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1년 10월 3일, 이달 들어 처음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또한, 오늘은 이 나라의 건국을 축하하는 날(開天節)임과 동시에 결실을 찬양하며 조상들을 찾아보고 기념하는 날(仲秋節)이기도 하옵니다. 이 세 가지 의미를 가진 이날을 중심삼고 세상에서는 외적인 면에서 축하를 하고 있지만, 저희들은 이 나라와 이 세계를 대신하고 하늘을 대신하여 내적으로 축하를 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자리에 좌정하시옵소서. 저희 각자의 심령을 투시하시사 지극히 높고 거룩하신 권위를 가지고 개개인의 심성을 통하여 명령하시고, 친히 아들이라 딸이라 할 수 있는 인연을 맺어 주시옵소서. 이 아침, 찾아오신 아버지 앞에 부끄러움을 남겨 드리는 자신들이 되지 않기 위하여 부족함이 있거든 솔직히 직고하고, 수많은 영인들 앞에, 조상들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시대적인 책임을 진 사명자가 되겠다고 스스로 결의하고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각자 다른 과거를 갖고 있고 현재에도 각자가 분담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금후에도 그러한 책임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할 생애노정이 남아 있는 자신들임을 아오니,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가치를 비교할 때, 미래의 가치가 과거와 현재의 가치보다 더 크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이 현재보다 가치 있는 미래를 맞기 위해서 지성을 다하고 성심을 다하는 오늘의 정성어린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여기에 모인 저희들은 그러한 정성의 제단을 묶어 세계를 대신하고, 나라를 대신하고, 하나의 종단을 대신하고, 하나의 가정을 대신하여 아버지 앞에 대표적으로 엎드린 자녀들이 되어야만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이와 같은 대표자로서의 책임을 진 자리에서 세계를 위하고, 나라를 위하고, 가정을 위할 수 있는 자신을 아버지 앞에 봉헌하고자 할 때, 아버님께서 보시고 `과연 내 아들이요, 내가 바라던 가정을 대표한 자요, 내가 바라던 나라와 세계를 대표한 자'라고 하시며 기쁘신 마음으로 저희 앞에 나타나실 수 없게 될까봐 염려하는 마음 가지고 이 자리에 부복한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각자 처해진 위치 나름대로 개개인에게 이 시대에 필요한 적절한 사명이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특별히 이 아침에 아버지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개인의 심령을 살피시사 악한 여건을 제거하시고, 선하지 않은 일체를 부정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소성에 일치될 수 있는 선한 마음과 선한 본성을 일깨워 주시고, 당신의 영원한 생명의 이념과 결부 시키시어 이들이 스스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더불어 서 있는 자신들임을 발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고로 타락한 인간의 후손으로 태어난 한을 품고 나온 저희들이기에 이 한의 고개를 넘어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 고개를 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탕감복귀의 원칙을 배운 저희들은 이 눈과 귀와 코와 입을 통한 모든 감각까지도 하늘과 더불어 이 정상의 고개를 넘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들었던 과거지사를 잊어버리고, 지금까지 보았던 과거지사를 잊어버리고, 지금까지 느꼈던 일체의 감각과 소성을 잊어버리고, 하늘을 기원으로 한 인연을 맺어서 자기 생애의 출발을 보아 가지고 지금까지 지내 왔다는 새로운 인식을 가지고, 자기 인격을 평가하고 자기 생활감정을 다시 더듬을 줄 아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저희의 눈이 아버지를 처음 바라보지 못하였던 것이 원통한 사실이요, 저희의 귀가 아버지의 거룩하신 사랑의 음성을 듣지 못하였던 것이 원통한 사실이요, 저희의 코가 죄 없는 에덴에서의 아버지의 사랑의 향기와 꽃동산에서 풍기는 모든 향기를 맡지 못하였던 것이 한이옵니다.
죄악권내에 있는 만물이 아니라, 선하고 거룩하신 당신의 해방의 동산에 있는 만물을 먹지 못하였던 이 입이 한을 품고 있습니다. 이 감정으로 느꼈던 일체, 이 촉감에 느껴진 일체를 당신과 반대되는 자리에서 느끼고 접촉하였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더럽혀지고 더렵혀졌던 타락인간의 후손인 것을 자각하고, 거룩하고 해방된 선한 모습을 간절히 추앙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도달하여, 그곳에 서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찬양하며 당신의 권고를 듣고, 당신의 분부를 받을 수 있는 날을 그리워 해야 되겠사옵니다. 자연을 당신이 허락하신 향기나는 축복의 동산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이 느끼는 일체의 감정이 당신 앞으로 귀화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한 것을 자탄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것을 애호하였던 퇴폐적인 자체를 포기해 버리고, 스스로 하늘이 수호하고 싶었던 본연의 자체를 그리워하면서 나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들은 그런 자체가 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여기에 모여든 당신의 자녀이옵니다. 저희의 일체의 감정이 더렵혀져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의 마음과 감정 전체가 아버지를 동기로 하고 아버지와 인연을 맺어 아버지로 말미암은 결과를 맺게 하시옵소서.
자신의 일체를 아버지 앞에 찬양함과 동시에, 전체의 환경과 나라와 세계를 들어 아버지의 본성이 나타난 세계라고 찬양할 수 있는 생애를 살지 못할까봐 염려하는 마음 가지고 모인 무리가 통일의 무리이옵니다.
아버님이여, 당신이 이들 앞에 새로운 이념을 부여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들은 새로운 세계관과 새로운 국가관과 새로운 종족관과 새로운 가족관과 새로운 개인관을 갖고 나타난 당신의 자녀들이라고 하겠사오니, 이제 이들은 스스로 세상과 구별된 자체를 공고히 결정지어 가지고, 내 갈 길은 확정지어져 있다고 타락으로 인한 원한 가운데 사무쳤던 역사를 대신하여 자랑하고, 타락으로 말미암은 고난 가운데서 신음하고 있는 이 시대를 대신하여 자랑해야 되겠고, 앞으로의 선한 세계를 추구하게 될 그 나라를 위하여 타락한 세계와는 다른 길을 가는 그 나라의 형태를 바라보는 자리에서 찬양해야 할 자신인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지고한 자신의 모습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니 억천만세의 흐름이 아무리 악하더라도 아버지의 선함을 더럽힐까봐 염려하며 스스로를 수호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수호할 뿐만 아니라 선을 대신한 주체성을 가지고 악에 대한 심판의 권한을 대행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들은 마음이 그리는 본연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감각을 통하여 스며드는 일체의 느낌이 아버지와 상관되어 있지 않은 그것이 비통한 사실이요, 억울한 사실이요, 이것이 눈물 겨운 사실인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이들이 자각하여 눈을 통하여 흘리는 눈물이 있거든 그것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눈물이요, 말하고 소리를 지르는 그런 무엇이 있거든 그것은 아버지를 그리며 아버지를 만나 보고 싶어 절규하는 음성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세상에서 느꼈던 감정이 있거든, 최고로 느꼈던 어떤 기준이 있거든, 그 천배 만배의 기준을 하늘과 더불어 느끼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으면 안 될 타락의 후손이 된 것을 저희는 증오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체를 거부해야 되겠습니다. 또 이와 같은 환경을 제거해야 되겠습니다.
찾아오시는 아버지의 걸음을 멈추게 해 놓고 `오직 내 한 개체를 찾아 오시기에 수난길을 극복하신 아버지여' 하며 눈물로써 모셔들여야 되겠사옵니다. 속죄의 인연을 다할 수 없는, 내일의 희망이 없는 절망의 자리에서, 하늘을 동정하고 하늘을 그리워하며 하늘만이 일체 새로운 소망의 출발이 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님을 모시고자 하는 무리가 이지구상의 종단 가운데, 신자들 가운데 있어야 될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 여기에 모인 무리 가운데 그러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당신이 찾아오신 그 걸음은 서러운 걸음이 아닌 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희의 마음과 몸이 당신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마음과 몸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 안 되겠습니다. 저희가 지닌 사고방식과 사상의 일체가 당신으로 말미암아 지녀진 것임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못하면 하늘의 서러움의 상징이 될 것이요, 하늘의 고독을 자극시킬 수 있는 원통한 사실이 될 것을 이 시간 느끼오니, 아버님, 찾아오시옵소서.
저희들이 본래 당신의 자식이라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께서 본성의 마음을 통하여 저희들을 찾고자 하실 때, 얼마나 기가 막히시옵니까? 그러기에 저희가 부족한 자체에 아픈 곳이 있어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고, 상처가 났어도 상처 났다고 말할 수 없으며, 보기에 추한 것이 있어도 추하다고 당신께 보여 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자비와 긍휼과 동정을 바라는 마음을 갖고 나타나게 될 때, 그 상처를 바라보시는 아버지께서는 그 고독한 모습을 바라보시고 슬픈 눈물과 더불어 세상의 무엇보다 비참한 마음을 넘어서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저희를 당신이 위로받을 수 있는 곳까지 끌어올리고자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는 복귀의 심정이 더듬어지는 그 자리를 바라고 있사옵고, 당신의 거룩함이 새로이 인연되어지는 그 자리를 고대하고 있사오니, 부디부디 그 자리에 처할 수 있는 자녀로 받아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10월 3일을 맞았사오니 내일은 10월 4일입니다. 우리 통일교단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한날이 저희 앞에 찾아오고 있습니다. 슬펐던 때를 지나고 해방의 한날을 맞이하였던, 16년 전 그때를 저희들은 생각 하고 있습니다. 억울한 과거지사가, 하늘과 더불어 슬픔을 같이하였던 그때가 우리 통일교단의 역사 가운데 있는 것을 저희들은 망각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하늘과 더불어 기쁠 수 있는 한날을 가졌던 무리라는 사실을 저희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바로 그 전날인 오늘 10월 3일에 생각하건대 자비의 아버지, 긍휼의 아버지, 용서의 아버지, 저희들이 10여년 동안 한다고 하였지만 그 생활 가운데 아버지 앞에 부족하였던 것이 얼마나 많은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사옵니다.
저희들이 격한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맹세하던 그날이 있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민족 앞에 자부하고 나섰던, 승리의 한날을 표방하고 고난을 극복하겠다고 마음으로 다짐하면서 참고 참고 또 참았던 그날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옷깃을 여미고 지난날의 부족 불충하였던 것을 다시 한 번 사죄하면서 오늘 이 시간 자비의 아버지, 긍휼의 아버지, 동정의 아버지의 성상을 바라고 있는 자녀들을 찾아와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대한민국 땅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시여, 이 나라를 찾아오시는 아버지시여, 이 백성을 버려서는 안 될 것을 저희도 알거니와 당신은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수난길에서 당신이 흘리시던 눈물을 계승할 자가 없는 것을 원통해 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시옵고, 핍박도상에서 자신을 가눌 수 있는 자리를 갖지 못한 불쌍한 아버지이셨음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모인 이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하늘편의 사람 사람들이 원수의 총칼에 쓰러질 때에 그것을 직시할 수 없어 눈을 돌려야 했던 아버지의 사정을 아는 통일의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이 있어도 저희의 한을 갖기 전에 하늘의 한을 이어받아야 되겠사옵고, 슬픔이 있어도 저희의 슬픔을 표시하기 전에 아버지의 슬픈 가슴을 이어받아야 되겠사옵니다. 고통의 길이 있거든 하늘의 고통을 극복하는 길을 이어받은 자리에서 그것을 탕감해야지, 그 길을 가기 전에 스스로의 고통을 생각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스스로가 받는 핍박과 스스로의 고독을 생각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아버지편에 선 아들과 딸이 되게 될 때 아버지께서 얼마나 얼마나 대견하게 생각하시겠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날 이 나라 이 백성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금후의 삼천리 반도, 이 한반도를, 아버지, 품으시옵소서. 이 나라는 당신의 높으신 권한을 나타내야 할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당신 앞에 배신과 반역의 깃발을 드높이는 나라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나라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한 악한 무리가 있거들랑 아버지여, 제거시키시옵소서.
하늘의 때를 위해서 밟히면서도 슬픈 눈물과 더불어 하늘을 위로하기에 몸부림치는 무리를 두시어 낮았던 것이 높아지고, 높았던 것이 낮아지는 천지의 인연을 따라 하늘의 자주적인 권한을 갖추어 영광의 나라를 세워서 그 영광을 세계 만방에 떨쳐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이 이 민족을 통하여 어서 속히 오게 해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더욱이 오늘 이날, 통일교단에 속한 어린 딸들이 남한 각지에 널려 있사오니, 남들이 기쁨으로 이날을 축하하며 왕래하는 것을 바라볼 적마다 자기의 남편을 생각하고 자녀를 생각하는 어린 아낙네들의 마음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흘리는 눈물이 있거들랑 그 눈물이 헛되지 말게 하시옵소서. 당신의 마음이 거기에 어리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심정이 거기에 깃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렇게 이 교단을 붙들고 싸워 나가고 있습니다. 부족한 정성이나마 모아서 정성의 표준을 세우고자, 거기에 미달한 정성의 생활을 하고자 몸부림치는 이들을 바라보시는 아버지, 그래도 이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무리는 이들밖에 없다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시여, 긍휼의 손길을 펴 주시옵소서. 눈물을 흘리는 딸들이 있거들랑 당신과 더불어 눈물을 흘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육정(肉情)을 중심삼고 눈물을 흘리는 자가 되지 말고, 천정(天情)을 중심삼고 나라를 가진 백성이 되지 못한 원한을 느끼면서, 나라를 갖지 못한 자주적인 국민이 되지 못한 것을 느끼면서, 2천년 전 이스라엘을 잃어버리신 아버지의 슬픔을 탕감해 드리기 위해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무리로 남아지게 하시옵소서. 그렇게 될 때는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당신께서 저희들을 이런 자리에 내세우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그 자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가정에서 몰림받고, 혹은 직장에서 혹은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몰림받던 외로운 아들딸들, 이 교단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정성을 다하는 자리가 있거들랑, 아버지, 그 자리를 떠나지 마시옵소서. 눈물의 골짜기를 이어받기 위하여 몸부림 치는 그들 앞에, 수난의 역사를 이어받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그들 앞에, 당신의 자비의 마음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모든 일체를 잊어버리고 당신만을 소유하고자 하는 그들을 아버지시여, 아버지나마 모른다 마시옵고 지켜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제가 그러한 자리에 설 적마다 당신이 분부해 주시던 역사적인 인연을 생각하옵니다. 하늘만을 위하여 발벗고 나서는 걸음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들이 고독한 자리에 있지만 불쌍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당신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들이 하나로 합하여서 이 민족과 이 세계를 바라보며, 혹은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왔던 기독교를 바라보면서 눈물짓는 그 눈물은 거룩한 눈물일 것이옵니다. 비록 그 누구도 모르는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할지라도, 수확의 때가 되면 거두게 될 것을 아옵니다. 봄이 되면 싹이 트고 여름이 되면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결실이 되는 것은 천리의 원칙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누가 보나 안 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어떠한 계절의 변화가 있더라도, 저희의 마음은 변하지 않고 생명의 결실로 거두어지기 위한 싸움의 노정을 더디 가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그 누구를 위하여 모였사옵니까? 자기 스스로를 생각하고, 자개 개체의 이익을 더듬는 마음을 가지고 모인 생명은 단 한 생명도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남겨져야 할 당신의 자비와 사랑과 긍휼이 그리워 모인 무리이오니 이들이 흘리는 눈물이 헛된 눈물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개체의 구원을 염려하는 눈물보다도 민족과 세계와 하늘을 구하기 위한 눈물을 흘려야 되겠습니다. 여기 이 자리가 마음을 다지면서 심정의 흐느낌을 자아내는 자리가 되고, 당신의 심금을 울려낼 수 있는 인연을 자아내고, 새로운 매듭을 짓는 느낌을 갖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이곳을 바라보면서 무릎을 꿇고 축수하는 자리마다 축복하여 주시옵고, 전세계에 널려 있는 외로운 통일의 무리를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스승을 만나기를 고대하면서 눈물어린 심정을 가지고 아시아의 한 끝 이 한반도를 바라보면서, 이 서울을 생각하면서 눈물짓는 자리마다 당신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으로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몸은 비록 갈라져 있더라도, 마음과 영은 일체의 생활권내에서 동감적 심정을 체휼하면서 살 수 있게끔 그들을 품으시옵고,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날을 맞아 승리의 날을 다짐하게 하시옵소서.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은 이 땅 위의 후대 인간들이 하늘의 주권을 복귀하여 민족적인 자주권을 가지고 지르는 해방의 함성을 듣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있는가를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그 시간이 가까와오면 가까와올수록 저희는 밤이 되어도 밤을 잊어버리고, 낮이 되어도 낮을 잊어버리고 오직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만으로 주야를 주관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충성심만이 남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헛되이 왔다가 돌아가는 무리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자비로움과 긍휼과 동정과 사랑 가운데 잠겨드는, 혹은 그것을 체휼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일체를 뜻과 더불어 주관하시옵소서. 아버지, 10월부터 남아진 이해를 맡으시옵소서. 악의 권한을 밟으시고 선의 권한을 세우시어서 심판의 행사를 드러낼 수 있는 세계적인 영광의 때가 어소 속히 오게 하여 주옵기를 바라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는 물론이고, 그 가운데 하나인 우리 자신도 현재의 자리에서 희망을 가지고 그 무엇인가 보다 높은 것을 더듬어 나가고 있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역사과정을 놓고 보나 시대적 현실을 두고 보나 미래를 두고 보더라도, 높고 낮음의 계층을 초월하여 사람이면 누구든지 더 높은 것을 바라 나왔고, 바라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전체가 인연되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나'라는 개체를 중심삼고 최후의 기준, 절대적 기준까지 연결시키고 싶은 것이 우리 마음이 요구하는 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그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보다도 더 좋은 것이 있게 될 때는 그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있으면, 또 그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물건이나 여건도 그렇지만 우리 개체를 중심삼고 보아도 그렇습니다. 우리 개체에 마음이 있는데 그 마음의 깊이가 얼마나 깊으냐고 묻는다면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깊다면 말할 수 없이 깊은 것입니다. 또, 마음이 얼마나 넓으냐 할 때에 넓다면 한량없이 넓은 것을 우리는 느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무한한 범위를 차지하고도 남음이 있을 수 있는 마음의 세계를 더듬어 보면 그 마음세계의 중심이 있을 것입니다. 마음세계의 중심이 있으면 그 깊은 중심, 혹은 높은 중심을 그냥 그대로 나와 상관없이 남겨 두고 싶으냐 할 때,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상대적 세계를 중심 삼고 높은 곳이 있으면 그것을 자기와 더불어 관계맺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개체인 것을 두고 볼 때, 마음의 세계, 본성의 세계에 지고지대 (至高至大)하신 어떠한 분이 계신다고 하면, 역시 자기가 그분과도 관계를 맺고 싶어할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마음세계의 맨 처음에서부터 몸을 통한 상대적 세계의 맨 끝까지, 근본의 출발점에서부터 목적지인 종착점까지 어느 것 하나라도 나를 빼놓고는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인연을 맺고 싶어하는 것이요,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욕망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여러분이 처해 있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겠느냐? 우리 본성의 어떠한 중심이 있어 가지고, 그 무한한 가치의 중심을 기점으로 생각해 볼 때 현재에 도달한 나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멀 것이냐? 이제부터 우리가 가야 할 노정, 우리 원리가 지시하는 노정은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 천주복귀노정까지 있습니다. 천주복귀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자 앞에 상대적 절대권을 갖추어 가지고 통일성을 기할 수 있는 자리까지 우리는 바라보고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 볼 때, 통일원리가 제시하는 소망의 기준은 지금까지 역사상에 있었던 모든 사상이 제시한 이상의 기준이라고 우리는 자부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될 때, 하나의 원이 그려지기 전에, 하나의 평면이 그려지기 전에 하나의 선을 그어야 됩니다. 선을 긋는 데 있어서는, 혹은 인간의 본성을 놓고 보면 출발된 본성의 기원이 되는 한 점이 있을 것입니다. 또 그것이 한 점이라면 인류가 바라는 소망의 종착점이 있을 것입니다. 그 종착점이 또 한 점이라면 그것을 이을 수 있는 선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 선이 곡선이 되어야 되느냐, 직선이 되어야 되느냐? 그것은 곡선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먼저는 직선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직선을 그어야 합니다.
직선을 긋는 데 있어서는 그냥 그을 수 있느냐? 그냥 그을 수 있다면, 만일에 모든 존재의 출발이 하늘로 말미암아 되어졌다 할진대, 그 직선을 그냥 그대로 그을 수 있다면 하늘의 슬픔이니 탄식이니 혹은 고통이니 하는 명사는 역사상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종교라는 하나의 테두리가 생겨나서 하늘을 추앙하는 놀음은 필요 없을 것입니다.
기원에서부터 결과까지 직선을 자유롭게 그을 수 있는 기준이 되었더라면, 오늘날 하나님도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세계는 그 직선을 따라서 가게 되어 있지, 일체의 어떠한 존재라도 그어 놓은 그 직선을 넘을 수 있는 힘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러한 기준이 세워져 있다면, 어느누구든지, 어떠한 존재든지 자동적으로 소망의 자리에 처해 있는 것이요, 이상의 자리에 처해 있음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미래의 소망의 자리로 갈 수 있을 것이로되 그렇지 못한 사실을 보게 될 때, 이 직선이 그어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원인과 결과의 기준을 이을 수 있는 직선이 그어지지 않은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직선은 누구로 말미암아 그어질 것이냐? 직선이 그어지기 위해서는 원인과 결과의 소성을 언제나 연결시킬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여러분이 원리를 배워서 아는 것처럼 우리 인간은 영적인 세계를 총합한 실체상이요, 육적인 세계를 총합한 실체상입니다. 영적·육적 세계가 하나의 사람을 중심삼고 총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소우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소우주라고 해서 단순히 작은 우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핵(核)을 대신할 수 있는 입장에서 소우주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직선을 긋되 어디를 통하여 그어야 되느냐? 반드시 사람을 가운데에 놓고 그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만약에 원형에다 직선을 긋는다면 이런 직선을 긋습니다. 이 중앙선을 긋기 전까지는 천갈래 만갈래의 선(線)이 있습니다. 선을 그을 때 이런 선을 긋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최고의 선을 그어야 되는 것입니다. 최고의 선이 어디냐? 그 최고의 선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앙점을 통한 선입니다. 최고의 선은 반드시 여기에서 그어지는 것입니다. 중앙점을 통해야만 최고의 선이 그어진다는 것입니다. (칠판에 그리면서 설명하심)
오늘날 세계의 모든 존재물을 보면 반드시 원형(圓形)을 닮아 있습니다. 지구도 그러하지만 우주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주 전체가 평면적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원형을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도는 작용의 인연을 갖고 움직이는 세계이니만큼 자동적으로 원형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역시 하나님의 자리에 계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돌아야 됩니다. 돌기 위해서는 반드시 출발과 목적점을 이을 수 있는 과정적인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그 존재는 어떤 존재냐 하면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요, 전체의 위치를 결정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어떤 자리냐? 이 점입니다. 이 점에 나와야 할 존재가 바로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을 절반으로 가르면 한쪽은 영계가 되는 것이요, 한쪽은 육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걸 절반으로 가르면 상하가 되는 것이요, 좌우가 되는 것입니다. 전후좌우상하가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또 서로 크고 작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좌와 우, 상과 하, 전과 후가 모두 같다는 일체의 평등기원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하면 요 중앙점인 것입니다. 전부 다 같은 것입니다. 이 자리를 통해 가지고야 전체의 통일성을 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높은 것은 높은 것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낮은 것을 돕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낮은 것은 낮은 것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은 것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오른쪽은 오른쪽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왼쪽을 돕기 위해 있는 것이요, 또 왼쪽은 왼쪽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른쪽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전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체를 위하는 것보다도 존재원칙을 두고 볼 때, 상대를 위하는 자리를 결정지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가 어떠한 자리냐? 그것을 영원히 정(正)이라고 판정할 수 있는, 어느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 기준을 확정지을 수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면 중심자리요, 그 한계선은 중심선이라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보더라도 그것은 별개의 방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게 되면 각기 딴 것입니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각기 다른 방향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중심과의 간격을 넓혀 놓은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 거리가 넓은 사람입니다. 이 간격이 멀어질수록 점점 악해지는 것입니다. 이 중심점으로부터의 이탈범위를 확대시키는 작용이 악의 작용입니다. (판서하면서 설명하심)
때문에 악의 작용과 반대로 중심점에 일치시키고자 하는 작용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선의 작용입니다. 악은 무한히 분립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이요, 선은 무한히 통일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선이라면 절대적 통일을 해야 하는데, 그 통일은 영원히 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절대적인 악이 있다면 그 악은 확산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개인 개인이 분열되어 가지고 세계 끝까지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한 가정으로서 살면서 영원히 통일의 가망성을 보지 못하는 가정은 악한 가정인 것입니다. 나아가 한 나라의 국민이 국민성이라든가, 혹은 애국애족의 사상 등을 통해 볼 때, 하나될 수 없는 국민이라 할 때 그 나라는 영영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종합된 하나의 기원을 확정지어야 할 그 자리는, 인간 세상을 두고 보나 우주를 중심삼고 보나 하나님도 아니요, 어떠한 목적에 있는 것도 아닌 우리 인간 자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하늘이 기원되어 있는 모든 것은 내 마음을 통하고, 외적인 세계가 기원되어 있는 모든 존재들은 내 몸을 통해야 합니다. 이것이 엇갈린 자리에서 이중으로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직선상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갈라진 인간을 반대로 접근시키는 놀음을 해 나오는 것이 도의 길인 것입니다.
불교에서 참선하는 사람들이 마음이 무엇이냐를 놓고 생각하는데, 마음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그런 경지까지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있다는 것은 상대 관념을 가져야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느끼지 못해요, 혼자서는. 상대적 관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기의 존재 가치도 강해지는 것입니다. 상대적 관념이 희박해지면 희박해질수록 자기의 존재 가치도 희박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식을 가진 부모가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냐 하면 무엇보다도 부모와 자식간에 하나될 수 있는 내적 인연, 즉 상대적 관계가 공고화할 때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방으로 커지면 커질수록 더 불안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더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입체적 형태를 갖추면 갖출수록 더 불안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더 보람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여건이 희미해지게 될 때는 고독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위의 현세는 어떠한 때냐? 모든 것을 망각해 버리는 시대권내로 들어가는 때입니다. 세계가 어디 있느냐, 나라가 어디 있느냐, 가정이 어디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도 부정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 개체, 개인이 어디 있느냐 할 때, 미확실한 근거에서 존재하고 있는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확정지을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확정된 자리에서 확정을 짓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체마저 부정해 버리는 이러한 시대권내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 그러냐?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출발점도 목적점도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어떠한 기원에 인연되어 연결된 것이 아니요, 어떠한 목적을 향해 갈 수 있는 길에 인연되어 연결된 것이 아니라 둥둥 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있기 때문에 `나라가 뭐야, 세계가 뭐야, 박애주의가 다 뭐야' 하며 전부 다 거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은 그러한 자리에 있는 사람을 중심삼고 어떠한 힘을 작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 작용을 하면 할수록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손해보는 놀음은 안 하시는 것입니다. 천륜도 손해보는 놀음은 절대로 안 하는 것입니다.
어떤 동기를 갖고 과정을 거쳐 목적을 찾아 나가는 천운이 있다면, 그 천운은 반드시 그 동기와 목적을 접근시키고 단축시킬 수 있는 어떤 매개체를 통해야만 됩니다. 그런 매개의 자리를 확정짓는 사명을 해야 할 우리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그 무엇을 확정짓지 못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천운은 그를 통해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희망을 걸더라도 희망의 한때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실존철학을 중심삼고 볼 때도, 인간은 현재에서 신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재의 세계에서 어떻게 인간의 가치를 추구해 낼 것이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아무리 가치를 찾겠다고 해도…. 그 가치적 기원이 누가 되어야 하느냐 하는 데 대한 논거(論據)를 세워야 되는데, `그 가치의 기원이 누구냐? 사람이냐, 국가냐?' 이런 문제를 따지고 들어가게 될 때, 그 기원이 모호 합니다. 거기에는 확정적인 가치의 기준을 결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으로 귀결되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금후의 이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이냐? 문제가 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 소외를 부르짖고 있는 이때에, 누가 인간을 소외시켰느냐, 아니면 인간 자신이 그렇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그것도 확정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외를 당했느냐, 나 스스로 소외되도록 만들었느냐 하는 그것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해결 방안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제 인간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이제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은 본래의 중심의 자리에 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 자체가 스스로 본래 어떠한 중심 적인 자리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출발의 기원도 되지 못하고 목적의 결과도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정적인 내연을 통하여 연결시켜 주는 그 자리를 어떻게 자각하느냐 하는 문제가 인간에게 있어서 보다 큰 문제인 것입니다.
`나'라고 하는 자체를 볼 때, `나'라는 자체는 결과적인 존재임에 틀림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디를 통한 결과인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나' 라는 결과를 가만히 따져 보면, 나라는 존재는 옛날 개인으로부터 종족을 거치고 국가를 거쳐 지금의 세계 끝까지 찾아 나온 것입니다. 수많은 전쟁을 거쳐서 오늘의 `나'를 남겨 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나'라는 존재가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이상을 제기시키기 위해서는 얼마만한 수난길과 얼마만한 투쟁길을 넘어야 될 것이냐? 그런데 그것을 넘기 위해 스스로의 결의를 다짐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나'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는 절망의 자리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 세계인의 고민사(苦悶事)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현재 처해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이냐? 이 자리는 기원도 아니요, 결과도 아닌 중간 매개체의 자리입니다. 중간 매개체는 동기와 더불어 일치하고, 결과와 더불어 일치할 수 있는 그런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자체의 위치를 결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가치의 내용을 분석할 수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다면 오늘날 이러한 인생의 길을 해결짓기 위해서, 우리 인간들을 동기의 자리라든가 목적의 자리로 끌고 가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종교를 통해서 섭리해 나오셨는데, 종교를 통해서 마음과 더불은 생활을 강조해 나오셨던 것입니다. 마음과 더불은 생활을 강조함과 동시에 이 세상과 더불어 생활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끝날 이후의 세계, 이 세상을 넘어선 끝의 세계의 생활 인연을 강조해 나오신 것입니다. 기독교를 보더라도 이 현실 세계를 중심삼고 살라고 가르쳐 주는 도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라고 가르쳐 준 그런 무엇은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마음세계에서의 평화를 부르짖고 나오는 것입니다. `천국이 어디에 있느냐? 이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네 마음속에 있다. 마음세계에 천국이 있고, 또한 천국은 끝날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가르치며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끝날의 천국이라는 것은 이 세상과는 상관이 없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역사과정을 거쳐가는 인간들이 필요로 하고 중요시하는, 역사과정의 내용을 가르치는 도리가 아닌 것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본래 그래야만 되는 것입니다. 만일 과정의 도리를 가르치고 그것을 표준으로 하고 목적으로 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는 순수한 종교적인 견지에서 보게 될 때 사교인 것입니다.
마음의 세계를 다짐하고 본성의 세계를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성의 세계에서의 내 개인의 가치가 어떤 것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본성의 세계에 있어서 내 가정의 가치가 어떤 것이냐? 그걸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마음의 세계, 본성의 세계의 국가관, 세계관이 어떠한 것인지를 모르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천국은 네 마음속에 있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마음속에 있다는 천국의 구체적인 내용이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기독교에서도 지금까지 확정짓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마음의 천국이 외적인 세계의 천국으로 연결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성서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와서 기독교가 갈 길을 못 가리는 것은 기독교가 그런 자리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불가피한, 결론적인 위치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본성의 세계에 있어서의 마음의 천국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천국의 본질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앞으로 후대에 오게 될 본성의 세계, 천국이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이냐? 이것이 우리가 문제시해야 할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심이 누구냐? 물론 사람을 통해야 되겠지만, 사람은 기원도 아니요 전체적인 목적의 결과도 아니기 때문에 그 기원이 될 수 있는 것과 완전히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기에서 그은 선이 반드시 여기에 도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작용하면 반드시 여기에 와야 된다는 거예요. (그림을 가리키며 설명하심) 그 작용은 어디에 미쳐야 되느냐? 나라에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개인에게 미쳐야 됩니다. 특정한 민족에게 미치기 전에 특정한 개인에게 미쳐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섭리를 해 나오신다 하더라도, 그 섭리가 아무리 크고 넓고 긴 역사적인 섭리라 할지라도 반드시 개인을 통해서 접근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 개인은 어떠한 개인이냐? 하늘을 위하는 개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절대시하는 개인입니다. 동기를 자기 생명보다도 더 중요시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개인을 통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이 확정되면 그 개인을 통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 개인이 이렇게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을 통해 가지고 여기서 사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판서 하시면서 말씀하심) 그 중심으로 결정되기 전에 사방에 금을 그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었다가는 화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종교의 폐단이 그거라구요.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남아진 종교의 폐단이 무엇이냐 하면, 이 중심 자리에 오기 전에 요런 놀음을 한 것입니다. 그어 놨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세계적 틀거리를 잡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오실 때에 그 완전한 개인과 접선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때인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완전한 개인과 하나님이 접선할 수 있는 세계적인 중앙지인 동시에 국가적인 중앙지요, 종족적인 중앙지요, 가정적인 중앙지요, 개인적인 중앙지였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요 자리, 모든 일체의 중심자리인데, 하나님은 그 한 점을 중심삼고 결정지으려고 섭리해 나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국권과 교권을 중심삼고, 자주적 권한을 중심삼고 세계에 적응하고, 거기에 하나되지 못하는 일체를 제거시켜 버린다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러한 과거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미루어 보게 될 때, 과연 하나님은 오늘날 인간세계 가운데에 하나의 중심적인 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점을 결정지어 놓았느냐 하면, 그것을 결정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땐가는 그것을 결정지을 수 있는 한날이 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반드시 그것을 결정지을 수 있는 한날을 남겨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의 세계에서 말하는, 기독교로 말하면 재림사상입니다. 다시 주님이 와야 된다는 거예요.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재림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시 와야 된다는 기준이 뭐냐? 그 기준이라는 것은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요 중앙점을 결정지을 수 있는 기준입니다. 그러한 가치적인 기준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기필코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끝날이 와야 됩니다. 그 끝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요 하나의 기준을 결정짓기 위해서 지금까지 역사를 동원해 나오셨는데 그 동원된 역사가 끝나는 날입니다. 그 한날을 찾음으로 말미암아 전체의 중심이 잡히게 됩니다. 그 중심은 개인의 중심이 되는 동시에, 가정의 중심도 되는 것이요, 종족의 중심도 되는 것이요, 국가의 중심도 되는 것이요, 세계의 중심도 되는 것이요, 하늘땅의 중심도 되는 것입니다.
그 중심이 잡혀야 됩니다. 그 중심이 잡혀지지 않고는, 이 인간세상에서 우리가 눈으로, 오관을 통해, 감각기관을 통해 우리의 중심이 어떻다 할 수 있는 기준이 결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정되지 않았는데도 이상세계의 출현을 바라는 것은 망상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소원이 어디에 있느냐? 한 분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 한 분을 찾기 위해 나라도 부정하고, 자기 생애도 부정하고, 자기 가정도 부정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이고 뭐고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기독교가 강조하고 주장해 나온 주의입니다.
한 점에 전부 다…. 그 한 점을 못 찾아 가지고는 나라도 잃어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절대시하는 것은 그것이 전체의 내용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핵이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게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결정적인 기원의 내용이 아닌 것을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쳐 줬다면 하나님은 사기한 것입니다, 사기.
그러나 하나님은 결정적인 그 한 점을 통해서, 역사의 방향이나, 개인의 신앙의 방향이나, 민족의 모든 소원의 방향까지 전부 다 그 점에 접근되게끔 지도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접선된 길은 남아지는 것이요, 여기에 가까이 처할 수 있는 어떠한 단체나 국가는 남아지는 것이요, 여기에서 먼 것은 악한 것이니 그건 전부 다 제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역사적 방향이 어떻게 흘러가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봅시다. 기독교는 지금까지 역사노정에서 숱한 희생을 치러 왔고, 순교한 선열들의 피의 대가로 그 제단을 이어왔는데, 기독교가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주도적인 원동력이 어디에 있었느냐? 믿고 천당 가는 데 있었습니다. 또, 믿고 천당가는 것도 가는 것이지만, 주님이 오실 그날을 맞기 위해 노력한다는 양면적 소망을 가지고 기독교는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하나는 천국가는 것, 또 하나는 끝날에 주님을 맞는 것, 이 두 가지 소원을 가지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천국이라는 것은 본성의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끝날에 주님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은 주님을 만나 가지고 천국 가자는 것입니다. 무슨 천국이냐? 영계의 천국이 아닙니다. 지상의 천국을 가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천국과 영원한 천국을 우리는 그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종교의 이념입니다.
하나의 남성을 표준해 가지고 그것을 교리화시켜서 그것을 중심핵으로 사모해 나온 대표적인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신부의 종교라고 보는 것입니다.
모든 역사는 여기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의 중심핵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국가가 존재할 수 있는 가치 기준이 결정되는 것이요, 이 하나의 중심핵이 결정됨으로 말미암아 세계의 가치 기준이 결정되는 것이요, 이 하나가 결정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가치의 기준을 비로소 지상에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상에 한 기점을 삼을 수 있고, 그 중심적인 기준으로 인간을 표준화시킬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천지는 바로 그 점에서 통일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통일된 그 자리에서 바라는 인생관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인생관과 통하는 것입니다. 또한 거기에서 바라는 가정관은 하나님이 바라는 가정관과 통하는 것이요, 거기에서 바라는 국가관과 세계관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국가관, 세계관과 통하는 것입니다. 일체가 상충이 아니라 일체가 통일된 자리에서 출발을 볼 수 있는 그 거점지가 바로 그 중심자리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가 바라고 있는 오시는 주님은 어떠한 분이냐? 이런 세계적 사명을 대표적으로 지고 오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을 찾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개인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 하나의 표준을 갖출 수 있는 것이요, 가정적인 표준을 찾을 수 있는 것이요, 또한 종족의 표준, 민족의 표준, 국가의 표준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일대(一代)에 있어서 전체를 다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20대의 청소년들에게 `너,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면 `세계를 내 것 만들겠다'할 것입니다. 열 살만 넘으면 벌써 세계를 내 것 만들겠다는 그런 마음을 갖게 된다는 거예요. 국민학교 다니는 학생들에게도 `너, 이다음에 커서 무엇이 될래?' 하고 물으면 `대통령 되지요' 이런다는 거예요. `무슨 대통령?' 하면 `세계 대통령' 이러는 것입니다. 다 그렇게 말한다는 거예요. 그것은 생각할 줄 아는 때에서부터 일생을 마치고 죽을 때까지 바라는 소원입니다. 그것은 개개인이 전부 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이 땅 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그 사람들이 전부 그러한 소원을 가졌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30억 인류가 살고 있지만 30억이 전부 다 그러한 소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소원이 무엇이냐 할 때, 세계를 내 것 만들겠다고 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렇게 소원하는 것을 한 번도, 단 한 번도 성취하지 못하고 간다면 그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만일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시다면…. 과거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도 그러한 인간의 소원 그 욕망은 언제까지든지 남아질 것이어늘, 그 욕망이 한 번도 성사되지 않는다면, 그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절대자가 있다면 인간이 그렇게 바라는 욕망이 이루어질 때가 한번 올 것입니다. 그때가 어떤 때냐? 이 지상의 천국과 천상의 천국이 갈라져 가지고 나타나는 때가 아니라, 자체내에서 화(和)한 천국으로 나타나게 될 때입니다. 그렇게 화한 천국권내에 사는 개인은 개인이로되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개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아무리 낮은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만 서 있으면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돌아가는 하나의 원형과 마찬가지입니다. 낮다고 낮은 것이 아니예요. 낮은 것은 높은 것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낮으면 낮을수록 그 상대되는 것은 높은 것입니다.
`나'라는 것이 `나' 자체를 위하지 않고 상대를 위했다고 할 때 비로소 공동적인 관계성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관계성을 갖고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협조적이고 통일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결속되는 데서만이 그 가치를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면 홀로 있지만 홀로의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 가치를 가한 가치의 자리에 섰기 때문에 전체로 보게 되면 이중적 가치를 겸한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느끼는 행복은 자기 개인만의 행복이 아니라 이중적 세계를 대표한 행복을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의 가치를 찾은 기준이 아직까지 인간 세상에서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은 역사시대로부터 섭리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중간 입장에 누가 있어야 되느냐? 우리 통일원리에서 가르쳐 주고 있듯이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인간이 있어야 됩니다. 본성의 인간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종교가 주장하는 재림사상은 무엇이냐? 그게 다 뭐냐? 본성의 인간을 추구하고자 하는 소원을 이루는 데 불가피한 것입니다. 인간이 본성의 인간을 추구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이 타락입니다. 타락이 없었다면 인간은 본래 본성의 인간으로 출발했을 것인데, 타락이 있었기 때문에, 본성의 기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그것을 추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복귀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다시 회복해야 된다는거예요.
그러한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역사시대에 처해 있는 인간들이기 때문에, 인간은 신음의 도를 가해 가면서…. 옛날에는 개인적인 신음의 도에서 개인적으로 신음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이제는 그 범위가 넓어져 가지고 가정이, 종족이, 민족이, 국가가, 세계가 신음하는 최고의 정상까지 도달 했습니다. 여기에서 신음의 도를 탈피하여 본래의 무한한 개인의 가치를, 이 세계의 그 어떤 가치보다도 더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그 자리를 찾아 들어가야 됩니다. 거기에서 주장하는 통일관은 세계 전체의 끝에 가 가지고 주장하는 통일관의 가치와 대등한 것입니다. 도리어 이것이 받을 수 있는 입장에서 보면 더 넓다는 거예요.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높은 곳 끝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한 자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넓어지는 것입니다. 낮다고 해서 낮은 것이 아닙니다. 전체를 받아들일 수 있고, 전체를 소화시킬 수 있는 중심적인 자리라면 그 자리는 복된 자리인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을 비교해 보게 될 때, 부모는 복된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고생스럽지만, 자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고생스럽지만, 낮은 자리에서 희생을 하지만, 그 아들딸 가운데 한 사람만 높아지면 그 부모는 언제든 그 높아진 전체의 가치를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들 가운데 하나만 훌륭해지면, 훌륭한 아들이 하나만 있으면, 아들이 열 명 혹은 스무 명, 서른 명, 몇백 명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몇백의 자녀들을 위해 수고한 부모는 그 가운데 하나만 훌륭해지면 그 훌륭한 아들과 상대적 기준을 가지고 낮은 자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대등적인 가치 이상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인류를 대신하여 수고하시는 거예요.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을 치러 나왔지만, 그 섭리역사노정에서 한 사람만 잘나면, 한 사람만 승리하는 날에는 그 한 사람의 승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자고로 수고하였던 모든 수고의 가치는 전부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수고를 했으면 했을수록 그 가치가 감소되는 것이 아니라,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전체의 가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수고를 했으면 했을수록 그 가치가 더 빛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한 아들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 아들은 어떤 국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요, 이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국가가 그 아들을 위해 있고 세계가 그 아들을 위해 있는 것이지, 아들이 먼저 국가와 세계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예요. 가치로 볼 때에 그 아들 이상으로 가치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들은 중심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기에서 `주관성 복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주관성 복귀! 그러면 그 한 사람이 왜 오느냐? 무엇 때문에 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오느냐? 물론 하나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인간을 지었던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러한 한 사람을 기필코 이 땅위에 탄생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탄생시켜서 무엇을 할 것이냐? 그 한 사람하고만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다리로 해서, 그 사람을 기점으로 해서 사방으로 관계맺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사방으로 뻗쳐지는 거예요. 이 자리에 오기 전에 뻗쳐졌다가는 사고라는 겁니다. 끝까지, 끝까지, 끝 중에서 최고의 끝은 여기라구요, 끝까지 참는자는 구원얻는 것입니다.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설명하심)
자, 그러면 여러분들이…. 끝날에 그러한 기준이 나타나게 되면 기독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가 나라를 갖고 있으니 그 나라를 그냥 그대로 갖다 붙이지' 이러면 안 됩니다. 나라는 어떻게 생기는 것이냐? 나라는 한꺼번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개인개인을 통해서 나라가 나오는 것입니다. 종족을 그냥 그대로 끌어다 붙여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종족도 역시 개인개인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개인을 끌어다 붙이는 데도 함부로 끌어다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절대시하고 자기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부모를 대해서 어떤 사람이,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가 틀림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제삼자가 나타나서 `야야 그들은 너의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다'라고 아무리 설명해 보았자 그걸 부정시킬 도리는 없는 것입니다. 뭐 돈을 주어서나 권력을 가지고 부정시키려 해도 부정시킬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절대적이라구요. 그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세계의 종말시대에 오시는 그 한 분은 어떠한 분이냐? 하나님을 대해 가지고 좋은 명사를 들어서 주장한다면 최고의 명사로 주장할 수 있는 대표자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면 아버지라고 하는 그것은 그 무엇으로도 부정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역사상 아무리 많은 성인현철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아무리 드높이 설명을 한다 하더라도 그 사실은 부정시킬 수 없습니다. 아무리 교활한 사탄이라 할지라도, 어떠한 수단 방법으로도 그것을 부정시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공인을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이 그 아들에게는 있어야 합니다.
먼저 무슨 관? 아버지에 대한 관. `저 분이 내 아버지라는 신념에 꺼릴 무엇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틀림없이 저 분의 아들이다' 이럴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만 그럴 것이 아니라, 그 아버지도 `너는 틀림없이 내아들이다'라고 할 수 있는, 부정할 수 있는 요건이 절대적으로 없어야 합니다. 부정시킬 수 있는 요건이 없어야 합니다. 절대적인 자리라야 하는 거예요. 아는 데 있어서 절대적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이럴까 저럴까 하지 않는다구요. 누가 속이려고 아무런 가식된 조건을 제시해서 설명해도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구요. 천년 만년 앉혀 놓고 교육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구요. 아버지에 대한 그런 절대적인 관이 설정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가지를 자르더라도, 모가지를 자르면 그의 손과 발 세포까지도 그는 내 아버지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체적인 내용을 가진 절대적인 자리에서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공인할 수 있는 아들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아버지도 그 아들을 대해서 `세상이 뭐라고 해도 부정할 수 없다! 없다! 없다! 부정이 있을 수 없는, 본래부터 그런 것이다' 이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결정적인 내용을 가진 아들이 나타난다면 문제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고 있는 기독교 신자들에게 예수를 얼마만큼 믿느냐, 신랑으로 진짜 믿느냐 하면, `믿지요' 이럽니다. `얼마만큼?' 이러면 `그거 얼마만큼이냐고 물을 게 뭐 있소? 그저 믿지요' 이럽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절대적인 자리에서 믿어야 돼요. 생명을 다하고…. 성경에도 그렇잖아요?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가는 계명이다' 이런 말씀이 있잖아요? 하나님만 사랑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아들을 사랑해야 됩니다. 아들을 사랑하라는 것이 둘째 가는 계명입니다. 그 다음에는 상대를 사랑해야 됩니다. 이것이 세째 되는 계명입니다. 이렇게 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네째 계명은 무엇이냐? 종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계명은 무엇이냐? 나라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계명은 세계를 사랑하는 것이요, 일곱째 계명은 천주를 사랑하는 것이요, 여덟째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돌아가는 거라구요.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거기에 무슨 요사스러운 것이 와 가지고 반대한다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계에서는 절대적인 신앙을 무조건 강조하는 것입니다. 거 의리가 있다구요. 죽어도 믿고 살아도 믿는 것입니다. 내용은 모르지만 성경에 신랑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신랑으로 믿는 것입니다. 믿다 죽는 거예요.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아들이라면 이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인식을 갖고 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관념을 갖고 오는 것입니다. 역사상의 훌륭한 그 누가 아무리 이렇고 저렇고 해도 거기에 따라 움직이는 생각을 가진 분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생각을 가진, 그러한 아들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이 오는 데는 무엇 때문에 오느냐? 상대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신부를 찾아오는 거예요. 신부를 찾아오는 데 있어 어떠한 관념을 갖고 있느냐? 절대적인 신부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뭐, 몇 면 동안 믿다 말고 자기 주장을 내세워 가지고 `아, 당신이 뭐야? 내 마음대로…' 이런 신부가 아닙니다. 상대적 입장에서 주체가 필요로 하는, 상대적 기준을 중심삼고 주체와 절대적으로 하나될 수 있는 입장에 선 신부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인식을 가지고 오시는 주님은 무엇 때문에 오시느냐? 신부를 찾아오시는 거예요. 어떠한 신부를 찾아 오시느냐? 이럭저럭 그저 수단과 방법을 가려서 적당히 하는 신부가 아닙니다. 그런 신부는 얼마든지 있다구요. 절대적인 신부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한번 약속했으면 죽음길이라도 가는 신부. 일구이언하는 신부가 아니라구요. 결심한 마음을 중심삼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는 엇갈림이 없는, 단 한 길밖에 모르는 신부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랑으로 와 가지고 그러한 신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있고, 그 다음에 신부가 있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이 부자의 정(情)은 끊을 수 없습니다.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와 아들의 신부와는 어떠냐? 끊을 수 있느냐? 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와 이 신부와의 관계도 끊을 수 없습니다. 뭐 이건 물론이고…. 절대적입니다. 아버지도 그 아들을 알고 아들의 상대를 알아주는 절대적 자리라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자리라는 거예요. 절대시 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절대권의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습니다. 침범할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이 있어야 될 것 아니예요?
에덴 동산의 아담 해와를 보더라도 하나님을 대해서 어떻게 했습니까? 사탄이 와서 `야, 하나님이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다 따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고 속삭속삭하니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시더라' 하니, 사탄이 다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한 것은 너희들이 그것을 따먹으면 눈이 밝아지기 때문이다' 하고 속닥속닥할 때 해와가 귀가 솔깃해 가지고 `아, 그래요?'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구요. 그럴 가망성이 있는 기준을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그럴 때 해와가 `뭐야? 네이놈' 하고 호령을 했어야 합니다.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발, 언제나 반발할 수 있는, 그릇된 것에는 언제나 반발할 수 있는 그런 주체적인 입장에 서야 할 아담 해와였는데도 불구하고 속닥속닥했다는 거예요. 이게 문제를 다 일으킨 거라구요.
여러분, 통일교회 신앙은 어떤 신앙이냐? 통일교회도 마찬가지라구요. 누가 `너, 통일교회 교인이지?' 할 때 `그래, 통일교회 교인이다' 하고, `그래 그래 뭐 통일교회에 가면 이런 요사스러운 말이 많고, 벌거벗고 춤추고, 뭐 어떻고 어떻고 한다는데 그래도 통일교회 믿을래?' 하며 아무리 설명을 해도, 뭐 그런 요사스러운 말들은 염두에 들어오지도 않아야 되는 거라구요. 나쁜 것은 하나도 없고 그저 좋기만 하고….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로만 뭉쳐져 있다면 큰 문제가 벌어질 것입니다. 여기 이는 사람들만 그렇게 되어도 큰 문제가 벌어질 거예요.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골통을 한번 쓱 크게 확대시켜 가지고, 대한민국만큼 늘여 가지고 바라보세요. 여러분의 마음이 얼마나 부사스러운가를…. 왔다갔다 왔다갔다, 얼마나 바빠요? 누가 뭐 어떻고, 뭐 누가 어떻고…. 생각해 보라구요. 내가 어디에 서 있어? 그렇게 생각해 보라구요. 거미줄 같은 데 포위된 기분이 나는데 거기서 그저 쉴 새 없이 왔다갔다 한다는 거예요. `내 자리가 어디야?' 할 때는 마찬가지라구요. 여러분의 자리가 어디예요? 절대적인 자리를 갖고 있어요? 누가 한번 밀치면서 `통일교회 믿겠어?' 하며 협박공갈하면 `윽-' 하고 나가자빠져 가지고 `뭐 내가 믿으려고 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그럭저럭해서 믿게 되었지요'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거라구요. 절대적인 신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는 끊을 수 없습니다. 끊을 수 있어요? 끊을 수가 있어요 돼요, 없어야 돼요?「없어야 됩니다」또 아들과 그 아내와의 사이를 끊을 수 있어요? 또 아버지와 며느리의 사이가 끊기는 날에는 망합니다. 집안이 깨져 나간다구요. 하나만 끊기는 날에는 깨져 나가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절대적인 승리권은 천지에 있을 수 없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깨지면 다 깨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천만 명 되어도 깨져 나가고, 며느리가 천만 명 되어도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님이 이 땅 위에 하나의 신부를 찾아온다 할 때 거 안심스럽겠어요, 불안스럽겠어요? 어떨 것 같소? 어디, 여자들 이야기해 보라구요. 안심스러겠어요, 불안스럽겠어요? 어드래요. 거, 여자들 한번 대답해 보라구요. `안심스럽소' 이럴 자신 있어요? 얼마나 조심스럽고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신부가 되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신부감은 없다는 것입니다. 거 무슨 말인지 알지요? 신부감이 없다 이거예요. 아, 이러한 아들이 오는데, 그 아들에게 이러한 신부가 있어야 할 텐데, 그런 신부가 없다는 거예요. 종자도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신랑이 오기는 와야 할 텐데 올 길을 연장시켜야 되겠어요, 와야 되겠어요? 왔다가 틀려지는 날에는 천지가 왕창 깨져 나가는 거예요, 왕창.
아들을 보낼래야 보낼 수 없는 아버지가 계시다면, 그 아버지가 얼마나 딱할 것이냐? 또 와야 하는데 오지 못하는 신랑이 있으면 그 신랑이 얼마나 딱할 것이냐? 그거 생각해 보세요.
또는 신부들…. 여러분 그거 생각해 봐요. 기독교인들은 서로 신부 되겠다고 합니다. 할머니도 신부, 아주머니도 신부, 처녀도 신부…. 세계적으로 보면 신부가 되겠다는 패들이 자그마치 네 가지라구요. 자기 멋대로 결혼해서 살던 패, 그 다음에 과부된 패, 과부도 있다구요. 그 다음에는 과부도 뭐도 되어 보지 못한 얼치기 신부 패, 시집도 못 가 본패가 있다구요. 그렇잖아요? 거리의 여인도 많다구요. 얼치기 신부 패, 그다음에는 처녀 신부 패가 있습니다. 신부 패도 4위기대라구요. (웃음)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예요.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자, 그러면 오시는 신랑이 어디로 찾아가고 싶겠습니까? 여기, 남자들 생각해 봐요. 어디로 찾아가고 싶겠어요?「처녀 신부요」저, 욕심…. (웃음) 물어보나마나지요. 지금 세상에서 처녀 골라잡을 수 있어요? `처녀냐, 아니냐?' 하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솔직히 대답할 여자가 있겠느냐? 생각해 보면 이거 큰일이라구요. 기가 막힌 놀음이라구요.
그러면 대번에 처녀를 찾아갈 수 있겠느냐? 보라구요. 신랑 될 수 있는 사람은 나이가 제일 많아야 됩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하나님이 나이가 제일 많으니 그분의 첫번 사랑을 받고 나타나는 아들의 나이가 많겠어요, 적겠어요?「많습니다」나이가 많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내가 아브라함보다도 앞서 났다'라고 할 수 있었던 거라구요. 하나님이 제일 나이 많은 분이시니, 그분 앞에 첫번 사랑을 받고 오는 사람이 제일 나이가 많다구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제일 나이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오시는 신랑은 공평한 분이어야 합니다. 오시는 신랑이 공평해야 되겠어요, 공평하지 않아야 되겠어요? 우리 남자들, 공평해야 되겠어요, 공평하지 않아야 되겠어요?「공평해야 됩니다」만일 신랑이 대번에 처녀 신부한테로 가게 된다면, 할머니 신부 패, 아주머니 신부 패, 얼치기 신부 패가 `어서 가소, 어서 가소' 그러겠어요?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어디, 여자들, 그러겠어요?
기독교를 가만히 보면 큰일났다는 거라구요. 전부가 신부라네요. 죽을 자리에서 신음하는, 목숨이 경각에 있는 사람도 `신랑 되시는 주님' 또 소녀들도, 뭐 15세 미만의 아가씨들도 `신랑 되시는 주님' 이런다구요. 생각해 봐요. 이거 큰 문제라구요. 그러니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의 신부가 얼마나 많아요? 이 세상 인간들은 전부 다 자신이 신부인줄 알고 있어요. 남자가 신부 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웃음) 남자가 신부 되는 법 있어요? 없다는 거예요.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딱 할 것 같아요. 남자도 신부 된다고 하고 여자도 신부 된다고 하고…. 그 남자 신부하고 여자 신부하고 같은 거예요? 무슨 전후가 있든가 안팎이 있든가 해야 할 텐데, 두루뭉수리 그저 덮어놓고 신부예요? 그저 덮어놓고 믿는구만요. 안방에 들어간다면, 남자가 안방에 들어가야 돼요, 여자가 들어가야 돼요? 남자가 사랑방 신부고 여자는 안방 신부냐, 아니면 남자가 안방 신부고 여자는 사랑방 신부냐? 뭐가 있을 것 아녜요? 지금까지 그저 두루뭉수리하게…. 뭐 이렇게 믿기가 제일 편하지요. 통일교회 문선생처럼 이렇게 해 가지고 하려니 이단이니 무엇이니 하는 소문도 나고 욕도 먹고 하지만 말예요. 모르고 그렇게 믿는 것이 제일 간단한 거라구요. 생각해 보라구요.
신랑 되시는 분은 공평해야 됩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만국을 대신해서 혹은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자기를 위하여 희생해 나왔던 신부, 자기 때문에 수고하고 자기 때문에 일생을 바치면서 신부가 되겠다는 사람이 많게 될 때는 그들 앞에 공평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번에 처녀의 신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할머니부터 소개받아야 된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신부 중에서 제일 나이 많은 신부, 백 살 이상 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부터 소개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우리 신랑님은 나에게 와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다른 신부를 소개해 줘야 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나이 많은 할머니부터 통해 가지고 아주머니를 통하고, 과부를 통하고, 아주머니 같은 얼치기 패를 통해 가지고 처녀한테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스운 얘기가 아닙니다. 그러지 않으면 데모가 벌어진다는 거예요. `이놈의 사기꾼! 신랑이란 녀석이 사기꾼 아니냐?' 이런 놀음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또, 남자도 그렇습니다, 남자도. 만약에 할머니한테 신랑 되는 분이 왔다고 하게 되면, 그 할아버지의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께 살고 있는데, 신랑이라는 분이 와 가지고 소개하겠다고 하면, 그 할아버지의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나쁩니다」만약에 그 가정에 싸움이 벌어지면 신랑이 붙어 있겠어요, 안 붙어 있겠어요? 신랑이 붙어 있을 수 있겠어요? 어디 여기 박장로 전도관에서 온 목사, 어드래? 붙어 있겠어, 안 붙어 있겠어?「달아납니다」달아나요? (웃으심) 달아나게 마련이라구. 문제가 큽니다. 그러면 할아버지니까 그렇지, 그 다음에 아저씨한테 떡 갔을 때, 아주머니가 내가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신랑 되시는 분이라고 하며 소개하고 나서게 될 때, 그 아저씨의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저기 문관장, 기분 좋겠어?「나쁘겠습니다」그러면 어떻게 하겠나? 어떻게 하겠어? 기분 나쁘면 어떻게 하겠나? `거 가소' 이러며 오는 병아리 쫓듯 할 수 있겠어요? 기분 나쁘면 어떻게 하겠어요? 주먹이 들락날락하겠지요? (웃음) 젊은 녀석일수록, 혈기가 등등 할수록 사고가 벌어지는 거예요. 사고 판국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또 거리의 여인들을 소개받았다고 합시다. 거리의 여인이라고 해서 주인이 없나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 놀음이 벌어질 것입니다.
남자가 신부라면 어떻겠어요? 남자 신부가 되겠다고 하는 목사 양반들, 저 교직자들이 말이예요. 주님도 남자이고 자기도 남자인데, 신랑 되신 주님이라고 해서 색시가 신랑 대하듯이 예수 앞에 `아이구, 그리우신 님이시여' 그러겠어요?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할 것 같아요. 주님이라고 그러겠어요, 당신이라고 그러겠어요? 뭐라고 하겠어요? 거기도 주님이예요? 뭐라고 해요? 당신이라고 해요? 남자들이 주님에게 `사랑하는 그대여!' 하면 주님이 `허허, 내가 본래부터 듣고 싶었던 말을 왜 지금에야 하는고?' 이러겠어요? 어디 남자들 `사랑하는 그대여!' 이렇게 한번 해보라구요. 여자 입장에서 한번 해보라구요, 기분에 맞나. (웃음) 웃을 일이 아니라구요.
또 나이가 80이 되어, 아이들이 길을 가다 만나도 `아이구, 저 할아버지 보기 싫어' 이러면서 도망갈 정도로 늙은이 할아버지가 있다고 할 때, 당장 죽게 돼 있고 옆에만 가도 늙은 냄새가 무럭무럭 나는 그런 할아버지가 있다고 할 때, 오시는 신랑이야 뭐 새파란…. 주님이 오신다면 몇 살쯤 되어서 오실까요? 예수님이 오신다면 몇 살쯤 되어 가지고 오실까요, 몇살쯤?「서른 세 살요」(웃음) 서른 세 살, (웃으심) 서른 세 살쯤 돼서 오신다면 이 신랑 신부 참 잘 어울리겠구만. 구십, 백 살 난 할아버지, 수염이 이렇게 나고, 눈도 이래 가지고 눈을 뜨자마자 눈꼽이 뚝뚝 떨어지는 (행동으로 표현하심. 웃음) 말하는 것만 봐도 정떨어지는 그런 할아버지가 `하하, 사랑하는 신랑님이여' 이러면 어울리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거 어울리겠나 말이예요.
덮어놓고…. 그저 덮어놓고 믿는 것이 좋기는 좋지요. 그렇지만 바른 것을 덮어놓고 믿어야 맞지, 맞는 것을 덮어놓고 믿어야 맞지, 맞지도 않는 것을 덮어놓고 믿는다면 거 맞아요? 머슴의 딸이, 그 딸 중에도 미인이라면 또 몰라요, 절름발이요 곰배팔이가 되어 가지고 `우리 주인의 아들은 사랑하는 내 신랑이지요' 이렇게 선전을 암만 해보라구요. (웃음) 어림도 없다구요. 생각해 보세요. 그러한 판국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도 신부가 되겠다고 하고, 여자도 신부가 되겠다고 하니 그래 오시는 주님 앞에 어울리는 패가 남자 패예요, 여자 패예요? 어디, 여러분들 대답해 봐요. 신부 되겠다고 하는 패들 가운데 남자 패도 있고 여자 패도 있는데, 그래 어울리는 패가 남자 패예요, 여자 패예요?「여자 패요」(웃으심) 여자 패요? 여자 패지요. 그러면 남자 패는 뒤떨어져야 되겠어요, 앞에 서야 되겠어요? 싫어도 할수없이 뒤떨어져야 됩니다. 그래, 남자들 욕심에 뒤떨어질 만한 아량이 있어요? (웃음) 뒤떨어진다면 어떻게 되느냐? 신부가 어린양이기 때문에 신부들은 전부 다 신랑 되시는 예수님 앞으로 가고, 신부들 뒤에 누가 서야 되느냐? 누가 서야 돼요? 그 뒤에 남자들이 서야 된다구요. 남자들, 그거 기분 좋겠어요?
신랑 되시는 주님이 오게 된다면, 신랑 앞에는 여자가 어울리니까 여자들을 전부 다 앞에 내세우고 그 다음에 남자 신부들이 서야 되겠으니 할수없이 맨 뒤에 떡 서야 될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여편네는 주님 앞에 서고 자기는 맨 뒤에 서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어디 목사님, 기분이 좋겠어, 나쁘겠어? 대답해 봐요.「좋은 일이지요」그거 좋은 일이라는 말을 갖다 붙일 게 뭐야. 기분 나쁘지. 좋다는 말을 갖다 붙일 수 있어? (웃음) 그렇다는 거라구요. 이거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자, 할머니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여편네가 있고, 딸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할머니, 어머니, 여편네, 딸이, 즉 네 부류의 여인들이 전부 주님 앞에 떡 가서 `아! 그대를 그리워했습니다' 하면서 야단한다면…. 그거 가만히 생각하면 자기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거든요. 거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그러면서 그들이 `아이구 신랑님, 우리 집에 아무개 아버지가 있습니다. 여기에 동참시켜 주십시오' 그러게 돼 있어요? 거 와서 동참하면 거치적거리겠어요, 좋겠어요? 어디 저기 나이 제일 많은 목사님 이야기해 봐요. 머리가 제일 흰데, 왜 그렇게 희었소? (웃음) 새까만 가운데 얼른 눈에 띄니까 물을 수밖에 없잖아요. (웃음) 어떻겠어? 신랑 신부가 가만히 생각할 때, 그 가운데 도토리 같은 것이 붙어 다니면 기분이 좋겠어, 나쁘겠어? (웃음) 「기분 나쁩니다」기분 나빠? 정말 그렇소? 문제가 크다는 거라구요, 문제가.
자, 그러면 그 사람이 기분 나빠 가지고 `할머니, 어머니, 여편네, 딸을 시집 보내게 되었으니 나는 그 밑창에 가 서야지…' 이럴 수 있겠어요? 그러면 맨 끄트머리에다가 세울 것입니다. 그럴 것 아녜요. `찬양할지어다! 거룩 거룩 또 거룩 찬송합니다' 이러면 모르지만 기분 나쁜 표색을 했다가는 국물도 없을 터이니, 맨 꼴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땐 어떻게 하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이런 걸 생각하면 예수님을 신랑으로 믿는 것이 무섭다는 거라구요. 무섭다는 거예요.
만일에 남자가, 할머니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여편네가 있고 딸이 있는데 다 집어치우고 내가 신부가 되겠다 하게 되면 또 그 등살에 못 견딜 것입니다. 덮어놓고 믿어요? 그것은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적 신앙을 해야 되는데, 신부는 신랑을 악착같이 사랑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해야 됩니다」할머니들도 해야 됩니다. 악착같이 사랑하는 데 있어서, 앞에서 말한 네 부류의 여자들이 서로가 양보하지 않으려고 하면 싸우겠어요, 안 싸우겠어요?「싸웁니다」싸운다구요. 그래서, 신부 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서 추리느냐? 서로 악착같이 싸워서 이기겠다고 하는 사람 가운데에서는 못 추리게 되어 있습니다. 싸우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어서 신부가 되소'하는 사람 가운데에서밖에는 신부를 추릴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고 천당 가겠다고 하는 사람…. 영계에 가 보면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했던 목사들이 전부 다 좋은 곳에 가지 못했습니다. `내 천국! 주님은 내 신랑이요, 나는 일등 신부지. 천하에 자랑하지' 이런 사람은 전부 다 천국이 거부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못 가는 거예요. 그래, 자기만 제일인가? 초대 교회시대에 목베인 사람들이 더 낫지. 그러한 가치의 내용을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라구요. `나는 죽어 거름이 되고 만민은 나로 말미암아 행복의 깃발을 들고, 만국을 대신해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하는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나는 빚을 진사람이라구요. 그렇지요? `개인의 빚을 지고, 세계의 빚을 지고, 우리 조상의 빚을 지고 나온 사람이다. 조상의 빚도 가라지 못한 나이니 얼굴을 들 수 없다'고 하면서 생애를 거름삼아 가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신부로 추릴 수 없는 거라구요.
그러면 제일 고생 많이 한 사람을 추릴 때 마음과 결의와 성품이 다 좋은 사람들 가운데서는 어떤 사람을 추려 내느냐? 고생을 많이 하였으면서도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느끼는 사람을 추려 낸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추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반항해요? 아무리 욕심 많고 아무리 뭐라고 하는 사람이라도 그 길을 위하여 자기보다 고생을 더 많이 했고, 자기보다 피땀을 더 많이 흘렸고, 자기보다 희생을 더 많이 치렀다면, 그것이 백일하에 드러나 가지고 만민이 공인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될 때에는 그 사람을 밟고 올라설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 사람을 밟고 올라서게 될 때는, 신부고 뭣이고 모가지를 잘라 놓는다는 거라구요. 신랑이 그렇게 안 하더라도 동료들이 그렇게 하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해 볼 때, 그러면 절대적인 신부는 어디에서 찾아지느냐? 절대적인 희망과 절대적인 욕망과 절대적인 행복과 절대적인 요구를 중심삼고 찾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적 기준을 통해서 찾아지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서기 위해 비참한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희생하는 자리에서 찾아지는 거예요. 그 희생의 깊이가 만국을 대신하고 역사를 대신하게 될 때는, 자고이래로 역사과정에 없었던 그 이상의 희생을 자처하면서, 그 범위는 세계적이요 천주적인 범위의 내용을 가지고 희생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손이 수고하다가 구부러지더라도 찬양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요, 그 팔이 수고하다가 구부러져 곰배팔이 되더라도 찬양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요, 그 다리가 수고하다가 병신이 되더라도 찬양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요, 그 목이 수고하다가 찌그러지더라도 영광의 상징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가치의 내용이, 욕망과 반대되는 행적의 과정을 통한 가치기준이 결정되게 될 때, 그런 자리에 선 아가씨를 빼내면 어떻게 되겠어요? 할머니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할머니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싸우겠어요? 그 아가씨가 할머니보다 낫다 할 때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거 방해를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수난과 역경을 극복한 무리를 통하여 하늘의 승패는 결정지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그러면 영원토록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믿음의 내용은 무엇을 중심삼고 결정짓느냐? 죽고 사는 자리에서 결정짓는 것입니다. `그대로 가게 되면 죽는 것이요, 그대로 가지 않으면 사는 것이다. 살기 위해 가는 길은 배반하는 길이요, 죽기 위해 가는 길은 찾아가는 길이다'하는 이러한 자리에서 그 도수를 결정지어 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스스로 높고자…. 높은 길을 찾아 나가면서 스스로 높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높아도 하늘 다음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이 영광받기 전에는 내가 영광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벗어나 가지고 주장하는 사람 몇백만 명을 태평양 가운데에 한꺼번에 처넣더라도 법에 걸리지 않는 거라구요. 그런 사람은 하늘 앞에 상급받는 자리에 절대로 못 나간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거 문관장 대답해 봐. 박장로 전도관에 다닐 때, 무엇 때문에 다녔나? 하나님 때문에 다녔나, 박장로 때문에 다녔나? 응? 무엇 때문에 다녔어? 문관장 때문에? 대답해 보라구.「주님을 맞기 위해서 다녔습니다」주님을 맞기 위해서?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다녔으면 그 일은 주님을 위해 한거라구. 내가 박장로가 나쁘다 좋다 평을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주님을 위해서 한 일에 대해서는 말이예요.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여관집 주인이 나쁘면 어때요? 배고픈 사람에게 밥 먹게 해주었으면 됐지. 그렇잖아요? 그런데 박장로 전도관에 다니다가 나와 가지고 `뭐 이러구 저러구, 박장로가 뭐 어떻고' 하는 사람은 내가 싫어한다구요. 이놈의 자식아, 누구를 위해 일했어…. 자기가 스승으로 모시고 나가던 사람을 놓고 입을 열어 가지고 이렇고 저렇고 하는 녀석들은 입을 가로 째는 거라구요. 하늘이나 땅이나 그런 사람은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박장로는 통일교회 문선생을 대마귀라고 한다고 그러더구만. (웃음) 뭐 기성교회는 은혜 없는 사탄이고, 통일교회는 은혜 있는 사탄이라고 하더라구요. 은혜는 왜 또 거기다 갖다 붙였나? (웃음) 생각이 다르다는 거예요. 사실은 박장로가 형무소에 들어갔을 때 그를 빼내기 위하여 배후에서 조종한 사람이라구요. 박장로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구요.
한국의 신령한 단체로서 남아진 것은 나장로, 박장로, 통일교회 이 세패입니다. 그 가운데 한 패가 망해 들어간다고 해서 각계에서 `이놈의 자식아, 죽어라' 하면서 꼭대기를 눌러요? 그것은 하나님도 못 하는 놀음이라구요. 그런데 인간이 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자기가 한때나마 스승으로 모셨으면, 모시던 그 기준은 절대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정하면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상대할 사람이 못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여기 박장로 패들, 알겠어?「예」기성교회 목사들이 지금 통일교회를 반대하지만 내가 여러분에게 그 목사들을 반대하라고 안 가르쳐요. 그들은 그들의 시대 시대에 정성을 들인 거라구요. 사다리를 올라가는 데 있어서 낮은 다리가 절대 필요한 거라구요. 국민학교를 나와야 되고, 중학교를 나와야 되고…. 그것 절대로 필요하지요? 그래 가지고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교, 대학원을 가는 거라구요. 학박사 코스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소학교 선생님이 자기보다 학식이 없다고 해서 `여보, 임자' 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어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믿던 사람도 그렇다는 거라구요. 통일교회가 이렇고 저렇다고 하는 녀석들은 상대할 녀석들이 못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절대적인 사랑, 절대적인 신부가 있어야 하는데 절대적인 신랑은 어디에서 찾아질 것이냐? 오시는 주님이 호화찬란한 궁중에서 왕자의 모습으로 척 와 가지고 `여봐라, 내가 이렇게 거룩히 왔노라. 나는 신랑의 이름을 갖고 있노라' 이래서 되겠어요? 인간 세상의 누구보다도 고생을 많이 해야 된다구요. 어떠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 노력한 애국자가 있다면 그 애국자가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애국자 중의 애국자가 왕이 되는 것입니다. 죽지 않고 남아지면 왕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 나라의 왕이 제일 호화찬란하게 잘살던 사람이예요? 나라를 세우는 데 있어서 남의 눈치를 살살 보아 가면서 중상 모략이나 해 가지고, 남을 때려잡고, 자신의 출세만을 꿈꾸며 살랑살랑 작전 써 가지고 올라온 사람이예요? 아니라는 거예요.
죽을 고비가 있으면 그 죽을 길을, 모진 풍파를 막기 위해서 홀로 방패를 들고 생명을 놓고 투쟁한 투사가 왕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그 일신에 상처를 많이 입고 애국애족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마음의 십자가를 많이 지고, 십자가를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맞아 국민이 져야 할 십자가까지 자기가 지고, 국민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선두에 서서 달려가는 사람이 있다면, 건국 후에 그가 왕위에 오르는 것은 자동적인 이치가 아니냐. 그렇지요?
마찬가지라구요.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도, 세계 기독교 가운데서 권력을 자랑하고 자기 일신의 행락을 위해 행복의 길을 더듬어 가는 교역자들은 절대 신부가 못 됩니다. 그런 사람은 신랑 앞에서 밀려나는 거예요.
오늘날 기독교가 공산당에게 침해를 받는 마당에, 맨 먼저 화살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이 악당의 무리를 세계 도상에서 몰아내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깃발을 들고 선두에 나설 수 있는 투사의 행각을 자기의 생애노정으로 알고 가야 되겠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교단이 있습니까? 없다구요.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 통일교회가 선두에 섰다구요. 알겠어요?「예」그러면 이 선두에 선 패들을 편안히 쉬게 할 것이냐? 내가 지긋지긋하게 고생시키려고 생각한다구요. 고생시키려고 아예 작정을 했다구요. 누구를 위해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위해서 고생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먼저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고생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고생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주님도 오시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가정도 필요한 것이요, 세계를 위해서 교회도 필요한 것입니다. 나라가 먼저가 아니예요. 세계를 위해서 여러분을 맨 구렁텅이로 쓸어넣어야 되겠습니다. 이거 기분 좋은 말이예요, 기분 나쁜 말이예요? 대답해 봐요. 기분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뭐가 기분이 좋아요, 기분 나쁘지. 그 말 자체는 기분 나쁜 말이지만 내용적으로 생각할 때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그 말 자체는 기분 나쁜 거라구요. 어떤 아주머니가 옷을 잘입고 쓱 교회에 출석을 했는데, `아주머니 상통을 보니 고생을 지긋지긋하게 해야 복을 받겠구만' 하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그거, 원칙적인 말이라구요. `고생을 지긋지긋하게 하면 지긋지긋한 복을 받겠구만' 하고 쓱 한마디 한다면 우선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좋겠습니다」좋아요? 보통 `아, 거 기분 좋을 게 뭐요? 지긋지긋하게 고생한다는 말은 빼지' 그러지요? `난 지긋지긋하게 고생해야 지긋지긋한 복을 받는 것은 싫어. 나는 싫어' 이러는 사람은 지긋지긋한 복을 못 받는 것입니다. 아무리 꿈을 잘 꾸었다 하더라도 복을 못 받아요. 그러니 지긋지긋하게 고생해야 복받는다는 말이 잘된 말이예요, 잘못된 말이예요?「잘된 말입니다」잘된 말이라구요.
통일교인들 상통을 보면 뭐 잘생기지도 못했다구요. 못생겼어요. 이들을 `지긋지긋' 을 한 천년 계속하고, 고생도 `고고고…' 하고 `생생생…'을 한 만년 계속할 정도로 죽도록 고생을 시켜야 되겠습니다. 잘생기고 잘입은 아주머니도 그렇게 고생해야 한다면…. 못생긴 사람들이야 뭐 그 몇백 배몇천 배 고생시켜야 될 것 아니냐 이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에게 지긋지긋한 고생을 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고생시켜 가지고 척 박아 가지고 망하게 해야 되겠다고 하면 전부다 `나는 싫어'하고 나가자빠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지긋지긋한 행복이 터져 나온다고 하면, 다 떨어지더라도 그래도 그 가운데서 한두 녀석은 떨어지지 않고 남을 거라구요. 그렇지요? 한두 명은 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녀석이 누구냐? 남자 가운데 그런 남자가 누구냐? 여자 가운데 그런 여자가 누구냐?' 하고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축복을 떡 해주었는데, 몇 해쯤 되니까 `남들은 다 잘사는 세상이다. 우리도 이만큼 고생했으면 이제는 남과 같이 잘살아야 되지. 고생만 하다가 20대에서 벌써 40대가 되었는데, 좋은 때도 못 보고 일생을 다 지나가 버리면 안 되겠다. 그러니 미리부터 좀 해보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안 됩니다. 뭐 쟁개비(남비) 짜박지, 무슨 뭐 장롱 짜박지, 옷 짜박지, 한 방 두 방 해 놓고 살겠다고 해요? 그래서 에이 이 멍청이, 쾅 왕창 밟아 버린 거라구요. 여편네고 남편이고 없다, 전부 다 보따리 싸메고, 여편네는 동으로, 남편은 서로, 자식은 남으로 가라 해서 다 헤쳐 놓았습니다. (웃음) 거 잘 했어요, 못 했어요?「잘 하셨습니다」통일교회 문선생을 위해서 그렇게 했는데 잘했다구요? 만약 나만 잘 살겠다고 그랬다면 여러분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가만히 안 있을 거라구요. 그렇지만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가라고 하기 때문에…
그래, 가 가지고 망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망할 길을 뭐 하러 가요? 가만히 보아서 망할 것 같으면 가지 않아요. 그렇지만 그 길을 가고 난후에는 3천만 민족이 뭐 5천만 민족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눈물을 흘리며 애국공신이라고 그래요, 애국공신. 머리를 숙인다는 것입니다. 그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데는 얼마만큼 사랑하느냐? 절대적으로 사랑해라. 어떤한 수난과 어떠한 곡절과 어떠한 비애와 사망의 엇갈림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나를 막을 수 없다는 절대적인 자리, 그것을 전통적인 길로 내가 상속받고 가겠다는 사나이와 아낙네들이 있다면 이 길은 절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망한다면 세상은 다 된 거지요.
나는 모험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같이하시겠느냐 하는 것을 하나님과 의논도 안 하고 모험을 왕창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하느냐? 먼저는 하나님 때문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들이 나와서 이러한 모험을 하고, 나라를 구하고 만국을 구할 수 있는 판도를 가려내기 위해 각오하고, 하늘을 믿고 자신을 갖고 나서서 그런 행로를 가주기를 얼마나 바라셨겠느냐? 이런 것은 묻지도 말라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자리에서 망하더라도 깨깨 망하겠습니다. 그런 절개를 가지고 망하겠습니다. 망하는 데 세계적인 대표자가 되겠습니다. 그런 전통이 없다면 그 전통을 세우는 데 기수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며 실천하면 안 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건 내가 생애를 통해서 얻은 많은 증거를 갖고 있어요.
고생을 많이 했다면 여러분들보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더 많이 했지요? 나이 많은 분들에게는 실례되는 말인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다는 거예요. 나라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나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습니다. 나라 때문에 흘린 눈물만 해도 한 독이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누구한테 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선두에 서서 행복의 길을 갈 것을 지금까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대중의 환영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나는 후퇴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공석에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본 사람은 없을 거예요. 시민회관 같은 데에 수천 명이 모여 잔치를 하는 데서도 일본 사람, 뭐 어느 나라 사람들이 와 가지고 큰소리치고 하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은 어디를 가든지 모습도 안 나타내는 것입니다.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는 것입니다. 낮고자 하는 자가 높아지는 거예요.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낮고자 하면, `내가 이렇게 해야 천국에 갈 수 있지' 하면 안 된다구요. `내가 이렇게 해야 주님의 신부가 된다. 내려가자, 내려가자'고 하면 안 된다구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욕심을 버려야 돼요. 타락이 욕심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기 때문에 욕심을 내포한 그 자리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계를 품고 사랑하는 자리에서 자기를 내세워야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자들도 주의해야 됩니다. 세상을 모르고 미친 수작하는 것들이 있다구요. 분수에 넘치는 짓을 하는 것들은 두고 보라구요. 그런 사람은 하늘이 꺾지 않으면 자기 친척, 동기들이 꺾어 버리거나 본인 자신이 걸려 버린다구요.
여러분, 절대적이어야 돼요. 그러면 신랑과 신부, 신부와 아버지 사이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이냐? 오늘날 타락한 인간 자체로서 소망과 욕망을 품고 다짐하는 그런 내용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을 청산지어야 돼요. 타락인간은 누구나가 공식적으로 수난길을 가지 않고서는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선한 선조를 말하지요? 선한 조상, 그거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선한 조상을 가져야 됩니다. 선한 조상이란 어떤 조상이냐? 공적인 입장에서 고생한 조상을 말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대중을 위해서 희생한 조상입니다. 적선을 한다, 선을 행한다 하는 것은 남을 위하여 전체를 주는 것이 아닙니까? 줄 때는 어느 정도까지 주어야 되느냐? 자기의 아들딸까지, 자신까지 전체를 주어야 됩니다. 가정에 있어서 할머니면 할머니, 아주머니면 아주머니, 아내면 아내, 딸이면 딸을 몽땅 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가정적인 주인, 가정의 책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또한 나라를 전부 다 바칠 때는, 나라의 주권과 땅을 하나님 앞에 몽땅 바치면서 `이것을 하나님을 위해 바치고, 세계를 위해서 희생시키겠습니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세계를 상속받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이구, 세계야 어떻게 되든지, 뜻이야 어떻게 되든지 내 아들딸은 못 내놓겠소. 내 돈은 못 내놓겠소'하는 것들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이 그 어미 아비의 모가지를 자르는 것이요, 그 돈이 그들의 목을 자르는 것입니다.
끝날이 되면 자기가 제일 사랑하고 애착을 가지던 물건이 자기 가슴을 찌르는 거예요. 지식을 추구하는 학자가 있다면, 그는 자기가 배운 지식이 자신의 목을 매는 것입니다. 그것을 저 시궁창 밑으로 뭉청 집어던지고 왼발로 차 버리라는 것입니다. 차 버리고 초개와 같이 던져 버릴 수 있는 기개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체면과 위신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여기, 주 교수도 나왔구만. `아! 내가 무슨 교수요'라고들 하는데, 그 교수 짜박지가 하나님 앞에는 통하지 않는다구요. 과거에 목사 노릇하던 목사 짜박지도 통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목사님이 되려면 자기라는 것을 버려야 돼요. 자기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목사님이 못 되는 거라구요. 목사 짜박지도 못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 문선생도 그렇다구요. 어떤 사람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젠 출세했구만. 그 얼마나 좋겠소' 이러지만 나 좋지 않습니다. 옛날보다 더 심각하다구요. 쇠고랑을 차고 감옥을 출입하던 때보다 더 바쁘다구요. 더 고달프고 더 심각하다는 거예요.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거예요. 더 큰 분야, 더 큰 무대의 싸움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고달픈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문선생이나 통일교회는 아무리 반대해도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저 사람들은 한번 한다 하면 하는 패들이다'이건 인정한다구요.
자, 우리는 절대적인 신의를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신의를 세워야 되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과 하나님 사이를 누가 끊을 수 있겠습니까? 끊을 수 있다 하더라도 `나는 끊을 수 없다. 못 끊는다' 하는 신념이 있으면 그 신념을 누구도 못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공산당이 제아무리 고문틀에 매어 놓고 들이 짜도 그 신념만은 못 빼앗아 간다는 거예요. 민주세계의 그 무엇도 그 신념만은 못 빼앗아 간다구요. 공산당이 아무리 뭐라 하더라도, 민주세계의 무슨 주의가 무슨 주권이 아무리 뭐라고 한다 하더라도 못 빼앗아 간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삼국을 거쳐왔습니다. 왜정과 공산당과 민주세계를 대표한, 이 대한민국 해서 삼국을 거쳤어요. 또 삼주권을 거쳐왔습니다. 자유당, 민주당, 혁명정부. 그 다음에는 삼교단을 거쳐왔습니다. 불교, 유교, 기독교. 그들은 전부 통일교회를 반대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삼 족속이 반대한 거라구요. 망할 족속, 중간 족속, 흥할 족속이 다 선생님을 반대한 거라구요. 거 왜 그래야 되느냐? 일등을 뽑으려니 할수없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일등을 뽑으려니 경쟁을 해야지요. 경쟁을 하게 되면 반대하는 거라구요. 있는 재간껏 다 해보는 것입니다.
