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이 아침,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이달 들어 세 번째 맞는 안식일 아침, 저희들이 정성을 다짐하며 아버지 존전에 찾아 나왔습니다. 아버님이 거룩하심과 같이 저희들도 거룩하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이 선을 위하여 책임지시는 것과 같이 저희들도 선을 위하여 책임지는 자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 바라시는 소원의 나라를 위해 무한한 인내로써 극복하시며 투쟁치 않고 지금까지 나오신 아버지, 그 자녀의 명분을 따르려는 저희들도 아버지와 같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악을 용납하지 않고 악과 대적하면서 선의 실천 무대를 확대하기 위하여 시간 시간을 쉬지 않으시는 아버지를 알았사오니. 저희들도 쉬지 않고 노력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아무개 아무개란 이름을 가진 저희 자신들이 아버지 존전에 부복하였사옵니다. 선을 따라 저희와 상봉하여 기뻐하시던 그 순간이 어느때였사오며, 저희를 만나 기뻐하심과 동시에 당신의 그 뜻을 사랑하는 아들딸이기에 통고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내용이 무엇이었사오며, 그 내용을 놓고 결의하여 당신과 저희가 일체가 되어 사망선을 극복해 넘자는 공동적 표어를 내걸어 맹세하고 나섰던 때가 어느때였던가를, 저희들, 다시 한 번 회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효성의 도리를 다하고 아들의 책임을 다해야 할 저희들.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슬픔의 길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소원의 터는 저희들 앞에 장애가 되는 그 고개를 극복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의 선한 입장을 세워 영광의 찬양을 돌려드리고 효성을 다짐하는 아들딸이 서야 할 자리는, 수난의 고빗길을 극복하여서 자기 일신을 몽땅 아버님 앞에 바치겠다고 맹세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미칠 수 없는 자리이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당신을 영광스럽게 그 자리에 모셔 놓고 만만세를 부르면서 당신의 사랑을 응당히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고 만천주 앞에 나타내 자랑하고 싶은 아들딸의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당신도 극복의 노정을 되풀이해 나오셨사옵고 저희들도 그 노정을 따라가고 있사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당신이 '이것이다' 하고 소리를 지르면 저희도 따라서 소리를 지르며 당신 앞에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는 최후의 한 기점까지 전진에 전진을 다짐하고 일보 가일보할 것을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이제까지 어려운 생활 가운데서도 모든 정성을 다했지만 그것이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내일에는 그 정성이 미칠 수 있는 새로운 아침이 뒤미칠 수 있는 소망을 갖고 와 달라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겠습니다.

진정 저희들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일치점 앞에 이끌림을 받고 다짐하며 당신의 명령에 따라 행진할 수 있는 자녀들이 되었느냐 하는 것을 스스로 반성해 볼 때, 아버지, 언제나 저희를 이끄시기 위해 또 수고하지 않으면 안 될 당신을 발견할 적마다 황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사옵니다.

그렇게도 수고하신 아버지께서 저희들로 말미암아 또다시 천세의 한이 될 수고의 일로를 남겨야 할 입장에 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사랑의 인연을 따라 나서고 사랑의 가치를 찬양해야 할 아버지와 저희 사이가 기쁨의 인연이 아니라 도리어 부끄러움의 인연이 되고 수치의 인연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당신은 불쌍하신 분이요, 아들을 그렇게도 잊지 못하시는 사랑의 주인공이라고 우러러볼 수 있는 저희들 각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 거룩한 당신의 뜻의 표준은 개인을 위한 표준보다도 국가를 넘고 세계 전역을 거느려 가야 할 뜻의 길인 것을 생각할 때, 지극히 작은 나 자신을 움직여 나가기도 이렇게 힘들고 나 자신의 통일의 기준을 세우기도 이렇게 힘든데, 국가를 넘어 세계를 이끌어 가야 할 아버지는 얼마나 어려운 입장에 계시는가 하는 것을 저희들은 자신들을 두고 미루어 헤아리게 되옵니다. 이제는 저희들로 말미암아 아버지 앞에 어려움을 더 연결시키지 않아야 되겠다고 이를 악물고 맹세하는 자신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 앞에 자기의 소원을 놓고 머리 숙여 기도하기 전에 당신의 뜻을 염려하면서 마음졸일 수 있는 효자 효녀가 되고, 나라에 대하여 충신 열녀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나라의 앞날을 위하여 마음졸이는 사람, 수심을 친구삼아 밤을 지새는 사람들은 자기 생애의 소원과 더불어 노랫가락을 부르면서 산 것이 아니라 한숨과 더불어 내일의 짓눌리는 수난길을 스스로 알고 전진해 나가는 무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역사는 이런 무리로 말미암아 계승되고 이런 무리에게 바톤을 연결시켜서 내일의 소망, 피안의 행복의 터전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한 걸음 더 달리고 또 달려야 할, 힘이 가중된 입장에 서서 목적을 향하여 조급한 마음이 앞놓아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게 될 때는 하늘을 대표하여 달리는 자는 사탄을 대표하여 달리는 자 앞에 굴복해 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저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사탄은 실체적인 세상을 근거로 하여 있사옵고 하늘은 무형의 실체권을 근거하여 있기 때문에 사탄의 실체적인 영향을 벗어날 수 없는 생활권내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이 육계권내(肉界圈內)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를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는 사실보다는 육신이 마음을 사로잡아 가지고 당신이 원하는 입장에서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못 되게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는 강한 몸을 갖고 아버지 앞에 서야 되겠습니다. 그 강한 것이 선을 위해서도 강해야 되겠지만 악을 대하여도 강해야 되겠습니다. 마음이 원하는 데서는 육신이 약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강해야 되겠습니다. 무엇에 강해야 되느냐? 선을 위해서 강해야 되겠습니다. 악을 대해서도 강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은 선 앞에 약한 마음을 말씀하셨고 악 앞에 강한 몸을 말씀하셨지만 저희들은 양면이 다 강해야 되겠습니다.

마음이 소원하는 것은 내 일신이 바라는 한 개인의 소원이 아니라 역사가 바라는 전체의 소원인 것을 생각할 때,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강하고 몸이 강하지 않고는 안 되겠기에 저희들은 과연 아버지를 닮아야 되겠습니다. 그 아버지의 평소의 모습을 대신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되겠사오니, 그런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1971년도도 절반을 넘어, 또 한 달도 절반을 지나 세 번째 맞이하는 안식일 이 아침에 긍휼의 사랑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 가운데 찾아와서 당신의 아들이요 딸이라고 하며 당신과 내정적 심정을 나누고 싶은 아들딸이 있사올 때, 원수의 환경 앞에 염려의 눈을 가지고 찾아 오시는 아버지가 아니라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찾아오시는 아버지와 상봉할 수 있는 나 자신을 부복시키는 이 자리가 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각자의 마음과 몸이 당신께 사로잡힌 바 되어 언제나 저희들은 당신 앞으로 가지만, 당신은 저희를 업고 가는데 저희는 반대로 업히는 놀음을 해왔사옵니다. 당신의 움직임에 따라가려고 하지만, 언제나 그 반대의 입장이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이기고 전진할 수 있는 승리적인 소원의 터전을 밟지 않고는 오늘 현재의 입장을 넘어갈 수 없는 입장에 선 것이 저희 자신이란 것을 저희는 깨닫고 있사옵니다.

지금까지 역사를 통하여 수많은 선조들을 찾아 나오신 아버지요, 늘 이 시대에 있어서도 저희를 대신해서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아버지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후퇴할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는 아버지의 심정을 저희들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이제 저희가 당신의 손을 붙들고, 당신의 목을 안고, 당신이 원하는 것을 위하여 따라가고, 당신의 눈물 자국을 닦아 주고, 그 눈물 자국을 없앨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하시어서, '나를 위해 수고의 길을 가지 말고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해서 가 달라'고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의 신앙생활은 상습화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와 같은 자리에 있는 무리가 어찌 아버님 앞에 행복의 요인을 촉구시킬 수 있으며, 내일의 부모의 아들딸이 될 수 있겠사옵니까? 과거엔 너무나 지루한 수난길로 아버지를 몰아넣었사옵고, 오늘 이 자리에서도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도 싫다고 머리를 흔드는 무리가 되어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늘 불효의 자리를 떠나지 못하였던 불효막심한 것들이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아버지여, 다시 찾아오시옵소서.

진정한 의미에서 자극이 필요하고 새로운 충격이 필요한 것을 알고 있사오니,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소망과 당신의 사정을 가지고 찾아오시옵소서. 소망에 처할 수 있는 자, 사정과 심정에 일치될 수 있는 사람들을 아버지께서 맞으사 역사를 두고 승리한 자리에서 의논하고, 미래를 두고 승리를 다짐하는 자리에서 의논할 수 있는 아들을 맞고 딸을 맞는 아버지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뭇 아들딸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무더운 삼복지절로 넘어가고 있는 이때에 일선에 나가 있는 당신의 딸들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그들을 내세우고 그들과 더불어 가고 있사옵기에 그들이 가는 일선이 하늘의 일선이요, 그들이 싸우는 자리가 하늘의 진지라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 자리를 도피해 가는 무리들은 아버지 앞에 용납 받을 수 없는 역적의 도당밖에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선악의 기준은 오늘의 통일교단에도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한 딸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당신께 슬픔을 안겨 주는, 있어서는 안 될 무리가 있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될 때, 아버지여, 일선에 남아진 그 무리를 통하여 당신의 수치의 모습을 드러내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은 한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도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의 주인공이신 것을 저희들이 생각하게 될 때, 저희 한 생명을 탕감의 기원으로 삼으시어 전체의 승리의 터전을 다짐함과 동시에 민족과 세계 앞에 칭찬받을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끔, 아버지, 참에 남아지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표준으로 할 것이 아니고,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표준할 것이 아니라, 적진을 향하여 새로운 결의를 가지고 총진군하는 무리가 되어, 하늘나라 앞에 추앙받을 수 있으며 하늘의 백성 앞에 총애를 받을 수 있는, 칭찬받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아버지, 키우시어서 당신 앞에 소원의 실체가 못 되고 당신 뜻 앞에 도움이 못 되거든 이번 기간에 청산짓는 놀음을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새로운 역사적 전통의 터전을 닦는 데 있어서 부끄러움이 없고 순수하고 깨끗한 터전을 넓히시어 만국 만민이 찬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하나의 전통적 기지를 확보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통일의 무리가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아시아에 있는 이곳 한국의 일방을 향하여 정성을 다짐하면서 당신의 축복의 인연이 그곳으로 생명줄을 타고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고, 혹은 남모르는 외국에서 피어린 심정을 기울여 가면서 이국 백성을 자기 생명처럼 여기고 희생의 길을 자기의 죄의 노정같이 생각하면서 싸우고 있는 통일의 역군들이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저희들이 부끄러운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여, 지키시옵고, 아버지여, 가게 하시옵고, 아버지여, 전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에게 복을 주심과 같이,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하여 복을 받아야 할 무리가 여기에 머물러 있는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은 수고하는데 나는 편안히 있겠다고 하고, 남은 하늘을 향하여 충성을 다짐하는데 나는 자신의 행로를 모색하는, 망할 수 있는 민족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의 소망의 날을 향하여 전진에 전진을 다짐하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만나기를 고대하면서 새로운 소식이 있기를 밤낮으로 하늘과 더불어 의논하고 호소하는 당신의 자녀들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만복의 주인 되시는 아버님이여, 그들의 생명과 그들의 소원의 중심이 되시어서 부디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그날까지 순종하고 그 나라를 대표하여 세계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하늘이 이와 같은 아들딸을 찾아왔노라며 칭찬하시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영광된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 나이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닌 줄 아옵니다. 나이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는 것이 젊은 사람 이상일 때에는 하늘은 그 사람과 같이하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무리 어린 소년 소녀라 하더라도 당신을 그리워하여 생명이 엇갈리는 일이 있더라도 이 길을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거들랑 그들로 하여금 당신의 아들딸의 소망을 이루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들을 하늘나라의 건국의 용사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를 당신 앞에 맡기오니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가지고 눈물짓는 곳곳마다 당신의 영광의 터전이 넓혀지고 생명의 인연이 두터워지기를 간절히 원하옵니다.

이 한 시간을 당신이 맡아 주시옵소서. 당신께서 현현하시사 저희의 마음과 몸을 이끌어 가일보 전진할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다져 아버지 앞에 감사드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말 씀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 이 세계는 우리가 소망하는 하늘나라가 되어 있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는 선한 사람이 없는 세계요, 우리가 참다운 인간으로서 소망을 둘 수 없는 곳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땅 위에서 살되 그 사는 것이 우리가 원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마지 못해서 살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마음으로 원하던 행복을 지녔다고 만세 혹은 만국에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게 될 때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뭇사람으로부터 추앙을 받는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 자신에게 묻게 될 때,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불행한 자신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사는 인류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인류들이 지금까지 세계를 엮어 왔으니, 그 세계가 그 인류와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 세계가 못 되고 신음하면서 내일의 소망의 한날을 앞에 놓고 갈림길을 판결지어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현재의 세계인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악한 현실 세계에서 천국을 모색하는 종교인

이런 세계 가운데서 특정한 무리들이 천국을 모색하면서 새로운 나라를 추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무리는 일반 사회에서 살아가는 보통의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입니다. 그 특정한 사람이라는 것은 학식을 가진 사람도 아니요, 혹은 예술가도 아닙니다. 인간들이 추앙할 수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드러난, 대중이 공인할 수 있는 자리에 선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고 대중의 공인을 받을 수 없는 입장에 서서 천국을 그리워하면서 선하게 살아가고 있는 무리인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무리들이 누구냐 하면 종교인인 것입니다.

종교 가운데는 동쪽 방향을 책임진 종교도 있을 것이고, 남쪽 방향을 책임진 종교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동서, 혹은 중앙…. 이와 같이 책임 수행을 달리하는 입장에 있지만, 어떠한 목적을, 확실하지 않은 목적을 바라면서 오늘의 생활을 제재하고 내일의 소망을 조정하기 위해서 온갖 심혈을 기울이며 사는 무리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무리가 누구냐 하면 종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종교인은 이 땅에 나서 생활하는 데 있어서 자기를 중심삼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종교의 이념을 따라서 달려 가야 할 방향에 보조를 맞추어서 사는 무리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종교 가운데도 여러 가지 종파가 있고, 종교인 가운데서도 여러 가지 각자의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정에 따라가는 방향도 다를 것이요. 그 방향이 다름에 따라 사람들이 현실 생활 가운데서 바라는 소망도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갑(甲)이라는 사람을 두고 보면 갑이 동쪽을 중심삼고 생애노정을 걸어 가는데 있어서 그 생애노정이 일방적인 동쪽만을 갖추었다면 행복할는지 모르지만, 동쪽을 향해 가야 되겠는데 육신은 서쪽을 향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동쪽으로도 전진하지 못하는 것이요, 서쪽으로도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최후의 판가리를 지어서 동쪽으로만 가는 사람이 될 것인가, 서쪽으로만 가는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신음하며 이 한때를 극복해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될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의 길을 가려가야 할 입장에 있는 인간

아무리 훌륭한 종교를 신봉한다 할지라도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 앞에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충성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되어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가려 가기 위해서는 수난길을 극복해야 됩니다. 그 극복의 표준이 되는 한계점이라는 것은 그 자신이 바라는 천국만한 내용의 한계를 두고 극복하면 되겠느냐? 열만한 천국이 있으면 열만한 어려움의 환경을 극복하면 되겠느냐?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열만한 천국을 바라면 열 배, 백 배의 결의와 각오를 하지 않고는 열만한 천국의 터전을 남길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길이란 것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하늘의 뜻을 품고 새로이 출발해야 할 그 목적 앞에 협조하는 환경이 되어 있느냐 할 때, 그 뜻 앞에 협조하는 환경을 우리는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뜻을 중심삼고 협조하는 사람이 있느냐? 협조하기는커녕 도리어 나를 이용하고, 이용할 뿐만 아니라 나를 깎아 내리고, 깎아 내릴 뿐만 아니라 나의 가는 길을 막고, 막을 뿐만 아니라 나를 희생시켜서 모해하고 반박하는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길은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길로 알고 결의를 하고 나선 사람이 있다면, 그 결의는 열만한 천국을 바라는 결의가 아니라 백, 천, 만 배의 천국을 다짐하는 결의라야 합니다. 그런 결의를 갖지 않고는 주변 환경으로부터의 시달림을 통해서 그 결의한 것을 다 소모시키고 말게 됩니다. 열 이상의 내용을 갖추어야만 천국에 들어가지, 열 이하의 기준을 갖추게 될 때에는 천국 문 앞에서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이런 입장에서 생애노정에 있어서 선을 다짐하고 선을 가려 가야 할 우리 인생길이 얼마나 고달픈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 줄 압니다.

마음으로는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하는 그것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입니다. 벌써 하루를 지내보고 한 달을 지내보고 일년을 지내 보면 '이 동네에는 누구누구가 선한 사람이다' 하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좋고 나쁜 것을 헤아릴 줄 모르는, 그런 판단 기준을 갖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고 있고 다 분별할 줄 알지만 자신이 그런 자리에 나가 서겠다고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 마을을 두고 볼 때 그 마을에 백 집이 있으면 백 집 가운데서 '선한 사람은 저러저러한 사람이다'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 선한 사람이 간 그 길을 자진해서 혹은 그 사람보다 앞서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느냐? 알기는 알지마는, 다 분별은 할 줄 알지마는, 그렇다고 말은 할 줄 알지마는 그 선하다는 사람 앞에 선두에 서 가지고 '나는 틀림없이 갈 것이다' 하는 것을 스스로 정해 가지고 그 길을 찾아간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기점을 찾아 새로이 출발하는 자리에 서기란 싸움터를 향하여 나서는 어떤 용사보다도, 어떤 영웅보다도 더 힘든 일입니다.

하나의 싸움이 있다면 그 싸움은 한때를 중심삼아 가지고 승패를 결정짓는 놀음이지만 선의 길을 가는 것은 한때만으로 승리를 결정지을 수 없다는 것을 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선을 결정하고 판결하는 것은 한때가 아니고 일년이 아니고, 십년이 아니라 일생을 두고 가야 할 길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선한 것은 잘 알고 잘 판단하고 잘 분별할 줄 알고 다 바라고 있지만, 왜 이 길에 척 들어서서 책임을 져 가지고 '나는 간다'고 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느냐?

선이 머무는 자리는 한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은 영원과 더불어 동반하는 것이요, 선은 현재의 역사와 더불어 동반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역사와 더불어 동반하는 것이요, 선은 전체와 더불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렇듯 선은 영원과 미래와 전체와 더불어 인연맺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은 영원한 끝까지 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 내용이 되어야 되고, 전체와 더불어 관계를 맺으려니 전체를 넘고도 남음이 있어야 됩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선이 머무는 자리는 우리가 발견할 수는 있지만, 그곳과 우리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생애를 걸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선의 길

십년 동안 아무리 잘했다 하더라도 하루를 잘못하면 그 하루가 십년을 말아 먹을 수 있는 것이 선의 길입니다. 십년 동안 아무리 수고한 가운데 잘해 나왔다 하더라도 한 순간을 잘못하게 될 때는 십년의 수고는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반 평생을 자기가 원하는 선의 무대를 바라보고 노력하여 오점을 남기지 않고 따라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반 평생의 접경에서 한번 잘못하게 될 때에는, 그가 지금까지 쌓아 온 선의 공적은 완전한 선으로서 하나님 앞에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혹은 역사 앞에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미완성의 선으로서 결말을 보고야 마는 것이 아니냐.

이걸 볼 때 선을 향하여 가는 길은 일생과 더불어 끝을 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 알고 있지만 알면서도 가지 못하는 것은 일생을 두고 계속적으로 전진해야 할 것이 선의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다 선한 길을 알고, 선한 사람을 판단할 줄 알고, 선한 사람이 되는 길을 알지만 힘들기 때문에 가지 못하는 것이 오늘 현세에 살고 있는 인간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선이라는 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선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의 길을 가면 갈수록 슬픔이 가중되는 것이 아니라 가면 갈수록 기쁨이 가중되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는 것이요,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시야가 넓어짐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적 인연이 자기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들어오기 때문에 기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선의 길을 가는 데에 있어서는 시야를 높은 곳으로 향하기 때문에 보다 높은 곳으로 전진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생애가 바라는 최고의 선한 기준까지 올라갈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천국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상향을 바라고 있습니다. 보다 평화로운 세계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높은 평화의 세계, 그 평화의 세계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인간 누구나 올라갈 수 있는 그 끝에서부터 시작되느냐, 더 올라가서 시작되느냐? 오늘날 타락한 인간 세계에 있어서 노력을 하고 정성을 다해 가지고 도달했다고 하는 그 자리에서 끝나게 되면, 그 자리는 타락한 세계의 종착점은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이상세계의 목적지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의 종착점이 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천국의 출발점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천국의 종착점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관절 생애를 다해 가지고 간다 하는 그 기준이 어떤 것이냐? 하나님이 임재하고 온 천주가 그 가운데서 행복을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선 천국이 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있는 정성을 다해 가지고 갔다 하는 그 자리가 천국을 중심삼고는 우리가 영원히 머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거기서 새로이 출발해야 할 출발기점밖에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하 그림을 그려 놓고 설명하시면서 말씀하심 )

천국이라는 것은 높은 산과[그림 1]같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①)서 출발해서 조금 올라가다가 내려오고 맙니다. 그 중심은 어디냐? 여기(②)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조금 더 올라가다가 내려옵니다. 이렇게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중심에 가까와지는 것입니다. 이 최고의 정상(⑧)을 기준으로 삼아 가지고 인간은 전진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일생 동안 여기(⑦)까지 갔다가 후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출발했다가 곧 후퇴해 버린 사람은 생각할 필요도 없고 여기 (⑦)─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상인 곳─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사람도 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림 1] 참조) 여기(⑦)에서 떨어 지게 되면 그만큼 고(苦)가 높은 것입니다. 비례적으로 고가 높다는 것입니다. 그 한사람이 피해를 입게 될 때는 그 한 사람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따라 나오던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떨어지는 경우에는 피해가 많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가는 길을 백방으로 허락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허락할 수 없는 입장에 선 하나님이 아니냐? 왜? 피해를 많이 입히지 않기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선의 길은 아직까지 모색할 수 없는 길로 남아져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요 기준(⑦)까지 올라갔다가 거기서 떨어져 가지고 피해가 크게 될 때는 후대의 역사를 완전히 가로막고 만다는 것입니다.

정상에 오르는 길

종교를 중심삼고 볼 때 그것을 추구하고 따르던 무리들이 하나의 뜻을 품고 출발했다가 최고의 정상에까지 이룰 수 있는데 9부 능선에 도달한 자리에서 떨어졌다 하게 되면, 가일보하면 전체의 정상에 도달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일보를 전진하지 못하고 떨어지게 될 때에는, 그 피해는 그 자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종교계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아득한 후손에게까지 연결되어 완전히 그 종교의 문을 막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들이 역사과정에서 섭리의 뜻을 대해 나오던 사람들 가운데 많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종교가 어떤 기준까지 돌파해 가지고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는 고비가 있습니다. 그러면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는 어떻게 올라가느냐? 이것은 자기 자체가 종교의 터전을 중심삼아 가지고 개척한 길이 아니기 때문에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 있어서 그 길을 찾아서 올라 가기 위해서는 주체자를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붙들고 가든가 자기 혼자서 가든가 해야 합니다. 길은 이 두 길밖에 없습니다. '그냥 올라 가지' 하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정상적입니다. 그럴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올라가는 데 있어서는 자기가 올라가든가 그렇지 않으면 붙들고 올라가든가 하는 두 길밖에 없습니다.

만일 정상에 올라갔다 할 때는 반드시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림 1]을 가리키며) 이것(A)이 내적 세계요 이것(B)이 외적 세계입니다. 새로운 차원의 상응적인 입장에 있는 세계를 볼 수 있다 이 말입니다. 여기(②)에서 떨어지게 될 때는 이쪽 면(A)은 체가 없는 거예요. 면적이 생기지 않는다구요. 이쪽 면(A)에는 면적이 생기지 않는다는 거예요. 면적이 생길 수 없습니다. 이쪽 세계(A)는 공(空)이라는 거예요, 공.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수난길을 다 거쳐서 최고의 정상까지 왔다고 하더라도 최후의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는 또 넘어가야 합니다. 정상을 중심삼고 꼭대기만 올라가는 것을 소원할 것이 아니라 꼭대기를 넘어갈 수 있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저 꼭대기만 올라가면 된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꼭대기에 올라가서는 또 넘어가는 놀음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넘어갈 수 있는 여력이 강해야만 또 올라가는 길이 있을 때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정상에 올라가기만 하면 다 된다 하는 사람은 못 가는 것입니다. 그게 그럴 것이 아니냐? 정상이라는 것은 올라갈 수 있는 일면을 바라보고 있는 동시에 내려갈 수 있는 또 다른 일면을 바라볼 수 있는 곳입니다. 내려가기는 쉽지만 올라가기는 힘들 것이 아니냐.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이 또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발하는데 있어서 출발도 내가 자주적으로 하지 않으면 따라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두 길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정상이하)에서 올라가는 길도 두 길이지만 여기(정상)에서 올라 가는 길도 두 길입니다. 새로운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더라도 그것은 영원한 천국기반이 못 됩니다. 전세계가 머물 수 있는 기반이 못 됩니다. 또 하늘나라가 건국될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겠느냐 할 때 세상과의 인연을 청산을 짓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 이자 천국과 같은, 세상과 천국이 서로 통할 수 있는 입장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청산지어야 합니다.

정상에서는 엇갈려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쪽 방향(①)과 저쪽 방향(②) 이 엇갈리게 됩니다. 아래쪽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요, 위쪽이 아래로 내려 오는 것입니다. 왼쪽이 바른쪽이 되고 바른쪽이 왼쪽이 되는 것입니다. 엇갈리는 이런 형태에서 새로운 출발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기원은 여기(②)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림 2] 참조)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천국은 내가 바라는 세계의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습니다. 그 마음 자리는 어떤 자리냐? 사망이 물결치는 이 세계의 모든 요인과 더불어 일체가 되어 있는 자리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여 하나의 생명의 은사의 물결이 파급될 수 있는 기지입니다. 거기(정상)에서부터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인생의 가치를 모색하여 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하늘 백성으로서의 사명을 짊어진 우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마음과 몸이 일체된 곳에서 시작돼

그것이 몸뚱이의 세계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계 가운데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기점이라는 것은 내 마음속에서부터 다짐해 가지고, 마음속에 그리는 것을 실천궁행(實踐躬行)해 가지고 거기에 일치될 수 있는 한 곳입니다. 그 한 곳을 찾음으로 말미암아 천국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앞으로 나타날 어떠한 종말세계를 거쳐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서 하나의 기점을 그려 가지고 그 기점과 더불어 오는 것입니다. 그 기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저울질할 때 저울대를 수평으로 만들 수 있는 하나의 지지점(支持点)이 되는 것이 아니냐? 그 지지점과 같은 것입니다. 지지하는 그 점이 수평만 되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저울은 수평되는 것이 목적이겠지만 이것은 수평에서 바른쪽으로 기울어져야 됩니다. 무게가 왼쪽으로 기울어져서는 안 됩니다. 바른쪽으로 기울어져야 합니다. 바른쪽으로 기울어지는 그것이 출발입니다. 새로이 바른쪽으로 돌아가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

그 수평된 것이 새로운 한 점을 결정할 수 있는 목적은 되지만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기점은 못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점은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방향을 전환시킬 수 있는 전체의 내용은 못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출발입니다. 방향을 전환시키는 데 있어서 출발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천국은 어디에서부터 오느냐?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 오는 것입니다. 마음의 어디서부터냐? 세상을 이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아무리 환경적으로 천국이 와 닿았다 하더라도 내 마음이 악하고 내 마음이 그것을 그릴 수 없고 내 마음이 거기에 동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면, 천국이 와도 그 천국은 쓸데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을 맞이할 수 있는 터전이 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나 자신이 문제입니다. 천국을 유지할 수 있는 지주, 지지하는 그 지지점이 어디냐 하면 환경이기에 앞서 내 마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은 어디 있느냐? 따르고 있던 제자들이 현실을 청산짓지 못한 자리에서 앞으로 올 천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행복의 터전을 갖추어 세계적인 권위와 출세의식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예수는 그 근본을 격파해 버리고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한 것입니다. 마음의 천국을 그리지 못한 사람은 환경 천국이 되어도 그 천국을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결심하지 못하고서는 완전한 행동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완전한 결심에서 완전한 행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마음이 선을 얼마나 동경하느냐? 그 동경하는 것이 역사적 선과 더불어 하나되겠다, 아무리 피눈물 나는 환경이 있다 하더라도 선과 동행하기 위해 그것을 극복하겠다, 아무리 외로운 역사적 종말의 환경 가운데 투쟁의 노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격파하고 가겠다는, 그런 마음이 변치 않는 일로를 개척하여 그 마음에 일체가 될 수 있는 몸의 생활환경을 결의하고 다짐하는 데서부터 천국이 시작되는 것이지, 마음과 몸이 따로 행동하는 데에 천국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몸이 일체된 데서부터 천국 방향을 향한 전진이 벌어지는 것이지, 마음과 몸의 행동이 갈라지는 데서는 천국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이 설파한 것은, 마음과 몸이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좌우로 기우는 것이 아니라 그 기우는 환경을 제거해 가지고 전진의 가중된 행보를 갖출 수 있는 주체성을 갖추어야만 천국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천국은 남으로부터, 남에 의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을 부정해야 됩니다. 나 스스로 가지 못하고, 내가 이것을 제시하지 못하게 될 때에는 그 누구로 하여금 제시될 것입니다. 그 누가 제시했다 할 때는 내가 천국 가려면 그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따라가야 됩니다. 절대적으로 보조를 맞추어야 됩니다. 그가 동으로 가면 나도 동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가 동으로 가는데 나는 서로 가겠다, 그가 이렇게 했는데 이렇게 하면 안 된다 하는 마음을 갖고 가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 비판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길은 두 길밖에 없습니다. 내가 가야 할 것을 원칙으로 하되 그 원칙을 수행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못 되었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가 가는 길인데 내 마음대로 하지'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 때는 반드시 딴 분을 통해서 가야됩니다. 그 딴 분이 누구냐? 오늘의 인간 앞에 표준이 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 딴 분을 인간 앞에 가르쳐 주기 위해서 수많은 종교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갈 수 없는 타락권내에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 일생을 잴 수 있는 그 잼대를 가지고 영원한 세계를 재겠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영원한 세계를 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시대 시대마다 영원한 하나님이 같이 보조를 맞추어, '너는 이러한 사명분야에서 이만큼 책임을 져라' 하는 특정한 사명을 주어 하나님 대신 보조를 맞추게 하여 기반을 닦아 주는 세계적인 대표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 대표자들이 그 시대의 환경권내에 있어서 지침이 되고 혹은 지주가 되는,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는 사명을 맡겨서 보내는 사람들이니. 그들이 수많은 종교의 교주들입니다. 우리 타락 인간은 자기 스스로 갈 수 없기 때문에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따라가는 데는 한 중심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렇게 찾아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림 3] 참조) 그럴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렇게 중심을 찾아 가지고 그 중심에 정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세계의 어느 한 곳을 찾아서 그것을 향하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야 할 중심 곳은 인류 앞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세계의 중심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그러면 세계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 지금까지 역사상 인류가 바라던 행복의 기준이 되는 중심곳이 어디냐? 세계의 중심곳이 어디냐? 지금 찾아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산세계냐? 민주세계냐? 아닙니다. 우리 아버지가 가는 길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우리 동네의 이장이 가는 길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나랏님이 가는 길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세계를 중심삼아 구라파면 구라파를 대표할 수 있는 어떤 지도자가 가는 길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민주세계 혹은 공산세계의 사상을 중심삼고 나가게 될 때 그 중심곳을 발견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그 중심은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중심은 인간역사와 더불어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생활 무대와 연결되어 가지고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딴 데 있는 것입니다. 딴 데 중심을 갖고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이것은 지금 타락한 세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중심을 목적으로 해 가지고 그 목적의 결과에 도달 하게 될 때, 인류역사가 행복을 촉구할 수 있고 온 세계의 평화의 기원을 세울 수 있는 그것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두뇌와 인간의 모든 조직과 인간의 모든 체제를 통하여서 그런 기지가 설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통해서는 결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느냐? 하늘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시작하는 데는 누구로부터? 잘 믿는 도주로부터가 아니라 도주를 지도하는 주인으로부터. 그 주인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말이 되면 될수록 전부 다 모호해져 갑니다. 가정이 중심이라 하였으나 가정도 모호해져 가고, 나라가 중심 이라고 했으나 그것도 모호해져 가고, 사상이 중심이라고 하였지만 그것도 모호해졌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이냐? 사랑까지도 모호해졌다 이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인간 앞에는 가정이 귀한 것이요, 나라가 귀한 것이요. 세계가 귀한 것입니다. 이것이 소망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귀한 줄 알고, 나랏님이 귀한 줄 알고,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어떤 지도자가 귀한 줄 알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과 엇바꾸면서까지 절대시해 가지고 주창해 나오던 사랑, 자기의 생명까지 바치겠다고 하던 인간의 사랑마저도 이제는 모호해졌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한 남자면 남자, 한 여자면 여자가 서로 상대를 위해 생명을 바치면서 영원히 행복을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을 추구한 사람이 있느냐? 말은 그렇지, 그런 사랑조차 다 모호해졌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가정을 들고 나올 수 있는 이런 무엇도 없고, 참다운 민족, 참다운 나라, 참다운 세계, 참다운 사랑을 들고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세입니다.

말세에는 모든 것이 희미해지는 것입니다. 희미한 것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끝도 희미해지는 것입니다. 그 희미한 자리에서는 확실한 나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역사상에 모든 인류들이 중심을 찾아 헤매 나왔지만 그 중심점이 모호해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만으로 찾을 수 있고, 인간만으로 규합하여 가지고 결정될 수 있으면 가능할 수 있는 입장에 설 텐데 도저히 가능할 수 없는 현실, 역사적인 종착점에 지금 도달하고 있지 않느냐?

그렇기 때문에 중심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느냐?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 마음이라는 것은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선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고 선을 위해서 자기 전체를 희생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자기를 몇천만 번이고 부정할 수 있는 선을 중심삼은 기준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긍정할 수 있는 입장의 내용을 갖춘 자리에서, 자기의 그 마음의 터전을 중심삼은 것이 선이 아니라구요. 다시 말하면, 8부 능선에 들어왔으면 이 접경을 극복해 넘어갈 수 있는 하나의 출발의 기원을 공인받을 수 있는 선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선의 기준이라는 것은 영원을 두고 전체를 대표해 가지고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역사가 선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그 선앞에 지배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격이 그 선을 자기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의 기준이 인격을 창출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선이 사람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선의 기원은 나만을 중심삼은 양심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양심만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무엇을 플러스시켜야 되느냐? 하나님을 플러스시켜야 됩니다.

천륜과 천정에 의한 세계

하늘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천륜(天倫)이 있고, 천정(天情)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인륜(人倫)과 인정(人情)을 가지고 역사를 엮어 왔다면, 그것은 천륜과 천정이 출발할 수 있는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천륜을 대표할 수 있는 마음 바탕, 천정을 이어받을 수 있는 마음 바탕. 인륜에 결정적인 결실이 될 수 있는 마음을 중심삼은 인격, 인정에 결실될 수 있는 마음을 중심삼은 인격-이것은 최고봉의 인격, 그 자리에 선이 심어지지 않을 수 없는 인격이요, 선이 같이하기를 바라는 인격-을 갖춘 자리에서부터 천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천국은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것이라구요. 인간 세계에 인륜이 있고 인정이 있듯이 거기에는 천륜이 있고 천정이 있기 때문에, 천륜에 따라 천정에 의한 상대를 요구할 것이요, 천정에 의한 가정을 요구할 것이요, 천정에 의한 민족, 국가, 세계를 요구할 것이 아니냐! 천륜을 따라 규정되어진 사회체제를 고대할 것이 아니냐! 그 세계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 세계는 오늘날 이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출발기점을 새로이 모색해 가지고 인류 종말 세계를 전체 앞에 알려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종말을 제시하지 않는 종교는 가짜 종교입니다. 그런 종교는 완전한 종교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종교든지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종말을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또 교조가 그 당시에 세계를 대표해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교조가 선한 세계를 인계받아야 할 사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명을 이 세상 끝에 와 가지고 이어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와야 한다는 재림사상이 남아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현 역사시대에 있어서 인류 사회에 결탁할 수 있는 하나의 출발 기점이 되고 하나의 종착점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이 재림사상이 이론적으로 천국으로 출발하는 기점이 되는 것이요, 이념적으로 천국의 기원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적이어야 됩니다. 세계적인 중심이라는 것은 ([그림 3]을 가리키며) 여기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천국은 내 마음에서부터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을 보게 될 때 마음도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있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작용하기 때문에 압니다. 작용하지 않으면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느냐? 작용을 하기 때문에 안다는 거예요. 작용을 통해서 압니다. 전기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느냐? 전기가 작용하여 나타난 빛을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전기가 통하면 반드시 작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 작용은 어떻게 되느냐? 작용이라는 것은 독자적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독자적으로 작용하는 물건은 없습니다. 세상만사 독자적으로 운행하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작용 세계에 있어서 독자적인 작용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안 그래요? 작용을 하면 반드시 주고받는 거예요. 환경의 여건이 벌써 여기에 포괄되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내가 좋다' 할 때도 혼자 좋아해요? 좋아하는 작용의 대상이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작용에는 반드시 상대적 요건이 필요합니다. 모든 물질세계 혹은 자연 현상 세계의 모든 것은 상대적 권내의 작용 현상을 통하여 우리가 느끼는 것이지, 작용을 통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용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독자적인 작용은 없습니다. 작용에는 상대 요건이 절대 필요합니다.

이렇게 볼 때 '양심은 혼자 작용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없어 가지고는 작용은 절대 안 벌어집니다. 열만한 주체가 있다면 그것이 작용하는 데 있어서 아홉만큼이면 된다 하는 입장에 서면 절대 작용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이 시내에 간다 할 때 손해나게 되면 절대 안 간다는 것입니다. 플러스가 되어야 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양심의 가책을 중심삼아 가지고 매일같이 재촉하는데 그 마음이 작용해 가지고 나에게 마이너스되기 위해서 그러느냐, 플러스되기 위해서 그러느냐? 이 원칙을 놓고 따져 볼 때, 마이너스되기 위해서 그런다면 양심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밤낮없이 나한테 천대받으면서도 그러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것은 플러스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움직이면 플러스가 틀림없이 나타나기 때문에 마음은 몸에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의 명령에 따라 몸이 움직이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플러스가 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익이 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하고 보니 좋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 좋으냐? 이익이 났기 때문에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에서 둘이 되었다 이거예요.

마음대로 못 하면 어떻게 되느냐? 둘 되려고 작용을 했더랬는데 마이너스가 되었다, 명령을 받았는데 행하지 않았다 할 때에는 어떻게 되느냐? 가책을 받습니다. 떨어져 내려가는 것입니다.

힘의 작용에서는 그렇다는 거예요. 힘의 작용을 보면 입력과 출력이 같지 않습니다. 나오는 힘은 반드시 작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작용하고 난 다음에는 왜 기쁘냐?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아 가지고 작용한 후에는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에서만 가능하냐? 사랑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에서만. 딴 데서는 가능하지 않은 거예요. 힘의 작용에 있어서는 입력보다 출력이 작은 것이 원칙인데 사랑의 세계에서는 반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양심의 길

사랑의 세계에서는 희생하면 희생할수록 그 가치가 작아지는 거예요? 커지는 것입니다. 보통 힘의 작용과는 상반되는 것입니다. 소모되는 세상에 있어서 사랑의 힘만이 플러스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희생입니다. 사랑은 희생 운동도 하는 것입니다.

희생을 했지만 사랑하고 난 후에는 희생한 이상의 가치를 느끼는 것입니다. 고생할수록 사랑이 감소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투입했던 저항 요건이, 그 자체를 소모시키는 것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하는 것입니다. 보통 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항이 있으면 그만큼 비례적인 마이너스를 가져오지만, 반대로 플러스를 가져오는 작용이 우주 가운데 하나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사랑의 작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소모시키고 투입하면 할수록 망하는 것이 아니라 투입하면 할수록 플러스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이상세계가 가능한 것입니다. 이상세계를 이루려면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희생하는 데는 힘을 가해야 되는데 힘의 원칙을 보면 나오는 힘이 작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상세계는 절대 안 나와야 된다는 거라구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상세계가 어떻게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느냐? 사랑의 힘은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차원이 다른 힘의 원칙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야, 네가 잘살기 위해서는 그 무엇을 중심삼고 어떻게 해라' 그렇게 가르치는 양심은 없습니다. '네가 희생해라. 여러 사람 앞에 본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본이 되라'고 하지요? 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중앙에 딱 들어가 서야 됩니다. 전체의 본이 되려면 일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네가 중앙에 들어가 서라고 합니다. 그러려면 이 사람은 동쪽으로 누울 수도 없고 서쪽으로 누울 수도 없는 것입니다.

딱 서 있어라! 딱 서 있는 데는 일년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생 동안, 영원히 서 있으라는 것입니다. 중심이 되려면 그와 같은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일시적으로 서 있다가 나가자빠지면 중심이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서 있으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영원히 서있어야 되느냐? 영원과 통하지 않고는 중심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중심자리는 하나님이 서야 될 자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설 자리를 대신해서 서기 위해서는 영원을 표준하고 서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중심삼은 선의 길은 영원을 표준하고 설정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 서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사방의 표준을 갖추지 않고는 나오지 못합니다. 양심은 중심에서 기울어질 때에만 명령을 합니다. 똑바로 딱 서 있으면 양심은 어떻게 되느냐? 작용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좋다고 춤이라도 추었으면 좋겠는데 안 춥니다. 딱 기울어질 때만 나타납니다. 또 더 높아지려고 할 때에 양심의 작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가지고 가만히 있을 때에는 양심은 작용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기울어지려고 할 때는 작용합니다. 또 높아지려고 할 때도 양심은 작용합니다.

그러면 기울어지려고 할 때는 어느 때냐? 악과 더불어 짝할 때에는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높아지려고 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자기 자체가 높아지기 위해서는 자기 힘 가지고 안 됩니다. 새로운 주체를 바라볼 때에 높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양심의 작용을 최극단적인 한계선까지 자극시키는 주체적 표준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절대자이십니다. 영원한 존재이십니다. 유일한 존재이십니다. 그분이 누구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인데 어떠한 하나님이냐? 나와 더불어 사랑의 관계를 중심삼고 맺어진 하나님입니다. 그 사랑이 있기 때문에 희생이 빛나는 것이요, 그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극복이 빛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있기 때문에 생애를 투입해 가지고 무(無)의 입장에서 개척해 나가더라도 무의 자리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없는 것 같지만 실재하는 것을 위하여 수고하는 입장에 설 때에 반대로 무한한 사랑이 그의 배후에 접선되어 오기 때문에, 양심은 이것을 향하라고 여러분에게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구요.

높아질 수 있는 곳을 향하여 넘어가라 할 때 그냥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하고 넘어가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입장에서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야, 네가 그렇게 되어라' 할 때는 남의 것을 그냥 빼앗아 가지고 가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이상의 노력을 해서 그렇게 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 이상 노력해서 그렇게 되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데도 그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되겠다는 것만을 생각한다는 거예요.

나쁜 곳이 있으면 양심은 '야! 거기는 가지 마라' 하고 가르쳐 줍니다. 가지 않기 위해서는 갈 수 있는 환경의 요건을 부정하고 극복해야 할 내용을 제시하면서 명령하는데, 이것을 인식치 않고 행하고 싶고 가고 싶어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정적인 요건을 극복하고 감수하는 사람만이 천국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극복하고 부정하는 데는 그냥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기 때문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예요.

병신 자식이 한 번 마음쓰는 것이 잘난 자식이 열 번 마음쓰는 것보다도 더 가치적으로 보답되는 것이 아니냐? 가치적일 수 있는 것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종교 가운데는 사랑을 빼놓은 종교가 없는 것입니다. 자비니 인(仁)이니 하는 것도 전부 그렇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사랑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사랑의 중심은 하나님

그러면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했는데, 그 천국은 우리가 무엇을 중심삼고 이루어야 되느냐? 이 땅 위에 역사적인 세계를 이루어 나온 것이 인간인데 이 인간을 중심삼고는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중심을 찾아 나가지만 그 중심을 찾아 나가면 나갈수록 중심이 희미해집니다.

옛날, 먼 거리에 두고 중심을 찾아 나갈 때는 그래도 가정을 안고 나라를 안고 찾으려고 했으나, 지금에 와서 중심이 가까와질 때가 됐는데 나라도 잃어버렸고, 가정도 잃어버렸고, 개인도 잃어버렸고, 다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작전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부터 다시 전진할 것이냐? 진리로써 전진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고 했습니다. 머리로만 알아 가지고는 못 가는 것입니다. 머리를 원하느냐, 마음을 원하느냐? 심정을 원하느냐, 지식을 원하느냐? 학자의 아내가 되고 싶으냐,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의 아내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 볼 때 세계적인 이름난 학자의 아내가 되고 싶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더라도 자기만을 사랑해 줄 수 있는 남성을 원할 것이 아니냐. 남성도 그런 여성을 원할 것이 아니냐.

아무리 세계적인 대학자라 하더라도 사랑할 상대가 없다면 불쌍한 사람입니다. 홀아비나 과부가 되면 불쌍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걸 보게 되면 인간은 반드시 머리를 중심삼은 것이 이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멋이 있더라도 서로 의논할 수 있는 상대가 없으면 불쌍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것은 무슨 뜻이냐? 마음을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식이 근본이냐, 사랑이 근본이냐 할 때 지식이 근본이 될 수 없습니다. 지식은 횡선(橫線)이요 사랑은 종선(縱線)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과학세계는 횡적인 세계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참사랑의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종적인 우주관을 대표할 수 있는 중심이 없어졌습니다. 종적인 자리는 둘이 아닙니다. 우주는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중심 수직선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중심으로 설 수 있는 그 자리는 많은 것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횡선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요 하나의 중심을 중심삼고 선을 그을 때 횡선은 몇억만 개도 그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얼마든지 그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 점(點)을 중심삼고 수직이 되는 선은 하나뿐인 것입니다. 그 수직이 될 수 있는 원동력의 기초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인간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주체가 아닙니다. 내가 나 자신을 지은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은 창조적 결과물이기 때문에 상대적 위치에 있는 것이지 주체적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도, 이념적인 사랑도 인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절대자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중심은 하나입니다. 그 하나의 중심이 나라의 중심이자 민족의 중심이요, 민족의 중심이자 가정의 중심이요, 가정의 중심이자 개인의 인격의 중심입니다. 이것이 전부 다 엇갈린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중심을 절대적 자리에 갖다 놓게 될 때는 가정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라의 중심이 되는 것이요,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천정(天情)의 기원이 됨과 동시에 인정(人情)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게 될 때에는 인간이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기준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는 심정의 역사관을 말합니다. 심정은 무슨 심정이냐? 세상의 남녀들이 말하는 심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횡적인 것으로서 전부 다 사라져 가는 심정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천정(天情)을 기원으로 한 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심정의 기틀이 어디에 있느냐? 누구에게 있느냐? 가정에 있기 전에 나에게 있어야 됩니다. 사랑은 누가 하는 것이냐? 가정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진정한 사랑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당당히 권세를 부리고 명령을 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입니다. 그래야 가정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것

그러면 사랑의 근거지는 어디냐? 사랑의 근거지는 내가 아닙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해서 '사랑의 근거지는 나로부터다'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랑의 근거지는 내가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명사는 대상적 관계에서 설정되는 것입니다. 공동의 이념을 중심삼고 설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근거지는 누구에게 있느냐? 내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에게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나로부터가 아니라 상대로부터입니다. 상대가 없게 될 때는 아무리 미남자라 해도 혼자서는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로부터입니다. 사랑의 근거지는 내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을 지금까지 못 했습니다. '사랑은 나로부터다' 사탄이 지금까지 그걸 심어 놓은 거라구요. 하나님으로부터지 나로부터가 아니라구요. 나로부터라고 생각하는 것을 전체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는 역사를 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랑은 나로부터라고, 부인은 부인대로 자기가 사랑의 중심이고, 남편은 남편대로 자기가 사랑의 중심이라면서 서로가 위하라니 그놈의 세계가 파탄이 벌어지지요. 사랑은 상대로부터입니다. 그 근거지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을 내 것 만들려면 그 사람 앞에 희생해야 됩니다. 사랑은 반드시 희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극복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사탄세계를 극복할 수 있는 내용은 이 천지간에 있어서 딴 곳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원칙을 따라가야만이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가 말한 자비도 사랑이 없이는 안 나오는 것입니다. 유교에서 가르치는 인(仁)이라는 것도 두 사람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전부 다 상대적 관념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사랑을 몽땅 독차지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있는 정성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내놓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사랑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이런 원칙을 따라가는 아내가 쫓겨나는 예는 못 봤습니다. 그런 남편이 있다면 그 남편의 사랑을 싫다고 손을 저으며 도망갈 부인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희생과 극복이 원칙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왜 존중시하느냐? 보답을 바라지 않고 극복을 추구하고. 보답을 바라지 않고 희생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결과를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만족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다 행복하다는 거예요. 주는 것으로써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받는 것으로써 행복한 것이 아니예요. 그래서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도 복이 있습니다. 왜 복이 있느냐? 하나님편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천국은 상대를 위해서 살려는 사람만 가는 곳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했는데 그 천국이라는 곳은 어떤 곳이냐? 하나님의 사랑이 중심이 되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중심이 되어 인연을 맺어 가지고 보편타당한 환경권을 설정한 곳이 천국입니다. 그러면 그 권(圈)에 가서 머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과 화합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됩니다. 그런 사람 외에는 못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과 화합할 수 있는 본질이 무엇이냐? 자기를 위주하고 나가는 사람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투입하고, 자기의 모든 정성을 투입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하고, 주고자 했던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존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상의 위인도 그랬고 성인도 그랬습니다. 그 나라 국민들의 마음속을 점령할 수 있는 주인공이 애국자가 되는 것입니다. 애국자는 그 나라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과 재산을 다 주면서도 우는 것이 아니라 주면서 소망을 갖고 나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아니고서는 역사에 남아지지 못합니다.

그런 역사적 내용을 통하여서 발전적 동기로 삼았던 성인들이 남아 있는 것을 두고 볼 때, 그런 역사적 인연을 따라서 종착점을 향하여 가는 곳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선은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악한 세계에 있어서 선은 어떤 자리에서 남아지느냐? 희생하는 자리에서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예컨대 그 동네의 주인은 칼부림을 하고 지팡이를 들고 다니면서 '야 이놈들아, 내 말 들어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림자와 같이 있는지 없는지 말없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동네를 위하여 생활하고 희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자주적인 입장에서 동네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피동적인 입장에서 주인격을 이어받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아요? 왈패 같은 사내가 여자를 따라다니면 싫어하지 좋아하는 여자가 하나도 없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보기에는 아무리 도둑놈같이 험상궂게 생겼더라도 그 사람이 여자에게 희생적인 사랑만 하면 그 험상궂게 생긴 얼굴에서 세상의 미중에 만물상의 미를 느끼게 된다는 거예요. 왜 그렇게 느껴지느냐?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인 동시에 창조적 미이기 때문에 새로운 미를 감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과 화합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지 않고는 선이 못 됩니다. 사랑은 자기가 주체적인 입장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상적인 입장을 강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거 기분 나쁘지 않으냐? 천만에. 나를 강조해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나 혼자 고독 단신이 되어 가지고는 나라의 주인이 못 됩니다. 반드시 상대적 가치를 결정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반드시 가정에서 공인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상 천국 조직의 근본사상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남자가 여자 앞에 절대적인 공인을 받지 못하면 이상세계에서 절대적인 공인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한 여자 앞에 세계적인 가치를 공인받지 못하는 남자가 세계적인 가치의 세계를 맞이하겠다는 것은 모순되는 얘기입니다. 그런 가치의 세계를 당당히 맞이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 그런 가정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그 가정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 가정은 주체가 되어 가지고 종족을 위해서 희생과 극복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 목적은 자기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의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혼자서 '나, 세계의 목적을 이룬다'한다고 돼요? 상대의 세계를 넓힘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으로 범위를 넓혀 나가는 것입니다. 그 세계는 어떻게 사는 데서부터 시작되느냐? 남을 위하여 사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같은 양반은 그런 사상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죽으면서도 원수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당시의 로마와 같은 원수가 아니라 역사적인 원수를 대신해서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너희들도 가자. 맨 꼴찌에라도 따라 오라'는 말이라구요. 그런 원수까지도 위하고 원수를 극복할 수 있는 동기를 가졌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왕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왕자는 하늘나라의 주권세계에 가더라도, 사탄세계에 가더라도 원수는 그 앞에 굴복하는 거예요. 자식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하면 그 자식들은 원수끼리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원수의 입장에 있는 사람의 아들 앞에 아버지보다 몇십 배 더 큰사랑의 맛을 보여 주면 그 아들은 굴복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아버지보다 더 큰 사랑을 주게 될 때에는 그것으로 원수를 갚는 거예요.

원수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사랑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온갖 희생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애국자의 가는 길을 막다가 죽임을 당했다 할 때, 그 아들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하다가 그 내용을 알면, 오히려 '아하, 우리 아버지가 훌륭한 것이 아니구나' 하고 굴복을 한다는 것입니다. 더 큰 사랑의 무대를 향해서 자기의 생명을 투입하며 가는 사람의 앞길을 침해하다가 위험한 일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더라도, 그 한 사람의 위험은 그 개인의 위험이 아니요. 그 나라가 비운의 역사로 출발될 것을 알게 될 때에는 그 아들도 큰 사랑을 위해서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사람에게 원수를 못 갚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이 원수 사탄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얼마만큼 사랑했느냐? '너희들이 지금까지 로마제국을 중심삼고 그 주권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나를 원수로 대했지만, 나는 하늘땅을 통일한 세계의 권한을 가지고 너희들을 사랑하겠다. 너희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될 때는 그에게 완전히 머리 숙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오늘날 통일교회의 통일사상이 바로 그렇다구요. 나라의 배척을 받고 혹은 교단의 배척을 받고, 가정의 배척을 받아 나왔지만 배척받아 나오는 그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가정을 위해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정을 위해서 배척받아 나왔다면 보증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운명적인 동기가 그렇게 되었더라도 자기 가정을 위하기보다 하나님을 위하게 될 때에는 틀림없이 보장받을 것입니다. 그래야지요? 여러분이 선생님의 노정을 따라오는 것이 선생님을 위주로 한 것이라면 따라올 게 뭐예요?

사탄은 언제나 이용해 먹으려고 합니다. 더 큰 사랑을 위해서는 더 큰 희생과 더 큰 극복의 동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국경을 넘어 세계에까지 확대시켜 나가자는 것이 통일교회사상이며 심정세계관입니다.

자기 혼자 행복하겠다는 사람은 행복해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하겠다고 해서 행복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전체를 위하는 자리에서 행복을 찾아야 만고불변의 행복입니다. 그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종교인이 가는 길이 이래서 어렵다는 것입니다. 요걸 구체적으로 모르고 가는 거예요. 모르고 가니까 그 대가가 나타나지 않을 것 같거든요. 하면서도 이거 왜 하는지 걱정한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경계선, 수많은 국가의 경계선, 수많은 민족의 문화의 경계선, 혹은 역사적인 경계선을 무사통과할 수 있는 하나의 비법이 이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껴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짜 사랑했느냐 안 했느냐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이 시험을 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 노친네는 통일교회 극성파로서 누구보다도 정성을 많이 들이는 사람이라 당연히 만복을 받고 잘 될 텐데 작년에 아들 죽고 금년에는 딸 죽어! 이거 뭐 별꼴 다 보겠구만. 하나님이 있다면 왜 그래?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그 노친네에게 마지막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라고 해서 죽을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 뼛골이 녹아지는 사랑을 하늘과 더불어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최후의 고비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마지막 때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러한 길을 거쳐왔습니다. 아브라함이 제물을 드리던 역사를 탕감해야 하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심각한 장면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작년 70년도를 기점으로 그런 비운의 3년 역사가 깃들어 있기 때문에 탕감지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 3년 기간에 역사적인 섭리의 내용이 우리들 앞에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탕감법과 하늘의 작전

탕감법을 아는 여러분들이 '탕감은 우리 집에서 벌어져서는 안 되지. 탕감은 딴 집에서 벌어져야지' 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구요. '우리 집은 탕감이 되었으니 남의 집에 탕감이 벌어지면 좋겠다' 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복받는 길은 '탕감은 우리 집에서 벌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전에도 얘기를 했지만, 통일교회 역사에 있어서 순교한 제 1대조의 역사를 가진 가문이 되었다면 그 가문은 청사에 빛날 것입니다. 이런 얘기 생각나요? 그거 들었지요?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순교한 제 1대조가 태어나야 된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그런 일을 해 왔습니다. 가만히 보니 이제는 희생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그렇지요? 공산당이 밀어닥쳐 가지고 잡아죽이기 전에는 민주세계에서는 그럴 것 같지 않다구요.

그렇지만 여러분은 뜻을 중심삼은 공적인 행로에 있어서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69년도에 36가정을 중심삼고 때가 그러한 때니 전체 동원하라고 명령했는데도 불구하고 동원 안 했을 때, 희진이가 나한테 와 가지고 '식구들이 전부 다 동원하라고 했는데도 동원하지 않으니 나라도 가야 될 것이 아니냐? 하고 들이댈 때 꼼짝못하고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다가 객사했어요.

이것이 슬픈 일이냐? 기쁜 일이예요. 일면은 슬프지만 일면은 기쁜 것이 아니냐. 보라구요. 기쁨이라는 것은 슬픔의 접경을 넘지 않고는 안 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슬픔과 기쁨은 극과 극이어서 상관없는 것이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천만에요. 기쁨이라는 것은 최고의 슬픔의 극점을 넘어 가지고 최고의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잡아 제사드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를 잡아 제사 드리는 것은 아직 안 했다구요.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에 있어서는 자식을 제물로 드리라고 했지만 통일교회 역사시대에 있어서는 아버지를 잡아 제사드려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입장에 있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부모의 반대를 받는 것입니다. 부모가 여러분과 하나되지 못하면 반드시 갈라지는 거예요. 부모가 하나되게 되면 더 큰 고통을 부모가 받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발전하는 것을 원치 않는 면도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몇몇 사람만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인 탕감을 해서 발전하면 좋겠어요. 떼거리가 많으면 얼마나 부산스럽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단 세 사람만 있으면 복귀가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타락한 주인공이 누구예요? 아담, 해와, 천사장입니다. 부모 앞에 가인과 천사장의 사명을 할 수 있는 단 한 남성이 있으면 그것이 세계적 권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다리를 놓아 가지고 이렇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선형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나선형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커지면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전체를 위해서 희생하고 극복하는 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사탄은 자기를 중심삼고 전체를 희생시키고 전체를 극복시켜서 사랑을 성립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투쟁과 상충이 없을 수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반대라구요. 자기가 전체 앞에 희생을 당하고 전체 앞에 극복을 당하는 입장에 서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있어요, 없어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의 내용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늘나라의 내용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늘나라는 상충이 없는 세계입니다. 알겠어요? 상충이 없는 세계이기 때문에 위하겠다는 관념만 위주해 나가면 깨져 나가지 않습니다. 위함받겠다고 하는 생각만 가졌다고 하면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세계인데, 그 사랑이 충만한 세계의 본질을 분석해 보면, 사랑의 본질은 위함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가르침을 두고 보면 위하고 절대 복종하고 희생봉사하라는 것인데 세상에 이런 놀음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아무것도 모르는 거지패들이 하는 놀음 같지만 이것은 천법의 최고의 도리를 알지 못하고도 복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사탄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암호작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그런 작전을 해 나온 하나님이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불쌍하냐.

이제는 그것을 직접적으로 가르쳐 주고 제시해 줄 수 있는 환경의 터전이 오늘날 통일교회에 의해서 벌어져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이렇게 나가 가지고 망하거든 내 목을 자르라구요, 목을. 망할 것 같아요, 흥할 것 같아요? 대답해 봐요. 이렇게 나간다면 망할 것 같아요, 흥할 것 같아요?「흥할 것 같습니다」 절대적이예요? 「절대적입니다」 이것이 틀리는 한 하나님의 복귀고 무엇이고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보다 차원 높은 자리에서 희생시키는 것이 지도자로서의 할 도리입니다. 이것을 못 하는 통일교회 선생이 될 때는 보따리 싸야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구요.

천국 건설을 위한 기초

가정을 중심삼고 잘살고 있는 사람에게 가정을 중심삼고 죽으라고 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서 죽으라고 하게 되면 그거 망하라는 거예요, 복받으라는 거예요?「복받으라는 것입니다」똑똑히 대답하라구요. 망하라는 거예요, 복받으라는 거예요.「복받으라는 것입니다」그거 틀림이 있어요, 없어요?「틀림없습니다」살림살이에 고달파하는 사나이가 시시해요. 너무 값없어요. 그러니 욕을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가정보다 빛나는 천국의 문이 개문될 수 있는 점진적인 동녘의 서광이 비쳐지는 터전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이냐? 민족입니다. 내 살림살이보다도 민족의 살림살이를 위해 고달파할 때는 그 사람은 민족이 옹호해 주는 것입니다. 그가 굶게 되면 민족이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릴 때가 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더 나아가 자기 나라를 위해서, 자기 나라를 넘어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겠다는 무리가 있게 될 때에는 그 무리는 싸우지 않고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 작전을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오늘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면서 '너는 너를 위하여 지금까지 무슨 꿈을 갖고 나왔느냐? 하고 물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 꿈은 나를 위한 꿈이 아니라 하늘을 위한 꿈이요. 세계를 위한 꿈이요, 인류를 위한 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진정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를 원하거든, 일생 일대에 있어서 남녀간에 사랑하는 것보다도 세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난 다음에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상대로 맞고 싶어해야 합니다.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이 이상적인 남성이요, 이상적인 여성입니다.

충신이 될 수 있는 역사를 엮어 와 충신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을 판가리지어야 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여편네 혹은 부모가 '아이고! 나라야 어떻게 되든 우리가 이제 만났으니 헤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래요? 그런 여편네와 부모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한 것입니다. 발전의 역사의 관문을 거치지 않고는 천국갈 수 없는 역사적인 사연을 잘 아시는 하나님은 그 고빗길에서 목을 자르는 사람이 사랑하는 여편네요, 아들딸이요, 부모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축복을 해줘 가지고 잘살라고 했기 때문에 그 터전을 중심삼고 살려는 희망이 있는데, 이제 와서는 그것까지 몽땅 잘라 버린다 이거예요, 이 길에 있어서 한 사회, 개인, 가정이 축복받으려면 이 시대권에서 빛날 수 있는 매체를 만나 가지고 역사시대에 빛날 수 있는 통일혈족을 남겨야 됩니다. 이 길이 하나님이 요구하는 길로서 여러분이 응당히 가야 할 천명이 아니겠느냐? 당당코 좋은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길에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사람이 이 말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 것입니다.

요즈음 내가 원수시하는 것은 나라의 비운을 가로막고 역사적인 천국의 때를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가진 자 앞에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행동하는 여편네들입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여편네들은 자비라는 총으로 다 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문득문득 든다는 거예요. 그게 좋은 생각이예요, 나쁜 생각이예요? 그래 가지고 망하는 거라구요. 민족을 위해 희생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잡아죽이려고 하는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망합니다. 그 사람은 민족의 배반을 받더라도 절대 그것을 서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계가 그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세계가 맞아 줘 가지고 갈길을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한국의 통일교회 교인들이 선생님의 말을 안 듣고 일본 통일교인들이 말을 잘 듣는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래도 한국 교인들을 책임자 입장에 세울 것이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걸 알라는 것입니다. 적진에 가서 눈물 흘리라는 것입니다. 선을 대해서 책임지는 것 이상으로 적을 대해서 눈물 흘리며 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선생님은 어떠하냐? 어떤 사람은 선생님이 고급차만 타고 다닌다고 할지 모르지만 내가 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바쁘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내가 공장에 나가서는 아무리 피곤해도 좀처럼 대낮에 낮잠을 안 잡니다. 정 피곤해서 못 견디면 기도하다가 자면 잤지 낮잠은 못자거든요. 뭐 파수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하늘 앞에 공복(公僕)으로서 빚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빚을 진 사람은 여지없이 꺾인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망하느냐, 안 망하느냐? 안 망합니다. 이 원칙이 있는 한 원수들이 꺾여 나갔지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안 꺾인다는 것입니다. 안 꺾인다는 것입니다.

이 눈물의 골짜기가 어디로 흐를 것이냐? 그 골짜기가 민족이 만든 것이라면 그것을 넘고 갈 것입니다. 이런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기 아들을 바치더라도 고맙게 생각하고, 여편네한테 매를 맞아도 고맙게 생각하고, 갖은 수욕을 당하여도 고맙게 생각하며 가는 것이, 응당 가야 할 길이 천륜의 도리를 밝혀야 할 선각자의 길이요, 개척자의 길이요, 천국 건설을 위한 기초가 아니겠느냐. 이 일념을 가지고 갈 때 나타났던 원수들은 망하더라 이거예요.

하늘나라를 소유하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라

요 몇 년 동안에 내 마음에 참 충격을 준 사람이 몇몇 있습니다. 툭 튀어 나오는 말이 '이놈…' 이런 마음이 발동하게 됩니다. 이게 내 마음이냐, 이게 하나님의 마음이냐? 기도하려고 눈을 감게 되면 다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벌써 몇 번만 기도해 보면 다 압니다. 하나님의 마음이라면 대번에 안다는 거예요. 기도하려고 보면 깜깜해지는 거라구요. 이름까지 잊어버리고 얼굴까지 잊어버린다구요. 한 두번만 기도해 보면 '아, 이 사람은 멀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대번에 압니다.

하나님은 무자비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역사를 남기고 있고 현재에도 그런 사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걸 두고 볼 때 '너는 이 땅에 왔다가 어떤 종교를 만들겠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합니다. '내 생명을 내놓고 움직이는 길이 아니더냐? 내가 차를 탈 때는 이게 마지막 길이다 생각하고 대답하는 말이 이겁니다.

그런 스승을 모시고 있으면서 염치도 체면도 없이 자기의 꼬리를 들고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은 끝이 멀지 않다는 거예요. 그 자식들은 망나니가 될 것이고 그가 가는 길은 전부 다 파탄이 벌어질 것입니다. 외적으로부터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얽어맨다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자기가 천벌을 옮겨 놓지 못하게끔 딱 포위되어 가지고 자탄과 더불어 사라져 버리는 비참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겁니다. 내가 이런 내용을 알기 때문에….

어떤 때는 식구들이 나한테 와 가지고 보고하는 것을 보게 되면 참 기가 막혀요. 저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한번 더… 한번 더…'를 몇백 번 더 할 수 있겠느냐? 백 번을 넘지 못하게 될 때는 너는 어떻게 되느냐? 패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니 천번 만 번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심정이 통일교회 가는 길 앞에 남아지는 한, 여러분들은 가는 데 요동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통일교회의 발전일로를 막을 자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게 그거예요. 많은 원수들이 있었지만 내가 원수삼은 것이 아니라구요. 나는 원수를 갚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이 싸움을 하면서 원수의 이름을 불러 '하나님이여, 이 원수를 해결해 주소서' 하는 기도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끝이 되어 오게 될 때에는 내가 그의 아들딸을 불러서 과자라도 사 보내려고 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세상에서도 벌 받게 될 때는, 최고 형을 받은 사형수가 형장에 나가게 될 때는 잘먹여 주지 않아요?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느냐구요. 제사법이 그렇다는 거예요.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릴 때에, 국가를 중심해 제물을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사람에게 최고의 선물을줄 수 있는 아량이 없어 가지고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사탄이 잘못되면 망하겠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따라다니지 않는다는 거예요. 악심을 가진 원수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라구요. 잘못된 후에 하나님이 벌 주려고 할 때에는 사탄이 나타나지만 그런 색다른 입장의 원칙을 따를 때는 사탄이 나타나지 않는 거예요. 이런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어요.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천국을 소유하기 위한 길입니다. 천국을 소유해야 됩니다. 천국을 소유하는 비결은 어디에 있느냐? 자기가 잘살자고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잘살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고 세계를 위해 희생하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길(③)을 바라보고 또 따라가야 됩니다. 알겠어요? 또 따라가야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타락권내(①)에서 벗어나기 위한 씨름을 했는데 여기(②)에서 못 따라가겠다고 아우성치는 사람은 그어 버리는 것입니다. 최정상을 향해 참된 길을 가는 데는 내가 주체가 되지 않으면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가는 데는 누구를 따라가야 되느냐?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되어 있는 사람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가는 데는 어느만큼 따라가야 되느냐? 세계 끝까지 따라가야 됩니다. 어떻게 가야 되느냐? 좋아하고 기뻐하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눈물과 피땀을 흘리면서 희생하고 극복하면서 따라가야 됩니다. 이런 인생 노정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개인에서부터 가정, 세계가 한꺼번에 총동원될 때가 되걸랑 세계의 끝날이 된 것을 알라구요.

국가적으로 가는 통일교회의 끝날은 60년대였습니다. 세계적으로 가는 통일교회의 끝날은 70년대가 아니겠느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70년대를 중심삼고 국가와 세계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통일의 전통적인 사상을 이어받을 수 있는 용자들은 누구냐? 하늘나라를 소유할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은 누구냐?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안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딴 나라 사람이라도 될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망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갖고 있습니다.

천국은 누구로부터? 나로부터. 그 나라는 것은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를 맺은 사상을 자기 주체로 근거삼는 것이 아니라 그 주체를 보다 넓은 분야로 옮겨 가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을 사랑하는 만큼 가정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는 만큼 종족을 사랑하고, 종족을 사랑하는 만큼 민족을 사랑하고-그 민족은 개인을 대표한 거라구요-국가를 사랑하는 만큼 세계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결론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세계를 사랑하고 돌아와야만 됩니다. 결론이 그거예요.

하늘의 상속자가 되려면 세계를 사랑했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세계를 사랑했다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하늘의 상속자가 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세계를 사랑했다는 그 자리까지 나가자는 것을 표방하고 어떻게 했느냐? 세계의 남녀들을 데려다가 대표적으로 축복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국가적 대표 시대권으로 들어와 가지고 민족적 대표 시대권으로 자꾸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종족적 대표 시대권으로, 가정적 대표 시대가 될 때 세계가 통일될 것이 아니냐? 그렇게 되는 거예요. 천국은 나 개인도 머물지만 세계가 머물러야 되기 때문에, 세계를 안고 세계를 소화시킬 수 있고, 세계를 위할 수 있는 마음을 다짐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출발기지에서부터 끝까지 자기를 위한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상대를 위한 사랑, 하나님의 아들딸을 사랑하는 입장, 그리고 희생과 극복의 내정(內情)을 거치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뜻 앞에 순종하는 사람이 남아진다

오늘이 7월 18일이니까 내일 모레면 전국 식구들이 동원되는 날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 교인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동원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 기간만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배가의 노력을 하라구요. 자기의 직장 외에 나라를 위할 수 있는 한 분야를 책임지는 놀음을 하지 않고는 공식적인 하나님의 아들딸의 권위의 자리에 못 나가는 것입니다. 이중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낮에 그 일을 못 했으면 밤잠을 안 자고라도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라는 것입니다. 실체가 못 되거든 그림자라도 되어라 그 말입니다. 알겠어요?

