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류역사가 선한 역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의 역사가 되었다면 이 세계는 선의 세계인 동시에 참된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선의 세계가 되지 못하고 악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선의 출발을 보지 못하고 악의 출발을 보게 된 서글픈 역사가 우리 인류의 역사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타락한 인간의 후손입니다. 이 타락한 인간의 후손된 우리 인류는 아직까지 하나님이 바라시는 참된 사람, 참된 세대를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이 이 땅 위에서 자기 나름대로 선을 추구하고 참을 추구해 나왔지만, 그들이 추구한 선과 참은 그 시대에 좀 드러날 수 있었을 뿐 인류가 출발해야 할 본연의 기준, 하나님이 바라는 참의 기준과 선의 기준에 일치되지는 못한 것입니다. 우리 인류가 지금까지 그런 역사노정을 걸어왔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여 지나온 수천 년의 역사과정에 인류가 추모하는 성인이 있다 하더라도 그 성인이 점유하고 있는 참된 자리라는 것은 그 시대, 혹은 오늘 이 시대에 있어서 좀 나을 수 있는 자리일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이 타락이라는 운명을 맞기 전의 기준에 일치될 수 있는 참된 자리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완성된 자리에 선 참된 인간 이나 참된 세대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인간이란 절대적인 입장이어야 합니다. 그런 절대적인 자리에 선 개인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개인이 역사상에 나오지 않은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인간이 그리워하고 찾아 나온 것은, 하나님이 완전하게 세울 수 있고 모든 것을 완전히 맡길 수 있고 완전히 자랑할 수 있고 완전하다고 공인할 수 있는, 절대에 가까운 참된 한 사람입니다. 그 한 사람을 찾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그 한 사람을 맞이하는 것이 인류가 바라는 최고의 소원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시대를 보게 될 때, 역사노정은 복귀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복귀의 운명을 가야 하는 타락한 인간은 인간으로서 가야 할 최고의 가치 기준에 서지 못하고, 인간으로서 가서는 안 될 종의 종의 자리로 내려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으로서의 위신과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만유의 주체로서의 주체성을 갖는 자리가 아니라, 그런 주체성을 가질 수 있는 길을 구하고 찾아 나오는 과정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제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선한 아들이 못 되고, 선한 딸이 못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자리에 선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이 슬퍼하실 수밖에 없는 자리에 선 자녀의 입장에서 그 슬픈 영내를 넘어서기 위해 신음해 온 인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아들의 자리, 참된 딸의 자리는 어느 때에 찾아질 것이냐? 어느때에 찾아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고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실 수 있는 참된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인류의 참된 선의 조상이 나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참된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선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참된 아들딸의 과정을 거슬러올라가야 합니다. 참된 아들딸로서 승리를 결정지어 하나님 앞에 참된 아들딸로 공인을 받아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단계를 높여 가지고 그보다 더 높은 자리까지 나갈 수 있는 참된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인류가 바라는 참된 부모,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부모는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혈통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혈족이 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가 될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거꾸로 복귀해 나가야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지금 우리는 종의 종의 자리에서 종의 자리를 거쳐 양자라는 서글픈 운명의 길을 거쳐 나가고 있습니다. 이 양자라는 서글픈 운명을 놓고 죽든지 살든지 최후의 결판을 봐 가지고 비약하고 도약하지 않으면 안 될 과정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도약을 해야만 아들의 이름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상속받아 아들로서의 사명을 완결했다는 입장에 서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창조 당시에 세우려 하셨던 인류의 선(善)의 시조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역사과정의 젊은 세대 가운데 어떤 젊은 세대가 있었느냐? 종의 종의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젊은 세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종의 종의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젊은 세대는 그 세대만으로 계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가운데서 도약을 할 수 있는 젊은이, 즉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도약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는 종의 종의 시대의 사람과는 다를 것입니다. 가는 길도 다를 것입니다. 그 모양은 같을지 모르지만 그가 바라는 소망도 다를 것이고 가는 길도 다를 거예요. 그러한 젊은 세대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종의 종의 세대와 다른, 종의 자리에 설 수 있는 대표자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 위에 종의 시대가 왔다면 거기에서 또 종의 시대를 초월하여 양자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종의 시대의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하나의 남성이나 여성, 즉 젊은 세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음에 양자의 시대가 왔다면, 다시 아들이 되고 딸이 될 수 있는 자리에 나가기 위해 양자의 자리를 초월할 수 있는 젊은 세대가 있어야 됩니다. 자녀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젊은 세대가 있다 하더라도 그 시대를 초월하는 한 단계 더 높은 세대가 나오지 않고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부모의 인연이 이 땅 위에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복귀섭리노정을 더듬어 보아 알고 있는 바입니다.
이 지구상에 참부모의 입장을 대신할 수 있는 그런 세대가 어느 한때에 와야 됩니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타락한 인간, 즉 종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색다른 혈통의 인연을 따라왔기 때문에 제아무리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참된 아들의 자리, 참된 딸의 자리에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된 아들과 딸의 자리에 나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나의 근원과 다른 본연의 입장을 찾아야 됩니다. 나는 사탄을 중심삼고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리에서 출발했습니다. 내 출발의 기원이 그렇게 되었고 과정이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결과도 그런 입장을 모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반드시 새로운 출발을 하여 하늘이 공인할 수 있는 아들의 자리를 이어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타락한 인류 앞에 새로이 제시한 메시아사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기대(基臺)와 실체기대(實體基臺)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세웠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실체기대가 완결된 후에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체기대가 완결된 후에 메시아를 위한 기대의 자리에 서는 것은 누구냐? 타락한 인간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 인간들은 사탄의 혈통을 받고 태어났는데 아직까지 그 혈통을 초월하지 못했습니다. 그 혈통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혈통을 바꿔쳐야 하는데, 인간이 자기 혼자서는 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메시아가 오면 그 메시아를 통하여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악한 혈통을 이어받아 사탄의 후손이 된 나는 선한 혈통을 받아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 그분을 통하여 아들의 인연으로 다시 바꿔 가져야 됩니다. 바꾸어 갖는 그 자리는 다른 자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자리는 아들과 같은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를 그냥 그대로 순순히 이어받을 수는 없습니다. 거기에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하는 비운의 역사의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 온 개인의 입장을 그냥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악을 기원으로 한 그 터전을 그냥 그대로 가지고 남아지겠다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부정하고 이것을 끊어 버리고 넘어서지 않고는 새로운 초월의 경지를 맞이하여 하나님이 찾고 있는 아들딸의 자리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가 이렇게 악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오시는 메시아는 이와는 반대적인 역사를 가지고 출발하여 우리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터전을 닦기 위하여 하나님은 선민사상권(選民思想圈)을 만들어 가지고 보다 나을 수 있는, 보다 충실하고 보다 가치적이고 보다 참될 수 있는 것을 추구하게 하여 타락한 인간 조상 아담 해와보다 높을 수 있는 자리를 가려 나오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의 자리는 아담보다 조금 더 높은 자리입니다. 그런데 아벨이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복귀하기 위한 사명을 노아가 이어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자리는 아벨보다 조금 더 높은 자리입니다. 그 다음에 아브라함의 자리는 노아보다 높은 자리이며, 모세의 자리는 아브라함보다 높은 자리입니다. 또한 세례 요한은 모세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비로소 역사상에 단 하나의 남성으로서 예수 앞에 설 수 있는,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예수와 만나게 된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접붙임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접붙임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이냐? 기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절단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전체를 새로이 접붙임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접붙임을 받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전체를 부정하는 자리입니다. 부정을 하는 데는 자기가 살아온 과거를 부정하고, 지금 살고 있는 현재를 부정하고, 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완전히 부정해야 됩니다. 그렇게 완전히 부정하는 자리를 통과하지 않고는 접붙임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아무리 좋은 나무라 하더라도, 4천년 묵은 나무라 하더라도 그냥 그대로 남아지기를 원한다면 그 나무는 접붙일 수 있는 운명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살고 있는 나무, 접붙임을 받아야 할 그 나무의 입장을 두고 볼 때, 세계를 덮고도 남을 수 있을 만큼 싱싱한 나무일지라도 그 나무 자체를 존중시해 가지고는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운명은 절대 생기지 않습니다. 오늘뿐만이 아니라 내일의 소망까지도 전부 부정하고 꺾어 버려야만 비로소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완전한 기대가 조성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운명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하나님의 가르침은 무엇보다도 당연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를 존중시하고 현재를 자랑하고 미래의 희망을 품고 움직이는 자리에서는, 이것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자랑하는 자리에서는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참된 아들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메시아와 만날 수 있는 자리, 메시아로부터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그 자리가 행복한 자리라면 모르거니와 만약 비참한 자리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 행복한 자리에서 영광스럽게 맞이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비참한 자리에서도 즐거이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메시아를 맞이하여 그로부터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만날 수 있는 자리는 여러분들 각자의 선조가 다르고, 여러분의 얼굴 얼굴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천태만상일 것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자리에서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처해 있는 자리와 배경과 입장이 다른 자리에서 자기 나름의 운명을 가려 가지고 메시아를 맞이하여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는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자리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이 무엇이냐? 감사한 마음으로 자기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자리, 아무리 비참한 자리에서 메시아를 맞이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 자리보다 더 비참한 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비참한 자리에서 맞이해야 할 메시아를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처해 있는 단계가 천태만상이기 때문에 메시아를 맞이하는 자리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는 결정적인 내용은 무엇이냐? 비참한 길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참한 길을 가는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알고 기쁜 마음으로 희생하며 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만이 메시아로부터 접붙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자기는 그런 것을 알고 그런 길을 가려고 하지만, 가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부모와 형제가 있는 동시에 친척이 있는 것이요. 종족이 있는 것이요, 민족이 있는 것이요, 국가가 있는 것이요,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세계에서 각자는 소망을 중심삼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세계에서 볼 때, 메시아로부터 접붙임을 받기 위하여 나서는 자리는 지극히 어러석은 자리로 보입니다. 그 자리는 자기를 부정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지극히 어리석은 자리로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 자기의 입장을 두고 볼 때, 각기 사정은 다르지만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부모와 형제가 있고 종족과 민족과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시는 메시아는 국가를 대표한 자리에서 승리권을 가지고 오는 것도 아니요, 민족을 거느린 배경을 가지고 오는 것도 아니요, 종족의 권위를 가지고 오는 것도 아니요, 누구보다도 사랑할 수 있고 또 사랑받을 수 있는 가정의 배경을 가지고 오는 것도 아닙니다. 메시아는 단 한 분입니다. 단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나라를 가진 것도 아니요, 친척을 가진 것도 아니요, 가정을 가진 것도 아니요, 사랑할 수 있는 형제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홀로라는 것입니다. 홀로 고독단신이라는 거예요.
그런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갖고 있던 가정적 기반이라든가 국가적 기반이라든가 자기 나름의 영광의 터전을 일시에 포기해야 됩니다. 이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서 있는 나라를 부정해야 되고, 자기가 속해 있는 민족을 부정해야 되고, 자기가 속해 있는 종족을 부정해야 되고. 자기가 속해 있는 가정을 부정해야 됩니다. 또 그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부모를 부정해야 되고 형제를 부정해야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 자신까지 부정해야 됩니다. 나를 부정해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잘라 버려야 됩니다. 접붙이려면 그렇게 해야 되지 않아요. 그렇지요?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의 접붙임을 받기 위해서는 돌감람나무를 잘라야 됩니다. 돌감람나무를 자르지 않으면 접붙일 수 없습니다. 돌감람나무를 잘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어디를 잘라야 되느냐? 가지를 잘라서는 안 됩니다. 몸뚱이 전체를 뭉텅 잘라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잘라야 돼요. 그 몸뚱이를 뭉텅 잘라 가지고 참감람나무의 눈이면 눈, 가지면 가지를 받아 와야 됩니다. 즉, 돌감람나무는 참열매를 보지 못한 자리에 있기 때문에 참감람나무의 눈 하나를 받기 위해서 지금까지 자라서 큰 나무 전체를 잘라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는 것을 그 환경에서 보면 '다 같은 것이 아니냐, 다른 것이 무엇이냐'라고 하면서 어리석은 사람 중의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요, 무지한 사람 중의 지극히 무지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나 형제, 그리고 종족, 민족, 국가가 그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사랑하는 만큼 그 일을 반대하고 가로막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응하게 되는 날에는 돌감람나무 그대로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참감람나무의 접붙임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접붙임받는 일은 오늘날 타락권내에 있어서는 나이 많은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장년도 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청년도 해야 되고, 소년도 해야 되고, 유아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복중의 애기도 이 접붙임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일 이상적인 것은 무엇이냐? 태어날 때부터 참감람나무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태어나기 전서부터 참감람나무가 되어 가지고 태어나면 얼마나 좋겠느냐? 어떻게 태어나는 것이 좋다구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참감람나무의 씨를 받아 가지고 태어날적부터 참감람나무로 태어나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역사 가운데 재미있는 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어머니의 복중에 다시 찾아 들어가 가지고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그것은 얼토당토 않은 말이요, 있을 수가 없는 불가능의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계를 대표한 기독교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중생하지 않고는,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가르쳐 주는 곳은 기독교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거듭나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새로운 참이 탄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나야 된다는 말이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수많은 종교 중에서 어떤 종교가 참된 종교냐? 태어날 때부터 참으로 태어나기를 꿈꾸고 희망하며 나오는 종교를 그래도 나은 종교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를 믿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 땅 위에 그런 참된 아들딸이 태어나는 날에 기뻐하실 것이냐, 슬퍼하실 것이냐?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딸이라 할지라도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을 굴복시켜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참된 감람나무로서의 책임을 다했다는 입장에 설수 없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원리를 두고 볼 때 복귀하는 데 있어서 참된 나무가 있다 하더라도 그 나무 혼자서는 복귀의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세계를 구원해 가지고서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참감람나무로 오시는 분은 반드시 돌감람나무를 접붙여 그것을 구해 가지고 돌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을 지니고 오시는 것입니다.
참된 아벨이 있으면 참된 가인이 있어야 됩니다. 참부모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참된 자녀의 자리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참부모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참자녀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자녀의 과정을 거치는 데 있어서는 이 땅 위에 두 갈래 자녀의 형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돌감람나무와 참감람나무가 그것입니다. 이 둘은 어느 한때에 반드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만나 가지고 그냥 그대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나 가지고 참감람나무가 돌감람나무를 접붙여야 됩니다. 그리하여 접붙인 돌감람나무와 더불어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참된 자녀가 되려면 아벨과 가인이 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아벨과 가인은 어떻게 생겨났느냐? 거짓 사랑으로 말미암아 갈라진 입장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가인은 사탄으로부터 시작됐고, 아벨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가인과 아벨은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두 사람으로 갈라진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어느 한때에 갈라진 두 사람이 한 사람형을 이루어 일체가 되었다는 기준을 세우지 못하면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맞을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개인적인 아벨은 개인적인 아벨로서 그냥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면 좋겠는데, 그렇게 된다면 세상에 남아 있는 중생은 한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되면 인류는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모두 참감람나무를 만나 가지고 돌아가기를 소원한다는 말씀도 거짓으로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말이 완결을 보기 위해서는 가인과 아벨이 반드시 일체를 이루어야 됩니다. 개인적 아벨이 있다면 개인적 가인이 있는 것이요, 개인적 아벨 가정이 있다면 개인적 가인 가정이 있는 것이요, 개인적 아벨 씨족이 있다면 개인적 가인 씨족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개인적이라는 것은 개인이 중심이 된다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개인을 중심삼은 아벨 종족이 있다면 개인을 중심삼은 가인 종족이 있는 것이요, 개인적 아벨 국가권이 있다면 개인적 가인 국가권이 있는 것이요, 개인적 아벨 세계권이 있다면 개인적 가인 세계권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 아벨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세계적 가인권이 나타나야 됩니다. 세계적 아벨권이 승리하게 되면 국가적 아벨권은 자동적으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 아벨권이 승리권을 가졌다면 국가는 물론이요, 민족은 물론이요, 종족은 물론이요, 가정은 물론이요, 개인도 완성을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적인 판도와 접할 수 있는 개인권, 개인적인 아벨권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종교를 중심삼은 문화권입니다. 알겠어요?「예」 그 다음에는 세계적으로 남아 있는 개인적 가인 문화권입니다. 이러한 시대는 반드시 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접붙이는 데에 있어서 개인 개인을 잘라서 접붙이는 것을 좋아하시겠습니까, 한꺼번에 잘라 가지고 접붙이는 것을 좋아하시겠습니까? 단 한번에, 단 한번에 세계를 뚝 잘라 가지고 접붙이고자 하는 것이 욕심 많은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여러분의 소원은 그렇지 않아요? '아이구! 복귀역사, 그 지루해서 죽겠다. 세계적으로 한꺼번에 왕창 와장창 해 버리면 좋겠는데…' 이렇게 소원하지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세계적 종교권을 만드시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민주세계입니다. 여기에는 많은 국가들이 하나의 사상을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세계적 민주권의 운세를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는 국가가 있어야 됩니다. 또, 세계적인 국가의 운세를 완전히 이어받을 수 있는 국민이 있어야 되고, 세계적 국민의 운세를 완전히 이어받을 수 있는 종족권이 있어야 되고, 세계적인 종족의 운세를 완전히 이어 받을 수 있는 가정이 있어야 되고, 세계적인 가정의 운세를 완전히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의 개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민주세계라는 것은 메시아를 맞기 위한 세계요, 메시아를 위한 기대로서의 터전입니다. 이러한 세계가 있는 반면 이러한 세계를 반대하는 반대적인 세계도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서로가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서로가 합하면 좋겠는데 서로가 반대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두 패로 갈라지지 않으면 가인 아벨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가인과 세계적인 아벨이, 하나는 이쪽에서 하나는 저쪽에서 와 가지고 정상의 위치에 서 있는 것입니다. 서 있긴 서 있는데 죽자살자하며 하나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죽자살자하고 반대하는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인 아벨의 형태입니다. 거 참 이상하지요?
이것을 증명하는 세계가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입니다. 하나는'하나님은 있다 절대적으로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도 절대적으로 있다' 하는 세계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도 절대적으로 없다' 하는 세계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패입니까?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있다고 하는 패예요? 「예」 절대적으로 있다고 생각해요?「예」 여러분들, 그것을 알아요. 믿어요? (웃음)「알고 믿습니다」 아나요, 믿나요? 똑똑히 대답해 봐요. 「알고 믿습니다」 알고 믿어요?「예」 믿고 아나요, 알고 믿나요?「알고 믿습니다」 이야! 굉장하구만. (웃음)
그것이 왜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느냐? '저것이 그렇게 되어 가지고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가 안식할 수 있는 천국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저것이 저렇게 되지 않고는 세계 복귀는 있을 수 없다'라고 하는데 왜 그래야 되느냐? 어떤 사람은 '나는 가인 싫어'라고 하는데 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웃음) 가인을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럼 아벨을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요. 알기는 아는구만. 그러면 왜 그토록 싫은 가인과 내가 필연적으로 이마를 맞대고 공동으로 결판을 내야 할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동기대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이치입니다. 다시 말하면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러면 도대체 인간을 심을 때 어떻게 심었느냐? 어떻게 된 꼬락서니를 심었느냐? 가인과 아벨이 투닥거리는 그런 씨를 갖다 심은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투닥거리는 것이 싸우는 거예요, 친한 거예요? 싸움하는 그런 씨를 갖다 심었다는 거예요. 그 열매가 누구냐? 나 개인인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개인 둘을 합하면 가정이 되는 것이요, 거기에 둘을 더하면 사위기대가 되는 것이요, 거기에 또 넷, 넷, 넷이 달라붙으면 씨족이 되는 것이요, 씨족이 또 넷, 넷, 넷이 달라붙으면 민족이 되는 것이요, 민족이 넷, 넷, 넷이 달라붙으면 국가가 되는 것이요, 국가가 넷, 넷, 넷이 달라붙으면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세계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간 개인에서부터 심어진 것에서 줄기가 나고 가지가 뻗고 잎사귀가 나서 된 것이 오늘날 세계의 인류라는 꼬락서니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이 인류라는 동물들이라는 거예요. 선생님 말이 틀렸어요. 맞았어요? 맞았지요?「예」
그러면, 하나님이 절대적인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에게도 둘이 아닌 하나의 절대적인 목적이 있어야 할 텐데 여러분의 목적은 몇입니까? 하나예요, 둘이예요?「하나입니다」 똑똑히 대답해요. 하나예요, 둘이예요?「하나입니다」 '밥을 먹고 나서도 하나요, 아침에 일어 나서도 하나요, 학교에 가서도 하나고, 저녁이 되어도 하나며, 젊었을 때도 하나요, 늙어서도 하나고, 죽을 때도 하나다' 이럴 수 있겠어요?「예」
그러면 나 자신을 두고 볼 때, 마음도 하나고 몸도 하나인데, 이 몸과 마음이 싸움하는 하나예요, 좋아하는 하나예요?「좋아하는 하나입니다」 그래요? (웃음) 몸하고 마음하고 서로 좋아해요? 서로가 짝짜꿍해 가지고 밤낮으로 좋아해요? 좋아해요, 나빠해요? 가끔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 투닥거리지요?「예」 가끔이예요? 그 투닥거리는 싸움이 어느 한때 '끝났다' 하는 광고가 붙은 것을 봤어요? (웃음) 투닥거리던 싸움이 끝나 가지고 휴전협정을 했다는 소식을 들어 봤어요? (웃음) 들어 봤어요, 못들어 봤어요? 못 들어 봤지요? 지금도 싸우고 있어요. 어디에서? 세계에서?「내 속에서요」 이것이 문제예요.
여러분 자신은 하나예요, 둘이예요? 두 사람이예요, 한 사람이예요? 「하나입니다」 거짓말이예요, 거짓말! 마음은 이렇게 가자고 하는데 몸은 '아이고 나는 싫어, 이렇게 가자'고 하잖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웃음)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모양은 하나 같은데 내용은 둘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모양은 하나 같은데 내용은 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놓았느냐? 절대적인 하나님이 장난치기 위하여 그렇게 만들었다면 그놈의 하나님은 미친 하나님입니다.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다면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원론이니 뭐니 하는 복잡한 사상들을 가지고도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렇지요?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어서 그 하나님의 사상을 중심삼고 동으로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절대적인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귀결이 되어야 하고, 서로 가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또한 절대적인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귀결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체를 두고 동,서의 방향처럼 반대되는 몸의 사람과 마음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이 되어 가지고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때가 있을 것이냐? 그냥 그대로 하나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될 것 같아요,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냥 그대로 하나될 것 같아요? 안 됩니다. 잘라 버리고 접붙이기 전에는 하나될 수 없어요. 그렇지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아이고 나는 희생이고 뭣이고 싫어. 접을 붙일 바에는 세계적인 아벨권에서 세계적인 가인권을 잘라 버리고 후다닥 접을 붙여 버리면 나는 고생을 않지. 아이고 나는 고생은 싫어. 우리집도 이렇게 고생하는데 더 이상 고생해야 되는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안 했어요? 그러나 세계적으로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하나될 수 있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절대 안 됩니다.
이 세계를 두고 볼 때, 가인적인 개인은 많습니다. 가인적인 가정도 많습니다. 여러분들도 가인 가정에서 태어났지요? 아버지 어머니가 다 같아요? 다르지요? 세계에는 다른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또 가인적 씨족이 많습니다. 그래서 김 군, 박 군, 임 군 등 여러 성이 많은 거예요. 뿐만 아니라 가인적 민족도 많습니다. 시시한 가인 민족이 수두룩하다는 것입니다. 나라도 그렇습니다. 한국, 일본, 미국 등 시시한 가인 나라가 우글우글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세계적으로 볼 때, 세계적인 가인 나라가 많다고 할 수 있어요? 세계적이라고 할 때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세계 가운데에는 나라가 백개도 천 개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하나라는 거예요. 세계적인 아벨 나라, 즉 아벨의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와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천지 가운데에 가인적인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다 이루어졌으니, 이 세계가 메시아를 중심삼고 그 앞에 절대 복종하고 절대 순응하여 그와 절대적으로 하나가 되면 하늘의 섭리는 한꺼번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메시아는 세계적입니까, 개인적입니까?「세계적입니다」 아벨적인 입장에서는 세계적이 아닙니다. 외톨이예요, 외톨이. 하나라는 거예요. 그 하나를 이어받기 위해서는 전체를 몽땅 잘라 버려야 됩니다. 그 하나는 몇대 일입니까? 숫자로 보게 되면 몇억만분의 일이지요? 그렇지요? 그것을 자르려고 할 때,'어서 잘라라, 잘한다, 잘해'이럴 수 있어요? 전문가가 아니면 모르는 것입니다. 그 전문가가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만이 전문가예요.
그러면 잘라야 되겠어요, 안 잘라야 되겠어요?「잘라야 됩니다」 잘라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골통 가운데, 그리고 몸 가운데 흐르고 있는 시시한, 시시껄껄한 가인적인 사상이라든가 가인적인 존재의식이라든가 가인적인 혈통을 와장창 잘라 버려야 됩니다. 다 잘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떤 사상을 갖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 사상을 그냥 그대로 가지고 되겠어요? 그것을 깨 버리고 무슨 사상을 가져야 돼요? 예수의 사상을 접붙임받아야 됩니다. '나는 이렇게 살려고 했는데…' 하는 마음을 그냥 그대로 가지고 살아서 되겠어요? 안 됩니다. 아벨을 본받기 위해서는 그냥 그대로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에서부터 천만사까지 모든 것을 바꿔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접붙임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하지요? 아벨을 위하여 목숨을 몽땅 바치고 아벨을 위해서 죽을 각오를 한 사람만이 아벨로부터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을 각오를 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 접붙임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단 한마디의 말로 결론을 지어 놓으셨으니, 완전히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죽고자 하는 사람이요, 접붙임받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결론이 그렇게 나왔다는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패입니까? 죽고자 하는 패예요, 살고자 하는 패예요?「죽고자 하는 패요」 죽되 한 십년 걸려서 죽겠다는 패예요, 한꺼 번에 와장창 죽겠다는 패예요? 어떤 패예요? 죽되 어디서 어떻게 죽을 거예요? 다 놔두고 자기 혼자 죽어서 접붙임을 받겠다고 '하나님, 나 혼자 죽어서 접붙임을 받을 거요. 자요. 죽습니다'하고서는 대까닥 목을 잘라 죽게 되면 (웃음) 어떻게 되겠어요? 접붙임받을 눈이라든가 가지가 없이 죽으면 그것은 나무아미타불입니다.
접을 붙일 수 있는 눈이나 가지를 가지고 있어도 겨울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름에도 안 됩니다. 봄날을 맞이하여 가지고 적재적소에서 그 눈접을 바라보면서 목을 딱딱 잘라야 되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만일 그때 아버지 어머니가 내 목을 잘라 주지 않겠다고 하면 그 아버지 어머니는 무엇입니까? 원수예요, 친구예요? 또 형님 누나가 내목을 자르게끔 나를 내몰아 주지 않으면 그 형님 누나가 원수예요, 친구예요?「원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만 들어오게 되면 목을 자르라고 막 때려 내모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려 모는 놀음을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선생님이 지어내서 하는 말이지' 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예수가 죽을 때에 죽지 않겠다고 도망을 갔던 베드로, 야고보는 어떻게 되었어요? 본래 죽을 자리에서 죽었더라면 영육을 통한 승리의 왕좌에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인데, 죽지 않겠다고 도망가다 붙들려 죽어 가지고 한쪽밖에 완성을 못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 다시 육(肉)이 죽어야 할 고비가 남아진 거예요.
그러면 죽는 데는 따로따로 죽는 것이 좋겠어요, 한꺼번에 죽는 것이 좋겠어요? 여기에 처음 온 사람은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지긋지긋한 말을 하더라. 잡아죽이겠다는 얘기를 하더라. 아이고 난 무서워'(웃음) 할지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도망가지는 말아요. 아직도 사무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목을 자르더라도 사무가 끝난 후에 자르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심어진 씨의 열매가 맺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지금 두 패로 갈라져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열매를 거두어 들일 때가 되거든 인류역사의 가을이 온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한 패는 하나님이 있다고 하고, 한 패는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마음은 하나님이 있다고 하고, 몸은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한 패는 마음의 천국을 지향하고, 한 패는 도리고 의리고 뭣이고 없이 배때기가 좋아하는 대로 먹고 살기만 합니다. 의리고 뭣이고 없다는 것입니다.
두 패가 겨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그러면 이것이 언제 하나로 통일될 것이냐? 언제 통일되겠어요? 통일될 가망성이 있을 것 같아요?「예」 잘라 버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둘로 된 것을 잘라 버리고 하나가 되어서 예수를 닮아 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하나님의 혈통을 타고 왔기 때문에 그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잇는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지 두 길을 왔다갔다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왔다갔다할 수 있는 소질이 많은 사람은 사탄의 사랑을 받는 사탄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접을 붙이는 데 있어서 늙어서 등이 꼬부라져 가지고 붙일 것이냐, 장년시대에 붙일 것이냐? 아니면 청년시대에 접붙이기를 원하느냐, 소년시대에 접붙이기를 원하느냐? 어느 시대에 접붙이기를 원해요? 태어나기 전부터 접붙임을 받아 가지고 태어나자마자 접붙임받은 것과 같이 됐으면 좋겠지요? 그러기를 바라지요?「예」 그런 일을 하나님은 역사과정을 통해서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은 다시 어머니 뱃속을 찾아 들어가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웃음) 그 어머니는 사탄세계의 그대로의 어머니가 아니라 사탄이 참소할 조건에서 벗어난 어머니예요. 그런 어머니를 만나 가지고 그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 뒤에 있는 사람, 들려요?「예」'사탄세계의 참소를 받는 어머니의 배는 싫어. 나는 사탄세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가기를 원해' 하는 자리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가고 싶어요?「예」
그러면,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다 되느냐? 어머니의 뱃속이 아무리 깨끗하더라도 그 아버지가 더러우면 어때요? 그 아버지가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씨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사탄권내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밭이요 아버지는 씨앗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아버지한테서 태어났어요, 어머니한테서 태어났어요?「아버지한테서요」 엄마한테서 태어났지요? 아버지한테서 태어났어요?「예」 그래요, 아버지가 씨앗이니까 여러분은 아버지한테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악한 아버지의 씨, 사탄으로부터 참소받을 수 있는 아버지의 씨를 받아 가지고 태어나면 되겠어요? 사탄의 참소를 절대 받지 않고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버지의 씨를 받고 태어난 아들딸이 나오거들랑 이 세상은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니라! 알겠어요?「예」
그러면 그런 씨앗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돌감람나무 같은 나쁜 종자들로 꽉차 있는 밭에다 그냥 그대로 씨를 뿌려서 되겠느냐, 아니면 그것을 모두 청산하고 새로이 접붙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지고 거기에 씨를 뿌려야 되겠느냐?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모두 청산해 가지고 준비된 터전 위에 씨앗을 뿌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준비된 나라가 있어야 되고, 민족이 있어야 되고, 종족이 있어야 되고,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나오는 데는 나라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는 민족으로부터, 민족은 종족으로부터, 종족은 가정으로부터, 가정은 개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사탄을 대하여 절대적으로 이긴 개인이 나오지 않고는 그런 가정이 나오지 않는 것이요, 그런 가정이 나오지 않으면 그런 종족이 나오지 않는 것이요, 그런 종족이 나오지 않으면 그런 민족이 나오지 않는 것이요, 그런 민족이 나오지 않으면 그런 나라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세계적으로 이겼다는 뜻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온 사람이 누구냐? 야곱입니다. 이스라엘이란 싸워서 이겼다는 뜻입니다. 싸워서 졌다는 말이라고요?「아니요」 이겼다는 말이라는 거예요. 어떤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이냐? 영적인 싸움에서 사탄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할 때 환도뼈가 부러졌지만 이겼거든요. 그리고 라반이 그렇게 수작을 하여 속여 먹었어도 그것을 다 견디고 결국 이겼다는 입장에 섰거든요. 그렇지요?
이렇게 이긴 개인이 나왔으니 이긴 가정이 나오는 것이요, 이긴 가정이 나왔으니 이긴 종족이 나오는 것이요, 이긴 종족이 나왔으니 이긴 민족이 나오는 것이요, 이긴 민족이 나왔으니 이긴 국가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 국가가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이스라엘입니다. 이렇듯 이긴 국가가 나왔기 때문에 이긴 종교가 있어야 되는데 그 종교가 유대교입니다. 따라서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완전히 하나되지 않으면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성경에 그런 내용이 어디 있느냐? 성경으로 돌아가 봅시다. 성경이라는 말이 좋은 말이에요, 나쁜 말이예요? 오늘날 한국에서는 성서라고 하지요? 이 성서라는 말이 좋은 글이라는 말이예요, 나쁜 글이라는 말이예요? 좋은 글이라는 말이지요. 성서의 성(聖) 자는 귀 이(耳) 변에 입 구(口)밑에 임금 왕(王) 자지요? 귀가 왕이 되어야 되고 입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거룩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요? 좋은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 제일 좋은 책이겠어요. 제일 나쁜 책이겠어요?「제일 좋은 책입니다」 좋은 것 중에서 중간 정도만 되어도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최고로 좋은 책을 원합니다. 최고라야 그 책에 성서(聖書)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중간 정도의 좋은 책은 성서가 아니고 중성경쯤 될지 모르지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진짜 좋은 것을 원해요, 중간 정도 좋은 것을 원해요?「진짜 좋은 것이요」 맛을 봐도 진짜 단맛이 좋아요, 중간쯤 단맛, 뭐라 할까, 떱떨한 맛이 좋아요? 진짜, 진짜, 진짜 단맛이 좋아요?「예」 너무 달아서 혀를 대자마자 '아?' 할 수 있는 맛이 좋지요? 너무 달게 되면 어떤 맛이 나요? 쓰지요? 진짜 단 것은 쓴 것하고 통하더라 이겁니다. 그거 이상하지요?
그러면, 성경이 좋은 책이 되기 위해서는 대관절 인간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어야 되느냐? 어머니의 뱃속과 아버지의 뼛골 속에 선한 밭과 선한 씨를 가꿀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그러지 못하면 절대 좋은 책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뱃속이 선한 뱃속이 되어야 되고, 그 뱃속에 씨를 받는 데 있어서도 선한 아버지의 씨를 받을 수 있는 터전을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책임을 못한다면 성서는 인류 앞에 진짜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인류의 역사는 타락한 역사이기 때문에 꺼꿀잡이로 가야 됩니다. 거꾸로 바꿔치기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악이 먼저 나왔는데 그 악을 그대로 두어서 되겠어요? 언제든 선이 악을 타고 눌러 앉아야지요. 그렇지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교차로가 생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교차로를 원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교차로는 몇 갈래예요?「두 갈래요」 네 갈래지요?「두 갈래입니다」 교차로가 네 갈래지 왜 두 갈래예요?(웃음) 두 갈래예요, 네 갈래예요?「두 갈래입니다」 저렇게…. 이제껏 얘기를 해도…. 교차로가 무슨 두 갈래예요. 네 갈래지. 교차로에서 보면 네 갈래 아니예요?
그러면 세상이 네 갈래가 되었느냐? 안 되었으니 아직까지 교차시대가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이 우거하는 자리는 두 갈래입니다. 이 교차로가 남아 있는 한 악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나 자체를 두고 볼 때도 하나님이 좋아하는 나와 사탄이 좋아하는 내가 있는 것입니다. 양심을 좋아하는 이는 하나님이고 몸을 좋아하는 이는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몇 갈래예요?「두 갈래요」 두 갈래예요? 「네 갈래입니다」 네 갈래잖아요. 그렇지요?「예」
이렇게 볼 때 오늘날의 세계도 네 갈래로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편적 외적인 형과 하나님편적 내적인 형이 있고, 사탄편적 외적인 형과 사탄편적 내적 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이 세상의 끝날이 되면, 교차로시대가 되면 반드시 네 갈래 형태의 세계가 우리 눈앞에 알 수 있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때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고자 할 것이 아니라 죽고자 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럴 수 있겠어요?「예」
참은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을 때에 십자가를 지고 죽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곁에는 오른편 강도가 있었고 왼편 강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라바가 있었고 예수님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몇 갈래 입니까? 네 갈래지요. 그와 같은 입장에서도 네 갈래였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그 네 갈래의 사람들이 예수를 중심삼고 종적으로 하나되고 횡적으로 하나가 되게 되면 세계는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될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와 바라바가 하나될 수 있어요? 공산세계와 민주세계가 하나될 수 있어요? 우익과 좌익이 하나될 수 있어요? 무신론과 유신론이 하나될 수 있어요? 이들이 하나되는 날 세계는 통일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진리의 본체요, 참사람으로 왔습니다. 그 예수는 어떤 존재냐 하면 진리의 실체를 대신한 세계적 대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중심삼고 네 갈래의 형이 있는 것입니다. 오른편 강도형의 세계도 있고 왼편 강도형의 세계도 있고 바라바형의 세계도 있고 예수형의 세계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어떤 자리에서 죽었느냐? 그런 교차로에서 죽었던 것입니다. 그 교차로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좌익과 우익은 어디서부터 시작됐느냐면 왼편 강도와 오른편 강도에서 부터입니다. 거기서부터 세계적으로 좌익세계와 우익세계가 나타난 것입니다. 오른편 강도가 왼편 강도를 비웃었나요, 왼편 강도가 오른편 강도를 비웃었나요? 왼편 강도가 오른편 강도를 비웃었지요. 그래서 공산세 계가 하나님편을 대하여 비난하고 비소하는 것입니다. 좌익이라는 말을 어디서 갖다 붙였느냐면 여기서부터입니다. 그렇게 심은 거예요. 그렇게 심은 것은 그렇게 열매맺게 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좌익이 된 것입니다.
우익은 무엇이냐 하면 민주세계입니다. 하늘편이예요. '야, 죄지은 녀석아, 우리는 죽어도 되지만 이분은 죽어서는 안 된다' 하고 변명했던 사람이 오른편 강도입니다. 그 오른편 강도와 같이 하늘편을 변명하는 패들이 모여서 이룬 세계가 민주세계인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그 다음에 남아진 것이 무엇이냐? 두 패입니다. 아무리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 같은 무리가 나오더라도 그들은 예수 자신의 뜻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자신이 뜻을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바라바가 있었지요. 바라바는 누구냐 하면 살인 강도입니다, 흉악한 범죄자예요. 그런 그가 혜택을 받았던 것입니다. 예수가 죽는 대신에 바라바가 살았다는 것입니다. 진짜가 죽는 바람에 가짜가 진짜의 자리로 들어가 득세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공산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좌익은 외적이요 바라바는 내적입니다. 하나님편을 중심삼고 볼 때는 우익이 외적이고 예수는 내적이지요. 이렇게 네 갈래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상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바라바권이 회회교입니다. 회회교는 구약 성경을 본따서 자기들의 교리를 만들어 가지고 기독교를 극히 반대하는 패입니다. 회회교는 알라신과 코란경을 믿지 않으려면 칼을 받으라는 거지요? 그렇지만 예수는 어때요? 그와 반대지요? 예수는 '너희를 살리기 위해 나는 죽는다'고 했잖아요? 반대지요?
그러면 끝날에는 어떻게 되느냐? 사탄편의 외적인 나라와 내적인 나라가 합할 때가 오는 것이요, 하나님편의 외적인 나라와 내적인 나라가 합하는 때가 틀림없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사조는 지금까지 그 곳을 향하여 진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그 외적인 형이 공산세계요, 내적인 형이 회회교권입니다. 이 둘은 본질적으로 화합할 수 있는 내용을 충분히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소련 공산당과 회회교 국가가 화합하여 민주세계와 기독교를 반대할 가능성이 백 퍼센트 농후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민주세계는 무엇을 찾아가야 되느냐? 아랍권, 회회교권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낫세르의 세력이 커 가고 있는데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호출 명령을 내린 거예요. 그렇게 된 것입니다. 민주세계 제일의 원수가 누구냐? 좌익인 동시에 회회교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지금 회회교권에 선교사를 못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는 민주세계의 사상적 중심이 되는 기독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완전히 통일되어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세계가 교차로의 시대권에 왔습니까, 안 왔습니까?「왔습니다」 이런 교차로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하면 아버지 어머니를 중심삼고 시작되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중심삼고 볼 때 어머니도 안팎의 사람이 있습니다. 속 사람과 바깥 사람이 있지요. 「예」 사탄을 중심삼고 보면 바깥 사람은 사탄의 무대입니다. 외적인 몸이 사탄의 무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양심은 하나님의 무대요, 그 양심을 무대로 하여 우주적인 하나님의 본체가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몸 마음이 분립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 몸과 본능이 좋아하는 내적인 힘이 하나되고, 내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되어 안팎으로 완전히 하나 되어야 됩니다. 몸과 마음이 절대적으로 하나되면 하나님도 사탄도 손을 댈래야 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통일적인 사람이 되면 교차로에서 죽어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수습하여 딱 버티고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교차로에서도 자기가 가고픈 곳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은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되어 있어요?「안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고 싶지요?「예」 그런데 그렇게 되기가 얼마나 힘드느냐? 역사를 이겨야 되고, 인류를 이겨야 되고, 천지의 수난길을 다 거쳐 이겨야 하고, 천지의 행복권을 다 차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아까 말하던 성서 얘기로 돌아갑시다. 성서가 제일 좋은 책이라면 그 책이 인간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차로에 가서야 비로소 해결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교차로가 있어야 되고, 세계적인 교차로가 있어야 됩니다. 가인 아벨이 교차로에서 만날 수 있는 개인적인 시대, 세계적인 시대가 우리의 눈앞에 전개되는 때가 되면 개인적인 끝날이요, 세계적인 끝날이 온 줄 알아야 됩니다. 그때가 어느때냐? 천년 전이냐, 지금이냐?「지금입니다」 그런 교차로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여러분 발벗고 나서서 목숨을 내놓고 한번 해보고 싶어요?「예」 정말 그래요?「예」 해보고 싶어요, 안싶어요?「해보고 싶습니다」 어디 해보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정말그래요?「예」
여자들이 남자들한테 이기겠어요? 십리만 뛰어도 오리나 떨어질 텐데, 뭐. 그러니까, 여자들은 했댔자 이기지도 못할 테니까 후퇴하라구요. 여자들도 하라면 할래요? 여자들은 몸으로는 남자들보다 못 뛰지만 마음으로는 몇 배, 몇백 배 이긴다구요. 그렇지요?「예」 그러니 마음으로는 져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을 봅시다. 성경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 하면, 몸의 사람과 마음의 사람을 '이놈아' 하고 때려 가지고 합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몸의 사람과 마음의 사람의 간격을 좁혀 나가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만 얘기할까요? 그만 하고 말지요?「아니요」 아, 나 배고파 죽겠다구. (웃음) 괜찮아요?「예」 이 자리에는 이 말씀을 듣기 위하여 십리 길 천리 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는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남해 지방에서 걸어온 패들이 있는 것을 내가 안다구요. 그러니 '며칠씩 걸어왔는데 말씀이 뭐고…. 아이구, 본부교회에 가게 되면 좋은 자리에서 쌀밥을 배부르게 먹고 기분 좋게 잠잘 줄 알았는데 아이구, 이 신세가 뭐야' (웃음)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걱정하지 말아요. 아무리 신세를 망쳤더라도 여기에 이런 일을 성사시킬 수 있는 기준이 있으니 천지에 행복의 싹이 트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성경이 제일 좋은 책이라면 무슨 일을 해야 되느냐? 몸의 사람과 마음의 사람을 하나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되기 위해서는 자꾸 내려가야 됩니다. 그러니 자꾸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세계에서부터 나라를 지나고, 나라에서부터 민족을 지나고, 민족에서부터 종족을 지나고, 종족에서부터 가정을 지나, 가정에서부터 어머니 뱃속을 통해 가지고 아버지 뱃속으로 치고 들어가야 합니다. (웃음) 그런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일을 하는 데 가담하면 좋겠어요?「예」
앞으로는 이 타락한 세계를 잘라 버리고 타락한 국가도 잘라 버려야 합니다. 이것을 잘라 버릴 때는 피가 나고 별의별 요지경이 다 벌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와 국가를 자르고 나면 개인을 자를 때는 피나고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젊은 사람들은 자극적인 말을 좋아하기 때문에 선생님도 표정을 이렇게 짓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과 여러분들이 이렇게 만난 것이 몇십 년만의 인연 끝에 이루어진 것인데, 일생에 처음 갖는 만남일지도 모르는 귀한 인연인데 한번 만났다가 그냥 잊어버리면 되겠어요? '아! 그때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말씀을 일생 동안 잊지 못하 겠다. 죽어도 못 잊겠다. 통일교회를 배반하려고 해도 선생님의 그때 그말씀이 생각나서 배반을 못 하겠다'라고 할 수 있는 자극을 남겨 주기 위해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본래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예요. 알겠어요?「예」
인간 조상 아담 가정에서 누가 태어났다고요? 가인과 아벨이 태어났습니다. 가인이 형이고 아벨이 동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형이 동생 되고 동생이 형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반대예요. 순리예요? 동생이 형이 될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절대로 될 수 없지요. 그렇지만 구원섭리에서는 그것이 절대로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있다는 거예요?「있다는 겁니다」 억지이지요? 동생이. 형님을 대하여 형님 노릇 하지 말고 동생에 굴복하라고 할 수 있어요? 동생이 밥 먹고 있는 형에게 '형아 이리 와, 저리 가' 할 수 있어요?
여러분, 흥부와 놀부의 얘기를 알지요? 흥부가 형이예요. 놀부가 형이예요?「놀부요」 놀부가 흥부에게 '야, 내려와, 이리 와' 이럴 수는 있지만, 흥부가 놀부에게 '야, 이리 와?' 이럴 수 있어요?「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필이면 왜 세상에서 제일 나쁜 일을 하게 되느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면 여러분은 어떻게 되느냐? 인류의 조상부터 몇천 대 계승한 손자들이 있을 것인데, 끝날에는 몇천 대 할아버지가 몇천 대 손자 앞에 몇천 대의 조상이 아니라 몇천 대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처음 된다는 말이 있지요? 이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이 되고, 아들이 아버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웃음) 아들이 아버지에게 인사하는 것이 원칙인데 그때에는 아버지가 곤룡포를 입고 있는 아들에게 인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천지개벽입니다. 그때가 천지개벽이 벌어지는 때입니다. 세상에 있는 놀음을 하는 것은 천지개벽이 아니지요? 그때는 왼눈이 바른눈이 되고 바른눈이 왼눈이 되고, 왼코가 바른코가 되고 바른코가 왼코가 되고, 왼손이 바른손이 되고 바른손이 왼손이 된다는 겁니다. 밥을 먹는 데도 이렇게 (몸짓을 하심) 먹어야 할 텐데 거꾸로 들고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부가 거꾸로예요. (웃음) 전부가 거꾸로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잘된 세상입니까, 잘못된 세상입니까?「잘못된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냥 놔두고 싶어요, 한번 뒤집고 싶어요?「뒤집고 싶습니다」 한번 뒤집어야 되겠지요?「예」 그러려면 밑창으로 내려가야 됩니다.
뒤집는데 아버지는 아버지끼리 아들은 아들끼리 뒤집는 것이 뒤집는 거예요? 아버지들은 아들들을 향해 '우리들은 위에서 뒤집을 테니 너희들은 아래에서 뒤집을래' 할지 모르지만 아들들은 '에이 모르겠다. 아버지들이 내려가소' 할 거란 말예요. (웃음) 구시대와 신시대는 다르지요? 구시대 사람들이 신시대는 물러가라고 하겠어요? 신시대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이 구시대는 물러가라고 하겠어요? 요즘 귀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들이 나이 많은 사람들한테 구시대라고, 세대가 다르다고 주장하지요?
그러면 누가 새시대를 좋아해요? 다른 시대를 좋아하는 패가 젊은이들이예요, 늙은이들이예요?「젊은이요」 젊은 사람들인데 그 젊은 사람들 가운데는 악한 사람이 있고 선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참된 젊은 세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된 젊은 세대는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합니다. 시종여일해야 돼요. 참이 일본에 가서는 악이고 한국에 와서는 참이 될 수 있어요? 원수의 나라에 가서는 악이 되고 자기 나라에 와서는 참이 되는 거예요?「아닙니다」 참은 천국에 들어가도 참이요, 지옥에 들어가도 참인 것입니다. 금은 용광로에 들어가도 변하지 않습니다. 돌이나 철과 함께 용광로에 있을 때 다 같아 보이지만 녹아내리게 될 때는 금은 금대로 나오고 돌은 돌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금이 될 거예요, 돌이 될 거예요?「금이요」 그래 여러분은 진짜예요, 가짜예요?「진짜요」 진짜만이 참이라는 것입니다. 진짜는 변할 줄 몰라야 되는 것입니다.
젊은 세대 가운데에는 진짜 젊은 세대가 있고 가짜 젊은 세대가 있는데 오늘 여기에 모인 통일교회 패들은 진짜 참된 젊은 세대가 되기 위해서 모였어요, 가짜 젊은 세대가 되기 위해서 모였어요?「진짜요」 진짜요? (웃음)
그 진짜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되느냐? 눈에서부터요?「마음에서부터요」 마음에서부터, 생명에서부터 진짜가 시작되어야 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진짜예요? 알고 보니 돌감람나무지요? 기분 나쁘게 가짜 중에서도 왕가짜라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나빠요」 얼마나 나빠요? 죽는 것보다 더 나빠야 됩니다. 그래야 살아날 수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자 봅시다. 성경이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 가인, 아벨시대에 '가인아, 너는 아벨에게 굴복할지어다'라고 한 것은 누구의 명령이예요? 우주의 주인이신 참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니 참된 하나님 앞에 하나되어야 되겠어요, 안 되어야 되겠어요? 「되어야 됩니다」 하나되지 않으면 망하는 것이요, 하나되면 흥하는 것입니다. 하나되기 위해 노력하면 흥하는 것이요, 그것을 반대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가인 입장의 사람이 흥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동생을 모시고 나가야 됩니다. 알겠나요? 누나가 동생을 모시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모시고, 어머니 아버지가 아들을 모시고, 형이 동생을 모시고, 누나가 동생을 모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겠어요? 그럴 수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선생이 제자를 모시고 살 수 있어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그것은 죽는 것보다 더 힘든 거예요. 죽는 것보다 더 힘이 든다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그것이 참된 하나님의 명령이라 할 때는 해야 되겠어요, 안해야 되겠어요?「해야 됩니다」 자기의 체면도, 위신도, 전통도, 습관도 모두 버려야 됩니다. 그런 요건이 남아 있을 때는 반드시 스톱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구원섭리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인이 아벨한테 굴복해야 할텐데, 반대로 형이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아벨을 부려먹고 죽인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성근성이예요. 그렇지요? 그래서 다시 그 놀음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하다가 실패했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계속돼 나오는 것입니다.
노아를 중심삼고 그런 놀음을 했지만 실패하고, 아브라함 시대에 가서 그런 문제를 중심삼고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누구의 명령에 의해서 바꿔치기하는 것입니까? 참된 하나님의 명령을 중심삼고 바꿔치기해야 하는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야곱의 형이 누구입니까? 「에서요」 이것이 점점점 가까와집니다. 가인과 아벨시대에는 형제시대였기 때문에 형제를 바꿔치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 다음 점점 가까와져서 에서와 야곱은 형제는 형제인데 쌍태로 태어났습니다. 쌍동이 형제라는 거예요. 그렇지요? 쌍동이 형제는 바꿔치기하는 데 조금 낫습니다. 쌍동이끼리는 형이 울게 되면 동생도 슬퍼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말들어 봤어요?「예」 형이 기쁜 일이 있으면 동생도 왠지 모르게 기뻐진다는 것입니다. 통하는 소질이 많다는 것입니다. 나는 쌍동이가 아니어서 모르겠지만 쌍동이인 사람은 알거라구요. 그렇다는 거예요. 형님이 길을 가다가 다리가 부러지면 동생도 다리가 부러지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거라구요. 하나될 수 있는 소질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거예요.
형제로 태어나 가지고 형과 동생의 자리가 확실한 입장에서 바꿔치기 하는 것과, 감정도 같고 생활수준도 비슷한 쌍동이를 바꿔치기하는 것중에 어느 쪽이 더 쉬울 것 같아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지혜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쉬운 방법을 통해서 바꿔치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야곱은 그 어머니 리브가와 속닥속닥해 가지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지요? 축복을 받을 때 강제로 받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에서가 사냥갔다 돌아와서 출출할 때 마침 야곱이 팥죽을 끓이고 있으니까,'야, 야곱아 팥죽 한 그릇 다오'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예. 형님, 형님에게 이 팥죽을 주고 싶기는 주고 싶은데 조건이 있습니다' 했지요. 에서가 다시 '무슨 조건이냐'하니 '형님이 될 수 있는 장자의 권리를 나에게 파소' 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배가 고픈 에서는 '장자권이 뭐 그렇게 중요하냐. 옛다 가져라'하고 철석같이 약속을 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에서는 팥죽하고 떡 한두 개를 좋다구나 하고 먹고 야곱은 좋다구나 하고 받은 것입니다. 약속을 했으니 실천을 해야지요.
약속을 실천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약속을 실천하는 것은 죄가 아니예요.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이고, 그것을 도와주지 않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그러니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도록 도와준 것이 나쁜 것이예요, 좋은 것이예요?「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던 거예요.
야곱은 어머니와 슬쩍 해 가지고 양털을 덮고 축복을 받아 장자의 직분, 장자의 권한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니 에서의 기분이 나빴겠어요, 좋았겠어요? 나빴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때려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면 누구나 야곱을 나쁘다고 하지 에서를 나쁘다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야곱은 뜻을 중심삼고 세상에 없는 놀음을 한 거예요. 그렇지요? 그 일을 하고 나서 양심의 가책을 받았어요? 아닙니다. 당당했던 것입니다.
그런 야곱이 에서에게 쫓기어 하란에 가서 21년 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돌아올 때, 에서가 죽이려 하자 와이로(わいろ)를 써 가면서- 와이로는 그럴 때 써먹는 거라구요- 사바사바 해 가지고 '나의 종들은 모두 형님의 종이요, 내가 가진 재산도 내 재산이 아니라 모두 형님의 재산입니다. 형님이 알아보시는 이 모든 것을 바치니 받으시고 내가 21년 동안 형님을 몰라 뵈었던 것을 오늘로 다 용서해 주시오' 했던 것입니다. 자기를 죽일까봐 그 종들을 앞에 세워 가지고 말예요. 그거 얄밉지요?
또, 그가 고향이 가까운 얍복강가에서 아침을 기다릴 때 천사가 나타나 가지고 밤새껏 씨름을 했지요. 그때 야곱이 어떻게 했나요?'내 축복을 빼앗아 가려 한다면 죽더라도 이것을 놓칠 수 없다. 네가 천사라면 너도 나를 축복하라. 그러지 않으면 이 손을 놓지 않겠다'라고 하며 밤새껏 손을 놓지 않은 야곱을 생각해 보세요. 그 모양이 어땠겠어요? 환도뼈가 부러져 허리를 못 쓰게 되어 끌려 다니면서도 천사장을 잡은 그 손을 놓았어요, 안 놓았어요? 안 놓았던 것입니다. '이놈의 손아, 절대 놓으면 안된다'고 하며 생사 이상의 강한 마음을 가지고 손을 놓지 않은 것입니다.
그때 만일, 손이 미끄러졌으면 어땠을까요? 손을 놓칠 우려가 있으면 입으로 물고, 발로 감아 가지고라도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었을 것입니다. 그런 야곱을 가만히 보니까 대단한 녀석이거든요. 야곱은 '네가 나를 죽이려고? 환도뼈가 부러졌더라도 안 놓는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축복해 주기 전에는 안 놓는다고 한 것입니다. 악착 같지요? 악착 반대가 뭔가요? 슬쩍인가요? 슬쩍한 거예요, 악착같이 한거예요? 얼마나 악착같았느냐? 죽을 정도로 악착같았다는 것입니다. 끝내 그 손을 놓았어요, 안 놓았어요? 안 놓았어요. '요놈아, 환도뼈도 부러졌으니 내가 죽을 바에는 원수를 갚고 죽겠다'고 하며 달라붙었던 것입니다.
원수를 갚는데 발길로 찼겠어요? 손으로 그저 살뭉텅이든 뭐든, 배 껍질이든 뭐든 악착같이 잡고 늘어졌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게 악착같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악착같았겠어요? 그 모양이 어떠했을까요? 생각해 보세요. 입이 찌그러지고 코가 찌그러지고 눈이 찌그러지고 다 찌그러졌을 것입니다. 그러기를 몇 시간? 밤새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지독하지요? 그러니까, 천사도 같이 죽기는 싫으니까 할 수 없이 야곱에게 '그래 내가 너한테 졌다. 그러니 네 소원인 축복을 해주마'했던 것입니다.
뒤에 있는 사람들, 선생님 말이 들려요? 안 들리면 섭섭하겠지만, 늦게 왔으니 할수없지요. 정말로 알고 싶거든. 먼저 와서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아벨님이여, 나는 가인이니 용서하시요'하고 꽉 매달려서 '내게 선생님이 하신 말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못 갑니다'할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비로소 쌍동이의 동생이 이겼다는 것입니다. 이겼지요? 그러니 천지가 뒤집어졌어요, 안 뒤집어졌어요? 뒤집어지기는 뒤집어졌는데 야곱과 에서가 다 큰 다음에 뒤집어졌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겼지만 어느때에 이겼느냐 하면 다 커 가지고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참소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비록 이겼지만 어릴 때에는 이기지 못하지 않았느냐. 그렇기 때문에 야곱이 에서를 이겼던 그 나이 이하인 사람들은 내가 지배할 수 있다'고 참소조건을 걸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 악착같은 노고에도 불구하고 교활한 사탄의 참소조건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막기 위한 섭리를 다시 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쌍태로 태어났으되 40대에 싸움을 시작해 가지고 나이가 많아서 굴복시켰으니 그 이전은 아직까지 사탄한테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이 에서를 이겼지만 어린 연령권에서 굴복시키지는 못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쌍태를 중심삼고 다시 그 조건을 청산짓는 섭리를 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 조건을 청산짓는 데는 어디에서 청산지어야 되느냐 하면 이 땅에 나와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뱃속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승리권을 가졌기 때문에 그 승리의 터전을 중심삼고 복중에서 승리할 수 있는 야곱의 후계자를 태어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전통과 사상을 이어받은 여성을 찾아 그 복중에서부터 태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바로 다말을 통해서 태어난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다말을 알지요? 다말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요?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유다의 며느리예요. 유다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두 아들이 다 죽었습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형이 계대를 잇지 못하고 죽게 되면 형이 데리고 살던 그 아줌마를 동생이 데리고 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아기를 낳게 되면 먼저 낳은 아들은 형님의 아들로, 그리고 다음에 낳은 아들을 자기의 아들로 삼게 되어 있었어요. (웃음) 왜 웃어요? 왜 웃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그렇게 하라면 하겠어요. 못 하겠어요?「못 하겠습니다」 못 하면 복귀 안 되지요. 못 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다면 그런 놀음 하겠어요, 못 하겠어요?「하겠습니다」 그러면 아예 처음부터 하겠다고 대답하지 왜 못 하겠다고 대답했어요?
다말이 가만히 보니까 세째 아들은 아직 어린아이인데 이스라엘의 계대를 이어야 할 후손의 어미가 될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히거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기생으로 분장을 해 가지고 시아버지가 농사를 짓기 위하여 왔다갔다하는 길에서 기다리다가 시아버지를 속여 가지고 관계를 가져서 문제가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이예요, 비정상적이예요?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서는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렇게 된 거예요.
그리하여 과부가 떡 임신을 한 것입니다. 그때 당시의 법은 남편 없는 사람이나 과부가 애기를 가지면 돌로 때려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말은 시아버지와 관계를 가질 때 약조물로 도장을 받아 놓았던 것입니다. 그 이후 '다말이 바람을 피워 가지고 애기를 가져서 배가 불렀더라'고 동네방네에 소문이 났지요. 그래서 다말을 죽이기 위하여 고문을 하면서 상대가 누구냐고 하니 '누군지는 모르나 이 도장의 주인과 상관하여 잉태하였나이다'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때 유다가 그 마을의 족장이었던 모양입니다. 그 유다가 판결을 내리려고 보니 틀림없이 자기 도장이거든요. 그와 동시에 과거의 일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자기 애기를 가진 것이 분명하거든요. 그래서 '아이코. 안 되겠다'해 가지고 죽을 자리를 피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이렇게 얄궂은 것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것이 나쁜 일이예요, 좋은 일이예요? 「나쁜 일입니다」 나쁜 일이 왜 성경에 있습니까?
본래는 세라가 형인데 베레스가 밀치고 나온 것입니다. 베레스란 '밀치고 나왔다'는 뜻입니다.
다말이 애기를 낳을 때 산파가 떡 기다리고 있는데 손이 먼저 쑥 나왔습니다. 그래서 산파가 그 손목에다 빨간 실을 매 놓았습니다. 그것도 역사라구요. 그런데 난데없이 동생이 먼저 나오려고 하는 형을 제쳐 버리곤 먼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중에서부터 동생인 베레스가 형 세라를 굴복시켜 동생이 아니라 당당히 형으로 태어났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형의 권한을 가지고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이 직접 주관할 수있는 시대권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베레스로 말미암아 유다 지파의 계대를 잇는 후손들을 하나님이 직접 주관한다고 해도 사탄이 참소할 아무런 요인이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역사적인 바꿔치기 놀음을 누가 했느냐면, 베레스가 다말의 뱃속에서 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자기의 위신과 체면과 생사문제를 초월한 결의를 가지고 행동을 해서 천륜을 이어받은, 다말의 전통을 이어받은 여인이 있습니다.
마리아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체면과 위신과 모든 전통과 풍습을 넘어섰던 것입니다. 죽든지 살든지 한 길을 걸어갔던 여인, 다말의 심정을 이어받은 마리아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던 것입니다. 베레스와 세라 시대에는 쌍동이였지만 예수 시대에는 쌍동이가 되어서 싸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사가 동정녀인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기를 잉태할 것을 예고하게 되었는데, 그때 마리아는 '아이고 처녀가 아이를 낳으면 돌멩이 맞아 죽게 되어 있는데 그런 일을 어떻게 합니까?'라고 한 것이 아니라 '주의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던 것입니다. '뜻을 위해서는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뜻을 위해서라면 위신도 체면도 다 버리겠습니다'라고 했던 거예요. 그런 자리에서 마리아는 비로소 예수를 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요?
복중복귀시에 가인 아벨을 중심삼은 승리의 기반을 베레스가 세라를 이김으로 닦았기 때문에, 그 복중 승리의 터전 위에 예수가 새로운 아들로서 마리아의 복중에 잉태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마리아의 복중에 잉태된 예수는 다말이 승리한 전통적 기반 위에 잉태되었기 때문에, 베레스가 세라를 굴복시킨 승리의 터전 위에 잉태되었기 때문에 사탄이 마리아의 복중에 있는 예수를 대하여 '저것은 내 아들이다. 나하고 상관 있다'는 조건을 제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듯 승리한 전통의 터전 위에 탕감적 혈통의 내용을 결정짓고 오신 분은 한 분밖에 없었습니다. 복중에 혼자 있더라도 사탄이 저 것은 내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베레스와 세라 때는 사탄이 쌍동이 중 하나는 내 것이라고 했지요? 그렇지만 베레스의 승리의 터전 위에서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는 예수는 복중에 있더라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사탄이 참소할 아무런 조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복귀의 길은 승리권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예수는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던 것입니다. 이 땅 위의 한 여인의 배를 빌려 태어난 한 분 메시아 예수는 역사상에 없는 한 사람으로서 역사시대의 공자와 석가와 같은 사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잡다단한 내용을 거쳐 가지고 결정된 승리의 터전 위에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는 이 땅 위에 나면서부터 사탄이 참소할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지요? 이것은 선생님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 있는 말이라는 거예요.
예수는 잉태되면서부터 사탄과 인연이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러면 예수의 아버지가 있겠어요, 없겠어요?「있습니다」 여러분이 봤어요? 있을지도 모르지요? 이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이런 내용을 이 다음에 다 가르쳐 줄 거예요. 모든 사람들이 통일교회를 다 믿고 선생님이 여러분을 며느리로 삼고 사위로 삼을 수 있는 자리에 서거들랑 그때 가르쳐 주겠어요. 「지금 알고 싶습니다」 지금 알고 싶어요?「예」 지금 말해 주면 안 됩니다. 그래도 알고 싶어요?「예」 지금 가르쳐 주면 선생님의 모가지가 달아나는 데도 알고 싶어요?
역사과정에서 사탄의 혈통을 청산하고 하나님편의 대표자로 복중에서부터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고 이 땅 위에 태어난 사람이 누구라고요? 예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가 돌감람나무예요, 참감람나무예요?「참감람나무요」 비로소 역사상에 참감람나무가 생겨난 것입니다. 참감람나무가 땅 위에 심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돌감람나무들은 전부 참감람나무의 눈접을 붙이기 위해서 생명을 바쳐야 됩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예」
이것을 볼 때 아까 말한 제일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이냐? 돌감람나무가 직통으로 참감람나무로 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는 책이지요. 그것이 인간의 최고 소원이니 그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골자요, 본보기로 엮어 나온 내용을 기록한 책이 성경입니다. 그러니 성경이 인간에게 가장 나쁜 책이예요, 좋은 책이예요?「좋은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대로 살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몇 시예요? 이거 밥 먹을 시간이 자꾸 넘어가는데 슬쩍 하고 그만둘까요. 그러지 말까요? 대답하는 사람이 3분의 1도 안 되는구만. (웃음) 슬쩍 하고 말까요, 차근차근 그대로 할까요?「차근차근 해주세요」 저 뒤에 서는 대답하지 않는데? 아, 이거 슬쩍 하면 3분 이내에 끝낼 수 있습니다. 3분 이내에 끝내면 고대하던 밥님이 군림하신다 이거예요.(웃음) 이왕지사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합시다.
여러분들이 태어나고 보니 돌감람나무예요, 참감람나무예요?「돌감람나무입니다」 돌감람나무인 여러분이 접붙이는 데 있어서 늙었을 때 접붙여야 되겠어요, 젊었을 때 접붙여야 되겠어요?「젊었을 때요」 젊었을 때중 어느때요? 소년시대에? 아니면 시집 장가 가 가지고 접붙일래요, 숫것으로 접붙일래요? 우리 노골적으로 까놓고 얘기해 보자구요. 시집 장가 가서 접붙일래요, 알뜰하고 살뜰하고 묘한 숫것으로 접붙일래요? 숫것으로 접붙여야 합니다. 수컷이 아닙니다. 숫것이예요. 이 숫것이란 숫놈이 아닙니다. 숫것이 나이가 많은 쪽에 갈수록 많이 있어요?「없습니다」80대에 숫것이 있어요?「없습니다」 절대로 있을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독신으로 늙어 죽겠다고 공동묘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여자를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 숫것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시집, 장가를 간 사람이 숫것입니까, 아닙니까?「아닙니다」 또, 처녀 총각이라도 '나는 당신 아니면 안 되겠소. 나는 당신을 위해서 태어났소' 이런 마음을 가진 것이 숫것입니까, 아닙니까? 연애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이 숫것입니까,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어느때에 숫것에 접붙이는 것이 좋겠어요? 숫처녀 숫총각 때 접붙여야 되겠어요, 숫처녀 숫총각이 아닐 때 접붙여야 되겠어요? 얘기해 보세요. 숫처녀 숫총각 때 접붙일래요, 안 붙일래요? 숫총각이 못 되면 못 될수록 접붙여 가지고 살 비율이 점점 적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모를 때, 청소년기에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철모를 때 접붙일 수 있어요? 그럴 수 없지만, 타락으로 인하여 사탄의 혈통을 받고 태어났지만, 딴 핏줄을 받아 났지만 그래도 접붙일 수 있는 제일 좋은 젊은 시대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지요?
열 살 이전까지 참된 시대가 없었다면, 참된 유아시대가 없었다면 '오시는 주님의 유아시대가 내가 살아온 유아시대와 마찬가지다'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바꿔치라는 거예요. 바꿔칠 수 있겠지요? 팔십 살이 되어서 바꾸는 것보다 열 살쯤에서 바꾸는 것이 쉽겠지요?
가인과 아벨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오시는 주님 앞에 절대적으로 복종 굴복할 수 있는 순정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자기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시는 주님의 사상을 자기의 중심으로 하고 자기의 모든 소망과 이상(理想)을 버리고 오시는 주님의 소망과 이상을 자기의 이상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전부 바꿔쳐야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자기는 없어지고 새로운 주님으로 바꾸어지는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접붙이는 놀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젊은 세대에 있는 것을 보람으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사탄세계의 젊은 세대와 통일교회의 참된 젊은 세대는 어떻게 다르냐? 출발, 즉 태어나기를 다른 자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낳아 준 아버지 어머니보다 참된 아버지 어머니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참부모라는 이름을 알았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참부모라는 말을 알았어요, 몰랐어요?「알았습니다」 교과서에 그런 말이 있어요, 없어요? 옛날에, 통일교회가 나오기 전에 그런 말이 있었어요, 없었어요?「없습니다」 간단하고 그럴 듯한 말인데 그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말을 알았다가는 벌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부모라는 말은 통일교회에서부터' 이렇게 된 것입니다. 참된 자녀라는 말은 통일교회에서부터! 알겠어요? 참된 가정이라는 말, 참된 종족이라는 말, 참된 민족이라는 말도 통일교회에서부터! 그렇지요? 또 참된 국가, 참된 세계, 참된 천주, 참된 하나님, 참된 하나님의 사랑이란 말도 통일교회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참된 것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교회입니다. 그래요?「예」
그러므로 해쭉 웃는 것도 참된 웃음이기 때문에 세상 웃음과 내용이 다른 웃음이고, 살짝쌀짝 걸어가는 걸음도 세상 사람들과 다른 걸음이요, 보고 듣고 하는 것도 세상 사람과 전부 다르다는 것입니다. 밥을 먹어도 '아이구 배고프다' 하며 게걸병이 들어 가지고 먹는 것과 같이 덥석덥석 먹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밥을 먹는 것은 나를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먹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달라야 된다는 거예요. '나는 참된 이상세계를 위해서 태어났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전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가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그 아버지 어머니는 참된 아버지 어머니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 아버지 어머니를 참된 아버지 어머니와 바꿔야 합니다. 또 여러분에게 참된 형제가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참된 형제가 나왔다면 참된 형제를 맞기 위해 자기의 사랑하는 형제를 버려야 됩니다. 그리고 참된 가정이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없으니 참된 가정을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가정을 버려야 됩니다. 참된 나라가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없으니 참된 나라를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나라를 버려야 됩니다. 또 참된 세계가 없기 때문에 참된 세계를 찾기 위해 거짓된 세계를 버려야 됩니다. 참된 젊은 세대가 올 수 있다면 그 참된 젊은 세대를 위하여 거짓된 젊은 세대의 모든 욕망과 욕구를 전부 다 버려야 됩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느냐? 몸뚱이를 중심삼은 것은 거짓이요, 마음을 중심삼은 것은 참에 가까운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몸뚱이를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 무엇이냐? 사탄입니다. 사탄이 사탄된 동기가 무엇이냐? 자기를 위주로 하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사탄된 동기요, 타락의 동기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입장을 위주로 해야 됩니다.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공적(公的)인 일을 위주로 사는 사람입니다. 사적(私的)인 일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공적인 것은 참에 속하는 것이요, 사적인 것은 악에 속한다는 거예요. 육(肉)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악이요,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은 선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그래서 하나님의 본향을 향해서 마음이 원하는 대로 일생 동안 죽기를 각오하고 가야 할 싸움의 길이 복귀노정 위에, 여러분의 전생애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누가 해결지어야 되느냐? 스승이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해결해야 됩니다. 가르쳐 주기는 스승이 가르쳐 주지만 행동은 여러분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원리는 이것을 가르쳐 주고 여러분은 이대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가는 데는 살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죽는 패요, 나라를 위해서 죽는 패요, 가정을 위해 죽는 패요, 개인을 위해 죽는 패가 되어야 됩니다. 그런 결정적인 자리에 서야 돼요. 그러려면 죽을 고비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죽음길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죽어서 넘어섰다는 승리의 자리에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성경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가르쳐 준 것입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가르쳐 준거예요. 바꿔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수의 열두 제자를 중심삼고 볼 때, 그들은 예수가 사지에 있을 때 예수의 죽음길을 가로막아 가지고 절대 죽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백번 천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를 죽게 해서는 안 되는 입장에 있었는데, 예수를 죽이고 도망을 갔으니 천지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괴수들이 된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오시는 주님에게 수난길이 있다면 그것을 가인이 책임져야 되겠어요, 안 져야 되겠어요? 매를 맞아야 하는 길이 있을 때, 아벨을 매 맞히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는 구원을 못 받는 것입니다.
아벨이 매를 맞기 전에 내가 맞아야 되고, 아벨이 죽을 입장에 있으면 내가 죽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하여 젊은 시대에 참을 대신하여, 모든 선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공적인 생활이념을 가지고 나가야만 통일의 개인이 찾아지는 것이요, 통일의 가정이 찾아지는 것이요, 통일의 종족이 찾아지는 것이요, 통일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적 사상을 넘어서지 못하면 악의 세계에 그냥 그대로 남아지는 것이요, 청산된 참된 선의 세계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참된 젊은 세대와 같은 청춘시대에서부터 하나님을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춘기를 맞이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청년기를 맞이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장년기를 맞이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노년기를 맞이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죽었다고 하는 입장에 서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복귀노정에 있어서 예수는 복중에서부터 그런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일을 안 했지만 그런 심정적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선생님이 그런 일을 하고, 혹은 오시는 주님이 그런 일을 한다면 자기의 생애와 더불어 자기의 비참한 역사적인 내용과 더불어 그것을 백 퍼센트 그냥 그대로 체험할 수 있는 행로를 거쳐 가지고 접붙이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참된 젊은 세대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 앞에 말씀드렸습니다.
이 참된 젊은 세대가 나오지 않으면 참된 장년 세대가 나오지 않는 것이요, 참된 장년 세대가 나오지 않으면 참된 노년 세대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시대에서부터 참으로 시작하여 장년, 노년 시대를 거쳐 참으로 남아질 수 있고, 나라와 세계가 참의 환경이 되면 그때가 바로 지상의 천국이요,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이루어진 복귀의 천국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기억해 둬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을 해야 됩니다. 결론은 희생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열의 가치를 원하면 열 이상의 희생을 해야 되고, 백의 가치를 원하면 백 이상의 희생을 해야 되고, 천의 가치를 원하면 천 이상의 희생을 해야 됩니다. 희생을 하기 위해 제일 많이 노력한 사람이 제일 많은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사랑하는 아버님, 전국에 널려 있던 어린 소년 소녀들이 이 자리에 모였사옵니다. 이들이 이 자리를 그려 온 것은 오늘 이 자체에서 머무르기 위한 것이 아니옵고 내일의 참된 모습을 갖기 위해서였사옵니다. 참된 젊은 시대를 갖고 참된 청년 시대, 참된 장년 시대, 참된 노년 시대의 이 4시대를 갖추어 가지고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할수 있는 거룩한 길을 가기 위해서 나온 것이었사옵니다.
저희들 한 사람을 복귀하기 위해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눈물 흘린 하늘의 슬픔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저희들의 일생을 아버지 앞에 고이 바쳐 가지고 최고의 선의 승리의 기점을 이어받기 위하여 오늘도 싸우고 내일도 싸우고 희생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러한 길로 자진해 나갈 수 있는 무리들이 되기 위해서 여기에 모인 어린 청소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상에서는 구시대와 신시대를 논하고 있지만, 그 신시대 가운데는 참된 젊은 세대와 거짓된 젊은 세대가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오늘날 거짓된 젊은 세대는 제일 귀한 것을 함부로 유린하지만, 참된 젊은 세대는 세상에 있어서 제일 거룩한 것을 지극히 아끼고 지극히 보호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것이 순종을 중심삼은 절개라는 것을 이제 깨닫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젊은 마음에 피어오르는 심정으로 아버지와 더불어 뒤넘이쳐 승리의 인연을 차지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싸워서 남아지는 무리가 되겠다고 각자의 마음 깊이 결의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어야 되겠사오니, 그런 결의를 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사악한 세상 위에 그려지는 모든 것이 우리를 행복의 문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올무와 사망의 함정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자리에 모인 개체들은 변하지 않는 참된 개체의 모습이 되기를 결심하여 사회의 어떤 곳에 나가더라도 물들지 않고 영향받지 않는 참된 젊은이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참된 젊은이가 되지 않으면 참된 청년과 참된 장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복된 이 시대와 계절의 은사를 감사히 받아 아버지 앞에 고이 바치고 돌려드리는 데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에 총회를 통하여 되어진 모든 안팎의 전부를 아버지께서 맡으시옵고, 금번 기회로 말미암아 중,고등학교를 중심삼은 젊은 세대에 새로운 봉화를 붙여서 삼천리 반도 방방곡곡에 새로운 하늘의 불길을 붙여 내겠다고 결의하고 돌아가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난의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고빗길과 수난의 길을 아버지 홀로 참으면서 넘으시고 길을 닦아 나오신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 일대(-代)에 무엇이든 못 하겠느냐 하는 결심을 해야 되겠습니다. 일대에 전부 청산지을 수 있는 새로운 결의를 젊은 세대에서부터 하지 않으면 앞으로 다가오는 장년과 노년시대에 있어서 승리의 목적권까지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번 기간에 새롭고 중대한 결의와 결심을 하는 젊은이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저희들이 이와 같이 만나서 말씀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신 은사에 감사드리며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전도 나가라고 명령을 했더니 전도도 나가기 전에 두 사람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것은 서로 전도를 안 나가겠다는 싸움이예요, 나가겠다는 싸움이예요?「나가겠다는 싸움입니다」 그것이 좋은 싸움이예요, 나쁜 싸움이예요?「좋은 싸움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싸움을 한번 해보았어요? 두 사람이 서로 싸움을 하다가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서로 자기가 죽을 자리에 나가겠다고 싸움을 하다가 어떻게 됐다구요? 죽었다는 겁니다. 때리다 보니, 눈두덩이를 맞고 죽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리려다가 참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살인을 해 버렸다는 거예요.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놈의 자식아. 슬슬 의논해서 가지 서로 먼저 가겠다고 사람을 죽여'라고 하시면서 심판대에 올려 놓고 목을 딱 잘라 버리시겠어요, 그냥 놔두시겠어요? 「그냥 놔두십니다」 저런 사람을 죽였는데 그냥 놔 둬요?
자, 그런 싸움은 좋은 싸움이예요, 나쁜 싸움이예요?「좋은 싸움입니다」 좋은 싸움인데, 그런 싸움을 하다가 사람을 죽인 것은 잘했어요, 못했어요?「잘했어요_I(웃음) 좋은 싸움이라면 결과적으로 사람을 죽였더라도 잘 죽였다고 해야지요? 그렇잖아요? (웃음)
죽은 사람은 안됐지만 그렇게 싸우다가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 사람을 잡아다가 벌을 줄 수 있는 형법이 없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왜 싸우다 사람을 죽였느냐? 서로가 먼저 죽을 사지에 가겠다고 밀치다가 죽었다고 할 때는 죽은 사람도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요, 죽인 사람도 망할 사람만은 아니라구요. 죽인 사람도 같이 복을 받을 수있는 길이 있으면 좋겠어요, 없으면 좋겠어요?「있으면 좋겠습니다」 있다는 거라구.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 집으로 돌아가다가 싸우지 말라고요. '통일교회에서 내가 제일 먼저 순교해야지. 내가 먼저 순교하려고 하는데 왜 네가 먼저 하려고 해! 너는 물러가' 이러면서 자기가 먼저 순교하겠다는 욕심을 품고 사람을 죽였다고 할 때, 그 사람은 법에 걸리겠어요, 안 걸리겠어요?「걸립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법에 걸린다구요. 전자의 경우와는 그 종류가 다릅니다. 전자의 경우는 선을 세우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한 것이지만, 이것은 자기가 일등하기 위해서 사람을 죽였다는 거예요. 종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하면, 학생 여러분들이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이런 문제를 가려 가지고 살아 나갈 줄 알아야만 망하지 않고 남아지는 무리가 되겠기 때문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은 참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끝까지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가야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런 결심을 갖고 있어요?「예」 갖고 있어요, 안 갖고 있어요?「갖고 있습니다」 그럼 그것을 믿어 달라구요, 알아 달라구요? 믿고 알아줄까요, 알고 믿어 줄까요?「알고 믿어 주십시오」 알기는 아는군요. 선생님이 알고 믿어 줄 테니 여러분 끝까지 가는 것은 틀림이 없지요?「예」 그렇다면 이제부터 선생님이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자, 참사람이 오는 데 있어서 좋은 길로 오면 좋겠어요. 나쁜 길로 오면 좋겠어요?「좋은 길로요」 만민이 다 좋은 길로 오기를 바랄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중학교 1학년 학생도 그걸 바랄 것이고, 고등학교 3학년 학생도 그걸 바랄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들도 그걸 바랄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나 다 참사람이 좋은 길로 오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참사람을 좋은 길에서 만나게 해주고 싶겠어요, 나쁜 길에서 만나게 해주고 싶겠어요?「좋은 길에서요」 좋은 길에서 만나게 해주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참사람을 좋은 길에서 만나게 해주시려면 누군가가 그 길을 개척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하루에 후다닥 불도저로 닦을 수 있는 길이라면 좋겠지만 그 길은 하루아침에 닦아지는 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개척해 나온 개척자, 선각자와 같은 선조들을 찾으면 그런 길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선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먼저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어요, 악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어요?「선한 사람요」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당당하게 자기만을 내세우는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까. 전체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이 선한 사람 입니까?「전체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시키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그것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다 잘 알고 있구만.