요전에는 통일교회를 반대하던 사람이 그래요. `통일교회를 사실 반대했지만 이제는 기력을 잃었소. 아무리 반대를 해도 반응이 없기 때문에…' (웃으심) 그 무엇이 와스스 해 가지고…. 그렇잖아요? 여러분, 가을에 밤나무에 밤이 가뜩 열려 가지고 누릿누릿하게 익은 알밤들이 `내 얼굴 좀 보소' 하는 듯이 아가리를 쫙 벌려 가지고 주렁주렁 달려 있다면 아무리 신사요, 도를 닦는 도인이라 하더라도 `아이고, 저 놈 돌이라도 한번 집어 던지면 와스스 떨어지겠구만' 하며 관망하다가 도인 체면도 잊어버리고 자기도 모르게 돌을 들어 던지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그것이 죄예요, 죄가 아니예요?「아닙니다」알고 했을 때는? 죄입니다. 자신도 모르고 했을 때는 죄가 아닙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죽을 자리에서 구함을 받을 때에는 자기가 알게 구함을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구함을 받는 거예요. 제일 심각한 자리에 들어갔을 때 무사통과되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해버리는 수가 많아요. 그럴 때에는 하나님 법에도 안 걸리고 사탄 법에도 안 걸립니다. 갖다 붙일 말이 지천이예요. `그 얼마나 밤을 사랑했으면 그랬을꼬'하는 용서가 나올 수 있는 거라구요. 그 얼마나 밤을 그리워했으면 그랬을꼬… 그 주인보다 천 배 더 그리워해 가지고 그렇게 했으면 용서받을 수 있다구요. 거기에는 무궁무진한 동정의 요인이 있다는 거예요. `그 나무의 주인은 백정놈보다 더 악한 사람이었는데 그거 잘했지'할 수도 있다구요. 악당들도 찬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이런 것을 중심삼고 본다면, 하나님은 말이예요. 하나님이 보좌에 떡 앉아 계신다 이거예요. 그런데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너무나 그리워한 나머지…. 그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모시는 데 얼마나 엄중한 천법이 있겠어요? 그것도 모르고 그저 그리움에 취해 가지고 어떻게 할 때는 그것이 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법을 넘을 수 있는, 그분에 대한 사무침이 극해 가지고 그분을 위하는 마음이 전체를 덮고도 남을 수 있는, 공인될 수 있는 입장에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움직이는 데 있어서는 얼마든지 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옛날에는 누워서는 기도 안 했어요. 그런데 요즈음에는 드러누워서도 기도를 곧잘 합니다. 눈을 슥 감고 생각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신비로운 경지에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내가 드러누워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서는 정색을 하고 예법을 갖추어 가지고 기도를 해야 될 텐데 드러누웠다' 하는 인식이 있을 때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드러누웠다는 인식이 없는 경지, 별천지와 같은 경지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대하여 무엇을 먹자고도 이야기할 수 있고, 어디로 가자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거예요. 몸뚱이는 드러누워 있지만 무사통과 될 때가 있다는 겁니다. 그건 왜냐?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경지에서는 모든 것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법을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법을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은 사망선을 자유롭게 넘나 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서게 될 때는―여기서 사랑하는 마음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입장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가슴 깊이 파고들어가더라도 남자가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대해요? 환영하지요. 남자도 그런 거라구요. 천만세의 담이 막혀 있다 해도,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담이 있더라도 그 담을 무난히 헤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전체를 투입하고 달려드는 거기에서는 그 어떤 담도 전부 무너지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애기는 어머니의 젖가슴을 헤치고 파고드는데 사랑을 빼놓고 보면 그럴 수 있어요?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애기에게 부모의 사랑을 촉감시키고, 애기를 품음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행복하다는 것보다도 천지가 모두 평화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느끼고, 전체 분위기에 좋은 것이 싹튼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에는 그 애기가 아무리 자기의 가슴을 파고든다 하더라도 그걸 용서하고 `어서 해라, 어서 해라' 할 수 있는 아량의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은 자식을 무한히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애기는 부모의 원수라구요. 호스를 갖다 대고 자기의 피살을 빨아가는 원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로서의 새로운 소망의 자극, 남편에 대한 새로운 자극 등, 그 애기로 말미암아 찾아지는 것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지에서는 통하는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그 경지는 누가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여기에서 절대적인 사랑에 결부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고 전체를 위하는 사랑을 중심삼고 맹세하는 그 자리는 무엇보다도 강한 기준이 세워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 위에 서지 않고 그저 말로만, 또는 보고, 듣고, 약속하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이 다르고 봄과 가을이 다릅니다. 여름과 겨울이 엇갈리는 거예요. 봄에 심은 씨앗이 가을 절기에 가 가지고도 그 생명의 인연을 그냥 그대로 이어 가지고 정상적인 생명과 완전히 일체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완전한 생명의 씨로 남아지게 될 때는 춘하추동을 포괄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질 수 있으되, 그것이 결여되게 될 때에는 전부 다 분산되어 버리고 마는 거라구요.
마찬가지로 모든 것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출발의 동기도 하나님의 사랑이요, 역사적인 과정도 하나님의 사랑이요, 역사적인 결과도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빼놓은 기준에서는 일체화라는 것이 없습니다. 절대적 통일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요, 그 아들이 사랑하는 신부요, 하나님의 사랑받는 신부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사랑의 일체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지간에는 엄연히 상하의 질서가 있는 것이지만,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에는 종적 질서가 횡적 질서로 바뀐다 하더라도 무리가 없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명령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아들이 `아버지, 이리로 오세요'할 때 아버지는 안 갈 수 없는 거예요. 암만 두 살 난 딸이라도 `아빠, 이리 와' 하면 아버지는 안 갈 수 없다는 거예요. 종적인 기준이 횡적으로 움직이는 엇갈리는 자리라 하더라도, 모순과 상충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가치적인 기준을 찬양할 수 있고 도리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 기준은 사랑에 의해서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세계를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사랑으로 포괄된 세계를 만들지 않고서는 천국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은 네 마음 속에 있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 자신을 중심삼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천국 이념은 외적으로 너희들도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요, 내가 너희들을 필요로 하는 것은 너희를 사랑의 기수로 만들기 위함이다. 너희들이 나와 같이 가면 너희의 마음에 나의 이념과 사상이 자동적으로 옮겨지기 때문에 너희의 마음에도 천국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 천국관념은 자기를 위주한 것이 아니라 전체를 구원하고, 전체를 잘 거느려 주고, 전체를 주관해 주기 위한 것입니다. 주관하는 것도 강제 주관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자원에 의해 주관해 주는 것입니다. 자원에 의해 주관해야 합니다. 그런 권한이 비로소 벌어질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그림을 그리심) 이것이 삼위일체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가 무엇이냐? 하나님과 아들과 성신이지요? 성신은 무엇이냐면 어머니신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에게 성신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면 `성신이 뭐야? 성신이 성신이지' 이럽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아들과 성신은 다른 것이 뭐냐? 다른 것이 없습니다. 북쪽에서 보나 남쪽에서 보나 다른 것이 아니라구요. 올라가서 보나, 내려가서 보나, 좌우로 보나, 전후로 보나 전부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같으냐? 세계를 사랑하는 데, 세계를 구하고자 하는 데, 세계인류를 자녀로 삼고자 하는 데 있어서 같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근본이 되는 핵이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을 중심삼고 영적으로나마 설정된 기준이 있기 때문에, 자녀를 중심삼고 횡적으로도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발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사명은 무엇이냐? 가정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식으로 말하면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자, 그러면, 주관성 복귀, 주관성을 어떻게 복귀해야 되느냐? 악한 사탄세계에서는 주관성을 강제로 복귀하려고 합니다. `너는 내가 지배해야 되겠다'라고 하면서 채찍을 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관하려고 한다구요. 그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주관해야 하느냐? 본성적 주관성의 복귀는 무엇을 토대로 해야 하느냐? 오늘날 사탄세계와 마찬가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출세하기 위하여 제삼자를 희생시키고 모해하고 하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주관권은 한때밖에 못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 주권자가 있다면 그 주권자는 얼마 못 가서 끝나는 것입니다.
하늘은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주관성을 제시해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희생과 사랑입니다. 희생과 사랑의 테마를 앞세우고, 갖은 수욕과 갖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면, 그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주관성을 취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동적인 주관성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도 그렇다구요. 선생님이 명령을 하게 되면 그 명령이 여러분의 마음에 딱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 하게 되면 여러분의 마음이 편안하지 않아요. 하라는 대로 안 하면 편안하지 않을 거라구요. 편안해요, 편안하지 않아요? 난 모르겠어요, 여러분은 어떤지. 나 자신은 편안하지 않다구요. 만일 편안하다면 그는 통일교회 교인이 아닙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편안하지 않은 사람이 통일교회 교인이라는 거예요. 편안한 사람은 통일교회 교인이 아니라구요.
선생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움직이지 않으니 선생님이 선두에서 달리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달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시키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여러분을 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게 달라요. 지금까지 내가 통일교회에서 말한 것은 내가 다 실천한 거라구요. 복귀원리는 전부 다 실천해 나온 것입니다.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그 종족의 선두에 서는 것입니다. 민족의 선두에 서는 것입니다. 세계의 선두에 서야 됩니다. 어떻게 서느냐? 그 방법을 여러분은 모른다구요. 가야 할 길이 있기 때문에 선두에 서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가야 되느냐? 그러한 중심적인 사명을 진짜, 진짜 책임지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 스토브는 열을 발생하는 것입니다. 스토브를 피워 놓은 방에 들어가면 그 열을 감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회도 그런 감각권내 스토브의 온기가 영향 미칠 수 있는 권내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된다고 할 때 여러분이 안 하려고 하면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살아 온 사람이 있다면 그는 통일교인이 아닙니다. 그것을 오래 못 하게 되면 병이 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 오래 믿던 사람들이 끝까지 가야 할 텐데 가지 못하게 되면 병에 걸리는 거라구요. 나는 그렇게 봅니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한 곳으로 치우치니까, 이것이 자꾸 이렇게 기울어지니까…. 좋은 자리에서 잘 먹고, 좋은 침대에서 자는 사람보다도 도리어 지방에 나가서 꽁보리밥을 먹고, 몰리고 쫓기면서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자는 사람이 행복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도리어 희망이 벅차오르는 것입니다. 먹지 못하고 밤을 새우는 자리에서 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바라볼 때, 거기에 새로운 세계가 찾아드는 느낌을 느낄 수 있는 것이요, 불어오는 바람결에 느껴지는 그 환경을 생애에 처음 맞는 은사의 분위기로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더 행복하겠습니까? 마음의 고통을 품고 세상적으로 볼 때 좋다고 하는 자리에 선 것이겠습니까, 세상적으로 볼 때 나쁘다고 하는 자리이지만 마음의 희망을 품고 일선에 나가 몰리는 자리에 선 것이겠습니까? 세상에서 좋다는 자리가 아니라 몰리는 자리가 도리어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그 길을 찾아 가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길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꺼떡하면 청평에 갑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없어요. 내가 옛날에 이 길을 닦아 나오면서 고생하던 그 자리가 그립고, 산야가 그립고, 들려오던 바람 소리, 새 소리가 그리워서 가는 겁니다. 그 흘러 내리는 자연의 섭리를 통해서 하늘의 감동의 세계에 접촉하던 그 기분이 그리워서 가는 겁니다.
여러분, 봄이 그립지요? 여름을 맞고 가을을 맞이하면 봄이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그 그리움은 죽을 때까지 누가 빼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자리에서, 배고픈 자리에서 참고 명상을 하면서 하늘과 더불어 인연맺던 그 시간이 그리워진다는 거예요. 혹은 불어오는 바람결을 느끼게 될 때, 그것이 과거의 인식을 현실의 생활권내에 재촉시켜 주기 때문에, 과거에 그것이 자극적인 동기가 되었다면 현실에서는 생활적인 동기로 현현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 때문에 그것을 좋아하는 거라구요.
내가 청평에 가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 없이 다닌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뭐 일 없이 다녀요? 천만에요. 가 가지고 나 나름대로 가야 할 길을 닦아 나가는 거예요. 심각하다는 거라구요. 그런 무엇이 있다구요. 전쟁을 하고 나면 칼을 가는 것과 같은 그런 생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추구하는 것은 나의 행복이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 잘살고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절대 일생 동안 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잘해서 내 아들딸을 잘 입힐까 하는 생각을 안 한다는 거예요. 이 나라와 세계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생각하는 거예요. 엊그제만 하더라도 큰 판국을 벌여 놓아서 몇천만 원이 필요한데 주머니에는 딱 2천 원밖에 안 남아 있었어요. 몇천만원 써야 할 텐데 대책이 없다구요. 그렇지만 걱정을 안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걱정 안 하면 안 됩니다. 거기에는 이렇고 이렇고 이렇기 때문에 걱정 안 해도 된다, 이것은 반드시 해결된다…. 그러면 한구석에는 복닥불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그러한 자리에 있으면 돈 가진 사람은 못 배긴다는 거예요.
그런 놀음을 하면서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발전해 나왔습니다. 모험의 연속이요, 싸움의 계속이었습니다. 투쟁 중에서도 모험적인 투쟁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한 혁명적인 처소에 있으면서 불어오는 풍파를 전부 다 가려 내어 오늘날 이만한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이제 이 10월만 넘어가게 되면 내가 죽더라도 눈을 감고 죽을 수 있는 자리에까지 올라간다고 봅니다. 이 1971년만 가게 되면, 우리가 1972년도까지 잡고 있지만 말이예요. 1974년도부터는 세계적으로 났다는 녀석들, 하늘 높은 줄모르고 높다는 녀석들은 전부 들이박을 것입니다. 그럴 때가 온다구요. 내가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고 내가 바라보는 세계관이 틀림없는 이상, 생활환경에 있어서나 세계정세 가운데서 들어맞기 때문에 그야말로 사나이로 태어난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한마디 말도 그냥 그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적중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수단 방법으로 주관하려는 거기에 복귀의 뜻은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희생해 가지고, 세계를 사랑하기 위하여 자기 일신을 가눌 수 있는 일체의 환경을 포기해 버리고 세계를 가누어 주고 하나님의 사정을 헤아려 드리기 위해 자기 일신을 제물로 삼고자 하는 생활과정에서만이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법도가 제정되는 것이요, 그 사랑을 중심삼고서야 새로운 주관성의 터전이 넓혀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그 세계의 모든 내용에 정서적인 문제를 결부시키는 것은 무엇이냐? 오관입니다. 오관. 눈, 귀, 코, 입, 그리고 촉각이예요. 이 오관을 통한 감정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보고 좋아하는 것은 무엇을 보고 좋아하느냐? 실질적인 문제에 들어가서, 아내를 보고 좋아하느냐? 아내를 보고 좋아하기 전에 나라를 보고 좋아하고, 세계를 보고 좋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아내를 보고 좋아하는 것이 본성의 자리입니다. 안 그래요?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볼 때, 원래 아담은 찬란히 빛나는 자연의 질서 정연한 모습과 그것들이 화동 화합하는 상대적 이상세계를 바라보는 아담은 `이 이상적인 상대권의 세계는 우리를 찬양하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구나. 아! 좋구만. 우리는 여기에 중심 핵이 되어 있구만' 해 가지고 그것을 품고 나서 아내를 사랑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그것이 참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아내를 보고 그 미모를 찬양하고, 아내의 음성을 듣고 화동하고, 아내와 더불어 생활환경에서 냄새를 맡고, 음식을 먹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성의 주관권입니다.
나라도 없이 세계도 없이 달랑달랑 다니면서 피난민으로서, 혹은 종의 새끼로 사랑하면 뭘해요? 그렇게 사랑해서 뭘하느냐구요. 그런 사랑은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가 그런 것이 아니예요.
타락하지 않은 우리 인류의 본성적 부모의 기준을 중심삼고 보면, 우리가 하늘땅을 품고 나가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하늘땅도 우리에게 끌려 다니는 것입니다. 우리가 좌로 가면 하늘땅도 좌로 가고, 우로 가면 우로 가고, 올라가면 올라가고, 내려가면 내려가고,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주관성을 중심삼고 천지의 대권한을 가지고 치우침이 없는 중심권의 자리, 모든 것을 지휘하고 모든 것을 가리는 자리, 모든 것을 주관하는 자리에서, 그런 터전 위에서 개인의 사랑의 인연이 맺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내가 자랑을 하고 싶더라도 그러한 터전을 갖지 못했거든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랑은 부끄러운 자랑입니다. 자랑을 지나치게 했다가는 하늘의 갈 길이, 자랑의 길이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성을 들었다 하더라도, 본성의 터전을 갖춘 주관권을 세워 놓지 않고는 내 귀가 듣고 즐거워하는 것도 전부 다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적 기준이라는 것은, 이 귀가 사악한 세상의 소란한 소리를 듣고 그 선율에 따라, 그 음률에 취하여 움직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눈도 그렇습니다. 요사스러운 미녀를 보고 이 눈이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도 그래서는 안 됩니다. 냄새를 맡는 코도 그렇다구요. 오늘날 그렇잖아요? 무슨 화장수니 향수니 하는 것들의 향기는 맡을 수 있지만, 순종의 거 뭐라고 할까, 순수한 향기를 드높이 맡을 수 있는 코가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먹는 것도 타락권내의 사탄이가 똥칠한 것만 긁어다 먹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사랑을 하면 뭣 해요? 뭐 피 난민이 되고 감옥에 들어간 사람이 사랑이 뭐예요?
그런 자리를 떠난 입장에서는 서로 격려해 가지고 나라를 찾자고 봉기 하는 데 있어 동지로서는, 투쟁의 격려자로서는 필요하지만, 사랑의 대상자로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차적인 종교인들은 독신생활을 강조해 나온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사랑을 하면 뭘하고, 아들딸을 낳으면 뭘하겠어요? 남편된 그대들이여, 아내를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했고, 인류를 사랑했다는 증거를 가져라! 그런 증거를 가지고 아내를 사랑해야 그 사랑은 참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은 자리에서 사랑의 인연을 맺었다가는 그 여자가 방해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대들이 가야 할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여 인간의 타락권을 벗어나는 최고의 노정이 아니냐. 그러한 노정을 가야 할 운명이 남아진 과정에서 사랑을 하며 가는 길에 짐이 되고 방해꾼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그렇게 보는 거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도 그런 면에서 상당한 고충을 느껴 본 사람입니다. 차라리 여자가 없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생각한 때도 있습니다. 이놈의 여자들 때문에 내가 욕을 많이 먹었다구요. 또, 차라리 남자가 없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하나만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는 거예요. 여자가 없고 남자만 있는 나라였다면 내가 반대받지 않았을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여자만 있고 남자가 없는 나라였더라도 반대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중심삼은 여자들과 남자들이 살기 때문에 세계를 사랑하고 하늘땅을 사랑하자는 사상을 갖고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아- 하늘땅은 나중이고 내 아들딸이 먼저인데…' 하는 바람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단 사교로 몰려 비참한 운명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못난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못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구요.
그러면 본성적 주관이 가능한 곳, 한 남성으로서 본성적 기준에서 아내를 사랑할 수 있는 자유의 천국, 평화의 천국이 어디냐? 한 아내로서 남편을 사랑할 수 있는 자유와 평화가 깃든 천국이 어디냐? 마음의 천국이 외적 천국의 상대로서 그 하나의 아내를 들고 나오게 될 때, 아내 뒤에 세계와 천지가 달려 들어올 수 있는 자유의 천국기반은 어디냐? 이것이 지금까지 복귀도상에 남아 있는 과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종족적인 교회는 가졌지만 나라가 없고 세계가 없기 때문에 이 길을 가려 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만민이 그리워하는 나라를 어디에 세울 것이냐? 만국이 그리워하는 이상세계는 어디에서 이루어질 것이냐? 오늘날의 민주세계도 아니요, 공산세계도 아닙니다. 두 세계 다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세계와 민주세계를 밟고 올라서서 이 두 세계를 통합해서 다리 하나가 찌그러졌거들랑 다른 한다리에 힘을 주어 가지고 이렇게 지지하면서 하나의 세계로 가로놓아야 할 것이 하나님의 할 일이요, 오늘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충성하겠다는 사람들의 할 일이 아니냐.
그러면 본성적 세계 기반은 어디에서 나올 것이냐? 그 세계 기반이 한꺼번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개인으로부터 나와야 되는데, 세계를 위하여 우는 사람이요 하늘을 위하여 우는 사람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를 위하여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즐거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계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우는 환경밖에, 그 길이 아니고는 갈 길이 없다고 하며 그 길을 자처해서 가는 사람, 그런 무리가 아니고는 금후의 이 길을 헤쳐 나가 해방적인 권한을 갖출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하지 않고는 될 수가 없기 때문에, 완전한 해방과 최후의 해방의 기수가 되어야 되고 완전 건국, 최후의 건국의 용사가 되어야 되기 때문에 이들은 누구보다도 신음에 신음의 과정을 거쳐야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억천만 사탄이 공격할 것입니다. 악의 권속에 속해 있는 영인들은 물론이거니와 땅 위에 있는 악당의 후손들까지도 모두 여기에 반기를 들 것입니다. 그러나 반기를 드는 그 고난까지도 소화시키고 넘어 최후의 승리의 천국을 향해 가는 길이, 하늘을 신봉하고 하늘의 정통적인 사상을 이어받아 절대적인 신뢰의 기준을 세워 나가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참아들딸의 도리를 세우기를 바라고 나가는 그들이 가야 할 지극한 정상적인 길이 아니냐. 그 한계선까지 우리는 투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지하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공산당식의 그런 지하 조직이 아닙니다. 그보다 몇천 배 강력한 지하 활동을 마음 세계에…. 그 누구도 모르는 거라구요. 외적으로는 모르는 거라구요. 마음에 끓어 오르고 마음에 불타오르는 정열과 더불어 하늘나라의 해방의 권한을 소망하고 승리의 주관권을 바라보면서 활동한다는 거예요. 그때에 사랑할 수 있는 남편과 아내를, 그때에 가질 수 있는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승리의 천국을 봉헌해 드릴 수 있는 그날이 언제 오겠느냐?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최후의 소원의 지점, 목적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어느 정도까지 올라왔느냐? 통일교회는 이제 통일족속을 이루었습니다. 내가 엊그제도 얘기했지만 지금까지 하나의 결실을 맺기 위해 찾아온 우리 통일교회가 오늘날 이러한 결실을 맺기까지 얼마나… 일 년 장초도 팔 년 풍파를 겪는다고 했거늘, 오늘날 섭리도상에 있어서 이만한 무리가 하나의 종족권을 이루었다는 것은 지극히 귀한 것입니다. 한 사람을 세계 이상의 가치로 보아 주고 평가해 줄 수 있는 인연으로 꽉 짜여져야 됩니다. 꽉 결속된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그러한 터전이 되지 못하면 다른 어떤 것이라도 하나 있어야 됩니다. 세계에 그런 것이 없으면 우리가 그런 터전이 되어야 돼요.
선생님은 식구를 비난하고 식구를 모해하는 것을 보고는 못 견디는 사람입니다. 세계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그 사랑을 어디서부터 해야 되느냐? 우리끼리부터 해야 되는 거라구요. 동서남북에서 가려져 가지고 하나의 인연을 따라 모인 우리 끼리끼리 서로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보지 않으면 못 사는 거라구요.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구요. 이런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그래도 이 악한 세상과는 다른 무엇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한 사람이 이곳에 찾아오기까지 그 배후의 역사적인 수고가 크다구요. 수많은 선조들의 공적이 쌓여진 것입니다. 여러분, 가을에 결실을 거두어 들이는 주인이 낫질을 하는 데는 노래가 흘러 나가는 것입니다. 찬양의 노래, 지금 가을에 수고하는 것을 다 잊어 버릴 수 있는 찬양의 노랫가락이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확을 하면서 `아이고, 이거 힘들어서 해먹겠나!' 하며 탄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주인이 아니라는 거예요. 추수의 낫질을 하는 농군의 일터는 일년의 수고가 영광으로 드러나는 그날을 기쁘게 맞을 수 있는 자리지 신음과 비통과 탄식으로 열매맺히는 자리가 아니라고요. 고통과 수고는 다 흘러가 버리고 도리어 그 낫질에서 콧노래가 흘러 나오는, 희망의 내일이 기약되는 자리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자신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두어질 수 있는 입장, 거두어진 알곡의 입장에 있는 우리가 끼리끼리 당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행복의 요인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터전을 넓혀서 국민화시키고 국가화시키고 세계화시킬 때까지 그 주체적인 정신이 일원화된 형태를 벗어나지 않아야만, 그러한 터전을 통해서 세계에 평화의 천국이 연결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너와 나의 삼각권내에서 제3자의 동서남북을 중심삼고 넷이 딱 벌려 서게 되면, 여기에는 이의가 없는 것입니다. 결속의 동기는 거기에서 마련되는 거예요.
여기에는 원조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가정을 희생시키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아이고, 우리 아들딸 때문에 못 가겠소' 이런 건 통하지 않는다구요. 그것이 가능하다면, 선생님이 무엇 때문에…. 선생님이 아들딸을 버리고 이북으로 안 들어가는 거라구요. 대한민국에서 반대도 안 받는 것입니다. 반대 안 받는다구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미치고, 세계를 사랑하기에 미쳐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은 가정을 구해 가지고 나가는 것이지만, 가정이 생겨났으면 그 가정은 자기 가정만을 위해서 사는 가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사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전통적 기준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교육해야 되는 것 자체가 원통한 사실입니다. `아내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위해 삽시다!'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이 원통한 사실입니다. 타락 때문에… `아들 딸아, 너희는 하나님을 잘 믿어야 된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교회를 잘 다녀야 된다'고 가르쳐야 되는 이것이 원통한 사실입니다.
본래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아요. 하나님이 언제나 마음속에 계셔서 모든 것을 콘트롤하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하나님을 소개할 필요가 없어요.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에게 하나님을 소개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소개받아 가지고 하나님 노릇 해야 되는 하나님은 필요 없다구. 소개가 필요 없는 하나님과 그 아들딸이 못 된 것이 원통한 사실이라구요.
나면서 하나님을 알고,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가려 나가야 하는 인생길인데도 불구하고 타락 때문에, 이놈의 사탄 마귀 때문에. 이 사탄 마귀를 요리해야 됩니다. 치리해야 됩니다.
사탄은 본래 자기를 높이는 데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반대로 거꾸로 때려 넣는 것입니다. 올라가려는 녀석은 반대로 잡아 내려야 돼요. 올라가 가지고 되겠어요? 렌치를 걸어 가지고 반대로 휙 틀어대는 것입니다. `이놈 내려 와라! 어디 안 내려오나 보자' 하며 사람을 내리키는 것입니다. 종교를 통해 들이박는 거예요. 처박는 거라구요. 그러니 안 내려올 수 있어요? 이놈의 자식. 사탄이는 안 떨어져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이는 높아지고자 하니 반대로 처박는 것입니다. 세계의 사탄이를 떼어 버리려니 세계를 처박는 놀음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알겠소. 저 박장로 전도관에서 온 목사. 지금 나이가 몇이오?「예순 다섯입니다」예순 다섯? 혼자 살면 장가가야 되겠구만. 장가 보내 주면 가겠소? 색시 있소?「없습니다」없으니 장가가야지. 장가 보내 주면 가겠냐 말이오.「가야지요」가야 되겠어? 그럼 청춘이지. (웃음) 장가는 젊은 사람이 가지 늙은 사람이 가나? 청춘이라구요. 늙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지금 그렇다는 거예요. 내가 26세에 뜻을 품고 이 길을 나서면서부터, 정열이 불타는 나의 모든 기백을 뽑아 세계를 밟아 치우고 하늘이 원하는 기수가 되어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이런 혈기 충천한 청춘시대를 몹시도 귀하게 여겼는데 다 흘러 버렸습니다. 기가 막혀요. 내가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때문에, 기성교회 때문에 그렇게 됐어요. 그걸 생각하면, 쌍칼을 들어 가지고 그저 도리탕을 만들어서 전부 독수리밥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의 법도가 그렇지 않은 것을 알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건 죽을래도 죽을 수가 없어요. 선생님이 성질이 급한 사람입니다. 말 빠른 것을 보라구요.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옳지 못하면…. 옛날에는 내가 도매 싸움도 많이 했습니다. 동네에 되먹지 못한 녀석이 있으면 맡아 가지고 싸움을 한 사람입니다. 지금도 그런 기백이 당당하다구요. 그렇지만 이건 딱 허리 부러진 호랑이 새끼 같구만. 그저 성질 같으면 한칼에 다 해치우고 싶은데, 하늘의 뜻을 알고 보니 아이고, 죽을 지경이라구요. 그래야 가치가 있는 모양이지요? `에이, 못 참겠는데' 하는 거기에서 참아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반대적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선생님을 잘 택했다. 탕감복귀원칙을 두고 볼 때 딱 들어맞지' 이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기가 막히다는 거라구요. 생각해 보세요.
내가 뭐 세상에 나가서 뭘 했다면 이만한 연령에서는…. 요즈음 대한 민국에서 부자라고 하면 누구예요? 거 다 콧방귀를 뀌는 거라구요. 그들을 데려다가 내가 부려먹고야…. 그러지 못하면 죽는 거라구요. 살아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각오를 가진 사나이입니다. 그런 소질이 있는 사람입니다. 뭐, 척 보면 벌써 전후를 판단할 줄 안다구요. 여러분 중에 누가 암만 뭐 어떻구 해도 말하는 것을 척 보면 벌써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안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무소질자(無素質者)가 아니라고요. 유소질자(有素質者)라는 것입니다. 다방면에 소질이 있다구요. 무엇이든지 소질 없는 것이 없어요. 그래 우리 아이들도 지금 걱정입니다. 무엇이든지 들이대면 못 하는 것이 없거든요. 남들이 열흘 동안 해야 될 것을 사흘만에 후딱 해치운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곤란하다구요. 그런 소질을 가진 사나이가 무엇이 못나 가지고 통일교회 선생으로서 일생 동안 감옥으로 끌려 다니고, 아이쿠….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평양에서부터 따라 나오던 식구 한 사람이 있었는데 여편네라구요.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내가 평양에 있을 때는 뭐 정성을 들인다고, 처음에는 바람을 일으키며 야단했었어요. 내가 쇠고랑을 차고 검사실에 불려 들어가는데 현관에서 떡 만났어요. 소문을 듣고 온 거예요. 와서 하는 말이 `지금도 그 놀음 하오?' 이러는 거예요. 그건 잊혀지지 않아요. 그때, `음, 이년! 내가 너만 못해서 이 놀음하는게 아니야. 네 갈 길과 내 갈 길은 앞으로 천지 차이가 벌어질 것이다. 두고 보자'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가는 곳은 교회고 무엇이고 다 망하는 거라구요. 이제 오래지 않아 찾아올 것입니다. 통일교 문선생은 뼈다귀 없는 사나이가 아니예요. 참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늘의 법도가 있기 때문에 저 삼팔선을 넘어야 됩니다. 분수령을 넘어야 돼요. 무슨 수모를 받고, 무슨 오해를 받고, 무슨 억울함을 당하더라도 불평하면 안 됩니다. 불평하면 그것이 거는 것입니다. 걸리면 못 가는 길이기 때문에 참고 나가는 거예요. 참기에 이제 내가 머리가 세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죽기 전에 이 한을 풀고 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에 통일교회 교인들이 뜻을 알고서…. 이들부터 엄격한 천법을 뒤집어씌울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하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사랑하라고 나는 가르치지 않는다구요. 여러분이 선생님한테 와 가지고 인사하고 그러는 것을 나는 원치 않습니다. 내가 인사도 잘 안 받는다구요. 지방의 할머니들이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정성들여 가지고 본부에 올라와서는 선생님을 만나자마자 뭐 눈물을 주루룩 흘리는데, 그러면서 하는 절은 내가 절대로 안 받습니다. 인사도 안 해요. 그 절은 무서운 절이라구요. 잘못 받았다가는 걸려 버리는 거라구요. `하늘이여! 이 정성은 하늘이 받으소서'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거쳐온 동기와 과정이 얼마나 간절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자리에서는 그 절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모른 척하는 거예요. 하늘의 법을 알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 같으면 교만하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나는 교만한 사람이 아니예요.
여러분이 아는 생활 법도와 배후에서 가려지는 하늘의 법도는 판이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앞으로 극단의 자리에 내세워 놓고, 척 벼랑에 내세워 놓고 들이 찰 거예요. 내가 그런 훈련을 받아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매정한 분입니다. 언제는 뭐 끌고 다니다가 사지에 딱 가게 되면 `에이 모르겠다'고 도망가는 거라구요. 그런 훈련을 받아 온 경력자예요. 그러니 여러분은 선생님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세계를 사랑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자기를 믿으라는 거예요. 그렇게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 하는 것을 한번 테스트 할 때가 있을 거예요.
그래 가지고 앞으로 통일가의 족보를 꾸밀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가의 족보를 꾸미려고 해요. 통일가의 족보를 꾸며야 됩니다. 그 족보에는 혼자만으로는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혼자 살다가 죽은 사람은 족보에 올라가지 않는 거예요. 가정을 가지고 양자라도 입양시키면 대가 이어져 남지만 혼자 살다가 죽으면 거기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축복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거예요. 내가 절대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종족을 편성할 것입니다. 그런 원칙을 세워 놓고 선서한 기준에서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그 원칙에 일치되지 않는 사람은 제거되는 것입니다. 추풍낙엽같이 떨어지는 거예요.
선생님의 일대(一代)를 두고 보아도 그렇습니다. 나는 가정에서 그렇습니다. 애기들 두고도 그래요. 어제도 애기들을 데리고 창경원엘 갔다 왔지만, 그 애기들을 대해서 세상의 아버지와는 달라야 될 것이 아니냐. 내가 하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난 후에는 어디로 돌아갈 것이냐? 자식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잖아요? 세계를 사랑한 만큼 자식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종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이렇게 맞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동기가 하나님이요, 결과가 세계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미쳐야 되고, 세계를 사랑하기에 미쳐야 됩니다. 그런 개체가 되어 딱 직선상에 그 기준을 연결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개인만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을 만들고,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을 만들고, 종족을 중심삼고 국가를 만들고,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를 만들어서 이것만 딱 갖다가 붙이면 통일적인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할 것 아녜요? 그렇게 되어야 뜻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늘을 사랑했고 세계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세계에서 과거의 성인들을 만나더라도 당신들과 나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나는 하나님을 이런 심정적 기준에서 사랑했다. 아버지와 자식의 입장에서 사랑하고, 남편과 아내의 입장에서 사랑하고, 부자관계의 사랑을 중심삼고 피땀을 흘리며 정성들여 나왔기 때문에 너희들과는 다르다' 이것입니다. 질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그들을 대해서 `세계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너희들은 나한테 배워야 돼'이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기적 심정을 중심삼고 결과적 심정권내에 있어서 일치된 그 자체를 집중시켜서, 오늘의 세계를 붙안고 나라를 붙안고 수많은 종족을 연결시켜 같은 인류로서 사랑할 수 있는 심정의 터전을 내가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에는 일본 사람이니 한국 사람이니 하는 것이 없습니다.
일본놈들은 나하고 원수라구요. 내가 왜정 때에 별의별 고문을 다 당하고 피를 토하는 그런 억울한 것이 다 있었지만, 한칼에 쳐 죽이고 싶은 원수들이지만 때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전부 짐을 싸서 피난을 보낸 사람입니다. 일본이 망하기 전까지는 그랬지만, 하나님은 사탄까지도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아는데. `그 나라를 중심삼고는 억울하고 원수였지만 인간이야 무슨 원수냐. 내가 울 때 너희도 울 것이 아니냐' 이것은 틀림없다구요. `내가 슬플 때 너희도 슬플 것이 아니냐. 내가 고독을 느낄 때 너희도 고독을 느낄 것이 아니냐. 인간과 인간은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니냐. 너희들과 나 사이에는 칸막이가 없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다 피난길을 가려 보냈어요.
여러분도 그래요. 금년에 일본 아이들을 한 7,8백 명, 약 천 명 가까이 수련시켰는데 그들을 바라보게 될 때,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보다 더 큰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원수의 자식들이지만 그렇다구요. 또 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구요. `선생님' 하면, 한국 식구들이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사랑하려고 하고 있어요. 이거 기분 나빠요, 좋아요? 기분 나쁜 놈은 도적이라구. (웃음) 왜 기분이 나빠요? 왜? 형제들 가운데에서 나만 부모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은 사랑하지 말라는 그런 욕심을 가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기분 좋아해야 되는 거예요.
자기는 그렇게 못 하더라고 그런 형제를 많이 가지라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이든 독일 사람이든 그런 형제를 많이 갖게 되면, 그들이 갈 때 같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시중을 들어 주고 찬양해 주면 그들이 성공한 다음에 혼자 가겠어요? 찬양하는 천사들이 필요한 거와 마찬가지로, 그때에 여러분은 그들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의 부장들도 보면 말이예요, `선생님은 뭐 일본 식구들만 대해 주고, 일본 식구들은 더 알아주지'라고들 합니다. 내가 사실은 새로운 얘기는 한국의 부장들이나 협회장에게 얘기 안 해줘요. 새로운 말들은 전부다 외국 식구들에게 해주는 거예요. 그래야 선생님이 다 같이 사랑했다는 조건이 되지요. 언제나 걸러 먹고 남은 찌꺼기만 주어서 되겠어요?
이번에도 `앞으로 세계는 전부 다 이렇게 될 것이다. 공식적으로 이렇게 이렇게 되는 것이다. 두고 봐라! 그렇게 안 되면 원리가 틀렸다' 이러면서 불을 붙여 넣고 펌프질을 해 가지고 뺑뺑하게 만들어서 보냈다구요. 그러면 잘 뛰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한국 통일교회 패들은, 협회의 부장들은 `너희들이 얼마나 알아? 우리는 다 알고 있는 것인데…' 이러고들 있습니다. 천만에, 천만에, 천만에요. 그렇게 자빠져 있다가는 떨어지기 일쑤라구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했지요? 나는 놈 위에는 뭐가 있나요? 덮치는 놈 있다구요. (웃음) 날기 전에 덮친다는 거예요. 그것을 생각해야 돼요. 언제나 안심할 게 아니라구요. 세계적인 패권은 아직까지 결정이 안 났습니다. 달리는 때라구요.
자, 그러면 결론을 짓자구요. 주관성 복귀, 주관성을 어디서 복귀할 것이냐? 나는 요 자리에서 복귀하고 싶습니다. (칠판을 가리키며 설명하심) 이것이 선생님의 사상이예요.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은 여기에서 둥지를 틀어 보세요. 여기에서 둥지를 틀어 봤자 소용없어요. 해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다 버리고 저것을 찾아가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대학교 총장도 그 총장자리가 문제가 아니예요. 그 보따리를 똥볼 차듯 뒷발로 차 버리라는 거예요. 그리고는 `에라, 세상아, 잘 있거라. 나는 가노라! 에이 지루하던 이 누더기 보따리를 버리게 되니 아니구 시원하다!' 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해방 1호예요. 첫째 해방입니다.
그 다음 둘째 해방은 아들딸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아이구, 이놈의 아들딸…' 이것이 원수였다구요. 주교수도 아들딸 많은가. 적구만. 한15남매 30남매 더 낳지. 이 죽을 판국에 이것 좀 보소. 이 아들딸을 버리는 것이 둘째 해방입니다. 그 다음 세째 해방은 이 나라를 버리는 것입니다. 나라를 버리는 것이 세째 해방이예요. 이 3대 해방을 받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자기가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 외적인 문제, 그리고 가정 문제, 그 다음엔 나라 문제로부터 해방, 이 3대 해방을 못 받으면 천국 백성도 못되고, 천국 가정도 못 되고, 천국 개인도 못 되는 것입니다. 그 바람에 나도 소문도 많이 났어요. `통일교회에 가게 되면 가정을 버린다'고 말이예요. 그러나 가정보다 더 좋은 나라를 찾기 위해서는 가정을 버려야지요. 또 그 나라보다 더 좋은 세계를 찾기 위해서는 나라를 버려야지요.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 기준에 의해서 볼 때 여러분의 집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의 자리가 어디예요? 여러분이 학교면 학교, 자기가 처해 있는 자리가 이 자리예요, 어느 자리예요? 선생님은 이 자리에 있다구요. 여러분은, 어디로 갈래요? 이 자리에 갈래요, 어디 다른 자리로 갈래요?「선생님과 같은 자리에…」어느 자리? 요 자리?「예」그거 쉽지 않다구요. (웃음) 눈이 이렇게 바로 보는데 이 눈을 뒤집으라는 거예요. 코를 막으라는 것입니다. 귀를 막으라는 것입니다. 입을 다물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때가 있다고요. 그래서 지금 새로이 출발하는 신령 교도들이, 재건교(敎)같으면 세상 사람들을 대해 `에잇 사탄 마귀' 이러는데 그거 맞습니다. 맞다는 거예요. 그들은 분별된 입장에 선 거예요.
여러분, 시집간 색시가 말이예요. 신랑 집에 가서 자기 친정집 타령을 하게 되면 그 신랑과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짹하면, 기분만 나쁘면 `아이구 우리 집은 이렇지 않는데, 이 집은 왜 이래?' 이렇게 투정하면 (웃음) 쫓겨나는 거라구요. `아이구 우리집 밥그릇은 이런데, 이 집 밥그릇은 왜 이래?' 이러면 못 사는 것입니다. 절대 못 살아요. 자기 집보다 낫다는 것을 발견해야 됩니다. 자기 집에서는 금밥그릇에다 밥을 먹는데 신랑집에서는 깨진 이 빠진 사발에 밥을 퍼서 먹더라도, 바가지에 퍼서 먹더라도 `아하, 거룩한 새로운 인생길이 열렸구만. 아, 당신을 만났기 때문에 내가 이런 세상을 알게 되었니 고맙습니다' 할 때는, 남편이 `아이구구구…' 하며 (웃으심) 밑에 들어가서 받들며 살아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것이 뭐야? 우리 집과 다르구만. 나는 이런 밥그릇은 처음 봐. 이거 기분 나빠' 하게 되면 남편이 뒤로 돌아서는 거예요. 암만 뭘해도 남편과 영영 이별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보따리를 싸 가지고 전쟁을 해야 할 때입니다. 알겠어요? 그렇지요? 국적을 달리해야 하고 입적을 달리해야 될 것 아니예요? 시집 장가 가려면 입적을 달리해야지요? 그렇잖아요? 입적을 달리 하고 국적을 달리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런데 `나는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했었는데 이 나라에 와서는 과장이라니, 난 싫어' 이러는 사람은 과장은 커녕 백성 자격도 못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총장 아니라, 그보다 더한 무엇이라도 안된다구요. 하늘나라에 가면 아무것도 아니라구요. 여기서 뭐 대통령 해먹던 사람, 왕 해먹던 사람들이 저나라에 가서도 그런다면 지금까지 고생하고 죽은 사람들은 무엇이 되겠어요? 하늘을 믿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무엇이 되겠느냐는 거예요. 저나라에 가서도 그렇게 되는줄 알아요? 까꿀잡이예요. 완전히 까꿀잡이예요. 저나라에서는 이 세상에서 고생한 사람이 최고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세계권에서, 심정권을 중심삼고 정서적 분야의 해방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자기가 제일 좋다고 하던 것이 무우 모가지 잘리듯이…. (웃음) 왜 웃어요? 왜? 좋은 것이 있으면 절대 손해라구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제일 좋다고 하는 것의 모가지를 잘라야 되는 것입니다. 전문분야라는 것은 모가지를 자르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가정이요, 그 다음에는 나라입니다. 이렇게 3세계권의 해방을 받아야 됩니다. 기가 막히지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따라지 중의 강따라지입니다. 강따라지가 되어 가지고 왕따라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강따라지가 무엇인지 알겠어요? 강, 강, 깡따라지 깡패, 제일 나쁜 따라지예요. 그래, 좋은 따라지라는 말이예요, 나쁜 따라지라는 말이예요? 뭐예요? 나는 세상에서 혼자입니다. 고독단신이라는 거예요.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형제도 없고 말이예요. 내게는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먹을래야 먹을 때에 가서 주워 먹을 수도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먹을 때는 전부 빌려 먹는 거예요. 값을 쳐 가지고 갚아 주겠다고 하고 먹는 것입니다. 내가 빚 안진다는 거예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자, 통일교회에도 지금 그렇다는 거라구요. 여러분에게 빚 안 지고 먹겠다는 거라구요. 내가 시켜 가지고 여러분이 돈을 벌었으면 병작인(竝作人)이지요? 같이 일했으면. 그렇지요? 내가 병작해 가지고 먹고 산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신세를 안 지고 있어요. 지금도 그렇다구요. 신세를 안 지려고 한다구요.
내가 지구상의 인간 중에서 맨 꼴찌라구요. 맨 꼴찌지만, 자꾸 내려가다 보면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돌아가는 거예요. 봄절기가 되면, 쓱 이렇게 되게 되면 말이예요. 이것이 내려가다 이렇게 되면 돌기 때문에 이렇게 내려가는 거예요. (행동으로 표현하심) 그래 가지고 여기서부터 점점 올라가는 거예요. 알겠어요? 내려가기는 내려가지만, 이것이 내려가기 위한 것이예요, 올라가기 위한 것이예요? 이게 맨 밑창까지 내려가게 되면, 올라가지 말래도 올라가요, 안 올라가요? 어떤 방향으로 올라가요? 다른 방향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디에서부터 이루어지느냐? 복귀 천국은 어디에서부터 이루어 져야 되느냐? 저 감옥에서부터 되어야 됩니다. 감옥에 들어가서 주관성을 복귀한 기준의, 본성적 기준의 자율적인 평화의 심정을 지니고 콧노래를 불러 봤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옛날에 사도들이 그런 자리에 있을 때, 그것을 천국화시키기 위해 옥문을 열고 자유로 행동할 수 있는 권까지 부여했던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이 옛날의 그들 이상으로 소망과 기대를 가질 수 있는 자격이 되어 있습니까?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에 입을 닫고 가만히 있어도 영계에서 전도를 했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 역사를 얘기하자면 참 재미있는 얘기가 많지요. 그런 얘기는 다음에나 하지 지금은 하지 않을래요. 꽁꽁 싸놓았다가 진짜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들한테 얘기할 거예요. 이까짓 그저 뭐, 시장 바닥에서 꽹꽹이 치는 데 다리 들고 춤추는 패 같은 것들에게 얘기해 봤자 다 흘러가는 거라구요. 알뜰한 아들딸이 남기 전까지는 안 가르쳐 줄 거예요. 기분 나빠서 떨어져도 할 수 없다구요.
하나님은 언제나 같이하시는 거예요. 감옥에 있을 때도 말이예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을 때도…. 옛날에 엘리야에게는 까마귀를 시켜서 떡을 물어다 먹였다고 하지만, 왜 까마귀를 시킬꼬? 사람을 시켜서 얻어먹지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사람을 시켜 가지고 떡도 얻어먹고 그랬어요. 난데없는 사람들이 미싯가루를 갖다 주지 않나, 뭐 사과 보따리를 갖다 주지 않나, 많이 얻어먹었습니다. 그거 잘한 거예요, 못한 거예요? 못한 거라구요. 자랑할 게 못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수고시켰으니 잘한 것일게 뭐예요? 안 그래요? 수족이 꽁꽁 매어 있으니, 할 수 없으니 하나님이 그렇게 안 해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하냐 이거예요. 그게 자랑이 아니라는 거예요. 자랑할 게 못 된다구요.
지금도 그래요. 여러분, 통일교회 교인들이 문선생 밥 먹여 줘요? 누가 먹여 줘요? 하나님이 먹여 줄 게 뭐 있어요? 내가 벌어먹지. 통일교회 교인들이 선생님의 신세를 지나요, 선생님이 여러분의 신세를 지나요? 어때요? 안팎으로 신세를 지우고 살지, 내가 신세를 지지 않아요. 나는 신세를 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신세 지고는 못 사는 거라구요.
보라구요. 내가 열 여섯, 열 일곱 살 때구만. 그때 어떤 아주머니한테…. 나는 철이 들 때부터는 점심을 안 먹었어요. 나라도 없는 주제에 밥을 세 끼씩이나 다 찾아 먹을 자격이 있느냐면서 말이예요. 밥이 그리운 생활을 참 많이 했습니다. 밥을 그리워함과 동시에 민족을 그리워하는 길을 갔다구요. `밥보다 민족을 더 사랑해야지, 나라를 더 사랑해야지' 하면서 고향을 떠나 서울에 와 있으면서 말이예요. 점심을 안 먹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했어요. 주머니에 돈이 없어 그런 것이 아니라구요. 돈이 있으면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입니다.
옛날에는 서빙고 앞에 모래사장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곳을 다 파버려서 모래사장이 없으니까 섭섭하더구만요. 여러분은 안 그래요? 빌딩지은 것은 좋지만, 모래사장이 없어진 것이 난 지극히 섭섭해요. 추억이 많은 곳인데…. 여러분, 명수대(흑석동)에 가면 명수대 교회가 있어요. 그 교회는 선생님과 몇몇 동지들이 지은 교회입니다. 한번은 그 모래사장에서 서빙고 교회와 명수대 교회가 합동예배를 보았는데 그때…. 거기에 자갈을 채취하는 배가 있어 가지고 자갈을 채취해다 쌓아 놓은 무더기가 있었다구요. 그때 나는 점심을 안 먹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점심 때가 되면 자리를 피해 돌무더기 뒤에 있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참….
여러분, 청춘시대에는 그런 것이 참 필요하다구요. 별의별 생각을 다 할 수 있는 거라구요. 젊은 청년으로서 기백도 있는 것이요, 자기 나름의 프라이드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환경으로부터 고립된 입장에 서 가지고, 남들은 다 점심을 먹는데 자갈 무더기 뒤에 혼자 앉아 강물을 바라보면서 자갈을 던지면서…. 그게 엊그제 같습니다. 뭐, 그런 일이 어젯날 같아요. 생생히 살아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혼자 기도하고…. 그거 심각한 자리라구요. 그런 환경일수록 심각한 거예요. 그때 어떤 아주머니―손씨라는 부인이예요―가 빵 두 개와 우유 한 봉지를 갖다 주었는데 그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그건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아요. 그것을 내가 갚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거하고, 또 내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 어떤 젊은 사람을 만났어요. 감옥에 들어가서 처음 만났는데,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나에게 털어놓고, 형제보다도 더 가까운 자리에서 자기가 먹을 것도 안 먹고 나에게 주고 그랬습니다. 그 사람도 아직까지 잊지 않고 있어요. 이름도 잊지 않았어요. 앞으로 그것을 몇백 배로 갚아 줄 것입니다.
그 다음에, 피난 때에 있었던 한 가지 잊혀지지 않는 일은, 우리 고향의 친구라면 친구인, 아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때는 내가 이북의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왔기 때문에 머리도 짧고 형편없었어요. 명주 바지 저고리가 너무 새까맣기 때문에, 껍데기는 벗겨 버리고 국방색으로 물들인 속이 겉으로 나오도록 뒤집어 입은 거라구요. 뒤집어 입으니까 그거 뭐 홑챙이 퍼런 바지지요. 그걸 입고…. (웃음) 명주 저고리는 뭐 두 달 동안 입었으니 될 대로 다 됐지요. 기름때가 배어 가지고 비가 오면 빗방울이 뚜루룩 굴러간다구요. 이래서 상거지가 다 되어 가지고 형편없이 부산에 도착하게 되었어요. 부산의 길은 외통길이라구요. 팔도강산 사람을 다 만날수 있습니다. 통길이기 때문에 일주일만 왔다갔다하면 다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 부산에 가서 적적하니까 그 통길을 다니다가 고향의 친구를 만났어요. 그 사람이 그때 돈 만 원을 나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기분 나쁜 일이 있었어요. 그래 나는 이걸 몇백 배로 갚아 주겠다, 내가 한때에 가서는 몇백 배, 몇천 배로 갚아 줄 것이다…. 그전에는 내가 누구를 만나려고도 하지 않은 사람이예요. `갚아 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몇천 배로 갚아 줄 것이다' 이렇게 떡 생각하고 있는데, 그 몇해 후에 그 사람의 아내가 여기 통일교회를 찾아왔어요. 그때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될 줄을 몰랐지요. 자기 동네에 그저 뭐뭐 아는 사람으로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통일교회 문선생이 되었더라 이거예요. 자기네들보다 판국을 크게 벌여 나가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여편네가 와 가지고 `아무 때에 우리가 문선생을 이만큼 도와주었으니까, 이제는 우리를 도와주어야지요' 하는 거예요. 내가 아주 기분 나빴다구요. 요사스럽게 여자가…. 나는 너희들의 아들딸을 먹여 살리겠다는, 후덕하게 갚아 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늘 앞에 기도하며 만나기를 바랐는데, 이렇게 요사스럽게 나타나느냐 이거예요.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모릅니다. 차라리 죽었다면 복이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냐. 그 사람에게는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만나 주지도 않았다구요. 그때에 만 원을 받았으니 그 이자를 계산해서 얼른 주어서 쫓아 버리라고 했어요. 일년에 얼마씩 고리대금으로 계산해서 주라고 했어요. 그러고 나서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내가 일생 동안 그리워하고 선하다고 찬양하던 그 기준이, 피난시절에 있어서 제일 자극적인, 생애에 있어서 기념할 수 있는 그 표적이 몽창 꺽어지니까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모른다구요.
또, 우리 통일교회 교일들한테도 그래 봤어요. 어느 누구를 내가 점찍어 가지고 '이 녀석은 지금 이렇게 나오고 있는데 어디 두고 보자. 내가 이 자리까지 가 보자' 하고 바라보는데, 이 녀석, 내가 용 되기를 바랐는데 미꾸라지 새끼밖에 못 되겠어요. '내가 그렇게 했는데 왜 몰라줘요.?' 이러고 있어요.(녹음이 잠깐 중단됨)
선생님은 하늘을 위해 동정해 준, 잊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것으로 신세를 갚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사람이라구요. 뜻을 따라가는 길 앞에 여러분을 고생시키고 그러지만, 선생님이 무책임 한 사람이 아니예요. 고생을 시키면 책임을 진다는 거예요. 지상에서 책임을 못 지게 되면 영계에 가서라도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그런 서약을 하고 가는 사람은 복받은 사람이라고 봅니다. 나는 절대 배신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한번 믿으면 일장백이(一張百弛)이라구요. 조금도 신세를 지고는 못 사는 사람이라구요. 성품이 그래요. 하나님이 그러시거든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냐? 신세를 지고는 못 견디는 분입니다. 열만큼 자기를 위해 주면 몇백 배, 몇천 배로 갚아 주려고 하는 분이예요. 알겠어요? 여러분의 소성도 그래야 됩니다.
여기 있는 동지들간에나 지방에 가서 전도하다 인연된 사람들간에도 그래야 됩니다. 전도하는 것이 절대 나쁜 것이 아니예요. 어려운 가운데에서 인연되었던 사람들을 일생 동안 그리워하면서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소망의 터전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감옥에 가나 고통 가운데 가나…. 그런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사람은 평상시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걸 볼 때, 여러분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공적인 기준에 서 가지고 남을 위하는 그 자리는 지극히 귀한 것입니다. 이걸 생각할 때,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기에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섰다면 여러분은 절대 망하지 않아요. 그러한 원인과 결과의 자리, 그러한 기준에서 그러한 것을 좌우에 가려 가지고 그 중앙에 서 가지고, 인류를 대표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종적인 하늘과 횡적인 세계를 중심한 그 기점에 서 가지고, 팔을 높여 이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옮겨 놓기 위한 다리를 놓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보람이 있겠습니까? 여기에서부터, 이런 개인에서부터 퍼져 나간다구요. (판서하심)
지금까지 막연하게 세계를 사랑했던 것을 이제는 구체적으로 사랑해야 돼요. 알겠어요? `세계를 사랑하자. 나라를 사랑하자' 하면서도 지금까지는 막연했다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그러나 이제는 덮어놓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축복받은 아내와 남편은 서로 세계를 대신하고 하늘땅을 대표한 자리에서 사랑을 해야 합니다.‘신랑으로 찾아온 예수와 땅 위에서 신부로 맞고 싶었던 신부가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귀한 날, 우리 일대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거룩한 날이 축복의 날이다. 이제 만났으니 사랑을 해보자. 사랑의 해방권에서 기원과 과정과 결과가 일치된 자리, 어느 누가 참소 하더라도 걸리지 않는 자유 해방권이요 절대적 기준 앞에 있어 가지고 하나의 남성과 하나의 여성이 사랑할 수 있고, 거기에서 태어난 아들딸을 사랑할 수 있고, 친척을 사랑할 수 있고, 비로소 나라를 사랑할 수 있고, 세계를 사랑할 수 있고, 하늘땅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이러한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기준이 오늘날 우리 일대에서 결정된다면 그 이상의 행복이 어디에 있겠느냐’이러면서….
그 기준이 벌어지게 될 때는 하나의 남성이 하나의 여성을 대해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어야 됩니다. 절대적으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어야 돼요. 막힘이 없어야 된다는 거예요. 부모와 자식간에도 막힘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선생님이 지금 염려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말없는 가운데 사랑을 심어야 됩니다. 말없는 가운데 사랑을 심자는 거예요. 남이야 철이 없어서 알든 모르든 나라를 사랑하는 나, 세계를 염려하는 나가 되어서 세계를 사랑하는 대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신, 이제는 구체적인 입장에서 하나의 남성과 하나의 여성이, 주체와 대상으로서 서로 하나님과 세계를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사랑하고, 아들딸을 사랑하고, 종족을 사랑해야 합니다. 구체적이어야 돼요. 나아가 그러한 종족이 합해서 민족을 사랑하고, 그런 민족을 통한 하나의 주권국가를 이룬 후 그 국가를 넘어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터전이 되어야 비로소 주관성 복귀가 가능한 것입니다. 즉, 본성적으로 주관할 수 있는 복귀된 개인과 가정이 성립되는 것이요, 그런 가정을 중심삼고 복귀된 종족권이 성립되는 것이요, 그러한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권이 성립되는 것이요, 그러한 민족을 중심삼고 국가권이 성립되는 것이요, 그러한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권이 성립되는 것이요, 그러한 세계를 중심삼고 천주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천주권이 이루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과 우리 인간을 중심하고 영원무궁한 지상과 천상의 천국, 통일된 세계, 하나님의 사랑만이 길이길이 드높이 들릴 수 있는 곳이 이루어지게 되는 거예요. 그런 세계가 벌어져야만 본성적 주관성이 복귀된 천주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그것은 이 자리를 통해야 이루어지는 거예요. (판서하심) 이것을 갈라 놓으면 오른쪽은 남자요, 왼쪽은 여자입니다. 윗쪽은 남편이요, 아랫쪽은 아내다 이거예요. 앞쪽은 남편이요, 뒷쪽은 아내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혼자 가는 것이 아니예요. 있더라도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같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앞으로 통일교회 교인들이 회사 사장이 되면 그 아내도 사흘에 한번씩은 회사에 출근할 때가 올지 모릅니다. 그것이 안되면 일주일에 한번씩이라도 출근하여 남편의 사장 노릇을 대역할 수 있는 때가 와야 될 것입니다. 그때는 그녀가 일자무식장이라도 그 명령 앞에 절대 복종하는 놀음을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사회가 될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 선생님 대신 어머니가 나와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여러분에게 명령을 하게 되면 여러분이 절대 복종해야 하는 그런 일이 있을지 모른다구요. 외적으로 그런 형태가 벌어지지 않고는 내적으로 그런 가정의 기준이 자리잡을 수 없는 거예요. 또 국가적으로 그런 기준이 벌어지지 않고는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그러한 터전이 벌어지지 않고는 국가적으로 안식의 터전이 벌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하고저를 막론하고 전부 다 안팎을 중심삼고 중심이면 중심으로 모실 수 있는 아량이 여러분에게 있어야 돼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남편이 사장이면 사장 혼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가정입니다. 가정이예요. 이런 문제가 벌어져요. 그 가정 전체가 사원 전체와 통해야 됩니다. 나라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주권자를 중심삼은 모든 것이 어느 가정에도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가 되어야만 본성의 천국이념이 벌어질 것이고, 그러한 이념권이 벌어져야만 주관성 복귀의 천국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오늘은 10월 3일, 안식일이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의 마음을 여시옵소서. 저희는 근원도 결과도 모르는 자리에서 스스로의 행복을 꿈꾸던 자들인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지께서 찾아 나오시는 절대적 기준, 당신의 사랑으로 연결될 수 있는 아들과 신부의 기준을 중심삼아 삼위일체의 심정권을 세우면, 그것이 하늘을 이어받을 수 있는 중심이 되는 동시에 횡적인 기준에 있어서의 중심도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부모의 심정을 통하여 어떻게 자녀의 심정을 완벽하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중차대한 문제가, 통일가를 통해 세계적인 천국이념을 실천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이 자리에서 좌우된다는 사실을 저희는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하나의 남성으로 태어났으면, 그 남성은 자기 가진 것을 스스로 자랑할 때가 아닌 것을 아옵니다. 저희 앞에는 탕감, 청산지어 가지고 본성의 남성으로서 본성의 여성을 중심삼고, 해방권이 필요치 않은 자유분방하고 평화스러운 자리에서, 하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이상(理想)의 자리에서, 본연의 인류 시조가 갖추어야 했던 선한 부모의 자리를 대신해야 할, 각자 나름대로의 갈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한 가정을 통하여 가정에서 났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그 가정을 확대시킨 하나의 주권을 세계의 주권으로 연결시키고 그 가정을 확대시켜 하늘나라의 아버님이 계시는 보좌로까지 연결시켜야 된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가 높으시기 때문에 그 자녀 되는 저희는 아무리 낮더라도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바라는 높은 자리라는 것이 저희가 처할 자리가 아니라, 아버지와 더불어 처할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내가 설 자리는 나 홀로 서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더불어 자식과 더불어 서야 한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족과 더불어 같이 서야 한다는 것을 미처 몰랐사옵고, 국가와 세계 만민과 같이 서야 된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통일이념을 중심한 자주적인 본성의 주관권이 통일가를 중심삼고, 여기 서 있는 이 자식으로부터 가정을 중심삼아 전통의 기원을 세워야 할 뜻을 바라볼 때, 가려야 할 십자가의 길이 얼마나 많겠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자주적인 권한의 심정의 터전을 갖추어야 할 것을 알았기에, 어려운 일이 있으나 슬픈 일이 있으나 그것을 바라보고 극복해 나온 것을 당신은 잘 아시옵니다.
이제, 이 가정을 중심삼고 다리를 놓아야 할 것이 통일가의 사명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선생님을 사모하고 선생님을 따르는 것은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 본성의 심정이 소망하고 있는 자연적인 인연에 의해서 그러는 것임을 알고 있사오니, 그러한 인연이 자연적인 환경에서 갖추어졌거들랑 그 인연을 어떠한 무엇이 제거시킬 수 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그러려면 저희들은 순수해야 되겠습니다. 뜻 앞에 흡수될 수 있기 위해서는 물이라면 완전한 물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물은 어떠한 틈도 스며드는 것이요, 어떠한 자리도 점령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자기의 어떤 개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 개성을 절대적 주체이신 아버지 앞에 있어서는, 사랑의 주체 앞에 있어서는 화합되고 흡수될 수 있는 요소로 변화시키는 본질적인 작용을 해야 하는 것이 사랑의 마음인 것을 알았사오니, 그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저희들은 아버지와 통일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개체로 복귀해 가지고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복귀시켜 나가야 할 전진적인 행로, 주관적인 행로가 남아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에 반대되는 모든 요건을 저희들이 투쟁과 모략 중상으로 점유할 것이 아니라, 희생과 봉사를 하고 핍박받는 자리에서 맞고 빼앗아 나오는 하늘의 작전을 이어받아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때로는 원통한 것도 느끼고 때로는 억울한 것도 느끼며 때로는 분한 것도 느끼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그러한 길을 가고 계시기 때문에, 아버지가 남기신 전통이 그러한 전통이요 아버지의 싸움의 실적에 의한 승리의 터전이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어받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무리가 통일의 무리인 것을, 아버지여, 잊지 말아 주시옵소서.
저 자신이 그러하기 때문에 이들도 그러하기를 바라고 있는 저를 사랑 하시는 아버지여, 이들을 믿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니다. 바라고 있는 개인적 기준 앞에 사명적 상대기준을 못 가리게 될 때는, 가정적 기준 앞에 가정적 기준에서 그 사명을 못 가리게 될 때는, 종족적 기준 앞에 종족적 기준에서 그 사명을 가리지 못하였을 때는, 민족적 기준 앞에 민족적 기준에서 그 사명을 가리지 못하였으면, 국가적 기준 앞에서 그것을 가릴 수 있는 한날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저는 믿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배반하고 이들이 불평하고 이들이 무어라고 해도 그날을 바라보면서 참고 나가고 있사오니, 저의 이런 소신을 아시는 아버지여, 그때까지 참아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니다.
당장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아버지의 심정을 통하여 볼 때는 망해야 할 무리, 제거되어야 할 무리가 통일의 무리요, 대한민국이요, 현재 대한 민국 내의 기독교이겠지만, 그러나 참아 주시기를 고대하는 저희들을 불쌍히 보시는 아버지시여, 그날까지 참아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손이 미칠 때까지 저희들은 피땀 흘리는 것을 개의치 아니하고 가려고 합니다. 일신이 어떠한 비참한 자리에 부딪치더라도, 그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위하고 종족을 위하고 형제를 위하는 마음으로 피 흘리는 십자가의 길을 자처하여 걸어가는 무리요, 그것이 역사적인 아벨의 전통사상인 것을 알고 이어받은 무리가 통일가의 무리이기에, 저희는 이 전통을 짓밟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아버지가 뜻하신 세계를 맞기 위해서 저희들은 참아 나왔습니다. 죽기 전에 어서 속히 이 무리를 통하여 나라를 맞고, 세계를 맞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3천만이면 3천만, 4천5백만이면 4천 5백만의 이 민족이, 이 한반도가 통일을 이루어 민족적인 제2의 해방을 맞이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아버지, 이 민족은 제3의 해방이 남아 있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일깨워야 할 것이 오늘날 통일가의 사명입니다. 몰리고 쫓기고 밟히고 있는 통일가의 무리가 그와 같은 목적을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이 민족은 모르고 있습니다. 저희가 밟히는 것을 보고 비웃는 무리가 이 민족이옵고, 하늘 앞에 악한 무리가 저렇게 되었다고 좋아하며 기도하는 무리가 기성교회이옵니다. 아버지, 그래서는 안 될 것을 잘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은 그러한 자리를 지나가야만 되겠습니다.
망하는 자리에서 그들을 구하지 못하거든 저희들은 흥해야 되겠습니다. 못사는 자리에서 그들을 구하지 못하거든 저희들은 잘살아야 되겠습니다. 밤을 낮으로 삼고 달을 해로 삼아 싸우고 노력해야 되겠고, 쉴래야 쉴 수 없는 걸음으로 가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앉아서 무엇을 공상할 수 없는 길을 달음질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 시 한 분 한 초를 바쁜 걸음으로 가야 할 무리가 통일의 무리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본성적 주관의 세계를 얼마나 그리워하시옵니까?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저희를 사랑한다고 찾아오시어서 저희 마음과 몸을 샅샅이 뒤질지라도 부끄러움이 없이 그것을 자기 이상의 것으로 믿을 수 있는, 샅샅이 명령하고 샅샅이 밟고 샅샅이 헤쳐 늘어 놓고도 안심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있사옵니까? 그러한 아들딸이 있거든 아버지여, 놓지 마시옵소서. 그러한 아들딸을 그리워하시는 불쌍한 아버지이신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아들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딸까지 있어 가지고 아버지께서 그들을 부부로 맺어 주어서 그 가정을 천년 만년 마음대로 이용하고, 마음대로 심부름시키고, 마음대로 활용하더라도 불평하지 않을 수 있는 아들딸이 있습니까? 그런 가족이 있습니까? 있다면 아버님이여, 떠나지 마시옵소서. 천년 만년이라도 기다리시옵소서.
그 아들딸이 그 가정을 가누기에 얼마나 수고했을 것인가를 아버님은 잘 아실 줄 알고 있사오니 떠나지 마시옵기를 바라옵니다. 그런 하나의 4위기대를 갖춘 가정들이 합한 종족적 터전이 있사옵니까? 아버님이여, 태평왕국을 찬양하기 전에 승리의 가정을 중심삼고 찬양하여야 할 것을 아오니, 그런 가정을 맞으셨거들랑 천지의 어떤 주권이나 악한 사탄 국가를 대해서도 자랑할 수 있는 그 가정을 떠나지 마시옵소서.
알고 보면 저희 가정들은 영원히 떠날 수 없는 아버지의 가정들인 것을 알았기에, 그런 가정이 되기 위해 싸워 나가야 되기에 3위기대 가정을 편성하였습니다. 스승의 가정을 중심삼고 4위기대를 편성해 나가는 것이 오늘날 통일가의 가정조직의 원칙인 것을 생각할 때, 동서남북을 가려 행차하셔야 하는 아버님의 발걸음이 동방, 서방, 남방, 북방 할것없이 사방으로 뻗쳐 나갈 수 있는 가정적 출발의 기준을 마련해야 할 중심 터전이 오늘 말한 그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가정을 통해서 그 가정의 대표가 김씨면 김씨, 이씨면 이씨, 박씨면 박씨, 조씨면 조씨의 문중을 통할 수 있는 길을 가려야 되겠사옵니다. 이 가정을 통하여 사방으로 통하는 그 판도가 넓어지게 될 때 아버지께서는 자연히 충신의 가정인 그 중앙의 가정에 임재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러한 가정을 가려 가지고 동서남북을 찬양하고 동서남북에 힘을 주고 동서남북에 자극을 주고, 아버지가 임재하실 수 있는 종적인 중심의 자리, 하나밖에 없다는 그 자리, 하늘의 소원의 터전이 되고 인간세상에 있어서 소망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그러한 가정의 기원을 아버지께서 얼마나 얼마나 찾고 계시는가 하는 것을 저희는 미처 몰랐습니다.
통일가에 있어서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책임자 된 이 아들이 있다 할진대는 이 아들에게 개인의 십자가가 있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의 십자가가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내면 아내에 대한 십자가가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고, 자식에 대한 십자가의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3대 십자가의 심정적 고개를, 그 정상을 저희는 넘어야 되겠습니다.
개인적 해방을 찬양할 수 있는 승리의 부활권을 이 지상에 갖추어 가리고자 하신 것이 예수님을 이 땅 위에 보내신 아버지의 6천년의 소원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 다음에 가정적 해방의 기원을 찾기 위하여, 한 나라의 터전을 갖추어 가지고 그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이 땅에 예수를 보내어 신부를 찾아 나오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부부가 자녀를 중심삼고 사방으로 일체될 수 있는 터전을 가지게 될 때, 하나의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는 현현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엄청난 3대 십자가가 오늘날 세계 도처의 국가에 맺혀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상대와 내 아들딸 앞에 맺혀져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여기에 서 있는 아들은 이 길을 위하여 50평생을 싸워 왔습니다. 남겨진 수난길, 개인의 가시밭길도 처량했지만 가정의 가시밭길 또한 그렇게 처량한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자식을 대한 가시밭길도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될 때, 갈라져 산산조각이 되고 원한의 터전이 될 수 있는 서로의 인연이지만 여기에 천국의 복지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 아직까지 책임 다하지 못한, 아버지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는 저희를 아버지여, 동정하시옵소서. 아버지여, 자비와 긍휼의 마음이 떠나지 마시옵소서.
바라고 그리는 마음이 간절한 것을 아버지께서는 아시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이 `저를 알아주십시오' 하지 않더라도 알아주시기 위하여 아버지께서는 불철주야 수고하신다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황공 망극하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 가정을 세우고 이 가정의 울타리가 되시기 위해 뜻을 아는 무리를 이끌어 밤을 새워 가면서 쉬지 않고 기도하게 하시는 사실을 알게 될 때, 황공하옵니다.
출발한 길이 평탄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는 길도 평탄하지 않을 것이요, 머무는 길도 평탄할 수 없는 것이요, 종착점까지 가려면 평탄할 수 없는 길을 가야 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 길을 다 갈 때까지 아버지의 동정과 긍휼과 자비의 마음이 떠나지 마시기를 늘쌍 바라는 마음을 갖고 가는 길인 것을 통일가에 속한 무리들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전통을 이어받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을 희생시켜 나라와 세계를 위하고, 가정을 희생시켜 나라와 세계를 위하고 아버지를 위하고, 자신을 희생시켜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가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이여, 이제부터는 그러한 복귀도상을 가는 통일가의 가정 가정에 그러한 인연이 엮어지는 것을 알고 아침 해를 바라보고 기뻐하기 전에 하늘나라를 명상하면서 기뻐해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자식을 바라보고 혹은 아내를 바라보며 부부면 부부로서 정서적인 분야를 다짐하는 그 자리에서 아버지를 위로하고, 아버지의 뜻을 염려하고, 세계 만민을…. (녹음이 잠시 중단됨)
여기에서 국가로,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당신의 심정적 주관권을 복귀시켜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있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 오늘 10월 3일을 맞았습니다. 날짜도 좋은 날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가 기억하는 날, 이 민족이 기념하는 날, 우리 교회가 기념하는 날이오니, 이 시간 복을 빌어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가는 길에 아버지께서 늘쌍 같이하여 주실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최후의 승리의 그날까지 저희는 직단거리로 가야 되겠습니다. 태산이 가로놓여 있거든 저희는 굴을 뚫어야 되겠습니다. 바다가 가로놓여 있거든 저희는 제방을 내고 다리를 놓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없이 죽어가고, 말없이 묻혀지고, 말없이 소모되어야 할 무리가 많아야 될 것을 생각하옵니다. 그 길을 눈시울을 찌뿌리면서라도 가지 않을 수 없는 운명길로 알고, 기꺼이 맞아 나가는 통일의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남북이 엇갈린 정세를 아버지께서, 심히 염려하는 마음을 가진 통일교회 무리들…. 아버지, 이북에 있는 악당들을 아버지 무릎 앞에, 하늘의 권한 앞에, 자주적인 권한 앞에 자의적인 굴복을 통하여 하늘의 해방을 노래할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고, 만국을 통하여 당신이 찬양을 받고, 모든 통치의 권을, 주관성을 복귀할 수 있는 승리의 때가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에 당신의 은사와 사랑으로 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전국과 전세계에 널려 있는 자녀들과 영계에 있는 수많은 선조들이 해원성사할 수 있게끔 저희들이 책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이 시간을 받아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아버지를 위로하는 심정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을 깨닫는 아들들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기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들은 그 누구를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위해 왔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어떠한 자리에 있사옵니까? 높은 자리에 있느냐, 중턱에 있느냐, 골짜기에 있느냐? 혹은 아버지께서 찾아오시는 자리에 있느냐, 얼굴을 돌리며 외면하는 자리에 있느냐? 그 중의 어떠한 자리에 있을 것이어늘, 현재의 입장을 확실히 다짐지어 가지고 내일에 처할 수 있는 입장을 재자각하기 위해서 모인 이 자리인 것을 잊지 말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시간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허락하신 뜻과 감당하여야 할 사명 앞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니 모든 것을 승리의 결과로 다짐지어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은 통일교회 교인의 일원으로서 여기에 참석했습니다. 또, 여러분들은 통일교회 사업분야의 책임자들로서 사명을 맡아서 일하다가 왔습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의 입장은 통일교회에 있어서 보통 입장이 아닙니다. 지도적인 입장에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는 위가 있는 동시에 아래가 있습니다. 또, 선후가 있고 좌우가 있습니다. 위로는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여러분의 가정이 연결되어 있고, 좌우로는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삼위기대 가정이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높으나 낮으나 공동적인 운명권에 처해서 각자 맡은 바의 직책을 가지고 하늘 앞에 좋은 보답의 길을 다짐하고 있는 자리가 현재 여러분이 처해 있는 자리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처해 있는 그 자리가 통일교회만을 위주로 하는 자리, 통일교회에게만 적용되는 자리냐?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나 환경을 두고 볼 때, 그런 자리는 아직까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통일교회를 위할 수 있는 자리도 되어 있지 않으며, 여러분을 위할 수 있는 자리도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통일교회를 위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결렬과 상충과 핍박의 현상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통일교회의 일원은 되었지만, 여러분의 가정이면 가정을 볼 때, 거기에는 아내가 있고 부모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여러분의 개체가 소신껏 사명을 다짐하고 나설 적에, 그 아내가 여러분을 협조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느냐? 전부가 그렇게 되어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또, 자녀들이 여러분을 협조할 수 있는 자리에 섰느냐 하면 그것도 그렇다고 볼 수 없습니다. 육적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는, 혈육지간에 있는 부모나 처자 형제가 여러분이 가는 길을 협조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느냐? 그것도 그렇게 되어 있지 못합니다.
심각하게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자기 자신이 현재 통일교회의 일원으로 처해 있지만, 그 자리가 환경적으로 보증을 받고 옹호를 받고 찬사를 받는 자리가 돼 있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환경은 여러분을 규탄하려 하고 가정도 환영하지 않는 현상을 두고 볼 때, 여러분들은 외로운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환경을 끊어 버릴 수 없는 것이요, 가정을 끊어 버릴 수 없는 것이요, 사회를 끊어 버릴 수 없는 것이요, 나라를 끊어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가정을 떠나고 나라를 떠나고 세계를 떠나서 자기 홀로 기뻐할 수 있는 자기 혼자의 주장을 가지고 나간다고 하면, 그것이 가정을 대표하는 자리가 아니면 과거 현재 미래를 두고 역사적인 규탄을 받는 여러분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 길을 홀로 다짐하고 가는 데 있어서 그 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 길이 멀면 멀수록 역사과정에 있어서 보람찬 그 무엇으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규탄받을 수밖에 없는 결과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도 싫어하고 현재도 싫어하고 미래도 싫어하는 입장에서 가게 된다면, 그 길은 자연히 중단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간 길이 가정을 박차고 넘어갔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그 환경을 대표해서 갔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혹은 그 나라를 대표해서 갔다는 것을 나중에 알면…. 그런 길을 가기 위해 고독한 길을 갔다면, 그 길이 길면 길수록,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가정 전체가 자기 앞에 지금까지 당당하던 권위를 버리고 눈물과 더불어 굴복할 수 있는 권(圈)을 맞을 것이요, 환경 역시 그러한 자리에서 굴복할 것이고, 나라 역시 그러한 자리에서 굴복할 수 있는 권을 맞을 것입니다. 이런 두 갈래의 길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두 갈래의 길 사이에서 사명의식을 가지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출발 동기는 무엇이냐,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될 것입니다. 나 때문에 출발할 것이냐, 남 때문에 출발할 것이냐? 내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출발했다는 기준에 서게 된다면, 나타나는 환경은 고통거리가 될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출발한 걸음이라면 가정이 반대하게 될 때는 그 가정이 고통의 환경이요, 나라가 반대하게 될 때는 나라가 고통의 환경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일신을 희생시켜 가지고 전체를 위한다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반대하는 환경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피해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전체를 위해서 나가는 데 있어서 가정이 반대한다면, 그 가정이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전체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그 길 앞에는 도리어 가치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환경을 위해서 가는데도 불구하고 그 환경이 반대하게 될 때는, 그 반대하는 환경으로 말미암아 내가 가는 길의 가치는 더욱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나라를 위해서 가는데도 불구하고 그 나라가 반대하게 될 때는 그 나라가 현재에 있어서는 자기와 상충된 자리에 있지만, 미래에 더 좋을 수 있는 때가 되면 반드시 자기를 환영하는 자리에서 맞아 주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자리에 나가게 될 때는, 그 나라의 반대가 크면 클수록 그 나라가 자기 앞에 굴복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으로 다짐될 수 있는 내용이 커진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이냐 사적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공적인 것은 무엇이냐? 보다 남을 위하고 보다 큰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적인 것은 무엇이냐? 자기를 중심삼고 보다 작은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뜻의 길을 가는 데는 이런 두 갈래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뜻의 길에 선 사람 가운데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뜻의 길을 가기는 가지만 그 귀결점을 자기가 좋기 위해서 가는 길이 있을 것이고, 전체를 좋게 하기 위해 가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두 갈래의 길 가운데 어느 한 갈래의 길을 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자기가 뜻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버릴 만큼 뜻을 사랑했다, 혹은 자식을 버릴 만큼 남을 사랑했다 하게 되면, 그 사람은 보다 나은 아내와 보다 나은 자식을 맞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뜻을 자기 자식이나 아내보다 더 사랑하지 못 하게 될 때 그 사람은 보다 나은 자식이 아니라 보다 못한 자식, 보다 나은 아내가 아니라 보다 못 한 아내를 맞고 말 것입니다. 또한 뜻을 자기가 사랑하는 어떤 단체보다도 더 사랑했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던 단체 이상의 좋은 단체를 맞을 수 있으되, 뜻을 그 단체보다 더 사랑하지 못했다면 그 단체 이상의 단체는 맞을 수 없습니다. 거기서부터 길은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나라로 연결되는 길은 막혀버릴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나라를 위해서 가는 길에 있어서도 나라를 희생시키더라도 뜻의 길을 가겠다'는 결의를 하고 그 나라를 희생시켰다면 그 나라 이상의 나라를 맞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그 이상의 나라를 맞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천리 원칙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위하는 자리에서 뜻의 길을 가겠다고 하게 될 때는 여러분 이상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현재의 자리를 희생시키며 보다 나은 자기 자신을 추구해 가는 길에는 현재의 자기보다도 나을 수 있는 자신의 길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런 두 갈래 길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도 보다 선할 수 있는 길이 있는 동시에 보다 악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그 이하로 내려가는 길밖에 못 가게 될 때는 보다 악한 자리로 내려가는 길을 맞는 것입니다. 현재의 입장을 넘어 보다 큰 것을 위하여 희생하고 나설 때에 보다 선한 길을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가 문제가 아니라 현재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중심삼고 볼 때에 뜻은 누구의 뜻이냐? 우리만을 위한 뜻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위한 뜻도 아닙니다. 그 뜻이 통일교회 문선생만의 뜻이라면 통일교회 문선생을 만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통일교회 문선생 이상의 뜻입니다. 절대자가 있다면 그 뜻은 절대자의 뜻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그 절대자의 기준에서 바라보는 이상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에, 그 이상세계는 지구성이라는 한계지어진 것만을 중심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무한한 것, 영계까지, 한계를 초월하여 갈 수 있는 뜻을 바라보게 될 때는, 세계를 잃어버리더라도 내면적인 면에서 그 이상의 것을 차지하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제아무리 포악하고 아무리 지독하고 아무리 핍박이 드높다고 해도 그 핍박을 능히 이겨 나가는 사람으로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보다 큰 사상, 보다 큰 뜻을 품고 가게 될 때는 그보다 약한 뜻의 기준은 거기에 포함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높은 사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세계 역사상에 나타났던 사상 가운데에서 통일사상보다 더 큰 사상이 있느냐? 그런 면에서 통일사상은 최고의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민주와 공산, 양대 진영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적인 사조가 엇갈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그 무엇도 소망할 수 없고 그 무엇도 신뢰할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비판하고 대처할 수 있는 내용을 지녀 가지고 고차적인 소망의 기점을 차지하고 나설 수 있는 자리에 선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상을 가지고 민주세계를 넘어야 하고 공산세계를 넘어야 됩니다.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를 넘기 위해서는 민주세계가 가지 못할 길이 있다 할진대 그 길을 통일교회만은 갈 수 있어야 하고, 공산세계가 가지 못하는 길이 있다면 그 길도 통일교회만은 갈 수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중에 개인을 지나고 가정을 지나고 종족을 지나고 민족을 지나고 국가를 지나서 세계로 갈 수 있는 선봉자가 있느냐 할 때에, 여기서 의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 수련받는 이 장소가 아닙니다. 세계 인류가 다 가고 싶어하는 곳이 어디냐? 이 장소보다 더 큰 곳입니다. 더 높은 곳입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를 찾아온 것은 무엇 때문이냐? 어떤 소망을 가진 그때보다 낮아지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높아지기 위해서 온것입니다. 교육은 못해지기 위해서 받는 법은 없습니다. 보다 나아지기 위해서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여기에 찾아온 것은 보다 높아지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여러분의 본심의 자세를 두고 판단해 볼 때, 여러분이 여기에 높아지기 위해서 왔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높아지기 위해서 여기에 교육받으러 왔다면, 여기에서 `그전보다 높아졌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에게는 여기에 온 의의가 없는 것입니다.
본부가 지시한 것을 따르려면 불편할 것입니다. 여기는 순응할 수 있는 마음보다도 반발심을 가질 수 있는 자리입니다. 반발심이 생겨서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소모전이 벌어집니다. 순응하는 마음이 강하게 될 때는 발전이 벌어지지만, 투쟁의 요건이 벌어질 때는 소모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녹음된 것 가운데 일부는 듣기 어려운 것이 있어서 정리 못했음)
여러분이 이 자리에 온 것은 필시 못해지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본부도 여러분이 못되게 하기 위한 길을 제시하려고 여러분을 오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나아질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기 위해서 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제시한 내용이 옛날 여러분이 가던 길과 같을 것이냐? 달라야 됩니다. 여러분이 왼쪽으로 왔으면 바른쪽으로 가라, 앞으로 왔으면 뒤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명령이 자기에게 맞지 않다고 해서 낙심하는 사람은 거기서부터 후퇴만이 있을 뿐이지, 전진과 발전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제시하는 명령이 평탄한 길로 가는 사람한테 `저 산으로 올라가라'는 것이었을 때, 자기는 그때가 겨울이면 좋겠는데 삼복지절이어서 혹은 나는 뚱뚱한 사람이라 그런 길을 못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거기서부터 작별하는 것입니다. 영영 작별하고 마는 것입니다. 거기서 못 가게 될 때는 그것이 연장되어 어느 한때에 그 인연이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영영 마지막 길이 되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은 갔다가 와서 다시 가는 길이 아닙니다. 가다가 못 가게 되면 마지막이 되는 길인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우리 선조들을 가려 나온 하나님의 뜻을 두고 보아도 두 번씩 택해서 섭리하는 놀음이 아니더라는 거예요. 가다가 못 가면 영영 갈라지는 길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을 짊어진 자리는 지극히 무서운 자리인 것입니다. 제물을 드려야 할 자리가 책임을 진 자리요, 제물을 드리는 자리는 생사의 판가름을 하는 자리입니다. 제물을 잘 드리면 전진이 있는 것이요, 잘못 드리면 후퇴가 있을 뿐입니다. 거기에 공동으로 동시권에 머무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전진 아니면 후퇴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런 실정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에 찾아왔다가 전진하느냐 후퇴하느냐 하는 기로에 있는 것입니다.
전진이란 말은 하기는 쉽지만 실천하려면 그 내용이 무척 복잡하고 어려운 것입니다. 보다 잘 전진하려면 그 전 단계의 기준 이상을 능가할 수 있는 소모전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열을 전진시키기 위해서는 열 이상의 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여기에서 `조국이여 밝아 오라' 하는 제목을 생각해 볼 때, 여러분은 나라 없는 백성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면 과거에는 나라가 있었느냐? 역사상에 우리 나라라고 할 수 있는 형태의 나라가 있었느냐? 그런 나라의 형태도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를 찾기 위해 수고한 사람이 없어서 그랬느냐? 아닙니다. 그 나라는 과거 역사시대의 사람들이 생각하던 그런 자리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맞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 시대권내에서 안팎을 갖춘 기준을 중심삼고 그 나라를 찾을 수 없었기에 그 나라를 못 맞은 것입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조국이라는 것은 오늘 이 땅 위에 있는 그런 어떤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 나라와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차원이 다른 그 나라를 이어받으려면 그럴 수 있는 사상적인 주체성을 가진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주체적인 사상은 절대자인 창조주가 있으면, 그 창조주의 사상과 일치되는 사상이어야 될 것입니다. 절대자가 원하는 나라가 있으려면 그 나라의 주권을 중심삼고 그 나라 국민이 일치될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국민성을 갖추고 국가 형태를 갖추어야 될 것입니다. 그 형태를 보존시킬 수 있는 자격의 사람들이 못 되었기 때문에 그 나라는 형성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를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한 개인은 어디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 지상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를 통해서 그런 대표적인 한 분을 모시고자 하는 사상이 재림사상입니다. 이 재림사상을 중심삼고 새로운 개인이 나오는 것이요, 새로운 가정, 새로운 종족,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의 형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재림사상은 여타 사상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그 대표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되느냐? 이 사망세계에서 썩은 사체를 뽑아 버리고, 거기에 뿌리를 박고 그것을 거름삼아 가지고 커야 됩니다. 여기서 좋다고 하는 것을 거름삼을 줄 아는 힘을 가진 새로운 주체적 인격을 갖추고 오는 사람입니다. 사탄세계에서 좋다고 하는 것을 자기의 생명체로 삼아 부활의 권한을 다짐할 수 있는 아들이면 아들, 백성이면 백성이 지녀야 할 인격을 두고 볼 때, 지금까지 백성을 전부 다 거름삼아 가지고 흡수할 수 있는 주체력을 가져야 됩니다. 이 사망의 세계, 썩은 사체와 같이 된 것을 거름삼아 클 수 있는 개인적인 실력을 가진 인격자가 아니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망의 세계에 있어서 지배를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망세계의 모든 것을 거름삼아 그것을 흡수하여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됩니다. 그 세계에 악한 사람이 있으면 악한 사람을 감동시켜야 되는 것이요, 악한 사람의 사상을 거름과 같이 흡수하여 새로운 재료로 삼을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국가가 반대하더라도 반대하는 그 국가에 밀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담대하게 뚫고 들어가야 합니다.
