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태어나는 근본은 생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혼자 아무리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어머니가 없다면 그 생명은 나와는 관계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어머니 아버지 두 사람을 중심삼은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 연결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생명 보다 먼저입니다.

​제일 귀한 것은 사랑

​이 우주의 근본인 힘이라는 것도 물질세계에서 주고받는 사랑적 인연과 마찬가지 형태의 작용에 의해서 생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존재든지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지니지 않으면 이 우주에 존재할수 없습니다.

제일 귀한 것은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줄래야 줄 수 없고 받을래야 받을 수 없게 될 때에 제일 슬프고 불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주를 창조하셨느냐? 사랑이 필요해서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랑으로 태어나서 사랑으로 살다가 사랑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최대의 사랑은 어디서부터 오느냐?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하나되는 데서부터 옵니다. 어떤 힘으로도 뗄 수 없게 영원히 하나가 될 때 최대의 사랑은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통일이 벌어지고, 사랑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연결되고, 사랑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상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둘이 되는 것보다 하나되니까 더 큰 것이 벌어지고, 두 생명이 하나되니까 더 큰 생명이 나오고, 둘의 이상이 하나되니까 더 큰 이상이 실현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생명과 이상이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된 그 자리의 동참자로서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된 그 자리의 동참자요, 부모의 생명이 연결된 그 자리의 동참자요. 부모의 이상이 일치된 그 자리의 동참자로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의 이상 실현

​그러면 사랑의 이상 실현은 어디서부터 해야 되느냐? 우리 통일교회에서부터? 나라에서부터? 세계에서부터? 세계를 아무리 통일했다 하더라도 자기 가정을 통일하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사랑의 이상 실현은 가정에서부터 해야 됩니다. 가정은 행복의 보금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천국을 이루려 오셨던 예수님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하신 것도 가정을 표준하고 한 말입니다.

가정에는 누가 있느냐? 첫째는 부모가 있고, 둘째는 자녀가 있고, 세째는 부부가 있고, 그 다음에는 형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가정은 무엇으로 얽혀 있느냐? 사랑으로 얽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무엇으로 하나 만들 수 있느냐? 사랑으로 하나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랑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조부모의 사랑이 하나될 수 있고, 부모의 사랑이 하나될 수 있고, 부부의 사랑이 하나될 수 있습니다. 사랑에는 통일성이 개재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사랑에는 사람의 생명의 동기가 같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의 생명이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상이 여기에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조부모는 부모에게 상속해 주는 것입니다. 즉, 자녀에게 상속해 주는 것입니다. 조부모의 자녀는 부모요, 부모의 자녀는 우리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을 중심삼은 곳이 천국입니다. 여기에서 어느 것을 부정해도 천국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합할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자기 부부끼리 사랑하는 이상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해야 되는 것이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는 이상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해야됩니다.

​참된 사랑의 길

​남자는 하늘을 상징하고, 여자는 땅을 상징합니다. 남자는 주체이기 때문에 누구의 간섭을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여자는 사랑하기보다도 사랑 받기를 좋아합니다. 남자는 하늘을 상징하고 여자는 땅을 상징하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는 것은 우주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써만 우주를 주관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랑으로써만 우주의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상대를 우주보다 더 크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하늘과 땅, 이 두 세계를 영존하면서 연결할 수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지상에서 사랑으로 엮어진 삶을 산 사람은 천국에 가게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세계가 영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개인 개인이 완전히 하나되면 자동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하나되게 되어 있고, 완전한 부부가 생겨나게 되면 하늘땅은 통일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고 싶으냐 하면, 사랑은 남자와 여자 둘 사이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가 사랑하는 곳에 계시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 사랑이 영원할 수 있고, 그 사랑이 영원한 통일을 이룰 수 있고, 그 사랑이 영원한 생명을 지닐 수 있고, 그 사랑이 영원한 이상을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찾는(잡는) 자는 모든 것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태어나서 사랑 가운데서 자라다가 그 다음에 다시 다른 차원의 사랑으로 연결되는 것은 부모의 사랑을 떠나 상대의 사랑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소생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고, 부부의 사랑을 장성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부끼리 아무리 사랑을 하더라도 자녀가 없으면 사랑의 완성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성적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거치는 과정이 인생살이의 근본이요.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 이상의 근본 길입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가정의 목적은 가정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천국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우주가 하나되기 위한, 이런 목적에 일치하기 위한 표준을 중심삼아서 가정에서부터 민족, 국가, 세계, 천주까지 확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제일 사랑하는 종과 제일 사랑하는 아들딸을 희생시키고, 제일 사랑하는 믿는 사람들을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죽이고 희생시켜 나오셨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많이 학살당했지요? 타락한 세계를 치지 않고, 원수를 치지 않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쳐서 그들을 용서해 나오시는 이러한 하나님입니다.

자기편의 나라와 자기 가정,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시키면서도 세계를 위해 나오는 입장에 서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최대의 거룩한 자의 중심이니 거룩한 사람(聖人)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의 길은 자기편을 희생시키더라도 더 큰 세계를 향하여 전진하고 손을 넓히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가정이 사회를 위하여 존재할 때는 가정을 떠나더라도 그 가정을 떠나는 것이 아니고, 그와 같은 위치에서 사회와 더 하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자라서 상대를 만나 부부를 이루게 되면 부모와 갈라지지만(떨어지지만) 부부를 이룸으로 말미암아 부모와의 사랑의 인연이 더 깊어 질수 있고, 자녀를 낳음으로 말미암아 더 커질 수 있습니다. 그 가정이 사회로 나가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발전하면 할수록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이 세계에 성인이 될 수 있는 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서, 통일시키기 위해서 자기 가정을 버리고, 종족을 버리고, 민족을 버리고, 국가를 버리고, 세계를 버리고 자기의 모든 것을 전부 다 희생시키고 충성을 다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통일하게 될 때는, 그가 버렸던 모든 것에이 세계와 우주를 동참시켜서 거기에 참석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내 가정을 버릴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내 나라를 버릴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이 세계를 희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천주를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다 큰 것이 부활되고 승리하는 날에는 전체가 살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

​통일교회가 핍박받고, 선생님이 핍박을 받으면서도, 원수를 갚지 않고 왜 가만히 있느냐? 그것은 오랜 역사과정에서 그렇게 많은 죽임을 당하면서도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가만히 계시느냐?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이런 길을 가는 것입니다.

원수를 원수로 대하게 되면 사랑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통일된 세계를 이루게 되면 그들을 대하여 불평할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에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고 사는 길은 사탄의 길이요, 위하여 사는 길은 하늘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목적을 찾아가는, 사랑의 이상세계를 이루어 나가는 첩경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축복을 받은 후에 가정만을 붙들고 있을 것이 아니라, 가정을 버리고라도 나라를 위해서, 혹은 세계를 위해서 희생의 길을 가야 됩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와 애기들을 희생시 키더라도 세계를 위해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세계를 찾기 위해서 이들을 버리고 가다가 뜻을 못 이루고 죽게 되면, 이들을 버린 것은 세계를 찾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세계를 다시 찾는 날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가정도 찾아 주셔야 됩니다. 가정도 찾아 주셔야 하나님이지….

하나님이 네 소원이 뭐냐고 하신다면, 내 소원은 세계를 다 찾은 다음에는 세계를 찾기 위해서 버렸던 내 가정과 우리 나라를 다시 찾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가 찾아지면 가정과 나라는 자동적으로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희생당했던 사람들은 그날이 오면 자동적으로 영광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나라가 반대하고 부모가 반대하더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조금만 더 참으라는 것입니다. 희망을 품고 핍박의 길도, 오해의 길도 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고향도 버리고, 나라도 버리고, 한국 교회도 다 버리고 핍박을 받고 욕을 먹으면서 쫓기는 걸음으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굴복하게 될 때는 백퍼센트 굴복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날을 위해서 참는 것입니다. 우리는 몰리고 쫓기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망적인 사람이 아니라 희망적인 사람입니다. 얼마나 강한 사람이냐?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절대적인 사랑으로 하나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를 점령할 자가 없습니다.

사랑만이 모든 승리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영원한 승리와 영원한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 앞에는 모든 것이 해방됩니다. 선생님은 그 곳을 향하여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아침에 여기 모인 자녀들을 기억하시옵고,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시옵소서.

오늘은 특히 8월을 보내고 새로이 9월을 맞는 첫 날이옵니다. 이 아침, 당신의 자비와 영광과 사랑이 늘 당신의 뜻과 더불어 염려하는 자녀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1년 이해는 뜻을 중심삼고 중대한 해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해의 3분의 2를 보낸 지금까지의 8개월간 아버지께서는 어린 자녀들과 더불어 많은 일을 치러 나오셨습니다. 이제 남아진 이해의 3분의 1도 저희들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가는 노정에 있어서, 당신께서 저희들을 늘 가호로 같이하시면서 배가된 은사로써 인도하고 지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이 아침에 서울을 우러러보면서, 더 나아가서는 세계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대한민국을 우러러보면서,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과 천천만 성도들은 이 땅을 우러러보면서 아버님의 사랑이 하늘로부터 세계로, 나라로, 저희 교회로, 저희 자체에게 머물기를 심히도 고대하고 있사오매, 저희 자신들이 아버님의 사랑을 받고, 저희 가정과 저희 나라와 이 세계가 아버님의 사랑권내에 처하지 않으면 저희들은 빚진 자가 되고 이 나라와 이 세계는 아버지의 뜻 앞에 설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먼저 저희 자신들이 아버지의 사랑권내에 서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권내에 서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수고의 노정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참고 거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기에, 지금까지 저희들은 당신의 수고의 노정을 따라가기 위해서 우리 교회 노정에 있어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면서 나왔사옵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나오는 스스로의 모습들이 그때그때에 따라 아버님을 대하여 맹세했고, 아버님을 대하여 자각하였고, 아버님을 대하여 결심하였습니다. 그런 모든 것들을 상기할 때에 저희들은 전진해야 되겠고, 어려운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가일층 자진해서 책임질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아들딸이 되지 않고는 이 엄청난 복귀의 과업을 저희 일대에 있어서, 혹은 이 민족을 통하여 완수 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시대의 섭리의 뜻을 대표해서 세운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한 사람이로되 한 사람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대표하고, 시대를 대표하고, 더 나아가서는 미래와 영원을 대표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이 책임을 못 한다면, 그것은 자기 일대의 책임 못 한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상에 책임 못 한 오점이 남아진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비록 그 사람이 보잘것없이 보이더라도 그 한 사람은 뭇 생명을 대신한 제물된 자리에 있기 때문에 아버님 앞에 분별된 생활을 해야 되겠사옵고, 아버님 앞에 언제나 바쳐지는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저희들이 이와 같이 모이게 되고 이와 같이 맺어진 인연을 통하여 아버님을 모시게 된 것은, 저희 자신들이 어떠한 공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선대(先代)로부터 선한 선조들이 이어 나온 선의 터전이 있었기 때문이옵니다. 그 터전 위에서 그 관계와 인연을 저희들을 통하여서 아버님과 더불어 일치화시키려 하시는 아버지의 뜻이 있기 때문이옵니다. 그러기에 비록 한 시대에 만난 것이로되 그는 역사적인 전체 시대를 대신한 것이요, 비록 부족한 한 사람이로되 그는 역사적 선조들을 대신한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저희 한 생명 자체가 아버님 앞에 부름받고 아버님 앞에 세움받은 바의 책임을 감당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문제는 자기 일대의 문제만이 아니요, 자기 일신의 문제만이 아니요, 자기 일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후 좌우 전체의 문제가 여기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항상 알고 있어야 되겠습니다.

더우기 원리를 알고 있는 저희들로서는 3시대의 인연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당신의 뜻과 당신의 소망과 당신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언제나 당신의 보호와 은사권내에서 양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아들딸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 자리를 그리워하면서도 여기에 참석하지 못한 자녀들에게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기필코 가고야 말겠습니다. 저희들은 기필코 행하고야 말겠사오니, 아버지여, 부족함을 부족다 마시옵소서. 부족한 자신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당신 앞에 부족한 것을 스스로 깨달으면서 어떠한 수난의 길도 감수할 수 있고, 어떠한 어려운 자리도 감수할 수 있고, 내 생명이 다하는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게 되옵니다. 하늘은 부족한 자를 통하여서, 지혜롭고 통달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는 말씀과 더불어 일치될 수 있는 결과의 자리를 기필코 차지하고야 말 것을 저희들은 믿고 알고 나왔사오니, 아버님이여,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늘 부족한 저희들을 가리어서 완전한 세계로 이끌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수고가 얼마나 큰가를 잘 알면서도 저희는 언제나 빚진 자리에 있사옵니다. 빚진 자리에 있기 때문에 저희가 스스로 높다 하는 자리에 설것이 아니라 스스로 낮은 자리에서 갚아야 되겠사옵고, 빚을 갚지 못하게 되면 내 일신을 제물로 바쳐서라도 이것을 탕감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자에게는 절대 하나님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저희들은 늘 알고 있사오니, 친히 지도하여 주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9월 초하루이오매, 이 한 달을 아버지 앞에 봉헌하옵니다. 이해의 남은 3분의 1을 당신이 맡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의 생활도 당신의 뜻과 더불어, 저희의 생애도 당신의 뜻과 더불어 엮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오니, 나머지 금년의 3분의 1,이 기간도 당신의 거룩하신 뜻 가운데서 보호하여 주시옵고, 늘 승리의 일로를 개척하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앞서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보고 싶고 당신을 사모하고, 당신과 만나서 영원히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흠모의 심정과 사모의 심정이 다하는 자리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땅을 바라보며, 세계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지으며 감사하는 생활이 저희들의 생애노정에서 떠나지 말게 하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비록 세상에서 어렵게 살더라도 하늘이 저희들과 더불어 같이하는 그 자리는 외로운 자리가 아니요 불쌍한 자리가 아닌 것을 알았사오니, 친히 친히 지도하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늘 저희들이 가는 길을 아버지께서 보호하고 안내하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한 달을 아버지께서 맡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더우기 해외에 널려 있는 자녀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외국에서 온 식구들과 어린 자녀들이 지금 한 곳에 모여서 수련을 받고 있사오니 그곳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일선에 나가 있는 어린 딸들과 지금 어려운 자리에 있는 한 아들도, 아버지, 친히 기억하시어서 당신이 모든 것을 맡으시옵소서 .

모든 권한은 당신 앞에 있사오니 친히 맡으시어서 기쁘신 뜻대로 인도하여 주시옵고 처리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진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기도하게 될 때 '우리는 역사적인 결실체' 라는 기도를 합니다.

금년 1971년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년과 다른 해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행사를 많이 해 왔습니다. 교수초청 통일원리 세미나라든가 혹은 목사 원리공청회를 개최하고, 더우기 일본에 있는 식구들 중에서 오래된 식구들을, 될 수 있으면 오래된 식구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금년에 전면적인 수련을 계획하고 지금 진행중에 있습니다. 이렇게 바쁜 날들을 거쳐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1971년은 역사적인 결실의 해

이와 같이 우리 뜻이 바쁜 반면에 우리 대한민국의 실정이라든가 국제정세는 우리 뜻을 중심삼고 볼 때, 더욱 긴박한 시점에 놓여 있는 것을 우리가 엿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역사의 흐름도 하나의 결실을 향해서 움직여 나가고 있는 것을 우리가 엿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세가 복잡하다 하더라도 그 복잡한 정세를 통해서 하나의 어떠한 섭리적 결과를 맺을 것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섭리의 뜻을 대표한 우리 교회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걸어 나온 모든 길이 아무리 어렵고 아무리 곡절이 많았다하더라도 그 과정을 거쳐서 최후에는 뜻이 바라는 하나의 결실의 때, 혹은 그러한 자리를 향해서 나오고 있다고 보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1971년도는 어느 해보다도 하나의 결실을 할 수 있는 해로서 중요한 해인 것을 여러분도 역시 잘 아는 바입니다. 더우기 9월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결실의 달입니다. 결실이 잘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결실이 잘 되기 위해서는 결실될 수 있는 터전이 좋아야 되는 것입니다. 터전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 터전 위에 심는 씨 자체가 완전한 씨로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씨가 주인의 보호를 받고 자연의 환경적 요건을 잘 갖춘 자리에서 어느 기간을 거쳐 가지고야 비로소 결실하는 것입니다. 섭리의 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뜻이 시작되었으면 어떠한 어려움을 거치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결실을 맺을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화생활이나 역사적인 문화세계를 보더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현대문명은 온 대권 문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온대권 문명은 향기 나는 봄절기와 같은 문명이 아닙니다. 여름을 향해서 점점점 모든 것이 발전하는 문명권이 아니고 포화선에 이르렀다가 내려 가는, 가을절기와 같은 문명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개 고대 문명은 열대 문명권에 속해 있었지만, 지금 이 시대는 온대권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가을절기 문명과 같은 이런 시대가 되어 옴으로 말미암아 겨울절기와 마찬가지의 문명권인 소련 공산세계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 전체를 보더라도 지금 때는 가을절기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결실을 맺으려면

이런 때에 있어서 하나의 결실된 생명체가 되기 위해서는 사시장철 어려운 고비를 넘어갈 수 있는 생명력이 있어야 됩니다. 여름에 아무리 비가 많이 내리고 장마가 진다 하더라도 그런 환경적 여건에서 자기 자체가 밀려나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을 넘어야 됩니다. 가을절기가 되었더라도 결실할 때까지는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이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해 내야 됩니다. 그것을 극복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의 참다운 결실로서 거두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섭리, 흑은 세상에서 되어지는 모든 문명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춘하추동을 중심삼고 하나의 결실을 갖추게 될 때, 그 결실은 겨울절기를 넘어설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만 그것이 새로운 봄절기를 맞아 가지고 새로운 씨로 출발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는 바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문명권 사조도 여름절기로부터 가을절기, 겨울절기에 부딪치는, 서로서로 교차되는 때에 있어서 환경의 어려움에 밀려날 수 있는 문명의 내용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것을 넘어서야 됩니다. 이것을 반드시 극복해 넘어갈 수 있는 새로운 섭리사적인 문명권을 지녀 가지고서 겨울을 넘어가서 봄을 맞이할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 인류가 바라는 새로운 희망의 봄절기와 같은 문명권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9월은 모든 것이 결실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결실된 그 자체를 중심삼고 보면 그것이 지금까지 거쳐온 환경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주인을 만났다든가, 혹은 심어진 땅이 옥토였다든가, 혹은 그 씨가 완전했다든가 하는 그러한 사실이 과정에서보다도 반드시 가을에 가서 결실되 었을 때 그 열매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가 아무리 수난의 노정을 거쳐왔다 하더라도 어느 한때 결실할 수 있는 때를 향하여 나가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과연 여러분 자신들이 가을날을 맞이한 9월과 마찬가지로 신앙노정에 있어서, 하나의 완전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본연의 신앙 노정을 걸어가고 있느냐? 이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경적 여건도 잘 갖추고, 또 안팎의 모든 내용도 잘 갖추어 가지고 환경에 밀려가든가 혹은 안팎에 밀려나든가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거기에서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자주력(自主力)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비로소 새로운 결실의 실체로 거두어질 수 있고, 미래의 희망의 씨로 남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 9월과 더불어 여러분이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을 다시 한 번 회고해 보면서, 결실의 한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여러분 자신들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더우기 이 1971년도는 예년과 다른 해라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연초에 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이 1971년도는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이 기간은 역사적 전환시기를 향해서 넘어가는 때입니다. 더우기 요 8월은 포화선을 넘어가는 때가 아니냐? 지금부터 명년 4월, 5월까지, 더 나아가서 8월까지 한 고비가 되지 않겠느냐?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72년도까지를 우리가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정적인 하나의 해결을 봐야 할 시기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세계정세의 변수는 전부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을이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지금까지 인연되었던 것이, 혹은 아무리 그 땅이 옥토라고 하더라도 그 땅과 격리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 자란 나무라 하더라도 잎이 분리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또 그 진액의 공급도 중단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느 포화상태를 거쳐 가지고 그것이 그냥 그대로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넘어간다 이거예요. 넘어갈 수 있는 절기를 맞게 될 때는 가을로 접어드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뜻을 중심삼고 볼 때, 1971년도하고 1972년도는 전환점을 넘어가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도, 1971년도, 1972년도, 이 3년간은 우리 교회에 있어서는 축복받은 가정이 총동원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아녀자들이 선두에 서 있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완전한 결실체로 남아지자

복귀섭리를 보게 되면, 개인적으로 여자들이 먼저 개척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교회를 대표한 가정의 여자들이 일선에 나가서 사탄과 싸워야 되고, 그 다음에는 민족을 대표한 여자들이 선두에 서 가지고 싸워야 할 때가 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가정이면 가정도 한번 격리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을이 되면 모든 것이 갈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때가 가까와 오면, 그것이 합해 가지고 전체가 엉겨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분립된 형상을 거쳐 가지고 가을절기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의 정세를 보면, 아시아를 중심삼고 전세계의 정세가 맞부딪치고 있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소련과 중공과 북괴가 지금까지는 한 노선을 취해 나왔지만 중공이 저렇게 나옴으로 말미암아 북괴와 중공이 분립되는 것입니다. 또, 중공과 소련까지도 분립되는 것입니다. 또, 미국과 일본과 한국, 민주세계의 대표적인 국가를 섭리적으로 볼 때, 일본이 저렇게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미국과 분립되는 것입니다. 또, 미국이 저렇게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의 사이가 서로 뗄 수 없는 사이인 것 같지만 분립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립되어 가지고는 어떻게 될 것이냐? 전부가 이렇게 분립되는 정세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분립되는 때에 있어서, 여기에서 전체가 분립되는 환경이나 사정에 이끌려 넘어가지 않고 그 자체를 완전히 확보해 가지고 미래의 소망의 터전을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의 결실, 즉 섭리적인 어떤 국가면 국가, 단체면 단체가 있어야 됩니다. 그 단체는 아무리 갈라지기 쉬운, 아무리 분립되기 쉬운 겨울이 오더라도 자기가 지니고 있는 생명 자체는 완전한 결실체로 남아 가지고 봄을 맞아 새로운 씨로 심어질 수 있는, 새로운 출발의 동기를 갖추어야 됩니다. 이러한 내용을 갖추지 않고는 완전한 수확의 물건으로서 하늘 앞에 거두어지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도 그와 같은 입장에서 분립되는것 같지만 우리는 내적인 입장에서 쇠퇴하고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공고화되고 다짐되어서 생명력을 집합시킬 수 있는 하나의 동기로서 흡수할 수 있는 이런 입장에 서게 되면, 반드시 봄을 맞을 수 있는 참다운 씨와 같이 되지 않느냐, 이렇게 보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 가을을 맞아 섭리노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반성하면서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우리 교회에 있어서는 1970년도부터 1971년, 1972년도까지, 이 3년기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넘어간다 이거예요. 넘어갈 때는 정상을 두고 보면 요 3점이 연결되는 이러한 때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요 1971년은 가장 중요한 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도 교회 자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는 여러가지 국가적인 문제라든가, 대 사회 문제라든가, 혹은 대 정세 문제와 결부될 수 있는 인연이 우리의 목전에 다가온 것을 보게 될 때, 그야말로 지금 국가 민족과 우리 교회가 새로운 결실을 다짐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는 것을 우리가 엿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우리 교회가 그런 자리에 서면 설수록, 혹은 세계가 그런 자리에 서면 설수록 여러분 자체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체가 가을절기를 맞은 생명의 실체를 갖추어야 환경에 아무리 격리가 벌어지고, 환경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그 어려운 모든 것이 나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나 하나의 결실을 마감할 수있는 동기가 되고 환경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고, 가을절기와 더불어 뜻 있는 신앙생활을 하기를 바라서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이상이 실현된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전부 잘된다 그겁니다. 원하는 것이 일시적으로가 아니라 영원히 원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틀림없이 잘 들어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이상 실현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도 이상이 있으실 텐데 하나님의 이상 실현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의 이상 실현 역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잘 들어맞아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원한다고 할 때 원하는 대상은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원한다고 하면 이 말은 상대적 기준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내 소원' 하게 될 때, 그것은 자신을 두고 소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을 중심 삼고 소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지지 않은 그 무엇을 중심삼고 소원하는 것입니다. 상대적이라구요.

소원이 뭐냐 할 때, 사람은 점점 더 좋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것이 이상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실현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일 중요한 문제라구요.

그러면 여러분이 교회장으로서 기도하고 나가서 활동하게 될 때 소원이 무엇이냐? 교회장은 많은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소원일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장으로서 이상 실현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구요.

그러면 교회장은 어떤 길을 가야 되느냐? 복귀섭리의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복귀섭리의 길을 따라가야 되는데 그 복귀섭리의 길은 누구의 길이냐? 그 길은 내 길이 아닙니다. 내 길이 아닌 하나님의 갈 길을 내가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상 실현' 하게 될 때 그 '이상'이 무엇이예요? '창조이상' 하는데 그 창조이상이 뭐예요? 우리 인간으로서의 이상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최고의 이상이겠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이상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의 이상도 하나님 자신을 만나는 것이겠어요? 하나님의 이상은 완전한 상대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완전한 상대자는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인간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상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요, 인간의 이상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봉하는 곳이 곧 창조이상이 실현되는 곳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인간이요 인간이 바라는 것은 하나님인데, 그 이상이 실현되는 때가 언제냐 할 때, 한 쪽에서만 바라 가지고는 실현이 안 되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바라시는데 인간이 안 바라면 그게 뭐예요? 또, 인간은 바라는데 하나님이 바라시지 않는다면 그게 뭐예요? 둘이 서로서로 바라 가지고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만나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 좋아하는 것입니다. 좋아하게 되는 것, 그것이 이상 실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인간을 만나려고 하시고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데, 어디에 가서 어떻게 만나야 하느냐? 이것이 문제라구요. 어디서 만나야 하는 거예요?「마음속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서부터 만나는 거예요. 물론 다른 곳도 많이 있지만 우리 마음속에서부터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마음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서로 좋아해야 됩니다.

마음과 몸이 좋아해야 하는데 안 좋아했기 때문에 이상 실현이 안 된 것입니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마음과 몸이 좋아해야 합니다. 그래, 마음과 몸이 좋아했어요? 서로 좋아하지 않는 것, 이것이 상충 요인입니다. 이것이 문제라구요. 마음이 좋아하는데 몸이 싫다고 하고, 몸이 좋아 하는데 마음이 싫다고 하니 하나님과 인간이 바라는 그 기준에 반대되는 입장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뜯어고치는 것이 종교입니다. 재차 이상을 실현시켜 보자고 해서 종교가 나온 것입니다. 종교를 통해서 이상을 실현시켜 보자는 것입니다. 시켜 보면 거기에서는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그것을 나오게 하는 것이 종교의식입니다. 한 가지를 제거하여 화합시켜 보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화합되었다, 하나되었다 하면 몸뚱이에서 혁명이 벌어집니다. (녹음 상태가 좋지 않아 약간의 분량은 정리하지 못했음)

이상은 몸 마음이 하나되는 데서부터 실현된다

인간은 마음과 몸이 엇갈려 있습니다. 마음과 몸이 서로 엇갈려 있다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서로 반대되는 입장에 있다는 거예요.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가지고 이렇게 직선이 되어야 할 텐데, 그 반대로 되어 서로 엇갈려 있으니 상충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것을 일직선이 되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직선이 될 만큼 옮겨 놓아야 되는데 옮겨 놓지 못할 때는 그 부분을 잘라 버려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라구요. 그렇잖아요? 접붙인 만큼 죄악의 자리를 잘라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접붙인 환경만큼 잘라 버리고 부정해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는 부정하며 나온 것입니다. 무엇에 대해? 몸뚱이에 대해서. 부정하면 어떻게 되느냐? 부정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긍정적으로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법도에 따라 몸과 마음이 화합할 수 있는 본질적인 요소가 있으므로 얼마만큼만 희생하면 자동적으로 화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정시켜 가지고 3년만 끌고 나오게 되면 통일 되는 겁니다. 그러니 부정하라는 거예요. 몸뚱이를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문제가 뭐냐 하면 이상 실현을 어디서부터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해야 한다구요?「마음과 몸입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되었다 할 때는, 즉 원리에서 말하는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주고받았다 할 때는, 거기에 하나님이 임재(臨在)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기에 왜 임재하시느냐? 몸과 마음이 싸움하라고 임재하시겠어요? 아닙니다. 좋기 위해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왜 좋으냐? 주고받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의 몸이 횡적으로 주고받으려면 먼저 종적으로 주고받아야 합니다. 왜 종적으로 주고받아야 하느냐? 천지의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부터 움직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주고받을 때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거기에 비례한 주체적인 입장에 서게 됩니다. 인간은 종적인 것을 중심삼고 주고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주고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작용이 벌어집니다. 아들딸이 나온다 그 말이라구요. 번식하는 작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기의 플러스 마이너스가 작용하게 되면 반드시 반작용, 반극이 생겨 나게 돼 있습니다. 그렇지요? 반극이 생겨나게 되면 입체적인 극의 작용은 자동적으로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가 합하게 되면 아들딸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주의 근본이 그렇게 되어 있으므로 부부가 합하게 되면 반드시 그 사람의 반작용, 반극과 같은 권이 나타나니 아들딸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녹음 테이프의 상태가 좋지 않아 25분 정도의 말씀을 정리하지 못했음)

여러분은 이상 실현의 주체가 되어 있는가

이상이라는 말 그 자체가 상대적인 말이라구요. 그렇지요?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할 때 그것이 이상이 아니예요? 멋지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밥을 맛있게 먹고 나서 '아, 밥이 참 맛있더라' 하는 것이 멋진 생각이예요? 그것은 다 지난 생각입니다. (웃음) 그렇잖아요? 멋지게 생각하는 것은 뭐냐 하면 상대를 생각하는 것이 제일 멋진 생각이라구요.

그러면 이상을 실현해야 될 텐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 세상은 악한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주체자가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주체자가 교회장인 여러분인데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현재 사탄세계에서 하는 것은 전부 상충이라구요. 그렇지요?「예」

사위기대 사랑만이 이상 실현을 가능케 해

이상을 실현하는 데는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안 됩니다」그러면 무엇으로 되겠어요?「원리적인…」원리적인 무엇을 가지고 되겠어요? 사위기대 사랑을 갖고서만이 이상 실현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의 법도라구요. 알겠어요?「예」사위기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하나님 뜻 앞에 갈라진 사위기대가 복귀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여자가 복귀되어야 합니다. 사위기대 사랑이 없어 가지고는 이상의 실현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세상을 대해 구원섭리를 하시는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이상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려면 무엇을 들고 나와야 되느냐? 권세를 가지고 나타나야 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무엇을 들고 나와야 되겠어요?「사랑입니다」사랑을 가지고 나와야 됩니다. 무슨 사랑부터 가지고 나와야 되느냐?「사위기대 사랑입니다」사위기대 사랑인데 그 중에서도 무슨 사랑부터 가지고 나와야 되겠어요? 부부사랑부터예요? 「부모의 사랑입니다」부모의 사랑을 갖고 나와야 된다면,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식이 있어야 할 텐데 부모의 사랑을 받을 자식이 없는데도 그것을 갖고 나와요? (웃음) 대답해 보라구요. 부모의 사랑이 좋긴 좋지만 부모의 사랑을 갖고 나오려면, 부모의 상대격인 자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상대가 없는데 부모의 사랑이 나오게 돼 있느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소망으로 두고, 그 아들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섭리라구요. 이렇게 사위기대 사랑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만일 부모의 사랑을 갖고 나오시면 타락한 사랑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대하지 못하는 겁니다. 대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들은 이래야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 아들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섭리입니다. 여러분, 실감이나요? 그런가 안 그런가 생각해 보라구요.

참아들을 찾아 나오신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은 메시아를 보내기 전에 먼저 선지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선지자는 어떤 사람이냐? 종의 종 가운데서 중심자, 종 중의 종의 대표자, 그 다음에 양자 중의 양자의 대표자입니다. 역사적으로, 세계적으로 그런 대표자, 즉 선지자들을 불러낼 것입니다. 종의 종이라 하더라도 일등부터 몇천 등까지 있을 것이고, 양자라 하더라도 일등부터 몇천 등까지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불리워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대하여 그렇게 역사하시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본연의 아들을 사랑하시는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거기에 하나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지이치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입장에서부터 사랑하시려고 합니다. 종을 사랑하는 데에도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덴 동산의 타락하지 않았던 천사장의 기준 앞에 일치될 수 있는 형(型)의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형의 대표자로 보낸 것이 선지자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거라구요. 틀림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세계에서도 본연의 창조이상의 사랑의 모델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가 그 사랑의 마음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인연을 맺어, 그 대상을 사랑하는 사람, 혹은 그와 마찬가지의 입장에 선, 하나된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에 가서 하나님의 이상을 실현했다 할 때에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가 양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 실현이겠어요? 참자식을 사랑한 뒤에 양자가 있으면 '오냐' 하면서 사랑해 주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그리고 양자를 사랑한 후에는 종을 대해서 '오냐 ,수고했다'고 하며 기쁨으로 대해 주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그렇게 된 다음에는 뭘하느냐? 부모의 자리에 서려면 무엇이 있어야 된다구요?「자녀가 있어야 됩니다」 자녀가 있어야 된다구요. 자녀가 없으면 왜 서러우냐? 천지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녀가 없으니 기쁘시겠어요, 서러우시겠어요? 서럽다구요. 기쁘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독자가 있다면 그 독자를 죽여 보라지요, 서러운가 안 서러운가. 자기가 안 서러우면 하나님도 안 서러우신 것이요, 자기가 서러우면 하나님도 서러우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는 하나님이 아들을 찾아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동원해 가지고 정상적인 부모의 자리에 섰다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기 위해서는 자식을 사랑했다 하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 자리는 에덴 동산과 같은 자리입니다. 에덴 동산은 어느 구석을 가 봐도, 북극 남극, 혹은 적도를 몇 바퀴 돌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반대 하는 사탄은 하나도 없는 곳입니다. 있었어요, 없었어요?「없었습니다」없었지요?「예」그런 기준을 알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세계를 넘어 사탄권을 전부 다 정복한 후에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의 터전을 닦아야 됩니다. 그거라구요. 이상은 거기에 있는 거예요.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이상 실현입니다.

삼대상 사랑권은 영원한 이상적인 사랑권

이상을 중심삼고 서로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이상은 우리를 찾아오고, 우리는 이상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만나야 된다구요. 그것이 이 악한 세상에서 탕감노정을 거쳐 가지고 만나야 되는 거라구요. 그냥은 못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만나는 코스는 어떻게 되느냐? 종의 종, 종, 양자, 아들의 자리를 거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나중에는 부모까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부모는 어떤 부모냐? 평면적인 부모입니다. 평면적인 부모까지 나와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이상이 실현될 것 아니예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오시고,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가기 때문에 인간의 실체를 가진 부모, 바로 참부모가 나와야 됩니다. 이렇게 통일교회는 참 위대한 것을 발견했다고요.

여러분이 알고 나서 생각하니까 참부모라는 말이 간단하지요? 참이라고 붙일 수 있는 것은 국민학교 학생도 유치원생도 다 발견할 수 있는 거예요. 지극히 보편적인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가능한 말이기 때문에, 전체를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복귀할 수 있다는 거예요. 누구나 '나도 그런 말을 만들 수 있다. 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참부모라는 말을 배웠는데, 참부모라는 말이 힘든 말이예요? 내용은 복잡하지만 간단한 말이라는 거예요.

종적인 입장에서 참부모가 나와야만, 하나님도 만나 가지고 참아들딸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만 아들딸을 사랑하면 되겠어요?「안 됩니다」그러므로 실제로 아들딸을 사랑했다고 할 수 있어야 되는데, 이것이 어렵다구요. 이것은 뭐냐 하면 아담 해와 자체만이 아닙니다. 아담 해와를 못 만들어 가지고는 하나님이 우주를 중심삼은 부모의 자리에 못 서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만 부모의 자리에 설 뿐입니다. 그것은 뿌리 없는 씨, 종자 없는 천사세계와 마찬가지입니다. 영육을 통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위기대는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홀아버지와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거예요. 진짜 아버지가 되려면 사위기대, 아담 해와의 자녀가 나와야 됩니다. 따라서 자녀가 나오려면 아담 해와가 횡적인 입장에서 본연의 참부모의 기준을 이어받아야 됩니다. 그렇지요?「예」

그러면 아담 해와가 참부모의 자리를 이어받으면 어떻게 되느냐? 아들의 자리가 완성되는 것이요. 부부의 자리가 완성되는 것이요, 부모의 자리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다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예」따로 따로 완성되게 안 되어 있습니다. 아들이 완성하게 될 때에 어머니가 '얘야, 조금 기다렸다 해라. 난 네 어머니이니까 나 먼저 완성하자' 하고, 또 남편은 자기 아내를 대해 가지고 '남편이 주체니까 내가 완성한 뒤에 당신이 완성하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따로따로 완성하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안 됩니다」그렇게 되면 전부 병이 나고 뒤죽박죽이 됩니다. 완성은 한꺼번에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통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거예요. 뭘 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돼요?

삼대상 사랑, 즉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이 세 가지 사랑이 한꺼번에 완성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나와야 되느냐?「자녀가 나와야 됩니다」알긴 아는군. 무엇이 나옴으로써 된다구요?「자녀요」자녀가 안 나오면?「안 됩니다」절대 안 됩니다. 자녀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전부 다 한꺼번에 완성의 자리에 놓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가 나옴으로써 삼대상목적 전체가 다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로 딱 묶어 놓아두면 아버지가 그것을 뗄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남편이 뗄 수 있어요, 없어요? 자식들이 뗄 수 있어요, 없어요? 못 뗀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삼대상 사랑권은 영원한 이상적인 사랑권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핵심적인 사상입니다, 알겠어요?「예」

종의 종의 입장에서 종의 입장으로 나가려면

그러면 이제 여러분 자신들은 어떻게 이러한 자리에 나가야 되느냐?

그 자리에는 점차적으로 가야 합니다. 주인으로부터 사랑받는 대표적인 종의 자리에서 종의 종을 자기 자식과 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천사장의 입장에서 종을 사랑하라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공인을 받아야 됩니다. 그것이 법규라구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좋은 자리에서 '에헴' 하는 게 아니라구요. 종이니까 머리를 숙이고, 몸을 구부려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에, 전도하는 사람들은 누구냐? 천사장편이라구요. 그렇지요? 타락한 천사장권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천사장이 타락을 시켰기 때문에 복귀는 누가 시켜 주느냐 하면 천사장권에서…. 천사장권이 공의의 터전을 닦아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를 거치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러면 종인 내가 종의 자리에서 종의 종들을 지도하고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내가 살기 위한 방법입니다. 결국은 그들이 나를 구해 주는 놀음이라구요. 내가 그들을 구해 주는 것이 아니라구요. 엇바꿔진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나를 구해 준다는 거예요. 천사세계에 있어서의 엇갈린 법도를 거꾸로 거쳐가야 하는데 그들이 없게 되면 거꾸로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들이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절대 필요하다구요.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아담권과 천사권을 전부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잘라 버렸다가는 복귀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을 상대 안 할 수 없습니다. 또, 인간들을 상대 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천사장을 잘라 버릴 수 있어요? 인간을 무시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없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러분들이 대하고 있는 불신자들은 뭐냐? 그들은 나를 하나님 앞에 공인받게 하는 감독관들입니다. 여러분이 종의 종에서 종으로 승격했다 하게 된다면 종으로서 일한 실적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 일은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이냐? 주인의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인의 일은 무엇이냐? 천사장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종으로서 주인의 일을 한 실적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주인의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에덴 동산에서의 본연의 그 가치 기준을 중심삼은 사위기대를 복귀하기 위해 전부 다 이렇게 찧고 빻고 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교회장은 뭐냐?「천사장입니다」여러분은 우선 천사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들은 나중입니다. 양자도 나중이라구요. 알겠어요? 「예」공식이 그래요. 우선 무엇을 거쳐야 된다구요?「천사요」천사를 거쳐야 하는데, 여러분은 타락한 천사예요, 타락하지 않은 하나님을 시봉하는 천사예요?「타락한 천사입니다」타락한 천사니까 종의 종이라 그 말이라구요. 그렇잖아요? 종의 종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실감이 나요? 이렇게 얘기하면 실감이 나지요?「예」천사는 천사인데 타락한 천사니까 종의 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종의 종이라는 말이 나온 겁니다.

사탄을 굴복시키는 방법

여러분이 제일 무난하게 출발할 수 있는 기점은 종의 종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저쪽은 사탄편의 종의 종이요 나는 하늘편의 종의 종이기 때문에, 사탄편의 종의 종과 대결해 가지고 굴복시켜야 합니다. 사탄편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굴복시키느냐? 힘으로써 굴복시키는 거예요? 사탄이 굴복시키는 방법은 상대를 타고 앉아 가지고 주먹으로 때리고 자기 마음대로 두들겨 패는 것이지만, 하늘의 방법은 자연굴복시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사랑으로 굴복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사랑의 이상 실현을 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구요.

왜냐? 사위기대를 이루는 사랑의 이상 실현은 사랑을 근거로 하여 출발해서 모든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사랑의 동기를 거기에 적용해 가지고, 그 사랑 앞에 사탄편이 굴복할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한 기원을 마련하지 못하고는 사탄세계에 있어서 사랑받는 천사장권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사랑을 가지고 작전계획을 세워 나오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이 이제 가서 교회장으로서 뭘해야 되느냐?「종의 종의….」종의 종이지만 사랑을 가지고 해야 됩니다. 사랑을 가지고 이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알겠어요?「예」무슨 사랑입니까? 사탄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이라구요. 그 사랑은 어디서 나타나느냐? 자기를 상대방에게 완전히 주는 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완전히 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삼대상 사랑입니다. 삼대상 사랑은 완전히 줄 수 있고 완전히 받을 수 있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냐?

여러분이 완전히 주는 날에는 완전히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사탄이 그 사랑을 완전히 받고 나서 도망가면 어떻겠어요? 완전한 대상적인 사랑에는 완전한 주체적인 사랑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라구요. 누가 알아준다고 좋아하고 몰라준다고 섭섭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본부에서 알아주겠으면 알아주고, 협회장이 알아주겠으면 알아주고…. 뭐 누가 안 알아준다고 걱정할 것있어요? 문제는 완전한 사랑을 가지고 나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걱정거리라구요.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종의 몸을 쓰면

지금 천국을 이루어 나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여러분, 실감이 나지요? 그러니 사랑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그 사랑은 누구를 위한 사랑이예요? 한꺼번에 완성하는 사랑은 무슨 사랑이라고 했어요? 부자관계의 사랑이라구요. 그렇지요?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종의 몸을 쓰라는 것입니다. 종의 몸을 쓰고, 종의 자리에서 한꺼번에 복귀하자는 거예요.

부모의 사랑을 가지고 종의 자리를 거쳐 나가게 된다면, 한꺼번에 다 복귀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 가운데는 상대 이상 사랑, 하나님의 사랑, 부모의 사랑, 자식의 사랑 등 전부 다 총합한 사랑의 기준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종의 자리에 나아가 전부 다 연결시켜서 돌아서는 날에는 한꺼번에 복귀해 올라오는 것입니다. 종의 종에서부터, 종으로부터, 양자로부터 자녀의 자리에까지 껑충 뛰어 올라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왜 그렇게 희생했는지 알겠어요?「예」하나님은 왜 그렇게 지지리 못난 일을 했겠어요? 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지지리 …. 옛날에 선생님이 '이게 무슨 하나님이야'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웃음) '무슨 하나님이 이래? 지지리 못나고 말이야' 하며 하나님을 동네에서 종살이나 하는 병신 자식보다도 못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봤습니다. 하나님이 왜 그러셨겠어요?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그때에 몰라서 그랬던 거예요.

임지는 여러분이 죄가 있느냐 없느냐를 심판하는 공판정

여러분은 종의 종에서부터 출발해야 됩니다. 지금의 여러분은 타락한 종의 종밖에 더 돼요? 종이나 돼요? 종이 되려면 종의 종한테 이겨 가지고 종의 종에게서 '당신은 나한테 이겼다' 하는 증명서를 받아 와야 되는 거라구요. 다시 말하면 사탄과 싸워 가지고 이겨서 사탄으로부터 '나 이 사람과 싸워서 졌소' 하는 증명서를 받아 가지고 와야 비로소 종이 된다는 거예요.

죄를 벗으려면 검사의 증명서가 필요하지요? 사탄의 증명서를 안 받아 가지고 천국에 가요, 못 가요?「못 갑니다」(웃음) 그럼 여러분의 증명서는 어디 가서 받아야겠어요?「임지요」임지에 가서 받는 것입니다. 임지에 가서 받아야 하는 거라구요. 그러니 임지가 좋은 곳이예요, 나쁜 곳이예요?「좋은 곳입니다」여러분의 공판정이라구요. 죄인으로 공판정에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내가 선한 사람이 되느냐 악한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을 놓고, 예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사탄은 검사의 입장에서 판결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현재 변호사입니다. 어떤 사람이 변호사가 되느냐? 부모가 변호사가 되는 거라구요. 세상 변호사 같으면 적당히도 하고 사기도 칠 수 있지만 부모 변호사는 틀림없다구요. 옛날에는 예수님이 형님 변호사 입장이었습니다. 형님의 입장이니까 동생이 잘되면 시기를 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부모 변호사는…. (웃음)

여러분은 부모 변호사와 형님 변호사 중에 어떤 변호사를 택하겠어요?

「부모 변호사입니다」이것이 복이라는 거예요. 부모 변호사는 자식이 어쩔수없이 죽게 되어 있을 때는 자기 목을 내놓고 대신해서 죽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형님 변호사는 도망가려고 할 것입니다. (웃음) 이렇게 볼때에 참부모가 뭐냐 하면 부모 변호사입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이 참 고맙지요? 참 고맙다는 거라구요.

지금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내보내는 것이 여러분들이 지지리 못나 가지고 병신이 되어 돌아오라고 내보내는 것이겠어요? 전부 다 이길 수 있도록 다 마련해 가지고 '너, 공판정에 가서 이렇게만 해라' 하는 것이 아니예요? 교회가 여러분의 일선인데 일선이 무엇이라고요? 「공판정입니다」변호사가 여러분에게 '공판정에 가 이렇게 이렇게 해라' 하고 가르쳐 주는데도 눈만 껌벅껌벅하면서 '그럴 수는 없소' 하는 격이라구요. (웃음) 그런 녀석이 살겠어요, 죽겠어요?「죽겠습니다」여러분은 이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공판정에 나갈 때는 외우고 또 외우고 외워서, 조심조심하여 말을 한마디 하더라도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런 기쁨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기쁨을 느껴 봤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다 가짜들이라구요. 심각하지 않다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6천년만에 공판이 처음 벌어졌는데, 여기에서 한번 막히는 날에는 여러분의 종족이 아주 막혀 버리는 거예요. 얼마나 심각한 자리입니까? 교회장이 아니고는 그런 자리를 못 차지하는 거라구요. 그러니 교회장이 좋은 자리예요, 나쁜 자리예요?「좋은 자리입니다」여러분은 지금 그런 입장에 선 것입니다. 교회장은 그런 입장입니다. 선생님이 지혜가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그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공판정에 섰을 때는 하나님이 무자비했다고 그랬지요? 공판정에 설 때마다 무자비하게 했다는 거라구요. 죄인들끼리 서로 손가락질하고 그러면 대번에 걸리는 거라구요. 둘 다 공모한 간접적인 공모자로 몰려 버린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무자비하다는 거라구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됩니다.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해야 망하더라도 여러분이 책임을 안 진다 이겁니다. 고생하라면 고생하는 거라구요. 억지로 고생해서는 안 된다구요. 억지로 해야 되겠어요, 감사하며 해야 되겠어요?「감사하며 해야 됩니다」그래야 공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원리 말씀은 거기에서 해방받을 수 있게 해주는 변론입니다. 검사에게서부터, 죄에서부터 해방받을 수 있게 해주는 변론의 자료라구요. 알겠어요?「예」그렇게 하여 종의 종의 자리에서부터 공인받아야 됩니다.

공인받는 데도 한 사람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세 사람에게 받아야 됩니다. 그 세 사람이 누구냐? 복귀섭리시대를 보게 될 때에 누구의 공인을 받아야 되느냐? 천사장의 공인을 받아야 하고, 아담의 공인을 받아야 되며, 해와의 공인을 받아야 됩니다. 이 세 공인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보면 몇 사랑이 걸려 있느냐? 세 사랑이 걸려 있습니다. 결국 그것을 말하는 거라구요. 복귀섭리란 무엇이냐? 아담이 천사장을 굴복시켜 가지고 해와를 찾는 놀음입니다. 세 사람을 중심삼고 작전하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삼대상 기준을 중심삼고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섭리적으로 보면 그거라구요.

지옥은 후회가 꼬리를 무는 곳

완성시대에는 암소를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장, 아담, 해와를 찾자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이 아무리 좋다 해도 해와가 없으면 완성이 되겠어요? 땅 위의 주인공이 누구예요? 잔치는 어디서 합니까? 하늘에서 해요, 땅에서 해요? 「땅에서 합니다」땅에서 잔치를 하는데 그 주인공이 누구예요? 신부입니다. 신랑은 얻어먹으러 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런데 통일교회는 얻어도 못 먹고 환영도 못 받았습니다.(웃음) 기가 막힌 일입니다. 여러분에게 그 사연들을 이야기 안 해도 원리를 듣고 생각해 보면 다 알 것입니다. 그래 그것을 알았어요? 말을 들어 보니 처음 듣는 말 같지요. 그것을 알고 나면 '아, 그렇게 되는 것을…. 조금만 더 생각했으면 될 건데 그것을 몰랐구나'합니다. 그렇다구요. 까딱 잘못 하면 조금 모르는 것으로 걸려들어가는 것입니다.(웃음)

지옥에 가면 그것이 화근이 됩니다. 조금 잘못한 것이 그대로 걸려 가지고 지옥에 가서 가슴을 할딱할딱거리며 '아이고 죽겠다'고 하다가 실수한 생각이 스쳐가는 거예요. '실수로 생각을 잘못하여, 눈 깜빡할 사이에 해낼 것을 못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큰 고통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예 태산 같은 것이어서 생각하기에 어림도 없는 것 같으면 모를 텐데, 조금만 생각하면 다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을 하지 못해서 못간 것이니 죽을 지경에서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감옥에 들어갈 죄수들이나 사형수를 보게 되면 백 명이면 백 명이 다 '한 순간만 잘했으면 됐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지옥에 있으면 세계에 있는 생각나는 모든 대상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영원히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못 끊는다구요, 그 자리를 벗어나기 전에는. 그것이 실감이 나요?「예」지옥이 그런 곳입니다. 후회가 꼬리를 무는 곳입니다. 천태만상,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후회로 시작해 후회를 낳아 점점 번식해서 돌아다니는 거라구요. 그러니 죽을 지경이겠지요?

완성하려면 천사장의 자리·아담의 자리·해와의 자리를 찾아야

오늘날 여러분들은 세 상대를 찾아낼 수 있는 특권적 혜택을 받았습니다. 그 혜택을 받은 곳은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한 시대에 세 사람을 창조하는 하나님의 자리를 만드는 겁니다. 아까 말한 천사장 자리, 그 다음에는 아담 자리, 해와 자리를 찾아야 된다는 것인데 이게 뭐냐? 이것은 천지를 창조하시던 하나님의 자리를 결정짓자는 거라구요. 그렇지요?「예」세 아들의 입장에 서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3단계 원리가 문제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거라구요.

하나님이 천사장을 지을 때에 휘파람을 불어 가면서 노라리 가락으로 지으셨겠어요? 노름장이 노름하듯이 말이예요. (웃음) 그렇게 지으셨겠어요, 심각하게 지으셨겠어요? 노라리 가락으로 지었겠어요? 얼마나 심각했겠나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심각했겠는가 기도해 보십시오. 죽을 만큼 심각했을까 한번 알아보라구요.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라고 그러지요? 정성도 안 들였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걸작품이 됐어요? 그것이 걸작품이예요? 그것이 걸작품이라면 얼마든지 집어던진다구요. 그게 뭐 걸작품이예요? 장난삼아 한 것이지. 걸작품은 생명과 소망이 전부 투입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걸작품이라면, 얼마나 정성을 들이셨겠어요? 그 걸작품을 여러분들이 어떻게 하겠다고요? 다시 찾겠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려면 그림자 모양이라도 만들어 놓아야 하나님이 보시고 비슷하다고 관심을 갖는 거예요. 달을 이렇게 만들고 해를 동쪽에서 뜨게 만들었는데 서쪽에서 뜨면 관심을 갖겠어요?

여러분은 양자의 자리를 정복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양자에서 양자의 주인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종을 정복하기 전에 종의 중심이 나올 수 있겠어요? 또, 종의 종을 정복하지 않고 종이 나올 수 있어요?「안 나옵니다」그거라구요. 종의 종을 정복해야 종이 나오는 거예요. 종의 세계에 가서 종들을 정복해야 종의 주인이 나온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종의 주인을 정복하면 아들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종을 정복해서 주인의 자리에 서야만 비로소 아들의 자리, 아담의 자리에 올라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걸 보면 양자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알겠지요? 양자가 왜 나오는 것이냐 했을 때 양자는 그저 그렇게 나오는 것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구요. 어떻게 해야 양자가 될 수 있다고요?「종의 주인이 되어야 됩니다」종의 주인이 되려면 종을 완전히 이기지 않고는 주인이 못 됩니다. 싸워서 이겨야 된다구요. 정복해야 된다구요. 종을 완전히 정복하지 않고는 주인의 자리에 못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 주인의 자리가 왜 아들의 자리냐? 에덴 동산을 보게 되면, 아담이 천사장을 주관할 수 있는 주인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은 자연히 아들의 반열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창조도 외적으로 창조했기 때문에 외적형(型)은 가인형이니 결국은 형(型)으로 볼 때에 양자의 형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천사장의 아들이 양자가 될 수 있는 원리적 조건

그러면, 아들은 천사장의 아들인데 왜 하나님의 양자가 되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시험을 치면 여러분은 답을 어떻게 쓰겠어요? 천사장의 아들이 어떻게 양자가 돼요? 양자가 될 수 있는 원리적인 조건이 뭐예요?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그럴 때는 이렇게 대답해야 된다구요. 아담은 천사장을 지배할 수 있는 주인이었기에 천사장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대답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의가 없다구요. 그렇게 하여 사탄도 '이의없이 완전히 지배받겠습니다' 하게 될 때에는 아들의 자리에 나가게 되는 겁니다. 타락 전 아담의 자리에 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리는 장성기 완성급이기 때문에 완성을 중심삼고 보면 외적인 형으로서 양자의 형입니다. 아들 중에 외적인 형의 아들이 뭐냐 하면 양자입니다.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양자란 아들이 없을 때 맞아들이는 자식입니다. 진짜 아들과 양자는 핏줄이 다르지요? 핏줄이 다르다구요. 만일에 이 양자가 직계 아들이 될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직계 아들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직계 아들의 자리에 못 들어갑니다. 왜 그런가 보라구요. 양자를 들였다는 것은 아들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아들이 없을 때 양자를 들이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래서 양자를 들였는데 부모가 뒤늦게 아들을 낳았다 할 때에, 양자가 그 태어난 아들을 미워해 가지고 자기가 아들이 될 수 있겠어요? '응애' 하고 태어난 아기가 아들이라는 거예요. 아들 없는 집에 아들이 태어났으니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겠어요, 나빠하겠어요? '아이구, 아들이 없어 양자를 들였는데 아들이 태어났구나' 어머니 아버지가 그래요, 좋아 해요?「좋아합니다」 좋아하는데 양자는 한 구석에서 좋아하게 마련이예요, 섭섭해하게 마련이예요?「섭섭해…」 섭섭해했다가는 국물도 없다구요. (웃음) 양자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양자는 아들이 태어나면 자기는 양자가 못 되고 종이 되더라도 좋다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부모는 그래도 아들을 낳기 전에 양자의 몫으로 쳐 두었던 것을 그대로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미워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게 됩니다. (웃음) 그래요, 안그래요?「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양자권인데 예수님이 온 것을 환영했어요, 안 했어요? 안 했습니다. 그러니 국물이나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없었습니다」그래서 다 까먹은 거예요. 다 까먹었지요? 결국 그들은 제1 이스라엘을 다 말아먹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추방령이 내려진 거라구요.

이제 양자의 갈 길, 운명이 어떠한지 알겠지요?「예」기가 막혀도 할수없다구요. (웃음) 양자는 출발지부터가 다르다구요.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만약에 양자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부모를 잘 모시고, 또 아들을 대해 가지고는 그 부모를 위하는 것보다 더 위할 것입니다. 아들을 부모보다도 더 잘 섬긴다고 법에 걸려요?「안 걸립니다」부모가 '야 이놈의 자식아, 네가 양자면 내게 속했지 우리 아들에게 속했어?'라고 하겠어요? 그 양자는 누구에게 속한 거예요? 부모에게 속했지요? 부모에게 속하긴 했지만 부모보다도 아들을 더 열심히 위한다면 그 부모가 그것을 보고 좋아하겠어요, 싫어하겠어요? 그저 좋다는 거예요.

만일 양자가 그렇게 하면 어디서부터 기업(基業)을 나눠 가질 수 있느냐? 부모가 아들에게 기업을 상속하게 될 때, 아들이 부모에게 '부모님, 나는 이것을 안 갖겠어요. 이 사람은 이렇고 이런데 난 얼마든지 또 가질 수 있으니까 이 사람에게 주세요'라고 하면 '응, 그래. 그럼 너 가져라' 하는 것입니다. 상속받을 수 있는 기준이 생겨나는 거라구요. 아들이 좋다고 해야 기업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거라구요. 이것이 접붙이는 일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려면 양자와 직계 아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래야 접붙여지는 거라구요. 그렇게 될 때에 상속은 직계 아들과 양자 둘이 나누어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한 뿌리에서 두 줄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접붙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실감이 날 거라구요. 이제는 양자에 대해 알겠지요?「예」

직계 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러면 직계 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직계 아들은 어떤 길을 걸어와야 되느냐? 사위기대 사랑을 갖춘 자리에서 슬픔을 느낀 자가 아니고는 직계 아들의 가치를 갖고 나설 수 없습니다. 직계 아들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아담과 해와가 타락했을 때에 하나님의 슬퍼하던 그 마음, 그게 누구 때문이예요? 사람 때문에. 따지고 보면 자신의 아들 때문에 그렇게 됐거든요. 그렇잖아요? 본래 아담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거든요. 다시 오는 참아들부터 복귀된 아담이라구요. 아담 자신 때문에 그렇게 하나님이 슬퍼하신게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슬퍼하신 그 슬픔을 전부 다 알아 가지고 내가 그 이상의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그 슬펐던 사연을 어떻게 없애느냐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이 삼대 사랑을 유린시킨 사람이 누구냐? 아담입니다. 그걸 생각해야 됩니다. 천사장 다음에는 아담이라구요.

이제 아들로서 책임져야 할 것이 뭐냐? 삼대 사랑의 한을 품게 한 주체적인 동기의 존재가 누구냐? 그게 누구라고요?「아담입니다」교회장입니다. 그게 아담이라구요. 교회장은 아들의 자리인데 아들의 자리는 아담 직계입니다. 개인적,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으로 단계와 차원이 다를 뿐이지 아담 직계라구요. 그것은 아벨 자리라구요. 아벨이 지금 아들의 자리를 맞은 거라구요. 그렇지요?

하나님은 아들 때문에 이상 실현 사랑권을 뒤집어 놓은 것입니다. 그것을 뒤집어 놓을 때 하나님이 기뻤겠어요? 하나님은 부모를 잃어버리는 슬픔을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없는 것에 대해 슬픔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부부를 못 가진 자리에서 하나님은 부부를 잃어버린 슬픔을 느끼셨습니다. 또, 자녀를 못 가져 봤지만 완전한 자리에서 자녀를 잃어 버린 슬픔을 느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슬픔을 느끼신 그 이상의 기준에서 그 슬픔을 해소시켜 드릴 수 있는 아들로서, 하나님과 하나되는 사람이 나와 가지고 하나님의 슬픔을 해소시켜 드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연의 이상적인 사랑권을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복귀원리는 슬픈 역사과정을 알려 주는 교훈

그러면 우리 복귀원리는 무엇이냐? 이 슬픈 역사과정을 알려 주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아담이 타락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슬퍼하셨느냐? 그 아담이 타락한 내용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천지가 꼬여 들어가고 수천년 동안….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서, 아담이 타락하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얼마나 심각했겠어요? 그런 생각 해봤어요? 얼마나 아찔하셨겠어요? 아찔하기만 하셨겠어요? 여러분들 생각해 보라구요. 타락한 인간들에게도 '아이고, 죽겠다' 할 때, '아이고' 하는 그런 기준이 있지만, 그런 기준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그런 심각한 자리가 아니겠느냐는 거예요. 그렇지요? 부모의 기준만 깨어져 나가고, 부부의 기준만 깨어져 나가더라도 그러실 텐데 자녀의 기준까지 한꺼번에 몽땅 깨어져 나갔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어요?

예를 들어, 어머니 아버지 처자 다 잘살고 있는데 하루 아침에 원수가 몽땅 빼앗아 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실감이 안 나겠지만, 한번 느껴 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떤 사람이냐? 이상적인 아버지를 죽인 자요, 이상적인 어머니를 죽인 자입니다. 이상적인 신랑을 죽인 자요, 이상적인 신부를 죽인 자요, 이상적인 아들과 딸을 죽인 자입니다. 이걸 죽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나를 살리기 위해 창조했던 모든 것을 깨뜨려 버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어요? 나는 원한의 장본인인데 그 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어요? 체면이 있어요, 없어요? 여러분 체면에 부를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버지라고 잘 부르지요? 그것은 남의 아버지를 빌려다가 부르는 거라구요. 진짜 아버지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런 내용을 모르니까 아버지라고 부르지, 원리가 그렇게 안 되어 있어요. 그렇지요?「예」그런 원수, 그런 원한의 장본인이 뻔뻔스럽게 돌아와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아내가 있으면 아내를 몇백 번, 몇천 번이라도 죽이고 나타나야 할 나요, 부모가 있으면 부모를 몇백 번 죽이고야 비로소 얼굴을 들 수 있는 '나'가 아니냐? 또, 자녀가 있으면 자녀를 몇백 번 죽여야 비로소 하나님에 대해서 '아버지!' 하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줄지 어쩔지는 모르지만, 용서받을 수 있는 가망성이라도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라도 가져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 그것도 못 해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를 부정하고, 부부를 부정하고, 자녀를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충효의 도리

그럼 통일교회 문선생을 중심삼고 볼 때에 선생님은 그런 경지에 들어갔을 것 같아요, 안 들어갔을 것 같아요? '하나님, 체면상 할수없지 않습니까? 나만한 사람도 없으니까 눈감고 그렇게 해주어야지요' 이렇게 하는 것이 효자의 도리예요? 이것은 충신의 도리도 아니요, 심정의 도리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범죄를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자기 부모를 천만 번 잃더라도, 처자를 잃어버리는 그런 환경에 나설 수 없는 이 몸이 그렇게 해서 나설 수 있다면, 기쁘게 나서야겠어요, 슬프게 나서야겠어요? '아이고, 이건 남이 그런 것이니 덮어주면 좋겠소'라고 조건적으로 슬프게 나설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없게 되어 있어요? 대답해 보라구요. 그렇게 나설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없게 되어 있어요?「없습니다」정말 없게 되어 있어요?「예」

그런데 만일에 부모나 처자를 죽이지 않고 대신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가겠어요?「예」하나님이 분풀이를 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아, 개운하다' 하실 수 있도록 여러분이 고생을 하는 거예요. 그래 놓고는 하나님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분풀이를 하고 나서야 뭘 생각할 것 아니예요? 하나님이 분풀이를 하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본래는 내 자식들인데…' 이러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오히려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될 때에,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직접 가서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보다 가까운 사람을 '야, 아무개야!' 하고 불러내서 네 가정에 무슨 소원이 없느냐고 묻는다는 거예요. 그럴 것 아니예요? 인간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수 있는 길밖에 없다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소원이 뭐냐고 물을 때에는 '아이고, 고맙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올 줄 알았어요'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라구요. (웃음) 소원이 무엇이냐고 할 때,'내 소원이 뭐가 있겠소. 난 이미 죽었던 몸, 우리 가족들도 전부 다 죽었어야 할 텐데 아직까지 살아 있으니 하나님의 은공에 망극하고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하나님, 난 그럴 줄 알았어요'라고 했다가는 모든 것이 나무아미타 불이 된다구요. (웃음) 그럴 때에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는 누구 보다 더 비참해야 하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내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라고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세상에서 인간을 대해 느끼지 못하던 감격의 심정을 폭발시켜 나오는 겁니다. 그 자리에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오냐 오냐' 하며 창조 본성의 마음이 폭발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어디서 나오느냐? 악에서는 못 나오는 거예요. 사탄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사탄에게는 없는 마음이라는 거예요. '결국은 그 마음은 내게서 나온 것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없지만 결국 사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 자기에게서 나온 마음이기 때문에 붙들고 통곡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인연이 맺어지는 거예요. 까놓고 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해돼요?「예」

하나님과 심정일체만 되면 교회는 자동적으로 발전해

그러니 지금까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내세우며 돌아다닌 패들, 한번 자신들을 냉정히 비판 분석해 보라구요. 이게 전부 다 원리적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나가 전도하는 데 있어서 갖추어야 할 원리적 기준, 주체적인 좌표를 이야기해 주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가는 곳에는 사탄도…. 만일 사탄이 나왔다가는…. 그것을 아는 사탄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탄은 영물(靈物)이어서 그것을 아니까 나타나요, 안 나타나요? 안 나타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부흥이 벌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내가 이렇게 신음하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덕을 받아 이렇게 용서를 받았으니, 나는 나와 같은 입장에서 신음을 하는 딱한 사정의 저 사람과 부자의 인연을 맺어야 되겠다. 그렇기 때문에 밤을 새워 기도하고 그를 위해서 피땀 흘리는 것은 당연지사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옛날에 우리 부모가 억울했던 것을 여기서 찾아서 새로이 맞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런 과거지사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거두어 들일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될 때는 여러분이 뭐 교회 잘되라고 기도할 필요도 없는 거라구요. 그것이 누구에게 달려 있느냐 하면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달린 게 아니라구요. 누구에게 달려 있어요? 우리들에게요 여러분이 하나님과 심정적 일치점을 이루어 가지고 아들의 명분을 이어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발전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노정을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거리가 멀었어요? 한 십리 거리 돼요? 지금까지 여러분이 교회장이라고 해서 돌아다닌 것이 이런 본질적인 심정의 궤도를 중심삼고 볼때, 얼마나 멀었어요? 가까왔어요, 멀었어요?「멀었습니다」얼마나 멀었어요? 그러면 가까와지려고 발이나 디뎌 봤어요? 한 발짝이라도 디뎌 놓았어요, 못 디뎌 놓았어요?「못 디뎌 놓았습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가서 뼈가 틀어지고 살이 다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껴 가지고 하나님의 은덕을 받은 사람이 '아버지' 하고 부르는 그 아버지의 이름은 다르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 이름은 부르면 부를수록 좋은 것입니다. 내가 죽기 전에 천번 만번 정성을 다해서 한마디라도 땅 위에 남기고 그 고를 높여 가지고 하나님의 깊었던 사연을 자신으로 말미암아 가려 드릴 수 있으면 그 이상의 행복이 어디에 있겠느냐? 여러분은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을 통곡시켜야 된다구요.

효자를 둔 부모는 그 자식 때문에 숨어서 흐느껴 우는 시간이 있는 거라구요. 한 번이면 한 번, 두 번이면 두 번, 세 번이면 세 번, 열 번이면 열 번, 그 수가 많을수록…. 부모가 뼛골에 사무쳐 흐느끼며 '이와 같은 아들은 천추만대에 없던 효자다'라고 자랑할 수 있는 아들, 기쁨 가운데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는 자리에서 자랑할 수 있는 그런 효자의 칭호를 갖지 않고는 역사에 남을 만한 효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그럴 수 있어야 된다고요. 그래야 하나님도 눈이 번쩍 뜨여 가지고 '그래?' 하시며 당장에 입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효자 충신은 만고, 청사에 길이 빛나게 되는 겁니다. 그럴 것이 아니예요?

임지가 이상 실현의 장

통일교회 문선생도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하고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하고 어때요? 달라요, 같아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은 전부 다 원리적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지요? 거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구요.

그러면 이상 실현의 장이 어디냐?「임지입니다」임지예요. 그럼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그 내용의 터전이 무엇이냐? 사위기대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을 뒤집어엎은 거라구요. 강도 중의 최고의 강도라구요. 알겠어요? 깡패 중의 최고의 깡패요, 불량자 중의 최고의 불량자라구요. 또 불효자 중의 최고의 불효자이고 간신 중의 최고의 간신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세상에 용서 못 해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런 죄를 용서 받은 내가 세상에 대해서 용서하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마음만이 아니라 신경선에서 그 작용이 나와 더불어 화합해 가지고 내 감정을 울려 상대권을 만드는 날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창조적 이상이 실현되는 자예요. 사랑의 이상이 아니라고요. 재창조의 역사가 벌어진다 이겁니다. 재창조가 끝난 후에 이상적 사랑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불쌍한 입장에서 최고의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업고 나가는 자리에서 지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하는가, 안하는가. 같이하지 않으면 선생님은 가짜라구요. 하나님이 같이할 것 같아요, 안 할 것 같아요?「같이하십니다」그런 심정을 갖고 나가 보세요. 밥을 굶을 것 같아요? 굶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도' 하게 되면, 여러분 자신이 강도라는 것입니다. 물건을 빼앗는 그런 강도가 아니라, 부모의 권위를 겁탈하려고 했던 강도입니다. 그렇지요? 부모, 다시 말하면 어머니를 겁탈한 녀석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버지를 죽여 버리고…. 그러니 어디 용서받을 수 있는 법이 있겠어요? 그렇잖아요? 누나를 겁탈하고 누이동생을 겁탈하는, 다 겁탈한 거라구요. 하나님의 아내를 겁탈하고, 인류의 부모를 겁탈하고, 죄 중에서 최고의 죄를 범한 것입니다. 누가? 천사장이 그랬지요? 여러분들은 천사장과 같다구요. 그거 용서받을 수 있는 법이 있어요? 남자들은 도둑이라서 그렇다는 거라구요. 선생님은 이런 경지를 발견했기 때문에 오늘날 복귀의 천국이 개문될 수 있는 골짜기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그것이 가능할 것 같아요? 이상 실현은 거기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기뻐하고 우리도 기뻐하려면…. 지금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기뻐하시나요, 마지못해서 기뻐하시는 표시를 하나요? 생각해 보라구요. 이상 실현이 우리 시대에 사위기대 사랑을 중심삼고, 여러분들을 중심삼고 이루어져요? 대답해 보세요. 이루어져요, 안 이루어져요? 이루어지려고 해요, 이루어지려고 지금 준비를 해요?「준비하고 있습니다」준비는 어떤 준비예요? 준비가 될 수 있는 자리에서 준비한다고 하는 거예요, 준비가 될 수 없는 자리에서 준비한다고 하는 거예요? (녹음이 잠시중단되었음)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고 한 뜻

하나님의 사랑과 단 한 시간만이라도 같이할 수 있으면, 천년 만년 사는 것보다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경지에서만 하나님의 사랑이 언제나 같이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그러면 사위기대 사랑의 이상 실현을 한번 해보겠어요?「예」선생님은 지금까지 50평생 이 일을 해 나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30대지요? 그러니 패기를 가지라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나이 30도 안 된 사람들이 뭐 자기 멋대로 하겠다고 해서야 되겠어요?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안 됩니다」다 망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는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만하게라도 했으니까 남아진 거라구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돼요. 여러분이 이런 자리에 선 것만 해도 황송한 일이라구요. 알겠어요? 도저히 설 수 없는 자리라구요.

따지고 보면 천사장이 아버지를 몰아내고 어머니를 몰아냈다구요. 여기에는 용서하는 법이 없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재창조하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아들을 찾는 날에는, 아버지가 지금까지 해 오신 수고와 아픔 그리고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당했던 억울함은 뿌리도 남기지 않고 없애 버려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니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입니까? 그런데 '내가 뭐 어떻고 어떻게 수고했는데 본부에서는 뭐 어쩌고 저쩌고 몰라준다'고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난 그럴 수 있다는 사람을 연구해 봅니다.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자고 했지요? 그렇게 해야 된다구요. 그리하여 끝날이 되면 '이 몸이 다 쓰러지더라도 뜻을 위해 일한 것에는 한이 없다. 내 손과 발을 잘라서 어떻게 하든 한할 수 없다'고 할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거예요.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해서는 깨끗이 벌을 받고 나야만 동정도 깨끗한 동정이 나오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여러분은 이런 것을 알고 탕감의 행로에 있어서 여러분이 이런 중차대한 일을 중심삼고….

이제까지 말한 바와 같이 복귀의 이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상 실현권을 이룬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세계와 하늘땅에 있어서 모든 어려움을 갈라내는 이 판국에, 나와 하늘과 이 상대세계에 있어서 판결을 짓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될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고 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여러분들이 이렇게 나아가게 될 때에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하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여러분들이 한다고 해도 이상적 사위기대 실현장이 나타날 수 있어요? 「없습니다」 안 된다구요. 하나님이 같이해 줘야 됩니다.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면 그 아들이 보고 싶겠어요, 안 보고 싶겠어요? 보고 싶을 게 아니예요? 그 아들이 자기의 몸이라구요. 아버지의 몸이라구요. 또, 그 아들은 아버지가 사랑을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존재입니다. 그 몸이 없으면 사랑을 못 합니다. 선생님이 영적으로 여러분을 많이 지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몸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땅 위에 있어서 하나님이 활동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몸이 없으면 안 되는 거라구요. 사랑이니 무엇이니 전부 다 선생님을 통해 가지고 비로소 횡적인 터전을 가질 수 있는 거라구요. 그런 입장에서 여자들은 전부 다 선생님을 사모하는 거예요. 남자들도 마찬가지로 천사장 입장에서 사모하는 거예요.

에덴 동산에 있어서 천사장, 해와, 아담, 하나님을 중심삼은 그 자리는, 누가 칼을 가지고, 권세라든가 무슨 수단을 가지고 갈라낼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만약 갈라낼 수 있는 자리라면 영원한 하늘나라가 아니라구요. 그 무엇으로도 갈라낼 수 없다 이겁니다. 칼이나 기근이나 적신(赤身)이라도….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끌어낼 수 있다고요. 그것은 형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누가 끊으리오?' 하고 바울이 경탄한 것도 그것을 뜻한다구요. 알겠어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는 이상 실현이 불가능함을 명심하라

여러분 형제끼리는 가인 아벨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사소한 일로 쑥덕쑥덕하고, 누가 뭐라 하면 '그래?' 하면서 의심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한번 믿었으면 내가 망하더라도 믿어야 되는 겁니다. 불평하면서 믿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믿어야 됩니다. 자기가 이용당했더라도 절대 안 망합니다. 알겠어요? 선생님도 많이 이용당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절대 안 망한다고요. 믿어 줬기 때문에, 더우기 아벨적인 입장에서 믿어 줬기 때문에, 무엇으로 봐도 선생님의 입장에 섰고, 또 모든 면에서 줄 수 있는 부모의 입장에 섰고, 가르쳐 주고 지도해 주는 형님 입장에 섰다는 겁니다. 그런 3시대를 대표한 입장에 서 있는데 한 시대의 개인의 욕망을 못 채워 주겠어요? 그걸 못 채워 준다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나를 대한 실증적인 욕망을 못 채워 준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용당했다 하더라도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원리적인 내용을 알아 둬야 됩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책임져야 합니다. 생명을 구하는 것은 여러분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 단에 나서서 말하는 그런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밤새도록 형제가 그리워서 죽고 싶은 심정으로 해야, 이불 속에 들어가더라도 혼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누운 곳에 아버지가 같이 자러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야 하나님이 그 자리를 찾아오는 거라구요. 우리 마음속에까지 모시려면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그렇지요?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해야 되겠어요? 그저 본 척 만 척해 가지고…. 그런 데에 하나님이 뭐하러 오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사는 자리를 깨끗이 해야 된다는 거예요. 밥을 먹더라도 반드시 '이 자리는 아버님이 계신 곳이구나'하고 생각해야 하고, 어떤 자리를 지나가게 되더라도 '싸움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하는 것을 일구월심 소원해야 됩니다. 효의 마음을 여기에서 다시 찾아와야 된다구요. 또 여기에서 충의 도리를 다해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어 가지고는 이상 실현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아까 말한 그런 길을 거치지 않고는 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식입니다. 알겠어요?「예」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전국에 있는 어린 자녀들이 며칠 동안 이 자리에서 동거동숙하면서 지난날을 반성하고, 현재의 사명을 깨달을 수 있는 귀한 날을 부여해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늘을 대해서 얼굴을 들 수 없고, 땅을 대해서 고개 숙일 수 없는 모습이기에 백번 천번 수난의 길을 가더라도 감사하며, 쓰러지기 전까지는 정성을 다 기울여 가야 하는 저희 자신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통일교회의 슬픈 역사를 회고해 볼 때에, 저희들은 너무나 어리석고 부족하였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것은 불의와의 싸움이 너무나도 치열하였기 때문에, 일선에 나가 가지고 후방으로 돌아올래야 돌아올 수 없는 심각한 초비상 시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한번 나가면 돌아올 수 없는 입장에서 싸움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세월과 더불어 지친 무리가 된 저희들에게 후대하신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해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당신이 저희들을 부르신 것은 저희 개인을 위하여 부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 한 사람이 잘못하면 나 한 사람의 개인만 망하면 좋겠지만, 저희들의 책임을 중심삼고 볼 때에, 나 개인이 한번 잘못하면 그 부락과 면과 고을이 걸려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도해 나오던 통일교회 역사 가운데에 그와 같은 일이 많았던 것을 바라볼 적마다, 책임을 진 사람들이 얼마나 두려운 자리에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희들은 하늘 앞에 있어서, 통일교회 역사 앞에 있어서 도움은 되지 못하더라도 나쁜 결과를 가져오지 않도록, 선한 기준을 남겨 놓을지언정 악한 기준을 절대로 남겨 놓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복귀섭리의 기수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타락 당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자리였지만, 지금 이때에 또다시 용서 받을 수 없는 자리에는 죽더라도 절대 서지 못하겠다고 몸부림치면서, 끝까지 책임수행을 다하겠다고 밤이나 낮이나 노력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이들을 통하여서 협조할 수 있는 내용을 찾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끝까지 참아 나가는 당신의 아들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전국에 있는 교회들을 지키시옵소서. 이들이 이번에 돌아감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고 민족의 소원을 이루어 아버지 뜻앞에 품길 때까지, 내 한몸이 땅에 고이 묻혀 거름이 되어 민족의 꽃봉오리를 피울 수 있는 거룩한 아들이 되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들이 돌아가서 움직이는 곳곳마다 새로운 하늘의 인연이 맺어지고, 이들로 말미암아 하늘의 역사로 일깨워지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상 실현은 아버지의 사랑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이 부모의 마음, 부부의 마음, 자녀의 심정을 다하여 하늘과 더불어 이 땅을 속죄시켜야 할 제사장의 책임을 다하는 거룩한 무리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부복한 아들들, 이제 돌아가는 시간이옵니다. 큰 사명을 앞에 놓고 이제 헤어져서 새로운 인연을 맺어야겠사옵니다. 전후가 달라지는 입장에 서더라도 일편단심 아버지를 위하고 아버지의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다 같기 때문에, 상처가 크면 민족의 상처가 큰 것을 느끼면서나 자신의 상처로써 극복하고 끝까지 남아지는 거룩한 아들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달 들어 처음 맞이하는 안식일 아침이옵니다. 지나가는 모든 날들이 당신과 더불어 인연이 맺어지고 당신이 허락하신 뜻 가운데 기쁨이 되어야 할 것을 알고 있지만, 악한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당신 앞에 염려와 슬픔을 남기고, 또 그렇게 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당신 앞에 바쳐지는 이 안식일만이라도 아버지의 기쁨이 되고, 소원이 되고, 자랑이 되기를 바라옵니다.

만복을 허락하시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이 거룩한 이와 같은 날들을 통하여 개개인의 심령동산에 심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거룩하심으로 부족한 저희의 마음을 사로잡으시사 저희들도 당신의 거룩한 모습을 닮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은은한 가운데 생명의 빛과 생명의 힘을 부족한 저희 자체들에게 연결하시사, 당신이 소원하시는 뜻 앞에 있어서 필요한 당신의 자녀들이 될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채찍질을 해서라도 세워 주시옵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

여기에 모인 저희 각자는 당신이 허락하신 은사를 따라 모였사옵고, 당신 앞에 돌아가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이 아침에 부복했사옵니다. 당신이 능력의 아버지이신 것을 믿고, 생명의 원천이신 아버지이심을 알고, 사랑의 주인공 되시는 아버지이신 것을 저희들이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완전 완성을 표준하여 당신의 마음에 합당한 자가 있으면 언제나 대하지 않음이 없으신 아버지시여, 그러한 사람이 여기에 있게 될 때에는 거룩하신 은사를 가해 주실 것을 믿사옵고, 또 그런 소망을 가지고 당신께서 찾아주실 것을 바라고 모인 이 자리이오니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아버지, 만복을 저희 개개인의 심령 위에 개개인의 소성에 따라 채워 주시옵기를 바라는 이 아침이옵니다. 만민이 당신 앞에 부복하여 영광의 한때를 고대하는 간절한 마음을 묶어 바치는 이 아침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버지가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목격하고 있습니다. 과연 아버지가 이 세계 인류 가운데서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표준형으로 뽑아 내세울 수 있는 사람, 당신 마음에, 혹은 당신 사정에, 혹은 당신의 소원 앞에 없어서는 안 될 자녀가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할 때, 지극히 지극히 지극히 적은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당신이 요구하시는 그 요구와 더불어 심정의 인연을 맺어 나가며 자기 스스로를 세워 맹세 하는 아들이 누구며 딸이 누구냐고 묻게 될 때에, 여기에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 가운데 '나'라고 대답하며 나설 수 있는 아들들이 몇 명이라도 있기를 바라고 있나이다.