자기만을 내세우게 되면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됩니까, 고독단신이 됩니까?「고독단신이 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에게는 친구가 80명이 있더라도 한 사람에게 한 번씩 80번 자기를 내세우게 되면 80명 모두가 떨어져 나갑니다. 보따리를 싸 가지고 도망간다는 거예요. 어디로 가느냐? 자기만을 내세우는 녀석하고는 영원히 만나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만을 내세우는 사람은 고독단신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친구들 가운데서 좋은 친구라 하게 되면 어떤 친구가 좋은 친구입니까? 서로 만나게 되면'야 그것은 내 것이야, 나 줘' 이렇게 하는 친구가 좋은 친구죠? 그렇지요?「아닙니다」 왜 아니예요? 그렇게 하는 것은 공산당식이라구요.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은 내 것이다' 그런 친구가 좋은 친구죠? 「아니요」 아니긴 왜 아니예요? 얼마나 기분 좋은 거예요? 여러분도 그 편에 가깝다구요. 말은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상 그것이 좋지요? 그렇지 않아요?「아닙니다」
여러분 앞에 김으로 싼 밥을 담은 광주리가 있다고 합시다. 그 가운데에는 하얀 밥이 보이는 것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얀 밥이 보이는 것을 집을래요, 보이지 않는 것을 집을래요? (웃음) 솔직이 얘기하자구요. 하얀 밥이 나온 걸 집을래요, 안 나온 걸 집을래요?「하얀 밥이 보이지 않는 것이요」 그러면 새까만 것 중에서도 찌그러진 것을 집을래요, 찌그러지지 않은 것을 집을래요?「찌그러지지 않은 것이요」 점심 때가 되어 배가 무척 고파 이런 것을 열댓 개 먹어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모를 지경인데 김밥을 가만히 보니까 혹이 붙어 가지고 조금 더 큰 것이 있더라는 거예요. 그럼 여러분은 혹이 하나 더붙어 가지고 모양이 둥그렇지 않고 찌그러지고 튀어 나온 것을 집을래요, 모양이 둥그런 것을 집을래요?「튀어 나온 것을 집습니다」(웃음) 틀림 없이 큰 것을 집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예요, 나쁜 사람이예요? 자기를 위하는 사람이예요, 전체를 위하는 사람이예요?「자기를 위하는 사람입니다」 그럼 자기를 위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예요, 나쁜 사람이예요?「나쁜 사람입니다」 나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본바탕이 나쁜 바탕이라는 것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배고픈 것은 다 마찬가지인데 체면상 사정상 어떻게 내가 먼저 손을 댈 수 있나 하며 집어먹지 못하고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 남은 것을 집어먹는 사람과, 누가 먹을까봐 날쌔게 먼저 집어먹는 사람과 누가 조금 나은 사람입니까?「나중에 집어먹은 사람요」 세상에서 그런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습니다, 바보 취급 받아요, 안 받아요?「받아요」
만일 어머니가 옆에 서 있다가 아들이 눈만 껌벅하며 남들이 다 집어간 다음에 할 수 없이 맨 나중에 남은 것을 집어 가는 것을 본다면 그 어머니가 아들에게 '아이고 참 잘했다. 훌륭한 아들이다'라고 하겠습니까? (웃음)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그래요?「안 그럽니다」 어떻습니까? 이놈의 자식이 집안 망신을 시킨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테이프 끊김)
우리는 좋은 것을 빼앗아 와도, 훔쳐 와도 안 걸리는 법을 알았습니다. 그것 참 근사한 법이지요? 여러분들이 학생이기에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밥을 훔쳐다 주더라도 '얼마나 배가 고플까' 하며 진정으로 불쌍하다고 동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밥을 훔쳐다 주었다면 그 사람은 진짜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신이고 뭐고 남의 사정도 모르고 이게 뭐야. 나에게는 종은 밥도 안 주고…' 이렇게 불평을 하며 훔쳤다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런 마음으로 밥을 훔쳐 온 녀석은 나쁜 녀석이 되는 것입니다. 그거 참 이상하지요?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사람의 마음 기준이 선악의 근본을 좌우하는 내용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자세가 가치 판단을 하는 데 있어서 악도 될 수 있고 선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기에 이렇게 말씀하는 거예요.
만일 어떤 학생이 사랑의 마음을 갖고 '우리 부모님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한 분이다. 나는 장차 그분들보다 더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내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울 것이다. 이 이상 어려운 일을 시키게 될 때에도 거기에 순응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는 아들로 만들어 놓겠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비록 지금은 형편없이 살고 있더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과 어떤 가정을 축복해 주고 싶고 가까이 하고 싶으시다면 어떠한 사람과 어떤 가정을 가까이하실 것이냐? 방금 얘기한 그런 가정을 축복해 주고 가까이하고 싶으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여러분은 거기에 이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절대적으로 이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다 알기는 아는군요.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복귀될 수 있고, 여러분에게 교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이 말씀을 그만해야 되겠어요. 아침부터 그렇게 꾸벅꾸벅 인사를 하니 내가 기분이 나빠서 더 이상 말씀을 못 하겠어요. 그런 사람 앉혀 놓고 말해 본 역사가 없는 사람이라구요. 자, 이만큼 말씀했으면 된 것 같으니 이제 그만하지요. 「아닙니다」 맛보다 말고 지쳐서 싫다고 끄떡끄떡 인사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무슨 재미가 나서 얘기를 하겠어요? 「지금 무릎 꿇었습니다」 뭐 무릎 꿇는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선생님은 바쁜 사람입니다.
그럼 또 계속하자구요?「예」 자, 참된 사람을 만나기 위한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참된 배경, 즉 참된 터를 닦지 않으면 안 됩니다. 참된 배경뿐만 아니라 참된 생활무대를 닦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음 바탕에 있어서 미래를 바라보더라도 걸리지 않는 그런 순수하고 착한 마음의 바탕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람은 혼자 힘으로 이 땅 위에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만일 참된 사람이 이 땅 위에 태어났다면 그는 혼자 힘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된 어떤 한 분이 참된 사람을 태어나게 하기 전에는 오늘날 타락권내에서는 참된 사람이 태어날 수 없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람이 태어났다 할 때는 그 참된 사람을 태어나게 한 참된 분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참된 사람을 태어나게 한 그 분이 누구일 것이냐? 여러분과 같이 타락한 혈통을 이어받고 이 땅 위에 살며, 타락한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을 낳는 그런 부모가 아닙니다. 참된 사람이란 근본이 다른 내용의 인연을 거쳐 가지고 태어나야만 됩니다. 즉, 뿌리가 다르고, 동기가 다르고, 걸어온 길이 달라야만 참된 사람이 되기 때문에 타락한 세상의 사람 가운데에서는 참된 사람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참된 사람을 바랄 수는 있지만, 참된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들은 지금 참된 사람이 되어 있어요, 참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바라고 있습니다」 바라고 있지 참된 사람이 못 됐다는 거예요. 여러분 가운데 선생님 말씀에 이의 있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있다면 선생님이 한 가지 물어 보겠어요. 이의 없지요?「예」 여러분은 참된 사람은 못 되었다는 거예요.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 여러분, 참된 사람은 평화로운 사람이예요, 행복한 사람이예요?「평화롭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싸움이 있는 곳에 있는 사람이예요, 싸움이 없는 곳에 있는 사람이예요?「싸움이 없는 곳에 있는 사람입니다」 참된 사람은 후다닥 싸움하는 곳에는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타락 인간들은 몸뚱이하고 마음하고 싸워요, 안 싸워요? 「싸웁니다」 여러분 가운데 몸뚱이하고 마음하고 싸우지 않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그런 사람은 참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러니 참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랬다저랬다해서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절대적인 분이라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인간도 하나의 목적을 위하는 사람이 인격자입니까, 두 목적을 위하는 사람이 인격자입니까? 「하나의 목적이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고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자기 생애를 가려 갈 줄 아는 사람이 인격자입니다.
만약에 절대적이신 하나님께서 두 목적을 가진 인간을 만드셨다면 그 하나님은 장난꾸러기가 아니면 인간을 고생시키기 위한 하나님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들어 놓은 하나님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두 목적을 가진 인간을 만드실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됐느냐? 하나님이 이렇게 지으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집을 지을 때는 주인이 살려고 지었는데 집 주인이 잠시 동안 외출을 하고 돌아와 보니까 어떤 녀석이 떡 버티고 앉아 가지고 '나는 죽어도 못 나간다. 사생결단을 내자'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방에 들어가기 위해서 문턱 하나를 놓고 싸움이 벌어지겠어요, 안 벌어지겠어요?「벌어집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라구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도 안방과 바깥방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안방이면 몸뚱이는 바깥방입니다. 그런데 그 바깥방에 누가 들어와 앉아 있느냐 하면, 사탄이라는 대왕이 들어와서 거처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본래 그 집은 누가 거처하려고 지은 것입니까?「하나님이요」 하나님이 거처하시려고 지으셨는데 떡 와 보니 벌써 사탄이가 바깥방에다 터를 잡고 살고 있더라는 거예요. 벌써 세계무대에 뿌리를 박아 가지고 뽑을래야 뽑을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뽑아 버리려면 사람을 죽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죽여야 되니 쫓아 버릴 수 없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죽일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없습니다」 인간의 몸을 죽여 버리면 그 인간의 마음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죽일래야 죽일 수는 없고, 살려 놓고 사탄을 쫓아내려고 하니 이게 큰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인간을 죽음의 자리까지 몰아넣지 않고는 사탄을 쫓아낼 수 없는 형편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됩니다.
오늘날 사탄을 쫓아내기 위한 세계적인 공격의 표준이 된 것이 종교입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종교가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좌(證佐)입니다. 인간의 몸뚱이를 전부 다 점령하고 있는 악당의 괴수인 사탄에게서 이것을 다시 빼앗아 오기 위한 방편으로 세워진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몸뚱이를 때려 죽여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분 나쁘지요? 몸뚱이가 하자고 하는 것을 환영하라고 하느냐. 거부하라고 하느냐? 어떠한 종교든지 몸뚱이가 원하는 것은 전부 다 거부하라고 합니다. 그것이 종교에 있어서 최고의 가르침입니다. 알겠어요?「예」
몸뚱이는 '나'를 먼저 앞세웁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몸뚱이는 먹여 줘야 좋아하고, 편안하게 해줘야 좋아하고, 놀게 해줘야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그 반대입니다. 놀지 말라, 먹지 말라, 입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몸뚱이에 기운이 없어지겠어요, 안 없어지겠어요? 「없어집니다」 기운이 없어지니까 마음이 하자는 대로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미 봤지요? 조그마한 개미가 자기보다 몇십 배나 더 큰 벌레를 끌고 가는 것을 봤을 것입니다. 그 벌레가 죽기 전에는 싸우고 야단이지만 죽으려고 기운이 빠지게 될 때는 개미가 물고 뒷걸음질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과 몸의 힘이 서로 비슷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몸뚱이를 위해 주게 되면 몸이 마음을 영차영차 하며 끌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종교든지 전부 다 몸뚱이의 기운을 빼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몸뚱이의 기운을 빼게 합니까, 안 합니까? 여러분 7일 금식했어요? 7일 금식을 한 사람 손들어 봐요. 그것이 바로 몸뚱이의 기운을 빼는 것입니다.
7일 금식을 시작하면 '아이고 배고파,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갑니다. 사흘이 지나고 나흘쯤 되면 상당히 힘이 듭니다. 먹고 싶은 것이 왜 그렇게도 많은지 모릅니다. (웃음) 그때는 음식부활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전부 다 먹는 것으로 보인다는 거예요. 심지어는 과거에 보리떡 하나 얻어먹은 것까지도 생각이 나는 거라구요. 먹는 사탄은 전부 다 동원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쭉 해 나오다 나흘 닷새쯤 되어서 힘이 들면 '내가 남자로서 한번 결심을 했는데 체면과 위신이 있지 안 할 수 있어' 하면서 끝까지 밀고 나간다는 거예요. 남들이 보는 데서는 안 그런 척하지만 마음으로는 '아이고 배고파. 아이고, 밥 밥'하면서 일주일 넘긴다는 것입니다. (테이프 끊김 )
참된 사람은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이요, 악한 사람은 악귀와 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악귀하고 살겠어요, 하나님하고 살겠어요? 「하나님하고요」 그러나 우리는 본래 태어날 때 악귀의 세상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탈출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같이 못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탈출할 자신이 있어요?「예」 탈출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당장 나가세요. 탈출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 일인지 알아요? 얼마전에 선생님이 영화를 한 편 봤는데 그 영화를 보면 완전히 포위당한 상황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걸 보면 탈출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테이프 끊김)
그런 상황에서는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래 여러분은 하나님이 계시면 좋겠어요, 안 계시면 좋겠어요? 「계시면 좋겠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악귀의 세상에서 탈출하려고 하는 사람을 보고 가만히 계시겠어요? 하나님께서 도와줄 수 있는 조건만 성립되면 들이 패고, 습격을 해서 여러분을 거기에서 끌어내고 싶다는 것입니다. 끌어내고 싶겠어요, 끌어내고 싶지 않겠어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탈출하라는 사람을 가만히 두겠습니까? 그 사람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모두 옥살박살낼 수 있는 그런 원자탄이 있다면 그 원자탄을 던지겠어요, 안 던지겠어요? 몇백만 명이 있더라도 던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도 한번 벗어나고 싶어요? 그러면 우리가 사탄세계에 있어서 어디에 얽혀져 있나 한번 알아보자구요. 여러분들도 생각해 보라구요. 만일 손가락 하나 정도에 얽혀져 있다면 그 손가락을 잘라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손가락 하나 정도에 얽혀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과 우리가 어디에 얽혀져 있느냐 하면, 핏줄에 얽혀져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탄의 쇠사슬이 어디에 걸려 있다구요?「핏줄에요」 사탄의 쇠사슬이 우리 핏줄에 얽혀 있으니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피를 다 빼 버리면 되겠어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살겠다고 해가지고 구할 도리가 있을 것 같습니까? 피가 다 없어지더라도 풀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으면 살아 나갈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이나 수고하셨지만 참된 인간을 아직까지 찾지 못한 것입니다. 사탄이 어쩌면 그렇게 핏줄에다 쇠사슬을 걸어 왔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사탄이 우리 인간의 핏줄에다 쇠사슬을 얽어매 놓았는데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어요?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렇다고 피를 다 빼 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니 도망갈 수 있어요?「없습니다」
그래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죽을 각오를 하라는 것입니다. 죽을 각오를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도와 주십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 그것을 좋다고 해 가지고는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거예요. 서로가 친구 할 수 없다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선한 의미의 플러스요, 사탄은 악한 의미의 플러스입니다. 플러스와 플러스는 서로 반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내 몸을 쳐서 악한 의미의 플러스 요인을 전부 다 제거시킨 다음에 마이너스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는 몸을 때려 잡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포위되었을 때 그 포위망을 뚫고 나오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몇 사람 혹은 몇십 명한테 포위되어 있어도 빠져 나오기가 힘드는데 사탄이 꽉 붙잡고 있는 이 세계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어요? 그러니 죽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다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일하다가 힘들면 좀 쉬고 그러는 것이 다하는 것입니까? 다하는 기준은 목숨을 내던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통일교회 선생이라는 사람이 젊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다니, 이거 협박왕이구만'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웃음)
여러분은 사탄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목숨을 내놔야 되겠어요, 내놓지 말아야 되겠어요?「내놔야 됩니다」 내놓기 싫으면 내놓지 말라구요. 어떻게 되는지. 그래서 어느 종교든 '희생해라. 무조건 희생해라. 봉사해라' 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머리를 쳐들고 뻐기고 싶어요, 못난이처럼 머리를 수그리고 싶어요?「뻐기고 싶습니다」 특히 젊은 남자들은 더 그러고 싶어합니다. 한 20대쯤 되면 '아, 구세대와 신세대는 다르오' 하며 뻐기고 다닙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이런 사람들은 망해도 빨리 망한다구요. 옛날 사람들은 망하더라도 오랜 시간을 두고 망하지만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망하더라도 빨리 망한다구요. 허리통들이 굵어져 가지고 한번 삐딱하게 되면 와장창 하고 빨리 망하게 된다는 거예요. 청소년기에 온유겸손할 줄 모르는 녀석들은 빨리 망할 때가 온다는 거예요. 만일 그렇게 되지 않으면 선생님이 허리를 잘라 버릴 것입니다. 말만 들어도 무섭지요? 선생님은 무서운 사람이라구요.
소생, 장성, 완성기를 거쳐가는 데 있어서 장성기에서 따먹으면 안 됩니다. 사탄이 노리고 있기 때문에 사탄부터 잡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확실히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선의 소재지가 어디라구요?「하나님입니다」 또 악의 소재지는 어디라구요?「마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있어서 선의 소재지는 어디일 것이냐? 마음입니다. 마음에서도 제일 끄트머리입니다. 나무로 말하자면 그 나무의 맨 끄트머리 나뭇잎이 선의 소재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뭇잎 주위에는 많은 전선이 지나갑니다. 전선이 껍질이 벗겨지거나 낡게 되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전선이 나뭇잎에 닿아서 불꽃이 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악한 일을 하면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는 거예요.'이 악한 녀석' 하면서 양심이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양심의 가책을 받을 때가 있지요?「예」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왔다갔다 흔들리다가 전선에 닿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악한 일을 해서 양심에 꽝하고 부딪칠 때는 양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생과 형이 있는데 서울에 사시는 외할머니께서 선물로 빵을 사오셨다고 합시다. 살짝 맛을 보았더니 빵 맛이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혓바닥에서 사르르 녹아 막 넘어간다는 거예요. 지혜로운 동생은 맛있는 빵을 한꺼번에 먹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조금씩 아껴 먹으려고 싸 놓았습니다. 그런데 욕심 많은 형은 척 한 개를 먹어 보고 맛이 좋으니 한꺼번에 다 먹어치우고는'또 없나. 또 먹고 싶다' 하며 동생이 감춰 놓은 빵까지 먹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동생이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숨겨 놓은 빵을 형이 어디다 두었는지 모를 때는 괜찮겠지만, 알 때에 그 빵을 집으려는 형의 마음이 어떻겠어요? '어서 해라' 그래요? 죽은 줄 알았던 양심이 '이놈' 하고 호령을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몸은'마음이 뭐야. 먹고 싶은 게 더 간절한데 마음이 뭐야. 욕먹는 건 나중이야. 어머니께 책망받는 건 나중이니까 우선 먹고 보는 거야' 하면서 덜컥 먹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웃음)
이렇게 몸과 마음을 두고 보면 어느 것이 더 힘이 셉니까? 몸뚱이가 세요. 마음이 세요?「마음이 셉니다」 마음이 센 사람은 그래도 성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몸둥이가 센 사람은 망하는 겁니다.
이런 기준에서 여러분 스스로가 선한 편에 서 있는지 악한 편에 서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다시 말해서 마음이 더 강한가, 몸뚱이가 더 강한가를 한번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반드시 둘 중의 하나는 강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과 몸이 서로 의논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알겠어요?「예」 둘 다 의논해 가지고는 안 되게 되어 있으니 그것이 문제라구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마음이 강합니까, 몸뚱이가 강합니까? 마음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몸뚱이가 강한 사람은 지옥간다구요. 손든 것을 보니 5분의 4는 지옥 가겠군요.
그러면 이 몸뚱이를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가만히 앉혀 놓고 잘 먹여 줘야 되겠어요, 들이패야 되겠어요?「들이 패야 됩니다」 들이패면 참겠어요, 안 참겠어요?「참겠습니다」 지금은 모두 참아야 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할아버지가 한 대 때리면 '쳇' 할 거예요. 두 대째 때리면 '할아버지면 다예요? 한다는 거예요. 또 세 대째 때리면'에이, 할아버지면 다야' 하면서 세상 모르고 마구 대드는 패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놈의 몸뚱이는 맞아야지' 하면서 들이패도 가만히 있을래요? 마음이 문제입니다. 몸뚱이에 마음의 원한이 남아 있으니 마음의 원한을 풀어 주기 위해서는 몸뚱이를 쳐야 됩니다. 만일 마음의 원한을 풀기 위해 '날 때려 주십시오'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분명히 천국 갑니다.
자, 그러면 몸뚱이가 잘못을 저지르려고 할 때, 마음이 초조해 가지고 제의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네 녀석이 뭐야' 하고 몸뚱이가 마음을 차 버렸으니 그 마음이 원한이 맺혔겠어요, 안 맺혔겠어요? 마음 자체가 얼마나 섭섭했겠어요? 그렇잖아요? 친구 사이였던 몸과 마음인데 몸뚱이로부터 무시와 멸시만 당하고 있으니 얼마나 분하겠습니까?'이놈의 자식, 나를 몰라보는 구나' 하면서 싸우고 싶을 것입니다. 마음은 사사건건 몸이 하는 일을 간섭합니다. 여러분 마음도 그래요, 안 그래요? 아무리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혼자 앉아서 나쁜 생각을 하려고 해도 마음이 '예끼 이 놈, 왜 나쁜 생각을 해' 하며 간섭하지 않을 때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러기에 몸뚱이는 마음 몰래 하지 못한다구요.
몸뚱이한테 무시당했으니 마음이 슬프겠지요? 그 슬픔이 점점 굳어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슬픈 것이 더해지면 분할 것입니다. 또 분한 것이 더해지면 죽이고 싶을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는 삼팔선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이와 같이 마음과 몸으로 분리되어 열매를 맺은 것이 지금의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입니다. 하나는 몸뚱이를 위하는, 즉 빵을 위주로 하는 세계요, 또 하나는 마음을 위주로 하는 세계입니다. 이렇게 둘로 딱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씨로 비유한다면 몸을 위주한 사람과 마음을 위주한 사람을 심어서 세계적으로 열매맺은 것이 이 두세계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이 두 세계 중에 한 세계를 뽑아 버려야 됩니다.
그러면 어떤 세계를 뽑아 버려야 되겠습니까? 몸뚱이를 뽑아 버려야 되겠어요, 마음을 뽑아 버려야 되겠어요?「몸뚱이요」 공산세계를 없애 버려야 되겠어요, 민주세계를 없애 버려야 되겠어요?「공산세계요」 마음은 민주세계입니다. 여러분, 마음과 몸뚱이 둘 가운데서 어느 것이 더 선합니까? 「마음이요」 악한 여러분도 마음이 선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거예요. 마음이 몸뚱이보다 선하지요? 마음이 나쁜 짓을 하라고 가르쳐 줄 때가 있어요? 마음은 불쌍한 것을 보면 동정하라고 하고, 자신은 못먹더라도 남에게 먼저 먹을 것을 주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렇지만 몸뚱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과는 반대입니다. 그러니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양심적이고 선합니까? 마음입니다, 마음.
그래 선의 소재지는 뭐라구요?「하나님요」 그러면 마음보다 악한 것이 뭐라구요?「몸뚱이요」 그럼 몸뚱이의 소재지는 뭐라구요?「악귀입니다」 사탄입니다. 이제 마음과 몸의 소재지를 알았습니다. 알았지요?「예」그리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맺는 데도 어디서부터 맺는가를 알았다구요. 하나님과 어디서부터 관계맺나요?「마음이요」 또 사탄은 어디서부터 관계를 맺어요?「몸이요」 이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자. 그럼 이제 두 패로 갈라지는 거예요. 통일교회 성화 학생들 가운데도 보다 더 양심적인 사람이 있고 덜 양심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두 패로 갈라지는 거예요. 또 몸뚱이를 중심삼은 사람 가운데도 보다 더 악당이 있고 보다 덜 악당이 있습니다. 몸뚱이도 두 패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모두 네 패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악한 사람도 어떨 때는 공손한 존대어를 쓸 때가 있지요?「예」 또 남의 것을 훔쳤다 하더라도 그것을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때도 있다는 거예요. 이와 같이 악한 사람도 두 패로 갈라지기 때문에 모두 네 패로 나뉘어진다는 거예요. 이와 같은 사람들이 심어져 내려왔기 때문에 세계는 네 패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네 패로 갈라진 것을 청산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전부 다 없애 버리기 위해서 온 참된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예수님을 죽였으니, 그렇게 예수님을 죽인 것과 같은 판국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벌어지지 않고서는 다시 소생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오른편 강도는 예수 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왼편 강도는 어떠했습니까? 반대했지요?「예」 예수님은 참된 사람입니다. 그 참된 사람을 악한 세상에서 죽였기 때문에 세상적으로 끝날이 되면 그와 같은 환경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판국이 되어야 예수님의 원수를 갚는 거라구요. 예수님께서는 비록 십자가에 돌아가셨지만 예수님의 뜻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살인을 하여 옥에 갇힌 바라바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되면 예수님의 세계, 바라바의 세계, 그 다음엔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의 뜻 세계가 서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이것은(오른편 강도) 우익이지요? 이것은(왼편 강도) 좌익이지요? 그리고 바라바는 회회교의 입장입니다. 이것은(예수님) 뭐냐 하면 기독교예요. 이것이(회회교) 내적 사탄편이고 이것이(좌익) 외적 사탄편입니다. 알겠어요?「예」 회회교는 코란경을 내세워 가지고 '코란경을 받겠느냐, 칼을 받겠느냐'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칼을 맞으면서도 사랑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칼을 맞으면서도 부활의 복을 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렇게 회회교와 기독교는 반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좌익은 앞으로 어디와 통하느냐 하면, 기독교와 민주세계가 하나될 때, 회회교권과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와 가지고 민주세계를 통치하기 위한 기반을 닦는 때가 되면 회회교권과 공산권이 손잡는 인연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랍의 낫세르와 소련의 브레즈네프가 손을 잡고 야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놔두어서는 큰일나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낫세르를 데려가신 거라구요. 이제부터 꺾여 나가는 것입니다. 한 3대쯤만 내려가게 되면 별볼일 없게 되는 것입니다. 재미있게 되었지요? 공산세계는 사탄의 몸적 세계요, 민주세계는 하나님편적 양심세계와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오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 두 세계는 통일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심은 대로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녹음이 중단됨 )
세상 사람들을 가만히 두고 보면 양심적인 사람일수록 선한 입장에 가까와집니다. 그렇지요?「예」 선의 소재지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양심적인 사람일수록 하나님편에 점점 가깝게 찾아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점점 가깝게 찾아 나가는 양심적인 사람만 있어 가지고 되느냐 하면 안 되는 거라구요. 양심적인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양심적인 생활권이 있어야 됩니다. 양심적인 생활권이 생겨나게 되면 거기에는 양심적인 가정도 있고, 나라도 있고, 세계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바로 그러한 것이 하나님께서 같이 하실 수 있는 터전인 것입니다.
또 그런 입장에 선 백성이라든가 나라라든가 세계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중요시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자기 생활의 근거지요, 모태로 삼아 가지고 생명이 끊어져도 거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주의를 가져야만 선한 세계가 이룩될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두고 볼 때, 어느 쪽이 더 하나님편에 가까워요? 「민주주의 세계요」 그렇지요. 어떤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을 알겠지요?
이제 선한 편을 알았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어디를 따라가야 된다구요? 「하나님이요」 여러분이 맨 처음에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구요?「마음이요」 특히 젊은 여러분들은 주의해야 되는 거라구요. 마음으로부터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자는 것은 절대적으로 따르고, 몸이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해야 됩니다. 그것이 선을 찾아가는 길이요, 참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한 길을 가깝게 만드는 일이 어디에서 벌어지느냐 하면 어디 멀리 가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나 자체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나 자체 내에서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해 가지고 몸뚱이를 완전히 정복했을 때는 선한 사람을 찾아가지 않아도 선한 사람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돼요?
오시는 주님은 선한 사람입니까, 선하지 않은 사람입니까?「선한 사람입니다」 선한 사람이지요. 또 그분이 하늘로 찾아 올라간다고 했어요, 땅으로 오신다고 했어요?「땅으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땅으로 찾아오시는데 어떤 사람을 찾아오실 것이냐? 어떤 사람이예요?「선한 사람」 선한 데는 얼마만큼 선해야 되느냐? 절대적으로 선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다'라고 인정하실 수 있는 그런 터전이 있는 사람이어야 됩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이 선하다고 하는 기준에 백 퍼센트 들어맞아야 됩니다. 거기에서 약간의 오차만 있어도 안 됩니다. 백 퍼센트 들어맞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 내가 그런 사람을 맞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가 선한 사람이 되어 찾아가서 만날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이 선한 나를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천지에 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 밖에 없다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중심삼고 연락망을 펼치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도닦은 사람들입니다. 성인들도 도닦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성인이 되고 싶어요, 안 되고 싶어요?「되고 싶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성인의 선생이 되어야 된다구요.
그러면 성인은 어떤 사람이냐? 대한민국, 즉 국가적으로 선한 사람이 되어 가지고 성인이 돼요?「안 됩니다」 어느 정도 선한 사람이 되어야 돼요? 「세계적으로 선한 사람요」 성인이 되려면 세계적이어야 된다구요.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 내용이 있어야 됩니다. 첫째는 뭐냐 하면 세계적으로 선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세계를 염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현재의 세계뿐만이 아니라 방대한 역사를 대표해서 세계를 염려해야 됩니다. 두번째는, 인간 자체만으로는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이 될 수 있는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 뿌리가 뭐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같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세계적이며 신이 같이하는 사람입니다. 즉 첫째는 세계적인 사람이요, 둘째는 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신과 반대되는 길을 가는 사람이예요, 신과 하나되기 위해 정성들이는 사람이예요? 신과 같이 살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반열에 든 사람을 가만히 살펴보면 자기 스스로 도를 깨우쳐 가지고 그 도를 만민에게 가르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들을 보면 전부 종교의 종주(宗主) 내지는 교주(敎主)입니다. 그거 이상하지요? 보라구요. 예수님도 종교의 왕이지요?「예」 기독교에서 보면 예수가 교주라는 거예요. 또 유교에 있어서는 공자가 주인이지요? 유교는 인륜 종교입니다. 유교는 신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위선자는 천보지이복하고 위불선자는 천보지이화니라(爲善者 天報之以福. 爲不善者 天報之以禍)'고 한 공자의 가르침을 보아도 신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석가도 그렇다는 거예요. 그들이 모두 다 종주입니다. 마호메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4대 성인이 모두 종교의 종주라는 것입니다.
그럼 소크라테스는 뭐냐? 철인(哲人)입니다. 철인은 지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지식을 가지고는 생명을 주관할 수 없습니다. 지식은 환경을 주관하고, 환경을 정비할 수는 있지만 생명을 주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종교의 힘만이 생명을 주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신(神)이 가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만이 생명을 주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통하여 성인의 반열에 올라간 사람이 네 사람 있습니다. 그런데 그 네 사람 중에서도 첫째 되는 사람이 있겠지요?「예」 네 사람이 전부 같을 수 있어요? 그러면 거기에서 일등이 누구겠어요? 「예수님이요」 왜 예수가 일등이예요? 여러분은 예수를 믿으니까 예수가 일등이라고 하지만, 불교를 믿는 사람은 석가모니가 일등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도 예수가 일등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옛날에 예수를 믿었다구요.
하나님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 선 성인이 누구겠어요?「예수님요」 성인 중의 성인이라면 예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상은 아주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준 사상은 하나님과 가장 가깝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데 있어서 나눠 받는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한다는 거예요?「독차지한다는 거요」 하나님을 점령하고도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면 그건 나무아미타불이라구요. 하나님을 점령했으면 하나님의 사랑까지 점령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요, 나는 그의 독생자다'라고 했던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받겠어요, 안 받겠어요?「몽땅 받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 전체를 대표해 가지고 볼 때, 예수님 이외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내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누구라고요? 「내 아버지」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들을 사랑하겠어요, 아니면 이웃집 종을 사랑하겠어요?「아들이요」 자기 아들을 사랑하겠어요, 이웃집 친척 아들을 사랑하겠어요? 자기 아들을 사랑하지요? 여러분도 이 다음에 커서 아들을 낳으면 사랑할래요, 안 할래요? 만일 하나님께서'이 녀석, 아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명령한다고 해서 사랑 안 하겠어요. 하겠어요? 아무리 하나님이 명령하더라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들도 아들을 좋아합니다. 딸은 싫어하지요?「예」 「좋아해요」(웃음) 딸도 좋기는 하지만 싫어한다는 거예요. 시집갈 때 아버지 어머니 것을 전부 다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게 되면 '와' 하고 좋아하지만, 딸을 낳게 되면 '에이' 하고 한숨을 쉰다는 거예요. (웃음)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딸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딸이 좋은 거라구요. 선생님이 얘기를 하면 딸이 참 훌륭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까지 얘기하자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벌써 열 한시가 됐으니 얘기를 그만둘 때가 되었는데, 골자만 뽑아서 얘기하면 3분도 안 걸려요. 1분 동안에 다 할 수 있다구요.
여러분, 콩을 주워먹을 때는 그것을 한 알 한 알 먹다가는 다른 사람들이 다 주워먹습니다. 그럴 때는 그저 후다닥 주워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 골자만 가르쳐 줄까요?「아니요」 그래도 나무라 하면 가지가 있고 잎이 있어야지, 뿌리만 있으면 되겠어요? 그렇지요?「예」 나무의 줄기만 필요해요, 가지도 필요하고 잎도 필요해요? 거기에 꽃도 필요하고, 향기도 필요하지요? 열매까지 있으면 더 좋지요?「예」
이렇게 얘기하려면 한정이 없습니다. 여러분들 표정을 보니까 이제 그만 마쳤으면 하는 것 같고, 또 두 시간이나 지났으니 화장실도 갔다 와야 될 텐데 이만 마칠까요?「아닙니다」 어떤 녀석은 '아! 이제 열 한시가 되었으니 앞으로 한 시간 20분만 지나면 밥을 주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웃음)
아침밥 먹었나?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주일 아침에는 아침밥을 안 먹습니다. 왜 안 먹는가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안 가르쳐 줬다구요. 그 이유를 알고 싶지요?「예」 그러나 그 이유는 여러분 자신들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 중에 '한끼만 굶어도 살이 빠지는 것 같은데 밥을 왜 안 먹일까? 선생님이 나하고 무슨 원수가 져서 그럴까? 나는 그런 선생님은 싫어'라고 생각하는 사람 있지요?「아니요」 그래도 선생님이 좋아요? 「예」 그럼 두 끼를 먹지 말자구요.(웃음) 이러면 절반만 나빠지겠지요? 「아니요」 그럼 어때요?「좋아요」 두 끼를 안 먹고도 한끼를 안 먹는 것만큼 좋아하게 되면 두 배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웃음) 반대라는 거예요.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하겠지만, 그것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이치와 똑같은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한달에 적어도 십 일씩은 금식을 하라고 시켰다면 여러분들은 어떡하겠어요? '껍데기를 벗겨 먹으려면 고이 벗겨 먹고, 구워 먹겠으면 고이 구워 먹지 이게 뭐야' 하면서 불평할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가 되겠어요? 만일 여기에서 선생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날에는 그 사람에게 몇백 배, 몇천 배 복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과 같이 자꾸 굶으면 죽게 되니까 살 길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꽃다운 청춘이면 뭘하나. 나는 이미 다 보따리에 싸서 둘러메쳤다. 나를 위해서 하던 화장이나 고데도 하지 않고 꽃다운 청춘 바쳐 남을 위해서 거지가 되고 남을 위해서 거름더미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한테 시집가고 싶은 처녀 있으면 손들어 봐요? 한 사람도 없구만.
그렇지만 그런 사람이 그렇게 살다가 어느 한때를 맞아 가지고 덜커덕 승리의 자리에 올라서게 될 때는 민족이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애국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역사적으로도 그러한 실례가 많이 있지요?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도 통일교회만을 위하는 교회가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같은 이치라는 거예요.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예요, 나쁜 사람이예요?「나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동료가 70명이 있는데 자기를 70번 내세우면 70명 모두가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밤이나 낮이나 그들이 좋을 수 있는 길을 위해서 희생하고 노력한다' 하게 될 때에는, 70명 전부에게 도망가라고 발길로 들이차더라도 달라붙는다는 거예요. 앞에서 차면 뒤로 와서 달라붙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또 그들이 좋다고 선전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구경하러 왔다가도 달라붙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꾸 남을 위하는 생활을 하면 커지겠어요, 작아지겠어요?「커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흥하는 거라구요. 흥하는 자리에는 하나님께서 같이하는 것이요, 망하는 자리에는 사탄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 흥할 수 있는 자리에 서는 사람,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생애의 목적으로 삼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 가운데에서 애국자도 나오고, 위인도 나오고, 성인도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를 내세우고 나갈 때에는 따라지밖에 안 되는 거라구요.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길을 택하겠어요? 전자를 택하겠어요, 후자를 택하겠어요?「전자요」 알긴 아는구먼.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알았어요, 몰랐어요?「알았습니다」
여러 친구 가운데에서 전체의 이익을 위해 굶으면서도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못난 사람이예요, 잘난 사람이예요?「잘난 사람입니다」 현재는 못난 사람 같지만 잘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남을 위해 희생하다가 덜커덕 죽어 버렸다고 합시다. 그럴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잘났어요, 못났어요?「잘났습니다」 그래도 잘난 사람이예요? 「예」 왜 잘났느냐?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한 성경의 말씀대로 하다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여러 친구들을 위해 죽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그 좋은 친구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밤이나 낮이나 만나면 '아무개 친구, 아무개 친구'하면서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친구가 원하던 일을 우리 전체가 합동해서 하자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요. 안 해요? 「합니다」 그렇게 하지요? 비록 그 사람은 죽어 없지만 그 사람의 사상만은 많은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는 중심 자리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점령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희생봉사의 결과가 갖다 주는 예물이 뭐냐 하면, 중심존재의 자리에 선다는 것입니다. 희생 봉사의 결과가 그렇게 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 친구들 가운데에서 자기 욕심만 부리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에게 책임을 맡기고 싶겠어요? 아무도 그 친구에게는 책임을 맡기고 싶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공적인 입장에 서서 남을 위하여 희생봉사하는 사람을 영원히 중심존재로 모시는 것이 원칙인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이것이 전통적 역사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 친구가 좋은 친구예요. 나쁜 친구예요?「좋은 친구입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이 좋은 친구예요?「예」 정말이예요?「예」 뭐가 좋은 친구예요? 나쁜 친구지요?「좋은 친구입니다」 뭐예요? 나쁜 친구지요? 「좋은 친구입니다」 그런 친구가 있다면 전체가 그 친구 앞에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이제 어떤 친구가 좋은 친구인지 알았다구요.
이렇게 볼 때, 우리 통일교회가 좋은 교회냐, 나쁜 교회냐 하는 것을 대번에 알수 있습니다. 이 공식을 적용해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공식을 모르면 안 됩니다. 이 공식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좋은 교회냐 나쁜 교회냐 할 때, 통일교회만을 위하고 통일교회만을 위주해서 움직인다면 나쁜 교회입니다. 그러나 우리 통일교회는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망하지 않는다구요. 지금까지 선생님을 핍박하고 죽이려는 별의별 악당들이 많았지만 선생님은 죽지 않고 남아진 것입니다.
이제 나는 이 세상에서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어떤 나라의 대통령도 부럽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선생님이 죽자 하고 명령만 내리면 세계 곳곳에서 누렁이, 퍼렁이, 검둥이 등 얼룩덜룩한 많은 사람들이 목을 매놓고 동원된다는 것입니다. 그만하면 선생님 훌륭하지요?「예」 선생님이 훌륭한데도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지금까지 누구 때문에 욕을 먹었느냐는 겁니다. 여러분들 때문에 욕을 먹고, 우리나라 때문에 욕을 먹고, 세계 때문에 욕을 먹었습니다. 과거에 선생님을 핍박하고 내몰았던 사람들도 이제는 그것을 알면 알수록 머리를 긁적거리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는 거예요. 자, 이만하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출세했다구요. 그렇지요?(웃음)
지금 여기에 일본 식구들이 한 220명 정도 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저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야단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어디 나서면 창피하다구요. 선생님이 피곤해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어떤 아가씨가 머리만 내놓고 사진을 찍겠다고 합니다. 몰래 도둑 사진이라도 찍어 가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아가씨가 왜 그럴까요? 기분이 나빠서 그럴까요, 기분이 좋아서 그럴까요?「기분이 좋아서요」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도둑 사진을 많이 찍혔습니다. (웃음) 선생님이 오죽하면 갑갑한데 넥타이를 매고 다니겠나. 이젠 이렇게 안 입고 다닐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이 일본 식구들에게 일본 땅을 몽땅 파 오라고 하면 전부 파 오는 거라구요. 멋지지요? 또 미국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미국 땅을 전부 파오라고 하면 파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우리 한국이 부자가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부자 돼요」 한국에다 그 나라의 모든 것을 퍼날라다 태산같이 쌓아 놓게 되면 삼천만 민족이 '배급 좀 주시오' 하면서 오겠어요, 안 오겠어요? 그때는 삼천만 민족도 '아이고 통일교회 참 좋구나'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선생님이 왕따라지라면 따라다니겠어요? 십년 전이나 후나 마찬가지면 따라다니겠어요?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이 있듯이 큰일을 하려면 처음과 끝이 똑같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가는 길은 일생을 다 투입하는 길이기 때문에 딴 길이 없습니다. 1초 1순간도 딴 생각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온갖 정성을 다해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위해 나왔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대한민국 사람만이 아닙니다. 나라를 갖느냐, 세계를 갖느냐 할 때, 선생님은 나라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선생님을 대한민국에서 보면 역적이겠지요? 「아닙니다」 그래도 좋아요? 「예」 세계가 살아 남을 때는 대한민국도 살아 남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사람은 보다 큰 것을 위해서 목숨까지 내놓는다는 거예요.
자, 그러면 통일교회가 진짜 종교예요, 가짜 종교예요?「진짜 종교요」 지금 기성교회 목사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을 제일 무서워합니다. 선생님이 어느것 하나라도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들끼리 무엇을 한 가지 하더라도 자기들이 모르는 사이에 벌써 통일교회와 관련이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고 또 통일교회에게 걸렸구만. 또 통일교회한테 이용당했구만' 하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모르는 가운데 선생님이 하는 일이 많습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이 아이쿠, 아이쿠, 아이쿠 이러다 보면 벌써 선생님한테 포위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올 데 갈 데가 없습니다. 선생님의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거예요. 어때요, 여러분도 원조해 주겠어요?「예」 이런 것을 보더라도 선생님은 망하지 않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감옥이나 사지에 들어가게 되면 선생님을 죽이려던 사람은 죽어 버리고 선생님은 살아 나오더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그런 일이 참 많았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선생님의 말을 잘 들으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 보더라도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지요?「예」
선의 근거지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신 곳이 망할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있는 곳이 흥할 수 있어요? 「없습니다」 악은 흥할 수 없습니다. 망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가 맞고 쫓기면서도 세계적인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한번 두들겨 맞으면 다 없어질 줄 알았지만 천만에요. 그 정도 두들겨 맞았다고 한꺼번에 쓰러진다면 선생님이 아예 일을 시작도 하지 않았다구요. 선생님이 여러분보다 못나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이라구요. 머리도 좋은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몸도 튼튼합니다. 주먹질을 하더라도 당당하게 꼭대기에 올라가지 하발이는 되기 싫다는 거예요.
얼마전만 해도 선생님의 체중이 96킬로그램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86킬로그램으로 10킬로그램쯤 줄었습니다. 96킬로그램에다 4킬로그램만 더하면 거인 클럽에 가입하는 것도 가능할 거예요. (웃음)
선생님은 밥 한 끼씩 며칠 굶는 것은 보통입니다. 또 하루쯤 잠 안자는 것도 보통입니다. 그 정도는 문제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이겨 내기 위하여 젊은 청춘시대에 안 해본 운동이 없고 못 하는 운동이 없습니다. 달리기를 하더라도 등수에 들어가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또 추운 날 어디를 가다 밤이 되어 잘 때 아무리 추워도 잠을 잘 잤습니다.
여러분들이 씨름하는 것을 보니까 아주 형편없어요. 선생님이 고등학교 때는 전교에서 씨름 참피온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코치할 수 있지만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거라구요. 그러니 선생님 앞에서 잘난 체하지 말라구요. 알겠어요?「예」
그리고 선생님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노동판에서 일도 해보고, 농장같은 데 가서 일도 해보고, 빌어먹는 패들 가운데 들어가 가지고 빌어먹어도 보고 별의별 일을 다 해보았습니다. 많은 사람을 지도하려면 그런 것을 다 소화해야 되는 거라구요. 젊은 시절에 모든 경험을 해봐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선생님을 그저 앉아서 감투나 쓰고 여행이나 다니는 사람인 줄 알았다가는 큰 오산이라구요. 선생님은 인생 철학 과정에 있어서 모든 과목을 다 통과한 실적이 있는 사람이라구요. 알겠어요?「예」
자, 그러니 선생님 말 들을 만해요, 안 해요?「들을 만합니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싶지 않거든 선생님 말을 들어 가지고 10년 후와 듣지 않은 10년 후와 어떻게 달라지나 내기하자구요. 그러니까 선생님 말 들어 보라구요. 선생님을 믿지 못하게 될 때는 대사기꾼 왕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웃음) 그래도 선생님의 말씀을 가만히 들어 보면 씨 있는 말같지요?「예」 그러니 선생님은 못 믿겠더라도 말씀만은 시인하고 믿으라고요.
자, 그럼 우리가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할 텐데 어디에 가서 풀어 드리겠어요? 하나님의 한이 어디에 있어요? 하나님의 한의 삼팔선이 어디에 있어요?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세계를 통일한다고 해도 그냥 그대로 몸뚱이 가지고는 안 풀립니다. 타락한 몸뚱이를 가지고 나라를 구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한이 풀리겠어요? 그래 가지고는 절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라를 구했다고 아무리 큰소리를 쳐도 타락한 몸뚱이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한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하나님의 한을 어디서 풀어야 되느냐? 여러분, 어디에서 풀어야 되겠어요? 교회에서 풀어야 되겠어요?「마음에서부터요」 무엇이든 마음에서부터 푸는 것이 아니라구요. 몸뚱이에서 풀어야 됩니다. 몸뚱이에서 풀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예」 이 몸뚱이에 하나님의 한이 맺혔다는 거라구요. 핏줄을 타고났기 때문에 몸뚱이에서부터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에 맺힌 한을 풀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천 년 역사과정을 통하여 수많은 선한 사람들이 피의 대가를 치렀지만 아직까지 그 한을 청산지어 가지고 풀었다는 영수증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한을 풀었다는 영수증 받아 보았어요?
자, 그러면 하나님의 한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사탄의 침입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잃어버렸어요? 무엇을 잃어버려 한이 맺혔습니까? 앞에서 핏줄을 빼앗긴 것이 하나님의 한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참된 아들딸을 가질수 있는 하나님이 되었습니까, 가질 수 없는 하나님이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참된 아들딸을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러면 참된 가정을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이 되었나요, 못 되었나요?「못 됐습니다」 참된 아들딸을 못 가졌기 때문에 참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이 되지 못하셨습니다. 이렇게 참된 가정을 못 만났는데 참된 종족이 있을 수 있겠어요? 없지요?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수 있는 참된 민족이 이 지구성에 어디 있겠어요? 하나님께서 세우고 싶은 참된 나라가 이 지구성에 어디 있겠습니까?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통치하실 수 있는 하나의 세계가 어디 있겠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본래 우리 인간 시조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는 참된 아들 딸들을 만나 가지고 천년 만년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아들딸로 말미암아 고이 이루어진 참된 가정은 물론이요, 참된 종족, 참된 민족. 참된 국가, 참된 세계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원흉 사탄이 하나님께서 통치해야 할 세계, 하나님께서 주도해야 할 주권국가를 전부 파탄시켜 버렸고, 나라와 민족과 종족과 개인까지도 송두리째 빼앗아 가 버렸던 것입니다.
이런 원흉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한 분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걸어 놓고 원수와 대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망하시던 나라와 세계를 망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아들딸과 가정과 종족을 빼앗아 가고,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목적 전체를 파탄시켜 놓은 원흉과 대결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그 원흉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참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을 빼앗아 와야 되고, 가정을 빼앗아야 되고, 국가를 빼앗아야 되고, 세계를 빼앗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 신도들의 사명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고의 목적입니다. 이것을 감당하기 위해서 나선 무리가 통일교회 여러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한을 남기게 한 원흉이 어디에 있을 것이냐? 그것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알겠어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구요?「나에게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을 어디서 찾아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어디에서 찾아야 되느냐? 나에게서 찾아야 됩니다. 이 모든 것을 나로 말미암아 찾아 드리고 만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신념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신념이 작아지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한 싸움은 천년 만년을 넘어갈 것입니다. 그 싸움이 일대뿐만이 아니라 수천만 대를 계승해서 계속되어지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 드릴 수있는 큰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던 세계를 찾기 위하여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극복하며 수천년 역사를 거쳐 나오는 과정에서 지칠 수 있는 자리가 많았지만 지치지 않고 나오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보다 못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보다 못하면 신세를 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신세를 지울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효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충신이 못 되는 것입니다.
효자는 부모 앞에 신세를 지우는 사람이요, 충신은 군왕 앞에 신세를 지우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싸워 나오신 신념 이상의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벌을 주시겠어요? '야! 이놈아, 재수 없게 왜 그래, 그럼 못써'라고 야단을 하시겠어요?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해야 할 수고가 있거든 그것을 딴 사람에게 맡기지 마시고 나한테 맡겨 주소. 다른 무리에게 맡기지 마시고 우리에게 맡겨 주소. 다른 종교에게 맡기지 마시고 우리 통일교회한테 맡겨 주소'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통일교인들은 하나님의 한을 풀 수 있는 세계적인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통일교인들 가운데 노인들, 장년들, 청년들 다 그만두고 청소년인 우리한테 맡겨 주소'라고 하게 될 때는,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한을 풀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구원해 드려야 됩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우리는 사탄의 철망으로부터 벗어날수 있을 때까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정 내 아버지요, 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인연을 알고 난 후에는 하나님의 맺힌 한을 풀어 드려야 할, 하나님을 구해 드려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그런 사명이 있다는 것을 꿈도 못 꾸고 있습니다. 앞으로 영계에 가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겠습니다. 그리고 자유로운 하나님으로서 만국을 통치하는 데 있어서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장애물이 있다면 내가 책임지고 전부 다 제거해서, 자유의 권한을 가지고 만국을 자유와 평화의 천국으로 주관할 수 있는 당당한 절대자로 모셔 드리겠다는 신념을 가진 젊은이가 있다면 그는 참으로 위대한 젊은이입니다. 이러한 젊은이들로 말미암아 앞으로 세계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실제로 이러한 젊은이가 됐다고 하게 되면 아무리 초라한 모습을 하더라도 그것은 흉한 모습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무한한 희망이 깃들어 있는 것이요, 그 모습은 하나님의 소망과 행복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화(成和)라는 말의 뜻을 알아요? 성화라는 이름을 왜 젊은이들에게 붙여 주었느냐? 여러분 가운데 늙은 사람과 하나되기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늙은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늙은이끼리 하나되면 좋겠어요? 또 아주머니들끼리 하나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타령이나 한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그건 도저히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끓는 젊은이, 순결의 피가 끓어 올라 하나님의 감정에 동화될 수 있는 피를 가진 젊은 청소년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성화라는 이름을 붙여 준 것입니다.
성화(成和)의 뜻이 뭐냐 하면 이루어서 화합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목적을 이루어 가지고 화합하는 것입니다. 화합했기 때문에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누룩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아버지 어머니가 있지만 아이들이 웃음동이가 되어야 그 집안에 웃음꽃이 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화의 젊은이들이 지닌 바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제부터 성화학생 여러분은 내 육신에서부터 원수에게 복수하고, 내 육신에서부터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릴 수 있는 기수가 되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싸워 나오신 신념 이상의 신념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뜻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일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음의 자리에 내세우게 될 때 얼마나 기가 막히셨겠습니까? 예수님을 사지(死地)에 내놓은 것은 하나님의 해원성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해원성사를 위해서 예수님을 사지에 내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해원성사는 인류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인류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배반하고 반대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인류를 다시 구할 수 있는 길을 닦기 위해 예수님을 인류의 죄를 탕감해 주기 위한 제물적 입장에서 내주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를 해원시켜 주기 위해서 예수님을 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한은 누가 풀어 주느냐? 인류가 못 풀어 주는 거라구요. 예수님이 풀어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원한을 풀 수 있는 것은 나라도 아니요, 세계도 아니요, 바로 이 몸뚱이입니다. 이 몸뚱이를 중심삼고 풀어 드려야 합니다. 몸뚱이에 연결되어 있는 사탄의 근본 뿌리를 뽑아 버리는 승리의 기반을 닦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가 사랑받는 아들로서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는 책임이 예수님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간 역사를 두고 재림예비기(再臨豫備期)라는 수천 년 기간을 거쳐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이 뭐냐? 예수님이 해원성사해 드리지 못했던 그 책임을 우리가 대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은 인류를 위해 희생하기 위한 제물의 입장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비참한 역사를 거쳐 나오시면서 해원성사하지 못했던 그 한을 풀어 드려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린 후에 인류를 기뻐하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짊어진 사명인 것입니다. 일반 기독교와는 그 사명이 다르다구요. 알겠어요?「예」
우리는 개인구원을 목적으로 삼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 목적은 가정을 기준으로 한 민족구원이요, 국가구원이요, 세계구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개인의 승리의 한계를 넘어서서 한의 모든 여건을 제거시키고 가정의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또, 가정의 승리의 한계를 넘어서서 한의 여건들을 제거시켜 나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내 개인이 승리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개성복귀완성, 가정복귀완성, 선번식완성(善繁殖完成)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이런 것이 크고 커져서 하나님께서 사탄 나라 대신 하나님의 나라로 사랑할 수 있는 나라, 사탄 가정 대신 하나님의 가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가정, 사탄의 아들딸 대신 하나님의 아들딸로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라가 있기 전에 민족이 있어야 되고, 민족이 있기 전에 종족이 있어야 되고. 종족이 있기 전에 가정이 있어야 되고, 가정이 있기 전에 개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떠한 종교 단체의 사람들보다도 못한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성교회면 기성교회의 잘 믿는 사람들한테 져서는 안 됩니다. 책임을 지되 끝까지 져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다르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무리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충신이 있다 해도 그 충신보다 못해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예」 이것이 바로 통일사상입니다.
우리는 공산당을 때려부숴야 합니다. 공산당은 당의 명령에 의해 협박과 공갈로 얼룩진 공포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하지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들처럼 명령을 하고 등에다가 총부리를 들이대고 내몰지 않더라도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어떠한 감독도 없이 자진하여 그들 이상의 일을 해낼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 서지 않고는 공산세계를 녹여 먹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세워 자랑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사탄아, 네가 지금까지 제아무리 모질고 흉악한 과거를 가지고 나왔더라도 이제는 내가 찾고자 하는 아들을 찾았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사탄의 모든 활동의 근거지요, 터전으로 남아 있던 몸뚱이를 완전히 정복하여 몸과 마음을 영원히 내 활동의 근거지로 삼을 수 있고, 혹은 초소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자랑할 수 있는 그런 한 개인이 있다면 그분이 바로 오실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개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상대를 찾아 가정을 이루어야 되고, 그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 민족, 국가를 전부 다 다시 찾아 올라가 세계에까지 나가야 됩니다. 사탄세계보다 못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명을 갖고 모인 여러분은 조금 비약을 하자면 형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모이기까지는 천추만대의 한의 역경을 거쳐서 넘어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의 인연이 라는 것은 우리 일대(一代)에 맺어진 인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한때에 6천년의 한의 인연을 풀기 위한 목적을 두고 지금까지 엮어 온 역사의 결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인연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성이 다를지라도 같은 핏줄을 가진 형제 이상의 정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그렇지요?「예」 우리는 부모 아닌 부모를 모시지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기 혈육의 부모 이상으로 그 부모를 모시려고 하는 무리입니다. 그렇지요?「예」 또, 우리는 나라를 갖고 있지만 그 나라 이상의 충효열을 가지고 하늘나라를 위해서 살려고 하는 무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악한 세계에서 살고 있고, 민주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이 이 세계보다도 고차적이고 자율적인 환경에서 온 천하를 통치하고 만민이 해방되는 것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유와 행복의 나라로 반겨 줄 수 있는 그 세계를 위하여 싸워 온 무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의 그 어떠한 사상보다도 더 훌륭한 터전 위에 서 있는 신념을 가진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예」
이 신념과 더불어 자기 자신을 세계를 위하고 만민을 위하여 제물로 바치고자 하는 그 길에서만이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계 만민을 대표하여 우리들을 내세워 자랑할 수 있는 그때가 되면 아무개의 이름을 불러 만국 앞에 자랑하고, 역사 앞에 자랑하고, 온 천지에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서로가 자랑할 수 있는 생활이 되면 거기에서부터 하나님의 한이 풀려 가지고 나에게 축복의 손길이 임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칭찬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거들랑 하나님과 같이 살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께서 역사의 슬픔을 다 잊어버리고 새소망을 가지고 이 세계를 통치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신자들이 찾아가야 할 길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길에서만이, 이 길에서만이 하나님의 한이 풀린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들이 최후에는 어떤 자리까지 나가야 되느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래야 되지 않아요?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신부를 찾기 위해 오셨는데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그 뜻을 이룰 수 있게 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보다 못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엄청난 자리까지 나가야 된다구요.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와서 악한 사탄을 현실에서 실체를 가지고 굴복시켰다고 하나님 앞에 자랑을 해봤어요, 못 해봤어요? 예수님은 그런 길을 못 갔지요?「예」 민족에게 쫓기므로 교회를 붙들고 싸웠고, 교회에서 쫓기므로 자기 친척을 붙들고 싸웠고, 친척에게 쫓기자 가정을 붙들려고 했는데, 가정에서도 쫓김을 당함으로써 할 수 없이 집을 나가 다른 곳에서 무리들을 모은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몰리고 쫓겨 가지고 결국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여러분은 예수님 이상으로 '아바 아버지여 내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한이 맺힌 동기를 내 일대에서 전부 격파시키고 점령해 가지고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 앞에 오늘날 한민족을 동원해서 세계를 구원할 때까지 이 길을 가고야 말겠다는 신념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신념에 불탈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된다면 대한민국은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성화학생 여러분이 그러한 실력을 가지고 나간다면 여러분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인격자들이 될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무리를 원하십니다. 그런 무리를 통하여 세계를 지도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탕감복귀역사를 보게 되면 아담 해와보다는 아벨이 낫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아벨보다는 노아가 낫습니다, 그렇지요? 노아보다는 아브라함이 낫고, 아브라함보다는 모세가 낫습니다. 점점 커 가는 거라구요. 그 다음에 모세보다는 세례 요한, 세례 요한보다는 예수님이 낫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찾아 가지고 뜻을 이루려 하십니다. 그렇지요?「예」
그러니 통일교회가 기성교회보다 못해서야 되겠어요?「안 됩니다」 통일교회가 기성교회보다 더 나아요. 못해요?「낫습니다」 정말?「예」 무엇이 더 낫다는 거예요? 밥먹는 것이 더 낫다는 거예요? 뭐가 더 나아요? 나라를 위해서 고생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이스라엘 나라를 구하기 위한 교단이었고, 이스라엘 나라는 세계를 구하기 위한 나라였습니다. 알겠어요? 복귀노정을 보면 개인을 복귀한 다음에는 그 개인을 희생시켜 가정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구하기 위해서 개인이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구한 다음에는 그 가정을 희생시켜 종족을 구해야 된다는 거지요? 종족을 구한 다음에는 그 종족을 희생시켜 민족을 구해야 된다는 거라구요. 민족을 구한 다음에는 그 민족을 희생시켜서 주권을 찾아야 되고, 주권을 찾은 다음에는 그 주권을 희생시켜서 세계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도 개인 제물, 가정 제물, 종족 제물, 민족 제물, 국가 제물, 세계 제물, 그 다음은 하늘땅을 중심삼은 천주 제물까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지독하고 악착같아 가지고 세계적이요 역사상에 없는 공적인 문제를 붙들고 누구보다도 희생하고, 누구보다도 거기에 가치를 두고 하나님과 더불어 맺어 나가겠다고 하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신념이 있으면 그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적인 한이 횡적으로 탕감복귀되는 것입니다. 즉, 내 일대에서 하나님의 한이 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그 일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실수한 아담을 실수하지 않은 본래의 아담으로 복귀시켜야 되고, 실수한 노아를 실수하지 않은 노아로 복귀시켜야 되고, 아브라함과 모세도 실수하기 전과 같이 복귀시켜야 됩니다. 해방시켜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실수한 세례 요한을 실수하지 않은 세례 요한으로 해방시켜 주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잘 돌아가신 거예요, 못 돌아가신 거예요?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돌아가셨지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해방시켜 줘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얘기를 하면 기성교회 목사들이 죽겠다는 것입니다. 그럼 죽어 보라는 거예요. 누구 말이 맞나 어디 한번 영계에 가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해방시켜 줘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보다 못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집안이 잘되려면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자식이 더 잘나야지요?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잘되려면 예수님만 사랑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예수님보다 더 잘난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통일교회가 예수님보다 더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면 예수님이 선생님을 보고 인사를 합니다. 선생님이 예수님을 가르치고 있는 거라구요. 이러이러한 문제들을 왜 이렇게 했느냐고 하게 되면 꼼짝못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런 내용이 있기 때문에 종교를 통일하겠다는 간판을 들고 나온 거라구요. 그런 깊은 내용을 여러분들은 모르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을 전부 다 알기 위해서는 빨리빨리 크고. 빨리빨리 공부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한을 풀이 드리기 위해서는 죽기 전의 예수의 사명을 이 땅에서 완결해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죽지 않은 아들로서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으니 아들 못 가진 하나님의 한을 풀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그의 아내를 맞이해 봤어요? 아내를 맞지 못한 것이 예수님의 한인 동시에 하나님의 한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한을 풀고 난 다음에 아내를 맞지 못한 한을 풀어 그 이상의 자리에 나가게 되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맺혔던 한이 풀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친척들과 하나됐어요, 못 됐어요? 못 됐지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친척보다도 더 훌륭한 친척을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예수로 말미암아 맺혔던 한이 풀리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과 교회가 하나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한이 맺혔기 때문에 예수님이 교회를 중심삼고 하나되려던 그 기준 이하가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기준에서 교회와 하나된 터전이 벌어져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맺혔던 하나님의 한이 풀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나라를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요, 세계를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를 중심삼고 나가는 데에 있어서, 일당백으로서 어느때든지 예수님의 한을 그 이상의 범위의 자리에서 풀어 드리겠다고 다짐하면서 스스로 그 책임을 다하며 하나님 앞에 가까이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전체적인 한을 풀어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예수님은 누이동생을 사랑해 봤습니까? 사랑해 봤어요, 못 해봤어요? 「못 해봤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책임을 다해서 하나님의 한이 풀렸다 해도 예수님의 한은 풀리지 않았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와서 누이동생을 사랑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자기 어머니도 사랑해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있는 곳으로 동생과 어머니가 찾아왔을 때 제자들이 '선생님이여,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밖에 섰나이다'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오냐 오냐. 내 사랑하는 어머니와 동생들이여 어서 오라'고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르기를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며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
그러면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했어요, 못 했어요? 「못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머니도 사랑하지 못한 것이며 동생들도 사랑하지 못한 거라구요. 예수님이 불쌍하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예수님을 대신한 입장에서 동생도 사랑하고, 어머니도 사랑하고, 형님도 사랑하고, 할아버지도 사랑하고, 아들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나라도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서지 않고는 예수님의 한이 풀리지 않는 거라구요. 예수님의 한이 풀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한도 풀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사명을 해야 할 사람이 성화학생 여러분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한창 피어나려고 하는 꽃봉오리가 좋아요, 활짝 핀 꽃이 좋아요?「봉오리가 좋습니다」 선생님은 활짝 핀 꽃이 좋은데. 「봉오리가 좋습니다」 그건 여러분이 봉오리니까 봉오리가 좋다고 하지, 피어나려고 하는 꽃이 좋아요. 활짝 핀 꽃이 좋아요?「피어나려고 하는 꽃이 좋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피어나려고 하는 사람들이지요?「예」
피어나는 데 있어서는 네 마음대로 활짝 피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남의 힘에 의해서 피지 말고 네 마음대로 활짝 피라는 거예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여러분들이 자연스럽게 자라 가지고 자연스럽게 사춘기를 지나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활짝 피어서 사랑하고 싶은 남편을 맞아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피지도 못한 채 찌그러져서는 안 됩니다. 잎이 떨어지고 가루가 떨어져서, 피는 꽃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들도 활짝 피어야 됩니다.
그러면 남의 힘에 의해 필래요, 여러분 스스로 필래요?「스스로요」 젊은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활짝 피어나야 됩니다. 활짝 피라는 겁니다, 가만히 있어도 나비와 벌이 찾아들 수 있게끔 활짝 피어나야 됩니다. 오지 말라고 해도 아름다운 꽃인데 안 갈 수 있느냐고 하며 날아들 수 있게끔 되어야 됩니다. 아직 피지도 않은 봉오리인데 수단 방법을 중심삼고 편지하고 연애질이나 하는 그런 못된 녀석들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자연스럽게 활짝 피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게 될 때 '야! 순전히 본성적으로 피었구나. 향기를 맡아 보니 숫것이구나'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희망이 많다는 거예요.
그런 하나님께서 숫것을 원하시겠어요, 찌그러진 것을 원하시겠어요? 그럼 여러분은 어때요? 숫것을 원해요, 찌그러진 것을 원해요?「숫것요」 타락한 여러분도 숫것을 원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더 원할 게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순정을 가지고 활짝 피어서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슬픔의 고비에 걸리지 말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가치 있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한이 풀린 다음에는 남은 게 뭐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봤어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세상이 무엇같이 보일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봤어요, 못 받아 봤어요? 「받아 봤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볼 수 있겠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틀림없이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보면, 뭐라고 할까요? 어떻게, 뭐라고 형용할 수 없다구요.
여러분 벌이 진짜 꿀맛을 보면, 꿀을 빨아 먹고 있을 때 뒤에서 꽁무니를 잡아당겨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쉽게 떨어져요. 안 떨어져요? 안 떨어지지요? 꿀맛이 그렇게 좋은데 하나님의 사랑맛은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하나님의 사랑맛을 한번 보게 되면 목이 떨어져도 놓겠어요, 안 놓겠어요? 팔이 빠져도 놓겠어요, 안 놓겠어요? 다리가 빠져도 놓겠어요, 안 놓겠어요? 안 놓는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이러한 자리까지 나아가야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리는 아들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어린 소년 소녀들이 이 자리에 모였사옵니다. 이들은 어느 한 지역에서만 모인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팔도강산에서 모였사옵니다. 이들의 장래를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이들이 그 누구를 위하여 태어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하여 태어난 소년 소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누구를 위하여 싸우는 자가 되는 것보다도 당신을 위하여 싸우는 자가 되게 하시고, 그 누구를 위하여 사는 것보다도 당신을 위하여 사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선한 길이 어떤 길인지를 알았사옵고, 악한 길이 어떤 길인지를 알았사옵니다. 또한 아버님의 한이 어떻게 해야 풀린다는 사실도 알았사오니, 아버지, 저희들이 그 길을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무리 험난한 수난의 길이 닥쳐와도 당신께서 이 길을 가고 계시기 때문에, 저희들도 운명적으로 아니 갈 수 없는 부자의 인연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갈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에게 슬픔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그것을 넘고 나면 당신의 위로가 찾아온다는 것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번 이 제7차 성화학생 총회로 말미암아 이들이 새로운 불길을 받아 삼천리 반도에 봉기를 드높이고, 뭇 소년 소녀들의 가슴 가슴에 하늘의 새로운 불길을 붙일 수 있는 당신의 어린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들 전체를 맡으시어서 길이길이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옵니다. 여기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의 형님 누나들과 부모들에게도, 아버지, 같은 은사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만복의 은사의 터전을 고이고이 나누어 가져 하늘의 해방권을 이룰 때까지 끊임없이 투쟁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아버님, 부족한 자녀들이 아버지 존전에 부복하였사오니 굽어살피시옵소서. 항상 당신의 은사 가운데, 당신의 보호하심 가운데 지내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모습을 갖추지 못한 저희들인 것을 생각할 때, 죄송함과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사옵니다. 저희들이 또다시 긍휼하신 아버지를 바라보고 자비로우신 아버지의 은사를 고대하면서 이 자리에 참석하였사오니 다시 찾아오셔서 저희들과 의논하시옵소서. 저희들에게 명령하시고 저희들에게 맡기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참된 인간의 모습을 찾아 세우지 않으면 땅 위의 인간을 구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생각하오나 사악한 이 땅 위에는 당신의 참을 고대하며 당신의 거룩한 인격을 본받아서, 흠이 없고 선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살고 있는 참된 자녀가 많지 않사옵니다.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어린 자녀들 가운데에 당신이 찾고자 하시고 만나고자 하시는 참다운 아들딸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주고 싶어서 가지고 오시는 선물을 기다렸다가 만나서 받을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하시옵고, 당신께서 심히 기쁘신 마음으로 영광의 권한을 가지고 축복과 더불어 은사를 베풀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선조들은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당신이 남기신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늘만 우러러보면서 믿고 따라왔던 것을 아옵니다. 여기에 모인 자녀들은 뜻의 귀결점이 어디이며 뜻의 방향이 어떻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시대적 혜택권내에 세워 주신 아버지의 은사에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부족한 몸을 굽혀 당신의 거룩함을 찬양하고, 당신의 은사를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에 사무치는 이 한 시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고요히 저희의 마음 마음을 일깨우셔서 당신이 찾으시는 거룩한 아들의 모습과 딸의 모습을 갖출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시고, 부족한 것을 제거시켜 완전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은은히 저희 자체를 일깨우시어서, 영광의 자리에 속할 수 있는 은사의 아들딸임을 자각하고 뜻을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결의하고 맹세하는, 아버지께서 믿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자신들이 늘 당신 앞에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빚을 지고 있는 줄 모르는 불쌍한 아들딸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역사를 통하여 빚을 졌고, 이 시대를 통하여 넘치는 은사를 받고 있는 이 빚을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부족한 저희들인 것을 생각할 때, 언제나 손해를 보는 입장에서 저희를 이로운 자리에 세워 주시는 아버지의 은사에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 은사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거기에 가하여 생명을 다할 수 있는 참다운 효자 효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침에 소수의 무리들이 여기에 참석하였사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의 품이 그립고, 아버지의 사랑이 그립고, 아버지께서 계시는 곳과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 그리워서 모인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자신이 즐거울 수 있는 일면을 충당시키기 위해서 모일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소망 가운데 기뻐하실 수 있는 모든 내용을 충당시키고, 아버지의 책임 분야를 인계받아 가지고 그 책임을 다하여 승리의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려드릴 수 있는, 부끄러움이 없는 참된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 모인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제 개개인을 부르시어서 '너는 역사시대에 어떤 과정을 거쳐 왔으며 현재는 어떠한 입장에 있다. 앞으로 너를 통하여 어떠한 인연을 남기고 싶다'는 바라심을 낱낱이 통고하시옵소서.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고 아들딸이 기뻐할 수 있는, 당신의 소망과 아들딸의 소망이 일치될 수 있는, 당신의 영광의 뜻을 대하여 승리의 가치의 실체 터전을 바쳐 드릴 수 있는 부자의 인연을 맺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온 세계에 내리는 하늘의 은사는 저희들을 통하여 수습되고, 온 영계는 저희들을 통하여 하늘의 은사에 연결되고자 하는 엄청난 뜻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아버지 존전에 부복하여 가지고 이 소원에 일치되고, 이 소원의 뜻 앞에 승리적 제물의 모습을 갖추어 아버지께서 찬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의 모습이 되고 딸의 모습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전국에 널려 이곳을 그리워하며 생명의 인연을 따라 아버지 앞에 부복하여 축수를 드리는 수많은 자녀들을 버려 두지 마시옵소서,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통하여 고아와 같은 자리에서 슬퍼해 나왔던 인연을 따라 새로운 가정의 인연을 가지고 새로운 종족권과 새로운 민족권을 바라보고 있는 이 무리 위에 당신의 무한한 사랑이 깃드시옵소서. 당신의 영광을 거기에 나타내시옵소서. 당신의 권위가 그들과 더불어 같이하시옵소서. 싸움의 역로(歷路)에서 외로움을 당하며 고독한 자리에서 당신의 은사를 고대하고 있는 자녀들이 있거든, 그들의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은사로,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자리에서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고, 아버지 앞에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지 않고는 자기 스스로의 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어서, 마음으로 고대하고 몸으로 몸부림치면서 아버지를 위한 영광의 실적을 자체의 생활권내에 남길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금후에 이 한국이 가야 할 행로를 아버지께서 가려 주셔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남북한이 갈려 있는 서러움과 비운을 탄식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개체 개체가 갈라졌던 모든 원한의 터전을 세계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거두어야 되겠사옵니다. 때가 되었기 때문에 세계를 대표한 입장에 선 이 한국은 남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저희의 마음과 몸이 갈라져 가지고 싸움의 행로를 가리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의 비운의 역사도 남북으로 통하지 못하고 갈라져 가지고 그 가운데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 강산을, 아버지,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 민족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당신의 거룩한 뜻이 어떻다는 것을 아는 저희들은 밤낮 정성들여 최후의 승리를 다짐하여야 할 사명이 각자에게 있는 것을 망각하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삼팔선을 바라보면서 남북한으로 갈라진 인연을 갖고 있는, 혹은 서로 통할 수 있는 한 날을 고대하고 있는 이 민족이 얼마나 불쌍한가를 저희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북한과 남한을 중심삼아 가지고 피흘린 투쟁의 결과를 엮어 왔던 역사적인 사실을 회고해 보게 될 때, 모두가 이 민족이 하늘 앞에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가해진 탕감의 노정이라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아버지의 뜻의 행로에 있어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될 때는 어느 한때라도 탕감의 노정을 거쳐야만 아버지 앞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오니, 아버지, 지극히 어려운 자리에 서 있는 이 민족을 지켜 주시옵소서.
민족을 대신한 수많은 종교와 수많은 교단들을, 아버지, 긍휼히 보아 주셔야 되겠습니다. 각자의 종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싸울 때가 아니라 민족의 운명을 중심삼아 가지고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하나되는 길을 모색해야 되겠습니다. 이 남한이 힘에 힘을 가중시켜서 북녘 땅보다도 더 강한 힘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생각할 때, 먼저 하늘을 따라 나가는 종교인들이, 기독교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하나되는 일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오늘날 당신이 통일교단을 세우시어 남모르는 수고의 행로를 거쳐 나가게 해주시는 은사를 저희들은 고맙게 생각하옵니다. 자기 소견을 갖추고 정색한 모습으로 나라 앞에 나타나지 못하는 시대적 운세권내에 있는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부끄러운 모습을 빚어 온 것을 슬프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이 나라의 체면과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게 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인연의 자리에 남겨 주셨다고 생각하고 민족에 대한 책임을 절감해야 되겠습니다. 각자가 그런 심정을 다짐하게 하기 위한 사무친 은사의 자리가 이 자리인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의 저희들은 내 스스로의 생활을 하는 자리가 복된 자리가 아니라, 하늘의 나라를 세워서 하늘의 주권을 찬양할 수 있는 그 자리가 복된 자리인 것을 알고 그 자리를 위해 일체를 투입하여 전진에 전진을 다짐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나라가 하나되는 때가 오늘날 복귀도상에서 저희들이 국가를 중심삼고 바라는 정상의 때인 것을 생각하고, 저희들은 가야 되겠습니다. 쉬지 말고 가야 되겠습니다. 저희에게 힘이 부족하거든, 아버지여, 힘을 보충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개척자의 사명을 그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이를 누가 책임질 것이냐 할 때, 아는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아옵니다. 알지 못하는 것보다도 알고 행치 못하게 될 때에는 그 탕감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저희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역사시대에 아버지 앞에 비운을 심어 놓았던 그 민족은, 이 시대에까지 그 결과의 권을 벗어나지 못한 자리에서 내일에 희망을 두고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 민족을 이끌고 가야 할 사명을 느끼면 느낄수록 스스로의 모습은 아버지와 더불어 일치해야 되겠고, 모든 생활은 아버지의 지도하에서, 아버지의 보호하에서 하고, 모든 것을 아버지께 문의하고 실천하는 노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신도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그들은 외로운 무리이옵니다. 들려 오는 소식을 저희들이 듣게 될 때,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 신자들은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과거와 같은 그러한 모습을 중심삼아 가지고도 안 될 것이지만, 오늘의 저희 자체의 모습을 가지고도 안 될 것이옵니다. 주체적인 사명이라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쓰러질 수 있는 결정적인 자리는 주체가 쓰러지는 자리라는 것을 생각하옵니다. 주체가 쓰러지는 자리에 서게 될 때 전체가 쓰러진다면, 전체의 발전 역시 주체가 발전할 수 있는 동기의 내용을 갖추게 될 때에는 가능하다고 생각하오니, 아버님이여, 이 자리에 부복한, 갖추어지지 못한 부족한 무리를 더더욱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이곳을 통하여 숱한 역사를 엮어 오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숱한 수난과 역경을 참아 오면서 눈물도 짓고 몸부림도 치면서 이 한반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곳을 중심삼아 가지고 엮어진 인연들이 흘러가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주류 사상과 더불어, 당신이 거쳐가시는 행보의 실적과 더불어 길이 남아져서 만민의 정신계에 생명의 여운을 줄 수 있고, 신령세계에 생명의 빛을 비춰 줄 수 있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는 이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참석할 적마다 당신의 거룩함을 본받고, 지금까지 쉬지 않으시는 당신의 노력을 본받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해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천상세계의 수많은 영인들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그 선조들의 비운이 땅 위에 있는 저희들을 통하여 해원성사되어야 된다는 엄청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 시대의 복귀의 사명을 완결짓는 일만이 아니라 3시대 복귀의 해원성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저희들은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사옵니다. 늘 하늘편이 되고, 하늘을 대신한 대역자가 되고, 내일의 개척자가 되며, 희망의 봉화가 되어 영광의 세계의 빛으로 길이길이 남아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모인 자녀들을 수습하여 당신의 영광의 품에 품으시사 이날을 기쁠 수 있는 한 날로 받아들이게 하시옵고, 이달에도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하시옵소서. 이해에도 저희들이 거쳐가야 할 모든 일들을 남기고 있사오니, 경륜하시는 뜻대로 모든 것을 가리시사 당신 것으로 세우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이 세계는 참된 선의 세계가 되지 못하고, 반대로 악의 세계가 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만일에 타락이 없었더라면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천국의 터전이 되었을 것이고, 또한 기쁨의 터전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그 반대의 권내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고통을 당해야 되고, 투쟁의 행로를 가려 가서 내일의 소망과 더불어 승리의 한 날을 찾지 않으면 안 될 비운에 싸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역사는 과거에도 그렇게 엮어져 왔고, 현재에도 그렇게 진전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어떠한 참의 승리의 기준을 설정하여 이 악한 역사의 흐름을 가로막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 한 이런 역사는 미래에도 계속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과거에 뜻을 품고 이러한 슬픈 세상을 바라보면서 일생 동안 슬퍼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혹은 뜻을 품은 종족이 있었으면 그 뜻을 중심삼고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슬퍼한 종족도 있었을 것입니다.
더욱이나 우리가 알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 세계를 바라보면서 이 악한 세계에서 선민사상을 실천하기 위해서 무한히 싸웠고, 내일의 희망을 품고 갖은 고역을 극복하면서 오랜 역사시대를 거쳐온 것입니다.
선민권에 선 그 민족뿐만이 아니라 방계적인 국가의 입장에 있는 수많은 나라들도 그 나름대로 하나의 선한 세계를 모색하면서 몸부림치고 있는 정경을 오늘 현실 사회에서, 현재의 국가들 가운데서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도 역사는 그렇게 엮어져 온 것이 틀림없고 여기에서 새로운 무엇이 나오지 않는 한 미래에도 그러한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이렇게 흘러온 역사과정에서 아무리 참을 고대해 왔고, 아무리 선을 찾아왔다 하더라도 세계적인 입장을 대신한 자리에서 참을 찾은 사람이 있었느냐,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참의 자리에서 권위를 갖추어 가지고 생애를 거쳐간 사람이 이 땅 위에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복귀의 노정이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것을 아는 우리는 그러한 기준 위에 선 한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참의 사람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참의 가정이 나오지 않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것이요, 참의 가정이 안 나왔기 때문에 참의 종족과 참의 민족과 참의 국가도 이 땅 위에 형성되지 않았고, 참의 국가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참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그 그리움 자체도 참의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에, 참다운 사람을 역사는 그려 나온 것이요, 오늘 현재를 중심삼고도 바라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습니다. 그 참다운 사람이란 전체를 대표한 사람입니다. 그 전체권내에는 온 천주(天資)가 들어갑니다. 거기에는 하늘도 들어가는 것이요, 땅도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그 참다운 사람은 현재만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과거는 물론 미래까지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의 표본이 될 수 있는 사람이요, 거기서부터 참의 인연이 전진의 도를 가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참의 권(圈),즉 참의 환경을 확대시킬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된 사람을 인류는 아직까지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그러한 참된 사람, 인류가 찾아 나오는 참의 인간과 상봉할 수 있는 한 날을 마련하기 위하여 수많은 수고의 노정을 거치셔야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은 하나님을 따라가야 된다면, 사랑할 수 있는 주체적 입장에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서 인간보다도 더 참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미래를 향해 전진해 나가면서 참을 찾아 나왔고 하나님은 참을 세우기 위해 과거와 현재의 과정을 거치면서 미래의 표준을 바라보고 나왔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바라보는 기준과 하나님이 바라보는 그 기준 안에 일치되는 참의 기준이 결정될 수 있는 그때가 나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은 개인의 가치를 논위(論調)하되 개인만을 중심삼고 그 가치를 논위하는 입장이 아닙니다. 개인의 가치를 논위하되 세계를 대표한 개인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개인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인간이 추구해 나온 참이라는 것은, 인간들이 고대해 나온 참의 기준이라는 것은 국가를 넘지 못했고, 어떤 종족을 넘지 못했고, 자기의 특정한 환경권내에 있는 가정이면 가정, 자기 사정이면 사정을 넘지 못하는 것이 일쑤였습니다. 하나님은 세계적인 표준 밑에서, 그런 가치적인 기준에 있는 대표적인 참의 인간을 찾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지금까지 세계는 커녕 국가적인 한계선도 넘을 수 없는 입장에서 참을 그려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세계의 인간들을 세계적인 참의 기준까지 끌고 나오기 위해, 개인을 대표한 참의 사람이라든가 가정을 대표한 참의 사람이라든가 종족을 대표한 참의 사람이라든가 민족을 대표한 참의 사람이라든가 하는 세계의 인간들을 세계적인 참의 기준에까지 도달시키기 위해 수고하신 것입니다. 거기까지는 인간 스스로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보다 개척자의 사명을 더 하시는 입장에서지 않고는 인간을 그 기준에 연결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시고, 또 책임을 진 입장에 계시기 때문에, 땅 위에서 참을 찾기 위해 걸어야 하는 인간의 수고의 길보다 더 엄청난 수고의 길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인간이 세계적 참의 자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어떠한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어떠한 고독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어떠한 비참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어떠한 억울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참된 사람을 만나기 위한 개척의 행로에서 당하신 그 비참함과 고독과 억울함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선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참을 모색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보급받기를 바라고 '하나님이여, 저희의 부족한 것을 전부 다 제거시키고 저희를 완전한 참의 자리로 이끌어 주소서'라고 언제나 기도하고 바라고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실을 초월하지 못한 자리에서 구하고 있는 인간들이 현실을 초월하여 세계적인 참의 기준에까지 가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수고가 얼마나 클 것이냐 하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됩니다.
