아져야 되겠어요?「안 남아져야 합니다」 가을이 되면 가시나무고 뭐고 할것없이 전부 다 휘발유를 뿌려 불을 살라 버리듯이 불살라 버려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불살라 버린다고 했다구요. 그 말은 맞다 구요. 그러나 나쁘지 않고 좋다 하면 그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나쁘다 하는 것은 뭐예요. 전부가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거짓 부모, 거짓 자녀, 거짓 종족, 거짓 민족, 거짓 국가, 거짓 세계입니다. 그 반면에 좋은 것은 어떻게 되느냐?(판서하시면서) 참 뭐예요? 부모, 참자녀, 참씨족, 참민족, 참국가, 참세계, 그 다음에 참천지(天地)가 아니예요. 천주 (天宙)예요. 통일교회에서는 천주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주의가 많이 올라갔지요? 무슨 주의라구요? 천지주의가 아니라 천주주의라구요. '주' 자는 무슨 '주' 자예요. 땅 '지(地)자가 아니고 집 '주(宙)자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입니다. 그거에 대해서는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풀이하기가 어려워요.

선과 악의 분기점

그러면, 여러분, 참부모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참부모란 말 처음 들어 보지요? 여러분을 낳아 준 어머니 아버지는 타락한 인연을 통해 가지고 지금까지 물고 물리고 낳고 낳고 해서 지금의 어머니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게 선이예요, 악이예요?「악입니다」 악의 권내에 있습니다. 악한 것은 아니지만 악의 권내에 있는 거라구요. 그러니 이 권내에서 벗어나야 돼요, 안 벗어나야 돼요?「벗어나야 됩니다」 그러니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 아버지를 죽도록 모시라는 말이예요, 모시지 말라는 말이예요?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길을 떠나라는 거예요, 거기서 죽으라는 거예요? 길을 떠나지 않고는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노정에 있어서 참을 찾아 나서는 길이 어떤 길이냐? 보라구요. 아까 말하기를 성인들은 참을 찾아 나왔던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신한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자기 닮게 하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종교가 생긴 것입니다. 그렇죠?「예」 그래서 종교인 세계와 비종교인 세계가 있게 된 것입니다.

종교인들이 비종교인들한테 괄시받는 세상은 악한 세상입니다. 따라서 종교인들이 악한 사람을 치리할 수 있는 때가 되거든 새로운 시대가 되는 줄 알라는 것입니다. 그때의 종교는 어떤 종교냐? 참된 종교이어야만 합니다. 그 참된 종교는 어떠해야 되느냐? 지금의 악한 세상의 관념과는 모든 것이 달라야 합니다.

그럼 선이라는 관념은 어디서 나오느냐? 악은 개인을 위주한 것이요, 선은 전체를 위주한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출발할 때는 악이 되는 것이고, 전체를 위해서 출발할 때는 선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사람은 어디에서부터 생기느냐? 전체를 위해 살겠다 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요, 전체를 희생시키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살겠다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 악의 근거지가 어디까지 왔느냐?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개인까지 왔습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에, 어떻게 되어 있느냐? 개인 중에도 공적인 것을 바라는 사람이 있고, 사적인 것을 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몸이 있지요? 그런데 몸과 마음이 달라요, 같아요?「다릅니다」 몸은 '그저 마음대로 살아라. 먹고 싶을 때 먹고, 그저 뭐 내일의 희망도 없다. 그저 맘대로 살면 된다' 이러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개인을 중심삼으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악한 처소가 몸뚱이의 사람이요, 선한 처소가 마음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둘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않을 때 좋아요?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를 거치면서 싸워 나온 거예요.

그러면 그런 사람, 참된 사람이 나왔느냐? 몸과 마음이 영원히 변치 않고 통일된 사람이 나왔느냐? 나왔어요? 못 나왔다는 거예요. 그러한 사람이 나와야 할 텐데….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요? 그렇지요?「예」 목적관이 없습니다, 목적관이. 그다음에는 출발의 근거지를 모른다구요. 확실히 모른다는 거예요.

그러나 본래 인간이 태어날 때 목적관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 목적과 원인을 확실히 규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까지….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무엇을 해 나오시느냐? 요 사람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알겠어요? 세계를 찾기 전에 그 한 사람을 찾아 나와야 돼요.

준비된 선민과 국가가 예수와 하나되었더라면

자, 빨리 끝내야겠어요. 시간이 많이 갔기 때문에…. 저녁들은 먹었어요?「예」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니까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데….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을 것이냐? 참된 부모를 찾기 전에 참된 한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를 찾으려 하실 것입니다. 참된 한 남자를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된 남자가 나왔느냐?

안 나왔다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참된 남자를 반드시 이 땅 위에 태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 참된 남자는 하나님이 참사랑을 할 수 있고, 그 참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분이냐 하면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비로소 예수라는 하나의 사람의 표준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가 올 때 세계는 악한 세계권이었으니 악한 세계가 어떻게 하였느냐? 전부가 악하고 선한 기준은 단 한 사람이 머문 곳뿐이라구요. 그러니 그 선한 한 사람이 악한 권내에 오면 악한 무리가 가만두겠어요? 잡아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들을 언제나 잡아죽였습니다. 죽고 난 후에야 그분의 가치를 알아 가지고 역사상에 들리움받게 하고 모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이러한 하나의 아들을 보내기 위해서 하나님은 뭘하셔야 되느냐? 이러한 판국을 만들어야 됩니다. 악한 세상에서 예수편 될 수 있는 가정을 만들어야 되고, 예수편 될 수 있는 씨족을 만들어야 되고, 예수편 될 수 있는 민족을 만들어야 되고, 예수편 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됩니다.

이러한 판국을 세워 놓지 않으면 예수가 오더라도 악한 주권, 악한 권내 에서 대번에 죽임당하고 희생될 것이기 때문에, 예수를 보호 육성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준비한 것이 선민권 이스라엘입니다. 알지요, 이스라엘? 거기에는 하늘편 나라가 있고, 동시에 하나님을 소개할 수 있는 종교가 있었습니다. 그 종교가 유대교입니다. 그 유대교 가운데는 하늘나라와 하늘나라의 종교를 대표한 씨족이 있었습니다. 그 씨족권내에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 가족권을 믿고 예수를 보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4천년 동안 준비한 거예요. 그리하여 표준된 한 사람을 4천년 동안 준비해서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그 가정과 씨족과 종족과 종교와 그 나라가, 그 사람과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만약 준비된 선민과 국가가 예수와 하나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그때부터 지상천국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예수가 오실 그때의 로마제국의 행정력은 마비된 상태였습니다. 그때 예수가 봉화를 들어 가지고 '로마를 치자' 하면 아랍권이 한꺼번에 단결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해서 로마를 뒤집어 가지고 예수가 40대 이후에, 살아 생전 이상했던 세계의 판도를 만들기를 꿈꾸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될 게 아니예요?

그런데 예수를 나라가 쳤고, 교회가 쳤고, 씨족이 쳤고, 가정이 쳤기 때문에 예수는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외톨이가 되었으니 어디 갈 데가 있어요? 그러니 할수없이 사탄세계에서 허덕거리다가 잡혀 가지고 죽어 버렸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람이 아직까지 안 나왔기 때문에 이땅 위에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세주가 와야 되는 거예요.

지금은 한국에서 통일사상을 펼쳐야 할 때

여러분은 지금 중공을 믿겠어요? 중공이 세계를 구해 준다고 봐요? 공산당이 세계를 구해 준다고 봐요? 민주세계가 세계를 구해 준다고 봐요? 다 허깨비들입니다.

하늘로부터 천운을 따라 참인격의 표준을 대표한 하나의 모델케이스의 남자가 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직계적으로 받아 그 사랑과 연결될 수 있는 이상적인 부부를 맺어 새로운 가정의 출발을 보지 않고는 이 세계에 참된 부모는 나오지 않습니다. 맞아요?「예」 요것을 표준해 가지고 오는 것이 기독교의 재림사상입니다.

신랑으로 오시는 주님은 무엇 때문에 오시느냐? 인간 세계에 거짓된 부모는 나왔지만 참된 부모가 안 나왔기 때문에, 참된 남자로서 참된 여자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영 갈라질 수 없는 참된 부모의 인연을 맺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그 사상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사상이요, 그날이 기독교에서 바라는 어린양 잔칫날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소리 인지도 모르고 믿고 있다구요.

이스라엘권내, 유대교권내에 예수의 보호를 위해서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수고한 터전을 남겼지만, 예수님이 뜻을 이루지 못하여 실패하고 갔기 때문에 기독교가 피어린 투쟁의 역사,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세계적인 기독교 문화권의 판도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예수 시대는 국가권을 중심삼고 세계로 넘어가려는 시대였기 때문에 국가적 기반만 있으면 되지만 재림시대는 세계권을 넘는 시대이기 때문에 세계적 터전이 있어야 됩니다. 민주세계는 이런 기독교 사상 문화권이라구요. 그렇지요? 그러니 그 기독교를 중심삼은 세계권내에서 하나의 특정한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가운데 특정한 민족, 특정한 민족 가운데 특정한 씨족, 특정한 씨족 가운데 특정한 가정, 그 특정한 가정 가운데서 주님이 태어나야 합니다. 구름 타고 오면 큰일난다구요.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땅 위에 참부모를 맞지 못합니다. 참부모를 맞지 못한 이 땅 위에 예수님이 공중에서 허깨비같이 와 가지고 참아버지가 될 수 있겠어요? 땅에서 잃어버렸으니 땅 위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 기준을 결하기 위해서 땅 위에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럼, 그런 나라가 어떤 나라일 것이냐? 그 나라는 제일 영광 중의 영광의 나라이겠지만 주님은 호화찬란하게, 편안하게 오는 사람이 아닙니 다. 오랜 역사, 비참한 역사의 노정에 있어서 그 민족이 뜯기고, 밟히고, 죽음길에서 신음하며 선한 길을 찾아 나오면서도 죽지 않고 망하지 않고 남아진 무리의 나라입니다. 그러한 나라의 형태를 갖춘 국가를 중심삼고 하나님은 섭리하실 것이라고 생각할 때, 역사상에 그러한 비운의 인연을 남긴 나라가 어떤 나라냐? 대한민국이라면 기분 좋아요?「예」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은 악과 선두에서 맞선 나라입니다. 사상을 중심삼고 개인 개인이 세계적인 분립이 벌어지고 세계적인 대결이 벌어진 나라입니다. 가정도 두 편으로 갈라졌습니다. 남북으로 가정이 갈라졌지요? 종족도 두패로 갈라지고 민족도 두 패로 갈라졌지요? 민족과 종족이 두 패로 갈라 지는 형상을 이루지 않는 나라는 앞으로 선을 책임질 수 있는 세계의 대표적인 나라가 못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선민으로 세우신 것은 갈라 세워서 싸울 수 있는 방벽의 터전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 나라에도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선한 사람은 선한 편, 악한 사람은 악한 편이 되어 그 나라의 가정에서부터, 씨족, 종족, 민족, 국가에서 갈라져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판문점비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요? 금문점이 되기 전에 널판지로 만든 문이니까 판문점인 거예요. 금문점은 에덴 동산, 하늘 왕궁이 금문점입니다. 판문점은 세계에 하나밖에 없지요? 여기가 뭐냐? 사탄과 하나님이, 악신과 선신이 영계에서 아무 나라, 아무 종족, 아무 가정, 아무 개인을 중심삼고 그 개인, 가정, 종족, 나라가 좋은 개인, 좋은 가정, 좋은 나라, 좋은 백성이냐 그렇지 않으냐를 가리는 놀음을 하는 곳이 판문점입니다.

영계에서 이런 놀음을 하기 때문에 한 개인의 행동이 잘못되면 이북에서 참소하고 이남에서도 참소하지요?'너는 이러한 원칙에 어긋나지 않느냐'고 참소하는 싸움판이예요. 서로가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싸움판입니다. 거기는 민주세계의 첨단이요, 공산세계의 첨단입니다. 알겠어요?

여기에서 지금 문제되는 것이 뭐냐? 세계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개인 문제를 해결해야 되고, 그 다음엔 가정 문제를 절대 해결해야 합니다.

세계적 문제가 세계에서부터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이 땅 위에 오시면 먼저 개인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개인 문제를 해결하면 가정 문제를 해결해야지요? 가정 문제를 해결해 가지고 종족 문제를 해결 하고, 그 다음엔 민족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 찾기 운동이 벌어졌다는 것은 뭐냐? 이건 세계적인 사건이지요? 독일이 동서로 갈라져 가지고 왕래하는 것은 세계적 사건이지요?「예」 나라 찾기 운동, 서로서로 왕래해 가지고 찾자, 너와 내가 싸울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마음이 가는 대로, 마음이 원하는 대로 찾아가자 하는 운동이 벌어진다구요. 이것이 끝날의 징조예요. 근세에 있어서 제일큰 사건이 뭐냐 하면 한국의 가족 찾기 운동과 독일에 있어서 동독 서독의 상호 왕래 문제입니다. 그렇지요?「예」 요 2대 사건이, '73년도를 중심삼고 넘어갈 때가 왔습니다. 우리 원리로 보면 그건 다…. 판국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한국이 민주세계의 첨단에서 떨어지는 날에는 민주세계를 대표한 미국이 공산권과 선두에서 부딪치는 것입니다. 미국이 옳다고 주장할 수 없고 공산당이 옳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한국이 옳다고 주장하는 놀음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알겠어요? 이런 때가 오면 통일사상이 필요하다 이거예요. 남북이 통일되어야 하겠지요?「예」 그래서 통일교회는 벌써부터 이것을 중심삼고 '세계는 이렇게 되는 것이니…' 하며 통일사상을 주장한 거예요. 알겠어요?

참된 세계가 되기 전에 참된 나라가 되어야 되고, 참된 나라가 되기 전에 참된 민족이 되어야 되고, 참된 민족이 되기 전에 참된 가정이 되어야 되고, 참된 가정이 되기 전에 참된 개인이 되어야 됩니다. 개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정문제, 국가문제, 세계문제, 이 3대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판서하심 )

참된 국가와 세계를 찾기 위하여 행한 합동결혼식

여러분은 그런 참된 모든 선의 주체를 알아요? 그분은 오시는 주님입니다. 또 그분은 누구냐 하면 참아버지입니다. 참아버지가 오셔서 참어머니를 모심으로써 참된 가정이 생겨나면 참된 나라가 생겨나겠어요. 안 생겨나겠어요?「생깁니다」 그것은 시일문제입니다. 시일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은 갈 데가 없습니다. 일본이 적화되려고 하지요? 중국이 적화됐지요? 소련도 적화됐지요? 3면이 다 포위되었는데 어디로 갈 거예요?

또, 나라도 절반밖에 없다구요. 이제 바라보고 믿고 갈 데가 있어요? 땅에 묻혀 죽지 않으면 태평양 바다에 빠져 죽게 되었으니 할수없이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 나 살려 주소' 하고 매달리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래서 우리는 남북을 대신해서 1965년부터 지금까지 있는 정성을 다들여 가지고 특별기도를 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참된 부모가 되려니 사탄편인 북한에서 먼저-참것이 오기 전에 거짓 것이 먼저 오기 때문에-김일성을 아버지라고 하지요?「예」 김일성이 몇 살에 주권을 쥐었는지 알아요? 예수가 서른 세 살에 죽었지요? 김일성이 주권을 쥔 것은 서른 네 살이예요. 이것이 예순 살까지 버텨 가는 거예요. 그렇지만 예순 살 이후부터는 정상의 자리에 버티고 있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백성은 이제부터 단결해야 합니다. 그 기간을 3년으로 잡았던 거예요. 그런데 한국 백성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할수없이 가정의 주부들을 내세워 이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개인은 세계를 위하여, 선을 위하여 이렇게 살아가야 되는 것이다. 참된 가정은 이렇게 살아야 되는 것이다. 참된 씨족은 이래야 되는 것이다. 참된 민족은 이래야 되는 것이다. 참된 국가는 이래야 되는 것이다'하며 이것을 소망해 나오는 거예요.

가정을 찾고, 그 다음에는 뭘 찾아야 돼요?「국가를…」 국가를 찾아야 됩니다. 국가를 찾은 다음에 뭘 찾아야 돼요?「세계요」 앞으로 대한민국이 이런 사명을 해야 됩니다. 이게 통일교회가 보는 관이예요. 그러려면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가정을 찾아야 됩니다. 그래서 하늘땅에 있어서 비로소 세계적인 합동결혼식을 한 거예요. 세계적인 이런 결혼식은 처음이지요? 10개국의 청춘 남녀를 모아다가 796쌍이라는 이 방대한 사람을 축복하여 준 것은 기록으로 보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처음이라구요. 이 면에서는 선생님이 챔피언이라구요, 챔피언. 그렇지요?「예」 결혼시켜 주는 중매자로서는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고요. 그렇지요? (웃음) 가히 세계적이지요?「예」

이렇게 세계적인 잔치를 했다면 세계적으로 한 내용이 무엇을 뜻하느냐? 보라구요. 여기에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 나라가 반대해도 나라를 박차고 왔습니다. 일본 정부까지 반대했다구요. 부모 형제가 반대해도 다 박차고 왔습니다. 그런 거 알죠?「예」 통일교회 문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서로 피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문화의 배경이 다르고, 역사가 다르지만 사랑을 중심삼고 새로운 역사시대에 있어서…' 그래서 통일교회는 심정세계관을 말합니다. 아까 말한 천운을 이어받을 수 있는 기쁨의 운세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심정적 운세권내에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가 주장하던 것이 평면적으로 세계화할 수 있는 터전이 만들어지지 않고는 이 땅 위에 행복의 천국은 오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라구요. 2차 대전 직후에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전승 국가가 패전 국가를 출세시키는 데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성공한 나라 가운데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과 독일 입니다. 그거 왜 그랬을까요?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어요?

새로운 형제의 인연권으로 세계를 묶어야

참부모가 오거들랑 잘난 형님은 못난 동생을 때려죽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잘난 형님일수록 못난 동생을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바치지 않고는 부모 앞에 나서서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때가 오리라'는 말이 맞지요? 따라서 이긴 나라는 형님과 같은 입장에, 진 나라는 동생과 같은 입장으로 인연되는 때가 오기 때문에, 그때가 오기 전에 자기의 체면과 사명과 위신을 세우려니 자기도 모르게 망한 나라를 출세시키는 놀음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만든 것은 무엇 때문이냐? 악한 원수들보다 나은 형제의 국가가 되어야 되기 때문에, 하늘이 찾아오는 국가는 그런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산당, 이 악당의 무리를 민주세계가 형제의 인연으로 묶어 나왔는데, 그 기구가 유엔기구인 것입니다. 유엔 헌장의 제1조가 뭐냐 하면 평화입니다. 평화를 표준으로 삼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참부모의 운세와 인연을 맺고 남아질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참부모를 모시지 못해 가지고 망할 수 있는 권내로 떨어져 내려갔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서 세상 사람들은 모르지만 하늘나라의 뜻을 품은 곳에서는 참된 부모를 중심삼고 세계 국가의 형제의 인연을 세계에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알겠어요? 한 곳에서는 망해 떨어져 나가지만 한 곳에서는 결속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국가간에 격리된 모든 문화의 원수권, 생활의 배경이 다르고 역사적인 배경이 다른 모든 원수의 인연을 밟고 넘어서서, 원수 국가끼리 형이요, 오빠요, 동생이요 할 수 있는 인연을 중심삼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고이 모시는 자리에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세계적인 새로운 인연의 형제 권이 오늘날 통일가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역사직인 사건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크게 되어 여기에 가입된 민족이 국가와 국민을 초월하여 결속 되어 삼천만을 능가하고 1억 이상이 되어 일본을 능가하게 되면, 일본은 한꺼번에 꿰어 찰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을 중심삼고 연결되어 나갈 때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일본에 있는 통일교회를 직접 관리하는 것입니다. 중국에 있는 통일교회를 직접 관리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국부는 유엔에서 축출되었으므로 통일교회가 움직여 나가는 국제승공연합에 딱 달라붙는 거라구요. 그래서 앞으로 대만에 국제승공연 합이 상륙해 가지고 승공사상을 중심삼고 재출발할 것을 기도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입장입니다.

유엔에서 세계의 국가들이 코웃음을 치고, 세상 모르는 미욱한 무리들이라며 세상에서 흘러가라고 비판했지만, 새로운 방면에서 하늘의 참된 인연은 그 한 나라와 맺어졌기 때문에 유엔에서는 축출되더라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는 운세권을 만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유중국을 위해서 일본의 젊은 청년 120명이 가두에서 시위를 하였으며, 또한 40명의 젊은 청년들이 유엔 총회를 하는 유엔 본부 앞에서 생명을 걸어 놓고 투쟁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은 엄연히 역사와 문화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증거로 등장한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이 숭고한 사상이 발 밑에서 짓밟히는 돌인 줄 알지만, 이것이 다이아 몬드가 될 수 있는 것이요, 황금 보석 줄기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것을 아느냐? 그럴 수 있지요?「예」 아무도 몰랐고, 아무도 생각지 않았지만, 그러한 곳에서 새로운 역사의 원천이 출발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일본의 자민당을 움직이기 위해서 5년 전부터 배후에서 기막힌 투쟁을해 왔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한국 정부가 놀라는 거예요. 요전에도 일본 국제승공연합에서 일본의 이러이러한 최고 간부들을 데리고 갈 때 내가 쓱쓱 해 가지고, '몇 명! 오케이' 했습니다. 세상에 그럴 수 있느냐는 거예요. 본부에 있는 선생님이 결정하면 일본의 통일교회에서는 무사통과입니다. 그렇게 돼 있나요, 안 돼 있나요? 돼 있지요?「예」 중국도 마찬가지예요.

그것을 누가 끊을 것이냐? 우리는 민족을 초월해 가지고, 대한민국 사람끼리 사랑하던 그 이상의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나와 원수입니다. 왜정 때 나는 일본의 고등계 형사들한테 무참히 고문받았던 장본인입니다. 그때 내가 한마디 하면 수백 명치 생명이 왔다갔다할 수 있는 자리에서 독하디 독한 싸움을 했던 사나이입니다. '일본놈' 하게 되면 어금니를 악물고 배때기를 째는 데 선두에 서려고 했던 사나이입니다. 그러나 일본이 망해 피난가는 데 있어서 그 원수를 불러 보따리 싸서 도망가게 해준 사람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이것 가지고 그들을 수습한거구요.

이 원수의 나라를 구해 가지고 아시아에 있어서 한국이 제2의 천국으로 갈 수 있는 배수진을 마련하기 위해서, 10년 전 일본에 선교사를 밀선에 태워서 보낸 것입니다. 그것은 자유당 체제내에서는 위법적인 행위였습니다. '지금은 내가 몰리고 위법적인 입장에 있지만, 10년 후에는 한국의 미래를 이어받을 수 있는 그날이 올 것이기 때문에 그때를 위해서 지금은 내가 고독하고 고립된 사나이로서 위법적인 행동을 하지만 이 위법은 그때 가면 밝혀질 것이다'는 생각을 가지고 한 것입니다. 그랬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한국에 지배받는 일본의 국제승공연합, 일본 통일교회가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자. 단결합시다. 일본의 통일교인들은 한국을 여러분보다 더 사랑합니다. 그들은 오늘 밤도 열두 시, 한 시, 두 시가 넘도록 가두에서 꽃을 팔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해방권을 만들기 위해서 모진 치욕을 당하면서도 불철주야 투쟁하는 무리가 이국 땅에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았어요? 이런 부끄러움이 있는 거예요.

삼천만 민족의 정기를 받고 나온 피끓는 청춘 남녀들이 의분과 혈기가 충천하여 가지고, 뛰는 맥박의 고동소리와 민족을 직시하는 시선을 가지고 내일의 원수를 타파하기 위해 결속을 다짐해야 할 현재에 있어서, 이국 사람이 그러한 기수의 자리에 먼저 섰다는 사실은 이 나라의 수치라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이러한 기반을 닦아 가지고 '한덕수는 물러서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결속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반공정신으로 무장해야 되겠습니다. 이 시대는 믿지 못하는 때입니다.

공산당은 뭐냐? 낮은 하늘을 상징하는 것이요, 밤은 사탄을 상징합니다. 그렇지요?「예」 새까만 것은 사탄을 말하는 겁니다. 새까만 양복을 입은 사람들은 사탄을 상징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중,고등학생들이 세상을 망치는 때가 올 것입니다. 어디를 가 봐도 중,고등학생들의 옷은 다 까맣지요? 그들이 사탄세계의 씨가 될 것입니다. 기분 나쁘지요? 까마귀라고 있지요, 까마귀? 까만 마귀를 까마귀라고 그래요. (웃음) 왜 웃어요? 까마귀 패들이 문제라구요. 그러니 청소년들이 문제입니다. 대학가가 문제입니다. 요것들, 브레이크를 걸어야 합니다. 이놈의 모가지를 잘라야 돼요. 사상을 돌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문교부에서 우리한테 대학가의 사상 문제를 전부 다 의뢰하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지금부터 그 일을 할 작정이예요.

대한민국을 하나님이 사랑하는 나라로 만들자

여러분은 지금 세상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모른다구요. 처음 온 사람 들은 정신 차리라구요. 오늘 뭐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와 가지고 얘기하는데 '저 사나이도 나와 마찬가지지 뭐. 하루 세 끼 밥먹는 것은 마찬가지라구. 말은 나보다 좀 잘할지 모르지. 뭐가 어쨌단 말이야, 마찬가지지 뭐. 큰소리치지만 별 거 없어' 하겠지만 별 거 없다고 봐서는 안 되는 거예요. 미국까지 판도를 닦아 놓고 있어요. 내가 명령만하면….

내가 미국에 가겠다고 하면 비행기표를 보내 옵니다. 내가 세계에 어디 가든지 말하지 않더라도 새 차를 준비해 놓습니다.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아요. 대한민국의 누구도 부럽지 않다구 내가 지금 지갑에 돈은 몇 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예요. 여러분들 몇십 명이고 몇백 명이고 일생 동안 먹여 살릴 수 있는 돈도 있다구요. 나를 시시한 사나이로 알지 말라구요. 지금까지는 대한민국 삼천만 민족으로부터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규탄받고 비판받아 왔지만, 이 마당에 와서는 세계가 공인할 수 있는 무대가 열렸다구요.

여러분, 보라구요. '미스터 문' 하면 구라파 종교계에서는 이름이 나 있습니다. 내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요. 더구나 전부 다 학박사들이…. 그런데 이 못난 대한민국에서는, 이 망할 수 있는 운세권내에 있는 대한민국. 충신을 잡아죽이기에 역사적인 뿌리가 박힌 대한민국에서는…. 그렇죠? 세계를 살리기 위한 하늘의 운동이 이 땅에서 벌어지게 하기 위한 도감 노릇을 하기 위해 문선생이 나왔다구요. 이런 나를 잡아죽이게 되면 세계로부터 지탄받게 돼 있다구요. 두고 보라구요.

이제 몇 해만 두고 보자구요. 대한민국 백성들은 기성교회를 때려치울 것입니다. 목사, 장로들 두고 보라구요. 중공이 유엔에 가입함으로써 그바닥에서 별의별 놀음이 다 벌어졌는데, 국제 무대에 있어서 기성교회의 모가지가 후려지고 사지에 끌려가 몽땅 달리게 되면 어디로 자빠지겠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무모한 사람이 아닙니다. 계획이 딱 되어 있다구요. 1차전에서 안 되면, 2차, 3차, 4차. 5차전까지 계획하고 있다구요. 여러분 알겠어요?「예」 여러분은 모르니까 설명을 안 하는 거라구요.

그러니 선생님이 명령하면 무조건 움직여야 되는 거라구요. 알겠지요? 「예」 이제 그건 알지요?「예」 선생님이 말하는 대로 척척 되어 들어가잖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속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잖아요? 속을까 안 속을까 하는 때는 지나가지 않았어요? 그렇잖아요. 폭탄은 나사를 죄어 가지고 불을 달아 튕기면 튀어 나가는 거라구요. 폭탄은 가서 폭발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대포가 못 되면 폭탄이라도 되어야 지요? 그래야 소용이 있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 지방에 가서 그 지방을 폭파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부모 아닌 부모를 모셔야 되고, 형제 아닌 형제를 형제애로 세계의 어떤 형제보다도 더 사랑해야 되고, 민족 아닌 민족끼리 모여 서로 사랑해야 됩니다. 그 사상으로 세계의 어떠한 민족을 중심삼고 단결된 그 이상을 찾아 들이 치게 될 때는 그 어떤 사상도 우리의 사상을 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사탄의 수많은 가정 앞에 '야, 이 사탄의 가정들아! 내 아들딸 가정이 너희보다 낫지?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기에 제일 가는 사랑을 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될 수 없다구요. 지금까지 지지리도 못나 가지고 아들도 생겨나지 않았고 가정도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에 큰소리 못 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만 생기는 날에는 반대하는 것 들을 들이치는 겁니다.

이제부터 통일교회 반대하는 사람 두고 보라구요. 좋지 않다구요. 앞으로 나라가 반대하면 나라가 당장에 문제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한 남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한 가정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악한 사탄권내의 수많은 가정들 앞에 내려 가셔서 '좋다' 하게 되면 위신이 서지 않는다구요. 그렇게 되면 그게 무슨 하나님이예요? 사탄 새끼들이 가지고 놀던 찌꺼기, 누더기 보따리를 갖다가 훈련시키겠어요? 어림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고는 나의 제자가 못 된다'고 했습니다. 에미 애비나 처자나 누구보다도 예수를 더 사랑해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 아주머니, 남편보다 예수를 더 사랑했어요? 자식보다도 예수를 더 사랑했어요? 왜 고개를 숙이는 거야? 이 사탄나라보다도 더 사랑해 야 한다구요.

통일교회 교인 가운데 어떤 녀석은 '우리 삼촌이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데 후원해야 되겠소, 안 해야 되겠소? 하는데, 그 사람이 하늘나라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거예요? 그 나라가 하늘나라예요? 이 나라가 하늘 나라가 되어 하늘나라의 국회의원에 나오는 데서의 선거운동이라면 가당 할는지 모르지만, 그게 하늘나라의 국회의원이예요?

오늘날 통일교인들 야당이니 여당이니 하는 소문이 들리는데' 여당도 아니고 야당도 아니라구요. 여당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비판해야 하고, 야당에 잘못된 게 있으면 비판해야 합니다. 통일교회 자체내에도 잘못된 것 있으면 비판해야 된다구요. 지금은 원리 사상을 들고 나가는 때라구요.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나라가 생겨났어요? 그런 나라가 생겨났어요? 생겨나지 않았으니 우리는 남북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나라를 만들자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대한민국이 남북을 통일 못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김일성이 아무리 그래 봐야 통일교 패들한테는 못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수가 작아서 큰일입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앉아서 망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래서 세계적인 발판을 닦기 위해 이번에 내가 외국에 나가는 겁니다. 세계적인 정상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전부 다 그런 놀음 하려고 하는 거예요. 앞으로 대한민국 사람들을 잘살게 해야 되겠습니다. 잘먹여 살려야 되겠습니다. 그거 좋지요? 대한민국 사람 잘 죽게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어떤 걸 원해요?「잘 먹여 살리는 걸 원합니다」 먹여 살리는 것? 아까 한 말 다 거짓말로 들었구만.

세계를 위해서 대한민국 사람을 지지리 고생시키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민족을 만들어 놓으면 세계국가를 지도하는 나라가 되는 거예요. 그런 나라의 백성이 될래요. 세계 사람들이 '피' 하고 비웃는 그런 백성이 될래요? 여러분이야 '세계의 돈을 긁어다 잘살 수 있어? 우리 돈 들여서 잘살지 뭐' 이러겠지만 그 대신 여러분에게 죽을 고생을 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앞으로 그럴 때가 오는 거예요.

우리는 외적으로는 없지만 내적으로는 세계를 전부 다, 미국 같은 나라를 하나님의 창고로 만들어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놈들 것을 도둑질해서 먹고 살아라 이거예요. 피난 때는 밥도 도둑질해서 먹고 살았지요? 미국은 민주세계에 있어서 종입니다, 허여멀쑥하고 키가 크니까 담 넘어서 지키기 잘하지요. (웃음) 창고지기라구요. 하나님의 아들딸을 위해서 그건 할수없다구요. 나는 미국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주인된 아들딸이 오면 창고문을 열고 끌어내다 먹을 수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방 직후에 한국 사람들은 미국 물건을 도둑질해 먹고 살았다는 거예요. 그거 거짓말이예요, 사실이예요?「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천법에 안 걸렸다는 거예요. 그 나라는 종 나라요, 우리 나라는 아들딸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웃음) 거 얼마나 좋겠소?

그런데 아들딸 무리가 체신머리가 없어요. 언제나 얻어먹는 판국이 되어 가지고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 원조 바라지를 말라는 겁니다. 내가 '50년대부터 주장한 거라구요. 대한민국을 원조하던 그나라의 대통령이 원조를 막는 날에는 들이 맞는다구요. 그래서 케네디 대통령도 죽었지요? 하마슐드 유엔 사무총장도 죽었지요? 그때부터 세계는….

얻어먹는 풍습에 젖지 말라는 겁니다. 알겠어요? 하늘의 아들이라면 이 세계에 사는 종들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희생한 것이 승리의 재료가 된다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얘기가 자꾸 많아지누만. 지금 아홉 시 20분이야. 좀 더 할까요?「예」 나도 배가 고프구만. 손님이 왔는데 손님 대접 이렇게 하기요? 저녁 줄래요, 안 줄래요?(웃음) 언제? 열두 시에 손님 대접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웃음) 그러니까 미안하게 생각하라 이거예 요. 졸지 말구요. 자, 그러면 해보자구요.

그러한 운세권내에 있는 한국이 불쌍하다고, 세계 사람이 불쌍하다고 동정하고 있는 것이 현재 통일교회입니다. 국부(국민당 정부)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쌍한 국부, 하나님이시여, 국부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이 소원하는 것입니다. '한국이 불쌍하니. 동정받는 나라권의 한국으로 끝나게 할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 전체의 동정받는 한국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정받으려면 동정받을 수 있는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 제사를 드리려면 피를 흘리고 죽음길을 가려 가는 무리가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 '삼천리 반도, 삼천만 민족 앞에 통일교회 무리를 그런 자리에 세워 주소서' 이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소원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건-나는 우리 통일교회 무리를 사랑했습니다. 뼈가 녹도록 사랑했어요. 부모보다 더 사랑했어요. 처자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다 알 거예요. 그러나 나라가 망하게 된 때에 있어서 남의 아들을 그 자리에 먼저 내세우는 것이 애국자가 아닙니다. 나라가 망할 때는 자기 단체를 허물어뜨리더라도 쓰러지더라도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내세우는 것이 사랑이 아니냐? 그것이 민족이 요구하는 소원이 아니냐?

그래서 통일교회는 '50년도부터 지금까지 소모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길거리에서 사내들한테 농락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거리거리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조롱을 받아 가면서도 '하나님, 그래도 가겠소' 하며 따라왔습니다. 내가 민족 앞에 몰려서 쇠고랑을 차고 형무소에 드나들면서도 대한민국이 나 하나 몰아 가지고 망하지 않고 복받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슬퍼했던 거예요. '민족의 장래의 길을 위해 나는 감옥살이하다가 죽더라도 이 사상을 남겨 놓자' 하는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투쟁해 나온 일념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길을 지나가는 아낙네의 치마폭에서부터, 팔고 사는 자리에서의 주고 받는 너와 나와의 인연을 거쳐 가정을 넘고 종족을 넘어 민족의 인연을 이 땅 위에 맺지 않고는 이 나라는 망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통일교회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나라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정을 버리고 남편을 버리고, 핍박을 받고 치욕을 당하면서 선생을 바라보고 나왔는데, 선생에게까지 때려 몰림을 당해야 하니 그런 통일교회 식구들의 신세는 불쌍하지만, 그러지 않고는 나라가 갈 길을 가눌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망하더라도 나라를 남기고 망하면 그 나라는 교회를 붙들어 세울 때가 올 것을 바라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팝박받는 그 핍박은 앞으로 억조만년 억조창생들이 갈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세계의 통일사상이 가는 곳에는, 길이 거룩한 사상을 청사에 남기기 위한 고생길이 되고 이곳에 그 애국심으로 남기기 위해 투쟁하는 무리의 수가 불어간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탄식이 오늘의 탄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늘의 기막힌 사연이 그 사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환희의 함성이 나를 향해서 부르짖고 있다는 사실….그런 자리에서 비참하게 죽었다면 그 비참한 죽음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새로이 생겨나는 하늘 역사를 꾸밀 수있는 전통적 애국자의 기준이 되고, 애국자의 기수가 되고, 충신의 기수가 되고, 혹은 효자 효녀, 열녀의 기수가 될 수 있는 거룩한 일이 될진대 오늘날 우리가 움직이는 한 발자국의 걸음, 일초를 움직이는 한 움직임, 내 보고 느끼는 감각, 혹은 모든 움직임이 그 행동권내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심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칼을 겨누는 어떠한 전쟁보다도 무서운 것이요,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판가름하는 어떠한 전쟁보다도 더 심각하고 비참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투쟁해 나가는 여러분이 되어야 됩니다.

이렇게 다짐하고 나가는 그것이 나 하나가 잘되기를 바라는 입장이어서는 망하는 것입니다. 악을 대해서 선의 승리를 다짐하면서 자기는 깎일지라도 단호히 악과 정면으로 충돌하여 이것을 파탄하고 제거하기 위해서 자기의 일신을 희생시키고 나서려고 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그 희생시키는 모습이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그것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의 표준이요, 승리의 초석, 승리의 골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 사상의 주류

현대사에 있어서, 한국 문화사를 논하는 마당에서, 혹은 세계사를 논하게 될 때,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이 무리들이 움직여 애국애족하는 이 사상을 빼놓을 수 없게 되거든 통일교회는 아시아 문화권에 있어서 남아지는 무리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현재는 나라가 없고, 주권이 없고, 땅이 없고, 백성이 없다 하더라도 금후 21세기 이후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그 사상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그런 움직임이 나오면 그때는 이 사상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남아진 무리가 백이 되든 천이 되든 그들이 나라를 원하면 나라가 생기는 것이요, 그들이 국토를 원하면 국토를 가질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가의 전통적인 사상이요, 통일가를 지도하고 있는 통일교회 문선생의 전통적 사상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사상만이 내가 사지에서 죽지 않고 남아지는 길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악은 죽이겠다고 별의별 모략 중상을 퍼부었지만 그 가운데서, 죽지 않고 홀로 비약하여 다른 차원의 세계를 더듬어 망하는 운세에 몰리는 가운데서, 세계적인 기반을 닦는 데 발전의 동기를 세워 놓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기 서서 말하는 사람이 그 증거가 되고, 여기에 서서 말하는 사람의 역사가 그랬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봐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가야만 악한 세계를 망하게 할 수 있는 것이요, 선이 최후에 승리로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의가 증거 하는 귀결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서만이, 이 길에서만이 하늘나라는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터전에서만이 승리의 새로운 건국과 새로운 세계관이 형성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그러면 통일교회 주류 사상이 무엇이냐?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을 볼 때, 남을 죽여 가지고 자기가 출세하자는 사상이 주류를 이루어 왔는데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를 망친 사상입니다. 이 인류역사는 전쟁사인데 그 전쟁의 동기는 무엇이냐? 나 하나 잘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을 희생 시키는 것도 개의치 않고 발전을 추구해 온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체제에서 나온 것이 지금의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인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으려고 하지요? 그것은 망하는 거라구요. 그것은 악한 거라구요. 그렇지요? 남을 때려 가지고 자기가 잘살려고 하는 놈은 악한 놈이 아니냐? 그렇지요?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예요.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세계예요. 자기 하나 출세하기 위해서 제삼자를 이용하고 전부 다 희생시키고도 남아져야 한다는 사상이라는 거예요.

타락이 무엇이냐? 아담 해와가 자기를 들고 나와서 행동한 것이 타락이요, 천사장이 자기를 들고 나와 가지고 행동한 것이 타락입니다. 하나님이고 뭐고 천리 원칙을 부정해 버리고 자기를 중심삼고 행동하는 사상으로 출발한 것이 타락의 역사입니다. 그렇게 심었기 때문에 그렇게 커 가지고 그렇게 거두어지는 거예요. 그렇죠?「예」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오늘날 세계에서 정치가라 하게 되면 권모술수가 능란한 사람을 정치가라고 하지요? 그게 뭐예요? 남을 모략중상해 가지고 홈통에 몰아넣어 가지고 꺾는 그런 것이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입니다. 또, 떡 간판을 붙이고 앉아서 슬쩍슬쩍해 가지고 전부 올가미를 씌우고 살짝 속여 가지고 자기 활동무대로서 이용하는 놀음을 잘하는 사람을 능숙한 외교관이라고 하지요? 거기에 순수성이 어디 있고, 진실성이 어디 있어요?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망할 역사라는 거예요. 이미 심어진 악이 세계적으로 거두어지는 것이니, 세계 끝까지 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1차 대전 때도 친 녀석이 죽었고, 2차 대전 때도 친 녀석이 죽었어요. 지금 3차, 이 사상전에 있어서도 공산당이 자꾸 치지요? 일본이 대동아전쟁을 일으켜서 싱가폴을 점령했을 때 까리까리한 판국에 뒤집어졌지요? 전부 다 그래요. 1차 대전 때도 까리까리한 판국에 뒤집어졌다구요. 까리까리한 판국에 망하지 않았느냐 이거예요. 브레이크를 걸어 안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국제승공연합의 활동

앞으로 약소민족이 단결하여 강대국이라는 허울 좋은 국가의 명칭을 갖고 약소국가를 이용해 먹는 이 악당 강대국을 타도하여 악당 강대국을 선한, 순수한 약소국가 앞에 굴복시켜야 통일의 세계가 오는 거예요. 이것을 이제부터 해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세계평화통일연합을 벌써 5년 전부터 계획한 것입니다. 외국에는 이미 그 조직이 되어 가는 거예요. 앞으로 통일의 때가 온다구요. 유엔 총회를 깨뜨려 버려야 된다구요.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 내가 미국 놈 믿지 말라고 그랬어요. 미끄러진다구요. 미국은 미역국이예요. 미국 놈 믿지 말라구요. 공산당도 믿지 말라구요. 보라구요. 민주주의 세계는 그래도 지금까지는 하늘편에 서왔어요, 지금까지는. 그러나 지금은 안 그렇습니다. 한국을 떨어지게 만들면 안 된다 이겁니다.

사탄은 밤중에 일합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은 낮에 일합니다. 낮은 하나님이 차지하고 밤은 사탄이 차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은 전부 다 밤에 결정하는 거라구요. 지하운동도 전부 다 밤에 하는 거예요. 그러기에 세계를 제패하려고 땅구멍을 파지요? 전부 다 반에 합니다. 그리고 전부 다 음흉하게 덮어 놓지요? 나쁜 것은 덮어 놓고 좋은 것은 세계적으로 선전하지요? 북한이 오늘날 악한 국가의 대표형입니다. 알겠어요? 그렇지요? 북한 공산당은 천 번 죽여도 한이 남을 수 있는 악당의 원흉입니다.

이것을 누가 막느냐? 하늘나라입니다. 하늘의 참된 사람이 막는 것입니다. 이것을 대표하는 것이 오늘날 국제승공연합이라구요. 알겠어요? 공산당을 대해 선두에 서는 거예요.

요전에 구보끼를 시켜 일본의 어느 이름난 사람을 데리고 통일교회의 기반조성을 위해 세계를 순회시킬 때에 내가 충고한 것이 '조총련을 주의해라, 이북 공산당을 주의해라. 김일성 도당을 주의해라'는 것이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그쪽에서 벌써 알아 가지고 세번씩이나 일행을 납치하려고 했었다구요.

그걸 보면 이 통일교회 사상이 무서운 줄을 이북에서 알아요, 몰라요? 일본의 공산당들도 '국제승공연합을 중심삼고는 이론 투쟁을 하지 말라. 이론 투쟁하게 되면 존재론까지 끌고 나와야 하는데, 그 이상 가면 안된다'고 자기 직속 부하들한테 지령하고 있다구요. 그러니 통일교회가 무서운 곳이예요. 안 무서운 곳이예요?「무서운 곳입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에 대해서 무서워요?「아닙니다」 통일교회는 세계 공산당 앞에 무서운 존재라구요.

그럼 됐지, 됐지요? 지금까지 대한민국도 통일교회를 못살게 하다가 할수없으니까 지금은 국제승공연합을…. 지방 공무원이나 교육자들 우리가 전부 교육시키지요?「예」 우리가 지금 사상적인 핵의 기점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사상을 대학가나 군대에까지 주입시켜서 전국적으로 이 사상을 갖도록 해 가지고, 이북에서 공산당을 중심삼고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하며 충성하는 이상 충성할 수 있는 참된 하나의 풍조를 만들지 않고는, 이 나라 이 민족이 앞으로 살 길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지금까지의 종교가 한 일

이제 대강 얘기가 끝났는데 한마디만 더 하자구요. 지금까지 종교의 역사를 두고 볼 때 뭘해 나왔느냐? 종교는 말이예요, 한 사람을 찾아 나온 거예요. 에덴 동산에서 나쁘게 시작하였던 것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좋을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그 한 사람이 누구냐? 천사장 한 사람, 그 다음에는 참다운 아들 한 사람입니다. 이 둘을 찾아 나온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걸 찾아 나온 겁니다.

그걸 찾아 나온 그 중간에서는 뭐냐 하면 여자를 찾아 나온 겁니다. 그렇죠? 천사장도 사탄이 된 것은 해와 때문이지요? 아담이 망한 것도 여자 때문이지요? 알겠어요?「예」 세계가 이렇게 된 거라구요. 여자 때문에 망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여자 때문에 망하게도 되고 여자 때문에 흥하게도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든지 국가의 운명이 좌우될 때 여자가 개입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다는 거예요.

세계적으로 볼 때 국가 가운데 여자 국가가 있습니다. 이것이 일본입니다. 일본은 아마데라스 오오미가미 (天照大御神)라는 여자 신을 믿지요? 그렇기 때문에 세계 사람들이 말하기를 '일본은 여자의 나라'라고 하지요? 중국은 요리의 나라, 불란서는 뭐라고 해요? 예술의 나라, 문화의 나라라고 합니다. 한국은 뭐예요? 남자? 한국은 아담 나라가 돼야 된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통일교회 문선생이 세계적으로 멋진 남자가 될지 몰라요. 선전 좀 하고 넘어가자구. (웃음) 통일교회 문선생이 잘되면 좋겠어요. 못되면 좋겠어요?「잘되면 좋겠습니다」 삼천만 민족 가운데는 통일교회 문선생 하면 나쁘다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잘되어 복수하려고 하면 모가지 잘라 죽일 사람이 많을 거예요. 그렇게 된다면 우선 기성교회 목사들이 참 무서워할 거라. 그렇지만 모가지 안 잘라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종교를 통일해 보자고 간판을 크게 들고 나왔지요? 종교를 통일하고 세계를 통일해 보자고 크게 들고 나왔지요?「예」 그럴 수 있느냐? 엉뚱한 생각을 하고 나왔다구요. 엉뚱한 생각만 하고 말게 된다면 망하는 것이지만 엉뚱한 생각을 하고 엉뚱한 놀음을 해서 일어나는 날에는 세계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엉뚱한 놀음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것은 뭐냐? 참된 종 한 사람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종이 해와를 빼앗아 갔기 때문에, 그 종을 찾은 다음에는 참된 종으로 하여금 여자를 하나님 앞에 돌려드릴 수 있는 준비를 하게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참된 종의 나라와 참된 종의 종족은 뭘해야 되느냐? 참된 종족과 참된 가정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참된 여자를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됩니다. 이렇게 된 거예요. 알겠어요? 참된 종이 여자를 바치게 되면, 참된 아들이 이 여자를 맞기 위해서 와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이것이 뭐냐 하면 기독교의 재림사상입니다. 이것이 재림주 사상이요, 구세주 사상입니다. 이 구세주 사상은 뭐냐 하면 참부모 사상입니다. 역사를 이렇게 풀어야 됩니다, 그럼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나 안 되어 있나 보자구요.

지금까지 종교가 한 것이 뭐냐? 천사세계에는 시집 장가가는 것이 있어요, 없어요? 천사세계는 시집 장가가게 되어 있어요, 안 가게 되어 있어요? 예수님이 일곱 여인을 비유해 가지고 한 말을 보면, 칠형제가 있었는데 맏형이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그 둘째와 세째가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숙고, 그렇게 일곱을 다 취하여 살다가 영계에 갔는데, 부활할 때는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천국에는 시집 장가가는 일이 없다고 했지요? 시집 장가가는 일이 없는 것이 아니예요. 아직까지 천사 세계권내에 있기 때문에 시집 장가가는 일이 없지, 아담 해와의 아들딸이 있는데 시집 장가가는 일이 없겠어요? 때가 그럴 때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종교는 전부 다 독신생활을 강조했습니다. 그렇지요? 시집 장가가라고 했어요, 가지 말라고 했어요?「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그러느냐? 참된 부모가 아직까지 결혼식을 못 했는데 종 새끼들이 결혼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고차적인 종교에서는 독신생활을 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랬지요?「예」

불교의 비구승 비구니, 천주교의 신부 수녀도 불쌍하지요? 이들은 뭘 해야 되느냐? 종이 여자를 빼앗아 갔기 때문에 여자 하나를 잘 길러 주인 양반 올 때 고이 바쳐야 됩니다. 그리고 '내 나라를 받으시옵소서. 내교회를 받으시옵소서. 내 종족을 받으시옵소서. 내 가정을 받으시옵소서.