원수를 갚고 나면 하나는 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패자는 승자의 거름더미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라구요 .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어디에 서 있느냐? 통일교회가 찾는 것은 통일교회 그 자체가 아닙니다. 통일교회보다 높은 것을 찾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통일교회보다 높은 차원을 위해서, 보다 나은 차원을 위해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다 높은 차원의 기준이 뭐냐? 통일교회 그 자체보다도 통일 교회가 모실 수 있는 나라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위하고자 하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단체가 크면 클수록 세상에 수많은 단체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거기에서 배워 가지고 그걸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흡수하여 소화시켜 가지고 다시 내 영양소로 만들어서 삼킬 수 있는 자격을 가져야 됩니다. 거기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동화시켜야 됩니다. 그것이 일원화되어 삼천만 민족을 넘어 남북한의 국민성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나라가 형성되었다 하더라도 그 나라의 주권은 곤란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의 주권 이전에 백성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나라보다도 먼저 백성을 위해서 싸워야 됩니다. 민족을 위해서 싸워야 됩니다. 그런데 민족을 볼 때 남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민족이 나뉘어 있으면 주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남북한이 평화통일을 할 수 있는 주권이 못 됩니다. 일방적인 주권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남북한을 능가할 수 있는 민족적 정신기준을 어떻게 일원화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금후의 통일교회가 힘써 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조국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조국이란 이름이 나왔다 하더라도 상처를 입은 조국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권위와 신념을 가지고 만든 조국이 아니라 갖은 상처를 입고 수치를 당하는 조국일 것입니다. 그런 조국은 맞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의 젊은이나 혹은 뜻 있는 사람이라면 통일교회의 발전보다도,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통일교회가 바라는 나라가 흥하기를 바라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통일교회가 바라는 나라는 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일교회가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둘 다 발전하면 좋겠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니, 통일교회가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조국이여 밝아 오라'는 마음과 소망을 가진 여러분이라 할진대, 조국이 밝아 오는 데는 어떻게 밝아 와야 할 것이냐? 해가 지는 황혼이나 밤중을 즐거이 맞을 수 있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오늘날 점점 다가오는 세계적인 종말시대를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여기서 암담함을 느낄 것이 아니라 `올 수 있는 현실이 왔다. 밤아 오너라, 밤이 오면 나는 달려간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밤을 피해 가는 것보다는 `찬란하게 밝아 올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나는 밤중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저녁의 황혼이 있으면 또한 새벽 미명도 오나니, 그 과정에는 틀림없이 칠흑 같은 자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잠들어 있는 때입니다. 모든 것이 정지되는 때인 것입니다. 그 누구도 거동하기를 싫어하는 때인 것입니다.
그때에 권위를 가지고 힘찬 거동을 하려면 자정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넘어서 새로운 날의 한 시, 두 시, 세 시, 네 시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가고 가면 기필코 어둠의 끝이 오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절망이 아니라 가면 갈수록 보람 있는 희망을 갖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새벽닭이 우는 것은 아침이 찾아올 것을 예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침의 여명이, 칠흑같이 깜깜한 어두움과 밝음이 교차되는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 경지가 오면 남모르는 가운데 환희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단순히 햇빛만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것보다도 더 기뻐할 수 있게끔 긴 밤을 새워 가면서 광명한 새 아침이 우리 앞에 찾아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햇빛을 보는 그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그런 시간을 다짐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신음하는 도수가 크면 클수록 광명한 아침 햇빛을 맞는 감회는 드높아질 것입니다. 그 크기에 따라 가치는 비례되는 것입니다. 또 그 과정이 힘들었으면 힘들었을수록 아침 햇빛을 바라볼 때 더 큰 함성을 지를 것입니다.
그 아침 햇빛을 맞기 전에 추운 겨울밤을 지냈고, 자기 스스로 넘기 어려운 수난길에 부딪쳤으면 부딪쳤을수록, 그 도수가 크면 클수록 비례적으로 새 아침의 광명을 맞는 기쁨도 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에 없었던 광명한 새 아침을 맞는 데 있어서 `여명이여 밝아 오라'고, `조국의 새아침이여 나타나라'고 하며 바라던 입장에서 광명한 새 아침을 맞게 된다면 그는 누구보다도 보람 있게 그런 아침을 맞는 첫번째 기수가 되어서 최고의 기쁨을 다짐할 수 있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로 말미암아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민족과 국가의 전통이 시작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것을 서러움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대열에서 고립되고 말 것입니다.
`조국이여 밝아 오라'는 표제를 두고 볼 때, 그 조국이 밝아 오기 전에 조국을 위한 수난길을 내 생애의 고빗길로 알고, 생명을 바칠 각오를 다지면서 그 수난의 길을 당연한 것으로 소화시키고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당하는 어려움이 가중되면 가중될수록 자기 자신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그 자체는 소모되더라도 자신의 가치는 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게 될 때는 수난길을 거쳐 가지고 새로운 광명의 아침, 새로운 국가를 맞이하여 거기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역사과정에서 그 누구도 느끼지 못했던 절정감을 누려야 할 것이 아니냐? 절정감을 누리는 그 자리가 하나님이 바라셨던 기준과 일치하게 될 때, 거기서부터 비로소 천지에 새로운 역사의 전통과 새로운 국가 형성의 출발이 시작될 것이 아니냐? 그것이 내 생애에서는 조국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국의 국가 주권을 중심삼고 본향을 찾아갈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하늘땅에 자랑할 수 있는 권위가 나타날 수 있는 한 날을 맞기 전에 조국은 밝아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침을 밝은 아침으로 맞아들일 수 있는 충신은 누구이며, 애국자는 누구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자그마치 통일교회는 밝아 오는 조국의 광명한 새 아침을 맞이함에 있어서 역사를 대신하여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선두에 서서 그날을 찬양하고, 그 시간에 목소리를 드높여 함성을 지르고 개가를 부르며 그것을 하나님 앞에 돌려드릴 수 있는 권위를 다짐하는 통일교회가 된다면, 통일교회가 걸어온 역사는 새로운 나라의 전통이 아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그 사상은 새로운 나라의 국민사상이 아니 될 수 없으며, 새로운 역사 창건의 기준이 아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러한 조국이 왔다 하더라도, 그 조국을 맞이할 수 있는 과정에 있어서 조국을 맞기 위해 수난을 거쳐 가지고 수고한 애국자가 없이 광명한 아침의 조국을 맞는다면,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그 무엇을 제시하여 이 나라의 민족정기를 형성하는 놀음이 또다시 벌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되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나라가 오기 전에 그 나라를 오게 할 수 있는 동기가 될 수 있는 인연을 거쳐야 나라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 동기의 인연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은 광명한 데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칠흑 같은 밤이라는 시간을 거쳐 가지고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어둠의 지배를 받지 않고 그 환경을 흡수할 수 있는 권위의 자리에서부터 전통의 기원이 벌어져야만, 광명한 아침의 조국은 비로소 정상적인 궤도로 찾아올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그 조국의 전통적 기준은 아침에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을 향해서 움직여 나온 시간의 과정에서부터 형성되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조국 광복의 광명을 맞음과 더불어 앞으로의 새로운 문화 창건의 전통을 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 전통은 역사를 대표해서도 부끄러움이 없고, 시대를 대표해서도 부끄러움이 없고, 미래를 대표해서도 부끄러움이 없는 전통의 내용이라고 공인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공인될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 될 것이냐? 그것은 그 나라를 가기 위해서 꿈만 꾸던 사람들의 행적이 아닙니다. 그 나라를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가만히 있는 사람들의 행적이 아닙니다. 그 나라를 위해 선두에 서서 죽음의 길이 있으면 죽음의 길도 자기가 도맡은 사람들의 노정이요, 희생의 길이 있으면 자신이 희생의 길을 전부 다 도맡아 나온 사람들의 노정이요, 어려운 국면이 있으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놀음을 한 사람들의 노정입니다.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들의 노정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 행동은 광명한 데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광명의 경계선을 넘나들 수 있으려면 그 경계선 이쪽에 있더라도 경계선 저쪽에도 가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이쪽에서 수난길을 가더라도 저쪽에 가겠다는 입장에 선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조국의 장래가 밝아 올 수 있는 시대권내에서 그 조국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보다 칠흑 같은 밤중에 이 조국광복의 뜻을 밝혀 줄 수 있는 모임의 형태를 갖출 수 있는 표준이 그 이전에 있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절대적인 신념과 사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그런 절대적인 사상을 갖춘 단체가 이 세상 어디에 있느냐? 그러한 단체의 책임이나 사명을 이어받는 길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이것을 이어받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순리적인 자리에서는 이어받을 수 없습니다. 죽음이 엇갈리고 비운이 엇갈리고 혹은 생사를 판가리하는 과정에서 이어받을 수 있습니다. 그 생사의 판가리 과정을 밟게 될 때, 이것을 책임지고 출발할 수 있는 신념을 가진 사람 외에는 그 자리에 동참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두운 세계에 있어서 조국에 광명을 비추어 줄 수 있는 입장에 선 사람이 아니고는 밝아 오는 조국 광복의 새 아침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밤은 어둡더라도 그 사람은 반드시 찾아가 봐야 한다. 어둠 가운데 빛을 비춰 줄 수 있는 광명한 횃불이 된 사람이다. 암흑 천지에 나서서 광명한 등불의 사명을 한 사람이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찾아오는 조국 광복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계사적인 입장을 두고 볼 때, 이때가 끝날이라는 것은 다 판결이 났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금후에 어떻게 될 것이냐? 그 누구도 모르는 겁니다. 이 민족이 어떻게 될 것이냐? 그 누구도 모르는 겁니다. 민주세계가 어떻게 될 것이냐? 그 누구도 모르는 겁니다. 공산세계가 어떻게 될 것이냐? 그 누구도 모르는 거예요.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나라를 봐도 캄캄한 천지가 되어 있고, 아시아를 봐도 캄캄한 천지가 되어 있고, 세계를 봐도 캄캄한 천지가 되어 있지 않느냐? 이러한 암흑 천지 가운데에서 기수가 되어, 앞에서 방향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한다 하더라도 그 암흑을 헤쳐 가지고, 암흑 천지에 있어서 하나의 세계를 품되 그들 앞에 새로운 환경을 제시할 수 있는 주체사상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공산국가 주권을 바라보기 전에, 민주세계 주권을 바라보기 전에 나를 바라봐라' 할 수 있는 무리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너를 바라볼 때 너는 세계를 대표한 사람이다. 너의 가정을 바라볼 때 세계를 대표한 가정이다. 너의 종족을 바라볼 때 세계를 대표한 종족이다. 너의 단체를 바라볼 때 세계를 대표한 단체다'라고 할 수 있는 무리가 나와야 합니다. 그런 단체가 있다면 그 단체의 가치는 민주국가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요, 공산세계의 국가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대했으면 고차적인 내용의 빛이 어제보다 낫다 할 수 있는 발광현상의 주체성을 가진 단체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통일교회는 그런 단체라는 것이냐? 통일교회가 분명히 세계를 구할 것이냐?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역사는 틀림없이 그런 곳을 통해서, 밝아 오는 세계적인 조국 광복은 그런 인연을 따라서 기필코 찾아올 것이다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국가의 신음거리가 나를 거쳐간다고 하더라도 그 흑암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순화되어 버릴 수 있는 주체성을 지녔느냐? 자기가 흑암에 침식되지 않고 도리어 침식시킬 수 있는 권위를 가졌느냐? 빛과 어둠은 엇갈리는 것입니다. 빛이 있게 될 때는 어두움이 사라져야 됩니다. 언제 사라져 갔는지 모르지만 사라져 버리게 하는 빛이 될 수 있는 환경을 지녀 가지고, 어두운 세상이지만 나 스스로 빛을 발해 가지고 사방에서 자기를 주시하여 찾아 줄 수 있는 발광체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개인으로 빛나야 되겠고, 가정으로 빛나야 되겠고, 종족으로 빛나야 되겠고, 교단으로서도 빛나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땅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민족을 형성해야 합니다. `저 종교를 바라봐라. 저 통일교회를 바라봐라. 거기에는 빛이 있나니,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우리와 다르다. 거기는 희망이 있는 곳이요, 내일이 보장되어 있는 곳이다. 망할 수 있는 시대권내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소망과 희망이 있나니, 희망에 벅찬 신념은 내일의 조국 광복을 오게 하여 하늘 앞에 남아지는 세계적인 요인으로 서기에 부끄럽지 않다' 할 수 있는 내용이 깃들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이 그러한 내일을 보장할 수 있는, 스스로의 빛 될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있느냐, 그것으로 어두움을 얼마나 밝혔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밝아 오는 조국의 아침 햇빛을 맞이하기 위해서 미리 가서 기다리는 사람이 될 것이냐, 아니면 해가 떠오른 다음에 맞이하는 사람이 될 것이냐?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벌써 전날 황혼 때에 와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몇천년 전부터 미리 가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영계로 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면 기다리는 사람 가운데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 꼴찌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기다리는 데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기다리느냐? 역사적인 위인이나 성현들이 기다리는 그 기준 이상의 실적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 기준 이상의 실적을 갖지 못하게 될 때는 그들의 꽁무니에서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이상의 준비를 해 가지고 기다려야 되겠습니다.
태양이 다 올라온 자리에서 `그냥 그대로 나 모를 때 올라왔나 보군'하는 사람은 아무 가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보람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로 말미암아 역사가 창건된 것이 아니요, 그런 사람들로 말미암아 역사적 전통이 닦아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있으나마나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맞을 수 있는 광명한 새 아침이 이 천지간에 있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없기 때문에 그 있어야 할 자리에 우리가 앞서 가자 하는 주의가 통일주의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어느 입장에 있느냐? 암담한 자리에서 가려고 하는 입장에 있느냐? 그야말로 나라를 위해서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밝아 오는 조국이 필요로 할 수 있는 용사로 나타나 있느냐? 그럴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천태만상이라구요. 여기 몇 명있어요? 80명?「77명입니다」77명이 있으면 77계단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조국이 지금까지 세계를 향해서 밝아 와야 할 텐데 밝아 올 수 있었느냐? 지금까지는 밝아 올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종단이 많고 국가가 있다 하더라도 조국은 밝아 올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조국이여 밝아 오라' 할 수 있는 때가 온 것입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의 생애는 길지 않습니다. 이미 50세가 지났습니다. 이러한 천주사적(天宙史的)인 사명을 짊어진 선생님에게 그런 뜻을 품은 내연(內緣)이 있다 할진대는 이것이 굉장한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의 생애를 중심삼고 역사가 귀결돼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의 분수령이 되어 그것을 중심삼고 밟고 넘어가게 되면 되는 것이요, 못 넘어가게 되면 영영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있다가 떨어지기는 쉽지만, 한번 후퇴한 후에는 다시 들어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곳이라구요. 여러분이 명령을 받고도 명령대로 행하지 않을 때에는 후퇴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 못 간다는 겁니다. 통일교회 식구들도 그렇습니다. 그것이 자기 최후의 운명의 판가리를 짓는 놀음이라구요. 심각하다구요.
앞으로 새로운 천지의 역사는 어떠한 역사가 될 것이냐? 과거에 여러분의 선조들이 엮어 온 애국지사의 역사는 더 이상 남지 않는 것입니다. 세계의 성인들이 남겨 놓은 그 역사도 안 남는 것입니다. 다 없어지는 거예요. 단하나 남아질 것은 뭐냐? 참부모의 심정의 도리를 찾아온 그 길만이 남아질 것입니다. 타락권내에서 제물을 쪼개 제사하던 그런 복귀 노정의 역사는 안 남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뭐 다들 고생했지만 그 고생은 남지 않는 것입니다. 단 하나, 그 부모님이 가신 걸음이 고생이라면 그것만이 역사에 남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나오던 걸음이 얼마나 비참하더냐? 그 걸음은 사랑으로 표시될 것이고, 그 노정이 치열했으면 그것은 하늘의 역사가 움직여 나갈 수 있는 궤도로 깔려질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시대에 때를 맞추어 생(生)을 지니고 태어난 인간이라면 이것은 역사적 사건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건 가운데에서 오직 나라는 존재 가치를 지녀서 이 눈으로 볼 수 있고, 이 감각으로 느낄 수 있고, 이 귀로 들을 수 있고, 이 입술을 통해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세계사적인 사건이요, 그것은 천지에 없었던 새로운 기적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연이 되어 가지고, 여기서 풀려 나가는 실마리에는 하늘땅도 다 물려 돌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눈물짓는 날에는 천년사(千年史)의 수난의 탕감노정에서 지은 눈물은 상대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생명을 다짐하고 생사를 결정짓는 치열한 전투장에서 흑암권세를 밟기 위해서 투쟁하던 그 역사는, 조국광복이 벌어지는 날에는 역사시대에 있어서의 어둠의 세계를 제거시킬 수 있는 무자비한 칼날이 될 것입니다. 그 이상의 역사는 있을 수 없습니다. 미래의 역사를 바라보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 역사를 따라가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미래의 소망을 바라보며 나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소망의 실체로서 추구해 나가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지금은 미래를 바라보고 나가지만 그때는 이렇게 가는 것입니다. (몸짓하심) 그 놀라운 한때는 무한한 가치가 솟아나는 곳,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자리, 그 기준이 역사적 시대의 초점상에 피어날 때인 것입니다. 그때가 참부모가 현현하는 시기입니다.
그러한 일생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일생은 빛날 수 있는 일생인 동시에 최고의 정상이 되는 일생입니다. 그런데 일생을 빛날 수 있는 최고의 정상으로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일생에 있어서 평탄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갖은 수난과 곡절과 피어린 투쟁이 엇갈리는 고빗길이더라도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고빗길을 거쳐가는 것이 최고의 정상이 되는 길이더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생명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에게는 그런 정상의 자리에 동참한다는 것 이상의 가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정상의 자리는 다른 곳보다 높은 자리이기 때문에, 아침 햇빛이 솟아오르게 될 때 햇빛은 그 최고의 정상을 먼저 비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자리에서 광명한 햇빛을 바라보고 느끼는 그 기쁨, 그 누구도 바라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고차적인 자리에서 감격할 수 있는 그런 희열을 과연 그 누가 느낄 수 있느냐?
앞으로 조국 광복은 물론이지만 조국의 전통을 세울 수 있는 역사적 환경이 여기서만이 시작된다는 사실, 역사적 공신이 될 수 있는 때는 이때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때를 놓칠소냐? 수천만의 선조들은 이때를 얼마나 바랐겠느냐? 이것이 한 발짝도 안 되는 것이요, 그 반쪽밖에 안 되는 기준일는지 모르지만, 이 기준에서 천지의 빛이 일시에 발할 수 있고 승리의 영광이 일시에 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소원 전체가 피어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입장에 선 여러분을 대하는 선조들의 책임감은 클 것입니다. 백 명의 선한 선조가 있으면 백 명의 선한 선조는 심정을 조여 가면서 그 한때를 기다릴 것입니다. `야, 이 자식들아, 피눈물을 다 흘려라. 뼈와 살이 에이는 죽음길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선두에서 싸우다 쓰러져 달라'하며 고대할 것입니다.
왜? 참부모가 가는 길 앞에서, 가지 말라고 말릴 수 있는 자리에서 죽어 갔다면, 참부모의 심정을 사모할 수 있고 동경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여러분의 선조는 여러분이 그럴 수 있는 무리가 되기를 고대할 것이 아니냐? 또한 삼팔선을 넘는 길이 있는데 내가 선두에 서겠다고, 아무도 가지 않더라도 나는 가겠다고 하며 나섰다면, 그의 걸음은 참부모가 바라는 심정을 자기 일신에 집중시킬 수 있는 책임을 지고 가는 걸음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가는 방향에 어려움이 있으면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그 자리도 내 일신의 최후의 행복의 날로 알고 가겠다고 죽음을 앞놓아 가면서 달려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가장 치열한 자리에서 참부모의 사랑과 동정을 받을 수 있고 사랑의 인연을 그 자리에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 아니냐? 이렇게 될 때, 그는 심정의 역사세계에 전통을 남기는 데에 기수가 될 것이어늘, 그런 후손을 가진 선조가 있다면 그 선조는 무한히 무한히 찬양할 수 있는 후손이라고, 무한히 무한히 머리를 숙여 존경하여야 할 후손이라고 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럴 수 있는 때가 역사시대 어느 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때가 그런 때라는 것을 생각할 때, 삼백 예순 날, 일년이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아쉽고 얼마나 비통한지 모르겠다고 하며 자기의 생명을 걸어 결의할 수 있고, 자기 일신을 그런 기준에 걸어 넣고 다짐할 수 있는 생활을 해 나가야 할 것이 현재 통일교단에서 책임을 진 무리들이 아니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때를 놓치게 된다면 여러분의 일족 일파에는 영영 다시 올 수 없는 때가 될 것입니다.
부모가 맞을 수 있는 조국 광복의 한날, 그 부모의 자식들이 맞을 수 있는 조국광복의 한날, 부모를 중심삼은 종족의 인연을 가지고 맞을 수 있는 조국광복의 한날, 그 인연을 따라 민족의 권한을 찾을 수 있는 한 날, 영광의 세계의 출발을 바라보고 나갈 수 있는 한날이 바로 여러분 개인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보람있는 조국이여, 밝아 오라. 보람있는 조국이여, 나와 더불어 가자. 피를 흘리는 길을 가더라도 나를 빼지 말고, 눈물을 흘리는 길을 가더라도 나를 빼지 말아 다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난과 극복이 엇갈리는 자리를 그 누구도 싫다 할지라도, 손을 들어 `내가 가겠다 할 수 있게끔 격려해 달라'고 다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조국 광복의 대열에 남아질 수 있는 무리가 될는지 모르지만, `어려운 사정이요, 나에게서 지나가거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반역도가 되어 원한의 화살을 맞는 불쌍한 무리가 될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조국의 운명이 엇갈려 있는 이 시운을 바라볼 때, 죽어도 그럴 수 없다고 다짐해야 할 것이 우리의 자세가 아니냐? 세계가 혼탁하고 혼란된 중에 있기에 내일을 예기할 수 없는 입장에서 그런 세계를 대하고 있는 우리의 자세가 아니겠느냐? 이런 입장에서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였던 조국을 사랑하기에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일신을 내걸고 `조국이여 밝아 오라'고 외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조국이 잠들어 있으면 내 손으로 일깨워서 새 아침의 조국을 만들겠다고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내 일신의 피해를 입고 내 일신이 찢김을 당해 피를 흘릴지라도 거기에 전통을 남기고 죽어 가는 애국자가 되겠다, 충신 열녀가 되겠다고 하며, 그것만이 나의 생의 철학이요 그것만이 나의 보람있는 사명이요 책임이라고 다짐하며, 그렇게 일생을 바치고 갔다 할진대 그는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는 승리자로서 영광의 등대가 될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런 엄숙한 시점이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엄벙덤벙 지나가는 한 날, 한 시, 한 순간 가운데 거쳐간다는 것을 몰라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의 세계가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쉬운 것입니다. 망할 수 있는 동기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것을 거름삼아 가지고 사방에 뿌리를 박아서 힘차게 줄기를 뻗고 가지를 뻗어 잎이 무성해야 할 때가 오나니, 그때야말로 새로운 봄날을 맞이하여 광명한 햇빛과 더불어 꽃을 피울 수 있는 준비를 해야 되겠다, 가지에 새로운 싹이 돋게 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되겠다고 마냥 준비를 해 가지고 재삼 다짐하면서 기다리는 마음에 사무쳐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 사무친 마음을 막는 무엇이 있으면 그것을 폭파해 버리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살아 있을 수 없는 자신이라면서 감격에 벅차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미래를 개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조국에 밝은 아침이 찾아오지 않으면 우리 손으로 찾아오게 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어두움을 대하여 세계사적인 책임을 지고, 수난길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겠다고, 혹은 찢기는 자리, 죽음의 자리를 자처하고 가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죽어 가더라도 마음 세계에서는 이미 광명한 조국을 맞고 가는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느 때든지 천국에 안 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우리는 역사적인 인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야말로 세계사에 없었던 역사적인 인물이 될 수 있는 때가 온 것입니다. 세계사적인 시대에 그 누구도 갖지 못했던 기쁨의 한때를 맞이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입장이 현재의 입장인 것입니다. 환경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비례한 가치의 추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만일 여러분이 얼쩡거리다가 이것을 못 이루게 되면, 후에 여러분의 후손들이 이 가치를 알고 무덤을 찾아와서 무슨 말을 할 것이냐? `우리 몇대 선조는 누구와 같은 시대의 동역자였는데 조금만 더 고생을 하고, 조금만 더 희생해 가지고 우리를 보다 잘되게 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라고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훌륭한 선조들이 되어 모래 사장에 무덤을 남겼다면 그 무덤이 영원한 무덤이 되지 않을 것이니 후손들이 그 무덤을 찾아다가 동산 능선지 귀한 곳에, 복귀 천국 동산의 명당 자리에 모시는 조상이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덤이라도 원한을 남기는 무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후손뿐만이 아니라, 여러분이 영계에 가게 될 때는 어떻게 조상들을 대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놈 자식아, 꼴은 좋다고 통일교회 다니고, 내가 요 모양 요 꼴이 된 것은 네가 잘못했기 때문이다. 네가 잘했더라면 영광에 빛날 수 있는 길이 있었을 텐데, 너 하나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선조들이 원수가 되어 가지고 참소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3시대를 죽이느냐, 살리느냐? 3시대를 부활시키느냐, 사망권으로 몰아내느냐 하는 그런 최후의 결승점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순간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최후의 결승점을 돌파하게 된다면 세계에 빛날 수 있는 조국, 천지에 빛날 수 있는 조국은 나를 정면으로 맞아 줄 것이고, 나라를 세우는 건국의 행사는 나를 앞에 놓고 나를 자랑함으로 말미암아 빛날 것이 아니냐? 또 나를 칭찬하고, 나에게 상을 주고, 나를 찬양하는 것으로서 그 식이 일색이 될 것이 아니냐?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남자로 태어나 그럴 수 있는 영광을 맞이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왜 못해요? 그렇다고 해서 어려운 길이 아닙니다. 모가지를 내놓으면 간단합니다. 남보다 고생을 더 하고, 남보다 희생을 더하고, 남보다 천대를 더 받고, 남보다도 죽음길을 더 찾아가겠다고 하면 됩니다. 잘난 놀음이 아니라구요. 그 반대입니다.
남은 고생을 하는데 자기는 핑계나 대고 비판이나 하며 가는 패가 아닙니다. `밤이든 낮이든 나는 묵묵히 가노라 나는 갈 뿐이다'고 하는 신념을 다짐해 가지고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전통적 역사시대의 기원을 여러분과 더불어 맞았으니, 어떻게 이것을 결정짓느냐 하는 중대한 차원에 놓여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백의 가치를 가져올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열의 가치, 혹은 아무 가치도 가져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동역자들에게 `이놈의 자식아' 하며 그들을 원수시해 가지고 잡아다가 목을 자르는 무리도 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떤 무리가 될 것이냐? 여러분이 앉아 있는 자리는 같지만, 여기에서 그렇게 운명이 엇갈리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출발하는 데는 무엇을 표준하고 출발했느냐? 통일교회를 바라보고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통일 천국을 취해 출발한 것입니다. 본래 목적은 통일 나라를 위해 출발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나라가 없습니다.
이제 이 나라에 어떠한 전통을 남길 것이냐? 우리는 원수에게 점령당한 권내에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를 책임진 사람이 원수 앞에 잡혀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의 나라에 잡혀 간 그 책임자를 우대하면 안 됩니다. 단결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잡혀 간 책임자가 비참하게 죽으면 죽을수록, 그 책임자와의 관계가 부자의 관계처럼 가깝게 되면 될수록 단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그 책임자를 원수의 나라가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와의 단결력은 희미해지는 거예요. 죽이는 데에 있어서도 다리를 자르고 손가락을 자르고 눈을 빼고,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된다구요. 그렇게 죽으면 죽을수록 그와 인연을 가진 패는 철석같이 단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방법은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영계가 우리와 결속될 수 있는 내용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우리가 고생해야만 됩니다. 우리가 고생하면 고생할수록 영계는? 통일교회가 영계와 관계가 되어서 부자의 관계가 되어 있고 형제의 관계가 되어 있으며, 우리가 원수들에게 끌려 다니며 지긋지긋하게 고생하면 할수록 영계는? 악착같이 단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동원되어 때려잡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저 그럭저럭하고 있으면 영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사탄을 통해서 작전하시는 것입니다. 악착같이 고생시키는 거예요. 죽이는 거예요. 죽는 그 자체는 불쌍하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반작용적인 결합을 다짐하려니…. 그렇지요?
예수의 죽음도 그 죽은 것으로 끝났어요? 죽고만 말았어요?「아닙니다」그것으로 말미암아서 인류를 통합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라를 위해 죽었구만, 우리를 위해 죽었구만' 하는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까? 기독교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었으니, 그것을 몰라보면 지옥에 가게 되고 알아보면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이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그것은 일종의 공갈 협박입니다. 알아주지 않으면 지옥, 알아주면 천당, 거 간단한 거라구요.
그런 내용에 일치된 사람들은 한패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저기 저 사람이 맞아 죽었다. 하 그까짓 거 잘 죽었구만'하는 사람들은 원수라는 거예요. 그렇지만 거기에 대해서 피가 끓어 가슴을 조이면서 `내가 죽으면 죽었지, 보고는 못 견디겠다' 할 수 있는 패들은 제일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렇지요?「예」안 그래요?「그렇습니다」그래서 통일교회는….
하나님은 어떤 작전을 하시느냐 하면 반대 작전을 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의 자리에 내세워 가지고 희생시키는 겁니다. 희생시킴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느냐? 땅은 모르지만 전체적인 영계는 단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영계는 통일이 벌어진다 이겁니다.
통일교회가 영계를 통일하기 전에는 육계를 통일할 수 있어요?「없습니다」그게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를 통일하기 위해서 통일교회 문선생은 육계에 있는 통일교회 패들은 사지에 몰아넣는 것이요, 무자비하게 때려잡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계는? 여러분에게 협조를 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비참한 자리로 같이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그것을 중심삼고 영계는 영계대로 단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여러분이 깊은 자리에 들어가게 된다면 삼천만 민족 가운데에 천국권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 권은 옛날에 지옥에 가 있는 패들까지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누가 팼다 하면 거기서 폭발하는 겁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가 어디가 왜 틀렸어?' 이렇게 달려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의 절반은 뻥 깨져 나간다구요. 그렇지요? 이런 작전을 하는 거라구요. 자, 고생을 지긋지긋하게 해라, 나라를 위해서 지극히 희생하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나라의 주권자도 `통일교회가 무엇이 틀렸어' 하게 되는 겁니다. 하늘의 작전은 그렇게 하는 거라구요. 그거 틀림없지요?
그러면 해방의 전통적 사상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시키는 데서부터 하늘나라의 전통적 사상의 기반은 설정되는 것이다, 이런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만일에 같이 잡혀 간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이 있다고 합시다. `아버지가 죽으면 낙이 없어요' 하면서 제일 심각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 같이 잡혀 간 어머니와 아들딸이겠지요? 아버지가 비참하게 죽었으면, 아버지가 죽은 자리를 보고 어머니가 `아이구, 나는 죽는다는 게 싫소' 하면 되겠어요? 이렇게 될 때 아들딸이 죽어야 되겠어요, 안 죽어야 되겠어요?「죽어야 됩니다」어차피 죽을 길에 있으면 뼈아프게 부모를 모셔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여러분은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만일 고대하던 거기에 희생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자들까지도 단결하는 것입니다. `우리 여자들의 위신을 세워 주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 가지고 여편네 죽고, 그 다음에는 아들까지 죽어 보라구요. 그런 놀음을 하는 그 가정은 비참하지만 이 나라는 기필코 단결 하는 겁니다. 철석같이 뭉친다는 겁니다. 그렇지요?「예」
잡혀 간 무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이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영계까지 통일돼 가지고 단합하여 세상을 대하여 퍼붓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가 뻥 깨져 가지고, 그 나라의 절반은 이쪽으로 휙 넘어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4백년 만에 그 놀음을 한 거라구요. 알겠어요? 찢기고 쫓기고 죽임을 당하고 사자밥이 되는 그런 죽음의 자리에서 견디어 온것입니다.
로마에 가 보면 카타콤베라고 하는 길이가 20킬로미터나 되는 지하 토굴이 있습니다. 이 굴은 기독교인들이 4백년간의 폭정시대에 그 속에 들어가 살면서 신앙을 지키던 곳입니다. 거기는 판대기도 없다구요. 그 굴의 벽은 묘지가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죽으면 그 시신을 그냥 거기에 올려 놓고 그것이 해골이 되어도 일생 동안 그 안에서 먹고 살고 하는 거예요. 지금도 거기에 가면 선반이 쭉 있습니다. 공동묘지를 딴 데 만들 곳이 있겠어요? 굴밖에는….
그걸 보면 기독교의 우리 조상들이 위대했다는 거예요. 그야말로 해골굴이라구요. 그런 죽음 구덩이에서도 진리를 심고, 그런 처참한 자리에 뿌리를 박아 생명의 감도를 느끼고 찬양하면서 하나님을 추앙했던 것입니다. 그때 그 추앙을 받는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가 막히셨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로마제국은 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밥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길면 길수록 영계가 동원되기 때문에 세계적 판도를 중심삼고 일시에 발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통일교회도 그렇습니다. 앞으로 이북에서 통일교인들을 잡아다 죽이기만 해보라는 거예요. 한 사람 죽이고, 두 사람 죽이고, 세 사람 죽이고…, 죽이면 죽일수록 통일교회의 사상은 각지에 뿌리를 박을 것입니다. 이런 걸 생각할 때, 이북에 가서 죽는 데에는 누가 먼저 가서 죽어야 되겠어요? 선생님이 먼저 가서 죽어야 되겠지요?「아닙니다」그러면 누가 먼저 죽어야 되요?「저희가 죽겠습니다」여러분 가운데 죽을 사람이 없으면 선생님이 죽어야지. 선생님은 죽는다고 서러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사지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자신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백성이 다 망하게 되는 때는 어떻게 하겠어요? 그 곳에 들어가기를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거기에서 희생한다면, 민족을 단결시킬 수 있는 새로운 세계사적인 폭발적인 힘의 원천이 거기서 솟아날 것입니다. `가자! 죽여라!'고 다짐할 수 있는 사나이의 발걸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길이 아니고는 이룰 수 있는 길이 없거든 그 길을 통해서라도 뜻을 이루고 가겠다고, 절개비를 거기에 세우고 가겠다는 하늘의 아들이 있다 할진대는, 하나님의 가슴과 뼈와 살을 한꺼번에 녹여 낼 수 있는 아들이 아니겠느냐, 조국 광복의 전통적 사상은 거기에서부터 싹틀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애국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애족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는 것이 보다 높고 보다 가치 있는 조국 광복 시절에 영원히 남겨야 할, 조상으로부터 이어받은 전통적인 사상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걸 생각해야 됩니다.
천년 만년 빛날 수 있는 영원한 천국 이념이 지구성에 찾아오게 하는 궤도를 까는 데는 평탄한 놀음으로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뼈가 갈리고 살이 에이더라도 고생길을 넘자. 굴을 뚫는 것보다 더 힘들더라도 고생길을 넘자'고 그것을 다짐할 수 있는 결의가 있어야만, 그래도 여러분이 이 시대에 태어난 위신을 세울 수 있는 남자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이어받지 못하고 그런 심정의 소신을 지니고 내일의 승리를 다짐하지 못하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그런 남자는 아예 죽어 버리는게 낫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여편네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한다구요? 그래 가지고 여편네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면 뭘합니까?
찾아오는 조국 광복의 새 아침에 기수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조국은 어떠한 기수를 맞이하려고 하느냐? 조국에게 `너, 밝아 오는 조국은 어떠한 아들딸을 맞고 싶으냐, 어떻게 애국 애족하는 충신 열녀를 맞고 싶어하느냐?'고 물어 보게 될 때, 이런 결의에 불타 일생을 불살라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전통적 절개의 가치를 무한한 가치로 추앙하고 죽음길을 다짐해 가는 무리를 맞고 싶은 것이 찾아오는 조국의 자세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조국 앞에 내가 나타날 때 나는 어떠한 자세를 갖출 것이냐? 부끄럽기 한량없는 나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의를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걸어온 20년 역사를 두고 볼 때, 한이 많습니다. 선생님에게는 한이 많아요. 단 하나의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 조국이 찾아오는 그 정도(正道) 앞에 엇갈리는 자리에 서지 않기 위해서, 그 누가 반대하더라도 나는 가노라, 시절이 달라지더라도 나는 가노라 하며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을 자는 시간에도 엇갈려서는 안 되는 것이요, 눈을 뜨고 달려가는 길에서도 엇갈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일체를 거기에 보조를 맞추고 거기에 방향을 맞추기 위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희생이 있더라도 그 희생은 문제가 아닙니다. 죽음이 있으면 그 죽음을 넘어서라도 가려 놓아야 할 사명을 추구하고 가는 길이 여러분이 따르고 있는 스승이 가는 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자리를 같이 가고 그 눈물의 골짜기를 같이 넘나들면 여러분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찾아오는 희망의 조국은 그런 사람을 영접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계사에 없었던 조국을 맞이하는 첫 기수가 되고 조국 광복의 건국의 용사들로 등장하게 될 때는 천년 만년 찬양의 무리가 될 것이 아니겠어요?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수십년 동안, 혹은 10년, 5년, 몇년을 걸어 나오면서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는 거예요. 자식이나 여편네가 배고파하면 그것을 바라보고 가슴을 조이던 때도 있었겠고, 눈물지으며 동정한 때도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모셔야 할, 우리가 가누어 세워야 할 그 나라는 어디로 가느뇨? 나라 없는 민족은 불쌍한 민족입니다. 언제나 침해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지금도 자신을 못 합니다. 악랄한 주권자가 나오게 되면 언제든지 목이 잘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을 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는 것이 아니며, 먹는다고 하더라도 마음 놓고 먹는 것이 아닙니다. 잠을 자는 것은 광명의 조국을 맞을 수 있는 밤을 맞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요, 먹는 것은 자유로운 조국 가운데에서 먹는 것을 계승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싸우는 것도 그날을 맞기 위한 싸움입니다. 일체를 그것 찾기 위해 결정해 가지고, 여러분의 기거동작, 언행심사 일체를 거기에 귀결시키지 않고는 조국광복의 날을 맞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 오관을 통한 감각도, 모든 느낌의 사연도, 심정의 모든 인연도 이것을 수습하고, 이것을 보다 가치 있고 보다 전진한 자리에서 빛내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원할지라도 거기에 마이너스되는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이것은 이미 결정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눈이 어디를 향했던가, 자기 몸이 어디를 향했던가를 생각해 보라구요. 나라를 버리고, 나를 등지는 행동을 한 이 추악한 자기 자체를 칼로 찌르고 싶은 통분한 심정을 느끼는 때가 얼마나 있었느냐 이겁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번 기회를 통해서….
이제 여러분이 이 삼천리 반도를 바라보면 두 나라로 되어 있습니다. 남북으로 엇갈려 있습니다. 지금 가족찾기운동(남북 이산가족 찾기운동)이라 해 가지고 회담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금후의 귀추는 어떻게 될 것이냐? 그 만나기를 원하는 모든 가정들은 우리가 맞을 수 있는 가정들이 아닙니다. 남북의 교인들이 기뻐서 맞을 수 있는 하늘나라의 가정의 인연을 묶어 놓고, 그 다음에 우리가 맞이해야 할 가정을 찾는 운동을 해야 되는 겁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기성교회와는 형제지간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담을 헐고 맞을 수 있는 때가 못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맞을 수 있는 때가 오고 있기 때문에 남북도 그럴 때가 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이 한국에 세워질 나라는 어떤 나라냐? 서로서로 유통하며 교류하게 될 때는 공산 나라가 세워질 것이냐, 아니면 지금 오늘날 대한민국으로 그냥 그대로 둘 것이냐, 아니면 둘 다 아닌 새로운 나라를 추구할 것이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의 때도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가누어 책임져야 할 통일의 무리라면, 거기에 대한 책임감을 얼마나 갖고 있으며, 또한 어느 정도의 희생의 대가를 치를 수 있는 결의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임자네들, 자신 있어요?「예」삼팔선 이북을 넘어가서 이북 5도의 시군을 중심삼고 우리의 기지를 마련해야 할 것이 아니예요?
인원이 부족한 이때에 누가 저 북한 땅, 정주면 정주의 책임자가 될 것이냐? 생각해 봤어요? 정주 고을이면 정주 고을을 중심삼고 내가 교회장이 되어야 되겠다고 10년, 20년을 준비하고, 그러다 안 되면 후손 앞에 `너,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준비하여 그날을 맞거든 정주 땅에 하늘의 인연을 대신한 교회장이 되어라'고 유언하며 죽을 수 있는 정성을 들이는 여러분이 되어 보았습니까?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것을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다구요.
그런 것을 생각할 때에, 젊은 놈들이 지방에 돌아가 가지고 자기 자식과 여편네나 대리고 히히덕거리며 살게 되어 있어요? 살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안 되어 있습니다」죽더라도 나라는 남기고 가야 합니다. 죽더라도 자식들에게 나라는 남겨 주고 가야지요. 새로운 결심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저 소만 접경의 한 지방에 가 가지고 공산당과 이마를 맞대고 아침 저녁 총소리를 들으면서 국경지대의 파수 역할을 하는 교회장이 되어야 하겠다. 나라가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생명을 엇바꾸더라도 그 나라를 사랑하는 충절의 마음은 변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만점입니다. 세상이야 몰라주어도 괜찮다구요. 영계에 가면 다 드러나게 마련이라구요.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사람이 부족한 걸 알아야 된다구요. 허재비 같은 남자라도 나팔을 메게 해 가지고, 혹은 로보트를 만들어 가지고 북한 땅에 다니며 나팔을 불게 하고 싶은 것이 선생님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입을 가진, 감정을 가진 사나이로 태어나서 그것도 20세 30세의 젊은 마음과 몸뚱이를 가지고도 원리 말씀을 못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눈알이 곪아터지도록 밤잠 안 자고라도 공부를 해야 됩니다. 배가 고파서 뼈만 남더라도 준비를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뼈만 남은 앙상한 몸뚱이가 하늘의 사랑을 송두리째 받을 수 있는 몸뚱이가 될 수 있다구요. 하나님이 그 가냘픈 한 남성이면 남성에게 기대를 몽땅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가만히 앉아서 돼지처럼 꿀꿀거리고 먹기만 하면 되는 거야? 이놈의 자식들.
원수의 땅에 들어가 책임을 하려면, 남한 땅에서 수련을 해야 합니다. 부대껴야 됩니다. 싸움도 해봐야 됩니다. 죽기를 각오하는 자리에서 불충의 도리가 아닌 충의 도리를 남기고, 쓰러져 가는 모습을 세우고도 하늘의 동정은 싫다 할 수 있는 애비가 되겠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러했기 때문에 나도 그러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하나님이 그런 길을 거치지 않고는 땅 위에 정상적인 전통을 세울 수 없고 인간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울 수도 없겠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길을 닦아 오셨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길까지 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입니다. 여러분은 그 자리에 가면 죽는다고 하지만 안 죽어요. 절대 죽지 않습니다. 내가 실험을 많이 해봤습니다. 마지막이라고 금을 긋고 하나님께 최후의 기도를 하고 나면 난데없이 해방의 자리에 나를 갖다 놓더라 이거예요. 배고플 때는 밥을 먹고 떡을 먹고 고기를 먹게 해주더라 이겁니다. 내가 바라는 것 몇배를 찾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밝아 오는 조국 광복의 그날, 그 나라가 `에이, 이자식아, 이 역적 도당아, 이 역사의 원흉아' 하는 말을 듣는 사람은 죽어도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 나라가 머리를 숙이면서 `그대가 흘린 눈물은 오늘의 내 눈물로써 갚아 주고 그대의 쓰라렸던 그 쓰라림은 내 사랑으로 덮어 주리'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조국 광복의 그날 식전에 참석할 때, 모든 식전이 나를 내세우고 자랑하고 사랑하면서 모든 만국의 권한을 상속시키는 자리를 맞아야 할것이 통일가가 고대하는 조국의 날임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국이여 밝아 오라. 조국이여 어서 오라. 나는 이제 부끄럽지 않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안 되었거들랑 `조국이여 더디 오라.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하며 조국의 날이 찾아올까봐 `내 불쌍한 신세와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제 조국을 맞고 싶으니, 조국이여 어서 오소서'라고 할 수 있는, 한을 남긴 자리에서 조국을 부르고 죽더라도 한이 없겠다고 하는 길을 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가정들로서 책임과 사명을 짊어진 삶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 조국은 여러분의 것일 겁니다. 그 조국은 여러분 때문에 찾아올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새로운 조국 광복의 새 아침 앞에 전통의 영광을 불러 일깨울 수 있고, 그날이 나를 환영할 수 있는, 승리적인 조국 광복의 용사들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알겠지요?「예」
사랑하는 아버님, 이 시간은 심각한 시간이옵니다. 이제는 아버지를 부르더라도 건성으로는 아버지를 부르지 못하겠습니다. 아버지를 위해서 효성의 도리를 하더라도 뼈가 끊어지고 살이 녹는 듯한 심정을 가지고, 최악과 최극의 자리에서 이 몸과 마음을 다 바치겠다고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조국이여 밝아 오라고, 빛나는 조국의 새 아침을 맞고 그날을 축원하고 죽겠노라고, 그것이 소원이요 한풀이라고 다짐하는 무리들로 살겠다고 하는 모습들이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아들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지난날을 회고하며, 얼마나 미흡했고 얼마나 불충했던 자신이었는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나타나기에 부끄러운 모습을 끌고서도 사랑받겠다고 허덕인 것을 생각할 때 민망함을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천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날들이 지나갔지만, 아버지의 심정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이 불충한 것들을 다시 불러 주시려고 길러 오신 아버지 앞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야 되겠습니다.
이 시간, 목석 같은 자식들이 간곡한 심정에 사무쳐 아버지의 뜻을…. (이후는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아버지, 당신께서 한 아들을 이끌어 나오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셨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은 저희가 개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범위내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저희들은 엄중한 섭리적 사명을 해야 할 시대에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한 아들의 성상을 그리워하시는 아버지의 슬하에 모인 저희들은 아버지 보시기에 염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찾아 나오시는 아들 그 자체가 되어야 되고,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본성의 심정에 화(化)한 미(美)의 실체가 되고 사랑의 주체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서 습관화된 저희 자신들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버지의 표준은 저희 같은 사람들을 찾아오는 것이 아님을 느끼면 느낄수록, 저희들은 부족한 것을 자각하고 미래의 사명을 촉구해야 할 입장에 서서 아버지의 위신과 체면을 세워 드리지 못하는 미급함과 부족함을 자탄할 수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저희 자신들이 당신을 얼마나 사모하고, 당신을 얼마나 흠모하며, 당신의 뜻의 길에 대해서 얼마만큼 간곡한 자세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저희가 처해 있는 이 자리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할 모습인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오늘의 미급한 자신을 아버지 앞에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당신의 긍휼과 자비와 용서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이러한 개인들을 합하여 가지고 찾고자 하시는 선한 가정을 찾아왔고, 선한 종족을 찾아왔습니다. 선한 나라와 선한 세계를 이루고자 하는 노정을 두고 볼 때, 여기에는 복잡다단한 사회의 여건들이 방패가 되고 울타리가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도리어 이것을 이루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가 연결되어 가지고 세계화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께서 과연 6천년 동안 수고하시지 않을 수 없었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전능하신 아버지의 권한을 가지고도 그렇듯 오랜 시간을 거쳐오신 소망의 기준을 저희들이 맞아 생애노정에서 해결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될 때, 그것이 저희들의 힘만으로는 절대 될 수 없다는 것을 느끼옵니다.
아버님은 책임할 수 있는 인간이 없어서 그 한 날을 맞지 못하신 것임을 느끼면 느낄수록, 저희들은 아버님을 모시는 자리에서 아버님과 하나되지 못하면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오니 당신의 긍휼의 마음이 저희의 심정에 사무칠 수 있고, 본성의 자리에 다시 자리잡게 하여 주시옵소서. 본향 땅을 그리워하는 마음, 본성의 심정을 찾아 가고자 하는 마음, 본연의 아버지의 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무엇보다도 강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것이 저희들이 생사의 기로를 가려낼 수 있는 표준이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 가운데는 남다른 이 길을 따라오기 시작한 지 10년 이상이 되는 식구도 있습니다만, 지내 온 그 연한이 문제가 아니라 그 연한을 따라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으며, 그 인연이 어떻게 설정되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들이라는 명칭은 좋은 명칭임과 동시에 지극히 두려운 명칭이요, 딸의 자리라는 것은 지극히 좋은 자리 같지만 무서운 자리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바라보고 기뻐하실 수 있는 본연의 기준이 어떠한 것이며 딸을 바라보고 기뻐하실 수 있는 본연의 기준이 어떠한 것이냐, 사랑하는 자녀들을 놓고 훈시하고 싶어하시고 최후의 소망을 걸어 놓고 모든 것을 상속하고 싶어하시는 아버님의 심정이 어떠한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당신이 그리워하시는 자녀의 심정을 저희들은 모르는 자리에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당신이 자식을 위해 싸워 나오신 역사적인 과정을 모르는 자리에 서서 습관화된 그냥 그대로의 모습으로 생각하고 혹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한계권내에 속해 있는 인간들이옵니다. 저희들은 당신이 지녀 오신 심정적 깊은 한계선 이상의 자리를, 혹은 높고 높은 한계선 이상의 자리를 알지 못한 인간들이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당신의 깊고 높고 귀하신 그 한계선 이상의 심정을 어떻게 해서도 그려 낼 수 없는 모습들이오니, 아버지께서 저희를 자극시켜 주시고 책임져 주셔야 되겠사옵니다. 저희가 저희의 사명을 감당한다 하더라도 아버지께서는 저희가 사명을 감당한 그 자리보다 한 차원 높은 한계선 이상의 심정을 연결시키기 위해 또다시 싸우셔야 한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각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불초하고 부족한 자신을 탓하면서 내일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거룩한 승리의 아들딸된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이 자리에 참석하였사오니, 이 자리에 참석한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나'라는 아무개가 심정세계에 있어서 아버지를 그리워하기 전에 아버지께서 그리워하실 수 있는 자신이 되었고, 제가 아버지를 생각지 않더라도 아버지께서는 저를 생각하실 수 있는 자리에 서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저희는 전체를 바쳐서 그 은혜를 갚아 드리고 거기에 하나되고자 하는 사무친 염원의 심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사오니, 저희들을 그냥 그대로 버려 두지 마시옵소서.
저희들은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통일교회가 이렇다 하는 기준을 나름대로 알고 있사옵고, 하나님은 이렇다고 하는 자기 나름대로의 신앙을 갖고 측정을 하고 혹은 체험하여 인정하는 자리에 있사오나, 아버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한계권내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저희가 그것을 알면 알수록 불쌍하신 분이 아버지이시요, 저희들이 불쌍하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불쌍한 자리에 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또 수난길을 극복하는 노정에서, 치열한 투쟁의 전선에서 책임을 지신 분도 아버지이심을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은 저희들이 알고 있는 비참 정도가 아니요, 극복 정도가 아니요, 투쟁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인간대 인간을 중심삼고 생활무대를 삼고 있으되, 영계가 있는지 없는지 감지하지 못할 때가 많사옵니다. 아버지가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와 더불어 깊이 속삭일 수 있는 심정의 인연을 찾지 못할 때가 많사옵니다. 아버지가 그리워 심정이 사무친 자리에서 흠모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아버지의 품에 품기고자 하는 느낌 가운데서 자기 일신의 인식을 초월할 때가 없는 자신인 것을 생각할 적마다, 이러한 아들을 찾아 나오시는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님께서 저희를 대신하여 얼마나 사모하고 얼마나 간곡한 심정을 기울이고 계신가를 저희들은 미처 몰랐사오니, 알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반면에 사탄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말로는 했지만, 체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좋은 것을 바라보고 선한 말과 선한 행동을 하고자 할 때에, 그 길을 막고자 하는 원수가 있는 것이요, 복병하여 있다가 저희가 가고자 하는 길을 막고 저희를 끌고 가려 하는 원수가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최후의 담판을 지어야 하고, 혈투전을 해야 할 행로를 거치지 않고는 아버지의 품에 돌아갈 수 없는 비운의 역사를 거쳐 태어난 저희들인 것을 깨달으면서도 저의 앞을 막고 있는 원수와 어느 한때에 판가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을 저희들은 잊어버린 때가 많사옵니다. 내 개인을 두고 그러해야 되겠고, 가정을 두고, 종족을 두고, 민족을 두고, 국가와 세계를 두고 그러해야 되겠습니다. 공중권세 이하의 이 지상 세계권내에 머물러 있는 악의 세력을 타파하고 가야 할 수난 도상에 서 있는 자신들임을 다시 한 번 자인하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가 안 계신다면 불쌍한 무리이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신다면 몸 둘 곳을 찾을 수 없는 무리이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신다면 살겠다는 그 마음조차 허무한 마음이 되고 만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무지한 저희를 둘러싸고 있는 원수의 세계적 권한을 누가 책임지겠느냐 할 때에, 타락한 저희들은 책임질 수 없음을 자인하게 되옵니다. 그러면 저를 이 환경에서 구해 줄 사람이 누구냐 할 때에, 저를 낳아 준 부모도 아니요, 형제도 아니요, 스승도 아니요, 나라의 주권자도 아닌 것을 생각하옵니다.
땅과 평면지상에 있는 세계를 향하여 바라볼 수 있는 것이 휘하에는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로지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아버지의 흠모의 심정을 대신하여,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간곡한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심각한 심정의 고독을 느끼며 한숨과 더불어 `아버지시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 모습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절규하는 것 외에는 원수권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활을 통해 알게 되옵니다.
저희는 생활 가운데에서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친구인 줄 알았고, 어제 모시고 살던 부모가 오늘의 부모인 줄 알았고, 어제의 인연을 따라 살던 부부와 자식이 본연의 부부와 자식인 줄로 알았사오나 아니었습니다. 어제의 부모가 오늘의 원수요, 어제의 처자가 오늘의 원수요, 어제 사랑했던 나라가 오늘의 원수가 되지 않고서는 이 길을 타개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각지 못할 때가 많사옵니다. 왜냐하면 이 세계가 사탄의 혈통의 인연을 가진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끊으려면 먼 자리에서 끊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부터, 내 피살에서부터, 내 심정에서부터 끊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는 말이 사실 그대로인 것을 느끼옵니다.
부모를 잡아 제사를 드려야 할 길이 이 길이요, 처자를 잡아 제사를 그려야 할 길이 이 길이요, 사랑하는 것을 전부 다 바치고 나서 하늘을 위해 자신까지도 죽음의 자리에 내놓지 않으면 안 될 길이 이 길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과연 이 길을 가겠노라고 다짐하고 실천하여 사망권을 제압하고 승리의 일로를 개척하는 길에서 개인은 가정을 희생시키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이요, 가정은 종족을 희생시키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나아가 종족은 외적인 민족을 희생시켜야 되겠고, 외적인 민족은 외적인 국가를 희생시켜야 되겠으며, 외적인 국가는 외적인 세계를 희생시켜야 된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이 가인 아벨의 원통한 투쟁의 행로였던 것을 생각할 적마다 이 심각한 사망권을 해방할 수 있는 직행 통로가 이 지구성의 누구를 통하여 개척될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보잘것없는 저희들 외에는 없다는 것을 진정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관념적으로 알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하늘땅을 대신하여, 만민을 대신하여 홀로 생사의 판가리를 짓겠다고 다짐하는 엄숙한 순간이 여기에 모인 자녀들에게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러한 자리로 몰아넣어야 되겠습니다. 세 가정을 대신하여 자기의 가정을 이끌고 사탄가정을 대하여 싸울 수 있는 판가리의 전쟁터가 이들에게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개인이 그러하고 가정이 그러하고 종족이 그러하고 민족이 그러하고 국가가 그러하고 세계가 그러하기 때문에, 저희들은 개인의 승리의 터전을 확대시켜야 되겠습니다. 가정의 승리적 터전을 넓혀서 종족 편성을 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마음과 몸이 하나된 가운데 이 민족의 운명을 걸고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남북으로 갈라진 이 비운의 국가를 붙안고 하늘 앞에 책임과 사명을 다하겠다고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이 자리가 저희들이 원해서 나온 자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불러 세우셔서 온 자리보다 저희가 자원해서 찾아온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 `이제 저희가 싸우러 가는 이 길을 당신이 승리의 길로 맡으시옵소서'라고 보고하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가야 할 것이 타락한 인류가, 타락한 인간의 후손된 무리들이 가야 할 길인데도 불구하고 매양 아버지께서 선두에 서서 수고하는 놀음을 지금까지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비통한 사실이요, 저희에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승리의 한날을 맞기게 하기 위해 용허할 수 없는 하나의 사실인 것을 자각하는 무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남북한의 정상(情狀)을 아시고, 통일가와 기성교회의 한계선을 아시옵니다. 아버지께서 통일교회를 기점으로 해서 기성교회와 대한민국과 이북을 중심삼고 사위(四位)를 일주하시지 않으면 이 나라는 구원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제물의 길이요, 투쟁의 길이요, 원수들이 참소하는 길임을 아옵니다. 이 제물된 길은 그 무엇을 합할 수 없는 길이기 대문에 그냥 그대로 몽땅 주어야만 되겠습니다. 나에게 사탄이 참소할 여건이 있어서, 이것을 쪼개는 자리에 서 가지고는 이 길을 가지 못한다는 것을 저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완성시대를 바라보는 이때에 몽땅 아버지 앞에 드려지는 아들이 되지 않고는 기성교회와 연락지을 수 없고, 그 아들이 서 있는 자리가 하늘적인 탕감의 조건을 중심삼고 승리의 기반을 닦은 자리가 아니고는 가인적인 교단을 굴복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희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아버지편에 서서 공고한 터전을 다지기 위해 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수고해 나왔습니다. 그것은 핍박의 길이요 수난의 길이었지만, 그 수난이 문제가 아니옵니다. 수난길이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가중된 수난의 길이 민족을 거치고 세계를 거쳐 나가는 데에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지금까지의 행로는 저희가 미래에 더 큰 전쟁 마당에 나갈 수 있는 용사가 되기 위한 훈련시대의 노정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더듬어 살펴보게 될 때, 출발하던 때보다도 결실할 때가 더 심각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누구든지 출발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망의 자리에서 출발한 인간이라면 사망의 세계 이상으로 심각하지 않고서는 생명의 결과를 가져 올 수 없다는 것이 필연적인 결론이 아니겠습니까? 사망의 세계에서 출발한 저희들은, 생명의 세계를 기원하며 출발한 저희들은 사망의 세계를 떼어 놓기 위하여 생명의 세계가 사탄의 세계보다 가중되게 하기 위한 분별의 투쟁과 싸움을 하여야 할 입장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저희들, 과연 아버지가 그리워서 눈물이 앞설 수 있는 개개인이 되었으며, 통일가의 번성을 위해 자기 일신을 스스로 제물 삼겠다고 허덕이는 생활을 하고 있는 무리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오고 가는 인생 행로에 있어서, 먹고 자고 하는 일상 생활환경에 있어서, 좋고 나쁘고 하는 감정생활에 있어서 좋은 것은 아버지로 말미암아 좋고 나쁜 것도 아버지로 말미암아 나쁘고, 오고 가는 것도, 먹고 사는 것도, 인생살이 일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되어져야 하옵니다. 아버지를 빼놓고는 내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자리에서 살아야 할 것이 우리의 일생인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너무나도 나를 중심삼고 소유권이 컸던 것을 잘 아는 바입니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매양 아버지의 채찍을 맞아야 할 자식이라는 것을 느끼며 당신의 동정이라도 받을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이제 아버지께서 직접 나타나시옵소서.
예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모아 놓고 그들을 대표할 수 있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물음을 두 번 세 번 거듭하실 때, 베드로가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했던 그 자리는 예수님이 묻는 도수를 가함에 따라 베드로에게 자신이 강한 입장에 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부족함을 자책시키고 새로운 결심을 다짐시키려는 타이름의 자리였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제 저희 자신들에게 아버지께서 그렇게 묻게 될 때에, `제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뜻을 사랑하는 것을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그것을 묻고 묻고 또 묻게 될 때에 자신 있게 `예, 당신을 사랑하고 있나이다'라고 대답하며, 그 물음 앞에 눈물을 흘리면서 과거에 부족했던 나 자신을 생각하고 왜 저렇게 물으실까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섰다면 `이 모습으로 아들의 도리를 다할 사람이 되겠습니다' 해야 되겠고, 혹은 나 자신이 미급하기에 완성을 바라보시며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께서 묻게 될 때,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완성을 바라고 세우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를 부르시어서 `너는 하늘의 아들로서 세계를 대표하여 책임을 다하여 달라'고 부탁하실 때,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의 명령을 바라는 아들의 입장에서 그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이제야 성취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천만번 죽음이 엇갈리더라도, 제물로 희생되는 행각의 노정이 연결되어 있더라도 아들의 운명을 갖지 못한 자신이 가야 할 필연적인 운명길로 알고 가야 되겠습니다.
쓰러지는 자리에서도 아버지의 동정의 손길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탄의 조롱을 받지 않기 위해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아버지여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아버지께서 협조하시지 않아도 제 개체는 사탄의 인연을 넘을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다. 어떠한 수난이 있더라도 당신의 협조를 필요로 하지 않고, 그곳을 저 스스로의 책임권을 알고 사수하겠습니다'라고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동정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늘을 위로할 수 있는 아들이 되겠다고 몸부림친다면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운명에 이르렀다 할지라도 그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아옵니다. 그런 아들이 있거들랑, 그가 쓰러진 자리가 원수의 진영이라 할지라도 아버지께서 서슴지 않고 달려와 위로하시게 될 때,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승리의 권으로 남아진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의 손이 얼마나 아름다웠고, 저희의 이목구비가 얼마나 아름다웠고, 저희의 오관을 통하여 느껴지는 감각이 얼마나 아름다웠고, 마음으로 그리는 심정의 인연을 따르고자 하였던 것이 얼마나 아름다웠사옵니까? 질식할 것밖에 없는 과거지사, 간사하고 추악한 자기 자신이 어떠한 폭탄이 있다면 일시에 폭발시켜 버려도 아깝지 않을 증오의 자체임을 발견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를 생각해 볼 때, 감히 거룩하신 주체의 손길 앞에 성스럽게 바쳐질 수 없는 모습들이옵니다.
아버지께서 이와 같은 저희들을 찾아오시다니, 이와 같은 못난 것들을 바라보시다니, 이와 같은 수치의 대상을 그리워하시다니…. 그것이 웬 은사이옵니까?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자신을 증오해야 되고, 당신 앞에 부름을 받을 수 없는 자신을 무시해야 된다는 것을 심정적으로 느끼고 필연적인 운명으로 알면서 그런 가운데서 감사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 분별된 자리에 왜 저를 세우시어서 하늘의 소유로 하시고 하늘의 선물을 남기고자 하셨사옵니까? 하오나 저희들은 아들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서 그 얼마나 많은 날들과 세월을 지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과연 심각한 문제이옵니다. 여기 서 있는 이 자식도, 아버지, 당신의 고통을 알고,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슬퍼하신 아버지이심을 알았기 때문에, 저희들이 지금까지 책임을 지고 나온다고 하면서도, 오십년, 반세기의 연령을 지내고 나서도 이렇게 한 나라 앞에 버젓한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에, 아버지. 책임 못한 이 자식은 잠시도 편히 쉴 수가 없습니다. 영광의 연한으로서 당신의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한때를 흠모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응당히 당하여야 할 시련무대를 스스로 찾아가서 시련을 받지 않으면 이 나라를 수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행복의 길이 내 앞에 오기를 바라는 것보다도 민족의 행복의 길을 어떻게 개척할 것이냐 하는 것이 하늘이 바라는 것이요, 하늘의 책임을 짊어진 자가 가야 할 길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자기의 행복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 복귀의 길인 것을 다시 느끼게 되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그래도 통일가에 있어서 선두에 섰다는 무리요, 통일교회의 식구를 대표했다는 무리이옵니다.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아들이 있으면 여기 서 있는 이 자식이 받은 축복의 몇만 배라도 사랑해 주고자 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요, 이 자식이 받은 마음인 것을 이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극히 사랑하는 종들을 죽을 입장에 내몰았던 아버지,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몰았던 아버지, 그 아들이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할 때에 대답도 못 하고 눈을 감고, 흑암을 대상으로 맞이하여 바라보는 억울하셨던 아버지이심을 아옵니다. 그러한 대가를 치러 나오신 아버지이시기에 끝날에 그 이상의 책임을 할 수 있는 종들을 바라셨던 것이요, 그 이상의 책임을 할 수 있는 아들을 바라신다는 것을 생각하오니, 여기 불러 모으신 자녀들에게 그 이상의 높은 책임을 맡겨주시옵소서.
생각하면 서러운 자식들이옵니다. 아침이 되면 저희가 수저를 들고 대하는 식탁이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식탁이 되어야 하는 것이요, 먹고 입는 그 모양이 아버지께서 소망을 주실 수 있는 모양이 되어야 할 것이요, 누워서 자는 그 자리가 자기 일신의 행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안식할 수 있는 보금자리요, 당신이 발판을 넓히기 위한 자리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야말로 심각한 생명의 길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은 교회를 수습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무리이옵니다. 교회를 키워서 아버지 앞에 바쳐야 할 책임을 지고도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무리이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내적인 세계를 대신하여 새로운 하나의 당신의 형상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를 사랑하옵니다. 하오니 하늘편에 서서 사탄과 대결할 아버지의 아들의 권위를 가지고 딸의 권위를 가지고 이 자리에 임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다시 한 번 반성의 기회를 주시옵소서.
이번 기간에 이렇게 모인 저희들은 승공이념과 사상을 무장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재 비판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의 소원을 등에 지고, 아버지의 희망을 앞에 놓고, 아버지의 승리적 제물의 기반을 밑에 깔고 이 나라를 업고 책임을 다하여야 할 입장인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앞으로 국가를 대신해야 하는 저희들은 저희들이 찾는 나라가 이 나라가 아닌 것을 알고, 저희들이 찾는 세계가 이 세계가 아닌 것을 압니다. 하오니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나라를 가리고 세계를 가릴 수 있는 책임을 하기 위해 이런 행로를 가고 있는 저희 자신들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하늘의 공의의 심판자와 같은 입장에서 선악을 분별하는 주체적인 사명을 다할 수 있게끔 아버지의 심정과 사정을 이어받기 위해 믿고 움직이는 무리가 되겠다고 전체를 새로이 각오할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겉으로 움직여 가지고 겉으로 결실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보다도 먼저 내적으로 공고한 정초석(定礎石)을 놓고 그 터전 위에 세워진 확고한 기반을 갖고 외적인 환경의 인연을 따라 나설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후의 기도 내용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아서 정리하지 못했음)
사람은 누구나 하늘이 바라는 터전을 갖지 못하게 되면 작아 보이는 것입니다. 불쌍해진다는 것입니다. 이때 불쌍하다는 기준은 천태만상으로 다를 것입니다. 어떠한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그에게는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형님이 있고, 동생이 있을 것입니다. 또 형제가 없고 부모가 없지만, 세상적으로는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물질이면 물질을 풍부히 갖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반면에 물질을 풍부히 갖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 기준은 각양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불쌍한 사람 중에 어떠한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이냐? 그 모든 것을 하나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형제도 없고 친척도 없거니와, 자기가 외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런 사람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불쌍한 자리에 처해 있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랄 때, 그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기뻐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았다고 해서 행복할 것이냐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자기를 불쌍하게 느끼게 했던 요건들을 전부 다 이루어 놓고, 그 가운데에서 자기가 갖고 싶었던 것들과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 자리를 찾기 전에는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행복하다 하더라도 그 행복은 무엇인가 모르게 일면의 불행의 여념에서 벗어날 수 없는 행복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조건적인 행복은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전체를 대표한 중심적인 행복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자기와 가까운 것을 놓고 볼 때도 그러한 불행의 자리도 있지만, 거기에 가중하여 그 개인을 중심삼은 나라마저 없다면,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입장에 있다면 그는 더더욱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고아일지라도 사회환경이 잘 갖추어져 가지고 자선사업을 하는 단체라도 있는 국가가 있다면 그 고아를 국가에서 맡아서 키워 줄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인데, 고아로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국가마저 없다 할 때 그 나라도 없는 고아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나라가 없고 종족이 없고 친척이 없고 부모가 없고 형제가 없고 혹은 가진 것이 없다면 이런 사람의 신세야말로 불쌍한 신세입니다. 그런 사람은 날 때도 불쌍한 사람이요, 자랄 때도 불쌍한 사람이요, 살 때도 불쌍한 사람이요, 죽어 가는 그날까지 승리라든가 영광이라든가 행복이라든가 하는 것을 자기 일신에 남길 수 없는 비통한 사람이 아니겠느냐. 이런 문제를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은 인연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인연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이요, 태어난 자리는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자기의 자주적인 입장이나 존재로서의 주체성을 세울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세웠다 하더라도, 그 자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무시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존재가치를 존중시하려 해도 그 가치가 설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불행한 사람 중에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런 사람에게 소원이 있다면 그 환경을 박차고 다른 세계에 가서 그 모든 것을 보충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느냐? 그런 길이 있다면 소망이라도 가질 수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부모를 찾을 수 있는 소원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잃어버린 형제를 찾을 수 있는 소원도, 잃어버린 국가를 찾을 수 있는 소원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그렇듯 고독한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만일 부모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있고, 형제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있고, 나라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에 죽음과 어떠한 환경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몇천만 번의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그 길을 갈 것입니다. 이왕에 비참한 고아의 몸이 되었으니, 그 몸을 몇백 번 투입시켜서라도 찾을 수 있는 길만 있다면, 그 길을 아니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죽더라도 그 길을 아니 갈 수 없다고 결의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여러분이 자고 깨고 하는 그 환경과 여러분이 대하고 있는 심정의 대상권을 바라볼 때, 과연 여러분이 지니고 있고 여러분의 울타리처럼 보이는 그것이 과연 여러분을 보장시켜 줄 수 있는 울타리가 되고 스스로 자인할 수 있는 그런 소망의 상대적 여건들이냐, 또 현재 여러분이 서 있는 그 자리가 과연 내일의 행복의 터전이 될 수 있는 그런 무엇이 되겠느냐를 생각해 볼 때, 자신의 습관성을 두고 볼 때는 그런 것 같고, 혹은 오늘날의 어떠한 관계와 인연을 통해서는 그런 것 같지만, 그 내용을 헤쳐 가지고 분석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이 슬픈 운명을 갖고 태어난 후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 인간이 있는 자리가 진정한 행복의 길이 못 된다는 것과 행복이 결실된 자리가 못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가까운 것이 행복의 요인이 되지 못하고, 그것이 도리어 내 자체가 가까이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다면, 그것이 내가 남겨야 할 것이요 내가 지녀야 할 것이라면 좋겠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닐 수 있는 것이 못 되고 남길 수 있는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니고 남길 수 있어야 되는데, 내가 오늘의 환경에서 새로운 환경을 가릴 수 있는 그 무엇이 될 수 없다면, 그 환경과 싸워야 합니다. 환경과 싸울 길이 있다면, 내가 지금 가진 환경을 넘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갖추어진 환경을 중심삼고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사람도 역시 불쌍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인간 조상이 타락했다는 것을 공인하는 자리에서 볼 때, 타락의 동기도 우리가 원치 않은 것이요, 타락의 과정도 우리가 필요로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의 결과도 우리가 상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태어나고 보니 이미 그러한 인연의 세계였고, 태어나고 보니 이미 죽은 존재였고, 태어나고 보니 이미 결과의 세계에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그 포위된 권(圈)을 두고 보니 세계권이 있고, 국가권이 있고, 민족권이 있고, 종족권이 있고, 가정권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또 그 가정권 가운데에는 내가 피살을 이어받은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으며, 내가 피살을 이어 놓은 처자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문제가 심각해요.
그러면 그것을 어디서부터 처리할 것이냐? 먼 곳에서부터 처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가 문제가 아니요, 국가가 문제가 아니요, 친척이 문제가 아닙니다. 제일 가까운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이러한 역사성을 뚫어 보고 그 최고의 귀일점과 최고의 출발점, 그 키 포인트가 되는 곳이 자신과 제일 가까운 곳이라는 것과 그것을 살려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절절히 느끼신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너도 죽도 나도 죽고 다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 쓸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남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죽을 바에는 어떤 자리에서 죽어야 할 것이냐? 그냥 이 자리에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는 데는 어떠한 자리에서 죽을 것이냐? 이 타락권을 벗어난 자리에서, 그 동기의 인연을 탈피한 자리에서, 그 결과권을 타파한 자리에서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이 있다면, 죽을 바에는 그것이라도 탈피한 자리에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자리는 어디일 것이냐? 천주를 창조한 창조주가 있다면 그 창조주가 경계선을 넘어서서 바라보는 자리일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선할 수 있는 본연의 기원이 되는 자리일 것이요, 죽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본연의 인연이 깃든 곳일 것입니다. 그곳은 창조주가 계시는 경계선 너머,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경계선 저 너머의 창조주가 바라는 터전, 악이 깃들지 않고 선의 기원이 출발할 수 있는 터전인 것입니다.
그 터전에 창조주와 하나된 선한 부모가 있을 것이요, 선한 자녀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거기에 선한 종족이 있을 것이요, 선한 나라가 있을 것이며 선한 세계가 있을 것입니다. 이 타락된 자리에서 혼자라도 그런 자리를 모색하고 싶어하는 현재 우리 인간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필시 그러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이 땅 위에 오셨던 분입니다. 그는 오되 혼자 온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되 혼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선한 인연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인연이 되어 태어났고, 하나님뿐만이 아니고 선한 부모의 인연을 통해 태어났던 것입니다. 선한 부모의 인연을 통해 선한 부부와 선한 자녀, 그리고 선한 종족과 선한 민족과 선한 세계를 대신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 절대적으로 자각할 수 있는 자리에 오셨던 분이 예수라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가 죽을 때는 어떤 자리에서 죽었어야 되느냐? 여기에서, 이 사망세계에서 죽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리에 가서 죽었어야 합니다. 그 자리를 살아서 못 가게 되면 죽어서라도 가야 합니다. 그 자리가 이 세계에서 찾아야 할 자리일진대, 이 세계에서 그 자리를 찾을 수 없거들랑 이 세계에 그러한 소원의 터전을 깔아 놓고 죽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죽을 때는 하나님이 눈물을 짓고, 본성의 세계와 인연된 종족이 있으면 그 종족이 눈물짓고, 나라가 눈물짓고 세계가 눈물짓는 자리에서 죽어야 한다. 종족의 기원을 확고히 세워 놓고 죽어야 되겠다'고 하는 마음을 갖고 이 세계에서 출발하는 자리가 있어야 될 것이 아니겠어요? 오늘 우리가 그런 자리를 닦아 놓지 못하게 되면, 인간 가운데서 누구라도 그런 자리를 닦기 위해 싸우고 몸부림치며 죽어 갈 수 있는 역사적인 내연이 남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싸우는 것은 무엇 때문에 싸우느냐? 그 세계 때문에, 그 나라 때문에, 그 종족 때문에, 그 가정 때문에, 그 부모 때문에, 그 형제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형제와 부모와 처자가, 혹은 그 종족, 민족, 국가가 나와 인연되어 있는 이 세계에 그냥 그대로 연결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우리는 사랑의 원수의 족속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가까운 것을 쳐 나가야 됩니다. 탕감원칙으로 보면 그것은 이미 빼앗긴 터전 가운데서 맺혀진 결과들인데, 그것을 하나님은 그냥 그대로 이어 주시려니 그런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빼앗겼으니 다시 빼앗아 오라는 것입니다. 빼앗아 오는 데는 그 세계를 대표한 자로서 빼앗아 오라는 것이요, 그 나라를 대표한 자로서 빼앗아 오라는 것이요, 그 종족을 대표한 자로서 빼앗아 오라는 것이요, 그 가정을 대표한 자로서 빼앗아 오라는 것입니다. 남편이자 가주(家主)요, 가주이자 종주(宗主)요, 종주이자 나라의 주권자요, 나라의 주권자이자 세계의 통치자로서 그러한 권한을 가지고 하나님 대신, 세계 대신, 나라 대신, 종족 대신, 가정 대신, 아들 대신, 전체를 대표하고 대신하는 자리에서 빼앗아 오라는 것입니다. 빼앗아 오는 데는 그 세계의 사상을 집어 넣고, 그 나라의 사상을 집어 넣고, 그 종족의 사상을 집어 넣고, 그 가정의 전통적 사상을 집어 넣고, 그 가정의 가장이면 가장, 아들이면 아들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집어 넣어 가지고, 이 세계와는 완전히 상관없는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아들딸을 빼앗아다가 자기의 아들딸로 만들었으니, 사탄세계의 아들딸을 빼앗아다가 색다른 하늘편의 아들딸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갖고 이 땅을 책임진 입장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싸움의 길을 개척해 나오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러한 사상을 가지고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대표자가 하나님이 첫번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겠어요?
그러면 어떤 것을 빼앗아 와야 하느냐? 빼앗아 오는 데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제일 사랑하는 것, 사탄이 자랑하는 것을 빼앗아 와야 합니다. 사탄이 자랑하는 것을 빼앗아 오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이 자랑하던 것으로 사탄을 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수갚는 방법입니다. 사탄의 아들을 데려다가 사탄을 치게 하는 것입니다. 원수의 자식을 데려다가 그 자식으로 하여금 원수를 갚게 하는 것입니다. 그 자식이 원수를 갚는 데는 그 원수가 자기의 아버지인 줄 알고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인 줄 모르고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락한 인류가 사탄의 아들딸로 태어난 근본을 탕감하기 위한 제1차적인 노정입니다. 이건 틀림없어요.
그러면 이 시대에 태어난 나 자신이 이 환경을 붙안고 그냥 연결될 수 있으면 좋을 것인데 이 환경을 어느누군가가 분별시켜 놓은 역사적인 터전이 없는 한 천국은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이 역사노정을 가려 가야 할 섭리의 출발 기점인 것을 아시기 때문에, 지금까지 빼앗아 오는 놀음을 해 나오시면서도 대번에 아들을 빼앗아 오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서 아들을 빼앗아 오려면, 에덴 동산에서 종을 잃어 버렸으니 잃어버린 그 종을 찾아 세우는 일부터 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통한 것은 양자라는 명사가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영계로 보면 중간영계와 같은 것입니다. 양자라는 것은 본래 없었습니다. 양자라는 것은 하나님이 오늘날 구원섭리라는 것을 들고 나오시는 데 있어서 다리를 놓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좋을 아들의 자리에 세워 대(代)를 잇게 하는 법은 없습니다. 종을 세워 대를 잇게 하면 거기에는 무엇인지 모르게 후회를 남기게 됩니다. 대를 잇는 데에는 종보다는 양자가 조금 나을 것이 아니냐,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종보다는 양자가 나아야 됩니다. 또 양자보다는 아들이 나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단계를 이루어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겠느냐? 종 중의 종이 아들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계통을 들고 나왔을 때에는 아들대신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기 때문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 아들 대신 죽음의 자리를 거쳐갔다 할진대는, 그의 제사를 아들의 제사와 같이 지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종이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과 같이 싸우는데 아들을 앞세우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싸우다가, 아들과 같이 싸우지만 그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중적인 싸움을 하는 마음을 갖고 싸우다가 아들보다 먼저 맞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그 부모가 자기 자식이 죽은 날 제사를 지내고 그날을 추모하게 될 때, 자기 자식의 제사만을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식의 제사를 지내기 전에 종의 제사상을 차려 놓고 같이 제사를 지낸다는 것입니다. 또 제사를 지낼 때는 그 종에게 `오늘은 너도 기념하는 날이다. 오늘은 너도 내 마음 앞에 잊혀질 수 없는 날이 아니냐'고 하며, 자기 아들과 같은 입장에 세워 놓고 아들 이상의 부모의 심정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종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온다면, 아들은 살아 오지 못하고 그 종이라도 살아 온다면 부모는 그 종을 세워서 양자로 책정할 것입니다. 그런 심정적 터전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양자의 자리로 올라가느냐 할 때, 아들보다 먼저 죽지 않고는 못 올라갑니다. 종에서 양자로, 아들을 위해서 진짜로 죽어야 아들이 없는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들 대신 대를 이을 수 있는 중간 계층을 찾아 나서게 될 때는 양자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양자의 종자를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아들이 없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종 가운데에서 찾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양자라는 말은 심정적으로 아들을 대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복귀의 노정에서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선두에서 싸우고, 보다 가치 있는 중심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기가 깎이고, 자기가 희생되더라도 중심을 책임질 수 있는 이중적 투쟁의 보호권을 가지고 생명을 바치는 데서만이 복귀의 운명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여러분이 성경 역사를 두고 보면 잘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 있어서 한 나라의 주권자가 되는 것도 그렇습니다. 밖으로는 원수들을 대해 싸우고 안으로는 백성을 위해 싸우며, 죽을 고비를 넘어가는 것을 당연한 생애의 노정으로 알고 싸워 나가 가지고, 죽지 않고 남아지게 되는 그 자리가 나라가 망하지 않는 자리가 되면 그는 그 나라의 주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틀림없다구요.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타락한 세계라 할지라도 그러한 터전을 갖고 나오면…. 하나님이 찾아 나오는 복귀노정이 그러함으로 말미암아 상대적 세계에서도 그런 내용을 갖추고 나올 때는, 반드시 중심자가 되고 고차적인 권위의 자리를 차지하는 데 아무런 이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복귀의 노정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양자는 직계의 아들과 다른 것입니다. 양자는 만약 직계 아들이 오게 되면, 밤이나 낮이나 어느 때나 서슴지 않고 자기의 모든 전체를…. 아기인 직계 아들이 태어나게 되더라도 자기의 모든 소유물을 직계 아들에게 갖다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소유물이 자기 것이 아니거든요. 그렇잖아요? 양자의 입장에 서 가지고도, 양자로 책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직계의 아들이 태어나게 되었을 때에 `요놈의 자식이 왜 태어났노?' 이러면 안됩니다. 이것은 사탄의 근성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을 때 천사장이 그 아담을 보고 좋아해야 하는 것입니다. 좋아해야 할 텐데 `왜 태어났노?' 이랬다가는…. 양자는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양자는 아들을 보호해야 되는 것입니다. 직계 아들이 복중에 있을 때에도 `아이구 안 태어났으면 좋겠는데…'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부모로 모시지만, 그 양부모가 나를 맞음으로써 심정과 뼛골에 사무치게끔 할 수 있는 행복의 자리요 희망의 결실체로서 바라볼 수 있겠느냐?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수 없는 거라고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봐도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자들은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나 말고 직계 아들을 보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러한 인연의 도리를 남기기 위해, 양자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었건 유대교는 하늘을 향해 `아들을 보내 주시옵소서' 하고 바란 것입니다. 그 아들이 오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 우리 모두 영접할 것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 나라에 어서 오소서 하고 간구했던 것입니다.
양자는 아들이 태어난 줄을 알았다면, 아들이 왔다는 것을 알았거들랑, 소문만 듣고도 달려갈 수 있는 마음에 언제나 사무쳐야 됩니다. 아들이 왔다는 것을 틀림없이 알았으면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도 서슴지 않고…. 그것이 유대교와 이스라엘의 선민이 해야 할 책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그러한 분이 지상에 태어나게 될 때는 양자가 직계 아들의 인연을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오늘 우리 원리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가인 아벨의 문제입니다.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가인 아벨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분은 아버지로부터 받으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구한테 받으러 오느냐? 양자에게서 받으려고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수 천년 동안 수고하신 것이 뭐냐 하면 양자권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준비하신 이스라엘권, 양자들은 전부 다 내가 복받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복받겠다고 하는 것은 망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복받겠다고 하는 패는 망하겠다는 패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복을 받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갖고 있는 복을 오시는 주님 앞에 넘겨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이어받아 해야 할 책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유대교는 그들의 자리를 그냥 그대로 사수하려고 야단했고 이스라엘 나라도 그냥 그대로 사수하려고 야단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예수 앞에 사탄 세계가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양자의 권을 사탄세계가 막고 있으니 다시 빼앗아 와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 앞에….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 앞에, 즉 양자에게 그 축복을 넘겨 맡긴 것이 한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이라는 거예요. 요놈의 자식들…. 그래서 그들이 2천년동안 수많은 민족의 총칼에 쓰러지고 말굽에 짓밟힌 역사적인 줄거리를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비사가 아니라 사실이예요.
그러다가 비로소 1948년을 기해서 이스라엘 국가가 독립을 했는데, 독립을 했다 하더라도 자주적인 독립을 한 것이 아닙니다. 전쟁 마당에서 독립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역사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국민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일 것이냐? 이제부터 다시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계의 부를 가진, 세계의 권한을 가진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스라엘은 그 후손을 중심삼고 해원성사의 때를 못 갖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외적인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국제정세를 중심삼고 외적인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외적인 경제권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물질 축복이예요. 그래서 지금 외적인 세계의 권세를 가진 자들이 대개, 세계적인 책임자들 가운데 3분의 2가 유대 계통의 핏줄을 받고 태어난 자손이라는 거예요. 역사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떡 버티고 나가다가는 큰일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되어 가지고 뭘해야 되느냐? 아들이 상속권을 찾으려 할 때에 반대하는 원수와 싸우기 위해 그 나라와 교회가 몽땅 동원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동원되는 데는 어떻게 동원되어야 하느냐? 오시는 아들을 위해 동원되는 것입니다. 아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자리가 있거든, 자기가 피해를 입으면서라도 내적으로 그 아들을 보호하고 외적으로 투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때 싸우는 것은 주기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달라요. 옮겨 주기 위해서 싸우는 거예요. 옛날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옮겨 주기 위해서, 옮겨 주는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 싸우는 패가 가인인 동시에 양자권에 있는 패입니다.
옛날 종으로서 싸운 때는, 즉 종에서 양자가 되기 위해 싸울 때의 목적은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입장이 달라졌습니다. 지금 때는 양자가 아들을 위하여 주기 위한 싸움을 하는 때입니다.
그러면 종은 어떤 자리에 있는 것이냐? 종과 양자가 다른 것은 무엇이냐? 종은 죽더라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지만, 양자는 자연히 받았기 때문에 죽더라도 옮겨 주어야 됩니다. 다르다구요. 어느 쪽이 낫느냐면 그래도 양자가 종보다 낫습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싸우고 유대교가 싸우고 기독교가 싸우는데, 싸우는 패가 복을 받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닙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예수 믿고 천당가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믿는다는 패들의 사상이라구요. 그것은 끝날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독교는 다 망한다구요.