신문사에 있는 사람들은 신문사의 책임만 다하면 되느냐? 천만에요. 천만에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교직자로서의 책임을 다했으면 되느냐? 천만에요. 사업가로서의 책임을 또 해야 됩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냐?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들이 앞으로 잘못하면 브레이크를 걸어야 됩니다. 세계를 지도하는 사상적인 면에서 잘못할 때에는 브레이크를 걸어야 됩니다. 이렇게 범위를 넓혀 나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해서는 신념을 가져라. 어영부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겁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야 되는데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이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불평하기 전에 내 할 일을 다했느냐고 자문자답하라는 것입니다. 남을 바라보고 이러쿵저러쿵 비교하기 전에 내가 비교의 기준이 됐느냐를 자문자답하고, 하나님의 공인을 받으라는 거예요. 자문자답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됩니다.

금년에는 지금까지의 통일교회 헙회기구를 재편성하여 새로운 발전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생활기준을 어떻게 세워야 되느냐? 사람을 만나게 될 때 떡 대하면 그 사람의 생활기준을 아는 거라구요. 그 사람을 대해 가지고 주고받는 데 있어서 하나님 앞에 마이너스될 것 같으면 그 자리를 털고 나서야 합니다. 둘이 만날 때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결속을 다짐해야 되고 셋이 모여도 결속을 다짐해야지, 여기에서 비판을 다짐하는 사람은 그 자체가 멸망하는 것입니다.

결속을 다짐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 자신이 선생님만큼 고생했느냐? 하나님만큼 고생했느냐? 선생님만큼 복잡한 환경에 처해 가지고 묵묵히 침묵을 지키면서 사명을 완수해 봤느냐? 6천년 동안 진리의 모체를 품고 나오면서 가르쳐 주고 싶었지만 때를 바라보며 묵묵히 지켜 나왔던 그 하나님과 같은 입장이 되어 보았느냐? 입을 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입을 열고 이러고저러고하는 사람이 남아지나 보라구요. 두고 보라구요. 남아지지 않는다구요. 그런 사람들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그 사람들이 자기를 통해서 우리가 중심 자리를 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교시의 재료로서 수습해 가지고 자기가 받을 피해에 대한 방비책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성을 갖는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구요.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 고문을 당하는 자리에서도, '쳐라! 그 채찍이 나라의 충신은 꺾었을지라도 나는 못 꺾는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나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 교인들이 선생님만큼 고생해 봤느냐 이거예요. 선생님도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데 그 이상 수고 못 해 가지고 뭐 이러고저러고하는 사람은 대번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못 가는 사람이라구요. 통일교회의 원수라구요. 제일 원수 되는 사람입니다. 차라리 믿지 않는 게 낫지. 따라다니지 않는 것이 낫지. 통일교회 문선생을 대해 가지고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안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이런 것을 잘 감별해야되겠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넘어야 할 고개는 많지 않습니다. 많지 않다는 얘기예요. 국가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남북통일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시아에 있어서 3개 국만 규합하고 나서는 날에는 세계는 우리의 품으로 규합되어 들어올 것입니다. 그 준비를 지금 하고 있는데 이것은 자기 살림살이를 중심삼고….

요전에 어느 아주머니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이렇게 어려운데 선생님 어떻게 했으면 좋아요?' 하면서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어려운 것이 선생님 때문이었느냐, 뜻 때문이었느냐?'고 당장에 물었습니다. '뜻 때문에 그리 되었다면 내가 협조해 주마. 그것은 응당한 책임이다' 라고 했습니다. 뜻 때문에 그랬느냐?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 때문에? 자기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그러면서 또 하는 말이 '선생님은 아버지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자식이 어려우면 희생하고라도 도와주어야지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거 맞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자식이 망할 수 있는 자리에서도 희생해야 되느냐? 법을 어겨서 옳지 못한 결과가 나타날 것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밀어 줘야 되느냐? 그럴 때에는 무자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마음으로 상당히…. 지나가는 걸인들한테도 말없이 수십만 원까지 누구도 모르게 준 사람인데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일 마지막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사람에게 주는 거라구요. 그렇게도 할 수 있지만 식구의 입장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도와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좋지 않습니다. 절대 도움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흘러 나가게 될 때는 참 좋지 못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여러분, 보라구요. 교회도 선생님이 심각한 입장에서 도와주었는데 불구하고 그 표준에 일치하지 못할 때는 그 교회가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많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죽더라도 하나님 앞에 절대 그런 기도를 못 해봤습니다. '아버지 ! 내가 죽게 되었으니 도와주시옵소서' 나는 지금까지도 그런 기도를 못 해봤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서 고문을 받아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판국에도 '나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그런 졸장부 노릇은 안 했습니다. '그 이상의 자리에서 충의 도리와 효의 도리를 하고 하늘 앞에 가야 할 길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 그 한계선까지는 못 넘어간 자리가 아니냐? 그 이상의 자리도 감사하며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시한 자리에서 그게 뭐야? 그러면서 버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뭐가 그리 어렵다고…' 해 버립니다.

주체적인 사상을 중심삼고 자리를 잡아야

어떤 때는 그래요. 금년과 명년에는 내가 모험을 하려고 합니다. 경제적인 분야에 있어서 모험을 해야 되겠고 신앙적인 분야에서도 모험을 해야 되겠습니다. 각 분야에 있어서 모험을 해야 되겠습니다. 1972년도까지는 모험을 해야 되겠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널려 놓아야 됩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널려 놓자는 것입니다. 널려 놨다가 수습하느냐, 못 하느냐? 수습을 하고 안 하고는 내가 책임을 안 집니다. 정성껏 하나님을 위해서 널려 놓는데 있어서 수습하는 것보다 더 큰 진실을 가지고 얼마만큼 정성을 투입하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문제를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구요. 수습될까 말까가 아니예요. 수습하는 그 일보다도, 그 책임자보다도 더더욱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그런 수습은 하늘에 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것을 밀어 주시지 않으면 뜻을 무엇으로 이루겠어요?

요즈음 우리 식구들을 가만 보게 되면 신문사에서 월급 준다 하니까 월급 못 받고 죽은 귀신들이 붙었는지 전부 다 그리로 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세상에 나가 일을 하게 되면 권위와 직위도 갖추고 해야 될 텐데 이젠 출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름을 달아 주어야 되지 않겠느냐?' 이런 사람들한테는 똥감태기를 씌워 주고 싶습니다. 이놈의 자식들!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렇게 가르쳐 주었어요? 여기에서 생각하기 전에, 떡은 줄지 말지 한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오래 안가서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전체를 위해서 그래야 됩니다.

금년에 들어와서 전국 순회사들한테 말한 것도 이거라고요. 주체적인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리를 잡아야 되겠다고 했습니다. 교회의 책임을 중심삼고 끝까지 충성하라고 했습니다. 딴 무엇이 있다고 해도 자기가 결실지어야 할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보리밭에 난 팥이라면 보리밭에서 팥으로서 열매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옮겨 주기 전에는 옮기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아직까지 갈 길을 모색해야 하고 지금 산야에서 싸우고 있는 주제에 무슨 태양같이 빛나고 싶다고? 누구를 위해서? 그 아무개를 위해서? 그런 건 필요없다는 거예요. 지금은 할수없어서 그러지 조금만 더 있으면 뒤집어 놓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출발을 해야 된다는 거라구요.

여기 김사장이 왔구만. 이사장이 좋아, 하나님의 아들이 좋아? 이사장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이사장은 바가지를 깨뜨려 버린다는 거야. 저 말단에 가서 종살이할 생각은 안 하지요? 여기 장영창이도….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져야 됩니다.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게 원칙입니다. 그게 통일사상의 주류사상이라구요.

그런데 밥 바가지 때문에 찾아다니느냐 이거예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생활해 오면서 어머니한테 이번 달에는 생활이 어떻게 되는지 생활비 염려를 안 한다구요. 돈만 있으면 긁어다가 딴 데다 쓰려고 했지. 그렇다고 굶어 죽지 않는다구요. 일생을 그렇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처자들을 중심삼고 가슴 아픈 일을 안 당한 줄 알아요? 선생님 자신도 변소에 떨어진 사과를 보고 체면없이 주워 먹고 싶은 마음, 행동까지 하고 싶은 지경에 이른 때도 많다는 거라구요. 체면상, 하나님의 아들의 위신상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여러분 자신들이 천국을 찾아 나가는 인간이라구요. 천국은 상대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구요. 여러분 자신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거울에 비춰 볼 때마다 '이놈의 코는 욕심이 많게 생겼구만! 이놈의 눈에는 독사의 독이 박혀 있구만! 또 손에는 독수리의 발톱이 박혀 있구만! 마음보에는 살인 강도의 마음의 못이 박혀 있고, 화살이 박혀 있구만! 이놈의 자식! 고생을 시켜서 모가지를 잘라 내야지' 이런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편안히 먹고, 배때기에 점심 못 먹었으면 점심 찾아 먹이고, 저녁 못 먹었으면 저녁 찾아 먹이고 그거 언제 그렇게 다 해 가지고 하늘나라에 갈 것 같아요? 천만에요. 선생님 자신이 점심 못 먹기가 일쑤고, 잠자리에, 자는 시간이고 무엇이고 다 잊어버리고 이 놀음을 하고 있는데…. 체제가 어긋났다는 거예요. 이런 등등을 볼 때 통일교회 문선생은 무엇을 위해서 싸우느냐? 세계적 천국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현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지도하는 책임자로서 내 마음에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기 위해서, 개인적 천국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은 그거예요.

편안한 생활을 하면 회개해야

결국은 환경의 천국이 자동적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동기와 원천은 누가 되느냐? 지도자의 입장에 있는 내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래 잠을 잘 자고 일어났으면 회개해야 됩니다. 밥을 잘 먹고 숟가락 놓을 때도 회개해야 됩니다. 편안한 날을 맞았으면 회개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 회개의 마음을 가지고 전체가 복되기를 빌고 전체의 안식의 터전을 빌게 될 때는, 그 사람은 망하려 해도 하나님이 망하지 못하게 합니다. 사탄이 치려 해도 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세상에서도 자기가 잘못을 했으면 잘못했다고 솔직이 이야기해야 용서가 벌어지고 긍휼이 벌어지지요? 동정의 여지가 있는 것이지만 잘하고도 뻗대게 되면 국물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천국은 내 마음에서부터 벌어집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 자신도 식구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으냐? 요전에도 그래요, 주일에 아침부터 점심 저녁까지 한 열 세 시간동안 이야기를 하고 청평에 갔다구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도 식구들이 땅을 파고 있었어요. 딱 정한 날짜에 자기의 책임을 수행해야 되기 때문에 안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가자마자 너무 피곤해서 말이야, 앉아 가지고 이불을 펴고 잘 수 없으니 다리를 펴고 천막 안에 있는 이불에 떡 기대고 입을 벌리고 코를 골며 잤습니다. 그러다가 코고는 소리에 잠이 깼어요. 깨서 밖을 내다 보니 비가 억수같이 오는데 식구들이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고 리어카를 끌고 가더라구요. 그것을 보고 내가 눈물을 흘렸다구요.

이 자리에 만일 하나님이 행차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문선생이 생애를 거쳐 나오던 그 노정에 있어서, 최후의 통첩을 하던 하나님이 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런 마음이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피곤해도 선생님을 보면 될 수 있으면 자기를 바라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잔다고 해서 '통일교회 문선생은 잠자고, 우리들은 일하고…, 이런 마음이 있다면 그건 마지막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뭐 무슨 영장이 많이 나온대나? 갑호훈련이니 뭣이니 해 가지고 이럴 때 가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오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 끝나게 되면 오는 사람이 누구냐? 오는 사람이 없다면 진실된 마음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어제께 여수가 고향인 한 청년한테 23년 만에 아버지의 전보가 왔는데, 일하다가 그 전보를 척 받으면서 '사탄이 나타났구만' 했다는 말을 듣고, '그래, 사탄이 나타났으면 너는 어떻게 행동할 것이며 사탄을 어떻게 처리 할것이냐? 생각하고, 처음에 갈 때에 돈 한푼 안 줬다구요. 2천원을 줘서 갔다 오라고 보냈습니다. '이 녀석, 사탄이 나타났다고 한 주제에 어디 가서 소식이 있나 없나 보자' 했는데 이 녀석이 어저께 왔어요. '야, 이 녀석. 너는 조건이 됐다. 내가 바라는 표준 앞에, 하나님 앞에 이 건물을 다 지어 놓고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이 됐다. 이 녀석, 잘 왔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들 힘들다고 가기를 바라는데 다시 돌아온 그 사람이 정말 통일교회 사람이라구요. 그런 사람들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앞으로 일하는 사람 가운데서 갔다가 오지 않은 사람보다도, 남아서 수고한 사람보다도 더 빛날 수 있는 내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아직까지 다 시험을 못 해봤거든요? 여러분은 명령받은 자리에 못 서 봤고, 그런 행동을 하는 자리에 못 나가 봤고, 이럴까 저럴까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입장에 못 서보았기 때문에 누구를 믿어야 되겠느냐? 갔다 온 사람을 믿어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오늘 가게 되면 무엇을 사다 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 사다 주지 말까요? 그 사람에게만 사다 주면 다른 사람들이 '왜, 그 사람에게만 사줘?'(웃음)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걸 보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팔자가 참 고약합니다. 잠을 자고 일어나더라도 엎드려서 기도해야 된다구요. 그럴 게 아니야? 잠자고 있는 이 시간에도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인들이 복을 받겠다고 기도하고 있는 무리가 있지 않느냐? 그럴 게 아니야? 우리나라는 밤인데 미국은 낮이라구요. 피땀 흘리며 기도하고 있지 않느냐? 한국에 있는 선생님을 걸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나 대신 그 모든 것을 처리해 줄 수 있느냐? 저들도 지쳐서 이제 자야 할 텐데 그러지 않느냐? 그런 송구한 마음이 통일교회 문선생에게서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외국 식구들은 선생님이 보고 싶어 난리라구요. 알겠어요? 보고 싶어해야 되고 만나고 싶어해야 돼요.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있으면 천국을 맞이할 수 없다

인감도장 하게 되면 철궤 깊은 곳에 처박아 놓지요? 지금 10억이 넘는 재산이 전부 다 선생님 이름으로 등기되어 있는데, 그걸 가져다가 사기해 먹으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인감도장을 주머니 꽁무니에 차고 다니는 법이 없다구요. '누가 말아 먹으려면 말아 먹어 봐라. 나 이상 정의에 입각해서 정성을 다 바쳤으면 갖다 써라' 이거예요. 그러지 못해 가지고 자기의 체면과 위신을 가지고 그렇게 나오면 나는 싫습니다. 그런 사람이면 절대 이것을 안 내놓는다구요. 차라리 싫다고 하는 사람한테 해주면 해주지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해주지 않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생활태도라구요.

그렇게 해주면 어떻게 될 것이냐? 누구 때문에 동기가 되었느냐 할 때 하늘 때문이 아닐 때에는 그 사람을 도둑놈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해줌으로 말미암아 막혀 버린다구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돼요. 그런 사고방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중심삼고 천국 가는 길이라는 것은 딴 것 없다구요.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인류를 위하고…. 그것은 끝이 없는 거라구요. 고달프다면 고달프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가슴이 조여 오고….

세상을 가만히 보게 되면 공직에 서 있는 사람이 불쌍한 거라구요. 있는 정성을 다했지만 행여나 뜻 앞에 실수를 해 가지고 나로 말미암아 천년 공적이 틀어지면 어떻게 될 것이냐? 빚진 사람이 돈은 없는데 빚을 갚아야 할 시간이 다 되어 가고, 그런 심경이라구요. 그런 생활을 지금까지 해 나오고 있습니다.

뭐 어떤 사람은 통일교회 문선생은 이제 일대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요전에 어느 대학 총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 사람이 통일교회에 대해서 한다는 말이 '문선생은 이제 그만하면 보통 사람보다도 성공하지 않았느냐? 무엇으로 보더라도 이제 통일교회는 성공했다. 문선생의 이름은 역사에 남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름이 역사에 남으면 뭘해요? 그 자체가 역사에 남는 큰 명예를 얻었을지라도 저나라에 갔을 때 심정의 세계와 먼 거리에 가 있으면 뭘해요? 그 창피를 어떻게 할 것이냐?

세상에서 성공을 해서 뭘 하느냐 이거예요. 죽을 텐데…. 죽게 되면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나라에 갈 텐데. 그 나라에 가 가지고 심정적인 반역자가 되면 뭘해요? 그런 것을 성공했다고…. 성공이 도리어 화다 이거예요. 요것이 언제나 내 왼발을 걸려고 하고 바른손을 걸려고 하면서 사방에서 걸어 제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 올무라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것이 자기 원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잘 요리하고 처리하는 데 있어서 양심에 꺼리끼지 않는, 양심 앞에 가름길을 만들지 않고는 천국에 가도 천국을 맞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문제다 하는 것을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기 도

​당신은 통일교회를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 내연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통일교회를 위해서 계시는 아버지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아버님을 사랑합니까? 저희들이 아버님을 위해서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으로부터 되는 줄 알았더니, 어떠한 스승으로부터 되는 줄 알았더니, 천국은 나로부터라는 것을 이제 확실히 알았습니다.

내가 찾아야 할 나라를 누가 찾아 줄 것이며, 내가 찾아야 할 세계를 누가 찾아 주겠습니까? 세계를 잃어버린 슬픔을 느끼지 못한 사람은 세계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슬픔을 느끼지 못한 사람은 나라를 찾기 위한 생각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민족과 종족과 가정을 가졌던 사람이 그것들을 잃어버렸을 때, 갖지 못했던 사람은 모를는지 모르지만 가졌던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비통한가를 알고 있습니다.

나 아무개는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하늘의 아들이 되어야 하고, 나라를 대표하고 종족을 대표하고 가정을 대표하고 만민을 대표해야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자리는 나만 홀로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내가 갈 때에 하늘에 계신 아버님이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내가 가정에 머물 때 아버님이 여기에 찾아오셔야 되겠고, 내가 교회에 머물 때 아버님이 찾아오셔야 되겠습니다. 직장에 머물 때도 아버지께서 찾아오셔야 되겠고, 나라를 위해서 가는 길에도 찾아오셔야 되겠습니다. 세계를 향하여 가는 길에 있어서도 어느 한때 고독한 입장에서 가는 것이 아니라 천심과 천정을 따라 모심의 생활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이 땅 위의 뜻을 안 사람들이 가는 길인 것을 잘 알았습니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이 있다 할진대 당신이 찾고자 하는 세계를 그리워해야 되겠고, 당신이 찾고자 하는 나라를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또한 저희 들은 나라 가운데에 있는 개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개인을 사랑해야 되겠고, 세계 가운데에 있는 개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개인을 사랑해야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런 사람은 아버지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요, 아버지의 사랑을 가진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내 양심을 통하여 늘 충고하고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양심은 나에게 환경을 극복하라고 명령하고 환경에서 희생하라고 명령하는데 그것을 원수와 같이 알았습니다.

내 마음에 어찌하여 이런 것이 있어 나를 괴롭게 하느냐? 바울이 통탄한 것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두 개의 요인이 있어서 서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엇갈림이 있어 가지고 상응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신음하였던 입장을 저희들이 넘어서야 되겠습니다.

이미 죽음길을 각오했던 맹세의 실체로서 죽음의 날을 맞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굶주림의 자리에서나 헐벗은 자리에서나 수욕의 자리에서나 개척의 자리에서나, 혹은 몸이 찢기우고 깎이울지라도 아버지만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자기 자체를 잊어버리고 그리움에 사무칠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에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았습니다. 그런 자리에는 당신께서 안 계시는 줄 알았더니 거기에 계셨고, 나와 먼 곳에 계시는 줄 알았더니 너무 가까운 자리에 계신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몸 속의 심장은 쉴 사이 없이 24시간 고동을 울리고 있지만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때가 많은 것이 아닙니까? 당신이 너무 가까이 계시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너무 가까운 자리에, 너무 깊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먼 자리에 계신 줄만 알고 당신이 가까운 자리에 계신 줄을 몰랐던 불쌍한 저희들이었고, 떠난 줄만 알고 당신이 나와 더불어 같이 쉬고 같이 생활하고 계신 것을 몰랐던 저희들이었사오니, 당신이 나와 더불어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제 사랑의 뜻 세계가 어디냐 하고 그 길을 찾게 될 때, 자기를 들고 나와 가지고 남아지는 무리는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희생하는 자리에서만이, 전체를 위하는 자리에서만이 남아질 수 있다는 것이 하늘의 도리요, 인간 본성의 도리의 원칙적인 궤도요 행로인 것을 저희가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서 발전이 파동쳐 들어온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누가 잘못되었다고 상대를 대해 혈기를 돋구어 평하는 사람을 보게 될 때, 그는 하늘의 왕자와 같고, 하늘의 왕녀와 같은 입장에서 권세를 잡은 사람 같지만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인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온유 겸손의 화신이 되고 스스로 희생의 제물이 되기 위하여 전체를 바치고자 하는, 나라를 위하여 그리워하고 세계를 위하여 그리워하며 현재의 입장을 극복하기 위하여 온갖 수난길을 감수하고 고독의 길을 감수해 나가는 아들딸이 있다면 그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알았습니다. 나 자신이 그런 길을 걸어올 때 아버님은 같이하였다는 것을 알았사옵고, 홀로 고독한 자리에 눕게 될 때 아버님은 나와 더불어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품고 밤을 새웠던 것을 알았사옵고, 아버님이 나와 상관없는 자리에 계신 것이 아니라 내가 아버지와 먼 자리에 있었다고 사죄를 구하는 자리에 섰을 때 아버님은 이미 나를 권고하고 새로운 소망을 주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통일교단이 금후에 가야 할 길을, 아버지여, 맡으시옵소서. 땅에서 제아무리 잘나고 제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거룩하심 앞에 미칠 바가 없고, 아버지의 절대적인 기준 앞에 상대적 요인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좋은 것이 있다 하면 당신을 위하는 것으로써 결실되어야 되겠고, 자랑할 것이 있다 하면 당신을 앞에 놓고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전통적인 사상을 남겨 놓아야 할 세계가 통일의 심정 세계인 것을 알았사오니, 그 길을 고이 달려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망해야 할 운명을 각오했던 걸음 앞에 아직까지 생명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원망과 저주 가운데서 축복과 인내로써 아버지를 찾던 그 자리에서 심정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정과 공인 가운데서 아버지를 추앙할 수 있는 환경을 맞을 줄 몰랐습니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낌과 동시에 아버지의 수고의 대가가 컸다는 것을 알고 감사 감격해야 될 오늘날 통일교회의 신도들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신앙의 길에는 눈물이 말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날 순간의 위로의 터전을 찾기 위하여 애달픈 그 마음을 억제하고 먹을 것, 입을 것을 잊고 극복의 노정을 자처해 가는 걸음이 되지 않고는 안 될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

오늘날 통일가에서 여기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없게 될 때는 이 통일가를 아버지 뜻 앞에 일치시켜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 그 누구냐고 묻게 될 때, 나라고 하며 나설 수 있는 아들딸이 있거들랑 만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스승이 갖고 있는 권한을, 스승을 통하여 약속했던 것의 천배 만배로 약속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이 당신의 소원이요, 당신의 뜻을 상속받을 수 있는 무리들의 정상적인 심정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제 나라가 우리 앞에 놓여 있사옵고 세계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정세를 바라볼 때 기수가 될 무리는 누구냐 할 때 통일교회 신도들이 그 기수가 되어야 되겠고, 이 나라에 비운이 다가올 때 기수가 될 무리는 누구냐 할 때, 통일교회 교인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 얼굴에는 나라를 위하여 수심에 싸여 있던 그런 역사가 깃들어 있고. 심중에는 나라의 애달픈 사정의 못자국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아버님이 그러하기에 우리는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뜻을 세계에 남기지 못하면 이 민족으로서 사명을 못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 사명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게 되면 하늘나라에 애국애족할 수 있는 무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천국은 나로부터라고 하였사옵니다. 이 아침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남을 대하여 사랑하기에 밤을 지새우고, 나라를 위하여 염려하기에 자신의 일생을 수포로 돌리고 수고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무리는 결코 망하지 않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 70년대가 저희 앞에 다가왔사옵니다. 축복가정들이 일선에서 싸우고 있사오니 이들의 거룩함을 찬양하여 주시옵소서. 전도의 실적만이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의 내심의 사연에 동조하고 그 사연을 따라가는 인연 가운데 선 것이 얼마나 귀한가를 보고 살피옵고, 전후 좌우 사방을 가리어 그들의 갈 길을, 아버지,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천국은 나로부터'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내 작은 김 아무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마을이 아버지를 추앙하고 그 군과 그 나라가 아버지를 추앙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는 언제나 종교계에 있어서 석양을 맞는 그런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새벽을 향해 넘어가는 자정의 한 순간을 맞기 전에는 새벽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새벽도 영광의 새벽, 기쁨의 새벽이 못 되거든 자정의 그 자리를 피하지 않겠다고 몸부림쳐야 할 통일교회 신도들이라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칠흑 같은 흑암세계에서 자기의 마음의 방향을 따라 천륜과 더불어 보조를 맞추며 엄숙히 밤을 지새워 가면서 정성들이는 무리가 되어 아침의 햇빛을 받지 못하겠거든 자정에 소망의 햇빛을 그리워하면서 눈물지을 수 있는 무리라도 되지 않으면 뜻과 더불어 경멸당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겸손히 아버지의 심정 앞에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고, 천국 앞에 플러스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되는 심정적 주체를 갖추어야 할 자신인 것을 발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안식일이오니 전국에,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역군들 앞에 복을 빌어 주시옵고, 그들의 가는 도상을 지켜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어린 자녀들이 이 아침에 당신의 존전에 부복하였사오니 굽어살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나라는 저희의 마음 몸이 가서 살아야 할 나라인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버님이 통치해야 할 나라는 저희가 생애를 다 바쳐 받들어야 하고 성취시켜야 할 거룩한 나라인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버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은 영원한 승리의 생명들이, 땅 위에서 정성을 들이던 뭇 자녀들이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을 찬양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중심삼고 길이길이 시봉해야 할 거룩한 곳인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당신께서 심중에 그리고 있는 아들과 딸이 어떠해야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말씀을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온 천지의 인간들을 바라볼 적마다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여야 할 상대적인 실체요 자극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기쁨을 자극하고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실체임에도 불구하고 주인된 인간들이 아버지의 목전에 있지 않았을 때 얼마나 슬퍼하셨고, 얼마나 기가 막힌 사정에 처해 있었는가를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 아침에 저희들을 깊은 잠 가운데서 일깨우시사 당신의 서러움이 무엇이었다고 마음으로부터 저희들에게 가르쳐 주시옵소서. 저희의 눈이 뜨여 있더라도 당신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못 되어 있고, 저희들의 걸음걸이가 바르더라도 당신이 원하시는 목적을 향하여 가는 데에 너무나 굴곡이 많은 걸음걸이를 하고 있는 저희 자체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뜻을 위해서 달려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는, 타락권내에 처해 있는 원망스런 자신들임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마음으로 찾아오셔서 역사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아버님을 늘 마음으로 모셔 드리지 못하고 마음으로 위하지 못하여 때로는 낙망하고 때로는 자신을 저주할 때가 있었던 것을 아버지께서는 알고 계시옵니다. 그러한 연약한 저희들을 아버님께서는 도리어 긍휼의 마음과 사랑하는 심정을 가지고 저희들을 위하고 싶어하시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이나 저희들은 모두가 슬픈 모습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겸손한 가운데 자기 자체를 참되게 가꾸어 가지고 당신 앞에 나타나는 그런 모습을 당신은 얼마나 만나고 싶어하셨습니까? 지성을 다하여 당신의 심정을 자극시킬 수 있는 참다운 마음의 아들딸을 얼마나 얼마나 고대하셨습니까?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 표준에 어긋난 자리에서 당신 앞에 사연을 통고할 적마다 괴로우면서도 대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입장을 당신도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 자신들도 그런 자리에 아버지를 모시고 싶지 않사오나, 타락으로 인한 한스러운 인연을 벗지 못한 연고로, 늘 하늘의 소신과 일치하지 못한 반역의 자리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적마다, 역사적 한과 우리 선조들의 범죄로 인한 타락의 원한을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한스러운 정체를 수난과 십자가의 형틀에 못박아 놓고 최후의 당신의 심정과 당신의 동정의 인연을 그리면서 내일의 소망 앞에 접근해 가지 않으면 안 될 인생행로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님, 저희들을 이런 자리에 남겨 둘 경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자신들이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기에 또다시 하늘 앞에 사정을 통고하지 않을 수 없는 불쌍한 무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당신과 우리 사이에만 관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용납할 수 없고 아버지께서 참을 수 없고 아버지께서 양보할 수 없는 원수의 무리가 제3의 기점을 통하여 저희를 농락하고 있는 사실을 볼적마다, 그 원수가 미워서라도 저희를 아버지 앞에 끌어 가야 할 책임이 있는 아버지의 사정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원수를 용인하는 입장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불쌍한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을 위하고 원수를 미워할 수 있는 하루의 생활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러한 일년의 생활을 아버지 앞에 가누어 드릴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시옵소서. 저희들이 처하는 거처에 아버지를 모시고 만년 행복을 찬양할 수 있는 기쁨의 하루를 맞이하겠다고 몸부림치는 자신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당신의 성상이 어떤가를 알고 싶어하는 아들딸이 있거든 세상의 불쌍한 사람을 대표한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아직까지 당신보다 불쌍하지 않다는 것을 헤아려야 되겠고, 인류를 대하시는 당신의 수고가 어떠한가를 알고 싶어하는 자들이 있거든 이 땅 위의 누구보다도 자기의 자녀를 위하여 수고하면서 참고 이를 악물고 싸워 나가는 처절한 부모가 있다 할지라도 그 부모보다 더한 분이 아버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라의 불쌍한 것을 바라볼 적마다 그곳에는 아버지의 정경이 깃들어 있는 것을 느끼옵니다.

흘러가는 세계의 사조 가운데서 인류가 거쳐가는 한스러운 고빗길에는 당신의 한의 소용돌이가 아직까지 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기에 전체를 구하기 위해 제물의 실체를 찾는 이 마당에 있어서 전체 앞에 염려의 대상이 되지 않겠다고. 아버지 앞에 염려의 대상이 되지 않겠다고 하루하루의 생활을 쪼개 가며 몸부림치는 아들딸이 있으면 그들 위에 당신이 언제나 머물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고요히 찾아오시어서 깊은 심정에 깃들어 있는 본연의 자체를 일깨우시옵소서. 당신이 가시는 목적의 그 소향(所向)을 따라 저희들도 기쁨과 더불어 소망과 더불어 이 길을 가기를 고대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기뻐하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이 땅 위에서 살다가 당신 앞에 가야 할 운명을 지닌 저희 자신인 것을 생각할 적마다, 그런 자녀의 명분을 가져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깨달을 적마다 저희들은 진정 황공한 마음으로 아버지의 심정을 알아 드려야 하겠사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아담 가정으로부터,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모세, 세례 요한, 예수 시대까지 4천년 역사의 슬픔을 홀로 지니시고, 그 누구도 모르는 일면의 심정을 가누지 못하고 붙들고 오시는 것을 아옵니다. 이 땅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내놓으시고 한스러운 가슴을 억눌러 가며 잃어버린 그 터전 위에 또다시 새로운 자식이 나타나기를 바라 나왔고, 허물어진 그 터전 위에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하는 아버지 앞에 수난길이 태산처럼 가로놓여 있더라도 다시 거동을 하여 새로운 소망의 길로, 가시밭길로 행보를 갖추지 않을 수 없었던 아버지의 처절한 사정을 저희들이 통감하옵니다.

'아바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며 아버지 앞에 최후의 단판기도를 드리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저희들이 생각할 적마다, 이것은 저희들 앞에 일생을 아버지 뜻과 더불어 일치되어 승리의 신앙노정을 남기기 위해서는 그렇게 처절한 때가 많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보여 준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 옵소서'라고 한 것을 볼 때, 인간의 뜻과 아버지의 뜻이 다른 것을 잘 느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저희들은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쉬고 싶더라도 다시 전진해야 될 당신이었고, 나는 안일의 한 때를 고대하고 있더라도 치열한 십자가의 과정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될 당신이었고, 저희들이 땅과 더불어 소망을 갖고 싶어했지만 저희의 소망을 전폭적으로 부정해야 하는 입장에 서신 당신이었습니다. 인간의 감정을 갖고있는 이 땅과 상치되는 입장에서 인간들을 구하기 위한 당신의 수고는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이옵니다. 그러한 아버지의 사정을 이제라도 동정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0억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지구상에 당신이 이 시간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찾아오실 곳이 어디냐고 묻게 될 때, 문화의 나라라고 자랑하는 선진국가의 입장에 있는 미국도 아니며, 다른 어떠한 나라도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잘난 사람에게 찾아오실 것도 아니요, 유식한 사람에게 찾아오실 것도 아니요, 세계적인 명망을 가진 사람에게 찾아오실 것도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갖추지 못한 초라한 모습, 풍부하지 못한 환경 가운데서, 굶주리는 그런 비참한 자리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염려의 마음이 앞서, 먹을 것이 있어도 먹지 못하고 눈물과 더불어 아버지 앞에 드리고 싶어하는 불쌍한 무리들의 손길을 거치지 않을 수 없는 아버지의 사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생활 노정에서 나 자신이 그 어느때 당신의 마음 앞에 흡족할 수 있는 한때를 가졌으며, 그 무엇을 갖추어 당신의 마음 앞에 기억될 수 있는 한때를 가졌느냐 묻게 될 때, 그런 사연이 없는 저희들이옵니다. 이러한 부끄러운 자신들을 청산하고 비판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생명의 동기도 아버지요, 소망의 근원도 아버지요, 목적 성사의 기원도 아버지이며, 생사화복의 기원도 아버지인 것을 아옵니다. 그 아버지를 얼마나 모셨고, 그 아버지의 사정에 얼마나 동화했고 그 아버지의 동기에 얼마나 일치점을 가졌사옵니까? 당신은 언제나 발을 구르며 저희 사정을 염려했지만 저희는 잠을 자며 저희 정체를 망각하기가 일쑤였습니다. 이런 자신을 생각할 적마다 아버지, 아버지를 그리워하면 그리워할수록 아버지를 알면 알수록 저희의 죄된 사실을 폭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급과 부족과 낙망의 첨단에서 절규하며 내일의 소망을 다 포기하고 자포자기한 그 자리에서 아버지의 염려와 더불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무리들을 통하여 당신의 세계적인 소망을 일깨우시겠다는 거룩한 뜻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적마다, 미급한 자를 통하여, 비천한 자를 통하여, 미완성된 자들을 통하여 최고의 완성과 최고의 고귀한 것을 찾으시려는 아버지가 얼마나 불쌍한 분이신가를 이 시간 다시 한 번 저희들의 마음속에 그려야 되겠습니다.

창조시에 하나의 흙덩이에 당신의 거룩한 손길이 닿게 될 때, 비로소 당신의 심정과 통하여 체온의 감촉을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의 흙덩이 모양으로 당신의 손길을 그리워할 줄 아는 어린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에게서 생명의 기원을 받아 사지백체의 모든 형체를 하나의 생명체로 만든 그 힘의 모체가 얼마나 거룩한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당신이 생기를 불어넣어 영원한 실존체로서 당신의 희망과 당신의 자극적인 상대의 중심으로 지으신 무한한 가치의 그 거룩한 존재를 그리워하면서, 기필코 그러한 자리에까지 달려가겠다고 이 시간 머리를 숙이고 부복한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한 걸음 더 전진하고, 한 걸음 더 개척을 하고, 한 걸음 더 싸워 나가는 데 있어서 지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희들은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원수들의 치하에서 고아와 같이 사라져가고 흘러져 갈 불쌍한 무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얼마나 초조한 마음을 갖고 저희를 각오와 결의로써 돋구어서 저희가 일시에 이곳을 지나기를 바라고 계시고, 고이고이 이끌어 주고 싶어도 저희들이 당신을 그리워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희들이 상대적 기준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저희들을 지도할 수 없었던 딱하고 기막힌 사연이 지금까지 얼마나 얼마나 많았는가를 저희들이 느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길러 본 부모들이나 사랑하는 동생을 키워 본 형님 누나가 있다면 그들을 먹이지 못하고, 불쌍한 자리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정경을 바라볼 때, 그 마음속에 스며드는 고독과 그 마음속에 스며드는 원망과 비참이 어떤가를 느꼈을 것이옵니다. 본연의 마음이요 본성의 마음 그 자체인 아버지께서, 그런 심정의 소유자이신 아버지께서 고아와 같고, 몰리고 몰리는 가운데서 내일의 소망을 갖지 못하고 당장에 스스로를 부정하고 싶은 자포자기의 경각에 처해 있는 무리들을 바라보실 때에, 폭발되는 마음을 갖고 동정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많으셨사옵니까? 저희들은 그러한 일이 저희 생활 가운데서 연속되고 저희의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에까지 연결된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둔한 무리이옵니다.

이러한 무리들을, 아버지, 일깨우시옵소서, 당신의 소망의 동산 위에, 당신의 위업을 상속해 주고 승리의 왕자 왕녀의 권한을 가꾸어 주고 싶은 당신의 마음이 저희가 모르는 가운데 수없이 저희를 거쳐갔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엎드린 이 자체가 아버지 앞에 수치스러운 모습임을 알게 될 때에, 잘난 마음이 이 몸에 임하게 하시어서 당신의 저주와 심판을 일시에 받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당신은 사망의 본체가 아니라 생명의 본체요, 당신은 패자의 본체가 아니라 승자의 본체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고 당신의 인연을 알고 있다 하는 이 하나의 사실로 인하여 저희들을 버릴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그 아버지가 얼마나 불쌍하신 분이신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옵니다.

이제 당신이 저희를 부르시는 그 마음과 더불어, 그 음성과 더불어 저희들이 결의하고 일치단결하여, 한 개체가 일체를 이루고, 한 가정이 일체를 이루고 한 모임이 일체를 이루게 하시옵소서. 압축과 압력이 가해 들어오는 이 모든 어둠의 사망권을 저희들의 단결된 힘으로도 격파하기에 부족할 때에는 아버지의 힘을 가중시키어서 격파하고 남을 수 있는, 심정적 유대를 공고화시키고 또 천정적인 인연을 공고화시켜서 최후의 결정타를 가할 수 있는 저희 자신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7월 25일이옵니다. 이날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달의 마지막 안식일인 오늘 이 아침에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전국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특히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고 지방에서 책임을 수행하고 있는 자녀들, 각자에게 맡겨진 탕감노정을 걷고 있는 무리들도 있사옵니다. 어려운 길에서, 외로운 개척자의 노정에서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자들이 있다면 이들은 기필코 망하지 않을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그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사명을 짊어지고 일선에서 수고하고 있는 이들을, 아버지, 격려하시옵소서.

우리의 나라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가운데 있다는 것을 느끼고, 우리의 소망, 우리의 뜻이 먼 곳에서 이뤄질 것이 아니라 오늘의 생활, 한 순간 순간 촌각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옵소서. 이제 직접적인 시대권내에 있는 당신을 존귀하게 느낄 줄 아는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하시옵소서. 한 번 당신의 뜻을 통고하여 안 되거든 두 번, 열 번, 백 번을 통고해서라도 당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심어 놓을 수 있고, 당신의 처절한 모습을 보여 주는 무리로 남아져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싸우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을 바라보며 끝날에 맡겨진 사명을 염려하면서 남모르는 가운데서 정성을 들이는 무리들 위에 가일층 당신의 후대하신 사랑이 같이하시옵소서. 이 자리에 참석한 자녀들의 걸음걸음이 절대 헛되지 않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배고픈 어린아이의 심정을 갖고 하늘을 동경하고 흠모의 심정에 사무쳐서 당신의 거동에 완전히 화합하여 상대적 실체로서 현현할 수 있는 거룩한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과 땅이 일체화되어 당신이 거하실 수 있는 승리의 천국의 기원이 자체로부터 연속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땅 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종교들은 자기 종교를 통하여서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음으로써 이 땅 위에서 자기가 바라는 소망을 성취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만으로는 천국을 소유할 수 없어

개인이 원하는 최고의 소원, 혹은 최하의 어떤 바람이 있다 하더라도 역사과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많은 수난길, 흑은 수고로운 길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혹은 각자의 생활권 내에서 남보다 나은 생활의 터전을 어떻게 갖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면서 각자의 신앙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런 무리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우리들도 모든 존재들이 바라는 거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나, 보다 선하고 보다 높고 보다 가치 있는 나 자신을 계발하려 합니다. 또, 보다 넓고 보다 높은 것을 소망할 뿐만 아니라 그 소망을 오늘날 생활무대에서 어떻게 전개시키느냐 하는 바람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천국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외부에 나타나는 상대적인 세계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나 자신이 좋은 바탕의 씨를 갖지 않고는, 혹은 좋은 바탕에 화합할 수 있는 상대적 여건을 갖추지 않고서는 그것과는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슬픈 입장에 있을 때는 주위에 아무리 기쁜 사람이 있고, 기쁜 내용이 있다 할지라도 그 기쁜 사실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기쁘기 위해서는 내 마음속에 기쁠 수 있는 내용을 지녀야 합니다. 내 스스로 생활권내에서 기쁠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공인하는 자리에서만이 우리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자들 가운데는 앞으로 올 천국을 바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렇게 이렇게 믿고 나가면 천국이 내게 오리라고 믿고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현실생활과는 상관없이 믿는다는 그 조건만 가지고 천국이 나에게 인연이 되고 관계될 줄 알고 있지만…. 만일 내가 천국의 내정을 알지 못하고 생활감정이 통하지 않는 자리에서 단지 믿는 것만으로 천국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나의 생활권내에서 자극이 될 수 없고, 나 자체와 영원히 관계를 맺을래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천국이 얼마나 좋다는 것을 내가 느낄 수 있고, 그 천국의 범위와 내용이 어떻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내 감정이라든가, 혹은 사정이 미칠 수 있고 통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면 거기에서 비로소 나도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영계에 가서 우리들이 믿고 바라던 천국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 하더라도, 믿음을 통할 수 있는 내용을 벗어 나서 그 천국이 나에게, 그 천국의 모든 행복의 여건이 나에게 파급될 수 없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믿는 것만으로는 그 실체를 감정으로 체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을 중심삼은 실체의 생활을 통하여서, 혹은 내 자체의 직접적인 체휼을 통하여서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단지 믿는다는 입장에서는 우리 타락한 인간과 타락하지 않는 하나님을 비교해 보게 될 때, 너무나 먼 거리에 있습니다. 그 거리는 수많은 역사시대를 거쳐온 거리입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악과 선이 엇갈린 사정으로 엉클어져 있습니다. 이런 인간 자체를 볼 때, 많은 수난의 길을 거치더라도 이 사정을 가려서 하나님의 본체와 접하기는 어려운 것이요, 인간 자체로서 그 거리를 단축시킬래야 단축시킬 수 없는, 일대일의 입장에서는 미칠 수 없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기의 생명을 다하여 믿는 마음을 가지고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상대기반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신앙의 기준에 내가 도달하였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은 못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에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 사람이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냐? 그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일의 새로운 출발의 동기, 기점, 출발점은 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 절대적인 신앙을 가졌다고 하나님이 자기의 전체 내용을 좋아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또, 그 자리가 감정적으로나, 혹은 사정적으로 완전히 통할 수 있는 자리냐 할 때 그렇지 못하고 시작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자리는 소원의 세계와 인연지어 갈 수 있는 출발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출발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으면서 실천하는 생활과 생애 노정을 얼마나 남기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남긴 그 양이 천국의 내용을 인연지을 수 있는 내용이 되면 되었지 믿음 자체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믿는 것만을 가지고서는 천국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믿음을 통하여서 출발의 인연은 마련할 수 있지만 그런 결정적 내용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믿기만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믿고 나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실천을 해야 됩니다. 믿는 것만큼 실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실천이 문제입니다.

믿음과 실천

실천과 믿음을 두고 볼 때 언제나 믿는 것이 앞서지 실천이 앞설 수 없습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믿음이 강해야만 실천도 강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는 기준과 실천의 기준은 언제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만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나을 수 있는 실천의 결과를 바라고 믿음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들은 실천을 등한히 하고 믿는 것을 위주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바라는 것과 엇갈려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신앙생활을 항시 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 당시 12사도를 중심삼고 볼 때, 그들 또한 그런 신앙을 했습니다. 믿는 것만으로 보면 그들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이스라엘나라를 구할 수 있는 메시아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는 믿음의 기준은 그 즉석에서나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수많은 싸움을 거쳐서 가정이라든가 종족, 민족으로 나아가야 할 실천과정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의 사도들은 누구보다도 죽음을 각오하고 생명을 걸고 맹세하면서 예수를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생명을 내놓아야 할 때가 그들 앞에 휘몰아쳤을 때, 그들은 믿던 예수를 통하여 바라던 천국 이념, 전체의 소원을 일시에 포기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에게 믿음과 더불어 실천하여 그런 자리를 극복한 체험이 있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셔야 할 운명에 접하였을 때 정작 십자가를 진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고도 그 고비를 넘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믿는 것만을 제일로 하고 믿는 것만으로 전체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 사도들 앞에 청천벽력과 같은 슬픔의 한날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어디까지나 실천을 위한 동기를 마련하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천국이 어디에 있느냐고 할 때 천국은 믿는 데 있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천국은 나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나에게 있다는 이 말은 주체적 입장이 상대적 세계에 달려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체적인 내용을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동기가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 것임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기쁠 수 있는 내용을 결정해 놓지 않고는 아무리 하나님이 기쁘다 하더라도 그 기쁨은 우리와는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쁠 수 있는 동기를 가졌다면 상대적 입장에서 나 자신은 기쁠 수 있는 상대적 여건을 개척해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기뻐하는 주체가 있더라도 상대가 없을 때는 그 주체도 기뻐하다가 마는 것입니다. 바라다가 마는 것이요, 시작하려다 끝내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어떤 한 사람이 기뻐할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있더라도 상대가 기뻐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고 슬퍼하는 입장에 있다면 기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뻐할 수 있는 것보다도 슬픈 내용이 더 크게 될 때는, 기뻐할 수 있는 그 주체도 슬퍼하는 상대를 도리어 위로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슬퍼하게 될 때 슬픔의 자리에 들어가서 위로해 주고 싶은 것이 우리의 생활 감정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주체적 입장이고 우리가 상대적 입장이라면, 하나님이 우리를 대해 기뻐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슬픔에 잠겨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되면 도리어 슬픔의 자리에서 우리를 위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신앙 기준만을 가지고 천국을 소유하려 할 것이 아니라, 그 신앙에 대비될 수 있는 실천적 기준을 어떻게 갖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에 놓고 제자를 대해서 반문하신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어려운 죽음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제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을 알기에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게 될 때 모두가 저버리고, 전체가 부정하리라는 것을 말하자 베드로 같은 이는 자신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모두가 부정하더라도 자신만은 부정하지 않겠다고 장담했습니다. 그 믿음은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믿는 마음뿐이었지 실제 행동과는 먼 거리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절대신앙 절대실천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가야

이러한 관점에서 그들의 신앙과 오늘 우리들의 신앙을 비교해 보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통일교회 식구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뜻과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나가고 있는 신앙의 내용을 중심삼고 나와의 직접적 관계를 비교해 볼 때, 나는 얼마만한 기준을 중심삼고 신앙길을 가느냐? 통일교회를 믿는 데 있어서 어느만큼 믿고 있느냐? 믿는 데 있어서 절대적이냐? 그렇지 못합니다. 신앙을 하는 데 있어서 자기 생명에 연연하고 있지 절대적인 심정이 앞서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 믿고 그렇게 열심히 모시던 사도들까지도 천국의 실체 되는 예수와 더불어 십자가의 길에 동참할 수 없었던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가 생각해 보게 될 때, 오늘 우리의 신앙의 정도가 옛날 사도들이 가졌던 그신앙에 미치고 있느냐? 본부에 살고 있는 개개인을 다시 한 번 냉정히 비판해 볼 때, 과연 본부에서 통일교회 신앙의 표준에 합격한 자로서 생활을 하고 있느냐? 자기 나름대로의 비판 기준과 자기 나름의 생활 기준을 중심삼고 나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신앙 일색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신앙의 소원은 차후로 돌리고 자기가 바라는 소원대로 살아가는 무리가 많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신앙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최후의 승리적 권한을 요구하게 될 때, 과연 우리들 스스로가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승리의 결정적 기반을 취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신앙을 갖고서도 하나님이 나에게 전면적으로 천국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자기 나름대로의 신앙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 소신을 중심삼고 나는 이렇게 가면 될 것이다' 하며 나가는 신앙 가지고 과연 천국을 성사시킬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뜻을 위한다고 하면서 뜻을 빙자해 가지고 자기 자신을 입증하려고 하고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폐습적이요, 폐단적인 타락권에 있는 우리들,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모면하기 위해 전술을 쓰던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 있는 우리 자신들이 과연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고, 확고부동한 터전을 사수할 수 있고 유지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심히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들 자신을 두고 볼 때, 내 마음에 천국이 있느냐? 내 마음에 천국이 있다고, 내 마음에 천국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천국을 가진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그 자체 가운데 속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천국을 이룬 사람이 있다면 생명을 가진 인간이면 누구라도, 타락의 후손 그 누구라도 소망의 기점인 그 천국을 쉽게 이룰 길이 없겠기 때문에 그 누구든지 그곳에 머물고 싶어할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항상 누구라도 그곳에 가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같이 가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같이 살고 그와 더불어 같이 고생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고생을 해도 같이 하고 싶고, 죽어도 같이 죽고 싶은 그런 터전이 천국이 아닐 것이냐?

거기에는 슬픔이 있다고 해서 갈라지는 것이 아니요, 고통이 있다고 해서 갈림길이 생기는 것이 아니요, 사지사판이 된다 하더라도 그 자리는 갈라질 수 없는 것입니다. 죽음을 극복하고 모든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주체적인 입장이 천국을 소유한 입장이라면, 그 천국을 소유한 사람에게 어떠한 어려움과 어떠한 수난길이 있더라도 그것이 그의 가는 길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막을 수 있는 내용이 있는 자리에는 천국이 임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을 이루려면

이런 저런 문제들이 오늘날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공인한, 하나님의 공증을 받은 내용을 지닌 입장에 있지 않고 가야 할 방향을 앞에 놓고 주저하는 입장에 있다면 천국이 임재해 가지고 거주할 수 있는 자리가 못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타개하고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입니다.

하늘을 대해 맹세하고 뜻을 위해 가겠다고 하기 전에 나 자신이 천국이 요구하는 필요적절한 상대적 실체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적인 문제입니다. '내가 이렇게 필요하지 않소?' 하고 자신있게 제시하는 사람보다 '나에게 천국이 필요하지 않소?' 하고 요구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자기의 위신과 체면과 신앙의 연한을 가지고 자기를 공인해 달라는 사람보다도 자기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제시해 가지고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는 내용이 이렇다고 명시할 수 있는 사람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앞서야만 천국이 그 마음에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고, 천국과 더불어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공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갖지 못한 사람은 천국과 관계를 갖지 못한 사람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방대한 뜻을 앞에 놓고, 혹은 하나님이 역사를 통해서 소원하시는 그 뜻을 앞에 놓고 얼마만큼 심각한 자리에서 그 뜻과 더불어 하나되어 있느냐? 그 뜻을 중심삼고 절대적인 신앙을 하고 있느냐? 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죽고 망하더라도 '이 신념만은 틀림없다. 내가 틀렸으면 틀렸지 뜻은 틀림없다'고 하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아침의 신앙과 저녁의 신앙이 다른 그런 신앙자세를 지니고 있으면서 천국을 그린다는 것은 너무너무 어리석은 일입니다.

만일에 천국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은 어떤 길이냐? 어떤 길이 되어야 하겠느냐? 자기를 생각하는 자리에서는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자신이 천국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자기라는 것을 타파해 버려야 합니다. 자기를 공격하는 데서만이 천국, 혹은 간접적인 천국이라도 개방될 수 있는 소원의 한 길이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그냥 그대로 옹호하는 입장에서 상대적 환경을 자기에게 적응시키려 하는, 자기 스스로를 주체적 입장에 놓고 상대적 환경을 밀고 나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천국과는 관계를 못 맺을 것입니다.

오늘의 제목과 같이 천국은 나로부터입니다. 아무리 상대적 천국이 완비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천국이 부를 때에 화답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못 되어 있으면 그 천국과는 상관이 없게 됩니다.

천국은 어떤 곳이냐? 사탄을 극복하고 난 자리가 천국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체를 극복한 자리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자체만을 극복한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거주하는 사회환경, 타락한 세계권, 습관적인 환경권, 흑은 상습화된 자리에는 천국이 임할 수 없습니다. 이 상습화된 환경을 사탄이 고질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사탄이 여기에 우거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탄의 환경을 극복하고 나야만 천국이 오는 것입니다. 천국은 사탄세계의 내용과 상반된 자리에서 이뤄집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만일에 그렇지 않다면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천국이라는 이름이 붙었더라도 그것은 환경을 농락하기 위한 속임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이라는 개념은 사탄을 극복한 자리에서, 사탄이 상대할 수 있는 일체의 요인을 부정한 자리에서, 부정할 뿐만 아니라 청산지은 자리에서 성립될 수 있습니다. 사탄의 부정적 여건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유물이라든가 생활적인 모든 내용을 부정하고 청산지은 터전 위에서 천국이 긍정될 수 있는 것이지, 그런 여건을 남기고는 천국의 내용을 제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렇게 고귀한 곳입니다. 절대적 기준 앞에 일치될 수 있는 그런 기준을 중심삼고 말하는 천국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그리는 천국의 개념은 너무나 혼잡합니다. 너무나 사(邪)된 입장에서 천국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활환경에서 절대적인 신앙기준을 가지고 극복하는 데서부터 천국이 생길 것이 틀림없으나 그것만으로 천국의 기원이 결정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터전 위에 수천년 동안 하나님을 수고시켰고 수많은 인류를 농락한 사탄을 극복해야만 천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순순히 믿고만 가는 자리에서 천국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믿는 마음만 가지고서는 절대로 천국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 가운데는 사탄이 언제나 싸움을 제시하기 때문에 싸움노정을 극복해야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주권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또한 수많은 백성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가정들이 국가면 국가 체제내에 함께해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전체적인 체제를 갖춰 나가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입장에서 서로서로 상충이 없이 주체와 더불어 어느때, 어느 환경, 어떤 곳에서라도 화합하고 화동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하고 믿는 자리에서는 마음에 임재하는 천국을 느낄는지 모르지만, 실체적인 천국은 2천년 역사를 통하여 수많은 순교와 수난의 대가를 치르고도 오늘날 현실무대에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천국은 그렇게 간단히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이 나로부터'라니 얼마나 심각한가

'천국은 나로부터', 이 말을 두고 볼 때, 이 '나'가 있는 이 자리가 얼마나 심각한 자리냐? 얼마나 우리 인간에 있어서 절대적인 입장을 대표하는 자리냐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경 가운데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주' 라는 말은 억천만세를 통하여 영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절대적인 내용을 갖춘 자리에서 인식할 수 있는 말입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믿는 데서 천국이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천국이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데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 아니냐? 믿는 데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데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미급했고 원칙에 도달하기에 얼마나 먼 거리에 있었느냐 하는 것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혹시 여기 처음 온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개인을 중심삼고는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는 못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의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져 가지고 개인을 중심삼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해서 천국이 되느냐? 그건 개인의 천국은 될는지 모르지만 전체 천국은 되지 못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개인의 천국이 아닙니다. 개인이 성립시켜 가지고 소유한 그런 천국을 바라보고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천국이 다 되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기뻐할 수 있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그를 중심삼고 만국을 횡적으로 연결시켜 가지고 전체 천국을 모색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서 희생시킨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오늘 우리들이 믿고 나가는 신앙에 있어서 절대적인 한계점을 그어 놓고 '나에게는 이것이 절대적이다. 이 신앙을 누가 빼앗아 가랴' 하는 이런 자기 주장을 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 하늘땅 앞에 자신을 갖고 외칠 자가 있느냐? 그러한 신앙조차 갖지 못한 우리 자신들이라는 겁니다. 이런 우리들을 하나님은 거느려 가며, 이끌어 가며 시시각각으로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통하여, 영적으로 키워 나오고 계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두고 볼 때, 그분이 편안한 자리에서 우리를 키워 주고 일깨워 주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에, 이렇게 해주면 반드시 보답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한 번 하고 또 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때에 알아주기를 바라는 믿음, 그런 절대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에 몇 번이라도 수고하고 몇 번이라도 손해보더라도 믿어 주고 또 믿어 주는 놀음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적으로 믿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사망권에 처해 있는 우리 자신들이 곁길로 가려할 때 하나님은 그 길을 막아 주고 가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우리가 사랑스러워서 그러시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한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믿음의 가치가 믿음의 아들 딸로서 나타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런 사람을 그리워하며, 그 그리운 자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절대적으로 믿고 나가시기 때문에, 몇 번을 좌절당하더라도 인간을 믿어야 하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좋아서 그러겠어요, 우리가 좋아서? 이것을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이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해서 절대적인 신앙을 요구하는 그런 입장에 섰다는 것은 벌써 우리를 믿어 주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입장에서 우리에게 절대적 신앙을 요구한다는 것을 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에게 어떠한 체험을 시킬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에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한 체험을 하게 되면 그 체험이, 자기가 정성을 들였기 때문에, 응당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수고하는 가운데 수많은 도인들과 선지선열들에게 피의 대가를 치르게 했는데도 아직까지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워하는 아들딸을 맞지 못한 입장에 머물러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 일대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었다고, 나를 좋아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어디까지나 내일의 소망을 앞놓아가면서 그 소망을 연결시키려니 그런 무리라도 가누어 수습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에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거 어쩔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좋아서 은혜를 주신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해라는 거예요.

영적 체험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교만하고 당당합니다. 그럴수록 부족함을 느껴야 합니다. '환경이 잘못되어서 그렇지 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 사람은 앞날이 멀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바리새 교인들을 책망한 것입니다. 바리새 교인들은 교만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갖춘 것 같았지만 내심적으로는 갖추지 못했습니다. 벌써 내심적으로는 높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나는 나라를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라를 대표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제물 과정을 거치고 하나님이 수고한 상대적 여건을 전부 다 갖추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렇지도 못한 입장에서 '이 시대에 내가 나라를 대신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볼 때,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상반된 입장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반드시 오늘날 내가 바라는 나 자신을 극복하지 않고는 올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이 소원하는 원인이 되는것 몇 분의 일을 남겨 가지고는, 다시 말해 나로부터 동기가 되어 접할 수 있는 소원의 내용을 남겨 가지고는 천국이 오지 않습니다. 누구로부터 소원이 출발되어야 하느냐? 자기로부터가 아니라 상대로부터입니다. 혹은 뜻으로부터 출발되어야 합니다. 나로부터 동기가 되는 것은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자기를 부정하는 데서부터 천국이 이루어져

이런 관점에서 선생님 자신도 오늘날 통일교회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거라구요. 뜻이 동기가 되느냐, 내가 동기가 되느냐? 내가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번번히 뜻을 뒤에 두고 자신을 동기로 할 때가 많은 것이 오늘의 인간들입니다. 뜻은 수난길을 요구하고 있는데 '나'라는 것은 그것을 배반하려고 합니다. 상반된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뜻은 오른편으로 가라 하는데 나는 왼편으로 가려고 합니다. '내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누구만큼 고생을 못 했느냐? 하는 조건을 제시해 가지고 자기를 해명하려고 합니다.

자기를 해명하려고 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신앙이라는 것은 자기를 해명하는 자리가 아니라구요. 해명당하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거기에는 일언반구, 어떠한 제시의 내용이 없습니다. 해명 당하는 입장이라구요. 잘했어도 잘했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내가 백퍼센트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 해도 하나님이 볼 때는 하나입니다. 내가 백으로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고 제시하는 입장에서는 찾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절대적인 신앙을 기점으로 해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신앙이라는 것은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는 자기를 절대 부정하는 자리입니다. 자기를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절대적인 신앙이 나올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세상만사를 중심삼고 거기에 긍정하면서 신앙길을 간다고 할 때 절대적인 신앙이 나올 것 같아요?

이러한 근본 문제를 놓고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을 보게 되면 하루의 생활권내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하는 습관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하나님을 대해서 당당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천국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당당할 수 없다구요. 나를 공인하는 어떤 상대적인 요인이 없어 가지고는 절대적 신앙기준도 못 갖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신앙기준도 갖지 못했는데 절대적 신앙기준을 극복하고 난 후에야 이뤄질 천국이 성사될 수 있겠어요? 어림없습니다. 왜 그러냐? 그 자리에는 사탄이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의 동기는 하늘로부터입니다. 욕망의 동기도 하늘로부터지만 사탄과 더불어 짝하고 있습니다. 얼룩덜룩하다는 겁니다. 흰 것보다 검은 것이 많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척 신앙길은 자기의 어떠한 관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찾아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원리를 안다는 사람들, 혹은 여기 부장이나 간부들이 원리를 놓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리 강의해 가지고 감동을 주는 입장에 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하기는 누구나 쉽습니다. 그렇지만 실천은 어려운 것입니다. 말이 나오기까지 그 배후의 고(高)와 깊이가 어떻드냐? 그것은 여러분 나름의 기준을 중심삼고서는 헤아리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감정과 일상의 처신을 두고 볼 때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느냐? 자기라는 것을 언제나 세워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세계에 있어서 제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안에 놓고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라고 기도할 때,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자리에서 기도하지 않았어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고 한 것은 예수가 이제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인 것을 알면서도 인간을 대표하여 사정이라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응당히 안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여기서 만일 예수가 자기에게 처한 자리를 피하기 위해서 그런 기도를 하였다면 그는 메시아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게 가야 할 길임을 알면서도 피해 가야 할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체면을 무릅쓰고 그런 기도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이후 십자가 노정을 따라오는 인류 앞에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겠느냐? 그런 것을 대표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입장에서, 불효자와 죄인의 칭호를 받으면서 아버지를 도운 아들의 권한을 세우기 위하여 그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예수는 고마운 분입니다. 만일 예수가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죽음이 무서워 그런 기도를 했다면 이는 만민을 위한 완전한 제물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삭만도 못하다는 겁니다.

이삭은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데려다가 꽁꽁 묶어 가지고 제단에 올려 놓고 칼로 찔러 죽이려 했을 때 묵묵히 있었습니다. 죽음의 자리에 나가기 전부터 하나님 앞에 자기의 사정을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불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 서 가지고는 하나님을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재창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참된 신앙

이런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이제까지 절대적인 신앙관을 갖고서도 천국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천국의 출발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천국을 이루려면 자아주관부터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밥을 먹으나 어디를 가나, 일상생활이 하나님과 더불어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대상적 존재이지 주체가 아닙니다. 남편을 모시는 아내와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하고 부모를 모시는 자식과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거동을 할 때는 '아무 데 가서 이것을 하고 오겠습니다'라고 부모 앞에 보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직접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생활을 떠나서는 신앙생활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효자가 되어야 되고, 충신이 되어야 되고, 열녀가 되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자주적인 입장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예요. 절대적인 자아 앞에 상대적인 자아를 공인시키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절대적인 자주, 자아 앞에 대상적인 입장에 있는 내가 어떠한 주견이 있더라도 그것을 공공연하게 주장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건 민주주의와는 다릅니다. 자기 마음대로 주장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국을 찾아 나가는 사람 앞에는 자기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정성과 극복만이 있을 수 있는 겁니다. 천국을 찾고 난 후에는 자기가 있을 수 있지만 천국을 찾아 나가는 자리에는 자기가 있을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 방식 가지고 안 됩니다.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여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여건이 남아지는 한 그 세계는 사탄권입니다. 타락한 행위가 틀림없이 사탄세계를 만듭니다. 타락한 세계가 틀림없이 사탄권이라고 생각됩니다. 거기에는 사탄의 혈통적 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사회, 혹은 세계가 이루어져 사탄의 제반적인 요인이 응어리져 오염되어 있습니다. 한 덩어리 되어 있습니다. 사탄의 피와 더불어 물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깨끗이 처단하거나 완전히 극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에서는 자기 주장, 자아관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절대적 신앙이라는 것은 자아관념이 하나도 남지 않는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절대적으로 믿는다 할 때는 내 자체에 절대적으로 반대되는 요인이 하나도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겠다고 하는 거기에는 자기 주장을 할 것이 없습니다. 주체가 요구하는 대로 완전히 일치해야 합니다.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주장할 수 있는 일편의 마음도 없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주장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는 천국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소원하는 자리는 아무리 잘 믿었다 하더라도 거기는 천국이 아닙니다. 이런 근본 문제를 중심삼고 여러분은 심각히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 자신도 역시 그런 문제를 중심삼고 심각하게 생각한다구요.

그러면 천국은 언제 나로부터 시작하느냐? 어느때에 가서 나로부터 시작할 수 있겠느냐? 천국은 나 개인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 개인의 마음에 기쁜 천국을 이루었으면 그 기쁨의 천국을 어떻게 가정에 적용하느냐? 여러분, 이것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가르쳐 주는 원리를 보면 첫째는 제1의 십자가를 극복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 제1의 십자가입니다. 그 다음에는 제2의 십자가를 극복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자기 아내면 아내, 부부면 부부가 뜻 앞에 일치되는 것이 제2의 십자가입니다. 제1의 십자가를 극복하기보다 제2의 십자가를 극복하기가 더 힘이 듭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원리적으로 볼 때도 역시 그렇습니다.

인간이 타락할 때 개인만이 타락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아담 해와 부부가 타락했고, 부부뿐만 아니라 가정이 타락했습니다. 그러기에 사위기대 복귀가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개인 완성과 아울러 상대 완성이 이뤄져야 하고 선의 번식권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 개인이 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야 된다는 겁니다.

뱀은 허물을 벗지 않으면 크지 못합니다. 허물을 벗기 위해서는 돌 틈바구니를 비집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반대의 힘이 몸에 가해져야 허물을 벗는 것입니다. 어둠의 세력이 우리 몸의 피와 살에 하나되어 가지고 담뿍 씌워져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벗느냐? 그것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지혜로움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반대, 전부 반대의 길로 가야 합니다. 완전히 벗기 위해서는 완전히 반대의 길로 가야 합니다

물질주관-타락인간이 극복해야 할 제일 첫 문제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나를 절대적으로 완전 부정했다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가야 합니다. 사람이 세상적인 욕망, 즉 물질적 욕망을 왜 갖고 있느냐? 타락 때문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물질을 잃어버렸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상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주관 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세 가지가 문제입니다. 크게는 이 세 가지입니다. 물질과 사랑과 주관권, 요것이 언제나 문제입니다.

여러분 눈앞에 물질이 문제가 됩니까? 내가 억천만금을 뜻을 위해 쓰자할 때, 이의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참소하지 못합니다. '그 돈은 내 돈인데…' 할 거예요. 그게 자기 돈인가? 이렇게 물질이 참소하는 것입니다. '이 녀석아, 네 돈일 이유가 어디 있어?' 하고 말이예요. 하나님의 물건인데도 불구하고 타락권내에 떨어져 가지고 사탄권내에 있다 해서 그 물건을 자기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물건이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물질문제…. 그 다음에는 심정문제입니다. 신앙길에서 제일의 원수가 뭐냐 하면 돈입니다, 돈. 성경에도 재물과 하나님을 겸해서 섬길 수 없다고 했어요. 돈이 문제라구요. 그러면 돈을 어떻게 때려잡느냐?

선생님도 돈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돈이 필요합니다. 뜻을 위해서는 자기 돈을 몽땅 털어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아끼는 것을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써야 합니다. 아끼는 것보다도, 남겨 두는 것보다도 보다 가치 있는 것에 써야 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물질에 인연된 것에 끌려가고 제약을 받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있게 되면 자기가 먼저 먹겠다고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요즘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예요. 옛날에 군대에 가게 되면 먹을 것이 상당히 그리울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감옥에 가게 되면 참눈물이 납니다.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모릅니다.

전체 앞에 있어서의 인격의 기준을 무엇으로 평가하느냐 하면 배고플 때 어떤 행동을 하느냐를 보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처지에 있을 때, '아이고, 배고파' 하며 배고픈 표시를 내며 경거망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아무리 그 나라의 주권자고 그 나라의 정신적인 지도자라도 그는 지도자로서 빵점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인격을 갖추고 있지 않은 무식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먹는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제하고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형무소면 형무소 감방 안에서도 감방장이 되는 거라구요.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어떤 지방에서 유명한 목사가 그의 사위와 함께 감옥에 들어왔는데 그 사위가 학질을 앓게 되었습니다. 이 병은 매일 그 시간만 되면 고열이 나는 병이라구요. 이렇게 깊게 고통받는 사위가 있는데도 그 목사는 학질약을 갖고 있으면서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 약을 제삼자의 미싯가루와 바꿔 먹었습니다. 감옥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한 목사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 사람이 그때까지 닦아 나왔던 신앙의 전부를 거덜나 사라지게 해 버리는 것입니다. 거기에서의 물질이라는 것은 인격 기준 전체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조그만 하나의 물질이 전체 가치를 결정하는 놀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물질이라는 것이 무섭습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만일 열 명이 같이 사는 데서 남보다 자신이 옷을 잘 입겠다고 하게 될 때는 걸려요, 안 걸려요? 남보다 내가 잘먹겠다고 한다면 걸려요, 안 걸려요? 다 좋아해요, 나빠해요? 나빠하는 거라구요. 이건 벌써 참소조건에 걸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고 입고 사는 것은 사탄세계에 있어서의 낚시밥이더라 이겁니다.

내가 지금 뭐 차를 타고 다니지만, 미국 식구들이 선물한 링컨 차가 부산의 창고에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그 차를 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걱정이 많습니다. 세상 사람 같으면 뽐내고 다니면서 간판을 자랑하려고 야단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도리어 그 차를 팔아서 지방에 교회라도 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 차를 타고 다니면서 뽐내면 걸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낚시밥입니다. 사탄의 낚시밥입니다. 좋은 밥을 놓고 '아이고, 좋아라' 하고 숟가락을 들다가는 걸리는 겁니다.

선생님이 좋은 교훈을 가진 것이 뭐냐 하면, 감옥에서 밥상을 받아도 반찬이 없다고 '내가 통일교회 책임자인데, 통일교회 교인들은 나보다 잘 먹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고 투정하지 않았습니다. 물을 놓고 맨밥을 먹으면서도 아버지를 부르며 '내일의 소망을 갖고 나오던 너 아니냐' 하고 나왔습니다. 거기에서는 반찬이 있다고 해도 밥과 함께 먹을 수 없어요. 감옥 안에는 식사하는 사람이 한 천 명 가까이 되기 때문에 국하고 밥을 같이 줄 수 없어요. 한 시간 내에 밥을 먹어야 하는데 국은 저쪽에서 밥은 이쪽에서 엇갈려서 준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복잡합니다. 밥만 타는 데도 30분이 걸립니다. 그렇게 밥과 국을 타고 나면 식사시간이 끝나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식사시간이 끝나자마자 3분 이내에 작업장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나가서 일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한 손에 국을 받고 한 손에 밥을 받고, 이렇게 갖추어 먹을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거예요. 닥치는 대로 먹는 것입니다. 국은 국대로 밥은 밥대로 줄을 서서 주는 대로 먹는 것입니다. 밥을 먼저 받으면 밥부터 먹는 것입니다. 맨밥을 먹는 거예요. 거기에서 맨밥 먹는 법을 배웠습니다. 맨밥도 참 맛있습니다. 내가 옛날부터 누룽지를 참 좋아합니다. 누룽지. 누룽지. 하나님이 나를 훈련 잘 시켰다고 생각해요. 옛날에 내가 먹던 누룽지 맛이 그 맨밥 맛이에요. 거기에 이제 탄 맛이 조금 가해질수록 맨밥 맛 저리 가라 할만큼 맛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게 국은 국대로 밥은 밥대로 먹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도 내가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효의 도리 충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하며 나갔습니다. 그런데 밥타령을 하고 반찬타령을 해요? 내가 그런 사람을 보면 속에서 불이 난다구요.