내 아들딸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몽땅 바치는 인계식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되겠지요?「예」 타락했기 때문에…. 누가? 종이.

이 세계와 이 나라와 이 모든 가정과 이 모든 개인들을 전부 다 악한 천사장, 악한 사탄이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싸워 가지고 선한 천사장권을 만들어 나라와 교회와 종족과 가정과 개인을 찾아 가지고 하나의 거룩한 여성을 구세주로 오시는 그분 앞에 만나게 해야 합니다. 그분은 이 땅 위에 남자로, 아담 대신자로 오시는 분입니다.

예수가 둘째 아담으로 왔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3차 아담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분이 재림주입니다. 뜻을 못 이루었으니 3차 아담이 뜻을 이루어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 중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오는 남자가 있으니 이는 이 땅 위에 누구를 찾아 오느냐 하면 여자를 찾으러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에덴 동산에서 천사가 악한 마음을 먹고 해와를 빼앗아 갔던 것을 사죄하고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차지하지 못할 것을 차지했던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하고 전체를 돌려 바칠 수 있는 준비를 하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의 종교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됐지요?「예」

세계 통일은 새로운 가정에서부터

여기 불교를 믿는 양반들도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대처승이 이기는지 비구승이 이기는지 보라구요. 비구승은 물러가고 대처승의 판국이 됩니다. 이제부터 천주교에서 신부, 수녀가 시집 장가가는 것을 막게 되면 앞으로 천주교는 망합니다. 이제는 천주교의 신부, 수녀들도 시집 장가 보내야 됩니다. 왜? 참부모가 이 땅 위에 와서 가정을 가질 뿐만 아니라, 아들딸을 시집 장가 보내 주기 때문에 그것을 준비해 준 세계권에도 봄날이 찾아드는 거라구요.

그런데 이것을 어디서 하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만일 이것을 통일교회에서 하게 되면 큰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통일교회 믿지 말라고 해도 잘 믿을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그런 곳인지, 그런 곳을 찾아가는 곳인지 그건 모르겠어요. 그것은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나는 알지만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줄 수 없어요.

종교 역사를 보게 될 때 지금까지는 어떤 종교시대였느냐? 천사장 종교시대였습니다. 그 종교권내에 중심 종교가 있나니 그 중심 종교를 중심삼고 하나로 움직일 수 있는 세계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세계의 판도를 절반이라도 넘겨야 합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이 권이 무엇이냐? 신부 종교권입니다. 신부 종교권이 뭐냐? 민주세계입니다. 알겠어요? 그렇지요?「예」 민주세계는 기독교 문명권입니다. 기독교 문명이지요? 기독교 문명권은 뭐예요? 신부 문명권이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 기독교가 바라는 것은 뭐냐? 신랑을 바라지요?「예」 이래 가지고 나중에 뭐가 나오냐 하면 참부모주의인 동시에 참부부주의가 나오는 거예요. 여기서 신부를 맞아 가지고 비로소 계대가 결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개인이 믿어 천국 가는 시대는 지나갑니다. 남자 혼자만 잘 믿어 가지고 혼자만 들어가는 곳이라면 그게 무슨 천국 이예요? 어머니 아버지 다 지옥에 가 있는데 자기 혼자 천국가면 좋겠구만. 천국은 가정이 함께 들어가는 곳이예요. 알겠어요? 그러면 참부모가 나왔더라면 참부모 아들딸이 천국에 가겠어요, 못 가겠어요?「갑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이 참부모를 다른 말로 천지부모라고 하는 거예요. (판서하심 ) 오늘날 불교에서도 천지부모 모셔야 된다고 말합니다. 유교에서도 전부 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내용인지 모른다는 거예요. 이것을 통일교회에서 샅샅이 설명해 준다구요.

세계 역사가 그렇게 돼 있어요, 안 돼 있어요?「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악한 사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신부 종교 문화권을 중심삼고 세계의 절반을 빼앗아 와야 됩니다. 여기에서 하늘편 천사권과 하늘편 신부권을 중심삼고 이 둘이 합한 자리에서 오시는 주님을 맞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신부형 종교가 어느 종교고, 천사권 나라가 어느 나라냐? 그 신부권이 기독교요. 천사권 나라가 미국입니다. 미국이 세계에 없는 물질적 축복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알겠어요?「예」 세계 대표의 천사장권 나라이기 때문에 앞으로 주님이 오거든 전부 다 존경해야 됩니다. 이렇게 되었지요? 그렇지요? 덮어놓고 믿는 게 아니라구요.

주인이 결혼식 하지 않았는데 종들이 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를 믿는 사람은 정욕을 전부 다 금지하라, 몸뚱이가 좋아하는 것을 다 끊어 버리라고 하는 거예요. 그것은 사탄의 근거지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새로운 부모의 전통을 중심삼은 새로운 문화의 가족이 벌어지고, 새로운 문화의 종족이 벌어지고, 새로운 문화의 민족이 벌어지고, 새로운 문화의 세계가 벌어지는 날에는 한 나라로 말미암아 세계는 통일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주의가 지향하는 방향인 것입니다. (녹음상태 불량으로 약간의 분량을 정리하지 못했음)

주간종교의 편집방침

내가 공석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가능한 무엇이 있기 때문이라구요. 내가 한다 한 것은 다 됐거든요. 그렇죠?「예」'이렇게 이렇게 된다'고 한 것은 그렇게 다 되었지요?「예」 그러니 한번 기대를 가져 보라구요.

그때가 되면 말이예요, 포드 회사에서 나오는 자동차를 그냥 나눠 주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중에는 안 가져가겠다고 하면 벌금을 받으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웃음)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을 깨깨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십년 동안 세상에 나가 가지고 뼛골이 녹아나도록 고생해 가지고 자기 잘살겠다고 기반 닦은 사람과, 십년이나 일생 동안 고생을 지지리 한 통일교회 문선생과 나중에 누가 잘사는지 보자는 거예요. 알겠어요? 내가 지금 지지리 고생을 하고 못살 아도 내가 생각할 때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세계의 누구도….이걸 알아야 돼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죽으면 좋아할 사람 손들어 봐요. (웃음) 여러분한테 절대 신세를 안 집니다. 여러분이 갖다 주는 연보나 헌금이나 받아 가지고 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나는 무엇이든 다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노동판에 가서 노동도 할 수 있고 목수 일도 잘합니다. 염전에 가면 소금을 젓는 가래질도 잘합니다.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구루마도 잘 끌고, 구덩이를 파라고 해도 잘 팝니다. 다 해보았습니다. 구들을 놓으라면 놓을 수 있고, 벽이나 담을 쌓으라고 해도 쌓을 수 있고, 굴뚝을 쌓으라고 해도 다 한다구요. 무엇을 하든지 벗고 나서면 먹고 사는건 문제없다는 거예요.

이런 사람들을 만들어야 됩니다. 농촌에 가면 농사꾼 중에서도 상농사꾼이예요. 농사꾼을 가르치기도 해요. 씨름판에 가서 씨름을 해도 지지 않는다구요. 운동판에 가서도 못 하는 운동이 없다구요. 복싱도 한 사람입니다. 한번 치면 웬만한 바람벽은 구멍이 쭉 난다구요. 태풍보다 날래다는 거라구요. 바쁠 때는 비상 수법도 쓰는 거라구요. 한 사람 두 사람은 처리할 줄도 안다구요. 뛰어가다가 높은 담이 있으면 훌쩍 넘어갈 줄도 압니다. 이렇게 자기 일신을 방비할 수 있도록 모든 훈련을 거친 사람입니다. 몸도 이만하면 뚱뚱하지요?(웃음) 다 풀고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요즘에는 나를 만나자는 대학교 교수들이 많아져서 걱정입니다. 옛날에는 뭐 한다 하는 사람에게 나에 대해 얘기하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어떠한 작자야?' 하더니 요전에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어떠한 사람이야? 하고 요즘에는 '통일교 문선생이 어떤 분이야? '합니다. (웃음) 자꾸 복귀해 올라간다구요. 소생, 장성, 완성으로. (웃음)

그렇게 되니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좋아합니다. 그러나 기성교인들은 죽을 지경이라구요. '아이구, 요즘에는 주간종교신문사까지 만들어서 또 야단하는구만…' 주간종교사 만들 적에 기성교회 목사 장로들이 '아이구, 저것들이 이제 우리들 기사를 한가운데 집어넣어 긁고 물고 늘어지겠구만' 했습니다. (웃음) 털면 먼지 안 나는 데가 어디 있어요? 그러나 기성교회 털면 통일교회가 추잡해지기에 그러지 않는 거라구요. 털지 않아도 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만나 가지고 그 입에서 틀린 말이 나오면 한방 때려줄 수 있습니다. '이놈, 네 역사를 좀 말해 볼까? 허허허, 이 가증한 무리야' 하고 말이예요. 기성교회에 대해서 샅샅이 알고 있다구요. 그렇지만 나는 그들 나쁜 것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도 얘기를 못다 하고 있는데 나쁜 것을 어떻게 이야기해요? 그렇잖아요? 자꾸 긁더라도 절대 긁는 얘기 적지 말라고 합니다. 사회풍조를 나쁜 풍조로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면, 진취적인 면에 대한 것, 살인 강도와 같은,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한 그런 나쁜 것을 쓰지 말고 좋은 것만 쓰는 것입니다. 우리 주간종교신문 기사 가운데 비참한 기사는 전부 빼고 나쁜 기사는 주간신문에 못 쓰게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주간신문들은 한번 들여다보고 나면 다 휴지로 버리지만, 우리 주간신문만은 참고 내용이 있으니까 전부 다 철을 해 두어야겠다 하는 소문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오래지 않아서 일간신문을 만들어야 되겠다구요. 알겠죠?「예」 주간신문 십만 부만 넘어라. 그러면 당장에 일간신문을 만드는 거예요. 동아일보에서 우리를 때렸지. 신문쟁이들을 전부 다 걸고 한번 뛰자는 거예요. 누구 머리가 더 나은지. 그들은 돈을 가졌지만 작전에서는 누구한테 걸리느냐? 우리에게 먹히게 된다구요. 그렇지요? 우리 땃벌이(땅벌)떼-기동대들-들은 동아일보도 망칠 수 있다구요. 그렇지요?「예」 한국일보 조선일보 할것없이 통일교회 잡아죽이겠고 야단하던 것들이 동맹해서 '아, 그 통일교!' 하고 감탄할 때까지 우리는 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여기에 신문기자들 왔으면 기분 나빠도 할수없습니다. 가서 사장님들한테 보고하라구. (웃음) 그걸 안 하면 가만두지 않는 거라구요.

이번 주간종교 신문 등록하는 데도 네차례나 퇴짜 맞았습니다. '안 됩니다' 하는 거예요. 등록 신청을 했지만 기성교회의 목사, 장로, 장관해 먹던 패거리들이 전부 다 들고 나와서 설치며 '안 되겠다'고 하길래 뭐안돼? 하며 한번 퇴짜맞고는 또 냈습니다. 그렇게 세 번 네 번까지 내고는 그래도 안 되겠어? 그래? 그리고는 장관에게 들이댔습니다. '통일교회를 너희들 발꿈치 정도로 알았어? 인사성을 차릴 줄 알아야 되는 거야, 너 장관' 하고 꼭대기에서 휘둘러 대니까 피할 바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왜 여지껏 그러고 있어?' 하며 허가를 내주었습니다. 원래 우리는 그렇게 하자는 사람이 아닙니다. 있는 정성을 다해 실무 담당자와 의논해서 선의의 입장에서 하려고 하는 거라구요. 그런데 사람을 무시해도 유만부동이지, 그래 일주일 내에 끌어내 가지고 허가를 낸 것입니다.

옛날 문교부하고 싸울 때도, 통일교회 등록을 취소하겠다고 하다가 일주일 이내에 전부 다 철회했지요? 그렇지요? 1963년도에 그랬어요. 그렇다고 앞으로 우리가 그런 놀음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알고 여러분은 당당한 마음을 가지고, 나라가 누더기가 되고 주체적인 사상이 흐려져 가는 이 판국에 있어서 통일사상이나마 불어오는 태풍 앞에 하나의 일엽편주의 닻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닻줄이 되고 닻이 되어야겠습니다. 배가 깨어지더라도 이 닻줄은 끊어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닻줄이 끊어져 가지고 큰 배가 깨지겠거든 이것을 다시 얽어매어 가지고 그 큰 배를 구할 수 있는 든든한 닻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대한민국이 만약 이 뜻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외국이 받아들이는 때가 불원간 올 것입니다. 그것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구요. 그렇게 졸장부 모양으로 앉아 가지고 천장이나 바라보고 콧방귀나 뀌면서 종교 통일하겠다고 하는 그런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지금도 세계적인 기반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무대에서 이런 스승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랑스럽지요?「예」 아버지를 두었다면 잘 두었어요. 여자들이 남자를 만났다면 잘 만난 것입니다.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통일교회 선생이 말하게 되면 잘 듣는 사람들이 여자들입니다. 남자들도 그렇죠?「예」 여자를 두었다면 잘 두었다구요. 세상보다 잘 두었습니다. 껄렁 껄렁하지 않다구요.

원수의 진지를 향해 용기와 기백을 가지고 달려가자

그렇기 때문에 20세기 후반부가 되면 깃발을 들고 아시아의 물결을 넘어 세계에 수수께끼 사나이인 미스터 문의 이름이 날릴 때가 올 것입니 다. 지금 이렇게 얘기한다고 해도 누가 대표적으로 나와서 '그렇지 않다'고 항거할 사람 없으리만큼 기반을 닦아 놨어요. 알겠어요?「예」 통일교인들은 더더욱 자신만만하죠?「예」 이 자신을 가지고 삼팔선을 쳐부숴 남북한을 통일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구요.

그리하여 선생님이 태어난 고향땅, 옛날에 내가 자라던 그 뜰, 내가 놀던 그 동네에서 그것들을 실제 교재로 삼아 교육하고 싶은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 산하에서 뛰놀던 그때 그 시절을, 여러분이 죽기 전에 직접 선생님을 통해서 설명을 듣게 될 때에 선생님의 역사를 확실히 아는 여러분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어떻게 자랐는지 모르지요?「예」 그날을 위해서 내가 삼팔선을 넘어서면 여러분도 삼팔선을 넘어 가지고, 이 거룩한 뜻을 위해서 길잡이로 나서는 데에 있어서, 모질고 간악한 행동을 하고, 고문으로 흘린 피를 보면서 좋아하던 악당 이리떼들을 우리 손으로 쓸어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까지 통일교 회의 가는 길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예」

그때에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날들을 설명하고…. 이 역사적인 원수를 장사지내 버리고 승리의 깃발을 들고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며 하늘의 영광을 찬양할 그날까지 통일교회의 무리는 단결과 더불어 투쟁하여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사명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전라남북도 사람들은 여기에 가담하겠어요, 안 하겠어요?「하 겠습니다」 하겠어요?「예」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가담해야 됩니다. 통일교회 여자는 인민군대와 싸워 이기지 못하고는, 천사장과 같은 사탄세계의 남자들을 대하여 하늘나라의 해와가 팔려갔던 원한을 풀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원흉을 대표한 남자 인민군대들을 우리 통일가의 여자들이 중심해서 완전히 쓸어 버리고도 남을 수 있는 신념과 사상으로 무장해 가지고 나가는 날에는, 남자들은 악한 원수의 남자들이 망해 넘어지는 것을 보고 장단 맞춰 춤추며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의 귀결점이예요. 알겠어요?「예」 여자들이 삼팔선을 맡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예」

조금만 더 가게 되면 내가 여자들 훈련시킬 겁니다. 그때는 내가 대장이 될 거예요. 여러분, 군대 가라고 하면 다 안 가려고 꽁무니빼는 입장 이지요? 사지에서도 원수가 있는 적진을 향해서, 그 본진을 향해서 직행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역사적인 백십자군을 편성해 가지고, 저물어 가는 세계의 석양길을 대낮으로, 아침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용기와 기백을 가진 무리가 통일사상을 지닌 아낙네들이요, 사내들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 일을 해내 가지고 승리를 결정하게 될 때, 악을 대한 선의 최후의 승리는 이 땅 위에 영원히 깃든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 이 거룩한 뜻 앞에 가담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내려요.

​기 도

참을 찾아 나온 역사적인 섭리의 뜻이 이처럼 아연한 사망의 세계를 거쳐왔다는 것을 어슴푸레하게나마 이 짧은 시간에 헤아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여기 세계에 없는 불쌍한 무리, 통일가가 남아 있는 것을 자랑하옵니다.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개인이 있어야 되겠고,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가정이 있어야 되겠고,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세계를 대표한 종족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이것을 바라고 나오신 것을 생각하며 오늘날 통일가는 이 뜻의 기반을 세계적으로 편성하기 위해 지금까지 피어린 역사적 투쟁을 해 나왔습니다. 지금도 그 역사의 수렁에서, 가려 가야 할길 가운데서 내일을, 이해를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저희는 이 자체를 바라보고 한숨지을 것이 아니라 피안의 승리의 천국을 바라보고 가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최후의 영광의 날을 맞지 못한다는 것을 통일 식구들의 가슴 가슴에 뚜렷이 자리를 잡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믿던 세계도, 그렇게 의지했던 나라도, 그렇게 의지했던 스승도, 그렇게 사랑했던 가정도 이 길을 가는 데에는 반대를 하였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왜 반대된다는 것을 확실히 안 저희들은, 응당히 그래야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개인의 수난길을 참고 왔습니다. 가정의 수난길을 참고 왔습니다. 종족의 수난길을 참고 왔습니다. 민족의 수난길을 참고 왔습니다. 그리하여 국가의 수난길을 맞기 위하여 나서지 않으면 안 될 통일가의 운명을 직시하게 될 때, 저희 그 누구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서 있는 자식을 따르고 있는 통일가의 수많은 무리는 이 자식을 생명의 등대인 양 바라보고 있지만 아버지께서 같이하시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선두는 아버지가 되시옵소서. 저는 없어지더라도 아버님이 나아가셔야 되겠습니다. 저의 가정이 없어지더라도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가정이 남아져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가 없어지더라도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나라가 남아져야 되겠습니다. 이 세계를 남기기 위해서는 한국이 희생의 자리로 나가야 되겠습니다. 세계를 남기고야 남아진 그 세계 가운데의 한국이 되어야 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런 역사적인 사명과 운명을 책임지고, 천명 앞에 분부받고 나선 무리가 오늘 통일가의 무리라는 것을 확실히 결의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남북이 갈라진 모든 원한의 이 구렁텅이를 메우기 위하여 삼천리 반도의 삼천만 민족은 단결해야 되겠사옵니다. 이를 위해 선두에 나선 기수의 사명을 짊어진 어린 딸들이 있사오니, 그들에게, 아버지,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아버지, 지키시옵소서. 이들을, 아버지, 사랑하시옵소서. 슬픈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는 세상과 더불어 흘러가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럴 수 없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저희는 모든 죽음길을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인내와 절제로써 사망선을 극복하고 넘어야 할 통일의 무리들이 가는 길을, 아버지, 긍휼히 보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오늘 이 시간, 전라남북도에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 자리에 모였사옵니다. 이들이 하늘나라를 위해 만난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나라의 뜻을 세계에 펴기 위해서 만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부락으로 돌아갈 때는 세계애의 마음을 갖고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애족의 마음을 갖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 들이 누구보다 먼저 알았기 때문에, 잠을 자더라도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도 조금 자야 되겠습니다. 먹더라도 못 먹고 일은 더 많이 해야 되겠습니다.

수난을 당하면서 어려움을 당하면서, 뭇 백성을 붙안고 최후의 생명을 걸고 씨름하여야 할 사명이 이 가냘픈 무리들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들이 망하는 것은 좋을는지 모르지만 국가가 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들의 괴로운 것이 그것으로 끝나 가지고는 안 되겠사옵고, 국가의 괴로움을 탕감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제 고독이 눈앞에 사망의 손길을 펴고 찾아오는 한국 정세 위에, 세계 정세 위에, 이 천지간에 당신의 새로운 희소식이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을 끌어내고, 이것을 유발시킬 수 있는 것은 저희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다짐하게 될 때, 여기 서 있는 이 자리가 얼마나 무서운 자리라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마음 놓고 잠을 잘 수 없는 자리인 것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사명을 다짐해 가지고 양손을 들어 아버지 앞에 결의한 이 결의가 하늘이 변하기 전에는 변하지 않고 천지가 변하더라도 이 결의만은 남아져서 승리의 천국을 건설할 때까지 굳건하고 강하게 남아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만난 이 시간을 감사드리옵니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변하는 정세 가운데에서 당신께서 품고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자랑하고, 저희의 갈 길을 다 가 가지고 기뻐하면서 만날 수 있는 그날이 있기를 바라옵니다. 금후의 모든 절차와 모든 사연들을 당신이 허락하신 은사권내에서…. (이하 녹음되어 있지 않음)

여러분이 지금까지 들여 나온 그 정성을 보다 보람 있고 차원 높은 의미에서 들여 주기를 바라겠어요. 알겠지요?「예」 더우기 가정을 버리고, 사랑하는 자식과 남편을 뒤에 두고, 나라의 운명을 염려한 나머지 참을래야 참을 수 없는 자리에서 모든 것을 뿌리치고, 모든 것을 저버리고 일선에 나가 있는 여자 대원들은 더더욱 있는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되겠어요.

앞장서서 정성들여야 할 교회장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교회장들에게는 어떤 풍조가 있느냐?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여자는 해와의 입장이기 때문에 하늘이 사랑할 수 있는 입장이지만 남자는 천사장이라 해 가지고 '여자 대원들은 해와 입장이니 천사장은 해와를 따라가야 되는 것인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라구요.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창조하게 될 때까지는 그 전통적 사상을 누가 이어받았느냐 하면 천사장 입장에 있는 분들이 이어받은 거라구요. 그러므로 아담 해와가 생활할 수 있는 새로운 풍조와 전통을 누가 가르쳐 줘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이 가르쳐 주기 전에 종인 천사장이 '야야, 주인의 아들딸은 이렇게 이렇게 나가야 된다'고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주인의 아들딸들이 잘못 나가는 것을 제지하고 잘 나가게끔 선두에 서서 가르쳐 줘야 할 것이 나이 많은 종의 책임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에, 뜻을 아는 교회장이 비단 천사장의 입장에 섰다 하더라도 뜻을 완성시키는 입장에 있어서는 표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뜻 앞에 완전히 복귀되지 않은 터전 위에서는 해와 복귀를 바랄 수 없는 것이 원리적 견해가 아니냐. 그렇지요? 때문에 교회장은 누구보다도, 여자 대원들보다 정성을 먼저 더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만약 정성을 안 들이거든 여자들이 가만둬서는 안 됩니다. 세 여자가 합해서 사지를 끌어서라도, 팔다리를 끌고 모가지를 끌어서라도 끌고 나가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는 앞에 세워 가지고 정성을 들여야 돼요. 정성들인 그 모든 터전과 더불어 국가와 민족과 종족을 전부 거느려 가지고 거기에 해와들한테 맡겨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 원리적 관점이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 것을 먼저 복귀해서 오시는 분을 대접받게끔 해 가지고 돌려보내야 할 책임이 남자 들의 책임이요, 교회장의 책임이 아니냐? 이것이 원리적 관인데도 불구하고, '뭐 천사장? 이놈의 천사장이 망할 천사장이라구' 하는 그따위 퇴폐적인 사상을 가져서는 안 되겠다구요.

잠을 자더라도 여자들보다 더 자면 안 돼요. 알겠어요. 남자들?「예」 본래는 여자들을 대접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런데 오히려 신세를 지면서 처져 가지고 한 쪽에서는 새벽예배를 보는데 코를 골고 자요? 이 망할 놈들. 그러한 무리가 있어 가지고는 그 교회가 발전되지 않습니다. 그런 교회가 되었거든, 여자들은 남자들이 자는 데 가서 이불을 걷어차고 끌어내 가지고 교회장과 여러분이 하나되어 활동함으로써 그 부락에 영향을 미치고 전체에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과거의 역사적 방향이 이래서 망했으니 이러이러한 방향을 본받지 않으면 이 나라, 이 백성은 망한다고 새로운 사상적 방향을 제시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성을 들여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알겠나, 교회장?「예」 여기는 전도대원 없지?「예」 전도대원 있는 교회는 특별히 주의하라구. 특별히 정성을 들여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애절한 마음으로 민족 앞에 외치라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전해야 되겠습니다. 나라와 세계가 혼란할 때가 왔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가두에 서서 피를 토할 만큼 애절한 마음을 가지고 금후의 한국관과 금후의 세계관을 중심삼고 노방에서 외쳐야 되겠습니다. 칠판을 메고 가두에 서서 '잠든 민족이여, 깨어라. 가야 할 길을 알지 못하고 미로에 서 있는 백성들이여. 앞으로 나갈 방향을 가려서 가야 된다'고 가르쳐 줘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경찰이 무슨 교통, 뭐 뭐라고 하면서 반대할는지 모르지만 반대를 받으면서라도 해야 되겠습니다. 교통이 문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갈 수 있는 교통로가 차단되어 있는데, 가두의 교통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거리 거리 방방곡곡에서 장날이면 장터를 찾아 다니면서 마이크를 들고 가냘픈 여자의 목소리로 눈물과 더불어 민족의 심정을 흔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습니다. 승공하지 않으면안 됩니다. 민족이 사상적으로 통일적인 기반을 갖추지 않으면 북괴 이리떼들을 막아낼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개인이 갈 수 있는 길, 가정이 갈 수 있는 길, 마을이 갈 수 있는 길, 사회가 갈 수 있는 길을 새로이 제정해야 할 사명을 여러분이 짊어졌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두에서 선전 전도를 해야 되겠다는 것을 기억해야 되겠어요. 약속하겠어요. 안 하겠어요?「하겠습니다」

첫째는 뭐라구요?「정성을 들이는…」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선생님이 밤이나 낮이나 이 나라의 갈 길을 염려하던 마음을 대신해서, 내가 이 나라에 없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 지조를 이어받아 가지고 정성들여야 됩니다. 그 다음엔 잠들어 있는 이 민족이 고이 그냥 앉은 자리에서 망하게 되었으니. 이것을 깨우쳐야 되겠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두에 서서 있는 정성을 다해 외쳐야 될 때가 온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멀지 않아 길을 떠나는 내가 여러분 앞에 남기는 부탁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돌아올 때까지 이것을 중심삼고 민족을 붙안고 내일의 세계를 향하여 천륜의 뜻을 남기기 위해서 온갖 지성을 다해 줄 것을 부탁하는 바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게 행하겠다는 사람 손드십시오.

만일 전도대원의 이름을 갖지 않아서 나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기가 있는 처소에서 반이면 반장을 통하든가 반원을 통해 가지고 옆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공산당을 막아내야 된다. 우리는 하늘의 원수를 막아 내야 된다'는 이 두 길을 가르쳐 주는 데 분골쇄신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이 여러분 앞에 부탁하는 것임을 알고 잘났으면 잘난 사람으로서, 못났으면 못난 사람으로서 자기 역량이 미치는 기준에서 온갖 정성을 다해 전국적으로, 혹은 세계적으로 이 활동을 개시해야 되겠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외국 식구들에게 져서는 안 되겠다

여러분만이 아니고 엊그제 왔다 간 일본 식구들에게는 이미 명령을 내렸습니다. 때가 이러니만큼 일본 방방곡곡 거리 거리에서 일본이 가야 할 내일의 소망을 앞에 두고 이것을 이론적으로 증거하면서 '이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외치라고 했습니다. 한국뿐만이 아니고 일본에서도 이것을 할 것이고, 앞으로 세계에 통일교회 식구들이 있는 각국에서 이놀음을 할 텐데 이왕지사면 한국이 먼저 해야 되겠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신이예요. 한국이 먼저 해야 될 게 아니냐? 그렇지요?「예」 우리 사상의 발원지는 한국땅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한국이 먼저 하기를 바라는 한국을 사랑하는 통일교회 선생이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여러분에게 이 일을 먼저 부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알고 고맙게 여겨야 되겠어요. 외국 사람한테 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알겠지요?「예」

먹는 것은 비록 보리밥을 먹고, 자는 곳은 비록 찬방이나 마루바닥이더라도, 덮고 자는 것이 신문지 조각이나 가마니 조각이라 하더라도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요. 피 끓어 오르는 애국애족의 심정에 있어서는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정열을 다하는, 그런 하룻밤을 하나님이 기억하시지 않을 수 없는 인연을 남기기 위해서…. 이 자리는 세계의 어떠한 문화 민족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정성의 자리라는 것을 느끼면서 온갖 지성을 다 들인다면 여러분은 세계 민족 앞에 수치를 당하는 민족이 되지 않고,무리가 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을 잘 명심하시고, 부디 그런 책임을 다 지키고 행해 주기를 재삼 부탁하는 바입니다. 알겠지요?「예」 그러자구요?「예」

이번에 가는 선생님의 사명은 큽니다. 이제 갔다 와서는 앞으로 국제적인 무대를 닦고, 국제적인 행각의 노정을 출발해야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적 기반이라든가 혹은 대 사회적 기반을 준비하고 와야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가느니만큼 여러분도 고달프겠지만 선생님도 고달픈 길을 걸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도 선생님에게 지지 않는 입장에서 정성들여 주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알겠지요?「예」

시간이 많이 갔지요? 열 시 십 분이예요. 자, 그러니까 그만 하고…. 이제 나도 돌아갈 시간이 됐으니 이만 하고 돌아가려고 해요. 괜찮지요? 더 하자요? 돌아가도 괜찮지요?「예」 오락회도 하고 열 두 시까지 있었으면 좋겠지만, 손님 대접을 그렇게 하면 돼나. 그렇지요?(일동 통일의 노래 합창하고 폐회함)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날은 11월을 맞이하여 첫번째 맞는 안식일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 시간, 서울을 위시한 4개도의 식구들이 어려운 사정을 물리치고 이 자리에 참석하였사오니 당신의 긍휼하신 사랑과 자비와 동정이 이 자리에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기의 어떤 개인적인 소원을 중심삼고 모인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님이 바라시는 소원이 저희 앞에 있는 이상 당신이 소원하시는 그 중심의 뜻을 저희들의 뜻으로, 저희들의 소원으로 지니고 참석한 이들이 되게 허락하시옵소서.

저희가 있음으로써 아버지께서 같이 계시는 이 자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계심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이 하나가 되어 금후에 저희들이 가려 가야 할 전체적 사명 앞에 있어서 분부하시는 그 사명을 명령 받는 이 자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오늘 저희들이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있게 하신 은사에 감사하옵고, 지금까지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싸워 나온 과거가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옵니다. 저희들이 뜻을 중심삼고 다시 다짐을 할 수 있는 이 시간을 아버님과 더불어 찬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 감사를 드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결의와 자각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시여 ! 여기 모인 무리들을 당신이 원하시는 곳으로 이끄시옵소서. 당신이 맡기고 싶으신 사명을 맡기시어 승리에 결정을 다짐하는데 필요한 요건을 책임지는, 사랑받을 수 있는 아들과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엄청난 책임을 다시 한 번 저희 마음으로 통감하면서 당신이 분부하실 수 있는 몸 마음이 되어 다시 마음으로 다짐하는 이 자리가 되게 하시옵고, 저희 각자 각자를 아버지께서 필요로 하는 개체들로 내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모든 일체를 아버지께서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이 시간 이곳을 바라보며 정성을 들이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금후에 저희들이 가는 도상을 아버지께서 친히 맡으시옵소서.

승리의 한날을 다짐하기 위한 역사적인 사명이 빠른 시일내에 성취되기를 바라오니, 어서 속히 당신의 소원성취와 더불어 자녀들의 소원성취를 이루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자녀들이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영광의 승리의 개가를 당신 앞에 돌려드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에도 당신이 여기에 좌정하시옵소서. 그 누구도 여기의 책임자가 아닌 것을 알고 있사오니, 긍휼의 아버지여, 찾아와 주시옵소서. 자비의 아버지여,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동정의 아버지여, 저희를 사망권에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승리의 한날을 맞이하고 승리의 한 나라를 맞이하여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끔 이 시간 보호 육성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허락하신 은사와 더불어 전체를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바라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우리들은 일반 세상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 땅 위에 통일교회가 나오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님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배후에는 하늘이 있다면 하늘이 개재해 있고, 수많은 인류의 조상들이 이 길과 인연을 맺기 위해서 많은 희생을 치러 나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섭리역사의 중심이 통일교회라면 문제가 크다

현재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 종교들을 중심삼고 필연적으로 귀일된 하나의 운명을 결하기 위해서 이 모임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금후의 새로운 역사시대에 있어서 인류가 바라는 소망 앞에 새로운 어떤 사상을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을 중심삼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해서 새로운 어떤 결정적 요인을, 개인을 대신하여, 혹은 가정과 국가, 세계를 대신하여 제시해야 할 사명을 갖고 이 땅 위에 현현한 것이 바로 통일교회 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게 될 때, 통일교회가 나오게 된 것을…. 만일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통일교회가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색다르게 모여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려는 이런 움직임도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이상을 실현시키지 못했고,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자로 계시는 하나님이 이상하시던 바도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바라는 소원과 하나님이 바라시는 그 소원을 성취하지 못한 자리에 섰기 때문에, 오늘날 그것을 재현시키기 위한 사명을 띠고 통일교회가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통일교회가 우리들만으로 구성된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하늘이 개재되어 있는 것이며 역사적인 선조들이 개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기에는 오늘날 온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종교인들을 대표한 요인들로 묶어져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미래의 세계를 향한 새로운 역사적 출발을 할 수 있는 터전을 제시하기 위하여 우리 교회가 존속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과연 그러한 중심 곳이요, 그러한 내연을 지니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면 이 자리는 한갓 지나쳐 버려서는 안될 자리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섭리역사의 중심과 조국'이라는 내용을 놓고 생각해 볼 때, 오늘날 하늘이 바라는 중심의 곳, 혹은 인류가 바라는 중심의 곳이 어디가 되어야겠느냐? 만일 통일교회가 그런 자리에 있다 할진대 이것은 큰 문제인 것입니다. 여기가 섭리역사를 대표한 중심의 곳이라 하게 될 때, 여기는 하늘의 모든 소원이 집결될 수 있는 곳이요, 역사의 모든 목적이 집결된 곳이기 때문에 우리 개개인을 통하거나, 혹은 가정과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통하더라도 이 중심과 인연을 맺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중심노정

섭리역사의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것은 무엇이었느냐?

물론 사람을 찾아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적인 사람, 중심적인 하나의 존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하나의 존재가 찾아지게 될 때, 그 존재로 말미암은 하나의 가정을 바라셨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존재를 찾아 나온 것이요, 찾아진 하나의 존재를 중심삼고 평면적인 중심 자리에 세워질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바라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섭리역사의 중심으로 결정될 수 있는 그 가정이 오늘날 이 팡 위에 있느냐 하게 될 때,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바라시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가정을 찾은 후에는 그 가정을 중심삼고 사방으로 하늘의 뜻을 펼 수 있는 하나의 나라를 바라실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찾아지게 될 때, 비로소 그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이 섭리역사의 노정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가정이 있기 전에 그런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개인이 있어야 되고, 그러한 국가가 이루어지기 전에 그럴 수 있는 가정이 이루어져야 되고, 그러한 세계가 이루어지기 전에 그럴 수 있는 국가가 이루어져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 개인은 하늘이 바라는 가정 앞에 중심존재로 설 수 있어야 되고, 그 가정은 하늘이 바라는 국가 앞에 하나의 중심가정으로 설 수 있어야 되고, 그 국가는 하늘이 바라는 세계 앞에 중심국가로 남아질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개인 따로, 가정 따로, 국가 따로, 세계 따로, 각각 따로 선 자리에서가 아니라 한 분을 중심삼은 가정으로부터 그 가정을 중심삼은 하나의 국가와 하나의 세계에까지 연결된 자리에서 섭리역사를 완결짓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원이 아니겠느냐? 혹은 인류가 바랐다면 인류가 바라는 모든 것의 중심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역사의 중심이요, 섭리역사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세계의 중심나라가 있어야 되는 것이요, 세계의 수많은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중심의 가정이 있어야 되는 것이요, 세계의 인류를 대표한 중심적인 개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이, 가정을 중심삼고 국가가,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가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과 뜻이 완성을 봄과 동시에 가정의 뜻이 완성을 보고, 국가의 뜻이 완성을 봄과 동시에 세계의 뜻이 완성을 볼 수 있는 그런 때가 이 땅 위에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하나님께서 섭리해 나오시는 역사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세계, 혹은 국가, 가정이 결정될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필연적으로 하나님께서 지상을 대하여 섭리해 나오시는 중심사조, 중심노정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섭리역사의 출발 목적

그러면 기나긴 인류역사 동안 인간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나왔느냐? 이상적인 국가를 바라보고 나왔습니다. 혹은 이상적인 가정, 이상적인 어떠한 인격을 바라보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적이라는 것이 어떻게 되어야 이상적이 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그것은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만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바라는 그 이상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출발이 인간 자체로부터 출발하였다면 인간으로서 바랄 수 있는 그런 무엇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본래 인간이 출발하게 될 때, 우리가 원해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출발할 수 있게 만든 어떠한 주체가 있어 가지고 그 주체에 의해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분이 바라시는 세계와 국가, 가정 그리고 그분이 바라시는 인격관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기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 인간이 평면적인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하나님은 입체적인 면을 갖춘 입장에서 바라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바라는 기준과 하늘, 곧 우리를 존재케 한 중심이 바라는 기준과는 차원이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타락은 어떻게 된 것이냐? 우리 인류는 본래의 중심(하나님)을 중삼삼고 개인이 출발한 것이냐, 혹은 가정이 출발한 것이냐, 혹은 국가가 형성된 것이냐, 세계가 형성된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때, 타락은 하늘을 중심삼고 출발하지 못한 데서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냐? 하늘이 원치 않는 사탄을 중심삼고 출발했습니다. 출발할 때에는 어떠한 내용으로 출발했느냐? 하늘이 원하는 자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하늘과 반대되는 악한 세력의 주체와 인연이 되어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악한 사탄으로 말미암아 출발된 것입니다. 그 악한 사탄이 누구냐? 천사장입니다. 천사장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가 불의의 욕망을 터로 해서 출발된 역사가 바로 인류역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천사장이 하늘의 뜻과 이탈된 자리에서 새로운 동기를 중심삼고 해와와 아담을 유인한 그 터전 위에 태어난 존재가 우리 인간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터전을 통하여 태어난 가정이요, 국가요, 세계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런 국가와 세계를 하늘은 그냥 그대로 둘 수 없기 때문에, 타락하게 된 동기의 내용을 다시 부정시킬 수 있는 길을 닦아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이 본래의 소원과 어긋난 길을 갔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한 번 시정하기 위하여 구원섭리 역사는 출발되었던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하나된 선한 개인을 찾아야

그러면 섭리역사를 두고 볼 때, 먼저 어떤 중심 존재를 찾아 세워야 되느냐? 대번에 아담을 찾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대번에 해와를 찾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대번에 천사장을 찾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악이라는 세력권내에는 그 악을 중심삼은 무수한 개인이 있고, 무수한 가정이 있고, 무수한 국가가 있습니다. 이 악한 국가나 악한 세계 앞에 악을 중심삼고 결탁되어 있는 개인보다도 하늘을 중심삼고 결탁되어 있는, 더 강한 자리에 선 개인을 어떻게 찾아내느냐 하는 것이 섭리역사 가운데서 하늘이 지금까지 해 나온 일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개인을 찾아 가지고 그 개인의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아 그 개인과 하나될 수 있는 가정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세계의 수많은 가정보다도 하늘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가정을 바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또, 그런 가정을 중심삼은 국가로서 사탄세계의 어떤 국가보다도 더 강한 국가를 바라고 나오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하늘이 찾고자 하는 그 세계도 사탄을 중심삼고 하나된 것보다도 하늘을 중심삼고 하나된, 보다 나을 수 있는 세계를 찾아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섭리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우리가 사탄세계의 악한 사람보다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인연권내의 그 무엇보다도 우월한 자리에 서지 않으면 하늘이 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섭리역사를 가름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사탄세계를 볼 때, 개인이 있는가 하면 가정이 있고, 그런 것이 모여서 종족, 민족, 국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국가가 사탄권내에 있어 가지고 세계를 이루고 있는 이 마당에, 하늘은 이 세계 전체를 대해서 내세울 수 있는 사탄세계의 개인보다 월등한 개인을 어떻게 찾느냐, 사탄세계의 가정보다도 월등한 가정을 어떻게 찾느냐? 그러한 가정을 찾지 않고는 사탄세계 국가보다 우월한 국가를 형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섭리역사는 그러한 개인을 찾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찾는 데는 대번에 아담 해와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순서를 따라서 찾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에덴에 있어서 천사장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되었기 때문에, 하늘 앞에 천사장이 없어진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천사장을 대신할 수 있는,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영계와 육계에 걸쳐 사탄세계의 그 무엇보다도 강할 수 있는 이런 존재를 찾아 세우기 위해 하늘은 수고해 나온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천사장 승리권을 위해 세워진 종교

다시 말하면, 첫째는 천사장을 찾아야 됩니다. 이 천사장은 사탄이 되었던 천사장보다 못한 천사장의 사명을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타락한 사탄을 물리치고, 굴복시키고 하늘 앞에 보다 충성을 다짐할 수 있는 중심 천사장과 같은 존재를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은 오늘날 인류역사의 배후에서 섭리해 나온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천사장과 같은 세계적인 대표, 사탄을 능가할 수 있는 중심적인 대표를 세우는 데는 하늘과 인연맺을 수 있는 터전을 통해서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번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수난길에서 악한 환경에서 이것을 가려 가지고 악의 일체와 분립된 승리의 결정권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권이 개인적 권을 넘어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적어도 하나의 국가를 중심삼은 터전 내에서 천사장적 승리의 권을 바라보고 하늘은 섭리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인류역사 가운데에 이러한 천사장 승리권을 세우기 위해서는 그것을 세울 수 있는 터전이 필요합니다. 그 터전을 통하여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교육을 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터전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류역사에 있었던 종교는 하나의 승리한 천사장권 국가, 천사장권 민족, 천사장권 종족, 천사장권 씨족, 천사장권 가정, 천사장권 개인을 찾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섭리해 오신 뜻입니다. 이것이 찾아지지 않고는…. 타락이 천사장으로 말미암아 되었고 그 다음에는 해와로 말미암아, 그 다음에는 아담으로 말미암아…. 이들이 합동하여 타락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찾아 일깨워 세우기 위해서는 타락하지 않은 입장의 천사장권, 해와권, 아담권을 찾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가 한 것이 무엇이냐?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는 천사장권을 만들어 세계적인 천사장 책임을 사탄세계에서 다 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을 결정하기 위한 목적에서 발전되어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사장은 어떠한 존재냐? 천사장은 상대 이념을 허락하지 않은 존재입니다. 성경을 보면, 사두개인들이 한 여인이 일곱 형제를 남편으로 삼고 살다가 죽은 후에 저나라에서 부활할 때에는 그 일곱 남편 중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예수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대답하기를 영계에서는 시집 장가가는 일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했느냐? 천사장권 복귀의 사명시대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천사장은 어떤 입장이냐 하면 아직까지 상대 이상을 갖지 못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종교가 찾아 나온 것은 무엇이냐? 천사장 사명권내에 처해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이념을 부여할 수 없는 것이 지금까지 걸어 나온 종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홀로 사는 독신생활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것이 천사장격 종교입니다. (판서하심) 지금까지 그러한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섭리해 나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천사장격 중심 존재를 이런 종교권내에서 찾았느냐, 혹은 찾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지금까지 문제가 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승리한 천사장권을 중심삼고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외적인 종교세계를 발전시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섭리의 핵심 사상

천사장권에 있어서 천사장이 해와를 유인했습니다. 이 천사장권에서 역사적 섭리의 사명을 강당하려면 천사장 자신만 완성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천사장이 해와를 빼앗아 가지고 타락시켰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천사장권내의 악한 천사장권을 중심삼고 사탄이 끌어 갔기 때문에 선한 천사장권에서 해와를 다시 돌려드릴 준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사탄이 해와를 빼앗아 가지고 인류의 시조의 자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이것을 부정시킬 수 있는 하늘적 천사장의 입장에서 사명을 감당해 가지고 여기에서 하나의 신부를 마련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뜻을 배반한 해와가 아니라 하늘의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의 신부를 마련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부를 마련함과 동시에 신랑이 나타나게 되면 그 신부와 더불어 천사장권내의 모든 것을 돌려드려야 됩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해와를 유인함으로 말미암아 아담으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아 왔기 때문에, 하늘편적인 천사장권에 있어서는 이 전체를 돌려드려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편의 모든 것을 대신하여 하나의 해와적 신부를 맞아 가지고, 신랑 앞에 그 개인은 물론 천사장권내에 소속된 일체와 천사장 자신들까지도, 그 신부와 더불어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바라고 나오는 것이 섭리의 골자가 되는 사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의 사명

이런 관점에서 하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책정했던 것입니다.

이 선민은 천사장 사명을 완결시키기 위하여 택해 세운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을 치리하는 위정자들은 그 나라의 중심 입장에 선 유대교를 따라야 됩니다. 그러한 터전 위에서 하나의 소망의 신부가 현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신부를 현현하게 하는 사명을 가지고 나타난 사람이 누구냐 하면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를 중심삼고 반드시 신부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도리가 요셉 가정에서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 가정의 신부와 더불어 유대교가 합해야 되고, 여기에 이스라엘 나라가 합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교는 신부를 대표한 내적 터전이요, 이스라엘 나라는 외적인 면을 중심삼고 천사장을 대신한 외적 터전인 것입니다.