본질적인 원칙을 따져 볼 때에, 양자는 이미 받았기 때문에 줘야 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줘야 돼요. 자기 생명도 아들 앞에 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믿는다고 해야 될 게 아녜요?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의 신앙은 뭐냐 하면,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는 거예요. 이거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의 뜻을 이루게 해줘 가지고 예수가 기뻐한 후에 그가 나를 기쁘게 해주면 나도 그때 기뻐하겠다는 게 아니예요.
로마제국을 대신하는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권을 대해 가지고 생사의 결단을…. 천만 명이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가 죽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그 길을 막기 위해서 싸워야 했습니다. 주기 위해서 싸우는 자리에 섰더라면, 양자가 만약 아들에게 완전히 다 주었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다 주었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그 아들이 쫓아낼 것이냐? 결국 양자가 아들에게 다 주었다고 해도 그것이 다 옛날의 아들의 것이기 때문에, 평면적으로 볼 때 아들이 받긴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되돌려 받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물론 양자가 줘서 받긴 받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들의 것이라는 거예요.
그렇지만 아들이 양자에게 `이것을 관리하기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느냐? 개인이 희생되고, 가정이 희생되고, 종족이 희생되고, 민족이 희생되고, 국가와 세계가 동원되어 희생되면서 이것을 이렇게 관리해 가지고 나에게 넘겨 준 은사를 무엇으로 갚아야 하느냐?'라고 할 것입니다. 아들이 그것을 모르겠어요? 안다는 거예요. 그러니 `너하고 나하고 같이 살자. 네가 북쪽에 있거든 나는 남쪽에 있고, 네가 동쪽에 있거든 나는 서쪽에 있겠다'고 할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원수권내에서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편 끝에 원수가 있을 텐데 하나님이 내 편에 계시기 때문에, 사탄은 네 편 뒤에 있을 것이 아니냐.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하나님과 사탄이 같이 있을 수는 없거든요. 그렇잖아요? 사람을 놓고 서는 데는 내 편 네 편권에 서는 것입니다. 만일에 양자가 없었다면 아들 뒤에 설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양자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양자 나라가 있다면 양자 나라 끝에 사탄이가 선다는 것입니다. 또한 양자 세계가 있다면 그 끝에 사탄이는 설 것입니다. 그것이 가인의 입장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무슨 일을 하자는 단체냐? 줘 가지고 후회하는 것이냐? 주어 가지고 고맙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시게 될 때 이들을 갈라놓을래야 갈라놓으실 수 없는 것입니다. 갈라놓게 되면 아들이 죽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생사의 문제를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아들만 데려갈 수 없는 것입니다. 좋게 하더라도 아들만 좋게 할 수 없다구요. 살리더라도 아들만 살려 줄 수 없는 것이요, 죽이는 데도 아들만 죽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인연이 설정되어야 할 원칙적인 기대가 이스라엘권이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죽을 때 72문도도…. 그렇지요? 예수가 죽게 될 때 이스라엘을 대표한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열두 제자도 죽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가 죽은 후 열두 제자는 욕살박살 다 죽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남았습니다. 사랑을 대표한 요한만 남고 다 학살당한 거예요. 그렇지요? 그러면 왜 사랑의 대표인 요한만 남았느냐? 사랑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마저 없어지면 기독교는 남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믿음의 조상이요 야고보는 소망의 조상이요 요한은 사랑의 조상이지만, 그 중에 예수 앞에 사랑의 제자였던 요한만이 자기의 생애를 다 마치고 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를 거쳐왔어요.
이처럼 둘이 깨져 나갔기 때문에 다시 이것을 회복해야 됩니다. 예수 앞에 반기를 드는 유대교를 바라볼 때, 예수는 홀로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종의 역사도 깨져 나갔고 양자의 역사도 깨져 나갔습니다. 그러니까 종의 역사의 터전을 누가 닦느냐? 이것을 닦기 위해서 베드로 야고보 등 발판을 만들어 봤지만 그들이 제멋대로 놀아나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제멋대로 놀아난 터전 위에 하나님의 영원한 주초(柱礎)를 놓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할수없이 예수 자신이 그 놀음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놀음을 하려고 했는데, 그것을 하라고 놔 두지 않고 죽여 버렸습니다. 죽여 버렸지만, 예수는 그런 사상을 가지고 죽어 간 것입니다. `내가 죽되 종의 전통을 대표한 자리에서, 양자의 전통을 대표한 자리에서, 또한 아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것을 대표한 자리에서 죽어 가야 되겠다. 뿐만 아니라 부모를 대표한 자리에서, 하나의 주권자를 대표한 자리에서, 세계의 통치자를 대표한 자리에서 죽어 가야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전체를 대표한 자리에서 심정적인 일치점을 귀결시켜 가지고, 이 땅가운데서 죽지만 이 땅을 벗어난 입장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다는 그 결정을 지어 놓고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재출발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가 십자가에 나선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지요? 이것이 예수가 십자가에 나선 이유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전부다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를, 양자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순교의 종교가 된 것입니다. 그거 알겠지요?
이렇게 수천년 동안, 기독교는 지금까지 예수의 사상을 중심삼고 싸우면서 따라 나온 것입니다. 예수의 사상은 무조건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희생하라. 희생을 하는데 조건적인 희생을 할 수 있어요? 무조건적인 희생의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종의 자리, 양자의 자리, 아들의 자리를 거쳐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조건을 세울 때는 양자의 자리로 갈 수 있는 조건을 세우려고 하지, 누가 종의 자리로 가는 조건을 세우려고 하나요? 또 아들의 자리로 나갈 수 있는 조건을 세우려고 하지, 누가 양자의 자리로 나가는 조건을 세우려고 하겠어요? 그러니까 무조건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내려가라는 것은 밑바닥, 종의 자리에서부터 터전을 닦아 세우라는 것입니다. 조건을 세우기 위한 복종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죽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볼 때, 이 답변이…. 예수가 한 말의 표준이 무엇이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베드로와 야고보 등, 제자들을 대해 수건을 동여매고 발을 씻기는 등 종 노릇을 했던 것입니다. `내가 섬김을 받으러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했으니 그게 종 아니예요? 그 기반이 안 닦아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칙은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을 위해 죽는다는 마음, 그 마음만 철저하게 개인적이요, 가정적이요, 종족적이요, 민족적이요, 세계적이요, 기독교권이 되면, 오시는 주님 앞에 예수가 올 때 반역하던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민족은 안 될 것입니다. 현재에 남겨야 할 터전도 그런 자리면 안 될것이요, 미래에 있어서도 예수님을 쫓아낸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권과 같은 터전을 만들어 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사상이 일념화하고 일치화하고 세계화한 기독교권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희생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희생하는 데는 하나님한테만 희생하면 돼요? 무조건 희생하는 것이 하나님한테만 희생하는 거예요? 사탄한테도 희생하는 겁니다. 희생당하는 거예요. 그러한 사상의 모체가 기독교라구요. 만일 기독교 자체가 그러한 자세만 가졌으면 앞으로 오시는 주님 앞에는 핍박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기독교 자체가 망하고자 하면 기독교는 발전하는 것이요, 기독교 자체가 흥하고자 하면 기독교는 망하는 것입니다. 자주적인 입장에 선 기독교는 망하는 것이요, 순응적인 입장에 선 기독교는 흥하는 것입니다. 또 봉사적인 입장에 선 기독교는 흥하는 것이요, 대접받고자 하는 입장에 선 기독교는 망하는 것입니다. 틀림없어요. 이 원칙에 따라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뭐라고 했느냐면, `네 집안식구가 원수다'고 했지요. 왜 집안 식구가 원수냐? 자, 보라구요. 주님은 세계시대에 오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건 가정시대에 살려고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시대나 국가시대에서 살려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세계시대에서 살려고 오시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분을 맞으려면 가정시대에서 세계시대까지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주님이 국가시대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구요. 이스라엘 국가의 기준을 중심삼고 예수가 와서 실패했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더 큰 세계적인 기대를 중심삼고 복귀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영적으로 승리한 그 국가기준을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계시대까지 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니 기독교가 집시의 종교가 된 것입니다. 방랑의 종교라구요. 정착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착을 요구하지 않는 거라구요. 보따리를 싸 가지고 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세계까지 가려면 국경을 몇 개 넘어야 되느냐? 섭리역사가 오늘날 이 세계까지 나오는 동안 수많은 사탄 국가와 싸우고 수많은 국경을 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국경을 넘어야 됩니다. 아브라함 같은 양반은 몇 나라의 국경을 넘나들었습니다. 그처럼 국경을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야 됩니다. 죽음의 위협을 받더라도 가야 되는 거예요. 그러려니 자리를 잡고 살아서 되겠어요? 죽을 각오를 하고 가야지 가만히 있어 가지고 되겠어요? 길을 떠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길을 떠나는 데는 그 길이 잘사는 길인가요? 그 길은 제일 가까운 사람이 원수가 되는 길입니다. 여편네가 원수이고, 자식이 원수이고, 친척이 원수입니다. 그들을 짜르고 나서야 돼요.
그래서 아브라함도 갈대아 우르를 떠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환경을 쳐라. 환경을 잘라라. 이것을 못 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이것을 못 하는 사람은 전통적 사상의 길 앞에 배치되는 사람이예요. 이것은 선생님 말이 아니고 사실이 그렇다구요.
아브라함이 떠나자고 할 때 어서 가자고 했던 사라 같은 사람을 생각해 보세요.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바로 앞에서는 남매 사이라고 하자고 했을 때 사라가 어떻게 했겠어요? `이놈의 영감, 그렇게 고생을 시켜서 끌어내더니만 이제는 여편네는 그만두고 오빠라고 부르라네' 이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길을 가다가 소나기가 와도 그냥 갔을 것입니다. 집시의 무리가 된 그들에게 누가 밥 한 그릇이라도 갖다 주었겠어요? 오늘은 이쪽으로 내일은 저쪽으로 돌아다니는 그런 생활을 했는데, 그렇게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사라는 아브라함을 대해 `이놈의 영감, 밤에 보나 낮에 보나 아침에 보나 재수없는 영감이 됐어. 그런 주제에 또 남편인 자기를 오빠라고 부르라니…' 이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임자네 여편네들 같으면 다 도망쳤을 거라구요.
그러한 수난을 거쳐 나오는 가운데서도 사라는 아브라함의 소망의 길과 일치될 수 있어서, 아무런 상충도 않고 하나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상적인 주체가 있을지라도 이상적인 상대가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상적인 주체인 아브라함 앞에 이상적인 상대가 나왔는데 그 이상적인 상대를 치려고 할 때는, 완전한 이상적인 주체 앞에 완전한 이상적인 상대형이 있는데 이것을 치려 할 때는 하나님께서 `야 이놈!'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바로의 궁중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바로의 행동을 막으시게 됐느냐? 절대적인 중심 주체 앞에 있는 절대적인 상대는 보호해 주어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바로가 접근하려 할 때 `이놈!'하며 제지시켰던 것입니다. 이상적인 남편을 갖고 있으면 손해보는 게 아니예요. 거기에 관계되어 있는 만큼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관계되어 있다 하면 빼앗아 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시합을 해서 지는 날에는 지금까지 닦아 놓은 승리의 기준도 빼앗기는 거예요. 빼앗겨요, 안 빼앗겨요? 그냥 있을 수 없습니다. 지게 되면 내려가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바로도 지게 되면 내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가 갖고 있던 것을 다 가져 가야 된다구요. 그래 가지고 그가 좋아하려다가 섭섭함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하늘은 길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 지금까지 나온 걸 생각해 보면 집안식구가 원수예요, 원수 아니예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내가 옛날에 삼팔선을 넘어올 때, 다리 부러진 큰 녀석을 업고 나오면서 `이것이 집시의 길이구나. 오늘은 이 골짜기를 지나 저 산정을 넘어야 되는 것이다. 넘기 싫다고 안 넘으면 망한다. 귀찮다고 해서 버리고 갈 수 없다. 죽어도 같이 죽어야 된다' 그런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6.25 동란 때 삼팔선을 넘어 피난 길 가던 그것…. 만약에 우리가 피난을 가야 한다면, 공산당에게 밀려 통일교회 패가 피난을 가야 한다면 어디로 갈 것이냐? 선생님은 그것도 생각하고 있는 거라구요. 만약에 공산당이 우세해서 우리를 치는 날에는 우리 통일교회 패는 어디로 피난을 갈 것이냐, 그것 생각해 봤어요? 뭐 남한내에서 어디라도 가지. 저기 설악산으로 가지…. 그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어디로 갈 거예요? 뭐 무주 구천동으로? 뻔하다구요.
여러분, 보라구요. 한국을 중심삼고 사탄세계의 소생 장성 완성권이 다 달라붙어 있습니다. 김일성이가 있는 북한이 있지요? 소련이 있지요? 중공이 있지요? 세 원수가 다 우리 한국에 붙어 있다구요. 또, 중공을 중심삼고 아시아 전역이 연결되어 있고, 지금은 인도까지 소련과 손을 잡고 불가침 조약을 맺고 나오는 판입니다. 이렇게 공산권이 만들어져 있는데 어디로 피난 갈 거예요? 그거 생각해 봤어요?
만약 망하는 날에는 세계의 통일교인은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은 어디로 갈 것이냐? 미국에 가도 거기에 공산당이 있으면 있을 수 없는 것이요, 어떤 섬나라에 가 있더라도 통일교인이 거기에 살고 있는 줄을 알면 공산당들이 습격해 올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할 것이냐? 그것 심각한 문제라구요. 그런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이 뭐 여편네, 자식을…. 그런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미국도 우리들의 친구가 아니라구요.
그러니 집안식구가 원수예요. 원수예요, 친구예요? 떠나야 할 입장인데도, 판세는 이미 틀렸는데도, 빨리 보따리를 싸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선생님이여, 선생님이여, 그러지 마옵소서' 했을 때, 예수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한 말이 맞는 말이예요, 안 맞는 말이예요? 예수는 보따리를 싸매 가지고 문제를 해결짖기 위한 조약을 세우고 하나님 앞에 약속을 했는데, 베드로가 수작을 하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이놈아, 역사적인 원통한 사연을 안 네가 반역의 깃발을 들어? 이 때려잡을 녀석아'라고 했던 거예요. 예수의 그 마음을 알겠지요?
거기서부터 기독교는 세계적인 유랑의 노정을 출발한 것입니다. 로마가 들이치니까 살려면 도망을 가야지요. 그리하여 기독교는 세계적으로 퍼졌던 것입니다. 사탄은 그것을 때려잡으려고 자기 본바탕을 넓게 만들었지만, 기독교는 세계에 퍼지며 커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나라에 가 보게 되면, 지금도 기독교인이 13 퍼센트밖에 안 됩니다. 로마도 기독교 국가가 되었고, 세계의 다른 많은 나라도 기독교 국가가 되었지만 이스라엘 나라에는 아직까지 기독교인 13 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에는 아직까지 유대교가 갈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거예요. 지금도 그들은 `예수는 이단의 대표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법입니다. 또 내 집안 식구가 원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거기에 딱 부딪히는 거예요. 최후에 어떤 결론을 지어야 하느냐? 내가 아브라함보다 낫지 못하면 안 되는 것이요, 모세보다 낫지 못하면 안 되는 것이요 또한 노아보다 낫지 못하면 안 되는 거예요, 예수보다 낫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보다 나을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그걸 생각해 보라구요. 내가 세계를 몽땅 잡아 한꺼번에 제물 드릴 수 있는 자리에 서면 나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의 길입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가 하나님 앞에 어머니 아버지를 제물로 못 드렸고 처자를 제물로 못 드렸는데, 그걸 해야 되는 겁니다. 예수보다 나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 앞에 세계를 몽땅 제물로 바치는 길과 자기의 아들딸과 어머니 아버지를 절대 순종하는 자리에서 잡아 제물로 바치는 길, 이 두 길밖에 없습니다.
예수보다 나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처자와 부모를 따로따로가 아니라 한꺼번에 제단에 붙잡아 놓고…. 어머니와 아버지, 또 자기 아내와 아들까지, 나아가 자기 자신까지 뜻을 위해서 하늘 앞에 바쳐지기를 바라야 됩니다. `하나님이여, 저희가 뜻을 위해서 이렇게 제물로 바쳐지고자 합니다'라고 해야 됩니다. 바치는 데는 누가 바치느냐? 어머니 아버지를 잡고 아내를 잡고 그 다음에는 아들딸까지 잡아서 제물로 바치고 나중에는 어떻게 하느냐? 자기까지 제물로 바쳐야 됩니다. 제물은 오시는 주님의 길을 닦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어머니 아버지 자식을 모두 칼로 찔러서 제사지내 놓고 그 다음에는 자기까지도 예수의 해원성사를 위해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 제사는 오시는 주님이 하늘 앞에 드려야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 이상으로 드려야 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부모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의 부모를 칼로 찌르지 않았느냐, 하늘나라의 낭군을 칼로 찌르지 않았느냐, 하늘나라의 아들딸을 칼로 찌르지 않았느냐, 그것을 내 일생에서 탕감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찌를 수 있는 길을 자처하는 것이 하늘 앞에 죄지은 것을 탕감받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속죄의 길이 아니겠느냐….
`하늘의 원한을 알았기에 나는 쓰러지더라도 꼭 그 원한을 푼 자리에서 죽고 싶어서 나는 이렇게 가나니' 하면서 자기 배를 찌르려고 하면, 하나님은 `야 임마, 그래서 안 돼. 배를 찌르게 되면 큰일나지' 하실 것입니다. 사탄은 배를 찌르라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못하십니다. 왜? 땅 위에 양자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요, 땅 위에 종이 없으면 복귀의 길이 안 닦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기반이 없으면 아들이 제물을 바칠 수 없게 되므로 하나님은 그러한 자리에 선 사람을 붙들고 그러지 말라고 사정하시는 것입니다. 그 기원이 풀려야 복귀의 세계적 운세의 출발기반이 닦아지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오늘 이 길을 가는 선생님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브라함보다 나아야 됩니다. 자식을 잡아 제물로 드리고 아내 하나쯤 희생시키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요. 나 자신까지도 한칼에….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가 옥중에 찾아왔을 때도 `저 여편네' 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맞을 때가 많았어요. `내가 혈족을 중심삼고 눈물 흘리고 가슴 아플 수 있는 내용을 남겨서 뜻길을 가는 데 주저하게 만들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지니고 나온 거예요. 기가 막히지요? 우리 어머니는 나를 참으로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는 통일교회 사람들에게는 정성을 다해 옷도 해주고 내가 굶으면서라도 먹을 것을 주고 했지만, 어머니 아버지한테는 옷 한 벌 안 해주었습니다.
성진이 어머니가 성진이를 낳았을 때도 `목숨을 빼앗기겠으면 빼앗기고, 늑대가 물어 가겠으면 물어 가라. 내 손으로 찌르지 않고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얼마나 고맙겠느냐'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죽으면 안 되겠기에, 그런 길을 통해 가지고 탕감노정에서 가정을 버린 것입니다. 아벨의 가정을 살리기 위해선 가인의 가정을 먼저 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그 길을 가려 가기 위해 심각한 싸움을 해 나왔어요. 지금까지 뜻길을 찾아 나온 여러분들, 지금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기독교가 이 길을 반대하지 않고 우리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도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해방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해방시대. 알겠어요? 해방시대라는 거예요.
이때는 1945년도, 2차대전 직후의 해방시대와 같은 시대권입니다. 그때에 선생님이 기독교를 중심삼고 출발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때는 완충시대였습니다. 그 무엇도 제일 높다고 할 수 있는 때가 아니예요. 얼룩덜룩한 때라구요. 오늘날 민주세계도 그 무엇이 높다고 할 수 없습니다. 종교계도 지금 완충시대권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포화상태에 있어서 내려갈 수 있는 기운이 감도는 시기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해방기가 올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구요. 그때는 국가적인 해방기였지만, 이제는 세계적인 해방기라는 것입니다.
통일의 운세를 중심삼고 70년대에 탕감노정을 거치는 권내에서, 한국과 일본과 중국을 중심삼고 세계의 정상 국가들이 이마를 맞대고 부딪히는 것입니다.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 아니라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갈라지는 것입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공의 주은래를 만났는데, 더 좋아질 수 있는 세계의 길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국가들이 서로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중공이 그렇게 나왔기 때문에 소련과 중공이 더 가까워진 것이 아닙니다. 또, 북괴와 중공과 소련이 더 가까워진 것이 아닙니다. 외형적으로는 중공이나 소련이 군사동맹이니 뭐니 하고 있지만 가까워진 것이 아니라구요. 내용적으로는 점점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또 미국과 한국이 가까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워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일본과 미국이 가까워진 것이 아니라 전부 다 멀어진 것입니다. 서로가 가까이 가는데 내용적으로도 가까워지는 거예요? 더 멀어진다는 거예요.
이때를 중심삼고 통일교회는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런 때가 되면 될수록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일본에 있는 통일교회하고 중국에 있는 통일교회가 합해야 합니다. 그래서 1970년도부터 선생님은 일본의 간부들을 전부 인사이동을 했습니다. 전부 다 경제문제를 중심삼고 발령을 했습니다. 거기서 2차 7년노정의 반을 넘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이 1971년도이니까 7년노정에서 3년 반의 고비를 넘어서 가지고 움직이는 거예요. 이제 날이 새야 되는 거라구요.
우리가 `요이 땅!' 하고 출발해서 3년노정을 넘어서 4년노정에 접어들면 세계적으로 바람을 피우던 녀석들은 전부 모가지 짤리는 것입니다. 김일성도 갈 날이 멀지 않았고, 모택동도 갈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세계적인 뜻의 노정에 있어서, 뜻과 반대적인 입장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내가 높다 하는 녀석들은 모가지가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녀석들의 모가지를 잘라 버리고 쳐 버릴수록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하늘편이 머리를 들고 올라오는 때가 되는 것입니다. 제2의 해방이 필요할 때가 오는 거예요. 여기에서 제일 문제가 뭐냐? 남한의 삼팔선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그렇지요? 남한의 삼팔선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남북한의 삼팔선도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개인의 삼팔선, 몸과 마음의 삼팔선을 해결하지 못하면 가정의 삼팔선을 해결 못 시키는 것입니다. 가정의 삼팔선을 해결하기 전에 사회단체간의 삼팔선을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사회단체간의 삼팔선을 해결하기 전에는 민족의 삼팔선을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한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의 운세를 이어받을 수 있는 국가적 기반이 조성되면, 거기에서 국가 기반은 물론 민족 기반, 종족 기반, 가정 기반, 개인 기반이 한꺼번에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안 되었기에 오늘날 재탕감노정에서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그 싸움을 다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말만이 아닙니다. 사실 그렇게 된 거예요. 이것이 안 맞으면 통일교회 원리는 거짓말이 되고, 통일교회는 사기 단체가 되는 거예요.
이러면서 종을 불러 세우고 양자를 불러 세우고 아들을 찾아 나오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사탄보다 나은 자리에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사탄보다 못하면 안 돼요. 사탄보다 나아야 합니다. 사탄보다 나아야 하는 그 최고의 기준이 무엇이냐? 세계가 아닙니다. 물론 세계에는 백 개가 넘는 국가가 있지만 그 국가가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 국가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많은 국가 가운데 사탄이 제일 자랑할 수 있는 한 나라가 문제입니다. 사탄이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권이 뭐냐 하면 세계적 공산주의권입니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공산주의라는 사상을 중심삼고 그 체제 위에 형성된 한 국가가 문제입니다. 소련이 문제고 중공이 문제고 북괴가 문제입니다. 그 가운데 제일 문제가 어디냐? 제일 악랄한 북괴입니다. 때가 되면 사탄세계는 망할 운세에 놓이기 때문에 보따리 쌀 준비를 해야 됩니다. 도망을 간다면 어디로 갈 것이냐? 공산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딴 나라로 가야 됩니다. 민주세계의 끄트머리에 가 붙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련이나 중공에 민주화 경향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하늘편에서는 이념의 기반을 닦아 가지고 소생적 기반을 마련해 나오는데, 여기에 비례해 가지고 상반되는 결과의 세계적인 움직임이 벌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일성이와 통일교회가 맞서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이 사상적으로 맞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상적 기준에 있어서 이념이 우세한 입장에서 나왔지만, 앞으로 점점 대주관권을 중심한 민족적 사상체제를 강화할 수 있는 시대만 되면 그것이 올라와야 되는 거예요. 그때가 되면 내적인 기반이 닦아지기 때문에, 외적인 기반은 무너져야 됩니다. 그러면 그때 국가가 가야 할 길이 어디겠느냐? 북괴가 가야 할 곳이 어디겠느냐? 만주로 들어가야 될 것입니다. 지금이 그런 때입니다.
그렇게 되면, 혼란된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느냐? 가족찾기운동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해서 나라를 찾으시느냐? 먼저 가족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렇지요? 복귀의 가족찾기운동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적십자운동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 복귀 국가의 가족찾기운동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그 적십자운동을 통한 가족찾기운동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그것이 판문점을 중심삼고 벌어지는 것입니다.
판문점(板門店)은 금문점(金門店)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금문점이 되어야 할 텐데, 널 짜박지 문이 된 것입니다. 어느 때인가 이것을 쳐부숴야 됩니다. 세계는 이 문을 중심삼고 벌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족찾기운동이 벌어지는데, 동독과 서독에서는 서로 나라를 인정하는 놀음도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자유통로를 만들어 개방하자고 했잖아요. 역사상에 없었던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전세계를 중심삼고 새로운 운세가 싹트고 있어요. 사탄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뚫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의 갖추어진 실력권을 중심삼고 개인과 개인이 대결했을 때 공산주의 사상에 침식당하는 통일사상권내의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승공사상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종교를 대표해서는 민주세계가 있는 것이요, 사상을 대표해서는 공산 세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종교를 대표해서 하나님의 심정을 들고 나오는 것이요, 사상을 대표해서는 승공이념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 승공이념이 종교를 중심한 심정적 사상과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상응적인 입장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출발은 하나님에서부터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내적이요, 하나는 외적인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는 현실입니다.
시간이 많이 갔지요. 시간이 다 됐구만요. 몇 시부터 식사 시간이예요? 밥 먹어야지요. 밥 먹겠어요? 말씀을 더 듣겠어요? 밥 먹을래요?
오늘 제목이 `국가와 우리의 사명'인데 우리는 국가를 찾기 위한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찾던 국가, 예수가 찾던 세계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찾으려는 국가 세계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를 보장할 수 있는 민족이 형성되지 않고는 국가가 안 나오는 것입니다. 또 그 민족도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의 수많은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종족 가운데 일등 되는 종족이 모여야 합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여러 국가 가운데 사탄이 자랑하는 국가는 수백 개가 있지만, 그 가운데 제일 대표적인 나라는 한 나라입니다. 악착같은 한 나라. 공산권 세계에서 악착같기로는 김일성이가 대장이지요? 세계 공산권 가운데서도 가장 악랄하게 사상적으로 무장하고, 공산권 나라를 건국하는 전통적 사상을 세계에 고취시키고 있는 나라가 북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브라질에서 공산당들을 훈련시키는 등, 공산당을 세계에 수출하고 있잖아요?
이런 걸 볼 때, 국가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공산국가 중에 제일인 북한의 김일성 이상, 김일성의 사상 이상의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공산당은 생명을 위협해 가지고 그렇게 만들지만 하나님은 자유로운 환경 가운데서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은 틀리다구요. 거기에서는 탄압과 위협과 공갈 협박을 통하여 강제로 죽을 길로 몰아 가지고 생명선을 넘는 자리를 거쳐가게 함으로 말미암아 발전이 벌어지지만 여기에서는 자진해서 하나님 앞에 생명을 바치고 죽고자 하는 실체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자진해서 공산당 이상의 자세를 갖춰야 됩니다.
그래, 여러분은 공산당 이상이 되었어요? 여러분의 사고방식과 사상적 관념이 공산당 이상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제 북한으로 출동하라' 하게 될 때 안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안 가면 죽는 거예요.
여러분이 하늘의 명령에 따라 출동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는 일시에 육이 죽지만 하늘세계에서는 영과 육이 영원히 죽는 것입니다. 이게 원리입니다. 그런 거 알아요? 그래서 사탄세계보다도 나을 수 있는 한 나라, 조국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했듯이 만약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게 되면…. 극복해 낸 자리에서 죽을 수 있는 길을 찾게 될 때는 그런 자리에서 죽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주로 한 소망적인 세계, 소망적인 나라, 소망적인 종족, 소망적인 가정, 소망적인 남편과 소망적인 아들의 자리에서 죽어야 됩니다. 뜻을 못 이루었거든 죽을 자리에서는 그렇게 죽어야 됩니다. 그런 신념을 나 혼자 들고 나온 것입니다.
`나는 나라를 대표한 사람이요, 민족을 대표한 사람이요, 종족을 대표한 사람이요, 가정을 대표한 사람이요, 전인류를 대표한 개인이다. 남자를 대표할 사람은 나 이외에는 없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의 씨와 같이 심어지면 거기에서 본질적인 가정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거기에서 본질적인 종족이 나오는 것이요, 본질적인 민족이 나오는 것이요, 본질적인 국가가 나오는 것이요, 본질적인 세계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을 쭉 뽑으면 저 밑에 있는 개인의 마음의 핵심이 쑥 뽑아져 나가요. 그렇게 돼 있어요? 그걸 뽑으면 거기에 세계가 달려 나오고, 나라가 달려 나오고, 종족이 달려 나오고, 가정이 달려 나오고, 개인이 달려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것을 풀어 놓게 되면 ―이게 가르쳐 주면 별것 아니지요?― 사탄만 남을 수 있는 권내가 됩니다. 그런 국가가 형성되게 되면 사탄을 보고 `이 자식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육을 중심삼고 완전한 주체가 되면 상대권을 놓고 `이 자식아' 할 수 있는 거예요. 거기에 하나 안 되는 상대는 처단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원리는 그걸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자, 임자네들은 그렇게 돼 있어요? 선생님이 `자 너희들 가정을 끌어내라' 할 때 끌어낼 거예요? 여러분, 환영할 거예요? 끌고 남으로 가든, 북으로 가든,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 그것은 내 마음입니다. 유랑민이 된 이스라엘 민족이 천막을 치는 데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 마음대로 쳤나요, 모세 마음대로 쳤나요? 대답해 보라구요. 모세 마음대로 쳤나요, 이스라엘 민족 마음대로 쳤나요? 이스라엘 민족 마음대로 쳤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북으로 가자면 북으로 가고, 남으로 가자면 남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렇게 되어 있어요? 노골적으로 얘기해 보라구요? 그렇게 돼 있나, 안 돼 있나.
여기에 순응치 않으면 칼을 빼 가지고 쳐야 합니다. 그 왼손을 쳐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왼손.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선생님이 그렇게 흐지부지한 사람이 아닙니다. 지독한 사람이라구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선생님이 그런 사람이라면 빵점 선생님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선생님과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선생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알고 있는 선생님과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선생님이 다르다구요.
그러니 보따리를 싸 가지고, 지갑에 돈이 있거든 자식을 먹여 살리겠다고 하는 그런 놀음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상이 끊어지지 않는 한 통일교를 믿는 여러분이 가는 길은 언제나 고생스러울 것입니다. 한번은 처단을 해야 됩니다. 선생님도 그 길을 가지 않았습니까?
선생님이 뜻을 알고 나서 성진이 어머니와 결혼한 것도 내 맘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영계에서 지시가 있어서 한 거예요. 그 사람도 영계의 지시하에서 만난 거라구요. 그 사람 이름 최선길입니다. 높은 최(崔), 먼저 선(先), 길할 길(吉)자예요. 여자로서 그런 이름은 팔자 사나운 이름입니다. 이름의 뜻으로 보면 세계에 없는 이름이라구요. 그렇잖아요? 그러나 이치에 하나되지 못하면 잘리는 것입니다. 성진이 어머니가 여자로 서는 굉장한 여자요, 훌륭한 여자였습니다. 어느누구도 갖지 못한 특성을 가진 여자예요. 옳다 할 땐 천하의 그 누가 반대를 하더라도 당당코 싸워나갔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어요. 자기가 성진이 데리고 혼자 살고 있으니까 어떤 남자가 혼자 사는 과부 취급을 해 가지고 농조로 대했는데, 인권을 유린했다고 해서 재판에 걸어서 배상금을 받은 여자라구요. 알겠어요? 자기가 옳다 할 때는 이 박사고 무엇이고 무서워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성격에 자기가 옳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통일교회 반대하는 데 있어서 전통적인 조상이 되었지요. 선생임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 형사들에게 돈을 주어 가면서, 자기가 그때까지 벌어서 샀던 집까지 팔아 가지고 형사들과 교섭을 했어요. 그 여자 덕택에 나도 많이 배웠습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기 위해서 자기 소유를 전부 희생했다구요. 그렇게 악착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했느냐? `아, 여자와 남자간의 사연을 중심삼고, 그 사랑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엮어진 비운의 역사가 얼마인가? 또 그 인연을 따라 태어난 한을 가진 민족과 국가와 족속들이 얼마인가? 그것 때문에 아랍권이니, 공산권이니, 무슨 민주세계권이니 하는 것들이 생겨난 것이 아니냐' 이런 생각을 했다구요.
역사과정에서 여자가 반대하는 날에는 비참해집니다. 남자가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비참해진다구요. 남자는 여자한테 넥타이로 목을 졸려 봐야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얼굴도 긁혀 봐야 됩니다. 여자가 남자를 밤에도 때려죽이고 싶고, 아침에도 때려죽이고 싶고, 낮에도 때려죽이고 싶고, 저녁에도 때려죽이고 싶고 칼로 가슴을 찌르고 싶다고 하는 마음을 갖게끔 되어야 돼요. 그것이 사탄입니다. 그래 가지고 세계적으로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3년이상 내모는 거라구요.
여자의 신발은 재수 없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군인이 출동하는 행로에 여자가 지나가게 되면 총살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성진이 어머니가 그 신발을 거꾸로 들고 때리는데, 왼편 뺨을 맞고 바른쪽 뺨을 맞으면서도…. 이 길을 가려면 그런 길을 거치는 거라구요. 그러면서 오늘의 통일사상의 기반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그런 전통을 닦아 나온 거라구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선생님을 따르고 있는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할머니면 할머니들이 어떻게 되었느냐? 똥바가지를 뒤집어 쓰기도 했습니다. 똥바가지를 가져다가 아가리를 벌리라고 해 가지고 입에다가 똥을 처넣는 거예요. 여러분이 모르는 그런 비참한 행로를 거쳐 나온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 처음 듣지요? `이 원수' 하면서 머리채를 잡아 쥐고 흔드는 일을 처녀들도 당하고 할머니들도 당하고 아주머니도 당하고 소녀들도 당해야 했습니다. 남자로 말하면 영감도 당해야 했고, 장년도 당해야 했고, 청년도 당해야 했고, 소년도 당해야 했습니다. 장난이 아니라 그랬던 거라구요. 탕감복귀가 나를 통해서 되어야 되기 때문에 그런 기운이 통일교회를 찾아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차라리 감옥이 피난처라는 거예요. 그런 놀음을 해 가지고, 천신만고의 수난길을 거쳐 가지고 1960년도에 성혼식이 있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성진 어머니가 반대했기 때문에 그 터전을 중간에서 누가 이어받은 것이냐? 그가 희진이 엄마입니다. 그 사람은 국경을 넘나들어야 했습니다. 마리아와 같은 사명을 가진 입장에서, 예수를 밴 마리아가 그런 것처럼 희진이를 배 가지고 배가 이렇게 나왔는데도 밀선을 타고 일본으로 간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인연을 중심삼고 뜻을 출발했던 것이 깨져 나가게 되었으니, 새로운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여성을 중간에 다리 놓아 가지고 그것을 이어받을 수 있는 터전을 가리지 않고는 살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대한민국에 요동이 벌어지고 있던 때입니다. 그때는 경찰에서 자꾸 사건 때문에 선생님을 부르게 되어서, 내가 감옥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희진이 엄마를 밀선에 태워 일본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는 감옥길을 갔습니다. 성진이 어머니가 기반을 다 까먹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대상으로서의 가정기반을 다 까먹고 나라를 다 까먹고 교회도 다 까먹고, 자식이고 뭐고 다 까먹었다구요. 자식을 키울 입장이 못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을 까먹고 나라의 기반까지 다 까먹어 버렸기 때문에 선생님이 감옥길을 가야 했던 것입니다. 좋아서 그렇게 했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원리의 길을 아는 사나이로서 가는 길은….
그렇다고 해서, 내가 민족 앞에 몰리고 교회 앞에 몰리고 처자한테까지 몰렸다고 해서 `이놈의 나라야, 이놈의 교회야, 이놈의 여자야.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럴 수 있어요? 그렇게 못 하는 것입니다. 사랑해야 할 나라와 사랑해야 할 교회, 사랑해야 할 사람이지요.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 이상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원수에게 공인을 받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인연을 맺기 위한 길로 알고 그 길을 달갑게 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눈물을 흘리는 자리에서 나라를 사랑하지 못했으니, 이 자리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정성어린 심정을 가지고 그 나라를 위해 마음으로 충하고 죽을 수 있는 자리에 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마음으로 말입니다. 알겠어요? 예수가 죽은 것은 마음으로 그 나라와 그 백성과 그 가정과 그 자식을 사랑하면서 홀로….
하나님의 심정의 인연을 거쳐 하나님의 보증자가 되고, 사탄의 공인을 받고, 주님 앞에 책임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자리까지 개척하기 위해 통일가가 출발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비참한 길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알겠어요? 내가 왜정 때부터 감옥에 들락날락했습니다. 피를 토하는 자리에서, 열 손가락에 피를 내는 자리에도 이것이 10개 국가의 피를 대신하고 10개 민족의 피를 대신하는 제물로 바쳐질 수 있다면 얼마나 영광이겠느냐고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구원받는 것보다 나 하나 죽어 가지고 나라가 해원성사되고 나라가 해방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생각했던 거예요. 이것이 통일교회의 전통적 사상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있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만약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하나님은…. 보라구요, 종을 잃어버리고, 양자를 잃어버리고, 아들까지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서러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 종의 나라와 양자의 나라와 아들의 나라가 어디 갔느뇨?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셋을 대표한 한 아들로 예수가 왔던 것이 아니냐? 그래서 예수가 세 교단을 세우고자 한 것이 아니냐? 구교, 신교, 통일교가 그래서 나온 것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생각하면 기가막힙니다.
그러기에 반대받게 되는 날에도 세 나라의 반대를 받아야 되고, 세 교파의 반대를 받아야 되고, 세 종족의 반대를 받아야 되고, 세 가정의 반대를 받아야 되고, 세 아들딸로부터 반대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 길을 찾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유협회장이 여기에 있었지만 유협회장은 이런 내용을 몰랐습니다.
이런 등등의 노정을 거쳐 가지고, 통일가를 세우게 됨으로 말미암아 오늘 축복받은 여러분들이 있게 된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공산당 사상을 가진 직속 고급 당원들과 비교할 때 여러분이 나으냐 하는 문제를 놓고 밤낮으로 생각해 봤지만, 내가 부끄러워서…. 여러분들을 그냥 그대로 가치적인 존재로 대했다가는 여러분도 망하고 선생님도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때려잡는 것입니다.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치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출발하게 한 것입니다. 이때를 타고 넘어가야 하겠기에, 하늘의 운세를 타고 넘어가야 되겠기에, 여러분이 이 힘든 광야시대를 따라가면서 그런 심정적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이 민족 앞에, 국가 앞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놀음을 해야 할 때가 지금입니다.
여러분이 이북 공산당보다 나아야 되겠어요, 못해야 되겠어요?「나아야 되겠습니다」그래서 하나님이 선생님에게 삼팔선을 넘게 하신 것입니다.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을 때 하나님이 보호하신 것입니다. 옛날에 모세가 애급을 나올 때 불기둥 구름기둥이 인도해 주었다고 했지요? 선생님 앞에는 무지개가 서 가지고 갈 길을 인도해 주었습니다. 내가 삼팔선을 넘을 때 하나님의 뜻을 품고 넘은 거라구요.
그러기에 내 가는 길에는 아무리 수난길이 있더라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감옥을 찾아갔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감옥에 있기 때문에 감옥을 찾아 들어간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사람들을 나라에서 못 찾게 되면 종족에서 찾아야 되고, 종족에서도 못 찾거든 가정에서 찾아야 되고, 가정에서도 못 찾게 되면 개인에서 찾아야 되고, 개인에서 못 찾게 되면 감옥에서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그 가정이 이상적 가정입니까? 그 자식들이 이상적 자식이예요? 앞으로 이런 원칙을 중심삼고 여러분들 앞에 세밀히 교육을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자, 그러면 오늘 제목이 `국가와 우리의 사명'인데, 우리의 신세는 지금 고아와 같은 불행한 신세입니다. 부모도 없고, 자녀도 없고, 형제도 없고, 나라도 없고, 머리 둘 곳조차 없는 고아의 입장에 있는 사람을 그 누가 동정해 줄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우리는 불쌍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쌍한 우리를 동정할 사람이 이 인간세계, 평면세계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대하여 `하늘이여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부모를 찾고, 형제를 찾고, 가정을 찾고, 종족을 찾고, 나라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이 고아의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운명을 가진다면 저는 천만 번 죽더라도 한이 없겠습니다' 하고, 바라는 소망의 나라가 있고 소망의 세계가 있고 그런 길로 인도하는 주체적인 절대자가 있다면 `절대자여! 저에게 한번 그런 곳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없겠습니까?' 하면서 울부짖고 나선 걸음이 종교의 길이더라는 것입니다.
종교는 뭘 하자는 것이냐? 이 사망의 세계, 불행의 권을 넘어서고자 해서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로서 모인 무리요, 하나님의 종으로 모인 무리입니다. 이렇듯 종으로, 양자로 모인 전통적 사상은 무엇이냐? 주는 것입니다. 주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녹음이 잠시 중단되어 정리하지 못함)
아직은 때가 안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어느 단체의 사장이니 이사장이니 무슨 지구장이니 하는 명분을 내세워 가지고 꺼덕거리는 사람은 졸장부입니다. 나는 아직까지 그런 자리에 가지 않은 사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가 이 단체의 장으로서 하나님의 권위와 위신을 가질 수 있는 주체적인 입장에 섰다 하더라도 상대적 터전을 갖지 못해 가지고 하늘 앞에 나서기가 부끄러운 것이요, 사탄 앞에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팻말을 꽂고 나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주제에 풀썩거리고 다닐 수 없다는 거예요. 심각해야 된다고요.
여러분이 단에 서서 대중을 교육하게 될 때 자기가 말 잘한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감동 받는다고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열 번 맞고 백 번 좋을 수 있다면 백 번 이상이라도 그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런 일념을 가지고 있다고요.
내가 얘기라면 누구한테 지지 않는다구요. 그런데 내가 여러분에게 일을 맡겨 놓고 기가 막힌 놀음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예요. 다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분석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구요. 본래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예요. 우리 아이들도 그래요. 과학을 좋아한다구요. 내가 이 나라와 내가 갖춘 관계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모른다구요. 내가 당하는 한 그 나라, 그 세계는 오지 않는다구요.
우리에게 우리 개인의 운명을 보장할 수 있는 종족적인 환경이 없다면, 나라가 없다면 우리는 비참한 무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내모는 것이 아닙니까? 알겠어요? 나라 없는 백성이 되면 보따리를 싸 가지고 사방을 떠돌아다니는 집시가 되기 때문에 언제든지 습격을 당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라고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때가 바쁘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나라를 못 찾았기 때문에 예수가 죽어 가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이 비운의 고개를 어떻게 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잠을 자겠어요? 잠을 자고 살다가 저 나라에 가 보라구요. 여편네를 끼고 좋다고 살다가 저 나라에 가 보라구요. 내가 살아 온 생활이 참소할 것이고, 예수가 바라던 소원의 기준이 참소할 것이고, 하나님이 찾아 나오시던 나라를 중심삼은 모든 것이 참소의 조건이 되어 여러분 앞에 나타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에도 죽을 길밖에 없는 것이요, 가정에도 죽을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잘 먹고 나서는 회개하는 걸음을 가야 됩니다.
넥타이 매고 양복 입을 때가 아니예요.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국가 앞에 거듭날 수 있는 심정의 기준을 남겨 가지고, 남루한 옷을 입고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미친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나라를 위하고 그 무리를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잠을 자고 나서도 눈을 뜨게 되면 가야 되겠다는 거라구요. 잘 사이도 없이 기도해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선생님은 자리에 눕지도 않고 기도하다가 엎드려서 잠을 잘 때가 많습니다. 근자에 어머니를 가까이 모시고 청평에 낚시질 다니면서 기도했어요. 이러다 보니 기도하는…. 이거 다 여러분이 배우라고 가르쳐 주는 거예요. 남편 노릇 하기 힘든 거라구요. 남편 노릇 하기 힘들어요. 역사적인 탕감의 노정에서 아내의 심정을 유린하는 사나이가 되어서는 안되겠기에 그러는 거예요. 참 눈물어린 사연들이 많습니다. 어머니도 이것을 알고 `나 하나를 고이 위해주고, 나 하나를 다스리기 위해서 저러는구나' 하는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가야 하느냐? 원수를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야곱을 중심삼고 레아와 라헬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지요. 그것을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롯을 중심삼고 두 딸에게도 그러한 놀음이 벌어졌다구요. 남편이 아내까지도 몽땅 원수한테 상속해 줄 수 있는 심정의 기원을 찾지 못해 가지고는 참부모의 역사가 이 땅에 사직될 수 없는 것입니다. 기가 막힌 말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이 땅 위에 타락의 후손으로 태어나 양자의 자격밖에 없습니다. 양자는 주님 앞에 모든 것을 상속해 줄 수 있는 아량이 없어 가지고는 양자로서의 갈 길도 못 가는 것입니다. 전부 다 줘야 된다구요. 자기의 몸까지도, 가슴까지도 전부 다 줘야 돼요. 양자는 그렇잖아요? 핏줄의 기원을 전부 다 부정해야 새로운 인연이…. 여러분에게 이런 등등의 내용을 내가 세밀히 가르쳐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연이 있다구요. 여러분은 이와 같은 자리에서 얼마나 먼 자리에 있는가를 알고, 이번 기회에 이러한 자세를 확립해 주기를 바랍니다.
나라 없는 백성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나라 없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때 내가 원수의 나라 일본으로 떠나면서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눈물 흘리던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아요. 한강 다리를 지나면서 눈이 퉁퉁 붓고 코와 입술이 아프도록 울었어요. 관부 연락선을 타고 일본에 도착한 날이 3월 21일이예요. 그때서부터 나라를 중심삼고 일본에 가 가지고 별의별 일을 다 했습니다. 나라 없으면 못 삽니다. 여러분, 나라가 있어요? 원수의 나라에서 아내를 사랑할 수 있어요? 사랑했다가는 그 길을 망치는 것입니다.
`조국과 우리의 사명'에서 우리의 조국이라는 것은…. 우리는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통일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오늘날 대한민국 어떠한 위정자보다 나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이념과 사상을 이 민족 앞에 어떻게 투입할 것인가? 그 전통적 사상을 어떻게 남길 것이냐? 선생님은 생각하고 있어요. 이 나라 주권자 앞에 가서 맞아라 이겁니다. 그 맞는 정도가 심할수록 이 편에 있는 우리의 일당과 일족은 단결하는 것입니다. 단결방법은 그것입니다.
그 책임자뿐만 아니라 아내가 있고 아들딸이 있거든 그 아버지가 고통당하는 것을 눈으로 보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편네야, 아들아, 눈으로 봐라' 이거예요. 아내와 아들은 모자협조 원칙에 의하여 아버지가 신음하는 그 기준을 배가하며 신음해야 합니다. 원수들의 채찍이 가해지고 그 채찍을 맞는 신음소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여편네와 아들딸은 아버지를 놓고 원수의 세계를 파괴시켜야 할 책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몇백 번 희생하더라도 채찍을 받는 그 희생길을 뒤넘이치겠다는, 불타는 적개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여편네가 자기의 남편을 그렇게 다룬다고 원수에게 반항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또 그 자식이 죽임을 당하게 되고…, 그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나라의 백성은 단결되는 것입니다. 이런 길을 다시 가겠다고 결의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지금 결의했던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단결시킬 수 있는 그 놀음을 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또다시 발벗고 나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갈 길이 어디냐? 통일교회가 갈 길은 기성교회를 통해서, 남한을 통해서 북한까지 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우리가 고생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고생하는 것보다도 통일교회 교인이 더 고생해 가지고 기성교회의 갈 길을 닦아 주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살고 선생님이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놀음입니다. 여기에 개인을 투입하고 가정을 투입하고 사위기대를 투입하자는 것입니다. 사탄세계가 치는 자리, 맞는 자리에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생하는 자리에서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에,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통일교회에 들어왔기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통일교회의 갈 길을 가로막고 있는 이 나라와 이 민족을 복귀해야 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아이구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고생하고 어쩌고'해서 되겠어요? 누구한테도 항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도 항거 못 해요.
여러분은 흥부와 놀부의 얘기를 알지요? 국가적이고 민족적인 입장에서 가정을 중심삼고 인간적인 면에서 그런 일이 엮어질 것을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염려하셨기 때문에, 놀부와 흥부의 민화가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천 번 맞고 백 번 맞더라도 부모 앞에 항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맞고 당하더라도 더 맞자는 것입니다. `칠 테면 쳐라' 하는 이 놀음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제는 기성교회가 우리를 치지 않고 나라가 우리를 치지 않게 되었지만, 이 나라와 기성교회가 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삼팔선 너머에 우리를 칠 패들이 있지 않느냐, 대한민국보다 더한, 기성교회보다도 더한 원수가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교육하고 단결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니 우리가 희생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가지고 민족과 국가도 희생하는 거기에 하나님께서 보시고 어찌하실 것이냐? 북한 땅을 위해서 희생시켜야 합니다. 맞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맞음으로 인해, 고생함으로 말미암아, 수난을 당함으로 말미암아 저 북한 땅의 양심적인 사람은 넘어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는 놀음이예요. 이것이 하늘의 작전이요, 선생님의 작전입니다.
우리에게는 세 원수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나라를 중심삼은 원수요, 그 다음은 저 삼팔선 너머에 있는 공산세계의 원수들이요, 또 그 다음에는 영적인 사탄이라는 원수입니다. 이 세 원수가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세 점을 거쳐 나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결론을 짓자구요. 우리의 사명은 이 땅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탄 앞에 참소의 조건을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 아들딸들을 사랑하고, 내 아들딸들을 거느려서 종족을 만들고 민족을 만들고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건국하는 데 있어서 개척의 용사가 되어야 할 선봉장군이 누구냐? 통일교회의 간부들입니다. 여러분이 지금은 교회장이지만, 옛날에도 책임자, 소위 지구장을 하던 패라구요.
그러면 그 나라를 이룰 수 있는 터전이 어디냐? 교회 외에는 없습니다. 교회 외에는 없잖아요? 교회 말고 뭐 어디에 있어요? 여러분의 소유가 뭐 있어요. 여러분의 소유라는 것은 교회밖에 없다구요. 그렇지요?「예」여러분의 소유는 나라에 흡수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민족의 터전이 될 수 있는 것은…. 한 나라를 이루려면 주권이 있어야 되고 국토가 있어야 되고 국민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 국토가 될 수 있는 터전은 무엇이냐? 그것은 교회에 재산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다음에 하늘나라의 백성이 누구냐? 교인입니다. 또 주권자는 누구냐?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이장 대신자요, 면장 대신자요, 군수 대신자요, 도지사 대신자입니다. 여러분, 주체자 되었어요? 사탄세계에서 폭탄을 싣고 오거든 맨 먼저 뛰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럴 마음이 있습니까? 그리고 돈이 한푼이라도 있거든 교회를 넓히는 데 쓰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판도를 넓히고 국민을 결집시키는 데 쓰는 것입니다. 교회 책임자는 주권자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이장을 대신하고, 어머니 아버지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이런 전통적 사상을 남겨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거라구요. 안 그래요?
이제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금년 봄부터 선생님이 본부의 체제를 갖추게 했고, 그러고 나서 지방 교회의 체제를 갖추라고 한 것입니다. 이제는 그런 때가 왔기 때문에 비로소 내가…. 그런 것을 여러분이 다 마련해야 돼요. 기독교의 인연을 이어받으려면 주님 앞에 그런 터전을 만들어 가지고 바쳐야 돼요. 그런데 여러분이 그 일을 못 하니까 할 수 없이 내가 대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명을 못 했으니 고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얼굴을 못 드는 거예요. 외적인 승공연합이나 통일산업은 모두 얼굴을 들 수 없는 입장입니다. 교회에도 목표량을 할당시켜 주었는데 책임을 못 하고 제사를 잘못 드린 곳은 벌을 받아야 되는 거예요. 제물을 잘못 바쳤으면 자기 여편네와 자식을 제물로 바쳐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선생님 사상이 그것입니다.
외적인 환경을 중심삼고 가인 제물, 아벨 제물, 양자 제물, 세 제물을 못 바치면 자기 직계 아들딸을 제물로 바쳐야 됩니다. 이번에 내가 여러분을 도와준 것은 그걸 어기는 거라구요. 이스라엘권, 실체적 이스라엘권을 맞을 수 있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내가 돈을 내 가지고 교회를 사는데 협조한 거라구요. 전국적으로 3천만 원 이상 후원해 주었어요. 그렇다고 언제나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어림도 없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은 고생을 지긋지긋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고생시키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통일교회 문선생이 잘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서, 하늘나라가 오는 데 있어서 궤도를 바로 놓기 위해서입니다. 사막도 좋다는 것입니다, 사막도. 궤도만 놓는 날에는 기관차는 달릴 것입니다. 내가 그 기관차 노릇을 해줄께요.
그러면 하늘나라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냐? 그 나라가 이루어질 때까지 하늘은 수많은 나라를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 국민을 찾기 위해서 수 많은 선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요, 그 국가를 찾기 위해서는 수많은 가정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 열매가 되어야 할 여러분의 가정과 통일교단은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이냐? 쭉 빼내 보면 씨와 마찬가지로 거기에 전부 다 들어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 여러분이 6천년 역사의 열매라고 자부해 봤어요? 여러분의 가정을 해부해 보면, 가정은 가정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국가의 씨가 들어 있고, 세계의 씨가 들어 있고, 천주(天宙)의 씨가 들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또 그 천주의 씨 가운데는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아이구 교회고 뭣이고 생활이 어려우니 아들딸 먹여 살리기가 바빠서…' 이놈의 자식들. 이게 통일교회의 기준을 갖춘 패들이예요? 앞으로 이런 패들 가지고는, 이런 기반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보따리 쌀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1974년 2차 7년노정까지는 내가 책임져 주는 거라고요. 지금까지 한 나라를 중심삼고 싸워 나왔으니, 그때까지는 책임져 줄 테니까 예수의 한이 맺히게 했던 그 기준을 넘어서자는 것입니다.
3차 7년노정을 갈 때는 여러분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거라구요. 이번에 3차 세계순회를 가는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냐? 미국에 자리를 잡기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은 경제복귀를 위해서입니다. 이제 돈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돈만 갖추면 사람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돈을 어떻게 벌 것이냐? 일본 식구들을 통해 가지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4백 명을 세워야 할 처지에서 150명을 투입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4백 명 이상을 만들고 3천명까지 만들어서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3천 명이 하루에 천 원씩만 해도 3천만 원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1개월에 10억 원을 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가 직접 코치해 가지고 전통적 사상을 이어 놓겠다는 것입니다.
임자네들이 생활하는 것은 문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임자네들, 뭐 쟁개비(남비) 짜박지, 방 짜박지 전체 해보라구요. 10년 후를 두고 보자는 거예요. 여러분이 정성껏 모아서 마련한 그 기반과 내가 갖춘 기반을 비교해 보자구요. 여러분이 대학을 가고, 어디를 가고 해 가지고 갖춘 기반과 선생님의 기반을 비교해 보자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작년 일년만 해도 말이예요. 여의도 땅이니 뭣이니 해서 내가 한 11억 원을 썼습니다. 선생님이 그 땅 덩어리 사는 데 여러분이 헌금을 했습니까? 그렇다고 뭘 줘 봤어요? 선생님은 벌써 그것을 하기 위해서 몇년 전부터 계획해 나왔습니다. 그것이 요때에 들어맞지 않으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금 지방에서 초가삼간 그거 하나 갖고 따라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통일교회 돈 없어서 저런다고 안 그러는 거예요. 어느 한날 둔갑하기 위해서 그런다고들 해요. 그때 사놓은 땅이 현재 시가로 한 18억 원이나 나갑니다. 일년 동안에 내가 그만큼 자리를 잡아 놓았다구요. 이런 놀음을 지금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고 있다구요.
회사도 그런 거라구요. 내가 지금 한 달에 2천 5백만 원씩은 가져야 씁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하는 일이 많아요. 돈 드는 일이 많다구요. 어떤 교단을 사야 되겠다고 했으면 당장에 그걸 타진해 보는 것입니다. `한 1억 원이면 나가 떨어지겠지' 하고 생각되면, 그 교단의 총회장이면 총회장, 총무면 총무와 교섭하는 거예요. 그러면 10억만 있으면 나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몽땅 사는 거예요.
돈은 언제나 있는 것이지만 때라는 것은 한 번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2백억 정도만 가지고 있으면 정부의 어떠한 사람과도 안방에 같이 누워서 의논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나온다구요. 몇 해 동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그 일이 가능할 것 같아요, 불가능할 것 같아요?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허풍장이 사나이인 줄 알아요? 그러나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책임 안 지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보라구요. 공장도 내가 지금까지 끌고 나오는 데 있어서 정성을 들였다구요. 그 정성이 요즘에는 청평으로 간 것입니다. 이제는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고 일해야 할 때입니다. 때가 달라요. 때가 안 되면 청평에 머물게 되는 게 아니라구요. 때가 멀지 않았다구요. 이런 때에 여러분은 나서겠어요? 보따리를 싸 가지고 가자는 것입니다. 배후의 모든 계획을 우리 통일교회에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앞으로 김일성이하고 담판을 해야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싸움이 벌어질 거예요. 그때 문제되는 것을 해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본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사또 수상이 이번에 중국을 지지하자고 결정한 것도 선생님이 후원한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5,6년 전부터 공작을 했습니다. 6년 전부터 기시하고 사또를 붙들고 일을 시작했어요. 그래 가지고 그것이 자민당에서 간사장을 하던 다나까(田中)를 갈아치운 제일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을 그냥 두면 일본을 팔아먹는다구요. 그래서 구보끼(久保木)더러 기시와 사또의 집에 가서 통곡하며 호소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된 거예요.
이번에 저 미국 각료들이 후꾸다(福田)를 만나 가지고 약속을 받고 또 사또에게도 약속을 받은 것이 작년 7월인가 그렇습니다. `중국을 통하라. 상당히 지금 불리하다'고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작년 1월인가, 기시 수상이 선생님을 방문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중국의 장개석이도 선생님을 알고 있다구요. 레버런 문이 말하게 되면, 국가적 기준에서 한국과 일본의 승공연합이 뭐 어쩌고 하는데 무턱대고 그럴 것이 아니라 기반을 닦아 나가야 됩니다.
그래 미국은 어떻게 될 것이냐? 미국 상원의원을 중심삼은 행정부내에는 빨갱이들이 많습니다. 그것에 대비한 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 그걸 닦기 위해서 어린이 무용단도 보낸 것입니다. 한국문화재단이 이제는 미국내에서도 주목받는 단체가 되었다구요. 거기에 현재 고정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상원의원만 해도 52명인가 된다구요. 또 하원의원은 124명이 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월 10만 명 이상이 우리 한국문화재단의 고정 지원요원이 되어 있어요. 선생님이 이제 상류층에 속한다구요. 대학총장이 되면 주지사나 부지사 해먹는 것보다도 큰 가치가 있어요. 그래서 내가 이들을 중심삼고 앞으로 세계평화통일연합을 구성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지금 영국이랑 불란서랑 짜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번 와클대회(WACL大會) 때에 왔던 세계적인 사람들을 전부 규합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놓고 생각해 볼 때, 이런 일이 당장에 될 것 같아요? 그러한 일을 해 가지고 나라를 살리기 위한, 여러분이 피난 갈 길을 닦아 놓자는 것입니다. 미국이 반대하게 되면 독일로 갈 것입니다. 거기서도 반대하면 불란서로 갈 것입니다. 우리의 길이 이런 길입니다.
우리는 나라를 찾아야 됩니다.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그렇게 나와 가지고 독립된 나라를 찾았다고 하지만, 그 나라는 앞으로 한국이, 선생님이 해방시켜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민족은 하나의 아랍권을 중심삼은 민족적인 싸움터에서 몰리고 있고, 우리는 지금 세계적인 싸움터에서 몰리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싸움터가 깨져 나가게 되면 아랍권의 싸움터도 절단나는 것입니다. 공산당이 장악하게 되면 아랍권은 자동적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 그런 모든 것을 걸어 놓고 이 나라를 찾기 위해 하나님이 지금까지 얼마나…. 선생님이 지금까지 싸워 나왔고 예수님이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싸워 나왔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은 모든 요인을 집결시켜 가지고 나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가야 할 길 앞에 국가적인 전통 사상을 어떻게 남길 것이냐? 그 나라를 찾아가는 길은 비참한 길이요, 피눈물 나는 길입니다. 거기에서 역사적인 선조들의 전통적 사상의 기원이…. 선생님 일대를 중심삼고 그것이 찾아진다구요. 6천년의 역사는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슬펐던 역사입니다. 선생님 일대의 역사도 슬펐던 역사지만, 여러분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기쁠 수 있는 역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고생하라고 했지, 언제 잘먹고 잘살라고 했어요? 그러나 언젠가는 잘먹고 잘 쉬며 살 때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엊그제도 중고등학생들, 성화 16회 학생들 142명을 선발했습니다. 그들을 모아 놓고, `일선에 나갈 사람 손들어 봐라' 해 가지고, 개인 개인에게 `갈래, 안 갈래?' 해 가지고 안 가겠다고 한 사람은 빼놓고 가겠다고 한 사람은 전원 교육시키는 거예요. 출발해야 되겠다구요. 그래서 지금 청평에서 교육받고 있습니다. `매일 4시간은 노동이다' 이것을 공식으로 세워 놓았어요. 이제 3년만 있으면 농촌에 가서 4백 명 이상의 기관요원을 양성해야 되겠어요. 여러분을 선두에 세워 가지고 승공이념이라든가….
앞으로는 대학교를 중심삼고 우리 사상을 전체적으로 확대시켜야 합니다. 대학이 없으면 안 돼요. 그러니까 할 수 없이 이제 대학교를 하나 인수해야 되겠어요. 그런데 그 대학 인수하려고 하던 계획이 틀어져 가지고 티타늄 공장을 만들어야 할 형편입니다.
1971년도에는 그러한 큰 계획을 하고 있다구요. 경제적 지원을 위한 자금을 2천 5백만 원 이상 확보해야 됩니다. 이제부터 내가 5년만 손대면 2천 5백만 원이라는 돈을 한국에서 보급할 수 있습니다. 이 경제적 터전을 닦기 위해 현재 무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10월에는 모험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여의도 땅값 5천 8백만 원을 지불해야 되는데 돈은 한푼도 없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안팎이 다 깨져 나가게 되어 있어요. 내가 그렇다고 임자네들한테 돈 타령을 하게 돼 있어요? 잠이나 잘 줄 알고 밥 못 먹으면 배고프다고 나 할 줄 아는 임자네들한테 말이예요.
그렇지만 하늘은 비상작전을 하는 거예요. 12월 20일까지 4개월 동안에 2억 원을 지불해야 하는 거라구요. 2억원이란 돈을 선금으로 지불해야 된다는 거예요. 또 이달 21일에는 3천 5백만 원을 건네 주어야 돼요. 그런데 지금 내 지갑에는, 본부에는 만 원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모험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선생님이면 다 된다고 생각 말라고요. 선생님이 누구 때문에? 누구는 누구예요, 임자네들 때문이지요.
앞으로의 사업계획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면…. 한국에서는 아직 화공업계에 손댄 사람이 없잖아요?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수 있는 분야가 화공업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4년 전부터 여기에 손을 대기 위한 작전을, 생활을 중심삼고 거기에 관계된 것을 은밀히 연구해 나온 겁니다. `요럴 때가 올 것이다' 해 가지고 3년 전에 계획을 세우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통일교회 간부들은 선생님이 뭐…. 내가 지금까지 고생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회사를 만든 거라구요. 이제 한 2년만 있으면 이 회사는 우리 것이 됩니다. 또 그 회사는 앞으로 무궁한 발전을 할 것입니다. 제1, 제2, 제3, 제4, 제5공장…. 그 공장의 시설에 필요한 파이프를 우리가 만드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제2공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6억원쯤 필요하지만 우리가 2억원이면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내가 준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그런 일을 해온 거예요.
선생님이 이제 한국에 있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들을 그냥 내버리고 다 헐어 버리고 갈 수가 없기 때문에, 바쁘다구요. 1973년도까지는 대학교를 세워서 기반을 닦아야 되고 신문사까지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대학과 신문사만 만들어 놓으면 정부도 꼼짝달싹 못 하게 됩니다. 대학가에 있어서 원리운동을 중심삼고 지금 정보부에서 우리에게 학생지도를 의뢰하고 있는 판국인데, 대학교만 있어서 도장만 누르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꿈이나 꾸고 있어요?
이것이 다 나라를 찾기 위한 준비과정인 것을 알고, 여러분은 여기에 보조를 맞추기 위한 심정적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지금 교회를 중심삼고 전심전력을 다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갖추어야 할 자연적인 환경을 못 갖추었기에 그 일까지 선생님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적 분야를 등한시하고 외적 분야를 등한시할 때, 여러분이 그것을 하지 못하는 한 교회면 교회장이 파수꾼이 되는 겁니다. 전도를 못하게 되면 붙들고 눈물을 흘리고,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크지 않아도 괜찮아요. 기성교회를 보면 교회들이 다 좋은데 뭐 하려고 우리가…. 그들은 어차피 우리 통일교회로 넘어오는 거라구요. 안 들어오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것보다도 전체 국가와 민족을 위한 터전을 닦는 것이 더 시급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교회를 위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교회를 지을 때, 딴 데는 돈을 주면서 우리에게는 왜 주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교회는 내 편이라구요. 알겠어요? 교회는 내 편입니다. 이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위해 염려하며 가는 길이 복귀의 길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위하는 책임을 하자는 것입니다.
높고 귀한 당신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 좌정한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수고와 역경 가운데에서 사망세계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해, 당신의 뜻을 대할 수 없는 부족한 자녀들이 될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인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이 자리에 참석하였사오니, 언제나 자비롭고 긍휼하신 마음으로 역사노정을 지켜오시고 그 시대의 인류를 보호해 오신 아버지의 사랑으로 다시 저희를 찾아와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10월을 맞이하여 지내는 매일매일의 생활이 당신이 바라시는 뜻에 따라 높고 귀한 생활을 해야 할 저희들이었지만, 당신은 제쳐 두고 자신들만으로 지내 나온 부족한 것들이 있더라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지극히 선하신 아버지가 인간들을 대해 바라시는 뜻을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그 선한 기준에 도달하기에는 저희들이 너무나 미급한 인생들이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님은 늘쌍 외롭고 서러운 자리에서 지내 오셨다는 것을 느끼면서 저희들이 이 자리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앞에 머리를 숙이고 당신의 긍휼과 자비와 용서가 저희의 몸 가운데 같이하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
에덴에서 당신이 그리운 마음을 가지고 대하던 본성의 인간의 모습을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청중 가운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면 저희에게는 그 이상 감사한 일이 없겠습니다만, 그런 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당신이 바라시는 본성의 아들과 딸의 모습이 될 수 없는 타락한 조상의 혈통을 받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원통하고 비통한 것인가를 저희들은 잘 알게 되옵니다. 긍휼의 마음으로 저희들은 굽어살피시옵소서. 그냥 두어서는 안될 인간들이오니 동정의 마음을 가지고 찾아오시옵소서.
당신의 딱한 사정보다 더 딱한 사정 가운데 놓여질 수밖에 없는 불쌍한 인간인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당신께서 스스로 극복해 나오기만을 바라는 불효 자식인 것을 생각할 때, 용서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무력한 인간이기 때문에 능력의 주체이신 아버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이러한 필연적인 결과에 처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을 아시는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이 이와 같은 사실을 모를 때에도 저희들을 지키시기 위하여 수난의 길을 재촉해서 걸어오셨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제는 저희가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무리이기에 필시 현현하시어서 저희와 사정을 같이 의논하시지 않으면 안될 입장에 계시다는 것도 아옵니다.
그러기에 저희를 대하는 아버지의 기대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악의 세력 가운데서 슬픔을 당하고 고독을 느끼고 비참상을 느끼던 아버지의 마음을 그나마 땅 위의 한 무리를 통하여 위로받고자 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세상의 누구도 저희와 같은 무리가 없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인연된 저희를 찾아오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어떻게 해서라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일면의 그 무엇을 찾기를 고대하는 마음만은 저희들이 갖고 있사옵니다.
세상을 대하여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대신 저희들을 원망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용서하고자 하시는 높고 귀하신 아버지의 마음이 있음을 저희들은 생각하고, 제가 당하는 수난이 저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세상을 용서하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시는 수난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리에 설 수 있게 하여 주신 것만으로도 저희들은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나만을 위하여 수난길을 자처해 간다 하더라도 그 길을 취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인 것을 생각할 때, 그러한 못난 인간이지만 아버지께서는 수고하고 슬픔을 느끼는 입장에서 저희들을 찾아오시어 그 길을 가도록 촉구해 주시고 혹은 책망하시고 혹은 권고해 주시오니, 이 자리가 얼마나 많은 아버지의 수고로 말미암아 갖추어졌다는 것을 알고 귀하게 여길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아침 저희의 부족한 마음의 문을 열어 당신이 현현하실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갖추어 가지고 높고 귀한 선의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본성의 모습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하고 싶사옵니다.
그 아들딸을 대하여 아버지께서는 거리낌없이 마음을 다하고, 영원히 영원히 안식할 수 있고, 자랑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자녀로 칭찬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내 아들이고 딸이라 할 수 있는 그 순간이 오기를 얼마나 얼마나 그리워해 나오셨는가 하는 것을 느낄 적마다 저희 자신의 미급함을 통탄하여야 되겠습니다.
저희 자신이 미급할 뿐만 아니라 악과 동반하며 선을 배반한 때가 많았던 추악한 자신을 비판하여, 아버지의 심판대 앞에 고소할 줄 알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본연의 모습도 발견할 줄 모르는 자리에 선 인간인 저희들을 일깨우시기 위해 언제나 상대적인 면을 통하여 권고하시고 이끌어 주신 역사적인 인연을 생각할 때 감사드리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인간을 이끌어 주기 위한 대표적인 사명을 지고 왔던 사람들이 그 시대 시대에 사명을 짊어졌던 하늘의 역군들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걸었던 노정은 기쁨의 노정이 아니었고, 그들이 닦아 간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라 개척의 길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들이 개척자로서 당한 서글픔은 그들 개체로 말미암아 당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표하여 당한 것임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눈물짓는 한때를 맞이한 것을 알게 될 때 저희들도 그들과 더불어 눈물을 흘러야 되겠고, 그들에게 극복해야 할 고비고비의 수난길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들이 당한 이상의 서러움과 처량함과 분함을 느끼는 저희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이제 깨닫게 하여주시옵소서.
아담 가정으로부터 아벨, 노아, 아브라함, 모세, 세례 요한과 예수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 기독교의 피 흘린 역사과정에서 쓰러져 간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역사적 전통을 이어받게 하기 위해 2천년 기독교 문화사를 통하여 수난의 역로를 개척해 나왔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오늘날 보잘것없는 이 무리를 쓰러져 가는 기성교단을 대신하여 새로운 교단으로 세워 주신 것을 생각할 때, 저희에게는 꺼져가는 등불을 다시 모아서 밝혀야 할 책임이 있고, 암흑의 천지에 새로운 등대로서 방향을 제시하는 빛의 역할을 해야 할 중차대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이 처하고 있는 자리는 스스로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저희 자신이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저에게 권고한 인연을 따라서 설정된 자리인 것을 확실히 깨달아, 오늘 이 자리에 처한 자체를 중심삼고 좌지우지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 인연을 통한 아버지의 심정과 내연에 따라 좌왕우왕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고마우신 아버지인 것을 저희는 진정 몰랐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음의 도수가 가해지는 수난길 가운데에도 선두에서 탕감 노정을 개척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저희들이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언제나 기쁨이 충만해 있고, 영광 가운데서 권위를 자랑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그런 것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그보다도 아버지가 영광 되기 전에 인간 자신이 영광스럽게 되기를 바라셨다는 것을 알고, 당신이 좋을 수 있는 입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하여 수난길을 자청해서 걸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 저희들은 아버지는 선하신 분이요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악한 무리를 치시고 악한 자를 제압하시어 선한 기준을 세우고자 홀로 수고하시는 아버지 앞에, 아버지를 그 질곡으로부터 해방시켜 드릴 수 있는 하나의 모습과 하나의 무리가 필요한 것을 저희는 알고 있사옵니다. 그럴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자리는 통일교단의 본부입니다. 청파동이라는 곳은 반대자 앞에 있어서는 자극적인 곳이 되겠지만, 아버지의 마음 가운데에는 슬픔의 상징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자리는 저희들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싸움의 본산지요, 저희들이 수호해야 할 하늘의 기반이 되기도 하며 하늘의 초소도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처소를 지키고 이 자리를 남기기 위해서 당신의 슬픔이 얼마나 컸는가를 저희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는 오랜 역사과정에 있어서 선지선열들이 바라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심정을 다해야 할 곳이요, 그 뜻을 세우기 위하여 남아진 최후의 사명지임을 생각할 적마다, 얼마나 두렵고 얼마나 정성스럽게 대해야 할 곳인가를 저희들이 느끼게 되옵니다.
수십 년을 지내 나온 역경의 통일교회 역사를 더듬어 볼 때, 저희들은 아무래도 좋지만 아버지는 그럴 수 없는 수난길에서 배가의 수고를 해오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뜻이 이루어질 한날이 가까워 오면 가까워 올수록 저희가 아버지 앞에 진 빚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저희들은 그 시간을 통해서 아버지 앞에 진 빚을 가려야 되겠습니다. 그 빚이 세계를 통한 빚이요, 국가와 민족을 통한 빚이요, 사망권내에 있는 수많은 개개인을 통한 빚인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삼천만 민족 앞에 남겨진 빚을 가려야 되겠고, 이 민족과 이 국가 앞에 남겨진 빚을 가려야 되겠습니다. 세계 앞에 남겨진 빚을 가려야 되겠습니다. 그 빚을 가릴 수 있는 생애의 한계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있는 정성을 다하고, 피눈물을 투입해서라도 이 빚을 갚고 가겠다고 몸부림쳐야 되는 것이 통일가에 속한 사람들의 운명인 것을 생각할 적마다 이들은 불쌍한 무리라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도 불쌍하고 외롭고 고독하지만 당신의 뒤를 따르는 무리들도 그러하기 때문에, 이 무리에게는 당신의 위로만이 필요하고 당신의 보호만이 필요합니다. 당신 이외에는 일체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사옵니다. 외로이 눈물짓는 자리에 나타나시어 권고하시는 아버지의 인연이 필요한 것이요, 저희들에게 충격적인 명령을 해주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 보잘것없는 저희들임을 아버지께서는 너무나 잘 아시옵니다.
이 아침에도 저희를 찾아 주시옵소서. 세계인의 마음 앞에 지금까지 개인으로서 역겨운 사망의 세계를 벗어나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였던가, 뜻을 따라오는 배후에서 그 길을 개척해 오신 아버지의 가중된 수고의 기준이 또 얼마나 무거웠던가, 나 자신이 그 짐을 좌우 안팎에 짊어지고 지친 다리를 끌며 고달픈 인생길을 걸어오기가 얼마나 힘이 들었던가를 생각하게 될 때 쓰러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좌절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제 전진적인 행로에 태산준령이 가로막혀 있다고 해도 저희는 악착같이 사력을 다하여서 이것을 넘어야 되겠습니다. 부딪혀 오는 원수의 장막이 앞을 막는다고 해도 이것을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그 누구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저희 일대에 감당해 내겠다고 스스로 결의하는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복귀의 운명길을 더듬어 가고 있습니다. 이 길은 저희들 홀로 갈 수 없는 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거느리고 가야 되고, 여자는 남자를 따라가야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늘나라는 혼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저희 개체만을 위하여 정성들여 가지고는 안 되겠습니다. 둘이 합하고 한 가정이 합하여 정성들인 도수(度數)가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개체들이 투입하였던 정성의 도수를 능가하지 않고는, 우리가 바라는 통일가(統一家)를 통한 천국이념의 현현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저희 가정들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통일가의 사명이 얼마나 지중(至重)한가를 느낄 적마다 통일가의 일원으로 부름을 받고 택함을 입었다는 사실이 어떤 단체의 일원으로 택함을 받은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여, 능력을 가지신 아버지시여, 투쟁의 선봉에서 싸워 나오시는 아버지시여, 저희들은 그런 아버지를 믿고 있기 때문에 강해야 되겠습니다.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싸움의 노정에서 주저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 다시 한번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10월 10일, 쌍십절을 맞는 날이옵니다. 이날이 복된 날이 되기를 바라옵니다. 이날은 더욱이나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에 이 본부를 그리워하면서, 혹은 하나의 뜻을 바라보면서 무릎을 꿇고 정성을 들이며 외로이 눈물짓는 무리가 있거든, 제가 그러할 때 아버지께서 같이하셨듯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권고하시는 아버지의 사정이 거기에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마음과 마음을 연결시키고, 사정과 사정으로 엮어진 그 터전이 당신이 기뻐할 수 있고 당신이 활동할 수 있는 승리적 터전으로 남아지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욱이 일선에 나가 있는 외로운 딸들을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국가와 민족을 앞에 놓고 교단적인 통합을 이루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도, 이달에도, 이해에도 남아진 복귀의 노정을 재촉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을 홀로 두지 마시옵소서. 전후좌우에 저희를 옹호할 수 있는 천군천사를 배치하시옵고, 당신이 주도하시는 목적을 제시하여 저희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 길을 달려가고 쉴새없이 그 결과가 이루어지도록 다짐지을 수 있는 무리로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해외에 널려 있는 당시의 자녀들의 사명이, 이 땅을 대하여 해원성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의 입체적인 사명이 저희들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에 당신의 은사와 사랑이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옵기를 바라며,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 개체 개체의 인간을 두고 보면 그 전후 좌우 상하에 있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알든 모르든 간에 인연을 따라서 관계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태어난 그 자체를 두고 볼 때 여러분에게는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는 것입니다. 또, 그러한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거기에는 친척이 있는 것입니다. 친척을 중심삼고 보면 거기에는 민족이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민족을 중심삼고 보면 거기에 국가가 연결되어 있으며, 국가를 중심삼고 보면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하는 역사적 인연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떠한 존재가 생성되게 될 때 그냥 그대로 목적이 없이 생겨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일신의 눈이면 눈을 두고 볼 때, 그 눈이 생겨나게 될 때에는 눈으로서 상대할 수 있는 여건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반드시 어떠한 목적을 두고 생겨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사지백체의 어떤 부분도 그러한 내용을 갖지 않은 부분이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지체가 그러하거늘 우리 인간 개체 개체가 태어나는 데 있어서도 반드시 상대적 요건을 중심삼고 어떤 목적을 위하여 태어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목적이라는 것은 태어난 후에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이미 설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성품이 각각 다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과학에 취미를 갖고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문학에 취미를 갖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예술 방면에, 혹은 종교적인 면에, 혹은 정치적인 면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각각 자기의 소성(素性)에 따라 그 관계되는 목적을 추구하는 노선이 달라지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될 때, 이것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본성의 요구에 의해 달라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질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 분야에 소질이 있다든지 혹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 분야와 인연된 내용을 얼마만큼 갖추고 있느냐 갖추고 있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말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 있는 나 개인이라는 것을 두고 볼 때 나 개인은 개인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인연권을 갖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인연되어진 것을 따라서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인연이 없어 가지고는 관계가 맺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를 두고 보더라도 남자와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인연의 길을 따라왔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관계를 맺어 가지고 하나의 또 다른 목적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이루어진 가정이 하나의 주체가 되어 가지고 또 다른 대상적인 가정과 관계를 맺어 더 큰 목적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족이 형성되는 것이며, 또 그 민족은 하나의 주권을 중심삼고 더 큰 목적을 추구하여 세계로 발전해 나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관계를 중심삼고도 이러한 내적인 인연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도 우리 인간을 대해서 관계를 맺고자 하실 것인데 그러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동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 동기는 어차피 하나님쪽이든 인간쪽이든간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그 동기가 된다면 그것은 주체적 동기가 될 것이고, 인간이 그 동기가 된다면 상대적 동기가 될 것입니다. 어쨋든 상대가 동기가 되든가 주체가 동기가 되든가 그 둘이 묶어져서 반드시 내적인 인연을 통해 새로운 목적을 추구해 나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그것이 하나의 인연을 따라 그 기점에 서게 된다면 그 기점에서는 반드시 하나님과 인간을 중심삼은 목적관이 설정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공산주의자들은 그런 자리에서 목적관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인연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혼자 있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인연이라는 말 자체는 상대적 요건을 갖추게 될 때 성립되는 말입니다. 상대적 요건이라는 것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 가지고 관계맺을 수 있는 조건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상대적 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공동적으로 요구하는 내용이 있어야 됩니다. 다같이 바라는 것이 없고서는 상대적 인연을 추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라는 데는 지금 자기가 상대하고 있는 기준 이하의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둘이 합하여 더 큰 것을 바라고 나가는 것입니다.
상대적 요건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 주고받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데는 그냥 주고받는 것이 아닙니다. 또 주고받는 데 손해나기 위해서 주고받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데는 받는 것보다도 주는 것이 보다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보다 더 큰 어떤 목적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그 자식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부모 앞에 귀결되는 그 무엇을 바라서라기보다도 더 고차적이고 입체적인 면에서 자식을 사랑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자기에게 되돌아올 것을 바라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큰 목적의 기준에 일치될 수 있기를 바라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더불어 언제나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식이 자신에게만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세계 인류에게 필요한 사람, 더 나아가 그보다 더 높은 분이 있으면 그분에게도 필요한 사람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자기에게 한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되 그 사랑은 보다 차원이 높은 목적의 귀결점에 도달하기를 바라서 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 인간의 부자 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그런 주고받는 자리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주고받는 그 자체로 끝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을 넘어 그것이 보다 고차적인 세계로 가기를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도 역시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부모 입장에 계시다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만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만민에게도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이 되돌아가서 전체의 중심인 하나님과 다시 귀결점을 갖게 될 때 하나의 주고받는 길이 세계에 설정되는 것입니다.
주는 모체가 선하면 돌아오는 결과도 선하기 때문에, 그 권내의 전체 환경이 선하게 될 것이고 선한 국가와 세계가 현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가 오늘날 타락한 인간 세상에서 추구하는 하나의 이상적인 세계가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현재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타락한 우리 인간은 반드시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인연을 따라가야 합니다. 타락의 인연을 벗어나서 본연의 인연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고로, 그로 인한 생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인간이 어떻게 본연의 생명의 인연을 추구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내가 태어나고 보니 나는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당당하게 설 수 없는 사람이더라는 거예요. 악을 대해서는 당당하게 설 수 있지만 선을 대해서는 자신을 가지고 설 수 없는 사람이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악의 인연을 따라 태어난 우리 개체들의 인연을 그냥 그대로 존속시키고 옹호하여 그 인연을 세워 나가면 좋겠지만, 오늘날 타락한 결과에 처해 있는 우리 인간은 그냥 그대로는 이상의 자리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냥 그대로 처해진 환경에서 보다 높은 차원의 길을 찾아가야 할 인간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연되어 있는 현실의 모든 관계를 부정하고, 이것을 타파해 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는 것이 오늘날 악한 세계에 살고 있는 인류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의 발전사를 헤아려 볼 때, 우리 인간은 벗어날 수 없는 사망의 인연권내에서 많은 피를 흘려 가지고 이만큼이라도 올라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좋거나 나쁘거나 간에 많은 희생을 치러 가지고 이만한 세상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세계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현재의 세계가 귀하다면 귀하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세를 붙안고 살아야만 되고, 또 이 현세와 더불어 귀한 나 자신을 찬양하는 무리가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현세는 우리 자신들이 붙들고 살 수 있는 입장으로 움직여 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은 보다 높은 차원으로 갈 수 있는 터전을 우리에게 양보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금후의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일본이면 일본이 어떻게 될 것이냐? 일개 국가를 중심삼아 결정적인 어떤 목적을 세워 가지고 방향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 그 무엇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면 민주주의, 공산주의면 공산주의 그 자체를…. (테이프 중단됨)
결과의 세계인데도 불구하고 자체를 옹호하고, 거기에서 자주성을 세워 가지고 행복의 요인을 찬양하기에 그것은 너무나 먼 거리에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다 막혀 버렸어요. 이 이상의 인연을 추구할 수 있기를 바랄 수도 없는 단계까지 왔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우리 인간 개체들은 어떠한 가정이라든가 민족이라든가 국가의 기반을 통해서 관계된, 결과되어진 터전을 존중시해 왔지만, 그로 인해 더 큰 세계를 존중시할 수 있는 도수가 높아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가 존중시하던 환경을 타파하는 결과점에 도달한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까지의 역사라는 것은 우리 인간이 존중시하는 인연을 보존시킨 것이 아니라, 결과에 가서는 그것을 더럽히고 실패로 이끌어 왔다는 것을 우리 개개인의 생활을 보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세계적으로 동요하는 시기에 우리는 처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혼란기에 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혼란기를 가려 나갈 수 있는 인연의 모체는 어디에 있으며, 그 인연으로 묶어진, 관계맺어질 수 있는 목적의 실체는 어디에 자리를 잡을 것이냐 하는 것도 확정지을 수 없는 시점에 우리는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 가운데에 오늘날 통일교회라는 한 교회가 나타났습니다. 통일교회라는 하나의 교단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면 이 교단이 나타나는 데에 있어서 오늘날 결과되어진 세계의 환경이 환영할 수 있는 내적인연과 과정을 거쳐왔느냐 할 때 그렇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 과정도 다릅니다.
우리는 현시대의 사회에서 환영받는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는 곳곳마다 부딪히면서 걸어왔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세계에는 통일교회가 바라볼 수 있는 상대적 요건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길을 개척해 나온 것입니다. 상대적 요건이 필요하니 우리가 재창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태어날 때 이 세상에 여자가 있는지 없는지 걱정하며 태어나는 남자는 없을 것입니다. 또, 태어날 때 남자가 있는지 없는지 걱정하면서 태어나는 여자도 없을 것입니다. 태어나면 남자가 있게 마련이고 여자가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통일교단이 태어나는 데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내적 인연은 있었지만 인간 세계 중심한 상대적 인연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이 준비시킨 것이 수많은 종교가 아니었느냐? 종교 가운데도 기독교가 아니었느냐? 이렇게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타나기 전에 하나님이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통일교회를 위해 수고하신 길이 있었다면, 통일교회가 끝날에 가서 주체적인 사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통일교회 앞에 상대적인 어떠한 권(圈)을 만들기 위해 수고하신 길일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만들어 놓지도 않고 주체적인 사명을 하라고 하신다면 큰 수난길을 거치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그 수난의 길을 막기 위해서 준비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종교권이요, 그 종교권을 대표한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도 역사적인 인연을 따라 기독교라는 명칭을 붙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용면에 있어서 기독교와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이 있느냐? 평면적으로는 기독교와 일치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입체와 평면이라는 여건을 중심삼고 일체화시킨다면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이 있겠지만, 평면적인 입장에서는 일치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르다는 겁니다. 하나가 왼손이면 하나는 바른손과 같습니다. 이것은 갖다 대면 부딪히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몸뚱이에 갖다 붙이게 되면 손은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조화를 이룹니다.