늘 보잘것없는 연약한 이 무리들과 더불어 수고하시는 아버지, 외로운 자리에서도 항상 참으시면서 저희들을 권고하시는 아버지, 슬픔의 환경을 홀로 책임지시고 저희들의 안위의 한날을 개척하기 위하여 선두에 서서 나오신 아버지, 그러한 아버지이신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를 심정의 주인으로 모시지 못한 불효막심한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무한히 무한히 영원한 생명으로 저희 자체를 부활시키어 오늘도 창조역사를 계속하시는 아버지이신 것을 미처 몰랐던 부족한 저희들을, 아버지,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옷깃을 여미고 당신의 거룩하신 성상을 바라보면서 흠모와 사모의 심정에 사무칠 수 있는 한 시간을 고대하고 있사오니, 분부하시고 싶은 것이 있으시거든 찾아오시어서 저희 몸 마음에 사무칠 수 있게끔 분부하여 주시옵고 새로운 명령의 인연을 통하여 당신이 원하시는 곳을 향하여 가지 못하거든 그곳을 향해 가라고, 아버지, 채찍을 들어 쳐서라도 그 자리에 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9월을 맞이하였습니다. 저희들이 한 많은 1971년도를 맞이하여 어려운 고빗길을 거쳐왔습니다. 많은 행사도 치렀습니다. 이제 저희들 앞에 중차대한 책임과 사명이 있다면, 이 민족과 세계 앞에 당신이 가려야할 최후의 심판대를 맡을 수 있는 속죄의 제물을 드리는 것이옵니다. 이러한 책임이 저희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자각할 줄 아는 무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나라의 현 정세를 슬퍼 보시고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금후의 대한민국의 운명을, 아버지, 책임져 주셔야 되겠습니다. 그 누구도 이 나라를 이끌지 못하고, 그 누구도 이 나라를 책임질 수 없으며, 당신만이 이 나라를 천운의 방향에 일치시킬 수 있사오니, 은은한 가운데서 저희 각자의 마음과 이 민족의 심정을 묶으시어서 당신이 원하시는 뜻 앞에 일치되도록 이 민족이 그 방향을 갖출 수 있게끔, 아버지,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람이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천운을 막을 자가 없는 것이요, 천운의 법도를 따라 그 궤도에 순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생각할 적마다, 이 나라를 지도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당신의 마음이 어리시어서 최후의 결정적인 이 정세 앞에, 당신의 섭리의 뜻 앞에 필시 귀결되어야 할 일점을 아버지께서 제시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교회는 온 세계가 원하는 길을 가고자 하고, 하늘땅이 원하는 그 한날의 승리를 다짐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허덕이며 싸워 나온 것을 당신은 잘 알고 계시옵니다. 오늘의 슬픔이 있더라도 저희들은 현시점의 자기 개인적인 사정을 위해서 슬픈 자리에 서기를 고대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일의 희망을 위하여 나라와 세계의 운명과 더불어 슬픔을 갖고 싶어하는 것이 통일사상을 가진 자녀들의 긍지인 것을 느끼게 될 때, 저희 자신들이 아버지 앞에 부복한 이 자리가 하늘의 승리가 국가를 넘어 세계와 천주적인 인연을 거칠 수 있는 그곳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부복한 이 자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옳지 못한 각자의 사심을 제거시키어 참다운 하늘의 마음을 이어받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당신이 분부하시는 승리의 한날을 다짐할 수 있는 승리의 실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앞에 제물로 바쳐져야 할 저희 자신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오니, 아버지께서 몰아서라도, 끌어서라도 제물의 제단까지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철모르는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을 향하여 가는 아브라함에게 그 자식인 이삭이 제물로 쓰일 양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게 될 때에, '그것은 네가 걱정할 것이 아니다'라고 하던 아브라함의 마음을 살필 적마다, 그 부모의 마음을 살필 적마다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는 아버지의 마음에 그 얼마나 슬픔이 앞설 것인가를 느끼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염려하기 전에 자기 자신과 자기 주변의 사실들을 염려할 때가 많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제 저희들은 자신을 넘어서 먼저 아버지의 마음을 염려하고 아버지의 주류를 지킬 수 있는, 진정한 효 중의 효를 다하고 충에 충을 다하는, 아버지 앞에 없어서는 안 될 아들딸이 되고 그 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각뿐만이 아니라 신념과 더불어 맹세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악한 세계에서 태어난 불쌍한 자신을 탄식하면서, 소망의 천국을 바라보는 그 마음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그 마음을 다짐하는 가운데 나 자신이 승리의 한 결정점을 언제 가름하느냐 하는 문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각자인 것을 스스로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좌로 가느냐, 우로 가느냐 하는 두 갈래의 길 가운데서 우를 결정해야 할 운명길을 스스로 가리지 못하는 불쌍한 무리이기에, 여기에 당신이 또 가려 줘야 할 책임이 남아지는 것을 생각하옵니다. 수고의 역로를 거쳐오신 아버지께서는 늘 최후의 도상에서 저희들로 하여금 이런 결정적인 책임을 다짐하게 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면목없고 부족한 저희 자신들인 것을 탓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은 아버지의 슬하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이요, 아버지의 품을 벗어나서도 살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죽더라도 그곳을 향하여 돌진하고, 그곳에 머물기를 바라는 소원의 일념만은 틀림없이 갖고 있사오니, 이 무리들을 거느리시어 당신이 원하시는 세계의 도상에 세우시기에 부족함이 없게끔 연단시키시옵고, 사랑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전국에 널려서 부족하나마 이곳을 바라보면서 정성을 들이는 자녀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곳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시대적인 사명과 전체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 있는 어린 딸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눈물어린 사정과 딱한 사정에 놓여서 하늘을 부여안고 호소할 적마다 당신이 친히 현현하시옵고, 부디 모른다 하는 자리에 서지 마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그런 자리에 선 것은 당신의 뜻 때문이요, 당신이 이 민족을 찾아오시고, 이 민족을 사랑하시고자 하는 그 소망을 풀어 드리기 위한 것이옵니다. 하오니 부디 승리의 일로를 개방하시어 내일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시옵소서. 오늘은 부족하지만 당신의 신임받는 딸들이 되고, 그 환경에 처해 있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부족한 마음 몸을 아버지 앞에 바치오니 분부하시고 싶은 내용이 있으시면 당신의 자녀를 통하여 분부하여 주시옵소서. 선과 악을 분별시키기 위한 당신의 소원의 뜻을 저희 자체로부터 이 환경 전체에 적용하시옵고, 민족과 세계로 연결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날을 귀히 여기고, 당신을 찬양하는 모든 무리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종교인들과 소망의 마음을 품고 세계에 널려 있는 선한 사람들 위에 생명의 가름길을 어서 속히 허락하시어 내일의 형제로 묶으시어서 당신의 나라에 없어서는 안 될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의 은총과 사랑을 여기 모인 자녀들 위에 내려 주시옵고, 수많은 무리들 위에 내려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말 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선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선한 자아를 추구하는 마음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개인이 그러한 입장에 있고, 사회가, 나라가, 세계가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것을 직시하며 자기 자신이 이 문제를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 통일교회의 무리들은 전체 분야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더욱더 그런 마음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타락한 인간은 선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선을 추구하고 그 길을 따라간다고 해서 누구나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는 안 되어있는 것입니다. 선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여기에 상반된 악의 주체인 사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탄 둘 사이에서 하나님과 사탄이 인정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전진적인 선의 자리를 찾아 나갈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섭리상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의 입장에서 보다 나은 선의 자리에 나가기 위해서는 거기에 상응하는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보다 나은 선의 자리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내용의 탕감조건을 하나님이 제시하든가 인간이 제시하든가 해야 된다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보다 나은 선의 자리로 나가려면 대가를 치러야

오늘에 있어서 소망을 갖고 내일을 다짐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 소망이 크면 클수록 그 소망 앞에 가까와지기 위하여 전진하는 자기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자리가 되기 위해서는 그 배후에서 노력을 하든가 희생을 치러야 되는 것입니다.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환경이나 역사를 막론하고 반드시 거기에 대비될 수 있는, 혹은 비례될 수 있는 대가를 치러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실정이었으며, 현실에서 우리가 보다 나은 길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 서도 필연적인 길이 아닐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도 자신이 추구하시는 길에 있어서, 보다 나은 어떤 목적을 찾아 나가는 길 앞에 있어서 역시 그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악한 타락권내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 즉 인간세계에 있어서는 누구든지 이런 공식적인 법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생각할 때, 선을 추구하는 길에 있어서 선을 대하고 선을 바라보는 마음을 가진 입장에 섰다고 해서 자기가 바라보는 선의 기준에 해당하는 기쁨을 차지할 수 있겠느냐 하면 그냥 그대로는 차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크면 클수록 자기 자신이 그것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결과에 도달한다면 거기에 해당하는 기쁨을 차지할는지 모르지만 그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거기에 해당하는 기쁨을 차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복귀섭리 도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이치가 성립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다 나을 수 있는 길들을 통하여 보다 나은 개인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시대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은 보다 나은 사람을 추구하여 나오신 것입니다. 보다 나은 사람을 세워 가지고 보다 큰 가치의 선의 세계를 찾아 나오면서 그 세계를 다짐해 나온 것이 역사가 추구해나온 길이요, 역사가 발전하는 목적이 되어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역사 발전의 법칙

이렇게 보게 된다면, 복귀섭리 도상, 즉 역사시대에 나타났던 수많은 선지선열들 중에서 어떤 시대의 사람이 보다 나은 사람이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아담 시대로부터, 아벨을 거쳐 노아 시대, 아브라함 시대, 모세 시대. 세례 요한의 시대를 거쳐 예수님의 시대까지, 또 예수님의 사도들이 기독교의 역사를 엮어 나온 시대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향진적이고 발전적인 역사의 행로만을 거쳐왔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시대에는 높은 자리를 차지했었는가 하면, 어떤 시대에는 내리막길을 걸었고, 또 어떤 시대에는 바른 길로 갔는가 하면 어떤 시대에는 엇갈린 길에 처하여 방향을 잃어버린 때도 있었습니다.

역사의 발전이라는 것은 어제보다도 오늘이 나아야 되고, 오늘보다도 내일이 나아야 됩니다. 금년보다는 내년이 낫고, 내년보다는 그 다음 해가 낫고, 지금 시대보다는 후시대가 낫기를 바라지 않는 인간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때 그때에 나타난 책임자들 중 그 시대에 있어서 선의 세계적인 방향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바통을 이어받은 그 사람이 그 전의 사람보다 반드시 더 낫다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성인의 도리를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선한 사람의 도리를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더 선하고, 누가 보다 가치적이냐 하는 것을 추구하게 되는것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누가 성인이며, 누가 보다 선하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거기에서 책임을 추궁하고, 그것을 가리려고 노력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자기 사상에 맞고, 자기가 가는 방향과 맞으면 그 사람을 세계적인 대표로서 추구하고, 일생을 그 대표의 기준과 더불어 결속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은 있지만, 자기가 대하는 사람이 역사시대에 혹은 참을 추구하는 이 도상에 있어서 얼마만한 가치의 입장에 있고, 또 그 입장이 어느 정도의 입장이냐 하는 것을 분별짓고 전후좌우를 가리기 위하여 노력한 사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은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은 이런 기준에 서 있고 어떤 사람은 보다 낫고, 어떤 사람은 보다 못하다는 것을 일목요연하게 가려 나갈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식구면 식구 혹은 종이면 종을 많이 거느리고 있다면 그 가운데서도 보다 나은 사람을 찾을 것입니다. 또 보다 나은 사람보다도 한걸음 더 앞선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어떻게 이어져 왔느냐 하면 보다 못한 사람, 보다 덜한 사람을 통해 가지고 이어져 온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사람을 통해서 이어져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그렇게 이어받게 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복귀섭리의 발전을 위해 하나님이 택하는 사람

우리가 알다시피 아담 가정에 있어서 아벨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아벨의 뜻을 이어받는 사람은 아벨보다 못한 사람이겠느냐, 나은 사람이겠느냐 할 때, 두말할 것도 없이 아벨보다는 나은 사람이어야 됩니다. 나은 데 있어서는 일부분만 나아야 되느냐? 아닙니다. 전체적인 분야에서 나아야 되는 것입니다. 평면적인 기준을 넘어서 입체적인 기준, 즉 전체적인 분야에서 낫기를 인간은 물론이고 보다 높으신 하나님은 더욱더 원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신앙적인 면에 있어서 아벨을 능가해야 합니다. 또 봉사적인 면에 있어서도 능가해야 됩니다. 모든 면에 있어서 아벨을 능가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찾아오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을 우리는 당연한 일로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노아를 중심삼고 뜻이 완결되지 못했고 하나님이 노아를 통해서 찾고자 한 선의 목적, 선의 기준을 찾지 못했다 할진대는 다음 사람이 그 뜻을 이어받아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시 계승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노아보다 못해 가지고는 안 될 것입니다.

노아가 뜻을 이루지 못하여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였다면, 아브라함은 노아보다 나아야 됩니다. 아브라함이 노아보다 낫다는 내용을 제시할 수 있는 요건은 무엇이냐 할 때, 노아보다 편안한 자리가 될 것이냐, 노아보다 험난한 자리가 될 것이냐? 노아보다 편안한 자리에서는 노아보다 나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노아보다 모든 여건이 어려운 자리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극복하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 입장에 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아브라함이 그랬느냐? 아브라함이 노아보다 더 어려운 자리에서 수고했느냐? 그랬다면 어떤 환경에서 노아보다 나았느냐? 아브라함은 데라의 아들로서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생활권에서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아브라함에게 한 가지 어려운 일은 정든 부모, 혹은 고향이라든가 정서적인 면에서 안식의 터전이 될수 있는, 안식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는 생활권을 격파하고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리를 하나님께서 요구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 즉 자기 고향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불시의 명령을 받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떠나라는 명령을 받은 즉시 길을 떠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소망을 두고 내일의 희망을 두고 기다릴 수 있는 자리를 향해서라면 모르지만 그저 당장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 즉시 정든 고향산천과 가정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떠나는 것은 막연한 것이었습니다. 떠나라는 명령을 받게 될 때, '너는 떠나면 이렇게 되고 이런 결과가 된다'고 확실히 가르쳐 주고 떠나라고 했으면 모르지만, 혹은 '네가 떠나면 현재보다 낫다'는 귀결점을 명시해주고 떠나라고 했으면 모르지만, 그런 내용도 없이 정든 고향산천을 떠나라고 하는 명령에 그냥 떠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또, 그렇게 떠나는 것을 부모들이 반대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필시 아브라함은 부모 몰래 떠났을 것입니다. 형제 몰래 떠났을 것입니다. 친척들 몰래 떠났을 것입니다. 몰래 떠나는데 대낮에 모든 사람이 볼 수 있을 때에 떠났겠습니까? 틀림없이 밤중이나 새벽에 길을 찾아 떠났을 것입니다. 이렇게 목적도 제시되어 있지 않고, 환경의 내용도 분별되지 못한 자리에서 하늘의 명령만 받고 떠난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입니다.

노아는 그래도 120년이라는 한계선을 그어 놓고 명령을 받은 입장에 있었지만, 아브라함이 그러한 내용이라든가 혹은 환경적 여건도 제시받지 못한 자리에서 자신의 일체를 부정하고 떠난다는 것은 어느누구보다 어려웠을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심정적인 분야, 정서적인 분야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어려운 자리를 극복한 아브라함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를 보게 되면, 그는 영광 중의 영광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미래에 애급의 주권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왕자로서 소망이 있다면 어느누구보다도 큰 소망을 가질 수 있고 희망과 야욕이 있다면 어느누구보다 큰 야욕과 큰 희망을 가질 수 있고, 행복하다면 어느누구보다 행복한 자리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일을 도맡아 가지고 자기 주위의 모든 환경을 부정하고, 자기의 생사 문제까지 넘어서야 하는 그런 자리에 들어간 것입니다. 모세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민족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자기 일신의 영광, 갖추어진 환경의 모든 영광이 문제가 아니요, 자기 생명이 안일한 자리에 있는 것을 자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민족을 자기 어려움 이상의 어려운 자리에 놓아서는 안 된다는, 장래에 민족과 이스라엘 나라를 자기보다 영광의 자리에 놓고 싶었던 것이 모세의 마음이었기 때문에 자기의 모든 영광을 생각지 않고 고난과 수난의 역로를 다짐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이렇게 나선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최고의 자리에서 최하의 자리로 뛰어내린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세 자신이 앞날에 어떻게 된다는 하나님의 보장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러서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도 아닙니다.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 가지고, 격분하여 행동을 하고 나니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이 거부당하는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생활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에 부딪쳤는데도 이스라엘 민족을 원망한 것이 아니라, 내심 이스라엘 민족의 미래를 염려하며, 도리어 원수의 대상으로 나타났던 애급 민족을 원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수난이 있으면 그 수난을 고이 감당하고, 그 수난길을 가겠다는 마음을 미디안 광야에서 갖고, 하나님 앞에 깊이 사례하는 심정의 생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수도의 생활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런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명령을 받고 그런 자리에 선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볼 때, 보다 나을 수 있는 가치의 내용을 다짐하는 자리라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평상시에 느끼는 그런 입장에서는 전진적인 환경을 맞는다고 해도 찾아질 수 없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최고의 효자, 충신, 애국자, 성인이겠는가

효자가 있다면, 효자 중의 진짜 효자는 어떤 사람이냐? 부모를 위해 일생 전부를 희생하고 7,80세 고령이 되도록 효성을 다한 사람과, 젊은 청춘으로서 부모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효자가 있다고 할 때, 누가 더 효자라고 할 수 있느냐? 아무리 7,80이 되도록 효자의 노릇을 했다 하더라도 청춘 시대에 부모를 위해 생명을 바친 효자에게는 못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충신은 죽은 후에, 생명을 바친 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효자도 생명이 엇바뀌는 자리에서 결정되는 것을 우리는 역사시대에서 많이 보아 알고 있습니다.

참을 찾는 데 있어서도 남과 같이 좋은 환경에서, 다 갖추어진 자리에서 찾는 사람하고, 갖추어지지 못한 자리에서 생명을 회생해 가면서 찾는 사람하고 어떤 사람이 보다 더 가치가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건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환경이 전부 다 갖추어진 터전 위에서 수고도 않고 찾을 수 있는 참이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귀하겠느냐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은 경계해야 할 사람입니다. 참은 평탄한 환경에서 엮어져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탄한 환경에서 엮어져 가지고 남아지는 참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참이 참으로서 전승되어 가지고 역사과정을 거쳐 현재의 입장에 남아지기 위해서는 모진 투쟁 행각의 노정을 거쳤을 것이 비운의 역경을 극복해 나왔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참은 그런 자리에서 찾아진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런 참을 상속받고, 그런 참을 사수하기 위하여 자유스럽고, 소망스러울 수 있는 기쁨의 자리에서 참을 찾는 사람이 있다고 할진대, 그 사람이 참을 대할 수 있는 진짜 자격자이냐 하면,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참이 엮어 나온 역사적 슬픔보다도 더 처참하였고, 더 수난길을 극복하였고, 더 어려움에 부딪쳤고, 혹은 딱한 사정의 노예가 되어 가지고 참을 찾기에 많은 애를 썼고, 뿐만 아니라 최후에는 자기의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그런 자리에서도 참을 찾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을 대할 수 있는 진짜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참을 대해 가지고 수고한 사람 가운데 제일 고생을 많이 하면서 참의 가치를 추구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이 참을 이어받을 수 있는 주인이 될 것입니다. 참을 위해서 수고하고, 참을 위해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참을 위해서 피를 흘릴 수 있는 자리에 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관리를 받고, 그 사람의 소유가 되고 싶은 것이 참으로서의 바람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한민국에 애국자가 많다 하더라도 그 애국자 가운데 누가 제일 가는 애국자냐 하면 국가가 일시에 난시에 처했을 때 그 난시를 모면하기 위해서, 그 환경을 염려하면서 충성하는 것보다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중심삼아 가지고 폭넓은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수난의 길을 가고, 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없으면 자기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그 길을 열어 놓겠다고 하며 희생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또, 그렇게 희생한 사람 가운데 세 사람이 같은 마음을 먹고 같은 경력을 가졌으나, 두 사람은 쉽게 죽었고 다른 한 사람은 원수들에게 붙들려 가지고 손이 찢기고 눈이 빠지고, 귀가 잘리고 코가 잘리고, 다리가 부러지는 등 하나하나가 잘려서 비참하게 죽어갔다면, 그 세 사람 가운데 누가 제일의 애국자 반열에 동참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제일 비참하게 희생된 사람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한 국가에서 그렇다면 세계의 성인 가운데서는 어떠한 성인이 최고의 반열을 차지할 것이냐? 마찬가지로 희생하되 제일 비참하게 죽은 사람입니다. 그 외에는 최고의 자리를 차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실정이라든가 생활 환경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사건건에 있어서도 보다 희생하는 사람, 보다 뜻을 대하여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 주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어떠할 것이냐? 우리 인간지사(人間之事)가 그러하고, 역사적인 사정이 그러하다 해도 하나님은 다를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느냐?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불쌍한 사람이 누구냐? 비참한 자리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비참하게 살다가 생명을 잃은 사람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때, 이 세계의 참된 주인이 있다면 그 주인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 남의 눈치나 살살 보고, 때에 따라 자기에게 이익될 것이 있으면 살짝 옆으로 빠져 가지고 그것만 바라고 행동하는 사람, 자기에게 이익이 크면 큰 만큼 비례적으로 희생을 각오하는 사람은 일시적인 주인은 될는지 모르지만 역사적인 주인은 될 수 없습니다.

참된 주인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진정으로 이 세상을 사랑하시느냐, 사랑하시는 주인이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은 틀림없는 사랑의 주인이요, 사랑의 주체입니다. 이 세상을 지금까지 사랑해 나온 틀림없는 영원한 주인이시라면 누구보다도 수고를 해야 하고, 누구보다도 비참한 자리에서 나을 수 있는 가치를 지닌 자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주인이 못 될 것이 아니냐?

자수성가한 사람은 자기 뜰 아래에 떨어져 있는 걸레 짜박지도 주워서 살펴보며 '이거 더 쓸 수 있지 않느냐? 합니다. 자기에 속한 일체의 모든 물건들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느냐? 그는 자기의 과거에 있어서 한 가지 물건이라도 귀중하게 여기던, 어떤 물건이고 귀중하게 여기던 습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버리지 않은 것을 보면 반드시 다시 감정해 보는것입니다. 이걸 볼 때, 안 된 것 같지만 물건 자체가 볼 때에는 자기를 아껴 주는 분이 이분이라는 결정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주의 중심이 되고, 인류역사의 중심이 되며, 인간 앞에 있어서 사랑의 주인공 되시는 절대자 하나님이 계시다 할진대 그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어야 되겠느냐? 편한 자리, 영광의 보좌에 앉아 가지고 '여봐라?' 할 때 '예 예' 하게 하는 분이라야 되느냐? 천만의 말씀입니다. 자식을 가진 부모는 자식이 고통을 받는다면 그 자식의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입장을 취하고, 자기의 생명을 버려서라도 그 자식을 위할 수있는, 즉 자식보다 먼저 생명을 버릴 수 있는 자세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정에서 절대적인 부모의 자리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너의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이것은 절대자인 하나님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 그러냐?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생명을 버릴 수 있는 입장을 언제나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자는 언제나 주인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인간보다 더 비참한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

이렇게 보게 될 때,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인간세계가 망하고, 흥하고, 죽고, 못 사는 것을 보시며 '깨깨 그래도 싸다. 너희들은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피해 가야 되겠다. 세상은 그렇지만 나는 너희들과 관계가 없기 때문에 그것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시겠습니까? 만약 그런 분이라면 그분은 주인이 될 수 없는 분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에,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보다 더 비참한 자리를 자진해서 찾아오시는 분이 있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분이 계시다면 그분은 우리 인간 앞에 고마운 분입니다. 그런 분이 틀림없이 우리 개인에게 있다면 개인개인 앞에 그는 누구보다도 고마운 분입니다. 그런 분이 있다면, 내가 명령받을 일이 있으면 그분에게 명령받고 싶고, 내가 살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그분과 더불어 살고 싶고,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면 그분과 더불어 하고 싶고, 혹은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절대적으로 그분과 더불어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수긍해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복귀섭리의 행각의 노정을 더듬어 보게 될 때, 아담 가정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아담 해와만이 그 자리, 아담 해와만이 타락의 자리에 나갔고 하나님은 좋은 자리에서 구경하면서 책망하며 당장에 벌을 주겠다고 저주의 채찍을 들고 바라보는 자리에 있었겠어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의 경각에 이르는 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누구보다도 애달프고, 누구보다 고통을 느끼신 분이 있다면, 아담 해와보다 더 고통을 느끼신 분이 있다면 그분이 바로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아니겠느냐?

120년 동안 수고의 노정을 거쳐 나온 노아에게 뜻을 성사하기 위해서 바라셨던 소원이 일시에 엇갈림길로 틀어지게 될 때, 하나님이 슬퍼하는 노아를 바라보시고 '너는 내가 명령을 했으니 그 슬픔을 참고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했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노아가 슬픔의 눈물을 지으니 그에게 명령하신 주인도 눈물 흘리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노아 가정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요? 노아는 산꼭대기에서 배를 지었습니다. 평지면 몰라도 산꼭대기에서 배를 지었다는 것은 상식을 넘어선, 상식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도가 넘어도 형편없이 넘은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보게 될 때, 정상적인 입장에서 볼 때에 노아는 미친 사람에 가까운 행동을 한 것입니다. 배를 지으려면 강가에 지어야지. 산에서 배를 지었으니 그것은 상식을 넘어선 것입니다.

이것을 명령한 하나님은 농담으로 했겠느냐? 아닙니다. 참기 어려운 길을 생애를 바쳐서 가야 하는 것이 노아의 노정인 것을 누구보다도 잘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수난길보다 평탄한 내용을 가지고 명령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어려운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조건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을 바라시는 마음을 가지고 노아에게 120년 동안 수난의 길을 가라고 명령했던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비참하였겠습니까? 말할 수 없이 비참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노아가 그 명령을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 하는 긴장된 순간에 있어서 노아가 순응하는 입장을 취할 때, 노아보다 더 기뻐하신 분이 하나님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노아보다 더 슬퍼하실 수 있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그렇듯 기쁨과 슬픔을 책임질 수 있는 그런 주인의 자리가 아니고는 하나님의 자리가 못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120년간 방주를 짓게 한 뜻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노아에게는 아내도, 아들딸들도 있었습니다. 가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가정을 등지고 120년 동안, 일생을 토막 자르듯이 몽땅 잘라 가지고 미치광이 놀음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부인들, 자기 주인 양반이 그런 일을 한다고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세요. 또 젊은 청년들, 혹은 장년들, 자기가 그런 아버지를 모시고 있다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남편을, 그런 아버지를 믿을 수 있겠어요? 미친 아버지가 아니라 미친 애비다 할 거예요. 어떻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노아가 산에 올라가 배를 만들 때에 그의 아내가 점심때가 되었다고 '우리 영감한테 점심 갖다 줘야지, 우리 영감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 될 것인데…' 그렇게 생각했겠어요? 아들들이 그렇게 생각했겠어요? 어림도 없었을 거예요. 바가지 긁기가 일쑤였을 것입니다. 120년 동안 바가지를 긁었을 거예요. 1년 정도 가다가 사이가 틀어졌으면 120년 동안 바가지를 긁었지 별수 있어요? 한 50년쯤 가다가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다면 70년은 바가지를 긁었을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남편이 무슨 허깨비 같은 소리를 공중으로부터 듣고, 혹은 비몽사몽간에 듣고서 '나는 생명을 걸고 이 일을 해야 되겠소' 할 때에, 그 아내가 '아, 그래요. 나도 그걸 원했는데 당신이 먼저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 정말 훌륭하십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후원하겠소' 그럴 수 있는 아내가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 부인들, 생각해 보세요. 나는 그럴 수 있다 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 하나 물어 볼께요. 만나는 시간, 말하는 그때부터 둘의 의견이 상충되었으면 120년 동안 노아의 아내는 세상에 없는 비운의 대상이 아니었겠느냐. 또, 아들딸이 있었으면 그 아들딸은 아버지에 대하여 미친 아버지라고 하며, '세상에 120년 동안…. 뭐 물로 심판해? 배를 만들려면 강가에 만들어야지 산 꼭대기에다가 만들어?'라고 비방했을 것입니다.

재목을 누가 해다 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자기가 혼자 마련해 가지고 산 꼭대기까지 지고 올라가서 배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미치광이 중에서도 상미치광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그 아들들이 아버지를 환영했겠어요? 우리 통일교회 잘 믿는다는 젊은 양반들, 그대들이 그런 입장에 서게 된다면 '끝까지 가셔야지요' 했겠어요?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왜 그랬을 것이냐? 아내 중의 아내를 찾기 위한 것이요, 가정 중의 가정을 찾기 위해 그랬던 것입니다. 세계에는 수많은 남성과 수많은 가정이 있지만 하나님이 몽땅 사랑할 수 있는 가정을 찾기 위해 그랬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몽땅 사랑할 수 있는 가정은 몽땅 사랑받기에 알맞을 수 있는 인연이 있어야 되고, 전통이 설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만약에 노아가 늦잠을 잘 때에 그 부인이 '벌써 아침 여섯시가 되었소. 당신 오늘 왜 이리 늦소'라고 했다면, 그 부인은 노아가 쓰고 있는 금관이 있다면 거기에 박힌 다이아몬드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또, 아들이 그랬다면, 인류역사에서 가정을 대표해서 만족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라는 문제를 들고 나오게 될 때에 노아의 아들을 빼놓고는 칭찬할 수 있는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러한 사명을 준 것은 노아의 가정을 지지리 못살게 하고, 지지리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훌륭하게, 무엇보다도 좋을 수 있는 입장에 세워 주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수 사탄이 있어도 못 따라가고, 사탄세계의 그 누구도 어림도 없는 그런 자리에 설 수 있는 가정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 단 한 분인 절대자의 소신이 아니었겠느냐? 이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이 노아에게 내린 120년이라는 기간은 그 기간에 방주를 짓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노아가 착실하게 하늘의 터전이 될 수 있는 가정의 기반을 이루기를 그 배후에서 고대 했을 것이 아니겠느냐?

노아를 바라보는 하나님이 얼마나 슬프셨겠는가도 생각해야

이런 등등의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이 '그런 환경을 바랐는데 그것이 노아의 아내로부터 깨져 나갈 때 어떠했겠어요? 다음에는 자식으로부터 깨져 나갈 때 어떠했겠어요? 아내가 노아에게 바가지를 긁었겠어요. 안 긁었겠어요? 아들딸이 효도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효도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 하나 물어 보게. 노아는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저녁에 집에 돌아와 가지고 밥을 많이 먹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밥 먹는 시간에 천대받았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만약에 바가지를 긁었다면 그 시간에 긁었을 것입니다. 노아가 무슨 밥을 먹고 다녔겠어요? 밥을 해주었다면 보리밥을 해뒀을 것입니다. 자기들은 먼저 해 먹고…. 그래도 고집은 있어서 아낙네가 바가지를 긁을 때 가만히 있었겠어요? '이거 왜 이래…' 이러며 실쭉거리고…. 곧은 성격에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니 옷이나 잘 해 입혔을 것 같아요? 그 동네에서 누더기와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노아의 신세를 여러분이 연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걸 바라보는 아내는 노아에게 '저놈의 영감 그래도 싸지' 그랬겠어요, 안 그랬겠어요? 노아의 아들은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할 수 없었겠지만, 노아의 형이 있었다면 노아의 목덜미를 잡고 '야 이놈아' 하고 있는 말 없는 말을 하면서, 별의별 행동을 다 하면서 막으려 했을 것입니다. 또한 부모가 있었다면 매일같이 길에 지켜 서서 그런 야단을 벌였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랬겠나. 안 그랬겠나?

그런 사연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여러분의 생활 주변을 두고 보면 이해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그렇게 시킨 하나님의 마음은 편안했겠느냐? 아닙니다. 그런 문제를 당할적마다 소원하던 아내의 기대가 깨져 나가고, 자식의 기대가 깨져 나가고, 가정의 기대가 깨져 나갔습니다. 여기에 끌려갈 수 밖에 없고, 제재 받을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선 노아를 바라보시는 하나님, 천리(天理)를 두고 약속했던 엄청난 규약이 깨지느냐, 안 깨지느냐 하는 아슬아슬한 입장에서 노아만이라도 이것을 끌고 가서 맞춰 주기를 바라는 하나님이었을 것입니다. 노아 할아버지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겠어요? '내가 왜 이걸 했을까' 그랬을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때마다 '노아야, 노아야, 그래서는 안 된다. 몇 년 지나 왔으니 몇 년 남았다' 하면서 계산해 가지고 '50년이 지나갔으니 이제 70년이 남지 않았느냐? 그걸 못 참아? 그랬겠어요? 그렇게 위로해 가면서 역사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하나님이 못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남자들도 소위 '남아일언 중천금'이라고 하는데, 노아는 하나님과 약속을 했으므로 '노아야, 나는 천지의 대주재되는 하나님인데 120년 후에는 틀림없이 이러이러한 일을 할 것이니 너는 배를 준비해라. 120년간 어떤 수난의 길이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해 가지고 배를 지어라' 할때 '예' 하고 약속하고 나서 그런 환경에서 머리 속으로 가느냐 안 가느냐를 생각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그런 생각을 안 했다면 그거 거짓말입니다.

노아가 일하러 나가는 시간이 평상시에 일곱시라면 그 시간에 나가야할 노아가 이런 생각을 하느라고 여덟시를 지나 아홉시를 지나고 열시를 지나고 열 한시를 지나 마침내 하루를 빠졌다고 합시다. 빠진 날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만약에 하루를 빼먹는 날이 있었다면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했겠느냐? 하나님이 '야, 너 참 잘했다. 응당히 생각할 것을 생각하는구나. 잘한다. 조금 더 생각을 그렇게 하지' 그랬겠어요? 노아가 빼먹는 하루가 하나님에게는 천년 만년 같았을 것입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그 하루 때문에 억천만세의 성사(聖事)가 중단될 수도 있는 억울한 하루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하루의 억울함이 하늘땅의 억울함으로 남아질 수 있는 입장인데 하나님이 기쁘셨겠어요? 어떠했을 것 같아요? 기가 막힌 사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노아를 존경하고, 찬양하고, 찬사하는 말도 필요하지만 그 노아를 바라보며 나오신 하나님이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비참하고, 얼마나 고독하셨고, 얼마나 억울하셨겠느냐 하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날 그것을 생각하는 무리가 많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노아에게 벌도 줄 수 있고 복도 줄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것이지, 그러지 못하고서 어떻게 노아에게 벌을 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벌을 줄 수도 있고, 생사화복을 주관할 수도 있는 그런 주체적인 절대권을 가진 분이기에 인간 세상의 비참한 고빗길을 누구보다도 더 고통스럽게 생각하고, 인간을 그 고통의 자리에서 수습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 선두에 서서 고통을 받고 화도 받는 것이지, 옆에서 구경하는 분이라면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저 복을 주는 것이냐? 천만에요. 복은 그냥 굴러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복을 주는 데 있어서는 수천, 수만의 길을 가려 가지고 다시 찾아와 수습하지 않고는 복을 줄 수 없는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연이 있다는 것을 누구도 생각하기 싫어합니다. 이런 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이기에 이러한 말씀을 성경에 기록하지 않았다고 봐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인이 우리 인류와 더불어 누구보다도 고통을 당해 나왔습니다. 세계적인 대참사가 있고, 혹은 대전쟁으로 인해 비참하게 피 흘리는 자리가 있으면 누구보다 가슴을 조이고, 누구보다 눈물을 흘리며, 누구보다 안타까와하는 분, 국가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는 혼란의 시대, 혹은 그러한 시대를 결정짓는 결전장을 맞이해 가지고 신음하는 세상의 어느 군왕보다도, 또 고난의 자리에선 어느 군왕보다도 신음과 고통을 느끼는 분, 이렇게 책임을 지고 몸부림치는 분이 절대자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인류역사는 제물의 과정을 엮어 온 역사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이제 '제물의 완성'이라는 말로 돌아가 봅시다.

제물이 왜 필요하냐? 고생한 어버이를 모실 수 있는 효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버이가 고생하며 걸어온 길을 더듬어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고 난 후에야 비로소 효도의 방향을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아버지를 알지도 못하고서 무턱대고 효도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아버지는 과거에 이런 고생을 하셨다. 나를 키우시고, 나를 교육 하시기 위해서 이런 수난의 길을 걸어오셨다' 이렇게 아버지의 배후를 들추게 될 때, 비참하고 어려운 사연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이 자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효성의 길로 방향을 돌이킬 수 있는 키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를 위한 눈물이 끊이지 않는 부모의 배후를 아는 자식은 부모 앞에 불효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인들은, 또는 종교에서는 수난의 길을 가라, 희생의 길을 가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좋아서 그런 명령을 했겠느냐? 좋아서 그렇게 가르쳤겠느냐? 응당 인간이 수난길을 가야 하고 희생해야 하지만, 수난길을 감에 따라 하나님은 더 수난을 당하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희생하라는 말, 봉사하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무서운 말이냐? 여러분, 이 말이 좋은 말이예요?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고, 인간들의 수난의 대가로 말미암아 찾아진 가치를 하나님이 취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면 모르지만, 그 명령이 하나님과 직결돼 있는 문제라 생각하게 될 때, 그 수난길을 가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비참한 자리에서 얼마나 비장한 각오를 해 가지고 한 사람을 내세울 것이냐? 민족을 내세우고 가정을 내세울 것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보세요. 자기들이 어려우면 어렵다고 번번이 한탄하고, 하나님을 저주하고 원망을 했을 때, 그 원망을 받으시는 하나님은 기쁨의 하나님이 못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갖추어 가지고 배급을 줄 수 있는데도 쌓아 놓고 안 주는 그런 하나님이겠어요? 자기의 뼛골을 다짜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비참한 자리에서 전진하는 하나님의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싫은 것은 원하지 않고 좋은 것만을 원합니다. 나는 비참한 것은 원하지 않고 행복한 것만을 원합니다. 어려운 것은 다 하나님이 하십시오' 하는 불효막심한 녀석들이 있을 수 있어요? 지금까지 종교인들이 그렇게 믿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나온 종교인들의 그 역사가 길면 길수록 그것이 하나님에게 기쁨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슬픔의 대상이 되어 한으로 남게 되고, 한탄의 대상이 되어 산맥과 같은 존재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산이 아니라 산맥이 되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나 자체가 복받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놀음입니다. 이런 것을 깨닫고, 즉 하나님은 과연 슬픈 분이 틀림없으시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대표적으로 세계를 위해서 나설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그 길을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나님 앞에 호소한 사람이 있었느냐? 이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천년 만년 서린 한을 다 풀어 놓고, 천년 만년 통곡할 수 있는 심정을 퍼부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어느누구로 말미암아 그런 일이 벌어지는 날에는 세계에 없는 새로운 진리의 길이 정해질 수 있는 가망이 있다는 것을 미루어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역사과정은 제물의 과정을 엮어 온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복귀역사의 철칙

'오늘날 우리 인류역사는 비참한 역사다. 인간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인간은 악한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인간으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렇게 되기를 바라서 이렇게 만든 존재가 있다면 그는 우리의 원수입니다. 안 그래요?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는 우리의 원수라는 거예요. 만약에 하나님이 그렇게 했다면 그 하나님은 믿을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과거가 그랬기 때문에 현재도 그런 것인데, 미래에 무슨 천국이 뭐구 뭐구 하는 것은 당치도 않은 소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에게 '갈 수 있는 십자가의 길이 있으면 너도 참석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 권위가 있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입장에서 강력히 권고할 수 있다면 그 하나님은 누구보다 고생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누구보다 제물적인 자리에서, 제물 이상의 고충을 느끼면서 악의 세계의 판도를 방지하기 위해 수난길을 책임지고 나오신 분이 아니고서는 우리에게 또다시 명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에는 개인적으로 희생하는 때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희생해 가지고 가정을 찾아야 됩니다. 가정을 찾음으로 모든 것이 다 되느냐? 가정을 찾았으면 그 가정의 판도를 넓혀서 악한 세계에 있는 종족을 찾기 위해 그 가정은 희생해야 됩니다. 이것이 복귀역사의 철칙입니다. 가정을 제물적으로 회생시켜 가지고 안팎이 일치된 자리에 서야 종족이면 종족, 씨족이면 씨족, 친척이면 친척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친척이면 친척을 찾아 가지고 고이 살라고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본래 인간의 욕심이 그렇지요? 인간은 세계를 다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어린아이도 전부 다 그렇습니다. 우리 아가씨들도 다 그럴 것입니다. 너희들도 그렇지? 얌전하고, 얼굴도 조그마하고, 마음도 조그마하고, 걸음걸이도 전부 다 짤막짤막한 그런 여자에게도 자기가 세계에서 제일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세계를 다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 욕심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소원하고, 죽을 때까지 그러길 바라는데, 한번도 이루어 주지 않고 다 죽여 버리고, 단념하게 하는 하나님이라면 그 얼마나 악한 하나님이예요? 자식이 떡을 하나 사 달라고 할 때 그것을 사 주지 못하는 부모의 가슴이 얼마나 아픈데….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다 세계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합니다. '세계는 내 것이다'라고 하면서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으뜸이 되고 싶은 마음은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럴 수 있는 어느 한때도 갖지 못하고, 소원을 한번도 이루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살게 만든 하나님이라면 그것이 무슨 하나님이예요? 악한 부모도 그만큼 참았으면 한번은 소원을 이루어 줄 텐데…. 안 그래요?

그러면 이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이냐? 간단합니다. 세계를 만드신 그분의 아들딸이 되면 됩니다. 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차지하려고 세계를 붙잡고 싸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면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므로 자기의 것이 되는 겁니다. 여기 학생들, 아버지 집이 자기 집이지? 아버지 집이 자기 집이고, '이 집은 우리 집이 아니고 우리 아버지의 집이야' 그러는 아들딸이 있어요? 코가 찌그러지고, 다리는 절룩절룩거리고 배밀이 하는 병신 사촌 같은 녀석이라고 해서 이게 누구의 집이냐고 묻게 되면 우리 아버지 집이라고 그래요? 형편없는 아들이라 해도 누구의 집이냐 물으면 우리 집이라고 대답합니다. 이걸 볼 때 세계에서 제일 되는 길이 있기는 있습니다. 다들 욕심을 채우게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아 보라구요. 얼마나 자랑하겠어요? 일하고 싶겠어요? 여러분, 일하고 싶겠어요? 취미로는 일을 할는지 모르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밥 때문에 일하고 싶다고는 않을 것입니다. 취미적으로 일은 할는지 모르지만, 먹기 위해서 일한다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그런 소망이 타당하지 않게 되면 그것은 원수입니다. 인간이 이땅에서 천년 만년 사는 것도 아니기에 한번은 소망을 이루어서 세계에서 제일이 되어 보아야 할 것 아닙니까?

할 말이 많으나 하지 않고 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을 두고 봐도…. 여러분이 통일교회가 좋아서 왔어요? 까놓고 얘기합시다. 통일교회 문선생 편이 되고자 왔어요? 어림도 없는 거예요. 갈고리를 가지고 찍고, 쪼으고, 자르고, 비판하고, 비교하는 별의별 흉측하고 망측한 꼴을 다 봤습니다. 여러분들도 처음에 여기에 올 때, 궁둥이는 문턱 너머에 놓고, 다리는 안쪽에 들여놓고, 별꼴을 다 봤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을 순하게 생겼다고 보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봤다면 계산 착오입니다. 나는 옳지 못한 것을 보게 되면 참지 못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못난이 모양 꾹꾹 참고, 별의별 말을 다 들어도 못 들은 체하고 다 흘려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체격이 이만해 가지고 누가 한대 때리면 나는 두대 때릴 수 있는 손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러한 비법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두 사람 다룰 줄도 알고, 운동도 못 하는 운동이 없습니다. 무엇이든 다 하는 사람입니다. 모진 매를 맞으면서도…. 성격이 기가 막힌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사랑이 많으시고, 인자하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 서 있는 선생의 성격은 지극히 강하다면 강한 사람입니다. 무슨 일을 한번 한다 하게 되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하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그리고 내가 직접 하지 데데하게 누구의 신세를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절대 신세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 모르면 몰랐지 물어 보기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모르는 문제를 풀기 위해 혼자 최대한 연구하고 최대한 노력했는데도 안 되게 될 때에는 물을는지 모르지만…. 그것도 싫어합니다. 이런 사람입니다. 못난이 중의 제일 못난이라구 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청파동에 박혀 있는 이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입니다. 세상 목사들 중에는 나를 본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여기에 나오면 볼 수 있습니다. 뭐, '교수들 공청회도 하는데,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왜 나와서 인사도 안 하느냐? 내가 그런 것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인사를 하려면 소개를 해야지, 소개를 하려면 경력을 밝혀야지, 경력을 밝히면 옳고 그름을 따져서 당신이 옳으냐 내가 옳으냐 하는 판결을 지어야 된다 이겁니다. 덮어놓고 좋다거나 싫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인사하지 않는다고 그 사람들 앞에 나타나서 말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의 얼굴을 척 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압니다. 그런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사람 다루는 전문가라구요.

그러면, 왜 그런 자리에 나타나지 않느냐? '출세를 하려면 선전을 해야지' 하는 사람도 있지만 선전이 문제가 아닙니다. 선전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밖으로 나타나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타나 가지고 하고픈 말을 다 하고 나면 닻줄이 늘어지더라는 것입니다. 태풍이 불어오기 때문에 닻을 새것으로 단단히 죄어 가지고 사방에 고정시켜 놓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흐느적흐느적하고 어영부영 살 수 있는 사람이 못 되는 것입니다. 내 갈 길이 바쁘다는 겁니다. 내 갈 길이 바쁘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야 나를 만나고 싶으면 통일교회로 오면 되는 것이고, 이 길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길도 있는 것입니다.

또, 따지고 들어가게 되면 그들을 칭찬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만나게 되면 그들을 들이 깔 것입니다. 목사들에게 할 말이 한없이 많습니다. 대학가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할 말이 많습니다. 이 나라 주권자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옳고 그른 것, 전후가 거꾸로 되어 있으니 바로잡아서 사연을 가려야 되는데 그런 말을 하기에는 사정이 여의치 않으므로 차라리 안 나타나는 것이 그들도 좋고, 나도 좋고, 다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파동 골짜기에서 허리 부러진 호랑이처럼 이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늘 일이 되어 가는 내용을 모른다

하나님이 불쌍한 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세례 요한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생활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훌륭합니다. 또 세례 요한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기독교인들은 믿고 야단 하고 있지만, 흉보기에 딱 알맞은 사람입니다. 남들은 옷을 입고 살았는데 그 사람은 뭘 입고 살았어요? 약대 털옷. 거 좋지, 약대 털옷이 얼마나 훌륭해요?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입을 옷이 있는데, 약대 털옷을 입었을 것 같아요? 형편이 무인지경이었다는 거예요. 다음에, 먹는 것은 뭐예요? 메뚜기와 석청. 아이구, 신선 같구만….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메뚜기가 매일 아침 날아와요? 또 석청이 바위돌 밑에 고드름처럼 달려 있어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나라를 가 보세요. 반 사막지대입니다. 기가 막힌 곳입니다. 그걸 볼 때 '아이구, 성경 우습구만' 할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이 20리 안팎의 이야기들입니다. 이 골짝 저 골짝, 앞집 뒷집의 이야기를 가지고 그렇게 크게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 것이 세계의 문화권을 조성했습니다. 이런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수수께끼 같은 내용입니다.

세례 요한이 석청을 먹고 지냈다는데, 그 석청의 덩어리가 커요? 생각해 보세요. 석청이 돌 틈바구니에 있다면 그 틈바구니의 크기만큼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무 구멍에 있다면 그 구멍의 크기만큼밖에 없는 것입니다. 배가 큰 사람은 일주일도 못 먹을 것입니다. 이걸 볼 때, 세례 요한이 먹기 위해서 얼마나 고달팠겠나 생각해 보세요. 메뚜기가 그에게 나를 잡아먹으라고 날아올 것 같아요? 생각하면 편하고 좋아 보이지만, 까놓고 이야기하면 기가 막히는 얘기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람이 누구냐? 세례 요한입니다.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며, 약대 털옷을 입고 다니는 세례 요한이 예루살렘 성전에 나타났을 때 구경꾼들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어른들도 따라다니며 구경할 터인데, 아이들은 하루 종일 따라다녔을 것입니다. (웃음) 생각해 보라구요. 세례 요한만 보면 저거 저거 미치고 돈 녀석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 소문이 났을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아이들이 줄줄이 따라다니고, 동네 개도 짖으면서 따라다니기가 일쑤였을 것입니다. 그가 무얼해 가지고, 그 사회에, 그 환경에 이익 될 수 있는 일을 했겠어요? 그럴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오해할는지 모르지만 일반 사람들의 입장에서 얘기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세례 요한에 대하여 주제가 어떻고 어떻고 하는 얘기하네' 할는지 모르지만 전후를 가려서 얘기하는 것이니 올바로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주제에 하는 말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하니 저건 또 무슨 말인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이라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했지만 천국이 어떻다는 말입니까? 천국이 가까이 왔는지 아직 멀었는지 보여요? 따지고 보면 미친 녀석이라는 것입니다. 미친놀음이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 요단강가에서 세례를 주었다고 하는데…. 그걸 보면 한국 백성보다 이스라엘 백성이 순수한 백성입니다. 세례를 준다고 하니까 그래도 살겠다고 전부 다 세례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이러다가 예수님이 나오니 예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례를 주면서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와 그에게 머물렀더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했습니다. 그 말이 될 말이예요? 그 말을 누가 입증해요? 누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보증설 사람이 누구예요? 임자들이 될 것 같아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 일은 그렇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어이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보라구요. 그는 떠꺼머리 총각이었어요.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라 하지만 그때도 예수님이라 했겠어요? 친구들이 '예수님' 그랬겠어요, 동생이 '예수님' 그랬겠어요? 오히려 비웃었을 것입니다. 친구들도 '야 야, 예수야' 그랬을 것입니다. 동네에서 주먹받이였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안방에 사는 어떤 남자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떠꺼머리 총각이었다는 것입니다.

서른 살이 되도록 장가도 못 가고, 목수 조수나 하면서 쭉 박혀 있다가 3년 공생애노정인지 뭣인지 한다고 집을 나갔다고 했습니다. 예수가 스스로 집을 나간 줄 알아요? 사실은 쫓겨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이 다음에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기로 하겠습니다. 잘 믿는 기독교 목사들 오게 되면 내가 샅샅이 얘기해 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이렇게 자랐고, 요렇게 요렇게 했다고…. 그런 걸 알면 눈알이 튕겨져 나오도록 통곡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덮어놓고 믿으면 천국에 가요?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덮어놓고 시험장에 들어가면 백점을 맞을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어요? '믿고 가기만 하면 백점 맞지' 그렇게 천년을 가 보세요, 백점 맞나? 그렇게 엉터리들입니다. 형편없는 주제들입니다. 그런 패들이 통일교회에 대해서 가짜고 어떻고, 전통이 어떻고…. 실력으로 대결해 보자는 것입니다. 최후에는 실력이 판가름해 줄 것입니다.

이렇게 버티고 나오다 보니 통일교회도 많이 소문났습니다. 이제는 우리 통일교회는 어떤 주권자도 뽑아 버리지 못할 만큼 세계적 기반을 닦았습니다.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통일교회는 발전합니다. 나는 예수와 같은 비운의 사나이가 아닙니다. 다시 오겠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뜻은 이루어집니다,

제물은 소유를 결정하기 위한 조건물

성인도 그렇습니다. 위인은 각 나라마다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위인은 국경을 못 넘습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성인은 세계를 위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성인이 뭐냐? 그 시대에 희생의 길을 갔더라도 세계를 위해 산 역사적인 전통을 남긴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전통으로 말미암아 세계는 싸우지 않고도 전승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인 중의 성인은 누구냐? 성인은 누가 세우느냐? 하나님이 세웁니다. 그런 성인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죽어야 됩니다. 성인들 가운데서도 생명을 바친 성인이 더 훌륭합니다.

복을 받을 때에 불평하지 않고, 복 받은 것에 대하여 응당하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동네면 동네에서 정정이나 부리고 살랑살랑 남의 눈치나 보면서 편한 일을 하려고 하고, 남의 잔치 집에나 다니면서 피리나 불어 주는 그런 패들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그 부락을 위해서 봄이 다가오면 봄 준비에 바쁘고, 여름이 다가오면 여름 준비에, 가을이 다가오면 가을 준비에, 겨울이 다가오면 겨울 준비에 바쁜 걸음을 걷는 사람이 그 부락에서는 복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복받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그런 사람에게 복을 주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제물의 완성이라고 했는데 제물은 어떤 때에 이루어지느냐? 제물이라는 것은 내가 슬플 수 있는 장면을 대신하는 자리에서 될 수 있습니다. 대신 잡아간다는 말 있지요? 대신 잡아간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내가 죽을 판국에 놓였을 때 제물을 자기 대신으로, 죽은 것으로 인정해 주고, 자기를 거기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길을 세워 달라고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물은 대신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원리로 말하면 소유물을 결정하기 위한 조건물이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소유물? 악한 내가 되느냐, 선한 내가 되느냐? 이것은 반드시 판가리지어야 됩니다. 즉, 선과 악을 판가리지어야 됩니다. 선과 악이 엇갈려야 합니다. 엇갈리는 데는 부정이 필요합니다.

이런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복을 주러 왔다는 예수님이 첫번에 말씀한 것이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라는 말씀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냐? 전부 다 역설적인 논법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했느냐? 제물의 과정을 거쳐야 할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죄에 빠져 있는 인간이 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물의 시대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를 중심삼고 볼 때, 제물은 누구에게 바치느냐? 하나님 앞에 바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제물을 좋아하시는 분이냐, 나빠하시는 분이냐? 제물을 좋아하시는 분이예요, 나빠하시는 분이예요? 대답해 보세요. 어디 남자분들, 여자분들. 똑똑히 대답해 보세요. 하나님이 제물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나빠한다고 생각해요?「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제물을 싫어하십니다. 제물을 싫어하시지만 할수없어, 안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제물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제물을 잘못 바치는 날에는 아무리 잘 믿던 사람이라도 원수에게 목매여 끌려가게 됩니다. 제물로 말미암아 자식이 되느냐, 못되느냐 하는 것을 결정지을 수 있는 순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잘 바쳐지는 날에는 소망의 뜻이 이루어져서 기쁠 수 있는 제물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사탄에게 끌려가는 것입니다.

성경 역사를 보세요. 언제나 제물을 놓고 싸움을 해 가지고 하나님이 승리했어요, 실패했어요? 승리했어요, 실패했어요? 실패했습니다. 그러면 실패하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예요? 아닙니다. 그러기에 제물은 무서운 것입니다. 인간에게도 무섭지만 하나님에게도 무서운 것이요, 사탄에 게도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사탄편 사람이 몽땅 제물로 바쳐지는 날에는 하나님 앞에 넘겨줘야 되고, 몽땅 바쳐지지 못하는 날에는 사탄에게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왔다갔다하는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경각에서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지옥이냐 천국이냐, 생사의 결정이 경각에서 좌우되는 판가리 놀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의 자리는 지극히 두려운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사탄은 자기의 소유물을 빼앗기지 않으려 하고. 하나님은 되찾으려고 하는 소유권, 소유물을 결정하는 심각한 자리입니다.

제물은 정성들인 숫것이어야

투전판이라든가 도박장에 가서 체험해 본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여기에 선 이 사람은 그런 것도 알아야 되겠기 때문에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도박의 심리와 복귀섭리의 심정이 똑같습니다. 몽땅 털어 넣고 지더라도 이긴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투전판에 다니는 녀석들은 있던 것을 다 털어 넣고, 나중에는 저고리까지 벗어 걸고 하는 것입니다. 저고리 뿐만이 아니라 조끼까지 벗어 걸고 마지막에는 팬티만 입고도 그 놀음을 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알몸뚱이가 되어 가지고도 걸고 늘어질 수 있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걸고 늘어지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도박하는 사람의 심리입니다.

이걸 보게 되면 복귀섭리와 똑같습니다. 사탄도 그렇고, 하나님도 그렇 다는 것입니다. 걸고 늘어질 것만 있으면 걸고 늘어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변호사가 그렇잖아요? 변호사가 공판정에 서서 유리한 변호 조건만 있으면, 시시콜콜하더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 늘어놓는 것입니다. 또, 검사도 역시 걸고 늘어질 것이 있으면 그것이 시시콜콜한 것이라도 다 늘어놓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판정에서는 검사도 잘못하면 '그놈의 검사'라는 딱지가 붙는 것입니다. 판사도 잘못하게 되면 딱지가 붙고 변호 사도 잘못하면 딱지가 붙습니다. 그러니 심각한 자리입니다.

제물을 드릴 때는 숫것을 드려요. 쓰다 남은 것을 드려요?「숫것이요」왜 그래야 돼요? 한국에서도 그렇잖아요. 성황당 같은 데서 제사를 드릴때 소를 잡으면 암소를 잡아서 드려요. 황소를 잡아서 드려요? 「…」이런 것을 다 모르는구만. 고대 희랍이나 시리아 같은 데의 역사를 보면, 제사를 드릴 때에는 동물을 잡아서 드렸지만 나중에는 사람도 잡아서 바쳤습니다. 우리나라 심청전에도 나오지요? 사람을 제사 드릴 때에 여자를 드렸어요, 남자를 드렸어요?「여자요」 그거 왜? 이걸 보면 통일교회 타락론과 똑같습니다. 왜 젊은 숫것을 드리느냐? 숫것을 드려야 됩니다. 사탄세계의 숫것을 잡아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늘세계의 숫것을 누가 빼앗아 갔어요? 사탄이 빼앗아 갔지요? 그렇지요?「예」 그러니 하나님 앞에 정성을 들이더라도 숫것을 놓고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쓰다 남은 것 가지고 정성 들여서는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일조라는 것은 제일 정성을 들인 숫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물입니다. 이런 얘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하여튼 제물을 드리는 데는 숫것을 드려야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들을 제물로 드린다면 어떤 아들을 제물로 드려야 되겠어요? 미운 아들? 소망이 없는 아들? 그런 아들은 제물이 안 되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아들이어야 합니다. 왜 그러냐? 제물은 '나' 대신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무시받는 것이 좋아요?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아주 겸손한 사람 같지만 그축에서 빼놓게 되면 눈이 뒤집어진다고요. 아주 기분 나빠합니다. 말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대접해 주면 기분 나빠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것이 뭐냐? 자기는 할수 없어서 그렇지, 자기를 끝까지 높이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게 높이고 싫은 자기를 대신해 제물로 드리는 것은 자기가 세계 제일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자기 생명이 귀한 것입니다. 자기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더라도 자기가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없으면 천국이 있더라도 쓸데없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제일 귀하고, 내가 제일 값지다고 생각할 때, 나를 대신한 물건은 보다 가치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물은 정성을 들인 물건이 아니고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교회에 헌금할 때, 어디에서 막걸리를 사 먹다 남은 돈을 헌금하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돈은 더러움을 탄 것입니다. 또 시장에 가서 뭘 사다가 남은 돈으로 헌금을 하게 되어도 하나님은 거기에 같이하시지 않습니다.

제물은 자기 대신

제물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자기 대신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통해서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복귀섭리 역사를 하시는 데 있어서는 주먹구구식으로 하시지 않습니다. 복귀섭리는 재창조의 역사이기 때문에, 다시 찾는 역사이기 때문에 원칙을 따라 하시는 것입니다. 창조원칙을 따라 재창조의 역사를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람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을 지어 놓았지만 지어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사람이 서 있기 때문에 다시 지어졌다는 조건적인 입장에 갖다 맞춰야 됩니다. 사람은 만물로 말미암아 지어졌기 때문에 사람의 몸뚱이는 만물과 통합니다. 만물에서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음식을 먹지 않으면 죽게 되지요? 그렇지요? 몸은 만물의 집결체입니다. 이 몸뚱이는 이 땅의 모든 구성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 나 자체는, 마음은 하나님의 일선이요. 몸은 사탄의 일선입니다. 이렇게 갈라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갈라 놓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망해요, 사탄이 망해요?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둘 다 망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이 사탄과 의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전부 다 자세히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도 망하는 것이요, 사탄도 망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없으면 다 그만이라구요. 사람 때문에 그런 사건이 벌어졌으니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나님의 일선이요, 몸은 사탄의 일선이기에 몸과 마음은 매일 싸웁니다. 삼팔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삼팔 선으로 갈라져 가지고 하나님의 유심사관을 중심한 민주주의와, 사탄의 유물사관을 중심한 공산주의가 세계적으로 심어졌으니 이것이 세계적으로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시대는 가을절기의 문명시대입니다. 가을절기의 문명시대라구요. 지금 문명권은 온대권에 서 있는데, 봄절기가 아니라 가을절기라는 것입니다. 보세요. 영국이나 미국이나 지금 세계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국가들은 모두 온대권내에 있는 국가들입니다. 그런데 그 문명권은 가을절기의 문명권이기에 내려가는 운세권입니다. 가을이 가까와오니 북풍한설의 소비에트 문명, 한대권 문명이 세계를 풍미하는 때라는 거예요. 이때가 40년의 역사를 거쳐 나가는 때인데 이미 지나갔어요. 그 시대는 망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새로운 봄절기의 문명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입니다. 통일교회의 원리적인 술어로 말하면 중화문명(中和文明)시대, 혹은 원화문명(圓和文明)시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제물이라는 것은 뭐냐? 내 몸뚱이를 대신한 것입니다. 몸뚱이는 사탄의 일선이요, 마음은 하나님의 일선입니다. 여기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몸에서 평화의 기수를 발견하지 않고는 세계의 평화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무엇을 지도해 나오느냐? 마음을 살리고 몸뚱이를 점령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희생봉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때려잡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이지 말고 금식을 시키며 고통을 주라는 것입니다. 고행길을 가게 하고, 희생 봉사를 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못 들어갑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제물을 바칠 때는 자기가 맛있는 것을 먹었으면, 제물에게 통고해야 됩니다. '나 오늘 잘 먹었는데, 아이고 너하고 같이 먹을걸. 너는 못 먹었지만 오늘 내가 좋으니 너도 좋아해 다오' 이렇게 통고를 해야 됩니다. 제물은 자기 몸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제물은 제사장이 갈라서 드려야

자기 대신 제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물을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갈라야 됩니다. 나누어야 됩니다. 제물을 쪼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물을 누가 잡느냐? 제사장이 잡는 것입니다. 아무나 잡는 것이 아니예요. 잡아 가지고 나누어야 합니다. 제물을 나눌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물이 희생될 때 나도 희생된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제물이 나 대신 희생하니 나는 제물에 대해서 머리를 숙이고 감사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야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제물과 하나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제물을 가르면 한편은 하늘편이고 한편은 사탄편입니다. 그래서 가르는 놀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제물을 바치는 데 있어서는 춘하추동 바쳐야 됩니다. 제물을 바치는 데 있어서 원래는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 시대에 다 바쳐야 됩니다. 그리고 죽을 때도 제물을 바치고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제물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편과 사탄편을 갈라야 됩니다, 그렇게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가지고 정성껏 제물을 드렸다, 하나님 뜻 앞에 있어서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굴복해 가지고 제물을 드렸다 할 때에는, 몸 자체에 속하였던 사탄이 분립됩니다. 제물로 말미암아 쪼개져 나가는 것입니다. 제단에 몫을 같이 놓았지만 제물을 하나님이 받았다 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과 사람과 제물이 삼위일체가 되는 거예요. 창조법도가 하나님, 사람, 만물이라는 것입니다. 천지인(天地人)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것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제물을 쪼개 하나님 몫과 사탄 몫을 같이 놓았지만, 제물을 바쳐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이 일체가 되게 되면 제물은 하나님에게로 넘어가는 것이요. 만약 제물을 잘못 바치게 되면 사탄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물을 바칠 때에는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제물을 바치는 시간은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일생 동안에 제물적인 기도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때입니다. 은혜가 내리는 때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해보면 알게 됩니다. 신령한 체험을 하게 되면 대번에 안다는 겁니다. 그 방향도 동서남북, 사람에 따라 달라집니다. 동서남북과 같은 방향이 있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 혹은 춘하추동의 절기와 같이 태어난 소질에 따라서 기도하는 정성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시간도 달라집니다. 아침에 기도를 해야 은혜를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점심 때, 어떤 사람은 오후에, 어떤 사람은 새벽에 기도해야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그 사람의 소질에 따라 다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제물을 중심삼아 가지고 분립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단 합하게 되면 몽땅 하나님이 차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차지하시게 되면, 비로소 제물도 나도 하늘편으로 돌아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역사를 지금까지 해 나오신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만물을 제물로 드린 시대

구약시대는 무엇을 제물로 드렸느냐? 물질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신약 시대의 제물은 뭐냐? 아들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성약시대의 제물은 뭐냐? 부모가 제물이 되어야 됩니다.

재창조 역사를 하는 데 있어서 참된 만물, 하나님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참된 만물이 없어 가지고는 사람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이 세상이 타락되었기 때문에 사탄의 주관권내에 들어간 만물을 하나님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피를 흘리게 하여 갈라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이 일치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연의 인간을 중심삼고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입장에 서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원칙을 따라 받은 제물을 중심 삼아 가지고, 사람을 다시 찾았다는 조건을 세워 가지고 분립권을 만들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자기 몸뚱이 대신 제물을 바쳤습니다. 소를 잡아 제사를 드리고, 양을 잡아 제사드리고, 더 나아가서는 무슨 보물을 바쳐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해 왔습니다. 만물을 짓고 사람을 지었기 때문에, 그러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제물을 통해서 찾아 나오던 한계점이 어디냐? 개인이 아니예요. 가정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단입니다. (판서하심 ) 내적인 한계점은 유대교단이요, 외적인 한계점은 나라인 것입니다. 나라가 세워져 가지고 그 나라와 교회가 합해지면 주인이 와 가지고 하나님 앞에 그 나라를 봉헌할 수 있을 때까지 제물의 역사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구약의 역사란 무엇이냐? 제사장들이 관리하는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 교회를 대제사장 되시는 메시아 예수가 올 때에 그 앞에 대를 이어 주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흠 없이 잘 길러진 목자들과 마찬가지이고, 양을 치는 주인과 마찬가지입니다. 제사장들은 제물을 바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미래의 메시아를 중심삼고, 미래의 소망을 중심삼고 제물을 바쳐서 판도를 넓혀 가지고, 내적인 유대교와 외적인 이스라엘 나라를 안팎으로 한꺼번에 묶어 가지고 제물로 바쳐야 했습니다.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제물의 완성을 이루지 못한 예수

이런 입장에서 제물을 바쳤더라면 어떻게 되었느냐? 그때 교회와 나라가 갈라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일시에 하나님 앞에 바쳐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반드시 로마에서 갈라져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로마의 속국이었습니다. 거기서 갈라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갈라내 가지고 제물을 바치는 자리에까지 나가야 했는데 그 자리에 나가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만약 그때 예수님이 제물을 바쳤다면 일시에 제물의 목적이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그 이후 제물은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제물의 열매는 메시아입니다. 예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교회와 나라를 연결시켜 가지고 한꺼번에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나라의 주권이 하늘 나라의 주권으로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의 판도를 보게 되면, 중동지역을 중심삼은 로마의 말단 행정력이 약화된 때였습니다. 빌라도와 같은 사람이 민란이 일어날까봐 두려워했던 것을 두고 보면 행정력이 약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민심이 소란해져 큰 문제가 벌어질 것을 염려했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자리를 잡아 기수가 되어 가지고 혁명의 봉화를 들고 일어났더라면, 아랍권-이방인이라고 싸워 나왔지만 전부 다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은 후손들이므로-을 일시에 규합해 가지고 로마 제국과 대결해 나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봉화를 들고 나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한꺼번에 교회와 나라를 제물로 바쳐야 하는 것이 대제사장 메시아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제물을 못 바쳤기 때문에 제물을 잃어버렸습니다. 제물을 드리려고 주인이 왔는데, 주인을 무시해 가지고 쫓아 버렸습니다. 제물을 바쳐야 할 책임자가 제물을 바칠 제단을 잃어버리고, 성전을 잃어버린 입장에 섰으니 다시 성전을 지어야 되고, 다시 제물을 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열매는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제물을 바칠래야 바칠 수 없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예수님은 잃어버린 교회와 잃어버린 나라보다 가치 있는 것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유대교의 열매였습니다. 만약에 그러한 세례 요한이 예수님 대신 제물되는 희생의 자리에 나가고, 세 제자가 자진해서 제물되는 희생의 자리에 나가고, 열두 제자가 합하여 이스라엘 족장을 대표해 가지고 제물되는 희생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교회를 잃어버리고, 나라를 잃어버리고, 120문도, 70문도, 열두 제자, 나중에는 세 제자까지 다 잃어버린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이 세워 놓은 구약시대의 제물의 터전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바쳐야 할 제물의 기대를 잃어버렸고, 제물을 잃어버린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것을 책임지고 완결지어야 했기에 자기 일신을 이스라엘 나라와 교회를 대신하여, 몸뚱이는 이스라엘 나라를 대신하고 마음은 유대교를 대신한 실체로서 제물을 드리게 된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노정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양자의 입장에서 제물되신 예수

만물 제물시대를 거치고 난 다음에는 실체 제물시대입니다. 아들이 제물입니다. 그런데 아들로 제물을 드리는 데 있어서 원리 원칙을 두고 볼때,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그러한 천리의 법도, 천리의 법칙은 없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서 제물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면 우리가 구원을 받더라도 언제나 제물되는 운명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되었느냐? 아들의 자리에서 한 급 떨어져 나갔습니다. 아들의 자리에서 세례 요한과 구약시대의 제사장을 대표한 자리에 떨어져 죽어갔습니다.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양자의 자리입니다. 알겠어요? 양자의 자리에서 죽어간 것입니다. 양자의 자리에서 죽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양자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양자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원래 세례 요한을 중심삼아 가지고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완전히 하나되었더라면, 거기서부터 예수님은 대번에 아들의 권위를 거치고 가정을 거쳐 가지고 부모의 자리까지, 인류의 참다운 조상의 자리, 즉 아담 해와를 중심삼은 거짓 부모의 기원을 복귀한 선의 부모의 기반을 닦아놓았을 것입니다. 일시에 이루어졌을 거예요. 또 그렇게 되면 종족적인 승리도 일시에, 민족적인 승리도 일시에, 국가적인 승리도 일시에 이루어 가지고 나라의 주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만왕의 왕이라고 했지만, 말로만 만왕의 왕이지 만왕의 왕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개인복귀를 해서 가정복귀를 하려면 반드시 제물을 드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탕감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야곱 시대에서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쫓김을 받았고, 얼마나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 나왔습니까? 이렇게 4천년 동안 근근이 쌓아온 공적이, 그 역사적인 터전이 일시에 왕창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완결지어야 할 나라가 깨졌고, 교회의 목적도 깨졌고, 종족의 목적, 가정의 목적, 개인의 목적도 왕창 깨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들의 권위로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습니다. 아들의 뜻과 아버지의 뜻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한 것을 보면, 그 자리는 아들은 아들인데 양자, 양자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믿는 것은 뭐냐? 양자의 자리로 올라가기 위한 것입니다. 양자는 뭐냐? 아버지와 핏줄이 다릅니다. 혈통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천사장권에 있어서,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아들 앞에 복귀된 천사장의 입장에서 종의 주인이 되어야 할 세례 요한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홀로 와서 어떤 자리를 택했느냐? 구약의 마지막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신약의 출발은 어떻게 되느냐? 양자라는 것은 혈통이 다른 거예요. (판서하심) 원래 양자로 세워진 것이 누구냐 하면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또한 세례 요한은 천사장 대표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아담 앞에서 반대한 천사장이 아니라 아담을 끝까지 위할 수 있는 천사장편 땅 위의 대표자로서 세운 것이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받들지 못하고,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비운의 역사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4천년 역사를 파탄시켜 버렸기 때문에 예수님에게는 그 역사를 남겨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남기는 데는 영적 세계와 실체세계로 갈라 가지고 남겨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양자세계와 실체세계를 남기고 다시 오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셨다가 가실 때는 구약의 완성인 동시에 신약의 출발이 이뤄져야 하는데, 완전한 출발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천사장의 책임을 해 온 종교

그러면 예수님은 돌아가신 뒤에 지금까지 뭘했느냐? 예수님은 낙원에 갔습니다. 천국에 못 갔습니다. 이걸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어떤 책임을 했느냐? 이 땅 위에서 만민을 대하여 메시아의 책임을 했으되 그것은 양자적인 책임을 한 것입니다. 저나라에 가서는 뭘 하느냐? 천사장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천사장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끝까지 충성할 수 있는 천사장의 대역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생명을 바쳐 충성할 수 있는 대역자를 길러 낼 때까지 그 대역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영적인 구원을 중심삼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가 있었지만 기독교인은 나라가 없는 민족입니다. 천사장이 나라가 있어요?

지금까지 종교는 뭘 했느냐 하면 천사장권을 만들기 위해 나왔습니다. 세계적 대표자의 천사장권을 만들어 오시는 아들 앞에 절대 복종할 수 있도록 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계급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믿는 사람은 상대가 되는 이성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독신생활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천사장권 복귀역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걸 잘 모를 것입니다. 종교에서 왜 독신생활을 하느냐? 종교에서는 왜 결혼생활을 허락할 수 없었느냐? 천사세계가 타락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사세계를 복귀한 형을 완결지어야 아담의 세계가 나옵니다. 땅 위에서 그것을 결정지어야만 주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은 예수님의 몸뚱이는 누가 가져 갔느냐? 사탄이 가져 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상 이스라엘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이스라엘권을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문명권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나라가 이 땅 위에 없습니다. 기독교 문명을 가진 국가가 많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국가는 아닙니다. 언제나 옮겨질 수 있는 입장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이어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받지 못한 아들의 사랑을 받아야 할 재림주

만물에서부터 양자적 승리권을 거쳐 가지고 아들의 승리권을 거쳐 부모의 자리까지 복귀해 올라가야 됩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에는 아무리 잘 믿어도 하나님의 아들은 절대 못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기 아버지가 계신 곳에 가지 왜 낙원에 갔겠습니까? 낙원은 뭐냐? 천국 들어가는 대합실입니다. 천국에는 혼자서는 못 들어갑니다. 천국은 본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살다가 죽어서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어서 가는 곳이 천국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못 들어갑니다. 여러분도 혼자서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예수님도 혼자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재현해 가지고 신랑의 입장에서 신부를 찾아 상대를 결정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의 공인을 받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받기는 받았지만 완성적 사랑을 못 받았습니다. 탕감적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와 가지고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완성적인 사랑을 받은 아들은 죽어서는 안 됩니다. 죽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이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다시 와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아들은 뭐냐? 아담의 자리를 복귀한 것입니다. 아담을 통해서 해와가 지어졌기 때문에, 여기서 상대를 찾아 한 가정을 이루게 될 때, 비로소 천도를 밝히기 위한 하나의 부모의 기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 통일교회 술어로 말하면 참부모가 이 땅 위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부모가 나오기 전에 참자녀가 나와야 됩니다. 참자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걸 여러분이 몰라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참자녀의 수속을 어떻게 하느냐? 그것은 통일교회 원리를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심정문제가 대두됩니다. 그리고 참자녀가 참부부를 이뤄 사위기대의 목적을 달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중심삼고 제물을 바쳐 왔기 때문에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지금까지 피를 흘려 나온 것입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출발 당시에는 피를 흘리지 않으면 교회가 서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만 봐도 그랬습니다. 대원군 시대에 그랬잖아요? 피를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 최후에는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재림주님이 이 땅에 와 가지고 아들로서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을 다 받아야 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을 했습니다. (판서하심)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완성급까지 가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7년이라는 기간입니다. 이상상대는 어디서 생기느냐? 장성기 완성급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축복해 주는 자리가 장성기 완성급입니다. 축복을 받아 가지고 완성적인 7년노정이 통일교회에는 있는 거예요. 그것이 1차 7년노정, 2차 7년노정, 3차 7년노정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런 세계적인 노정을 거치는 운명길을 가고 있습니다. 금년이 2차 7년노정에 있어서 4년째를 맞이한 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의 정세는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급변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원리의 방향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 하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한 가지만 얘기합시다. 복귀역사는 잃어버린 역사를 그 모양 그대로 이루는 것입니다. 2차대전 직후에 한국 기독교계에서는 부흥의 판도가, 부흥의 분위기가 벌어졌습니다. 신령한 집단들은 주님이 오신다고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산에서, 혹은 굴에서 그날을 준비했던 무리 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다 가 버렸습니다. 맨 처음에는 이성봉 목사, 박재봉 목사, 무슨 목사, 무슨 목사 목사들이 야단을 하더니 다음에는 장로들로 떨어져요. 무슨 장로, 무슨 장로, 다음에는 권사, 집사 들로 떨어져요. 그러더니 다 지나갔습니다. 역사의 보조를 맞추면서 목사가 지나가고, 장로가 지나가고, 권사, 집사가 지나가고, 이제는 교인의 시대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앞으로 살려면 교회에만 나가서는 안 됩니다. 산으로 들로, 세례 요한이 갔던 길을 다시 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먹을 것 먹지 않고, 입을 것 입지 않고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면서 굶고도 살 수 있다고 각오한 사람이라야 앞으로 갈 길을 만날 수 있는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건 왜? 교회가 책임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

해방 직후 이 나라와 기독교가 통일교회를 받아들였더라면

해방 직후에 이 나라가 통일교회를 맞이했더라면 공산당은 없어졌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통일교회는 승공연합을 중심삼고 한국에서 명실공히 승공활동에 있어서는 첨단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반공연맹이 있지만 실력기준에 있어서는 누구도 승공연합을 부정할 수 없는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방 직후에 기성교회가 통일교회 문선생과 손을 잡았더라면 이 세상은 뜻대로 다 되었을 것입니다. 공산당은 벌써 내 손에 나가떨어졌을 것입니다.

해방 직후는 군정시대였습니다. 주권이 세워지려면 3년 기간이 있어야 했습니다. 정부 수립이 1948년이었으니까, 해방 직후부터 3년간 완충기간이 있는 거예요. 이 기간에 기독교와 통일교회가 연합해 가지고 부흥을 해야 했습니다. 일본의 신사참배 같은 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세계 공산당과 사탄을 대비해야 하는 것이 기독교의 운명이었는데, 그걸 모르고 서로 싸웠던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그 싸움하는 가운데 끼어 가지고 반대를 받게 되니 발 붙일 곳이 없어서 내가 이북에 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간 길과 같이, 반드시 원수세계에 가서 빼앗아 와야 됩니다. 찾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놀음을 해 가지고 갈라졌던 나라, 나라가 반대하고 교회가 반대하던 데에서 재봉춘한 것입니다. 의붓자식과 같이 몰리고 쫓겨나 가지고 제일 원수의 세계에 들어가 기반을 닦아서 남한 땅에 내려온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별의별 소문을 남기면서 21년노정을 걸어온 거예요. 이제는 기성교회를 대해 '너는 너고 나는 나다'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통일교회가 실력에 있어서 '너희들에게 지지 않는다고, 하는 거예요. 기성교회와 보따리를 바꾸어 쥐는 거예요.

앞으로 대한민국은 통일사상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내가 안보문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를 원수로, 통일교회를 하나의 종파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국이 그렇게 못 하면 일본 사람들을 무장시켜 가지고 이 나라, 이 민족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요즈음에 일본 사람들 몇백 명을 데려다 계속적으로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조금만 지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는 '왜, 일본 사람들만 부르시고 우리 대한민국 사람은 안 부르십니까?' 할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통일교회 문 아무개라는 사람은 이름은 없지만 아시아가 가는 방향에 있어서 그 누구도 모르는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그 누구도 몰라요.

한국과 일본과 중국은 하나되어야

오늘날 구보끼가 일본에서 유명한 사나이가 되었습니다. 40대 젊은 사람으로서 일본 조야의 거두들이 일본을 이어받을 수 있는 후계자로 생각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것이 누구에 의해서 되었느냐? 여기 청파동에서부터 그렇게 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릅니다. 일본이 어떻게 나가야 되느냐? 지금까지 내가 말한 대로 그렇게 다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승공연합의 닻은 어디에 내려야 하느냐 하면, 인도에 꽂혀야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중국은 남진정책을 할 것입니다. 소련은 북방에서의 국경분쟁이 문제입니다. 소련과 중국은 역사적으로 원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때에 사상전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사탄세계가 한번 갈라졌다가 화합할 것입니다. 갈라졌다가 화합하려면 하나가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중공은 앞으로 국경분쟁보다는 남진정책을 세워서 경제기반을 조성하려고 할 것입니다. 남진정책을 세워 가지고 무진장한 남방의 자원을 발굴하여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갖게 되면 중공이 소련과 백년전쟁을 한다고 해도 소련이 못 당할 것입니다. 소련이 그걸 알기 때문에 중공의 남진정책을 방지하기 위해서 함대를 인도양에 배치하고, 인도지나를 중심삼고 아시아의 안보문제까지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소련이 인도와 불가침조약을 맺었습니다. 일본도 거기에 제까닥 걸려들었습니다. 그것은 예상했던 대로입니다. 그건 그렇게 되어야 되는 겁니다.

일본이 가야 할 방향 문제라든가 이런 등등의 전반적인 문제를 제시해 가지고, 최고로 여기에 알맞은 사람들한테 줄을 달아서 지금 모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정부를 대해서는 내가 만나지 않습니다. 우리 기반 닦기에 더 바쁩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한국과 일본과 중국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 일본, 중국이 어떻게 하나가 될 것이냐? 경제력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무력 가지고도 안 됩니다. 사상적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통일사상을 내세워야 합니다. 중국의 장개석도 이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국가가 모르는 가운데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일본에 선교사를 보낼 때,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밀선을 태워서 보냈습니다. 그때는 이화여대 사건으로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다 나온 때였습니다. '이 나라의 금후의 갈 길은 일본을 품지 않으면 안된다. 천운이 그 길을 걸어오기 때문에 일본을 품어야 된다'고 하면서 보냈습니다. 일본을 품는 데는, 아는 사람이 그 깃발을 꽂아야 되겠기 때문에 내가 법치국가의 한 국민으로서 위법인 줄 알면서도 보낸 것입니다. 현재는 이것이 법에 위배될지 모르지만, 금후에 한국이 가야 할 길이 그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당연코 보냈던 것입니다.

그때 내가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 이 교회를 2백만 원을 빚을 내 가지고 사서 젊은 사람들을 보내 대청소를 하여 사흘만에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1958년 8월에 최봉춘이를 충청남도 갑사 뒷산으로 불러 가지고 일본 선교의 특명을 내렸습니다. '너는 현해탄을 건너야 된다. 죽기 전에는 돌아오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은 이렇게 준엄한 것이다' 이렇게 다짐시켜 가지고 밀선을 태워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1차에서 걸리고, 2차에서도 걸리고, 3차만에 간 것입니다. 3차에 갔어도 오오무라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십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죽더라도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기 때문에 꾀병을 부린 것입니다. 사흘 동안 소금을 먹어 몸에서 열이 나니까, 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휴식시간에 탈출을 했습니다. 그렇게 도망을 해 가지고 길을 닦아 놓은 것이 현재의 일본 통일교회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앞으로 전세계의 통일교회 교인들과 대한민국의 대사관이 딱 하나된다면, 그 나라의 백성을 중심삼고 미국 백성보다 강력한 신임을 받는 백성권을 만들 수 있는 터전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대한민국은 모르고 있습니다.