자신이 나쁜 집에서 살더라도 하나님은 더 좋은 집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간부가 지금의 형편에서는 집을 사기가 어려운 지경인데 한 달에 만 오천 원씩인가 얼마씩 빚을 지면서 좋은 집을 얻었습니다. 그놈의 자식, 어떻게 되는가 보라구요.

내가 먹고 사는 생활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생활적인 면을 잘랐다고요. 빚장이가 된다구요. 어머니로부터 '생활이 이렇게 되었으니…' 하는 독촉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받습니다. 언제 갖다 주더라도 갖다 줘야 될 게 아니예요? 그렇다고 뭐 쓱 갚아 주지도 않는다고요. 여러분이 이 문제를 생각해야 됩니다. 물질이 내 앞에 원수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전에 재물을 소유했다가는 큰길을 못 갑니다. 본래의 길을 못 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훈련을 20대에 다 마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명령이 있으면 자식이고 뭐고 전부 다 저버리고 혈혈단신 보따리 짊어지고 미련없이 떠나는 거라구요. 이렇게 나온 것이 통일교회의 출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이 원수입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먼저 먹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식탁에 쭉 반찬이 차려져 있으면 고기 반찬을 그저 남이 한 개 먹으면 자기는 두 개를 먹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벌써 빵점입니다. 사탄이 빨간 줄로 그어 놓는 거예요.

피난을 나올 때도 그래요. 여기 원필이를 데리고 왔지만 말이예요. 배고픈 건 다 마찬가지라고요. 밥을 먹고 싶지 않아서 안 먹는 것이 아닙니다. 다 마찬가지라구요. 선생님은 좀 다르시겠지? 천만에 선생님은 더 하다는 거예요. 밥맛을 더 잘안다구요. 밥을 많이 굶어 본 사람이 밥맛을 더 잘 압니다. 피난 생활을 할 때에 밥을 해 놓으면 숟가락을 집을 때는 같이 집는 거예요. 그런데 먹던 밥을 놔두고 누가 먼저 숟가락을 놓느냐? 먼저 숟가락을 놓는 사람이 그 자리를 주도하는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틀림없어요. 숟가락을 먼저 놓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거예요. 그런지 안 그런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시부모 슬하에 시집간 며느리 가운데서, 아들이 셋이면 세 며느리 가운데서 누가 신임을 받느냐? 어려운 살림을 하는 가운데서 숟가락을 나중에 들고 먼저 놓는 며느리가 더 귀염을 받고 후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해봐요. 부인네들, 이 말이 틀렸거든 선생님에게 항의를 하세요. 항의만이 아니라 목을 자르라는 거예요. 틀림없다는 거라구요. 또 멋있고 좋은 옷을 전부 다 남들에게 주고 자기는 제일 나쁜 옷을 입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오래 안 가서 그는 주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은 고생을 좀 했습니다. 여러분도 고생을 많이 했지요? 그래도 힘이 나지요? 우리는 그것이 밑천이예요.

내가 지금 이층집에서 살고 있지만 내 양심은 그래요. 하나님을 위해서 집을 짓겠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내 신앙의 자세입니다. 그것이 근본이 되어 있습니다. 후대를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하나님을 모시고 서로 잘살겠다고 해야 합니다. 자신만 잘살겠다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계속 가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셨기 때문에 미국이 지금 잘사는 것이지, 같은 입장에서 다른 나라도 축복해 주어 미국과 대결하게 해 가지고 격투하게 될 때에는, '이 녀석' 하고 칼자루를 들고 나설 때에는 왕창 꺾여 나간다는 겁니다.

이제는 내가 집을 지을 생각을 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짓는 것이 아니라 외국 사람들에게 우리의 체통을 세워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생각할 때, 물질이 문제입니다. 타락할 때도 물질이 문제되지 않았습니까?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하늘 앞에 탄식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의식주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요? 의식주, 이것이 사탄의 미끼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생활권에서 살면서 남들보다도 잘먹고 살겠다는 사람은….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반드시 정돈한다구요. 그것은 철칙입니다.

만일 나라의 주권자보다 더 잘먹고 잘살면 법에 걸리는 거예요. 그건 불충이라고요. 남편을 가진 아내가 남편보다 더 잘먹고 지낸다면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언제나 물질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잃어버렸고 세계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복귀과정에 있어서 찾는 데는, 방법에는 순서가 있다는 겁니다. 사람을 먼저 찾고 물질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찾아 나오시는 방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물질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계에서는 세상에서 잘먹고 잘살라고 가르치는 법이 없는 거예요. 죽을 고생을 하고 선을 행해야 복을 받아 잘사는 길이 있다고 가르쳐는 줬지만, 잘먹고 잘살라고 가르치는 법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이 문제입니다.

심정주관-타락인간이 극복해야 할 두 번째 문제

타락이라고 하는 것은 만물을 잃어버리고, 그 다음에 사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나를 잃어버리게 한 것이 무엇이냐? 여러분이 슬퍼하고, 또 자기를 잃어버리고 자포자기하는 그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심정적 결여, 정서적 결여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요즘에 일어나는 청소년 문제를 보게 되면 부모로부터 소외당하는 데에서 일어납니다. 그런 환경이 누적되어 있기 때문에 부모를 불신하는 청소년 문제가 세계적인 문제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 요인이 뭐냐? 정서적인 요인입니다. 정서의 결여로 인해서 모든 문제가 파탄되는 것입니다.

심정문제를 중심삼고 부자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에, 어머니 아버지 아들딸 그냥 그대로 붙들고 천국을 가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냥 그대로 하나님과 같이 살고 그냥 그대로 아들딸을 전부 다 거느리고 천국에 간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이 정서적인 문제가 기쁨으로 출발하여 기쁨으로 끝날 수 있게끔 안 되어 있다 이겁니다. 기쁨으로 출발을 했더라도 슬픔을 느끼고 다시 기쁨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가 막히다는 거라구요. 아들딸로 태어났으면 부모와 더불어 같이 기쁨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기뻐하는 것 이상의 슬픈 자리에서 기쁨을 찾지 않고서는 못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길입니다. 왜 그러냐? 사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두 부정적인 사랑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사회로부터 비판받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쳐 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남의 집 아들딸로 태어났으면 아들딸의 책임, 혹은 남편이면 남편의 책임, 혹은 부모면 부모의 책임을 다하게 안 되어 있다 그겁니다. 모든 것을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부정하는데 있어서는 그 이상의 긍정적인 심정의 가치를 발견하고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잖아요? 그 이상의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에 부정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서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무엇을 갖고 오느냐? 보다 높은 사랑을 갖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부모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 사랑하는 부부지간이지만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 사랑하는 형제지간이지만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고 해야 합니다. 보다 높은 사랑을 가지고 좀더 가깝게 올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보다 높은 사랑이 아니면 현재의 사랑을 부정할 수 있는 동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정할 수 있는 동기가 나타나지 않고서는 긍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가더니 자식을 몰라보고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를 몰라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 그건 바로 미쳤기 때문입니다. 까닭없이 미쳤느냐 이겁니다. 그렇게 됐다는 것은 새로이 나아갈 길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소망을 제시하며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소망의 한 기준과 뜻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따라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이냐? 죽기보다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극복하기가 얼마만큼 힘이 드느냐? 차라리 죽는 것은 간단하다는 거라구요. 죽는 것은 한 번만 극복하면 되는 것입니다. 죽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구요. 내가 고문을 받으면서 그러한 고통을 많이 받았다구요. 기절해 가지고 쓰러지면 다시 일으켜서 또 고문을 합니다. 그 경계선이 아주 간단합니다.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예요.

사랑하는 처자가 옷자락을 붙들고 눈물 흘리더라도 자기 혓바닥을 깨물어 피가 나는 아픔을 느끼면서 어려움을 잊어버릴 수 있는 둔한 신경을 갖지 않으면 가기가 힘이 드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뭐 본래 그렇게 타고나셨으니까…'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말도 말라는 거예요.

보다 가치 있는 것, 그 결과에 대한 가치가 어떻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길은…. 자식을 대할 때 당장이라도 목을 놓고 울고 싶은 마음이 복받쳐 올라오지만…. 해머를 맞고 쓰러진 소를 타고 앉아 목을 찔러 피를 빼내는 백정의 심정을 갖지 않고는 넘어설 수 없는 길이 이 길입니다. 그렇게 비참한 길입니다. 그렇지만 이 비참한 자리를 넘어서지 않고는 갈 수가 없거든요. 불쌍한 거라구요.

한번 잘못하는 날에는 영영 길이 막혀 버리는 거라구요. 십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기 때문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땅을 내려다보며 상대적 감정을 둔화시키기 위한 싸움을 해 가야 합니다. 그런 무자비한 싸움 과정을 거쳐가야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죽기보다 힘든 일입니다. 그렇다고 눈물짓고 찾아가게 안 되어 있습니다. 도리어 만날까봐 도망가야 할 입장이요, 사연을 들을까봐 귀를 막아야 할 입장입니다. 그런 일을 거치지 않고는 이 땅에서 하늘의 기지를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 심정적인 절벽을 어떻게 타개하느냐 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주관성 복귀-타락인간이 회복해야 할 마지막 단계

그 다음 문제가 뭐냐 하면 주관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주관하려고 하지 간섭받기를 싫어하는 겁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합니다. 잘못 행동하다가는 전부 망쳐 버리는 겁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사는지 모르지만 이 단 위에 나설 때는 언제나 선생님 자신이 하나의 변호사라는 생각을 합니다. 나 일대(一代)에뿐만 아니라 역사에 남을 수 있는 하나의 변호인이 되어 가지고 어떠한 사람이 애국자가 되느냐, 혹은 역적이 되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에 의해서 역적과 애국자의 갈림길이 생긴다는 것을 생각할 때, 잘못 비판했다가는 내가 인류 앞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잘 변호하게 될 때는 새로운 복귀의 천국을 찾아 세운 스승이 되고, 그런 입장의 애국자가 되고, 역사에 길이 빛날 수 있는 것입니다. 혹은 법철학이면 법철학의 사상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지금 이 자리는 책임을 완수할 수 있는 하나의 기원을 만들 수 있는 자리이지 않느냐? 이런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내가 이 자리에 나올 때는 자신 있게 나오는 게 아닙니다. 자신있게 나오는 사람들은 이미 실패에 접근하는 사람입니다. '이 몸에 하나님이 같이하시옵소서. 아무 유명한 개인이 같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같이하시옵소서. 인간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주관하시옵소서'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주관하기를 바라던 것이 타락의 동기가 되었기 때문에 하늘이 주관하실 수 있는 절대적 판도가 될 때까지 끌고 나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책임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을 선생님이 밝혀 낸 것입니다.

단에 나서게 될 때는 언제나 그런 마음으로 나갑니다. 혹은 여러분에게 어떠한 지시를 할 때도 그래요. 선생님은 될 수 있으면 독단적인 입장에서 지시를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선생님이 뭐 이렇다 저렇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주관은 하나님이 하셔야 합니다.

책임자들에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기가 기관장이 되건 책임자가 되건 자기 권위를 중심삼고, 사장이면 사장, 이사장이면 이사장이라는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상대방을 위해 주고 싶고, 상대방이 인사하려고 할 때 그에게 먼저 인사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다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에 나온 지 오래된 사람들 가운데는 자기를 이렇게 푸대접 한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내가 푸대접을 해도 당당하지 못합니다. 선생님으로부터 대접을 받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세상에도 그런 법이 없습니다. 자기를 들고 나와 가지고….

내가 3년 동안 경제적인 문제를 두고 모험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모험을 하고 있어요. 내가 이 모험을 하는 것은 내 일신을 위해서, 혹은 대한민국에 있어서 아무개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의 위신이 있기 때문에 그 위신을 살려야 할 책임을 지고 일하는 것입니다. 심각하다고요.

일의 결과적인 문제는 나는 모릅니다. 나는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이 표준을 중심삼고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 이상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뤄지고 안 이뤄지는 것은 나는 모릅니다. 그 대신 그 책임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정성을 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내가 돈이 없으니 돈을 대주십시오' 하는 기도는 추호도 안 합니다. 그러한 기도를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이루어 주십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나간다는 겁니다.

이번 교역자 공청회에 한국 교계의 실황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어떤 목사가 참가했는데 그가 하는 말이 통일교회는 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는 그렇게 안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신없다고 하는 사람이 더 정신없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주장하는 이 뜻은 이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두고 보라구요. 상상 외의 성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창조 역사가 벌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주간종교사도 1호, 2호, 3호 이렇게 호를 거듭하면서 가을이 지나기 전까지는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초조한 마음을 갖고 염려하고 잘되기를 바라면서 나가면 모든 사람도 그와 같이 동정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대할 때 벌써 마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갖고 나가면….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는 것입니다. 주관성이라는 것이 사탄세계에서는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공석에 설 때는 그런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대학생들 한 2백여 명이 가평군 일대에서 계몽활동을 하고 있는데 내가 청평에 가서 이들을 불러다가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나타나기를 꺼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이러기를 바라고 있고, 또 이러이러해야 할텐데도 불구하고 내가 나타나서 말하게 되면 반드시 반대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반대하는 그 사람을 쳐야 된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공석상에 나타나기를 꺼려하는 것입니다.

목사 공청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그곳에 매일같이 들락날락하면서도 그들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 안 나타나느냐? 그들과 나와는 수십 년간 원수 사이였습니다. 원리 말씀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지만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 딴에는 한마디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면 급살맞게 됩니다. 그런 일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체제를 갖추어 나가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신문사에 있는 어떤 사람이 자기도 무슨 감투를 써야 될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 에덴 동산에서 감투내기 하다가 망한 것이 아니냐? 체질개선을 해야 합니다. 어느 곳인가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네가 가는 길이 옳은지, 선생님이 가는 길이 옳은지 말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좋아할 것이냐? 하나님은 전체를 위하는 입장에 선 사람을 좋아할 것입니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물질이 원수요, 그 다음에는 심정이 원수입니다. 그 다음에는 주관성입니다. 타락이란 그걸 잃어버린 걸 말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만물을 잃어버렸고 아담 해와의 가정, 천국의 기원인 가정을 잃어버렸습니다. 가정의 정서적인 터전 위에 세워야 할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주관권을 뒤집어엎었습니다. 엇갈려진, 반대적인 결과를 가져온 이것을 바로잡으려면 여러분이 나서서….

자기를 극복하는 것은 세계를 극복하는 것보다 어려워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만큼 활동을 했으면 내가 당장에 나서 가지고…. 어떨 때는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무엇을 시키면 답답해요. 선생님은 성격이 상당히 급한 사람입니다. 손을 댔으면 빨리 끝을 내야, 예스(yes)냐 노우(no)냐를 딱 결정해야 돼요. 하는 것을 보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람을 만나기가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만일 내가 선두에 서 가지고 한번 잘못되는 날이면 천지가 녹아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답답하지만 나서지 않고 배후에서 제1차 작전, 제2차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몇십 년이 연장되더라도 그 연장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몇십 년이 연장되더라도 그 수고가 문제될 것이 아닙니다. 한번 잘못된다면 몇천 년을 해도 바로잡을 수 없는 이 엄청난 일을 어떻게 정당한 길로 이끌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될수있으면, 앞에서 대신 시범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가 메시아가 되는 것입니다. 앞장서서 대신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용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이룬 것이 틀림없으면 하늘의 것으로 자리를 잡아 가지고 그와 더불어 만민을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 간부들을 그렇게 지도해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습관화되어 버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 자신도 내가 거느리며 백 퍼센트 믿던 사람까지도 그 기준을 다르게 대해야 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거라구요. 믿지 말라! 통일교회의 때가 되어 오는데 이 믿던 녀석들 때문에 망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금년에 들어와서 내가 그것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믿던 사람들 때문에 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2의 방어선을 쳐 재분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조건 믿을 것이 아니라 조건적인 결과를 중심삼고 재분석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을 큰 교훈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주관권이라는 것이 원수입니다. 이 3대 고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이것을 극복하기 전에는 사탄을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그것이 원리입니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개인 한 사람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나 개인의 십자가를 극복해야 됩니다. 십자가의 극복이 그런 겁니다. 물질에 대한 것, 정서적인 문제에 관한 것, 자아 주관성에 관한 것을 모두 극복해야 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쭉 보게 되면 주관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통일교회에서 오래된 사람들은 주관권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새로 들어온 사람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면, 내가 바쁘더라도 될 수 있으면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합니다. 못 들어 줄 때는 바쁜 일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마음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부모의 입장인 것입니다. 부모는 아들이 나이를 먹었더라도 아들을 대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환경이 달라지더라도 본질만은 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외국 식구들이 오면 한국의 어느 지구장보다도 더 반가히 대해 줍니다. 왜 그러느냐? 모든 사람은 최고의 자리에서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대해 주어야 되는 겁니다. '선생님은 외국 사람만 알아주지, 수고한 우리들은 몰라준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면 불평하는 사람이 맞느냐, 선생님 가는 길이 맞느냐? 불평하는 사람들은 점점 기울어가지만, 선생님이 가는 길에는 발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외국 식구를 대할 때는 국가 대 국가로 보지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보지 않는 겁니다. 아담 국가로서 해와 국가라든가 상대적 국가를 위해서 언제 정성껏 대해 줬느냐 이겁니다. 대한민국 사람을 중심삼고는 정성들이며 눈물과 피와 땀을 흘렸지만 그 외국사람에 대해서 어느때 정성을 다해서 대해 주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렇게 못 하지 않았느냐. 그런 관점에서 빚을 지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영적 생활이나 신앙 생활에서 혹은 책임자로서 하늘을 모시고 나가는 데 있어서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미치지 못하는 규약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렇게 극복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저 할 수 없어 가지고 적당히…. 그래서는 안 됩니다. 신념을 가지고 청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위주하여 청산지어야 됩니다. 그래야 하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극복하기란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성격을 두고 보게 되면 선조를 잘 가져야 되겠다고 절실히 느낄 때가 많다구요. 수고는 남보다 많이 했는데 성격이 고약해 가지고 자기가 한 것을 전부 다 밑뿌리를 뽑아 놓거나, 홀딱 뒤집어 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그 이상 큰 일을 기대할 수가 없다구요.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만 하게 되면 그 이상은 바랄 수 없습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다 하고서도 하지 않은 입장에 선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 거예요?

사람들이 겉으로는 좋아하지만 속으로는 머리를 흔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성품을 잘 타고나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신앙길에 있어서 자기와 싸워 이긴다는 것은 세계를 극복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제1차 십자가, 즉 자아를 극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적 사위기대를 이루려면

그 다음에 가정을 두고 볼 때, 가정은 나 하나가 아닙니다. 나 하나면 그저 굶어도 좋고 아무래도 좋지만 가정을 가지면 그렇게 안 됩니다. 가정의 주인이 되면 누구보다도 가정을 위해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문제는 그겁니다. 우리 통일교인으로서 축복을 받아 가지고 하늘 가정의 이름으로 엮어진 부부들이 얼마만큼 상대를 위해서 정성을 들이느냐? 복귀과정에서는 별수없습니다.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서로 이용하려다가 타락하지 않았어요? 해와가 아담을 이용하여 타락했습니다. 천사장은 해와를 이용하여 타락한 것입니다. 이용한 것이 타락하게 된 원인이 아닙니까? 부처끼리 이용할 것이냐? 이용하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부처끼리의 원칙을 두고 볼 때 아내를 이용하겠다는 남편, 남편을 이용하겠다고 하는 아내는 망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복귀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용당하라는 것입니다. 이용당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이용당해야 합니까? 사탄을 중심삼고 이용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이용을 당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용당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이용하려고 하다가 나한테…. 자동적으로 기뻐하며 이용당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않고서는 복귀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아내를 만들기는 자기가 살아온 생애보다 몇 배 더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편하게 살고 있는 부처가 있다면 그들은 복받은 사람일는지 모르지만, 그 가정에 부딪치는 일이 있으면 깨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상대를 위해 정성을 들였느냐가 문제입니다. 체면과 위신을 버리고 그를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를 구해 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심정을 갖고 노력하는 사람이 부모입니다.

상대를 딸과 같이 생각하고, 어머니같이 생각하고, 누이 동생이나 누나같이 생각하면서 치닥거리를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주는 것이 심정적 복귀라는 것입니다. 상대를 얼마나 위해 주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강제로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서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뼛골에서 우러나서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기준을 갖게 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심할 수 없는 거라구요. 이렇게 하는 것이 심정적인 복귀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가정의 규율을 세우는 것입니다. 부처간에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두 부처가 자식들 대해 가지고 '아이쿠'하는 이 말은 걱정이 태산 같다는 뜻이라구요. 자기가 조금만 잘못하는 날에는 그것이 자기에게 미친다는 거예요. 이걸 여러분들은 생각해야 돼요.

통일교회의 간부들 가운데 공금이라든가, 물질에 대한 것을 잘못 다루어 가지고 인정에 의해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공금을 쓰며 환경을 심정적으로 유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직접 자기 아들딸 앞에 독약을 배급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물질을 잘 다루어라, 사람을 잘 다루어라, 그 다음에는 자기 행세를 잘 하라는 거예요. 사탄세계에서는 이것이 걸린다는 거라구요. 공금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이냐? 공적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 공적인 일을 어떻게 결정해서 처리할 것이냐? 통일교회 지구장들, 교회장들은 앞으로 일대 혁신을 해야 합니다. 공금에 대한 관리가 전부 잘못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금년에 들어와서는 어느 정도 교회에 보조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보조해 주는 주인이고, 우리의 어려운 사정을 해결해 주는 주인이라 하며 걸핏하면 선생님에게 편지질합니다. 그래 가지고 나라가 되고 교회가 될 것 같아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뜯어고쳐야 합니다. 선생님이 편안한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온갖 심혈을 기울여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별의별 도깨비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정상적인 입장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입장과 바꿔서 생각해 보라구요.

나라의 미래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통일교회를 희생시킬 것입니다. 나라의 운명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할 때 통일교회를 희생시키는 것이 내가 바라는 것입니다. 국가의 체면과 세계의 체면을 세워야 할 그 길에 있어서 여러분이 갖고 있는 신앙은 거래하는 식의 신앙이라는 거라구요. 내가 지금까지 돈이 없더라도 하나님께 돈을 달라는 기도를 해보지 않았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찾아 나오는 것이 원리에서 가르쳐 주는 복귀의 길이지만 나는 '아버지여! 내 가정이 축복을 받아야 할 텐데…'하고 기도 한번 못 해봤습니다. 그것보다는 나라를 위해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정성을 들였습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 있어서 자식이 많으면 많은 대로 탕감이 즉각적으로 적용됩니다. 자기가 개인적으로 공적인 책임을 못 했으면 탕감받아야 됩니다. 공적인 책임을 못 하면 탕감받아야 되는 거라구요. 그 탕감을 누가 받느냐? 자기 아들딸이 받습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남의 아들딸이 탕감을 받기를 바라는 통일교인은 전부 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면 왜 우리 통일 교인들은 고생시키고, 사탄세계는 가만히 놔두느냐'고 생각하는 그러한 사고방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탕감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탕감이 아니라 벌을 주는 거라구요. 거기에는 탕감이고 뭐고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의 행동이 즉각적으로 여러분의 아들딸에게 영향이 미쳐진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자녀들을 두고 회개할 때가 많습니다. 통일교회 책임자로서 이렇게 철부지해서 하나님을 염려시켜 드리는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것을 깨우쳐 주려니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있어서는 나는 잘하려고 하다가 이렇게 됐지, 남을 벌주려고 하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선의의 결과로 맺어질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래 두고 보는 것입니다.

내가 성진이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그가 일본에서도 일본 협회장이나 간부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내가 아들딸에게 신앙에 대한 교육을 못 했다구요. 내 아들딸이라는 인연을 가지고 끼고 앉아서 밤을 새워 가며 이야기해 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신앙 문제를 중심삼고 한 시간이라도 진지하게 이야기해 봤으면 생각이라도 나지요.

자식은 어머니 아버지의 거울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가 앞으로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것은 아들딸들이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사람들을 농락한 사람이라면 자식들이 반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주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거든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모든 여건을 보게 되면 선생님의 자녀들이 선생님을 반대하기 딱 좋습니다. 아버지라고 자식들에게 언제 한번 악수를 해보았느냐. 한 잠자리에서 자 보기를 했느냐, 손을 잡고 사정을 나눠 봤느냐는 것입니다.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래도 나의 집안에 대하여 기대를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고맙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내를 가졌다고 행복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녀자도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행복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주체되는 사람은 행복하게 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자식이 있으면 자식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3대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위기대 복귀가 가장 어렵습니다. 그것은 세계를 정복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2차 7년노정이 무엇이냐? 가정을 기준한 시대라는 것입니다. 3차 7년노정은 뭐냐? 자녀를 기준한 시대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므로 그 기준에 있어서 나는 어떻게 가야 할 것이냐? 1차 7년노정을 가는 사람들 앞에 끌려갈 것이냐, 선두에 설 것이냐? 내가 공식적인 21년 노정을 가는 데 있어서 힘이 있는 한 보다 큰 걸음으로 여러분보다 앞서가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활철칙입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

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천국이라는 것이 우리가 앉아서 믿고 있으면 갈 수 있는 곳이냐? 그렇게 바란다면 그것은 망상입니다, 망상. 천국은 누구로부터 이루어지느냐? 선생님으로부터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으로부터 되어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천국을 이룰 수 있는 사유와 재료는 제시할는지 모르지만, 여러분 자신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해야 된다는 것은 놀면서 남이 가게 되면 나도 가고 남이 가지 않으면 나도 안 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딱 결정을 해 가지고 그것을 중심삼고 짜임새 있게 가야 하는 것입니다. 공식적으로 타개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적인 신앙을 해야 합니다. 통일교회를 믿느냐 할 때 절대적으로 믿고 간다고 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할 때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였습니다. 두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할 때, 예수님이 웃으면서 이야기했겠습니까? 그런 생각 해봤어요? 세 번씩이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표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벙실벙실 웃으면서, 농담하면서 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심각했을 것입니다.

일대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심각한 자리에서 베드로를 바라보았을 것이 아니겠어요? 그 시선에는 천하가 엇갈릴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때에 대한 절박감을 가지고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 음성 또한 생애에 없었던 비장한 음성이 아니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태도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묻게 될 때 베드로의 마음은 어떠했겠느냐? 베드로가 대답한 걸 보면 그는 우둔하다면 우둔한 사람입니다. 잘못할 것을 뻔히 알고 세 번씩이나 묻는데도 당당코 '이 사람들보다도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고 자신 있게 대답했던 것입니다. 어떤 면으로 보면 훌륭한 점도 있습니다. 그는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른 것을 확실히 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잘못했을 때는 백 퍼센트 단념하고 근본적으로 청산짓기 위해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청산을 했으면 틀림없이 청산했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회개했으면 그 회개가 하늘의 공인을 받은 회개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신앙관을 가진 사람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기에 세 번씩 묻는 물음에 대하여 당당하게 자신있게 대답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에 대해서 '야 아무개야, 네가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절대적 신앙을 하느냐' 하고 세 번씩이나 물어 볼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요? 신앙을 하는 것도 자신이 없는 여러분에게 '아무개야,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묻게 될 때 '내가 이 사람들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이 있어요? 자신 있어요? 그러한 내용이 없으면 안 됩니다.

베드로가 그의 잘못을 회개하고 돌아서서 옛날에 예수님을 모시던 때보다 몇백 배의 신념과 결의를 할 수 있는 자신임을 자각했기 때문에, 옛날에는 그랬지만 이제는 절대 그럴 수 없다는 자신을 높이 평가한 안정된 기반 위에 섰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정하더라도 그것을 절대적인 부정으로 돌릴 수 있는 자신이 있기 때문에 그런 대답을 한 것입니다. 그런 터전에서 예수님이 그에게 천국 열쇠를 맡기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에게 '야, 아무개야! 네가 통일교회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느냐'고 묻게 될 때 '아, 내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줄 하나님께서 아시지 않습니까? 라고 말할 자신 있어요? 그것이 간단한 말이 아닙니다. 한 번뿐만 아니라 세 번씩이나, 물을수록 더 심각해질 것이고, 물을수록 더 절박해질 것이고, 물을수록 더 기가 막힌 장면이 그 눈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그것도 깔고 넘어갈 수 있는 각오를 해야 하고 결의를 해야 합니다. 그런 결의를 하고 과거를 용서받고도 남음이 있을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그런 터전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가 그를 중심삼고 출발했던 것이 아니냐? 자, 그러한 신앙을 갖고 있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십시오. '그런 것을 물어 볼 게 뭐야? 하며 기분 나빠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여러분이 기분 나빠해야 선생님이 좋아하는 거라구요.

이런 근본적인 자세를 두고 볼 때, 내가 믿는다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평가해 봐요. 오늘 저녁 집에 들어가면 말이예요. 그래프를 그려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1960년대는 어떻게 믿었고 지금은 어떻게 믿고, 어느 점에서 왔다갔다하느냐 하는 것을 그래프로 그려 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심령선 도표를 그려 가지고 1960년이면 1960년의 몇 월은 올라갔고 몇 월은 내려갔는지 그려 보라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 믿을 때는 미친 호랑이처럼 세상의 짐승을 다 잡을 듯이 날뛰더니 1년 지나서는 떨어지구 2년 가고 나서 뭔가? 3년 가고 나서는 아이쿠, 4년째 가서는 오줌을 쌌는지 똥을 쌌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농담이 아닙니다. 왜 그러냐? 돼먹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믿음에 있어서 하나님이 바라보시면서 '너는 영구한 터전을 갖고 있다. 하나님이 신임할 수 있는 믿음을 가졌다. 행동과 믿음에 있어서는 통일교회에서 너만은 기준에 섰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행동은 제쳐놓고 거기에 보충될 수 있는 기대가 세워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원리에서 말하는 상대기대가 갖추어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상대기준을 통해 가지고 상대기대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상대기대가 없어 가지고는 존재기대가 형성이 안 됩니다. 그 상대기대가 돼 있어요?

천국을 맞기 위해 해산의 수고로 선의 터전을 넓혀 나가자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을 어떤 기준에서 믿을 것이냐?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이 믿어 주지 않는다고 그러는데, 그냥 믿어 주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그 믿음을 자기 것으로 생각해서 거기에 박자를 맞출 게 아니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 자신도 믿기 위해서는 기대를 세워 가지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생님에게 책임을 지워 가지고 책임자로 세울 때까지 간단히 믿어 주신 것 같습니까? 선생님의 과거 생활을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은 무정한 분입니다. 언제 동정해 주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나고 나서야 얼마나 절박했던가를 아는 것입니다. 새로운 길을 뚫고 나갈 때, 하나님은 언제나 번번이 어려운 데에 내세워 가지고 죽겠으면 죽으라는 식으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길을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개척해 나온 것입니다. 내가 원할 때 하나님은 동정을 안 해 주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여러분들도 앞으로는 한 단계 축복해 주어 가지고 쓸 만한 사람이 있다면 잘 가려서…. 통일교회를 나왔던 도깨비 같은 녀석들이 수없이 하나님 앞에 약속하고 선생님 앞에서 몇천 번 약속을 했을 게 아니예요? 그러나 남아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배반할 수 있는 때에 있습니다. 사탄세계 같으면 백발 백중 배반하는 겁니다. '이제 이 사탄세계에서 남아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무슨 교훈을 주려고 그러시느냐? 당신이 무슨 약속을 이행하시는데 그렇게 처절하고 안타까운 곡절을 거쳐 가시는 것이냐?' 하는 생각을 가지고 그 자리를 중심삼고 관심 있게 넓혀 가라는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면 그 자리가 축복을 거쳐온 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테스트를 해 가지고 그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다 보면 목을 졸라매는 반대도 있습니다. 그러니 높아지려면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낮은 자리에 가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낮은 자리에서 올라와야 됩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처음부터 당당한 독재자로 출발했다고 하지만 그 자리까지 나오기 위해서 천번 만번 수난의 길을 걸으며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역사과정에서 뒤넘이치고 내적 심정세계에서 투쟁한 역사의 흔적을 더듬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완전히 질식할 것 같은 칠흑 같은 암흑에 부딪쳤었습니다. 항로를 잃어 버린 배와 같은 입장에 부딪칠 때가 많았어요. 여기에서 단 하나뿐인 것은 무엇이냐? 자기 마음이라고요. 정의에 서느냐, 불의에 서느냐? 정의를 사랑하느냐, 불의를 사랑하느냐? 선을 찾아가느냐, 악을 찾아가느냐? '암흑 천지에서 추구해야 할 선의 주체는 바로 당신이요, 무의 세계에서 창조의 기틀을 처음으로 나타낸 분이 당신이 아닙니까' 하며 나가야 됩니다. 암담한 자리에서 선의 주체로서 걸어 나오셨다면 그 선은 흘러가 버릴 것입니다. 그 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전체를 위주한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체휼해 가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면 방향이 가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팽이는 돌다가 중심을 잡으려는 힘이 약해지면 넘어지지요? 돌아가는 힘과 넘어지는 힘이 엇갈리는 그 경계선에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는 최고의 심각한, 예스(yes)냐 노(no)냐 하는 그런 첨단의 자리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자기 자체가 결승점을 바라보는 그런 표준, 또는 내정적인 교차점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길이 힘들더라 이거예요. 이렇게 통일교회를 이끌고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천국을 이루고 사느냐?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사느냐? 긍지를 갖고 사는 것입니다. 긍지를 갖고 사는 것이 무슨 천국이냐? 그 정신이 무슨 정신이냐? 하나님의 정신입니다. 하나님은 천국의 주인이시지만 천국의 주인의 생활을 못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속에 수난의 천국을 품고 나오셨으니 나도 그 입장이 되어야 한다. 영광의 천국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것을 위해서 이렇게 이렇게 간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날을 반성하며 책임을 다해 나가자

결론은 평화의 천국과 영광의 천국은 수난의 천국을 대해 가지고 해산의 수고를 거쳐서 오는 것입니다. 해산의 수고를 해보지 않고는 영광의 천국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수난의 천국을 보위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정당하기가 일쑤요, 극복하기가 일쑤요, 반대받기가 일쑤요, 처절하기 일쑤입니다. 그러한 입장을 취하지 않고서는 영광의 천국의 터전과 그 기원을 세우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천국은 지금보다 전부가 더 좋은 나라입니다. 지금보다 더 좋을 수 있는 내용이 연속되는 나라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개념입니다.

천국에서는 행복의 요인이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느냐? 지금보다 더 좋은 것으로 연속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천국을 지탱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보다 큰 보람을 얻기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이런 관념을 가지지 않고는 천국의 내용의 개념과 일치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개인보다도 가정을 위한 행복의 길을 가야 합니다. 더 큰 행복의 요인을 찾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천국의 개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런 천국을 이 지상에서 맞기 위해서는 더 큰 것을 위해서 선의 터전을 넓혀 나가야 합니다. 수난 과정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개인을 희생시켜서 가정의 행복을 세워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건 그냥 되는 거예요. 가정을 희생시켜서 종족의 행복을 세워 나가라, 종족을 희생시켜서 민족의 행복을 세워 나가라, 민족을 희생시켜서 국가의 행복을 세워 나가라, 국가의 행복을 희생시켜서 세계의 행복을 세워 나가라, 세계의 행복을 희생시켜서 천주의 행복을 세워 나가라는 것입니다.

더 큰 행복의 이념을 오늘날 이 땅 위에 이루기 위하여 그 이념과 일치점을 갖고 나가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해산의 한날이 올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는 사람이 자기를 주장하며 살 수 있어요? 자기의 욕심대로 할 수 있어요? 밥을 잘 먹고 나면 죄인같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거 안 느껴 봤지요? 옷을 잘 입고서도 자랑할 것이 없다는 거예요. 민족을 구원하고 지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언제 그들을 입혀 주고 먹여 주던 때가 있었느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나타나서 큰소리를 치지 말고 나타나기에 앞서 자신이 책임 못한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입장에 서야만 남아지는 거라구요. 그래야 그런 자리에 남아지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통해서 그런 터전에 서야 내가 남아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과거도 그런 생활이요, 지금도 그런 생활이요, 앞으로도 더욱 그런 생활을 해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최후의 죽음의 자리에서 운명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소원이 무엇인가 하는 것까지 생각합니다. 생애에 어떤 일이 이루어지길 바라겠지만, 죽는 그때에 있어서 어떻게 죽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인연을 어떻게 남기고 가느냐 하는 문제….

여러분이 일생 동안, 혹은 1971이면 1971년 한 해, 수만년 이 역사시대에 이어져 있는 이 시대에 얼마나 소득을 얻을 것이냐? 여러분 일대에 얻는 소득이 얼마쯤 되느냐? 여러분은 이런 문제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리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는데는 철저히 믿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은 나에게서 멀리 있는 것입니다. 쉬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각한 입장에서 정성을 들여야 갈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천국은 나로부터' 하는 이 말은 심각한 말입니다. 타락권내에 있어서의 이 자리는 심각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은 나로부터입니다. 오늘날 그렇게 엄벙덤벙해 가지고는 뭐…. 영광의 천국의 한날을 만민과 더불어 하나님과 더불어 맞이하기 위해서는…. 이것은 제삼자가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해주겠거니 하지만 어림도 없습니다. 교재는 만들어 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결재를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분부한 뜻을 위해 나왔습니다. 하느냐 못 하느냐는 생각 안 합니다. 되고 안 되고는 하고 난 뒤라고요. 하나님이 못 한 일을 한다고 하는 강한 동기를 갖지 않으면 결정적인 결과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은 여러분과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중요합니다. 1960년대에는 기성교회 목사들이 반대하여 통일교회가 내려갔지만 이제는 내려간 운세가 솟구칠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이 정성을 들여서 잘하면 새로운 시대적 혜택을 받을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이니만큼 천국 개념을 다시 시정해 가지고 여러분의 생활적인 모든 기준을 다시 점검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앞으로 찾아오는 시대 앞에 부끄러운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은 나로부터'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렸습니다.

​기 도

​아버님! 저희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아버님을 사랑합니다. 다시 한 번 믿어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생활을 통하여 진정 통일교회를 사랑합니다. 다시 한 번 믿어 보시옵소서. 저희들은 통일교회의 진리와 통일교회 역사와 통일교회 현재를 존중합니다. 다시 한 번 강림하여 주시옵소서. 나 자신이 어느 자리에 어떤 자체로서 어떠한 형태에 머물고 있는가를 비판할 때, 자기의 위치가 적나라하게 제시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다시 한 번 역사적인 섭리의 뜻을 통해 미루어 볼 때, 수십년의 통일교회의 역사를 통해 미루어 볼 때, 통일교회 선생이 걸어온 거리를 심정적 내정을 중심삼고 다시 한 번 비교하고 비판해 보게 될 때, 우리들이 과연 통일교회 일원으로서 합당한 입장에 있느냐 하는 것을 다시 규명하지 않으면 안 될 현시점인 줄 아옵니다.

여기에 참석한 당신의 자녀들, 처음 말씀을 대하던 그 기쁨이 하나의 영양소가 되어서 하나의 줄기와 하나의 가지가 되고 잎을 이루게 하고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게 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적나라하게 분석하고 비판하여 자기 자신을 확립시키고 가치 판단을 결정지을 수 있는 자각된 모습을 갖게 허락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천국은 신앙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동기와 출발은 될 수 있지만 내정적 결정은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제 알았습니다. 오늘날 상반된 생활 여건을 중심삼고 극복과 다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싸움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았사옵고, 이 싸움터에서 마지막으로 사탄을 자연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사옵니다.

개인과 상대, 즉 가정을 중심삼고 사위기대의 복귀의 터전을 논하는 것이 통일교회 교리의 중심이 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나 자신에 있어서, 가정에 있어서, 개인의 사명에 있어서 부끄럽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반문하게 되옵니다. 여기에 아버지 앞에 부끄럽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사옵니까? 지난 모든 환경을 중심삼고 볼 때, 아버님이 같이했고 아버님이 틀림없다고 하는 그 결정적 결과를 다짐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그럴 수 있는 나, 그런 입장에 선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명시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여, 대한민국을 천국화시켜야 통일이 된다 할 때, 한꺼번에 전체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보다도, 나 개인이 환경을 극복하고 초월하여 내일의 무대를 인계맡아 제2의 축복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결의와 주체성을 가지고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것이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자아를 발견하고, 그럴 수 있는 자아를 그리워할 수 있는 자신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저희들이 남겨 놓고 역사적인 와중에서 저희들이 제시한 표적이 흔들리는 세계 정세와 더불어 흘러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무리 어려움이 오더라도 반석 위에 세워진 하나의 표준이 되게 하시옵소서. 표준뿐만이 아니라 광명한 빛을 발하여 암흑세계를 밝히는 하나의 등대와 같은 사명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오늘 통일교단의 사명이요, 통일교회의 노선인 것을 저희들이 알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자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흑백을 가려야 할 입장에서 백이면 완전한 백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흑을 상쇄할 수 있는 백이 되어 아버지의 결정적인 보호와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권내에 서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그런 자신들로서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당신의 자녀들, 이곳을 우러러보면서 정성들이는 그들 위에 무한하신 사랑과 당신의 가호가 같이하시옵소서. 세계에 널려서 외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늘 당신의 깊으신 마음으로 보호 하여 주시옵소서. 저를 역경의 길로 몰아붙여서 저에게 승리의 결과를 상속시키기 위해 말없이 실적을 쌓아 가게 했던 거와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도 같은 은사와 복을 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를 직시하면서 내일의 개척자의 사명을 더디하지 않고, 오늘의 승리자의 모습을 봉헌하는 가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후덕이 저희 생활과 저희 생명 위에 넘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안내와 지도와 편달이 길이길이 생활권 안에, 직접적 간접적 주관 권내에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8월 초하루입니다. 8월 초하루 하면 여러분은 3년 전의 일을 회상하리라 믿습니다. 금년도 이제 8월이 지나면 3분의 2를 보내게 됩니다. 금년에 우리는 '통일기반 확보'라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새로운 차원의 행동을 개시해야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가로막고 새로운 뜻의 길을 세워 줄 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바야흐로 아시아의 모든 정세가 절박한 것을 우리가 알면 알수록 우리의 사명이 가일층 가중되어 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과거에 대해 오던 교회관, 과거에 대해 오던 국가관, 과거에 우리가 대하던 입장을 가져서는 안 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차원이 다른 입장에서 나라를 생각해야 되고, 차원이 다른 입장에서 아시아를, 그리고 세계를 대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외적인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새로운 차원의 자극을 받음과 동시에 새로운 차원의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새로운 신념을 가짐과 동시에 새로운 투지력을 가해서 갖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시기에 놓여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도 알고 있겠지만, 스기야바시(賢奇屋橋)의 가두에서 우리 일본 통일교회 청년들이 일주일 금식투쟁을 했습니다. 이것을 아시아의 정세로 보아서는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라고 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지극히 어리석은 길을 통해서 남이 모르는 새로운 역사를 엮어 왔고 또 엮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사회 환경이 이해하지 못하는 입장을 책임지고 금식투쟁을 했던 것은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 교회에 플러스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중국의 장개석 총통이 우리와 상당히 밀접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또 지금까지 우리를 상당히 좋지 않게 생각하던 일본 정부가 새로운 면에서 우리에게 접근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내심으로는 반공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행동으로는 나설 수 없었던 사회 환경에서 그들로 하여금 행동으로 우리와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기원을 마련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번의 금식투쟁이 어리석은 일 같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크나큰 소득이었습니다. 이것을 바라보고 우리가 그런 일을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을 일본에서뿐만이 아니라 우리 한국에서도 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모험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방에 앉아 가지고 제일 음지에서,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최고의 자리에서 표출해야 할 우리의 정체를 가려 가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계점에 도달하지 않았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국민이면 전국민을 대해서, 국가면 국가를 대해서 새로운 차원의 행동을 개시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새로운 출발은 나 자신이 해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의 내심적인 결의를 가일층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그 내심의 결의를 하는 데 있어서는 여러분 자신의 환경에서 느껴진 무엇으로 마음을 수습해서 제시하는 것보다, 내적인 하늘이면 하늘을 중심삼아 가지고 깊은 기도 가운데서 가지 않으면 안 될 방향을 표준해 놓고 새로이 결심을 다짐해야 합니다. 그래야 할 때가 되어 들어온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는 것입니다.

더우기 오늘이 8월 초하루인데 이 8월 한 달은 전국에서 우리가 40일간…. 지금 개척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아주머니들이 120곳에 1,200명이 동원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8월은 여름 가운데에서도 제일 더운 때입니다. 그야말로 어디를 가든지 땀을 흘려야 할 때이고, 어디에 서든지 장기간 머물러 있는 것이 싫어질 수 있는 여건을 갖춘 때가 이 8월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 처해 있는 우리 대원들이라든가 현재 우리 교회의 입장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우리는 그야말로 새로운 각오를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과 내가 얼마나 가까운 자리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될 것입니다. 그분이 요구하는 것과 내가 바라는 것이 일치되느냐? 그분이 하루 생활에서 요구하는 것과 내가 바라는 것이 일치되어 있느냐? 한 달이면 한 달을 중심삼고 그분이 우리의 생활을 바라보는 기준과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 일치되어 있느냐? 이것이 문제될 것입니다. 결국 여러분 자신과 하나님, 그리고 선생님과 여러분이 문제될 것입니다.

신앙의 길이라는 것은 입체적인 세계만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완성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길이라는 것은 반드시 평면적 상대의 세계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즉, 상대적 여건을 갖추어야 신앙의 목적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되는 것도 문제되겠지만, 횡적인 면에 있어서 식구들과 얼마나 하나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갑이라는 사람이 있으면, 갑이라는 한 사람을 중심삼고 사방에 연결되어 있는 식구들에게 얼마만큼 새로운 자극을 주느냐 하는 것이 언제든지 신앙생활에 있어서 문제인 것입니다.

8수는 재출발수이므로 8월은 새로운 출발의 달입니다. 새로운 출발은 누가 해야 하느냐? 교회가 하는 것이 아니요, 민족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해야 되고, 나 자신이 해야 됩니다. 아무리 민족이 새로운 출발을 하고 국가가 새로운 출발을 하더라도 여러분이 그 기준 앞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여러분은 그 출발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심정적 문제에 들어가 새로운 차원의 모습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식구들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느끼던 이상의 새로운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도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하는 것이 곧 나에게 행하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아무것도 아닌 식구를 대해 가지고 내가 얼마만큼 하나님 대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듯이 만날 수 있고, 그 사람을 하나님의 참소망의 실체로서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귀한 것

​여러분이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아내면 아내, 자식이면 자식을 대해서 성을 냈다 할 때는 그 동기가 상대방이 되었든 자신이 되었든, 그것은 여하간에 성을 내고 난 후의 하루는 기분이 좋지 않은 하루가 되는 것입니다. 그 하루는 하나님이 먼 것을 느끼게 되고 내적으로 구속을 받는 느낌을 벗어나기가 심히 어려운 것을 여러분은 신앙생활에서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내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원리 말씀을 적용해서 '기쁘다'고 할 때, 이 '기쁘다'는 것은 원리 말씀이 기쁜 것이 아니라, 원리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이 기쁨과 인연 되어서 여러분이 기쁘게 되었기 때문에 기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비판력이 상당히 커집니다. 이웃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것을 정상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겪어 온 경험을 통해서 비판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비판하다가는 참된 사람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입장에서 비판하지 말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비판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새로이 출발해야 할 달로서 8월을 생각할 때, 결국은 내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보다 더 아버지 앞에 충성을 해야 되겠고, 보다 더 아버지 앞에 가까이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심정문제에 들어가서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더욱더 마음 깊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염두에 두고 8월부터는 여러분이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재출발을 내심으로부터 다짐하여 오늘부터 새로이 움직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말씀 드렸습니다.

​그간 여러분들이 지방에서 많은 수고를 한 줄 알고 있습니다. 더우기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이번에 새로이 파송된 전도대원들을 맡아 책임지고 있는 교회장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금번 우리가 이렇게 모이게 된 것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분야에서 우리의 사명과 책임을 어떻게 전개시켜 나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새로이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비교해 볼 때 차원이 다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달라진 입장에서 새로운 차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현실인 것을 직시할 적마다, 섭리의 뜻도 그것에 보조를 맞춰 가지고 새로운 각도에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될 시대에 처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과거를 혁신하고, 우리의 사명의식을 고취하면서 각자가 맡은 바 책임을 수행하겠다고 새로이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집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은 '우리의 사명과 책임'이란 제목을 가지고 잠깐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현재 어떠한 부모의 슬하에 태어난 한 아들로서 해야 할 사명이 아닙니다. 또 어느 지방에서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그 한정된 책임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짊어진 책임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은 대한민국내의 어떤 일단을 책임진 입장에서의 사명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 더 나아가 세계를 넘어서 전체의 섭리적 관점에서 본 사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가 짊어진 사명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지방에서 책임진 개개의 교회는 그 전체를 보다 가치 있게 하고, 전체를 보다 뜻 앞에 일치시키는 데에 공고한 터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 교회가 나가는 방향은 틀림없는 하나의 표본을 이루기 위해 책임지는 입장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니 그 자리는 이 시대적인 사명만을 완수해야 할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에, 성약시대는 신약시대를 완성지어야 되고, 신약 시대는 구약시대를 완성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뜻을 완성짓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뜻이 신약시대로 넘어왔고, 신약시대에 뜻을 완성짓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뜻이 성약시대로 넘어왔습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성약시대는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할 시대입니다. 우리는 각자가 이런 책임을 갖고 여기에 서 있다는 사실을 더욱더 실감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진 입장이라는 것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시대는 물론이지만, 오늘 현실에 있어서 대한민국을 위주로 해서 연결되어 있는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와, 이 지구상에 나타나 있는 수많은 국가에 대한 책임도 짊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책임은 물론이고 현재의 시대적 책임까지도 그들을 대신해서 짊어질 수 있는 사명자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명자가 나타나지 않고는 미래의 새로운 소망을 현실 무대 위에 옮겨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명자는 과거를 완성시킬 수 있고, 현재에 새로운 하나의 승리적 기점을 마련할 수 있고, 또 그것으로 말미암아 미래의 새로운 출발의 기점을 마련해 놓을 수 있는 사명을 해야 합니다. 오늘 이 전체를 책임진 것이 통일교회요, 그 사명의 일부분을 책임진 것이 여러분입니다.

이런 시대적 소명을 받은 우리는 그 사명을 두고 볼 때, 역사적 부활체의 자리에 선 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부활체인 것을 우리 스스로가 공인해야 되겠습니다.

6천년 역사를 재탕감하는 비운의 노정을 걸어온 통일교회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을 두고 볼 때, 여러분이 역사적 부활체와 같은 승리적 자리에 서 있다면…. 지금까지 6천년 역사를 회고해 볼 때, 아담이 타락한 이후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복귀섭리가 출발됐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뜻을 세우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노아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120년 기간을 통해 이루려 했으나 거기서 또한 가정적 일치점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섭리의 뜻은 다시 연장되었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는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새로운 이스라엘 민족 창건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데라의 가정에서 불러내는 섭리의 출발과 더불어 3대를 거쳐 가지고,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 갖은 수난과 고역을 거쳐서, 일대의 뜻을 종결지었던 야곱의 21년노정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출발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터전 위에서 비로소 하나의 가정적 형태의 기반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선민적인 가정의 형태를 갖춘 야곱 가정을 하나님은 시대를 거쳐오면서 발전시켜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창건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 나온 길이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4백년간의 애급고역을 거쳐서 이스라엘 나라를 복귀해 가는 노정에는 주위의 수많은 국가 앞에 존경을 받기도 했고, 뜻 앞에 그들이 서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이 새롭게 시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민족을 선민국가로서 부활시키기 위해 사탄세계에 내주어서 시련을 거듭 받게 하는 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시련의 역사를 거쳐오다가 예수님 시대에 와서 하나의 승리적 터전을 종결짓기 위한 사명을 이어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승리의 터전에서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수난의 역사는 다시 연장되었습니다. 즉, 기독교라는 서러운 영적 터전을 계승해 가지고 다시 수천년 역사를 거치게 되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기독교가 영육(靈肉)을 중심삼고 지상에 하나의 국가적 터전을 갖지 못하고, 그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된 사상에 의한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의 변천과 더불어 영적 이스라엘권을 확대시키는 데 있어서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르며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역사는 아담으로부터 지금까지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소모해 왔으며, 막대한 희생의 대가를 치러 나왔던 것입니다. 그 전체의 희생의 대가를 다시 한 번 실체적으로 탕감하기 위한 가치적 내용이 요구되기 때문에, 재림사상을 중심삼은 새로운 섭리의 뜻이 오늘의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출발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섭리적인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섭리를 대표했던 이스라엘 민족과 오늘의 기독교를 회고해 보면, 그 민족이 소원했던 뜻을 이룬 때가 없습니다. 그 소원의 뜻은 이스라엘 민족적인 뜻임과 동시에 선민을 중심삼은 어떤 한계내의 뜻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선민적 기반을 토대로 해 가지고 어느 한때에 세계적 터전 위에 완결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섭리해 나오시는 기독교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그런 섭리의 뜻을 받들지 못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는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운명의 길을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가 기독교와 한국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할 때에 기독교가 반대하고 한국 정부가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6천년 역사를 재탕감하는 비운의 역사의 고빗길을 다시 걸어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6천년 역사과정에서 실패했던 그 전체의 양상을 오늘날의 어떤 교단이나 어느누구에게 재현시켜 가지고 탕감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어느 특정한 책임을 진 개인, 중심적 사명을 담당한 그분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분이 역사적 주류 사상권내에 있어서 승리의 기점을 해결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것도 사실이고, 전체를 탕감한 내적 승리기반을 결정지어야 할 사명을 짊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적인 중심을 결정하기 위한 사명이지, 전체의 횡적 기반을 연결시켜 가지고 전체의 사명을 해결지을 수 있는 입장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종적인 이 전통적 승리의 터전을 세워 가지고 그것을 횡적으로 이어받게 하여 종족적인 환경을 거쳐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 세계 무대까지 확대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체 섭리의 뜻을 종결지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섭리관적인 내용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오늘 통일교회가 짊어진 사명은 선생님이면 선생님 개인을 중심삼은 사명만이 아닙니다. 선생님에게는 물론 전체를 대표해서 종적인 핵심을 결정지어 승리의 터전을 닦아야 할 사명이 있지만, 이것은 혼자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개인이 있어야 되고, 가정이 있어야 되고, 종족이 있어야 되고, 민족이 있어야 되고, 국가가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출발하려 했던 것과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예수님 때에는 사가랴 가정과 요셉 가정이 있어 가지고 종족적 가인형과 아벨형의 협조의 터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터전을 기반으로 하여서 이스라엘 교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할 수 있는 길이 준비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갈 수 있는 입장을 갖추지 못한 예수는 필시 비운의 운명길을 가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역시 기독교를 중심삼고 하늘을 위하여 정성들인 한 개인과 한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거기에서 가인적인 가정과 아벨적인 가정이 하나될 수 있는 가정의 기원을 모색하고 나서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결정적 터전을 갖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재탕감의 노정을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역사를 다시 한 번 회고해 본다면, 우리의 20여년이란 세월은 기독교로부터 몰려났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몰려났던 비운의 역사였습니다. 이러한 비운의 역사를 다시 되돌아 와 가지고 이제는 우리가 기독교와 상봉할 수 있는 새로운 시점에 왔고, 대한민국을 대할 수 있는 새로운 시점에 온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와 다른 것이 뭐냐? 과거에는 우리를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지만, 이제는 반대하지 않고, 우리와 화합하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 시대권내에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경지에 처해 있는 우리 통일교회의 입장을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의 개교회를 책임진 여러분은 중차대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한 교회를 두고 볼 때, 어떤 교회가 한 부락을 단위로 해서 서 있다면 그 교회는 그 부락만을 대표하는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가 한 군(郡)이면 그 군을 반드시 탕감하고야 도(道)를 탕감할 수 있는 것이고, 그 도를 탕감하고야 국가를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탕감노정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군을 중심삼고 거기에 우리 교회가 있다면, 그 군을 대표한 교회장은 그 군 전체의 생명과 재산을 하늘편으로 끌어 넘기느냐, 혹은 사탄편으로 끌려가게 하느냐를 결정지어야 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교회장은 전체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는 하나의 군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자체를 두고 본다면 어떤 입장이냐?

종족적 메시아의 자리

이스라엘 복귀역사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선조들이 오늘날 재림부활의 한때를 바라며 섭리를 협조해 나오던 사실을 미루어 볼때, 재림주가 옴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재림부활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선조들은 지금까지의 섭리노정에 있어서나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온 섭리노정에 아무런 협조도 해 오지 않았고, 아무런 인연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단 하나의 인연을 갖고 있다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한 전통적 섭리의 뜻을 받들어 나온 조상들밖에는, 기독교를 중심삼은 조상들 외에는 섭리의 뜻에 협조한 전통적 혈족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온 현재는 어떤 입장이냐? 자기가 하나의 군의 책임자라고 할 때, 그 군 전체의 생명과 재산을 대표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대한민국에 150개의 군이 있으면 그 150분의 1을 책임진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되면, 어떤 교회장이 김씨면 그는 김씨라는 한 개인이지만 김씨를 대표한 개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김씨를 대표한 것으로서만이 아니고, 한 사람의 제사장으로서 한 군을 대표하는 입장이 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터전과 그러한 기준에 서게 된 것은 여러분이 동기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군과 국가의 탕감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 시대에 있어서 종족적 기준을 승리하여 이루지 못하였던 그 기반을 닦은 터전 위에서 부여받은 특권입니다. 그래서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하라고 축복받은 430가정을 중심삼고 지시를 했던 것입니다.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던 그런 자리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종족적 승리의 터전 위에서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 교단을 중심삼고 나가려다가 반박받았던 그런 자리가 아니라, 환영받을 수 있는 자유로운 입장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종족적 메시아라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이스라엘 민족의 전통적 선조의 인연을 갖지 못하고 통일교회에 들어와 종족적 메시아의 인연을 허락받았다는 그 자리는 어떠한 자리이냐? 여러분의 조상들, 즉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 임씨면 임씨의 조상들이 전통적 섭리를 이어온 역사적인 노정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여러분의 선조들도 전통적 이스라엘권에서, 하늘에 협조한 선한 선조와 같은 입장에 설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자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종족적 메시아권에 섰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예수가 이스라엘을 대표하고. 유대교를 대표해서 새로운 세계 복귀노정의 중심사명을 가졌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그 권(圈)은 자기 종족을 중심한 대표자가 되어 가지고 예수가 이루지 못한 것을 종족적으로 승리한 자리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처해 있는 자리는 예수보다 나은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종족 앞에 유대교가 있었듯이 여러분 앞에 기독교가 있어야 되고, 그 종족 앞에 이스라엘 나라가 있었듯이 오늘날 여러분 앞에 새로운 이스라엘인 대한민국이 있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제3이스라엘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종족을 이끌고 가는 책임자, 종족적 메시아의 책임을 짊어진 분의 가는길 앞에는 민족이 있어야 되고, 옛날 민족 사상을 지도하던 유대교와 같은 교회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 교회가 바로 통일교회요, 그 교회가 목표하고 나가는 것이 제3이스라엘권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아직도 우리 통일교회는 반대받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가인적 유대교단, 가인적 민족권이 우리 앞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반대받지 않는 가운데 출발되었다면 가인적인 교단과 가인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선생님 일대에 승리적 기반을 닦았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여러분은 종족적 메시아가 아니라 세계적인 입장에서 하나의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메시아의 사명, 즉 개개인이 개개의 민족적 사명을 분담해 가지고 세계적으로 메시아적 책임을 대행해야 할 민족을 대표해서 메시아적 책임을 해야 할 입장에 섰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까지 그런 입장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예수가 이루지 못한 종족적 메시아의 기준을 세운 터전 위에서 그 기준을 이어받은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완결 지으려면

그러면 축복받았다는 자리가 어떤 자리냐?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승리적 부활권을 공인받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선조 가운데, 대한민국이 제3이스라엘 민족이 되기 전에 선을 위해서 이 민족을 염려한 선조들이 있었으면 그 선조들이 세워 놓은 공적은 이스라엘권의 선조와 같은 선의 가치로서 공인받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그들이 오늘 여러분에게 부활된 종족적 메시아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협조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적 기대를 조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여러분은 아브라함이라든가 모세, 혹은 예수가 직접 주도할 수 있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그것을 벗어나 가지고, 여러분의 선조들이 아브라함이나 모세와 같은 입장에서 협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협조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조상들은 중생 부활할 수 있는 혜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자신은 전체적 뜻을 중심삼고 볼 때는, 종족적 메시아임과 동시에 한 중심 앞에 있어서는 메시아적 사명을 분담받은 입장이요, 자기 종족을 중심삼고 볼 때는, 그 종족이 예수님이 이루지 못한 뜻을 여러분을 통해서 이룬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뜻을 이룬, 즉 재림부활의 목적을 완결한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조상이 종족을 중심삼고서는 걸리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지상의 터전을 이어받을 수 있는 혜택권내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와 성신과 같은 신념을 가지고 김씨면 김씨 문중을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책임을 지고 나간다면, 여러분의 선한 선조들은 여러분을 전적으로 후원하게 됩니다. 그런 영계의 협조와 더불어 여러분의 활동무대를 횡적으로 전개시켜 나감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이스라엘 종족권을 넘어서 민족 편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의 사명은 자기 일대만을 위한 사명이 아니라 역사적 사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은 자기 일대의 구원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의 구원에 대한 책임은 물론이고, 그와 더불어 선조를 부활시켜 구원해 줘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선조의 부활과 더불어 그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횡적으로 김씨면 김씨의 종족을 구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 책임을 지는 데에 있어서, 종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전체 분야에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터전을 연결시켜야 되고, 또 그러기 위해서 현재 여러분이 하나의 군이면 군을 중심삼은 책임자의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 이겁니다. 다시 말하면, 종족에 있어서도 가인적 종족과 아벨적인 종족이 있듯이, 김씨면 김씨 문중을 중심삼고 볼 때, 김씨 문중을 직접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아벨적 종족이라 하게 된다면 가인적 종족이 있어야 되겠기 때문에, 여러분은 지금 외지에 나가서 일개 군을 대표한 한 사람의 교회장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는 돌아가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에 예수님의 가정과 사가랴 가정이 하나되어야 했고, 그와 마찬가지의 입장에 있는 여러분도 오늘날 본연의 가인적인 기준을 규합해 가지고 아벨적인 가치를 중심삼고 이것을 종족과 민족, 종족과 국가와 관계를 맺어 연결시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족 앞에는 민족이 있는 것이요, 민족 앞에는 국가가 있는 것이며, 국가 앞에는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들은 종족을 탕감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가인 종족을 위해 먼저 책임을 다하고, 그 다음에 아벨의 종족을 위해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은 교회장이니까 이중적 사명을 감당해내야 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예수님이 뜻을 이루려면 안팎이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안팎이 하나되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합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못하고는 돌아가지 못합니다. 아벨 혼자 가서는 부모를 모시지 못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가인 아벨이 분립된 입장에 서서 가인이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갈라졌다는 거예요. 둘이 됐다는 겁니다. 하나되어야 하는데 둘이 됐기 때문에…. 가인이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둘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둘이 하나 안 되면 부모를 모시고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완결지어 가지고 종족적인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안식의 터전을 갖기 위해서는 가인적인 종족을 굴복시켜서 아벨적인 종족과 규합시켜 놓아야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 여러분의 입장은 예수님이 하지 못했던 것을 가정적으로 다 해야 될 입장입니다.

여러분이 가인을 위해 하는 충성은 비단 가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것은 곧바로 여러분의 종씨면 종씨, 혹은 씨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관계를 맺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인을 굴복시키는 범위가 넘어지면 넓어질수록 그 터전을 활용해 가지고 아벨적인 승리의 터전을 대신할 수 있게끔 영계에서 협조해 줄 것입니다.

영계에서 협조하는 것은 복귀노정을 위해서 협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귀하는 데 있어서는 아벨을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아벨을 세워서 가인 세계를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중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아벨의 입장에서, 혹은 제사장의 책임을 짊어진 입장에서 자기의 가정을 버리고 나와야 합니다. 이렇듯 가정을 버리고 나오는 것은, 즉 자기의 가정을 돌보지 않고 자기 고향이 아닌 외지에 나가는 것은 가인 족속을 사랑해 가지고 가인 족속을 구해 주었다는 입장에 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벨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원리의 골자라구요.

아벨적 입장에 선 여러분들은 종족권을 중심으로 자기의 부모가 있을 것이요, 친척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적 종족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자기 혈육을 중심삼은 부모 형제, 혹은 처자보다도 가인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가인을 하늘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가인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가인을 더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이러한 터전을 갖추어 가지고 자기의 식구들과 더불어 고향에 돌아가서 친족들을 복귀시키려고 하면 간단히 복귀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정성들여 가지고 백 명이면 백 명, 혹은 그 이상의 수를 전도하여 그들이 아벨적인 사명을 하고 있는 여러분의 명령대로 '죽으라면 죽자, 어떠한 어려움에도 일치단결해 행하자' 하면서 아무 이의 없이 움직일 수 있는 무리를 거느려 가지고, 그들의 협조하에 자기의 씨족이면 씨족권내에 들어가서 씨족을 전도하려고 하면 간단히 복귀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여러분이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아벨이 되려면 가인권을 복귀해야

오늘의 통일교회를 두고 보면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아벨이라면 가인 교회를 복귀해야 합니다. 우리의 전력을 어디에 쏟아야 되느냐 하면, 아벨을 위해서 쏟는 것이 아니라, 가인을 위해서 쏟아야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1971년도에 들어서면서 기성교회 목사들을 대상으로 지금까지 원리공청회를 해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별의별 말을 다 했습니다. '우리는 지방에서 고통받고 있는데도 전혀 대우해 주지 않으면서 난데없이 반대만 하는 기성교회 교인들이나 기성교회 교역자들을 우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냐' 하고 말입니다. 이러한 생각이나 말을 하는 사람은 뜻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완전한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권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벨로서의 승리의 자리로 돌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의 통일교회가 통일교회만을 위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적 운명입니다. 가인과 아벨로 인하여 타락의 암(癌)이 그렇게 생겨났기 때문에, 그것을 해소시켜 주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는 우리들이기 때문에 통일교단은 하나의 아벨 교단으로서 가인 교단을 굴복시킬 수 있는 한계선을 넘어서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가인 아벨이 화합해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때, 대한민국은 아벨 국가형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성교회와 통일교회가 하나된 터전 위에서 민족과 국가를 중심으로 하여 아벨적 사명을 책임지고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면 그 민족에도 아벨 민족과 가인 민족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을 대비해 가지고 남북이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한이 북한을 무력으로 쳐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그들보다 강한 사상의 기반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이상 우리도 우리의 나라를 사랑해야 하고, 그들이 공산주의를 사랑하는 이상 우리도 하늘을 사랑할 수 있는 사상적인 강한 힘을 가지고 인격적인 면에서 그들을 자연굴복시킬 수 있는 실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북한을 흡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활적으로 감복시키고, 인생관이나 생애를 통해서 감복시킬 수 있는 인격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타난 인격의 가치를 중심삼고 볼 때에, 공산주의의 사상으로 무장한 그들을 능가할 수 있는 우리가 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을 갖지 않고는 가인 국가를 복귀할 수 없습니다. 가인 국가를 복귀하지 못하면, 하늘나라를 중심한 세계적인 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 복귀의 국가는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의 국가가 성립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또 다른 하나의 상대적인 국가가 있어서 가인 아벨형과 마찬가지의 기준을 결정지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의 국가가 완성된 입장에 선다는 것은 아담적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하나의 통일된 아들의 입장을 결정짓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참소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다시 말하면,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자리를 복귀한 형의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인 아벨을 중심삼아 가지고 남북이 통일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고, 또한 아담 국가 형태의 체제를 갖추고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한국은 아담국가의 자격을 갖추어야

아담국가가 생겨나면 거기엔 반드시 상대적 국가가 있어야 됩니다. 그때부터는 평면적인 형제가 아닌 것입니다. 전후관계가 됩니다. 형이 있으면 동생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후관계는 되지만 횡적 관계는 아닙니다. 아담국가로서 승리한 국가기준을 중심삼고 비로소 처음으로 횡적으로 그 상대적인 국가형태를 필요로 하게 될 겁니다. 이것이 안 되면 복귀노정이 완결을 볼 수 없는 거예요. 이러한 때를 중심삼아 가지고 외적인 해와의 국가형태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 오늘의 한국을 중심삼은 일본의 처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 국가만 있어 가지고 복귀가 되느냐? 여기엔 반드시 천사장 국가가 있어야 됩니다. 세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이것을 국가적으로 거두어야 할 아담 해와 국가가 있음과 동시에 천사장 국가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시아에서 천사장 국가는 어느 국가냐? 중국입니다. 중국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 3개국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이 3개국은 어느 국가로 말미암아 수습되어야 되느냐? 물론 조국인 아담 국가로 말미암아 수습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아담이 천사장을 굴복시키는 데는 아담 자체가 굴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해와를 내세워 가지고 굴복 시켜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은 알지 못하겠지만 지금 선생님이 책임진 분야는 뭐냐 하면, 한국에 있으면서 대만을 어떻게 일본에게 흡수시키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그 섭리적 노정을 닦아 나온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여러분이 알다시피, 일본에서는 일주일 금식투쟁을 했습니다. 그것은 중공과 일본이 정책적으로 합하는 것을 반대하는 데모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일본 국제승공연합을 중심삼아 그 회원들이 일주일 동안 가두에 나가 투쟁을 했던 것임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그 투쟁의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일본 자체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중국을 흡수시키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이 고립된 입장에 처해 있던 중국의 장개석에게는 그들의 구세주와 마찬가지인 구보끼 회장에게 전체적인 희망을 두고, 구보끼를 중심삼아 연결될 수 있는 기점이 마련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중국 신문을 보게 되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이것을 연일 일면에 대서특필로 취재 보도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중국에서는 굉장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중공에서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일본도 실제로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세계가 이렇게 급변해 돌아가고 있는데, 국제승공연합은 아무것도 모르고 잠꼬대하고 있다'고 하면서 조롱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일을 하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어디까지나 중국을 흡수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일본내의 우익권에서도 그런 뜻을 품고 있지만 용공세력의 한계권내에서 활동하기를 주저하고 숨어 있는 사람들을 구해 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목적을 놓고, 우리가 국제승공연합을 중심으로 활동하지 않는 것보다도 활동하는 것이 이익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그러한 결과로 말미암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그러한 결과로 말미암아 우리는 중국과의 새로운 풍토가 조성됐고, 그것을 계기로 하여 아시아 전체 민족을 규합시킬 수 있는 준비를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내에 있는 화교와 한국 교포, 그리고 일본 국제승공연합이 합할 수 있는 운동을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외곽적으로 그러한 섭리적 터전을 닦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구보끼를 세워서 장개석을 연결시키고, 구보끼를 세워서 대한민국을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해와가 먼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담도 망하게 했고 해와 자신도 망하게 했습니다. 국가적 복귀섭리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해와 국가는 아담 국가도 망하게 할 수 있는 입장이요, 천사장 국가도 망하게 할 수 있는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에 있어서 중요한 책임을 누가 짊어지고 있느냐 하면, 물론 한국에 섭리적인 입장에서 중요한 책임이 있지만 사탄세계를 대비해 가지고는 일본에 중요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국가로서의 한국, 천사장 국가로서의 대만 정부는 일본에 의해 그 운명이 좌우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시대가 오지 않도록 미리 방비하기 위해서 내적으로 하나되는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나라의 주권을 책임진 사람들과 한 목적을 중심삼고 움직인다면, 아무리 요동하는 정세가 벌어지더라도 한 방향을 갖추어 섭리의 터전을 넓혀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반을 세우지 못했기에 지금 이 세계는 복잡한 정세 가운데로 몰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일 시급한 것이 무엇이냐? 평면적으로 연결지어야 할 아담 국가, 해와 국가, 천사장 국가보다도 먼저 아담 국가로서 완전한 자격을 갖출 수 있는 터전이 아직까지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남북이 하나될 수 있는 결정적 기반이 아직까지 수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남한을 중심삼고 볼 때,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남한이 뜻을 중심한 아벨 국가권이 되어 있느냐 하면, 아벨 국가권이 아직 되지 못했습니다. 아벨 국가가 못 됐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섭리적 관(觀)으로서 요구되는 비장하고 중대한 문제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등등의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는 벌써 4배가운동을 전개해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우리가 바랐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앞으로 남북총선거 시대가 반드시 오게 되므로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우리가 1천만 이상의 인원을 확보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승공연합과 함께 반공사상을 갖추고 나서기 때문에 공산당에게는 원수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가입될 수 있는 그만한 인원을 국가로부터 후원받아서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항시 이것을 생각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준비를 다 갖추지 못한 채 그런 시대는 우리의 목전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경제부흥이니,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니 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민족의 사상 무장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보더라도 기성교회와 대화하고 있지만 하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근본적인 입장에서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유도작전하여 하나의 방향을 갖추어 나가면서 이 민족을 끌고 나갈 수 있는 형태로 전개시키느냐 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선생님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통일교회가 살아 나갈 수 있는 길

그래서 우리 교회는 종교협의회나 [주간종교]를 중심삼고, 종교 최고 책임자들을 한 곳으로 몰아넣기 위한 작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풍토가 어느 정도 조성되면 모든 종교단체는 초종파적인 입장에서 종교의 원수인 공산당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운명을 책임지는 사상적 터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우리가 종파를 초월하고, 초종교적인 입장에서 반공자세를 어떻게 확립하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만을 중심삼고 보면, 개개인의 사명도 물론 중요하지만, 전체를 책임진 선생님은 이러한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이것을 염려하여 여러분이 이해 못 하는 초교파운동을 중심삼고 종교협의회까지 끌고 나왔고, 또한 그것을 중심삼고 [주간종교]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주간종교]를 만들고 보니 우리가 유리한 것은, 아무리 훌륭한 종단의 장(長)이라도 주간종교 신문사에서 초청하면 안 나올 수 없다 이겁니다.