이런 입체적인 인연을 두고 볼 때는 반드시 귀결을 지어야 할 인연을 갖고 있지만, 평면적인 입장에서는 안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입체적인 중심이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은 이것은 어떻게 하시겠느냐? 하나님은 이것을 조정하려고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통일교회만으로 있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요, 기성교회만으로도 있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성교회는 누구를 위해서 생겨난 것이냐? 통일교회를 위해 생겨난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누구를 위해서 생겨난 것이냐? 기성교회를 위해 생겨난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요, 기성교회도 기성교회만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둘은 공동목적을 중심하고 인연과 관계를 지어 보다 큰 세계적인 일념을 중심삼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그러하기 때문에 그 목적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귀결되어야 할 상대적 인연을 갖게끔 생겨났는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이러한 인연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또 다른 슬픔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슬픔은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슬픔이 아닙니다. 그 슬픔은 인간관계 때문에 슬퍼지는 슬픔이 아닙니다. 인간관계로 보면 아버지는 기성교회에 다니고 아들은 통일교회에 나온다고 할 때 거기에는 슬퍼하고 반대할 아무런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인연보다도 더 큰 종적인 인연, 인간으로서는 터치할 수 없는 주체적인 인연이 거기에 개재해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을,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인연을 따라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인연의 모체인 하나님을 놓고 상충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와 통일교회 가정과 통일교회 식구들이 역사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겪었던 핍박이었습니다. 그런 핍박의 노정을 거치게 된 것이 평면적이요 인간적인 것이 동기가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적인 것이 동기가 된 게 아니라구요. 인간적인 것이 동기라면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기성교회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통일교회를 반대했습니다. 그것은 국가의 주권자와 주권을 형성하는 민족과 인간관계로 인해서 부딪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중심삼고 평면적으로 관계를 가진 입장에서 부딪힌 것이 아닙니다. 그것과는 다른 입체적인 인연을 통해서 부딪힌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전세계적으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통일교회를 다시 알아보려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국가가 우리 교회를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고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한국이라든가 일본이라든가 미국이라든가 그리고 구라파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모든 실황은 인간관계를 중심삼고 출발된 것이 아니기에, 인간이 추구하는 것보다 보람있고 보다 가치있는 세계가 목적하는 이상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간들이 인연이나 관계를 통해서 추구해 나오던 내용들보다도 더 차원이 놓고 더 입체성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권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통일의 문화권은 새로이 시작될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중심삼고 인연되어 하나의 가정이 이루어지고 하나의 종족, 민족, 국가가 형성되는데도 불구하고, 인간관계를 초월하여 하나님이 여기에 인연되어 가지고 인간관계를 엮어 나간다고 하면 인간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왜 그러냐?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하나님과 상응될 수 있는 세계가 못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상충된다는 겁니다. 하나가 외로 가면 다른 하나는 바로 갑니다. 하나가 앞으로 가면 다른 하나는 뒤로 갑니다. 하나가 내려가면 다른 하나는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상응될 수 있는 요건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전체가 상충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참된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희생을 치른 것입니다. 이 상충의 골짜기를 메우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희생을 했고, 상충된 가정의 골짜기를 매우기 위해서 가정적으로 희생했고, 종족의 골짜기, 민족의 골짜기, 세계적 골짜기를 메우기 위해서 종족적, 민족적, 세계적 희생을 해 나와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종교가 기독교였습니다.
그러면 기독교가 가야 할 목적의 세계는 어디냐? 기독교만의 평면적인 관계를 통해서 귀결될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 내용을 통하고 입체적인 관계를 통해서 입체적인 목적의 귀결점을 찾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새로운 지상의 천국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뜻으로 봐도 그런 때가 왔습니다.
세계를 두고 볼 때, 이 세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 그냥 그대로 인간관계만을 맺어 나갈 것이냐? 사람이 약속을 했으면 반드시 이행해야 합니다. 망하더라도 약속한 것을 붙들고, 망하고 죽더라도 약속한 것을 붙들고 이행하다가 죽어야 합니다. 인격자라면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지금 때는 국가간에 있어서 체결한 중대한 조약을 인사도 하지 않고 파기해 버리는 시점에 들어왔습니다. 자기 나라도 믿을 수 없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라도 믿을 수 없는 때라는 거예요. 어떤 주의나 사상도 우리가 믿고 따라갈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면 공산주의, 민주주의면 민주주의,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관계를 두고 보면, 많은 인간이 합해서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런 국가를 중심삼고 하나로 연결된 사상 자체를 믿을 수 없는 때가 됐습니다. 믿을 수 없는 때가 되었다는 것은 뭐냐 하면 관계되어지고 인연되어진 내용을 부정하는 시점에 부딪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여기에서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절망할 수박에 없는 때입니다. 이러한 때를 우리 통일교인들은 어떻게 보는가? 절망할 때가 와야만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인간관계가 맺어진 인연을 두고 볼 때, 그 인연은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인연이 아닌, 악이 주체가 되어 악의 혈족이 투입된 인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그냥 영원히 보존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개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세계관은 물론이요, 국가에 대한 인식도 희박하게 되었습니다. 가정이나 부모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부모가 뭐냐는 식이예요. 나중에는 `남자가 뭐고 여자가 뭐냐? 남자고 여자도 그렇고 그런 것이다. 자식도 그렇고 그런 것이다'라고 할 것입니다. 개인주의를 주장하다 보니 나중에 갈 곳은 고독한 자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 잃어버리고 마는 거예요. 왜 그러냐? 세계에서부터 개인까지 전부 다 산산조각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갈라져야 되는가? 여러분, 타락이 뭣 때문에 생겼어요? 개인주의가 발로되어서 타락했습니다. 가정주의의 발로가 그 원인이 아닙니다. 천사장이 타락하게 된 동기가 뭐냐? 개인주의가 발로된 것이 동기였습니다. 개인주의를 인연삼고 출발했기 때문에 그 결과는 개인주의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나라도 없고 이념도 없는 것입니다. 단지, 자기의 자극적인 만족 외에는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 해와가 천사장과 개인적인 입장에서 자극적인 불륜의 사랑의 인연을 맺어 가지고 출발함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타락의 결과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심었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의 세계가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느때에 심어졌느냐? 노년기가 아닌 청소년기에 심어졌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청소년기의 윤락이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개인적으로 감정적으로 감각적인 동기를 심었기 때문에, 그런 씨를 심었기 때문에 그것이 세계적으로 거두어지는 가을 절기가 된 것입니다. 가을이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관계되어 있는 모든 인연은 푸르른 한동산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 못 되는 것입니다.
앙상하게 천태만상의 결실의 과정을 거쳐 나가 나중에는 잎이 마르고 열매까지도 말라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가운데에 씨만이 남아 지는 것입니다. 나무도 아니요, 열매도 아닌 하나의 씨가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 씨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계의 종말을 맞이한 추수기, 인류역사의 추수기를 맞이해 가지고 볼 때 남아질 수 있는 것은 열매가 아닙니다. 가지도 아닙니다. 색다른 하나의 씨입니다. 이것은 공산주의도 아니요 민주주의도 아닙니다. 그 씨는 전부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열매와도 관계 없고 가지와도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본성, 본질에 있어서는 잎과 가지의 요소를 전부 다 흡수해 가지고 집약시킨 것입니다. 집약될 때, 그 나무가 죽더라도 씨는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달라진다는 거예요. 나무가 죽더라도 씨는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에 있어서 추수기, 수확기를 맞이하여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씨가 있어야 될 것이니, 그 씨는 민주주의가 망해도 남아져야 하고 공산주의가 망해도 남아져야 된다 이겁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악한 인연을 통해서 감정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것을 중심삼고 뿌려진 씨가 세계적으로 거두어져야 할 종말시대에 처해 있기 때문에, 개인주의적인 입장에서 감정을 따라 난동하는 청소년층은 물론이요 이 사회의 어디에도 여러분이 기대를 걸 수 있는 그 무엇이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나라도 없습니다. 가정도 없고 부모도 없습니다. 윤리 도덕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없다구요. 전부 다 부정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문화세계도 부정하는 것이요, 전통도 부정하는 것입니다. (잠시 녹음이 중단됨)
장발족, 이 패들…. 대한민국에서 잘하는 거라구요. 그런 장발족들은 데려다가 머리를 깎아 버려야 합니다. 머리카락을 자르기만 해요? 아주 뽑아 버려야 된다구요. 우리 통일교인 가운데는 그런 사람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타락의 기원, 본래 인간이 출발한 기원을 우리가 해부해 보면 개인적인 감정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 인류역사의 기원이기에 현시대는 그것이 귀결될 수 있는 때인 것입니다. (잠시 녹음이 중단된)
자유사상! 이런 자유로운 사상이 있기 때문에 어느 틀거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꼬짝(상자) 같은 데에 박아 놓지 않는 거라구요. 마음대로 자라서 마음대로 하다 보니 결과는 다 같다 이겁니다. 결과는 다 같아진다는 거예요. 마음대로 하면 나중에 어떻게 되느냐? 그것이 특별히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다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유사상이 좋기는 하지만 자유사상이 갖다 준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냐? 자유사상을 통해서 새로운 윤리관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자유사상은 윤리관의 파탄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인간이 본래 에덴 동산에서 출발하게 될 때 스스로 자유의식을 가진 것은 파탄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그 결과도 파탄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어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자유라는 것은 진취적인 발전의 기대를 조성하는 깃이 아니라, 방종적인 기대를 확대시켜 파탄의 요인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제1의 무기입니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은 사탄의 무기입니다. 통일교회의 사상은 이렇게 규정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차원을 달리한 새로운 입장에서 입체적인 인연을 기원으로 하여, 자기의 감정과 자의적인 목적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의적인 감정에 따라 공의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다시 말해 차원이 다른 입체적인 인연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식구와 통일가정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릅니다. 근본부터가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앞으로 엎드려서 가면 우리는 뒤로 자빠져서라도 가야 될 것입니다. 그들이 북으로 가면 우리는 남으로 가야 됩니다.
끝날은 무얼 두고 말하느냐 하면, 일년 중 가을과 같은 때를 말합니다. 가을이 되면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잎이 떨어지는 데는 어디서부터 떨어지느냐? 줄기에 있는 잎부터 떨어진다구요. 가지에 있는 잎부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구요. 옛날, 구시대의 것이 먼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권력이 다 떨어져 나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으로 보게 되면, 우리 30대가 세계를 요리할 때에 들어왔다 이겁니다. 그리고 이제 조금 지나면 10대 20대가 세계를 요리할 수 있는 때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 대학가가 문제입니다. 옛날에는 70,80대가 되어야 나라를 움직일 수 있었는데 그것이 60대로, 50대로, 40대로, 30대로 점점 내려오고 있습니다. 20대를 지나 앞으로 그것이 10대로 넘어오게 되면 고등학생들을 어떻게 수습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대학생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대학생은 수가 적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고등학생들을 어떻게 수습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죽이고 살리는 것이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요즈음에는 나이 많은 사람들은 구세대라고 해서 축에 들지도 못하지요? 대학의 교수들 중에서도 50대를 넘은 교수들을 구세대 모델케이스로 취급한다는 거라구요. 박물관에 갈 수 있는 하나의 표준형이라는 거예요. 30대라야 학생들이 흥미진진해 한다는 거예요. 이상하지요?
그것이 뭐냐 하면 잎이 떨어지는 거라구요. 인류 문화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오래된 사람이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다 떨어져 나가는 거예요. 옛날에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 말씀이라 하게 되면 동네 전체가 왔다갔다했는데 이제는 동네 개도 할아버지 말에는 꿈쩍도 안 한다는 거라구요. 그렇게 됐습니다. 무력해졌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대접받겠다고 하면 대접해서는 안 됩니다. 대접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 할아버지들이 잘못했다는 거라구요. 자신들이 행동한 대로 받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의 인류의 역사가 비운의 역사를 따라왔다는 것을 그 자신들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정지어야 할 것이었는데, 우리 조상들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거쳐왔던 것입니다. 그들은 역사가 이렇게 흘러왔다는 것을 확정짓기 못했습니다. 책임을 못한 조상을 우대하면 안 됩니다. 그런 조상을 우대하면 천륜이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할아버지 시대가 지나가고, 아버지 어머니 시대가 지나가고, 형님 누나시대도 지나가고, 이제는 나의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지금 때는 어떤 때냐? 지금은 청춘시대입니다. 젊은 세대예요. 대한민국에서 지금 제일 골치 아픈 것이 뭐냐 하면 여당 야당이 골칫거리가 아니라 대학가입니다. 조금 더 나가면 고등학교일 것입니다. 마지막 판에 이른 것입니다. 이제는 끝날이 가까와졌다는 거예요.
타락의 동기가 뭐냐 하면, 개인주의가 발로되는 것이 타락의 출발점입니다. 그렇잖아요? 개인주의의 발로가 타락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세계고 무엇이고 없다 이거예요. 그 다음에, 자유분방의 터전을 지니게 된 것이 타락의 요인입니다.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는 게 뭐야? 법이고 무엇이고 없으면 좋겠는데 법이 왜 필요해? 제약이 왜 필요해? 우리 마음대로 하면 되지. 그렇게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예요? 그러면 안 된다구요.
자유스러우면 자유스러울수록 그 세계는 질서와 규약이 지켜져야 되는 것입니다. 정밀한 기계면 기계일수록 종횡으로 원리원칙에 의한 질서대로 법칙적인 궤도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칙에 따르게 될 때 자유활동의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과학문명과 사회제도를 중심삼고 볼 때에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회의 구조도 자유로운 형태를 요하고 있습니다. 인간만 자유를 요하고 사회제도는 자유를 요하지 않느냐? 사회제도는 인간과 상응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제도가 조직과 체계의 규제 밑에서 형성되었으면 인간은 그 체계화된 제도에 응하고 거기에 대비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주체적인 입장에서 도리어 보장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인간이라는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방종적인 자유는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100과 0을 보면 어느 것이 더 잘생겼어요? 어느 것이 더 잘생겼어요? 잘생긴 것으로 말하자면 0이 잘생겼어요. 잘생겼지요? 눈으로 보면 100, 이게 잘생겼어요? 그런데 왜 100점을 좋아해요? 잘생긴 것으로 보게 되면 0점이 얼마나 좋아요? 모양이 둥글하고 말이예요. 그러나 0점 좋아하는 사람은 여기 없을 거라구요. 보라구요. 모양으로 보게 되면 0이 좋은데 내용으로 보면 상반적으로 100이 좋다는 거예요. 그러기에 어리석은 사람은 모양을 보고 좋아하는 것이요, 지혜로운 사람은 내용을 보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100점을 좋아합니다. 100은 말이요, 사방으로 되어 있어서 그저 동서남북 모두 100입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원하는 것입니다. 이 100점을 거꾸로 놓으면 1이 되지요. 합하면 남는 것이 `1'이라는 것입니다. 합하면 0은 없어지고 하나가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0에다 0을 합하면 1이 될 수 있어요? 0은 암만 합해도 0입니다. 내용이 없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러나 100은 아무렇게 뜯어 붙여도 내용이 있습니다. 내용이 없는 것은 무가치한 것입니다.
보라구요. 이 0은 사방으로 통합니다. 어디에 가도 걸리지 않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1은 방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방향대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가게끔 안 되어 있습니다.
가는 데에는 반드시 길이 설정되어야 합니다. 방향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자유주의 사상은 무방향적이지요. 자기 마음대로 하는데 방향이 있겠어요? 그러나 방향 없는 마음이 어디 있어요? 그런 사고방식은 멸망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런 퇴폐적인 사상은 멸살해 버려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어렵고 고차적인 것일수록 가는 길이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잡한 게 좋아요, 단순한 게 좋아요? 복잡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인체 가운데서 눈을 두고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복잡하다는 거라구요. 눈 세포도 각각은 전부 다 복잡합니다. 전부 다 복잡하지만 하나의 생명체로 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 이것이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조하며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눈이고 뭣이고 다 싫고 손이 제일이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전후 좌우 상하 관계에 있어서 위치와 계급에 따라 반드시 각각 제약된 법도와 조건에 순응하지 않고는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통할 길이 없는 거예요.
제약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제약은 완전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완전을 추구하되 최고의 완전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고 정상의 자리에 서려면 최고의 제약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꼭대기에 서려면, 정상에 서려면 횡적으로도 맞아야 하고 중심점과도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치되지 않는 정상은 없는 것입니다. 일치하는 데에서만 최고의 정상이 될 수 있고, 최고의 일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능숙한 기술자라고 하면 그 방면의 규약을 최고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이 최고의 기술자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마음대로 되느냐? 아무것도 몰라서는 마음대로 안 됩니다. 사람이 만든 기계 짜박지들도 그렇거늘, 이 우주에서 최고로 정밀한 기계도 못 당할, 아주 최고로 신비스럽고 정밀한 기계가 인간인데 인간이 제멋대로 되게 되어 있겠어요? 그런 생각은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타락의 인연을 따라온 이 세계는 종말에 가서 기필코 분열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쌀이나 조 같은 것을 보아도, 알이 들때까지는 한 이삭에 붙어 있지만 알이 다 들면 알알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채 익기 전까지는 한 이삭에 전부 다 붙어 있지만 익게 되면 알알이 갈라져야 된다는 거라구요. 인간세상이 지금 그렇게 갈라질 때가 된 것입니다.
지금 때는 가을 절기입니다. 현대 문명은 온대권 문명이니 가을 절기문명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을 절기가 지나면 그때는 한대 문명권인 공산주의가 휩쓰는 거라구요. 그 둘 다 전부 없어져라 이겁니다. 한대권 문명도 봄절기가 되면 녹아지는 거라구요.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뭐냐? 하나의 `씨'입니다. 민주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닌 하나의 씨! 열매가 썩어지고 가지가 죽고 뿌리가 마르더라도 새로운 싹을 틔워 새로운 가지와 새로운 줄기를 뻗힐 수 있고, 새로운 뿌리를 내릴 수 있고, 새로운 잎과 꽃을 피울 수 있고, 새로운 열매를 맺힐 수 있는 내용을 완전히 집약시킨 생명력을 가진 씨가 문제입니다.
그 씨한테는 혹한 설풍이 아무리 불어와도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퇴치하고 제압하고 극복할 수 있는 생명의 실권을 가진 씨가 봄날을 맞이하여 심어지면 새로운 싹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 역사의 가을 절기와 겨울 절기를 맞이한 이 종말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문명을 발생시킬 수 있는 본연의 봄절기 문화권은 어디서 발생할 것이냐? 그것은 종교밖에 없습니다. 인간 역사를 두고 볼 때, 미래에 지상천국이 온다고 하면서 못박아 놓고 출발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에 와서야 하나의 세계를 바라게 된 것입니다. 근세에 들어와서야 인간이 바라는 소원이 하나의 세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종교는 벌써 몇천 년 전부터 딱 못박아 놓고 출발한 것입니다. 종교의 목적지는 이 세상이 아니라 저 세상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치리하고 주도하기 위해서 종교는 지금까지 재림사상을 고취해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종교의 통일, 통일된 종교관을 바라보고 나가는 통일교회는 언제인가는…. 우리가 바라는 주의는 민주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니라구요. 기독교주의도 아닙니다. 기독교주의이긴 하지만 기독교주의와 조금 다릅니다. 입체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입체적인 내용, 하나님으로부터 제시된 새로운 인연을 통하여 설정된 나 자신을 들어 가지고 육신을 들이쳐야 합니다. 몽둥이로 들이치는 거예요. 또, 가정도 그렇게 한번 쳐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칠 때 가정이 깨지는지 자기가 깨지는지 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단체도 그렇게 쳐 보세요. 단체가 깨지는지 자신이 깨지는지 쳐 보라는 것입니다. 국가면 국가도 그렇게 쳐 보라는 것입니다. 국가가 깨지는지 사상이 깨지는지 해보라는 거예요. 또, 공산주의면 공산주의를 쳐서 공산주의가 깨지는지 민주주의가 깨지는지 부딪쳐 보는 것입니다. 부딪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승리의 결정을 촉구하기 위해서 부딪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부딪쳐 나온 것입니다. 번번이 만사가 그렇다는 거예요. 어느 것 하나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어요. 여러분이 전도를 할 때에도 그렇잖아요? 몇 날 몇 시에 어디로 가겠다고 전화라도 딱 약속을 해 놓으면 꼭 그때에 사고가 생기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지는 모르지만 딱 그때에 사고가 나요. 그러면 그냥 못 빠져 나오게 되지요. 그냥 못 빠져 나오는 거라구요. 꺼풀을 벗기든가 살을 떼어 버리든가 해서 완전히 해결을 봐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탕감입니다.
전도하면서 그런 것을 못 느껴 본 사람은 아직 통일교회의 맛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개인이 그런가 하면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범위가 크면 클수록 반드시 그때가 되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반드시 걸리는 거라구요. 호사다마라고 말이예요. 꼭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오늘날 세상의 어떠한 국가를 중심삼고 통일 사상을 상속시켜야 됩니다. 문제가 그렇게 된 거라구요. 안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떤 주권국가면 그 국가가 주권을 통하여 우리의 목을 자르고, 산산조각으로 파헤친다 해도 우리의 사상은 파헤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몸은 파헤칠 수 있어도 우리의 사상은 파헤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문제가 아니고, 민주주의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작지만 초강철의 칼이 되어야 합니다. 남이 우리를 자르게 되면 우리가 잘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잘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거라구요. 우리는 세상적인 인연이 아니라 입체적인 인연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나라도 헤쳐 놓고 주의 사상도 다 헤쳐 놓고 공산주의도 다 헤쳐 놓는 겁니다. 다 갈라놓는 거예요. 그리하여 네 패가 될 것입니다. 네 패가 되면 다 끝이라구요. 지금 그때가 되어 온다는 거예요. 네 패가 안되면 안 된다구요. 세계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예수가 진리의 왕자라면 예수가 심은 그대로 거둘 때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대표해서 심어질 때에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가 있었습니다. 오른편 강도는 우익이요, 좌익은 왼편 강도입니다. 우익은 예수 때부터 나온 말입니다. 왼편 강도는 오른편 강도를 비난했지요? 그러기에 좌익 패들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번번이 들이 맞는다는 거라구요.
또 거기에 누가 있었느냐 하면 바라바가 있었습니다. 바라바는 누구냐 하면 예수님을 도적질한 녀석입니다. 이 바라바형이 아랍 종교권입니다.
바라바는 기독교의 꼴, 틀거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득세하겠다는 패라구요. 그것이 아랍 종교권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형 종교권이 기독교권입니다. 세계는 이것들의 싸움입니다. 민주세계에는 기독교 문화권, 그 다음에 외적으로 아랍 문화권이 있습니다. 또 공산세계 문화권이 있는데 여기에서 공산세계가 민주세계에 밀리게 되면 아랍 문화권과 합하게 됩니다. 지금 합하고 있지 않아요? 그 둘이 합해 가지고 부딪치게 되면 민주 세계에 상당한 피해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그것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심은 대로 거두는 거라구요.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기반 위에 기독교 문화권을 만들어 놓았지만, 이상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와 가지고 기독교 문화를 수습하고 민주세계를 통하여 이상을 이루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것을 전부 다 쳐서 요리해 버려야 합니다. 치는 데는 내려쳐서는 안 되고 올려쳐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내려쳐서 망하였습니다. 그러니 내려쳐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올려쳐야 된다구요. 지금까지는 타고 앉아서 굴복시키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탄의 근성입니다. 타고 앉아서 굴복시키려고 한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적 방향성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타고 앉아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뒤에는 떠받쳐 가지고 굴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하나님의 작전은 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온유겸손하게 밑창에 들어가서 주인을 굴복시켜 복귀하는 작전이라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의 역사는 무엇이냐 하면 개인을 중심삼고 제3자를 타고 앉아 희생시켜 가지고 자기의 판도를 넓히기 위한 싸움의 역사였습니다. 이 싸움은 언제나 타고 앉는 데서 끝나기 때문에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합니다. 끝날은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 이익이 없는 때이므로 그런 때가 오게 되면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역사의 방향을 반대로 하지 않으면 살 길이 없습니다. 역사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든지 역사적 방향을 제시해야 돼요. 이것이 통일의 역사적 방향성입니다. 제3자를 희생시켜 나온 역사의 종말이 왔으니 지금까지와 같이 해서는 절대로 세계에 평화가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간단합니다. 제3자를 위해서 나를 희생시키라는 것입니다. 그거 억울해서 하겠어요? 보라구요. 친구 세 명에게 정성껏 봉사하고 그들을 위해 일생 동안 노력하게 되면, 그들이 망하게 될 때 남은 물건이 있으면 자기를 위해 봉사한 친구에게 넘겨 주고 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거와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기독교는 지금까지 세상을 위해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세상이 망하게 됐다구요. 세상이 망하게 되었는데 그냥 갖고 망할 수 없으니 주고 망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나중에 그것을 인계받기 위해서 지금까지 못난이 노릇을 하고, 천대를 받으면서도 치닥거리를 해주며 나온 것입니다. 망할 때가 오면 보따리를 갖다 주는 거라구요.
앞으로 이루어질 이상세계는 어떤 세계냐? 예산편성을 하는 데에 있어서 절반 이상을 세계를 위해 쓰겠다고 하는 나라가 나오게 되면, 그런 때가 되거들랑 이상세계가 온 줄 알라는 겁니다. 세 집이 모여 가지고 네 집을 살리겠다고 노력하는 때가 되거들랑 이상세계가 온 줄 알라는 겁니다. 그런 주의를 가진 가정이 나오거들랑 그 가정은 천국을 이룰 수 있는 족속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할는지 모르지만 보라는 거예요.
열 친구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이 있다면, 열 친구를 거느릴 수 있는 중심자로 누구를 세울 것이냐 할 때 열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을 중심자로 세우려고 한다구요. 중심자로 세울 뿐만 아니라, 그가 자신을 완전히 희생하여 안심할 수 있게 만들면 자기들을 지도해 달라고 하면서 자기들의 지도자로 세우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 망하지 않는 공식적인 방향을 통해서 역사를 발전시켜 나가자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주류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 가운데 선생님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들어온 지 아무리 오래된 할머니라 해도, 혹은 영감이라 해도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내세워 가지고 식구를 무시하는 사람은 나의 원수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만은 알아야 돼요. 선생님은 그런 것을 보고는 못 견디는 거라구요. 남을 이용해 먹고, 남을 등쳐 먹겠다는 사람을 보고는 못 견디는 사람이예요.
통일교회에서는 `내가 먼저 들어왔으니 나를 몰라보면 안 돼' 하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먼저 들어왔으면 먼저 본이 되어 가지고 희생의 기반을 닦아야 될 것 아니예요? 먼저 들어왔다고 해서 `야 네가 뒤에 들어왔으니 네가 해라'고 하며 모심을 받겠다는 사람은 사탄입니다. 이제부터 이러한 것을 청산지어야 되겠습니다. 집안에 이런 패들이 있으면 조금 더 가면 내가 다 청산해 버릴 거예요. 지금 세상에서는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사람을 다 이용해 먹고 차 버린다고 합니다. 차 버리다니? 그것은 차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못 쓰게 되었으니, 그냥 두면 전체에게 피해를 입히겠기 때문에 제거시키는 것입니다. 그건 자연현상이라구요. 여러분은 통일사상의 방향을 잘 알아야 됩니다.
집안에서도 그렇잖아요.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야, 며느리야. 왜 푸대접하느냐?'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만 말해 보라는 거예요. 그때부터는 며느리가 시부모 말에 콧방귀를 뀐다는 거라구요. 거기서부터 두 세계가 생겨나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얘, 아가. 추운데 이렇게 뭐 일찍 나와서 밥할 필요가 있겠니?' 하면서 위해 주는 마음을 갖게 되면, 며느리는 `아, 우리 시어머니가 제일이다' 해 가지고 자기의 속살까지 떼어서 드리고 싶은 생각을 하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고 앵앵거리게 되면 누룽지가 있어도 내놓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적인 원칙이라구요. 여러분은 이런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그래서 앞으로 때가 되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공동 아파트 수련소를 지으려고 합니다. 거기에서 어머니나 아버지가 또 그 자식들이 남을 위해서 얼마나 움직이느냐를 알아보겠습니다. 남을 위해 움직이려면 서로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운동을 해야 될 거예요. 남을 위해서 24시간 안 자는 운동을 해야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남보다 앞서가겠다고 합니다. 남을 이용해 먹겠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는 자기보다 더 선한 사람, 훌륭한 사람을 찾아서 모시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우리는 이렇게 엄청나게 틀립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안전 작전이라구요.
선생님이 지금 일선에 안 나타나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대외의 공석에 나가서 무슨 연설하는 것을 들어 봤어요? 이 청파동은 통일교회의 안방이니까 내가 새벽에 나와서 말씀을 하지만 말입니다. 여러분도 그래요. 먼 거리에 사는 사람은 여기에 오려면 밤잠을 안 자고 서둘러야 될 것입니다. 세 시면 일어나야 될 거예요. 그래 가지고 남들 다 잘 때 밤새껏 와야 될 것입니다. 추운 겨울에, 바람이 쌩쌩 불 때에는 `이놈의 택시가 왜 안 오나. 네 시가 다 되는데' 하며 오들오들 떨다가 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만나 가지고 좋아하면, 세상에서 제일이지요, 뭐.
`안 보면 안 되겠다. 안 가면 안 되겠다' 하는 마음을 갖고 모이면 그 가운데 소망이 있는 거라구요. 잘 먹여 놓고, 환경을 잘 만들어 놓고, 듣기 좋고 보기 좋고 냄새 맡기 좋게 만들어 놓고, 이것도 좋고 저곳도 좋게 만들어 놓으면 절대 안 되는 겁니다.
잎이 나면 뭘해요. 가지가 나면 뭘해요. 열매 갖고 뭘해요. 씨가 좋아야 하는 것입니다. 씨가 좋아야 합니다. 씨가! 씨가 좋아야 해요. 우리 통일교회는 그런 주의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고 나도 그런 거라구요.
여기에서 말하는 이 사람은 성격이 참 급한 사람이라구요. 불의를 보고는 못 견디는 사람이예요. 그래서 도매금 싸움을 많이 해봤다구요. 스스로가 잘났다고 하는 녀석은 때려잡고야 마는 거라구요. 힘으로 안 되면 머리로라도 때려잡고야 맙니다. 지금 기성교회가 잘났다고 하지만 때려잡히나 안 잡히나 두고 보자는 거예요. 세계에서 자기가 잘났다고 하는 녀석들은 앞으로 1974년도까지만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다 모가지가 떨어질 거예요. 2차 7년노정만 넘어서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2차 7년노정만 넘어서면 그들은 서리 맞은 것처럼 곤드라질 것입니다.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때가 되기 전에 주인 노릇을 했지만, 주인이 오기 전에는 종들이 주인 노릇 하지만, 주인이 나타났는데도 주인 노릇할 수 있어요? 그 대신 통일교회는 안 올라가겠다고 해도 발이 먼저 올라갈 겁니다. (웃음) 그렇게 되나 안 되나 두고 보라구요. 그때 우리 통일교회가 가던 길을 찾아가 보라는 겁니다. 발꿈치가 다 웃을 거라구요.
자, 우리 통일교회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르다구요. 알겠어요? 우리 통일교회는 닭 속의 학 같은 무리라고요. 우리는 세상의 인연과 다른 인연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하늘 인연을 따라온 거예요. 세상의 인연과 다르다구요. 세상은 평면적이기 때문에 우리와 부딪히는 거라구요.
내가 별의별 구경을 다 했습니다. 별의별 구경 다 했다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과 인연된 통일식구입니다. 우리는 세상 인연과 다른 인연을 가진 통일식구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낳아 주었지만 어머니 아버지를 믿을 수 없는 패입니다. 한 핏줄을 이어받고 나온 형제도 믿을 수 없는 패요, 또한 형제가 믿어 주지 않는 패입니다. 요렇게 되는 거라구요. 또한 친척들이 많지만 친척을 믿을 수 없는 패요, 친척들이 믿어 주지 않는 패입니다. 스승도 믿을 수 없는 패요, 스승이 믿어 주지 않는 패입니다. 또한 나라도 믿을 수 없는 패요, 나라가 믿어 주지 않는 패입니다. 또한 공산세계도 민주세계도 믿을 수 없는 패요, 그들도 우리를 믿어 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만 믿을 것이냐? 세상에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만을 믿을 수 있는 패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찾아가서 그분 앞에 부복한 패만이 우리와 더불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에게 속한 패가 얼마나 많으냐? 대한민국의 주권에 속한 패는 삼천만, 혹은 삼천 오백만 명 정도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께 속한 패가 얼마나 되겠어요? 거 생각해 보라구요. 하나님께 속한 패가 얼마나 많을까요? 이 땅에서 살다가 영계로 간 영인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될까요? 수천억은 될 거라구요. 영계에 간 성인들은 통일교회 패다 하면 기분 좋아요, 안 좋아요?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누구 패라구요?「통일교회 패입니다」그럼 기성교회 패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렇다면 서운해서 살 수가 있겠어요? 난장판 세상이야 두고 보면 다 드러나지만 수억이 되는 영계의 보이지 않는 영인들이 누구 편인지 어떻게 알아요? 그렇지만 그들은 모두 통일교회 패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을 잘 듣는다 이겁니다.
여러분, 통일교회가 맨 처음에 전도할 때 사람의 입으로 전도하지 않았어요. 몽시! 몽시적인 거예요. 몽시를 통해서 `이놈 가라' 해 가지고 안 가면 방망이로 치고 해서 전도를 한 거예요. 영계에서 전도를 했다구요. `어디를 가면 문선생이라는 사람을 만날 것이다' 해 가지고 안 오려고 하면 아들딸을 내쫓고 몰아내고 해서라도 기어이 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인 패가 우리 통일교회 식구예요. 지금 여기 있는 여러분은 떨어져 있는 잎을 갈퀴로 긁어서 모아 놓은 것처럼 그렇게 해서 모여진 패들입니다. 이 가운데에는 껍데기가 벗겨지지 않고, 깨지지 않고 그냥 밤송이로 떨어졌다가 이리로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잔치상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심심풀이에 쓰이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전부 다 내가 전도하지 않았어요. 내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영계에서 전도를 했다구요. 공산 치하에서도 선생님이 말을 해서 폭동을 일으켜 가지고 죽자 하면 죽을 정도로 선생님을 따르게 했습니다. 그런 것을 보더라도 다르다구요. 선생님은 세상의 목사들과 다르다구요. 세상에 무슨 교회를 지도한다는 책임자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얘기하려면 복잡합니다. 내용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럴 필요가 없느냐? 그건 그렇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웃음)
재미있는 것이, 여기에 미국 사람들도 와 있지만, 미국에 선교 간 김선생이 전도하게 될 때, 그냥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영통인을 찾아가서 했다는 것입니다. `자, 이 책이 무슨 책임지 기도해 보소'라고 하면서 전도 했습니다. 참 고차적인 전도 방법이지요? `내가 누군지 기도해 보소'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기도를 해보면 불호령이 내리거든요. `그분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차렷을 하고 큰절을 해서 모셔 들여라. 그분이 돈이 없으니 돈을 줘라'고 몽시로 가르쳐 주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미국에서 그렇게 출발한 것입니다. 그거 좋지요?
지금도 선생님은 보따리를 싸 가지고 세계를 유랑하고 다니더라도 굶어 죽지 않습니다. 절간에서 제일 높다고 하는 고승들을 찾아가서 얘기하게 되면 비밀 창고에 감추어진 돈도 꺼내 쓸 수 있는 거라구요.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발전한 것을 보면, 뭐 여러분이 무슨 연보를 했어요? 통일교회에서는 연보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전부 다 하나님이 `문선생에게 돈이 필요하니 갖다 주어라'고 해 가지고 지금까지 이렇게 생활해 나온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역사적인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입체적인 영계를 통해, 삼각권 세계를 활동무대로 취해 가지고 발전한 역사를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선생님은 모험을 많이 합니다. 모험하는 것이 아주 취미예요. 남들이 `안 될 거야. 뻔하지 뭐. 안 돼. 어림도 없는 일이야'라고 생각하는 일, 그런 어림도 없는 일을 하는 것이 선생님의 취미라는 것입니다. 인연이 남들과 다르다구요. 인연이 다르다는 거예요.
엊그제 방송을 들어 보니, 지금 남한테 있는 무당, 풍수장이, 관상장이들이 얼마나 되느냐 하면 해방 전에는 1만여 명이었는데 이제는 한 3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 3만 명이 전부 다 통일교회 패라는 거예요. 그들은 벌써 선생님 이름 석자만 듣게 되면 대번에…. 통일교회 패들은 선생님이 얘기하면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지만 그들은 대번에 통한다는 거예요. 이제 멀지 않아 그 사람들이 여러분을 가르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지금도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귀찮아 하는데도 전화가 자꾸 걸려 오는 거예요. 보고하는 거거든요. 지금도 영계에서 큰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씨니, 박씨니, 조씨니 서로 자기 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대한민국에서 출세하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계에서도 서로 경쟁을 한다구요. 그래서 자꾸 선생님에게 연락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보면 대번에 알거든요. 서로가 밤을 새워 가면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정성을 들인다는 거라구요. 그런데 우리 통일교인들은 그저 낮잠 자기가 일쑤지요. 보기 싫은 일당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구요. 그런 녀석들은 나중에 도매금으로 팔아 넘길 때가 올 거라구요. 그것이 싫으면 통일교회에 나오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 녀석들 때문에 지금 통일교회가 망신을 당할 판이라구요. 그런 녀석들은 아들한테 짐이 되고 딸한테 짐만 될 것 아닙니까? 천하가 머리 숙일 수 있는 효자 효녀는 안 되는 거라구요.
남들은 전도하면서 도리어 통일교회 패들한테는 나오지 말라고 한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안 나온다고 해서 선생님이 보따리 들고 다니면서 `우리 교회에 나오소' 절대 그러지 않습니다. 시시하게 그러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대신 나오면 가르쳐 주기는 합니다.
앞으로는 내가 강연을 할 때, 한 만 원씩 입장료를 받을 생각입니다. 앞으로는 여러분들이 마음대로 여기에 와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때가 지나간다구요.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삼천 달러 이상의 입장료를 받게 되면 제일 거부들이나 제일 유명한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돈을 받아야 유명해져요. 그러니 만 원 정도는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일본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 어린이 무용단이 일본에서 공연을 할 때, 얼마를 받아야 할까 생각하다가 나는 오천오백 원을 받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구보끼 회장이 `오천 원이요? 오천 원은 안 됩니다. 삼천 원만하지요'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시대에는 역리가 진리로 통한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래서 결국 삼천오백 원으로 내려서 받았습니다. 하기는 삼천오백 원도 많긴 많다구요. 그렇게 해서 팔기 시작하니까 제일 좋은 A석이 먼저 다 팔렸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의 인연이 출발 기원이 어디 있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잘나서 이 놀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선생님은 이런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나는 평민주의자라구요. 오늘은 이렇게 양복을 입고 빨간 넥타이를 착 매고 나왔지만 말이예요. 오늘은 10월 10일이기 때문에 날이 참 좋은 날입니다. 쌍십절이라고 해서 중국에서 기념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면 기분 나쁘지만, 오늘 10월 10일은 참 좋은 날입니다. 또 일요일이라 더욱 좋습니다.
선생님은 평민주의자라구요. 선생님은 때로 어머니 아버지를 친구로 삼기를 잘 합니다. 30세 정도 나이 차이가 나는데도 `엄마' 하면서, 나이 많은 아들이 애기 노릇하는 맛도 참 좋다구요. 해보라구요. 나이 50세가 넘은 사람이라도 아버지가 있으면, 그 아버지에게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좋아하고 떼를 써 보라는 것입니다. `야 이놈아, 재수없게 그러지 마라'고 말할 아버지가 있겠어요? 침을 질질 흘리면서 `그래 그래!' 할 것입니다. (웃음) 50이 넘었어도 아들은 아들인데 별수 있어요?
내가 그렇게 했다구요. 그래서 어머니가 나를 참 좋아했습니다. 어디에 갔다 오게 되면 어머니와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거예요. 가서는 속닥속닥 합니다. 세상으로 보게 되면 뭘 한다고 할 거라구요. 연애한다고 할는지도 모릅니다. 어떻구 어떻구 어떻구 전부 다 보고하는 거예요. 어떤 때는 나이 많은 어머니를 한번 울려 보자구 마음 먹고는 울려 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웃겨 보기도 합니다. 그 이상 재미있는 일이 없다구요. (웃음) 내가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하고 이러면서, 또 누나들을 모아 놓고 전부 다 가르쳐 주는 거라구요. 며칠 동안 그 놀음 하면 동생이 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동생들은 오빠하고 연애한다고 합니다. (웃음) 그렇게 만들어 놓고 살지 왜 쓸쓸하게 살고 있는 거예요? 쓸쓸한 것은 아주 싫어요. 여러분, 쓸쓸한 거 좋아요?
선생님이 쓸쓸한 표정을 짓고 들어오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하하 호호 웃는데 선생님이 뚱하면 좋아요? 여러분이 선생님을 보고 반가와하는데도 선생님이 뚱하게 있는 것이 좋아요? 그렇다면 그렇게 하자구요. 내 뚱하고 있을께요. 선생님은 6개월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지낼 수 있는 훈련을 한 사람입니다. 알겠어? 누구한테도 말을 하지 않는 거예요. 옆에서 사람들이 욕도 하고 별소리를 다 해도 못 들은 척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저 사람 갑자기 귀가 먹었나. 왜 그래'라고들 하는데, 갑자기 그러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예요? (웃음)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큰 문제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누가 죽어서 나가자빠져도 까딱없습니다. 그런 훈련을 한 사람이라구요.
한번 그렇게 해볼까요? 그렇게 하면 여러분 심신이 괴로울 거라구요. 이마를 딱 맞대고 눈을 떡 들여다보고 가만히 있으면, 점점 무서워진다구요. 그런 무엇이 있다구요. 그렇게 한 3년 있다가 딱 치는 거예요. 그런 무엇이 있다는 겁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고 무엇이고 무서운 게 없다고 하는 백교수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자기가 명교수이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도 껄렁대는 거예요. 자기가 통일교회 문선생을 한번 만나 보자 해 가지고 만났습니다. 만나자마자 으아아아 하는 거예요. (웃음) 왜 그런지 알아요? 그래 내가`너 이놈의 자식아' 했습니다. 그런 뭐가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통일교회 문선생 노릇을 해먹는 거예요. 여러분들같이 뭐가 없어 가지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 밑천이 뭐냐? 세상의 인연을 통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원천이 있다구요. 우리가 세상의 인연을 갖고 있지만 하나님의 인연을 그 가운데에 꽂아 놓으면 좌우, 전후, 상하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리는 그런 인연을 갖고 있다구요.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되게 되면, 민주와 공산이 싸우는 이 나라에 그 인연이 임하는 날이면 민주와 공산, 좌우가 하나되고 손잡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상충하던 전후가 화합하게 될 것입니다. 서로 상극이었지만 재차 화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인연은 하늘의 인연이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인연을 갖고 오게 될 때, 그 인연을 모르는 사람은 반대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 인연을 따라 나오며 정성들인 사람들은 대번에 아는 것입니다. 그거 모르는 사람들이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기성교회도 그런 인연을 모르기 때문에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르고 지은 죄는 용서를 해주어야 되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도 그들을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우리가 갖고 나온 인연이 무슨 인연이냐? 입체적인 인연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역사상에 있었던 어떠한 사상을 기조로 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기조로 해서, 본성의 인격을 표준하여 시작된 인연인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연의 핵심이기 때문에 절대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인연이 이곳 청파동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청파동' 하면 기분 좋지요? 청파동은 푸른 언덕이라는 뜻이지요. 용산이 뭐냐? 용산 하면 최고 높은 산을 말한다구요. 최고 높은 산이 용산이라구요. 그래서 용산구 청파동은 푸른 언덕을 뜻하고, 푸른 언덕은 이상을 상징합니다. 그렇지요? 피안의 이상세계를 소망하며 노래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푸른 소망을 노래하는 청파동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1가, 이 1가라는 것은 첫째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71의 3은71년과 만나는 거라구요. (웃음) 왜 웃어요? 왜? 3수라는 것은 완전수입니다. 70 이하면 떨어지기 때문에 70 위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 입장에 서야 합니다. 7수는 완성수입니다. 그러기에 평면적인 사위기대를 출발할 수 있는 터전이 청파동 통일교회 본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가 좋은 곳이예요. 나쁜 곳이예요?「좋은 곳입니다」참 좋은 곳이지요. 여기에 처음 온 사람들은 뭐가 좋으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곳은 여러분이 쉽사리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지금은 경배하는 시간이라서 내가 문을 열어 놓았으니까 여러분이 들어온 것이지 함부로 못 들어오는 곳이라구요. 앞으로는 여기에 한 번 들어오는 입장료가 5천 달러에서 1억 달러가 될 때가 온다구요. 그럴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있다는 거라구요. 낸 돈의 천배 이상을 갖고 가게 된다구요. 1억 달러만 내고 들어와요? 어림없다구요. 그러니 지금 여러분은 여기에 들어온 것을 무한한 복으로 알라는 것입니다.
식구들 중에는 새벽에 여기에 올라오기가 힘들다고 안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철문을 해서 달 거라구요. 그래서 전기 스위치를 설치하여 30리 밖에서 누르게 할 거라구요. 그럴 때가 올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집은 몽땅 금으로 지은 집과도 바꾸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고 하며 영문을 몰라 하는 사람은 죽어 보라구요. (웃음) 죽어 가지고 영계에 가 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거짓말을 해요? 이런 얘기를 하면 허황된 것 같지요? 내가 허황된 말은 죽어도 못 한다구요.
우리의 인연은 사람의 인연이 아니고 하늘의 인연입니다, 알았어요?「예」그러므로 우리가 따라가는 것은 사람의 인연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인연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길이 평탄하건 말건 가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하나님을 따라가는 길이 평탄하려면 그 누군가가 먼저 가서 닦아 놓아야 합니다. 닦아 놓기 전에는 평탄한 길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경부고속도로가 그냥 생겨난 것이냐? 이 길이 생겨나기 위해서 70여 명의 희생자가 나온 것입니다. 경부고속도로 하나를 놓는 데도 70명의 희생자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천주통일 고속도로를 놓는 데는 몇천 명이 희생해야 되겠어요? 통일교회가 몽땅, 송두리째 희생된다 해도 선생님은 그것을 강행할 것입니다. 기분 나빠요, 좋아요?「좋습니다」거기에는 아주머니도 들어가고, 남편도 들어가고, 빨갱이 자식도 들어가고,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 미국놈도 들어가고, 일본놈도 들어가고, 중국놈도 들어가고, 러시아놈도 들어가는 거라구요. 한국 사람은 전부 다 놈밖에 모릅니다. (웃음) 우리만 양반이지요. 그걸 보면 교육을 참 잘 시켜 놓았다구요.
그것을 통일교회 문선생이 나왔기 때문에 한번 써 먹을 수 있습니다. 미국 식구들한테 `이놈들' 하면, `예, 옳소이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하늘 고속도로 한번 닦고 싶어요, 안 닦고 싶어요? 아주머니 한번 닦고 싶소, 안 닦고 싶소?「닦고 싶습니다」닦고 싶어요?「예」자기 자리만큼만 닦겠구만.
저 여의도에 있는 광장을 보고 5.16광장이라고 그러지요? 그 5.16광장이라는 이름 말고 좀더 좋은 이름을 지었으면 좋았을 것을…. 내 그것을 생각한다구요. 주권이 바뀌게 되면 5.16이라는 이름이 남겠어요? 이것을 생각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으로 3백년, 한 7백년 못 돼서 날아갈 것입니다.
일본으로부터 미국까지 가고 싶지요? 저 아랍 뒤로 돌아가려면 힘이 드니 태평양 위로 갑시다. 그러려면 우리가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 하늘 고속도로를 한번 닦아 보자구요. 알겠어요?「예」그러면 하늘 고속도로를 닦는 데에 있어서 누가 먼저 죽겠어요? 남자가 죽겠어요, 여자가 죽겠어요?「남자가 먼저 죽겠습니다」여자가 먼저 죽겠어요, 남자가 먼저 죽겠어요?「여자가 먼저 죽겠습니다」(웃음) 그때는 여자가 먼저 죽는 거예요. 여자들이 먼저 가서 일하면 남편들이 자기 아내가 꼭대기에서 힘들게 일하니 그 일을 빼앗아 자신이 할 것입니다. 그런 놀음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여자들에게도 꼭대기에서 일했다는 탕감조건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여자들은 그럴 수 있는 남편들을 모셨어요?
자, 세계에서 제일 가는 길을 닦읍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삼층길을 닦아 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제일 꼭대기에는 비행기가 날게 하고, 그 밑에는 자동차가 달리게 하고, 제일 아래에는 트럭이 달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이웨이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꼭대기에는 비행기가 언제든지 앉았다 떴다 할 수 있게 만든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 놓으면 참 좋겠지요? 우리 통일교회 아줌마들, 그렇게 해보면 좋겠어요?
그러면 이 길을 만드는 데 누구부터 시켜 먹을 것이냐? 여자부터 시켜 먹자는 겁니다. 난 여자들하고 원수라고요. 여자들 때문에 내가 욕을 많이 먹었다구요. 그러니 그것을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가을이 되면 정부에서 정해 놓은 청소기간이 있지요? 앞으로 통일교회 식구들을 전국적으로 동원시켜 청소하게 할 거예요. `통일교회 전국 청소기간'이라는 공문을 누구한테 보내느냐 하면 부인회장한테 보내는 거예요. 사탄세계의 남자 친구들과 사탄세계의 가정들과 청소를 하는 것은 아주 간단해요. 청소하는 기간에는 길을 닦기도 해야지요? 길 닦는 일은 누가 해야 되느냐? 여자들이 해야 되는 거예요. 여자들이 밥 먹고 하는 일이 뭐예요? 대한민국 여자들은 잠을 많이 자기 때문에 다리의 병이 많습니다. 온돌방에서 뒹굴어 가지고 뭐 다리가 아프니, 허리가 아프니…. 앞으로 그런 사람들을 전부 다 길닦이꾼으로 만들 겁니다. 그렇게 해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잘살자는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의 후손들을 잘살게 만들어 주어야지요.
자, 우리는 그러한 새로운 세계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부패하고 썩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세계가 다 오고 싶어하는 대한민국으로 만들어야 된다구요. 남북이 싸우는 분열된 민족이 아니라 통일된 민족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싸우는 세계가 아니라 통일된 세계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리는 다른 인연을 따라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가 아닌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형제가 아닌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육신의 형제들을 지배해야 합니다. 그게 다르다는 겁니다. 형제 아닌 사람들이 자기 육신의 형제를 지배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의 집은 여러분과 인연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자기가 직접 못 하는 거라구요. 그러니 우리는 형제들에게 보다 더 잘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 복귀가 바로 그것입니다. 알겠어요? 우리는 서로서로가 가인과 아벨의 관계로 되어 있습니다. 서로서로가 가인 아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아벨의 입장이라면 여러분은 반드시 가인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 내에도 가인과 아벨이 있습니다. 이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서 울타리를 만들어 가지고 거기에 자기 형제들을 몰아넣게 될 때는 탕감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와 기성교회는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와 통일교회가 하나 안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싸움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목사의 배를 째고 눈을 뺐다는 소문이 들리면 그때가 마지막인 것입니다. 그게 마지막입니다. 그때가 되면 나이 많은 목사들을 추방하는 운동이 벌어질 것입니다. 요즘에 그런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먼저 반대하던 패들이라 추방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아직 젊습니다. 옛날 반대받을 때는 감옥에도 들어갔다 왔습니다. 어차피 통일교회와 기성교회는 손을 잡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우리 통일교회는 통일교회 자체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성교회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빈 예배당을 보면 `하늘을 위해 정성들이던 사람들이 피땀 흘려 지은 집이 이렇게 황막하게 되었구나. 앞으로 통일교인들은 주인 노릇을 해야겠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 돈을 몇 억원만 벌게 되면 한 교파를 찾게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앞으로는 목사들이 교회와 교인들까지 팔아먹을 때가 옵니다. 그때는 돈을 주고 인수해야만 합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장자권을 산 것처럼 말입니다. 야곱은 사탄에게 넘어가려고 하는 것을 전부 산 거라구요.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그 놀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앞으로 돈이 무진장 많아져야 될 것입니다. 그렇게 돈을 벌어 우리가 잘살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중요하다구요. 내가 타고 다니는 미국산 차가 한 백 대쯤 있으면 우수한 사람들 백 명에게 배급해 주고 싶지만 한 대밖에 없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는 그 사람들이 통일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거라구요. 수가 우리쪽이 많아요, 그쪽이 많아요? 그러니 장사 중에 이런 장사가 없습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이 이런 소리 듣고 기분 나빠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안 되면 그렇게 만드는 거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같이 악착같지 못하면 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이렇게 말해도 기성교회 목사들이 `그렇소. 옳소'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알겠어요?
기성교회와 하나되어 가지고 가인과 아벨, 교단적인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는 국가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남북이 왜 갈라졌느냐? 하나님의 뜻은 갈라놓고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남북으로 갈라진 것입니다. 위는 형님이고 아래는 동생입니다.
세계적인 사상을 중심삼고 볼 때, 공산주의는 외적인 이상세계관을 갖고 나온 것입니다. 여기에 통일사상은 반공을 통해 공산당과 맞서야 됩니다. 지금 일본 대학가에서 공산당들은 우리만 나타나면 후퇴합니다. 가두에서 선전하는 데에 한번 경청하고 앉아 있다가는 못 견딘다고 합니다. 존재론이 기본인데 그 면에서 불확실한 입장에 서 가지고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들의 책임자들은 다 안다는 겁니다. 기성교회 책임자들도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강제로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기성교회에서는 통일교회 때문에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아주머니인지 처녀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을 자기 부인들 천대하는 목사 집으로 보낼 것입니다. 그 집에 머슴살이를 시킬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그 집의 전부를 인수하려고 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팔자가 사나와서 통일교회에 들어온 거라구요. 팔자가 좋은 사람은 들어오지 않아요. 팔자가 사나운 사람을 그냥 두게 되면 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들어오게 만든 거예요. 나도 팔자가 사납기 때문에 이렇게 밤낮없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금년에 들어와서 얼마나 무리를 하는지 모릅니다. 줄곧 무슨 대회니 수련회니 해서 다니고, 어저께만 해도 열한 시 반까지 두 차례나 얘기하고, 오늘 또 여기 와서 이렇게 얘기하고, 또 어디 가서 얘기해 줘야 되고…. 이런 것을 보면 선생님도 팔자가 사나운 사람입니다. 팔자가 얼마나 사나우냐 하면 말이예요. 지독히 사납습니다. 누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사나와요. 그러니 이런 선생님을 따라다니는 여러분도 팔자가 사나운 것입니다. 팔자가 사나운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됩니다. 가만히 두면 집안이 망한다구요. 그러니 어떻게든지 내몰아서 고생을 시켜야 된다구요. 남자들 알겠어요?「예」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알아야 된다구요. 그래야 망하지 않는다구요.
우리는 형제의 인연을 버리고 형제가 아닌 사람들을 자기 혈육의 형제 이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혈육의 형제들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하늘 가는 원칙입니다. 형제가 아닌 사람들끼리 모여 가지고 형제 이상으로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혈육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하늘의 이법이요, 공식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렇게 살았느냐? 통일교 문선생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그런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를 희생시켜서라도 기성교회와 하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 모든 것을 전혀 돌보지 않고 한편에서는 반대를 하더라도 기성교회와 하나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여러분이 갈 길을 못 갑니다. 그것이 원칙이라구요. 아벨이 가인과 하나되지 못하고는 자기의 아들딸이 복귀되지 않는 거예요. 이 원칙, 이 공식은 세계가 복귀될 때까지 불가피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리 통일교인 가운데에도 가인이 있고 아벨이 있습니다. 그러면 아벨이 많은가요, 가인이 많은가요? 어떻게 돼요? 여러분 가인이 많아요, 아벨이 많아요?「가인이 많습니다」3대 1의 비율로 가인이 많습니다. 예수님과 세 제자를 중심삼고 볼 때, 세 제자는 가인이지요? 예수가 아벨이기 때문에 가인은 최소한 셋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사람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아벨의 사명이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시는 주님도 첫째 아담, 둘째 아담이 실패한 것을 복귀해야 하고 세째 아담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완성한 아담의 자리에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벨적 아담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3대 1입니다. 3대 1이예요. 그러면 이 세 사람은 뭐냐? 원수입니다. 하나님의 원수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붉은 피밖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뼈를 깎는 것 같은 어려운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게 기가 막힌 거라구요. 우리는 한 많은 6천년 비운의 역사과정에서 그릇된 혈족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자기와 더불어 사지를 가는 데에 있어서, `아벨이여! 당신 앞에 내가 방패가 되어 죽겠습니다'라고 하며 나설 수 있는 세 사람을 만들지 못하면 아벨 복귀의 승리의 터전은 영영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세 제자에게 같이 밤을 새워 가면서 기도하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제자들이 만약에, 십자가에 먼저 못박혀 죽은 한이 있더라도 예수 대신 자기들이 죽겠다고 했으면 훗날 기독교인들이 학살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됐으면 기독교는 학살당하지 않았을 거예요.
예수가 불쌍하다 이겁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세워 영적 사위기대를 복귀하여 영적인 천사장을 대신한 천사장권을 만들고 아담 해와의 영적인 승리권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원리적이라구요. 알겠어요? 그런데 평면적으로 영적인 기독교 문화권을 형성해야 할 예수가 죽었기 때문에 그는 하늘에서, 그리고 여성 신인 성신은 땅에 내려와서 다시 역사해 나오는 것입니다.
세 제자도 예수처럼 돌아가는 운세를 맞고 나오는 것입니다.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맞는 거예요. 동쪽에 가서도 맞고, 서쪽에 가서도 맞고, 남쪽에 가서도 맞고, 북쪽에 가서도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맞고 피를 뿌려 가지고 한 사람이 죽고 난 후에 세 사람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발전의 역사라구요. 피를 흘리지 않고 기독교 문화는 발전할 수 없는 원칙이 여기에서 설정된 것입니다. 한 사람이 두 나라에 소속되어 있어서는 하나님편이 되지 못합니다. 성경의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 가든지 피를 흘리지 않는 곳이 없어요. 피를 흘리지 않고는 정상적인 발전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세 원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문선생에게도 지금 세 교파의 반대가 있는 것입니다. 한국으로 보게 되면 장로교에도 기장, 예장, 통합, 그리고 합동이 있지요? 이것이 사위기대가 됐다구요. 그러니 지금이 마지막 때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성결교 감리교 같은 교단도 전부 다 갈라진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세 패 이상 갈라지면 한 교단만 갖게 되어도 세 패를 대신 탕감할 수 있는 시대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교단이 갈라지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두고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여당과 야당이 있지요? 또 중간당, 무소속도 있습니다. 당으로 봐도 3개 이상의 당이 있다는 거라구요. 그것은 전부 무엇을 말하느냐? 그것은 앞으로 평면적인 승리권, 입체적인 승리권을 가려 가야 할 원리원칙의 궤도를 일원화시키고 하나의 결정적인 것을 해결짓기 위해 불가피한 역사적 노정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 세 문화권이 이루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아벨은 세 사람의 가인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굴복시키는 데에 있어서는 어느 선까지 굴복시켜야 되느냐? 가인이 자기를 위하여 생명을 바칠 수 있을 때까지입니다. 아벨을 죽인 것이 가인이기 때문에 가인은 아벨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고는 하나님편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서도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은 전부 다 가인입니다. 먼저 난 것이 가인이지요? 먼저 난 것이 아벨이 아니라구요. 먼저 난 것이 가인이기 때문에 교회에 먼저 들어왔다고 자기를 높이 생각하고 늦게 들어온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가인 족속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앞으로 영계에 가서 재차 수련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두고 보라구요.
자기가 먼저 들어왔다고 해서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은 선생님은 쓰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쓰면 틀림없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탄의 편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존경해라, 끝까지 사랑하고 끝까지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새벽부터 일어나서 수택리에 오는데도 불구하고 아침에 늦잠을 자는 것들은 앞으로 전부 다 쫓겨나는 거예요. 그런 원칙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통일교인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가인이냐? 머리를 치켜들고 남을 시켜 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가인입니다. 그럼 아벨은 누구냐? 책임 다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벨입니다. 알겠어요?「예」본래는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가인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먼저 들어온 녀석들이 아벨 노릇을 하려고 꺼떡거립니다. 그것은 자승자박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무리 별의별 놀음을 다 해도 원리원칙대로 안 하면 선생님이 안 써 주는 거라구요. 그러니 별의별 놀음을 다 하고 자빠지고 피를 토하더라도 좋다고 해야 합니다. 그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통일교인 가운데에도 가인 아벨이 있나니, 먼저 나온 사람이 가인이기 때문에 먼저 나온 사람이 중요하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이 누구예요?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이 선생님이지요? 선생님보다 빨리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 선생님이 가인이지요. 하나님한테 물어 봐도 그렇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야! 모셔라. 이리 와라 이놈들' 하고,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강제로 나를 모시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라는 거예요. 다만 바르게 가르쳐 줄 뿐입니다. 추풍이 불기 전에 만나게 될 하풍이 무섭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중심삼고 볼 때 가인 아벨이 누구냐 하면, 횡적으로는 먼저 들어온 사람이 아벨이고, 종적으로는 새로 들어온 사람이 아벨입니다. 종횡관계를 두고 볼 때, 횡이 종을 중요시해야지 종이 횡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을 두고 볼 때에도, 하나님이 인간을 중요시하는 것보다도 인간이 하나님을 더 중요시해야 합니다. 이 전통을 중요시해야 할 섭리역사는 본보기노정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36가정에게 고생을 시키는 것은 이 법도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부 다 그냥 가만히 놔 두었지만 축복받은 가정들은 전부 다 고생길로 보낸 것입니다. 그것은 아벨로서 해야 될 책임을 하라고 그런 것입니다.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아벨로서의 책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방을 갖추어야 됩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하는 대로 따라 하라, 선생님이 가는 대로 따라가라는 겁니다. 선생님이 달리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으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하는 대로 여러분이 하라는 거예요. 선생님도 가정을 버리고, 부모를 버리고 이 길을 왔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야 된다구요. 알겠지요? 여러분은 순종하며 가야됩니다.
아벨이 되는 비결이 뭐냐? 전통을 지키는 것입니다. 죽임을 당하면서도 반발하지 않는 사람이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예수는 어린양이라고 했지요? 그러니 설사 찔림을 당하더라도 반발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통일교인 가운데에는 선생님 말이라면 눈 감고 이행하지만 협회장 말이라면 `나는 몰라'하는 귀신이 있습니다. 협회장을 누가 세웠습니까? 선생님이 세웠으니 따르는 것이 원칙이 아닙니까? 그런 것이 원칙입니다.
여러분끼리의 유대관계, 하나님을 중심삼고 맺어진 여러분의 인연은 몇 년 동안에 되어진 인연이 아닙니다. 그 배후에는 타락한 비운의 역사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또한 인류를 대한 하나님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인연을 따라 서로 만나고 싶어하고,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모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생각해야 돼요.
대한민국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이 이 전통의 기원을 만들지 못하면 여러분들은 세계를 팔아먹는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하면 세계 인류가 여러분을 따라오게 되지만 여러분이 잘못하는 날에는 뜻을 여러분이 망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샘이 맑아야 됩니다. 샘물이 맑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리원칙입니다.
남보다 더 수고하는 사람이 아벨입니다. 남보다 덜 수고하게 되면 가인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 문선생은 여러분에게 신세를 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 기력이 다하는 날까지는 신세를 안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특별한 운동법까지 연구해 가지고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젊은 사람들과 산에 올라가도 지지 않습니다. 요전에 일본의 젊은 사람들과 산에 올라갈 때에도 내가 선두에 서서 올라갔습니다. `내가 지나 보자. 져서는 안 돼' 하며 올라갔습니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데 자리잡겠다고 하는 것들, 두고 보라구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통일교회 여자들은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좋아하지요? 나를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은 기분 나쁜 패입니다. 선생님을 다 좋아하게 되어 있다구요. 나를 안 좋아하는 사람은 나와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디 남자들도 선생님을 좋아해요?「예」정말 그래요? 틀림없어요?「예」선생님을 좋아하면 선생님이 좋아하는 것도 좋아해야지, 선생님만 좋아하면 되겠어요? 하나님만 좋아하면 돼요? 하나님을 좋아하면 하나님의 뜻도 좋아해야지요. 마찬가지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야 비로소 자기의 자리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좋아하는데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일이 싫다고 하면 사람을 만날 수는 있으되 일은 못 만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에 있어서 사람만을 만나기 위해 사나요? 일을 하기 위해 살지요. 그러므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싫어하면 같이 사는 시간이 짧아지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고독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요즈음에 청평에 자주 들어가니까, 어떤 사람이 새벽같이 가도 선생님을 만날 수가 없다고 성화입니다. 만나 보려고 해도 만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매일 와서 기도해 보라구요. 만나 주는가?
오늘은 내가 청평에 갈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누가 보나 안 보나,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잘났든 못났든 정성을 들여야 돼요. 원리원칙에 어긋나면 남아지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 내에서 여러분은 서로 가인 아벨의 관계로 엇갈려 있습니다. 원리적으로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를 해야 하는데 평면적으로 관계를 맺으려면 여러분끼리 부딪쳐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무자비한 곳입니다. 여러분, 통일교회를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통일교회는 냉정한 곳입니다. 냉정해야 돼요. 그러면서도 말없이 머리를 숙이고 남을 위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서로가 무관심주의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전체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이 아벨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암만 먼저 들어왔다고 해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마음대로 변경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종적인 역사가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로 되어 있기 때문에 횡적인 역사도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정하는 대로 이 기간을 연장시킬 수도 있고 단축시킬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러면 이렇게 모인 통일교인들 끼리끼리 묶여진 형제의 정을 우정이라고 할까, 천정이라고 할까? 천정이 나아요, 우정이 나아요?「천정요」천정은 하늘 천(天)자 천정이라구요. 천정이라고 하자구요? 천정은 나눠지는 법이 없다구요. 우정은 나눠지지요? 우정은 나눠지는 거라구요. 그러니 천정이라고 합시다.
자, 그럼 여러분이 이 자리까지 나오게 된 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예를 들어 보면, 어느 날 한강에 척 나가 보니 강 가운데로 나뭇잎 둘이 쌍쌍이 흘러 내려오고 있는데, 가만 보니 하나는 오리나무 잎이고 다른 하나는 미류나무 잎이예요. 오리나무 잎과 미류나무 잎이 쌍쌍이 붙어서 내려오더라는 거예요. 그것이 어디서 만났을까요? 생각해 보라요. 저 강원도 골짜기에서 만났을까요, 바로 요 위에서 만났을까요? 만나기는 만났는데 이 두 이파리가 만나서 흘러 내려오기까지는 어떠한 인연을 따라왔을 것입니다. 그것을 알려면 미류나무의 조상은 어디서 출발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미류나무의 역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또 오리나무가 어디서부터 출발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오리나무의 역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어쩌다 보면 안 만날지도 모르는데 만났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나뭇잎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우리는 하늘이 움직여 나오는 섭리의 인연을 따라 수많은 민족과 국가를 거쳐 대양을 건너 이 한국까지 왔습니다. 여기에는 김씨, 이씨, 조씨, 박씨, 그리고 큰 놈, 작은 놈, 납작한 놈, 둥글한 놈, 길쭉한 놈, 홀쭉이, 뚱뚱이 다 모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통일교회가 된 것입니다.
어떤 할머니면 할머니, 할아버지면 할아버지 한 사람이 여기에 들어오기까지 그 과정에 얼마나 곡절이 많았겠느냐? 죽을 고비, 망할 고비, 별의별 일을 다 겪었을 게 아닙니까? 그러면 왜 그렇게 고생하고 죽고 못산다 하는 과정을 거쳐야 됩니까? 기가 막힌 일이라구요.
기독교 역사를 볼 때, 아담 가정에서부터 가인, 아벨,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를 거쳐 세례 요한, 예수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야단법석을 하였습니다. 또 로마제국에서 400년 박해를 받으면서 희생을 했습니다. 선이 역사시대에 있어서 얼마나 피의 대가를 치렀느냐? 그 과정에는 개인이 투입되고, 가정이 투입되고, 민족이 투입되고, 국가가 투입되고, 세계가 투입되어 희생을 했습니다. 역사과정에서 왜 그러한 희생을 치러야 되었으냐? 그 희생을 치름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여기에 와서 이렇게 만나게 된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희생을 치렀기 때문에 만나게 된 거라구요. 여러분이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서 만난 것이 아니라구요. 통일교회에 오면 좋다고 해서 만났어요?
통일교회 원리를 보면 탕감하기 위해서 무한히 고생을 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인연이 깊기 때문입니다. 그 인연이 뭐냐? 부자의 인연입니다. 여러분의 조상을 두고 볼 때에 김씨나 박씨 사이에 원수가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조씨, 문씨, 송씨, 별의별 성씨들이 서로 죽이고 살리고 그랬을 것입니다. 서로서로 합할 수 없는 원수들이 사방에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으르렁거리며 살고 있다구요. 그런 사연들을 갖고 때로는 이렇게 가까와졌다가 때로는 이렇게 됐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부 다 이것을 탕감해야 된다구요. 여러분이 여기에 와서 탕감해야 돼요. 영계에 가서는 탕감 못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통일교회에서 당신이 제일 싫어'라는 말을 합니다. 제일 싫어하는 데는 원한이 맺혀져서 그러는 겁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원수 되어야 할 사람이 원수가 된 경우도 있고, 원수 안 될 사람이 원수가 된 경우도 있다구요. 둘 다 원수가 아니라구요. 하나는 잘한 자리에서 원수가 되고, 하나는 못한 자리에서 원수가 되고 그러는 것입니다. 둘 다 못한 자리에서 원수가 되면 싸우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남아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두 원수 가운데에서도 남아 지려면 몰리는 원수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울한 입장에 서야 되는 겁니다.
역사적인 선조에게 맺힌 원한에 의해 몰린 원수의 입장에 있더라도 참소조건을 걸어 물고 늘어지게 되면 원한을 풀 수 없는 거라구요. 가인 아벨의 기준에서 그것을 해결하지 않고는 뜻길을 못 가기 때문에, 살아 생전에 모든 것들을 풀어야 하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이 여기에서 이렇게 만난 것입니다. 알겠어요?
보기만 해도 열불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 통일교회 갈래도 그 사람 보기 싫어서 안 가' 하는 사람이 있다구요. 그렇지만 그 사람이 자기의 은인 중의 은인이요, 구세주 중의 구세주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걸 모르면 다 깨져 버립니다. 수천만 대 선조들의 소망이, 대들보가 무너지듯 한꺼번에 왕창 무너지고 만다는 거예요, 여기 남자분들, 알겠어요?「예」그러니 여기에 와서 전부 다 풀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닙니다. 3시대를 책임진 사람들입니다. 3시대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은 3시대의 탕감권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3시대는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입니다. 또한 천사장으로 말한다면 소생 천사장, 장성 천사장, 완성 천사장, 이 3시대 천사장권 역사를 넘어야만 아담의 역사권내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3시대를 넘어서야 된다는 말이라구요. 알겠어요? 3시대를 역사로 말하면 과거 현재 미래입니다. 이 3시대를 넘을 때 과거의 선조들이 걸린 조건에 걸려서는 안 됩니다. 선조들이 걸린 그 조건을 오늘이 땅 위에서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국가와 세계가 모두 통일교회 문선생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기성교단도 그렇습니다. 3개국을 거쳐야 했기에, 일본과 공산당과 민주세계를 거쳐 내가 감옥살이도 한 거라구요. 그리고 3정부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자유당, 민주당, 혁명정부를 거쳤습니다. 또 3교파권을 통과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3종교권을 통과해야 됩니다. 불고, 유교, 기독교를 통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3개 국가, 3대 사상권을 거쳐 넘어가야만 세계는 통일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이 만나고 싶어서 만나고 모이고 싶어서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박씨면 박씨, 김씨면 김씨, 그자체가 모이고 싶어서 모인 것이 아니라구요. 역사적인 해원성사를 하고, 앞으로 이 민족의 갈 길을 전부 다 가려 놓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여러분이 여기에 들어와서 이마를 맞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좋은 것은 뭐냐 하면, 좋은 인연을 공고화시키는 것이요 나쁜 것, 상충이 되는 것, 다시 말해 옛날의 선조들이 잘못한 것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피해를 받지 않고 남아질 수 있는 길을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실제 생활에서 도와줘 그들이 자연굴복할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혈통을 갖고 태어난 형제 이상으로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됩니다. 천국에 못 갑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문선생은 자식보다도 여러분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형제보다도 여러분을 더 사랑하는 겁니다. 내 자식에게는 원리말씀을 한번도 해주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형제에게도 원리말씀을 한마디도 못 했습니다. 가장 귀한 것, 우주에 다시 없는 가장 귀한 선물을 자기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한테 먼저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누구에게 주어야 하느냐? 가인을 찾아서 그와 하나되어 가지고, 그들이 자기의 족속을 받들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연의 자세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거라구요. 그러려니 3시대에 박자를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하면 이 세계의 모든 백성들이 굴복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망하는 운세에 있거든 대한민국이 살 수 있는 길을 위해 우리는 기수가 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국가관과 세계관을 제시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일신이 지치고 고통스러운 자리에 처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걸 각오하고, 이 나라 이 민족을 중심삼고 애국애족을 하는 데에 있어서 현재에 사는 사람이나 과거에 살았던 사람이나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말뿐이 아니라구요.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미래의 후손들 앞에 참소받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요렇게 해주었으면 좋았을 걸'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후손들이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사명을 지고 남북통일을 이루었다고 하는 말을 남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정성을 더 들여야 합니다. 김일성이가 언제 꺾여 나갈지 영계에서 필요할 때 요녀석….
남북통일의 성업을 누가 완수할 것이냐? 이 통일교회가 아니면 누구도 못합니다. 이 통일교회 사상이 가인적인 입장을 능가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일을 분명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 통일사상을 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적 사실입니다. 세계 국가를 대해서 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했다고 할 수 있으려면 세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선생님의 기질에는 맞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은 나는 누구한테 지면 밤잠을 못 자는 사람입니다. 그런 선생님입니다. 그런 통일교회입니다. 선생님은 발을 뺄래야 뺄 수도 없고,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운명길을 지금 생명을 걸고 가는 거라구요. 노라리가락이 아닙니다. 예수만 믿고 천당가겠다고 하는 시시한 패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거룩해 가지고 당장에 어떻게 될 것이다고 믿는 편안한 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망하는 패라구요.
우리는 천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만들려니 쉬워요? 재료가 없으면 재료를 만들어야 합니다. 별의별 놀음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이 잠잘때 잠을 못 자고, 남이 잘 먹고 잘살 때에 못 먹고 못사는 길을 가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일생을 자신 있게 보내야 되는 거예요. 3시대를 중심삼고 동서남북 사방으로 풀어야 되는데, 여기에서 조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이마를 맞대고 서로 앞서가자' 이래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를 빨리 복귀시키는 길입니다. 지금은 제물이 되기 전에 자신을 탕감시키기 위해 나서는 때입니다. 그것을 거치게 되어 가정을 가지게 되면 가정적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종족적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하는 거라구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사방을 중심삼고 종족적인 메시아가 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게 괜한 얘기가 아니예요. 실제로 부딪히는 문제라구요. 이제 앞으로는 민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해야 할 때가 옵니다. 그때가 되면 기독교가 로마로부터 공인받았던 것과 같은 영광 시대를 이룰 수 있고 하늘나라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잘못한 일이 얼마나 많았나 생각해 보라구요.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잘못을 했느냐? 그것을 어디에서 탕감해야 하느냐? 통일교회에 와서 탕감해야 된다구요. 가인은 그래야 돼요. 세계를 탕감복귀하려면 세계에 종적 횡적으로 연결된 모든 계급의 대표자들이 다 들어와서 부딪칠 때, 거기서 하나 만들어 가지고 천지가 다 찬양하는 일이 벌어져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천국은 발원되는 것입니다. 이게 쉬운 거예요, 어려운 거예요?「어려운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뭐 이래 가지고 으스대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는 거라구요. 이렇게든 저렇게든 다 걸려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역사를 책임진 우리가 과거의 잘못을 모두 탕감해야 합니다.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우리 문씨 조상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최후에 가서는 내가 모두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조상들이 잘못했거든 그 짐을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희생 보따리를 넘겨 다오! 내가 받아 주마. 짊어지마'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갈 때 감탄을 할 것입니다. 책임을 지는 데는 이 시대의 전체를 책임지라는 겁니다. 책임을 못 지는 날에는 하늘 앞에 탕감될 수 있는 제단을 바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책임을 져야 하는데도 `나 먹고 살기도 급한테…' 하는 사람은 도깨비입니다. 그런 사상을 가지면 도깨비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그늘에서 살고 있는데 자기들은 출세하겠다고요?
여러분이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만났기 때문에 두 사람이면 두 사람이 함께 선조의 한을 풀어야 합니다. 선조들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못 풀어 주면 저 나라에 가서 원수에게 얻어맞는 것입니다. 원수에게 맞게 되면 그것이 참소조건이 되기 때문에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꿈 같은 얘기지만 사실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선조들이 잘못한 것을 모두 탕감해 주려면 전체를 위해서 봉사하고 전체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아주머니들은 그냥 뭐가 어떻고 어떻고 쑥떡쑥떡하는데 이게 바로 지고 가는 거라구요. 그러니 책임 못 질 말은 아예 하지 말라구요.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하라는 것입니다. 괜히 가담했다가는 남이 싸우는데 보따리만 인계받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문제가 생겨서 둘이 싸우다가 갈라지게 되면 선조들이 여러분에게 붙어서 대신 탕감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제일 무서운 곳이라구요. 무슨 헌법이 무서운 게 아니라구요. 영적인 세계와 육적인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탕감역사의 교차로 가운데에 여러분은 지금 처해 있습니다. 이걸 보더라도 함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보라구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도를 닦아 왔지만,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이 계룡산이나 어디에서 영적인 계시를 받아 가지고 선생님을 찾아오면 선생님은 그 사람들을 절대 무시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사람들의 종 노릇을 해주는 거라구요, 종 노릇. 복귀가 그렇다구요. 그 사람들은 전부다 정성을 들여 가지고 출발을 했을 것입니다. 또 그 사람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서 얼마나 정성을 들였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의 정성의 기준을 알아주어야만 되고, 그 제자면 제자들도 그와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그 전체 가치 이상의 존재로 알아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한 나라의 주권자가 있으면 그 주권자 개인의 가치를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표한 가치로 알아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한 사람이 통일교회에 찾아오더라도 선생님은 통일교회 책임자로서 그를 상대적인 도의 세계의 도인과 같이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가 여기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알 때까지는 내가 정성을 들여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정성들이는 것을 싫어하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류가 모르는 가운데 정성을 들여 온 원칙이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대신한 자리를 그가 할 때까지 나로서의 책임을 느껴 맨 밑창에서부터 받들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 오면 대접을 잘 해줍니다. 불고기도 사 먹이고 옷을 사서 입히기도 합니다. `세상에 그럴 리가 있을까' 할지 모르지만, 천만에요. 다 해줘야 하는 겁니다. 나중에는 내가 뭣까지 해주느냐 하면 밥상까지도 갖다 준다구요. 선생님은 그렇게 훈련된 사람이라구요.
물 같은 거라도 내가 떠먹습니다. 여자들이 있더라도 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느 동네에 가서 물이 먹고 싶으면 내가 퍼서 먹지 `나에게 물 좀 떠 주오'라고 안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높아 지는 것입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은 `아이구, 통일교 문선생이라는 사람 참 좋다'고 하는데, 사람이 좋아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수련하는 거라구요, 수련. 인격적 수련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 가지고 올라가는 거예요. 맨 밑창 중의 신세에서부터 거꾸로 가는 거예요. 그저 심부름을 해주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의 기준이 어떤지를 알아봐서 그 사람의 기준 이상 자리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그리고는 `이놈!' 하는 거예요. 그러면 반대로 그 사람이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인간세계에 있어서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이듯, 도의 세계에 있어서도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하는 것이 천리원칙인데, 못 갚았다면 뒤집어지는 겁니다. 거기에 순응을 못 하고 반대로 상충했다가는 지금까지 닦은 모든 공이 깎여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통일교회 문선생은 앉아서도 많은 도인들이 쌓아 놓은 공적을 인계받아 나왔다구요. 여러분이 이만큼 남아진 것은 여러분의 공로보다도 그런 사람들이 희생한 대가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일본 통일교회의 맨 밑에 있는 한 사람에게도 내가 지극히 정성을 들였습니다. 사사까와 영감에게도 그랬어요. 이렇게 하면 양심이 맑은 사람들은 안다는 거라구요. 그러니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칭찬받는 일이 벌어진다는 거라구요. 이렇게 여러분 주위를 중심삼고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하나의 단체와 하나의 국가 민족이 나오기 위해서 많은 희생자들이 남모르는 가운데에 사라져 갔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도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그렇게 나왔습니다. 도의 길에 있어서 날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많은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내가 할 책임을 못 했으면 내가 여러분에게 절대 명령을 안 합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철칙입니다. 하나님도 당신의 책임을 못 해 가지고는 절대 명령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은 먼저 다 행한 것입니다. 다 했다는 겁니다. `그럴 것이다'가 아니고 `그렇다'인 것입니다. 안 하면 죽는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역사과정에서 내가 심판받고 밀려나는 사람이 아니라 심판해 가지고 굴복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어떤 이념적인 사상이 심판하는 조건에 걸려 고역을 치르더라도 뒷문으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한 입장에서 그 사람들이 머리 숙일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적이어야 됩니다. 붕뜨는 것은 통하지 않는 거예요. 과학적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수천년 전에 아담 가정이 타락한 것을 오늘 통일교회 문선생이 치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심정세계의 내용이 과학적으로도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을 공부하는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망상이 아니예요. 세계를 가릴 수 있는 근원적인 책임을 다짐하면서 `나는 하겠다'고 하는 자신을 갖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후손들 앞에 우리가 닦아 나가는 터전은 통일교인들이 아니라 통일교회 스승이 닦아 나가는 것이 틀림없다고 자부하는 거예요. 여기에 여러분이 보조를 맞추다가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갑니다. 알겠어요? 내가 여러분을 선두에 세우지 않아요.
여러분은 우선 형제끼리 하나되어야 됩니다. 형제끼리 단결해야 되는 거라구요. 종족을 편성해 가지고 민족을 복귀하기 위해 확대시켜야 됩니다. 그러려면 횡적으로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와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뿌리는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통일교로 말하면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그 줄기는 누구냐?「선생님요」선생님이면 그것은 선생님의 가정이라구요. 그렇지요? 기분 나쁘게 생각해도 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 빼놓고 누가 있어요?
하나님은 뿌리이고, 통일교회 문선생은 줄기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잎사귀예요, 가지예요?「가지입니다」가지도 맨 처음에 한 가지가 생길 것입니다. 다음에 둘째 가지가 생기고 세째 가지가 생기며 올라가면서 계속 뻗어 나갈 것입니다. 거기에 있어서 종대를 중심삼고 사방으로, 순차적으로 뻗어 나가는 가지가 있을 것이고, 가지를 중심삼고 순차적으로 뻗어 나가는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은 어떤 가지가 될 것이냐? 가지순을 따라 뻗는 가지가 될 것이냐, 종대순을 따라 뻗는 가지가 될 것이냐? 어떤 거예요?「종대순요」종대순은 위험하다구요, 위험해. 종대순은 거쳐 올라가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바람을 타는 거라구요. 가지순은 동서사방 중에서 일방 통행밖에 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종대순은 사방통행을 합니다. 여러분, 사방통행하는 것이 좋아요? 좋아요, 나빠요? 뭐가 좋아요? 일방통행한는 것이 좋지요? 다른 거라구요.
종대순인 사람은 교회에 무슨 일이 벌어졌다 하면, `절대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일이다' 하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무슨 일이 있으면 자기 혼자 벌써 안다구요. 동서남북에 있어서 교회나 어떤 단체가 있으면 그 곳에 무슨 일이 있는가를 다 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그런 자리에 섰어요? 그런 자리에 선 사람은 틀림없이 종대 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종대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종대는 직선으로 뻗어 나감으로 사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곧바로 알 수 있지만 일방적인 가지라는 것은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주인의 입장에 섰느냐? 종대의 입장에 섰느냐, 곁가지의 입장에 섰느냐? 그것은 여러분 자신이 잘 알 것입니다. 설명이 필요 없어요.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종대의 가지가 되고 종대의 뿌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냐, 곁가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냐? 곁가지가 되려는 것은 잘라 버려 길가에 내버리라는 거예요. 그와 같이 되어야 됩니다.
선생님은 협회장한테서 전화가 걸려 오면 벌써 압니다. 말을 하기 전에 그것이 어떤 보고인지 벌써 안다는 거예요. 사람을 불러와서 보게 되면 그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당장 안다구요. 영적으로 보입니다. 마음을 벌써 다 안다구요. 바람이 불고 구름이 끼면 비가 올 징조라고 하지요? 호랑이 새끼도 홍수가 날 것을 미리 아는데 사람이 몰라요? 듣지 않고도 본다는 거라구요. 다 보인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망할 수 있는 골짜기에서도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그런 무엇이 있다구요. 다른 것 잘 모르지만.
이런 것은 전체의 가지에서, 전체의 줄기에서, 전체의 뿌리에서 온다구요. 그러면 여러분이 줄기 가운데 종대에 속한 가지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생님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확실히 알아야 돼요. 하나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선생님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원리를 보면 세상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눈앞에 다가왔다구요? 여러분은 청맹과니이기 때문에 모르지만 때가 눈앞에 다가왔어요. 이젠 어떤 기분이 나느냐 하면 말이예요. 봄철이 되면 가지에서 전부 싹이 나오지요. 울긋불긋하게 전부 싹이 나오니까…. 우리 아가씨들, 전부 다 싹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싹 나오는 것을 봤어요? 또 무엇이 나와야 돼요? 싹에서 무엇이 되어야 되겠어요? 가지가 되어야 됩니다. 가기가 되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잎도 나오지만 가지고 나오지요. 이 잎이 남아져야 되겠어요, 가지가 남아져야 되겠어요? 가지가 남아지지요.
차례를 보면 반드시 잎이 나고 가지가 나옵니다. 그럼 여러분, 가지가 나왔어요? 사람을 전도했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가지가 나와야 되고 잎사귀가 나와야 된다구요. 그 다음에 잎사귀와 가지 사이에 무엇이 피느냐? 꽃이 핀다구요. 꽃이 피어야 되는 것입니다. 꽃이 피면 무엇이 나느냐? 때가 되면 향기가 풍기는 거라구요. 둘 사이의 인연이 그대로 피고 풍기는 것입니다. 지나고 보면 그때가 그리워진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옛날에, 맨 처음엔 전도 나간 사람들 그리워 가지고 따라온 겁니다. 그래서 부흥이 된 거예요. 이런 놀음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내 한 개체를 두고 보면, 밑창은 구약시대 가지요, 중간은 신약시대 가지요, 맨 꼭대기는 성약시대 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소생, 장성, 완성을 배웠지요. 구약시대는 종 중의 종의 역사를 이어받는 시대요, 신약시대는 아들 중의 아들의 역사를 이어받는 시대요, 성약시대는 부모 중의 부모의 인연을 이어받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는 종적으로 이렇게 올라왔지만 눕혀 놓고 보면 소생 장성 완성이기 때문에 앞에는 종족 사회요, 그 다음에는 부모요, 이것을 벌여 놓은 것이 전세계입니다.