한 국가를 두고 볼 때, 국가의 운명이 평탄하지 않을 때 그 국가의 어려운 상황이나 비상시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애국심을 가지고 자기의 생명과 재산을 다 투입해 가지고 희생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희생의 대가로 나라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이 참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엄청난 수고를 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수고한 것만 가지고는 그 참의 기준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갑이라는 사람을 믿고 헙조하셨는데 그 사람의 기준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표준과 일치되지 못하고 중간에 끊어지게 될 때에는, 그것을 을이라는 사람에게 계승시켜서 다시 연결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세워 나가던 기준을 다음 사람 앞에 계승시키는 일은 순순하게, 순리적으로 계승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탕감의 내용이 제시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탕감의 내용을 누가 책임져야 되느냐? 물론 그것을 계승받는 사람이 책임져야 하지만 그 사람만으로는 그 책임을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 책임을 질 수 있으려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미래에 대한 소망과 희망에 벅찰 수 있는,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자극시켜 주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우리 인간이 현실적 과정을 초월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이 세계적인 시대를 맞이하기까지, 우리 인간을 이만한 자리까지 끌어 나오기 위해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하셨겠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세계적인 운세를 바라보는 현재에 있는 여러분 개인을 두고 볼때, 여러분 개인이 우연하게 이런 자리까지 끌려오게 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와 같은 자리에 머물게 되기까지는, 여러분은 모르지만, 하나님이 배후에서 시대 시대의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선조들을 중심삼고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수난과 수고의 길을 거치셨던 것입니다.
그런 수고의 결정이 연결되어 여러분이 현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현재의 입장이란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현재의 입장이 하나님의 수고로 말미암아 엮어졌다면, 그 자리에 서있는 인간들이 하나님이 바라는 참의 세계적인 가치의 인간 앞에 얼마만큼 접근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런 기준이 각자에게 설정되어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게 될 때에는 오늘날 우리 개체를 대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러움이 남아지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현재 이와 같이 세계적인 시대를 맞이한 우리 인간 개개인이 책임지고 있는 사명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사명만이 아닙니다. 그 개인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세계적인 운세를 맞을 수 있는 개인의 터를 개척할 길이 열려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국가의 운세도 열려질 수 있고 세계에 연결될 수 있는 길도 열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그럴 수 있는 인연을 연결지어야 할 우리 개체는 어떠한 사상을 가져야 되느냐? 세계적인 참된 사람을 그리워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계적인 참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하면, 자기 개인 보다도 인류를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속한 가정보다도 인류가 거하고 있는 다른 수많은 가정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처해 있는 특정한 종족보다도 세계 만방에 널려 있는 수많은 종족을 더 위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속해 있는 하나의 특정한 민족보다도 세계국가권 내에 속해 있는 수많은 민족을 위하는 마음이 앞서는 사람입니다.
세계를 위하는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참을 대신하는 내용도 세계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참의 기준에는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현재의 환경을 극복하고 초월하겠다고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참의 인격과 가치가 되는 기준이 있다 할 때 그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모든 입장을 극복하고 초월해야 됩니다. 초월하려면 현재의 입장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더 고차적인 입장에서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참의 인간에게 흡수되고자 하는 욕망이라든가 흠모의 심정이 가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 하나의 참된 사람이 나왔다면 그 참된 사람이 하나님의 소망적 터전이 될 것이요, 거기서부터 하나님이 찾고 있는 가치적인 내용이 비로소 인간에게 접근할 수 있는 터전이 생겨날 것이 아니냐.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참된 인간은 어디에서 태어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참된 인간이 오늘날 타락권내에 있는 지상의 부모를 통해 태어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런 부모를 통해서는…. 하나님이 백 퍼센트 환영할 수 있고 그 몸과 마음은 틀림없는 내 아들딸이라고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그런 참된 사람이 타락한 지상권내에 있는 부모의 혈육을 통해서 태어날 수 있겠느냐.
그것은 인간만으로는, 어떤 부모의 노력만으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태어날 수 있는 부모가 있다면, 세계를 구하고자 하는 하나님이 먼저 그 부모와 인연을 맺어야 될 것입니다. 세계적인 참을 고대하는 하나님이 어떤 특정한 부모와 인연을 맺어서 그 하나님의 소원을 책임지고 이룰 수 있는 아들을 보내기 위해서는, 민족이라는 제한된 자리가 아닌 미래의 선한 천국, 세계적인 천국을 고대하는 마음 바탕을 가진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부모가 땅 위에 없어 가지고는 세계를 움직일 참된 자녀를 이 땅 위에 보낼 수 있는 인연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세계를 염려하고 세계의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생각을 하는 부모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역사과정에 하나님이 엮어 오시던 노정과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과거에도 하나님이 이렇게 세계적 참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찾아오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역사과정의 인연과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그 입장을 계승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것과 같은 자리에서 역사적 보조를 맞춘, 그러한 인연을 이어받은 부모가 아니면 안 될 것입니다.
또, 현재에도 이 세계 인류 앞에 참의 기준을 결정짓기 위해 수고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의 섭리 앞에, 세계적 섭리의 운세를 직접적으로 맞을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의 준비를 한 부모가 아니면 안 될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자기를 통하여 미래에 아들이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는 데도 어느 미래에 가서 중단될 수 있는 소망을 갖는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 영원하듯이 하나님이 갖고 있는 영원한 미래와 일치될 수 있는 미래를 그리는 부모라야 합니다. 그런 부모가 있어야 비로소 참된 사람이 인간세계의 한 부모의 혈육을 통하여 태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시대를 하나님과 더불어, 이 시대를 하나님과 더불어, 미래를 하나님과 더불어 살겠다고 하는 사람, 즉 하나님이 수고하면 같이 수고하고, 싸우면 같이 싸울 수 있는 인연을 갖춘 사람이 있어야 그런 혈육을 통해 가지고 참된 사람이 태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참의 기준의 자리에서 태어난 그 사람이 역사의 일치점을 결실시킬 수 있고, 현재의 일치점을 결정지어 가지고 미래의 일치된 출발점을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참된 사람이 태어나는 동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바란다고 해서 인간이 동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동기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참된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를 가려 가지고 하나님이 바라는 것과 일치된 자리에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가리는 그 점은 어떨 것이냐? 이 세상 역사와 병행할 것이냐? 병행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악한 세상이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과거 사람들이 살던 환경에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태어날 것이냐? 그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러면 현시대에 살고 있는 30억 인류가 그냥 그대로의 입장에서 좋아할 수 있고, 그냥 그대로의 입장에서 환영할 수 있는 자리에서 태어날 것이냐? 그럴 수 없습니다. 현재의 입장과 보조를 맞추는 환경에서는 태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도 악한 세계가 연결되어 있었고, 현재에도 악한 세계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타락론에서도 말하듯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혈통을 통해서 태어나지 않고 사탄의 혈통을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원수인데 무슨 원수냐 하면, 어떤 외적인 조건에 의한 원수가 아니라 사랑의 원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많은 하나님도 사탄을 용서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랑을 주장하는 기독교나, 혹은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대표한 섭리노정에 심판이라는 명사가 왜 있느냐? 이것은 원수를 원수로서 처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의 주체인 사탄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인간들이 오랜 역사시대를 통해 잘못한 것도 용서해 주시려는 하나님이 사탄만은 용서하지 못하느냐? 사탄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원수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인연을 통하여 태어났어야 할 인간이 원수의 핏줄을 통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입장은 이 세상에 처해 있는 모든 사람들과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환경적으로 화합할 수 없는 입장인 것입니다. 역사과정에 아무리 선한 사람이 태어 났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 사람을 내 사람이라고 하면서 몽땅 품고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몇 단계를 가려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가려야 되고, 내적으로 가려야 되고, 몸적으로 가려야 되고, 마음적으로 가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몇 단계를 가리고 난 후에 비로소 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역사과정에 난 참의 사람이라고 해서 거기에서 그냥 몽땅 내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가리는 데에는 어떻게 가려야 되느냐? 깨끗이 가려야 됩니다. 인간 타락의 슬픔을 느낀 하나님의 한은 인간이 백만한 가치의 내용을 중심삼고 타락했다면 백만한 가치의 내용을 가지고 가려서는 풀리지 않습니다. 백 이상의 내용을 가지고 타락한 인간을 가려 버릴 수 있는 이런 하나의 기점을 마련하게 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은 타락으로 인한 슬픔과 원한을 풀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보다 못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보다 더 좋아야 돼요. 그것이 원칙입니다.
성경에는 타락한 우리 인간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양자밖에 못 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양자라는 것입니다. 다리를 놓아 가지고 아버지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인간이라는 거예요. 양자는 핏줄이 다릅니다. 내용이 달라요. 그러면 이 양자가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양아버지와 양어머니를 자기 몸 이상 사랑해야 됩니다. 만약에 양부모의 혈육이 있으면 그를 자기 몸 이상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상속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양자가 상속을 받기 위해서는 그냥 그대로 보통 사람과 같이, 보통 아들과 같은 입장에서 가지고는 안 됩니다. 부모를 위해서, 부모 대신 피를 흘릴 수 있는 자리를 스스로 책임지고 가면서 거기에 무슨 조건을 내세워 가지고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변명하지 않으며 어떤 조건이라도 극복하고 희생하고 순응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선다면 그 양자를 맞은 양부모는 그에게 소망을 더 가질 수 있을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게 될 때에는 모든 것이 그르쳐질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인간역사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이 진짜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볼 때나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 위인이 많습니다. 거기에는 4대 성인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 가운데서 진짜 하나님이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동양에서는 유교사상을 심어 준 공자라고 할 것입니다. 또 불교에서는 석가모니라고 할 것이고 회회교에서는 마호메트라고 할 것입니다. 또 기독교에서는 예수라고 하겠지요.
이들을 4대 성인이라고 하는데, 이 4대 성인 가운데서 누가 표준이냐?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누가 제일이냐? 누가 참이냐? 기준이 될 수 있는 참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참이 못 된다면 참의 기준에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성인이 누구냐?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을 가려 놓아야 참의 기준을 중심삼고 역사의 방향도 설정될 수 있는 것이요, 역사의 방향이 설정되어야 거기에 보조를 맞춰 가지고 우리 개인의 인생관도 설정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까지의 인간역사과정에 나타났던 사람들 중에 하나님이 찾고 있는 참의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될 수 있기 위해서는 순탄한 노정을 거칠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이 땅 위에서는 순탄한 과정에서 참의 결과를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의 인격체로 태어나는 데는 역사시대에서 순탄한 자정을 거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환경 가운데 있는 모든 악과의 싸움을 극복하고 그 투쟁한 실적의 기반 위에서,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새로운 승리의 터전 위에서 참의 한 실체, 세계를 대표한 참의 주인공이 나올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참이라고 보시는, 우리 인간 앞에 참이라고 제시하시는 그 제일 기준은 무엇일 것이냐? 그것은 물질적인 것도 아닙니다. 권위적인 것도 아니요, 인간이 가진 어떤 재질적 조건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참이 됐다. 이제부터 참사람이 된다. 참사람의 고개를 넘는다'고 제시할 수 있는 참의 기준의 내용이 무엇일 것이냐? 잘난 인격도 아닙니다. 지식도 아닙니다. 효도 아닙니다. 충도 아닙니다. 그러면 그게 뭐냐?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기준이 뭐냐? 참이 된다, 참사람이 된다 할 때에 넘어야 할 최고의 경계선이 무엇이냐? 그것은 민족도 아닙니다. 핏줄입니다. 여러분, 이걸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핏줄이 다릅니다. 악한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사탄의 혈통을 받았기 때문에 사탄의 혈통을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혈통을 재차 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결정될 수 있는 하나님이 제시한 최후의 선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사람이 역사시대에 있었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보세요. 그러한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소망의 역사가 탄생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소망의 역사가 탄생되지 않으면 소망의 세계는 현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예수를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역사를 가만히 보게 되면 어떻게 됐느냐면…. (판서하심) 어차피 한번은 엇갈려야 됩니다. 악이 바른쪽에서 출발했고 선이 왼쪽에서 출발했습니다. 악이 먼저 출발했지 선이 먼저 출발한 것이 아니라구요.
오늘날 여러분이 생애를 통해서 보게 될 때, 일생을 사는 데 있어 기쁜 일이 많더냐, 슬픈 일이 많더냐 하고 묻게 되면 슬픈 일이 많다고 할 것입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슬픈 일이 많다고 할 거예요. 혹은 여기에 나이 많은 분들 7,80에 가까운 분들에게 일생 동안에 기쁜 일이 많았소, 슬픈 일이 많았소 하고 묻게 되면 슬픈 일이 많았다고 할 것입니다. 슬픈 것은 악에 가까운 것입니다. 슬픈 것은 제거해 버리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악에 가까운 거예요. 그러나 기쁜 것은 환영해 들이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선에 가깝다는 거예요. 이렇게 보게 된다면 우리 인생 살이는 기쁜 생애의 삶이 아닙니다. 슬픈 생활이 태반입니다.
여러분, 일생이 몇 시간이나 될 것 같아요? 80년을 살았다고 해도 밤을 빼면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은 40년밖에 안 되고, 거기서 소년시대, 노년시대를 빼고 나면 얼마나 되겠어요? 장년시대, 자기가 진짜 세상을 알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무대에 있어서 천지가 나를 바라보고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몇 시간이나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시간이 있기나 하겠어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이렇게 된 것이 무엇 때문이냐? 선이 먼저 출발한 것이 아니라 악이 먼저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엇바뀌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어느 한때에 교차점이 나타나서 바꿔쳐져야 됩니다. 바꿔쳐야 돼요. (그림을 그리심) 바꿔치려면 두 갈래가 여기에서 맞부딪쳐야 됩니다. 요 때는 교차로에 가게 되면 네 길이 생깁니다. 이렇게 내려올 때에는 두 길이지만 이 교차점에 가면 네 길이 되는 거예요. 인간은 어차피 이 교차점을 중심삼고 바꿔쳐져야 됩니다. 바꿔치는 놀음을 이제…. 하나님이 계신다면 역사과정에서 바꿔치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신이 없다면 바꿔치는 놀음을 안 하겠지만…. 그러면 바꿔치기는 어느때부터 해야 되는 것이냐? 타락한 시기에서부터 해야 됩니다. 타락은 어디서 했느냐? 아담 가정에서 했지요? 그러니 아담 가정에서부터 바꿔치기를 해야 됩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는 이미 바꿔칠 수 없는 자리에 섰습니다.
사람은 타락했기 때문에 선한 편이 아니라 악한 편입니다. 그렇지만 사람 자체를 두고 볼 때에 그 주인이 누구냐 하면 사탄이 아닙니다. 본래의 주인은 하나님이예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실체가 사탄편으로 갔습니다. 사탄편으로 가 버렸어요. 그렇지만 본래의 기준은 하늘편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볼 때 본래의 기준에 가까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마음입니다. 마음은 하나님 앞에 가까이 있고, 몸은 사탄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거예요. 몸은 사탄편에 잠겨져 있고, 마음은 하늘편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마음과 몸은 각각 하늘편과 사탄편에 있기 때문에 서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싸우는 데 있어서 어떻게 됐느냐? 마음이 좀 강해 가지고 몸뚱이를 굴복시켜 나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번번이 마음이 몸뚱이한테 지기가 일쑤였어요. 번번히 져 왔어요. 그러면 종교는 무엇이냐? 몸뚱이를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때려잡는 방법하고, 그 다음에는 마음에 강한 힘을 가해 가지고 몸뚱이를 끌고 갈 수 있게 하는, 다시 말하면 마음에 강한 압축공기를 집어 넣어 가지고 작동시키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을 종교는 역사시대가 출발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강요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육(肉)을 쳐라, 세상을 버려라, 다 버리라고 해요. 산중 수도해라, 그리고 정성을 들여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생명을 내놓고 정성을 들여라' 그러잖아요? 그렇게 하면 어떻게 돼요? 그러면 영계를 통하게 되지요. 영계를 통하면 마음에 강한 힘이 가해져서…. 마음과 몸이 4대 5로 대하던 것이 마음에 강한 힘이 옴으로 말미암아 40대 5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몸뚱이를 사로잡아 가지고 한 몇 해 동안 끌고 넘어가게 되면 몸뚱이의 활동무대가 점점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몸뚱이의 활동무대를 딴 데 싸매 가지고 처리해 버리고 본연의 길을 찾아가자는 것이 종교입니다. 이런 것이 종교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정성들여 기도했습니다. 어느 종교든지 정성을 안 들이는 종교가 없습니다. 그리고 몸을 치지 않는 종교도 없습니다. 몸을 치지 않고 정성을 안 들이는 종교는 가짜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일주일 금식을 해야 되고, 개인적인 수난길을 극복해야 되고, 가정적인 수난길을 극복해야 되고, 민족적인 수난길을 극복해야 되고, 국가적인 수난길을 극복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나라는 전부가 닐리리 동동으로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까지 딱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지지 않고는 하나님의 섭리를 받들 수 있는 국가가 못 되는 것입니다. 또, 민주세계와 공산세계 두 패로 갈라지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있는 세계가 못 됩니다. 그래서 딱 갈라진 것입니다. 그게 어디서부터 출발했느냐? 그 모체는 예수 한 사람입니다. 삼팔선이 어디서부터 생겼느냐? 국가에서부터 생긴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의 마음과 몸에서부터 생긴 거라구요. 그러므로 통일방안은 어디에 있느냐? 정치적, 군사적 그런 무엇을 가지고는 통일할 수 없습니다. 근본에 들어 가서, 사람 가운데 있는 삼팔선을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청산하는 방법은 무엇이냐? 몸뚱이를 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마음에 강한 압축공기를 집어 넣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몸을 때려잡을 수 있겠느냐? 자기 스스로는 못 때리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해 가지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해 가지고 몸을 때려잡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짓이겨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몸의 안식을 버리고, 정욕을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잠도 못 자게 합니다. 제일 힘든 것이 그것입니다. 잠을 못 자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철야기도를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다 타락으로 인한 선물이예요. 하나님이 이렇게 인간에게 비공식적인 생활을 강요하시는데 그것은 천리(天理)가 아닙니다. 천리를 찾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에 비천리적인 극복 노정을 가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특정한 민족에게 약속을 하시고 소망을 갖게 하여 그민족을 통하여 이 일을 해 나오셨습니다. 그 특정한 민족이 어떤 민족이냐 하면 이스라엘 선민입니다. 그러면 그 이스라엘 민족의 목적이 무엇이냐? 세계 나라를 점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선민이 바라는 소망은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를 맞는 것입니다. 메시아라는 것이 무엇이냐? 구세주입니다. 구세주는 무엇이냐? 참된 인간의 원형입니다. 여러분이 공장에 가서 보면 철형(鐵型)이 있습니다. 어떤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틀이 있어 가지고 거기에 재료만 넣어 주면 데꺽데꺽 몇천 개고 몇만 개고 찍혀 나오지요? 구세주는 그런 철형과 같은 타입의 사람입니다. 모든 인간의 모델입니다.
그분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분과 하나되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질(質)은 다르더라도 괜찮아요. 질은 다르더라도 모양만 하나되면 구원받는다는 거예요. 사람이 다 예수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모양만 같으면 되는 것입니다. 동그란 모양이면 동그란 모양으로 똑같아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뿔이 있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뿔이 있으면 그 뿔을 잘라 버리지 않고는 합격품이 못 되는 거라구요. 인간세계에 역사상 처음 하나님이 그리던 최고의 형(型)으로 사람은 이래야 된다고 하는 그 형을 대표해 가지고 짝을 찾으러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이스라엘 선민은 그 메시아가 오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도 그래요. 오늘날 전세계의 종교는 메시아 사상을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을 바라고 있어요.
그러면 예수가 과연 인간세상에 있어서 역사적인 참의 인간을 대표할 수 있는 모델이 될 수 있겠느냐?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까 말한 하나님이 제시한 조건인 혈통적인 기준을 초월해야 됩니다. 더럽힌 몸뚱이가 생명의 기원이 된 것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아담과 해와는 타락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런 상극적인 입장에 있는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는 하나님편을 갈라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빼앗아 내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하기 위해서 그 대신 실체(實體)인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타락론에서 들었을 테니 세밀히 얘기하지는 않겠어요.
가인과 아벨은 형제간입니다. 그들이 뭘하느냐 하면…. 제시한 최후의 경계선이 무엇이냐? 최후의 정점이 문엇이냐? 그것은 핏줄을 갈라 내는 것입니다. 더럽힌 혈통을 깨끗이 청소하고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내적인 요인을 끌고 나와야 하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참이 자리를 못 잡는 것입니다.
가인와 아벨은 형제로 태어나서 나이 들어 가지고 무엇을 했느냐 하면, 복귀역사이니만큼 까꿀잡이 역사를 한 거라구요. 사탄이 이렇게 갔으면 하나님은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하심) 그렇기 때문에, 사탄편에서 태어난 가인이 형인데, 하나님이 복귀역사를 하려면 누구를 잡아야 하느냐? 형을 잡고 있는 것은…. 사탄이가 칼자루를 쥐고 있으면 하나님은 칼끝을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먼저 태어난 아들 가인을 사탄이 쥐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음에 태어난 아들을 붙들고 싸우는 섭리를 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역사는 차자(次子)가 축복받는 역사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성경 66권이 사실 그렇게 돼 있다고요. 성경역사는 가만히 보면 차자가 복받는 역사라구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 있을 때도 장자를 전부 죽였지요? 사람은 물론이고 짐승까지도 맏것은 전부 다 죽였습니다. 왜 그랬느냐? 그건 사탄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남아지게 되면 하나님 앞을 더럽힌 터전이 남아지기 때문에 장자를 전부 친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은 어떻게 해야 받느냐? 하늘편에 세워진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사람과 완전히 하나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 가정에서 가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만약에 가인을 때려죽였으면 그때부터 심판이 시작되는 거예요. 누구든지 잘못하면 심판해 버리게 된다구요. 그렇게 되면 이 땅에 인간이 하나도 남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에 심판을 했으면 인간의 종자도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한 하나님은 인간 종자를 남겨야 되겠기 때문에 사탄의 나라가 있으면 하나님편의 나라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을 남기곤 사탄의 세계가 있으면 하나님편 세계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을 남겨 놓고 그 반대편을 잘라 버린 것입니다. 그래야 인간을 구하지요. 가인부터 때려잡았다가는, 그때 치는 조건을 세워 놓았다가는 아벨도 잘못하게 되면 목이 잘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될 수 있으면 먼 거리를 두고 먼 훗날의 심판을 바라면서 섭리해 나오신 거예요. 그때부터 형제 중에 동생을 세워 가지고 형님을 굴복시키는 일을 한 것입니다.
'악은 선 앞에 굴복해라' 이것이 원칙이라구요. 그렇지요? 악은 선 앞에 굴복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절대적으로 굴복하라는 것입니다. 참은 시종여일한 것이니 그 참 앞에 악이 굴복하는 것도 시종여일하게 굴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굴복해야 되는 거예요.
이 사탄세상에서 역사를 엮어 온 인간상을 두고 헤아려 볼 때, 효자는 어떤 사람이 되느냐? 끝까지 참고 가야만 효자가 됩니다. 충신도 끝까지 참고 가야만 충신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참된 충신이 되려면 생명을 바쳐야 되는 것이요. 참된 효자가 되려면 생명을 바쳐야 되는 것이요, 또한 참된 열녀가 되려면 생명을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바치지 않고는 참된 효자가 못 되는 거예요. 충신도 그렇습니다. 죽고 나서야 충신이 되지 살아서는 충신이라고 할 수 없어요. 이렇게 되어 있어요. 참의 주체가 있으면 그 주체 앞에 끝까지 하나되라는 거예요. 죽을 때까지….
오늘날 이 나라를 중심삼고도 이 나라의 운세를 대표한 주체가 있으면 그 주체 앞에 끝까지 하나되어야 충신이 되는 것이요, 가정을 중심삼고는 가정의 주체가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와 끝까지 일치해야 효자가 되는 거예요.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것입니다. 원칙이 그렇게 돼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굴복을 해도 끝까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가 말하기를 끝까지 참는 자가 어쩐다고 했어요? 구원을 얻는다고 했지요? 끝까지…. 문제는 거기에 있어요. 뭐 가다가 적당히 중단하면 가지 않은 것보다 더 나쁘다는 거예요. 오히려 사탄의 방해만 더 받는다고요. 믿다가 도중에 그만두면 안 믿는 것만 못해요.
아담 가정의 가인과 아벨을 놓고 보면, 가인이 아벨에게 굴복해야 했습니다. 동생이 형이 되고 형이 동생이 되어야 한다구요. 꺼꿀잡이가 되어야 돼요. 세상에 그런 법이 있어요? 형이 동생이 되고 동생이 형이 되는 그런 법이 있느냐 이거예요. 세상으로 보면 이게 억지라구요. 순 반대 입니다. 형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금까지 자기 동생을 마음대로 부려 먹고 마음대로 시켜 먹고 그래 가지고 말이예요. 그것이 상습적으로 되어 있고, 또 그것이 딱 정상으로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어쩌자고 반대로 동생을 형으로 대하라고 하시느냐 이겁니다. 세상에 그것이 될 것 같아요? 세상에 그것이 될 것 같으냐 말이예요.
나중에는 자식이 부모가 되고, 부모가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뒤집히는 거예요. 그렇다구요. 천지개벽이라구요. 그런 천지개벽하는 놀음이 종에게도 있고 아들딸에게도 있고 부모에게도 있고, 다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세밀한 것은 빼놓고….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형이 동생한테 굴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어떤 분이냐? 메시아는 어떤 분이냐? 메시아보다 먼저 난 전세계 사람들은 가인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인류가 아무리 많았고. 세계에 사람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앞으로 오시는 메시아 앞에 가인으로 보는 거예요. 먼저 태어났으니까 형으로 보는 거예요. 악한 가인이 먼저 형으로 태어났으니까 악한 세계가 된 것입니다. 악한 세계에 태어난 사람은 전부 다 가인들입니다. 나중에 하늘편에서 보낸 사람이 오는 것인데 그가 오게 되면 그를 아벨로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메시아는 세계적 아벨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이 메시아가 아벨적 자리에 온 다음에 에덴 동산에서 아벨을 때려죽이던 가인과 같은 형이 되면 뜻이고 무엇이고 못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중간무대를 만들기 위해 메시아가 온다는 사상을 가지고 발판을 닦게 한 것이 종교입니다. 어느 종교든지 재림사상은 다 있는 거예요.
그것을 볼 때에, 역사는 피를 안 흘리게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아벨을 때려죽인 가인과 같은 녀석이 세계적으로 쭉 움직이고 있는데 메시아가 오면 '너 이 녀석, 형님의 세계 판도권을 잡으러 와?'라고 하면서 대번에 때려죽일 거예요. 그래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이 세계적인 악한 권에서 하늘편이 맞아 죽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여기에 중간적 판도권을 세워 가지고 개인을 극복한 하늘의 사람, 가정을 극복한 하늘의 사람, 사회를 극복한 하늘의 사람, 국가를 극복한 하늘의 사람, 모두가 좋다 하는 세계적 이상세계를 극복한 하늘의 사람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극복하자는 거예요.
그러면 극복한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메시아입니다. 그들의 귀결점은 전부 다 메시아예요. 개인을 극복한 사람이 바라는 것도 메시아요, 가정을 극복한 사람이 바라는 것도 메시아요, 나라를 극복한 사람이 바라는 것도 메시아요, 세계를 극복한 사람이 바라는 것도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메시아를 위해서는 생명 재산 다 바쳐 희생하더라도 가자' 하는 사상을 집어 넣는 것이, 그 훈련을 시키는 곳이 지금까지의 종교입니다. 이 사상이 희박해져 들어가면 종교는 후퇴하는 거예요.
기독교 사상은 이 메시아 사상에 대해서는 그저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이 온다. 신랑이 온다'라고 하는 이런 사상이 유난히도 강한 종교가 기독교라는 거예요. 이 사상이 강할 때는 그 종교는 틀림없는 종교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상이 약해지게 될 때는 그 종교는 사탄세계화, 세속화해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돼요. 종교가 그 사상에서 멀어지게 되면 세속화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합니다. 이 사상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종교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일 온다 오늘 온다, 오늘 온다 내일 온다'고 하는…. 신앙과정에는 그런 일이 많은 거예요. 그런 것이 종교예요.
그리하여 메시아가 오게 되면 단시일내에 세계의 수많은 종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그 세계적 종교권내에서 예수가 찾고 있는 개인을 찾아야 되고, 그 세계적 종교권내에서 예수가 찾고 있는 한 가정을 찾아야 되고, 그 세계적 종교권내에서 예수가 찾고 있는 한 종족을 찾아야 되고, 그 세계적 종교권내에서 예수가 찾고 있는 하나의 민족을 찾아야 되고, 그 세계적 종교권내에서 예수가 찾고 있는 나라를 찾아야 되며, 예수가 찾고 있는 예수주의 세계형태를 그 세계적 종교권내에서 편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종교들 가운데서 어떤 종교가 참종교냐? 보라구요. 역사상의 4대 성인은 인간의 힘을 중심삼고 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전부 다 종교의 종주(宗主)였어요. 예수도 그렇고 석가모니도 그렇고 공자도 그렇고 마호메트도 그렇습니다. 종주는 하늘의 도리를 가르친 사람들이예요. 하나님을 소개하지 않고는 성인이 못 됩니다. 절대로 못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성인이 아닙니다. 철인(哲人)이지요. 그는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도리를 가르친 사람이 역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선민의 도리를 가르친 사람들이….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뭐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면서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다 들이맞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이 세계를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로 딱 갈라 놓았습니다. 그 절반의 세계…. 하나님이 참을 찾는 종교를 세운 것은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재림주가 온다는 사상은 기독교가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민주주의 세계에는 기독교 문화권이 있습니다. 또, 예수의 사상을 이어받은 새로운 기독교 사상이 통일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권내에서 재림하실 새로운 주님을 맞기 위한 준비를 하는 세력이 움트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상권내에 있는 세계에서 그런 사상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이들의 갈 곳이 어디냐? 손들고 바람벽에 이마를 맞대는 길입니다. 망한다는 거예요. 민주세계는 망합니다. 민주주의는 망한다구요. 보세요. 미국도 망할 것입니다. 이제 몇 해만 더 두고 보세요. 1980년대만 넘어가면 아무리 큰소리를 해도 미국은 몰려날 것입니다.
그러면 공산권을 봅시다. 공산주의는 유물주의입니다. 무신론주의예요.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말하면 그것은 몸뚱이주의입니다. 그거예요. 몸뚱이주의로부터 출발한 것이 공산주의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지을 때 마음과 몸으로 지었는데 그중 몸뚱이가 세계적으로 열매맺은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뭐 신이고 무엇이고 몸이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빵이 제일이라는 거예요. 몸뚱이가 제일 좋아하는 세계가 공산세계입니다.
반면에 민주세계는 마음주의입니다. 거기에는 그래도 동정이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또 거기에서는 평화를 논합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이념은 변증법에 의한 투쟁을 주장합니다. 그들은 투쟁과정이 발전의 요인이라고 말해요. 거기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념이 다르다는 거예요.
이 공산주의는 무엇이냐 하면 끝날의 사탄의 요술통입니다. 여기에 걸렸다가는…. 보세요. 공산당은 모든 일을 밤에 하지요. 밤에 해요. 비밀회의도 전부 다 밤에 합니다. 그리고 땅 구덩이를 파고 들어갑니다. 그것은 그림자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민주세계는 낮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래도 그 둘 중에는 민주세계가 낫지요. 이렇듯, 심은 대로 거두는 때가 되었으니, 끝날이 된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마음의 세계를 대표한 아벨적 세계가 어디냐? 재림사상을 중심삼은 세계입니다. (판서하심) 아벨적 세계…. 그럼 여기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거꾸로 해야 됩니다. 거꿀잡이 놀음을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하느냐? 동생인 아벨을 형으로 만들고, 형인 가인을 동생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만드는 데 있어서 어디까지 가야 완전히 교체했다고 할 수 있느냐? 어디까지 들어가야 하느냐 하면 핏줄을 중심삼고 바꿔쳤다는 자리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가인 아벨은 형제라구요. 이것은 준비단계입니다. 여기서는 실패했다 이거예요. 이것이 왜 그렇게 됐느냐 하면 형은 형대로 동생은 동생대로, 태어나 가지고 서로가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이 가능한 권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요구되는 것이 무엇이냐? 형과 동생을 바꿔치는 일이 가능하려면 서로 통할 수 있는 요소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쌍태(雙給)를 보낸 것입니다. 여러분 쌍태를 알지요? 쌍동이라구요. 쌍동이.
쌍동이는 말이예요. (판서하심) 형이 있고 동생이 있으면, 형과 동생이 서로 통하는 거예요. 형이 서러워하면 동생도 서러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 들어봤지요? 형님이 서러워하면 동생도 무엇인지 모르게 서러워진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가 연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형님에게 갑자기 무슨 사고가 나면 동생은 그것을 벌써 예감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통할 수 있는 길을 찾아 가지고 바꿔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바꿔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꿔치면서 어디까지 가야 되느냐 하면 어머니 뱃속까지, 아버지 뼛골까지 찾아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6천년이 걸린 거예요. 통일교회가 안 나왔으면 몇만 년도 더 걸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간격을 점점 좁혀 들어가는 거예요. (판서하심) 그렇게 해서 에서와 야곱이 싸움을 하게 된 거예요. 야곱은 무엇을 중요시했느냐? 하나님의 축복의 계대(繼代)를 받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에서와는 달랐어요. 에서는 계대고 뭣이고 되는 대로 살고자 한 현실주의자였지만 야곱은 미래주의자였습니다. 약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리브가의 협조가 있었지만, 아무튼 에서는 팥죽을 중심삼고 야곱에게 장자(長子)의 기업(基業)을 팔았습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루 아침에 장자의 기업을 팔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하는 데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맹세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맹세한 것은 실천하지 않으면 벌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물론 성경을 처음 보는 사람은, '세상에 이런 고약한 녀석이 어디 있나, 형님으로부터 장자의 기업을 빼앗아 간 고약한 녀석? 이럴 것입니다. 그렇지만, 야곱이 고약한 녀석은 고약한 녀석이지만, 고약한 녀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거예요. 왜냐? 형님의 자리를 샀으니까. 형님을 농락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고 맹세했기 때문에, 그 맹세한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벌받는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 맹세를 실천하기 위해 장자의 기업을 빼앗아와야 했던 것입니다. 어머니하고 같이 아버지를 속인 것이 아버지한테는 안됐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이 그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도 공인해야 되고 사탄도 공인해야 됩니다. 속인 도리 가지고는 하나님의 뜻이 안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당당한 자리에 서야 돼요. 야곱은 당당했던 것입니다. 어머니와 합세해 가지고 아버지를 속인 것은 야곱이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책임져야 돼요. 벌을 받으면 어머니가 받지 야곱은 안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리브가의 공헌이 크다는 것입니다. 세세한 얘기는 관두자구요.
그렇게 되어 가지고 형제끼리 싸우는데, 축복을 빼앗긴 형 에서가 화가 나서 야곱을 때려죽이려고 할 때에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21년 동안 고용살이를 했습니다. 고용살이가 다른 것이 아니예요. 신앙길은 고용살이를 거치지 않고는, 7년 이상의 고용살이를 거치지 않고는 못가는 노정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는 7년노정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아무리 일국(一國)의 뭘 해먹는 사람이라도, 일국의 통치자라도 이 법도에는 용서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사바사바가 없어요.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 패들, 나는 여러분을 통일교회 패라고 하는데, 우리 통일교회 패들, 7년노정을 갈래요, 안 갈래요?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가야 되겠습니다」 그래 갔어요, 안 갔어요? 가고 있어요, 갔어요? 못 가면 돌아가는 거예요. 6천년을 다 돌도록 도는 거예요. 이거 못 가면 영계에 가서…. 두고 보세요. 여러분은 '선생님은 그저 해라 해라 말씀하시는데, 그러시다가 말겠지' 할지 모르지만 그러다가 마는지 두고 보라구요. 안 들으면 내가 하기 싫어서 그만두고 가만히 있겠지만, 영계에 가서 째까닥 걸린다구요.
그런 일을 안 하고도 될 수 있다면 내가 지금까지 고생을 안 했지요. 여러분만 못해서 뭐 고생한 줄 알아요? 어림도 없습니다. 여러분, 내가 피할 수 있고 슬쩍 해 가지고 넘어설 수 있으면 벌써 넘어섰다는 거예요. 지지리 고생하면서 왜 이 놀음 하겠느냐 말이예요.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바보 천치가 아닙니다. 비상한 사람이예요. 누구보다도 예리한 사람입니다.
자, 하란으로 간 야곱이 고용살이를 21년 동안 했다구요. 갖은…. 라반이 야곱을 잘 속여먹었지요. 거기에서 야곱이 10대 억울함을 당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억울함을 당하지 않고는 그것을 벗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꺼꾸로 된 자루를 뒤집듯이 쭉 벗겨야 돼요. 뱀이 허물을 벗듯이 벗겨야 돼요. 그것이 편안한 자리에서 되겠어요? 뱀이 허물을 벗을 때는 대가리를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틀어대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옛날에 내가 그런 것을 취미삼아 아주 많이 보았습니다. 뱀이 대가리를 뒤로 틀어 제끼고 몸뚱이를 거꾸로 틀어대는 거라구요. 그런거예요.
그 과정에는 극복해야 할 10대 요인이 있는 것입니다. 라반이 야곱을 열 번이나 속였지요? 여러분, 모세 때 10대 재앙을 알지요? 그래서 그런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요? 10년 단위를 중심삼아 가지고 인생을 재고 있습니다. 그런 걸 볼 때, 10대 환난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래야 됩니다. 그것을 딱 넘으면 12단계까지 넘어갑니다. 그런 일들이 다 원리적으로 벌어져 나가는 거예요. 여러분이 모르니까 주먹구구식인 줄 아는데 전문적인 분야에서는 다 공식이 되어 있는 거라구요.
신앙인은 10대 재앙과 같은 고빗길을 극복해야 됩니다. 신앙길은 극복의 길입니다. 극복하려면 모르니까 덮어 놓고…. 덮어 놓고 넘으려니 죽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희생해라, 봉사해라, 머리를 들면 큰일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아이쿠' 이래 가지고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죽고 죽고자 하는 사람은 산다고 했으니 죽겠다고 그저 파고 들어가다 보니 10대 재앙과 같은 극복 노정이 다 풀려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무사통과 방법을 무지한 사람 앞에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가르쳐 주는 데도 잘못 가르쳐 줬다가는 세상을 말아 먹는 것입니다. 그 비밀을 가르쳐 주는 일을 지금까지 종교가 해온 것입니다.
모르고 가는 것이 좋아요, 알고 가는 것이 좋아요? 모르고 가더라도 말이예요. 저녁때가 되어 해가 다 졌으면 모르지만 아침인데도 모르고 가면 좋겠어요? 새아침이 되었다면 알고 가고 싶어지지요? 끝날이 되었는데, 우물쭈물할 새가 없는데 맨 끝날에 가서 우물쭈물하다가는 일대(一代) 안에 다 처참하게 됩니다. 3대만 걸렸다가는 망하기가 십상이라는 거예요. 3대만 연장했다가는 큰일납니다. 그런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서 7년노정은 반드시 거쳐야 됩니다. 이런 것을 세밀히 설명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야곱이가 참 꾀장이였다구요. 야곱의 목적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축복 받는 것이었습니다. 고생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자기가 고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구요. 고생이야 얼마를 하든 축복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 우리 통일교회 패들, 고생을 암만 하더라도 축복을 받아야 되겠다고 생각해요? 통일교회 축복이라는 것이 결혼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구요. 아들로서 책정받아 세움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을 수 있는 종자로서 책정받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죽어도 가야 됩니다. 여러분, 그래요? 죽어도 가야 되겠어요?
야곱이 약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21년 동안 뼛골이 녹아나도록 갖은 천대를 받으면서 모은 재산을 전부 다 가지고 가서, 아, 우리 에서 임금님 것이라고, 에서를 임금님이라고 했다고요. 그러면서 에서에게 바쳤습니다. 세상에서 미욱한 녀석들은 추켜주어야 잡히는 겁니다. 욕심 많은 녀석들은 다 갖다 주고 '아, 우리 주인님, 주인님'하고 떠받들면서 이 재산은 모두 당신의 것이라고 야곱이 몽땅 바치고 나서 쓱 눈치 봐 가지고 자기는 맨 꼴찌로 갔던 것입니다. 불리하면 도망가려고 말입니다.
축복의 계대를 받을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죽더라도 씨를 남겨 놓고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또 싸움을 하지요. 죽으면 큰일 납니다. 살아야 되는 거라고요. 예수 같은 양반은 작전을 잘못 썼습니다. 죽기는 왜 죽어요? 넓고 넓은 세상에서 왜요. (웃음)
에서가 '야곱 이녀석, 어쩌나 보자' 하고 쓱 보니까, 하, 야곱이 '이것은 전부 다 형님 것이요, 나는 형님의 종이요' 하면서 야곱이 떠받드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죽이려고 했던 원수를 환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거기에서 해결되었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외적인 해결점은 여기에서 보았지만, 내적인 입장에서는 ….에서는 외적인 몸뚱이의 입장입니다. 사탄의 몸뚱이와 같은 가인의 입장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야곱이 내적인 면의 해결을 보기 위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싸웠던 것입니다. 사탄은 뭐냐? 천사가 타락해서 잘못된 것이 사탄입니다. 선생님도 사탄이를 굴복시킨 권(圈)에 서기 위해서 사탄과도 싸웠지만 천사와 싸워서도 이겨야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영계를 지배해야 됩니다. 인간으로서 영계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면 천국에 못 갑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인간이 영계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지 않다구요. 땅 위에 있을 때 영계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자가 못 되어 가지고는 하늘나라에 못 가는 거예요. 엄청난 내용이 거기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천사와 허리를 붙들고 밤새껏 싸웠던 것입니다. 환도뼈가 부러져 가지고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이놈의 자식' 하며 버텼습니다. 그 모습이 어땠을까요? 입을 꽉 물고 눈을 부릅뜨고 피땀을 흘렸겠어요, 안 흘렸겠어요? 어떠했을까요? 다리가 부러지고 모습이 될 대로 다 됐으니 거기서 얼마나 붙들었겠어요? 손으로 아마 이렇게 붙들었을 것입니다. (행동으로 표현하심) 이렇게 붙들고 '이놈의 손아, 여기서 펴지면 큰일난다' 했을 거예요. 그러면서 천사에게 '너 죽고 나 죽자, 너 죽기 싫거든 내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하며 밤새껏 들볶았을 거예요. 천사가 참 기가 막혔을 거라구요. 그래서 환도뼈를 때렸는데 야곱이 둘이 죽자고 붙드는 거예요. 그거라구요. 예수 믿는 사람은 그래야 된다구요.
야곱이 천사와 씨름해서 이기려면 천사보다도 더 씨름을 좋아해야 된다구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구요.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아들딸이고 무엇이고 뭐 어때요. 자기 주제고 체면이고…. 체면? '통일교회 원리 말씀은 좋지만. 통일교회에 가면 위신이 떨어져서…. 그러는 놈의 위신은 망할 놈의 위신입니다. 이놈의 자식들을 내가 한번 만나 보려고 그럽니다. 꼭 만나 보려고 합니다. 내가 인사를 톡톡히 할거라구요. 내가 임자네들만 못해서 이런 일을 하는 줄 알아요? 이놈들이 통일교회에는 똥개들만 모인 줄 알고 있단 말이예요, 기분 나쁘게. 작전상 그게 좋긴 좋았어요. 그 바람에 우리는 모이기에 더 힘썼다고요.
야곱이 약았다구요. 결국 에서가 '헤' 하고 환영을 하게 된 거예요. 거기서 볼장 다 본거예요. 칠 수 있는 자리에서 맞아 주는 자리로 천지가 뒤넘이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에서가 환영하고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장자의 기업을 세울 수 있도록 모든 코스를 뒤집은 것입니다.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싸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아 가지고 거기서부터 돌아온 거예요. 거기에서 비로소 동생이 형의 자리에 나가고, 형이 동생의 자리에 서게 된 거예요. 가려졌다는 것입니다. 결국 에서도 복을 받았지요. 싸우지 않고 복을 받았어요
그런데 야곱이 싸워서 이긴 때가 40이 넘어서였어요. 싸워서 이겼는데 40대에 이긴 거예요. 사탄이 얼마나 지독한가 보세요. 여러분, 여당과 야당의 선거전을 보게 되면, 여당에게 조금만 약점이 있으면 야당이 물고 늘어지지요?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이가 물고늘어진 거예요. '에서가 야곱에게 굴복은 했지만, 그때 야곱의 나이가 40을 넘었지 않소? 그러니 40세 전까지는 내 것이 아니요? 40세 전까지의 사람은 내가 관리할 사람이요' 하고 물고늘어지는 것입니다. '세계의 인간을 대표해 가지고 싸움을 했는데 40세 전까지는 내가 지배하던 기준이 있으니 그것까지는 못 빼앗아 가요. 40세 이후에는 내가 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양보하지만 40세 이전은 양보 못 해요' 이러고 나서니 하나님도 할 수 없이 또다시 새로운 섭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쌍동이를 보내는 거예요. 이번에는 쌍동이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디서부터 섭리하느냐? 형제로 낳아 가지고 했다가는 큰일나는 거예요. 태어나서 하게 된다면, 세 살이 되었다면, 사탄이'두 살까지 내 것이다' 하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복중(腹中)에서 했습니다. 한 살이고 몇 살이고, 복중에서 싸워 가지고 이겨야 했습니다. 이것이 뭐냐 하면 유다 집안을 중심한 섭리입니다. 여러분, 예수가 왜 유다 지파에서 왔는지 알아요? 이 싸움에서 하늘의 기준을 설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유다 지파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예수는 가짜입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예수는 메시아가 못 돼요.
여러분, 다말 알지요? 다말이 누구냐 하면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그 다말이 창녀와 같은 모습으로 길가에 서 있다가 시아버지를 유인해 가지고 사랑관계를 가졌습니다. 거기서 태어난 아들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제일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의 조상입니다. 기가 막히지요?
왜 그랬느냐? 인간 조상이 음란으로 타락한 연고로 그것을 헤쳐 버리고 하늘이 거기서 정의의 도리를 닦아 가지고 기수로서 나오지 않고는 이 세상을 심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상을 다스려 나오던 반대의 요건, 싸움의 모든 여건을 들어 심판할 수 있는 깨끗이 된 핏줄을 가려내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 경계선은 원수의 경계선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전부 다 하늘편을 가려 나온 것입니다. 예수의 조상이 기가 막히지요? 예수가 그 유다 지파의 베레스의 후손이라구요.
다말이 해산하게 될 때에, 산파가 떡 기다리고 있는데 쌍동이가 복중에서 싸우다가 세라의 손이 먼저 불쑥 나왔어요. 손이 나오니까 거기에 빨간 줄을 달았습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이 땅 위에 재림주가 오시기 전에 공산당이 먼저 나온다는 것을 예시한 것입니다. 공산당이 먼저 나왔다가 최후에 오시는 재림주님 앞에 일시에 추방을 당해 쫓겨나고, 이 세계가 비로소 정당한 세계가 된다는 것을 미리 다 보여 준 거예요.
그래서 우익과 좌익으로 나누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대표자요, 세계의 심판주이기 때문에 그를 중심삼아 가지고 볼 때 우익은 하늘 편이요, 좌익은 사탄편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상에 있을 때 오른편 강도는 하늘편을 인정했지만, 왼편 강도는 하늘편을 반대했지요? 그리하여 세상에 경계선을 크게 세웠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그것을 구별하여 오른편 강도는 우익이요, 왼편 강도는 좌익이라고 보는 거예요. 우익 좌익의 역사는 거기에서 나온 거예요.
그래 가지고, 다말의 뱃속에서 형 세라가 먼저 나오려고 하는데 동생 베레스가 밀치고 먼저 나온 것입니다. '이놈의 형님아. 네가 먼저 나갈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나가야 된다'고 하면서 발로 밀치고 나온 거예요.
'베레스'란 밀치고 나왔다는 뜻입니다. 복귀는 이미 태어난 형제로도 안되고, 양자로도 안 되겠기에 하나님은 복중에서부터 가리는 놀음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복중에서부터 가려 가지고 승리한 터전을 갖고 태어난 베레스는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요건을 넘어섰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 길을 닦지 않고 배에 배기만 하면 그것은 벌써 사탄의 피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레스가 복중에서부터 혈통적으로 뒤넘이쳐 가지고 거꾸로 밟고 나왔기 때문에 사탄이 베레스와 베레스의 후손은 점령을 못합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전통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다말을 중심삼고, 베레스의 혈통을 중심삼고 이스라엘권이 남아졌습니다. 그리하여 한 날 한 때를 맞이해서 세계적인 메시아가 탄생할 수 있는 복중혈통기대를 닦아 놓았습니다. 이 전통을 그냥 그대로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러한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을 수 있는 후대의 여인이 있어야 됩니다. 왜? 하나님도 개인을 가지고는 안 되거든요. 사탄이 나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빨리 나라의 터전을 만들어 가지고 나라를 가진 사탄과 대등한 입장에 설 때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때에 가서 다말의 전통을 이어받고 태어난 후대의 여인을 통해 메시아를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다말이 어떻게 했느냐? 다말은 시아버지와 혈연관계를 맺기 위해서 자기의 체면과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생명을 내놓았어요. 그것은 당장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놀음이었습니다. 두 가문이 전부 옥살박살될 수 있는 놀음이었어요. 다말은 그런 상황 속에서 자기의 체면과 위신을 버렸던 것입니다. 자기 남편이 죽자 남편의 동생을 맞았으나 그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세째는 어려서 그를 중심삼고는 하늘의 축복받은 혈통의 대(代)를 이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다말은 자기의 위신과 체면을 버리고 생명을 희생하더라도 하늘의 축복받은 계대를 남겨야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다말의 그 마음! 그것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다를 유혹하는 놀음을 해 가지고 축복받은 혈통의 대를 잇게 되었습니다. 다말이 길가에 서 있다가 유다를 쓱 유혹하여 관계를 맺고는 도장을 받아 놓았습니다. 다음에 문제가 되면 증거물로 보이려고 말입니다. 그후 사람들이 다말을 처형하려 하자 다말은 '내게 이 아기의 아버지가 준 물건이 있습니다' 하며 도장을 내보였던 거예요. 그것을 유다가 보니까, 자기가 준 것이거든요. 그러니 어떻게 하겠어요. 아이쿠머니하며 용서했지요. 그래 가지고 다말이 쌍동이를 낳게 된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천도(天道)를 책임져 가지고 생명과 재산과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하나의 여인이 나와야 했는데, 그 여인이 누구냐 하면 마리아입니다. 알겠어요? 동정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하니까,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모르는데 어찌 그런 일이 있으리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다시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나니'라고 하니까,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벌써…. 만약 처녀가 잉태한 것이 탄로나면 국물도 없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해 돌에 맞아 죽는 거예요. 그렇죠? 그렇게 되면 마리아의 가족은 어떻게 되고 그 문중은 어떻게 되겠어요? 망신살이 뻗치는 거지요. 이건 뭐 형편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스라엘의 장래를 이어받을 수 있는 메시아가 언제 오실 것인가? 그분이 이 부족한 처녀의 몸을 통해서라도 태어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하며 일구월심 하나님의 뜻을 바라는 마음이 누구보다도 열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뜻을 세울 수 있다면 위신이고 체면이고 다 버려도 좋고 죽어도 좋다'고 하는 입장에서 예수를 잉태했던 것입니다.
예수의 아버지가 있느냐, 없느냐? 아버지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예수의 아버지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모르지요. 이 다음에 내가 가르쳐 주지요. 우리 원리의 입장에서…. 그것이 원리적으로 증명이 안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딱 증명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예수는 사생아입니다. 아버지가 없는 아들이 태어날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했지'라고들 하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해 가지고 올 게 뭐 있어요? 그럴 바에는 벼락 천둥을 한판 내리고 공중에서 쿵 떨어져 오지요. 시시하게 그렇게 올게 뭐냐는 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예수의 아버지를 찾아 주려고 합니다. 예수는 영계에 가서 자기 아버지를 알았지만 말예요. 나에게는 세계의 기독교인들한테 예수의 아버지를 찾아 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야 예수의 한이 풀리는 거예요. 아버지가 있는데 없다고 했으니 그런 억울한 일이 어딨어요? 있는데도 없다고 하면 큰일납니다. 하나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산당들은 하나님이 없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있는데도 없다니 그거 얼마나 불효예요? 아버지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도 '우리 아버지는 없어. 이 사람은 우리 아버지가 아니야'라고 하면 그 사람이 효자예요, 불효자예요? 때려죽일 자식이지요. 불한당 같은 녀석입니다.
여러분, 예수 아버지를 만나면 인사 한번 할래요? (웃음) 밥이나 한끼 해줄래요? 대우해 줄 수 있어야 가르쳐 주지요. 어떻게 대우해야 될 줄이나 알아요? 대우를 못 하겠으면 입을 벌려 가지고 예수 아버지를 알겠다고 하지 말라구요.
마리아가 잉태를 했는데, 마리아는 누구의 혈통을 받았느냐 하면 하나님의 혈통을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혈통적으로 복중 터전을 깨끗이 한 기준 위에서 예수를 잉태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예수가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예수가 잉태된 때부터 사탄이 '이는 내 아들이다'라고 참소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암만 뭐라고 해도 사탄의 자식이라구요. 복중에서부터 사탄이 참소할 수 없고, 사탄과 관계 없는, 하나님만이 사랑하실 수 있는 자리에서 태어난 사람은 지금까지 역사상에 예수밖에 없습니다. 이거 내가 지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뭐 문선생이 입담이 좋아서 지어 내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예요. 역사가 그렇게 돼 있어요. 내가 왜 이렇게 하느냐? 이때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입체적인 모든 것을 해명할 수 있는 재료를 좀더 남겨 놓고 죽어야지요. 이렇게 말하면 좀 가당하지요? 그러니까 예수가 땅을 대해서 아함! 하고 큰소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큰소리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독생자 아니예요? 그전에 하나님의 아들로 온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 사람이 없었는데, 예수는 혈통적인 터전을 가려 가지고 역사의 한을 넘고 사탄의 터전을 취해 가지고 하늘의 보호권내에 선 신랑격으로 온 사람이라 이겁니다. 복중에서부터 하늘의 보호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종들이라구요. 여기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걸 알아야 돼요. 공자도 석가도 마호메트도 다 종들이라는 것입니다. 온갖 싸움을 거쳐 나온 역사적 투쟁기준 위에 하늘의 섭리가 바라는 표준의 실체로서 등장했던 인물은 역사상에 예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어요. 알겠소? 알겠어요. 모르 겠어요?「알겠습니다」 통일교인들이 안다고 하지만 모릅니다. 이름과 모양은 아는 것 같지만 몰라요. 그러니 그것을 다 설명해야 합니다.
예수같이 태어난 사람이 세상에 또 있어요? 그 한 사람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 4천년 공적을 세워 나온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비로소 지상에 하나의 혈족을 세울 수 있었던 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면 말이예요. 세상사람들은 돌감람나무입니다. 돌감람나무란 고욤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주인은 참감람나무를 심었는데 고욤이 되었다면, 기가 막히겠어요, 안 막히겠어요? 기가 막히겠지요? 이 돌감람나무로는 천국에 못 들어갈 것 아니예요? 그러니 돌감람나무는 어떻게 하든 접붙임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려면 참감람나무가 하나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참감람나무가 있어야 되겠지요?「예」 참감람나무가 누구냐 하면 예수라구요, 예수. 예수는 어떻게 왔느냐? 하나님의 심정을 따라 혈통적 내용을 가려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의 터전을 닦아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감람나무라는 것입니다. 참감람나무의 종자는 예수 하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 예수가 와 가지고 돌감람나무 패들을 어떻게 한다구요? 몽창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자르는 데는 어디를 잘라야 되느냐? 다리를 잘라야 돼요? 목을 잘라야 됩니다. 모가지를 잘라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것입니다. 그게 그 말이 예요. 모가지를 자르면 죽겠어요, 안 죽겠어요?「죽습니다」 진짜 죽어 버리면 큰일나겠으니 '너의 사상을 빼 버려라. 너의 감정을 빼 버려라, 네사정을 빼 버려라. 너의 심정을 빼 버려라. 네 가정의 살림살이니 무슨 살이니 나라살이니 하는 것까지도 다 버려라'고 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4천년 묵은 돌감람나무의 열매를 따게 되면 얼마나 많겠어요? 또 그 나무가 얼마나 크겠어요? 그런 돌감람나무에 접을 붙이려면 참감람나무 눈은 하나인데 돌감람나무 눈은 몇억 개 되겠어요? 그걸 접붙여야 될 테니 어떻게 되겠어요? 이걸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볼 때에'이 미친 녀석들, 쳐죽일 놈들아, 누구를 망치려고 이 짓이냐? 할 것입니다. 참감람나무의 눈 하나를 갖다 놓고 입을 쩝쩝 다시면서 심각하게 히죽벌 히죽벌하면서 큰 돌감람나무를 쓱쓱 자르고 있다 이거예요. 자, 이런 돌감람나무 패들 얘기를 했지만 이거 모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좋아하겠어요, 나빠하겠어요? '아이구, 집안 망했구나. 아이구, 나라 망했구나' 이러면서 달라붙어 야단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아는 사람은 '어서 다 자르자. 이놈의 나라, 이놈의 세계, 이놈의 가정, 이놈의 여편네, 이놈의 자식들, 어서 다 자르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다고 통일교회는 뭐 가정을 파탄시킨다고들 하는데, 내가 가정파탄을 시켰습니까?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는 걸요. 올바로 가르쳐 주면, 그렇게 안 하면 안 되게 되어 있는 걸, 뭐. 배가 곪았으면 그 자리를 째는 것이 원칙인데 째지 말고 낫게 해 달라구요. 그러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거라구요. 그러니 할 수 없이 배를 째야지요.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잘라 버리라는 거예요.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는 연애도 못 하게 되어 있지요? 연애를 했다가는 코통이, 눈퉁이 다 걸리는 거예요. 그러니 다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의 눈을 접붙임받겠다고 온갖 정성을 들여야 돼요. 그러면 주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나라, 종족, 친척, 형제, 혹은 자기 아내면 아내, 자식이면 자식이 '저 주제 보라. 저 주제' 하면서 야단이 날 것입니다. 보이지도 않는 눈 같은 것 하나를 가지고 좋아서 춤을 추거든요. 그러니 세상에서는 망조(亡兆)가 들었다고 야단이지요.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접붙이는 예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전부 다 새눈을 갖다가 접붙여야 돼요.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전부 다 접붙여야 됩니다. 전부 다 잘라 버리고 접을 붙여야 돼요. 그러면 무얼 갖다가 접붙이느냐? 예수의 목을 갖다 접붙여야 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의 모가지를 잘라 버리고 예수의 목을 갖다 붙여야 돼요. 목 위에는 보는 것, 듣는것, 냄새 맡는 것, 맛보는 것, 촉감의 감각기관이 다 있습니다. 육감까지 전부 다 모가지 위에서 느낀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보는 것을 예수 대신 보고, 듣는 것을 예수 대신 듣고, 모든 것을 예수 대신 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의 모가지를 자르고 예수의 목을 갖다 붙일 수 있다면, 여러분의 모가지를 자르겠어요, 안 자르겠어요?「자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자르겠다고 하지요. 틀림없이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장삿속으로 생각해도 아주 수지가 맞거든요. (웃음) 그래 예수의 목이 싫어요? 예수의 머리가 싫어요?「좋습니다」
예수같이 보고, 예수같이 듣고, 예수같이 냄새 맡고, 예수같이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같이 되지 별수 있어요? 이 놀음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돌감람나무에서 참감람나무의 씨를 거두어 가지고 세계에 심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골탕을 먹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뭐뭐뭐…. 이런 놈의 자식들은 내가 한번 만나 가지고…. 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사들을 만나 가지고 몇 마디 하면 이 녀석들이 걸려 가지고 허우적거리는데, 내가 '어때? 이 자식아' 하면 결국 '엉엉…, 몰랐습니다' 하게 됩니다. 이 자식들이 울기는 왜 그렇게 우는지. (웃음) 그럴 수 있는 소지가 안 되어 있으면 내가 만나질 않는다구요.
요전에 청평에 교수들을 모아 놓고 세미나를 하는데 내가 안 나타나니까 '통일교회 문선생은 왜 안 나타나? 우리가 대학교 총장, 학장을 해본 사람들인데, 이만한 간판을 가졌으니 우리 앞에 나타나서 인사를 해야지. 우리가 체면 불구하고 몇 번씩 이렇게 하는데 이게 뭐야. 기분 나빠 죽겠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나타나면 어떻게 말해요? 바른말을 하라고 한 방씩 들이치는 거예요. 통일교회에 대해서 바른말을 한다는 거예요. 나는 그들에게 '여러분들 수고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책임 못한 것을 죄는 거예요. 그들이 따라 줄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만나기가 무서워서 못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나를 따를 때까지, 내 판도가 넓어질 때까지 너와 나를 비교해 볼 때 내가 크면 컸지 작아 가지고는 안 만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더 할까요, 그만둘까요? 일곱 시가 되었는데 좀더 하자요, 말자요?「하자요」 하자구?「예」 여러분이 하자고 했기 때문에 합니다. 나는 여러분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니까, 요전까지는 내가 하자고 해서 여러분이 모인 것이고,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하자고 했으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시험 문제로 낼 거라구요.
보세요. 사탄이 얼마나 짓궂은지 보라구요. 하나님을 6천년 동안 골탕 먹인 사탄이니 얼마나 교활할 것인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사탄이 있는 지도 모릅니다. 자기가 길을 갈 때 골목에서 도끼자루를 들고 이마를 까려고 하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있어요. 그러니 길을 가다가 맞아서 넘어지겠어요, 안 넘어지겠어요? 넘어지지요. 사탄이 있는지를 몰라요. 우리 통일교회는 사탄이 있다는 것을 알지요. 그것은 전도해 보면 압니다. 어떤 사람을 놓고 정성을 들여 가지고 '아무날 몇 시에 교회에 갑시다' 하고 약속해 놓으면 아 요놈의 사탄이 물어 가는 거예요. 딱 사고가 생겨요. 그런 것을 많이 봤지요? 사탄이 언제인지 모르게 나타나 가지고 채갑니다. 이런 경험 많이 했지요? 이런 경험을 못 해본 사람은 통일교회패가 아닙니다. 통일교회를 모르는 사람이예요. 통일교회는 사탄과 이마를 맞대고 주먹을 쥐고 싸우는 곳입니다.
이놈의 사탄이가 얼마나 짓궂은지, 지금도 예수님에 대해서 미련이 있다는 겁니다. 예수가 완전복귀를 못 했거든요. 장성기 완성급의 대표자는 되었어도 완성기 완성급의 대표자는 못 되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죽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아기라는 것은 아버지 뼈 속에서부터 어머니를 통해 나오는데 예수가 아버지가 됐어요? 예수는 아버지가 되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 지요? 그럼 예수도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하나님편에서 볼 때에, 예수의 아버지가 예수보다 높겠어요, 낮겠어요? 또,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보다 높겠어요, 낮겠어요?「낮습니다」 왜 낮아요? 아들이 어머니한테 가서 인사해야 되지 않아요? 왜 낮은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사탄세계에 있어서 혈통적으로 가름을 하지 않은 패들은 다 사탄편이 아니냐? 그러니 요셉이나 마리아는 천사장세계의 복귀형입니다. 천사장 세계 복귀형이라구요. 원리를 중심삼고 보게 될 때에, 복귀는 재창조원칙을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짓기 전에 천사를먼저 지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들은 지상에서 천사장을 복귀하는 사명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결혼을 못 하는 것입니다. 시집 장가를 못 가요.
그러한 입장에서 양자의 계대권(繼代權)을 받아 가지고 직계의 아들을 받을 수 있으려면 혼자서는 안 됩니다. 둘이 받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되어 가지고 예수를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받긴 받았지만 같이 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한이 되는 것입니다. 양자의 입장에서 직계 아들을 받들어야 할 대표자가 요셉과 마리아였던 것입니다. 만일 요셉과 마리아가 그때 예수와 같이 살면서 예수를 중심삼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살았으면 예수는 절대 안 죽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조직을 짜서 뜻을 이루어 나갔을 것입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즉 식민지와 마찬가지 입장이었기 때문에 드러났다가는 예수가 죽는 거예요. 그러니 감쪽같이 지하조직을 해서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단이 예수와 딱 일당이 되었더라면… 그때 로마는 피폐시대였습니다. 또 로마가 지배하던 아랍권 전체의 나라가 로마를 싫어했기 때문에 거기에 불만 붙이면 옛날 12지파가 축복받던 그 권내에 있는 모든 나라가 동원될 수 있는 역사적인 환경이 잘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되기만 했으면 로마와 일시에 딱 갈라 가지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어떤 입장이냐? 양자의 입장에서 직계의 계대를 선물로 받을 수 있도록 중보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천사장편의 대표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셉은 천사장의 실체 입장이요, 마리아는 복귀시대에 있어서 여자의 대표, 즉 에덴 동산의 해와와 마찬가지 입장이었습니다. 천사장과 해와가 짝짜꿍해서 타락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같이 살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런 뭐 복잡한 문제가 많다구요.
좌우간 예수가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그런데 예수가 결혼을 했어요, 안 했어요?「안 했습니다」 타락한 인류의 소원이 뭐냐?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소원이 뭐냐? 중생하려면 뿌리까지 돌아 나와야 돼요. 한 나무의 가지가 진액을 받아 정상적으로 자라려면 뿌리끝 까지도 왕래할 수 있는 길을 닦아야 됩니다. 그러한 터전 위에서 잎도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야 비로소 자랄 수 있는 것이지 저 밑창 곧은 뿌리까지는 못 간다 하게 되면 자라지 못하는 겁니다. 그렇죠? 이치가 그렇지요?「예」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복귀는 어떻게 돼요? 하나님은 완전한 복귀를 바랍니다, 완전 복귀. 그런데 타락한 인류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총각 처녀 때에 씨를 잘못 뿌렸습니다. 그렇죠? 그러니 이제 복귀하려면 씨를 잘 뿌려야 됩니다. 그래서 씨 되는 예수가 온 것입니다. 그는 누구냐? 에덴 동산의 아담으로 재창조된 사람입니다. 그러면 해와는 누가 만들어야 되느냐? 하나님이 만드는 것이냐? 아닙니다. 하나님이 해와를 만들 때 아담을 통해 가지고 만들었기 때문에 아담이 해와를 만드는 데 주역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랑이 신부를 찾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의 사명입니다. 예수가 신부를 찾아내야 되는데 협조자가 없었기 때문에 못 찾았습니다. 마리아, 예수를 낳은 마리아는 이 나이 많은 노총각 예수를 장가 보낼 생각을 안 한 것입니다.
예수에게 친척이 있었어요? 마리아가 예수를 복중에 밴 지 3개월도 못되어 소문이 다 났어요. 요셉과 마리아가 툭탁거리며 싸움을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싸움을 했다는 거예요. 천사가 요셉에게 와서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했으니 데려오라고 해서 그 말을 듣고 마리아를 데려오긴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애비가 누구인지 궁금하거든요. 여기 아저씨들, 자기 아내가 그렇게 성신으로 잉태했다고 하면 그 애비가 도대체 누구인지 알고 싶었겠어요, 안 알고 싶었겠어요? 성신으로 잉태했다는게 뭐냐 말이예요. 성신으로 잉태했다고는 하지만 아버지 없이 애기가 잉태될 수 있느냐 말이예요.
요셉이 마리아에게 '내가 당신을 죽을 자리에서 구해 데려오지 않았느냐. 돌맞아 죽게 된 것을 살려주었으니 은인이 아니냐' 하면서 '자, 뱃속에 있는 애기의 아버지가 누군가 나한테만 말해 주시오' 그렇게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남자들, 여기 아저씨들 대답해 봐요. 그것 물어 봤겠어요, 안 물어 봤겠어요? 못 물어 보는 녀석은 천치 바보라는 거예요. 못 물어 보는 남자는 고자든가 그런 패입니다. 자, 물어 봤겠어요, 안 물어 봤겠어요? 안 물어 볼 자신이 있다는 사나이, 어디 손들어 보자구요, 내가 하나 물어 보게. 물어 보는 것이 정상이지요?「예」 그럴 때에 마리아가 '당신이 그렇게 물어 보지 않아도 됩니다. 성신으로 잉태했지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잉태했지요'라고 대답했다면 요셉이 '오냐 그래, 네 말이 거룩하다. 그랬구만' 했겠어요?'요년아, 사지에서 구해 준 은덕을 모르고 나를 속여 넘기려고 해' 그랬겠어요, 안 그랬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해 가지고 내가 목사, 장로, 세계 신학박사들을 전부 다 솔솔 꾀어 가지고 때려잡을 거예요. 자기 부인이 그렇게 되었을 때에 애기 아버지가 누구냐고 안 물어 볼 자신이 있거든 마리아의 성신잉태를 우기라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3개월 이내에 전부 다 소문이 났다는 겁니다. 동네 아저씨들이 '요셉이 밤낮 나돌아다니다가 무슨 꿍꿍이 속으로 며칠 동안 안 나오나'해 가지고, 또 요셉의 친구들도 '요셉이 왜 안 보이나' 해 가지고 찾아가 보니까 어떤 처녀를 데려다 놓고 있다 이거예요. 그러니 아저씨들이 쑥덕공론하고 아주머니들이나 아이들이 쑥덕거리고 귓속말한 것이 소문이 안 났겠어요? 동네에 소문이 다 났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사렛 동네에서 살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에게 친척이 있었어요? 사생아로 태어난 사람에게 누가 신부감을 줄 것 같아요? 생각해 봐요. 친척은 다 알고 있었다는 거라구요. 그러니 사가랴니, 세례 요한이니, 예수의 아비인 요셉 같은 사람들이 전부 다 하나되어 가지고 예수를 장가 보내 주어야 할 텐데 딴 짓거리들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다 덮어놓고…. 덮어놓고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요? 천만에요. 그렇게 갈 수 있는 천국이라면 내가 뒷짐을 지고 가지 이런 놀음을 안 해요. 기가 막힙니다.
예수가 장가를 못 가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한이 얼마나 크겠어요? 사생아로 태어났으니 누가 환영을 해야지요. 얼마나 안타까왔으면 갈릴리 가나 잔치집에 가서 처음으로 이적 기사를 행할 때에, 어머니가 포도주가 없다고 하니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4)' 그랬겠어요. '내가 이렇게 집을 나와 가지고 방랑아가 되어 이런 행각을 하는 것이 누구 때문인데…' 이랬던 거예요. 마리아가 어떤가 저나라에가 보라구요.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믿고 있지요? 예수를 죽게 한 제일의 장본인이 누구냐 하면 마리아예요. 그 다음에 세례 요한입니다. 유대법이 그렇게 되어 있지 않았느냐고요? 법이 그래요?
또, 예수가 세례를 주고 돌아다닐 때에 많은 무리가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의 동생과 마리아가 찾아왔었는데 그때, 제자들이 '아, 선생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왔나이다'라고 하니까 예수가 뭐라고 했습니까?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이냐? 누구든지 아버지 뜻대로 하는 자가 내 모친이요, 동생이니라(눅 8:19-21)'고 했습니다. 마리아나 예수의 동생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했어요, 안 했어요? 그 말이 뜻대로 했다는 말이예요, 안 했다는 말이예요?「안 했다는 말입니다」 성경이 다 뒤집어 지는 거라구요.
십자가를 세우고 그러게 안 되어 있다구요. 한꺼번에, 일시에 세계의 십자가를 잘라 치워야 돼요. 그것이 비운의 망틀이라는 거예요. 십자가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부활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부활로. 부활로 구원을 얻었다는 거예요. 십자가는 사탄의 뜻을 이루어 준 형틀입니다. 예수가 부활을 했기 때문에 기독교가 생겨났지 십자가에 죽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생겨났어요? 부활한 예수님을 믿어야지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을 믿어요? 근본이 틀렸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사탄이 또 물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 딸로 다시 태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장가가지 않은 남자의 뼛골 속에 들어가서 그 남자가 사춘기가 되어 처녀를 사모하는 그 사랑의 길을 통해서 사람이 태어납니다. 이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그렇게 하지 않고 사람이 태어나요? 그렇기 때문에 뼛골을 찾아 들어가야 됩니다. 뼛골을 찾아 들어가야 돼요. 장가가기 전 총각 속에 있는 애기씨 자리까지 들어갔다 나오지 않으면 완전 재생(再生)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에게 찾아와서 천국에 대해 물었을 때에, 예수는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어서 어떻게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날 수 있습니까? 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거듭나려면 어머니 뱃속까지만 들어갔다 옵니까? 아버지의 뼛골을 거쳐 가지고 나와야지요. 이런 것을 세밀히 얘기할 시간이 없어요. 그런 섭리를 하려니 하나님은 신랑 된 예수를 십자가에 희생시킨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무엇으로 하나되게 만드시느냐? 사랑으로. 사랑으로 하나 만드십니다. 부부는 일신이라고 하지요? 부부가 일신이라면 무엇으로 일신이라는 것이예요? 몸뚱이로 되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되는 것입니다. 또, 부자 일신(父子一身)이라고 하는데 무엇으로 일신이 되는 거예요? 사랑으로. 이 도리가 천도의 원칙입니다.
신랑은 총각을 말하는 거라구요. 장가가기 전 총각을 말합니다. 신부를 맞겠다고 허덕이는 신랑이 됐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총각이 사춘기에 접어든 총각이 이제 때를 맞아 가지고 미래에 자기의 천국의 보금자리를 갖기 위한 제일보를 내딛는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신랑이라고 하지요. 여자도 신랑이라 하고, 남자도 신랑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님의 뼛골속의 사랑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장가가기 전 총각의 뼛골속에 들어간 애기씨가 되지 않고는 절대 하늘나라의 아들딸로 다시 태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랑이라는 명사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신랑이 신부를 맞게 될 때에 비로소 예수의 몸 가운데 잠겨 있던 애기씨가 신부의 사랑길을 통해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거예요. 여기에는 복잡한 수속을 거쳐야 합니다.
그건 여러분이 몰라요. 통일교회 문선생밖에는 모릅니다. 세상에 아무리 영통을 하고, 세계를 주름잡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렇게 태어나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 수속을 모르죠? 그 수속을 알면 대번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거예요. 그건 억천만 원을 줘도 다 안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에서는 값없이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가르쳐 주지만 몇 가지는 안 가르쳐 줍니다. 잘못 가르쳐 주면 그것이 천기누설(天機漏泄)이 되어 세상을 다 잡아먹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믿을 수 있는 사나이가 못 돼요. 도둑이지요. 세상을 망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신랑 신부의 의미를 알겠어요? 이렇게 해서 만민은 거듭나야 됩니다. 민주세계권은 '주여, 오시옵소서' 하면서 신랑되시는 주님이 오시기를 눈물로 그리워해야 돼요. 얼마만큼 그리워해야 되느냐? 남자가 첫사랑 여인을 그저 안 보면 죽겠다고 하는 그 이상으로 그리워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천국에 절대 못 가요. 통일교회 교인들도 그렇다구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남자든 여자든 문선생을 보고 싶어 미치겠다고 하지요? 남자들도 문선생을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 혹은 사랑하는 애인 이상으로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통일교회와 문선생도 가짜입니다. 그러한 무엇이 있다는 거라구요. 어느 기준에 올라가면 그것을 대번에 절실히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누구도 그 인연을 못 끊습니다. 부처(夫妻)끼리의 인연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끊을 수 있어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뭐 양말 한 짝도 없는 것같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인연을 끊을 수 있어요? 칼 갖고 끊을 수 있어요? 생명 갖고도 그것은 끊을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은 무엇이 통일 교회에 있다는 거예요. 이번에 일본 식구들한테도 내가 얘기했지만, 그들도 내가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게 되어 있다구요. 그건 누가 가르쳐 줘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심이 그렇게 폭발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가 웃을 곳이 아닙니다. 여기에 처음 온 젊은이들, 나는 20대의 여러분이 염려스럽습니다. 정신을 바싹 차리라는 거예요.
이래서 장가가지 않은 총각 예수의 몸을 거쳐서 어머니 뱃속을 통해서 태어나려고 하는 애기씨와 같은 입장에 들어가지 않고는 다시 태어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날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없다는 것입니다. 없다는 거예요. 이것이 원칙입니다. 총각 예수의 아들이 되어 가지고 아담의 사명을 다하고…. 아담이 못한 사명을 다하고, 그 이상의 심정을 가지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모시고, 자기 이상 인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서기 전에는 인류로부터 환영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사탄이 빼앗아 갔습니다. 사탄이가 전부 다 빼앗아 가고도 하는 말을 들어 보면,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시고, 완성한 자리에서 만민을 사랑하여야 할 것이 창조원칙이니 내가 타락해서 사탄이 되었을망정 하나님은 사랑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야 될 것 아니요?' 한다는 것입니다. 그거 맞는 말입니다. 또 '나는 타락하여 이렇게 죄인이 되었지만, 당신이야 이 죄인된 모습을 누구보다도 불쌍히 여기고 가슴 아파하고, 슬퍼해야 할 것이 아니요?' 나를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당신은 완성한 피조세계를, 완성한 천국이념을 주도할 수 있는 주인공이 못 됩니다'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것 당연한 말이예요.
또, '당신의 기업을 상속받을 당신의 독생자 되는 예수도, 당신의 아들이니만큼 당신과 같이…. 아담 가정의 아담도 타락하지 않고 완성하여, 천사장을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서 사랑했다는 기준에 서야 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아들의 권세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원칙이 아니요? 따라서 당신의 아들 되는 예수도, 나를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지 못하고는 나를 굴복시키지 못합니다. 그것은 원칙에 어긋나요' 이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조건을 딱 걸고 늘어지는 거예요.
예수가 이 조건을 극복하려고 십자가상에서 '아바 아버지여, 저들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소서' 하고 축복을 해준 거예요. 알겠어요? 그 과정을 넘었기에 비로소 사탄을 대하여 '하나님도 너 사탄을 사랑했고, 예수도 너 사탄을 대해 복을 빌어 주는 입장에 섰으니 너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운 것 아니냐. 그러니 너는 이제 굴복해야 한다'고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이런 복잡한 사연들이 엉클어져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 덮어 놓고, 덮어놓고 믿자구요? 그런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런 배후까지 가려 가지고, 아는 것뿐만이 아니라 투쟁하는 데 있어서 선두에 서서 혈전을 거듭해 가지고, 앞에 대드는 사탄을 지상에서 굴복시킬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닦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자꾸만 하늘편으로 넘어가고 있어요. 이러한 때에 여러분이, 편안히 잠잘 수 있어요? 편안히 잠을 못 자는 거예요. 여러분이 편안히 잠을 자면 여러분 대신 하나님이 편안히 잠을 못 자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잠자는 대신 싸운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예수의 몸 속에 들어가야 되는데 예수는 어떤 존재냐? 사람이 다시 태어나려면 몸이 있는 예수 속으로 들어가야 될 텐데 예수에게 몸이 있느냐?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예수는 영적으로만 살아 있는 허깨비라구요, 허깨비. 그런 예수를 믿다가는 허깨비의 아들딸이 되는 것 아니예요? 예수만 믿다가는 허깨비가 되는 거예요. 낙원밖에 못 가요. 천국은 못 들어갑니다. 낙원은 뭐냐 하면 천국가기 위한 대합실입니다.
예수는 죽음으로 말미암아 천사장의 사명을 책임했는데, 그는 이 땅위에 아무런 실체적 터전을 남기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천추의 한을 남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후에 이 땅 위에 영육을 갖춘 하나의 실체를 가지고 오셔서 인류가 애기씨와 같은 입장에서 그 몸을 통해 새로운 아들딸로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는 기준을 연결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인간이 완전히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어머니를 통해야 합니다. 또, 그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아들딸을 통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어요.
복귀는 어떻게 하느냐? 아버지를 중심삼고 어머니를 통해서 합니다. 그럼 복귀하기 위해 어디로 들어가느냐?(판서하심) 곧바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대번에 여기에 들어가게 되면…. 여기에 들어갈 때에는 가인 아벨이 싸워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렇게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는 이리로 나옵니다. 가인 아벨이 싸워 가지고 들어갈 때에는 이와 같은 입장에서 들어가 가지고 나올 때는, 이것은 사탄의 소굴, 사탄의 참소 조건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끊어 버려야 됩니다. 그래야 싸우는 입장에서 참소를 안 받습니다.
그렇지만 싸우지 않고…. 에덴 동산에서 참소받지 않을 수 있는 아벨과 가인의 자리를 가졌느냐? 못 가졌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자리를 가졌어요? 가졌나요, 못 가졌나요? 못 가졌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뱃속을 통해 태어난 아벨을 통해 가지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가인이 아니라 이쪽에 있는 (판서하심) 아벨이 되어 가지고, 아벨로서 직계권내의 가인적 입장에서, 천사장의 입장에서, 어머니 뱃속을 통해 태어난 아벨과 하나되어 가지고야 완전 탕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세상이 어느때에 왔는지 모릅니다. 말씀은 선생님이 다해 주었지요. 그래야 사위기대 복귀가 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거쳐야 됩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거치고 그 아들을 거쳐 가지고 만물을 복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천사장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종과 같이 충성을 다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거기서부터 3대를 거쳐 하늘의 특권적인 섭리의 기대를, 땅 위에 축복의 조건을 세워 주고 가야만 후대의 후손이 앞으로…. 그것은 어디를 중심삼고 해야 되느냐? 나라를 중심삼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밤잠을 못 잔다는 것입니다. 밥먹고 산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1960년대에 통일교회 패들은 선생님한테 전부 다 반하게 된 거라구요.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라는 거예요. 전부 다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적인 사랑이 아니라구요. 하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생님이 죽는다면 자기가 대신 죽고 싶어하고, 선생님이 망한다면 자기가 먼저 망하고 싶어했었다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가정을 갖기 전에 그런 때가 있었다는 겁니다. 남자들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콧물 눈물을 죽죽 흘리면서 엉엉 우는 것을 내가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런 때가 지나갔습니다. 또, 내가 그러기를 원치 않아요. 그런 때는 다 지나갔어요. 내가 부산스럽고 바빠요, 다 지나갔기 때문에. 참사람이란 그렇습니다. 여러분들 그렇게 생각해야 돼요.