그 외적 터전은 유대교를 따라서 하늘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로 돌아가는 데는 유대교 자체도 신부를 중심삼고 돌아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이 선민을 세워 가지고 4천년 동안 섭리한 하나님의 역사적인 목적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마리아를 통해 가지고 예수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탄생한 것은, 누구로 탄생한 것이냐? 아담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을 누가 타락시켰느냐? 해와가 타락시킨 것입니다. 아담을 누가 죽게 했느냐? 아담 자신으로 말미암아 죽게 된 것이 아니라 해와로 말미암아 죽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여인으로 말미암아 죽었기 때문에 여인으로 말미암아 살 수 있는 아들로 탄생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리아를 통해 지상에 예수를 현현시킨 이유인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에, 여기에는 아담이 있어야 되는가 하면 앞으로 해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신부는 어디서부터 나와야 하느냐? 해와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해와는 어디에서 탄생해야 되느냐? 유대교에서 탄생해야 됩니다. 유대교에 있어서 해와의 대표의 자리에 선 사람이 누구냐 하면 마리아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에게는 예수를 중심삼고 장차 예수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신부를 이스라엘 민족의 전통적 사상과 모든 인격기준을 갖추게끔 길러 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리아의 소원이 무엇이어야 됐느냐? 예수를 낳는 것을 소원으로 갖는 것보다도 예수를 낳아 가지고 예수와 완전히 하나될 수있는 하나의 신부를 책정해서, 유대교와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예수님께 바쳐 드릴 수 있는 자리에 서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역사시대를 거쳐 그런 사명을 짊어진 천사장권 이스라엘 종교와 이스라엘 나라의 사명이 완결지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앞에 신부를 책정해 드림으로써 이스라엘 나라가 사는 것이요, 유대교도 예수 앞에 신부를 책정해 드리는 그때에 있어서 유대교로서의 사명을 완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신 예수 앞에 책정된 신부를 중심삼고 마리아도 돌아가야 되고, 요셉 씨족도 돌아가야 되고, 사가랴 가정까지 전부 다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해와 복귀의 중심 사명을 해야 했던 세례 요한

그러면 그 국가와 교회를 대표해 가지고 평면적인 입장에 있어서 역사를 대표한 실체적 천사장이 누구냐?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과 신부와 아담 대신인 예수가 하나되었던들 예수 앞으로 해와가 돌아가고 해와 앞에 천사장 대신인 세례 요한이 돌아갔을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타락할 때에 천사장을 중심삼고 해와를 끌어 갔고 해와를 중심삼고 아담을 끌어 갔던 것을 반대로. 천사장 대신인 실체 세례 요한을 중심삼고 요한과 요셉이 마리아의 주선에 따라서 하나의 신부를 예수 앞에 돌려드렸더라면, 그 신부를 중심삼은 유대교도 예수 앞으로 돌아갔을 것이요, 유대교를 중심삼은 이스라엘 나라도 예수의 통치권내에 설 수 있는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예수와 신부가 하나될 수 있는 인연을 맺었더라면 에덴 동산에서 천사장과 해와와 아담이 실수했던 것을 이 지상에서, 즉 평면적인 입장에서 탕감복귀해 가지고 비로소 새로운 가정의 출현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섭리역사의 중심이 누구냐 할 때에 개인의 중심은 예수인 것입니다. 그 예수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를 세워 나왔습니다. 그 종교는 예수 앞에 흡수되기 위한 것입니다. 흡수되는 데 있어서는 그냥 그대로 흡수될 수 없습니다. 원리적인 탕감 내용에 따라서 흡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흡수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천사장이 해와를 유인하는 데 있어서 동기가 되었던 것을 거꾸로 해서 해와를 찾아야 합니다. 해와를 찾는 데에 동기가 되어야 할 사람이 예수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천사장의 입장에선 요셉이나 세례 요한이 동기가 되어야 됩니다. 가정적 천사장의 입장이 요셉이요, 교회적 천사장의 입장이 세례 요한이며, 국가적 천사장 입장이 그때의 총독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3대 천사장권이, 가정과 교회와 더불어 국가가 일치되어 가지고 예수 앞에 일치되었더라면, 여기서부터 하늘의 섭리로서 찾아 나오던 중심개인이 결정되는 것이요, 중심개인으로서 자리를 잡고 설 수 있는 자리가 결정되는 것이요, 그 개인이 결정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가정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예수를 두고 볼 때 그는 이스라엘 나라의 중심적인 존재요, 유대교의 중심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중심삼곤 볼 때에도 예수와 신부가 하나된 그 가정은 모든 가정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개인의 중심이 결정되었으니 모든 가정의 중심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중심 가정과 중심 개인은 사탄세계보다도 위에 선 가정이요, 개인입니다. 여기서부터 비로소 천국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하나의 국가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이 국가는 하늘이 찾고자 하는 섭리적 중심국가로 남아졌을 것인데, 모두가 반대함으로 말미 암아 예수가 설 수 있는 가정이 없어졌고, 예수가 설 수 있는 교회가 없어졌고, 예수가 설 수 있는 나라가 없어졌습니다. 예수를 위해 세워진 이스라엘 나라요, 예수를 위해 만든 유대교요, 예수를 위해 세운 요셉 가정, 사가랴 가정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나라가 반대하고, 그 교회가 반대하 고, 그 가정이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에덴 동산에서 천사장을 중심삼고 타락한 것을, 아담 해와를 놓고 가정적 천사장과, 교회적 천사장과, 국가적 천사장을 일시에 굴복시키려 했던 그 터전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와 요셉 가정이 예수와 하나되지 못하는 입장에 서게 됨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깨져 버렸습니다. 완전히 깨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몰려 가지고 예수는 할수없이 십자가에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에 돌아가는 예수의 운명의 자리는 이스라엘 나라의 종말을 고하는 자리요, 유대교의 종말을 고하는 자리요, 축복해 세웠던 요셉 가정과 사가랴 가정, 그 가문의 종말을 고하는 자리로서 지상에 있어서 지극히 비통한 자리요, 장면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찾아 세운 그 나라는 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교회도 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가정도 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한 나라와 교회와 가정을 세우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사탄과 대결하여 수많은 싸움을 거치고 수많은 역경을 가려 가지고 남겨 놓았던 것이 전부 다 무너졌기 때문에, 사탄이 그 나라와 그 교회와 그 가정을 송두리째 집어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찾지 못한 예수의 한

이렇게 되어 예수가 머물러야 할 나라, 예수가 머물러야 할 교회, 예수가 머물러야 할 가정이 없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사실 그대로였습니다. 사실 그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자신을 위해 역사적 과정을 거치고 하늘이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그때까지 남겨 놓았던 선민 이스라엘 나라, 그 선민의 사상을 지도하던 유대교, 그 유대교 가운데서도 특정한 씨족으로 세웠던 요셉 가정과 사가랴 가정, 이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비통한 자리에 선 예수의 기막힌 장면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홀로 남았던 것입니다. 고독한 자리에 예수 홀로 남았는데 그 자리는 하나님이 준비한 이스라엘권이 아니었습니다. 전부가 사탄권내에 사로잡혀 있는 환경을 예수가 맞이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대하는 것 전체가 원수요, 나타나는 것 전체가 하늘과 인연이 없는 그런 환경에 에워싸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4천년 동안 수고하고 희생을 치러 가지고 만들었던 환경을 일대에 다 망쳐 버렸으니 이것을 일대에 다시 찾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할수없이, 원래 영적, 육적 세계를 한꺼번에 이루려 했지만 뜻을 이룰 수 있는 외적 환경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구원의 기준만 이라도 남기기 위해서, 예수가 죽고 난 후에 부활시켜 가지고 영적 이스라엘과 영적 유대교를 창건하고, 또 영적 유대교 안에 소망의 요셉과 사가랴 가정을 다시 찾기 위한 섭리의 출발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가 짊어진 십자가의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이 그 나라를 자기 수중에 넣고, 그 교회를 자기 수중에 넣고, 그 일족을 자기 수중에 넣었으니 그 터전에서 태어난 예수도 사탄이 수중에 넣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런 것이 없었다면 예수는 태어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가 외적인 모든 인연 전체를 잃어 버린 입장에 섰기 때문에, 예수 자신의 외적인 몸까지 사탄의 침범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서 십자가의 죽음길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은 예수를 사랑하는 아들로 보냈는데, 4천년 동안 그렇게 수많은 역경을 가려 가면서 길러 나온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에 보냈던 단 한분밖에 없는 그 중심적인 존재를 죽음의 자리에 내세우고 싶어서 내세운 것이 아닙니다. 불가피한 입장에 몰렸기 때문에, 아니 내세울래야 아니 내세울 수 없기 때문에 내세운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감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치고자 한 사탄의 소원은 다 이루어졌습니다. 점령할 수 있는 모든 외적인 인연을 전부 다 점령했습니다. 그렇지만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여기에 새로운 출발을 보게 된 것입니다.

보라구요. 4천년 동안 메시아를 그렇게 고대해 나오던,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인들이 바라던 그 중심존재가 나타난 것을 알았더라면 그를 죽일 리가 없습니다.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4천년 동안 수고하여 닦고 준비한 터전 위에 아들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한사람도 믿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갈릴리 가나의 잔치집에서 예수는 마리아까지 책망을 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하자 예수는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4)"라고 했습니다. '친척집 잔치에 와 가지고 네가 술감독하는 사람 모양 술 문제를 중심삼고 말할 것이 아니지 않느냐? 원래 네가 가야 할 길은 하나의 가정을 가려 가지고 하늘이 책정한 신부를 세워서 이 원한의 근원, 타락의 원한을 풀고, 천사장적 해와의 입장을 가린 후에 가정을 이루어 하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아들이 가야 할 길은 등한시 하고 잔치하는 친척집에 와 가지고 술 만들어 달라고…. 예수는 질책하는 뜻으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집을 나온 예수는 친척집에서 잔치한다는 소문을 듣고 얻어 먹으러 갔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마리아에게서 그런 부탁을 듣게 될 때에 '내가 갈 방향이 달라져 가지고 30여 세가 되어 집을 나서긴 했지만 네가 가정을 찾아 나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구 어느때 한번 나의 상대 문제를 가지고 의논해 봤느냐? 이런 내용을 품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한이 서려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른편 강도의 공로

그러한 사연이 있기에 마리아가 포도주 문제를 강조하게 될 때, '여인 이여 너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책망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수가 죽게 된 첫째 동기는 세례 요한이요, 그 다음 에는 요셉이요, 그 다음에는 마리아입니다.

이것은 원리적으로 볼 때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외적 환경을 완전히 잃어버린 예수는 외적 중심을 대표해서 나타난 몸이었기 때문에 그 몸을 사탄 앞에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사탄은 '나에게 내주니 좋다구나? 하면서 하늘이 4천년 동안 수고해서 세운 예수를 때려잡은 것입니다. 사탄편에서는 예수를 메시아로 보지 않는 거라구요. 원수의 자식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박아 희생시켜 버렸다구요.

그러나 예수가 몸은 내주었지만…. 몸을 내준 자리에서 하늘을 배반했더라면, 만일에 하늘을 배반한 예수가 되었더라면 기독교는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나님이 예수를 버렸다는 것입니다. 타락은 뭐냐 하면 아담이 하늘을 버린 것입니다. 아담 대신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아 가지고 완성시키기 위해서 온 예수이기 때문에, 옛날에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했던 것과 같이, 오늘의 사지사판에 있어서 하나님이 아들을 외면하고, 하나님이 아들을 몰라보고, 사지에 처한 내정을 몰라보는 자리에 선다면, 응당히 어버이로 생각 하는 하나님이 자기를 몰라보는 입장에 설 때에, 그 하나님 앞에 반항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자리에 나아가 자기의 몸이 찢기고, 자기의 혼이 갈래갈래 찢기는 희생의 길, 사망의 고개를 넘어서면서도 아버지를 붙들고 최후까지 충효의 도리와 충신의 도리를 다짐하는 데에 있어서, 사탄세계의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자리에서 고이 죽음길을 맞아 갔던 것입니다. 예수가 그 자리에서 사탄세계에서 죽어간 어떤 사람보다도 더 위에 설 수 있었던 그 조건이 무엇이냐? 원수를 대해서 복을 빌었다는 사실, 그 조건을 중심삼고 사탄이 그 이상은 침범할 수 없는 방패막이로서 결정을 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사랑하고, 예수는 하늘을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 삼아 가지고 부활의 권한을 일으켜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에 돌아간 예수를 두고 볼 때, 살인 강도인 오른편 강도가 예수와 더불어 갔습니다. 만일에 오른편 강도가 그 자리에 없었더라면 예수는 땅을 대해서, 인간을 대해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아무런 인연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른편 강도가 죽는 자리에서 예수의 편에 서서 예수를 옹호했습니다. 인간 역사에 있어서 예수의 편이 되었던 최후의 사람이 누구냐? 베드로도 아니요, 부모도 아니요, 이스라엘 나라도 아니요, 유대교도 아니었습니다. 단 한 사람 오른편 강도였습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자기의 사연을 통고하고, 죽음을 넘어서 전폭적으로 예수 앞에 희망을 걸었던 단 한 사람이 있나니, 그 사람이 오른편 강도라는 것입니다. 만일 오른편 강도가 없었다면 예수가 다시 부활하여 지상섭리의 인연을 재개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4천년 역사의 끝을 맺고 30여년의 생애를 끝맺는 그 마당에 있어서 인간이 비로소 한 생명이라도 예수와 인연을 맺어 죽음길에 동참하면서, 거기에서 예수를 소망의 주체로서 모실 수 있었던 사람이 오른편 강도였습니다. 그가 중심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가 사도보다 낫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베드로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른편 강도는 내용은 몰랐지만 죽는 자리에서 생명을 다할 때까지 예수를 모실 수 있는 방향성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야고보 같은 12사도들은 내용을 알면서도, 방향성을 갖추겠다고 맹세했던 자들이면서도 방향성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른편 강도가 인류역사상에 있어서 땅을 대신하여 미래를 재기시킬 수 있는 중심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부활 후에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포함한 12제자를 찾아 나섰지만 이것은 영과 육이 완전히 하나된 그런 몸이 아닙니다. 영체(靈體)라구요, 영체. 실체 (實體)를 가진 몸뚱이가 아니라구요. 실체로서의 몸뚱이가 속할 수 있는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이스라엘은 다 쓰러졌습니다. 이미 실체는 쓰러져 원수권내에 있기 때문에 원수권내에 있는 이스라엘권이 예수 일당을 잡아죽이게 되었고, 원수의 나라 로마에 팔아먹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섭리적 위치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영적 이스라엘 세계를 바라보면서 출발했습니다. 영육을 중심삼은 국가적 기반 위에서 영육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출발을 보아야 할 것인데, 외적인 세계가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육은 십자가에서 제물이 됐고, 영이 부활함으로써 영적인 입장을 중심삼고 국가적인 출발이 아니라 세계적인 섭리의 출발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제 2이스라엘 섭리시대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2천년 동안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 나오는 것입니다. 그 희생의 대가를 치르는 데는, 아담 때부터 예수 때까지 제 1이스라엘이 생겨날 때까지의 4천년 역사노정이 실체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것을 재차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수난길을 가는 거라구요.

2천년 동안 수많은 순교의 피를 흘려 가지고 기독교 문화권 민주세계를 창건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이냐? 제1이스라엘권, 영육을 중심삼은 나라와 교회가 있었던 것을 세계적으로…. 기독교는 세계적으로 이스라엘 나라에 있어서 영적 유대교를 대표하는 것이요, 민주세계는 영적 입장에서 제1이스라엘 나라를 대표하는 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적입니다. 실체 나라가 없다구요. 영적 나라는 있지만 실체 나라는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왔을 때는 영육을 중심삼은 나라가 있었습니다. 나라의 주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라의 사상적인 중심인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한꺼번에 예수와 더불어 가정이, 가정과 더불어 교회가, 교회와 더불어 나라로 편성되어 아랍권을 흡수시켜 가지고 로마제국과 대결해 세계를 하나로 만들려고 하던 그 뜻이 전부 사탄 앞에 끊김을 당했습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재현해 나오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세상의 어떤 나라를 중심삼고 충신이 되어서 믿으라고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다 버려라! 세상의 것을 다 끊어 버리고 오직 하늘만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영적세계만 가려 나온 것이 2천년 기독교 역사입니다. 영적 이스라엘 세계권 형태가 민주세계요, 영적 유대교의 세계적 내적 형태가 기독교입니다. 이 기독교 안에서 새로운 영적인 분야의 종족을 중심삼고, 혹은 가정을 중심삼고 섭리역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 섭리의 역사를 해 가지고 영적인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내적 결정을 본 후라야만 지상에 있어서 새로운 역사적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 재림주님은 옛날의 초림주와는 다른 것입니다. 초림주가 왔을 때는 영육을 중심삼은 가정이 있었고, 교회가 있었고, 나라가 있었습니다. 나라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고 교회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시 오시는 재림주에게는 지상에 나라가 없는 것입니다. 영적 세계와 영적 나라와 영적 종속과 영적 가정 형태는 있지만 지상의 발판은 없다는 것입니다.

지상을 중심삼고 섭리의 출발을 보기 위해서는 영적 세계와 영적 나라와 영적 교회가 하나될 수 있는 인연을 영적으로써 맺어 놓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영적 교회와 영적 가정이 하나될 수 있는 인연을 맺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영적 가정을 중심삼고 타락한 천사장형(型)과 해와형(型)과 아담형(型)의 자리를 영적으로 승리한 자리에 맺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주님이 이 땅 위의 중심존재로 재림하기 위해서는 천사세계 전체를 통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사장세계니까요.

오시는 재림주님은 3차 아담으로 오시는 분입니다. 예수가 2차 아담으로 왔다가 실패하고 다시 온다고 했기 때문에, 재림주님은 아담의 사명을 이어받아 3차 아담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3차 아담이 오시는 그때는 지상에 나라도 없고, 교회도 없고, 가정도 없습니다. 영적으로만 갖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세계와 영적인 교회를 묶어야 하고, 영적인 교회와 영적인 가정을 묶어야 합니다. 영적인 가정을 묶기 전에 영적인 개인으로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승리하는 데는 누가 대표적으로 승리해야 되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누가 대표적으로 승리해야 되느냐? 이것은 기독교권 전체가 해야 합니다. 기독교권 전체는 지금 어떠한 입장에 있느냐? 오늘날 예수를 믿는 기독교권 전체는 어디 있느냐 하면 영적권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영적권에 있기 때문에 기독교권은 무슨 형이냐 하면, 천사장형입니다. 기독교를 믿고 간 예수 이하 전체 사람들은 영적 세계를 대표한 천사장형이기 때문에, 천사장형 국가내에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재림주 앞에 천사장의 사명을 해야 했던 기독교

그러면 예수는 어떤 분이냐? 예수는 아들의 사명을 하기 위하여 왔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의 사명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수습하고 예수가 설 수 있는 가정을 수습하는 책임을 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책임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그것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한 단계 떨어져 내려와 가지고 제자들을 모아서 가정 대표를 만들려고 했고, 교회 대표를 만들려고 했고, 나라 대표를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책임을 하기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니라구요. 세례 요한이 실패한 이스라엘권을 사수하기 위하여 싸웠던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싸우다가 죽어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가 해야 할 책임을 한 것이 아니라, 세례 요한이 해야 할 책임을 이어받아서 지금까지 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고 간 수많은 영인들, 예수 이하 수많은 영인들은 어떤 입장에 있어야 하느냐 하면 오시는 주님 앞에 있어서 천사장 사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천사장의 사명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가 영적으로 사탄과 대결해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에게 축복해 가지고 모든 것을 상속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 세계에서 오시는 주님 앞에 축복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지상에서의 섭리의 출발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가는 길이 무슨 길이냐? 육적인 세계는 버리고 영적인 세계만 바라보고 나가는 길입니다. 이들에게는 육적인 세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오실 때도 구름 타고 영적으로 오실 줄 알고 있거든요. 그것은 예수가 죽고 난 후 지금까지 제2 이스라엘 권내에서 영적 역사를 지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전통적 역사과정의 종결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분야의 지상기반을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즉, 육적 가정적 기반, 육적 종족적 기반, 육적 교회적 기반, 육적 국가적 기반, 육적 세계적 기반을 연결시킴으로 말미암아, 영적 이스라엘 세계와 영적 이스라엘 종교와 영적 이스라엘 가정을 비로소 하나로 통일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만 지상에 비로소 하늘나라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섭리가 찾아 나온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영육을 대표할 수 있는 천사장, 그 천사장 하나를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 천사장은 세계적입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천사장권내의 종교인 기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무엇을 찾아야 하느냐? 제1이스라엘권에서와 마찬가지로 해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하늘의 역사는 이러한 엇갈린 역사의 배후를 수습하기 위하여 한 땅, 한 나라를 중심삼고 활동을 전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만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육적인 이 땅을 근거로 하지 않으면 제1이스라엘권을 잃어버린 것을 탕감복귀할 수 없겠기 때문에 한 나라를 찾아야 하는데, 그 한 나라를 찾기 전에 영적인 세계를 통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한 나라는 어떠한 나라냐? 이스라엘은 2천년 동안 나라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은 이후 2천년 동안 나라가 없게 된 것은 예수를 죽인 죄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나라는 이스라엘 나라가 해방되는 그 소망의 한때를 바라보고 나온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선 나라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속을 받다가 해방을 맞을 수 있는 입장에 선 나라로서 역사노정에서 오랜 수난길을 걸어 나온 나라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라를 우리는 원리적인 입장에서 한국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에 있어서 주권을 가진 자리에 오는 것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수는 땅 위에 주권과 교회의 기반을 닦은 후에 왔었지만, 재림주가 이 땅에 올 때에는 국가도 없고, 교회의 권위도 없고, 가정도 권위가 있는지 없는지 하는 그러한 자리에 소망을 가질 수 있는 한때를 바라보고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에 있어서는 해방되던 때였습니다.

대한민국은 일제시대에는 주권이 없었습니다. 또 기독교는 왜정 때 신사참배 문제로 감옥에 들어가는 등 고생한 사람과 신사참배를 한 교회, 즉 재건교회와 다른 신교파가 투쟁을 하던 시대였습니다. 올바른 교회를 찾을 수 없는 때였습니다. 올바른 신앙의 가정을 찾을 수 없는 때였습니다. 이런 때가 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할 수 있는 때의 시대권내로 접어들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개인으로 오시는 주님이 이 땅에 와서 섭리함에 따라 개인적, 가정적으로 디딜 수 있는 발판이 생기면 이스라엘 나라가 해방될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독립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가정의 기반이 닦아지게 되면 이스라엘 나라가 독립할 수 있는 때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948년에 이스라엘이 독립하게 됐습니다. 분립된 환경에서나마 독립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신령역사가 일어났던 이유

하나님은 그러한 때를 맞고 있는 나라와 그 나라에 있어서의 기독교와 기독교내의 가정들을 중심삼고 지상에서의 섭리를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특정한 종파를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요셉 가정과 사가랴 가정을 중심삼고, 때가 되기 전에 그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 내적으로 섭리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해방 직후를 중심삼고 그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 하늘은 이런 섭리의 내용을 준비해 나온 것입니다. 거기에는 천사장적 사명을 하는 집단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영적으로 잃어버린 것을 실체적으로 찾아야 되겠으니, 그런 시대상을 맞을 수 있는 해방 전을 중심삼고 육적 천사장 사명을 하는 한 사람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 중에 자기가 베드로니 바울이니 하는 사람이 나오는 거예요. 혹은 '나는 세례 요한이다' 하고 말이예요. 열두 사도가 예수를 맞지 못한 지상 터전을 닦기 위해서 그들의 영(靈)이 실체 적으로 임해 가지고 이 땅 위에 기반을 닦는 역사가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를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다 모른다구요.

예수의 한이 무엇이냐? 땅 위에서 제자들과 더불어 실체권(實體國)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열두 제자가 하나 못 되고, 예수를 중심삼고 요셉 가정이 하나 못 되고, 유대교가 하나 못 되고,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 못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연이 파탄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12사도를 중심삼고 수습하려 했으나 다 파탄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적 기준형으로는 남아 있지만 실체기준은 못 가졌기 때문에, 영적 승리의 터전을 닦은 12사도의 형(型)을 이 땅 위에 재림역사와 더불어 재현해 가지고 그때를 준비하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터전이 닦아진 후에, 즉 불신하여 예수를 추방하였던 사도들이 활동해 가지고 다시 신임할 수 있는 터전을 닦은 그 기반 위에 재림역사가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방 전을 중심으로 하여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베드로니 요한이니 바울이니 혹은 아브라함이니 하며, 역사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자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 평면적인 한국 신령계를 중심삼고 현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덴 복귀파들이 많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일들이 다 지나간 일이기 때문에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보면 철산의 김성도를 중심삼은 새주님파, 박동기를 중심삼은 시온파, 김백문을 중심삼은 예루살렘 수도원파(이스라엘 수도원파)등이 있습니다. 이런 전부는 한국에 있어서 새로운 특정한 섭리의 뜻을 대비하기 위한, 역사적인 천사장권을 완비하기 위한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 외에도 신령한 단체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영적인 승리의 권을 지상에서 닦아야 합니다. 그런 터를 닦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 그것이 안 되어 있으면 재림주가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12사도의 터를 중심삼고 뜻을 이루려던 예수가 실패했기 때문에 사도들이 실패한 것을 다시금 땅 위에 영적으로 재현시켜서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신령한 역사가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외적인 나라가 뒤넘이치고 내적인 교회가 뒤넘이치게 되는 것입니다. 내적인 교회, 즉 주님이 올 수 있는 그 사상적인 내적인 교회와 외적 나라가 엇갈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엇갈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지고 이것을 누가 와서 가릴 것이냐? 그 자체들은 가리지 못합니다. 주님이 와서 판가름지어야 합니다. 주님이 와 가지고 베드로 야고보 등과 같은 집단이 있으면 그 집단 들을 규합해야 합니다. 천사장 집단들이 있으면 이것을 규합해야 됩니다. 해와적 세례 요한 사명, 외적 신부의 사명을 하는 사람들을 규합해야 되는 것입니다. 규합하는 데는 무엇으로 해야 되느냐? 진리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리 원칙으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섭리역사의 중심이 무엇이냐? 천사장적 중심존재를 찾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나라나 유대교 앞에 있어서 4천년 역사의 섭리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누구냐? 세례 요한입니다. 교회를 대표한 중심이 세례 요한이요, 가정을 대표한 중심이 요셉입니다. 마리아는 이러한 요셉과 약혼 때에 예수를 잉태했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은 아무것도 모르던 때였지만 약혼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사탄이 주인을 제쳐 놓고 해와를 빼앗아 갔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요셉은 누구의 입장이냐? 천사장의 입장이라구요. 해와를 빼앗아 간 천사장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약혼단계에 있을 때에 천사장이 해와를 빼앗아 갔으니 하늘도 약혼단계의 입장에 있는 마리아를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요셉은 뭐가 되어야 하느냐? 종이 되어야 합니다, 종. 종이 되어야 할 그런 사람하고 살다니, 그런 사람의 자식을 낳다니…. 그 마리아를 천주교에서는 성모 마리아라고 부르며 높이고 있습니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탕감복귀라는 것은, 그냥 그대로 해야 합니다. 병이 났으면 병의 증상을 알아 가지고 병이 나기 전의 자리에 가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됩니다. 고쳐지지 않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물에 빠진 자를 구원하는 것은 물에 빠진 그 접경에 가 가지고 물에 빠진 그 사람을 올라서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려가지 않고 올라가야 된다고요. 아담 해와는 약혼 때에 타락했습니다. 천사장이 남편인 아담을 제쳐 놓고 해와를 빼앗아 갔습니 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형태를 요셉과 마리아를 중심삼고 복귀하려는 것입니다. 요셉은 역사상에 있어서 예수 앞에 누구보다 제일 충성을 하여야 할 천사장 중의 대표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앞에 있어서 제일 충신이 되어야 할 대표적인 존재라구요. '세상에 그럴 수 있겠나' 하겠지만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가정적 천사장이 누구라구요? 「요셉이요」 교회적 천사장이 누구라구요?「세례 요한이요」 세례 요한, 국가적 천사장이 누구라고요? 빌라도, 빌라도입니다, 여기에서 가정적 천사장과 교회적 천사장만 굴복하면 빌라도는 자연히 굴복하는 거라구요. 그대로 로마의 행정력은 마비되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빌라도만 굴복시켜 놓는 날에는, 그때의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중심으로 아랍권 전체가 동원되어 가지고, 예수가 40세만 되면 로마를 정복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가 죽은 후 400년 만에 로마를 정복했습니다. 그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 교계에 있어서는 해방 전후을 중심삼고 7년 기간에 준비를 완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전부 다 섭리는 이렇게 진전되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섭리는 한국이 제3이스라엘로 책정되었던 구체적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내용이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930년대를 전후하여 신령역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때에 대표적으로 하늘의 불을 갖고 왔던 사람이 이용도 목사 같은 양반들입니다. 기성교회에서는 그를 이단으로 규탄하여 추방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교단적 세례 요한이 나오는 동시에 해와적 교단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때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새주님파라고 해가지고 부인교단이 나오는 것입니다. 철산의 김성도를 중심삼고 복중교 허호빈이 연결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천사장패와 해와패가 하나가 되고, 기성교회-기성교회는 민주세계와 연락되는 거예요-와 민주세계가 하나되어 가지고 오시는 주님을 맞았으면 공산권은 벌써 다 없어졌을 것입니다. 세계는 벌써 하나의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명이 한국 강토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해방 직후에 신령한 기독교인들이 뜻을 받아들였다면

그때에 만일 기독교가 그러한 새로운 사상을 중심삼고 하나가 되었더라면, 해방 직후는 군정시대이기 때문에 미국이 들려 넘어가는 것입니다.

미국이 넘어가게 되면 오시는 새로운 주님의 역사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새로운 노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공산주의는 그때 전부 다 제거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과 운명을 짊어지고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할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면 그때 통일교회가 가는 길 앞에는 어떠한 사람들이 있어야 되느냐? 가정적 천사장, 교회적 천사장, 국가적 천사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국가적 천사장은 이 땅 위에 이스라엘 나라가 없기 때문에 없는 것입니다. 그때가 해방 직후라구요. 나라가 없는 때였습니다. 그래서 가정적 천사장과 교회적 천사장을 중심삼고 나라를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은 세계적인 천사장 국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세밀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그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 땅 위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 신령한 집단들과 손을 잡고, 그것을 매개로 해서 기성교회와 연결지을 수 있는 길을 짜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반대를 받아 가지고 추방을 당했습니다. 신령한 집단으로부터 추방당했고, 교회로부터 추방당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찾아야 하고, 종족을 찾아야 하고, 교회를 찾아야 하고, 국가를 찾아야 할 복귀의 노정입니다. 이걸 복귀하지 않으면 세계적 무대로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 다 막혀 버렸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할 수 없이 또다시 시련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통일교회는 기성교회를 기반으로 한 것도, 신령한 집단을 기반으로 한 것도 아닙니다. 다시 추방당한 입장에 섰기 때문에 이북에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세계적인 사탄권에서부터 개척해 나와야 했던 것입니다. 세계적인 사탄세계에서 싸워 하늘이 조건으로 세울 수 있는 것을 찾아 대한민국을 찾아들어가고 기성교회를 찾아들어가서 새로운 신령집단을 재차 연결시키는 싸움을 했는데, 그래도 반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늘이 소망하던 기성교단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교단을 편성하게 된 것입니다, 이 민주세계의 기독교가 아벨적인 사명을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아벨적인 사명을 하지 못하니, 기성교회를 집어치우고 통일교회를 세워 기성교회와 대치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서 통일교단이 형성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흥하게 될 때는 기성교회는 망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지방에 가 보면 기성교회는 말단세포가 전부 마비상태가 되어 가지고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심장부까지 훅 불면 날아가 버릴 수 있는 때가 온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이 길을 가기 위해서 얻어먹고, 개밥을 먹으며 고생했습니다. 먹는 것에 대해서 고생을 하고, 전체 국가 앞에 조롱받던 것이 이제 그 반대적인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런 자리, 맨 말단에서부터 추어 올라온 것입니다. 이렇게 20여년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느냐? 옛날에 반대하던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 한국을 중심삼고 반대하는 나라와 반대하는 교회 교인들을 대해서…. 통일교회는 색다른 교회라구요. 기독교라는 이름은 붙었지만 내용은 다릅니다. 기독교는 영적 세계만을 바라지만 우리 통일교회는 영육을 중심삼은 실체적 천국권을 바랍니다, 다르다구요. 그들은 영적인 재림을 바라지만 우리 통일교회는 육적인 재림을 바라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부터 불신과 갈등으로 혼란되면 끝날

그러면 섭리의 중심이 무엇이냐? 개인을 찾는 것입니다. 개인을 찾는데 첫째는 천사장을 찾아야 합니다. 둘째는 해와를 찾아야 합니다. 세째는 아담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역사를 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 역사가 끝날에는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됩니다. 종적 역사를 보게 될 때, 지금까지 인류사에 있어서 종교는 무엇 하기 위한 것이냐 하면 천사장 하나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 나가서 주님이 오신다고 하며, 오시는 메시아를 증거해 가지고 이스라엘 교단을 전부 다 예수 앞으로 끌고 가는 사명을 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하늘의 섭리는 천사장과 같은 존재를 많이 세워 앞으로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증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으로 볼 때 천사장형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예수 시대에 있어서 영육을 중심삼고 천사장권 교회권내에서 신부와 교회와 나라와 더불어 오시는 신랑 앞에 모든 것을 바쳐 드렸으면, 그때에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뜻을 이루었을 것인데 예수가 죽었기 때문에 천사장 사명 시대의 종교가 남아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슨 종교가 나오느냐? 신부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이 신부종교가 뭐냐 하면 기독교입니다. 알겠어요? 기독교는 신부의 종교라구요. 종적으로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천사장형 종교, 신부형 종교가 남는 것입니다. 이 신부종교를 중심삼고 앞으로 신랑종교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신랑종교의 뜻을 받아 가지고 부모의 종교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그 전에 부부의 종교가 나와야 되는데, 부부의 종교가 출현할 때가 언제냐? 어린양잔칫날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가 만나야 됩니다.

에덴 동산에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사장을 중심삼고 해와가 원수가 됐고, 해와를 중심삼고 아담이 원수가 됐습니다. 서로가 원수가 됐습니다. 전부 원수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녀도 전부 다 원수입니다.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끝날이 되면 어머니 아버지까지도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형제간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나라끼리 원수가 되고 인연이 전부 산산조각으로 찢어질 때가 옵니다. 그때가 되면 인륜도덕이 어디에 있어요? 세계풍조가 그렇게 휘몰아쳐서 방향을 가릴 수 없고,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가릴 수 없는 때가 오거든, 그때가 끝날 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일이 벌어지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일이 벌어집니다. 세상에서 하늘을 중심삼고 가르치는 사제지간이 목사와 교인 인데도 불구하고 교인이 목사에게 칼침맞고, 목사와 교인들 사이에 혈투 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다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거든 끝날인 줄 알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해와와 아담이 원수고, 아담과 천사장이 원수이며 하나님과도 전부 원수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뿌려진 역사는 전부 싸움터로 결과되는 그런 세계가 벌어집니다.

그래서 어디로 갈 것이냐? 갈 곳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계도 그런 놀음이 벌어집니다. 지금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의 두 채로 갈라져 있지만 이제는 3국(三國)뿐만이 아니라 4국(四國)으로 벌어집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제는 나쁘다고 하던 것이 오늘은 세계 앞에 등장하고 말이예요. 어제까지 득세하던 것이 오늘에 와서는 추방당합니다. 이렇게 됐지요? 세계적으로 갈피를 못 잡습니다. 국가적으로 볼 때도, 금후에 대한민국이 어떻게 갈 것인지 알 수 있습니까? 미국이 어떻게 갈것인지 알아요? 국가적으로 갈피를 못 잡습니다. 또 어떠한 단체면 단체가 어떻게 해야 할 줄 알아요? 가정이면 가정이 어떻게 될 줄 알아요? 전부 다 불신하는 작용이 일어납니다. 그러한 때가 되면 끝날이 온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을 예고하는 것이냐? 원수들로 심었기 때문에 원수들로 거둘 수 있는 세계적 때가 되면, 여기에서 원수가 아닐 수 있는 하나의 인연을 하늘이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찾을 수 없겠기 때문에 깨뜨린 이 천지 가운데서 깨뜨릴 수 없는 인연을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지는 세상에 있어서, 부모와 자식간이 깨지지 않는 가정이 나와야 됩니다. 깨지지 않는 종족이 나와야 됩니다. 깨지지 않는 국가가 나와야 됩니다. 깨지지 않는 세계가 나와야 됩니다. 이렇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악한 기준보다 못해 가지고는 하늘이 여기에 임하지 못합니다. 깨뜨린 사실들을 두고 볼 때, 그것은 하늘이 정서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연결 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접어들어오는 것입니다. 일면은 비참하지만 일면은 해방의 시대가 가까와 온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쉽다는 것입니다.

이런 단계에 들어와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종교를 보면 천사장형의 종교로서, 역사는 이것을 찾아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신생활을 강조해 나온 것입니다. 불교나 천주교가 지금까지 독신생활을 하지요?

참된 세계를 형성하려면

참다운 신랑 신부, 그 신랑 신부는 누구냐?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참부모가 되었을 것입니다. 참부모가 되었다면 참자녀, 참씨족, 참민족, 참국가, 참세계가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했기 때문에 거짓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거짓 씨족, 거짓 민족, 거짓 국가, 거짓 세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참부모가 어디에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어린양잔치가 무엇이냐? 신랑 신부가 무엇이냐? 역사전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과 천사장과 아담 해와가 하나된 사랑권내에서 모두 맺어졌더라면, 거짓이 아니라 참된 혈육을 중심삼은 부모의 인연을 따라 가지고 소망적인 가정은 물론이요, 소망적인 종족, 소망적인 민족, 소망적인 나라. 소망적인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 부모를 중심삼고 거짓 종족, 거짓 민족, 거짓 국가, 거짓 세계가 되었기 때문에 탄식과 절망이 깃드는 이러한 세계상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이것을 부정하고 새로이 참부모와 참종족과 참민족과 참국가와 참세계를 다시 형성하여야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금까지 세상에서의 부자의 관계 보다도 더 강한, 하나님을 중심삼은 부자관계의 인연을 세계를 통해서 맺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지금까지 사랑하는 판국을 보면 그것은 모두 사탄세계의 사랑이었는데, 만일 그것보다도 덜 사랑하게 되면 사탄세계 사랑의 밑바닥 누더기판에 하나님이 들어와서 사랑해야 된다는 말이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입니다. 그러니 사탄 사랑권내에 들어올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탄권내의 사랑을 지배할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예수는 와서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더 사랑하지 못하게 되면 하늘의 출발을 못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어떤 사람이 가느냐? 자기 남편이나 아내보다도 하늘을 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자기 부모나 자식보다 하늘을 더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왜? 그렇지 못한 것은 사탄권내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능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파탄되어 가는 시대권내로 들어온 이 땅 위에서 하늘나라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적으로 점점 깨져 나가는 이 판국에 있어서 형제 아닌 형제들이 묶어져 가지고 사탄세계의 형제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묶어져야 합니다. 부모 아닌 어떤 부모를 중심삼고 부모 이상의 강한 사랑으로써 연결될 수 있어야 합니다. 민족 아닌 민족 들이 합해 가지고, 지금까지의 어떠한 강한 민족보다 더 강하게 결합할 수 있는 민족이 나와야 됩니다. 어떠한 국가를 중심삼고 보게 될 때에도, 국민과 주권자가 이 땅 위에 강하게 결합된 그 어떤 나라보다도 더 강하게 결합될 수 있는 국가 형성이 벌어져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공산당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에도, 이북의 김일성을 중심삼고 공산당의 골수분자들이 하나되는 것 이상으로 하나될 수 있는, 그 기준을 능가할 수 있는 나라가 나오지 않고는 하늘나라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는 그냥 비약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 심정적 승리의 결정 기반이 사탄세계의 어떠한 심정보다 높을 수 있는 자리에서부터, 가정적 심정적 터전이 이 세계의 어떠한 가정보다 높을 수 있는 자리에서부터 이것이 묶어져 가지고 종족과 민족을 형성하고 국가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의 무리들은 김일성을 중심삼고 북한 공산당의 골수분자들이 하나되는 것보다도, 선생님을 중심삼고 더 강하게 완전히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능가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은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새로운 조국 광복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어찌하여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하느냐? 그것은 실체로 대결해서 승리의 판결을 지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실체세계가 이 땅에 현현할 때가 오기 때문에, 실체를 중심삼은 참부모의 역사 시대가 오기 때문에 국경을 중심삼아 가지고 갈라진 북쪽에서 악이 선보다 먼저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나타난 악을 굴복시켜 가지고 선이 그 기반을 통하여 세계로 출발하는 것이 복귀의 길이기 때문에, 북한 땅에서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도 선생님을 대해 가지고 아버님이라는 말을 하지요? 여기서 둘이 엇갈리는 형태가 벌어집니다. 하나는 하늘을 중심삼고 아버지라는 말을 하고, 하나는 사탄세계를 중심삼고 아버지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금후의 귀추가 어떻게 될 것이냐? 한반도를 중심삼고 새로운 색채의 방향을 엿볼 수 있는 도상에 서 있는 것이 현재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기독교는 신부 종교

지금까지의 종교를 볼 때, 천사장권 사명을 유대교를 중심삼고 종결했다면 한꺼번에 다 되는 것입니다. 해와권 종교도 나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나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영적 기준에 있어서 해와적 실체기반을 못 잡았기 때문에 종교-종교는 영적입니다-를 세워 가지고 그것을 다시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종교의 이름을 가진 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뭐냐 하면 여자교회입니다, 여자교회. 알겠어요?「예」 여기에 처음 온, 기독교 믿는 사람들 있으면 잘 들으라구요. 기독교는 여자종교예요. 신부종교라구요. 그렇지요?「예 」 틀림없다구요.

그러면 남자 목사들은 뭐냐? 남자가 신부될 수 있어요? 어디, 될 수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신부라는 것은 여자입니다. 남자들도 주님이 오시면 신부가 되겠다고 하지만, 신부는 여자가 되는 것이지 남자는 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들이 단에 서서, 주님의 종 아무개 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종도 아닙니다. 종의 자식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그 종이 싫거든 뭘할 것이냐? 잔칫날에 심부름꾼,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남자들은 무엇이 되느냐? 들러리를 서는 것입니다. 남자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영광된 자리는 들러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들이 아무리 잘 믿는다 하더라도 종이 아니면 들러리로밖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들러리는 잔치가 끝나게 되면 끝나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므로 들러리가 될 것이냐, 종이 될 것이냐? 그렇게 보면 종이 낫다는 것입니다. (웃음)

오늘날 기독교가 신령한 은혜의 터전을 남겨 나가는 것이 남자들 때문인 줄 알아요? 교회 운영은 전부 다 여자의 손을 통해서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지요? 기성교인은 잘 알겠구만, 남자들은 예수 앞에 전부 다 도둑놈이라구 오늘날 예수를 믿게 될 때, 아내가 교회에 간다고 하면 아내를 찬양하면서 아내의 뒤를 따라가는 남자가 있어요? 아내에게 쥐어 사는 남자들은 할수없지만. (웃음) 전부 다 반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앞에 있어서 남자들은 반대입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무슨 종교라구요? 여자종교, 신부종교입니다.

그러면 제3의 역사노정에 여자종교의 형태, 즉 여자의 이름을 가진 종교가 어찌하여 세계적 문화권을 흡수해 가지고 민주세계를 창건했던가? 천사장은 해와 앞에 지배를 받아야 하는 것이 본연의 기준이었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권은 세계의 수많은 종교 문화권을 흡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문화권을 중심삼은 민주세계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맞지요?「예」 그래 가지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나라가 등장하고,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대표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민주진영입니다.

대표 나라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오시는 주님을 대신해서 천사장 나라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빌라도의 책임의 계대를 이어 받아야 합니다. 빌라도는 로마의 총독이었지만, 하늘의 천사장의 입장에서 가지고 공인받은 그런 주권자의 입장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세계적 대표자의 자리에 선 나라가 영국, 미국, 불란서입니다. 그것을 형(型)으로 보면 외적인 세례 요한권이기 때문에, 이것도 소생, 장성, 완성입니다. 불란서는 천사장형이요, 영국은 해와형이요, 미국은 외적인 아담형입니다. 세례 요한은 천사장형인, 동시에 외적인 예수형입니다. 이것은 잃어버린 아담이 복귀된 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2아담인 예수와 하나되지 않고서는 실패한 것을 찾았다는 승리의 기준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영국은 섬나라입니다. 그렇지요? 섬나라는 해와입니다. 육지를 두고 보면 대륙은 남자를 상징하는 것이요, 섬나라는 여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세에 들어와 가지고 구라파의 문명이 어디서부터 출발했느냐? 여자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여자로부터 수습되어 가지고 세계로 진출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세계 선교의 사명을 영국이 책임지고 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해와가 아담의 갈 길을 막았기 때문에 세계적인 신랑으로 오시는 주님 앞에 있어서 해와는 세계적인 형으로 길을 열어야 합니다. 길을 닦아야 되기 때문에 국가적 해와의 입장에 선 영국은 세계의 기독교 전파에 있어서 선도적인 사명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래 가지고 그 해와 나라 앞에 나온 나라가 어느 나라냐 하면 미국입니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했지요? 해와는 아담을 탄생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해와는 아담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영국이 미국을 따라가고 있지요? 그리고 불란서는 천사장형의 나라입니다. 불란서는 1차 대전 때부터 천사장처럼 이쪽 저쪽으로 왔다갔다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이러한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외적으로 아담, 해와, 천사장권 세계국가가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내적으로 세계국가가 연결되었으면, 교단적으로도 그러한 형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적으로도 그러한 형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삼 삼은 구(3×3=9) 거기에 예수를 중심삼고 10수(3x3+1)를 갖추어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적 기반이 벌어지면 교회도 그렇게 되어야 됩니다. 외적인 세계가 그렇게 되어 있으면 하나의 중심국가예서는 교회적 세례 요한, 교회적 해와, 교회적 아담의 외적 형태 기준만 딱 결정되어 가지고 오시는 주님과 하나만 되면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와 하나되면 그 다음에는 그 나라와 하나되어 가지고 세계와 직접 연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담 국가인 한국의 사명

대한민국은 그때 주권이 있었어요? 대번에 영, 미 ,불을 중심삼고 통일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출발할 수 있었을 것인데….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2차 대전 때, 폭탄 한 개 떨어지지 않은 나라가 왜 이렇게 유린당했는지 알아요? 통일교회를 반대한 죄입니다. 기성교회가 왜 이렇게 추풍낙엽과 같이 된 줄 알아요? 통일교회를 반대한 죄입니다. 기성교회가 반대했다는 것은 민주세계가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민주세계가 반대했다는 것은 영, 미 ,불이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를 가져옴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공산당 앞에 유엔이 짓밟힌 것입니다. 이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마지막입니다. 여기서 어떻게 될 것이냐?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이냐? 마지막판에 온 것입니다. 한국은 본래 누구와 하나되어야 하느냐? 한국이 오시는 주님과 하나될 수 있는 나라라면 이것은 아담 국가입니다. 한국이 아담 국가라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천사장권 세계국가에 있어서 해와 국가형과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국과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영국과 하나되게 되면 미국과 불란서는 자동적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해와가 아담도 망하게 하고 천사장도 망하게 했지요? 그러므로 해와 국가형이 뜻 앞에 섬으로 말미암아 불란서도 구할 수 있고, 미국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는데 기독교가…. 기독교는 외적 민주세계의 사상적인 중심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있어서 유대 교가 사상적인 중심인 것과 마찬가지로, 민주세계에 있어서는 기독교가 사상적 중심입니다. 그런 기독교가 반대하니 교회적 천사장형이 다 무너져 버렸고, 외적 천사장형도 다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일본과 중국의 섭리적 위치

이처럼 사탄세계에 몰리게 되었으니 할수없이 다시금 사탄세계에 가서 원수로부터 빼앗아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차대전 직후에 하늘이 채찍을 내렸던 일본과 독일과 이태리, 원수의 자리에 섰던 그 나라에서 다시 찾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는 일본을 해와 국가로 선두에 세우는 것입니다. 2차 대전 때에 일본은 사탄편적 해와요, 독일은 사탄편적 아담이요, 이태리는 사탄편적 천사장이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하늘편적 세계 3대 천사장과 싸운 것입니다. 이 세 나라는 사탄편적 세계의 3대 천사장입니다.

민주세계가 하늘 앞에 책임 못 함으로 말미암아 원수 앞에 몰려서 다시 출발해야 할 길이 멀어지니, 원수의 나라에 가서 뜻을 중심삼고 다시 찾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이란 나라가 해와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세계적 아담 국가의 입장에 선 한국 앞에 필연적인 운명을 지니고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과 독일은 2차 대전 이후에 지금까지 이 땅 위에서 축복받은 나라가 된 것입니다. 알겠어요?

일본에서는 '아마데라스 오오미가미(天照大御神)'라는 여자 신을 섬기지요? 세계적으로 여자를 대표적으로 내세워 자랑하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그래서 세계의 남자들이 일본은 '온나(여자)'라고 말합니다, 세계적으로 타락하는 데 있어서 첫째로 꼽던 악한 나라라구요, 사실은. 이 나라가 섭리의 뜻 앞에 있어서 해와 국가로 등장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와 국가가 등장했으면 천사장 국가는 어느 나라가 되느냐? 이것이 장개석이 통치하는 대만입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과 중국이 공동운명에 서 가지고 아시아의 정세를 좌우할 수 있는 시대가 필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절정에 달할 수 있는 순간이 오거든 하나님의 때가 지상에 현현할 수있는 때가 절박해 들어온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가 지금 이때라는 것입니다.

천사장은 본래 나라가 없습니다. 그렇지요? 천사장은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가 없는 자리까지 몰려 나간 것입니다. 장개석 정부를 보게 되면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장개석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한 아들은 일본 여자한테서 낳은 것이요, 한 아들은 중국 여자에게서 낳았지만 그 아들은 소련 여자하고 살고 있습니다. 입장이 전부 다르다구요. 이것은 뭐냐 하면 하나의 형태를 가졌지만 세 사람의 내용을 갖췄습니다.

그리고 일본을 보게 되면 지금 기시에 이어 사또 수상이 정권을 잡고 있는데 그들은 형제라구요. 이것을 보게 되면 해와 앞의 가인 아벨과 마찬가지입니다. 두 형제가 주권을 잡고 움직여야 됩니다. 그것이 맞다는 거라구요. 이상하게 됐지요?

한국에서는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한국은 아담 국가이기 때문에 거짓 아담과 진짜 아담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김일성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교회가 맞서는 것입니다. 인류의 아버지 입장에서 거짓 아버지가 나오는 동시에 참아버지가 등장해야 됩니다. 이것이 딱 일직선에 섰습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꾸며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그렇게 탕감해 가지고 세계적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세가 우리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지금 중국이 유엔에서 축출 당했습니다. 이것은 민주세계에 있어서 그들이 사명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탕감하는 것입니다.

섭리적으로 본 아시아의 갈 길

그러면, 일본은 이제 어떻게 되느냐? 일본의 좌우 여하에 따라서 한국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이요, 중국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통일교회 문선생은 벌써 6년 전부터 일본에 대하여 배후 공작을 해 나왔습니다. 사또 수상에게 국부(국민당 정부)와 더불어 망하더라도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중국을 지지 한다는 성명으로 말미암아 자민당에서 큰 파동이 벌어졌습니다. 거기에 영향을 미치게 한 책임자가 여기 서 있는 사나이입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섭리의 귀일점을 끝날과 더불어 맞출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외적 세계는 무너지더라도 좋습니다. 외적 세계는 무너지더라도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와 일본에 있는 통일교회, 그리고 중국에 있는 통일교회는 결속되어야 합니다. 이런 때가 와야 되겠기 때문에, 국부가 저렇게 곤궁에 빠지게 될 때에 일본의 식구 120명이 대만 정부 문제를 중심삼고 자유중국을 지지하기 위해 가두에서 일주일 동안 금식 투쟁을 한 것입니다. 이번 유엔 총회에서 중국 문제를 토의할 때에 전세계에 있는 통일교회 식구들이 4일간 금식 투쟁을 한 것은 역사적으로 유엔사에 남을 수 있는 새로운 일입니다.