종 위에는 양자라구요. 그렇지요? 아들은 직계이니까 아벨이요, 요건 가인입니다. 이 둘이 하나되어 가지고 부모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 둘은 한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와 아들이 하나 안되어 가지고는 완성된 세계를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까딱 잘못하다가는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소생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소생기를 넘으려면 끝까지 들어올 때 이상으로 선생님이 가는 길 앞에 있어서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신세를 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의 신세를 지려고 할것이 아니라 통일교회에 신세를 지워야 합니다. 선생님이 자기를 위해 주기를 바라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선생님을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해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렇게 되지 않으면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형제를 버렸어요? 왜 형제를 버렸습니까? 그보다도 더 가까이 될 수 있는 형제의 인연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우리를 찾아오기 때문에, 더 고차적인 내용과 고차적인 가치기준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우리를 찾아오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의 것을 버리고 만난 것입니다. 보다 가치있는 것을 맞기 위해 만났으니 여기에서 육신의 형제의 정보다도 더 강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옛날에는 그랬다구요. 임지에 나가 전도할 때에, 서로가 갑 을 지역에 떨어져 있으면 만났다가 헤어질 때, 보고 싶어서 서로가 바래다 주기 위해서 저기까지 갔다 또다시 바래다 주기 위해 왔다가, 갔다가 왔다가 하면서 밤을 새우는 일도 있었어요. 형제들끼리도 그런다구요. 동생이 가는 어려운 길을 걱정하면서 먹을 것이 있으면 그걸 먹지 못하고 싸 가지고 오십 리 길이 멀다 않고 줄달음을 쳐서 갖다 주곤 했어요.
그런데 현재 통일교회 교인들끼리 그래요? 그래요, 안 그래요? 형제의 정 이상의 정이 여러분들 사이에 맺어지지 않고는 천국에 못 갑니다. 형제 아닌 형제들이 형제의 정 이상의 정을 맺고, 부모 아닌 부모를 부모 이상으로 모셔야 됩니다. 그것이 통일교인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 참형제를 말하지요? 우리는 참부모, 참부부, 참형제를 중심삼고 참된 가정을 바라고 나왔기 때문에, 형제 아닌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형제의 정 이상의 정을 맺어야 되고, 부모 아닌 부모를 부모 이상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연된 통일식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이 세상을 보라구요. 지금까지 혈족을 중심 해 가지고 엮어 온 인연을 두고 볼 때,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문선생인 내가 그런 사명을 할 수 있는 길을 걸어 왔느냐' 하고 자문자답해 봅니다. 그러지 못했으면 후퇴하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내가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정성을 들였지만 미국이라든가 다른 나라를 위해서는 그 정성의 반도 못 들여 봤습니다. 이제부터는 그 길을 가야 됩니다. 알겠어요? 앞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선생님을 만날래야 만날 수 없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때가 불원장래에 올지 모른다는거예요.
과거 현재 미래를 중심삼고 과거 역사과정에서 하늘의 뜻을 따라 나오며 어려운 입장에서 자식과 관계를 맺던 선조들 이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도 아담의 아들들이 잘못해서 그 부모까지 망하게 되었고, 노아 가정에서도 역시 아들과 부모가 하나 못 되어 가지고 망하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중심삼고 볼 때도 그런 내적인 인연들이 문제가 되어 가지고 그렇게 된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모세 때에도, 예수 때에도 그런 것이 문제가 되어 번번이 하나님의 뜻이 연장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뜻을 망치게 하는 것은 택하여 세운 사람 자체가 아니라 식구들이라는 것입니다. 식구가 문제입니다. 식구가 문제라구요. 아버지 어머니가 문제가 아니라구요. 누가 문제라구요? 식구, 식구가 문제입니다. 우리 집안이 사느냐 못 사느냐, 혹은 망하느냐 망하지 않느냐 하는 데에 있어서, 자진해서 아벨의 입장을 양보하여 가인의 입장에 서겠다고 서로 싸우는 식구가 있으면 그 가정은 망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서로가 아벨이 되겠다고 싸우는 자리는 망하지만, 서로가 아벨의 입장을 양보하겠다고 싸우는 자리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서로 하나님 앞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고 그 길을 닦겠다고 하는 패가 있으면 망하지 않는 것이요, 서로가 등을 타고 자기가 먼저 올라 가겠다고 하는 패들은 벼락을 맞는 거예요. 이따위 패들은 두고 보라는 거예요. 형제의 도리는 위하고 주게 되어 있지, 타고 올라가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예요. 자기만 타고 올라가서 선 사람은 아무리 영계를 통하고 신앙을 열심히 한다 하더라도 꺾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에서 짝짜꿍 되면 전부 다 한꺼번에 떨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니, 자기가 위함을 받기전에 남을 위하라는 것입니다.
인연된 통일식구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잘하면 나라가 사는 것이요, 우리가 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하면 세계가 사는 것이요, 우리가 못하면 세계가 망하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의 어떠한 가정과도 비교가 안 되는 천정을 중심삼고 단결된 가정, 그리고 효자 충신 열녀를 중심삼고 단결된 가정과도 비교가 안 되는 천 사람 만 사람 앞에 본보기가 될 수 있는 놀라운 가정의 모델을 우리 통일교회가 제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가 될 수 있는 환경에 몰아넣더라도 원수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싸울 수 있는 입장에 선 사람하고도 싸울 수는 없습니다. 남을 죽이고는 살아서 갈 길이 없으니 그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뜻을 품고 서로의 갈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사탄의 것이 일시에 깨져 나갈 것이니 통일가는 사탄이 깨져 나가는 그 자리에서 천국을 출발시켜야 됩니다. 이런 걸 생각해야 하는데 전부 다 얻어먹으려고 합니다. 이것 참…. 걱정이 된다구요.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지금까지 하던 식으로는 안 되게 될 때가 왔다구요. 통일교회의 아들딸, 형제끼리 희생하라 이겁니다. 이것을 못 하면 다 깨진다구요.
그래서 내가 앞으로는 36가정, 여편네, 자식, 남편 다 동원해 가지고 배달꾼을 만들려고 해요. 그 일을 하는데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이 길이 아니더냐? 아벨을 위해 주는 입장에 서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수고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수고해야 되겠다고, 자진해서 한계선을 두어 60사람 이상이 가정을 대표하여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닦고 나서야만 하늘나라의 원칙적인 종족편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금년에 내가 줄달음을 많이 쳤습니다. 하루에 팔도강산, 저 마산까지 갔다 왔어요. 그런데 이 본부에 있는 사람 가운데 지방교회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요. 그러다가는 망하는 거라구요. 망하지 말라고 해도 망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안 망하지만 여러분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망하더라도 선생님은 망하면 안 된다구요. 선생님은 이미 사위기대를 이룬 가정이 있다 이겁니다.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1972년도까지 여러분이 그렇게 나가다가는 선생님을 못 만납니다. 선생님은 여기 한국만의 선생님이 아니라구요. 1972년도까지 이 통일교회의 간부들과 축복가정들을 고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갈 길의 터를 잡아 놓고 지금까지 같이 나오던 사람들과 함께 상대적인 여건을 만들어 가지고 나가려니 바빠하는 거예요. 이런 줄 전혀 모르고….
기성교회 앞에 책임을 다하고, 대한민국 앞에 책임을 다하려고 한다구요. 그리고 통일교회로서의 책임도 다하려고 하는 거라구요. 그 기준만 벗어나게 되면, 1972년을 중심삼고 그것이 끝나게 되면 이북에 대해 우리의 정성을 연결시키려고 합니다.
이북에서는 김일성이를 아버지라고 하지요? 통일교회에서도 선생님을 아버지라고 하지요? 진짜가 누구냐? 진짜, 가짜를 가려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김일성이가 자기 좋아서 아버지라고 갖다 붙인 줄 알아요? 천운의 뜻이 그래요. 그러지 않고는 한국이 제3 이스라엘권에 서지 않는 것입니다. 악착같은 사상적인 결합을 중심삼고 세계를 묶어 가지고 대항해 나오는 거라구요. 민주세계는 갈라지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갈라지는 대신 거기에서 씨앗으로 새로운 봄날을 준비해 나온 것이 통일교단입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기독교 사상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미국이 문만 열어 놓는 날에는 통일교회 사상이 일시에 날려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통일사상, 재림사상 한 가지만 가지고 나가도 기독교 문화권이 한꺼번에 싹 넘어진다구요. 그런 때가 눈앞에 왔습니다. 왔다갔다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여러분이 바라던 소원의 때가 이제 목전에 왔습니다. 우리가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자유천지가 우리의 목전에 왔습니다. 그런데 개인을 위해서 내가 어디 있고 네가 어디 있고 하게 돼 있어요? 그때가 되면 우리는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통치해야 합니다. 우리는 남을 따라갈 팔자가 아니예요. 모든 것을 주체적 입장에서 거느려야 됩니다.
이러한 이념을 받들기 위한 하나의 가족형태를 결성하고 하나의 종족 형태를 만들어 나가고 규합하기 위해서, 천신만고 끝에 결실된 것으로 하나님이 보시고 있는 이 귀한 터전을 여러분이 민족 앞에 세계 앞에 어떻게 전달시키느냐 하는 것이 여러분 작자의 책임이요, 부부의 책임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때를 놓쳐 버린다면, 없다구요, 없어. 딴 데 가 봐도 없다구요. 갔다가는 다시 와야 된다구요. 통일교회에서 나갔다가는 다시 못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건 양심적으로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인연된 것이 통일식구들입니다, 통일식구. 여러분이 길을 가다가 통일식구가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자기의 친척 중의 친척으로 알고 찾아갈 수 있고 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전국에 있는 통일교회 식구들을 대해 그런 관심이 없다면 여러분은 통일세계를 이어받을 족장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족인 하늘의 인연을 횡적인 인연으로 연결시켜 세계 역사상에 있어서 어떠한 주의나 사상도 갖추지 못했던 심정적 유대를 갖춘 강력한 하나의 단결체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칼을 가지고도, 어떠한 세력을 가지고도, 민족의 힘을 가지고도, 국가의 권력을 가지고도, 사람의 힘을 가지고도 당해 낼 수 없는 오직 하나, 이 이념만이 귀결점으로 남아 질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세계는 하나의 형태를 갖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 민족을 수습해야 합니다. 한국만 가지고는 안 돼요. 아시아 있어서 한국과 일본과 중국을 연결시켜야 되고, 세계에 있어서는 미국을 중심삼고 독일까지 연결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싸움이 엇갈려 있기에 그곳까지 가기가 아직 먼데 여기서부터 좋아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연된 통일식구의 사명이라는 것을 절감하기를 바라면서, 오늘이 10월 10일이기 때문에 이런 내용의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후부터 다시 한 번 시정해야 되겠습니다. 저기 옥씨 할머니…. 생활방법을 시정해야 되겠어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길을 나오는 데는 참 외로왔어요. 외로왔다구요. 세상에 친구 하나도 없었어요. 그때에 만난 식구들은 참 비참하고 기가 막힐 때에 만났기 때문에 내가 그 인연을 남겨 주려고 합니다. 그 인연의 발걸음이 어떤 발걸음이었느냐면 공식적인 발걸음이었습니다.
개인이 희생하여 가정을 복귀하려면 보다 더 큰 가정적인 희생을 해야 되고, 종족을 복귀하려면 더 큰 종족적인 희생을 해야 되고, 민족을 복귀하려면 종족 가운데에서 제물을 삼기 위한 치열한 혈투전을 여러번 거쳐야 하기 때문에 가면 갈수록 어려움이 가중되는 것이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개인의 사정을 들어 주면서 사람들을 끌고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민족복귀 시대에 있어서 가정적인 사정을 동정하다가는 다 망합니다. 싹 없어지는 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만큼 자리잡고, 전체가 이런 입장에 남아진 것은 여러분의 협조 때문이 아니라구요. 선생님이 여러분보다 한 시대를 앞서 선두에서 달려 나왔기 때문에 이만큼 남아진 거예요. 배후에서 하나님이 지휘해 주시고 우리와 같이하신 기반이 있기 때문에 이만한 기반이 닦여진 것이고, 배후에서 여러분의 조상들이 후원했기 때문에 여러분이 싫지만, 어렵지만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을 지니고 온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이만큼 했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잘 커 나왔다' 하는 사람이 있는데, 자기 때문에 큰 줄 알아요? 어림도 없다는 거예요. 자기 조상들 때문이예요. 지금까지 하나님이 은혜를 주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이 끌고 나왔기 때문에 여러분이 남아져 나온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등등의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사상을 중심한 새로운 인연으로 묶여진 혈족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우리는 혈족이라구요. 부모 아닌 부모를 부모 이상 모시고, 형제 아닌 형제를 형제 이상 모시고, 종족 아닌 종족들이 모여서 민족 이상 민족을 사랑하기 위한 운동을 해야 할 인연의 길이 통일식구가 가야 할 길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보다 가중된 희생의 길을 가야 할 앞날을 바라보며 나가고 그것을 기쁨으로 맞을 수 있는 아량이 있지 않고는, 또 그것을 넘어 사랑할 수 있는 책임감을 갖지 않고는 통일된 세계의 인연을 따라 목적하는 통일세계를 형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여러분의 안팎을 새로이 수습하고 정돈해 주기를 바라서 말씀드렸습니다.
아버님, 1971년도는 바쁜 해였습니다. 10월이 시작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오늘이 벌써 10일이옵니다.
이달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아버지 앞에 새로운 소망의 기점을 연결시킬 수 있는 달이 되기를 바라면서 인연된 통일식구가 어떻다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저희는 세상의 인연을 따라 묶여진 사람들이 아니옵니다. 아버지의 인연을 따라 태어났습니다. 제가 키워진 것도 아버지의 인연을 본받아 키워졌습니다. 오늘날 죽지 않고 남아져 있는 것도 아버지의 인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는 되실지언정 통일교회 사람을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 되는 줄 아옵니다. 통일교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통일교회 사람이 희생되어야 되는 줄 아옵니다. 통일교회가 바라는 나라는 사랑하실지언정 통일교회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 되는 줄아옵니다. 나라가 살기 위해서는 통일교회가, 어떠한 교회가 희생되어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옵니다. 통일의 세계를 바라고 나가는 데에 있어서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찾기 위해서는 희생시켜야 할 한 나라가 있어야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로 귀일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귀일돼야 된다는 것이 통일사상, 천주주의를 중심삼고 가는 정도인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개인으로서 결실할 수 없는 운명의 자리에 저희는 섰습니다. 가정기준으로서도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기준에 설 수 없는 줄 아옵니다. 전체의 기준을 대표하여 안식의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가정이 세계적인 기준까지 가기 위해서는 종족을 희생시키고, 민족을 희생시키고, 국가를 희생시킬 수 있는 책임을 하는 데에 떨어지지 않는 가정적 인연을 알고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인연을 가진 가정이 아니고는 가정 기준에서의 세계적인 행복권, 주체적인 안식의 이념권을 가질 수 없는 것이 복귀노정이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통일가를 지도하는 책임자가 되는 여기에 서 있는 이 자식도 불쌍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는 불쌍합니다. 그렇지만 세상을 위주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불쌍한 것이 아니옵니다. 저희들은 없는 것 같지만 갖고 있는 자요 세상 사람들은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없는 자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갖고 있는 자를 희생시켜야 되겠기에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대해 희생하라고 명령해 오신 아버지이신 줄 아옵니다. 이러한 아버지를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아버지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아버지는 사랑의 아버지이심을 발견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는 대한민국을 아버지께서 기억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 민족이 역사적인 종말기인 근대에 있어서 신음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 민족이 가질 수 있는 운명권에 서 있기 때문에, 갖지 못하는 세계를 중심삼고 탕감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이민족의 피와 살을 깎아 가지고 세계를 살리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내적인 역사가 깃들어 있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2차 대전 직후의 해방시대에 이것을 고이 이어받아 서지 못한 것이 당신의 한이라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그러한 운명길을 다시 가려 가지고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이제서야 남북의 가정들이 교류하기를 바라는 때가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지기 전에 통일교단과 기성교단이 교류해야 할 때가 되어진 것을 저희는 알았습니다. 교류의 문을 열어야 할 천운이 찾아오기 때문에 남북의 운세가 그렇게 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계의 운세가 그런 권내에 있기 때문에 공산세계와 민주세계가 손을 잡을 수 없는 그런 두꺼운 장막까지도 헤치고 넘어갈 수 있는 인연이 맺어져야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천륜이 오늘날 통일가의 가는 길 앞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저희는 아버지의 고마움을 절감해야 되겠사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은 땅 위에서 스승들이 간 길을 추앙해야 되겠습니다. 자기 일신이나 일족이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 앞에 절대순응, 절대 복종할 수 있는 민족을 남겨야 된다는 것이 통일가의 주류사상이오니, 이 길을 고이 상속받기 위해 온갖 충성을 다할 줄 아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침에 저희들은 통일교회 이념에 묶여졌습니다. 저희에게는 부모가 있더라도 그 부모는 참부모가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형제가 있더라도 그 형제는 참형제가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좋으나 나쁘나 저희는 형제가 어떤 것인지를 알았고, 부모가 어떤 분인가를 알았습니다. 저희는 새로이 출발한 혈족이요, 새로이 출발한 가정이요, 새로이 출발한 종족이오니 부디 당신께서 품으시옵소서.
저희를 이 민족 앞에 밟히게 한 것은 이 민족 앞에 쓰러지는 종족으로 삼기 위함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제는 그 한계선을 넘어서 당신의 자주적인 권한을 가지고 당신의 권위를 세울 수 있는 이때에, 저희들이 사명을 감당하고 책임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늠름한 아들딸의 권위를 가져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심히도 원통하고 심히도 비참한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이 그 마음에 새로이 결의하고 새로이 각오하여 아버지 앞에 자주적인 민족과 자주적인 종족의 권한을 재기시켜 가지고 어떠한 민족이나 세계, 어떠한 국가 앞에 서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종족이 되고 민족이 되겠다는 신념을 갖고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을 당신의 거룩한 은사의 날로 허락하여 주시옵시고, 통일가에 속한 수많은 무리를 아버지께서 기억하시옵소서. 이 시대의 사명을 대해 선각자의 책임을 다할 줄 아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지방에 있는 식구들과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친히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이와 같은 모임을 가질 적마다, 지난날을 회상하려고 하지 않지만 자연히 회상되어지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일 자체는 섭섭한 것이 될 수 있지만 우리 통일교회가 자라 나오는 데 있어서 역사적인 하나의 전통이 되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시간도 많이 갔기 때문에 여러분 앞에 한 가지만 말씀해 주고 싶은 것은`이 세상의 모든 것은 통일교회와 원수였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은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라를 갖고 있었던 한 사람이지만 그 나라는 내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또, 자기 가정이 있으면 그 가정이 누구보다도 가까울 수 있는 가정이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 가정이 자기와 상관지을 수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뭐,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도 그렇지만, 사람뿐만이 아니라 물건까지도 전부 다 원수의 입장에 섰던 것을 우리는 상기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복귀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이 뜻을 반대해 나오는 것이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이 내면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체험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영적 체험을 해보면 틀림없이 사탄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전도를 하기 위해 어떠한 사람과 중요한 약속을 해 놓고, 그 사람이 그 약속대로 이행하게 된다면 그때는 틀림없이 그 사람이 뜻길에 들어설 수 있는 찬스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반드시 사탄이 역사하는 것을 간간이 경험했을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식구라면 누구든지 다 그런 경험을 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뜻이 가는 길 앞에는 반드시 원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원수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원수인 것입니다. 그 원수의 지배를 받는 나라가 오늘날 대한민국과 온 세계의 나라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 앞에 지배를 받는 나라, 그 백성들은 `하늘이 가는 길' 앞에 언제나 원수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실체의 원수가 있음과 동시에 이 지상에는 실체를 가진 원수, 즉 인간의 실체를 가진 원수가 꽉 차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물질까지도 원수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3세대의, 혹은 3단계의 원수권이 뜻이 가는 길 앞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섭리의 뜻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러한 길이 반드시 있는 것을 아시고,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하늘편의 개인을 만들고, 가정을 만들고, 종족을 만들고, 민족을 만들고,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원수의 국가를 대해 가지고 그것을 능가할 수 있는 하나의 국가를 찾아 나오셨던 것입니다. 그 나라가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그 이스라엘 나라가 까딱 잘못하다가는 하늘 앞에 원수가 될 수 있겠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2의 방어선으로 세우신 것이 뭐냐 하면 유대교입니다. 그 유대교인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잘 믿는 사람들, 특별히 영적인 세계와 관계맺은 사람들을 예언자나 그 시대적인 사명자로 세워 가지고 만일에 유대교가 망하더라도 그것을 대신 책임질 수 있게끔 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무리를 남기기 위하여 시대 시대마다 특정한 선지자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섭리의 뜻을 따라가는 사람 앞에 반드시 하나의 나라와 하나의 백성과 하나의 땅, 그리고 물질이란 것이 원수로 등장한다는 것을 아시고, 그것을 방비하시기 위해서 선민권 이스라엘 나라를 책정하셨던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의 내용으로, 오늘날 세계적인 기독교 문화권을 만드신 것은 세계적인 원수권을 방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수많은 희생을 치러 가지고 세계적으로 기독교 문화권을 발전시켜 나오셨는데, 그것이 오늘의 민주세계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대표한 예수가 그 시대의 국가적 기준 앞에서 추방당했던 것과 같은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세계적인 때를 맞이한 이 시대에 있어서 민주세계가 세계적인 이스라엘권을 대신하고 기독교가 민주세계를 대표해 가지고 유대교와 마찬가지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특정한 선지자와 같은 사명을 하는 나라가 있어야 되고, 그런 단체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럴 수 있는 준비를 백방으로 해 오셨던 겁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이라는 나라가 근세에 들어와 가지고 선교사상에 없는 세계적인 기록을 남길 수 있게끔 발전한 것도 섭리의 뜻가운데 있어서 불가피한 것입니다. 이것이 단 기간내에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한국은 그때 정부가 수립되지 않았습니다. 해방 직후로 말하자면 정부가 없는 때였습니다. 한국은 주권을 가진 국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때에는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끌어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권내에서 민주세계를 대표하는 단체가 하늘 앞에 세워져 가지고 그 단체라도 하나되어 기독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끔 연결시켜 나왔더라면, 대한민국은 이와 같은 비참한 나라가 안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남북이 갈라져 가지고 피의 대가를 치르는 그런 억울한 자리에는 안 갔을 것이고, 수십년의 역사가 지나갔지만 아직까지 유엔에 가입하지 못하는 비참한 나라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의 한국 실정을 보면, 해방 직후 이 나라에는 신령한 사람들이 민주세계의 교두보가 되고, 그때의 기독교에 있어서 하나의 교두보가 되어서 하늘을 대신하여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거국적인 운동을 제시하는 책임을 할 수 있는 권이 다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해방이 되기 전부터 선생님이 그들의 배후 관계를 묶기 위한 작전도 했지만, 전부 다 자기 집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 수고해 나온 그 길에서 자기 욕심을 중심삼아 가지고 있었기에 하늘이 가는 길을 환영할 수 있는 무리는 찾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 과정을 거쳐 가지고 오늘날 우리 뜻의 노정이 연장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뜻의 노정이 연장된 이유가 뭐냐 하면, 대한민국에 있어서 신령한 단체들이 서로 규합하여…. 복귀역사를 중심삼고 보면, 이러한 단체에도 천사장적인 단체와 해와적인 단체와 아담적인 단체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은 모르지만 하늘은 다 준비한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천사장과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만 되었더라면 타락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민주세계를 대표한 단체를 하나님이 설정하기 위해 수고하셨으면 그러한 단체들이 끝날의 때에 보조를 맞출 수 있게끔 민족을 대표해서 규합되어 가지고 기독교에 영향을 미쳐야 했습니다.
그때의 기독교는 힘이 없었습니다. 지금의 큰 종파들, 감리교니 장로교니 하는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그 당시에는 성령의 은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신사참배를 했기 때문에 아무리 유명한 목사들이라도 단에 나서 가지고 자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재건교회 교인들과 같은 신령한 사람들이 나서 가지고 거국적인 활동을 전개하게 되면, 국가와 국민 앞에 하나의 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자기를 희생시켜 가지고 현실에서 뜻을 찾으려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거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그러한 입장에 섰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수난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민주세계와 기독교와 신령한 단체들이 전부 다 깨져 나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뜻적인 입장에서 볼 때 선생님의 가는 길은 혼자 가는 길이 된 것입니다. 고독단신입니다. 고독단신이고, 세계 전체가 선생님 앞에 원수가 된 것입니다. 전체가 원수입니다. 원수이니만큼, 그 원수들은 어떻게 하느냐? 선생님의 생명을 노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탄도 선생님의 생명을 노리는 것입니다. 사탄의 실체가 되는 주권국가도 선생님의 생명을 노리는 것입니다. 고와서 노리는 것이 아니라구요. 어떡하든지 선생님의 생명을 노리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탄은 반대하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홀로 선 그 고독한 개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같은 편이 되어 나오십니다. 여러분, 그래요. 하나님이 편되려면 말이예요…. 세계적인 기반 위에 서 있는 사탄 앞에 홀로 섰더라도, 세계적인 사탄을 막아낼 수 있는 입장에서 보호해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 하나님이 협조하시더라도 세계적인 사탄보다도 나을 수 있는 자리에 있어 가지고 협조해야 하나님의 위신이 서는 것이요, 권위가 서는 것이요, 체면이 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탄보다 낮은 자리에 있어 가지고는 협조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냥은 하나님이 협조하실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에 사탄이 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치시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탄이 공격하기 전에 먼저 치는 것입니다. 사탄이 열만한 공격을 한다면 하나님은 열 이상의 자리에서 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치면 사탄은 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십자가 도상에 내주신 것도 결국 그러한 작전의 일면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사탄이 치는 날에는 안팎이고 무엇이고 완전히 다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영적구원섭리도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도 외롭고 고독한 자리에 세운 사람을 영광의 자리로 끌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구요. 할 수 없이 쳐내는 것입니다. 또한 그 길을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쳐내는 데는 어떤 자리로 쳐내느냐 하면, 하나님편에서 보호하는 교회권내로 쳐내는 것이 아니라 사탄권내로 쳐내야 되는 거라구요. 그것이 선생님이 이북을 찾아가게 된 동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팔선을 넘는 그 걸음은 감옥을 향해 가는 걸음이었습니다. 그건 그렇게 된 거예요. 이래 가지고 삼팔선을 넘어 다시 이남에 내려온 것입니다. 이남에 내려와 가지고 어떤 고관집을 무대로 삼아 대한민국 전역을 표준삼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또 그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옥길을 표준해 가지고 가는 길을 거치지 않고서는 가지 못하는 것이 탕감복귀의 운세권을 벗어나지 못한 섭리의 노정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통일교회를 사랑하신다면 왜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고생시켜 나오느냐? 이것이 수수께끼예요. 알겠어요? 왜 고생시켰느냐 하면 그거라구요. 사탄이 세계적 기준 위에 서 있고, 사탄이 사탄편에 선 수많은 국가와 교단을 중심삼고 반대하는 데 있어서 한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안 된다 이거예요. 하나님은 위신상 협조를 못 한다구요. 그러니까, 그것을 그냥 그대로 두었다가는 망하겠으니까 하나님이 먼저 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귀섭리노정은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쳐 가지고 발전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하나님의 위신상 사탄편과 같은 대등한 자리에 있으면 그 사람을 협조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희생하는 자리에 이것을 세워 가지고, 그 희생의 대가에 해당하는 것을 빼앗아 오시는 거라구요.
희생하는 데에 있어서 자기 혼자의 목적을 위하여 희생해 가지고는 생겨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선생님이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도 하나님이 선생님을 그런 자리로 내세울 때, 문 아무개 개인의 목적을 위해서 그 길을 간다면 아무것도 못 남아지는 것입니다. 가는 것은 뜻을 위해 가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가는 것입니다. 그런 고통을 받는 길을 나서는 것도 식구라는…. 상대적 자녀를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것과 마찬가지의 심정을 가지고 그 길을 가기 때문에 자녀를 찾아 나선 부모를 치게 된다면….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를 치는 사탄은 없습니다. 거기에는 사탄 마귀도 없다구요.
만일에 악이 이것을 칠 수 있으면 하나님의 복귀섭리고 무엇이고 전부 다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역사를 두고도 경외해야 되고 존경해야 되는 원칙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복귀섭리가 가능합니다. 이게 없으면 복귀섭리가 불가능합니다.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자식을 위해서 생명을 기울여 희생해 나가게 될 때, 그 희생한 대가의 공적을 그 아들이 알게 될 때에는 그 아들이 반드시 효자로서 등장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희생해 가지고 악한 세계의 사람들을 빼앗아 하나님 앞에 효의 길을 대신해서 갈 수 있게 세우는 놀음을 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사의 이면(裏面)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나서야 된다.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땀은 땅을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려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그러니까 불가피하게 그 자리에 가야 됩니다. 그 길을 안 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의 운명이 그랬고,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문선생이 그 길을 갔다 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과정에서 그러한 모험을 거치고, 그 다음에는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거쳐 올라가야 합니다.
사탄세계가 주장하고 사랑하는 교단 이상의 교단이 나와야 되고, 사탄 세계가 주장하는 가정 이상의 가정이 나와야 됩니다. 만일에 사탄세계가 주장하는 개인 이상의 개인이 있을 때에, 그가 효의 도리와 충의 도리를 하는 데 있어서 이 세계에 수십억의 인류가 살고 있지만 그 수십억 인류가 다 하나님 앞에 봉헌하더라도 나만 같지 못하다고 할 수 있는 기준에서야, 하나님은 그 사람을 들어 비로소 체면과 위신을 세워 가지고 사탄까지 지배할 수 있는 활동적 승리권을 발전시켜 나가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자들은 그러한 내용도 모르면서 덮어놓고 믿으면 천당간다고 하니 도둑놈이라는 거예요. 내용도 몰라 가지고…. 이러한 역사를 해 나오는 것입니다.
홀로 섰더라도 세계 역사과정의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하는데 있어서 선봉이 되겠다, 아무리 원수가 나의 목숨을 노린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 원수 앞에 죽어 피가 튀어 나오더라도 하나님이 먼저 슬퍼하시게 만들고 사탄이 좋아하게 만들어야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피를 토해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것을 사탄이 먼저 보고 `야! 승리했다'고 해 가지고 하나님이 슬퍼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먼저 슬픈 후에 그 핏줄기를 보여야 하늘의 길이 남아진다는 거예요. 이러한 기원이 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 싸움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피를 토하게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을 붙안고 울고 `아이고, 하나님 도와주소' 하면 안 된다구요. 그런 경지까지 갔다 와야 됩니다.
홀로 전세계를 대신하여 영계에서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역사했던 사탄을 대해 가지고 `이놈!' 하면, 사탄편에 있는 실체의 사탄권을 대해서 `이놈의 세계야, 쳐라! 쳐라! 만일에 때가 되거든 내가 이 7배 이상을 너희들에게 퍼부을 것이다. 그 좋은 재료를 수습하는 자리다' 하며, 고문대에 올라가더라도 `쳐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매맞아도 골병이 안 드는 비결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힘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 이걸 치게 되면 치는 것보다도 이것(맞는 것)이 강하면 이 치는 것이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표현하심) 그런 싸움을 해 온 거예요. 치게 될 때는 그 치는 힘 이상으로 정신통일을 해가지고 방지하는 겁니다. 치는 이상의 힘을 주게 되면 방지되는 거예요. 이러한 놀음을 해 온 거예요. 그 친 7배를….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앞으로 사탄세계가 반대하게 될 때는…. 뭐 공산당이 문제가 아니예요. 그 이상 악한 세계를 들이쳐도 걸리지 않을 수 있는 재료를 수습했다고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여러분들이 영계를 통해서 알아보라구요. 영적인 세계에서나 육적인 세계에서나 그런 내용을 갖추지 않으면 세계 통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시간이 많이 갔기 때문에…. 그러한 승리를 할 수 있는 자리에 선 개인이 되어야지, 졸장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구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며, 사탄 마귀 된 종의 당당한 주인이 아니냐 이거예요. 위신상 사탄보다 못한 자리에서는 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에게 몰리거나 사탄이 아무리 몰아치더라도, 절대 변하지 않는 아들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위신을 세워 드릴 수 있는 입장에서 길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한 개인적 길을 닦아야 되고, 가정적 길을 닦아야 되고, 종족적 길을 닦아야 되고, 민족을 대표한 교단적 길을 닦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오늘의 통일교단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통일교회는 하나님이 기성교회 천만 개와도 바꾸지 못합니다. 또, 사탄도 그렇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을 보면 악착같습니다. 그렇다고 다 악착같지는 않아요. 뭐 얼룩덜룩하지만 거기에 한 사람, 가정을 대표해서 혹은 교회를 대표해서나 그런 사람이 있다 이겁니다. 그런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효자가 열 사람이라고 해서 다 효자가 아니라구요. 한 사람, 최고의 효자는 한 사람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와 통일교회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다르냐? 수(數)에서 다른 것이 아니라 정성들이는 심정에서 다르다는 겁니다. 사탄이 주관할 수 있는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사탄의 주관을 받을 수 있는 권내의 심정을 초월한 자리, 그 상위의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서 있는 자리가 다르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기성교회가 아무리 쳐도…. 치면 칠수록 기성교회가 깨져 나가게 됩니다. 앞으로 기성교회 교직자들은 통일교회를 반대하다가 통일교회 교인들이 고생한 그대로 굶주리고 천대받는 그런 단계에 들어와요. 자기가 먹이던 양들이 `이놈의 목사'하며 뺨을 갈기고, 발길로 들이 차고, 칼질을 하는 세상이 된다는 거예요. 그 모양 그대로, 통일교인들이 지금까지 수고한 거와 마찬가지로, 기성교회 목사들은 통일교회가 고생한 그 뒷걸음을 다시 찾게 되는 거예요.
그러기에 밥 목사라는 말이 많아요. 요전에도 내가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수택리 수련소에서 공청회를 할 때 보았듯이 닭 대가리 서로 훔쳐 싸가지고 다니는 그런 목사가 되었으니 다 됐지요. 그것은 불가피한 거예요. 그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비참한 거라구요.
자, 이렇게 됐는데,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데는 지금 망할 운세권내에 있는 이 대한민국을 어느 누구보다도 사랑해야 됩니다. 그 이상이 안 되면 하나님의 협조를 못 받는 것입니다. 내가 모험을 하는 데는 원칙을 따라서 합니다. 그래야 한다는 무엇이 없지만 내가 대한민국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여기에는 하나님이 협조해 주신다는 철석같은 신념의 기반 위에서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는 데는 이것을 무너뜨리는 것이 없는 것을 많이 경험하고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생각하지 못하는 모험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거기에서 믿어 가지고 상대가 되지 못하여 이것이 꼬불꼬불해져서 딴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지려니 그 시간이 연장될 뿐이지, 그러한 마음의 터전을 중심삼으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협조하시는 것입니다. 직접 협조해요. 만일에 반대를 하면 들이 치는 거라구요. 이것이 국가 기준만 넘을 때는, 통일교회가 천하를 향해서 직행한다 해도 어느누구도 막을 수 없는 운세권을 맞을 날이 불원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종교계에서 교회 하면 통일교회라고 할 만큼 왔습니다. 사상 하면 통일사상, 애국애족하는 데에는 저 사람들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할 수 있는 경지에 왔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제3 이스라엘권이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공화당이면 공화당을 중심삼아 가지고 책임진 어떠한 책임자보다도 더 우리는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화당은 한때에 나라를 지고 가는 짐꾼이라구요. 여러분, 그거 알아야 돼요. 이렇게 말하면 섭섭할는지 모르지만 나라를 지고 가는 짐꾼입니다. 그것을 누가 인도하느냐? 이 나라의 주권자들이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인도하시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박대통령도 지금 아시아 정세에 대해 금후의 한국문제를 어떻게 결정할지 모르는 거라구요. 짐꾼입니다. 짐꾼인데 어떤 짐꾼이냐? 짐을 떼어서 팔아먹는 짐꾼이예요. 이것은 그 자체도 망하는 것입니다. 갈 길을 못 가고 추방당할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알겠어요?
통일교회는 앞으로 그 이상의 짐꾼이 되라는 것입니다. 짐꾼이 되어야 된다구요. 그래 가지고 우리는 앞으로 북괴 김일성이와 대결할 것입니다. 국제승공연합도 뭐 세계적인 문제로 공산당은 벌써 알고 있다구요. 소련의 프라우다(Pravda)에까지, 일본의 적기(赤旗)에까지 우리 문제가 등장되고 있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남한에서 제일 문제시하는 것이 국제승공연합입니다. 그 배후에는 통일교회의 문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공산당이 김일성을 중심삼고 협박과 공갈과, 생명을 위협하는 강압적인 정책으로 자기들의 당을 강화시키려고 하는 행동 이상으로 우리는 자연적인 환경에서 열렬해야 됩니다. 효자라고 할 때에, 부모가 끌고 다니면서 효를 가르치나요? 그 마음에 우러나야 자연적인 환경에서 효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회는 문선생이 간섭하지 않아도 진짜 북괴 공산당 이상으로 열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김일성이도 `아버지'라고 하지요? 통일교회서도 여러분은 선생님을 대해서 아버지라고 부르지요? 진짜 아버지는 누구이고 가짜 아버지는 누구냐 하는 문제가 드러나는 때가 옵니다. 그러면 누가 진짜일 것이냐? 하늘편이 진짜가 되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세계적인 협조를 못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 이상 되어라! 여러분은 공산당 이상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 명령이면 삼팔선도 과감히 왕래해야 합니다. 뜻의 방향을 제시하면, 여러분은 죽고 사는 문제를 초월해 가지고 삼팔선보다 몇 배 험한 죽음길이라도 기쁨으로 소망의 천국을 향하여 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어서 감옥을 향해 가던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통일교회 교인들도 이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어갈 때 처자를 다 버리고 갔습니다.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나섰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가야 되는 거예요. 남자나 여자나 가야 되는 거라구요. 성진이 어머니가 그 길을 반대했기 때문에 남자 앞에 불쌍한 여자가 되어 버렸다구요. 앞으로 여러분들이 국가라든가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남자나 여자나 반대하고 보조를 맞추지 않는 것은 반드시 제거될 것입니다. 국가 주권을 세웠다 하는 날에는 제거당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여러분이 한 가지 알아야 될 것은, 이 보이는 세계의 사람들이 선생님의 생명을 노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노려 왔던 사람들의 후계자들입니다. 최후에 남아진 한때를, 하나님이 찾아오신 그때마저도 없애 버리고 위해서 선생님의 생명을 노렸던 이 세계란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주권도 다 그랬습니다. 자유당 때도 그랬고, 민주당 때도 그랬고, 혁명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물질이란 것이 그랬습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 그곳은 고통이 극한 자리였습니다. 먹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극한 자리였는지…. 벌써 그것을 각오하고 갔던 것입니다. 빵이 내 갈 길을 막지 못합니다. 사탄의 지배를 받는 이 물질마저 내 생명을 걸어 노리고 있었지만 이것이 미끼로 제시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것 때문에 내 생명이 위협을 받고, 이것 때문에 나의 결심을 완화시키는 사나이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빵 짜박지가 원수라고요. 함부로 받아 먹지를 않았다구요. 먹겠다고 함부로 입을 끌고 다니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 놀음을 안 했다구요. 왜? 그것은 원수의 농락물이요, 원수의 미끼이기 때문에.
여러분, 이 물질을 중심한 원수권을 무난히 돌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당당한 권위를 가지고, 아무리 극난한 자리에 있더라도, 사탄의 새끼라면 열 번이라도 굴복할 자리이더라도 하나님의 아들딸은 그러한 자리에서 목을 숙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위신과 체면을 양보해 가지고 거기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이 싸움까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탄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사탄은 생명을 농락하기 위한 별의별 간교한 수단을 다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나라도 우리가 가는 길에 별의별 놀음을 다 한 거라구요. 아까 말한 복중교와 마찬가지로 별의별 놀음을 다 한 것입니다. 때로는 물질 가지고 나를 걸려 했지만 내가 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성립 안 되면, 절대자 하나님의 위신을 갖고 절대적 승리의 기반을 갖지 않은 자는 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 앞에 드려 바칠 수 없는 세상적인 자기 아내, 자기 물질,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이 가정을 중요시하느냐 하늘을 중요시하느냐가 문제가 되는 거라구요. 네 집과 재산을 전부 다 뜻앞에 바치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문제도 아니라구요. 처자를 전부 다 뜻앞에 바치라고 하더라도 문제가 아니라구요. 이런 신념을 가져야 하는 무리가 전통적인 주류사상 위에 선 통일교회의 신자일 것입니다. 알겠어요?「예」여러분 이런 길을 가야 됩니다.
이놈의 물질, 선생님 혹은 예수님 혹은 하나님이 가는 길 앞에 그 길을 망치기 위한 미끼가 되어 넘나들던 이 놈의 돈…. 지금도 그래요. 오늘 아침에도 한 6억 이상의 돈을 몇 개월 이내에 준비해야…. (녹음이 잠깐 중단됨) 물질이 나를 지배할 수 없고, 그 어떤 사람이 나를 지배할 수 없으며, 어떠한 영인이 나를 지배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져야 돼요.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물질을 바치는 것은 문제도 아니예요. 자기 생명을 희생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예요. 또, 사탄을 대해 가지고 싸우는 것도 문제가 아니라구요. 사탄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서…. 사탄에게 원수갚는 데는 총칼을 가지고 싸워서 갚는 것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그 기준을 가리지 않고서는 원수의 사망권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기준을 개인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세워야 합니다. 그러게 될 때, 아벨 국가가 나와 가지고 가인 국가를 복귀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부 우리의 손, 우리의 피땀으로 거쳐 나가야 됩니다. 또, 세계가 갈라져 있습니다. 우리가 그 자리까지 나가려면 아직 멀었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을 알아 가지고 여러분이 앞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나라를 찾아야 됩니다. 그 나라를 찾지 못하면…. 여러분 앞에 고생길이 아직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영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국가 기준이 성립되지 않으면, 즉 하나님이 사탄보다 나은 나라를 갖지 못하면 세계적인 협조를 못 하시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유대교가 하나된 그 터전 위에 예수가 와 가지고 로마제국을 전부다 삼켜 버리려 했던 거라구요. 그것은 삼켜 버리게 마련이라구요.
그와 마찬가지로 나라가 문제라구요, 나라가. 지금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있느냐? 지금 상당히 모호한 단계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남북이 어떻게 되느냐? 여러분은 그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이냐 하면 대한민국 남한에서 주장하던 그 주의도 안 될 것이고, 북한이 주장하던 그 주의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주의의 국가가 형성 될 것이냐? 이것이 문제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때가, 우리가 갈 수 있는 뜻의 길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이 국가와 민족을 대신해서 우리가 선두에 서 가지고 책임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온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이런 날을 그리워할 적마다…. 여러분이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에, 그 길을 걸어온 것은 단 한 가지 이 사상, 원수권을 밟고 넘어가 하나님이 협조하실 수 있는 터전을 확대시켜 나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건 죽음을 각오해야 되는 거라구요. 생명을 바칠 것을 각오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바칠 것을 각오할 수 있는 개인이 필요하고, 가정이 필요하고, 종족이 필요합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죽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거라구요. 그래서 죽고자 하는 게 아니예요? 완전히 자기를 희생하지 않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이 원수의 사망길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이 느껴주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10월 14일을 생각하는 이런 시간을 맞게 될 때, 여기에 서 있는 자식은 아버지 앞에 면목없음을 느끼옵니다.
30대의 젊은 청년으로서 아버지 앞에 정성을 다하여 승리의 영광을 돌려 드리지 못하고, 50고개를 넘어서도 아직까지 그 한계선 앞에서 수난 길을 개척해야 할 풍상의 길을 벗어나지 못한 입장에 선 것을 생각할 때에, 저 자신은 그것으로 족하지만 아버지는 과정 과정마다 아직까지도 염려의 심정을 다짐하지 않으면 아니 될 입장에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느낌을 다시 갖게 되옵니다.
지금까지 보호해 주신 아버지시여, 이제 금후에 갈 길을 당신이 지켜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아버지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옵니다. 저희는 아버지와 하나되어야 되겠고, 아버지의 심정의 인연을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같이 슬퍼하시고 저희를 위로하시고 저희를 보호해 주시는 아버지를 맞기 위해서, 저희들은 지금까지 숱한 수난의 고빗길을 극복해 나왔습니다.
이제 민족과 국가를 앞에 놓고 접해야 할 세계 시대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저희들은 심각한 자리에 서게 됩니다. 아버지, 당신의 6천년의 소원이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해원성사되어야 할 것을 바라게 될 때, 먼저 저희들이 희생의 자리에 나가 가지고 아버지께서 행사하실 수 있는 권위를 위한 희생의 대가를 민족과 국가 앞에, 혹은 세계 앞에 어떻게 치르느냐 하는 것이 금후에 통일교회가 가려 가야 할 길인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 이면에서 아버지께서 얼마나 고독을 느끼셔야 되고, 얼마나 비참한 입장에 서셔야 되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지금까지 수고로운 길을 걸어오신 아버지 앞에 면목없음을 느끼면서도 내일의 수난길이 또 남아 있는 것을, 또다시 가야 할 수난길과 개척의 행로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지난날의 슬픔을 회상하면서 현재의 입장을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지난날의 슬픔을 회상하면서 내일의 슬픔을 어떻게 인계받고 어떻게 책임 다하느냐 하는 염려의 마음을 다짐하는 이 자리, 이 시간이 되지 않고서는 이날을 맞이하는 의미를 가진 아들딸이 못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영계의 사망권, 육계의 사망권, 물질의 사망권, 이 3대 원수권을 앞에 놓고 여기에 치우치기 쉬운 한 개인의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을 놓고 아버지께서는 마음 졸이며 이 권(圈)을 넘어서기를 지금까지 바라 오셨지만, 역사시대에 이 사실을 알고 그 권을 넘어서고자 결심을 했던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께서 얼마나 불쌍하셨는가 하는 것을 안 저희나마, 이제는 원수권 앞에 휩쓸려 감으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저버리는 자리에 절대 서지 않겠다고 각오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제 남아진 금년 10월 이후부터 12월까지의 전체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1972년을 맞고 1970년대를 거쳐 나가는 데 있어서, 당신의 영광의 나라와 세계를 바라보지 않고는 죽을 수 없다는 결의를 갖고 온갖 장비를 다 갖추어 가지고 전진 일로를 다짐하며 자각하는 오늘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새로운 결의와 맹세를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부족한 정성이나마 이날을 기억하면서 미래의 전통의 인연을 아버지 뜻앞에서 상속받기 위한 다짐을 하는 이 시간으로 받아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이날을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사랑하는 아버님, 지상에 살고 있는 인류를 굽어살피시옵소서. 신음과 도탄 가운데에서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는, 절망 가운데에서 살고 있는 이 땅 위의 사람들은 당신이 긍휼의 손길을 펴지 않으시면 당신 앞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타락의 후예로 태어나 악의 주관권내에 서서…. 미래를 두고 싸워 승리하지 않고는 해방의 한 운세가 아버지 앞에 나타날 수 없는 사망권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와 같은 사망권에 서게 된 것은 저희들이 원하여 선 것이 아니라…. 저희가 그러한 권내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비통하고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를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 선조의 잘못으로 저희가 이와 같은 입장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아담 해와의 하루의 실수가 이처럼 원한의 터전을 엮어 놓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한 사람의 실수가 이렇듯 역사성을 띨 줄은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저희들이 당신의 사랑을 중심삼고 직계 자녀로 태어나야 할 영광의 본분을 저버리고 원수의 핏줄을 이어받아 태어났다는 이 원통한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 저희의 몸과 마음은 당신 앞에 나타나기에 부끄러운 자신이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고, 본연의 부모의 입장에 계신 당신이요, 본연의 자녀 입장을 찾아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인생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는 그 어떤 곳에서도 긍정적인 요인을 세울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저희가 말하고, 듣고, 보고, 느끼는 일체가 당신의 감정과 화합할 수 없는, 탄식스러운 입장에 있는 저희들임을 아옵니다. 이 몸 자체가 아버지 앞에 수치의 몸이요, 아버지 앞에 슬픔을 자극시키는 화신체라는 것을 느끼게 될 때, 당신을 대해서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자리에 서 있는 자신임을 깨달을 적마다, 필연코 저희들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인간인 것을 알면 알수록, 염치와 수치를 개의치 아니하고 당신을 불러 구원의 도리를 펴 주기를 바라는 것밖에는 저희들의 생애의 바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입을 열어 말할 때에도 당신의 긍휼의 말을 벗어나서는 말할 수 없는 자신임을 발견해야 되겠고, 저희가 귀를 통하여 들을 때에도 사모의 마음을 갖지 않고는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자신임을 발견해야 되겠고, 저희 오관을 통하여 느끼는 인식 일체가 당신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느껴지기를 바라야 할 것이 저희의 소원임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저희 눈으로 당신의 성상을 바라보고 자기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당신의 품에 흠뻑 안길 수 있는 그리움의 모습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간격을 누가 없애 주며 이 어려운 구덩이를 누가 메워 줄 것이냐가 문제가 되옵니다.
이 간격을 없애기 위해서 당신은 수많은 선한 사람들을 불러서 희생시키셨고, 수많은 선한 사람들이 피를 흘려서 사체로 구덩이를 메워 평지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역사적인 대가를 치렀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그 대가를 치르고도 당신이 찾고 싶었던 진정한 아들이요 딸이라 할 수 있는 참다운 인간을 아버지는 만나지 못하였다는 이 원통한 사실을 저희들은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지고지존하신 당신의 성상의 표준의 자리에 임할 수 있는 아들이 되려면 자기 자체의 승리를 다짐하기 위해 얼마나 싸워야 할 것인가를 저희들은 생각하옵니다. 지극히 천한 자리에서 지극히 높은 그 자리까지 가는 것은 저희의 짧은 생애노정을 통해서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은 어제의 선한 공적의 인연을 이어받아야 할 사명을 다시 한 번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희 스스로 하늘을 향해 가려 하는 길은 고독밖에 없는 길이요, 그 누구도 친구될 수 없는 가운데서 각자의 걸음을 걸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얼마나 비통한 사실이요 얼마나 난처한 사실인가를 저희들은 느껴야만 되겠습니다.
이런 행각의 노정 위에, 흑암 중에 당신이 등대를 세워 빛을 발하게 하고, 사망의 길가에 있는 가시밭과 험산의 노정이지만 당신이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당신이 거처하시는 처소를 만들어 그 경지를 찾아오게 하는 데 안내역을 내세우셨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렇게 고마우신 아버지를 저희들은 망각하기가 일쑤였습니다.
아버지가 저희 한 개인을 찾기 위해 얼마나 역사과정을 희생시켜 나오셨으며 역사시대에 얼마나 수고해 나오셨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 저희들이 그 은덕을 갚을 수 있는 아무런 것도 갖지 못한 미급한 몸들이요, 불충 불효한 저희 자신들인 것을 직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악의 근원이 다른 것이 아니라 저희 자체라는 사실, 저희 자체를 근거로 하여 세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저희 마음, 저희 몸으로부터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에 있어서 세계를 이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너 자신을 이기는 것이 문제라고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원수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네 집안식구가 원수라고 하였고, 그 식구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들어가서 네 몸이 원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 일체가 아버지 앞에 원수의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이 시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경지에서 당신이 저희를 위해 준비하셨기에, 천만 은덕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소리를 다하여 아버지를 불러야 되겠습니다. 정성스런 마음을 다하여 무릎을 꿇고 쌍수 합장하여 당신 앞에 기억되어지기를 간곡히 바라야 할 저희 자신임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저희들 이 자리에 모여 왔습니다. 그냥 그대로 살던 몸들이 이 자리에 찾아왔습니다. 깨끗하고 정결하고 거룩하신 당신의 명성을 중심삼고 볼 때에, 저희가 얼마나 추한가를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감히 아버지를 바라보기에 부족한 것들이요, 아버지를 생각하기에 부족한것들 이옵니다.
그러나 이 부족한 것들을 위해 당신이 수고하신 공으로 말미암아, 그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종들과 수많은 당신의 후예들을 세우시어 희생시킨 은덕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은 이 자리에 부복하였사오니, 당신의 은혜가 넘치기 전에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선조들이 피흘린 공적이 저희에게 머물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선한 실적의 터전이 저희에게 머물게 하시어서 그것을 다리 놓아 당신이 찾아올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의 흠모의 심정과 사모의 심정을 가지고, 아버지만을 고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부복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흙덩이만도 못한 저희들이 당신의 존전에 품길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으로 다시 빚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나왔사오니, 일체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저희들이 되어선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앞에 완전히 흡수될 수 있고, 완전히 부스러져 가지고 당신이 새로이 빚을 수 있는 하나의 누룩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이달 들어 세번째 맞는 안식일이오니, 당신이 분부할 수 있는 은사의 날로 맞으시옵소서. 전국에 널리어 외로운 길을 가고 있는 통일의 자녀들을 아버지께서 굽어살피시옵소서. 이들도 이 땅에 살고 있는 무리와 같은 무리로되 당신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당신이 거쳐 오신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는 무리이옵니다.
그래도 이 지상에 있어서 저희들만한 무리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만을 바라보고 저희들만을 소망으로 삼는 아버지시라는 것을 생각하면, 저희 자신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아버지 앞에 소망의 요건으로 나타날 수 있는 그 무엇도 갖지 못한 자신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부끄럽고 얼마나 면목없는 일인가 하는 것을 느끼옵니다. 그렇지만 저희를 놓을 수 없는 아버지의 사연과 아버지의 동정의 인연과 자비와 사랑의 인연이 있음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몸을 끌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는 저희 자신들인 것을 더더욱 느끼옵니다.
이제 당신이 본연의 심정으로 저희 마음에 스며드시옵고, 본연의 성상과 형상을 갖추어서 저희들을 덮으시옵소서. 당신이 원하는 아들딸로서 다시 한 번 소생시키고,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아들딸로 양육하고, 당신이 자랑하고 칭찬할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으로 사탄세계에 내세울 수 있기를 당신은 바라고 계신다는 것을 잘 알고, 어떠한 희생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자리에 서기를 각오하고 그리워하며 나가는 무리가 통일의 무리인 것만은 틀림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 소망을 이 시간도 두터이 갖으시옵소서. 그런 기대와 사명을 저희들에게 분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매양 불쌍한 처지에서 당신 앞에 옷깃을 여미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하루의 생활을 다짐하고 한 해의 생활을 다짐해 가는 저희들 생활이 실체로는 아버지께서 따라오실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지나는 뒤를 따라오시면서 동정의 마음을 가지고 눈물지어야 할 아버지이신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그러한 아버지를 저희들이 뒤돌아 따라가서 다시 모시는 입장에 서지 못한 것을 느낄 적마다, 저희들은 고아와 같은 입장에 있고 당신은 고독의 대표자이심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 한스런 모든 사연을 다 취소시키고 승리와 영광이 깃들 수 있는 완성의 기준을 저희들이 기필코 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을 뒤에서 밀어 주시옵소서. 그래도 저희들을 일깨워 주시고 이끄시는 아버지, 낙망의 절정에서도 참고 나오시던 아버지의 인내가 있음을 알았사옵고, 당신의 거룩하심이 저희와 더불어 있기를 바라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저희들은 이 자리에 또다시 찾아 나왔습니다.
전국에 널리어 부복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 이 시간 이 청파동을 우러러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아들딸이 있거들랑 천배 만배로 갚아 주시옵소서. 이곳을 향해서 정성을 들이고 있는 영계의 수많은 선한 영인들, 저희가 가는 길을 넓히고 지키고 개척하기 위해 선두에 서서 움직이는 천상의 영인들과 이 길을 위해 염려하고 지금 이때도 자기의 일신을 제물삼아 기도하는 많은 무리들을 아버지께서 동정하시옵소서.
저희들은 그들에게 빚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세상의 그 무엇도 가진 것은 없사오나 당신의 마음을 전달해 주어야 되고, 당신의 심정을 연결시켜 주어야 할 책임이 있사오니, 당신 마음 가운데에 숨겨졌던 사랑의 심정으로 이 시간에 현현하시어서 저희들의 마음을 거치고 거쳐 하나로 묶으시옵소서. 이 모인 전체가 하늘나라에서 보게 될 때 선한 무리요, 이것밖에 바랄 수 없는 그런 중심이 되게 될 때에는 망하지 않을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적인 역사는 전개될 것이고 그 터전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요건이 남아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냥은 되지 않습니다. 저희들이 희생해야 된다는 사실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수욕을 당해야 된다는 사실을 이 시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희생하시는 아버지를 발견할 수 있고 수욕을 당하시는 아버지를 발견할 수 있는 동정적인 혈족이 되게 해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리어 한 하나를 책임지고 있는 외로운 아들딸들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제가 이 나라에서 출발할 때 고독을 느끼던 그런 자리에 그들도 처해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런 자리에서 지키시던 아버지여, 거리를 초월하여 그 자리에 현현하시어서 직접 지도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의 소망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자극시키시어 힘껏 싸울 수 있게끔 힘과 능력을 가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착하고 귀하고 선하고 거룩하신 아버지의 성상앞에 비천한 자신들임을 직고하면서, 당신의 긍휼과 자비와 동정과 사랑의 마음이 이 시간 저희 일신 위에, 청중 위에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고,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 위에도, 만방에 널려있는 뭇 식구들 위에도, 천상세계에서 인연된 수많은 영인들 위에도, 앞으로 올 후손들 위에까지도 미쳐질 수 있는 영광이 저희들을 중심삼고 인연되고 그 동기가 성립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도 기쁘신 시간으로 맞으시옵고, 이 아침을 영광의 아침으로 세워 주시옵기를 간구하고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본을 세워야 할 지상시대' 이런 내용을 가지고 잠깐 말씀해 보겠습니다.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욕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보다도 내일이 더 좋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현재 살고 있는 환경보다도 내일 살아갈 환경이 더 좋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점진적인 행복의 무대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혹은 동서를 초월하여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렇게 바라 왔고, 지금도 그렇게 바라고 있고, 미래에도 그러한 입장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지상에 살고 있는 인간이 그러함과 마찬가지로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영인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인간이 그러한 입장에 서 있고, 그 인간을 지은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 또한 그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욕망을 중심삼고 오늘보다도 내일이 더 좋기를 바라는데 그 대상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우리 인간세계에서는 우선 물질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황금만능시대를 부르짖는 현시대에 있어서는 돈이라는 것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돈만 가지면 인간의 생사지권도 좌우할 수 있다는 시대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첫번째의 대상을 꼽는다면 물질을 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뭐냐? 무슨 권력이니 무엇이니…. 권력은 왜 필요로 하느냐? 자기의 권익을 취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보다 높을 수 있는 가치를 추구하는 입장에 서기 위해서 바라는 것이 권력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대상으로 하고 있느냐? 보다 높을 수 있는 인격의 자리를 추구하기 위해서 권력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높고 참다운 인격을 바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을 기쁨의 대상으로 함과 동시에 귀하고 참다운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 가운데는 물론 남자도 있을 것이고 여자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 하면 남녀에 귀결될 것입니다.
그 다음엔 무엇이냐? 일반 세상 사람들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물질과 사람…. 일반 사람은 그 이외는 모릅니다.
그러나 신앙길을 가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무엇을 더 기쁨의 대상으로 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보다도 더 높을 수 있는 어떠한 절대자가 있으면 그 절대자를 기쁨의 대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을 모색해 나오는 것이 종교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아는 바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오늘날 인간적인 입장을 총합해 보면, 종교를 모르는 사람들은 물질, 돈을 기쁨의 상대로 하고 있고, 사람을 기쁨의 상대로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종교를 믿는 사람은 물론 물질에 대해서도 그러하고 사람에 대해서도 그러하겠지만, 그것보다도 하늘을 더 귀하게 여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더 선의 대상으로, 가치의 중심으로 세우고자 하는 무리가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세상 사람들과 종교인들을 비교해 볼 때에 그 차이는 무엇이냐? 세상 사람들은 사람까지의 한계선을 중심삼고 그것을 최고 선의 표준으로 혹은 소망과 욕망의 표준으로 하고 있지만, 종교인은 여기에서 한 단계를 넘어서서 하늘을 표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까지가 한계점이지만 종교인들은 사람의 단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돈을 필요로 하고 사람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가지고 하늘을 기점으로 삼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과 종교인의 다른 점입니다.
종교인은 땅 위에 살고 있고 물질세계에 살고 있고 땅 위의 인간들과도 관계를 맺고 살고 있지만, 여기에 있는 것을 선의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넘어서 가지고 하늘이라는, 우리와는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것 같은 기준을 표준으로 하고 출발함과 동시에 거기에서 새로운 대상의 인연을 찾아 허덕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리가 종교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가족을 위해서, 혹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물질을 찾으려고 허덕입니다. 또, 보다 참될 수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보다 참다운 사람끼리 인연되어지고 묶어질 수 있는 사연을 중심삼고 자랑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 사람들이 생애노정에서 추구하는 욕망의 귀결점입니다.
그렇지만 신앙자들이 가는 길은 그런 한계점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넘어서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물질적 요건을 제일 조건으로 세워 가지고, 그 요건이 기반의 조건으로 남아져 가지고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느냐?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는 내용이 되지 못하게 될 때 우리는 물질적인 요건을 끊어 버려야 됩니다. 넘어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세상 사람들이 종교인들이 가는 길 앞에 필연적인 기반, 혹은 필연적인 요건으로서 인연되어진 것을 그냥 그대로 살려 나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인간을 중심삼은 인연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 종교의 길이라 하게 될 때는 이것을 벗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물질과 사람이요 종교인들은 그런 것이 중심으로 되어 있는 세상에 살고 있음이 틀림없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은 그냥 그대로 포괄된 자유 환경에서 새로운 도약의 희망을 가지고 출발할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없다, 그냥 그대로 성립되지 않는다 하게 될 때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버려야 됩니다. 버리는 데는 내가 부정해야 되느냐 저쪽에서 나를 부정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저쪽에서 부정하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을 때는 내가 부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여기에 고충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식구이니라(마 10:36)",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 "무릇 자기 목숨을 보호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눅 17:33)"고 말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두고 볼 때에 이것은 전부 역설적인 논리입니다. 순응의 여건을 우리 환경권내에서 절대로 긍정할 수 없는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서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네 집안식구가 원수라고 하였으니, 그는 세상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물질은 사망의 동기가 된다고 가르쳐 주었으니, 사망의 그늘을 대하는 입장에 서야 하는 종교인의 입장은 물질 앞에서는 비참한 입장이 아니냐? 다시 말하면, 끊을 수 없고 떠날 수 없는 환경을 끊고 떠나야 된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이냐? 그러나 비참한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 비참함이 나를 파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해방시키는 동기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단호히 그 길을 취하여 가야 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욕망이 있다면 무엇을 바랄 것이냐 할 때에 하나님도 역시 사람을 바라고 만물을 바랄 것이 아니겠어요? 하나님 자체는 무엇을 바라느냐? 하나님 자체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체권내에서 바랄 수 있는 소망의 기준이 있다면, 인간세계에 대해서 구도의 손길을 펴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에게 소망과 욕망이 있다면, 그 욕망은 이 인간세계의 욕망을 대상적으로 둬야 되기 때문에 사람을 필요로 할 것이 아니겠느냐?
사람을 필요로 하게 될 때에는 사람에게 필요한 물질도 필요로 해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이 사람에게 이것을 거부하라는 조건을 제시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사람이 하나님과 상관되어 있고 인연되어 있는 입장이라면 그럴 수 없는 것인데, 인연은 되어 있고 상관은 되어 있지만 그 인연과 상관을 다시 돌이켜 새로운 차원에서 맺고자 하는 어떠한 내적인 욕망과 염원이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제시하는 그 욕망의 길을 설정하기 위해서 부정적 요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냐. 이것은 자연적인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면 물질을 대해 얼마만큼 부정하라는 것이냐? 오늘날 인간끼리 관계되어 있고, 그런 인연을 통하여 관계된 생활환경을 갖고 있는 인간에게 얼마만큼 부정하라는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어느 한계를 남기고 부정하라는 것이냐? 한 50퍼센트 정도 남기고 부정하라는 것이냐?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만큼 부정하라는 것이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하는 말은 무슨 말이냐? 이것은 어떠한 내용을 남겨 두고 부정하라는 말이 아니라 절대 부정하라는 말입니다. 이 땅에서 욕망을 가지고 살고자 하는 인간들 앞에 죽고자 하라는 것입니다. 완전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처해 있는 환경과 다른 환경에 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경계선을 넘어서라는 말입니다. 그 경계선을 넘어서는 한계선이 무엇이냐? 죽음입니다. 죽음 이상의 자리를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으면 끝나는 것이냐? 죽는 데도 문제가 다를 것입니다. 죽는 데는 먹고 살다가 늙어 죽기 며칠 전에 가서 죽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늙어서 죽으라는 말이냐? 아들딸 다 낳고 해볼 것 실컷 다 해보고 나서 `아 이젠 뭐 이만했으면 난 죽어도 괜찮다' 하는 그런 사용불능한, 무가치한 입장에서 죽으라는 말이냐? 어떤 사람들이 `천당가려면 늙어서나 천당가려고 종교를 믿지 뭐'라고 말하는 것을 우리가 왕왕 보는데, 그렇게 늙어서 필요의 한계점에 도달하기 직전에 죽으라는 말이냐? 그럼, 무식한 자리에서 죽으란 말이냐? 천태만상의 내용이 다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장년 시대에 죽으란 말이냐? 청년 시대, 소년 시대, 혹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로 태어나자마자 죽으란 말이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은 아무 의욕 없이 될 대로 되라 하는 인간상을 중심삼고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은 당연합니다. 욕망이 최고도에 달한 때, 희망에 벅차서 내일을 기약하며 계획된 목적을 성취하고 말겠다고 하는 혈기 왕성한 때, 여러분이 좋다고 하는 청년 시대보다도 청소년 시대, 청소년 시대에서도 아무때가 아니라 사춘기 시대, 희망에 벅찬 그때에 그걸 몽창 버리고 죽으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그러한 자리에서 살 수 있는 길을 찾아가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죽음의 길을 찾아가라고 하면 갈 사람이 있을 것이냐? 여러분의 일생을 두고 생각해 보라구요. 죽는 사람들을 보라구요. 80이 넘어서 죽고 90이 넘어서 죽지만, 죽는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안 죽는다, 안 죽는다 하다가 죽는 사람이 태반이예요. 안 죽겠다고 하다가 죽는 사람이 태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진, 자원해서 그 자리를 찾아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희망을 가지고 나갈 것이냐 절망을 가지고 나갈 것이냐 할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절망을 갖고 가는 길인데도 불구하고 희망을 갖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순 중의 모순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왜 이러한 조건을 제시해야 되느냐? 하나님은 인간 본래의 인연과 관계된 것을 타파하기 위한 원수의 자리에 서 있느냐? 아니면 친구의 자리에 서 있느냐? 친구의 자리라면 그냥 그대로 환영해야 할 텐데 어찌하여 그걸 거부시키느냐 할 때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상과 우리가 바라는 욕망권과는 상응적이 되지 못하고 상극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동적인 결론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이 소망하는 기점, 기조, 혹은 기대, 출발점은 어디냐?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느냐? 이 세상권내에서부터 출발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인간의 욕망권이 아니예요. 인간의 욕망과 더불어 그것을 짬뽕시켜 가지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것이 아니예요. 깨끗이 청산한 데서부터 출발하자는 말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관계에 있어서 깨끗이 청산지은 데에서부터 출발하자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 앞에 제시한 참다운 신앙의 전통적인 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기에서 본이 되는, 하나의 원칙적 기준을 설정하자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웃고 좋다고 하는 이것이 문제라구요. 눈으로 보는 것, 이게 문제라구요. 귀로 듣는 것, 이것이 문제라구요. 입으로 말하는 그것이 문제라구요. 피부를 통해서 느끼는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신앙길에서는 또 무엇을 강조하느냐? 자기를 높이라는 것은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죽으라는 말은 높이라는 말과 정반대예요. 높고자 하는 자는? 뭐라고 했어요?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높아진다」이것이 무슨 놀음이냐? 세상에 그런 놀음이 어디 있어요?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니, 그럼 전부 다 죽겠다고 하라는 말이냐? 사실이 그렇다는 거예요.
신앙길을 가는 사람들은 대개 죽으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희망 가운데 살다가 신앙길에 들어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놈의 세상 망하려면 빨리 망해라' 하고 절망한 사람들, 인간세계의 낙오자들이 찾아 들어오는 곳이 신앙길입니다. 여기에 온 사람들도 그래요. 인간 세상에 가 보았자 별거 아니거든요.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에서 높고자 하는 자는 제일 미욱한 사람입니다. 신앙길을 가면서 높겠다고 허덕이는 사람은 이 세상의 깡패보다 더 악한 사람입니다.
자, 그러면 거기에 대한 무슨 대안이 있느냐? 왜 그러냐 하는 것을 아느냐? 그것은 뭔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왜 높고자 하면 낮아지고 낮고자 하면 높아지느냐? 이것은 경계선이 있다는 말입니다. 삼팔선과 같은 경계선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경계선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 다 아는 거예요.
우리 나라와 원수의 나라와의 사이에는 경계선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생사의 결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삼팔선은 치열한 전투와 교전이 계속되고 있는 곳입니다. 만일 이쪽 편의 사람이 드러나는 날에는 죽지 않으면 이용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살려고 했다가는 그 나라의 역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원수 앞에 잡혀갔을 때에 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면 원수에게 우리 나라의 모든 비밀을 넘겨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럴 바에는 죽어야 됩니다. 죽겠다고 해서 맞게 되면, 때리기는 원수가 때리지만 잘못 때릴 때에는 우리가 원수를 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칠 때에는 몇 백배 가중해서 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죽음으로 말미암아 망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들이 그 한 사람을 잘못 침으로 말미암아 그 몇천 배를 가중해서 우리가 원수들을 쳐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는 죽으라는 말이 멋진 말이예요, 멋지지 않은 말이예요?「멋진 말입니다」이렇게 될 때는 야, 그러면 그렇지. 그렇다면 그것이 가당한 말이다 이겁니다.
여러분 중에 누가 원수에게 붙들려 가서 살겠다고 할 때, 이 나라의 애국자들이 보이지 않는 폭탄을 갖고 있으면 살겠다는 그 녀석을 때려죽이고 싶겠어요, 때려죽이고 싶지 않겠어요? 물어 볼 필요도 없다는 거예요. 그가 살았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총을 가지고 있으면 갈겨 버릴 수 있는 기준만 있으면, 갈겨 버려야 되겠어요, 안 갈겨 버려야 되겠어요?
이렇게 볼 때에 삼팔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거 실감이 나요? 삼팔선이 있구만. 치열한 교전이 계속되고 있구만.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붙들릴 수 있는 자리에 서 있구만. 붙들리면 죽음을 당할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구만. 그러면 죽고자 하는 것이 한때면 됩니까? `삼팔선이야 이북을 향해 넘어갈 때만 있지, 우리가 사는 데에야 삼팔선이 없어' 하면 됩니까? 주동문!「예」그래, 안 그래?「그렇습니다」무엇이 그래? `삼팔선을 넘을 때만 내가 결심해서 그 순간에만 후닥닥 넘어가면 되지' 하면 돼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거예요.
사망의 삼팔선은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 사는 순간순간, 나날, 매해 가운데 이것이 고질같이 붙어 있다고 할 때에는 어떻게 할 거예요? 내가 그렇고, 아내가 그렇고, 자식이 그렇고, 부모가 그렇고, 사랑하는 나라가 그렇고, 인류가 그렇다는 것을 알 때 어떻게 할거예요? 포기해 버리면 될 것이냐? 될 수 없습니다. 억천만 년이 걸리더라도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일정한 구간에 설정된 이 삼팔선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듣고 보고 느끼는, 즉 오관을 통해 느끼는 그 감각을 통해서 전부 엇갈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감정을 통해서도 뿌리 깊이…. 자신의 골수와 더불어 자신의 감정과 더불어 격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무서워요, 무섭지 않아요? 이러한 나예요. 이러한 나, 이러한 여러분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살겠다고 하는 녀석은 어리석은 미치광이라는 것입니다. 종교를 가지고 그 나라 국민이라는 의식을 가진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한다면 그는 미치광이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러한 것을 똑똑히 안 사람이 있다면, 살고자 하는 사람은 산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죽는 것이요 죽은 목숨이요, 죽고자 하는 사람은 사는 것입니다.
죽는 것이 그 나라에 충이 되는 것입니다. 왜? 악이 잘못 치는 날에는 하나님이 몇백 배 악을 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희생되게 되면 그 대신 열 사람을 찾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벌금을 받아 온다는 거예요. 세상이 그렇잖아요? 징역 안 가는 대신 벌금을 내지요? 한 사람이 죽게 되면 세 사람 이상 찾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니까 하나님편에서 볼 때, 죽으면 손해보는 거예요, 이익보는 거예요?「이익보는 것입니다」이익보는 거예요?「예」그럼 여러분은 하나님이 이익을 내게 하고 싶어요, 손해를 내게 하고 싶어요?「이익을 내게 하고 싶습니다」알긴 잘 알구만. 그러면 죽으라구요. 죽으라고 할 때에 죽지 않겠다고 하면 모가지를 잡아 끌어내 가지고 죽을 자리에 갖다가 처넣어야 되겠습니다. 뻔히, 틀림없이 이익이 나는데 죽지 않겠다고 하면 때려서라도 죽게끔 만들어야 되겠어요, 안 만들어야 되겠어요?「만들어야 됩니다」어때요? `아이고 눈치를 보니까 죽기 싫어하누만. 그만둬 그만둬' 그래서 되겠어요?
그가 자기의 아들이요, 딸이라 할 때는 어떻게 하겠어요? 남이라면 모르지만 내 아들딸이라 할 때는 어떻게 하겠어요? 자기 여편네라 할 때는 어떻게 하겠어요? `싫으면 관둬. 오늘 아니면 내일 하지' 그러겠어요? 안 죽겠다고 하면 죽을 길에 처넣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 처음 온 사람은 기분이 나쁠지 모르지만, 새벽부터 죽을 길에 처넣겠다고 하니까. (웃음)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어요. 기분 나빠하는 녀석이 기분 나쁜 녀석이라구요. 여러분, 이 말이 사실입니다.
사탄은 어디에 있느냐? 사탄은 삼팔선 이북에만 있지 않습니다. 사탄은 여러분의 생활무대에 고질 대왕으로 있으면서 여러분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을 잡아 치우기 위해서는 살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보라구요. 사탄은 하나님을 6천년 동안 골려먹던 괴수예요. 안 그래요?
사탄이 얼마나 무서우냐? 사탄이 무섭기는 뭐…. 사탄이 얼마나 무서우냐? 세상에서 무섭다는 거…. 아이들은 세상에서 호랑이가 제일 무섭다고 하지요? 사람은, 여기 어른 남자들은 무엇이 제일 무서울까? 도둑이 무섭다고 하고 강도가 무섭다고 하지요? 그 다음 무서운 게 뭐예요? 동물 가운데 최고의 왕초가 무서운 것이고, 사람 중에 제일 극악한 사람이 무서운 것이지요. 종교인에게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닙니다. 사탄 마귀예요.
원수 중에 제일 무서운 원수가 누구냐? 생사지권을 가진 사람이 누구냐? 그 나라의 군왕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법을 자유로이 제정할 수 있고, 법을 주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왕초입니다. 그럼 종교인에게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무엇이라구요?「사탄입니다」사탄! 사탄이지요. 동그라미가 붙어 사탕이 되면 안 되는 거예요. 사탄! 탄이라는 말을 하게 되면 기분 나쁜 거라구요. 탄 하게 되면 뭐예요? 총탄, 무슨 탄, 무슨 탄. 기분 나쁜 거라구요.
그래, 여러분은 사탄을 보았어요? 사탄이 있는 것을 알았어요? `말로는 있는 것 같은데 있는지 없는지 난 모르겠어' 하는 사람들은 큰일날 패들입니다. 가망이 없는 사람들이예요. 기대를 걸 사람이 못 된다는 거예요. 그럴 게 아니예요? 하나님이 볼 때는 기대를 걸 사람이 못 되는 겁니다. 사탄이 있는 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이 기대를 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대를 걸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대하여 플러스될지 안 될지는 지내 보아야 알겠지만, 그래도 사탄이 있는 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에 한해서만 하나님이 소망을 둘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탄이 있는지 알아요, 몰라요?「압니다」무얼 알아요? 사탄이 어떻게 생겼어요? 할아버지같이 생겼어요? 어떻게 생겼어요? 생각으로는 있다고 하겠지요. 사탄이 탄알을 잰 총부리를 여러분의 옆구리에 딱 대고 `이리 가 이리 가' 이러고 있는 것을 아느냐 말이예요? 왼쪽으로 갈 때는 `이놈의 자식아, 오른쪽으로 가'라고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사탄이 있다면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더욱이나 종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이 뭐야, 하나님이. 넌 본래 날 때부터 내 새끼야. 내 핏줄을 타고 태어났고, 내가 주관하고 있는 것을 먹고 살고 있으니 네 육체 전부는 내 것이 아니냐, 요놈의 자식아. 하면서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그러고 다니는데 여러분은 `하하하' 하면서 좋다고 웃게 돼 있어요? 좋다고 먹게 돼 있어요? `히히히' 하고 살게 되어 있느냐 말이예요. `아이고, 보고 싶고, 가고 싶다' 하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이것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비사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될 때,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는 헤어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데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 헤어날 수 있겠어요? `에라 모르겠다. 이왕지사 죽을 것 한번 비상수법을 취해 보고 죽겠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사탄이 노리는 시선과 사탄이 움직이는 방향과 반대의 길로 나가 사탄을 후려감아 쳐야 됩니다.
그때에 지혜가 떠오르지 않거들랑 `아, 우리 사랑하는 국민이여, 사랑하는 주권자여, 나에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전체가 나를 후원하소서. 이 몸이 전체를 대신해서 사탄을 때려잡아야겠습니다'고 해 가지고 비상대책을 취해야 됩니다. `어 왜 이러우?' 그래 가지고 되겠어요? `왜 그래요?' 그래서 되겠어요? `이놈아' 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워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영화 가운데 그런 드릴있는 장면을 더러 보지요? 언제 하는지 모르게 번개같이 해치워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심신을 사망선에 놓고 사탄과 일대 격전을 하여 판가리하겠다는 결심을 해보았어요, 못 해보았어요?「못 해보았습니다」못 해보았으면 멀었다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에, 나라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한국에는 완충지대가 있지요? 그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때가 완충시대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이 서로 피해를 입으니까 타협해 가지고, `자, 인간 자의의 결성에 맡깁시다' 해 가지고 인간에게 공동적인 자유권을 부여할 수 있는 특권지대를 설정하고 싶을 것이 아니겠어요, 하나님이 있다면? 그러니 우리 나라에 삼팔선, 완충지대가 있는 것은 세계적인 대표로 있는 거예요. 인간에게는 완충지대가 있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완충지대가 있는 것이 고마운 거예요, 고맙지 않은 거예요?「고마와요」고맙긴 고마운데 이것이 또 원수라는 거예요. 완충지대에서만 뺑뺑 돌면 원수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계시는 줄 알아요? 사탄이 있는 줄 알아요? 하나님도 모르고 사탄도 모르고 살고 있는 거예요. 불간섭권내라는 거예요. 그런 권이 있는 것입니다. 북쪽으로 가게 되면 사탄이요, 남쪽으로 가게 되면 하나님인데, 어떤 경계선에 부딪치기 전에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인생이라고 하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완충지대에서 `어제도 그날이고 오늘도 그날이다. 아침 햇빛은 언제나 오늘이나 다를 게 없구만. 초목은 봄이 되면 푸르러지고 가을이 되면 열매가 맺히누만. 먹을 것은 그냥 그대로인데 바쁘게 뭐 그럴게 있어? 그저 적당히 어영부영 살다가 일생을 마치면 그만이지' 하면 안됩니다. 요렇게 생각하는 무리들이 많아요. 이들은 때려죽일 패당이예요. 기분 나쁘겠지만 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물에 물탄 듯이 미지근해서는 안 됩니다. 차든지 덥든지 하라는 것입니다. 미지근하게 하면 도리어 안 하는 것보다도 못합니다. 차든지 덥든지 극단에 서라는 것입니다. 6.25동란 때도 그랬잖았어요? 그저 적당히 `공산당이 들어오겠으면 들어오고 국군이 들어오겠으면 들어오고, 그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 내게 자식이 있나?' 하며 뻐덕거리던 녀석들은 오다 죽고 가다 죽었다는 거예요. 전시에는 그러지요? 내가 그런 것을 많이 보았어요. 이것은 틀림없는 말입니다.
종교권은 뭐냐 하면 완충지대권입니다. 하늘나라로 보게 되면 완충지대권인데 두 나라가 있어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종교권 가운데 극렬파는 하늘나라의 권속으로서 점점 작아져 가지고 그 나라권을 중심삼고 개인으로 대표하고 있고, 사탄세계 사람들은 사탄 나라를 중심삼고 점점 이종교권을 중심삼고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종교를 믿는 자들 가운데 아직까지 사탄의 일선, 그 초소를 청산짓지 못한 패들이 들락날락하는 것입니다. 그런 패들이 있다구요. 그렇지요? 하나님의 초소에 들락날락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오면 사격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적장이 오면 한 방으로 내갈기겠다고 만반의 준비를 한 패가 있는가 하면 시시해 가지고 조는 패가 있어요. 삼팔선에서 졸다가는 원수들한테 목 베이기가 일쑤지요? 모가지를 벨 때에는 `이놈의 새끼야' 하면서 앞에서 자르는 것입니다. 뒤에서도 안 자른다구요. `잘 잔다, 이놈의 자식' 하면서….
우리 인생행로에서 그런 혈투전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활권내에서 대하는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 치고 박고 죽이고 살리는 혈투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실감하며 살아 보았어요? 그렇게 살아 보았어요? 우리 아주머니들, 그렇게 살아 보았어요, 못 살아 보았어요? 뭐, 좋은 게 있으면 여자들은 `내가 좋은 옷을 입는 것은 우리 신랑님이 나를 좋게 보게 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하는데, 이거 벼락맞을 짓이라는 거예요. (웃음) 생각해 보라구요. 그 신랑이 나에게 복보따리를 갖다 주는 신랑이 아니라구요. 원수예요, 원수. 그러니 원수를 좋게 하겠다는 것이라구요. 이렇게 생각하면 말하는 나도 곤란할 때가 많다구요.
밥을 먹는 데도 `아이고 배가 고픈데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게걸이 나 가지고 막 먹을 때는 입이 아닙니다. 아가리입니다. 거기에 도취해 가지고 먹다가는 사탄이 독약을 섞은 밥을 먹게 돼요. 그러니 `이 밥에 뭐 없어' 하면서 주의해서 먹어야 됩니다. 원수 세계에 들어가서 밥상을 받았는데, 하늘나라의 밀사로 원수의 세계에 들어온 스파이인데, 밥을 막 퍼먹을 수 있어요? 물을 먹더라도 뒤적뒤적하고 먹어야지요. (웃으심) 그렇게 해봤어요? (웃음) 웃을 얘기가 아닙니다. 옷을 입더라도 뒤적뒤적하면서 `괜찮습니까?'하고 본국에 연락해 보고 나서 입는 거예요.
`오늘은 이런 별식이 나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먹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라고 본국에 연락을 해보고,`야 먹어라' 하면 `그래요? 나는 책임 안 집니다' 하고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본국에 연락해 봐서, `그래요? 나는 책임 안 집니다. 본국에서 책임지시오' 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틀림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면서 살아요?
그래서 통일교회에는 성별식이 있지요? 성별식, 성염이 있지요? 통일교회는 그런 별스러운 무기를 하나 갖고 있어요. 사탄이 요동하는 터가 센 데 가서도 성염을 뿌리고 하나님의 이름과 참부모의 이름을 가지고 천하에 호령하게 되면 거기에 있던 사탄은 전부 다 `차렷, 뒤로 돌아 가!' (웃음) 그렇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으니 무기 중에 제일 멋진 무기지요. 그렇다는 거예요. 공기까지도 마취가 되고 물까지도 마취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 이런 것을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는 예수님이 왔다면, 그 예수님이 가라사대 `살고자 하는 자는 살고 죽고자 하는 자는 죽느니라' 이러겠어요? 이렇게 교육하겠어요? 여러분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얘기하겠어요? 여러분이 이런 처지라면, 뜻이고 무엇이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면 어떤 교육의 표준을 세워야 되겠어요? `살고자 하는 사람은 사느니라' 그렇게 교육하겠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여러분들이라 하더라도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느니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네 집안식구가 제일 가까우니라'가 아니라 `네 집안식구가 원수니라' 하고, `네가 입고 좋아하는 것이 제일 너를 깝대기 벗기고 있는 것이다'라고 교육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 이제까지의 것은 다 잊어버려도 좋습니다. 다 잊어버려도 삼팔선이 있다는 것만은 잊어버리지 마세요. 알겠어요? 사망의 지옥인 삼팔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성경을 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은 사망권내에 있는 이 세계의 것을 차지하기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 색다른 나라에 입국할 수 있는 합격자를 만들고 국민을 만들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그건 자동적으로 된다는 거예요.
그 가르침이 고마운 가르침이예요. 고맙지 않은 가르침이예요?「고마운…」고마운 가르침이예요? 그래, 지금까지 고맙게 생각했어요? 여기 서 있는 사람도, `성경이 이게 뭐야, 이게 이게. 이게 무슨 수작이야? 예수는 민족 반역자로 몰리고 쫓기다가 죽은 게 아니냐? 가정 파탄분자요, 사회 소란분자요, 국가 광란분자로서 자기 종족, 자기 민족이 십자가에 탕탕 못박아 죽인 패자의 대표자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문화권을 형성하게 됐느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예수가 죽어 가지고 무슨 뭐 홍길동 같은 놀음을 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예수를 죽이는 자리에 내세운 데에는 그 배후에서 절대적인 힘이 개재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 결과를 타진해 볼 때에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이런 분이 성인이 되었느냐? 예수가 죽을 때 성인이라는 패말을 박고 죽었어요? `유대인의 왕이다, 민족의 반역자다'라고 해 가지고 공산당식으로 말하면 반동분자로 몰려 죽은 것입니다. 예수가 그렇게 죽었지만 죽은 경계선이 어디냐, 즉 어떠한 자리에서 죽었느냐 하면, 하나님을 대표하고 하늘의 절개와 충절을 대표해 가지고 인간으로서 죽어야 할 타당하고 마땅한 자리에서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필시 그를 들어 그가 죽은 가치를 전통으로 남기고 그의 사상을 사상적 기조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그렇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그 나라의 국민성과 전통이 서기 때문에, 그런 죽음길을 따라가 가지고 하늘 나라의 새로운 출발의 기원이 마련되기 때문에, 그 터전이 남아진 것이 오늘날 기독교 문화권입니다. 당연한 말이예요.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실감이 날 겁니다. 내가 누구를 만나면, 그 자리는 삼팔선을 중심삼고 그 상대방과 교전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내가 그에게 사로잡히느냐 내가 그를 사로잡느냐, 악의 침범을 받느냐 선의 영향을 끼치느냐' 하는 그런 관점에서 만사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더럽힘을 받아서는 안 되겠다 하는 그런 심각한 자리입니다. 심각한 자리예요. 아주머니, 심각한 자리인 줄 알아요?