예수는 그렇게 왔습니다. 예수는 참사람으로 왔는데, 참사람으로 와서 식구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또 식구는 부모를 맞아야 됩니다. 그렇죠? 「예」 부모와 자녀의 인연을 갖추어야만 식구라는 이름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사람 하나를 내놓기도 어려운데, 참부모를 중심삼고 그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식구의 자리에 들어간다면 그것이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그것은 세계를 주고도, 하늘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입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에. 오늘날 통일교회를 믿고 있는 여러분들은 여러분들끼리는 횡적인 입장에서 가인과 아벨의 관계에 있지만, 타락 전 아담과 천사장의 입장으로 관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시기 질투 하는 날에는 망합니다. 알겠어요?
우리가 맺은 식구의 인연은 세상의 어떠한 부부의 인연보다도, 어떠한 충신의 인연보다도, 어떠한 형제의 인연보다도 더 강하고 고귀한 자리에서 묶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찾기 위해 역사적으로 수많은 희생을 치러 나왔고, 지금까지 선이 꺾이고 희생하면서 이어 나온 피의 제단을 통일교단까지 연결시켰던 것입니다. 또한 통일교단 자체도 이런 터전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가려 온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이것을 하기 위해서 부모를 버렸고, 형제를 버렸고, 처자를 버렸고, 나라를 버렸습니다. 나라를 버렸기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사실 대한민국 사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국민 같지만 사실은 아니라구요. 대한민국이 내 나라일 것 같으면 왜 나를 핍박하고 죽이려고 하겠어요? 색다른 민족이라서 그러는 거예요. 우리는 이렇게 다 잃어버리고 우리끼리 모이고 우리끼리 만났는데 여기에서 세상의 그 어떤 인연보다 하나되지 못하면 하늘의 참된 백성이 못 됩니다.
참된 식구의 인연을 존중시해야만 참된 민족의 기준이 세워집니다. 참된 민족의 기준도 참된 식구의 인연으로부터 벌어집니다. 그 인연은 나라를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로 존중시 해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들이 또 어디 있겠어요? 우리가 뭣하러 여기에 모였어요? 장사하려고 모였어요, 뭘하려고 모였어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위해 모였지요?「예」 뜻이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소원해 온 것이 뭐냐 하면 하나의 식구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의 해원성사를 한다는 내용도 식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빛될 수 있는 내용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식구를 위하여 정성들이고 한 식구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수 있는 참아들딸로서 하나님께 품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서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현재의 입장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래 식구를 사랑해 봤어요? 서로 비판하고 비난하고 그러다가는 망합니다. 식구 사랑하기를 자기 형제보다도 못하면 가짜입니다. 여러분 식구란 말은…. 여러분 그것 알지요? 예수의 어머니 아버지 대신, 예수의 할아버지 할머니 대신, 예수의 누나 동생 대신, 예수의 삼촌 대신, 예수의 일족 대신, 그들 이상의 사랑의 기준을 대표하기 위해서 나온 말이 식구라는 말입니다. 그 식구란 예수를 중심삼은 것입니다.
예수는 나라로부터 사랑을 못 받았고, 나라를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사랑해 보지 못했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보지도 못했으며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이 예수의 한입니다. 그러니 그 한을 전부 다 식구라는 울타리를 중심삼고 풀 수 있는 단 하나의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묶어진 식구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을 전부 다 예수같이 생각해야 됩니다. 예수의 형이 되어서 예수를 사랑하듯이, 예수의 동생이 되어서 예수를 사랑하듯이, 예수의 누나가 되어서 예수를 사랑하듯이, 예수의 삼촌이 되어 가지고 예수를 사랑하듯이, 예수의 할아버지가 되어서 예수를 사랑하듯이 식구를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는 할아버지가 되어서 자기 손자를 사랑할 수 있고, 또 자기를 사랑할 손자를 맞을 수 있는 인연을 맺지 못하고 간 것이 한입니다. 예수가 할아버지가 되었으면 망했겠어요? 예수가 아저씨 되어 봤어요? 예수는 총각으로 죽었지요? 총각으로서 반동분자로 몰려 죽은 거라구요.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의 한을 풀기 위한 것이 우리 식구라는 것입니다.
이 식구라는 것은 참된 것입니다. 이 참된 식구의 가치가 얼마나 엄청나다 하는 것을 알고, 식구가 그리워 바쁜 걸음을 걷는 사람은 천국으로 달려가는 것이요, 식구를 위해서 피땀을 흘리는 것은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피땀 흘리는 것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이 가치는 하늘땅을 대표한 이상의 가치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여기가 천지의 모든 한이 해원되고, 소원하는 뜻이 성사될 수 있는 거룩한 터전이라는 것을 알고, 식구를 사랑하는 데 서로 앞서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통일교회에서 누구보다도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누구보다도 중심인물이 될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식구들이 여러분을 천국으로 가게 하느냐 못 가게 하느냐를 결정하는 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영수증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흘러가는 역사의 이 악한 운세를 막을 자가 그 누구뇨. 오늘 비운이 감돌고 있는 이 세계를 아버지 앞에 해방시킬 자가 그 누구뇨' 하고 묻게 될 때에 하늘이 동기가 되고 하늘과 더불어 일치된 참된 사람이 나와야 되는데, 그 참된 사람이 나오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내연과 더불어 짝해 가지고는, 엇갈린 혈통을 깨 버리지 않고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제 알았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저희들이 이와 같이 만나게 된 것은 저희가 잘나서가 아니라 배후에서 선한 선조들이 엄청나고도 놀라운 피와 땀과 눈물의 대가를 치렀기 때문임을 아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오늘날 시대적인 인연 가운데 상봉할 수 있는 은사를 받게 된 것을 생각할 때, 진실로 진실로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이 시대를 얼마나 고대했고, 당신이 그리워하는 가정을 얼마나 고대했으며, 식구를 품기 위해 얼마나 애쓰셨사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좀더 빛나고 좀더 가치 있고 좀더 영광스러운 식구를 당신 앞에 드리지 못한 것이 일대의 한(恨)뿐만 아니라 천추의 한이 될까봐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 철부지한 이것들을 여기 이렇게 모아 놓은 것은 그 자체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이들이 역사적인 인연을 귀하게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오니, 선조들을 동원하시어 시대적 사명을 촉구하는 데 있어서 쉬지 말고 이들을 협조하게 해주시기 바라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이 종족을 대표하고 민족을 대표하여 천운이 바라는 엄숙한 사명을 각자의 어깨에 짊어진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나이 많은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으로서, 젊은이는 젊은이로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예수의 한과 더불어 인류의 한, 그리고 하늘의 한, 이 3대 한을 해원 성사하는 것이 통일가의 사명이요, 참된 식구의 이름을 자랑하는 저희들이 죽더라도 해내야 할 본분이요, 사명이요, 책임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가치가 무한한 것이기 때문에 무한한 세계도 그 가치내에 포괄되려고 움직여 나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은 아버지를 부르기 전에 아버지라는 이름조차 생각할 수 없는 미안함을 느껴야 되겠고 황공함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부르기 어려운 아버지요, 모시기 어려운 아버지이신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당신은 저희에게 벌을 주는 엄한 분이 아니라, 저희를 대해 후의하신 마음, 넓고 크신 사랑의 마음과 용서의 심정을 가지고 천만 번 자체의 희생을 한하지 않으시고, 저희의 부족을 염려하시는 당신의 은사 앞에 미칠 수 없는 부족한 자신을 발견할 적마다 죄송한 마음과 황공한 마음에 사무쳐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승리의 영광을 차지하여 아들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딸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인간으로서 그 이상의 소원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럴 수 있는 자리가 인류역사를 대신한 그 어떤 가치보다도 더 귀한 가치의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은 당신이 그리는 진정한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인연을 통하고 있는 아들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 배고픔을 느끼고 있더라도 어서 가자고 촉구할 수 있고, 명령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불충하고 부족한 자신들을 거두어서 당신의 존전에 생축의 제물로 바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역사적이고 엄숙한 참된 식구의 가치 있는 인연을 저희가 오늘 한 줄기의 생명의 빛으로 받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은사인가를 알고, 그것이 감사하고 감사해도 보답할 길이 없는 은사임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고, 또, 그렇게 살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천상에 있는 수많은 선조들의 뜻과 예수와 열두지파에 속한 모든 무리가 이때에 이 땅을 대하여 요구하는 모든 것을 저희들이 이어받아 해원성사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국이 하늘 앞에 하나의 나라를 찬양하고, 한 민족의 가치를 드높이 찬양할 수 있는 그 세계가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변하는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불변의 아들딸의 모습이 되고 정열에 불타는 사랑의 실체들이 되어서, 아버지의 칭찬은 물론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는, 당신이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인간의 마음과 몸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 몸과 마음이 일체되어 가지고 하나의 기점을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몸이 마음의 요구대로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응할 수 있는 자리를 지금까지 인류는 모색해 나왔습니다. 또, 이 몸과 마음의 싸움을 정지시키고 여기에 평정의 기원을 세우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이 도의 길이라든가, 수행의 길이라든가, 혹은 교육을 통하여 온갖 수고를 해 나왔지만,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곳에서 그 평정의 기점을 갖추는 결정적인 승리를 했다고 하는 사실이 역사상에 없었습니다.
이 싸움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 지금 여러분 자체내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싸움을 언젠가 그 한계점을 마련하여 청산지어야 할 것은 인류의 소망이요, 인류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소망이 되어 왔습니다. 이처럼 위로는 하나님의 소원이요, 아래로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의 소원이 되는 이 소원이 성사되는 터전은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 그 소원이 성사되는 터전은 어디서부터 되어야 하느냐? 세계에서 되어지기 전에 국가에서 되어져야 하고, 국가에서 되어지기 전에 민족에서 되어져야 하고, 민족에서 되어지기 전에 가정에서 되어져야 하고, 가정에서 되어지기 전에 내 자체에서 되어져야 합니다.
결국 그 성사의 기점은 대외적인 어떤 세계에서 마련되기를 바라는 것보다도 대내적인 내 자체에서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자체내에서 결정적인 승리의 기점을 마련하지 않는 한 우리가 바라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지상천국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분립된 나 자신, 두 갈래 길에서 싸우고 있는 나 자신을 어떻게 하나 만드느냐 하는 문제가 인류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아닐 수 없고, 인류를 통하여 승리의 기점을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역사적인 소원의 표준이 되는 그 귀착점이 어디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세계도 아니요, 어떤 국가도 아니요, 어떤 가정도 아닙니다. 그 이전에 나 자신에서 이 귀착점을 해결하여 승리의 출발을 보기 전에는 가정으로부터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결점을 찾지 못한 입장에 있는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이 이루어져 있고, 그런 가정을 중심삼고 사회가 이루어져 있고, 그런 사회를 중심삼고 국가와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이 인류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세계의 정상(情狀)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봅니다.
역사과정을 두고 볼 때, 이런 처지에서 싸움은 역사를 통하여 계속되어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 싸움의 본향지는 어디냐? 어떠한 나라가 이 싸움의 동기가 된 것이 아닙니다. 혹은 어떠한 종족이 이 싸움의 동기가 된 것도 아닙니다. 그 싸움의 본거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마음과 몸입니다. 이것이 이 싸움의 기원지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평정되게 하지 않는 한 이 싸움은 그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영원히 평정되고 영원히 일체가 될 수 있는 기준이 벌어지게 되면, 여기서부터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권한이 현현될 것이요, 완성 기준이 성립될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하나님의 권한이 나타나는 터전이 될 수 있는 곳은 국가가 아니고 '나'라는 겁니다. 혹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완성의 척도가 될 수 있는 곳도 국가가 아니라 '나'라는 겁니다. 모든 성패가 '나'라는 개체에서부터 기원되기 때문에, 개체가 완전히 완성한 실체로 나타나서 규합되게 될 때, 거기에서 전체상을 볼 수 있는 것이요, 그 전체상 가운데서 비로소 하나의 형태를 갖춘 우리의 이념적인 세계는 나타날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기원은 상대적인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체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분립된 개인을 심었기 때문에, 그렇게 심어진 개인이 가정으로 퍼지고, 종족으로, 민족으로, 국가로, 세계로 퍼져 이루어진 것이 현재의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에 마음적인 사람의 형(型)이 심어졌고 몸적인 사람의 형(型)이 심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결실로 두 세계의 형태가 갖추어진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세상을 두고 볼 때,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이 세계는 어떠한 길을 더듬어 왔느냐 하면 몸의 역사와 마음의 역사를 더듬어 왔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물질적인 세계와 마음적인 세계로 나타나 대조적인 사상체계를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계를 개척해 나오는 데 있어서 언제나 선두에 선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마음이 아니고 몸이었더라 이겁니다. 모든 주체적인 내용을 갖추게 된 기원이 마음이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몸이 이 세계 역사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주동적인 역할을 해 나왔습니다.
그것은 우리 개체를 두고 볼 때도 여실히 증명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을 두고 볼 때,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하고 싶은데도 마음먹은 대로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월 초하룻날이면 어느누구나 새해를 맞으면서 새로운 마음자세를 가지고 한 해를 의의 있게,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의의 있는 한 해로 남기기 위해 계획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가지고 금년에는 몸을 이끌어 이렇게 하겠다고 결심하지만. 그 계획과 결심대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를 생각해 볼 때, 그 결심대로 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인 것입니다.
천(千)에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보게 될 때, 우리는 마음을 위주로 해 가지고 역사적인 동기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몸을 위주로 해 가지고 우리의 생활환경과 사회환경과 생애를 이끌어 간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마음이 주체가 되었느냐? 어찌하여 마음이 역사과정에서 주체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몸을 끌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싸움 길에 서 있느냐? 이런 자리에서 시달리고 고달픈 입장에 선 것이 마음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돼요.
이것은 여러분 개인을 두고 볼 때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은 이러고자 하는데 몸은 저러고자 합니다. 번번이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몸이 하자는 대로 하게 되고 마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 생활이요, 짧은 생애지만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살아온 생애노정이 아니었더냐. 이런 문제를 우리가 확실히 점검해 볼 때. 마음이 주체적인 입장에 서지 못하고 몸이 언제나 주체적인 입장에서 마음을 끌고 나오는 생애를 살아온 것입니다.
몸을 중심삼고 마음이 끌려가게 될 때는 반드시 외적인 세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으로 귀결되는 것이요,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끌려가게 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세계가 유물주의 사상으로 편만되어 있는 사실을 두고 볼때, 이것은 몸을 기준으로 해 가지고 끌려가는 결과적인 세계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외적인 세계를 때려잡기 전에 내 자신이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이냐?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평정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 권한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이 되었다 할진대는, 그 마음으로 몸을 굴복시킬 수 있고, 그 굴복시킨 승리의 터전이 만인에게 적용되도록 할 수 있는 내용이 되면 거기에서 새로운 사상이 생겨나서 새로운 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제일 문제되는 요인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 세계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어디에 두고 있느냐? 나에게 두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를 바라보게 될 때, 제일의 문제점은 세계가 싸우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근본원인을 여러분 각자 앞에 추궁해 볼 때, 전부 나에게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안 그래요? 그래서 여러분 자신을 두고 볼 때, 세계가 높고 커지는 것을 바라기보다 나 자신이 높고 커지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세계가 행복하기 전에 나 자신이 행복해야 된다' 전부 이렇게들 바라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소망을 미래에 두고 있지만, 그 기점은 세계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부가 나를 중심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성공을 해도 내가 해야 된다, 일등을 해도 내가 해야 된다 이겁니다. 좋아도 내가 좋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부정할 수 없는 욕구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 세상에는 이것을 부정시키는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부정시키는 역사의 흐름을 따라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이 엇갈려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내가 행복해야 되겠다 하는데, 왜 내가 행복해야 되느냐? 내 자체가 행복하지 않고는 가정이 아무리 행복해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자체가 행복하지 않고는 세계가 아무리 행복해도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면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내 자체의 행복의 기준을 어디서 찾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해 가지고 구원섭리를 하시는 데 있어서 역사적인 내용을 통하여 희생을 치러 나오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냐?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행복을 위해서 나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이요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한계적이니 무슨 시한적인 것이니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초월해 계십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사정의 한계권내에 얽매어서 그것을 타개하지 못하는 입장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 지금까지 찾아 나오시는 데 소원이 있다면, 그 소원은 그분 자신을 위한 소원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을 대해 가지고 자녀를 찾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소원은 하나님 자체에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서 해결되어 가지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무엇보다도 각 개인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개인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동원되고 역사가 동원되었습니다. 복귀섭리의 전통적인 사상을 가려 보게 될 때에, 인간 조상 아담 해와가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가인 아벨을 통해 새로운 섭리의 뜻을 세운 그날부터 지금까지 찾아 나온 것은 무엇이냐? 세계입니다. 세계를 찾아 나왔지만 그 세계를 찾을 수 있는 동기적 존재는 무엇이냐? 한 사람입니다. 그 한 사람은 참된 사람인 것입니다. 참된 한 사람이 이 땅 위에 없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이 와야 됩니다. 그러한 사명을 짊어지고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우리 원리는 믿음의 기대를 이룬 터전 위에서 실체기대를 세워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체기대를 세우게 되면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세워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우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냐? 내가 비로소 참될 수 있는 자리를 찾기 위해서, 몸과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기원을 맞기 위해서, 갈라졌던 하늘땅이 통일될 수 있는 기원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내 개인이 완성되지 못한 역사적인 한을 풀고 소원성취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루지 못한 섭리의 뜻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잃어버린 역사를 찾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 현시대에서 승리를 다짐하기 위해서, 암담한 미래를 희망의 미래로 대치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것은 전부 메시아를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출발의 기점에 놓일 수 있는 것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거기에 하나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됩니다.
거기에 하나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 메시아라는 분이 있습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분의 몸이 있고 그분의 마음이 있습니다. 또한 내 몸이 있고 내 마음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보면 메시아는 하나님과 하나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보다 강한 플러스의 입장에 선 주체입니다. 그러한 주체의 인연을 따라서 마음과 몸이 있습니다. 그 마음은 강한 마음입니다. 얼마만큼 강하냐? 세계 인류의 마음을 전부 합한 것보다 강합니다.
그 마음이 얼마만큼 강하냐? 이 세계의 모든 악한 세력이 통합하여 공격하더라도 후퇴하지 않을 만큼 강합니다. 이세상의 어떠한 힘을 가지고 점령하려 해도 점령하지 못할 만큼 강합니다. 메시아의 마음은 그러한 플러스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몸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상충되는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될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되어 있습니다.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내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되면 비로소 '나'라고 하는 인격이 조성되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 둘이 하나되었을 때, 새로운 '나'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은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보다 큰 것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작은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겸해 가지고, 그 둘이 하나의 가치를 이루어 플러스 형태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또 다른 상대 마이너스 형태와 하나되어 가지고 크게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목적을 부정하고는 발전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이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메시아의 몸과 마음은 하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을 두고 볼 때, 원래 인간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이것이 메시아와는 다르게 거꾸로 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이니까 몸이 플러스로 되었습니다. 마음이 몸에게 번번이 지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틀렸어. 내 마음은 언제나 몸한테 이긴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여기에 문제점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몸이 주체가 되어 가지고 마음을 끌고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있고 투쟁이 있는 것입니다.
본래는 마음이 플러스인데도 불구하고 몸이 또 다른 플러스와 같은 주체적인 입장에서 지금까지 마음을 끌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데에는 전쟁이 그칠 수 없는 것입니다. 플러스와 플러스는 상충하는 것입니다. 화합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복귀하자는 것은 마음에 강한 플러스적인 주체성을 주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몸이 마이너스가 될 때는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것을 교체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어야 됩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동기가 되어야 하느냐? 몸이 동기가 되면 안 됩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렇게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마음과 몸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몸을 약화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종교는 이런 교리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종교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몸을 약하게 하는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섭리과정에 이러한 역사노정이 없다면 하나님은 계시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신 역사적인 증거를 가진 실체가 종교입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때려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을 때려잡아서 무엇을 할 것이냐? 마음을 주체로 세우는 것입니다. 마음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주체를 중심삼고 몸이 하나되면 이것이 플러스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시는 주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주님이 플러스가 되고 인간이 마이너스가 되어 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말하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라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그렇게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플러스의 작용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 가지고, 아담 해와의 마음을 통하여 몸까지 연결돼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작용을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 몸이 서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체인데, 몸이 또 다른 주체의 입장에서 있기 때문에 인류역사가 상극적인 입장을 취해 나왔던 것입니다. 마음이 마이너스적인 입장에 서 끌려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뒤집어야 합니다. 이것을 뒤집으려면 반대로 해야 됩니다. 이것이 종교의 길이요, 도의 길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 자신에게 있습니다. 세계를 뒤집기 전에 자기를 뒤집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도 제일 문제되는 것이 자신이었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면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문제시되는 그런 요건이 몇 가지냐? 평이한 사실을 두고 볼 때, 몇 가지냐? 복귀는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반대의 경로를 따라 창조원칙에 의해 하는 것입니다. 창조원칙은 어떤 것이냐?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해와의 주체가 되고 해와는 천사를 주관하도록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은 그 반대의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을 중심삼아 가지고 해와가 지도받고, 아담 해와 앞에 천사장이 지도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아담은 그 지도의 원칙을 어디서부터 이어받아야 되느냐? 하나님으로부터 이어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한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완전한 지도체제는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완전한 지도를 받지 못한 입장에서 완전한 지도체제는…. 본래의 원리원칙에 일치될 수 있는 지도형태는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 앞에 완전한 지도를 받을 수 있고, 개인적인 감정에서부터 생활환경과 생애노정을 통하여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기원을 찾았느냐? 못 찾았습니다. 또, 아담이 하나님과 더불어 기쁠 수 있는 동기를 가졌느냐? 못 가졌습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슬플 수 있는 동기를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과 내적으로 일치되어 가지고 간섭받고 지도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선 것이 아니라, 간섭받을 수 없고 지도받을 수 없어서, 하나님이 추방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상충되는 그런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담이 하나되고, 아담과 해와가 하나되는 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담이, 아담과 해와가…. 이래 가지고 천사장을 사랑 해야 됩니다.
여러분 자체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내연(內緣)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몸과 환경은 그와 반대의 입장에 있습니다. 즉, 타락권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타락의 기원은 어디서부터 있게 되었느냐? 물론 아담에서부터 타락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상적 존재인 천사장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천사장은 인간 앞에 대상적 존재입니다. 아담 해와를 두고 볼 때 아담이 주체라면 해와는 그의 대상으로서 하나되게 될 때, 천사장은 그밖의 존재입니다. (판서하시면서) 횡적으로 보면, 천사장이 있고 해와가 있고 아담이 있고 하나님이 있습니다. 이것을 종적으로 보게 되면, 맨 밑에 천사장이 있고, 그 위에 해와가 있고, 아담이 있고, 하나님이 계십니다. 종적으로는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에게 있어서 하나될 수 있는 기원은 어디서부터 찾아야 되느냐? 마음에서부터 찾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마음에서부터 찾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마음은 하나되려고 합니다. 나침판이 남북을 가리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남북을 가리켜야 할텐데, 이게 반대로 북남을 가리키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마음은 자꾸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런 작용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터전이 마음에 있느냐, 몸에 있느냐할 때,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나님편에 있기 때문에 자연히 하나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지만, 몸은 사탄의 우거지(寓居地)가 되어 있습니다. 악의 출발지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탄의 출발의 기원, 동기가 어디냐? 마음이 아닙니다. 몸입니다. 그래서 몸은 마음이 가고자 하는 길과 반대의 길을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몸이 좋아하는 곳에서는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몸이 싫어하는 길에서만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복귀역사에서 종적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한다고 하지요? 그러면 나를 두고 볼 때에, '나'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냐? 하나님을 대신한 마음이 있고, 그것을 대신한 내가 있고,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상대가 있고, 상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녀가 있습니다. 사위기대가 횡적으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사위기대 형태 이외에 무엇이 있느냐? 그밖에도 무엇이 있느냐? 만물이 있습니다.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가정이 있으면 가정 외에는 무엇이 있느냐? 만물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창조역사는 무엇이냐? 재창조역사는 거꾸로 하는 것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떨어졌는데, 이것을 다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밖에서부터 거꾸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나가는 게 아니라구요. 타락하지 않았으면 나갈 것인데, 반대되는 놀음을 하는 거라구요. 거꾸로 찾아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는 제물시대입니다. 제물시대는 만물을 치는 때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부모가 있으면 자식이 있고 만물이 있습니다. 즉 소유가 있는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를 두고 볼 때, 구약시대는 어떤 시대였느냐?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물질을 치는 시대였습니다. 신약시대는 자녀를 치는 시대였고, 성약시대는 부모가 십자가를 지는 시대입니다. 이것을 종적으로 탕감하려니까 찾아 들어오는 거라구요. 이것을 횡적으로 전개시켜 놓으면 이것은 물질에 해당하는 것이요, 이것은 자식에게 해당하는 것이요, 이것은 자신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개인은 이러한 자리에 설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환경은 개인이 가질 수 없습니다. 가정을 가져야 비로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가정이 아니고는 이런 내용을 대신할 수 있는 터전을 못 갖는 거예요. 그렇지요?「예」만물이 있고, 자식이 있고, 부모가 있으려면 가정이 없어 가지고 돼요? 안 되지요? 복귀역사에서는 이와 같은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하는데 그러한 내용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갖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구약시대는 만물을 쳐서 하나님 앞에 바쳐 드린 때입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 앞에 제물을 쳐 가지고 바쳐 드리던 때요, 신약시대는 그보다 한 단계 올라오는 거라구요. 탕감 복귀니까 외적으로 쳐들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쳐 가지고 고이 맞는 사람들은 하늘 것이요, 고이 맞지 않는 사람들은 사탄 것입니다. 여기에서 불평하고 반항하는 사람들은 사탄 것이 되는 것이요, 절대 복종하고 순응하는 사람은 누구 것이 된다구요?「하나님 것이요」 이걸 결정해 나오는 거라구요.
제물이 무엇이냐? 생명을 걸고 희생하면서 가만히 있는 사람은 누가 치느냐? 제물은 누가 잡느냐? 다른 사람이 잡지 않습니다. 제사장이 잡는다구요. 제사장은 하나님 대신이지요? 그러니 하나님이 치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칠 때, '아이구 나는 죽기 싫어요' 하면 사탄의 것을 그냥 그대로 이어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응당히 죽겠습니다' 하며 고맙게 맞게 되면 거기에서 부활이 벌어집니다. 몸은 죽더라도 하나님 앞에 다시 새 것으로 꼭 받아들여져서 존재 인식권이 성립되는 거라구요. 그 놀음을 해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쳐 가지고 하나님이 받아 줄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지나간 후에는, 물건을 쳐서 희생시켜 가지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누구를 찾자는 것이냐? 아들 하나 찾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메시아를 맞이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참감람나무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생명나무를 맞는 거라구요. 그것이 곧 메시아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메시아의 소원은 무엇이냐? 자기가 희생되더라도 부모의 자리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메시아의 소원은 무엇이냐? 부모의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부모의 자리에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대신 탕감해야 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대신 탕감해야 되느냐? 반드시 아담 해와를 중심삼아 가지고 탕감법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아담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은 해와를 찾기 위해서, 상대를 찾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상대를 찾는 데 있어서 잘못 찾는 날에는 희생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정을 찾으려고 한 것입니다.
가정을 찾기 이전에 누구를 찾아야 되느냐 하면 천사장을 찾아야 합니다. 천사장을 굴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실 때에 협조하는 천사장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만물을 지배할 수 있는 승리한 아들이 나왔다면 거기에 승리한 천사장이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때에 이 지상에서 승리한 천사장형의 대표자가 누구냐?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영계에서 잃어버린 천사장 대신자로 지상에 찾아진 존재였던 것입니다. 천사장형 세례 요한과 아담형 예수님이 하나되어 가지고 만물을 지배해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예수님은 만물을 지배할 수 있는 승리의 제단을 상속받아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 제단이 유대교였습니다. 유대교는 구약성경을 믿고 제단을 지켜 나온 종교였습니다. 제단을 지키면서 만물을 희생시켜 제물을 드리던 그 발판을 예수님이 전부 인계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그것을 인계받을 수 있도록 수속절차를 밟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전체 내용이 얼크러져서, 예수님이 그 사명을 대신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명을 하는 제2차 노정에서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슨 사명을 하기 위해서 사탄과 싸웠느냐? 세례 요한적 사명을 재차 하는 노정에서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 아들의 사명을 했어요, 못 했어요? 못 했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무슨 일을 했느냐 하면 천사장을 찾는 놀음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아들이 갈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으로서 갈 길하고 양자가 갈 길을 찾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직계 아들이 못 되었습니다. 직계 아들의 사명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천사장의 길, 종의 길과 양자의 길을 가는 놀음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어도 기껏해야 양자밖에 못 되는 거라구요. 핏줄을 연결시키지 않은 인연은 천사장급의 입장입니다. 그러면 양자와 같은 입장은 무엇이냐? 핏줄이 다른 입장에 있는 가인과 마찬가지의 존재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지금까지 섭리역사는 그 핏줄을 연결시키기 위한 싸움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는 죽었지만 아들로서 죽은 것이 아니라구요. 예수님이 영(靈)과 육(肉)이 하나된 아들의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승리의 터전으로 바쳐지는 자리에서 제물이 되었더라면 재림할 필요가 없습니다. 완전히 바쳐지지 못했습니다. 절반밖에 못 바쳐졌습니다. 몸은 잃어버리고 영만 바쳐졌습니다. 이것은 영계의 천사세계와 맞먹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믿다가 가는 사람들은 무슨 급에 머무느냐 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낙원급 이하의 영계에 가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즉, 천사장이 지배하는 영계, 천사장권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계에서의 승리의 보호권으로서 지상에 승리의 보호권을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그것을 계승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예수님이 왔다간 뜻이기 때문에, 기독교는 영계의 승리권과 지상의 승리권을 한꺼번에 찾아 세워서 천사장권을 계승해야 되는 거라구요. 이것이 기독교의 사명 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실체적 완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영적 완성만이….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영계를 위주로 하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오시는 주님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영계의 천사장권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지상에서의 출발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다시 오시는 주님은 이 땅에 오실 때에 영계에서 승리한 예수님 이하의 전체의 영적 세계를 계승받는 자리에서 와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서 계승을 받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례 요한이 예수님한테 영(靈)을 중심삼고 계승은 했지만 그 약속대로 하지 못해서 갈라졌거든요. 그래서 이것을 재차 하기 위해 기독교를 세워 나왔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다시 오시는 주님도 아담의 입장으로 오시기 때문에 천사장권 세계인 예수님을 중심삼은 기독교권, 수많은 종교권은 그 주님 앞에 속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기독교를 비롯한 온 종교가 오시는 주님 앞에 영적으로 상속을 해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러한 상속을 받지 않고는 지상에 재림주로서 군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영적인 세계를 통일시킨 그 통일방안을 가지고 지상세계를 통일시키기 위해서 와야 됩니다.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영적인 세계에서 인계받았던 것을 육적인 세계의 기독교에게 인계해 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데 지상의 기독교는 영계를 위주로 하고 있지 지상세계를 위주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시는 주님은 영계를 위주하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지상세계를 위주하고 오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상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는 위를 바라보고 하나는 땅을 바라보고 있는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까딱 잘못하면 여기에서 갈라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운명이요, 오시는 주님의 운명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이 하나되었다 할 수 있는 기준이 나오지 않고는 아들로서 완성했다 할 수 있는 자리는 지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상에서 완성해야 할 기준이 어떤 것이냐? 그걸 알려면 먼저 예수님이 왜 죽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왜 죽었느냐? 첫째는 가정을 못 가졌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나라를 못 가졌기 때문이요, 세째는 세계가 하나되어서 예수님을 모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첫째는 가정 때문에 죽은 것이요, 둘째는? 최 재만! 첫째는 무엇 때문에 죽었다구?「가정 때문이요」 둘째는?「나라 때문에요」 대답하는 것 보니까 들었구만. 둘째는 나라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세째는 무엇 때문이냐? 악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 세계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악은 나라만 지배하지 않습니다. 세계를 지배합니다. 때문에, 이것이 싸워 나가야 할 3단계입니다.
그러면 다시 오시는 주님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선 영계와 육계를 통일해야 됩니다. 그 통일방안을 모색해야 된다는 거예요. 반드시 영적 세계의 승리의 기원을 갖추어 가지고 육적 세계의 승리의 기점을 마련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마련하는 데는 어디서부터 해야 되느냐? 개인에서부터 해야 됩니다. 그래서 영적인 것을 대표할 수 있는 마음의 기준과 육적인 것을 대표할 수 있는 몸의 기준이 하나될 수 있느냐? 이게 문제라구요. 알겠어요? 하나가 못 된다면, 하나가 못 되는 그 내용이 무엇이냐? 이게 문제라구요.
그러면 오시는 주님의 고충이 무엇일 것이냐? 영계와 육계를 접선시키는 데 있어서 어디서부터 해야 하느냐? 그것은 세계에서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개인에서부터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도 몸을 쓰고 마음을 갖고 오시는데 그분의 몸과 마음은 절대적으로 하나되어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분의 몸과 마음이 절대적으로 하나되어 있다면 타락권에 속하지 않은 입장에서 하나님의 주관권에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분도 사탄세계의 혈육을 통해서 나오기 때문에 전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작용은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몸을 굴복시키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그렇게 해 가지고 어느 기준까지 올라가야 되느냐? 타락하기 전의 아담 해와보다도 못한 기준에 올라가서는 안 됩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타락하기 전의 아담 해와의 기준 이상으로 넘어서야 됩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데 있어서 몸과 마음이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기준이 아담 해와 이상의 자리를 발견하지 않고는, 영육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담이 실패한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새로운 출발의 기점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러면 하나되는 데 있어서 제일 어려운 내용이 무엇이냐? 그건 타락성 근성입니다. 타락성 근성에 대해 배웠지요? 타락성 근성의 첫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것이라구요. 무엇이? 타락성 근성이…. 그러나 마음은 하나님과 같은 입장을 취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하나님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 못했느냐? 몸이 하나님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몸뚱이가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좋아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몸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대로 몸이 해야 됩니다. 지금까지 이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이 마음보다 높은 자리에 있어요. 마음보다 낮은 자리에 있어요?「높은 자리에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으니,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해 가지고 몸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어요? 몹시 힘듭니다. 마음이 동기가 되어 타락한 기준을 중심삼고 보면, 요거 완성이예요? 장성기 완성급의 기준에서 마음이 출발했다구요. 그러니 이것은 천사장의 마음의 기준을 이어 받은 자리입니다.
그러나 본성적인 기준이 되는 마음의 터는 하나님과 일치점을 갖고 있는 연고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생각할 수 있는 인연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작용하는 기준은 장성기 완성급인고로 천사장과 일체될 수 있는 기준을 떠나서는 작용하지 못합니다. 작용은 반드시 상대기준을 통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몸은 마음의 상대가 되는 것인데 그 몸이 타락한 천사장의 제일 발판이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장성기 완성급 이상의 자리를 넘어가지 못한 상대이기 때문에 그 상대의 자리 이상은 마음이 작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아담이 마음을 중심삼고 완성을 했으면 그 권한은 천사장도 때려 잡고 몸도 마음대로 끌고갈 수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완성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누구한테 지배받는 입장에 있느냐? 천사장에게 지배받는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도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몸뚱이한테 끌려가는 입장에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시는 주님도 역시 이런 싸움을 거쳐서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기원을 공고화시켜야 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영계에서는 천사세계와 하나님이 하나되어 있다구요. 그와 같은 인연을 결정짓기 전에는 하나님과 하나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천사장급 마음의 기준과도 상대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라갈래야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또 다른 마음의 주체를 가졌기 때문에 마음이 그 이상으로 올라가려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마음의 또 다른 주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마음이 높은 위치에 있는 하나님의 상대적 입장에서 하나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천사장급 상대기준에서 작용하던 마음의 자리에서 떠나 가지고 더 높은 차원에 올라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작용이 더 강해져야 됩니다. 마음의 작용이 더 강해져 가지고 주체적 작용을 할 수 있게 될 때는 재창조의 역사가 전개되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완전한 주체가 생기면 완전한 대상이 생겨나는 것은 천지이치입니다. 완전한 주체형의 마음의 기준이 결정되면 불완전한 것은 제거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완전한 것이 들어오면 불완전한 것은 물러가는 것입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물러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신을 받든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몸에 붙어 있던 악은 물러가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물러가는 거라구요. 이 작용을 하게 하자는 거라구요. 몸의 본능은 장성기 완성급에 상대적 기준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보다 높고 강한 마음의 주체를 만들어 가지고 그 기준이 지금 보다 높아지면 재창조 능력이 발생해 가지고 몸의 본능을 무시해 버리고 마음의 자리에 돌려놓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떠나가는 거라구요. 은혜를 받으면 사탄이 떠나가는 거라구요. 성신이 들어올 때는 사탄은 떠나갑니다.
지금까지 그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있고 천주사적인 싸움이 들락날락하는 그 모체가 어디이며 근거지가 어디냐 하면 세계가 아니라구요. 그러면 어디냐? 몸이라구요, 몸. 몸하고 마음인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과학적이라구요. 강하고 절대적이고 완전한 주체의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의 방향을 하나님과 똑같은 코스로 하여 정면적으로 자리를 잡으면 마음이…. 여러분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 보라구요. 세계가 전부 자기 마음 가운데에 쏙 들어오는 거예요. 그렇다는 거예요.
그것이 왜 쏙 들어오느냐? 세계도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되니 세계가 전부 내 손안에 들어오는 거예요. 그럴 수 있어요. 그래서 은혜를 받으면 세계는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마음이 강한 주체로 딱 세워지면, 완전한 플러스가 되면 완전한 마이너스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창조의 능력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되는 존재는 추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하나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딱 달라붙어 있으면 좋겠는데 이것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심령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해요, 안 해요?「합니다」 높아질 때는 하나님과 하나되고 낮아질 때는, 심령이 어느 선 이하로 낮아지면 하나님이 떠나는 것입니다. 이때는 사탄이 주관하는 것입니다. 그 놀음을 하는 거예요. 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 사탄선, 타락선, 장성기 완성급선 이상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 무사통과가 되지만 이 선 이하로 내려가는 날에는…. 여러분들이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대번에 사탄에게 들이 맞습니다. 이런 싸움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결국은 우주가, 하늘땅이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자리가 오늘날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입니다. 보면 볼수록 아슬아슬하고 스릴감이 넘치는 일들이 우리가 보는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전세계에서 제일 아슬아슬하고 극랄한 장면은 내 몸과 마음이 좌우가 되어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서운 것을 느끼는 데 있어서 무슨 원자탄이 떨어져 가지고 세계가 한꺼번에 전멸되든가, 쓰러져 넘어지는 것보다도 내 생명이 위협받게 될 때는 세계에 없는 공포를 느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느껴 봤어요? 지금 그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거예요. 언제나 하나님과 하나되면 좋겠는데 하나되지 못하고 이 타락선 아래로 내려갈 때는 하나님이 떠나가는 거예요. 이게 천지 이치라구요. 시시하게 해서는 발전이 안 됩니다. 뛸 때도 그저 이렇게 뛰자 해 가지고 뛰어요? 이렇게 뛰어 나가야 합니다. (행동으로 하심) 여러분이 언제나 그런 기준을 중심삼고 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반복되는 싸움의 역사를 거쳐 가지고, 그러한 심적 작용의 파장과 같은 형태가 역사 발전상에 횡적으로 세계형태로 전개된 것이 세계의 비참한 전쟁사입니다. 알겠어요?「예」 올라갔던 것이 그냥 그대로 내려갈 때는 비참하게 부서지는 것입니다.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아 정리하지 못했음)
그러면 오시는 주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방법은 무엇이냐? 첫째는 믿는 것입니다. 마음이 못된 게 아니라구요. 인간 조상이 타락할 때에 알고 타락한 것이 아니라구요. 모르고 타락했다구요. 이렇게 될 줄을 몰랐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되는 데 있어서 제일의 방법이 무엇이냐? 믿는 것입니다.
이거 가정 얘기까지 하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리겠구만, 그러나 할 수 없다구요. 제목은 '가정의 갈 길'인데 지금 뭐 개인 얘기한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지금 그 가정을 향해 가는 길이라구요.
하나님과 하나되는 방법의 첫째가 무엇이라구요?「믿는 거요」 그 다음 둘째는 뭐냐? 희생하는 것입니다. 희생하는 데는 무엇을 희생해야 하느냐? 마음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구요. 믿는 것은 마음이 다 믿는 것입니다. 믿는 것은 좋은 거라구요, 그렇지요? 믿기는 다 믿어야 하는 거라구요. 믿는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지요?「예」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다 믿긴 믿지만 통일교회 교인들이 다 같이 천국에 못 간다구요.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래요. 믿기는 다 믿습니다. 여러분도 다 믿지요? 다 믿으려고 왔지요?「예」 믿고 있어요, 믿으려고 합니까?「믿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믿고 있어요?「예」 그러면, 여러분이 믿는 것이 틀림없어요? 만점이예요, 만점이 아니예요?「만점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믿기를 바라는 그 기준하고 딱 일치가 되었겠구먼. 믿긴 누가 믿어요? 믿으려고 하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믿는 것이 아니라구요. 여러분의 사고방식을 전부 다 정리해야 합니다. 믿으려고 합니까, 믿습니까? 「믿으려고 합니다」 믿으려고 하지요? 믿긴 뭘 믿어…. 그래 믿어요. 믿으려고 해요?「믿으려고 합니다」 뭐, 1분 전에는 믿는다고 했는데 이랬다 저랬다, 뒤집어졌구만. (웃음) 그러니까 문제가 크다구요. 믿는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 당당히 믿는다고 할 수 있는 때는 어느 때냐? '내 몸은 언제든지, 나는 믿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원칙이다. 그것을 행복으로 생각한다'라고 할 때는 믿는 기준이 합격 기준으로 올라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믿으면서 죽고자 하는 자는 뭐예요? 죽고자 하는 자는 죽고 살고자 하는 자는 산다. 그래요?「아닙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죽는다」 믿는 데 살겠다고 믿는 것은 죽는 것이요, 죽겠다고 믿는 것은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마음하고 다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몸이 죽고자 하는 것은 영원히 사는 것이요, 몸이 죽지 않고자 하는 것은 영원히 죽는 것입니다. 마음은 죽으려고 합니다. 누구든지 마음은 희생하려고 합니다. 그렇지요? 세상 사람들을 전부 다 좋게 해주고 싶어요, 안 해주고 싶어요?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때요?「좋게 해주고 싶습니다」 자기가 일년 고생해서 세계 사람들이 전부 잘살 수 있다면, 그것은 문제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은 희생하려고 합니다. 반대로 몸은 꼬리를 흔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충된 두 존재 형태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니까 무엇을 죽이고자 하는 자?「몸이요」 몸만 죽이고자 하는 자에게 마음까지 죽이게 되면 믿는 것도 없어진다구요. 그렇지요? 그걸 가려내야 됩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그걸 가려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딱 믿겠다고 하면 할수록 믿는 마음을 반대하는 것이 있으니 그 반대하는 것은 죽여야지요. 마음까지 죽여 버리면 살기는 뭘 살아요? 살 수 있는 상대적 요건이 없는데…. 상대적 기준이 없어 가지고는 육계(肉界)가 존속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데는 무엇을 죽여야 되느냐? 몸을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몸을 죽이고자 하는 사람은 산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믿음의 한계점은, 하나님을 표준하고 있는 그 기준은 무엇이냐?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죽게 된 생명이 살아나는 그 이상의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죽고자 하면 사는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는 것이다'라고 하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하는 말입니다 알겠어요?「예」
내 몸이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하나님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 되겠느냐? 그게 무엇이라고요? 믿음 때문에 스스로의 목을 자를 수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할 수 있는 기준에 서면 1점짜리가 되는 것입니다. 1점짜리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몇 점짜리로 출발한다구요? 「1점요」 거기서부터 작동이 시작되는 거라구요.
첫째는 믿는 조건, 그 다음 둘째는 희생하고…. 희생하는 데도 내용이 다릅니다.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희생한다' 할 때는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겁니다. 희생하는 데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 내가 구원 받기 위해서 희생한다고 할 때는 하나님도 이용해 먹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도 이용해 먹겠다고 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뜻의 기반도 내 것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잖아요?
천국은 하나님의 기반이요 거기의 주체는 하나님인데, 그런 사고방식은 하나님을 이용해 먹겠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기반을 이용해 먹겠다는 거라구요. 그러니 그렇게 희생하는 것이 옳다는 거예요, 그르다는 거예요? 「그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에서 걸린 것입니다. '아바, 아바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희생하는 데 눈치를 보고 나서 죽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서 무슨 별다른 재간 피운다고 살 수 있는 길이 생겨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판세는 다 기울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죽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는 데 내가 나섰다는 것입니다. 내가 드러나는 날에는 망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드러나는 날에는 사는 것입니다. 그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예수 믿는 것은 천국 가기 위해서 믿는다'라고 하는 것은 망하는 거예요. 그 종교는 망하는 거예요. 그런 종교는 끝날이 되면 뻘건 황무지가 되는 거예요. 그리하여 해골 덩어리만 남아 떼굴떼굴 굴러다니게 되는 거라구요. 그거 왜 그러냐? 이 원칙을 두고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타락을 두고 볼 때, 타락은 어떻게 해서 되었느냐?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이 타락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 앞에 몸을 바치지 못한 것이 타락입니다. 그렇지요? 몸을 바치는 데는 누구에게 바쳐야 되느냐?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생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누구를 주체로 해야 된다구요? 하나님을 주체로 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위주로 해야 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현재의 종교사상이 심판 받아야 할 운명권에 있다는 것입니다. 요 코에 전부 다 걸려 있는 것입니다. 요 코를 벗어나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런 기준을 중심삼고 그 생애에 있어서 표본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사탄들과 싸워 나가는 장본인인데, 그분이 어디를 갔습니까? 하나님을 믿었어요, 안 믿었어요?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서 종족보다 더 믿었어요. 덜 믿었어요? 자기 집안보다 더 믿었어요. 덜 믿었어요? 어머니 아버지보다 더 믿었어요, 덜 믿었어요?「더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었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된다구요.
그 다음에 예수님은 '내 믿음은 세계와 바꿀 수 없다. 그 누구도 나를 점령할 수 없다. 절대적이다' 하는 것을 공인시키기 위해서 몸 마음 다 내놓은 것입니다. 다 내놓으니까 사탄들이 건드릴 곳이라고는 몸밖에 없는 거예요. 그것이 자기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가 예수님을 잡아죽일 때, 예수님이 어떻게 죽었느냐? 살아 있다는 입장에서 죽은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 자신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닙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누구 뜻대로?「아버지 뜻대로…」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예수님도 그런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걸 보게 되면 예수님이 조금 둔했다구요. 나를 세우는 날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뜻을 이루어 나가는 데 있어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세우는 날에는 흥하는 거예요, 망하는 거예요?「망하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은 하나님이 나타나시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으려고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하나님께서 앞에만 계시면 벌써 내 맘이 확 풀어집니다. 내가 그런 길을 가고 있는 거라구요.
내가 척 단에 설 때, 기도해 보면 아는 거라구요. 여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 되느냐? 거기에 세 사람이 있으면, 아주 몸이 풍선처럼, 그 뭐라 그럴까, 둥둥 뜨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한 사람 있으면 뼛골이 천근만근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탕감이라구요. 책임자는 산 제사장의 책임과 산 제물의 책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뼛골이 천근만근 내려앉는 것 같을 때 '아이쿠, 이거 큰일났다' 하면서 도망가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거기서 싸워 가지고 눌러 놔야 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해방권을 갖춰 가지고 척 단에 나서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먼저는 여러분 개인의 싸움입니다. 여러분의 심령생활이나…. 개인이 전부 다 그 싸움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자 그러니까 첫째 내용이 무엇이라구요?「믿음이요」 그게 무엇을 위한 내용이라구요?「하나되는 거요」
통일될 수 있는 그 기대, 그 발판이 어디라구요?「몸이요」 몸이라구요. 몸, 이 몸을 하나되게 하는 방안이 무엇이냐? 절대적인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는 데는 원칙을 떠나는 게 아닙니다.
통일방안이 뭐냐 하면 절대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는 자리에 있어요, 믿으려고 하는 자리에 있어요?「믿으려고 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기분 좋아요, 기분 나빠요?「나쁩니다」 여러분들은 믿는 자리에 있다고 생각했지요? 선생님도 그렇다구요. 믿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으려고 하는 자리에 있다구요. 세계를 중심삼고는 아직까지 믿으려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된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조심 해야 합니다. 심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그래요? 60년대에 처음 교회에 들어올 때는 좋았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진짜 좋았었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전부 낙제감입니다. 입학할 때는 좋습니다. 낙제한 후에 입학할 때를 생각해 보면, 그때가 좋았어요, 나빴어요? 여러분 입학할 때를 생각하면 좋아요, 나빠요? 낙제하게 되면 입학할 때의 그 기분이 생각나지요? 우선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낙제감이예요, 합격감이예요? 다 같이 대답해 보라구요. 「낙제감입니다」 우선 그런 것을 알아야 돼요. 그러기에 절대적으로 믿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희생해야 됩니다. 순교해야 된다는 거예요. 순교하는 데는 자기 중심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나라에 가서 말이예요. 로마제국 시대 4백년 동안 희생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사람들이 영계에 가 보면'내가 이렇게 가면 천당간다'고 했던 사람들이 다 걸려 있다는 거라구요. 다시 한 번 십자가를 지는 거라구요. 그러니 십자가 지는 연습을 시켜야 된다구요. 내가 가서 그것을 코치해야 돼요.
그러므로 '나는 천번 만번 죽더라도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따라갈 수 있게 된 이 영광을 감사합니다' 하고 생각하면서 가야 합니다. 알겠어요?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그렇게 되면 이 순간에 낙원이고 무엇이고 다 짓밟히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왜 믿어요? 여러분이 복받기 위해서 믿어요, 하나님을 해방하기 위해서 믿어요?「하나님을 해방하기 위해서 믿습니다」 누구를 해방하기 위해서?「하나님을 해방하기 위해서요」 하나님을 해방하고 난 다음에는?「세계를 해방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거 근사하지요? 하나님이 해방되면 나는 복받고도 남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거라구요. 세계가 해방되면 나는 최고 영광의 자리에 올라가서 꽃이 될 수 있고 향기가 될 수 있는 거라구요.
여러분, '뜻' 하게 되면, 뜻이 뭐냐 하게 되면, 첫째는 하나님이요 둘째는 세계라구요. 이것이 언제든지 머리에 딱 떠올라야 합니다. '뜻' 하면 먼저는 하나님, 그 다음에는 뭐라구요?「세계요」 뜻의 길을 가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하나님을 위해서요」 이것이 뜻을 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했지요?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냐? 세계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통일시키기 위한 길이라면 백 번 죽어도 가야 됩니다. 알았어요?「예」
하나되기 위해서 첫째는?「믿어야 합니다」 믿고. 그 다음에는?「희생해야 합니다」 희생하고, 그 다음에는?「하나님을 주체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주체로 해야지 자기를 주체로 했다가는 망친다구요. 그래, 자기를 주체로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장성기 완성급 이상 올라갈 수 있어요? 올라갈 수 있어요, 없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사탄의 혈통을 받은 것 이상 올라갈 수 있어요?「없습니다」 그러면 그 이상 올라갈 수 있는 비법이 뭐냐? 자기를 주체로 하면 못 올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체로 해야 됩니다. 오늘날, 이런 사상적인 관점에서 여러분이 갈라지면 안 됩니다. 이제 여러분이 통일될 수 있는 방안을 알았지요?「예」
여러분이 아침밥을 척 먹고 나서 기분이 좋아서 '얘 아무개야' 하고 자식을 부를 때는 세계를 대표한 자식으로 부르고, 자식을 품고 사랑할 때는 세계를 대표한 자식을 찾은 마음을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사고방식을 그렇게 가지라구요. 지금도 선생님은 그래요. 어디 갔다 오면, 될 수 있으면 쭉 돌아다니면서 아이들한테 뽀뽀를 해준다구요. 그것이 내 생활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또. 우리 아이들은 아버지한테 인사를 할 때도 아버지하고 뽀뽀를 합니다. 어디를 갈 때도 아버지 앞에 얘기하고 가고, 좋은 일이 있으면 아버지한테 오고…. 그런 사상을 길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쁘게 바라보시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키워 주어야 합니다. 자기 아들도 그 길을 가야 된다는 거예요.
자식을 낳는 것이 나 때문이예요?「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 때문입니다. 자식을 키우는 것은?「세계를 위해서요」 세계를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통일교회를 믿는 것은 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그 다음에, 통일교회를 믿으라고 하는 것은 통일교회 때문입니까?「세계 때문에…」세계 때문입니다.
세계가 나보다 더 좋은 입장에 서기 전에는 나는 쉴 수 없습니다. 안식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보다 더 좋기 전에는 나는 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보다 더 좋은 입장에 계신가? 하나님의 입장이 좋아지기 전에 내가 안식하겠다면 불효입니다. 그런 사람은 역적이라구요. 하나님은 지금 이 세계를 위해서 뒤넘이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잠을 자고 일어나면 어떤 때는 미안해서…. 그건 흡사 처녀가 자다가 일어나 보니 벌거벗고 있는데 총각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보고 있을 때의 기분과 같다구요. 왜 그러냐? 하나님은 24시간 쉬시지 않고 나를 위하고 세계를 위해서 혈투전을 하고 계시는데, 그 마당에 나는 쉰 것이 그만큼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느낄 때가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여러분 이제 하나되는 방법을 알았지요? 믿어야 됩니다. 절대적으로 믿어야 돼요. 그 다음에는?「희생해야 됩니다」 몸을 절대적으로 죽여야 됩니다. 마음을 죽이라는 게 아니라 몸을 절대적으로 죽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을 절대적으로 죽였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도 나는 하겠습니다.' 이거라구요. 알겠어요?
돌아가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가다가 이렇게 후퇴해 가지고 올라가게 되면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가다가 '아이쿠, 힘들어 못 가겠소. 못 가겠으니까 후퇴해 가지고 여기서 다시 갑시다' 하면 못 갑니다. 다시 해도 또 못 가는 것입니다. (칠판에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 하심) 가다가 한번 돌아서는 날에는 절대 못 가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가다가 한번 돌아서는 날에는 갈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그래서 선생님은 지금까지 악착같이 나온 것입니다. 한번 가다가 돌아 서는 날에는 그 이상의 어려운 길은 못 가는 거예요. 그 이상의 어려운 고개를 넘지 못해서 하나님이 뜻을 성사하지 못한다면 그 뜻과 관계없는 낙오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내가 생명을 바쳐서 하나님을 위해 순교할 수 있는 자리가 얼마나 고맙고 복된 자리입니까? 이거 심각한 자리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세계적인 상급을 받고, 세계적인 결정권을 상속받는 그 자리를 찾아 나가는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완전히 일치되고 영원히 분립될 수 없는, 결합되고 결집된 자리요, 영원히 사라질 수 없는 통일적인 그 자리를 하나님은 어디에 마련하고 싶어하실 것이냐? 누가 보는 자리에 마련하고 싶어하겠어요,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마련하고 싶어하겠어요? 어느 자리예요?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끼득 끼득대고 구경하는 자리에서 사랑하고 싶어해요,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사랑하고 싶어해요? 어느 자리에서 인연을 맺고 싶어요?「아무도 없는 자리에서요」 누가 보는 것도 싫지요? 사랑하는 아내를 지나가는 총각이 쓱 훠어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쁜 거라구요. 그렇지요?「예」 그건 누구나 다 그렇다구요.
호흡하는 것도 박자가 맞아야 된다구요. 그런 자리를 거쳐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같은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무슨 자리냐 하면 주고받는 자리입니다. 새로운 일체를 중심삼고 호흡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심장이 박동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체의 세계가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거라구요. 그런 엄숙한 자리라구요.
그러면 어디서 하나되려고 합니까? 내가 얼핏 얘기했어요. 어디에서 하나되려고 해요? '어디는 뭐 어디야, 장단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그런 자리에서 하나되려고 하지' 하는 데서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런 데서 하나되어 가지고는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사탄과 싸워 가지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것을 해야됩니다.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발맞춰 춤추고 그저 뭐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게 똑같이 해 가지고 야단하는 그런 것…. 그런 것이 사탄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 패들과 보조를 맞추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 반대의 자리가 벌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자리라구요. 알겠어요? 그 사탄이 좋아하는 자리에서 돌아서는 길이 있다고 해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자기 혼자 못 올라갑니다. 하나님의 힘이 가해지기 전에는 못 올라가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내려가는 자리에서도 '나는 올라간다' 하는 것을 생각해 봤어요? 그렇기 때문에 복귀노정은…. (칠판에 그림을 그리심) 이게 올라가면 이건 내려가서…. 이것은 두 기점입니다. 3점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출발해 가지고 이곳을 거쳐서 이렇게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돌아가게 돼 있는 거라구요. 같은 것 셋이 하나돼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야 영원히 계속 갈 수 있습니다.
이걸 가만히 보게 되면 8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이하 그림을 그려 설명하심) 여러분이 이 8단계를 거쳐야 됩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타락한 세계가 올라왔지요? 우리 종교는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는 거라구요. 내려가는 데는 뚝 떨어져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구요. 살짝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는 겁니다. 그렇지요? 여기에 올라가 가지고 여기서부터 복귀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부활.
3단계는 소생, 장성, 완성이지요? 그렇잖아요? 내 개체를 중심삼고 보면 개인 복귀, 가정 복귀, 국가 복귀 3단계입니다. 그 다음에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는 가정 복귀, 국가 복귀, 세계 복귀, 3단계라구요. 한 단계 앞서는 거라고요. 그렇게 돼 있지요? 그렇게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고비를 거쳐 나가야 정상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려가는 게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좋은 거예요」 내려가지도 않고 올라가는 길을 찾을 수 있어요? '아이쿠, 나는 내려가기 싫어, 이쪽으로 올라갈래' 하고 가면 어디로 갑니까? 어디로 가는 거예요? 사탄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어디로 간다고요? 거꾸로 올라갔다가는 사탄세계로 간다는 거예요. 사탄세계는 위로 올라가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올라가면 수난의 세계입니다. 자기를 주장해 가지고 복받겠다고 하는 세계입니다. 자기를 주장해 가지고 복받겠다고 하는 세계는 사랑의 세계가 아니라구요. 사랑의 세계는 남을 위하는 세계입니다. 그렇지요?「예」
여러분, 여편네를 얻는다면 어떤 사람을 얻고 싶어요? 나를 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얻을래요, 내가 위해 주는 사람 얻을래요? 나를 위해주는 사람을 얻고 싶지요?「예」 그럼 나를 위해 주는 사람이 악한 사람입니까, 선한 사람입니까?「선한 사람입니다」 선한 사람입니다. 내가 동기가 되어 가지고 저쪽 사람을 위하게 되면 내가 선한 사람이 되지만, 저쪽 사람이 동기가 되어 가지고 나를 위한다면, 나는 멍텅구리가 되는 것입니다. 종이 그래요. 종들은 사랑의 상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이 '살고자 하는 자는 올라갈지어다'라는 말을 했어요? 높고자 하는 자는?「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높아진다」 전부 반대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내려가고자 하는 사람은?「올라가고」 올라가고자 하는 사람은?「내려간다」 그 말입니다. 우리는 내려가는 길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내려가야 됩니다. 어디까지 내려가야 되느냐? 형무소 이하의 자리까지 가야 됩니다. 몰리고 쫓기다가 잡혀 형무소에 가면, 거기는 해방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타의에 의해서 갇혔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은 종의 입장입니다. 끌려가는 입장이기 때문에 주체가 못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체로 나타나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자진하여 내려가야 됩니다. 자진해서 내려가야 주체가 생겨납니다. 희생하다 보면 중심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모순과 상충이 없이 주체권을 빼앗을 수 있는 길은 내려가고 희생하는 길입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하나님이 원하는 천국권이 갖추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이 아침에 친구를 척 만나면, '야야, 너 지갑에 있는 것 다 내놔' 하고 친구의 지갑을 뒤져 보라는 것입니다. 세 번만 그렇게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친구에게 자기 앞에 있으라면 있어요? 만날까봐 보따리 싸 들고 도망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매일 아침 친구를 만나서 '넌 참 사랑스런 친구야'라고 하면, 그 사람이 여러분을 좋은 친구라고 해요, 나쁜 친구라고 해요?「좋은 친구라고 합니다」 나를 중심삼고 친구를 이용하려고 하면 나는 나쁜 사람이 되고, 내가 친구 앞에 이용당하려고 하면 나는 좋은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선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느냐 하면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참의 자리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선악의 기준을 알아야 돼요.
열 명의 친구가 있다가 도망가 버리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없어지니 결국 망하는 것입니다. 악하면 망하는 것이 법도입니다. 반면에 선하면 흥하는 것이 왜 법도냐? 선한 사람은 열 사람한테 '요 녀석들아, 오지마' 하더라도 '아이구 금년만 금년만 따라가게 해줘'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어디 가도 그런 사람을 못 만날 것이다 하며 기를 쓰고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열 사람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새끼를 친다는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마다 '어, 그래? 나도 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더 많아지는 거예요, 적어지는 거예요?「많아지는 겁니다」 많아지니까 망하는 거예요, 흥하는 거예요?「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망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요? 「예」보니까, 눈들은 똑바로 박혔다구요. 다 흥하고 싶어하지요?「예」 흥하는 길을 가르쳐 주는 선생은 올바른 선생이예요, 그른 선생이예요?「올바른 선생입니다」 망할 것을 가르쳐 주는 선생은?「그른 선생입니다」(웃음)
망할 것만 가르쳐 주는 선생이 참된 선생이 될 수 있어요? '뭐 할 것이 없으니 마음대로 해라' 하면서 '젊은 청춘은 한번밖에 없으니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다 해봐야 돼. 남자의 길을 가려면 그런 것도 해야 되는 것이다' 하고 가르쳐 주면 되겠어요? 세상에는 자식에게 술 먹는 것을 가르쳐 주는 부모도 있더라구요. 통일교회는 절대 안 됩니다. 그렇다구요. 반대라구요. 그러면서 가라는 길은 무슨 길이냐 하면, 좋은 길이 아니라 전부 힘든 길이라구요. 그 길이 망하는 길이예요, 흥하는 길이예요?「흥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제일 흥할 수 있는 열쇠를 쥘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나님과 사탄이 싸우는 데 있어서 승패의 판정을 결정지을 수 있는 그 경계선이 어디냐? 그거 찾아 봤어요? 그 경계선이 어디냐? 어디에 그런 삼팔선이 있느냐? 나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이 몸을 들이 밟아 가지고 옥살박살 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경계선이라는 것입니다. 몸을 옥살박살시키는 데는 세계를 위해서 옥살박살시켜야 됩니다.
그것을 하늘나라에 선전하는 겁니다. 하늘나라에, 영계에 선전해서 하나님이 아시고 천사세계가 알고 영계 전체가 알게 되는 날에는 역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되면 선조들도 다 알게 될 것 아니예요? 선조들도 '그래? 그 녀석, 나보다 낫구나' 한다는 것입니다. 선조들이 자기보다 못하다고 그러겠나, 낫다고 그러겠나?「낫다고 합니다」'지독한 녀석이지만 멋지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높은 인연을 밟고 올라섰다 할 때, 몇 천리 위의 높은 곳에 올라섰다 할 때, 거기서 떨어지면 죽지 별수 있어요? 거기서 떨어지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조금만 잘못하는 날에는 옥살박살되지요. 거기에서 모든 승패는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내려가게 될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붙들고 늘어져야 됩니다. 그것은 고무줄을 늘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고무줄을 늘여 끌어내렸다가 제일 밑에 가서 딱 놓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이 올라갈 수 있는 한계선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라구요.
그걸 생각하는 사나이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도망가시겠어요,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시겠어요? 생각해 보라고요. 하나님한테 신경이 있다면 그 신경이 거기에 전부 모이겠어요, 안 모이겠어요? 심장이 있다면 심장이 두근두근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나님이 신나는 일이라고, 신난다고 안 하시겠어요? 하나님이 좋다고 바라보시지 않겠어요? '거 한번 더 해봐라' 그러시지 않겠어요?' 이 자리에 있으면 사탄이 얼마나 좋아할까요? 사탄은 내려가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소망을 가지고 보신다구요. 그런 뭐가 있다구요.
우주의 심정을 상속해 가지고 천국의 소유권을 갖춘 한 파동이 이 천지간에 일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잖아요? 큰 소리가 나려면 진폭이 커야 된다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래야 오래가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광 하는 거라구요. 진폭이 좁으면 땡 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폭 넓게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계에서 폭이 제일 넓을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은 좋은 것을 좋아하는 것도 일등이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내가 천번 만번 죽을 고빗길에서도 죽지 않고 쓱 올라설 때는 하나님이 얼마나 기쁘실 것인가를 생각해 봤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가 어디냐? 그것은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위해서 내려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시겠어요? 내가 내려가는 것만큼 더 높이 계시는 하나님이 말이예요. 이것을 지금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기서 그만둘까요, 계속할까요?「계속하십시오」 가정 얘기까지 해 가려면 몇 시간 걸릴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이게 필요한 거라구요. 선생님이 심령세계에서 싸워 온 공식노정을 가르쳐 주는 거라구요. 그저 적당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요렇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두고 보라구요. (그림을 그리심. 이하 그림을 보시며 설명하심)
이렇게 내려갔다가 돌아서야 돼요, 그냥 이 자리에 쳐져야 돼요?「돌아서야 됩니다」 그냥 이 자리에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렇게 내려가다가 도리어 소망을 갖고 다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보다 나아야 되는 거예요. 사탄보다 못해 가지고는 복귀가 안 되는 거라구요. 사탄보다 나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의 본질은 무엇이냐?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굴복시킬 수 있는 본질은 무엇이냐?「낮아지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이 원리입니다.
이렇게 내가 내려가게 되면, 하나님과 나와의 거리는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과 인간과의 거리(A)는 고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거리는 고정되어 있는 거라구요. 인간의 양심이 맑은 그 기준과 하나님이 그 인간을 대할 수 있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고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해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하나님은 더욱 권세의 하나님으로 나타나는 것이요, 더욱 고마우신 하나님으로 나타나는 거라구요.
만약에 내가 내려가게 되면 말이예요, 내가 내려가면, 요만한 거리(B)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다시 올라가게 되면 이 권내에는 나라도 들어가고 세계도 들어가는 것입니다. 몇십 년이 아니라 몇백 년이 그로 말미암아 탕감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면, 세계가 그로 말미암아 혜택을 받는 거라구요.
그러면 하나님이 어디까지 내려오시느냐? 이 기준(A)을 중심삼고 보면, 내가 여기(D)까지 내려가면 하나님은 여기(C)까지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악한 사탄세계까지도 하나님의 위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 권내에 있는 것은 전부가 하나님 편을 간섭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지자 같은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하다가 갔습니다. 이 자리(D)까지 내려왔다가 요렇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일방적인 역사를 하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여기에서 이런 놀음을 시켜 가지고 이 권내를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는데, 요 위치가 이렇게 올라가게 되면 이 권내는 전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세계를 점령할 수 있는 비결은 어디에 있느냐? 사탄세계를 망치고 뭉그러 치울 수 있는 비결은 어디에 있느냐? 내려가는 데 있습니다. 내려가는 데 있어서 여기(D)까지 내려가면 하나님은 이 자리(C)에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딱 돌리게 되면 또 다른 형태의 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높은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이런 원을 중심삼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래로 내려가게 되면 요 기준이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이와 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D')서 내가 이렇게 돌아가면 나로 말미암아 요와 같은 자리에 있는 환경이 복귀되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나가게 될 때는 그 환경이 자동적으로 모여드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런 사람은 척 보면 벌써 마음이 쓱 끌려가는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사람을 보면 왜 마음이 끌려가느냐? 하나님이 작전하시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 한 사람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고리와 같은 것이 작용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말소리만 들어도 벌써 사탄권내에 자리가 잡히는 것입니다. 천국권이 작용한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이 권내에서 요 권내로 들어간다는 거예요. 은혜 있는 사람들이 은혜의 역사를 하고 그 과정에서 하늘과 더불어 역사했던 환경은 사탄권을 전부 다 제거시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어떻게 되느냐? 내 소유권을 확대시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내 승리권을 확대시키는 것입니다.
내려가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을 모시고 내려가는 데 있어서는 언제나 자기 개체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개체가 승리해야 됩니다. 개체가 승리하기 위해서도 역시, 개체로부터 세계까지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즉, 사탄을 굴복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으로부터 승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천사장급에 있었던 것이 사탄이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이 사탄을 굴복시킴으로 말미암아 아담급으로 복귀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깊은 골짜기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그 골짜기가 어디냐? 그곳은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곳입니다. 사탄은 올라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반대로 어느 선을 중심삼고 그 이하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작용할 수 있는 권내까지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참는 자가…. 그 끝이 어디예요? 천주 꼭대기에 올라가면 거기가 끝이예요?「내려가야 합니다」 역사가 이렇게 내려왔지요? (판서하심) 이렇게 해 가지고 개인, 가정, 종족, 국가, 세계로 넓어져 나온 거 아니예요? 이렇게 커져 나왔다구요. 이게 그 세계라구요. 지금까지 참아 나오는 길이라구요.
아담이 참았어요, 못 참았어요? 죽으면서'하나님 아버지 나 죽어요'그랬어요? 성경에 안 나왔지요? 그 다음에 노아가 참았어요, 못 참았어요? 「참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참았어요, 못 참았어요? 모세가 참았어요, 못참았어요? 그 다음에 세례 요한이 참았어요, 못 참았어요? 세례 요한…? 「못 참았어요」 30세까지는 참았잖아요? 젊은 사람이 메뚜기 먹고, 석청 먹고, 약대 털옷을 입고 했으니 형편이 없잖아요. 한번 해보라구요, 얼마나 처량한가.
광야에 좋은 벽돌집이 있었어요? 먹을 것이 많고…. 석청이 그저 돌덩이처럼 떡 붙어 있어요? 심심하면 언제든지 가서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어요? 그럴 것 같아요? 메뚜기라는 것이 날아다니지 언제나 눈앞에서 날 잡아먹으라고 까닥까닥해요? 그러니 그것을 잡아먹기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생각해 보라구요. 어떻게 잡아먹었겠어요? 메뚜기 둥지가 있어 그것을 한꺼번에 잡아먹었겠어요. 한 마리만 잡아먹었겠어요?(웃음)
또, 석청이라는 것이. 바위 틈에 있는 석청을 하나 가지면 며칠만 먹으면 다 없어져요. 그러니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판도를 얼마나 넓게 잡았겠어요? 십리요? 몇백 리가 아니라 몇 고을을 넘어 다녔을 겁니다. 몇 지역을 다 헤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가 참았어요, 못 참았어요? 「참았습니다」 그 어머니 아버지가 안 찾아왔겠어요? 그 어머니 아버지가 찾아와서 '아. 자식아, 제발 그러지 말아라.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데 왜 그러느냐?' 그랬겠어요. 안 그랬겠어요? 그러니 참았어요, 못 참았어요? 「참았습니다」
예수님도 참았습니다. 예수님의 심정을 두고 보면, 예수님이 죽고 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찾을 때, '요놈의 자식들, 이제 내가 복수하겠다' 하면서 모가지 잘라 버렸어요? 예수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 때문에 죽었지요. 그러니 참았나요, 못 참았나요? 자기를 죽인 원수들을 대해 가지고도 그 너머로 넘어갔던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한 것이 거 넘어가려고 했나요. 이쪽에 서려고 했나요?「넘어가려고 했습니다」 넘어가려고 그랬지요? 왜 그런지 알아요? 이것을 넘어서기 위해서였습니다. (판서하신 것을 지시하시면서 말씀하심) 역사 앞에 섰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역사 앞에 서기 전에는 새로운 역사를 출발할 수 있는 자가 못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러면 참아 나가는 역사 가운데 '나는 꼴찌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봐요. 없구만. 다들 일등되겠다고 하지요? 그래야 기분 좋고 흥미진진하지요.
일등되기가 쉬워요? 마라톤 선수로 일등하기가 쉽지 않지요?「예」 하물며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있어서 챔피언이 되겠다고 할 때, 그게 쉽겠어요? 쉬워요, 어려워요? 「어렵습니다」 이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런데 아브라함 할아버지 앞에 가서 '야야, 문 아무개야, 네가 그렇게 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이다. 이럴 때는 이렇고 이런 것이다' 이렇게 교육받아 가지고 되겠어요? 노아 할아버지한테 가서 교육받아 가지고 되겠어요? 모세한테 교육받아 가지고 되겠어요? 세례 요한한테 교육받아 가지고 되겠어요? 예수한테 교육받아 가지고 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담판해야 했던 것입니다. '나는 누구한테서도 교육을 안 받겠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직접 교육하신다면 최고의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거라구요. '하나님, 틀림없이 최고의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약속만 하신다면 나는 천번 만번 죽더라도 참고 남아질 자신이 있습니다. 한번 해보십시오' 이런 배짱이라고요. 알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 당신이 가르쳐 주신다면, 최고의 길이 있을 텐데…. 당신을 믿지 못해서 지금까지 그 이상의 길을 행사하지 못했사오나 이제 당신을 믿고 당신의 한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한을 풀 수 있는 사람을 못 만나셨다면,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최고로 적절한,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것을 실패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최고의 비법을 가르쳐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는 배포를 가지고 있는 거라구요.
그러니 아브라함을 붙들고 달랑달랑 가려고 했겠어요? 예수님을 붙들고 달랑달랑 가려고 했겠어요?「하나님을…」 하나님을 붙들고 달랑달랑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었을 거라구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혼나시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구요. 그랬을 거 아니예요? 맨 처음에는 '세상에 태어난 사람 중에서 저런 녀석은 처음 만났다'라고 하시면서 꽁무니를 빼고 뭐 그럴 거라구요. 그렇지만 나는 그런 것이 있는 줄 알고 한번 잡으면 안 놓는 거라구요. 찰거머리 중의 찰거머리요, 접착제로 치면 세계 최고의 접착제 중의 접착제라는 겁니다. (웃음)
거 몰라서 그렇지 알고도 놓겠느냐 말이예요. 생각해 보라구요. 모르면 모르지만 틀림없이 저렇게 된다고 하는 것을 알고도 놓겠느냐 말입니다. 손이 빠진다고 놓겠어요? 손이 빠지면 입으로 하고, 입으로 안 되면 다리로 잡고, 다리가 빠지면 허리로 해 가지고, 허리로 안 되면 뒷꽁무니에서 목이라도 잡고 안 놓는다는 거예요. 한번 만나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 데, 억천만년에 한번 만날지 못 만날지 모르는 그분을 놔요? 악착같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야곱을 좋아합니다. 요놈의 야곱, 야곱이라는 사람은 말이예요. 야-곱….
보라구요. 아-담은 아- 타락했기 때문에 담이 생겼다는 것이요, 해와는 복귀해서 다시 돌아와야 되기 때문에, 해 가지고 와야 될 입장이기 때문에 해와라구요? (웃음) 왜 웃어요? 그 다음 아벨은 뭐냐? 아-벨은 별 따라는…. 아담 위에 앉아 가지고 별을 따라고 해서 아벨이라구요. 그 다음에 노아는 자유분방하게 놓아주었다고 해서 노아라구요. (웃음)'네 마음 대로 해봐라. 120년 동안은 네 마음대로 해봐라' 한 거예요. 그 동안에는 하나님이 간섭 안 하는 거라구요. 그 다음에 아브라함은? 아- 불합격했다 가는 안 된다는 거라구요. (웃음) 전부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구요. 모세는 전부 다 세밀히 모아야 될 사람이기 때문에 모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한 사람도 놓아두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모세입니다.
그 다음에, 세례 요한은 야, 잘못했다가는 한이 생긴다. 요- 정신 차려라. (웃음) 또 예수는 '아이고, 얼마나 받았느냐? 옛소' 하고 준다는 말이라구요. 하나님의 복귀역사가 그렇게 되어 나왔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선생님이 의자에 앉아 가지고 별의별 생각을 다 해봤다는 거라고요. (웃음) 그러니 얼마나 머리가 복잡했겠어요?
그렇게 야단법석해 가지고 하나님을 만났는데 놓칠 수 있어요? 야곱이 천사를 잡았는데 놔 줘요? 야곱이라는 이름은 복귀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준비해야 된다는 거라구요. 야- 곱으로 해오지 않으면 에서를 복귀하지 못한다 그래서 야곱이라구요. 야! 너는 곱으로 해와야 된다 그래서 야곱이라구. 그러니까 천사를 얼마나 붙들고 늘어졌겠어요? 허리가 빠그라지면 빠그라졌지 손은 못 놓는다 그런 거라고요. 알겠어요? 갈비뼈가 부러지고 등골이 빠개지면 빠개졌지 손은 놓을 수 없다는 겁니다.
천사가 얼마나 급했으면 야곱의 환도뼈를 쳤겠어요? 그래도 야곱은 '그까짓 환도뼈야 있겠으면 있고 말겠으면 말아라. 그래도 나는 안 놓겠다' 하면서 끝까지 물고 늘어진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야곱이 웃으면서 그랬겠어요? 거 어떠했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세상에서 제일 심각한 입장에서 최후의 결점을 노리는 그의 표정은 단호했을 것이 아니냐.
여러분들이 언제 한번 그래 봤어요? 통일교회 문선생님은 어땠을 것같아요? 그런 일이 일쑤였다구요. 거 붙잡으면 놓겠어요, 안 놓겠어요? 놔야 되겠어요. 안 놔야 되겠어요?「안 놔야 됩니다」 하나님도 문선생을 만나 가지고 혼나셨을 것입니다. (웃음) 천사를 만나서 이긴 사람은 있어도…. 야곱이 천사를 이겨서 이스라엘이 됐지요? 하나님을 이기지 못하고 천국이 될 것 같아요? 생각해 보라구요. 사탄을 이긴 것 가지고는 그건 뭐 어림도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이기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는 불경(不敬)된 말일망정 사실이 그래요. 하나님을 이기지 않고는 천국은 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양자라구요. 아들로 축복하려면…. 부모가 아들한테 지나요, 안 지나요?「집니다」 번번이 지지, '야, 제발 내 말 들어다오' 그러지요? 마찬가지라구요. 아들이 아버지를 이길 수 있는 길이 그런 데 있는 거라구요. 무엇으로? 사랑의 길, 심정의 길만 가면 아버지를 종살이시킬 수도 있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종살이하지요? 그거 울면서 해요?「웃으면서 합니다」 웃으면서 하는 거라구요. 그런 무엇이 있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이기지 않고는 예수님을 아들로 만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아들로 만들지 못하면 인류의 조상이 안 나온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이런 말을 들으면 기성교인들은 나가자빠질 거예요. 나가자빠지겠으면 자빠지라는 겁니다. 자빠지는 사람이 나쁘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나쁜 게 아니라구요. 나는 당당한 얘기를 하는 거예요. 간판을 붙이고 하늘의 공인을 받아 가지고 이것을 시작한 거라구요.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길은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복을 파는 거예요. '뜻' 하게 되면 용서가 없는 거라구요. 부모도 여편네도 자식들도 용서가 없는 거라구요.
왜 그래야 되느냐? 한 세상을 이별하고 한 세상을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예」 여자로 말한다면 시집가서 살던 여자가 재가(再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어요? 복귀의 길은 사탄과 살고 있던 색시가 하나님한테 재가하는 격이라구요. 알겠어요? 여러분 그렇다는 거예요. 한번 잘 들어 보라구요. 실감이 나지요? 재가하는 색시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색시가 시집을 다시 가는데 뒤에 버리고 온 남편을 생각하게 되면 지금 남편이 좋아하겠어요? 재취(專娶)를 한 사내가 자기 부인이 전번 남편을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겠어요? 좋아하는 남자 있으면 손들어 봐. 그 놈의 자식 때려죽일 거야. 한 사람도 없지요? 좋아하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좋아해요, 안 좋아해요?「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과 딱 마찬가지예요. 그 사람은 꿈에도 얼씬하지 말라는 거라구요. 그래서 옛날 것은 꿈에도 생각나지 않는 자리까지 끌고 가려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정을 끌고 나가면 다른 세계가 나와요? 이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딴 길…. 이렇게 나가려고 하면 막힌다구요. 그 길은 세계까지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아닌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빠져 나가려니 할수없이 세상과 반대의 길로 나가는 겁니다. 세상이 좋다는 길과 반대의 길로 가야 합니다. 한 발짝도 용서가 없다는 거예요. 경계선이 어디예요? 하늘과 사탄의 삼팔선이 어디예요? 나라구요. 앞으로 바라보는 욕심을 중심삼고 세계를 끌고 나가려니 6천년 걸려서 된 역사적 기준을 초월할 수는 없지만 내가 이것을 다 부정하고 돌아서면 대번에 재취하는 남편을 만나는 거와 딱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내려가는 것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좋은 겁니다」 여러분에게 뭐가 달라붙었을 때 어떻게 떼어냅니까? 내려 미나, 올려 치나? '자, 어서 올라가라 올라가' 이럽니까? '이놈의 자식아 떨어져라'하지요. 그리고 또 어떻게 해요? 발길로 내리 차는 거라구요. 어디로? 위로? 벼랑으로 차는 거라구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데는 말이예요. 이놈을 떼어 버리는 데도 정성들여 하는 것같이 살살 달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뭉청 잘라 가지고 벼랑 밑창에 처박는 것입니다. 사탄이 다시 못 들어오게 깊숙한 골짜기에 처넣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사탄이 없게 된 다음에 하나님이 찾아가서 치료해 주는 거라구요. 다리가 부러졌으면 다리를 치료해 주고 머리가 깨졌으면 머리를 치료해 주고, 기절했으면 안마를 해서라도 깨어나게 하여,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면 하나님이 메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다구요. 그런 곳에서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제일 빠른 길이 어떤 길이냐? 두 길이 있어요. 세상을 버리고 입산수도하는 길과 세상에 나가서 희생하는 길. 그 중에 어느 길이 빨라요? 입산수도하는 길보다 3배나 빠른 길은 세상에 나가서 바로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정성들이는 것보다도 나가서 전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내 보니까 그것이 3배나 빠르더라구요.