보다 제물되는 자리에 같이하시는 하나님

언젠가 한미문화재단을 만들려고 할 때 별의별 수욕을 다 받았어요. 보좌관으로 가 있던 사람을 시켜 가지고 별 수단을 다 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모르리만큼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미국의 상원의원 중 50명에 가까운 무리가, 하원의원 중 120명에 가까운 무리가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 판국에 있어서, 현재 미군 철군문제를 놓고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을 중심삼아 가지고 닉슨 대통령에게 새로운 방안을 구상하게 하고, 모색하게 하는 모든 배후의 공작을 누가 했느냐? 이런 것은 현 정부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린이 무용단 때문에 얼마나 시끄러웠어요? 또 승공연합 때문에 얼마나…. 통일교회 문선생은 팔자가 사나운 사람이예요. 팔자가 사나운 사람이니 여러분도 좋다고 따르지 마세요. 내가 가는 길은 어려운 길입니다. 나는 칼을 품고 가는 사람 이상입니다. 남한테 맞아 죽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몰리는 자리에서도 통일교회 젊은이들을 규합해 가지고 이렇게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슬픔을 품고 나오는 복귀섭리 앞에 있어서 기쁨을 맞겠다는 사고방식은 떼어 버리자 하는 것이 우리의 통일사상입니다. 하나님은 보다 제물되는 자리에 같이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을 알게 된다면, 문선생의 말씀을 듣고 알게 된다면 그 누구도 머리를 못 들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수다한 역사적 배경의 미지의 사실을 알아 가지고 나가는 길에 그 누구도 도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간부들이 있지만 선생님이 가는 길에 절대 협조할 수 없습니다. 협조할 수가 없는 거라구.

통일교회 식구들은 선생님에 대하여 아버님이라고 하지만 부모의 가는 길을 자녀들이 개척할 수 없습니다. 왜? 자식이 있기 전에 부모가 타락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안 그래요? 자식이 있기 전에 타락한 거예요. 그러므로 복귀의 길은 자식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고독단신입니다. 지금도 싸워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역사는 반드시 탕감을 통해서, 제물을 통해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떤 사고방식을 가져야 되느냐

그러면,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떤 사고방식을 가져야 되느냐? 개인을 희생시켜서 가정을 하늘 앞에 세우자, 가정을 희생시켜서 종족을 하늘 앞에 세우자, 종족을 희생시켜서 민족을 하늘 앞에 세우자, 민족이 희생 되더라도 나라를 세우자. 나라를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구하자 하는 사고방식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이 자기 나라가 망한다고 해서 세계를 집어 던지고 자기 나라만 살겠다고 하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금후에 여러분은 역사적 방향을 어떻게 모색할 것이냐? 이걸 여러분은 모릅니다. 금후 대한민국은 어떻게 갈 것이냐, 일본은 어떻게 갈 것이냐? 이걸 모른다는 거예요. 그 누구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돼요. 지금까지의 역사적 방향이라는 것은 어떻게 나왔느냐? 인간 개개인이 출세하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타락이 어떻게 해서 벌어졌습니까? 자기를 자각한 데서부터 벌어졌습니다. 자기의 명예를 자각한 데서부터, 혹은 자기를 내세우는 데서부터입니다. 천사장도 거기서부터, 해와도 거기서부터 타락이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의 방향은 자기가 출세하기 위해서 제삼자를 희생시키는 놀음을 해 나왔습니다. 이것이 타락의 결과입니다. 그렇지요? 천사장은 해와를, 해와는 아담을, 전부 다 자기가 남기 위해서 제삼자를 희생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의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풀이되어 세계적으로 전개되어 나오는 과정에서 숱한 전쟁의 역사를 남기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주세계니, 공산세계니 해 가지고 대결하다가 끝에 가서는 자기들 스스로 전부 다 후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공산세계가 갈 수 있는 길, 즉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중심한 경제이념으로 세계 제패의 꿈이 망상의 논리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오토메이션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세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 앞으로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이냐? 이제는 가을을 맞이했습니다. 더 이상 못 가는 거예요. 미국 국민에게는 현재 퇴폐적인 사상이 깃들어 있습니다. 미국이 그러한 젊은층을 지도할 수 있는 자질을 가졌느냐? 다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주하고 제삼자를 희생시켜서 자기 출세를 위주해 나오는 것은 악입니다. 그러므로 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을래야 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돌보지 않는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찾으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겠어요? 대한민국만을 찾으시려는 하나님이 아니예요. 대한민국을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찾으면 희생된 대한민국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이왕에 희생할 바에야 세계를 위해서 희생한 입장에 서게 되면 대한민국은 주도적인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건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의 방향을 변경시켜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새로운 역사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 역사의 방향을 돌이켜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출세를 위해서 제삼자를 이용하고 밟고 올라서려는 주의는 끝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주의는 이미 그 결과에 봉착해 가지고 이 혼란한 세계정세를 속수무책으로 관망할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그 비참상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길이 없는 거예요. 방안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방안이 있다면 단 한 가지, 돌아서서 반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 사상이 뭐냐? 남을 희생시켜서 자기가 출세하자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희생시켜서 남을 출세시키자는 것입니다. 거기에 흥미 있는 나라가 생겨날 것입니다. 흥미 있는 인생관, 흥미 있는 국가관, 흥미 있는 세계관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러한 관을 중심삼고 나온 것이 통일사관입니다. 알겠어요?「예」 개인이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정당한 법입니다. 그러기에 부모 앞에 희생할 수 있는 도리를 찾고, 아내 앞에 희생할 수 있는 도리를 찾고, 자녀 앞에 희생할 수 있는 도리를 찾아야 아들의 사명을 하고, 어버이의 사명을 하고, 남편의 사명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이 가는 길입니다.

이렇게 희생을 다 하고 난 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부모도 그 자식을 중심으로 세우려고 할 것이요, 아내도 그 남편을 영원한 중심으로 세우려고 할 것이요. 자식도 '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세계에서 제일이다'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는 거예요. 중심이 되는 거예요.

열 사람의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이 희생하게 되면 그 사람은 열 사람 가운데서 못난 사람 같지만, 가면 갈수록 그는 열 사람의 중심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자기 출세를 위해서 열 사람의 친구를 이용하다가는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떨어져 나가니, 없어지니까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친구를 위해서 희생하고, 자기 생명을 버리려고 각오한 사람이 있다면, 그 열 친구들은 모두 그에게 달라붙을 것입니다. 그가 죽을 일이 있으면 서로 대신 죽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친구들의 주변 사람들까지도 동원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엉키는 것이기 때문에 망하지 않고 흥하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망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에 영원히 흥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취해 나오실 길이기 때문에, 역사 도상에서 보수전을 하고 있습니다. 공격전이 아니예요. 보수전을 하는 데 있어서는 언제나 먼저 맞고 먼저 희생하는 것입니다. 희생되어 가지고 몇십 배의 희생의 대가를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물과 마찬가지입니다. 제물이 희생되면 제물을 희생시키게 한 무리는 제물 앞에 굴복하게 되며. 굴복한 전체는 몽땅 찾아지는 것입니다. 전부 그런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지금 선생님이 이런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고,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종족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고,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탄의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나라의 이념, 하늘나라의 이념을 바라면서 희생하게 되면 악은 굴복하기 마련입니다. 악은 왜 굴복하느냐? 악은 끝에 가면 선 앞에 굴복하기 마련입니다. 악이라는 것은 교만입니다. 교만이기 때문에 끝에 가면 망하게 됩니다.

소련의 흐루시초프가 유엔 총회에서 구두짝을 벗어 들고 책상을 두들 기고…. 그 말을 듣고 우리 식구들 중심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놈의 자식, 너는 이제 내려가야 돼, 목이 잘려서 내려가야 돼. 너는 최후의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이 지구상에서 물러가야 돼' 그랬습니다. 이제 악은 최고의 절정에 달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못 올라갑니다. 하늘이 치는 거라구요. 그러니 공산당은 와르르 무너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희생하는 민족이 세계를 지도하는 민족이 된다

끝날이 되면 세계에서 높다 하는 녀석들은 전부 다 모가지가 잘리게 될 것입니다. 지금 미국이 높다 하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세계를 위한 목적을 망각하게 되면 목이 잘리는 것입니다, 일개 민족을 위주한 사상기준을 영구화시키려는 사상은 목이 잘리는 것입니다. 공산당도 그래요. 슬라브 민족을 중심한 공산권이 세계를 제패하려는 꿈을 꾸고 있는데, 그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놈의 자식들,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특정한 민족을 위하는 사상이 아니라 어떤 민족이든지 충성을 더하고, 희생을 더하고, 초민족적인 감정을 가지고 숭배할 수 있는 사상적 터전을 갖지 않고는 세계를 제패할 수 없습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그렇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나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내 갈 길이 바쁩니다. 영광은 나중이예요.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영광은 나중으로 미루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주인은 민족을 초월해 가지고 세계를 자기 민족보다 더 사랑하고, 자기 민족의 기준을 망각하는 일이 있더라도 세계의 기준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 희생의 길을 자처해 나가는 민족입니다. 그런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에게 나라가 없고 주권이 없더라도 후세에, 21세기, 혹은 30세기, 혹은 몇천만 세기에는 그 민족의 사상이 아니면 세계가 살 수 없다고 그 민족을 받들 수 있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그 한 개인은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개인으로 그 가치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민족은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민족이 되지 말라고 해도,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민족이 되지 말라고 해도, 세계를 이루지 말라고 해도 형성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망할 수 있는 입장에서 주권을 잡아 가지고 안 망하겠다고 몸부림치는 것보다도 천륜에 순응하고, 박자를 맞추어 가지고 자기의 공적의 터전이 후대에 있어서 세계적인 결실이 되기를 바라며 엄숙히 자기의 생애를 바쳐 나가는 무리가 있다면, 그 무리가 성인의 반열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 시대에 있어서 민족한테 동정을 못 받고, 주권자들한테 동정을 못 받았습니다. 이순신 장군 같은 사람은 간신으로 몰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를 위해서 통곡한 사람이라도 있었다구요. 역사는 이렇게 엇갈리는 거예요.

통일사상은 어떤 사상이냐

통일사상은 어떤 사상이냐?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할 때, 사랑하는 데는 세계를 품을 수 있는 대한민국으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종교를 사랑한다 할 때-종협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공적이 많습니다- 종교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통일교회 안에 있는 귀한 종교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건국할 수 있는 종교로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데 있어서 주도적인 사상이 없고, 주류적인 사상이 없기 때문에 주류적인 사상을 남기기 위해서 통일교회는 희생하자는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돈을 투입하고, 사랑이 없으면 사랑을 투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종살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면 기독교의 목사 같은 양반들, 내가 지금 공산당식으로 작전을 하면 다 말아먹을 수 있습니다. 암만 뭐라 해도 그들의 머리에 내가 지지 않습니다. 사탄도 녹여 놓은 사나이예요. 하나님을 반하게 만든 사나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런 머리가 있다면 있는 사람입니다. 1차 작전, 2차 작전, 3차 작전으로 다 테스트해 보았습니다. 그 누구 누구의 속을 여기에 앉아 가지고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위해서 일하고 있느냐?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구요. 통일교회를 희생하여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하늘의 뜻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공헌하고, 세계의 만민을 소생시켜 가지고 하나의 세계로 몽땅 가게 하는, 하나님의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위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부정 부패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악당의 무리가 있을 수 없는 거예요.

우리나라의 중요한 행정요원들의 실정을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 누구는 뭘 해먹고…. 어느 한때가 되면 이것을 가만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어제도 김총리가 그런 부정문제에 대하여 언급을 했지만…. 그러므로 올바른 국가관, 올바른 세계관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 달러 보따리를 싸 가지고 도망가려고 하는 녀석이 있다면 내가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신문사도 하고 있지만, 신문사 편집부장 혹은 기자들이 돌아다니면서 돈 받고 하는 녀석들은 전부 다 모가지를 자를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소문이 들려오거든…. 우리는 정당한 신자입니다. 우리는 의사가 되어 가지고 병폐가 있거든 무자비하게 수술하고, 말없이 끝에서부터, 발톱에서부터 하나하나 손을 대 나가자는 것이 통일교회 주의입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피 흘리는 사람을 구하려면 자기도 피를 묻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를 제물삼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 앞에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제물삼고자 하는 무리가 없었기 때문에, 제물되겠다는 사상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고독한 죽음의 길로 몰아낸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역사를 바라보게 될 때, 숭고한 기독정신이 배양될 수 있는 터전이라는 것은 죽음이 엇갈리는 자리에서 서로서로가 죽음을 앞 놓아가며 싸우는 자리였습니다. 죽음을 놓고 싸우는 자리에서 발전의 봉화는 세계의 도처에서 빛을 발했지만, 자기 자체를 내세우고 환경을 자르는 거기에는 망운이 깃들었습니다. 망한 것입니다.

제물을 참되게 바치면 망하는 법이 없어

여러분, 오늘 말씀의 제목이 제물의 완성이라고 했지요? 이것은 3시대를 거쳐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최후에 오시는 주님은 인류의 조상으로 오십니다. 인류의 조상으로 오시는 그분을 만약에 기독교가 받들지 못하면…. 거 받들지 못하게 마련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는 줄 알고 있는데, 통일교회에서는 육신을 쓰고 오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교인들을 정신 나갔다고 합니다. '구름 타고 오면 어떡할 테야, 어떡할 테야? 하면서 천년왕국이 어떻고 어떻고…. 그렇게는 나도 다 믿어 봤습니다. 그런 신앙은 다 해봤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뒷골목까지 다 파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의 배후가 어떻다는 것도 다 알아보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예요. '기독교 통일해 보겠소? 하는데 문만 열어 보라요, 6개월이면 해낼 자신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문만 열게 되면 아무리 잘 믿는 사람이라도 성경이면 성경대로 해석하고, 이론이면 이론대로 설명해 가지고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문만 열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목사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의 갈 길을 막았다가는 저나라에 가서 강도의 벌을 받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살려주기 위해서 내가 지금도 공청회를 하면서 상감마마 대접을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보지도 못한 음식을 해 어서 먹어라 하며…. 그저 게걸이 들어 가지고 먹는 것을 보고 내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야곱과 같고, 열 한 형제 앞의 요셉과 같은 기분이 났습니다. 어쩌면 그러냐? 저렇게까지 불쌍하게 되었느냐?

닭다리를 훔쳐 가지고 먹겠다는 놀음이 식당에서 벌어지더라는 겁니다. 기가 막히더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분량을 먹었으면 됐지, 그것을 넘어 또 갈비짝을 숨겨 가지고 다니는 무리들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걸 볼때 칼로 자를 것이냐, 눈물을 머금고 참을 것이냐? 그래도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수고한 터전이 여기에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잘라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과거에 형의 입장에서 먼저 하나님을 모시고 나왔던 게 아니냐? 나는 그 후에 나와서 하나님을 모셨지만, 그 전에 외로운 하나님을 모시고 나온 그들이 아니냐? 이런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모르기 때문에 동생의 입장에서 한이 맺혔습니다. 여러분 지금 그래요. 기독교가 지은 죄가 많다는 거예요.

내가 1967년에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조야가 전부 통일교회 문선생 왔다고 야단이었습니다. 내가 동경에 도착하게 되면 신문기자들이 비행장에서부터 꼬리를 물고 늘어질 것을 알았기 때문에 대판(大阪)에서 내렸습니다. '이놈의 자식들, 내가 너희들 작전에 말려들지 않는다' 대판에서 내려 다시 동경으로 갔습니다. 후에 그들이 알아보니까 오긴 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분 나빴다 이거예요. 자기들 계획대로 안 되었거든요. 이번에 오게 되면 통일교회 문선생을 한번 파헤쳐 가지고…. 아주 흥미진진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놈의 자식들, 내가 너희들 작전에 말려들지 않는다 이거야. 결국에는 꽝 했어요.

이래 가지고 어떤 기자 녀석이 왔었는데 문전에서 쫓아 버렸습니다. '내가 일본에 와 가지고 너희들이 계획하는 작전에 움직일 수 없다' 해가지고 쫓아 버렸습니다. 한국에서도 장식으로 통일교회 문선생과 회견한 기자가 없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기자회견 안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할 짓을 다 했으니까, 그들이 필요할 때 내가 만나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필요할 때 그들을 만나지….

그러다 보니 있는 말, 없는 말 다 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두 달동안에 일본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이제 통일교회 문선생 하면 아주 악당의 괴수로 명성이 높아졌습니다. '문선명' 하게 되면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까지도 이름을 들어 가지고, 일본 앞에 제일 악한 사람의 상징으로 그릴 수 있을 만큼 유명해졌습니다. 기가 막히다면 기가 막히고, 통쾌하다면 통쾌한 일입니다. 소문 내는 데는 좋은 일 가지고는 빨리 못 내거든. 그렇지요?(웃음)

전차 안이고, 기차 안이고…. 전지역에 매일 이만한 내 사진을 내 가지고, 두 달 동안 선전한 거예요. 장사거리가 되거든, 잘 팔리니까. 이래 가지고 두 달 동안에 취재된 기사는 일본의 매스컴 역사상 톱을 기록했습니다. 그런 난장판이 벌어진 것입니다. 내가 괴수로 소문이 나니까 일본 구보끼 협회장은 이런 일을 처음 당하다 보니 큰일났거든. 앞이 캄캄해.

어쩔 줄 몰라 가지고 앉아서 뭉개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 때는 경험자가 필요합니다, 내가 순회를 하고 있는데 동경에서 전화가 온 거예요. 척 벌써 예감으로 안 것입니다. 전화 소리만 들어도 안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압니다. 전화를 받을 때 '구보끼, 정신차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큰일났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큰일은 무슨 큰일이야? 이래 가지고 동경에 올라오자마자 전국에 '최고 동원이다' 하고 명령한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욕을 하고 있는데 한편에서는 전체를 동원한 거예요. 각지방의 처녀들까지 총동원한 것입니다. 신문쟁이들은 앉아서 신문으로 선전을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나가서 지서장, 지서주임, 군수, 면장 등자기 고향의 행정 요원들을 전부 소집해서 '신문은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고 교육한 것입니다. 우리 말을 들으면 그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전부 다. 일본에서 통일교회의 앞길을 막는 제일 문제되는 사람들이 경찰입니다. 그들은 권력기관이기 때문에 '그들을 교육해라' 그 놀음을 한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은 떠들지만 경찰에서는 동정을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자기들의 비밀-위에서 이렇게 이렇게 조사하라는 것까지-을 다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못 하는 일이 뭐야? 꽃파는 일을 해 가지고 돈을 벌면 그것을 우리를 위해 쓰나, 나라를 위해서 쓰지. 그러니 조사하라는 거예요. 조사해 봐야 뻔하다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한참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는 것이 중공 일변도입니다. 경제인, 정치인 전부 다 중공과 손을 잡으려고 야단이라는 거예요. 그런 판국에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가두에서 일주일 동안 단식 투쟁을 하면서 중공과의 친교를 반대하는 데모를 했습니다. '중국의 장개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이런 놀음을 하니까 일본 매스컴에서는 '저런 미친 놈들,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데 저게 무슨 꼴이야. 밤인지 낮인지 모르고, 머리 없는 통일교회, 머리 없는 승공연합'이라고 했습니다. 이놈의 자식들,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그 일을 누가 시켰는 데, 구보끼가 시킨 건가? 내가 시킨 건데…. 나는 손해나는 일은 안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일본에서는 반대를 받았지만 중국(대만)의 장개석을 잡은 것입니다. 장개석은 몽땅 우리에게 업힌 거예요.

그래서 내가 구보끼를 장개석에게 보낼 때, 이러 이러한 이야기를 해서 보냈습니다. '제1은 뭐, 제2는 뭐, 제3은 뭐 하게 되면 40분 이내에 장개석이 손안에 들어온다' 이렇게 해 가지고 보냈더니 가서 그대로 이야기를 하니 아니나 다를까, 들이 맞게 되니 한 시간 반이나 이야기를 하고, 나중에는 사진까지 찍은 것입니다.

그런 일을 통해 가지고, 이번에 세계를 순회하는 데 있어서, 중국 대사관을 통해서 특사 이름으로 어느 나라든지 가서 그 나라의 수뇌들을 만나고, 로마 교황까지 만나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가 손해날 게 뭐가 있어요? 이래 가지고 구보끼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단식 투쟁한 사건으로부터 전부 영화로 찍어서 각 나라에 갈 때마다, 혹은 훌륭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반공대회를 했습니다. 또 돌아와 가지고는 와클(WACL )대회에서도 보고를 했습니다. 앞으로 와클대회의 지도자는 젊은층이 되어야 합니다. 이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너희들 지금까지 뭘했느냐? 들이 비판하는 것입니다. 각 나라의 수뇌들이 지난번 마닐라 와클대회를 촬영한 40분 짜리 영화를 보자 다 놀래는 것입니다. 구보끼는 일시에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계획대로 딱 들어맞습니다. 침을 흘리고, 머리를 숙이고 전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인도가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었습니다. 그것은 일본의 모가지를 매는 것입니다. 이걸 일본의 최고 간부들도 다 아는 것입니다. 사또 수상까지 우리가 교육을 했기 때문에, 지금 일본사상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걸다 알고 있습니다. 기시(岸) 같은 양반들은 국수주의 사상이 골수에 배어 있는 걸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세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앞으로 문화의 세계가 된다고 교육을 해 나왔기 때문에 국수주의 사상에서 자꾸 돌아가는 거예요. 사사까와(笹川) 영감도 아주 철저한 국수주의자였습니다. 천황 외에는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디에 가서도 하늘을 지붕 삼고, 뭐 어떻고 하는 세계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교육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의 전반적인 사상의 흐름은 그런 국수주의이기 때문에 중공이 미워하는 거예요. 그리고 미국도 일본을 대해 '이놈 자식들' 하며 안보문제라든가 석유문제를 이용해 압력을 가하는 겁니다. 이번의 엔화 절상문제도 그런 의미에서 복수전이라구요. 그러다 보니 이것 큰일 났거든요. 중공보다 미국이 더 저렇게 되었으니 말이예요. 그래서 할 수 없으니까 우리 구보끼를 불러 가지고 속닥속닥해서 무엇이든 해줄 테니까 미국에 한번 갔다오라는 겁니다. 그래서 곧 구보끼가 미국으로 떠나게 될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 이런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잘하는 거예요. 못하는 거예요? 자, 우리 통일교회 패들 기분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얼마나 좋아요? 누구 때문에 기분 좋아요? 선생님 때문에 좋아요, 누구 때문에 좋아요? 대한민국, 이 나라에 소망이 있기 때문에 좋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대한민국에서 없어지면 적적할 것입니다. 요전에는 교수공청회니 뭐니 해 가지고…. 또 1군 장병들을 교육한 것이 큰 문제가 되었어요. 우리가 가서 부딪치는 것마다 문제입니다. 매스컴들이 중공만 쓰더니 요즘에 와서는 통일교회에 대해 신경 안 쓸 수 없게 되었어요.

통일교회가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더니, 그 녀석들 뭔가 있다고 자기들끼리 쑥덕공론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했다고 해서 우리 통일교회나 승공연합이 손해본 것 없습니다. 일본에서 반공사상을 가졌지만 행동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발붙일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준 것입니다. 정의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희생하게 되면 절대 손해나는 법이 없습니다. 알겠어요?

그건 왜? 제물을 참되게 바치게 되면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밟히면서도 세계적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밟은 사람이 망했지 밟힌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제물은 억지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며 바쳐야

나는 고생을 참 많이 한 사람입니다. 얼굴을 보면 고생한 사람 같아요? 지금도 젊은 사람에게 지지 않는다구요. 힘으로도 안 집니다. 한 가지 조금 다른 것이 뭐냐? 옛날과 다른 것이 뭐냐? 옛날에는 한 이백 계단을 단숨에 올라가는 데도 내가 일등을 안 하면 안 됩니다. (웃음) 그런 성격입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반 세기가 넘게 되니까, 기력이 조금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문제없습니다. 선생님이 나이 먹었다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부러운 게 없습니다. 내가 미국에 있는 몇 사람에게 편지만 하면 쓸 돈은 당장에 날아옵니다. 또, 독일 사람들에게도 전보만 하면 당장에 날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 20명 혹은 50명쯤 외국으로 보내야겠다고 구라파 통일교회에 전보만 띄우게 되면 비행기표가 금방 날아오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편리하지요? 얼마나 편리해요.

일본의 전 지역에 3시간 이내에 연락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어느 회사에 무슨 기계가 있는데 그 비밀을 알아봐라 하면, 일주일 이내에 다 알아낼 수 있습니다. 남들은 몇년 걸려야 할 것을 우리는 일주일 이내에 다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조직을 가지고 있는데 돈을 벌려면 못 벌겠어 요? 통일교회가 돈을 벌려고 하면 이병철씨가 문제가 아닙니다. 조중훈씨가 문제가 아닙니다. 조중훈씨의 길도 내가 막으려면 막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조중훈씨 사돈 있거든 미리 가서 경고하라구요. 통일교회 문서방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웃음)

여의도에 우리 땅을 살 때도, 6억 가까운 돈을 주고 시청 땅보다 더 큰 땅을 샀습니다. 돈은 없지만 돈이 있습니다. (웃음) 수속이 안 끝나서 그렇지. 근근이 계약금만 마련하게 되면 다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50일 동안에 몇천만 원이 아니예요. 1억 9천만원을 마련해야 된다는 겁니다. 돈이 없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그만큼 컸다는 거예요.

여러분들 중에 '야, 통일교회 본부가 이게 뭐야' 할지 모르지만 이 건물은 영원히 없애지 않으려고 합니다. 통일교회 본부 사람은 좋은 교회에서 예배보기는 틀렸습니다. 그거 바라는 사람은 영락교회로 가요, 영락 교회. (웃음) 앞으로 이 집에서는 1억달러를 주고도 하룻밤을 못 잡니다. 1억달러를 주고도 못 잘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안재웁니다. (웃음) 왜 그러느냐 하면 여기에는 역사가 통곡할 수 있는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볼 때 그저 '아이구, 기둥 저 기둥. 저게 무슨 통일교회 본부야' 하겠지만 이곳은 훌륭한 곳입니다.

내가 예루살렘 박물관에 갔을 때, 박물관에 대해서 물어 봤습니다. 예수님이 생전에 쓰던 물건이 있느냐고 했더니, 그 대답하는 사람의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쓰던 젓가락 끄트머리 한 조각만 있어도 미국을 주어도 안 바꾼다는 것입니다. 야! 거, 그때 한 사람이 그것을 하나만 싸 가지고 하나님 모시듯 모셨으면 미국보다 더 좋았을 텐데…. (웃음)

그런 생각을 할 때, 통일교회는 어떨까? '통일교회 문선생이 예전에 쓰던 물건이 예수가 쓰던 물건보다 못하면, 내가 지면 기분 나쁜데…'이런 생각을 한다고 이단이라고 합니다. (웃음)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그 쓸데 없는 생각 가지고 예수가 나와 씨름을 해서 졌으니 그것은 진 거라구요. 내 물음에 대답 못 한 것을 내가 말해 주면 지는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을 못 했는데 내가 했다면 그 가 진 것입니다. 기독교도 예수님보다 못하면 망하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통일교회 문선생보다 더 훌륭해야 됩니다. 나는 시기 안 합니다. 내가 그렇다면, 예수님은 물론 누구든 내가 더 훌륭해진다고 해서 섭섭하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결론입니다. 어때요? 이게 이단자예요?

대학 교수가 제자들에게 '나 이상의 지식을 가지면 안 되지' 이렇게 못을 박는 교수가 있다면 그 교수는 앉아서 죽어야 됩니다. '전통적인 사상을 존중하라' 하는데, 전통은 과정에는 필요하지만 목적을 성사하는 데는 안 됩니다. 뿌리 가지고 열매가 돼요? 뿌리와 열매는 다릅니다. 뿌리와 가지는 다릅니다. 잎하고도 다르다는 거예요. 기독교가 그 모양 그 꼴로 있으면 세계가 그 품에 들어올 것 같아요? 어림도 없습니다. 이런 것은 여담 같지만 얘기하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선전 좀 해야지. 안 그래요?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복귀섭리의 길에 있어서 그 골수사상은 무엇이냐? 제물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이걸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물은 어떤 것이냐?'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 라는 것은 무엇이냐? 모가지를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모가지를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겁니다.

생명을 내놓는 데는 싫어하며 억지로 내놓는 것이 아니라, 미친듯이 좋아하면서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을 바에는 울면서 ,내놓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겠어요, 아니면 정신없이 좋아서 미칠 것 같고 죽을지 살지 모르고, 죽어도 좋다고 그저 춤을 추면서 내놓는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어떤 사람이예요?

통일교회 사람들은 남들보다 하나 더 해야

나는 이북에 들어갔을 때, 공산당 감옥을 찾아들어간 사람이예요. 이북에 전도하려고 간 것이 아니라 이북의 감옥을 찾아들어간 것입니다. 왜? 이남 땅에서 왜 거기를 찾아들어갔느냐? 복귀의 길을 가려면 그 길을 갔다 와야 되기 때문입니다. 옥살이 중에서도 최고의 옥살이를 해야 되겠기 때문에 그래서 공산당한테 갖은 수욕을 다 당하면서도 그런 일을 한것입니다. 거기에서 일하는 데 있어서도 모범 노동자였습니다. 나를 빼놓고는 모범 노동자 표창을 못 했습니다. 어디 가든지 사탄들한테 져서는안 되는 거예요. 통일교회 영신들, 통일교회패들은 언제든지 사탄들한테 져서는 안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안 질 자신 있어요?「예」

통일교회 사람들은 남들보다 하나 더 해야 됩니다. 산봉우리를 올라가는 데도 올라가다가 그냥 쉬는 게 아니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남들보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걷고 나서 쉬어야 합니다. 이게 통일사상입니다. 공부를 하더라도 남들보다 1분이라도 더 하라는 것입니다. 남이 열 장의 책을 읽고 자면 열 한 장을 읽고 자라는 거예요. 한 장이라도 더 보라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데도 남보다 더 하라는 것입니다. 출근을 하는 데도, 출근 시간이 여덟시이면 여덟시 이전에 출근할 수 있어야 됩니다. 퇴근할 때도 남보다 10분이라도 더 늦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 더하라는 것입니다. 작업장이나, 혹은 무슨 일이든지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시작은 남보다 빨리 하고 끝맺음은 남보다 나중에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먹는 것은? 일을 남보다 하나 더 하니까 먹는 것도 하나 더 먹어야 되겠구만?(웃음) 남은 열 숟가락 먹으면 나는 열 한 숟가락 먹어야 지요? 그런 걸 오해해서 한 숟가락 더 먹겠다고 눈을 밝히면 안 됩니다. (웃음)

내가 우스운 얘기 하나 하지요. 내가 피난 나올 때 세 동무가 있었습니다. 지금 저기 떡 앉아 있구만. 다리가 부러진 녀석을 자전거에 태워 가지고 천리길을 끌고 나온 것입니다. 내려오는데 국도는 전부 다 후퇴하는 군인들로 꽉 차 있어서 산등성이, 산비탈로 왔습니다. 그때의 일화가 아주 많습니다. 이렇게 나오다 보니 제일 문제가 뭐냐 하면 밥해 먹는 것입니다, 밥. 짐을 지고 쌀까지 지고 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때는 도둑질을 하는 거예요. (웃음)

'아이구 통일교회 문선생이 도둑질을 해? 할지 모르지만,(웃음) 도둑 질을 내가 시켰습니다. 다 피난 간 집들을 뒤지는 거예요. 그때는 도둑질을 해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뒤지지 않아도 중공군이 와서 뒤져 갈 테니까. 피난 갈 때는 간편히 가야 됩니다. 내가 죽으면 큰일나기 때문입니다. 나 하나 죽는 것은 괜찮지만 하늘땅이 서러워할 것을 생각하게 되면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안 죽고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침에 밥을 해 먹으려니 무슨 쌀 가진 것이 있어요? 그래 저녁 일찍 근처의 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일 아침 밥을 하려고 가서 쌀을 구하는데 집집마다 쌀이 있습니다. 내가 쌀을 가져올 때에는 처음 보이는 쌀을 가져 오라고 했습니다. 쌀을 고르고 다니다가는 진짜 도둑놈이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렇게 해야 도둑놈의 누명을 피할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늘땅이 볼 때, '야, 이 녀석들은 남의 쌀을 갖다 먹어도 뭣이 있는 녀석들이다' 하여 동정이라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쌀독을 열어서 거기에 좁쌀이든 강냉이든 처음 본 것을 가져오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걸 내놓고 다른 것을 가져오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첫번 본 것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집을 딱 들어가면 쌀 독, 쌀 독, 쌀 독 하면서 찾고 다닌다구. (웃음) 이렇게 해서 좁쌀이 있으면 좁쌀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언제나 같은 것만 가져오면 기합을 받으니 다음부터는 신중하게 가져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밥을 하는데 가만히 냄새를 맡아 보니 공동묘지에서 널을 주어다가 밥을 하는 거예요. 그런 걸 척 보면 알아요. 그래서 내가 '무얼 가지고 밥을 해 이 녀석들아' 했습니다. 방안에서 그런 것을 알고 말도 할 줄 안다고. 그런 뭐가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죽지 않고 버터 남아진 것이예요. 여러분과 같이 깜깜천지면 벌써 망했다는 것입니다. (웃음)

밥을 하게 되면 언제나 듬뿍 하지만, 양재기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거기에 하나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쪼그만 양재기 하나에다가 하는 것입니다. 피난살이 하는데 살림하는 것처럼 덜거덩덜거덩 하게 돼 있겠어요? 간단한 양재기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젖가락은 어디를 가든지 나무를 꺾어서 하면 되기 때문에 양재기 하나만 가지고 다니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밥을 해 놓고 언제든지 셋이 둘러 앉으면 사실, 궁상이 상팔자라는 거예요. (웃음) 그립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게 상팔자입니다. 그리워할 줄 아는 그 팔자. 예수님이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한 것은 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배에서 꼬르륵 하니, 그 궁상에 그립지 않은 것이 없다는 거예요. 먹는 것이 뭐 보리개떡이란도 상감마마의 진수성찬보다 더 그리운 것입니다. 맛없는 것이 없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밥을 먹기 시작하면, 장정 세 녀석이 앉아 가지고 양재기 하나 놓고 먹기 시작하면, 이건 혼자 먹어도 양이 차지 않을 텐데 같이 앉았으니 어떻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지금까지의 생활철학이 나중에 먹기 시작하고 먼저 숟가락을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숟갈을 먼저들 수 있어요? 숟갈을 들 때는 나중에 들고, 놓을 때는 제일 먼저 놓아야 된다는 거예요. 요전에 어떤 사람이 간증을 하는데, 언제나 선생님이 숟가락을 먼저 놓고 자기는 숟가락을 잡고 자기 배와 싸웠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다 보니 밥 먹는 판국에서 그 사람들은 제자가 되고 나는 스승의 자리에 올라가는 거예요. 밥을 먹을 적마다 머리를 숙이는 거예요. 거 그럴 수 있겠어요? 이해가 안 돼요? 그럴 수 있겠지요?「예」그게 통일사상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좋은 일이 있으면 언제나 옆으로 빠지려고 했지 먼저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통일교회 젊은이들을 보게 되면 '아이고, 내가 이만큼 믿었는데 나를 몰라줘'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선생님하고 인연이 없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을 그런 사람으로 알지 말라고요. 그런 사람으로 알았다가는 큰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같이하시지 않으십니다. 내가 지금까지 모시고 나오는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를 위해 통일교회를 믿지 말라

여러분은 통일교회를 믿되 통일교회를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예요. 일을 하더라도 통일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예」자기를 위해서 일하고, 자기가 가서 살아야 할 나라를 찾기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선생을 대해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와주지 않는다고….

제물의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중이 세계를 위해서 희생해도 좋다고 하면서 자기가 살던 문화주택을 팔아서 돈을 몽땅 갖다 아프리카오지에 큰 집을 지어서 그 사람들에게 살라고 할 때, '너희들은 이런 데서 살아 보지 못하면 한이 될 것이 아니냐' 하는 이런 운동을 세계적으로 전개하게 되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천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의 전통이니 뭐니 했지만 그것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역사가 있다면 그런 역사가 있는 거예요.

지금 한국 통일교인들이 보리밥을 먹으면 미국 통일교회 사람들도 보리밥을 먹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자는 데도 침대가 뭐예요? 한국사람들이 마루바닥에서 잔다 하게 되면 침대를 버리고 시멘트 바닥 위에서 쿨쿨 잔다는 것입니다. 재미있었던 것이 미국의 49개 주를 내가 다 돌아보 았지만, 미국에 있는 젊은 놈들이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캘리포니아 대학원을 나온 녀석이 있는데, 11개국의 말을 아주 잘하는 녀석입니다. 내가 그 녀석에게 '운전을 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교회의 중진들에게도 '운전을 해라' 하면서 심부름을 시키고 죽도록 고생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내 숙소는 1등 호텔을 얻어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좋은 호텔을 얻어라. 내가 너희들을 위해 미국에 왔으니까 너희들은 그렇게 해라'하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1등 호텔을 얻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따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마루바닥에서 자라'고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며칠이나 가나 보자 해 가지고…. 이렇게 선생님도 짓궂은 일을 곧잘 합니다. 어디 가든지 그렇게 꼭 시켜 봅니다. 그래 놓고 마지막쯤 가서 될 수 있으면 '너희들도 좋은 호텔을 같이 얻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같이 얻으라고 해도 안 얻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옛날에는 자고 눈을 퍼뜩 뜨면 선생님이 올려다 보였는데 그렇게 되면 선생님이 내려다 보인다는 거예요. 자기들이 키가 크거든. (웃음) 내려다보이니 안 되겠다는 거예요. '야, 이녀석들, 이제 됐구나…' (웃음)

이걸 볼 때, '야, 사상이 이렇게 무서운 거로구나. 내가 돈이 없다고 한하지 말자. 세상이 어렵다고 한하지 말자' 이국 땅에서 나를 보지 않고도 이런 무리가 생겨날 수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를 하셨겠느냐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대학원생들이 캘리포니아 대학 캠퍼스에서 맨발로 뛰면서 장사를 안 하면 잠을 못 자겠다고 찾아 다니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지금 그런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거 왜 그래요? 우리가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 자기를 위해서 그랬다면, 자기를 위해서 피땀 흘리고 죽음길에 섰다면 누가 거들떠나 보겠어요? 세계의 관심을 일으킬 수 있고, 하나님의 관심을 일으킬 수 있고, 역사시대에 길이길이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자리는 비참한 자리더라 이거야. 오늘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비참한 자리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축복받은 가정들을 내모는 겁니다. 언제는 잘살라고, 이상상대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가 아주 멋졌지요. 그 내용을 들어 보면 아주 마음이 시원하고 누구나 고개를 끄떡끄떡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합동결혼식을 해주고, 1970년도 12월부터 '가정주부들 전체 동원이다' 해서 동원을 했습니다. 내가 6개월 전부터 그런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부장들은 '뭐 선생님 말이 그렇지 정말로 그렇게 하겠나? 말이 그렇지' (웃음) 이렇게 미리 얘기를 떡 했는데, 가정주부들 동원한다 할때, 꼴좋게 별의별 소리를…. 절대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하고들 있었는데 안 되기는 왜 안 돼요. 선생님은 한 것입니다.

어려운 살림살이 가운데 종지 짜박지, 그릇 짜박지, 숟갈 짜박지, 상짜박지, 단스 짜박지 이런 것을 챙기는 것을 볼 때, 기분 나빴습니다. 트렁크 하나가 내게 격에 맞다는 것입니다. 지금 피난살이인데…. 지금 피난살이 아니야? 광야시대를 거쳐가는 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시 대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는 지금 개척시대에 있는 것입니다. 그걸 생각할 때 한번 왕창 뒤집어 박는 거예요. 그래서 '다 버리고, 자식도 버리고, 남편도 버리고 일선 출동! 하고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어디 안 가나 보자. 협회장 여편네부터 나서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지, 안 나서면 벼락이 떨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지. 다들 나갔더구만. (웃음)

총각도 아닌 신랑 녀석들이 눈을 꺼벅꺼벅하고 지금까지 자기 여편네만 부려 먹었거든. 그러다 보니 여편네 고마운 줄을 모른다구. 그러니 사내 녀석들에게 교육도 해야 되겠고, 뜻도 세우고, 나라에 새로운 전통도 세워야 되겠기에 축복가정 부인들을 동원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남자들은 체면을 차렸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가만히 내버려 두니까 '남자 체면에 어떻게 맨발로 나가서 물을 떠 먹나, 여보게! 물 좀 주소. 그래야지'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체면이 어디 있어요? 다 깨뜨려 버려야 됩니다. 체면 때문에 물을 못 떠 먹으면 물을 먹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별 수 있어요? 별 수 없으니 손수 물을 떠 먹고, 밥을 해 먹는 녀석, 혹은 애기를 업고 다니는 녀석도 있습니다. (웃음) 어떤 녀석들은 공장에 가는데 애기를 업고 갑니다. 그래도 내가 욕을 못하겠더구만. 내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옛날 같으면 용서할 수 없는 거라구요. 공장에 가 보면 이 구석 저 구석에 애기들이 참 많아요. 이게 뭐예요. 내 생리에 맞지 않아요. 그렇지만 내가 시켰으니까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니 통일교회 777가정의 잔치는 세계적으로 훌륭하던데, 문선생은 무슨 원수가 져서 결혼식만 살짝 해서 냄새만 풍기고 여자들을 빼다 어디에다 감추었소'(웃음) 하는 등 별의별 소리를 내가 다 듣고 있습니다. 내 귀가 넓습니다. 그런 것은 잘 들립니다. 잘 듣지만 그런 말 듣다가 일이 돼요? 안 되는 거라구요.

통일사상은 하나님의 제물사상에서 이어받은 것

이제는 민족적인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의 역사 가운데 그것이 비참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생각하느냐? 자식을 품고 암죽을 먹이던 어머니가 배가 고파서 자식 줄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 입에 퍼넣을 때까지, 그런 자리까지 갈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이렇게 고생을 하거든, 통일교회를 고생시키는 목사 들은 그 이상의 자리에 갈 것입니다. 밥을 먹기 위해서 삼천리 반도를 편답하는 입장에 설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그대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걸 넘어 올라가게 되면 발전합니다. 천지이치는 그런 거예요.

이런 놀음을 왜 시키느냐? 그들에게 내가 무슨 원수예요? 세상에 가정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느냐? 그걸 알아요? 여편네 때문에, 자식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느냐? 그걸 누가 책임지겠어요? 하나님이 책임져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책임져야 할문제입니다.

그 인간 책임을 누구에게 지우겠느냐? 세계의 어떤 가정에도, 다른 사람에게 이 책임을 지우지 말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지워 주소'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주장이며, 통일교회 문선생의 사상입니다.

누구에게 맞게 되면 세계를 대신해서 맞고, 눈물이 엇갈리는 비참함이 있거든 비참하라는 겁니다. 어미가 자식을 찾아 천리길을 와서 좋은 얼굴을 봤으면 했는데, 그 자식이 병석에 누워서 신음하고 있으면 그 어미는 기가 막힐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무슨 말을 할 것이냐? 그 어미는 무슨 말을 할 것이냐? 하늘 가는 길이 어이 이리 비참한고…. 내 자식이야 천만 번 죽더라도 아버지의 입장은 이래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자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더 비참하실 것이냐 하는 마음을 갖고, 자식을 붙안고 하나님을 위로하는 눈물을 흘리자는 것이 통일교회 스승의 사상입니다. 그러니 이런 비참한 명령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책임자의 입장이라는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떠하냐? 나도 그런 사람입니다. '나도 지금 그런 길을 가고 있습니다. 현재도 가고 있으며 죽을 때까지 갈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우리 일족이 망해서 나라를 살릴 수 있다면, 일족이 칼을 입에 물고 피를 토하며 한 구덩이에서 죽어 썩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자랑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상에 드러나는 날에는 정의를 위해서, 천도를 밝히기 위해서 갔노라 할 것입니다. 역사에 반드시 남아질 것이어늘, 그때에 이 길은 천하에 빛날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 사상의 주류입니다. 이 사상은 어디서부터 이어 내려 왔느냐? 하나님의 제물적인 사상으로부터 이어받아 내려왔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그것은 내가 잘 알아요. 그러나 내가 생애를 바쳐서 믿어 왔지만, 어떤 때에는 칼이 있다면 그 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항의하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사지에 들어가면 하나님은 모른다고 하십니다. '너를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모른다고 하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기가 막히겠느냐는 것입니다.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손발을 가만히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움직여서 천번 만번 도와주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가는 통일교회 문이라는 사람이 갈 수 있는 운명적인 길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자리에서 제삼자의 입장에 서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내가 알았기 때문에, 그 자리가 나에게 있어서 도리어 힘의 자리요, 원수에게 복수할 수 있는 좋은 자극적인 자리인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망하지 않고 남아진 것입니다. 감옥의 비참한 자리에서 신음할 때도, 최후의 결전의 고비에서 뒤넘이칠 때도 하나님이 이름을 부르시면서 '너는 그런 길을 가고 있지만 네가 가지 않는 나의 십자가의 길은 이러이러하다'는 사실을 통고하시는 것입니다. 잊을 수 없는 그러한 순간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남아진 거예요.

공적인 물건에 손대면 안 된다

여러분들은 복받고 사는 현재 그 자리를 행복한 자리로 생각하겠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돈이 있고 권력이 있으면 그것을 풀어 가지고 만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터전으로서 투입하게 하시고 싶은 마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나도 돈이 있다면 있는 사람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돈을 관리하기에 급급한 사람이 아닙니다. 내 돈은 누가 관리를 하든 절대로 먹지 못합니다. 먹었다가는 그 종족이 망합니다. 망해 가지고 망한 그 종족의 재산까지 플러스가 되어서 통일교회로 들어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많이 경험했습니다. 내가 알면서도 많이 속아 주는 거예요. '끝이 얼마나 가나 보자' 해 가지고 보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누구도 통일교회를 먹지 못합니다. 통일교회의 재산은 누구도 농락하지 못합니다. 왜? 그 재산은 내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긁어모은것이 아니라, 천륜을 따라서 세계를 위하여 눈물과 피와 땀을 고임돌로 삼아 가지고 모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피눈물이 엮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로의 이름을 남길 수 있는 물건입니다. 제물로 내세우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물건입니다. 그런 물건에 손을 댔다가는 벌을 받는 거라구요.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을 무슨 영광의 자리에 앉아 있는 고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지요?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선생님은 정 피곤하면 차에서 잡니다. 그래서 차 타고 다니는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무리를 합니다. 지금도 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차를 타고 다니면서 안 자려고 신경 썼지만 지금은 차 타는 시간이 휴식시간입니다.

만일에 차 안에서 자지 않고 다른 데서 낮잠을 자게 되면 일어나서 회개를 하는 사람입니다. 낮잠을 자고 나면 회개하는 사람이예요. 지금도 공장에 가면 어린 소년 소녀들이 일하고 있는데 내가 고달프다고 해서 낮잠을 자는 사람이 아닙니다. 잠이 오면 앉아 가지고 졸지…. 누가 본다고 그러는 것이 아니예요.

왜 그러느냐? 하나님은 24시간 쉬지 않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6천년 동안 어느 한 시간이라도 쉰다고 정해 놓고 쉬는 시간이 있었느냐? 없었 다면, '아버지여 한 시간만이라도 쉬십시오'라고 권한 아들딸이 있었느냐? 없었다는 것입니다.

죽음길을 가고 있는 인생길에서 사랑의 마음을 중심삼고 자식의 인연을 찾아 나서는 그 어버이는 잠을 자겠다고, 쉬겠다고 하는 어버이가 아닙니다. 그런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나는 24시간 피곤하면 잠을 잘 수 있고, 밤이 되면 쉴 수 있지만, 하나님은 쉬지 않고 나를 위해서, 혹은 통일교회를 위해서 움직인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에게 빛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생각할 때, 잠을 자고 일어나면 회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행로를 거쳐서 통일교회는 나온 것입니다.

이제 9월을 맞이했습니다. 초하룻날에 결실의 계절에 대해서 말했지만, 9월만은 모든 정성을 들이고 피땀을 흘려 가지고 지은 농작물을 거두어 서, 나라면 나라에 자랑하고,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서서 하나님 앞에 한번 바쳤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직까지 하나님이 바라시는 세계가 되지 못한 것을 볼 때,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어느 한때에 정성을 들여 가지고 논을 만들고 밭을 만들어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한 날을 마련하겠다고, 그러기 위해 정성을 다하겠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통일사상이 목표로 하는 것

금년 1971년은 앞에서 역사적인 탕감노정의 빚을 갚는 해라고 말씀드린 것같이, 지극히 중요한 해입니다. 1972년까지는 이 나라의 운명이 가름될 것이고, 아시아와 세계의 운명이 가름될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 통일교회가 해야 할 일은 정성들이는 것입니다. 세계의 어떠한 민족도, 어떠한 종단도 못 한 이 제물적인 책임을 완수해야 되겠습니다.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는 데 있어서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와 성약시대를 중심삼고 나왔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신약시대는 구약시대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되고, 성약시대는 신약시대를 횡적으로 탕감해야됩니다.

그러면 제물이 완성되는 때는 언제냐?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제물이 언제 완성을 보느냐? 제물이 완성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제물을 따로따로 갈라서 드렸지요?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부모와 자식은 만물과 더불어 한꺼번에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타락하지 않은 이 부모를 중심삼고, 거기에서 태어난 자식과 거기에 있는 모든 만물이 그냥 그대로 몽땅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랬다면 제물이니 탕감조건이니 하는 이런 시시한 놀음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타락한 인류에게는 갈라 가지고 나오는 제물시대가 있습니다. 이것이 구약시대, 신약시대를 거쳐왔는데 그러한 시대는 1년이 아니라 몇천년입니다. 대개 2천년이라는 기간을 중심삼고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갈라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러는 바람에 세계는 악당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느 한때를 맞이해 가지고 특정한 나라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 사탄의 나라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그 많은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 사탄이 사랑하고 자랑할 수 있는 나라는 열 나라가 아니라 한 나라입니다. 그렇지요? 지금 사탄이 세계에서 제일 사랑하는 곳이 어디냐?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공산권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최후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있고, 사탄세계 앞에 부끄럽지 않게 자랑할 수있는 한 나라, 그런 국민성을 가진 나라를 하나님이 지도하고, 가꾸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무능한 하나님입니다. 사탄보다 무능한 하나님이라는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사상이 바라고 나가는 길은 그것을 표준해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공산당에 대비해서 그들을 이겨야 됩니다. 그래서 승공이념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또한 종교적인 면에 있어서도 최고의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뒷받침이 강력해야 되겠습니다. 세상의 어떤 주권자의 권력을 가지고, 세계적인 권한을 가지고도 밀어낼 수 없다는 강력한 이념의 뒷받침이 있어야 됩니다.

제물은 정성의 표시체

옛날에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죽인 원인은 어디에 있느냐? 그 민족은 자기들을 위주한 이스라엘 나라가 세계를 제패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자기 나라의 서러움을 벗겨 주기 위해서 메시아가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인류의 서러움을 벗겨 주기 위해서 오시는 것은 싫다 하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상충을 일으켜 죽이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데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교단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썩었고, 일반 종교가 썩었으니 이 종교들을 중심삼고는 한국을 제3이스라엘권으로 세우지 않을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교회를 대표해 가지고 정성들이는데 있어서 한국내 종교를 대표하고, 세계의 종교를 대표하여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그 정성은 무엇으로 표시하느냐? 제물입니다. 제물의 과정을 거치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제물, 가정적인 제물, 교단적인 제물을 통해서 민족적인 제물과 국가적인 제물의 과정을 거쳐 세계 앞에 등장하는 날에는, 사탄 국가가 아무리 자랑하려고 해도 내적인 면이나 외적인 면에서 하늘의 세계보다 못 할 때에는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나라보다 못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삼팔선 이북을 넘나들어야 됩니다. 오늘날 간첩들이 활동하는 것 이상의 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들은 생명의 위협과 공포와 공갈 협박에 못 이겨 그런 활동을 하지만, 우리는 자진해서 생명을 바치는 자리에서 활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협이 아닙니다. 자동적인 것으로 원리의 길이요, 천륜의 도리입니다. 횡적인 입장에서 누구의 간섭을 받는 것도 아니요, 위에서 명령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물은 존재의식이나 소유관념이 없어야

제물의 자리라는 것은 존재의식을 갖지 않는 자리입니다. 제물은 존재 의식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소유관념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 제물은 그래요. 제물이 되려면 '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누구, 즉 통일교회 문선생이면 문선생이다'라고 하는 존재의식이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소유관념이 없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소유관념이 없어야 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뜻을 위해서는 존재의식이 없어야 됩니다. 소유관념, 자기에 대한 애착이 없어야 합니다. 소유관념에 있어서는 나라를 위하여 소유하고자 하는 관념이 자기를 위한 소유관념보다 강해야 됩니다. 존재의식에 있어서도 나라에 대한 존재의식이 자기 존재의식보다 강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희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렇게 죽으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무서운 게 그거예요.

여편네들을 동원했는데 간부 중에서 누가 앓는다는 것을 소리를 들어서 알고 있지만, 죽음이 엇갈리는 경계선에 들어가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되느냐? 저 협회장 부인 사길자 아주머니, 세상에서 그런 일을 당했으면 눈이 뒤집히고 다리가 후들후들할 거야. 그러나 남편을 누구 때문에 얻었느냐? 누구 때문에 얻었어? 나라 때문에 얻은 거라구. 그런데 남편이 나라를 찾지 못하고 갔으니 아내는 두 배의 일을 해야 되는 것이라구. 다르다는 거야. 그렇지, 길자!

사랑하는 남편이 죽었다고 붙들고 울기 전에. 내 나라가 망했을 때 그보다 천배 만배 울 수 있는 마음이 있는가 생각해 보고 있으면 울라는 것입니다. 자식이 죽었다 하더라도 자식이 죽었다고 통곡하기 전에 나라가 망했을 때, 그 몇십배 울 수 있는 자리에 서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비참한 일을 당해도 눈물을 못 흘렸어요. '내가 통일교회 책임자로서 나라의 서러움과 나라의 비운을 바라볼 때, 십배 이상 백배 이상 눈물지을 수 있는 자리에서 통곡을 하지 못하고는 자식을 잃었다고 붙들고 울 수 있겠어? 이놈의 자식아'라고 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날 세계의 어떤 민족 앞에 서더라도 나라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지지 않습니다. 눈물을 흘린 것으로 하더라도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위해 많이 흘렸습니다. 오늘날 기성교계면 기성교계, 혹은 수많은 종단을 중심삼고 볼 때, 내가 뼈대 있는 사람 중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통일교회는 누구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적인 마음을 중심삼고 세계의 종단을 대표한 제물이 되어야 됩니다. 제물 중의 제물이 되자는 것입니다. 외적인 실권에 있어서는 공산권을 타파하고도 남을 수 있는 실권을 갖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 되면 죽어서라도 그런 전통적인 사상을 남기고 가겠다고 해야 하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주류사상입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

그러기에 예수님 말씀의 결론이 이거예요. 죽고자 하는 자는 뭐라구요? 「살고」살고자 하는 자는, 뭐라구요?「죽는다」 처음 된 자는?「나중 되고」나중 된 자는?「먼저 된다」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목사들은 그걸 압니다. 앞으로 목사들이 눈물 흘릴 일이 많을 것입니다. 여기 기성교회 믿던 사람들, 기성교회하고 통일교회하고는 천리 만리 차이가 납니다. 기성교회는 유치원도 못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대단히 거만하다고, 교만하다고 하겠지만 통일교회는 이미 그러한 레테르가 붙었습니다. 가짜가 아닙니다. 죽어 보라는 거예요, 내가 거짓말 했나.

예수 믿고 복받겠다는 녀석들은 미친 녀석들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죽느냐 사느냐 하고 예수님도 하늘에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 있는데 복받겠다구요?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의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오죽했으면 죽을 때 '아버지시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 서'라고 했겠습니까? 아직도 소원성취를 못 하고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다시 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지 못해서 오지도 못하는 이 판국을 알진대, 예수 믿고 복을 받겠어요? 도리어 예수 믿고 죽겠다고 해야 됩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복을 받는 거예요. 복받겠다고 하는 자는?「죽습니다」통일교회 믿어 복받겠다는 사람은 오지 말라구. 통일교회를 믿으면 복받는 것이 아니예요. 통일교회 믿으면 망하는 거예요. 통일교회를 믿으려면 자식을 잡아 제사 드리겠다는 각오를 해야 됩니다. 더 나아가 서는 여편네와 자식을 한꺼번에…. 아브라함은 자식을 잡아 제사를 드렸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은 아내까지 잡아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어머니 아버지까지 여기에 달려들어 가지고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의 소원이 성취된다면 어머니 아버지까지, 아니 일족이 망하더라도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각오를 가진 사나이입니다. 이러한 길을 가야 하는 사람이 통일교회 사람들입니다. 거리를 지나가다가 더러운 골목을 봐도 '오늘은 내가 그냥 가지만 다음에 올 때에는 깨끗이 청소할 것이다. 기다려라' 이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뭐냐 하면 제물된 자리입니다. 제물된 자리.

제물의 완성은 언제 이루어지느냐

제물의 완성은 언제 이루어지느냐?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고, 그의 아들딸도 완성되고, 만물도 완성되고, 모든 것이 한꺼번에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터전은 나라의 터전이요. 세계가 한꺼번에 갖추어진 자리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복귀섭리 도상에 있어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최고의 제물 기준을 결정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이스라엘 나라를 찾아 나오신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못 찾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나라를 중심삼고, 사탄에게 잃어버린 나라가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가 되는 하나의 기준, 하늘나라의 전통과 사상을 이어받아 누구보다도 자신 만만하게,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다스림을 받고, 거느림을 받을 수 있는 국민이 되는 자리입니다.

하나의 단체뿐만이 아니라 삼천만 민족이면 민족 전체가 제사를 드리는 일이 있으면 모두 일치된 마음을 가지고 제물을 바칠 수 있고, 혹은 그러한 교단이 있으면 그 교단이 정성어린 제사장의 책임을 지고 흰옷을 입고 민족과 더불어 쌍수를 합장해 가지고 안팎을 갖추어서 제물을 바칠 수 있는 국가적 형태를 갖춘 날이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있었느냐 하면 없었다는 것입니다.

성약시대의 제물은 부모 곧 자기

그러면, 나라를 중심삼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도 다 부모지요? 복귀역사는 부모와 자녀와 만물이 사위기대를 이루게 하는 역사입니다. 이것은 만물이지요? 요것이 사탄의 침범을 받았기 때문에, 침범받은 것을 제거시켜야 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 앞에 봉헌해야 됩니다.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가정들이 부모의 자리에 섰거들랑 자식을 제물로 바쳐야 되고, 자기의 물질을 제물로 바쳐야 됩니다.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되는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제물은 물질이요, 신약시대의 제물은 자녀요, 성약시대의 제물은 부모, 즉 자기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이것들을 전부 한꺼번에 제물로 바쳐야 됩니다. 내가 부모의 자리에 있으면 자식이 있고, 자기 소유물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의 소유물을 하나님 앞에 바쳐 봤어요? '저것은 아무개의 것이다, 이것은 아무개의 것이다' 하는 물건이 있을 때, 그것을 대해 '야. 네가 타락권내에서 탄식하는 물건인데, 너는 사탄세계의 김씨면 김씨의 소유가 되기를 원하느냐?'고 물어 보면 어림도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 물건이 가라사대 '나의 갈 길은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선한 부모의 소유로 돌아가는 것이다' 할 것입니다. 본래 부모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의 것인 동시에 부모의 것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당의 물건이 되어서, 이렇게 뒤집혀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만물까지도 탄식을 하며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성경 로마서 8장에 기록되어 있잖아요. 또 아들도 '아무개의 아들이 되기 전에 참부로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무개의 남편, 아무개의 여편네가 되기 전에 참부모의 아들, 참부모의 며느리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라고 한 거예요. 여기에 있는 것을 저리로 옮겨야 될 때, 아내가 먼저 옮기겠다고 하면 남편이 반대를 하는 것이요, 남편이 먼저 옮기겠다고 하면 아내가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옮겨 가는 데 있어서는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딱 갈라 놓고 가는 것입니다. 옮겨 가려면 오누이의 자리에서 옮겨져야 합니다. 부처끼리 오누이가 되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복귀의 역사는 그렇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제물의 노정은 하늘나라가 복귀되어야 끝나

통일교회의 소원은 무엇이냐?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제물의 노정을 거쳐왔습니다. '나 하나 희생해 가지고 온 백성이 살 수 있으면 어서 희생해야지. 통일교회가 망해서 이 나라가 살 수 있으면 통일교회가 희생해야지' 이러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소원이, 그런 제물적인 노정이 언제 끝나느냐?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나라가 제물을 드리게 될 때, 만물과 만백성과 주권이 화합해 가지고 보조를 맞추어야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백성이 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알겠어요?

제사장과 이스라엘 민족이 전부 다 그것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바라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어떻게 해야 돼요? 제물이 되어서 따로따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총탕감 해야 됩니다. 나는 참부모를 대신하고, 여러분의 아들딸은 참아들딸을 대신하고, 여러분은 만민을 대신하여 탕감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치고, 참부모의 이름을 거쳐 가지고 다시 부모 될 수 있는 세계가 되지 않으면 제물의 완성이라는 것은 이 지상에서 볼 수 없습니다. 그걸 못 하게 될 때에는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자신들도 망하는 것입니다. 비참해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그 일을 위해서 단결하고, 이 목적을 위해서 전진해야 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독교의 역사가 피눈물의 역사로 이어져 나온 것이요. 예수님 자신의 정체를 수습하지 못한 비운의 역사와 더불어 사라져 가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이것을 가로막아 가지고 수습하여 새로운 천지를 향하여 재출발을 다짐해야 할 때입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자는 것이 통일교회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기독교가 하지 못한 것을 죄다 탕감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하지 못한 것을 우리가 직접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제물적인 입장에서 이러한 것을 탕감하자는 것입니다.

제물은 죽더라도 자기를 공인해 달라고 하는 게 아니다

제물은 죽더라도 자기를 공인해 달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죽고 나서도 머리를 숙이고, 다 지나고 나서도 머리를 숙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평화의 기원이 되기 때문에 제물의 완성권이 나타날 때까지 그 정체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길을 우리 통일교인은 엄숙히, 밤이나 낮이나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언제 자기 물건이 아버지의 것이요, 자기의 아들이 아버지의 아들이요, 자기의 몸이 아버지의 것이라고…. 내 몸은 아버지의 지체요, 내 아들은 아버지의 아들이요, 내가 가진 물건은 아버지의 것이라고, 아버지 앞에 돌려도 아버지 것이요. 나한테 와도 아버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가 봤어요? 거기서부터 천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면 세계 만민은 그 원칙을 따라 가지고 자기의 물건, 자기의 자식, 자기 전체를 입적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여자가 시집가게 되면 신랑 집에 입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라의 책임자가 나라를 대표해 가지고 입적을 하게 되면 그 나라 전부가 입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국가가 일시에 구원받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자랑하는 이상의 하늘의 주권국가. 사탄이 부러워할 수 있는 하늘의 주권국가를 중심삼고 전체를 대신하여 일시에 하나님 앞에 총탕감하지 않고는 여러분의 가정, 혹은 환경이 깨끗한 자리가 못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몽땅 바칠 수 있는 자리를 우리는 죽기 전에, 신명(身命)을 다하여 일시에 제물의 완성을 이루어서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 시대의 일체를 청산해야 됩니다.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총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내 물건은 내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이며, 내 아들은 내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아들이며, 내 남편, 내 아내가 내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람이라고 해야 됩니다. 천국가는 것은 간단합니다. 자기 아내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자기 아들딸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자기 물건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천국에 가지, 그렇게 못 하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돈 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녀석들, 자기 자식만 끼고 다니는 녀석들, 자기 아내나 남편끼리만 좋아하겠다는 녀석들은 전부 다 하늘과는 상관이 없는 패들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하는 논리에 의하면, 자기 집을 버리는 사람은 더 좋은 집을 얻는 것이요. 자기의 나라를 버리는 사람은 더 좋은 나라를 얻는 것이요, 자기의 세계를 버리면 더 좋은 세계를 얻는 것입니다. 그거라구요. 그러기에 찾고자 하는 자는 잃어야 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잊고 공적인 입장에서 희생하라

우리는 개인을 위해 살자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탕감노정에 있어서 가정적인 충신이 되어 종족의 전통을 세우고, 민족의 전통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는 통일종족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아낙네들이 나가 가지고 이 나라를 새로운 사상으로 교육하는 것입니다. 아들딸들을 올바로 교육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도둑놈이라 할지라도 그 아들딸에게는 교육을 올바로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복가정 부인들을 동원하여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가정적 제물시대인 동시에 종족적인 제물의 시대요, 민족을 위한 교회적 제물시대의 사명 앞에 있어서 여러분 개인을 망각하고 전체가 공적인 입장에서 투쟁하고, 싸우고, 희생하기를 바라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 도

​아버님, 흘러가는 역사노정에는 인연도 많았고 사정도 많았지만, 저희들은 그 가운데 당신을 빼놓은 인연과 사정은 저희의 원수인 것을 미처 몰랐던 무리들이옵니다. 제물의 완성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모르고 나왔습니다.

나라 없는 백성이 얼마나 비참한가 하는 것을 이 시간 저희들은 잘 알았습니다. 대한민국을 잃어버린 서러움을 품은 그때의 애국자들의 사정이 어떠했느냐 하는 것은 그 자리에 서지 않고는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누구도 모를 서러움을 품은 나라 없는 불쌍한 무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민족적인 기반을 갖추지 못한 불쌍한 무리들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과 나라가 하지 못하는 제물의 과정을 당신 앞에 더 다짐해 가지고 책임질 수 있고. 당신의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이 나라, 이 백성을 붙안고 모든 수난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당신의 어려움을 대신 짊어지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는 무리가 통일제단에 속한 각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오랜 역사노정을 찾아오신 아버지의 심정이 얼마나 외롭고 비참하셨던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냐 할 때, 이 나라에 호소하는 사람이 아닌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를 위하여 누구보다도 많은 피눈물을 흘리고, 장래의 이상적인 나라를 추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없이 희생의 길, 제물의 길을 이어 나온 무리가 아니고는 이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이 세계의 주인이 누가 되겠사옵니까? 누구보다 수고의 자리를 거쳐 극복해 나오시는 당신 앞에서 세계를 부여안고, 누구보다 수난길을 감수해 나가면서 제물의 길을 찾아 나가는 무리가 있다면, 그 무리를 통하여 이 세계는 수습된다는 이런 원리 원칙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았사오니, 이제 저희들은 당신께서 저희들을 그 환경에 세우고자 하는 데 있어서 저희 자체의 부족한 과거를 규탄해야 되겠고, 현실에서 자아의 길을 고수하기에 비겁한 자신들을 타파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그리하여 저희 자체의 몸과 마음을 고이 아버지 앞에 바쳐 제물의 실체가 되게 하시옵소서. 그 제물의 실체는 사탄의 조건으로 남을 것이 아니라 완전한 제물, 승리의 부활체로서 아버지 앞에 몽땅 바쳐져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기뻐하시고 저희가 기뻐할 수 있는 그날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오늘 통일교회 무리들이 가야 할 운명길인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지금까지 참고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극복해 나왔습니다. 그런 저희들 앞에 배가된 수난의 노정이 놓인다 하더라도 저희 들은 또다시 정성을 갖추어 아버지 앞에 맹세하고 가야 할 몸들입니다. 저희가 이 길을 책임지지 않으면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앞놓아가는 시련의 무대를 향하기 위해 망각된 저희 자신을 다시 한 번 수습할 줄 알게 허락하여 주옵시고, 결의된 실체로 다시 한번 나타내어 당신이 보게 될 때에, 장담코 자랑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수난의 역사노정에서 비참한 역사를 남겨 온 이 나라, 이 민족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붙안고. 당신을 위하여 염려하며 애국애족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 나라는 망하지 않는 운세권에 처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고맙게 생각하옵니다.

아버지의 심정적 내면에 일치된 효자 효녀를 찾아 나오는 도상에 있어서 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자녀가 되어야 되겠사옵고, 이제는 아버지의 수고의 길을 인계해 달라고 할 수 있는, 수난의 길을 상속받을 수 있는 통일교단의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더 고생하지 못한 것이 슬픔이요, 더 수난의 길에 서지 못한 것이 걱정인 것을 느껴야 할 무리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들은 불쌍한 무리이옵니다. 이 무리는 고독한 무리요, 외로운 무리이옵니다.

외로운 하늘의 길을 사수하고 하늘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기 때문에, 외롭지 않을 수 없는 공동적인 운명을 가졌기 때문에 당신이 기필코 이들과 같이할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업고 쓰러지고, 당신을 모시고 자빠져야 되는 것이 저희들의 생활인 것을 확실히 깨닫고, 승리의 한날을 바라보고 만천추의 영광을 당신을 대신하여 저희가 힘껏, 마음껏, 목이 터지도록 찬양하고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날을 위하여, 그 한 시간을 위하여 천년 세월을 투입하고, 일생을 투입할 줄 아는 거룩한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 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날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 혹은 이 청파동을 바라보면서 스승을 만나기를 고대하며 눈물짓고 있는 무리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외로운 길에서 당신을 그리워하며 내일의 패자가 될까봐 두려워하면서 오늘도 극한 시련 고비에서 극복의 일로를 다짐 하는 무리도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런 자리에 있을 때 아버지께서 같이해 주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서도 기필코 떠나지 않고 지켜 주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죽는 자리인 줄 알았지만, 그 자리가 죽는 자리가 아니라 영광의 자리로 돌변한 역사는 얼마든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간 길에는 비참이 아니요, 처량이 아니요, 낙망이 아니라 소망이 깃들어 있고, 승리의 전통적 인연이 스며져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고이 옷깃을 여미고 아버지와 더불어 그 길을 넘을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 만날 날을 고대하며 수고하고 있다는, 그 전해 오는 소식을 대할 적마다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습니다. 엇갈리는 딱한 사정과 원수들이 막는 장벽을 헤쳐 버리기 위하여 묶어진 통일의 무리들의 결속이야말로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역사적인 기원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모든 사상과, 혹은 민족적인 모든 것을 초월하여 당신의 심정의 용맹을 지녀 어려움을 극복하고, 막혀진 담을 헐고 최후의 당신의 조국 강토를 이루어 당신 앞에 바쳐 드리고, 승리의 찬양을 돌려드릴 수 있는 무리들이 될 때까지 싸워 남아지는 무리들이 되게끔, 아버지, 주도하고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도 성심을 다하여 아버지의 이름을 찬양하는 곳곳마다 당신이 같이하시옵고, 수많은 종교계에 당신의 사랑의 인연을 가진 수많은 자녀들을 한 나라의 백성으로 결속시킬 수 있는 인연을 세워, 당신의 한을 해원성사하는 데 있어 협조하는 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달을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빛나는 달이 되고. 일생에 남는 달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릴 때에,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아침에 당신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을 그리워하면서 모여 정성들이고 있는 곳곳마다,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승리의 인연을 같이하여 주시옵고, 그들의 모든 생활 환경에까지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또,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도 한국 땅을 마음으로 그리워하면서 맡은 바 시대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수고하며 가고 있사오니, 그들의 온갖 정성을 긍휼히 보시사 끝까지 보호하고 육성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땅을 중심삼은 완성의 한때를 바라며 자기들이 해원성사할 수 있는 때와 곳을 찾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저희들은 그들을 복귀할 수 있고, 탕감할 수 있는 터전에 있사오니, 이런 자리에 있는 저희들이 움직이는 그 자체가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해원성사할 수 있는 내용으로서 엮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 널려 있는 인류는 하나의 소원하는 나라를 찾고 있사옵고, 하나의 세계를 그리워하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그곳에 아버지를 모시고 일체화한 통일의 은사권내에서 인류는 하나의 백성으로서, 온 세계는 하나의 땅으로서 아버님을 중심삼은 주권국가로 통치받을 수 있는, 당신이 소원하시는 세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린 자녀들은 그와 같은 소원을 따라 지금까지 수난의 역로를 개척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배후에서는 저희들보다 아버지께서 더 수고하시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의 소원은 당신의 뜻에 일치되고, 당신의 뜻과 더불어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이 문제를 생애노정을 통해서 필연코 당신 앞에 이루어 드리지 않으면 안 될, 또 이루어서 후손 앞에 완전한 것으로 남기지 않으면 안 될, 이러한 중간적인 책임을 다하 여야 할 입장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현재 처해 있는 이 자리가 귀중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과거에 제아무리 승리를 하였고,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였다 하더라도, 오늘 이 시간에 아버지 앞에 섭섭함과 슬픔을 드릴 수 있는 악한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지금까지의 선했던 모든 것이 기쁨의 결과를 가져오기보다는 오히려 아버지 앞에 더 슬픔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 현재의 생활권, 순간순간으로 다가오는 시간에 있어서 참을 다짐하고, 성실을 다짐하고, 진실을 다짐하고, 사랑을 다짐하는 사람으로서의 부끄러움이 없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여기에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을 완전히 굽어살피시옵소서. 내 마음이 가고자 하는 곳, 내 몸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느끼고, 그것이 아버지의 소원과 일치가 되고, 생활면에서 아버지의 심정에 일치될 수 있는 내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아버지가 기뻐하실 수 있는 대상적인 실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일체를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이 시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긍휼의 아버지께서 오늘날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통하여 섭리의 역사를 다짐하신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얼마나 얼마나 수난길을 극복해 오셨는가 하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의 앞길을 당신께서 염려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이 가야 할 행로를 당신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악이 원하는 일체를 없애 주시옵고, 선의 일체적 요건을 세워 하늘과 땅 앞에 필요한 요건을 남길 수 있는, 당신이 기억하실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고, 당신의 사랑의 심정을 이어받아 후손 앞에 선한 조상의 기원을 만들어 놓고 가겠다는 아버지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자신을 위한 생애노정을 다짐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악한 세상을 가로막고, 흘러가는 역사 가운데서 하늘의 승리의 터전을 개척하고, 당신의 활동 무대를 개척할 수 있는 개척자의 사명과 선각자의 사명을 더디하지 말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루의 해가 떠오르는 아침을 맞이하여 새로운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저희 마음이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새로운 것을 느껴 가지고 하늘의 광명한 빛을 흠모할 수 있는 자체가 되고, 생명의 여운을 따라가는 저희들, 그 무엇이 제재할 수 없는 자연적인 환경에서 생명의 주체와 일치되는 길을 모색해 나가는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그런 모습으로서 아버지 앞에 항상 충효의 도리를 다짐하고, 거룩한 실체를 가진 아들딸의 모습을 다짐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악한 세파가 휘몰아치는 환경 가운데서 살던 이들이 또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아버지여, 이들의 일주일 동안의 모든 사연 사연을 청산해 주시옵고, 아버지를 위할 수 있는 요인, 아버지를 위할 수 있는 사정만을 마음에 품고 아버지 앞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신념과 결의와 자각을 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선하신 아버지는 선한 상대적 실체를 찾고 계시오나 저희 자체는 선한 실체가 되어 있지 못하오니, 당신께서 선한 실체로 세우기 위한 선한 은사의 분위기를 갖추시어, 선한 본성을 가진 저희들 마음이 그곳을 그리워하고 흠모하고 사모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만을 위하면서 아버지로 말미암은 은사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사랑이 아니면 저희들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생명의 힘이 아니면 악의 세계를 제패할 수 없사오니, 저희들에게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넘치는 사랑을 허락하여 주시어서. 악의 전권을 전부 제거하고, 선의 전권과 전능을 가지고 모든 환경을 정비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악한 사탄 마귀를 정면으로 공격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춤으로써 당신이 사랑하시고, 믿으실 수 있고, 기뻐하실 수 있는 용사로서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시옵고, 자신감과 신념을 가지고 어떠한 악의 세력이라도 정면으로 공격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화해의 길을 밟고 일어나서 선의 길을 위하여 화동하며 악의 요인을 제거할 수 있는 강한 선의 실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그를 위해 스스로 모색해 나갈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 혹은 오늘을 거룩한 날로서 축하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어떠한 곳, 어떠한 자리에서 부복하였을지라도 당신께서 당신의 권위와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은사로 보호 육성하시어서, 내일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하나의 용사로서 갖출 바의 안팎의 모든 장비를 갖출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악한 인간들은 언제나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것이 폐단이었사오니, 이것을 당신을 의지할 수 있는 생활로 전환시키고, 당신의 심정을 따라 이것을 생활의 표준으로 삼고 나가는 데 있어서. 부족함이 없도록 방향을 갖출 수 있게끔 노력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사정이 다른 저희 어린 자녀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아무리 사정이 다르다 하더라도 당신의 사정 앞에 일치가 되고, 당신이 바라시는 목적과 소원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이 저희도 아버지를 사모하고. 지극히 고독할 때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더듬듯이, 아버지를 흠모하는 마음 가지고 더듬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승리와 영광과 내일의 소망을 이어받는 데 있어서 부족함이 없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을 아버지께서 품으시사 승리와 찬양과 영광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전국 백성은 지금 너나할 것 없이 통일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남북이 갈라지게 된 원인을 생각해 볼 때, 6·25사변이 그 원인이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근본 문제에 들어가서 원인을 알아보면 오늘날 세계가 하나될 수 없는 역사적 노정을 거쳐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통일되어 있지 못한 인간과 세계

개인 개인을 두고도 거기에는 의견이 각각 다르고 주장이 각각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범위를 넓혀서 하나의 종족이면 종족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 종족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배후가 다르고, 바라는 소망의 방향도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주장하는 방향이 다르고 서있는 입장이 다르니만큼, 거기에 상응하는 상대적인 현상이나 상극적인 현상이 벌어지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민족이면 민족 자체가 특정한 민족을 중심삼고 통일되기를 바란다 하더라도 그 통일은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지금까지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여 자기 종족이면 종족, 자기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의 국가를 통일하고, 세계의 국가를 주도하려고 하는 주권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냥 그대로 순리적인 환경을 거쳐 하나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현재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의 양대 진영으로 갈라져서 대립되어 있는 현상 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 이 두 세계는 출발의 기원이 다른 것입니다. 또, 가는 목적이 다른 것입니다. 출발과 목적이 다르니만큼 거쳐가는 과정도 필시 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상충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을 우리가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자는 그렇게 되는 것을 바라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그렇게 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생활 주변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등등의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과연 통일이라는 것은 어디에 서부터 추구해야 될 문제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타난 결과의 현상을 바라봐 가지고 여기에 대비하려 하는 것은, 역사시대에 성사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반복하는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그런 것보다도 근본적인 면에 들어가서 이 문제의 해결책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사람 자체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이것이 통일된 하나의 근거가 되고 주체가 되었다면 모르지만, 우리 인간 자체를 보게 되면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몸이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지 못한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람에게는 마음의 사람이 있고 몸의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은 언제나 상응될 수 있는 환경의 요건을 따라 가지고 대상적 목적을 추구해야 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환경과 일치되지 못하는 사실들을, 즉 양심생활과 현실생활이 서로 일치되어 나가지 못하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아는 바입니다.

통일의 기원을 어디에서 이룰 것인가

그러면 과연 인간으로서 추구하는 통일의 기원과 통일의 요인을 어디에서부터 세울 것이냐? 나를 넘어서 어떠한 동기가 되고 요인이 되는 존재가 세워졌다 하더라도, 일체화하지 못하는 나 자체를 그 요인이 되는 존재 앞에 굴복시켜 가지고 통일되게 할 수 있는 주체가 있느냐 할 때, 역사노정에 그러한 주체가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성인이 있어서 그러한 목적을 세웠다 하더라도 그 목적을 중심 삼고 전세계, 혹은 전국가가 일체화하지 못한 모든 역사적인 실정과 현실적인 실정을 미루어 볼 때에, 그런 주체적인 통일 요인이 있다 하더라도 오늘날 우리 자체가 그와 일치된 입장에 서 있지 못하다면, 이것을 이론화시키고 보편타당화시킨다는 것은 극난(極難)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 곧 절대자가 있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그리고 절대자가 있어서 인간을 지었다면, 지어진 인간은 그 절대자와 상반되는 입장에 서야 되느냐, 아니면 순응하는 입장에 서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절대자라면 그 절대자는 절대적인 하나의 목적을 추구할 것이 틀림없고, 그분에게 지음받은 인간도 그러한 절대자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므로 절대적인 하나의 목적을 추구해야 하는데, 현재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여기에 모순된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단 한 분의 절대자로부터 지음받은 인간이라면 단 하나의 목적을 중심 삼고 그 목적에 일치될 수 있는 모든 환경이라든가 생활 여건, 혹은 과정이 일체화 될 수 있는 관계를 가져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우리 개체를 발견하게 될 때, 신이 과연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또 나 자체를 명시해 보고, 나 자체를 분석해 보면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될 때, 하나의 목적을 추구하는 분에게서 지어진 인간이 아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때에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까지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계의 정세에서 하나의 모색 방안, 혹은 하나의 이념 세계, 하나의 통일된 사상 세계를 추구하려면 그 근원지는 어디이겠느냐? 세계도 아니요, 어떤 특정한 나라도 아닙니다. 그것을 추구할 수 있는 근원지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간 가운데서 추구해야 됩니다.

'인간' 하게 되면 거기에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습니다. 그 남자와 여자가 무엇을 중심삼고 걸어가고 있느냐? 생활 무대를 중심삼고 생애 노정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역사적인 방향을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활여건과 생애노정을 통해서 현실이라는 무대에서 일생을 살다가 가는데, 그 생애를 살아가는 방향이 천태만상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렇게 가는 사람이 있고, 앉아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서 있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고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천태만상입니다. 오르고 내리는 형태라든가, 가고 오는 모양이라든가, 흑은 되어지는 환경의 여건이 다름에 따라 그 방향은 수시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신이 있어 경륜한다면 그 신이 경륜하는 방향은 절대자의 경륜이기 때문에 절대로 바뀌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경륜의 방향이라는 것을 엄연히 통일 운세권내에서 화합되고 조화되어 통일적인 요인을 근거로 하여 출발하고, 그 과정을 거쳐 목적하는 세계로 추진되어 나갈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신이 있다면 그 신과 더불어 관계를 맺는 나 자신을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종교라는 문제, 인생 철학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근본문제에 부딪치게 되는 것입니다.