자유중국이 유엔에서 쫓겨났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우리가 중국을 위하였으니 국제승공연합이 가는 운명을 따라 장개석 정부는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일본에 있는 모모 인사에게 지시를 했습니다. '이러이러한 2개 작전을 해야 되겠다'해 가지고 지금 작전중에 있습니다. 미국에 가있는 구보끼 협회장도 급히 돌아오라고 했으니 돌아올 거예요. 앞으로 장개석 정부가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궁금한 문제입니다. 이제는 유엔을 포기해 버리고, 중공과 대결해 가지고 독립선언을 해야 합니다. 그 독립선언은 무엇을 표준해 가지고 해야 되느냐? 새로운 사상, 새로운 이념을 중심삼고 해야 합니다. 국제승공연합이나 통일교회 사상을 중심삼고 대만 전체가 사상 무장을 해 가지고 중공과 대결하는 깃발을 들고 나서야 합니다. 그러한 길이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하늘편 천사장 국가형을 우리 자체내의 힘으로써 결속시킬 수 있는 동기를 마련할 수 있다 하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 회를 지도하는 문선생이 보는 아시아에 대한 정세관입니다. 이렇게 한국과 중국이 하나되는 날에는 해와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책임 못 하는 것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책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그런 배후의 문제를 중심삼고 피어린 작전을 계획해 나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복귀라는 것은 그냥 주먹구구로 되는 것이 아니라, 천리의 법도를 따라, 하나의 공식 루트를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가정도 그러하고 종족도 그러하고, 민족도 그러하고, 교회도 그러하고, 국가도 그러하고, 세계도 그러한 공식 법도를 통하지 않고는 못 넘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면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오른편 강도, 왼편 강도, 그리고 바라바가 있고, 그 다음에 예수가 있습니다. 예수는 죽은 예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 예수가 있어야 됩니다. 죽은 예수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4대권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중심삼고 보면, 이것이 진리의 모체요, 하나의 공식적인 귀결을 중심삼고 하늘이 찾고자 하는 기반을 이 땅 위에 남기고 간 길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뿌렸기 때문에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때 민주세계는 뭐냐? 오른편 강도권 세계입니다. 그렇지요? 좌익이라는 말이 왜 나오느냐? 예수 앞에 왼편 강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심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그와 같이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왼편 강도는 '하나님이 어디 있어?'라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바라바란 무엇이냐? 예수가 사지에 나감으로 말미암아 죽을 녀석이 살아난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 패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이 세계에 있어서의 아랍권 회회교입니다. 회회교는 기독교로 말미암아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적 본질에서 틀려진 것입니다. 그들은 '코란을 받지 않으려거든 칼을 받아라' 하는 가인적 세계 종교 대표, 즉 바라바적인 종교입니다. 알겠어요?

섭리적으로 본 좌익과 우익

그렇기 때문에 민주세계를 중심삼고 보면 내적인 정신적 지도기준이 기독교요, 공산세계를 두고 보면 공산세계의 내적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이 회회교입니다. 그래서 회회교와 기독교는 역사적인 원수입니다. 또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도 역사적인 원수입니다. 그렇지요?「예」 갈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났을 때, 달라이 라마 사건을 이야기했습니다. 1959년도에 티벳에서 중공의 침공으로 달라이 라마가 인도 국경을 넘었던 세계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하늘이 민주세계에 있어서 이 땅을 중심삼고 종교를 규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때에 10억, 혹은 수십억 달러 같으면 미국의 입장에서는 푼돈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사건을 중심삼고, 종교의 원수는 공산당이라는 테마를 내걸어 가지고 세계적 인 종교지도자들을 묶었더라면 오늘날 민주세계가 이렇게 파탄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좋은 기회를 놓쳐 버렸다 이겁니다. 이것을 놓쳐 버렸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런 문제까지 책임지고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을 느꼈기 때문에 이 얘기를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쭉 설명했습니다.

'본래는 한국이 휴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봐라. 지금 남침을 기도할 수 있는 제2의 공포 분위기를 다시 맞게 되지 않았느냐? 그때 끝까지 밀어내야 될 것이었다. 휴전협정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했더니.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당신 그때 한국에 있었소? 그래요. 그래서 '있었다'고 했어요. (웃음)

죽은 예수가 부활할 수 있는 그러한 새로운 기독교가 되어야 됩니다. 영육을 중심삼고 지상에 연결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부활적 기독교권이 생겨나야 됩니다. 예수를 중심한 기독교는 영적 기독교권입니다. 사탄 세계는 땅에 영육을 중심삼고 있습니다. 회회교도 영육을 중심삼은 나라가 있고 공산당도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세계는 육적인 나라는 있지만 영적 나라는 없습니다. 없지요? 그러니까 주님이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원수 앞에 맺힌 원한을 실체로 세계 앞에 탕감해 가지고 승리의 왕권을 갖고 등극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은 선생님이 꾸며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좌익이 나왔으며, 왜 우익이 나왔겠어요? 우익 좌익이 나오게 된 기원이 어디냐? 그것은 정치가들이 말하고 싶어서 그렇게 붙인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 탕감노정을 재현시켜 가지고, 이것을 벗어나지 않고는 예수의 해방이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런 환경을 통해서 우익도 좌익도 바라바도 한꺼번에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당신만이 영광의 승리자요, 최후의 승리자라고 찬양할 수 있는 그 세계가 되어야만 평화의 천국이 개문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관으로 보는 세계종말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공산당이 민주세계에 의해 후퇴하고 망하게 되면 아랍권을 통해서 또다시 공격해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막을 것이냐? 이번 투표에서의 승리의 요건도 아랍권을 포섭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런 판국이 됐다는 것입니다. 흑인권을 포섭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외적인 세계에서, 공산세계와 아랍권이 합해 가지고 들이치니 오늘날 민주세계는 허둥지둥하는 것입니다. 중심이 없으니, 어디로 가느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됐습니다. 여기에 하나의 닻이 되고 하나의 닻줄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판도가 3년노정까지입니다. 1960년도에 내가 일본에 가서 반공 전선을 펴려고 했는데 한국 정부가 막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5년 동안 끌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급변하는 세계정세 가운데 있는 아시아를 향해 섭리적인 영향과 기간을 중심삼고 찾아올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일본 청년들이 모인 자리에 스승이라는 사람이 가 가지고, '통일교회 문선생을 따르겠느냐? 따르겠습니다. 맹세하느냐? 무슨 말이든 듣겠느냐? 듣겠습니다'라고 선서를 시켜 놓은 뒤 '너희들은 용공국가인 일본에서 반공 전선을 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구…'(웃음) '선생님은 일본의 사정을 모르고 반공을 하라니, 반공하다가는 백주에 칼침맞기가 일쑤인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에는 그것을 할 수 없겠기에 돌아 오다가 책임자를 불러 가지고 내가 기합을 준 것입니다.

현재의 세계정세와 우리의 책임

전반적인 섭리의 역사관을 중심삼고 현실적 탕감노정이 어떻게 진전된다는 것을 단계적으로 분석 비판하여 설명한 뒤 이론대로 할 것이냐, 안할 것이냐 다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내가 명년에 올 테니 만반의 준비를 하라고 지시해 놓았습니다. 1960년도 정월에 일본에 가려고 생각 했는데 한국 정부가 갈 길을 막고 반대했습니다. 이래 가지고 1965년도에 일본에 갔지만 그 시기를 놓쳐 버리고, 1967년에 명년 4월까지 전체적인 준비를 하라고 명령해 가지고 (새 공산주의 이론비판)과 (원리)를 중심삼고 1968년에 비로소 국제승공연합 일본지부를 편성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선두에 서라. 나라가 죽는 꼴을 보기 싫거든 너희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라'고 했습니다. 이래 가지고 약 3년간에 구보끼라는 사나이를 세계적인 인물로 만들어 놨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대만과 한국을 연결시키는 책임을 해야 됩니다. 즉, 해와가 아담을 망하게 하고 천사장을 망하게 했기 때문에, 일본 통일교회의 책임자는 한국과 중국의 갈 길을 위해서 외적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지금까지 해 나오는 것입니다. 전부 다 원리적입니다. 알겠어요? 주먹구구식이 아닙니다. 현재의 처한 입장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이것은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여기에서 일본을 맞을 수 있고 한국까지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일본이 어디로 가느냐, 한국이 어디로 가느냐? 요즘엔 국민학교 교과서에서 반공이란 글자를 삭제하겠다는 말이 나도는데 그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공산당, 악이라는 것은 힘이 셀 때는 언제나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평화고 무엇이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통일교회 젊은 사람들 가슴에 불을 질러 놓고, 미래에 있어서 투쟁이라는 내심적인 결의를 다짐시키기 위해서 총공장을 만든 것입니다. 힘은 힘으로써 제압할수 있는 기준이 되어 있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공격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약하게 될 때는 언제나 침공할 수 있는 것이 사탄의 본질입니다. 평화니 뭐니 하는 것은 그들의 전략 전술이라구요. 급변하는 정세가 몰려오는 이때에 있어서 한국 백성들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생사를 결단지을 수 있는 사상적인 무장을 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3년이나 늦었습니다. 그렇다고 통일교회 교인들이 속수무책의 자리에서 안일하게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사를 결단지어야 할 비장한 운명권에 몰려 있습니다. 여기에서 밑려나느냐, 밀고 나가느냐? 밀고 나갈 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때가 오기 때문에 우리는 죽더라도 이 나라 후손 앞에 남겨 주어야 할 역사적 전통을 심어 주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개인들이 핍박받고 수난길을 걸어왔지만, 이제는 가정 전체를 수난길에 들이 몰아넣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아내들을 전부 다 일선에 내보낸 것입니다. 아들도 남편도 전부 다 일선에 있는 어머니나 아내를 따라가야 합니다. 해와가 나라를 망쳤으니 국민사상을 해와들이 제시하여 심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국민 앞에 새로운 천적 가정의 전통을 누가 심느냐? 해와가 심어야 되겠기에 가냘픈 여자들을 전부 다 일선에 내보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들을 내세운 것은 통일가의 가정으로서 한국의 일반 가정들 앞에 본이 되어 가지고 의로운 가정이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애국애족하는 부인들이라고 인정받아, 그들이 은연 중에 그런 사상을 본받아 머리를 숙일 수 있는 외적 터전을 정비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내세운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뜻을 못 이루고 망하더라도 이 사상만은 한반도의 근세사에 엄연한 내용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섭리적으로 볼 때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종적인 천사장 종교 시대를 거치고, 해와 종교 시대를 거쳐 가지고 신랑을 찾아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신랑을 만나기 전에는 이 역사의 횡적인 무대는 안 나오는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의 기준을 찾아 나오는 이것이 끝나지 않고는 횡적인 무대가 벌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해와의 입장에 있는 종교는 신랑을 맞아들여야 됩니다. 그런데 혼자 맞아 들여서는 큰일나는 것입니다. 이 권내를 중심삼아 가지고 민주세계와 기독교와 가정을 기반으로 해서 외적인 무대와 내적인 무대의 터전을 닦아야 합니다. 이렇게 기독교권내에서 안팎으로 갖추어 가지고 연결되게 될때, 자리를 잡음과 동시에 종적 목적 완성은 물론 횡적 중심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역사는 종적으로 찾아 나오기 때문에 여기서 종적 목적이 완성됩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 소원이 결정되는 것이요, 섭리역사의 중심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세계적으로 현시대에 있어서 현세적인 중심이 결정되고, 가정들과 연결될 수 있는 터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랑 신부의 인연을 통해 가지고 그 중심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섭리의 중심입니다.

한국이 해야 할 일들

지금까지 기독교를 중심으로 민주세계가 공산세계와 대결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공산권은 무엇이냐? 타락한 사탄이 죽지 않겠다고 발버등치면서 세계를 자기 품에 품어 가지고 하늘과 대결하고자 하는 것이 공산권, 즉 사탄권입니다. 여기에 하늘권을 중심삼고는 천사장권 그 다음에는 해와권과 아담권을 연결시켜야 됩니다. 이것을 국가, 교회, 가정적으로 일시에 소생, 장성, 완성으로 맞추어 가지고 나서지 않고는 하늘이 전체를 탕감해서 사탄세계를 때려 누일 수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 찾아진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이 그 가정의 남편을 내세워서 사탄세계에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세계의 30억 인류여, 이 남성은 인류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나 세계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다른 어떤 사람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세계적 대표자다'라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공인될 수 있는 결정적인 중심존재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가 찾은 그 가정은, 사탄세계의 수많은 가정 앞에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정이 세계적인 아벨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심)

예수의 가정은 세계적 아벨 가정입니다. 그 가외의 가정은 전부 다 가인 가정입니다. 이 가인 가정들이 아벨 가정 앞에 굴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굴복시키려니, 굴복시킬 수 있는 권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세계를 안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민주세계가 하나되게 되면 공산세계는 일시에 파탄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그러면 그러한 초점이 오늘날 어디를 중심삼고 되어져 왔느냐?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되어져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은 민주 세계에서 반대를 받았고, 일본과 대한민국에서도 반대를 받았습니다. 전부 다 반대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민주세계가 반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민주세계권내에 있는 모든 국가가 반대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의 반대를 받아야 하고, 민주세계의 반대를 받아야 하고, 국가의 반대를 받아야 하고, 교회의 반대를 받아야 하고, 가정의 반대를 받아야 하고, 개인의 반대를 받아야 합니다. 본래는 세계와 국가와 교회와 가정과 개인의 반대를 받지 않게끔 민주세계가 만들어졌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믿지 않게 되면 비참한 운명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공산세계, 사탄세계의 바람이 휘몰아쳐 와 가지고 민주세계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것입니다. 세계사에 없는,1차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입은 피해 이상의 피해를 입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이 휘몰아칠 것입니다. 그것이 해방 직후 지금까지 20년 역사라구요.

이 기간에 통일교회는 뭘해야 했느냐? 갖은 시련과 역경을 겪어 오면서 개인적 권위를 사탄 앞에 세워야 되고, 가정적 권위를 사탄 앞에 세워야 되고, 종족적 권위를 사탄 앞에 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권위를 사탄세계 앞에 드러내야 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반대하고 기독교를 비롯한 수많은 종교가 반대했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종교 중의 종교는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산 종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대한민국도 이제는 통일교회가 필요한 때가 왔습니다. 조금 더 있으면 미국이 통일교회를 필요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안 들어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일본이 필요로 하게 될 것이요, 중국이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 출발의 기준을 닦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대한민국 자체는 이스라엘 나라와 마찬가지요, 대한민국에 있는 통일교회는 뭐라구요?「유대교…」 유대교의 입장입니다. 유대교와 마찬가지라고요. 예수를 반대한 것은 나라보다도 교회가 먼저 했습니다. 그렇지요?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통일교회를 먼저 반대했습니다. 그 다음엔 나라가 반대했습니다. 그것을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그것을 탕감 하기 위해서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맞을 것을 대신 맞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나라가 맞을 것을 아벨적 입장에서 통일교회가 대신 맞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있어서도 유대교가 책임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반대했기 때문에 그냥 놔 두면 이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막아내야 되느냐? 유대교와 마찬가지 입장에 있는 통일교회가 막아 내지 않으면 막아낼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애국애족해야 됩니다. 교회를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를 살려야 합니다. 나라가 살아나는 한 교회는 살아납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중심가정의 가치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무엇을 했느냐? 예수가 개인적으로 설 자리, 가정적으로 설 자리, 종족적으로 설 자리, 교단적으로 설 자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통일교단에서는 선생님을 반대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지요?「예」 그러니 유대교에서 환영한 입장의 통일교단이 됐습니다. 즉, 이스라엘 나라에 있어서 환영한 유대교권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갈 수 있고, 가정적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 통일교회에서 시집 장가간 사람들은 비록 단간방에 살더라도 언제든지 선생님이 가면 잠잘 자리를 내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방방곡곡 삼천리 반도 어디를 가든지 그 집은 다 내집이라구. (웃음)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설 자리가 되었고, 가정이 설 자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했지만, 지금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있어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던 것이 이제는 있다는 것입니다. (웃음)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얼마나 도망을 다니고 얼마나…. 이것을 말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목석 같은 사나이라도 배알이 끊어질 정도로 통곡할 수 있는 사연이 많아요. 편안히 앉아 가지고 통일교회가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이 마루바닥, 이 자리는 피눈물로 엮어진 하나의 누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요셉 가정이나 사가랴 가정과 같은, 가정을 대신할 수 있는 가정을 가졌습니다. 종족적 기반을 갖추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친척이 많습니다. 친척도 국가적 친척이 아니라 세계적 친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합동결혼식을 하는 것입니다. 세계 10여개 국에 친척을 가졌습니다. 그렇지요?「예」 열 나라를 전부 다 얽어맬 수 있는 터전,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이 있습니다. 한국이 반대하게 되면 대만, 일본, 영국, 이태리 어느 나라든지 갈 수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 통일교회 문선생이 깃들 곳이 있다구요. 영국녀석을 축복해 주면서 '야 이녀석아, 빌딩 빨리 내놔' 해도 '헤헤' 합니다. (웃음) '네가 타고 다니는 좋은 차 이리 내놔' 해도 '예, 예' 합니다. 내가 기분 나쁘니 가서 좋은 차 한대 사라고 하면 '예, 예' 하면서 집을 팔아서라도 삽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웃을 일이 아니라구요.

그렇게 될 때까지는 주먹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눈물과 피와 땀을 퍼붓고, 하늘의 사랑을 하나의 중심으로, 하나의 핵을 중심삼고 금을 그어 놓았습니다. 거기에서 흘러 나가는 인연이 개인적 사정과, 가정적 사정과, 종족적 사정과, 민족적 사정과, 국가적 사정으로 넘어설 수 있는 인연을 느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통일교인 한 사람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한 가정이 동원되어서는 굴복시키지 못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그래야 된다구요. 통일교회를 굴복시키기 위해서,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가정이 동원되고 어떤 무엇이 동원된다 하더라도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어떠한 김씨면 김씨 같은 종족이 동원해서도, 민족도, 혹은 어떠한 주권자가 제아무리 굴복시키려 해도 절대 굴복시키지 못합니다. 세계의 어느누구도 굴복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굴복당하면 당했지, 굴복시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굴복시키려다 최후에 가서는 그들이 하늘 앞에 깨집니다. 나를 잡아죽이겠다고 하는 녀석들은 전부 다 자기가 먼저 죽었다구요.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가정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반대하게 될 때에, 거기에서 허우적거리다가는 전부 흘러가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이 그 종족 앞에 규탄을 받게 될 때, 그들 앞에서 주저하다가는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나라가 반대하고 세계가 반대하더라도 확고한 터전 위에, 만고 불변한 터전 위에 선 가정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한 가정이 돼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부처끼리 싸워요? 싸우면 안 됩니다. 그런 가정들은 전부 다 사탄의 비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 하나를 찾기 위해서 6천년 걸렸습니다. 가정 하나 찾기 위해서 오시는 주님은 사망을 각오하고 수난의 때를 극복해 가지고 가정 하나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가정을 찾아 가지고 종족을 편성하고, 종족을 편성해 가지고 민족을 편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섭리적 중심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첫째는 개인입니다. 사탄 앞에서 해방받은 개인, 이 세계에 있어서 침범당하지 않은 개인이라구요. 알겠어요?「예」 사탄세계의 영육을 중심삼고 어떤 실체든지 이를 점령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신념에 사무친 개인입니다. 이런 개인을 칠 때는 친 녀석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맞으면서도 망하지 않고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세계적 중심 가정입니다. 개인 다음엔 가정입니다. 예수가 온 것은 개인만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개인을 완성해 가지고 하늘편 아들의 사명을 대신하여 이 땅 위에 가정을 찾으러 온 것입니다. 그것이 어린양잔치입니다. 신랑신부가 만나는 어린양잔치가 무엇이냐? 가정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가 장가들기 위해 온 것입니다.

하늘편 나라가 세워져야

그 예수는 누구냐? 거짓 부모가 생겨났으니 참부모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뜻이 이루어집니다.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어머니 아버지의 사명을 연결짓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이것을 연결지어 새로운 이상적인 어머니 아버지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 아버 지를 중심삼고 축복기반을 넓혀 가지고 종족을 편성하고 민족을 편성하는 거라구요. 그리하여 새로운 부모를 중심삼은 새로운 자녀와 가정, 새로운 종족과 민족,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것입니다. 첫째는 개인이요, 둘째는 뭐라고요?「가정이요」 가정입니다.

개인은 천사장적 기준을 완결해야 합니다. 신랑 신부는 아담 해와가 축복받는 것과 같은 입장입니다. 그렇지요?「예」 그 다음엔 무엇이냐? 아담 해와를 가만히 두면 그들을 기반으로 나라가 형성됩니다. 사탄이 지금까지 반대한 것은 개인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엔 기독교를 잡기 위해서이고, 그 다음엔 오시는 주님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죽이려고 하였으나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오시는 주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 안 되고는 가정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타락은 무엇이냐? 천사장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가 하나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되려면 하나님의 승리의 터전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 천사장이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되는 데서 비로소 횡적인 터전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기성교회 목사들은 무엇이 되어야 되느냐? 오시는 주님 앞에 종이 되어야 합니다. 진짜 종이 되어 가지고 양자의 인연을 거쳐 아들의 자리까지 가서 재편성해야 됩니다. 수속 절차를 전부 다시 밟아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과 가정과, 그 다음엔 뭐라구요? 나라가 필요합니다. 사탄은 언제나 나라를 중심삼고 하늘의 앞길을 막아 왔던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아들딸이 믿으려고 하면 그들의 목을 틀었고, 그 다음엔 가정이 믿으면…. 나라가 목을 틀었지요?「예」 이것이 지금까지 사탄이라는 원흉이 자리를 잡고 도사리고 앉아 가지고 행차하는 무대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찾지 못하면 세계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국이 갈라지게 된 것은 기독교가 책임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섭리의 중심으로 지금까지 역사해 나온 것이 무엇이냐? 가정입니다. 가정. 알겠지요? 가정을 중심삼고 예수의 목을 틀었다고요. 그것을 해원성사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이 땅 위에 세워야 됩니다. 이것을 성사 시키게 되면 그 다음에는 나라를 세워야 됩니다. 교회가 그 놀음을 했고, 나라가 그 놀음을 했다는 것입니다. 유대교 사상이 예수의 목을 틀었고, 그 다음엔 빌라도가 목을 틀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정과 나라를 중심삼고 기독교는 비참한 피를 흘려 나왔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이 세계에서 사탄이 우거할 수 있는 발판이 어디냐? 물론 세계 지만, 세계는 국가가 모여 가지고 된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 가운데 사탄이 제일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지독한 나라가 있습니다. 사탄이 통치하는 국가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더욱 지독한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자랑하려면, 그 지독한 나라보다도 더 지독한 하늘편 나라가 생겨 나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사탄세계에서 제일 지독한 나라가 북한입니다. 공산세계에 있어서 김일성이가 제일 고질통이라구요. 그렇지요? 그들은 세계적으로 게릴라를 만들어 가지고 파송하는 놀음까지 하고 있습니다. 수출해요. 수출하지요?「예」 자기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게릴라를 선발해서 수출하고 있습니다.

민주세계에 있어서는 통일교회가 나옴으로써 제일 지독한 패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제일 지독한 패를 수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마찬가지예요. 마찬가지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누가 세냐? 사탄이 먼저 나왔기 때문에, 가인이 먼저 나왔기 때문에 아벨보다 먼저 찾아야 하므로 먼저 국가를 만든 것입니다.

김일성이가 몇 살에 주권을 잡았느냐 하면 서른 네살입니다. 예수가 서른 세살에 죽었거든요. 그러니까 그것을 이어받아서 김일성이가 서른 네살에 주권을 잡은 것입니다. 이런 거 알아요? 명년이 김일성 회갑이라고 해서, 명년 4월 15일에는 뭐 서울에서 잔치를 하겠다고 뻐떡거리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세계적인 투쟁 연한을 '70년, '71년, '72년으로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맞아떨어지는 겁니다. 생사의 결판을 지을 수 있는 영향을 김일성이 미치느냐, 통일교회가 미치느냐 하는 시대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1971년은 섭리적으로 중요한 해

그래서 금년에 들어와서는 대학가에 영향을 미치고, 군대에 승공사상을 부식(扶植)시키고, 국회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작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것이 가능한 권내에 들어왔습니다.

지금 남북이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계획하고 있지요? 가족 찾기란 뭐냐 하면 하늘 가족이냐, 사탄 가족이냐 하는 것을 가려서 서로 서로 나눠 갖는 놀음입니다. 새 나라의 편제를 갖추려니 우익적 가정이냐, 좌익적 가정이냐 하고 가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세계적 문제입니다. 그리고 지금 동독에서는 나라 찾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지요? 가정 교류 문제, 나라 교류 문제 등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류 문제만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됩니다. 가정도 해결 안 되고, 나라도 해결 안 됩니다. 교류를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통일교회가 한다구요. 알겠어요?

이런 시점에 놓여 있는 것을 볼 때, 오늘날 복귀섭리를 한 나라와 한 지역에서 종결짓고자 역사는 급변해 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가 '60년도에서부터 '71년까지 12년간입니다. 알겠어요?「예」 이 12년간은 12수를 탕감복귀하는 역사적 기간이요, 120년의 탕감 노정이 벌어지는 기간입니다. 지금까지의 복잡한 역사 가운데 공산주의가 발발하게 된 지 120여년이 지났습니다. 이 120년 기간을 12년 기간에 탕감해야 합니다. 이것을 12년으로 축소시킨 것이 '71년도까지입니다. 그리고 이 12년권의 운세를 1년 12개월로 축소시켜서 끌어넣자 하는 것이 1971년도입니다. 알겠어요?「예 」

그래서 연초에 선생님이 '통일기반 확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1971년 도는 역사상에 없는 가장 중요한 때다. 이 일년은 1천년 2천년 3천년… 7천년을 대표한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음력 8월부터 세계정세는 급변하는 와중으로 말려 들어가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9월, 10월, 11월, 12월, 1월, 2월 3월 (7개월간)을 지나면 김일성의 회갑인 4월이 되는 것입니다. 이때만 그저 한국이 아무 문제없이 넘어가라는 것입니다. 유엔이 저렇게 급변해 가고, 중공이 저렇게 된 것은 한국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괴가 난처한 입장에 들어갑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려질 것이냐? 그것은 이제 하늘의 섭리의 방향이 갖추어져 가지고 가려지리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계기가 됐기 때문에 세계적인 공산당을 중심삼고 북괴면 북괴, 중공이면 중공, 내외로 다시 정비 규합할 수 있는 세계를 향해서 깃발을 들고 나설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회는 안팎으로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사탄이 저렇게 세계를 향하여 진출하는 것 같이 우리도 레벨을 갖추어 가지고 세계를 향하여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금번에 선생님이 순회하는 코스와 맞서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그래서 이제부터는 세계적인 기반을 닦기 위한 준비를 해야 됩니다. 이제는 국내외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몰리는 때는 지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에 바람을 일으켜 가지고, 오늘날 공산당들이 새로이 정비를 해가지고 세계 진출을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에 대비하여 하늘편도 새로이 정비해 가지고 외적인 세계로 뻗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본부를 세우고자 여의도 땅을 산 것입니다. 세계적인 대학을 세우기 위해서 땅을 사고, 세계적인 수련장을 만들어야 되겠기 때문에 청평의 땅을 사는 놀음을 한 것입니다. 외적으로 갖추어 가지고 세계로 진군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됐기 때문에, 통일교회 간부들은 별의별 소문을 다 내고 별의별 놀음을 다 했지만, 선생님은 이런 때를 맞이해 가지고 지금까지 준비해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순회를 가게 되면 못해도 40개국 이상에 선교부를 설치 하고 돌아와야 할 사명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년 이내에 120개 이상의 나라에 선교부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문제가, 금후에 통일가가 해야 할 사명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나서야 할 봄날

그렇기 때문에 섭리역사의 중심이 무엇이냐? 첫째는 이 땅 위에 주님이 와서 발붙일 수 있는 그 기점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발붙여 가지고 가정의 기점을 이루어야 하며, 그 가정의 기점을 이루어 가지고는 나라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남북이 갈라진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하나의 나라로 만들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조국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조국. 알겠어요?'섭리의 중심과 조국'이라는 말을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섭리의 중심, 알겠어요?「예」

이 섭리의 중심이 결정될 때까지 얼마나 수난의 길을 거쳐 나왔느냐? 예수의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요셉 씨족과 유대교를 중심삼고 이스라엘 나라를 맞을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회는 그러한 수난길을 거쳐 몰리는 자리에서도 길을 닦아 가지고 유대교단과 같은 통일교단을 이스라엘을 대표한 한국 국가권내에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 조국이 사탄 앞에 삼키느냐, 안 삼키느냐 하는 위기에 처해 있는 때가 현재의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람이 국가로부터 아시아를 거쳐 가지고 세계로 감도는 이런 운세권내에 놓여 있는 통일가의 운명과 통일종파의 운명과 통일사상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지극히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단결하여 하늘에 촉구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냐? 조국광복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북한 김일성을 중심한 공산체제와, 전세계를 중심삼고 결속시킨 그 터전을 능가할 수 있는 통일사상으로 이 민족을 사상무장시켜야 할 기반을 닦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다짐해 나왔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시대적 평면적 권내에 놓여 있는 이때에 있어서, 오늘날 우리들은 안팎으로 단결해야 되겠습니다. 하늘을 몰아낸 간악한 원흉들이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선한 피를 흘리게 했던 그 원한을 우리는 풀어 드려야 되겠습니다, 이 시대에 있어서 원수들이 세계적으로 풍부한 기반을 중심삼고 사악한 행동으로써, 하늘이 가야 할 조국 광복의 길을 백방으로 막으려 하는 차제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안일을 도모하는 그런 입장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족속은 단결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금번에 선생님이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를 순회하면서 이제는 가두에 나서라고 했습니다. 1960년대에 우리가 간판을 들고 나설 때, 삼천만 민족으로부터 빗발치는 반대를 받으면서도 가두에서 외쳐 왔고, 쫓기며, 침뱉는 자리에서 조롱을 받아 왔지만 이제 그런 때는 지나가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확기가 왔고, 그 수확기가 끝나면 봄날이 우리 앞에 다가 오는데 그 봄날을 겨울의 북풍이 드세게 가로막고 있는 것이 공산주의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겨울절기의 문명권인 공산이라는 외풍을 몰아내고, 뚫고 나가야만 생명이 있는 하나의 결실로서 새봄에 심어질 수 있는 씨앗이 됩니다. 이 씨앗이 통일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공산풍을 밀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을과 봄 사이에 불어오는 역사적인 바람이 공산주의입니다. 그래서 한대 문명권을 중심삼고 불어와요. 그렇지요?

문명권 발달단계를 보게 되면 고대문명은 열대권 문명이요, 현대문명은 온대권 문명입니다. 온대권 문명인데 무슨 온대냐? 가을절기의 온대입니다. 내려가는 때입니다. 그러니 이 온대권 문명의 끝에는 한대권 문명인 공산주의가 몰아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봄절기 문명은 어디 갔느냐? 타락했기 때문에 안 나왔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동양에서부터 문명이 시작되어 가지고 서구로 가야 할 것인데 꺼꿀잡이가 됐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인류사에 있어서 봄절기 문명을 맞이할 것인데, 이때를 통일교회 술어로 말하면 중화문명시대입니다. (판서하심 )

승리한 개인, 승리한 가정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은 민주세계의 수확기요, 공산세계의 수확기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6천년 역사의 수확기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타락은 누가 했느냐? 청소년들이 했습니다. 20대 전후한 이들의 어긋난 윤리의 행각이 타락을 가져 왔습니다. 그렇게 조상들이 심었으니 그런 조상들이 심은 대로 세계적으로 거두어야 되겠기 때문에 오늘날 10대 청소년들의 윤리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젊은 녀석들, 학생들을 보면 어디 가든지 전부 다 검정 옷을 입고 다니지요? 그렇지요? 이 검정 옷을 입은 패들이 사고입니다. 중,고등학생에서 대학생까지. 가을이니 심었던 대로 거두는 때입니다. 불화의 동기가 개재되어 심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거두는 때입니다. 오늘날 이 풍조를 통일사상으로 삼켜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연애를 못 하는 것입니다. 춤을 못 춥니다. 또 남편 있는 여자들, 축복받은 여자들은 화장을 할 수 있지만 처녀 들은 화장을 못 합니다. 처녀들이 입술에 베니칠을 하고 분칠하는데 누구 때문에 하는 거야? 나라 때문에 화장을 했어? 그렇지만 시집간 색시들은 화장을 해도 된다구요. (웃음)통일교회는 엄격하다고요. 앞으로 두고 보라구. 한번 걸리게 되면 무자비한 제재가 가해질 때가 오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러한 사실을 몰라서 그렇지.

축복이 얼마나 어려우냐? 예수님을 대신해서 가정 하나 찾기 위해 얼마나 역사적 희생을 치렀느냐? 수많은 개인이 희생되었고, 수많은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가 희생되었습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찾아진 가정이 축복가정인데 이러한 축복가정이 참소받을 때에는 국물도 없는 거라구. 죽어간 수많은 애혼도 그렇고, 역사시대 왔다 갔던 선조들도 그렇지만, 사탄이 사탄시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지만 너는 완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지? 이 간나야! 이놈의 자식아?' 하면서 사탄이 사탄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서운 법이 통일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사탄보다도 더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저갱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용서가 없습니다. 타락해 가지고 시집가서 사는, 혹은 장가가서 사는 사람들의 그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희생시키더라도, 유대교를 희생시키더라도 남기고 싶었던 예수의 가정이 아니었더냐? 그렇지요? 그 가정을 남기려던 예수님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갔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정을 가졌다는 것은 예수보다도 나은 자리에 올라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보다 나은 자리에 올라갔다는 거예요. 예수는 지금까지 영계에서 천사장 사명을 대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선생을 만나면 인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안내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임자네들이 예수보다 나아요? 거렁뱅이들 같은…. 체신을 갖추지 못하고, 체면을 세우지 못하고, 위신을 갖추지 못하는 이러한 무리들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르더라도 법대로 걸려 넘어 가는 것입니다. 법을 제정했는데도 불구하고 저 산골에 살던 사람이 '아, 법을 정했는지 내가 알게 뭐야. 법이 나 때문에 있나 뭐!' 한다고 해서 됩니까? 그 나라의 백성이면 그 나라가 제정한 법의 원칙에 의해서 치리를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 위에 있어서 승리한 개인적 자격을 중심삼고 승리한 가정을 가지고서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영계를 대해서 자랑해야 되고, 세계를 대해서 자랑해야 되고, 역사와 미래시대에도 자랑해야 됩니다. 그렇게 자랑하고 싶었던 가정이 승리한 가정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승리의 가정의 인연을 연결시켜 가지고 이 땅 위에 재현시킨 것이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이 아니냐? 이 축복가정들은 가정을 찾았으니 가야할 길이 무엇이냐? 나라를 찾아야 됩니다, 나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찾아야 할 것은 조국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이 땅에 있어서, 원흉인 거짓 애비가 사탄을 중심삼고 고질이 되어 있는 북한 땅을 해방해야 되는 것입니다.

금후의 통일방안이 어떻게 될 것이냐? 지금 대한민국에 있어서는 이 문제가 큰 문제입니다. 간단히 해결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결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대하여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이요?' 하고 묻게 된다면 '나는 한국 사람이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한국에 있어서 무슨 지파 사람이요?' 하면 자기 성을 말할 것입니다. 그 다음엔 '어떤 주인이요? 할 때에는 자기 가정을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과 자기 씨족과 자기 가정이 하늘편에 그냥 그대로 설 수 있도록 되어 있느냐 할 때,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여러분을 낳아 준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한 가정은 타락의 터전에 젖어진 가정입니다. 김씨면 김씨의 족속이 여러분의 족속이 아닙니다. 그런 족속은 타락권내에 있는 족속이기 때문에 해방받아야 됩니다. 타락권을 벗어나야 됩니다. 타락권을 벗어나는 데는 그냥 그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인연을 중심삼고 그대로 연결되어 가지고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나라면 나라를 중심삼고 그 나라가 하늘나라와 직결될 수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나라, 천국이 지옥과 같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지상은 지상 지옥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새로운 사상을 가지고 새로운 가정을 중심삼고 새로운 종족을 편성했습니다.

통일사상이 한국의 주류 사상이 돼야

이제 가야 할 길은 무엇이냐? 아무리 종족을 편성했다 하더라도 사탄 나라의 주권이 남아 있는 한 여러분은 나라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기가 여러분의 나라예요? 여러분에게는 나라가 없는 거예요, 나라가. 아무리 종족이 있다 하더라도 그 주권이 하늘을 중심삼은 주권이 아닐 때는, 이종족의 목을 자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환영할 수 있는 그 나라를 찾아가야 됩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있어서 제1이스라엘권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 전체가 환영할 수 있고 개인도 환영하고. 가정도 환영하고, 종족도 환영하고, 민족도, 교회도 환영할 수 있는 그런 땅이 되어야 하는데,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나, 기성교회를 중심삼고 보나,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보나 전체가 환영할 수 있는 입장에 섰느냐? 그렇게 못 되었습니다. 방향이 다릅니다. 방향이 다르다구요. 대한민국이 가는 것은 외적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고 세상을 중심삼고 외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주류적인 사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의 주류적인 사상을 중심삼고 하늘과 연결시켜 새로운 입체적, 혹은 평면적 내용을 갖춘 새로운 국가관을 형성해 가지고, 그 형성된 국가관을 오늘날 국가를 중심삼은 이상의 내용으로 지니고 나서지 않고는 조국광복을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해방이라는 것은 제1해방입니다. 이제 통일교회에 있어서는 제2의 해방이 필요한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제2의 해방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대한민국이 제2의 해방을 맞이하면 국가와 민족은 그것으로써 소원성취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통일교회는 제3의 해방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대한민국은 제1해방에 의해 비로소 안팎에 있어서 지금 국가형태를 갖추었지만, 제2의 해방이 필요한 때가 왔습니다. 남북이 통일되어야 된다구요. 그렇지요?「예」

그러면 제2의 해방을 누가 해야 될 것이냐? 여러분, 대한민국이 선한 나라예요? 선한 나라가 아니라구. 부패가 자리를 잡아 가지고 부패로 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는 그러한 나라입니다. 통일교회는 여당편도 아니고 야당편도 아닙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악이 개재된 것은 잘라내야 됩니다. 우리들이 그런 사명을 해야 된다구요.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재료를 만드는 겁니다. 그것을 공인시킬 수 있는 실적을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애국애족하는 피나는 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어떠한 교단에게도 지지 않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어떠한 주권자에게도 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 백성들이. '저 통일교회 사람들과 같이 애국애족해야 대한민 국이 통일된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공인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가정들이 개인의 입장에서 자나깨나 가져야 할 소원이 무엇이냐? 자나깨나 '조국이여. 하늘이 찾아오실 수 있는 조국이여 ! 이 천지에 현현하시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이 조국을 찾지 못하게 될 때는 하늘을 중심삼고 사탄세계 국가를 능가할 수 있는 하나의 나라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갖지 못하고는 세계의 사탄국가를 칠 수 없는 거라구요. 밀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교, 통일교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 사상을 중심삼고 나라가 방향을 갖추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남아진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 나라의 정신적인 지주가 유대교였던 것과 같이 오늘날 판국에서 통일교회가 유대교와 같은 입장이라면, 통일교회 사상이 한국의 주류적인 사상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국교까지 되어야 할 때가 와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국회의원들도 그렇게 말해요. 통일교회 사상을 국교로 만들면 공산당은 문제없다고. 그것 문제없습니다. 문제없지요? 문제 있나, 없나?「없습니다」문제 없다구요.

복귀원칙으로 보게 되면 사탄나라의 군대는 사탄나라를 대표한 병사입니다. 오늘날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볼 때는 사탄세계의 남자보다도 하늘편의 해와가 우세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 인민군대와 하늘나라의 뜻을 중심삼은 통일교회 여자군대가 싸워 가지고 통일교회 여자 군대가 진다면 뜻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웃음) 왜 웃어요? 좋아서 웃어요. 기가 막혀서 웃어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사상으로 삼천만 민중이 결속되는 날에는 여자들만 내세워 가지고도 인민군대는 다 잡아먹게 됩니다. 삼켜 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무엇을 할 것이냐? 남자들은 나팔이나 불고 후원을 해주는 겁니다. 구경이나 하는 거라구요. '야, 그래도 내가 아내는 잘 얻었다. 세계에서 제일가는 악착같은 패거리들을 잘 밀어내누만. 내 색시답다. 아내로서 그만하면 됐다' 자랑하게 되는 거라구요. (웃음) 웃을 게 아닙니다. 그렇게 준비를 해야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들의 사상이 모두 같지는 않지만 철두철미한 통일사상에 일치되어서 사탄 원흉을 여러분 손으로 굴복시켜야 합니다. 내 몸이 짓밟히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나라의 평화의 터전을 만들어 놓고 죽겠다는 결의를 하고 가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 여자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래서 여러 분들이 지금 삼천리 반도에 나가서 무엇을 하는 것이냐? 한국에 있는 수많은 가정들의 여자들은 통일가의 여자들이 가는 길을 본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교육하기 위한 3년기간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엄청난 사명을 짊어졌는데 잠이 오는가

여러분들, 이러한 엄청난 사명을 우리들이 짊어졌다는 것을 생각할 때잠이 와요? 밥숟갈이 입에 잘 들어가요?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의 필생의 소원이 무엇이냐? 지금까지 선생님이 기도하는 목적은 통일교회를 세계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런 기도는 하나도 안 합니다. 통일교회에 일원화시키겠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를 통해서 어떻게 세계를 구해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구함을 받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구해 주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신세를 지겠다는 자리가 아니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설 자리가 어디냐? 내가 설 땅을 위해서는 남자로서, 역사상 그 누구도 가지 못한 천신만고의 길을 내가 지키고 가야 되겠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활철학입니다. 내가 서 가지고 그럴 수 있는 가정이 어디냐? 수난의 길에서 엉망진창,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그 자리에서 천국을 대신한 가정을 만들어 놓겠다고 하는 것이 선생님의 사상입니다. 불신의 와중으로 세계가 뒤끓는 이 땅 위에 하늘이 즐거이 맞을수 있는 하나의 나라를 어떻게 광복시키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의 주류사상입니다.

그 가정은 나라를 위해서,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흡수되어야 합니다. 밥을 먹는 것도 개인의 향락을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닙니다. 사는 것도 자기 일신이나 자기 가정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에 필요한 사람을 길러내야 하고, 나라에 주체적인 사상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한 나라를 갖지 못하고 자의의 환경을 거칠 수 없는 비운의 자리에 선 사나이가 밥을 먹어 무엇하며, 옷을 입어 뭘 해요? 웃음이 있을 수 있어요, 웃음이? 나라 없는 백성은 비참한 백성입니다. 가정 없는 개인은 비참한 개인, 고아입니다. 나라 없는 사람은 지배받는 백성이 될 따름입니다. 언제나 밟히는 것입니다. 한도 끝도 없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수많은 수난의 길을 걸어왔지만 이 땅의 그 누구한테 동정을 구하고 누구와 의논을 했더냐? 항의할 곳이 없고 동정을 청할 곳이 없다구요. 고독단신입니다. 고아 중의 고아의 신세요, 비참한 자 중의 비참한, 나라 없는 개인, 나라를 가져야 할 입장에서 나라를 갖지 못한 망명자 이상 고독을 느끼는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모든 감각을 자기 인식기관을 통해서 느끼게 될 때, 다만 느끼는 감각은….

내가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늘이 안식할 수 있는 가정과 하늘이 마음대로 행사하실 수 있는 그 나라를 언제 어느 때 찾아 세울 것이냐? 나는 북한 땅에 찾아들어가 공산 치하의 감옥에서 영어의 몸이 되어서 갖은 수욕을 받던 날들을 또렷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무 년 아무 달 아무 날에 무슨 일이 있었고, 아무 날에는 무슨 일이 있었다. 너는 네 때를 맞이했다고 채찍을 들어 치지만 쳐라! 그 채찍의 7배를 가해 가지고 갚아 주겠다. 그날을 맞지 않고는 죽을 수 없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신념에 찬 주류사상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삼팔선을 넘어설 때 '넘어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다시 넘어갈수 있는 그 날을 준비하기 위해 가노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삼팔선을 넘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둣가에서 막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신세가 되더라도 그 어려움을 참은 것은 나라를 위해서…. 혹은 수많은 교단 앞에 몰려 가지고 감옥에 끌려가는 신세가 되더라도 나라를 위해서 비굴한 사나이로 밀려 나가는 그런 자리에 서지 않는 것입니다. '갔다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가려 나왔습니다, 이 천지에 고독한 사나이가 있어 그 사나이를 하늘이 동정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들도 선생님을 만나 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동정했고, 자기도 모르게 같은 고행길을 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시킨 거라구요.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섭리역사의 주류 사상

이제는 내가 말하면 들을 수 있는 무리가 생겨났고, 내가 방향을 제시하면 움직일 수 있는 무리가 생겨났지만, 이것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통일교단을 희생시켜서라도 조국 광복을 기약할 수 있는 그러한 터전을 넓혀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6천년 섭리의 중심적 뜻으로 세운 가정을 받들 수 있는 교단과 민족과 국가가 있어야 합니다. 받들 수 있는 그런 터전을 마련해 가지고, 그것이 일시에 연결될 것을 바라서 보내신 것인데, 이것이 산산조각으로 깨졌기 때문에 다시 꿰매야 할 운명이 남아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꿰매기 위해서는 선두에 서서 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드는 시간에도 그 소망의 나라와 더불어 잠을 이루어야 됩니다. 지금은 나라가 없지만, 나는 그 나라 국민의 일원으로서 그 나라를 위해서 잠이 드는 것이며, 깰 때도 그 나라를 건국하기 위한 일원으로서 잠에서 깨어나라는 것입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감각도 조국이라는 명제를 생각지 않고는 느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날이 올때까지 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는 시간이 바쁜 것입니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진 수난과 역경을 극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있게 되면, 늦게 자더라도 해결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조국의 광복이라는 것은 시간을 중심삼은 희생의 양을 가중시켜야만 찾아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내 눈물과 정성의 양을 오늘날 이 시간을 통해서 한푼이라도 보태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자고 기지개를 하면서 일어날 수 있느냐 이겁니다. 일어나서는 허리를 구부리고 '아버지여 당신이 찾아가는 내일의 안식의 보금자리요, 당신이 행사하고 싶었던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승리적 국가의 터전을 향하여 가는 외롭고 고독한 사나이의 갈 길이 이렇게 비참한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나 자신이 그러한데 하늘이 찾아 나오는 길은 더 비참한 것이 아닙니까? 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피곤하다고 마음대로 누울 수 없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나라를 위해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많아져서 피곤을 느끼는 그런 자리에서, 내가 만일 죽는 자리에 간다면 그 자리에서 남길 수 있는 하나의 소원이 무엇이냐 할 때 그것은'하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라는 말을 남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들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그것은 다 이방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로되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주류사상은 그 나라입니다. 그 나라. 그 나라를 구하는 사상이라구요. 자기 행복을 구하는 사상이 아닙니다.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나서 남편을 가졌다면 그 남편은 나라를 대표한 남편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사랑하고 나서 남편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내도 나라를 대표한 아내이기 때문에 나라를 사랑하고 나서 아내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힘을 다했고, 내가 이 이상 할 수 없다고 하는 그 자리에서 죽게 해 달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해봤으면 좋았을 걸' 하는 말을 남기고 죽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고 나서도 바쁜 것입니다. 가고 나서도 또 가야 되는 것입니다. 남이 쉬는 시간에 우리는 한걸음이라도 더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야, 쉬어라! 사탄세계야 넌 안일 도식해라. 우리는 그 나라를 위해서 간다' 이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역사의 배후에는 여러분이 모르는, 하늘과 여기 서 있는 선생님 단 둘이 맺어 나온 인연이 있습니다. 그 흐름이 역사의 방향에 배치되지 않고 섭리의 내용에 배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대해서 죽으라는 사람이 많았지만 죽지 않고 살아 남아진 것입니다. 그 나라의 소원을 아버지께서 들어 주셨기 때문에 데려가지 않고 남겨 주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보게 될 때, 자기를 구해 주고, 자기 길을 가려 주는 그런 선생님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의 비운의 역사는 기독교와 대한민국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 이 민족이 탕감을 해야 할 것이지만, 이것을 이 민족 자체가 탕감할 줄 모르니 우리들이 고이 맞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맞고 이 민족이 해방될 수 있다면 고이 맞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진 사상이 그것이 아니었 더냐? 역사시대의 수많은 기독교의 순교한 선열들이 그 뜻을 이어받아 가지고 갔던 것이 아니냐?