기도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실천을 하게 되면 기도하지 않고도 기도한 이상의 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길이 제일 빠른 길입니다. 내가 정성들여 가지고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수많은 시련을 겪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뜻을 위해서 일선에 나오게 되면 대번에 선생님을 만난다구요.
뜻을 중심삼고 고생해 보라는 거예요. 무슨 일이 있으면 다 직접 만날수 있는 권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며칠 안 가서 다 그렇게 돼요.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가 복된 자리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찾아가 가지고 주인 노릇을 하게 된다면 사탄이 물러가야 되겠어요. 안 물러가야 되겠어요? 「물러가야 됩니다」
그것을 접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여러분이 선생님이 하나님 앞에 어떤 팻말을 받고 어떤 약속을 받은 경지까지 가면, 거기에서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새로운 교훈을 해주고 싶어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겠어요?(녹음이 잠시 중단됨)
여러분은 올라갈래요, 내려갈래요?「내려가겠습니다」'생활이 어려우니까 편안한 길을 찾아가야 되겠다' 하면, 그놈의 자식 때려죽여라 그 말이라구요. (웃음) 웃지 말라구요. '여편네, 자식을 못 먹이니까 가슴이 아려 죽겠으니, 그 길을 나는 못 가겠소' 할 때는 사탄은 거기에 장단을 맞추어 춤을 추고 하나님은 보따리를 싸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길 안간 줄 알아요? 여러분들은 이남 땅이라서 가서 만나 볼 수도 있겠지만, 선생님은 보따리 싸 가지고 삼팔선 이북을 간 거라구요. 무슨 준비를 해가지고 인사하고 나서 떠난 것이 아니라구요. 임자네들은 인사한 뒤에 떠나지 않느냐 말이예요. 선생님은 그때 백천에 쌀을 사 왔거든요. 해방 뒤에는 서울에서 쌀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쌀을 트럭에 싣고 오려고 가다가 차안에서 '삼팔선을 넘어라!' 하는 명령을 받은 거예요. 도리가 없는 거예요. '아이고 여편네하고 자식한테 연락해야지' 그럴 수가 없는 거라구요.
그때 집에는 쌀 한 되도 없어서 옆집에 사는 친구네 집에 가 가지고, 내일 아침까지 올 테니까 한 되만 빌려 달라고 해서 갖다 놓고 왔어요. 딱딱 핥아먹고 돈 한푼도 없었다구요. 그래 놓고 삼팔선을 넘은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때, 성진이가 태어난 지…. 4월 2일에 낳았으니까 한달 반 정도, 한 50일 정도 됐다구요. 5월 27일에 명령을 받고 출발해서 6월 6일에 평양에 도착했어요. 핏덩이를 놔 두고….
성진이 어머니의 그때 나이가 몇 살이냐 하면 스물 둘이었습니다. 친척들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환난 중에 다 헤어졌으니 말이예요. 그런 사람한테 온다간다 인사도 없이 떠났습니다. 가 가지고는 편지도 안 했어요. 이왕지사 각오한 길인데 인사하고 떠나면 부정탈까봐서 그랬습니다. 자식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 부정탄다는 것입니다, 아내 때문에 제물 드릴 몸에 부정탄다 이겁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생각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그냥 두고 출전하는 병사의 심정으로 내가 사지를 향해 감옥에 갈 것을 각오하고 삼팔선을 넘은 거라구요. 알겠어요? '내가 가는 길에는 이러한 핍박의 길이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이 손이 찢길 것이냐, 이 다리가 끊길 것이냐, 언제 어디서 총탄이 날아와 내 옆구리를 뚫고 지나갈 것이냐, 뒤를 뚫을 것이냐, 앞을 뚫을 것이냐' 그것 심각하다구요. 죽을 각오를 하고 이북을 찾아간 것입니다.
앞으로 내가 수기를 썼으면 좋겠지만 그건 안 쓰려고 한다구요. 몇일 날에는 무슨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다 알고 있다고요. 내가 편지 한 장 못 해봤다구요. 하늘 앞에 맡긴 다음에는 간섭하지 말아야 되는 거라구요.'이렇습니까, 저렇습니까' 물어 보지 말아야 된다구요.
내가 이북에서 부모님과 작별을 하고 떠난 뒤에는 하나님 앞에 '우리 어머니 아버지 잘 있소?' 하는 기도 한번 안 한 사람이라구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에게 복을 빌어 주소' 이런 기도는 한마디도 안 한 사람이라구요. 내가 기도하면 죽었는지, 살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지만 지금까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사람이라구요. 그렇지만 영적으로 누구누구 한꺼번에 돌아갔다는 것을 안다구요. 지금까지 그런 놀음을 하고 나온 거예요.
그후 내가 이남에 나왔을 때는 성진이와 성진이 어머니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다 알고 있었다구요. 어디에 가면 반드시 만날 수 있다 하는 것도 알았지만 안 갔다구요. 내가 도의 길에서, 뜻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내가 이 길을 출발한 것은 성진이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구요. 가인을 복귀해 돌아가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이 길을 출발한 것입니다. 인연되었던 세상 사람을 끝까지 다 찾아 가지고 그 사람들이 상대가 안 될 때, 상대적인 입장에 서지 않게 될 때, 내가 책임을 다한 후에 내 집을 찾아가야 걸리지 않는 거라구요. 내가 집을 나온 지 3년 6개월이 지났었다구요. 편지 한 장만 하면 당장 만날수 있었지만 편지를 안 했습니다. 내가 만나야 할 사람,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약속한 몇몇 사람을 못 만났으니, 그들을 만날 때까지는 기다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만나자마자 연락을 한 것입니다. 연락을 하니 대번에 왔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내가 남편이라는 사람인데 자식이 일곱 살이 되어서야 만난 거라구요. 그때는 식구들과 같이 지내던 때였습니다. 할머니들을 데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내 아들이 왔다고 내가 기뻐하며 맞이했다가는 조건에 걸리는 것입니다.
아벨은 누구를 통해서? 가인을 통해서 소개받아 가지고 사랑해야 됩니다. 가인이 '오냐! 네가 성진이냐' 해 가지고 '선생님, 성진이가 돌아왔습니다' 해서 품고 사랑의 표시로 하나되어 맞이해야 됩니다. 이것이 원리의 법도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성진이와 성진이 어머니가 나한테 왔을 때, 선생님이 '얘가 성진인가?' 하고 말았습니다. 그게 성진이 어머니에게는 일생 동안 원망스러운 것입니다. 세상에 곰이나 호랑이도 자기 새끼는 보호하는데 무슨 사람이 그러냐는 것입니다. 사지사판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고 처음으로 부자(父子)가 상봉하는데 '네가 성진이냐' 하며 손목도 한번 안 잡아 주고 꺼벅꺼벅해 가지고 문전에 서 있어도 들어오라는 얘기도 안 하고 있었다구요. 들어오라는 얘기는 식구들이 해야 되는 거예요. 나는 원리적으로 살려고 지금까지 별의별 비참한 경지를 다 거친 사람입니다.
일단 하나님 앞에 맡기게 되면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뜻적으로 말하면, 부모가 하나님 앞에 효의 도리를 했으면 자식은 부모 앞에 효의 도리를 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게 해 가지고 만난 아들이 아버지한테 무슨 정(情)이 있겠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진이 어머니가 한참 반대할 때 성진이가 나이 일곱 살 땐가 여섯 살 땐가, 일곱살 때구만. 어머니를 버리고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금이야 옥이야 사랑하면서 일곱 살 때까지 업어 길렀는데, 그런 어머니를 버리고 자기를 위해서 아무것도 안 해주는 아버지를 찾아왔다는 거예요. 누가 꼬여 가지고 온 게 아니예요. 자기 발로 걸어온 거라구요. 그리고 어머니가 반대하면 미리 와서 전부 다 알려 주는 거예요. 그거 이상하지요? 내가 그런 성진이에게 미안한 것이, 그 애한테 언제 한번 교육 못 해준 거예요. 원리는 이렇다고 교육을 한번 못 해주었다구요.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못 했다구요. 세상적으로 볼 때 아버지로서의 점수는 빵점이었다구요.
60년대가 될 때까지는 내가 성진이를 남의집살이를 시켰습니다. 왜? 복귀원칙을 걸어가야 되기 때문입니다. 가인이 아벨과 하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백문에게 맞겨 기른 것입니다. 남의집살이를 시킨 거예요. 그래서 천대받으면서 배우는 사람이 되었지요. 천대받아서는 안될 환경에 있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남의 집살이를 시킨 거라구요.
성진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도 내가 연필 한 자루 안 사주었어요. 알겠어요? 중학교에 갈 때도 연필 한 자루 안 사 주었어요. 60년대에 성혼식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얼굴을…. 희진이도 그런 놀음을 했다구요. 예진이도 낳아 가지고 복귀해 들어온 거라구요. 그러지 않으면 원리가 틀리는 거라구요. 희진이를 일본에서 낳은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절간으로 가서 절간살이, 남의집살이를 거치고, 외지에서 태어나 가지고 외지에서 죽었지만 말이예요. 그렇다고 해서 통일교회가 망하지 않는 거예요.
이러한 천적인 역사를 아는 입장에 서 있는 임자들이 그럴 수 있어요? 천벌을 받는 거라구요. 이 길은 선생님이 심정으로 가꾸어 놓은 길이라고요. 그 원리원칙은 천지의 가늠대가 되어 있고, 복귀되는 천국의 헌법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인데, 여러분이 그러지 않고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을 수 있는 부자의 인연이 성립될 수 있느냐 이겁니다. 어림없다는 겁니다. 누가 말하기 전에 자진해서 그런 길을 가야 되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여러분만 못해서 고생했겠어요? 하나님께서 선생님의 가정을 괜히 고생시켰겠어요? 무엇 때문에 그랬겠어요?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서입니다.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어야지요?「예」 하나되는 데는 어디에서 하나되어야 해요? 사탄이가 따라오는 자리에서 하나될 거예요? 사탄이 떨어진 자리에서 하나되어야 됩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자리에서 사탄이 떨어지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가정의 여편네들을 전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희생시키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종족복귀를 하기 위해 이북을 찾아 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 놀음을 하는 거라구요. 전부 갈라져야 합니다. 갈라졌다가 합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입적이 안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비통한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서 남북통일이 될 때까지 그 역사를 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리하여 통일의 운세를 갖추고, 한 국가의 승리권을 갖추고 해와권 국가를 대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지 않고서는 통일의 운명의 수난길 앞에 여러분 자신들은 전부 다 비참하게 희생되는 거라구요. 기독교가 비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앞길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하게 된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 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듦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으로 비참했지요? 자기 조국을 광복한다고 찾아들었지만 원수가 총칼을 겨누면서 '하나님을 중심한 너희는 아직까지 민족적 기준에서, 우리한테 굴복하던 세계적 기준까지는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의 기준을 뚫고 나가야 된다' 하며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동족이요, 친구였던 12지파들이 전부 아랍국가가 되어 가지고 원수의 총칼을 겨누고 있는 것입니다. 왜? 조상이 잘못한 것을 탕감복귀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총칼로 끊어 놓았으니 총칼을 겨누지요? 이스라엘의 생명은 내가 손을 대야 합니다. 다른 비법이 없다구요.
그러니 여러분들 내려갈래요, 안 내려갈래요?「내려가겠습니다」 징징거리며 내려갈래요, 웃으면서 내려갈래요?「웃으면서 내려가겠습니다」 상속권은 어디에서 계승됩니까? 어디에서 상속권이 인계됩니까? 소망이 없는 곳에서 계승이 돼요? 소망이 있는 곳에서 계승되지요?「예」 끝까지 참아서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했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영계에 가서, 지옥 밑창에 가 가지고 3일 수난길을 극복해야 되는 거라구요. 예수님이 노아 이후의 영계를 중심삼고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지 못한 거라구요. 그렇지요? 영육을 중심삼고 승리의 기점을 가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길을 열어 놓지 않으면 참소받는 자리에 들어간다는 거라구요. 길을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영계의 지옥에 가서 개척하여 길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거기 가서 그런 일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도 그랬습니다. 선생님은 이북에 가서 뭘했느냐? 이러한 원칙을 알았기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예수가 감옥에서 망했지요? 그러니, 선생님도 쫓겨난 원수의 길을 되돌아가는 데는 감옥을 찾아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내가 평양 형무소에서 쇠고랑을 차고 형벌을 받고 있는 중에도 누구누구를 만날 것을 다 약속받은 거라구요. '여기에 가면 예수님의 3대 제자와 같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하는 것을 약속받은 것입니다. 복귀의 운세권내에서는 그렇지 않으면 천도가 들어맞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가는 길도 최고 희망의 길이었다 이겁니다. 그때 거기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다 오늘날 여러분 앞에 나와 간증하는 사람들이라구요.
이러이러한 사람을 만날 것이다 하는 그 소망을 가지고 감옥을 찾아 들어간 것입니다. 소망 중에 찾아간 것입니다. 절망 중에 찾아간 것이 아니라구요. 내가 거기에 들어갔으니 거기서 길을 닦아 가지고 그 수고의 공적을 통해서, 그 문이 자동적으로 열리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완전히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옥살이를 하고 옥에서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옥에 들어가서도 제일 어려운 일을 내가 도맡아 했던 것입니다. 몸으로 하는 일 가운데 최고의 어려운 일을 내가 도맡아 한 거라구요. 알겠어요? 제일 어려운 일을 일보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빨갱이들한테 매년 모범 노동자 표창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내가 원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구요. 전부 다 자기들이 주었지. 공산세계의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모범 노동자로서 일등이 됐으니 세계 어디에 가도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탕감복귀가 안 되는 거라구요.
감옥에서 내가 학질에 걸려 몇 달을 앓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하루도 쉬지 않았습니다. 남들은 핑계 대 가지고 쉬지 못해 야단이었지만 내 책임량은 죽을 때까지…. 내가 책임량을 못 해본 적이 없다구요. 그리하여 감옥에 들어간 사람으로서 소장에게까지 특별대접도 받아 보았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전부 다 나를 우러러 보았다구요. 말하지 않고 별다른 나라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전체를 위해서, 내가 있는 조를 거쳐가는 사람들 앞에…. 거기서는 매일 아침 조편성을 다시 했습니다. 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있는 조를 거쳐갔어요. 내가 있는 조를 거쳐간 사람들은 전부 나를 좋아했다구요. 감옥살이 중의 감옥살이를 했어요. 이'문'이라는 사람 뒤에는 개가 많았다구요. 여러분, 개가 뭔지 알아요? 그렇지만 그런 조건에 걸릴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말하지 않는 가운데서…. 내 말이라면 생명을 걸고, 탈옥하자면 탈옥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지사판에서 예수님의 12제자가 도망간 것을 복귀해야지요? 자동적으로 복귀해야 된다는 거라구요.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영계가 동원되어 가지고 전도해 주었던 거라구요. 선생님의 수인 번호가 596번, 오구륙 번이었다구요. 어떻게 보면, 억울한 번호라구요. 어떤 사람에게는 꿈에 조상이 나타나서 '몇 호실에 596번, 이러이러한 양반이 있는데 네가 받은 미싯가루를 하나도 손대지 말고 그분한테 갖다 드려라' 하고 명령한 것입니다. 그래도'이런 허황스러운 꿈같은 거 뭐'이러면서 한번 해서 안들으니까, 두 번, 세 번 하다가 나중에는 목을 조르면서 '이놈아! 할래, 안 할래' 하니까 '예, 하겠습니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감옥에서 미싯가루는 생명보다 더 귀한 거라구요. 그래서 그 사람이 미싯가루 자루를 꺼꾸로 들고 터벅터벅 와서는 '여기 596번 있어요? 누구예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는 누구야, 여기 나타난 사나이지. 여러분의 선생 되는 사나이라구요. 이렇게 영계에서 동원되어 가지고 다 먹여 주는 거라구요. 그 후 내가 아무 말 없이 평양에서 피난 나올 때 네사람이 따라 나왔습니다. 사위기대 복귀라구요. 알겠어요? 교회를 중심한 네 사람을 데리고 나온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는 복귀의 원칙을 벗어날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네 사람을 데리고 나왔느냐? 이런 것 전부 다 얘기하자면 이건 뭐…. 우리의 몸과 마음이 갈라져 있지요? 내적인 마음에도 성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이 있지요? 외적인 몸에도 성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이 있지요? 그러니 넷입니다. 완전 통일은 내적으로 영적 사탄을 굴복 시켜야 되고, 외적으로 육적 사탄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의 외적인 면을 대신하고, 마음은 하나님의 내적인 면을 대신합니다. 이 넷이 하나되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이 넷이 하나되지 못하면 세계도 통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왜 첩을 두었는지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어떻게 되느냐? 끝날에는 네 나라 형태가 되어서 나가는 것입니다. 민주세계도 두 패, 공산세계도 두 패, 그런 세계가 된다는 거예요. 전세계가 네 갈래로 되는 거예요. 예수 나라, 오른편 강도 나라, 왼편 강도 나라, 그 다음에는 바라바 나라가 생기는 겁니다. 바라바 나라가 뭐냐 하면 회회교입니다. 강제라구요. '코란을 안 받으려면 칼을 받아라' 하는 종교입니다. 기독교와는 반대지요? 그것이 바라바 나라라고요. 예수님 때문에 혜택을 받았지만 그 공덕을 모르는 패, 자기 패만 위하고 은덕을 갚을 줄 모르는 바라바 형의 종교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회교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좌익, 우익이라는 것은 예수님 시대 때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예수가 예수 나라를 중심삼고 올 때가 되면, 이 네 나라가 상봉해 가지고 정상적인 길을 가려 가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역사가 갈라졌기 때문에 거기에서 역사가 수습되어 가지고 새로운 길이 모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가 좌익과 우익으로 갈라졌지요? 그 다음에 회회교권이 있지요? 그리고 기독교권이 있지요? 기독교권은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은 새로운 천국문화권을 중심삼고 생겨난 것이라고요. 그 4자 상봉의 시대가 오는 거라구요. 지금이 그때라구요.
그러면 공산당들은 어떻게 되느냐? 공산당들은 아랍권과 손을 잡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벌써부터 얘기한 것이라구요. 1965년에 미국의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과 만났을 때 얘기한 거라고요. 공산세계가 망하게 될 때는 반드시 아랍권을 통해서 민주세계에 다시 반기를 들고 나온다고 했던 겁니다. 지금 그래요.
이러한 시대적 흐름 가운데서 소비에트와 아랍권의 낫세르하고 손을 잡고 낫세르를 데려간 거라구요. 그를 무너뜨려야 됩니다. 이것이 산산조각으로 갈라져야 된다구요. 그때가 오면 우리의 때가 온 것을 알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보라구요. 민주세계에서 미국이 고립되었지요? 갈라졌지요?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산세계에서 소련이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 고립되어 있어요. 또 중공하고도 그렇고. 세계가 전부 고립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낫세르를 중심한 아랍세계도 지금 고립되어 있습니다. 낫세르가 죽었기 때문에 전부 다 고립되게 된 거예요.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 자체도 역시 고립되어 있다구요. 그렇지요?
기독교가 갈 길이 있어요? 민주세계가 갈 길이 있어요? 공산세계가 갈길이 있어요? 회회교가 갈 길이 있어요? 없다구요. 다 방안이 없는데 여기에 새로이 오시는 재림주님이 재림사상을 중심삼은 새로운 방안을 가지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는 깃발을 들고 나오게 되는 거예요. 역사를 보더라도 지금이 끝날이라구요.
개인을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가 희생해야 됩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것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처박는 것입니다. 그 처박는 것이 좋은 것이예요. 나쁜 것이예요?「좋은 것입니다」
역사시대의 인물 중에서 처박지 않았던 사람 있어요? 아벨 처박았어요, 안 처박았어요? 노아 처박았어요. 안 처박았어요? 아브라함 처박았어요, 안 처박았어요? 야곱 처박았어요, 안 처박았어요? 수없이 박혔지요?「예」 또, 모세 처박았어요, 안 처박았어요? 세례 요한 처박았어요, 안 처박았어요? 예수 처박았어요, 안 처박았어요?「처박았습니다」 처박았지요?「예」
자, 통일교회 문선생 처박았어요. 안 처박았어요? 대답하라구요. 「처박 았습니다」 처박았다구요. 그러면 그것을 계승할 통일교회 교인들은 처박아야 되겠어요, 안 처박아야 되겠어요?「처박아야 되겠습니다」 살 길을 쳐다보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길을 막고 처박은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처박은 것입니다. 이 길을 피해 가다가는 살 길이 없는 거예요. 처박을래요, 안 처박을래요?「처박겠습니다」 처박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두 손 들어 보라구요. 내려요.
보라구요. 하나님이 선생님을 대해 얼마나 무자비한지 모릅니다. 골짜기에 딱 가서는 모른 척하는 거예요. 세상에 그런 주인을 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말입니다. 내가 세상사람 같으면 하나님이고 뭐고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이렇게 살랑살랑하고 요렇게 나긋나긋하게 해서 구미를 돋구어 가지고 고개를 들게 한 다음에는 처넣는 거라구요. 인사도 없다고요. (웃음) 그거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좋은 겁니다」 그거 알아요? 왜 그래야 되느냐?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사탄의 참소를 피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동네에서 아이들 둘이 싸움을 하는데 말이예요. 자기 아들 하고 동네 아이하고 싸우는데…. 이게,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구요. 아이들이 싸우는데 그 동네 사람이 자기 아이를 들이 팼다고 합시다. 이렇게 됐을 때, 자기가 나타나서 그 사람한테 '당신 아들이 잘못했소' 이렇게 하게 되면, 거 어른 싸움 되나요, 안 되나요? 그럴 때는 그 동네 아이의 어머니 아버지가 보는 데서 자기 자식에게 '야, 이놈의 자식아' 하면서 그 사람이 자기 자식을 한 대 때렸으면, 자기는 세 대를 때리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이 무색해서 '여보 여보, 그러지 마시오'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그러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이 와서 참소해요? 얼굴도 못 들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시시하게 굴복시키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일시에, 그 그림자도 없게끔 해야 한다는 거예요. 축복을 해주고 공인을 해주지 않고는 못 돌아가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영수증을 받아야 되는 거예요. 이겼다고 하는 영수증을 사탄한테서 받아야 되는 거예요. '너 내 아들 어떻게 하겠니? 해 가지고, '아,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처리하십시오'라고 하는 공인서를 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런 약정서를 남기기 위한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거 좋아요, 나빠요? 증인이 있어야지요? 아버지하고 아들이 뭉쳐 가지고 짝자꿍이를 하면 그걸 누가 믿어 줘요? 천지 앞에 사탄이 증거를 해야 된다구요. 방법이 그래요.
때가 가까와지면 가까와질수록, 나는 지역장이나 지구장이 자기의 애기에게 줄 밥을 자기도 모르게 빼앗아 먹었다고 하는 말을 듣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때를 바라고 있는 거라구요. 자식에게 밥을 먹이다가, 자식에게 밥을 먹이는 걸 잊어버리고, 그 밥을 자기가 먹었다고 할 만큼의 비참한 자리에까지 가게 놔 두는 것입니다. 그 자리까지 가게 몰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지독한 사람이라구요. 이런 사람을 따라갈래요, 도망갈래요?「따라가겠습니다」 진짜 따라갈래요?「예」 그 길을 가기 위해서 여러분을 모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전에도 얘기했지만, 어려운 사람은 집에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못 견디겠으면 돌아가라는 거예요.
이번에도 내가 다 알고 있습니다. '아이고, 보따리 싸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와 있다고요. 쓱 보니 '이번 수련회나 한번 가 보고 생각하자' 하거나 '이제 공장이나 가야지. 남달리 그럴 게 뭐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나오기 전까지의 6천년 역사는 다 살라 버려야 되는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역사는 선생님의 시대부터다 하는 것을 생각해 봤어요? 지금까지 수천년 엮어 온 문화사는 비참한 역사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사탄이 하나님을 배반한 역사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남길 수 있는 역사의 기록을 선생님의 일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구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50평생을 걸어온 것이 통일사상의 과거입니다. 그 역사와 더불어 여러분이 남게 되었다는 사실은 여러분이 역사적인 영웅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에 보조를 맞추어서 우주역사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일보 전진하느냐 후퇴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엄숙한 순간이라구요. 이때는 선생님 일생 외에는 없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저세상을 가기 전, 한 번밖에 없는 때라구요. 이제부터 여러분의 역사는 이 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되돌아가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이루려는 그 세계,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되어진 그 전통의 역사를 여러분이 고스란히 인계받아서 고스란히 미래에 남겨 놓아야 된다구요.
그 내용이 뭐냐?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되어진 것이 세계를 전부 통일화시키는 것입니다. 그 모체가 무엇이냐 하면, 참부모사상입니다. 참부모의 전통이 없으면서 참다운 자식들의 역사가 나올 수 있어요? 문화의 출발은 부모로부터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 짧은 기간이 우주역사의 척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 생각해 봤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심각하다는 거라구요.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까지'통일사상의 전통적 기반을 성립시켜라' 하고 당부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당부한 것이 그거라구요. 그것을 닦아 놓은 기반 밑에서 가정이 성립되어야 되고 국가가 성립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주류사상은 뭐냐? 그것은 자기를 중심삼은 사상이 아니고 전체를 중심삼은 사상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전체를 위해서 희생하는 길을 가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의 주류사상이라고요. 알겠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
우리의 체제에서 교회도 있고 회사도 있고 다 있지만 그것은 방계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들어와 있다는 것은, 천신만고해서 세계적인 추첨을 거쳐 남아져 가지고야 가담할 수 있는 영광의 혜택권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봤어요?
예수님이 사탄한테 말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했지요? 사실이 그렇다구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노동하면서 살았어요? 돈으로 살아요?「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가지고 사는 거라구요. 그래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고, 통일될 수 있는 절대적인 방법은 하나님과 더불어 일선을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최후의 마지막 선을 넘자는 거예요. 그 선이 어디냐? 치열한 전투의 자리요, 포위망을 뚫고 나가야 할 생사의 교차로가 접해진 접경지대가 아니겠느냐.
그러면 하나님과 더불어 넘어야 하는 그 최일선이 어디예요? 영광의 자리예요? 술이나 마시는 그런 자리예요? 눈물 콧물을 흘려 가며 인류애를 중심삼고 허덕이는 자리입니다. 사탄이 모질고 흉악한 무기를 가지고 이것을 일시에 격파하려고 준비한 함정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 함정 가운데 들어가 그것을 격파시키고 나서, 그 함정을 평지로 만들어야 됩니다. 여러분, 그 함정에 들어갈래요, 안 들어갈래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지요?「예」 마찬가지로, 사탄을 잡으려면 사탄 굴에 들어가야 되는 거라구요. 하나님을 잡으려면 하나님이 계신 최일선에 가야 된다구요.
하나님과 사탄의 상봉은 천상세계에서 했고, 거기서부터 지금까지 싸워 왔는데 언제 작별할 것이냐? 작별지가 어디냐? 이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사탄이 참소해 왔지요? 하나님과 사탄이 작별을 안 했다구요. 알겠어요? 하나님과 사탄이 작별할 자리가 어디냐? 그 자리는 사탄이 견디어 내지 못하는 자리입니다. 사탄이 견디어 내지 못하는 자리는 사탄 세계에 있는 인간들이 견디어 내지 못하는 자리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의 제일 비참한 자리에 가야 합니다. 감옥에 가게 되면 감옥주가 되고, 노동을 하게 되면 노동주가 되고, 밥을 굶으면 누구보다도 더 굶으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30세까지 배고프지 않은 날이 없었다구요.
이렇게 하면서 60년도까지 온 것입니다. 60년도까지 와 가지고, 대한민국이 반대할 때 성혼식을 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싸움을 해 가지고 빼앗아 온 거라구요. 사탄세계에서 빼앗아 갔지요? 내가 들어가서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뛰쳐 나와야 됩니다. 알겠어요? 담을 넘어 나와야 됩니다. 그런 싸움을 하는 거예요.
누구를 빼앗아 와야 되느냐? 해와를 빼앗아 와야 됩니다. 그 해와 빼앗기 싸움의 비참한 부산물이 통일교회가 욕먹는 것이라구요. 대한민국에서 검찰청까지 전부 다 동원했던 거라구요. 60년도에 성혼식 전전날까지 내가 검찰청에 다녔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은 다 모르는 거라구요.
그 일에 투서한 녀석들이 모두 열두 명이었습니다. 예수를 팔아먹던 그때와 같이 그 녀석들이 전부 다 통일교회에 가까이 있었던 녀석들이라구요. 어쩌면 딱 열두 사람이 들어맞았는지…. 그들이 서명해 가지고 싸운 거라고요. 성혼식을 중심삼고 작전을 할 때는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최고의 모험을 한 거라구요.
개인적 한탄의 고개를 넘어서 가정이 출발되면 가정적 한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개인을 대해서 모함하던 것은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충돌하는 것은 다 무너진 거라구요. 그 다음에 남은 것은 가정적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그것이 제1차 7년노정입니다. 선생님이 가정적 십자가의 길을 간 것이 제1차 7년노정입니다. 알겠어요?「예」
가정적 제1차 7년노정을 넘어선 다음에 자녀들이 가야 할 7년노정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7년노정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 성진이가 이때에 자리를 못 잡으면 큰일나는 거예요. 알겠어요? 고맙게도 일본에 가서 뜻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 탕감복귀라고요. 그런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성진이가 이젠 제법 여러분들이 대하기 곤란하리만큼 자리를 잡았다고요. 지금 일본 구보끼 협회장이 달려 돌아가고 있고, 간부들이 달려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가정들도 성진이를 중삼삼고 보면, 여러분이 소생급에 있으면 성진이는 장성급에 있습니다. 가인 아벨격입니다. 그렇게 보고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런 입장이 성립되는 거예요. 이 둘이 하나되어야 된다구요. 복귀의 길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가정은 선생님을 통해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가는 길은 여자들의 한탄길을 탕감복귀하는 길이라구요. 성경역사에는 여자를 중심한 내용이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종적인 역사는 주체를 찾는 역사였습니다. 6천년 동안 아담 하나 찾아 나온 거라구요. 아담을 찾고 나서는 여자를 찾아야지요? 이 남자세계에 여자가 없을 수 없습니다. 비참한 일도 여자와 더불어 다 했다구요. 종족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한다고 그랬지요? 횡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보면, 지금까지의 역사가 7천년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 7천년의 역사를 횡적인 기준에 세워 가지고 탕감복귀해 나오는 기간이 1차 7년노정 기간이라구요.
선생님이 개인적인 승리의 기반 위에 1차 7년노정을 선언한 것은 여자를 중심한, 횡적인 가정적 탕감의 기준을 마련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가정적 기반을 만들려니 36가정을 축복하게 된 것입니다. 노아 가정에서부터 승리의 터전을 닦았지요? 전통적 가정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운 것이 노아 가정입니다.
노아 가정은 아담 가정으로부터 연결된 인연을 따라서 나온 가정이었습니다. 노아 가정이 승리했기 때문에 미래의 소망을 중심삼고 야곱 가정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노아 가정을 중심삼고 영계와 육계가 갈라진 것을 연결시키기 위해 타락한 세계에서 자기들 멋대로 결혼한 기성가정들을 축복한 것입니다. 그것이 아담의 혈통을 받고 난 후손이라구요.
그 다음에는 노아 가정은 소원의 뜻을 이루지 못한 예수형과 맞먹는 형입니다. 언제나 둘째 번이 맞는 거라고요. 예수도 둘째 번이기 때문에 죽었다구요. 아벨, 함 전부 둘째지요? 그런 것을 볼 때, 노아 가정 전체를 하나님의 섭리에 있어 아벨형으로 보게 되면 예수형 가정과 마찬가지라는 거라구요. 이 가정은 뜻을 이루지 못한 가정입니다. 노아 가정형에 들어간 사람들은 다 그런 사람들이라고요. 이 땅 위에 남자면 남자로 태어났다가 자기 첫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제2가정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복귀역사가 이렇게 복잡하다구요. 알겠어요?
그 다음 야곱 가정, 제3가정은 무엇이냐? 이것은 순전히 처녀 총각들 이라고요. 여기에서부터 지상의 기반은 모두 탕감복귀해 가지고 완전한 것을 세워야 됩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비로소 야곱 가정형의 열두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횡적 사방성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이것이 36가정을 중심삼고 전체를 대표한 입장에서 기반을 잡게 되는데, 그것이 열두 지파를 중심삼은 3시대의 열두 형입니다. 야곱을 중심삼고 보면 소생, 장성, 완성의 3시대입니다. 이것이 전부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것이 지금까지 조상들이 책임 못한 것만을 중심삼고 어그러 졌느냐? 아닙니다. 조상들도 잘못을 했지만 형제들이 잘못해 가지고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36가정의 형제와 같은 입장에 가인 아벨 두 형으로 세운 것이 72가정입니다. 알겠어요?
72가정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야곱대까지, 지상에 횡적 기반을 닦을 때까지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정의 가인 아벨 두 형으로 복귀된 기준에 세워 놓은 것이 72가정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의 직계 조상의 가정들이 전부 다 부활된 형태의 가정이 지상에 현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중요한 중심이 결정된 것입니다. 열두 가정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지파형의 출발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의 목적은 누구의 시대에서 실현해야 되느냐? 예수시대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기반을 중심삼고 민족을 거치고 국가를 거쳐 세계까지 나가야 했습니다. 예수에게는 무슨 사명이 있었느냐? 유대교는 종족을 대표한 것이요, 유대 나라는 민족을 대표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예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유대교까지 연결하려면, 예수님이 복귀된 종족의 가정을 가져서 그 가정을 중심으로 열두 지파를 편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지 못하면 열두 지파에 달려 있는 유대교단은 책임을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자기의 친척을 중심삼고, 사촌, 육촌까지를 중심삼고 해야 하는데, 외지에 나가서 하려다가 불신당하여 몰려다니다가 죽었다는 거예요. 형제들끼리 했더라면 때려죽이지는 않았을 것 아니예요?
왜 예수가 죽을 수밖에 없었느냐? 마리아와 요셉이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밤낮 이건 누구의 아들이냐고 하면서 마리아와 싸우는 바람에 소문이 다 났다는 거라구요. 예수가 사생아로 몰리게 된 동기가 요셉과 마리아가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비밀을 지키고 동네에서도'이는 내 아들이다'고 했으면, 요셉만 눈감고 살았더라면 예수는 동네에서 형으로, 동생으로 사랑받았을 것인데 그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외톨이 사생아로 몰려나게 되었다는 거예요. 문중에서도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비참한 운명길에 서서 외지에 나가 자리를 잡아서 외적으로부터 재탕감해 가지고 종족을 복귀하고 민족을 복귀하기 위해 나선 것이 예수가 십자가에 죽게 된 동기라는 것입니다.
남의 피를 받아 난 사생아하고 누가 하나되려고 그래요? 만일에 요셉과 마리아만 잘했다면 일가 친척과 사돈의 팔촌들 가지고 70문도, 120문도를 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족이 전부 다 하나님편이 되기 때문에 예수는 가만히 앉아서 가정을 이루어 아이만 낳으면 되는 거예요. 모자 협조를 했으니 부녀 협조할 수 있는 기반만 되면 뜻은 자연히 이루어진다구요. 그럴 거 아니예요?
오늘날 우리가 72가정을 세웠기 때문에 조상들을 중심삼은 터전이 이 땅 위에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유대교적 기준을 못 이룬 것이 한이기 때문에 그것을 대신한 12O가정이 예수의 한을 풀어 줄 축복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20가정은 선두에 서서 희생해야 된다 그말입니다. 알겠어요?
요전에 출동교육을 받은 지역장들은 전부 120가정일 것입니다. 120가정은 희생해야 된다 이거예요. 120가정은 예수시대의 120문도 입장으로 세계적인 지파 편성을 하는 데 있어서 세계 120국가를 대표한 국가적인 기대입니다. 알겠어요?
국가적인 기대가 열두 지파라면 그 국가적 기준을 중심삼고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세계적인 출발기준이 되는 것이 120문도라는 것입니다. 120문도가 죽게 된 원인은 무엇이냐? 120문도와 같은 120명의 여자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수를 중심삼고 120명의 여인이 하나되어 생사를 같이 할 수 있었다면 예수가 어디 사막에 들어가더라도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요. 그렇지요?「예」
이러한 전통적 역사를 중심삼고 우리 통일시대에 있어서는 120문도를 대신할 수 있는 기준을 안팎을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갈라 세워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가 120개 국가 이상 되었고 그 120국가를 대표하여 세계적인 40개국을 중심삼아 성지를 택정한 것입니다.
지금 제2차 7년노정을 가는 통일교회, 제2차 7년노정을 가는 여러분 시대에 와 가지고 1200명 부인들을 동원한 것은, 예수시대보다 한 단계 올라서서, 120의 열 배로써 세계적 기반을 닦기 위한 일을 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1200문도가 나타나기 전에 1200 해와가 나타나 가지고, 여러분이 그 해와를 중심삼고 절대적으로 하나되는 입장으로 편성해 가지고 민족 운세와 세계 운세를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운세와 세계 운세를 넘어가느냐 못 넘어가느냐 하는 것이 전부 짬뽕될 수 있는 입장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이것이 1972년까지 갈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세계적인 예수의 한을 탕감하여 풀고, 그와 더불어 선생님이 세계적인 새로운 출발의 포진을 갖추어 놓는 때가 1972년도까지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고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가정은 선생님과 직접 내적 인연을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입적하는 놀음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전부 다 원리적입니다. 주먹구구식이 아닙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 시대에 여자의 역사가 탕감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자가 언제 탕감했어요? 어머니가 7년역사하는 것이 뭐냐 하면 그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여자의 일 중에 어려운 일은 다 하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불신받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절대 믿으라고 한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원수입니다, 그렇지요? 원수지요? 서로의 생명을 사망으로 대치시켰던 원수입니다. 그런 원수의 자리에 있더라도 은인으로 맞아들일 수 있는 자리에 세우기 위해 7년 동안 싸움을 하면서 탕감노정을 걸어 나온 거라구요. 알겠어요? 여러분이 그 기준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그 승리의 터전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여러분 가정도 여자를 중심삼고 승리적인 터전을 닦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승리의 터전을 닦음으로써 선생님과 여러분의 아내들이 일치되면 여러분도 자동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역사적인 탕감을 다 하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의 탕감도 다 하고 아담, 해와, 천사장의 탕감도 다 하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의 탕감을 다 했는데도 여러분의 아들딸이 반대하겠어요?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해요? 어머니 아버지가 뜻을 받들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리고 여러분이 천사장이라면 선생님은 아담이지요? 그런 입장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해와 옆에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별수없지? 그래도 할수없다구요.
60년대에는 여자를 내세워 개척했습니다. 지금은 가정적 개척시대입니다. 그러면서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앞으로 대한민국 가정 여자들이 '이 나라 이 민족을 복귀하자' 하면서 총칼을 들고 삼팔선을 없애기 위해 나서게 되는 날에는 이북은 무너지게 된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여러분이 내려가는 것은 횡적인 기반을 닦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될 수 있는 통일적인 기반을 가려 승리적인 기반을 닦은 남자가 나오게 되면 여자는 그 남자를 절대적으로 신임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어머니로는 최고라구요. 왜? 절대적으로 믿었다는 조건에 더하여 가치의 양을 많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이 상대를 얻게 될 때에 자기가 상대가 되겠다고 영계를 통해 가지고…. 그럴 때에 영적으로 지배받고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상대가 될 사람은 20세 전이어야 된다는 겁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했던 나이…. 선생님이 41세에 아무것도 모르는 열 여덟 살 난 처녀를 맞이했습니다. 세계 문제를 앞에 놓고 생각하면 기가 막히는 거라구요. 뭐 색시들이 없어서? 대학을 나오고 뭐 한다 하는 여자들이 수두룩한데 말이예요.
어머니를 택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완전한 가정에서 택하면 안 된다구요. 어머니의 어머니가 여기에 와서 식모살이했지요? 말단에서부터 충성을 하라 이거예요. 그 어머니가 감옥살이하는 신세였지만 그게 전부 복이라는 거예요. 통일교회는 감옥살이해 가지고 고생하며 나오면서도 원망하지 않고 전부 자기가 잘못한 것으로 알고 하늘 앞에 더욱 충성하려고 하는…. 그런 면에서 보면 전부 복귀원칙에 의해 가려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 될 사람은 혈통적으로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되느냐? 그것은 간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문씨네 조상을 가만히 살펴보니까 문씨네는 사생아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족보를 캐 보게 되면, 신라시대의 무슨 왕이든가? 자비왕이 몽시에 이 나라에 특별한 아기가 났으니 찾으라는 명을 받아 가지고, 남평에 있는 문암봉이라는 봉의 바위에서 우는 걸 찾아 가지고 거기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섭리적으로 볼 때, 그것 참…. 화랑도 사상의 발주자(發走者)가 누구냐 하면 문씨입니다. 지금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복잡한 사연들이 엉클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만 탕감복귀하면 되나요? 여자가 승리했다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해산을 못 합니다. 그렇지요? 출발을 못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2차 7년노정 기간에 있어서는 나에게 교회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1964년도부터는 내가 단에 서서 설교를 안 한 거라구요. 전부 다 협회장에게 맡기고 가정적인 길을 간 것입니다. 개인적인 십자가를 진 다음엔 가정적인 십자가를 져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들에게는 십자가가 없습니다. 선생님은 개인적인 십자가와 가정적인 십자가를 세계적으로 져야 됩니다. 알겠어요? 사탄과 대결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민족적인 십자가를 세계적으로 져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지금 세계적인 정세를 가려 가며 세계적인 운명을 판결해야 할 때에 들어왔어요. 지금 여기 혼자 앉아 가지고 중국하고 일본하고 다리를 놓는 것입니다. 지금 선생님의 말 한마디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요? 이번에 구보끼가 미국에 가는 데는 히로도라는 사람을 데리고 가는 거라구요. 그 사람은 옛날에 미국에서 일본 총영사를 하던 사람입니다.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라구요. 이 사람이 일본 자민당에서는 뉴욕 사람으로서 권위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이번에 기시 전 수상의 친서를 받아 가지고 사절단으로 가는 거라고요. 일본 자민당은 딱 막혀 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또 정권이 갈 길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꾸다를 앞으로 수상에 남길 수 있는 내용을 짜 가지고 미국에 가서 미국 조야에 그 길을 연 다음엔 후꾸다가 가서 있다가 기회를 봐 가지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전부 난데없는 놀음을 하기 위해서 지금 선발대로 가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전부 다 하는 거라구요.
대만 정부의 장개석 총통도 선생님 판도권내에 떡 걸려 들었다구요. 이번에 일본통일교회에서 '일본이 중공을 반대하고, 중국 장개석을 배신 해서는 안 된다'고 일주일 단식투쟁을 했기 때문에, 구보끼가 대만에는 일본 정부보다도 더 가까와졌다고요. 그러니 구보끼가 거기 가면 국빈입니다. 가게 되면 직통하는 거라구요. 이번에 로마법황청이니 어디니 세계를 쭉 다닐 때도, 식구들이 전부 단식투쟁하는 사진을 찍어 중국 장개석이 자기 대사관에 소개를 해 가지고 대사들의 환영을 받은 거라구요. 천사장이 해와 국가인 일본의 협회장인 구보끼를 모셔야 된다는 거예요. 복귀해야 된다구요. 장개석 총통이 장개석, 개석이 어떻게 역사적인, 아시아의 인물이 되었느냐? 돌[장개석(蔣介石)의 석(石) 자를 의미함]을 복귀하기 위한 역사이기에 그런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돌을 복귀한 역사라구요. 중국은 천사장 국가라구요.
일본은 해와 국가이기 때문에 남자 국가인 두 나라가 걸려든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한국도 망하는 것이요, 중국도 망하는 것입니다. 두 남자 국가가 딱 걸려들었지요? 지금 그렇잖아요? 그래서 일본이 해와 국가라구요. 그것은 선생님이 일본을 해와 국가로 택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은 20년내에 세계에 없는 미녀로서 단장을 했다구요. 그렇지요? 시집갈 때에 칼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가지고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지금까지 무방비 상태로 있는 국가였습니다. 이제 내가 명령하면 칼을 준비해야 됩니다. 지금 그 놀음 하고 있는 거예요. 그걸 보면 때가 다 되었지요?
중공, 소련을 중심삼고 보면 사탄세계도 소생, 장성, 완성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소생급 나라는 어느 나라냐 하면 소련이고, 장성급 나라는 중공이고, 완성급 나라는 북한의 김일성이라는 거예요. 장성급은 뭐냐 하면 해와격이라구요. 또한 김일성은 아담격이고 천사장격은 소련이라는 것입니다. 소련과 미국은 같은 천사장격이기 때문에 같이 손잡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복귀의 때가 되어 오니 세계가 망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천운이 감돌아 가지고 서로 원수졌던 미국과 소련이 손잡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제1포위망의 울타리는 손잡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암만 중공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복작복작해 봐야 먹혀 드는 거예요.
민주세계에서 미국이 천사장 국가이고 일본이 해와 국가라 하게 되면 한국이 아담 국가라고요. 이 세 나라가 딱 손을 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해와, 즉 일본과 중공이 씨름하고, 아담과 아담, 즉 대한민국과 북한이 씨름하고, 천사장과 천사장, 즉 미국과 소련이 씨름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소련은 미국에게 끌려 들어간다는 거예요. 끌려 들어가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면 앞으로 천운은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편의 해와 국가의 운세를 중심삼고 좌우할 때가 되어 온다 이겁니다.
그런데 중공과 일본을 중심삼고 볼 때, 일본이 중공한테 끌려간다는 거예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망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이렇게 돌아 들어와야 하는 거예요. 이러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기서부터 출발을 시키시는 거라구요. 거 재미있게 넘어오는 거라구요.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아시아에서 중공과 일본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부 모였다구요. 그렇지요? 미국, 소련, 전부 여기에 모였다구요. 모여 가지고 짱짱짠짜 하더니 어떻게 되었나 하면 전부 다 깨져 나갔다구요. 중공 때문에 소련도 깨져 나갔고, 중공 때문에 북괴도 깨져 나갔습니다. 그렇지요? 또 일본 때문에 미국이 깨져 나가고 한국도 깨져 나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 문선생이 작용을 안 할 수 없다구요. 그렇게 되면 한국은 절대로 깨져 나가지 않는다는 거라구요.
그러면 아시아권에 있어서, 복귀기대면에서 복귀의 환경을 중심삼고 볼 때에 누가 천사장이냐? 아시아권 천사장은 장개석입니다. 천사장은 소생형입니다. 왜 소생형으로 벌어지느냐 하면,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3차만에 이루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장성적인 천사장이 누구냐? 미국입니다. 완성적인 천사장이 누구냐? 서독입니다. 그러면 사탄편의 아담하고 세계적인 천사장이 하나되어 있느냐? 둘 다 갈라져 있습니다. 미국도 좌익, 우익으로 갈라진 입장입니다. 다 갈라진 거라구요. 그걸 알아야 돼요. 사위기대 되면 말이예요. (판서하심) 이런 사위기대 형태가 딱 되었다구요. 한국하고 끄트머리하고 갈라져야 합니다. 한 나라가 딱 둘로 갈라져야 된다고요. 그렇지요? 전부 좌익 우익으로, 미국하고 소련하고, 그리고 한국도 한 나라가 둘로, 서독도 한 나라가 둘로…. 이 두나라가 결판을 보게 되면 세계는 평화의 천국시대로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한국 통일, 독일 통일, 동서 통일이 되는 날에는 공산당은 완전히….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축복가정이 나올 때까지는 개인이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은 선생님이 피어린 투쟁의 공적을 통해서 된 것입니다. 제1차적으로 개인복귀하는 데는 6천년이 걸렸습니다. 제2차로 가정복귀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7년노정을 거쳤습니다. 앞으로 제3차로 자녀복귀하기 위한 십자가의 길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성진이를 중심삼아 가지고…. 내가 희진이 간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녀석 성격이 잘못하면 틀어져 돌아가는 거예요. 잘못하면 틀어져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 사탄이 전체를 걸고 늘어진다는 거예요. 그 녀석 소질로 본다면 아주 활달한 녀석이라구요. 아주 눈치가 빠르고 말이예요, 또 남성적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상당히 염려했던 것입니다. 선생님 가정을 보더라도 둘째 번은 갈라진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렇게 되기 쉽게 되어 있다고요. 그것이 복귀의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보게 되면 일면으로는 하, 그놈이 간 것이 참으로 안됐지만, 땅에 있어서는 손해를 안 본다고 생각하고 있다구요. 이제 성진이가 잘해서 전통만 세우면 동생들은 그냥 따라가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성진이가 문제입니다.
이런 것을 다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형(型)으로 보면 성진이는 아담 복귀형이요, 희진이는 예수 복귀형입니다. 예수는 희생되었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효진이 시대는 재림주 시대입니다. 이렇게 되면 3시대입니다. 종적인 입장에서 소생, 장성, 완성인데 이것이 연결될 수 있는…. 그렇기 때문에 성진이는 뭘해야 되느냐? 그런 사명을 해야 된다구요. 그래서 일본에 간 것입니다. 성진이가 일본에 갔다 왔지요? 이번에 가서는 돌아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돌아왔다가는 못 나가는 거예요.
선생님이 지금 염려하는 것은 뭐냐? 여자들을 통해서 하나가 까딱 잘못하면 일본이 해와 국가니까 여자들에게 말려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외국에서 사탄역사와 함께 말려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절개를 지키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과거와 같은 것입니다.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은 외국선교를 일본 식구 말고 한국 식구 중에서 누굴 보내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걸 못 하고 있어요. 불원한 장래에 곧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전부가 여러분이 생각지 않는 가운데 복귀노정의 공식적인 과정을 거쳐 가지고 현재의 기반까지 올라온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세밀하게는 얘기하지 못하는 거예요. 요걸 조금만 더 가게 되면 이제….
그러한 터전 위에서, 이러한 복잡다단한, 수천년의 역사적인 해원성사의 터전 위에 여러분이 아무 공로 없이 세움받았다는 것입니다. 6천년 동안 종교를 중심삼고 찾아 나온 것이 뭐냐 하면 천사장입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천사장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 나왔는데 종교를 믿는 것은 양자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고, 양자는 가인형이기 때문에 천사장의 입장이라구요. 그렇지요? 그러므로 지금까지 믿고 나오는 종교의 목적은 세계적인 하나의 천사장을 만들어 가지고 오시는 메시아 앞에 충복이 되게 하기 위해서라는 거예요. 그것을 세계적 중심 종교인 기독교에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충복이 한 사람에서 세 사람 정도만 있으면 됩니다. 알겠어요? 세 사람을 대표한 한 사람만 있어도 되지만 반드시 세 사람이 되게 되어 있는 거예요. 무슨 회의를 하더라도 총회장이 있으면 반드시 두 사람의 부회장이 있어서 이들이 합의한 결정 밑에서 움직이게 됩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기독교가 하나되면 세계는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은 부흥이 되는 겁니다. 공산주의는 다 없어진다구요. 생각해 보라구요. 어떻게 되겠나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그런 터전 위에 민주세계를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하고, 기독교를 대표하고 종파를 대표한 한 사람이 있어서 그 한 사람만 굴복하면, 일시에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일시에 가정적 승리의 터전, 국가적 승리의 터전, 민족적 승리의 터전, 세계적 승리의 터전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개인복귀 완성, 가정복귀 완성, 종족복귀 완성, 민족복귀 완성, 세계복귀 완성이 한꺼번에 다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안 되었기 때문에 다시 개인적 투쟁의 탕감노정을 거쳐 개인복귀를 해야 되고, 가정적 투쟁의 탕감노정을 거쳐 가정복귀를 해야 되고, 종족적 투쟁의 탕감노정을 거쳐 종족복귀를 해야 하는 이런 피어린 투쟁의 재탕감 노정이 선생님 일대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 사람이 해야 할 것을 내가 지금까지 생애를 바쳐 가지고 재탕감해 나온 거라구요. 그래서 국가 기준을 넘게 되면 예수를 중심삼고 실패했던 기독교의 한의 원천을 해결할 수 있는 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정상적인 자세를 갖추어 세계적 권위를 가진 아들로서 등극할 때가 가까와 온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그러한 터전을 닦아 종적인 역사적인 해원, 횡적인 세계적인 해원 성사를 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런 승리한 가정의 터전 위에 여러분이 아무 공적이 없지만 그냥 그대로 세워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어떤 존재가 되느냐? 세계적인 천사장의 사명을 이룬 자리, 다시 말하면 세래 요한의 사명을 완결했다 하는 자리에 선 존재가 되는 거라구요. 그런 자리에 그냥 덜커덕 세워 놓은 것입니다. 이 녀석들, 다 개똥상놈 같은 패들.
여러분이 그 은덕을 갚으려면 선생님이 고생했던 것의 3배 이상 7배까지 고생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죽을 자리가 있으면 자기가 먼저 나가 죽어야 되는 거라구요. 고생할 자리가 있으면 자기가 먼저 고생해야 되는 거라구요. 선생님을 고생시키겠다고 하는 사람 들은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한다는 거라구요. 여러분들, 선생님 고생 안 시키려고 그래요? 고생 안 시키려고 해요, 고생시키려고 해요?「안 시켜 드리려고 합니다」 진짜 그래요?「예」
보라구요. 지방교회에 있는 사람은 지방교회에 어려움이 있으면, '본부에서 선생님이 도와줘야지…' 하는데 절대 도와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번에 각 교회를 조금씩 도와 준 것은 기성교회 때문입니다. 기성교회 목사 들이 지금 고려해 보고 들어오려는데 망신을 당하겠으니까, 그런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보자기라도 씌워 놓아야 되겠으니 여의도의 땅을 산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돈이 없는 줄 알았다가,'3개월 이내에 한 5,6억 되는 돈을 무난히 지불할 수 있다' 이렇게 되니까, 서울 시청의 시장, 국장, 과장들까지도 통일교회 말을 다 듣게 된 거예요. 몇 달 동안 1억 5천만 원을 현찰로 딱딱 지불하거든요.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자라는 이병철이도 현찰 2천만 원도 없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구요. 은행의 대부를 받아서 쓴 것이지. 현찰은 우리가…. 통일교회가 한달에 1억 5천만 원 내지 2억의 돈을 무난히 현찰로 쓱 지불하니까, 몇 개월 동안에 5,6억의 돈을 떡 지불하니까. 통일교회가 돈이 있다고 해요, 없다고 해요?「있다고 합니다」그렇게 되니까 통일교회에서 120층 건물을 짓는다는 말을 누구나 백퍼센트 믿는 거라구요. 서울대교를 건너가면서 보면 여의도 조감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 그려진 자리가 통일교회의 자리라구요.
상징적으로 한국이 준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짓는다고 하면 120층만 짓겠어요? 1200층도 짓지. 그게 넘어지면 대한민국이 망할 까봐서 120층 짓는다는 겁니다. (폭소) 그런 생각 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형편없는 단칸방에 들어 앉아 가지고 누더기를 쓰고 들썩들썩하고 있어도, 돈이 있으면서도 그러고 있으니 국가적 암행어사라고 생각할 수 있다구요. 임자네들을 함부로 대했다가는 큰일난다구요. 변사또가 뭐냐? 내가 지금까지 뭘 해왔는지 알아요? 탐관오리들은 내 손아귀에다 들어와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누더기를 썼다고 비웃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 봤어요? 돈은 없지만 누가 돈 없다고 그러게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요즘에는 더 곤란하다는 거예요. 동정을 안 해줄 것입니다. 그들은 저것이 흉계가 있어서 저런다고 생각할 겁니다. 동냥을 해서 먹어도 천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죽을 지경의 고빗길이 왔다고 보는 거라구요. 그래, 지방에서 통일교회는 돈이 없다고 그래요, 있다고 그래요?「있다고 합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왜 그렇게 산다고 그래요? 왜 그렇게 산다고 그래요? 그런 소리 들으니 기분이라도 좋지요?
여러분은 우리 선생님이 이제 40일 동안에 1000개의 교회를 짓는다고 선전하라고요. 그러면 누구든지 어떻게 된 얘기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한 천 개 교회를 지을 땅을 사 놓았는데, 그것이 어떻게 되어 가지고 우리 재산이 지금 한 20억 됩니다' 하고 대포를 놓는 거라구요. 대포도 곡사포를 놓는 거라구요.
이번에 전국적으로 방을 얻어 주고 그런 것은 대외적 위신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을 도와주는 것이 원칙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여러분들 등가죽이라도 벗겨 팔아서라도 거기에다가 이겨 발라 터전을 닦아 가지고 기성교회의 성당보다 크게 만들게 되어 있지 선생님이 여러분을 도와 주게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올바른 사상을 가지라구요. 알겠어요?「예」 자기 집은 자기가 만들어야 정성이 되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 주면 돼요? 그런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겼다가는 나라 팔아먹는다구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은 괜찮다구요. 그러나 여러분이 받고 싶어 달라고 해서 주는 것이면 안 되는 거라구요.
'아버지, 어머니. 나 상속받겠소' 그런 녀석치고 올바른 녀석 있습니까? 탕자의 비유 있지요? 자기 욕심대로 받아 먹고는 어디로 가는 거예요? 탕진골로 가는 거예요, 탕진골. 부모가 주고 싶을 때 줘야 되는 거라구요. 효자라면 부모한테서 받을 것이 아니라 부모 앞에 바쳐야지. 그렇지요? 여러분은 춘하추동, 사시사철이 바뀔 때마다 옷 한 벌이라도 해다가 선생님에게 바쳐야 된다구요. 그만한 수고는 해야 된다구요. 3년 동안에 못해도 열두 벌은 해줘야 된다구요. 고기도 동해와 서해에서 제일 크다는 고기를 한 계절에 하나씩 사다 바쳐야 된다구요. 전부 다 얘기할까요, 그만하고 말까요?
밥을 먹어도 혼자 못 먹는 거라구요. 여러분 혼자 있지만 세 식구라구요. 하나님까지 네 식구예요. 그렇게 생각해요? 여덟 식구가 안 되면 복귀가 안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여러분 안팎으로 여덟 식구가 되어야 복귀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식구가 여덟 식구가 되면 열두 사람 되는 거라구요.
선생님 중심삼아 가지고 사위기대가 있지요? 여러분을 중심삼고 사위기대가 있지요? 여러분의 직계 대를 이은 자식도 사위기대를 이루게 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몇 사람이예요? 열두 사람이라구요. 알겠어요? 이것이 하늘편의 판도라구요. 사위기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열두 수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이제 개인을 알겠지요?「예」그러나 개인만 서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자의 탕감노정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누가 해결해야 되느냐? 여자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해결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해와는 아담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렇지요? 아담이 주관성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해와가 타락을 했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여자가 실수한 것까지도, 7천년의 한의 역사를 7년노정을 통하여 남자가 탕감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의 가정적 7년노정입니다. 알겠어요?「예」그 다음에는 자녀시대로 들어가는데 이것은 민족적 7년노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980년대로 넘어서게 될 때는 말이예요. 2차 7년노정이 1974년도에 끝나지요? 그러면 3차 7년노정은 몇 년도에 끝나요? 1981년도에 끝나지요? 구구단으로 하면 구구 팔십 일(9×9=81)이지요? 구구단이 끝나는 81년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1980년도에만 접어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세계로 소리 없이 날아갈 것입니다. 좋아요? 내가 전화만 하면 비행기표는 언제든지 있게 될 것입니다. 내가 전화만 하면 호텔이 어디든지 있을 것입니다. 누가 예약을 했더라도 전부 취소해 가지고 내가 머무를 수 있는 세계적인 판도가 될 것입니다. 기분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그때쯤이면 선생님은 60대가 될것입니다. 육십 몇 세가 될 것이냐? 61세가 되겠구만요. 그쯤 될 것 같애요. 지금까지 7수를 못 넘어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일생에 있어서 그 안식기간을 거쳐서 세계로 재출발할 시대가 우리 눈앞에 올 것이 아니냐. 그것이 가능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를 점쳐 보라구요. 가능할 것 같아요? 「예」
선생님 일대는 비참한 일대입니다. 21년 동안에 세계의 역사를 요리해야 됩니다. 그리고 내적인 21년 기간에 하늘땅을 요리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그래서 1960년도부터 1981년도까지 외적인 21년간, 1960년도부터 1981년도까지 외적인 21년간과 그 전 40세가 될 때까지의 내적 21년간을 합해서 만 40년 동안에 세계를 요리해야 됩니다. 그것을 못 하는 날에는 통일교회의 운명은 비참해집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먼저 준비를 안 하신 적이 없기 때문에 여기에도 박자를 맞추어 놓고 미리 전진해 가시면서 우리에게 물려줄 만반의 준비를 다 해 놓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예」 이렇게 급변할 줄을 누가 알았겠느냐 말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통일교회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통일교회 선생님이 치는 장구놀음에 세계가 왔다 갔다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짓말이예요, 사실이예요?「사실입니다」 진짜 사실이라면 정신차리라구요. 역사는 짧아요. 고빗길의 선두에 요렇게 서 있으면 두 나라의 사람이 되지요? 삼팔선에 서서 한 발자국 앞으로 옮겨 놓으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런 때에 놓여 있는 거라구요. 그 발을 옮기는 데 여러분 혼자서 옮겨 놓는 것이 아닙니다. 명령과 더불어 같이 옮겨 놓을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될 때 첫째 부활에 동참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거예요. 거기에 동참하면 좋겠어요?「예」 이것은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7년 동안에는 축복도 안 해주겠다는 거라구요.
지금도 뭐 아줌마 아저씨들이 야단이지만 그런 것은 선생님의 안중에도 없다구요. 지금 때가 그럴 때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축복해 주면 일선에 뛰쳐 나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축복 안 해줄 것입니다. 일선에 나가기 위해서 축복받을 거예요? 나가기 위해서 축복받겠다면 해주고, 내가 외롭고 섭섭하니까 해 달라고 하면 안 해주는 것이 원칙이라고요. 그런 것은 가끔 이야기할 때, 마음이 아주 침울할 때 다 물어 보는 거라고요. 그런 것은 잘라 나오는 거라고요. 밀어 나오는 거라구요. 눈물이 그런 걸 밀어 나오는 거예요. 많이 밀려나왔지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이 그러한 공적인 터전 위에서 빛날 수 있는 영광의 이 찬스를 여러분들이 선조로부터 지금까지의 여러분 씨족을 대표하여 이 세상에서 맞았다는 사실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가치를 두고 보면 이 한국 땅에 버금가는 다이아몬드를 준다 하더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의 조상을 한꺼번에 꿰어 산적으로 만들어 가지고 제사 드린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요. 알겠어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만났다구요. 잘됐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잘될 수도 있고 못될 수도 있다고요. 만약에 여기에서 밀려나는 날에는 다 쓰러지는 거라고요.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뭐냐 하면, 전부 자기가 죄짓던 것을 생각합니다. '아이고 거기에서 한 발자국만 더 갔으면 안 그랬을 텐데…' 합니다. 이런 생각이 감옥살이 끝날 때까지 돌고 도는 거예요. 그것을 떼어 버리지 못한다는 거예요. 감옥에 들어가 보라고요.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일생에 이런 전통을 남긴 그 사실이 천지에 그 가치가 높이 드러나 만국이 우러러보고 찬양할 수 있는 기점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는 대한민국이 산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런 입장에 있는 우리가 잘못하게 되면, 조상들의 한이 맺히고 현재 종족들의 한이 맺히고 후손들의 한이 맺힌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잘못하게 되면, 후손들이 우리의 무덤에 와서 경배할 게 뭐예요? '이놈의 조상아' 하고 저주를 한다는 것입니다. 저주받는 아담 해와의 입장과 똑같이 된다 이겁니다. 그런 걸 알아요? 그런 지긋지긋하고 무섭고 부끄러운 세계적인 사실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선생님은 악착같이 징검다리를 건널 때도 외나무 다리를 건넌다는 심정을 가지고 나오는 거라고요. 알겠어요?「예」 그러한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아야 할 패가 뭐 밥 때문에, 자식 때문에, 여편네 때문에…. 그래, 자식하고 여편네를 미리 다 처단해 놓지 않았어요? 그러니 멋지게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나와 있는 여편네들 때문에 말이 많아요? 여기에는 그런 사람이 없겠지요. 그들보다도 덜 먹고, 그들보다도 나쁜 자리에서 자고, 그들보다도 더 고생하는데 누가 말하겠느냐 이겁니다. 간단하다구요.
통일교회 선생님도 그렇다는 거예요. 좋은 것을 먹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해다 주니까 먹는 거라구요. 그럴 때는 언제나 내가 감옥에 있을 때 12월 14일부터 20일까지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는 거라구요. 감옥생활 할 때의 일을 생각하는 거예요.'아, 오늘은 이런 사람들이 이런 음식을 해다 주었는데 내가 이 밥상을 대하는 데 대해서 저주하는 사람은 없나'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반찬이 나오면 내가 그것을 먹지 않고 반드시 누구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내가 해 달라고 해서 해주는 거예요, 식구들이 해주는 거예요? 안 해주면 안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잘먹는다고 분해요?「아닙니다」
효자가 되려거든 못살더라도 부모를 잘 잡숫게 해야 된다구요. 자기 색시의 옷을 팔아서라도…. 알겠어요?「예」 자식을 굶기더라도 부모한테는 해야 되는 거라고요. 그게 효의 도리입니다. 선생님은 그 놀음 다 했다구요. 그렇지요? 거기에는 낙제감이 아니라고요. 그게 돌아가야 할 게 아니예요? 기어(톱니바퀴)가 물려서 돌아가는 것과 같이…. 기어가 돌아갈 때 물렸던 것은 뒤로 벗어나고 그 다음 것이 또 물리지요? 그래 가지고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구요.
선생님이 그랬으니 여러분이 그것을 이어받아 가지고 해야 된다는 거예요. 누군가 그 일을 이 땅 위에서 하는 사람이 있어야 기어가 물려 돌아가듯 지상을 중심삼고 천국이 돌아가는 거라구요. 기어도 톱니가 셋이상이 걸려야 돌아가는 거라구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그걸 해야 돼요. 삼위기대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놀음을 해야 돼요. 삼위기대 가정이 그거 하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하나되어 나가라는 겁니다. 그래야 이 땅 위에 그 전통이 남아져 가지고 교육하는 데 교재가 될 것이 아니냐, 그렇지요? 그것이 역사의 부활실체가 되고 미래에 실증할 수 있는 동기의 터전이 될 것이 아니냐. 그거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때문에 얼마나 굶어 보았습니까? 그 눈으로 얼마나 사람을 그리워해 봤습니까? 이게 다 문제가 되는 거라구요. 그것이 선생님이 천신만고해서 닦아 놓은 터전이라고요. 그런데 여러분이 하는 것을 보면 내가 기분 나쁘다는 거라구요. 내가 그 놀음을 또 해야 되겠다는 거라구요. 왕발(맨발) 벗고 또 뛰어야 되겠다는 거예요. 예수가 수건을 허리에 매고 제자들 발 씻어 주던 놀음을 또 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 자리에 혼자는 못 서는 거라구요. 선생님의 판도에 발을 딛고 설 수는 있지만 혼자서는 못 섭니다. 알겠어요?「예」 가정을 중심삼고 상속권이 벌어지는 거라고요. 혼자는 상속을 못 받는 거예요. 예수님 혼자는 상속을 못 받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아담 해와 둘이 타락했기 때문에 세계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탕감내용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상속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상속받을 수 있는 이런 놀라운 자리에 선 것은 누구 덕분이냐? 여러분들이 보기 싫어하는 여편네들 덕분이라구요. 여러분, 여편네가 보기 좋아요. 보기 싫어요? 싫어요, 좋아요? 여러분이 잘해서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라구요.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여자 덕분입니다. 또, 여자는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라 남자 덕분에 선 거라고요. 이 자리를 만난 것은 상대 때문이라는 겁니다. 상대가 없으면 안 되는 거라구요. 횡적 기반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상대적 기반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라는 것은 남자 여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되어진 것인데, 남자 여자가 만나서 완전히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남자 여자가 만날 때는 누구를 중심삼고 만나야 되느냐? 부모님을 중심삼고 만났다가 갈라졌으니까, 여기에서는. 자식을 낳아 가지고 그 자식을 통해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소원의 기준이요, 부모가 바라는 소원의 기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정기를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올바른 자리에 심어 놓아야 할 것이 가정을 가진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알겠어요?「예」 이것이 우리 가정의 갈 길입니다.
우리 가정의 갈 길이 뭐냐? 하늘 가정의 모체를 심어 가지고 빛나는 선의 참된 조상이 되고, 사탄은 관계할 수 없고 하늘만이 관계할 수 있는 복된 천국의 터전이 돼야 합니다. 그것이 가정이 갈 길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기에서 참부모의 이름이 나오는 것이요, 여기에서 하늘의 승리가 나오는 것이요, 여기에서 사탄과 이별이 있는 것이요, 여기에서 참아들딸을 맞는 것이요. 여기에서 참만물과의 상봉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부모의 날, 만물의 날, 자녀의 날과 더불어, 하나님의 날까지 맞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어디에서 맞는다구요? 가정에서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가정은 하나님의 날을 맞을 자리요, 참부모의 날을 맞을 자리요, 자녀의 날을 맞을 자리요, 만물의 날을 맞을 자리입니다. 즉 4대의 날이 일치되고 통합될 수 있는 거룩한 터전이 보잘것없는 부부 사이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의 자리는 황공하고 망극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여편네 눈이 어떻고 병신이고가 문제가 안되는 겁니다. 알겠어요?
이 법도를 중심삼고 가다가 걸리는 날에는 무자비하다는 거예요. 걸리는 날에는 누가 참소하느냐? 사탄이 '이 자식아' 하면서 참소한다는 거라구요. 사탄이 여러분을 사탄으로 취급한다구요. '나는 장성기 완성급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심정의 유발로 인해 타락했지만, 너는 완성기 완성급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심정의 유발을 동기로 해서 타락 했다' 하면서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이놈의 자식들, 떨어져 나가서 제멋대로 하는 녀석들은 두고 보라는 거예요, 나중에 어떻게 되나. 몇 족이 걸려들어가느냐? 그것은 선생님이 정하기 마련입니다. 몇천 대도 끌어넣을 수 있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일족을 그저 뿌리째…. 지긋지긋하고 무지무지하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우리 앞에 전개될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내가 다른 법을 만들어서 살려주느냐? 그것을 해야 될것이냐? 하다가는 우리 후손 앞에 큰 암(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 암(癌)을 어떻게 제거해 주느냐? 선생님 일대에 피를 보고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그런 문제를 두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것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공갈이나 협박이 아닙니다.
내가 지상에서 이 일을 못 하고 가게 되면 영계에 가서도 이 법에 걸리는 거라구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그렇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한번 만난 그 여자는 6천년 동안 소원하고 그리워하던 사람이 찾아와 가지고 만난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고 부모가 소개해서 만난 자리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늘로부터, 부모로부터 자기에게 미쳐지지요? 도둑놈들이 되지 말라는 거라구요. 그러니 우리 가정이 멋져요, 안 멋져요?「멋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사상에서 말하는 구원의 도리는 개인구원이 아니라고요. 가정을 구원하지 못하게 될 때는 다 못 하는 거라고요. 부부구원이요, 자녀구원입니다. 자녀를 구원하지 못하였을 때에는 영계에 가서 기다려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영계에도 교육법이 생겨난 것입니다. 영계에는 다 한 줄로 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영계에 교육법이 있어 가지고, 땅에서 못한 것을 영계에 들어가서 교육을 해 가지고 함께 넘어간다는 거라구요. 우리는 가정구원을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내가 믿는 것은 아내를 위해서 믿는 것이요. 아내가 믿는 것은 남편을 위해서 믿는 것이요, 자식이 믿는 것은 부모를 위해서 믿는 것이요, 부모가 믿는 것은 자식을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위기대. 즉 삼대상목적을 위해서 믿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알겠어요?「예」 혼자는 구원을 못 받아요. 절대 못 받는 거라구요. 그래서 선생님도 어머님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것입니다. 좋아서 관심을 두는 것보다도 원리적 입장에서 어머니보다 내가 더 사랑하려고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도 그런 가치적인 가정을 이루어야 됩니다. 그리고 그 가정에서 3대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은 뭐냐 하면 3대사랑을 총합한 사랑입니다. 그렇지요? 그 사랑을 실현하는 가정이 천국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총각시절에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신랑 때에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아버지 때에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그 사랑이 따로따로 떼어진 사랑이 아니라 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총각 때도 좋고, 신랑 때도 좋고, 아버지 때도 좋다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자도 처녀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신부 때에 사랑을 받고, 그 다음 어머니 때에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의 기준을 중심삼은 대표적인 부모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어받았으니까.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아들딸의 사랑을 체험하고 신랑신부의 사랑을 체험하고 부모의 사랑을 체험하고 나면, 하나님의 3대 사랑을 횡적인 주체인 부모의 자리에서 인계받아 가지고 횡적으로 세계를 향해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내를 '아, 이 딸은 하나님의 3대 사랑을 받는 데 있어 세계에 없는 딸로 사랑받은 사람이요, 세계에 없는 아내로 사랑을 받을 사람이요, 앞으로 세계의 누구보다도 어머니로서의 사랑을 받을 사람이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자녀의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자식들이'내 아버지 어머니는 세계에서 제일이다. 하나님 외에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보다 더 높은 사람이 없다'고 자랑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통일가정의 교육법입니다. 알겠어요?「예」 그것이 하나님이 그렇다고 할 수 있고, 여러분의 후손이 그렇다고 할 수 있으면 공인되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보면,'하나님 다음에는 우리 아버지다'라고 얘기합니다. 여러분도 그런 사상을 자녀들에게 교육해 주어야 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 가정에 있어서는 할아버지이지요? 그래서 여러분이 자녀들에게'내가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나도 할아버지 같다' 하는 교육을 해요? 여러분의 아들딸한테 그런 것을 교육해요? 교육해요, 안 해요? 자식에게 '선생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가지고 저렇게 되셨는데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신 선생님이 너의 할아버지다. 이 아버지는 그 할아버지한테 누구보다도 사랑을 받았고, 할아버지와 하나되어 있으니 세계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첫째가는 아버지다. 그러니 이 아버지가 너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세계 제일이다'라고 교육해요?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제일이지요? 그런 사상을 집어넣어 줘야 된다구요. 이것이 천년 만년 계속되어져야 합니다. 그 혈통이 더럽혀지지 않고 천년 만년 계승 되면 저나라의 선조도 이 땅의 후손도 천배 만배 복을 받을 것입니다.
가정이 가야 할 길을 알겠어요?「예」 축복가정들 알겠어요?「예」 이놈의 사내 녀석들, 도둑놈 눈을 가지고 난데없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유종영이! 색시 좋아?「네, 좋습니다」 그 뒤에 있는 사람, 색시 좋아?「네」 할 수 없이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런 사람은 앞으로 모둠매 맞는 거라구요.
이제, 우리 가정이 갈 길을 대개 알겠어요?「예」 선조로부터 전통을 이어받아라. 그 전통을 자기 후손에게 올바로 이어주어라. 그리하여 세계의 뜻을 반대하는 사탄을 굴복시키려면 정상적인 행로를 가정적으로 전부 다 벗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가정적으로 벗어나야 돼요. 선생님도 아직까지 가정적으로 다 못 벗어 났다구요. 벗어나는 과정에 있다구요. 우리는 가정적으로 벗어나야 된다구요. 혼자 편안히 가면 안 된다구요. 한 코에 달려 있는 여기에서 공동 운명을 해결해야 할 입장에 있다구요. 여러분들이 그것을 한꺼번에 넘었다는 조건을 세워 주기 위해서 지금 여러분들의 여편네들을 빼다가 내세운 거라구요. 이것을 넘어서는 날에는 여러분도 한꺼번에 넘어선다구요. 전부 다 넘어서는 거라구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이런 때라는 것을 알고 우리는 대한민국이나 아시아의 문제, 세계의 문제를 책임질 것을 자기가 결심해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척 보면 그런 것을 느낍니다. 세상이 넓고 넓다지만 그 거동은 천지를 잡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세계를 살려야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통일교인들을 고생시켜서라도 나라를 위하는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가 잘되겠다고 했으면 통일교회는 망했다구요. 그랬다면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발전하지 않았을 거라구요. 우리에게는 배후에 들어 있는 요사상만 남았다구요. 그렇지요?「네」 이 민족 삼천만을 머리에서부터 저꼬리까지 한 곳에 모아 가지고 돌아가는 그 자리가 우리가 가는 방향을 거쳐 가지고 돌 때까지 우리는 이 길을 거쳐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풀 때는 다 감았다가 풀어야 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끝을 통해서 벗어날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 중에 아내를 때려 본 사람은 손들어 봐요. 내가 용서해 줄 테니까 솔직히 손들라구요. 이놈의 자식들! 때릴 일이 있으면 먼저 눈물을 흘려야지, 사탄이 엿보고 있는 거기에서…. 또 다시 그럴래, 안 그럴래? 「안 그러겠습니다」3대 사랑을 복귀하려면 어머니의 사랑을 느껴야 된다구요. 그 다음엔 아내 사랑을 느껴야 된다구요. 그 다음에 동생 사랑을 느껴야 돼요. 그렇지요?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어머니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아내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누이동생의 사랑을 잃어버렸어요. 3대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여자로 말하면, 아버지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남편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오빠의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도 아버지도 없이 살아가는 것은 가짜입니다. 원칙에 불합격이라구요. 사탄세계의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지 못하면 불합격이라구요. 세상의 자기 누이 동생보다도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면 불합격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내는 3시대의 여성상을 대표한 하나의 열매로서 오늘 내목전에 나타난 거룩한 존재이므로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반대라고요. 딸로서 키우는 거라고요. 딸로 키운 다음에 아내로 키워 가지고 어머니로 교육시켜서 어머니 이름을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반대이지요? 선생님이 키운 거라고요. 선생님 연령으로 보면 어머니는 딸 같은 나이지요? 어머니가 딸 같지, 뭐 아내 같고 어머니 같다고 하기는 힘들다구요. 생각해 보세요. 연령이 웬만하면 덮어놓고 '어머니'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머니에게 쓰는 말이 엄마입니다. 엄마. 아무개 엄마라고 하지 않아요. 엄마라고 해요. 그것이 제일 어려운 문제예요. 알겠어요? 밖에 나갔다 들어와서 아내를 찾을 때 '아무개 엄마' 하고 찾잖아요? 선생님은 '엄마' 하는 거라고요.
어떤 때는 어디 갔다 오면 어린아이와 같이 어머니한테 전부 다…. 내가 옛날에 어머니한테 어디 갔다 오면 밤을 새워 가며 보고했었습니다. 그 마음 이상 되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며 보고를 하는 거라구요. 그것이 다 복귀라고요. 다 탕감복귀해야 된다고요.
여자가 남자에 대해서 의심을 하라고 해도 안 할 수 있게끔 하는 남자가 되어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지 전부 의논을 하고 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뜻은 이런데, 우리의 갈 길이 이런데, 이 일을 해야 되겠느냐, 안 해야 되겠느냐' 하고 원리를 풀어 주는 겁니다. '여기에 이의가 있느냐, 없느냐' 해 가지고 '이의가 없소' 이렇게 되어야 됩니다. 남자들의 갈 길은 여자들이 잘못한 것을 전부 다 벗겨 주는 길이라구요. 그렇잖아요?
'당신이 가야 할 길이 이런 길인데 이 길을 당신이 가다가는 쓰러진다. 열이면 아홉 번은 쓰러진다. 그러니 내가 선두에 서야 될 것이 아니냐? 내가 싸워 나온 경력도 있고 하니 내가 이 길을 갈 테니까 이렇게 이렇게 협조하겠소, 안 하겠소?' 하면, 협조하지 않을 수 없는 거라고요. 그런 일을 해 나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가정이 하나되지요. 누구보다도 가까운 거라구요. 어머니 대신 사랑해야 된다구요. 어머니와 아내와 동생을 우리 집안에 모셨다고 생각하라는 거예요. 무슨 어려운 일이 있거든 아내를 어머니와 같이 생각하고 '이러고 이렇습니다' 하면, 아내는 어머니 같은 입장에서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는 거라구요. 눈물을 흘리고 나면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고요.
세상은 눈물 흘리고 나면 멀어지지만, 우리는 눈물 흘리고 나면 가까와진다구요. 둘이 훌쩍훌쩍 울고 나서는 말이예요. 서로 미안해서 말도 못 하고 인사도 안 하고 나오지만, 더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고요. 가까와지는 거라구요. 손에 손을 붙들고 하나되어 서로 믿을 수 있는 남편과 아내가 되면, 그것이 복된 부부이겠어요, 아니겠어요? 하나님께서 보시고 '이것들 나보다 더 좋아한다'고 벌을 주시겠어요? 그럴 정도가 되어야 된다구요. 이렇게 살아온 사람 손들어 봐요. 이제부터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라구요. 다 해보라고요. 여러분이 그렇게 하게 될 때는 여러분 이상의 후손이 태어나는 거라구요. 참 고마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집 아이들을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이 보게 되면 말이예요. 참 재미있다는 거예요.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아 정리하지 못했음)
여러분이 아들딸을 낳으면 그 아들딸은 통일교회의 운과 선생님의 운을 이어받아 가지고 태어난다는 거예요. 알겠지요?「예」 여러분이 고집통이고 악질통이라도 그런 여러분의 자식이 안 나온다는 거예요. 그래, 좋은 아들딸을 낳고 싶어요? 그러려면 선생님이 택해 준 그 사람을 선생님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를 선생님같이 사랑하고 부모와 같이 사랑하라는 거라구요. 그렇게 하면 그 운을 이어받아서 여러분과는 얼토당토 않은 아들딸이 태어난다 이말입니다.