신이 있다고 한다면 그 신은 대상적인 존재 앞에 절대적인 주체로 서야지 홀로 있어 가지고는 신으로서의 권위와 만족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희노애락은 자기 혼자 있어 가지고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적인 여건과 관계된 세계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슬픔의 자리를 벗어난 기쁨의 자리를 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대자도 혼자 있어 가지고는 절대자로서 기뻐할 수 있는 인연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제일 기뻐할 수 있는 대상적인 존재가 무엇이냐? 그것은 만물 중의 어떠한 미물이나 동물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주체 앞에 대상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인간밖에 없습니다.

절대자 앞에 상대적 절대자로 서야 할 인간

그러면 그러한 인간은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하느냐? 절대자 앞에 세워질 수 있는 상대적 절대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절대자가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기쁨을 일시적인 것으로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오늘 하루 기뻤다가 내일 사라 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쁜 자리에서 한번 인연됐다면 그것을 마음속에 꼭꼭 다짐해 가지고 언제나 생활의 표준으로 삼고, 환경의 요인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상정(常情)인 것입니다. 신도 역시 인간에 대한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기쁨의 자리에서 만나는 것일 것입니다.

그 기쁨의 자리는 서로 상극적인 자리가 아니라 절대적인 상응의 자리인 것입니다. 주체가 동(動)하면 상대도 동(動)해야 되는 것이요, 주체가 정(靜)하면 상대도 정(靜)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체가 가는 방향에 배치 (背馳)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방향에 일치될 수 있는 상대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에까지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자가 바라는 소원이 무엇일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때, 오늘날의 인간과는 여건이 다른 것입니다. 그분이 제일 좋아할 수 있는 요인이 무엇일 것이냐? 오늘날 인간들이 바라는 돈이 아닙니다. 황금 만능시대에 있어서 생명의 요인을 능가한다고 부르짖는, 현실적인 힘의 모체와 같이 생각하는 금전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떠한 권력일 것이냐? 권력도 그의 수하에 딸려 있는 것입니다. 혹은 학식이냐? 지식이냐? 그것은 지식의 근본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일 것이냐? 생명이 뒤넘이칠 수 있고, 생사의 방향이 엇갈릴 수 있는 자극적이요, 충격적인 어떠한 힘의 요인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도 그러한 것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여러분은 수시로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 자극의 힘이 크고, 자극의 방향이 크면 클수록, 그 힘을 동기로 해서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자극의 노정을 극복해 나가게 될 때는 세계적인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현도 될 수 있고, 위인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절대자 하나님에게 있어서 자극적인 충격이 되고 이것을 가중적인 일로로 전진시킬 수 있는 그것은, 지식이라든가 권력이라든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그런 것은 그 절대자를 자극시킬 수 있는 요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것은 뭐냐? 권력이라는 것은 그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만 한한다는 것입니다. 돈도 돈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만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지식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식은 전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지식을 가진 사람을 중심삼고 그 사람에게 한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거쳐온 내적 배후를 같이하지 않고도 누구든지 한번만 관계를 맺으면, 그 주체자에게만 한하지 않는 공동적인 소유 권한을 주장할 수 있고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이냐? 인간은 그것을 추구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시지만 우리 인간은 잘해야 일세기 동안 생명을 지니고 사는 한계권내에 처해 있습니다. 이렇게 순간권내에 처해 있는 인간이 절대자와 관계를 맺게 된다면, 그 절대자의 권내에 소생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인간 앞에 끌어들여 가지고 공동적인 소유 권한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 아니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짧은 시간권내에 있는 나 자신이지만 이 짧은 인연을 통하여 절대자가 제일 귀하다고 할 수 있는 분야를 공동적으로 소유할 수 있고 공동적인 가치권으로 주장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우리 인간은 이것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길이 무슨 길이냐 할 때 그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의 길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도 상대적 관계가 조성되어야 생긴다

그러면 사람은 무엇을 찾아 나가느냐? 무엇을 찾아 나가긴 무엇을 찾아 나가요? 행복을 찾아 나가지요. 그러면 행복을 찾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이상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요. 행복을 찾아서 내가 잘사는 것인데, 그러려면 어떻게 살 것이냐? 나 혼자만 잘살겠다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잘살겠다 할 때는 반드시 상대적 요인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행복' 하게 되면 어디에서 행복하려고 하느냐? 나 혼자가 아니라 가정에서 행복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행복해 가지고는 환경에 적응시키려고 합니다. 내 행복을 환경에 적응시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행복의 범위를 넓혀서 행복된 가정을 추구하는 것이요, 행복된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요, 행복된 나라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행복된 세계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넓혀 나가는 것입니다. 그 세계는 일시적인 행복의 세계가 아니라 영원히 행복이 보장될 수 있는 세계인 것입니다. 그런 세계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이라는 명사는 혼자 있어 가지고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능치 못함이 없는 절대자라 하더라도 혼자 있으면 외로운 것입니다. 혼자서 웃고, 혼자서 좋아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절대자라 하더라도 그분도 상대될 수 있는 어떤 존재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뻐한다는 것은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기뻐하고 좋아한다는 말은 혼자 있어 가지고 되어지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선하다 하는 것도 혼자 있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환경과 관계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성립되는 것입니다. 악하다 하는 것도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환경과 관계를 맺어서 그 맺은 관계의 결과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행복은 반드시 한 가정을 중심삼고 행복된 사회, 행복된 국가. 행복된 세계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틀어서 이상적인 세계라는 말로 우리는 대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의 요인은 무엇이냐? 그 행복이라는 말은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했으니 '그가 행복한 사람이다' 할 때도 고독단신인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남자면 남자로서 갖출수 있는 상대적 요건은 아내가 되는 것이요, 부모로서 갖출 수 있는 상대적 요건은 자녀가 되는 것이요, 가정으로서 갖출 수 있는 상대적 요건은 사회, 활동무대로서 사회가 되는 것이요, 사회로서 갖출 수 있는 상대적 요건은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점점 커가는 거라구요. 국가로서 갖출 수 있는 상대적 요건은 세계, 이렇게 더 큰 의미의 상대를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의 기준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돈도 아닙니다. 권력도 아닙니다. 지식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생명이 아니면 사랑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절대적 사랑

세상에서 제일 크고, 제일 훌륭하다는 표현을 할 때 쓰는 말은 '절대적이다', '유일이다', '영원이다' 하는 말입니다. 그런 걸 볼 때, 이 말들은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이상형을 말할 때 쓰이는 명사들입니다.

'절대적이다', '단 하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단 하나의 사람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절대적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누가 침범할 수 있는 상대적 요인을 긍정하는 자리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영원한 존재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두고 볼 때, 절대적이라는 말에 맞는 말은 절대적 생명, 유일한 생명, 영원한 생명에 귀결됩니다. 영원한 생명의 인간…. 그 생명은 유일한 것이요, 영원한 것이요,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생명을 침해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절대적이라는 말에 들어맞는 것이 무엇이냐? 절대적 사랑입니다. 그 말 외에는 적용할 적당한 말이 없습니다. 그 절대적 사랑을 보장할 수 있기 위해서 절대적 믿음이니 신의니 하는 것이 개입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유일한 사랑이다. 영원한 사랑이다 하는 것입니다. 문학 작품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표현되는 형용어 가운데 제일 자극적이요, 인간이 제일 흔히 쓰고 있는 말들은 절대적 사랑. 오직 단 하나의 사랑, 영원한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사랑이 무엇이기에 절대적인 자리까지 갈 수 있으며, 유일한 자리까지 갈 수 있으며, 영원한 내용으로까지 남아질 수 있느냐? 사람이,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오는 가운데 죽을 뻔했던 일, 생명과 관계되는 일은 그 사람이 죽기 전까지는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생명이 위협을 받거나 혹은 그런 입장에서 해방을 맞았다 하는 것은 자기 일생에 단 하나의 사건으로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생에서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영원히 계속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죽고 사는 문제는 이렇게 절대적인 사건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사랑이란 것을 중심삼고 볼 때, 사랑은 생명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생명을 좌우로 엇갈리게도 할 수 있는 힘이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은 사랑을 좌우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생명의 주체요 사랑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어떠하실 것이냐? 하나님도 사랑 앞에는 약합니다. 생명의 절대적인 기준 그 자체라 하더라도 하나님보다 더 강력한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 앞에는 굴복당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힘까지도 움직여 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생명력이 아닙니다. 그건 사랑의 힘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청춘 남녀들이 세상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볼 때도, 생명을 움직여 낼 수 있는 힘은 확실히 사랑의 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그렇다면, 사람은 절대적인 주인 앞에 상대적 가치를 지닌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럴 수 있는 요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사랑 앞에는 강한 것이 아니라 약하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 앞에 모든 면에서 주체가 되고 표준이 되지만 사랑 앞에서만은 약합니다. 사랑을 들고 나오게 될 때는 부모의 권위는 없다면 없는 것입니다. 도리어 부모의 권위가 까꿀잡이가 돼요. 그렇게 까꿀잡이가 되었다 하더라도 권위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까꿀잡이가 된 자리에서 다시 본연의 자세를 갖추어 나갈 수 있는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내려갔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막히는 것이 아니라 내려간 그 자리에서 영원을 향하여 갈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이렇게 볼 때, 생명보다도 우리 인간 앞에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무슨 사랑이냐? 아침 저녁으로 변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은 변한다고 하지 않아요?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요. 산색 (山色)은 고금동(古今同 )이라'고 하듯이 사람의 마음은 변하는 것입니다. 변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의 몸을 중심한 생활도 변하는 것입니다. 생활 여건이라는 것은 일본이면 일본, 한국이면 한국의 그 환경의 여건에 따라서, 문화적 배경과 전통적 배경이 다름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생활 여건이 다름에 따라 우리는 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입장을 취해 나오기 때문에 우리 몸이 처한 환경은 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변하는 환경 가운데에 있는 인간, 그런 생명력을 지닌 인간을 중심삼고 변치 않는 단 하나의 통일적인 방안을 어떻게 찾을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의 근본 뿌리는 부자간의 사랑

세계는 하나의 세계를 찾아 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의 세계를 무엇으로 만들 것이냐? 권력으로 만들 것이냐? 권력은 천년 만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집권자의 변동에 따라 좌우되는 것입니다, 금력도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고, 시대는 환경에 따라 변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영원한 것이라는 것은 주장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 것이냐, 그 이상세계를 무엇으로 하나의 전통과 하나의 역사성으로 남길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사랑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고, 행복의 세계로 만들 수 있는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어야 될 것이냐? 변하는 사랑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 변하지 않는 사랑이 무엇이냐? 인간 세상에 있어서의 남녀간의 사랑이냐? 이것이 변하는 것을 우리가 너무나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바라고 있는 부자지간의 사랑이냐 할 때, 세상에서는 너무나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혹은 형제지간의 사랑이냐? 동포지간의 사랑이냐? 이렇게 사랑의 모든 계층을 헤아려 보게 될 때, 형제애보다도 동포애가 더 강하냐, 남녀간의 사랑보다 부모애가 더 크냐 하는 사랑의 계층을 헤아려 볼 때,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관(觀)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세계보다도 민족을 사랑하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민족보다도 자기 종족, 김씨면 김씨를 생각하는 것이 더 가깝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김해 김씨가 얼마다'고 하면서 자기 종족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보면…. 또 종족보다도 자기 친척이 가깝고, 친척보다 형제지간이 더 가깝고, 그 다음엔 부부지간이 더 가깝습니다. 참 이상한 거예요. 그 다음에는 부자지간이면 더 가깝습니다. 이렇게 계층을 따져 보게 될 때, 인간 세상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제일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기원이 어디냐? 남녀지간이냐?

오늘날 남자가 행복을 추구하는 그 자리는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데, 행복하다는 것은 자기 혼자 독단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관계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반드시 사랑을 중심삼고 벌어질 것인데, 그것이 남녀지간의 사랑이냐, 그것이 최초의 출발점이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부부보다도 부모를 더 중요시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남녀지간에, 부부끼리 사랑하는 그런 입장과는 다른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은 어디까지나 횡적 관계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횡적 관계입니다. 그렇지만 부자의 관계는 종적 관계입니다. 부모가 위에 있다면 자식은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랑하는, 그 사랑이라는 것은 항시 흘러 나오기 마련입니다. 자식이 안 받겠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자연적인 마음으로써 사랑의 방향이 자식에게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사랑은 저쪽에서 조금만 변하게 되면 이쪽에서 끌려가게 마련입니다. 여러분 중에 부부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고맙게 잘 대해 주던 남편이 한마디 '땡' 해 가지고 그 동기가 조금이라도 나쁘면 팩 돌아갈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은 지극히 작은 글 초점에 서있는 것입니다. 초점에서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조금만 틀어져서 저쪽에서 '땡' 하면 이쪽도 자연히 '땡' 하기 마련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걸 잘 느낄 것입니다.

이 사랑의 계층을 살펴볼 때, 그래도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자리가 어디겠느냐? 그것은 부자간의 사랑의 자리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의 자리입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터전을 중심삼고 오늘날 사회가 구성되어 있어요. 인간은 이렇게 구성된 정서적인 무대를 중심삼고 행복을 추구해 나간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행복이 출발되는 자리

그러면 행복의 출발은 어디에서부터일 것이냐? 문제가 큽니다. 어떤 사람은 나라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고 부르짖기도 하는데, 그걸 다 생각해 보면 다시 한 번 재정비해야 할 문제들인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사람들은 다 가정을 버리고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라' 하는 말을 막연한 자리에서 생각해서는 안 돼요. 가정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국가를 희생시켜서 세계를 구하라' 하는 것도 국가보다 세계가 더 가치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은 맞는 것입니다.

만일에 아무것도 모르는 자리에서 가정을 희생하고 나라를 사랑하다가 나라의 충신이 되어 충신명록(忠臣名錄)에 일번으로 기입이 되었는데, 그 이튿날 나라가 망한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그 민족을 중심삼고 충신으로서 등장했는데, 그 주체적인 전통을 휘어잡아 가지고 역사를 지배할수 있는 충신의 자리에 올라갔는데 그 이튿날 나라가 망했다 하게 되면, 그 충신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겠느냐? 그것을 이어받으려면 나라를 구해야 될 것입니다. 충신이 되었던 그 사람보다도 몇백배 수고를 해야 될 것입니다.

일대 가지고 되느냐? 한 집안이 망하여 복구하는 데도 10년, 20년, 혹은 일생을 두고 한다 하더라도 힘이 드는 일인데, 자기 일대에 해내는 것이 쉽겠어요?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한 나라가 망하면 일대에 안되면 십 대 혹은 수십 대를 거쳐서라도 복귀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내가 되어 진정 충신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일대로서는 가당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망운권내(亡運圈內)에 처한 국가의 비운을 도맡은 자리에서 충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나라가 영원히 남아질 수 있고, 세계의 나라들을 이끌 수 있는 주체적인 나라가 될 수 있으면 모르지만, 번번이 망하기 일쑤이고 부딪쳐 깨져 나가기 일쑤인 나라라면 그 나라를 붙들고 생명을 투입할 애국자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자기가 망하든 어쩌든간에, 흥망의 요건을 넘어서 가지고 책임질 수 있는 자리, 죽고 사는 문제를 초월해 가지고 책임질 수 있는 자리에서 남아질 수 있는 사랑의 계층이 도대체 인간 사회의 어디이냐? 어디가 그 기점이 되겠느냐? 그것은 남녀지간의 사랑도 아니요, 형제지간의 사랑도 아닙니다. 나라를 위한 사랑도 아니요, 세계를 위한 사랑도 아닙니다. 그 자리를 찾고 또 찾아 보아도, 이것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자리 외에는 없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 세상에서 부자관계를 중심삼은 사랑이 절대적이냐 할 때에 거기에도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중에서 제일 우위(優位)에 설 수 있는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보면 그 사랑이 기원입니다. 우리 인간 세상에서는 그것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희로애락이라는 것은 정서적인 면을 중심삼고 되어지는 것이지만, 그것의 기점은 거기서부터입니다.

그러면 그 기점이 절대적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느냐? 부모로 말미암아 태어났습니다. 그 부모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 하나의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남성과 여성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것이 아들딸인데, 그 아들딸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남성과 여성이 사랑하는 것과 같으냐 할 때, 그럴 수 있다면 그건 논리적인 모순이 됩니다.

그러면 이 사랑이 어디에서 왔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아버지 어머니는 하나의 남성과 여성인데, 이들이 상대적 관계 하에 사랑을 함으로써 아들딸이 태어났습니다. 그 아들딸을 중심삼고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맺어졌는데, 거기에서 맺어진 사랑이 부부 사이에 맺어진 사랑보다도 강한 사랑으로 나왔다면 이것은 변증법적 논리를 긍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진화론을 긍정해야 된다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자식은 남성의 사랑과 여성의 사랑이 합해져서 나온 것인데 합해져서 나온 그것이 강한 힘을 가졌으니 그것이 주체냐? 어떤 것이 주체냐? 자식이 강한 사랑을 가졌으니 거기에 부모가 끌려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부모가 주체되는 입장에서 자식을 끌고 나가느냐? 이런 문제를 볼 때, 그 사랑이 남녀간에 맺어지는 사랑만으로서 되어진 것이라면 그러한 사랑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더 강하고 더 원칙적인 것이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변할 수 없는 것

힘이라는 것은 작용하게 되면 소모가 되고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부부의 사랑을 통해서 나온 자식의 사랑이 부부의 사랑보다도 강한 사랑으로 나타났다면, 이것은 작용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강해졌다는 결과입니다. 그러면 강하게 한 그 힘은 어디에서 왔느냐? 그것은 남자에게 서도 아니요, 여자에게서도 아닌 다른 동기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론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사랑의 주체는 딴 곳에 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긍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이 다른 곳에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냐? 마음을 보게 되면, 이 마음은 낮이나 밤이나 몸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몸이 마음 모르게 무엇을 슬쩍 속여 가지고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일일이 간섭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없는 것 같지만 악을 행하려고 할 때는 영락없이 와서 '이놈아' 하고 목을 조르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의 작용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겁니다. 옛날 어린 시절에 그런 걸 잘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형제가 있는데, 동생은 약빠르고 저축성이 있는 반면 형은 그와 반대라구. 야곱과에서와 같은 형제라고 비유하면 실감이 날 거예요. 어머니가 맛있는 것을 사다 형제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형은 받자마자 먹어 치우고 동생은 그것을 싸 가지고 방에 간수를 하고는 자는 겁니다. 그 간수해 둔 것을 형도 알고 있는 거예요. 형이 밤에 자다 말고 쓱 일어나서 생각해 보니까 동생이 간수해 둔 것이 생각나는 거예요. 그래서다 말고 정신도 채 안 들었는데 그것을 몰래 꺼내 먹으려고 할 때, 마음이 언제 나타났는지 벼락같이 나타나 가지고 브레이크를 거는 거예요. '이놈? 하고 반성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그 마음이 어디에 있긴 어디에 있어, 내 안에 있지. 그러면 그 '이놈? 한 것이 내가 한 것이냐? 나는 원하지 않았는데 어디서 했느냐? 여기에는 제삼의 관계가 투입되어 있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육감이라는 말이 있지요, 육감? 영적인 생활을 하면 육감이 백퍼센트 적중합니다. 여러분도 그런 체험이 있는지 모르지만, 육감은 오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으로 인식 관념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입체적입니다. 이것은 앞엣 것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뒤엣 것까지도 관찰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그러한 작용은 어디를 모체로 하느냐? 육감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주체자는 누구냐? 사람이다 하겠지만, 천만에. 자기가 주체가 되어 있지 않아요. 자기는 대상적인 입장입니다. 그 동기는 내가 아니라 상대적인 것에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기원과 동기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했느냐? 남자 여자를 중심삼은 사랑은 변하는 사랑인데, 거기에서 태어난 아들딸을 중심삼은 사랑은 왜 변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남녀를 중심삼은 사랑에서 기원된 것이 아니라, 횡적인 부부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아니라 종적인 어떠한 흐름의 기원을 통하여서 관계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종적인 사랑의 주체가 누구냐? 그러한 주체를 우리는 신이라고 합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의 주체로서 인연되어질 수 있는 관계에서 연속적으로 상대를 추구할 있는 그런 본연의 자리에 서 있는 어떠한 절대적인 주체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의 사랑은 부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횡적인 인간으로서는 어떻게 터치(touch)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에 변함이 있어요?

오늘날 민주주의 세계에 있어서 개인주의 사상이 팽배해 있는 이때에 있어서, 자식들이 하는 말이 '부모는 구시대라 우리의 신시대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합니다. 자식들은 그렇게 변했지만 부모의 마음은 변하는 게 아니예요. 자식들이 구시대니 신시대니 하고 부르짖는다고 해서 '네가 그래? 나도 그러자? 그렇게는 안 되어 있어요. 부모의 사랑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건 미물(微物)도 마찬가지예요. 새끼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자기의 생명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자연적인 것

그러면 그런 사랑은 어디에서 왔느냐? 나 자신이 제1의 어떤 상대적인 결과의 존재라면 그것은 제1의 어떤 힘의 인연 가운데서 온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터치(touch)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을 혁명하자! 혁명의 기수가 되자? 하는 사람 보았어요? 만약에 어떤 부모가 이 사랑을 혁명해서 인류 역사를 개조해 버리겠다 해 가지고 '나는 부모는 부모지만 자식을 사랑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나섰다고 합시다. 그렇지만 그 부모는 자식의 배꼽이 떨어지는 순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것입니다.

모든 생물은 어떠한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자기 새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데 생명을 투입해서, 생명을 고임돌 삼아 가지고도 하고 싶어하는 작용이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만고불변에 가까울 수 있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것은 절대성(絶對性)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절대 그 자체는 못 되지만, 인간 앞에 제일 가까운 고임돌은 될 수 있습니다. 단 하나의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둘이 되면 안되는 거예요. 단 하나의 발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것이 인간 세상에 있어서 그래도, 역사를 보게 될 때 영원한 발판이 되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의 사랑은 어디에서 왔느냐? 그것은 아버지에게 어떠한 권고를 받아서 배운 것도 아니요, 자기 상대에게 충고를 받아 배운 것도 아니요, 자기 자신이 그러겠다고 생각해서 나온 것도 아닙니다. 자연히 그리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자연히 그리 되는 데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

인간이 사춘기가 되었다고 해서 '나는 남자고 너는 여자니까 사랑한다' 하는 관념이 생기는 게 아닙니다. 자연적으로 그렇게 돼요. 뼛골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사춘기가 되면 '아-. 나는 사랑하는 데 상대적인 관념을 중심삼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뻗대고 자신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자신하는 녀석이 더 엉큼하다구요. 꿍꿍이 속을 가졌다구요.

인간에 있어서 제일 청춘기는 사춘기 시대입니다. 그 사춘기 시대는 누구를 위해 있느냐?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구요. 나를 위해 있다면 전부가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사춘기 시대는 전부 다 내뿜는 시대라구요. 그때는 보게 되면, 처녀들은 날아가는 나비만 보아도 히죽히죽 웃는다는 거라구. 또 물결이 바람에 의해 살랑살랑거리는 것만 보아도 웃는다는 거라구. 그 무어든 좋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늦가을에 감나무 한 잎이 처량하게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가 찬바람이 '쌩' 불 때 떨어지면 거 얼마나 애석합니까? 최고의 애석한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보고 웃고, 또 그 잎이 떨어져 떼굴떼굴 굴러가면 그것을 따라가면서 웃고 싶어하는 거라구요. 그런 때가 바로 사춘기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자기의 주체적인 관을 중심삼고, 통일성을 중심삼고 자기 앞에 전부 다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부 다 내뿜는 것입니다. 어디 가든지 나는 상대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라톤 대회에 젊은 사람들이 뛰게 되면, '내가 저녀석한테 질 게 뭐 있어? 나도 뛰면 뛸 수 있다, 안해서 그렇지'할 겁니다. 꼴찌 될 수 있는 소질은 풍부하지만 생각은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기만 하면 나는 지지 않는다' 하는 거예요. 마음은 다 같습니다. 그때는 시인이 아닌 사람이 없고, 문인이 아닌 사람이 없는 거라구요. 전부 다 그렇다는 거예요.

그것은 무엇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냐? 상대적 권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추구하는 대상이 무엇이냐?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무엇이냐 하면 남녀면 남녀를 중심삼고 제일 좋은 대상을 추구하는 데 그 귀결점을 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랑이라는 명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혼자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 관념입니다. 그 사랑의 근거지가 어디냐? 사랑의 소재지가 어디냐?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근거지가 어디고 소재지가 어디냐? 재미있게 잘사는 어떤 부처 (夫妻)가 있다면, 그들이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겠어요? 서로가 사랑을 주겠다고 하겠어요, 받겠다고 하겠어요? 생각해 봐요. 대답도 잘못했다가는 걸리는 거라구요. 보편적인 관념으로 생각해서 주겠다고 하겠어요, 받겠다고 하겠어요?「받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좋다고 할 때는? 줄때 좋아하는 거예요, 받을 때 좋아하는 거예요? 어떠한 관념을 갖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겠다고 하느냐 받겠다고 하느냐 할 때, '사랑을 하다니, 받겠다고 하지…' 그 말이 맞는 거라구요.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구.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하면, 사랑의 소재지는 사랑의 근거지는 상대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거 실감나지요? 사랑의 거주지는 자기가 아니고 상대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정지어야 합니다. 이것을 확실히 깨닫는 날에는 문제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나는 사랑했는데 임자가…' 하는 그 말은 사랑을 받겠다는 말과는 어떻게 다르냐? 사랑하겠다는 말이 열만큼 사랑을 했으면 아홉만큼 받겠다는 말이겠어요? '내가 사랑한다. 죽도록 사랑한다' 하면, 그저 죽도록 사랑만 하겠다는 말이겠어요? 그 말은 죽도록 사랑할 수 있는 상대로 삼겠다, 죽도록 사랑받을 수 있는 상대로 삼겠다는 말입니다. 일방적인 동시에 양면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죽도록 사랑한다는 건 뭐예요? 죽도록 그저 뺨을 때리고 밟고 물어뜯는데 사랑하겠어요?

여자들은 대개 시집을 가면 남편에게 사랑받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랑받는 게 아니라구요. 남자들은 도적놈 같은 성격이 많다는 거라구요. 남자들은 자기에게 시집온 색시를 방에다 앉혀 놓고 무슨 생각을 하느냐 하면 자기를 사랑해 주는 분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각기 입장이 다르다는 거라구요. 여자는 시집을 갈 때 사랑받기 위해서 간다고 생각하는데, 남자는 집에 혼자 있는 색시가 자기를 종일토록 사랑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엇갈린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근거지는 혼자서는 안 되는 거예요. 대상 없이는 사랑이고 뭐고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대해서는 남자나 여자가 다 도둑놈 같다는 것입니다. 나도 남자지만 말이예요. 같은 남자로서 이런 말 하면 실례지만 말이예요. 여자들이 '남자는 어떻고 저떻고' 하며 평을 할 때, 남자의 어떤 면이 불신의 입장이 되느냐 하면 사랑의 근거지가 자기에게 있는 줄 알고 있는 거예요. 이게 탈이예요.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사랑을 받고 싶어합니다. 얼마나 받고 싶어하느냐? 죽도록 받고 싶어합니다. 사랑을 받으면서 죽으면 불행하지 않을 겁니다. 내 생명의 힘이 다 빠지도록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중심삼고는 지독한 마음까지도 흐늘흐늘해져 물이 되어 흘러가도록 받아도 싫지 않을 것입니다. 욕을 그렇게 해보라구. 뼈살이 녹아서 물이 되어 망하라고 그랬다가는 큰일나지요.

그렇지만 사랑을 중심삼고서는 지긋지긋하게, 망해서 없어지리 만큼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 그것이 나빠요, 좋아요? 지지리 망해서 없어지리 만큼 한번 사랑을 받아 보았으면 좋겠다, 그게 좋은 말이예요, 나쁜 말이 예요? 죽도록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말이 그 말이라구요. 별다른 말 아니예요. 망해 없어지도록 사랑을 받겠다는 말인 거예요.

'죽도록 사랑받으면 좋겠다' 그런 말 해요, 안 해요? 우리 남자들, 그런말 해봤어요? 바윗돌같이 둔해 가지고 뭐…. '죽도록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하는 그 사랑이란 벌써 죽음을 초월하는 말이'예요.

그러면 사랑을 정말 받고 싶다 할 때, 그 사랑이 어떠한 사람의 사랑이냐? 십년 전의 그 마음이 십년 후에 변하고, 천년 전의 그 마음이 천년 후에 변하고, 혹은 억만년 전의 그 마음이 억만년 후에 변하는 사랑이겠어요? 그런 사랑이 아니고 절대적인 사랑, 절대적인 사랑의 주체로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 보자는 것입니다.

사랑을 해주겠다는 것보다 절대적으로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관념인데, 그 절대적인 사랑을 영원히 영원히 받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소원인데, 그 사랑을 어디에서 받느냐? 이런 문제를 볼 때, 만일에 사랑의 주체되시는 절대적인 분이 계시다면 그분을 중심삼고 사랑 하고 싶겠어요, 안 하고 싶겠어요?

인간은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존재

오늘날 세상의 여자들에게 '이 다음에 어떤 데로 시집을 가겠소?' 하면 '어떤 데는 어떤 데요? 이만한 골격을 갖추고 있고, 이만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이만한 미모를 지녔으니, 나 정도면 상(上)의 상(上)을 찾아 가야지' 할 것입니다. '상의 상이 어디예요? 하면 '올라가다 보면 상의 상이 어디예요, 이마지' 그럴 거예요. (웃음) '그럼, 이마 위에 올라가겠소?' 하면 '상투 끝까지 올라가겠어요' 이렇게 말할 거라구요. 이 나라의 대통령 부인이 되겠다, 국모가 되겠다 하는 생각을 조그만 아가씨들도다 갖고 있는 거라구요. 우리 여기 잘나지 못한 이 아가씨들도 그런 생각을 한다고. (웃음) 잘난 사람이 그런다면 모르겠는데 잘나지 못한 사람이라도 그런 마음은 굴뚝같이 솟아오른다는 거야. 그거 보면 큰 야단나겠어요.

그런 마음을 충당시킬 수 있는 누룩이면 누룩이 있으면 될 텐데…. 어지간하게 뜬 누룩은 받아만 놓으면 다 누룩이 되거든요. 그격이라구요. 그놈만 받아 놓으면 큰 덩이를 받든가 작은 덩이를 받든가 시간이 문제지 다 어떻게 돼요? 통일이 돼요, 안 돼요? 어때요? 누룩덩이만 받아 놓으면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지 조금만 지나면 다 같게 돼요, 안 돼요? 누룩 같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또, 남자들을 보면 장마 때의 나막신처럼 딱 그렇게 생겼다구요. 그런 얼굴을 가지고 '너 어떤 사람이 될 거야?' 하면, 마음으로는 굴뚝같아 가지고 '나는 세계 대통령이 한번 되고 말지'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죽이라고 하면 아마 죽일 사람 한 사람도 없을 거라구요. 다 그런 생각 했을 거라구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물론 세상 사람들도 다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보기에는 뭐 호외꾼처럼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눈을 보나 코를 보나 무엇을 보나 전부 다 등외품으로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전부 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물 속에서 썩어지는 게 되었더라도 말은 깨깨 해야 된다구요. '맛있다'는 것과 '맛-이 있다'(강하게 발음하심) 어떤 게 더 좋아요?(웃음)

이렇게 헤아려 볼 때, 사람은 사랑을 생명이 다할 때까지, 죽도록 받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주체가 없는데 인간들이 그러한 관념을 가졌다면 인간들은 허무맹랑한 패들입니다. 그런 것을 인간들이 바라고,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이것은 뭐라 할까 공포를 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알이 없는 대포를 꽝 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맨 처음에는 시위하기 위해서 한 방 쏠지는 모르지만, 한번 그래 보고 싶어서 그러면 좋겠지만 우리 인간은 누구나가 다 그렇게 바라고 있어요. 공포가 아니라구요. 전부 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이것을 볼 때, 공포라면 너무나 아쉬운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보편적인 소원의 표준이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적으로 가능하다 하게 되면 문제는 클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아는 날에는 오늘날 돈을 가지고, 혹은 권력을 가지고 세계를 자기 수하(手下)에 넣기 위해서 싸우는 그 싸움은 없어질 것입니다. 지금은 모르기 때문에 그렇지….

오늘날 '세계의 미인이다' 하게 되면, 남자의 눈초리는 그리 가지 말라고 해도 가요, 안 가요? 서양의 미인이 있는 데에 동양 사람들의 눈이 가요, 안 가요? 백인의 미인이 있다면 거기에 검둥이의 눈이 가요, 안 가요? 엉큼하게 가는 거라구요. 전부 다 그 미인에게 눈이 쏠린다는 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가능하든 불가능하든간에 인간의 마음은 그리 되는 거라구요. 그것이 뭐냐? 그럴 수 있는 힘의 작용, 그럴 수 있는 내용의 요건이 갖추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무슨 작용을 통해서 인류는 한 방향으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을 바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문제는 사랑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 한다고 세상의 속된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아요. 여기에서 생각하는 사랑은 다른 의미의 고차적인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갔더니 새벽부터 사랑 얘기만 하더라'고 하게 되면 벌거벗고 춤추는 패니까 그렇다고 연상하게 된다구. (웃음) 나는 벌거벗고 춤추는 패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예요. 내가 웃옷 한 번 벗어 본 일도 없다구요.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로 생각하지 말고 좀더 고차적인 얘기로 올라가야 되겠다는 겁니다.

시간도 많이 지났는데 이쯤하고 그만둘까요? 다음에 할까요? 더 해요?「예」 처음 온 사람들은 '이거 시간이 한 시간 반이 지났는데, 저 양반이 지금 몇 시간을 하는 거야' 하겠지만 이제 서론 조금 지난 거라구요. (웃음) 왜 그러느냐 하면, 여러분이 실감이 나야 돼요. 실감이라는 것은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직접적 관계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감정이 인식과정을 초월하여 나를 자극시켜 줄 때는 그것을 정리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감을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자고 하는데 그것을 할까말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자' 하는데 힘없이 '그래 하자' 그럴 게 아니라, 온 신경과 온 정력을 총합해 가지고 '하자!' 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엔 기합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 개인의 통일은 천륜에 따라서

'통일의 요인과 방안'이라…. 이거 근사한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 앞에도 근사한 말입니다, 통일의 요인이 어디에 있느냐? 통일의 요인은 사랑에 있다, 그건 사랑에 있다. 그 사랑은 어디에서부터 출발을 하느냐? 애국애족하는 데 있다, 이렇게 되지요. 그러면 애국애족은 어디에서부터 하느냐? 그건 모른다, 그저 애국애족하는 데 있다. 그러면 통일이 되겠어 요? 그 요인이 어디에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사랑하기 전에 형제를 사랑하라,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나라의 충신이 되려거든 먼저 효자가 되라 했습니다. 그런 건 여러분도 잘 아실 거예요.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먼저 형제끼리 사랑하고, 충신이 되고 싶거든 먼저 효자의 도리부터 하라는 것입니다.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느냐 하면 여기서부터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나'라는 것이 인륜에 통일될 수 있는 것이냐? 이것이 문제 입니다. 이 '나'라는 것이 인륜을 표준해 가지고 통일되려고 하느냐, 천륜을 따라서 통일되려고 하느냐? 이것을 볼 때, 인륜을 따라서 통일되겠다고 하는 국민은 없는 것입니다. 무엇을 따라서 통일되려고 하느냐? 천륜을 따라서 통일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성인의 사상과 천운

성인은 어떠한 사람이냐? 인륜을 위주해 가지고 만조의 가르침을 준 사람이 아닙니다. 천륜을 따라 인륜의 정의를 제시하고 나오게 될 때에 비로소 성인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성인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느냐? 인륜을 위주로 한 사람은 성인이 된 법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 오늘날 성인이라 하게 되면 4대 성인을 들고 있습니다. 예수, 석가, 공자, 그 다음에…. 어떤 사람은 소크라테스가 성인이라고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성인 축에 못 들어갑니다. 여기 철학자가 왔으면 기분 나빠할지 모르지만 못 들어간다구요.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 못 들어가느냐? 지식을 가지고는 생명을 주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식이라는 것은 생명을 주관할 수 있는 권위가 없는 것입니다.

생명은 최고의 인정을 초월할수록 주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은 인간의 사랑, 부모의 사랑과 같은 인륜적 사랑 이상의 사랑이 지배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죽도록 사랑한다고 하는것입니다.

그러면 인정을 통한 세계 이상을 바라느냐? 인정을 통한 세계 이상을 아무리 바란다 하더라도 인정을 통한 가정 이상의 기준이 세계에 없기 때문에 이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정을 통한 세계 통일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성인이라는 양반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레테르를 보면 모두 교조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성인 축에 못 들어가는 거예요. 회회교의 마호메트가 들어가는 겁니다. 그분들은 대관절 어떠한 사람들이냐? 역사적인 우리 인륜의 도덕적 기준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헌법이 어디에서 생겨났느냐? 그것은 성인들의 가르침 중에서 좋은 것을 따다가 국민성에 적응시켜 대표적인 조건을 택해 제정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교조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 종교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늘을 위주로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은 인륜을 세우기 전에 천륜을 세우려고 한 사람들입니다. 보라구요. 예수도 기독교의 교주지요, 석가도 불교의 교주지요, 공자도 유도(儒道)면 유도의 도주요, 마호메트도 회회교의 교주라구요. 전부 다 이렇게 된 것은 모르고 성인의 도리는 존중시하면서 종교는 무시하는 이 망할 세계가 되었다는 거예요. 소위 식자층에 있는 사람들이 말이예요. 그들이 인륜을 세운 사람들입니다.

인륜은 인류를 통해서 세워지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무엇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고 나왔느냐? 이것은 정서적인 문제인데…. 변할 수 있는 실정을 중심삼고 세계적 통일의 모색 방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변치 않는 기준을 중심삼고야 가능한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기준은 인륜이 아니라 천륜입니다. 인륜과 천륜의 보조를 맞추기 위한 역사적인 대표자들이 성인들입니다.

그 성인의 사상은 어떤 사상이냐? 민족주의가 아니요, 가정주의도 아니요, 종족주의도 아닙니다. 세계주의입니다. 이렇게 돼요. 천운이라는 것은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인륜이라는 것은 세계를 살리고자 하는 천운에 보조를 맞추어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흥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천운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운세가 가정의 운세를 막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운세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 가정이 몰락하게 되면 거기에 끌려 넘어가게 되는 거라구요. 이걸 알아야 돼요. 또. 그 종족 전체가 학살을 당해 넘어가게 될 때는 아무리 가정의 운세가 좋다고 하더라도 그 종족의 운세에 말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종족이라 하더라도, 김씨고 무슨 씨고 뭐 큰소리치는 종족이 있다 하더라도 국가의 운세가 나가 자빠지게 될 때는, 그 종족도 거기에 끌려 넘어가게 마련입니다. 또한 국운이 아무리 훌륭하다 아무리 보장된다 하더라도 세계의 천운이 몰아치게 될 때는 거기에 말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무서운 운세를 타고자 하는 패들이 어떤 패들이냐? 천운을 타겠다는 패들입니다. 알겠어요? 이건 도둑놈이라면 도둑놈 같고. 망상이라면 망상 같은데…. 천운이 없는데도 타겠다면 미치광이라구. 그렇지만 천운이 있는 것을 알고 타겠다고 하면 그 사람은 홍길동 할아버지 같은 사람입니다. (웃음)

종교인들은 천운을 타겠다는 사람들

그러면 세계 인류 가운데 천운을 타겠다는 패가 있느냐, 없느냐? 없지? 그런 사람 없지요? 여러분은 이왕이면 어떤 운을 타고 싶어요? (웃음) 이건 웃을 얘기가 아니라구요. 가정운(家庭運)을 타고 싶어요? 전부 다 욕심들은 커 가지고 대통령 해먹으려고 꿈꾼다구. 세계 대통령 해먹겠다고 꿈꾸지요? 그래, 세계 대통령이 되려면 천운을 안 타 가지고 되겠어요? 세계 대통령은 천운을 타고 와야 되는 거라구요.

세계 인류 가운데 비례적으로 볼 때 천운을 타겠다는 패가 얼마나 되느냐? 인간의 운을 타겠다는 패하고 천운을 타겠다는 패를 비교해 볼 때. 천운을 타겠다고 하는 패는 허무맹랑한 종교광들입니다. 종교광 패들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그 중에 대표적인 광(狂)이지요. '광' 자가 무슨 '광' 자냐? 미칠 '광(狂)'자가 아니라 넓을 '광(廣)' 자라구요. (웃음) 이렇게 위로의 대상이라도 만들어 가지고 나가야지. 그러지 않으면 거 재미가 있나요? 오늘날 세계적으로 볼 때 종교인들이 얼마나 되느냐? 약 20억이 됩니다. 대한민국을 보면, 대한민국 인구 절반 이상이예요. 약 3분의 2에 가까운 사람이 종교인입니다. 세계에 있어서는 약 17억 이상이 종교인에 해당합니다.

오늘날 정치가들, 뭐 닉슨 대통령도 막혀요. 내가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어요. 당신이 1950년대에 잘못했다고 들이 조였어요. 역사적으로 그것을 쭉 비판해 가지고 '그렇소, 안 그렇소? 하니, '당신 그때에 대한민국에 있었소? 그러더라구요. 닉슨 대통령도 지금 생각해야 할 문제지만, 앞으로 세계적인 정치가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것이냐? 종교를 요리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지 않고는 세계를 통일 못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종교를 요리하겠다고 하는 세계의 대표적인 기수인 이 통일교회 문선생은 둘째 되라면 싫어합니다. 그래서 세계 종교를 한번 통일해 보자. 그러려면 먼저 기독교 통일 작전을 하자. 그러는 거예요. 허무맹랑한 녀석, 허무맹랑한 놀음, 세계, 다 해봐라 하는 겁니다. 다 해본 녀석은 부족하기 때문에 망했지만 내가 조금 나으면 그것보다 가일보 전진할 수 있다 이거예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주먹구구식 종교 이론을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맹목적으로 믿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사리에 맞도록 이론을 추구해 가지고 결론을 짓고, 앞뒤가 들어 맞지 않으면 믿지 않는 성격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를 한번 통일해 보자! 이런 말에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통일교회 패니까 기분이 좋겠지요. (웃음) 오늘 여기 처음 온 목사님들이 있으면 가슴이 철렁해 가지고 '아이쿠! 이들이 진짜 통일하면 내가 포로로서 창을 맞을 텐데, 통일교회를 반대했으니…' 그런 양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두려워하지들 말라구요.

앞으로 세계에 위대한 사람이 나온다면, 그 사람은 이 세계를 중심삼고 모든 종교를 요리할 것입니다. 종교는 초국가적인 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오늘날 공산당은 '노동자 농민은 세계적으로 단결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2차 대전 때, 프랑스 노동자 농민들과 독일의 노동자 농민들은 공산당이 자기들에게 협조할 줄 알았지만 어림도 없었어요. 그렇지만 종교를 중심삼고 강력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초민족적으로 동원될 수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 같은 걸 보면 초민족적으로 단합을 한 것입니다. 지금 있는 종교들을 전부 불살라 버리고, 민족을 초월해 가지고 한 골수로서 모이는 모임을 통해서 거동할 수 있는 주체를 세워 놓는다면, 세계를 전부 다 녹여 먹든가 삶아 먹든가 둘 중의 하나는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은 보기에는 이렇게 생겼지만, 그럴 수 있는 수완이 있다면 앞으로 세계를 녹여 먹든가 삶아 먹든가 할지도 모를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가 이렇게 크다가는 앞으로 무슨 대통령을 해먹으려고 하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대통령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웃음) 내가 앉아 가지고 이 일을 지금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조정하고 있는 거라구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그것을 이야기하려면 역사가 깁니다, 10년 전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내가 이야기를 안 하겠어요.

천운을 타고 있는 통일교회

어떤 분이 미국 가서 성명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통일교회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라구. 지금 이러고 있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사교의 왕초요, 세상 밝은 천지에 벌거벗고 춤추는 고수자(高手者)라고 하지만 잘됐다구요. 어서 그러라는 거예요. 그 바람에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어요. 그거 좋다고 춤추는 바람에, 전부 다 발이 땅에 붙지 않고 공중에 떠 가지고 춤추는 바람에 딱 발판을 만들었다구요. 그러는 바람에 내가 울타리를 전부 다 치웠다구요. 그렇게 허무맹랑한 패가 아니라구요. 무슨 나장로, 박장로, 무슨 패. 다 그래 보라구요. 통일교회 패는….

통일교회 문선생은 여기 와서야 볼 수 있지, 어디 무슨 시민회관 대강당 같은 곳에서는 통일교회 문선생을 볼 수 없습니다. 내가 그런 시민회관 대강당은 몇 번이라도 움직일 수 있고, 또 내가 단에 나가서 말을 하면 곧잘 하는 사람이라구요. 그렇지만 못 보는 거라구요. 왜? 작전에는 제1차 작전, 제2차 작전, 제3차 작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1차 작전이 실패하면 2차 작전을 쓰고, 2차 작전이 실패하면 3차 작전을 쓰는 겁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몇 차 작전 때에 나타날 것이냐? 맨 막차 작전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몇 차 작전인지 이야기 안 합니다. 맨 마지막 작전이 몇번째냐 하는 건 난 모르겠어요, 여러분이 알지. (웃음)

이렇게 볼 때, 나는 종교 지도자 하는 것이 나쁜 줄 알았는데 요즘에 와서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 실감이 나요. 종교 지도자는 못살고, 몰리고, 춥고, 억울하고, 분해도 하소연할 수 없는 사람, 그런 입장의 사람인줄 알았는데, 요즈음 세계를 가만히 보니까 이제는 걸고 잡아채면 걸려올 것 같습니다.

나는 낚시질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청평에서 잉어잡이를 하면 몇 관짜리를 잡습니다. 청평에서 제일 큰 잉어를 잡았어요. 1미터 10센티미터에 가까운 것을 잡았거든요. 이놈을 걸어 놓고 잡는 그 맛이 참 신나더구만. (웃음) 나는 지금 한국을 기지로 삼아 가지고 태평양 건너까지 실을 늘어뜨려서 미국을 잡는 생각을 한다구요. 줄아 끊어지지 말아라, 재주가 능해라 하거든. 걸고 잡아채면 빠져 나가지 않고 잡히게….

큰 잉어를 잡으려면 힘내기로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는 잉어 아가리가 찢어지든가 실이 끊어지든가 둘 중의 하나라구. 이놈이 얼마나 힘이 센지, 그거 잡는 데 한 시간 이상 걸렸구만. 그걸 가지고 어이샤 어이샤 하는 거예요. 소리는 점점 작지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끌어오는 거예요. 끌려가면 안 되지만 여이샤 여이샤 하며, 조금씩 흠출 하면 조금씩 끌려오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사람 눈앞에 왔다가 사람을 보고 '후다닥' 놀래서 들어갑니다, 그때 '아차차 왔구나'했다간 그건 놓친 고기라구요. 왔다가는 갈 줄 알아야 된다구.

통일교회에도 목사들이 왔다가 많이 가는 거예요. 가는 사람에게는 어서 가라, 어서 가라…(웃음) 잘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다가는 아무리 가봐야 기진맥진해져서 갈 수가 없거든요. 이렇게 몇 번만 한다면 그 다음에는 '아이쿠 모르겠다, 난 모르겠다. 해볼 만큼 다 해봤으니까 이제 잡아먹겠으면 잡아먹고 맘대로 해라' 하는 거예요. 다 해본 뒤에야 나가자 빠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통일교회에 대해서 반대를 다 해보라는 것입니다. 나더러 뭐 도깨비 왕초라고 하고, 나중에는 공산당, 국제적인 공산당이라고까지 몰아댔어요. 그것도 좋아. 나중에는 조총련 간부라는 이름까지 기성교회가 붙여 뒀구만. 그렇게 내가 미운가? 내가 얼굴을 봐도 그렇게 밉게는 생기지 않았는데…. (웃음)

이래 가지고 뭐 매국노니 뭐니 별의별, 할 짓 다 해보았다구요. 나중에는 벌거벗고 춤춘다고 뭐 어떻고, 한번 벌거벗고 춤추었으면 사실 얼마나 근사하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이제는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반대할 건더기가 없다구요. 맥빠졌다구요. 맥이 빠지다 보니, 그것이 여름이라면 또 자랄 수 있는데 가을이 되었더라 이거예요. 기울어질 때가 되었어요. 이제는 잎이고 뭐고 자기 스스로 물러날 때가 됐다구요.

이것을 내가 이야기했습니다. 통일교회 지도자들이 밥을 얻어먹었으니, 기성교회 목사들도 바가지 들고 밥을 얻어먹을 때가 되면 통일교회 시대가 온 줄 알라고. 지금 때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전에도 얘기했지만 수택리에서 목사 공청회를 했는데, 목사들이 닭다리를 훔쳐서 넣고 다녀요. 기가 막혔어요. (웃음) 우리 통일교회 패는 그렇게까지는 안 될 거라구요. 이것은 여담이지만….

성인의 아버지가 되겠다는 정신을

성인은 망상가입니다. 성인치고 정상적인 사람은 없습니다. 망상가입니다, 망상가. 이렇게 말하면 성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당시에 성인을 성인으로 알아준 사람이 있었어요? 망상가라고 했지요? 지나고 나니 '허 그랬구만, 그랬어. 그것이 맞구만' 이래 가지고 남아진 것이 지금까지 무슨 기독교니, 무슨 교리니, 성인 이름 떡 해 가지고 역사적으로 만들어 붙인 말이지. 당시에 성인이란 이름은 붙여 줄 수 있는 가치를 지녔지만 누가 그렇게 공인했어요?

보라구요. 이순신 장군은 성인이예요, 위인이예요? 「위인입니다」 성인은 못 되는 거라구요. 나도 대한민국 백성이라 그가 성인이 될 수 있다면 내가 먼저 성인의 레테르를 붙여 주고 싶은 거라구요. 그는 성인이 아니라 위인입니다. 성인은 적이 없습니다. 원수의 나라에서도 모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이 일본에서도 위인이겠어요? 일본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모가지를 잘라라 할 거예요. 참은 국경을 초월하는 거예요. 역사를 초월하는 거라구요. 시대 감정을 초월하는 거라구요.

성인은 어떤 분이냐? 세계주의자입니다, 여러분은 근본을 알아야 합니다. 성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덮어놓고, 주먹구구식으로 성인이다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인은 세계주의자예요. 민족주의자가 아닙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한 사람들이라구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성인이 될래요, 성인 아버지가 될래요?「성인 아버지요」 성인 아버지가 되겠다고 해서, 그거 실례가 아니라구요. 공자 아버지가 공자보다 훌륭해요, 훌륭하지 못해요?(웃음) 훌륭하지는 못했지만 공자를 교육했다구요. 공자가 성인이 될 때, 아버지가 '야! 이제 그만 하고, 죽을 자리를 찾아가지 말고, 소문에 말려드는 일 하지 말라'고할 때에, 공자가 아버지에게 '아버지는 일자무식이면서 감히 나에게 그런 것을 가르칠 수 있소?'라고 했겠어요? 공자는 아버지에게 '예이, 옳소이다' 했을 거라구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예. 옳소이다' 하는 것이 공자가 못나서 그러는 것이겠어요, 잘나서 그러는 것이겠어요? 「잘나서요」 통일교회도 그러고 싶다구요. 못나긴 못났지만 세상이 뭐라고 해도 가만히…. 못나긴 못났지만 잘나려고 한다구요.

그래. 성인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성인 아들이 되고 싶어요? 대답들 해보라구요. 웃지 말라구요. 이제는 그거 다 가려서 해야 된다구요. 성인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들이 되고 싶어요?「아버지 되고 싶습니다」왜? 왜 그러냐? 하늘에 가깝기 때문이예요. 알겠어요? 공자보다 위라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아버지이니까 위지요.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여러분은 자기보다도 나은 사람한테 지도받고 싶어요, 못한 사람한테 지도받고 싶어요「나은 사람한테요」나은 사람한테는 꼼짝 못하고 지도를 받는 거라구요. 그건 왜냐? 위이기 때문에, 하늘 앞에 가깝기 때문이예요. 이렇게 올라가게 되면, 최고의 높은 하늘이 있다 할진대 그분 앞에 지도를 받겠다고 하는 것이 인간한테는 당연지사입니다. 당연한 길이라구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성인들은 전부 다 뭐냐? 교주입니다. 이 사람들이 숭배하는 제일의 숭배자가 누구냐? 교주에게 숭배자가 있을 수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통일교회의 교주가 문선생이라는 사람인데 그 숭배자가 누구예요? 대한민국의 누구겠어요? 역사적인 무슨 공자겠어요? 내가 예수까지도 들어먹으려는 사람인데, 그 말을 듣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죽이겠다고 한다는데, 죽여 보라구요. 내가 거짓말 했나? 내가 거짓말을 했으면 그 죽이겠다고 한 사람들한테 벼락을 맞겠지만 내 말이 사실이면 그 사람들이 벼락을 맞는다구요. 예수보다 못해 가지고는 기독교 이상 만들어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자, 아들이 아버지를 대해 가지고 '아버지보다 내가 잘나야 되겠소' 아침이면 '아버지, 나는 아버지를 가르쳐 주고 싶소. 나는 아버지 선생이 될래'할 때 그 아들이 아무리 철모르는 국민학생이라 하더라도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아버지가 이놈의 자식, 네가 아버지의 선생이 돼? 그러겠어요? 그 말을 들으면 아버지의 웃음 보따리가 흔들흔들 할 거예요.

사람도 그런데,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아들이 인간이라면, 하나님 눈으로 볼 때 한줌밖에 안 되는 인간이 나와 가지고 '난 하나님보다 더 훌륭 해질래요'한다고 하나님이 '이 녀석아' 하고 들이치겠어요? 하나님은 '야!그 녀석, 거 쓸만하구나' 하며 구미가 당길 거라구요. 아주 뭐 희열이 만면해져 가지고 숨을 들이마실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하나님보다 훌륭하겠다는 것은 무엇이 훌륭하겠다는 거예요? 힘이 훌륭하겠다는 거예요? 난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사랑하는 데 있어서라구. 알겠어요?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도 나한테 못 미친다, 하나님도 나한테 꼼짝을 못 한다 하며 나타나게 되면 하나님은 어떻겠어요? 하나님이 사랑에 대한 취미가 있어요, 없어요? 취미는 문제도 안 됩니다. 그것이 아니면 안 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렇게 나오는 '아들이 있다면, '야! 요것 봐라, 밤에 자다가도 필요한 놈이구만' 이런다는 거라구요. 나중은 두말할것없이 자다가도 필요하다는 것은 뭐예요? 언제나 부모하고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입장이 된다는 겁니다.

천륜보다도 천정을 타겠다고 하는 무리가 되어야

교조들은 무엇을 하겠다는 패들이냐? 인륜을 타겠다는 패들이 아니라구요. 천륜을 타 보자는 패들이라구요. 천륜을 타기가 쉽겠어요? 국운을 타기도 힘이 드는데…. 대통령은 국운을 타야 될 수 있는 것인데, 천륜을 타게 되면 무엇이 되겠어요? 천륜을 타게 되면 세계 대통령이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천륜을 타는 데도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인륜이 있는가 하면 인정(人情)이 있는 것처럼. 그렇지요? 여러분은 무슨 말을 자꾸 벌여 놓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벌여 놓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구요. 여러분이 물건을 사려면 백화점에 갈래요, 조그만 잡화점에 갈래요? 백화점에 가야 된다구요. 그러니 벌여 놓는다고 나쁘게 생각지 말아요. 벌여 놓은 물건이 좋으면 되는 거라구요. (웃음)

여러분은 인륜만 타고 갈래요? 인륜 플러스 인정, 이것까지 타고 갈래요? 「인륜 플러스 인정…」 그러면 둘 중의 하나를 타고 가라면 인정을 타고 가겠어요, 인륜을 타고 가겠어요? 잘 생각해 보라구요. 인륜은 여러분의 생애 7,80년이 끝나 버리면 버리고 가는 것이지만 인정은 안 버려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상을 지니고 있었으면 안 버려지고, 자식이 부모의 심정을 따라서 부모가 바라는 소원, 그 목적을 향해 가는 길은 안 버려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륜길은 버리고 갈 수 있어도 인정길은 안 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륜길 가운데 종교를 믿을래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래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천륜의 길을 갈래요, 천정(天情)의 길을 갈래요? 어느 길을 갈래요?「천정의 길을…」 도인들 중에 누가 상도인(上道人)이냐? 성인들 중에 누가 상성인(上聖人)이냐 할 때, 대번에 나오는 것입니다. 누구냐?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예수를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상성인은 예수입니다. 예수는 말을 참 잘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인정을 계열적으로 볼 때, 뿌리를 찾아들어가서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이것 가지고도 부족해서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독생자다'라고 하였습니다. 독생자는 독차지 사랑하겠다는 거예요. 변두리 사랑하겠다는 거예요? 이 한 마디가 인간 세계에 있어서 지극히 귀한 말입니다.

또 그 다음에 인간들 대해 가지고, 믿는 신도들 대해 가지고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 이거 참 천정을 정통으로 때린 거예요. 그 핵을 잡는데 첫번째는 하나님의 핵심을 잡았고, 두번째는 인간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인정을 대표해서는 제일 골자를 들어 맞춘 것입니다.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 그 신랑 신부의 사랑은 인간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이것입니다.

앞에서 인간의 사랑을 말할 때, 부모의 사랑을 말했지요? 부모의 사랑이란 부부의 사랑 가운데서 자식이 태어날 때 나오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부부의 사랑보다 강하다고 하였습니다. 부부의 사랑보다 강하게 자식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왔느냐 할 때, 인간을 뿌리로 해 가지고는 해결 방안이 없기 때문에 예수는 하나님을 들이댄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주체적인 사랑을 가진 하나의 남성으로서 하나의 여성을 대할 수 있는 기준을 결정지은 것입니다. 이것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하는 말이 '나는 너희들의 스승이라' 하지 아니하고,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너희들의 형제라' 했습니다. 그것은 심정적 골수를 찾아들어간 것입니다. (녹음 불량으로 중략)

통일교회 문선생은 앉아 가지고 다 찾아냈습니다, 기독교는 세계적 종교의 대표입니다. 이런 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서 최후에 문화의 세계를 창건하고, 문화의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실질적 기반을 만들지 않는 한 하나님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이런 여건을 책임지고, 이런 운세를 가려 나온 것이며 끝날에 인간 앞에 있어서의 하나의 메시아 사상을 남겨 놓은 것이 아니냐?

그 메시아는 어떠해야 되느냐? 천정을 가지고 오는 부모가 되어야 되고, 천정을 가지고 오는 남편이 되어야 되고, 천정을 가지고 오는 아들딸이 되어야 됩니다. 그 자리만큼은 천륜을 타는 것이 아니라 천정을 타는 것입니다.

가정을 갖고 사랑해 보지 못한 예수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반대하겠으면 하라는 거예요. 그래도 나는 천정을 탈 수 있는 길을 갑니다. 천정을 타는 데는 그냥 타지 못합니다. 반드시 반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비례적인 반대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가는 거예요. 나라가 반대하고, 세계가 반대하고, 세계뿐만 아니라 천륜을 타고 가는 종교인까지 반대하라 이거예 요. 여기에서 반대하는 사람들과 실력 대결을 하여 남아져서 '그 아들 쓸만하다'고 공인을 받자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겠다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상입니다. 이제 알겠어요? 여기 우리 통일교회 패들, 확실히 알겠어요?

공자는 하늘을 가르치면서 '위선자는 천보지이복(爲善者 天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는 천보지이화(爲不善者 天報之以禍)니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천(天)이 무엇이예요? 막연합니다. 불교도 보게 되면, 하늘인지 사람인지 왔다갔다해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회회교는 기독교를 빼앗은 종교입니다. 이렇게 가려 볼 때,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밖에 없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잘난 것으로 결론이 났지요? 내가 잘났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잘났다는 거예요. 자, 또 가요. 또 가자요. 나도 힘들다구요. 어제 일본 지구장들이 왔기 때문에 약 열두어 시간 동안 얘기를 했어요. 이들의 정신을 전부 다 쇄신해 놓은 거라구요.

예수님은 훌륭합니다. 그러면 예수님하고 무엇이 될래요? 예수하고 사돈을 삼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훌륭한 줄 알았는데 그냥 가겠어요? 그냥 가려면 여기 오지 말라구요. 촌수(寸數)를 따지자는 거라구요. 그래, 통일교회는 몇 촌이 될 거예요? 일촌(一寸)이 될 거예요, 상촌(上寸)이될 거예요? 상촌이란 말은 없지만, 일촌보다 앞선 것을 상촌이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예수가 '나는 독생자다. 나는 신랑이다' 했는데, 그 말은 좋지만 그것을 실천했느냐고 묻게 되면 예수가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내가 알고 들이대는 거라구요. '예수님, 당신이 그런 말은 했지만 실천을 했소? 할 때, 예수님은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는 거라구요. 이렇게 될 때는 예수님도 말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나도 옛날에는 예수님이 훌륭하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레를 들이대고 한번 눌러 보니까 들썩들썩하는 거예요. 이런 말, 기분 나쁘지요? 특히 목사들, 정말로 기분 나쁘지요? 기분 나빠도 할수없다구요. 사실을 가려내 가지고 말하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이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계속 '자,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받아 보았소? 하며 최고의 사랑을 받아 보았느냐고 들이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보았다 하면 여기에서 더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면 당신은 아들로서 천상 천하에 있어서 완성된 사랑의 주인공이 되었소? 하나님이 절대적 사랑의 주인공이라면 당신은 그 사랑을 받는 절대적 대상자가 되었소?'라고 물으면 '예'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된다구요.

그 다음에 '사랑은 혼자서는 안 되는 것이니, 가정에 있어서의 상대적 인연을 중심삼고 남자로서 아내와 같은 입장에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가정적 기반을 가져 보았소'라고 물으면 못 가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신랑으로서 다시 신부를 찾아오겠다고 한 것입니다.

또, '아들딸을 사랑할 수 있는 당신이 되어 보았소? 하고 묻는 겁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노릇을 해봤어요? 못 해보았지요. 그렇잖아요? 아버지 로서의 사랑을 못 했으니, 천정을 완전히 이어받을 수 있는 입장에 못선 거예요. 또, 할아버지로서 손자를 사랑해 봤어요? 족장으로서 그 씨족을 사랑해 봤어요? 또 한 나라의 대표자로서 백성을 사랑해 봤어요? 세계 인류의 메시아로서, 구세주로서, 만왕의 왕으로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도록 세계 인류를 몽땅 사랑해 봤어요? 사랑하려고만 했지, 사랑해 보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이 땅에서 못한 사랑을 내가 가정을 중심삼고 한다면 찬성이요, 반대요?' 할 때 반대라고 하면 졸라매는 거라구요. 그때에는 '예수가 뭐야?' 사정없이 따지는 거예요. 그렇게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독한 사람이라구요. 이렇게 정통으로 들이대거든요. '당신이 주도하고 싶었던 이스라엘의 민족, 유대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4천년 동안 준비했던 그 터전이 당신 앞에 반기를 들지 않았소? 나라를 찾기 위해 왔고, 교회를 찾기 위해 왔지만 당신은 나라를 잃어버리고 교회를 잃어버리지 않았소?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몰려 가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지 않았소?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의 소원이요?'라고 묻는 거라구요. 그러면 딱 걸려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예수님에게는 안 됐지만, 사실이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혁신해야 됩니다. 기독교 개혁 운동의 동기가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는 일반 기독교와 다릅니다. 그렇다고 통일교회를 다 믿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예요. 기성교회를 믿겠으면 믿어 보라구요.

천정을 기다리기보다 실천해야

선생님은 세계에서 제일 허무맹랑한 망상 대왕 같지요? 그것이 통일교회의 문교주라는 것입니다. 내가 성인이라는 사람들 다 대해 보아도 나한테 다 걸려 넘어가더라구요. 불교 믿는 사람, 불교의 석가모니도 요즈음 통일교회 전도하느라고 야단이라구요. 거 도깨비 같은 말이지만 거짓말이 아닌 사실이예요. 지금 불교 신자 가운데도 통일교회 교인들이 많습니다. 알겠어요? 기독교인 가운데도 통일교인이 많습니다. 본부는 시시해 보이고 몇몇 사람밖에 안 되지만….

이렇게 볼 때, 세계에서 허무맹랑한 패들이 무슨 패냐? 천운을 타겠다는 패입니다. 기독교는 무슨 패냐? 천정을 타겠다는 패입니다. 천정을 타겠다고 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천정을 타는데 있어서, 천정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천정을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 가지고 편하게 살자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천국을 만들자는 패들입니다. 한 단계 앞서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기독교는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수습 안 되면 망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신념입니다. 신념만이 아니라 하늘의 결정적인 명령으로 알고 있다구요.

자, 통일 방안은 사랑이라 했으니 그런 의미에서 다시 돌아가서, 이제는 종교까지 전부 다 올라왔으니 진짜 아들을 완전히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 영원하고 유일하고 절대적인 그 사랑이 지상의 인간을 통해서 나오게 하느냐 못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술을 다 먹고 나서는 무엇이 벌어져요? 더 먹겠다고 껄떡껄떡해요? 취해서 돌아가는 거라구요. 취해 돌아가는 것이 나쁜 것이요, 좋은 것이요? 술 취해서 돌아가는 것이 좋아요?(웃음) 술 취하면 좋기는 좋겠지. 그러나 술 취해서 나쁜 일 하기 때문에 나쁜 거지요. 만약 술 취해 가지고 춤을 추고 돌아가서 좋은 일 하면?「좋습니다」 그렇다면 술 먹으라고 하겠어요, 먹지 말라고 하겠어요? 먹으라고 그러겠지요? 그렇게 되면 술장사가 세계에서 제일 부자가 될 거라구요. (웃음)

하나님이 그런 아들딸을 가져서 집안에 들어가도 몽땅 내 사랑이라고 ….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되겠지만 이래야 실감이 날 테니 할 수 없습니다. 밖에 나가서 생각을 해도 몽땅 내 사랑, 일하는 것도 몽땅 내 사랑, 가고 오고 건드리고 만나고 부딪치고 하는 일체를 그와 더불어 하고, 그를 빛내는 영광에 동참할 수 있는 여건에 내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는 불행한 자리요, 행복한 자리요?

보라구요. 어떤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계를 사다 주기 위해 백화점을 향해서 복잡한 명동 거리를 척 스치고 지나간다고 할 때, 바쁘겠어요, 안 바쁘겠어요? 바쁘겠지요? 바쁘게 가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이 '저 녀석. 미친 녀석' 그래도 내가 바쁘면 할 수 없습니다. 동료를 봤는데도, '야! 비켜라, 너하고 인사할 시간도 없다' 하면, 그 동료가 '저놈의 자식, 왜 저래' 이럴 것입니다.

또 어머니 아버지가 가로막으면, '어머니 아버지 비키시오. 나 모르겠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계를 사 주기 위해 가는 걸음에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 정면으로 충돌한 그 자리에서도, 그저 허리를 꾸부려 도망해 가지고 시계를 사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대여?' 하면서 사다 주면 '이것을 어떻게 사 왔어?'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아! 말 마시오. 사랑하는 몇십 년 친구를 만나 뿌리칠 수 없는데도 딱 뿌리치고, 또 어머니 아버지를 만났는데도 모른 척하고 도망쳐 나왔다'고 할 때, 그 색시가 '아유 기분 나빠! 어디 그런 사람이 있어요' 그러겠어요? 사랑이라는 것을 들고 나올 때 그런 것은 무사통과라구요.

이런 것을 보면 인륜도 정서적 분야에 있어서는 그 권한을 들고 나올 수 없는 내용이 아니더냐.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부모도 몰라봤다, 친구도 몰라봤다' 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할 때, 그런 사연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이고 고마워요, 고마워요' 아가씨들은 그런다구요. 아시겠어요? 그런 것이 좋아요, 뻣뻣해 가지고 가다가 아는 사람 만나면, '여보 여보' 불러 가지고 이야기하고, 또 얼굴이 번번하다고 만나서 이야기하는 그런 것이 좋아요? 어떤 것이 좋아요? 여기 있는 아가씨들 한번 얘기해 봐요. 첫번이예요, 나중이예요? 첫번이야? 너도 그렇구만. 이것을 볼 때에 정서적인 문제는 인륜의 법도, 인륜의 도덕관념을 긋고 넘어가더라도 통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없다?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효자

효자가 있다 합시다. 이 효자는 아버지가 일어나서 '야, 아무개야' 하기 전에 '예' 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어디 나무랄 데가 없는 효자예요. 효자는 부모의 말을 절대적으로 지켜야지요? 부모의 말을 절대적으로 지켜야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루는 그 어머니 아버지가 '아무개야, 네가 수고를 많이 했으니 우리가 너한테 주려고 특별히 생각하고 준비한 바가 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너에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옷을 해주고 싶어서 지금까지 20년간을 한 푼 두 푼 돈을 모았다. 정성이 지극한 네 효성에 보답하는 것이니 받아라. 오늘 기분 좋게 좋은 양복에 금반지에 금시계에 전부 사라' 하면서 몇백만 원을 주었다고 합시다. 그러고서 부모가 하는 말이 '이것들을 절대로 누구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부모의 말을 잘 들어라. 절대 주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효자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옷을 해서 쓱 입고 나서니 기분이 아주 좋았을 것입니다. 기분이 좋았는데, 자기만 좋아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 효자가 맏아들이건 작은아들이건 그건 상관없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형님과 동생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내가 입는 것보다 형님에게 주고 싶다, 동생에게 주고 싶다' 이런 마음이 우러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부모가 아무에게도 주지 말라고 했지만 주고 싶어서 '에라 모르겠다' 해 가지고 양복은 형님을 주고, 금반지는 동생에게 주고 이렇게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한테 말도 안 하고 자기 마음대로 다 나누어 주었어요.

그런데 부모가 얼마 후에 가만히 보니까 효자가 새옷을 입고 다니는것 같지가 않고 시계나 반지도 가진 것 같지가 않아요. 그래서 '야, 요전에 내가 그렇게 당부를 하고 옷을 해주었는데, 요즘에 입고 다니는 것이 왜 안 보이지? 할 때, 그 효자가 '예, 그렇게 줬어요'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야! 너 왜 그래?', '사실은 아버지 어머니께 미안해요' '왜 그래, 왜 그래?', '그건 말 못 하겠습니다' 하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도 없이 쓱 나가 버렸다고 합시다.

자, 그러면 부모가 묻고 있는데 아무 말도 없이 나가 버렸다면, 그 아들이 불효자겠어요, 효자겠어요?「불효자입니다」 우리 아줌마, 그 아들이 효자예요. 불효자예요? 그것은 대답대로 하자면 불효자지요. 나중에 어머니 아버지가 기분이 나빠서 그를 불러 놓고 '내가 십년을 두고 효자라고 너를 형제들 앞에 자랑을 했는데, 오늘 이렇게 불효하는 법이 어디 있는냐? 이 불효막심한 녀석아' 하며 한탄을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너, 이녀석. 내가 모를 줄 알고 그랬느냐' 할 때 효자의 한마디의 반대는 불효자식 백 마디 반대한 것보다 더 억울한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거 이해하지요?

이렇게 아들딸을 모아 놓고 한탄을 하니 그의 형님과 동생이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 형제들이 생각을 해 보니까 결국은 자기들 때문에 저 동생이, 저 형님이 저렇게 된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 부모가 '야! 너희들, 왜 우니? 하고 물어 볼 때, '대답 못 하겠어요' 하며 전부 다 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자식이란 녀석들은 전부 훌쩍훌쩍 울면서 다 나가 버리고 난 후, 철없는 조그만 막내 딸만 남았어요. 그 딸이 눈치를 보며 '어머니 아버지 왜 그래요? 하고 물어 보면 그 부모는 할 수 없이 철없는 어린 딸에게 '세상에 이럴 수 있느냐? 내가 이렇게 이렇게 정성껏 옷을 해주고, 그렇게 당부를 했는데 그 자식이 이럴 수 있느냐'고 한탄을 하는 거예요. 그 딸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하는 말이 '어머니 아버지, 그것을 딴 사람에게 준 줄 알아요? 아무개 오빠에게 주었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때 그 말을 듣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어요? 위로만 받겠어요? 화가 노발 대발 나겠어요, 안 나겠어요? '뭐야 그게 정말이 야?','정말이고 말구요' 그래 아무개 아들을 불러다가 '아무개 동생 말들으니 그랬다고 하는데 정말이냐? 물으니 '예, 그 말이 맞습니다' 이러거든요. 그때, 어머니 아버지는 목을 놓고 통곡하는 일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내 아들아! 장한 아들이다' 그러니 어머니 아버지의 말을 안 듣기를 잘했지요?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부모가 눈물을 흘리며 '이놈의 자식아! 그랬으면 내 말을 듣고 설명해 주든지 하지' 그러겠어요? '내 말안 듣기를 참 잘했구나?' 이런 아들 둔 것이 불행해요, 행복해요? 어때요? 그 부모가 행복하다고 하겠어요, 불행하다고 하겠어요?「행복하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정서적인 사랑이란 말은 인륜 도덕 관념을 초월한다, 그 말 틀림없지요? 세계 통일의 요인이 어디에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사랑에 있다는 말은 틀림없습니다.

통일의 방안은 사랑에서

그러면 여기에서부터 결론을 지읍시다. 앞에서 말하기를, 세계 통일 방안은 어떤 주체를 중심삼아 가지고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상대적 세계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에서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됩니다. 나 자신을 가만히 생각해 볼 때, 나에게는 마음의 사람과 몸의 사람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우리 목사님, 목사님 정도 되면 몸과 마음이 싸움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때요? 「싸움합니다」 싸움해요? 목사님도 할수없다구요. 싸움은 좀 해야지요?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어떠냐? 나도 싸움을 하려고 합니다. 그 대신 꼭대기에서 침을 놓지요. 마취 주사를 놓을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놈아? 할때는 쓱 한번 침을 놓는 거라구요. 이때 눈을 까박까박하면 안 되지요? 두들겨 가지고 데려갈 수 있는 방법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에게 그 마취약을 제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좋겠지요?

그러니까 여기에 있어서 이 싸우는 마음과 몸을 어떻게 통일시키느냐, 무엇을 가지고 통일시키느냐가 문제입니다. 약을 먹여 가지고 되겠어요? 안 된다 이겁니다. 둘이 한꺼번에 좋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사랑이라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둘이 한꺼번에 좋아하는 것, 마음도 좋아하고 몸도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걸 생각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무엇이냐?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잘 생각해 보라구요. 냉정히 생각해 보라구요.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자리를 딱 점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마음을 몽땅 점령받고 싶어요, 안 받고 싶어요? 우리 총각들은 모를 겁니다. 우리 아저씨들, 사랑을 할수록 마음을 몽땅 점령받고 싶어요, 안 받고 싶어요? 사랑하는 아내를 보고 '당신을 마음으로는 사랑하지 않소' 한다면 기분 나빠하지 않겠어요? 그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마음에 꽉차게 나를 점령해 달라는 말이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것은 사랑을 하는 만큼 내 마음을 점령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점령하면 어떻게 되느냐? 마음을 점령하면 몸은 쫓아 버리는 것이다, 그래요? 사람의 마음을 점령하게 되면 몸은 꺼떡꺼떡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이런 점에서 볼 때, 통일의 방안은 어디에 있느냐? 사랑에 있습니다. 보다 높게 사랑할 수 있는 길,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은 인간 세상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의 어떠한 성인들이 바라던 천정(天情)의 기준 이상의 사랑을 인간과 결합시킬 수 있고, 접촉시킬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여기서 통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악한 세상에도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개인을 뿌려 가지고 자꾸 큰 것이 세계입니다. 몸의 사람이 열매맺힌 것이 유물사관, 즉 공산주의요, 마음의 사람이 열매맺힌 것이 유심사관이예요. 그러면 몸뚱이 주의는 무엇을 가지고 세계를 요리하려는 주의냐? 빵을 가지고 세계를 요리하자는 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의 세계 강화와 발전적 원동력은 배급제도입니다, 반동분자를 숙청하는 데있어서는 배급을 주지 않거나 양을 감소시킵니다. 빵을 중심삼은 흡수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거예요.

그러면 유심세계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사랑을 모체로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통일시키려고 하느냐? 빵이 아닙니다. 빵을 중심삼게 되면 강압이 벌어집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보다 높은 사랑을 갖게 될 때는 통일이 되려고 한다 이겁니다.

공석에서 이런 얘기는 실례되는 이야기지만 해봅시다. 어떤 총각과 처녀가 서로 눈이 맞았습니다. 그 남자는 아주 반할 만큼 잘난 사람이었어요. 둘은 사생결단하는 사이가 되어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하는 것을 다 차 버리고 맺어져 가지고 재미있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에 이웃 동네에 난생 처음 보는, 꿈 가운데서나 그리워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남자가 떡 나타났습니다. 그는 말하는 것으로 보나, 천품으로 보나, 그 모든 자세로 보나, 이 모든 것들이 지금까지 자기와 살던 남편과 비교해 볼 때, 남편은 꼴뚜기 같고 그 남자는 용같이 보이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비할 바가 아니라구요.

길을 가다가 만나면 인사를 하는데도 그 무엇인지 모르게 지금까지 남편에게서 풍기는 이미지보다 더 매력적이라는 거예요. 또 그 사람이 본체만체하면 모르나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래저래 대해 보니까 그 모습에서 풍기는 순수성이라든가 자기를 대해 가지고 생각하는 데에 있어서 이건 뭐 자기 남편은 옆에도 못 간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결국 더 높은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하면, 그 여자는 살랑살랑 마음이 꼬리를 저으면서 방향이 돌아간다는 거예요. 그 말이 맞소, 안 맞소? 더 높으면 이 지남철이 통째로 끌려가요, 안 끌려가요? 안 끌려가겠다면 후다닥 옆으로 가 달라붙습니다. 그런 거예요. 더 강한 사랑은 약한 사랑을 소화 융합시키는 작용을 하는 거예요. 그것은 상충 융합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그런 작용이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는 것인지, 맞지 않는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사랑은 누구나 다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

사랑의 본질은 무엇이냐? 남을 위하려는 것입니다. 자기의 자주적인 본질을 중심삼아 가지고 남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그 사랑은 어디에서 왔느냐? 하늘에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 사랑의 주체이기 때문에 주려고 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이렇게 볼 때, 부모의 사랑이 그 본질에 제일 가까운 자리에 있기 때문에 자식을 대해서 항상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자식이 받지 않더라도, 아무리 불한당 같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부모가 옛날에 사랑했던 것보다 더 큰 사랑을 갖고 나타나서 사랑을 하게 되면 회개하고 돌아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이놈의 자식아, 내가 너를 이만큼 사랑했는데, 과부의 몸으로서 너를 늙도록 허리가 굴어가면서 사랑했는데 그 사랑을 몰라? 이 망할 자식아?' 하며 담뱃대로 이마를 때린다 할 때, 세 번만 그렇게 하면 그 자식은 보따리를 쌀 것입니다.

부모가 눈물을 흘리며 '내 사랑이 부족하여서 그렇다. 모든 것은 내가 너를 더 사랑하지 못한 탓이다' 하면서, 그 자식의 뼛골이 녹아나도록 눈물을 흘리면서 더 큰 사랑을 가지고 자식 앞에 나서게 될 때에, 그 자식이 어떻게 돼요? 돌아서요, 안 돌아서요? 돌아서는 것입니다. 더 큰사랑은 약한 사랑을 전부 다 소화, 통합시킬 수 있는 주동성이 없는 것이다, 있는 것이다?「있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세상은 어떠한 세상이냐? 타락한 세상이다. 통일교회 원리의 타락론이 그래서 위대하다는 거예요. 이것은 어디나 다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주해 가지고 출발한 것이 타락의 역사입니다. 천사장이 하나님을 주체로 삼아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주체로 생각하고, 자기 위주의 행동을 함으로 말미암아 타락이 벌어진 것입니다. 남의 환경을 무시해 버리고 자아를 중심삼은 관념을 강조한 데서 타락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이 뿌려졌기 때문에, 그렇게 뒤떨어진 우리 선조로부터 나온 우리 자체들은 오늘날 어떠한 사람들이 되었느냐? 내가 성공하고, 내가 출세하고, 내가 좋기 위해서 제삼자를 유린해 버리고, 제삼자를 희생시켜 버리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가 되어 가지고 세계에서 싸우다 보니 두 패가 남았다는 거예요. 이 두 패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앞을 다투어 싸우는 입장이었으면, 천년 만년 싸우더라도 그것은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가 밟기 위해서 싸우는 싸움이 계속되는 한 두 패가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여기에 이의 있어요, 없어요? 망하기 마련이예요, 아니예요? 망하기 마련입니다.

오늘날의 역사적 방향이 틀렸다! 이 역사의 방향을 뒤져 가지고 새로운 세계 역사의 방향을 제시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럴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개인이 희생하더라도 가정이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고, 가정이 희생하더라도 종족이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고, 종족이 희생하더라도 민족이 올바를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고, 민족이 희생하더라도 세계가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는 사상입니다. 초민족적이요, 세계적인 사상 관념을 가지고 자기의 가정에서부터 민족까지 전부 다 희생시키는 민족이 있다 할진대, 그 민족에게 현재는 나라가 없다 하더라도, 그 민족이 국가 형태를 갖추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20세기 혹은 30세기. 금후에 이상세계를 바라는 인간세계 앞에서 그 민족이 지닌 사상이 아니고는 세계가 살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 한때가 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 없는 백성이 되더라도 그러한 사상을 주장하고 나가야 되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는 나라도 없고, 땅 위에 기반도 없었지만, 종교인들은 그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과정에서 희생을 하면서 그 길을 당연히 가야 할 길로 알고 나왔습니다. 날아오는 화살과 다가오는 시련 보따리를 도피하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정면에서 맞으면서 나왔습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갈리는 자리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찾아 가야 할 천운의 도리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는 종교인들이 오늘날 세계의 문화권을 수습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단 한 가지 통일의 요인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통일의 방안은 무엇이냐? 역사의 방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됩니다. 그 방향이 무엇이냐? 지금까지의 사조는 자기의 출세를 위해서 제삼자의 환경을 무시하고, 또 상대방을 희생시켜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로 말미암아 오늘날 말단 세계적인 정세권을 이루어 놓은 민주세계와 공산세계, 이 실정을 오늘날 우리는 신앙생활의 경험을 통해서 이미 포기해 버릴 수 있는 정상에 도달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미국을 중심삼고 볼 때, 미국이 2차 대전 이후에 민주세계를 주도하기 위해서 세계를 위한 사상을 들고 나설 때는 세계 인류 앞에 중심국가로서 흠모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이 닉슨 행정부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느 한 정치 역사를 보든가 국가 역사를 보든가, 자국을 희생하여 제삼국을 도와주어서 남아진 국가가 없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이래 가지고는 안 되겠다고 돌아섬으로 말미암아 미국 자체는 세계를 잃어버렸습니다. 미국이 민족주의 관념에 사로잡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세계를 잃어버린 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하늘은 미국에서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민족을 초월하는 사상과 이념을 가지고 세계를 주도하는 것이 천운의 방향이요, 인륜이 바라는 이상입니다. 그러기에 국가 민족이라는 관념이 너무 강한 민족, 이 담을 헐지 못하는 민족은 안 되는 것입니다.