오늘날 우리들이 그러한 사상적인 길에 있어서, 조국광복의 도상에서 심혈을 다 기울여 공신의 칭호를 땅 위에 남기고 간다면, 그 이상의 소원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은 전통 사상을 심어 놓아야 할 때

섭리의 중심은 무엇이냐? 참부모입니다. 참부모의 가야 할 길은 개인이 가야 하고, 가정이 가야 하고, 나라가 가야 할 길을 중심삼고 소생, 장성, 완성의 길을 닦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온 여러분은 통일교회 역사 가운데는 다른 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역사라든가 지금까지의 섭리역사가 문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걸어온 과거의 개인 역사가 어떻게 되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 개인의 7년노정이 있었고, 가정의 7년노정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국가의 7년노정이 남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2차 7년노정이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3차 7년노정이 되는 것입니다. 누누이 말했지만 선생님이 여러분보다 한 단계 앞서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 통일가를 중심삼고 서 있는 여러분의 자리는 비장한 자리인 것입니다. 비장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이제 인류역사에 새로운 역사가 있다면, 이 역사만이 새로운 역사로 남아질 것입니다. 새로운 전통적 사상의 기원이 발발할 수 있다면 바로 이때밖에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땅 위에서 사는 이 기간, 이 기간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 기간이 인류에게 있어서 중대한 역사의 해결을 보아야 할 때인 것입니다.

새로운 개인적인 인격의 기준이, 혹은 가정적인 기준이, 국가적인 기준이 이렇게 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그런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전통적 사상을 심어 놓아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가정은 있지만 나라가 없습니다. 나라가 없는 가정은 어디로 흘러가겠어요? 우리 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는 것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져 가지고는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국가로 볼 때는 가인과 아벨 형태로 갈라 놓은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서는 부모를 맞이하지 못하는 것이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남북한을 통일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역사상의 그 누구, 어떠한 충신 열녀보다도 나라를 위해서 염려하는 마음이 불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여기서부터 대한민국이 통일사상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선다면…. 앞으로 세계 120개 국가에 선교본부가 서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이 이러한 사상적 내용을 알았다면 일본에 있는 한국 대사관과 일본에 있는 식구들은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일본에 있어서 아벨 나라가 생겨나는 것과 마찬가지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되면 일본 국민이 재일 교포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세계복귀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제일 어려운 곳이 한국입니다. 한 사람을 찾는 데 6천년이 걸렸습니다. 한 사람이 와서 1대를 거쳐 가정을 찾고, 그 다음에 나라와 세계에까지 연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1대에서 벌어져야 됩니다. 아담은 가정적 대표자요, 국가적 대표자요, 세계적 대표자입니다. 또한 하늘땅의 대표자입니다. 그렇지요?「예」 모든 것이 1대에서 끝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오늘날 여러분은 이제 나라를 향해 갈 수 있는 터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의 공박전을 피해서 가정을 끌고 갈 수 있고, 나라를 맞이할 수 있는 길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친척이 있고.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자의의 터전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활용해 가지고 앞으로 대한민국이 하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 나라를 이를 때까지, 온갖 지성을 다 바쳐야 할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남녀를 막론하고, 애국애족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충신 이상의 자리에 통일교회 남녀들이 서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사탄세계의 효자 이상의 자리에 나가지 않고서는 하늘나라 가정의 식구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통일교회에서는 식구라고 하지요?「예」 사탄세계의 효자 효녀 자리의 인연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그 이상이 되지 않고 서는 식구라는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밀사의 길을 가야 할 통일교인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의 소윈은 통일이지요? 그렇지요?「예」 그래서 우리가 1967년부터 본격적으로 통일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통일이라구요.

하늘이 이 땅 위에서 펴려고 했던 최초의 뜻을 다 완결지어 가지고, 세계의 주체적인 입장에 선 국가의 국민으로서 새로운 세계의 천국을 개문할 수 있는 거룩한 건국 용사들로서 책임을 다짐하기 위해서 모인 무리가 여러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이 완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설 때에는 하늘이 보장할 수 있는 개인이 확립되는 것이요, 가정의 중심으로 결정될 수 있는 것이요, 나라와 세계의 중심으로 결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승리한 아담입니다.

사탄권내에는 개인이 있고 가정이 있고 종족이 있고 민족이 있고 국가가 있고 세계가 있습니다.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것보다 나은…. 개인, 가정, 국가, 세계 이 네 가지를 사탄이 지배하지요? 그렇지요?「예」 무엇이라구? 개인, 「가정」 가정, 「나라」 나라, 「세계」 세계를 사탄이 일시에 지배하고 있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치리하고 있는 사탄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면, 즉 사탄을 이겼다 하는 사람이 되려면 일시에 개인, 가정, 국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승리의 자리에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 사상입니다.

본래의 아담 사상은 무엇이냐? 본래와 아담은 타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천사장이고 무엇이고 없는 것입니다. 아담은 개인이자 세계의 중심이지요? 개인이자 국가의 중심이지요? 개인이자 가정의 중심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문화라는 것도 아담 문화입니다, 아담 문화. 아담 문화라구요. 거기서부터 말이 시작되고 모든 인연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참부모를 중심삼은 인연의 역사도 이 세계사에 있어서 새로운 문화 창조의 모든 기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일대의 권내에서 빚어지는 인연을 중심삼고 거기에 얼마만큼 인연되었느냐 하는 문제가, 여러분이 조국광복의, 건국의 용사로서 역사적인 사명을 했느냐 못 했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는 중차대한 시기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한때가 지나가면 그럴수 있는 때는 앞에도 없었거니와 후에도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공신이 되는 날에는 천상세계에서부터 지상세계까지, 영원한 세계까지 여러분 일대의 해방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이 여러분과 선생님이 하늘을 중심삼고 인연이 맺어질 수 있는 숨가쁜 역사적인 한때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서부터 비로소 인류의 참된 역사가 벌어지는 것이요, 참된 가정과 참된 사회와 참된 민족, 참된 국가, 참된 세계가 현현하는 것입니다.

그 전통적 사상이 어느때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역사적인 소망의 세계를 미래에 두고 바라보고 나왔지만, 앞으로는 미래를 바라보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닦아진 그 사상을 중심삼고, 그것을 본따 가지고 역사는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심이 되는 거라구요.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의 중심 곳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이 나라를 중심삼고 설정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나라가 성립되면 그 나라의 문화는 영영 스쳐 지나가는 문화가 아닙니다. 그 나라의 문화는 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생생히 살아 남아지는, 문화적 원천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통일입니다, 통일. 시작과 끝이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역사적 시대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에서 만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선조들이 갖은 수난을 당해 가지고 한때 상봉하여 꽃을 피우기 위해서 여기에서 만나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때를 놓쳐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나라에 가서 어떻게 할래요? 나라를 찾아 가지고 가야 할 사람인데, 나라를 못 찾아 가지고 가게 되면 아버지 앞에 가서 얼굴을 들 수 있겠어요? 얼굴을 들겠어요?「못 듭니다」 그 나라의 백성이 못 되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던 것도 나라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치리할 수 있는 나라를 찾기 위해서 왔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합니다.

가정을 이끌고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나라 가운데에 있는 가정으로서 저나라에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천국을 땅 위에 건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땅 위에서 그 나라를 찾아 가지고 그 나라의 중심과 하나되어, 하늘나라에서 하늘이 바라던 그 소망의 기준을 갖추어 가지고 돌아가야만 아버지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나라가 있어요? 그렇지 못한 것을 생각할 때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죽으면 어디로 갈 것이냐는 겁니다. 가서 그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을 어떻게 면할 것이냐? 내 생명의 연한이라는 것은 제한되어 있는데, 그 기간내에 하려고 하니 얼마나 바빠요? 거기에다 악한 사탄의 환경은 우리를 반대하고, 원수들은 우리의 길을 막지 않느냐 이거예요. 이것을 뚫고 나가려니 언제나 밀사와 같은 행각의 노정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식구들이 가야 할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축복가정이 가야 할 길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가인 아벨 문제를 중심삼고 기성교회를 포섭해야 되고, 기성교회와 하나되어 한국의 갈 길을 가려 주어야 되고, 한국과 하나되어 북한을 흡수시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국가 중의 아담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심) 이렇게 아담 국가로 등장해 가지고 해와 국가와 천사장 국가를 묶어서 아시아의 주류적 사조를 세워 가지고 세계로 뻗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천사장 국가도 소생, 장성, 완성이 있습니다. 소생이 중국이고, 장성이 미국이며 완성이 독일입니다. 나중에 이 독일도 공산국가로부터 해방시켜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위기대 형태를 거쳐 가지고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이 뭐냐 하면 우익과 좌익입니다.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시며) 이것이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도 갈라지고 독일도 갈라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한국이 남북으로 갈라진 것과 마찬가지로 천사장 국가도 갈라져야 된다구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에 있어서 천사장 국가는 중국인데 중국도 갈라졌다구요. 세계는 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갈라졌습니다. 그렇지요? 이것이 플러스고…. 이렇게 갈라졌던 것이 합쳐 져야 됩니다.

독일도 동독과 서독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공산당이 지금 민주세계를 사상적으로 삼켜 버릴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 서독 교류문제를 제시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민주세계를 삼킬 줄 알고 있다구요. 그렇지만 잘못 생각했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있다구요, 통일교회가.

모든 것이 사위기대 복귀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중국도 갈라졌고 미국도 갈라졌고 독일도 갈라졌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갈라졌다구요, 한국도. 그렇잖아요? 한국도 가인적 아담, 아벨적 아담으로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통일문제를 개재시켜 가지고 아벨을 중심삼고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놀음을 하지 않고는 평화의 세계는 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문제는 세계의 정치가 해결될 수 있는 때까지 통일을 기할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결론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고,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입장이 얼마나 막중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이 수고하시면서 지금까지 나온 것은 가정을 찾고자 함이었고, 그렇게 해서 통일가의 가정을 만들었으니 이 가정이 가야 할 길은 나라를 찾기 위해서 나선 걸음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이 일을 위해 삼천리 방방곡곡에 깃발을 꽂고 모병운동을 하는 기간이 우리의 3년 전도기간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예」 이러한 사명을 다짐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이제 총단결해야 되겠습니다.

민족과 교회를 위해 하나되어 기도하고 전도하라

그래서 이번 선생님이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여러분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삼천만 민족 앞에 있어서 그야말로 책임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교회장들과 전도대원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전국적인 붐을 일으켜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가두 선전을 해야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노방전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 놀음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제는 개인과 가정을 찾아야 되는 때가 아니라 사회 전체 앞에 호소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긴박한 정세가 눈앞에 왔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도약할 수 있는 환경의 터전을 가려 가면서, 전국민 앞에 우리의 깃발을 꽂아 놓고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될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번 선생님이 없는 기간에 여러분이 첫째 뭘해야 하느냐 하면 여러분이 하나되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나라 이 민족을 대하여 기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없기 때문에 여러분이 대신 지키는 의미에서 정성을 들여 앞으로 남북이 통일될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내적으로 외적으로 결속하고, 하늘과 더불어 다짐하는 기도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둘째는 여러분이 남한 각지 어떤 곳에서도 통일교회를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선전을 해야 되겠습니다. 선전을 못 하게 될 때는 통일교회가 사명을 못 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이 짧은 기간내에 선전을 해야 되겠습니다. 원래는 각 종단들과 힘을 합하여 그 일을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배가의 십자가를 지고 이 놀음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민족이 갈 방향을 제시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만이라도 이 놀음을 하지 않으면 갈 길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비운의 운명을 가리기 위해서는 온갖 지성을 다하여 여러분의 일신에 고달픔이 있더라도 그것을 넘어서서 책임을 다해 주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알겠어요?「예」

그 다음에는 지금 일선에 나가 있는 전도대원들과 교회장이 하나 안 되어 있다고요. 하나되지 않은 사이에 뭐가 있거든 여러분이 찾아가서 전부 다 풀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기도하고 나가서 활동하고 부딪치면서, 될 수 있으면 사이가 안 좋은 사람끼리, 옛날에는 원수였고 혹은 반대하던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서 같이 활동하면서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일을 놓고 하나가 되고, 나라를 놓고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끼리 원수가 있거든 다 풀어라 이겁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하나되어 삼천리 반도를 대해서 여러분이 정성을 모아 가지고 선포를 하게 되면, 하늘이 반드시 우리가 가는 길 앞에서 협조할 수 있는 길이 나올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이 보는 관이니만큼, 그러한 마음을 갖고 온갖 정성을 나라 앞에 귀결시켜 주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드리는 바예요. 알겠지요?「예」

섭리의 중심은 가정이지만 그 가정이 조국을 맞지 않고서는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상천국에서 생활하다가 가야 천상천국에 간다고 했지요?「예」 그런데 지금 지상에 천국이 생겨났어요?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 가정에서는 마음의 천국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은 여기에서 살 것이 아니라 저나라에 가서 우리가 소원하는 조국을 찾아서 살아야 될 것을 준비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마음의 조국과 더불어 죽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영계에 가서 다시 수속을 밟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내가 가고 오는 것도 그 나라를 찾기 위한, 조국 광복을 위한 건국의 공신이 되기 위해서 그러한 사명을 짊어지고, 혹은 하늘의 밀사로서 지령을 받아 오늘날 악한 세상에 와서 이 놀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여러분이 앞으로 찾아오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 위신과 체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부디 이 기간에 그러한 심정을 갖추어 교회를 지키고 나라를 지켜 주기를 바라는 것이 선생님의 소원인 것을 알아서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섭리역사의 중심과 조국'이라는 제목을 갖고 말한 내용이 여기에 귀결 되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책임을 감당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내리세요.

​기 도

​아버지, 저희는 하늘의 포탄이 되어야겠습니다. 또한 저희는 하늘이 달릴 수 있는 길이 되어야 되겠사오니, 그러한 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라가 원하는 길이라면 무엇이든지 희생하고 무엇이든지 바치면서도 그 나라에 대해 환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하늘을 향하여 바칠 수 있는 생애를 남기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 이 자리를 그리워하면서 눈물짓고 있는 식구들도 있는 줄로 알고 있사오니, 당신의 은사로써 그들을 지켜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섭리역사의 중심을 통하여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서 하나의 나라의 고개를 어떻게 넘어야 되겠습니까? 아버지, 이것을 위해서 저희는 결속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또 다짐해야 되겠사옵니다.

수치가 문제가 아니옵니다. 자기 일신이 쓰러지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쓰러지더라도 나라 안에서 쓰러지는 무리가 되어야겠사옵고, 망하더라도 나라를 남기고 망하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통일가의 전통적인 사상인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하여 굳게 그 내심에 결의 하고 하늘 앞에 다짐할 수 있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보람 있는 역사적인 한때에 맞은 하늘 부모와 더불어, 하늘나라와 더불어 같이 살다가 같이 갈 수 있는 승리의 무리들로서 아버지께서 자랑 하실 수 있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통일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했습니다. 나라를 찾기 위해서는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결의 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의 일체 생활노정과 생애노정은 이것을 기본으로 하여 그 나라와 더불어 살고, 그 나라의 기준과 더불어 화합하 고, 그 나라의 기준과 더불어 활동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3일간 당신의 은사 가운데서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예수님의 맺혔던 전체의 한을 나라를 통하여 세계를 통하여 풀어 드릴 수 있는 지성의 무리들이 되고, 하늘의 공신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제 다시 만날 때까지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고, 축복의 손길을 거두시지 마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교회장들이 나가서 전도를 하고 있는데, 전도가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문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은 만나고 있는데 그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또 내가 말은 하고 있는데 듣는 사람이 감동을 받지 못하는 이런 문제가 여러분에게 무엇보다도 고달픈 문제일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탄권 사람, 중간권 사람, 하늘권 사람

​타락한 세계를 보면 사탄세계권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탄세계권. 초심자들은 그걸 잘 모르겠지만 사탄세계권에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탄권과 하늘권의 중간권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권도 아니요 중간권도 아닌 하늘권내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체로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을 중심삼고 보면 몸뚱이가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여기서 마음은 몸뚱이의 것도 아니요, 영의 것도 아닙니다. 중간이라구요. 공간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육적 사람이 있고, 마음적 사람이 있고, 그 다음에는 영적 사람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사탄세계의 편에 있는 사람이 있고, 그 다음에는 중간층에 있는 사람이 있고, 그 다음에는 하늘편에 있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척 대해 좋은 느낌이 드는 이유

사람들을 보게 되면 개개의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척 대하면 공연히 좋습니다. 그 사람을 처음 대하는데도 마음이 끌려간다는 거예요. 그거 왜 그러냐? 그것은 그 사람이 자기보다도 심령 기준이 높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선조들이 닦아 준 기준보다도 높은 기준에 있게 될 때는 자연히 무엇인지 모르게 척 대하면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면, 그 사람과 내가 인연이 맺어지게 된다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덕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좋고 나쁘다는 것은 어디서 좌우되느냐 하면 그와 관계를 맺어 내가 손해를 보느냐, 이익을 보느냐 하는 문제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나쁜 것은 다 싫어하고 좋은 것은 다 좋아하는 거라구요.

또 사람들 가운데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구요. 그 다음에는 대하면 괜히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대하면 좋은 사람이 있고,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사람이 있고, 무엇인지 모르게 그냥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느낌이 드는 것은 상대가 무슨 전파와 같은 파장으로써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분석을 잘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을 척 보아 좋다는 것은, 그것은 원리적으로 보면 벌써 그가 주체가 되어 가지고 나는 대상적 입장에서 그와 주고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중심 삼고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완전한 상대기준을 세워 가지고 완전한 상대기대를 이루어서 완전히 주고받으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어떠한 사람을 대해 가지고 좋다 하는 것은 내가 원하지 않는 환경에 있을지라도 그 무엇인지 모르게 그에게 아니 줄래야 아니 줄 수 없고, 그로부터 아니 받을래야 아니 받을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됐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강한 지남석과 철이 있으면, 철이 지남석의 영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안 그래요? 영향을 받게 되면 반드시 철 자체가 끌려가는 것입니다. 끌려간다는 거예요. 그와 같은 작용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그 둘 사이에는 무엇인지 모르게 오가는 인연이 맺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고받는 그 인연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은 거기에 임재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 주고받는 힘에 해당하는 만큼 운동이 벌어지면 반드시 중심을 그려 가면서 운동이 벌어지게 됩니다. 주고받게 되면 운동이 벌어져요. 운동이 벌어지면 반드시 중심을 추구하면서 운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심이 빨리 결정되면 그것이 오래 계속되지만 오랫동안 중심이 결정되지 않고 주고받는 것보다 늦게 중심이 결정되면 빨리 쓰러지는 거라구요.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이렇게 주고받으면 반드시 하나님이 임한다, 중심이 결정된다는 것을 우리가 원리를 배워 알고 있기 때문에, 척 대하면 벌써 거기서부터 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반드시 인연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서로 처음 만났지만, 여러분은 지금 박씨라든가, 김씨라든가, 최씨라든가, 조씨라든가, 문씨라든가 각 성씨들로 헤쳐져 있지만, 여러분 선조 끼리끼리는 인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의 선조, 할아버지라든가 할머니들을 조사해 보면, 조씨 할머니가 있었는가 하면 김씨 할머니가 있었고, 이렇게 시집왔던 할머니들을 전부 다 살펴보면, 수많은 성씨가 접근되었다가 떨어지고 또 접근되었다가 떨어졌다는 거예요. 최씨 할머니가 왔다가 돌아가고 또 김씨 할머니가 왔다가 돌아가고, 이렇게 선조들을 쭉 살펴 올라가 보면, 한 할아버지로부터 지금의 아버지대까지 내려오는 데에는 수많은 씨족들이 붙었다떨어졌다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세상 살다가는 가고, 또 한 세상 살다가는 가고,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내려오는데, 비례로 보면 자기의 종족이나 씨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떠한 특정한 씨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할머니들 가운데 어떤 성씨를 가진 할머니들이 많으냐? 김씨가 많으냐, 박씨가 많으냐, 최씨가 많으냐, 조씨가 많으냐?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인연된 성씨가 있습니다, 안 그렇겠어요? 인연된 성씨가 많은 것입니다. 그것을 1, 2, 3, 4, 5… 이렇게 등수로 매기면 나를 중심삼고 수십 등의 등차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한 몸이 이 시대에 아무개의 아들딸로 태어났지만, '나' 라는 것은 이 시대에 평면적으로만 태어난 것이 아니라구요. 여러분 자체에는 수많은 선조들, 즉 수많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피가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한 4백조가 되는 여러분의 세포는 여러분 선조들의 세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있어서 여러분이 어떠한 성씨의 소성을,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의 소성을 많이 받고 태어났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보더라도 그 할아버지가 조씨라면 순 조씨 계통의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 할아버지의 어머니가 박씨라면 그 할아버지에게는 박씨의 소성을 닮아 난 부분도 있다는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이렇게 지그재그로 섞여 가지고 전부 종합되어 가지고, 오늘의 '나'라는 사람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내가 어떤 사람을 대했는데, 박씨면 박씨를 처음 만났는데도 괜히 좋다…. 그거 왜 괜히 좋은가 하면, 자기 선조들 중에 박씨 할머니가 많았기 때문이예요. 박씨 혈통의 인연을 많이 갖게 되면 자연히 좋아진다는 거예요. 그러한 인연이 전부 다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와 맞지 않은 사람을 전도하려면 탕감을 치러야

또 어떤 사람을 척 대해 가지고 무엇인지 모르게 나쁘다 하는 것은, 선조들 사이에서 원수가 되어, 서로 상충이 벌어져 가지고 피해를 입힌 그런 인연의 상대적 존재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중간적 입장이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내가 노력하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하고 정성을 들이고, 주체적 역할을 하면 그 사람은 끌려온다는 것입니다. 끌려와 가지고 어느 기준까지 넘어가게 되면 동화되어 가지고 자기와 같은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와 맞지 않는 사람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거기에는 탕감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거 알겠어요? 자기와 맞지 않는 사람을 전도하는 데는 그냥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반대되는 거기에 해당하는 것만큼, 맞지 않는 기준에 해당하는 것만큼 내가 선한 입장에서 대가를 치러 줘야 됩니다. 갚아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눈으로 보게 된다면 평면 세계에 같이 살고 있지만, 영적으로나 하늘적으로 보게 된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산과 마찬가지입니다. 산맥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가다 이렇게 가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해서 저렇게 가고, 또 이렇게 해서 내려가는 사람이 있고, 이렇게 해서 올라가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렇게 해서 딱 금을 그어 놓으면, 중앙선을 그어 놓으면 이렇게 된다는 거라구요.

수많은 인간상을 그려 보면, 여러분은 '그 사람이나 나나 똑같지' 할지 모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똑같지 않습니다. 나는 이것을 좋아하는데 저 사람은 다른 것을 좋아하거든요. 서로 다르다는 거예요. 느낌도 다 다르다는 거예요. 이렇게 좋고 나쁘다는 느낌은 전부 역사적 배경과 인연 되어 가지고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육상으로 말하면 릴레이 선수들이 있지요? 그 릴레이 선수들이 한 열명 뛰게 된다면 전부 다 잘 뛰어야 일등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다섯은 잘 뛰었는데 다른 다섯은 반대로 못 뛰었다 하게 될 때는 결국은 떨어지는 거라구요. 평균적으로 잘 뛰는 사람들의 팀과, 잘 뛰는 사람과 못 뛰는 사람이 섞여 있는 팀이 경쟁하면 평균적으로 잘 뛰는 사람들의 팀이 앞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의 선조들을 중심삼고 보게 되어도 여러분이 가는 길은 릴레이 바통을 이어받아 가지고 뛰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구요.

뛰어가는 사람 가운데도 고개를 올라가는 사람이 있고, 내려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잘 뛰는 사람이라도 고개를 올라갈 때는 모든 실력을 동원하고 거기에 주력해야 됩니다. 내려갈 때는 좀 쉽다는 거예요. 고생하면서 뛰어 올라갈 때는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동정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도 내려갈 때는 동정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인류는 서로 연결돼 있다

이와 같이 천태만상의 사연들이 엇갈려 있지만, 그것을 그려 보면 이와 같이 되어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 이렇게 횡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대한민국 사람 중에서 어떠한 사람의 선조들을 쭉 살펴 올라가면 거기에 연결되지 않았던 성씨의 사람들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동포끼리는 사랑을 하게 마련입니다. 알겠어요?

왜 다른 나라 사람보다도 자기 동포를 더 사랑하게 되느냐? 자기 몸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몸은 세포가 연결되어 가지고 이루어졌기 때문에 세포 하나도 '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손가락이 막생겼다 하더라도 미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생김 생김은 막생겼지만 사랑하려고 하고 보호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좋고 나쁜 것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사람은 전부 다 자기에게 가까운 것은 사랑하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자기 몸을 중심삼고 사랑하게 되면 자기가 입던 옷도 사랑하게 됩니다. 그 다음엔 자기가 살던 집도 남 보기에는 모양이 형편없고 마굿간같이 생겼지만 사랑하게 마련이라구요. 자기에게 가까울수록 사랑의 감도가 강해지고 멀어질수록 사랑의 감도가 약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같은 민족과 다른 민족이 뭐가 다르냐 할 때, 같은 민족은 선조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구요. 세상에도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원수가 되어 있더라도 친척이나, 혹은 사돈이 되게 되면 용서해 주고 가까와진다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무엇인지 모르게 인연이 엮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자기 자체에는 아무 인연이 없는 것 같지만 자고로 엮어 온 배후를 따져 보게 되면 반드시 엮어진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지남석으로 말하면 지남석 성분이 없는 쇠보다도 지남석 성분이 있는 쇠는 당기는 힘이 더 강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 인연의 강도에 따라서 천태만상으로 느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족끼리 사랑하고 싶은 것은 엮어진 역사적 인연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버지 어머니가 왜 자식을 사랑하느냐? 아들은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버지 어머니의 성품을 전부 다 빼낸다면 그 아들의 성품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혹은 딸이 있으면 그 딸이 아버지 어머니를 통해서 태어났지 아버지 어머니가 없는 데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성품을 바탕으로 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것을 전부 다 거두어들인다 하게 되면 그 딸은 아무 성품도, 아무 인연도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것은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의 결합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어머니 아버지의 배후에 엮어진 인연을 이어받은 거라구요.

예를 들어 말하면 나뭇가지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큰 나무라도 동쪽으로 조그마한 가지가 하나 뻗었으면, 그 가지 하나에도 그 수많은 나뭇가지에 왕래하던 모든 영양소가 어느 한때에는 흘러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영양소가 가지에 흘러 지나가지 않으면, 즉 흘러 지나갈 수 없게 된다면 그 가지는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선조들은 쭉 보게 되면 하나의 나무와 같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지가 어떠한 성품의 소성을 타고났느냐? 한 나무의 가지라도 성품이 다 같지 않다는 거라구요. 동쪽, 서쪽, 남쪽, 각 방향에 있는 가지가 다 같아 보이지만, 거기에는 태양을 흡수하는 면이라든가 진액을 흡수하는 면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영양소가 쭉 같이 가지만, 똑같이 가는 것이 아니라구요. 영양소가 많이 가는 곳이 있고, 적게 가는 곳이 있습니다. 같은 가지의 입장이라도 자기 생김 생김의 여하에 따라서 영양소를 흡수하는 그 정도가 전부 다 다르다는 거라구요. 오늘날의 인간도 이와 같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파문(波紋)과 같은 심정의 인연

여러분들도 이러한 세상의 특정한 개인인데, 어떠한 사람을 대해 '좋다' 하는 거기에는 벌써 그와 인연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인연이 되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인연이 없으면 관계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전도가 되었다 하면 벌써 관계가 맺어진 것입니다. 관계가 맺어지기 전에는 반드시 인연이 있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인연을 많이 말하잖아요? 그거 일리가 있는 말이라구요. 벌써 인연이 있으면 싫지 않고 좋다는 거예요.

여자나 남자나 시집 장가갈 때에 어떠한 사람을 보는 것도 그렇습니다. 남자들이 한 여자를 두고 볼 때에, 이쪽에 있는 한 남자가 보는 거하고 저쪽에 있는 한 남자가 보는 거하고 다르다는 것입니다. 또, 여자들도 이쪽의 한 여자가 보는 거하고 저쪽의 한 여자가 보는 것이 같은 사람을 두고 보더라도 전부 다르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전부 시집 장가가게 마련이라구요. 어떠한 사람을 척 봤는데, 자기 눈에는 그 사람 인상이 아주 기분이 나쁜데, 저 사람은 그 사람 아니면 죽겠다고 하는 거라구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부 다 과거에 인연이 엮어져 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좋게도 보이고 나쁘게도 보이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인간의 상이 자기 앞에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전도자, 혹은 공적인 책임자는 어떠한 자리에 서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늘이라는 것은 최고의 자리를 말합니다. 하늘은 최고의 자리예요. 예수님께서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부모 형제나 그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최고를 말씀하신 거라구요. 이러한 최고의 자리에서 사랑하려고 하고 인연맺으려고 하는 하늘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이 뭇사람 앞에 하나님을 소개하려고 나서게 될 때에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먼저 여러분들이 사람을 척 대하게 될 때, 나빠 가지고는 안 됩니다. 나빠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 사람이 뭐 입은 것도 수수하게 입었고, 특별히 잘난 것도 아니고 특별히 못난 것도 아니고 수수하게 생겼지만, 척 대하게 될 때 무엇인지 모르게 '우리 누나 같다'는 기분이 날 때가 있고, 그가 옆으로 쓱 돌아서는 걸 보면 '언젠가 본 사람이다' 하는 기분을 느낄 때가 가끔 있을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있다구요. 우연히 처음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언젠가 본사람이다. 야, 저 사람 언젠가 봤는데, 생각이 안 나' 하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본 적이 없는데 본 것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인연이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부흥 강사라든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들을 척 보게 되면, 누구와 같으냐 하면 자기와 제일 가까운 할아버지 같다는 것입니다. 심정적으로 제일 가까운 사람을 반드시 연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 할아버지 같다. 아버지 같다. 오빠 같다. 삼촌 같다, 동생 같다는 거예요. 모습에서나 그 무엇에서나 정서적으로 인연된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연상될 수 있는 소성이 풍부한 사람이 부흥 강사로 대중 앞에 서면 감동을 주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를 중심삼고 볼 때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데 아버지가 슬픈 자리에 나가면 어머니가 기쁘겠어요? 슬퍼지는 것입니다. 또, 어머니가 슬픈 자리에 나가게 되면 아버지가 '그 여자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 있어' 그래요? 어머니가 슬퍼지면 아버지도 따라서 슬퍼지는 거라구요. 또, 어머니 아버지가 슬퍼하면 아들딸은 기뻐하나요? 슬퍼하지 말래도 슬퍼하는 거라구요.

또, 자기 집안이 슬퍼하게 되면 삼촌, 사촌, 오촌, 육촌. 칠촌, 팔촌, 구촌, 십촌, 이렇게 촌수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슬픔의 감도가 점점 약해지나요. 강해지나요?「약해집니다」 알기는 아는구만요. 약해진다는 거예요. 그 강도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강해지나요, 약해지나요?「강해집니다」 이것이 뭐냐 하면, 잔잔한 못에 큰 바위를 꽝 던졌을 때 파문이 번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맨 처음의 옆에는 '화악' 하고 파문이 크게 일어나지만, 그것이 흠썩흠썩해 가지고 파문이 점점점 작아져요. 커져요? 멀어질수록 커져요, 작아져요?「작아집니다」 점점 작아져 가지고 쓰쓰스스스 하며 파문이 멎어지는 거예요. 딱 그와 같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심정적 세계의 인연이라는 것은 그 파문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멀면 멀수록 자기와 동화될 수 있는 감도, 감각심이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

그렇기 때문에 대중을 감동시키는 웅변가라든가, 이런 사람들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나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건 본래에 타고나는 뭐가 있다는 거예요. 타고나는 거라구요. 말을 잘하는 것도 누구나 잘하나요? 여러분들도 전부 말을 잘하고 싶지요? 그런 사람들과 같이 말을 잘하고 싶고, 감동을 주고 싶어서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녹음해 배워 가지고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소리를 내지만, 감동받는 데는 천태만상으로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것은 왜 그러냐? 그건 벌써 인연적으로 가깝지 않다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사랑의 모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정서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은 사랑의 모체입니다. 사랑의 모체라는 겁니다. 알겠어요? 여기에서 부모의 사랑이 우러나왔고, 자녀의 사랑이 우러나왔고, 형제의 사랑이 우러나왔고, 친척의 사랑, 민족의 사랑이 우러나왔습니다. 사랑의 갈래라는 것은 원줄기에서 뻗어 나가는 가지나 잎과 같이, 물결이 파문이 되어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먼 데로 가면 갈수록 점점 감도의 차이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된다면 무엇이 달라지느냐 하면, 여러분의 친척 중에 심정적으로 제일 가까운 자리에 선 사람과 가까와지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이 같이하게 되면 벌써 그 무엇인지 모르게 끌린다는 거라구요.

사랑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자기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제일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을 자기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더 사랑하는 인연의 자리에 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만 대하게 되면 마음이 괜히 홀싹 빠져 나간다는 거예요, 마음이. 빠졌다는 말이 있지요? 세상에서 그러잖아요? 무슨 뭐 색씨한테 빠졌다는 말. 그래도 여자가 남자한테 빠졌다는 얘기는 안 하지요? 아무래도 여자가 낮기는 낮은 모양이예요. 낮아야 빠지지 높으면 빠지나요? (웃음) 그런 말을 보더라도 여자가 낮은 모양이라구요.

일생에서 한번밖에 없는 사춘기의 특성

여러분, 사춘기 시대가 왜 좋으냐? 사춘기 시대가 좋은 때입니다. 시집 장가가기 전인 처녀 총각 때가 제일 좋은 때라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아저씨들, 그래요? 사춘기 시대가 제일 좋다는 거라구요. 아줌마들도 그랬어요?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해도 할 수 없다는 거라구요.

그때는 어떤 때냐 하면 말이예요, 여러분 자신이 파장을 주는 때라구요. 자기가 자꾸 먼데에 파장을 주고, 먼데 있는 것과 인연을 맺으려고 범위를 넓히는 때입니다. 알겠어요? 주고받는 길이 넓어지게 되면 기뻐지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일하더라도 조그마한 단간방에서 일하는 것보다도 큰 회사에서 주고받는 것이 커지면 커질수록, 관리는 어렵지만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춘기 시대가 어떤 때냐 하면, 모든 일에 있어서 자기를 주체로 해 가지고 '내가 제일이다' 하는 때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다구요.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라톤 경기장에 가 가지고 늠름하고 멋지게 일등으로 골인하는 선수를 보면, 그 사람이 아닌 자기가 일등으로 골인한 것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일등을 한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슨 운동을 보더라도 전부 다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때가 사춘기 때인 것입니다. 그때는 자기 나름대로 문학하는 사람 아닌 사람이 없고, 시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 가지고 콧노래도 부르고, 귓노래도 부르고, 눈노래도 부르고, 입노래도 부르고, 팔노래도 부르고, 몸뚱이 노래도 부르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돌아다니는 거예요. 눈도 가만히 있지 않고, 귀도 가만히 있지 않고, 입도 가만히 있지 않고, 손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렇게 전체를 움직여 가지고 자기와 인연맺으려고 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인간에 있어서 이러한 심정은 한번밖에 없습니다. 늙어 죽도록 그러한 심정이 있으면 좋겠는데 왜 그때만 지나면 싹 가셔 버리고 일생 동안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구요. 내 한 생애에 있어서 사춘기 시대와 같은 결과 시대가 있어야 되겠는데, 그 결과 시대가 어느때냐? 이것이 문제라구요. 그 결과 시대가 바로 영적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 가게 되면 사춘기 시대와 같이 미남 미녀의 모습을 해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좋지요? 그러면 좋겠지요? 거기는 얼굴이 밉지 않고 언제나 홍조를 띠는 청소년 시절입니다. 언제나 사춘기 시대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춘기 때는 쓸쓸한 가을 날, 감나무 가지 끝에서 나뭇잎 하나가 한들한들하고 있다가 바람이 쌩 불어서 그 잎이 덜렁 떨어지면 그것을 보고도 헤헤하고 웃는 때입니다. 그것을 보게 되면 섭섭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심각하게 생각할 때는 그것은 기가 막힌 장면이 아니예요? 잎이 다 떨어지고 그 마지막으로 남은 한 잎마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웃는다는 거예요. 인간에 비교한다면 사람들이 다 죽고 한 사람 밖에 안 남았는데 그 한 사람마저 쓰러지는 것을 보고 헤헤 웃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떨어진 잎이 바람에 굴러가면 따라가면서 히히히 웃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에 동화되고 싶은 때요, 모든 것을 주관하고 싶은 때가 사춘기인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에 동화되고,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이 뭐냐? 여러분의 세포를 보게 된다면,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감정적 요소가 각각 달랐던 것이 한번 그 인연을 따라 가지고 줄수 있는 운동을 해보는 때가 사춘기라는 것입니다. 줄뿐만이 아니라 받아 보겠다는 작용을 할 수 있는 때가 사춘기이기 때문에 사춘기가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절과 같은 것이 인간 세계에서는 봄입니다. 인간세계에서는 봄 동산이라구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체험을 한 인간으로서 살아 나가는 데 있어서는 장가를 가고 시집을 가서 재미있게 산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에서 생각하게 되면, 그 젊은 소년 소녀시대를 언제나 동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자유스러운 거예요. 그러면서 책임을 지지 않는 때라구요. 책임을 져 가지고 엄벙덤벙하면 이것도 저것도 안 되지만, 그때는 책임을 지지 않는 때입니다. 주인이 결정되지 않고 자기 자리가 결정되지 않은 때라는 것입니다. 그때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춘기에 자리를 잘못 선택하면 일생을 망칠 수 있는 것이요, 잘 선택하면 일생을 흥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가 벌어지는 거예요. 또한 후손이 사춘기 시대에서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선조가 닦아 놓은 모든 공적을 일시에 왕창 꺾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문가의 아들딸들이 결혼할 때는 자기들끼리 결혼하지 않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명문가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자기 자식들에게 마음대로 상대를 취하면 안 된다고 지금까지 주장해 나오고 있는데, 그거 일리가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면, 까마귀란 새도 있고 백로란 새도 있는데, 종자로 보게 되면 백로 같은 종자가 까마귀에게 품겨 산다면 그거 되겠어요? 거기서 새끼를 낳으면 얼룩덜룩한 게 나오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걸 가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하늘나라의 초소

그것을 가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것을 가릴 수 있는 하나의 비법이 뭐냐? 양심적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양심적, 바른쪽에는 선이, 왼쪽에는 악한 사탄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 양심적이냐' 하고 묻지요? 그 자리라는 것은, 양심적이라는 것은 언제나 수평입니다. 수평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양심은 찌그러지지 않았어요. 본래 하나님이 주신 본성이라는 것은 이지러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무슨 일을 할 때에 양심적이냐, 비양심적이냐, 혹은 선한 입장이냐 하는 이 세 갈래 길 가운데 한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결정되는 것입니다. 양심적이라 할 때는 공통성을 표준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양심을 찌그러졌다고 그래요? 바르다고 그러지요? 그 바른 것이 공통성이라구요. 그리고 자기가 사는 환경은 공통적으로 바르다고 말하지만 전부 다 천태만상이라는 것입니다. 천태만상이라구요. 이 천태만상이 외적으로 춤을 추게 되면 내 양심의 자리도 천태만상으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양심은 공통적으로 바른 자리에 있지만, 그 양심을 지니고 사는 인간의 생활환경이라는 것은 천태만상이라구요.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외부의 움직임에 양심이 따라가게 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외부의 환경이 변하더라도 양심을 중심삼고 조정해 가지고 양심에 상대될 수 있게끔 그 환경을 가려 가야만 선한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환경에 있어서 환경을 가리지 못하고 환경이 놀아나는 대로 엄벙덤벙하는 사람들은 자연히 악한 권내에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양심을 중심삼고 무엇이든지 문제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양심은 뭐냐 하면 하늘나라의 초소입니다. 즉, 천국의 초소요, 지옥의 초소가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초소가 되느냐, 지옥의 초소가 되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 개체를 중심삼고 사는 환경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엇이든지 자기가 행동했다 하면 벌써 그것이 선한 것이냐, 악한 것이냐 둘 중의 하나를 결정하는 거예요. 언제나 그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벌써 생각을 했다 할 때는 하늘편적 생각이냐, 사탄편적 생각이냐, 그렇지 않으면 하늘편도 아니요 사탄편도 아닌 중간적인 생각이냐, 이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말을 한마디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야' 하고 누구를 불렀을 때 그 말의 뿌리를 생각해 보면, 그것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불렀느냐, 그 사람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서 불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그 사람을 이용하려고 불렀으면 나로 말미암아 악이 출발되는 것이요, 그 사람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서 불렀으면 선이 찾아드는 것입니다.

공적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는 하나님이 찾아드는 것이요, 사적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는 사탄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남이 알지 못하는 공적인 일을 했으면 자랑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 전체가 좋아할 수 있는 남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 막 높아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반대로 쑥스러운 일을 하게 되면 막 이렇게 쪼그라들어간다구요. 그렇지요? 쪼그라드는 것은 없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막 자랑하고 싶은 것은 더 흥하는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영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좋으면 좋은 것에 박자를 맞추게 되어 있고, 나쁘면 나쁜 것에 박자를 맞추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쁘면 움츠러드는 것입니다. 위험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험한데 다리를 벌려라 손을 벌려라 이래요? 위험하면 사정없이 쪼그라드는 것입니다. 고슴도치 같은 것을 보더라도 위험할 때 쓱 쪼그라든다고요. 몸뚱이는 작아지고 가시는 돋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상징하는 거예요.

해방이라는 것은 확 풀어 놓은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볼 때, 봄절기가 왜 좋으냐? 봄절기는 매 놓는 때가 아니고 풀어 놓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상응적인 관계를 가지고 천지만상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나쁜 길을 가는 사람이 나발을 불고 다녀요? 도둑질하러 가는 사람이 도둑질하러 간다고 나발을 불고 다녀요? 전부 다 숨어서 가는 것입니다. 만일 자기와 인연이 가까운 사람의 것을 훔치러 간다면 땅에 딱 붙어간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의 사춘기 시절과 같은 마음, 그 마음은 좋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울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없다구요. 봄철이 되면 씀바귀도 꽃을 피우지요, 그렇지요? 진달래꽃, 벚꽃, 앵두꽃, 무슨 꽃 다 피니까 씀바귀도 '너희들만 꽃이 있는 줄 알아? 나도 나대로의 꽃이 있지' 하며 꽃을 피우지요. 그처럼 사람도 누구나 사춘기 시절에는 꽃을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꽃이 좋은가, 나쁜가? 종자가 어떻든 지간에 꽃은 좋은 거라구요. 꽃도 상대되는 꽃끼리 상대성을 띠고 주고 받아 가지고 번식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꼭 마찬가지라구요.

이와 같이 사춘기에는 우리 인간의 모든 세포의 소성이 심정적, 즉 정서적인 분야를 중심삼고 우주와 만물과 인간과 더불어, 전부 다 한번 대운동경기를 해 가지고 자기에게 제일 좋은 것을 찾아 본다는 것입니다. 사춘기 시절이 그때라는 것입니다. 그때는 경치 좋은 데 가게 되면 해가 지더라도 거기에 앉아 가지고는 뭘 생각하고, 혹은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시를 쓰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런 경지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경지를 다 좋아합니다. 지금 나이 많은 아주머니나 아저씨들도 사춘기 시절과 같은 환경에 들어 가기를 누구든지 다 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여러분들은 생각해야 된다는 거예요. 하늘은 언제나 봄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봄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겨울날에도 꽃을 피울 수 있고, 여름날에도 꽃을 피울 수 있고, 가을날에도 꽃을 피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사랑을 받고, 하늘의 사랑의 인연을 맺고자 하는 여러분이 문제인 것입니다. 남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여러분 자신이 문제되는 거예요. 여러분 자신이 문제가 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마음의 꽃을 피워라, 그 다음에는 몸의 꽃을 피워라 이거예요. 알겠어요? 무엇을 중심삼고 하느냐?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욕망 때문에가 아니라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러니 지극히 공적인 입장에서라는 것입니다.

나쁜 사람을 대하는 방법

여러분에게는 언제나 어떠한 기분이 필요하냐 하면, 자기가 재판관이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떡 대하게 되면 좋고 나쁜 것을 가리라는 것입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는 데 있어서 나쁜 것, 즉 나쁜 사람을 구해 주려면 쳐야 되는데, 치는 데는 뒤에다가 좋은 것을 갖다 놓고 치라는 거라구요. 그래야 맞고 도망가더라도 선한 것을, 좋은 것을 가지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런 작전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대해서 책망하거나 미워하더라도 척 보고 그냥 밉다는 표정을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태연하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꽃이라는 것이 뭐 악한 사람이 와서 본다고 해서 표정이 찌부러지나요? 기분을 느낀다면, 물론 기분이야 나쁘겠지요. 그러나 꽃은 싫든 좋든 그저 벌리고 향기를 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나쁜 사람을 대해 가지고 나쁘다는 표정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 나쁜 사람 가운데도 좋은 면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그런 사람을 대해 가지고 말하게 될 때에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여러분이 먼저 말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사람이 자꾸 말을 하도록 시키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집은 어떠냐, 살림살이가 어떠냐, 당신의 마음에 무거움이 있느냐, 언제나 쾌할하지 않은 그런 마음이 있지 않느냐고 하며 슬슬 말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저 기분 좋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덮어놓고 '어서 들어오시오' 하고는 창조원리가 뭐 어떻고….

죄인을 조사하는 수사관이라 하더라도 그 죄인이 말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너 요렇지?' 해야 그가 '그렇습니다'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거기에 대한 전후 좌우 상하 관계를 이야기해 봐라' 해서 말을 시킵니다. 그가 모를 때는 '요러요러한 때는 너의 어머니 아버지는 어떻던가?' 하고 물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 '형제들은 어떻던가, 친척들은 어떻던가, 학교 동기들은 어떻던가, 네가 대하던 그 사람은 어떻던가' 이렇게 그 사람에게 말을 많이 시키는 것입니다. 말을 많이 시키면 탕감이 되는 거예요, 탕감이.

성이 나 가지고, 나를 보고 그저 원수라고 하는 사람이 노기가 등등해 가지고 당장에 때려잡을 듯이 찾아왔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굴복시킬 수 있는 방법은…. '뭐야 이 녀석아, 왜 새벽부터 상통을 찌푸리고 재수없이 나타났어?' 이랬다가는 판국이 다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어찌 하여 왔느냐고 물어 보고 그것이 다 풀릴 때까지 얘기하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입술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확-' 야단하는 거라구요. 세상 이치는 올라갔다가 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입니다.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거라구요. 그러니 올라갔던 것을 내려놔 가지고 올라가지 못하게 꼭 누르면 나중에는 '헤헤' 하는 것입니다.

기분 나쁜 사람이 오게 될 때는 될 수 있으면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평화로운 표정으로 대하라는 거예요. 저쪽 사람이 자기를 보게 될 때, 누구보다도 자기의 사정을 잘 알아줄 사람으로 척 나타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편네한테 화가 나고 심술이 나 가지고 사방으로 떠도는 사내 앞에 얌전한 아가씨가 싹 나타나서는 보기 좋게 웃으며 왜 그러시냐고 하면 그 한마디에, 그 표정 하나에 자기 여편네한테 화났던 것이 다 풀어지는 것입니다. '아, 글쎄 여자들은 다 그런 줄 알았더니, 여기 이 여자는 그렇지 않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 말 좀들어 보소' 하면서 자기 여편네한테 분풀이하고 싶었던 것을 그 여자한테 이야기한다는 거라구요. 그 이야기로 말미암아 분이 절반은 풀린다는 것입니다. 직접적 분풀이가 아니고 간접적 분풀이가 벌어지는 거라구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죽더라도 하고 싶은 말이나 다 하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풀어야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런 사람을 대해 가지고 노력해야 되는 거예요.

심정을 가지고 사람을 대해야 감동시킬 수 있어

성난 사람이라든가, 심통이 난 사람, 또는 여러분을 속여 먹으려고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짓말 해 가지고 자기를 속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속이는 사람이 쓱 오면 여러분은 모르지만 선생님은 압니다. 선생님은 벌써 느낍니다. 그런 사람 뻔합니다. 심통이 검은 먹 같다는 거예요. 먹통 같은 배포를 가지고 슬쩍하려는 사람은 벌써 표정이 다르다는 거예요. 어물어물하면 벌써 아는 거라구요. 말하려다가 어물어물하고, 말하려다 말고 또 말하려다가 말고, 한 번, 두 번, 세 번만 지나게 되면 '아, 저 녀석은 검은 배포를 갖고 있구나'하고 다 아는 겁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분석할 줄 알아야 된다구요.