지금 내가 가만히 보고 있는 거라고요. 어떤 사람은 병신과 결혼시켜준 사람도 있어요. 그런 부부는 심정적으로 어떻게 나갈 것이냐? 거기에 관심이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현재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역사를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라구요. 역사시대의 선조들이 잘못한 것이 내 대에 와서 탕감되는 형태로 나타나 내가 불구자가 되었지만, 전체 조상이 나쁜 것이 아니라구요. 역사 자체가 어그러진 게 아니라구요. 그러니까 불만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 자리에서 불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심정적 세계는 도리어 거기에서 복받을 수 있는 인연이 맺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에 하나님이 오시겠어요, 안 오시겠어요? 3대 사랑의 인연을 다 이루게 되면 사위기대가 이루어지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사위기대가 되지요? 사위기대가 갖추어진 그 자리에는 틀림없이 오시는 거예요. 이 자리가 사위기대 아니예요?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이것이 사위기대 사랑이라구요. 사위기대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임재해요, 임재 안 해요?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천년 만년 살고 지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천국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계대를 할 수 있고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런 엄청난 자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은 가정의 자리입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가정을 지키자. 통일교회에서 가정을 못 지킬 때는…. 통일교회를 믿는 것은 아내를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를 위해서 믿는 것이라구요. 한국을 복귀시키기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자기 가정과 아내와 아들딸을 세계를 위해 내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과 더불어 일치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얼렁덜렁 멍청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지 말라는 거예요. 이러한 마음은 우주의 어떤 것이라도 깨치지 못하는 거라구요. 깨치려고 하는 녀석은 옥살박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그렇게 해 가지고 나가게 되면 어떤 곳에서든지 사탄세계는 무너질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건 그래요.
선생님이 어머니하고 이렇게 나오는 과정에서 선생님이 계획한 것을 전부 하나님이 앞놓아 가면서 가려 주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여기서 한마디 '꽝-' 하게 되면 저기서' 뚱-' 하고 망한다구요.
이제 새로운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알겠어요? 빛나는 역사시대, 이때를 잃어버리고 나면 여러분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소원은 내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부모를 위한 정성과 참부모의 인연을 중심삼고 맺어지는 사위기대예요, 억천만세를 가더라도 여러분의 후손이 이것을 이어받기 위해서….
지금까지 타락한 세계는 미래를, 내일을 바라보고 나왔지만 앞으로는 뒤로 가는 것입니다. 여기는 역사의 결정점이요, 하늘땅의 모든 승리의 해결점이요, 모든 소망의 핵심점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걸어 놓고 이것을 확대시킨 이외의 것은 사탄세계의 것이므로 하늘은 전부 처단해 버린다는 거예요.
오늘날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이 자리, 가정으로 인연되어 가지고 선생님을 중심삼고 있는 이 자리는 여러분의 천추만대의 선조들이 소망했던 자리입니다. 역사시대에도 이곳을 소망했고, 영계에서도 지금 이 자리를 소망하며 전부 정성들이고 있다고요. 오늘날 나 자신도 이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정성들이고 있습니다.
이 자리는 목적과 동기와 내용이 일치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여기에서 사는 사람은 3시대를 모두 승리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놀라운 입장이 축복받은 가정의 자리라는 것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아버지, 아벨보다도 노아가 더 낫기를 바라시던 아버지의 마음 앞에 슬픔의 한 날이 발생하였고, 노아보다 더 낫기를 바라시며 택하였던 아브라함 가정 위에 또다시 슬픈 일이 닥쳐왔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야곱을 중심삼고 더 나을 수 있는 자손을 고대하시면서, 싸움의 행각을 거쳐서 승리의 터전을 닦아 나오셨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 민족적 지도의 책임을 졌던 모세는 야곱보다 더 철두철미해야 했던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애급을 떠나 미디안 광야와 바란 광야에서 80년 동안 생활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모세보다도 더 열심히 하고 더 정성을 들여야 했던 사람이 세례 요한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세례 요한이 세계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이 천추에 한을 남긴 민족이 된 것을 우리는 느끼고 오늘날 우리의 눈을 통해 직시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이스라엘 민족보다도 더 정성을 들여야 했던 것이 기독교요, 기독교보다 더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이 오늘날 제 3이스라엘 인연을 갖추어 그 뜻을 세우려 하는 통일교단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 서 있는 아들은 역사시대의 그 누구보다도 더 정성을 들여야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가면 갈수록, 사명을 갖고 하늘을 접하면 접할수록 부족한 자신임을 느끼고 완전무결을 고대하는 아버지의 섭리의 뜻 앞에 너무나도 흠집이 많은 자신임을 생각할 적마다, 몸들 바를 알지 못하는 현재 이 아들의 입장인 것을 당신은 알고 계시옵니다.
그 누가 알아줄 것을 찾고자 하는 제가 아니요, 누가 공인해 주기를 바라고 선 제가 아니지만, 당신은 저의 앞을 앞놓아 나가시면서 저를 동조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 땅의 누구보다도 불쌍한 것은 아무개라는 말을 한 사람뿐만 아니라 영통하는 수많은 사람,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증거하지만, 저는 불쌍한 사나이가 아니옵니다. 제가 불쌍한 사나이라고 느끼시는 아버지는 더 불쌍하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보다도 더 불쌍하신 분이 아버지이심을 미처 몰랐던 불효자식이었던 것을 깨닫고자 하는 저의 마음을 당신은 아시옵니다.
가는 길이 평탄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의 영광을 찾아가는 길이옵니다. 그 승리의 영광은 자아의 승리의 영광이 아니라 당신 앞에 돌려드리고 싶은 영광인 것을 당신은 아시고 계실 줄 아옵니다.
통일교단이 오늘날까지 남아진 것이 그 누구의 공적이나 은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옵니다. 당신이 나타나지 않는 뿌리와 같은 역할을 하시면서 모든 것을 제거시키는 원동력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통일교단이 오늘 이 자리에 남아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통일교회의 운명을 가려 가야 할 책임을 짊어진 중요한 자리가 누구의 자리냐고 묻게 될 때, 오늘 여기에 있는 보잘것없는 교회장들이 아니라, 마음에 사무치는 심정에 격하여 하늘이라는 말도 못 하고 '하' 하고 통곡하고,'늘' 하고 또다시 입을 다물 줄 모르는 사람인 것을 알고 있사오며, 당신이 그런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너무나 부족했던 과거를 헤아려 보면서, 미미한 가치의 결과를 다짐했던 어리석은 자아를 벗어버리고 엄숙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다짐하여 나가는 이번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원수라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나를 이기는 데에 당신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를 이기라'고 내모시는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이겨 나오셨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전지전능하신 당신이 그 모든 것을 밟고 올라서실 때까지는 얼마나 참음이 커야 했고, 얼마나 설움이 굽이쳤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감히 짐작하고 헤아릴 것 같습니다. 거기에 미칠 수 없는 자리에서 한탄하고 있는 저희의 사정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기를 바라옵나이다.
아버지, 금번 여기 청평에 당신의 어린 자녀들이 모인 것은 그 무엇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옵니다. 아버지의 깊은 심정에 다시 젖어들고, 당신의 심정을 다시 체휼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온 것이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옵니다. 당신과의 인연이 영원히 영원히 흩어지지 않고 영원히 영원히 풀리지 않는 자리에서 맺어지는 그 자리를 찾기 위해 온 것이 저희들의 소원이옵니다.
저희들은 세상을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탄을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을 볼 때, 비참에 비참을 극복하는 노정이 통일교단이 가는 운명길인 것을 알았습니다. 민족이 어려운 자리에 있는데도 민족을 대신하여 선두에 설 수 없는 애달픔을 당신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세계의 어려움을 보고도 세계의 선두에 설 수 없는 당신의 애달픔을 알았기 때문에 그 애달픈 자리를 따라가고 있는 저희의 애달픈 사정을 당신은 잘 알고 계시옵니다.
그런 이때가 오기 전에 저희들이 갈 길을 미리 마련하기 위해 숱한 수난의 길을 참아 오신 아버지가 계심을 저희들은 자랑하여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무엇을 자랑하기 전에 아버지를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무엇을 추앙하기 전에 아버지를 추앙해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모든 가치를 인정받기를 고대하기 전에 아버지께서 인정받지 못하고 계심을 억울하게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위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당신의 비참한 자리를 보게 될 때, 자기의 몸둘 바를 모르며 '어찌하여 아버지께서는 이런 길을 가셔야 하느냐. 이 무리들에 의해 언제 해방의 날이 오겠느냐'고 하며 아버지가 불쌍해서 울부짖게 될 때 당신이 그 자리를 벗어나신다는 사실을 제 체험을 통하여 알고 있사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자기의 아들딸을 위해서 눈물 흘리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 아들딸이 비참하거든 아버지께서 비참하기 때문인 것을 깨닫고, 붙들고 기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발, 아버지는 이런 자리에 서지 마옵소서'라고 하며 눈물짓는 그 자리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가슴은 천배 만배 더 아플 것을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아버지를 위로하고, 자기 자식을 바라보면서 '너는 현재는 외로운 자리요, 불쌍한 자리에 있으나 너의 후손은 망하지 않을 것이요, 네 장래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입증한다. 먹이지 못하고 입히지 못한 것에 대해서 한을 품지 말라'고 기도할 수 있는 어버이는 거룩한 어버이인 것을 알게 하시옵소서 .
아내를 남과 같이 입히지 못하고 먹이지 못하였으며, 때로는 병석에 누워 신음하는 아내를 보게 될 때, 사정과 환경이 여의치 않은 자리에서 고심하는 것보다도, 이런 자리에서 하늘의 길을 가는 이런 아들딸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비참하시겠는가를 생각하고, 내 아내가 쓰러지고 내가 쓰러지더라도 아버지의 마음이 비참하지 않기를 기도하며 눈물짓게 될 때 그런 자리에서 벗어나고 또 벗어난 일이 있는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미치고, 뜻을 염려하기에 미치는 자신이 되어서 망하는 법이 없음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가슴으로부터 붉은 심장의 동맥의 피로서 뿜어 나오는 핏줄기는 하늘과 연결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가슴으로부터 아버지의 동맥에서 뻗어 나오는 그 피와 똑같을 수 있는 자리에까지 가야 되겠습니다. 그 자리에 가려면 나는 죽어야 되고 아버지께서는 살아 남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 길을 달가이 가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청평, 이곳은 당신이 사랑하여 이와 같이 만들어 주신 곳이옵니다. 당신이 정성들여 성별한 땅이옵니다. 여기에 정성의 눈물이 엉클어지고 모든 사연들이 당신과 가까와지는 인연이 맺어져 만국의 모든 백성들이 여기에 찾아와 눈물로 눈물로 아버지를 찾고 사정으로 사정으로 아버지를 귀히 여길 수 있게 하는 전통이 심어질 수 있는 이번 모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벌거숭이의 신세요, 고아의 신세요, 쫓기는 자의 신세가 되더라도 아버지와 같이 가는 그 자리는 불쌍한 자리가 아니라 행복한 자리요, 그곳은 미래의 천국이 소생될 자리요, 그곳은 미래의 행복된 보금자리가 솟아날 자리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또 가야 되겠습니다. 지친 몸을 가다듬어 다시 가야 되겠습니다. 기력이 없는 눈에 정기를 돋우어 먼 산 너머를 바라보면서 또 가야 되겠습니다. 남기신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발아가야 할 가시밭길을 내가 앞서가겠다고 몸부림치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복귀하고자 하시는 거룩한 아버지의 애달픈 마음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피어린 심정을 다짐하면서 참아 나오신 억울한 그 내심에 '아들아, 극복과 승리의 자식이 되어 달라'고 하는 한스러운 소원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이렇듯 비참으로부터 짓눌려 살고 있는 낙망과 낙심의 자녀들이 되었지만, 이 가운데에 하늘의 빛이 다가오고, 어둠속에 이 빛이 갈림길이 됨으로써 여기에 새로운 천국이 개문(開門)되어 하늘의 빛되는 영광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의 힘찬 걸음을 이 시간부터 다짐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러한 내가 되면 나는 이렇게 가겠다고. 이러한 아내를 맞이하면 나는 이렇게 가겠다고, 이런 자식을 낳으면 나는 이렇게 가겠다고 이미 결정을 지어 놓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아들들이 되고, 그 아들들이 뜻길을 가기 위해 한두 번 나설 때는 당신의 새로운 복지의 날을 안식된 자리에 옮겨 놓는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어차피 저희들이 넘어야 할 고개를 보람 있게 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어차피 운명을 다짐해야 할 결정적인 도상에서 졸장부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주시옵고, 만민 앞에 호소하여 하늘을 소개할 수 있는 승리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첫날부터 시작하는 모든 일이 당신의 영광의 품에 안길 수 있는 결과로 맺어지게 하여 주시기를 재삼 부탁드리고, 오늘이 복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8월이 다 지나가는 이때에 통일교회의 새로운 출발과 더불어 희망에 넘칠 수 있는 천운의 결속이 이루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옵니다.
아는 자와 모르는 자, 무지한 자와 지각한 자로 하늘땅 위에 갈라질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모인 모든 자녀들은 지혜로운 자가 되어 당신의 축복의 존전에 나타날 수 있게 지켜 주시옵고, 깨우쳐 주시옵고, 지도하여 주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사랑하는 아버님, 이 아침은 이달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맞는 안식일 아침이옵니다, 이달도 당신의 뜻 가운데에서 보호하여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수많은 자녀들이 이곳을 우러러보면서 하늘의 은사와 생명의 인연을 간절히 바라고 있사오니, 그들이 있는 곳곳마다 당신의 후덕하신 사랑으로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내일에의 희망을 품고 싸움의 역로에서 승리하는 자녀들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또한 전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외로운 싸움의 노정에서도 이곳 한국 땅을 바라보고 아버님을 생각하면서 극복의 날들을 갖추어 나가고 있사오니, 그 자리 자리마다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로우신 은사로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땅 위에 있는 통일의 무리는 물론이지만, 이 뜻을 이루기 위하여 역사노정에서 수고하고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선조들과 뜻의 내연을 따라 피를 흘리고 간 수많은 조상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거점을 통하지 않고는 당신의 본연의 세계에 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영인들의 승리의 해방을 아버지께서는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통하여 촉구하신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저희들이 얼마나 중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가를 가일층 느껴야 되겠으며, 저희들의 생활이 저희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생활이 아니라 입체적인 세계를 위한 생활이라는 사실을 저희들은 더욱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과 천군 천사들이 지금까지 당신의 승리의 한날을 바라면서 수고로운 노정을 극복해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들의 수고는 저희들로 말미암아 거두어져야 되겠고 저희들이 바라는 소원은 전세계인과 더불어 결실되어야 되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또한 현재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저희들은 상하로 연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사랑의 아버님, 수많은 종교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가는데 있어서는 자기의 어떠한 종파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심정의 일치점을 향해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이것이 역사 노정을 거쳐온 종교인들의 사명이요, 현재 이 땅 위에 머물러 있는 종교인들이 가야 할 길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의 심정을 체휼하고 당신의 생명의 인연을 높일 수 있는 그 길을 이땅 위에서 결정짓지 못하면, 아버지와 수많은 선열들이 관계를 맺을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서로서로 고립된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이 땅 위에 있지만 이들을 생명으로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참다운 지도자가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리고 전후좌우에서 이들이 갈 길을 동행하며 하늘을 모시고 가야 할 생활적인 터전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될 때, 그래도 하늘이 소원의 터전을 가질 수 있으며 당신의 마음에 위안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보잘것없는 통일의 무리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비록 이 자리가 소수의 무리가 모인 자리지만 이 자리는 두려운 자리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당신의 뜻을 중심삼고 통하고 싶은 간절함이 역사과정을 통해서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그 누구와 내정을 통해 가지고 승리의 터전 위에서 당신의 아들과 딸의 모습을 맞을 수 있는 기쁨의 날을 당신이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한 가정을 중심삼고 찾아오신 당신의 소원의 뜻 앞에 세계를 대신하여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기쁨의 날을 아버지께서 맞이해야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깨닫게 될 때, 저희들은 너무나 부족하였고, 저희들의 가정은 너무나 부끄러운 자리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개인들과 가정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사회와 국가를 형성하고 세계까지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당신이 가야 할 길은 개인만을 위한 길이 아니요, 가정만을 위한 길도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표준적인 개인과 가정이 당신의 뜻과 일치될 수 있는 기점을 통하여 민족을 거치고 국가를 거치고 세계를 거쳐 천주복귀라는 엄숙한 과제를 친히 거쳐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 길은 너무나 멀고 너무나 복잡하고 너무나 큰 길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현재 부족한 저희들이 처해 있는 이 거점이 당신이 거쳐 나가야 할 최후의 거점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와 부자의 인연을 세우는 데 있어서는 저희들 자체나 저희들 가정에서보다 천주사적인 거점에서 인연을 세워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길을 가야 하는 자녀들 앞에는 아직도 생명이 엇갈리는 길이 도사리고 있고, 그 길을 달려들어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 남아 있으므로 평안을 구하기 전에 십자가 도상을 밟고 넘어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자각해야만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이러한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나타나야 할 자녀인 것을 깨닫고, 하늘의 외로움을 망각한 채 자신의 외로움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버지의 분부를 받은 부족한 저희 자신이 되었다면 이것을 다시 한 번 비판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짊어진 삽자가의 수난의 고통은 현재 저희들이 처해 있는 입장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오늘날 저희들은 저희들 자신의 입장에 아버지의 슬픔이 가중될 수 있는 길을 찾아가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노정이 참다운 인생길을 더듬어 가는, 당신의 심정적 내용을 이어받을 수 있는 자녀들이 설 자리가 아니겠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이 자리를 마음으로 바라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언제나 십자가의 어려운 수난길을 도맡으시지 않으면 안 될 아버지의 입장을 이 땅 위의 종교인들은 잘 모르고 있사옵고, 오늘날 통일의 무리도 모르고 있사오니 진정 이러한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루의 감정이 통하는 그 시간에도, 하루의 사정을 놓고 움직이는 그 자리에서도 당신은 저희와 더불어 행보를 같이하지 않으면 안 될 딱하고 어려운 입장에 계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중심삼고 절망하고 탄식하는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거기에 하늘의 수고가 자기로 말미암아 사라진다는 것을 생각하며 어려운 길을 감사히 넘어야 되겠사옵고, 자기를 위한 십자가의 길보다도 민족과 나라와 세계를 위한 십자가의 길을 가기 위하여 선두에 설 수 있는 무리가 되지 않고는, 이 땅위에서 아버지께서 찾으시고, 사랑하시고 싶은 참다운 효자의 인연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 자리에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8월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이달에 저희들에게는 사연이 많았습니다. 협회에서도 여러 가지 행사를 치렀습니다. 1971년이 어떠한 해라는 것을 저희들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이해에 있어서 민족을 걸고 교단을 걸고 수많은 가정들을 걸고, 혹은 3천만 백성들을 걸고 제시한 것을 감당해야 할 시대적인 사명이 촉구되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될 적마다, 금후에 미쳐지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당신이 염려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시아의 정세를 넘어 세계에 당신의 뜻을 남기기 위하여 염려하시는 당신의 마음도 저희들이 이어받아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적마다 그날이 기쁨의 날이 되게 하고, 참고 극복해야 할 싸움의 도상에서 자신을 거두어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지 않으면 싸움의 노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리라는 것을 저희들은 자각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한마디의 말을 하는 데 있어서나 하나의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 분립된 자아를 발견해야 되겠으며, 환경을 하늘로부터 이어받아 가지고 그 환경을 이 땅 위에 상속시켜 주어야 되겠습니다. 피땀을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환경을 이 땅위에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될 사명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것을 이루어 놓지 않고는 저희들이 전진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과 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단은 모진 곡절의 노정을 걸어왔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처해 있는 이 자리에서 평면적인 세계와 통할 수 있는 그 자리에까지 가기에는 아직도 가시밭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바라보게 되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 길을 또다시 가야 할 입장에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의 아들딸들로 태어난 것을 자각한 저희들이 비장한 결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시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원수들이 저희들에게 망하라고 저주하고 저희들을 사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자 하더라도 저희들 개체개체가 서로 단결하여 하나의 모습, 내일의 강한 결속체가 되어 가지고 정상을 향하여 총진군하지 않으면 안될 행로가 저희들 앞에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생사를 가리지 않겠다고 맹세한 실체로 나타나는 자신을 그리워하지 않고는, 당신이 원하시는 곳에서 아버지를 만나 가지고 기뻐할 수 있는 그날까지 남아지는 무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긍휼이 많으신 아버지여, 자비와 동정의 인연을 가지고 지금까지 손해보고 오신 하늘이여, 부족한 저희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아버지의 본연의 권위와 그 위치를 두고 볼 때, 당신은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감히 대할 수 없는 거룩한 분인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한 아버지께서 수난길에 있어서 홀로 책임을 지고 나오신 억울한 사실을 저희들은 애통하게 생각해야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이 하늘땅 앞에 통고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불쌍한 인간을 통고하기 전에 불쌍한 하늘 부모를 통고해야 하는 저희들임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비록 천국에 도달할 수 있는 자리에 임할지라도 저희들은 하늘의 권위를 바라기보다는 하늘을 위로하고 참고 넘어가야 하며 그러한 행로가 저희들의 인생노정에 거듭 남아 있다는 것을 절감해야 되겠사옵니다. 오늘도 그 싸움의 행로를 스스로 지키면서 내일의 개척자로서 승리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극복할 것을 다짐하는, 생활환경에서도 지칠 줄 모르는, 아버지가 자랑하실 수 있는 늠름한 아들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자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내연을 따라 움직이고 아버지의 사정에 연결된 실체가 되어, 선의 결실체로서 이 땅 위의 발판이 되지 않고는 아버지가 행보하실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느끼오니, 저희들로 하여금 하루바삐 외로운 길을 가시는 아버지를 위로하며 모시고 사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8월의 마지막 안식일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맞이할 9월과 이해의 남아진 날들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1971년은 역사를 가름해야 하는 중차대한 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1971년이 지나가는 과정에서 이 나라, 이 민족이 참된 백성의 인연을 따라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가 이 나라의 주권을 위하는 것보다도 천륜을 이어받을 수 있는, 영원한 주권의 인연을 가질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북이 분립된 이 환경을 직시하면서 내일의 통일의 자세를 갖춘 하나의 단일 민족의 권위를 자랑하고, 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통일된 기반 위에 거룩한 제단을 갖추어 만민과 만국을 위한 승리의 한 날을 맞이하여 아버지 앞에 거룩히 분향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저희들은 바라고 있사옵니다.
수난의 대가를 치른 양이 크면 클수록 그날을 기쁘게 맞이할 것이고, 하늘을 위하여 공의의 인연을 추구하는 자리에서 각자가 인연을 다짐하는 생활을 해 나온다면 보다 가치 있게 아버지를 시봉하는 아들딸의 입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직시하게 되옵니다. 오늘의 자아는 환경의 인연을 거치지 않을 수 없지만 현실은 흘러가는 것이오니, 이러한 것들을 붙들고 생명을 다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나를 부정하고 하늘을 공인하는 철칙을 거치지 않고는 복귀, 해원성사의 노정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내마음이 그러하고 내 몸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의 생활환경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 적마다 저희들은 겸손히 엎드려 아버지를 불러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인연을 따라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싸움터에서 용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어제까지 진정으로 아버지를 모시지 못했던 그 마음을 넘어서서, 오늘부터라도 죄악된 현실권내에 있어서 영원히 심정에 불타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 아버지를 불러야 되겠사옵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사무친 기준이 우리 조상인 아담 해와의 기준을 능가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내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간곡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천추만세 천주(天宙)의 실체를 갖추어, 슬펐던 역사와 현재 수난의 역사를 극복하시는 아버지의 영광을 그리면서 현재에 있어서 그러한 아버지가 되지 못한 것을 무한히 가슴 아파해야 되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몽땅 제물로 바쳐서라도 아버지 앞에 기쁨의 한 날을 찾아 드리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는 참된 아들딸의 모습을 각자가 갖추어야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찾고 있는 부끄러움 없는 개인, 부끄러움 없는 종족과 민족, 부끄러움 없는 국가와 세계를 당신과 더불어 맞이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하늘의 해방권이요, 땅의 해방권이 오기를 저희들은 천번 만번 바라고 있지만, 아버지께서는 저희들보다 더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한 날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생사가 엇갈리는 길에 있어서도 아버지를 입증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망각하면서 최후의 행로를 지킬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앞에 다시 한 번 아뢰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찾아오시어 부족한 저희들을 일깨워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완전한 자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을 그리며 싸우면서 극복해 나오는 저희들은 그 전통을 이어받기 위해서 부복한 무리이오니,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저희들의 마음 일체는 저희들 자신의 결과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앞에 기여되기를 바라고 있사오며 당신이 찾고 있는 뜻의 결과를 그리워하고 있사옵니다. 이것만을 추구하며 싸우고 있는 통일의 무리이오니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한 번 아버지의 긍휼의 마음과 동정의 사연이 저희 통일교단이 나가는 길에서 떠나지 말기를, 아버지께서 복빌어 주시옵기를 바라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저희들을 통하여 바라고 있는 수많은 형제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본부의 이 자리가 얼마나 두려운 자리인가를 저희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부족한 정성을 모아 아버지를 찾고 기도드리는 이 자리에 아버지께서 친히 강림하시어 각자의 심정에 새 생명의 인연을 연결시켜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오늘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의 풍성하신 은혜로 생명의 인연을 두텁게 맺어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모든 것을 허락하신 뜻 가운데서 성취하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천국의 거점이 어디냐' 하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누구나 바라는 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개인이 처한 자리도 그러하거니와 국가와 세계 전반에 걸쳐서 보더라도 우리가 요구하는 국가와 세계가 되지 못한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현재의 이 세계는 최후의 절벽에 부딪쳐 있습니다. 이렇게 갈것이냐, 저렇게 갈 것이냐 하는 문제에 그 누구도 결정적인 어떠한 방향을 제시할 수 없는 사정에 처해 있다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과연 이 세계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가지고 선의 결과와 연결지을 수 있는 소망을 맞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누구나 이 세계는 절망의 세계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자기 나름의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있다 하더라도, 이 세계의 방향을 새로이 제시하여 만국은 물론이요 만민이 이런 결과의 선한 세계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며 세계의 슬픔과 세계의 고통과 세계의 딱한 사정을 체험하면서 절규하는 사람이 있느냐 하면,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게 됩니다. 인간으로서 제시할 수 있는 방향은 다 제시해 봤지만 그 제시하는 방향이 인간에게 보다 높은 소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방향이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인류 역사를 통해서 현시대에 이르기까지 이것을 실현해 나오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대한민국을 책임진 주권자면 주권자가 앞으로 대한민국이 어떻게 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대해서 현재의 입장에서 자신을 중심삼고 방향을 취해 나가고 있지만, 그 노선의 방향이 세계의 현정세를 넘어 금후에 새로운 입장에서 제시될 수 있는 방향이냐 하면 누구나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책임진 그 분도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민주세계를 대표하는 어떤 선진국가가 있다면 그 국가의 지도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혹은 공산세계도 그러할 것입니다. 공산세계가 가는 방향을 두고 보더라도 역시 그와 같은 갈림길에 놓여 있는 현시점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자기들이 주장하는 방향이 결정된 것같이 제시하며 주장해 나가고 있지만, 현시대의 엇갈리는 입장을 직시하게 될 때, '금후의 세계가 가야 할 방향은 이렇다'고 결정적으로 제시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당하고 결정적인 방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이 제시하는 방향을 가지고는 새로운 면에서 세계를 수습할 수 없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인간 외에 절대자, 즉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분은 이러한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어떠한 방향을 제시하겠느냐? 하나님이 지금의 이 세상을 인간의 딱한 사정과 같은 입장에서 바라보고 계시는 것이냐? 즉, 하나님은 무슨 방향이나 대안이 없는 슬픈 입장에서 바라보고 계시느냐, 그렇지 않으면 대안과 방향을 제시하실 수 있지만 세계가 그 제시하는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제시하지 못하고 계시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가 공히 하나님이 제시하는 방향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세계는 인간이 바라는 새로운 소망, 새 시대의 한 모습을 그릴 수 있는 가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계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하였다면 하나님이 그것을 제시하더라도 인간은 그것을 찾을 수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그것을 모색하여 찾지 않을 때 이 세계는 비참한 세계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런 비참한 결과의 세계를 바라보고 그냥 내버려 두실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참이요 사랑이라 할진대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에 대한 어떠한 방향과 대책을 강구하여 쥐고 계실것입니다.
그러한 방향을 가진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이 접선하실 수 있는 거점은 어디일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 세계 자체가 거점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어느 특정한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환경과 하나님이 안팎의 내연을 같이하실 수 없다는 것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특정한 민족을 중심삼고는 그럴 수 있겠느냐 할 때에, 큰 곳에서부터 점점 작은 곳으로 내려가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특정한 종족이 있으면 그 종족을 중심삼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터전이 남아질 수 있느냐, 종족이 남아지지 못한다면 남아질 수 있는 씨족이 있느냐, 즉 종족을 대표할 수 있는 어떤 씨족 형태가 있느냐 하는 문제를 볼 때 우리는 그것도 자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더 작은 범위의 자리까지 내려가 가지고 그 자리에서 그런 방향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종족도 씨족도 없으면 어떠한 가정은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에 있어서 우리 가정은 대한민국의 어느 가정에 못지않은 가정이라고 자신하는 가정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가정의 주인이 천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가정이 우리 가정이라고 자신하고 나설 수 있느냐 할 때, 그런 주인을 가진 가정은 있다고 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제시할 수 있는 거점은 가정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개인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현재 어떤 면에 권위를 가진 사람이라든가, 부자라든가, 혹은 지식을 많이 갖춘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하나님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록 안팎의 사정이 갖추어져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개인 자신들이 하나님이 제시하는 방향에 일치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하고, 자기의 사정을 중심삼고 관계 맺고 있는 내용이 무엇이든지간에 그 방향에 관계맺을 수 없는 환경을 가지고 있는 입장이 되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을 중심삼고는 인연을 맺기가 어려울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상류층의 어떤 특정한 개인을 통해서 그 거점을 찾지 못하고 제시하는 방향에 맞는 터전을 갖지 못하게 된다면 여기서 어떻게 될 것이냐? 하나님의 섭리가 후퇴할 수 없는 한, 중류층으로 내려가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류층에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자신 있게 결정적인 어떤 결의를 해 가지고 '자신 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람이 있다면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없을 때는 그 중류층에서도 역시 하나님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어떤 한 개인을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중류층에서도 하나님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개인을 찾지 못했을 때는 어떻게 하실 것이냐? 하류층으로 내려가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류층에 내려가서도 특정한 사람을 중심삼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거점을 찾으려고 하다가 찾지 못하게 될 때는 어떻게 하실 것이냐? 이런 우리 입장에서 보게 될 때, 하나님이 그런 입장에 계신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셔야 되겠습니까? 누구를 붙들고 그런 사정을 통고하실 수 있겠습니까? 사정을 통고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남자를 통해서 그런 사정을 해원하시려 했는데 그런 개인을 만나지 못했다 할때는 여자들을 통해서라도 그럴 수 있는 개인을 만나는 길을 모색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수많은 남자들 가운데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을 다 저버리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 여인들을 대하여 이 엄청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거점을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께서 어느 한 개인을 통하여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거점을 요구하게 될 때, 여기에서도 또다시 그 거점을 찾지 못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어디로 가실 것이냐? 하나님이 원하는 인류는 어디에 가서 그와 같은 시운을 맞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당연히 하나님도 염려 하시는 것이요, 우리 인간도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방비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요, 이것을 방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되는 것이 하나님의 책임이라 할진대, 모색할 수 있는 환경을 다 잃어버리고 그 누구도 믿지 않는 여자들을 중심삼고 최후의 소원의 일념을 제시할수 있는 거점을 바라고 있는 입장이라면,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그것을 어떠한 입장에서 맞아들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됩니다.
이미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미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자리에 서 있는 인간들이기에 응당히 처단을 받아야 할 입장이지만, 세계적인 뜻을 남겨야할 터전이 인류이기 때문에 인간을 처단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 딱한 사정을 해결할 거점을 마련하실 수 없는 하나님, 나약하고, 미숙한 여인들을 통해서 거점을 찾기를 고대하는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할 것이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그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노년기의 아낙네를 통해서 하나님이 찾아오고 계시다고 누가 자신 있게 공포한다고 해서, 오늘날 이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 아낙네들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환영하는 사람이 있겠느냐? 또, 현재에 나이 많은 늙은 아낙네들이 하는 말을 듣고 과연 하늘이 찾아와서 세계를 대표하여 하는 말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이러한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냐는 것을 우리는 현재 살고 있는 환경을 미루어 보아서도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당한 사실일지라도 그것을 안팎으로 헤아려 보고, 하나하나 비교해 보아 가지고 자신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길이 아닐 때에는 그것이 아무리 옳은 길이라 하더라도 번번이 그것과 관계를 맺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 개인의 습관을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 개인을 찾아와 가지고 세계적인 내용을 통고하시는 하나님의 사연이라는 것은 우리 개인에게 있어서 이익이 되는 조건으로써 맞아질 수 있는 내용이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시하는 내용은 열이면 열 사람, 백이면 백 사람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결과를 남겨 주는 것이 아니라 전부 다 손해를 보지 않으면 안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부정적 여건을 거치지 않고는 하나님이 제시하는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고 환경적으로도 그것을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을 느끼고 알게 될 때, 과연 그것을 영원한 것으로 상속받아 가지고 자기 자체의 생애와 더불어 그 터전을 남기겠다고 하며 책임질 수 있는 젊은이들이 있겠느냐 하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문제가 아닐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어디로 가실 것이냐? 노년기의 사람들도 그렇지만 장년기의 사람들도 하나님이 손댈 수 없다 할 때는 어떻게 하실 것이냐? 철부지인 청년기의 사람들을 통하여 그런 일을 또다시 하셔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늘의 고충을 알아 가지고 자기 자신은 전체를 위하여 천번 만번 죽어 희생을 하더라도, 그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어떠한 수난길도 책임지고 나설 수 있는 젊은이들, 특히 처녀면 처녀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느냐? 만일 그 자리를 이어받고 나설 수 있는 하나의 가냘픈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가 서는 자리는 지극히 외로운 자리요 무력한 자리일 것입니다. 여자의 입장을 볼 때 그 자리는 무척 외로운 자리일 것입니다. 여자가 장래에 갈 길은 자기 혼자 자주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가려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여자는 어차피 한 남자를 맞이해서 가야 할 게 아니예요? 여자는 부모의 슬하에서 자유스런 환경을 허락받고 살 수 있는 입장이 아니냐.
만일 하늘 뜻의 방향을 알고 그 거점을 이어받겠다고 하는 한 소녀가 있다면, 그 소녀는 자기의 생명 전체를 희생할 각오를 하지 않고는 그 거점을 이어받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사지(死地)에 들어가는 입장에 있더라도, 당장 내 일신의 체면과 권위가 땅에 떨어져 짓밟히더라도, 그 거점을 당당히 이어받겠다는 마음을 가진 소녀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뜻을 아는 남성들도 이어받기 어려운 자리요, 뜻을 아는 여성들도 이어받기 어려운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한 소녀가 그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선다 할진대는, 그 자리는 백 번 살겠다는 결의보다도 천 번 죽겠다는 결의를 해야 되는 자리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도 하나의 소망의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내일의 소망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내가 길이길이 살겠다기보다도 현재의 생활 가운데서 천만의 희생, 만만의 희생을 다짐하고, 이것을 가려 갈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그것을 찾겠다고 결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오늘날 인간을 대하여 손을 뗄래야 뗄 수 없는 하나님의 사정을 생각해 보게 될 때, 그러한 사연을 품고 있는 하나님은 우리 인류가 맞이해야 할 세계를 대표한 주인공이요, 나라면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주인공이요, 가정이면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주인공이요, 생명이면 생명을 대표할 수 있는 어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고독하시겠습니까? 그런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은 행복한 것이 아니라 비참한 것이요, 그 입장이 무한히 고독한 자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고독의, 한의 절정을 헤아릴 수 없는 비참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비참한 내정을 품은 하나님이 하나의 소녀를 보고 역사노정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토로하지 못하고, 이 시대의 어느누구에게도 토로할 수 없는 내용을 가슴을 헤쳐 놓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할진대, 이는 말할 수 없이 억울한 자리요, 말할 수 없이 처참한 자리가 아니겠느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만일 세계 전부가 반발하는 자리에 그런 하나의 소녀가 있다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배신의 역로를 참아 나오던 그 모든 억울한 심정을 털어 놓고 그 소녀와 더불어 가겠다고 세상에 없는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순간이 남아질 것입니다. 그러한 순간은 낮이면 낮, 밤이면 밤이라는 어떠한 시간을 넘어 우주의 심정을 에이는 서글픔이 엇갈린 시간일 것이요, 그 자리는 누구도 동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비참한 자리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소녀 자체가 하나님의 내정이 그러한 것을 알고 위로할 수 있는 자리까지 못 갔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소녀를 붙들고 다시 일어서서 뛰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계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러한 하나님을 맞기 위하여 가는 길이 종교의 길이요, 그러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안식의 한 날을 개척하기 위해 싸워 나가는 생활이 종교인의 생활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종교인들이 이 땅 위에서 행복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긍정적인 생활 여건을 찾는다는 것을 시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정의 인연을 찾아가면서 부정의 극(極), 자기의 전체를 희생하는 최첨단에 서야 됩니다. 자기의 생명이 좌우로 엇갈리는 자리에 서서 그것을 결판지을 수 있는 순간을 거쳐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결의를 갖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종교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렇게 심각한 하나님이시라면, 내가 그 심각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아들이 되고, 억울한 하나님이시라면 내가 그 억울한 하나님을 모시고 위로할 수 있는 효자가 되어 보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은 어떤 다짐을 해야 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 있어서 무엇을 그 중심의 골자(骨子)로 남겼느냐 하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예수님의 비운의 자세를 우리는 더듬어 보아야 되겠습니다. 그 누구도 헤아리지 못하는 운명길을 가슴 깊이 추구하는 마음이 격하면 격할수록, 하나님의 내정의 인연이 가중되면 될수록, 하늘땅을 붙안고 누구보다도 통곡할 수 있는 경각의 자리를 체휼한 사람이 아니면 그런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세계적인 주권을 가지고 세계를 움직이는 어떤 국가가 있다 할진대, 그 국가가 그냥 그대로 '내일의 소망을 품고 우리나라만 살아가겠다'고 하면 그 국가는 하나님과 상치(相馳)된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어느 민족이 그러하다면 그 민족도 역시 하나님과 상치된 자리에 서게 되고, 혹은 종족, 가정, 개인이 그러하다면 그 종족, 가정, 개인 역시 그러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계가 악한 세계인 것을 알게 될 때 그것을 품고 미련을 남긴 자리는 하나님이 거점을 삼을 수 없다는 것이 당연한 일임을 여러분도 능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점으로 삼기는 나라보다는 민족이 쉬울 것이요, 민족보다는 종족이 쉬울 것이요, 종족보다는 가정이 쉬울 것이요, 가정보다는 개인이 쉬울 것입니다. 개인 가운데서도 고집 있는 사람보다 연약한 사람이 쉬울 것입니다. 또 남자와 여자를 볼 때, 주관이 강한 남자보다 주관이 약한 여자가 더 쉬울 것입니다. 여자 가운데서도 인간 생활에 있어서 시달림을 받아 가지고 상처를 입은 그러한 나이 많은 여자보다도 아무것도 모르며 순정을 꽃피우고, 선을 꽃피울 수 있는 나이 어린 여자가 쉽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거점을 찾을 수 있다 하더라도 거점을 찾은 시간부터 그 자리에 있어서 뜻을 성취해 낼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볼 때, 가냘픈 소녀에게 책임을 지워 가지고 같이 가는 하나님의 입장이라면 그것은 비참한 걸음일 것입니다. 그 소녀를 통하여 그 소녀의 할머니 어머니를 움직이고, 그 할머니 어머니를 통하여 여자들을 움직이고, 그 여자들을 통하여 남자들을 움직이고, 그 남자들을 통하여 가정을 움직이고, 그 가정을 통하여 나라를 움직이고, 그 나라를 통하여 세계를 움직여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외로운 비운의 역사를 거쳐 천국을 향하는 하나님의 걸음이 얼마나 불쌍하고 딱하냐는 사실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종교든지 현재 살고 있는 환경에서 내일의 소망의 내용을 제시할 때, 그 환경에서 그냥 그대로 살라고 가르쳐 주는 종교는 없습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사회제도를 부정하고, 자기 삶의 터전을 부정하고, 자기의 생활을 부정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악이 세계적인 판도를 점거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참이라는 것은 악과 상관될 수 없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여건도 구할 수 없는 입장이 참의 기준이라고 생각하게 될 때, 참된 기준의 사람은 오늘날 악이 점거해 있는 사회의 여건에 보조를 맞추는 자리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참된 종교는 오늘날 인간이 살고 있는 악의 환경에서 긍정적인 여건을 일체 요구하지 않습니다. 부정 중에도 절대적인 부정을 합니다. 절대 부정하는 자리에서 숭고하고 절대적인 참의 뿌리를 내리고 싶고, 하나의 환경을 갖고 싶은 것이 절대적인 참의 자리에 선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하나님의 거처가 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하는 역설적인 논법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사회 실정을 두고 볼 때, 어떤 장관이면 장관은 그 장관 자리를 잃게 될까봐 거기에 생명을 걸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제2의 길, 제3의 길을 택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을 확보하기 위해서 자기의 재산과 생명을 걸고 있는 사실을 볼 때, 이런 판국에는 하나님이 찾아오실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의 거점이 어디에 있느냐? 오늘날까지 수많은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예수님 믿어 천국 가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천국의 거점이 어디에 있느냐? 예수님은 천국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베드로에게 '천국은 하늘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네 마음에 있다'고 했거늘, 네 마음에 있다고 한 그 천국의 거점이 어디일 것이냐? 슬퍼하는 마음이 천국의 거점이 되겠느냐, 자기를 내세우려는 마음이 천국의 거점이 되겠느냐, 사회를 부정하는 마음이 천국의 거점이 되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들은 우리가 바라는 내용을 가진 거점이 아니요, 하나님이 찬동할 수 있는 천국의 거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천국의 거점을 찾는 사람은 이 땅 위의 그 누구보다도 고독한 자리에 부딪쳐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나님이 고독하기 때문에 그 사람도 고독해야 되고, 하나님이 극복의 역사를 거쳐왔기 때문에 그 사람도 극복의 역사노정을 거쳐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땅에 슬픔이 가득하다고 해서 인간이 그 슬픔만을 느끼고 회개하고 통곡하며 눈물만을 흘린다면 그 자리가 천국의 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냐? 그것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때를 바라면서 교단을 섬기는 반면, 이 세상의 죄악을 해결해야 되겠다는 마음의 결의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책임을 다짐할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을 가리는 방향이 없어 가지고는 하늘의 거점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입니다.
그 거점, 천국의 거점은 어디냐? 사람들 가운데는 자기는 양심적인 사람이고 사회적으로 상당한 위치를 가지고 있고 사람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천국은 자기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선과 악이 같이 출발한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이 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과 악은 동시에 출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악이 동쪽으로 가면 선은 서쪽으로 가야 되고, 악이 움직이면 선은 정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악이 욕망을 가지면 선은 욕망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은 반대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이 인간세상을 찾아 나오실 때 인간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소망을 가지고 하늘나라에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출발은 인간세상에 대한 소망을 다 잃어버린 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생활에서 만족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참다운 종교인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들도 잘 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사가 엇갈리는 운명에 부딪쳐 슬픔의 절정에 들어가 자기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절망의 도탄 가운데 서게 될 때, 그 삶의 방향이 당연하게 내일을 그리는 습관적인 인생 행로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까지도 부정하는 자리에 서서 새로운 가치를 더듬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가는 데에서부터 참다운 선의 출발의 거점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러한 논거에 의해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내 인격이 하늘의 거점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 없는 것입니다. 또 '내가 지금 거느리고 있는 가정이 하늘의 거점이다.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 가정을 모른다고 할 수 없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가정도 역시 없다는 것입니다. 혹은 우리의 종족은 이러이러한 역사적인 선의 공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종족을 모른 척할 수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 종족이 이 세계에 어디 있느냐? 그러한 민족이 어디 있느냐, 국가가 어디 있느냐, 주의 사상이 어디 있느냐 할 때,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이 무슨 뜻이냐? 천년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악의 세계에 있어서 자기 자신을 천년 이상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야 천년 살겠다는 꿈을 꿀 수 있는 것이요, 만년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만년 이상 희생하더라도 그것을 고맙게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만 만년을 살 수 있는 소망의 거점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 영원한 행복 영원한 천국을 부르짖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는 영원을 중심삼고 현시점을 극복해야 되며 현시점에 있어서 자기를 희생하고 참고 넘어갈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이러한 자리에 서야만 영원한 거점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그 말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의 뜻은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뜻은 언제 이루어질 것이냐? 그런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노정에서 이 땅 위에 왔다 갔던 사람 가운데는 수많은 성현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문화세계에는 그 성현들의 가르침이 세계화되어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각 나라의 헌법, 그리고 대한민국의 헌법도 역시 성현들의 가르침 가운데서 중요한 골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역사노정에 있어서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이 땅 위에 왔다 갔는데 언제 한번 하나님이 그런 훌륭한 사람들과 손을 잡고 안팎의 생활이념을 의논할 수 있는 때가 있었느냐? 없었다는 것입니다. 생활이념이라 하게 되면 가정, 사회, 국가에 대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활이념을 의논할 수 있는 자녀가 있었다면 하나님은 덜 불쌍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의 사정이 통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기 위하여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 하나의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전까지 이스라엘의 4천년 역사에서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참된 하나의 남성을 표준으로 세워 수습하기 위하여 노력하신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은 내심이 통할 수 있고, 사정이 통할 수 있고 내적인 인연이 하나의 공동적인 결의와 더불어 하나의 행보를 갖출 수 있는 거점을 이 땅 위에서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난길을 걸어 나오신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사람이 많지만 그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사정을 알 수 있는 특정한 한 사람을 찾아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찾아 나오시는 데는 역사노정에 있어서 평탄한 길을 통하여 찾아 나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도 비참한 역사과정을 통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을 한번 해볼 수 있는 남성이 있다면, 그러한 하나의 남성을 찾아 그 남성을 중심삼고 비로소 말을 한번 해보자, 그 남성과 한마디의 말을 해봐 가지고 그 한마디의 말을 통하여 기뻐하고, 그 한마디의 말을 통하여 하나의 인연을 거쳐서 폭을 넓히고 환경을 가려 가지고 한 사람의 생활권을 한번 가져 보자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 한 사람을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인들은 천국은 자기 종교를 통하여서만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것은 모두 망상적인 말입니다. 수많은 종교가 각기 교주를 중심삼고 그 교주가 가르치는 교리를 통하여 하늘나라가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기독교만 보더라도 수십 개의 종파로 갈라져 있습니다. 자기 종파가 아니면 이단시하고 사탄시하는 현실에 있어서 그 교단이 하나님으로부터 공증을 받은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한다면 모르지만 단지 자기 종파를 세우고 자기 종파를 남기기 위한 욕심에서 그러는 것입니다. 동기가 순수하지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종단은 모두 망해야 된다구요. 만약 오늘날 통일교회가 그렇다면 통일교회부터 망해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종교의 사명에 있어 선결문제는 천국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일차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천국이 나오기 전에 천국을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의 특정한 민족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민족을 만들기 위해서 선민을 선별하여 택하신 것입니다. 역사상에 이런 선민사상이 있다는 사실은 악의 세상에 선의 일파를 남기기 위한 주도적인 사조가 역사의 배후에 남아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악의 세계에서 선민이 나오게 되면 하늘나라는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의 백성이 나오기 전에 먼저 하늘나라의 자손이 나와야 됩니다. 백성과 나라가 나오기 전에 하늘나라를 이룰 수 있는 가정이 나와야 됩니다. 가정이 나오려면 하늘이 생애를 걸고 보장할 수 있는 하나의 남성이 나와야 되고, 하나의 여성이 나와야 됩니다.
그러면, 그러한 남성과 여성만 나오면 되느냐? 아닙니다. 그 남성과 여성을 통해서 아들딸이 나와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영원한 아들딸이라고 보장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 나와야 됩니다. 이러한 가정이 없이 종족 민족을 이룰 수 없고, 그런 민족 없이 국가와 세계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찾아 나오시는 거점은 개인입니다. 개인에게 울타리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종교는 개인 구원을 목적으로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찾고 있는 구원의 목적은 개인이 아닙니다. 가정이예요, 가정. 그러므로 천국 가정의 기반을 찾아 세우기 전에 천국 종족, 천국 민족, 천국 국가, 천국 세계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고 있는 남자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어떻게 생겼겠느냐? 성경에 기록된 엘리야의 예언을 보게 되면,'이 세상의 끝날에는 악의 세계에 빠져 있는 인간을 구할 수 있는 주인공이 온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인간세계의 주인공이 온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이사야, 예레미야등 4대 선지자들이 예언하는 것을 보면 모두 그 내용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누구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자기들이 예수장이니까 예수라고 하겠지만 일반 사람들은 어디 그럽니까? 불교 믿는 사람들은'예수가 왜 그 사람이냐? 동정녀 마리아가 누구고, 그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추하게 난 예수인데…'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예수를 믿으니까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했다고 하지 불교에서 보면 예수는 사생아입니다. 그렇잖아요?
아버지가 없이 태어났다는 말은 세상에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믿기를 잘하니까, 주먹구구식으로 누가 어떻다 하면 그것을 믿으려고 하니까 통하지요. '야!' 하는 데 있어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야!' 하는지, 나쁜 마음을 가지고 '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진 사람은 '예'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별의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은 각기 자신이 하나님이 찾고 있는 기독교인이라고 하지만 어림도 없다구요. 그들의 내부에는 권위의식이 꽉차 있습니다. 거의 출세를 꿈꾸고 있어요. 그들은 악당의 사촌쯤은 될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의 선한 아들딸은 못 돼요. 이 자리에 그런 분들이 왔다면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섭섭할지 모르지만 할 수 없습니다. 섭섭해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남자 중에서 그래도 하나님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남자는 어떤 사람이냐? 성인입니다. 성인은 세계주의자예요. 세계주의자가 아니면 성인의 반열에 못 들어갑니다. 성인을 보면 공자도 세계주의자요, 석가도 세계주의자입니다. 예수도 갈릴리 해변을 돌아다니다 33세의 총각으로 뜻을 못 이루고 죽긴 했지만 세계주의자입니다. 마호메트도 세계주의자입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성인 축에 못 들어가는 거예요. 소크라테스는 철인이지 성인은 아닙니다. 철인(哲人)은 진리의 왕은 될 수 있으나 생명을 주관하지는 못합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생명을 주관 하느냐? 종교만이 생명을 주관합니다. 종교 가운데 무슨 종교냐? 하나님을 모시는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에게는 생명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성인은 세계적인 주의 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신을 부정한 성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는 기독교의 우두머리가 되었지요? 석가도 불교의 우두머리, 공자도 유교의 우두머리, 마호메트도 회회교의 우두머리가 되었지요? 그러면 그들의 맨 꼭대기에는 누가 서 있느냐? 그들 자신이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신이 서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많은 얘기를 여러분에게 할 시간은 없지만, 성인의 반열에 서기 위해서는 세계주의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보게 되면 통일교회 사상은 천주주의입니다. 통일교회의 주의는 세계주의보다 더 큰 것입니다. 그렇다면 통일교인은 성인들보다 더 낫겠다는 말이예요? 통일교인이 성인들보다 더 낫겠다면 하나님이 좋아할까요, 나빠할까요? 하나님께서 '고얀 녀석들, 너희들이 역사적인 성인들보다 더 나으려고 해? 라고 하시겠어요?
오늘날 기독교는 태평합니다. 예수 믿어 구원받겠다고 하지만 통일교회는 예수만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경을 보면 바울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라고 했습니다. 주 예수의 사랑 가운데서 왜 못 끊어요? 끊을 자가 하나님이지요? 하나님은 끊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시하는 조건과 하나님이 제시하는 조건은 다릅니다. 예수는 죽지 않으려고 하는데 하나님은 죽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보면, 과거에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때는 목사 노릇 잘 해먹었지요. 그렇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그 목사 노릇 해먹기가 힘들어요. 내가 통일교회의 책임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오늘날 기독교는 사방으로 그 권위가 뚝 떨어졌어요. 조금 생각 있는 사람이 목사에게 성경에 대해 궁금한 것을 세 번만 묻게 되면, 목사 아니라 목사의 할아버지라도 대답을 못 하고 쩔쩔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하는 '천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되고 안 되는 것은 여러분들의 결의에 달려 있습니다. 할 수 있다고 결의하면 되는 것이요, 할 수 없다고 결의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엉뚱한 생각을 하는 패가 통일교회의 패입니다. 그러나 엉뚱한 생각을 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망상주의자예요. 그렇지만 엉뚱한 생각을 행동으로 나타내어 가지고 그것이 나타나는 날에는 엉뚱한 승리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천주주의라는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가망성이 없는 것같이 보이지만 가망성이 있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은 여기에 위안을 받으라는 거예요.
그러면 통일교회는 성인의 도리를 따라갈 것이냐, 성인을 가르쳐 줄 수 있는 도리를 찾을 것이냐? 난 성인의 도리를 따라가고 싶지 않아요. 여러분들은 어때요? 이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봐요. 만약 '성인의 도리를 따라가야지, 성인을 가르칠 도리가 있나?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리판단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어린 소녀들도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통일교회는 성인의 도리를 따라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성인을 가르칠 수 있는 그런 것을 찾아가자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백성으로 태어나 가지고 이왕 죽을 바에는 세계에 대한민국을 힘껏 자랑이라도 하고, 대한민국 만세라도 부르고,'이놈의 자식들, 내 손아귀에 죽을 것인데. 내가 한 발자국 더뎌서 이렇게 돼 있지, 본래 죽게 되어 있는 것이 너희들이다'고 말이라도 하고 죽으면 죽은 패 가운데서도 애국자로, 최고로 높이 올라가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성인들의 마음에도 고통이 있었고 걱정이 있었습니다. 통일교인들은 그런 고통 걱정도 넘어서자는 것입니다. 그 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극단적으로 밤이고 낮이고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문제가 간단하지 않아요.
자, 그러면 앞의 얘기로 돌아가서 하나의 남자, 모델형의 남자가 있을 것이 아니냐 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공장도 그렇지만, 공장에 가게 되면 철형을 만듭니다. 동그란 형이나 사각형의 철형을 만드는데 여기에 돈이 가장 많이 듭니다. 여기에는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다른 부분은 스위치를 한 번만 누르면 자동으로 물건이 나오지만 제일 힘이 드는것이 이 철형(鐵型),즉 일본말로 '가다(かた)'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철형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요? 아무리 단단한 쇠로, 아무리 강한 힘으로 누르더라도 그 철형이 변해서는 안 됩니다.철형은 그 무엇으로도 변모될 수 없는 단단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 철형을 깍는데도 구멍만 뻥 뚫어 놓아서는 안 됩니다. 외각형인 구멍이 있으면 알맹이가 있어요. 이 알맹이가 구멍에 딱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힘들어요. 구멍을 뚫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지만 여기에 자유로이 들락날락할 수 있는 형을 만들기가 제일 힘들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이 이러한 외각형을 만들었다면 그 외각형에 딱 맞아 가지고 들락날락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 더 힘들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찾을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들락날락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틀림없다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할 수 없어도 그것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완전한 것을 계획하신다면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꼭 맞는 것, 하나님이 '그 정도면 백점이다. 만점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를 악물고라도 그것을 찾겠어요? 그게 맞아떨어지면 물이나 기름을 부었을 때 그것이 뚝뚝 떨어지겠어요? 물이나 기름을 붓고 아무리 출렁거려도 흘러 나오지 않는 그것을 찾겠어요? 하나님이 절대적인 분이시니 절대적인 것을 찾을 게 아닙니까? 이 땅 위에 그러한 남자 형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남자를 하나님이 만들어야 됩니다.
성인이면 성인의 모델형이 있어야 됩니다. 미터 원기(原器) 하나가 프랑스 파리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원형이 있어야 됩니다. 그 원형의 기준이 무엇이냐? 여러분, 좋아하는 옷이 있다 할 때, 그것이 내 마음에만 들면 돼요? 마음에도 들고 그 다음은 몸에도 맞아야 됩니다. 마음에 썩 들어 입어 보았을 때 몸에도 딱 맞으면 기분이 좋지만 몸에 안맞는다면 '에게게' 하며 실망하는 거예요. 그 옷을 입을 수 없는 겁니다. 또, 몸에 맞더라도 그 옷을 입고 걸을 수가 없고, 팔도 맞긴 맞는데 팔을 움직일 수 없고, 활동하기가 불편하다면 그 옷은 입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옷은 마음에 맞고, 몸에 맞고, 활동하는 데도 맞고, 3단계에서 다 맞아야 됩니다. 그래야 좋은 것입니다. 목적의 세계는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목적 없이 기쁨이 생겨나는 법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고 몸에 맞고 생활에 맞는 남성을, 성경을 보고 '이 사람이다' 하고 그려 낼 수 있어요? 예수를 지독히 잘 믿는다는 양반들을 불러 놓고 '성경은 생명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게 하는 말씀이므로 그 성경에서 하나님이 찾는 형의 남자를 찾으라' 하면 그들이 찾을 수 있겠어요? 예수가 그리던 모델형의 사람은 이 사람 이라고 하며 성경에서 찾아낼 수 있겠어요? 문제가 크다는 거라구요.
예수가 왜 죽었어요? 왜 죽었어요? 모델 케이스에 꼭 맞는 사람이 있어서 죽었다고 하면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런 시시한 말은 하지 말라는 거예요. 예수가 왜 죽었어요? 원형(原型)에 맞는 사람이 있어서 죽었어요, 없어서 죽었어요? 로마 병정들이 예수를 믿었다면 예수를 죽였겠어 요? 빌라도가 예수를 믿었다면 예수를 죽였겠어요? 제사장이 예수를 믿었다면 예수를 죽였겠어요? 그들의 모형이 예수가 바라는 모형과 같았으면 예수를 죽였겠어요, 같지 않으니까 죽였지요? 같지 않아서 죽였지요?
그럼 예수가 자원해서 죽었어요, 할 수 없어 죽었어요?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한 것을 보면 예수는 자원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기도를 한 번도 아니고 세번씩이나 했습니다. 그걸 따지고 들어가면, 이 땅에 죽기 위해서 왔다면 그런 기도를 할 필요가 뭐 있겠어요. 즐겁게 죽기를 결심하고 그 자리에 나서야지. 예수가 죽음이 두려워서 그런 기도를 했다면 예수는 구세주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과 뜻이 맞아서 예수님이 죽었다고 생각해요? 맞지 않아서 죽은 거라구요.
어떤 사람이 지방으로 출장을 가서 그곳에서 일을 다 마치고 돌아왔다면 또다시 그곳에 출장을 갈 필요가 있겠어요? 또다시 가야 된다면 그 사람은 태만한 사람이고 회사에서 제거되어야 될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걸 보게 될 때, 예수가 하고 싶어했던 그 생활, 예수가 만나고 싶어했던 그 사람, 예수가 같이 말하면서 계획하여 역사를 새롭게 편성하고 싶었던 그 배후의 전후관계가 어떠했느냐가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못하거늘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 12:49)"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불을 던졌지만 불이 안 붙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먼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어야 됩니다. 얼마만큼 맞아야 되느냐? 하나님이 영원한 목적을 중심삼고 영원한 이념을 그려 나가는 분이시라면 영원을 두고 마음이 어떻게 되어야 돼요? 맞아야 돼요, 안 맞아야 돼요?「맞아야 됩니다」 한 십년쯤 맞다가 안 맞으면 안 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 영원히 마음을 맞추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영원히 마음을 맞출 수 있고, 영원히 서로 좋아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 아들이 되려면 슬픔의 대상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거기에 천국이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뭐냐? 하나님의 몸에 맞아야 됩니다. 몸은 방향성이 있는 거예요. 방향성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생각은 사방의 중심점을 대신하지만 몸은 방향성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몸이 동으로 간다 하게 될 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아들이 되려면 하나님과 더불어 동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데 예수는 찬 것을 좋아하면 되겠어요? 하나님은 지금 웃고 싶고 말하고 싶은데 예수는 자고 싶다 하면 되겠어요? 외적인 몸을 중심삼고 나타나는 모든 것들이 일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 되느냐? 아니예요, 하나님은 오순도순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괄괄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오순도순할 때는 오순도순해야 합니다. 안팎이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팎만 맞으면 다 되느냐?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일치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마음에 없는 일이 있을 수 있겠어요? 몸이 싫어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어요? 몸 마음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이 있다는 거예요. 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예수님도 그러한 일을 좋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몸 마음을 중심삼고 행동이 일치되어야 하는데 그 행동이 집안에서만 일치되어 가지고 되느냐? 그것은 대사회 대세계에도 나타나야 됩니다. 그 대사회 대세계를 대해 나타나게 될 때에는 세계적인 권위를 갖추어야 되고 세계적인 법례와 위신을 갖추어야 되는데도 불구하 고, 집안에 있는 아들딸은 철부지여서 방안에서만 우리 아빠는 요렇다고 쫄랑쫄랑거리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엄연하게 해야 될 때는 엄연하게 행동해야 되고, 엄숙하게 해야 될 때는 엄숙하게 해야 되고, 권위를 갖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영원히 좋아해야 되겠다 할 때는 가만히 앉아서 좋아하겠어요, 무엇을 하면서 좋아하겠어요? 가만이 앉아서 좋아할 수 없는 거라구요. 무엇을 하면서 좋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는 데 있어서 무엇을 할 것이냐? 목적이 있다구요. 목적을 이루고 좋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가 그런 생각을 해보았어요? 세례 요한이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예수님을 증거했다고 해서 예수님이 다 되었어요? 아기를 낳아 가지고 그 아기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있어요? 부모가 낳을 때 아이를 사랑하면 다 되는 거예요? 어림도 없다구요.
예수가 태어날 때 사랑하는 아들로 태어났으니 예수가 죽을 때 하나님이 좋아했겠어요? 그런 말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예수를 보낸 것은 영원히 아들을 바라보며 좋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도 영원을 두고 슬퍼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뜻을 못 이룬 거라구요.
남자로 왔던 역사적인 성인들 가운데 누가 성인 중의 성인이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할 때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법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그 법학을 중심삼고 좋아하는 것처럼 자기의 전문 분야를 중심삼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했던 일을 중심삼고 좋아하는 사람이 여러 가지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분야를 넘어서 가지고 전체의 분야에 적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할 때는 일방적이예요, 사방적이예요? 어디, 여기 할머니들 어때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할 때 일방적이예요, 사방적이예요?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을 할 때 그 사람과 떨어져서해요, 같이 해요? 같이 하지요? 그러면 내가 슬퍼할 때는 떨어집니까, 아니면 그 슬픔을 같이합니까? 같이하지요? 또 내가 기뻐할 때는 떨어집니까, 같이 기뻐합니까?「같이 기뻐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건 아는구먼.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성인은 누구냐? 대답은 간단히 나와 있습니다. 누구일 것이냐? 하나님이 무엇을 기준삼고 좋아하시겠느냐? 사랑을 가지고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 방향을 중심삼은 성인의 가르침은 어떠한 것이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리워하고. 거기에 따라가겠다고 안간힘을 다하는 내용을 가르쳐야 되고, 그렇게 몸부림친 사실을 남겨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가 세계에서 톱(top)입니다. 그는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누구라구요?「아버지요」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그 아버지의 뼛골을 이어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슬퍼지면 자식도 자동적으로 슬퍼진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슬퍼할 때 '아버지 슬퍼해요?'라고 물어보고 슬퍼하는 자식이 있어요? 묻더라도 같이 슬퍼하면서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이라는 정서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최고를 때려잡은 것입니다. 최고를 거머쥐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욕심 많은 예수는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다' 하고 끝냈으면 되었을 텐데, 거기에다 '나는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은 아들이되 독생자다'고 했습니다. 독생자가 뭐예요? 사랑이 있으면 그 사랑을 나누어 갖겠다는 사람이예요. 독차지하겠다는 사람이예요? 독차지하겠다는 거라구요.
사랑을 나누어 갖는 법이 있어요? 사랑을 두고 '야, 너 그만큼 갖고 나이만큼 갖자'고 할 수 있게 되어 있어요? 형제끼리도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서로 내 아버지라고 다투는데…. 어제 내가 청평에 갔었는데 거기에 어떤 남매가 있었습니다. 그 누이가 자기 아버지에게 '내 아버지야' 하고 그 아버지의 무릎에 앉자 그 오빠는 '네 아버지도 되지만 내 아버지도 된다. 네가 아버지 무릎에 앉으면 나는 아버지 등에 업힌다' 하며 한술 더 뜨는 거예요. 앉는 것도 좋지만 등에 업힌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어떤 것이 더 좋으냐고 헤헤 웃으며 자기 아버지라고 하는 것을 볼때, 사랑은 독점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릎에 앉은 동생에게까지도 오빠가 굴복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예수님은 욕심장이였다는 거예요. 또, 예수님은 세상의 수많은 남자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의해서 처음으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 시시한 아들딸들은 다 필요 없고 진짜 아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절대자의 진짜 아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진짜 아들이 되어 가지고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하나님의 살림살이나 맡는 아들이 되면 뭐해요? 밥이나 배부를 때까지 실컷 먹고 살에 기름기만 흐르게 사랑받는 아들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밥을 못 먹고 고생을 하더라도 아버지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면서 아버지 속에 알뜰하게 숨겨져 있는 뜨거운 사랑을 독점하겠다는 아들, 그런 아들이 제일 무서운 아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고, 하나님의 사랑을 내 사랑이라 했고, 하나님이 자신을 빼놓고는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을 보면, 예수님은 성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다른 성인들의 가르침은 인륜, 즉 인간의 생활권에는 들어 갔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심정권까지는 못 들어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말하기를 '나는 신랑이요 너희들은 신부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추종하는 추종자들과 그 주체가 관계를 맺는다면 신랑 신부 이상으로 관계를 맺는 자리는 없습니다. 상대적인 인연을 가지면 그 이상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어디에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고 말한 것입니다.
신랑 신부의 관계이지만 지금은 사랑을 맺어서는 안 됩니다. 끝날에 깨끗이 준비해 가지고 맞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날에 예수가 신랑으로 올 때에 기독교인들은 신부가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부 되겠다는 양반네들 하는 것을 보면 참 훌륭하지요. 아침에 교회에 기도하러 와서는 '하나님, 나 왔소. 어제 아침은 싸웠지만 오늘 아침은 이렇습니다. 타락한 인간이니 어쩔 수 없지 않소? 어제 지은 죄를 용서하시고 …오늘은 모르겠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신부라구요?
그런 신부는 대학교수라 하더라도 발길로 차 버릴 가치도 없는 신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늘나라의 황태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황태자가 그런 시시한 신부를 맞아서 일생 동안 같이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은 사랑이니 그럴 수 있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사랑에도 골수가 있다구요.
또 예수님은 신자들을 대하여 종이라고 하지 않고 형제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가장 정서적인 문제를 전부 규합해 가지고 어디에 못을 박았느냐 하면, 가정에다 못을 박았습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소원하는 근거지는 어디냐? 가정입니다. 가정을 중심삼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고 있는 참아들이 나오면 참딸이 나와 가지고 참부부가 되고, 그 참부부를 통하여 참아들딸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참형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누가 바라는 소원의 기준이냐? 예수가 바라는 소원의 기준입니다. 이것을 갖지 못하면 그것은 낙제예요. 효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 소원의 기준은 예수가 바라는 기준도 되겠지만 예수가 바라기 전에 하나님이 바라시는 절대적인 소원의 기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에는 어떠한 사람이 가느냐? 세상에 있어서 깨가 쏟아지도록 의좋게 사는 어떤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죽으면서 '당신, 나를 만나서 수고했소. 우리 둘의 사랑만은 아주 훌륭했소'라고 할 때, 아내가 '그렇고 말고요. 그것만은 훌륭했습니다'라고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알뜰하게 살아온 너희들이 천국 가정의 모델 케이스'라고 인정을 해줄 수 있겠습니까?
또, 사랑하는 자식이 얼마나 예쁜지 그저 죽어서도 사랑하고 싶다는 부모가 있더라도, 그 사랑하는 자리가 하나님과 예수가 사랑하는 자리와 같은 자리의 사랑으로 공인될 수 있겠어요? 어때요, 공인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것을 공인할 수 있다면 세상은 큰일이 난다는 거예요. 같을 수 있다면 하나님이 구태여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 가지고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종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런 복잡한 문제가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데 있어서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효도하여 청사에 길이 효자의 표준을 남긴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부자의 관계에 있는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심각하게 하나님과 결정적인 문제를 해결하던 그 기준을 대표할 수 있는 효성의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느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상에서 재미있게 잘사는 부부가 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공인 아래서 재미있게 잘사는 부부가 되어야 됩니다. 또, 자식을 낳아서 기르는 데 있어서도 자기들 끼리끼리 관계를 맺어 가지고 자식을 낳아 기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인 아래서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자의 인연을 맺어 가지고 부모면 부모로서 자식을 더 사랑해야 되고, 부부면 부부끼리 더 사랑해야 되고, 형제면 형제끼리 더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오늘날의 이 세계가 사탄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세계입니다. 악한 세계에서 자랑하는 사랑과 선한 세계에서 자랑하는 사랑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악의 세계는 평면적이요, 선의 세계는 입체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 있는 수많은 천군천사 천천만 영인들도, 또 지금까지 왔다 갔던 역사적인 성인 현철들도 모두 그 사랑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내보다 더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요, 부모보다 더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요, 자식보다 더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네 아비나 네 어미나 그 누구보다 날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못 된다'고 하였습니다. 또 거기에 첨부하여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못 된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과 제일 가까운 사람이 되기를 강조한 것도 되지만 자기의 책임감을 제일 강조한 것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의 거점은 어디냐? 예수님이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했던 말과 예수님이 찾아 나오는 소망의 거점과 일치가 되느냐 할 때, 이것은 성경 자체만 두고 보면 모순이요, 상충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과정을 누가 연결시키느냐? 오늘날 이 기독교와 예수와 성신이 연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찾아 나온 것은 무엇이냐? 마음속에 천국을 지닐 수 있는 남성으로서 그럴 수 있는 여성을 맞아 가지고 상대적 권(圈)에 천국 평면 기준권을 성립시키지 않고는 평면적인 지상에 천국은 건설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가 지상에 와 가지고 개인적으로 일치된 천국의 기반은 완성했는지 모르지만 상대인 신부의 환경을 중심삼은 천국의 기반은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소원으로 삼고 기독교가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르며 길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끝날에까지 고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하면, 첫째는 내가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요, 그 다음에 상대를 맞는 것이요, 그 다음에 가정을 이루어 아들딸을 낳는 것입니다. 아들딸은 낳아 가지고 무엇이 되느냐 하면, 자기 씨족의 족장이 되는 것이요, 족장이 되어 가지고 선의 족장들을 거느릴 수 있는 민족장이 되는 것이요, 민족장이 되어 가지고 주권자가 되는 것이요, 주권자가 되어 가지고 하늘 아버지와의 상대적 관계에 있어서 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최고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건 남자가 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 중에 세계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없는 남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욕심을 갖지 않은 남자는 남자가 아니라구요. 사람 축에도 못 들어가는 남자입니다. 그러한 소망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어서 그렇지 일자무식, 왕무식장이일지라도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은 당연한 거예요. 그런 욕심은 인류역사 이래 미래까지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 말에 이의 있어요? 이의 있어요, 없어요? 나도 그런 사람인데 여러분은 어때요? 여러분은 안 그래요? 그런 욕심이 없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못 되는 거라구요. 그런 욕심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우주의 제일 왕초 아니예요? 왕초는 속된 말로 쓰이는 말이지요. 다시 말하면 거룩한 분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세계적인 챔피언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남자, 세계적인 남자가 되어 가지고 세계적인 최고의 상대를 찾겠다고 하는 꿈, 우리 남자 청년들 그런 꿈이 있어요, 없어요? 대학을 가서 학박사가 되고 무슨 장(長)이 되면 고독단신이라도 좋다고 하겠지만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어요. 그래, 과부 되는 게 좋다는 여자가 있어요? 좋아해 보라는 거예요. 홀아비 되는게 좋다는 남자 있어요? 좋아해 보라는 거예요.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 없습니다. 행복이란 상대적인 여건 하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쌍한 남자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천지를 네 마음대로 해라. 하늘도 마음대로 하고 땅도 마음대로 해라'고 했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했을까요? 간단합니다. 그것은 뻔하지 않아요? 천지에 부족함이 없는 안팎의 인격을 갖추어 가지고 '야! 천하야, 나 이러고 싶은데 너희는 어떠냐? 하고 물으면 천하가 '예이, 그리 하소서' 하는 자리를 원했겠어요, 원하지 않았겠어요?
여러분들 예수가 욕심이 없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예수는 욕심장이라구요. 욕심장이예요. 종교의 도주들은 모두가 욕심장이예요.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라는 사람도 욕심장이예요. 욕심이 지독하게 많은 사람입니다. 욕심이 지독하게 많은데 무슨 욕심이 많으냐 하면 다른 사람과 내용이 조금 다른 것입니다. 그 내용이 조금 다를 뿐이지 욕심은 많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욕심이 없을 것 같아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는데 세리는 사람 취급을 못 받았습니다. 세리는 나라의 돈을 긁어다가 로마에 바치는, 나라를 좀먹는 패였습니다. 그러한 세리들과 로마인들을 대하여 예수님은 '하나님, 저들이 행하는 것을 알지 못하여 그러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그들의 종이 되기 위해서 그랬어요, 그들을 예수님의 종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랬어요? 그들을 예수님의 종으로 만들려고 그랬다고 봅니다.
천국을 건설하려면 머리가 좋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천국을 설계하려면 머리가 있어야 돼요. 낫 놓고 기억자도 못 그리는 사람을 데리고 천국을 건설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 머리를 가진 문화인이 필요하다는 거라구요.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가 필요했다구요. 그때에 로마제국은 모든 문화의 집중지였습니다. 그런 로마제국이 필요했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로마제국이 갖추고 있는 문화권, 그 이상의 기반을 꿈꾸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으로는 어림도 없었기 때문에, 이 다음에 써먹을 수 있는 소망을 두고 그들의 죄에 대하여 용서를 빌었던 거라구요. 이 다음에 종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 예수가 하늘땅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면 천하에 일인자가 되었겠어요, 안 되었겠어요?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데 있어서는 폭군같이 총칼로 위협하여 강제로 굴복시켜 가지고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무엇인지도 모르게 만민이 굴복할 수 잇는 인격의 권(圈)을 가지고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일인자가 되면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갈 것이냐? 세계의 군왕이 되어 가지고 세계의 모든 대통령들을 만나고,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매일 조회를 하고, 국가를 다스리는 법을 중심삼고 가르치고 하는 것으로 끝나겠어요? 그렇다면 예수는 고독한 사람이라구요. 그러니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이냐? 상대를 찾아가야 되는 거라구요. 예수 믿는 사람은 똑똑히 알라구요. 무엇을 해야 될 것이냐? 예수가 남자예요, 여자예요? 오늘 처음 온 기독교인들 기분 나빠요? 기분 나빠해도 할 수 없다구요. 내가 하는 말은 진리이니까.
남자가 태어날 때 여자가 없을까봐 걱정하면서 태어나요? 여자가 있는줄 알고 남자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염려하고 태어난 사람이 있어요? 남자로 태어날 때는 여자가 있는 것을 알고 태어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그렇게 생겨났습니다. 또, 여자도 이미 남자가 있는 것을 알고 태어나는 거라구요. 그렇게 태어나는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냐?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 말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밥도 안 먹고 변소도 안 가는 줄로 알고 있어요. 거룩해서? 그 거룩하다는 것은 무엇이냐? 밥도 안 먹고 그저 졸장부로 앉아서 입맛을 짝짝 다시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비가 쌍쌍이 날면 이것이 최고로 거룩한 것이라구요. 봄이 되어 철새들이 날아와 지저귀는 데는 혼자서 지저귀는 거예요? 참새가 혼자 짹짹거려요? 반응이 없는데 아무리 지저귀어 보라구요. 그래 봐야 망하지 별수 있어요.
예수님은 성인인데, 성인의 갈 길이 어디냐?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인격자가 되어 가지고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갈 거예요? 나라로 해서 세계로 나가 가지고 세계 끝에서 하늘로 둥둥 올라가겠어요? 어디로 가겠어요? 제자들을 중심삼아 가지고도 거느리고 그 다음에는 가정을 가질 남자로 태어났으니 가정을 찾아갈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그러니 예수의 한이 무엇이냐 하면 남자로서 할 일을 못한 것입니다. 예수가 가정을 가져 보았어요? 가정의 주인으로서의 예수가 되어 봤어요? 신부를 맞이하기 위한 신랑으로서의 예수는 되어 보았지만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예수는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아버지로서의 예수가 되어 보았어요?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라고 하지만 예수를 대하여 반말로 아빠라 부르고 예수의 수염도 뽑고, 등에도 올라가고 머리에도 올라가고 그러는 아들이 있었어요? 아들이 자기 아버지에게 그렇게 한다면 죄가 되겠어요? 아빠로서의 예수가 되어 보았어요? '남자로 태어나 아빠가 되지 못한 것, 그거 복이구만' 하는 남자 있으면 손들어 봐요. 아빠 되고 싶지 않은 남자 있어요?
예수가 아빠가 되었다면 그 다음에는 사위를 얻고 싶겠어요, 안 얻고 싶겠어요? 며느리도 얻고 싶겠어요. 안 얻고 싶겠어요?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예수와 우리가 다른 것이 뭐 있어요' 할지 모르지만, 족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 뿐이지. 다른 게 뭐 있나요? 예수가 아들을 키워서 며느리를 얻어 가지고 그 며느리를 사랑 안 하고 싶겠어요? 또, 사위를 얻어 가지고 '이 도둑놈 같으니… 나에게 인사도 안 하고 우리 딸을 도둑질해 간 녀석' 이렇게 생각하겠어요? 사실은 도둑질해 간 것이지요. 며느리는 모르지만 말이예요. 딸을 도둑질해 간 것은 사위라고요. 그런 사위를 사랑하고 싶겠어요, 몽둥이로 머리를 때리고 싶겠어요?(웃음) 사랑한다구요. 그런 장인으로서의 예수가 되어 보았어요?
그래, 장인으로서 예수가 된다면 예수의 가치가 떨어질 것 같아요? 심정적인 면에서 인간다운 맛이 더 크면 컸지, 그런 것을 못 느끼는 남자 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가 족장이 되어 가지고 죽기 전에 아들 손자가 한 30명, 70명, 100명쯤 되어 가지고 예수의 일족을 이루어 놓았으면 예수의 기분이 어떠하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이렇게 생각할 때, 예수가 찾는 신부는 어떠해야 되겠느냐? 예수가 찾는 형제는 어떠해야 되느냐? 예수에게는 아들딸이 없으니, 우리가 아들딸 되는 데는 예수에게 접붙여 가지고 양자가 되는 거예요. 가짜를 면한 아들과 형제밖에 못 되는 거라구요.
자, 시간도 많이 지났으니 이제 결론을 내립시다. 천국이라 했는데, 천국이 어디냐? 네 마음에 있다 하던 그 천국이 어디냐? 그것이 예수가 찾아오는 환경적 천국과 상치될 수 있는 내용이냐, 순응할 수 있는 내용이냐? 상치되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순응의 도리로써 들어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환경적인 천국이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지상천국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상천국을 원하지요? 지상천국에는 남자들만 살겠어요, 여자들만 살겠어요? 남자들이나 여자들만 살아 가정을 이루지 못한다면 1세기 이내에 몽땅 망해요, 안 망해요?「망합니다」 그러면 망할 천국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뭐예요? 가정이라구요.
그러면 어린양잔치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계획서대로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가 모델형으로서 딱 들어맞는 실체형이 나와 가지고, 하나님이 비로소 됐다 할 수 있는 그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를 품고 '오냐,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다'라고 선포식을 하는 것이 어린양잔치입니다. 즉, 결혼식이라구요. 도깨비 사촌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신부를 찾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부의 도리를 따라 가려 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본연의 기준을 상실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병든 사람을 병나기 전의 본연의 자리로 복귀시켜 놓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 하나님이 하시려 했던 그것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시려 했던 것이 무엇이냐? 양손에 붙들고 사랑에 취해 가지고 영원히 놓을 수 없고, 밤이나 낮이나 지옥이나 천국이나 어디를 가든지 '내 딸아, 내 아들아 오라 오라' 할 수 있는 아들딸을 가지려 하신 것입니다.
부모에게는 자녀를 찾아갈 권리가 있는 것이고 남편에게는 아내를 찾아갈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또, 형님에게는 동생을 찾을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혈통이 같고 사랑의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전부 다 첫사랑의 인연에 관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첫사랑에 관계되어 있지요? 부부도 첫사랑에 관계되어 있지요? 형제도 첫사랑에 관계되어 있지요? 거기에는 주관의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첫사랑은 누구를 중심삼고 관계맺어야 되느냐? 사탄을 중심삼고요?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첫사랑을 맺어야 되는데, 이것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세상이 요동판국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동판국이 된 이 세상을 공식 법칙을 통하여 내밀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악의 세상 위에 하나의 거점을 만들어 가지고 악의 세계와 한판 싸움을 하기 위하여 출발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출세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을 출세시키자는 거예요, 하나님을 해방시키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해방시키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통일교인은 그것을 위하여 결의를 하고, 그것을 위하여 개척자가 되고, 그것을 위하여 수난의 노정을 극복하며 가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도 그것을 하기 위하여 모인 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그것을 위하여 초월하고 교파를 초월하여 단 하나의 목적 기준에 귀일되어야 할 공동적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천국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들은 지금 마음의 천국을 이루었어요? 어떤 목사들은 '내가 목사생활을 40년 50년 했으니 이제 나는 천국에 가겠지'라고 하겠지만 분석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이란 영원한 곳입니다. 영원히 가는 곳입니다. 그곳에 영원히 가려면 지대(地帶)가 수평이 되어야 됩니다. 천년이 가도 만년이 가도 수평이 되어야 된다구요. 기울어지면 안 됩니다. 영원히 수평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나의 수평기준은 무엇이냐?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수평이 되어 있습니까? 이것이 문제라구요. 예수님은 말하기를 '네 마음에 천국이 있다'고 했습니다. 천국은 영원한 나라이기 때문에 영원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수평기반이 되어야 됩니다. 수평기반이 되려면 마음이 수평이 되어야 하고, 몸도 수평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수평기준이 높고 몸의 수평기준은 낮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되어야 됩니다. 몸과 마음이 영원을 두고 완전히, 절대적으로 하나되는 곳에서 천국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적으로 하나되는 데는 누구를 중심삼고 되어야 되느냐? 천국의 기준이 누구냐? 예수님이 나왔기 때문에 예수님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정서적인 문제에서부터, 마음 몸의 문제, 생활적인 문제에까지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천국은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러한 내용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천국의 거점이 어디냐? 가정이냐? 아닙니다. 가정이 천국의 거점이 되기 전에 나 자신이 그 곳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나인데 나의 어디냐?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과 수평이 되어야 됩니다. 마음이 하나님과 수평이 된 그 기준을 거점으로 하여 몸도 수평이 되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싸웠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도 그런 기도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자기의 마음의 일치점을 중심삼고….