이리하여 그들을 1차 2차 타진해 가지고 나라의 비운을 그들도 염려할 수 있는 입장에서 합의하여 공동전선을 세워 가지고, 그들에게 여기에 어떻게 반공정신을 집어넣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했던 거예요. 본래는 종교협의회를 중심삼고 그 일을 하려 했습니다. 종교협의회를 지도하는 책임자가 공적인 민족적 사명을 갖고 모든 종단을 초월해 가지고 개인을 희생하여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못 했기 때문에 지금 종교협의회가 부진한 상태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간종교]를 통해 몰아냈고 새로운 종교협의회 강화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놓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뭏든 통일교회가 살아 나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느냐? 통일교회 자체로는 절대 안 됩니다. 통일교회가 살아가려면 반드시 기성교회를 중심으로 한 종교계를 흡수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대한민국에 있어서 정책을 수립하는 수많은 배후의 인물들을 움직여 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 교수들을 중심한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 8월에도 24일경부터 그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3차에도 50여명 참석했는데 상당한 효과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막대한 경비를 써 가면서 대학가의 유명한 교수들을 중심삼고 우리 통일교회 원리를 연구시켜 가지고 각자 전문분야에서 본 통일교회의 원리에 대한 대조 비판과 더불어 자기 소감을 첨부한 것을 책자로 빨리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명한 교수들이 공인한 책자를 보는 사람들은 반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일을 시급히 해야 되겠습니다. '경이적 통일원리'라는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금년내에 책자를 발간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이것을 일본어라든가 영문으로 번역해 각 나라의 지도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까지 만들어 놓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교수들이 쓴 책이 몇개 국어로 번역이 됐다 하면, 그건 대한민국의 교수들로서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 사실 원리의 내용이 그만큼 방대한 것이기에 그들이 칭찬할 수 있고, 또한 칭찬받을 수 있는 내용이 충분하다 이겁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친 교수들의 공청회를 통한 실증적인 증거를 통해서 볼 때 어느누구도 공인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벨 대신 죽을 수 있는 가인이 있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지방 교회가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떻다는 것을 선생님이 잘 알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자체내의 어려운 교회에 협조하지 않고 막대한 경비를 기성교회 목사나,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교수들 앞에, 그것도 그들을 손님 중에 최고의 손님으로 우대하면서 소모하는 그런 일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일을 하는 종교단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뜻과 사명으로 볼 때, 먼저 가인을 굴복시킨 후에야 아벨로서의 사명이 출발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가인을 복귀한 터전을 갖지 못하고는 아벨로서 출발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 자체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방에서 통일교회를 책임진 책임자로서 양면의 세계를 규합할 수 있는 책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종족적인 기준에서는 통일교회 식구를 만드는 것이 책임이지만, 민족적 기준에 있어서는 기성교회와 통일교회를 연결시키는 사명도 해야 됩니다. 그 다음은 여러분의 가정도 연결시켜야 돼요. 이렇게 볼때 소생급 사람은 누구냐? 기성교회 교인들입니다. 거꾸로 되는 겁니다. 다음 장성급 사람은 누구냐? 지금까지 여러분들 중심삼고 연결된, 종족적 가인편의 입장에서 전도된 사람들입니다. 그럼 완성급의 사람은 누구냐? 여러분의 혈족이 될 것입니다. 그런 입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반드시 가인적 터전을 확보하고 난 후에 아벨적 터전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아벨적 종족을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게 원리라구요. 그러면 아벨적 가정과 종족을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벨적 가정의 사명을 완결지어야 됩니다. 또 아벨적 사명을 완결지으려면 가인적 가정을 굴복시킨 터전이 있어야 됩니다.

그게 결국 무엇 하자는 것이겠습니까? 반드시 자기로 말미암아 사탄세계의 몇 가정을 구원해 가지고 그 가정이 자기를 위해서는 생명까지 바치면서도 따라올 수 있는 그런 전통적 사상을 심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과 아벨 관계에 있어서 하나된다면, 그것은 어느 기준에까지 하나되어야 하겠느냐? 그냥 따라만 가면 되겠느냐? 아닙니다. 그냥 따라간다는 것은 예수와 열두 제자가 맺었던 관계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완전히 하나됐다는 것은 무엇이냐? 상대를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버릴 수 있는 기준까지 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죽음의 자리에 나가게 될 때에 제자들은 아벨인 예수님을 죽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이 하나님의 한이 되었기 때문에 아벨이 죽음을 당할 상황하에서는 가인이 대신 죽어 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야 탕감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민족적 섭리를 중심삼고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노정에 있어서 반대하던 유대교를 수습하기 위해서 내세웠던 열두 사도는, 곧 12지파를 대표한 입장이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아벨적 입장이라면 열두 사도들은 가인적 입장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으로 비운의 역사를 심어 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이 죽임을 당하는 자리에 들어 가게 될 때, 아벨을 죽이는 가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벨을 대신해서 죽을 수 있는 가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원리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은 지금까지 제사장의 책임을 지고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벨적인 입장에서 책임을 해 나오고 있는 여러분이 가인적인 개인이면 개인, 가인적인 가정이면 가정, 가인적인 종족이면 종족을 전도했을 때, 그들 중에 여러분을 위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그런 사람이 없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 책임자들은 전통적 사상 기준 앞에 일치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혁신해 가지고 실질적인 내용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아벨적 자리를 다시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 이 시대가 절실히 요구하는 중요한 문제인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여러분 자체의 종족적 가인권의 기반을 확보해야 하고, 우리 교단은 교단적 가인권을 확정지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민족적 가인권을 확정지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들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벨로서 해야 할 책임

그러면 종족적 가인을 굴복시키지 못한 터전 위에서 민족적 가인을 굴복 시키는 일이 가능하냐? 안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방에 있는 여러분은 책임지고 있는 군(郡)이면 군을 중심삼고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중앙을 중심으로 하는 도(道)가 되고, 도를 중심으로 하는 군입니다. 그러므로 군이 최일선입니다. 군은 횡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제일의 터전입니다. 이 터전에서 가인 아벨의 승리적 터전을 가려내지 못하게 되면 우리의 섭리적 터전은 어떻게 되느냐? 크나큰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방을 책임지고 있을 때, 선생님은 교단을 중심으로 기성교단과 수많은 종교계와 이 민족과 관계맺을 수 있는 내적 기반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1970년도부터 지금까지 준비해 나왔습니다. 원래는 1968년부터, 제2차 7년노정을 출발하면서 초교파 운동을 시작으로 하여 지금까지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가지고 이만큼 끌고 나왔습니다.

자, 이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기도하는 내용이 뭐가 돼야 하느냐, 전도하는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느냐? 까놓고 얘기하면 가인 아벨의 자리를 탕감시키기 위해서 전도 나가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역사적인 노정을 탕감시키기 위한 정성을 들여 가지고 하나님의 협조를 받는 입장에서 해야 합니다. 하늘과 아벨이 하나 안 돼 가지고는 책임을 완수 못 하는 것입니다. 아벨은 아벨대로 책임할 수 없는 거라구요. 다시 말하면, 아담 혼자 책임을 다했다고 해서 복귀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아벨은 아담의 입장을 대신해야 하는데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출발해야 합니다. 자신이 아벨이라고 하며 출발한다고 해서 아벨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가인을 복귀하기 위해서 나섰다고 스스로 적당히 결정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동기가 되어 결정돼야 됩니다.

그러면 아벨은 어떤 사람이냐? 하늘과 먼저 하나된 사람입니다. 먼저 하나된 그 기준은 어떤 것이냐? 아벨은 하나님과 하나된 자리에서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가 먼저 죽을 각오를 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이 아벨이면 여러분은 가인이기 때문에 선생님과 여러분과의 관계는 어떤 관계이냐? 아담 가정에 있어서 가인이 아벨을 쳐죽인 그 한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아벨인 선생님이 죽을 수 있는 운명에 있을 때 여러분이 대신 죽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가 되지 않고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열두 사도는 왜 비참하게 죽었느냐?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고, 기름 가마에 튀겨 죽고, 톱으로 켜 죽는 등 왜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느냐? 그렇게라도 죽지 않으면 죽은 후에 면목을 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희생하고, 더 밟히고. 더 비참한 길을 가야만 가인형의 기준을 완결 했다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해야 예수님 앞에 설 수 있지 예수님보다 덜 고생해 가지고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수난의 종교요, 희생의 종교입니다. 응당 죽어야 될 것을 알고 죽어야 돼요. 자기가 맞고 복귀해 돌아가는 길이 기독교의 도리입니다.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믿음의 아들딸 중심삼고 새로운 이스라엘 편성을 해 나가야 됩니다. 선생님이 열두 가정을 중심삼아 36가정 72가정 120가정을 찾아 놓은 것같이 그 길을 그대로 밟아 가야 되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그냥 이 놀음 한 것이 아니라구요. 예수가 그것을 해결짓기 위해서 운명을 가려 가면서 비운의 죽음길까지도 가게 됐고, 하나님도 그런 문제를 해결짓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6천년동안 역사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선생님이 가는 길은 그 분야가 여러분보다 한 단계 앞서서 더 넓은 국가적이요, 세계적일 뿐이지 내용은 마찬가지입니다. 사는 데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선생님이나 여러분이나 밥 먹고 사는 것은 마찬가지라고요. 호흡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요. 이와 같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복귀노정에 있어서도 같은 공식노정을 떠나서는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 자신을 두고 보게 되면 어떻게 되어 있느냐? 선생님의 입장은 예수님이 씨족과 종족 앞에서 쫓겨나 가지고 외부에 나가서 씨족을 복귀해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 입장이기 때문에, 선생님의 지금까지 일생은 그야말로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기독교의 반대를 받았기 때문에 종족적 메시아의 터전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아와야 되겠기에 거리에서 난데없이 만난 행인과 마찬가지의 입장인 여러분을 선생님의 혈족보다도 부모 처자보다도 더 사랑해 왔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믿음의 아들딸들로 하여금 여러분의 생명을 대신해서 희생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친 아들딸 기르는 것보다 3배 이상 수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한 사람의 아담이 완성되는 데는 1차 구약시대, 2차 신약시대, 3차 성약시대, 이렇게 3시대의 아들을 거쳤기 때문에, 이 세 아들의 가치와 같은 수고를 거치지 않고는 복귀완성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는 3단계의 사망권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사망권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기의 아들딸, 혈육을 위해서 겪는 수난보다도 3배 이상의 수난의 길을 거치지 않고서는 자기와 생명을 같이할 수 있는 믿음의 아들딸을 못 만드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전통적 사상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여러분이 언제 믿음의 아들딸을 대해서 자기가 낳은 아들딸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축복받아 가지고 낳은 아들딸도 완성시대의 아들딸로 낳은 것이 아니라구요. 그들은 장성기 완성급이라구.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축복은 타락한 그 기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실체를 복귀하기 위해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 위에서…. 원죄를 벗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원죄가 부부에 의해서 심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벗기 위해서도 부부의 기준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원죄를 벗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받은 기준에서 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그 아들딸이 전부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닙니다. 완성단계의 7년노정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리를 확실히 알아야 되겠어요.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은 성진이 어머니와 성진이의 입장과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선생님이 성진이와 성진이 어머니를 버리고, 부모를 버리고 새로운 원수의 세계를 향하여 7년노정을 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가야 되는 거라구요. 그 기준은 뜻을 이루지 못한 입장이기 때문에 자식의 손목도 못 잡아 보았습니다. 나는 성진이를 대하여 '성진아' 하며 이마를 맞대고 다정스럽게 이야기를 못 해보았습니다. 성진이는 아버지를 대해 가지고 '선생님' 이라고 했습니다. 기막힌 놀음입니다. 성진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60년대까지 연필 한 자루 안 사주었습니다. 옷 한벌 안 해 주었습니다. 돈이 없어 그런 게 아닙니다. 그 반면에 통일교회 사람을 위해서는 내 뼈와 살을 깎아 가면서, 감옥에 들어가 피를 토하는 자리에 있더라도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내 자식은 제물로 바치면서…. 이런 정성을 들여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전통적 사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 선생님 앞에 가인적인 입장에서 가인 아벨 중심삼은 원리적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책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냐? 이걸 묻고 싶다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죽을 자리에 서게 될 때 자기가 대신 목이 잘리고, 피를 토하면서라도 죽음길을 헤쳐 나갈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어요? 어디, 그럴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구요. 손들긴 쉽지. 내려요.

그러기 위해서는 피를 토하듯이 아들딸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아들이 그리워서 자기 일신이 기절해서 혼미상태에 빠질 정도의 한때를 가져야 됩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심정입니다.

선생님이 6.25때 피난 나와 가지고 부산 영도에서 3년 기간을 홀로 지낼때, 수많은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는 가운데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의 부르는 소리는 들리는 것 같지만 만날 길이 없었어요. 그 그리움이라는 것은 기가 막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던 그리움의 심정을 땅 위에 있는 아들이면 아들에게 체휼시킬 수 있는 좋은 시기였습니다.

자기 처자가 그리워서 눈물짓는 것이 아니요, 처자를 위해 밤을 지새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인 가인 아벨을 중심한 복귀의 원칙을 어떻게 해결짓느냐? 자기 아들딸 가지고 안 되는 거라구요. 자기 여편네 가지고도 안 되는 거라구요. 자기 혈족 가지고는 안 되는 거라구요. 외적인 혈족을 중심삼고 종족기반을 승리의 터전 위에 세워 가지고 민족적 터전으로 가려는 데 있어서는 혈족이면 혈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의 노정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1970년도에 들어와 가지고 이 아산 패들을 전부 다 데려온 거라구요. 그들에게 집까지 사줬어. 이것은 원리 중의 원리라구요. 그걸 여러분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가인 씨족이 아벨 씨족을 모시고 돌아 들어오게 해야 됩니다.

자기의 전신을 투입해서 정성들여 보았는가

이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지금까지 책임을 다 못한 거예요. 선생님은 지금까지 7년노정을 중심삼고 밤을 지새워 가면서…. 평균 수면시간이 두시간도 안 됩니다. 그런 무리를 거듭해 가면서 정성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 여러분도 그와 같이 해야 되는 거라구요. 요전에 듣기로는 전도대원들이 아기들 때문에 문제가 많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다시 생각해야겠습니다.

선생님이 이북 갈 때 아기 업고 간 것이 아니며 여편네 데리고 간 것이 아니라구요. 거리에 내던진 거라구요. 떠날 때 집에 쌀 한 톨이 없었습니다. 백천에 쌀 사기 위해 배낭을 지고 나선 걸음이 이 길이 되었습니다. 편지 한 장 써 놓고 간 것이 아니며 만나 가지고 의논한 것도 아닙니다. 간데 온데 없이 사라져서 6년간, 햇수로 7년간 소식불통이었습니다. 편지를 못 쓰는 거라구. 그런 놀음을 해온 거라구요. 목석 같은 사나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뜻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가인을 위해서는 눈이 빠지도록 정성들였습니다. 어떠한 군왕이 있으면 그 군왕 이상의 군왕이 되고, 어떠한 형제가 있으면 그 형제 이상의 형제가 되고, 어떠한 스승이 있으면 그 스승보다 훌륭한 스승이 되고 어떠한 부모가 있으면 그 부모보다 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사랑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영계가 몽땅 동원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지금 지방의 책임자로서 종족적, 씨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다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씨족적인 메시아의 사명을 완결하기 위해서는 씨족적인 가인의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20명을 전도해야 합니다. 이번 전도기간에 120명 전도하라는 겁니다.

밤을 지새워 가면서라도 해야 됩니다.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천지가 녹아 나고, 자기의 역사적 운명이 엇갈릴 수 있는 긴장된 자리에 여러분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을 두고 볼 때, 태어나기는 아무 문중에서 태어났고, 연령으로 보아 몇 해밖에 살지 않았지만 여러분은 역사적인 부활체입니다. 박씨면 박씨 문중을 대표하여, 역사적으로 자기의 선의 선조들을 전부 다 종합한 결실체로 나타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호흡하는 것은 선조들이 힘줄을 당기면서 호흡하는 것이요, 또한 여러분이 활동하는 것은 선조들이 모든 운명을 걸고 활동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또 현재의 김씨면 김씨 문중, 박씨면 박씨 문중, 전체를 위해서 대표적인 제사장의 책임을 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런 입장에서 '나는 종족을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메시아의 사명을 하겠다'고 다짐했으며, 자기 일신의 모든 것을 투입해 가지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생명을 내놓고 단판기도하고 있습니까?

그리고‘당신이 임재할 수 있는 아벨의 종족기반을 넓혀 가지고, 가인의 종족을 굴복시켜야 할 사명이 나에게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사명을 완수해야만 민족적 터전을 닦아 나오는 전체의 책임을 진 선생님이 가야 할 그 길에 있어서 제일의 터전이 될 것이 아닙니까? ’하면서 자기의 생명을 걸고 자기의 일신을 제물삼아 활동하는 사람이 그 누구냐는 것입니다.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하고 어려우면 어렵다고 하고…. 그렇게 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수난의 길을 걸어오며 수고했지만, 어느 한때 인간을 대해서 '내가 살지 못하고 죽겠다. 내가 이 뜻을 이루지 못하겠다'고 하는 그런 말을 못 했다는 거라구요. 인간들이‘당신은 기쁘신 분이 아니쟎습니까? ’하고 물으면, 하나님은 '네가 잘 알았다'고 대답은 할 수 있지만, 타락한 이 원수의 세계에 놓여 있는 이 땅 위의 수많은 인간들은 하나님이 슬프다고 하게 되면. 그 슬픈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것이 타락한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사연을 통고할 수 없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수천년의 역사를 섭리해 나오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하십니까? 하나님은 자기의 생명과도 같은 자기가 택한 사람을 잃어버린 입장에서도, 그 사람을 잃어버렸는지, 안 잃어버렸는지 모르게끔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사탄이 그걸 알면 좋아한다는 거라구요.

이러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들이 지금까지 걸어 나온 신앙자세, '이 통일교회가 틀림없는 사실이냐?' 상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성경을 다시 보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비참했습니까. "내가 불을 이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더 원하리요(눅 12:49)"이게 기가 막힌 말입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기가 막히는 사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종족적 메시아라는 특권적인 혜택을 받았다면 얼마만큼 예수님 이상의 심각한 자리에서 나라를 염려하고 하나님의 뜻을 염려해 보았느냐 이거예요. 예수님은 24시간 기도하지 않는 때가 없었습니다. 시간만 있으면 기도하고, 영계와 의논하면서 내일의 하루를 보다 가치 있는 날로 남기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했지만, 그분의 일생에 그런 가치 있는 하루를 남기지 못하고 도중에서 패자의 서러움을 머금고 돌아가지 않았는가. 그런 비운의 역사를 가로막아 가지고 예수님 이상의 가치를 지닌 자리를 하늘로부터 특권적인 혜택으로 받은 자격자가 있다면, 오늘 여러분과 같은 사람일 것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이런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는 재차 결의를 해야 되겠고, 재정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이 길은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길

여러분이 승공강의를 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은 무엇 때문에 하느냐? 국가적 기준을 넓힐 수 있는 하나의 외적 환경을 닦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아벨적 입장에서 가인 교단을 흡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런 놀음을 해 나온 거라구요. 이중 삼중으로 겹놓아가는 것은 어느 한때가 되어 한꺼번에 내몰게 될 때, 상충과 방해가 없게 해 가지고 섭리의, 뜻의 한 고개를 국가를 중심삼고 넘어갈 수 있는 준비를 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통일교회를 승공연합의 승공활동과 직결시켜 가지고 생각하는데, 기분 나쁘다는 거라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다하려면 가인적 종족을 복귀해 가지고 아벨적 종족을 복귀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간단하다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정성들여 가지고, 여러분의 명령에 따라 자기의 생명과 재산을 전부 다 투입해서 움직일 수 있는 자를 120명만 확보하게 되면 그들이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를 대해 '당신의 아들을 길러 놓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당신의 아들이 우리를 살려주기에 얼마나 수고했는지 모릅니다'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120명이 여러분 문중을 중심삼고 잔치 하면서 전부 한마디씩 치사를 하게 되면, 하루 저녁에 다 돌아간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선생님의 일족을 중심삼고 통일교회 간부들이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가인적인 종족적 기준을 결정짓고 아벨적 종족 기준을 완결시켜야만, 선생님도 안팎에서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하나의 중심을 결정짓고 나설 것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의 책임이 중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살아 있을 때 선생님이 고향 땅을 다시 밟아 보지 못하게 되면, 여러분은 영계에 가서 걸린다구요. 그러므로 북한 땅을 점령하고 있는 원수들을 전부 다 격퇴시켜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남북한을 살아 생전에 통일시켜 가지고 뜻을 세워야 할 세계적인 사명을 일대에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그 한을 남기게 될 때에는 여러분의 후손은 어떻게 될것이냐? 비참해질 것입니다.

그러한 등등의 문제를 중심삼고 크게 보게 될 때, 우리 통일교회 현재의 입장에서는 통일교회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기성교회를 어떻게 굴복시키느냐, 어떻게 우리의 뒤를 따르게 하느냐, 문제는 그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힘이나 술책으로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우리의 진실과 실적을 가지고 그들이 내심으로 굴복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가식적인 것이 아니요, 방편적인 것이 아니요, 수단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진실된 입장에 서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당신들이 가는 길을 생애의 보람으로 계승하고 우리 후손 앞에도 남겨 줄 전통적 사상으로 이어받겠으며 당신들이 수고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죽을 수 있는 희생의 길이 있으면 우리가 대신 죽겠다'고 하는 민족적 움직임이 이 삼천리 반도에 싹트게 될 때, 대한민국은 살아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하늘의 아담 국가로 등장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한국을 중심삼고 해야 할 섭리의 뜻을 한국사람을 중심삼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일본 사람을 중심삼고 하는 입장이니 이것이 비참하다는 겁니다.

여러분 개인은 개인으로 끝나지 않는다구요. 아벨은 이 길을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거라구. 안 가고는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안 갈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안 가고도 해결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노아 할아버지가 갔던 그 길을 안 가도 되겠느냐. 아브라함이 갔던 그 길을 안 가도 되겠느냐 이겁니다.

하늘의 중차대한 명령을 책임지고, 종족을 대신하고 민족을 대신하여 나선 사람은 죽더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살아서 못 가게 되면 자기 후손 몇십 대, 몇천 대를 통해서라도 가야 합니다. 일 대에 못 간 것은 수천 대를 통해서라도 가야 하는데, 그 수천 대가 하는 고생은 누가 책임지느냐? 여러분이 책임져야 됩니다. 짧은 인생에 있어서 이러한 탕감의 원칙적 기반을 해결지어야 할 사명이 오늘 여러분의 생애노정에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듯 뼈에 사무치는 어려운 생활을 극복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 오고 힘줄이 당기듯이 신경이 마비되는 심정을 가지고 역사적인 이 원한의 구렁텅이를 어떻게 넘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해방을 받고 하늘 앞에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영광의 한날을 찬양할 수 있고, 승리의 한날을 맞이할 수 있는 그날을 갖게 될 때에 '내가 부모님 앞에 올바른 자녀로서 아버지 앞에 돌아왔노라'고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가서도 왔다는 얘기 못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선생님' 하고 부르는데 앞으로는 그렇게 부르지도 못할 것입니다. 원리대로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에 접어들어 올해가 1971년도인데 작년 일년을 돌이켜 볼 때, 우리가 여의도 땅, 청평 땅, 수택리 땅까지 마련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전부 현시가로 계산하면 한 15억쯤 됩니다. 이런 재산이 일년 동안에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여러분은 여기 와 있는 것이 부끄러운 겁니다. 정말 부끄러운 거라구요.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책임진 선생님은 밤낮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당연히 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눈을 감기 전에는, 내 의식이 남아 있는 한 내 책임은 누구한테 의논도 안 할 것이다' 하며 홀로 감당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도 여러분은 자기 자신의 부끄러움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종족적 기준에 서서 역사적 부활체로서 자기의 선한 선조들을 규합해야 됩니다. 선한 선조의 그룹을 해방시킬 수 있는 주모자가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 하는 결정을 갖기 전에는 시대적 아벨 사명의 중심자로 설 수 없는 겁니다. 그러한 시대적 아벨의 중심이 되려면 가인적 종족권을 굴복시켜 놓아야 하는데, 거기에는 필사적 투쟁이 있어야 합니다.

생명을 내걸고 식구를 사랑하라

여러분, 남의 자식을 자기 자식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남의 사람을 자기 친척 이상의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그게 쉬운 일이예요? 죽기보다 더 힘든 일입니다. 앉아서 공염불하며 생각만 한다고 될 것 같으면 누구나 다 합니다. 그러한 일은 생명을 내걸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식구를 얼마나 사랑해 보았느냐 이겁니다. 한 여자 식구가 왔으나 그녀가 해결받고 가야 할 생명의 길을 해결 못 지워 주고 보내게 되었다면, 남자로서의 체면도 불구하고 그의 치맛자락이라도 붙들고 밤을 지새워 단판기도라도 해야 됩니다. 한번 왔다 하면 영적으로 끌어당겨 붙잡아야 합니다. 안 끌려와서는 안 되게 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것은 사탄과 하늘이 사랑을 중심삼고 빼앗기 싸움하는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자기 남편보다도, 자기 부모보다도 더 큰 사랑을 갖고 생명을 투입하게 되면 끌려오는 거예요. 그것이 쉬울 것 같아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동삼(冬三)에도 솜바지 저고리가 젖어 가지고 짜면 물이 나올 정도의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전부 건달 노릇만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통일교회의 정상적인 아벨의 책임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을 죽여 제물로 바치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부모 처자까지도 죽여 제물 드려야 하는 길이 있다면 해야 합니다. 자기 1대에 3대를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자기 자신, 자기 아들까지 3대를 제물로 바쳐 탕감할 수 있는 그런 비운의 역사도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

아담과 예수와 재림주 이렇게 3대입니다. 3대를 희생시켜 가지고 복귀섭리를 해 내려온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해야 되고, 그런 아버지의 심정을 탕감복귀하는 데 있어서는, 우리가 그런 사명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는 아버지를 붙들고 마지막 판결을 지어야 할 운명길이 복귀도상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된다는 거라구요.

이런 등등의 문제를 생각해 볼 때, 금후에 있어서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제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한번 보라구요. 우리가 다짐하는만큼, 우리의 길은 아슬아슬하리만큼 점점 최후의 고빗길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아시아에 있어서도 중공이 저렇게 넘어오고…. 그러니 섭리가 급전될 수 있는 때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발판을 잘 가려 가지고 딛고 넘어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한 군을 책임진 자들로서 하늘이 왕림하게 될 때에 공고하고, 변치 않고, 요동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반석과 같은 터전이 되어 있습니까? 전부 다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리 생각은 다 집어치우고 먹을 것을…. 거기에 다 썩어 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위해서는 그것을 뭉청 짜르고 나서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개체에 가까운 것을 짜르고 나서게 될 때에 하늘이 나를 더 가까이 대해 주더라 이겁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남을 위해 희생했을 때, 그 희생한 것을 그가 몰라주면 옆의 사람이 내편이 되어 공인해 준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확대시켜 나온 역사의 움직임

여기서 선생님이 꼭 한마디 말하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이제 세계는 갈 길이 막혀 버렸다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인류가 개인의 욕망. 국가의 욕망, 세계의 욕망을 찾아 나오면서 하나의 이상적인 세계를 모색해 나왔지만, 이제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도 갈 길이 다 막혀 버렸습니다. 그건 왜그러냐? 안 막히면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모든 움직임이라는 것은 개인을 확대시킨 것입니다. 지금까지 개인이 어떠한 출세라든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을 써 나왔느냐?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체를 이용하기도 하고, 개인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제3의 무대를 이용하기가 일쑤였습니다. 그게 지금까지의 역사적 전통이었습니다.

결국은 자기 하나 잘되기 위해서 제3자를 이용하겠다 해 가지고, 개인을 이용하고, 단체도 이용해 왔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나라까지 이용하는 부패상이 많습니다.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적 방향이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면서 출발한 그날부터, 사탄의 피를 받고 난 그날부터 본의 아닌 교만을 중심으로 간접적인 무대를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갈구해 나온 것이 그 역사적 방향이 아니었더냐 이겁니다. 타락이 뿌린 씨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이 자기 일개국을 희생시켜 가지고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면 부활할 수 있는 미국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민주세계를 희생해서라도 자기 일국의 이익을 위해서 세계를 이용하는 날에는 망합니다. 고립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닉슨 행정부를 중심한 '닉슨 독트린'이라는 현재의 정책 방향을 보고, 민주주의의 약소국가는 '믿지 못할 미국'이라며 안 따라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 미국 자체도 막히게 됩니다. 그러니 미국이 미국만을 위하는 날에는 세계에 남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를 위한 미국이어야 합니다.

자고로 세계를 위한 국가, 세계를 위한 민족, 세계를 위한 종족, 세계를 위한 가정, 세계를 위한 개인의 사상을 지녀야 영원히 남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개인을 중심한 세계와 국가와 민족과 종족으로 전부 다 가지려고 하면, 그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개인주의입니다. 개인주의 사상으로 점점 기울어짐으로 말미암아 세계도 희미해지고, 나라도 희미해지고, 민족, 종족, 가정까지 전부 다 희미해지고 맙니다. 그러니 이제는 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공산당을 중심삼고 볼 때, 오늘날 소련이 세계 공산권을 전부 다 지도해 가지고 '공산권은 언제든지 이 슬라브 민족을 위주로 한 단일민족권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이념을 가진 공산주의라면 그런 공산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민족을 넘어서 자기의 민족을 희생해서라도 공산세계까지 하나 만들기 위해서 서로서로 위해 나가는, 세계를 위해서 자기 나라를 희생시킬 수 있는 사상을 가진 주도적인 국가는 언제든지 환영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개 자기 민족과 자기 나라만을 위해 활약하려는 공산당은 남아지지 않습니다. 다 막혀 버리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실험해 본 결과 가는 길이 다 막혀 버렸다는 겁니다.

이제 어떤 길을 취해야 하겠느냐? 그러한 방법을 통할 수 있는 세계의 이상적인 국가는 이미 해가 석양에 지고 있는 때에 들어가는 입장입니다. 그건 자타가 공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결할 길이 무엇이냐? 그와 같은 방식을 통한 일개 국가라든가, 개인의 목적을 추구하던 그런 역사시대는 지나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가 반대해 가지고 흘러가 버리게 됩니다.

최후로 남은 길

그럼 최후에 남은 길이 있다면 그 길이 무엇이겠느냐? 지금까지 그렇게 해서 남은 것을 보니 뻔하지요. 이제는 그 반대로 해야 됩니다. 그게 뭐겠습니까? 대중의 목적 성사를 위해서 개인은 얼마든지 희생하자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사상이 이 역사를 혁명할 사상입니다.

자기 하나가 희생됨으로 말미암아 전체가 얼마나 잘사느냐. 얼마나 성공하느냐 하는 문제가…. 그것을 생의 보람으로 알고, 자기가 인생으로 태어난 목적으로 알고 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방향과 역사적 사조의 형태를 갖춘 국가가 이 땅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죽은 시체와 같은 세계가 쓰러진 자리에서 비로소 환생되어 가지고 무한히 자랄 수 있는 새로운 천국이나 새로운 이상적인 하나의 세계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외에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가면 되는 것입니다. 한 민족이 세계를 잘되게 하기 위해서 씨도 그림자도 없이 깨끗이 희생했다 하면, 세계의 국가가 전부 하나된 후에는 그 민족을 모셔다가 그 민족을 자기들의 머리로 삼고, 신경으로 삼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이러한 사상을 세우기 위한 것이 무슨 사상이냐?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입니다. '나 하나가 죽게 될 때에 세계를 살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요, 나 하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시련 가운데에서 해방이 벌어지는 것이다. 나 하나가 이슬같이 사라짐으로 말미암아 원수의 칼끝에서 사라져 가는 수많은 생명들이 해방을 받을 것이다'라는 것이 예수의 사상입니다. 또한 자기를 죽이고 창끝으로 모해하던 수많은 원수들을 대해서도 '너는 지금 나와 원수이지만 미래에 나의 친구가 되고, 나와 동역자가 되길 바란다' 하는 소망을 가지고 그에게 미래의 축복의 터전을 넓혀 주고 가겠다고 한 것이 예수님의 사상이 아니었느냐.

이걸 볼 때, 이 사상이 아니고서는 하나의 세계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러한 사상을 사랑하는 아들에게 품겨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상이 하나님의 사상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독교의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아야 할 통일교회의 사상이 무엇이냐? 바로 그와 같은 사상이라구요.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부모를 버리고 처자를 버리고 나온 것은 내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보다 가치적인 민족을 그리워했고, 보다 가치적인 세계를 그리워했고, 보다 가치적인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세계를 그리워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의 승리라는 것은 그런 터전 위에 심어지고, 그런 터전 위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철저하게 테스트해 보고, 경험해 본 후에 그렇게 해서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이 놀음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보다 잘먹게 되면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됩니다. 잘입어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돼요. 잘살아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어떤 길이냐?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위해서 일한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원수를 위해서, 가인을 위해서 말없이 일하고 감동시켜 가지고 그들이 무릎을 꿇되 발바닥에서부터 꿇을 수 있게…. 전신이 땅에 붙게끔 굴복시켜야 합니다.

한발이라도 들고 굴복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진실로 굴복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총칼 가지고 안 됩니다. 자기 권력을 가지고, 자기 기반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피가 끓어오를 수 있는 하늘의 사랑 가지고 접속하는 겁니다. 고압선을 갖다 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사랑의 전류와 같은 것을 받아 가지고 접선시켜야 되는 거라구요. 지금까지 선생님이 그렇게 해서 망할 것 같은 고빗길을 많이 거쳤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서 통일사상을 가지고 남아졌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라구요. 만일 남한이 통일교회사상으로 뭉치면 어떻게 되느냐? 총칼을 가지고 싸울 때에는 더 강한 총칼을 준비해 가지고 적 이상으로 강하면 되는 것입니다. 적이 열만큼 훈련하면 우리는 백만큼 훈련하는 것입니다. 왜 지는 거냐? 정성이 모자라서 지는 것이요, 사랑이 모자라서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이 원칙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세우기 위해 못 할 것이 뭐냐 이겁니다.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뜻적인 입장에서 보면 여러분 개인은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이 예수님보다 나은 자리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래, 여러분이 예수님보다 나아요? 기가 막히다는 거야. 어떤 식구들을 보면 내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들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비록 십자가에 매달렸지만, 그의 시선 아래는 로마 제국이 있었던 것입니다. 몇백 년이 지나면 유대교는 나한테 굴복한다는 신념이 예수에게 있었습니다. 유대민족은 물론이요, 세계의 적국까지도 굴복할 것이라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사상적으로 압도할 수 있는 신념을 가지고 살다가 신념을 가지고 죽어갔다는 것입니다. 임자네들도 그래요?

요전에 우리 교회에서 신문사[주간종교]에 근무하는 사람들 월급을 준다고 하니 귀가…. 내가 기가 막힙니다. 그런 것에 연연하려거든 자식들을 낳지 말아요. 여러분이 뜻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 원리대로 해 가지고 망하나 보라구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선생님이 모험을 하고 있습니다. 1972년까지가 모험기입니다. 오는 12월까지 5억이라는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에 천만원을 들이대야 됩니다. 요즘은 하루에 1백만 원, 2백만 원은 보통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돈은 한 푼도 없다구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내 하나의 살림을 위해서, 이 문이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이곳 청평 땅을 사는 데도 그렇습니다. 이 땅 사는 데도 지주 1백여 명으로부터 사는 데 약 9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1백여 명에 9개월이니까. 삼구 이십칠(3×9=27), 270일이 됩니다. 주인이 백명이니까 한 사람과 계약을 하는 데에 이틀 정도 걸립니다. 사흘은 조금 못 됩니다. 아무튼 사흘 이내에 한 건씩 계약을 했어요. 세상에서는 이런 일 못 합니다.

그들이 쉽게 팔 것 같애요? 통일교회가 그 땅을 샀으니, 그 다음 사람들은 땅 값을 몇 배로 받지 않으면 안 판다고 할 것 아닙니까? 여기에는 반대 파들이 있는 겁니다. 그저 요렇게 반대하고 조렇게 방해를 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은 누구의 땅입니까? 당신의 뜻을 이런 곳을 중심삼고 이루어야 할 것인데…' 내가 정성들이는 것은 내 개인의 일로 정성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손을 대는 녀석은 통일교회의 운세에 꺾여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영계에 갔다구요. 그 반대하던 사람들 중에는 이름 모를 병으로 수술하는 등 지금까지 1년 반이나 2년씩,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하나님이 특별히 기억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한 푼이라도 생기면 그것을 불리는 거라구요. 그걸 보면, 하나님이 선생님을 협조 안 하면 안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선생님밖에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심정이니 뭐니, 뜻 세계는 탕감복귀노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여의도 땅만 하더라도 현찰로 5억 5천만 원, 한 6억 가까운 돈이 들어가야 되는 거라구. 그것을 3개월 이내에, 두 번 했기 때문에 6개월 이내에 갚아야 됩니다. 그런데 돈이 없으니, 따라지 중의 왕따라지입니다. 돈이 없어서 못 주는 거라구요. 자, 그것 저것 생각하려니 이건 뭐라고 할까, 엉터리도 이런 엉터리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수중에 돈 한푼도 없는 상태에서 5억이라는 거액을 계약했습니다. 여기도 한 1억 2천만원 들어갔습니다. 앞으로 지불해야 할 것이 한 1억 4천만 원이 넘을 것입니다. 지금 그런 놀음을 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1년 동안에 내가 10억 가까운 돈을 썼습니다. 어디서 마련했겠습니까? 도둑질해 왔겠어요? 필요하게 되면 하나님이 다 갖다 주시는 거라구요. 그런데 여러분은 병아리 같은 몇 녀석을 못 먹여 살려, 이놈의 자식들! 시시하다는 거라구. 암만 따라지 신세라도 때가 되어 내가 기동을 하게 될 때는 대한민국이 말려 들어가고, 세계가 말려 들어갈 거라구요.

이 구보끼가 장개석을 만나는 것도 내가 전부 다 코치한 것입니다. '이러 이러한 말을 해라. 그러면 30분이면 꺾여 나갈 거다. 두고 봐라. 내 말이 안 맞으면 하늘은 없는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믿지 않고 여지껏 꺼떡꺼떡하고 말이야, 저거.

지금까지 그런 것입니다. 일본의 고관들 전부 다, 기시 수상, 사또 수상의 관저에 들어가 가지고 그들의 여편네까지 녹여 놓는 놀음까지 전부 다 내가 코치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도 이런 이야기 하라고 했습니다. 거 얼토당토않은 얘기거든요. 그러나 삼각점에 가서 딱 걸리게 되어 있어요. 걸려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약 아시아에서…. 대한민국에 오게 되면 박대통령도 홀딱 반하는 것입니다. 정보부장도 홀딱 말려 넘어가는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을 복귀하고 나타나야 돼

그런데 선생님이 왜 밖으로 안 나타나느냐? 복귀노정이 그렇게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가인을 복귀하고야 나타나는 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복귀할 수 있는 자리는 자랑해 가지고 복귀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적인 입장에서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목사 공청회에도 선생님이 안 나타나는 겁니다. 내가 선전하기 위해 나타나겠어요? 통일교회 자랑하기 위해서 나타나겠어요? 나타나지 않지만 그들이 찾아와서 머리를 숙여야지, 나를 반대했으니까.

언제 나타나느냐? 대한민국이 복귀되기 전까지는 안 나타난다 이겁니다. 하나님의 위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 뜻이 있고 하늘의 법칙이 있다는 겁니다. 임자네들 대해서는 땀을 흘리며 얘기도 해주지만, 이것도 언제나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 '우리의 사명'이라 했는데, 여러분의 사명이 무엇이냐? 가인을 구해주는 것입니다. 개인에 있어서는 개인적 아벨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가인을 구해 줘야 되고, 가정적 아벨이라면 가정적 가인을 구해 줘야 되고, 종족적인 아벨이 되면 종족적인 가인을 구해 줘야 되고, 민족적인 아벨 통일교회라면 민족적인 가인 교단을 구해 주어야 됩니다. 그래야 거기서 비로소 국가를 대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이제 제일 시급한 것이 무엇이냐? 통일교회가 발전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 발전시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어떻게 아벨이 되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 소원이야 한꺼번에 다 이루어집니다. 이제 복귀노정을 알겠어요?「예」 개인 아벨은 개인 가인을 복귀해야 되고, 가정 아벨은 가정 가인을 복귀해야 되고, 종족 아벨은 종족 가인을 복귀해야 되며, 교단 아벨은 교단 가인을 복귀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딱 그렇게 맞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기성교회하고 우리하고 비슷비슷합니다. 이번에 나까무라 목사 부흥회 하는 것 알지요?「예」 이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조종한 것인 줄 천하가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영락교회 부목사 되는 한목사라는 사람 걸려들어 가지고 껄떡 껄떡거리고 있습니다. 수작 잘한다구요. 저들이 걸려 들지 별 수 있어요? 일본에서 하는 것도 전부 내가 코치하는 거라구요.

지금 여기에 한 70여 개 교회가 가담해 있습니다. 일본에 수십 개 교회, 대만에 한 10여 개 교회쯤 됩니다. 그런 큰 교회를 중심삼고 나까무라를 상당히 훌륭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일본 전역에서 부흥회를 하는 거라구요. 사람들은 '이야! 일본 교회가 다 망했는데, 그래도 나까무라는 살았구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이제 목사들 한 2천 명쯤 모아 가지고 우리 승공교육을 시키려고 합니다. 수택리 수련소에 데려다가 했으면 좋겠는데, 그것은 너무 이르고 해서 삼각산에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요전에 거기에 대한 프로그램을 짜 가지고, 경비도 내가 전부 대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러고 있다구요. 북은 여기서 치고 춤은 다른 데서 추는 것입니다.

자, 그러니까 지금 기성교회 교계에서도, 무슨 새로운 일 한다고 해서 알아보면 통일교회에서 한다는 거예요. 무슨 청년활동도, 전부 알고 보면 통일교회요, 무얼 세웠다 하면 통일교회요, 어떤 일을 펼쳐 보면 통일교회라는 저예요. 그러기에 그들이 통일교회를 무서워하는 거라구요.

여러분, 주간종교 신문사 등록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공보부 장관이 기각 도장을 찍었어도 우리는 신청을 하는 것입니다. 1차 기각, 2차 기각, 3차기각, 4차 기각까지 해도 끝까지 내는 것입니다. 과장, 국장하고 싸우다가 장관하고도 싸우고…. 꼭대기를 누르는 것입니다. 그런 길이 있을 수도 있다구요. 어떤 사람은 '빨리 이기지 왜 지금까지 그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 그런 길이 있는데…'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순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재석 목사가 '선생님 하라는 대로 하면 틀림없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거라구요. 그렇게 안 되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신문 팔지요?「예」 팔아요, 안 팔아요?「팝니다」 가져갔던 부수를 돌려 보낸 사람이 있다는데 그런 패들 솔직히 손들어 보라구요. 앞으로 1974년도가 되면 일간신문을 만들어야 된다구요. 임자는 기자증 받았다면서? 응?「지국장증입니다」 그래 지국장증이든 뭐든 받았냐 말야. 「예」 아직 안 받은 사람이 있으면 받아놓으라구요. 그건 내 싸인을 받고 내줘야할 텐데…. 3백 부 이상 소모 못 시키면 지국장 능력 없는 겁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왔다갔다하고, 기성교회가 왔다갔다하는 문제를 두고 길을 닦아 나가는 중이라구. 우리가 이러다 마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청평 성지를 마련하는 과정에 있었던 일화들

내가 전에도 얘기했지만, 3년 전에 청평에 와 있을 때는 낚시터 하나 잡다가 창피를 당했습니다. '어디서 얻어 먹던 패들이 와 가지고 주인도 모르게 낚시터를 닦아 놓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 얻어먹는 사람이 무슨 체면이 있어요? 하면서 다른 구실을 풍자적으로 빙자해 가지고 '임자하고 나하고 사돈이라구' 하면서 농담을 피해 벌써 그 주인이 누군지 다 알아 가지고, 당신 이름은 아무개 아니냐, 아들의 이름은 아무개 아느냐, 미리 다 알거든. 그래 들이 때리는 거라구요. 그 아들하고 나하고 사돈지간이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어? 이래 가지고 그들도 궁금증이 나거든, 장본인에게 사돈이라고 들었는데 그러니 와서 쑥덕쑥덕 하는 거라구요. 그래도 대해 주지 않으니 거북해서 슬금슬금 들어와 가지고 고기가 잘 잡히느냐고 묻기도 하고 그래요. 이런, 욕을 할 때는 언제고…. 그럴 때는 그렇게 슬렁슬렁할 줄도 알아야 됩니다. (웃음) 그렇게 첫날 낚시할 때 얼마나 천대받았는지 모릅니다.

기회만 있으면 쳐라 이겁니다. 우리가 언제는 허가받아 가지고 뭘 했어요? (웃음) 사건을 저질러 놓고 욕을 먹든 뭘 먹든 어거지 떼거지를 써 가지고 자리잡아 나온 것이 통일교회인데. 그렇지 않아요? 체면보고 눈치 봐가지고 언제 합니까?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 굴러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부 다 거꾸로 일을 시작한 거예요. 여기 한 100평쯤 되는 땅을 사려는데 한 평에 4만 원, 5만 원 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4만 원, 5만 원이 뭐냐고, 우리를 천대하면 벌받는다고 해 가지고 만 오천 원 줬나? 이렇게 해서 산 것입니다. 그때는 아주 형편이 무인지경이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땐 천막촌으로 유명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병든 사람들이 와서 수양하는 줄 알고 있거나,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서울에서 소일하러 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그때 이 지방을 탐지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내가 뭐 낚시로 고기 잡으러 다녔겠어요? 소문 내지 않고 터를 잡아야 되겠기에, 3년 전부터 여기에 사람들을 파송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전부 배를 사 주고, 그물도 사 주니까 그들은 자기들 살림살이하기 좋다고 해서 거기에만 열중했지, 선생님 계획을 하나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비상대책을 세웠던 것입니다. 여기에 터를 잡고 있는 모든 왕초들을 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는 아무 골짜기나 블록(block)에 가면 대장이 다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전부 다 있습니다. 어떤 면이든 다 있어요. 그들은 색다른 사람이 오면 자기들의 기성 기반을 침입한다고 해서 텃세를 아주 많이 부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놈의 자식들을 꼭대기에서 누르지 못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정보를 전부 다 수집해 가지고…, 별 수 있어요?

맨 처음 청평 버드나무집도 그래요. 그 사람이 평양내기인데 옛날엔 싸움꾼이었고 여기에서 왕초라구요. 그래서 이 사람을 휘딱 잡아 뉘어야 되겠다. 잡아 꺾어 놔야 되겠다…. 그래야 우리가 왕초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것 아니예요. (웃음) 이래 가지고 서너 명을 꺾어 놓았습니다. 또 가평군 일대의 우리 승공연합의 간부들이 진을 치는 것입니다. 그들의 패거리가 많거든요. 그들을 다 잡아채는 겁니다.

그 후로는 우리가 땅을 안 산다는 말을 하기 전에는 누구도 못 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돈을 가지고도 못 산다구요. 우리가 포기한다는 결재가 나야 그들이 땅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못 사는 거라구요. 언제 따라다니면서 땅 사겠어요? 그렇게 하지 않고서, 그 기간에 약 백만 평90만평 이상의 땅을 살것 같습니까? 여러분의 집이 몇 평 됩니까? 교회가 몇 평 돼요? 만 평쯤 됩니까? (웃음)

여러분은 역사적 선의 결실체

자, 그럼 이제 이야기를 돌려서 우리의 사명이다 할 때, 이 사명은 무슨 사명이냐? 그것은 3시대의 사명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총탕감하기 위한 사명을 짊어진 것입니다. 이제 보라구요. 선생님이 전체에 대한 책임을 졌다면, 전체의 책임을 진 선생님은 반드시 연결체를 통해 가지고 연결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심) 그렇지요? 그러면 여기 중심의 생각이 삼각이라면 여기에 와서 동그라미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요것이 요렇게 되어서 전부 다 같아야 통일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선생님과 똑같아요? 얼굴은 다르지만, 내용은 같아요? 여러분, 닌징 (당근)이 새빨갛지요? 그걸 빨간무우라고 합니까, 닌징이라고 합니까? 응? 그것은 결정체가 같은 것입니다. 그 결정체는 그물코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도 작은 분야에 있어서의 책임이 절대적입니다. 그 분야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작은 분야에 있어서 책임이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돌아다니면서 딴 짓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여러분 자체도 반드시 여기에 돌아가야 합니다. (판서하심 ) 돌아가야 돼요. 그렇지요? 주고받아야지요?「예」 그러려면 여러분은 어디에 뿌리를 박아야 되느냐? 선생님에게 뿌리를 박아야 됩니다. 아무리 싱싱한 가지라도 뿌리로부터 영양을 받지 못하면 죽게 됩니다. 잎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뿌리와 접해 있지 않으면 죽는 거라구요. 그래, 여러분은 선생님하고 하나되어 있어요? 선생님은 뿌리지요?「예」 그래 하나되어 있어요? 돼 있어요, 안 돼 있어요?

사명이라고 하는 것은, 첫째는 역사적이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세계적이어야 하고, 다음에는 미래적이어야 합니다. 이런 3시대의 사명을 우리는 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여러분 자신은 무엇이냐? 역사적 결실체입니다. 그렇지요? 결실체는 결실체인데 여러분은 역사적 종족을 중심삼은 결실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선한 선조들이 있어 가지고 그 선조들의 공적으로 말미암아 선생님을 만난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 해서 만난 것이 아니요, 여러분이 잘나서 만난 것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여러분이 누구를 통하여 태어났든지간에 그 선조가 대한민국의 공적인 역사의 일 분야와 관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악한 나라라도 거기에 더 악한 것과 덜 악한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악한 나라도 그 배후에 덜 악한 편이 있는 거예요. 하늘은 덜 악한 편을 중심삼고 역사해 나오시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공적인 분야에서 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조의 공적이 있는 그 혈통적 인연을 따라, 유전법칙에 의해서 그 선조의 소성(素性)을 많이 닮아난 그런 인연이 있기에 선생님을 만난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나서 만난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여러분의 눈 하나도 여러분의 눈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그의 얼굴을 보면 그의 어머니를 닮았든가, 그의 아버지를 닮았든가, 할아버지를 닮았든가 그들의 모습에서 한 부분 정도는 닳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전부 다 분석해 보면, 여러분의 수천 대 선조의 핏줄이 다 엉키어 있는 것입니다. 어느 세포든지 전부 그렇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그것을 전부 빼 가면 여러분은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한 조상 주식회사의 사장이라구요. (웃음) 그 사장의 명령에는 전부 다 복종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장이 잘난 사람이어야 되겠어요, 못난 사람이어야 되겠어요? 잘나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잘났다는 사장은 어떤 사장이냐? 과거의 역사적 전통에 거슬리지 않으며, 시대적 활동 무대에 있어서도 선두에 서고, 미래의 후손들에게 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잘난 사장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우리는 6천년의 역사적 결실체이옵니다. 우리가 아니면 뜻도 이루지 못합니다'라고 하는데, 수작들은 잘하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이런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죽으면 천만 대의 선한 선조가 있더라도 그 선조들은 모가지가 달아납니다. '우리 종회에서 이 시대에 통일교회 문선생과 만날 수 있는 종족의 대표적인 선한 결실로 이 사람을 보내나이다!' 하며 선포하고 보냈는데, 그런 여러분들이 뜻을 못 이루면 그 선조들의 목이 달아난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수가 목숨 하나 내놓으려 할 때 아브라함, 모세, 전부 다 걸렸어요, 안 걸렸어요?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 갔습니까? 십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그랬습니다」 그리하여 제2이스라엘 민족이 없으니, 제3이스라엘이 대한민국에 날아 온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제사장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맞던 이상의 심정을 가져야 되고. 요셉보다도, 마리아보다도, 사가랴 가정보다도, 또한 그때의 제자들보다도 강력한 심정을 가지고 제2이스라엘권을 책임질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제3이스라엘권을 성립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그때 당시에, 살아서 사탄세계를 때려부술 수 있는 실권자가 되지 않고서는 제3이스라엘권을 하늘로부터 옮겨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여러분이 알아 듣는지 못 알아 듣는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

그러니 여러분은 역사적인 열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못했을 때, 여러분 하나가 망하는 것은 좋지만…. 여러분, 축복이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무서운 것입니다. 굉장히 무서운 거예요. 영계에 가 보라구요. 여러분이 잘못하고 영계에 가게 되면, 여러분의 선조들이 심판합니다. 여러분의 선조들이 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누가 사탄이 된다구요?「선조들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누가 참소하는 사탄이 되었습니까? 종이 되었지요? 그렇지만 여기에서의 사탄은 누가 되느냐 하면 선조가 되는 것입니다. 그 선조들이 '이놈의 자식, 너 왜 그렇게 했어. 이 자식아, 남자라는 게' 그런다는 겁니다. 여기 박종구는 안 걸리나, 한번 죽어 볼래? 얼굴이 넓적해 가지고 능청맞은 데가 있거든. (웃음)

결국은 누가 뿌리냐 하면, 선조들이 뿌리가 아닙니다. 알아요? 여러분이 뿌리입니다. 복귀역사는 선조로부터 이렇게 내려오는데, 여기서 돌아설 때는 누가 대표가 됩니까? 그 종씨 가운데 대표자가 있지요? 그러면 선조가 조상이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종지조상은 맨 마지막 자손이 되는 겁니다. 그게 천지개벽입니다, 천지개벽. 그런 것을 두고 천지개벽이라고 한다구요.

할아버지가 손자 된다는 말이 세상에 있습니까? 어머니가 맏딸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맏아들 된다는 거라구요. (웃음) 세상에 그런 법이 있어요? 그런 법이 있을 수나 있느냐구요? 아버지도 어머니를 데리고 살려면 자기 조상한테 승락 받아야 됩니다. 그런 거 알았어요? 그것이 천지개벽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없는 놀음이라 이거야. 그런 놀음을 하려다가 예수가 죽게 된 거라구요. 그것을 누가 좋아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조상이라구요?「우리가 조상입니다」 보기 싫은 임자네들이지만 여러분이 조상이란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 조상 될 자격이 당당합니까? 조상 될 자격이 당당해요? 자, 우리 까놓고 이야기합시다. 당당합니까, 못 합니까?「당당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 앞에 나갈 때 '예' 이렇게 머리 숙일 겁니까? 아니면 당당하게 '오, 임자구먼' 그러겠습니까, 어떡하겠어요? 대답을 솔직히 해보라구요. 「당당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럴수 있는 배포도 있고 실적도 있겠구만?

불신의 뿌리를 뽑으려면

자, 노아 할아버지가 120년 동안 산 꼭대기에서 그 얼마나 정성이 지극했는가 생각해 보라구요. 그러니까 제2의 조상이 되었지요. 이거 하나님의 복귀역사라는 것은 전부 엉터리 역사라구요. (웃음) 생각해 보라구요. 엉터리 중에 그런 엉터리가 없어요. 배를 지으려면 강가에 가서 지으면 얼마나 좋아요. 왜 그 높은 산 꼭대기에 가서 지었느냐 말이예요. 그런 멍청이가 어디 있어요. 그러니 믿지 못할 것도 믿어야 된다는 거예요. 불신의 뿌리를 뽑아 버리려니 믿지 못할 것까지도 완전히 믿어야 불신의 뿌리가 없어지는 거라구요.

아브라함도 보라구요. 무엇 때문에 야간 도망하게 해서 집시무리를 만들어 가지고 뭐 복을 줘요? 여러분, 아브라함이 사막지대의 도토리나무 아래서 3대 제물을 바치던 곳이 이스라엘에 아직까지 있다구요. 그 형편없는 집시무리예요, 지금도 짚시가 있다구요. 짚시라는 것은 집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막을 치고 다니고 낙타에다 짐을 싣고 다니면서 하루는 여기에, 내일은 저곳에…. 그런 떠돌이 생활하는 무리입니다. 그 옛날에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광야살이하던 그런 것과 같은 겁니다. 그들은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남의 것을 슬쩍슬쩍해 가면서 보따리 싸 가지고 양떼 몰고 풀밭 따라 다니는 족속들입니다. 그런 패들이 천문학 많이 숭상하지, 비가 오면 안 되겠으니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여러분 하나 잘못하면 여러분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영계에 가게 되면 여러분의 조상이 여러분을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이놈의 자식아, 너한테 온갖 소망을 다 걸고, 온갖 정성을 다 해서 길렀는데, 네가 이렇게 될 게 뭐냐? 문중을 망치고 역사적 조상을 망쳐도 유만부동이지' 그럴 게 아니겠습니까? 원리를 보아도 그렇지 않습니까? 재림부활 완성하기 위해서 바랐던 소원이 나무아미타불이 되었으니, 좋았다가 망했다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만약에 선생님이 망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생각해 보라구요. 선생님이 망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복귀섭리노정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역사해 오던 조상들이 전부 걸리겠습니까, 안 걸리겠습니까? 전부 다 걸리지요?「예」 예수도 걸리고 전부 다 걸려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잘못하다간 6천년의 공사가 도로아미타불 된다구요. 그렇게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을 수도 없고 망할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죽을 수 없다는 거라구요. 망할 수는 없다는 거라구요.

우리 생의 일대라는 것은 잠깐입니다. 그렇지요? 이 일대가 영원의 척도를 오르락내리락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장되면 무한히 연장되지요? 반면에 이걸 꺾으면 여기서부터 새로운 천지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저울과 마찬가지로 오르락내리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이 말을 하게 되면, 그 말이 세계적인 말이 되는 거라구요. 또 선생님은 못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은 전부 다 선조들 얼굴을 대신 쓰고 나온 부활체입니다. 역사적인 부활체다 이거예요. 그 역사가 얼마나 되느냐? 6천년, 지금 몇십만 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수고한 역사과정이 결국은 나 하나 만들기 위해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김씨면 김씨라는 나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수많은 선조들이 왔다 갔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계 인류는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걸려 있다는 거라구요. 그런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선조들이 그토록 수고한 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그것은 선생님 하나 출세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영계가 선생님 하나 출세시키기 위하여 동원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겠지만 내용이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러니 여기 우리는 역사적인 결실체입니다. 우리가 뭐라구요? 「역사적인 결실체요」 그 다음엔 시대적인 결실체요. 미래적인 결실체입니다. 엄청나구만! 그래, 여러분이 역사적인 결실체라구?

어떤 결실체가 되어야 하는가

여러분, 그러면 이러한 결실체가 고자리가 먹고, 벌레가 먹어서 구멍이 뻘 뚫린 과실이라면 좋겠습니까? 떠억 벌려 보면 새까만 씨가 도르륵 굴러 나오는 사과가 좋아요, 그 씨가 찐득찐득 해 가지고 붙어 다니는 사과가 좋아요? 씨가 잘 익은 사과가 되고 싶지요?「예」 알긴 아는구만요.

그래 여러분을 쩍 쪼개면 잘 익은 과일의 씨와 같은 것이 나올 것 같아요? 여러분의 2세가 틀림없는 하늘의 열매가 된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 마음속을 쪼개 보면 잘 익은 통일교회가 나올 것 같아요?

그 6천년 결실체가 낙과처럼 익지 못하고 떨어져서야 되겠습니까? 그저 바람 불까 걱정하면서 '아이구 내가 떨어질 것 같다. 조금만 더 불면 떨어지겠는데, 선생님, 흔들지 말고 가만 놔 둬야 됩니다' 해서 되겠습니까? 여기에 그런 패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선생님이 도끼로 들이치고 가지를 마음대로 흔들어도 가지가 찢어져 나가기 전에는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는 무리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패에 속합니까? 바람 불까 봐 걱정하는 패들입니까?「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패들입니까?「흔들어도 안 떨어지는 패입니다」 흔들어도 안 떨어지는 패?「예」 거 말 잘했어요. 정말 그래?「예」 웃는 패들은 틀려 먹은 것입니다.

이제부터 내가 한번 테스트해 볼 것입니다. 사막지대로 몰아낼 것입니다. 저 산중에 밀어 넣고 한 번 훑어 볼 때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그러고야 말것입니다. 모가지를 밟고,‘이 녀석, 통일교회 믿겠어? 믿겠으면 말해 보라구? ’할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니 어때요? 그래도 믿을 수 있겠어요?「예」 믿으려면 통일교회 식대로 믿어야지, 남의 교회 식대로 믿으면 되나요?

여러분은 '나 하나 죽으면 망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느껴 봤어요? 코를 떡 막고 '나 죽소' 할 때 하나님이 쫓아와 가지고 손바닥을 후려갈기며 '야 이놈아, 죽다니'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실감적으로 느껴 본 적이 있어요? 그렇게 하는 것이 항의하는 것이요, 담판짓는 것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자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나 죽습니다' 하면서 죽을 자리 있으면 먼저 대가리 들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고생길이 훤하지요.

보라구요. 개인 복귀, 가정 복귀, 종족 복귀, 민족 복귀, 국가 복귀, 세계 복귀, 천주 복귀, 하나님 복귀, 이렇게 8단계까지 나가려면 죽어야지 별 수 있어요? 하나님 때문에 죽었으면 그것은 땡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목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발길로 찰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 해봤습니까?

꽃다운 청춘 시절에 조금 고생함으로 말미암아 하늘 앞에 바쳤다는 영광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타고난 본성의 운명길보다 하늘을 위해서 죽었다는 그 가치와 자기의 사명감에 대한 절박한 도수가 강하게 되면 자기 운명의 자리보다 더 큰자리에도 갈 수 있습니다.

그래,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서 죽겠다고 생각해 봤어요?「예」 그래, 죽겠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이 그러고 있어? 만약에 안 죽을 입장에 있으면 죽게끔 만들어서라도 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을 각오가 돼 있으면 잘사는 남의 집 남편 한번 도둑질해 오는 것입니다. 잘사는 남의 집 여편네도 한번 도둑질해 오는 것입니다. 아들딸 전부 다 도둑질해 오는 것입니다. 그런 일도 해봐야 합니다.

자! 그럼 도둑질 해오는 그 패당이 원수 패당이야, 우리 패당이야? 원수 패당이야, 우리 패당이요?「원수패입니다」 원수 패당이라구요. 김일성 패당 전부다, 김일성의 여편네와 아들딸 전부 잡아오면 그것 잘한 거예요, 못한 거예요?「잘한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상 주겠습니까, 벌 주겠습니까? 「상 줍니다」 마찬가지 이치라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이걸 빼앗아 오자할 때는 그걸 위해 정성들여 보는 것입니다. 끌려오는 데는 강제로 끌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목을 내놓고 따라오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일 많이 해봤습니다. 그러려면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대담했던 어린 시절

복귀역사는 가인 아벨 복귀역사입니다. 원리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너를 내 생명보다 더 사랑한다. 내 마음을 바쳐 죽기까지 사랑하고, 부활해서까지도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서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꺾여 넘어갑니다. 그런 실험을 해보면 하나님이…. 지금은 그런 놀음 하지 않지만 옛날에는 딱 걸고 낚아채는 거예요. '내일 아침에 오나 안 오나 보자' 이겁니다. 누가 내 목에 칼을 들이대더라도, 칼을 꽂더라도… 선생님은 그런 운동을 많이 했다구. 알겠어요?

이왕에 죽음을 각오한 녀석이니까 죽을 놀음을 한번 해보는 것입니다. 죽을 놀음을 해서도 안 죽게 되면 추앙받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사람은 엉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엉뚱한 생각을 할 줄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엉뚱한 생각만 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생각을 함과 동시에 엉뚱한 행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무엇을 하는 데도 시시하게 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우리 동네에 엿 고는 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서당이 있었는데 서당 애들이 왔다갔다할 때는 그 엿 고는 냄새가 코를 자극시켜 군침이 돌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엿이 덜 된 것을 무엇이라고 하나?「조청이라고 합니다」그래 조청. 선생님이 하루는 애들에게 '그것 먹고 싶은 사람 손들어라. 내가 한번 실컷 먹여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건 좋은 일이라구요. 시골 불쌍한 사람들 한을 한번 풀어 준다는 마음으로 약속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가서 '아버지, 제가 돈을 좀 써야 하겠는데, 거 소 판 돈 있지요? 아버지 오늘 내가 죽으면 그돈 어떡할거예요? 아들한테 쓸돈 있으면 나죽기 전에 좀 주십시오' 했습니다. 그랬더니 '얼마나 쓸 거냐'고 하시길래 '주시면 얼마를 쓰든지 제가 알아서 적당히 쓰겠습니다' 하고는 타냈습니다.

선생님의 아버지도 선생님 말 잘 들으셨다구요. 벌써 열 네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작전 계획을 딱 세워 놓고, '이리 갑시다' 하면 따라오실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잘못하면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 심정을 역이용해 가지고 딱 걸어 놓으면…. 뭐 왼다리 걸리고 바른 다리 걸리고 다 걸린다는 것입니다. 내가 열 다섯 살쯤에는 사돈의 팔촌까지 전부 다….

지금 파주에 묻히신 할아버지께서는 독립운동의 주모자였습니다. 원래는 그분이 33인 가운데 들어가야 됩니다. 그분은 5도 책임자가 되어 가지고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 강원도를 순회하면서 독립자금을 모으러 다녔습니다. 3·1운동 거사할 때, 그 교회 장로인 이 명룡씨를 대신 파송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금광을 했는데 목사하는 양반이 금광을 하다 망했다고 소문이 났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알고 보니 그분이 그때 우리 재산을 전부 다 저당잡아서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으로 내놓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알게 된 일이예요.

그 할아버지가 그랬기 때문에 우리 큰집 일가가 전부 다 동양척식회사에 저당잡혔던 것입니다. 할아버지 이름으로 도장을 전부 다 찍어 주었기 때문에 몽땅 넘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우리 어머니가 대단했다구요. 공부도 안 한 우리 어머니가 그걸 전부 다 빼돌렸습니다. 삼촌, 친척 할것 없이 살살살 해 가지고 전부 빼돌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큰집이 삼촌 이름으로 돼 있었어요.

그 삼촌은 욕심이 많은데다 덜렁덜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삼촌이 우리집에 쫓아와서는 '이 집이 큰집 것인가, 우리 집이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어머니가 듣고 몹시 기분 나빠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머니, 왜 그러십니까? 해 가지고 열 네살 때 작은 어머니를 구슬러 가지고 도장을 살짝 넘겨 온 거예요. 사촌들이 내 말을 잘 들었어요. 그래서 어느 뒤주짝 어디에 함이 있다는 걸 알아 가지고 작은 어머니를 구슬린 겁니다.

작은 어머니는 나를 좋아했습니다. 나도 또 그분을 좋아했습니다. 내가 어디에 가려면 반드시 여비도 대주고 그랬어요. 작은 어머니와는 통했기 때문에 '아, 우리 집안에 아무개가 우리 전부를 대표한 조상이다'라고 하며 정성들여 가지고 내게 여비도 해주고 그랬습니다. 그런 것을 영계의 대감님이 전부 다 가르쳐 준다는 겁니다. 내가 어디 가려고 하는데 여비 좀 해달라고 하면 투정을 부려도 통하고 그랬어요.

그런 작은 어머니를 내가 살랑살랑 구슬러 버린 겁니다. '작은 어머니, 내가 도장 하나를 갖고 싶은데 삼촌 도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그랬더니, '열 네살 난 녀석이 도장은 무슨 도장이냐'고 그러는 거예요. 그때는 꾸며대는 겁니다. '내가 꿈에 보니까 내가 좋아하는 도장이 요러요러한 도장인데, 그 도장을 꾹꾹 찍으니 하늘이 기뻐하더라구요. 그거 아주 좋았습니다' 이렇게 한바탕 꾸며서 들이대니 멀거니 바라보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삼촌 도장을 한번 보았으면 좋겠어요. 그 도장을 가진 사람은 복받아요. 삼촌 도장이 꼭 그렇게 생겼을 것 같은데 한번 구경했으면 좋겠어요' 그랬더니 '아, 그래? 하면서 보고 싶으면 한번 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도장을 보긴 했는데, 그걸 가져가야 되거든요. 그래서 작은 어머니, 이런 도장을 나도 하나 새겨서 갖고 싶은데 하루만 빌려주세요' 해 가지고 그 도장을 가져다 그날 척 넘겨 버린 겁니다. 그리고 나서 후에 도장을 갖다 주면서 '나 도장 하나 잘 새겼습니다' 하고 갖다 준 것입니다. 뭐 조그만 녀석이 그런 놀음을 했을 줄 알았겠어요?