남의 성공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라

오늘날 공산주의를 보면 슬라브 민족을 위주한 세계 공산권 제패를 꿈꾸고 있는데, 여기에 일보의 양보도 할 수 없다 이겁니다. 만일에 중공이 커져서 공산국을 침범하고 나설 때. 지금까지 공산주의의 주체적 입장에 있는 소련이 양보할 수 없다 하게 되면, 다시 말하면 민족적 감정을 초월하지 못한, 국가적인 관념을 초월하지 못한 사상적 개념을 가진 터전 위에서는 세계를 향한 주도적인 주체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운이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러한 역사적 실정을 다 경험한, 파탄적인 행로를 걷고 있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에 흥미를 두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들이 왜 지금까지 후퇴의 일로를 걸었느냐? 민족 관념과 국가 관념을 초월하지 못한 사상적인 배경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삼자를 이용하고. 희생시켜서 자기들의 출세와 성공을 바랐던 것입니다. 이런 관념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 부딪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대안을 제시하자는 것이냐? 반대의 대안을 제시하자는 것입니다.

현 미국을 대해서 '미국! 너 금후의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자신이 있느냐?' 묻게 될 때, 이것은 모릅니다. 모르는 거라구요. 또, 소련이면 소련의 공산주의의 유물사관 경제체제를 중심삼고 세계 제패가 가능하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오늘날의 시대는 오토메이션시대입니다. 노동력을 중심삼고 논리적인 체계를 정립, 전개했던 자본론은 근본적으론 파탄될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을 가지고는 자기들의 이상향을 실현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실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소련은 민주세계의 경제체제를 닮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에, 세계를 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안이 어디에 있느냐? 실패를 거듭하였던 역사적인 방향성을 전환시켜야 됩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 대안이 무엇이냐? 제삼자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삼자를 위해서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방향이 다르다는 겁니다. 역사적인 방향을 전환시키는 날에는 악하다고 하는 이 세상이 본질적으로 다른 결과의 세계를 추구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세계가 끝날을 맞이하도록 그 역사적인 방향을 전환시킬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라는 것입니다. 그 대안이 무엇이냐? 제삼자의 성공을 위해서 나자신이 희생하는 것입니다. 간단해요.

열 명의 친구가 있으면 그 열 친구를 위해서 한 친구가 밤이나 낮이나 희생을 하고, 사랑하기에 자기 일신을 돌보지 않는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그 열 친구들에게 자기에게로 오지 말라고 해도 따라오려고 할 것입니다. 갈라지려 하면 더욱 달라붙으려고 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열 친구 가운데서 '너는 나 때문에 있고, 네 것은 내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이다'라고 하는 공산당식으로 나오는 친구가 있으면, 열 친구가 다섯 친구로 줄어들고 나중에는 여편네까지 보따리를 싸 가지고 도망가는 일이 벌어질 거예요. 그렇지요?

망합니다. 왜 망하느냐? 많았던 것이 자꾸 떨어져 나가니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흥하는 것은 왜 흥하느냐? 하나밖에 없는 것이 자꾸 많아지니까 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친구들이 자기 어머니 아버지, 혹은 친척이나 동네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나에게는 제일 ,좋은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내가 죽어야 할 자리가 있으면 대신 죽어 줄 수 있다'라고 선전하고 다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동네에까지도 그의 이념이 확산되어 '이리 가라' 이렇게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써, 그 배후의 기반을 다시 움직여 가지고 끌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가 망하게 되고, 세계가 악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냐? 악이 무엇이냐?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제삼자를 희생시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것이 악입니다. 선은 무엇이냐? 자기가 희생되어 가지고 제삼자의 이익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 선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떻게 할 것이냐? 통일교회에서 전도할 때 통일교회를 위해서, 문선생을 위해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선생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문선생을 사랑하기 전에 세계인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관이 딱 짜여져 있습니다. 그 사랑을 하고 나서 문선생을 사랑하면 그 사랑은 정당한 사랑입니다. 하늘을 배반한 자리에서 문선생을 사랑하지 말라는 거예요. 문선생이 안 되었으면 시정해야 됩니다. 국민이, 혹은 인류가 시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방향성을 바꿀 수 있는 대안은 사랑을 근거로 해서 희생하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가 세계에 없는 최고의 사랑을 코치를 했고, 또 그것을 실천하는 데에 있어서 세계 만민을 대표하여 생명을 바쳐 가며, 인간으로서 넘을 수 없는 어려운 입장에서,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아버지의 뜻이란 무엇이냐? 이스라엘 민족보다도, 세계 만민을 구하기 위한 것이 예수를 보낸 뜻이 아니겠어요? 이스라엘 나라를 희생시키고 이스라엘의 주도적인 책임자로 보낸 예수를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통일교회 문선생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는 못 버린다 그거예요. 통일교회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는 못 버린다, 대한민국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는 못 버린다, 하나님은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들은 그걸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적인 인륜을 수습해 나온 것입니다. 그 목적은 무엇이냐? 어느 한때에 이런 실천기반을 세계화시켜야 되겠기 때문에 성인이 간 길은 희생의 길이었습니다. 주체적인 성인이 간 길은 희생의 길, 그 길을 밟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위인들은 그가 죽을 때면 가슴을 치는 국민이면 그 국민 중에 동지가 있었지만, 성인들이 가는 길은 동지는 물론이요, 집안의 아버지 어머니도 몰랐고, 사랑하는 친구도 몰랐고, 백성도 몰랐고, 국왕도 몰랐습니다. 전부 다 목을 자르려 했고, 추방하기 일쑤가 아니었느냐? 이는 전체를 고이 희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숭고한 사상 밑에서 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 역사는 수습되어야 됩니다. 그런 종교 문화권이 오늘날 역사를 빛낸다는 사실은, 이것은 문화사적인 실정이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계를 사랑하기에 미치자

우리는 미쳐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를 믿기 위해서 미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내가 원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 때문에 미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있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찾지 못하면 세계와 다리를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로 가는 길을 위해서, 찾아가는 그 길 앞에 정성을 다 들여야 됩니다.

성경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 말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목숨을 내놓으라는 거예요. 목숨을 내놓고 무엇을 하라는 것이냐?

죽기만 하라는 것이냐? 정성을 들이라는 거예요. 목숨을 내놓고 정성들이는 사람이 가는 길이 미치광이 길이지 별거 있어요? 아들이 죽을 판에 들어 있는 것을 알고 살려주기 위해 가는 부모의 걸음이 미치광이의 걸음이지 별거 있어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기에 미쳐라! 하나님을 위해서 미쳐라! 똑똑히 미쳐라!

통일교회는 개인을 복귀하고는 가정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것이요,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가정은 나머지 종족 앞에 족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 종족이 민족을 위해서 희생을 하면 시일의 차이는 있을는지 모르지만, 민족의 주도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 민족이 주권을 위해서 희생하게 되면 그 주권은 민족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 민족이 일개 국가를 중심삼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중심삼고 가는 길, 민족을 희생시켜서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추구하는 방향이 있거들랑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시대와, 새로운 천국 통일의 내용을 중심삼은 세계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냐?

이러한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교회는 말없이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변명할 수 있는 재료는 얼마든지 있어요. 내가 말로는 누구한테 지지 않고 이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구요. 성격으로 한다면 한 시간도 참을 수 없는 성질이지만, 골수로 가는 것이 천도의 길이요, 천정의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남을 치기 전에 내 죄로서 이어받자, 그를 저주하기 전에 복을 빌어 주어야 될 것이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통일교회는 명실공히 유명해졌습니다.

모든 민족이 통일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을 볼 때 놀랬다

우리의 길은 딱 정해져 있습니다.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희생이 나쁜 것이냐? 희생을 하고 보면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철칙이라구요. 희생하는 사람은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중심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심자가 되어 타인으로부터 주관해 주기를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의에 의해서 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주관성을 요구받게 된다는 거예요. 여기서 피지배자와 지배자의 평등적이요, 자주적인 권한이 자연적인 원칙 하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정치철학에 있어서 최고의 난문제가 피지배자와 지배자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사상은 무엇을 코치하느냐? 오늘날 사망권으로 흘러 떨어지는 이 역사의 방향을 가로막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자, 통일 방안을 제시하자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눈물 흘리고 피땀 흘리는 데에 있어서는 둘째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밥을 안 먹고 굶주리면서도, 혹은 여름에 개밥을 먹어 가면서도 나라를 살리기 위하여 애국애족을 하자,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때와 환경이 갖추어져 있으니 우리가 크게 되면 자연히 나쁜 것은 전부 다 없어지게 될 것이다, 이래 가지고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앞으로에 있어서의 통일사관은 무엇이냐? 대한민국의 삼천만 민족이 이 사상과 더불어 하나되어 가지고, 세계를 위하여 고이 희생할 수 있는 깃발을 들고, 만국이 거기에 동조할 수 있는 무드를 조성하게 될 때는 만국은 이리 오지 말라고 해도 오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요즈음 한 40일 동안에 일본 사람들 8백 명을 교육시키고 있지만 그들을 대해서 내가 놀란 것은…. 옛날에는 내가 있는 칠을 다해 가지고 올무를 만들어 한꺼번에 걸어 넘기려 하던 사람들이 일본 놈들이라구요. 나는 그 나라의 관원들에게 모진 고문을 받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데 누구보다 더 눈물을 흘렸고, 누구보다 지하에서 투쟁한 사람이라구요. 그 원수의 후손들을…. 칼을 다시 뽑아 선서를 하며, 역사야 현재야 미래야, 이 민족은 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심판을 해야겠다고 통고하고 싶은 그런 민족이지만, 그런 모색 방안을 가지고는 세계가 수습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통일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들을 지도하면서도 통일사상이 무섭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선생님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일개인으로 보면 인간에 지나지 않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닦아 온 과거와 현실적인 모든 삶의 관에 있어서, 세계는 이렇게 해야 산다는 말과 내용을 중심삼고 세계 정의의 노정을 찾아 보게 될 때, 안 맞아 떨어지는 것이 없다는 겁니다. 그 결과를 타진해 보았을 때, 선의 결과가 안 나온 것이 없습니다. 그들도 그런 것을 알고 실천해 보고, 그런 자리에서 결과의 가치를 찾아보고서 이 길이 아니면 안되겠다는 신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명령을 하게 되면 못 할 놀음이 없다구요.

이렇게 볼 때, 일본이 아무리 주권이 있어서 강한 행정 조직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넘어 능동적인 권한을 가지고 실천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사상이라는 것이 놀라운 것임을 나 자신이 스스로 느낄 때가 있어요, 무서우리만큼. 선생님이 명령만 하게 되면 무슨 일이든 한다구요. 이것은 민족을 초월하고 국경을 초월한 것입니다.

하늘 앞에나 인류 앞에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갈까봐 걱정

그러면 이제 복지 천국을 바라보고 나가는 통일의 행로에서 원수시할 것은 무엇이냐? 국경이 문제입니다. 민족 감정을 초월하라는 것이 통일사상의 주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민족을 넘어 가지-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동족 이상 사랑할 수 있는 실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주도적인 책임자들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길에는 반드시 희생과 극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 사랑의 본질과 요인은 반드시 어디를 통해서 실천이 되느냐? 희생이 동반되고 자기를 극복하는 데서만이…. 그렇기 때문에 종교세계에서는 '희생하라! 봉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사랑이 가는 길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희생을 하고 우는 것이냐? 희생하고 우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어머니를 대해 '어머니? 할 때, 어머니는 그 한마디에 오장육부가 녹아 난다는 것입니다. 뼛골이 다 녹아 드는 감정에 사로 잡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쥔 손목에는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힘이 교류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숭고한 희생의 자리, 그러한 실천의 자리에서 통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인간의 사랑이 아닙니다. 천륜을 해원시키고 천정의 소원성취의 한을 풀기 위해서 우리 인간이 책임져야 할 것은, 사랑에 취해 가지고 세계 인류를 품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자진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통일의 요인과 방안이 있는 것은 두말할 바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몸과 마음을 통일시키는 데도 그 사랑이 없이는 안 될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게 될 때는 내 몸뚱이가 굶주리는 것도, 수고스럽고 헐벗는 것도, 혹은 원치 않는 자리도, 못 가는 자리도 자처해서 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길에는 몸도 마음도 통일적인 방향을 갖추어 나가기 때문에, 이 길만이 통일의 요인이요, 통일의 방안입니다. 이것을 알아 가지고 이것을 자기 생활노정의 기준으로 삼고, 생애의 표준으로 정하고 나갈 때 여러분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보증합니다.

나는 죽음의 자리를 많이 거쳐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죽겠다고 각오를 하면 난데없는 결과가 벌어지는 거예요. 이제는 내 때가 왔기 때문에…내 한 가지 한이 무엇이냐? 내 기력을 다하고, 소신을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있는 정력을 다하여 할 것을 다 해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할것을 다 해보고 끝났을 때는 고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 앞이나 인간 앞에 할 것 다 못 하고 가는 날에는 그것이 한스러울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을 갖고 나오다 보니 배가 고플 때는, 옛날에 엘리야는 까마귀가 물어다 준 떡을 먹었다는데…. 그것은 문제가 아니라구요. 선생님은 나그네의 신세로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천리길을 피곤함을 무릅쓰고 가는 길에서 배가 고플 때에, 잔치를 베풀어 놓고 맞아 주는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또, 감옥에 들어가서도, 그 사지에서, 먹을 것이라는 것은 생명을 주고도 찾을 수 없는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먹을 것을 날라다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진 사상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여러 가지 실증을 선생님은 갖고 있습니다.

기성교회 목사들 중에는 나 죽으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죽지 않았고 오히려 그 사람들이 먼저 가 버렸다 이겁니다. 그런 것을 보면, 어떤 면에서 나는 무서운 사람이예요. 내가 어떤 일을 하는 데 이 사람이 방해되어 안 되겠다. 그러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반드시 인사이동이 되든가, 고꾸라져 가지고 무슨 사고가 나든가, 벼락을 맞더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을 보게 되면, '아!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무서운 길이다' 이겁니다. 나자신이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원칙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무자비한 사람이라구요.

이렇게 가다 보니 여기에는 제3의 힘이라고 할까, 제1의 힘, 이러한 방대한 힘이 배후에 엮어져 가지고 오늘날 환경을 수습해 주고 이끌어 주는 것을 알게 되고, 이 길만이 통일이 가능한 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보라구요. 그 외의 길이 있겠어요?

그러면 그 나라의 군신은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더 비참하게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더 비참하게 희생하라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 죽는 충신이 있다면, 그냥 그렇게 죽는 것이 아니라 못먹고 못입고, 또한 천대를 받으며 죽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희생한 사람이 천주사적(天宙史的)인 역사시대에 사상적 전통을 세우는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거예요. 효자는 어떤 사람이냐? 열 아들 가운데 부모를 위해서 지극히 비참하게 수고하고 희생하고 고생한 사람이 효자입니다. 나라를 이어 받고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그러한 무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옳고 그른 것을 가리지 말고 우리 갈 길을 바쁘게 가자, 이것을 표준삼고 오늘도 바쁜 시간을 다짐하고 가는 것이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가는 길입니다. 나는 구질구질하게 잘하고 못한 것을 가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도 더 바쁜 길이 있습니다. 세계로 가야 되고, 하나님을 모셔야 되고…, 그 길이 더 바쁜 것입니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는 것과 같이 뜻을 위해 가다 보면 뒤에 가서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자리를 잡아 가는 통일교회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살았는데 망한다면 내 목을 자르라는 것입니다. 천상세계에 가 가지고 이렇게 산 사람은 내가 하늘 앞에 변증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옹호할 수 있는, 영육을 통한 책임을 지고자 하는 사나이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이요. 문선생의 세계관입니다. 또, 통일교회는 이렇게 가야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민도 이렇게 가면 망하지 않기 때문에 복받고 싶거든 이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갔는데도 망하거든 내 목을 자르라는 것입니다. 망할것 같아요?

이 동네 전부가 통일교회 욕을 하지만 이렇게 통일교회와 나는 남아 있습니다. 요즈음은 좀 덜 하지만, 뒤에서 쑥덕쑥덕합니다. 나는 뒤에도 눈이 있는 사람입니다.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것을 다 알고 있다구요. 또한 눈치가 빠른 사람입니다. 벌써 쓱 보고 너희들 무슨 말을 하고 있고나 하고 물어 보면, 그 말을 했다고 합니다. 빠른 사람입니다. 더구나 젊은 아줌마들, '저 녀석이 뭐 어떻고 어떻다지' 이러면서 나오다가 나를 보면, 나는 지나치면서 인사를 하지만 그 사람들은 똑바로 인사를 못 하고 갑니다. 그 사람들이 나를 몰라서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필시 나를 흉본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런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이 동네 사람들이 가만히 보니까 이 집 사람들이 그렇게 악당들은 아니거든요. 대한민국에서도 그래요. 경찰국 정보과에서는 내가 부산을 가게 되면, '아무개 몇 시에 부산 간다' 이러더니, 요즈음에는 주객이 전도 되었습니다. 우리 아니면 안 된다는 겁니다.

옛날에는 세상에서 욕하는 것이 전부 우리 통일교회를 두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우리를 위해서 사바사바하는 기성교회 목사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이렇게 밀약(密約)을 하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구요. 세상이 그만큼 변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망하지 않는다구요. 그것이 망하면 여러분편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그것을 만약에 알게 된다면, 역사가 통곡을 할것입니다. 천년 만년 통곡을 할 것입니다.

내게 케이 비 에스(KBS) 마이크를 준다면 삼천만 민족의 뼛골이 녹아나게끔 말할 수 있는 정도로 사연이 많은 사람입니다. 삼천만을 품고 하늘로 돌리기 위해서는, 삼천만을 통곡시킬 수 있는 원천과 재료를 수습하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상입니다. 재료를 수습해 가지고 공산당까지도 눈물짓게 하자는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이런 모든 기반이 갖추어질 때는 선전을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는 선전을 통해서 전개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선전을 통해서 전개했던 것처럼 돌아오고, 공산당의 선전 공작도 일시에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에서야 하는 이야기이지만,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차도 좋은 링컨을 가지고 있습니다. 링컨 콘티넨탈은 세계에서 제일 가는 차라구요. 내가 정 바쁠 때나, 지방을 갈 때, 원거리를 갈 때, 부산이나 대구 갈 때는 할 수 없이 타는 거예요. 그러나 그 차 타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이것을 팔아 버릴 수도 없다구요. 777가정 축복 때 외국 사람이 예물로 보낸 것인데, 그것을 팔아먹을 수 있어요? 팔아 버리자니 그렇고, 타자니 그렇고, 이것을 어떻게 하느냐 이거예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의 축복 대상자들이 쌍쌍이 서울에서 한번 기분내는 데 써 먹자, 이런 생각을 했다구요. 그것이 좋을 거라구요.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통일교인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구요. 세상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자기의 아들딸을 위하고, 자기 둥지 틀려고 하는 거라구요. 그런데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을 위해서 집을 사 주려고 해요. 그러면 선생님은 그 돈을 '날 달라'고 하는 겁니까? 나는 교회 이층에 살고 있다구요. 그걸 외국 식구들이 보고 '선생님 집이 이래', '이놈의 자식들, 그러면 너희들이 집을 지어라' 이거예요. 그래서 집을 짓겠다고 야단하고 있습니다. 그 집을 지으면 좋겠어요, 안 지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은 반대요, 환영이요?「환영입니다」 가담이요, 시기요? 「가담입니다」(웃음) 땅도 지금 뭐 사자고….

요전에는 독일을 대표하는 녀석이 와서 '선생님, 우리 독일 식구들이 뭘 도와드릴 게 있어요?', '야 야, 그만 두어라. 게르만 민족이나 어서 빨리 통일해라' 했습니다. 독일이 제일 바쁘니까. 이 녀석이 도깨비 같은 녀석이예요. 내가 2년 전에 갔을 때는 센타가 셋이었는데 지금은 스물세 개로 만들어 놓았거든요. 그래, '이 녀석은 됐다' 하고 내가 독일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히틀러가 전체주의 사상으로 구라파 천지를 진동 시켰지만, 여기에 통일사상만 불어넣어 보라는 거예요. 여기에서 자동 스위치를 누르면 구라파에서 폭발한다 이겁니다. 재미있지요? 그때가 되면 한국 대사관들은 통일교회에 대해 고맙게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지만.

만일 대한민국이 통일사상을 받아들이면 대사관은 통일교회 선교 초소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에서 통일교회사상을 지닌 사람은 그 나라의 백성이 아니라 대사관을 중심삼고 새로운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조금 더 지나게 되면 정부에 건의할 거예요. 자, 일본이 그렇고 독일이 그렇고 미국이 그렇지 않으냐고, 실천을 하게 해 가지고 그렇다고 하게 될 때는…. 안 그래요? 그것은 대한민국의 대사관이 아닙니다.

희생하면 희생할수록 전통적 기반의 공신이 된다

미국내에 또 다른 아벨 나라가 생긴다, 그거 생각해 봤어요? 그렇게만 되면 내가 세계를 3년 이내에 요리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니, 소련의 코시킨이니, 흐루시초프니 모두들 죽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하여 미국 사람들 오라 하면 오는 거예요. 일본 헙회장과 지구장들에게 10일 전에 여기에 와라 했더니 '선생님. 아무래도 14일 이전에는 못 가겠소' 하길래, '아니 아니야. 10일 전에 와야 돼요. 계획이 틀려' 그랬습니다, 전부 다 밤 도깨비, 낮 도깨비 노릇을 했다구요. 전부 공사관을 찾아가 우리 지지할 것을 찾아라 해 가지고…. 어제가 며칠이지요? 「11일입니다」 언제 왔나요?「그저께 왔습니다」 그래, 그저께 전부다 온 거라구요. 이렇게 멋지다구. 그렇다고 해서 뭐 공산당처럼 협박 공갈을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자, 판국이 이만큼 됐으면, 생각이 있는 사나이라면 허리띠를 풀어 놓아야 되겠어요, 졸라매야 되겠어요? 풀어 놓아야지. (웃음) 내가 통일교회 교인이라면 난 자지 않을 것입니다. 보라구요. 앞으로 지금까지의 역사라는 것은 다 없어지고, 이 사상을 중심삼은 그런 중대한 책임을 통일 교회 문선생이 졌으면 그 생애노정에 엮어진 모든 투쟁사는 인류 문화사에 전통적인 역사가 될 것입니다, 심정세계에 있어서, 그렇잖아요? 이상적인 심정천국을 바라는 그 세계에 있어서 이것이 전통적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미래의 천국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구요. 천국은 여기에서부터 이렇게 가는 거예요. 까꿀잡이가 되는 거라구요.

이런 것 저런 것을 여러분이 알게 되면 반할 뿐이예요, 미칠 뿐이예요? 벼락이 난다는 거예요. 내가 어제께도 축복 대상자를 모아 놓고 한바탕 얘기를 했지만, 이 녀석들이 지금 엎드려서 선생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알고, 더 희생하는 것이 좋으냐, 나쁘냐? 좋은 것이예요, 나쁜 것이예요?「좋은 것입니다」 더 희생하면 할수록 전통적 기반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의 공신이 되는 것입니다.

천정을 따라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개인을 위해 희생을 했지만 거기에 세계가 달려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중심삼고 희생이 되었지만 세계가 달려 돌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엄청난 사상을 알았으니 그렇게 가서 망하지 않고 남아지는 자가 되고, 선한 조상이 되어 억천만세 전통을 남기길 바라고, 아담 해와와 같은 조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서 이 시간 말씀 드렸습니다.

​기 도

​아버지, 오늘 이 아침 여기 모인 자녀들, 말씀을 통해서 아버지가 얼마나 수고의 역사노정을 엮어 오셨는가를 알게 되옵니다.

누가,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 자리에서도 복귀하지 못하고, 역사노정에 있어서 번번이 실패한 역사시대를 어떻게 재차 끌고 나갈 수 있느냐고 묻게 될 때에, 대답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아니었사옵니다.

종의 종의 시대에 실패했더라도 종의 심정을 갖고 한 단계 높은 종의 사랑을 갖고 임하는 자리에 서게 되면, 종의 종에서 실패한 것을 무시해 버리고, 밟고 넘어서서 또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종의 자리에서 실패하게 될 때에, 또 한 단계 높은 양자의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그에게 찾아와서, 실패한 그를 대신해 또다시 섭리의 뜻을 세울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사랑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양자의 길에서 실패하게 될 때, 아들의 사랑을 가지고 온 메시아를 통해서 또다시 재출발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 아들마저 실패하면 아버님이 직접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찾아오시어 아들이 실패한 것을 메워 버릴 수 있는,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식을 찾는 것과 만국을 찾는 것을 원하시는 아버님은, 부모의 자리에서 한번도 위신을 세운 때가 없이 지금까지 종의 신세를 대신하였고, 양자의 걸음을 걸어왔고, 죽음의 자리에서 쓰러져 가는 아들의 운명을 홀로 책임지고, 부모의 인연이 밟히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더 높은 사랑을 갖고 나오셨습니다. 그러한 아버님이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는 고마우신 아버지요, 억천 만년이 가더라도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아버지이신 것을 알았사옵니다.

또한 아버님은 절대적인 사랑의 주체이시요, 단 한 분이신 사랑의 주인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의 주체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 사랑이 맺어지는 인연을 중심삼고 자식이 가는 길 앞에 눈물지었던 어버이가 있었던 것을 알게 될 때, 그 어버이를 정면에서 바라본 순간이 있다 할진대 인간으로서는 보답할 그 무엇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효막심하였던 인간으로서 부모의 그 심정을 채워 드리고, 또한 그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일대뿐만 아니라 수천년의 수난길을 거치더라도 그 은덕을 갚을 길이 없는 것을 아는 통일의 무리이옵니다. 이들이 흘리는 눈물은 이들만의 눈물이 아니옵니다. 역사시대에 그런 자리에서 눈물을 흘린 사람이 없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 흘리는 눈물이 반대의 자리에서 흘리는 눈물이기 때문에, 사탄을 협조하고 악이 번창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눈물이 되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통일사상의 기치를 들고 나온 당신의 어린 자녀들은 눈물을 흘리더라도 자기가 배고파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핍박의 도상에서 신음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그런 자리에 섰더라도 그것은 민족과 세계가 도탄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을 책임지기 위한 자리. 세계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그 자리에 선 것이옵니다. 이러한 길을 가는 것을 잘 아시는 아버지여! 그 길앞에 서 가지고 가슴 졸이며 눈물짓는 것을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목을 놓고 '내 아들이라. 내 딸이라' 하며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동정의 마음이 극하고, 자비의 심정이 극하여, 폭발적인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천상 천하에 자랑하고 또 자랑하고 싶은 아들딸, 거룩 거룩 거룩한 아들딸이 라고, 뿐만 아니라 사람 중의 사람이라고, 영원히 놓을 수 없는 아들딸이 라고 할 수 있는 그 결론적 자리가 그런 자리인 것을 알았습니다.

통일의 무리가 보기에는 초췌할지 모르지만, 아버님을 울릴 수 있는 역사를 가지는 무리가 될 때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오늘 통일의 요인과 방안이 어떻다는 것을 이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민족이 장래에 갈 길이 어디냐? 애국애족하라고 했지마는 어디에서부터 사랑해야 하는지, 어떠한 방향을 통해 가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사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에게는 민족적 한계선을 넘어서 영향을 미쳐야 할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에, 밤이나 낮이나 갈 길이 바쁜 것을 알고 싸워 나오고 있사오니, 아버지, 지켜 보시옵소서. 우리 가는 길이 비참한 것은 당신의 비참상을 나타낸 것이요, 이 자리가 초라한 것은 당신의 처량한 형상을 드러낸 것임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은 천번만번 당하더라도, 이 자리가 아버님이 공히 슬퍼하고 눈물지을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가슴이 터지고 뼛골이 울리는 그런 심정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세워진 것만으로도 감사 감사 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죽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죽기 전에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임을 아는 통일의 무리이옵니다. 아버지, 이들의 생활을 지키시옵고, 그 생애를 지키시어 승리의 천국을 개막하고 건국하는데 그 길을 닦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거룩한 이 아침, 여기 모인 자녀들 마음속 깊이깊이 숭고한 사상을 이어받고, 내일의 통일의 기치를 드높이 들어 민족의 선두에 서고, 미래의 세계를 향하여 우렁찬 함성으로 새로운 시대를 예고할 수 있는 무리가 되게끔 이끌어 주시옵고, 지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뜻을 당신의 소원대로 성취하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이달에 있어서 세번째 맞는 안식일 아침에 당신의 자녀들이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이날이 복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 시간이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처지와 사정은 각각 다를지라도 당신을 바라보는 마음만은 같아야 되겠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당신이 분부하신 사명을 맡아 수행하고자 하오니, 그 사명 앞에 책임을 다하려 하는 각자의 결의만은 틀림없어야 되겠사옵니다.

개체 개체가 합하여 하나의 결속체를 이루어 당신이 원하는 나라의 백성이 되고, 세계를 거느릴 수 있는 대표자들이 되어야 할 것을 저희는 알고 있사옵니다. 전체적인 섭리의 뜻 앞에 있어서 보잘것없는 모습이지만 그 사명을 절감하고 스스로를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겠사오니, 아버지. 이 자리에 부복한 자녀들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사람은 어차피 한번 왔다가 한번 가는 것이옵니다. 그 과정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길을 가는 사람보다도 공적인 동시에 하늘을 위주한 이익을 추구하며 싸우다가 가는 사람이 이 땅 위에 남아질 수 있는 인간이요, 수많은 인류역사 가운데 빛나는 공적을 세운 사람들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하늘을 사랑하는 만큼 인류를 사랑해야 되겠사옵고. 인류를 사랑하는 만큼 자기 나라와 자기 가정과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할 것이 본래 하나님께서 목적하셨던 인간 본연의 자세요, 본연의 생활이념이었사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에는 자기를 먼저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반대의 행로를 거쳐 역사는 흘러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흘러가는 역사를 다시 한 번 가로막고 하늘을 먼저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종족과 가정과 개인을 사랑할 수 있는 공적인 노정이 저희 통일교회를 통하여서 증거되고 개척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런 길을 가기 위해서는 수난의 길을 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 옵니다. 개인이 개인의 노정을 개척함에 있어서도 수난이 있거니와 세계와 하늘의 노정을 개척해야 할 사명을 절감하는 자리에 서서 그 길을 책임지고 나선다고 하게 될 때에는 그보다 더한 희생과 곤욕의 노정이 저희의 앞길에 가로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하오나 그 길은 반드시 넘어가야 할 운명길이요, 아니 갈 수 없는 길임을 알고 있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 위에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붙듯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 앞에 충효의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온갖 원수들 앞에 졸렬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수난과 역경의 길 가운데서도 당신이 지켜 주신 것을 고맙게 생각하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실로 남아져 가지고 저희의 생활권내에서 그것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도 그 이상의 치열한 전투의 노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 싸움터를 직시하면서 그 싸움터를 지키기 위해서 지난날보다도더 책임을 지는 용사의 모습이 될 것을 스스로 다짐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의 싸움터를 준비함과 동시에 내일의 세계와 하늘땅을 걸어 놓고 사탄과 판가리하여야 할 그 싸움을 위하여, 오늘 스스로의 자세를 연마해 나갈 줄 아는 당신의 사랑받는 아들딸인 동시에,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날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굽어보시옵소서. 개개인의 심령을 살피시어서 하늘 앞에 옳지 못한 악의 쓴 뿌리가 그 마음속에 침투해 있거든, 아버지, 제거시키시옵소서. 당신의 불꽃같은 눈과 능력의 손길로써 이것을 낱낱이 갈라 내시어서, 하늘 것과 선한 것은 남기시고 그 외의 것은 일체 용납치 마시옵고 제거시키시사, 이들을 당신의 아들 딸이요, 당신의 무리로서 굽어살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전국에 널려 이곳을 바라보면서 충성을 다짐하는 자녀들, 더우기 일선에 나가 있는 당신의 어린 딸들 위에 긍휼과 사랑의 손길을 늘 펴시옵소서. 최후에 민족 앞에 해야 할 사명을, 여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세계사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어려운 수난의 도상에서 개척자의 행각의 노정을 가기를 다짐하는 자리 자리마다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혹은 외로워 눈물짓는 자리에서 한 많은 아버지의 심정을 동정하면서 아버지의 괴로우심을 염려하는 딸들이 있거들랑, 늘 아버지께서 보호하여 주시옵시고, 같은 심정의 인연을 따라 환경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하늘의 동조와 동정을 받을 수 있는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나타나는 곳곳마다 하늘을 흠모할 수 있는 자극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심정이 싹터서 수많은 인류를 아버지 앞에 연결시킬 수 있도록 그들을 새생명의 원천으로 삼아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곳을 향하여 경배하는 곳곳마다 당신이 굽어살피시옵소서. 그뿐만 아니라 만방에 널려 있는 당신의 외로운 자녀들, 한 나라를 책임지고 외로운 자리에 서서 당신을 부여잡고 새 생명을 그들 앞에 옮겨 주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자녀들이 많사오니, 그들에게 당신의 사랑과 은사를 베푸시어 살아 계신 아버지의 권한을 드러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모시고 가는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시옵고 증거시키시어서 환경을 당신 앞에 부복시키고 굴복시킬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한날이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은사의 날로서 만민 앞에 복을 나눠줄 수 있는 거룩한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날 수많은 동포들과 수많은 교회들이 당신 앞에 경배하는 곳곳마다 넘치는 사랑과 은사를 갖고 찾아 주시옵소서.

아버지, 서로서로 반목질시하는 시대적 환경을 제거해야 되겠습니다.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하나의 방향을 가려 가는 수많은 종교들이 서로 형제지감(兄弟之感)을 가지고 서로 동정하고 위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 하나의 민족을 이루고 하나의 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규합해 가지고 복귀 천국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선봉에 설 수 있는 종교가 되게 하여 주시옵 고, 믿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갈 길을 모르거든 오늘 저희들이 그들 앞에 책임해야 할 노정을 확실히 제시해 주고, 민족을 위하여 가는 길이 이렇고 하늘을 위하여 가는 길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 줄 줄 아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도 아버지의 긍휼의 사랑과 자비의 은사와 크신 은덕을 바라는 마음으로 부복하였사오니 일체를 분부하심으로써 찾아 주시옵고, 안위와 평화가 저희의 마음에 깃들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소망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니다. 이날의 모든 전체가 아버지의 좋아하심이 되고 아버지의 즐거우심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수난의 길과 해방 운동'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난의 길을 거쳐 해방받지 않으면 안 될 우리

본래 우리 인류에게는 수난의 길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 그런 길이 생겨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수난의 길을 거쳐 가지고 다시 해방받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해방을 주장하는 것은 사회제도상 사회 전체가 환영하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반드시 그 사회와 반대되는 입장에서 새로운 길을 중심해 가지고 새로운 목적을 제시하여 그 목적 앞에 새로운 사회와 국가를 형성할 것을 요구할 때에 쓰여지는 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해방을 위한 길을 찾아 나오고 있는데 그것이 구원 섭리의 길이요.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해방시켜야 하는 것이요, 인간은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해방시켜야 할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 기독교 신자 들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해방을 받아야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인간이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 된다는 것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과 사탄의 정체를 알아야 완전히 해방될 수 있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사탄권에 구속당하게 되었는데, 어떠한 수난길도 거치지 않고 인간이 그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생각하게 될 때에, 그 타락이란 것이 어떠한 것이냐 하는 것을 확실히 제시하지 않고는 해방을 하는 데 있어서도 완전한 해방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편이 있고 반대편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편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되는 악편, 즉 사탄편이 있는 것입니다. 사탄편은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 인간을 구속하고 우리 인간이 해방의 요건을 요구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만든 그 주체가 바로 사탄이라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된 동기가 무엇이냐? 그것은 물질적인 것, 즉 외적인 것 때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내적인 문제 가운데서도 무엇을 중심삼고 되어졌느냐? 내적인 어떤 사정을 중심삼고 되어진 것도 아니요, 내적인 어떤 소망을 중심삼고 되어진 것도 아닙니다. 내적인 정서적 문제를 중심삼고 되어진 것입니다. 정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즉, 내적인 정적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타락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방을 받기 위해서는 어디까지 찾아들어가야 되느냐? 외적인 자리에서 해방을 받았다고 해서 완전한 해방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적인 정서적 문제까지 찾아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타락의 동기를 일으킨 그 주체 되는 사탄은 대관절 하나님 앞에 있어서나 우리 인간 앞에 있어서 어떠한 존재냐? 원수는 원수인데 어떠한 원수냐? 이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혈통적으로 아무런 인연이 없는 원수라면 원수를 갚으면 그것으로 끝날는지 모르지만 원수를 갚고 나서도 그 환경을 벗어날 수 없는 혈통적 인연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선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입장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은 어느 정도까지 우리 앞에 원수의 길을 제시해 놓았느냐 하면 우리의 핏줄까지 관여할 수 있는 정도까지 원수의 길을 제시해 놓았습니다.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까지, 생명을 넘어서 생명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랑 문제까지 주관할 수 있는 주체가 되어 있습니다.

이 사탄 원수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길을 가야 되느냐? 인간에 있어서 외적인 돈 문제라든가 사정 문제라든가 소망 문제를 중심삼고 원수를 갚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최후의 문제는 생명을 부정할 수 있는 자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이고, 나중에는 자기들의 사랑까지도 부정할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사탄을 완전 굴복시킬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사탄이란 어떠한 존재냐?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어떤 분이냐 하고 묻게 되면 '절대자요, 유일무이하며, 전지전능하신 분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러한 분과 인간과의 관계는 어떠한 관계냐?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은 합니다만 그 아버지란 말이 어떤 의미에서 부르는 아버지냐? 다만 명사를 존중시하기 위해서 부르는 막연한 아버지냐, 아니면 정말 그러한 내용을 가진 아버지냐? 그 내용은 어떠한 것이냐 하는 문제는 생각지도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면 어떤 아버지냐? 오늘날 우리가 육(肉)을 통해 태어난 부모를 중심삼고 볼 때 그 부모와 하나님과는 어떠한 관계냐? 이게 막연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가운데 신비스러운 체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우주의 근본을 찾아들어가서 우주의 근본이 뭐냐 하고 궁금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제시하고 우주의 근본을 찾아들어가게 될 때에, 우주의 근본은 이 만상의 세계를 대신해 있는 사람이다, 인간이다. 그러면 인간의 근본은 무엇이냐? 인간의 근본은 생명이다. 그러면 생명의 근본은 무엇이냐? 사랑이다. 사랑이 없으면 생명이 생겨나지 않는다. 사랑의 근본이 무엇이냐 하게 될 때 여기서 인간 이상의 것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명사를 들고 나오게 될 때에, 그 사랑이라는 명사는 혼자 있어 가지고는 성립될 수 없는 말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가질 때에 쓸 수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말을 하게 될 때에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 가지고 그 상대와 절대적인 사랑의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상대적 여건을 마련한 입장에 서지 않고는 사랑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데는 상대적 여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상대가 누구냐? 그 상대가 동물 중의, 혹은 만물 중의 어떤 것이 될 수 있느냐? 그건 사람 이외에는 딴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동물이든지 하늘을 추앙하고 혹은 하늘을 숭배하는 종교의 형식을 가진 그런 동물은 없습니다. 인간만이 고차적인 하늘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사랑의 근원지라면 그 사랑에 상대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나타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는 답은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의 닻을 어디에 내리려고 할 것이냐, 사랑의 뿌리를 어디에 내릴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나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랑 자체가 동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려면 어떤 격위(格位)의 자리에서 사랑하려고 하느냐? 주종관계 (主從關係)의 자리에서 사랑하려고 하느냐? 그거 원하는 사람이 있어요? 절대적인 사랑의 주체라면 절대적인 사랑의 상대를 가져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사랑해야 절대적인 사랑이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종이라는 입장은 반드시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안팎이 하나되어 가지고 신경이 한 방향을 통해서 투입되고 주입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모든 일이 딴 목적을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는 입장에 있는 것이 종의 자리 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흐름에 있어서 그 동기를 같이할 수 없는 것이요, 바라는 최고의 상대적 여건을 같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외적 여건을 관계지을 수 있는 자리가 종의 자리입니다.

그러면 인간을 종의 자리에 두고 하나님이 사랑하려고 했느냐? 그렇다면 그것은 참다운 사랑이 아닙니다.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양자로 사랑하려고 했느냐? 로마서 8장을 보게 되면, '아마 아버지'라고 부르며 양자를 추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양자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양자로 두고 사랑하기를 바라느냐? 그거 원하는 사람이 있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양자 이상입니다. 양자 이상이예요.

사랑이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사랑은 정서적인 내용을 제시했는데 그 사랑이 중심으로 설 수 있는 그 핵은 무엇이냐? 이것을 찾아들어가게 될 때 자연적인 결론으로서 하나님은 우리 인류의 아버지가 되어야 할 것이고. 우리 인간은 그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길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명사를 들고 나온 하나님을 우리가 추구하게 될 때, 그 추구하는 기준이라는 것은 주종관계의 어떤 종이 아니라 어떠한 상대-그 상대는 내용 없는 상대가 아니라 절대적인 내용을 같이하고, 운명을 같이하고, 목적을 같이하고, 환경을 같이할 수 있는 입장에선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은 사랑 관계를 중심삼고 태어난 존재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어디냐?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아들이 되는 자리입니다. 만일에 그 이상의 자리가 있다면,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은 또 그 자리를 원하는 거예요. 인간의 욕망은 최고를 원하기 때문에 만일 그 이상의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우리 인간에게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응당히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가 되어야 되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는 어떠한 권위를 가진 자리냐

그러면 그 아들의 자리는 어떠한 권위를 가진 자리냐? 그 아들이 어떠한 권위를 갖고 나오기를 바라느냐? 오늘날 여러분이 알고 있는 한 가정의 가주(家主)로서 몇 사람의 어버이가 된 아버지, 거기에서도 좋은 아버지가 됐느니 못 됐느니 하는 비판받는 그런 아버지를 원하느냐? 아닌 것입니다. 인간 세상의 자녀들로 하여금 비판받는 그런 아버지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는 어떠한 사람일 것이냐? 어떠한 종족의 대표자이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어떤 한 나라를 중심삼은 대표자이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절대자이니만큼 절대자의 자리에 선 아들, 그런 아들의 권위를 가진 아들을 원할 것입니다. 그 아들이란 권위를 가진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하면 국가적인 기준도 아니라구요. 이것은 세계적이어야 됩니다. 더 넘어서 오늘 통일교회 술어를 빌려 얘기하면 천주적이어야 됩니다.

우리 타락한 인간도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전부 다 세계를 자기 손아귀에 넣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마음은 어린아이들에게도 다 있다구요.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그런 마음이 다 있다구요. 세계를 내 것 만들면 좋겠다. 가령 세계를 자기 것 만들었다 하면 말이예요. 그것을 자기것 만든 후에 다시 어떤 더 높은 분이 있으면 그분도 자기 것 만들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그거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분을 자기 것 만들었는데 그분 앞에 더 좋은 것이 있다고 한다면 '고것 난 싫소' 하겠어요? 그분을 내 것 만들었으면 그 다음엔 그 이상의 것을 원하는 거예요. 그 이상의 것이 뭐냐? 하나님을 내 것 만들어도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는 영원히 뗄래야 뗄 수 없고 아무리 가를래야 가를 수 없는 인연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그자 나요 나자 그'라고 할 수 있는 자리를 원할 것입니다. 그 자리가 무슨 자리냐? 사랑의 자리입니다. 그런 사랑을 중심삼고야 영원한 사랑이 인간세상에 관계를 맺지, 하나님이 영원한 사랑의 주체라면 우리 인간이 그분과 그러한 관계를 맺어 가지고 사랑의 일치점을 찾지 못하고는 인간 세상에는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세계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상세계라는 것은 어떠한 소망만을 중심삼아 가지고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평화의 기원이요, 행복의 기원이기 때문에 정서적인 분야를 절대시한 터전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세계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가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혼자서 행복한 사람이 될 수가 있어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구요. 상대적 여건을 중심삼고 깊고 넓고 높게 세계 이상의 가치를 다짐할 수 있는 심정의 터전을 갖고 서게 될 때 그 앞에 외적으로 갖추어진 그 권위가 내적으로도 빛나는 것이지, 내적 기준이 갖추어지지 않을 때는 아무리 외적 기준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도리어 불행을 자초하는 조건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과 하나님과는 부자의 관계인데 어떻게 해서 그런 관계가 맺어진 것이냐? 이런 근본 문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기도하게 될 때, 인간은 피조세계의 중심인데 이 우주의 중심은 뭐냐고 묻게 되면 부자지관계(父子之關係)라는 답을 가끔 얻게 됩니다. 우주의 중심이 뭐냐? 한마디로 딱 결론을 지어 주는데 부자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이거 보통 사람들은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 아버지를 말하는 줄 알고 있다는 거예요. 부자의 관계라고 하는 것을 보통 생각하는 자기 어머니 아버지, 즉 인륜도덕을 중심삼은 부자의 인연을 말하는 줄 알고 있다구요.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입체적인 입장에서 보게 되면, 하나님과 인간이 부자관계의 정(情)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있는 그 자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왜 지으셨느냐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것이 부자의 관계냐 하는 것이 문제돼요. 그러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왜 지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수난의 근본을 파고들어가는 거예요. 왜 지었느냐? 슬퍼하기 위해 아담 해와를 지은 것이 아니라구요. 기뻐하기 위해서 지었습니다. 기뻐하려면 어느 정도로 기뻐하려고? 최고로. 그럴 게 아니예요? 최고로 기뻐하려고 지었지 최하로 기뻐하려고 지었다면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면 최고로 기뻐하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여러분, 기쁜 친구를 만나게 되면 악수를 해도 힘을 주어 가지고 서로 붙안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사람하고 하나님이 악수하면서 붙안고 좋아하는 것이 최고예요?

여러분 말예요. 제일 귀한 보물, 예를 들어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다니는 아주머니가 있다면, 그 아주머니뿐만 아니라 동네에 있는 아주머니들까지 전부 다 그 아주머니에게 보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무네 집 아줌마는 손에 반지를 끼고 다니는데, 그게 몇백만 원짜리래' 하는 소문이 나서 다 안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모를 때에는 그것을 버젓이 끼고 다닐 수 있다구요. 그것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누가 아나요? 그렇지만 아는 사람이 많으면 끼고도 감춘다구요. 끼고 나가더라도 감추고 다니고 싶지, 그래 '난 모르겠어요' 그럴 것 같아요? 그렇다는 거예요. 사람이 볼까봐서도 아는 환경에서 감추려고 하는데 그걸 서로 갖고 싶어서 따라오면서 갖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어 요? 그런 사람이 있어서 그걸 감추려고 한다면 어디에 감출 것 같아요? 단스(장롱)? 철궤?

여러분, 영화 같은 거 보지요? 거 몇 겹씩 채워 놓은 철궤도 전부 다 뜯어내어 보물을 훔쳐가는 세상인데 아무리 철궤를 단단하게 채워 놓으면 뭘해요? 뭐 철궤는 안 뜯는 줄 알아요? 빼앗아 가는 거예요. 그러면 안심할 곳이 어디냐? 감춰 두어도 안심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 그것을 연구해 보면 '내 눈에만 보이고 남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 뒀으면 좋겠다' 하는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 안 그렇겠어요? 내 눈에만 보이고, 나만 알고, 세상 사람 눈에는 안 보이고 모르는 곳에 감춰 두고 싶다는 거예요.

그러면 과연 이 세상에 내 눈에만 보이고 나만 알고 세상 사람 눈에는 안 보이고 모를 수 있는 자리가 어디 있느냐? 이렇게 찾아 보게 되면 성경에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고 했습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지 않고, 까꾸로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보물을 따라다녀요. 오늘날 타락한 세상에 있어서 그런 말은 가당한 거예요.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보물이 마음을 따라 다니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인간의 마음과 사랑의 인연

그러면 그 마음에 보물을 채워 넣기 위해서는 마음이 작아 가지고 되겠어요? '마음이 얼마나 크냐' 할 때 '마음이 바늘 눈만큼 크지' 그래요? '마음이 얼마나 작으냐' 할 때 '모래만큼 작지' 그래요? 여러분의 마음은 큽니까, 작습니까? 세계를 천 개 만 개 집어넣고도 더 넣으려고 한다구요. 그건 자기 소유물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자기 것 만들었다 하더라도 세계를 자기 것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세계를 자기 것 만들었으면 그 다음에는 우주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거 무엇이 그렇게 하려고 하느냐? 마음이 그렇게 하려고 그러는 거라구요. 그 마음이 얼마나 크냐? 하늘땅보다 더 크다. 그러면 하나님과 견주어 볼 때 그 마음이 하나님 속에 들어가고 싶겠느냐, 하나님도 마음속에 집어넣고 싶겠느냐? 어때요? 욕심 많은 인간을 두고 보면 하나님도 자기 마음의 울타리에 가두어 놓고 자물쇠를 딱 잠가 버리고 싶지. 여러분은 안 그래요? 난 그래요.

만일 하나님을 원수가 잡아가서 그 원수의 마음속에 집어넣고 자물쇠를 딱 채워 놓게 된다면 어떻겠어요? 하나님도 그것은 질색이라구요. 그렇지만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한테 싹 모셔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 집어넣고 자물쇠를 딱 잠갔다면 어떻겠어요? 하나님이 그저 박차고 나오려 하겠어요, 마음속으로 더 파고들어가려고 하겠어요? 그게 문제라구요.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속에 두고 싶은 것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이 땅 위의 부모들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이 외국에 가 있다면 그 부모는 언제나 외국 간 아들을 마음에 두고 있어요, 안 두고 있어요?「두고 있습니다」 아들이 외국 가 있는데 마음에 두고 있어요? 이런 말 자체가 전부 다 종교적인 술어예요. 아들이 외국에 가 있는데 마음에 두고 있단 말이예요. 그걸 보면 마음은 거리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만큼 마음에 두고 싶으냐? 자기 아들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얼마만큼 사랑하고 싶겠어요? 자기 아들을 사랑하는데 요만큼 사랑하고 싶겠어요? '그거야 박씨 성을 가진 여자로서 내가 김 아무개한테 시집을 왔는데 그 김 아무개라는 영감의 됨됨이가 열 냥쯤밖에 안 되니 자식이 아무리 훌륭했댔자 그보다 나을 수 있나? 그러니까 아홉 냥쯤 정도로 사랑하자' 그래요? 아버지는 꼬락서니가 뭐 꼴뚜기 새끼처럼 형편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식은 어느만큼 크게 생각하려고 그래요? 하늘땅보다 더 크게 생각하려고 그래요. 이게 다 모순이라는 거예요. 헤치고 들어가면 문제가 많다는 거예요. 아무리 작은 존재라도 그것이 마음속에 두고 싶은 진정한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될 때에는 큰 존재로 모시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사랑의 순서

통일교회의 원리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오늘날 타락한 인간은 낳자마자 지옥행이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낳자마자 지옥에 입적하는 거예요. 틀림없다구요. 그것 가지고도 어머니 아버지들을 보게 되면, 자식 사랑하는 것이 뭐라고 하는 말도 있지만 말이예요, 보기에는 기왓골에 올려 놓은 호박통 같은 그런 애를 턱 업고 앉아 가지고 둥둥둥둥 하면서 '이렇게 생겼으니 더 구수한 맛이 있다구'하며 자랑을 한다는 거예요. 그래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거든요. 여기 애기를 가진 부모들도 잘 할 거라. 얼굴은 그저 독수리와 싸우다가 긁힌 것 같은 상판대기를 한 부모요, 그 아들은 부모보다 더 험하게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부모는 그 아들을 껴안고 '어화 등등 내 사랑아'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세상으로 말하면 귀한 것 중에서 제일 귀한 것이 뭐예요? 세상으로 보면, 뭐 하나님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까 제쳐 놓고,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게 뭐예요? 귀한 게 뭔지 찾아 보라구요. 「자녑니다」 자녀. 그다음에는? 자기 신랑 자기 신부지요. 상대 아니예요. 그 다음에는 뭐예요? 부모. 그 이상 귀한 게 없다구요.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만사가 다 귀찮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청소년 문제가 세계적인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윤리관을 중심삼고 문제가 되어 있는데, 그게 왜 자꾸 세상에 전개되느냐? 참다운 부모의 사랑에 도취할 수 있는 자리, 또 서로 안 보면 못 견디겠다고 하는 형제의 사랑에 도취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면 그렇게 되겠어요? 그렇게 되라고 제사를 지내 보라구요. 그렇게 되는가, 안 되는가. 요러한 근본적인 귀한 가치의 기준과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상대적 세계의 가치를 찾으려고 하는데 안 찾아지니까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은 자녀입니다. 그 다음에 부부 입니다. 그 다음에 부모입니다.

인간 세상의 슬픔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판서하심) 그것은 간단한 문제입니다. 물적인 조건과 정적인 조건 이외에는 없습니다. 찾아 보라구요. 물적 조건, 그 다음에 정서적 조건 외에는 없습니다. '아이구, 난 속상해서 못 살겠다. 아이구, 난 어려워서 못 살겠다'는 말을 하면 그것이 슬픔의 조건에 걸리는 거예요. 우리들도 그래요. 어떤 목적을 바라보고 나가는 것이 전부 다 여기에 걸린다구요. 물적 조건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우리가 생명 이상의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유동적인 것입니다.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최후의 자리는 자녀의 자리, 부부의 자리, 부모의 자리 이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의 마음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누가 먼저 있어야 되느냐? 누가 먼저 있어야 돼요? 어머니를 중심삼고 볼 때, 자식이 먼저 있어야 돼요, 영감이 먼저 있어야 돼요? 세상에서는 어떻게 돼 있어요?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게 되면 그 어머니 마음 가운데 먼저 있어야 할 사람이 누구냐? 자식이예요, 누구예요? 남편이예요? 이것이 문제되는 거예요. 이것을 왜 물어 보느냐 하면, 내가 물어 보고 나서 이제부터 얘기하려고 그래요.

자식이예요, 남편이예요? 대답하라구요. 「자식요」 똑똑히 대답해요. 이 아주머니들은 자식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구만, 그런 사람은 남편한테 천대받고 구박받고 수모받고 다니는 사람일 거라구요. 누가 먼저예요? 자식 사랑하듯이 남편을 사랑해야 되느냐, 남편 사랑하듯이 자식을 사랑해야 되느냐? 여러분, 이걸 다 결정짓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대답해 봐요. 모르겠지요? 자식 사랑하듯이 남편을 사랑해야 되겠느냐, 남편 사랑하듯이 자식을 사랑해야 되겠느냐? 아주머니들, 한번 대답해 봐요. 그러면 자식이 죽으면 좋겠어요, 남편이 죽으면 좋겠어요? (웃음) 대답해 봐요. 그렇게 되면 남편이 죽는 게 낫지요. (웃음)

자식을 중심삼고 볼 때 내가 자식이 되었으면 그 위에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나를 중심삼고 얘기하게 되면 부자관계요 부부 관계지만, 위를 생각하면 누가 있어요? 부모가 있습니다, 부모.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자, 그러면 부부가 먼저냐, 부모가 먼저냐? 「부모가 먼저입니다」 자식은 나중입니다. 부부 이후라구요. 그러면 부모가 먼저면 얼마만큼 먼저냐? 정서적인 기원에 있어서는 첫출발입니다. 부모가 먼저입니다. 부모가 있어 가지고 자식을 낳아 키우게 되면 그 다음에 상대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가진 어머니는 남편과 자식 중에 누구를 죽음의 자리에 내놓겠느냐고 묻게 되면, 그 어머니가 진짜 자식을 사랑한다면 남편을 죽음의 자리에 내놓으면 내놓았지 자식은 안 내놓겠다고 하는 거예요. 남편들이 들으면 섭섭할는지 모르지요. 요즘 세상 같으면 '그거 뭐 자식이야 죽으면 또 낳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것은 부가조건이고, 원칙을 따지고 들어가 순서가 어떻게 돼 있느냐 하면, 부부라는 것은 맨 나중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사랑의 역사가 그렇다구요. 사랑의 역사가.

인간은 하나님을 자기의 몸 이상으로 사랑해야

그러면 인간세상에 있어서 사랑은 무엇에서부터 생겨났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 해와는 부부가 아니냐? 그러면 부부에서 사랑이 출발했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인간세상에 있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인간과 인간 이상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어떻게 되느냐? 그게 부자의 관계 외에는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사랑을 찾아들어가게 되면 부자의 관계 외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어디서부터냐? 어버이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하는 데는 장난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구요. 무엇으로? 이상적 절대자 앞에 상대적 절대자, 이거 어려운 말입니다. 상대적 절대자로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을 중심 삼고 부모 앞에 상대적인 절대자로서 세워 놓은 존재가 누구냐 하면 자식이라구요. 그것은 자기 생명을 받아 가지고 나타나는 거라구요,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는 문제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의 주체이지만 하나님의 생명을 투입하더라도 사랑 안 하고는 못 견디겠다, 하나님의 생명을 끊더라도 사랑한다고 하게 되면 좀 어폐가 있지만, 하나님의 생명을 투입해서라도 사랑 안 하고는 못 배기겠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식을 위해서 죽어야 할 자리에 있게 되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절대자가 성큼 망하면 되나요? 그 자리를 넘어설 것이냐, 그 자리에서 버티고 나갈 것이냐? 대답해 봐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사랑의 주체인 절대적인 하나님이 절대적인 아들을 보았는데 그 아들을 위하여 죽을 자리에 있게 되면, '난 싫어. 난 이리로 가야지' 그러겠어요, 죽을 자리를 대신해서 가겠어요?「죽을 자리를 대신해서 갑니다」 그것은 무엇을 봐서? 우리 인간을 봐서. 인간의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해서 죽는다구요. 그렇게까지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해야 되느냐? 자기의 몸 이상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은 사랑

그러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다이아몬드예요? 여자들 가운데는 남편보다 다이아몬드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말이예요. 남편이 귀하냐, 다이아몬드가 귀하냐 할 때 다이아몬드는, 런던 박물관에 가 보면 517캐럿이나 되는 세계 최고의 다이아몬드가 있어요. 그런 반지를 열 손가락에 떡 끼고 앉았다고 가정합시다. 오, 거룩하신 다이아몬드님들이여! (웃음) 그걸 보기만 해도 천지가 다 내 품에서 놀아나는 것 같다구요.

그건 세계 최고의 희망봉으로 있다는 거라구요. 그걸 열 손가락에 끼고 앉아 있으면 '자. 이것이면 그만이다' 그래요? 여기에 앉아 있는 우리 인텔리 여성들에게 물어 보자구요. 그런 다이아몬드 반지를 열 손가락에 끼고 앉아 가지고 '이것이면 다다. 남편이야 맘대로 놀아나도 좋다'는 여자는 손들어 봐요. 그런 여자는 때려죽이라구요. (웃음) 때려죽이라고 해도 그런 여자가 없기 때문에 걸리지 않는다구요. (웃음) 그런 사람 있어요? 없지요.

이걸 보게 되면 실감이 나는 거예요. 야, 요거 사랑이 무엇이냐? 밑도 끝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런 작용을 하더라는 거예요. 이 말에는 이의 없지요? 남자들은 어때요? 이의 있어요?「없습니다」 돈을 위해서는 자기 모가지도 내놓고, 자기 여편네도 팔아먹겠다고 그런다면, 그 말이 성립되 겠어요? 그것은 가짜 남편이기 때문에 그렇지, 진정한 사랑을 가진 사나 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지…. 그거에 이의 없지요? 전부 입을 벌리고 '허허' 하는 것을 보니 이의가 없는 것 같구만요. 사랑은 다 좋아한다는 거예요. 여기에 있는 사람 중에서 '사랑은 난 싫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예를 하나 들지요. 우리가 집에서 기르고 있는 고양이 새끼도 주인이 천대하는 것을 좋아합니까? 그래요, 안 그래요?「안 그렇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을 좋아해요?「사랑하는 거요」 사랑하는 것도 뭐 자기 상대와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가까이하려고 하고, 쓰다듬어 주고, 가다오다가 한번씩 간섭해 주고. 그러면 좋아하는 거예요. 고양이 새끼도 그런데 강아지는 더하다는 거예요. 요건 그저 쫄쫄 따라다닙니다. 주인이 어디 나갔다 들어오게 되면 기뻐서 들어오는지 슬퍼서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자기를 사랑해 주던 주인을 중심삼고 꼬리를 흔들며 달려듭니다. 그러다가 배때기를 차인다 이거예요. (웃음) 하기야 먹고 잠만 자는 강아지가 뭐 슬플 게 있어요? 그런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우주에서 가장 귀한 하나님을 모시고 다닐 수 있는 것은 마음

자, 그러면 사랑이 어디서 오느냐 할 패 하나님까지 올라갔어요, 하나님. 하나님은 귀한 분인데 이 귀한 분을…. 여러분, 귀한 보물이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할 수 없어서 집에 두고 다니지요? 그것을 집에 두고 다니면 마음이 놓여요? 안 놓이지요?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자기 몸에 지니고 다니려고 한다구요.

어떤 사람들은 옛날에 첫사랑을 할 때 장래를 약속하며 주고받은 애인의 물건을 가지고 다닙니다. 누더기같이 되어 날아가던 파리도 안 붙을 만큼 형편없는 것이라도 싸고 또 싸 가지고 차고 다니고 이렇게 끼고 다니는 사람을 내가 보았습니다. 그것을 몇 년 동안 가지고 다녔느냐고 물으니까 수십년 동안 가지고 다녔다고 하는 거예요. 그것이 무엇이길래 그러느냐? 그 사람은 그것을 제일 귀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자기의 살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고 싶고, 그것을 만약 훔쳐가겠으면 살을 째고 그 속에 넣어 꿰매어 두고, 그래도 밤에 잘 때 누가 살을 째고 훔쳐갈지 모른다고 생각되면, 뼈에 구멍을 뚫고 넣어 두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것을 어디에다 감출 것이냐, 어디에 두고 다닐 것이냐? 우주에서 제일 귀한 분을 여러분은 그냥 집에 두고 다니고 싶어요, 항상 갖고 다니고 싶어요? 도둑놈이 많은 세상이라 두고 다니면 큰일나는 거라구요. 이렇게 생각해 보게 될 때 자기 몸에 그것을 갖고 다닐 수 있는 장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거예요.

그 장치가 뭐냐? 하나님을 모시고 다닐 수 있는 그 장치가 뭐냐? 그게 마음이예요, 마음. 이것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마음을 빼앗아 갈 수 있어요? 이것은 절대적이라구요. 이 마음속에 감추어 두면 말이예요. 조그만 고무통 같은 데 큰 것을 갖다 집어넣으면 큰 야단이지만…. 마음이 얼마나 크냐? 하나님 열 분이 들어와 있더라도, 하나님보다 더 큰 것이 있더라도 훌쩍 삼켜 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하나님을 모셔 낼 수 있을 것 같소, 없을 것 같소?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 관계를 맺는다면 어디에 맺을 것이냐? 틀림없이 마음입니다.

귀한 것은 남이 보는 거 싫다구요. 남이 들여다보고 '야! 고거 내가 가지고 싶다'고 하면서 도둑질해 가는 거 싫다구요. 여러분, 마음을 볼 수 있어요? 마음이 있기는 있는데 볼 수 없다구요. 그걸 나는 알아요, 몰라요?「압니다」 나만이 안다구요. 나만이 알고 감춰둘 수 있는 곳을 우주 가운데서 찾다 찾다 보니 먼 데가 아닌 마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야! 그놈을 마음속에 다 감추면 그 이상 없겠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우주에서 제일 귀한 분이시니 그분을 어디다가 감추어 모시고 싶으냐? 마음 가예요, 깊은 골짜기예요?「깊은 골짜기요」 깊은 골짜기에 모셔 놓고는 어떻게 하려구요? 하나님을 굶겨 죽이려구요? 그건 안 된다구요. 깊은 골짜기에 숨겨 두더라도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길만 있다면 틀림없습니다. 마음속 깊이 꽁꽁꽁꽁 감춰 두어도 하나님이 좋아하실 수 있는 길이 뭐냐? 무슨 장사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하나님이 불편하실 겁니다. 그렇지만 꽁꽁 감춰 두고 '하나님과 나는 끊을수 없는 사랑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나가지 말고 나와 꽁꽁 묶어져서 하나됩시다' 하면 하나님이 싫어하겠어요, 좋아하겠어요?

자, 우리 나이 많은 양반들, 여기 전도관에서 오신 양반, 나이 많은 사람한테 물으면 틀림없겠지요? 어때요? 꽁꽁 묶어 가지고 사랑을 중심삼고 그 사람의 맨 밑창에 깊이 들어가서 하나되고 싶소, 그저 적당히 가다가 중턱에서 하나되고 싶소? 중턱에서요? 밑창에서요?「밑창에서요」 밑창도 어느 밑창? 맨 밑창 골짜기지요? 요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찾아보게 될 때 그길을 돌파하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은 무슨 길밖에 없다구요? 사랑의 길밖에 없습니다. 어머니가 귀여운 아들딸에게 사랑의 표시를 할 때는 어떻게 합디까? '아이고 곱다' 그래요? 그저 품에다 안고 얼굴을 비비고 하는 것입니다. 난 뭐 그럴 것 같은데 여러분들은 어때요? 아주머니들은 실감이 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일 것이냐? 그 자리를 찾게 될 때, 그건 아들의 자리 외에는 없습니다. 아들의 자리 외에는 없어요. 그 다음에는 상대적 관계 외에는 없습니다. 결론이 나왔어요.

그러면 '나'라는 존재를 두고 볼 때, '나'라는 존재는 위로 부모로부터 사랑을 상속받아 가지고 그 부모를 몽땅 자기 마음에 모시면 그 부모가 불만스러워해요, 행복스러워해요? 몽땅 자기 마음에 그 부모를 모셔 두고 사랑한다고 할 때,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겠어요, 싫어하겠어요?「좋아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볼 때, 아담 해와가 부모인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몽땅 받고 '하나님, 죽더라도 못 나갑니다. 사랑이 부족하면 모르지만, 사랑이 부족하지 않는 한 못 나갑니다' 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어요? 하나님도 '그러고 말고'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과 나와는 어떤 관계냐? 안팎관계가 되고 싶다. 그렇지 않아요? 안팎관계인데 무엇을 중심삼고 맺어 놓고 하나 만들고 싶으냐?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라는 건 사랑을 안 가지고는 안 되는 겁니다. '우리 집은 하나되어 있어' 그럴 때는 돈 가지고 하나가 되었다고 합니까? '어머니 아버지가 언제나 하나되어 있어' 그런 말 하지요? '우리 형제끼리는 의가 좋아', '우리 집은 다 평화로와', '우리 집은 너나할것없이 하나 되어 있어' 이런 말을 하게 될 때 그건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 말이예요? 돈을 가지고요? 어머니 서열, 장자 서열, 차자 서열 가지고요? 아니라구요. 이것은 정서적인 문제를 가지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은 여러분이 잘 알 거라구요. 하나님과 인간이 안팎관계로서 하나되어 가지고 이것을 묶는 데는 무엇을 가지고 묶느냐? '너자 나요. 나자 너'라는 경지에 까지 가야 하는 거예요.

절대적인 하나님도 상대가 없으면 기쁨을 못 느껴

자, 이제 여기서부터 결론을 짓고 들어갑시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어떻게 되느냐?(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 하나님은 내적이고, 사람은 외적입니다. 안팎의 관계입니다. 이 하나님과 인간은 서로 떨어져서는 안 되고 같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주의 중심은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혼자 있으면 우주가 형성됩니까? 그 우주에서 뭘해요? 버티고 그저 바라만 봐요? 사랑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오게 될 때에는 혼자 안 돼요. 하나만 가지고 안 된다 이거예요. 안 그래요? 아무리 훌륭한 미남이 있어도 혼자 버티고 있어 보라는 거예요. 상대가 없게 될 때는 그미남의 마음이 기쁠 수 있어요? 사랑이라는 개념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만 가지고 안 됩니다. 또 사람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사람과 하나님이 합해야 됩니다. 이게 원칙이라구요. 최제우 같은 양반은 인내천 주의 -이것이 횡적 관계냐 종적 관계냐 하는 것을 가려 놓지 못해서 막연합니다만-를 중심삼아 가지고 놀라운 말을 한 것입니다.

우주의 중심이 뭐라구요? 하나님은 하나님이지만 하나님만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하나님과 인간을 합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우주의 중심이 어떻게 우주와 관계를 맺어 나가느냐? 여기에 있어서는 사랑의 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가는 겁니다. 여러분 가운데 영계에 대해 체험이 있는 사람은 대번에 아는 것입니다. 영계에 척 들어가게 되면 말이예요. 영계의 공기는 뭐냐? 사랑이예요. 오늘날 이 땅 위의 생명의 요소는 공기지요? 물고기로 말하면 물이 생명의 요소지요? 마찬가지로 영계의 생명의 요소는 사랑이라는 거예요. 차원이 달라요. 호흡기관이 크면 호흡량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대소에 따라 그 사람의 영생도에 대한 장단이 벌어지는 거예요.

자, 이렇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보라구요. 하나님은 누구를 위해서 인간을 지었느냐? 누굴 위해 지었어요? 인간을 위해 지었어요, 자기를 위해 지었어요? 자기를 위해 지었어요? 인간은 무엇 때문에 지음을 받았느냐? 인간 때문이예요? 하나님 때문에 지음받았다구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우리 인간은 하나님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을 지은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그 창조의 목적, 지은 뜻은 어디 있느냐? 아담 해와를 보기 위해서 지었어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해요. 지은 목적이 어디 있느냐? 좋기 위해서. 좋은 데는 그냥 좋은가? 사랑함으로써 좋은 것이다. 그 창조의 출발은 사랑 때문입니다. 모든 존재의 기원은 사랑 없이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도 전부 다 사랑의 근거를 통해서 생겨납니다. 생물이 생명을 이어받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사랑 때문에 이어받는다구요. 요렇게 되는 거예요.

인간이 하나님을 대해 가지고 짝자꿍도 할 수 있고 맞장구도 칠 수 있는 무엇이 없어 가지고 어떻게 절대적인 하나님의 상대가 되느냐 이거예요. 이렇게 볼 때 사람은 하나님도 점령하려고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가능하겠어요, 가능하지 않겠어요? 여러분은 전부 다 세계를 내 것 만들겠다고 해야 합니다. 세계를 내 것 못 만들겠다고 하는 패가 하나님을 내 것 만들겠다고 그러겠어요? 그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여기에서 당연한 결론이 나옵니다. '아하,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는 전부 다 그분 것이지만 내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쯤 되면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가까와졌어요, 안 가까와졌어요?

요즘 기성교회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는 거룩하신 분이고 우리는 죄인 중의 죄인이다'라고 합니다. 그 죄는 죄 중에서 어떤 죄냐? 사형대에서 죽어야 할 죄냐, 그저 닭 한 마리 훔쳐 먹은 죄냐? 시궁창에 빠져 가지고 죄를 지었느냐? 어떤 죄를 지었느냐? 그저 하나님은 거룩하고 나는 죄인이예요? 덮어놓고 죄인이라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무슨 죄를 지었느냐 이거예요. 죽어야 할 죄를 지었다면 죽이는 데도 어떻게 죽여야 할 죄냐? 시궁창에다 처넣고 죽일 것이냐, 갈래갈래 각(脚)을 떠서 죽일 것이냐? 여러 가지 입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고 우리는 죄인'이라며 떡 갈라 놓고 야단하고 있다구요. 거 안된다는 거예요. 근본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이렇게 이야기하다가는 한이 없겠군요.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긴 했지만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들어 두면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하나님은 내적 하나님, 인간은 외적 하나님

자,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하나님과 아들의 관계를 보면 상하 관계지요? 아버지가 높으냐, 아들이 높으냐 할 때 누가 높아요?「아버지요」 그것을 물으면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아버지가 높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은? 아버지가 높다고 했으니 아들은 낮은 게 아니예요? 그러면 높은 자하고 낮은 자하고는 사랑할 수 없다고 하게 되면 하나님을 인간하고 사랑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지만, 사랑할 수 있다고 하게 되면 하나님은 인간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높은 분이고, 인간은 낮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보다도 높고 아들은 낮다는 거예요. 아들이 월 알아요? 금방 낳아 놓으면 핏덩이인데…. 갓낳았을 때에는 원숭이 새끼가 도리어 더 곱다구요.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이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머니도 '흐흥', 아버지도 '흐흥' 한다는 거예요.

자, 높은 사람하고 낮은 사람하고 하나될 수 있어요, 없어요? 주종관계가 될 때에는, 상하관계가 될 때에는 보라구요. 사람의 욕심은 아래를 좋아해요, 꼭대기를 좋아해요?「꼭대기요」 꼭대기를 좋아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상투 끝까지라도 올라가겠다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그것을 염려했던 거예요. 사람의 욕망을 이토록 높이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았어요? '하나님과 같이 되어야 할 텐데…. '하나님보다 더 높을 수 있으면…' 거기서 타락한 거예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상투 끝까지, 상투는 없지만, 꼭대기까지 올라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냐? 하나님보다도 자식이 더 높아지겠다고 할 때 하나님이 '야! 이 녀석아.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이놈의 자식아' 이랬다 가는 하나님 가정에도 싸움이 벌어지는 거예요. 안 그래요? 하나님 가정에도 하나님하고 아들하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언제나 아버지는 위이고 난 아래면 싫소' 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이렇게 되면 하나님도 곤란할 거라구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이상까지 생각해 가지고 인간을 지었다는 거예요. 자신의 창조성과 이상성까지 완전히 투입했기 때문에 인간이 불평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대해서 무엇까지 생각했느냐 하면 내외 관계까지, 좌우 관계까지 생각했다는 거예요. '얘야, 내가 위도 아니고 네가 아래도 아니다. 너하고 안팎 관계다' 알겠어요? 여기까치 생각했다는 거예요. 상하 관계가 아니라 안팎 관계라구요.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그렇게 했느냐? 안팎 관계, 상하 관계로서 모순, 상충이 없이 언제나 원만하게 계속 유지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할 때 사랑 외에는 없더라는 것입니다. 권력 가지고는 안 됩니다. 권위 가지고는 안 돼요. 그것은 대번에 깨진다는 거예요. 인간을 어느 정도까지 생각하느냐? 너는 밖이고 나는 안이라는 거예요. 그 말은 무슨 뜻이냐?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내적 하나님이요, 사람은 보이는 외적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기분 좋지요? 생각해 보세요. '인간은 보이는 외적 하나님이다' 한번 그래 봤어요? 통일교회 문선생 말을 빌려 얘기하게 된다면 '하나님, 높으신 당신도 내가 없으면 높다고 못 하오리다. 나는 외적인 하나님이다' 한번 그래 봤어요?

기성교회 목사들을 보게 되면, 언제나 주눅이 들어 가지고 '어이쿠 하나님 ! 저희는 죄인이옵니다' 하고 기도합니다. 그저 죄인, 종…. 거 기성 교회 목사였던 사람이 있다면 기분이 나빠도 할 수 없습니다. 사실이 그런걸. 종, 종…. 거 무슨 뗑그렁뗑그렁하는 종(鐘)이예요? (웃음) 그래, 일생 동안 허리가 구부러지고 늙어 죽도록 믿어 나오면서 겨우 종이 되기를 바라요? 되든 안 되든 아들이 되기를 한번 바라 보지요

인간의 가치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 문선생은 예수에 대한 인격비판을 무자비하게 했어요. 그러면 그보다 나아야 되겠어요, 못해야 되겠어요? 낫지 않으면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단의 괴수라는 팻말이 붙더라도 지금 버티고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진짜인가 두고 보자구요. 크고 작은 것은 대봐야 압니다. 그것은 누가 대보느냐? 하나님이 대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보는 것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이 대봐 가지고 작은 녀석은 집어 던지고 큰 녀석은 갖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내용이 같다면 작은 것을 가지겠어요, 큰 것을 가지겠어요?

그래, 통일교회 사상하고 기성교회 사상 중에 어느 것이 커요? 그것은 이제 겨우 유치원 들어가려고 말 배우는 어린이한테 물어 보더라도 '통일교회의 사상이 더 크지요' 하고 서슴지 않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큰 걸 좋아해요, 작은 걸 좋아해요?「큰 걸 좋아합니다」 사람은?「사람도 큰 걸 좋아합니다」 큰 걸 좋아하기 때문에 기성교회 문만 열어 놓으라는 거예요. 그러면 한꺼번에 설복당한다는 거라구요. 뭐 반년도 안 간다구요, 내게 맡기면….

이렇게 전부 다 하나 만들어 가지고 그걸 내가 탕진해 먹겠다는 것이 아니라 복받게 해주려고 지금까지 이러는데 그게 원수로구만. 여기에도 그저 반대하던 녀석들이 많이 왔을 거예요. '반대한 분들' 하게 되면 서로가 기분이 좋지 않다구요. (웃음)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탕감원리를 배웠기 때문에 '반대하던 녀석'이라고 해야 탕감이 되지…. 거기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래,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크냐? 하나님이 지팡이를 짚고 천년 만년 그리워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만히 보니까 요것이 우주의 근본이더라는 거예요. 이것이 안팎 관계가 됐으니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상하관계와 좌우관 계가 되니까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마음의 깊은 골짜기의 자리에 하나로써 단단히 묶어 줄 수 있는 자리가 무엇이냐 하면 그 자리는 종횡의 중심 자리입니다. 그렇지요? 요걸 묶어 놓지 않으면 종횡의 기준이 사랑의 이상형으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종적인 것이 아무리 있다 하더라도 횡적인 것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이렇게 안 지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속에 집어넣겠다는 것이 불경죄예요, 정당한 거예요?「정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마음속에 집어넣겠으면 얼마만큼 집어넣겠어요? 모셔 놓겠다는 것보다 요즈음처럼 싸우는 세상에 집어넣어야지 모셔 놓게 되어 있나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산다면, 여러분, 웃고 살겠어요, 울고 살겠어요?「웃고 살겠습니다」 남자로 말하면 세계에서 제일 가는 미인을 얻었다면 그 남자는 그녀를 보기만 해도 울겠소, 웃겠소? 웃는다는 것입니다. 또, 여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미남자를 모시게 되면 그를 보기만 해도 울겠소, 웃겠소? 웃는다는 것입니다. 거 웃으며 살고 싶다는 것은 뭐냐 하면, 세계 최고의 미남자는 아직 안 나왔다는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미남자는 하나님도 홀딱 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럴 것 아니예요? 하나님도 홀딱 반해요. 반하는 데에는 바깥도 반하지만 속도 홀딱 반하는 거라구요. 그러한 아들이라는 겁니다.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있었던 본질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적 종교가 될 수 있었던 그 본질이 어디에 있는냐? 그 본질을 찾게 되면 여기에서 이론적으로 하나님이 다 나와요.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셨습니다. 그거 보면 예수님은 욕심이 대단히 많다구요. 내가 어렸을 때에 '예수님은 욕심이 나보다도 더 많구만'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게 되면, 차생자(次生子)는 안 나오게요? (웃음) 그런 욕심장이가 어디 있어요? 하나님은 외아들만 사랑하게 되어 있구만? 거 안 그럴 것 같은데…

그러면 맏아들을 더 사랑하시겠어요, 작은아들을 더 사랑하시겠어요? 세상으로 보게 되면 부모들이 맏아들보다 작은아들을 더 사랑하는데…. 첫번째 사랑은 아무래도 어색하거든요. 세상 사람들이 밤을 따게 될 때, 외알밤을 좋아합디까, 세 알밤을 좋아합디까? 외알밤이 좋다는 사람은 덜 된 녀석이라구요. (웃음) 우리 인간도 그런데 하나님도 외아들들을 좋아하시겠어요? 이러한 모든 것이 근본적인 요인이 되는 거예요. 왜 하나님은 외아들을 좋아해야 되느냐? 왜 예수는 자신에게 독생자라는 말을 붙여야 되느냐? 그 요인이 어디 있느냐? 그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바라고 있는 것은 부활되는 것입니다. 하나에서부터 찾기 때문에 이런 모든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놀라운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은 아버지라고 한 말입니다. 이렇게 2천년 전에 그러한 사실을 해명해 뒀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그저 '우리는 종이다' 하고 있습니다. 하기야 아들을 믿고 있으니까 종밖에 더 되겠나? 아들을 믿어 가지고 접붙인다는 것을 모르거든요. 접붙인다는 것입니다. 접붙임을 해서 아들이 될 수 있는데 왜 종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선생님은 통일교회 패들이 종이라는 말을 하면 '이놈의 자식, 네가 종이야? 종새끼 될래?' 하고 기합을 준다는 거예요. 그래도 아들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면 종새끼는 면하지 않느냐 이거예요. 아무리 병신 아들이라도 그렇잖아요? 아들 가운데에도 쫓겨나는 아들도 많다구요. 탕자도 많구요.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인은 식구라는 자리까지 올라가야 돼요. 식구, 아버님을 모시고 사는 한 가정의 식구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고차적인 술어를 갖다 붙여 놓은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교인이라고 안 해요. 식구라구.