무엇인가를 보고 `아이고 좋다' 하고 까박까박하는데, 이 까박까박하는 것이 원수예요. 무엇인가를 듣고 `아이고 좋다' 하는 이것이 원수라구요. 그것이 사탄의 미끼입니다. 알겠어요?
내가 잉어 낚시질을 해보았는데, 좋은 미끼를 사용하면 고기들이 잘 물어요. 좋은 미끼는 아주, 뭐 냄새도 묘한 냄새가 날 것이고, 소리가 난다면 최고의 명곡일 것입니다. 소리나는 장치를 못 해서 그렇지, 장치해 가지고 고기가 잘 물린다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냄새도 좋고 보기에도 훌륭하고 맛이 있다면 훌륭하게 야구공처럼 만들 거예요. 그럴 것 아니예요? 대장을 잡으려면 그래야 할 것 아닙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의 미끼는 수두룩합니다. 알겠어요? 남자에게 사탄의 미끼는 뭐냐 하면 여자입니다. 기분 나쁘지만 할 수 없어요. 요놈의 여자라는 거예요. 여자들,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요. `거 뭐 통일교회에 갔더니 여자를 대해 요놈의 여자라고 해' 그러지 말라고요, 사탄의 미끼라는 말은 잊어버리고…. 남자에게 사탄의 미끼가 뭐라고요? 남자들, 뭐라구요?「여자입니다」(웃음) 그렇다는 거예요. 그럼 여자에게 사탄의 미끼는 뭐라고요?「남자입니다」(웃음) 웃을 얘기가 아닙니다, 웃을 얘기가. 웃을 얘기가 아니예요. 웃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거라구요. 내가 웃으라고 물어 보는 것이 아니예요. 심각한 얘기라구요. 전부 다 미끼라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살랑살랑해 가지고, 화장하고, 뭐 어떻고 어떻게 해 가지고 싸악…. 이걸 뭐라고 그래요? 전부 다 사탄의 미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얼굴 까풀을 거꾸로 벗겨 놓고 이 여우야 하는 그런 싸움이 벌어진다구요. 사탄의 미끼들이 그저 걸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듣는 데 있어서 잘 듣고, 보는 데 있어서 잘 보라는 거예요.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사춘기 시절에는 극장에도 가지 말라고 하는데 그거 잘한 거예요, 못한 거예요? 오늘날 청소년들이 극장 같은 데를 가야 되겠어요? 밤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카바레 같은 곳에 들어가서, 거 무슨 춤이예요? 트위스트? 그 뱀춤을 추어야 되겠어요? 트위스트가 뭐냐면, 꼰다는 거예요. 뱀춤이라구요, 뱀춤. `뱀' 하면 기분이 좋아요? 요놈의 뱀. 그래, 독사가 딱 감아 가지고 입에 있는 혀를 홀록홀록 내밀고…. 그거 가만히 둬야 되겠어요? 그냥 둬야 되겠어요, 막아 치워야 되겠어요? 얼씬도 못 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요즘 퇴폐풍조 일소니 뭐니 하는 무슨 바람이 불지요? 거 일소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해야 되겠습니다」그럼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퇴폐풍조 일소운동에 기수가 되어야 되겠어요, 따라가는 병사가 되어야 되겠어요?「기수가 되어야 합니다」요놈의 자식들, 젊은 녀석들이 그런 곳에 가면 다리를 째버려야 된다구요. 거꾸로 휘어잡고 째 버려야 돼요. 이것이 통일교회식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연애를 못 합니다. 연애가 무슨 연애예요? 젊었을 때 사탄의 미끼에 걸리면 어떻게 되느냐? 벗어날 수 있어요? 젊어서 사탄의 밥이 되는 거예요. 사탄이 맛있다고 할 것입니다. 불에 구워 뼈다귀까지 빠작빠작 씹어 먹을 거예요, 풋병아리 새끼처럼. 여러분에게는 말을 하더라도 이렇게 자극적인 말을 해야 됩니다. 그런 얘기를 할 때에는 이빨을 물고…. 그래야 인상에 남는 거예요. 자, 이제 그만하면 알 거예요.
아가씨가 데이트하거나, 혹은 옆에 있는 남자와 팔을 끼고 가게 되면 `사탄의 미끼에 걸린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웃음) 사탄의 미끼에 걸리면 지옥의 맨 밑바닥으로 들어가게 돼요. 또 달콤한 얘기를 하게 되면 `아이고, 물려고 하는구나' 하고 생각해야 됩니다.
또, 사내 녀석들도 그래요. 사내로 태어나 가지고 여자들을 대해 시시하게 휘파람을 불고 추파를 던져요? 이놈의 자식들, 사내로 생겨 가지고 여자가 없어서 그러고 있어요? 세상에서도 그런 사람은 하치 축에도 끼지 못할 하치예요. 그건 쭉정이입니다. 아무리 못났어도 여자가 따라오게 해야지, 남자의 위신에 여자를 따라가요? 키도 크고 힘도 강하고 덩치도 큰 것이 따라가면 재미있어요? 덩치 작은 것이 따라가야지요. 강아지하고 주인하고 가는데 덩치가 큰 주인이 강아지를 졸졸 따라다니면 재미있어요? 강아지가 주인을 졸졸 따라다녀야지요. 남자의 위신상 그런 행동은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요?
여러분, 그래요. 자신이 언제 타락하느냐? 여러분 자신도 모르게 타락합니다. 한번 쓱 보는 눈이 동기가 되는 거예요. 아, 음성을 척 들으니까 어머니 음성 같아서 가서 보니, 어머니가 아니라 한 미녀가 쓱 나타나 가지고 윙크를 하고 추파를 던져요. 어머니가 연상되어 얘기를 하게 돼요. `차나 한잔 하소' 해 가지고 가는데 그 차에 약이 들어 있는 거라구요. 수면제. 이래 가지고 주고받는 놀음에 `아하―'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살려면 자기 몸 하나 보호하는 데 얼마나 힘이 드느냐? 나라를 통치하는 것보다도 더 힘이 듭니다. 사탄나라를 통치하는 것보다도 더 힘들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대략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알 거예요. 이 길이 그렇게 힘든 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올 때도 삼팔선을 지나오는 것입니다. 교회에 올 때, `야야, 도깨비처럼 새벽같이 무슨 교회를 가느냐. 무슨 죽을 병이 들어 가지고 그러느냐? 죽을 병도 안 들었는데 교회에 뭐 하러 가느냐? 오늘도 밥 한 그릇을 먹고 내일도 마찬가지 아니냐. 교회에 간다고 밥 세 그릇 먹어? 더 못 먹지´라고 하지요?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여기 오려면, 새벽 세시 반쯤 일어나야 돼요. 여기까지 오는 데 한 시간 반 걸렸지요? 또 그 시간에는 택시가 없지요? 뭐, 택시를 잡아탄다고 해도 한 시간쯤 가려면 오백 원이 들어갈 거예요. 그러니 교회에 한번 왔다 가면 천 원 손해났지요, 잠 못 잤지요, 새벽부터 부스럭거려서 아들딸 다 깨워 놨지요, 이게 얼마나 손해예요? 그 밑천을 따지자면 손해가 막심하다는 것입니다. 또 아침에 문선생이 나와 가지고 좋지 않은 얘기만 하고 심각한 얘기만 하니 차라리 듣지 말고 잠이나 자라 하고 사탄은 가지 말라고 추파를 던지는 것입니다. `애기가 감기에 걸리지 않았느냐. 어제 밤에 주인 양반이 감기에 걸리지 않았느냐. 아침에 어디 원족을 간다고 했는데 가야 돼지 않느냐?´하고, 또 요즘엔 운동회를 많이 하니까, 교직원이면 `학교에서 운동회를 하지 않느냐?´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이것 저것 해 가지고 빗장을 셋 만들면 아무리 팔도강산을 날고 기는 홍길동이라도 못 나오는 것입니다. 사탄이 그를 찔러 매단다는 거예요.
그럼 여기에 와 앉아 있는 여러분이 사실 그런 것을 넘어왔다면,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기분 좋으니까 웃어야 되겠어요, 졸아야 되겠어요? 웃어야 돼요. 여기 와서 꾸벅구벅 조는 것은 뭐예요? `나는 걸렸소´하는 것입니다. (웃음) 웃을 일이 아니라구요. 조는 걸 보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기분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어떻겠어요? 새벽부터 그러는 것을 나는 제일 싫어해요. 나도 여러분이 집을 떠날 시간보다 먼저 일어나서 기도하면 기도했지, 뒤지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예요. 와 가지고 자기 딴에는 무슨…. 꾸벅꾸벅…. 그것이 인사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인사라면 무슨 약속을 세워 놓고 눈이라도 마주보고 해야 할 텐데, 이건 눈도 코도 없구만. (웃음)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삼팔선을 넘고, 그런 경계선을 넘어 가지고 떡 여기에 와 앉아 있는데, 여기에 왜 왔어요? 하나님의 뜻이 필요해서, 무기와 탄알을 보급받는 자리가 이 자리이기 때문에, 눈을 총알같이 도사리고 앉아 `하나라도 놓칠소냐' 하며 앉아 있는 것입니다. 와서는 절대 손해보고 가지 말라는 거예요. `왔더니, 오지 않은 것보다 못하구만. 괜히 왔어. 어제는 지갑에 천 원이 있었는데 오늘은 오백 원밖에 없게 됐어. 문선생이라는 사람을 보러 왔다가 오백 원만 손해났구만' 이래 가지고 이이이…. 이러면 내가 기분 나쁘다구요. 내가 오백 원짜리 이상 된다구요.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경계선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성경이 풀립니다. 그래 가지고 성경을 보라는 것입니다. 전부 다 맞아요. 그러니 죽으면, 희생하면 하늘이 손해 안 나요. 하늘 앞에 손해예요, 이익이예요?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세상에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 앞에 모순된 조건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제시 조건을 갖고 나오지 않고는 인간이 살 수 있는 인연을 맺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의 가르침은 경계선을 앞에 둔, 생사의 기로에 선 인간 앞에는 그야말로 진리입니다, 진리. 이것을 알았지요?
본을 세워야 할 지상시대! 오늘날 인간세상에 있어서 인간으로서 영원히 남을 수 있고 역사시대에 빛을 발할 수 있는 무엇을 남기는 데에 본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살고자 하는 자리에서 세운 본은 다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리에서 세운 것만이 본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알아봅시다. 효자 중에 일등 효자가 되지 않고는 효자의 본으로 남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효자의 본은 어디에서 설정되느냐? 보다 비참한 자리에서…. 보다 비참한 자리라는 것은 죽는 자리입니다. 죽는 자리에서도 제일 비참하게 죽는 자리에서 본이 설정되는 것입니다. 맞아요, 틀려요?
자, 효자가 있다고 합시다. 효자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시대시대마다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일등 효자를 뽑는다면 어떤 사람을 일등 효자, 효자의 표본으로 뽑을 것이냐? 늙어서 효자 노릇을 하다 죽는 것보다도 젊어서 늙은 사람 이상의 효자 노릇을 했다면 더 귀한 것입니다. 효자도 천태만상입니다.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 막일하는 사람, 빌어먹는 사람, 별의별 계급이 있지만 효자는 다 있어요.
참된 효자가 되려거든…. 살아 있는 사람은 참된 효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아직까지 남기고 있는 사람은 효자 축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효도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죽지 않은 사람이 효자 표창을 받았다가는 효도하기 위해서 죽은 사람들한테 참소받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참된 효자는 죽은 후에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맞소, 안 맞소?
죽은 사람 가운데에서도 효도하기 위해 길을 가다 죽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병이 났기 때문에 약을 구하러 가다가 죽은 효자도 있을 것입니다. 약을 구하러 가는 데는 자기 돈을 가지고 구하러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빚을 얻어 가지고 구하러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가치가 커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자기 돈을 가지고 약을 구하러 가다가 죽은 사람과 돈을 빌리기 위해 석달 열흘을 수고해서 돈을 빌려 가지고 약을 구하러 가다가 죽은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 효자의 본이 되는 자리에 올라가겠어요?「후자입니다」후자지요. 그것은 다 아누만. 그것을 다 알기 때문에 복귀가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 내용이 복잡하고 어렵고 비참할수록, 지독할수록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으로 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약을 구하러 가다가 죽은 것하고 약을 구해다가 달여 드리고 죽은 것하고 어떤 게 나아요? 약을 달여 바치다가 죽은 것이 못해요, 나아요? 낫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어려운 내용을 갖추면 갖출수록 효자 반열에 있어서 그 등급이 높아지는 것은 말할 나위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의 없지요?
효도하다가 죽은 사람 가운데 있어서도 말이예요. 총알을 맞아 뒤통수에 구멍이 뻥 뚫린 채로 죽은 사람하고, 폭탄을 맞아 가지고 옥살박살이나서 뼈다귀 하나 가죽 한 짜박지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다 날아가 버린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다시 말해서 무덤을 남기지 못한 사람과 무덤을 남긴 사람이 같은 자리, 같은 입장에서 죽었다면 누가 효자의 본이 되겠어요? 여러분은 누구를 본으로 삼겠어요? 무덤을 남긴 사람이예요? 남긴 사람이 같은 자리, 같은 입장에서 죽었다면 누가 효자의 본이 되겠어요? 여러분은 누구를 본으로 삼겠어요? 무덤을 남긴 사람이예요? 남긴 사람이요, 안 남긴 사람이요?「못 남긴 사람입니다」못 남기기는 뭘 못 남겨요? 안 남겼지. 안 남긴 사람이예요. 그것은 물어 볼 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데서만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지독한 가난뱅이로 태어나서 일생 동안 지지리…. 옷 한 벌도 제대로 입어 보지 못하고 춘하추동 팬츠만 입고 살던 효자가 있다고 합시다. 그가 그 나라에서 자기 어미 아비에게 효도 못 하였다고 반대받아 찢겨져 죽었다고 하게 될 때, 그것이 지독히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그가 일등 효자로 정해지는 거예요, 정해지지 않는 거예요? 정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충신도 죽기 전에는 충신이 못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그러면, 한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 그 나라의 전통은 무엇이 되느냐? 보통 사람이 행할 수 있는 자리,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산 사람의 공적을 전통으로 남기고자 하지 않는 것입니다. 죽음의 자리, 전쟁이라도 치열한 전쟁터에서 죽되, 일대일로 싸우다 죽으면 가치가 없는 거예요. 수천 명의 원수를 상대해서 싸우다가, 나라가 알고 국민들이 동해서 원조하는 가운데 끝까지 싸우다가 적에게 포위되어 한 번에 수천 발의 총탄을 맞아 벌집처럼 구멍이 나 가지고 쓰러져 죽었다 하게 될 때,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본 되는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지요? 이것은 틀림없지요? 틀림이 있어요, 없어요?「틀림없습니다」틀림없지요?「예」
그럼 여러분은 틀림없는 그 자리에 한번 가 보고 싶어요?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야 다 하겠지요. 어디 가 보고 싶은 사람은 손 한번 들어 보세요. 아이구, 훌륭하신 분들이구만. (웃음) 자, 가 보고는 싶은데 가는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되겠어요? 한 사람 있을 것 같아요, 없을 것 같아요? 여러분, `통일교회 패 중에 한 사람이 없다니, 선생님, 아침부터 기분 나빠요' 하는 생각을 해요, `글쎄 두고 봐야 알지요' 하는 생각을 해요? 자, 한 사람 있을 것 같아요? 만약에 그곳에 간다면 한 사람이라도 남을 것 같아요, 안 남을 것 같아요? 왜 대답을 못 해요? 남겠어요, 안 남겠어요?「남겠습니다」정말 남겠어요?「예」몇 번씩 얘기해야 `예' 하고….
예수님이 베드로한테 물을 때, 인자하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물었을 것 같아요? 아니면 `썩은 사내 같은 이놈의 자식아, 나를 세 번씩이나 배반한 이놈' 하는 그런 표정을 하고, 인상을 쓰고 물었겠어요? 세계에 없는 인상을 쓰고 세 번이나 물은 거예요. 거 베드로가 한 번에 대답할 자신이 있었겠어요? 여러분은 이런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어떻게 물었을 것이냐? 그런 내용을 전부 다 아는 나 같으면 한방에 입을 못 벌리게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자하신 분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갔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인자한 사람이라기보다는 무자비하고 예리한 사람이라구요. 내가 물었다면 뼛골이 으스러져 무너지고 기력이 빠져 나갈 정도로 된통 물었을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하고 말이예요. 예수님이 기분이 좋아서 물었겠어요, 기분이 나빠서 물었겠어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겠어요? 예수님은 죽어라 하고 혼자서 3년 동안 맹세하고 뭐 어떻고 하다가 죽었는데, 그 베드로는 배반자입니까, 배반자가 아닙니까? 배반자지요? 배반한 장본인이 앞에 나타났을 때, `하나님이 사랑하라고 하였으니 이렇게 한다'고 하겠어요? 먼저 생각이야 `이놈' 하고 싶지만,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어서 그랬다는 거예요. 할수없이 그런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기성교회 목사들 가운데 원수들이 많이 있어요. 그들을 용서하는 것은 내가 본질적으로 선한 사람이어서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하고 싶어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할 수 없어서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았다가는 큰일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용서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왼뺨을 치거든 오른 뺨을 대라고 했는데 그것이 좋아서 그랬겠어요? 누가 뭐…. 하나님도 그렇지요. `하나님' 하고 부르면 `왜 그래'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이요?' `그럼 그렇고 말고' 할 때, `이놈의 하나님아'라고 하면서 들이 갈겨 보세요. 그래 하나님이 웃으면서 `더 때려라' 그러겠어요? 세상이 그렇게 안 되어 있다구요. 덮어놓고 믿는 게 아닙니다. 다 가려 놓고 믿어야 돼요. 왜 그래야 되느냐 이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뺨 맞는 것보다 더 큰 손해를 보겠기 때문입니다. 더 큰 손해가 날 때에는 누구나 하라고 해도 안 한다구요. 그렇지요? 무턱대고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내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한테 속아 왔습니다. 그렇지만 하늘같이 믿어 주려고 했습니다. 어떤 남자들은 `이 진리는 어떻고 어떠하기 때문에 나는 이미 죽을 것을 각오하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죽을 자리가 아니면 나를 보내지 마시오'라고 맹세하고 들어와서는 `너 이런 일이 있는데 네가 나가서 책임지고 싸워야 할 텐데…' 하면 `하하하 그렇습니까?'라고 하지 못하고 `예?' 하는 거라구요. 거 좋다는 말이예요, 나쁘다는 말이예요? 대번에 `예?' 그런다구요. 얼굴을 드는 것이 아니라 숙이면서 `예?' 하고 반문합니다. 그 다음에는 `바랐던 그날이 왔습니다. 가구 말구요' 하지 않고,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 하면 `나 외에도 갈 사람이 있을 텐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마련이라구요. 그게 인간이예요. 그럴 수 있지요?
또, 어떤 여자들은 선생님한테 하는 말이 내가 믿기지 않지만 `백두산 천지 가운데 바위를 갈아 감자를 심어서 일생 동안 선생님을 봉양하는 일이 있더라도 저는 요녀가 되지 않겠습니다' 하는 거예요. 거 근사한 말이라구요. 그런 여자들은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기에 남아 있는 사람중에 그 이상 결심한 사람이 있어요? 백두산 천지 가운데 바위를 갈아 감자 농사를 지어서 선생님을 봉양하더라도 나는 선생님을 배반하는 추악한 여자가 되지 않겠다고 하는 그 이상의 마음을 가진 여자들이 있어요? 손들어 봐요. 있어요?
여자들은 오형제(五兄弟)바람으로 그저 후려갈겨 대면, 30분 이내에 `아구 아구 아구 아이쿠, 나 모르겠소' 해 가지고 대번에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난시에는 여자들에게 비밀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거라구요. 그런 게 여자들인 줄 알아요? 기분 나쁘지만 그렇게 돼 있다구요. 여자분들, 그런 게 여자인 줄 알아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요? 처음 온 양반들은 기분 나쁘더라도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남편은 그런 얘기 못 할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님이니까 공석에서 그런 얘기를 하지요.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괜찮기 때문에…. 뭐 이제는 그 이상 욕을 먹을 수 없어요. 먹을 만큼 다 얻어 먹었다구요. 이젠 무서운 게 없어요. 눈치 보아 가지고 얘기를 못 해요? 그런 게 사람이라구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겠느냐 할 때 힘들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을 세워야 할 지상시대…. 본은 어디에서 세우느냐?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면 그 본을 영계에 가서 세우라고 하지, 왜 지상에서 세우라고 하느냐 이겁니다. 영계의 영인이야 때려죽이려고 해도 죽지 않을 텐데 죽지 않는 몸을 만들어 가지고 그런 놀음을 하면 될 것인데, 한 번 때리면 대번에 쓰러지는 이런 자리에 두어 가지고 하라고 했느냐는 거예요. 그거 이상하지 않아요? 그것은 영계에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에 잘 태어나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 세상을 보게 될 때에, 제일 낮은 곳에는 무엇이 고여요? 물이 고이지요? 그러면 높은 곳에는 뭐가 있어요? 바위가 있는 것입니다. 바위 위에는 뭐가 있어요? 하늘이 있지요. 사람도 높이 올라가고 싶어하지요. 그렇지요? 생기길 그렇게 생겨서 그런 것입니다.
사람은 맨 처음 태어날 때 제일 깊은 물속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복중 시대는 물속 시대예요. 여러분들 그거 알아요? 그렇지요? 아기가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는 물 가운데 둥둥 떠 있지요? 그것 생각하면 `아이구, 숨이 막혀서 어떻게 살아' 할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물 속에 살기 때문에, 물을 들이마시고 내보내는 놀음을 해야 되겠기 때문에 아기는 호스를 배에다가 연결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은 안다구요. 또, 아기가 영양분을 어디로 해서 공급받아요? 배꼽으로. 그렇지요? 배꼽이 배 안의 무엇이예요? 입이라구요, 입. 그러니 그걸 천대하지 말라구요. `배꼽아, 너 옛날 수고했다' 하며 두드려 주라는 거라구요. (웃음) 배꼽을 많이 두드려 주면 건강하게 되는 거예요. 웃지 말라구요. 그렇게 운동하라는 거예요. 배꼽 운동을 많이 하면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추운 방에서 자더라도 배꼽만 잘 감싸고 자면 뱃증(설사)이 나지 않아요. 알겠어요?
여기가 땅입니다. 알겠어요? 바람이 이리 들어간다구요. (행동으로 표현하심) 그렇기 때문에 옛날 공을 잊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니 사랑하고 두드려 주라는 거라구요. (웃으심) `옛날 여러분의 입이 어디냐?' 할 때`이 어리석은 사람아, 옛날 입이 어디 있어' 할지 모르지만, 옛날 입은 배꼽입니다. 이 숨쉬는 기관이 올라가는 거예요. 배꼽을 딛고 올라가는 거예요. 그 다음의 입은 뭐예요? 이 입입니다. 자꾸 올라간다구요. 통일교회식으로 말하면 이것이 소생, 이것이 장성, 그 다음 완성은 여기입니다. (행동으로 표현하심)
영계는 어떤 곳이냐? 영계의 모든 것은 숨구멍으로 숨을 쉰다고 하면 틀림없습니다. 이것을 숨구멍이라고 하지요? 여기로 숨을 쉬어요. 숨구멍이라는 말은 있는데 여기로 숨을 쉬어 봤어요? 여기를 숨구멍이라고 하지요? 어린애들은 여기가 할딱할딱하는데 이것을 뭐라고 그래요? 그게 왜 숨구멍이예요? 그것 다 계시적이라는 것입니다. 난 한국말이 그래서 참 좋다는 거예요. 영계에 가면 꼭대기로 숨쉰다 하면 틀림없어요. 그럼 꼭대기 위에 누가 있어요? 하나님이 있으니, 하나님을 보고 사바사바하자니, 맞지요, 뭐. (웃음) 그렇잖아요? (웃으심)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 가게 되면 꼭대기로 숨을 쉰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물 안의 시대가 있고, 그 다음에는 육지의 시대가 있지요. 그렇지요? 그 다음에는 무엇이예요? 날아가야지요. 날아가는 시대가 있으면 좋겠어요, 없으면 좋겠어요? 오늘날 인간이 날아가는 것을 얼마나 기다렸습니까? 날아간다 하면 세계의 제일 주목거리가 되었고, 세계가 날아가는 데에서 비로소 통일되어 봤어요. 아폴로 11호를 중심삼고…. 그렇지요? 날아가는 데에 있어서 통일되어 봤다는 거예요. 그 외에는 통일되어 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텔레비전을 통하여 아폴로 우주 비행사들이 달나라에 첫발을 내디디려 하는 것을 볼 때 어땠어요? 아이고 좋다면 춤을 추었어요? 아슬아슬해 했어요? 저거 어떻게 될까 해 가지고…. 그때 그 순간을 알지요, 설명하지 않더라도? 다 느껴 봤지요? 느낀 것을 말로는 설명 못하는 거라구요. 그 순간에 그야말로 세계 만민이 통일되었습니다.
공산당도, 소련의 브레즈네프나 코시킨 같은 사람도 비행사들이 달나라에 첫발을 내디디려 할 때, 자기 주의와 사상을 중심삼고 `이놈 그저 꽝하고 나가자빠지면 좋겠다'고 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하―' 이렇게 후원한다는 거예요. 그거, 아슬아슬할 때는 망하기를 바라겠어요, 좋게 되기를 바라겠어요? 만일 그런 자리에서 망하기를 바라면 그는 죽는 것입니다. 그런 놈은 죽일 놈이라구요.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악한 자리에서도 결국은 후원해 주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강도가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데, 선한 사람하고 악한 사람, 강도하고 결투하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야, 내가 강도니까 악한 강도 이겨라' 그래요? (웃음) 그런 사람 있어요? `야, 이놈아, 저놈 때려라. 때려라'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강도가 맞으면 `아, 아이구 잘했다' 하는 거라구요. 그 다음에야 `잘하기는 뭘 잘해'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거 알겠어요? 마찬가지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세계 만민이 한번 통일되어 본 것은 날아가는 물건을 놓고 통일되어 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사람은 올라가고 싶어하지요? 그렇지요? 아이들도 자꾸 올라가려고 해요, 내려가려고 해요? 우리 애기를 보게 되면, 한 살밖에 안 된 녀석이 자꾸 올라가려고 하는 거예요. 내려가려고는 안하는 거라구요. 어디까지 올라가려고 하느냐? 아마, 공중에 가서 떨어져 죽더라도 올라가려고 할 것입니다. 죽을 것은 생각지도 않고 올라가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자, 사람은 물 세계에서 한번 살아 봤고, 땅 세계에서 한번 살아 봤지요? 그러면 공중 세계에서 한번 살아 보고 싶겠어요, 안 살아 보고 싶겠어요? 여러분이 복중에서 태어날 때 `난 육지 세상에 나가 입으로 꿀도 먹고 떡도 먹고 밥도 먹고 쇠고기도 먹고 다 먹는다'고 생각해 봤어요? 그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아이구 여기를 벗어나면 죽는다면서 배꼽으로 숨쉬며 살고 있는 거라구요. 그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답답해요? 지금 그걸 생각하면 질식할 정도이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도 그 뱃속에서 밖으로 나갈까 봐 `아이고, 안 나가면 좋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나가면 좋겠다고 했겠어요, 안 나가면 좋겠다고 했겠어요? `아이고, 나가면 좋겠다'고 했겠어요? `아이구 안 나가야 된다'고 하지요. 그러나 안 나가야 되겠다고 하겠지만 때가 되면 다 터져 나가는 것입니다. 물이 흘러 나가면, 물이 확 터져 나오는 그것을 따라 밖으로 나오면 순산이 되는 것입니다. 잘 태어나는 거라구요.
아기를 낳을 때, 어머니들이 아기를 낳는 것을 보면 참 불쌍합니다. 힘을 줘요, 안 줘요? 아기를 낳아 본 어머니들은 다 알지요. 그 맛이 어떻다는 것을…. 힘을 줄 때는 얼굴이 아무리 미인이라 하더라도 그저, 상을 찌푸리고…. 늙은 할머니 얼굴은 거기에 비하면 미인이라구요. (웃음) 그 얼굴을 남편이 못 본다구요. 그 얼굴을 보게 되면 요지경판이 벌어지거든요. 근사한 만물상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아' 하고 소리치면서…. 그러고 나면 거기에 있던 사람은 다 죽어나는 거라구요.
병원에서는 습관적으로 아기를 낳을 때면 저러는 것이다 하고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보고 있지, 만일 처음 당하는 일이라면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고 다 도망간다는 거예요. 아, 그 소리칠 때는 말이예요. 그것을 다 알고 있으니까 그렇지.
그러면 어머니가 힘들면 아기는 어떻겠어요? 힘들겠어요, 안 들겠어요? 아기의 머리가, 굳은 머리가 나팔처럼 떡 이렇게 되잖아요? 그러니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여러분이 아기를 낳은 뒤에 아기에게 `야, 너 수고했다' 하면서 아기를 두드려 줘야 돼요. 거 얼마나 힘들겠어요? 어머니도 힘들고 아버지도…. 아버지야 뭐 (웃음) 어머니만 말하고 아버지를 빼놓으면 섭섭하니까 한번 그래 봤어요. (웃음) 아버지도 그 곁에 있으면 더 힘들지요? 거 재미있는 거예요.
고약한 여자들은 말이예요. 아기를 낳는 부인의 방에는 남편이 못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고약한 여자들은 그저 뜯는다는 거예요. 남편에게 `왜 그랬어, 왜 그랬어' 하고 항의를 하고, 별의별 요지경판이 다 벌어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남편들은 본래 아기를 낳는 방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안전상 필요하다는 거라구요. (웃음) 만약 그때는 부인이 들이치게 되면 뭐 어떻게 해요. 머리라도 맞으면 병신되지 별수 있어요. (웃음) 그래서 한국법에는 부인이 아기를 낳는 방에는 남편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규례로 되어 있습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이름난 가문이더라도 남편이 들어가게 되면, 그때는 남편이고 무엇이고 모르거든요. 만약 조금이라도 불만스러운 마음이 있으면 전부 다 복수하고 싶어하는 거라구요.
자, 아기가 태어난 다음에는 어때요? 먹는 입이 달라지지요? 달라지는 거예요. 뱃속에 있을 때는 탯줄로 영양 공급을 받고 탯줄로 숨을 쉬던 아기가 이제는 코로 숨을 쉬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리고 입으로 먹는 것입니다. 달라진다구요. 그렇지요? 그렇게 지상에서 7,80년을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죽는 것은 무엇이냐? 지상 생활은 공기 중에서 태안에서처럼 헤엄치고 다니며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어요? 공기 보자기 안에서 살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죽는 것은 무엇이냐? 죽는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라, 제3의 인생으로 출생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이 죽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 좋지요?
잠자리도 말이예요. 처음에는 유충이 되어 가지고 물속에서 헤엄치고 다니다가 땅 위에 올라와 가지고 한동안 기어 다닙니다. 그 다음에는 훌훌 날아다니며 육지에서는 먹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하던 벌레를 잡아먹습니다. 천하를 자기 무대로 삼고 날아다니는 거예요. 그렇지요? 곤충류 가운데는 3단계 세계를 거치는 것이 많아요. 곤충 하게 되면 날개 없는 곤충이 없다구요. 그렇지요? 대개 날개가 있지요? 곤충도 이와 같이 물에서, 육지에서, 공중에서 사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이 날개가 있어요? 지상에서만 살면 되겠어요? 차원이 높은 날개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생님이 앞에서 얘기할 때 사람의 욕망의 대상이 무엇이라고 했어요? 물질이라고 했지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1965년 이전까지는 절대 돈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라고 했지만, 1966년도부터는 돈을 벌자 해 가지고 지금까지 벌어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가 앞으로 한국에 있어 일등 부자가 되면 좋겠어요, 이등 부자가 되면 좋겠어요?「일등 부자입니다」일등 부자이지요. 일등 부자가 되려면 돈 버는 데 있어서 정성을 들여도 일등으로 들여야 되겠어요, 안 들여야 되겠어요?「일등으로 정성들여야 됩니다」
선생님이 그 철학을 아는 거예요. 그래서 밤이나 낮이나 일등으로 정성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마 대한민국에 있어서 나만큼 정성들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어느 회사 사장도 걸핏하면 새벽 네 시고 세 시고 간에 회사에 출근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런 출근을 많이 하고 있어요. 한 번뿐만이 아니라, 하루에 세 번까지 출근했던 적이 있어요. 두 번은 뭐 보통이고….
정성을 들이는 데는 일등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일등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구요. 내가 일등 정성을 들였다고 하나님에게 공인받을 때까지 정성을 들여 놓고 나서는, 일등 부자가 되겠다고 해도 도둑놈이예요, 도둑놈이 아니예요? 정성도 들이지 않고 일등 부자 되겠다면 그놈이 도둑놈입니다. 정성을 들이고 난 후에는, 아무리 그것이 싫다고 하더라도 정성들인 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돈 버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정성을 많이 들였으면, 대한민국의 누구보다 세계의 누구보다도 일등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 어때요? 그러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좋겠습니다」좋겠지요? 또 그렇게 되어야 되겠어요, 안 되어야 되겠어요?「되어야 됩니다」안 되게 될 때는?「만들어야 됩니다」누가? 누가 만들어요? 여러분과 통일교회 문선생이 만들어야 돼요.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 좋다구요. 내가 함부로 먹고, 함부로 살더라도 하, 기분 좋아요.
자, 인간이 이 땅 위에서 물질적 대상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일 좋은 게 뭐예요? 다이아몬드지요? 금은 보석이지요? 우리 여자들, 금은 보석이 싫다고 하는 사람 있어요? 여자가 시집을 가게 된다면 말이예요. `시집' 하게 된다면 그 상대물로 연상하는 것이 무엇이예요? 다이아 반지, 그 다음엔 귀걸이, 그 다음에는 뭐예요?「목걸이」목걸이. 이것이 여자들의 욕망의 바탕입니다. 여자에게 제일 좋은 것이라 해봐야 그것밖에 없어요.
우리 애기를 보더라도, 국진이 애기를 보더라도, 어제 이 녀석하고 청평에 갔었는데, 그 모터보트 운전대를 발로 들이 차는 거예요. 한 번 두 번 했으면 그만인데도 불구하고 한 시간쯤 앉아 가지고 그러는 거예요. 그렇다고 무엇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닌데, 혼자 그러는 거예요. `얘야 그만둬라' 하니까 펄쩍 뛰면서 계속 그렇게 하겠다는 거예요. 그것을 보면 여자들하고는 질이 달라요. 질이 다르다고요.
여자는 눈만 깜박깜박해 가지고 하는 것을 보면, 어머니의 빗이나 석경이나 구루무 통 같은 것을 만져요. (웃음) 뭐, 남녀평등이라 하지만 할 수 없다구요. 이렇다구요. 그렇다고 섭섭해 하지 말라구요. 또, 남자들을 보면 남자들은…. 어머니하고 나하고도 그렇다구요. 어머니는 어디 구경을 가더라도 말이예요. 어디 앉아 가지고 살랑살랑살랑하고 달콤한 꿀 같은 것, 꿀도 파이프로 흘러내리게 해 가지고, 꿀물이 떨어지는 데는 주루룩 떨어지는 것보다 한 방울씩 똑똑똑 떨어지는 것을 좋아해요. 꿀물을 먹을 때에도 대롱으로 빨아먹는 거예요. 그게 여자라구요. 그런 것을 좋아한다구요. (웃음)
화장을 할 때에도 남자가 화장하는 것하고 여자가 화장하는 것을 보세요. 나도 구르무 발라요. 약간씩 바른다구요. 뭐, 구르무 바른다고 죄는 안되지만 말이예요. 바쁜 세상에 손이고 뭣이고 볼 것 없이 그냥 푹 바르면 그만이지. (웃음) 그것이 남자 화장법이예요. 그런데 여자들은 뭐 이렇게 하고 요렇게 하고 베니 바르고…. 밥을 먹다가 그것 보면 메스꺼울 때가 많아요. (웃음) 그러니까 남자들은 아예 보지 않는 게 낫다구요. 아예 보지 말라구요. 그럴 때는 어느 남자나 화가 나고 불이 나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은 남자는 남자 축에 못 들어간다구요. 어디, 그 모습을 보고 좋다고 앉아 기다려 보라구요. 그거, 남자가 할 짓이예요? (웃음)
남자는 화가 나면 멱살을 잡고 이마를 박고 하더라도 분노가 풀리질 않아요. 피가 줄줄 흘러야 좋다고 합니다. 들이치고 곤두박질을 쳐서 나가자빠져도 머리를 처박고 다리를 척 걸치는 거예요. (웃음) 이런 것을 좋아한다구요. 이것이 남자라구요, 남자. 그렇기 때문에 싸움은 남자들이 하게 되어 있어요. 구경은 여자가 하고. (웃음)
그러니 여자는 끼우는 거예요. 반지처럼 끼워 살고, 귀걸이처럼 걸려 살고, 목걸이처럼 달려 삽니다. 이게 여자예요. (웃음) 여자들, 그렇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것도 필요하니까 하나님이 지은 거예요. 그것도 없다면 재미도 없을 거예요. (웃음)
꽃이 좋은 것입니다. 꽃이 어디가 좋으냐? 늘어진 꽃잎이 좋으냐, 서있는 꽃잎이 좋으냐? 이 꽃봉오리에게 물어 보면 서 있는 꽃잎이 좋다고 하고, 저 꽃봉오리에게 물어 보면 늘어진 꽃이 좋다고 합니다. 왜냐? 그들은 아직 그렇게 되어 보지 못했다 이겁니다. 자기가 가야 할 길이니까 그것이 소망의 기준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들도 `아, 얼른 아저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 바라요, 안 바라요? 너무 바라기 때문에 20살까지는 길어요. 두고 봐요. 깁니다. 20살만 넘어서면 바라지 않기 때문에 빨라요. 그렇지요? 그렇다고요. 그래서 서로 입장이 다른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거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이제 우리가 어디로 가면 좋겠어요? 지상에서 살면 좋겠어요, 영계에 가면 좋겠어요? 지상에서 사는 게 좋아요, 영계에 가는 게 좋아요? 대답해 보세요. 그 말이 실감이 안 나면, 죽고 싶어요, 살고 싶어요? 대답해 봐요. 아 이렇게 참, 대답해 봐요. 죽고 싶어요, 살고 싶어요?「살고 싶습니다」살고 싶지요? 그 근사한 사내구만.
보라구요. 인간의 욕망이 무엇이냐? 여기에 보석이 있으면 마음이 갑니까, 안 갑니까? 마음이 가지요?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했으니…. 마음이 가지요?「예」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 남자들은 뭐 좋아할 게 없지요. 여자들이 좋아하는 게 뭐냐 하면 보석, 반지, 비취 뭐뭐 나도 잘 모르겠다구요. 이렇게 많다구요. (웃음) 여자들이 그런 것을 좋아하는데 얼마나 좋아하느냐? 남편보다 더 좋아해요? 남편이더 좋지요. 그렇죠? 그러니까 남편이 보물보다 못하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보물보다 낫다는 거예요. 그건 자연히 인정되는 거지요.
사람보다도 하나님이 못합니까? 하나님이라는 말 자체가 하나밖에 없는 분이라는 뜻이니까 사람보다도 하나님이 낫다는 거예요. 종교인들을 보게 되면 사람을 무시하고 물질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좋아하는데 이게 됐어요, 안 됐어요? 됐습니다.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모가지를 내놓았다 하면…. 자,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 모가지를 내놓습니다. 내놓아요, 안 내놓아요?「내놓습니다」만일에 자기를 사랑하기 위해서 모가지를 내놓고 죽을 길을 거쳐 찾아온 사람이 있다면, 찾아온 그 사람도 고생했지만 그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며 기다리던 사람도 고생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 가지고 서로 만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하하' 하고 웃습니까? 와락 붙들고 어떻게 돼요? 엉엉엉 웁니다. 울 때는 흐린 날 그저 구름 사이로 햇빛이 나오듯 반짝 울고 말아요? `줄―줄―' 우는 것입니다. 콧물이 나오고, 눈물이 나오고, 침물이 나오는 거예요. 세 물이 합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눈물, 콧물, 침물, 울다 보면 입에서 침이…. 울다 보면 여기서 진이 나옵니다. 울어 봐요. 엉엉 울게 되면 콧물이 나와요, 안 나와요? 콧물이 나오지요? 울어 봤어요, 안 울어 봤어요? 울어 보지 못했으면 통일교인으로서 불합격자예요. 콧물이 나오고, 침물이 나오고, 눈물이 나오고, 3수가 통일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웃음) 그렇다구요.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닭똥 같은 눈물을 서너 방울 똑똑 흘리며 `아이고 당신을 사랑해요' 하면 좋겠어요, 사랑한다는 말보다도 엉엉 울며 눈물 콧물 침물이 국수발 늘어지듯 축 늘어질 때까지 우는 것 하고, 그저 반짝 울고 `아이쿠 당신이 좋아요' 하는 것이 좋겠어요? 여기 여러분들은 어떤 것을 원해요? 우리 남자들, 남자들은 우는 것 싫어하는데 어떤 것을 원해요? 눈물이 이렇게 국수발같이 줄줄 흐르는 것을 원해요, 반짝 울고 마는 것을 원해요? 눈물이 그치지 않는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죽을 고빗길을 가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웃어야 되겠어요, 울어야 되겠어요? 하나님을 그렇게 그리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웃음이 나오겠어요? 어떨 것 같아요? `하나님 앞에서 울면 아 돼. 울면 안 된다구. 울면 안 돼. (웃음) 울면 안 되는 것이 천법이라고. 울어서는 안 돼. 죽어도 울어서는 안 되지만 못견디겠어'하면서 앙앙 울었다고 하게 되면, 하나님이 보고 가라사대 `너는 천법이 울지 말라는 기준에서 울었기 때문에 형장에 출동명령이다' 그러겠어요, 그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이 좋아서 들여다보겠어요? `저게 왜 그래, 저게 왜 그래' 그러겠어요, 하나님도 따라서 울겠어요? 어떨 것 같아요?
하나님에게 눈이 있고 코가 있고 입이 있다면, 그 하나님은 엉엉 울게 하는 사람이 불효자예요, 효자예요? 하나님을 울게 하는 것은 두 종류가 있어요. 이렇게 만나 가지고 하나님을 엉엉 울게 한 사람은 효자예요, 불효자예요?「효자입니다」효자지요. 자, 하나님을 웃으면서 만날래요, 엉엉 울면서 만날래요? 어떤 걸 원하오? 물어 보면 대답하라구요. 어떻게 만나겠어요? 웃으면서 `아이고 내가 지금 하나님 만났다'고 하면서 그렇게 만날래요, 엉엉 울면서 만날래요? 「울면서 만나겠습니다」 울면서 만나고싶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살 길보다도 죽음의 고빗길을 많이 겪어야 됩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폭발될 수 있는 심정에 사무쳐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오늘에야 만나게 되었다고 할 때, 천년의 서러움을 끊을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와 아들딸이 만나게 될 때에, 그 아버지는 불행해요, 행복해요?「행복합니다」행복이지요? 그 아들은 불행해요, 행복해요?「행복합니다」그러면 우는 연습을 조금 하는 게 낫겠어요, 안하는 게 낫겠어요?「해야 됩니다」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만나려면 그때에만 그럴 수 있어요? 그러니까, 교회에 와 가지고 하나님이 보고 싶어서 엉-엉 울어 봐야 되겠어요, 안 울어 봐야 되겠어요? 울어 봐야 되겠어요, 안 울어 봐야 되겠어요?「울어 봐야 됩니다」눈물 콧물 침을 흘리면서, 생각만 해도 목이 메이고…. 그렇잖아요? 독자를 잃은 어머니처럼 그저 아들 친구만 와도 눈물이 주주룩…. 시골 아주머니 가운데는 이런 사람이 있지요? 손수건도 없으니까 치마에 코를 풀면서, `너를 보니까 콧물부터 나오누만' 하면서….
그런 부모를 가진 아들은 죽긴 죽었지만 행복해요, 불행해요? 그렇게 가슴 아파하는 부모가 있는 것을 볼 때, 죽긴 죽었지만 행복한 자리에서 죽었어요, 불행한 자리에서 죽었어요?「행복한 자리에서요」행복한 자리에서 죽은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할 때는 불행한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인은 그걸 연습해야 됩니다. 울어 봐야 돼요. 여러분, 울어 봤어요? 하나님이 보고 싶어서 울어 봤어요? 눈물, 콧물을 흘리며 그저 목젖이 처지도록 울어 봤어요? 울어 봤어요, 안 울어 봤어요? 그렇게 눈물 나오는, 억울하고 비통한 자리에 들어가 봤어요? 이게 다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갔는데 뭐 이렇게 얘기하다가는…. 내가 30분 이내로 끝마치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또 통일교회 재미가 없어요. 한 시간 반쯤 됐어요? 한 시간 반 됐구만.
보라구요. 세상을 보면, 물질을 찾기 위해서도 모가지를 걸어 놓고 전쟁이 벌어졌지요? 그렇지요? 물질을 찾기 위해서도 전쟁이 벌어져 가지고 사람이 죽고 살고 나라가 망하는 일이 벌어졌지요? 그렇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도 그런 일이 벌어져야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하는 전쟁도 많은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죽고 망하는 놀음이 벌어져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벌어지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기독교를 중심삼고 죽고 사는 놀음이 엇갈려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기독교가 전부 하나되어 가지고 목숨을 걸고 대들어야 합니다.
이제 끝날엔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을 찾은 후에는 사람을 찾아야 됩니다. 그렇지요? 하나님하고 나하고 합동으로 사람을 찾아야 돼요. 지금까지 하나님이 사람을 못 찾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남자를 찾은 후에는 하나님과 합동 공작을 해 가지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여자를 찾아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좋아하는 여자가 하나님과 합동해 가지고 누구를 찾아야 되느냐? 사람을 찾으려면 여자를 찾아야지? 그래요? 여자가 여자를 찾아요? 남자를 찾아야 돼요. 그렇다는 거예요. 그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남자와 여자를 찾은 뒤에는 무엇을 찾아야 되느냐? 귀한 것부터 찾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물질을 찾아야 돼요. 그것이 인간의 욕망의 대상이기 때문에. 이걸 보면 전부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찾고 난 후에는 하나님이 좋아하는 가정을 찾고, 그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만물을 찾아서 살림살이를 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원해요, 원하지 않아요? 이게 하나님의 이상입니다.
살림살이를 하는 데도 그냥 둘이 비둘기처럼 살다가 죽는 것을 원치 않는다구요. 아들딸 낳고 살자는 것입니다. 그 산다는 판국이 사탄이 와서 얼러대는 것이 아니라구요. 이 사탄이 와서 총을 들이대는 것이 아니예요.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환영입니다.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이 환영하고, 하나님도 환영하고, 만물도 환영합니다. 그러한 세계에서 살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상천국권입니다. 알겠어요? 그게 지상천국권이라구요.
여러분은 지상천국에서 살고 있지 못하지요? 살고 있어요, 못 살고 있어요? 못 살고 있으니까 우리 통일교회가 그런 천국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만든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천상천국으로 들어가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다이아몬드가 싫은 사람은 손들어 봐요? 다 좋지요. 금은 보석이 싫은 사람 손들어 봐요? 다 좋지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애인이 싫은 사람 손들어 봐요? 다 좋다는 거예요. 그러면 애인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입니다. 이 중에 하나라도 떼어 놓고 싶은 사람 있어요? 다 갖고 싶지요? 부자 되고 싶지요? 부자 되면 뭘 해요? 혼자 살래요? 자기 이상상대를 중심삼고 멋진 신랑 각시로서 이 세상이 우러러보고 천지가 화동할 수 있는 가정을 이루어 살아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가 태어난 것이요, 남자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 이외는 없어요. 권력이라는 것은 그걸 해 놓고 나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두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자 보라구요. 여러분이 죽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라고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죽는 것이 좋으냐 나쁘냐를 얘기했지요? 죽자는 거예요. 알겠어요? 선을 위해서 죽자하는 패당을 만들기 위해서 이런 얘기를 하니까 기분 나쁘지만 들어 보라구요. 죽기는 다 싫어하지요? 싫어하지만 보라구요.
자, 여기에 다이아몬드가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좋지요? 요만한 게 뭐1캐럿 되나요? 여자들, 그거 하나 박은 반지를 손에 끼게 되면, 손을 쥐더라도 그것을 내놓고 싶지요? 내가 여자의 마음을 잘 모르지만 그럴 것 같아요. `싹' 해 가지고 보아주면 좋아하고, 안 보아주면 어떻게든 보이려고 요렇게 하고 있다구요. 그런 마음이 있어요. 그게 나쁜 게 아니라구요. 좋은 것이 있으면 자랑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성이예요.
영국 여왕의 왕관에 장식한 다이아몬드는 517캐럿이나 되는 것으로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다이아몬드입니다. 계란만하다구요. 아이구 저거 몇 푼…. 인간들이 전부 다 여기에 목을 거니까, 제일 크다는 그 다이아몬드는…. 그 다이아몬드가 인류역사과정을 통하여 모든 인간들이 바라던 소망의 기점이라니, 아이고 너무나 비참해요. 내가 보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구요. 그걸 소망으로 삼다니…. 쩨쩨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라구요. 여기 여자들은 다이아몬드가 없겠지만, 있더라도 남자 주먹보다 큰 것은 거추장스러우니까 편의상 작게 했다고 생각을 하면 괜찮다구요. 할 수 없어서 이거 했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비록 몇 푼짜리를 갖더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그러지 않으면 큰일난다구요. 왜 큰일이 나는가 두고 보세요.
자, 우리 저 우주를 한번 봅시다. 여러분이 밤에 자다 말고 쓱 밖으로 나가 밤 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라는 거예요. 바라보면 별들이 많아요, 적어요? 부지기수라구요. 수억 개의 별들이 가득 차 있어요. 천문학에서는 뭐냐 하면, 1초 동안에 30만 킬로미터, 그러니까 1초에 지구를 일곱바퀴 반이나 도는 빛…. 빛이 그렇게 빠르다구요. 그렇게 빠른 속도로 빛이 출발하여 1년 걸려 가는 거리를 1광년이라 해서, 이것을 하나의 단위로 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몇억 광년, 80억 광년 이상 되는 먼 데에 별이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1억 년도 아니라구요. 그 별에서 빛이 출발한 지가 7,80억 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지구에 도달하지 못한, 그런 먼 거리에 있는 별도 있다는 거예요. 만약 그 별이 보인다면 그게 커요, 작아요?「큽니다」그래, 왜 이렇게 만들어 놨어요? 뭐 하려고? 이게 무슨 장난이예요? 그거 생각해 봤어요? 별을 보고 `너 어째서 그렇게 있어?' 그래 봤어요? 그 별나라, 광대무변한 수억의 별들이 있어요. 이 지구 같은 것은 먼지에 불과해요. 그럴 거 아니겠어요? 먼지라면 그것은 너무나 큰 거라구요. 그런데 그 가운데 다이아몬드 몇 개. 이건 너무 쩨쩨하다는 거예요. 시시하고, 쩨쩨하고, 껄렁껄렁하고, 나쁜 말은 다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자, 저 별나라에는 어떠한 것이 있겠습니까? 다이아몬드 별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주를 지었다면 다이아몬드 별 하나만 만들어 놨겠어요? 있다고 생각해요? 아니, 있을 성싶어요, 있을 것 같아요? 뭐, 비슷한 말이지요? (웃음) 어때요? 있을 것 같지요.
하나님이 만약에 그런 모델 별 하나 만들어 놓지 않았다면, 창조를 잘못한 거라구요. 그 어떠한 곳에 다이아몬드의 표본이 되는 별이 하나 있을 것입니다. 순 다이아몬드 별. 그거 생각할 수 있는 문제라구요. 또한 순금의 별도 하나 있을 것이요, 비취 별도 하나 있을 것입니다. 보석이라는 이름을 띤 것은 다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아는 보석은 가치 없는 보석이지만, 하나님이 아는 보석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인간세상에서 보지 못한 보석 별이 수두룩하게 우주에 박혀 있을 것입니다. 거 생각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것을 내 것으로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자 그거 한번 갖고 싶어하겠어요, 안 갖고 싶어하겠어요? 안 갖고 싶어하겠어요? 안 갖고 싶어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 녀석들은 다 때려죽이라구요. 맞아 죽는 축에 들어가라면 서러워할 것이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그런 별이 있다는 거라구요.
자, 그것을 다 무엇하려고 그렇게 만들어 놨느냐 하면, 하나님을 위해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다. 만일에 사람을 위해 만들어 놓았다면, 야, 이거 참 사람 팔자 고치는 거예요. 팔자란 말은 너무 작으니까 억만자라고나 할지…. 그런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 세계를 아침 저녁으로 가고 싶을 때 가고, 오고 싶을 때 오고, 만지고 싶을 때 만지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자유 활동 무대로 하고, 그런 자연적인 모습으로 그것을 무대삼아 살 수 있는 내가 한번 돼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렇게 한번 돼 봤으면 좋겠다는 것을 사람이라면 생각하겠어요, 안 하겠어요?「생각하겠습니다」안 하겠다는 녀석은 죽으라구. 그렇게 천대해도 섭섭지 않을 겁니다.
자, 그렇다면, 이 고깃덩이 가지고 다닐 수 있어요? 이놈의 고깃덩이 가지고…. 이 고깃덩이 가지고 답답하니까 달구지를 만들고, 자전거를 만들고, 그 다음에 오토바이를 만들고, 택시를 만들고, 제트기를 만들고 뭐 야단하잖아요? 그래서 인공위성을 만들고 야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있어도 답답하다구요. 여러분, 달나라에 가는 데 며칠씩 걸리는 거 답답한 거라구요. 쑥 갔다가 쑥 오고 그럴 수 있는 뭘 만들 수 있으면 만들고 싶어요, 안 만들고 싶어요?「만들고 싶습니다」만들고 싶지요. 그걸 만들자 하고 그냥 있으면 좋겠어요, 그걸 내가 만들면 좋겠어요, 그냥 그렇게 돼있으면 좋겠어요, 만들어야 기분이 좋겠어요? 그냥 돼 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인간의 욕심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면 그런 것을 다 준비해 놔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자격이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라구요.
자, 그럼 그것이 가능한 때가 언제냐? 대한민국에 유전만 하나 있어도 야단났다고 하는데 말이예요. 다이아몬드 광맥 하나 찾았다면 민족이 춤추고 야단할 텐데…. 대한민국이 이것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대한민국 사람은 천년 만년 공중에 떠서 춤추겠어요, 안 추겠어요? 그럴 수 있는 무대가 우리 인간을 위해서 준비한 대우주라면 그거 한번 점령하고 싶지요? 그러고 싶을 거라구요. 이 지상에 다이아몬드가 있는 것은, 본궁 세계에 가서 박자를 맞추게 하려니 맛을 보이기 위해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이 있는 것이다 할 때 기분이 괜찮아요.
그러면 이것을 어느 때에 실천할 수 있느냐? 죽어야만 됩니다. 죽어야만 돼요. 이 고깃덩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한 세계를 벗고 나가는 날에는 이 우주의 동쪽 경계선에서 서쪽 경계선까지 순식간에 갈 수 있어요. `그 권내에 있는 금은 보석이 가득한 별이 내 것이다' 하며 통쾌하게 우주의 왕자의 자리에서 쓱 내려다볼 때 기분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좋겠습니까?
소리를 지른다면 생전에 질러 보지 못한 소리를 질러야 되겠어요, 안 질러야 되겠어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생전 지르지 못한 소리를 질러야 된다구요. 웃는다면 생전 웃지 못한 웃음을 웃어야 되는 거예요. 세포까지 다 웃음 보따리가 너덜너덜하는 거예요. 사지백체가 다 기쁨으로 꽉 차 가지고 화동할 거 아니냐 이겁니다. 그런 자리가 있다면 한번 가보고 싶어요, 안 가 보고 싶어요? 자, 가 보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안 가보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한 사람도 없구만….
그 곳은 살아서는 못 가는 곳입니다. 죽어야 가는 곳입니다. 그럼 죽고 싶어요, 안 죽고 싶어요? 죽어야만 그것을 볼 수 있고 차지할 수 있다면 죽고 싶어요, 살고 싶어요?「죽고 싶습니다」죽으라구! 기분 좋아요? 하나님은 그런 것을 준비해 두었기 때문에, 죽더라도 손해 안 날 울타리를 보장해 놓았기 때문에 죽으라는 거라구. 이놈의 자식아, 죽으라우! (웃음) 이렇게 알고 나면, 내가 그럴 수 있다면 때려죽여 주지 않는것이….
통일교회 문선생님도 그런 생각 했었습니다. `아, 저 별이 멋지겠구나!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전지전능하시니…' 만약 그러한 별들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가 바라던 다이아몬드 별이 왜 없습니까? 지으소' 하면 하나님도 별 수 없지요. 믿는 대로 된다고 했으니, 약속을 이행 안 하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내가 땡깡부릴 것입니다. (웃음) 이래 생각할 때 기분이 나쁘겠어요, 좋겠어요? 야, 이게 내가 하나님을 시켜서 창조하게 될 것이니 그러한 별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러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 미치광이 소리를 듣고, 뭐 별의별 말, 뭐 사교라는 말을 들어도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죽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닙니다. 알겠어요? 죽음길을 자초하여 나오다 보니, 지금 내가 아침밥도 안 먹고 여러분에게 이렇게 별스런 말을 하는 사나이가 되었습니다.
자, 죽고 싶어요? 한 고개만 넘는 날에는 이것을 내가 감정할 것입니다. 가고 싶은 곳은 순식간에 가는 거예요. 여러분, 나 영국 갔다 왔습니다. 봤어요? 미국 갔다 왔습니다. 봤어요? 벌써 미국 갔다 왔다구요. 독일 갔다 왔습니다. 태양 빛보다 더 빠른 것이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그렇지요? 마음은 하나님보다 더 큰 거예요. 그만한 배포와 터전이 우리 인간에게 있기 때문에, 요 척도를 지상에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요때를 위해서….
여러분, 한번 할 만해요, 안 해요? 자, 여기서 패스권을 누가 사인해 주느냐? `하나님, 내가 사인 안 해주면 나는 죽습니다' 하는 배포를 가진 사나이가 선생님인 것입니다. 사인해 주는 고수(高手)가 되면 어떻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통일하고 영계를 통일하자는 것입니다.
여기 통일교회에는 나오지 않지만, 불교 믿는 사람 가운데 통일교회 선생님의 제자들이 많다는 거예요. 유교를 믿는 사람 가운데도 선생님의 제자가 많다구요. 그것 멋지지요? 그만하기 때문에 욕을 먹더라도 그저 변소에 갔을 때 냄새 맡는 것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 그래 한번 죽고 싶지 않아요? 한번 실험할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를 귀하게 여기고, 금은보석을 귀하게 여기고, 다 귀하게 여기더라도 혼자 다니면 재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사람을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다이아몬드 이상. 그래야 하나님의 이상적인 호흡에 맞는 거예요. 어울린다구요.
그 세계에 한번 가 보고 싶어요? 아무리 이 대우주가 멀고 멀다 하더라도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순식간에 왕래할 수 있는 소성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만물지중(萬物之中)에 유인이 뭐인가요? 만물지중에?「유인이 최귀」유인이 최귀(唯人最貴)라고 했나요? 최천(最賤)이 아니고?「최귀입니다」최귀든가?「예」그렇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한 세계의 소유권과 활동무대의 권한과 특권의 기준을 어디에서 결정하느냐? 지상의 이 7,80년 생애에서 결정하는 거라구요. 이 땅 위에서 내가 고생하는 것, 먹고 싶은 것을 안 먹고 입고 싶은 것을 안 입고 하고 싶은 것을 안 하고 참는 것을 확대하여 그 몇백 배, 몇만 배, 몇억 천만 배 기쁠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입을 수 있고, 살 수 있는 무대가 일시에 전개되는 것입니다.
그런 본연의 세계에 실험의 책임자뿐만이 아니라 전체 관리의 책임자로 등장할 수 있는 기쁨의 한날이 우리 인생길의 끝날에 있을 것을 생각할 때에 죽음길이 슬프더냐 기쁘더냐 이거예요. 어때요? 이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한번 할 만하지요? 그 대신 준비 안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 바쁘다 이겁니다. 그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 요렇게 해야 되는 것이다, 요렇게 해야 되는 것이다 하는 그 방법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에 있어서 지금 이 시대에 그런 문제를 중심삼고 문제시하고 있는 사람은 통일교회 문선생 외에는 없습니다. 그건 장담하는 거라구요. 제아무리 잘난 학박사가 많다 하더도, 신학박사가 많다 하더라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통일교회 문선생한테 지도를 받아야 된다구요. 그건 결정적입니다. 절대적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걸 들으면 기분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기성교회 목사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까요, 좋을까요? 그러면 둘 중에 어떤 것이 옳아요? 기성교회 목사들이 나쁘다는 것이 그냥 그대로 옳으면 좋겠어요, 통일교회 패들이 좋다는 것이 그냥 그대로 옳으면 좋겠어요? 어떠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좋다고 하는 것이 그냥 그대로 옳으면 좋겠어요?「예」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선생님이 거짓말을 할지도 모른다구요. 사기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을 감정해 보아야 된다고요. 알겠어요? 선생님을 분석 감정해 봐라 이거예요.
선생님이 오십이 넘었는데, 여러분이 선생님을 분석 감정하려면 50년 걸려도 안 됩니다. 몇백 년 걸려도 못다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생각한 것과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전부 다 가려 가지고, 옳다 그르다는 판정을 하려면 이제부터 몇백 년 살아 남더라도 다 못 거쳐올 것입니다.
여러분이 몇백 년 한번 살아 볼래요? 못 사는 거라구요. 그르니까 덮어놓고 믿어야지요. 속아도 좋고 망해도 좋고…. 망하기를 바랬는데…. 그렇게 되면 더더욱 좋은 게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망하더라도 좋다고 믿고 가지 않고는 안심하고 가지 못할 길이 통일교회의 길입니다. 이거 말 잘했어요, 못 했어요? 다 말했다는 거예요. 그래도 좋걸랑 따라오라는 거예요. 그 대신 편안하지 않다 이거예요. 주교수 어때요? 그래도 따라갈 의향이 섰어요, 이제?「예」
지금 와 가지고 바쁘게 되었구만. 알게 되면 바쁘다는 거예요. 여러분 마음이 바쁘다구요. 어저께도 대학교 책임자들이 찾아와 `아이구, 옛날 60년대에는 선생님이 전부 다, 어른, 아이, 코흘리개, 울보, 뭐 뭐 할 것 없이 직접 지도해 주셨는데, 이젠 선생님이 대학생들을 본체 만체 하시니 안 되겠습니다. 한번 어떻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는데, 나도 그러고 싶지만 사무가 바쁘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보다 더 큰일이 있을 때는 그 치닥거리를 해주어야 되겠어요, 안 해주어야 되겠어요? 그것이 제일일 때는 그렇지만 그 이상의 일이 있을 때는 돌보지 않더라도 나는 걸리지 않습니다. 그 대신 세계에 공포해서 그런 사람들에게 `들어오라. 하나님의 사랑을 해주마. 너희들의 갈 길을 가려 주마'라고 선포한 때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내가 양심적으로 아무리 반성해 보아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지나왔으니 되돌아가서 그렇게 할 수 없다. 돌보지 않는다고 불평 마라' 하는 결론을 세우더라도 불평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때가 있다구요, 때가.
주교수 같은 사람은 선생님이 피난살이할 때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이마를 맞대고 얘기하고, 데리고 다니고 밥을 먹이고, 매일 산으로 바다로 데리고 다녔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런 때는 다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학교수라 하더라도, 대학교수를 대하는 것보다 더 바쁜 일이 있다구요. 나라와 세계가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생각 할 때에는 대학교수가 뭐 죽는다고 해도 본체만체해도 걸리지 않는다 이겁니다. 그렇지요? 거 안 됐어요, 됐어요? 된 거라구요.
그러면 본을 세워야 할 지상시대에 있어서 무슨 본을 세워야 되느냐? 뭐 효자…. 효자 되면 뭘해요, 충신 되면 뭘해요? 지상 근거가 아니라구요. 효자 되면 뭘하고 충신 되면 뭘하느냐 말입니다. 이 나라 역사에 이름을 남겼으면 뭘해요? 하나의 본연의 원칙적인 세계를 표준해 가지고 거기에 합격할 수 있도록, 모든 케이스의 규격을 맞게 하려니, 오늘날 효자 중의 효자가 되어야 되고, 충신 중의 충신이 되어야 되고, 열녀 중의 열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느때냐? 딴 때가 아니라 요때라는 거예요, 요때.
그러니까 천국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비참하게 살아라, 비참하게 죽으라, 비참하게 가라는 거예요. 자, 그 말이 좋은 말이요, 나쁜 말이요? 좋은 말입니까, 나쁜 말입니까?「좋은 말입니다」그러면 죽도록 나가 전도 하라는 말이 좋은 말이요, 나쁜 말이요?「좋은 말입니다」그런데 왜 안 나가요? 남을 위해 목숨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천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대우주의 주인으로 세워 주는 거예요.
귀한 것은 만물과 인간과 하나님인데, 이 세계를 선한 자리에서 품겠다고 생명을 걸고 희생한 사람은 그 세 가지를 걸고 희생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세 가지 이상의 것을 갚아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러한 관점에서 보았기에 이 땅에 와서 인간들 앞에 처음으로 선포한 복음의 표어가 뭐였느냐 하면 `네 집안식구가 원수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이 제일 복된 교훈이라는 결론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제일 비싸고, 제일 귀하고, 제일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 오게 되면 땅 위에서 잘살라고 하지 않습니다. 지지리 못살고, 지지리 고생하다가 죽어 길가에 쓰러져 개도 안 물어갈 주검을 남겼더라도 그 자리에는 꽃이 필 날이 올 것입니다. 거기에는 모든 거룩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가지고 도성을 만들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자, 여러분은 어떠한 자리에서 죽고 싶어요? 통일교회 패들을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지긋지긋하게 고생을 시켜 가지고 효자 충신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그래 기분 나빠요, 좋아요?「좋습니다」안 가겠다면 후려갈겨야 되겠어요?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나와 너의 생활에 있어서 이것을 아는 사람과 부자 관계에 있으면, 형제지 관계에 있으면, 사제지 관계에 있으면, `부모님 뼈를 가르시오. 형님 뼈를 가르시오. 스승님 뼈를 가르시오'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발길로 차서 현재의 비참함을,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시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위해….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 둘째가는 계명이 아니고 첫째가는 계명입니다. 그 다음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네 이웃이 누구냐? 세계 만민이 이웃이요, 형제입니다. 세계 만민을 위해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내놓으라는 거예요. 목숨을 내놓으면 다 한 것입니다. 그래, 뜻을 위해서 한번 죽어 보자는 것입니다. 어디서 죽을 것이냐? 내 죽을 곳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하나의 폭탄으로 태어났으면 폭파하는 데는 깨끗이 바윗돌에 떨어지지, 시궁창에 떨어지지 말자는 거라구요. `옥살박살 폭발하자. 우리는 탄환과 마찬가지로 쏴 버린 폭탄이다. 반석 위에 떨어지자. 지긋지긋한 것끼리 한번 해보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결심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오십이 넘어서도 아직까지 갈 길이 멀다는 것입니다. 주저하지 않습니다.
내일의 소망의 실현자가 되고, 그 세계를 관리하는 책임을 할 사람이 없는 역사상에 내가 그것을 바라보고 정성을 들이며 눈물을 흘리고, 그것을 대해서 노력과 정성을, 열과 성을 다하여 가지고 이 표준 앞에 부합할 수 있는 하나의 귀일점, 그 한 점을 마련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생명을 초개와 같이 버릴 각오를 하고 가는 것이, 이게 통일교회 선생님이 가진 주류적인 사상입니다. 여기에는 모험이 안팎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무자비한 혈투전을 전개해 나가야 할 마당을 지금 거쳐가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그 자리가 좋아요, 나빠요? 생명을 다해서 하고도 죽지 않고 남아지는 터전이 되거들랑 이것은 인류역사에 본이 될 것이요, 만민의 행복의 기조가 될 것입니다. 온 천하가 그것을 화동의 기점으로 하여 대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축이 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움직여내고 인류의 소망의 터전을 몽땅 결속시킬 수 있는 자리에 서서, 내가 동하면 동할 수 있고 내가 정하면 정할 수 있는 우주사적인 책임감을 느끼면서 사는 사나이라면 결코 졸장부가 아니잖느냐 이겁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은 그걸 잘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으라는 것입니다. 죽으라구요.
그것이 입학 수속이라구요, 입학 수속. 알겠어요? 그래 가지고 가기 싫어하는 길로 때려 모는 겁니다. 자기를 위해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남을 위해서 죽으라니 가고 싶어할 사람이 어디 있냐 이거예요. 그래서 때려 모는 거라구요. 이 길이 개인을 지나서 가정을 지나고 종족을 지나고 민족을 지나고 국가를 지나고 나면, 깃발을 들고 천하에 새로운 나라를 차지하겠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시대권까지 우리는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예수를 보내기 위해 4천년 동안 준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만들어 가지고 유대교를 세워 나왔는데, 그 길이 막혀 버렸기 때문에 섭리가 연장되어 가지고 오늘 이 기독교를 중심삼고 이런 놀음을 재판(再版)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실질적인 판가리와 실질적인 결정은 통일교회가 해야 되기 대문에 통일교회는 보통 교회가 아닙니다.
기성교회 다니던 습관적인 그런 관념을 가지고는 통일교회에 들어오지 말라구요. 시시하다는 거예요. 나는 그런 꼴을 보고 싶지 않아요. 통일교회 믿고 자기 이익이나 보겠다는 사람은 여기 드나들지 말라구요. 통일교회를 믿는 것은 나라에 이익되게 하기 위해서 믿는 거예요. 그런 사상이라구요. 선생님을 좋아하려면, 선생님을 사랑하고 선생님을 따르려고 하거든 문선생 사랑하는 것을 내가 원치 않는다구. 좋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구. 먼저 하나님을 좋아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오라 이겁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의 교육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돼요. 나 자신이 그런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 하나님은 무자비하신 분이시더라는 거예요. 딱 죽을 경계선에 와 가지고는 후퇴해 버리시는 거라구요. `네가 책임져라' 하는 거라구요. 알고 보니 그것이 사랑이었기 때문에, `사지에 가더라도, 사탄에게 피를 보더라도 꽃이 피게 할 것이다. 피를 흘리더라도, 목이 터지더라도 그것을 보이지 않고 하나님 앞에 보고하고 나서 그 피를 보이겠다'는 사상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지 않으면, 진짜 충의 도리와 효의 도리를 결정지을 수 없는 것을 알고 지금까지 생애를 거쳐 가려 나온 것이 통일교단입니다.
여기에는 선생님의 피가 배어 있고 땀과 눈물이 어려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보기에는 초라한 곳이지만, 선생님이 피살을 에이고 눈물과 피땀을 흘린 그 모든 생애의 그 무엇이 여러분 앞에 호소할 것이고, 가야 할 소망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희생하였던 그 인연 혹은 관계가 여러분을 대해서 호소할 것입니다.
그 호소의 줄에 걸리지 않게 선생님이 가던 길을 여러분이 가려 가게 하려니, 그 전통적 사상을 올바로 집어넣으려니 죽으라고, 고생하라고 때려 모는 놀음을 할 수밖에 없다 이겁니다. 됐어요, 안 됐어요?「됐습니다」됐다구요. 틀림없다구요.
내가 그렇게 해서 멀쩡하고, 내가 그렇게 해서 나를 망하게 하려던 원수들 앞에서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살아 나왔고, 원수가 무색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반을 닦지 않았느냐 이겁니다. 틀림없더라 이겁니다. 틀림없는 길을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엄청난 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본의 기준을 이 짧은 지상의 생애노정에서 세울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을 어느때에 세울 것이냐? 나도 아직까지 세울 것이 많이 남아 있어요. 내가 오십이 넘어 이 자리에서 이 민족을 대하고 여러분을 대하는 것이 부끄럽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얼굴 들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천하를 가려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전부 다 결속시켜 바쳐도 시원치 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지금도 밤이나 낮이나 기도하는 거라구요. 싸우는 거라구요. 원수와 판가리 싸움을 하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망하더라도 통일교회 문선생은 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심각한 생활을 지금도 하고 남은 여생이 다할 때까지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죽는 날 어떤 자리에 쓰러지더라도 `내가 이 이상 할 수 없소. 아버지, 내 성과 열을 다했습니다'고 할 수 있다구요. 과거를 돌아볼 때, `이 이상으로 이렇게 했으면 좋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심각한 자리에서 생애를 다짐하며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없는 겁니다.
내가 눈물지을 일이 있을 때면 아무것도 모르는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을 중심삼고 눈물짓게 하고, 내가 고통스러운 자리에 설 것을 염려해 가지고 난데없는 사람에게 그 고통을 분담시키는 사실들을 볼 때에, 하나님이 나를 떠나 있는 것이 아니고 나를 위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오늘도 내일도 감사히 여생을 곱게 맞이하려는 것이 선생님의 인생관입니다. 이러한 사상 앞에 있어서 여러분은 제멋대로 생활을 해선 안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생애를 걸고 참소할 것입니다.
천륜이 소망하는 역사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희생하여 영계에 가 있는 우리 선조들이 내가 저 나라에 갈 때 대열을 갖추어 가지고 나와서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냐, 참소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성현 군자들이 쌍수를 들어 이제 오시느냐고 환영할 수 있는 그날을 위해 지금 준비하는 길이 바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 땅 위에서 그런 엄청난 우주적인 기반을 닦아야 할 것을 알고, 남은 여생을 참으로 가치 있게 보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나이 많은 사람들은 청춘시대를 그냥 놓쳐 버린 것을 원통하게 느껴야 됩니다. 원통하게 느껴야 해요. 이 몸이 더렵혀지지 않은 순결한 순정이 불타오르는 사춘기 시절, 젊은 청소년의 시절을 이런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바치지 못하고 정상적인 길을 가지 못한 것이 얼마나 한스러운가!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그 길을 못 간 이 몸에 천대와 채찍이 임하고 멸시와 고역의 길이 임하더라도, 그것을 응당히 받아야 할 운명의 길로 알고 엄숙히 따라가야 할 노정이 통일교회의 길이요, 인생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다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본을 세우고 가야 한다는 그 기준이 철석같이 남아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여러분들은 이 1970년대에 있어서 어떤 종결을 맺을 것이냐, 복잡다단한 세계정세 가운데에서, 국가의 운명이 동요되는 국가정세 가운데에서, 내일의 소망과 내일의 희망을 중심삼은 뜻앞에 있어서 나는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누구보다도 심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주고 남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가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뜻의 궤도를 따라간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까지 하늘이 내 앞에서 수욕을 당하는 부끄러움이 있을까봐 마음 졸이는 소자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싸워 나오면서 그것을 잊을까봐 무엇보다도 두려운 마음을 품게 하여 오늘날까지 남게 하여 주신 아버지의 은사에 감사드립니다.
이 땅에 그 무엇이 좋다 하더라도 당신 권한의 본연의 심정에 연결된 이상의 기준이 없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자리를 무한히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의 사랑이 어떠하더냐고 묻게 될 때, 그 사랑에 접하는 사람은 세상만사를 다 잊더라도 미련이 없는 자리에 있는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공기로 하고 사는 우리의 이상세계, 본향의 곳을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제3의 생의 자유의 권한을 가질 수 있는 해방아로 출생할 그날을 오늘 이 지상세계에서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아기가 태중에 있을 때 건전해야만 지상에 태어난 그의 일생이 건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상생활이 건전해야만 하늘나라의 생활이 건전할 것이 틀림없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늘과 땅이 협조하는, 만우주의 동적인 운세의 박자를 규합해 가지고 살 수 있는 자리에 서려면, 오늘의 세상이 상충적인 세상이요 삼팔선이 있는 세상이요 악이 주관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억울한 사실을 저희는 알았습니다. 저희들은 그렇지만 저희 후손들이 그런 자리에 세워져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침에 밥숟가락을 들고 식탁을 대하는 그 순간에도 뛰어노는 자식들을 바라보며, 그 자식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좋겠지만, 사랑하는 그 자식들의 등에 원수의 짐을 짊어지우고 원수의 화살 자욱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자기 일신을 잃어버리더라도 이 터전을 사수하기 위한 싸움을 하여야 할 부모의 입장에 있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또 그러한 남편, 아내의 입장에 있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 그러한 싸움터가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의 일생만으로 아무리 달려가도 그것을 다하지 못할까봐 초조한 마음을 지니고 생애의 걸음을 걸어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 사람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에도 열 가지, 백 가지 일을 다하고도 또 하여야 할 사명이 촉구되는 것을 느껴야 할 것이, 아버지를 바라보고 가는 저희들의 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못한 이 지상에서 이런 전체의 분야에서 책임을 지기 위해서 스스로의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어떠한 면목도 세울 수 없는 걸음걸이, 길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예수님이 심각했던 그 장면을 알게 됐고, 아버지의 심각한 그 자리를 저희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인연을 맺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님이 불쌍한 분이요, 예수님이 비참한 분이란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통일가도 그런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동정하지 않았지만 예수와 아버지께서는 동정하는 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금후의 모든 것도 그러한 운명길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범위를 넓혀 순응하고 희생하는 어린양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가고자 하는, 순정을 지닌 당신의 자녀들이 있거들랑 만복을 베풀어 주시옵고, 힘과 능을 가하여 희생하는 그 결과 대신 보호의 채찍이 같이할 것을 믿사오니, 아버지께서 영원히 영원히 그들의 생의 출발과 과정과 종결까지 맡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무한한 세계의 주인이 되고, 만유의 특권을 갖추어 아버님의 사랑과 아버님의 칭찬을 받기에 부끄럼이 없는 아들과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본을 세워야 할 지상시대가 얼마나 엄청난 것임을 알았사오니, 이 길을 다 갈 때까지 저희의 정성과 충성을 다 바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모든 것이 허락하신 뜻 가운데서 나서 살고 죽게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오며,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아버지께서 찾고 계시는 자녀와 가정과 나라와 세계가 이땅 위에 어서 속히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그 터전 위에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의 동산을 찾아 이루시옵소서. 자녀노정에 있는 저희들은 아직도 아버님을 대신하여 영원의 상징이 되고, 사랑의 실체가 되고, 영원한 아버지의 아들로서 사랑받는 자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 참석하였사옵니다. 높고 거룩하시고 선하신 아버님의 형상을 목전에 바라보며, 이 험하고 죄악된 세상을 주위에 두고 거룩함과 악함 사이에서 악은 제거하고 참을 선택해야 할 저희 자신들을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아주시옵소서.
무한하신 당신의 자비의 마음이 마음속에 울려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을 사모하는 저희의 시선 위에 당신의 긍휼의 마음이 어리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을 사모하는 거룩한 실체로서, 당신이 바라보고 기뻐할 수 있는 상대적인 존재로서 성별시켜 주시옵소서. 깊고 깊은 마음의 본성의 자리에 당신이 군림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순결된 자신을 불러 일깨워 주시옵소서.
이와 같은 거룩한 모습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이 시간 당신 앞에 부복하였사오니 지난날의 복잡다단한 저희 생애의 전면을 다시 한 번 비판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생애노정을 당신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당신이 필요로 하는 실체가 되고 당신이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실적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낄 적마다 부족한 자신들임을 자처하면서 당신 앞에 부복하였사오니, 긍휼의 아버지여, 부족한 저희 자신들을 더듬어 일깨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늘을 우러러볼 때 저희들이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준 것만도 감사를 드리옵니다. 교만한 것이 저희의 본질로서 나타나던 과거의 생활을 제압하고, 하늘을 우러러볼 때 겸손의 마음을 추구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줌도 아버지의 무한하신 수고의 공적인 것을 저희들은 이제사 깨달았사오니, 버려 두지 마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사망의 세계에서 신음하던 이 생명의 여력을 가지고 아버지 존전에 찾아 왔사옵니다. 당신이 가시는 길이 어렵다 하더라도 저희들은 따라가기를 결심하고, 당신의 슬픔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저희들은 자진해서 그 슬픔을 체휼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 자리에 나왔사옵니다. 당신의 최후의 싸움터에 있어서 죽음을 가려 주어야 할 장소까지도 저희들은 가기를 다짐하고 이 자리에 서 있사오니 고이고이 이끄시어서 당신이 가고 머무는 곳에 저희들도 같이 처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아버지, 이 아침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함과 동시에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통일교회를 사랑하심과 동시에 수많은 기성교단을 찾으셔야 할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들을 당신이 품에 품어야 하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이 나라 이 민족을 당신이 품어야 하는 것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남북이 갈라진 이 불쌍한 정상을 긍휼히 보시는 아버지여, 이 민족의 통일의 한날을 당신이 사랑하는 자들을 제물로 드리지 않고는 갖출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 제물의 자리에 나가려고 하는, 당신의 사랑받는 아들딸이 이 강토 위에 많아야 될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과연 나라를 위하여 생명의 다 바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거든 이시대에 복을 베풀어 주시옵고, 그들에게 무한한 힘과 능력을 허락하시어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로 세워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수많은 교단과 수많은 종파가 있사오나 당신의 마음을 헤아려 당신이 염려하시는 길 앞에 제물로 바쳐질 수 있는 종파와 개인들은 심히도 희귀하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몰리고 있는 통일교단에서 그러한 무리가 남아지기를 바라는 것이 저희의 소신이오니, 아버지여, 그럴 수 있는 각자로서 이 아침에 각성시켜 주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아들이 있거든 아버지께서 영광의 승리의 모습을 갖추고 저희들을 찾아오시어서 새로이 다짐시키시고, 새로이 결의시킬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기를 진실로 바라옵니다.
아버님, 저희들은 저희들만으로 남아지기를 원치 않는 무리이옵니다. 진정 당신이 소원하시는 뜻 앞에 있어서 필요한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겠다고, 생명을 아버지 앞에 바치기를 각오한 몸들이오니, 죽든지 살든지 뜻길을 위하여 가겠다고 다짐하는 당신의 아들딸로서 이 시간 받아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오늘은 이 민족이 기억해야 할 유엔데이(UN day)로서 10월 24일인것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대신하여 수많은 민족이 이 나라에 와서 피 흘린 역사적 기원이 만들어진 것도, 한국의 한날 한곳을 중심삼고 인연된 사실을 생각할 적마다, 이 민족은 필시 이 인류 앞에 쓰러져 갈 민족이 아닌 것을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망할 처지에서 이 민족을 남기심도 당신의 특별하신 은사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고 있사옵고, 어려운 시련 과정을 거쳐오면서 그 누구라도 침략할 수 있는 정세의 노정 위에서 당신이 이 민족을 지켜 냈다는 사실을 생각할 적마다, 현시에 있어서 당신의 거룩한 은사를 이 민족과 더불어 다시 남겨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저희이오니, 금후에 한국이 가야 할 길을, 아버지, 가려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세계의 모든 중심은 당신이기 때문에 당신만이 이 세계를 관할하고, 당신만이 이 정세를 처리할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악한 무리가 득세하는 때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고 눈물짓는 무리들이 득세할 수 있는 때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기억 가운데 있는 무리들이 영광의 날을 맞는 것이 당신이 바라시던 소원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 그런 무리가 많지 않은 것을 저희들은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그런 무리들을 대신하여 여기에 모인 당신의 보잘것없는 이들을 다시 한 번 경책하시옵소서.
높고 크고 넓으신 당신의 사랑 앞에 천하고 미련하고 부족한, 자식의 이름을 갖추지 못한 것들이 부복하여서 당신의 거룩하신 대업을 계승시켜 주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당신의 수고로운 길 앞에 있어서 눈물을 가로막고, 수난길을 대신 가로막기 위하여 제물의 과정을 거쳐 부활의 한날을 맞는 무리가 되지 않고는 당신이 바라시는 기쁨의 그날 앞에 필요한 무리가 못 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은 언제나 불쌍하신 모습인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당신은 언제나 고독한 분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당신은 그 어떤 이 땅의 인간을 대하여 사정을 털어 놓을 수 없는 비참한 분이신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이 남기신 그 길을, 그분이 가시는 그 노정을 따라 가려는 저희들, 고독한 생애를 각오하고 그 길을 선택해야 되겠고, 모든 것을 버리고 이 눈물의 길을 가려 놓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전체를 뜻과 더불어 살고 죽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무리가 보잘것없는 통일의 무리이오니,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까지 저희들이 남아진 것은 그 누구의 수고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체가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금후도 그래야 될 것을 바라고 있사옵니다.