그렇게 한 1년쯤 지난 후에 삼촌이 '어, 큰집은 우리 집이다'고 하는 거예요. 우리 어머니는 맏동서인데 세찬 분이었어요. 작은 동서들이 대사를 치를 때 잔치를 잘못하면 기합을 주었어요. 그러면 아랫 동서들은 맏동서라고 그러냐고 툴툴하고 코웃음을 치고 그랬어요. 그런데 삼촌이 뒤에 알고 보니 그집은 큰집 것으로 되어 있거든요. 선생님이 그런 놀음을 잘했다구요. 살짝 하러 다니고 말이예요. 벌써 열두살쯤 될 때는 동네의 시집장가가는 사람들 사진만 봐 가지고도 나쁜 것 좋은 것 다 가렸다구요. (웃음)

자, 그러면 동네 총각들, 이 못사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조청을 한번 실컷 먹여서 한을 풀어 주어야 할 텐데, 이게 돈 몇푼 가지고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다고 아버지 돈을 갖다가 몽땅 써 버리면 안 되겠고, 그래서 투전 판에 가서 한판한 것입니다. 소판돈 전부를 한꺼번에 떡 거는거예요. 하나님이 보우하사, 내가 틀림없다고 생각하면 틀림없는 겁니다. 알겠어요? 새벽 닭이 홰를 치고 나면 코가 비시시해 가지고 돈은 전부 한 곳으로 모이는 거라구요. 그렇게 돈이 한 곳으로 모이는 것을 보고 한잠 잘 자고, 새벽에 일어나 쓰윽 보고 '나도 한번 하자' 하고 대드는 거예요. 돈이 있느냐고 하길래 나도 그만한 돈 걸면 될 거 아니냐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 가지고 한판 하는 겁니다. 짓고땡이를 하는데 내가 장땡인 거예요. (웃음) 선생님은 그런데 빠릅니다. 벌써 이길지 질지 안다구. 자신 있게 딱 들이대면 틀림없어요. 한번 해 가지고 먹고 쥐고도 남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라고 해서 함부로 얕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무서운 사람인 줄 알거든요. 서슴지 않고 칼침도 놓는다구요. 만약에 어떤 녀석 도망가면 그의 어머니 아버지를 깔고 앉아 가지고라도 끝을 내고 만다는 이름이 나 있었다구요. (웃음)

내가 아홉 살 때 한번 맞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녀석이 내 코피를 터뜨리고 도망을 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 문전에서 30일 동안 기다려 가지고 끝내는 그의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또 떡까지 한 시루 받아 가지고 왔습니다. (웃음)

선생님은 한번 한다 하면 하는 사람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도 '내가 한번 할 테다' 하게 되면 나중에 그렇게 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그래 가지고 한판 해 가지고 조청을 산 것입니다. 그때 조청이 한 독이 십 몇원밖에 안 하더구만요. 그래 가지고 '옛다, 이거 먹고 물러가라' 하면서 한바탕 먹였더니 그만 설사가 난 거예요. (웃음) 그 일이 잊혀지지도 않아요. 몹시 궁하던 판에 기름기 있는 음식이 들어갔으니…. 그 음식이 기름기가 좀 있거든. 그래 가지고 설사가 났습니다. 내가 그런 놀음도 해본 거라구요. 나는 무엇을 한다 하게 되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내가 지독하다면 지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일생 동안 팥죽 사발이 되어 가지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허리 부러진 호랑이 모양이 됐으니 이거 됐어요?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도망갈 수도 없는 길

선생님이 씨름판에 가서 씨름을 하면 지고는 안 들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면(面)에서 왕초였습니다. 그런 사람인데 이 통일교회 영신(靈神)이 되어 가지고 이 꼴이 뭐냐 이겁니다. 임자네들 뒤치닥거리나 해주고 이게 성질상, 이게 본질상…. (웃음) 그러나 알고 보니 할수없다구요. 암만 잘났어도 내가 이 길 안가면 안 되겠기 때문에 지금 이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무슨 생각을 안 해봤겠어요?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으면 내가 먼저 도망갔지. (웃음) 내가 잘살기로 했으면 빌딩을 짓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빌딩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런 성격의 소유자라구요. 그렇게 지독하기 때문에, 한번 마음 먹으면 뿌리를 빼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런 놀음 해 가지고 이 길을 닦아 나온 거라구요. 선생님은 남들이 하는 시시한 그런 기도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이 선생님을 만난 것은 팔자가 사나워서 만났든가, 그렇지 않으면 운명이 드세서 만났든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이왕지사 좋게 살게는 못 되어 있다구요. 또, 여러분 얼굴 상을 보면 알아요. 이빨도 뭉텅하고, 골상도 제멋대로입니다. 전부 바람에 맞아 죽게 된 사람들이라구. (웃음) 그렇다는 거예요. 잘난 녀석 하나 없다구. 이건 쓱 보게 되면 전부 천대나 받고 살 팔자들입니다. 그러니 감지덕지해야 된다구. 이제는 사람 노릇 하고 있잖아요. 이젠 할수없다구요.

여러분은 간판을 그렇게 뒤통수, 앞통수에 붙였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만난 거라구요. 딴 데 가서 해보라구요. 뭐가 되나. 통일교회에 들어와 정성들이고 있다가 나가서 해보라구요. 전부 다 따라지 중의 왕따라지가 되어 가지고 코를 끌고 다녀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문선생이 이제는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이제 내일 모래면 링컨차(링컨 컨티넨탈)를 가져올 겁니다. 내가 돈이 한푼 없어도….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외국에서 고급차가 들어오면 장관들이고 누구고 부패한다고 해서 대통령령으로 고급차 들여오는 길을 막아 버렸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거기에 예외일 수 없다 해 가지고 안 내주겠다고 합니다. 아무리 공관을 통해서 들어왔지만. 그것을 내어 주면 전례가 되기 때문에 안 내어 주겠다는 겁니다. 만약 하나만 나가게 되면 '아, 통일교회 문교주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나' 하면서 장관이고 뭐고 얼룩덜룩한 패들 전부 다 난리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수없이 경매에 부치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 차가 1971년도까지만 해도 한국에 한 대밖에 없었어요. 그것이 소문이 나 가지고 부산의 부자들로부터 그들의 서울 친척들까지 동원되어서 한 50명의 경쟁 입찰자가 들이닥친 거예요. 기껏해야 1천만 원 정도될 것인데 1천 3백만원, 1천 4백만 원이나 써 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넘겨 주면 큰일이라구요. 외국에서 처음으로 선물이라고 들여 왔는데 그 물건을 도깨비가 물어 가게 된다면 통일교회 운세가 꺾인다구요. 그렇잖아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것은 넘겨 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 갖고 '이놈의 자식들, 이 차가 어떤 차인데, 어디 빼내 가기만 해 봐라. 가다가 직사할 것이다' 반 공갈 협박을 하면서 대낮에 꽝꽝 싸움을 한거예요. 그랬는데 아 1천 4백만원 써 낸 사람이 있다고 요란해요.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의 뒷덜미를 눌러 가지고 1천 3백만 원으로 내려 놨습니다. 그런데 1천 3백 3십만 원까지 쓴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1천 3백 5십만 원으로 안 쓸 수 없었어요. 이래 가지고 마감 3분전에 1천 3백 50만원 써 가지고 낙찰이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돈을 내일 가지고 가야 할텐데. 돈 1천 3백 50만 원이 있어야지. 1천 3백원도 없는데…. 그래서 도깨비 방망이 흔드는 놀음을 했던 것입니다. 이제 내일 모레면 차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번에 차 가져오면 여러분 전부 한번씩 태워 줄지 모르지. 여러분의 신수가 트였으면 말이야. 그러나 타려고 생각 말라구. 앞으로 차 안 태워 주려고 합니다. 그 차 가져오면 절대 안 태워 줄 거라구. 타려고 생각지 말라구?「예」 선생님도 이제 권위를 세워야 되겠다구.

이제 그 차만 떡 타고 다니게 된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뭐 한국에서 제일 가는 차 타고 다닌다' 하고 소문이 졸졸졸 날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돈이 어디서 그렇게 났노? 하게 되면, '어디서 나긴 어디서? 777쌍 축복받을 때에 선물로 받은 것이다' 하는 거예요. 대한민국에서 내가 그 차를 타더라도 그것은 내 돈 가지고 산 것이 아니고, 선물로 받은 것이라구요. 그것 신문에도 났거든.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좋은 차 타고 다녀도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자랑으로 여기는 겁니다.

여러분. 통일교회에서 1천 3백 50만 원이면 교회가 몇 개요? 교회가 몇개입니까? 이런 어려운 사정에 이것을 팔면 틀림없이 한 2천 5백만 원 정도는 받을 것입니다. 그건 당연한 값이라구. 누가 한 3천만 원 주겠다고 하면 팔아 버릴까요, 둬 둘까요? 여러분하고 의논해 보자구요. 팔까요, 그냥둬 둘까요?「둬 둡시다」 그래 '둬 둡시다' 할 때, '둬 둡' 하는 소리는 큰데, '시다' 소리는 작구만요. (웃음) 그럼 팔까요, 둬 둘까요?「둬 둡시다」 그것 두어서 뭘 하자는 거요? 그 차 탄다고 날아 다니나요? 뭘 하는 거라구요? 여러분 선전해 주는 것입니다.

'야! 우리 선생님은 외국의 축복해 준 사람들로부터 한국에서 제일 가는 차를 기부받아서 그 차를 타고 다닌다'고 하는 겁니다. 욕하는 녀석은 못난 녀석입니다. 여러분도 누구한테 기부받으면 타고 다니는 거라구. (웃음) 이제 앞으로 고관집 심부름을 시킬 때는 이 차를 태워 보내면 정문 앞에 가서는 '빵빵빵' 클랙슨 세 번만 누르면 척 내다보고는 묻지도 않고 째까닥 문을 열어 줄 겁니다. 그 차가 효과가 있는 겁니다. (웃음) 청와대를 직접 들어 가더라도 경비원이 수두룩하지만 '빵빵' 몇 번 하고 쏵 들이닥치면 '야, 문열어 ?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벌써 그만하게 된다면 누구든지 여러분을 깔보지 못하는 겁니다. 알겠지요? 앞으로 여러분들 비상 교섭이 있을 때는 그 차를 빌려 주지! (웃음) 그렇다는 거라구요.

이번에 구보끼가 와서 대통령을 만나러 갈 때 태워 보내는 거라구요. 그런 놀음 해야 되겠다구. 그러니까 이젠 통일교회에 그런 차 한 대 있어도 괜찮다구요. 알겠어요?「예」 여러분들이 돈을 모아서 사 줬다고 해서 여러분들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구요. 내가 따라지로 나왔지만 죽지 않았다구. 자, 여러분들, 선생님이 하자는 대로 박자 맞춰서 춤 한번 춰 볼까?「예」오늘 저녁에 해볼까?「예」자, 누가 일어나 춤출 거야? 자신 있어?「예」거 한번 해보자우. (웃음) 어어, 이거 농담하네 하겠지만, 농담은 무슨 농담. (웃음) 그럴 수 있어요?「예」 말이야 잘하지, 정말 그래요?「예」

여러분들 눈 하나씩 팔아 먹자구. 앞으로는 눈을 바꿔치는 때가 올 겁니다. 눈이 하나에 못 해도 5천만 원 이상 나갈 거예요. 그렇다고 5천만 원이면 팔래요, 안 팔래요? 눈 하나 가지고 천국 가는 게 낫지. 「5천만 원이면…」 뭣이? 임자 눈은 5백 원도 안 준다구. (웃음) 그것도 다 격이 맞는 눈이라야지, 팔리지도 않는다구.

신념이 앞서야 한다

뜻을 위해 가고 공적 입장에서 지독히 고생하면 망할 줄 말아도 안 망합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저 녀석 용 될 줄 알았더니 번데기 되었다'고 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용이 될 줄 알았더니 번데기가 되었다는 거예요. 내가 번데기 될 사람이라구요. (웃음) 여러분들, 번데기 될 사람을 따라다녀도 좋아? 무엇 될려고?「용이요」 번데기에서 용이 돼?

새로운 일은 어느때나 칭찬받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어린이 무용단을 비롯해서 선생님이 하는 것은 전부 다 그래요. 말이 났으니 국제승공연합 이야기 한번 해봅시다. 국제승공연합을 공보부에 등록하러 갔더니 '국제승공연합, 이거 반공연맹이요? 하고 물어요, '반공연맹? 국제승공연합이요' 라고 했습니다. 국제승공연합에서 승공이란 말을 빼면 뭡니까?「국제연합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그 사람들이 기분 나빠하는 거예요. '뭐 국제승공연합?' 국제승공연합에서 승공을 빼 놓으면 국제연합이거든. 승공은 공산당을 이기는 것이니까 국제승공연합은 공산당을 이기면 국제연합이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승공을 집어 넣은 것입니다. 이래서 공보부에다 등록하려고 하니, 공보국장이 단체 이름이 뭐냐고 그래요? 그래서 '뭐긴 뭐요? 국제승공연합이지' 라고 하니, 또 가만 보더니 연합은 뭐고 승공은 뭐냐고 해요. 그래서 승공이 승공이고 연합이 연합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웃음)

그들이 지도하는 반공연맹이면 다 되는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닙니다.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냥 그대로 두지 않겠다는 얘기만이 아닙니다. 내가 반공연맹을 5년 이내에 밀어낸다고 선언하고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이제 5년 이내에 국제승공연합이 꼭대기에 설 것입니다. 천지가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려고 하는 것은 안 되는 것이 없다구요. 알겠어요?「예」 안 되는 것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청평 땅이 누구의 땅 되겠습니까? 누구 땅 되는 거라구요?「우리 땅 됩니다」 뭐 또 우리땅 돼요?「예」 말을 해도 격식에 맞는 말을 해야지, (웃음)

맨 처음에 선생님이 여기 와서 쓱 보니까 자리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자리잡고 기도드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내가 일생 동안 정성들이는데 있어서의 기도하는 길을 닦기 시작한 것입니다. 무슨 그룹이든지 최고 그룹은 정성들인 단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혼자 울업산 꼭대기에 올라가 기도하던 것이 엊그제 같아요. 내가 비록 이 손바닥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내 결심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못 하는 게 없었습니다. 한번 이룬다는 것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기필코 이루고야 맙니다. 내가 기도하던 것이 엊그제 같아요. 이곳 일도 내가 작년 4월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남들은 이 좋은 곳을 요즘에야 알아 가지고 '야, 통일교 문선생이 좋은 곳을 전부 다 샀다'고 야단들입니다. 여기가 제일 좋은 자리입니다.

선생님의 성격이 그런 성격인데, 만약에 딴 곳으로 도망가 가지고 살 수 있는 길이 있었더라면 여러분보다 내가 먼저 갔을 거라구요. 알겠어요? 이 길밖에 없기 때문에 이렇게 가고 있는 거예요.

선생님의 코를 보라구요. 누구 말 안 듣게 생겼습니다. 눈을 보세요. 보면 지독한 사람이라구요. 겁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 선생님이 되고부터는 겁이 제일 많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건 왜? 선생님 자신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한번 잘못하는 날에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놀음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심각하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내가 가는 데는 하나님이 따라오신다고 생각하지 내가 하나님을 따라간다고 생각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을 대한민국이 따라온다고 생각하지, 내가 대한민국을 따라간다고 생각을 안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세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나를 따라온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 신념에 있어서 앞서야 되고 실천에 있어서 앞서야 되는 거라구요. 그런데 여기 통일교회 간부들 얼마나 부작용이 많아요? 돈은 뭐가 어떻고 어떻고…. 자기들이 돈을 주고 나서 그런 타령이나 하면 좋겠어요. '우리를 이렇게 못살게 만들어 놓고…' 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수작들 부리고 있습니다. 보리밥도 못 먹고 못살게 만들어야 뭐가 되는 거라구요. 그렇게 돼있지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 하는 것이 우리의 가르침이 아닙니까? 전부 다 반대입니다. 역설적인 방법이 곧 복귀노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이 좋다는 것은 절대 안 합니다.

죽더라도 3시대의 사명을 다 해야

요전에 어느 지구를 좀 도와주겠다고 했더니, 아무개가 '선생님, 이렇게 이렇게 되어 얼마가 필요하니 돈 좀 보내 주십시오' 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언제나 선생님이 돈 보내 주는 사람인 줄 알아?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알겠어요?「예」 그러나 원리의 일단을 만들려니 할수없이 이렇게 보조해 주는 겁니다.

여러분은 아직까지 젊습니다. 정정합니다. 젊지요?「예」 젊어요. 늙어요? 「젊습니다」 정말로?「예」 나보다 젊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내가 못하는 일을 전부 다 시켜먹겠습니다. 그럼 약속하는 겁니다. 「예」 그러니 여러분 자신들이 신념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적 결실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결실체인 내가 '선조들 오시오' 해서 끌고 다니는 것입니다.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김씨면 김씨의 위신을 생각해야 합니다. 선조들 가운데서 혹시 나라에서 욕을 먹으면서 민족사상을 고취한 선조들이 있으면 그 선조의 절개를 존중시하고, 내 일대에서 그분들의 절개가 빛날 수 있는 사상적 중심이 되면 되었지 부끄러워 머리 숙이는 모습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역사적 결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예」

그 다음엔 시대적 중심체가 되어야 합니다. 김씨면 김씨 문중, 박씨면 박씨 문중에 있어서 '전부 내 말 들어야 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 이겁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자신을 가져 봤습니까? 그러지 않고서는 종족적 메시아가 못 되는 겁니다. 종족이 전부 내 말 들어야 되고, 내가 주는 것 받아야 되고, 내가 달라고 할 때는 줘야 되는 것입니다. 진짜로 주면 진짜 받을 수 있는거예요.

그 다음에는 미래의 출발체입니다. 여러분은 미래의 한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한 개체가 3시대의 결합체가 되는 겁니다. 입체적이라구요. 3시대의 결합체가 되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인간의 소망이 내일에 있었습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사명으로 보면 그러한 사명이 있는 거라구요. 3시대의 종합적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열매로 태어난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선택받은 대표자들인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사명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 죽더라도 3시대의 사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책임을 수행해야 할 시기

또 여러분은 어떤 책임감이 있느냐? 책임감이 문제라구요. 종족이면 종족, 나라면 나라를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조상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나라를 구해야 되고, 세계를 구해야 됩니다. 나아가 하나님을 해방시켜야 되는 겁니다. 이것이 통일교인의 책임입니다.

그러면 그 책임을 언제 해야 되느냐? 미래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책임의 시기가 언제냐 하면 현재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책임의 시기가 언제라구요?「현재입니다」 여러분, 그걸 잘 알아야 됩니다. 현재가 책임의 시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의 통일교회에 있어서나, 지금 여러분에게 있어서나 그 소망의 터전은 어디냐? 현재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을 중심삼은 여기 이 자리가 그런 자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종족복귀 민족복귀의 때를 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적 운명을 뒤넘이칠 수 있는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잘 넘어가게 된다면 국가의 해원성사를 하는 것이요. 세계복귀의 출발기지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이 해방받으실 수 있는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입장은 어떤 입장이냐? 참부모를 중심삼고 동시대에 처한 때인 겁니다. 이것은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것입니다. 역사의 수많은 흐름 가운데…. 고기 토막으로 말하면 맨 가운데 토막이라구요. 그와 같은 기간입니다.

인류의 소망이 무엇이냐 하면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역사적 결실이 뭐냐 하면 참부모를 만나는 것이요, 시대의 중심이 뭐냐 하면 참부모를 만나는 것이요, 미래의 출발의 기지가 뭐냐 하면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거기에 접붙인 여러분은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지금까지 역사시대의 소원은 전부 다 미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의 일생을 중심한 참부모와의 인연은 영원토록 한때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 번밖에 없는 귀중한 거라구요. 알겠습니까? 여러분의 선조들도 못 가졌고 여러분의 후손들도 못 가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전체 역사의 시대권내에 있어서 소망의 기점이 어디에 있느냐, 그 소재지가 어디냐 할 때, 그 중심은 여기다 이겁니다. '오늘 못 하면 내일 하지, 올해 못 하면 내년에 하지' 이것이 지금까지 여러분이 생활해 온 습성입니다. 미래를 향해서 나갈 소망을 찾겠다고 하는데, 그 소망의 터전은 이미 지나가고 있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앞으로 여러분의 후손들이 세계를 복귀하겠지 하며 미래를 소망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복귀하려면 참부모를 모시고 가야 됩니다. 그렇게 복귀해 가지고 여기 돌아와야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목적관이 달라지고 소망관이 달라져야 됩니다. 고개를 들고 나왔지만 머리를 숙여야 하고…. 앞으로 여러분의 후손들이 추모할 지난날이 소망의 기준이 되는 거예요. 그 지난날이 미래의 행복의 기점이 되는 거라구요.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여러분의 소망이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부모의 아들딸 되는 겁니다. 참부모의 아들딸 되어 참효자 효녀가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 참부모가 앞으로 천하를 중심삼아 가지고 지상의 만왕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소망이니 역사의 소망이니 시대의 소망이니 하는 모든 소망의 중심이 결실할 수 있는 곳이 여기입니다. 알겠습니까?「예」 여러분의 소망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천국을 유지하는 기점

하나의 나라를 복귀하더라도 그 나라의 소망이 이곳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세계를 복귀해도 세계의 소망의 중심지는 여기입니다. 여기서부터 하늘땅을 찾아 들어가는 겁니다. 여기를 통과하지 않고는 어떠한 세계적 하늘땅도 없는 것이요, 영계의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전체의 종합목적 완성의 터전을 세우는 데 있어서 과거 현재 미래의 이상적 실천의 기반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여기라는 것은 일대에 한한 것입니다. 영원이 아니예요. 일대뿐입니다. 여러분은 이 일대권내에 있지요? 한 세기권내에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를 믿는 10년 20년이 천년 만년 역사를 대표하고, 또한 그것을 몽땅 책임질 수 있다는 하나의 권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가치 있는 사명관, 이런 가치 있는 책임이 오늘날 하나님을 중심삼고 여러분과 선생님에게 맡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것을 완수해야 할 때가 언제냐? 그것은 미래도 아니요, 과거도 아닙니다. 언제라구요?「현재입니다」 현재인데, 그것이 시간권내냐, 순간권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 무슨 권내야?「순간권내입니다」 순간권내입니다. 사람의 흥망성쇠의 동기는 한 시간권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 한마디로써…. 손짓 한번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망하고 흥합니다. 그렇지요? 발길 하나 잘못 디딤으로 말미암아 망하고 흥하는 거라구요. 눈 하나 잘못 감음으로 말미암아 흥하고 망한다는 거예요. 망하고 흥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한 시간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현재 중에서도, 과정 중에 서도 순간이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여러분, 영원한 천국을 맞고 싶으면 순간적 천국을 상실해서는 안 됩니다. 순간적 천국을 상실하기를 상습적으로 하는 사람은 절대로 영원한 천국을 맞을 수 없습니다. 뜻을 위해 충성하고 정성들이는 데에 있어서 '아, 오늘 못 하면 내일 하지!'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귀한 가치의 때는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겁니다. 보다 가치 있는, 종대와 같은 한 때는 시일이 가면 갈수록 여러분과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선생님 일대를 중심삼고 사탄을 대해서 정면 공격으로 투쟁하는 때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무대가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거기에 동반자가 되어서 승리적 결실을 가져올 수 있도록 생사를 같이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냥 구경이나 하고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현재의 귀한 가치는 영원을 잴 수 있는 무한한 잼대로 저울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잘 맞추는 사람이 영원한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년 책임자가 되려 하지 말고, 하루 책임자가 되려 하지 말고, 순간의 책임을 하는 데 있어서 생사의 결정권을 염려하면서 그 순간을 심각하게 하늘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순간 천국을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순간 천국을 유지해야만 하루 천국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요, 하루 천국을 유지해야만 한달 천국, 일년 천국, 생애의 영원한 천국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 천국을 유지하는 기점이 어디냐 하면 순간입니다.

그러면 이런 엄청난 사명을 하기 위한 책임 소재는 어디에 있느냐? 순간에 있는 겁니다. 그러면 선생님을 만난 그 순간부터 결심했으면, 그 결심한 것을 실천할 때가 언제냐? 그 결심을 하자마자 실천해야 됩니다. 만일 그것이 지연되면 지연될수록 그 결심이 나를 옭아매더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결심이나 맹세를 함부로 말라고 그랬지요? 잘못하면 아니한 것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이라고 맹세하고, 선생님 앞에 손을 들어 뭐 이렇게 하겠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대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이걸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현재의 시간을 중심삼고 내가 죽고 사는 것을 느껴 본 사람이 있습니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내가 한 순간 순간을 잘 넘기기 위해서 마음을 조여 가면서 숨쉬기가 가쁘고, 딴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바쁜 심각한 어느 한때를 가져 본 적이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대답해 보라구요.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없으면 이제부터라도 해야지. 이게 뭡니까?

실패와 성공이라는 것은 하루 24시간 가운데서 좌우되는 게 아니예요. 순간의 생활이 좌우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실체화할 수 있는 책임을 감당하고, 그 사명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책임은 언제 해야 되느냐? 하루 동안에 하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순간에 그 책임을 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런 사명감을 중심삼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 순간권내에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장은 원리 말씀을 하루에 못해도 10페이지 이상 읽어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 밥을 먹지요? 하루에 세 끼 밥을 먹지요?「예」 세 끼 밥을 먹는다면 그에 맞추어 영적 호흡도 같이 해야 됩니다. 여러분, 원리 말씀 다 알아요? 그 원리 말씀을 중심삼고 실천의 복귀노정을 현재 몸부림치며 가는 선생님이 있는 것입니다. 그 선생님의 골수에 흐르는 깊은 심정의 골짜기를 좀더 알고 싶으면 거기에 자신의 뿌리를 깊이깊이 박아야 됩니다.

큰 가지가 되려면 깊은 뿌리의 진액과 관계를 맺어 그것을 흡수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됩니다. 겉으로 슬쩍해 가지고 자란 가지는 엉터리입니다. 그건 말라빠진 가지가 되어 가지고 나중에는 죽어서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알겠어요?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같이 기도하고 정성들여야 합니다. 정성들이는 데에 있어서는 어제보다 오늘이 못해서는 안 됩니다. 작년보다 금년이 못해서는 안 됩니다. 작년이 바빴으면 금년은 더 바빠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런 사명을 중심삼고, 선생님이 이 지상에 있는 동안에 그와 같은 시간을 중심삼고, 순간을 중심삼고, 자기 책임수행에 있어서 자기 생명을 조여 가며 행해야 합니다. 여러분 너트 알지요? 볼트에다 너트를 조이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정성을 들이는 데는 그 순간에 있어서 얼마큼을 들이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루 동안에 누구를 얼마만큼 사랑했으며, 누구를 만나 얼마만큼 있는 정성을 다 퍼부었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원리 강의하는 데 있어서 땀을 흘려 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 보지 못하고는 저나라에 가서 걸리는 겁니다. 선생님이 그 원리를 밝혀 낼 때 그냥 앉아 가지고 된 줄 압니까? 어림도 없는 얘기입니다. 혈투전에 격투전을 거듭해 가지고 찾아낸 것입니다.

순간을 놓고 얼마나 심각해 보았는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현재 입장에 있어서의 책임수행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불평불만할 여지가 없는 겁니다. 불평해 가지고 뜻이 이루어질 수 있어요? 성경에 불평해 가지고 뜻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는데, 그 죽고자 하는 사람이 불평하게 되어 있습니까? '낮고자 하면 높아지고 높고자 하면 낮아진다'고 했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자기를 중심삼고 불평을 하는 것이니 그건 벌써 망조가 든 겁니다. 망하는 겁니다.

뜻의 길을 가는 사람이 언제 불평을 하고, 비판을 하면서 갈 수 있어요? 그렇게 해서는 못 가는 거라구요. '비판해 가지고 다 분석해 보고, 그 다음에 믿자'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 같지만, 천만에요. 신앙은 다른 겁니다. 믿고 행해 가지고 결과를 분석해야 합니다. 그렇게 가는 거라구요.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은 순간에 있어서 한 생명을 중심삼고 얼마만큼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싸움을 해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순간에 있어서 얼마나 땀을 흘려 보았느냐? 삼십 분이면 삼십 분 동안 얼마만큼 나의 정성을 들여 가지고 뼛골의 골수를 짜내듯이 정성을 들여 봤습니까? 얼마나 심각해 봤느냐는 거예요. 여러분이 얼마나 심각해야 되느냐 하면 숨소리에도 놀랄 수 있을 만큼 심각해야 되는 거라구요. 복귀노정은…. 숨소리까지도 듣기 싫어 할 정도로 심각할 때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순간에 얼마만큼 심중을 털어놓고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심각함을 많이 가졌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물을 대하나 모든 인간을 대하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삼십 전에 낯선 외지에 나가 어떤 마을에 들어가서 매일같이 그 동네를 바라보며 기가 막혀 가지고 눈물 흘려 보라구요. 비 오는 날에도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게 그 동네에 하늘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눈물 흘리는 걸음을 걸어 봐요. 절대 밥 안 굶어 죽어요. 그런 사람이 동네에 있으면 그 동네 조상이 협조해 가지고 밥을 갖다 주게 됩니다. 영계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일대에는 그런 일이 참 많았습니다. 문제는 그겁니다. 일순간이면 일순간, 한 시간이면 한 시간, 그 기간에 얼마만큼 자기의 정성을 들인 양이 많으냐? 사람을 구해주기 위한 간절한 마음이 얼마만큼 사무쳤느냐? 거기서 하늘의 인격을 조성할 수 있는 것이요, 승리의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소유권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적 책임에 있어서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어떻게 결정짓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문제인 것입니다. 더우기 이 시대라는 것은 한 번밖에 없다구. 알겠어?「예」 한 번밖에 없다는 거라구요.

여기 30살이 넘은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많구만요. 그 몸이 얼마나 뜻을 위해서 체면이나 사정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잊어버리고 한 생명을 놓고 얼마나 물고 늘어져 봤느냐는 것입니다. 그래 봤어요? 해봤어요? 전부 다 전도할 때는 그저 보따리를 뒤져 가지고 좋은 것이 있으면 내가 갖고, 동정받겠다는 도둑놈 사촌 같은 마음 가지고….

엄마가 아들딸을 젖 먹여 기르면서 '내가 젖을 먹이는 것은 그 몇 배의 대가를 받아 내기 위해서 먹이는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해요? 더 주지 못해서 애타는 것입니다. 주고 나서도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서 눈물짓는 부모의 마음이 영원히 가는 것이라구요. 해주고 나서도 다시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데 없어서 못 주는 애달픈 마음을 가지고 돌아서면서 눈물을 머금을 수 있는 부모는 그 아들을 효자로 만들지 못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의 곳이 복귀의 노정입니다. 그 노정을 떠나 가지고는 복귀는 절대 안 되는 거예요.

선생님은 지금도 그래요. 혼자 앉아 가지고도 모든 사람이 친구입니다. 순간에 있어서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느냐? 문제는 그겁니다. 내가 어떤 때는, 기도할 때 똑딱하는 순간에 '아버지' 하고 천번 만번 불러보고 싶어서 눈물 흘린 적이 있습니다. 똑딱하는 순간에 '아버지' 한번하고 천번 만번 부르고 싶어서…. 그런 놀음 해 가지고 오늘의 통일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길거리의 행각 노정에서 뚝배기에 막걸리나 마시면서 콧노래 부르는 놀음이 아니라구요. 심각한 거라구요.

어떠한 기분이냐? 하나님과 내가 각각 한 천리만한 장대를 가지고, 서로 그 끝을 맞추기 위해서 애쓰는 것과 같습니다. 복귀의 길을, 예를 들자면, 한강변의 모래 한 알이 태풍에 휩싸여 숨겨진 것을 단 한번에 그것을 찾아 내는 것 만큼이나 힘든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통일교회가 걸어 나온 길을 보면 그런 이적을 일으킨 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이런 길이라는 걸 알지도 못해 가지고 껄렁껄렁해서야 되겠어요?

선생님은 뜻을 품고 손을 얼마나 쥐었는지 손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는 거예요. 뼛골이 전부 다 한데 뭉쳐지는 듯한…. 그런 것이 쉬울 것 같아요? 하늘과 땅에서 장대 끝을 한번에 맞추는 어려움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선생님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꿈만 같습니다. 너무나 생생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실증적인 사실이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 가운데 태산 같으니…. 부정할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그런 터전 위에 통일교회가 섰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심정적으로 빚지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전통적 사명을 인계받아야 됩니다. 선생님의 책임을 중심삼고 보면 여러분이 세계적인 메시아 사명은 못 하더라도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는 것입니다. 가지도 동쪽 가지 다르고 서쪽 가지가 다른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것도 못 하면 잘라 버려야지 뭐 하겠습니까?

이번에 온 독일 대표가 선생님이 한 시간쯤 이야기를 하는데 질문을 하는 겁니다. '선생님, 우리 독일 식구들이 금식을 많이 하고 기도를 많이 합니다 일주일 금식하고 하루 먹고, 또 일주일 금식하고 하루 먹고 하기를 몇달씩 합니다. 그러니까 나중에는 엉금엉금 기어 다닙니다' 하는 거예요. 그거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일어서면 핑 도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고 금식했으니 이제는 금식 안 하면 안 됩니까? 하는 거예요. 그러나 '어림 없어. 해야 돼. 죽을 때까지 해야 돼'라고 명령했더니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책임자를 두었기 때문에 구라파에서 독일이 지금 발전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리워서 눈이 붉어지고 강엿 같은 코가 줄줄 흐를 정도로 울어 보라는 것입니다. 복장이 전부 다 찢어질 정도로 심각한 길에서만이 하늘의 심정이 재발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기도를 몇 시간이나 합니까? 선생님은 못 해도 하루에 세 시간 이상 기도합니다. 요즘은 어지간하면 보통 새벽 두 시면 일어납니다. 요 며칠 동안은 일본 식구들이 와 있기 때문에 세 시 반에 준비해 가지고 네 시에 나와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기도해야 되는 겁니다. 선생님은 절대 주먹구구식이 아닙니다. 큰 문제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닙니다. 하늘의 협조와 더불어 합니다. 알겠어요? 나는 하나님께도 이런 얘기를 안 합니다. 영통한 사람들이 알고 그런 이야기를 하지, 선생님은 안 합니다. 선생님은 진리로써 틀림없는 다리를 놓고, 틀림없는 구색을 갖추어 가르쳐 주기 위한 길을 가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선생님만 따라오면 걱정이 없는 겁니다. 알겠어요?「예」 그런데 그렇게 좋은 것을 주면 좋은 것인 줄 알아야지, 눈이 어두워져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망의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후 2천년 동안 그의 제자들과 수많은 기독교도들이 억울한 순교의 피를 머금고 걸어 나오면서 이룩한 그 모든 가치 있는 세계적 기반과 여러분을 비교해 볼 때, 여러분은 그 이상의 기반 위에서 하늘의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말을 듣고 보니 사실이 그렇지요?「예」 사실이 그런 것을 느낍니까?「예」

그런 걸 느낀다면, 잠을 안 자고 동네방네 뒤져야 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할아버지가 있으면 할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세상에 없는 심각한 표정을 해 가지고 통곡을 해야 합니다. 나이 80이 된 할아버지라도 그렇게 해서 모셔야 합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는 고개를 넘어가게 될 때, '내가 이 고개를 넘어갈 때는 혼자 넘어가지만, 다음에 올 때는 이 고개 마루턱에 나와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해 봐요?

밤에 찾아가면, 오시는 교회장을 기다린다고, 밤을 새워 가며 모닥불을 피우고 기다리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라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거 못해 놓으면 저나라에 가서 고독단신이 되는 겁니다. 여기 그런 사람 있습니까? 거기에서 다 모여 떡도 같이 먹고, 같이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이것이 복귀의 길이요, 이것이 기쁨의 환경이요 터전인 것입니다. 이런 환경을 만들겠다고 마음으로 정성들이는 사람들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선생님을 생각하는 사람 있습니까? 하루에 몇 번이나 생각합니까? 하루에 한 번 이상 생각해 본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이거 솔직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모르는 줄 알아요? 선생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대해서 그렇지 않아요. 잠시도 무심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피곤해 가지고 잠을 자려고 하면 더욱 잠들 수가 없습니다. '아이구, 오늘은 피곤하니까 좀 쉬어야겠구나' 그런 때는 더 미안해 가지고 '당신은 왜 그렇게 불쌍한 하나님이 되셨습니까, 나에게는 24시간 가운데 잠잘 수 있는 시간이 있지만 당신은 6천년 동안 영계를 다스려 나오느라 쉴 시간이 잠시도 없지 않으셨습니까' 하면서, 쉴 새 없이 수고하며 비참한 역사를 도맡아 나오신 그분의 아들인 것을 느끼게 될 때는 이불을 못 덮고 엎드려 가지고 기도하다가 잠들 때가 많습니다.

또 그렇게 자다가 눈을 뜨게 되면 깜짝 놀랍니다. 여기는 밤이지만 서구는 낮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 시간, 동방에 있는 선생님의 이름을 받들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늘에 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 아니냐? 이런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 선생님은 선생님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심정적으로 빚 안 지려고 합니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한, 나를 원망하고 저주하는 사람은 좋지 않습니다. 선생님과 하나되고 선생님과 같이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춘하추동 계절마다 고깃근이라도 선생님께 드리고 싶어서 천리길도 멀다 않고 산을 넘고, 내를 건너 그것이 썩더라도 가져다 드리겠다고 하는 사람, 눈물과 더불어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내가 고기 먹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안 하면 여러분을 가르치고 지도한 것을 여러분이 도둑질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인 섭리의 터전에서 책임을 다하라

여러분이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신앙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받는다구요. 그러니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잘못한 것이 뭐 있느냐, 여러분과는 다르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외로울 때, 내가 고단할 때, 내가 어이없을 때에 인간의 위로는 못 받을 망정, 하나님의 위로는 받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어야 할 게 아닙니까? 그래야 발전하는 거라구요. 그러니 막중한 사명을 짊어진 우리는 이러한 엄청난 시대에 처해 있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

우리는 3시대의 사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에 그에 대한 책임을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노정이 6천년이 걸렸으니 6천년의 고빗길을 어느 한 토막이라도 잘라 가지고는 안 됩니다. 내가 눈을 깜박깜박하는 이 순간에, 내가 숨을 쉬는 이 순간에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눈이 얼마나, 내 입이 얼마나, 내 손이 얼마나, 내몸이 얼마나 하늘을 중심삼아 필요한 승리점을 이 순간에 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바쁘고, 하나님이 다급할 때, 또 하나님께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나와 의논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어려울 때 하나님이 아시고, 하나님이 어려우실 때 나를 불러 서슴지 않고 의논하고자 하실 때, 나도 서슴지 않고 응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어요? 여러분, 그렇습니까? 선생님이 무엇을 시키면 밤을 새워 가며 책임을 다하려 몸부림치고, 선생님이 부탁하는 것이라면 어려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 홀로 가겠다는 생각을 합니까?

그런 마음가짐으로 싸움 가운데서 세계적 책임, 이런 3시대의 책임을 현재의 순간을 중심삼고 다짐하는 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것입니다. 통일교회면 통일교회, 지방이면 지방에서 그 전통적 역사를 이어받을 것이고, 그런 사람이 후세를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예」 이처럼 우리의 사명이 엄청나니만큼 그에 비례해서 서 있는 무대도 큰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더우기 선생님과 관계를 맺은 이 시대는 길지 않습니다. 이젠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알고 금번에 여기를 왔다 감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혁신을 해야 되겠습니다. 자기를 좀더 재비판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춰 보면서 눈을 부릅뜨고 이 눈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생겼어, 입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생겼어, 입이 밥 먹기 위해서? 이 귀는 무엇 때문에 생겨났는지, 또 이 몸뚱이는 무엇 때문에 생겼는가를 비판해 보아야 된다구요. 그리하여 눈물과 피와 땀을 중심삼고 번영해야 할 현실적인 섭리의 터전에서 책임하는 여러분이 되어 주길 바라며 말씀드렸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고 가는 많은 세대 가운데서 한 많은 역사의 흐름의 고빗길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참다운 뜻을 품었던 저희의 선조들은 많이 죽어갔습니다.

선한 피를 뿌리면서, 한때의 승리의 날이 오리라고 천상을 우러러보며 죽음을 다짐하였던 역사적 시대 시대를 회고해 보게 될 때, 오늘의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총탕감하여야 할 현실적인 사명이 여기에 모인 통일교회 교회장들과 통일교회를 책임진 저에게 있다는 걸 생각할 때, 이 자리는 아버님 앞에 부족하고, 아버님 앞에 죄송스러운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기쁨의 자리가 천상의 인연을 이어 받들 수 있는 자리가 못 되거든, 그 기쁨의 자리를 저희는 도피해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생활이 아무리 처절하고 비참하다 하더라도 당신의 혈통적인 인연이 연결되어지고 옮겨질 수 있는 터전이면 저희는 이를 악물고라도 극복하여서 그 자리를 지켜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

3시대의 사명을 한 점을 중심삼고 결정지을 수 있는 순간은 저희 일생의 심각하고도 확고한 자리에서 결정짓지 않으면 안 되겠사온대, 결정적인 한 찬스에 결정적인 한 추를 달지 못한 저희 자신이 되었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언제 나라 없는 백성의 서러움을 느껴 보았으며, 언제 부모 없는 고아의 서러움을 느껴 보았으며, 언제 주인 없는 종의 입장에 서 봤으며, 언제 외로운 자의 입장에서 서러움을 느껴 보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겠사옵니다.

아버님은 언제나 그러한 자리에서 지금까지 역사를 수습해 나오셨고, 수많은 저희 조상들을 이끌어 나오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만이 과연 불쌍하신 분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한 분이 저희의 아버님인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의 마음 골짜기에서 흘러 내리는 서러움과, 움직여 나오는 동맥의 맥박이 저희의 마음을 통하여, 심정을 통하여, 심장을 통하여 울려 나와야 될 것도 저희가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의 피는 저희의 피로 말미암아 순환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의 피로 말미암아 움직여질 수 있는 피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희의 감정 또한 저희 자신의 감정으로 말미암아 움직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감정에 동화되어서 움직일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는 비참한 눈물의 자리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부여안고,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몸을 비비면서 이 한때의 한을 풀기 위해서 아버지께 호소하고, 아버지께서는 '너를 찾아왔노라'고 하시며, 서로가 의논하는 자리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그런 자리를 갖지 않고는 영계에 가더라도 자기 스스로의 면목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이 시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3시대의 부활권을 갖추어 가지고 그 책임 완결을 다짐하여야 할 현재의 가치권내에 있어서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실적을 갖지 않고는 저희들은 돌아갈 수 없는 불쌍한 무리인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던 당신의 아들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저희는 한 개인 개인으로 볼 때에는 불쌍한 무리이옵니다. 세계의 모든 것을 바라볼 때 의지할 곳 없는 고아와 같은 자들이옵니다. 그러한 외로운 자리에 선 것은 아버지와 같은 자리에 서기 위한 것이요, 그러한 괴로운 자리에 선 것은 아버지의 인연권내에 서기 위한 것이옵니다.

괴로우면서 괴롭다 말할 수 없고, 외로우면서 외롭다 말할 수 없고, 눈물 흘리면서라도 자기의 아픔을 잊어버리고 뭇 사람을 동정해야 할 입장이 책임자의 입장인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 입이 아버지를 부르기 위해서 고달픈 때가 얼마나 있었으며, 내 마음이 아버지를 사모하기에 하루의 모든 일과를 잊어버린 때가 얼마나 있었는가를 묻게 될 때, 그렇지 못한 자신이었사옵니다. 이것은 하늘을 안다고 하면서도 경거망동했던 자기 자신이었음을 재인식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하늘을 이용했던 자신을 다시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청평 이 지역을 당신이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곳에 처음 온 아들들도 있사옵니다. 정성들이는 이곳에 당신이 거동하시옵소서. 이번 기회로 말미암아 삼천리 반도 위에 새로운 불을 붙여야 되겠습니다. 이제 이 민족이 갈 수 있는 내일의 희망의 문이 어디 있느냐 묻게 될 때, 저희들이 그 열쇠를 갖고 있고 저희들 자체가 그 문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해서는 아니 되겠사옵니다.

저희 자신들이 민족과 종족을 개방시킬 수 있는 무리가 되어서 이 민족과 종족을 고이 인도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을 보내 놓고 기다리고 있는 어린 자녀들도 있사오니, 그들이 처하여 있는 교회 교회, 흑인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어린 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불쌍하다면 불쌍한 무리이옵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을 뒤에 두고, 남편을 뒤에 두고, 홀로 나가 있는 그들을 생각하게 될 때, 이번 이 기간이…. (이후의 기도는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도심지에 사는 사람들은 머리가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공기가 나쁜데… 더우기 문화인이면 문화인일수록 도심에 들어가 살지 않으려고 합니다. 공기가 나빠 그만 병이 든다는 겁니다.

​국제도시 및 수련소의 건설

​지금 선진 국가인 미국의 워싱톤을 예로 들어 보면, 75퍼센트 이상이 흑인가를 이루고 있습니다. 백인들은 전부 도시 주변에서 살고 있어요. 어느 정도 멀리에서 출근하느냐 하면, 100킬로미터 되는 곳에서 출근합니다. 100킬로미터나 되는 데에서도 자동차로 한 시간에 100마일로 달리면, 한 48분 내지 5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서울에서 대전 정도의 거리에 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알겠어요? 그런 곳에서 출퇴근하는 시대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머리가 부족하다는 거예요. 한국도 불원한 장래에 그런 시대가 온다는 겁니다. 그러니 도시를 중심한 주택가에서 사는 것보다도 20분 정도 걸리는 곳에서 살면 좋습니다. 그 정도 되는 거리는 참 재미있고도 묘한 거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이렇게 닦지만 앞으로 요 주위의 산을 전부 닦아서, 될 수 있으면 빨리빨리 여기 청평의 좋은 지역에 유원지를 만들려고 하고 있는 거예요. 다 만들고 더 만들 것이 없게 되면 하이웨이를 만들려고 합니다. 저기 청평댐밖에서부터 다리를 놓아 가지고 산을 타고 이곳까지 연결하는 자가용 하이웨이를 만들어 놓는 겁니다. 그러면 전부 다 딴 데 가라 해도 안 가게 될 겁니다. 한꺼번에 다 몰아넣어 가지고 전부 다 여기에 왕림하게 해서 돈도 벌고, 수련도 하고 일거양득하려는 것입니다.

앞으로 누구든지 여기를 안 와 보면 안 되게끔 할 것입니다. 여기에 국제 부락만 만들게 되면, 그 마을을 한번 구경하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소문나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앞으로 여기서 우리가 돈도 벌고, 장사도 하고, 또 수련도 하고 여러가지를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기에 옛날 정보부장 별장이 있는데 그 뒷산까지 우리가 사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술자를 시켜 이곳에서부터 케이블 카를 놓아 가지고 이곳을 아주 멋지게 만드는 겁니다. 옛날부터 여기가 새서울이 된다는 일화가 있는데, 그 말대로 여기에 새로운 서울을 만들려고 합니다.

내가 어저께 일본 식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누가 먼저 여기에 부락을 지을 것이냐고 했더니, '일본이 먼저 짓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일본이 먼저 지으면 일본은 맨 꼴찌가 되는 거예요. (웃음) 가만 생각해 보니 그렇다는 거예요. 먼저 짓는 편에서 잘 짓더라도 나중에 짓는 쪽에서 그걸 표준으로 해서 거기에다 뭐 하나라도 더 붙여 가지고 잘 짓게 되어 있지, 못 짓게 안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맨 꼴찌가 되어도 먼저 지을래? 이래 가지고…. (웃음) 이제 그런 곳을 만들려고 한다구요.

여기에 하이웨이를 놓고 국제 부락을 만들어 가지고 한 일년쯤 머물게 하면 여기에 왔던 사람들은 민족관념이 강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되겠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백 나라 사람들이 전부 다 살 수 있는 종합아파트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한꺼번에 추첨을 해서 삼위기대를 맺어 줘 가지고 그 아파트에서 3개윌쯤 살고 가게 하는 겁니다. 그러한 세계적인 아파트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구라파인들이 와서 생활해도 불편하지 않을 만큼 모든 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농사만 지어 먹고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일하고 싶지는 않지요? 일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안 하고 싶습니다」 안 하고 싶어도 할수없이 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한국에서 뭐 농사지어 먹고 사는 때는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 이제는 세계적으로 통일교회 식구가 점점 많아질 것입니다. 독일 사람이 왔다 가고 지금은 이태리 책임자가 와 있는데, 앞으로는 구라파 일대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에 와 보지 않으면 위신이 안 선다는 것입니다. 왔다 간 사람들은 뽐내고 다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너도 나도 경쟁이 붙을 것입니다. 중요 식구만 왔다 가게 된다면 못가는 사람은 위신이 서지 않는 때가 온다는 겁니다. 통일교회 식구라면 어느누구든지 한국을 빨리 왔다 가야 체면을 세울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순식간에 선전이 되는 거라구요. 그렇겠지요?

이렇게 되면 앞으로 바빠질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본부가 상당히 바쁩니다. 외국 사람이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내가 시간이 없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닐리리 동동' 하며 줄을 잇고 있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전부 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김포공항을 왕래하는 외국 사람들은 우리 식구 외에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을 모셔다가 한 두 시간 반 거리 되는 명승지는 전부 다 다니는 겁니다. 팔도의 강산을 다 거쳐서 구경하게 하는데 버스는 한 두 시간 반 거리면 됩니다. 세 시간은 지루합니다. 이 정도의 거리를 연결해 가지고 전부 다 관광시켜 주면, '한국은 그야말로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돌려보내게 되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한국을 자랑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여 외국의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의 사돈네 팔촌 되는 사람들이 아시아를 거치게 되면 전부 다 한국에 안 올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판국을 그냥 그대로 이용하자는 거예요. 곳곳의 호텔과 연락해 가지고 한 40일 코스로 프로를 짜 가지고 쭉 일주하게끔 해서 돌려보내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전부 우리 신세를 지게 되기 때문에, 우리 하자는 대로 해야지 별수 있어요? 그러니 거기에 프로를 전부 다 짜 가지고 원리 사상을 집어넣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그 사람들에게 안팎으로 선전해 가지고 우리 통일교회의 친척들까지도 전도하게 하자는 겁니다. 이렇게 그 사람들을 전도해 가지고 그들에게 전부 다 관광국으로서는 스위스 같은 나라보다 한국이 더 좋다는 소문을 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관광객을 유치해 가지고 벌어먹고 살아야 된다구요.

선생님이 60년대에 21일노정을 걸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거 알지요? 이런 길을 앞으로 일본 사람에게 답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21일 코스는 개척 당시에 선생님이 핍박받으면서 털렁털렁한 지프차를 타고 산골길을 다녔는데, 이 길은 성지니만큼 너희들은 신발 벗고 걸어라' 하면 맨발로 걷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일본 사람들을 전부 다 줄지어 '닐리리 동동' 해가지고 출발하게 하고, 그 다음 곳에서 또 출발하게 하고, 그 다음에 기다렸다가 또 출발하게 하고…. 이렇게 해 놓으면, 삼천리 반도 삼지사방에 기다리는 사람이 길을 메우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바통제로서 돌아가게끔 해 놓고 일본이 끝나면 그 다음엔 미국, 이렇게 서로 경쟁하게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성질 급한 사람은 '이거 어디 여기서 기다리겠나' 하면서 날아와 가지고 미리 기다리는 거예요. 선생님이 순회하던 코스를 그렇게 맨발로 걷게 할 때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이 지금 그 길 다닐 때 신발을 벗지 않고 걸어다니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앞으로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두고 보세요.

이스라엘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 보니 박물관장이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이 쓰시던 젓가락 짜박지 부러진 쇠붙이 하나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미국을 줘도 안 바꾼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는 겁니다. 예루살렘에 가 보면 우습습니다. 성경 66권의 내용이, 시온성이니 다윗성이니 하는 것이 예루살렘의 안팎 20리 가운데 다 들어 있습니다. 아주 형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루살렘을 순방하는 크리스찬을 보면, 길을 걷는 것도 조심스럽게 걷고 별천지 천국에 들어와 살림살이를 시작하는 기분을 가지고 미쳐서 돌아다닙니다.

그걸 보게 되면, 앞으로 이 나라 한국이 얼마나 멋질 것이냐 이겁니다. 또 메카 같은 곳도 지금 회회교의 순례자들이 그 사막지대를 계속 연달아 순방하고 있는 것이 사실 아니예요? 그런 걸 보면 그보다도 더 굉장한 한국이 될 게 아니냐 이겁니다. 그러니 한국을 잘먹고 잘살게 만들어 놓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니 관광지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국제 부락을 만든다면 그 관리인은 누가 되겠습니까? 각기 그 나라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될 것이냐? 앞으로 가정들이 여기 와 가지고 책임지고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정들은 자연히 별장, 좋은 고급주택에서 안 살래야 안 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관리인들은 전부 가정들이니만큼 통일교회의 산 인간문화재와 마찬가지입니다. 가정들은 우리 통일교회 역사를 중심삼고 문화재와 같은 역사를 가졌기 때문에, 순례자들에게 통일교회의 역사를 가르쳐 주고 그들을 지도해 줘야 됩니다. 개인은 어떻게 살아야 되며 가정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역사를 풀어 줘야 합니다. 그럴 때가 불원한 장래에 온다는 것입니다.

이곳 땅덩어리를 지금까지 얼마나 샀느냐 하면 한 90만 평도 못 샀습니다. 그러니까 14분의 1밖에 못 샀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나 현재 여기서 보이는 땅 중에서 입지 조건이 좋아 별장이라도 지을 수 있는 곳은 8할 이상이 우리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여기에 투자한 금액은 여기에 있는 산을 천 3백만 평 정도 살 돈하고 맞먹을 거예요. 이것만 만들어 놓게 되면 앞으로 백년 계획이 실현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산들이 전부 명산입니다. 앞으로는 보트 같은 것이 다닐 수 있도록 산에 굴을 뚫어 가지고 운하를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좌우편 기슭엔 자동차를 달리게 하고, 그 옆에는 호텔을 짓고, 강가 밑으로 들어가 근사한 지하호텔을 만들 겁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전부 다 한번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해 놓고, 여기를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데도 값을 비싸게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가운데에는 엘리베이터를 만들어 가지고 관망대 꼭대기에 올라가서 쓰윽 내려다보며 기분 낼 수 있게끔 아주 잘 만들려고 합니다. 알겠어요? 그러한 판국이 여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수련소를 짓기까지의 일화들

본래 여기에 수련소를 지으려고 한 게 아닙니다. 여기에 천막을 쳐 가지고 목사들 공청회 장소로 쓰려고 했습니다. 아 그런데, 이건 비가 와 가지고 구질구질하고 철철철 하게 되니, 기가 막히더라구요. 천막 세 개를 사다 쳐 놓고 가만 보니까, 이러다가 통일교회는 또다시 죽도록 복귀, 욕 복귀를 해야 되겠더라는 겁니다. (웃음)

원래는 7월 말께쯤이나, 8월 초부터 지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어요. 방송을 통해 일기예보를 들어 보니 7월 중순부터 우기에 들어간다고 하니까, 비가 와서 땅이 철떡철떡하게 된다면 안팎으로 곤란하겠어요. 그래서 할수없이 '7월 2일부터 하자' 해 가지고 시작한 겁니다. 7월 10일까지 했는데, 칠하느라고 이틀이 더 걸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은 기간은 열흘간이지만 8일만에 지은 셈이라구요. 12일부터 공청회를 하는데 그날까지 했으니까, 한쪽에서는 칠을 하고, 뭐 어떻게 저떻게 해 가지고 망신을 면하고 공청회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다음에 원리연구회 집회, 그 다음에 성화 고등학생 집회, 그 다음에 교수초청 원리세미나, 임자네들이 다섯 번째라구요. 알겠어요?「예」

여러분 중에 처음 와 가지고 '이게 뭐냐?'고 그랬다가는 지금까지 수련받고 간 사람들이 참소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마음 갖지 말라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서 이 집을 짓기 위해서 수고한 패들이 저 꽁무니에 지금 떡 버티고 앉아 있는데, 감히 불평하게 되면 멱살을 잡을지 모릅니다. '뭐야, 이놈의 자식아, 남자가 돼 가지고 그렇게 편안히 앉아 가지고 그래? 우리는 땀을 흘리며 얼마나 애썼는데' 하고 말입니다. 거기 누군가! 거기에서 등이 제일 새까만 사람 옷 한번 벗어 봐! 일등이라는 사람 한번 벗어 보라구. 뒤로 돌앗! (박수) 흑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흑인이 먼 나라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사시장철 저렇게 태양 빛만 쬐면 흑인되는 거지, 별것 아니라구요.

이 집 지을 때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구요. 이거 8일 동안, 10일까지 지어 놓지 않으면 무슨 취재단에 알릴 수 없게 되겠다는 거예요. 그러니 10일까지는 지어야 할 텐데, 비는 왜 자꾸 오는지 그 놈의 비가 원수예요. 쉬지 않고 들이 내려치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집 안 짓겠다고 나가자빠지게 돼 있어요? 그러니 큰일났거든. 여기에 뭐 함바(飯場:공사현장의 노무자 합숙소)를 만들어 가지고 쓰려고 했는데, 지붕 뚜껑을 덮어 놓으니까 비가 철철 새니 그것도 망신이지, 그렇다고 천막도 안 되지, 별수있어요? 그러니 짓는 데는 외고집밖에 없다는 거요. 또 땅이, 이쪽 여기가 전부 산이었습니다. 땅이라고는 선생님이 조그마한 천막을 쳤던 곳인데 조그마한 실뱀 꼬리만한 자리밖에 없었습니다. 이걸 전부 몽땅 파내고 매축(埋築)하면서 집을 지어야 되니, 얼마나 복잡했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그리고 제목을 실어오기는 해야 되겠는데, 그때 배가 고장이 났어요. 그게 사탄의 역사지, 그 놈의 배가 한 이틀 고장이 났구만요. 또 슬레이트를 가져오라고 연락을 하니 '된다 된다' 하면서 가져오지 않는 것입니다. 내일 쓸 것을 오늘 저녁에 가져온다고 했는데, 오늘 저녁에 가져오긴 뭘 가져와요. 이러길래 내가 복닥불이 나 들락날락하면서 야단해 가지고 밤 9시쯤 돼서 배를 하나 특별히 교섭해서 전세를 내 가지고 물건을 싣고 여기 도착한 것이 한 시였다구요, 밤 한 시. 한 시인데, 물건을 다 내려 놓고 보니 서너 시가 다 됐어요. 아마 그 뱃사공들은 슬레이트를 다 배에서 내리려면 댓 시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침에 배를 가져가려고 척 와 보니까 슬레이트가 다 없어졌더라 이겁니다. (웃음) 그래 자기는 비가 와서 슬레이트가 젖으면 안 되겠으니까 임시로 그 위에다 덮어 두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웬걸, 지붕 위에 누가 올라가서 잡아 주지도 않는데 슬레이트가 그냥 그대로 버티고 있거든요. 그래서 슬레이트를 가만히 보니 못을 다 박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집을 도깨비집이라고 합니다. (웃음)

지금 여기 청평에 별장 하나를 크게 짓기 위해서는 3년 걸립니다. 보통 일년 반이 걸립니다. 여기 동네 사람들 이용해 가지고 지으려고 하면, 그들이 일을 잘해 줄 것 같습니까? 곡괭이 쓱 들고 왔다가 시간이 되면 궁둥이 툭툭 털고 가 버립니다. 그런 사람들이 선량하게 일하려고 하나요? 서울 사람들 등쳐먹는데 소질 있는 사람들이라구요.

축대 쌓는 데는 동네 사람들을 데려다 시켰더니 맨 처음에는 빈둥거리는 거예요. 일하는 걸 보니 내가 눈꼴이 시려워서…. 그들이 보기에 내가 대장 같이 보이거든요. 대장위신상, 체면상 못 본체 했어요. 그런데 요 며칠 동안 떡 그래 놨더니 이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교육을 받는 겁니다. 청년들을 가만 보니까, '자, 지붕에 올라가서 슬레이트를 올리자' 하고 뚝딱뚝딱하면 슬레이트 올리는 선수가 되고. '자, 가쯔오기(かつおき)를 만들자' 해서 뚝딱뚝딱하면 목수가 되면, 또 '베니어판 대고 못을 쳐라' 하면 척 해 놓고, 뭐 못 하는 게 없거든요. 만사에 능통이다는 거예요. 우습게 알던 젊은 놈들이 가만히 보니까 이거 굉장하거든요. 그래 가지고 자동적으로 교육받아 가지고 가면서 '아이구 가만히 보니까, 무서운데' 하는 것입니다. (웃음)

이렇게 2주 이내에 후닥둑 지었어요. 별장 같은 집이 일주일에 나왔거든요. 집을 짓는 것 같더니 다음 주에 와 보니 굉장히 훌륭한 집이 떡 되어 가지고 뭐 대학교수니, 목사니, 고등학생이니, 대학생이니 하는 떼거리가 밀려들어간다 이거예요. 그러니 주위 판국과 대조적이라 이겁니다.

여기 '청평' 하게 되면 정보부에서도 골치를 앓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서울의 부르즈와(bourgeois)들, 아주 호화판 패들이 와서 전부 다 보트장을 만들고, 별장 같은 것 만들어 가지고 기세를 부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가 그런 곳이라구요. 그런데 통일교회가 땅을 샀으니 통일교회도 별장 짓고 그럴 줄 알았는데 후닥닥 해 가지고 수련소를 떡 지어 놨다 이겁니다. 그리고 수련소에 대학생으로부터 교수들까지 왔다갔다하니 소문이 났다 이겁니다. 대조적이라는 겁니다. 말없이 한번 들이받는다는 거라구요.

이렇게 떡 해 놓음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우리가 비행기를 갖다 놓더라도 우리를 용서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건 수련소용이라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가평경찰서의 보안과장, 정보과장도 와 가지고 축사도 해주었기 때문에 이제 국제승공연합 수련소라고 군 전체에 소문이 난 것입니다. 또 중앙에 보고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계획대로 다 되었습니다. 여기서 찬송을 하더라도 국제승공연합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웃음, 박수) 여기에 정보부장 이후락씨의 별장이 있지만 그 사람도 놀러와 가지고 벗어제치고 보트 타고 다니면서 자기들 자랑하게 안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아주 잘됐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노는데 여기서는 교육을 하고 있으니까 큰소리 못 치게 되어 있다구요.

또 이렇게 '와' 하고 많은 패들이 모여들면 어떻게 되느냐? 이 근방 사람들이 '여기에 통일교회가 집을 짓기 위해서 손을 댔으니까 이제는 땅 값이 올라간다' 해 가지고 꿈꾸는 사람들이 많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여기 와 가지고 꿍창꿍창 밤낮없이 떠들고 보트를 타고는 안 가는 데 없이 왔다갔다할 테니까 여기에 별장 짓기는 다 틀린 겁니다. (웃음)

그렇게 되면 처음에는 땅 값이 올라가는데, 한 이태쯤 기다려 봐도 안 올라가게 되면 땅 값은 내려가게 돼 있다구요. 그러니 그런 것도 작전상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래저래 이 수련소 짓는데 한 4백만 원쯤 들었다구요. 그렇지만 이 땅값이라든가 그외 모든 전체를 이해타산해서 비교해 볼 때 절대 마이너스는 안 되게 돼 있습니다. 급조의 건물을 완성했다는 거예요.

이 집이 어떤 집입니까? 다른 별장에 사는 사람들이 와 보니, 전에 없던 자기들 집보다 더 큰 집이 있으니까 '저 집이 어떤 도깨비집이냐'고 한다는 거예요. (웃음) 이 집이 그런 집이라구요. 이런 집에 와 가지고 여러분이 수련받고 있는 거예요. 이 배후에는 여러분이 모르는 일화가 많습니다. 비가 내리는 밤에 철야작업을 한 적이 많았어요. 어떤 때는 아침 여섯 시까지도 작업을 했습니다. '그래, 밥을 먹어라, 잠 자라' 그래 놓고는 눈 감으려고 하면 '떠라' 이러니, 눈을 감은 때가 없었던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이 집을 지은 것입니다.

수련기간에 지켜야 할 주의사항

여러분들은 지방에 있는 교회장들입니다. 임자네들은 교회장이지요?「예」 교회 장사가 아니고 교회장들이라구. 알겠어요?「예」 산 송장이 아니고 산사람들이라구. 그러니만큼 이런 역사를 알고 교회장답게 훈련을 받아야 되겠어요. 여기에 와 가지고 맨 처음부터 설치고 목욕이나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목욕했다가는 큰일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여기가 위험한 곳으로 청평 관내에서 유명한 곳입니다. 알겠어요? 목욕하러 들어갔다가는 나무아미타불 되는 겁니다.

여기가 위험지구입니다. 이곳은 수심이 70미터입니다. 가평이나 홍천에서 내려오는 물이 여기 와 부딪쳐 가지고 돌아 나가기 때문에 물의 흐름이 아주 복잡합니다. 그러기에 수온이 일정치 않아요. 수면은 따뜻하지만 들어가게 되면 1미터마다 수온의 차가 몇 도씩 벌어지기 때문에 심장마비를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얼마전 어느 대학교 수영선수라는 사람들에게 여기서 저쪽을 갔다 오라고 운동을 시켰는데 중간에서 '어 어 어…' 하는 것입니다. 헤엄을 잘 치더니 중간에 엎드려서 '어 어…,' 해서 처음에는 장난하는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까 자꾸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끌어올려 놓고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수온이 갑자기 차져서 신경이 마비되어 발이 움직이지 않더라는 거예요. 그런 지역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여름에 모여 가지고 수련회 한다고 교회장이 가더니…. 그런 소문나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일이 있으면 어떡하겠느냐 말이예요. 온도 차이가 격심하니 특별히 주의해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절대 수영금지야.

그 다음에 이거 뭐 우리 선창이고 우리 배니까 한번 타 봐야지. 안 타면 배가 울 텐데 하는 생각 하지 말아요. 척 보면 잘 안다구요. 알겠어요? 왜냐하면 잘못되면 큰일난다는 겁니다. 여기가 관광지대니만큼 서울에서 기분내는 바람기 있는 패들은 한번 와서 기분 내려고 하는 곳입니다. 그들은 보트를 타는 데도 남들 많이 탈 때 타려고 하지 않습니다. 밤에 신나게 타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그들은 남 안 하는 것을 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에 배가 있겠으면 있어라. 나 기분 좋으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밤쯤 되면 한잔씩은 들이킨다는 거예요. 눈이 불그레하게 충혈되어 가지고 나 기분이 좋으면 좋다 하게 되니 옆으로 달리는 디젤엔진 단 보트를 들이받기가 일쑤라구요. 알겠어요? 그래 깜깜한데 부딪쳐도 알 수 있겠어요? 모른다는 것입니다. 배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거기 사람이 있는 줄 알겠어요? 다행히 보트 타는 사람이 불이라도 켜 놓으면 모르지만…. 그런 패들이 있기 때문에 참으로 위험하다는 겁니다. 사고라도 한번 크게 나서 보트가 뒤집히면 아무리 수영을 잘해도 거기서 기절하는 겁니다. 배가 부딪혀 뒤집히면 빠르게 달려온 배가 뚫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트가 달려와 들이받으면 큰일나는 거라구요. '나는 수영을 잘하기 때문에' 천만에, 그렇게 안 된다 이겁니다. 깜깜한 밤에 사고가 나면 겁이 먼저 앞서게 되어 수영할 생각도 잊어버린다구요. 약한 생각이 대번에 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아주 위험합니다. 밤에는 절대 보트 타지 말아요. 알겠어요?「예」 내 말 잘 들으면 나중에 모터보트 한 번씩 태워서 구경시켜 주고 보내려고 합니다. 정히 타 보고 싶거든 드럼통을 연결해 가지고 보트 대신 밀고 왔다갔다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웃음) 그러니까 배 타지 말 것! 그 다음에 뭡니까?「수영하지 말 것」

그러면 여러분은 '이제 기분 잡쳤구나' 하겠지요? '여기 청평 오면 기분내려고 했는데, 이거 뭐 다 틀려 먹었구만' 하겠지요? 기분 잡쳤기 때문에 그대신 먹을 것은 잘해 줄 겁니다. (웃음) 알겠어요?「예」 슬픈 땀을 흘리면 기쁨이 있는지 모를 테니까 말이예요.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이냐? 반성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가만히 보니까. 교회장들이 책임 못 했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책임을 했다고 봐요? 반성해 보라는 겁니다. 이 1970년대에 우리들이 맡은 바의 책임, 하늘이 요구하는 기준 앞에 있어서 맡은 바의 책임을 다했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무자비하게 비판하고 반성해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내가 될 수 있으면 시간 있는 대로 여기에 와서 있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알고 여러분은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길을 닦아요. 선생님이 오래지 않아 외국에 갔다 올 계획입니다. 그 기간에 할 일을 대충 알려 줄테니 모두가 배가의 노력을 기울여 봐요. 그렇게 하려고 임자네들을 데려 왔다구요. 그러니 이번 기간이 중요한 기간인 줄 알고 귀하게 보내야 되겠어요.

이곳을 가만히 둘러 보세요. 여러분 언제 한번 돌아다녀 보면 이곳이 참 좋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내가 지난번에 세계를 돌아다녀 보고 스위스 알프스 산정까지 다 올라가 보았지만 이만한 데가 없었습니다. 어느 누가 오더라도 그런 말을 할 겁니다.

새로운 소망을 갖고 활동하라

요전번에 사사까와를 여기에 데리고 와서 한번 구경을 시켰더니, 일본에 돌아가서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선견지명이 있다고 하더라나요. 남들은 교회 짓기가 일쑤인데 그렇게 땅을 사는 걸 보면 참 생각이 다르다고 칭찬을 하더라는 거예요. 사실 와 보니 참 좋거든요.

이러한 세계의 운이 새로이 싹트려고 하는데, 교회장 여러분들이 여기와 가지고 한번 정성들이고 마음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늘 앞에 새로이 출발한다는 것은 큰 의의가 있습니다. 이런 것 저런 것을 미루어봐서 여러분들을 여기에 모이게 했으니, 여기에 집합한 그 본의에 어긋나지 않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각자가 노력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알겠어요? 「예」 땅은 내가 살 거니까.

앞으로 내가 여기에 모터보트 회사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멋진 별장도 짓고, 하이웨이도 만들고, 이 근방에 있는 산에 고급주택도 지으려고 합니다. 3천평 이상 되는 부지에다 1억쯤 되는 고급주택을 지어 가지고 우리가 재미있게 살고, 외국 사람들도 와서 이렇게 짝짝쿵 어울려서 살게 할 것입니다. 앞으로 사람들은 자기 아들딸을 전부 다 통일교회에 집어 넣으려고 한밤에 찾아와야 할 것입니다. 낮에는 우리가 시간이 없으니까, 밤에 찾아와 가지고 자기 아들딸을 소개하며 교회에 넣어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 때가 불원한 장래에 오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 이곳이 좋은 곳이라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알고, 여러분이 이곳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움직이기 바랍니다. 앞으로 전국의 활동 무대에 이러한 인연을 연결시킬 수 있는 좋은 곳이 이곳인 줄 알고, 그런 인연 가운데 생활해 주기를 바래요.

그래, 이번 수련이 5일간인가요? 4일간이지. 「만 5일입니다」 오늘 밤은 남은 것이 아니라구. 오늘 저녁을 빼놓으면?「만 4일 남았습니다」 만 4일간인데, 여러분은 한 10일쯤 했으면 좋겠다고 할 거라구요. 선생님이 기분 좋으면 5일이 10일 될지도 모른다구요. 그렇게 되면 또 걱정이 되겠지요? 교회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말이예요.

즐겁고 기쁘게 수련 받아야

이제 일본 식구가 내일 모레쯤엔 여기에 올 것입니다. 그들이 와서 '아이고 일본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 한국에 있는 젊은 제자들만 모아 가지고 항상 같이 다니는구나, 그런 선생님이 어디 있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골치 아프게 되었다구요. 매일같이 왔다갔다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이번 모임의 본의에 어긋나지 않게 착실히 지내 주기를 바랍니다. 알겠습니까?「예」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또 이번 기간에 이렇게 보내게 되어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벌 받아야 됩니다. 나는 절대 기분 나쁘게 있다가 가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됐습니다. 그 대신 여기 있는 임자네들은 누구든지 기분 나쁘게 해줘라 이겁니다. 잠을 자다가도 발을 모가지에 걸치고…. 알겠어요? (웃음) 기분 나쁘게 해줘도 절대로 기분 안 나빠하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손들었지요? 손 든 것 모르는 사람 손들어 봐요. (웃음) 확실히 아누만.