통일교회의 중생론

아담이 뭐냐? 해와가 뭐냐? (판서하심) 여러분. 아담이라면 '아, 담이 생겨서 아담이구나'하고 생각하라구요. 타락했기 때문에 담이 생겼다구요. 아담이 담 생긴 것을 다시 찾아와야 되겠으니, 일을 해서 다시 찾아와야 되겠으니 '해 - 와'(웃음) 타락 관념이 잘 정립되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아담이니까 아, 담이 생기지 않았어요? 그러니 복귀는 누가 해 오나요? 아담이 해 오는 것이 아니예요. 여자가 해 와야 돼요, 여자. 그래서 성신은 여자의 신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부 성자 성신이란 무엇이냐? 성부는 하나님이요, 성자는 아들이요, 성신은 딸이라는 것입니다. 딸의 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하늘을 상징하는 것이요, 평면적으로 볼 때 위를 상징하기 때문에 횡적으로 보면 남자가 중심입니다. 여자는 대상이기 때문에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여기에서 요렇게 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요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평면선상으로 진전하기 위해서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는 기반이 없기 때문에 이게 벌떡 서 버렸어요. 올라갔다는 것은 섰다는 말이 아니예요? 그렇지요? 서 버렸다는 것입니다. 올라갔다는 거예요. 평면적으로 안팎이 되어야 할 예수의 뜻이 그 기반을 못 가졌기 때문에 올라 갔다는 거예요. 벌떡 서 버렸으니 평면적 기반이 있어요. 없어요? 몽땅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러니 상대 기준은 어디에 세워야 되느냐? 할 수 없이 땅 위에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요건 올라갔으니까 하늘이예요. 하늘은 남자를 상징하고 땅은 여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 오려면 누가 와야 되느냐 할 때에 예수가 올라가고 성신이 여기에 실체로서 온다고 하는 거예요. 이게 무슨 장난이냐 이거예요. 근본 문제를 타진하게 될 때에는 전부 다 미궁에 빠져 춤을 추고 있고 오락가락하고 있다구요. 그걸 덮어놓고 믿자고 하고 있다구요. 그래, 지금 암에 걸려 가지고 몸이 썩어 들어가서 고름이 나고 냄새가 나는데 덮어놓고 믿는다고 해서 그 병이 낫겠어요? 나을 게 뭐예요. 죽었지 별수 있어요?

그래서 땅에 누가 온다구요? 천지(天地)라고 하지요? 지천(地天)이 아니라구요. 남녀(男女)라고 하지 여남(女男)이라고 해요? 성신이 땅에 왔기 때문에 예수님의 상대적인 신입니다. 예수님의 상대적인 신이 뭐예요? 어머니 신이예요, 어머니 신. 성신을 받지 않으면 중생하지 못하는 거예요. 다시 나는 데는 아버지 몸을 통해서 다시 나요?

그건 앉아서 조금만 생각하면 전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믿고 있는 걸 보면 머리가 된장통이라고 생각돼요. 이건 앉아 가지고 사흘만 생각하면 전부 다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중생하려면, 성신받지 못하면 중생하지 못한다고 소리를 지르고 야단하고 있으니…. 중생은 다시 나는 것인데. 아버지를 통해서 다시 나요? 어머니를 통해서 나야지. 그러니 성신은 어머니 신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거부할 턱이 없다구요.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돼요.

성신이 무슨 신이라구요?「어머니 신이요」 어머니 신이라구, 어머니 신. 어머니 신 앞에 예수는 누구라구요?「아버지 신이요」 구두가 아니라구요. 신는 구두가 아니라 구주(敎主)라는 거예요. 구주는 무슨 구주? 인간을 진짜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면 구주 가운데 어떤 구주를 보내겠느냐? 아버지 구주라는 거예요. 종 구주로서 인간을 구해 주면 인간도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만일 사랑하는 아들딸이 물에 빠졌다면 어머니 아버지가 '야! 이 종 녀석아. 우리 아들딸이 빠졌으니 빨리 들어가서 건져 오지 않을래? 이놈의 자식 ? 그래요? 사랑하는 아들딸이 물에 빠졌다면 누가 제일 먼저 뛰어들어가요? 형제가 뛰어들어가요, 부모가 뛰어들어가요?「부모요」 부모가 뛰어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주 중에서 무슨 구주로 오느냐? 형제 구주도 원치 않아요. 부모 구주라구요, 부모 구주.

통일교회에서는 예수 이름으로 기도 안 해요. 시시하게 안 하는 거라구요. 부모를 찾아가는 거라구요. 그래서 부모도 참부모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 뜯어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뜯어고쳐야 되는 걸 전부 다 모르고 있으니까 주춧돌을 바로잡으라는 것입니다. 이걸 떡 비뚤게 해 놓고 거기에 들어가서 살자고…. 태풍이 이쪽에서 불면 살 수 있지만 저쪽에서 불었다간 옥살박살이 난다구요. 알겠지요? 예수 믿는 양반들, 여기에 앉은 머리 하얀 아저씨, 알겠어요? 그래야 된다구요.

여러분, 승천이 좋아요? 승천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승천했다고 야단하지만 지극히 슬픈 놀음이라구요. 왔던 분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다니…. 다시 와야 된다니…. 출장갔던 사람이 사무 처리를 다 했는데 또 가야 되겠다고 한다면 그는 미친 녀석이라구요. 인간이 이런 등등의 문제를 미지의 사실들을 내포시켜 가지고 믿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중심한 아담(남자) 해와(여자)의 관계

요렇게 보게 된다면 대관절 아담 해와는 어떤 입장이냐? 아담은 무엇이라구요? 외적인 뭐라구요? (판서하시면서) 외적인 하나님. 해와는요? 해와는 뭐예요?「어머니요」 무슨 어머니라구요? 외적인 하나님인 아담의 상대지.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아담의 부인이지 뭐야? 외적인 하나님의 아내다 그 말이예요. 그렇지요?「예」 여기 기성교회 목사나 장로 요 고집통들이 왔으면 똑똑히 알아 두라는 거예요. '아이고, 통일교회에서는 문선생이 나와 가지고 해와가 외적인 하나님의 아내래' 요것만 듣고 가서는 '아이고, 그런 이단이 어디 있어?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주먹구구식이 아니라구요. 설명은 다 잊어버리고 이 한마디에 눈이 번쩍 뜨여서 '요것 봐라. 이단 찾으러 왔다가 찾았구만' (웃음) 그렇게 자기들만큼 생각 안 했겠어요?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 얼마만큼 생각했겠나? 얼마만큼 생각을 많이 하고 얼마만큼 기도를 많이 하고 파고들고 헤치고 들었겠어요? 세계 30억 인류를 대해서 당당코 이런 말을 하게까지 되었는데, 이런 깃발을 들고 나올 때까지 앉아 가지고…. 임자네들, 여기 통일교회를 알아보러 온 그런 순간적인 생각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그래 가지고 세계를 요리해서, 기름까지 묻혀서 판에 딱 찍어 가지고 싹 집어먹는 것입니다. 집어먹는 데도 거추장스럽지 않게 한번 집어먹자는 거라구요. 임자네들,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섭섭해도 할수없다구요. 통일교회한테 잡아먹혔다구요. 여기 들어온 사람들은…. 그래요, 안 그래요? 먹혔어요, 안 먹혔어요? 안 먹혔어요?(웃음) 안 먹히면 그건 망조(亡兆)라구요, 망조.

통일교회가 여러분을 찾아 나가서 하나가 되었어요, 여러분이 찾아들어와서 하나되었어요?「찾아들어와서 하나됐습니다」 그것이 먹힌 거 아니예요. 먹히는 중이면 통일교인이 아직까지 안 된 거예요. 먹혔다 할 때에는 통일교인이 되었다 그 말이라구요. 그래, 통일교회 교인이 되면 먹힌 거예요. 안 먹힌 거예요?「먹힌 것입니다」 누구한테? 통일교회 문선생 말고 통일교회한테. 통일교회 문선생 빼고 하나님한테. 이렇게 되면 좋지요? 여러분이 놀라 자빠질까봐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자, 해와는 누구라구요? 아담의 부인, 상대, 좀더 속되고도 실감나게 이야기하면 여편네. (웃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말이예요. 사람은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냥 '나는 너를 사랑하지' 하는 것하고 표정을 지으면서 '나는 너를 사랑해-' (웃음) 하는 것하고 어떤 것이 좋아요?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표정도 필요하고, 해와는 아담의 아내입니다.

그러면 아담 속에는 누가 들어와 있어요?「하나님이요」 큰일날 소리입니다. 잘 대답하세요. 난 대답한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이 대답하니까 나도 따라가는 거예요. (웃음) 아담 속에 누가 들어와 있다구요?「하나님이요」 하나님하고 아담하고는 어떤 관계라구요? 안팎관계입니다. 영원히 모순과 상충이 없는 평화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고 상충이 있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내가 위로가고 싶다고 하면 '오냐' 하는 것입니다. 안팎이 하나되게 될 때는, 주고받으면 돌아가지요? 「예」 돌아가기 때문에 위는 아래가 되고 아래는 위가 되어 다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따라서 남자와 여자는 절대 같습니까, 다릅니까?「같습니다」 남자하고 여자하고 절대 같아요?(웃음) 남자하고 여자는 절대 다르지만 사랑을 중심삼고는? 일체라는 말이 나오지요? 그래서 사랑은 둘이 하나될 수 있는 근본이기 때문에 둘 다 좋아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담을 좋아해야 되겠어요, 안 좋아해야 되겠어요?「좋아해야 됩니다」 무엇을 중심삼고?「사랑을 중심삼고요」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을 키울 때, '야, 아담아! 얼른 커라' 했겠어요, '크지 마라' 했겠어요?「크라고 했겠습니다」 크라고 해서 무엇 되게? 청소년 시대에서 사춘기가 되라고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그건 여러분이 대답하는 거라구요. 어서 빨리 커서 사춘기가 되기를 바랐겠어요, 안 바랐겠어요?「바랐겠습니다」 사춘기가 되었다면 '이제 너만을 생각하지 마라. 너만 생각하게 되면 미욱한 녀석이다. 상대를 생각해라'고 하나님이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했겠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하는 거라구요. 그래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되어 완전히 성숙한 후에는 '야야, 그냥 있지 말고 서로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아라' 하고 원했겠어요, 안 원했겠어요?「원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사랑이 악이냐 선이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악이냐. 선이냐? 가장 귀하게도 여기면서 가장 천하게도 여기는 것이 사랑이더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귀하면 귀한 것이지 왜 천하게 됐느냐? 질서에 상반된 일로 말미암아 그런 결과가 될 수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사랑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면 가를 수 없어

그러면 아담하고 하나님하고 하나된다면, (판서하시면서) 내외간에 하나되어 서로서로 사랑이 넘치게 될 때에는 아담이 하나님 될 수 있어요, 없어요? 대답해 봐요. 아담이 하나님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오늘날 기성교회 신앙은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와 비교 못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랑과 이상을 모르는 사람들의 수작이라구요. 따라서 아담이 사랑을 중심 삼고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된다면 그때에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했습니다. 우리의 성전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을 말하면서 그 집이 어떤 집이냐 하는 것은 분석을 안 하려고 한다구요. 그 집이 무슨 집이냐? 종의 집이예요? 무슨 집이예요?

만일에 아담이 결혼식을 한다 할 때 그것은 아담의 결혼식인 동시에 누구의 결혼식이예요?「하나님요」 정말 그래요? 나도 모르겠는데…. (웃음) 아담의 결혼식인 동시에 누구의 결혼식이예요?「하나님요」 하나님의 결혼식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남자 같아요, 여자 같아요? 대답해 보세요. 저기 있는 목사님, 하나님이 남자예요, 여자예요?「남자요」 남자예요? 남자 같지요? 대칭으로 보면 여자 같고 꼭대기로 보면 남자 같다는 거예요.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안팎을 갖추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안팎을 갖춘 분이라는 거예요. 그게 통일교회 원리입니다.

문선생이 그 자리까지 나간 것은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뭐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다' 한 줄 알아요? 밀가루로 떡을 빚어 놓고서 마음대로 '이것이 하나님이다' 한 줄 알아요? 실험 결과예요, 실험 결과. (웃음) 그래서 권위가 있다구요. 아무리 뭐라고 그래도 내 말을 못 믿겠으면 죽어 보라구요. 배때기를 째고 당장에 죽어 보라구요, 내가 거짓말 했나. 그런 의미에서는 뭐 '같을 것이다'가 아니라 '그렇다'는 것입니다. 못 믿겠거든 시험해 보라구요. 목을 찔러서 죽어 보라구요, 내가 거짓말 했나. 거짓말 했거든 내 목을 영계에 가서 자르라고.

뭐, 기성교회 목사들도 생명을 죽인다고 하는데 '통일교회 사탄 마귀 괴수야. 인간들을 전부 다 죽여 버리기 위해서 그런 말은 서슴지 않고할 소질이 있는 패들이군' 할지 모르지만 좋습니다. 좋아요. 이제 10년만 두고 보라구요. 고목은…. 20년만 두고 보라구요, 누가 맞나? 동산에 나무를 심어 보게 되면 큰 나무는 10년 이내에 다 가려집니다. 그렇지요? 싸리나무는 암만 커야 싸리나무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버드나무는 암만 커야 버드나무밖에 못 되는 거예요. 그러나 잣나무는 다른 거라구요. 그렇지요? 다르다는 거예요.

해와는 누구의 부인이라구요? 아담의 부인이지요? 아담을 제일 좋아하는 분이 누구라구요?「하나님요」 얼마만큼 좋아한다구요? 생명을 걸고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갈라져 있으면서 좋아하겠다는 거예요? 아닙니다. 딱 붙어서 좋아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라구요?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어디까지 딱 붙느냐? 사랑하는 그 마음속에까지 파고들어 가서 같이 붙는다는 거예요. 거기에 뭐 이의가 있어요? 이의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 속에도 들어갈 수 있고, 해와 속에도 들어갈 수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들어갈 수 있다구요.

여러분, 전기가 말이예요. (판서하시면서) 플러스가 있으면 마이너스가 여기에 반응을 일으키면 어떻게 돼요? 요렇게 돼지요? 요것을 중심삼고 이것이 결합되어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주체와 대상이 이렇게 운동을 해야 번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운동을 해야 영존(永存)이 벌어집니다. 운동이 없으면 영존이 벌어지지 않는 거예요. 그렇게 되려면 서로 반응할 수 있는 극(極)과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혼자 있기 싫어합니다. 하나님이 내적 성상이라면 외적 형상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야 이상권(理想圈)이 벌어집니다. 그래야 중심이 생겨납니다.

삼각형에서는 이상이 안 나옵니다. 삼각형 이상에서 이상이 나온다는 거예요. 작용하는 모든 것은 중심을 통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주의 중심이다, 생명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논법으로서 우주를 전부 다 결정지어야 된다는 거예요.

해와는 아담의 부인인 동시에?「하나님 부인입니다」 그게 어떻게 그렇게 돼요? 사람에게는 몸뚱이가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자기 아내라면 말이예요, 몸뚱이의 아내예요, 마음의 아내예요? 몸 마음이 맞아야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 나를 사랑하오? 부부끼리 그런 얘기를 곧잘 하지요? 얌전하게 생긴 사내일수록 더 잘한다구요. 믿지를 못하기 때문에…. 또 여기 부인들도 그렇다구요. 시집가서 한 반년만 되게 되면 남편에게 '당신이 나를 진짜 사랑하오?' 하고 묻는다구요. 남편이 '사랑하고, 말구'하면 '마음은 딴 데 두고 말로만 사랑하지요?' 하고 묻는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니야, 아니야' 하게 될 텐데 '아니야' 하는 데 있어서도 조금만 '아니야'했다간 기분 나빠합니다. '절대로 아니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진짜 마음을 몽땅 다 주고 사랑해? 천년 만년 사랑해?' 그렇게 묻고 싶은 것이 여자의 마음이라구요.

이 아주머니들, 처음 보는 아주머니들은 어땠어요? 아주머니는 안 그래 봤어요, 실례지만?(웃음) 뭐 웃는 것을 보니까 그렇게 돼 있다구요.

몸 마음을 합해서 일체가 돼 가지고 사랑받기를 원해요, 따로따로 사랑받기를 원해요? 일체가 돼 가지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은 얼마나 크냐? 하나님을 친구로 삼고 싶다는 거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가능한 내용인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와는 아담의 부인도 될 수 있는 동시에?「하나님의 부인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해와가 '아담이여, 당신의 몸뚱이는 나를 사랑하고 마음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동참시켜서는 안 돼' 그러겠어요?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이니까 이것이 한꺼번에 하나되어야 됩니다. 이랬더라면 몸과 마음이, 아담과 이것이 완전히 하나되고. 이것도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들어갑니다. 이렇게 하나되면 이것을 가를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젊은 남녀들도 첫사랑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명을 끊고 죽는다 산다 야단하지 않아요? 타락한 인간의 사랑도 그런데 하나님하고 인간이 완전히 딱 하나되어 가지고 인연맺는 놀음이 벌어지면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는 한 그게 옮겨지겠어요? 절대적이라는 거예요.

여기에서부터 태어난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는 누구의 자녀이겠어요?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자녀인 동시에, 아담 해와의 자녀인 동시에 참부모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참부모가 나옵니다. (판서하시면서) 참부모는 하나님을 빼놓고는, 하나님 어디 갔나?(웃음) 하나님을 빼 놓고는 안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 부모들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생겨났어요? 무엇을 중심삼고 생겨났어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생겨나지 않았지요? 「예」 하나님을 중심삼고 생겨나지 않았으면 무엇을 중심삼고 생겨났을까요? 「사탄이요」 그거 대번에 사탄 갖다 붙이면 기분 나쁘지. 무엇 중심삼기는 무엇 중심삼아? 둘이 맨 처음에 만나게 될 때 이상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만난 것이 아니고 인간적 사랑을 중심삼고 만난 것이지. 거기에는 돈이 걸려 있든가, 권력이 걸려 있든가…. 시시하다는 거예요. 어떻게 어떻게 사랑해서 이렇게 이렇게 생겨난 것이 여러분들을 낳아 놓은 부모들의 사랑의 동기더라.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 동기 원해요? 여러분은 그런 동기에 의해 태어났기 때문에 참자녀라고 할 자신이 있어요. 없어요? 참자녀라고 못 한다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안 나오게 되면 참자녀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형성됐어야 할 이 세계

그러면 (판서하시면서) 여기에서 태어난 자녀가 참자녀예요, 거짓 자녀예요?「참자녀입니다」 참자녀가 나오니 참다운 가정이 나오지요?「예」 요걸 중심삼고 참다운 씨족이 나오지요? 참다운 민족이 나오고 참다운 국가가 나오지요? 참다운 세계가 나오지요? 이 세계를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핏줄을 받아 가지고 태어날 수 있는 거라구요.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아주 뼛골이 녹아 지도록 별의별 놀음을 해 가면서 찾아들어가 보니 요게 골자더라는 것입니다.

요걸 중심삼고 타락이 벌어졌기 때문에 어떻게 되었느냐? 하나님이 먼저냐, 사탄이 먼저냐? 이런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관계되었느냐? 사람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그걸(사탄을) 만들어 놓겠어요? 고통받으려고? 그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이것이 천사이고, 이것이 아담과 해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주를 지은 것은 결국 무엇이냐? 보고 놀겠다는 거냐? 하나님이 살림살이를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시집 장가를 가서 아들딸을 낳고 사는 것을 뭐라고 그래요?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살림살이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살림살이를 시작해서 어떻게 할 것이냐? 자기의 족속을 중심삼고 사랑의 동산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뭐냐 하면 하나님이 살림살이할 이용물로서, 정원이요, 사용 비품인 것입니다. 근사하다는 거예요.

이것을 사탄에게 주기 위해서 만들었겠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노라리가락으로 만들었겠어요? 정성에 정성을 다해서 만들었지. 그런 최고의 걸작품인데 그 걸작품을 전부 다 그저 깨뜨려 버리기 위하여 만들었겠어요? 정성을 들여 만들었기 때문에 행여나 다칠세라, 흠이 갈세라 염려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이 타락을 했다는 것입니다. 뭐 세밀한 얘기는 다 못 하겠어요. 타락에 관해서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었느냐? 꺼꿀잡이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해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따먹게 하여 타락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걸 보면 기독교인들이 참 어수룩하다는 겁니다. 그걸 믿고 앉아 가지고 덮어놓고 천당 가겠다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데도 갈래길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호등의 불빛을 보지 않고 그냥 마구 달린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아마 절반도 가지 못하고 곤드레만드레가 될 것입니다. 천국이 가까운 줄 알아요? 세상에서 제일 가기 힘든 곳이 천국인데 덮어놓고 가요? 인사도 없이. 세상에 있어서 어느 집을 방문하는 데도 대문을 두드려 주인한테 승낙을 받고 가야 되는데, 하물며 친국을 덮어놓고 가겠다구요? 맹랑한 자식들. 그래 가지고 천국갈 것 같으면 내가 통일교회 욕먹는 놀음 안했어요. 나도 기성교회 신앙을 다 해본 사람이라구요. 뭐 내가 자기들보다 못나서 이 놀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사랑의 문제로 타락했으므로 사탄을 용서해 줄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타락이 됐느냐? 사탄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면 뭐예요? (판서하시면서) 간부(姦夫)입니다. 여기에 있는 목사님도 박장로교회의 간부였지?「그 간 자 아니예요」 그건 무슨 간 자예요? 다른 간 자예요?(웃음) 거 실감나라고 내가 이런 거 '묻는 거예요. 주의하라는 거예요.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 앞에 간부(姦夫)가 된다는 거예요. 오늘날 기성교회 목사들 전부 다 책임도 하지 않고 촐랑대다간 하나님 앞에 전부 다 간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겁탈하는 제2의 사탄이 되고 마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그런 면은 철두철미하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알겠어요?

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예수님이 와 가지고 말이야, 제자들이 묻게 될 때 죄인을 얼마만큼 용서해 주라고 했어요?「일흔 번씩 일곱 번이요」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해 주라고 했습니다. 그만하면 용서하기를 퍽이나 좋아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예수 님은, '사탄을 용서해 줘도 되겠소? 하고 한마디로 물었다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그렇게 용서하기를 좋아하는 아량이 있으니 '사탄을 용서해 주소' 할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역설적으로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걸 하고 끝날에는 심판해요?

세상의 부모도 자기 아들딸이 죄를 지어 교수형에 처해지게 된다면 자식이 죽기를 원하는 부모가 없다구요. 자기 마음대로 자식을 살려줄 수 있으면 백번 천번 살려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 아니냐? 어머니 마음이 더 그렇지요? 타락한 세계의 여인의 마음도 그런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대관절 무엇 때문에 끝날에 가서 심판을 해 버려야 되느냐? 하나님이 왜 용서를 안 해주느냐? 왜 용서를 못 하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은 얼마만큼 사랑하느냐? 예수가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한다면 하나님은 일흔 번씩 칠천 번 이상 용서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그렇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사탄을 한번 용서해 줘 보시지요' 하고 기도 한번 해봤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기분을 대번에 캐치(catch)할 수 있어요. 목사님들, 그렇게 해 봤어요? 이러한 사랑을 모르면 천지는 두 집 살림을 하는 것입니다. 한 집안에 사랑이 두 갈래의 길이 생기게 될 때는 그 집은 파탄이 벌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 자체가 파탄될 것입니다. 평화의 본궁(本官)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사랑의 주인을 둘을 개재시켜 가지고 지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가 사랑하는 여편네가 딴 남자에게 곁눈질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우리 목사님들, 어디 목사쯤 되면 그만한 것쯤 양해해야지요? (웃음) 어때요? 양해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양해해 줄 때는 천지가 다 무너지는 거라구요. 딴 죄는 용서하더라도 사랑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이것을 양보하는 날에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시작되고, 사랑으로 말미암아 주관권이 벌어지고, 사랑으로 통치이념을 바라 가지고 창조이상권을 실시하여 그 원리적 기준을 세운 하나님 앞에 이것을 재범(再犯)하게 된다면 천지는 어떻게 되겠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행복하겠어요? 하나님이 행복할 때가 있을 것 같아요? 가슴에 뚫어진 구멍을 메우고 다닌다는 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에는 복귀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증명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도 6천년 동안, 몇천년이예요? 6천년만 됐나? 몇십만 년씩 됐지. 기독교인들은 성경역사를 6천년에서 한 시간을 양보 안 해요. 축자영감설(逐字靈感設)이 뭐 어떻고 어떻고 해 가지고…. 그렇게 안 되어 있다구요.

자, 요거 알겠어요? 사탄이 뭐라구요?「간부요」 이걸 용서할 법이 있겠느냐? 여러분, 사탄이 하나님의 간부인 줄 몰랐지요?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나와서 비로소 그것을 구체적으로 세계에 선포하는 거예요. 이 사상이 국가적 기준 정도만 자리를 잡아 보라구요. 몇 개월 이내에 세계화되는 거라구요. 안 되면 내가 지금 만들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구요. 여러분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나이인 것 같지만.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사탄의 혈통을 받게 되었다

자, 그러면 어떻게 되어 있느냐? 여러분이 태어나기는 태어났지. 그런데 선조의 장난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요? 모르고 태어났다구요. 사랑하게 되어 사랑의 관계를 맺으면 핏줄을 받는 거지요. 그렇지요? 핏줄을 받는 것입니다. 핏줄이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아가씨가 이 남자도 사귀고저 남자도 사귀다가 결국 한 남자를 택해 가지고 그 핏줄을 받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왔다갔다할 수 있는 거라구요. 이 여자가 요 놀음 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더 큰사랑, 더 자극적인 사랑을 가지고 나타나게 될 때에 하나님이 타락할 기미가 있는 것을 아시고 절대적으로 '따 먹으면 죽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건드렸다가는 큰일난다는 겁니다.

그 당시 아담은 더벅머리 총각 아니예요? 아담이 총각 때니까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는 거라구요. 그저 '오빠', '해와야'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어다니며 굴러다니는 자갈이 반갑고 풀포기가 반가왔지, 아담이 해와 보고 반갑고 해와가 아담보고 반갑게 안 되어 있다구요. 그거 알지요? 우리 아가씨들은 다 그럴 때가 됐지요? 뭐 이성이니 하는 것을 생각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아무것도 모르는데 천사장은 정서적으로 나온 거라구요. 천사장은 하나님이 만물 지은 것을 알기에 설명을 잘 해준다구요. '해와야,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에는 이렇게 이렇게 짓고, 산을 지을 때는 요렇게 요렇게 지었고…' 하면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거예요. 그런데 천사장은 나이 많은 종새끼이고 아담 해와는 주인의 나이 어린 아들딸이라구요.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능수능란하게 천지창조의 역사를 얘기해 주니 해와는 재미가 쏙쏙 나는 거예요. 그때는 동화를 좋아하는 때지요? 그렇지요? 아이들이 열두 살쯤 되면 얘기만 해주면 그저 밥도 안 먹고 듣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슬픈 대목이 나오면 눈물을 죽죽 흘리며 통곡하는 거예요. 그때에는 정서적인 모든 것을 전부 다 받아들여요. 그건 창조본성 이라구요. 그래야 앞으로 이상상대 (理想相對)를 찾아간다 이거예요.

그럴 수 있는 때이기 때문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며 해와를 데리고 다녔던 거라구요. 또 그런 것이 자유스럽게 됐다구요. 이래서 나중에는 어디까지 갔느냐? 겁탈했다는 거예요. 그것이 타락이라는 거예요. 해와가 좋아한 게 아니라구요. 이러고 보니 결국은 천지가 엇갈렸다는 것입니다. 그거 왜 못 간섭했느냐? 그것은 통일교회 원리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건 내가 지금 얘기할 시간이 없어요.

이래 가지고 보니 본남편은 천사장이 아니고 아담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알았기 때문에 해와는 '이제 내가 살 길은 그 길밖에 없다. 이제라도 살 길을 찾으려니 아담을 붙들어 가지고 따먹으라고 강요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따먹어라' 하는 말은 무엇이냐? 사랑하자는 말이예요. 오늘날 세상에서 깡패들도 '아무개 여자를 따먹었다'는 말을 하지요? 말로도 딱 그렇게 표현한다구요. 그런 말 하지요. 세상에서도? 이래 가지고 사랑의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핏줄을 받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오늘날 세계의 인간입니다. 이렇게 된 거예요. 이만큼 왔어요.

인간의 구원은 재창조의 원칙에 의해서

자, 이제 수난길과 해방이라는 골짜기를 찾아들어가자구요. 이렇게 됐기 때문에 길을 잘 들었어요, 잘못 들었어요?「잘못 들었습니다」 얼마나 잘못 들었어요? 큰 야단 났다구요. 이 피가 핏줄을 통해서 내려오는데 하나님은 그 핏줄을 끊고 싶겠어요, 안 끊고 싶겠어요? 핏줄을 끊는다 해도 모가지를 비틀어 가지고 탁 끊어 놓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 인류가 전부 다 멸망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재차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재창조의 법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구원이니까, 병난 사람은 병나기 전의 원리원칙을 따라 가지고 해야 됩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이것이 문제가 돼요.

예를 들어 본래의 어머니 아버지가 재미있게 살고 있다고 합시다. 그때 어머니 뱃속에는 본래 아버지의 아들딸로 태어날 수 있는 오누이 쌍동이가 들어 있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난데없이 간부(姦夫)가 나타나서 본래의 자기 아버지를 죽여 버리고 어머니를 강제로 빼앗아 갔다, 어머 니가 좋아서 따라간 것이 아니라 강제로 빼앗아 갔습니다, 그래 가지고 강제로 같이 살면서 오누이 쌍동이를 낳았는데 그 아들딸이 오늘날의 우리 인류의 조상이다….

그런데 그 아들딸이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가짜 애비를 죽여야 되겠어요. 안 죽여야 되겠어요? 본래의 자기 아버지를 죽인 가짜 애비를 죽여 버리면 어머니는 어떻게 돼요?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면 남자가 그밖에 없으니까…. 여자들, 대답해 보라구요. 그 아들딸이 떡 보니 요놈은 어머니하고 붙들고 살고 있는데 모를 때는 모르니까 아버지로서 순응하면서 따라갈는지 모르지만 가짜 아버지인 것을 알았다 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 가짜 아버지를 죽여야 되겠어요. 안 죽여야 되겠어요?「죽여야 됩니다」 용서해야 되겠어요, 처단해야 되겠어요? 여기 목사님이 한번 대답해 보시지요. (웃음) 죽여야 되겠어요, 놔 두어야 되겠어요?「죽여야 됩니다」 죽여야 좋다는군요. (웃음)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혹은 아버지의 마음은 여편네하고 둘이 짝자꿍이 돼서 도망갔다면 간부(姦夫)도 찔러 버리고 여편네도 찔러 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럴 거 아니야? 자기 아버지는 그런 마음인데, 여러분, 효자라는 것은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하는 사람이 효자예요,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 효자예요?「원하는 대로 하는 사람이 효자입니다」 나는 그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의 소원대로 해야 되기 때문에 그 가짜 애비도 찔러 죽여야 되고, 그 다음엔?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애비는 물론 한칼에 찔러 버려야 되고, 에미는? 세상의 법이 어떻게 돼있어서 여기에서 정의를 가릴 수 있느냐? 이런 모든 법철학 기원을 잃어 가지고는 큰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부 다 가려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자를 찔러야 됩니다, 어머니를 죽여야 된다 그 말이라구요. 만일 죽여 놓으면 여자가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여자가 없으면 누이동생이 있지요? 안 그래요? 누이 동생이 있으면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어요? 그러면 그 출발은 타락의 혈통을 받은 조상이예요, 타락의 혈통을 안 받은 조상이예요?「타락의 혈통을안 받은 조상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첫사랑의 인연을 맺어서 태어난 아들딸이 있으면 하나님은 대번에 잘라 버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자기 아들이라도 때려 죽이고 싶다구요. 그렇지만 그 뱃속에 들떠 있는 애기도 전부 다 그 아들딸이다 할 때는 그 아들딸도 잘라야 되겠어요, 안 잘라야 되겠어요? 잘라야 되는 거예요. 멸종돼 버리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칠 수 없는 거라구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처음같이 됐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타락한 것을 그때 선뜻 잘라 버리려고 손을 댔다가는 어떻게 되겠어요? 인간의 근본은 씨알머리 없이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를 사랑해야 되느냐? 기왕지사 포기하는 것은 무엇이고 독려할 것은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그 미움의 대상은 바로 남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남자가 미움의 대상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미움의 대상인 그 자식이 자기 어머니 아버지의 핏줄을 받은 그런 아들딸로 태어나 가지고 천도(天道)를 배반한 사랑을 하여 가정을 가지는 것을 보고 싶겠어요, 안 보고 싶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에서는 독신생활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거 왜 도 믿는 사람들은 혼자 살잖아요, 불교나 기독교나.

가인 아벨 분립섭리

그러면 여자는 어떻게 되느냐? 본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남자를 짓고 그 남자를 본따서 여자를 지었습니다. 찾는 데 있어서는 아담을 창조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재창조의 법도를 거쳐야 되기 때문에 제2의 사랑의 소망, 즉 첫째번 사랑의 소망이 아니라 둘째번 사랑의 소망을 하나님은 간섭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 역사에 장자는 축복을 못 받고, 차자가 축복받은 원인이 여기에 있어요. 보라구요. 성경 66권을 보라구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 땅에서 나오게 될 때에 맏것은 그저 사람새끼서부터 동물새끼까지 전부 때려잡는 거라구요. 둘째번은 하늘편에 속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심판의 대상은 사탄이요 소망의 대상은 하늘을 찾아오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둘째번 아들을 통해 가지고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가르는 놀음이 벌어집니다. 사람도 가르는 거라구요. 본래는 아담 해와를 갈라야 되는데 가르면 죽어 버리기 때문에 가를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조금만 머리가 좋은 사람이 있으면 말이예요, 가만히 앉아 가지고 근본 문제를 파고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본래 주인은 하나님이요, 가짜 주인은 사탄인데, 이 둘이 사람을 놓고 하나는 오른손, 하나는 왼손을 잡고 서로 갖기 내기 싸움을 한다고 쭉갈라 놓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사람이 망하지요. 하나님도 망하고 사탄도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본래의 창조원칙은 사람을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둘이 서로 나누어 가집시다' 해 가지고 맏것은 사탄이, 나중 것은 하나님이 가진 것입니다. 맏것도 원리원칙에 따라 가지고 하늘을 섬기고 섬기게 해 가지고, 막을 수 없는 원칙을 세워 가지고 제물의 조건을 중심삼고 갖기 내기 운동을 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섭리, 즉 구원섭리입니다.

그러면 사람을 찾는 데 있어서 구약시대는 뭐 하는 시대냐? 물건을 중심삼고 제물을 드리는 때입니다. 하나님 앞에 완전히 제물이 되려면 피를 보지 않고는 안 됩니다. 성경역사가 그렇게 돼 있지요? 사탄의 피를 빼야 된다는 거예요. 인간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만물까지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간을 찾는 데 있어서는 만물을 통해서 인간을 재창조해야 됩니다. 그래서 만물을 통하여 희생의 제물을 드려 가지고 인간을 재창조했다는 조건을 세우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제물을 드려 나오는 것입니다.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대신 제물이 된 예수

그래서 예수가, 세밀히 이야기하려면 한정이 없지만, 제물적인 이상실체, 다시 말하면 찾아진 에덴 동산에서 죄짓지 않고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남성격 대표자로서 이 땅 위에 오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오기 위해서 무엇을 만들었어요? 양자권(養子國)을 만들었습니다. 양자권이 무엇이냐 하면 천사세계에 해당하는 거라구요. 에덴 동산에 아담이 있었고 해와가 있었고 천사장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양자권적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를 모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를 중심삼아 가지고 모실 수 있는 입장이 못 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칙을 두고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는 법이 없습니다. 알겠어요? 만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입장에서 죽인다면 창조원칙에 위반되는 거라구요. 본래 창조원칙에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는 법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느냐 이거예요?

그러면 예수는 어떠한 사람이냐? 아들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 온 사람 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단은 양자라구요, 양자. 핏줄이 다른 아들이라는 거예요. 그게 사탄과 나눠 가진 양자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권에 하나님의 직계 아들인 예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완전히 하나 되게끔 준비해 놓은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나중에 접붙여 가지고 하나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

이걸 접붙이려면 싹 될 수 있는 참감람나무가 있어야지. 돌감람나무이니까 말이야. 이것이 죽지 않고 꽃이 피고 감람나무가 되어 가지고 세계적으로 눈접하든가 가지접하든가…. 여기 여러분들, 전부 다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접붙여야 할 그 예수 하나가 접붙일 수 있는 책임을 못했습니다. 났다가 꽃도 못 피우고…. 예수가 열매맺어 봤어요? 열매도 못맺어 보고 이스라엘 땅에 왔다가 그냥 돌아갔다구요, 따라지 모양으로. 목수의 아들로 죽었다구요. 장가도 한번 못 가 봤다 이거예요. 그러니 씨를 받을 수가 있어요?

예수가 장가를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여기 목사님, 아들이 있겠지요? 그러면 그 아들 앞에 아버지 예수가 되었겠지요? 그 아들이 장가가서 아들을 낳으면 손자가 되지요? 할아버지 예수가 되었겠지요? 예수 자신이 말이야, 아버지 예수도 난 싫고. 할아버지 예수도 난 싫고, 족장 예수도 난 싫고, 나라 예수도 난 싫고, 세계 예수도 난 싫고, 이렇게 되면 말 되느냐구요?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태자를 통해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만왕의 왕이 되려 하니 아버지 예수의 자리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할아버지 예수, 족장 예수, 민족장 예수, 나라의 예수, 세계의 예수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걸 못 했다는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어떤 자리에 있느냐? 베드로, 요한, 야고보, 열두 제자, 70문도. 이들이 책임 못 하고 전부 다 반대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양자의 책임도 못 한 입장에 있다 이거예요. 그 발판이 와장창 깨져 나갔다 이거예요. 그러니 예수가 아들로 왔지만 할 수 없이 아들의 자리에서 양자의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죽는 데는 어떻게 되어 죽느냐? 아들의 입장을 가지고 양자의 대표로서 맞는 거예요. 누가 죄를 지었느냐? 예수가 죄지었어요? 하나님 앞에 있어서는 유대교가 죄를 지은 거예요. 왜 예수를 믿지 않았느냐? 이스라엘 나라가 죄지은 거예요, 예수를 믿지 않아서. 그러니 누가 맞아야 돼요? 양자들이 한 구덩이에 들어가 두들겨 맞아야 돼요. 그런 것을 대신 들어가 맞는 거예요. 아들이 맞았다면 천지가 깨져 나가는 거라구요.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사랑의 자리에 갔느냐? 양자 수습하는 사랑의 책임을 지고 십자가를 지고 돌아갔기 때문에, 아들로서 사랑받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사랑받은 아들이 되었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행세하며 살 수 있는데, 못 들어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낙원에 간거예요, 낙원. 낙원에 간 거예요, 낙원. 그렇기 때문에 다시 와야 되는데 다시 오는 데는 무엇으로 와야 되느냐? 아들로 와야 됩니다. 아들로 와 가지고 인류의 아버지 자리까지 들어가야 되는 이중의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부 세계를 풀어 보면 이런 등등의 난문제에 세계가 다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천주의 해방을 중심삼고 본 기독교의 입장과 책임

그럼 사탄이 자랑하는 것은 무엇이냐? 사탄과 하나님이 싸우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왜 사탄한테 번번이 져 가지고 이 놀음을 하느냐? 문제가 여기 있어요. 사탄은 하나님 앞에 교만한 마음을 들고 나와서 '이 세계는 내 것이다' 하며 자랑합니다. 몽땅 빼앗아 가지고 그 놀음 하고 있다구요. 사랑으로, 하나님의 참사랑으로 주관할 것이었지만, '동기야 어떻든간에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이 나한테 왔으니 할수없잖소' 하며 세계를 가지고 자랑하는 거예요. 사탄이 자랑하는 것이 무엇이냐? 물질을 중심삼고 '이 모든 만물은 내 것이야' 그 다음에는 '사람은 내 것이야', 그 다음에는 '가정은 내 것이야. 나라는 내 것이야. 세계는 내 것이야' 하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걸 대항하는 하나님의 섭리는 '너를 대하는 그것을 자르겠다' 이겁니다. 자르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요. 여기서부터 수난의 노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이 바로 어떤 입장이냐 하면 망명한 입장이예요. 나라를 가졌고, 가정을 가졌고, 아들을 가졌던 사람이 나라를 빼앗기고, 가정을 빼앗기고, 아들을 빼앗긴 망명객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지금 사탄은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고 하나님의 가정을 빼앗고 하나님의 아들딸을 빼앗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치 망명객과 마찬가지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기에서 이 원수 세계에 원동력을 어떻게 제시하느냐? 어떻게 혁명의 요건. 다시 말하면 해방운동을 제시하느냐? 그게 문제예요. 알겠어요? '망명객이 되기 직전에 원수의 손아귀에 붙들려 간 여편네와 자식이 있다. 그 여편네는 남편을 사랑했고 자식들은 아버지를 알고 있다. 틀림없이 그렇다. 또 백성이 자기들의 군왕을 누구든지 다 안다' 그런 입장에 서 있다면 혁명을 제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 있는 것이 기독교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의 기독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사탄세계와 대판 씨름을 해 가지고….

그러면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저 원수의 적진 중에 혁명을 일으키느냐? 문제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예요. 그러려면 누가 먼저 기수가 되어야 되느냐? 사랑하는 여편네가 원수를 대적해서 싸우는 겁니다. '이놈! 천지가 변하더라도 내 절개는 변할 수 없다. 내가 현재 사랑하는 이 마음은 변할 수 없다' 갈라 놓은 그 원한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대한 사랑의 흠모의 힘이 강해야 되고, 원수에 대한 적개심이 강해야 된다구요. 이래 가지고 부딪쳐 가지고 생명을 위협받더라도 '이 자식아! 천지가 갈라질지라도 나는 변함이 없다. 죽여라! 그렇게 해서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적진에서 생명을 걸고 원수와 투쟁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걸고라도 양보하지 않고 있는 거예요. 만약 사탄이 목을 자르게 되면 거기서부터 관망하고 있던 그 아들딸이 불이 붙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그와 관계되어 있는 정서적인 터전 위에서 아들이 열 있으면 열이 '이놈, 당장에 목을 자르겠다. 우리 원수를 갚아야 되겠다'고 하게 되는 거예요. 이러한 정의에 입각한 정서적인 무대에서 '생명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투쟁합시다' 해 가지고 원수 앞에 모가지가 잘렸다 하게 되면, 사탄에게 모가지 잘린 것이 나쁜 게 아닙니다. 그 가정이 몰살됐다 해도 그 민족은 영원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백성들이 '이놈의 자식' 하면서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운동은 피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탄의 아들딸들을 하나하나 빼앗아 가지고 뽑아 버리는 운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단결해 가지고는 뽑아 버리는 운동을 하라 이거예요. 이것이 기독교가 해야 될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를 뽑아 내야 됩니다. 뽑아 내려면 제물이 필요합니다. 사탄 것을 그냥 놔둘 수 없다구요. 정당하게 갈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물이예요, 제물. 소유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 제물입니다. 이렇게 물질로부터 갈라 내기를 해야 합니다. 아들로서 양자의 입장을 대신하여 제물이 되었으니 그 한을 풀기 위해서는 아들의 자리까지 가야 되는 거예요. 아들이 못 되었거든.

여러분, 사랑하는 외아들이 장가도 못 가고 17,8세에 죽었다면, 그 어머니 아버지 어떻겠어요? '야, 이 자식아! 장가라도 한번 가 보고 죽지' 그런 한이 있지요?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아들로 오셨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사명의 터전인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통합시켜 가지고 로마제국에 대항하여 당당할 수 있는 한 주권자로서, 대표자로서 하늘의 권세를 가지고 행차해야 할 그 걸음이, 몰리고 몰려 가지고 양자의 신세를 대신 가누기 위해서 죽었으니, 얼마나 한이 많겠어요? 아들로서의 한을 품고, 한 가정의 주인으로서 한을 품고, 양자의 설움을 가지고 죽었기 때문에 이 땅에 오셔서 그 한을 풀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다시 오셔야 된다는 거예요.

물질적으로 개인으로부터 세계 기준까지 찾아 나오기 위해 제물의 노정을 거치면서 4천년 동안 준비한 기독교인 것입니다. 이 기독교를 중심 삼고 아들을 이어받을 수 있는 소망의 기준이 메시아입니다. 즉,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 아들까지도 둘로 나눴다구요. 몸뚱이는 양자가 되고 마음은 하나님의 아들인데 사랑받는 아들의 입장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낙원에 갔어요. 천국 못 들어간다구요. 그 한을 풀기 위해서 다시 오시는 겁니다. 요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라는 나라에, 땅에 하늘나라의 기준이 없어지고 영적인 기독교, 구름에 떠다니는 기독교가 된 거라구요. 죽어서 천당가겠다구? 살아서 천국생활 해 가지고 천당갈 생각은 안 하고 몸뚱이를 부정하고, 세상을 부정하고, 영적인 것을 위주로 하고 있는 사상적인 기준이 기독교라는 거예요. 땅을 중심삼고 재림해 가지고 4천년 동안 수고해서 만들었던 주권을 다시 찾기 위해 세운 제2 이스라엘권이 민주 세계요, 제2 유대교와 같은 것이 기독교입니다. 유대교 시대에는 국가적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메시아를 보냈지만 지금은 세계적 기준을 중심 삼아 가지고 다시 요것을 해결짓기 위해서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를 찾아야 됩니다. 이러한 역사과정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찾기 위해 나선 무리는 어떤 전통을 이어받아야 하는가

자, 그러면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수난의 길과 해방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사탄세계에 있어서 봉화를 일으키고, 하늘나라로 새로운 주권을 세우기 위한 무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떠한 전통을 이어받아야 되느냐? 원수세계에 잡혀 와 가지고 자기 부모가 찢기고, 자기 형제가 찢기고, 자기 나라가 찢기고, 자기 세계가 지금까지 밟혀 온 원한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길을 이어받지 않고는 안 되는 거예요. 역사적인 실패를 했으니 실패한 그것이 한의 고비가 되는 거라구요. 열 번 실패했으면 열 번 한의 고비가 되는 거라구요. 그 한의 고비를 이어받을 수 있는 수난길에 들어가지 않고는 해방의 기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세계는 무엇을 중심삼고 자랑하느냐? 물질을 중심삼고 자랑합니다. 그 다음에는 백성을 중심삼고 자랑하고, 나라를 중심삼고 자랑하는 거예요. 세계에는 수많은 국가가 있지만 그 국가 가운데 사탄이 제일 자랑하는 나라는 하나입니다. 하나님 앞에 '이것이 내 나라다' 하고 자랑할 수 있는 나라는 하나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를 표준합니다.

이 사탄나라한테 지는 하늘나라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탄을 신봉하고 사탄에게 충성하고 사탄을 위해서 생명을 다 바쳐 가며 따르는 국가가 있다면, 그 국가 이상의 국가를 이 땅 위에 세워서 '네 나라의 백성과 내 나라의 백성, 네 주권과 내 주권, 네 땅과 내 땅을 비교하여 볼 때에, 네 백성과 네 주권과 네 땅은 더럽혀졌기 때문에 갈라 내야 할, 통째로 가질 수 없는 나라지만, 내 백성과 내 주권과 내 땅은 어느누구도 제2의 참소를 할 수 없고, 제2의 침범을 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하고 자랑할 수 있는 나라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나라를 갖지 않고는 하나님이 온 천지간에 주체성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의 사랑보다도 높은 사랑을 가지고 백성을 사랑해야 되고, 사탄의 사랑보다도 높은 사랑을 가지고 땅을 주관하는 주권자의 입장에 서지 않고는 하나님이 사탄세계의 악한 것을 정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하늘나라를 찾기 위해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총칼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세계의 사랑. 사탄세계의 백성을 뽑아 오는 데는, 그것을 갈라 내는 데는 무엇 갖고? 총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가지고, 더 높은 사랑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열만한 사랑을 하거든 백만한 사랑을 해 가지고 사랑으로써 점령 작전을 해서 개인으로 가정, 가정으로 종족, 종족으로 민족, 민족으로 국가, 이렇게 이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전통적 인연을 이어받으려면, 사랑하는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랑하던 여인이 지키던 길이요, 아들딸이 지키던 길이요, 백성이 지키던 길을 내가 길이 빛낼 수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 나라를 내가 책임지고, 그 가정을 내가 책임지고, 그 아들을 내가 책임지고, 그 아내를 내가 책임지고, 그 군왕을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는 입장에 서서 자신을 가지고 백방으로 몰려오는 모든 화살을 기쁜 마음으로 자기 일신에 맞겠다고 각오하고 나서야 합니다. 이런 수난길을 가겠다고 다짐하고 나서지 않고는 해방운동을 제시할 역군이 될 수 없는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가야 되느냐? 그것은 잃었던 백성을 살리기 위한 것이요, 원한과 설움에 사무쳐 죽어가는 아들딸의 해원성사를 하기 위한 것이요, 아내의 해원성사와 군왕의 해원성사를 하기 위한 것이 우리 백성으로서 응당히 자랑할 길이 아니냐. 수난길 가는 것을 의무로 알고, 그 나라를 위해 그들의 생명보다 천한 내 생명을 몇백 번 바쳐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생명을 걸고 새로운 주권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추앙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군왕을 추앙하는 망명객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일체가 되어 일편단심 절개를 세워 나오던 도리의 길을 전체를 대신해서 상속받고 나설 수 있는 자리를 갖지 않고는 안 됩니다. 아직까지 그 나라가 오지 않았고 그때가 오지 않았거든, 그 나라와 그때를 갖지 못한 섭리의 뜻 앞에는 필시 이런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살리기 위한 애국자는 자기 아내와 처자를 사랑하기 전에 나라를 사랑해야 되고, 자기 가정을 사랑하기 전에 백성을 사랑해야 되고, 자기 생명을 사랑하기 전에 주권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가는 것이 충신이 가야 할 정도(正道)입니다. 거기에 있어서는 이율배반적인 상충의 행각의 노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수난의 자리에서 승리한 사람으로 남아지자

예를 들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에,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고자 하는 데 있어서는 나라를 위해서는 가정을 버려야 된다는 거예요. 나라와 가정을 둘 다 찾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 되었다 할 때에는 보다 큰 것을 위하여 작은 것을 희생해야 되기 때문에, 이러한 비운의 운명에 사는 것입니다. 만약 하늘나라의 주권이 피해를 입었고, 그 나라의 권위가 멀고, 이 땅이 황폐해 버리고, 그 백성이 온데간데없는 입장에 서게 되어 그것을 다시 찾아 나서야 할 애국자라 할진대는, 그러한 천륜의 심정을 본받아 가지고 생명을 몇 번이라도 희생해 가면서 그 백성이 맞은 것은 내가 맞은 것이요, 그 백성이 희생했던 아픔은 내 아픔이요, 그 일가가 비참하였던 것은 내가 몇백 년 막아야 될 책임을 못 했기 때문이라는 분한 심정을 갖고 그 한을 풀겠다고 현실 생활에서 다짐해야 합니다. 그러한 자기 주체성을 갖고 나오지 않고는 그 나라를 맞이할 수 있는 길은 영영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투지력을 가지고 그 이상 단결하여서 그럴 수 있는 실력을 연마하기 전에는 하늘나라를 복귀하고 그 나라를 복귀해서 새로운 이상적인 나라, 새로운 소망적인 나라의 주권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마치 그와 같은 입장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아들도 죽였고, 성신도 지금까지 희생시켜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개인이 죽어 나가자빠지는 것을 보았고, 가정이 망해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종족이 망해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나라가 망해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아들딸이 얼마나 사자밥이 되고 기름 가마에 튀겨 죽고 처박혀 죽었는지 잘 보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 보았던 사실들을 그저 흘러간 사실로 넘겨 버릴 것이 아니라 보았던 내 일신에 그 전통을 이어받아 가지고 오늘 산 부활의 실체가 되어, 원한의 상대를 전부 다 일소해 버릴 수 있는 하나의 대표적인 개인이 되고 기수가 되어, 천만 번 죽음을 가려 가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일편단심 한번 정한 심정의 자세는 일보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충절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하늘나라의 복권운동(復權運動)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만세의 주인이 되고 만군의 주인이 되어야 할 그가 설 수 있는 땅이 어디 있으며, 그가 거느릴 수 있는 백성이 어디 있으며, 그가 다스릴 수 있는 주권이 어디 있느냐 할 때, 그 주권 대신 남아질 수 있는 한 사람, 국토 대신 남아질 수 있는 한 사람을 바라서 보냈던 예수 그리스도를 잡아죽이는 그 순간은 나라가 쓰러지는 순간이요, 국토가 깨져 나가는 순간이요, 백성이 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쓰러진 이스라엘 주권은 어디 갔으며 백성은 어떻게 됐느뇨? 사자밥이 되었고, 혹은 각 시대 시대 민족 앞에 말발굽에 짓밟혀 가지고 쓰러진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바라볼 때, 애국애족해야 할, 천륜의 도리를 찾아야 할 하나의 주권을 모색하는 인류, 온 세계 국가군(國家群)을 바라볼 때 수많은 주위의 국경선이 가로막혀 있는데, 이 국경선은 누가 막아 놓고 주권은 누가 세워 놓았느냐! 그것은 원수의 조작으로 만들어진 주권이요, 원수의 조작으로 만들어진 국경선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한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타파하고 갈 수 있는 무리, 원수 사탄의 땅을 처치해 버릴 것을 각오하고 결속해 가지고 나설 수 있는 무리는 어디 있느냐? 그 무리는 오늘날의 기독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자중한 자리에서 자각하고, 자각한 자리에서 내일의 소망을 재차 다짐하면서, 오늘 스스로 준비를 완벽하게 해 가지고 전진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철옹성 같은 조직을 갖춰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행차하는 데 다시 수습이 필요 없는 생활과 더불어 전통의 길을 가려 나가지 않고는 사탄권내에서 승리의 한날을 맞을 수 없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탄의 참소를 도피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며 이것을 가려 가지고 피해갈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이냐? 그것은 죽음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알게 되면 열 사람이 따라오다가도…. (잠시 녹음이 중단되었음) 말은 좋고 내용은 좋고 가는 길은 좋다고 하지만 따라올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결의한 패들은 네 발이 찢기거든 내 발이 찢긴 이상의 아픔을 느끼고, 네 집이 망하거든 내 집이 망한 이상의 아픔을 느끼면서, 네 아픔을 내가 당하고 내 아픔을 네가 당해야 할 공동 목표를 중심삼은 하나의 주체와 같은 입장에서 결속해야 되겠습니다.

동네방네 울려오는 통일교회 반대의 소문을 들을 적마다 우리의 피는 끓고 우리의 가슴은 불타 가지고, 그것을 그저 흘러가는 자극과 원한의 조건으로 받아들여 내 일신을 어려움의 자리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미래의 자극의 터전으로, 내일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기초로 소화 흡수할 수 있는 자주력을 가지고 병난 세계에서 병나지 아니한, 면역을 갖춘 사람으로 남아지자 하는 것이 오늘 이 사망권내에서 싸워 나가는 통일교회의 입장인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수난을 각오하지 않고는 해방의 기수가 될 수 없어

그러면 우리는 어떠해야 되겠느냐? 사탄이 주관하던 만물권, 사탄이 주관하던 사람, 사탄이 주관하던 주권, 그 주권자보다도 강해야 되겠습니다. 그 백성의 아들딸보다 그와 연결된 그 누구보다도 강해야 되겠습니다. 내 소유는 비록 하나의 손수건일망정 세계보다도 귀한 것으로 제물 드릴 수 있는 신념을 가지고, 물건과 아들과 나 자체를 하나님 앞에 세계를 대신해서 제물 드릴 수 있는 권한을 고이 상속받겠다는 신념을 갖지 않고는, 그런 수난길을 다짐하지 않고는 완전 해방의 기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라를 찾기 위하여 나선 사람은 개인을 희생하고 나서야 되고, 가정을 희생하고 나서야 되고, 종족을 회생하고 나서야 되고, 그런 민족이나마 안 되게 될 때는 민족을 버리고 하나의 주권을 따라 가지고 고립된 길까지도 갈 수 있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민족까지도 버려야 됩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저버리고 홀로의 몸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나라의 군왕이 남긴 유업과 더불어, 그가 제시한 방향과 더불어, 그가 바라는 이상의 나라와 더불어, 나는 홀로이지만 서 있다 할 수 있는 그 사람이 이 땅위에 보내심을 입었던 메시아였다는 것입니다. 메시아 사상은 그거 아니면 안 됩니다.

민족을 살리기 위해 낮은 자리로 내려가자

하나님 앞에 한 나라의 땅을 들어 '이 땅은 당신이 사탄이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땅입니다', 한 백성을 들어 '이 백성은 당신이 사탄이 백성을 사랑한 몇십배 몇천배 사랑할 수 있는 백성입니다', 주권을 들어 '이 주권은 당신이 소원한 주권입니다' 하며 일시에 그 국토와 백성과 주권을 봉헌하기 위해 왔던 것이 예수 그리스도였는데, 이것을 잃어버리고 간 예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누울 수 있는 한 조각의 땅도 없었습니다. 토기장이에게 빌린 땅에 묻혀야 했습니다. 황천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친척이 없었습니다. 원수의 비소와 더불어 가야 했습니다.

그가 찾던 나라와 백성과 땅은 어디 갔느냐? 다 잃고 가는 비참이 극한 자리, 낙망이 극한 자리에서 이 땅에 자신의 소신을 다 펴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미래에도 남기지 않으면 안 될 생명을 가졌던 사나이이기 때문에, 망하는 나라를 바라보며 원수의 일가와 종족들에게 축복을 중심삼은 미래의 나라를 남겨야 되겠기 때문에, 억울한 사정을 갖고 갔던 예수님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나라를 이어받아야 할 것이 기독교의 사명이요, 그 나라를 위해 천륜의 도리를 밝혀야 할 것이 기독교의 사명인데, 사리사욕을 위해 당파 싸움을 하고, 자기의 권위와 이익을 위해서는 나라와 뜻이 어떻게 되는지, 천도는 어떻게 되는지 생각지 않는 이 무리를 그냥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밤이 오거든 낮으로 맞고, 낮이 오거든 더 빛날수 있는 낮으로 맞으면서 불철주야 걸어온 행각의 노정에서, 몰아치는 시련이 아무리 크다 해도, 몰아치는 폭풍우가 아무리 거세다 해도 사나이 가는 절개를 꺾을소냐? 사나이 가는 용기와 기백을 꺾을소냐? 원수를 한칼에 치지 못한 한을 못 푼 사나이는 죽을래야 죽을 수 없다'는 결의를 가지고 준비해 나가는 걸음걸이를 가야 할 것이 기독교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걸 못 했기 때문에 그 짐이 오늘날 통일교회에게 남아진 것입니다. 그렇게 된 거예요.

민족을 살리는 데는 어디서 살릴 것이냐? 고루거각(高樓巨閣)의 높은 권위의 자리에서 살릴 것이냐? 죽는 자리는 떨어지는 자리이기 때문에 떨어지는 자리에서는 죽을 사람을 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내려가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내려가자! 먹을 자리를 피해 가자. 입을 자리를 피해 가자. 내가 좋아하는 자리는 사탄이 좋아하는 자리 아니냐? 여기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는 격리된 자리에 가자' 하는 것이 통일 교회가 가는 길이예요.

여러분, 우리가 먹고 입고 하는 것들을 중심삼고 성별하기 위해 성염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있어 가지고 이 땅에서 수확한 것을 성염으로 성별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어디 있고, 자유로운 판도는 어디에 있으며, 이 백성이 서로서로가 딛고 사는 대지를 찾아갈 적마다 성별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땅은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이 성별의식을 할 때, 성염을 쓸 적마다 '이놈 사탄' 하며 이를 갈아야 됩니다.

삼천리 반도가 하나님 앞에 품길 수 있는 날, 삼천만 민중, 이 나라 이 민족이 앞으로 오시는 주님의 이름을 대신하여 세계 만국을 대신해서 설 수 있는 민족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일시에 바쳐질 수 있는 민족이 되거든 이 민족은 세계의 조국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이 나라를 망하게 해서는 안 돼

그렇기 때문에 수난길을 피해 가지 말고 수난길 앞에 정도를 어떻게 세우느냐, 거기에 어떻게 전통적인 기초를 다짐하고, 전통적인 한 기원을 어떻게 발굴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싸워 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수난길과 해방운동이라는 문제를 부르짖어 오는 거라구요. 우리는 해방운동을 하는 거라구요.

우리는 철갑같이 꽉꽉 구속되었던 몸들이라구요. 담이 하나뿐만이 아닙니다. 개인을 막고 있는 담은 개인이 넘을 수 있지만, 그 높이는 가정을 위해 친 담은 더 높았고, 종족을 위해 친 담은 더 높았고, 나라를 위해 친 담은 더 높았고, 남북을 갈라놓은 삼팔선의 담은 세계적인 담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헤치고 가야 할 사명을 짊어진 사람들이 통일교회 교인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에게 있어서 세계적인 십자가를 지고 비틀거려면서도 쓰러지면 안 됩니다. 쓰러지더라도, 담을 넘고 나서 머리를 꺼꾸로 처박고 죽더라도 넘은 그 가정의 터전 위에서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가정은 죽더라도 거기에서 가족을 데리고 종족의 울타리를 넘어야 되고, 종족은 망하더라도, 통일의 일가 망하더라도 민족의 울타리를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민족의 거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화살을 다 받고 모든 억울함을 다 당하더라도 그 비참한 화살은 하늘의 영광이 다짐될 수 있는 것이요, 악의 무리 원수의 주권하에 있는 백성이 그러한 사정을 극복하고 나서게 될 때에는,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백성의 전통을 세우고 사탄세계에 승리의 왕국을 세울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굶주린 배를 붙안고 눈앞의 원수가 있는 적진을 응시하면서 한 걸음 두 걸음 비틀거리면서 걸어온 통일교회예요.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통일교회가 찾아가는 이 나라는 망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을 무자비하게 수난길로 몰아내야 할 불쌍한 사나이가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거예요. 가는 길에 눈물이 엇갈리고, 오는 길에 눈물이 엇갈리고, 설움이 엇갈리는 그 순간을 통해서 우리의 소망의 나라의 절개를 다짐할 수 있는 그 길을 다리 놓지 않고는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절박한 국제정세를 놓고 우리는 담판기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민족을 대신하여 수난길을 누가 책임질 것이며, 남북의 가름길을 갈라 내는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 현재 이 나라의 부패한 위정자들에게 그것을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이 민족의 수난길을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다짐하는 데 있어서는 이 민족만의 수난길을 짊어지겠다고 다짐해 가지고는 안 되겠습니다. 아시아를 붙들고 이 민족의 수난길을 책임져야 되겠고, 세계를 붙들고 이 민족의 수난 길을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더 높은 시련의 고개를 넘는 것이 내가 응당히 가야 될 책임으로 알고 그곳을 향하여 가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싸움을 내일의 싸움의 훈련으로 알고, 세계적 수난길을 상속받기 위한 훈련 도상의 국가적 국내적인 시련으로 알고 갈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는 사람은 가다가 꺾일 것입니다. 그 담을 못 넘는다면 나라가 넘어야 할 고개보다도 세계가 넘어야 할 고개의 담이 막혀 있을 때 그 담을 못 넘을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선생님은 가정을 버렸던 사람입니다. 부모와 처자를 버린 사람입니다. 버리고 통일교회 여러분들을 더 사랑한 사람입니다. 틀림없이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 전통적 사상은…. 대한민국을 거쳐서 세계를 사랑하려니 편안한 길이 아니라구요. 사랑의 길은 편안한 길이 아니예요. 수난의 길이예요. 수난길과 해방운동…. 그렇게 가다 보니, 우리 통일교회가 이렇게 올라오기 위한 것이 아니예요. 가다 보니 죽을 자리에 몰아넣었지만 죽으라고 한 사람은 죽지 않고 죽이겠다고 하던 사람은 죽었습니다. 그게 이상하다구요. 망하라고 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고 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기성교회는 망해 떨어졌습니다.

통일사상으로 이 나라를 통일시키자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입고 어려운 길을 넘어왔지만 반대하던 무리가 그 길을 그대로 따라오고 있다는 거예요. 기성교회 목사들이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밟다가 밥목사가 되는 거라구요. 그대로 딱 되는 거라구요. 이렇게 볼 때에 우리는 하늘의 협조를 받고 넘어가지만 뒤에 따라오는 패들은 하늘의 협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누가 협조해 줄 것이냐? 통일교회가 협조해야 된다구요. 기가 막힌다구요.

우리가 앞에서 저들을 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여! 저들을 버리지 마시옵고 저들을 데리고 가야 될 것이 아니옵니까? 하는 놀음을 해야 합니다. 누가 그 놀음을 해야 되느냐? 요셉이 해야 된다구요.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요셉과 같이 하늘이 보호하는 사람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들에게서 하나님은 이미 떠났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저들을 데리고 가야 되기 때문에, 그들의 복을 빌어 줘야 하기 때문에 별의별 놀음을 다 하고 있는 거라구요, 별의별 놀음을.

내가 청년 시절에는 용서 못 하는 성격이었다구요. 옛날에도 누구한테 한 대 맞아 본 사람이 아니라구요. 그렇지만 맞기도 많이 맞고 원수도 많지만 그게 원수가 아니라구요. 그래도 내가 없을 때는 하나님이 외로울 때 효성의 도리를 다짐했던 무리들이 아니냐? 형님들이 아니냐? 딱 요셉과 마찬가지라구요. 그러니까 그들을 위해서 우리는 축복을 해주고 길을 닦아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민족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로 우리가 나서야 되고, 기독교가 나서야 되는 거라구요. 공산당의 원수는 기독교가 아니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선두에서 승공활동을 중심삼아 가지고 승공사상을 들고 나올 때에는…. 반공연맹도 이제는 때가 지났다구요. 실력 대결에서 우리한테 무릎을 꿇어 가지고 이러한 실적권에 들어온 것을 볼 때, 이제야 우리의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6천년 동안 하나님이 고대하고 바라던 때가….

그 한 나라의 주권을 중심삼고 천주를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의 찬양을 드릴 수 있는 하나의 백성과 더불어 삼천리 반도를 찾아 나섰는데 이 땅이 둘로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원리를 중심삼고 보면 안 갈라질 수 없는 거라구요.

이래가지고 개인에서 가정, 가정에서 종족, 종족에서 민족, 민족에서 국가, 국가에서 세계…. 여기에는 개인적 가인, 가정적 가인, 종족적 가인, 민족적 가인, 국가적 가인, 이렇게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 이 나라를 무엇으로 통일시키느냐? 통일사상으로 통일시켜야 합니다. 통일사상을 갖지 않고는 이 나라를 해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북괴가 김일성 사상을 가지고 통일을 꿈꾸고 있는데, 이것이 문제예요. 만약 통일사상만 집어넣어 보라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런데도 불구하고 천대를 받고….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한이 많다는 것입니다. 벌써 12년 전에 대전 형무소를 중심삼고 간첩교화 문제를 들고 나와서 법무부에 건의했지만 통일교회는 이단 어쩌고 하면서 거절했습니다. 이제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너무 때가 늦었다구요.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있을 수는 없으니 이제는 결정적인 판가름을 해야 할 시대가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년에 들어와서 내가 이렇게 바쁜 거라구요. (녹음이 잠시 중단되었음)

통일사상의 상속자가 되라

남한이 종교 사상을 중심삼고 제1, 제2해방을 했으면 제3해방을 해야 할 텐데, 남북한 제3해방을 누가 할 것이냐? 그것을 누가 할 것이냐? 기독교? 유교? 누가 해야 할 것이냐? 공산당이 하는 거예요? 공산당이 하면 망하는 거라구요. 종교인들을 그저 몽땅 없애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체 종교를 대표해서 우리가 하자는 거예요. 우리가 기수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작전은 우리가 맡아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어요?「예」

우리는 수난의 길과 해방운동의 기수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 전통적 절개와 사상을 이어받고, 그 군왕이 아팠던 그 가슴을, 그 가정의 아들딸이 아팠던, 그 국민이 아팠던 격분심을 가지고, 원수 앞에 지배받던, 하나님의 원수요 우리의 역사적인 원수를 갚기 위해 원수의 본거지를 향하여 총공격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사명이 선두에 선 통일교회 식구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밤이나 낮이나 그곳을 향하여 우리는 달리고, 승리로써 이 나라를 이끌어 놓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난길과 해방운동이란 것은 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수난이 크면 클수록 그것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보람있는 전통이 되고, 천년 만년 살아서 수많은 하늘나라의 백성을 한꺼번에 끌고 다니는 원동력이 되고, 재료가 되고, 누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근세의 해방뿐만이 아니라 역사적 해방까지도 여기에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제 그러한 결의를 가지고 앞으로 통일사상의 상속자들이 되기를 바라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 도

​이 자리에 서 있는 자식을 당신이 사랑하시거들랑, 이 자식이 가야 할 길을 더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식이 생각하는 사상이 있거들랑 그 사상이 당신의 마음에 그릴 수 있는 사상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모든 귀일점은 사탄이 자랑하던 나라와 사랑하는 백성과 사랑하는 주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 이상 사랑할 수 있는 그러한 백성과 땅과 주권으로 만들어야 할 당신의 거룩한 선의 주권을 향하여 출발한 행보였기 때문에, 가는 길이 아무리 치열한 노정이라 하더라도 저희들은 그 길을 가기를 결심했사옵니다.

수많은 사람의 비난과 비소도 받아 보았고, 원수들에게 저주도 받아 봤고, 아픈 가슴, 쓰라린 가슴을 다 숨겨 가면서 그런 자리에 세워진 것은 세상의 돈을 위한 것이 아니요, 그 나라의 권위를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아들의 권위가 그러하기 때문에, 당신이 걸어가신 걸음을 따라가야 할 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니 갈 수 없는 심정적 일로를 남겨야 할 전통적인 행각의 노정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늘까지 죽지 않고 남아진 것만을 감사드립니다.

그런 행로에서 몇천 번 죽기를 다짐할 적마다 아버지께서는 살려 주어 지금까지 남겨 주신 뜻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저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은 내일의 큰 소망, 지난날보다도 더 다짐해야 할 소망이 앞에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될 때, 해가 가고 날이 가는 것이 원통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혈기 충천하여 하나님을 위한 의분에 불타고 그 의분과 기백에 세포 세포가 약동하던 젊은 지대를 보내고, 반세기의 행각의 노정을 지내고 나서 그때 이상의 정열을 가지고 하나님의 섭리를 위하여 싸워야 할 당신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날 이 한을 풀 수 있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대학가에서는 원리연구회가 여러가지 문제를 중심삼고 싸워 왔습니다. 이 나라 이 백성을 치리하고 있는, 이 나라의 주권을 다스리고 있는 수많은 정책 수행자들을 들이치고 감동시켜야 할 책임, 혹은 교수들을 중심삼고 공청회를 듣게 하면서 지금까지 해 나왔습니다.

그 나라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살려줘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반대를 받으면서도 저희들은 굶주림을 각오하고, 헐벗으면서도 때로는 개밥을 먹고 피를 팔아 전도하고, 피를 팔아 모은 돈까지 긁어모아서라도 목사들을 살려주기 위해서 눈물 흘려 나왔습니다. 내가 한푼을 아껴 갈라 쓰고 한푼을 쪼개 쓰는 자리에 서더라도 남아진 푼푼을 모아 이들을 살리기 위해 쓰는 그것이 당신의 가는 길이요, 하늘나라와 세계를 해방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가 그러지 않고서는 안 되겠기에 지금까지 안간힘을 다해 나오는 것이옵니다.

우리는 몇 열 종대로 아버지 앞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일렬 종대로 아버지 앞에 가는 외로운 무리이옵니다, 선두에 선 자가 쓰러지걸랑 그 다음에 선 자가 선두를 대신해야 되겠고, 그 다음에 선 자, 그 다음에 선 자, 이렇게 말단의 어린 소녀까지 책임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단 한 줄을 통하여 이 길을 닦아 오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때, 때로는 기가 막히고, 때로는 어이가 없사옵니다. 오히려 당신께서 이런 길에 서고 이와 같은 환경에서 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천만 비운을 넘고 당신을 부여안고 통곡을 하고 싶은 심정이 엇갈릴 적마다 당신은 위로해 주고, 당신은 일깨워 주셨습니다. 당신이 가야 할 세계의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식들이 가야 할 수난길이 아직까지 미급한 것을 깨닫고, 눈물로 회개를 다짐하는 걸음걸이를 다져 온 것이 누구도 알지 못하는 통일가의 전통적인 역사가 되었다는 사실, 이것은 당신만이 알고 계시옵니다.

오늘 통일교회 무리들이 당신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뜻이라 하면 미친 자가 되겠다고 맹세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잃는 길도 기쁨으로 가겠다고 맹세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주위에는 동지가 없는 것을 느끼오나 그 가운데 동지가 한 사람 두 사람이 있어 그 한 사람 두 사람 가는 것을 보고 서러워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야말로 비참하고 그야말로 원통하옵니다.

그렇지만 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통일교회 문 아무개는 망할지라도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망하지 않을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이 나라는 망하게 될지라도 이 길은 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부디 당신이 세우신 목적지가 있거든 이끄시사, 승리자와 더불어 만국을 대표하여 사탄권의 이 나라를 짓밟고 선주권(善主權)을 당신이 세우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께서 만자녀의 수고를 칭찬하고, 하늘나라와 땅나라의 모든 상속을 이어주기에 서슴지 않는 미래를 맞을 수 있는 날이, 제3시대의 평화가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우리는 해방의 역군이옵니다. 제2해방, 제3해방, 세계를 대해서는 제4해방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길을 다 가기 전에 지쳐서는 안 될 것이요, 죽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최후의 결승전까지 싸워서 승리의 영광의 자리에 동참자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사랑받지 않을 수 없는, 승리한 아들딸들이 되어 영광의 천국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당신의 이끄심을 받아 들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전체를 축복하여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사랑의 아버님, 이 시간 여기 모인 자녀들을 살피시사, 당신이 개개인의 심령에 맞게 사랑하시는 이 시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늘과 땅, 그 가운데에 있는 인간에게 이것을 연결시켜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의 심정의 일로를 직선상에 연결시킬 수 있는 참다운 아들과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 앞에 일치될 수 있는 그 자리는 최고의 자리요, 승리의 자리요, 표준의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오며 그 자리를 저희들은 바라고 있사옵니다.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있어서 인간들은 자기 나름의 삶의 노정을 가려 왔고. 나라들도 그 나름의 행로를 거쳐왔사옵니다. 이렇게 볼 때, 당신이 찾으시는 개개인에 대한 뜻의 노정과 나라의 노정은 언제나 같은 입장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저희들이 마음으로 바라며 가는 곳은 천국이며 생활을 통하여 그 자리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될 개인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하나의 크고 높은 목적을 위해서 현실적인 모든 어려움을 제거하면서 그 기준을 조정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현재의 저희 자신들임을 발견하게 되옵니다.

당신은 개인을 붙들고 사정할 수 있는 입장에 서기보다는 나라를 붙들고 사정하기를 바라시고, 나라의 사정을 붙들고 슬퍼하는 자리에 서기보다는 세계의 사정을 붙들고 슬퍼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오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인간은 언제나 땅에 처해 있고 당신은 언제나 하늘의 자리에 계시기에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상충된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 거리를 인간이 메워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과거 현재를 통하여 볼 때, 또 미래를 두고 보더라도 당신이 그 거리를 메워 주지 않으면 인간은 이렇게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언제나 비참한 자리에 서서 당신의 높고 귀하고 거룩한 은사를 바라는 것이고, 그것이 타락한 인간의 정성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와 같이 부족한 저희들을 아버지께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있는 아들이라 하고 싶고 딸이라 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러한 당신의 마음에 합당할 수 있는 아들딸이 이 천지간에 얼마나 있느냐고 반문하게 될 때는, 서러움과 슬픔이 한없이 사무치는 것을 저희 자신들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님께서는 얼마나 얼마나 그러한 슬픔을 억제하시며 오늘의 부족한 인간들을 찾아오셨습니까? 이러한 인간들을 이끌고 가야 할 당신의 행로가 수난의 행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될 때, 과거의 우리의 선조들이 그러했고,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류가 그러하고, 또 미래의 후손들도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아버님은 얼마나 수고로왔으며, 얼마나 외로왔으며, 얼마나 비참하였는가를 저희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슬펐던 과거의 아버님을 잊어버린 자신들이옵고, 현재도 고독한 자리에서 싸우고 계신 아버님의 입장이 어떠하다는 것을 모르는 인간들이옵니다.

오늘날 저희 자신과 저희와 관계되어 있는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중심삼고 싸워 나가야 할 거창한 투쟁노정을 남겨 놓고, 이것을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슬픔을 품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할 때, 이 땅 위에 있는 저희들은 자기 스스로의 슬픈 자리를 당신 앞에 직고하기 전에 당신의 슬픔의 자리를 동정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야말로 당신 앞에 그런 효의 도리를 다짐하는 아들딸이 이 땅 위에 얼마나 있느냐 하는 서글픈 마음이 땅을 바라보시며 찾으시는 아버지의 마음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오늘, 통일의 자녀들이 여기에 모였사옵니다. 저희들이 가는 길은 누구를 위해 가는 길이 아니옵니다. 그 길은 오로지 아버지를 위한 길이요. 다른 무엇을 찾기 위한 길이 아니라 아버지를 찾기 위한 길이옵니다. 아버지를 위하고 아버지를 찾는 길이라면, 어떤 입장에 서야 되느냐 하면, 과거에 이미 아버지를 찾았어야 했고, 현재에는 아버지와 더불어 살아야 되는 것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날 당신을 중심삼고 나 자신을 세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게 될 때는, 과거에 당신을 위해 산 그 가치가 얼마나 컸는가 하는 것을 가지고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현재 서 있는 자리나, 어떤 위치에서 저희들이 당신을 위해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될 때, 과거도 보람있는 가치의 내용을 가졌고 현재에도 보람있는 가치의 내용을 갖고 있다면 저희들은 암울한 자리에 있더라도 불쌍한 사람이 아니옵니다. 비록 외로운 자리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외로운 자가 아니요, 고독한 자리, 슬픈 자리, 비참한 자리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그 고독과 슬픔과 비참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아옵니다. 또한 슬픔이 가해지는 자리에 서 있다 할지라도 하늘의 동정의 마음이 언제나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러한 자리를 지키고 그러한 자리를 바라고 그러한 자리에서 살고 싶어하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아버님이 계신 것을 알았지만, 아버님을 얼마나 그리워했으며, 아버님과 얼마나 가까와지려고 했으며, 아버님과 얼마나 의논했으며, 아버님과 더불어 몸 마음이 하나됨과 동시에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손에 손을 잡고 얼마나 많은 투쟁의 노정을 걸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 투쟁의 노정은 개인의 행각노정으로써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복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아버지의 길이기 때문에 그러한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저희 자신이라는 것을 얼마나 발견했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볼 때, 당신과 저희가 너무나 엇갈려 있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들이 이 자리에 찾아왔사오니,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시사 권고해 주시옵소서. 과거는 이러하였지만 현재는 이러이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충고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뜻 앞에 없어서는 안 될 아들이 되고 딸이 되기 위해서는 당신의 수고가 있기 전에 저희들의 탕감의 노정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 그런 탕감의 노정을 걸어온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버님을 위하여 슬픈 자리를 자초하여 제물의 길을 찾아 나가는 사람은 지극히 적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자리보다 기쁨의 자리를 찾고, 오늘을 기뻐할 수 있는 생애의 여건을 갖지 못한 자신인 줄을 알면서도 슬픈 것을 도피하고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과 더불어 보조를 맞추는 자리에서라도 기쁨을 갖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들의 습관적인 생활이었습니다. 그렇게 살고 있는 저희 개체인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이 그냥 그 자리에서 아무리 슬픔의 자리를 찾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생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면 알수록 저희들은 외로운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외로운 싸움의 노정에서 끝내 당신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아들딸이 되어야겠습니다. 기쁜 자리에서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슬픈 자리에서 그리워해야 되겠고. 고독한 자리에서 그리워해야 되겠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리에서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길이 당신이 남기신 복귀의 노정인 것을 생각할 때마다 여기 모인 저희들은 당신의 외로운 아들딸임에 틀림없습니다.

당신이 외로왔기 때문에 저희들도 외로와해야 되겠고, 당신이 싸움의 노정에서 지칠 줄 모르고 그 길을 갔기 때문에 저희들도 지칠 줄 모르는 그런 자리에 서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나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과거보다도 오늘이 좋기를 바라다가 그러지 못하면 낙망하게 되고, 오늘보다도 내일의 희망이 없을 때 절망하기 쉬운 것이 인간이옵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아버지께서 얼마나 외로운 길을 걸어왔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대 시대마다 당신 앞에 소망의 날을 이어받고 소망의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이 땅 위에 얼마나 있었는가 묻게 될 때, 역사시대를 거쳐오는 동안 그런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아버님께서 얼마나 슬프셨겠는가를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소망의 흔적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기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으로 다짐하는 창조적인, 이념적인 소원 기준 하나만을 바라시며 그렇게도 핍박받고 그렇게도 외로운 자리에서 눌리고 밟히면서도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역사를 더듬어 나오신 아버지를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천만사를 다 잊고 아버지 앞에 감사해야 할 이 땅 위의 불효막심한 인간들임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에게는 사죄라는 말이 너무나 황공한 말이옵니다. 용납이라는 말이 저희에게는 가당치 않은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를 대해 감히 얼굴을 들고 그 무엇을 간구할 수 없는 인간들이옵니다. 옷깃을 여미고 당신 앞에 엎드려 천만사의 눈물과 더불어 죽음의 고빗길을 가겠다고 자처하고 나감으로써 자기 스스로의 가치를 긍정할 수 있는 자신이 되기를 먼저 다짐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속된 인간들이 처해 있는 현실임을 깨닫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이러한 자리를 원치 아니하였고 이러한 자리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이 저희들을 위해서 만나고 싶어하는 그 자리는 지극히 고독한 자리였습니다. 또한 어떠한 사탄의 참소조건도 없는 자리를 찾으셨고, 사탄의 흔적이나 모습도 바라보이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아버지의 마음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저희들은 언제나 친구를 좋아했고, 나홀로는 가기 싫어하는 신앙길을 지켜 왔습니다.

깊은 승리가 결정되는 자리라는 것은, 지극히 고독한 자리에서 당신의 높고 고귀하신 사랑의 인연을 가지고 승리의 영광에 잠길 수 있는 그 자리에서 만물만상 앞에 내세우고 싶은 당신의 소원의 귀착점임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을 이 시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나'라는 것이 당신 앞에 어떤 가치의 대상이 될 것이며, 당신이 소원하시는 세계 앞에 어떤 책임자가 될 것이며, 당신의 사명을 분부받아 가지고 역사시대에 없는 새로운 하늘의 심정의 터전이 되고, 또 심정적인 인연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언제나 부족한 것이 인간이요, 미급한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또다시 당신의 재창조의 손길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자리에 서 있는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이 시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그 누구를 따라가는 무리들이 아니옵니다. 통일교회에 들어 오고 싶어서 들어온 무리들도 아니옵니다. 당신이 인도하였기 때문에 들어왔고 지금까지의 신앙과정에 있어서 다짐해 왔기 때문에 남아 있는 무리들이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이 자리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또 가야 할 운명을 남기고 있기 때문에 가야만 되겠습니다. 그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선두에 서서 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리에 상처를 입고 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배가 고파 쓰러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힘이 들어 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천태만상의 모습으로 가는 통일의 무리들을, 아버지여, 굽어살피시옵소서.