그럴 때는 '오냐. 네 녀석이 얼마나 그럴지…' 하며 쓱 배수진을 치고 '어디 한번 해보소' 하며 속아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 인연맺으려면 속아도 줘야 되는 것입니다. 속아 주어야 되는 거라구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하고 슬쩍 속아 주는 것입니다. 한 번 속아 주면 그 사람은 재미가 나게 된다는 거예요. 바쁜 세상에서 그 사람을 아는 사람이 누구 인지 생각이 나나요? 그러니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내가 전도대원으로 가게 되면 두번째 오는 것입니다. 두번째도 또 그 배포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럼 또 속아 주는 것입니다. 한 서너 번쯤 속아 주면 나는 그 사람을 경원하고 있지만,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해 가지고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서너 번쯤 속아도 주는 거라구요.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집문서를 달라고 하면 그것 내주라는 말은 아니라구요. (웃음) 그런 것을 줄 수는 없지만 다만 얼마라도 보태 쓰라고 주는 이런 놀음을 하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주면 그 사람은 거기에 해당한 자기 소원을 성취해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딱 해주고 그 다음에 왔을 때는'당신, 요전에 가져간 돈을 뭣에 썼는지요?' 하고 물어 보는 거라구요. 그러면서 '여기 와서 그럴 때는 좋지 못한 생각을 가지고 사람을 이용하고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찾아왔던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데,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도 나는 양보해 가지고 당신을 위해서 응해 주었는데 이제도 또 그러느냐'고 하면 고개를 숙이는 것입니다.

그때 들이 비벼 놓는 거라구요. 이놈…. 그렇다고 뺨을 갈기라는 것이 아니라구요. (웃음) 그런 마음을 가지고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대하듯이 정서적인 줄을 통해 요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같은 마음을 가지고 대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 입장에서 보면 누이동생과 같은 사람이 아닙니까? 물론 누이동생 같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나를 찾아와서 그런 부탁을 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면, 그 말 한마디에 확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서적인 내용을 가지고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도 동물도 정서적인 분야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개도 좋아해 주면 좋아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망아지에게 약을 먹이려고 할 때 때려 가지고는 못 먹인다구요. 내가 옛날에 망아지에게 약을 먹이는 것을 보았는데, 아, 이놈의 망아지도 주인이 목을 싹 끌어안고 맛있는 것을 먹이고 쓰다듬으면서 입을 벌리게 한 다음에 약을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웃음) 마찬가지라구요. 때리면서 오라고 하면 절대 오지 않는다구요. 그렇잖아? 쓰다듬으면서 오라고 해야 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이 세상의 이치라구요. 치리법이 그렇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사람을 권고하게 될 때는 그런 식으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장들을 보면 '내가 교회장인데 어른을 몰라보고 그런 일을 할 수 있어?' 라고 합니다. 이거 빵점이라는 거예요, 빵점. (웃음) 점수로 말하면 마이너스 한 50점 짜리 라는 거예요.

사람이 고독할 때에는 슬픈 것입니다. 그럴 때는 대개 누구나 동정을 바라는 거예요. 후원을 바라는 것이 인간의 상정이예요. 인간 세상이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럴 때에는 그 사람 앞에 제일 가까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가 남자고 자기도 남자일 때는 동생의 자리에서 형님같이 다정스럽게 대하며 '솔직이 나는 지금 이러이러한 입장에 있지 않느냐. 내 사정과 당신 사정을 보게 되면 당신 사정이 나보다 낫지 않느냐. 당신이 형님이라면 동생 같은 사람을 그런 입장에서 가려 주고 키워 주고 이끌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형님으로서 동생의 입장에 선 나보다 못한 입장에서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 하고 말하는 거예요. 또, 자기가 형님 입장에 있으면 형님 입장에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정적 분야에 가까운 재료를 가지고 그 사람을 요리해야 된다구요.

부모가 자식을 대하여 채찍으로 때리더라도, 부모한테 맞는 것은 얼른 잊어버리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나도 가끔 그래 보았지만, 기합을 받고나서 한 시간 후에 부모님이 '오냐' 하게 될 때는 벌써 다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제간에 기합을 주게 되면 잊어버려요, 안 잊어버려요?

'앵' 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원리에 있어서 위대한 말이 뭐냐 하면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땀은 땅을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자' 하는 말입니다. 이 말에 녹아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녹아나지 않는 만물이 없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 말이 위대한 말이라구요. 내가 지내보니까 그렇다는 것입니다.

전도와 사랑

선생님이 이 길을 이만큼 닦아 나올 때 어떠한 사람인들 안 만났겠어요? 사기꾼, 강도, 별의별 사람들을 다 거쳐 봤다구요. 지금은 그런 사람들은 다 떨어져 나갔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을 싫다 하는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나가서 통일교회를 자기 멋대로 반대하지만, 뭐 선생님이 싫어서 반대하나요? 유효원이가 미워서 반대하지요. (웃음) 뭐 누구 누구 미워서 반대하지, 선생님이 미워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한 정서적인 인연을 뿌려 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거두어 치우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그 이상의 심정을 갖기 전에는 거두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뿌려 놓은 심정적 기준은 그 누구도 빼 버릴 수 없기 때문에 통일교회 믿다가 나간 사람들은 시집가서 아무리 산다고 하더라도 점점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화통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이 길이 재미있는 줄 알았더니 아니구나. 돌아가야 되겠다' 하는 일이 벌어진다구요. 이거, 통일교회를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꿈에 나타나 가지고는 '야야, 너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하며 언제나 가르쳐 준다는 거예요. 그런 일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왜? 심정을 가지고 심어 놓았기 때문에요. 그래서 그 이상의 심정을 갖지 않고는 거둘 수 없는 거라구요.

부모의 사랑을 받던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받고 좋아하였던 그 기준을 벗어 버리려면, 부모의 사랑을 받던 그 이상의 사랑의 자리를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느끼지 못하면 그 기준을 뽑아 벗겨 버릴 수 있는 법이 없다구요. 그렇지요?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이 사탄세계는 정서적인 문제가 고질통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부부, 자녀 할것없이 사돈의 팔촌까지 그것이 고질통으로 꽉 짜여 있는데, 이것을 뽑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까 말했듯이 부모와 자식간에 맺어진 사랑의 인연을 벗겨내려면 그 이상의 강한 사랑의 힘을 가지지 않으면 벗겨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탄세계와 인연된 정서적인 내용을 전부 벗어 버리고 스스로 나오게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강한 사랑의 힘을 가지고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이 사랑에 굶주려 가지고 사랑받겠다는 말이 아니라구요. '내가 누구보다도 너희들을 사랑하니까, 너희들도 나를 더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사탄세계의 사람들이 사랑을 주면 그 사랑이 얼마나 높겠느냐는 거예요. 이렇게 줄 수 있는 동기와 그 바탕을 모두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하지 말래도 사랑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전도란 뭐냐? 전도란 사탄세계를 버리고 웃으면서 하늘 길을 따라오게 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들을 보게 되면 전도한다고 그저 그 사람이 좋아하든 안 하든 강제로 '오소. 오소' 하는데 그래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사람은 영물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어떤 한 사람을 두고 기도해 보고, 한번 실험해 보라는 거예요. 어떤 한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고, 그를 뜻 앞에 세우기 위해서 아픈 심정을 가지고 눈물을 흘려 보라는 거예요. 그리고 연구해 봐야 된다는 거예요.

전도 나가 가지고 자기 멋대로 다니면서 '아이구 원리 말씀 창조원리 타락론이 이렇습니다. 통일교회 믿으면 좋아요. 좋아요' 이렇게 말은 잘합니다. 말은 잘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도 갑이라는 사람이 있으면, 그 갑이라는 사람을 딱 놓고 한번 기도해 보라구요. 진정 그의 부모가 사랑하는 자리 이상의 자리에 내가 어떻게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게 싸움이라구요. 그의 어머니 아버지 이상의 마음을 갖고 내가 어떻게 그를 점령하고 나서느냐? 이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게 문제라구요.

사람은 영물이기 때문에 망하는 곳은 안 가려고 하고, 흥하는 곳은 따라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자리에, 그 무엇을 목적으로 삼게 해서 그 사람의 부모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이상의 사랑의 동기를 내가 어떻게 느끼게 해 가지고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구요. 여기서 사랑이란, 세상 사랑이 아니라구요.

심정은 우주의 근본

여러분, 존재와 생명 중에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대답해 보라구요? 오늘날 철학에서도 이 존재론이 문제되는데, 존재와 생명 중에 어느 것이 먼저냐? 존재하기 때문에 생명이 생겨났나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게 되었나요? 이것이 금후의 철학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답해 보라구요. 존재하기 때문에 생명이 생겨났어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게 된 거예요? 어떤 것이예요?

오늘날 철학이라는 것은 존재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라구요. 생명을 터치하지 못하는 거에요. 생명은 어디서부터 나오느냐? 생명은 혼자 스스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생명의 세계와 사랑의 세계는 하나님이 관리하는 세계라구요. 알겠어요? 그 이하의 것을 인간들이 터치해 나오는 것이 현재의 철학 사상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존재보다도 생명이 앞서는 거예요. 존재를 움직이는 것은 생명력입니다. 생명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냐? 사랑만이 생명을 움직일 수 있다, 이렇게 된다구요. 왜냐하면, 사랑으로 말미암아 출발했기 때문에 사랑의 인연을 따라서 움직이고 사랑의 결과를 찾아가는 것이 생명이 가는 길입니다. 이론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이렇듯 정서적인 문제가 우주 창조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사랑이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의 사랑은 누룩과 같은 것

어떤 사람이 매여 있는 줄을 가만히 보면 그 사람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고, 형제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할 때에, 그 사람은 전도하기 힘듭니다. 그것을 감정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뭐 좋을 수 있는 것을 제시해 주어야 됩니다. 이익 될 수 있는 그 무엇을 제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시하는 것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사랑의 감정을 유발시켜 가지고 자기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작용을 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는 누룩과 같은 사랑이 필요합니다. 성경에도 누룩이라는 말을 비사로 말했지요? 그 누룩과 같은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 앞에서 한 생명을 두고 기도해 보라고 했지만, 어떠한 사람을 대해서 기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위해 밤을 새워 가면서 기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여기 나이 많은 아저씨나 아주머니들이 있는데, 아들딸이 죽었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프다는 것을 자기가 겪어 본 사람이 아니고는 모르는 거라구요. 그렇지요?「예」 아들딸을 낳아서 기르다가 그 아들딸이 죽은 사람은 그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 마음 이상 사랑한다면 누구든 다끌려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현재의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가요, 지옥에 가요? 지옥 가는 거라구요. 지금 지옥에 갈 병에 걸렸다는 거예요. 다리가 썩어 문드러지고, 팔이 썩어 문드러지고 이렇게 죽어 자빠지는 것이 인간들입니다. 부모가 그런 인간들을 바라보면 얼마나 기가 막힐까요? 그와 같은 심정,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정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도 그 이상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소질이 있어야 됩니다. 선한 조상을 가진 사람은 대번에 그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 여러분, 눈물이 많은 사람이 있지요? 눈물이 많은 사람의 후손들은 망하지 않습니다. 두고 보라구요. 찾아보라구요. 눈물 많은 사람의 후손은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나 눈물이 없는 사람의 후손들은 망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모보다 더 사랑해 주면 누구나 인도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 그 사람의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강하게 사랑해 주면 그 사람은 오지 말라고 해도 끌려 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랑 싸움이라구요, 사랑 싸움. 전도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자기에게 오면 더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주체가 되어야 되는 거예요. 이것이 생명의 원천이라구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가 어떻게 그 사람의 어머니 아버지 이상의 사랑을 느끼게 할 수 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하는 겁니다. 인간 자체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원리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주체요 나는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대상의 입장에서 주체 앞에, 완전하신 사랑의 하나님 앞에 완전한 마이너스 입장으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온유겸손하게 제물의 자리에 들어가야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자기 몸을 치고 자기 몸을 잃어 가면서…. 자기를 희생해 가면서 자식을 위해서는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기 때문에, 내가 내 자신의 몸을 치면서 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보람으로 느껴야 됩니다. 그러면서 주체이신 하나님 앞에 대상인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냥 그대로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영점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 수평선의 경지에 들어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런 자리에 찾아 들어가기 위해 온갖 정성을 들여 가지고 기도를 하라는 거예요.

생명을 각오하고 한 사람을 위해 정성들일 때 하나님은 역사하셔

자기의 심정 일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흠모하는 마음에 사무쳐야 합니다. 즉, 여러분이 사춘기 때 모든 인연을 따라 그리워하던 이상의 마음이 싹터야 하나님이 움직이기 시작하십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기도하는 가운데 그런 경지에 들어가야 된다구요. 그런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만민을 대해 인연이 없다 하는 사람이 없을이만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만민을 불쌍하게 생각한다면 전부가 일렬로 서 가지고, 그중에 서도 악한 사람은 선두에서 쇠고랑을 차고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이 보인다구요. 또 벼랑 끝에서 하나하나 곤두박질하여 대해로 빠지는 것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시는 거예요. 심정적 자극과 심정의 권을 높이기 위해서 환상도 보여 주고, 자극적인 인연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가는 사람을 붙들고 그 사람의 어머니 아버지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어떠한 위험과 어떠한 어려움이 가로놓여 있더라도, 그것을 책임지고 자기의 손과 몸이 찢기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구해 주겠다고 강하게 나타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시한 자리가 아니라 강한 최후의 자리에서만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체험과 그런 인연을 갖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전도해도 자기가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식구를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원칙인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자신도 뜻을 세워 나오는 데 있어서 어떠한 마음을 가졌느냐 하면, 그런 원칙을 갖고 나왔습니다. 한 사람을 놓고 기도하고 정성들이게 되면, 지금까지 연애 결혼을 해서 아무리 재미있게 살아오던 사람이라 해도 하나님의 사랑, 자기들의 사랑보다도 더 강한 입체적인 사랑을 그 남편이면 남편, 부인이면 부인이 체험하게 되면 휭 돌아서는 거라구요. 싹 돌아서는데, 이미 인연맺었던 부인이 눈앞에 나타나면 뱀이 나타난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또 부인이 와서 손을 잡으려고 하면 독사가 와서 무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얼마나 상충적이라는 걸 그때 알 수 있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세상 사람들이 보통 눈으로 보게 되면 그 부인이 미인이라고 전부 다 자랑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경지에 들어가서 보게 되면 미인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독사. 독사로 보입니다. 독사가 독을 품고 아가리를 벌리고 자기에게 달려드는 기분이 든다구요. 그런 감이 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뭐냐 하면 사랑의 싸움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합니다.

생명을 움직이는 것은 사랑

아무리 강한 사람일지라도 내가 더 강하면 끌려오는 거예요. 지남석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하면…. 추운 겨울날 방에서 화덕이 훈훈한 훈기를 내게 되면, 사람들이 훈기가 있는 화덕곁으로 모여들겠어요, 안 모여들겠어요? 모여들지 말라고 해도 모여드는 거라구요. 모든 곤충이 빛이 있는 곳으로 모여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강력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명을 움직여야 되는 거라구요. 생명은 무엇이 움직이느냐?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근본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나타나게 될 때는 움직이지 않는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실험을 해봐야 되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이남에 내려와 부산 영도에서 출발할 때, 최고의 절정의 자리에 섰던 거라구요. 내 일생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자리가 벌어졌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동지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할 수 있는 한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는 선생님의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고 하나님도 역시 한 자녀를 찾기 위해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나라를 찾기 위해서 사랑하던 최고의 심정적 상태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느끼는 감동과 더불어 내가 말을 했던 거라구요.

그때의 말은 내 말이 아니라구요. 마이크를 들고 방송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때는 거기에 왔던 사람들이 일주일만 되면 전부 다 영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일주일이 뭐예요? 몇 시간 내에 영적 세계에 대한 체험의 역사가 벌어졌습니다. 그것은 지상에 전파를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의 사랑의 전파를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 전파가 세계로 뻗어 나가기 때문에 영계에 대해서 그런 은사를 바라던 사람들은 거기에 감전되어 또다시 찾아오는 거라구요. 그런 일들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도 그런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직접 가지 않고, 보지 않고, 만나지 않더라도 벌써 느낄 수 있는 심령 기준과 인연이, 선조로부터 높은 심령 기준을 이어받은 사람에게는 자동적으로,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면 먼 곳에 있든 가까운 곳에 있든 모두 태양을 맞이 하는 것과 같은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몽시라든가, 기도하는 가운데 그런 인연을 찾아가서 만나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리워 미쳐 보았느냐

그러면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얼마나 눈이 물커질이만큼 그리워해 봤느냐? 그거 문제라구요. 선생님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그리워 일주일 이상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우면서 기도한 때도 있었어요. 그래 가지고 아침에 햇빛을 보기 위해서 눈을 찡그리고…. 그런 때도 있었어요. 그렇게 그리움에 사무쳐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사망이냐 생명이냐, 내가 인간으로서 사느냐 죽느냐 하는 생사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짓지 못한 심각한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죽을 수는 없다구요. 가치없이 죽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사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해결짓느냐 하는 심각한 문제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담판짓는 자리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일 높은 분이시요, 모든 것의 주체가 되시는 분입니다. 사랑으로 말하면 사랑의 주체요, 이상으로 말하면 이상의 주체요, 모든 존재의 기원의 주체이기 때문에 그 주체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해야 될 것이 우리 인간의 본분이 아니냐? 막연하나마 그런 생각을 해 가지고 그분이 보고 싶다, 그분의 말씀이 듣고 싶다. 그분과 더불어 같이 먹고, 같이 살고 싶다는 그리움에 꽉 차 가지고 미쳐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야 되는데 눈은 눈대로 손은 손대로 전부 다 따로따로 갈라져 가지고 '아, 하나님 사랑합니다' 그래 가지고 되나요? 일체가 돼야 됩니다. 그러면 심정이 곧아져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을 만나서 은혜받은 체험을 한 사람들은 죽어서라도 선생님을 못 잊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어디를 가더라도 따라다니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통일교회 패들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세계순회를 떠나는데 그저 '갔다 오겠지 뭐' 하는 사람은 선생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영계에 가도 그만큼 멀어지는 것입니다.

잘나도 내 형상 못나도 내 형상

여기에 석온 노친네 있어요? 본부에 가면 할머니 한 분이 있습니다. 쪼글쪼글해 가지고 얼마나 못생겼는지 모릅니다. 세상에 여자로 태어나 아무리 할머니가 되었더라도 그렇게 못생긴 할머니가 없을 거예요. 그런데 그 할머니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선생님이 밤에 어디에 내려가는지를 알아 가지고 새벽부터 와서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다 선생님이 척 나타나게 되면 누구보다도 먼저 '아이고, 선생님 내려 오셔요?' 하고 인사를 합니다. 너무나 못생겼기에 인사를 받아도 재수가 없다구요. (웃음) 아, 이거 아침에 가도 있고, 저녁에 가도 있고, 방에 들어가게 되면 언제든지 그 할머니가 먼저 인사를 합니다.

그렇다고 그 할머니가 미워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이왕이면 젊은 사람들이 그럴 수 있어야 하는데, 언제나 그 할머니가 선두에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번은 그 할머니에게 '이놈의 늙은이 죽으려면 옳게 죽지 이게 뭐야? 매일 새벽같이 선생님이 시퍼렇게 젊었는데 망측스럽게 말이야. 아예 나타나지 말고 꺼져라'고 어느 한날 한바탕 기합을 주었습니다. '젊은 사람 얼굴을 봐도 기분 나쁜데 누더기 보따리 같은 늙은이가 이게 뭐야'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거 얼마나 섭섭했겠어요. 자기는 뭐 생명을 걸고 그러는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몰라주니….'아이고. 내가 살아서 뭐하노' 이러고…. 내가 젊은 각시들한테 그랬다면 큰일날 뻔했어요. 그래도 일흔 살에 가까운 할머니이니까 괜찮았지요.

그래서 '내가 죽든지 살든지 내 생명을 거둬가 주소' 하고 하나님 앞에 담판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못생긴 제 얼굴을 보려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아이고, 아버지, 나 데려가소.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의 마음을 돌려 감동시켜 주소' (웃음) 이렇게 사흘 이상을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금식기도를 했다는 거예요. 그저 엉엉 울면서 기도를 했는데 나중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대답이 들려오는데 그 대답이 아주 걸작이었다는 거예요. '야야,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원리의 주인공인데 원리에는 이성성상이 있지 않니? 그렇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을 닮았다는 걸 알잖니? 그러므로 잘생겼어도 내 형상이요, 못생겼어도 내 형상이다' 라고 했다는 거예요. (폭소)

아주, 그 참 명답이라구요. '잘생겼어도 내 형상이요, 못생겼어도 내 형상 아니냐. 그러니 하나님의 형상을 다 좋아하는 문선생은 절대 너를 미워하지 않을 게다. 오늘부터는 네가 옛날에 하던 대로 해도 괜찮다' (웃음)하더라는 거예요. 며칠 동안 그 노친네가 안 보이더니 어느 날 아침에 나와 보니 척 앉아서 히죽히죽 웃고 있는 거예요. '아이고 이놈의 늙은이 또 아침부터 이게 뭐야'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선생님이 욕을 해도 나는 좋소' 하는 거예요. (웃음)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 선생님이 내게 이러이러하다고 해서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저를 죽이시든지 살리시든지 둘 중의 하나를 해달라고 하나님께 담판기도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기를 못생겨도 내 형상, 잘생겨도 내 형상이니 선생님이 절대 미워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소. 사실이 그렇소?' (폭소) 자, 이거 내가 그 할머니에게 딱 걸려 버렸습니다. 그거 아니라고 그러겠소, 맞다 그러겠소? 그래 내가 '야, 그거 명답이다-'라고 했습니다. (웃음)

그 다음부터는 어디를 가면 선생님이 어디에 갈 것이라고 미리 알아 가지고 벌써 앞질러 살랑살랑 가서 척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밉지 않습니다. 또 모든 사람이 그러면 곤란하겠지만 말이예요. 또 공석이라든가 특별한 집회를 하게 될 때, 수가 많게 되면 장소가 비좁아서 참석자를 제한하여 지구장이라든가 교회장이라든가 대원들만 모여라 하게 됩니다. 이렇게 제한한 사람만 와라 할 때는, 그 사람들만 와야지 불청객이 오면 서로가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오지 말라고 하게 되면 섭섭해한다는 거예요. 그런 거 보게 되면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선생님 곁에 있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나이로 보면 선생님이 자기 아들과 같은 나이예요. 또, 잘생기지도 못했는데 왜 그리 선생님을 좋아할까요? 선생님은 눈이 조그마해 가지고 잘생기지도 못했다구요. 그렇지만 왜 그런지 난 모르겠어요. 하여튼 선생님을 대하면 무엇인지 모르게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거예요. 여러분, 정말 그래요?「예」

한 생명을 찾기 위한 하나님의 수고를 알고 식구를 지도하라

부처(夫妻)끼리 사는 통일교회 교인들을 보면, 부처끼리 살면서 둘이 재미있는 얘기를 하면서 흥미진진해야 할 텐데 둘이 앉아서 선생님의 얘기를 해야 흥미진진해 하거든. 그게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게 왜 그런지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왜 그러냐? 선생님이 무슨 요술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전기에 있어서 플러스 마이너스가 붙게 되면 불이 켜지게 마련이지요. 그와 마찬가지 이치라는 거예요. 선생님은 더 높은 심정적 세계의 배경을 닦아 가지고 왔기 때문에 여러분과 다르다는 거라구요. 그런 면에서 여러분이 평면적 이라면 선생님은 입체적인 그 무엇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가까이 오면 손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영물이기 때문에 그것을 벌써 알고 있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구요. 설명을 앞설 수 있는 것이 정서적 세계예요.

통일교회를 보게 되면, 과거에 여자들이 통일교회 문선생한테 홀딱 반해서 미쳤다고 소문이 났었어요. 그래서 남편들이 교회에 찾아와 부인들을 빼앗아 가고 자기들과의 정을 떼어 왔다며 소동을 피우고, 나쁜 소문을 냈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여자들이 그렇게 했지요. 여자들이 버릇이 나빠서 그렇게 하고 다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뭐냐 하면…. 선생님이 이 길을 나서서 한 생명을 찾아 나서는 길은 심각한 자리입니다. 내가 어제도 얘기했지만 완성의 자리에 세울 수 있는 한 생명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수고를 했다는 것을 나는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함부로 안 다루는 것입니다. 심각한 자리에서 다루는 것입니다. 호스로 말하면, 처음은 굵은 호스로 물이 흘러나갔는데 호스 끄트머리 쪽이 손가락만하게 좁아진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때는 터져 나가는 거라구요. 고무줄 같이 늘어 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터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얼마만큼 수고하셨다는 것을 알고 자기가 그것을 좁히지 말라는 거예요. 활짝 열어 가지고 도리어 더욱 넓힐 수 있는 주체적인 사명을 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기도해 보라구요. 그런 경지에서 기도를 하게 되면, 그런 심정적 체휼권내에 들어간 사람은 온 신경이 곧아집니다. 한 곳으로 몰린다는 거예요. 회사에 간다는 사람이 회사에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어디로 가느냐 하면 선생님한테 온다는 겁니다. 와 보니 교회더라는 거예요.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영계가 딱 열려 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선생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과 인연맺기 위해 정성들인 것이 자신의 재산

심정적 인연을 통해서 타락이 된 것이기 때문에 타락의 문을 열어 제치려면 그것보다도 고차적인 심정적 힘을 가지지 않고는 못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리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선생님이 보고 싶어 눈물을 흘리며 야단하게 되면 선생님이 쓱 나타나서 가르쳐 주는 일이 벌어집니다.

여러분이 길을 가다가 무슨 좋은 옷감이 있으면, 혹은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붙들고 '아, 가슴이 아파서 떠날 수가 없구나. 이걸 우리 선생님께 갖다 드리고 싶다. 내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갖다 드리고 싶구나' 하는 마음이 우러나고, 온 몸이 노그라지는 것을 느끼고 하나님이 불쌍한 것을 느끼면서 눈물이 사무치는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벌써 선생님이 그것이 양복이면 그보다 더 좋은 양복을 입고 좋은 넥타이를 매고 '허허' 웃으면서 나타나서 '왜 그러느냐?' 고 하는 장면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내게 좋은 것이 다 있는데 왜 그러느냐'고 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모르는 이상한 사람입니다. 이상한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이라든가 세계 각국 사람들이 선생님이 가기로 약속을 했으면 그리움이 고조되어 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자다 말고 일어나서는 '선생님, 언제 오십니까?' 이러는 거예요. 그렇게 사무친 경지에 들어가면 영안이 열려 버립니다. 그래서 '보고 싶다 보고 싶다' 하게 되면 선생님이 '아 그러냐'고 해 가지고 에덴 동산도 데리고 가서 구경시켜 주고 그런다는 거예요. 그때 그 사람들은 그것이 영적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느끼는 거예요. 그 길이 아니고는 그런 세계가 열리지 않아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눈이 뭉그러지고, 코가 메이도록 울면서 그리워해야 합니다. 사람이 너무 울면 여기가 막 아픕니다. 그만큼 사무치게 그리워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고 부르는 데 있어서도 사형장에 끌려가는 아들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다른 먼 나라로 떠나는 아들의 입장에서 애절하게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를 부를 때는 그런 기준 이상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과 인연맺기 위해서 얼마나 정성들였느냐 하는 것이 자신의 재산입니다.

부활의 역사를 일으키려면

기도를 하는 데도 그렇습니다. 내가 천국가기 위해서,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그런 자리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남을 살려주기 위해서 그런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하나님이 가시는 길은 이런 길이요, 하셔야 할 사명은 이런 사명이 아닙니까? 그러니 목석 같은 저를 통해서 당신이 본심으로 요구하는 소원을 오늘날 만민 앞에 전개시켜야 되고, 개체 개체를 통하여 생명의 인연을 맺어야 되는 줄 아옵니다. 저는 거기에 하나의 표시등이요. 하나의 교통순경과 같은 길잡이가 아닙니까. 저는 부족하지만 순수한 하나님의 심정만은 저를 통해서 번개같이 저쪽으로 옮기게 해주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생명을 남기기 위한 해산의 수고를 앞에 놓고 그 생명을 그리워하면서, 해산의 수고를 잊을 수 있는, 아들을 그리워 하는 마음을 갖고 나타나는 데에 부활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체험이예요.

그런 경지에 있는 사람을 놓고 기도하면 그 사람은 집에서 살림살이를 못합니다. 바느질할 때도 엉뚱하게 손만 찌릅니다. 자꾸 꼬여들어간다구요.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약한 지남석 앞에 강한 지남석이 있게 되면, 약한 지남석에 붙어 있는 철 가루가 어떻게 되느냐? 약한 지남석에 붙은 철가루는 후닥닥 강한 지남석 쪽으로 옮겨 달라붙습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대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요즈음은 될 수 있는 대로 방지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미국을 가든, 어디를 가든 주인입니다. 여러분은 잔치 중에서 환갑 잔치하는 집에 가겠어요, 신랑 신부 혼인 잔치하는 집에 가겠어요?「신랑 신부 혼인하는 잔칫집에요」 알긴 아누만. 왜? 거기는 신랑 신부의 사랑의 꽃이 피는 곳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외국에 가더라도 왜 선생님의 판국이 되느냐? 하늘나라의 잔치를 하는 기분이라는 거예요. 봄기운이 획 돈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언제 오신다 하게 되면 벌써 사춘기와 같은 봄기운이 획 돌아온다는 거예요. 이것이 끊어지면 통일교회는 발전할 수 없는 거라구요. 나는 잘모르겠어요. 여러분, 그래요?「예」

여기에 지금 각 도에서 모였지만, 선생님이 모두 수택리로 모여라 하게 되면 오고는 싶은데 돈이 없다 할 때는 치마도 팔고, 반지도 팔고, 별의별 것 다 팔아서 가야 되겠다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남편이구 뭐구 살겠으면 살고 말겠으면 말고 하면서 간다는 거예요. 그런 놀음이 벌어지니, 통일교회가 욕먹는 것입니다. 요사스러운 선동분자요, 가정을 파탄시키는 왕초라는 말을 들으며 지금까지 내가 욕을 먹어 왔다구요. 그것은 내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봄날이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하지요? 봄날이 나쁜가, 봄날이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하는 사람이 나쁜가? 싱숭생숭하는 사람이 나쁜 거지요. 나는 화덕과 같은 놀음을 하는 거예요. 집안에서 왜 나가느냐? 추우니까 그래요, 추우니까. 만일 집이 더 좋으면 붙어 있지 말라고 해도 붙어 있을 것입니다. 그거 할수없다구요. 알겠어요?

선생님은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1년이고, 2년이고 정성들였던 때도 있습니다. 자, 그가 자기집 담을 타고 넘어오나 안 오나 보자 해 가지고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만 보게 되면, 거기에는 벌써 어떤 작용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아무리 집에서 잘해 줘도 반드시 교회에 찾아와 인사를 하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인간 세상의 타락의 심정권내와 하나님의 심정권내를 척 비교해 보세요. 인정줄은 천정줄 앞에 여지없이 끊어지는 거라구요. 그래서 통일교회를 믿으면 미친다는 말이 맞습니다. 무엇에 미쳤느냐 하면, 영적으로 미친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같이 남자가 여자에게 미친 것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의 사랑에 미친 거라구요.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의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먼저는 부모의 사랑이요, 자녀의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먼저 시작된 후에 자녀의 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먼저 느껴야 할 것은 부모의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되면 심정의 안테나가 높아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을 전부 알게 되는 거라구요. 예언자들은 그런 자리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타락은 어떻게 된 것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자의 인연을 못 맺어 타락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돼야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먼저 무엇이 벌어져야 되느냐 하면, 부모의 사랑이 이 땅 위에 현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부모의 사랑이 나타난 다음에 자녀의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자녀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녀로서 키움을 받아 가지고 신랑 신부의 사랑의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되고, 부모는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종적입니다. 이걸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부모가 자녀와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부자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종적인 사랑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나 종적인 사랑만 가지고는 안팎의 상대적 형태를 갖출 수 없는 것이 천지의 이치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바탕을 벗어난 존재는 없기 때문에, 종적 주체와 횡적 대상이 없으면 그것은 영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 중에 종적인 사랑은 무엇이냐? 부자관계의 사랑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와 주고받는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적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부인에게는 비밀 얘기를 못 하더라도 자기 아들한테는 비밀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부인은 남이라는 거라구요. 이것이 종적 사랑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가 없는 사람을 뭐라고 해요?「고아요」 고아가 이쁘다는 말이예요, 밉다는 말이예요? 외롭다는 말입니다. 고아가 왜 외롭습니까? 기댈 데가 없고 의지할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중심이 없다는 거예요. 여기서 종적이라 함은 중심을 놓고 말하는 거예요. 중심이 없으면 자기의 존재 가치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독하다는 것은 뭐냐 하면 위험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종적인 사랑을 완전히 주고받아 가지고 너와 내가 같다 하게 될 때에, 비로소 아들딸도 성숙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들딸이 성숙한 사람으로 어머니 아버지와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다 할 때에, 비로소 그 아들딸을 시집 장가 보내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시집 장가가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횡적인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종적인 사랑은 부자관계요. 횡적인 사랑은 부부관계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부부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났을 때,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려는 것이 강합니까, 부부끼리 서로를 위해서 희생하려는 것이 강합니까? 부부가 서로를 위해서 희생하려는 것이 강하지요?「아닙니다」 그럼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려는 것이 강하다, 여러분, 정말 그래요?「예」 정말?「예」 종적인 것이 보다 강합니다. 이렇게 볼 때, 부부끼리 사랑하는 것이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보다 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 그 자식이 태어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느냐? 시작은 약한데 결과에 가서는 강한 것이 나왔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부모의 사랑은 종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은 우주의 자연의 힘과 더불어 언제나 그 길을 따라옵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주체적 종적 사랑권내에 있기 때문에 강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가 자기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딸을 더 사랑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느냐?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없어지게 될 때는 갑이라는 사람의 행복의 터전과 을이라는 사람의 행복의 터전이 점점 작아지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변동이 있게 될 때는, 점점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약해져 가지고 나중에는 없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어떤 개개인이라도 변하지 않는 우주의 종적인 힘이 개재하기 때문에, 천년 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만년 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변함이 있다?「없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종적인 사랑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종적인 사랑은 하나님이 죽지 않는 한 영원히 주체적 사랑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이 태어나게 될 때는, 그 집안의 운명의 잼대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들이 운을 잘 타고 태어나면 하나님이 가까이 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집안이 잘 될 수 있는지는 아기들 셋만 보면 벌써 아는 거라구요. 선생님은 그걸 대번에 알 수 있다구요. 암만 큰소리쳐도 이 집안은 얼마 못 간다 하는 것을 안다구요. (잠시 녹음이 중단되었음)

이걸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에 흐르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요구합니다. 왜 하나님의 사랑을 요구하느냐? 그것은 종적인 주체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종적인 주체 앞에 대상의 자리에 서 있으면, 밤이나 낮이나, 여름이 오나 가을이 오나, 춘하추동이 다 지나가도 그것은 변하지 않고 언제나 발동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없더라도 여러분 자체가 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의 인연을 통해서 태어난 여러분을 선생님이 사랑하니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아들딸을 사랑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여러분의 자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 여러분은 선생님이 느끼는 감정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어느누구나 그런 심정권내에 있으면 선생님이 느끼고 체휼한 심정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애달픈 심정을 가지면 주위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선생님은 어디를 가든지 굶어 죽지 않습니다. 안 굶어 죽는다는 거예요. 내가 어느 동네에 들어가서 밥을 굶게 되면, 그 동네 사람들의 조상이 꿈에 나타나서 '야. 어느 집에 가면 아무개라는 남자가 와 있는데. 그 남자에게 밥 갖다 줘라, 쌀 갖다 줘라'고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했다가는 큰일납니다. 그런 무엇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이냐? 선생님이 누구를 좋아하고 무슨 일에 능수능란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능란한 사람이 아니라 솔직한 사람이라구요. 결국은 뭐냐 하면, 하나님을 대해서 얼마나 애달파 했느냐는 거예요. 알겠어요? 하늘 부모를 대해 얼마나 효도하려고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저께도 이야기했지만 효자는 어머니 아버지가 쉴 때에, 부모보다 더 많이 쉬는 사람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하나님은 6천년 동안 쉬지도 않으시고 복귀역사를 해 나오고 계십니다. 영계에는 밤낮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밤낮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쉴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잠자리에 들 때는 하나님 앞에 백배 사죄하고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나를 위해서, 내 환경을 위해서 24시간 일하시고 이 세계를 책임지고 개척자의 사명을 다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이 불효자식은 몸이 지친 자리에 있기 때문에 잠자리에 들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으니 불효 중의 불효입니다'라고 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잠자리에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심정을 갖고 있다면, 차마 반듯이 누워 잘 수 없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아버지가 고달픈 사정을 품고 수고하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아버지 앞에 한마디 인사도 없이,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고 자빠져 잠을 잘 수 있습니까? 생각해 보라구요. 네 활개를 펴고 큰 대(大) 자로 누워 잘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교육받고 살아 나온 것은…. 요즈음에는 내가 어느 정도의 고개를 넘었기 때문에 그러지 않지만. 옛날에는 누울 때는 반드시 오른쪽으로 눕든가 왼쪽으로 눕든가 해서 새우잠을 잤습니다. 기도하는 모습처럼 꼬부리고 잠을 잤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다리를 구부리고 자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잠에서 깨어나서는 하나님은 이 시간에도 일하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 죄송합니다' 하면서…. 감정적으로 다른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우냐는 거예요. 지금까지 그런 생활권내에서 지내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보나 들으나 무엇을 하든지간에 대번에 알아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 누가 욕심이 많다는 것을 말을 안 해도 대번에 다 안다구요. 선생님 성격이 그렇다구요. 자기를 위해서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안 주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달라고 하느냐고 대번에 물어 본다구요.

요전에 어떤 사람이 선생님한테 와서 '내가 뭐 어떻고 어떻고 어려운데 도와주소' 하는 거예요. 그것이 누구 때문이냐고 물어서 자기 때문이라고 하면 선생님은 매정합니다. 전체를 사랑하느냐 네 개체를 더 사랑하느냐? 자기 개인을 위해서 전체를 위한 분량을 감소시키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구요. 그때는 선생님도 무자비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든, 처자든, 어머니든간에 그렇다구요.

여자들은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 생각이 있다구요. 여자들이 좋은 옷을 입는 것은 누구를 좋게 하기 위해서 입는 거예요? 남편을 좋게 하고 그 집안을 좋게 하기 위해 입는 거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런 관점에서 동기가 되어야지 나를 위한 동기가 되지 말라는 거예요. 여자가 화장을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냐? 남편을 위하고 나라를 위해서 화장을 한다고 해야 됩니다. 즉, 전체 앞에 동기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를 생각하는 관점이 전부 다 짜여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면 아주 속이 뒤집어지는 거라구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훈련을 해서 딱 짜임새 있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벌써 아침에 일어나서 인사를 하더라도 기쁜 마음, 소망에 벅찬 마음을 가지고 인사를 해야 합니다. 잠자리에 들더라도 보고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어제보다 나았느냐 못했느냐, 금년이 작년보다 나았느냐 못했느냐 반성하고, 만일 후퇴했다면 견디지 못하는 이런 심정이 돼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심정문제의 직접적 관계에 있어서 보다 높은 차원에 도달할 수 있는 일을 해야 됩니다. 즉, 동기가 없이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 말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서 얼마만큼 애달픈 심정을 갖고 나가느냐에 따라서 그 환경에 얼마만큼 침투되느냐 하는 작용이 결정되는 걸 알아야 됩니다.

어려워도 참고 나가는 것은 심정의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

선생님은 옛날 감옥에 있을 때도 그랬어요. 내가 뜨개질을 참 잘합니다. 내가 못 만드는 것이 없어요. 스웨터 같은 것도 혼자 다 만들어 입었어요. 버선 같은 것도 잘 만들었습니다. 팬티나 왜잠방이 같은 것도 내가 혼자 잘 만들었어요. 내가 여자 없이도 혼자 살겠다고 모든 것을 연구한 사람이라구요. 일생 동안 독신생활 하더라도 이 뜻을 내 필생의 사업으로 작정하고 나선 사람이기 때문에, 못 하는 것이 없다구요.

내가 모자를 척 떠 쓰면 아주 예쁜 모자를 떠서 쓸 수 있습니다. 장갑을 떠도 참 빨리 떴다구요. 내게 필요한 것은 전부 다 여자의 신세를 안지고 내 손으로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구요. 내가 밥도 잘합니다. 도마질하는 것을 보면 풋나기인지 아닌지 다 안다구요. 내가 도마질도 잘합니다. 다닥닥 다닥닥. (웃음) 반찬 만드는 것 보면 솜씨가 있는지 없는지 벌써 아는 거라구요.

선생님은 7년 이상 자취생활을 했습니다. 그래, 내게는 많은 반찬이 필요없어요. 지방에 가면 반찬을 수두룩하게 한 상을 부산하게 차려도 나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라도 입맛에 맞게 만들면 됩니다. 선생님은 한 가지를 대하게 되면 그 끝장을 보고야 마는 성질입니다. 반찬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반찬이 많아도 젖가락은 대 보지만 먹는 반찬은 한 가지 뿐입니다. 내가 반찬을 만들게 되면 한 가지만 사다가 끓여서 먹습니다. 간단하다구요.

지방에 한번씩 내려가면 떼거리로 몰려와서 부산하고 요사스럽게 준비를 하고 야단합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밥을 먹고 나서 설겆이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특히 겨울에 제일 싫어합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어머니는 딸한테 시키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딸은 엄마가 자기만 시킨다고 짜증내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런 것 저런 것 다 백과사전에 기입할 수 있는 재료를 취득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때는 남하고 도매금 싸움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동네에 가다가 큰 녀석이 조그만 녀석에게 주먹질을 하게 되면 내가 대신 맡아 싸웠습니다. 선생님은 한번 붙으면 절대 후퇴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체격이 큰 녀석이라 해도 나에게 잘못했다고 빌고 물러섭니다. 하루만 싸우는 게 아니라 일년내내, 삼백 예순 날 싸운다구요. (웃음) 이렇게 지독한 사람이라구요.

내 얘기를 하지요. 이런 얘기를 하면 선생님의 과거가 탄로나기 때문에 부끄럽지만 그래도 할수없습니다. 영계에 가면 다 알 테니까 미리 가르쳐 주지요. 선생님은 울기 시작하면 한 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별명이 뭐냐 하면 '하루울이'입니다. 하루종일 울고 나야 그치기 때문에 하루울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또 우는 데 있어서도 가만히 앉아서 울지 않아요. 동네가 떠나가도록 울었습니다.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다 나와서 구경하라는 거예요. 이렇게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해서는 자던 사람들까지 깨게끔 울었지, 뭐 가만히 '쟁쟁' 울지 않았습니다. 큰일난 것처럼 계속 울었어요. 그래 목이 붓고 쉬게 되어서 나중에는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였어요. (웃음) 그리고 가만히 앉아 우는 것이 아니예요. 훌떡훌떡 뛰면서 상처가 나 살이 터져 방을 피투성이가 되게 했습니다. 그만하면 선생님이 어떤 성격이라는 것을 알겠지요.

가만히 보면 하나님이 참으로 지혜로우신 분입니다. 내가 그런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한번 영계고 뭐고 간다고 결심하면 죽기 전에는 안 놓는다는 거예요. 나는 성질이 대단합니다. 동네에서 면대항 씨름대회를 했는데, 그거 내가 일등을 하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그런데 2등을 했습니다. 그때 일등한 사람은 나보다 네 살이나 많고 키도 컸어요. 그래서 '이놈의 자식 내가 6개월 내에 꼭 이기고 말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아카시아 나무가 참 질깁니다. 시골에 사는 사람은 알 거예요. 봄이 되어 이 아카시아 나무껍질을 벗기면 한꺼번에 쭉 벗겨집니다. 그래 가지고 껍질 벗긴 아카시아 나무를 붙들고 밤낮 씨름하는 거예요. (웃음) 그거 운동 중에 참 멋진 운동이라구요. 이래 가지고 6개월이 뭐예요. 3개월 내에 열 번이면 열 번 넘어뜨리고야 잠을 잤습니다. 그 전에는 잠을 안자는 거라구요.

우리 성진이나 효진이도 마찬가지입니다.밖에서 놀게 되면 머리가 깨지든 허리가 부러지든 끝까지 해내고 맙니다. 그건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 성격이 있다구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반대하고 야단해도 선생님은 지독한 마음을 갖고 참는 거예요. 그들이 이미 져 둔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죽지 않을 때는 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죽기 전에는 이 놀음 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은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걸 생각할 때 기가 막히기 때문에, 팔자 사나운 사람들이 여기에 들어왔다고 보는 거예요. (웃음)

선생님은 무엇을 할 때 안될 것은 아예 손을 안 댑니다. 벌써 그걸 다 압니다. 내가 내 갈 길을 아는 거라구요. '아, 요때가 어떤 때에 들어 가니 이렇게 하자'라고 해서 그때를 잘 맞춘다구요. 때를 잘 맞추려면 때를 잘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내 갈 길은 딱 짜여져 있는 거예요. 그럴 때는 쉬지 않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험난한 길을 가는 것은 이 한국 백성의 반대 때문입니다. 이들이 제일 악바리들이예요. 그래도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고 이만큼 남아졌어요. 이제까지 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방 어디를 가야 되겠다고 아침에 나와서 척 차에 오르면 기분이 좋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차를 돌려 다른 곳으로 갑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누구하고 약속하기를 제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간부들이 어떤 시간을 정해 주면 내가 그 시간에 대해 책임을 안 집니다. 선생님은 항상 약속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왜? 인간세계에 있어서 오늘 너와 나의 약속이 일방적으로 언제나 그와 같은 약속의 기준에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앞으로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그 큰 문제를 앞에 높고 약속을 따라가다가는 이건 둘 다 깨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무엇이든 바쁘게 하는 거예요. 갑자기와 가지고 들이모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곤란한 때가 많지요? 그렇지만 거기에 박자를 맞춰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등등의 생활관을 세워 나가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중심삼고 심정적인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예수님에게 뒤진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습니다. 예수님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사랑했지 뒤진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가는 거라구요. 선생님 성격이 그래요, 낚시를 가게 되면 낚시를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것이 필생에 자기가 기뻐할 수 있는 일로 아는 거예요. 도취해 버리는 거라구요. 그런 소질이 있는 거예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선생님은 이런 특이한 소질이 있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여러분은 심정적인 면에서 하나님을 사랑해요?「예」 하나님을 사랑해요?「예」 대답이 왜 그리 희미해요. 하나님을 사랑해요, 안 해요? 「사랑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봤어요, 못 봤어요?「못 봤습니다」 보지도 못하고 허깨비를 사랑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은 벌써 내 마음속에 들어와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보다 높지요? 높이 계시는 그 하나님을 끌어내리는 방법이 뭐냐 하면 하나님을 보고 싶어하고,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나라와 그 세계의 사람을 그리워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러면 나는 거기에 가고 하나님은 내 자리에 내려와 계신다는 거예요. 즉, 마음으로 거기에 갔기 때문에 하나님은 벌써 내 마음속에 들어와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배고플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감옥에 있을 때에 너희가 찾아와 보았느니라' 하니까 제자들이 '언제 우리가 배고플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감옥에 찾아가 봤나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지극히 적은 소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길을 가다 몸이 불편해서 길가에 누워 있는 거지가 있거든 거기에서 그 거지를 붙안고 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 때문에 병석에 누워 있는 것과 같은 심정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 심정을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예요. 이것은 질서적인 문제입니다. 아무리 나와 관계 없는 세상의 할아버지라 해도, 나의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 할아버지가 나를 찾아오시다가 피곤해서 쓰러진 내 아버지가 아니더냐. 이분이 비록 남이지만 만일 내 아버지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제일 가까운 사람으로서 그를 섬길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헤매는 일을 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인간의 심정을 연구하여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게 하라

선생님이 옛날에 일본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아까사까(赤坂)에는 비가 자주 옵니다. 어느날 축축하게 젖은 옷을 입고 전차에 올라탔습니다. 선생님은 노동판에도 곧잘 갔다구요. 학생복을 벗어 던지고 노동복을 입고 얼굴에는 검정칠도 쓱 해 가지고는 전차를 타고 일부러 아가씨 옆으로 자리를 옮겨 갑니다. (웃음) 그래 가지고 옆에 아가씨에게 쓱 '어디까지 가요' 하고 물으면 가당찮게 쳐다봅니다. 선생님은 좋은 옷을 입은 아가씨의 마음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많이 테스트해 봤었습니다. (웃음) 전차가 흔들흔들할 때 옆에 다가섰다가 그저 하이힐이고 뭣이고 없이 내가 알게 뭐냐 하면서 꼭 밟는 거예요. 그러면 '아야야'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야단입니다. 그런 걸 곧잘 해봤다는 거예요. 그건 탕감복귀하는 거예요. 어떤 때는 참으로 선한 아가씨들이 있습니다. 도리어 그 아가씨가 미안해합니다. 그러면 내가 반대로 미안해하는 거예요. 또 잘생긴 남자가 있으면 그런 남자 골라 가지고 곧잘 그 놀음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심리를 분석 비판하는 일을 많이 한 거예요.