이제 오늘 저녁부터 이 동네에선 웃으면서 살아야 됩니다. 찡그리고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보이기만 하면 선생님이 우리 효진이를 시켜 가지고 '저 녀석 궁둥이를 패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들이패면 '아이쿠, 이건 뭐 선생님 아들인데, 여기가 무슨 노가다판이야, 뭐야? 왜 그래' 이렇게 되면 낙제라구요. 알겠어요? 이번 여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기분 좋기 위해서 모인 거라구요. 그러지 않으면 우리 교회가 상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는 선생님이 그 동안 정성들여 온 곳입니다. 1967년부터 지금까지 4년째 정성들여 온 곳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여기 와 가지고 하룻밤 자는 것도 영광인데, 여기에서 시비가 붙어 가지고 꺼덕꺼덕하는 사람은 벼락을 맞아야 돼요. 그러니까 아무리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기분 나쁘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라구요. 지내다 보면 혹시 밥을 안 주게 될지도 모릅니다. 밥을 안 줘도 밥을 먹은 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저 최상희인가 누군가, 최상희가 최상으로 기뻐하겠구만. 「최상홍입니다」 최상홍인지 뭔지, 어때요? 절대 기분 나빠하면 안 되는 겁니다. 알았지요?

그 대신에 여기는 잠자리도 마땅치 않고 그러니 잘 때는 러닝샤쓰도 벗고 팬티만 입고 자도 괜찮아요. 이 같은 여름에 지금 서울에서는 더워 가지고 헉헉거리며 다니는 판인데, 여러분은 이불 덮고 잘 수 있습니까? 탕감복귀를 알고 그 사람들을 구해 줄 사람들이 이불 덮게 돼 있느냐 말이예요. (웃음) 아뭏든 하룻밤만 재워 놓으면 다시는 덥다고 안 할 거라. 여기는 모기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기가 더워서 없어요, 추워서 없어요?「추워서 없습니다」 암만 배를 내놓고 자더라도 뭐 하나 와서 물어뜯을 것이 없다 이겁니다. 저녁에 한번 지내 보면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저녁을 생각하고 덥더라도 덥다는 생각 하지 말라구. 알겠어요?「예」

통일교회는 벌거벗고 예배본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저기 뒤에 있는 수련생들은 진짜 팬티만 입고 예배드린 적도 있었다구요. (웃음) 습관이 되어서 지금 그렇게 입고 앉아 있으니 죽을 지경일 것이구만.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게는 안 돼! 수련생들 어때요? 임도순이 덥지 않아요? 임도순이 어때? 더워, 안 더워?「몸이 찌뿌드드합니다」(웃음)

자, 기분 좋게 지내겠다고 약속을 했지요? 여러분, 여기까지 오면서도 기분 좋았지요?「예」 저기 설악에서 걸어온 사람들 기분 좋았어요?「좋았습니다」 50분 동안 헐떡헐떡거리며 왔는데 기분 좋았어요? 할 수 없어서 걸어왔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기분 좋게 해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 버스가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면 여러분이 갈 때 서울까지 버스로 태워다 주겠습니다. 그러니 길을 닦고 가겠어요. 그냥 가겠어요? (웃음) 웃고 마는 걸 보니까 팔자가 풀린 모양이구만. 그러니까 고맙게 생각해야 된다구요.

그런 일을 하면 곤란할 테니, 아무 말 하지 말고 이래도 고맙고 저래도 고맙고…. 여기선 웃고 기뻐하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선생님이 지금까지 터닦은 것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이곳 사탄들도 조용해질 것입니다. 여기는 물귀신들이 참 많습니다. 한꺼번에 80명이나 되는 물귀신들이 '아이고 이 청평 골짜기에 통일교회 교인들이 많이 들어오니, 우리 한번 구경이나 합시다' 하면서 목을 쭉 빼고 바라볼지도 모릅니다. (웃음) 절대 그런 귀신의 말 상대가 되어 가지고 곤란한 입장에 떨어지면 안 되겠어요. 그러니까 기쁘게 지내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절대 기분 나빠하지 말아요. 오늘부터는 기쁜 마음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알겠지요?「예」 서로가 기쁜 마음을 가지고 이번 기간을 지내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렇게 안 하면 선생님은 다른 데로 가서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일본 식구가 오게 되는데 내가 거기 가서 계속 있겠어요.

자, 그러니 매일 기분 좋게 지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이 집을 짓던 사람들이 서운해하지 않게 돼요. 그 사람들, 어떤 때는 보면 일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내가 안 보는 것 같아도, 매일같이 쓱 표정만 한번 살펴보면 다 알아요. 감정 파악이 빠릅니다. 저 녀석은 요즘에는 조금 났구나, 저 녀석은 요즈음 조금 내려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다 압니다. 일부러 이야기는 안 하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지금 와서는 '우리가 공로의 장군들이 아니오' 하고 당당코 뒤에 떡 버티고 있다구요. 그 사람들이 수고한 것을 보아서라도 여러분은 기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그들도 기분이 좋을 게 아니겠어요?

그 사람들은 현재 교회장도 아니지만 특별히 고생한 거라구. 오히려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번에 수고한 사람들을 대신 교회에 배치할 것입니다. 그러니 기분 좋게 이 교육을 마쳐야 되겠어요. 약속하는 겁니다. 알겠어요?「예」

그리고 노래를 부르더라도 비관적인 노래는 하지 말아요. 기쁘고 쾌할한 노래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사고 방식을 새로이 개조해야 되겠어요. 오늘이 어렵더라도 웃고, 굶어 죽더라도 웃고 죽자 이겁니다. 이제는 그런 사상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선생님과 약속했어요?「예」 그럼 그렇게 알고 그렇게 나갑시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전국에 있던, 당신의 책임을 짊어진 어린 아들들이 여기 모였습니다. 이번 이 수련기간에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뜻만을 나타내게 하시옵소서.

여기 처음 온 아들들도 있사오니, 그들의 마음 가운데 새로운 결의를 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저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당신은 이와 같은 준비를 하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이 자리의 배후에는 당신의 눈물어린 곡절과 사정이 엉클어져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저희들 앞에 부여한 이 기간을 의의 있는 수련기간으로서 아버지 앞에 곱고 아름답게 바쳐 드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부터 모든 전체를 맡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뜻하시는 대로, 경륜하시는 대로 이루시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은 선생님을 통하여 한 남자에게 한 여자가 택해져 가지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축복이 여러분 일대에 있어서 만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여러분 일대의 인연만을 통해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슬픔의 터전이 된 아담 가정

​타락한 아담 해와가 상대의 인연을 맺어서 출발한 그 가정은 하나님과는 전연 관계가 없습니다. 그 가정은 하나님이 지극히 슬퍼하는 터전이 되었고, 반면에 원수인 사탄이 모든 권리를 주장하고 모든 권한을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타락론을 통해서 배웠을 것입니다. 타락은 개인과 개인, 즉 한 남자와 한 여자로 말미암아 빚어진 것이지만, 그것은 비단 한 남자와 한 여자에 한한 것만이 아니고 역사적이요 천주사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아담과 해와가 이룬 가정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가정임과 동시에 인류시조에게 있어서 최고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터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고통이라든가 낙망이라든가 혹은 탄식하는 것들을 보고 느끼지 아니하고, 기쁨과 행복만을 느끼며 영원을 소망삼고 하나님의 직접주관권내에서 하나님의 주관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런것 전체가 저끄러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다시 복귀해야 하는데 그것을 복귀하는 데 있어서는 결코 그냥 그대로 복귀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창조원칙에 따라서 복귀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복귀역사를 보면 재창조역사를 통해서 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는 천사장이 있고 해와가 있고 아담이 있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의 형태를 갖춘 자리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타락을 했기 때문에 복귀하는 데 있어서는 재창조원칙을 통해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복귀역사는 남자가 담당해 나왔던 것입니다.

종교가 해야 할 사명

그러면 남자를 통해서 무엇을 해 나오셨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타락하지 않은 종, 다시 말하여 인간 앞에 충성하고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는 종 중의 종이 되어야 할 천사장이 그러한 종이 못 된 것을 복귀하기 위한 역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종교를 통하여 하나님은 천사장 터전을 확대시켜 가지고 하나님과 인간 앞에 충성을 다해야 할 책임을 못 한 종의 입장을 복귀하기 위해, 하나님과 인간 앞에 충성을 다할 수 있는 대표자를 선출하기 위한 역사를 해 나오셨습니다. 그것을 위하여 나타난 것이 지금까지의 종교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종교가 반드시 찾아야 했던 것은 무엇이냐? 앞으로 올 메시아입니다. 아담 가정이예요. 하나님은 인간을 지을 때 아담을 먼저 짓고 그다음에 해와를 지었습니다. 순서가 그래요.

천사장격 사명을 할 수 있는 판도를 넓히기 위해서, 천사장을 복귀하기 위한 세계적인 대표자를 구하기 위해서 종교를 세워 나왔다고 했는데, 그러면 그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 곧 종교가 바라는 소망이 무어냐?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지 않고 충성을 다하던 천사장의 입장을 완결짓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영원히 신임받을 수 있는 종으로 결정됨과 동시에 아담 앞에 영원히 충성을 한다는 조건을 결정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종교로서 찾고자 하는 천사장의 입장을 완전히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역사나 유대교의 역사과정에서 당대를 책임졌던 제사장들은 어떤 사명을 했느냐 하면,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모시기 위한 국가적이요 세계적인 판도를 넓히기 위한 기초작업을 해 나온 데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기필코 와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귀원칙, 창조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장이 복귀된 기준 밑에서,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담을 사랑하고 사람 앞에 영원히 종이 될 수 있음과 동시에 하나님 앞에 충신의 사명을 할 수 있는 종교적 대표자들이 나와야 됩니다.

세례 요한의 입장과 사명

그러면 그러한 대표자가 누구냐? 유대교를 두고 볼 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러한 대표자는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냐 하면, 수많은 종교권에서 하나님이 세계적으로 선택한 대표적인 천사장형으로서, 천사장의 사명을 완결지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를 중심삼고 죽든지 살든지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그의 생명이 존속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요,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 아들을 위해서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 요한은, 에덴에 있어서의 천사장이 아담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하나님과 아담을 대신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태어나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존속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기뻐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빼놓고 기뻐한다면 그 기쁨은 하나님과 하나될 수 없는 것이며, 그가 아무리 가치적인 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예수를 만나서 가치적인 인연을 맺어 가지고 예수가 기뻐할 수 있는 가치의 내용과 접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빼놓고서는 그가 아무리 가치적인 생활을 했고 또 그의 생애가 아무리 거룩하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사랑하여 아담 때문에 천사장을 지었으므로 세례 요한이 이 땅 위에서 아무리 충성을 다한다 하더라도, 아담을 위하여 충성하는 실질적인 기반을 갖지 못하게 될 때는, 하나님은 그 충성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을 위하여 지었던 종, 즉 세례 요한의 사명은 아담을 통하여 완결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를 보면, 세례 요한이 예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원리적 관점에서 보면 그 6개월은 인간들의 6개월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6천년의 6수를 대표한 기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짓기 전에 만물을 지었고, 만물을 짓기 전에 천사세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에 아담을 지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단계의 기준에서 천사장의 입장을 대신하는 입장에 서야 했던 세례 요한을 예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나게 해서 제반 준비를 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유대교의 모든 전통사상을 일신에 귀결시키고 안팎으로 나라와 교회를 움직여서 충성의 도리를 다하여 유대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을 순수하게 받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함께 예수를 위하여 온갖 충성을 다해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의 모든 외적인 문제를 책임져야 되고, 내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것도 협조를 해야 했던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어떤 문제까지 협조해야 했느냐?

타락을 천사장이 시켰기 때문에 천사장 입장이었던 세례 요한은, 예수 앞에 있는 안팎의 모든 사연을 대신 책임지고 예수가 복귀의 사명을 하는데 협조를 해줘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의 상대를 결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역시 예수 자신이 주도적으로 하면 안 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타락을 천사장이 시켰기 때문에 천사장을 복귀한 입장에 선 세례 요한이 예수의 안팎을 가려야 할 복귀의 중대한 문제, 다시 말하면 신부를 복귀하는 문제까지도 전폭적인 책임을 져야 했다는 것입니다. 쓰라림과 고통이 있으면 누가 책임져야 되느냐? 천사장이 잘못하여 그런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세례 요한 자신이 그 모든 어려운 문제를 일신에 책임지고 예수가 가는 길 앞에는 환난이나 시련이 일체 없게끔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당대의 세례 요한에게 맡겨 준 사명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태어난 사가랴 가정은 어떤 가정이냐? 그 가정과 마리아 가정은 인척간입니다. 마리아는 세례 요한의 이모가 되고, 예수와 세례 요한은 이종 사촌이 되는 입장이었습니다. 가정적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어요. 그러므로 만일에 요셉 가정하고 사가랴 가정이 하나되고 예수와 세례 요한이 하나되었다면 예수는 고통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가 요셉 가정에서 자랄 때 목수의 조수를 하기 전에 사가랴와 세례 요한의 협조를 받았다면, 그의 일생에 목수의 조수 생활 30여 년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뜻적인 입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실 바의 메시아를 위해서 준비된 사가랴 가정에 있어서나 사가랴 자신에게 있어서나, 또 30여 년의 생애 동안 메시아를 맞기 위해 수고의 노정을 갔던 세례 요한에게 있어서도 예수에게 목수생활을 시키고 집을 떠나 외로운 생활을 하게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입장에서 내적인 사정을 통하고 내적인 사연을 의논해 가면서 이스라엘 나라와 복권을 위해 안팎으로 하나가 되어야 했습니다. 어려운 문제는 세례 요한이 책임지고 재미있고 기쁜 일은 예수 앞에 재료로 줄 수 있게끔 개인 개인이 안팎으로 갖춰짐과 동시에 가정이 안팎으로 갖추어져야 했습니다. 유대교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 예수 가정이요, 이스라엘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 세례 요한 가정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를 중심삼고 안팎으로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을 결정 지었더라면 그것이 핵심이 되어 가지고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를 자동적으로 하나로 흡수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불신의 결과

그렇게 할 수 있는 뜻의 기반을 세례 요한이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또한 요셉 가정이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가 그 책임을 몽땅 추궁받는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신임하는 자리가 아니라 예수를 배반하는 자리에서 예수 앞에 책임을 다 갖다 맡기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예수는 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외적으로는 십자가를 지고 내적으로는 가정의 어려움, 즉 심정적인 십자가를 짊어진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죽음을 각오하고, 내적으로는 심정적인 비탄을 느끼면서 책임을 수행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해와를 누가 타락시켰느냐 하면 천사장이 타락시켰습니다. 거기에 아담도 끌어들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소원하는 뜻에 세례 요한이 협조하여 그때에 신부를 맞았더라면, 그리하여 예수와 세례 요한이 가정을 이루어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루었더라면 지상의 복귀는 그때에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의 상대가 결정되어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기 전 하나님을 중심삼은 천사장과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이 당시의 유대교를 중심삼은 이스라엘이라는 허락한 터전 위에서 결정되었더라면, 거기서부터 창조원리에 의한 복귀의 형태가 지상에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앞에 비통한 사연이 열매맺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천사의 사명도 실패로 돌아갔고, 해와의 사명도 실패로 돌아갔고, 아담의 사명도 실패로 돌아갔으며, 하나님의 섭리도 실패로 돌아가 하나님은 다시 슬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렇게 죽었지만 그가 죽은 후에 부활해 가지고 세례 요한을 대신한 제자,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 세 사람이 하나될 수 있는 입장이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와 성신을 중심삼고 복귀역사를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승천했지만 부활한 터전 위에서 성신을 중심삼고 영적으로나마 하나님을 중심삼은 천사장 복귀형과 아담 복귀형과 해와 복귀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계와 육계가 갈라져 어려운 수난을 거치는 타락권을 개재시키긴 했지만 그런 내용을 갖춘 조건을 중심삼고 기독교가 새로운 출발을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가 예수 때에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중심삼고 영육을 통하여서 완결지어져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민족과 가정,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 사명을 못 했기 때문에 기독교는 추방받는 종교가 되어 이 지구성에 발붙이기 위해 모진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예수가 죽게 된 직접적 동기가 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지상에 남아진 인간 가운데서 천사장 입장에 선 사람은 남자를 대표한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사탄세계에 있어서 남자를 대표하여 충효의 도리를 다하여 예수를 맞게끔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4천년 동안 남긴 단 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세계 남성 중에 최고의 남성으로서, 비로소 타락한 사람 가운데서 복귀된 천사장으로 찾아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타락권내의 남자의 대표입니다. 그 남자의 대표가 하늘과 땅을 대표할 수 있는 남자,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 되는 아담, 타락하지 않은 절대 아담으로 오시는 그분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었더라면 오늘날 이 땅 위의 남성들도 그런 남성과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열렸을 것입니다.

만일에 예수 때에 그렇게 하나되었더라면, 유대 나라에서 그렇게 하나되어 가정적 기반을 중심삼고 우리 원리에서 말하는 가인 아벨이 하나되는 기반만 닦았더라면, 반대하는 세계에 대해 가지고 구태여 싸우면서 복귀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예수가 신부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 세 제자가 그와 완전히 하나되었더라면, 나라가 반대해도 뜻은 이루어졌을 거예요. 전도를 하지 않더라도 뜻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가정을 그런 기반이 될 수 있는 관건으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영적 역사의 목적

그런데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었느냐?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가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부활하여 영적인 사위기대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역사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타락은 창조원칙에 배치된 것이기 때문에 지상에서 사위기대의 완결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육적인 실패를 가져옴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기독교가 연결된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를 믿는 전세계의 남자나 여자들은 어디까지나 반쪽입니다. 몸뚱이가 있으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러므로 영적인 소망 이외에 소망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는 세상을 끊고 순전히 영적인 구원을 소망해 나온 것입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반쪽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이라는 것은 육을 통해서 생겨나게 되어 있는 것이지, 영을 통해서 육이 생겨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까꿀잡이가 되었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지상에 있는 신도들을 보게 되면, 사람들이 영적 기준에 서 있는데, 그 영이 본래는 육을 통하여 생겨나야 하는데 육을 통하지 않고 생겨난 거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와 마찬가지입니다. 천사세계의 미완성급에 연결되어 가지고 다시 완성의 한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나오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지상에는 천사세계를 이겨 가지고 천사세계를 새로이 수습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오는 데는 그냥 상속받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싸워 가지고 이겨서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실체를 가진 천사장형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영적 세계는 곧 천사세계의 연장이기 때문에 사람으로서, 실체 사람으로서 나타나기 위해서는 육을 중심삼고 육의 완성과 더불어 영의 완성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야 완전한 사람이지요.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영적 구원의 기반은 닦았지만 육적 기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람의 실체를 쓴 세례 요한과 같은 입장을 결정지을 수 있는 터전이 없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당시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중심삼고 영육 아울러 천사장복귀의 사명을 할 수 있는 입장이었는데, 예수가 죽고 난 후 2천년 동안의 기독교는 영육을 중심삼고 사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육은 떼어 놓고 영적으로만 그 사명을 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다시 육적 터전을 연결시키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적 터전을 연결시키는 놀음을 하는 데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것도 역시 세계적으로 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 천사장이 아담 창조에 협조하던 것과 같은 모양으로 협조해야 됩니다. 다시 협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영계가 협조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협조하는 때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예수와 성신이 기독교 신자를 만들어 놓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딸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천사장의 자식들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제2이스라엘권이 제1이스라엘권보다 나으냐, 못하냐? 원리적으로 볼 때 나아요, 못해요? 못합니다. 왜? 제 1이스라엘권은 육적 기대(肉的 基臺)가 있었지만 제 2이스라엘권은 육적 기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 이후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영적 세계의 사명을 담당한 수많은 종교들은 무엇을 해 나왔느냐? 아담을 대신 모실 수 있는 실체적 천사장을 만들기 위한 싸움을 해 나온 것입니다. 실체적 천사장, 즉 세례 요한과 같은 사람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세계가 동원되었고 기독교를 믿는 사람 전체가 동원된 것입니다. 끝날에 성신을 물 붓듯이 부어 주겠다고 했는데, 그것은 영적 세계의 영(靈)들이 이 땅에 와서 완전한 영을 주입하여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 아닙니다. 미완성적 아담, 즉 타락 전 아담과 같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귀한 세례 요한과 같은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영계는 지금까지 수고해 나온 것입니다.

천사장의 사명을 지닌 사람들이 가야 할 길

지금까지 수많은 도인들이 나왔습니다. 도인들은 전부 자기들이 이 세계를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이나 예수가‘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선포한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세례 요한이 선포한 것하고 예수가 선포한 것이 뭐가 다르냐? 하나는 외적이요 하나는 내적입니다. 하나는 천사형이요 하나는 아담형입니다.

아담은 반드시 천사장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을 때 천사장의 협조를 받아서 지었기 때문입니다. 또 천사장에게 아담을 보호하고 키워야 할 사명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사명을 해야 하는 것이 지금까지 기독교를 믿는 교인들이고 도를 통한 수많은 도인들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계에 널려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 세계적 사명을 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라야 되느냐?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예수가 육을 잃어버렸던 것이 누구 때문이냐? 천사장 때문이지요. 그렇지요? 예수는 천사장 때문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천사장의 사명을 완결지을 수 있는 사람은 예수의 죽음을 탕감할 수 있는 고개를 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이 나오려면 그 사람의 가문은 반드시 비참한 역사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또 그런 사람이 나온다면, 그 사람이 육적인 면에서 잘난 사람이어야 되겠느냐, 못난 사람이어야 되겠느냐? 혹은 모든 면에서 갖춘 사람이 될 것이냐, 병신이 될 것이냐? 그것도 문제가 되는 거라구요. 이러한 문제를 놓고 탕감복귀 원칙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천사장이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죽게 했다는 것입니다. 죽어서는 안 될 예수를 죽게 했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자기가 실수해서 그렇게 되었지만-물론 천사장의 꼬임을 통해서 그렇게 되었지만-복귀된 입장에 있는 죽어서는 안 되는 예수가 죽게 된 것은 세례 요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실체를 쓴, 영육을 대표한 제2의 천사장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예수를 죽게 했으니 예수의 죽음을 탕감하기 전에는 절대 다시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오늘날까지 그런 사명을 짊어진 사람들은 십자가를 지는 놀음도 하고, 자진해서 죽음의 길을 가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참 많았어요. 정장로, 정수원씨 삼촌되는 정평화라는 사람도 예수님과 똑같이 자기 몸을 십자가에 못박게 해 가지고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난 적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십자가에 못박혀 가지고 그 고통을 체험해 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밖에도 모듬매 맞아 죽은 사람도 있고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구요. 여러분이 몰라서 그렇지, 예수 한 사람 희생됨으로 말미암아 역사과정에서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중심삼고 개인적인 십자가의 희생이 벌어지고, 가정적인 희생, 종족적인 희생, 민족적인 희생, 국가적인 희생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제3이스라엘이 될 나라는 결국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아벨이 될 사람도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아벨이 누구냐 하면 예수를 맞기 위한 천사장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천사장 혈통을 부정하기 위해서 아벨을 세워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은 맞게 마련입니다.

예수 같은 세계적인 아벨이 누구 때문에 죽었습니까? 세례 요한이 잘못해서 죽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아벨은 맞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벨이 맞게 되니 아벨의 가정도 맞게 마련입니다. 아벨의 씨족도 맞게 마련이요, 아벨 종족도 맞게 마련이요, 아벨의 민족도 맞게 마련입니다. 또 아벨 국가도 맞게 마련이요, 아벨 세계도 맞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지금 공산세계한테 아벨 세계가 맞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야 될 것이 아니겠어요, 원리적으로 복귀되려면? 그렇지요?

그러면, 맞는 데 있어서는 누가 제일 많이 맞아야 되느냐? 종교인들입니다. 종교가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어느 한때 한번이라도 당당한 때를 맞아 보았어요. 언제 종교가 때를 맞이해 봤어요? 역사적인 종교가 때를 맞아 봤어요? 하나님의 아들을 세운 종교라면 그렇게 고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천사장 복귀의 터전을 넓혀 나온 섭리권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때를 맞지 못한 것입니다. 지식 있는 사람도 세계를 지배해 봤고, 힘센 사람도 한 지역을 지배해 봤습니다. 상류층도, 노동자 농민까지도 전부 다 지배해 봤는데 종교인들만 아직까지 그런 때를 가져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요? 종교인만 때를 못 맞았다 이겁니다.

그러면 나중에 맞을 사람이 누구냐? 나중에 전체를 총합해서 청산짓고 때를 맞아야 할 패들이 누구냐? 누구겠어요?「종교인들입니다」 종교권을 두고 볼 때에, 현재의 기독교가 맞으려 해요?「안 맞으려고 합니다」 불교가 맞으려고 해요? 서로가 밟으려고만 합니다. 그런 종교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종교는 망해요. 희생길을 도피하는 종교는 망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왜? 종교는 예수의 죽음을 탕감복귀해야 할, 천사장의 기반을 닦아야 할 운세권에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인들은 대표적으로 맞아야 할 사명을 지고 있어요. 선두에 서서 머리를 맞아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도피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종교는 망하는 것입니다. 머리를 드는 종교는 망한다는 말입니다.

천사장을 복귀하려면 죽음길을 가야 한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발전해 나오는 데 있어서 죽임을 당하고 희생을 당하고 순교를 당할 때, 선전하고 데모하면서 죽었나요? 숨어 다니면서 죽었다구요. 언제 한번 기독교가 원수를 대해 복수하자고 데모나 해봤어요? 지금까지 한번도 힘을 써 보지 못했어요. 그런 가운데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밟히고 맞는 가운데 발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의 아들로 하여금 천대받게 한 존재가 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천사장 자신이 복귀하려면, 벌받은 입장에서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귀하려는 그 자체는 하나님이 세워 놓지만, 그냥 복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종교는 그런 천사장의 입장에서 천사장 복귀권을 감당해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이 제일 미워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희생시켜 가지고 그 희생된 승리의 터전 위에서 당신의 아들 딸을 찾으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은 끝날까지 죽음길을 가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는 어쩐다고 했지요? 구원을 얻는다고 했지요? 그 말이 그 말인 것입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아들에게 그런 법을 적용한다면 하나님은 무자격자지, 사랑은 무슨 사랑이예요? 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지요? 그런 교훈이 어디 있어요? 안 그래요? 천사장 입장이기 때문에, 아담을 죽인 죄를 탕감받으려면 죽고자 해야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몇백 배라도 곱게 죽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종교는 천사장 복귀권이었습니다. 이거 틀림없지요?「예」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독교가 맞고 희생할 때는 그래도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맞고 희생할 때는 발전했지만, 목을 쳐들고 궁둥이를 휘젓고 다니게 될 때는, 이놈의 자식들,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러냐? 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예」

지금까지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처음에 서양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전도하던 1910년대, 1920년대에는 사람 취급 못 받고 쫓겨다녔어요. 그러다가 1930년대에 들어와서 1936년도까지가 전성시대였습니다. 그때는 예수 믿는 것을 대단히 자랑했지요. 그렇게 자랑하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또 들이 친 것입니다. 일본이 신사참배 문제를 중심삼고 들이 쳤지요. 자랑하면 안 된다구요. 알겠어요?

국가적으로 이 한반도의 판도를 중심삼고 보다 강력한 패거리를 중심삼고 하늘나라를 고이고이 받들어서 아버지의 소원을 성취할 아들이 올 때, 고이 바쳐 드리기 위한 희생적인 준비를 해야 하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꼬리를 휘젓고 머리를 쳐들고 다니면 들이 맞는 것입니다. 맞는 거라구요. 종교역사가 그런가 안 그런가 확인해 보라구요. 틀림없지요?「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전세계에 수많은 종교가 있는데, 그 종교인들은 무엇을 가지고 싸워야 되느냐? 물질을 가지고 싸우면 망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놓고 싸워야 됩니다. 오실 주님을 중심삼고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물질을 놓고 싸우는 종교는 망하는 것입니다. 두고 보라구요, 망하나 안 망하나. 지금 기독교는 돈 때문에, 달러 때문에, 무슨 보따리 때문에 싸우고 있습니다. 불교도 그렇고, 유교도 그렇고, 전부 다 그 판이라요. 여러분은 이거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물질 가지고 싸우는 날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또 권력 다툼을 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천사장 복귀를 해야 되는데, 세계적 천사장이 되려면, 세계를 깔고 앉아 가지고 시켜 먹으려 해서 되겠어요?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천사장이 되려면, 타락한 천사장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천사장이 되려면 머리를 쳐들고 꼬리를 젓고 다녀 가지고 되겠어요?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겠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죽음길을 가야 됩니다. 몇천 배의 탕감에도 '고맙습니다. 몇억만 배 희생하는 것이 내 생애의 죄를 벗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내가 탕감할 수 있는 길은 이 길뿐입니다' 하면서 땅에 머리를 숙이고 궁둥이를 하늘로 향하고 네발로 다니는 동물행세를 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테니 나를 희생시켜 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이 동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선 종교가 될 때는 틀림없이 발전하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되고자 원한다면 맞아라

오늘날 한국을 제3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3이스라엘이 되려면 제3이스라엘적 천사장이 나와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제3아담이 나와야 되고 제3해와가 나와야 됩니다. 그렇지요?「예」 그런데 그 가운데 누가 제일 먼저 나와야 되느냐? 아담이 먼저 나와도 안 되고 해와가 먼저 나와도 안 됩니다. 창조원칙에 의하면 천사장을 먼저 지었지요?「예」 그 다음에 아담을 짓고, 그 다음에 해와를 지었지요?「예」 그러니 천사장이 먼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천사장은 아담과 원수관계입니다. 해와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천사장이 아담보다 더 사랑해 가지고 문제가 됐거든요. 남성끼리 문제를 일으켜서 원수지간이 되고 그것이 동기가 되어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난데없이 여자가 걸려들어 가지고 그런 결과를 맺은 것입니다. 동기는 천사장이 아담을 시기한 것입니다. 해와의 사랑은 나중 문제입니다. 천사장이 아담을 시기하다가 망했다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천사장 입장에 서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편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 이러고저러고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비판하면 벌써 걸리는 거예요. 입을 떼게 되어 있지 않아요. 여러분, 이거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영광과 찬양은 하되 자기의 욕망과 욕구에 의해서 불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둘은 입장이 다릅니다. 하나는 아들 입장이요, 다른 하나는 종의 입장입니다. 타락의 근본 동기는 천사장이 아담을 시기한 것이지 아담이 천사장을 시기한 것이 아니라구요. 누가 먼저 시기의 조건에 걸렸느냐 하면 천사장이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세계에서는 선한 사람이 억울하게 희생되는 수가 있습니다. 물론 악한 사탄세계에서도 그렇지만, 종교세계에서는 선한 사람이 제물되는 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사장이 사탄이 되어 가지고 아담을 잡아죽인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많이 벌어진다구요.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종교세계에서 남아질 종교가 있느냐? 이 종교는 저 종교를 욕하고, 저 종교는 이 종교를 욕하고, 책임자는 아랫사람을 뜯어먹으려고 하고 그러니까 남아질 것 같아요? 남아지겠어요, 안 남아지겠어요? 「안 남아집니다」 절대 안 남아집니다. 남아지면 원리가 거짓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는 망해야 되겠어요. 망하지 않고 남아져야 되겠어요? 어떻게 되어야 되겠어요?「남아져야 되겠습니다」 남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이거 얘기해 보세요.

기독교인들은 우리를 미워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자기들이 수천년 동안 정성들인 것을 전부 다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저 밑창에 들어가 가지고 내 죄라고, 내가 잘못해서 종교가 망하고, 내가 잘못해서 이 나라가 망한다고 울고 자빠지면 큰일난다 이겁니다. 공도 안 들이고 수천년 동안 쌓아 놓은 복을 이 사람이 인사도 없이 몽땅 빼앗아 간다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없는 자의 것을 빼앗아서 있는 자에게 준다고 그랬지요? 그럼 여기서 빼앗는 장본인이 누구겠어요? 힘센 사람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눈물 많이 홀리고, 땀 많이 흘리고, 천대 많이 받고, 고통 많이 받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빼앗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빼앗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망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망하지 않을 길을 모색해야 되는데, 그 길을 모색하는 데는 주먹구구식 가지고는 안 됩니다. 원리원칙에 따라서 이 세계가 그렇게 되어 나오기 때문에, 현실적인 실천장, 역사적인 현재의 입장을 성큼 넘어설 수 있는 대비책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적인 천사장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국가적으로 맞고, 세계적인 천사장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맞으라는 것입니다. 부정당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세계가 미워하는 것입니다. 왜? 지금까지 수천만 대에 걸쳐 닦아 놓은 것을 일대에 한꺼번에 몽땅 인계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수천년 역사도 결국은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한 것이지요. 그래서 전부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맞는 거예요. 맞는다고 해야 얼마나 맞겠습니까? 맞다 보면 십년탕감, 백년탕감, 천년탕감이 되는 거지요. 또 그러다 보면 역사 전체를 탕감하는 것입니다.

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가

자, 우리 통일교인 여러분, 이불을 두르고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자기 자신이 감사생활을 하는지 안 하는지, 여러분 감사생활을 해요, 안 해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분석을 해보자구요. 자, 여러분 감사생활을 해요, 안해요? 솔직이 얘기해 봐요. 자기 자신은 다 알잖아요.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안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더 크지요? 어때요? 하는것 같은 느낌이 더 커요? 그러면 됐다구요.

그러면 어떤 자리에서 감사해야 되느냐? 잘먹고 잘살고 좋은 바닥에서 잘 자고 잘 놀면서 감사해야 되느냐? 아닙니다. 못먹고 못사는 데에 비례해 가지고 감사해야 돼요. 그러면 그만큼 올라가는 것입니다. 못먹고 못사는 데에 대해 십배만큼 감사하게 되면 십배만큼 올라가는 것이요, 백배만큼 감사하게 되면 백배만큼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게 왜 그러냐? 자기 자신이 천사장 복귀의 사명을 하려면, 아담, 즉 예수를 죽인 세례 요한의 책임을 대신 지고 탕감하려면, 자기가 예수를 죽인 죄를 홀로 맡아 가지고 이 땅위에서 세례 요한의 실패를 재탕감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어떤 모진 매를 퍼붓는 십자가의 길이라도 자기가 가겠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의 죽음을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죽은 것은 죽는 자리에 들어가야 탕감이 되는 것입니다. 말로라도 맹세로라도 죽음의 자리를 걸어 놓고 탕감해야지, 그냥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죽는다」 이것을 보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게 되어 있나, 죽게 되어 있나?「살게 되어 있습니다」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왜 그러냐? 천사장권, 사탄권을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아들을 대해 가지고 '야! 아들아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한다면 그게 무슨 하나님이예요? 아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가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인간 자체가 천사장의 종이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거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건 이치지요? 이치예요, 이치 아니예요?「이치입니다」 그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 죽고자 하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그러면, '나는 그래도 지금까지 죽고자 했소' 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한 마리도 없구만. 지금 아주머니들이 왜 전도 나갔는지 알아요? 아주머니들이 없으면 여러분은 천사장 복귀를 못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들은 지금 뭘 해야 되느냐 하면 부인들의 치다꺼리를 해야 되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하나님같이 모시는 일을 해야 됩니다. 신랑들은 그걸 해야 돼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횡적인 무대, 즉 제3이스라엘권의 씨족적이요 가정적인 기반 위에 역사적인 천륜의 모든 것을 청산하고 한의 여건을 넘어 승리권의 기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런 놀음이 이런 때에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짐작은 하겠어요? 조금 알 만해요?「예」

지금까지의 역사는 천사장을 복귀하기 위한 역사

여러분은 틀림없는 천사장입니다. 그런데 왜 아주머니들하고 같이 있어요? 여러분은 결혼을 해도 천사장입니다. 타락할 때, 천사장은 해와가 좋아 '호호' 웃으면서 자기 말을 들어주기를 가슴 죄며 간절히 바랐을 것입니다. 그저 죽더라도 요걸 해야겠다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어요? 타락하는 마당에서도 간절했다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간절했겠어요? 이 전도나간 아주머니들을 어머니같이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들, 이 말들으니 기분 나쁘지요? 기분 나빠요, 안 나빠요? 그 아주머니들은 앞으로 아담을 낳을 수 있는 어머니들이기 때문에 자기 어머니보다도 잘 받들어야 됩니다. 자기 누나보다도 잘 모셔야 됩니다. 자기 색시보다도 잘 모셔야 돼요.

지구장들이 와 가지고 도대체 전도대원들 체제가 서 있지 않다고 하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래 여러분들을 교회장으로 세웠으니 교회장 명령으로 전부 다 끌고 가게 하면 좋겠지? 좋겠지? 그것이 임자네들 소원이 아니야? 왜 선생님은 부인들을 내보내 가지고 무슨 해와격이니 천사장격이니 하는 것을 가르쳐 줘 가지고 뿔만 더 크게 해 가지고는, 이건 이리 가라 하면 저리 가고 딱 반대로 하면서 나중에는 '피, 선생님이 내 편이지 네 편이야?' 이러도록 만들어 놨는지…. 그래. 선생님이 잘 만들어 놨어요, 못 만들어 놨어요? 대답해 봐요. 「잘 만들어 놨습니다」 잘 만들었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전부 눈이 시퍼런 가짜들만 모였군. (웃음) 어떤 쪽이예요? 똑똑히 가리고 넘어가자구. 잘 만들어 놓았나, 잘못 만들어 놓았나? 「잘 만들어 놨습니다」 지금까지는 몰랐을지 모르나 이제부터는 잘 만들어 놓았다고 했으니 정신차려야 하는 거라구요.

그게 여러분에게 어떤 입장으로 오느냐? 여러분에게 복이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아담 복귀를 꿈도 안 꾸었어요. 임자네들, 아담 복귀의 꿈을 꿨어요? 아담 복귀하겠다고 꿈 꾼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내가 아담 되기 위해서 6천년 동안 싸워 나왔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런 꿈 꿔 봤어요? 천사장을 거꾸로 처박아 가지고 영적 사탄과 실체 사탄을 굴복시켜서 승리하겠다고 생각해 봤어요? 아담 복귀할 꿈도 꾸지 않고, 천사장 복귀할 꿈도 꾸지 않았지요? 해와를 복귀할 꿈은 꾸었어요?

하나님은 천사장 복귀, 해와 복귀, 아담 복귀를 위한 섭리를 해 나오시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되겠다는 패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패들이 그런 것을 꿈이라도 꾸어 봤어요? 눈만 껌벅껌벅하면서 '선생님이 뭐 언제 어떻게 이룬다고 하더니, 또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되느냐? 이러다가 뜻이 언제 이루어지느냐? 이러고들 앉아 있습니다. 임자들은 그러고 나오고 있다구요.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꿈도 안 꾸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모르지만 여러분들에게 천사장 복귀의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영광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역사시대의 수많은 종교인들이 안다면, 얼마나 기뻐하고 얼마나 좋아하고 얼마나 뛰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내가 천사장 승리권, 그것도 영육을 중심삼고 천사장 승리권을 결정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눈을 껌벅껌벅하고, 동(東)인지 서(西)인지도 모르고, 앉을지 설지도 모르고, 두리번두리번하고 있는 격이라구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천사장복귀 완성만이 아니예요. 천사장은 아내가 있어요, 없어요? 천사장은 아내가 없어야 됩니다. 복귀하고 나면 선생님이 그 아내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 승락없이 사랑했다가는 걸리는 거예요. 이제 금년 10월이 지나가게 되면 허락하려고 합니다. 색시들, 가서 도와 주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해와로 말미암아 아담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가정을 중심삼고, 아들딸을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면 천사장 복귀도 할 수 있고, 예수도 복귀할 수 있고, 예수의 상대인 신부권도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다 복귀할 수 있다는 거예요. 세상에 이런 법이 있어요? 지금까지 그런 역사시대가 있었어요? 지금까지 6천년 역사는 누구를 복귀하기 위한 것이라고요? 천사장입니다. 예수는 복귀 못 했어요. 그러니 예수는 다시 와야 되는 거예요. 주님이 오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은 주님이 왔는지 안 왔는지 확실히 알아요? 알아요, 몰라요?「압니다」 말이야 안다고 하지요. 진짜 알아요?「예」 모가지를 자른다고 해도 알아요?「예」 잘 모르겠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다고 하는 녀석이 많을 거라.

여러분은 천사장 복귀를 언제 했는지 모릅니다. 그렇지요? 그거 알아요. 몰라요? 천사장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모든 종교의 책임자들을 전부 타고 앉아서 승리의 공인서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땅에 와야 됩니다. 그리하여 영적 천사장은 이겼으니, 이제는 이 땅에 와서 실체적 천사장을 이겨야지요. 세계적인 종교 대표자들, 즉 천사장 대표들의 실체를 중심삼고 실력 대결을 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밀려나가서는 안 됩니다. 깔아 뭉개야 됩니다. 지금까지 그 놀음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이것은 원리입니다.

천사장 복귀의 사명을 완결한 유협회장

참부모가 나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천사장을 복귀하지 않고 참부모가 나올 수 있어요?「없습니다」 예수를 복귀하지 않고 참부모가 나올 수 있어요?「없습니다」 또 신부를 복귀하지 않고 참부모가 나올 수 있어요?「없습니다」 종교세계에서는 이것을 해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모든 난관을 해결지은 자리에서 새로이 등장한 명사가 뭐냐 하면 참부모입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다구요. 참부모는 껄렁껄렁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 아내만도 못하고, 여러분 어머니만도 못하고, 여러분 형제만도 못해요? 여러분의 사상이 돼먹지 않았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이렇게 세밀히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은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부모는 천사장 복귀가 안 되면 안 나옵니다. 그러면 아담 복귀가 안 돼 가지고는?「안 나옵니다」 또 신부, 즉 해와 복귀가 안 돼 가지고는 나와요, 안 나와요?「안 나옵니다」 이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요? 틀림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에서 천사장형이 누구예요?「돌아가신 유협회장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협회장은 공로자입니다. 불구의 몸으로 병고를 치르면서 그렇게 고생해 나온 과정은 예수님을 죽인 죄를 탕감하기 위한 노정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생애노정은 비참했습니다. 그의 생애노정은 원리적으로 딱 들어맞습니다. 천사장형은 병신이 되어야 되느냐, 잘난 사람이 되어야 되느냐 할 때, 병신이 어울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병신이 누구보다도 나아야 됩니다. 더 열심히 해야 된다구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못 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아담을 위해서, 오시는 주님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자기가 책임지려고 나서야 됩니다. 죽을 자리로 내보내더라도 고맙게 여기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조건이 성립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협회장이 죽었다고 해서 영계에서 절대 손해본 것이 아닙니다. 협회장 자신도 손해 안 보고 우리 교회도 절대 손해 안 보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내가 알기 때문에 섭섭하고 그럴 일이지만, 전체적으로 두고 볼 때, 마땅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복귀 역사에 있어서 36가정, 72가정, 120가정, 430가정까지, 모르는 일이 있으면 전부 다 협회장을 중심삼고 의논하는 생활을 하라구요. 알겠어요? 될 수 있으면 내가 나서지 않겠어요. 내가 코치는 하겠지만 말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그렇게 가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선생님이 책임을 못 했다는 말도 합니다. 자기 소관이 아닌 문제까지 관여해 가지고 그런 말들을 해요. 선생님이 섭섭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그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지요?「예 」

협회장은 누구냐? 여러분의 대표입니다. 그렇지요?「예」 유협회장은 선생님이 명령만 하면 사지(死地)까지도 갈 수 있는 사나이였습니다. 그만은 선생님 명령에 죽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를 죽을 자리에 보낸 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죽더라도 주님을 죽을 자리에 안 보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탕감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천사장 복귀의 사명을 완결지어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되느냐? 베드로는 죽을 자리에서 도망감으로 말미암아 영적 천상세계를 망쳐 버리고 실체 천사장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그랬습니다」 틀림없이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목숨을 내놓고 선생님 앞에 서야지 그렇지 않으면 죽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같이 비겁자가 되는 것이요, 영육 완성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리가 그렇잖아요.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위해 죽겠다고 생각했어요?「예」정말이예요?「예」 어떠한 자리에서 죽으려고 해요? 그 자리를 잘 알아야 됩니다. 천국 가는 자리에서 죽겠다고 해 가지고는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지옥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을 대신하여 대표로 지옥 가기 위해서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반대라구요, 반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것이요, 망하고자 하는 자는 흥하고 흥하고자 하는 자는 망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통일교회를 왜 믿어요? 자기가 잘되기 위해서 믿어요? 천사장이 자기 위하게 되어 있어요? 천사장이 그러게 되어 있느냐구요. 천사장 입장에 있는 여러분이 그래도 되겠어요?「안 됩니다」 누구 잘되게 하기 위해서 믿는 거예요? 선생님이 잘되기 위해서? 선생님이 선생님 잘되기 위해서 믿어야 된다고 얘기하면 여러분 기분 나쁘지요?「아닙니다」 그 말은 선생님 해방을 위해서 믿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잖아요?

다시 오는 아담이 가야 할 길

다시 오는 아담이 가야 할 길이 뭐냐 하면, 가정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종족을 해방시켜야 되고, 민족을 해방시켜야 되고, 국가를 해방시켜야 되고, 세계를 해방시켜야 되고, 천주를 해방시켜야 되고, 하나님까지도 해방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생님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렇지요? 천사장이 잘못해서 그 길을 막았기 때문에, 천사장 입장에 있는 여러분은 그것을 돕기 위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특히 간부들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도 우리하고 같지 뭐'라고들 하는 모양인데 맞습니다. 사람은 마찬가지라구요. 그런데, 같기는 같은데 출처가 다릅니다. 알겠어요?「예」 출처가 다르다구요. 주체와 대상은 다른 것입니다. 중심과 주변은 다른 거예요. 어떤 것이 먼저 와야 되느냐? 주체가 먼저 와야 됩니다. 그렇지요?

에덴 동산에서 천사장하고 아담하고 산다고 합시다. 천사장이 돌아다니면서 좋은 과일을 따 와 가지고 '아담 저 보기 싫은 녀석이 있으니 좋은 것은 내가 먹고 아담에게는 먹다 남은 것이나 갖다 주자' 이러면 되겠어요?「안 됩니다」 모심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나보다도 그가 잘먹어야 되고, 나보다 그가 나아야 되고, 나보다 그가 더 좋아야 되고, 나보다 그가 더 귀해야 된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가 귀해지니 결국 자기도 귀해지는 것입니다. 그가 잔치상을 받게 되면 그걸 다 먹겠어요? 다 못 먹게 되면 그걸 누구에게 주겠어요? 심부름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의 입이 나의 입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잘되어야 내가 잘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했는데, 그래야 된다구요. 엄연히 다른 입장입니다. 입장이 다르다구요. 그렇지 않으면 망조(亡兆) 나는 거예요. 여러분과 선생님은 같아요, 달라요? 「다릅니다」 같을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는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으면 거짓말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또 아무 공로도 없는 무리들을 취해 가지고 자기의 계대(繼代)를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계대를 남기게 되어 있어요?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또 천사장이 상대를 가질 수 있어요?「없습니다」 천사장은 상대를 가질 수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종교인들은 시집 장가를 가지 않은 것입니다. 왜 그러냐? 종교인들은 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세상이 다 풀립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종교인들은 독신생활을 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천년 동안 혼자 살더라도 감사해야 됩니다. 색시라는 것은 생각도 못 하더라도 감사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사장이니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아담 해와가 다 완성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껏 받은 후에 천사를 보고는 '아이고 천사가 있구만' 해 가지고 '하나님, 우리만 사랑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들에게도 상대를 만들어 주십시오' 하고 부탁하면 하나님이 '오냐. 너희들이 기뻐하겠다고 하면 만들어 주겠다' 하는 것입니다.

오늘 통일교회 패들은 뭡니까? 통일교를 왜 믿어요?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 왜 믿긴 왜 믿어? 축복받으려고 믿지'라고들 하는데, 여러분들, 축복 받기 위해서 통일교회 믿나요? 책임을 다해 가지고 축복받을 생각들은 안 해요.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돼요. 천사장을 복귀하고, 아담을 복귀하고, 해와를 복귀한 권내에서,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섭섭한 생각이 없는 자리에서 축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도 미웠고, 해와도 미웠고, 천사장도 미웠습니다. 전부 다 한칼에 잘라 버리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왜? 타락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심정에 말할 수 없는 암을 심어 놓은 괴물단지, 괴짜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저들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섭섭했던 마음을 풀어 드릴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슬픈 마음과 괴로움을 전부 다 해원성사해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를 만나기 위해서, 너를 보기 위해서 기다렸다. 에덴 동산에서 너와 같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자랑의 조건을 갖추지 않고는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디, 여러분들 그래요? 그러한 입장에 있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럼, 그렇지 못한 사람 손들어 봐요. 또 아무도 없어요? 그런 사람이예요, 안 그런 사람이예요? 어디 내가 한번 물어 보자구요. (잠시 녹음이 중단되었음)

교회의 책임자는 천사장의 대역자

여러분, 교회의 책임자는 천사장의 대역자입니다. 부모의 명령을 받고 주인의 길을 대신 가야 하는 입장이예요. 그러므로 한 가지의 일을 하고서도 잘못되었을까봐 보고해야 됩니다. 내가 이렇게 해서 되겠느냐고 보고해야 돼요. 그리고 교인들간에 좋은 일이 있으면 전부 다 하늘로 돌려야 됩니다. 천사장이 주인이예요? 자기 물건을 관리하고 좋은 것 있으면 자유로이 나눠줄 수 있어요?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교회장은 종이라구요.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에서부터 천만사를 하늘 앞에 돌려드리고 자기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해야 됩니다. 천만사를 하늘 앞에 돌리고 자기 것은 하나도 없는 입장에서도 하늘 앞에 감사드리고, 그 가운데에서 여분을 돌려주면 감사해야 합니다. 이 역사상에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을 통해서 돌려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았어요? 세례 요한도 돌려받지 못했고, 역사시대의 그 누구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 앞에 천만 냥을 드렸다가 그 가운데서 한 냥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선다는 것은 타락한 인류역사상에 있어서 처음 있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줄 때에도 할수없어서 주는 것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안 받겠다고 해도 줄 수 있는 인연을 갖추게 되면, 거기서부터 비로소 천사장에게도 소유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천사장은 사탄세계의 모든 물건을 전부 복귀해서 하나님 앞으로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하늘편에서 다 쓰고 남은 찌꺼기를 돌려주더라도 고맙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사장의 입장이라구요.

천사장이 하나님의 아들을 빼앗고 세계를 빼앗아 가지고 전부 탕진해 버렸지요? 그러니 그것을 복귀하려면, 복귀한 천사장이 되려면, 세상 것을 전부 복귀하여 드리고, 나는 하나도 안 갖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 그랬어요? 선생님은 그런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야 원리에 맞잖아요. 그렇지요? 천사장 입장을 복귀하려면 그래야 돼요. 여러분이 천사장을 복귀하지 못하면 내가 또 탕감하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세례 요한이 사명을 못 했기 때문에 예수가 제2차 노정에서 세례 요한 대신 탕감복귀하려고 그랬지요? 그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될수록 그 앞에 있는 민족에게는 수난이 배가되는 것입니다. 천년 만년 수난길을 가야 돼요. 예수를 그렇게 해 놓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은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유리표박하면서 수많은 민족의 말발굽에 밟히고 희생당했잖아요. 얼마나 많은 희생의 제물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여러분들도 잘 알지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앞으로의 사명을 중심삼고, 소생, 장성, 완성의 단계를 넘어가는 7년노정에서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이나 전부 그러한 심정을 가져야 됩니다. 하늘 앞에 천만사를 돌려드리겠다는 마음, 또한 내 아들도 바치고 내 딸도 바치고 내 아내도 바치고 나 자신도 바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천사장이 뭘 가졌어요? 가진 것이 있어요? 없지요? 여러분이 축복을 받았더라도 그 축복은 여러분 것이 아닙니다. 할수없으니까, 완성급에서는 할수없으니까 축복해 준 것입니다. 아담 왜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해서 죽었기 때문에, 그것을 복귀하려면 완성기 소생급에서부터 7년노정을 가야 되겠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축복을 허락한 것입니다. 그러니 축복을 받았다고 해서 하나님권내에 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축복을 받았으면 그때부터 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천사장을 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예요. 축복가정은 천사장의 가정과 마찬가지로 지지리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걸 알기 때문에 천사장의 가정적 책임을 대신 탕감하기 위해서 그 놀음을 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북의 기독교에 대해 책임을 못 함으로써 천사장을 잃어버렸기에 가정을 치고 아내를 치고 자식을 치고 내 몸을 치고 나온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원리에 걸리지 않고 남아진 것입니다. 내가 나를 그렇게 치니까 하나님이 다시 나를 붙들고 출발할 수 있는 소망의 기점을 마련할 수 있었지, 그러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안 남았을 것입니다. 마지막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원리가 그렇기 때문에 쳐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쳐야 돼요. 아내가 원수고 자식이 원수라구요.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전부 돌려보내면 내 곁을 떠나 가지고 하늘로 돌아갈 게 아닙니까? 하늘 가는 길을 가라고 보내는 것입니다. 하늘로 가는 길이 어떤 길이냐? 제물이 되는 길입니다. 종의 자식들이니 제물이 되어야지요. 여러분은 사탄의 자식들이라구요. 그런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이 그런 때입니다. 알겠어요? 따라서 선생님이 777가정을 축복해 줘가지고 그들을 한꺼번에 치는 만큼 대한민국에 좋은 때가 한꺼번에 올 것입니다. 두고 보세요. 여러분, 때는 급변해 돌아가는 것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하나님이 계시니까 두고 봐야 알지만 말이예요

여러분, 동원 확실히 하라구요. 지금까지 선생님이 '뭐 하자'고 할 때, 여러분들이 '그래 합시다' 하고 좋아서 동의한 적 있어요? 선생님이 뭘 하자고 하면, '또 뭘 하자고…' 이랬지요. 그게 뭐예요? 천사장이예요, 뭐예요? 급으로 말하면 천사장급이예요, 사탄급이예요?「사탄급입니다」틀림없나요? 똑똑히 얘기해 보라구요. 천사장급이예요, 사탄급이예요?「사탄급입니다」사탄급이라구요. '여지껏 고생했으면 됐지, 또 고생하라고? 난 싫어' 이런 식 아니예요? 천사장은 가정적 기반까지 닦아 가지고 그 가정의 주인된 아담이 칭찬해 줄 수 있는 입장까지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의 증거

오늘 말씀 제목이 '축복가정의 가치'인데, 여러분, 천사장이 무엇인지, 아담이 무엇인지, 해와가 무엇인지 알아봤어요? 선생님으로 말하면 일생 동안 고생한 사람입니다. 어느 한 순간도 쉬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걸어 나온 가운데는, 대가리가 깨져 가지고 찾아온 여자가 없나, 다리가 부러져 가지고 찾아온 여자가 없나, 중대가리가 되어 가지고 찾아온 여자가 없나, 팬티만 차고 와서 살려 달라는 여자가 없나…. 나한테는 이 여자들이 원수라구요. 그런 여자들 때문에 내가 지긋지긋했다구요.

그게 보게 되면 여자들에게는 지긋지긋한 원수가 남자들입니다. 그 남자들은 그 여자들 앞에 제일 가깝지 않으면 제일 원수 되는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남자들은 여자에게 제일 가깝거나 그렇지 않으면 원수라는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라구요. 그래서 사탄편 남자들이 괜히 나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괜히 모가지를 틀고 들이 볶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 자신도 국가를 중심삼고 감옥에서부터 싸웠습니다. '누가 더 하나님 앞에 충성하느냐, 사탄인 너희들이냐 하나님의 아들이냐, 누가 더 절개가 있느냐?'라고 하면서 고문을 당할 때도 '쳐라, 이 자식아! 너희들이 죽는 것을 보기 전에는 안 죽는다' 이랬습니다. 그런 싸움을 해 나온 거예요. 알겠어요?

천사장을 굴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영적 천사장을 굴복시키고 실체 천사장을 항복시켜야 됩니다. 항복시키는 데는 때려서 항복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안팎으로 모든 전체를 중심삼고 뼛골이 녹아질 수 있고 감화될 수 있는 내적 인연을 가지고 굴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쉽겠어요?

선생님은 40여 년 동안 그러고 나온 것입니다. 철들면서부터 그 놀음을 해 나온 거예요. '나는 이런 길을 가야 된다. 남이 가는 길과 근본적으로 다른 길이지만 남이야 어떻든 나는 이렇게 간다' 이러면서 나왔습니다. 남이 좋아하면 나는 울어야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요즘 통일교회 패들은 유행가도 잘 부르지요?「예」 선생님은 옛날에 유행가의 유행이라는 말도 안 했습니다. 그런 것들과 싸웠습니다. 극장 같은 데도 절대 안 갔습니다. 그런 때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르다 이거예요. 얼마나 다르냐? 이렇게 깨끗하게 달라요.

아무리 유혹해도 안 넘어갑니다. 유혹에 걸려 넘어감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천사장의 자손이 되었잖아요? 그렇지요?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래요? 그러므로 통일교회 패들은 연애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원수 앞에 넘겨 주고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중수! 「예」 색시를 어떤 남자한테 넘겨 주고 복 빌어 줄 자신 있어? (웃음) 말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이 그랬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천사장끼리지요? 위로 보면 주인과 종 사이인데. 주인이 그 마나님을 종놈에게 빼앗기고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신세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 생각해 봤어요? 거기에 자식까지 보태서 넘겨 주었습니다. 그 아들을 천사장이 잡아죽였다는 거예요. 그런 것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나도 '너희들이 나를 치려면 어디 쳐 봐라. 미워해라' 하면서 그 모든 화살을 달갑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복귀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에게 '하나님, 욥이 복을 빌었기 때문에 저렇게 잘사는 것이 아니요? 하고 참소했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억울해? 그렇다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한번 해 봐라' 하셨잖아요. 탕감복귀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이 증명하기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너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 그랬지요?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보이기 위해서는 어머니도 죽일 수 있고, 아내도 죽일 수 있고, 자식도 죽일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된다구요. 만약 둘 중에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고, 그 사랑을 보여 달라고 할 때는, 가족들을 찔러 죽일 수도 있는 입장에 서야 된다구요. 그러지 않으면 증거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심각한 일을 해 나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여러분은 왜 통일교회를 믿는가

그런데 여러분들은 통일교회를 믿는 데 그렇게 심각해요? 어디 물어 봅시다. 심각해요, 보통이예요? 여러분에게는 섭섭한 말이겠지만, 잡아서 한군데 모아 놓고 불살라도 시원치 않을 패들이다 이겁니다. 기분 나쁘지요? 그렇게 해 가지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다면 서슴지 않고 할 것입니다. '이거 뭐 복이 있을 줄을 알았더니, 천국행은 문제 없을 줄 알았더니 이거 어디 살아 먹겠어?' 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러면 빨리 죽으라구요. (웃음)

살아 먹으려니 이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고생하는 것을 뻔히 아는데 내가 무슨 원수졌다고 눈물을 바가지로 흘리는 일을 하라고 하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여기에는 여러분이 모르는 기가 막힌 사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일을 하고 나면 여러분이 저나라에 가서 천년 만년 해야 될 일을 선생님이 다 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원리에는 이런 내용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반만년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가 가만히 두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집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야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걸 잘 처리해 놓아야 세계가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대로 놓아두면 세계는 하나의 세계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통일교회를 왜 믿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축복받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구요. 주님을 위해서 믿는 거예요. 기분 나쁘지요?「좋습니다」 기분 나빠도 할수없습니다. 기분이 나빠도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기분 나쁠 것 같으면 내가 왜 지금까지 고생했겠어요? 선생님이 고생하게 생겼어요? 선생님 눈을 보세요. 코를 보라구요. 고생하게 생겼나 안 생겼나. 고생하게 안 생겼다구. 고생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내가 벌써 다 걸었지 뭣 때문에 지금까지 이러고 있겠어요? 안 그래요?

선생님이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갈 길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선생님의 갈길은 지독한 길입니다. 지독한 길이예요. 둘다 손대지 않고 녹여 내는 길입니다. 누굴 녹여 내느냐? 사탄도 녹여 내고, 하나님도 녹여 내는 길이예요. 하나님을 녹여 냈더라도 사탄을 녹여 내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랑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사탄세계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둘을 다 녹여 내야 사탄세계도 내 것 만들고, 하나님의 사랑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여러분을 그 길로 몰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싫어요, 좋아요?「좋습니다」 좋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구요. 내려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준비 과정에서 지치고 있으니….

옛날에, 내가 고향에 있을 때 전라남도 사람들이 저 만주로 많이 갔습니다. 그런 말 들었지요?「예」 북만주엘 많이 갔어요. 그런데 우리 동네가 신의주로 통하는 국도에서 한 5리나 3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신의주로 가는 사람들이, 국도변에는 얻어먹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 동네에 많이 들렀는데, 그 행인들이 지나가다가 저녁을 먹으려면 전부 우리 집으로 오는 거예요. 우리집이 도가집이니까요. 그래 가지고 우리 집에서 팔도강산의 많은 사람들에게 밥을 먹였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밥을 먹이는 집은 망하지 않는다구요. 알겠어요?

자기 집에 누가 와서 밥을 달라고 할 때는, 아무리 그가 원수라 하더라도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게 해주고 밥을 먹을 때는 그런 얘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배고프면 어디 가서든 밥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먹고 살게 만들지 않았어요? 그렇지요? 그러니 배고플 때는 먹어야 돼요. 앞으로 우리 세계에서는 '나 배 고픕니다. 그러니 이것을 먹겠습니다' 할 때는 아무리 장사하는 사람이라도 '못 먹어' 이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 그러냐고, 어서 드시라고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모두가 선의 주인이 되어 가지고 서로가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본부에서 밥 먹는 것을 금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에게 한푼이라도 생활비를 대주기 전까지는 금하지 않았어요. 누구든지 와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밥 먹여 가지고 망할 통일교회 문선생이 아닙니다. 밥 먹여 가지고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원수라도 밥을 얻어먹고 나서 '내가 배부를 때 얼른 이 집을 불살라 버려야겠다' 이러겠습니까? 그럴 수 있겠어요? 그랬다가는 가다가 죽는 거예요. 천벌이 내린다는 것입니다.

탕감조건을 세우지 못하면 축복받지 못하는 법

여러분은 나하고 원수예요, 원수가 아니예요?「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원수지요. 어떻게 보면 원수가 아니고, 부모가 자식을 공부시키려 할 때, 자식에게는 부모가 원수겠어요, 아니겠어요? 자식들은 공부하기 싫어하고 나가서 뛰놀고 싶어서 그저 어머니 아버지 눈치만 봅니다. 하루 종일 그냥 나가서 뛰놀고 싶은데 어머니 아버지는 들이치고 야단이거든요. 그럴 때 자식에게 부모가 원수예요, 친구예요?「원수입니다」 원수라는 거예요, 원수. 그런데 그게 진짜 원수예요? 원수가 아니라 자기 어머니 아버지잖아요. 어머니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냥 두면 망해 버리니까 그러는 거예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두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예요. 그냥 두면 망해 버린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무정란처럼 쓰러져 버리면 선생님의 위신이 설 것 같아요? 서겠어요, 안 서겠어요? 그래서 코를 걸어 가지고 줄을 당기는 것입니다. '안 갈래, 이 자식아. 어서 가라'이러면서 모가지를 당기는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이 지금 다 그 격이라구요.

여러분 중에 개척 전도를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몇 사람 돼요? 할 수 없어서 하는 것이지요. 걸려도 단단히 걸렸지요. 뺄래야 뺄 수도 없고, 갈래야 갈 수도 없고, 갔다가도 되돌아올 수밖에 없으니 할수없이 뱅뱅 도는 격이라구요. 모가지가 한바탕 늘어나고 말이예요.

자, 모가지가 늘어나더라도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가야 됩니다」 또 선생님은 여러분의 목이 빠지더라도 잡아당겨야 되겠어요, 안 당겨야 되겠어요?「잡아당겨야 됩니다」 잡아당겨야 된다구요. 그게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좋은 것입니다」 말로야 좋다고 하지요. (웃음) 그러나 죽을 지경이지요?

선생님도 그렇게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하실 적마다 목을 잡아 빼는 것입니다. 새로운 일을 할 적마다 더 좋은 약속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려눕혀 놓고 헐떡헐떡하는 자리에서 약속을 하시는 거예요. 맞았으니까 탕감조건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축복을 못 해 주는 것이 복귀노정의 철칙입니다.

선생님이 이 길을 나오는 데 있어서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고 공짜로 될것 같아요? 하나님 멋대로 될 것 같아요? 그렇게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바늘 방석에 앉은 것보다도 더하다구요. 10분을 마음놓지 못해요. 지금은 때가 다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사탄이 나타나서 싸우는 일은 없습니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사탄과 격투했습니다. 기를 쓰고 격투했어요. 조금만 방심하면 무한한 악의 압력이 몰려왔습니다. 뭐라고 할까요? 세계적인 압력이 들이 몰려와요. 그때 그 압력보다 내가 약했으면 무너졌을 것입니다. 그것을 막아내기 위하여 내가 전력을 다하여 나온 것입니다.

죽는 것은 간단합니다. 죽어서 될 것 같으면 간단하다는 거예요. 그러나 죽어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싸워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체험을 했어요? 여러분이 영계에 가서 선생님이 그런 체험을 한 사실을 알 때 선생님 앞에 얼굴 들 자신 있어요?「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땅 위에서 창피하고 얼굴을 들지 못하는 자기 자신의 부끄러움을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나라에 가서 '야, 아무개야!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라도 들을 수 있는 사람, 땅 위의 일을 생각하면서 고생의 역사를 말하게 될 때, '아무개도 고생했으니 불러와 봐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요. 그런 사람을 만들려니 여러분에게 고생을 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가 고생할 때 발전했어요, 고생안 할 때 발전했어요? 대답해 봐요. 「고생할 때 발전했습니다」고생을 밥으로 알고, 고생을 하고도 감사의 눈물을 흘릴 때 발전했지요? 그게 원칙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참고 고생해 나왔다는 겁니다. 고생을 안 했으면 벌써 사탄이 치고 들어왔을 것입니다. 종의 자리가 주객이 전도되는 자리라구요.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고생을 시키면서도 내가 걱정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선생님하고 손을 잡았으면 선생님이 이런 고생 안 하는 것입니다. 그랬으면 통일교회는 벌써 세계적 종교가 되었을 거예요. 또, 한국은 벌써 천국이 다 되었을 것입니다. 공산당도 벌써 녹아났을 거예요. 그러한 천명을 받들고 출발한 사람이 선생님입니다. 그리하여 사방에 하나 둘 고임돌을 놓아 가지고 가려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젠 어지간히 올라왔지요?「예」

실체적 천사장 복귀

그럼 여기서 '축복가정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 4대 성인이 있지요? 그 4대 성인을 전부 제물로 바쳐 가지고 천사장 실체복귀를 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무리 제물로 드려도 천사장을 복귀할 수 없습니다. 왜? 천사장 실체를 복귀하려면 아담을 만나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 요한을 보고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이 사람보다 큰 이가 이 세상에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마 11:11)"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세계적인 천사장이 되려면 아담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을 만나야할 자가 누구라구요? 세례 요한이지요?「예」 그래서 그가 제일 크다고 했던 것입니다.

4대 성인이 전부 플러스해 가지고 한꺼번에 희생된다고 해서 그들이 천사장 실체복귀 인물이 될 수 있어요? 원리적으로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아담, 아벨, 노아, 아브라함, 모세, 세례 요한, 예수까지 전부 플러스해 가지고 천사장 실체복귀를 했어요, 못 했어요?「못 했습니다」 점점 커져서 예수까지 플러스해서도 천사장 실체복귀를 못했어요.

예수는 지금 영적 천사장권 책임을 연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세례 요한의 책임을 하려다가 쫓겨서 죽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영적 천사장의 책임을 맡아 가지고 연장 역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실체 천사장의 책임은 못 하고 있어요. 형편이 무인지경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기가 막힐 것입니다. 기가 막혀 죽어도 할수없습니다. 사실이 그렇다구요. 이론이 딱 들어맞잖아요. 그렇지요?「예 」

그럼 예수까지 플러스한 데에 하나님까지 플러스한다고 해서 천사장 실체복귀를 할 수 있어요? 있겠어요, 없겠어요?「없습니다」 그것은 천사장 자신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자신의 책임분담이 있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실체 천사장이 나왔다 하더라도, 예수가 자신의 책임분담을 못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 자신이 마음대로 하면 되겠어요? 법도를 따라 가지고 나가야지요. 예수 마음대로 해 가지고도 안 된다구요. 천리의 법도대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 마음대로 해 가지고 복귀될 것 같아요? 선생님 멋대로 해 가지고 복귀될 것 같아요? 어림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실체 천사장 복귀의 자리에 갈 수 있는 입장만 되더라도 여러분은 역사적으로 승리한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나는 오시는 메시아를 봤다' 할 때, 본 것만으로도 역사의 원수인 천사장의 실체복귀의 자리에 경쟁자로서 등장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내용도 엄청난 사실이지만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선생님을 만났다는 것도 엄청난 사실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을 만난 목적이 어디에 있겠느냐, 즉 누구 때문에 만나게 됐느냐? 그것은 천사장 때문이 아닙니다. 아담 때문에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모인 것은 아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담 때문에 태어났고 아담 때문에 이렇게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또 아담 때문에 살고 아담 때문에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담 때문에 죽었다가 부활해야 비로소 탕감될 수 있는 운명입니다. 왜? 아담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천사장 패들은 죽어 가지고 부활의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안 죽겠다고 도망다녔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하늘이 죽여 버린 거예요. 순교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아담을 죽게 만들었으니 천사장 대표자로서 죽을 자리도 감수해야 될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지요?「예」 응당히 죽임을 당하는 자리라도 감사하게 여기며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죽임을 당하는 데는 자기 혼자만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는 심정의 터전, 즉 가정의 기반을 중심삼은 터전이 전부 끌려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아담 가정을 망하게 했으니 자기 가정이 망하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복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그렇지요? 오늘날 통일교회 여러분과 선생님이 그런 입장에 서야 합니다.