내일의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모진 희생을 다짐하고 이 길을 찾아왔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에게 오늘의 승리를 가누어 주기 위해서 지금도 쉬시지 않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알고, 어려울 때에 아버지를 부르고 외로울 때에도 아버지를 사모하면서 갈 수 있는 통일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방방곡곡에 널리어 이곳을 흠모하면서 당신 앞에 부복한 곳곳마다 당신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만방에 널리어 외로운 개척노정에서 최후의 승리를 다짐하며 싸우고 있는 불쌍한 통일가의 자녀들을, 아버지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면서 그리워하는 그들의 하루하루 생활을 모두 거룩한 것으로써 수습하게 하시옵고,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긍휼의 마음이 엉클어져 가지고 아버님의 아들이라 딸이라, 할 수 있는 그 자리를 잃지 않고 끝까지 싸워서 남아지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이 저희들만의 모임이 되지 말게 하시옵소서, 슬펐던 아버님의 사정을 동정하고 싶어서 모이고, 외로왔던 아버지의 방패가 되기 위해서 모인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앞에 있어서 믿을 수 없는 아들딸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 모인 무리로서 인정하시어 거듭되는 슬픔의 마음을 억제하시고 저희들을 다시 찾아주시옵소서.

같은 자리의 인연과, 같은 자리의 사정과, 같은 자리의 심정을 지니고, 내일을 다짐하고 소망을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비옵니다. 이 민족과 이 세계에 있어서 남아질 수 있는 무리가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저희들이오니, 당신이 친히 기억하여 주시옵고, 동정의 마음을 베풀어 주옵시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모든 전체를 아버지께서 맡으시옵소서.

당신의 승리만이 같이하여 주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사정이 각각 다를 것입니다. 과거에 걸어온 길도 다를 것입니다. 각자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앞으로의 갈 길도 각자 나름의 다른 길을 가야 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나의 세계를 추구해 나온 인류

우리 개인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종족을 두고 볼 때, 종족 또한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종족들이 살고 있는데 그 종족들이 가는 길도 역시 다를 것입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도 달랐을 것이고, 현재 처해 있는 입장도 다를 것입니다. 나라들을 중심삼고 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역사가 다르고, 현재에 처해 있는 입장이 다르고 또 금후에 가야 할 길이 다를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수많은 나라가 있지만 그 나라들이 가는 길이 각기 다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개인이 그런 입장을 갖춘 것과 마찬가지로 종족도 그러하고 나라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수많은 인간들이 가는 길이 각각 다른데 세계가 가는 길은 어떠할 것이냐? 가는 길이 각각 다른 천만인이 살고 있는 이 세계일지라도 이 세계가 가는 길이 달라서는 안 됩니다. 최후에 인간이 바라는 어떠한 소망이 있다면 그 소망은 만인이 바라는 공통적인 기점에 있어야 될 것이고, 그 기점은 만민 전체가 소망하는 곳이어야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높은 산을 중심삼고 보면, 그 산정을 향하여 올라가는 길은 동서남북으로 각각 다를지 모르지만, 그 산의 최고봉은 한 지점밖에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절정에 도달하여 가지고 거기에 선 하나의 나라, 거기에 선 하나의 종족, 하나의 사람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생각해 볼 때, 그러한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 가정을 두고 볼 때에도, 그 가정이 평화스러운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식구 모두가 자기 나름의 길을 중심삼고 자기 스스로를 주장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만-그 가정 전체를 중심삼고 열 식구면 열 식구, 그 식구 수에 해당하는 각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각자의 행로를 총합하여 가정이라는 전체의 가치를 결전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적인 자리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를 바라보고 나가는 가정이라면 그 가정은 그 자리를 바라보는 동안은 불화하는 가정, 혹은 불행한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중심점을 갖지 못하고 각자의 주장대로 가는 가정이 되게 될 때는,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이 서로 상충이 벌어지게 될것입니다. 여기서 주장하는 그 주장은 어떤 중심을 대신하는 가치와 일치되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 반항하는 입장을 결정하고 만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그 주장의 결과가 전체 앞에 행복의 여건을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불행과 상충의 여건을 기필코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의 생활주변을 살펴볼 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바라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 각자가 처해 있는 입장이 다르고, 나라가 처해 있는 입장이 다르지만, 앞으로 남아질 세계가 처할 수 있는 입장은 달라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누구나 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는 하나의 세계를 바라는 것입니다. 둘의 세계를 고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하나의 세계라는 것은 투쟁을 개재시킨 세계가 아니라 평화를 여건으로 한 세계를 말합니다. 그러한 세계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평화의 여건을 갖춘 하나의 세계를 추구할 수 있는 내용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타진하게 될 때, 자기는 그것을 모르지만 어떠 어떠한 인연을 통해서 그럴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하고 막연한 자리에서 그 세계를 추구해 나가고 있는 현실사회요, 역사적인 시대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의 세계는 나 하나에서부터 모색되어야

하나의 세계를 결정지을 수 있는 그 요인이 무엇이냐, 또 그 중심적 내용이 무엇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어쨌든 하나의 세계는 기필코 와야 된다고 하면서 인류 역사는 숱한 투쟁의 행각을 모면하지 못한 입장에서 몸부림치며 커 나온 것입니다. 수많은 종족과 수많은 국가가 분립되어 싸우다가 규합되어 가지고 지금에 와서는 좌우가 대결하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대결하는 두 세계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이 두 세계 가운데에서 어느 세계가 이 세계의 중심으로 남아질 것이며, 정상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민주세계도 아니요, 공산세계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세계는 오늘날 이 세계의 어떤 주의, 사상에 이끌려 가는 세계가 아닙니다. 그 세계는 두 세계로 분립되어 투쟁의 여건을 남기고 있는 이 세계에 끌려가는 세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세계는 이 두세계를 끌고 갈 수 있는 세계가 되어야 되고, 두 세계를 종합할 수 있는 세계가 되어야 됩니다. 오늘날 이 두 세계는 앞으로 남아질 하나의 세계를 규정지을 수 있는 절대적인 위치에는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입장에는 설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그러면 민주세계는 민주세계로서의 그런 절대적인 기준에 설 수 없는 것을 알고 상대적인 입장을 취하여 내일의 희망 앞에 완전히 일치될 수 있는 현재의 입장을 취했느냐? 아니라는 거예요. 민주세계는 민주세계 나름대로, 공산세계는 공산세계 나름대로 이 세계를 중심삼고 주도하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우리가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류역사의 기원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느냐? 이런 문제를 놓고 오늘날 그 누구에게 물어 보더라도 인류역사는 어떤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본래의 원리적 기준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색하는 어떤 방향의 중심에서 직선을 그어 가지고 나오는 입장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어디인지도 모르는 사방에서 모여 가지고 하나의 중심을 그려 나오는 역사시대인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의 산꼭대기를 중심삼고 갈래 갈래길로 찾아 올라가던 것이 점점 정상에 가까와짐에 따라 그 많은 길들이 종합되어 가지고 두 갈래길로 남아진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그 출발의 기점이라는 것은 그 산의 정상과 더불어 산 밑에서부터 하나의 수직선을 세워 그 중심점을 갖춘 자리에서 출발하지 못한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역사의 출발 기원이 엇갈려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 본래는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닌데 왜 이렇게 되었느냐? 이러한 것을 종교적 술어를 빌어 말한다면 타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동기가 되어 이런 세계가 되었느냐?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람입니다. 사람이란 어떤 존재냐? 이 사람이라는 존재가 나라를 대신할 수 있는 나를 찾고, 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나를 찾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세계를 대신하고 나라를 대신하기는 커녕 종족도 대신할 수 없고, 가정도 대신할 수 없는 내가 아니냐?

그러면 나 자신이 가정도 대신할 수 없는 입장에서 어떤 자리에 서 있느냐 할 때, 그것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자리에서 참을 찾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문제, 이러한 모들 문제들을 세계의 종착점에서, 역사적인 종착점에서 해결을 구하려는 것보다 반드시 내 자체에서 해결지으려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근본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선두에 설 수 있는 사람

이런 관점에서 나의 기원이 어디냐 할 때 여기에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우선 신은 제외하여 놓고, 나 자신만을 중심삼고 보면 나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나에게는 두 면의 사람이 있습니다. 즉 양심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안팎의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는 존재가 출발의 기원에 있어서, 인류가 바라고 하나의 세계가 바라는 최고의 소망의 정상 기준을 중심삼고 그 자리에 섰느냐 할 때,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중심의 자리에 서지 못한 나는 현재의 입장이 그 자리와 얼마만한 거리가 있느냐 하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거리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중심과는 먼 거리에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30억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는 많은 나라가 형성되어 있고, 많은 주의와 사상이 전개되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위치라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위치가 어디에 있느냐? 사랑 중에는 동쪽에 서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서쪽에 서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남쪽에 서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북쪽에 서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동쪽이 될 수 없고, 나이가 적다고 해서 북쪽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종적인 입장에서 보게 되면, 거기에는 선한 선조도 있을 것이고 악한 선조도 있을 것입니다. 종적으로 이어 내려오는 선조의 혈통을 중심삼고 보면 거기에는 천태만상의 등급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천(千)의 선한 선조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천(千)의 악한 선조를 가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들쭉날쭉일 것입니다. 그러한 선조들을 어떠한 절대자가 계셔서 관찰해 본다면 그래도 맨 선두에 선 선조가 있을 것이고 그의 후손이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 그 맨 선두에 선 선조의 후손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보고, 현재 살고 있는 인간들이 흠모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서 있는 사람이냐? 여러분은 그런 사람이 어떤 급에 있는 사람인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선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자리에 서야 할 것이냐? 얼핏 생각하게 되면, 그런 사람은 어떤 한 나라의 대통령의 자리에 서야 되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어디에 있을 것인가? 종적으로 본다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에 있어서 한 개인은 전부 점으로 되어 있습니다. 평면적으로 보면 다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에 밥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하루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엮어 온 과거를 중심삼고 선악의 차이를 보면, 그것은 천태만상으로 서로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높은 자리에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낮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아까 말한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 오늘날 민주세계를 보아 닉슨이 그런 사람이 아니냐? 천만에요. 또, 공산세계로 보아 브레즈 네프가 그런 사람이 아니냐? 천만의 말씀입니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그런 사실을 믿기 싫어할 것입니다. 그들이 오늘날 그런 권력을 잡기까지의 그 모든 행로는 투쟁과정을 거쳐온 것입니다. 싸워서 이겼다 하는 그것은 선한 역사의 전통시대 앞에 있어서 그 자리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찾아왔을는지는 모르지만, 그 자리에 섰다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오랜 역사를 거쳐와야 됩니다. 전통적 역사가 뚜렷해야 되고, 전통적 역사가 길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역사가 길수록 그 사람은 선두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전통적 역사는 기원을 어디에 둬야 되느냐? 막연한 것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 기원이 뚜렷해야 됩니다. 그것이 참이라면 참에 가까운 기원을 둬야 될것입니다.

절대적인 기준점에 선 남성을 찾아 나오신 하나님

오늘날 어떠한 나라든지 각 나라에는 신화(神話)가 있습니다. 신화는 어떤 것이냐? 막연한 것입니다. 각 나라는 이러한 막연한 역사에서부터 출발하여 문화적인 형태를 갖추고 민족을 형성하여 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신화의 내용을 모체로 해서 그 나라가 얽혀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관점에서 신화(神話)라는 말을 중심삼고 보면, 신(理)의 화(話)가 생겨나기 전에 신(神) 자체가 있었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신화를 중심삼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신화를 신앙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을 신앙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두고 볼 때에, 종교는 어떤 신화를 중심삼고 형성된 민족이나 문화의 기원보다 앞서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화가 있기 전에 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신이란 어떤 신이냐? 오늘날 우리가 말하고 있는 신은 많이 있습니다. 그 많은 신 가운데 중심적인 신을 통해서 나타난 어떤 신화가 있다면, 그 신화로 말미 암아 엮어질 수 있는 개인이 있어야 되고, 종족이 있어야 되고, 민족이 있어야, 되고, 국가가 있어야 되고, 세계가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뚜렷하게 연면히 역사성을 갖추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세계가 비록 악한 세계일지라도 전통적인 방향성에 있어서 현재의 그 입장이 뚜렷하고, 현재에 있어서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넘어 미래로 나갈 수 있는 확고부동하고 뚜렷한 행로가 있다고 할 때에는, 비로소 미래에 어떠한 소망의 길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억천만 사람이 주장했다 하더라도 어떠한 학설을 중심삼고 주장하는 것은 변천해 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종교 중에도 어떤 종교냐? 종교 중에는 여러 신을 섬기는 종교가 있습니다. 미개한 신앙자일수록, 혹은 미개한 종교일수록 그 대상이 확정지어 있지 않습니다. 아플 때에는 병을 낫게 해 달라는 정성의 대상으로서 신을 모시는 것이요. 출세하기 위한 정성의 대상으로서 신을 모시는데, 이러한 것들은 미신 종교입니다. 그렇지만 그 미신 종교에도 그 입장에 있어서는 하나의 진리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에는 비행기로 빨리 갈 수 있으니까 자전거를 타고 가지 않지만, 자전거밖에 없던 시대에 있어서는 그것을 타고 가는 것이 최고의 길이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신 중에서도 어떠한 신이냐? 절대적인 신이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절대적인 신은 무엇을 중심삼고 인간을 찾아와 관계를 맺어야 되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절대적인 신으로서 바라는 소원이 있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소원은 무엇이냐? 그것은 세계가 아닙니다. 그 신이 소원하는 대상은 세계도 아니요, 하늘땅도 아닙니다. 그것이기 전에 먼저 무엇이냐 하면 우리 개인이어야 합니다.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입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 가운데서 남자가 먼저냐, 여자가 먼저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여자들은 여자라고 하고, 남자들은 남자라고 말을 할 것입니다.

신이 대상을 찾아오는 데에는 보다 나은 것을 중점으로 하여 찾아 나올 것입니다. 먼저 대상으로 하는 것은 못한 것을 대상으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보다 나은 것을 대상으로 할 것입니다. 왜 그러냐? 우리 개개인의 마음을 두고 볼 때, 타락되어 있고 악한 세상에 둘러 싸여 있는 우리 자신들도 보다 나은 것을 대상으로 하고 싶어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타당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神)을 중심삼고 볼 때도 남자가 먼저냐, 여자가 먼저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여자는 여자가 먼저다 할 것이고 남자는 남자가 먼저다 할 것이지만, 아무리 봐도 여자가 먼저 될 수 없다 하는 것은 여자들도 잘 알 것입니다.

어젯밤에 텔레비젼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여자들이 나와서 축구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 선수들이 후반전에 가서는 조금만 부딪 쳐도 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보고 여자들은 저렇게 과격한 운동은 못 하는 것이고, 체력적으로는 남자를 당하지 못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여자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 남자가 있어야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도 우선 쓸 사람을 찾을 것입니다. 무엇에 쓰려고 하시는 것이냐? 데리고 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전쟁 때 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신앙자들은 개인생활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세고 강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바라보고 향기를 맡으며 좋아할 수 있는 온상의 꽃과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폭우가 쏟아지고 태풍이 불어오는 치열한 전투장에서, 그것을 거슬러 가며 당당하게 전진할 수 있는 용맹한 용사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용맹한 용사라 하게 될 때는 여자 생각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싸움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필요한 사람은 틀림없이 남자일 것입니다.

종교를 중심삼고 볼 때, 종교의 도주들은 여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남자가 되어야 합니다. 역사를 보면 모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의 예수도 남자고. 불교의' 석가, 유교의 공자, 이슬람교의 마호메트도 다 남자입니다. 종교의 도주는 전부 다 남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소망의 대상으로 찾고 있는 것은 세계이기 전에, 나라이기 전에 남자라는 것입니다. 남자를 잘못 찾게 되면 나라도 잘못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산꼭대기를 중심삼고 산 밑과 수직선을 그어 90도가 되는 중앙선에 선 남자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90도 근방에 갔다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100점을 중심삼고 볼 때, 99.999…를 몇천년 몇억년 계속해도 100점은 못 따라갑니다. 그것보다 100점이 좋은 것입니다.

선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두고 말하느냐

그런 입장에서 여러분들도 지금 어느 한 자리에 서 있을 것입니다. (판서하심 ) 오늘날 세계 30억 인류가 역사시대에 오르락내리락하면서 100에 훨씬 못 미치는 자리에 처해 있습니다. 환경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그 자리를 부정하고 100을 향하여 아무리 간다고 하더라도 그 이상은 못 가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여러분은 모르지만 지금까지 역사적인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악이 엇갈리는 싸움을 해왔습니다. 거기에서 악한 사람은 망해야 되고 선한 사람은 흥해야 되는 것입니다. 흥망이 엇갈린 역사적 배경을 거친 선조들이 틀림없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오늘날 우리 자신들인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전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왜 불행하노' 하고 불평할 수 있는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다 같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잘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면에 지지리 못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도 못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비참한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를 피해 가려고 아무리 몸부림치더라도 그 이상의 자리에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네를 뛰는 데 있어서 짧은 줄을 매어 아무리 뛰어 봐야 왕복거리가 짧은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긴 줄을 매어서 뛰게 될 때는, 왕복거리가 길어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되기 위해서는 선한 선조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 자신들이 선한 선조로 남아져야 선한 후손을 남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역사시대를 막론하고 '선'이라는 말을 가르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선한 것이냐? 자기를 내세우는 것이 선한 것이냐,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이 선한 것이냐? 자기를 내세우는 것이 선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주는 것이 선한 것이냐, 받는 것이 선한 것이냐 할 때에 받는 것이 선한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받는데 있어서 자기의 한계선을 넘어 가지고 받겠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도둑권내에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만일 아무리 거지의 입장에 있더라도 남에게 주고 싶어서 눈물을 흘리고, 세상에 가진 것이 없어서 외적으로는 못 주지만 마음만은 주고 싶어서 피땀을 흘리면서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외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외로운 자리에 있더라도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에게는 반드시 친구가 있는 것이요, 그를 환영하는 환경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받겠다는 심보를 가지고 끝까지 나가는 그런 사람은 그가 백만장자라 할지라도 그 사람 앞에는 안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받겠다는 그 마음을 충당시키기 위해서 상대에게 있는 것은 전부 빼앗으려는 간악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앞에는 안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가 더 가지면 가질수록 가까이 있던 사람들마저도 점점 가까와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경우를 자주 볼 것입니다.

선한 사람이라는 그 기준은 무엇을 가지고 말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눈물이 가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또, 사람을 대할 때에는 웃는 얼굴로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울타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울타리는 울타리인데 무슨 울타리가 되느냐 하면 구속의 울타리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울타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울타리가 되기 때문에 어색함이 없이 주의(注意)라든가, 혹은 방비를 갖추는 자기보호 관념을 초월하게 됩니다. 물론 그 웃음이 전략적인 웃음이라면 모르지만, 자연적으로 나오는 순박한 웃음일 때에는 그냥 그대로 접해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요구하는 방어태세라든가, 자제해야 될 여건 같은 것은 필요없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통할 수 있습니다. 그냥 그대로 얼마만큼 통할 수 있느냐 하면 그 웃을 수 있는 자리가 무한하다면 무한히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직선의 길이 있다면 한정없이, 갈 수 있는 데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는 사람보다 웃는 사람을 좋아하고 성난 사람보다도 웃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전부 다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예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선한 사람이란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 가운데에 있느냐,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 가운데에 있느냐 할 때,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정상의 표준

사람이 눈물을 흘린다 할 때, 그 눈물은 보이게 흘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들딸이라든가 가정적인 문제, 정서적인 문제에 있어서 그 상대는 보이는 사람이지만 그 근본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보이지 않는 것이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물건이 어떻게 생겼느냐 할 때는 이렇게 생겼다고 말할 수 있지만, 사랑이 어떻게 생겼느냐 할 때는 삼각형이다, 동그랗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렇게 보여요?

우리가 물질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슬퍼하는 것은 한때입니다. 그 때가 지나가면 그것은 단념할 수도 있고 새로이 수습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정서적인 문제, 사랑의 문제를 중심삼고 걸리게 되면 자기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잠깐 슬픈 것이 아닙니다. 이것에 한번 걸리게 되면 문제가 큽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보이지 않는 것을 중심삼고 선의 바탕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바탕이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이라는 말, 정서적인 말에까지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하나님이 찾는 인간은 남자여야 되겠습니다. 그 남자 가운데서도 어떤 사람이어야 되느냐? 정서적인 남자여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면 그도 좋아해야 되고. 하나님이 슬퍼하면 그도 슬퍼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동하면 그도 동해야 되고, 또 하나님이 동으로 가면 그도 동으로 가고, 하나님이 서로 가면 그도 서로 가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만일 신이 있다면, 신은 그런 사람을 요구할 것입니다. 한 시간이라도 같이 있어서 나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원치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그러려면 먼저 무엇이 같이 있어야 되느냐? 그 얼굴이 먼저 같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사정이 먼저 같이 있어도 안 되고, 소망이 먼저 같이 있어도 안 됩니다. 사랑이 먼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소망이 있기 전에 사랑이 먼저 있어야 됩니다. 만일 소망이 있어서 소망을 중심삼고 하나되었다 하더라도 그 곳에 사랑이 없으면 서로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이 먼저 있어 가지고 소망이 있게 되면 그곳에는 싸움이 없을 것이 아니냐? 서로 서로 좋아하면서 그 소망을 이루어 갈 것이 아니냐? 그러나 사랑이 없게 될 때는 이것이 곤란할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정이 있기 전에 사랑이 먼저 있어야 되고, 소망이 있기 전에 사랑이 먼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어떤 길을 가느냐? 상대적인 입장에서 둘이 의논해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절대적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제삼자가 개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일치점을 바라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남자는 한 여자를 절대적인 기준에서 사랑하려고 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기를 바랄 것인가? 그것은 사람이 있다면 사람, 사람 중에서도 남자가 있다면 남자가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대상자로서 하나의 심정을 중심삼고 하나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 출발의 점을 역사적인 거리로 볼 때 몇천년이 될 것인가? 인간시조부터 그런 기원을 마련해 가지고 출발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을 중심삼고 살림살이한 어떤 경륜이 있었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할 때 그 사람은 '너다' 하실 수 있는 사람, 또 하나님이 살고 싶은 사람은 누구냐 할 때도 '너다'하실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이 함께 살림살이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 할 때 '너다' 하실 수 있는 사람,'너로 말미암아 기쁘게 살고 싶기 때문에 너와 같은 사람을 세계화시키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그러면 정상의 표준은 어떤 것이겠느냐? 그것은 단 하나이기 때문에 유일한 기준입니다. 그 유일한 기준을 왜 지금에 와서야 바라게 되었느냐? 또, 그 기준이 종착점에서 막을 내릴 수 있는 결정적인 내용이 무엇이냐? 그 유일(唯一)이 아무리 세계적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서 하나님은 기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어디에 귀착되어야 되느냐? 하나님이 세계를 전부 품에 품었다 하더라도 그 품은 것 대신, 그것을 남겨 두고서라도 하나의 절대적인 상대자, 상대적인 절대자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제일 맞는 한 남자를 요구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역사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경주장에 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향해 달려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각기 딴 방향으로 달려 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북쪽으로 달리고, 어떤 사람은 올라가고, 어떤 사람은 내려가고…. 이 야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끝날은 한 남자의 출현과 더불어 온다

그러면 세계의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어디에 있느냐? 역사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는 소원 중의 소원이요, 내 마음 중의 마음이요, 희망 중의 희망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할까, 좋은 명사는 다 갖다 붙일 수 있는 사람을 가질 수 있다면 천하를 잃어버려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한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끝날에 가서 세계는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하나되어야 됩니다. 지금 세계에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두 세계가 대립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이 두 세계뿐만 아니라 셋 이상의 세계가 대립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종교라는 것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무형세계에 주체성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이 두 세계뿐만 아니라 종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셋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금후에 문제될 수 있는 종교권이 뭐냐 하면 아랍권, 즉 회회교권입니다. 그 다음에는 기독교권입니다. 이처럼 외적으로는 민주와 공산, 이 두 세계가 싸우고 있는 것 같지만 안팎으로 종교적인 사상을 중심삼은 그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런 때가 왔으니 그 정상에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찾고 있는 자리, 만나고 싶어하는 자리, 보고 싶어 하는 자리, 좋은 자리, 행복한 자리는 어떤 자리일 것이냐? 그 세계의 주권을 찾았다 하는 자리일 것이냐? 허황되고 복잡다단한 어떤 세계를 찾았다는 것보다도, 전부를 부정하고도 남음이 있을 수 있는 사랑의 대상으로서 한 남자를 찾았다는 자리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와 더불어 새역사는 시작돼

그래서 종교에서 말하는 끝날이라는 말은 좋은 말입니다. 끝날이 온다…. 끝날이 오기는 오는데 끝날이란 무엇이냐? 끝날과 더불어 무엇을 남기느냐? 재림사상, 큰 종교일수록 재림사상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참 이상하다는 거라구요. 그걸 보면 하나님이 없다고 못 하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든지 재림사상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미륵불이 온다고 하고, 유교에서는 진인(眞人)이 온다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재림 주가 온다고 합니다.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이 오긴 오는데 무엇과 더불어 오느냐? 끝날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가 싸워 가지고 끝날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어받을 수 있는 한 남자의 출현과 더불어 끝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대부 분의 종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끝날을 이어 놓을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출발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절대적이고 유일무이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남자입니다. 그 남자와 하나님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사랑해야 되느냐? '개인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하나된 기준이 세계적이다, 세계 만민을 대표할 수 있다, 역사적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대표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달라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역사와 더불어 자기도 모르게 뛰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라는 경주장에서 인류는 하나의 종착점을 향하여 뛰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종착점에 있어서의 챔피언 자리는 들이 아닙니다. 그 출발지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자신들은 출발했다고 합니다. (판서하심) 먼 거리에서(뒤에서) 뛰어오는 녀석은 아무리 큰소리 하더라도 이놈한테(앞 사람) 흡수됩니다. 이 차이에 의해서(뛰는 사람과의 차이) 흡수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종교도 몇백 년 몇천 년 이렇게 나온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흡수되어 오면서 맨 마지막까지 남아져 가지고 정상의 자리에 가까운 종교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정상에 가까운 자리까지 이어오면서 정상의 자리에 있는 사람과 비교할 때 '사람과 나와 같지 뭐, 그 진리와 이 진리와 같지 않아? 불교나 유교나 뭐 종교는 다 마찬가지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종교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하나는 하나인데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냐?

사정이나 소망을 중심삼고 하나가 아니라,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입니다.

거기에는 둘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결정적인 자리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일무이한 분이기 때문에 그분의 마음에 속속들이 일치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나와야 된다는 거라구요.

문명을 두고 볼 때에 낮은 문명권은 보다 높은 문명권에 흡수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우리가 말을 할 때에도.

나보다 조금 지식 있는 사람과 말을 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반론하더라도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 자리에 있어서 반대하고 나선다면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제거 되기 때문에 다시는 거기에 못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 앞에 머리를 숙여야 거기에 남아져 가지고 은신이라도 하고 움직일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이젠 끝날이 다 됐습니다.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를 지도하던 그 역량으로 세계를 리드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여지없이 후퇴해야 합니다. 후퇴하지 않으면 하늘이 치는 것입니다. 높다고 하는 녀석들은 다 꺾여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1970년도부터 3년 기간 동안에 높다 하는 녀석들은 다 잘려 나갈 것입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네가 높아? 높은 것을 중심삼고 내가 높다고 금을 긋게 되면 모가지가 잘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르는 것이 아니라 높다고 하는 자신이 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정상시대가 오게 될 때는, 큰 별이 떨어진다는 성경말씀처럼 그때에는 세계적인 인물들은 목이 잘리는 것입니다. 그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겠다고 하는 녀석들은 제거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플러스인 하나님 앞에 있어서 높아지기 위한 길을 찾아가는 그 입장은 마이너스이지만 그길을 갔다 할 때는 목을 탁 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동적인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세계적으로 지도하던 사람들과 그 주의(主 義)는 목이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통일교회 교인 들은 기분좋지요? 나도 기분 좋게 생각한다구.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혼란이 벌어지게 됩니다. 한쪽에서는 죽겠다, 살겠다 하고 아우성을 치는데 또 한쪽에서는 죽겠으면 죽고, 말겠으면 말아라 하면서 혼인잔치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을 두고 볼 때, 어떻게 보면 이렇게 능청스러운 분이 오시는 주님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남들은 죽겠 다고 야단하는데, 잔치를 한다고 야단입니다,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저 '잘 망한다. 잘 망한다' 하는 그런 판이 나올 것입니다. '너희들이 아무리 그래 봐라. 우리는 잔치다. 먹고 보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그런 무리들은 이 세계와 저 세계로부터 위협이나 침범을 받지 않는 해방된 무리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절대자인 주인의 보호를 받고 있는 입장에 서면 절대자의 주권을 대신한 판사 앞에 선다고 해서 두려워하겠어요?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야, 판사야, 너는 나하고 상관이 없고, 검사야, 너도 나와는 상관이 없다. 상대세계와 상관이 있는 것이지'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게 되면, 하나님이 안방에 들어가면 그도 안방에 따라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안방에 따라 들어가서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께서 '왜 그러고 있어?' 하며 물을 것입니다. 아내도 그렇지 않아요? 남편이 안방에 들어와서 무뚝뚝하게 있으면, '당신 왜 그러고 있소? 하고 묻잖아요? 그러면 남편이 '왜 그러기는 왜 그래, 기분 나쁘게 ? 그래요? 부드럽게 '왜 그러기는 뭐가 왜 그래' 이렇게 하지 않아요? 그러면 하나님도 그러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나빠하겠어요, 좋아하겠어요?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하나님이 그러한 사람을 나쁘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그런 사람 만나기를 싫어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참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반하고 사람은 하나님에게 반해야

오늘의 말씀 제목이 '경주장에 선 현재의 위치'입니다. 역사는 수많은 종족을 중심삼고 경주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경주에 있어서 누가 일등이겠어요? 통일교회는 꼴등이예요. 중간이예요? 뭐예요? 일등이라고 한다면 기성교회에서 온 사람들이 기분 나빠할 것이니까 꼴등이에요, 중간이예요? 몇 번째예요? 통일교회가 이왕 될 바에는 일등할 거예요, 꼴등할 거예요?「일등요」 도둑놈들도 다 일등하겠다고 할 것입니다. (웃음) 도둑놈들에게 물어 봐도 일등한다고 하는 거라구. 일등하겠어 요?「예」 진짜 일등하겠어요?「예」

일등은 다 좋아합니다. 일등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강아지도 그렇습니다. 강아지들도 싸울 때에 지려고 해요? 물리면서도 가만히 있어요? 상대를 몇번씩 깨물고 깔고 앉아 가지고 반은 어떻게 해놓고 나서야 떨어진다구요. 동물도 그러는데 사람이 안 그러겠어요? 일등은 다 좋아하지요? 그렇지요?「예」 결혼을 하는 데에도 일등 상대와 결혼을 하고 싶어합니다. 또 좋은 것 중에서도 제일 좋은 것하고, 더 제일 좋은 것하고 어느 것이 좋으냐? 더 제일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보게 될 때, 세상에서 제일 좋은 분은 누구냐? 세상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분이라 해도, 그분이 이 땅 위에서 몇년이나 살 수 있겠어요? 아무리 미남자라 해도 백년 더 살 수 있어요? 1세기도 채 못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을 좀 더 좋아해야지,1세기밖에 안 좋아하겠어요? 그까짓 것은 한숨 자는 동안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 되는 거라구요. 제일 좋아하는 사람과 한 십년 살다가 싹 갈라지고 싶어요? 아니면 십년, 백년? 여러분들은 몇년 동안이나 살다가 갈라지고 싶어요? 「영원히 살고 싶습니다」 영원히까지?(웃음) 이건 얘기지만 그 영원에다 아마 혹을 열개 붙여 놔도 좋아할 것입니다. (웃음)

그런데 힘내기 해 가지고 영원히 산다면 그건 나는 싫어요. 매일같이 레슬링 선수처럼 힘내기 하며 산다면 살 수 있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또, 아는 것을 내기하면서 살 수 있겠어요?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살아 보라구요. 아무 재미없다구요. 권력도 싫고, 지식도?「싫다」 그럼 돈은? 부인과 남편이 앉아 가지고 '여보 내가 돈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하며 '일 전 일전' 하다가는 둘이 '아이구, 네것 내것' 하다가 나중에는 서로 갖겠다고 싸움하는 거예요. 돈을 서로 지극히 사랑하다가는 서로 갖겠다고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돈도? '싫다' 그러면 뭐예요? 남자의 상판대기만 바라보고, 여자의 상판대기만 바라보고 좋아요? 사랑이라는 것은 절대적이어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있고 나서야 돈도 좋고, 사랑이 있고 나서 권력도 좋고, 사랑이 있고 나서 학식도 좋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뿌리로 박아 놓으면 거기에는 그 무엇이든지 다 갖다 붙여 놓아도 싫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도 별수없이 그럴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만났느냐? 하나님이 반했다고 한다면 불경스런 말이 될지 모르지만 말이요, 하나님한테 물어 봐요. '당신이 사랑의 주인이시오?' 하면 하나님은 '그렇지 내가 사랑의 주인이지'하실 것입니다. '그럼 사랑하게 되면 보고도 또 보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갈라지고 싶지 않는 것인데,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반한다는 말인데, 당신은 반한다는 말을 싫어합니까? 하고 물어 보면 하나님도 별수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있는 어떤 미남자에게 반해 가지고 미칠 듯이 되었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큰일났을 것입니다. 사랑의 요지경판이 벌어져 가지고 떡덩이가 되든가 돌덩이가 되든가 둘 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사람이 하나님에게 반해 가지고, 1대(代)뿐만 아니라 10대 20대 몇천년을 두고 미쳐 내려오면서 하나님이 보고 싶어서 울고불고한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보고도 모른다고 하겠습니까?

엊그제 라디오 방송에 어떤 가수가 나와서 하는 말이 월남에 위문 공연을 갔다 왔는데 병사들로부터 자기가 없으면 난 죽겠다고 하는 편지가 수두룩하게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죄를 많이 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도 자기로 인하여 이렇게 사모하게끔 만들면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데 하나님 때문에 몇십대를 미쳐 가지고 뒤넘이치면서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걸 보고 미친 녀석이라고 하면서 어서 망하라고 하겠어요, 동정하겠어요?「동정할 것입니다」 동정할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면 사랑하라지. 그 까짓 것 뭐 저는 저고 나는 나지. 피장파장이지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하는 사람하고, 하나님에게 반해 가지고 미쳐서 날뛰는 사람하고 누가 하나님을 붙들 수 있고, 맨 나중에 하나님편에 자리를 잡겠어요? 어떤 쪽이예 요? 하나님에게 미친 패예요, 그럭저럭하는 적당 패예요?「미친 패입니다」 당신들도 그래요? 그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미쳐서 야단하는 패입니다. 어떻게 미친 패냐? 좋다고 웃고 춤추는 패들이냐?' '나 죽겠다'고 울고불고 야단하며 요지경을 벌이는 패냐? 그런 패들이 있습니다. 그게 어떤 패냐 하면 예수쟁이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쟁이를 좋아해요? 쟁이라는 말은 좋지 않지만 할수없다구요.

결사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하여 반해 가지고 몇천년 동안 울고불고하다가 몰려 죽을 자리에 들어가서 모가지 내놓고 죽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동정하겠어요, 하나님은 점잖은 분이니까 '점잖게 있어야지'하는 사람을 좋아하겠어요? 여기에 있는 점잖은 사람들도 자기 여편네 대해서는 점잖지 않다구요. (웃음) 그렇지 않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웃음) 점잖게 '예 - ' 그래요? 사랑의 세계에서는 점잖은 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점잖은 것을 다 팔아먹고 다 삶아 먹고 그러는 것이 사랑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은 점잖고 권위가 있는 분이라고 해서 그런 사랑의 자리에 가서도 '사랑이라는 것은 권위를 세워 가지고 해야지. 내가 동쪽에 있으면 당신은 서쪽이지'라고 해야겠어요? 사랑은 체면의 도수를 넘는 것입니다. 남자가 남자의 체면을 넘고, 여자가 여자의 체면을 넘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같이 되고, 여자가 남자같이 되어야만이 사랑이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말이 좀 이상하지만 남자가 여자같이 되고 여자가 남자같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거라구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사랑의 주체라면 아무리 높은 하나님일지라도 인간같이 되겠다고 하고, 인간은 하나님같이 되겠다고 하는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자리가 성립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자리를 찾기 위해서 눈물이 엇갈리는 길을 찾아 헤매면서 살이 찢기고, 팔다리가 떨어지고, 목이 잘려도 '나는 간다' 하는 패들이 있는 것입니다. 지독한 패라구요, 지독한 패.

여러분은 제일 지독한 패를 좋아해요, 나빠해요? 무엇에 지독한 패냐? 돈에 지독한 패냐? 권력에 지독한 패냐? 요즘은 권력에 지독한 패가 있습니다. 또, 지식에 지독한 패? 밤을 새워 가면서 책을 보는 책벌레도 있습니다. 그런 지독한 패가 좋아요? 지독하려면 무엇에 지독해야 돼요? 하나님의 사랑을 대해 가지고 지독한 패, 이게 제일 땡이라는 것입니다. (웃음) 땡 하는 것은 결승 때에 하는 것입니다. 다 끝나게 될 때 정합니다. 여러분들이 땡 잡았다고 하는 말은 다 끝났다는 말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한국말은 암시적이고 계시적인 말입니다. (웃음)

'공산당은 결사적이다, 결사적인 패다' 하는데 무엇 때문에 결사적이예요? 주권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마음 가운데에는 사랑을 중심삼은 결사적인 것이 없느냐? 주권 때문에 결사적이냐, 사랑 때문에 결사적이냐 할 때, 주권보다는 사랑이 더 강하기 때문에 결사적인 것 중에서도 사랑의 결사적인 패가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연히 그렇게 됩니다.

종교 믿는 패들은 뭐냐 하면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죽기내기하는 극성패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통일교회 패들은 문선생을 중심삼고 죽기내기한다고 하는데, 그런 말 들으면 내 기분 나빠요. 제발 그러지 말라구요. 제발 간절히 비나이다. (웃음) 그 대신 하나님을 중심삼고 죽기내기하자는 것입니다. 내가 부채질해 주마. 어디 죽기내기해 봐라 이거야. 자기 남편을 헌신짝같이 집어 던지고 하나님 중심삼고 하나님을 사랑하겠다고 죽기내기한다면, 하나님이 그걸 보고 '네 남편에게 그렇게 하면 되나, 먼저 남편을 사랑하겠다고 죽기내기한 다음에 나를 사랑하겠다고 죽기내기해야지' 그러시겠어요? 아니면, '그저 남편이고 뭣이고 다 버리고 나를 사랑하기에 죽기내기해라'고 하시겠어요? 남자들 대답해 보라구요. 자, 우리 까 놓고 애기합시다. (웃음) 여기 목사님도 오셨는데, 하나님께서 '남편을 놓고 죽기내기 하고 나서 나하고 죽기내기 하자' 그러시겠어요, '다 버리고 나하고 죽기내기하자' 그러시겠어요? 어떻게 하겠어요?「나중의 것이요」 그건 틀림없이 맞지요? 너희들도 그래? 「예」 중학교 학생도 다 그렇다는구만. (웃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천사와 싸워 이긴 야곱

그러면 죽기내기하는 데에 있어서 무엇을 중심삼고 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밤새도록 씨름을 했습니다. 그때 야곱은 천사에게 '당신은 나를 축복해 줘야 돼요' 하면서 천사의 허리를 붙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야 이놈의 손아! 너는 펴져서는 안 돼' 하면서 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건 미친 녀석이라구요. 천사는 밤새도록 손을 펴려고 하는데 '이놈의 손아! 너는 펴져서는 안 돼' 하는 것입니다. 미친 녀석이라구요. 손은 펴지는 것이 원칙인데 펴져서는 안 된다고 하며, 이것을 놓으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큰일나느냐? 그걸 놓으면 나 죽는다, 축복 못 받는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이 손을 놓는 날에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갈 데가 없다'고 했더라면 참 만점인 것입니다. '내가 형님의 장자권을 빼앗은 것은 뭐냐 하면 형님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였다' 이럴 때는 통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내가 형님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더 미쳤기 때문이다' 하면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거 맞지요?

'형님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더 미쳤다. 절대적으로 미쳤다' 그렇게 철저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은 '그럼 해봐라' 하고 들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을 천사와 밤새 싸우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길에 있어서 막는 자가 있으면 그 자를 때려 눕혀 항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생명이 끊어지기 전에는 그 싸움을 그만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판가리 싸움을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미쳐야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자기 일신을 초월한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야곱은 그 싸움에 이겨서 천사로부터 이스라엘이란 축복을 받았습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싸워서 이겼느냐? 축복을 중심삼고 싸워 이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싸워 이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야곱이에서보다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싸우는 데에 있어서 악착같이 싸웠다는 것입니다. 환도뼈를 맞아 허리가 부러져도 '아이고 나 죽소' 했어요? 외삼촌 집에서 21년 동안 고생해서 형님에게 자랑할 수 있는 모습을 취해 가지고 가는 판에,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밤새껏 씨름하다 부러졌으니 '십년 공부 나무아미 타불'이라고 낙망할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 그렇지만 야곱은 그런 자리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허리가 부러지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절대적이다. 아직 내가 생명이 붙어 있어 죽지는 않았으니 이것 만으로도 감사하다' 한 것입니다. 이런 경지까지 갔기 때문에 야곱은 이스라엘이란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하기를 악착같이 해야

통일교회 패들은 하나님 사랑하기를 악착같이 해야 됩니다. 악착같다는 말의 반대말이 무슨 말이예요? 악착같다는 말의 반대말이 있으면 좋겠는데…. 통일교회 사람들이 기성교회 사람들하고 같아야 되겠어요, 달라야 되겠어요?「달라야 됩니다」 얼마만큼 달라야 되겠어요? 악착같이 달라야 됩니다. 눈을 깜박거리는 것도 달라야 되고, 숨쉬는 것도 달라야 됩니다. 그들이 죽어서 천국가겠다고 하면 우리는 살아서 천국가겠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어서 천국가겠다고 하는 패하고, 살아서 천국가겠다고 하는 패하고 어느 패가 더 극성맞아요? 살아서 천국가겠다고 하는 패입니다. 살아서 천국가겠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시고 살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잡아다 놓겠다는 말이라구요. (웃음)

다시 말하면 하늘나라는 다 집어치우고 이곳에 하나님을 모셔 놓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보다 더 악착같아야 됩니다. 예수님보다 낫지 않고는 이 땅 위에 천국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통일교회 패들은 예수님보다 낫겠다고 하는 패가 되어야 됩니다. 이런 말하면 이단이라고 하겠지만, 이젠 뭐 이단이란 말도 너무 많이 들어서…. (웃음) 그런 말이 없어지면 섭섭할 것입니다. 그 말은 아주 구미가 동하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유치원 시절부터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 계속 낙제를 했지만 논문을 쓰는 데 일등을 했다면, 그 사람에게 박사학위를 줘야 되겠어요, 안 줘야 되겠어요? 줘야 됩니다. 줘야 돼요? 낙제생인데도요?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낙제만 하던 낙제생이 나중에 대통령의 사위가 됐다고 하면, 학교 다닐 때 반장을 하고 공부 잘하던 동창생들이 와 가지고 머리 숙이고 부탁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대한민국 식으로 말하면 부탁해요, 안 해요? 머리 숙여야 돼요. 안 숙여야 돼요? '이놈의 자식아, 공부깨나 한다고 으시대더니 이제 와서 뭐라고? 하고 큰소리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웃음) 이렇게까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승패가 결정되는 요인이 됩니다. 하나님을 얼마만큼 극성맞게 사랑했느냐 하는 것이 등급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독한 분입니다. 하나님이 지독한 분이예요, 허술한 분이예요? 지독한 분입니다. 지독한 분이라면 허허 웃는 입장에서 지독한 거예요, 이빨을 빠드득 빠드득 가는 입장에서 지독한 거예요? 어떤 입장에서 지독해요? 다르다구요. 까놓고 얘기하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지독한 분한테 한번 붙들리면 꼼짝 못하게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독한 분에게 한번 붙들리게 되면 어디 국물이나 있겠어요? 그분은 지독한 분이기 때문에 변소를 가더라도 그냥 못 간다는 거예요. 옆에 와서 감시를 할 것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졸졸 따라다니기 때문에 갈데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귀찮고,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만약에 공부를 하자고 졸졸 따라다니면서 '공부 공부'한다면, 그거 할 수 있어요? 또 '너는 내 권력을 가져야 돼. 너는 내 능력을 길러야 돼. 나 대신 해야 돼' 한다면 할 수 있겠어요? 못 하는 거라구요.

지독한 패로서 패스할 수 있는 하나의 방도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누구든지 사랑하는 데에 지독한 것은 다 좋아하지요?「예」나이 많은 사람도 그래요? 그것은 죽음을 눈 앞에 둔 할아버지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엊그제 기성가정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그 중에 88세 된 할아버 지도 있었는데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장가 보내 줬다는 것입니다. 내가 배가 고파서 통일교회 선생 된 것도 아닌데 이제 와 보니, 되기는 됐다고요. 내일 모레 공동묘지로 갈 입적서를 써 놓은 할아버지를 장가 보내며 그 할아버지에게 물어 봤더니 24,5세의 총각과 마찬가지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할아버지에게 '장가가고 싶소? 하고 물어봤더니, 씩 웃으며 (웃음) 부끄러워서 말을 못 해요. 꼭 어린애와 같았습니다. 또, 할머니도 그저 손가락을 입에 물고 얼마나 부끄러워하는지…. (웃음) 부끄럽지만 축복받아야 되겠다는 겁니다. 축복받기 위해서는 창피고 무엇이고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는 아무리 나이 많은 사람도, 젊은 사람도 다 심각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늙은이하고 결혼하게 되면 시중밖에 더 들겠어요? 그것은 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시중을 들어 주고, 심부름을 해주고, 봉사를 하더라도 자기를 사랑해 주면 좋아요, 나빠요? 좋다는 것입니다. 악착같이 간섭을 하더라도 그것이 통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은 사랑입니다. 총각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도 됩니다. 아저씨들은 그저 다 알고 있는데…. (웃음) 총각들은 이런 말 할 때는 듣지 말라구요. (웃음)

사랑의 챔피언을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

그러면 인간세계에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일등 챔피언이 왜 생겨나지 못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에게 '당신은 나를 두고는 못 갑니다' 하면 '그래 그래 너를 두고 어떻게 갈 수 있겠느냐? 못 가지. 가더라도 데리고 가지' 이렇게 할 수있는 챔피언 역사가 있었어요? 그런 일대(一代) 챔피언이 있었어요? 여러분은 그 일대(一代) 챔피언을 찾아 봤어요? 그것을 생각해 봤어요? 역사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 또 영원을 중심삼고 '내가 챔피언이다' 하면서 챔피언의 길이면 길, 벨트면 벨트를 제2의 계승자에게 기쁨으로 전수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었느냐? 그런 챔피언이 있었어요? 일등 챔피언이 있었어요? 그런 말을 들어 봤어요, 못 들어 봤어요?「못 들어 봤습니다」 못 들어 봤으니까 그런 챔피언이 없다는 거지요.

자, 그럼 그런 챔피언이 나오면 좋겠어요, 안 나오면 좋겠어요?「나오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지긋지긋하게 사랑하는 챔피언 남자가 있다면, 여자들은 그런 남자를 신랑으로 삼고 싶어요, 삼고 싶지 않아요? 나이 많은 여자들은 그 사람을 신랑으로 삼고 싶어도 삼을 수 없지만…. 나이 많은 여자들은 '지금 내가 처녀라면 그런 마음을 먹어 봤으면 좋겠다' 할 것입니다. 나이 많으신 분들, 그런 챔피언 남자에게 자기 딸을 맡기고 싶어요, 안 맡기고 싶어요? '그거 물어 볼 것 있나, 누구나 다 그러고 싶지' 할 것입니다. 그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기 아주머니도 살살 웃는 걸 보니 부정 안 하는 모양이구먼. (웃음)

만일 어떤 사람이 챔피언이 되었다면, 그 챔피언의 아들딸들은 어때요? 사람들은 말할 때 아버지가 훌륭하면 그의 아들에 대하여 아무개의 아들 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들이 훌륭하면, 그의 아버지에 대하여 아무개의 아버지라고 하지요? 이렇듯, 사람들은 훌륭한 것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것이 세상의 예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일등 챔피언이 되었다면, 사람들이 볼 때는 그 사람의 아버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해서 '저 일등 챔피언의 아버지 되는 분이 하나님이야' 하는 말이라도 나왔을게 아니예요. 그런 챔피언이 못 되었다면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말이라도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는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저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입장에 서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아들보다 나은 사랑을 해야 됩니다. 또 '하나님은 아무개의 아버지다' 할 수 있으려면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더라도 아들은 하나님을 지극히 더 사랑해야 됩니다. 사랑을 중심 삼고 그런 입장에 서게 되면 아버지와 아들의 위치가 엇갈리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세계적인 챔피언 중의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나온다면 하나님을 그냥 부르는 것보다도 '하나님은 아무개의 아버지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또, 아버지로서 아들보다도 더 훌륭한 자리에서 사랑한다면 그 아들을 대해서 '저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지구성에 사는 인간들 가운데서 대관절 그런 챔피언이 나왔느냐? 그런 챔피언이 나왔다는 말 들어 봤어요? 오늘날 기독교의 예수님을 보라요. 예수님은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 옵소서'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를 했고, 나중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에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버렸어요, 사랑했어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면, 하나님도 사지(死地)를 개의치 않고 예수님과 같이 죽든지, 그 주위에 벼락을 치든지 해야 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느냐? 이렇게 물으면 기성교회 목사들은 '그것은 우리가 알 바 아닙니다. 그분들이나 압니다'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지 않고 악착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었을 텐데, 왜 그렇게 사랑하지 못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데 있어서 죽어서 사랑하고 싶어요, 죽지 않고 사랑하고 싶어요? 죽지 않고 사랑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왜 죽어야 됐느냐 이겁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가 골칫거리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것 다 덮어놓고 믿으면 돼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최후에 남는 것은 사랑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까지 사랑의 동산을 꿈꾸고 사랑의 종착점을 찾아 나오기 때문에, 하나의 세계를 중심삼고 거기에 접선될 수 있는 챔피언을 찾아 나오는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알았지요?

적극적인 신앙자가 되라

이렇게 볼 때, 통일교인은 악착같은 패가 되어야겠어요, 안 되어야겠어요?「되어야겠습니다」 말을 하더라도 지독하게 해야 됩니다. 우물우물해서는 안 됩니다. 총을 쏜다면 권총을 쏠 거예요, 기관총을 쏠 거예요? 「기관총이요」 기관총을 쏴야 됩니다. 뛰기내기하는 데도 땀을 흘리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아요, 그저 슬쩍슬쩍하는 것이 좋아요? 땀을 흘리고 스릴이 있어야 좋은 것입니다. 영화를 볼 때도 스릴이 없으면 재미없지요? 마찬가지로 종교도 스릴 있는 종교가 좋습니다. (웃음) 자극적이어야 합니다.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고. 안 되면 가슴에 철추가 날아드는 종교가 좋아요. 가만히 있는 종교가 좋아요? 어디, 여기 아주머니들 어느 것이 더 좋은지 대답해 보세요. 갓 시집을 간 새댁이 잘못했을 때는 그 즉시 책망하는 것이 좋아요, 그저 이래도 가만두고 저래도 가만두는 것이 좋아요?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소극적인 패가 아닙니다. 그렇지요? 소극적이라는 말은 통일교회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슨 패예요? 「적극적인 패입니다」 소극적의 반대말은 하나밖에 없다구요. 중극적이란 말은 없습니다. 적극적인 패입니다. 상 중 하라고 하듯이 중극적이란 말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중극적이란 말은 없고 그 중에서도 소극적인 것은 싫고 적극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적극적인 것을 좋아하지요? 한쪽 눈을 빼 주면 그거 적극적이요, 아니요?「아닙니다」두 눈을 빼 주면? 그것도 아닙니다. 또 팔을 빼 주면? 그것도 아닙니다. 생명을 덜컥 내줘야 적극적입니다. (웃음) 그런 거예요.

여기에 서 있는 사람도 그런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세상에서 욕해도 가만히 있으니까, 저 사람은 본래 가만히 있는 역사를 책임지고 태어났다고 할지 모르지만, 천만에, 아직 그럴 때가 안 됐고, 봄철이 안돼서 그렇지 해동기만 지나가 보라구요. 크게 되면 누구보다도 크게 될 것입니다. 비료가 모자라면 기성교회를 비료 삼아서라도 클 겁니다. 기력을 못 쓰게 되면, 죽게 되면 그것은 썩게 됩니다. 그 썩어진 것을 전부 흡수하여 비료로 삼는 것입니다. 썩을 것은 썩어야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썩을 것은 썩고, 썩지 않을 것은 안 썩어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썩겠어요, 안 썩겠어요?「안 썩습니다」 우리 회사 중에 일반 사람과 같이 일하는 곳이 있는데, 우리 통일교회 패들에게는 일반 사람의 월급 절반만 주라고 내가 지시를 했습니다. 한 사람을 과장으로 보냈는데 계장들이 자기보다 월급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곤란한 겁니다. 월급날 월급을 받으면 다른 사람들이 과장인 자기를 쓱 본다는 것입니다. (웃음) '과장이라는 사람이 계장보다 월급이 적어 가지고, 무슨 과장이야'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런다면서 나에게 왔어요. 그래서 내가 '이놈의 자식, 그것이 뭐가 나쁘냐? 너는 주인이고, 그들은 종 새끼 인데, 주인 아들이 월급 한 푼 안 받는다고 해서 무시하는 녀석이 있어? 무시하는 녀석들은 모가지를 잘라 버려야 된다구' 했던 것입니다. 그런 녀석들은 전부 모가지를 잘라 버려야 된다구요. 공장 전체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그까짓 월급 몇 푼이 문제예요? 여러분은 생각하는 것이 달라야 합니다.

적극적인 사람이라면 월급을 받는 데 있어서 남보다 더 많이 받아야 되지요? 남이 5만 받으면 10만원을 받고, 남이 100만원을 받으면 150만 원을 받아야지. 이것이 적극적이예요? 이것은 세상적인 면에 있어서 돈을 중심삼은 적극적인 패인 것입니다. 그럼, 통일교회 패들은 적극적인 패이니까, 돈을 한 푼도 안 받고?(웃음) 그래야 된다구. 통일교회 패들은 남이 밥 먹고 살면 우리는?「죽을 먹고」 뭘 먹고 산다면 그것은 벌써 적극적이 아닙니다. (웃음) 그렇잖아요? 남이 웃고 산다면 우리는 울고 살아야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소극적이고 우리는 적극적이라면 반대'가 뭐예요? 세상 사람이 웃으면 우리는 더 웃으라는 것입니까? 그것은 더 소극적입니다. 더 적극적이라고 안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과는 전부 다 반대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은 여러분들에게 잘먹고 잘살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절대 안 합니다. 하라고 가르쳐 줘도 안 합니다. 그저 고생시키려고만 합니다. 고생을 시켜도 그냥 시키지 않습니다. 몰아치면서 목을 잘라 가지고 굴러 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말을 하지 않고도 슬쩍슬쩍 좋게 말을 할 수도 있을 텐데, 듣는 사람들이 왜 힘을 주고 듣게 만드느냐? 남 좋게 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내가 좋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울든 말든 고생하든 말든 이 일을 하는 것은 통일교회 문선생 좋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럼 나는 누구 때문에 그러느냐? 나는 하나님을 좋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위에 맨 고수가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단이면 하나님은 더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웃음)

결국 뭐냐 하면. 나 좋게 하기 위한 것보다도 하나님을 좋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그저 좋다고 하니 어떻게 하겠어요? 하나님이 싫다는 것 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받을 수 있을 것같아요? 어림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욕을 먹으라 하면 욕을 먹어야 하고. 누더기 보따리를 쓰라 하면 써야 하고, 감옥에 들어가라 하면 들어가야 합니다.

또, 뭇매를 맞아야 할 때에는 뭇매를 맞아야 합니다. 뭇매를 맞으면서도 연구해야 됩니다. 열 사람이 뭇매를 치면 그 매를 맞으면서 그들의 다리를 보고 '저 녀석은 큰 녀석이다. 저 녀석은 작은 녀석이다. 또 이 녀석은 어떤 녀석이냐' 하는 것을 연구해 가지고, 한 손을 휘저으면 몇몇을 일시에 잡아치울 수 있게끔 감상하라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뭇매를 맞은 자들을 중심삼고 뜻을 이루려는 때에 있어서 뭇매를 맞지 않은 다른 사람은 다 망하더라도 뭇매를 맞은 왕초를 하나님은 찾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생각을 해야 됩니다.

사랑이란 하고 또 해도 끝이 없는 것

여기 생련이 왔나, 생련이? 지생련! 「예」 임자 이야기를 한마디 하자구. 임자의 남편이 살아 생전에 임자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르지만, 얼마 전에 남편이 영계에 갔다구.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누가 죽었다고 서럽게 우는 것을 보면 선생님은 따귀를 후려갈기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뜻을 중심삼은 삼각관계에서 눈물을 흘린다면 모르지만, 남편이 죽었다고 해서 뜻이고 뭣이고 통일교회 잘못 믿었다고 하면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축복을 어떻게 해뒀기에 내 남편이 이렇게 죽었느냐고 항의한다면, 용서 못 한다고요. 후려갈기는 거라구요. 내가 죽으라고 축복해 줬나, 잘살라고 해줬지. (웃음) 그 슬픔을 동정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르지만, 죽고 난 다음에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살아 생전에 남편을 사랑하지 못했고, 남편은 하고 싶은 것을 다 못 했다'고 서러워한다면 그것은 동정이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남편에 대해서 불평한다면 그건 안 됩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나는 생전에 이 이상 더 사랑할 수 없다고 할 만큼 사랑했다는 것하고, 생전에 내가 좀더 사랑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것하고, 어느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 좀더 사랑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것이 좋아요, 생전에 죽도록 사랑을 했다고 하는 것이 좋아요?「사랑했다 하는 것이 목적을 완성한 것이므로 좋다고 봅니다」 그러면 사랑을 다했기 때문에 죽어도 그만이라는 거예요?(웃음) 사랑이란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을 다했다고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사랑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사랑을 다 못 했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다 못 했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좋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내가 그를 위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다했다고 한다면 끝이 나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은 상대를 위하고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을 다했다 하는 것보다 사랑을 다 못 했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나는 통일교회에서 할 것 다 했으니까, 나를 사랑해줘야지'라고 한다면 이런 사람은 끝나는 것입니다. 다했더라도 '더 해야 할텐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도 그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했고 어떻게 했는데 요즘엔 선생님이 나를 몰라 준다. 당장에 이렇게 해줘야지, 해줬으면 갚아 줘야지' 이러는 패들을 보면 내눈이 뒤집어진다구. 이년! 이놈! 장사꾼들이야?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서 돈을 쓰고서는 아들한테 그 돈을 내라고 할 수 있어요?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서 돈을 쓰고서는 그걸 갚아 달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은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아 달라고 하기 전에 할 것을 다 못한 것에 대해 머리를 더 숙여야 합니다. 아무리 다했다 하더라도 내가 해야 할 효의 도리, 충의 도리를 다 못 했으니 이제라도 더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길이 남아 있다면 고맙겠다고 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 마음이 장땡입니다, 장땡.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세상의 그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또 내가 큰소리할 수 있는 때가 점점 가까와 온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걸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수록 책임이 더 큰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다고 해서 좋아하고 자랑하기보다는 하늘 앞에 더 자랑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어떻게 이루어 드릴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고 나가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최후의 정상을 찾아가는 길

사랑이란 하고 또 해도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에 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있는 정성을 다하여, 잘먹이고, 잘입히고, 안팎으로 걸릴 것 없이 키웠다고 하지만 만약 그 아들이 죽었다고 할 때 '난 너를 위해서 다했다'라고 할 수 있는 부모가 있어요? 사랑의 길이란 것은 진정 좋은 것을 주고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주고 그것을 자랑의 조건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숙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 이것이 사랑의 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후의 정상의 기준을 찾아가는 사랑의 길이란 어떤 길이냐? 하나님을 위해서 미치는 길입니다. 통일교회 교인 중에 하나님을 위해 미치지 않은 사람은 가짜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미친 사람입니다. 어떤 영통인이 '통일교회 문선생은 하나님한테 미친 사람이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그녀석, 알기는 아는구나' 했습니다. 하나님에게 미쳤다는 말이 돈에 미쳤다는 말보다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이왕 미칠 바에야 하나님한테 미치는 것이 좋지 하나님한테 미친 미치광이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세계적인 조롱을 받지요. 안 그렇습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미치광이가 동네에 척 서 있게 되면 잠자던 아이들도 구경하고 싶어할 텐데 눈을 뜨고 있는 사람들은 오죽하겠어요? 그 미치광이를 보고 뭐가 어떻고 어떻고 평을 다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한테 미쳤으니 세계적으로 평을 받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내가 미쳤다는 증거를 보여 주는 것이 반대파들이라구. 대한민국이 반대하고, 기성교회가 반대하고, 요즘엔 무슨 총회패들도 반대하고 나서는데, 그래 반대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출세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남편을 사랑하기에 미친 아내가 십년, 이십년 동안 오지도 않는 남편을 기다렸는데, 나중에 남편이 세상에 없는 출세를 해 가지고 오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도령같이 오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미쳤다고 조롱하던 사람들은 서릿발 맞겠지요? 서릿발 맞겠어요, 안 맞겠어요? 「맞습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난 다음에 죽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이 열 시간 자면 나는 아홉 시간 자고, 남이 아홉 시간 자면 나는 여덟 시간 자고. 남이 여덟 시간 자면 나는 일곱 시간 자는 것입니다. 남이 일곱 시간 자면 나는 여섯 시간 자고, 남이 여섯 시간 자면 나는 다섯 시간 자고, 남이 다섯 시간 자면 나는 네 시간 자고, 남이 네 시간 자면 나는 세 시간 자고, 남이 세 시간 자면 나는 두 시간 자고, 남이 두 시간 자면 나는 한 시간 자는 것입니다. 이런 주의입니다.

사실은 어제도 몹시 고단했습니다. 그렇지만 책임자란 고달프고 피곤하다고 해서 '오늘은 피곤하니 쉬자' 할 수 없습니다. 젊은 일본사람들을 데려와 교육을 하고 왔는데 몸은 비록 고달프지만 그들을 산으로 끌고 다니면서 오르락내리락 뛰어다녔습니다. 그렇게 긴장을 하고 있다가 그들을 보내고 나서 마음을 턱 놓으니 얼마나 피곤한지 모르겠어요. 교회에 가도 선생님을 찾는 사람이 많고, 또 어디를 가더라도 그곳에 선생님이 왔다는 소문만 나면 전부 다 나를 만나겠다고 하기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청평을 잘 만들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피난처를 잘 만들었다는 거예요. (웃음) 선생님이 청평에 가서 가만히 생각하니 그곳에도 할 일이 있거든. 그래서 어제는 사람들을 오라고 해서 밤 아홉 시까지 배를 수리했습니다. 또, 오늘은 일요일이기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서울에 왔습니다.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곤드레만드레 잠에 취하여 온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서울에 와 보니 또 누가 선생님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부르터 가지고 안 만나겠다고 할 수 있어요? 팔자가 그러니까 할수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열두시가 다 되었고, 또 이것저것 하다 보니 열두시 30분이 쓱 지난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침에 기도하는 것이 습관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시간만 되면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도 새벽 4시 전에 일어났습니다. 이렇듯 곱배기로 일을 하기 때문에 사실 쉴 사이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통일교회를 이끌어 가면서 어떻게 해서 좀더 편히 잘살아 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 팔자소관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 길이 운명길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못 살게 되면 못 사는 것을 팔자로 알고, 반대를 받게 되면 반대받는 것을 팔자로 알고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비틀걸음을 하면서도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선생님을 좋아한다면 선생님이 하라는 일을 좋아하라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을 내세워 놓고 구경을 많이 했습니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 대해 '저 사람은 본래 그런 사람이다.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본래 그런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왜 좋아하느냐?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선생님은 이 길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가라 하는 길을 다 좋아해요? 좋아해요, 싫어해요? 선생님은 좋아하지요? 남자나 여자나 선생님을 다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은 듣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빼놓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여러분이 선생님은 좋아하는데 선생님이 하라는 일은 좋아해요, 좋아하지 않아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좋아해요, 좋아하지 않아요?「좋아합니다」 좋아하긴 뭘 좋아해. 어디 선생님을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저저 잘들 생겼다. (웃음) 그럼 한번 해보자구요.

내가 여러분을 더 좋아해요. 여러분이 선생님을 더 좋아해요? 누가 더 좋아해요? 여러분이 더 좋아해요, 내가 더 좋아해요?「선생님도 저희를 좋아하고 저희도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누가 더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는데 선생님도 좋아하고 우리들도 좋아한다니, 세상에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웃음) 선생님이면 선생님이고 여러분이면 여러분이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는 문제인데…. 누가 더 좋아하는 거예요? 그거 가리기가 곤란하지요?

어떤 사람은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아침도 안 먹고 이른 새벽부터 찾아왔는데, 선생님은 나 보고 싶다고 언제 찾아와 봤어요? 이렇게 생각도 할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무슨 잔치니, 회갑이니 해 가지고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선생님 오십시오, 오십시오' 하지만 나는 안 갑니다. 그러면 섭섭해 가지고 부르터 있는데 그런 사람은 틀린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잔치집마다 찾아다녀 가지고 그거 습관이 되면 어떻게 하겠어요? (웃음) 사람이 찾아오는데 나 초청하러 오지 않나 하게 되면 망복(亡福)이 드는 거라구요. 누가 와도 손에 뭐 들고 오지 않나 하게 되면…. 감옥살이 하게 되면, 면회 오는 사람의 얼굴보다 그 사람의 손부터 보게 됩니다. (웃음) 군대생활을 해본 사람은 그 마음을 알 것입니다. 면회 왔다고 하면 그 사람의 손부터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심리가 선생님에게도 있습니다. 없는 것이 아니예요. 선생님은 더 분석적이고 더 이론적입니다.

오래된 목사의 자녀들이 불량배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왜 그러냐 하면, 사람이 오면 벌써 들고 오는 것부터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패한 관리들도 사람을 대할 때 들고 오는 것부터 봅니다. 그것이 망조입니다. 선생님은 누구에게도 신세를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신세지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신세를 지우려고 합니다. 신세를 지우는 데 있어서도 여러분 일대보다도 더 큰 분야에 지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원리를 실천하면 사랑의 챔피언으로 뽑힐 수 있어

벌써 일곱시 반이 되었구만. 이렇게 얘기하다가는 한정이 없겠으니 이제 결론을 지읍시다. 세계는 하나의 정상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하나의 세계를 누구나 원하고 있지만 그것을 국가면 국가, 민족이면 민족이 같은 자리에서 원하는 것이 아니라, 천태만상의 차이를 중심삼고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세계, 정상에 도달할 수 있게 하려면 접선시킬 수 있는 어떤 선봉자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선봉자는 역사시대의 맨끝에 절대적인 주인이 있다든가 이상세계가 온다면 그 절대적인 주인과 함께 그 이상세계에 입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두 사람이 보조를 맞추어 일시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한 사람이 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남자일 것이냐, 여자일 것이냐? 남자는 여자보다 키도 크고 그러니까 여자보다는 남자일 것입니다. 그분은 남자일 것이기 때문에 세계의 대표적인 명사로서 인류 종말시대에만 나타나야 됩니다.

그것을 종교의 입장에서 말하면 재림사상에 해당합니다. 오늘날 기독교 입장으로 말하면 재림주에 해당합니다. 재림주라는 분은 어떤 분이냐? 남편으로 오시는 신랑입니다. 그 다음에는 신부입니다. 신랑은 남자를 대표한 것이요, 신부는 여자를 대표한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만 이기면 여자들이 시기합니다. 그렇지요? 남자만 전부 일등하면 되겠어요? 안 그래요? 여자들이 시기할 거라구요. 지금 내가 남자라고 하니까 '선생님도 남자니까 별수없이 남자를 내세우지' 하고 욕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욕해도 좋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두고 볼 때, 남자만 일등하면 안 되겠다구요. 남자만 일등하고 여자는 이등하기를 원해요? 원해요, 안 원해요? 이등하기를 원한다면 죽으라구요. 그런 사람은 한꺼번에 다 죽어도 괜찮습니다. 남자만 일등하는 것 원하지 않지요? 그렇지요? 평균적으로 키가 작은 것만도 분한데…. 그 분풀이를 하기 위해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것이 아니예요?(웃음)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얼마나 공평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여자들이 분하게 생각할 줄 알고 '여자의 본질은 사랑받는 것이다'고 한 것입니다. 여자가 시집가는 것도 사랑받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여자는 사랑받는 소질이 농후하기 때문에, 집 밖에서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시대는 싸움으로 엮어 내려 왔습니다. 싸우고 죽이는 전쟁 마당을 계승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은 여자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자들이 전쟁마당에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집 지키는 일을 시켰고, 세상에 나가 출세하는 길을 막아 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여자들은 고맙지요? 남자는 밖에서 생명을 내놓는데 여자는 집에서 하는 고생쯤이야 그거 못 하겠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여자들은 그저 고생해 나온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자들이 불쌍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는 지금까지 죽어 온 것입니다. 죽는 것 하고, 고생하는 것하고, 어느 것을 택하겠어요? 죽는 것보다 고생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자들이 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끝날에 있어서 남자를 택하실 것입니다. 끝날에 있어서 남자라는 그분이 누구냐 하면 신랑입니다. 세계적인 일등 남자 챔피언이 나오면 일등 여자 챔피언이 나와 가지고 남자와 여자가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여자 챔피언과 경쟁을 해봐야 될 것이 아니예요? 그렇잖아요? 남자 일등, 여자 일등이 나왔으면 챔피언을 뽑아야 됩니다. 무슨 챔피언을 뽑자는 것이냐? 힘내기 챔피언을 뽑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내기 챔피언을 뽑자는 것입니다. 그때에 있어서 하나님은 역사상에 없는 심판관이 되는 것이고, 그 다음에 남자와 여자가 나와서 누가 더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하는 내기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여자들, 이 싸움에서 질래요, 안 질래요? 남자들은 지겠어요. 안지겠어요?「안 지겠습니다」 절대 져서는 안 됩니다. 악착같이 싸워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챔피언을 뽑는데 어떻게 뽑느냐? 거기에는 법이 있습니다. 레슬링 경기를 하는 데도 법이 있고 심판이 있는 것과 같이, 거기에도 법이 있고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두 사람이 싸우는 그 싸움이 하루에 끝나지 않거나, 또 그 싸움이 어느 기간에 끝나지 않고 십년, 영원히 계속된다면, 서로 비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비기는 판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싸움에서 서로 비기기는 비겼지만 누가 더 법을 지켜서 사랑했느냐? 여기에는 전부 같지 않은 것입니다. 차이가 벌어지게 됩니다. 지지 않겠다고 버티고 나왔다 하더라도, 그 싸움이 끝이 나지 않아 비기게 되었더라도 심판관이 볼 때 그래도 법을, 즉 룰을 중심삼고서 일등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법은 개인을 위한 법이요. 가정을 위한 법이요. 종족을 위한 법이요. 민족을 위한 법이요, 세계를 위한 법입니다. 세계에서 일등가는 법을 중심삼고 그 법을 지키는 심판관 앞에 있어서는 전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법을 어겨서라도 일등하려는 사람도 있고, 법대로 해 가지고 일등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는 최후까지 그 싸움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심판관이 그 경기의 내용을 중심삼고 누가 더 낫다고 하는 것을 감정을 할 것입니다. 그건 틀림없지요? 알겠어요?

만일에 경기가 끝나서 감정을 할 때, 심판관은 마음으로 누가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어요? 대답해 보라요. 누가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할까요?「남자요」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웃음) 법대로 한 사람, 나중에는 문제가 이렇게 됩니다. 나중에는 어떻게 결정되느냐? 법대로, 법을 따라서 하려고 하는 사람이 그래도 하나님편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심판관이 법을 지킨 사람을 중심삼고 이 사람이 일등을 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심판관이 그 사람에게 귓속말로 가르쳐 줄 수도 없다?「있다」 대답해 보라요? 있다, 없다?「있다」 알기는 아누만.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심판관이 저 사람의 약점이 무엇이고, 자네의 장점이 무엇이다는 것을 알려주어 가지고, 이럴 때는 이렇게 하고 저럴 때는 저렇게 하라고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경기에 있어서는 이길 수 있는 비율이 적다, 많다?「많다」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서는 경기에 이길 수 있는 원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몇천 년을 싸웠어요? 「2천년요」2천년이 뭐예요? 6천년 동안입니다. 자그마치 6천년을 싸워 나왔습니다. 그렇게 몇천년 동안 싸워 나오며 후퇴했어요, 안 했어요?「안 했습니다」 후퇴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통일교회가 반대를 받고 나오고 있지만 후퇴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이렇게 볼 때, 현재 통일교회 교인의 위치는 경주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경주장에 선 여러분들을 보게 되면 별의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것을 생각 않고 있겠지만 누가 어느 급에 있고, 동쪽의 몇도선에 있다 하는 것이 전부 다른거라구요. 여러분이 그런 것을 알게 되면 불평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일세기를 한 주기로 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2천년을 한 주기로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높고 낮은 것을 보게 되면 다 마찬가지입니다.

일생을 두고 볼 때, 어떤 사람은 지위가 높고, 어떤 사람은 지위가 낮고 또 저 사람은 잘사는 데 왜 나는 이렇게 못사느냐 하며 불공평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불공평한 것이 아닙니다. 공평한 것입니다. 현재 못사는 사람은, 남의 가산을 탕진시키고 도둑질해 가지고 잘 먹고 잘살았던 사람의 자손입니다. 그런 선조의 후손은 낮은 자리.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 6천년이나 3천년을 한 주기로 보게 되면 전부 평등합니다.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앞뒤를 보고 전부 같은 줄 알고 평등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가는 길에 있어서는 평등입니다. 그렇지만 위치에 있어서는 평등이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위치에 평등이 있어요? 다른 의미에서는 전부 평등하지만, 위치는 절대 평등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려 가지고 자기가 이런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면 불평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경주장에 선 현재의 위치'인데. 오늘날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종교계를 중심삼고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 투쟁해 나오는 하나의 표준이 무엇이냐? 돈이예요? 여러분은 돈 벌기 위해서 여기 왔어요? 얼굴 잘난 것을 자랑하러 왔어요? 그런 사람은 보따리 싸 가지고 가라구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온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한 것이 둘째 되는 계명이라고 했나, 뭐라고 했나?「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라는 것은 생명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라는 말이 무슨 뜻이예요? 마음을 다했다는 자리는 죽는 자리입니다. 죽기까지 하라는 말입니다. 아직까지 죽지 않았다면 마음을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을 향해서 달려가야 됩니다. 무엇을 위해서 가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랑의 세계를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을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 가정을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 종족을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 민족을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권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계를 필요로 한다면 통일교회 자체는 필요로 하지 않느냐? 아닙니다. 세계를 찾기 위해서는 통일교회를 세계보다 더 사랑해야 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통일교회는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권을 찾는 데 원동력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결과이고 우리는 원인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더욱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식구'라는 명사를 생각해야 됩니다. 자기가 사회에 나가 힘든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식구를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을 하다가도 자기를 위하는 식구의 얼굴을 대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기뻐지는 것이 아니냐?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식구끼리 목적을 위하여 더 기뻐할 수 있는 내용에 불타야 됩니다.

정상을 향하여 가는 거기에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상대가 있는 것입니다. 기성교회라든가 수많은 종교들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하기 위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통일교회는 악착같이, 적극적으로 생명을 내놓고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아 정상까지 가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되느냐? 하나의 정상을 찾아가야 하는데, 그 정상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내려와서 우리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찾아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찾아 정상까지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지나고. 가정을 지나고, 종족을 지나고, 민족을 지나고, 국가를 지나 가지고 세계 끝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에는 직선으로 가야 됩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이렇게 바로 올라가야만 직선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완전한 개인이 나와 가지고 직선으로 올라가 가정을 이루게 되면. 그 가정은 종족으로 커 가는 거예요. 범위가 넓어져 가는 것입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이렇게 이 선에서 직선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데에는 직선이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없다는 것입니다. '있다'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없다'입니다. 그 직선은 하나의 길이요, 통일의 길입니다.

그러면, 세계와 그런 개인을 바꿀 수 있느냐 할 때, 성경에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생명 그 자체는 개인의 중심이요. 전체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요 자리는 개인의 자리로서 맨 중앙 자리라는 거예요. 개인이 틀리게 되면 다 틀리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잘못되면 전부 차이가 벌어지는 거라구요. 다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세계를 잃어버리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의 수많은 민족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민족 중에 어느 쪽을 남기겠느냐? 세계의 수많은 민족은 버리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민족을 남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민사상입니다, 선민사상. 한 민족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 선민을 버리더라도 특별히 택한 아브라함의 직속 후손은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지파를 통해서 찾는 거예요. 선민을 부정하더라도, 유대교를 부정하더라도 유다지파를 부정하지 못해요. 이래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유다지파를 버리더라도 다말은 버릴 수 없는 것이요, 유다를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말과 유다는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다말은 버리더라도 유다는 버리지 못합니다. 이렇게 개인에 귀결됩니다. 그 귀결점이 개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에 해당하는 개인이 없어 가지고는 전체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 하면, 세계적으로 개인을 대표한 분이요. 세계적으로 가정을 대표한 분이요, 세계적으로 종족을 대표한 분이요, 세계적으로 민족을 대표한 분이요, 세계적으로 국가를 대표한 분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국가를 중심삼고 싸우는 데 있어서 그 싸움의 승패의 기준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무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얼마만큼 사랑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두고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사랑할 때는 망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때는 번번이 망했습니다. 두고 보라구요. 통일교회도 그래요. 통일교인들 망하는지 안 망하는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자기보다 더 사랑하면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뜻으로서 귀결하려 하면 꺾어져 나갑니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투쟁의 길은 희생의 길

그렇기 때문에 망하지 않고 남아지는 길은 어떤 길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을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이냐? 잘먹고 잘살고 편안히'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반대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나라와 그 세계를 위해서 먹지 못하고. 잘살더라도 그 나라와 그 세계를 위해서 못사는 자리에 나가야 됩니다. 이런 반대의 길을 가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남편을 위하여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 고생했던 목적이 이루어져 남편이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 때, 그 남편에게는 아내를 먼저 그 자리에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어떤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그 일을 놓고 서로 서로 협조해 가지고 나중에 그 일이 성사되었을 때, 하나님 자신이 그 자리에 나서기 전에 아들이면 아들, 혹은 딸이면 딸을 내세워 가지고 이들을 먼저 찬양받게 하여 그 찬양과 더불어 영원히 같이 있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겠느냐?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 위에 한 남성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 남성은 어떤 사람이냐? 역사적인 대표로서 수난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어야 됩니다. 몸으로 고생하기보다는 마음적으로 고생을 많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누구보다도 많이 한 사람이어야 됩니다.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누구보다도 생각을 많이 한 사람이라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생각도 많이 하고,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고심(苦心)도 많이 하고,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공상을 했다면 누구보 다도 공상을 많이 하고, 생각뿐만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열 번을 생각했으면 반드시 열 번 행동해야 됩니다. 그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길을 찾아갔다가 그 길이 틀렸으면 되돌아와서 다시 그 길을 찾아야 될 것이고, 실천하는 데 있어서 의외로 잘 안 되더라도 그것을 넘어서 가지고 다시 결심하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그리하여 외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그 일을 실천 구현해 가지고 소기의 목적의 자리까지 나가기 위해 투쟁의 길을 가야 됩니다. 그 투쟁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개인이 희생하는 것도 감수해야 되고, 가정이 희생하는 것도 감수해야 됩니다. 종족을 희생의 길에 처넣더라도 불평불만하지 않아야 됩니다. 종족을 희생시키지 않고는 민족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민족을 희생하는 자리에 처넣지 않고는 하나의 주권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사상이 가는 길

오늘날 대한민국을 보면 남북이 갈라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민족을 찾았다 하더라도 하나의 주권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남북이 갈라져 있기 때문에 하나의 주권을 찾기 위해서는 민족이 단결해 가지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민족이 그렇게 해 가지고 주권을 찾았더라도 그 주권만으로는 다 됐다고 할 수 없습니다. 주권을 찾았으면 세계를 향해서 가야 합니다. 주권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를 찾아 나서는 싸움의 행로를 거치지 않고는 하나님이 찾고자 하는 평화통일세계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길을 가기 위해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고생을 했습니다. 고생한 이야기를 터놓고 해보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눈물을 많이 흘린 사람이라구요. 하나님이나 통일교인을 누구보다도 사랑한 사람입니다. 내 자식보다도 더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랬다구요. 그렇게 해서 통일족속을 만들어 왔습니다. 통일족속을 만든 것은 족속끼리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들을 잡아다가 어려운 길로 몰아내 가지고 고생을 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건 누구 때문에 그래요? 통일교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남과 북으로 양분되어 내일의 소망과 내일의 승리의 기틀을 장담할 수 없는 이 나라의 현실을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들고 나오고, 세계적인 사조를 넘어갈 수 있는 하나의 승리적 기준인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될 수 있는 기준에 서야 합니다. 그러한 사상을 가진 통일교회라면 단연코 이 민족을 중심삼고 누구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패하여 망해 가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영원히 남아질 수 있고, 미래의 만민이 추구할 수 있는 영원한 하나의 기수로서 하나님의 사랑 앞에 부끄러움 없이 직행할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의 주권을 중심삼고 우리는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불의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때까지는 참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쁩니다. 대열을 강화해야 되고, 정비해야 됩니다. 우리가 가야 할 목표의 한계선을 중심삼고 총진군의 명령을 받게 될 때는, 이의 없이 전체가 보조를 맞추어 직행할 줄 아는 이런 대열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든 여자든 몽땅 규합해 가지고 들이 치는 것입니다. 행복한 나라에서 살기를 원하거든 오늘 불행한 나라를 위해 죽을 줄 알아야 됩니다. 그 이상이 되어야 됩니다.

대한민국이 세계 앞에 불리워졌다면, 대한민국은 자기의 주권을 위주로 하여 그 이익을 찾기 위해서 세계를 버릴 수 있는 그런 미국과 같은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슬라브 민족만을 중심삼고 공산권의 세계 제패를 꿈꾸는 소련과 같은 입장의 사상적 사조를 가져서도 안 됩니다. 여기에는 초민족적이요, 초국가적인 입장에 서는 뜻과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뜻과 이상을 중심삼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라면 백인도 좋고 흑인도 좋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사상입니다.