어떤 때는 줄 것이 있으면 말이예요. 좋은 것을 줄 때는 찾아가서 공손히 주는 것이 아니라 획 던져 주는 거예요. 딱 기분 나빠하게 할 수 있는 입장에서 던져 주는 거라구요. 던져 주는 데도 원수 같은 표정을 하고 주는 거예요. 그게 전부 다 연구한 거라구요. 지금까지 선생님은 그런 생활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어디를 가든지 밀려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노동판에 가더라도 30분만 지나면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전부 내 친구 만드는 거라구요. 아무리 우락부락하게 생겼어도 내가 그 사람의 성격을 알거든요. 이 사람은 이런 성격이 있어서 고약하겠구나…. 그러면 배통을 확 찌르면서 '너 이런 욕심이 있구만' 그럽니다. '히히, 그걸 어떻게 알았어?',어떻게 알긴 어떻게 알아. 네 여편네하고 나하고 친척 되는지 알아? 이런 식으로 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알아' 그래요. 그러면 '어떻게 알긴 이 녀석아' 그러는 거예요. 사실 여편네가 누구인지 사돈이 누구인지 알 게 뭐예요. 이러면 궁금증이 나서 가만히 있어도 말이예요. 아침에 그렇게 해 놓고 점심시간에 점심을 가져오지 않아서 혼자 슥 가만히 앉아 있으면…. 벌써 인연이 되었거든요. 찾아와 가지고 '왜 혼자 가만히 앉아 있어? 그래요. '밥 먹고 싶지 않아서 그래' 하면 같이 먹자고 하는 거예요. '같이 먹는다고 해도 보리밥에 된장밖에 없을거야. 에이 기분 나쁘다' 그래도 벌써 친해지는 것입니다. 30분 이내에 친해지는 거라구요. 우선 사람들과 친해져야 뭐 일할 수 있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지게꾼들한테 가도 그들과 금방 친해집니다. 또, 내가 할머니들하고도 친하기를 잘합니다. 선생님하고 얘기를 하면 참 재미있다구요. 할머니들도 선생님한테 홀딱 반하는 거라구요. 왜 그러냐? 경력이 많다는 거예요. 인간에 대한 인연을 많이 살피고 관찰한 경험이 있다는 거라구요.

내가 그렇게 관찰하고 경험한 것을 가지고 누구를 이용해 먹겠다고 하게 되면 주먹이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내가 그런 사람들을 중심삼고 그런 놀음을 했던 것은, 앞으로 선한 일을 펴기 위해서는 그런 길을 통해서 내가 개척해야 할 분야가 있어야 될 것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공적인 입장에서 그런 일을 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경험하여 인생의 재료를 수집하라

선생님이 과거에 여자 옷을 입고 서울 거리를 3일 동안 돌아다녀 봤습니다. (웃음) 그때 제일 힘든 것은 치마꼬리를 붙들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남자가 그러고 다닐 수 있어요? 그래서 할수없이 비오는 날을 택해 가지고 사흘 동안 지냈지요. 머리에는 싹 수건을 동여매고 여장을 하고서 거리를 돌아다닌 거예요. 여자들이 보더라도 못생긴 얼굴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일도 다 해본 사람입니다. 큰일을 하기 위해서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모든 만사에 흥미진진하다구요. 어느 동네에 가서도 똥 푸는 할아버지가 있으면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남들은 다 냄새가 나서 코를 막는데, 그 할아버지 코는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냄새를 못 맡을까? 할아버지 코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게 궁금하다구요. 그게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 보는 거예요. '할아버지, 냄새 나요, 안 나요?'라고 물으면 '냄새가 나기는 나지'라고 합니다. 그러면 '냄새가 좋으세요, 나쁘세요?' 하면,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지' 하는 겁니다. 나쁘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건 그렇다는 거예요.

어떤 때 시골에 가면 말이예요, 인분을 주무르고 있습니다. 강원도에서는 옥수수 밭에 인분을 내는 것이 옥수수가 제일 잘 된다구요. 시골에서 농사 지어 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한번 해보라구요. 인분이 제일이라구요. 큰 빗자루 같은 이삭이 달리는 거라구요. 이 인분을 말리기 위해서는 별수없이 자리를 깔고 그 위에 똥을 퍼 가지고 말려야 합니다. 옛날 고향에서도 형님이 그러고 앉아 있었어요. 세상에서 똥이 제일 싫은 것인줄 알았더니 제일 큰 놈부터 먼저 주우려고 이리저리 휘젓고 말이예요. 그거 생각해 보세요. 똥을 주무르면, 손 사이로 쓱 삐져 나가고 그러는데 …. (웃음) 어떻게 그렇게 할까?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일도 해보면 하는 거라구요. 그것도 재미있다구. 그것이 일이라고 생각하면 냄새가 나는 게 아니더라구요. 일에 취하면 냄새는 잊어버린다는 거예요.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생살이라는 것 세상살이에는 참 재미있고도 멋진 일이 많습니다. 거기에서 모든 것을 연구하고 재료를 수습해 가지고 앞날에, 큰 집을 지을 준비를 하는 거라구요. 선생님에게는 그런 경험이 많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농촌에 가면 농사 지을 줄 알고, 바닷가에 가면 어부될 줄 압니다. 선생님이 투망질을 하더라도 새벽에 닭이 꼬꼬 할 때에 나가야 하는 거예요. 이왕 할 바에는 기록을 낸다는 신념으로 하는 거예요. 새벽에 첫닭이 울 때에 나가서 별새벽이 될 때까지 그 일을 하고 돌아오는 거예요. 나는 언제나 세계에서 무엇이든지 꼬래비는 안 된다는 주의입니다. 어디에 가서 뭘하더라도 절대 지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절대 안 집니다. 내가 정성들이는 데도 그래요.

심정의 꽃을 피울 줄 알아야

선생님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런 생활적인 과정을 전부 다 경험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척 대하게 되면,'아,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하는 것을 대번에 아는 거예요. 대표형을 수습하게 되면 전부다 수습되는 거예요 눈썹이 저렇게 생기고, 눈이 저렇게 생기고, 코가 저렇게 생겼으면 친구들 가운데, 아는 사람 가운데 같은 형의 사람과 성격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의 성격을 중심삼아 가지고 심중에 감동을 줄 수 있는 말을 강단에서 얘기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눈물을 꺼벅꺼벅 흘리는 거예요. 그러면 청중은 은혜받는 거라구요. 자기가 경험한 이야기를 해야 실감이 나는 거예요. 알겠어요? 경험한 사실을 얘기해야 듣는 청중도 실감이 나는 거라구요. 거짓말을 하면 실감이 안 난다는 거예요.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적응시켜 가지고 하나님을 유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데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어떻게 느낄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는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것 같이 사람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이것은 나쁜 의미의 인간적 사랑이 아니예요. 생명을 움직이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생명을 움직여야 할 것이 사랑의 원칙이기 때문에 그 생명을 움직이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임할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전도 안 되는 원인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남 때문에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자기에게 있습니다. 길거리에 장미꽃이 활짝 피어 있으면, 지나가는 길손 누구라도 그 꽃에 관심 안 갖는 사람이 없더라는 거예요. 그래요? 없더라예요, 있더라예요?「없더라입니다」 전부 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활짝 피어 있는 장미꽃과 같이 오가는 사람 앞에 향기를 진동시키며 있어 보라구요. 그렇게 되면 지나가던 아가씨들이 까들까들 웃으면서 '아이고 좋아라' 하며 살짝 와서 꺾으려고 하는 거예요. 또 할아버지는 '아이고, 이렇게 외롭게 길가에 피어 있구나. 이거 안 되겠다. 짐승이 지나가다 건드리면 안 되겠는데. 꺾어다가 안방에 꽂아야 되겠군' 한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그러한 심정적 꽃을 피울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밤에 등불이 있으면 거기에 곤충이 달려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사흘 전에 어떤 아주머니가 일본 식구들이 온 기념으로 국화 화분을 갖다 놓았어요. 그런데 그때는 꽃이 전부 다 똑바로 서 있었는데, 내가 지방에' 갔다 돌아오니 섭섭하게도 그 꽃이 전부 (제스처를 쓰시며) 이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이렇게. 하나는 이렇게 되고, 또 하나는 이렇게 되고…. 아침 햇빛을 받기 위해서 이렇게 기울었다가 돌아가지 못해 가지고 그냥 그대로 있는 거예요. 또, 저녁 햇빛을 받아 가지고는 고개 숙이고 꼬부라져 있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햇빛을 향해서는 모든 생명의 순이 향하는 것 아니예요? 그렇지요? 미물인 식물이 그렇거든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의 모든 생명의 태양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갖고 나타날 때에는 인연맺고자 하지 않는 것이 없더라 이겁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공산세계의 빨갱이들이 많아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모가지가 달아나는 판국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영계에 있는 선조들이 나를 좋아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영계의 영인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후손들에게 '야 이놈아, 너는 여기에 있는 문선생을 모셔야 한다'고 알려주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선생님이 말하지 않고 만든 제자가 수십 명 됐습니다. 그러니 말을 해서 제자를 만들었으면 얼마나 많았겠어요. 선생님은 말하기 시작하면 밤이고 낮이고 모릅니다. 밤이다 하는 생각이 없어요

전도자가 가져야 할 마음 자세

이런 모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누구를 탓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도 안 되는 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세계적 챔피언입니다. 틀림 없다구요.

그러한 스승의 슬하에서 교육을 받았으면 그대로 하라는 거라구요. 그대로 하면 반드시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선 여러분 자신이 덜 되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자기라는 보따리는 그냥 두고 남을 전도 하러 다니면 안 됩니다. 우선 내가 깨끗이 되어야 하는 거라구요. 우선 내가 뜻 앞에 완전해져야 되는 겁니다. 완전해져야 되는 거예요. 전선으로 말하면 아무 저항이 없는 도체가 되어 전기가 잘 흘러갈 수 있는 전기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는 아무 저항이 없습니다. 전기는 저항이 많은 데로는 흘러가려고 하지 않고, 저항이 없는 데로 전부 다 흘러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순수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활하는 가운데 순수한 사람과 모진 사람을 가만히 두고 보세요. 한 달, 두 달, 일년을 두고 보면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난다는 거라구요. 정성들이면 누가 뭐라 해도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 안 되는 것은 그 사람들이 나쁜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여러분 자신이 문제예요.

여러분이 사람을 대하게 되면 좋은 사람도 있고, 싫은 사람도 있지요? 그렇지요? 좋은 사람, 싫은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싫은 사람은 왜 싫으냐? 그것은 그 사람이 자기를 중심삼고 나를 대하려 하고, 자기 이익을 주장하며 그것을 일방통행시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싫어진다는 거라구요. 세상에서도 그렇지요. 부처 (夫妻)끼리 살더라도 남편이 자기만 위하면 싫다는 거예요. 이건 꿀돼지, 곰새끼보다 더하다구요. 그렇게 되면 반드시 반발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주하지 않고 공적인 이익을 찾아 나가는 사람은 너나할것없이 반드시 좋아하게 됩니다. 이익을 끼치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좋아지는 것입니다. 이게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언제나 공적 관념을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공적 관념을 어떻게 가져야 되느냐? 부모의 심정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부모의 사랑이냐 하면, 주고 나서 '아이고, 이제 됐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보다 잘사는 집의 부모가 그 자식의 생일날에 해 입힌 것을 보고, 잘해 입힌 그 부모의 입장을 그리워하며 언제나 그것이 비교 기준이 되어 자기 아들에게 무엇을 해주더라도 그 이상 못 해줄 때는 섭섭한 마음을 느끼는 거예요. 알겠어요? 최고로 해주고 나서도 더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주고 나서도 '그것으로는 적다. 미안하다' 하는 생각, 주고 나서도 '더 좋은 것을 못 주니 미안하다' 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자기에게 뭐 귀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전부 갖다 주고 싶어해야 합니다. 옷이면 옷을 갖다 주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이 앞서야 되는 것입니다. 또, 자기에게 먹을 것이 있으면 '아이고. 배고픈데 내가 먹자' 하는 것이 아니라, 배가 고프지만 신문지로 싸 두고 '누가 안 오나'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먹을 것을 척 보게 되면 '배가 고픈데 내가 먹어야겠다. 누가 안 오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자기가 배가 고프더라도 어떤 사람이 배고픈 입장에 있으면, 그걸 자기가 먹겠다는 생각을 넘어가는 심정이라구요. 그러한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신세 지운 것은 잊어버리고 신세 진 것은 절대 잊지 말라

주고 나서도, 하고 나서도 잊어버리는 거라구요. '내가 아무 때 너를 얼마 도와주었지' 하며 수첩에 기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수첩에 기록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어느때 누구 누구에게 얼마 도와주고, 누구에게 얼마 도와주었다고 써놓고 그걸 연상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부자(父子)의 심정의 인연을 맺고자 하는 주체적 입장에 섰으면,'아무때, 아무개에게 얼마 주었으니 그걸 찾아야 되겠다. 너에게 이렇게 주었으니 너는 나에게 이렇게 해주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려고 안 합니다. 다 잊어버립니다. 잊어버린다구요. 될 수 있는 대로 전부 다 잊어버리는 거예요.

부모가 자식에게 잘해 주고 그걸 기억해 두나요? 너 시집갈 때에, 너 장가갈 때에 너를 위해서 부모인 내가 공을 들이고 뭘 해준 값이 몇천 몇백 몇십만 원이라고 기억해 두나요? 부모는 해주고 나서 잊어버리는 겁니다. 잊어버리는 거라구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지 않는거예요.

그대신 자기가 신세를 진 것은 절대 안 잊어버리는 거예요. 자기가 해준 것은 자꾸 잊어버리고 반대로 신세를 진 것은 안 잊어버린다구요.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다 좋아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좋아하겠어요, 나빠하겠어요? 선생님이 중학교 때에 신세를 진 송씨 부인이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송씨들에게 그 신세를 갚으려고 합니다. 선생님은 중학교 시절에 점심을 안 먹었어요. 돈이 없어서 안 먹은 것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의 사정을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는 뭐 있어 먹고도 양냥이라구요. 그저 먹고도 또 먹고 싶은 한창 때입니다. 그런 때에 점심 안 먹었으니 점심 때 밥 그리워하는 마음이 복잡하더라구요. 친구들은 도시락을 가지고 와 먹고 있는데, 저 먼데 혼자 앉아 가지고 밥도 안 먹고 명상하는 그 자리는 심각한 자리라구요.

옛날 두 교회가 한강가에서 합동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모래 사장이 지금은 없어졌지만, 서빙고 앞이었어요. 점심 때 모두 점심을 먹는데 그 속에서 혼자 앉아 가지고 버틸 수 있나요. 그래서 혼자 쓱 뒤로 빠져 나와 돌무더기 같은 데에 가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가 지금도 그립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배고프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구요. 돈이 없어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요. 점심을 먹지 않고 그 점심 값으로 반드시 남을 도와주는 거라구요.

또 학생 때는 전차를 타고 다니지 않았어요. 절대 안 타고 다녔다구요. 그때 전차비가 5전씩이었어요. 그래도 반드시 걸어 다녔습니다 . 그래 가지고 왕복 10전을 모아 길가에서 적선해 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때는 거지들을 쭉 관찰하는 거예요. 옛날 노량진 고개하고 화신 백화점 옆 골목길에는 거지들이 많았습니다. 갈 때 한번 쓱 보고, 돌아올때 다시 한번 봐 가지고 그중에서 나이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을 가르는 것입니다. 거지들 가운데도 새파란 젊은 녀석들에게는 안 주는 거예요. 불쌍한 사람에게 주는 거예요. 봉사라든가, 나이 많은 사람을 골라 가지고 적선하는 거예요. 적선도 그렇게 해주었다구요.

선생님은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은 남에게 신세진 것은 영영 안 잊는 겁니다. 내가 점심을 안 먹고 자갈 쌓아 둔 돌 무더기 뒤에 있었는데 그때 송씨 부인이 아이스케이크 두 개와 빵 두 개를 가져 왔었어요. 그게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한 개에 일전짜리예요. 그거 모두 합해야 4전인데, 그 빵과 아이스케이크를 갖다 준 것이 영영 잊혀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때 그 자리가 얼마나 심각한 자리였더냐 이거예요. 이렇게 신세를 진 것은 영영 잊혀지지 않아요. 선생님은 그런 습관을 들여 놓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려울 때에 도움을 받은 것은 영영 잊지 않는다구요 알겠어요? '아무때 어떻고, 아무때 어떻고…' 하며 나를 위해서 수고하고 나를 위해서 베풀어 준 그 은덕은 영영 잊어버리지 않는다구요. 그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세계의 인간을 위해서 그것을 갚으려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갚아 줄 수 없는 거라구요.

은덕을 갚는 데 있어서 그 사람을 언제 다시 만날 것이냐? 그 사람을 찾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신세를 진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그 마음을 가지고 '아무때에 내가 은덕을 받은 것을 이 사람한테 주겠사오니 대신 갚는 조건으로 하나님이여, 받아 주시고 대신 갚아 줄 수 있는 자리로 메워 주시면 좋겠습니다' 해야 합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은인을 만나서 주는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주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떠하겠어요? 이러한 분위기의 생활체제를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주고도 더 주겠다는 마음을 갖는 사람은 망하지 않아

옛날에 통일교회를 반대한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정성을 다했는데도 반대했어요. 그 여자는 단칼에 배를 가르고 목을 잘라 버려도 시원치 않을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의 친구가 지나가는 말로 '그 아무개 통일교회 반대하고 그러더니 학비가 없어 학교 못 갔대'하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남모르는 가운데 학비를 대주었습니다. 그런 인연을 많이 닦아 놓으면 하나님이 보게 될 때,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을 좋아하게 마련이라구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주면서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주면서 자랑하는 마음을 갖지 말라는 거예요. 부모의 심정, 즉 주면서도 미안해하고 앞으로 필시 더 좋은 것을 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주고 나서도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은 망하지 않는 거예요. 이것이 선생님의 생활철학입니다.

여기 대원들 그렇겠구만. 한 집에서 너댓 사람이 살면서 돈 100원 빌려 주었으면 '언니 100원 꾸어 갔지'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앞으로 잘사느냐 하면 못살 거라구요. 그 사람 후손이 줄어들 거라구요. 두고 보라구요. 내가 많이 검사했다구요.

우리 통일교회 할머니들도 대부분 공동생활을 했습니다. 선생님도 옛날에 빈민굴에 들어가서 누더기 옷을 입고 생활해 보았어요. 이가 행렬을 지어 가지고 새벽부터 일진이…. 그런 경험도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 들어온 할머니들이 한때는 자기들만 잘입으려고 옷을 싸 가지고 꽁무니 뺀 적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 보고 못 사는 사람이예요. 나 그런 것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라구요. 이 다음에 선생님이 영계에 가더라도 내 옆에 못 오게 할 거예요.

누가 그런 사람을 좋아하겠습니까? 누가 거기에 언 손을 녹이고 싶겠느냐 말입니다. 누가 그 집안에 가 물이라도 얻어먹고 싶겠어요? 어림도 없다는 겁니다. 푸근한 마음 바탕을 지녀야 된다는 거예요. 추우니 어서 몸을 녹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어휴! 춥겠구만' 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 자기 이불이라고 해서 자기만 덮겠다고 하는 것들은 제일 싫어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주의라고요.

한 집에서 살면서도 '이건 내 옷이야' 하면서 서로 가지려고 하고, 그 옷짜박지가 그렇게 귀해요? 또 밥도 서로 좋은 밥을 먹으려고 하지요? 내가 감옥에 있을 때, 그런 거 많이 봤어요. 밥을 넣어 주다 밥그릇에서 조그만 덩어리가 떨어져도 기분 나쁘다고 합니다. 거기에서는 콩 한 알이 소 열 마리보다 더 귀해요. 그런 사정인데 식사 때 가만히 보고 있다가 저것은 제일 욕심 많은 녀석이 취하겠구나 하면 아니나 달라요. 사람들은 앉아 있고, 밥이 한군데에서 쓱 들어와 돌려주게 되면 욕심 많은 사람은 그 가운데서 제일 많은 밥을 척 골라 취하는 겁니다. 그런 녀석 올바로 죽나 보라구요.

그래 밥 먹을 때에 떨어진 밥을 내가 제일 잘 먹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밥 먹을 때에 수작을 해도 '야, 가만히 있어 이 자식들아'한마디 하면 다 꼼짝 못했어요. 다 잘못했거든요, 벌써 조건에 걸렸다구요. 그런 입장에선 내리 밀어도 머리 숙여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조금 못하게 산다고 해서 모든 것이 나쁜 게 아니더라는 거예요. 조금 덜 먹었다고해서 망하지 않더라는 말입니다.

보리밥, 그것도 찐 보리밥을 먹어 보면 맨 밑바닥 부분의 밥은 집니다. 보리밥을 먹는 아가씨를 보면 그 심통을 아는 겁니다. 자기만 좋은 데 삭삭삭 골라 가지고 먹는 것은 독약을 먹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거예요. 그 사람은 형제의 피와 간을 갉아먹는 악귀요, 요녀입니다.

여기 우리 통일교회 아줌마 후보들 가운데는 그런 사람 없겠지요?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럴 성싶은 마음 보따리는 다 갖고 있다구요. (웃음) 여러분이 웃는 것을 보니 틀림없구만. 그러니 그런 마음 보따리는 잘 다듬어 잘라 내야 된다구요.

선생님이 이북에서 피난 내려올 때 박정화하고 원필이하고 함께 왔어요. 도중에 밥을 해먹는데, 밥을 다 먹고 난 후에도 밥숟갈 놓기가 쉽지 않아요. 정든 님과 떨어지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는 거예요. (웃음) 말로 표현하자면 그렇다는 거예요. 피난길에 보따리가 크면 무겁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짐을 조금 가지고 다니고, 밥도 조금씩 해 먹어야 된다구요. 많이 하게 되면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 후닥닥 해먹어 치우고 가야 되는 거예요. 한걸음이라도 빨리 가야 되니까 말이예요. 그러니 쌀을 조금 사르르 끓여 가지고 될 수 있으면 빨리 먹는 겁니다. 밥은 내가 많이 했다구요. 밥을 해 가지고는 남비째로 갖다 놓고 먹기 시작하는 겁니다. 미욱한 사람은 그저 척 와 가지고 기도하자마자 퍼먹는 거예요. 퍼먹는 데는 자기 분량만큼 (제스처를 쓰시면서) 요렇게 점령해야 할 텐데, 가운데서부터 이렇게 떠 가지고 먹기 시작하누만. 이렇게 밥을 먹다가 나중에 숟갈을 누가 먼저 놓느냐 하는 내기를 하는 거예요. 여기에서 누가 제일 먼저 숟갈을 놓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격이 평가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밥이 남아 있는데도, 몇 숟갈 더 먹더라도 넉넉한 분량인데도 불구하고 숟갈을 놓는 겁니다. 만일 그런 일이 있을 때 의리 있는 사람이,'아, 왜 놓느냐'고 하면서 같이 더 들자고 숟가락을 들어 준다면 그는 친구중의 친구가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먼저 숟갈을 놓는데도 밥을 같이 더 먹자고 숟갈을 다시 들려 주는 친구는 진짜 친구라구요. 그러나 먼저 숟갈을 놓는데 그걸 '잘했다'고 하면서 인사도 안 하고 '씩씩' 하며 혼자 먹는 사람은 친구 삼지 말라구요. 그런 사람은 친구 삼지 마세요. 반드시 손해봅니다. 그래서 피난 내려올 때 내가 언제나 먼저 숟갈을 놓고 먹는 것을 보는 거예요. 큰 놈이 먼저 놓나 작은 놈이 먼저 놓나 하고…. 이런 것이 다 필요한 거라구요.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가지는 권위

임지생활하는 데에 있어서 어떤 아줌마들을 보면, 자기 남편이 돈을 안 보내 주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남편은 도둑질을 했는지 넝마장사를 하거나 미군부대에서 뭐 해서 돈을 벌었는지는 모르지만, 또박또박 2천원도 보내 주고 5천원도 보내 준다구요. 그런데 5천원이 오게 되면 3천원은 자기 지갑에 넣고 2천원만 내보이며 '언니, 식비 왔어' 합니다. (웃음) 편지는 다 찢어 버리고, '편지는 안 왔어? 하면 '글쎄 올 것 같은데 안 온 거 같애'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생활해 왔어요.

선생님은 절대 그런 놀음 못 한다구요.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미싯가루를 받아도 혼자 먹지를 않았어요. 죽으면 같이 죽지, 다 나눠 주는 거라구요. 그렇게 나눠 주다 보니, 나중엔 내가 먹을 것이 없게 되니 옆 사람들이 모아 가지고 나를 먹여 주는 일이 벌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선생님한테 찍소리도 못하는 거예요. 그리고 한 40명이 한 방에서 자는데 내가 제일 나쁜 데서 잠을 잤습니다. 자다가 일어나 소변을 보러 가려면 소변통이 저쪽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짓밟고 가게 돼요. 하도 빽빽하기 때문에 세게 밀다가 안 되면 발길로 들이찹니다. 그런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나한테 발길질을 한번 했다가는 다음날 아침에 와서 잘못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이놈의 자식, 어젯밤에 왜 그랬느냐'고 싸움이 벌어진다구요. 그리고 바쁠 때는 배를 딛고 넘어가더라도 난 줄 알게 되면 '몰라 봐서 미안하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게 왠 줄 알아요? 먹는 데 있어서 주는 사람은 다르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얻어먹고도 또 먹고 싶고, 가져도 가져도 또 갖고 싶어하는 것이 종이라구요. 알겠어요? 선생님에게 좋은 옷이 있으면, 식구들에게서 좋은 바지 저고리가 들어오게 되면 제일 불쌍한 사람에게 갖다 입혀 줍니다. 면회를 한번도 오지 않는 사람 많아요. 그런 사람에게 주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옷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선생님을 보기만 하면 그저…. 그러기 마련입니다.

거기에서는 가마니 같은 것을 전부 다 새끼로 묶기 때문에, 손이 전부 다 갈라집니다. 그래서 골무를 해서 끼는 거라구요. 그러나 일을 하다 보면 하루에 열 개씩 헤지는 거예요. 그럴 정도로 손이 갈라지고 피가 나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 손으로 천막기지를 전부 다 푸는 거예요.천막 기지를 풀어 가지고 옷을 만드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뭘 하느냐? 바지를 떠서 면회 오지 않는 사람에게 주는 거예요. 그 얼마나 품이 들겠어요? 그러면 그들은 좋아하는 거예요. 거기에서 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사다 주는 것보다 더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그거 아주 멋지다구요. 나는 바람이 펄펄 불 때 옷이 다 째져서 궁둥이가 보이는 옷을 입고 다녔어도 감옥에 있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내 옷을 들고가 그에게 주었어요. 그렇게 했기 때문에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 '문선생, 문선생' 했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아침에 일어나 소변을 보러 가게 되면, 서로 먼저 소변을 보려다가도 내가 꼬래비로 서 있으면 전부 다 내 뒤로 가는 거예요. 싫다 해도 그렇게 해주는 겁니다. 그거 왜 그러는 거예요? 결국은 자기 하기 나름이라구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감옥에 있을 때 말하지 않고도 생명을 각오하고 따르려는 사람들을 많이 제자로 삼았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 신랑으로부터 돈 받아 가지고 감추고 사는 사람'복 받으소' 이거 안 되는 겁니다.

전도자로서 취해야 할 자세가 어떤 것인가 생각해 보라

보라구요. 여러분 중에 혹 신랑으로부터 소식도 없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들끼리 일체되어 해결해 주어야 되는 거예요. 만약에 신랑으로부터 5천원 받았으면 자기 식비를 제하고 봉투에 다시 넣어 다른 사람을 시켜서 돈이 오지 않는 언니의 남편이 보내왔다고 하면서 그 언니를 도와주어 보라는 거예요. 깜쪽같이 그렇게 한번 해보라구요. 나중에 전도생활이 다 끝나고 나서 그렇게 도움받은 사람이 신랑을 만나 물어 보니 돈을 신랑이 보내 주지 않았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다른 누가 도와준 것이 알려지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빚은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은덕으로 길이길이 남아지게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여자들이 말이야, 내가 잘못 내세웠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라고 내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되라고 내보낸 것입니다. 먹을 때도 같이 먹고, 굶을 때도 같이 굶고, 울 때도 같이 울며 하나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선 이웃을 사랑해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지, 그러지 못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학창시절에 친구들의 비밀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통일교회에서 나가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한마디 하면 그 사람이 감옥에 들어갈 수 있는 사연이 있지만 그 말은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런 약속을 했기 때문에 의리가 있는 거라구요.

이런 모든 전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여러분이 전도자로서 취해야 할 자세를 생각하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결국 전도 안 되는 것은 누구 때문이라구요?「자기요」 자기 때문입니다. 남보다 더 자려는 꿀꿀돼지가 되고, 남보다 더 먹으려는 꿀꿀돼지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너희들, 나에게 도움이 되고, 나를 위해서 있어라'한다면 전부 다 도망 하는 거예요. '내가 너를 위해서 있겠다'고 할 때 전부 다 좋다며 입을 벌리고 환영하는 겁니다. 그런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런 원칙을 중심삼고 사람을 척 대할 때, 좋은 사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자신이 좋을 수 있는 사람으로 어떻게 나타나느냐 하는 것을 언제나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전도는 무한히 주면서 하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할 때는 반드시 정성들여 가지고, 하늘을 부여안고 눈물을 흘리며 '내가 오늘 만나게 되는 사람과의 인연을 파탄시키는 천륜의 거역자가 되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 환영을 받고 여기에 동기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해야 되겠어요. 그래 가지고 전도 나가 보라구요. 그렇게 하지 않고 기분 나쁘게 해 가지고 동네에서 제일 좋은 사람을 찾아가 보라구요. 소박맞고 쫓겨나는 거라구요. 그런 체험을 여러분이 생활을 통해서 하고, '아 하늘이 이런 곳에는 같이하시고 이런 곳에는 같이하시지 않는구나' 하는 것을 실험하면서 가려 가야 여러분이 발전하고 인격수양도 되어 하나님의 심정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10년 전이나 10년 후나 매양 그 꼴이라구요. 뭐 달라졌어요? 욕심만 더 품은 채 도사리고 앉아 가지고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는 무한히 주면서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응하지 않게 되면 하늘의 호출명령이 내려지는 겁니다. 용서받지 못하는 거라구요. 선은 뿌려 가지고 거두지 못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선한 사람이 부를 때 거기에 대답하지 못하면 벌받는 거예요. 그렇겠지요? 선이 손길을 폈는데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안 나오면 그 동네와 이웃 마을까지 사탄의 손길에 말려들기 때문에, 선한 인연을 가진 선조들은 그런 곳에 와 가지고 전도하려고 하는 사람이 요구하는 기준에 합당한 대상자를 자기 후손 가운데 긁어 모아서라도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후손에게 몽시 가운데에서라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의 우리 식구들 가운데도, 선생님을 알기 전부터 선생님을 몽시 가운데서 만나 본 사람들이 많다구요. 여기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통일교회에 들어와 만나 보니 선생님은 통일교회에 들어오기 전에 꿈 속에서 만나 보기도 하고 가르침을 받은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알겠어요? 그건 자기 선조들이 선하기 때문에 그런 거지 자기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선조들의 공적을 통해 그랬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그런 인연을 갖게 되면 거기에 상대되는 사람은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 가지고 자기는 아무데 가야 하는데, 난데없이 북쪽길로 자꾸 가고 싶어지는 겁니다. 자꾸 가고 싶어져요. 그래서 이끌리는 곳으로 가다가 사람을 척 만나게 되면, 인연된 사람을 만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전도를 처음 나갈 때에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성들이면서 가게 되면, 자기가 가야 할 방향을 아는 거라구요. 이렇게 하늘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가지고 생활하면 먼데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생활권내에서 모든 심정적 변천을 주관하시는, 좌우하시는 주체적 하나님임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감정적인 사연의 환경에 접해 가지고 사시는 아버지로서 모실 수 있는 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갖고 정성들이면 전도 못 할 리가 없다

정성도 안 들이고 아무리 돌아다녀 보세요, 안 된다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언제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 밤을 새워 가며 정성을 들여 보았어요? 자식이 죽어 지옥가게 된다면 그 부모가 밤을 새우겠어요, 안 새우겠어요? 새우겠지요? 마찬가지로 전도자로서 한 사람이라도 전도하기 위해 밤을 새우면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가짜입니다. 원리강의를 못해 가지고 뭐뭐 어떻다고 하지요? 전도하는 데 실력은 무슨 실력이예요? 어머니 좋아하는 것, 뭐 실력이 있어 좋아해요? 아버지 좋아하는 것, 실력이 있어 좋아해요? 일자무식의 어머니 아버지 좋아요, 나빠요?「좋아요」 학박사 어머니 아버지만 좋아요? 부모의 심정을 갖고 하면 전도 못하는 법이 없다구요. 선생님은 실력없어 못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그러그러한 사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남에게 좋을 수 있는 사람으로 어떻게 나타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정성들이고 나타나야 합니다.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래요. 어떤 대강연회라든가 혹은 이런 단에 나서게 될 때, 어떤 설교 제목을 준비하는 데는 머리 안 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설교 제목은 준비를 않는다는 거예요. 얼마나 사람들이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갖고 나타날 것이냐? 소리를 지르며 '아이고, 반가와라. 고맙고 반가와라' 할 수 있게 되면 할 말은 얼마든지 있는 거라구요. 그래서 선생님은 그럴 수 있는 심정적 기준에 있어서 그들보다 더 높은 입장을 어떻게 취해 가지고 나타날 것이냐를 중요시하지, 무슨 설교 제목으로 어떤 말을 할 것이냐 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무슨 제목을 가지고 설교하는 목사들이 쫓겨나는 것이 일쑤라구요. 그것은 왜? 심정의 인연을 못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전도 나가는 것은 심정을 심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막과 같은 메마른 한국 강토에, 심정이 다 없어진 이 삼천만에게 우리가 새로운 빗발과 같은 심정의 인연을 쏟아 주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가지고 이웃 동네 아주머니들이 밥 하게 되면 그곳에 가 '형님' 하면서 거들어 주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것이 다 형제지간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서 동네 전체를 자기 활동무대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모든 집이 자기의 형님 언니 집과 같이 되도록 말입니다. 일손이 바쁜 집이 있거든 새벽같이 일어나 성지 기도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러 밥이라도 같이 해주라는 거예요.

왜 그런 일을 못 하느냐는 거예요. 잠을 좀 덜 자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지도 못해 가지고 전도는 무슨 전도예요? 남자들은 오지 말라고 해도 오는 거라구요. 무턱 대고 가 가지고 '내가 통일교회 전도대원이요. 통일교회 원리 말씀 들으시오' 해 가지고 '그래 들읍시다. 무슨 말씀이요' 그러면 '창조원리가 이렇고 이렇습니다'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것은 다 들은 풍월이지, 자기 것이 아니라구요. 남의 것 가지고 나눠 주어 그것 다 없어지게 된다면 본전이 없기 때문에 박박 긁어 먹고 나불나불…. 들은 풍월을 다 팔아먹었으니까 할 말이 없지요. (웃음) 그래서는 안 된다구요.

식구가 그리워 눈물이 앞서는 사연에 사무쳐 보라

애국자는 민족을 위한 눈물이 먼저 앞서는 것입니다. 이길 알아야 돼요. 알겠지요? 애국자는 그 백성을 바라볼 때 눈물이 앞서는 것입니다. 효자는 부모를 생각할 때 눈물이 어리는 것입니다. 부모를 위해 물건을 살 때, 눈물이 앞서 가지고 그 물건을 고르게 되면 아무리 악한 부모라도 그 효자 앞에서는 녹아나는 것입니다. 그런 거예요. 알겠어요? 부모의 사랑은 눈물을 따라가는 거예요. 그렇지요? 형제간의 진정한 사랑도 눈물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교역자로서 눈물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식구가 찾아오걸랑 반가와 가지고 눈물이 앞서는 사연에 사무쳐 보라구요. 그러면 그뜰 아래 사람의 흔적이 사라지나 보세요? 안 사라진다구요.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예요. 사랑을 가진 자는 눈물이 앞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 마을을 책임지고 있을 때, 고요한 밤 열두 시나 새벽 한시경에 그 마을을 바라보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당신이 이 고을에서 하룻밤을 주무실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이 집입니까, 저 집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집입니까?' 이렇게 기도하고, '이 동네가 사막과 같은 황무지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의 발걸음은 찾아오시고 싶지만 저 먼 동네에서 바라보시며 오시지 못하는 입장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내가 가서 모셔 와야 되겠다. 밤에라도 가서 모셔 와야 되겠다'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니 친구의 집에 가서 그와 더불어 이러한 사연을 얘기하고 싶어하고, 그래서 밤을 지새워 가면서 말을 건네고, 만일 어떤 친구에게 갔는데, 그 사람이 잠을 자거든, 깰 때까지 담 너머에서 눈물 흘리며 만나고 싶어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연이 깃드는 그 시간은 거룩한 시간이라구요. 선생님도 그런 놀음 많이 했어요. 그런 곳에 하늘이 같이하시는 겁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오솔길을 거닐고 징검다리를 건너던 때는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전도된 사람이 비록 현재 통일교회에 남아 있지 않지만 통일교회 선생님이 손해를 봤느냐 하면 손해보지 않았다구요. 그러한 심정적 재산이라는 것은 영영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 모양의 사람만 보면 그때의 그 심정이 반드시 떠오른다구요. 그 사람이 떨어졌다고 타격받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재료를 선생님은 수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래 봤어요?

그렇기 때문에 찾아가고 싶은 마음에 십리길도 멀다 않고 단숨에 찾아 가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쪽에서도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통일교회 여러분들이 뭐 선생님을 대해 가지고 생각하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그런 동기를 심어 왔기 때문에 그렇게 안 되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은 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의 생활이라는 거예요. 이러한 마음을 여러분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궁색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비록 누더기 옷을 입고 있더라도, 그럴 때는 이 누더기 옷이 앞으로의 소망의 날에 있어서 천만인이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은 이러이러한 길이요, 내가 역사적 사명을 짊어졌기 때문에 이 땅 위에 그 시대를 맞아 가지고 그것이 전체화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될 때는 오늘 이와 같은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 연극을 꾸밀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실극을 하는 주연(主演)이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래서 누더기 옷을 입고 쓱 행차하는 거라구요. 밥을 얻어먹으러 가는 겁니다. 그거 근사하지요? 역사를 창건하는 주연의 심정을 갖고 가는 겁니다.그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라구요. 생각 하나에 의해 천태 만상이 다 달라지는 겁니다.

하늘을 위해 정성들이며 살면 망하는 법이 없다

선생님이 얼마나 배고픈 생활을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30세가 넘도록 배가 안 고파 본 날이 없어요. 배고픈 생활을 일부러 다짐하지 않고는 그리운 소망을 잊어버리기가 일쑤더라!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까딱 잘못하면, 배부르면 잊어버리더라 이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언제나 배고픈 생활을 한 거예요. 누가 언제나 무엇을 가져와도 한 그릇 이상은 안먹었어요. 더 먹어 치울 수 있는 입장에서 그만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궁금한 거라구요. 내가 이렇게 배고프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냐? 목적을 성사하기를 맹세하고 이렇게 된 것이 아니냐?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목적을 생각하는 거라구요. 일부러 그런 일을 해나온 겁니다. 그래, 좋은 옷은 절대 안 입는 거라구요. 왜? 내가 이런 일을 하기 원해서는 많은 경제적 재원이 소모될 것이기 때문에, 10년 생활을 100년으로 연장시켜 살지 않으면 많은 시간을 남길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투입되지 않고는 큰일을, 큰 실적을 남길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배고플 때 하늘을 생각하면서 하늘의 사람을 사랑하고, 자기가 먹고 싶은 밥을 잊어버리고 하늘을 그리워하는 자리에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나 어스름한 저녁 때는 누구나 처량한 거라구요. 그럴 때 그리운 님의 발걸음이 배고픈 이 사람 앞에 멈추게 되면 나는 어떤 표정을 할 것이냐? '아이고, 배고파' 할 것인가? 아니라구. 무엇보다 반길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이 시간이냐, 내일 아침이냐, 모레 아침이냐. 기다리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래요? 이 달은 지나갔지만, 내달 초하룻날이 아니냐? 내달 초하루 그 다음날이 아니냐? 고대한 그날이 지나갔다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시일이 가면 갈수록 점점 그리워지는 마음, 그렇게 1년이 가고 2년, 3년, 10년 세월이 지나가도 못 만났다고 한다면 자기가 정성들인 것이 아까와서 딴 생각을 하래도 못 하는 겁니다. 당연한 얘기라구요. '10년 동안 그리워했던 소원성취의 한날이 어서 오소' 이 문제를 걸어 놓고 정성을 더 들이는 거라구요. 그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 문제가 해결될 때, 불행이 아니라구요. 길이가 길면 길수록 그 목적이 성사될 때의 통쾌감은 하루 이틀에 바라 가지고 소원성취하는 것보다 더 엄청나다는 겁니다. 그것은 자면서도 감사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기도 중에 '아버지여, 내가 정성들이고 기도하는 것을 천년 만년 후에 이루어 주십시오' 하는 기도가 있다구요. 알겠어요? 선생님이 정성을 들이는 것이'내 일대에 이루어지지 않고, 이것이 하늘 앞에 상달되고 기억되어 가지고 만년 후에 이루어질 수 있는 아버지의 심정적 인연이 남아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고 있어요.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통일교회가 만년이 가더라도 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도한다는 겁니다. 만년 후에 이루어질 수 있는 하늘의 동정적 사연이 남아 있으면 그것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 입장에 서기 때문에 그런 기도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기도를 하고 그것이 지금 이루어질까봐 무서워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모른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여러분은 당장에 이루어지는 기도를 하지요? 그걸 바라지요? 10년 정성들여도 부족하고 일생을 정성들여도 부족하기 때문에, 자기 아들딸, 나아가 3대, 4대, 10대를 거쳐 계속 정성들일 수 있는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나간다면 그 족속은 세계를 지배하는 족속이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야 되는데 이 통일교회 패들은 3년도 못 가서, 십년도 못 가서 '뜻이 왜 안 이루어져? 이거 못 해먹겠구나' 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지금까지 오십이 넘도록 뜻을 위해 일해 왔다구요. 알겠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타고난 팔자소관이지만, 선생님은 이렇게 살지 않으면 직살박살난다는 겁니다. 팔자 타령하는 거예요. 내 팔자는 이러니까 이 팔자길, 운명길을 피해 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감옥에 끌려가도 선생님은 '또, 내 한 고비를 메우기 위한 것이, 올 것이 왔구만. 이 후엔 무엇이 올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는 거예요. 그 사건보다도 그 후에 무엇이 올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올라갔다내려갔다 하는 것이 원칙이니까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만 붙들고 내려가면 고무줄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그러니 여기서 척 떼면 '획-' 하는 거예요. 하나님과 관계없이 내려가면 쉬 꼬꾸라지고 불안 하지만 하나님만 붙들고 내려가면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으니 하나님만 붙들고 죽겠다고 해보세요. 내려가 보라구요. 비약이 벌어진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통일교인이라면 가만 안 있다구요. 동네에 들어가면 사건을 일으켜 그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들든가, 무슨 야단을 하든가 한다는 겁니다. 밤잠을 자요? 밤낮으로 나발이라도 불고 다닌다는 거예요. 뚜뚜뚜 하며, 또는 꽹과리라도 치고 다니는 겁니다. 10년 세월을 그렇게 해보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 동네 사람들이 통일교회 패가 되든가 아니면 쫓아내든가, 그러지 않으면 후퇴하든가 하는 겁니다. 후퇴하면 이루어 나가는 겁니다.

선생님이 얼마나 지독한가 보라구요. 기성교회에서 그렇게 죽이려고 별의별 짓을 다 했지만 내가 물러나지 않았다구요. 지독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믿든가, 죽든가, 피난을 가든가…. 그런 마음을 갖고 전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못살게 하는 게 아니라 정성을 들이라는 거예요. 그들을 위해서 생명과 재산을 투입하고, 또 하늘의 참열매를 맺기 위해서 정성을 들였는데도 불구하고 치면 친 자가 망하게 마련입니다. 즉효가 난다구요. 선생님을 때려죽이겠다고 몽둥이를 들고 나오던 사람이 당장에 배가 터져 죽은 적이 있다구요. 하나님이 보호하는 겁니다.

지금도 그렇다구요. 괘씸한 놈 그러면…. 아무리 미운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속에서 밸이 틀어져 올라오는 거예요.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고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6, 7개월 이내에 끝난다는 겁니다. 그런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나 자신이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아요. 나와 인연을 잘못 맺게 되면 그 사람은 쑥대밭이 되는 거예요. 차라리 안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만났다가 내가 정성들여 주었다가 그들에게 유린당하고 어떤 피해를 입게 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폭탄이 떨어져 패인 구덩이에 떨어지는 일이 벌어진다구요. 그런 일들이 많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늘을 위해 정성들이는 자리에서 살아가면 절대 망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어떤 사람은 그래요. '뭐 예수를 믿는 것, 나이 많아지면 믿지. 꽃다운 청춘시대에 한바탕 술도 먹고 놀다가 늙어 죽을 때나 예수 믿고 천당가지'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도둑놈입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도둑놈입니다. 그런 녀석들은 믿기 전에 죽어 버립니다. 믿기 전에. 하늘나라에 그런 패가 들어왔다간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하자

이런 등등의 문제를 볼 때에, 전도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을 중심삼고 빼앗기 내기 싸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다고 간교하고 간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꿀을 가지고 그들에게 나누어 주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만 되면 말이요, 가만히 있어도 누가 찾아오는 걸 느껴요. 알겠어요?

선생님이 부산의 범일동에서 피난살이할 때, 척 앉아 있으면 저쪽에서 수많은 무리가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가까이에서 '선생님' 하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요. 주위가 웅성웅성해도 다 들리는 거예요. 그렇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 간막이 터지지 않았다구요.

그거 왜 그러냐?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 갈 길을 찾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 것이 느껴진다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이 터져 나가기 시작하면 길이 열리는 거라구요.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탕감기간이 있는 겁니다. 자기 개인의 탕감기간이 있고, 그 다음엔 동네 탕감기간이 있어요. 그러면 그 동네가 선한 동네냐, 악한 동네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분별해야 됩니다. 그 동네에 들어가서 무엇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그 동네는 선한 동네라구요. 그런 동네에 들어가 전도하게 될때는 잘사는 사람을 찾아가 전도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어떤 동네에 들어갔는데, 뭐가 훌떡훌떡 없어지면 그 동네는 악한 동네입니다. 그런 동네에 들어가서는 못사는 사람을 전도하라는 거예요. 그런 것을 전부 다 가려 가지고 전도하라는 겁니다.

잘산다고 다 좋은 사람이 아니요, 못산다고 다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하늘을 따라 내려가는 운세에 처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내려 가도 올라가게 마련이지만, 사탄을 통해 내려갔던 사람은 망하는 거예요. 또 사탄을 통해 올라갔다면 내려가서 망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사탄을 통해 올라갔다면 자연히 내려가서 망하는 것이고, 사탄을 통해 내려갔으면 영영 올라오지 못하고 망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늘을 통해 올라갔다면 더 올라가고, 내려갔다면 다시 올라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런 것을 가려 가지고 전도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노력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사랑하자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남을 만나 좋게 느껴지는 인연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도 좋을 수 있게끔 나타나야 되겠어요. 그래서 통일교회 아가씨라든가 총각들이 가게 되면 그 동네 아가씨들이라든가 총각들이 안 따라올 수 없는 인연, 자연히 끌려올 수 있는 심정적 인연을 가져야 되겠다는 겁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이 그리워 그냥 있을 수 없어 가지고 길을 나서 누구를 만나게 되면 그와 인연되어 자연히 전도가 되는 겁니다. 누구 상대할 사람이 없어 혼자 있을 때는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같이하는 거라구요. 자기 손을 척 붙들면 빛이 나는 거예요. 그런 게 느껴지는 겁니다. 빛이 나를 옹호하고 품어 주는 걸 느끼게 된다는 겁니다. 그럴 때 평화스러운 얼굴, 평화에 잠긴 얼굴, 행복에 잠긴 얼굴을 하고 그런 심정을 어떻게 체휼하느냐가 문제입니다. 혼자 거울을 통해 얼굴을 보고 '히히…' 웃고 그러지 말고, 마음과 몸이 부풀어 오르고 세포나 모든 것이 흠뻑 충만돼 가지고 하늘의 무한한 사랑에 잠길 수 있어야 합니다. 손짓하며 노랫가락을 읊조릴 때에 온 우주가 전부 다 주목하고 있는 것을 느끼는 자리에 서 가지고 '아버지' 하는 그 음성…. 그런 심정권이 필요하다구요. 그런 것을 여러분이 체휼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전도하게 되면 전도는 되게 마련입니다. 알겠어요?

전도대원에 대한 교회장의 위치와 책임

여기 교회장, 손들어 봐요. 내려요. 또 전도대원 조장들, 손들어요. 많이 왔구만. 요즈음 뭐 선생님이 남자들은 천사장이고 여자들은 해와라고 했기 때문에, 모시라고 했다고 해서 '우린 천사장인데 뭐….'이렇게 생각하는 녀석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릇된 생각입니다.