선생님이 아직까지 뜻을 못 이룬 자리에 있는데, 여러분이 개인 개인의 성취를 바랄 수 있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바랄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습니다」 왜 없어요?「아담의 뜻이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천사장이 주체인 아담의 것을 전부 빼앗아 갔지요? 그래 가지고 전부 탕진해 먹었지요? 그러니까 이것을 복귀시켜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복귀해 놓아야 됩니다. 복귀해 놓고서 '이제 용서하여 주십시오'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복귀하여 언제 세계를 다 복귀하겠어요? 그러나 고맙게도 하나님은 '이 천지에서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희생시켜라'고 한 것입니다. 바로 그 것입니다. 전부 복귀하려면 몇천 년 걸려도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좋아하고 제일 소원하는 것을 한꺼번에 희생시키라고 한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써 복귀한 천사장의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이 은사의 말이예요. 벌의 말이예요?「은사의 말입니다」 가정을 잃어버린 자리에 서야 가정이 복귀되고, 종족을 잃어버린 자리에 서야 종족이 복귀되고, 민족을 잃어버린 자리에 서야 민족이 복귀되고, 세계를 잃어버린 자리에 서야 세계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것을 전부 죽여 버렸다는 자리, 전부 무시하고 희생시켰다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하늘쪽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은 전부 다 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물건을 위해 종이 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위해 종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위해 종이 되는 것이란 앞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모실 수 있는 자격자가 되기 위해 수많은 어려운 고비를 거치는 것입니다. 세상 천지의 악당 괴수들의 마음도 전부 다 맞출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 것이 다 준비입니다. 불교에서 수도자들이 보따리를 지고 다니며 얻어먹는 것도 다 그런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천대를 하고 발길로 차더라도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것은 앞으로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이 푸대접하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한 준비 공작인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여러분들을 전도 내보내서 고생시키는 것도 전부 준비 공작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닙니까? 준비를 해야 될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 부락사람들이 심하게 때리고, 허리를 발길로 차고 '이 자식아' 하며 멸시천대를 하더라도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 몇 배의 고난도 이겨냈습니다. 천사장 복귀를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천대를 깨깨 하더라도 고맙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그래야 되겠습니다」 기분 나쁜 말 아닙니까? 그래도 할수없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천사장의 자리를 복귀하기가 쉬운 줄 아세요? 천사장으로서 주인을 맞을 수 있는 일이 아무런 조건도 없이 떨꺼덕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천사장이 아담으로부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는 아무 공로도 없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공로도 없이 천사장의 인연을 인계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으로서 천사장 복귀의 기준을 소원해도 될지 말지인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축복을 받는 자리는 천사장을 복귀하는 자리뿐만이 아니라 천사장 완성의 자리를 거쳐서 아담 해와가 만복을 받는 행복권내에 동참한 자리입니다. 천사장들이 치다꺼리를 해 가지고 상대를 얻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천사장에게 상대까지도 만나게 해주는 거예요. 지금까지 천사장에게는 상대가 없었지요? 상대가 없는 천사장에게 상대까지 창조해 주는 놀음을 한다는 거예요.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천사장에게 없는 것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천사장은 감사해야 되겠어요, 안 감사해야 되겠어요? 얼마나 감사해야 되겠어요? 에덴 동산에 있던 천사장보다 몇십 배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그래야 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종을 팔아먹기도 했습니다. 천대하고 멸시하고 팔아먹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런 종새끼 취급을 해야 될 사람들에게 아들딸의 이름까지 붙여 준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럴 수가 있어요? 양자라면 몰라도, 아들딸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준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는데 얼마만큼 사랑하느냐? 직계 아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랑을 받은 거예요. 그런 사실을 알아요, 몰라요? 말뿐이 아닙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왜 선생님이 직계 아들들보다 여러분을 더 사랑했느냐? 그것은 역사적인 주권을 회복할 한날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희생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축복가정은 하나님이 처음 대하는 가정

천사장의 부활체로서 지금까지 종교인들이 얼마나 외로왔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다가 감소감을 느껴 가지고…. 천사장의 한이 그것입니다. 천사장이 완성한 천사장으로 서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고 완성한 아담의 사랑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을 천사장은 지금까지 한번도 못 받아 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장이 지금까지 '내가 아무리 사탄이 되었을망정, 하나님은 절대자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은 절대자의 아들이기 때문에, 내가 부족하더라도 약속되어 있는 완성적 사랑을 단 한번이라도 했다는 조건을 세우고 쫓아내야 의리가 아니냐'고 참소하는 것입니다. 이건 맞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6천년 동안 그것을 걸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했다는 조건도 안 세우고 쫓아내다니, 하나님, 그럴 수 있소' 이러면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그런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 원수 사탄에게 복을 빌어 준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사탄에게 복을 빌어 줬던 거예요. 그리하여 비로소 사탄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웠기 때문에, 사탄이 추방되어 거기서부터 다른 세계가 벌어져 나온 것입니다. 이런 깊은 얘기는 다 못 합니다.

이렇게 보면 천사장 자격도 없는데, 천사장 복귀만 해줘도 고마운 일인데, 천사장 자리를 넘어 상대까지 허락해 준 것입니다. 지금까지 도의 길에서 시집 장가를 가라고 했어요? 종의 자리에서는 시집 장가를 못 가는 거예요. 시집 장가를 가려면 양자라도 되어야 됩니다. 양자는 시집 장가를 갈 수 있다구요. 아들의 이름을 갖지 못하면 시집 장가 못 가는 거예요. 종의 자리에서는 상대를 허락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양자의 자리를 거쳐 아들딸의 자리에 서야 시집 장가를 보내 주는 것입니다. 이건 뭘 의미하느냐 하면, 기독교인들보다 선두에 서서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의 기독교인보다도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충성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권이 양자권이지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기독교인들보다도 선두에 서서 충성하면 양자권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인들보다 앞서라는 것은 뭐냐? 기독교인들보다 잘먹고 잘놀고 그러라는 것이겠어요? 하나님을 위해서 피땀을 흘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조건을 걸고 3년 동안 수고했다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런 운명의 길을 갔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3년 공생애노정을 거쳤지요? 예수가 그 3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 해와를 찾고, 천사장을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죽은 것입니다. 남자 노릇도 못 하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의 한을 풀어 주려니 그런 기준을 넘어선 자리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을 넘어선 자리, 꿈에도 상상할 수 없고, 생각이 미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를 갖추게 되면 예수보다 나은 것입니다.

여러분, 축복받은 자리가 예수의 자리보다 못한 자리예요, 나은 자리예요? 나은 자리라는 거예요. 예수는 죽어서 오늘의 기독교를 만들기까지 2천년 동안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고 얼마나 많은 비참상을 당했습니까? 여러분은 그렇게 비참상을 당한 예수 성신보다 나은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또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축복가정은, 비로소 인간의 종자를 처음 만난 것처럼 생각되는 패들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하나님이 인간의 종자로서 처음 보는 패가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패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축복가정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새로운 나라가 생겨나고, 새로운 세계가 개문(開門)된다고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보고 하나님은 '너희들 때문에 내가 고생한 보람이 있는 것이요, 수난 가운데서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너희들 때문이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이 내세워 가지고 자랑할 수 있고 칭찬할 수 있고, 하나님 자신이 위로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래요, 안 그래요? 내용적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는데, 실상은 안 그렇지요?「예」 하나님의 뜻적인 내용은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으니, 하나님이 사탄의 참소에 걸리겠어요, 안 걸리겠어요? 사탄이 하나님께 '당신이 축복해 주고 찾아 나온 사람들이 저러니 보라구요'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나하고 격투해 가지고 승리의 기반을 닦았다고 하더니 잘 됐구만'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허! 예수 성신이 2천년 동안 수고해 가지고 찾은 게 고작 저것들이야? 천사장 복귀의 기준을 종결하겠다더니 그것을 대표할 수 있는 승리의 결실로서 거둔 것이 저것들이야?' 이러면서 참소를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참소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것뿐입니까? 여러분은 선생님 일대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못 보던 좋은 것들을 전부 구슬같이 꿰어 가지고 한푼의 대가도 없이 몽땅 상속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성진이를 비롯한 자식들과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여 거리의 고아 모양, 거지 모양으로 뜨내기가 되게 했는데, 여러분들은 그랬어요? 여러분들은 선생님보다 낫잖아요? 이렇게 볼 때 여러분들은 그야말로 눈을 뜰 수 없고, 그야말로 허리를 펼 수 없으며, 그야말로 여러분의 머리로 생각할 수 없는, 생각으로는 미칠 수 없는 은덕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축복가정

여러분이 서 있는 그 자리, 그 땅은 여러분의 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땅이요, 선생님의 땅이요, 예수와 성신의 피로 물들여 가지고 찾은 땅입니다. 여기에는 승리의 찬양이 깃들어야 되고, 축복의 터전으로서 만민이 우러러볼 수 있는 존경의 표적들이 남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의 가정을 바라볼 때 누구든지 머리를 숙이고, 3천만 민족 전부가 그 자리를 바라보며 소망의 터전이라고 찬양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되기에는 아직 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고, 여러분들도 전부 다 고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격이 없으니 고생을 시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지금 전국적으로 그 고비를 일시에 넘기 위해 실시한 것이 여러분의 여편네 동원입니다.

여러분들은 천사장 입장인데 아직 천사장이 되지 못했습니다. 천사장이 못 된 자리에서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즉 아직 천사장을 복귀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재차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하고 여러분하고 여러분의 여편네들하고 삼위일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누가 중심이 되어 명령하느냐? 명령할 수 있는 자리는 타락하지 않은 자리입니다. 따라서 선생님이 아담의 자리에 있으면, 즉 주체적인 입장에서 명령하는 자리에 있으면 해와가 있고 천사장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여러분 축복가정들이 지금 그런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처끼리 서 있는 자리가 그런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여편네들은 선생님을 통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여러분, 통일교회 원리에 의하면 믿음의 기대는 뭘로 복귀합니까? 무엇으로 믿음의 기대를 세워요?「제물조건입니다」 제물로 조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 실체기대는?「타락성 근성을 벗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타락성 근성이 뭐예요?「가인 아벨관계입니다」 가인 아벨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몸뚱이가 완전히 없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성 근성이 복귀되려면, 타락성 근성이 없어져야 되기 때문에 혈육적인 감정이 완전히 없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동으로 가라' 하면 '예' 해야 하고 '서로 가라' 해도 '예'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의가 있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의가 있어 가지고 복귀가 되나요?「안 됩니다」 절대적으로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즉 실체복귀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실체복귀를 하면 원죄를 전부 다 벗나요? 아닙니다. 메시아를 맞아야 됩니다. 천사장이 원죄를 지었기 때문에 메시아를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맞아 가지고 혈통전환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여러분의 여편네들이 해야 합니다. 천사장을 통해서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복귀역사에 있어서는 해와가 아담을 통해서 하늘 앞에 서서 천사장 복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하는 것이 성주식입니다. 알겠어요? 성주식할 때 선생님이 여자에게 먼저 주지요? 왜 그런지 알아요? 그것이 잃어버린 해와를 복귀하는 식이라구요. 성주식을 함으로써 영적으로 하나되고, 심정적으로 하나되고, 육적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내약(內約)인 것입니다.

성주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탄과 하나님 입회하에, 영계에 있는 수많은 천사들 입회하에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여러분이 모르는 스물 한 가지의 물건이 들어가 있습니다. 만물세계와 인간의 복귀역사과정에서 형성되는 모든 물건이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성주를 만들 때는 영계의 영인들이 와서 제발 한잔만 부어서 자기에게 먹게 해 달라고 합니다. 성주를 먹으면 복귀되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떼거리로 와 가지고 자꾸만 자기들에게도 혜택을 달라고 합니다. 선생님이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거예요. 그러나 선생님은 영계를 위한 선생님이 아닙니다. 지상을 위한 선생님이라구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은 기다려' 하고 고생한 여러분에게 준 것입니다.

여러분, 금년에 들어와서 '예수 상대'라는 말을 들어 봤지요?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아요? 복귀역사가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한이 무엇이냐 하면 민족복귀, 국가복귀를 중심삼은 120명 이상의 가정적 터전을 중심삼고 주인의 자리에서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120곳을 설치한 거예요. 선생님은 120명이 아니라 1200명을 120곳에 전부 내보내서 평면적인 기대를 세우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120곳이 하나되는 자리에서 1200명이 하나되면, 전국적인 판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1200이라는 수는 세계적인 수입니다. 따라서 세계적 기반의 해방권이 벌어지기 때문에 민족성을 지닌 예수의 소원은 자동적으로 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에 예수의 상대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저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선생님이 그걸 딱 결정하니까 난데없이 다른 교회에 다니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영계에서 예수님하고 석가모니하고 또 다른 도주들이 모였는데, 예수님이 '아 오늘은 내 잔칫날이다. 내 한을 풀었다'고 하면서 좋아 춤을 추니 이것이 웬일이냐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결정되면 영계에서 그냥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건 통하는 사람들이나 아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결정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선조들도 이제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조상이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선조들도 상대를 갖출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이 벌어지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축복가정이라는 것이 그 가치로 보아 세계를 주고 바꿀 수 있는 거예요?「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선한 성인들을 한꺼번에 모아 놓고 불살라 가지고도 못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와도 못 바꾸고, 2천년 동안 피흘려 나온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합해도 못 바꾸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못바꾼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나왔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거예요. 어떤지 저떤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거예요?「그렇습니다」 말로만 알지 사실은 모르지요? '그렇다'예요, 아니면 '그런가'예요? 「'그렇다'입니다」

통일교회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

때로 보게 되면, 지금은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완성의 고비를 넘는 시대이기 때문에 비로소 선생님이 여러분의 가정에 대해서 구원의 역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구원해 줄 수 없었습니다. 구원해 주면 안 되게 되어 있었어요. 종의 자식들을 구원해 주면 되겠어요? 자기 아들딸도 먹지 못하고 굶고 있는데 종의 자식들을 먹일 수 있겠어요? 그렇잖아요. 자기 아들딸이 먹고 남아야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아들딸이었으니 하나님도 자기 아들딸을 더 사랑하지, 종을 더 사랑했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선생님이 여러분 모르게 가정적 기준에서 그런 사랑의 조건들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여러분 가정을 대해서도 전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의 아내들을 내보내고 돈도 주고, 또 여러분의 자식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분 나쁘겠지만 선생님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들은 평면적인 면에서 가정을 중심삼고 아버지의 인연을 세워 나가야 되고, 아버지는 또 그 아내와 아들딸을 모시고 나가야 됩니다. 아내와 아들을 모셔 가지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모셔야 되는 것은 아들이 아벨이고 아버지는 가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볼 때 아버지가 가깝겠어요, 아들이 가깝겠어요? 아들이 가깝습니다. 그런 조건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천사장으로서 역사적인 천사장형과 실체적인 천사장, 영적인 천사장과 시대적인 자기가 완전히 일체되는 자리에서 복귀섭리를 중심삼고 복귀의 결정적인 모든 내용을 완결하고 넘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넘어가는 데는 그냥은 안 됩니다. 사탄이 국가를 걸고 반대하니, 나라를 구하겠다는 기준에서 넘어가야지 가정을 구원하겠다는 기준에서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이 그런 때입니다. 그런 때가 되었기 때문에 세계 정세가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1972년도를 바라보는 지금 세계 정세가 얼마나 복잡해지고 있습니까? 복잡해지는 만큼 우리의 때가 가까이 오는 것입니다. 지금 남북간의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하자고 해서 북괴도 한다고 했지요? 물론 그들도 적십자사를 통해서 하겠지만 그들은 정책적인 기준이 선 뒤에 나올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은 그들에게 말려들어가기 쉬운 것입니다. 사상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그때에 가서 몰릴 거예요.

앞으로 이산 가족들이 남북을 왔다갔다하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북한에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공산주의 사상으로 새빨갛게 물들이기 위해 사상 교육을 시키는 것처럼, 남한에서도 새빨간 사람들을 하얗게 만들기 위해서 강력한 사상교육을 할 수 있는 단체가 있어야 되는데, 그럴 수 있는 단체는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왔다갔다하게 교육을 시켜 가지고 화합하게 해줘야지 어떡하겠어요?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는 날아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다 좋은 일입니다. 나쁜 일이 아니예요. 세상이 왜 이렇게 되어 가는지 알아요?

예수님보다 나아야 할 축복가정

이제는 대한민국도 통일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지요?「예」 이제 그야 말로 예스냐, 노냐를 결정할 때가 왔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데는 받게 드리느냐, 못 받게 드리느냐 두 가지뿐입니다. 지금은 이것 아니면 저것, 둘 중의 하나를 결정해야 되는 때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통일교회는 총각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가정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런 아내를 가진 것을 자랑해야 됩니다. 그런 아내가 없으면 여러분이 선생님과 관계맺을 수 있어요? 아담의 자리, 다시 말하면 예수보다 나은 자리에 서지도 못하고, 완성한 천사장 자리에도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런 아내가 있기 때문에, 아들들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내를 잘 모셔야 됩니다. 그리고 아들딸에게는 전통적 사상을 바로 집어넣어야 됩니다.

그 가치는 여러분의 몸뚱이를 백 개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아내는 아들 백 명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실감이 날 것입니다. 천 개 만개 주고도 살 수 없는 거라구요. 그런 역사적이고 천주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잘만 풀고 넘어가는 날에는 세계가 그 사람, 그 가정의 세계가 되는 것이요, 나라가 그 사람 그 가정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청평땅을 우리 땅이라고 하지요?「예」 그게 왜 여러분 땅이예요? 여러분들이 그 땅 살 때 돈을 보탰습니까? 왜 여러분 거예요? 참부모라는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 사상의 골자가 뭐냐 하면 참부모의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그걸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이예요. 그러니 여러분이 참부모의 아들딸이면 참부모의 것은 누구 것입니까? 아들 딸의 것. 즉 여러분 것이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아들딸이라고 하면 천사장 복귀, 해와 복귀, 아담 복귀의 탕감 노정을 전부 다 거쳐야 되는데, '그건 난 싫어, 그저 참부모밖에 몰라'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부랑자, 불효자입니다. 아벨과 화합하여 순리적인 과정을 전부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뜻을 자기 생명보다 귀히 여기고, 그 귀한 가치를 상속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은 이번 기회에 축복가정의 가치를 잘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잘 알아야 되겠어요. 여러분은 예수보다 나아야 됩니다. 축복가정은 그런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전체의 상황을 두고 볼 때, 여러분들이 중요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됩니다. '교회장' 하면, 교회장은 우리 통일교회의 기둥이 되든가 초석이 되든가 해야 합니다. 그런 일면의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군교회의 책임자는 통일교회의 선발대

​지금 전국에 군을 중심삼고 있는 교회장들을 두고 볼 때, '군(郡)'하게 되면 도나 중앙청을 중심삼고 횡적인 기대를 모아 나가는 데 있어서 그 중심이 되는 것처럼, 우리 교회에 있어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군 교회장의 입장인 것입니다. 우리가 행정조직을 보더라도 중앙이 있고 도가 있고 군이 있는데, 실무 책임을 어디가 지느냐 하면 군이 모든 실권을 쥐고 횡적으로 면(面)을 통해서 일을 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군이 면(面)과 리(里)까지의 횡적 중심의 자리에 있다는 거라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 전체 조직에 있어서 지금 군을 책임지고 있는, 옛날로 말하면 지역장의 입장에 있는 교회장들이 우리 교회의 선발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죽어 있느냐 살아 있느냐 하는 문제, 또는 이들이 하나님 앞에 공적을 세우느냐 못 세우느냐 하는 문제가 우리 통일교회의 부흥 여하를 좌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여러분이 중요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하나의 군대가 강하려면 참모부에 있는 참모들이나 상급 부대의 지휘관들이 좋아야 되겠지만, 아무리 상급 지휘관들이 좋다 하더라도 실전을 책임진 중대장이나 소대장들이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면 그 군대는 모든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가져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 통일교회, 뜻을 중심삼고 나가는 이 거대한 단체가 움직여 나가는 데 있어서 선발대와 같은 입장이 누구냐 하면 여기 모여 있는 여러분들입니다. 여러분이 의기가 양양해 가지고 활동해 나가면 이 단체는 전체가 발전하는 것이요, 만약 여러분이 그러지 못하면 이 단체는 발전을 못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사기가 충전되어 있으면 하나님은 그 사기를 따라 새로운 계획을 하실 수 있지만, 여러분의 사기가 저하되어 있으면 하나님이 새로운 계획과 발전의 요건을 제시하실 수 없고 아무런 기대도 걸 수 없는 것입니다.

대상적 실체 절대자가 되어야 할 통일교인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에서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 믿어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믿으라고 하는 데 그 이유가 뭐냐? 구원을 얻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구요. 구원은 사탄과 싸워서 이겨야만 얻는 것이지 사탄과 싸우고 있는 입장에서는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강조한 말이냐? 우리의 개인구원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보다도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요구가 있기 때문에 '믿어라'고 한 것입니다.

아무리 절대적인 신앙, 모범적인 신앙을 가졌다 하더라도 6천년 동안 하나님을 참소하고 하나님을 골탕먹이던 능란하고도 노련한 사탄을 굴복시키는 일은 우리 인간 자체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믿는다 해도 인간만 믿는 것 가지고는 능구렁이 같은 사탄, 6천년 동안 하나님을 유린해 온 사탄을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도의 노정을 따라 완전히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탄과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구원을 못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잘 아는 바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은 종이요, 오늘날 구원받기를 원하는 인간은 아들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인간이 아들로서의 책임을 했다 하는 자리에서 종을 종으로서 백 퍼센트 부릴 수 있고 관리할 수 있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즉 구원은 뭐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탄과 대결하고 있는 입장에 선 것이 오늘날 신앙의 길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러한 신앙길에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강조한 것이 뭐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으니 절대적으로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전능하시니 그 하나님을 믿는 너희들도 전능할 수 있다는 마음 바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동요없이 죽음의 고비도 넘어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나가게 될 때, 하나님이 거기에 작용을 해 가지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타락하지 않았을 때의 아담 해와를 주관하던 본심적 심정의 작용을 다시 일으켜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기 때문에, 사탄은 거기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사탄이 굴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탄을 굴복시키는 일은 우리 자신들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써 타락하지 않은 완성권내에 설 수 있는 인연의 조건을 세우게 될 때, 내심으로 하나님만을 절대시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 아담이 하나님을 절대시하지 않는 자리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들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자리에 서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아담 해와보다 더 나은 자리에 선 것으로 인정을 하시어 우리를 간섭해 가지고 사탄과 대결할 수 있는 발판을 조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본심을 작용시켜 가지고 거기에 강력한 힘을 투입시켜 우리에게 사탄을 대해 당당코 나설 수 있는 제2의 신념을 갖게 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은 우리 앞에 더 이상 대립하지 못하고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무조건의 신앙을 강조하는 것은 무조건 구원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의 신앙태도는 무조건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식입니다. 말은 맞는 말입니다. 무조건 신앙하면 구원 얻기는 얻는데, 무조건 신앙해 가지고 무엇을 해야 되느냐? 사탄과 싸워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구원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믿으면 구원 얻지' 이러고 있어요. 여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조건 믿으라는 말은 뭐냐? 절대적인 신앙을 가지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옛날 아담이 타락할 때, 절대적인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한 기준을 넘어선 인연을 갖춘 자리에 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작용해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킬 터전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탄을 굴복시켜 가지고 승리의 기준을 세워 놓고서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성교회 신앙은 사탄이야 있건 없건간에 무조건 믿으면 구원 얻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에 있어서 근본적 차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조건 믿더라도 사탄을 굴복시켜야 구원의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는 것이고, 사탄을 굴복시킨 승리의 실적을 가져야만 천국 갈 수 있는 것이지, 무조건 믿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결국 문제는 뭐냐? 하나님이 협조할 수 있는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갓입니다. 무조건 믿으라고 한 것은, 우리 인간이 너무나 타락하여 하나님이 상대할래야 상대할 수 없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믿음을 가짐으로써 마음으로라도 타락하지 않은 자리에까지 올라올 수 있는 상징적인 절대기준이라도 세우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인 신앙을 요구해 오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상징적 절대기준만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실체적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상징적이 아니라 대상적 실체 절대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말이 다른 거라구요. 하나님이 절대자라면 그 절대자 앞에 우리는 대상적 실체 절대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믿음을 초월한 자리입니다. 사탄을 굴복시킨 자리입니다. 그렇쟎아요? 절대적 하나님 앞에 참소할 자가 어디 있으며, 절대적 하나님 앞에 대립할 자가 어디 있느냐? 없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절대자 앞에 상대적 절대자, 상대적 실체 절대자의 자리에 선 사람도 어느 누가 참소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절대적 상대의 입장에 선 사람을 누가 참소하겠어요? 세상의 예를 두고 보더라도 남편 있는 여자에게 누가 이러고저러고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대적 상대, 상대적 절대자의 입장에 서야 할 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식구들입니다. 여러분이 절대적 실체 기준을 가진 입장에 섰다 할진대는, 하나님 앞에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앞에도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게 되고 지상에 천국이 전개될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을 남겨 놓고는 지상천국을 이룰 수 없습니다. 천국은 커녕, 오히려 천국을 이루기 위한 싸움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망치는 사탄이 있으니, 그 사탄을 굴복시켜야 할 싸움이 남아 있는 것이지 천국생활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상천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절대적 대상실체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탄이 참소 못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상에 살더라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실천자의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탄과 싸우는 자리에서 천국이 이루어져요? 그 자리는 천국을 이루기 위해서 싸우는 자리지 천국이 이루어진 자리는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협조해 주실 수 있는 사람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협조를 받습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하더라도 '아버지여! 저에게 협조해 주시옵소서'라고 하지요? 협조를 받기 위해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협조를 받는 데는 어떻게 받느냐? 협조를 받는 데는 단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왔다고 해서 다 같지 않습니다. 하늘적으로 보면 전부 다 소생, 장성, 완성과 같은 단계가 있는 거라구요.

그러면 하나님이 협조해 주시는 데 있어서 제일 협조해 주고 싶어하실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한번 협조하면 다시 협조해 줄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한번 협조해 줌으로 말미암아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해주고 또 해주고, 또 해주고…. 이러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한번 해주면 그것으로 마지막이 되어서 하나님이 협조하실 수 있는 일이 끝나고, 인간으로서 하나님 앞에 요구할 수 있는 일이 끝나는 그런 자리에서 협조해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대해 협조해 주고 싶어하시는 데 있어서의 목적점일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복귀노정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종의 종의 자리에 있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협조해 주고 싶어서 협조해 주셨겠느냐? 이것이 문제되는 거라구요. 어때요? 협조해 주고 싶어서 협조하셨겠어요, 협조해 주고 싶지 않지만 할수없어서 해주셨겠어요?「할수없어서요」 알긴 아는구만. 할 수 없어서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왜? 협조해 줄 필요가 없게 될 그날을 맞기 위해서입니다. 불쾌하고 싫지만 하나님이 협조해 주고 싶어서 협조해 주실 수 있는 마지막 때를, 하나님이 진정으로 찾으시는 협조의 때를 맞기 위해서, 싫지만 종의 종의 자리에 있는 인간들을 복귀의 책임을 지고 지도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종의 종의 자리를 빨리 벗어나려면

그러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그 자리가 오래 계속되는 것이 좋겠어요, 빨리 끝나는 것이 좋겠어요? 「빨리 끝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똑똑히 대답하라구요. 오래 계속되는 게 좋겠어요, 빨리 끝나는 것이 좋겠어요?「빨리 끝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겠지요? 여러분, 하나님의 입장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종의 종의 자리가 빨리 결정나서 그 종의 종으로서의 기간이 그저 하루면 하루, 한 시간이면 한 시간만에 생각과 더불어 끝나기를 바라실 것이 아니겠어요? 나아가 그 기간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없을 수는 없고, 어차피 있게 되었으니 그 책임을 빨리 해 가지고 얼른 끝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의 종의 자리를 빨리 끝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적당히 해라, 그거 그렇게 힘드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하니, 그저 오늘 한시간 하고 내일 한 시간 하고 그렇게 살면 종으로서 되지' 그래 가지고 될것 같아요? 종의 종의 자리를 빨리 끝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라면 종의 종이 하는 대로 그저 적당히 내버려 둬서 되겠어요? 그래 가지고 될 것 같아요?「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이 자식아, 가라면 싫더라도 가야지 왜 이래, 이놈의 자식아' 하면서 목을 잡아 끌고 궁둥이를 짓밟고 몽둥이로 후려쳐 가지고라도 가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일생에 걸쳐 할 것을 한 십년 동안에 해서 종의 종의 짐을 벗게 된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어느 길을 택하겠어요? 종의 종도 어떤 길을 택하겠어요? 그저 슬쩍슬쩍 하면서 지루하게 백년 동안 가야 하는 길을 택하겠어요? 아니면 눈물 콧물 흘리고 얼굴을 찡그리고 죽을 상통을 해 가지고 '나 죽는다'고 할 수 있는 고통스러운 길이라 하더라도 한 십년에 갈 수 있는 길을 택하겠어요? 어떤 길을 택하겠어요?「고통스러운 길이요」 왜요?「빨리 끝나니까요」 빨리 끝나면 좋은가? 빨리 끝나면 왜 좋아요? 빨리 끝나 가지고도 종의 종이라면 좋기는 뭐가 좋아요? 그게 그거 아녜요? 그게 그거라면, 백년이 가든 천년이 가든 적당히 슬쩍슬쩍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빨리 끝나 가지고도 종의 종이라는 간판을 그냥 가지고 있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잖아요? 그렇지만 종의 종으로서의 기간을 끝내고, 그 다음에는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종의 종에서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종의 종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종 새끼의 종입니다. 그렇잖아요? 주인이 종으로 부리는 것이 아니고 주인의 종이 나를 종으로 부리는 것입니다. 그게 종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종의 종으로서는 주인을 만난다는 것은 억천만년이 가도 불가능한 거라구요. 그런 종의 종의 입장에 있는 사람 앞에 '네가 이것만 하고 나면 종의 종이 아니라 종이 된다'고 할 때, 또 사실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종의 종으로서 편하게 백년길을 가겠어요, 그저 무너지고 죽어 쓰러져 없어질지라도 종이 될 수 있는 십년 고통길을 가겠어요?「십년 고통길이요」 이것만 알게 되면 못생기고 미욱한 사람일수록 빠른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곰 같은 사람, 돼지 같은 사람, 미욱한 사람일수록 빨리 가고,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못 갑니다. 어떻게 된다구요? 그 말 틀림없을 것 같아요? 눈을 깜박깜박하고 이것저것 생각하고 앞뒤를 재고 어떻게 적당히 해 가지고 수고하지 않고 가겠다는 패는 떨어지는 거예요.

곰은 우직하기가 한량이 없습니다. 곰은 높은 산에 올라가서 덕을 매 가지고 거기에서 떨어져 봐 가지고 아파야 거기에 올라가서 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곳을 버리고 다른 데 가서 덕을 매는 거라구요. 얼마나 우직하고 미욱해요?

미욱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

세상 사람들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복귀섭리역사를 두고 보아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보면 지금 종의 종들을 모아 가지고 나오는데 그들에게 종의 종의 자리에서 벗어나 종이 되는 길이 있다는 것만 가르쳐 주면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오는 거예요. 미욱한 사람은 그저 매를 맞든 소같이 부림을 당하든 가지만, 약삭빠른 사람은 '뭐 그럴 게 뭐야?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저 적당히 보조를 맞추고 슬쩍슬쩍 가는 거지, 철없고 뭘 모르는 것들이나 저렇게 가지 우리같이 안팎을 다 아는 사람들이 그럴 수 있어? 구경이나 하면서 가지'라고 합니다. 이렇게 두 패가 있는 거예요. 역사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그런 두 패가 있어 왔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노아 할아버지를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미욱합니까? 노아 할아버지가 미욱한 사람이예요, 지혜로운 사람이예요?「미욱한 사람입니다」 미욱해도 그렇게 미욱할 수가 없고, 바보 천치 중에도 그런 바보 천치가 없을 것입니다. 전지전능하고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이 배를 지으라고 할 때, 강가나 평지 같은 데 지으라고 하면 얼마나 좋아요. 나무를 져 나르기도 좋을 것이고. 아침이고 저녁이고 나가서 일하기도 쉬울 것이고, 이것 저것 한 가지에서부터 천만 가지를 비교하여 생각해 봐도 산에다 짓는 것보다는 강가에다 짓는 것이 낫다 이거예요. 누가 생각해 봐도 '하나님은 나만 못하다' 그런 생각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나만 못한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는 거예요. 나만 못한 하나님을 믿을 수 있어요? 나보다 나아야 믿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믿는다는 것은 자기보다 낫든 못하든 간에 믿는 것입니다. 신을 믿는 것은 그거라구요. 믿는 데는 지내 보고 나서 믿는 것이 아니라구요. 지내 보기 전에 믿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좋건 나쁘건간에 믿는 것입니다.

노아 할아버지를 보면, 하나님이 '120년 후에 네 집안만 남기고 모두 물로 심판할 테니, 내가 시키는 대로 엄청나게 큰 배를 지어라'고 하실 때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에게 노아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만들어 줄 테니, 저 무슨 산인가, 울업산이면 울업산 꼭대기에다 노아가 지은 것 같은 큰 배 말고 그저 조그마한 배를 한 십년쯤 걸려서 지어라 하면 '예이' 할 사람 손들어 보세요. 이런 걸 보면, 여러분은 노아 할아버지보다 지혜가 있습니까, 미욱합니까? 미욱해요, 지혜가 있어요?「지혜가 없습니다」(웃음) 오늘날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를 사람 취급 하겠어요? 여러분은 십년이라고 해도 생각도 안 하려고 하고 있는데, 120년! 그 얼마나 미욱해요? 여러분보다 10배 이상 미욱하다구요. 그러니 이 세상에 살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예요, 살지 못할 종류의 사람이예요? 그런 사람은 살더라도 토굴 파고 거기에 들어가 살아야 할 미욱하기가 한량없는 사람이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틀림없이 그렇다구요.

또 아브라함을 보세요.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우상장사 해서 어떻게 살든간에 그는 아침 저녁 밥 먹는 데는 불편을 안 느끼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상장사인 그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아브라함이 없으면 찾고, 좋은 것이 있으면 아브라함과 같이 먹으려 하고…. 살림살이 하는 데 있어서도 만사를 아브라함을 위주해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아브라함의 눈에도 빤히 보였던 것입니다. 그 동네에서 사는 데도 부족함이 전혀 없었던 거예요. 아 그런데 하나님이 무슨 심술이 나서, 무슨 원수가 되어서 아브라함에게 야간 도망을 하게 했습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이 낮에 '어머니 아버지, 나 오늘 갈대아 우르를 떠나겠소, 하고 인사를 했으면 놓아 주었겠어요? 할수없이 야간 도망을 한 겁니다. 보라구요. 미친 놀음이라구요, 미친 놀음. 아침에 가도 갈 수 있지만 잡히면 안 되거든요.

또 그 일을 누구와 의논했다가는 자기가 미욱한 놀음을 하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인지 뭔지 보기나 했어요? 뭐 네 아들딸을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번성케 해서 너를 세계의 복 받는 조상으로 만들겠다고 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이 꿈 같은 것 아닙니까? 비몽사몽간에, 혹은 기도 가운데서 들은 허풍 같은 이야기라구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야 너 보따리 싸 가지고 아무 곳 아무 데로 가라' 하는 그 말 듣고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요? 떠날 수 있어요? 그 시대로 보면, 아브라함이 그 가정에 있어서 제일 미욱한 사람이라구요. 아브라함이 지혜로운 사람이예요, 미욱한 사람이예요? 미욱한 사람이라구요.

또, 모세를 보자구요. 바로 궁중에서 바로 공주의 아들로서, 만판 푸짐한 영광과 영화가 즐비한 가운데에서 가는 데 오는 데 부족함이 없는 입장에서 살던 모세였습니다. 그는 미래에 국왕까지도 될 수 있는 가망성이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렇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뭐가 불편해서 이스라엘 민족이면 이스라엘 민족이지, 그들이 싸우는 데 뭐가 배가 아파 야단하다가 사람까지 죽이고, 궁중이고 뭣이고 전부 집어던지고 미디안 땅으로 도망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모세가 미디안 땅에 가서 도 닦은 줄 알아요? 양치기를 했어요. 그것도 이방의 제사장 집에서 종살이를 한 거예요. 보라구요. 왕궁이 변하여 돼지 우리가 된 겁니다. 그렇지요? 왕궁에서 만인이 추앙하는 자리에서 떨어져 가지고 집시가 된 것입니다. 오늘은 이 골짜기에서 비를 맞고 양떼와 더불어 먹고 살아야 되는 신세가 됐다구요. 그러기를 40년 동안이니 얼마나 미욱해요? 바로 공주한테 사신을 보내 가지고 사바사바하고 알랑거리지 않고 말이예요. 한번 나왔으니 죽어도 못 간다고…. 얼마나 미욱하고 외고집장이냐 이거예요.

그 시대에 그럴 게 뭐 있어요? 노예같이 일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었나요? 수천 수만명이 고생하는데 자기 때문에 죽은 그 한 사람의 패가 되어 가지고 그렇게 야단할 필요가 없는 거라구요. 아는 척 모르는 척 그저 슬쩍하면 누가 못 한다고 말할 입장도 아니었다구요. 그걸 보면, 그 시대 사람으로서 그는 미욱하기 짝이 없었다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또 세례 요한을 보라구요. 남들은 잘먹고 잘사는데, 그는 뭐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약대 털옷을 입고 무슨 띠를 매었다고요? 성경에서 이렇게 좋게 써 놓으니까 그게 좋은 것인 줄 알아요? 이것은 형편이 무인지경이라는 것이라구요. 사람은 집에서 밥을 먹고 사는 것이 역사적인 전통인데도 불구하고 무슨 메뚜기를 잡아 먹고 석청을 먹었는데. 그게 됐어요, 안 됐어요? 생각해 보세요. 무슨 먹을 것이 없어서 메뚜기를 잡아먹겠어요? 좋아서, 맛있어서 메뚜기를 잡아먹었겠어요? 또 석청을 구해 먹기가 쉬울 것 같아요? 벌 둥지 하나를 찾으면 하루 이틀밖엔 못 먹을 거예요. 여러분, 이스라엘에 한번 가 보라구요. 석청이 많게 안 되어 있어요. 반 사막지대라구요. 석청 둥지 하나 얻기 위해서는 며칠이나 돌아다녀야 되겠어요? 매일 그저 꿀이 줄줄 흘러 나오는 것을 받아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해요? 거기는 석청 둥지 하나 찾으려면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수고하지 않으면 안될 땅이라구요. 알겠어요?

그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니까 석청 등지가 쭈욱 많이 준비되어 가지고 제1호, 제2호, 제3호…이렇게 있었는 줄 알아요? 또 메뚜기도 춘하추동 언제나 있는 줄 알아요? 천만에요. 여름 한 철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철에 메뚜기를 잡아서 말려 가지고 가루로 빻아서 뭉개떡을 만들어 먹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 여름이 되면 메뚜기를 잡으러 돌아다녔겠어요, 메뚜기야 오라 오라 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었겠어요? 메뚜기가 뭐 둥지를 틀고 떼거리로 모여 있나요? 후다닥 후다닥 뛰어다니잖아요? 생각해 보세요. 메뚜기 먹기가 편하겠어요? 죽을 지경인 거예요. 미욱한 사람이라구요. 그 시대적으로 볼 때, 제일 미욱한 사람이라구요. 그는 사람 축에 들어가는 자가 아니라구요.

또 보게 되면 약대 털옷을 입고 다녔다고 했지요. 이스라엘은 반사막지대로 언제나 더운 지방입니다. 베옷을 입고 다녔다면 모르지만 약대 털옷을 입었다니 그거 팔자 다 됐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요약해서 그렇게 써놓았지만 그 내용을 파헤쳐 보면…. 여러분을 거기 데려다 놓았다간 하루도 못 있고 다 도망갈 것입니다. 만일 거기에다가 통일교회 교회장들을 데려다 놓으면 몇 달이나 세례 요한과 어깨를 같이하고 남아 있을까요? 몇달도 안 돼서 다 도망갈 거예요. 여러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까놓고 얘기해 보자고요. 「세례 요한보다 우리가 더 미욱합니다」 여러분이 세례 요한보다 미욱한 게 뭐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세례 요한이 뭘 알았던 것도 아닙니다. 주먹구구식이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주먹구구식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식이라는 것이 어린 아이들이 '야, 이것 가지고 금 만든다. 이것을 위로 올렸다가 떨어뜨려서 딱 소리가 나면 금이 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격이었다고요. 그리고 30년 동안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그렇게 살았으니, 사나이로서 그 꼴이 된 거예요, 안 된 거예요? 그런 녀석한테 시집가겠다고 하는 처녀가 있을 것 같아요?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구요. 그런 사람에게 시집가겠다는 색시감이 있을 것 같아요?「신앙이 깊은 사람은 갈 것 같습니다」 (웃음) 신랑하고 살아 봐야 깊은지 어떤지 알지, 생각해 보세요. 형편이 무인지경이었던 거예요.

뜻을 중심삼고는 미욱한 사람이 오히려 지혜로운 사람

예수도 보세요. 여러분, 예수가 훌륭하지요? 예수를 역사적으로 훌륭하게 장식을 해서 만들어 놓았으니까 훌륭하게 보이지. (웃음) 여러분이 예수를 2천년 전 그때에 만났다고 생각해 보세요. 지금 소위 천주교 주교라든가 추기경이라든가 하는 사람들이 지금 '에헴' 하고 있는데, 이들이 옛날 2천년 전에 예수를 만났더라면 도망을 가도 맨 먼저 도망갔을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형편이 무인지경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가 오병이어(五餠二魚)로 이적을 일으켜서 5천명을 먹였다고 했지요? 그거 하나님이 좋아서 그렇게 하셨어요? '야 너희들 배부르지만 별스런 구경 좀 해봐라' 하면서 그렇게 하셨겠어요? 얼마나 형편이 무인지경이었겠어요? 예수가 눈이 굳어지고 혀가 굳어지고 표정이 굳어지도록 정성을 들이고, 호소를 했다면 그저 목숨을 걸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경각 지경에서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거라구요. 하나님도 할 수 없이 기동력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대로 놔뒀다가는 씨알맹이도 없게 되겠으니까, 차후는 그만두고라도 당장에 야단나겠으니까 이적을 일으키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적을 일으키는 그런 일을 했기 때문에 예수가 죽은 거예요. 그렇잖아요? 남처럼 욕을 먹고 돌아다니면서도 그저 무용지물처럼 가만히 있었으면 죽지 않았을 거예요. 누가 잡아 죽여요? 그랬더라면 예수가 죽었겠나 생각해 보세요. 이 동네에 가서 '내가 메시아다. 그러니 나를 믿지 않으면 이스라엘 민족은 망한다'고 한마디 하고, 그 동네에서 '이 녀석아 무슨 말이냐' 하고 쫓아내면, 저 동네로 가서 '나 믿지 않으면 망한다' 이런 식으로 다녔으면 어떻게 됐겠어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내가 가서 한바퀴 도는 데 다섯 시간도 안 걸렸습니다. 강원도보다 작은 나라예요. 일년이면 몇십 바퀴를 돌 수 있다구요. 그러니 심심하면 '나를 믿지 않으면 망한다'고 하면서 맨 처음에 시험 케이스로 한번 쭉 도는 거예요. '메시아가 온다고 그랬는데, 내가 메시아가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될 것 같기도하고 안될 것 같기도하니 날 믿어야 된다'고 하면서 시험삼아 한바퀴 쭉 돌아다니면 누가 죽이겠느냐 말예요?

그 다음엔 좀더 강하게 '지금까지는 내가 메시아가 될지 안 될지 모른다고 했지만, 이제는 내가 메시아가 될 가망성이 백 퍼센트에 가까우니 날 믿어라'고 얘기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눈치를 봐 가면서 한바퀴 돌게 되면 처음에는 쫓아내고 그럴 거예요. 쫓아내면 쫓겨나는 것입니다. 쫓아내면 '너희들이 쫓아내지만 나는 갔다가 또 올 것이다'고 하면서 한 바퀴 돌고 두바퀴 돌고 세 바퀴 돌고 하면 이스라엘 나라가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쫓김당하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번 네 번 돌게 되면 어른들은 쫓아내도 아이들은 친구가 됩니다. 동네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모여드는 구경꾼이 동네 아이들이지요? 그러면 그 아이들을 살살 끌고 돌아다니면서 재미있는 동화도 들려 주면서 아이들 대장 노릇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대장이 되어 가지고 애들을 끌고 다니면서 하나 하나 길러 가지고 한 20년이 지나게 되면 이스라엘 나라를 다 맡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런데 잠잠하던 마음에 무슨 홍두깨 바람이 불어 가지고, 이적은 왜 하고 돌아다녀요? 이적을 행한 것이 예수가 죽게 된 동기가 된 걸 알아야 됩니다. 이적을 안 했으면 예수가 죽었겠어요, 안 죽었겠어요? 절대 안 죽는다 이거예요.

반미치광이 같은 사람은 법에도 적용이 안 돼요. 법관 앞에 끌려가서도 '너희들 나 잡아다 뭘 어떻게 할래? 상 줄래? 나 상주려고 데리고 왔구만' 이랬으면 미친 녀석이라고 쫓아냈을 거예요. (웃음) 별의별 작전과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돌아다니면서 무슨 이적기사를 행하고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고 그게 무슨 수작이예요?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안그래요? 생각해 보세요. 그 조그만 곳을 1년이면 열 바퀴 돌 수 있으니까 한 20년 동안 2백 바퀴는 돌아다니는 거예요. 엄청나다는 거예요. 장가도 못 가고 30대에 죽을 게 뭐냐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할 때는 예수가 작전을 잘못했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 작전의 누더기를 쓰고 나까지 고생하는 거예요. (웃음)

그걸 보면 예수도 미욱했다는 것입니다. 아주 미욱했어요. 뭐가 그렇게 흥이 나고 신이 나 가지고 나라 전체가 반대를 하는 판에 그러고 돌아다녔느냐는 것입니다. 온 나라가 다 반대하면 어디 들어가 박혀 두꺼비 모양으로 가만히 앉아서 겨울을 쓱 지내고, 봄날을 맞이해 가지고 반대하던 패들이 동서 남북 사방으로 갈라지면 그때에 나와서 한 바퀴 돌아다니고 또 반대하면 또 쓱 후퇴하고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예수도 미욱한 사람입니다. 그렇잖아요? 사실은 미욱했다는 거예요. 미욱했지요? 그러나 예수만은 미욱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미욱한 것 같으면서도 지혜로와야 했는데, 작전을 잘못했던 것입니다. 잘했으면 예수가 절대 안 죽습니다. 왜 유대 교법사들과 원수가 되어 가지고 그렇게 야단을 해요? 그렇잖아요? 쓱 가다가 교회가 있으면 나무라도 한 짐 해서 져다 주고, 목수이니까 대패질해 가지고 나온 대패밥이라도 갖다가 땔나무로 쓰라고 주고 해서 제사장 교법사들과 친하게 지내는 가운데 준비를 해 가지고 가야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지, 주먹다짐을 해서 깡다구로 해 먹으려고 하면 뭐가 되겠어요? 그러니까 사고가 생기지요.

그런 것 저런 것을 보게 되면, 그 시대에 미욱한 패들이 섭리의 뜻을 받들고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다 미욱하다는 거예요. 탕감시대를 중심삼고 볼 때, 종의 종시대로부터 종의 시대로 올라오는 복귀 노정에 있어서 누가 그 노정을 책임을 질 수 있느냐? 종의 종에서 고생만 하면 종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누가 남아지느냐 하면 미욱한 사람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제일 미욱한 놈일수록 선두에 서서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신앙자들은 미욱한 패들이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코방귀도 안 뀌었다구요. 얼간이 중간쯤 되는 녀석들이 코방귀를 뀌고 반대하고 다녔지, 지혜로운 사람들은 꿈에도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종의 종이 미욱한 길을 가서 종이 된다면, 그 미욱한 길을 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예요, 미욱한 길을 가는 사람을 비난하며 그 시대에 지혜로운 사람 같아 보이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예요?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겠어요?「미욱한 사람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볼 때는 곰같이 미욱한 사람이 오히려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수고한 터전을 중심삼고 점점 역사를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종의 종 시대 다음에는 종의 시대로 들어갑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몰랐던 거예요. 믿으면 전부 다 같이 되는 줄 알았지, 단계적인 발전을 통해서 해방의 한날을 맞이할 수 있는 영광의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저 언제나 그렇게 종으로 있다가 끝날 줄로 알았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미욱한 사람 가운데 이렇게 단계적으로 발전해 간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시대의 누구보다도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신앙길을 가는 사람은 그 길을 그냥 출발하지 않습니다. 약속을 세워 가지고 출발합니다. 사람과 더불어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약속하는 것입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그런 분과 한 약속을 중심삼고 있는 것보다 더 강하게 믿고, 세상의 그 누구를 부정하더라도 그 믿는 마음을 끝까지 지켜 나간 사람들이 섭리적 사명을 책임지고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종의 종의 시대에서 종의 시대로 들어온 것입니다. 종의 자리로 올라왔다는 거예요.

양자의 자리로 나갈 수 있는 종

이 종들이 양자가 될 수 있는 빠른 길이 있다고 한다면, 주인이 종을 양자로 만들겠다고 약속을 해서 종들이 양자가 되기 위한 경쟁에 나섰다면, 적당히 하는 종이 양자가 될 수 있겠어요? 종들 가운데서도 지긋지긋하게 책임을 완수하는 사람, 책임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 제일인자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자리에서 대우받는 것이 종이예요, 나쁜 자리에서 천대받는 것이 종이예요? 나쁜 자리에서 천대받는 것이 종입니다. 그런데 종으로서 대우받기를 원한다면 그건 틀린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종이 못 됩니다.

천대받는 것이 종이기 때문에, 종은 '죽을 길은 내게 맡기소서' 해야 합니다. 또, '한 번 죽음길을 갔으니 두 번째 죽음길은 난 싫소'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주인이 두 번째로 가야 할 죽음길이 있는데, 한 번 죽음길을 통과했다고 해서 '난 싫소' 한다면 그 사람은 배신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제거당하는 거라구요. 그러나 '책임을 완수해 가지고 두 번째 죽음길도 내가 가겠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 죽음길이 있을 때 '그것도 내가 책임지겠소. 첫 번째는 갑이, 두 번째는 을이 간 것이 아니고 맨 첫 번째에도 내가 가고 두 번째에도 내가 갔지만, 세 번째인 이번에도 내가 가겠소. 딴 사람이 없소'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다른 종들은 '저 녀석, 저 미욱한 녀석, 저런 길을 또 가고 있다. 저 녀석 하는 것을 우리는 구경이나 하자, 저 녀석 저러다가 손들겠지'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1차 2차 3차 죽을 고비도 전부 그 사람이 책임해서 넘어갔다면 그 사람은….

또, 세 번을 넘고 네 번째 죽음길이 남아 있는데 '이 길을 책임질 사람이 누구냐' 할 때, 또 손들고 나서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주인이 넘어야 할 최고로 어려운 고비를 모두 그 종이 대표로 넘어섰다고 할 때, 그렇다고 해서 그 이튿날 당장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생만 더한 거지요. 죽을 고생을 했으니 얼굴은 될 대로 되어 있고, 신세가 형편 없을 것 아니예요? 그는 종들 가운데서도 호외로 취급받는 것입니다.‘저 못난이, 우리를 대표한 못난이, 고생 주머니, 이 천덕꾸러기, 야! 우리를 대표해서 희생해 이 자식아!’하면 '예 그럽시다' 하며 도매금에 팔려다니는 것같이 된다구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만, 당장에는 아무것도 갖지 않은 것 같지만 주인의 마음을 점령하게 되는 거예요.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단 한가지 주인의 마음을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인은 마음으로 '저 녀석은 죽음길을, 사지사판을 내 대신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씩이나 넘었으니 열 번이 아니라 백 번, 천 번이라도 저 녀석은 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겠어요? 만일에 40번 가야 할 일이 생긴다면 다른 사람은 다 제쳐놓고 그 녀석을 불러서 의논할 것 아녜요? 그렇지요? 그것은 뭐냐 하면 그 종이 주인과 누구보다도 가까운 자리를 이미 점령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만일에 주인이 상급을 준다면, 주인이 종들을 모아 놓고 '내가 상급을 주려고 하는데, 내가 기쁠 수 있는 사람에게 상급을 주어야 할 텐데 그 사람이 누구냐 한다면, 얼굴이 잘나고 속닥속닥해 가지고 사람들을 선동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자기들끼리는 잘났지. 자기들끼리는 잘났다구요. 종들이 잘났다고 하는 사람을 뽑았다고 해서 주인이 상을 주겠어요? 종들이 좋아해 가지고 뽑힌 사람은 주인과는 원수라구요. 그렇지요? 그렇지만 종들이 싫어하고, 종들로부터 천대받고 호외꾼으로 취급받는 사람은 언제든 주인을 위해서 생명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주인은 그 사람에게 상급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기에 이의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결론은 뭐냐? 종 가운데 제일 미욱한 자, 그때 당시로 보면 제일 미욱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만일에 종의 대표로서 불리워 가지고 주인으로부터 상을 받고 양자가 되었다 하게 되면. 그가 양자가 되는 그 날에는 지금까지 그에 대해서 쑥덕공론을 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 배가의 탕감을 대신할 수 있는 빚을 갚지 않고는 남아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를 조롱하고 비웃던 종 떼거리들은 그가 주인의 양자가 되어 대신 명령을 내리게 될 때에 자기가 받았던 것의 배 이상으로 가혹한 명령을 내려도 그 양자의 명령을 달게 받지 않게 되면 종으로서 남아질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또 양자가 섭섭하게 마음먹었던 과거가 있다면 주인의 마음도 그 양자의 마음이 풀려야 풀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잘 들어 보세요. 선생님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잘 들어 보라구요.

하나님의 참아들이 될 수 있는 기준

그럼 이제는 주인이 양자를 말이예요. 동양에 사는 사람, 서양에 사는 사람, 남방에 사는 사람, 북방에 사는 사람 등 동서남북 360도에서 그 방향대로 한 360명쯤 모아 놓았다고 합시다. 그래 가지고 그 가운데서 진짜 아들 대신자로서 아들과 하나될 수 있는 사람 한 사람을 뽑아야 되겠다고 할 때, 그 뽑는 비결이 무엇이냐? 누가 술을 많이 먹고 즐겁게 춤을 잘 추느냐 하는 것을 봐서 그 사람을 뽑으려고 잔치를 벌이는 주인이 세상 천지에 있을까요? 어디 대답해 보라구요. 지혜로운 사람들, 어디 한번 대답해 보라구요,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왜 없어요? 그렇게 해서 뽑으면 되지….

그렇게 해 가지고 진짜 사람을 구할 수 있어요?「없습니다」 진짜라는 것은 변하지 않아야 된다구요.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진짜 사람을 뽑아야 한다구요. 그런데 진짜 사람을 그렇게 해 가지고 뽑겠어요? 그렇게 해 가지고는 누가 진짜인지 모르는 거예요. 전부 진짜 사람 같지. 도리어 가짜 사람이 진짜 사람의 등을 타고 올라서 가지고 진짜라고 한다고요. 그럴 수 있겠지요?

아들 중의 아들과 같은 한 사람을 뽑으려면, '자, 이제 너희들 중에서 진짜 아들 한 사람을 뽑을테니 너희들이 있는 지혜껏 해서 그 아들로 뽑힐지어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들은 생각하건대, '내가 주인을 닮아야지, 주인 닮으면 되는 것 아니냐, 주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될 것 아니냐' 이래 가지고, 주인은 늦잠을 자니까. '주인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늦잠 자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늦잠을 자야지' 하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지혜로운 사람이지요? 그 다음에 또 주인을 가만히 보니까, 쓱 돌아다니면서 이래라 저래라 심부름시키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러니 자기도 심부름 시키면서 주인 노릇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 가지고 택함을 입겠어요? 가만히 보라구요. 또 주인은 아침 점심 저녁에 독상을 받아 가지고 '에헴'하면서 혼자 잘 먹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도 마찬가지로 '야야 내게 좋은 것을 먹여 달라' 그래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내가 주인이 좋아하는대로 하는데, 왜 주인이 나에게 상급을 안 줘?' 그럴 수 있어요? 그런 법이 있느냐 말이예요. 그런 길이 있나 없나 생각해 보세요. 있어요, 없어요? 절대?「없습니다」 왜 없어요? 주인이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없어요?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입장이 달라요. 주인과 양자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하나는 주인이요, 하나는 종 출신입니다. 주인이 주인 될 때는 그냥 그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종들이 거친 수난길을 다 거치고 그것을 감수해 가지고 영광의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양자도 영광의 자리에 참석하려면 주인이 거친 내적인 고통의 길을 달게 거쳐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나가는 게 원칙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이거 똑똑히 알아야 돼요.

주인의 상속을 받으려면 주인이 사는 것과 반대로 살아야 됩니다. 주인의 명령을 받고 가는 길에 있어서, 주인은 잘먹고 편히 있는데 자기는 지긋지긋하게 못 먹고 고생했다면 주인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 녀석, 못나서 그래' 그러겠어요? 주인의 명령을 받고 나가는 길에서 지긋지긋하게 못 먹고 고생했으면 그것은 주인을 대신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가 지긋지긋하게 천대받았으면 그 천대받은 것에 대해서 주인이 책임을 져야 되는 거예요. 그에게 슬픈 일이 있었다면 그 슬픔이 그 양자의 슬픔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곧 주인의 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전권대사라는 말을 알지요? 특사라는 말도 있지요? 그 사람의 한마디는 그 나라의 주권자의 말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전부는 네 말이자 내 말이요, 네가 결정하는 모든 것도 너의 결정이자 곧 나의 결정이다'할 수 있는 사람이 전권대사입니다. '나하고 의논하지 않고 네 마음대로 결정해도 내가 그냥 그대로 공인한다'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책임지고 국사를 처리하는 입장에 선 사람이 바로 전권대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인이 잘먹고 기분이 좋아 가지고 '허허' 하고 있는데, 전권대사인 아무개가 명령을 받들다가 고통을 받고 신음하는 사지에 빠져서 죽을지 살지 모르는 역경에 있습니다' 할 때에 주인이 '아 그거 잘 됐구먼' 그러나요? 주인이 거기에 보조를 맞추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조원대! 그래, 안 그래? 왜 대답은 않고 흠칫흠칫해요? 부끄러워요? 내가 다정스럽게 물으면 다정스럽게 대답해야지. 그래요, 안 그래요? (웃으시면서) 그럴 수 있어? 다정스럽게 물어 보는데도 왜 대답을 안 해요? 몰라서 대답을 안 해요? 아는데도 안 해요?「몰라서 안 합니다」 그걸 왜 모르노? 그러지 말라구.

이번 수련기간에 선생님 말씀을 몇 번이나 들을 것 같아요?「귀가 어두워서…」 귀가 상했으면 눈으로 바꿔서 표정이라도 봐야지요. (웃음) 만일 자기 귀가 상했으면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눈으로 시늉이라도 봐 가지고 7,80퍼센트 정도는 감정을 해야지요. 그래도 모르면 글로라도 물어 봐야 된다구요. 귀가 상했는지 내가 알 게 뭔가? (웃음)

자, 양자가 그렇게 사지에 서 있다면 '아 내 뜻대로 됐군' 이럴 주인이 있겠어요? 주인도 거기에서 동원되는 거예요. 그렇게 주인을 움직일 수 있고 주인을 동원시킬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자격자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가 잘난 사람이예요, 못난 사람이예요? 만일 '당신이 사랑한다는 양자가 지금 춤을 추고, 진수성찬을 먹고 좋아서 늘어져 있습니다'라는 보고를 주인이 받았다면, 그 주인이 '아 그래, 그러면 나도 가서 춤을 추어야지' 그래요? 거기에 주인이 동원돼요? '이놈의 자식' 하는 거예요. 거기에 동원이 된다면 무엇을 가지고 동원이 되느냐 하면, 망치를 갖고 동원되는 거예요. 그러나 양자가 사지사판에서 죽게 됐다고 하는 데에 동원될 때는 자기 집안의 귀한 것은 모두 가지고, 무기가 있으면 무기를 들고 동원되는 거예요. 한 쪽은 망치를 가지고 그 양자의 이마를 까고, 한 쪽은 무기로 양자의 적을 쏘는 거예요. 어떤 게 좋은 거예요? 어느 쪽이 좋아요?

그러면, 일등으로 패스했다, 주인의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할 수 있는 결정적 표준선이 어디냐? 기쁜 자리가 아닙니다.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하는 것은, 자기가 보기에 좋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시켜 가지고 그것을 중심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일 힘든 일을 시켰는데 그것을 해줘야 내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일 힘든 일, 자신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해주어야내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틀림없지요? 잘먹고 잘 노는 것을 보고 '아이고 내 맘에 쏙 든다'고 하나요? 여러분은 근본을 생각해 보라구요. 이렇게 될 때, 아들이 없는 사람은 양자 가운데서 자기의 책임을 완수한 그 사람을 택해 가지고 아들 대신 상속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

이런 원칙을 놓고 가만히 보면 말이요, 선생님이 대관절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고 싶을 것입니다. 알아야 된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이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에게도 제일 가까운 사람이 있어야지요. 그렇잖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사람을 좋아하실까요. 나빠하실까요? 하나님도 좋은 사람은 좋아하시고 나쁜 사람은 싫어하십니다. 그렇다구요. 그러므로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나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걸 가릴 줄 알아야 됩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여러분들이 근본을 바로 알고 자세를 바로잡아 가지고 일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할 때, 알았다면 문제는 참 쉽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압니까? 알아요, 몰라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아는 사람 손들어 봐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몰라요?「압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아나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나요? 믿는 사람이 있고, 아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냥 믿는 사람이 있다구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저 믿자' 해 가지고 믿고 아는 사람이 있고, 알고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종류가 있어요. 믿어서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있는 것을 알고 믿는 사람, 두 종류가 있다구요. 여기, 하나님이 계시는 줄 아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됩니까? '나는 하나님이 계시는 줄을 안다. 틀림없이 안다' 할 수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은 만사형통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줄 알았으니, 하나님 앞에 복 받는 길로 달려가면 됩니다.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계시는 줄을 알았으면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면 복받는 거지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면 화받아요, 복받아요?「복받습니다」 복받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걸 좋아하시느냐? 하나님은 우주의 주인입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우주의 주인인데, 그 주인이 무엇을 제일 좋아하느냐? 이것만 알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제일 좋아하실까요? 떡을 좋아하실까요, 무슨 과일을 좋아하실까요? 무엇을 제일 좋아하실까요? 대답해 보라구요. 하나님은 어떤 것을 좋아하시느냐면 선한 것을 좋아하십니다. 선한 사람이 되면 좋아하시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은 선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선한 사람은 다 좋아합니다. 아들이든 백성이든 세계 사람이든 좋아하긴 다 좋아한다구요.

그러면 이런 입장에서 누구를 제일 좋아하시느냐?「선생님을 제일 좋아합니다」 에라, 이녀석. (웃음) 선생님을 제일 좋아하는지 알 게 뭐야? 좋아하고 나빠하는 것이 그냥 되나?「하나님을 위해서 제일 고생하고, 제일 일을 많이 하고, 선을 위해 제일 희생하고…」 그래, 그래, 그런 것도 맞습니다. 다 맞아요. (웃음)

하나님은 말예요, 좋아하긴 다 좋아합니다. 그러나 제일 좋아하는 것은 역사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수천년 동안 수고한 것은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이 시대 시대에 동원되었던 수천 사람의 책임자들을 좋아하기는 다 좋아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인간으로서 완성한 자리에 선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이 '너는 내가 찾던 아들이요, 너를 보고는 내가 좋지 않은 것이 없다. 그야말로 너는 내 뼈 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다. 영원히 영원히 나눠질 수 없고, 나눠질 생각조차 못 한다'고 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았다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데는 손톱까지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뺄 것이 없어요.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의 단추 하나가 떨어지면 그걸 잘 떨어졌다고 하면서 집어던지나요? (웃음)(녹음 잠시 끊김 )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원

양자들을 모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은, 아들과 더불어 죽고 살고, 목숨을 걸고 하나되어 형제와 같이 지낼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양자를 택했던 거예요. 그가 가인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하나 되어야 하지요?

지금까지는 남자 홀로 도의 길을 가다가 죽어간 사람이 많았지요? 혼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일생 동안 독신생활하는 것을 하나님이 좋아했겠어요?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없으니까 한 거예요.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으려면,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를 중심삼고 제일 좋을 수 있는 자리에서 천지의 모든 존재물들이 기쁨과 소망으로 머리 숙일 수 있는 그런 자리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지극히 선한지라, 지극히 좋은지라' 하는 거예요. 아담을 지어 놓고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서, 해와를 지어 쌍을 이루어 놓고서야 '지극히 좋은지라' 했지요? 그거예요. 그 자리까지 나가야 됩니다.

일대에 그러한 기준을 완결지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수십 수만 사람이 동원되어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이 전체적으로 종의 종으로서도, 종으로서도, 양자로서도, 아들로서도, 혹은 승리한 참남성으로서도, 그 다음에 상대를 가질 수 있는 기준을 갖추는 데 있어서도, 어디 흠잡을 데가 없는 그런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틀림없지요? 그래서 통일원리가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통일원리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종의 종이 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의 바탕이 다른 것이 무엇이냐? 과거 몇천 년 동안은 종 중의 종이 되라고 두드려 팼습니다. 그 다음에는 종살이를 하는데 몇천 년 동안 믿고 나왔고, 그 다음에는 양자의 일을 해나왔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양자 되기를 바라고 나오는 것이지 양자가 된 것이 아니라구요. 양자가 되기 위해서 몇천 년 동안 희생하면서, 죽자 사자, 죽는다 산다 소문을 내면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한 분인데, 하나님은 종의 종의 마음을 느꼈고, 종의 고통을 느꼈으며, 양자의 개척자로서의 고통을 느꼈고, 혹은 아들이 개척노정에서 느낀 것이나 참부모가 느꼈던 것을 다 느꼈습니다. 느낀 그 주체는 한 분이신데 그가 대했던 사람은 수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종의 종을 대해서는 종의 종의 마음을 가지고 속닥속닥하고, 그 다음에는 종을 대해서는 종의 마음을 가지고…. 아까 말했듯이 종의 종이 좋으냐, 종이 좋으냐 할 때 하나님도 종의 종을 계속 대하기는 지긋지긋하다는 것입니다. 또 종으로 대했으면, 최후에 결정짓기 위해서 종을 한번 대해 주었으면, 그 다음엔 양자를 대하고 싶지 또 종을 대하고 싶겠어요? 그럴 것 아니예요? 올라가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종의 종이 하나님께 '아이고 나 대해 주소' 하면 하나님이 어떻겠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영원히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 종의 종의 대표자, 종의 대표자, 양자로서의 대표자, 아들로서의 대표자, 참아버지로서의 대표자가 될 수 있는 한 사람을 보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결국 종을 보고 좋아하는 것이 되고, 양자를 보고 좋아하는 것이 되고, 아들을 보고 좋아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러한 대표적인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하나님이 그 사람과 좋아하게 되면 그것은 종들과 좋아하는 것이 되는 것이요, 양자와 좋아하는 것이 되는 것이요, 아들과 좋아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최고의 승리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물질의 시대, 신약시대는 아들의 시대, 성약시대는 부모의 시대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은 나를 중심삼은 가정 안에 다 들어갑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들어가고, 아들도 들어가고, 만물도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소생은 물질, 장성은 자녀, 완성은 부부지요? 역사적으로 실패한 복귀의 심정을 거쳐 가지고 이것을 '한꺼번에 완전히 당신 앞에 평면적으로 드리나이다' 할 수 있는 승리의 아들딸을 하나님은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결론이 그렇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유가 있어요, 없어요? 여러분 축복받았어요, 안 받았어요? 부처가 됐지요? 여러분도 이 부모와 같이 부모의 자격이 있어요, 없어요? 여러분의 아들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러분들에게 아들딸이 있지 않아요? 그 다음에 여러분에게 만물이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입고 있는 것은 다 뭐예요? 여러분이 신고 있는 것이 뭐예요? (웃음) 그런 것이 다 자기 것이지요? 자, 여러분에게 만물이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런 거라구요. 틀림없다구요. 똑똑히 알라구요. 만물이 있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부모와 아들딸과 만물이 있다는 거예요. 이것이 뭐냐 하면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에덴 동산에 천지만물을 지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찾기 위해서 6천년 동안 종이니 양자니 하는 것들을 세워서 섭리해 나온 거예요.

구약시대는 종의 종의 시대입니다. 종의 종은 물건과 마찬가지예요. 물건만도 못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신약시대는 양자의 시대입니다. 아들을 세워 가지고 역사하던 때, 예수 시대라구요. 그렇지요? 성약시대는 부모가 고생하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을 바치는 데는 구약시대에는 물질로 제물을 바치고, 신약시대에는 아들로 제물을 바치고, 성약시대는 부모를 제물로 바치는 거예요. 그렇지요? 성약시대는 부모가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참부모의 공로로서…. 그렇잖아요? 김일성의 공로보다 참부모의 공로가 작겠나, 크겠나? (웃음) 감사하는 것도 그 보다 더 감사해야 되겠어요. 더 못하게 감사해야 되겠어요? 못해야 되겠어요? 「더 해야 되겠습니다」 알긴 다 잘 아는구만.

참지도자의 재료

이제부터 말해 보자구요. 세상의 지도자 중에 참지도자가 누구냐? 참지도자가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나는 싫다'고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내려요. 지도자의 갈 길이라…. 지도자의 갈 길이 무엇인가? 결국 참된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지도자라고 해서 다 참지도자입니가? 출발해 봐야 아는 거지요. 지도자가 가는 길의 목적은 뭐라구요? 참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안 되고 싶어요?「되고 싶습니다」

참지도자의 재료가 있다구요. 그 재료를 분석해 보자는 거예요. 참지도자의 심정을 두고 논하면 '나는 역사시대에 종의 종 중의 왕의 심정권을 갖고 왔노라'고 할 수 있는 재료가 있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왕이니까 하나예요. 둘이예요?「하나입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다음에는 종 중의 왕의 심정권을 갖고 왔노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밖에 없다는 말이라구요. 그 다음에는 양자 중의 왕의 심정권을 갖고 왔노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양자도 나밖에 없다는 거라구요. 그 다음에 이 시대에 세워진 나는 아들 중의 장자의 심정권을 갖고 왔노라,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됩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복귀역사에서는 종의 종의 꼭대기를 딛고 점핑을 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을 발판으로 종의 꼭대기를 딛고 점핑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 다음에는 양자의 꼭대기를 딛고 점핑해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점프하심) 왜 내가 이렇게 하느냐? 여러분이 자꾸 잊어 버리기 때문에 생각나게끔 하려니…. (웃음)집에 가면 잊어버리는 거예요. '언제 그런 말 들었느냐' 그런다구요. (웃음) 그 다음은 점핑해서 어디로 간다구요? 아들의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의 꼭대기를 딛고 점핑해서 아버지 자리로 올라가는 겁니다. 아버지가 되려면 아들의 꼭대기에서 점핑을 해야 되는 거예요.

예수가 아들의 자리에서 죽어 넘어갔지요? 알겠어요? 예수님을 영적으로 형(兄)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예수는 가인 형(兄)이라구요. 여러분들은 아벨 동생이예요. 그것이 말만이 아니예요. 그렇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됩니다. 이론적으로 복귀했다는 결론이 안 나온다는 거예요.

종의 종의 자리에서 점핑해야 됩니다. '나는 그렇게 한 사람이요' 할 수 있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이 되려면 세상의 고통 무대에서 내가 싫다 할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내가 못할 것이 없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어야 돼요. 그래서 종의 종의 자리만 패스하게 되면 쉽다는 것입니다.

종의 종이 되는 데 있어서도 '나는 한 부락의 종은 안 되겠다, 대한민국의 종의 종이 되고 나아가 세계의 종의 종이 되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러면 세계의 종의 종으로서의 훈련을 어디에서 받느냐? 여러분은 그 훈련을 여러분이 속해 있는 도(道)나 군(郡)에서 받고 있는 것입니다. 또 세계적인 종의 종의 챔피언이 못 된 사람은 챔피언이 되도록 훈련을 해야지요. 그런 훈련을 받는 사람에게 자기 사정이 있을 수 있어요?「없습니다」 '훈련이고 무엇이고 밥이나 먹여 주고 시켜야지' 그럴 수 있어요? '점심때가 되었는데, 열두 시 사이렌이 울렸는데 훈련이 뭐요?' 그럴 수 있어요? 이 자리에서는 시계 보는 사람들, 아이쿠, 아홉 시 반에 출발해야 되는데 왜 아홉 시에…. (웃음) 그럴 수 있어요. 싸움이 터져서 군대에서 출동명령이 내려졌는데, 아침 점심 저녁을 가릴 수 있어요? 그런 생각 가지고 있는 녀석들은 덜된 녀석들입니다. 그건 주인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이라구요.