금후에 오는 섭리적인 사명의 분야는 점점 넓어지고 점점 커지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과거보다도 지금보다도 금후에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정성들이는 데 있어서 가일층 높고 큰 마음으로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안될 이런 시점에 있는 저희 자신들은 불비한 모습을 가지고 과거를 추구하면서 현실을 비판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과거를 잊어버리고 큰 소망을 품고 현실 앞에 닥치는 모든 장애를 밀어 나가고, 모든 것을 처리하기에 바쁠 수 있는 자신을 갖지 않고는 하늘 앞에 기억되는 무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오니, 오늘 강하고 담대하게 자기 자신을 갖추어 가지고 원수의 세계를 응시하면서 최후의 격전장을 가려 나갈 수 있는 제반 준비를 구비한 하늘의 용사들로서, 당신에게 신임받는 병사들로서 나타나기에 부족함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에게 이 나라 이 민족을 맡기고 안심할 수 있고, 이 땅 위에 당신의 아들을 세우시어서 이 세계의 수난의 노정을 맡기고 안심할 수 있기를 얼마나 얼마나 고대하셨던 아버지셨나를 저희들이 생각하게 될 때에, 언제나 부족하고 언제나 불효막심한 저희 조상들이었음을 저희들은 깨닫고 있사옵니다. 저희들도 후대의 후손들로부터 하늘의 길 앞에 충성하지 못하였다는 참소를 받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되겠사오니, 남은 일생을 아버지 뜻 앞에 몽땅 바치어 최후의 한날을 빛내고, 이 땅을 떠나 아버지 앞에 갈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필생의 요구가 될 수 있게끔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고, 생의 노정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 자신들을 다시 한 번 살펴 주시옵소서. 인간은 언제나 악한 자리에서 출발하였고 악한 자리에서 태어난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선과는 그렇게도 멀었고, 선을 중심삼은 당신 앞에 한(恨)의 구렁텅이를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사망의 경계선을 돌파해야 할 것이 오늘날 땅 위에 태어난 인간들이 가야 할 행로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은 저희 자신들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길이기 때문에 이것을 메우기 위해 당신께서 수많은 선한 사람들을 희생시켜 오셨습니다. 당신 앞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종들을, 잊을 수 없는 양자의 무리들을, 잊을 수 없는 아들들을, 잊을 수 없는 아들의 뒤를 따르며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녀의 무리들을 동원하시어서 이것을 메우기 위해 희생시켜 왔다는 사실을 아옵니다.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 살 수 있는 하나의 참다운 자녀의 모습을 얼마나 고대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수고 앞에, 그 희생 앞에 나타난 저희들의 모습이 이래 가지고는 안 될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희생의 대가를 치렀지만 당신이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의 모습도 갖추지 못한 악한 이 땅 위에, 혹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수많은 사람들 위에 당신이 바랄 수 있는 소망의 존재가 하나도 없다 할진대는 이것 이상 비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한 자리밖에 없게 될 때에는,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의 뜻을 따라 가고자 하는 자들을 이 구렁텅이에 다시 제물로서 희생시켜야 할 아버지의 뜻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 자리에 자진해서 희생될 수 있는 무리가 어떤 종파 가운데 얼마나 많은 무리가 있는가를 생각할 적마다, 아버님은 불쌍한 분이신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 여기에 부복한 당신의 불쌍한 자녀들을 동정하시옵소서. 이 구렁텅이를 다 메운 자리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된다면 얼마나 얼마나 감사할 일이며, 얼마나 얼마나 자랑할 일이겠습니까마는 그렇지 못하게 될 때는 이 무리들을 몽땅 아버지 존전에 바치어 이 구렁텅이를 메울 수 있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혹은 생명을 다할 수 있는 무리라도 되지 않고는 이 사망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를 가려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이 자리가 비장한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천신만고의 수난길이 가로놓여 있다 하더라도 생애의 역경을 다하여서 필시 이것을 가려내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사명이 이 죄인들에게 있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그 누가 이것을 책임지고 염려하고, 그 누가 이것을 책임지고 희생할 수 있는, 당신 앞에 필요한 아들딸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세계에도 없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 자리에도 없다면 아버님은 불쌍한 분이신 것을 저희들은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각자 소신을 다짐하며 이 책임을 나 스스로 맡겠다고 하늘 앞에 맹세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시간 아버지 앞에 그러한 무리가 되겠다고 약속드릴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10월도 하반기를 맞이하였사옵고, 이해도 마지막 계절을 맞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바라던 모든 소원의 날들도 다 지나가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날을 바라던 때도 지나가고 있사옵니다. 더더욱 세계의 복잡다단한 정세 가운데서 당신이 머무실 수 있는 승리의 환경을 그리워할 적마다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이라도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아들딸이 있거든 긍휼한 아버지의 마음에 동정의 마음을 더하시어서 끝까지 지키고 키우시사 당신이 소원하시는 자리에 필요한 아들딸로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더욱이 일선에서 있는 어린 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의 여성을 대신하여 당신 앞에 제물 드리는 하나의 실체들로서 부끄럽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식과 남편과 가정을 뒤에 두고 하늘을 향하여 나선 그 걸음을 아버지께서 자랑스럽다 하시옵소서. 그러지 못하는 무리들보다 앞에 선 것만은 틀림없사옵니다. 그 누구보다도 정성들이는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정성의 인연을 이어받을 수 있는 아들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다가오는 사망의 물결과 민족의 비운을 가로막고, 생명의 가치를 드높이 들고 하늘의 영광의 날을 찬양할 수 있는 그대까지 망하지 않고 남아지는 무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옵니다. 지키시옵고 키우시옵고 남기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불쌍한 통일의 자녀들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땅 위에 그 누구도 이들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없사옵니다. 당신만이 지키셔야 되고 당신만이 이끄셔야 될 외로운 무리들이오니, 제가 그런 자리에 섰을 때에 당신이 권고하여 주시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권고하시옵소서. 흑암에 부대끼는 낙망의 출정길에 있어서도 아버지께서 내일의 소망의 빛을 약속하고 다짐하셨듯이 그들도 그와 같은 자리에서 지켜 주시옵소서.
전체 영계의 시선을 모아서 땅 위에 최후의 승리를 판가리할 수 있는 사람이 못 되거든 하나의 채찍이라도 되어야 되겠고, 하나의 검이라도 되어야 되겠고, 하나의 무기라도 되어서 적진을 폭파하는 데 필요한 도구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부디 그런 자리에서 필요 적절한, 당신이 소원하시는 실체들로 키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나기를 고대하는 그 시간 그 자리에 당신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뜻 앞에 보탬이 되지 않고, 만남의 자리에서 당신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고, 당신의 거룩함이 찬양되지 않는 그 자리는 당신도 원치 않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럴 수 있는 날을 준비하시어서, 당신의 승리와 당신의 기쁨이 깃들 수 있는 자리에서 상봉의 시간을 갖추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이달도 아버지께서 맡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해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고, 금후에 통일교회가 가야 할 운명도 맡아 주셔야 되겠사옵니다. 그 누구도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을 때가 가까와 옴에 따라 더더욱 느끼고 있사오니, 당신이 좌정하시어서 일체를 주관 관리 통솔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립니다.
오늘 하루가 아버지 앞에 복귀되어 영광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께서 찾아오신 거룩한 이 시간이 되기를 바라오며,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3천여 만의 인구가 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어린이로부터 나이 많은 사람에 이르기까지의 인간들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가르면 소년시대,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로 갈라질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존재물이든 반드시 태어나는 때가 있으면 그 다음에는 자라는 때가 있습니다. 자라는 때가 있으면 그 다음에는 그것이 성숙하는 때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결실하는 때가 있습니다. 결실하게 된 다음에는 거두는 때가 있고, 거둔 다음에는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보관되는 씨, 즉 종자의 시대가 있는 것을 우리들이 알게 됩니다. 여기에 있는 꽃을 보게 되면 꽃도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태어나는 때, 자라는 때, 성숙하는 때, 그 다음에는 거두어 들이는 때,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끝에는 반드시 새로운 생명이 발생할 수 있는 시련기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절에 비유해 이것을 생각해 보면 봄을 소생의 때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름은 장성의 때, 성장의 때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가을은 결실의 때, 겨울은 시련의 때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루를 두고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은 출발의 때, 낮은 활동의 때, 그 다음 저녁은 모든 것이 결과를 다짐지을 수 있는 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녁 때는 가을절기에 맞먹는 때입니다. 밤은 겨울절기에 맞먹는 때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두고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타락하지 않았다면 우리 인간은 이상적인 봄 동산을 맞았을 것입니다. 그 이상적인 봄 동산에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로서 자라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란 인류들은 이 땅 위에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조했을 것입니다. 문화세계를 창조한 그 가운데서 우리 인류는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만물이 춘하추동의 계절을 따라서 순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역사도 역시 봄절기, 여름절기, 가을절기, 겨울절기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영속되는 세계가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인류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 세상에는 인간이 기뻐할 수 있는 소생의 때, 영광의 한날을 맞이할 수 있는 기쁨의 출발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고 천지가 화동할 수 있는 기쁨의 봄 동산을 맞이하지 못하고 슬픔의 봄을 맞이했다고 봐야 될 것입니다. 슬픔의 봄을 맞이했고, 슬픔의 출생을 맞이한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에 슬픔의 역사적인 성장의 때를 맞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입니다. 이렇게 슬픔의 역사과정에서 비참한 운명을 지니고 나가는 인류는 발전의 노정을 다짐해 나왔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때에 와서는 슬픔의 역사를 중심삼은 가을절기와 마찬가지의 시대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역사에 있어서 인간 전체를 대표한 수확기에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은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계적으로 권위를 떨치던 나라도 이때에 와서는 그 권위를 자랑할 수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단체도 지금에 와서는 그 권위를 남길 수 없는 자리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어떤 개인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지금 이때는 절망의 때, 끝의 때라고 누구나 주장하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많이 듣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 태어나는 아기가 있다 할 때, 그 아기는 이런 환경에 있어서 내일의 희망을 중심삼고 기쁨의 자리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환경 그 자체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고통스런 운명 가운데서 가려 가야 할 입장에 놓여져 있는 것이 사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때는 인간이 타락하여 이루어진 역사가 가을절기를 맞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가을절기를 맞은 역사에 있어서 남아질 수 있는 결실, 하나님이 필요로 하고 인간이 필요로 하는 참된 결실, 즉 새로운 봄을 맞아서 뿌려질 수 있는 종자와 같은 참된 인간은 어디 있느냐? 여러분 가운데 어떤 환경에 있어서, 이만한 권위와 이만한 모습을 가지면 부족함이 없다 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과연 역사적인 수확기에 당도한 입장에서 다시 새로운 봄절기가 찾아오게 될 때 자신이 틀림없이 그 시대에 있어서 새로이 심어질 수 있는 하나의 종자와 같은 인격이 되어 있느냐, 남아질 수 있는 불변의 생명체를 지니고 있느냐, 참의 인연을 그냥 재생시킬 수 있는 자체가 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반문해 보게 될 때, 그 누구도 여기에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자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도 자인할 뿐만 아니라, 환경적으로도 자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요, 세계적으로도 그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 인간들이 바라 나온 소원은 무엇이었던고? 인간이 수확기에 당도하여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생명의 핵을 갖추어 가지고, 그야말로 선(善) 자체에 속할 수 있는 영원한 하나의 결실체로서 남아지고자 하는 것이 인류의 소원임에 틀림없는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실체가 어디에 현현될 것이냐, 어떠한 곳에서 그러한 결실이 거두어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결실이 거두어질 장소는 오늘날 사망의 물결이 요동하는 와중의 사회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단체면 단체에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회나 국가, 혹은 세계에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 안에 있는 어떤 특정한 단체에 바랄 수밖에 없을 것이 아니냐. 그러면 이 단체가 교육기관일 것이냐, 어떤 정당일 것이냐, 어떤 단체가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자기 스스로를 자랑하는 단체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노라고 자랑하는 입장에서, 세계 전체가 내가 바라는 기준을 따라가야 된다고 주장하는 곳은 기대할 수 있는 곳이 못 됩니다. 그건 왜? 인류 역사가 악에서 출발하였다는 사실이 틀림없다 할진대는 그 악의 환경을 그냥 이어받은 사회적인 현상 가운데서 자기 스스로를 높이고 자부하는 자리에서 주장하는 그런 단체에서는 그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역사는 자기를 내세우는 인간 시조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서, 즉 자기가 출세를 하기 위해서 제삼자를 희생시키는 것이 타락의 기원인 것을 알고 있는 우리는 자기를 내세워 가지고 환경을 제압하려는 단체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고 보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단체에서 그것을 기대할 것이냐?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낮추고, 자기 자신이 전체 앞에 중심으로 세워지기를 바라기보다도 전체를 대신해서 자기들이 희생하고자 하는 단체가 아니고는 수확의 결실이 있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오늘날 그것을 기대할 수 있는 단체는 어떤 단체일 것이냐?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종교단체일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단체 가운데 어떠한 종교단체일 것이냐? 타락된 사회의 풍조를 따라가면서 보조를 맞추려 하는 종교단체는 아닐 것입니다. 근원과 배치되고 상충되는 인류를 자기의 종주로 삼아서 필생을 투입해서라도 선의 방향으로 가려 놓기를 소망하는 특정한 종단이 있지 않고는 투쟁해도 그것을 살릴 수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러한 종교는 어떤 종교일 것이냐? 역사상에 비참한 운명의 인연을 지니고도 망하지 않고 남아진 종교의 인연을 따라서 이 종말시대에 기대하는 하나의 결실의 모든 형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닐 것이냐? 이걸 생각하게 될 때, 그런 종교는 종교 가운데서 순교한 선열의 피의 역사를 이어 가지고 지금까지 발전해 온 기독교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기독교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수많은 종파 가운데서 어떤 종파가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그 종파는 아무리 시련 도상에 부대껴 오고 사망이 엇갈리는 설한풍이 몰아친다 하더라도 거기에 생명을 투입해서 끝까지 남아질 수 있는 정기를 가지고 사회악과 맞부딪치더라도 깨지지 않는 종단이 될 것이다 하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결론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의 종말시대라고 말하고 있는 현시점에 있어서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가 세계 전체가 환영하는 종교일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전 세계가 부정하는 종교일 것이냐 할 때, 환영하는 종교에서는 그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필시 환영이 아닌 반대와 핍박의 화살이 날아드는 곳이 도리어 이 결실을 찾을 수 있는 가능한 종교로 꼽히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그 종교는 어떠한 종교일 것이냐? 끝날에 만민이, 혹은 역사가 필요로 할 수 있는 하나의 결실을 해 가지고 하나의 생명체로 남아질 수 있는 그 터전이라는 것은 만민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수 있는 소망의 곳이 아니라 전부가 얼굴을 돌리는 자리가 아닐 것이냐, 그런 자리에 하늘이 혹은 인류가 소망할 수 있는 하나의 씨앗이 남아질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러한 종단은 어떤 종단일 것이냐? 그런 종단이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어쨌든 그런 종자를 만들려는 운동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계절을 채워 가지고 봄을 맞이하려면 겨울이 가로막는 것입니다. 겨울은 생명의 여력을 전체적으로 침범해 가지고 이것을 제거시키기 위한 힘으로써 부딪쳐 오는 계절입니다. 그런 시련과정을 늠름히 싸워 돌파할 수 있는 주체력을 가진 자체들로서 구성된 것이 아니고는 안 될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날에 있어서의 `통일이다. 통일교회다' 하는 것을 두고 보면, 통일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전체를 대표해서 중심 자리에 서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의 모든 진액을 대표한 입장에 서서 봄절기의 내용을 지녀야 되고, 여름절기의 내용을 지녀야 되고, 가을 절기의 내용을 지녀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소생기, 장성기, 성숙기의 내용을 다 지닌 자리에서 정상적인 결실을 갖출 수 있는 한씨앗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봄날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사탄을 중심삼고 봄날을 맞았습니다. 악의 터전 위에서 봄날을 맞았고, 여름날을 맞았고, 가을날을 맞았습니다. 그것이 나면서부터 탄식의 환경을 벗어나지 못했다 할진대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남아질 수 있는 씨앗으로서의 인연을 갖추고 나타난 종자가 있다면 그 종자는 나면서부터 기쁨을 맞이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회의 기쁨도 다 저버리고 출발하게 될 때 그런 기쁨을 대신 해가지고 설 수 있는 것이 어디에 있겠느냐? 기쁨의 마음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서 출발함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체득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출발은 낙망의 출발이 아니라 소생과 기쁨의 내용을 가진 출발입니다. 거기서 어떻게 출생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장성기 성숙기의 과정을 거쳐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봄날에는 새로운 싹이 트지만 거기에는 아직 겨울날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환경적으로 쌀쌀한 날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환경 가운데서 생명을 지니고 소생하는 것입니다. 그 생명의 여력 앞에 있어서는 환경적으로는 협조적인 내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땅 밑에서는 온화한 생명의 인연이 발발할 수 있는 뜨거움이, 온기가 생명의 여력을 품고 있어야 됩니다. 제아무리 환경이 모질고 차갑다 하더라도 그 환경을 제거할 수 있는 온기를 지니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생명의 힘이 거기에서 소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소생의 힘이라는 것은 그 어떤 환경의 조건보다 약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제압하고 그 모든 어려운 환경에서 생명의 요소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출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통일교회면 통일교회가 그런 책임과 사명을 추구하고 나아가는 종단이라 한다면 지금까지 역사상에 없었던 한 새로운 소생기의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출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자라야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통일교회는 어떤 종파와도 다른 내용을 가지고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그 내용에 있어서 인류의 비운의 역사를 만들었던 것을 갖고 나올 것이 아니라 출발 당시부터 봄날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소생의 기쁨을 찬양하는 데 있어서도 역사시대의 그 어떠한 권위와 어떠한 가치의 내용도 능가하는 자리에서 늠름하게 그 가치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출발해야 됩니다.
만민이 환영하는 자리에서는 그런 출발의 자리를 결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생사가 결정되는 경각의 자리에서 출발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슬픔의 경지를 향해서 넘어가는 것보다도 소망의 경지를 향해서 그 경계선을 넘어서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보는 종단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통일교회는 어땠느냐? 그것은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주위 환경이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자기 부모가, 혹은 사랑하는 처자가, 혹은 사랑하는 그 어떠한 인연이 나를 얽매어 가지고 포위하고 구속하는 입장에 서더라도 그것을 일시에 끊고 나설 수 있는 태도를 갖고 출발한 것이 아니냐.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이 현실에는 없는 세계사적인 사정에 접할 수 있는 내연을 지니고 출발했던 것이 틀림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리 사망의 물결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하더라도 둘러싸고 있는 사망의 물결 앞에 밀려간 기독교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그것을 타파하고 제압하고, 또 이것이 깨지지 않으면 생명을 바쳐서라도 격파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것이 기독교가 아니었더냐. 그 터전을 이어받은 전통적 인연을 따라서 기독교 문화세계는 창건되어 내려온 것이 아니냐. 그러는 가운데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렀고 피 흘리며 순교당하는 시련을 많이 겪어 나와 일반인이 보기에는 내려가는 걸음을 걷는 듯하였지만, 그것이 내려가는 걸음이 아니라 내려가는 힘을 통하여 올라갈 수 있는 반대적인 힘이 새로운 생명의 세력을 내포해 가지고 사망의 문화세계를 생명의 문화세계로 바꿔 놓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 기독교는 그러한 과정의 시대시대를 거쳐왔던 것입니다.
기독교에 있어서 소생기가 있으면 장성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로마카톨릭교회를 중심삼은 중세시대가 아니었던가. 자라기는 멋지게 자랐습니다. 세계를 품고 남을 수 있는 권한의 자리까지 무성히 자랐습니다. 거기에 꽃이 피고 결실을 맺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꽃이 피게 될 때 하늘을 중심삼고 피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소망을 중심삼고 남길 수 있는 씨앗을 이어받을 수 있는 영광의 꽃이 생명을 중심삼고 피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사망선을 향하는 인간을 중심삼고 피기 시작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 인류역사에 있어서 암흑기라 불리우는 중세 봉건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던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거기에는 소망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꽃이 피고 향기가 풍기고 성숙한 미래의 터전을 가름지을 수 있는 소망의 환경이 못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새로운 혁명이 불가피한 세계적인 시대를 접해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거기에 수많은 희생의 노정을 가리면서, 수많은 수난길을 가리면서 명맥을 이어받아 현시점까지 와 가지고 기독교문화권을 중심삼은 민주세계권이 창설된 것입니다. 이것이 온대권에 속하는 현대 문명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문명권은 봄절기 문명권으로서 상승할 수 있는 문명권에 서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완전한 성숙을 기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을절기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가 크긴 컸지만, 꽃은 핀다고 했지만 이것이 완숙된 결실을 맺지 못한 채 가을이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찬바람이 불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명의 발전노정을 생각해 볼 때, 고대 문명은 열대권 문명, 지금의 문명은 온대권 문명,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고대 문명은 열대 문명에 속하고 지금의 문명은 온대권인데도 불구하고 이 온대권 문명이 봄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가을로 와 가지고…. 그러니까 여기에는 오늘날 공산주의를 중심삼은 한대권 문명이 침범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무엇을 남기고자 하느냐 하면, 문명권에 있어서 씨앗을 남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대권인 공산권 문명이 휘몰아쳐 가지고 세계 전역이 침해를 받을 수 있는 이 시대권내에 있어서 하나의 생명의 씨앗을 가지고 새로운 문명의 세계를 지닌 그런 씨앗이 있으냐 없느냐, 이것을 촉구하는 차제에 놓여진 현실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실 것이냐? 오늘날의 공산주의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닙니다. 가을절기에 찬바람이 맞부딪쳐서 접하고 있는 경계선이 드러나고 있는 것과 같은 때입니다. 이것이 부딪쳤다 점점점점 후퇴하면서 둘로 셋으로 분파해 거꾸로 갈라져 가는 것입니다. 개인으로부터 출발해 가지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나왔던 것이 세계까지 나왔다가 부딪쳐 가지고 후퇴할 때에 하나될 수 있는 상대적 관계가 둘이 되고 넷이 되고, 점점 세계에서 국가에서 종족에서 가정에서 개인화될 수 있는 권내로 후퇴할 것입니다. 그렇게 올라가서 불어났으니 그렇게 떨어져 나가 자빠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전체주의를 주장하는 공산주의 세계에서도 개인주의 사상이 팽배하는 시대상을 모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상에 올라가 세계를 대표한 하나의 모습에서부터 불어나기 시작했으니 깨지는 데는 둘로 점점 부서져 나가 떨어져 가지고 개인 위주한 사상적인 결함 속에서 세계는 멸망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지금 세계를 보라구요. 오늘날 세계는 히피족 운운하는 시대에 와 있습니다. 그들 앞에는 세계도 없는 것이요, 국가도 없는 것이요, 사회도 없는 것이요, 가족도 없는 것입니다. 인간도 없는 것이라구요. 자기 자신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사람이 무엇이냐? 먹고 사는 것이 사람이냐? 뭐하는 것이 사람이냐 하는 문제, 삶의 여력까지도 기대하지 않는, 그것까지도 포기한 상태에서 정지냐 발전이냐 하는 것을 분간하지 못하는 인간상이 우리 목전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가을날이 찾아와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수많은 주의 사상, 수많은 권위를 자랑하던 그 모습들이 요동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 오기 때문에 무성함을 자랑하던 잎들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외 없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앙상한 가지만 남을 것입니다. 뼈다귀만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보게 되면 사회도 그렇지만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도 앙상한 뼈다귀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찬양하는 노래가 어디 있으며, 생명을 구가하는 시가 어디에 개재해 있겠느냐? 그 위력을 자랑할 수 있는 때가 찾아오지만 그런 때에 자기 위력을 자랑하겠다고 나섰다가는 희생하기 일쑤입니다. 그런 시대입니다. 시대의 환경이 그러므로 기성 종단도 마찬가지요, 기성 종교도 마찬가지요, 기성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종단도 그런 운명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나타나려고 하면 부딪히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생각하게 될 때, 통일교회도 역시 그러한 역사적인 운세권 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여기에 머리를 높이 들고 나타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타나지 못하게 핍박을 준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면 고맙다는 거예요. 나타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 죽는 겁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셨던 모든 내력과 모든 인연을 통한 진액이 있으면 그 진액을 전부 다 일시에 집결시켜야 됩니다. 봄절기, 여름절기, 가을절기에 흡수할 수 있는 모든 역사적인 진액을 집합시켜야 됩니다. 사망세계에서보다도 생명의 세계에서 봄절기, 여름절기, 가을절기의 생명력을 집결시켜야 됩니다. 딴딴히 결속해야 됩니다. 딴딴히 결속하려니, 내부로 딴딴히 결속시키기 위해서는 강하게 밀어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겨울날입니다.
겨울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겨울은 생명의 씨앗이 완전히 결속할 수 있는, 주체 대상이 하나될 수 있는 기원을 촉구하는 자리입니다. 찬바람이 불고 얼음이 꽁꽁 얼어붙는 최후의 결정선에서, 너와 나의 인연이 밀착된 자리에서 생명권의 인연이 개재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의 씨앗이 하나의 봄날이 맞이해서 심어지게 될 때 새로운 희망의 계절은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예요.
여러분, 통일교회에도 바람이 불어와야 됩니다. 초가을 바람이 불어온 곳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바람을 사망의 바람으로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때가 가까와 옴에 따라 전부 불고 쓰는 바람이 불어와야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경계선이 가까와 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통일의 시대를 바라는 시점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북한을 넘어야 할 삼팔선이 눈앞에 보여지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공포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망의 교차로를 분별해야 할 지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단련된 그 자체로서 그 환경의 어떠한 여력 앞에 침식당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라 그 환경의 여력을 제압할 수 있는 무엇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자체의 국가면 국가내에서도 그래야 하지만 적진 앞에서도 제압할 수 있는 여력을 지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대한민국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대한민국이 되어 있느냐? 못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아직까지 준비 미완성입니다. 찬바람이 불어오지 말기를 바라지만 찬바람은 불어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떡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정상을 맞이한 현재 세계 정세나 국내의 정세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이것은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그런 자리에 서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 나라의 어떤 단체면 단체, 개인이면 개인이 그런 자주력을 가지고 사망권을 제압할 수 있는 생명의 씨앗이 되어 있느냐? 되어 있다면, 그러한 씨앗을 가지고 이 나라에서 몰리고 쫓기는 주인이 있다면 그것을 딴 나라에 가져다 심어야 될 것이 아니냐. 만일 여기에다 심어지지 않는다면 그 주인은 필시 딴 나라에라도 심으려고 할 것이 아니냐. 이 나라 영토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심어질 수 있는 옥토가 되지 못하게 될 때는 세계 전체를 돌아다니는 거라구요. 그러한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옥토를 찾아 나설 것입니다. 만일 그런 것이 있으면 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런 씨앗을 망하게 두어 둘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과연 여러분들이 하나의 생명의 내연을 갖춘 틀림없는 씨앗이 되어 있느냐는 문제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기독교를 중심삼고는 통일문화권을 주장하고 나서는 것이요, 공산주의를 중심삼고는 승공문화세계를 바라고 나서는 노선을 취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쪽에서는 전체를 수습하고 통일해야 할 통일의 씨앗이 되어야 하고, 저쪽에서는 사망의 물결이 휘몰아치는 권한을 전부 다 제거할 수 있는 실체로서 당당히 서는 기수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오늘날 통일교회는 승공이라는 표제를 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 아니냐. 이것이 나라의 골수가 되어야 되는 것이요, 세계에 적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안팎으로 적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사상을 중심삼고 볼 때 통일문화세계를 꿈꾸고 나가는 우리 이념권내에서는 기독교에 적중 안 하더라도 한 시대가 지나면 적중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런 걸 볼 때, 오늘날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고 정상선에서 좌우를 결할 수 있는 시점에 놓여 있다는 사실과 필연적인 섭리의 내용이 결집되어 있는 사실을 이중으로 증거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나라를 맞은 다음에는 이 손으로 껍데기를 벗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이라구요. 이것을 지탱시킬 수 있는, 지탱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침범받지 않을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겉에다 대준 건 양보해 주더라도 자꾸 벗기는 것입니다. 벗겨져야만 맨 나중에, 다 벗겨지고 나서 벗길 수 없는 그때에야 생명의 씨앗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남아진 그 씨앗이 심은 대로 나게 될 때 거기서부터 통일적인 문화세계, 하나님이 원하고 인류가 원하는 세계가 나올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민주세계에도 주고 공산세계에도 주고, 다 주고도 남을 수 있어야 됩니다. 또 다 부딪치더라도 깨지지 않고 그것을 제어해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여러분 자신들이 그러한 자주력을 가졌다고 스스로 주장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느냐, 자부하는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문제가 가장 신중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씨앗을 가지고 치게 된다면 민주세계가 깨질 것이냐, 공산세계가 깨질 것이냐, 씨앗이 깨질 것이냐? 민주세계가 깨지면 깨지지, 공산세계가 깨지면 깨지지, 이 씨앗은 깨질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자체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 남들은 가을절기라고 하는데 통일교회 자체는 봄절기라고 하면서 출발합니다. 이렇게 통일교회가 환경적으로 뻗어갈 수 있는 시점을 맞이한 그 때가 겨울절기와 더불어 그 과정이 뭐랄까? 입춘 때입니다. 그 때는 겨울 중에 최고의 겨울이요, 봄중에 최고의 봄인 때입니다. 분수령이 그렇다구요.
그 때라는 것은 한 날이 있음과 동시에 한 시간이 있고, 한 시간의 60분의 1인 1분이 있고 1분의 60분의 1인 1초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씨앗은 1분에 60분의 1인 1초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자체가 되지 않고는 봄의 출발을 볼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봄은 있을 거 아니예요? 아무리 찬바람이 불어 오고, 아무리 혹독한 바람이 불어와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다는 것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오는 것입니다. 암흑 천지요, 암담한 환경 가운데도 자기 자체를 중심해 가지고, 필시 봄을 맞이하겠다는 일념 아래 딴 면의 소망의 빛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다 나은 내일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소망을 다짐하면서 가고, 가라 하고 보낸 날들을 지내온 역사가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딪쳐 가지고는 나와 더불어 엉크러져 가지고 자꾸 지나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개인이 지나가고, 가정이 지나가고, 종족이 지나가고, 민족이 지나가고, 국가가 지나가고, 세계가 지나가면 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나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나오는 데는 그 놀음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삼촌, 할아버지가 한꺼번에 다 반대하더라도 지나가야 합니다. 개인이 반대하고, 종족이 반대하고, 민족도 반대하고, 국가도 반대하고 전부 다 따로따로 치면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그렇게 나올 때는 한꺼번에 퍼부어라, 이 추울 때 새봄과 동시에 한꺼번에 퍼부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꺼번에 퍼붓는 것이 원수더냐 복이더냐 할 때에, 원수가 오히려 복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3정권 시대에 혹독한 북풍한설의 서리를 맞아 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서리를 맞고 쓰러졌느냐? 잎은 스러지고 가지 끝은 얼었을는지 모르지만 봄날을 맞아 새로운 싹이 날 수 있는 뿌리와 튼튼한 줄기를 갖고 있어서 내일의 희망찬 걸음을 걸었다 할진대,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사실 그렇게 나왔어요. 여기 온 아주머니들이나 오래된 식구들은 사실 그렇게 나왔어요. 전부 다 일체가 되어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동쪽 가지가 꺽어져서 진이 나온다면 그 진은 그 자체를 내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진인 동시에 소모의 진인 것입니다. 안팎으로, 한 면에서는 방어하기 위한 작용을 하고, 다른 한 면에서는 소모하는 작용을 하니 슬픈 날들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기쁜 날을 보지 못하는 나왔습니다.
동쪽 가지에 피해를 입는가 하면 서쪽 가지에 피해를 입고, 맨밑창 가지에 피해를 입는가 하면 종대 가까운 가지까지 피해를 입는 날들을 가졌기 때문에 그 줄기와 뿌리는 기쁜 날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것이 점점 지나감에 따라 앙상한 가지가 새로운 소망의 봄날을 맞이할 수 있는 터전이 가까와 옴으로 말미암아 녹기 시작했고, 그 가지에서 잎이 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통일교회는 발전의 노정의 걸어온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통일교회의 소생기는 출발한 것입니다.
소생기는 그렇게 출발했는데 장성기를 맞아 활짝 핀 계절에, 이런 울타리권내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늠름히 살아갈 수 있는 무성한 여름절기는 어디 갔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이 그런 절기를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맞지 못했다면 내일에 그 여름절기를 맞기 위한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봄을 맞아 싹은 나왔지만 여기에서 여름을 맞지 못하고 가을을 맞지 못하고, 성숙과 결실의 계절을 맞지 못하면 비참하게 떨어지는 하나의 잎이 되고 새싹이 될 것입니다.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있어야 할 위치는 어디겠느냐? 통일교회의 원리로 말하면 소생기 장성기가 있는데 소생기는 맞았지만 장성기는 어디 갔느냐 할 때, `여기에 있다. 동을 봐라. 동쪽 가지에는 이렇게 무성한 잎이 자랐노라. 남쪽 가지에도 이렇게 무성한 잎이 자랐노라. 내가 키운 환경의 터전을 누가 침범할소냐. 여기는 필시 꽃이 필 것이고 결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 이런 자신만만한 자세를 갖춰 가지고, 찾아오는 수확의 계절을 그 무성한 기간내에서 자랑과 소망으로 삼고 가는 통일신도가 되어 있느냐, 혹은 그렇게 남아진 통일신도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현재 어떠한 세계에 처해 있느냐, 어떤 시대적 위치에 존속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제 알고 보니 잎은 났지만 죽어지는 가지라 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것을 놔뒀다가는 그것이 종대가 될 때는 전체가 몽땅 폭삭하고 녹아 버리고 말 것입니다. 녹아 버리고 말게 되면 지금까지 선조로부터 세워진 모든 선의 실적은 완전히 매몰될 것이 아니냐. 이럴 때는 종대를 잘라 버리고 접붙이는 놀음을 해야 합니다. 똑 잘라 가지고 거기서…. 자르면 뻗어 나갈 수 있는 힘이 없어지기 때문에 줄어지는 운세권내에 있으므로 그것은 말라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꼭대기에서 조금씩 조금씩 자르지 말고 몽땅 잘라라! 밑창을 무자비하게 몽땅 잘라라! 잘라 가지고 접붙여라!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봄절기에 처해 있다 할진대 소망으로 기대하는 여름절기를 맞을 수 있는 자신 있는 자리에 섰느냐? 여름절기에 처한 자리에 있다 할진대 가을절기를 맞을 수 있는 자신 있는 자리에 서 있느냐? 이래서 여러분들의 일대(一代)는 가을절기와 마찬가지의 노년시대를 거쳐가고, 후손을 통하여 봄맞이의 재출발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어떠한 사람이냐? 봄날이 오기 바쁘게 여름날이 오고 여름날이 오기 바쁘게 가을날이 오고, 가을날이 오기 바쁘게 겨울날이 오는 것이 천리의 원칙이거늘 봄을 맞이했다고 즐거워하기 보다는 여름을 맞기에 부끄럽지 않는 자세를 어떻게 남기느냐 하는 데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것이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책임자의 소신이 안 되어 가지고는 이 단체는 가다가 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안일과 영광의 터전을 꿈꾸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보다는 내일의 행복의 터전을 남기기 위해 수난길을 자기의 필생의 운명으로 알고 가야 될 것입니다.
여름날이 오기 전에 결실을 맞아 남보다 일찍 거두어져 가지고 주인의 환갑 잔칫날 진설하는 상 위에 귀한 열매로서 바쳐질 수 있다면 그 때가 여름절기가 되어도 좋고 가을절기가 되어도 좋은 것입니다. 잔칫날이 되기 전에 거두어질 수 있는 모습이 되면 완전한 가을날에 어디서든지 구할 수 있는 결실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지라도, 그것은 가을절기에 완숙된 결실의 몇만 배의 가치로서 하늘 앞에 바쳐질 것이 아니냐, 봄에 태어나 가지고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결실하는 것을 한 계절 동안에 다 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는 내적인 저력을 가지고 생활환경을 개척하고, 그 환경의 여건을 타파할 수 있는 힘의 자주성을 가지고 가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신념과 사상을 가지고 나가는 통일교회의 지도자라면 그 단체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봄은 짧을 것이요, 여름도 짧을 것이요, 가을도 짧을 것이 아니냐….
이러한 관점에서, 사람의 한 생애를 두고 보면 소년시대가 있을 것이고 청년시대가 있을 것이고 장년시대가 있을 것이고 노년시대가 있을 것이거늘, 그러한 책임수행을 추구하는 어떤 사림이 있다 할진대 소년시대가 길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짧기를 바랄 것입니다. 장년시대도 짧기를 바라는 것이고, 노년시대도 짧기를 바랄 것이 아니냐. 7,80년 생애를 중심삼고 완성을 바라는 것보다 7,8년의 한 시대권을 중심삼고 완성을 바라려니, 일년 동안에도 환란풍파를 겪어야 하나의 결실을 맺는 것을 우리가 보거늘, 얼마나 풍상이 많겠습니까?
이런 세계사적인 하나의 완숙된 결실을 고대하는 모습이 있다 할진대, 그가 평안한 입장에서 소일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이룰 수 있겠느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방으로 부딪히라는 것입니다. 봄날이면 봄날, 여름날이면 여름날, 가을날이면 가을날, 생명의 여력과 내적 권한에 있어서 투쟁하여 여력이 충만할 수 있는 자리에서 가는 길 앞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아무리 농토가 크고 동산이 세계로 연하였다 하더라도 그 동산 가운데 그런 결실이 있다 하면, 주인은 그곳으로 발걸음을 더듬어 그 결실된 모습을 바라보고 그 자리에 기대를 가질 것이 아니냐. 그런 시간을 가진 단체라면 그 단체는 고독한 단체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고독한 사람일 것입니다. 횡적으로는 지극히 고독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독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사계절에 해야 할 것을 한 계절권내에서 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의 탕감복귀라는 내용이 아니냐. 탕감조건을 통하여 시대적 사명에 적응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여러분들은 필생 노정에서 온갖 정성을 다하여 자기의 생애를 피력할 수 있는 날을 몇 날이나 가졌느냐? 하루도 춘하추동의 계절을 대신한 것입니다. 일년을 가지고 세계사적인 봄절기를 대신할 수 있고, 여름절기를 대신할 수 있고, 가을절기를 대신할 수 있고, 겨울절기를 대신할 수 있는 최고의 한해를 갖고야 쓰러지겠다 하는 결심을 해보았느냐?
`오늘날 찾아오는 그런 한해의 봄날은 인류역사의 비운의 봄날을 능가할 수 있는 탕감의 봄이오니 봄이여 찾아오소서. 인류역사의 여름절기를 맞지 못하였던 것을 탕감할 수 있는 내 일대에 세계사적인 승리의 결실로서 가질 수 있는 여름절기여 찾아오소서. 가을절기여 찾아오소서. 겨울절기여 찾아오소서' 하며 겨울절기를 맞이하여 한 금을 긋게 될 때는 내 일대에 봄절기를 맞이할 수 있는 운세가 올 것이 아니냐.
거기에는 찬바람이 몰아치더라도 하나님이 옹호하는 온상에서 하나의 결실로서 자랄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다는 것을 생각하고 탕감적인 생활권내에 있을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필시 우리 앞에 그런 길이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기대했던 길이겠느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들은 그것을 일년에 못 하겠으면 4년동안에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4년 동안에 안 되거든 40년 동안에라도 해봐야 될 것이 아닙니까? 동서 사방을 중심삼고 일년이 천년 같고 천년이 일년 같다는 하늘의 계수법을 우리가 이때 활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느 한 시대에 있어서 그러한 위치를 갖춘 적이 있느냐? `내 일생에 있어서 요때는 뺄 수 없다. 잘먹고 잘살고 내 마음대로 하고, 금년에는 운이 트여서 모든 것이 만사형통이로구만' 하면서 사람들과 더불어 큰 웃음을 웃고 천지가 진동하게끔 살았다고 해서 그것이 여러분 일생에 있어서 추억의 해요, 기념의 해가 될 수 있느냐? 아닙니다. 오히려 공적인 입장을 생각해서 사지(四肢)가 사방으로 찢어지고 긁혀 가지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기를, `이것이 전부다. 이제 내 목숨이 최후의 맞이 하는구나' 하는 비극이 엇갈리는 자리에서도, 생사의 기로가 교차되는 순간에 있어서도 `나는 없다' 하는 그 경지를 다지고, `있다 하는 그 가치의 내용은 하나님만이 결정하여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경지를 거칠 수 있는 수난의 한때와 한해를 맞으면 그것은 일생 동안 여러분이 사망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죽어갈 때는 추억의 해로서 남아질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예요.
타락한 인간으로서 잘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입니다. 잘살겠다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칠십 가까운 할머니를 보고 `잘살았소?' 하고 물어 보라구요. 그래 여기 할머니, 잘살았어요? 대답해 보라구요. 「…」 못살았지요? 누구에게 물어 봐도 잘살았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잘사는 사람에게도 `잘 살았습니까, 못 살았습니까?' 하고 물어 보면 잘살았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있다고 생각해요? 어느누구에게 물어 보라구요. 대학교 총장한테도 가서 물어 보라구요. `글쎄…' 그렇게 대답하지. `아, 그렇구 말구' 하는 사람은 없다구요. 안 그래요? 있다고 생각합니까? 있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은 건달패라구요. 제대로 생각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생명의 골짜기에 들어가 가지고 참생애의 가치, 진수를 더듬어 본 사람이 아니라구요.
자, 여러분들, 보라구요. 여러분들이 한 80살 살았다고 합시다. 그 가운데 밤에 자는 시간을 제하고 나면 40년으로 떨어집니다.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입니다. 자는 것도 사는 건가요? 자는 것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 안 그래요? 자는 것은 죽은 목숨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24시간 가운데 살겠다고 허덕이는 시간은 절반밖에 더 돼요? 또 거기에서 밥 먹는 시간을 한 시간씩 빼 버리고 나면 어때요? 밥 먹는 시간은 한 시간은 잡아야 돼요. 밥 먹기 위해서 수고하는 시간까지 잡으면 두 시간 이상 잡아야 된다구요. 내가 그것 잘 안다구. 쌀을 씻고, 불을 때 가지고 차리고 하려면 30분 걸리더라 이거예요. 그걸 다 먹고 하려면 두 시간 이상 잡아야 된다구요. 또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 먹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하루 밥먹는 시간 여섯 시간을 빼 버리면…. 그렇기 때문에 출근하는 사람들은 자기 혼자 하게 되면 여덟 시간 일하기 어렵게 돼 있다구요. 사실은 자기 여편네들이 협조해 주기 때문에 여덟 시간 근무라는 말도 나오지 앞으로 여섯 시간 노동시대가 와야 된다는 말도 나오게 된다구요. 밥 해먹고 다니려면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 또 그 가운데 친구 잔칫날, 이웃 동네 어른의 환갑날, 누구 죽는 날, 장사지내는 날, 별의별 날을 다 제하고 나면 일생에서 산다고 하는 날이 절반이나 될 것 같아요? 요전에 계산해 보니까 산다고 하는 것이 7년이 나와요, 7년. 그 7년 가운데 진정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는 날이 며칠 나오느냐 말예요. 며칠이 무슨 며칠이예요?
그래, 시집가던 날, 장가가던 날 좋았어요? 좋기는 뭐가 좋아요? 색시는 신랑이 어떻게 생겼나 하고 만날 때까지는…. 옛날에 결혼한 사람들은 말이예요. 첫날밤 신랑 얼굴을 볼 때까지는 어떤 사람을 만날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는 것입니다. 보지도 못하고 결혼을 했거든. `아이구, 하늘이여! 도우소서. 운명이 판결나는구만' 그 심정이 어땠겠어요? 가슴이 달랑달랑했다는 거라구요.
또, 요즘에는 뭐 봄바람이 불어 왔다고 자기들끼리 동으로 서로 걸음 걸이를 같이하다가 결혼을 했다고 해서 잘사느냐? 잘살기는 뭘 잘살아요? 그럴수록 빨리 구멍이 뻥뻥 뚫어진다구요. 살다 보면 부처끼리 싸움하고,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처끼리 사는 생활이 행복해요? `아, 우리 부부는 그만하면 참 재미있고 금실이 좋아' 할 수 있어요? 금실은 무슨 금실. 살아 보라구요. 살아가려면 아무리 금실이 좋더라도 환경적으로 바람이 불어 오게 되면, 삐뚤삐뚤하는 거라구요. 그건 이렇게들 전부 다 제하고 얼마나 재미있게 살았어요? 얼마나 깨가 쏟아지게 고소하게 살았어요? 깨가 오소소 떨어진다고 하지요? 얼마나 재미있게 살았어요? 여기 아저씨 아주머니들, 재미있게 살았어요? 그거 보면 참 기가 막힌 인생이라구. 거기에서 뭐 성공하겠다고 눈에 횃불을 켜고 들썩들썩하는지…. 명동 거리를 지나가 보면 한심해요. 들썩들썩하게 뭐…. (웃음) 이런 걸 보면 기가 막힌 판국이라구.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구요, 인생이란 게.
이렇게 보게 된다면 자랑할 때가 있느냐? 세상에서 `아이구 좋았다'고 자랑할 때, 진짜 좋았느냐? 진짜 좋았다면 그 진짜는 세계적이라 그 말이라구요. 그렇지요? 진짜가 가정의 울 안에서 진짜가 돼요? 진짜란 것은 유일무이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세계적이요, 우리 통일교회 술어로 말하면 천주적인 정상의 자리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래 여러분들, 진짜 좋았어요? 자기 울타리 안에서 부처끼리 좋아하는 것이 세계적이예요? 그것이 세계가 기념할 수 있는 대표적인 내용이예요? 아니지요. 좋긴 뭐가 좋아요? 진짜가 아니라구요. 가짜라구 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이어야 된다구요.
남자로서 장가가도 세계적이어야 됩니다. 영계와 하늘땅, 통일교회 술어로 말하면 천주적이어야 됩니다. 결혼식 날이 오면 영계에서도 `야, 결혼식 날이 온다' 하고 땅에서도 `결혼식 날이 온다'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한 남자와 한 여자라도 세계적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가정은 세계적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세계적인 가정을 통하면 세계적인 종족이 나오는 것이요, 세계적인 민족이 나오는 것이요, 세계적인 국가가 자동적으로 형성되는 거라구요. 시일이 지나가면.
여러분들이 `아, 나는 지금 따라지로 살고 있지만 내 후손 일족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민족이 될 것이다' 하는 자신 있어요? 자신이 있어요, 없어요? 우리 축복받은 가정들은 그런 신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가을에 한 씨를 중심삼고 말이야, 조씨면 조씨를 중심삼고, `이놈의 조야, 너 세계적이야?' 할 때, `세계적이지 뭐, 그런데 그건 왜?' `너는 대한민국에서만 나니?', `난 세계 어디에 가도 난다' 하면 그것을 누가 거부할 자가 없는 거라구요. 여러분, 종족이면 종족을 누가, 온천지가 공인해요? 이것을 따지고 보면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그래 진짜 좋은 날을 못 가졌다는 거예요, 아무리 큰소리쳐도. 그러면 진짜 좋은 날을 갖겠다고 생각이나 해봤어요? 그런 날을 못 가졌으면 생각이라도 해봤어요? 기대라도 가져 봤어요? `이제 들어 보니 기대를 가져야 되겠구만' 하는 사람이 많지, 기대를 가졌던 사람은 찾아볼 수 없더라구.
우리 통일교회에서 결혼한다 하게 되면 말입니다. 통일교회 패들은 모르긴 모르지만 선생님이 `통일교회 축복결혼이란 천주사적인 내용이 있느니라'고 설명을 했기 때문에 설명으로는 훤합니다. 설명으로는 훤하다구요. 내용은 모르지만…. 그 내용까지 갖추면 그냥 세계적인 위인이 되는 거라구요. 이론은 그렇다구. 이론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만 되게 되면 그 사람은 세계적인 사람이 된다는 거라구요. 그게 안 된다면, 통일 교회는 사기당이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님은 사기당 왕초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기분 좋다'고 하겠어요? 자기가 사기당 왕초가 돼 가지고 기분 좋다고 하겠어요? 거기에 무슨 소망이 있겠어요? 그렇지만 난 소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당장 죽게 되더라도 나는 무서워하지 않을 사람이라구.
여러분이 어디에 가서 앉는다 하더라도 쓱 돌아봐요, 안 돌아봐요? 가자마자 앉아요? 쓱 돌아보고 어디가 좋겠는가 찾고, 안 찾소? 찾지요? 안 찾으며 사람이 아니라구.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 애기들도 그렇지요? 어디에 가더라도 앉으려면 주위를 한번 돌아보고 앉지요?
또, 방에 척 들어가더라도 별의별 것이 너절하게 널려 있는 그 가운데 털썩 주저 않소? 있더라도 다 치우고, 그러고도 무엇이 남았을까봐 훅 불고 난 다음에 요렇게 앉지요? (웃음) 그러지 않아요? 왜 웃어요? 사실 그렇지 않소? 어디 가서 잠깐 앉는 데도 둘러보고 좋은 데 가서 앉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거늘, 하물며 일생을 사는데 그냥 그대로 살래요? 여러분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어디 가서 살아야 되겠다고 찾아 봤어요? 찾아 봤어요, 여러분들? 그래야 되는 거라구요. 몇 분 동안 앉아 있을 자리도 그렇게 찾아 가지고 앉겠다고 하거늘, 일생을 사는 데 있어서 구별된 자리를 찾아가 가지고 살지 않겠다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망종(亡種)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기대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 오늘날 사회를 두고 볼 때 `내가 어디 가서 찾아야 할 것인가? 대한민국에서 어디가 제일 좋던가? 가서 한번 찾아 보겠다' 해 가지고 찾아본 적이 있어요? 여기 청년들 많구만. 찾아 봤어요? 소위 대학교 다녔다는 패들도 왔구만. 찾아 봤어요? `경제학과면 경제학과에 들어가 가지고 그저 이러면 되는 거지' 하지만 그렇게 되게 안 되어 있다구요. 하나님은 믿더라도 말입니다. 이왕지사 믿을 바엔 금방석을 갖다 놓은 자리에 가서 믿고 싶지 않아요? 난 그렇다구. 종교를 믿더라도 데데하게 믿을 게 아니라 이왕이면 금방석을 싹 깔아 놓아 가지고 정한 자리에 앉아 믿겠다, 그런 생각 안 해봤어요?
오늘날 인간들은 세상에서 암만 찾아 봐도 좋은 곳이 없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한테 물어 봐도 `나는 세상에서 미련 안 갖고 천국 이루어서 살겠다' 이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런 곳을 세계적으로 못 만들면 내 안방에 만들어 놓고, 안방에도 못 만들거든 그러한 조건을 세워 놓고 그 조건 위에 서겠다는 마음을 갖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생 동안 살았다면, 그렇게 깨끗이 살았다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원하실 것입니다. 데데한 사람을 고르지 않는다구. 그저 사방에 똥을 묻히고, 앉아도 풀석 주저앉고 말이야, 여자로 말하자면 재수머리 없는 여자를 찾아오시겠어요?
자, 봄절기가 좋다 해 가지고 봄절기에 매양 있을 것이냐, 여름절기에 매양 있을 것이냐, 가을절기에 있을 것이냐, 춘하추동 사시절을 풍류를 즐기면서 감상하며 살 것이냐? 어떻게 살려고 생각해요? 이 머리는 비상한 머리라구. 된장통이 아니라구. 거룩한 생각을 하고 멋진 생각을 하고 멋진 생활을 가려 가면서 살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최고의 머리를 준 게 아니냐 이겁니다. 안 그래요? 똥통 같아서는 안 되겠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씨가 되었으면 봄날을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가을에 심어져서 싹이 나와 가지고는 움텄다고 `아이고, 나도 싹이 나왔다. 아이구 좋아. 아이구 좋다' 하고 좋아한다면 그 녀석은 미친 녀석이라구요. 차라리 두어둔다면 갈무리라도 하지. 때를 모르면 안 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 때로 말하면 통일교회의 때가 어느때냐? 통일교회의 때는 언제나 같지 않아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는 길은 언제나 봄날이 아니라구. 언제나 여름날이 아니라구. 통일교회에 가을날이 안 오면 내가 가을날을 만들 것입니다. 내가 여름날을 제시할 것입니다.
시험 치지요? 노는 학생에겐 언제나 봄이지요? 언제나 여름 같지요? 그렇지만 시험을 치게 되면 `아이구, 나 죽었소' 합니다. 가을도 안 오고 푹싹 쓰러지는 거라구. 그렇지요? 마찬가지라구. `아이구. 그거 뭐 시험이고 무엇이고 다 필요없어. 될 대로 되라지'하며 꺼덕거리고 다니던 녀석들도 시험장에 들어갈 땐 도살장에 끌려가는 황소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이 센 황소가 있다 하더라도 그 황소가 도살장에 들어가게 되는 신세와 마찬가지라구요.
옛날에 선생님이 도살장 구경 했어요. 백정이 암소 잡는 것도 봤고, 황소 잡는 것도 봤고, 암송아지, 숫송아지 잡는 것도 다 보았다구. 뿔질 잘하는 고약한 황소라도 도살장에 들어가게 되면 벌써 알아요. 눈이 시뻘개져 가지고 까꾸로 서서 안 들어가겠다고…. 알거든 그거. 자기가 살고 있는 외양간이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사방이 다 막혀서 집같이 아늑하니 좋다고 들어갈 텐데 말이야, 그저…. 이걸 이끌어 내 가지고 쇠방망이로 한번 후려갈기면, 암만 큰 황소라도 세 대 이내에 뻗어 가더구만.
준비하지 못한 사람에겐 그러한 운명의 때가 있는 거라구요.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다는 겁니다. 정상적인 궤도를 가지 못한 사람들은 비참한 날이 예고없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예요. 자연법칙이예요.
자, 그러면 통일교회 시대는 어떤 시대냐? 여러분, 알아요? 봄날을 거쳐 가지고 여름절기를 맞이했다면 하지를 거치고 삼복지절을 거치게 되는 것입니다. 삼복지절은 냄새가 많이 나는 때입니다. 그렇지요? 그 때에는 통일교인 가운데 썩어져 냄새나는 패들도 나올 것이고, 무성한 패도 나올 것이 아니냐. 구더기가 끓는 패들도 있다구. 그래서 가을날이 올 것입니다.
찬바람이 부는 가을날에는 누구를 동정하다가는 내가 죽는 거라구. 그렇지요? 가을날에 접붙이려고 했다가는 죽는 거라구. 그렇지요? 그런 냉정한 바람이 어느 사람에게나 소스라치게 불어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은 왜 이렇게 쌀쌀해' 하는 때가 있는 거라구요. `진리는 좋다마는 사람은 참 냉정하구만, 사랑이 있어야지. 그렇지만 개성은 또렷또렷하구만' 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마당질을 하게 될 때에는 서로 부딪히는 거라구. 마당질을 할 때처럼 그렇게 들이치는 거예요. 그러면 안 떨어져야 되겠다는 녀석들이 먼저 떨어진다구. 이놈이 저놈에게 부딪히고, 저놈이 이놈에게 부딪히고, 그러면서 전부 다 떨어지고 비비고 볶고 한다구. 그렇기 때문에 여자에게는 남자 놀음을 시키고, 남자에게는 여자 놀음을 시키고, 아버지에게는 애기 놀음을 시키고, 애기에게는 아버지 놀음을 시키는 것입니다. 아래 것이 위로 가고 위에 것은 아래로 가고, 동쪽이 서쪽 되고 서쪽은 동쪽 되고, 남쪽은 북쪽 되고 북쪽은 남쪽 되고 사방으로 볶아치는 것입니다. 대학 교수가 오면 유치원 학생 모양으로 취급하고, 할머니가 오면 애기 취급하고…. 그런 놀음을 한다구요. 전부 다 그렇게 볶아치는 것입니다.
마당질할 때 보게 되면 그렇다는 거라구요. 안 그래요? 까딱 잘못하다간 지나가던 닭새끼가 마음대로 쪼아먹을 수도 있는 겁니다. 마음대로 건드릴 수 있는 때라는 거예요. 그런 때가 온다구. 그것을 다 거치고 나서야 그 다음에 주인이 거두어들이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마당질하게 돼도 쭉정이 날아가는 그 곳으로 절대 안 가려고 하는 거라구. 거기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위험하다는 거예요. `내가 잘못했더라도 내 꽁지에 파리 한 마리라도 붙어서 멀리 날아가지 말고 여기 맨 복판에, 제일 알곡만 쌓이는 데 떨어지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렇다는 거라구요.
통일교회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 통일교회에도 여기서 종자, 즉 씨앗을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저 영감, 종자를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영감,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데 왜 눈을 이러고 고개를 숙여요? 똑바로 보지.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그래? 그래, 영감은 종자, 즉 씨앗 될 자신 있어요?「자신 없습니다」자신 없으면, 자신이 있게끔 가르쳐 주면 그렇게 할래요?「예」얻은 색시를 씨앗 쌈지로 사랑하라구요. (웃음)
자기 주제에 여자들이 보고 천리만리 도망 안 간 것만도 고맙다고 생각하고 천지신명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면서 빌어야 된다구요. 얼굴 좀 들라구요. 영감, 팔십이 넘었는데도 좋습니까? 주제에 입은 살아서 뻔뻔스럽게 얘기는 잘하지. `그저 여자 같은 허울만 써도 좋습니다. 죽어가는 할머니라도 붙들고 결혼하라고 하면 하겠습니다' 하고 수작하지 않았어요? 그럴 때는 언제고, 지금은 좋다고 그런다는 소문을 내가 들은 것 같아요. 영감, 좋다고 하지요? 너무 좋아서 그랬겠지. 너무 좋아서 그러지요?「예」그래도 말이 좋고 귀가 좋고 참 좋긴 좋아. 만약에 귀가 없었더라면 암만 얘기해도 어떻게 알아듣겠나? 그거 생각해 보라구요.
서로 부대끼던 어젯날의 친구가 오늘의 원수로 등장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왜? 주인이 씨를 고르려고 할 때는 알밖에 고르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냐, 이것이냐, 이것이냐를 가려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들을 놓고 괜히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예요. 식구 되겠다고 들어오게 되면 쓱 올 때 저 사람은 얼마나 오래 남아 있겠느냐 하는 것을 보는 거라구요. 쓱 볼 때, 눈부터 보고 상통부터 달아 본다는 것입니다. `아, 저 사람은 몇 퍼센트다' 하고 금을 그어 보는 거라구요. 그렇다고 몇 퍼센트 취급한다고 선언은 안 해요. 너는 몇 퍼센트니까 몇 퍼센트 취급한다고 그러지는 않는다구요. 몇 퍼센트다, 금을 그었지만 그 사람은 모르지, 그렇지만 자기가 백 퍼센트라고 춤을 춘다구요. 잘한다 잘한다 하지만 거 잘하나? 운동장에 갔을 때 구경하는 사람들이 운동선수들에게 잘하라 잘하라 한다고 전부 다 일등이 나올 수 있어요? 잘해라 잘해라 하는 가운데서 일등이 나온다 그 말이라구. 알겠어요? 안 그래요? 전부 다 일등이 되면, 상은 하나 있는데 어떻게 해요? 잘해라 잘해라 하는 가운데서 가려져 가지고 잘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나머지는 다 쓸데없는 것입니다.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부끄럽지나 않지, 그렇지요? 통일교회에도 그렇게 부끄러운 날이 온다 이거예요. 그런 날이 없을 것 같아요?
내가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 일이 하나 있어요. 친구 결혼식 날인데 내가 들러리를 섰다구요. 그 때가 왜정 때인데, 목포에서 일등 가는 부자집의 외동딸이 시집 가는데 말이야. 내가 들러리도 다 서 봤어요. 나는 평안북도 정주에 있었는데 결혼식 하는 데는 부산이라구. 방학 때여서 내가 고향에 가 있다가 전보를 받았는데 들러리할 때 필요한 일체는 여기에서 다 준비했으니 들러리 준비는 불필요하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선생님이 준비할 것이 뭐야. 그때는 사람들이 국방복을 입던 때라서 그것을 입고 잔칫날에 그곳을 찾아간 거라구. 떡 찾아가 보니까 큰 잔치판이 벌어졌어요. 그때는 들러리가 요즘처럼 뭐 모닝코트니 하는 것을 입지 않았습니다. 예복 같은 것을 입지 않고 국방복을 입고 그냥 그대로 꽃을 달고 식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구.
그런데 그곳에 가 보니까 신식결혼식이 떡 벌어졌더라구요. 그래 가지고 들러리 옷이라고 준비해 놨는데 그것을 떡 입으니 (행동으로) 이렇게 되었어요. (웃음) 그 옷을 내가 입겠다고 해서 입은 것이 아니라 몇 사람이 옷을 하나씩 골라 가지고 입었는데 다 맞는데 내 것만 떡 그렇게 됐더라구.
크고 작은 것이 있기나 하면 바꿔 입을 수도 있을 텐데 바꿔도 못 입게 딱 그 옷만 있으니 할 수 있어요? 이것도 내 팔자로다 별수 있나 그래 가지고 그걸 이렇게 (행동으로) 입고…. (웃음) 이래도 나와 이게. 그때 그 와이샤쓰는 왜 그렇게 긴지. (웃음) 그때 일이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 거예요.
그것을 사람들이 할수없이 보고 있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예민한 사람이라구. 그 사람들이야 할 수 없이 본다 하지만 내가 어울리지 않으니까 할 수 있나. 우물쭈물한 거라구. 뭐 잔치에 들러리가 아니…. 아줌마가 바라봐도, 아저씨가 바라봐도…, (웃음) 그 부모는 얼마나 창피했겠어요? 내가 그러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러고 있으니…. (웃음) 잔치하는 주인부터 색시, 신랑 할 것 없이 전부 다 내가 그러고 있으니 잔치에서는 빵점이라구. (웃음)
그 일을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보호하사…. 그렇게 생각해요. 그날 그때 느낀 것이 평생 안 잊혀지거든요. (웃음) 그런 일을 당했기 때문에 어제 어느때든지 결혼하는 사람만 보면, 그 사람들은 자기들을 생각해 줄 수 있는 들러리를 가졌으니 얼마나 복된 가정이냐 말이예요. 그런 얘기예요.
그러고 보면 선생님이 참 배포가 좋다구. 내가 해 입고 갔더라면 결혼식에 참가한 사람들의 예복 중에 세계사에 남을 수 있는 기록이 될 텐데, 해준 것을 입었으니 이건 뭐 여기도 못 믿고 저기도 못 믿는 거라구. 그렇잖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같이 그 환경에 어울리지 못하면 거북한 때가 있지요? 거북한 것이 극하여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것이 더 낫다 하는 때를 맞이해 봤어요? 이거 뭐 어쩔 수 없는 그런….
자, 인간세계에서도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히 인연된 그 한 곳, 그곳은 일생을 바쳐서 찾아가 머물기를 소원하던 곳인데, 그곳에 가 가지고 그런 창피를 당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거기서 한하여 되돌아 서 가지고 `아, 이거 안 됐다'고 하면서 다시 수습할 길이 있을 수가 있느냐? 그럴 시간도 없고 또 그럴 수도 없는 입장이 되니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럴 때가 여러분들이 가는 생애의 종말에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고빗길이 반드시 남아질 것입니다. 그것을 예상해 가지고 타개할 수 있는 준비를 한 사람은 만세의 역사를 지닐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봄날, 여름날, 가을날, 겨울날을 맞아 남아질 수 있는 통일교인은 어떠한 사람이냐? 그렇게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구요. 통일교회에 어울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주인한테 어울려야 되고, 그 식구들과 어울려야 되고, 그 환경에 어울려야 되는 것입니다. 봄날이 왔다는데 `나는 가을날이야' 하며 도사리고 앉아서 짭짭하지 말라 이거예요. 가을날이 됐는데 여름날이라고 하면서 싸움이나 하는 것들은 다 서리를 맞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계절을 따라 방향을 갖추어서 그 위치에 보조를 맞추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보조를 맞추는 데 있어서 슬픔으로 맞는 패들에게는 결실이란 없는 것입니다. 마지못해서 `아이구, 선생이라는 그 괴물이 또 명령했구만' 또 `좀 잘살려고 하는데 이것이 뭐야? 언제는 뭐 축복을 해주더니 이것이 또 뭐야?' 거기에 불평 불만을 하며 마지못해서 `아이구' 하는 패들은 스스로 망한다는 것입니다.
가기를 슬퍼하는 그런 노정에 봄날이 어디 있으며, 여름날이 어디 있으며, 가을날이 어디 있으며, 겨울날이 어디 있겠느냐? `봄아 오너라, 내가 바라던 것이요, 여름아 오너라 내가 바라던 것이요, 가을아 오너라 내가 바라던 것이다. 이제는 내가 결실되었으니 폭풍우야 한번 들이쳐라. 북풍한설아, 몰아쳐라. 그것을 기쁨으로 맞아 가지고 남아질 수 있는 영광의 씨앗이 되고, 그 씨앗으로부터 봄날에 돋아나는 새싹이 될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 못 하느냐 이거예요. 거기에서 `난 싫어' 하면 그것으로 죽는 거라구요. 고자리 같은 벌레가 먹든가 해서 꺾여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소망이 배가되어 가지고 천지에 없었던 수확기가 오기를 바라고, 천지 역사상에 단 한 번밖에 없는 무성한 여름계절이 오기를 바라고, 봄계절이 올 것을 바라고, 수확기를 지낸 뒤에 재봉춘할 수 있는 새날을 맞기 위해서는, 우리 `통일교회 자체 내에서 선생님이 들이치더라도 꺾이지 않는다. 한번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왜 이런 기대를 못 갖느냐 이거예요.
선생님도 그렇다구요.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번번이 `요렇게 해라' 하며 살랑살랑 달래는 것입니다. 그렇지, 맨 처음에는? 키우는 데도 유아기가 있다구요. 그저 꺼질세라 날아갈세라 살랑살랑 키우고 그 다음에는 기어 다니고 그 다음에는 걸어 다니는 거라구요. 밥을 먹는 데도 절반은 숟갈을 (행동으로) 이렇게 잡고 퍼넘기는 거라구요. 철부지 모습을 해 가지고 전도한다고 많은 사람을 죽이고, 환경을 문질러 놓고, 똥을 싸 가지고 망치는 패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런 때니까….
그러다 철이 들면서 `아, 엄마다' 해 가지고, 엄마가 좋아하나 안 하나 보면서 노는 것입니다. 우리 국진 애기가 태어난 지 1년밖에 안 되었는데 말이야. `얘야, 이리와' 해도 안 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서 사뿐히 싹돌아다보고 내가 기분 나빠하는 것 같으면 `헤헤헤-' 이럽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요 녀석, 영리하구나' 하고 생각해요. 애기들도 눈치를 봐 가지고 `아, 안 되겠다' 하고 보조를 맞추는데 말이야. 이건 대갈통들이 전부 돌통이 다 되었다구. 눈은 멍해 가지고 `가자!' 해도 멍하니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아예 죽을 징후라구요.
이왕지사 세계사적인 가을절기를 맞이해 가지고 새로운 씨앗을 선별하는 이런 때에 있어서, 기성교회에서 거두는데 덜되긴 덜됐지만 볏단과 더불어 같이 쓸려 들어온 것이 여러분 아니냐 이겁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은 기성교인들보다 통일교회 패들은 낫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그래도 볏단이 쭈그러졌든 어쨌든 그래도 달려 들어왔다구요. 들어왔다고 해서 그냥 그대로 밥이 돼요? 마당질을 해야지. 마당질을 해야 된다구요. 들어오기는 들어왔지만 그런 놀음을 해야 된다구요. 여기에서 선별하기 위해서는 전부 다 새로운 방식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 선별 기간이 필요한 거라. 그래야 씨앗을 만드는 거라구요. 그러니 그 과정에는 여러가지…. 여러분, 좋다고 생각하지 말라구. 여기 들어왔으니 마당질당해야 한다구요.
그러니 통일교회가 봄날을 맞이했으면 이것은 역사적으로 소망하던 기쁨의 날이요, 하늘땅이 소망하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기뻐서 봄을 맞이하고, 여름을 맞이하고, 겨울을 맞이하겠다고 이렇게 고지를 달려 가겠다고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여러분들, 지금의 마음 자세는 어때요? 조금만 수고롭고 조금만 힘들면 `아이쿠' 해 가지고 싹 빠져 도망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면 안 되는 거라구요. 웃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 이왕지사 그러려면 왜 그래? `선생님, 저에게 3년 동안 휴가를 주십시오. 그러면 3년 동안 못 간 것 대표해 줄 테니까요' 이렇게 멋지게 나오라구요. 그러면 내가 아주 멋지게 휴가장을 써 줄께. 그렇게 나와 보라구요.
봄날을 맞이하여 `나는 봄만 좋아해. 여름은 필요 없어' 하는 사람은 망하지 말래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60년대에 통일교회에 들어온 패들이, `그때는 선생님이 전부 다 키워 주고 그랬지. 그때가 참 좋았어. 지금은 뭐…' (웃음) 뭐 요지경판이라구요. 그때는 봄날이야. 애기로 말하면 젖먹이고 기저귀 채워 주고 그런 때인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걷고 국민학교에 다니고, 중·고등학교쯤 다니게 되면 앞으로 대 사회적으로 훈련을 시켜야 되겠기 때문에 대 사회적인 접촉을 시키는데, `아이구, 나는 싫어!' 합니다. 대학교에 간다고 해서 놀러 가나요? 공부하기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공부하기가 좋아요? 할 수 없으니까 하지요. 안 그래요? 어디 공부하기 좋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시험치기 좋아요? 할 수 없어서 하는 거라구요. 시키는 사람도 좋지 않을 거라구요. 이왕지사 뭐 전부 다 졸업시키면 좋은데 왜 떨어뜨리고 그래요.
그래 나도 할 수 없이 여러분들에게 시험 치게 해야 된다구. 문제는 종이장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구요. 통고장을 전달해 가지고 `자, 삼천리 반도를 순방해 와라. 땅굴을 파고 와라' 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건설하려면, 앞으로 천국을 건설하려면 말뚝도 박고, 뼈대도 세우고 하는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예요?
다리를 놓기 위해서는 겨울인데도 산을 헐어 얼음덩이 위에다 돌덩이를 쌓아 놓으라는 것입니다. 돌덩이를 왜 쌓아 놓느냐? 겨울날에 얼음 위에다 돌덩이를 쌓는 녀석은 미친 녀석 같지만, 봄날이 되어 그 얼음이 녹으면 그것이 다 그냥 그대로 가라앉아 가지고 물 가운데 산더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걸 생각할 때, 얼음 위에다 돌덩이를 쌓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다는 거라구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아이구, 물도 없는데, 얼음이 얼었는데 거기에 돌은 왜 쌓는지 그것 참 모르겠구만!' 그 격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보라구요. 통일교회에 선생님이 없으면 통일교회가 지금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이 선두에서 지휘하면 여러분들은 `아이구, 선생님이 또 시작이구만. 선생님은 팔자를 그렇게 타고 났으니까 좋아서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팔자 안 타고나서 좋지 않으니까 못 하겠다'고 하지요? 고약한 팔자를 타고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이 고달픈 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느냐 말이야? 살아 있는 자체는 고달픈거야. 여러분들이 지금 앉아 있지만 살아 있다는 자체는 사망과 생명의 싸움에서 사망권을 제압하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숨을 잘못 쉬는 날에는 사망의 권세가 `너 걸려들었구나' 하면서 까꾸로 꽂는 거라구요. 그러니 여기에는 무한한 힘이 나를 제압해 가지고, 내 생명의 위력을 배양시키기 위해서 우주의 자연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는 거라구요.
지금 몸뚱이에 1기압이라는 공기의 압력이 있어 가지고 몸의 형태, 즉 체형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느껴요? `1기압의 힘이 이렇게 밀고 있다' 하는 것을 꿈에라도 생각해 봤어요? 그것이 없게 될 때는 뼈다귀까지 날아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그렇지만 사실은 누구고 느끼지 못해요. 마찬가지라구. 여러분의 생명의 밑바닥에는 사망을 제압하는 힘이 터전이 나를 보호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느껴 봤어요? 이것이 무너지는 날에는 왕창 일시에 습격하는 거라구요.
그러한 생명을 가지고 어디에 가서 거꾸러질 거냐? 죽다 보니 원수의 안방에서 죽었다면 좋겠어요? 원수를 만나 싸우려고 찾아갔다가 앓아 누워서 원수의 웃방에서 죽었다면, 그 원수의 여편네가 원수인 줄도 모르고 시중을 들어 주었는데, 주인이 돌아와서 보고 `아니 이녀석, 원수였구만'할 때에, 그 죽어 나가자빠진 녀석을 보고 뭐라고 그러겠어요? `요녀석아, 내가 너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총칼을 준비했다. 이놈! 죽어서라도 한번 맞아 봐라!' 한다는 것입니다. 죽어서도 칼침을 맞는 거라구요.
그래 여러분들은 죽을 때에 원수의 웃방에 가서 죽을래요? 원수의 웃방에서 죽는 것보다는 원수의 변소간에서 죽는 것이 낫다구요. 또 변소간에서 죽는 것보다는 울 안에서 죽는 것이 낫고, 울 안에서 죽는 것보다 앞 뜰에서 죽는 게 낫고, 앞 뜰에서 죽는 것보다 원수의 밭뙈기에서 죽는 게 낳고, 밭뙈기보다는 논뙈기가 낫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죽을 때에는 원수에게 가까이 갈수록 나쁘다는 거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그래,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원수예요, 원수 아니예요? 「원수입니다」 그거 진짜 알아요? 「예」 저 영감, 알아요? 원수인줄 알아요, 몰라요? 이 사망세계가, 이 땅이 하나님의 원수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지금 원수의 웃방에서 살아요, 아랫방에서 살아요? 어느 방에서 살아요? 주인은 원수니까 여러분들은 안방에서는 못 살고 웃방 아니면 사랑방에서 사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죽을 때 어디에서 죽으려고 해요? `어디서 죽긴 어디서 죽어, 내가 난 데서 죽지' 그러니 결국은 원수의 안방이 아니면 사랑방 아니면, 혹은 뒷방에서 죽을 것입니다. 원수의 동네에서 죽는 것입니다. 원수의 나라에서 죽는 것입니다. 좋아요? 원수의 세계에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걸 생각해 보라구요. 부르르 치가 떨린다구요.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탈피할 것이냐? `내가 죽기 전까지, 죽어도 원수의 국경을 넘어서 가지고 나를 고대하고 바라보고 있던 내 나라의 산천초목이 있는 곳에 가서 죽어야 되겠다. 만약 그 경계선을 넘지 못하고 경계선을 넘다가 죽거들랑 경계선에 일직선으로 넘어지지 않고 몸뚱이는 경계선을 넘지 못하더라도 머리만은 경계선을 넘어가서 죽어야 되겠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경계선을 넘었다 할 때에는 `이 땅이 저 땅의 보좌보다 낫구료. 이 땅의 오막살이 집이 저 땅의 왕궁보다 낫구료. 이 땅이 나를 거지 취급하고 원수와 같이 취급하더라도 저 원수의 땅에서 나를 후대하던 타락한 개인보다 낫구료' 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 봤어요? 통일교회패들이 그러한 이념과 사상을 가졌다면 `여기에서 나를 못살게 하는 사람이라도 원수세계에서 나를 품어 주고 길러 주던 부모보다 낫구료' 하는 실감이 나요? `여기에서 못먹고 못살더라도 저기에서 잘먹고 잘사는 것보다 낫구료. 내가 이 땅에서 썩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혹은 동네 개가 뜯어 먹고 날아가는 곤충의 떼가 갉아먹더라도 저 땅의 호사스러운 무덤보다 낫구료' 하고 생각해 봤어요? 이것은 심각한 문제라구.
오늘 통일교인들은 그러한 경지를 가려 가지고 죽더라도 이 경계선 이하에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벌거숭이 몸으로서 다리가 긁히고 잘리는 한이 있더라도, 피투성이가 된 머리와 몸뚱이라도 어떻게 삼팔선 너머로 넘겨 가지고 죽느냐 하는 것이 필생의 심각한 문제요, 최고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것을 소망하고 나오는 복귀도상에 있어서 내일과 오늘의 한 전통을 가지고 살 수 있는 하늘의 보호권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상에 자랑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가 아니냐. 사망의 권세가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생활환경을 벗어나 가지고 내가 눈물을 흘리게 될 때, 누가 나를 동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영광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할 때, 대한민국이 그렇지 못한 것이 한이요,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가 그렇지 못한 것이 한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 한권내(恨圈內)에서는 죽더라도 그걸 수긍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떠한 자리에, 어떠한 위치에 서 있느냐? 때가 가까와 옴에 따라서 삼팔선은 다가오는 것입니다. 목표로 하는 이상이 가까와 오게 되면 여기에는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나라의 위험이 교차되고, 교회의 위험이 교차되고, 가정의 위험이 교차되고…. 전체가 일직선상에서 천적으로 전체 백성을 대표해서 나를 반박하게 될 때에, 여러분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무자비하게 그것을 격파하고 갈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거든 내가 국경선을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싸움을 제거시켜서 처단하고 국경선을 넘어가게 되면 내게 공신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찬사의 영광이 기다릴는지 모르지만, 그러기 전에는…. 그 나라가 오기 전에 내가 죽어 버리면 도리어 한의 요건을 남기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사망의 삼팔선을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맞아 싸움으로써 승리의 결정을 짓지 못하는 오늘날, 나만이라도 삼팔선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행각의 노정이더라. 그렇기 때문에 심각하지 않은 날들이 없다 이거예요. 웃어도 마음 놓고 웃지 못하고 웃음을 통하여 원수의 주목거리가 되고, 살아도 마음 놓고 살지 못하고 원수에게 침범받을 수 있는 무대가 사방으로 공개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제어하고 스스로 방비하면서 이 경계선 위에서 패자의 서러움을 막는 것이 새 역사의 사명을 짊어진 통일교단이 가야 할 운명길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가 부패하고 이 나라가 혼돈되고, 이 나라가 혼란되는 것을 볼 때, 그걸 보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우리의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기점을 중심삼고 세계 제패를 꿈꾸는 악당의 무리들은 이미 기력이 꺾이고 서릿발을 맞아 가지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현정세를 바라보게 될 때, 이때야말로 우리가 기동대를 발동해 가지고 적진을 격파할 최후의 공격진이 될 것을 다짐해야 할 때가 아니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루의 날들을 습관적인 날과 같이 맞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하루의 생활을 똑같은 생활로 보내려 하는 사람은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패배자가 되고 낙오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나는 통일교단에서 어떠한 시대를 맞고 있느냐? 봄시대냐, 여름시대냐, 가을시대냐, 겨울시대냐? 사시장철을 내 일신에서 응결시켜 가지고 하나의 생명의 여력을 지닌 새 씨앗이 되어 있느냐? 나는 희생하더라도 내 일족은 천세 만세에 봄날을 맞이할 수 있는 영광의 천국과 연결될 수 있는 무리로 남아질 것이다. 그런 기수로서 등장하겠다. 이 시대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을 남기기 위해서 나는 싸워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할 때는 우리 목전에 다가왔는데, 이 목전에 다가온 환경요건을 어떻게 흡수하여 소화 극복하는 자신으로서 저 경계선을 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심상치 않은 문제인 동시에 비장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흘러가게 되는 날에는 그 자리에서 죽는 거라구요. 쓰러지는 날에는, 객사하는 날에는 원수의 나라에서 주인을 지키고 동산을 지키는 개의 밥이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문을 출입하는 개새끼를 살찌우는 죽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구요. 여러분,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말뿐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구요. 하나님은 그런 비장한, 그런 결정적인 연결을 우리 생애노정을 통하여 다짐하고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럴 것이고, 여러분 후대의 후손들이 그럴 것이고, 오늘 우리 통일교단이 가는 운명이 그럴 것을 생각할 때, 그 운명을 우리 시대에 있어서 통합해서 해결지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집약 시켜 가지고 귀결짓느냐? 오늘날 남북이 교차되는 이런 정상시대를 바라보게 될 때, 여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최고의 결의와 최대의 결단을 중심삼고 최후의 목적을 향해서 총진군할 것을 결의하지 않고는 여러분은 낙오자가 될 것입니다.
나무에 달렸던 잎이 아무리 무성하다 하더라도, 그 피었던 꽃이 아무리 무성하다 하더라도 떨어지고 난 후에는 거름밖에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떨어진 그 자리에서 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미래에 보다 큰 통일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가 잎이 되었으면, 꽃이 되었으면 거름이 되는 것을 정상으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뭐냐 하면, 내가 갈 때는 통일교회에 거름이라도 주고 가는 자신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정상적인 잎의 사명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면 날아가는 잎이 되어 가지고는 잎으로서 거름의 사명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죽고 나면 통일교회 역사에 있어서 기억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죽고 난 후에도 추도의 대상으로, 흠모의 대상으로 남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 사망권에 태어난 이 원한의 근거지를 격파, 탈피해야 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사과정을 통해서 수많은 선조로부터 지금까지 인류가 암중모색하고 있는 와중에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가 한 목표를 제시하고 방향을 제시한 현시점에서 가야 할 행보를 더디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낙오자의 운명과 패배자의 서러움의 고배를 모면하지 못할 것이 아니냐.
우리 선조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쓰러지고 비참하게 사라져 간 것을 생각할 때, 내가 죽더라도 그 자리에 서 가지고 동참자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역사적인 필연의 운명이 아니었던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내를 사랑하고, 혹은 남편을 사랑하는 그 자리는 생각해야 할 자리이고, 자식을 품고 사랑하는 자리도 생각해야 할 자리이고, 누워있는 방바닥도 생각해야 할 자리이고, 살고 있는 나라도 생각해야 할 나라이고, 살고 있는 세계도 생각해야 할 세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래서 하나에 둘을, 둘에 셋을 배가해 가지고 종족 편성, 민족 편성, 국가 편성, 세계의 편성을 통하여 새로운 방향과 새로운 목적관을 제시해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창건하고자 하는 것이 통일용사가 아니겠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을 슬픔으로 맞을 것이냐, 기쁨으로 맞을 것이냐? 슬픔으로 맞는 날에는 열매를 못 보는 것입니다. 절대 열매를 못 보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그것을 흡수해 가서 영양을 취할 수 있는 자주력을 가지고, 어렵다 하는 그 자리에 있어서도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전에 청평에서 홍천으로 가다가 보니까 쭉 바위섬이 있어요. 그 바위섬 꼭대기에는 흙이 하나도 없는데도 바위틈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키는 작지만 가지가 무성했습니다. 그걸 보고 `너는 장하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바위 꼭대기에 뿌리를 박아 가지고, 마르고 그럴 텐데도 청청한 가지였어요. 가만히 살펴보니 그 아래에 강이 흐르고 있었어요. `아, 바위틈을 통해 가지고 끊임없이 수분을 흡수할 수 있는 길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여기에서 통일교회가 그래야 되겠다는 것을 생각 했다구요. 그 무엇인지 모르게, 남들은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생명의 보급선을 가지고서, 지극히 좁고 지극히 가늘지만 그것을 통해서 보급되는 그 여력으로 저렇게 푸를 수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그렇게 푸르게 될 것이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핍박받으면서도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나온 거예요. `십년, 백년, 천년이 가도 마르지 않는 영속적인 보급의 수원지를 갖추었으면…' 하는 것을 생각하고 이때까지 왔어요.
자리가 어렵다고 타박하지 말라. 그 어려운 환경에 있어서도 뿌리가 뻗어나갈 수 있는 틈바구니가 있거들랑, 그 밑에 흐르는 지하천이 있거들랑 걱정하지 말라. 거기에서 빛나게 자라게 될 때는 주인집 안뜰에 옮겨질 수 있는, 나무 중 보배의 나무로 등장할 수 있는 길도 있을 것이 아니냐. 안 그래요?
오늘은 유엔 데이(UN day)입니다. 10월 24일을 우리의 숫자로 보면 삼팔은 이십사(3×8=24)입니다. 10수는 하늘수이니까 하늘을 중심삼고 삼팔은 이십사 하게 되면 8수는 이상수, 즉 재출발수의 완성을 표상한 날이기 때문에 10월 24일에 국가적인 유엔 데이가 생긴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은 우리의 시대적인 위치를 중심삼아 가지고 갖춘 역사적인 자세와 현실적인 입장이 얼마나 중차대하며, 우리에게 맡겨져 있는 이 사명적인 본분이 얼마나 엄청난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이왕지사 본당에 심어졌으면 어렵더라도 콧노래를 부르며 나는 자란다고 자랑하는 자세를 가지고 여러분 자신의 꽃을 피울 수 있는 통일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통일동산에 가을절기 수확이 세계적인 수확으로서 나타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 자신들이 꽃 피우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어려운 길도 어려운 길이 아니예요. 반드시 있어야 되는 길이예요.
선생님도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런 고비가 있을 때마다 극복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대한민국이 3정권을 통해서 핍박해 오는 핍박 도상에서 사라져 가는 사나이냐? 3개국의 시련 도상에서 사라져 가는 사나이냐? 3교파의 반대로 사라져 가는 사나이냐? 안 사라져 간다 이거예요. 그런 시련 과정에서 남아져 가지고 여러분을 남겼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세계에 새로운 광명의 날을 볼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새로운 자각과 새로운 결의를 하는 이 아침이 되기를 바라서 몇 말씀 드렸습니다.
내일의 계약을 자신 있게 결정짓지 못하는 우리의 행로를, 당신의 무한하신 인내와 극복으로써 다짐지어 주시옵소서. 한날의 고독이 영원을 보장할 수 있는 고독이라 할진대는 그 고독을 피해 가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한때의 수난기가 영원의 터전을 닦을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것을 싫다 하는 사람은 고층빌딩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옵니다.
저희들에게 고독이 있고 극복해야 할 환경이 있다 하더라도 나라와 세계가 살 수 있는 소원의 터전이 되고 희망의 보금자리가 된다 할진대는, 저희들이 강인한 마음을 가지고 굳건히 그 입장을 사수하면서 소망과 희망 가운데서 내일의 여건을 남기기 위해 무한히 노력하는 당신의 사랑받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왕에 출발한 걸음이기에 낙오자가 되느냐, 성사자가 되느냐 둘 중의 하나의 모습이 자기의 운명노정으로 결정지어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두렵고 놀라운 길이 오늘날 저희들이 머무르고 있는 이 자리에서부터 연결되어 있는 것을 저희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 누구의 권고를 받을 것이 아니라, 자주적이요 자결적인 입장에 서서 스스로 격려하고, 스스로 다짐지을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우리의 모습인 것을 이제 알았사옵니다.
통일교회 시대에 있어서의 봄절기와 여름절기와 가을절기와 겨울절기가 우리 자체 내에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이제 새나라 새천지가 다가오는 그 봄동산, 새로운 역사적인 봄절기, 천지가 화합할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의 인연을 고대하는 희망의 봄절기를 오늘 통일교단이 가는 길 앞에 하나님은 언약하신 것을 나는 확실히 알고있습니다.
그 길을 직행하자면 저희들은 고속도로를 닦아야 되겠습니다. 거기에는 막대한 희생과 막대한 피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될 노정이 있습니다. 이 길을 닦아 놓게 될 때는 수많은 사람들은 딴 길을 가라 해도 가지 않고 스스로 자비를 투입해 가지고 이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 투입시킨 모든 자원을 빼고도 남을 수 있는 영광의 날들이 우리 앞에 약속된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땀을 흘리게 될 때 있는 땀을 다 흘려야 되겠고, 정성을 들이게 될 때에도 있는 정성을 다 들여야 되겠습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우리의 엄숙한 이런 희생적인 정신 앞에 머리를 숙이고 감사하면서 자기들도 그런 전통의 인연을 넘겨 받겠다고, 사상으로 그런 길을 가고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달리는 차 속에서도 각오하고 결의하게끔 하는 통일교단에 속한 무리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은 교회를 희생시키면서 나라의 갈 길을, 나라를 희생시키면서 세계의 갈 길을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닦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살아 있는 눈으로 직시하는 시점에 놓여있습니다.
오늘날은 대한민국의 정세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인 문제를 좌우하는 기로에 서 있음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도 세계를 좌우할 수 있는 엄숙한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을 분별적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한 초점에 결합되는 자리에서 결정지어야 할 시점이 우리 목전에 다가온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야말로 최후의 결의와 최후의 다짐을 해야 할 때요, 최후의 선서와 최후의 맹세와 최후의 자각과 최후의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인 것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부족한 모습으로서 망하지 않는 무리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역사시대의 어떤 선조들이 갖지 못했던 몇 배 몇천 배의 내적 외적인 결의를 통하여, 혹은 맹세를 통하여 자각하고 선서한 실체로서, 세계사적인 노정에 부끄럽지 않은 자주적인 모습을 갖고 등장하는 통일의 용사가 되어야 된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무시하는, 벌을 받아도 마땅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죽더라도 그래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내가 죽은 후에 무덤을 남기게 될 때는 소원하던 저나라 본국의 그 강토 위에, 그 산야가 품어 주는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을 각오하고, 천신만고의 수난과 역경의 노정을 서슴지 않고 돌파해 내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오늘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통일의 품에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이 자리를 앙모하고 정성들이는 수많은 자녀들을 당신이 친히 품으시옵고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이날이 영광의 날이 되게 하시옵소서. 한국을 세계 각국들이 앙모할 수 있는 기억되는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시대적인 우리의 위치가 어떻다는 것을 저희들이 이제 엿볼 수 있는 이 자리에 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기쁨으로 기쁨으로 기쁨으로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생명이 다하는 그 시간까지 기쁨으로 넘어야 할 운명길을 남기고 가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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