오늘날 복귀의 사명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바라시느냐? 우리가 완성기준을 찾아 나가는 사명을 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재창조 역사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완성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것이 원리의 가르침이예요. 그렇지요?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지으실 때에 누가 협조했어요?「천사장이요」 아담 해와의 가법은 물론 하나님이 세웠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아 가지고 누가 그들을 교육시켜야 돼요?「천사장이요」 천사장이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안 되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며 교육시켜야 된다는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타락할 때에 천사장이 해와를 꼬여 가지고 타락했지요? 복귀시대에 있어서는 천사장이 해와를 보호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뭐 우리는 천사장이니까 해와들이 해야지' 하는 퇴폐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누가 새로운 가법을 세우고 누가 해와를 보호해야 되느냐? 부인들이 어디 전도 나가게 되면, 혹 동네방네에서 누구에게 침범을 당할세라, 남자들은 보호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인들이 그 누구에게 조롱당하고 오면 남자들은 천법에 걸리는 거라구요. 저 원수세계의 어디에 가 가지고 행여나 사탄세계의 사내 녀석들한테 욕을 당할까봐 관리 보호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모시고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알겠어요?「예」 그래야 된다구요. 당신의 아들딸을 찾기 위해서 '갑시다. 갑시다'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게 천사장의 사명입니다. 알겠어요?「예」'너는 너고, 나는 나지 뭐야' 하며 너를 이용해 가지고 내가 득을 보자 한다면 그것은 타락한 천사장의 심중을 그대로 발로한 것이예요. 그렇지 않아요? 이렇게 되면 둘 다 망한다는 거예요.

전도가 안 되는 것은 누구 책임이냐? 먼저 천사장 책임입니다. 복귀과정에 있어서, 재창조과정에 있어서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교회장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알겠다는 사람 손들라구. 이 녀석들은 우리는 천사장이라 해 가지고, 전도대원들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울며 '아버지, 이곳에서 2년 동안이나 있었는데 아직 한 사람도 전도를 못 했습니다.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하고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하고 기도하는데…. 사실 큰일났거든요. 선생님이 다만 몇 푼씩이라도 도와준다고 해서 전도를 나갔다가 2년이 되어서 치마를 털고 일어나 '집에 가자' 하게 될 때에 '너 뭘했어? 하게 된다면 큰일났거든요. 큰일났지?「예」 그냥 돌아오게 되면 소박맞게 마련인데 큰일이라는 거예요. 세 아들을 찾으라는 것이 하늘나라 주인의 절대적인 명령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못 찾아 가지고 '이제 왔습니다' 하면 주인이 뭐라고 하겠어요? 성경에 한 달란트를 받은 종에게 뭐라고 그랬어요?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빚지는 생활을 하지 말라

이번 기간이 끝나면 입적이 벌어진다구요, 입적. 알겠어요? 원리 원칙대로 아담 가정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사람은 빠지는 것입니다. 36가정도 빠지는 것이요, 72가정도 빠지는 것이요, 120가정도 빠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대비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777가정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777가정에게 얘기를 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3년동안 수절을 하고 지내보라고요. 3년 동안 수절한 사람은 그 특권을 가지고 비약할 수 있는 은사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지만, 수절을 못 지키고 자기 멋대로 살아 버린 사람은 그런 자리에서 빠지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세밀히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하여튼 이번 기간에 선생님 말을 따라 3년 동안 수절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있어요, 모르고 있어요?「알고 있습니다」

3년 동안 여러분 모두가 처녀 총각의 심정으로 수절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젊은 청춘들이 사랑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닦아 놓고, 하나님을 기쁘게 모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번 기간이 그것을 다짐하는 기간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가정을 싹 끌어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여기에서 잘 후원한 어머니 아버지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며느리를 못살게 하고, 자기 아들에게 야 이놈아 장가를 갔으면 며느리를 끌고 오라고 하는 어머니 아버지는, 그리고 거기에 끌려가는 사람은 앞으로 천추의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온다는 거예요.

자, 생각해 보라구요. 전도 나간 지가 이제 1년 가까이 됐지요?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여러분은 그 동안 뭘했어요? 여러분을 내보내고 선생님은 좋다고 편안한 생활을 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빚지지 않기 위해서 금년 정월 초하루부터 7월까지 전국을 순회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구요. 그 후에는 외국 식구들의 수련이라든가, 하루에도 몇 번씩 치러야 하는 큰 행사 때문에 떠날래야 떠날 수 없어 여기 이렇게 있다구요. 그렇게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어젯 밤에도 열두 시가 넘어서 자 가지고 새벽 세 시 이전에 일어났습니다. 이런 생활을 하고 있다구요. 보통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잠을 잤으면 회개해야 됩니다.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입고 싶은 것 다 입고, 자고 싶은 만큼 다 자고, 이렇게 자기를 좋게 해 가지고 남아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기의 생명을 걸어 놓고 해야 하는 거라구요. 잠을 못 자고, 먹을 것을 못 먹고….

선생님에게 돈은 지금 많다구요. 돈이 있다면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를 위해서는 깍쟁이라구요. 선생님은 그렇게 훈련을 해왔습니다. 절대 나를 위해서 안 쓰는 거라구요.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사지를 않아요. 그러나 공적인 일을 위해 써야 할 때는 내가 아까와하지 않는다구요. 으례 써야 될 것으로 안다구요.

지금 본부에는 아마 돈이 한푼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한 달에 몇천만원씩 써야 된다구요. 이달에도 1억5천만 원이 있어야 됩니다. 지금 돈이 한푼도 없지만 걱정하지 않아요. 이건 다 해결된다구요. 이거 별스럽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죽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나라가 망해 넘어지더라도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을 뒷바라지해 주지 않으면 안 될 하나님이 있다는 것입니다. 좋지요?

여러분,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가 세계본부를 지으려고 여의도에 땅을 살 때, 그 땅 값이 5억을 넘어 6억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때도 역시 한푼의 돈도 없었어요. 그래서 빚을 얻어 가지고 겨우 계약금만 만들어 딱 계약해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계약을 하러 가는 영감도 선생님이 미쳤다고 하고. 간부들도 선생님이 어떡하려고 저러실까 하며 걱정했습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땅을 사려고 그러지. (웃음)

그렇게 해서 계약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그런 일을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않습니다. 먼저 영계에 타진해 보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협조해 주실 것인지 아닌지 미리 타진해 보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뒤를 만들어 놓고 뭘 해도 해야지요? 틀림이 있는지 없는지를 감정해 보는 거예요. 그런 때에 하나님이 '네가 거기에 박자를 맞출 수 있는 배포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럴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주고받으면 번식이 벌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원리지요?

하늘이 동정하고 싶은 전도자가 되느냐가 문제

신념을 가지면 틀림없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약을 해 놓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약을 한 다음에는 나머지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있는 정성을 다 들이는 거라구요. 밤잠을 안 자고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의 그 무엇을,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은 한 사람의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앞으로의 세계를 위하고 하늘의 위신과 체면을 세워 드리기 위해서예요. 그래서 노력하고 정성들이는 거라구요.

그렇다고 돈 달라고 정성을 들이지는 않아요. 돈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지만 세계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 한국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정성 들이는 것입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의 역사를 두고 이런 길을 걸어온 것은 이 나라를 찾아오신 당신의 한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까? 이 통일교회가 이런 길을 걸어온 것은 어느 한때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해방의 깃발을 높이 들고 기쁨의 상징으로 나타내기 위한 당신의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까?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있는 한국에서는 이 일이 반드시 필요하니, 당신이 협조 못 하겠으면 나라를 동원해서라도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심정적으로 하늘이 동조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벌써 상대방에게서 그러한 운이 트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대해 한번 '운을 터 보자' 해 가지고 '내가 이런 일을 하는데 이러 이러한 것이 필요하니 어떻게 하겠소' 하면 움직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한계선을 긋고서 4개월 이내에 깨끗이 해결지은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대학을 인수한다는 소문을 들어 봤어요? 그 대학을 인수하려면 13억이라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한푼도 없습니다. 뭐 있기야 조금 있지요. 그렇지만 그 일을 하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생명을 걸고 결사적으로 그 일을 하려고 하면 거기에 상대한 사람은 꺾여 나간다구요. 그러나 나는 그렇게까지 우리 뜻만을 세우기 위해 남을 꺾고 나가는 지독한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같이 인간적인 입장에서 경쟁하자는 것입니다. 네가 열이면 나는 거기에 스물을 합해 가지고 경쟁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볼때 어느 편이 되고 싶겠어요? 이렇게 가려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으로 멋진 것이 통일교회식입니다. 이 땅의 조그만 한 사람이 계획하는 것에 의해 내 소원 성취를 위해서 세계의 수많은 나라가 동원되고, 영계에 있는 조상들까지 동원되어서 입체적으로, 땅 끝에서 땅 끝까지 연결되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거 믿어져요?

결국은 뭐냐 하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시게 될 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분 그렇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분이 그렇게 되어 있느냐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안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그러니 그분이 가는 곳에는 협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없어서 못 하지 언제나 협조하고 싶고, 같이 동조하고 싶다는 거예요. 같이 만나고 싶고, 따라가고 싶고, 그저 사귀고 싶은 그런 마음이 생긴다는 겁니다. 하나님도 그렇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최후에는 무엇이 문제냐? 언제나 하나님이 동정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고 좋아하시며 '너 어디를 가든지 내가 보호해 주마' 하고 하나님이 따라다니면서 동정해 주는 입장에 있으면 그 사람은 부모를 가진 자식과 같습니다. 하늘 부모를 가진 자식에게는 언제나 부모의 사랑이 같이해 그를 보호하지요? 동정하지요? 여러분이 그런 심정적 자세만 갖추고 전도를 하게 되면, 아버지가 거기에 같이하는 거라구요. 틀림없이 실감이 난다군요.

뭇사람에게 좋을 수 있는 심정의 주인이 되면 발전해

여러분이 전도 나가는데 그것은 혼자 가는 게 아니라구요. 하나님의 동정의 울타리와 같이 가는 겁니다. 그러므로 내가 전도하러 갈 때, 무슨 말을 처음으로 할 것이냐? 반가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기분을 느껴야 합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처음에 인사를 어떻게 하고 무슨 말을 할것인가….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이 인사하기 전에 벌써 인사하고, 또 그가 나쁜 옷을 입고 자기는 좋은 옷을 입었으면 부끄러움을 느끼는 거라구요. 그것이 심정세계에서는 빚이라구요. 남보다 잘먹고 잘입으면서 배고픈 사람에게 '야 야, 나를 대접하라'고 하는 사람은 벌받게 마련입니다. 잘입고 나서도 거지의 것을 탐내는 사람은 망하게 마련이예요. 이런 걸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구요.

자기가 전도 나갔을 때, 잘입고 갔으면 자기보다 못입은 아주머니나 그런 사람들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동정을 해주지요. 그렇지 않으면 동정을 해줄 게 뭐예요? 동정은 자기 자신이 마음적으로 낮은 자리에 있을 때 동정을 해주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 사람들이 동정을 해주는 겁니다. 내가 그 사람들을 동정해 주고, 그 사람들이 나를 동정해 줄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러한 생활 자세가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느껴야 되겠어요. 알겠어요?「예」

이런 등등의 문제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람들 앞에 설 때 좋은 사람이라고 환영받을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뭇사람 앞에 좋을 수 있는 심정적 주인이 되면 여러분은 발전하는 것입니다.

교회장이 전도대원들보다 정성이 부족하면 안 된다

아까 얘기했지만, 여자들이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고 있는데, 교회장이 되어 가지고 나가자빠져서 코를 골고 잔다면 되겠어요? 그놈의 코는 축농증에 걸리는 것입니다. 축농증에 걸려야 되는 거라구요. 자빠져 자고 있는 그놈의 다리와 오장육부는 병이 나야 되는 거라구요. 병이 나게 마련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추방되게 되어 있습니다. 핑계를 대며 '아이고 내가 애기를 둘이나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애기를 돌보다 보니 고달팠소. 어떻게 하늘의 공적인 일을 다 할 수 있겠소?' 하지만, 그것이 누구 때문이예요? 자식이야 자기 것이지요. 그 누구한테 지울 거예요? 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자식을 데리고 있는 거하고, 자식을 버리고 나온 거하고 어느 것이 좋은 거예요? 고생스럽더라도 데리고 있을래요. 버리고 갈래요? 어느 것을 취할 거예요? 대답해 보라구요. 데리고 있고 싶어요, 버리고 가고 싶어요? 데리고 있고 싶지요?「예」 데리고 있고 싶다면, 버리고 나온 사람한테 빚지는 것입니다.

그런 주제에 그들이 정성들이고 있는데 아기 때문에 새벽예배를 못 드리고, 새벽기도를 못 하고, 성지를 못 간다니 말이 돼요? 어림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하기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이기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거예요. 알겠어?「예」 교회장들, 알겠어?「예」 둘이 합심해야 된다구요.

보라구요. 여러분, 지금 이 부인들이 뭐예요? 가인의 부인과 같습니다. 가인의 부인이라구요. 가인의 부인. 알겠어요? 그 가인의 부인이 여러분을 물어뜯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지금 자기 부인을 쫓아내고 남의 부인을 데려다가 이 놀음을 하고 있지요? 팔자 한번 참 고되고도 서글프게됐지요? (웃음)

여기에 있어서 부인 전도대원들이 공증인(公證人)이 되지 못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참다운 아내를 맞이하여 하늘가정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공증받는 때라구요. 이 바람에 부인들은 나가서 사람이 되고, 여러분들은 훈련을 받아 안팎으로 사람이 되는 거라구요. 이제 3년 후에 만나게 되면 여러분의 아내들이 '아이고, 우리 낭군 품에 돌아오니 이 이상 행복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는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간절히 간절히 비나이다' 할 것입니다. (웃음) 이게 훈련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전도대원들은 교회장들의 부인이 와 있는 것을 죽기만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 그렇지요? 웃지 말고 대답해 봐요. 교회장 부인이 와 있으면 죽기만큼 싫지요? 대답해 봐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래요」(웃음) 더군다나 교회장 부인이 애기를 안고 젖을 먹이고 있으면 그 애기까지 싫다는 거예요. 그 젖을 먹는 애기들까지 발길로 차 버리고 싶을 거라구요. 그것이 나쁜 마음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마음이라구요. 그렇게 그냥 두면 망하니까, 망하게 해서는 안 되겠으니까 쫓아내고 떼어 버리려는 마음이니 살려주려는 마음이예요. 그런 마음이니까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다고 해서 툴툴거리는 사내는 빵점이예요, 빵점. 빵점이 좋아요?

남자(교회장)나 여자(전도대원)나 기반을 닦아야 할 3년 기간

자, 교회장 가운데서 여편네를 끼고 있는 교회장이 있어요? 그놈의 자식, 그런 녀석은 사람 축에도 들지 못합니다. 그런 녀석에게는 밥을 주지 말라구요. 밥 주면 안 되는 거예요. 밥을 주면 사람으로 취급하는 거예요.

밥을 안 주고 쫓아내야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할수없이 돌아와서 '아이고 잘못했소. 이제는 안 그러겠소' 그래야 살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냥 처박아 두었다가는 다 죽이는 거예요.

남의 식구 한 천 명 정도를 자기 식구와 같이 먹여 살리는 것은 팔자가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좋아요? 그거 얼마나 팔자가 사나워요?

팔자가 사나운 것 같지만, 천 명을 먹여 살렸다 하게 되면 내가 천번 죽을 길에서 살아날 수 있다 그 말이라구요. 그러니 팔자가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시작은 나쁘지만 결과에 가서는 좋다는 것입니다. 시작은 나쁘지만 결과와 합하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천 명을 먹이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생각하면 열 명의 전도대원 부인들을 못 먹이겠어요? 보세요. 예수님에게 사건이 생겼습니다. 무슨 사건이냐 하면 제자들을 시집 장가를 보내지 못한 사건입니다. 그 때문에 죽었습니다. 열두 제자들의 신부감을 길러내지 못한 것이 사고였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못 해봤어요? 못 해봤지?「예」 그러면 예수님이 그러한 신부감을 마련하고 싶었겠어요, 마련하고 싶지 않았겠어요? 여러분, 그것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은 지금 열 명의 부인들을 맞았습니다. 10수는 12수를 대표하는만큼, 완전수를 대표하는만큼 교회장들은 전도대원들을 잘 길러 가지고 전부 다 앞으로 민며느리 삼을 각시로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전도대원들을 전부 앞으로 민며느리 삼을 각시들로 생각해야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복받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선생님의 마음이예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회장 녀석들이 들어 앉아 가지고는 말이예요. 그건 안 되는 거예요. 전도대원들, 앞으로 전도 나갈 때는 둘이 나가든가,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교회장을 끌고 나가세요. 절대로 여자 혼자서 다니지 말라구요. 교회장을 앞장 세우고 나가라는 거예요. 여러분, 길잡이라는 말 알지요? 교회장을 길잡이로 해서 전도를 나가라는 것입니다. 이건 앉아 가지고 괜히 세월을 보내고 수요일 예배 때 원리강의나 조금 하고는 낮잠이나 자고…. 그런 녀석들 절대 밥 먹이지 말라구요. 그런 녀석들에게 밥을 먹였다가는 두고 보세요. 이놈의 자식들, 그래 가지고 밥을 먹겠다고 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아는 사람 손들라구요? (웃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세를 지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번 기간에 자리를 못 잡으면 보따리를 싸야 됩니다. 3년기간에 자리를 못 잡으면 보따리를 싸야 되는 거라구요. 그 교회장은 절대 발전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는 기성교회를 중심삼은 부흥회가 시작될 것입니다.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공청회에 참석했던 한 천 명에 가까운 전국의 목사들이 배후에 있기에 부흥회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구요. 꼬리를 물고…. 알겠어요?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구요. 그것 하기 위해서 그런 거라구요. 그러지 않으면 뜻이 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어디로 갈 것이냐? 앞으로 교회 간판 떼어 버릴 것도 생각하고 있다구요. 그렇게 해 놓으면 그거 다 우리집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럼 처녀 총각 다 길렀으면 시집 장가 보내야지요. 그렇잖아요? 사실 여러분이 모든 면에서 기성교회 목사들만큼 자신이 없잖아요? 그들을 데려다가 우리 사상만 딱 집어넣으면, 쓸 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가 불원간에 온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3년 기간에 기반을 잡지 못하면 여러분의 갈 길은 없는 것입니다. 갈 길이 없다구요. 알겠어요?

이 3년 기간에 여자는 여자대로 가정적 기반을 닦고 남자는 남자대로 교회의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이 두 공동 작전을 지금 책임지고 있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둘이 하나되지 못하면 절대로 발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탄세계에서도 '가화만사성'이라고 했는데, 하물며 여러분이 하나되지 못해서야 되겠어요? 이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열 명이면 그 가운데 누가 화목덩이인가 하는 것은 안다구요. 그렇지요? 전도대원 조장 중에도 깍쟁이 조장이 있습니다. 깍쟁이. 대원들이 싫어하는 조장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 가지 종류라구요. 조장이라고 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구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이 그 조장을 사람으로 만들어 줘야 됩니다. 알겠어요? 사람을 만들어 줘야 되는 거예요. 또, 조장이 잘났으면 조장이 대원들을 사람 만들어 줘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서로 부대끼는 거예요. 서로 부대끼는 거라구요.

여자가 셋만 모이면 제일 나쁜 자(字) 아니예요? 요사스러운 거 아니예요? (웃음) 그 여자들이 열 명이나 모였으니 무슨 요지경은 없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여자들은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러니까 그 여자들을 잘 거느리고 여러분이 성공했다는 팻말을 세워 놓고 하늘 앞에 돌아오지 않고는 낙제감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여자에게 뒤지지 말라구요. 정성들이는 데도 여자보다 앞서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부모의 종교

복귀를 하는 데도 처음에 천사장 복귀를 하고, 그 다음에 해와 복귀를 하고, 그 다음에 아담 복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도 천사장 종교권시대, 그 다음에 해와 종교권시대, 즉 신부 종교권시대, 그 다음에 신랑 종교권시대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슨 종교권시대냐? 부모 종교권시대입니다. 이 부모 종교권이 통일교회입니다.

천국은 혼자 가는 것이 아니고 부처(夫妻)가 함께 가야 됩니다. 혼자 구원 얻는 것이 아니예요. 그러므로 통일교회에서는 나이가 많은 남자나 여자나, 할아버지나 할머니나 축복을 받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원리요 철칙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부모 종교가 나오는 거예요. 신랑 신부의 종교가 나온 후에 부모종교가 나오는 것입니다. 부모의 종교가 나오니까 좋지요? 부모의 종교가 나오면 그 부모가 가진 모든 재산을 상속받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종의 종교시대였기 때문에 상속을 못 받았습니다. 받아서는 안 되는 거예요. 신부종교시대에도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 시집갈 때는 다 가져 가지요? 그렇지만 부모 종교시대에는 부모가 가진 모든 것을 전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인류역사는 부모 종교권시대를 바라 보며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2차대전 이후 전승국가가 패전국가를 도와주고 해방시켜 준 원인이 어디 있느냐? 이 땅에 천지 부모가 찾아올 때에 형님된 사람들, 이긴 사람들이 동생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때려잡아 가지고 죽은 대로 놓아 두면 벌을 받겠기 때문에, 승리한 국가가 패배한 국가를 해방시켜 가지고 같은 자리에 세워 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형제 시대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가 오게 될 때, 자기 체면을 세워 가지고 형과 동생이 함께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옴으로 말미암아 이런 운세가 찾아든 거예요.

통일교회는 무슨 종교라구요?「부모종교요」 부모를 만났는데도 무슨 종교예요?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는 사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모심으로 구원을 얻는다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골수의 가르침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니 여러분은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야 되겠어요, 안 들어야 되겠어요? 안 들으면 후려치는 겁니다. '이놈의 자식들' 여기 처음 온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공적인 단에서도 욕을 잘합니다. '이놈의 자식들' 하고 욕을 잘해요. '이놈의 간나들아' 이렇게 욕을 해도 싫어하지 않거든요. (웃음) 여기 머리가 다 큰 사람들에게도 내가 욕을 하는 거예요. 때로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에게 기합을 주는 것입니다. '이놈의 자식아, 그래 가지고 누구를 망치려고 그러느냐'고 욕을 합니다. 알겠어요?「예」

복귀시대는 딸이 어머니가 되고, 아들이 아버지가 되는 때입니다. 알겠어요? 천지개벽이 언제 벌어지느냐 하면 그런 때 벌어지는 것입니다. 천지개벽이 뭐예요? 없는 일이 벌어진다 이겁니다. 아버지가 뭣이 되고?「아들」 어머니가 뭣이 되고?「딸」 할아버지가 뭣이 되고?「손자」(웃음)

가다가 뒤로 돌아서면 맨 첫번째 섰던 사람이 꼬래비 아니예요? 그것이 복귀라구요. 복귀. 가다가 '뒤로 돌아' 하면 아버지가 아들이 되고, 할아버지가 손자가 되는 거예요. 이건 자연적인 이치라구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침 인사를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축복받은 순서에 따라서 그러는 거예요. 기가 막히지요? 여러분은 기분 좋지요? 아버지가 언제 아들에게 그래 보겠어요? 통일교회는 부모종교인데 부모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사는 거예요. 이렇게 새로운 하늘 이상을 중심삼고 삶의 종교를 시작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여러분은 참부모를 모시겠다고 하는 무리입니다. 그렇지요? 또한 여러분은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겠다고 하는 무리요, 참부모의 가정의 전통을 이어받아 살겠다고 하는 무리입니다. 그렇지요?「예 」

그래서 부모 복귀, 자녀 복귀, 만물 복귀, 하나님 복귀입니다. 또,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입니다. 부모와 자식과 만물이 하나되어야만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영광의 날이 오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4대 명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양력으로 이번 11월 18일이 무슨 날이라구요?「자녀의 날이요」

서로 하나되어서 열심히 활동하라

여기 있는 교회장들은 뭐냐 하면, 큰오빠라구요, 큰오빠. 천사장이라구요. 먼저 났으니까 큰오빠예요. 그리고 전도대원들은 모두 외아들 있는 집에 태어난 누이동생들입니다. 그러니 이들이 못살게 되면 교회장이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장들이 동생에게 신세를 지고 있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잔뜩 신세를 지고 얻어먹고 살지요?「예」 그래서는 안 된다구요. 신세를 지게 되면 고마운 그 은덕을 갚아 주어야지요? 신세를 갚아야지. 신세를 안 갚으면 안 된다구요. 장자가 됐으니 그들보다 열심히 해서, 그들이 기뻐서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싶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선두에서 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교회가 정상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교회장들은 천사장인데 나쁜 의미의 천사장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여자들도 알겠지요?「예」 여자들은 만약에 교회장이 잠을 자면 발로 차라구. (웃음) 여러분, 아버지 말을 들을래요, 오빠 말을 들을래요?「아버님 말요」(웃음) 효녀가 되려면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해야 됩니다. 발로 차도 안 일어나면 모가지를 밟으라구요. (웃음) 그러면 교회장들은 그것이 아버지의 명령인 줄로 알고 '아이구' 때가 왔구나. 이때가 바로 그때로구나. 지금이야말로 정신차려야 할 때로구나. 아이고, 고마와라 발님 수고하셨소' 하며 자기를 찬 사람에게 고마와해야 돼요. (웃음)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 자기를 위해 그런 것이 아니라구요. 한 사람이라도 빨리 추수해야 하거늘, 무르익은 곡식이 널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추수한 곡식이 없으니, 사내 녀석을 자게 두어서야 되겠어요? 그러니 아예 못살게 새벽부터 붙어 다니고, 못살게 저녁까지 끌고 다니라는 겁니다. 종은 그렇게 부려먹어야 사람이 되는 거예요. (웃음) 종을 놀게 해가지고 편안하게 두었다가는 요상한 사건이 난다구요. 괜히 종들을 놀게 해주면 이웃 동네 처녀를 건드려 가지고 사건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거라구요. 감독들 잘 하라구요. 알겠어요? 지금 홀아비로 혼자 살고 있으니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웃음) 그러니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끌고 다니라구요. 괜히 놀려 두면 공상이나 하고, 사람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소지가 많지 않아요? 왜 눈을 끔벅끔벅하며 바라보노? 그러니 쉬지 말고 끌고 다니라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그래 가지고 전도가 잘 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오면 내가 기분 좋게 표창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 그 지방이 잘살게 되면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좋은 일. 이번에 내려가면 서로서로 툭탁거릴 거예요, 안 그럴 거예요? 여러분끼리 툭탁거릴 거예요, 안 그럴 거예요.「안 그러겠습니다」 전라도 사람하고 경상도 사람하고 서로가 '난 싫어' 하고 그럴래요, 안그럴래요? (웃음)「안 그러겠습니다」 경상도 사람이 먼저 싫다고 그러면 그 사람은 여러분들이 몰매를 때리세요. (웃음)

어떤 아가씨를 보면 잠꾸러기 아가씨가 있다구요. 먹으면 자려고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잠을 탕감복귀하도록 한 보름쯤 문을 닫아 걸고 자게 하세요. 그러면 나중에는 '아이구, 제발 문 좀 닫아 걸지 말아 주세요' 할 것입니다. 자는 것이 무섭게 만들어 주면 그 다음부터는 자라고 해도 안 잘 테니까요. (웃음) 실컷 재워 주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는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를 나왔으니 국민학교도 못 나온 무식장이하고는 말 상대가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간나들은 안 됩니다. (폭소)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하나님이 대학교수예요. 하나님이 대학교수를 만든 분이라구요? 그러니 대학교수가 높아요, 하나님이 높아요?「하나님요」 하나님이 높지요? 그럼 하나님과 대학 나온 사람과의 간격이 크겠어요, 하나님과 그 무식장이와의 간격이 크겠어요? 둘 중 어느 쪽이 하나님과 더 멀리 있겠어요? 대학 나온 사람이 하나님과 더 멀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하기가 더 어렵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자리에 서 가지고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좋아요'라고 하나님을 부르면서 인연맺겠다고 하면, 자기는 그래도 뭐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서 신세 좀 지겠다고 부탁하면 되겠어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대학 나온 사람과 하나님 사이하고 국민학교 나온 사람과 하나님 사이하고 어떤 사이가 더 나쁘냐? 대학 나온 사람과의 사이가 더 나쁘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더 먼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주제에 뭐 말 상대가 안된다구요? 무식하니까 안 된다구요? 무식하면 가르쳐 줘야 할 것 아니예요? 도울 때는 도우라구요. 잠을 덜 자고, 먹기는 덜 먹고, 소제도 먼저 하고, 선두가 되어 가지고 부산스럽게 동네 청소도 하면서 모르는 사람에게는 가르쳐 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해 가지고 악한 짓 하는 사람은 사탄입니다. 알겠어요?「예」 이런 사람들도 있지요?

또 조장들 가운데 '조장은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도 내가 책임 가정인데 나를 몰라보면 되나? 먹을 것도 챙겨 주고 좋은 것도 갖다 주고 그래야지…' 하는 사람은 죽은 귀신입니다. (웃음) 조상 귀신이 그 사람에게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 녀석에겐 밥 갖다 주지 말라구요. 내가 명령했으니 그런 사람에겐 밥을 절대 갖다 주지 말라구요.

선생님이 이렇게 갖다 주지 말라고 했는데, 앉아 가지고 밥 갖다 주기를 바라고 있다가 갖다 주는 밥을 먹으면 병이 날 것입니다. 두고 보라구요. 그것은 병이 나는 거예요. 절대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갖다 달라고 하지 않아도 갖다 주고 싶어서 갖다 주는 밥을 먹어야 소화가 잘 되는 것이지, 보기도 싫은데 가져오라고 하니 할수없이 갖다 주는 밥을 먹으면 병 나기 일쑤예요. 두고 보세요, 병이 나는지 안 나는지. 반드시 병이 날 것입니다.

대접받고자 하면 남에게 어떻게 하라구요?「대접하라」 대접을 자기가 먼저 해야 되요, 대접을 먼저 받아야 되요? '나 받고 나서 너 대접할 거야' 그러면 안 됩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면 먼저 대접하라고 했지요? 먼저 대접을 받는 것이 원칙이예요, 대접을 하는 것이 원칙이예요?「대접 하는 게 원칙입니다」 대접을 하는 것이 원칙이 아니냐 이겁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어떠냐? 여러분을 대해 대접하려고 했느냐, 아니면 내가 대접받겠다고 했느냐? 여러분에게 대접받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에게 빚져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라구요. 그래서 통일교회 사람들이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자진해서 고생하라

이제 우리 통일교회 아가씨들은 선생님 말을 잘 듣지요?「예」 그래서 좋은 신랑도 만난 거예요. (웃음) 왜 웃어요? 여러분이 선생님 때문에 좋은 신랑을 만났다구요. 보라구요. 세상에 통일교회 남자 같은 신랑감이 어디 있겠어요? 여편네가 3년 동안 외지에 나가 살아도 매달 2천원씩 돈을 보내 주잖아요? (폭소) 세상에 그런 신랑이 있나 찾아보라구요, 있나, 있어요?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의 딸 가진 어머니들은 한편으로는 통일교회를 반대하면서도 자기 딸을 통일교회 남자한테 결혼시켜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소문이 그렇게 나고 있다구요. 세상에 그런 남자들이 어디 있겠어요? 1년도 아니고 3년씩이나 외지에 나가서 일하는 아내에게 돈을 보내 준다는 거예요. 모듬매 맞고 홍두깨 맞을 짓을 했는데도 남편들이 돈을 보내 준다는 거예요. 여기 이 목사, 부인에게 돈보내 줬나?「보내 줬습니다」 뭘 보내 줘, 한번도 안 보내 줬다는데? (웃음) 그래서 내가 한번 갖다 줬다고. 한번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어. (폭소)

내가 이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 여자 식구들. 어때요? 그래도 우리 신랑밖에 없다고 느낄 때가 있지요? 남자가 돈을 안 보내 보세요. 여자가 죽을 지경이지요. 쥐구멍으로 들어갈 것이냐, 도망을 갈것이냐…. 돈이 안 오면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느끼지요?「예」 그런 거라구요. 그렇지만 신랑이 어려운 사정 가운데서도 얼마 안 되는 돈이나마 보내 주면 위신이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는 '고마우신 신랑님 ? 하게 되는 거예요. 고마우신 '신랑'이 아니라 '신랑님'이 되는 거라구요. (웃음)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호텔 같은 것을 지어 가지고 여러분에게 방을 하나씩 나눠 주면 좋겠지요? 재미있게 한번 살아 보게요. 그렇게 해서 여러분이 얼마나 재미있게 사는지 내가 한번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한번 살고 싶어요? 그래서 요즘에 한 1천 가정 정도가 살 수 있는 집을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 1천 등급으로 나누어서 집을 지으면 좋겠다 이번에 동원된 1200가정의 집을 내가 지으려고 하면, 당장에라도 지을 수 있습니다. 방 한 칸에 3백만 원씩 해도 뭐 얼마나 되겠어요? 한 3억6천만 원이구만요. 그 정도야 단번에 짓는다구요. 그런 집을 한번 지어 주면 좋겠지요? 그렇지요? 그런데 이번에 내가 시험을 해봤는데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자주 도와주니까 버릇들이 없어져서 안 되겠어요.

이번에 내가 전국에 있는 교회를 중심삼고 폭넓게 4천만 원을 지원했습니다. 도와주었더니 무슨 부작용이 벌어지느냐 하면, 선생님은 교회를 짓는데 있어서 돈을 대는 물주(物主)라는 인식을 식구들이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 가지고 어떤 사람은 주제넘게도 '나는 아무개 교회장입니다. 선생님, 어떤 교회에는 얼마를 도와주셨다는데, 우리 교회에는 아직 한푼도 도움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 매우 어려운 입장에 있으니 당장에 몇십만 원이구 보내 주십시오'라는 편지를 보내 왔어요. 인사도 없이 명령적으로 '얼마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편지를 했다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들이…. 기가 차다는 거예요. 누가 그렇게 가르쳐 주었어요? 원래는 금년에 1백 개 이상의 교회를 짓는 데 지원해 줄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거 다 취소시켰습니다. 취소하고 그 돈을 가지고 회사를 하나 인수했습니다.

왜 그랬느냐면 여러분이 퇴폐적인 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뜻 앞에 그만큼 고생을 했으면 이제 여러분이 선생님의 옷도 해주고 그래야지요. 그렇지요?「예」 하긴 내가 여러분의 집에 가면 닭 한 마리씩은 잡아 줄 거라구요? (웃음) 또 내가 지팡이 하나 들고 삼천리반도 어디를 가더라도 여관방 같은 것이 필요없게 되었다구요. 여러분의 집에 가면 떡도 해주고, 닭도 잡아 줄 거잖아요, 그렇잖아요? 중매를 선 사람이 가는데 대접 안 해줄 수 없잖아요. (웃음) 이만큼 됐으면 여러분이 옷을 하나 사줘야 되는 거라구요. 부처(夫妻)끼리 의논해서 옷 한 벌 해줄래요, 안 해줄래요?「해드리겠습니다」 해내라구요. (폭소)

여기 모인 가정만 해도 수천 가정이니 한 가정이 한 벌씩만 해줘도 수천 벌의 옷이 대번에 생기겠지요. 거기다가 일년에 한 벌씩이면 얼마나 많아지겠습니까? 효자라면 일년에 옷 한 벌씩 안 해줄 거예요? 어때요. 그 말이 틀렸어요, 안 틀렸어요?「안 틀렸습니다」 안 틀렸으면 해달라 그 말입니다. (웃음)

그리고 선생님 생일 때, 여러분의 집에 가면 생일잔치를 해줄래요, 안해줄래요?「해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의 생일잔치를 여러분의 집에서 해주고 싶지요? 여러분의 집에서 선생님의 생일잔치를 하면 여러분이 복을 받는다구요. 그런 생각 해봤어요? 그러면 '천년 만년 살고지고.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폭소)

여러분이 선생님 집을 잘 지어 줘 보세요. 선생님은 빚지고는 못 사는 사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은혜를 입고는 못 사는 사람이라고 했지요? 여러분이 이런 심리를 이용해서 선생님에게 제일 좋은 집을 한채 지어 줘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거기 들어가서 '아이고 좋다. 내 팔자 폈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집을 지어 주면 선생님은 그보다 더 좋은 집을 여러분에게 지어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구요. 여러분, 그렇게 할래요, 안 할래요?「하겠습니다」 하려면 당장에 하세요, 당장에. (웃음) 여러분은 이런 것도 생각해야 됩니다.

이제는 내가 쓸 만큼의 돈을 마련했습니다. 이제는 우리 통일교회 재산이 두둑히 있다구요. 아마 수십 억은 될 것입니다. 내가 쓰고 남을 만큼 만들어 놓았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걸 나를 위해서 쓰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거지떼같이 되어 가지고….거지떼들이 어디 갈 데가 있어요? 거지 중에서도 여러분은 보리밥밖에 먹을 줄을 모르는 왕거지떼라는 거예요. (웃음) 나도 그렇게 살아왔어요. 나도 태생이 그런 태생이라구요. 콩밥도 많이 먹고 보리밥도 많이 먹었어요. 그렇다고 망하지 않았습니다.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앞장서 가고 있으니까.

보라구요. 조금 더 지나면 칼(KAL)비행기 회사를 내가 인수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제 광주에서 올라오면서 생각했는데, 이건 너무 작아요. 그래서 세계에서 제일 큰 비행기 회사인 팬 아메리칸 항공(Pan American World Airways)을 인수하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에 우리 신도가 백만 명만 되어 보세요. 우리 신도가 백만 명만 되면, 백만 명이 일년에 천 불을 벌면 얼마예요? 10억 불이예요. 백만 명이 각자 5천 달러씩만 벌면 얼마예요? 벌어 대라고 하면 벌어 대는 거라구요. 문제없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이제 한국에서 제일 가는 집을 지어야 됩니다. 여러분, 여의도의 우리 땅에 가 보라구요. 어제도 가 봤지만 참 잘해 놓았더군요. 그곳이 우리 세계본부를 지을 땅입니다. 길이가 360미터이고 폭이 162미터입니다. 거기다가 집을 한 채 지으려고 하는데 짓게 된다면 시시하게는 짓지 않을 것입니다. 몇 층짜리 집을 지을 것이냐? 120층짜리 집을 지을 것입니다. 그런 집을 한번 지어 볼까요?「예」 짓다가 돈이 모자라면 여러분을 팔아서 보충할 것입니다. (웃음) 그때 팔려 가고 싶은 여자 있어요? 팔려 가는데 영국 왕자한테 팔려 간다, 이러면 좋겠지요? 일본 왕자한테 팔려 가는 것도 좋겠지요? 그런 경우는 팔려 갈래요? 검둥이한테 팔려 가면 싫어하겠지만, 영국이나 일본의 왕자한테로 팔려 간다면 서로 가겠다고 싸움이 나서 머리가 몇 개 터질 것입니다. (웃음) 팔려 가는 것도 좋은 곳으로 팔려 가면 좋다구요. 그렇지요? 어디 우리 여자들, 선생님이 팔면 팔려 갈래요, 안 팔려 갈래요?「팔려 가겠습니다」 신랑들은 어떻게 하고? (웃음) 신랑 있는 사람은 못 팔겠지요.

선생님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걱정하지 말라고 그럽니다. 선생님이 아무리 못났다고 해도 부러운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내가 지금 미국에 가면 요전까지 타고 다니던 차는 팔아치우고 새 차를 사는 거라구요. 또 앞으로 대학교를 인수하면 몇 달 이내에 세계의 일등 대학으로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일본, 미국, 영국 등 오대국이면 오대국, 칠대국이면 칠대국에서 재벌 재단 이사들을 끌어 모아서 세계에 없는 재단을 만들려고 한다구요. 그건 선생님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이만한 선생님을 만났으면 됐지요, 뭐! (웃음) 이런 선생님을 만나 배 좀 고프고 고생 좀 하기로서니 손해될 것은 없다구요. 그 고생은 지금 누가 시켰어요? 내가 시켜서 했나요, 여러분이 하고 싶어서 했나요?「하고 싶어서요」 뭐가 그래요? 내가 하라고 하니까 했지, 여러분이 자진해서 하겠다고 했어요? 내가 나가라고 하면 나가고,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오고 그랬잖아요. (웃음) 내가 들어오라고 하는데도 안 들어올래요? 안 들어오는 사람은 자진해서 고생하는 사람이고, 들어오는 사람은 시켜서 고생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자진해서 고생하는 사람이 될래요. 시켜서 고생하는 사람이 될래요?「선생님이 시켜서 고생하는 사람이요」 뭐라구요? 빤히 알면서도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은 더 고생시킬 거예요. (폭소)

서로 화목하며 활동하면 하늘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자, 그러니까 여러분, 인연이 닿고 팔자가 그렇게 됐기 때문에, 생각지도 않은 많은 여자들을 맡게 된 사나이로서, 영광스럽다면 영광스럽고 불행하다면 최고로 불행한 일이지만, 이것을 극복하는 날에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나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훈련을 잘 받고 가서 여자들 치다꺼리를 잘하고 잘 가르쳐 줘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이 다음에 우리 남편은 틀림없이 아무개 교회장 같은 사람이 되어야 될 것이다' 하고 소원하게 하고, 만일 그 남편이 그렇게 못 되었다면 '나는 남편을 반드시 그러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하고 결심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장들이 이런 남자의 모델 케이스가 되어 달라는 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기분 나빠요, 좋아요?「좋습니다」 좋아? 좋으면 그렇게 해야지요.

그리고 같이 생활하는 대원들 가운데서도 보기 싫은 사람이 있지요?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누구냐 하면, 제일 은혜를 갖다 줄 수 있느냐, 은혜를 못 갖다 주게 하느냐를 결정하는 중심인물입니다. 그 사람을 잘 요리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런 사람을 잘못 건드리면 화가 생기게 되지만 그 사람을 잘 다루면 복이 생기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마사스러운 여자가 있거들랑, 슬쩍슬쩍 잘 다루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사관학생으로서 연애를 하다가 여자로부터 보이코트(boycott)를 당하게 되면 즉각 퇴학이라는 것을 알아요? 여자 하나 못 다루는 남자가 어떻게 대한민국의 생명선을 책임지는 지휘관이 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사관학교가 그렇다면, 세계를 요리해야 할 책임을 진 사관학교 교수와 같은 입장의 통일교회 교회장이 여자 열 명 정도를 못 다뤄 가지고 뭘하겠어요? 그런 녀석들은 목을 잘라야지요. 어때요? 선생님의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맞습니다」 여자들은 기분 나쁘겠지만 할수없다구요. 여자를 다루는 건 간단하다구요. 시장에 갔다가 쓱 올 때 크림이 없거든 사다가 주라구요. 예쁘게 싸서 갖다줘 보세요. 그거 돈 많이 안 드는 거라구요. 어디 갔다 오면 오라고 해가지고 그것을 주면서 내가 이것을 주려고 산 것이니 쓰시라고, 비싼 것이 아니니 부담없이 쓰시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몇 번만 싹싹 해주면 여자들의 마음은 잘 돌아가는 거라구요. 그런 것을 연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여자들의 성격을 연구해야 됩니다. 여자들은 보통 한 달에 몇번씩은 히스테리가 된다구요. 괜히 우울한 척하고 이상하게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그 여자가 찬방에서 자고 있으면 자기가 덮던 이불까지 갖다 덮어 주는 거예요. 또 몸이 편찮은 것 같으면 갖다 쓱 덮어 주는 거라구요. 그리고는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 아가씨 복받으라고 기도해 주는 거예요. 이렇게 해보세요, 나빠지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열 사람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열 사람의 시중을 들을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되는 거예요. 절대 통솔 못 하는 거라구요. 그러니 이번에 각자 교회에 돌아가면 교회 사람들과 하나되어 가지고 두 바퀴, 즉 하나는 오른쪽 바퀴요 또 하나는 왼쪽 바퀴가 되어 가지고 잘 굴러가도록 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 굴러가면서 속력을 내면 어떤 큰 집에 부딪쳐도 끄덕없는 큰 바위에 부딪쳐도 그 바위를 부수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하나되어 가지고 나가면 틀림없이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관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집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멀지 않았는데 어떻게 할 거예요? 큰일났지요? 큰일났어요, 안 났어요?「큰일났습니다」 그러니 모든 일을 혼자 하지 말고 교회장과 하나되어서 하라는 것입니다. 늘 교회장과 힘을 합하고 대원들 서로서로가 힘을 합해 가지고 터전을 닦아 놓고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금후에 지방으로 돌아가면 촉박한 이 시대의 상황을 염려하고, 김일성이가 남한을 노리고 있는 이 시대를 염려하고 거국적으로 움직이라는 것입니다. 남자는 이쪽, 여자는 저쪽에 서서 그물코를 뜨는 모양으로 연결 되어 가지고 어떤 것에 부딪쳐도 지탱할 수 있는 아량과 용기를 가지고 교회의 터전을 넓혀 나감으로 말미암아 여자들의 위신도 설 수 있는 것이요, 교회 책임자인 남자들의 위신도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늘 앞에 뜻을 세울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선다고 보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이 부디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교회장들은 부디 여자들이 싫어하는 남자가 되지 말고, 전도대원들은 남자들이 싫어하는 여자가 되지 마세요. 서로가 좋아할 수 있는 입장에 서서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게 되면, 거기에 틀림없이 하늘이 역사할 것이요, 별의별 기이한 일이 다 벌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하는데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선생님이 가짜입니다. 그러니 한번 해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런 심정을 가지고 남자와 여자가 둘이서 붙들고 기도를 하면 병자도 낫는 것입니다. 하늘은 역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그런 조건을 갖추어 가지고 돌아올 때 통일교회의 위신을 손상시키지 않고 그 동네의 뭇사람들과 눈물어린 작별을 할 수 있게 되면, 돌아온 후에도 하늘이 그 터전을 남길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니, 부디 서로서로 하나되어 화목하게 일하는 본을 남기고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알겠지요?「예」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서울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는 4개 도에서 수고하던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에 모였다가 이제 다시 돌아가게 되었사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이번에 만난 이들을 다시 만날 시간이 없을지라도 당신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일선에 나가 있는 외로운 딸들을, 아버지여, 사랑하시옵소서. 어머니와 떨어져 외로운 자리에 있는 어린 자녀들의 초초한 모습을 볼 적마다 안타깝사오나 이들이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그 아이들을 직장에 데리고 나가서 남다른 염려의 자리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남편들의 사정을 생각할 때, 아버지, 그것이 얼마나 비참한 사연인가 하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이 자리를 긍휼히 보시는 마음이 있으시거든, 이 자리를 동정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시거든 이 통일가를 사랑하기 이전에 이 민족을 사랑해 주시기를 바라서 저희가 이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언제나 잊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가야만 될 길이 남아 있습니다. 죽더라도 가야 할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 나이가 많아도 가야 되고, 젊어도 가야 할 운명의 길이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 조국광복의 한날을 위하여 온 힘을 다 투입하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가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사명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아옵니다. 저희 한 개체가 쓰러지는 것은 괜찮지만 국가와 민족이 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엄청난 아버지의 소원 앞에 불충불효하는 자식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오니, 부디 아버지 앞에 효하고 나라에 충하여 하늘의 지조를 갖추어 청사에 길이길이 찬양 받기에 부끄러움이 없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진정한 당신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이들이 어려운 사정 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저는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아직 아버지께서 안식할 수 있는 나라가 없기에, 장구한 세월 동안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지루한 나날들을 보내려고 다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버지의 사정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제물이란 먹고 남은 자리에서 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바치는 자리에서 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저희들은 생명을 이어 가면서 이 길을 지켜 나가는 불쌍한 무리들이오니, 아버지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가련한 무리들의 애달픈 소리를 아버지께서 동정하실 줄 아옵니다. 제가 그러할 때에 당신이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듯이, 이들이 가는 길도 당신 께서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실 것을 저는 확실히 알고 있사옵니다. 당당한 자리에서 하늘의 권위를 갖추고, 어두운 사망의 골짜기에서 승리의 가치를 다짐하는, 아들의 영광을 갖추어 가지고 악을 대하여 전진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전도자의 책임과 하늘의 사명이 어떻다는 것과, 하늘의 심정을 가려 갈 수 있는 길이 어떻다는 것에 대해서 말하였사오니, 이것을 인연삼아 가지고 다시 만날 때까지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찬송할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제 산지사방하여 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당신의 뜻과 더불어 당신의 소원의 일념을 남기기 위한 발걸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발걸음 위에 이들의 눈물어린 심정이 앞길을 지도할 수 있는 자리에 서가지고, 당신의 사랑이 가타나기 전에 당신의 심정을 증거할 수 있는 눈물어린 사연사연들이, 이들이 대하는 식구나 마을 사람들이나 백성들에게 인연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달과 이해에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옵소서. 저 이북의 원흉 들이 가고자 하는 모든 길을 막으시옵고, 당신의 영광의 터전을 넓혀야 하는 이 촉박한 시점에 있어서 저희들은 안팎으로 결속하여 당신의 소원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준비된 그 자리를 갖추기 위해서 온갖 지성을 다들이고,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데 있어서 아끼지 않고 감행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이 가는 배후에 당신의 은사가 같이하여 주시옵고, 이들과 연결되어 있는 가정과 자녀들 위에 당신의 무한한 축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통일가가 바라는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승리의 한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도 후 말씀

내가 이번에 가면 몇 개월 걸릴 것 같아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없는 동안 아무 사고 없이 정성을 갖추어 가지고 보람을 느끼면서 잘 싸워 주기를 부탁합니다. 아시겠지요? 「예」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5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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