예수님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일치점을 이루면 그 일치점을 중심 삼고 그 터전 위에 하나님의 뜻이 예수님의 마음에 옮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념이 예수님의 마음에 옮겨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이 하나되는 데에서는 하나님의 내적인 천국 사상이 예수님의 마음속에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일 신, 부자일신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일신(-身), 하나되는 데는 뭐가 있어야 되느냐? 돈도 아니요, 다른 무엇도 아닙니다. 그것은 정서적인 문제입니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고 나는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사랑 문제가 아니고는 묶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기준, 예수가 하나님의 사상과 일치되었던 그 사상을 이어받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사상이 절대적이면 예수님의 사상도 천만년의 세계역사가 아무리 몰아내려 하더라도 꺾을 수 없는 사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상적 기반을 중심삼고 몸을 일체화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 마음은 주인이 둘이예요. 하나예요? 주인이 둘이라구요. 이게 다르다구요. 그래서 천국을 못 이루는 것입니다. 두 주인이 싸우는데 천국이 이루어지겠어요? 사도 바울도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고 탄식했습니다. '오호라 고한 사람이다'고 괴로 와하는 사람이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천국은 싸움이 평정되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싸움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그러면 여기에서 무엇이 원수냐?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원수입니다. 몸뚱이가 원수라구요. 그래서 종교는 이 몸뚱이를 때려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때려잡는 방법은 마음에 강한 몇 배의 힘을 넣어 가지고 몸뚱이를 끌고 가게 하는 것입니다. 몸뚱이에 어린아이가 달렸더라도 끌고 가는 것입니다. 개구리에다 전기를 통하게 하면 개구리가 사지를 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힘의 세계가 있어요. 그 힘만 얻게 되면 가만히 있을지라도 세포가 터져 나가는 것과 같은 힘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러한 방대한 발전소가 있을 때 이 발전소에 배선만 해 놓으면 전등에 불이 들어오지 말래도 들어오는 것입니다. 선만 연결시켜 놓으면 그 촉수에 따라 전기불은 순식간에 들어오는 거라구요. 그런 힘의 발원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힘의 발원지에 몸뚱이가 접하게 되면, 그 몸뚱이가 아무리 악하고 반대하더라도 그 반대하는 것을 이끌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끌고 몇 고개를 넘어서면 비로소 거기에서 기권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동원이란 말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몸뚱이를 강제로 때려잡아야 됩니다. 먹이지 말고 입히지 말고 고생을 시키라는 것입니다. 종교의 수도 방법은 이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여러분이 제일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이냐? 사탄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탄의 대왕이 누구냐 하면 내 몸뚱이입니다. 양심은 하늘나라의 초소이지만, 몸뚱이는 하늘나라의 초소가 아닙니다. 사탄나라의 왕궁이에요, 왕궁. 사탄은 여기 세계의 제일이 되겠다고 합니다. 그러한 몸뚱이를 때려잡기 위해서는 이 세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져야 됩니다. 나라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져야 되고, 민족과 가정과 자기의 정서적인 문제와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체의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권을 갖지 않으면 불안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길은 육신을 중심삼는 것이 아니라 육신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의 문선생이 이런 얘기를 하기 때문에 비난을 받고 지탄을 받고 있지만, 나 자신이 그러한 사실을 알기 때문에 몸이 싫다는 것을 다 하라는 것입니다. 몸을 부정하라는 거예요. 이것이 참된 종교입니다. 몸은 사탄세계의 거점이라구요. 하늘나라의 거점이 있고 사탄세계의 거점이 있으면 둘이 싸움이라든가 아니면 무엇이라도 해야 전진이나 후퇴가 벌어질 것이 아니겠어요? 몸은 세상을 중심삼은 악의 입장이기 때문에 무엇을 위주하는 것이냐? 자기를 내세우는 주의입니다. 이런 거예요. 자기를 내세우는 것이 타락의 첫걸음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법도는 무엇이냐? 공의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사적인 것은 사탄 것이요, 공적인 것은 하나님 것입니다. 여러분은 공의를 위하여 가야 됩니다. 그런 노정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거기에 침해를 받지 않고 어려운 길도 생명력을 가지고 가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는 봄을 맞이하는 천국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공산주의의 찬바람이 불고 민주주의의 부패의 냄새가 풍기더라도 거기에 침범받지 않는 무리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이요, 승공정신입니다. 이런 사상을 갖게 됨으로 말미암아 침범을 안받게 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시대에 있어서 하나의 씨, 즉 알맹이를 지니고 자기 자체의 모습을 그 환경에 여실히 다 드러낼 수 있는 자신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인격을 갖추어야겠습니다. 그러한 사랑을 심었기 때문에 그러한 사랑을 거두어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가을 절기는 거두어 들일 때입니다.
그러면, 통일방안이 어디에 있느냐? 세계주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세계의 민주주의를 가지고 아무리 만들려고 하지만 그거 돼요? 안 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제품을 만들려면 먼저 부속품을 올바르게 만들어 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여러분 자체의 사람을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완전한 공장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완전한 종교입니다. 완전한 종교를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통일방안은 대한민국 남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차체에서 싸우고 있는 몸과 마음의 싸움을 어떻게 싸우지 않게 하고, 마음이 주도권을 잡고 평화의 기준을 유지시킬 수 있는 몸의 권을 어떻게 갖느냐? 그 몸을 연결시키면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제자들은 예수님이 로마제국을 일시에 점령해 가지고 이스라엘의 군왕으로 군림하게 되면 자기들은 한 자리씩 해먹을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먼저 내 마음 가운데 천국의 기반을 닦아야 되고, 그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이것이 제일 큰 문제인 것입니다. 천국은 내 자신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거점은 내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없는데 세계가 좋아지면 좋겠어요? 자기가 있어 가지고 세계가 좋아지기를 바라죠? 그렇죠?「예」 여러분은 죽는 자리에는 빠지고 싶어요, 가담하고 싶어요? 빠지고 싶지요? 나이 많은 70세 80세 노인이라도 죽는 자리만은 빠지고 싶어한다구요. 여기 할머니, 죽을 자리에는 빠지고 싶어요, 가담하고 싶어요? 나이가 많으니 앞으로 살아야 얼마나 더 살겠느냐고 하지만, 나이 많은 사람들도 죽을 자리는 싫지요? 그거 왜 그럴까요? 나이가 많아지면 점점 늙어지고 비참해지기 때문에 죽고 싶다는 사람이 많아야 할 텐데. 세상 사람들을 보라구요. 쪼글쪼글하게 늙은 얼굴을 해가지고 맨날 '아이고 죽기 전에 이러이러한 것을 보고 죽어야 할 텐데' 하는 거예요. 그 말은 무슨 말이냐? 죽기 싫다는 말 아니예요? 이것이 문제라구요. 이 세상에서 자기를 빼놓으면 다 싫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축에 못 들어가는 사람 이상 불쌍한 사람이 없는 거라구요. 병신이라는 것은 보편 타당한 정상적인 축에 끼지 못하는 것이지요? 병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항상 자기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행복해야 되겠다 할 때,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몸은 편안하지만 마음이 심각해 보라구요. 그런 입장에서 고기를 먹고 남보다 두드러진 생활을 한다고 해서 '이 정도면 됐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돼요, 안 돼요?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가지고 바라보는 것마다 탐을 내고 춤추고 싶어해야 되는 거예요. 몸과 마음이, 속 다르고 겉 다른 사람이 인격 자예요? 선한 사람이예요? 아니라구요. 속 꼴과 겉 꼴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의 거점은 여러분 자체라는 거예요. 그러니 몸과 마음이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통일하는 방안이 무엇이냐? 이것을 가르쳐 주고 넘어가자구요. 그것을 이야기해 줄까요?「예」 통일교회 원리를 보면 타락성 근성이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되어서 타락했느냐?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중심삼고 믿지 못했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믿지 못했습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실감나게 알아야 됩니다.
그저 예수만 믿으면 천국 간다고 하지만 어디가 중심이예요? 그저 믿는다고 하지만 어디를 중심삼고 믿는다는 것입니까? 자기를 중심삼고 예수를 믿으면 안 되는 거예요. 예수를 중심삼고 믿어야지요. 예수의 사상을 중심삼고 내가 결심을 해야 돼요. 예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내가 결심을 해야 되고, 예수의 심정을 중심삼고 내가 결심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믿어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되자는 것입니다. 그 목적관이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첫째는 믿어야 됩니다. 누구를 중심삼고 믿어야 되느냐? 주체를 중심삼고 믿어야 됩니다. 절대적으로 그 주체와 하나되어야 됩니다.
왜 그렇게 믿어야 되느냐? 왜 신앙을 강조하느냐? 하나님은 높은 자리에 있고 인간은 너무나 낮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인간이 조건적으로 타당성 있는 무엇을 다리로 놓아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올라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상으로는 6천년이라고 하지만 몇천만 년이 되는 거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입니다. 갈래야 갈 수 없는 길이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독생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국가적인 차원에 있어서 한 국가가 세계를 위하여 3분의 1을 투입할 수 있는 입장에 서면, 이러한 국가 3개국이 협조하면 한 나라의 예산을 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10개국이 협조하면 3개국을 해방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한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목적을 가지고 가는 것이 통일의 길입니다. 통일의 길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천국의 길을 고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길에서만이 천국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 길 외에는 없습니다.
자기를 위주한 이 세계적인 사조의 종말기에 있어서는 그 길이 막혀 버렸기 때문에, 남을 위주하여 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돌아설 수밖에 없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이것을 아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길을 극복해 나오시면서 개인으로부터 그러한 사상을 바라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동원해 가지고 이 지구상에 천국을 건설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철두철미한 자아로부터 가정 기반을 모색하여 뜻을 연결시켜 가지고 동포애를 넘은 심정의 유대를 세계화시키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군림하시는 천국이 될 것입니다. 그 나라에는 슬픔이 있기 전에 기쁨과 희망이 넘칠 것이요, 고통이 있기 전에 고통을 책임질 수 있는 세계인이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세계가 천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천국의 거점이 여러분의 마음, 심정세계로부터 연결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 조상들이 걸어온 길은 십자가의 길이 아닐 수 없는 것을 잘 알았사옵니다. 인류 조상들이 응당히 가야 할 노정에 있어서 아버님이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희생의 길을 걸어오신 것을 생각하게 될때, 이 뜻을 알고 난 저희들은 전통적인 사상을 이 시간에 엄숙히 이어받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저희들을 일깨워 주시옵소서.
오늘날 나 아무개라는 이름은 자기를 중심삼고 불려졌지만, 아버님께서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소망의 심정이 깃든 가운데 저희를 찾아오셨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당신의 수고의 걸음, 그 노정 위에 반기를 들고 반대의 화살을 던졌던 선조들의 입장을 대신 탕감할 수 있는 후손의 가치를 지녀야 할 자신들인 것을 알았사오니, 아버지여, 이 자리에 부복한 저희 자신들이 당신의 소원에 일치될 수 있는 거룩한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모습들이 되겠다고 맹세하는 거룩한 순간이오니, 굽어살피시옵소서.
나를 밟고 넘어 찾고 싶은 가정을 찾고, 그 가정을 넘어 찾고 싶은 종족을 찾고, 그 종족을 넘어 찾고 싶은 국가를 찾고, 그 주권을 찾아야 되겠사옵니다. 민족과 국가의 관념을 초월하고 국경을 초월하고 모든 문화와 습관적 인연을 초월한 기준에 있어서, 저희의 전통적 문화의 기준은 아버님이 거동하시는 생활, 일보의 출발로부터 이루어지고, 저희가 자랑할 수 있는 모든 역사적 기원은 당신이 거동하실 수 있는 가정의 기원으로부터 이루어져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엄숙히 그 기준에 화합할 수 있는 개체의 모습과 가정의 모습을 갖추어야 함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그것을 준비하여 완결짓고 완비할 수 있는 생활권을 갖추어 나가야 하는 저희들은 누구보다도 불쌍한 자리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사오니, 그러한 저희들의 갈 길을 지켜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부족한 자식이 서 있사옵니다. 제가 저 자신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사옵니다. 아버지의 사정이 이렇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 아버지의 눈물이 제 앞에 있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아버지께서는 늘 저보다 먼저 눈물을 흘리는 자리에 서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저는 목이 메이고 가슴이 메이는 사정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께서 불쌍하시다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것을 무엇으로도 갚아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 적마다, 일시에 쓰러지는 거름이 되더라도 그 길을 가기를 바라는 것이 이 자리에 선 자식의 마음이옵니다. 아버지의 효의 도리를 그려 가는 아들딸이 지켜야 할 전통적 사랑의 뜻을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이 이어받게 하여 주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 몸이옵니다. 당신과 더불어 죽는 자리에 있어서, 당신의 동정의 눈물이 사방을 감싸는 자리를 아니 가려고 해도 당신은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그 자리를 도리어 무섭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저희의 입장을 느끼면 느낄수록 고마우신 분은 아버님이요, 사랑의 주체이신 분은 아버님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인류역사노정에 있어서 이 땅에 살고 있는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당신의 심정을 더듬어 외로운 당신의 마음을 알아 그런 길을 가지 말라고 당신의 옷자락을 붙들며 갖은 수난길을 가로막고 통곡하는 무리를 만나게 되면, 당신은 그러한 무리를 붙들고 얼마나 통곡하시고 얼마나 사랑하고 싶어하시는가를 저희들은 느끼게 되옵니다.
그럴 수 있는 내적 사정이 통일교단이 걸어 나오는 배후의 터전이 되기를 바라고 나온 지금까지 그 길은 슬픔의 길 같았지만 당신은 그 길에서 승리의 일로를 다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아무개를 칭찬하기 전에 당신께 감사드려야 할 저희 자신들이요, 책임자들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천국의 근거지는 저 자신으로부터임을 알았사옵니다. 천국을 찾아 나오는 기준이 어디고, 아버님과 갈라져 슬픈 날을 맞이했던 인간들이 다시 아버지와 상봉할 수 있는 거점이 어디냐고 묻게 될 때, 그 자리는 만민이 함성을 지르고 환영하는 자리가 아니라 비통과 비애의 소리가 교차되는 처량한 자리요, 핍박의 화살이 날아드는 자리요, 죽음이 엇갈리는 자리이옵니다. 그러한 자리가 아버지와 저희들이 만나는 상봉의 자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 억울한 사실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저희들은 당신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기를 원하는 무리이오니, 저희들이 당신 이상의 수난길을 가겠다고, 몸부림침으로 말미암아 땅 위에서 살고 있는 아들딸로서 당신을 통곡시킬 수 있는 역사가 한두 번이 아니라 수없이 많아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타락한 세상에 있어서도 자신의 영광을 밟고 넘어서면서, 자기의 체면과 위신을 상실하면서도 어버이를 위하는 길을 가는 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흐르는 눈물로써 그 아들의 복을 빌어 주고 그 아들의 울타리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될 때, 저희 통일교회 무리는 아버지를 위하여 효성의 도리를 다하는 자리를 그리워하고, 세계를 위하여 죽음의 수난길을 먼저 가겠다고 앞을 다투어 가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가는 이 길 앞에는 아버지의 눈물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이는 망하는 자리에 가도 망하지 않고 죽음의 자리에 가도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천국이 그립사옵니다. 아버지와 상봉하는 십자가의 수난길에 있어서 세계적인 도상을 넘고 평화의 안식처를 맞이하여 만민이 하늘의 소원 앞에 전부 기억할 수 있는 그날까지 저희들은 가일보 전진에 전진을 다짐하고, 맹세에 맹세를 하고, 자각에 자각을 하여 부디 최후의 전선까지 남아지는 무리가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 승리를 봉헌해 드리고, 아버지의 아들딸로서 상속받을 수 있는 그 자리까지 싸워 남아지는 무리가 되어야 된다는 사실을 이 시간 확실히 깨달아 천국을 건설해 가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날의 소원을 비운의 당신과 더불어 인연을 맺기 위하여 희생의 길 수난의 길을 기꺼이 책임지고 가는 개척자의 길과 십자가와 선봉의 자리를 서로 다투어 지키겠다고 하는 무리가 통일의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길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오늘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세계의 선교지에서 이국 땅에서의 슬픔의 날들을 맞이하며 스승 만나기를 고대하는 그들의 간곡한 소원을 성취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그러한 자리에 그 나라를 구하기 위한 사랑의 주인공으로 섰사오니. 당신의 인연을 묶어 주기 위해 온갖 정성을 들이는 그들 위에 당신의 무한한 사랑의 손길로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만복의 소원인 안식의 동산을 위하여 세계 만민의 해방의 기치를 들고 제3차 해방권을 바라고 나가는 통일의 소망세계 위에 당신의 축복의 인연으로 영원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모든 전체를 당신이 주관하여 주신 은사를 고맙게 생각하옵니다. 이 자리가 내일의 보다 가치 있는 자아를 발견하고 자각하는 자리로, 새로운 오늘을 맞을 수 있는 계기와 동기가 된 시간으로서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거룩한 이름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늘 당신께서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용서로 저희들이 가는 노정 위에 같이하여 주신 것을 생각할 때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아버님,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아들들은 통일의 운명을 가름지어야 할 중차대한 사명이 두 어깨 위에 짊어지워져 있는 것을 자각하는 무리이옵니다. 역사상에 없었던 참의 노정을 진정으로 깨닫고 참의 실체의 제물로서 당신 앞에 봉헌하려는 이들의 모습을, 아버지, 거룩히 보시옵소서.
만민을 자기가 책임지고 나선 자리, 백성의 생명을 책임지고 나선 자리, 혹은 자기가 처해 있는 군이면 군, 면이면 면에 있는 뭇 생명들을 책임지고 나선 자리는 홀로 아버님과 상관을 맺어야 할 제물의 자리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진정 아버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자기의 가치가 어떤 것인가를 확정지어 가지고, 당신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요 완전한 분이시기 때문에 당신 앞에 바쳐지는 하나의 제물도 완전한 것으로 바쳐지 기를 바라는 마음 가지고 온갖 정성을 다 드리고, 온갖 충성의 마음을 갖고 아버지 안에 드려지는 생활과 생애노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한 생명이 심어짐으로 말미암아 뭇 생명이 거두어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와 마찬가지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복을 받기 위해서 이길을 가는 것보다는 복을 주기 위해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민족을 통하여 저희가 행복된 자리에 나가기 위한 것보다도 저희를 통하여 민족을 행복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책임을 짊어진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좋기 위하여 가는 길이 아니라 전체를 좋게 하기 위해서 나선 길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길을 스스로 가는 데 있어서 저희가 낙망하고 외로워하는 자리에 설 적마다 자기 홀로 남아 있을 때는 더더욱 그럴 수 있는 것이지만, 외로운 민족과 외로운 인류와 외로운 하늘을 대신하여 바쳐질 수 있는 몸이기에, 저희들은 응당히 외로워야 되고 응당히 고독해야 되고 응당히 희생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그 누구보다도 잘사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요.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환경에 있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전체를 대신하여 제물적인 자리에 서서 스스로 불쌍하고, 스스로 억울함을 당하고, 스스로 고통을 당하는 자리가 나 자신이 망하지 않는 동시에 뭇 백성도 하늘도 망하지 않게 하는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교회를 책임진 교회장의 자리는 지극히 심각한 자리인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남의 생명을 책임지는 것은 그 생명 이상의 생명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인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 스스로의 생명의 힘을 가지고는 사망권내에 있는, 사탄 앞에 사로잡혀 있는 생명을 빼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스스로의 생명의 힘을 넘어 당신의 생명력을 바라고 있는 것이 저희들의 입장인 것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먹고 활동하는 모든 일체는 생명의 근원을 강화시켜 가지고 사망세계에 있는 생명들을 이끌어 하늘의 군병을 만들기 위한 책임을 짊어진 각자로서 하는 것임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하는 모든 행동은 저희들 스스로의 행동이 아니옵니다. 저희들은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몸이옵니다. 저희가 행동을 하게 될 때는 하늘과 더불어 의논하고 행동해야 되겠고, 당신이 가시고자 하는 걸음을 따라갈 수 있는 일상생활이 되어야 되겠고, 저희들이 말을 할 때도 내 스스로의 말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이 하고자 하시는 말을 해야 되겠습니다. 식구지간에 인연을 맺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자기의 어떠한 소신을 피력하여 맺는 것보다도 당신의 사정과 심정과 소원의 뜻을 맺기 위해서 말을 하고 소신을 피력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 앞에 간구함이 있으면 그 간구는 자기 일개인에 한한 것이 아니라 전체를 대표하여 아버지 앞에 바쳐질 수 있는 제물권을 위한 기도여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자기 개체로 말미암아 자기 가정이, 자기 가정으로 말미암아 자기 교회가 전체를 대신하여 제물이 되는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여기에서 민족의 새로운 길이 열려질 수 있는 것이요, 세계의 새로운 빛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요, 아버님의 한스러웠던 역사적인 노정이 해방될 수 있는 기원이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이번에 여기에 당신의 아들들이 모인 것은 이 한 장소를 중심삼고 무슨 인연을 맺기 위한 것보다도 이 모임을 통하여 새로이 발전하고 새로이 다짐하고 새로이 결속하기 위해서이옵니다. 이들은 기쁜 마음을 가지고 인연되어진 이 자리에 왔사옵고, 아버님의 심정을 통하여 자신들의 심정을 다시 공고히 해 가지고 내일에 해야 할 사명 앞에 강하고 담대한 자체를 세우기 위해서 왔사옵니다. 지금까지 연약한 모습으로 강한 생명을 전달하지 못하였던 것을 후회하고 있사오며, 과거에 불충하였던 자기 자신을 직고하면서 오늘에 충성의 무리가 되기 위해서 모였사오니, 아버지여, 현현하시어서 각자가 소신을 가지고 자신을 주관하게 하시옵고, 과거의 자신과 다른 오늘의 자신을 발견하고, 내일의 힘찬 행보를 내딛는 주인이 될 수 있게 해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 수련회를 마칠 날도 며칠 남지 않았사옵니다. 내일과 모레, 이기간에 저희들은 당신 앞에 새로운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새로운 맹세를 하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이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게 될때, 이 운명을 이 나라의 백성들에게 책임지울 수 없는 것이요, 이 나라의 어떤 주권자에게도 책임지울 수 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오로지 아버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의 심정을 땅에 끌어내릴 수 있는 아들딸이 없다고 할 시에는 이 나라 이 백성의 갈 길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보잘것없는 저희 들이나마 아버지의 심정을 땅에 끌어내려 가지고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극과 격려와 감동의 인연을 만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각자가 되기 위해서 모인 무리가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교회장인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에게 힘을 더하여 주시옵고,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고, 자신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는 아버님을 믿고 바라보고 나가는 자에게는 늘 같이하시고 협조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제 이들이 마음 가운데 새로이 아버님을 기억하면서 이 민족과 이 세계 앞에 당신이 원하시는 발판을 닦는 데 충실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남은 날도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은사와 분위기로써 저희들을 지도하여 주시옵고 이끌어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섭리노정이라는 것은 탕감을 거쳐 가지고 발전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 탕감을 요하는 자리는 반드시 제물이라는 요건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탕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제물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대신 희생하는 것입니다. 대신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어떤 결과가 나타나느냐? 지금까지 이 땅 위에서 어떠한 소유물도 갖고 있지 않던 하나님이 제물적 조건을 세워 가지고 새로운 소유권을 확대시킬 수 있는 입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입장을 결정짓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물을 내세워 가지고 희생시키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대가를 치르는 조건으로 제시되는 것이 제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제물이 크면 클수록 혹은 그 제물을 드리기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거기에 비례해 가지고 하나님이 찾아 나오시는 소유의 권한도 커지고 넓어진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를 대해서 어떤 소유를 결정하려는 뜻이 있다 할진대 그 민족은 제물의 민족이기 때문에, 그 민족이 오랜 역사과정을 통해 제물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민족 전체가 범위를 크게 넓혀 가지고 바쳐지게 될때, 거기에 비례하여 하나님의 소유권의 판도가 넓어지는 것 역시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제물은 피를 흘리지 않고 바쳐진 때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피를 흘려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희생을 하지 않고는 제물이라는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약시대를 두고 보면, 구약시대에는 만물이 제물이 되었습니다.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거나 혹은 자기가 귀하게 여기던 물질을 하나님 앞에 바쳤습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있는 물건을 갈라내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바쳤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칠 때에는 그냥 바칠 수 없습니다. 그 제물을 쪼개서 바쳐야 됩니다. 이렇게 바친 제물을 하나님이 받았다 할 때는 바쳐진 그 가치의 내용에 준하여 사탄세계는 상대적으로 무너져 나가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이렇게 만물을 제물로 드렸고, 신약시대는 예수를 제물로 드렸습니다. 즉, 아들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 다음 성약시대는 부모를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를 제물로 드린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심정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생명의 기원이 될 수 있는 혈통이 더럽혀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더럽혀진 것을 탕감하려면 반드시 부모가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부모가 하나님의 새로운 소유권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제물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6천년 복귀역사를 통틀어 보게 되면, 만물을 제물로 바치던 시대와 아들을 제물로 바치던 시대, 그 다음에는 부모를 제물로 바치던 시대로 구분됩니다. 이것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심정의 유린을 받은 것과 실체의 유린을 받은 것과 만물의 유린을 받은 것을 탕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관을 받아야 할 모든 물건이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반대로 사탄의 주관을 받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심정의 기원도 사탄의 것이 되어 있고, 실체도 사탄의 것이 되어 있고, 만물도 사탄의 것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 것이 된 동기, 그 기원은 무엇이냐? 그것은 혈통입니다. 혈통으로 말미암아 이런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즉. 사랑을 중심삼고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짓된 생명의 기원으로 말미 암아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된 동기는 사랑과 생명을 걸고 있기 때문에, 복귀노정에 있어서도 어느 시대나 반드시 이 동기를 걸고 제물을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물을 바치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생명을 대신해서 바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바쳐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인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래 아담 해와가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명을 잃어버린 입장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찾아 복귀해 나가는 데는 반드시 사랑을 중심삼고 생명을 희생하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은 타당한 이치입니다.
복귀라는 것은 창조법도에 따라서 다시 창조해 나오는 재창조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먼저 지었고, 그 다음에 인간을 지었습니다. 그 후에 인간이 완성해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을 성립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본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던 과정이기 때문에, 이 법도에 따라서 다시 찾아 나오는 재창조 역사과정이 섭리의 노정입니다.
그런고로 구약시대는 만물을 통해 가지고 제물을 드렸는데, 그 제물은 반드시 사랑과 생명을 가려내는 입장에 서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삼고 볼 때도, 새로운 사랑과 새로운 생명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옛날에 받았던 그 사랑과 생명의 기원을 희생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의 입장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사랑과 새로운 생명의 기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인간들이 갖고 있고 지금까지 가정의 기원이 되었던 사랑이라든가. 부모로 말미암아 혈통적 인연을 거쳐 가지고 태어난 그 생명을 그냥 그대로 유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참부모의 자리를 혹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자녀의 자리를 결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리적인 입장에서 볼 때 타당한 결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이라는 것은 반드시 생명과 사랑이 가해져야 됩니다.
사탄세계의 생명을 받은 우리 인간들, 사탄세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우리 인간들, 그 인간들로 말미암아 만물을 잃어버렸습니다. 만물을 잃어버린 동기에 생명과 사랑이 전부 다 걸려 있기 때문에, 만물을 복귀하는 것은 새로운 사랑과 생명을 찾아 나오는 길입니다. 새로운 사랑의 길과 생명의 길을 찾아 나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만물도 인간과 같은 입장에 연결시켜야 됩니다. 만물과 인간,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시켜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을 사람이 드리는 것입니다.
그 제물과 사람과는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심정을 통해서는 하나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물은 사람이 사랑하는 물건이어야 됩니다. 사랑하는 물건이 아니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물건인 동시에 그 사람의 피살을 대신한 입장을 대표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 것이 제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귀한 것입니다. 그런 것이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물을 제물로 드린다고 하더라도, 제물을 드리는 사람하고 제물이 연결되고 그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감정은 하나님으로부터 연결되어 나와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의 희망, 새로운 생명의 소망을 가지고 제물을 연결시켜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사람의 기원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이루어졌고, 그 사람이 이루어진 동기는 거짓 사랑과 거짓 생명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참생명과 참사랑을 동기로 하여 제물과 하나되어야 됩니다. 하나되는 데는 어떻게 하나되어야 하느냐? 제물을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물이 희생하는 데 있어서 슬퍼해야 되느냐. 기뻐해야 되느냐? 구약시대의 예를 보게 되면.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릴 때는 반드시 소나 양이나 비둘기 혹은 그외의 만물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물을 잡을 때는 반드시 제사장이 잡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잡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 친히 피를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잡은 제물이라는 것은 뭐냐? 자기와 같은 것입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것을 자기가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것을 자기가 희생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몸과 같은 것이요, 자신의 생명을 대신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을 대신한 것입니다. 이것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나는 외적으로는 죽고 내적으로는 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인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사람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 사람을 중심삼고 볼때, 몸은 사탄이 주관하고 있고 마음은 하나님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몸은 언제나 외적 터전으로서 사탄의 발판이 되어 있고 사탄의 무대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물을 바친다는 것은 내가 이 외적 터전을 희생시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소망을 갖고 희생시키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희생시키고 하나님의 생명을 흠모하면서 희생시켰기 때문에, 그 희생시킨 물건은 제물이로되 제물이 아닌 것입니다. 자기 몸의 연장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왜? 우리의 몸뚱이라는 것은 만물로 말미암아 이어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을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몸을 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 치느냐? 자진해서 자기를 쳐서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두고 볼 때, 사탄의 피와 사탄의 사랑과 사탄의 생명을 치는 자가 누구냐? 그것은 '나'인 것입니다. 그 '나'가 누구냐? 타락한 아담의 입장입니다. 사탄의 생명과 사탄의 사랑을 이어받아 가지고 내 몸이 생겨났으니, 내 자체를 누가 쳐야 되느냐? 아담이 쳐야 되는데, 아담의 입장을 대신해서 나 자신이 치는 입장을 갖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물을 희생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물은 정성들인 물건이 아니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제물이라는 것은 가장 많은 정성을 들인 물건이어야 되고 가장 사랑하는 물건이어야 됩니다. 그것을 아까와하면 안 됩니다. 아까와하면 사탄세계의 물건으로 그냥 그대로 남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미련을 가지고 '이것은 내가 필요한데 안 되겠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극히 사랑하지만 그것을 지극히 무자비하게 부정하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그것을 일시에 제거시키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하나님의 입증을 받아 가지고 바쳐지는 제물로서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만물의 제물시대인 구약시대를 거쳐 가지고 역사 과정의 한 결실로서 참다운 사람을 보낼 것을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 참다운 사람이 말하자면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는 와 가지고 무엇을 해야 되느냐? 메시아는 인류의 내적인 존재입니다. 그 분이 이 땅에 와 가지고 해야 할 일은 이 땅의 만민을 통일시켜서 하나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만민을 사탄세계에서 갈라 내야 됩니다. 만민은 사탄세계에 처해 있습니다. 만민을 그런 세계에 그냥 그대로 놔 둔 채 내적인 입장에 선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게 되면, 그는 제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희생하게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준비도 안 하고 그냥 보내게 되면 사탄 세계에 처해 있는 만민들은 거룩한 입장이 못 되는 고로, 사탄세계의 만민들은 아들이 사랑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적 환경의 인연을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로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기 전에 무엇을 준비했느냐? 외적인 제물권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유대교입니다. 나라를 대표해서는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유대교를 세우고 이스라엘 나라를 세운 것은 다 예수를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바라는 소원이 무엇이었느냐? 예수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만나고 난 다음의 소원은 무엇이어야 했느냐? 예수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만나고자 하는 것은 예수와 하나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스라엘 민족이나 유대교가 제물이 되어야 했습니다.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내용을 가지고 하나되는 그 결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돌아올 수 있는 것이지, 그냥 그대로 하나님을 빼놓고는 그렇게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의 소원은 무엇이었느냐 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면서 하나님의 생명을 고대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와 생명의 실체를 만나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실체와 생명의 실체는 누구냐?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실체와 생명의 실체는 누구냐?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주겠다고 한 메시아입니다. 신앙적인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 나오고 하나님의 생명을 찾아 나오지만, 소망으로 바라고 나오던 것이 비로소 성사되는 때를 맞는 시간은 메시아를 맞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러면 메시아라는 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메시아는 내적인 입장에 섰기 때문에, 외적인 입장과 하나되어야 됩니다. 하나되는 데는 사탄세계의 상태 그대로는 하나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하나될 수 없는 외적인 입장을 하나될 수 있게 하려면 누군가가 제물적인 자리를 책임져야 합니다. 그 자리를 누가 책임져야 되느냐? 유대교가 책임을 져야 되고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져야 됩니다.
이런 인연을 맺기 위해 개인으로부터 종족, 민족, 국가까지의 환경에서 4천년 동안 수다한 제물을 희생시켜 가지고 그 제물과 하나된 개인을 남기고자 했던 것이 유대교의 신앙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와 가지고 그 제물을 그냥 그대로 받아 가지고 개인적으로 몽땅 바쳐져야 했던 것입니다. 옛날에 바쳐진 제물의 실체, 혹은 환경적인 터전이 되는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제물을 드려 가지고 분별시켜 놓은 선민권이었습니다. 이 선민권은 자기 자신이 바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내적인 중심이 나와 가지고 이것을 거느려서 하나되어 가지고야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냥 그대로 바칠 수 있다면 가인 자체도 그냥 그대로 하늘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한 개인이 제물을 드리는 목적은 개인이 하나님 앞에 돌아가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만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개인을 세운 것은 그 개인의 가정을 통해서,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메시아가 올 때 몽땅 묶어서 바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제물을 세운 근본 목적 입니다.
그러한 제물권으로 갈라낸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권을 중심삼고 세운 터전이 유대교권과 이스라엘권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권(圈)이 되어 가지고 예수님이 왔을 때 예수님과 하나되어 바쳐질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권이 예수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 앞에 몽땅 바쳐질 수 있는 이스라엘 나라가 되는 것이요 유대교회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4천년 동안 제물 드린 것은 개인이 하나님 앞에 인연을 맺고 소망적인 생명과 소망적인 사랑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은 되었지만, 실체적인 사랑과 실체적인 생명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은 되지 못했습니다. 또 가치적으로 볼 때도, 제물이 바쳐진 것은 개인적으로 분별된 입장에서 승리한 가치입니다. 그것을 거쳐 가지고 가정적 입장에서 제물이 바쳐진 승리의 가치권, 혹은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인 입장에서 제물이 바쳐진 승리의 가치권을 준비해 놓았지만, 이것은 누구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바쳐져야 되느냐 하면 이스라엘 나라의 내적인 존재, 유대교의 아벨적인 존재를 통해서 바쳐져야 됩니다. 그 존재가 메시아입니다. 이 메시아와 하나되어 가지고 몽땅 하나님 앞에 바쳐져야 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예수를 중심삼은 일체의 요인 앞에 상대인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는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는데 있어서는 노력해야 됩니다.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나라가 부정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를 부정하고 유대교가 예수를 부정했기 때문에 제물적 기반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예수가 이 일을 대신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제물 자리에 나가는 입장은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4천년 동안 수많은 제물을 드려 가지고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권까지 가려 나와서 그런 환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 놓은 것은 예수를 맞을 수 있는 대상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 예수는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합한 것 이상의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유대교는 수천년 동안의 역사과정을 통해서 탕감의 노정을 걸어왔지만, 즉 제물적 노정을 걸어왔지만 예수는 일대에 이스라엘 나라가 4천년 동안 준비해 나와서 실패했던 것을 자신의 한 몸을 통해서 대신 바쳐 드릴 수 있는 가치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의 반대를 받아 가지고 제2차 노정을 출발한 것은, 다시 말해서 세례 요한이 실패한 그 권(圈)을 다시 복귀하기 위해 나선 것은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 전체가 봉헌된 제물의 입장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상대적 권을 찾아 가지고 이것을 다시 수습하려고 했지만 수습할 수 있는 대상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권 전체를 대신한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제물로서 바쳐지게 된 것입니다.
그때는 누가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의 입장에 섰느냐? 하나님 자신입니다. 본래는 예수가 제사장이 되어 이스라엘 나라를 제물로 바치고 하나님은 받으셔야 할 터인데, 결국은 예수가 제물의 자리에 나가게 되니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를 제물 드리는 예수의 입장에 내려와 가지고 제물을 바치는 입장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니 또다시 제물을 받아야 할 소망의 때가 남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하나님 앞에 제물을 바쳐야할 예수가 제물이 되니 하나님이 제물을 바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에게 제물을 바치느냐? 당장에 받는 자리가 아니라 미래에 소망하는 하나님의 승리의 자리를 바라보면서 약속의 조건을 세워 가지고 예수를 바친 자리에 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바친 것은 예수 자신이 제물의 목적을 성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미래에 성사시킬 수 있는 자리를 남기는 자리에서 제물을 바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와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물을 바치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전세계의 기독교를 대표하고 제2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자리에서 그들과 하나되어 가지고 제물을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한테 바쳐야 되느냐?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바침으로 말미암아 원칙 기준에 서게 되는 그때부터 비로소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의 때를 향해 출발할 수 있는 거점이 이 지상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재림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동원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동원되고 예수가 동원되고 성신이 동원되어야 됩니다. 전체가 동원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귀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이 동원되더라도 천사와 아들도 동원했던 것입니다. 직접 동원해 가지고 이 길을 세워 나온 것입니다. 왜 그러냐? 아들이 제사장이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아들을 대신하여 제사장의 자리에서 소망하는 이상을 이루기 위해 사탄과 대결해 가지고 승리의 제물로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소망의 때를 맞이해 가지고 한때에 승리의 판도가 성사된다는 기준을 세워 놓은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제물의 과정을 거쳐 나오는데, 어떻게 제물을 드려야 하느냐? 하나님을 믿고 예수와 성신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을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믿어야 되고, 예수와 성신은 인류의 부모인데, 땅에서 그 부모를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즉 땅에서 부모를 모시고, 그 부모를 모시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의 자리를 하나님이 대신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자리를 대신해 줌으로 말미암아 부모는 희생된 것입니다. 그래서 내적인 기반은 이루어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적인 기반만을 남긴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전체의 내적 중심의 자리에 선 것은 예수가 내적인 기준을 차지하지 못해서 선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들이 신앙생활을 해 나오는 모습을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 인간들은 하나님을 어디까지나 영적인 기준에서 모시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기준으로만 모셔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 삼위신을 모셔 가지고는 완전복귀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육적 기준을 갖춘 부모를 모셔야 되고, 이 부모가 하나되어서 영적인 하나님을 모셔야 되는 것이 원칙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되고 한꺼번에 전부 다 영적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무엇을 해 나왔느냐? 영적인 세계를 추구해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영적인 하나님, 영적인 부모를 중심삼고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이 해 나온 것은 무엇이냐? 그냥 그대로 믿고 따라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냐? 물론 믿고 따라 나가면 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지금 자신들이 믿는 자리보다 더 좋은 길로는 절대 못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내가 올라가고 싶다고 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올라가려면 제물의 자리에 나갔다가 들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예수가 내적인 입장에서 나갔다가 들어와 가지고 영적인 기준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사람도 예수가 간 길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자기가 있는 자리는 자기가 좋아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나쁠 수 있는 자리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나갔다가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나가는 데는 어떻게 나가야 되느냐? 죽음을 각오하고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신앙노정은 희생의 피를 뿌리는 비참한 순교의 역사를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만 붙들고 '우리만 숨어서 믿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뭐하러 나가서 핍박을 받고 그러느냐? 그럴 필요가 있느냐? 그저 혼자 마음속으로 하나님만 믿으면 되지' 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러면 안 됩니다. 반드시 나갔다가 들어와야 됩니다. 나가는 데는 유대교와 같은 교회를 위해서 나가서 교회 터전을 닦아야 되고,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 나라와 같은 나라를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필연적인 운명의 길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죽음의 길을 더듬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입니다.
나가는 그 자체가 제물의 자리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나갔다 들어 오게 될 때 비로소 제물로서 하나님 앞에 바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은 생명으로 때우는 거와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기독교는 어느때에 생명 운동을 벌이느냐? 어느때에 발전하게 되느냐? 가만히 정지해 있을 때는 점점점 땅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나, 나가기 위해 격동할 때, 나가는 것에 반대하여 죽음의 교차로에 걸려 있을 때에 기독교는 언제나 발전했습니다. 왜 그러냐? 피를 흘리고 고통을 당하는 자리에 서야 비로소 제물로 바쳐지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가 제물의 자리입니다. 제물을 받는 분은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니 그때에 비로소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핍박이 있어야 됩니다. 핍박을 받아야 됩니다. 핍박이 없거들랑 핍박을 하게끔 해야 됩니다. 핍박이 없으면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 수난의 환경이 제물로 바쳐질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있는 한 핍박은 있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이 전도를 해보게 되면, 그와 같은 사실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쓸 만한 사람을 전도 하려고 아무날 만나기로 약속을 해 놓았는데 사탄이 툭 채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못 느낀 사람은 아직까지 하나님이 같이하시지 않은 사람입니다. 번번이 그렇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느껴 봤어요?「예」 그것은 틀림없다는 거예요.
살랑살랑해서 고개를 딱 넘어가게 되는데, 그 목적지에 다 가서는 꼭 무슨 사고가 생기게 됩니다. 형이 죽는다든가…. 그럴 때 주위에서 죽는 사람이 생기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가문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의 아들 같은 사람이 넘어가기 때문에 사탄편이 자기편을 해꼬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치면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물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제물을 하나님이 치면 해방을 받는데, 사탄이 치면 물고 넘어갑니다. 그런 작전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교회장으로서 앞으로 지방교회에 가서 전도를 하는 데 있어서 단단히 알아야 할 것은 한 사람을 전도할 때마다 반드시 그 공식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 공식을 거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예수와 같은 입장, 제물된 입장에 서야 됩니다. 외적인 입장에 나가서 바쳐져 가지고 들어와야 됩니다. 들어올 때에는 혼자서 들어오면 안 됩니다. 제물을 바쳤다 할 때에는 반드시 한 사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역사입니다. 복귀라는 것은 그냥 되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탕감법을 거쳐야 됩니다.
탕감이라는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성립되느냐? 제물로 말미암아 탕감이라는 결과가 성사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탕감복귀라는 말은 잘하지만, 제물이라는 인식에서는 떠나 있습니다. 제물이 없어 가지고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탕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탕감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물로 해야 되는데, 이것은 반드시 갈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이라는 재창조 역사과정을 거쳐오는 데 있어서, 인간은 만물을 통해서 지어야 하기 때문에 만물과 인간이 안팎관계를 중심삼고 하나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있어서는 외적인 기준이 사탄의 기준이기 때문에 이것을 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반드시 자기 몸과 같은 제물을 쳐서 피를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피를 흘리는 것은 사탄의 피를 분립시키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이 주입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인연되어 들어오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피를 흘리는 자리와 마찬가지의 입장을 하나님편에서 보게 되면, 이것이 하나님이고 이것이 아벨이요 이게 가인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있으면 제물로 바칠 수 있는데, 그런 상대가 없게 될 때에는 자기 자신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상대가 없을 때에는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하고, 상대가 있게 될 때에는 그 상대를 자기 대신 제물로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발전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또, 하나님이 이 땅위에 섭리역사를 해 나오는 과정에 있어서 발판을 닦아 나오는 원칙적인 기준은 어디에 있느냐? 만약 그것이 교회장에게 있다면 교회장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물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와 하나된 상대가 있다면. 그들이 대신 수고하고 희생하면 그들을 통해서 제물을 바칠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장이 그런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의 입장에 있다면, 그 제사장과 제물은 하나되어야 됩니다. 제사장 앞에 제물이 절대 순응해야 됩니다. 언제까지 그래야 되느냐? 피를 흘릴 때까지 순응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준이 되어 가지고 어떠한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순응하고, 1차 2차 3차가지 생사를 넘어설 수 있는 결의가 되어 있는 터전만 되면 하나님은 거기에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제물을 바치는 그 내용이 큼에 따라서 복귀의 판도는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전도할 때, 한 사람을 대하더라도 그 사람을 절대 한 사람으로 알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절대 한 사람으로 알지 말고, 부락이면 부락을 대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또, 자기 자신은 제사장인데 어떠한 입장에서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인가 하는 것을 자각하라는 것입니다.
군(郡)이면 군을 대표한 제사장이라는 신념을 가지라는 겁니다.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어떤 마을에 들어갔을 때에 그 교회장 앞에 나타난 사람이 마을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단 한 사람이 나타났다 하더라도 그가 신념을 갖고 제사장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대상의 입장에서 일치되어 자기의 명령을 따라 제물적 행동, 즉 희생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행동할 수 있게 될 때 그 탕감 범위는 개인적인 일대일이 아니라 군을 대표한 탕감 범위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러면 군을 대표할 수 있는 탕감 범위가 자기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되느냐? 이 땅위에 자기 자신들이 설 수 없기 때문에, 자기가 군이면 군을 중심삼고 싸워 가지고 제물된 과정에서 승리하여 부활된 실체적 기준을 갖지 못하면 제사장의 자리에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그런 자리에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고 그런 조건을 평면적으로 공히 세계화시켜 가지고 돌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사상입니다. 알겠어요?「예」
재림주를 왜 보내야 되느냐? 각각 개인이 모두 재림주와 같은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군이면 군에서 제사장 노릇만 하면 되지 않느냐 하는지 모르지만, 여러분의 생각 가지고 군 책임자로서 제사장의 기준을 역사적으로, 하늘적으로, 영적으로, 시대적으로 탕감한 승리적 자리에 서 있느냐 할 때에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두고 볼 때, 예수는 4천년의 결실체로서 예수에게는 개인도 들어 있는 것이요, 4천년 동안 이루어 놓은 가정도 들어가 있는 것이요, 4천년 동안 이루어진 종족도 들어가 있는 것이요, 4천년 동안 이루어진 교회도 들어가 있는 것이요, 4천년 동안 이루어진 이스라엘 나라도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와 4천년 동안 갖추어 온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비교해 볼 때, 오히려 예수가 내적인 가치가 더 높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를 통틀어 가지고 결실적 존재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를 믿고 세계를 위해서 제물을 바쳤더라면 세계는 이미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전체 사방을 대신한 중심적 가치기준을 가지고 개인을 넘고, 가정을 넘고, 종족을 넘고,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을 수 있는 중심적인 가치의 노정을 가게 하기 위해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보내 준다는 것은 하나님의 탕감복귀섭리에 있어서 타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재림주님은 반드시 와야 됩니다.
종교가 나오기 전에는 반드시 선지자를 보내게 되는데 그 선지자는 그 시대에 있어서 종교의 책임자로서 사명을 다함과 동시에, 죽을 때에는 반드시 내 후계자는 누구라고 전부 다 선포하고 죽는 것입니다. 후계자를 세우지 못하고 가게 되면 선지자의 사명이 연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야 같은 사람도 후계자를 세웠던 것입니다.
제사장 사상을 중삼삼고 통일교회를 볼 때, 통일교회의 선생님은 어떤 사명을 해야 되느냐? 개인적 사명, 가정적 사명, 종족적 사명, 민족적 사명, 국가적 사명, 세계적 사명, 천주적 사명을 해야 되고,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몸의 사명까지 해야 됩니다. 이것을 전부 다 완결지은 총체, 전피조세계를 대표한 총체적 가치의 내용을 지니고 내적 가치의 기준을 감당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전세계를 봉헌해 드리는 제사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상대와 하나가 되는 날에는 새로운 부활의 생명권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생명권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부활된 개인과 부활된 가정과 부활된 종족과 부활된 민족과 부활된 국가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싸워 나온 발자취나 선생님이 지금까지 싸워 나온 발자취를 보면, 개인복귀노정, 가정복귀노정, 종족복귀노정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언제든지 습관처럼 이야기해 왔습니다.
기독교가 통일교회의 선생님을 중심삼고 한꺼번에 하나만 되었더라면 선생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세계는 일시에 돌아갔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 같은 존재는 하나의 개인으로 끝나는 인물이 아닙니다. 민주세계를 대표하고, 민주세계권내의 제3 이스라엘권을 대표하고, 제3 이스라엘권내의 기독교를 대표하고, 기독교권내의 종족을 대표하고. 기독교권내의 가정을 대표하고, 기독교권내의 개인을 대표한 존재입니다. 즉, 전체를 대표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 한 사람이 전체를 대표한 자리에 서서 굴복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예수가 해주기를 바라던 제물적 입장, 희생할 수 있는 입장에 섰더라면 그 전체는 일시에 제물로 바쳐지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됨으로 말미암아 꺼꿀잡이로 재탕감노정을 가야 할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영적으로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순으로 판도를 넓혀 나왔던 거예요.
이것이 끊어졌으니 이것을 다시 해 나가는 것입니다. 동기가 되는 내용적인 면에서 볼 때, 거기에는 외적인 내용도 있을 수 있고 내적인 내용도 있을 수 있으니 복귀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내적인 내용과 외적인 내용을 가릴 수 있는 기준이 없어서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지녀 가지고 재차 탕감노정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탕감노정을 가는 데 있어서 기독교가 떨어져 나갔으니…. 그 가외의 세계는 사탄세계인데, 사탄세계의 그 누가 편이 될 수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기독교 외에는 가인세계이기 때문에 사탄세계입니다. 그렇잖아요? 이 기독교가 떨어져 나갔는데 가인세계의 그 누가 편이 될 수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가 편이 될 수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해야 되느냐? 다른 것이 또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거쳐 나가야 되느냐? 다시 하는 데는 그냥 할 수 없습니다. 역사과정에서 기독교가 거쳐 나오던 것과 같은 길을 다시 가면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연결시켜야 역사의 부활권이 그 상대적 권으로 나타나서 중심존재와 가까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역사과정에 하였던 것을 그냥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탕감의 골짜기를 따라서 재차 승리의 조건을 세워서 이것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세우지 않고는 여기에 들어와서 제사장 노릇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재탕감하는 데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기독교권내에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가 탕감할 때에는 사탄권내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권내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북한 땅을 찾아 들어간 것입니다. 북한 땅을 찾아 들어갈 때는 어디를 찾아가야 되느냐? 예수가 감옥에 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감옥을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감옥에 갈 것을 각오하고 간 것입니다. 가다가 까딱 잘못하면…. 그래서 생사의 경계선을 넘을 각오를 하고 가는 것입니다. 남한 땅에서 제사장으로서 제사를 못 드리면 북한 땅에서라도 제물을 드려야 된다는 각오 밑에서 통일교회는 가려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그 곳에 가 가지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세계에 들어가서 싸워 가지고 찾아 나와야 됩니다. 죽어 가지고 찾아 나오면 안 됩니다. 살아 가지고 찾아 나와야 합니다. 찾아오는 데는 무엇을 찾아와야 되느냐? 예수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이었느냐? 신부를 찾는 것입니다. 신부 찾는 것이라구요. 세례 요한을 세운 것은 천사장형을 대표해서 세워 가지고 그 일족을 중심삼고 신부를 찾을 수 있는 울타리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탄세계에 들어가서 싸우는 목적은 무엇이냐? 신부를 찾는 것입니다. 이 신부는 보호권내에서, 협조권내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최고 밑창에 들어가 싸움을 해 가지고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싸워서 빼앗아 오는 데는 주먹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으로 해야 되느냐? 사랑의 힘과 생명의 힘으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은 무엇으로 했느냐? 사탄적 사랑의 힘과 생명의 힘으로 타락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세계에 가서 빼앗아 오는 데도 사기를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닙니다. 속여 가지고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더 사랑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부인이 있으면 그 부인을 하늘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남편보다 몇 배의 사랑을 해야 됩니다. 또, 생명을 주는 데도 최대의 가치로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가 세계를 대표한 이상의 가치적 존재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구요. 개인을 위해서는 전부 다 들이박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생명의 힘을 가지고 빼앗아 나오는 것입니다.
빼앗아 나오는 데는 자동적으로…. 이렇게 이렇게 해야 된다고 가르쳐 줘서는 안 됩니다. 타락을 할 때에 가르쳐 주었어요? 천사장이 가르쳐 주었습니까? 그러니 이렇게 해야 복귀되는 것이라고 가르쳐 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가르침을 받고도 안 됐지만, 가르쳐 주어 가지고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는 하나님이 다 가르쳐준 자리에서 타락했습니까? 하나님은 '따먹지 말라'고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법입니다.
그러한 사랑의 힘과 생명의 힘을 가지고 얼어붙은 환경을 녹이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을 전부 다 자기 스스로 부정해야 됩니다. 여기에서 부정시키면 안 됩니다. 부정시키면 사탄이 참소합니다. 부정시킬 수 있는 일이라면 하나님이 벌써 복귀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이미 6천년 전에 복귀했을 것입니다. 능력 많으신 하나님이 '너 이렇게 해라'고 죄다 가르쳐 주셨으면 복귀되었을 것입니다.
누가 부정을 해야 되느냐? 누가 해야 된다구요?「자신이 해야 됩니다」 자신이 자기 남편을 부정하고, 자기 아들을 부정하고, 자기 부모를 부정해야 됩니다. 이 세 가지를 부정해야 됩니다. 그러면 나라와 세계가 다 부정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것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나라와 세계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부정하고, 남편을 부정하고, 자식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생명을 각오하고 이 세 가지를 부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지가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을 반대하는 것은 우주사적인 반대라구요. 그 혼자가 혼자가 아닌 것입니다. 늘 대하고 있는 주체가 전체를 대표한 주체이니만큼, 그 상대적 권을 만들어 놓으면 사탄세계가 몽땅 무너질수 있는 우주적인 권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것만 생겨나면 사탄은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총동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탄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겠어요? 예수를 잡아죽였지요? 반대뿐만 아니라 잡아죽이려고 한다는 거예요. 잡아죽이려고 할 때 누가 막아 내야 되었느냐 하면, 세례 요한과 같은 사탄편의 사람이 막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나가 자빠진다는 거예요.
아, 이게 원수를 치려고 갔는데 그 원수 편에서 앞장 서서 싸우는 패가 자기편이더라 이거예요. 그렇지요? 어머니 아버지 남편…. 그러므로 누구와 싸워야 되느냐 하면, 공정한 주체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탄세계에서 가장 사랑하던 사람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부모가 원수라구요. 자기의 형제가 원수라는 겁니다. 공식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확실히 이대로 전개되는 거예요. 이대로 전개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다른 길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심각합니까?
나는 생명의 절대권을 대신하고 사랑의 절대권을 대신한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을 대신한 하나님 대신자입니다. 그러한 대신자가 공식적인 법도에 부합하는 자리에 서면 사탄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3대를 부정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교회장으로서 사람을 대하는 곳에서 이런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치열한 전쟁이 무엇입니까?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아닙니다. 한 생명을 제물로 걸어 놓고 제단 앞에 선 제사장과 그 앞에 선 제물을 두고,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는 세계적 최고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녹음 잠시 끊김)
이래 가지고 남한 땅에 와서 어디에서 출발하느냐? 영광의 자리가 아닙니다. 남한 땅도 장성적 사탄입니다. 남한 땅에도 이것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런 것 다 알아요? 들어 두라구요. 남한 땅도 사탄편이지요?「예」 사탄편인데, 문제는 기독교예요. 기독교는 장성적 무리들인데 반대했으니 가인입니다. 가인도 알락달락한 가인입니다. 그러니 남한 땅에 와서도 또 반대를 받는 거예요. 반대하는 이것을 통과해야 합니다. 통과 안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통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알겠어요? 거치는 데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남한 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공식적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기독교가 가던 길을 가야 합니다.
기독교가 영적 어머니 아버지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기준을 거쳐오던 거와 마찬가지로 실체적인 그 기준을 중심삼고 합동해 가지고 실체를 규합해서 기독교복귀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세계복귀나 나라복귀가 문제가 아닙니다. 기독교복귀가 문제입니다. 알겠습니까?「예」 기독교 장로나 목사들에게 오라고 하면 자기 발로 슬렁슬렁 걸어오게끔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야 기독교 꼭대기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1971년도를 중심삼고 적극적인 활동을 한 것입니다. 3년 기간에 1차 7년노정, 2차 7년노정을 거쳐 넘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제2차 7년노정의 4년노정에 있습니다. 68,69,70년까지가 3년노정이고, 그 다음 해부터 74년까지가 4년노정입니다. 다섯째 날까지 만물을 지었고, 여섯째 날에 사람을 지었거든요. 그와 같은 역사를 거쳐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2차적 노정을 대표한 세계적 아벨이지요? 재림 예수님 앞에 그는 장성형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반대했으니 또다시 거쳐가야 됩니다. 이것은 타고 넘어가지도 못합니다. 반드시 거쳐가야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얼마나 우리를 죽이려고 했습니까? 별의별 짓을 다했지요? 그런 거 다 해야 됩니다. 그렇다 해도 그들을 원수시하고 때려 죽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자동적으로 굴복하게끔 해야 됩니다. 자동적으로 굴복하게 해 가지고 들어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돈을 주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기독교 간부들을 만나지 않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동적으로 굴복해 들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찾아와야 되는 거라구요. 그들을 찾아가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독교가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남 땅에서 기독교의 반대를 받으면서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래 가지고 60년도에 반대를 받으면서 성혼식을 한 것입니다. 가정을 복귀하는 데 있어서 가인 가정 복귀형이 없으면 아벨 가정 복귀형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북한 땅에서 가인 가정형을 복귀했기 때문에, 이남에 내려와서 아벨 가정형을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이 생긴 것입니다. 가인 가정은 아벨 가정을 중심삼고 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이 원리적인 것이예요.
기독교를 대해 가지고 싸움을 하면서 한 여성을 택해 가지고 한 것이 60년도의 성혼식입니다. 그런데 열두 제자가 예수를 배반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때에도 통일교회에 있던 열두 사람이 통일교회를 배반하고 선생님을 잡아 감옥에 처넣으려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딱 열두 사람이었습니다. 서명날인을 해 놓고 통일교회를 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을 다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못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을 하는 데는 대한민국 전체가 동원되어야 됩니다.
나는 성혼식 직전까지 법원에 출두했습니다. 그 일을 끝내고 다음 다음날, 사흘만에 성혼식을 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은 모르지요? 그때 선생님은 초긴장 상태였습니다. 그런 최고의 절정에서 이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가지 싸움을 하면서 별의별 일을 다 했습니다.
기독교가 통일교회를 반대했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이 고생하면 고생시킨 목사들이 탕감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지리 굶고 거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고생하던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나 안 되나 두고 보라는 거예요. 통일교회보다도 더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사탄편이 하늘편보다도 낮아지게 될 때에는 사탄편이 하늘편으로 안 따라갈래야 안 따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낮아지는 데는 무엇이 낮아지느냐? 제물이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물기반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질의 곤궁이 자녀들에게까지 미치게 됩니다. 두고 보라는 거예요. 생활적인 곤궁이 자식들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통일교회를 못살게 굴고 잡아먹으려고 했으니 탕감을 받아야지요? 그렇기 때문에 물질을 박탈당하고, 그 다음에는 자식들이 불효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목사 아들딸들이 많이 그래요. 바람잡이꾼들이나 문제 되는 아이들 가운데 많은 수가 목사나 장로의 아들딸입니다. 그러니 탕감법은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리고 교회 다니는 자기들끼리 싸우게 됩니다. 목사는 아벨이고 교인들은 가인이지요? 하늘의 아벨을 때린 가인이, 즉 불효한 아버지가 효자를 가질 수 있느냐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교회 목사가 하늘의 아벨을 쳤으니, 교회의 신도들이 목사의 멱살을 잡고 때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지금 한국 기독교가 그렇게 되었지요?「예」 통일교회를 고생시킨 만큼 고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일 불쌍한 것이 목사 자신들입니다. 목사가 지팡이 들고 자진해서 교회를 떠나고 싶은 때가 되면 통일교회의 때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 통일교인들은 교회를 떠나는 목사들 대신 제사장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자진해서 찾아 들어가 가지고 제사장 되겠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제사장이 월급을 받습니까?「안 받습니다」 이놈의 자식들!(웃음) 그래 월급을 줘야 되겠나, 안 줘야 되겠나? (웃음) 이야기를 해보라구. 그래 월급을 줘야 되겠어요, 안 줘야 되겠어요? 월급을 주면 망하는 겁니다. 둘 다 망하는 거예요. 이것도 망하고 저것도 망하는 거예요. 하늘도 망하고 제사장도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월급을 안 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도와줄 수 있느냐? 제사를 드려야 할 텐데, 제사 드리고 난 다음에 도와주는 것이지 그냥 도와주면 되나요? 도와주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선생님이 도와준 것도 여러분이 모르는 조건을 세우고 도와준 것입니다. 그냥 이렇게 안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기성교회 때문에 주는 것이지 여러분 때문에 준 것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야곱이 에서 앞에 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를 지어서 뭘하겠어요? 여러분에게 교회를 지어 주려는 생각은 안 합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을 데려다가 제사장을 시키려니 기성교회를 위해서 교회를 지어 준다는 조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말을 한 것, 생각나지요?「예」
그럼 여러분은 무엇을 할 것이냐? 이제는 여러분이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제사장의 아들이 되어 가지고 열두 지파를 거느릴 수 있는, 앞으로 새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교육을 받으러 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교육을 받으러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에 꺼떡하면, '선생님, 교회를 수리해야 하는데 50만 원만, 30만 원만 부탁합니다'라고 합니다. (웃음) 원리적으로 그것을 도와 주어야 되겠어요, 도와주지 말아야 되겠어요?「도와주지 말아야 됩니다」 원리가 거짓말이고 선생님이 이 길을 주먹구구식으로 간다면 모르지만, 공식적인 노정을 밟아 가는데 그것이 되겠어요? 이제는 짐작이 돼요? 「예」
여러분이 나가서 일하다 '아이고, 죽게 되었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편지할 때, 그 꺼떡거리는 녀석을 보고 '오냐, 너 죽게 되었구나' 하면서 '왜 그래'라고 하게 되어 있어요? 또, 제사장이 그렇게 하게 되어 있어요? 자기가 사랑하는 물건을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선생님에게 달라고 하게 되어 있어요, 바치게 되어 있어요? 대답해 보라고요. 「바치게 되어 있습니다」 달라고 하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뒤집어 박는 것입니다. 원칙이 그래요.
그러니 도와주어야 되겠어요? 대답을 해보세요. 절대 도와주어야 되겠어요, 도와주지 말아야 되겠어요? 똑똑히 대답하라구요. 「도와주지 말아야 합니다」 도와주지 말아야 된다구요. 그 말은 여러분이 한 말이지 내 말이 아니예요. 선생님도 그렇다구요.
하나님은 참 무자비합니다. 여러분을 꼭대기에 갖다 놓고는 후퇴하신다는 것입니다. 제일 무자비하지요. 여느 때는 도와주시지만, 절정에 가서는 '나 몰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어디로 가시느냐? 떡 감찰 위원장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제물을 바쳐라'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도와주는 것은 제물이 될 수 있는 물건을 네 앞에 남겨 주자는 것이다. 이제는 네 때가 되었으니 그 제물을 대신 잡아서 바쳐라' 하시는 것입니다. 바쳐야 할 책임자라는 것입니다. 도와주는 것은 자기를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앞에 제물을 만들어 주는 것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원망을 안 합니다. 내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거예요. 그러니 고마운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볼 때, 그 집을 도와주는 것은 나를 도와주는 것보다 내 앞에 원수가 올 것을 막는 제물적인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도 선생님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지만, 그런 것 다 누구를 도와주는 거예요? 선생님을 도와주기는 했지만 결국은 무엇을 만들어 준 거예요? 선생님 앞에 제물적인 입장이 된 것입니다.
지금 이때에 우리 교회와 기성교회를 두고 보면, 딱 꺼꿀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라가게 되면 기성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교회와 기성교회가 평평하게 될 때가 1971년도입니다. 그래서 지금 기독교회관에 주간종교 신문사가 들어간 것입니다. 말이 많았다는 거예요. '그러지 않아도 통일교회 때문에 큰일인데, 기독교의 본거지가 되는 곳에 통일교회 신문사가 들어와, 원수가?' 그랬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들어가야 된다고 했던 것입니다. (웃음)
결국에 얻긴 얻었어요. 그런데 사탄의 역사지요. 그래서 내가 탕감법은 용서가 없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쪽 책임자가 사흘 전에 와 가지고 '큰일났습니다. 내가 지금까지는 자신을 가졌었지만, 이제는 자신을 잃었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이놈의 자식, 하나님이 언제는 자신 있다고 하다가 언제는 자신 없다고 하느냐?' 이러면서 야단쳐서 보냈습니다. 우리가 칼자루 쥐고 있거든요. 돈 다 주었기 때문에 재판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딱 걸려들었어요. 그래서 밀어댄 거예요.
기독교회관에 여러 단체가 들어가 있는데, 통일교회 단체도 일반 사회단체이기 때문에, 만일에 저쪽에서 반대하게 되면, 그 대비책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밀리게 되면, 한 패 두 패, 몇 패를 만드는 거예요. 사람들이 패를 만들면 하나는 부르조아고 하나는 프롤레타리아예요. 대개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본가들의 상대입장에 있는 노동자급의 사람에게 쑥덕쑥덕하여 우리 편으로 많이 만들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한 달 이내에 전부 우리 편으로 만들어 가지고 합동공세를 하는 것입니다. '너희들 왜 이러느냐, 통일교회가 뭐 어떻다는 거냐, 사회제도는 그렇게 안 되어 있는 것이다' 하고 나서면 들이맞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한테 딱 걸려드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신문까지 사라고 합니다. 요즘에 가만히 보면 주인이 손님 되고 손님이 주인 되는,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섯 개의 신문사가 있는데 그것들은 껄렁껄렁하고 주간종교 신문사는 굉장하다 이겁니다. 이래 가지고 이제는 대사회적인 면에 있어서나 대내적인 면에 있어서 일선에 섰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지금이 넘어 가는 때입니다. 그래서 7월 전까지 7차 교역자 공청회를 했습니다. 앞으로 3차만 더 하면 그때는 다 알게 됩니다. 8월에 8차까지 했습니다. 금년에 12차까지 하게 되면 반대하지 않을 겁니다.
저들이 공문을 보내 가지고 공청회에 참석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 말을 듣습니까? '너는 가지 말라고 해도 나는 한번 가 본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리고 갔다 와서는 '당신 어디 갔다 왔소?' 하면'나 그때 공문을 못 봤소' 하면 통과하는 거라구요. 공문을 자기가 갖다 주었나? '나갔다 왔더니 우리 교인들이 그 공문을 주길래 그때 봤소'라고 한마디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웃음) 이런 걸 보게 되면, 이제 여러분은 정신 차려야 됩니다.
선생님이 이북에 갔던 것이 잊혀지지 않는데 기독교 때문에 갔던 것입니다. 물론 대한민국 때문에 갔지만, 기독교가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가 수난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가는 곳마다 빨간 깃발이 세계적으로 꽂혀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어쩌고 저쩌고…' 그런 것은 누가 다 만든 것입니까? 통일교회의 문선생님이 선전한 것입니까? 누가 만든 것입니까? 기성교회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닙니까? 그것이 세계적으로 퍼져 나간 것입니다. 여기서 꽝하면 그 물결이 파장되어저 끝까지 가 가지고 그치지요? 그와 똑같은 운동이 세계적으로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막힌 일입니다. 선생님이 세계를 순회하게 되면, '선생님, 이러이러한 말을 들었는데 이게 어떤 말이예요?' 하는데 선생님이 그것을 변명해야 하니 기가 막힌 역사가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기독교가 다 만들어 왔습니다. 그렇잖아요?
자기 아버지 어머니에게 비밀이 있을 때 그 비밀을 들고 나와 가지고 들이 패려고 하는 것이 효자입니까, 불효자입니까? 기독교는 불효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불효자입니다. 하나님을 고통스럽게 하고 우리가 가는 판도를 망쳐 놓은 원흉들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보따리 싸 가지고 후퇴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지방교회가 피폐하는 것을 볼 적에, 우리는 그 10배나 슬퍼하면서 감사히 받을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만 통일제단을 대표해서 세계적 제사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래요? 그래요, 안 그래요? 만일 그 교회에 있던 목사가 5천원을 받다가 갔으면 한 푼도 안 받고 들어가서 그 목사 이상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쓰러진 성도를 잡아 일으키고, 무너진 성전을 새로이 신축하고, 새로운 제단을 삼천리 반도 방방곡곡까지 쌓아 올리고 지켜야 할 것이 통일제단에 있는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는 운세와 더불어 이스라엘 종족도 망하고 이스라엘 나라 사람도 망하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그런 때가 왔기 때문에 히틀러가 유태인을 잡아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가운데에 예수가 이스라엘을 사랑하던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를 회개시키고 돌아서는 사람들은 새로운 나라를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보면 그때 로마는 망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미 중동 지역에서는 손을 떼야 할, 망하는 권내에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 운이 망하게 될 때 하늘의 운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계선이 가까와 오기 때문에 예수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지금은 이스라엘 나라가 자기 나라를 찾아 독립한 입장에 있습니다. 이걸 볼 때, 망할 운세가 아닙니다. 아랍권을 복귀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싸워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그것을 못했기 때문에 그 나라가 다시 한 번 강한 운세권인 아랍권을 중심삼고 싸워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이 과정을 밟고 올라서야 합니다. 올라서는 데는 자기 힘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싸우지 않으면 이길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아랍권을 해방시키지 못한다는 거예요. 이치가 그렇지요?「예」
승리적 제물이라고 했는데, 이 승리적 제물이라는 것은 예수님과 선생님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여러분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승리적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이냐? 예수가 실패했지요? 그래서 실패한 제물이 되었지요? 실패한 제물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 한이 맺혔고, 예수에게 한이 맺혔으며, 지금까지 기독교가 영적 제2 이스라엘권으로서 땅 위에 기반이 없는 뜬구름과 같은 입장이 되었습니다. 해는 올라오지 않고 있는데 저 높은 곳에 둥둥 떠 다니는 뜬구름 같다는 것입니다. 둥둥 떠 다니면서 땅 위에 빛을 발하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닌다구요. 해는 안 올라왔는데…. 그 격입니다. 구름도 흰구름이 아닌 검은 구름이라는 거예요. 여기에 햇빛이 반사되어 땅에 비춰지고 있는데 그 빛을 받아 가지고, 즉 간접적인 빛을 받아 가지고 직접적인 천당으로 믿고 가는 것이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러니 바람 부는 대로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세계 어느 곳에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고,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자기 집이라고 하며 머물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있습니까?「없습니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시 한 번 싸워서 정리해야 할 나라권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나라, 천사장권입니다. 그렇지요? 기독교는 천사장권입니다.
현재 기성교회 세력과 통일교회 세력을 비교해 보면 통일교회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수 자체도 그 시대에 세상적으로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더벅머리 총각에게 형편이 있었어요? 배고플 때는 젓가락으로 먹을 시간이 있어요? 그저 손으로 마구 먹는 거라고요. 마음이 편해야 얼굴도 씻고 단장도 하지 죽지 못해 사는 사나이 신세인데 무슨 형편이 있겠어요? 예수 혼자서 형편이 없는 거라구요. 그런데 외적으로 나타난 것은 형편이 없는 것 같지만 내적인 사연은 세상에 둘도 없는 왕자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자라도 별수 있어요? 나라가 없는 왕자…. 그러니 피난살이를 하며 때를 바라보고 준비하는 입장에서 별의별 일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별의별 일을 다 한다고요. 통일교회 사람들은 별의별 고생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가운데도 거지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배가 고파서 밥을 얻어먹고, 우거지나 시래기라도 먹겠다고 숨겨 놓았다가 남몰래 먹는 것입니다. 그렇게 밥을 먹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민족의 제물이 되려면 민족 중에 그런 사람이 있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민족 중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 민족이 사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제사장의 책임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상대적인 입장에서 제물로 바쳐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민족복귀를 해야 되겠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별의별 일을 다 한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간 사람이 없나, 별의별 사람이 다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과 다른 입장에서 움직여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지금 우리의 때가 교차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선생님 개인으로도 교차될 때가 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빨리 집을 마련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금년 안에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금년까지 안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여러분의 부인들을 내보냈는지 알아요? 여러분이 집을 가지고 살았다는 입장에 서게 되면 모가지가 걸린다는 것입니다. 부인과 자식을 데리고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은 당장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천법에는 용서법이 없다구요. 집을 가지고 살면 용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집보다도 귀한 것이 아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내를 나라에 내놓았기 때문에 내 마음은 아내와 더불어 거기에 가서 살아야 됩니다. 자식도 어머니와 더불어 거기에 가서 살아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집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 집입니까, 남의 집입니까? 진정한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그것은 남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러고 있는데 여러분이 사랑을 중심삼고 집을 가지고 사는 입장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몽땅 걸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복잡한 내용들이 안팎으로 엇갈려 있기 때문에 희생의 길을 가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말을 하니 그렇구나 하지만, 여러분들을 죽이기 위한 것이 선생님의 뜻이 아니라구요. 어떻게 하든지 여러분을 그런 굴레에서 벗겨 주기 위한 것이니 비참하더라도 더 비참한 길을 가야 됩니다.
지금 아내하고 남편하고 갈라 놓았는데 이것은 제물과 같은 입장입니다. 제물이지요? 가정을 딱 갈라 놓았으니 가정적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적 제물은 무엇 때문에 드리는 것입니까? 예수가 찾던 가정을 제물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어요? 예수가 소원하던 열두 제자와 120문도는 예수의 종족과 같은 입장입니다. 그런데 찾은 가정을 제물로 드리면 민족적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민족이 우리 앞에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말인가 사실인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보라고요, 이젠 어떻게 되었나. 이젠 우리를 따라오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자, 그러면 제물 드리는 데 불평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통일교회의 가정이 제물이지요? 통일교회는 이것을 제물 드리는 때라구요. 이렇게 되면 또 대한민국 제물 드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를 위해 부인들을 일선에 내보내는 것입니다. 삼팔선에 세워 가지고 싸움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여러분 부인들이 대대장이 되어야 합니다. 전부는 안 되어도 한 사람은 되어야 한다구요. (웃음) 그렇다는 것입니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지금 농담삼아서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녀도 해야 되고, 아주머니도 해야 되고, 색시도 해야 되고, 전부 다해야 됩니다. 복귀를 하려니 할수없다구요. 60년대는 처녀들을 선두에 세웠고, 지금은 아주머니들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처녀들이 개척한 것은 다 틀어집니다. 그때 사람들은 다 나갔다 들어왔습니다. 지금은 아주머니들을 통해서 가정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기서부터 정상적인 발판이 잡혀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전에 많이 발전하는 것을 내가 원치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가정들을 중심삼고 가인 가정과 아벨 가정이 합할 수 있는데, 여러분이 가정을 제물로 드리는 것은 가인 가정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종족을 제물 드리는 것이니, 민족을 찾을 수 있는 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되었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찾아 들어올 수 있는 운세로 들어왔다고 보는 것이 선생님의 관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목사들이 반대하면 안 되니 먼저 반대하지 않게끔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이 복귀섭리에 필연적인 요건이요, 그 일을 하고 있는 때가 이때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이것이 탕감노정입니까, 탕감노정이 아닙니까?「탕감노정입니다」
선생님이 주먹구구식으로 그저 도깨비가 하듯이 그렇게 하는 줄 알아요? 이 녀석들, 모여 앉아 가지고 '선생님이 하니까 알 수 있어야지…' 이러고 있습니다. 자, 이것을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설명을 해주니까 알지 알게 되어 있어요? 모르는 거라구요. 복귀역사는 가르쳐 주고 가는 거예요, 안 가르쳐 주고 가는 거예요?「안 가르쳐 주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알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도둑놈이라구요. 천사장, 사탄이라구요. 아담 해와의 사랑 문제를 쑥덕거리며 알겠다고 하는 녀석은 누구예요?「천사장입니다」 천사장이지요?
선생님 가정에 대해 이러고저러고하는 것은 다 천법에 걸리는 것입니다. 앞으로 천법이 적용될 때가 옵니다. 내 귀에 거슬리고 내 마음에 거슬리고 나를 상심하게 했다면 앞으로 그것은 뿌리까지 샅샅이 들춰 낸다는 거예요. 나라가 찾아지는 날에는 정비하고 넘어갈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일단 가인적인 심판을 하고 아벨적인 심판을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무섭지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될 수 있으면 하지 않습니다.
가인적인 심판시대, 아벨적인 심판시대, 사랑적인 심판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이 서리맞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가인, 아벨, 축복받은 가정 순이지요? 그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가인적인 심판시대, 아벨적인 심판시대, 제사장이 잘못하면 용서가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 축복가정들, 부모의 혈육의 인연을 상속받은 가정들이 잘못하면 용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돌아가느냐? 여기에서 3분의 1을 자동적으로 희생시켜야 됩니다. 제물삼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끌고 저렇게 끌고 일부러 못 따라오게끔 해 가지고, 죽음의 자리에 넣었다가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일부러 못 믿게 만들어 가지고 가인과 아벨을 갈라 내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부러 제물이 되게 해 놓고서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탕감법은 어디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요? 자체내에서 축복받은 가정을 희생시킨 입장에 세워 가지고야 용서해 줄 수 있지, 그냥은 용서를 못 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 하면 역사적인 암세계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선생님이 골치가 아프다는 거예요.
저쪽은 어두우니까 내 얼굴이 그리로 안 가는구만. 미안합니다. (웃음) 선생님이 왜 이쪽만 보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이쪽이 밝거든요. 그건 자연현상입니다. 이쪽에 좋은 사람이 있어서 이쪽을 쳐다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웃음) 왜 거기에 앉았어요? 하나님도 빛을 좋아하지요? 선생님도 빛을 좋아한다구요. 그래서 얼굴이 이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게 섭섭하더라도 듣기는 잘 들으라고요. 그늘에 있더라도 잘 받아 먹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웃음) 그러면 더 잘 자랄 수 있다구요.
이제는 세계적 때가 왔기 때문에 내가 세계적 판도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부 다 그렇게 하면 세계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때가 되지 않았는데 준비하면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세계적 본부 체제를 갖추어야 되겠고, 교육기관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어제 얘기한 것이 이 말입니다. 앞으로 현찰로 20억 원 정도 필요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까지 생각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하는 일이 틀림없는한 돈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그것은 생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을 알 수 있나, 그때 가 봐야지'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으라는 거라구요. (웃음) 선생님이 사기꾼인지 무슨 꾼인지 믿고 지내봐야 알 일이지요? 지내보지 않아서 알 수 없으니까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 말을 믿으라구요. 믿고 지내보면 선생님 말대로 됩니다. 안 되지 않습니다. 왜? 이것이 안 되면 원리고 무엇이고 전부 다 사기요, 요술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때는 교회를 통해서 여러분 가정이 아벨적 가정으로서 기독교 가정을 복귀하기 위한 제물시대입니다. 우리 교회로 말하면, 민족적 아벨의 입장에 서서 민족적 가정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민족시대로 들어가는 입장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고마와요?「예」 이제는 다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 정세는…. 아시아의 정세까지 전부 다 이야기하면…. 그건 얘기 안 하겠어요. 일본 사람한테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알겠어요? 일본 사람한테는 이야기를 했지만 여러분한테는 이야기를 안 해주겠습니다. 왜? 여러분들은 이 길을 가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사람 중에서 참다운 제물을 찾아내야 되기 때문입니다. 제물인 이삭이 '아버지 왜 이래요? 라고 하면 참다운 제물이 되겠습니까? '왜 그러는지 알고 싶소'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민족을 대신하고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 대학가입니다. 그래서 우선 대학가를 잡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경제를 잡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경제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국회가 문제입니다. 이것이 금년 작전의 3대 목표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대한민국의 경제는 선생님이 상대도 안 합니다. 외국 경제를 상대하는 것입니다. 왜? 세계적인 때가 되어 오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물어 놓아야 앞으로 갈 길이 닦이는 것입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창조하는 데는 대한민국 돈 가지고는 안 됩니다. 외국 경제를 휘어잡아야 합니다. 지금 경제부흥도 그렇지요? 그러면서 외적인 사명을 누가 하느냐? 승공연합입니다. 안팎으로 갖추어 놓은 거라구요. 하나가 불기둥이라면 다른 하나는 구름기둥이라는 것입니다. 둘을 세워 가지고 돌아가며 막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어떤 사람이 '선생님, 승공연합 이래 가지고 안 되겠습니다'고 하길래, '왜 안 되느냐?'고 했더니, '승공연합을 통일교회 거라고 합니다. 그러니 승공연합과 통일교회가 서로 연관이 없게끔 해 가지고 세상 사람들을 이사장 자리에 세워 슬쩍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복귀역사는 슬쩍하는 것으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에게 내가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사탄세계의 전법은 결과적인 승리를 다짐한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인 승리만을 다짐하는 것이 사탄의 전법이라는 거예요.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는 거예요. 그러나 하늘의 전법은 원인과 과정의 승리를 다짐하는 것입니다. 근본이 다릅니다. 사탄은 결과를 가지는데 하늘은 원인과 과정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결과로서는 선두에 섰는데, 하늘은 원인과 과정에…. 이것이 역사적입니다. 그말이 그말이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의 전쟁사는 결과적인 승리를 다짐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세상의 전쟁사인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이것이 틀리면 천도가 어긋나는 것입니다.