인종을 초월해 가지고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기 민족의 울타리 안에서 꿈을 꾸는 것은 꿍꿍이속이라는 거예요. 오늘날까지 인간들이 걸어온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민족을 중심삼은 민족 감정 가지고는 앞으로 다가오는 통일세계에 있어서 전인류의 감정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계 인류의 감정, 더 나아가 천정(天情)의 인연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그 기준을 중심삼고 거기에서 찾아진 민족이 하나의 주권을 제기시켜 그 주권을 사랑하게 될 때, 그 주권은 하나의 세계의 주권이 되고, 그 주권을 중심삼은 국민은 세계 인류를 대신한 세계의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주권을 가진 국민이 세운 국가가 바로 이 지구성이 됩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이 가는 길입니다.

통일교회보다도 기성교회를 더 사랑하라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망하게 해서라도 나라를 찾아야 되고, 나라를 망하게 해서라도 세계를 찾아야 됩니다. 남편과 아내가 가정을 위해서 서로 희생하게 될 때, 그 가정이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전통을 본받아 철옹성같이 중심자 앞에 일치되어 나가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와 같은 사상을 어떻게 갖추느냐 하는 것이 끝날의 역사가 요구하는 현실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시대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보게 되면 우리는 어떤 입장이냐? 지금은 개인적인 시대, 가정적인 시대, 종족적인 시대를 지나 민족을 중심삼고 가인과 아벨이 싸우는 시대입니다. 가인 아벨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랑을 받기 위하여 누가 더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을 중심삼고 싸우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하나님은 공의의 심판정에 서서 법도를 따라서 싸우는 사람을 가리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법도를 따라 가지고, 원리 원칙을 따라 가지고, 하늘의 궤도를 따라 나가려는 싸움은 끝이 안 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그 배후에 있어서 그 법을 중심삼고 감시하고 감정하여 승패의 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법을 따라 싸우는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내면적인 지도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와 기성교회는 대립되어 있습니다. 기성교회는 나에게 있어서 원수라면 참을 수 없는 원수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반대하고 하나님의 뜻과 인류 앞에 피해를 가져온 것을 생각하면 칼로 그저 갈기갈기 찢어 산 독수리의 밥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악하다면 그렇게 악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없으면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는 부모를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가인과 아벨이 하나 못 되게 되면 부모를 못 만나게 돼요. 부모를 해방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해방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통일교회보다도 기성교회를 더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의 가르침입니다. 기성교회 교인들이 이것을 알게 되면 기가 막힐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빚을 지면서도 그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그거 왜 그러느냐?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러느냐? 지금 통일교회 문선생의 나이가 50여세 되는데, 통일교회 문선생이 나오기 전, 즉 반세기 이전에는 누가 하나님을 모셨느냐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셔 나오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그들은 형님이라는 겁니다. 그들이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형님이 아니냐? 그야말로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가인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요셉과 같은 입장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시기를 받아 애급으로 팔려가서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가게 되지만, 그곳에서 바로의 꿈 해몽을 해주어 가지고 애급의 총리대신이 됩니다. 이때, 온 세상에 흉년이 들어 애급 사람뿐만이 아니라 각국 사람들이 곡식을 사러 오는데 그 사람들 중에 자기의 형님들도 있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원수들인 그 형님들을 봤을 때 요셉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어요? 그렇지만 요셉은 그들이 자기와 한 핏줄을 이어받은 형제지간이고, 자기가 부모곁을 떠나 외지에서 생활할 때 그래도 부모를 모셨고, 부모의 사랑의 대상이 되었으며, 부모의 사랑하는 마음이 그들을 거쳐갔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들을 용서한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요셉의 이런 경우와 똑같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있어서 기성교회 목사들은 원수입니다. 선생님은 그들이 한 짓을 일곱배로 가중해서 갚아 줄 수 있고, 또 그들을 한꺼번에 불살라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천리를 알고 보니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갈 길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경주장에 서 있는 것과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앞서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랑한다는 모든 것을 거두어 가지고 내가 내 손을 거쳐 그들을 사랑했다는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끝이 안 나는 것입니다. 사탄편은 끝까지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은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종의 몸으로 사랑과 눈물과 피땀으로 봉사하는 길을 감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굴복하게 될 때, 비로소 끝이 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이 또다시 발기할 수 있는 기대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통일교회가 가는 길입니다.

이렇게 하여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하나되는 날에는 기성교회 교인들이 전부 다 통일사상을 가지게 되는 날에는 종교통일은 물론 공산당도 문제없습니다. 지금 끝날이 왔기 때문에 모두가 기진맥진해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과 마찬가지로 검부러기든 무엇이든 휘어잡으려고 하는 때가 왔다구요. 이러한 시점에서 통일교회는 혼자 갈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절대로 혼자는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와 기성교회는 공동운명체

예수님이 왜 낙원에 가 있느냐? 세례 요한을 데리고 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을 계승해 가지고 신약에 다리 놓아야 할 세례 요한은 어디 갔느냐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열두 지파를 중심삼고 역사적인 전통의 열매로써 신약의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할 열두 지파 족장의 중심 대표가 되어야 했습니다. 열두 지파가 시중하는 중심자리에서 동서남북 어느 방향과도 상치되지 않고 전체와 하나가 되어, 한 방향으로 백 번, 천 번 돌더라도 예수님이 가는 방향에 일치단결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이 그러한 사명을 완수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3년 공생애노정을 통하여 거지떼와 같은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고생만 죽도록 한 것입니다. 나중에는 스승을 팔아먹는 제자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스승을 배반한 꼴뚜기 같은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런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거 기가 막히는 거라구요. 그런데도 그런 제자들을 잊지 못하고 부활해 가지고, 다시 그들을 찾아가야 하는 예수님의 신세가 얼마나 따분하냐는 것입니다. 얼마나 따분했겠어요? 사나이로 태어나서 목전에서 자기를 배반한 후계자들을 다시 찾아가서 40일 동안 꿍꿍이해 가지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는 이런 놀음을 했다는 것입니다. 좋아서 그랬겠어요? 기가 막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두 세계를 한 품에 품고 하나님의 사랑의 다리를 놓아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을 거쳐 국가를 통일해 가지고 로마 제국을 제압하여 지중해를 중심삼고 세계적 판도를 넓혀 전 세계를 통일해야 할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는데. 그렇게 졸장부가 된 것이 잘된 일이예요? 기독교인들은 억울하게 죽은 예수님을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졌다' 하고 믿고 있으니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거짓말하나 예수님을 만나 보라구요.

세상에는 악당의 무리가 꽉차 있습니다. 그들의 모가지를 끌어다가 한 구덩이에 처넣어도 시원치 않을 판입니다. 그렇지만 모르고 그러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는데 오히려 통일교회를 이단이라 하고 자기들은 정통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정통? 어디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끝날에 있어서 거리는 무덤길이 되리라고 말씀했던 것과 같이. 이 목사들이 전부 길가에서 매맞아 죽을 때가 올 것입니다. 앞으로 반대하다가는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사상이 중심이 되게 되면 그때에도 통일교회를 반대하겠어요?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반대를 받아 왔는지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아무개 목사가 너를 죽으라고 기도하니 들어 봐라' 해서 들어 보면 '하나님, 당신이 사랑하는 2천년 전통의 기독교회를 유린하고 있는 통일교회 문 아무개, 사탄 마귀의 괴수를 데려가시오' 라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예요? 그래, 내가 가나 네가 가나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평양감옥에 들어갔다 나오니까 나를 잡아 죽이려고 했던 녀석들은 다 쓰러져 버렸더라는 것입니다. 그 종자들까지 총칼에 다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쳐 가지고 남아지는 무리가 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문선생은 어느누구보다도 무서운 사람입니다. 무섭 다면 무서운 사람입니다. 어떤 때는 나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저주가 나와요. 나는 생각도 안 하는데 저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몇개월 이내에 복닥불이 나 가지고 전부 쓸어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망하는 사람을 대하여 망하라 하고 저주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와 기성교회는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에 한쪽 발만으로는 못 갑니다. 한쪽 발로만 뛰어서는 못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가인이 아벨을 죽였지만, 아벨은 가인을 사랑으로 부활시켜 가지고 같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수를 자기의 종으로 만드는데 있어서는 강제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써 종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겠어요?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해 나오신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갔군. 가고 싶은 사람 있으면 가라구요.

사랑으로 사탄을 굴복시킨 예수님

아담 해와는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완성의 기준까지 못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하나님을 대하여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당신은 창조주로서 절대자이기 때문에 내가 비록 타락해서 사탄이 됐을 망정 당신은 이 사탄도 사랑해야 되는 것이 아니요?'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또, 하는 말이 '당신이 나를 짓고 사람을 지어 가지고 당신의 창조위업에 협조하게 한 것은, 인간이 완성의 기준을 넘어서면 그들과 더불어 나도 같이 있는다는 약속이 있어서 지은 것이 아니요? 그것이 원칙이 아니요? 인간이 완성한 자리에서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당신은 절대적인 하나님이 되는 것이 아니요? 또, 당신의 아들은 당신의 위업을 송두리째 상속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사랑하던 모든 것을 사랑해야 되는 것이 아니요? 다시 말하면, 천사장 입장의 사탄인 나 자신을 완성한 자리에서 사랑해 봐야 되는 것이 원칙이 아니요?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물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또 '나는 악하기 때문에 할수없지만, 하나님은 나와 같아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닙니까? 약속한 대로 해야 될 것이 아니요? 내가 비록 사탄일지라도 약속을 했으면 그것을 지켜야 될 것이 아니요?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고는, 하나님이 나를 완성된 자리에서 사랑하지 않고는 나에 대해서 누구도 제재를 할 수 없소. 당신의 아들이 완성의 자리를 넘어서 가지고 나를 한번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당신과 당신의 아들이 합해 가지고 나를 사랑했다는 기준을 넘어서지 못하면 안 돼요' 이렇게 사탄은 목을 찌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것을 풀자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버지의 뜻이란 무엇이냐? 사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죽었다기보다도 사탄을 사랑하기 위해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사탄을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들을 버려야만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했지만, 하나님은 아들을 버려서라도 사탄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넘어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영적 사탄을 총합한 실체적 사탄인 로마병정들에 대해서, 저들이 저들의 죄를 알지 못해서 그러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죽음의 자리에서도 그들을 사랑했다는 기준을 세웠고, 생명을 잃어 가면서도 사랑했다고 하는 그 자리에 섰기 때문에 사탄은 예수님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는 조건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부터 두 세계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복귀는 가인과 아벨이 하나될 때에 이뤄져

여러분은 가인을 사랑해요? 가인은 사탄입니다. 사탄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영적 사탄, 실체사탄이 대드는 것입니다. 죽이고 싶어하고, 통일교회가 미워 죽겠다고 이를 부드득 부드득 간다는 것입니다. 뭐 우리가 밥을 달랬나, 떡을 달랬나, 가만히 있는데도 그러는 것입니다. 여기에 여러분이 걸리지 않으려면 가인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가인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끝까지 가인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가인을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천국에 가려면 사탄의 영수증을 받아야 됩니다. 사탄의 영수증이란 무엇이냐? 죄인이 석방되려면 먼저 검사를 통하고, 그 다음에 변호사를 통해서 판사에 의해 석방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으로 볼 때, 사탄은 검사이고 하나님은 판사이고 예수님은 변호사입니다. 사탄이 '너 이렇게 이렇게 했지? 해 가지고 딱 올가미를 씌워 하나님한테, '이 사람은 이렇게 해야 되겠소?' 하면 하나님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변호사 입장에서 '하나님이여. 이 사람의 선조는 이런 일을 했습니다. 본래 혈통이 나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러이러한 조건에 걸렸으니 그 조건에 해당된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죄를 벗겨 주어야 됩니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천국에 가려면 사탄의 영수증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을 사랑했다는 영수증을 받지 않고는 영영 천국에 못갑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그런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반대하는 사람을 원수로 대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하다니,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칼로 가슴을 찢고 배를 긁어 내 가지고 개밥을 해줘도 시원찮을 그런 원수들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못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중심삼고 이스라엘과 유대교가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가 됐더라면 오늘날의 기독교는 소생, 장성을 거쳐 완성이 되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 있어서는 오시는 재림주님을 중심삼고 공산세계와 민주세계가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전에 기독교와 민주세계가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렇게 하나되는 날에는 공산당은 쫓겨나는 것입니다. 김일성이도 멀지 않아 꺾여 나갈 것입니다. 통일교회와 대한민국 현 정부가 하나되는 날에는 김일성이를 영계에서 호출해서 데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하나되어야 됩니다. 하나되지 않고는 길이 없습니다. 알겠어요?「예」 이번에 부인 전도대원 1,200명을 동원한 것도 기성교인을 위해서입니다. 아들딸을 버리고 길거리에 나서 가지고 그들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은 아들딸보다 그들을 더 사랑했다는 천륜의 조건을 세우게 하기 위해서예요. 그 조건만 넘어서는 날에는 기성교회는 망하더라도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는 날에는 다른 종교들이 우리편을 들게 될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반대하면 다른 종교가 들고 일어나 싸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자리에 선 종교가 복귀된 상대적 가인형으로서 축복을 그대로 이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간종교)도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을 감으로써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 길을 가지 않으면 나라가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가인에는 개인적 가인이 있고, 가정적 가인이 있고, 종족적 가인이 있고, 민족적 가인이 있고, 국가적 가인이 있습니다. 만일 기독교가 해방 직후에 통일교회를 맞아들였더라면 오늘날 통일교회와 대한민국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공산당은 내 손에 이미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럴 수 있는 좋은 때는 비운의 낙엽과 같이 쓰러져 갔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다시 재봉춘하기 위한 역사적인 탕감노정을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모아 한꺼번에 세계로 가기 위한 수난의 길을 거쳐온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표준

여러분은 지난날 통일교회를 반대하던 교회와 나라 앞에 몰리고 쫓겨나 수의(囚衣)를 입고 가던 선생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수의를 입고 쇠고랑을 차고 재판장 앞에 섰던 선생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한스러웠던 그 시절이 풀려 가지고 우리에게도 때가 왔습니다. 싹이 날 수 있는 봄날이 왔기 때문에, 땅에 씨를 뿌리면 우리에게는 싹이 날 것이고 반대하는 데에는 싹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민족과 겨레를 대신하여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쌓아 올려 놓은 생명의 위업, 사랑의 위업을 그냥 그대로 계승해서 세우게 될 때, 현재 기성교회가 당장은 우리와 원수지만 그 배후에 있는 7,8억의 기독교인들의 갈 길이 여기에서 열려지는 것이 아니냐? 대한민국 국내에서는 반대했지만 외국에서는 반대하지 않고 같은 운명에 설 수도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통일교인들을 고스란히 희생시켜서 제물삼아 가지고 하늘 앞에 바치고자 하는 때가 현재의 때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는 무엇을 주체로, 무엇을 표준으로 삼고 나오느냐?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종단이나 대한민국의 어떠한 종교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골수에 얽혀진 심정의 내정을 부여잡고 세계를 향하여 당당하게 나가는 투쟁의 행로를 감사한 마음으로 소화시키고 가야 할 때가 지금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이때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일선에서는 부인 전도대원들이 전도하느라고 고생하고 있는데 여기 본부에 있는 사람들은 놀러 다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금년에 들어와서는 될 수 있으면 본부에서는 주일 아침 예배만 보고 지방을 순회 다니려고 했습니다. 이번 7,8월은 일본 사람들 수련 때문에 못갔지만, 마음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에 가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밥을 먹더라도 우리 뜻을 위해서 일선에 나가 있는 가냘픈 아낙네들을 생각하고, 보고 싶은 자식을 뒤에 두고 편지를 통해 사정을 듣고 눈물지으며 집에 와 보지 못하는 서글픈 생활환경에서 뜻길을 가고 있는 아낙네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그것은 누구 때문이냐? 먼저 통일교회 문선생을 잘못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금후의 기성교회와 대한민국의 갈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이러지 않으면 기성교회와 대한민국은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돈이 있으면 다 털어 가지고 기성교회 목사들에게 줘야 합니다. 그들의 입에다 대주면 그들은 산 독사새끼처럼 입을 벌릴 것입니다. 내가 다 타진해 봤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통일교회는 돈이 많아질 것입니다. 이제는 돈이 많아집니다. 알겠어요? 내가 돈을 벌게 되면 거지 같은 그 사람들을 수습하려고 합니다. 그들을 수습해 가지고 꼬부라진 그들을 어떻게 재차 훈련을 시키느냐 할 때, 참 곤란합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 같은 것이 있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낙원과 같은 격리처가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만일 통일교회 문선생이 죽었다면, 그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할 때 나라를 찾기 이전에 교회를 찾기 위해서 싸우다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나라를 찾고, 가인 교단을 찾고, 개인을 중심삼은 개인적인 가인 가정을 굴복시키기 위해 싸워 가지고 개인적인 종족권을 중심삼은 여러분을 빼앗아 왔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부모를 버리고 친척을 버리고 여기 통일교회로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겼습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 하늘 종족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종족은 하늘 종족주권을 만들어야 되는데, 그것은 사탄세계와 같이 자기를 위하고 부모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위한 것입니다. 그 종족이 누구냐 하면 기독교입니다. 알겠어요? 기독교는 우리와 형제입니다, 앞으로는 기독교를 중심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기성교회는 통일교회를 제일 무서워합니다. 통일교인을 살펴보면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 파고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목사부인들한테까지 파고들어가 가지고, 목사가 예배를 보려면 한바탕 싸움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목사 부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배 때 설교를 하려면 싸움을 하지 않고는 못 나간다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집사들은 더 그렇구요. 통일사상만 집어 넣으면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형제의 우애, 부부의 인연, 부자의 인연 등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가정과 종족권을 떼 버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그들을 그들 이상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그것이 천리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여러분 자신을 어머니보다도 더 높은 자리에서, 아버지보다도 더 높은 자리에서, 형제보다도 더 높은 자리에서, 친척, 스승보다도 더 높은 자리에서 사랑할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런 철석같은 하늘의 보장을 받았기 때문에 여러분은 신념을 가지고 남편을 버리고 나온 것이요. 가정을 버리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여러분을 사탄세계에서 빼앗아 온 것입니다. 갈라내 왔다는 것입니다. 갈라내 온 여러분이 남아 있는 그들보다 못해서는 안 됩니다. 형님의 반대를 받고 남편의 반대를 받고 온 여러분이 반대한 그들보다 못살아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이 잘살게 만들어 줄 거라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들의 반대를 등지고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통일의 운세가 우리 앞에

청파동 교회는 함부로 헐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교회를 지으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에 몇천만 원짜리라도 지을 수 있습니다. 영락교회 이상으로 지을 수 있는 실력도 있다구요. 돈 한 푼 없더라도, 내가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긁어모아서라도, 여러분들에게 도깨비춤을 추게 해서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곳은 남겨야 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일억 원을 주고도 여기에 못 앉을 때가 옵니다. 하룻밤 숙박료로 일억 원을 주고도 이곳에서 잘 수 없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본부인 청파동 교회가 왜 이러냐고 하겠지만, 여기가 시시한 곳이 아닙니다. 내가 세계의 궁전은 다 다녀 봤습니다. 녀석들. 이런 데서 잘 해 먹었구나 하고 생각하지만 그곳과 청파동 교회를 비교해 보면 어이가 없습니다. (웃음) 세상에서 제일 초라한 곳이지만. 여기에서 세계를 요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상적인 면에서는 많이 성장했습니다. 대한민국에 사상무장을 해야 할 긴박한 때가 왔는데 누구를 믿어야 할 것이냐? 엊그제도 우리가 국방대학에 가서 강의를 했는데, 거기에서 고정적으로 강의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또, 육군대학에서도, 사관학교에서도 강의를 해달라고 하지만 강의할 사람이 모자랍니다. 이렇게 되니까 이제는 우리가 바쁘지 않고 그들이 바빠지게 됐습니다. 알겠어요? 옛날에는 우리가 바빴지만 요즘엔 그들이 바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꼭대기에 올라와서 자리 잡고 쉬고 있으니, 다음에 올라오는 패들이 더 바빠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나는 산을 오를 때 젊은 사람들을 제치고 헐떡거리면서도 제일 먼저 정상에 올라갑니다. 정상에 앉아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구경하면 참 멋집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이왕 하려면 죽더라도 이 놀음 하다 죽는 것이 낫습니다. 맨꼴찌가 되어 가지고 정상에 겨우 올라왔는데, 선두로 와서 쉬던 사람이 '가자' 하고 가게 되면 그는 쉬지도 못하고 죽을 지경이 되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니 헐떡거리면서라도 먼저 가는 것이 좋습니다. 또 욕을 먹어도 먼저 먹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욕을 먹게 되는 경우가 있다면 먼저 먹자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욕 안 먹고 대접받고 기름때 풍기며 잘살던 목사들과 복닥복닥해 가지고 고생을 한 통일교회 문선생을 두고 볼 때, 하나님 앞에 있어서 고생 안 하고 대접받고 잘살던 목사들보다 고생하고 온 통일교회 문선생이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이 많은 것입니다. 그렇지요? 선생님은 무엇을 하더라도 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진다는 생각이 나지 않아요. 우리를 못 살게 하던 그 사람들에게 져요? 대한민국에 있어서 지금까지 자유당, 민주당이 야단했지만 나라 사랑하는 데 있어서 그들에게 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공화당이 떠들고 다니지만 나라 사랑하는 데는 그들에게 안 진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 입으로만 애국애족을 다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안 하겠으면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명년부터는 일본 사람들만 2천명을 데려다가 교육시키려고 합니다. 다음 달이면 또 일본 사람들이 이곳에 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생기기는 이렇게 생겼지만 일본 통일교인들에게 일년에 2천명 교육할 테니 보름에 80명 이상 한달에 200명은 보내야 된다고 하면 그렇게 오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일본 하네다 공항을 출발할 때는 교회 깃발을 트렁크 속에 넣고 한국의 김포 공항에 도착해서 내릴 때는 그 깃발을 들고 내리라고 시키는 것입니다. (웃음) 깃발도 아주 크게 만들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나발을 불면서 행진을 시키는 것입니다. 택시나 버스를 타지 말고 김포 공항에서부터 수택리 수련소까지 나발을 불고 따따따 하면서 행진을 하는 것입니다. (웃음) 사람들이 따라오면서 '어디 행이오? 하고 물으면 '수택리 수련소 행이오' 하면 '아이쿠, 통일교회 수련생들이구나'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올 때마다 그런 행렬을 종로로 한 번, 을지로도 한 번, 퇴계로도 한 번, 중앙청 앞으로 한 번 이렇게 슬슬 열두 번만 돌게 하면 어떻겠어요? 그리고 매일같이 십자거리에서 삐라를 뿌리게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괜히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에서야 이야기지만, 수택리 수련소를 지을 때도 정보부에서 뭐 한다고 수련소를 지으라고 해 놓고는 나가자빠진 것입니다. 이러니 이 나라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수련소를 지을 때는 이 나라를 믿고 지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못 하게 되면 외국 사람들이라도 데려다가 교육하면 했지 수련소는 절대 놀리지 않는다구요. 그때에 여러분은 외국 사람들이 오는 것 구경을 해야 되겠지요? 통일교회 본부에 계신 거룩하신 어르신네들이여, 미륵불마냥 놀면서 '우리가 수고한 그 뒤를 따라서 잘 오는구먼' 하며 구경해야 되지요? 구경해야 돼요? 정신을 차려야 된다구요.

이 시대에 처해 있는 우리의 위치를 확실히 알고 대처하자

어떤 당에서는 '한국에 있어서 미래의 사상 단체로서 연구해야 할 것이 통일교회다. 지금까지 우리가 갖고 있던 사고방식이나 주관적인 관념을 다 일소해 버리고 통일교회를 연구해야 된다. 공부해야 된다'고 해 가지고 자기들끼리 짝자꿍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수련회에 참석 하기 위해서는 통일교회 앞으로 제 1차, 2차, 3차 공문을 내라고 할 것입니다. 옛날과 같은 싸구려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가 언제나 그렇게 헐떡거리고, 언제나 그렇게 싸구려인 줄 알아요? 지금까지 통일교회 교인들이 지방에 가게 되면, 돼지우리 치워 주기 일쑤요, 변소 치워 주기 일쑤요, 외양간 치워 주기 일쑤요, 소제해 주기 일쑤였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개밥을 먹으면서 별의별 고생을 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딸이 언제까지나 그렇게 껄렁한 종이 될 줄 알아요? 그것은 역사적인 전통을 세우기 위해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는 기성교회에서 우리를 무서워합니다. 점점 무서워할 거라구요. 그러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만 열어라. 문만 열라구요. 그렇게 하면 내가 한 종단에 1억 원씩 기부하겠다는 것입니다. 한 5억 원을 기부하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면 통일교회 교인들은 '우리는 교회도 없이 고생만 하는데, 그 돈 있으면 벽돌집을 짓고 따뜻하게 살 텐데 선생님은 왜 그래? 이러겠어요? 아주머니들 그럴 거예요? 또'아이고, 그 돈 있으면 우리 딸 시집갈 때 장농이나 하나 사줄 텐데'그럴 거예요? 그렇지만 그들을 위해서 내가 가진 반지도 빼주고 옷도 벗어 주고, 모두 가져가라 해야 됩니다. 내가 돈을 버는 것은 통일교인들 먹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알겠어요? 그 불쌍한 목사들, 배고파서 헐떡거리는 목사들, 배가 나오도록 한 번 잘 먹여 보자는 것입니다. 소 잡아 먹이고, 돼지 잡아 먹이고, 닭 잡아 먹이고, 뭐 다 잡아 먹이고 그 다음엔 임자네들 잡아 먹이겠다구요. (웃음)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님 뜻이 이루어 진다면, 임자네들 잡아 먹혀도 괜찮겠지요?「예」 대답은 잘 하네. (웃음)

이번에 1,200명 동원한 것도 통일교회 때문이 아닙니다. 기성교회를 위해서입니다. 그것 때문에 지금 기장, 예장 등 기성교회가 서울, 대전, 인천 등지에서 야단났습니다. 아가씨인지 아주머니인지, 시집은 갔지만 신랑하고 살지를 않았으니 처녀지 별수 있어요? 아줌마라는 이름이 붙은 처녀입니다. 이들이 분수도 없이 목사 앞에 왕발(맨발)로 성큼성큼 들어가니 목사들이 하나님의 종 앞에 천사장급들이 감히…. 수작들은 좋지요. (웃음) 너희들은 종이지만 주인의 아들딸을 몰라보느냐? 이들은 주인의 아들딸들입니다. 주인의 아들딸이 종의 방에 못 들어가요?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 놓으니 목사양반들이 지금 야단입니다. 그래 놓고, 다음엔 장로, 집사까지 하게 되면 거꾸로 소생 장성 완성이 되어 끝나는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부흥역사를 두고 보면, 해방 직후의 목사시대를 거쳐 장로시대, 권사시대, 집사시대까지 내려왔습니다. 요즘에는 부흥회도 그렇게 안 하지요? 부흥회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콧방귀를 뀐다는 것입니다. 목사들이 걸러 먹을 대로 걸러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 회에는 아직 안 와 봤지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부흥회를 한다고 하면 구경삼아 올 거라구요. 우리 부흥회 한 번 해볼까요? 통일교회 문 아무개가 부흥강사로 등장한다 하게 되면, '어떤 사내인가?' 하고 구경삼아라도 한번 올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생긴 사내요. 뭐 그렇게 잘 생기지는 못했소. (웃음) 그들이 모이게 되면, 내가 뿌리 뽑는 데는 소질이 있습니다.

기성교회가 통일교회 앞에 문만 열어 놓았다면 통일교회는 6개월 이내에 세계 기독교를 녹였을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이 통일교회의 본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통일교회 앞에 있어서 몇몇 사람이 반대를 안 했더라면 그렇게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역사는 전체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두 사람이 잘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서 역사가 뒤넘이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시대에 처해 있는 통일교회의 현재 입장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왜 기성교회 교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알겠지요?「예」

이 땅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게 하자

지금 대한민국에 있어서 종교문제가 제일 문제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도 기독교가 제일 반대를 합니다. 그렇지요? 그렇지만 기독교가 우리와 하나되어 통일사상으로 무장하게 되는 날에는 북한 김일성은 문제없습니다. 김일성이를 영계에서 데려간다는 것입니다. 명년 1972년이면 김일성 나이가 만 60세가 되는데, 그 1972년을 중심삼고 통일교회가 고개를 넘는 것으로 맞서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하지요?「예」 통일교회에서도 선생님을 아버님이라고 합니다. 그렇지요?「예」 이렇게 볼 때, 아버지가 둘입니다. (웃음) 김일성이 없으면 복귀가 안 됩니다. 가인 아벨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것입니다. 외적 내적인 대결이 없으면 복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북한을 통일해야 됩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이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국제승공연합을 창설해 가지고 그물을 짜 놓은 것입니다. 외적으로 이 민족을 전부 승공연합에 규합시켜 놓았기 때문에, 이제 이 민족 앞에 내외적으로 통할 수 있는 평평한 수수작용권이 스며들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대학가도 우리에게 맡기려고 합니다. 사상적인 면에서 통일사상 외에는 없다 하는 것은 이미 공증된 사실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책임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선생님 고향에 가 보고 싶어요, 안 가 보고 싶어요?「가 보고 싶습니다」 가 봐야지요?「예」 고향에 가면 선생님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실컷 해줄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데리고 다니면서 이곳에는 어떤 역사가 있고, 이곳에는 어떤 역사가 있다고 다 가르쳐 주려고 합니다. 통일교인들은 그 가르침을 못 받고 저나라에 가면 북한 땅에 가서 몇천년 동안 수고를 해야 됩니다. 그건 내가 세밀하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지만 그런 때가 곧 올 것입니다.

북진통일을 해야 합니다.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말로, 이론적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말로 하자는데 이남에서는 지금 큰일났어요. 여러분은 경주장에 선 현재의 위치를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기성교회에 져서는 안 됩니다. 알겠지요?「예」 한국 기성교회에서 떠난 하나님은 어디로 갈 것이냐? 여러분은 생각해 봤어요? 그것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해요? 백년에 가까운 한국 기독교 역사인데…. 성경 역사에 없는 축복을 해준 이 터전이, 왜정 때도 침범받지 않게끔 보호했던 이 강토가 6·25사변으로 인하여 사탄한테 밝히다니…. 여기에는 다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성교회를 떠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을 어디에 모실 것이냐? 어디에 모셔야 되겠어요? 통일교회가 모셔야 되고, 그 다음에는 여러분 자신이 모셔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모셨어요? 아주머니들, 자기 아들딸을 가르치는 선생이 집에 온다고 하면 대접하기 위해 먹을 것을 사러 잘 돌아다니지요? 또, 사위가 온다고 하면 돈을 빌어서라도 준비하지요? 그런 것은 잘하지요? 그런데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해봤어요? 그렇게 모셔 봤어요?

교단과 교단이 싸우고 있는 현실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거기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갈 곳이 없는 하나님을 오늘날 통일교회에 모셔야 됩니다. 천년 꿈을 안고 오신 그분, 만년 승리의 참 복지를 다져야할 그분 앞에 여러분은 소망의 실체가 되어 효자 효녀로서 단장을 어떻게 해야 되고, 심성을 어떻게 가져야 되며, 정서적인 인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가 기성교회한테 져서 되겠어요? 과거의 어떤 신부, 수녀들한테 져서 되겠어요? 역사상의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입장에서 하나님을 모셔야 되고, 자기 아버지를 모시는 것보다도 더 잘 모셔 드려야 됩니다. 나라의 군왕이 자신의 보좌를 버리면서도 여기에 와서 쉬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보금자리가 되어야 됩니다.

이 한국 강토에 그런 집이 누구의 집이냐? 여러분의 집이예요? 여러분 집이 그런 곳이예요? 소위 통일교회를 믿는다고 하는 여러분의 집이예요?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세계적인 본궁과 같이 거룩하고, 꽃피어 향기 풍기는 사랑의 동산이 되어 있어요? 여기 있는 아주머니들, 집에 손님이 오면 대접 잘하지요? 그런데 아주머니 집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자기들은 배고프면 밥먹고, 추우면 옷을 입고, 서러우면 서럽다고 타령은 잘하지만 하나님이 서글프고 굶주리는 그 억울한 사정을 누가 아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남자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신의 집에 아버지를 모신다는 마음으로 돈이 생기면 아버지 앞에 물건이라도 사다 드려야 됩니다. 비록 실체는 안 계시지만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께 드리고 싶어 사 가지고 온 이 감사의 예물을 아버지 앞에 드립니다. 역사과 정에 있어서 수많은 선조들이 갈라서 드렸던 그 제물을 대신하여 혼자 드리는 이 마음을 받으소서. 이 민족이 잘못하고 과거 선조들이 잘못했던 것을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통곡하며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아들의 손을 이끌고'하나님한테 가서 인사드리자' 해 가지고 정성 들이고, 사연을 나누고 싶지만 아버지의 실체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아들을 붙들고 통곡을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던 것과 마찬가지로, 갈라서 제물을 드려야 하는 아브라함의 그 심정보다도 갈라서 받아야 하는 저끄러진 역사적 사실을 아는 우리는 내 아들딸뿐만 아니라 나 자신까지도 헌제의 실체로서 아버지께서 받아 주실 수 없겠습니까 하는 기도를 드려야 됩니다.

자기 아내와 함께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하면 부부가 손을 맞잡고 '저희 두 사람을 당신의 한을 해원성사하는 데에 제물로 삼으소서. 쪼개는 제물이 아니라 가정적인 승리의 제물로서 받아 주시옵소서' 하면서 통곡의 기도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아버지라고 하는 그 하나님이 계실 곳이 어디 있어요? 여러분의 집이예요? 여러분의 집을 생각해 보십시오. 먹을 것 타령, 살림 타령. 무슨 타령 해 가지고 그저 쨍쨍거리는 여러분의 집에 하나님이 들어오셨다가도 이틀, 아니 한 시간도 못 돼서 도망가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넓고 넓은 이 세계 가운데서 내가 사는 집 안방 고요한 곳에 하나님을 모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디 가시게 되면 나 이상으로 효도하고, 정성들일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내가 안심이 안된다고 아버지를 찾아가고 싶고 모셔 오고 싶은 마음에 불타는 아들이라 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이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예요?

모심의 전통을 세우자

여러분이 오늘날 통일교회를 놓고 어찌하여 이 교회가 세계적으로 이름난 궁전을 중심삼고 복귀섭리를 하지 못했는가, 어찌하여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렇게 수난의 길을 가면서 허덕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가 불쌍하기 전에 하나님이 불쌍했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을 위로하기 위하여 있는 정성을 다 기울이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허덕이면서 심정의 굶주림의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그가 권위를 갖지 못하고 안팎으로 모든 것을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런 심정을 가졌다면, 하나님은 그래도 사막과 같은 이 천지 가운데서 내가 있을 만한 곳은 이 집밖에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심정을 가진 사람의 집이라면 그 집이 아무리 허술하다 하더라도, 초가삼간이라 하더라도, 그 집은 세계 어떤 궁전보다도 나은 집이 될 것입니다. 거기에서 대접하는 정성어린 밥이 비록 비지밥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도리어 행복한 미래를 다짐할 수 있는 터전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기에 안식하시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러한 현재의 입장에 있어서 갈 곳이 없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모실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가정을 거쳐서 어디로 가고 싶어하시느냐? 가정을 거쳐서 종족을 찾아가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이 종족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선두에 서 가지고 그 길을 닦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종족을 찾고 나면 그 다음에 어디로 갈 것이냐? 민족을 향해서 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길을 가기 전에 내가 먼저 그 길을 닦아 가지고 하나님을 모시고 가야 되고, 다음에는 국가와 세계를 찾아가는 길을 닦아 가지고 하나님을 모시고 가야 됩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내가 욕을 먹고 매를 맞고 조롱을 받고 핍박을 받고 죽음이 엇갈 리는 교차로에 서더라도 임 향한 일편단심 변할 줄이 있으랴 하는 심정을 가져야 됩니다. 그 길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만나서 은혜받았다고 좋아할래요?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왔다가 그냥 돌아서면 안 됩니다. 이왕에 왔으면 모시고 가야 됩니다. 모시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 효자는 나이 많은 부모를 위해서 좋은 것이 있으면 먼저 주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위하는 데 있어서도 어디 갔다 오게 될 때, 시장에 들러 좋은 음식을 사 가지고 와서 그것을 정성의 표시로 하나님 앞에 드리고 싶어 제사상을 차려 놓고 절을 한다고 해서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그런 생활적인 인연이 있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하시겠어요? 하나님을 위해서 남편과 아내와 아들딸이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은 비로소 인간 세상에 있어서 그 가정을 중심삼고 웃어 볼 수 있는 인연, 기쁨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가정은 이땅에 있어서 하나님이 대할 수 있는 첫번째 가정이 되기 때문에 그 가정의 후손을 통해서 역사는 뒤넘이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모심으로써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시의(侍義), 즉 모심으로써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춘하추동 양복을 해 입는 남자들이 있으면 아버지께도 해드려야 됩니다. 그분이 체(體)를 가진 분이 아니기 때문에 대신 정성을 모았다가 한 절기가 되면 그 모은 정성을 누가 보나 안 보나 자기 혼자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을 모시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연보궤에 드리게 되면 그것은 법궤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관념적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체화(體化)되고 표현될 수 있는 생활이 되어야 됩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고 모시는 데 있어서 누구한테도 져서는 안 된다는 전통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 전통을 세워야만 그의 아들딸에게도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자리 잡을 수 있는 후손을 만들어 놓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이 땅 위에 계실 수 있는 땅의 발판을 넓혀 놓을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지금가지 맨살을 드러내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요즘에는 그때가 지나갔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내놓지만 말이예요. 흥남 감옥에 들어가 비료공장에서 일할 때, 그렇게 더운 오뉴월 복중에도 대님을 매고 했습니다. 정강이도 내 놓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반소매 옷도 입지만 옛날에는 그런 옷을 참 싫어했습니다. 내 몸을 통해서 땀을 흘려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바쳐 드려야 할 거룩한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여 정성을 다하는 데서는 누구한테도 이 몸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 잠을 잘 때도 팔 다리를 벌리고 자지를 않았습니다.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자는 데에도 예법이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퉁일교회 여자들 버릇이 참 없습니다. 내가 보고도 모르는 척하지만, 여자가 대낮에 안방에서 끈 대자로 누워서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며 낮잠을 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버르장머리 없는 여자가 어디 있어요? 하나님은 이 시간에도 쉬지 않고 계십니다. 그것을 생각할때 잠을 잔다는 것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6천년 동안 쉴 수 없는 자리에 서서 여러분의 운명을 가려주기 위해 복귀의 행로를 걸어 나오면서 지금 이 시간도 나와 더불어 생사의 결단을 짓기 위해 방어진을 치고 보호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잘 수가 있느냐는 것, 거기다가 잠잘 시간이 되었다고 네 활개를 떡 펴고 자게 되어 있어요? 잠을 자더라도 엎드려서 기도하면서 자는 것입니다. 정 피곤하면 옆으로 누워서 자는 거예요. 그렇게 잠든 다음에는 자기에게 책임이 없습니다. 까짓것 차 버리 겠으면 차 버리고 말겠으면 말고, 그것은 괜찮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생활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어디를 가다가도 안된 것을 보게 되면 가슴 아파하면서 남모르게 눈을 흘리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갖추어 나가야 할 도상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한 경주장에 선 통일교회의 현재 위치는 가정과 종족을 중심삼고 국가와 세계로 하나님을 모시고 가야 할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다가오는 수많은 시련의 십자가를 달게 받고, 먼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길을 가려 나간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더더욱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길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라면서 말씀드렸습니다.

​기 도

​아버님, 이제 며칠 남지 않은 9월의 마지막 안식일을 맞이했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각자의 사정과 처지와 입장이 다르옵니다. 저희들은 현재 어떤 위치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나는 도대체 어떤 선조의 후손이며 어떤 방향에 처해 있는가 하는 그 위치를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인생행로에 있어서 경주장에 서 있는 사람과 같은 입장에 선 것임을 알았사옵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저희들은 가정의 정서적인 터전을 중심삼고대 사회와 대 국가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저희들의 필연적 운명길인 줄 아옵니다.

모든 존재물에게는 사위기대 노정 위에 정분합작용권을 거쳐가야 할 노정이 있기 때문에 저희들에게도 가정을 중심삼고 사회와 국가를 연결 시켜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님, 이 세상에는 오른쪽이 있고 왼쪽이 있습니다. 오른쪽을 통하여서 왼쪽으로 돌아갈 수 있는 하나의 회로를 조성하여야 할 이상적인 사회의 기대권을 찾아 나온 것이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에, 아버님께서 지금까지 몰고 나오셨다는 것을 아옵니다.

지금 이 세계는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로 갈라져서 대결하고 있습니다. 가정적인 기원도 확실하지 않고 세계적 종점도 확실치 않은 현실이옵니다. 이러한 세계와 아버님이 표준하시고 바라시는 심정의 터전이 절대적인 자리에서 관계를 맺어 가지고 그 심정이 세계를 넘어 전 인류의 마음을 거쳐 하나의 주권 사회로 등장하는, 최후의 승리권에 귀일되는 노정이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오늘날 그 길을 찾아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 무리라고 한다면, 저희들의 생활은 나라와 더불어 생활하는 데 있어서 대표적인 생활이 되어야 되고, 세계인과 더불어 생활하는 데에 있어서 치우치지 않아야 되고, 하나의 주권 국가를 대표하여 충효의 도리를 거쳐가는 데 있어서 둘이 아닌 하나의 길을 가야 된다는 것이 철칙인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부모를 모시는 자식은 부모가 바라지 않더라도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효성의 도리를 해야 되고, 군왕을 모시는 신하는 군왕이 바라지 않더라도 신하로서 군왕에게 충성의 도리를 해야 되는 것이 아니옵니까? 아침 해를 바라보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위해서 바라보는 것이요, 밥을 먹는 것도 자기를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위해서 먹는 것이요, 생활하는 것도 자기를 위주로 하여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위주로 하여 생활하는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이렇듯 부모에게 자기의 일체를 바치는 자리에 설 때 효라 하는 것이요, 군왕에게 일체를 바치는 자리에 설 때 충이라고 하는 것을 아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저희들에게 있어서는 '나'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아침 햇빛을 바라볼 때, 하나님을 흠모하면서 역사는 더럽혀졌지만 당신이 찬란하게 지었던 이 광명한 태양 빛은 변함없는 광명한 빛이라고 찬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신선한 공기로 호흡하게 될 때도 타락한 역사가계를 지나온 공기지만 이 공기는 변함없다고 찬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사옵고, 물을 마시는 자리에서도 타락한 역사세계를 지나온 물이지만 이 물은 변함이 없다고 찬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본래 인간 자체의 근원이 되는 귀중한 생명요소는 변함이 없는데, 이 사회현상은 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당신으로부터 지음받은 태양빛과 물과 공기의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것을 흡수해서 그와 같이 변하지 않는 나 자신이 되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지금까지 당신을 자신의 생활권내에 모시면서 당신께 효도하고 충성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자부하는 한 개인이나 무리는 이 땅 위에 나오지 않았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가르쳐 주고 깨우쳐 주기 위하여 통일교회 교리가 나왔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심정적인 인연의 역사를 빛어내야 할 것이 저희의 갈 길인 것을 확실이 알았사옵니다.

저희는 아버지를 진정히 사랑할 줄 아는 효자가 되어야 되겠고, 이 세의 도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 수난길에 계시기 때문에, 저희가 기쁜 날을 맞이하겠다고 하는 것은 원수와 짝하는 길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이 고통 가운데에 계시기 때문에, 저희들이 안식하겠다고 하는 그 자체가 아버님을 배반하는 자리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사옵니다.

절대자인 아버지가 소원하시는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슬픔의 길을 거쳐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세계는 타락된 세계이기 때문에 아버님이 원하는 세계와 반대되는 세계요. 반대의 세계이기 때문에 사탄이 주관하는 세계요, 사탄이 주관하는 세계는 아버님과 반대되는 세계이기 때문에 일체가 아버님과 반대되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을 아옵니다. 저희들은 부정의 자리를 거쳐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내일의 긍정적인 자기 자체를 발견하고 긍정적인 사회와 국가를 인정할 수 있는 그 자리를 향하여 싸워 나가야 되겠사오니, 그 싸움터에서 지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최후의 승리를 갖추어 아버지 앞에 부끄럽지 않고 아들의 권위와 딸의 권위를 가질 수 있는 충효의 자체로서 나타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오늘날 통일교회는 이 자리까지 나왔습니다. 남 모르는 이 길을 나오는 데 있어서 그 누구도 친구되어 주지 않고 반대하며 망하라고 하는, 원성이 가득한 자리에서도 망하지 않고 묵묵히 이 자리까지 나오고 보니. 아버님의 슬펐던 인연을 더욱더 느끼게 되고, 아버님이 외로웠던 것을 더욱더 느끼게 되고, 억울하였던 아버님을 더욱더 느끼고 깨닫게 되옵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이 땅 위에서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 누구로 말미암아 자랑하게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로 말미암아 되어졌다는 것을 저희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영광의 아버님이 피를 흘리며 다짐했던 자리와 사정을 저희들이 알게 될 때, 저희들은 그 자리를 흠모해야 되겠고, 그 자리를 마음으로 동경해야 되겠고, 그 자리가 아버님과 더불어 몸부림쳐야 할 자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고, 교회를 멀리할래야 멀리할 수 없는 통일교회 무리는 교회를 중심삼고 모이고 싫은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교회가 가는 길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선두에 서서 달려야 하는 것이 저희의 전통적인 역사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내 뜻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님은 더 애달픈 자리에서 나를 부등켜 안고 운행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가야 되겠습니다. 이달에도 가고 금년에도 가야 되겠습니다.

1971년, 이 해는 아버지 앞에 바쳐져야 되는 복된 해로서 6천년의 복귀 역사 중에서 최고 정상의 고개를 넘는 해라는 것을 연초에 말하였습니다.

역사는 변해 나오고 있고, 세계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누구로 말미암은 것이며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할 때, 이것은 아버님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아버님의 아들딸을 위한 것임을 알게 되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철부지한 자녀들을 앞에 놓고 서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저희들이 염려하면서, 교만한 모습으로 스스로 잘났다고 하는 그런 입장을 떠나 무릎을 꿇고 어린아이와 같이 당신의 분부의 말씀만이 생명의 요인이요. 당신이 지도하는 방향만이 죽음을 각오하고 가야 할 길인 것을 아는 철든 아들딸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일선에 나가 있는 어린 딸들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그들이 눈물을 짓거들랑 아버지께서 위로하여 주옵고, 제가 그러한 자리에 있을 때 당신이 위로하던 것같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스승을 그리워하면서 기도하고 있는 무리가 많은 줄로 알고 있사오니, 당신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옵소서.

국내에서도 그렇지만 더욱더 이번에 한국을 다녀간 일본의 지구장들이 일본을 대해서 혁신적인 행로를 개척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고, 일본의 운세와 더불어 아시아의 운세를 좌우하는 중차대한 사명을 부여안고 갔사오니, 아버지, 그들을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국에 있어서 통일교단이 결속된 심정의 터전을 중심삼고 3국을 연결하여 하나되게 하시고, 아시아의 어떤 민족이 사탄권을 대신하여 나서더라도 그 심정기준을 몇십배 능가하는 기준을 세우시어서 새로운 세계적인 기원을 마련할 수 있는 섭리의 때가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뭇자녀들에게도 친히 같이하여 주옵고, 영계에서 한을 품고 있는 수많은 애혼들도 아버지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후손들을 통하여 해원성사할 수 있도록 탕감복귀의 이름을 그들에게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후손들이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게끔 한 길로 몰아 주시옵고, 그럴 수 있는 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만만세의 은사와 사랑이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경주장에 서 있는 경쟁자와 같은 입장에 있는 저희들이 보다 큰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나가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현재의 위치에서 아버지 앞에 산제물로서 바쳐질 수 있는 자아를 가꾸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 옵나이다. 아멘

[기 도]

아버지, 9월을 아버지의 보호 가운데서 감사히 지내고, 이제 10월. 새 달을 맞는 이 아침 위에 당신의 자비와 당신의 가호와 당신의 영광이 같이하시옵소서.

하늘과 땅은 당신의 지으신 바를 찬양하며 본연의 소망 앞에 정성을 다 기울여 경배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가운데 있는 만민은 아버지께 자녀로서 품길 수 있는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승리의 한때를 차지하시어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과 천천만 성도들, 그리고 땅 위에 널려 있는 국가들과 수많은 백성들을 당신의 주관하에 치리하시옵소서.

지금까지는 악의 세력이 섭리의 노정을 반대해 나왔지만, 이제 승리의 일로를 갖추시옵고 당신의 권한을 세워, 악을 탕감시킬 수 있는 승리의 세계로서의 새로운 기원을 마련하는 이 아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영인들이 땅을 바라보듯이 수많은 인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은 두 세계의 내정(內情)을 통할 수 있는, 두 세계의 심정을 결속한 아들딸로 말미암아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엄중하고도 지중한 통일의 사명을 짊어진 무리로서 이 땅 위에 보내심을 입은 자녀들이오니, 이들로 말미암아 당신이 바라시던 소원성취를 하시옵고, 해원성사를 하시옵소서.

아버지,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사옵니다. 그 가운데 수많은 종파를 가진 기독교가 있사옵니다. 그 기독교는 당신의 소망의 한때를 표준해 가지고, 각양 방향은 달랐으나 하나의 절정을 향하여 승리의 날, 영광의 한날을 바라보고 나왔사옵니다.

그 영광의 때가 바로 지금이요, 그 영광의 중심이 오늘날 저희들에게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또한 그것은 역사적으로 소원하고 기다려 나왔던 터전이요, 인류가 찾아 나오던 소망의 중심이요, 하나님이 역사해 나오시던 최종 종점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엄중한 사명을 다짐하고 책임지는 아들딸의 가치와 내용을 지녀야 할 무리가 오늘 여기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더 나아가서 저희 통일의 무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앞날에 대한 책임과 과거의 소원을 대신하고 현재를 대신한 이 중심적인 사명이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이렇게 아버지가 소원하시던 바를 따라서, 인류가 바라던 소원의 뜻을 따라서,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싸워 나온 통일의 역사도 오늘날 저희들로 말미암아 다짐되고 결실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모두가 한 개인을 위한 뜻이 아니라 전체를 위한 뜻인 것을 알면 알수록 저희 자신들은 겸손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하늘이 높은 것을 알고 찬양해야 되겠고. 역사과정에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희생하면서 남긴 공적을 찬양해야 되겠습니다. 선의 실적을 남기기 위하여 지금까지 싸워 나온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선한 성도들의 책임을 결실시켜야 할 사명이 저희들에게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악한 세계를 가로막고 선한 세계의 조상으로서 그 세계의 기초를 닦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저희들 앞에 있다는 것을 여기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절감해야 되겠습니다.

이 아침, 아버지의 영광이 저희들에게 같이하여 주시옵고, 전국에 널려 있는 외로운 통일의 무리 위에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마음을 모으고 쌍수 합장하여 이곳을 우러러보면서 아버지 앞에 축수하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앞에 정성들이는 곳곳을, 아버지, 그냥 그대로 버려두지 마시옵고 당신의 심정 가운데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 누가 그들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아버지만은 알아주셔야 되겠사옵니다. 당신만은 그들을 보호해 주셔야 되겠사옵니다.

이들은 당신이 남기신 뜻과 남기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다짐된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자각하는 무리이기 때문에, 아들이 아니면 역사적 사명을 감당할 수 없으며, 이들이 아니면 역사적인 종착점을 결정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런 지중한 사명이 이들에게 있음으로 말미암아…. 아버님이 수고의 역로를 거쳐 찾아온 본의도 여기에 있는 것이요, 아버님이 오늘 이 시대에 세계를 대신하여 사명을 다할 것을 요구하시는 자리도 이 자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진정 정성을 다하는 그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사랑과 은사가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이 자기는 세계에 널려 있는 120개 성지를 연결시킨 중앙 성지이옵니다. 아버지 1965년에 세계 40개국을 순방하면서 책정한 120개 성지는 당신의 처소로, 당신이 지상에 하늘의 역사를 엮는 데 필요한 하나의 거점으로 설정한 것이오니 그곳을 지키면서 당신 앞에 기도하고 정성 들이는 무리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국경을 넘어 풍습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졌지만 하나의 마음, 하나의 뜻,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가겠다고 이 시간도 다짐하고 있는 무리이오니 당신이 기억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남기신 뜻과 더불어 보조를 맞추게 하시어 선한 세계를 일깨 우고 악한 세계를 굴복시키어 당신의 승리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판도를 세계적으로 넓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루한 역사노정에서 이 땅 위에 처소를 정하지 못하셨던 아버지의 설움이 얼마나 크셨는가를 저희들이 생각하게 되옵니다. 당신의 자녀들이 정성들이는 가운데 선을 중심삼고 하늘의 선한 영들의 협조를 받아 악을 대하여 방어하는 자리에서 아버지 앞에 경배드릴 수 있는 자리가 이 지구상에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와 같은 성지의 처소로 말미 암아 당신과의 인연을 다짐하는 모임의 자리를 거치시고, 당신이 그 거점을 세워 주셨사오니. 그 환경을 점점 확대시키시어 한 나라와 세계를 복귀할 수 있게 역사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그곳에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 앞에 정성들이는 자들이 있거든, 과거에 아버지를 위하여 정성들인 무리를 협조하여 주시던 이상의 협조를 해야 할 당신의 책임이 이 시대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께서 언제나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루했던 9월을 보내고 이제 10월의 새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사옵니다. 6월, 7월, 8월,9월을 지내오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저희들이 마음으로 다짐하면서 나왔지만 10월, 이달은 아버지 앞에 찬양의 달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기쁨의 달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일년 중에서 4분의 3을 지내고 이제 4분의 1이 남겨진, 이해에 있어서 결실해야 할, 수확해야 할 계절로 접어들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남은 3개월을 맡아 주시옵소서. 그 가운데 첫 출발하는 날인 10월 초하루가 아버지 앞에 자랑의 날이 되고 기쁨의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 나라 이 민족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셔야 되겠습니다. 역사과정에서 어느 민족보다도 수난의 역경을 벗어나지 못하였던 불쌍한 이 민족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삼팔선으로 갈라져 있는 이 민족의 억울한 비참상을 바라볼 적마다 이는 섭리의 피 흘린 인연을 저희들 앞에 여실히 보여 주는 것임을 알게 되옵니다. 남한 땅, 북한 땅이 갈라진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남한 땅이 하나의 제단으로 결속되어 선의 제단으로서 아버지 앞에 품기기를 바라고 나가는 통일의 무리는 새로운 결의와 각오를 다짐해야 되겠사옵니다. 아직 남한 땅이 아버지 앞에 품길 수 있는 전체의 환경을 갖추지 못한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오늘날, 저희들은 앞에 선 사람들로서의 제물적인 사명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고, 이 민족을 대신하고 이 나라를 대신하여 아버지 앞에 승리의 누대(樓臺)를 세우고 승리의 성벽을 쌓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어야만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그 누구의 말을 듣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옵니다. 그 누구의 지시와 그 누구의 촉구를 받고서 가는 사람들이 아니옵니다. 천성을 바라보고 나선 저희들은 이 길을 위해 가겠다고 맹세한 몸들이옵니다. 저희들은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가고야 말겠다고 결의한 몸들이기에 가는 노정이 아무리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행각의 노정이라 할지라도, 혹은 피 흘리는 죽음이 엇갈리는 노정이라 할지라도, 겹겹이 남아져 있는 싸움의 교차로를 넘고 또 넘어가야 할 사명을 짊어진 것을 알고 있사오 니, 시대적인 선각자요. 시대적인 개척자요, 시대적인 용사인 것을 자각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역사과정의 수많은 슬픈 사연이 오늘날 복귀노정에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저희들 또한 그 누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슬픈 역사노정을 다짐해 나왔던 것을 생각하옵니다. 이는 모두 아버지의 영광의 한날을 다짐하기 위한 것이요, 승리의 한때를 세우기 위한 것임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의 수고가 크다는 것을 새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당신이 어려운 가운데서 저희들을 권고하시기에 얼마나 몸부림치셨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마냥 아버지 앞에 불효, 불충, 미급한 자신들이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그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아버지의 마음에 흡족하게 효성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개인과 가정과 종단과 민족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며, 그러한 민족을 편성하여야 할 사명과, 오늘날 미급한 자체를 아버지 앞에 더더욱 제물의 가치를 가중시켜 바쳐야할 책임이 저희 자신들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 10월 초하루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달이 우리 교단에 있어서 찬양의 달이 되고, 끝날에 있어서의 사명을 다짐할 수 있는, 없어서는 안 될 새로운 기원을 마련하는 거룩한 한 기회가 되고 한 계기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혼들 애혼들을, 아버지, 불쌍히 보시옵소서, 그들은 역사과정에서 선한 자리에서 피 흘리는 순교의 길을 갔고 수난의 길을 다짐하며 극복의 길을 참고 갔사옵니다, 그런 애혼들을 땅을 중심 삼고 탕감복귀하고 해원성사해 주어야 할 엄청난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오늘날 이 땅 위에 있는 그 누구도 모르고 저희들 소수만이 알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에 대한 선영들의 기대가 얼마나 큰가하는 것을 절실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한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옵니다. 저희들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켜 3시대의 승리의 방패가 되어야 되고, 방어선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 앞에 보람된 하나의 중심이 되어야 되겠고, 아버지가 남겨야 할 승리의 터전이 되고 발판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현재 저희들이 처해 있는 입장이 얼마나 비장한 입장인가를 다시 느껴야 되겠습니다.

한때에 저희들이 움직이는 행동이나, 한 순간에 저희들이 호흡하는 것까지도 아버지의 뜻을 벗어난 자리에서 움직여지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버지 앞에 스스로 다짐할 줄 아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에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저희들은 불충한 것들이었사옵고, 부족하고 미급한 것들이었사옵니다. 당신의 완전하심을 바라보게 될 때에, 당신의 완전하심 앞에 상대적 가치를 지니고 역사상에 나선 사람이 어디 있었습니까마는, 당신이 긍휼과 자비로써 역사노정을 더듬어 나왔고 지금까지의 생활무대를 이끌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부족한 자신을 자탄하면서 머리 숙여 당신의 긍휼과 동정을 바라고 있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갖고 있는 무리이오니 당신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소수의 무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5백만이 살고 있는 서울 도성을 당신이 기억하여 주셔야 되겠사옵니다. 수많은 군상들이 모여 살고 있는 이 가운데는 하늘을 배반한 무리가 있는가 하면, 하늘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무리도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뜻을 위하고 하늘의 도리를 따라가야 할 수많은 종교인들이 있사오니, 아버지께서 남기신 하나의 때와 하나의 나라와 하나의 세계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더디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니다.

자기 개인을 희생시켜 가정 앞에, 가정을 희생시켜 종족 앞에, 종족을 희생시켜 민족 앞에, 민족을 희생시켜 국가 앞에, 국가를 희생시켜 세계 앞에, 세계를 희생시켜 천주 앞에, 당신 앞에 드려야 할 봉헌의 제물노정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을 그 누가 책임질 것이냐를 생각하게 될 때, 개인 스스로의 희생과 극복의 길을 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바라보게 되옵니다.

당신이 가야 할 수난길을 누구 앞에 맡길 것이며 누구 앞에 책임을 지울 것이냐를 생각하게 될 때, 그래도 이 뜻을 알고 가기를 싫어하면서도 가겠다는 마음으로 싸우고 있는 저희들 외에는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버지는 지금도 불쌍하신 아버지이시며, 그 누구 앞에 자랑할 수 없는 아버지이신 것을 저희들은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당신의 마음을 알고 당신의 뜻을 위하여 모든 것을 제물 삼고 죽음의 길이라도 가겠다고 자처하고 나서는 무리가 한 생명이라도 그 수를 가하여 많아지게 될 때에는, 그 가운데에서 하나의 개인의 승리의 대표자가 나올 것이요,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무리가 나올 것이며, 종족을 대표할 수 있는 무리가 나올 것이며. 민족을 거느려서 민족 앞에 당신의 방향을 제시할 무리가 나올 것이며, 민족을 거치고 하나의 주권과 하나의 나라를 거쳐 하나의 새로운 세계 형태로 세계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무리가 나올 것이옵니다.

그럴 수 있는 무리가 불초한 저희들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당신의 기대가 크면 클수록 당신의 기대 앞에 너무나 부족함을 느끼고, 어찌할 수 없는 서러움의 칸막이가 크다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이는 아버지의 슬픔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부족하고 못난 것들이기 때문에 제물이라도 깨끗한 제물이 되어 가지고 이 구덩이를 메우겠다고 하며 스스로의 실력을 갖추어 가지고 오늘도 싸우고 내일도 싸워야 되겠사옵니다. 싸우다가 지쳐 자기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게 될 때에는 목숨을 걸어 놓고 아버지 앞에 눈물로 담판지을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무리이오니,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승리의 세계는 승리의 무리를 맞이하고자 준비하고 있사옵니다. 승리의 천지는 아버지의 해방된 아들딸과 아버지께서 소유하고 인도하실 수 있는 그런 가정과, 그런 종족과, 그런 민족과, 그런 국가를 맞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이제 저희들이 가정을 대신하고 종족을 대신하고 민족을 대신하고, 국가를 대신하여 바라보게 될 때, 아버지가 바라시는 표준 앞에 일치되지 못한 계층들이오니, 그 모든 계층들을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이 모든 것을 묶어 아버지 안에 매양 제물로 바쳐 드려야 할 책임이 오늘날 보잘것없는 통일의 무리 앞에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수난의 역로 가운데서 싸워 남아진 무리이옵니다. 여기를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갔습니다. 여기에서 많은 낙오자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희들은 목전에 가로놓인 최후의 성벽을 놓고, 원수의 장벽을 놓고, 원수의 보루를 놓고, 최후의 공방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놓여 있사오니, 아버지여, 저희들에게 힘을 더하여 주시옵고,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고, 생명의 빛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 최후의 장벽을 헤치고 넘어갈 수 있는 강하고 담대한 용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이 10월 초하루를 기하여 다시 한 번 새로이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기를 바라오며, 이해를 아버지 앞에 봉헌하고자 하는 마음을 아버지께서 기꺼이 받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1971년도가 개문함과 더불어, 1970년대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거룩한 이해와 더불어 거룩한 절기를 맞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 스승을 만나기를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는 그들의 마음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외로운 곳에서 나라를 바라보며 그 누구도 동정하지 않는 외국 선교사로서의 서글픈 책임을 다짐하고 있는 불쌍한 당신의 자녀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살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나라가 당신의 나라로서 서로서로 교통하고 당신의 뜻이 일원화된 세계의 모양을 갖추는 그날까지 참아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하시옵고, 당신의 협조와 더불어 그들의 노고가 그들의 민족을 통하여 그들의 백성과 연결되고, 그들의 주권을 통하여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승리의 길을 당신이 협조하심으로써 어서 속히 마련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달을 기쁘신 달로, 이 계절을 기쁘신 해의 마지막 계절로 아버지께서 찾아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부족한 정성을 모아 이 아침에 참석한 자녀들 위에 아버지께서 같이하실 수 있는 기쁨의 시간으로 이 시간을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10월 초하루입니다. 어느 해나 우리 교회가 9월까지는 시련의 과정을 거쳐왔었습니다.

복귀노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해인 1971년

금년 1971년은 복귀노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해는 2차 7년노정 중에서 3년을 지내고 4년째 맞는 해이기 때문에 넘어가는 기간인 것입니다. 복귀섭리역사를 보게 될때에도 언제나 두번째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아담 가정에서도 두번째인 아벨이, 노아의 가장에서도 두번째인 함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을 보더라도, 두번째인 노아 때를 중심삼고 가정적인 입장에서 심판의 인연을 통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아담시대와 예수시대 재림시대에서 둘째번 아들되는 예수를 중심삼은 시대에 선악의 판가리를 지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7년노정 기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간이 어느 기간이냐 하면 2차 7년노정 기간인 것입니다. 또한 2차 7년노정에 있어서 가장 절정이 될 수 있는 해가 이 1971년도인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금년에 되어지는 모든 일은 우연히 되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세계 정세를 보더라도 이 정세가 우연히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최후의 정상을 마련해 가지고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가 어떠한 갈림길을 거쳐서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장담을 못 하는 것입니다. 뜻적인 면에서 볼 때, 아무리 환경이 어렵다 하더라도 그 어려운 환경은 기필코 뜻이 필요로 하고, 뜻이 승리의 길을 다짐할 수 있는 길로 귀결될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은 복귀섭리를 알고 있는 우리 통일의 무리로서는 당연한 견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있어서 9월을 우리 원리적인 견해로 볼 때, 9월의 9수는 3단계를 중심삼고 볼 때 삼삼은 구(3×3 = 9)한 수입니다. 그 9월을 보내고 10수가 찾아진 때가 지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남은 3개월이라는 것은 12수를 대신해서 3수를 묶어 넘어가는 새로운 출발이 될 수 있는 계절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계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인 동시에 찬양의 계절

일년을 두고 보면 이 계절은 수확의 계절입니다. 결실의 계절이기보다는 수확의 계절인 것입니다. 또한 역사를 두고 볼 때 1971년도는 찬양의 해라고 봐야 될 것입니다. 1971년도를 중심삼고 볼 때, 수확의 계절인 이 10월 이후의 기간 역시 우리는 찬양의 계절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물을 보더라도 만물은 일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의 성장을 하여 하나의 결실기를 바라보고 자랍니다. 그 나름대로의 수고의 대가가 결정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문제는 수확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물을 바라볼 때, 만물 가운데서 결실을 잘 맺은 만물에게는 수화의 계절이 가장 즐거운 계절인 반면 결실을 맺지 못한 만물을 중심삼고 볼 때는 수확의 계절이 하나의 슬픈 계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계절은 수확을 중심삼고 승패를 가름하는 계절도 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의 곡식을 두고 보더라도 그 곡식이 완전히 하나의 승리적 결과를 가져오는 데는, 그것을 가꾸어 주는 주인이 있어 가지고 그 곡식을 대해 노력해 주는 대가가 얼마나 크냐, 노력하는 그 보람이 얼마나 크냐 하는 문제가 수확과 직결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 주인이 아무리 노력을 했다 하더라도 노력해 주는 주인의 손길 앞에서 자라는 곡식 자체가 처해 있는 터전이 얼마나 좋았느냐, 자라나는 환경적 여건이 얼마나 좋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완전한 생명체를 갖추어 가지고 일년 동안 자신의 목적을 향해서 꾸준히 내적인 투쟁과 외적인 투쟁의 과정을 거쳐 승리의 시점에 서야만이 반드시 영광스러운 수확의 결실을 가져오게 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수확할 수 있게 된 모든 만물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결실된 그 만물을 대하여 찬양해야 되겠습니다. 그 자체가 그와 같은 결실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모르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자기 나름대로의 투쟁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보람된 결과로 나타난 빛나는 수확의 결실임을 알고 우리들은 그것을 찬양해야 되겠습니다.

생명력을 가진 새로운 씨(種子)가 되어야 할 우리

이런 판점에서 볼 때, 하나의 만물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섭리의 뜻도 그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섭리를 중심삼고 볼 때 지금의 때는 어떤 때냐? 수확의 계절과 마찬가지로 인류역사에 있어서의 승패를 가름하는 때로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선한 무리, 악한 무리, 또는 승리할 수 있는 무리, 패할 수 있는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승리를 했더라도 그 승리한 자리에서 다시 출발을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될 무리도 있을 것이고, 그 출발한 자리를 이미 계승해 가지고 나가는 무리도 있을 것이고, 또 아무리 승리를 했더라도, 새로운 출발의 노정을 계승하지 못하는 무리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게 된다면 수확의 계절을 맞이하여 아무리 보람있는 결실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마지막이 되어 가지고 주인 앞에 사랑받을 수 있는 수화물로서 창고에 거두어 들여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다음 해에 다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새로운 씨로서 남아질 수 있는 수확물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기에서 그러한 것으로 합격되지 못하게 된다면 아무리 수확된 결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한 단계 낮은 차원에 머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정한 이치인 것입니다.

역사적 섭리를 두고 보면…. 오늘날 민주세계와 공산세계 두 세계가 결렬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두 세계가 싸우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서로가 자기들이 주장하는 것으로 승리의 주권을 차지해 가지고 세계를 일원화시키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가 자기 나름대로의 승리의 결정을 지어 세계화시키기를 바라고 있더라도 그 승패의 결정은 반드시 인간역사 6천년의 수확기에 있어서 천운에 의해 가지고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사상계를 중심삼고 볼 때, 어떠한 사상이 인류 역사상에 있어서 수확의 결실을 계승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우리가 뜻적인 견지에서 볼 때 종교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종교 중에서 어떠한 종교가 되어야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생명의 인연을 언제나 내포하고 있는 종교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반드시 사랑을 중심삼고 연결되어진 전체화된 환경을 거칠 수 있는 곳에서 남아지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런 터전 위에 선 생명을 중심삼고, 혹은 생명을 근거로 한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화 될 수있는 곳, 하늘을 위주해 가지고 하나될 수 있는 그런 곳을 통하여서 하늘의 새로운 뜻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만이 그 누구보다도 새로운 생명의 세대를 맞기 위한 출발을 하고 있다. 우리만이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심정적 내용을 갖고 나타났다'고 자부하고 있는 무리를 세계의 어떤 종단이나 종파를 두고 보더라도 찾아볼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무리야말로 역사적인 하나의 결실이 되어야 되겠고 또 그 결실 가운데서 새로이 추려져 가지고 새로운 통일의 봄세계에 심어질 수 있는, 새싹을 틔울 수 있는 하나의 씨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이러한 씨가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될 것이냐? 아무리 수확의 결실을 가져왔다 하더라도 이 수확의 결실 앞에 찾아오는 모진 격랑을 넘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격랑은 어떠한 것이냐? 하나의 결실된 수확의 열매 앞에, 가을절기 다음에는 겨울절기가 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겨울절기와도 같은 냉정하고 무자비하고 동정의 일념을 남기지 아니하는 비참한 환경이 몰아쳐 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환경 앞에 자기의 생명을 빼앗겨 버리는 씨가 되지 말고, 그러한 환경 앞에 생명의 위력을 가지고 환경을 생명권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성과 힘을 가진 씨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씨가 되지 않고는 다시 새로운 봄절기를 맞이할 수 있는 종자로서 남아질 수 없고 제2의 봄절기를 맞이하여 하늘의 영광을 맞이할 수 있는 우리의 책임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의 책임이 지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껴야만 되겠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신념을 가지고 여러분 각자가 결의하고 선 그 자리에서, 어떠한 시련, 어떠한 고통, 혹은 극복하기 어려운 모든 사연들이 일시에 부닥쳐 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생명의 위력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누구 앞에도 제재를 받지 않고 지배를 받지 않을 자주성을 가지고 어려운 환경 앞에 자기 나름대로의 생명의 권한을 갖고 뿌리를 다질 수 있고, 갖고 남아질 수 있는 여유의 힘을, 생명의 위력을 갖지 않고는 새로운 시대에 남아질 수 있는 수확의 열매로서 하늘 앞에 가꾸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외적 환경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주력과 신념을 가져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전세계에 30여 억 인류가 살고 있는데 이 무리들 가운데 우리 소수의 통일교회 무리가 과연 그런 사명을 짊어졌다고 하게 될 때는 악의 세력권이 있으면 그 세력권 전체가 통일교회 무리에게 총집중하여 공세를 취할 것은 틀림없습니다. 우리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를 공격해 오는, 우리에게 대비할 수 있는 악의 힘은 감소할 것이로되, 우리의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거기에 반비례해 가지고 악은 강한 힘을 가지고 우리에게 부딪쳐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환경이 부딪쳐 오게 될 때, 환경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주력과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더우기 오늘 초하루를 맞는 이 10월은 특별히 뜻을 중심삼고 볼 때에 의의 있는 달이라고 보겠습니다. 영적인 내용을 살펴보게 될 때,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은 아벨을 통하여 탕감노정을 제시해 왔습니다. 가인을 구하기 위해서, 악을 용서해 주기 위해서 선을 희생시켜 나오던 역사적인 시대는 1971년의 이 10월을 계기로 해서 넘어가는 하나의 고개가 되지 않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세계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주권자들이 많았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기 스스로를 높다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앞으로 그들이 꺾여 나갈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북의 김일성, 중공의 모택동 같은, 그 외 민주세계에서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기 스스로를 높다고 하는 무리들은 꺾여 나갈 수 있는 시대권으로 들어가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1년부터 1974년까지의 기간이라는 것은 역사적 전환시기인 동시에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문제의 인물들이 사라져 갈 수 있는 섭리적인 때라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될 때, 그런 사람들이 사라져 가고 그 주권과 국가가 동요하면 동요할수록 그 배후의 하나의 뜻을 중심삼은 섭리의 터전은 더욱 공고화될 것이며, 나라의 뜻과 뜻을 대신하겠다고 다짐했던 우리들은 새로운 아침 햇빛을 볼 수 있는 때가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새로이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때가 오는 것을 알고 우리는 내적으로 단결해야 되겠습니다. 안팎으로 결속해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외적 환경이 어려운 환경이라 하더라도 우리 통일의 무리는. 그 어려운 환경을 중심삼고 염려할 것이 아니라, 심신을 다짐하여 하늘 앞에 일치화된 마음을 갖추어 가지고 횡적으로 결속되어야 되겠습니다. 결속된 힘이 30여 억 인류를 능가할 수 있는 힘으로 나타나게 될 때, 세계는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새로운 노선을 출발하고야 만다는 신념을 갖고 각자가 새롭게 다짐하고 새로운 각오 밑에서 출발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1971년도를 지내고 난 후 3년노정을 맞기 위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이 10월 초하루에 결의하고 다짐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느껴야만 되겠습니다.

역사의 결실체임을 자각해야 할 통일의 무리

가을에 수확된 결실을 바라보았을 때, 비록 그 주인이 거쳐온 노고가 컸고 그 과정이 어려웠다 하더라도 그 결실이 주인이 기뻐할 수 있는 결실로 거두어졌다면, 그 결실을 바라보는 주인이 얼마나 좋아할 것이냐, 그 결실을 보고 얼마나 찬양할 것이냐? 이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 통일의 무리는 오랜 역사시대에 있어서, 수많은 선지선열들, 혹은 우리의 선한 선조들이 치른 희생의 대가로 말미암아 결실된 모습으로서 이 자리에 남아진 무리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 한 자체, 결실된 이 모습의 가치라는 것은 무한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 각자가 서로를 존중시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의 식구가 올바로 옥토에 심어지게 될 때는 백 배, 천 배, 만 배로 결실되어 세계 무대를 빛낼 수 있는 새로운 하늘의 영광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이런 입장에서 바라보게 될 때, 이 하나의 식구가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알고 존중시해야 되겠습니다.

이들이 눈물을 흘리는 노정이 있고 이들이 고통을 당하는 신음의 노정이 있고 극복의 노정이 있다면, 그러한 노정은 하나님이 마음을 다 기울일 수 있는 터전이요, 하나님의 심정이 다 기울어질 수 있는 터전이기 때문에, 그 터전과 여러분이 마음을 같이하고, 정성을 같이하고, 동정을 같이해서 협력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그러한 여러분을 사탄세계 앞에 자랑할 것입니다. 그것이 악한 세계 앞에 내세워 가지고 악이 지금까지 갖추었던 그 권을 대하여 새로운 공방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이 되지 않겠느냐? 이것은 우리가 새로이 생각해야 될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수확의 결실체로 나타난 우리 통일의 무리, 그야말로 스스로 자신을 갖고 있고, 스스로가 하늘 앞에 맹세한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실체가 되었다면 이 실체야말로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찬양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보람있는 가치를 인정하고 역사노정의 그 누구 앞에도 부끄러움이 없는 찬양된 모습으로 내세워야 되겠습니다. 이 시대, 30억 인류 앞에, 혹은 어떤 선진 국가의 어떤 특정한 백성의 권한을 가진 사람들 앞이라 할지라도 장담코 나설 수 있는 자신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후세에 태어나는 우리 선한 후손들 앞에 이 전통을 본받으라고 내세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스스로의 결의를 다짐할 수 있는 계절이 수확의 계절이요, 찬양의 계절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 뿐만이 아니라, 우리 통일교회의 신도들뿐만이 아니라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까지도, 과연 역사적인 수확의 결실로서 세워졌고 거두어진 무리가 통일의 무리라고 하게 될 때는 오늘날의 인류뿐만이 아니라, 역사과정을 통하여 순교의 제단에서 희생의 제물로 피를 흘리고 갔던 수많은 영인들은, 선한 애혼들은 우리를 바라보며 전체의 한을 풀어 달라고 하고 있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기쁨을 그들은 자기의 승리의 한날을 다짐지어 찾아 놓은 것보다도 더 큰 기쁨으로 느낄 것입니다. 그런 수많은 선한 선조들이 영계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1971년 10월을 찬양의 달이 되게 하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 시대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3시대를 대표해서 산다는 거예요. 위로는 영계를 대표하고, 이 땅을 중심삼은 현실적인 입장에서는 세계를 대표하고, 미래에 대해서는 후손들을 대표해서, 이 3시대의 전통을 가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서 내가 한 발자국을 잘 디디면 3시대가 해방을 받는 것이요, 한 발자국을 잘못 디디면 3시대가 패자의 서러움과 더불어 영영 가늠할 수 없는 비운의 역사속에 매몰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자기와 연결되어 있는 선한 선조의 탄식과 한이 얼마나 클 것이냐 하는 것을 느껴야 하는 자리가 미래도 아니요, 과거도 아닌 바로 현실의 자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현실의 이 자리, 오늘 10윌 초하루에 여러분은 새로운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빛나는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여 새로운 소망을 품고 내일의 희망과 더불어 하늘이 바라는 에덴의 새로운 봄절기를 맞이할 수 있는 새로운 씨앗이 자유의 천지 앞에, 자유의 창조의 세계 앞에 전세계, 혹은 각 국가를 대신한 주권자의 세계를 넘어서서 뿌려질 수 있는 터전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러한 날을 맞이하는 것이 역사적인 소원이요, 역사시대에 남아진 현재의 종교가 바라는 소원의 기준이요, 미래의 후손들이 바랄 수 있는 선의 기준이요, 그 선의 조상이 출발이 되는 미래의 소원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우리들로 말미암아, 오늘 이 시간으로 말미암아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자못 안팎으로 새로운 마음을 갖고 심신을 통하여 결의를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됩니다.

그런 가운데서 이 10월을…. 여러분이 과거를 돌아볼 때, 역사시대에 어떤 좋은 날이 있었으면 그 좋은 날을 대하여 부러워할 수 있는 이 10월로 남기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이 10월 이후의 날들이 과거의 어떤 기쁜 날보다도 좋은 계절이라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할, 하늘 앞에 남겨져야 할 중요한 이 계절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들은 과거를 다시 반성하고 현재 입장을 다시 비판하여, 과거와 현재의 그 어떤 날보다도 보람 있는 이 10월 초하루요. 금후의 날들이 되게 해서, 자신의 생애에 처음 맞이하는 찬양의 계절로, 우리 통일 제단이 처음 맞는 찬양의 계절로 맞이할 수 있는 이 시기가 되고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찬양의 실체가 되라

아무리 뜻이 찾아왔다고 하더라도 여러분 자신이 뜻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실체가 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실체가 되기 위해서는 하늘앞 에 사무친 심정이 기원이 된 몸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미래에 얼마나 가치적인 수확의 결실로서 거두어질 것이냐? 자기 자체를 중심삼고 미래에 보람있는 생명의 기원을 가진 하나의 씨가 되어 가지고 하나의 나무가 되어 가지를 뻗고, 새로운 봄 동산에서 탄식과 절망과 피의 역사를 초월한 자리에서, 영광과 승리와 찬양이 어우러진 새로운 봄 동산에서 탄식과 절망과 피의 역사를 초월한 자리에서, 영광과 승리와 찬양이 어우러진 새로운 천국에서, 그 본성의 역량을 다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뻗고 잎이 나고 꽃이 피어 하늘의 영광권내에서 새로운 결실을 맺음으로써 탄식의 후손이 아니라 영광의 후손을 맞을 수 있는, 차원을 달리하고 기원을 달리한 새로운 출발을 맞이할 수 있는 10월이 되게 하겠다는 결의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 해에 남아진 3개월과 7년노정에 남아진 3년을 중심삼고 볼 때, 이 3개월을 의의있게 지내야만 앞으로 남아진 7년노정 후반기의 3년도 의의 있게 맞을 것이 아니겠느냐? 앞으로 남아진 7년노정 후반기의 3년도 의의있게 맞을 것이 아니겠느냐? 1971년부터 1974년도까지 아시아에 있어서의 중차대한 문제를 하늘적으로 결정지어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오늘날 우리 교단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각자가 거기에 대비할 수 있는 신념과 결의를, 이 수확의 계절을 맞이하여 환경으로부터 미쳐지는 자극을 통하여, 더더욱 내심으로 다짐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10월부터는 승리의 계절, 찬양의 계절이니 이 계절을 찬양함과 동시에 통일의 무리를 찬양해야 되겠습니다. 나아가서 찬양의 여건이 자기를 중심삼은 것이 되어 가지고 아버지의 찬양의 실체가 여기있노라고 찬양의 실체로서 자부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게 될 때, 거기에 역사적인 이 10월을 맞는 의의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이 되고, 그러한 책임을 다짐할 수 있는 여기에 모인 여러 분이 되어서, 여러분뿐만이 아니라 전국에 널려있는 우리 통일의 무리가 하나로 결속되어 이 결속된 종단 전체가 수많은 단체들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결실체로 아버지 앞에 거두어지게 된다면 그야말로 하나님이 바라 나오시던 한의 기원을 제거시킬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이 민족적으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냐. 이러한 문제를 두고, 여러분이 이제부터 출발해야 할 3개월과 3년노정을 더더욱 의의있게 맞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찬양의 계절, 승리의 계절'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렸습니다.

(통일의 노래를 같이 부름)

​기 도

​아버님, 부족하고 미급한 통일의 자녀들 위에 당신이 약속과 더불어 찾아오시어서, 저희들이 슬픔을 걷어차고 다시 해방의 깃발을 드높이 들어 만국이 찬양하는 가운데 승리의 권한을 아버지 앞에 봉헌할 수 있는 그 날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오늘 10월 초하루를 허락하신 은사권내에서 출발하오니, 10월이 당신의 자랑이 되는 달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금년이 당신이 사랑하는 해로 거두어지고 제2차 7년노정이 당신의 승리의 기간으로 거두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라는 소원과 더불어 당신이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역사적 해원성사가 만민과 더불어 일원화된 세계에서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4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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