사탄은 결과적인 승리를 다짐하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은 누구의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느냐? 세계적인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느냐, 자기 나라나 개인의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느냐? 무슨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까?「개인을 위해서입니다」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타락한 동기가 무엇이냐? 사랑이란 결과를 중심삼아 가지고 원인과 과정을 빼 버리고, 자기를 중심삼고 결과적 승리를 다짐한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이지요? 그와 같이 뿌렸기 때문에 사탄이 주관하는 세계의 역사는 뿌린 그대로 발전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국가적으로 외교, 정치를 놓고 볼 때, 외교가나 정치가는 남을 후려치고 자기 통이 드센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외교를 한다고 그러지요?
그러나 하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원인이 맞느냐, 안 맞느냐? 원인이 천법에 일치되느냐, 안 되느냐? 통일교회식으로 말하면 원리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의 작전이 그거예요. 원리에 원인이 일치되느냐 일치되지 않느냐, 원인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을 따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원인을 중심삼고 그 과정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전법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가 하늘나라의 뜻을 이룰 수 있는 단체라면 원인 규명에 있어서 틀림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는 길이 원리적인 노정에 틀림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틀리게 될 때는 그 무엇이 생기더라도 인식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전법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원인을 따라서 가는 데 있어서 틀림없느냐, 즉 원인과 과정이 틀림없느냐? 이렇게 될 때에는 결과는 나오지 말라고 해도 나오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왜 그러냐? 소생과 장성은 사탄이 주관하는 것입니다. 소생은 출발이요, 장성은 과정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소생, 이것도 플러스와 마이너스입니다. 그 다음에 장성은 아담 해와가 일치되어 가지고 열매맺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열매맺게 되는 때가 이때입니다. 요것은 플러스 아담, 요것은 마이너스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아무리 갈라진 것 같지만 복귀원리에 입각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소생은 하나님이고 장성은 아담이며 완성은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담 해와가 완성하게 되면 사위기대가 복귀될 게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과정입니다. 과정이지요? 이렇게 가는 것이니 과정이 아니예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역사는 과정이지요? 목적까지는 과정이라는 거예요. 원인과 과정이 일치되면 그 결과는? 그런 원인에 의한 결과는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을 가든 만년을 가든 그것은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일 당장에 죽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 원인은 살아서 역사를 움직여 가지고 결과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의 도리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결과적인 판도를 개척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사상은 원인과 과정이 일치되었기 때문에 세계를 지배하고 세계에 그 열매가 맺히는 것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기 때문에 선생님은 걱정을 안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에 입각해서는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나를 칠 테면 얼마든지 쳐 보라는 것입니다. 과거 왜정 때에도 '이놈의 자식아 쳐라, 나를 치면 내가 일곱 배 가산해서 치고도 너를 심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남에 내려와서는 생사를 결단하고, 최고의 심각한 자리에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하시기 위해서 얼마나 심각했더냐? 얼마나 심각했겠느냐? 밥 먹겠다는 생각이 앞놓아 나갔겠느냐? 잠을 자겠다는 생각이 앞놓아 나갔겠느냐? 세상의 누군가를 보고 싶고 그리운 생각이 앞놓아 나갔겠느냐? 첨단에 서라는 것입니다. 첨단에 서면 천지의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돌아갑니다. 천운이 돌아갑니다. 천운이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서기 때문에 이 자리는 그 법도에 녹아나는 것입니다. 되느냐 안되느냐? 되는 것입니다. 재창조의 역사는 거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유효원 협회장을 처음 만날 때에 심각했습니다. 몰리고 쫓기면서 부산에서 대구로, 3단계로 서울에 올라와 자리를 잡아 가지고 만날 때는 복귀라구요. 부산 맨 끄트머리에 가서, 영도에 가서…. 영도가 맨 끄트머리가 아니예요? 싸 놓은 똥과 같은 것이 영도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거기에서 제일 심각한 사람은 천하에 나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은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 유효원 협회장도 미욱한 사람입니다. 간 사람이지만…. 무사도와 같은 정신이 강하고 한 곬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거기에 앉아서 녹아난 거라구요.
거기에 있던 사람들 전부가 하늘나라 구경 다 했지요. 효민이 같은 사람도 영계를 통해 가지고 다 그렇게 된 것이지요. 한 일주일 있다가 나오니, 저 영도 다리를 건너오니까 자동차가 저렇게 되어 있던가? 거기서 처음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몇천년 동안 갔다 온 것과 같이 생각되기 때문에, 자기 집에 와서도 '여기가 내가 살던 집인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역사해 가지고 그때부터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인의 일치입니다. 하늘의 전법은 원인이 일치되어 원인이 올바르고, 그 다음에 과정이 올바르다는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과 진정한 생명력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참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선생님은 지금도 아프리카를 가든지, 감옥에 가든지, 어디를 가든지 굶어 죽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갈 때는 심각한 마음을 가지고 갑니다. 감옥에 가는 도상에서도 '하늘이 바라보는 감옥은 이렇게 가야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이런 마음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이렇게 살아 나가는 것이다' 할 때, 그 자리에는 내 치하의 결과가 반드시 상대적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주체가 있으면 완전한 상대는 창조되는 것이 원리입니다. 그것이 틀리다면 통일교회의 원리는 거짓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어도 선조들이 나타나서 '이 자식아, 너는 너와 함께 계시는 그분이 누군지 아느냐?' 하고 영계의 법도를 중심삼고 야단하는 것입니다. 밥을 먹어도 정면에 앉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먹게 되면 머리를 숙이고 먹으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잖아요? 여러분과 똑같지요? 그렇지만 나는 여러분이 미치지 못하는 동기를 갖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아무리 연구해도 알지 못하는 동기를 갖고 있다구요. 그것은 여러분이 죽어서도 모를 동기입니다. 그것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저나라에 가서도 만민들에게 '이놈들아' 하게 되면 '예이' 할 수 있는 주체성이 결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거 알고 싶지요?「예」 그것은 여러분이 올바른 길을 갔으면 영계에 가기 직전에 자연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전엔 알 필요가 없습니다. 알면 곤란하다는 거예요.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작전은 원인과 과정을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사탄의 작전에는 원칙이고 과정이고 무엇이고 없습니다. 이기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공산당식이 그것입니다. 네 것은 내 것이고, 내 것도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아닙니다.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은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위기대입니다. 사탄은 상대를 전부 다 없애고 자기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산당식이라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이런 논법을 중심삼으니 망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 것은 여러분의 것이고, 여러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은 세계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할 때는 세계적이라는 것입니다. 세계가 내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위해서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다 주면 그것은 반드시 하늘로 돌아갑니다.
이것은 참이기 때문에 그것을 하늘로 돌리지 않고 삼켜 버려도…. 악이 참을 먹어 가지고 소화시키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악이 그것을 먹으면 그것이 씨가 되고 거름이 됩니다. 알겠어요? 역사는 그렇게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러니 절대 안 먹힌다는 거예요. 내것을 너에게 줄 테니 먹어 봐라 이겁니다. 먹기만 해보라는 겁니다. 먹기만 하면 그 종족이 걸려들어 거름덩이가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뿌리를 박아서 하늘로 돌아가고, 그 다음은 내가 뿌린 사람이니 내가 하늘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축복과 운기는 누구에게 결실하는 거예요? 나에게 결실하는 거예요. 이것이 천주의 이치입니다.
씨는 줄기와 가지와 잎을 통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매맺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혼자 그 자리에 있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그것이 아니라구요. 그 자리에서 다 해먹겠다는 주의입니다. 이것은 맨 마지막에 나타난 사탄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계적인 결실의 형(型)입니다. 악이 결실된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교회장의 작전은 하늘 작전의 원칙과 일치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먼저 원인이 틀리느냐 틀리지 않느냐 하는 싸움에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원인이 틀리게 될 때는 하나님은 무자비한 전쟁도 개의치 않고 행하십니다. 그때는 교회장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똑똑히 대답하라구요. 알겠어요?「예」 이것을 모르면 여러분은 책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슬쩍슬쩍 이야기를 하지만 중요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러한 원인을 중심삼고 과정을 가는 것입니다. 즉, 실천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원리만 말하고, 실천을 하지 않는 선생이라면 망해야 됩니다.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하나님만 존재하고 사람을 찾지 못한 거와 마찬가지이니, 뜻이 이루어지겠어요? 이루어지지 않지요? 그러므로 실천해야 됩니다.
실천해 놓으면 결과는? 되지 말라고 해도 됩니다. 되지 말라고 하면 더욱 큰 것으로 열매맺혀지는 것입니다. 원하지 않더라도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천운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농사짓는 농부가 씨를 뿌려 가지고 그 씨가 잘 살 수 있게끔 온갖 정성을 드려서 원칙에 일치되고 씨가 과정에 잘 자라게 해 놓으면,'곡식이 나는 싫소' 해도 소출이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날까지 선생 노릇을 하려고 했어요? 언제 여러분에게 인사를 하라고 했습니까? 군대에서는 인사를 안 하면 뺨을 맞고 그러지 않아요? 언제 선생님이라 하라고, 인사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자신들이 알아서 머리를 숙여야 됩니다. 그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결과는 걱정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전법입니다. 사탄의 전법은 '원리는 난 몰라. 원리가 뭐야 내 주먹이지' 하는 식입니다. '행동은 이렇게 해야 정의다' 하면, '정의가 뭐야? 당장에 이길 수 있는 것은 칼로 모가지를 자르는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세상이 왜 사탄세계냐? 이 원칙을 가지고 모든 것을 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전쟁을 거쳐 나왔기 때문에 이 세계는 틀림없이 악한 세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워 나오시는 세계는 틀림없이 선한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선과 악은 상치(相馳)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여기 모인 우리 통일교회의 교회장들, 자아비판 한번 해보자구요. 승리적 제물을 거치지 않으면 승리적 결과가 안 나오지요? 과연 잘했나 이야기해 보자구요. 지금까지 교회장으로서 원인과 더불어 그 과정이 일치하기 위해서 얼마만큼 눈물을 흘리고 콧물을 흘렸느냐?
하나님께서는 복귀섭리에 있어서 원인이 틀릴까봐, 과정이 틀릴까봐 죽고 살고 별의별 일로 뒤넘이쳐 나오셨습니다. 여러분들은 그것 때문에 얼마나 뒤넘이쳐 보았어요? 도리어 수단이나 방법을 가려 가며 '이것이 뭐야? 뜻이 가는 길이 뭐 이래? 아이고 배고프다, 먹어야 되지'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과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거기에 또 통일교회가 왜 발전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이래 가지고 통일교회가 발전하게 되면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이 됩니다. 알겠어요? 그러고 있는 통일교회가 발전을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발전해야 됩니다」 그러고 있는데 발전해야 돼요? 원인과 과정이 일치하지 않고 결과만 내세우는 입장에 서서 자기를 들고 나오는데, 발전을 해야 돼요?「안 해야 됩니다」 발전하게 되면 하나님은 안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통일교회라 하더라도 그렇게 하면 발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이 원칙을 바로잡으라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바로잡고 해보라는 것입니다. 해봐서 안 되거든 선생님의 목을 자르라는 것입니다. 만일 안 되면 선생님은 큰 사기꾼입니다. '처자식 데리고 잘살고 있는데 왜 그렇게 하라고 그래요? 그렇게 했는데도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 선생님이 잘못했지요?'라고 하는데, 그것은 그렇게 해 나가다가 다른 것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안 되지. 그렇게 해서 안 되는 법이 없습니다. 안될 것 같으면 내가 먼저 보따리를 쌌다구요. 개인 복귀, 무슨 복귀…. 복귀라고 해서 이 귀(耳)가 아닙니다. (웃음)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전도를 하는 데 있어서 결과만을 찾아 다녔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동네 유지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전도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 사람을 어떻게 보는지 모르고 슬쩍슬쩍해 가지고 한판 해먹자고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사고방식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이번 기회에 스스로 진단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는 데 있어서 나에게 필요한 사람만 찾아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존재가 천리원형, 원칙에 부합된 '나'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여러분은 부합되어 있다고 생각합니까?「아닙니다」
아직까지 여러분은 개인적 탕감노정과 종족적 탕감노정과 미래의 민족적 탕감노정을 가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할 수 없이 선생님을 붙들고 '나는 선생님 대신자다' 하고 늘어져야 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탕감이 있기는 있는데 살짝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무리 울고불고해도 탕감이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 하는 것은 누구 때문에 하는 거예요? 자기 때문에 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잖아요? 자기 때문에 하는데 하나님이 거기에서 춤추시게 되어 있어요? 그런 하나님은 안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나를 낚는 사탄의 미끼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은 나를 낚는 사탄의 미끼라는 것입니다. 잉어잡이할 때에 미끼를 던지지요?「예」사탄은 나를 낚기 위해서 미끼를 던지겠어요, 안 던지겠어요? 미끼를 던진다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미끼를 만들겠어요? 사탄편의 사람들을 데려다가 던진다는 거예요. 사탄편 사람으로 하지, 하늘편 사람으로 하겠어요? 사탄편 사람으로 하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지방에서 득세하여 유지라고 해서 세도를 부리며 활개를 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한테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탄의 미끼입니다. 그것이 좋다고 전도하겠다고 상대하지 말고, 그것을 하기 전에 밝히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전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사고방식은 여러분의 사고방식과 다릅니다. 내가 전도를 할때는 80살이 된 노인이 찾아와도 젊은 사람을 대하는 때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우리의 몇십 대 몇천 대의 할머니가 부활해 오는구나, 저 이상 젊은 사람으로 올 수 없기 때문에 저 모습으로 찾아오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우리 선대의 선한 할머니의 역사다 하고 계승받는 겁니다. 또, 할아버지가 오면, 우리의 선한 할아버지가 땅에 오고 싶은데 오는 데는 몸을 쓰고 와야 하기에, 젊은 사람의 몸을 써 가지고는 할아버지같이 나타날 수 없기 때문에 저 할아버지의 몸을 쓰고 오시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가 정성을 들였으면, 내가 그 정성을 받아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하늘땅에서 그 누가 싫다고 할 사람이 있겠어요? 그런 사람이 오면 조상을 만난 것같이 반갑게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할머니보다 더 반갑게 대하라는 거예요.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하늘에서 바로 못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마음을 가지고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 할머니를 대하는 것은 하늘의 질서적 법도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을 대하는 것은 하늘의 순리적 다리를 놓는 것이 됩니다. 하늘이 찾아오려면 어디로 오겠어요? 가장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지요? 하나님 아녜요?(잠시 녹음이 되지 않아 정리하지 못했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는 데는 반드시 가정이 있지요? 가정이 있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으면 벌써 가정의 주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할아버지 할머니이니까 그 아들 되는 아버지가 있고, 그 아버지의 아들까지 3대가 있는 것입니다. 그 3대의 주인,3대의 중심되는 주인이 누구냐 하면 아버지입니다.
종적인 것이 교차하면 3점이지요?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종적인 것을 횡적으로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칠판에 쓰시면서 설명하심) 횡적으로 세우려면 이것을 복귀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이 아버지는 무엇이냐? 이 아버지는 요거라구요. 가정을 이렇게 놓으면 평면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3대가 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하게 되면 벌써 3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와 같이 가정에는 3대가 있어야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지 못한 사람은 정상이 아닙니다. 그러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만 모시면 정상적이냐?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져야 정상적 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만 가진 사람은 비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를 완전히 갖지 못해도 비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또 형제를 완전히 갖지 못한 사람도 비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3대를 중심삼고 누가 하늘땅의 중심이냐 할 때에,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부모의 전통을 이어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의 의견을 언제든지 이어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쁜 것을 이어받게 하려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절대 없습니다. 자기 손자에게 망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 경우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은 올바른 가르침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입장에서의 가르침은 완전히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받은 것이 열이라면, 열만 되어 가지고는 안됩니다. 목적성사해야 할 것은 하늘하고 땅이기 때문에 그 열에 더 플러스시켜야 됩니다. 여기에는 부모의 마음을 중심삼고 땅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열이면 거기에 열을 보태어 스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스물의 힘이 나타나기 때문에 창조의 힘이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 딸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기 이상의 힘을 발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창조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창조주가 낳았어요, 여러분들이 낳았어요? 아들딸 있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여러분이 낳았어요? 그 자리는 뭐냐 하면 상속의 자리입니다. 사랑을 통해 가지고 천지의 재창조 상속권을 이어받는 사랑의 자리입니다. 무슨 상속권이라고요? 천지의 창조적 상속권을 이어받는 것이 사랑의 자리입니다. 그 사랑의 자리를 통하지 않고는 천지의 상속권을 받아 천지를 움직일 수 있는 아담 해와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 사랑을 통해야 아담 해와를 대신하는 아들딸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하지 못한 사람은 인간으로서 불합격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불합격자요, 우주 앞에서도 불합격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신은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낙제하는 거라구요. (웃음)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부모라는 것은 과거에 좋았던 모든 것을 추려 가지고 이 세상에 플러스시킬 수 있는 중간적인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그 자리에서 더 이상 플러스시킬 수 있는 자격이 없게 될 때는 그 자리에서는 상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고대하기를 '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보다도 아버지 어머니가 못했으면' 하겠어요? 그렇게 바라요. 안 바라요?「안 바랍니다」 바라지 않지요? 그렇지요?「예」 그 말은 아담 해와의 아들이 '우리 아버지가 하나님보다도 더 좋았으면…' 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아담 해와가 아들이 있다면 말예요. 그렇지요?「예」
아버지 어머니가 할아버지 할머니보다도 더 훌륭하고 좋다고 하는 말은 무슨 말이냐? 위로 쭉 올라가게 되면 하나님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아담 해와를 두고 볼 때에, 아담 해와의 아들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할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의 아들이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할아버지보다도 더 좋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보다도 아버지 어머니가 더 훌륭하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 하나님이 '예끼 이놈!' 하겠어요? 그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영적으로 열이라면, 아담은 내적으로 외적으로 열이기 때문에 스물이 되는 겁니다. 내적 하나님, 외적 하나님이 되었으니 더 훌륭합니까, 훌륭하지 않습니까? 이렇기 때문에 땅 위의 사람들이 우주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여러분이 천주를 주름잡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울릴 수 있는 자리도 여기요, 하나님을 웃길 수 있는 자리도 여기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는 하나님이 하시는 창조의 역사를 나는 공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공들여 가지고 창조를 했나요. 공을 들이지 않고 창조를 했나요?「공들여 가지고 창조했습니다」 여러분은 아들딸 낳기 전에 공을 들였어요? 좋아서 창조하지요? 하나님같이, 공이야 물론 들이겠지만, 하나님만큼 공을 들여요? 하나님 만큼 수고하지 않고 아들딸을 창조했으니, 하나님보다?「낫습니다」(웃음) 이런 논법을 세워 가지고 해야 하나님이 '아 그렇구나!'하며 꼼짝못하는 거예요. 자, 이제는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낫다는 것을 알았어요?(웃음) 그렇기 때문에 현재 여러분들이 중요한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있어서는 할아버지라구요. 그렇지요?「예」 그러면 여러분이 통일교회의 문선생보다 못해야 되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연구를 더 해야 될 게 아니겠느냐 이겁니다.
오늘날 과학이 발달한 것은 옛날부터 찾아진 이론을 중심삼고 과학적으로 실체를 찾아 세운 데 있습니다. 후대의 학자들이 그것을 응용하고 활용하고 보태가지고 현재의 고차적인 문명권을 조성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통일교회의 여러분이 선생님보다 못해서 되겠어요? 선생님은 여러분이 못되는 것을 원할까요, 잘되는 것을 원할까요?「잘되는 것을 원합니다」 생각해야 할 문제라구요.
여러분은 통일교회가 제일이라고 자랑하지요? 통일교회가 최고라고 자랑해요, 안 해요?「자랑합니다」 자랑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 거예요? 선생님 때문이라구요. 태어나기는 조상 때문에 태어나 가지고 내가 좋다고 하는 것은 조상들의 복을 빌어 가지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잖아요? 대통령의 아들이라 하게 되면, 그 아들이 장관들을 대해 가지고 '야 이리 오라'고 할 때 '이 녀석아 야가 뭐야. 너는 촌수도 없느냐?' 라고 하나요? 그럴 수 있지요? 그 아들에게 있어서는 그럴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자체가 잘났어요, 못났어요?「못났습니다」 누구의 은덕을 팔아 가지고? 부모의 은덕을 팔아 가지고 그러는 것입니다. 부모의 은덕은 없제든지 땅 위에 열매맺혀야 되는 것입니다. 땅에 열매맺힌 공로로서 남아져야 되고, 역사과정에서 빛나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은 그 은덕을 빛내야 할 원칙을 보게 될 때는 그것을 막아서는 안되겠기 때문에 '예'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대통령의 아들이 아버지가 훌륭하다고 해서 개망나니가 되어 가지고 그렇게 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대통령도 위신이 깎이는 것이요, 그 집안도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대통령도 그 자식이 자신보다 훌륭 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어때요? 하나님도 자식이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욕심이 많은 분이기 때문에 더욱 더 훌륭한 곳을 찾아 나가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최고의 문명권일수록 더 좋아하십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못사는 것이 하나님을 믿고 하늘나라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이 아니라, 잘사는 것이 하나님을 믿고 하늘나라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과정에 있어서 탕감을 할 때에는 불가피 하지만, 탕감을 다했는데도 못사는 것은 천도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민족과 국가의 탕감을 다했다고 할 때는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따라지가 되어 있다 해도 괜찮습니다. 누구든간에 어디 가서 선생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탕감법만 세워 놓으면 가만히 있어도 뜻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바빠하는 것은 지옥 가는 생명이 많기 때문에 한 생명이라도 지옥 가는 것을 감소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등등의 모든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은 그냥 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세계보다도 더 나아야 됩니다. 그래서 땅이 뒤넘이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 땅 위에 와서 하나님 노릇을 못 하면 두 세계에 대해서 자주적인 권한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주인도 못 되고, 몸의 주인도 못 됩니다. 둘 다 못 되는 것입니다. 하늘땅을 사랑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얼마나 연구해야 되겠습니까? 이게 문제라구요.
선생님이 이 길을 알고 나서, 복귀의 길을 가고 싶다고 생각을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을 찾아가고 싶은 생각을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했겠지요?「예」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았으면 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겠어요. 알고 싶지 않았겠어요? 「알고 싶었겠습니다」 알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뜻 가운데 있는 내가 잘못해 벌을 받아 된 것이 세상의 망하는 나라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수많은 민족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칭찬받는 무리도 있겠지만, 그들이 엇갈려 있다 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이것을 고장난 원인을 전부 다 분석하지 않고는 고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왜 이루어지지 않느냐? 고장난 판국이 너무나 큰데 이것을 수리하고 치료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수리하고 치료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막 째고 막 찔러서 돼요? 약도 막 퍼먹여 가지고 돼요? 째고 수리하려면 '이렇기 때문에 이것을 투약하고 이렇기 때문에 잘라 버리고 이렇기 때문에 수술하고 침을 놓아야 한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몰라 가지고 되느냐? 안 됩니다. 의사를 찾아갈 때 돌팔이 의사를 찾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구요. 껄렁한 사람도 박사 의사라는 이름이 있나 하고 감정부터 먼저 합니다. 옛날에는 뭘 몰랐기 때문에 그랬지만 요즘에는 박사 하면 다 알지요? 그래서 박사인지 아닌지 감정부터 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의학박사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박사가 아니면 벌써 만난 기분부터 다르고 상대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권위가 문제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복귀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당당히 갈 것이냐, 쭈뼛쭈뼛하면서 갈 것이냐, 부끄러워하면서 갈 것이냐? 어느 것이예요? 골짜기에 들어갈 때는 이렇게 가는 것이다 하는 것을 알고 가는 것이 좋겠어요, 모르고 가는 것이 좋겠어요? 한 번 갔다가 와 가지고 다시 가고 싶은가요, 맨 처음부터 제대로 가고 싶은가요? 갔다 오는 것은 연습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연습해 가지고 가겠어요, 시간이 없는데 연습이고 뭐고 그냥 가지 이러겠어요? 그렇게 가서는 실수합니다. 그러니 연습을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훈련을 받아야 됩니다.
훈련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갔다 온 사람으로부터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 갔다 온 사람이 없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가 훈련을 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누구보다도 먼저 그 웅덩이에 들어가 체험을 해야 되고, 그 웅덩이의 깊은 곳까지 샅샅이 조사하여 재료를 찾아내서 갖고 있어야 됩니다. 그 재료를 갖고 있어요? 여러분은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선생님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자꾸 하네' 그러지요? 이런 얘기 처음 듣지요? 그렇지만 선생님이 이 시간에 나와서 그저 말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러면 여러분이 선생님보다 못할래요. 나을래요? 솔직히 대답해 봐요. 나을래요, 못할래요?「낫겠습니다」 이것은 정말 기분 좋은 말이라구요. 여러분이 선생님보다 더 나을 수 있겠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교육시켜 주겠어요. 협회장도 이런 교육시키는 거예요. 다들 받았다구요.
지금은 다들, 면허증을 따 가지고 장사해 먹는 사람이 되어 버렸어요. 아직은 다 말이 많다구요. 하늘의 법도가 어떻고 영적 세계나 세계 상황이 지금 어떻게 뒤넘이치고 있는지 모르면서 그저 당당한 것을 보면 내가 입이 다물어집니다.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입이 다물어진다는 거예요. 어떻게 되나 보자는 거예요. 그러면서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가까운 거예요, 먼 거예요? 가까운 것 같지만?「멀고」 먼것 같지만?「가까와…」 가까와요? 먼 것 같지만 없다구. (웃음) 멀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은 조상이 되는 거예요. 조상이라구요. 영계에 가서도 족속을 거느리는 족장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후손이 천대 만대에 이르고 여러분이 그 족장의 할아버지가 되면, 여러분은 어떤 나라, 대한민국에 있는 사람보다 더 많은 후손을 가지게 되니 영계에 가서도 얼마나 놀라운 족장이 되겠어요? 이렇게 될 때 그 족장은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땅의 기록은 천천만대까지, 후손이 그것을 칭찬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무개는 우리의 일대조(一代視)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족속의 조상인 거룩하신 일대조 할아버지의 일생을 한번 감상해 보자 하고 '실시, 땅!' 하게 되면 전부 다 나온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만나서 좋다고 하는데 알록달록한 것이 다 나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축복받을 때의 감정으로부터, 그 다음엔 나가서 전도할 때에 움직이는 꼬락서니로 해서. '밥 밥 밥…' 하는 것까지 다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다가 몇 살 때, 어느 골짜기에서 호출을 받아 할수없이 영계에 왔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 보면 장관이라구요. 선생님은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선생님은 그걸 다 아는 거라구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안다는 것입니다. 그때 '복귀노정을 가는데 있어서 무엇을 했나? 할 때 '아무것도 안 한 건달이구만' 하면 그게 영광일 것 같아요?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 대해서는 책임을 다 했다구요. 이제는 외국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외국 사람들을 여러분 보다도 우대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을 떼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미 뼛골이 녹아나는 정성을 다해 가지고 대우를 해뒀습니다. 그렇지만 외국 사람들에 대해서는 뼛골이 녹아나지 않은 거라구요. 그들은 상대적인 이 시대에 지나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남아질 사람들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는 손님 대접을 잘해야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선전을 잘할 것이 아녜요? 그렇지요? 그런다고 해서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외국 사람만 오면 정신이 나가 가지고 제일 좋은 데만 구경시켜 주며, 돈을 물쓰듯 하고, 나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안 해주고 어느때에 만났는데 누구 왔구나 하고 앉아 있더라. 치- 무슨 선생님이 저래?'라고 하는 것입니다.(웃음)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 이렇게 연결되어 있는데 여기 있는 이 사람이 중요합니다.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이렇게 되면 이 사람이 둘째 번입니다. 이렇게 보면 둘째 번의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중요합니다. 1차 7년노정보다도 2차 7년노정이 국가운세와 세계운세를 세워 나갈 때입니다. 요것이 둘째 번이지 요? 그렇지요? 여기에는 천하가 다시 탕감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2차 7년노정 중에 급살맞아 죽을 패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차 7년노정에는 전체가 동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안 하기 때문에 재탕감노정을 가는 것입니다.
탕감법에는 용서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때는 뭐라고 할까? 서릿발 위를 맨발로 걸어가는 것 같습니다. 서릿발을 디디면 어떻게 되나요? 부서지지요? 이런 놀음을 하는 거라구요. 온갖 정성을 다해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해가 뜨고 기쁘려 할 때는 이 발에 힘을 주어 무너지지 않게 하고 넘어가야 할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역사적인 환경을 수습해 가지고 선생님 일대에 세워 놓고 3차 7년 노정까지 세계를 횡적으로 몰아넣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쉽겠어요?
내 개인이 영적인 세계와 사탄세계에서 승리할 때가 40세까지입니다. 40세까지 그 놀음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 기간이 20년이었습니다. 2차 20년 기간에는 개인 승리한 땅을 기점으로 가정적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세계를 전부 다 묶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3차 7년노정이 언제까지입니까? 선생님이 63세쯤 되면 선생님이 활동하는 것이 없을 때가 올지 모릅니다. 지금이 50이니까, 1974년까지가 2차 7년노정이고, 1981년에 3차 7년노정이 끝나지요? 그렇지요?「예」 그러니까 이제 몇 년 남았어요? 10년 남았지요? 10년으로 잡아 가지고 선생님이 63세까지는 다 찾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3차 7년노정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가서는 어떻게 될 것이냐? 정신차리라구요. 여러분들이 원리를 알아야 됩니다. 종적 탕감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지요? 종적 탕감역사는 뭐냐 하면 아담 개인이 찾아오는 길이요, 아담이 자리잡는 역사입니다. 거기서 열매맺는 거지요? 재림사상은 신랑 신부 혼인잔치를 해 가지고 열매맺는 것이 아니예요? 요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됩니다. 그래서 6천년 역사를 획기적인 형태로 넘어와서 7년, 7년, 7년, 즉 21년을 기간을 거쳐왔습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다 거친 노정입니다. 그런 것을 밝힐 때가 옵니다.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그 노정을 다 거친 것입니다.
2차 7년노정과 3차 7년노정을 통해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1차 7년노정은 가정이요, 2차 7년노정은 국가요. 3차 7년노정은?「세계입니다」 알긴 아는구만. 그러면 여러분들이 세계로 갈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어요? 지금 선생님은 바빠서 죽을 지경입니다. 영어 공부도 해야 되고.,.
이러니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현재의 기독교를 빨리 복귀해야 여러분이 3차 7년노정을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초교파 운동을 통해 1967년부터 준비해 나온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7년 전부터 모든 것을 준비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한 단계 앞서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몰아내 가지고 이제 이만큼 왔지요? 이제는 통일교회 돈만 있으면 예수 믿는 패들 얼마든지 오라 하면 '예' 하고, 가라 하면 '예'하고, 전도하러 나가라 하면 '예' 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 죽게 되었거든요. 이런 것을 전부 다 알아 봤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래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원칙적인 하늘의 전법을 통해 가지고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원인과 과정을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그들을 살려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 통일교회가 전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는 것이라구요. 그렇지요? 지금 이렇게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통일교회 간부들…. 여러분은 선생님보다 나아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보다 낫지 못하면 조상 만큼은 되어야 될 것이 아녜요?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럴 것이 아니예요? 그 집안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망하는 데에 하나님이 계시겠어요? 선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크게 되기 마련입니다.
정지상태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포화상태에서부터 내려갈 수 있는 운세를 탄다는 말입니다. 여기 오기 전까지 여러분은 포화상태에 있었어요, 내려가는 운세에 있었어요? 솔직이 얘기해 보라구요. 「내려갑니다」 내려 가도 다 내려가서, 깨질대로 깨지고 부서질대로 부서져 가지고 있지요? 그래도 자기 위신을 세우려고 여기에 왔으니 할 수 없이 찬송을 부르고 있지만 말이예요. 그 자체를 보면 깨질대로 깨져서 눈이 째져 있지 않나, 귀가 떨어져 있지 않나, 코가 삐뚤어져 있지 않나,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나, 팔이 삐지 않았나…. 다들 그렇다는 거라구요. 이제 선생님 말을 들으니까 정신이 좀 들었어요? 「예」 정말? 「예」 그럼 가망이 있게요? 「예」 해골 골짜기에 있는 뼈들이 군대가 되게?
여러분은 아들딸을 사랑하지요? 자식들을 사랑하지요? 자식은 아버지 어머니가 가는 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가정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섬겨야 됩니다. 자식에게 아버지는 기도하는 아버지라고 교육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아버지, 남을 위하여 수고하는 아버지로 알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자식이 은연중에 자기를 존경하고 자기를 훌륭하게 볼 수 있는 터전을 닦아 가지고 봉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절대로 밥을 굶게 되지 않습니다. 밥을 굶게 되면 그 동네가 난리 납니다. 그 동네 조상들이 동원해서 그 사람한테 밥을 갖다 주게 합니다. 그 사람이 사흘만 굶게 되면 영계가 걸려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 동네 조상들이 가만히 안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만 보면 먹을 것을, 좋은 것을 다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움직여 그렇다는 거예요.
자, 그러면 지금 때가 어떤 때인지 알겠어요?「예」 대한민국에 있어서 기성교회와 우리가 하나되어야 됩니다. 기성교회와 우리가 하나되면 가인 아벨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와 우리가 플러스되게 되면 둘이 합한 아벨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아벨들이 대한민국 복귀를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저쪽에서 모셔 주지 않고 희생하지 않게 될 때는 내가 희생해야 됩니다. 그게 원칙이라구요. 제물을 줘야 됩니다. 제물을 주려면 정성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이때는 희생이 따릅니다. 제물을 주는 과정은 반드시 그런 것입니다. 정성을 들여 줘야 되니 희생이지요? 「예」 희생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희생한 그 공적에다가 자기의 것을 플러스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정성들인 그 전통을 본받고, 그 위에 자기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 가지고 제물을 바쳐야 전체 앞에 자랑의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심은 그대로 거두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수고할 때 지금보다도 작아지기를 바라며 수고를 해요? 더 커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그 사람의 수고에 수고한 여러분이, 즉 지구장이면 지구장, 교회장이면 교회장이 믿고 나갈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기준에다 더 플라스시킨 것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옛날보다도 더 큰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둘이 합하니 더 크게 됐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나는 나로서 열 만큼 정성들이고, 저기서도 열 만큼 정성을 들였으니 둘이 합하면 몇이 되나요? 20이 됩니다. 20이 되는데, 그 20의 가치는 서로가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가치 이상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제물은 내가 정성들인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역사가 그렇잖아요? 조상의 선한 모든 것을 그것으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 플러스시켜야 됩니다. 플러스시키면 20이 되는데, 그 20은 조상의 것도 되는 것이요, 조상의 영광이 되는 것이요, 자기 자신의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의 이치가 여러분과 교회장의 협조를 받은 그 사람 사이에서 벌어져야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그것을 순수하게 상속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여러분 조상을 통하여 온 주류적인 순수한 사상을 이어받아 가지고 심어 주라는 말입니다. 선생님의 사상을 보면 선생님의 사상이 전부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자신이 없을 때는 선생님의 역사를 더듬어 가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 길을 위해서 희생했으니 같이 이 길을 위해서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조자 입장에서 가야 됩니다. 제사장의 입장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예」 제사장 입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동조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없거들랑 동조자의 입장에서 같이 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나가는 것이 복귀노정입니다.
하나님이 종을 복귀하기 위해서 종의 동무가 되었지요? 되었어요, 안되었어요? 양자를 복귀하기 위해서 양자의 동무가 되었지요? 마찬가지로 아들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아들의 동무가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한 교회장을 중심삼고 통일교회 원리를 풀어 나가는 길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느껴 보았어요? 느껴 보았어요, 못 느껴 보았어요?
제사장이라고 하면, 그건 벌써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아들의 자리이니까 올라가면 하나님 자리지요? 그 자리는 또한 예수의 자리이고 부모의 자리입니다. 그러니 그런 모습인 못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서 같이 동무가 되라는 것입니다. 형님이라면 아벨적인 입장에서 형님을 모시고, 형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끌고 가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이렇게 가겠다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그러면 제사장 자리는 언제 되느냐? 안 되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해 가지고 한 사람 끌고 가고, 두 사람 끌고 가고, 세 사람 끌고 가고, 더 많이 끌고 가면 갈수록 그 제물 드릴 수 있는 가치는 더 크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맞으면서도 합했다고 해보세요.
만약에 선생님이 중심적 제사장으로서 여러분을 제사 드리게 되면 땡잡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우리 교회를 하나님 앞에 세계를 대표해서 제물로 드리면 땡잡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우대 받지 말라구요. 제사장은 우대받는 것인데 우대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복귀역사가 그렇게 발전되어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여러분의 책임이 뭐냐 하면 그런 전통을 이어받아 가지고 순수한 사상을 전수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다하려니 밥도 안 먹고, 밤잠도 안 자고, 하고 싶은 것도 안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일체의 정성을 들여서 참인간, 참사람을 만들어 보자 이겁니다.
통일교회의 초창기 시대에 선생님은 잠자지 않았습니다. 잤는 줄 알아요? 코피를 쏟으면서 기도했습니다.'이놈의 코피야 어서 나와라, 역사적인 피를 대신해서 만민이 부끄러워할 뿐만 아니라 만민이 통곡하고도 갚을 수 없는 코피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영광 중의 영광의 코피냐'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만민이 맞을 매를 내가 맞더라도 그렇고, 고문을 받더라도 내가 받겠다 하고 서로가 죽더라도 내가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이런 자리에서 맞았다면 얼마나 영광의 매가 되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국자' 하게 되면, 애국자 중에 최고의 애국자가 어떤 사람이예요? 만약 나라를 위해서 매를 열 대 맞은 사람이 있고 백 대 맞은 사람이 있다면 백 대 맞은 사람이 못난 애국자예요. 잘난 애국자예요? 「잘난 애국자입니다」 정말이예요?「예」 그럼 백 대보다도 천 대 맞으면? 지금 천 대 맞은 사람이 최고의 애국자라면, 만 대 맞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복을 빼앗겠어요, 못 빼앗겠어요? 빼앗지요?「예」복이 붙게 돼 있는 거예요. 그럼 만 대 맞은 사람이 있는데 십만 대 맞은 사람이 나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때는 갖지 않으려 해도 빼앗아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복받는 길이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아이구 지구장 꼴꼴꼴꼴 좀 봐. 지구장하고 지역장하고 똑같이 됐어…' 섭섭하지, 이놈의 자식들. 그런 퇴폐적인 사상을 갖고 있으면 안 되는 거라구. 시시하다는 거라구. 또 이번엔 '아이구 옛날 지구장하던 신세에 지역장감들과 같이 교육받고 있으니 힘이 안 난다'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똥개 같은 사람들이라구. 옛날에 자기 지구내에서 보지도 못한 사람이 같은 입장에서 같이 먹고 같이 자고 또 옆에서 얘기할 때'지구장님'하게 되면 '교회장님' 하게 되니, 피장파장이라고 기분 나빠하는데 보라구요.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 데 하나님 이상 높은 사람이 있어요? 「없습니다」 그러면 복귀섭리를 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어떻게 되나요? 「낮아집니다」 그렇다면 문선생 대해서 기분 나빠해야 된다는 거구만. 그렇잖아요? '내가 이 땅에서 하나님 노릇했는데 웬 문이라는 사람이 나오더니, 아이구 하나님을 외적 하나님, 내적 하나님으로 쪼개 놓고서는 병작(병作)하자 하네' (웃음) '하나님을 절반으로 나누려고 하네…' 그 말 아니예요? 그런 생각 안 해봤어요?「안 해봤습니다」(웃음) 절반으로 나누어 가져야 된다는 거라구요. 이거 하나님이 싫어하면 망하는 거라구요.
가정에 있어서도 아버지가 아이들하고 친구할 때 가정이 발전하는 것입니다. '아들아, 너 하는 대로 내가 하마' 하고, 또 아들이 아버지와 친구하려고 해야 그 가정은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집안이 잘되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아버지한테 '아이쿠 아버지' 하면 그 가정이 못 되는 거예요?「잘되는 것입니다」
요즘 통일교회 식구들, 승공연합 이사장 하면 기분 좋아하고 사장하면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죽어야 되는 거라구요. 그건 죽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인사이동을 안 하면 하늘의 벌을 받아 가지고 이사장 못 하게 되는 것입니다. 권력을 끔찍이나 좋아하는 녀석들, 선생님은 지금 땅에 떨어져 가지고 이러고 있는데, 이사장이 뭐 어떻고 어떻고 그런 직제의식이 강해 가지고, 그렇게 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 패가 있다면, 그렇게 생각한 패가 잘못이예요, 그렇게 생각하게 한 패가 잘못이예요? 대답해 보세요. 그렇게 생각하게 한 패가 잘못이지요? 그래요?「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한 사람이 누구예요? 선생님이 만들었다는 거예요. (웃음) 바꿔 말하면 아벨이라는 것입니다. 가인 다음에 나와야 아벨이 되지요? 이 자리에서는 여러분이 가인이라는 것입니다. 가인은 큰소리 말라는 것입니다. 말하면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하늘의 계대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그렇지요?「예」
그런 생각을 했으면 회개하라고요. 회개해야 왔던 것이 보람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왔던 보람이 있는 것 같지만, 돌아가게 되면 '그저 그렇구만. 나는 벌써 이만큼 되었으니 하나마나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쭉정이 열매가 맺히는데 주인이 정성들여도 별것 있겠어요? 그런 열매가 또 맺혀서 그것이 죽지 않은 열매이기는 하지만 쭉정이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이 그런 쭉정이 열매가 되었다면, 크게 근심하고 큰일나야 할 텐데 그렇지 않고 딴 생각하면 망조운(亡兆運)이 뻗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물을 바쳐 가지고 승리적 제물, 탕감제물이 되었으면 그것으로 끝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거기에 전부 다 걸려 있지요? 가인 아벨이 전부 다 걸려 있다구요. 그러니 거기에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으면 저쪽에서는 그것에 비례해 가지고 플러스시키는 것입니다. 거기에 첨부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나 한 사람이 그 사람을 통해서 민족으로, 국가로, 더 큰 범위로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언제나 따라지 모양으로 자기 혼자만 남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씨를 뿌렸으면 뿌린 만큼 열매맺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눈물로 뿌렸으면 눈물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을 위해 정성들였으면 그 정성들인 만큼, 자기가 한 것만큼 교인들이 하는 것입니다. 내가 열 만큼 하면 교인들은 열 하나 만큼, 자기 교회에 정성을 가하려고 하기 때문에, 열 하나로 나타날 때 자꾸 발전하는 것입니다.
교회장들이 기도할 줄 모른다는 소리를 선생님이 보고로 많이 듣고 있습니다. 교인들에게서 편지가 왔더라구요. '우리 교회장님은 기도할 줄도 모릅니다. 그래도 반공강의는 잘 합니다' 하는 편지가 왔더라구요. 반공강의는 왜 하려고 그러느냐? 그것은 다니면서 우대받고 편하거든. 교회장이 그런 걸 하면서 하늘나라에 가고 싶은데, 그런 마음 먹고 있다 가는…. 교회에 오게 된다면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탕감법이 어떻고 하는 것이 자기는 싫다는 것입니다.
교회장이고 지역장이고 쓱 승공강의를 하게 되면 점심은 얻어먹거든요. 그리고 잘하면 저녁도 안 굶거든요. 그뿐 아니라 강의를 잘해서 감동받게 되면 봉투까지 준다는 것입니다. 그 봉투가 사탄의 미끼인 줄도 모르고서 나붓나붓해 가지고…. 그것은 일시적인 거예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섭리에 있어서 하나님이 나를 미끼삼아서 사탄세계를 낚으려고 하시는 것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들, 하나님의 미끼 될래요, 안 될래요?「되겠습니다」 여러분을 미끼삼아 가지고 낚시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전도 방법입니다. 그렇지요?「예」 여러분들은 미끼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미끼가 되어 먹혀야 사탄을 잡지요? 그렇지요?
악이 선을 삼켜 가지고 남아지는 법이 없습니다. 삼키게 되면 오히려 그 선의 씨가 들어가서 그 몸뚱이를 거름삼아 가지고 큰다는 것입니다. 나도 크고 그 자체도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부모가 자식을 키우려면 어머니가 젖을 먹여야 되지요? 자기의 모든 좋은 것을 빼 먹여야지 그것 빼 먹이면 자식도 살고 어머니도 사는 것입니다. 둘 다 산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젖을 안 먹이면 큰 화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사탄세계를 대해 가지고 낚시질 하는데, 미끼의 사명을 하는 것이 여러분입니다.
미끼 노릇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관심을 갖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본질이 좋아야 되는 것입니다. 맛보고서 '퉤' 하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맛을 보고서 좋은 것 같아서 들어왔는데, 교회장 맛을 보고 '퉤'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애써 들어왔던 사람들이 도로 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생사람 많이 잡아먹었다는 것입니다. 죽였다는 거예요. 들어왔다가는 며칠도 안 되어서 후닥닥 떠나가지요? 다음에 찾아가면 만날까봐 미리 도망가 버리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승리적 제물이 되어야 하는데 승리적 제물이 되는 기준이 어떤 것이냐? 악한 사탄세계가 개인으로서 득세할 때는 선한 하늘세계도 개인으로 득세해야 합니다. 그리지 않고는 탕감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사탄의 권위보다도 하늘의 권위를 더 세우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득세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반드시 탕감원칙을 거쳐야 됩니다. 하늘이 득세하려면 탕감원칙을 거쳐야 되는데, 그 탕감원칙에는 반드시 제물의 과정이 따르게 됩니다. 하늘이 득세하려면 반드시 제물을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물을 바치는 데에는 무엇을 바쳐야 되느냐? 물론 물질을 바쳐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물질을 바치겠어요, 자기 목을 바치겠어요? 어떤 것을 바치겠어요? 물질을 제물로 바치는 시대에 자기 목을 바치게 되면 물질 제물시대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되면 물질에 의한 탕감과정은 영영 이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승리적 제물이 되려면 자기 몸을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하는 제목의 결론이라구요, 알겠어요?「예」
예수로 말하면 예수님 자신을 제물로 바쳐야 되는데, 제물 바치는 분은 누구겠습니까? 하나님이지요? 그럴 게 아니예요? 그렇지요?「예」 자식을 제물로 바쳐야 할 입장에 있다면 자식이…. (테이프 잠시 끊김)
또 부모는 내적인 하나님과 직결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제물을 바치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부모가 바칠 수 있는 제물시대는 지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이치가 그렇잖아요? 그러면 참부모라는 말을 가지고 나온 통일교회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제물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인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제물을 바쳐서 '승리했다' 하게 되면 '부모가 나왔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식이 나왔다' 그 다음에는 '복귀된 물건이 나왔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 자신이 활동하는 데 있어서는 자식들한테 거리낌이 없어야 되고, 물질에 대해서도 거리낌이 없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겠어요? 자식에 대해서 머릿살을 앓고 물질에 대해서 머릿살을 앓으면, 아직까지 부모가 복귀된 자리에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역사적인 시대를 중심삼고 볼 때에, 내가 필요한 환경의 물질과 필요한 때에 대한 상대를 언제나 갖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또,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내가 언제든지 제물이 될 수 있는 상대적 입장을 준비하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구요.
자, 그러면 '부모의 날이다! 부모의 날이 나왔다!' 이 말은 부모가 고생했다는 말이기 전에 하나님이 고생의 고개를 다 넘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할 고생은 다 끝났다는 말이라구요. 그렇지요?「예」 그럼으로 말미암아 땅 위에 부모가 나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하나님이 희생하실 수 있는 길은 다 끝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희생하실 수 있는 길이 다 끝났다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전면적 내적 기준의 참소조건이 완전히 절단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제물이 싫다고 해 가지고 그렇게 될 수 있어요? 제물로서 희생될 수 있는 부모의 인연을 갖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영계를 통하면 선생님이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통고하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론 하나님이 수고하셨지만 탕감하려면 키워야 되지요? 그 다음, 제물을 드릴 때는 누가 희생해야 되느냐? 제물을 바쳤다, 제물을 받았다 하는 것을 하나님이 결정하는 거예요? 누가 해야 돼요? 부모 되는 사람이 해야 됩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원리적으로 맞는 말이라구요. 하나님보다 더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잡아 제물 드려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제물을 키우려고 고생하셨지만 하나님이 잡히지는 않았거든요. 하나님이 잡아 제물 드려야 할 분이 하나님을 살려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보다 더 불쌍한 자리에 나가야 되니 선생님이 하나님보다 더 불쌍하다는 말이 맞는다는 거예요. 그 표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의 한계선은, 승리적 제물 과정은 발전되어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승리적 제물이 드려짐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부모가 생기는 것입니다. 부모의 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 다음 부모 앞에 자녀의 날이 나오려니 자녀로서 제물 드릴 수 있게 하기 위한 부모의 수고 과정이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 부모가 제사드릴 때 제물될 수 있는 아들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아들을 통일교단을 통해서 찾아야 될 것 아니냐. 그럴 게 아니예요? 그렇지요? 통일교회의 아들딸을 중심삼고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찾았느냐 못 찾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을 통해서는 찾을 수 있는 기대가 못 됐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하고 있는 거라구요. 원래는 여러분이 제물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 제물의 자리에 누가 나가야 되느냐? 아들딸이 나가야 합니다. 제일 사랑하는 아들딸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 거라구요.
원래는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한꺼번에 되어야 했습니다. 꺼꿀잡이로 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체를 주관하는 자리에 계셔야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은 기다려 가지고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하늘이 승리했다는 기준인 부모의 날을 먼저 맞았습니다. 그런데 부모에게 달린 것이 자녀요 만물이기 때문에,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전부 갖춘 통일적인 기준에서 하늘 앞에 바쳐지지 않고는 하나님의 날이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것이 복귀원칙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제물을 바칠 때에 진정으로 감사한 사람이 있었어요? 제물 되는 것을 알았어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1963년까지 그 일을 한 것입니다. 그때까지 선생님도 보리밥을 먹으면서 그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알겠어요? 3년간은 탕감을 해야 합니다. 가정적 탕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러분들은 외지에 나가 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가서 원수와 싸우고, 혜진이는 복중에서 사지의 노정을 거쳐 나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이 보리밥을 먹을 때 같이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3년 기간에는 선생님이 밥을 상에 바쳐 먹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적인 면에 있어서 생활적으로 세계적인 제물과정을 거쳐 나가면서 아들딸을 드려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진 아기를 낳은 다음에 국밥 먹었지요?「예」 그것은 어머니의 피를 받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국밥 먹을 때 그 피를 받는 것입니다. 효진이 때도 역시 그 기준을 중심삼고….
이런 일들을 해 가지고 자녀의 날을 찾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만물의 날을 찾아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그런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축복의 한 날을 세워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1968년에 제1차 7년노정이 끝나고 선생님의 가정이 해방됨과 더불어 하나님의 날을 책정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하지 않았습니다. 원래는 통일교회가 해야 될 것인데, 통일교회가 할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1차 7년노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일이 끝나서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을 결정한 것입니다. 엄숙한 1차 7년노정으로 부모로서 타락시켰던 원한의 모든 제물적 기준을 가누어 하늘 앞에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이 나온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통일가의 전통이요 사상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길을 가야 됩니다. 이대로 가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다시 탕감해야 됩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해야 하는데 못 했으니 다시 본래의 길을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이 가정을 중심삼고 이런 일을 전부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못 했기 때문에 다시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2차 7년노정으로 넘어오는데,1년, 2년, 3년, 이 3년의 과정에서 그 기준을 중심삼고 여러분 자신의 부모의 날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 자신의 자녀의 날을 찾아야 되고, 여러분 자신의 만물의 날을 찾아야 되고, 여러분 자신의 하나님의 날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 일대에 있어서는 전세계적인 사탄을 중심삼고 탕감해 나왔지만, 여러분에게는 전세계적 사탄은 이미 방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일가를 중심삼은 종족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탕감적인 내용만, 공식만 맞추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공식을 맞추는데 여러분들에게 다 가르쳐 줘 가지고 맞춰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가르쳐 줘 가지고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따라 나오고 선생님이 전부 다 하는 것입니다. 여기는 사탄의 참소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망할 단계에 들어가더라도, 생명을 걸고 선생님을 붙들고 늘어지면 또 이끌려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흐지부지하면서 복귀노정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입장입니다. 알겠어요? 한 단계 한 단계 차례차례로 끝내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지지부진하면서 가다가 '아이구 죽게 되었으니 살려 주십시오' 하고 붙들고 늘어지기 때문에 잘라 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탕감법의 기준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사탄을 이긴 승리적 기반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끌어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떨어지는 날에는 사탄이 끌어 갑니다. 떨어지는 날에는 사탄에게 끌려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지부진하면서 통일교회에 끌려가다 보니 깊이 떨어져 가지고 점점점 소생되는 것이 아니고 점점점 통채로 들이몰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범위는 점점점 넓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이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을 거쳐가기 때문에 범위는 더 넓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개인적 기준을 못 넘어서면 점점 넓어지고, 그렇게 되면 해이될 수 있고, 그래서 결국 점점 갈 수 없는 운명권에 놓여지기 쉽다 이겁니다. 현재 여러분들의 입장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교회장' 하면 교회장이,'가정' 하면 가정이 이 이상 지탱하지 못하겠다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알았어요? 그것이 나쁜 것이냐? 그러면 그것이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됐느냐 할 때 '자기 때문에 되었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늘이 동기가 되어 있기 때문에 결과도, 열매맺는 것도 하늘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끝이 되면 될수록 해결될 수 있는 때가 가까와 오는 것이지, 자기가 망할 때가 가까와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과는 반대라는 것입니다. 선생님 시대에는, 점점 고통이 심해지고 점점 막혀 버리는 것같이 되면 망하지만,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막히는 것 같지만 판도가 이렇게 되어 있으니 (판서하시며) 책임을 다하면 여기에서는 고통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고통 없이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책임 못해 보라구요. 요때까지 여러분들은 고생해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선생님도 고생입니다. 따라서 여기는 점점 넓어지는데 여기는 반대로 좁아집니다. 그렇잖아요? 반대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책임 못한 여러분을 극심한 골짜기로 내모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적 관입니다.
어느 자리까지 내모느냐 하면, 죽을 쑤어 아기에게 먹이던 어머니가 아기를 잊어버리고, 아기에게 죽을 먹이는 어머니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밥 생각이 앞서서 그 애기 죽을 자기도 모르게 퍼먹는 자리까지 내모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자식을 거부하는 자리까지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탕감하지 못한 사람들이 갈 수 있는 마지막 길이요, 소생할 수 있는 인연이 맺어지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따라가는 민족은 그 길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책임 못 하면 그 길까지 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극난을 겪게 되고, 자식에 대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런 문제가 벌어지는 거예요.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아직 크지 않았지요? 이것이 일차만 더 되풀이되면 여러분들을 자식들이 타고 앉아 가지고 천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와야 되겠어요. 안 와야 되겠어요? 그것을 막기 위해서 지금 선생님이 준비하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며) 이 자리에 가야 될 게 아녜요? 이 자리에 가야 여기서부터 다시….이 자리에 가게 된다면 이걸 잃어버리기 때문에 가정에서,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으로 넓어지기 때문에,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교회 자체는 발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도리어 점점 좁아지는 것같지만 뜻의 판도는 점점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맨 처음에 나온 사람들은 시련 골짜기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선생님이 원대로 할 수 있는 때가 언제부터냐? 국가를 찾아 세우고 하늘 주권을 갖추는 때입니다. 그때까지는 개죽음을 당하더라도 밀어붙여야 됩니다. 결론은 그거라구요. 선생님의 탕감노정은 기독교의 탕감노정을 거치고 통일교에서 재탕감노정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 가정에서 자녀들을 제물로 바치는 역사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도 보게 되면 누구를 제물 드리느냐? 혜진 애기가 딸로 보면 둘째고, 희진이가 아들로 보면 둘째거든요. 내가 어머니에게 이야기했어요. 어머니가 이 애기에 대해서 원망하게 되면 걸린다고 주의를 준 것입니다. 복귀노정에서 뜻을 통해야만 최고의 승리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교인들도 제발 선생님하고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1968년도에 선생님이 전체 동원할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랬지요? '금년만은 전체가 동원해라' 했는데 안 하면 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진 애기가 아버지를 위해서 나서게 된 것입니다. 희진이가 나를 잡고 '아버지가 전체 동원하라고 했는데 안 하니까 나라도 동원해야겠다'고 한 것입니다. 내가 그 말에 걸렸다구요. 이런 비운의 역사를 거쳐 나가고 있습니다. 만일에 이래 가지고 점점 커 나가서 민족, 국가, 세계의 기준을 이루었는데도 불구하고 국가가 책임 못 하게 될 때는, 국가가 뒤넘이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선생님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민족적으로 선생님을 영영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때는 선생님이 대한민국의 사람이 아니라구요. 세계의 국적을 전부 상속해 주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 뜻을 이어받는 나라가 많이 나올 것입니다. 왜? 기독교 문화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세계를 위한 대한민국이지 대한민국을 위한 세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계적인 뜻이지 대한민국만을 살리기 위한 뜻이 아닌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세계를 살릴 수 있는 길을, 선생님이 세계를 살리기 위한 길을 못 가게 될 때는 대한민국과 선생님은 영영 이별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선생님의 자녀와 일족 전부가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때에 따라가지 못한 사람들은 천추에 한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희생되었던 거와 같은 슬픔이 우리에게….
앞으로는 함부로 선생님을 만나러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거짓말이 아니예요. 두고 보라고요. 그렇게 되나, 안 되나. 여러분들이 축복받고 낳은 아들딸들도 책임 못 하게 되면 다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재차 그 나라에 가서 책임을 해야 됩니다. 분명히 얘기하는 것입니다. 금번에 선생님이 미국에 가는 것은 그러한 전후좌우의 준비를 하러 가는 것입니다. 3차노정을…. 그런데 미국에서 사탄들이 발동해 가지고 선생님을 못 오게 하려고 합니다. 여기에서는 가려고 하는데 거기서는 못 오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생전에 책임을 못 하면 큰일나기 때문에 지금도 악착같이 유랑의 생활, 집시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의 나라가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서울이 결정적 근거지가 아닙니다. 한번밖에 없는 이 노정을 있는 정성을 다해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개척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 떨어지더라도 통일교회 문(文)은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 일가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해 가지고 선생님이 무슨 권을 만들어 나오느냐? 잘 들어요. 선생님은 무얼 복귀해 나오느냐? 가정적 승리권, 국가적 승리권, 세계적 승리권을 이루어 나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 가정들이 준비 못 했던 것을 이루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반으로 하여 국가적 승리권을 탕감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 얼마만큼 왔느냐? 통일교회가 종족적인 기준에서 제물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에 거의 다 왔습니다. 거의 다 와 가지고 세계운세와 맞부딪치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미국의 운세가 미국 운세가 아니고 대한민국의 운세입니다. 일본의 운세도 대한민국의 운세입니다. 민주세계 운세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민주세계를 보면 몇 나라입니까? 독일의 운세도 대한민국의 운세입니다. 다 같은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민주세계의 적이 되는 소련도 대한민국의 원수요, 중공도 대한민국의 원수요, 김일성도 대한민국의 원수입니다. 이 모든 것이 직행코스로 직결된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입니다. 북한을 중심삼고 소련과 중공이 삼위 일체가 되어 있습니다. 소련도 북한의 국경에 달려 있고 중공도 북한의 국경에 달려 있습니다. 사탄세계는 삼위일체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편은 삼위일체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탄세계의 삼위일체가 깨져 나갈 때가 오면 하늘편 삼위일체 계획이 시작하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지금 보라구요. 이번 정세로 말미암아 중공과 소련도 멀어졌고, 미국과 소련도 멀어졌습니다. 미국이 저렇게 나오니까 중공이 친소관계에서 갑자기 멀어지게 됐습니다. 미국도 소련하고 멀어졌습니다. 그렇지요? 그 다음 북한의 김일성을 두고 보더라도 중공과 하나되어야 하는데 미국이 저렇게 나오니까 중공과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다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 민주세계는 어떻게 되느냐? 민주세계도 갈라져야 됩니다. 미국은 세계적 천사장 입장입니다. 미국하고 일본하고 하나됐었고, 한국하고도 하나됐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바람에 미국하고 일본이 갈라지고, 미국하고 한국하고도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런 운세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합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우리 통일교회 내의 사람입니다, 그러려니 대한민국하고 기성교회하고 통일교회가 하나되어야 됩니다. 통일교회로 보게 될 때, 천사장이 누구냐 하면 대한민국입니다. 그 다음 해와가 누구냐 하면 기성교회요, 아담이 누구냐 하면 통일교회입니다. 이 셋이 만날 수 있는 운세로 가면 이 천지에는 통일 운세권으로 말려드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지금 기성교회하고 통일교회하고 분립되려고 해요, 합하려고 해요? 「합하려고 합니다」 기성교회가 싫다고 하는 꼴이 되었지만 찾아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정부하고 통일교회하고 원수였습니다. 이렇게 갈라진 것이 나누어지게 되어 있어요. 합하게 되어 있어요?「합하게 되어 있습니다」 합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고맙게도 하나님은 우리 때문에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감고 돌아서는 날에는 일본도 미국도 재차 출발할 수 있는 길을 갈 수 있고, 김일성이는 우리의 통일사상 때문에 밀려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세계는 우리를 안고 사탄세계를 넘어 지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7월, 8월을 중심삼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시점이 이 7월,8월입니다. 1971년도는 7천년 역사를 탕감하는 기간에 해당한다는 말 들었지요?「예」 그것이 그렇게 되었어요, 안 그렇게 되었어요? 왜 이렇게 정세가 급변해 가지고 후닥닥 되어 가는지 알아요? 사탄편이 갈라지면 하늘편은 합할 수 있는 운세가 생겨나게 됩니다.
사탄편이 갈라짐으로 말미암아 하늘편에서 이런 운세를 만나게 됐어요.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길을 닦아 나오니 사탄세계는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통일교회의 때는 우리의 목전에 다가왔고, 세계 앞에 다가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에 우리는 무슨 제물을 드려야 하느냐? 승리적 제물을 드려야 됩니다. 승리적 제물은 어떻게 드려야 되느냐? 그 표준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나라입니다. 나라가 문제입니다. 왜 나라가 문제냐? 사탄세계가 있으면 사탄세계는 일개국을 위시해서 편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전부 합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격리되어 있지만 결국은 한 나라인 것입니다. 사탄이 움직일 수 있는 나라는 열 나라가 아니라 한 나라 밖에 없다구요. 그렇지요? 붙들고 일하는 나라는 하나밖에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이도 한 나라밖에 없습니다. 전부 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중공이 배겨날 수 없다구요. 소련도 다른 나라와는 원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련 자체도 한 나라입니다. 결국 그런 입장을 갖추게 되었으니 하늘편도 한 나라만 세우면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한 나라를 세워야지요? 그 한 나라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인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나라를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나라를 찾아 나오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것을 가정을 중심삼고 해 나왔습니다. 그 가정을 찾은 기반으로서 종적인 열매를 맺어 가지고 횡적으로 출발했지만, 그 가정을 확대하면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가정을 확대한 것이 나라이고, 나라를 확대한 것이 뭐예요? 나라를 확대한 것이 세계입니다. 가정을 확대하여 세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 없이는 나라를 못 찾고, 나라 없이는 세계를 못 찾는 것입니다. 이게 결론이라고요. 여러분이 이 원리를 확실히 알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예」
나라는 가정이 없어 가지고는 찾지 못합니다. 가정을 기반으로 해서 나라를 찾는 것입니다. 세계를 찾으려면 나라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편 나라보다 나은 나라가 있어야 사탄 나라가 무너질 것이 아녜요? 사탄은 나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가정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늘편 가정이 사탄 나라 가운데 있는 한 그 가정은 언제든지 사탄의 침해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들은 지금 나라가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나라 없는 민족이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왜정 때에 이 나라를 찾기 위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모릅니다. 그 이상 고생을 해야 됩니다. 이 민족이 통일사상을 가지고 움직이게 되는 날에는 김일성이가 문제예요? 지금 남북이 가족찾기 운동을 하는데 이제는 가족을 찾아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가족을 찾아야 되지요? 가족을 전부 갈라놓았으니 찾아야 됩니다.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 운세를 갖고 나오는지…. 그래서 이게 하나님의 섭리라는 거예요. 원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가정을 찾았다고 하지만 나라를 찾을 수 있는 자신이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사상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기가 됐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러면, 앞으로 가족찾기 운동을 하면 이북이 어떻게 나올 것이냐? 이북에서 이남에 내려 보낼 가족들은 스파이 교육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스파이 교육을 시킨 대표적인 패들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이 문제이니까 눈이 시퍼래 가지고 삼팔선을 숨어 넘어오려고 하는 세상에 '어서 오라'고 환영할 테니 그들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그들은 이남에 와 가지고 전부 정치적인 선전공작 대원으로 활동할 것입니다. 숨어서 간첩활동을 하려고 했는데, 오죽이나 좋겠어요? 그것은 막을 수 있는 대안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이 통일교회가 안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두고 보라구요.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한국 사람들이 안 하게 되면 일본 사람을 내세워라도 할 것입니다. 일본 사람은 우리 편이지요? 상대이지요? 통일교회 사람이라면 일본 식구들도 가깝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끼리 합하자는 것입니다. 또 중국과 우리가 합하자는 것입니다. 이것만 완전히 하나 되게 되면 통일교회의 내적 사상으로 이 나라를 끌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의 선생님, 구보끼, 중국 책임자, 그리고 통일교회의 식구들이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대한민국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대한민국은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하기 싫으면 그만두라구요. 일본 식구들과 중국 식구들을 데려다가 자꾸 사상무장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 정부에서 시기하여 '왜 우리는 하지 않고 다른 나라 사람을 교육시키느냐' 할 것입니다. 자극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 중국 사람들도 와서 하는데, 왜 이 나라는 지금 이렇게 절박한 문제를 교육시키지 않느냐?'고 야당의 책임자한테 편지를 보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때리라구요. 그렇다고 내가 하랬다고 하지 말고요.(웃음)'이렇게 좋은 것을 일본 사람들도 하는데, 한국에서는 좋은 줄 알면서도 교육하지 말라고 하니 망조가 들었다'고 들이 때리는 거라고요.
그래 놓고 우리는 나가자빠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체를 완전히 복귀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자빠지면 자빠질수록 전체가 들려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때 좋다고 하면 안 되는 거라구요. 우리는 모르겠다고 자빠져야 한다구요. 그리고 야당만 하겠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당까지 합동해 가지고 좋다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가인 아벨 다 복귀했습니다' 할 때 '오냐 좋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웃음) 복귀의 길이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될 가망성이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그러면 야당과 여당은 누가 화해시킬 것이냐? 승공연합을 통해서 내가 급속한 시일내에 하는 것입니다. 나발을 불고 북을 치면서 순식간에 몇백만 명을 승공연합 회원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부하고 짜 가지고 하면 순식간에 몇백만 명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놓으면 야당과 여당을 화해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게 되어 있다구요.
벌써부터 그것을 준비해 나왔는데, 여러분들에게 사상적인 근거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해 놓으면 나라 말아먹고 하늘을 망쳐 놓겠기 때문에 그 경각까지 기다리고 있는 게 선생님 입장입니다.
야당과 여당이 싸우면 망하겠어요, 흥하겠어요? 김일성은 혼자 나오는 데, 여기서는 야당에서 출마하고 여당에서 출마해서 대표가 둘이 되어 가지고 되겠어요?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안 됩니다」 통일교회가 끼면 삼파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웃음) 그거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안 됩니다」 이것을 누가 화해시켜야 되느냐?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에 내가 돌려 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는 말이 가능한 말이다 하는 것을 눈을 뜨고서 알 수 있고 자극되는 감정으로 긍정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니 때는 다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팎으로 단결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복귀의 길이 쉬운 것 같아요, 안 쉬운 것 같아요?「쉬운 것 같습니다」 쉬운 것 같아요? 그것을 해보면 어때요? 쉽다구요.
지금 여기까지 (칠판을 가리키며) 왔으니 세계가 대한민국과 일본과 중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과 일본과 중국이 섭리적으로 한 범주라는 것입니다. 이 한국과 일본과 중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가면 세계 문제는 다 걸려든다는 것입니다. 중공이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과 일본과 중국 때문에 중공이 걸려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추파를 던지지만 세계에 파장만 일으킬 뿐이지 동기는 한국과 일본과 중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여기에 전부 다 걸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소련도 중공도 미국도 일본도 구라파도 전부 걸려들어가는 것입니다. 전세계 강대국의 운세가 여기에 달려 가지고 이리 가느냐, 저리 가느냐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두 나라만 움직이게 되면 세계는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을 움직이고 미국을 움직이면 구라파가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구라파는 천사장권이라구요. 아시아가 아담권이라면 미국은 해와권이고 구라파는 천사장권입니다. 그래 가지고 복귀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이제부터 결론을 짓자구요. 역사적으로 볼 때에 승리적 제물이라는 것은, 즉 물질이 승리하려면 자식이 대신 제물 바쳐야 되고, 자식이 승리하려면 부모가 제물 바쳐야 되고, 부모가 승리하려면 하나님이 제물 바치는 노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 들었지요?「예」 이것이 지금까지의 6천년 제물적 역사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을 더 구분하면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하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신 부분은 약간 정리하지 못했음)
그러면 통일시대로 보게 될 때에, 소생시대는 선생님의 7년노정입니다. 안팎으로 7년노정입니다. 그 다음 장성시대는 여러분들, 즉 자녀들에 대한 7년노정입니다. 그래서 21년노정입니다. 이때는 고생해야 하는데, 누가 고생해야 되느냐 하면 교회장들이 해야 됩니다. 껄렁껄렁한 여러분들이 해야 된다구요. 그렇지요? 누가 해야 돼요? 통일산업이 해야 돼요. 승공연합이 해야 돼요? 장성기적 책임은 누가 해야 된다고요?「교회장요」 먼저는 선생님 책임이고, 그 다음은 통일교회의 교회장들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다음은 남한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남한이 북한을 통일했으면 모르지만 못 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구요. 이제는 이북을 통일해야 되는 것입니다. 남북이 통일되게 되면 세계적 운세가 한꺼번에 넘어가는 거예요. 통일되면 이것저것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물러가게 되고 세계는 미국에서부터 자동적으로 말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이런 권내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문제가 무엇이냐? 이 기간은 어떤 기간이냐? 아슬아슬 넘어가는 때요, 때가 되어 오는 것 같은 때입니다. 세계는 복작 복작해 가지고 어디로 가느냐? 그 점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 점은 삼팔선입니다. 이번에 남북한 가족찾기 운동이 세계적 관심사였습니다.
자, 그러면 이것은 부모요, 이것은 자녀요, 이것은 세계인데 세계는 뭐예요?「만물입니다」 만물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계를 찾아야지요? 만물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잃어버렸으니 탕감해야 되는데 이것을 먼저 외적으로 닮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시대, 이것은 신약시대, 이것은 성약시대입니다. 이렇게 복귀해 나왔지요? 이렇게 되면 다 된다는 것입니다. (판서하시고 지시하시면서 설명하심) 이와 같은 것을 전체 탕감해야 됩니다.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를 중심삼고 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선생님 자체를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 개인이나 가정을 중심삼고 해야 할 책임도 있는 것입니다. 내용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러냐? 선생님 가정을 통해서 볼 때, 부모, 자녀, 만물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가정생활권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종적 역사와 횡적 역사를 한꺼번에 탕감하는 승리적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꺼번에 몽땅 바친 때가 있었느냐? 이것을 한꺼번에 제물로 바친 때가 있었어요? 있었어요, 없었어요? 대답해 보세요.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성립되었으면 한꺼번에 제물을 바치는 날이 성립된 거예요, 안 된 거예요?「성립된 것입니다」 알긴 아는구만. 그러면 그것을 언제 했어요? 1968년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전부 다 한꺼번에 그렇게 했느냐? 하나님의 날에 그 식을 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식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도 지상에서 그런 승리적 기반 위에 가지고 자기가 갖고 있는 물건을 그냥 그대로 하나님께 바쳐 드려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냐' 하시면서 탕감 없이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늘 앞에 자기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데, 잡아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즉 살아 있는 그대로 바쳐 드리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도 부모들이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고 그냥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바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단에 그 권이 성립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깜깜하게 모르고 있습니다. 알았어요, 몰랐어요?「몰랐습니다」 이제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깜깜 무소식이었지요? 그러므로 언제든지 종적 역사와 횡적 역사를 전부 다 복귀한다는 신념을 갖고 나가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그렇고, 종족에서도 그렇고, 민족과 국가에서도 그렇고, 세계 끝까지 이 사상만 갖고 가면 세계는 물러나게 마련입니다. 종족을 대해서도, 민족을 대해서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종족이 생기면 종족 전부를 합해 가지고 더 큰 제물을 바치려고 해야 되고, 민족이 생기면 민족 전부를 합해 가지고 더 큰 제물을 바치려고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선생님 개인이나 가정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한 가정이 있게 되면 가정적 기준에 있어서 탕감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종족이 있으면 종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더 큰 것을 제물로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와 다른 것은 뭐냐? 과거에는 탕감을 위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기쁨의 효자를 맞기 위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드리는 것은 기쁨의 효자 충신을 맞기 위한 것입니다. 과거는 탕감의 충신을 맞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잖아요? 과거에는 울고불고 죽이고 살리고 이렇게 해 나왔지만, 이제부터 드리는 것은 타락하지 않은 정상적인 입장에서 하늘의 도리를 그냥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섭리의 때가 온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전체를 하늘 앞에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또 전체를 드리는데 하나님이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와 나는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제물은 대신이기 때문에 내가 바치는 것을 그냥 그대로 받아 들이게 되면 나는 그의 것이 되는 것이요, 내가 그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나를 두고 보면 그도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 위에서 전체를 한꺼번에 탕감 없이 바칠 수 있는 때가 되면 여러분 자신은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잠시 녹음이 되지 않음)
이것이 통일사상의 주류라구요. 그것이 뭐냐? '나'라는 것은 승리한 부모의 대신입니다. 그 다음에 내 아들딸은 승리한 가정의 아들딸 대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내가 갖고 있는 것은 승리한 부모님의 소유물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
그러면 소유자는 누구예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 부모님의 소유물을 대신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부모와 인연이 맺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것은 여러분의 것이지 부모님의 것이 안 되어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나도 한번 부모의 이름을 거쳐야 되고, 자식도 부모의 이름을 거쳐야 되고, 만물도 부모의 이름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부모의 이름을 통해서 거치고, 자식은 자식의 이름을 통해서 거쳐야 되며, 만물은 만물의 이름을 통해서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치려면 아벨적 부모가 있어야 되고, 아벨적 자식이 있어야 되고, 아벨적 만물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거칠 수 있는 직선이 나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3시대를 대표하고 우주를 대표하는 승리적 부모형, 승리적 자녀형, 승리적 만물형의 기준이 있지 않고는 바쳤더라도 또 탕감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국가적 형의 기준을 받았으면 세계에 갈 때 또 탕감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기준을 선생님의 가정을 통해서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정적 기반으로 완결된 국가입니다. 국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싸워서 국가를 대해서 나갈 수 있는 그러한 기준이 되어 있지만, 여러분에게는 아직까지 그 기준이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준은 국가가 성립되어야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여러분이 국가 기반 위에 섰다는 자격, 국가 기반 위에 선 부모의 자격, 국가 기반 위에 선 자녀의 자격, 국가 기반 위에 선 만물 주관의 자격을 갖추어 만물을 주관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오시는 주님이 그 기준을 중심삼고 끝까지 싸워서 세계를 대표한 세계적인 부모의 기준, 자녀의 기준, 만물의 기준을 세워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것을 위해 싸워 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여러분들이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는 어떤 때가 되느냐? 그때는 국가적 식과 더불어 어떠한 식이 있어야 되느냐? 만물 봉헌식이 있어야 되고, 자녀 봉헌식이 있어야 됩니다. 거꾸로 되는 거라구요. 만물 봉헌식, 자녀 봉헌식, 자기 자신 봉헌식, 자기 가정의 봉헌식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식을 했어요? 그것을 하지 않고는, 여러분이 종적 역사를 완전히 탕감하고 횡적으로 탕감해서 승리한 제물로 그냥 그대로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제물은 죽임당하는 것인데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드릴 수 있어야 되고, 대신 드리는 것이 아니라 실체로 드릴 수 있어야, 그렇게 드리고 난 후에야 비로소 완성시대에 이루어질 천국가정으로서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탄의 참소를 안 받습니다. 사탄이 만물 앞에, 자녀 앞에, 부모 앞에 걸고 나오던 것을 전부 다 승리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완전한 해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느때부터 라고요? 국가….
여러분이 집을 가졌다면, 그 집을 자기 집이라는 생각이나 관념을 가지면 되겠어요?「안 됩니다」 그 집은 하늘의 것입니다. 또, 자기의 아들 딸을 자기의 아들딸이라고 생각해서 되겠어요? '부모님의 자식이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자기 자신은 '부모님의 실체다'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일체이상이라구요. 여러분들은 그래요? 최후에 이 전체를 통합해 가지고 드려야만 승리적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제물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 제물은 죽임을 당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하나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꺼번에 제물을 드려야 됩니다.
제물은 언제 드리는 것이냐? 나라가 없기 때문에 제물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있으면 제물 안 드려도 돼요. 그러니 나라가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여러분은 선생님보다 더 바쁘다구요. 선생님은 세계적 탕감을 지고 여러분보다 한때를 앞서 가기 때문에 여러분은 걸려도 선생님은 안 걸린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은 망하지만 선생님은 해방받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라가 못 찾아지게 될때는 보따리를 싸 가지고 갈 수 있어요. 여러분은 갈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에서 이 일을 누가 해야 되겠어요? 선생님이 해야 되겠어요, 여러분들이 해야 되겠어요?「저희들이 해야 합니다」 똑똑히 알라고요. 이제 여러분들한테 이런 하늘땅의 운세가 달려 돌아가고 있어요. 돌아가고 있어요, 안 돌아가고 있어요? 선생님 말을 들어 보면 돌아가는것 같은데 그렇게 알았어요, 몰랐어요?「몰랐습니다」 교회장들은 말 한마디라도 재판장의 자리에서 하는 것과 같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전부 철부지하고 날풍뎅이 같은 녀석들을 잡아다가 일을 하려니 꼴이 말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 것을 알고,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 이런 엄청난 뜻 앞에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나 하는 것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자각하고 새로운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옛날의 부끄러운 자신을 모면하기에 있는 정성을 해야 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죽을 길을 찾아 나서야 되겠습니다. 민족과 자기 교인들을 누구보다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면 여러분은 승리의 날을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이 승리적 제물을 어디에 가서? 국가를 찾아 가지고 한꺼번에 다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죽은 제물이 아니라구요. 승리적 제물을 하늘 앞에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나는 아벨이 필요 없이 천국을 마음 대로 들어갈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부모의 가정을 대신하여 자기 종족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종횡으로 조상의 자리에 서고 여러분은 횡적으로 조상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축복받은 가정, 12가정, 36가정, 72가정, 120가정을 전부 다 정비해야 되겠습니다. 정비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남아진 사람들은 그 종족이 해방의 혜택을 받을 것이고, 그 민족이 이나라와 세계를 다스리는 데 동참할 수 있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 정신 좀 들어요?「예」
여러분들에게 먹을 것이 있으면 그것이 여러분 거예요?「아닙니다」 부모 앞에 드려야 할 것입니다. 또 그것은 부모의 피땀이 들어 있는 것이요, 제물로 바쳐야 할 자리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대할 적마다 부모의 피살을 대하는 것과 같이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만물 앞에 원한을 남겨 주지 않는 자리, 만물의 한을 풀어 주는 자기라고 할 수 있는, 승리의 자기 자리에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들을 함부로 때릴 수 없는 것입니다. 욕도 마음대로 못 하는 거예요. 부모는 자식들의 생사지경을 판가름해 가지고 최종의 결정적 투쟁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또 아내를 칠 수 있어요? 의식적으로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사실이요 이것이 전통으로 남아지는 한, 세계는 우리 사상에 의해 이끌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럴 것 같아요. 안 그럴 것 같아요?
이제 여러분이 돌아가거든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것을 도리어 부끄러움으로 알고, 본부가 도와주는 것을 부끄러움으로 알고, 순회사가 찾아오게 되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찾아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늘에서 보낸 사람을 맞을 수 있겠느냐고 생각해야 합니다. 막혀진 자기 마음을 느낄 수 있고 불충스러운 자기 자신을 책망하면서 내일에 그런 날이 없도록 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장의 의무요, 사명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기준을 거치지 않고는 산 제물로서 제사를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회장들이 월급 안 받는 것이 받는 것보다 나은가요, 안 나은가요?「낫습니다」 나아요, 안 나아요?「낫습니다」 자식들은 굶고 아내는 거지 모양으로 다니는 것이, 통일산업이나 승공연합에 있는 사람들이 자식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남편 노릇하면서 끌고 다니는 것보다도 나은가요, 못한가요?「낫습니다」 여러분은 남들이 바라보지 않는 큰 사명을 지니고 승리적 기준을 닦을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새로운 가정을 중심삼고 일치단결해서 대한민국에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사상적 기원을 심어 주기를 바라서, 제물의 과정을 거쳐 나가는 여러분이 제물의 과정을 거쳐 승리적 제물을 바칠 수 있는 영광의 한 날을 맞기를 바라서, 어려움과 억울함을 참고 끝까지 참고 남아져서 하나님의 복을 받는 여러분이 되길 바라서 말씀드렸습니다. 알겠어요? 「예」
사랑하는 아버님, 저희가 이렇게 말씀을 듣고 알고 보니, 어이없게도 엄청난 역사는, 저희들이 뜻을 위해 움직인다고 하는 사이에 그 누구도 모르게 기반이 닦여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것을 알면 알수록 황공하옵고, 알면 알수록 저희가 얼마나 죄인이고 얼마나 부족한 자신임을 잘 알 수 있게 된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옵니다.
이제 대한민국의 운명이 세상에서 밀려다니는 보잘것없는 이들이 국가적 운세와 천지의 운세권을 만난 스승과의 인연을 통해서 이렇게 엮어질 수 있는 때는 이 한때밖에 없는 두렵고 엄청난 이 일이, 저희와 함께 호흡하고 있고 저희가 거동하는 발판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되어지는 주위의 환경을 살펴보면서 오늘의 자신의 부족한 것을 타 넘어 내일의 승리적 제물을 바쳐 드리게 될 때, 아버지께서 하늘땅에 내세워서 자랑하시고 싶고, 아버지가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는, 사랑해야 되겠다고 선서하고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가정을 거느리는 당신의 아들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이 시간에 같이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내내 이들의 생애와 더불어 같이하여 주옵기를 부탁드리며,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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