종의 종 중의 챔피언이 되려면 군(郡) 챔피언 가지고 되겠어요? 군 챔피언이 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구요. 그럼 도(道) 챔피언이 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욕심들은 많아 가지고…. (웃음) 그런 욕심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가입서라도 낼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욕심도 없으면 그건 뭐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런 욕심은 다 있어요?「예」

욕심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나라도 싫지요? 세계도 싫지요? 영계까지, 천주까지, 영계와 역사시대의 세계를 통합한 그 자리에서의 종의 종 중의 대왕님이 되겠다고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선생님이 말하는 것은 말만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생각과 선생님의 사상은 거기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내가 보기에는 여러분이 아직까지 사람이 덜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됐다고 생각해요, 덜됐다고 생각해요? 「덜됐다고 생각합니다」 덜됐으니까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가르쳐 줬는데도 되지 못하면 그는 죽여 버리든지 정리해 버리든지 해야지요. 그렇지 않아요? 가르쳐 주는 것은 가르쳐 주는 수고 이상의 대가를 바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수고한 것보다도 못한 대가가 나온다면 뭐하러 가르쳐 줘요? 그만두는 게 낫지요.

참지도자의 마음생활

여러분은 어디를 가든지 우주와 더불어 가고, 어디를 가든지 하늘땅과 같이 가고, 어디를 가든지 나 홀로 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둘만 되어도 그건 세계적입니다. 남편과 아내만 있더라도 세계적인 거예요. 남편은 하늘의 상징이요, 아내는 땅의 상징이니 천주적이 아닙니까? 천주적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구요.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멋지다는 거예요. '나 혼자 있더라도 나의 마음은 하늘적이요, 나의 몸은 땅적이니 천주적이다. 내가 웃는 것은 우주를 대표해서 웃는 것이고, 내가 숨을 쉬는 것은 우주를 대표해서 쉬는 것이다. 숨을 쉬는 사람은 억천만이지만 하나님과 박자를 맞추어서 하나님과 똑같이 숨을 쉬는 사람은 나 한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럴 것 아니예요. 한 사람밖에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이 없어서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이 그런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밥을 먹더라도 '옛날에는 이밥에다 고기를 먹었는데 지금은 죽에다 물 한 그릇밖에 못 먹는구만'할 것이 아니라 사위기대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사위기대를 갖추라구요. 밥을 먹는 데도 사위기대를 갖추라구요. 알겠어요? 전통을 그렇게 세워야 됩니다. 물밖에 없어도 그건 사위기대입니다. 물을 중심삼고 눈과 입과 하나님이면 사위기대지요.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좀더 발전시켜서 평면적인 사위기대를 생각하는 거라구요. 숟가락, 젓가락, 물이니까 삼위기대인데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라는 거예요. 한국이 사위기대를 갖춘 나라예요. 숟가락 젓가락 밥 하니까 하나님 중심삼고 사위기대 아니예요? 전부 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반찬이야 있건 없건 숟가락 젓가락만 놓아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위기대를 통해서 집는 물건이 나쁘다고 해서 그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나빠요, 안 나빠요? 다 좋은 거예요. '나는 쇠고기 집히는 것만 좋고 콩알 집히는 것은 싫어' 그래요? 그렇게 되면 우주의 꼭대기 것만 좋아하고 밑창의 것은 싫어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밥을 먹는데도 제일 맛있는 밥을 어디에서부터 발견해야 되느냐? 제일 맛이 없는 밥에서부터 발견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주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고 주인의 터전을 몽땅 품을 수 있는 종의 종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일 맛이 없는 밥을 제일 맛있게 먹고 제일 고맙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자기 집에서 살고 있는 습관적인 생활권내에서는 보리밥과 쌀밥이 있으면 보리밥은 내려 놓고 쌀밥을 먹는 것입니다. 냄새만 맡아도 벌써 다르다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 얄궂은 사람이 있지요? 그런 사람은 몹쓸 사람이라구요. 그렇지요? 쌀밥만 좋아하게 되면 쌀밥 먹는 천국에 가서는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지만, 보리밥 먹는 천국에 가서는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자격자가 되려면 먹어 봐야 합니다. 먹어 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입니다. 먹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고, 보리밥이 꿀맛이구나. 쌀밥 열 그릇, 백 그릇보다 보리밥 한 그릇이 더 좋다. 나는 보리밥 대왕님이다. 보리밥밖에 모른다'고 할 수 있는 자리까지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보리밥이 싫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이 자식아, 싫거든 먹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먹지 말고 하루 지내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싫거든 '이틀 지내 봐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싫다면 사흘, 그래도 싫다고 하면 나흘, 닷새…. 계속 굶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눈이 이렇게 되다가 점점 희미해져 가지고 뭐든지 먹겠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게 될 것 아니예요?

우주 천지의 그 무엇을 싫다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목적 세계 가운데에서 환영받을 수 있는 대왕이 될 수 있어요?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절반은 싫어하고 절반은 좋아하는 사람이 되면, 절반은 '저 놈의 자식, 우리를 싫다고 한 녀석 아냐?'라고 하는 거예요. 다 넘어가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사랑해야 됩니다. 더우기나 먹고 사는 물건은 무엇이든지. 어린아기의 똥물을 받아 밥에 섞어 가지고 죽을 쑤어서 주더라도 맛있게 먹어야 됩니다. 한번 만들어 줄까요? (웃음)이것이 만병통치약이다' 하면 다 먹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게 만병통치약보다 더 좋은 약이라는 거라구요. 복귀통치약 중에 그런 약이 최고예요. (웃음)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뜻을 위해서라면 물 대신 오줌으로 밥을 지어 먹어야 하는 사정에 처해서도 감사해야 됩니다. 쌀밥 말고 꽁보리밥, 밀밥도 좋은 거예요. 또 귀리라는 것도 있다구요. 함경도 산골이나 산꼭대기에서 나는 것인데 그런 귀리로 밥을 해서 먹더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 밥을 먹는 것을 왕좌에서 쌀밥에 진수성찬을 먹는 것보다 더 감사한다면 그 사람이…. 거꾸로 되는 거예요. 이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어디 터놓고 이야기해 보자구요. 그런 생각 해봤어요, 안 해봤어요? 선생님은 그런 생활을 해 나온 사람입니다.

보리밥을 싫어할 것이 아니라, 맛있게 먹을 수 있어야 돼요. 나는 누룽지를 참 좋아합니다. 누룽지가 먹기 좋아서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룽지는 다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나는 그것이 제일 맛있습니다. 먹다 보니 맛을 알게 되었어요. 누룽지를 오래 씹고 있으면 참 고소하거든요. 밥을 오래 씹는 것하고, 누룽지를 오래 씹는 것하고, 여러분들도 해보세요. 어느 것이 더 맛있을 것 같아요? 한번 해보라구요. 나는 그 맛을 알았기 때문에 밥을 두고 누룽지를 먹곤 하다 보니 그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맨밥을 잘 먹습니다. 반찬이 없을 때는 말예요. 소금도 필요없어요. 소금을 쩝쩝해 보면 맛을 망친다구요. 그렇지만 맨밥만 먹어 보면 달다는 거예요. 맨밥을 먹어 보면 참 맛있어요. 맨밥의 맛을 아는 데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왕입니다. 복귀의 심정을 느끼려면 그렇게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밥을 먹는 데 '좋은 사람에게 초청받아 가지고 기분이 좋으면 먹지' 이렇게 기분 좋은 것만 좋아하면 안 된다구요. 당장에 자기의 목을 잘라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와 있는데 '밥먹는 시간이 한 시간이니 당신들은 조금 기다리시오. 왜 밥 먹는 시간에 와서 부르고 그러오? 나에게는 지금이 밥 먹는 시간이오' 하면서 그 파수꾼들을 세워 놓고 감옥에 앉아서 먹는 그 보리밥이 얼마나 맛이 있는 줄 알아요? 한 번 해보라구요. 얼마나 맛있는지. '이놈의 자식들, 내가 탕감복귀를 위해서 끌려간다. 너희들은 우습게 알지만 나는 지금 천하를 녹여 먹듯이 밥을 먹는다'고 하면서 먹는 거예요. 그거 맛있거든요. 한번 해보라는 거예요. 그것을 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감옥에서는 떼굴떼굴 굴러가는 콩알이 사슴새끼가 뛰어가는 것보다 더 귀엽게 보인다구요. '감옥에는 병균이 많으니 그거 못 먹지' 할지 모르지만 못 먹긴 왜 못 먹어요? 우선은 주워 먹고 병 같은 것은 나중에 생각하는 것입니다. (웃음) 그 정도까지 되는 거예요. 얼마나 간절해요? 간절해요, 안 간절해요? 그런 자리에서는 그렇게 먹어도 절대 병이 나지 않습니다. 병이 난다면 하나님이 없는 거지요. 병이 왜 나요, 하나님이 보시고 눈물 흘릴 자리인데. 뜻을 위해서 그러는 데는….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

여러분. 밥 얻어먹어 보았어요? 밥을 얻어먹는 데는 할아버지한테 한번 얻어먹어 보자. 기분 좋게 주는 할아버지도 있을 것이고 기분 나쁘게 주는 할아버지도 있을 것인데, 그 중에서 기분 나쁘게 주는 할아버지한테 밥을 얻어서 맛있게 먹어 봐야 되겠습니다. 밥 가운데 쌀밥도 싫고 조밥도 싫고 보리밥도 싫고 좁쌀 조금 넣고 보리쌀 조금 넣고 만든 시래기죽을 한번 얻어먹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고 다니는데 쌀밥을 주면 좋겠어요? 기분 나쁘지요. 목적과 틀리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어렵게 사는 집에 갔더니 그런 죽을 주면 더 기뻐하고 감사하게 먹을 수 있지요. 그런데를 가야 되는 거예요. 거기가 그날의 자기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곳이라는 거예요. 또 그 시래기죽을 주는 할아버지가 좋게 주는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이 신수를 보니까 그러지 않을 사람인데 밥은 왜 얻어먹고 다니나? 우리도 못살지만 자네는 더욱 안 됐구만? 하고 투덜투덜하면서 주면 ‘그래요? 그럴 수도 있죠. 그렇지만 배가 고프니 어떻게 하겠소. 한술 주시오’(웃음) 해 가지고 얻어먹어 봐야 돼요. 거기에서 탕감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천지를 주름잡는다는 말이 있지요? 천지를 주름잡는다는 말이 무슨 말이예요? 높고 낮은 것을 마음대로 활용한다 그 말 아녜요? 여러분, 천지를 주름잡고 싶지요? 천지를 주름잡는 것이 하늘땅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냐? 천만에요. 생활에서 천지를 주름잡을 줄 알아야 됩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좋은 일은 지극히 좋게 생각하고, 나쁜 일은 지극히 나쁘더라도 지극히 좋은 것으로 키울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나무와 비료는 떼어놓고 보면 원수입니다. 비료와 나무는 판이하게 다른 거예요. 그렇지요? 그러나 비료를 물에 녹여서 흙과 중화시켜 가지고 나무의 뿌리 근처에 뿌려 주면 어떻게 돼요? 흙은 없이 비료만 주면 나무가 죽지요? 그러나 간접적으로 물질과 섞어서 주면 그 몹쓸 것 같은 것이 도리어 복이 되는 거름이 되어 나무가 자라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생명요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고생이니 무슨 어려운 골짜기니 하는 거기에 조화물만 잘 갖다 놓으면 천지에 없는 귀한 동량지재(棟之樑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홀딱 반해 가지고 찾아와서 '네가 없으면 안 되겠다. 내 말을 듣고 내가 가자고 하는 곳으로 가자' 하실 겁니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에게만 그렇게 해서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할머니를 통해서도 그런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할머니를 만나자. 그리하여 할머니한테 밥을 얻어 어느 왕궁의 왕보다도 더 가치있고 맛있게 먹어 줄 것이니, 밥아 너는 내가 세운 그 탕감조건으로 해서 영원히 영원히 탄식해서는 안 된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환영하며 주는 사람의 밥만 얻어먹어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그 다음에는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얻어먹어 보고 그 다음에는 형님 누나 동생 같은 사람에게 얻어먹어 보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터전 위에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할아버지, 부모, 자녀의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이 먹고 입고 사는 것 때문에 눈물을 흘렸던 모든 한스러움으로부터 해방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먹는 것에 대한 고통길에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서고, 입는 것에 대한 고통길에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서야 되며, 사는 데에 있어서의 고통길에서 해방될 수 있는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서야 됩니다.

먹는 것 때문에 뜻길을 못 가겠다, 입는 것 때문에 뜻길을 못 가겠다, 사는 것 때문에 뜻길을 못 가겠다고 한다면 하늘의 역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길은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보다 더한 길을 가더라도 나는 한이 없고, 이 이상의 수난길을 가더라도 나는 기쁨으로 가겠습니다. 여기에서 영육을 중심삼고 찾아지는, 혹은 천주에 사무치는 그 가치가 큰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생애를 통해서 이 길을 가고자 하오니 하늘이여, 막지 마시옵소서' 하면서 기쁨의 길은 피하고 도리어 수난길을 가려는 자세를 가진 아들을 하나님은 얼마나 기다리셨겠습니까?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 아들이 이 땅에 있다면 하나님이 좋아하겠어요, 싫어하겠어요?

역사적으로 보면, 아브라함도 그랬고, 노아도 그랬고, 야곱도 그랬고, 그후 더 내려와 가지고 모세도 그랬고, 세례 요한도 그랬고, 예수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생각과 사상에 있어서 그들보다 내가 깊으면 깊고 높으면 높지 얕고 낮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만물을 사랑하는 데도 그런 의미에서 사랑하고 만물을 귀하게 여기는 데도 그런 의미에서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는 데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게끔 내 감정을 통해 생활무대에 엉클어지게 해서 한데 묶어 가지고 생사를 걸어 그 터전을 닦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칼을 갈아서 쓸 줄 아는 무사라면, 칼을 차고 다닐 때 아무데에 차고 다녀도 좋다는 것입니다. 머리 꼭대기에 이고 다녀도 좋고, 발바닥에 신고 다녀도 좋고, 허리에 차고 다녀도 좋고, 지팡이처럼 끌고 다녀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의 칼집이 찌그러졌다고 해서 비웃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칼을 허리에 차려니 찰 수 있는 허리띠가 없어서 들고 다닌다고 비웃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의 모습이 초라하다고, 그가 가진 칼의 형태가 칼 같지 않다고 해서 비웃지 말라는 거예요. 그가 일단 그 칼을 뽑아들고 나서면 천하가 그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권위를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사탄 세계 앞에 내세워 가지고 한번 써먹고 싶은 생각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시는 것입니다.

만물의 참된 주인이 되려면

여러분, 종의 종보다 종이 되고 싶은 사람 손들라고 하면 다 들겠지요? 또 종보다도 양자가 되고 싶은 사람 손들라고 하면 다 들겠지요? 양자보다도 아들이 되고 싶은 사람 손들라고 해도 다 들겠지요? 아들에서 참부모가 되고 참조상이 되고 싶은 사람 손들라고 하면 다 들겠지요?

그렇게 손드는 것은 쉽지만 그렇게 되기는 어렵습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는 것은 어렵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편안히 가는 길이 빠르냐, 고통받고 가는 길이 빠르냐 하는 것을 감정해야 됩니다. 올라가는 데 있어서 편안히 가는 길이 빠른 길이겠어요, 어렵게 고통받고 가는 길이 빠른 길이겠어요? 산에 올라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밤낮 쉬지 않고 가다가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고 하면서 앞을 다투어 올라가는 사람과 가다 쉬고 가다 쉬고 하면서 올라가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빨리 올라가겠어요? 어느 길이 빠르겠어요? 웃을 시간이 있어요? 세수할 사이도 없다구요. 옷 벗고 잘 사이도 없다구요. 무슨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다니고 이러고저러고 할 사이도 없다구요. 사랑을 해도 산골짜기를 넘어섰을 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지요?

여러분, 참지도자가 되고 싶지요? 참지도자가 되려면 참된 만물의 주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맞아요, 틀려요?「맞습니다」 참된 만물의 주인이 되어야 됩니다. 참된 주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금까지 사람 가운데는 참된 주인이 없었어요, 타락했기에…. 성인을 찾아갈 필요 없다구요. 성인도 전부 다 참된 주인이 아닙니다.

먼저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하나님과 같이 되어야 됩니다. 마음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야 됩니다. 참된 주인은 자기의 물건에 언제나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자기 것인 동시에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창조주가 누구입니까? 인간이예요, 하나님이예요? 창조주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대리 주인입니다. 관리인이예요. 그러므로 관리인, 대리 주인인 인간은 진짜 주인인 하나님께로부터 그들을 주관할 수 있는 권리를 이양받아 가지고 살아 생전에 관리하다가 갈 때는 하나님 앞으로 돌리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역사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지금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그런 때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같은 선진국의 돈도 전부 하나님의 것이예요. 그런데 그것을 관리하게 될 때는 첫번 주인보다 못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관리하는 주인이 누구입니까? 사탄이지요? 사탄보다 못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사탄보다 나은 주인이 와 가지고 그 조상들이 사랑하던 이상으로 만물을 사랑해야 됩니다. 만물도 그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만물도 사람의 후손과 더불어, 역사와 더불어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만물도 '나는 아무개네 물건이었는데 그 집의 제1조상은 나를 이렇게 이렇게 사랑했고, 제2조상은 거기에 플러스해 가지고 나를 더욱 사랑했고, 제3조상은 거기에 더 플러스해 가지고 나를 사랑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걸 바라겠어요, 안 바라겠어요?「바랍니다」참주인이 되려면 만물을 하나님 대신 관리해 주고, 사랑해 주고, 또 자기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후손은 자기보다 더 사랑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하고 가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참주인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그렇겠습니다」

여러분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내가 가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갖고 있는 물건은 나의 대상적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이것이 창조원칙입니다. 주체 앞에 대상으로 나타났을 때는 주체와 대상은 서로 주고받아 가지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대상도 주체와 동등의 가치권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에게 소속되어 있는 물건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자기에게 속한 물건을 사랑해야 돼요. 종이 한 장으로부터 살림살이 일체를 자기에게 속한 것은 다 귀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절약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 하더라도, 내가 그걸 집어들게 되면 그것은 나의 대상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귀한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한 사람이 사용했던 모든 물건은 그 나라의 귀한 골동품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누더기같이 되었더라도 그 나라의 보물, 보화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 물건이 그 나라 전체를 대신한 가치적 중심존재의 상대적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전국민이 그 물건을 숭배하게 되고 그의 전통적 사상과 일치하는 그 물건이 전국민의 정서적인 면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합해져서 세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된 주인은 하나님의 대역자이기 때문에 참된 만물, 참된 물질의 주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통일교회의 참주인이 되려면

그러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이 통일교회 소유물의 주인이요 여러분이 통일교회 사람으로서 앞으로 주인의 아들이 될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주인의 계대를 받기 위해서는 선생님을 중심삼고 속해 있는 물건을 선생님이 사랑한 거기에 여러분의 특성적인 개성의 사랑까지 플러스해 가지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보다도 더 사랑해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교회에 교인 한 사람이 들어왔다면 교인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 선생님 이상으로 지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다운 아들이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지요? 한 가문을 계승받을 수 있는 아들이 있어야 할 때, 그 가문을 계승시키려는 부모는 자기보다 나은 아들을 찾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못한 아들을 찾겠어요, 나은 아들을 찾겠어요? 자기보다 나은 아들을 찾지요. 자기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해 줄 수 있는 아들을 찾는 거예요. 그런 사람을 통해서 전통노정이 계승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이 집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해야 합니다. 청평에 오면 선생님이 이 산을 바라보고 무슨 생각을 했으며, 저 뜰을 바라보고 무슨 생각을 했으며, 이 땅을 사기 위해서 돈이 없을 때 안타까와 뒤넘이치면서 어떤 고충을 느꼈을까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위해서 이땅을 마련한 것이 아닙니다. 후대 후손을 위해서 역사적인 선조로서 가져야 할 긍지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고이 간직해서 이 땅 위에 천년 만년 남아질 새로운 사상적 기원을 만들어 가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 기원이 중도에서 꺾이는 것이 아니라, 가지가 나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서 만국을 덮고도 남을 수 있는 하나의 심정의 나무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되지 않겠어요? 그러려면 뿌리보다 더 굵은 가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뿌리의 소원이 아니겠어요? 뿌리가 말하기를 '야, 가지야 너는 나보다 커지면 안 돼'라고 한다면 그 나무는 영영 죽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외적인 면에서 훌륭하게 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심정적 내용을 가지는 데 있어서 선생님보다 더 간절하고 훌륭하기를 바라는 것이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기분 나쁘지요? 기분 나빠요, 좋아요?「좋습니다」 그렇게 바라는 것이 정상적이예요, 비정상적이예요?「정상적입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그렇게 되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교육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육을 해도 안 되면 들이 패는 거예요. 패서도 안 되면 감옥에 집어 넣어 가지고 병신을 만들어서라도 그렇게 되도록 해야 됩니다. 병신을 만들어서라도 그 길을 가게 한다면 세상에 그럴 수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생각해 보라구요. 가 봐 가지고 다리 하나를 잘라도 좋다고 할 수 있는 결과를 알게 될 때는, 다리를 자른 것이 오히려 사랑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모르는 녀석은 다리를 자른 것이 원수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러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주인이 되는 데 있어서는 참주인이 되어야 되고, 참주인이 되기 위해서 물건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그 물건의 주인보다 더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길

참주인이 되려면 이렇게 해야 되고, 그래 참주인이 된 다음에는? 참부모가 돼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사람들을 대해서 부자의 인연을 맺는 운동을 하지요? 난데없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부자의 인연을 맺자는 운동이 통일교회의 운동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무슨 부모를 만드느냐? 가짜 부모가 되지 말고 참부모의 인연을 맺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구로부터 본받느냐? 통일교회 선생님으로부터…, 통일교회 선생님은 누구로부터 본받느냐? 하나님으로부터…. 그렇게 전통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1대라면 선생님은 몇 대예요? 「2대요」 여러분은? 「3대요」3대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제일 중요합니다. 창조한 만물을 완성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데 있어서 문제는 아담 해와가 아니라 아담 해와의 아들들이더라는 것입니다.

사위기대 복귀라는 것은 삼단계에서 결정이 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자식들이 손을 들어서 좋다고 하면서, '어머니 아버지 찬양하소서' 하면 '오냐. 네가 좋다니 나도 좋다' 하고 그 어머니 아버지도 찬양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아들이 좋아하고 그의 어머니 아버지도 좋아하니 '어- 나도 좋다'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서 사위기대의 목적이, 창조목적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3대가 필요합니다. 복귀역사를 보면 3대에서부터 두 세계가 벌어지지요? 가인과 아벨로부터 두 세계가 벌어졌지요? 이 벌어진 두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복귀될 수 있어요. 그러지 않으면 못 돌아가는 거예요. 이것이 통일교회의 가인 아벨의 원리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참부모가 되려면 진짜 되기 어려운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길을 가려면 먼저 그 반대의 길을 가야 됩니다. 참부모의 길의 반대의 길이 어떤 길입니까? 「참자녀의 길요」 참자녀의 길이 아닙니다. 참종의 길입니다. 이 길을 가지 않고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참종의 길을 가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종의 종의 길이 누구 때문에 생겨났느냐? 타락한 부모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나'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부모는 누구냐? '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재림부활의 실체노정을 가야 합니다. 종의 종의 자리가 누구 때문에 생겼느냐? 뜻을 알고 보니 '나' 때문에 생겼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책임을 완수해야 되겠기 때문에 참부모가 되기 전에 종의 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그런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확실히 알겠어요?「예」 가인 아벨이 두 갈래로 벌어졌기 때문에 참부모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가인 아벨을 찾아서 하나되게 해야 됩니다. 가인 아벨을 찾기 전에는 아들을 맞을 수가 없기 때문에 참부모라는 명사는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이름을 갖기 위해 가는 데 있어서 첫출발의 길은 '오 사랑하는 내 아들이여' 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인류에게 천지의 한을 품게 한 원수의 후손, 원수의 아들을 키워 독자로 삼으려고 하는, 독자로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길이요, 지금까지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길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온 이 길이 우리가 선포하기 위한 단 하나밖에 없는 전통적인 길로 상속받은 길이기 때문에, 이 길이 참부모의 이름을 갖고자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참부모가 되기 위한 길을 웃음으로 출발할 수 있어요? 하나님과 똑같은 입장이 그렇다구요. 하나님의 입장이라구요. 하나님도 참부모의 자리에 나가려면 종의 종의 자리를 거쳐야 합니다. 왜? 당신이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창조한 자리의 기쁨을 중심삼고 '너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가운데 있지만 나는 다 아는 입장, 보호해야 할 입장, 천지만물을 창조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런 입장에서 그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 지금까지 종의 종의 자리에서 개척하는 종의 어머니가 되고 종의 아버지가 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너는 이렇게 가야 되고, 너는 이렇게 가야 된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매를 맞을 적마다 너의 아픔을 통해 나의 아픔을 느껴야 되고, 나의 서러움을 너의 서러움으로 인계받아야 된다. 그 서러움을 피해 갈수록 종의 운명길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너는 주인으로부터 나보다 더 채찍을 맞고 내가 당한 서러움보다 더한 서러움을 당해야 한다. 그래야 네 집안이 잘되는 것이다. 그것이 종으로서 당해야 할 운명길인 것을 알아라'고 하며 교육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종의 길로 나갈 수 없습니다. 종의 길을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저께 밤에도 내가 이야기를 했지만, 사람은 고생의 대가를 치르는 데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더 고생하는 자가 종 중의 종으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주인 앞에서 역사적 인연을 품고 나가는 사람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피하는 자는 종도 못 됩니다. 그는 지옥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나, 모르겠나?「알겠습니다」

참부모의 이름이 간단한 게 아닙니다. 참부모라는 이름이 간단하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이 길을 왔느냐? 내가 참부모가 되기 전에, 참부모로서의 길을 가기 전에, 종의 종의 어버이 노릇을 할 수 있겠느냐, 아니면 그 길을 도피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냐 하는 것을 놓고 싸워 나왔습니다. 지금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종의 입장에 서야 할 길은 무엇 때문에 생겼느냐? 부모 때문에, 나 때문에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 나라면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로 가는 노정에 있어서 끝까지 내가 부모의 입장에서 모든 책임을 져 가지고, 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책임을 부여하지 않고 모면하게 해주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부모가 가야지 부모를 가진 자식이 복귀가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고생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간단히 말하면 지긋지긋하게 고생하라는 거예요. 알고 고생하는 것보다 모르고 고생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제는 알았나요? 몰랐나요?「알았습니다」 모르고 같이 고생할 때는 세계적인 운명이 한꺼번에 인연지어져 가지고 거기에 동정받을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지지만, 알고 나갈 때는 그 시대적 한계권만…. 종의 시대면 종의 시대권밖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 과정에서 가르쳐 주고 섭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정이 있는 것입니다.

일대일의 탕감법

지금까지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세밀히 가르쳐 주지 않고 고생을 시켜 나온 것은 종의 종의 시대와 종의 시대와 양자의 시대와 아들의 시대를 한꺼번에 탕감할 수 있는 혜택권을 허락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때는 종의 시대고, 이때는 양자의 시대고, 이때는 아들의 시대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두루뭉수리하게 그저 고생하라고 했습니다. 벙어리가 꿀을 먹듯 설명은 못 하고 그저 하라는 거예요. 달아도 하고, 써도 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따라, 선생님과 함께 가고 오면서 선생님을 부모같이 믿고 선생님을 참부모로 알고…. 이러다 보니 선생님이 하는 일을 중심삼고 종의 종의 자리에서도 그렇게 믿고 나오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서도, 양자의 자리에서도 그렇게 선생님을 믿고 나오다 보면, 선생님이 종의 종의 자리, 종의 자리, 양자의 자리를 다 거쳐 부모의 자리에 갈 때까지 끝까지 따라 나오다 보면, 여러분은 1대에 종의 종의 자리, 종의 자리, 양자의 자리, 아들의 자리, 부모의 자리까지 다 거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었다 할때, 여러분은 비로소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최후에 만나고 싶어하시는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그렇겠습니다」

선생님이 이걸 알았기 때문에 일대일의 고생을 해 나왔습니다. 완성하는데 있어서 일대일의 탕감을 하지 못하면 일대일보다 가중된 탕감을 해야 됩니다. 그걸 못 하면 사탄이 참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대일로 탕감하는 데 있어서 나보다 못해서도 안 되고, 아담 해와보다 못해서도 안 됩니다. 모를 때는 조건 탕감이 되는 것이지만 알고 나면 일대일로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탕감법을 압니까? 그걸 알라구요. 알고 난 후에 최후의 고개를 넘게 될 때, 사탄과 일대일의 탕감을 하지 않고는 못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를 때는 일대일의 탕감을 하지 않아도 조건 탕감을 해서 넘어갈 수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니 모르는 게 복이예요, 아는 게 복이예요? 「모르는 게 복입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확실히 다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렇게 갔어, 안 갔어? 여러분, 이 통일교회 선생님의 가르침이 뭐예요? '믿지 않는 사람을 중심삼고 부자의 인연을 맺어라' 하는 것이 통일교회 선생님의 가르침이요, 통일사상의 제일 골자입니다. 그 길을 어떻게 가야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종의 종이 된 것이 누구 때문이냐? 부모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가 그 책임을 져야 돼요. 여러분이 짊어진 짐을 내가 가려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가르쳐 주려니 내가 종의 종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종의 짐을 벗은 사람이 종의 종의 자리로 들어가니 사탄이 죽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종의 종의 권이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그렇겠지요? 부모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종의 종의 자리에 들어가니, 하나님이 내려오신 것과 마찬가지요, 예수가 내려왔던 자리에 온 것과 마찬가지니 사탄이가 막 죽겠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 어떤 길만 있으면 이걸 깨뜨려 버리려고 하지만 하나되어 있으면 그런 길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될 때는 거기에는 다른 결론이 없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가 살게 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죽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려면, '죽었다' 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죽고자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사람을 축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여러분을 축복해 줄 수 있는 것은 선생님에게 여러분이 넘어야 할 십자가의 고개, 탕감의 고개를 넘어선 자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을 축복해 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교회 책임자가 가져야 할 마음자세

통일교회가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원리원칙적인 노정은 참주인이 되는 노정이요, 참부모가 되는 길입니다. 참부모는 참아들만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귀해야 할 세계가 있기 때문에 이 세계를 전부 구해 줄 터전을 넓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참부모의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아들을 맞이해서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왜? 부모의 사랑은 누가 먼저 받아야 되느냐 하면, 맏아들이 먼저 받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맏아들을 사랑했다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다른 자녀들도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천리원칙이 아닙니까?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가 물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만 사랑하면 내가 절대로 후퇴 못 합니다. 예수를 사랑하기 전에 나를 먼저 사랑해 주시오. 완성 단계에 가서는 사람의 완성과 동시에 종인 나도 완성해야 되는 것 아니오? 그러니 사람이 완성되는 자리에 나가면 나갈수록 나에게 종으로서 백 퍼센트 완성될 수 있는 사랑을 줘야 되지 않겠소' 하면서 물고 늘어진다는 거예요.

그것을 가려 나가려면 불가피하게 첫번째로 태어난 가인을 동생인 아벨 이상 사랑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평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사탄이 불평할 소지가 있겠어요?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 동생보다 더 사랑해 주는 데도 '뭐야. 뭐야' 이럴 수 있느냐 말이예요. 형은 부모가 동생만 사랑하면 야단하지만 자기를 더 사랑하는 줄 알게 될 때는 자기도 어머니 아버지와 합동해서 동생을 사랑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것이 부모의 소원이 아닙니까? 그러면 동생은 누구보다도 더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형은 부모의 사랑을 받았지만 동생은 그 부모와 형이 합해 가지고 사랑하게 되니 더 큰사랑을 받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받는 위치로 볼 때, 하늘 앞에 중심적 존재가 누구냐 하면 아벨입니다. 아벨적인 자리가 귀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형은 장자로서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만, 동생은 거기에 형의 사랑까지 플러스해서 받으니 형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사랑권내에 있어서는 동생이 낫다는 거예요. 이런 입장에서 사랑의 중심을 찾아 나가려니 아벨의 자리가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을 사랑하지 않고는 아벨이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똑똑히 알아야 된다구요.

여러분은 동네에서 못사는 사람을 보게 되거나, 밥을 먹고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는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세가 그래야 돼요. '이 사람이 이렇게 못사는 것은 인류의 조상되는 사람이 잘못하여 타락했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의 사명을 갖고 이 동네에 왔으니 내가 이 사람을 책임져야 하는데, 내가 이 동네에 와서 일년이 지나도록 너희에게 미쳐진 것이 무엇이냐, 아무 혜택도 가해 준 것이 없구나' 하며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를 부르며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 그런 마음을 가져 봤어요? 이것이 원리적인 거라구요.

또 동네 아이들이 못먹고 못입는 것을 보면 가슴 아파해야 됩니다. '너희들이 이렇게 된 것은 누구 때문이냐? 나 때문에 이렇지. 이 동네가 하늘로 가기 위해서는 부모로 온 나를 중심삼고 발판을 만들지 않고는 가인의 다리를 놓을 수 없다. 이 발판을 거치지 않고는, 부모의 인연을 맺지 않고는 하늘로 갈 수 없다. 나와 그대들과 이 마을은 참인연이 있어서 만났으니 나는 죽든 살든 끝까지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하는 마음이 밤이나 낮이나, 자나깨나 사무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입장에 있는 지방 책임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자세입니다.

숟가락을 들 때에는, 그 동네의 밥을 굶는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그들을 방문해서 밥을 다 나누어 주고 그들로부터 '제발 나를 그냥 두고 숟가락을 들어 달라'는 권고를 받기 전에는 숟가락을 들지 못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그게 부모라구요. 자식을 가진 부모가 자기 밥이 있으면 혼자 먹을 수 있어요? 부모는 '어서 먹어라. 어서 먹어라' 하면서 자식들에게 나눠 주고 먹여줄 때에, 그 중 철든 자식으로부터 '어머니 아버지, 우리는 이제 됐으니 부디 어머니 아버지 잡수십시오' 하는 말을 듣고서야 그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밥을 먹게 될 때, 그 밥은 소망과 사랑의 마음으로 먹을 수 있는 밥이 되는 것입니다. 그 밥이 슬픈 밥이 아니라 행복의 밥이요, 절망의 밥이 아니라 희망의 밥이요, 부모와 자식이 그 밥을 먹는 그 자리는 끝이 나는 자리가 아니라, 천륜의 인연이 새로이 맺어지고 하늘땅의 인연이 새로이 맺어지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밥은 복된 밥이요. 그 터전은 행복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단계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길가에 놀고 있는 못 입고 못 먹고 뼈만 남아 있는 애들을 보면 자기 아이들과 같이 붙안고 품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걸 못 하게 되면 아이를 낳아 놓고 책임을 못 하는 부모와 같이, 자기 아이를 어느 유모에게 주거나, 혹은 어떤 동네에 버린 어머니가 자기 아이가 길리우고 있는 집 앞을 지나다가 그 아이를 보게 되면, 그 아이 앞에 얼굴을 못 드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그 이상의 부끄러움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정의 인연입니다. 만일 자기가 낳은 아들딸이 그렇게 말라빠져 있다면 그 아이를 붙들고 뼈가 녹아나고 살이 일그러지도록 눈물을 흘리지 않겠느냐?

복귀역사 노정에 있어서, 부모가 있으되 그 부모를 알아보지 못하고 몇천년 동안 유리고객하고, 원수에게 끌려다니면서도 망하지 않고 씨앗으로 오늘까지 남아진 혈족의 인연이 얼마나 복되고 얼마나 귀합니까? 하나님이 우리 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으시고, 후손을 남기게 하시기 위해 그 종자가 끊어지지 않을 수 있는 자리에 '나'를 세워 주신 데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 마음을 중심삼고 부모의 심정을 체득할 수 있는 자리가 벌어지게 되는 날에는 절대로 밥을 굶게 되지 않습니다. 동네가 굶기 전에는 여러분이 굶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있는데도 밥을 굶게 되면 그 동네는 전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사람을 보고도 그렇고 소를 보고도 그렇습니다. '이 놈의 소야, 네가 참부모의 채찍을 맞아 가면서 농토를 갈면 얼마나 좋겠느냐? 불쌍한 고아와 같은 신세, 종의 신세, 그 운명을 가릴 수 없는 그런 입장에 있는 네가 불쌍하구나' 하면서 소의 귀를 붙잡고 이마를 맞대고 엉엉 울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쓸 줄 알아야 됩니다.

밭을 바라보고도 그렇고, 나무를 바라보고도 그렇습니다. '너희들, 역사적 한이 있거든 오늘 나를 보고 풀어라. 소원성취의 욕망이 있거든 나에게 말하라, 내가 하늘의 뜻과 인연을 맺어 주겠다'고 해야 됩니다. 뜰을 바라보고…. 산천을 바라보고도 '내가 너를 버리겠느냐, 골짝골짝마다 내가 다 가주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주인이 못가본 깊은 산중에 있는 나무까지 찾아가서 '오늘 내가 너를 찾아 이 산중에 온 것은 너와 같이 산중에 있는 나무들이 외롭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를 대표적으로 찾아왔다' 하면서 동네면 동네, 군이면 군에 있는 산의 나무들을 대표한 입장에 세워 놓고 기도해 주고, 오늘의 기쁨을 길이길이 전승하고 오늘로서 모든 슬픔을 해원하여 후대에는 이런 슬픔을 갖지 말도록 기도해 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바위를 바라보면, '너는 뭇 사람들로부터 무슨 소원을 들었느냐? 많은 사람들이 너를 바라보고 원망하고, 너를 바라보고 저주하고, 너를 바라보고 별의별 생각을 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네가 나를 만나 반가와할 수 있는 오늘을 얼마나 고대했느냐?' 하면서 바위가 슬퍼하기 전에 먼저 슬픈 표정을 짓고 눈물이 앞을 가리는 심정을 갖고 나가는 여러분이 된다면, 여러분이 가는 길은 절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괴롭게 되려 하면 여러분의 선조가 말려듭니다. 선조들은 종의 종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종인 여러분이 가면 여러분에 앞서 선조들이 수고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계가 동원해 가지고 자기들의 후손에게 협조해 주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이것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부모의 심정으로 천사장을 사랑하고 아담을 사랑할 때, 하나님이 수난받는 일이 벌어지게 되면 영계에 속한 존재 전체가 하나님을 협조하기 위해서 동원될 것 아닙니까? 마찬가지 이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모의 심정을 가지면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맞기 전에 내가 맞고, 너희들이 고통받기 전에 내가 고통을 당하고, 너희들이 수난을 받기 전에 내가 수난을 받겠다. 이 동네를 깨끗하게 못 한 것도 내 책임이요, 이 동네 전체에 천국의 기원을 못 만드는 것도 내 책임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수고하고, 밤에 돌아와서는 그들을 위해 복을 빌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일생을 걸고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을과 그 마을의 후손들을 걸고 탄식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그런 입장에 선 사람이 그 동네가 조상으로 맞이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요?「예 」

참부모 대신 사지에라도 가겠다는 사람이 있느냐

참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된다고요? 참주인이 된 다음에 참자녀를 사랑해야 됩니다. 참자녀를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부모는 누가 결정해 주느냐?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의 참부모라는 것을 통일교회 문선생이 결정한 것입니까, 여러분들이 결정한 것입니까? 선생님이 '내가 참부모다'라고 하는 말 들어 봤어요? 들어 봤어요, 안 들어 봤어요? '내가 참부모이니 너희들 내 말 들어라' 하는 말을 선생님에게서 들어 봤어요? 참부모는 누가 결정한다구요? 참부모는 자녀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 거라구요. 자녀들이 '어머니 중의 어머니요, 아버지 중의 아버지요, 부모 중의 부모로서 세상 부모보다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여 백년이고 오백년이고 그분과 같이 가겠다'고 할 때, 참부모로 결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참부모를 중심삼고 나가야 새로운 아들로 찾아지고, 구원을 받고, 죽음 앞에도 기쁨의 권세를 갖고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선생님을 대해 그럴 수 있는 마음 가진 사람 있어요? 있나요, 없나요? 선생님이 참부모님이면 나는 참아들딸이라는 신념에 사무치고, 어려운 때 사지사판에도 내가 참부모님 대신 나가겠다는 결의에 사무쳐 가지고 살아 온 사람 있습니까? 있어요, 없어요? 그렇게 살지 않으면 원수입니다, 원수. 하나님을 대한 선생님의 마음은 '당신이 당할 고생을 나에게 퍼부으소서. 몇천 년 당할 수난이라도 몇십 년 이내에 해결하겠나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녹음 상태 불량으로 테이프 한 개 분량 중략함)

효과적인 목회와 선교

전도를 하는 데 어떻게 하느냐 하면, 어떤 처녀를 전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교회 근처에 자기 말을 잘 듣는 처녀의 어머니 아버지를 찾아가서 그 처녀를 데려가도 상관할 필요가 없다고 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교회장이 되어 가지고 그 처녀를 한 3개월만 데려가게 해 달라고 하는 거예요. 데려오는 데는 30만원쯤 약조금을 마련하여 주고 그 부모가 허락을 하면 교회에 데리고 와서 봉사하게 하고 신도들을 중심삼고 그 처녀를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 처녀를 언제나 데리고 있을 수 있어요? 처녀들은 시집갈 때가 되면 그 때가 사춘기이니만큼 마음에 어느 정도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운 옷을 입고 싶어하고 무엇이 있으면 보고 싶어하고 맛보고 싶어하고 그래요.

그러니 어느 장날, 이 처녀가 시장에 간다고 하면, 그때 작전을 하는 거예요. 먼저 전도된 식구한테 아무개 처녀가 시장엘 간다고 연락을 하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이 처녀 시장 가고 있을 때 길거리를 가고 있다가 떡 만나서 얘기하게 하는 거예요. '내가 다니는 통일교회라는 곳에는 이러이러한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두고 하나님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통일교회에 들어와 이러이러한 것에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서 자기가 통일교회의 길을 걸어 나온 이야기를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전도가 되는 거예요.

이렇게 해 가지고 간접적인 작전을 해야 합니다. 예배 시간만 해서는 안 됩니다. 24시간, 춘하추동을 중심삼고 사방으로 활동한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발전을 안 하겠나…. 발전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설교는 주일날만 하는 것이다' 해 가지고는, 주일날만 되면 '성경은 어디를 볼까? 찬송가 나오너라, 성가 나오너라' (웃음)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지 말라구요.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중심삼고, 산 재료를 중심삼고, 성경에서 그와 같은 역사를 빼가지고 그 사람의 일과 성경의 내용을 대조해 가면서 재미있게 설교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듣는 사람이 자기 일을 말하니까 홀딱 반하는 거라구요. 좋아하는 거예요. 이렇게 해 나가는 겁니다. 알겠어요? 책보고 하려고 생각지 마세요. 사람에게서 책도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 자체가 책의 원본이란 것을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예」 사람을 연구하고 사람 세계의 인연을 중심삼고 체험을 많이 한 사람이 어디 가서든지 임기응변을 잘하는 것이요, 능통한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학박사들은 책에 없는 것을 묻게 되면 꼼짝 못합니다. 무엇을 물으면 책을 봐야 되겠다고 합니다. 몇 길밖에 모른다구요. 그런 사람은 큰 지도자가 못 됩니다.

사람에 대해서 연구를 해야 됩니다. 웃을 때도 어떤 사람은 힘없이 '으흐흐' 하고 웃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힘있게 웃습니다. 웃는 데도 만물상입니다. 웃을 때 '이히히' 하고 웃는 사람이 있고, '우후후' 하고 웃는 사람도 있고, '허허' 하고 웃는 사람도 있고 별의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미끄러지고, 자빠지고, 터지고….

눈을 봐도 그렇습니다. 눈을 깜박깜박하는 데도 그렇고, 별의별 것이 전부 다릅니다. 같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나 찾아 보세요. 전부 다 제각기 다르다구요. 자기 친구들 가운데나 자기 교회 교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 성격은 어떻고, 어떤 사람 성품은 어떻고…. 얼굴을 척 보면 그가 어떤 기분이냐? 좋은 기분이냐, 나쁜 기분이냐? 그런 것이 전부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눈이 말 눈같이 생겼어요. 말 눈 같은 눈에다 원숭이 턱 같은 턱을 가졌다고 해보세요. 얼마나 볼만하겠나. (웃음) 그런 사람이 있다고. 그런 인상을 가진 사람은 이 다음에 선생님의 연구 대상입니다.

나는 열두살 때부터 동네의 처녀 총각들을 시집 장가 보낼 때 그런 일을 했습니다. 서로 인상이 안 맞아서 틀렸다고 하게 되면, 틀림없이 맞았습니다. 가만 보니까, 좋다고 하면 좋고 틀렸다고 하면 나쁘거든요. 여남은 사람을 그렇게 했는데 내가 말한 대로 되니까 소문이 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을 결혼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3년 동안에 잘 극복해야 됩니다. 싫을 때는 그저 눈을 감고 눈물 흘리면서 아이고, 앙앙, 아아아 어디로 가나 그러라구요. 그렇더라도 3년 동안 살아 봐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을 운이 있어야 되는 거라구요. 죽을 운에서 살 운에 이르는 그 길이 첫째 길인 것입니다. 죽을 때라고 생각하면서 3년만 지내면 상대에 대해서 다 알게 되기 때문에 지극히 좋아지는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못 해 가지고 이러고저러고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사람에 대해서 연구를 하라고요. 눈 박사가 되려면, 눈을 보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있어야 됩니다. 눈의 종류가 몇 종류나 되느냐 하면 몇 천 종류라구요. 눈까풀을 벗겨 놓으면 다 같겠지만 눈까풀을 씌워 놓으면 다 다릅니다. 그 눈동자가 왔다갔다하면서 기쁠 때는 이렇게 하고 울 때는 또 쑥 이렇게 하잖아요. (표정을 지으심) 눈을 보면 다 다르다구요. 눈을 봐 가지고 알아보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내 이웃 가운데 어떤 눈을 가진 사람은 어떤 환경을 가졌다 하는 것을 생각해 가지고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을 골라내는 방법을 기르는 거예요. 알겠어요? 아무개 눈과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을 골라내는 거예요. 귀를 보고도, 코를 보고도, 눈을 보고도 골라내는 것입니다. 다 닮아 있다는 거예요. 그런 걸 봐 가지고, 어떤 사람에게 착하게 생긴 것이 있으면 그것을 중심삼고 열 가지 중에서 세 가지만 같으면 그 사람에 대해서 절반 50퍼센트 이상이 가려지는 거예요. 얼굴에는 눈,입,귀,코 이 네 가지밖에 없는데, 그 중에 세 가지만 같게 되면 절반 이상 들어 맞는다는거예요. 그걸 봐가지고 악한 사람인지 선한 사람인지 가려내는 것입니다.

그런 잼대를 가지고 연구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선생님에게 연구자료를 제공하는 분들입니다. 쓱 보면, 눈썹도 올라가고 눈꼬리도 올라가고 코도 올라가고 입술도 올라가고. 전부 다 올라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크게 놀라서 상처를 입지 않으면 크게 정성을 들이는 도에 관계된 사람입니다. 하늘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구요. 또 보면 눈썹도 내려가고 코도 내려가고 입술도 내려간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우매한 사람입니다. 종류가 상당히 많아요. 이런 것 저런 것 생각하면서 사람에 대한 재료를 수집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얼굴은 곱상한데 이마가 꿀밤처럼 나왔어요. (웃음) 놀라자빠지게 이마가 튀어나온 사람이 있다구요. 그런 사람을 보면 정말 우습다구요. 또 목젖이 쑥 나오고 위로 된 사람의 목청은 굵고 알토입니다. 그렇게 생긴 것도 다 뜻이 있는 거라구요. 얼굴을 연구해 보라구요.

그래 가지고 그런 재료를 중심삼고 동네방네 쓱 다니면서 처음에는 말로 합니다. 1차 작전은 말로 하는 거예요. 말로 해서 안 넘어가고 반대를 하면 수집한 재료를 중심삼고 하는 겁니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사람을 만나서 연구하는 재미에 홀딱 반해서 하지 않으면, 사람 관계에 취미를 갖는 사람이 되지 못하면 지도자가 못 됩니다. 이런 것이 재미가 있어요, 없어요? 재미가 없으면 재미있게끔 훈련하면 됩니다. 연습을 많이 해야 돼요.

이런 등등의 여러가지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지방교회의 지도자가 되려면, 참지도자가 되려면 이러한 것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작전이 필요합니다. 대내작전과 대외작전을 세워 부락과 교회을 결탁시키는 거예요. 그리하여 여러분이 세운 어떤 승리의 결정권이 동네의 자랑이 되면 그 부락의 청년들이나 노인들이 모두 칭찬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청년들을 이런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해서 그 어머니 아버지로 하여금 울타리를 치게 해 가지고 그 후원 밑에서, 혹은 우리 교회의 후원 밑에서 동네를 하나로 묶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한 동네, 두 동네, 세 동네의 관심을 끌어 가지고 움직여서 그 세 동네만 하나될 수 있는 터전만 닦아 놓으면, 리가 문제가 아니고 면이 문제가 아니고 군조직이 문제가 아닙니다. 도는 못 해도 군까지는 문제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소대장으로부터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 군단장…. 이렇게 점점 올라가야 된다구요. 그러려면 첫째로 작전 계획을 잘 세워야 됩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쁘게 살라

가만히 앉아 가지고 '아, 점심 때가 됐구나, 밥을 먹어야 하는데 쌀이 있어야지…' 이런 사람은 쫄쫄 굶어야 됩니다. '내가 전도하러 나왔는데 배가 고프니 선생님 밥 먹게 해 주소. 내가 뜻을 위해 살았으니 본부에서 후원을 해줘야지' 이러는 사람이 있다면, 후원은 무슨 후원입니까? 배를 가르고 밸까지 끌어내야 됩니다. 후원해 주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 아니라는 걸 알라구요. 알겠어요? 선생님은 무자비한 사람입니다. 이거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좋은 겁니다」 좋은 건데 왜 안 하겠느냐 말이예요. (웃음)

선생님이 제일 처음에 집을 나왔을 때 형편이 어떠했는고 하면 위신도 체면도 없었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것입니다. 닥치는 대로 하는 거예요. 그저 먹고 사는 게 아니예요. 배워 가지고 할 게 뭐예요?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실천을 하는 거예요. 젊은 사람들은 못할 게 없습니다.

자기의 입장에 따라서 살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오늘 아침부터는 고구마를 먹는 것입니다. 고구마 박사가 되어야 된다구요. 보리밥 박사도 되어야 됩니다. 제일 싼 것이 고구마 아닙니까? 고구마를 먹는 것이 싫으면 먹지 마세요. 「감자를 많이 먹습니다」 감자 같은 것은 더 좋습니다.

여러분 강원도에 가면 옥수수를 많이 먹지요? 옥수수를 먹는다고 타박하지 말라는 거예요. 깊은 산골에서 옥수수에 인분을 줘서 키우면 그 옥수수는 꿀옥수수가 됩니다. 이 다음에 한번 해보라구요. 옥수수 재배는 강원도에서 많이 하지요? 강원도에서는 옥수수의 거름 중에 인분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인분을 안 주면 잎사귀가 얇아요. 그러나 인분을 줘 가지고 심어서 비를 맞으며 잘 자라게 되면, 거기에서 나온 옥수수를 삶아서 한 줄을 쭉 파 먹어 보세요. 따끈따끈할 때 먹으면 요게 참 맛있다구요. 이것은 복귀노정에서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웃음) 딱 맞아요. 그 다음에는 통거리 복귀예요. 한꺼번에 천주를 복귀하는 거라구요. 이렇게 여러분은 복귀의 심정을 가지고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웃음) 민족복귀의 심정을 가지고 먹는 거예요. '이것은 아담복귀형이다' 하면서 한 줄 먹고 '이것은 재차 아담복귀형이다' 하면서 한 줄 먹고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배가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감자가 나쁜 것이 아니예요. 감자나 고구마 같은 것은 구워 먹으면 맛있습니다. 구우면 겉껍질은 새까맣게 타고 속은 익게 되는 것입니다. 그 속이 아주 맛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은 모르지요? 구워 먹어 보면 알게된다구요.

이렇게 구워 먹으려면, 고구마를 살 줄도 알아야 됩니다. 어떤 고구마가 맛있느냐? 모래가 섞인 밭이나 돌이 섞여서 물이 잘 빠질 수 있는, 그런 모래가 섞인 밭이나 돌밭에서 나온 고구마는 찰고구마입니다. 참 달다구요. 한번 먹어 보라구요. 맛이 있나, 없나? 그런데 진흙밭에서 나온 고구마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이것은 삶아 놓으면 전부 물러집니다. 고구마를 무르게 삶아 가지고 2층이나 3층에서 딱 때려 던지면 뭐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웃음) 삶아 놓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보면 아는 것입니다. 껍데기를 모래로 싹 한번 문질러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단 건지, 어떤 건지…. 그리고 단단해야 됩니다. 고우면 안 돼요. 울룩불룩하면서도 털이 없어야 돼요. 껍질이 두껍지 않아야 됩니다. 이런 고구마가 참 맛있어요. 이런 것도 다 연구해야 됩니다. 많이 사 먹어 보면 아는 거라구요. (웃음)

어느 동네 아무개네 집의 고구마가 제일 좋은가를 알아 가지고, 제일 쌀 때에 몇 가마니 사 놓으면 봄이 될 때까지 먹을 수 있습니다. 이왕 사 먹을 것, 고구마를 먹어야 할 팔자라면 빚을 내서라도 싸고 맛있는 고구마를 사는 거예요. 맛있는 고구마 한 가마니만 있으면 한달도 버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미리 준비해 가지고 일년 동안 고구마만 먹어도 죽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고구마 먹고 살찌는 것도 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맨처음으로 고구마 먹을 때는 참 맛있지요? 안 그래요? 내가 맨처음에 고구마를 먹었을 때의 이야기를 해주지요. 우리 동네에는 고구마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외가집이 20리밖에 있었는데 거길 처음으로 갔을 때 고구마를 처음으로 봤습니다. 거기에서는 고구마를 '지과'라고 했습니다. 땅의 열매라고. 그것의 본래 이름이 고구마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기 때문에 고구마라고 했지. 처음에는 지과, 땅의 열매라고 했다구요. 아, 외가 집에 처음으로 갔을 때 그걸 주는데, 도대체 이게 뭐야 이게….

외가에서 돌아다니다 떡 보니까 덩굴이 뻗어 나가는 것이 있기에 이게 뭐냐고 했더니 지과라는 거예요. '지과가 뭐야?' 처음 듣는 이름인데, 어떻게 먹는 거야? 했더니 캐서 쪄 먹는 거래요. '열매 같은 거냐. 따 먹게 되어 있느냐. 지금도 파면 나오느냐. 한번 파 보자'고 하면서 밑 구덩이를 파 뒤집었더니 뿌리 한 댓 개가 나오는 거에요. 고구마 덩굴을 뽑아 놓았으니 캐지 않고 그냥 둘 수 있어요? (웃음) 그걸 삶아 달라고 해서 먹는데, 처음 먹으니까, 아, 그 고구마 맛이 얼마나 감칠 맛인지…! 그래서 혼자 다 먹겠다고 해 가지고 고구마를 소쿠리째 갖다 놓고 앉아서 먹었습니다. 고구마가 그렇게 잘 넘어갈 수가 없어요. 그걸 다 먹고 나니 배가 부르지요. 기분이 좋아서 다음 해엔 우리도 심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래 가지고 다음 해에 심으려고 했었는데 심지 못하고 그 다음 다음 3년째 되는 해에야 우리집에서도 고구마를 심었지만 말이예요.

그 다음해부터는 고구마 절기만 되면, 사흘이 멀다 하고 저녁 때가 되면 20리길을 '엄마 나 잠깐 어디 갔다 올께요' 해 놓고는 마라톤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구마를 먹고 오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엄마가 '어디 갔다 오냐'고 하면 '놀러 갔다 왔어요' 하고…. 놀러 갔다 온 것이 외가집에 가서 고구마 삶아 먹고 온 거라구요. (웃음) 그 맛이 정말 꿀맛이었어요.

그때는 그렇게도 맛있던 것이 지금은 왜 맛이 없느냐는 거예요. 사람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고구마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달라졌다는 거예요. 그때를 연상하면서, '야, 고구마야, 너를 내가 옛날에는 참 맛있게 먹었는데, 내가 정이 없어졌든가 네 맛이 달라졌든가 둘 중의 하나겠지!' 하면서 쓱 하나를 집어서 맛보고 하면 그 이상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고구마를 구워 가지고 종이에 싸서 선반에 딱 놓아 두었다가 강의를 하고 나서나 궁금할 때 먹는 겁니다. 거기다 놓아 두면 누가 먹지 않거든요. 설교하고 나서 물 한 컵을 들고 고구마를 꿀떡꿀떡 먹으면서 생각을 하는 겁니다. '오늘 누가 왔던고…' 그거 아주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먹으면서 생각하면 생각하는 게 전부 가족적인 것이라구요.

이런 저런 문제나 자기 자신의 생활을 중심삼고 기쁘게 살아야 됩니다. 왜 얼굴을 찡그리고 살아요. 그러면 하나님이 오시다가도 도망갈 거예요. (웃음) 자기의 타고난 팔자가 그렇다면, 운명을 그렇게 타고 났다면 이왕에 사는 데는 울상을 하지 말고 기쁜 상을 하고 웃고 살자는 거예요. 동산을 바라보며 콧노래도 부르면서 말예요.

통일교회의 교회장이란 사람이 저렇게 못살고 뭐 어떻고 동네에 소문나기 시작해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 아들딸은 절대 저래선 못 쓰겠다고 해보라는 것입니다. 저절로 고개가 푹 숙여지고, 길을 갈 때도 힘없이 가게 되는 거예요. 아무리 못살아도, 아무리 굶고 다니더라도 콧노래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동네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는 유행가도 부르고, 달이 솟거든 달뜬 동산을 바라보면서 달 노래도 부르고, 비가 오면 비노래도 부르고, 농촌이면 농촌노래도 부르고 말이예요. 레코드라도 하나 사 가지고 동네 마이크에 대고 더울 때는 더운 노래를 틀고, 시원할 때는 시원한 노래를 틀어 가지고 동네에 울리게 해주면 일하던 사람들도 그 곡조에 맞추어 노래하게 되면, 동네사람들이 얼마든지 좋게 얘기할 수 있는 거예요.

전심전력하면 무슨 일이든 자기에게 도움이 돼

사람은 분위기를 갖출 줄 알아야 됩니다. 못산다고 해서 언제나 못사는 형태를 갖추고 있으면 안 돼요. 옷이 없으면 친구의 옷이라도 싹 빌려서 입고 빨간 넥타이를 매고 아침 일찍 한번 쓱 나갔다 오는 거예요. 동네 사람들이 '어디 갔다 옵니까?' 하고 물을 때에 '나 아무 데에 갔다 옵니다' 하면 그 거동거리에 흥미를 갖는 거예요. 군수도 좀 만나지 못할 게 뭐가 있느냐구요. (웃음) 달라지는 거라구요.

그렇게 해 가지고 자기가 군수도 알게 된다면 말이예요. 군수더러 자기 사는 동네에 차 타고 오라고도 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군수가 오게 되면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는 보다시피 이렇게 삽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에 돈이 없다고 멸시하지 마소. 나는 누구보다 젊소. 10년 후에는 당신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소'라고 농담삼아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사상은 밑창에서부터 올라가는 것이고, 우리 문선생의 사상은 젊은 사람들에게 자립정신과 자주정신을 심어 주려는 것이므로, 교회를 지을 때 벽돌 집을 지을 수도 있었지만 다다미 한 개로 시작을 했소. 이 동네에 온 지 몇개월 되었는데 이제 출발이니 잘 될 거요, 오늘 굶는다고 걱정하지 마소. 지금은 작지만 앞으로 더 큰 놈이 될지 어떻게 아느냐, 슬슬 농조로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는 거라구요. 우리 통일교회를 이래 뵈도 무시할 수 없을 거라고, 지금 여의도에다 땅을 얼마만큼 사놓고 거기에 120층 짜리 빌딩을 지을 것이라고, 통일교회가 돈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이게 다 도를 닦아 나가는 도리와 일치되는 일이니 통일교회가 아주 큰 다음에 흉보지 말라구, 큰집을 지으려면 잔나무부터 기를 줄 알아야 된다고, 농삼아 쓱 한마디 하게 되면 5분 이내에 체면유지를 하고도 남는 거예요. 알겠어요?

저녁때 배가 고프면 군수집을 찾아가서 '군수님 나 저녁 얻어먹으러 왔소. 우리 집에 가면 깜깜하고, 먹을 것도 없으니 배가 고파 죽겠소. 그런데 군수님 댁은 밝고 먹을 게 많기 때문에 왔소. 지나가는 손님같이 생각하고 저녁 밥이나 한 상 대접해 주소' 해 가지고 군수가 면전에서 손수 부인을 시켜 차려다 주는 밥상을 받아 가지고 얻어 먹는 거예요. 반공강의를 잘 하고는 밥을 굶고 처량하게 살게 뭐 있느냐 말이예요. 그런 식으로 쓱 일주 한번 하지.

그 다음에, 생일에는 생일 축하카드를 보내는 겁니다. 3일 전에 보내야 돼요. 알겠어요? 그 동네가 360집쯤 된다면 반공강의를 하러 갈 때 360명의 생일을 딱 적어 두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생일 3일 전에는 전부 생일 축하 카드를 보내는 거예요. 생일 축하카드를 보냈는데도 어떤 소식이 안 오면 찾아가는 것입니다. (웃음) 아무개 아버지면 아무개 아버지, 이장님이면 이장님의 생일이 오늘인 줄 알고 축하카드를 보냈는데 받았느냐, 내가 지나가는 길인데 생일 축하카드까지 보내고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잠깐 들렀다고 하면서 그 집에 들어가 가지고 생일 잔치상을 받아 먹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다니면서 1년 세월을 신선놀음 하듯이 사는 거예요.

그러려면 그 동네에서 아들딸을 중심삼고 잔치를 할 집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을 통계를 내서 연구해야 된다구요. (웃음) 그런 집은 잘먹고 잘살기 때문에 알 수 있다구요. 그래 가지고 인심을 쓰면서, 기분 나쁘지 않게 어느 집이라도 다닐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김삿갓 같은 형편도 필요하다고요. '석양 지는 산마루에 잠을 자는 문서방' (노래 부르심, 박수)

복귀역사를 하려면 어떤 때는 배우 노릇도 해야 되고, 거지 노릇도 해야 되고, 투전판에 가서 놀음도 해야 되고 별의별 일을 다 해야 합니다. 그것을 해 가지고 뜻 앞에 플러스될 수 있는 것이라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유행가를 불러도 양심의 가책을 안 받습니다. 알겠어요? 내가 세상의 그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런 감정을 돋굼으로써 그런 사정의 심정을 통해서 보다 복귀의 심정에 플러스될 수 있고, 보다 자극적인 감동을 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얼마나 좋으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옛날 청소년 시절에 음악을 참 좋아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음악을 좋아하는데, 더구나 차를 타고 어디 갈 때 스테레오 음악을 틀게 되면 차안에서 쉬지 않고 갔다 올 때까지 펄펄 뛰는 거예요. 이놈의 녀석들이 기분이 좋은데 가만히 있으면 지루하거든요. 그걸 보면 날 닮았더구만. (웃음) 장단만 맞게 되면 즐거워하는 거예요. 그런데에 소질이 있다구요.

옛날에 나도 그랬습니다. 내가 하숙하던 집의 주인이 차를 운전하던 양반인데, 강원도 어디에 잘사는 집안의 맏아들인데 말이예요. 지금부터 한30년 전에 운전수라면 아주 난 사람이라구요. 그 양반은 팔도강산 안 돌아 다닌 데가 없었어요. 그는 민요라면 모르는 게 없었고 수백 장의 레코드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인 아줌마를 내 맘대로 하기 위해서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주인하고 인사도 하고 매일같이 저녁에는 밥상도 들어다 주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무슨 심부름을 시키면 해주고,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겁니다. 이런 작전을 하는 거예요. 이렇게 작전계획대로 했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며칠 이내에 홀딱 반한 것입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사위를 삼았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삶아 놓은 거예요. 그럼 그렇지! 그리하여 그 레코드판을 우리에게 다 갖다 주는 것입니다. (웃음) 그 레코드판을 전부 다 듣는 것입니다. 몇 장씩 갖다 놓고…. 주인이 와서 봐도 탄로 안 난다구요. 판을 다 듣고 나서는 매번 체인지해 가지고 몇장씩 갖다가 전부 다 듣는 거예요. '당신의 주인은 저 레코드 판을 몇 장이나 들어 봤어? 다 들어 봤어, 못 들어 봤어? 주인보다 나아야 될 게 아니예요. 나는 며칠 이내에 다 듣는다 해 가지고 24시간 내내 틀어 놓고 지냈습니다. 밤에도 틀어 놓고 잤어요. (웃음)

노래를 잘 부르면 참 좋은 거라구요. 효자는 어머니의 등을 두드려 드리면서 노래하고, 청춘 남녀들이 서로 좋아하는 심정을 노래하려면 그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복귀의 책임을 지고 선두에 서서 가는 사람으로서 소원성취를 어떻게든 해내야 될 것 아니예요? 이게 전부 다 도(道)라고요. 도의 경지라고. 옆에 있는 사람은 아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밤을 새는 거예요. 잘 때는 어떻게 하느냐? 잘 때는 아예 조그맣게 틀어 놓고 이불을 쓰고 듣는 것입니다. 이랬던 생각이 나는구만, 내가 그렇게 극성맞다구요. 내가 무엇이든지 하면 누구한테 지려고 하지 않는다구요.

노래도 배워 두라는 것입니다. 나는 내 일생에 정식으로 노래를 배워 본적이 없습니다. 선생을 통해서 노래를 배워 본 적이 없어요. 또 그러는 것은 싫습니다. 그냥 들어 가지고 노래 부르는 것이 더 좋지. 또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고 말입니다. 노래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환경을 가만 보고 전부 자기가 쥐고 흔들어야 할 판국일 때는 그런 일도 해야 합니다. 자기가 이런 저런 모든 연단과 힘든 경지를 통과하는 것은 목적한 그 뜻 하나를 이루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때는 도매금으로 팔려도 갑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 동네하고 저 동네하고 씨름을 하는데 이 동네가 저 동네에게 지고 있으면 이 동네를 지원하기 위해 내가 나가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는 그렇게 하는 거예요. 나가서 깃대를 꽂고 노래도 부르며 그 때의 주도 역할을 하는 거예요. 이런 저런 모든 일에 흥미진진하게 관심을 갖고 결사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겁니다. 나는 그래요. 어디 노름판에 가면, 노름 그거 한번 하고 싶지 그냥 지나가고 싶지 않아요. 싸움하는 패를 보게 되면, 내가 들어가서 싸움을 해서라도 해결해야지 그냥은 못 지나갑니다. 나는 어느 것 하나 지기를 싫어합니다. 싸움에서 지는 것도 내가 제일 싫어해요. 잘못된 것을 보게 되면 내가 때려잡든가 무슨 수를 쓰든가 해야지 그냥 구경하는 것은 싫다구요.

뭐든지 전부 다 해보고 싶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이렇게 저렇게 지내고 보니 그 모든 것이 뜻 하나를 이루기 위한 것이더라구요. 여러분이 이렇게 전심전력으로만 하면 모든 일이 자신에게 마이너스되는 것이 아니라 플러스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경험을 통해서 증명되는 겁니다.

적극적으로 살라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서 온종일 맞고 고문을 당하는 자리에서도, 판자 쪼가리로 조이고 뒤틀어 짤 때도 '이 자식들, 해보자, 이 자식들아' 그러면서 참았습니다. 형사들이 '내가 형사 노릇을 몇 년 했지만 이런 놈은 처음이다'고 하면서 '에이, 잘못 만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렇지. (웃음) 내가 매를 맞고도 기분이 좋더라구요. 난 그런 것을 좋아합니다. 시시한 것은 싫어해요. 적극적이라구요.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선생님을 모시고 가는 여러분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해요. 그러지 않고는 선생님 눈에 안 듭니다. 눈치나 보고 그러는 것은 싫어한다구요.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이 그러니만큼, 지금까지 그렇게 싸워 나왔고 그런 경험을 통해 전통을 세워서 닦아 놓은 이 터전 위에 있는 여러분이니만큼, 여러분이 잘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부락에 관해 미리 알아 가지고 80세 된 노인을 만나면 이런 말도 해보라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이곳에 오래 사셨으니 어느 산에는 무슨 바위가 있고, 무엇이 있고, 무엇이 있는데 그것을 아십니까? 그때 만일 그 할아버지가 '그런 말은 들었소만' 한다면, 그 할아버지도 여러분한테 배워야 된다구요. 그 주위의 자연을 '저기 오리나무는 누가 심고 누구도 심고' 전부 다 조사해 가지고 아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동네의 나이 많은 사람보다 더 많이 알면 '아 할아버지는 이 동네에서 80년 살았지만, 내가 이 동네에서 일년밖에 안 살았다고 해서 큰소리치지 마소' 하고 한번 들이 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분 나빠도 맞는 겁니다. 무시 못하는 것입니다.

농촌에 나가 가지고 일할 때도 그래요. 선생님이 모를 참 잘 내요. 모내는 데는 선수라구요. 여기 모내기하는 것을 보면 전부 다'맞았다, 당겨라, 끌어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평안도 정주지방은 전국에서 농업이 제일 잘 발달했던 곳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거기에 실험장을 만들었었어요. 정주 지방이 북해도, 동경, 오우지방(奧羽地方) 등 중간지방의 기후와 맞먹는 지역이기 때문에, 거기에 일본사람들이 당시의 농사실험 장으로서는 가장 모범적인 것으로 세운 것입니다. 그들이 연구한 최고로 빠른 농사법을 시범적으로 실시했던 곳입니다. 그들이 개량한 농사방법을 시범 케이스로 전군민에게 실시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모내기를 하는 데 있어서 논의 양쪽 첫 가장자리에만 90도 각도로 금을 그어 놓으면 정방향이 됩니다. 모를 심을 때 먼저 줄을 쭉 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가장자리에서부터 줄 하나씩에 딱 두 사람이 들어서 가지고 모를 심는데, 모를 심을 때 발자국이 나지 않는 곳에 모를 심어야지 발자국이 난 곳에 모를 심게 되면 큰 비가 오거나 할 때는 큰 야단이라구요. 반환 점이 딱 있어 가지고 둘이서 안팎으로 자기 발자국만 따라 심어갔다가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못줄을 따라서 왔다갔다 하면서 메워 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모를 심으려면 얼마나 더뎌요.

이런 방법으로 한 사람이 열 두 포기씩 딱딱 심기로 하고 서로 경쟁하면서 잘 옮겨 심어가면 한 사람이 하루에 오백 평 이상 심는다구요. 두 사람이면 천 평 이상 심는다구요. 열두 사람이면 열두 사람이 한꺼번에 줄을 딱 서서 나가기 때문에 땡땡이꾼이나 더딘 사람은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런 녀석은 그 동네에서 일을 못 해요. 거기에서 일등 난 사람이 남들보다 2배를 하게 되면, 남들보다 2배를 심는다는 소문이 나게 되면 그 사람은 어디서든지 갑절의 돈을 주고라도 데려가려고 합니다. 왜? 모내기를 할 때 그런 사람이 몇 명이 끼어 있어야 그 바람에, 그 사람을 따라가느라고 잘 심게 되거든요. 이것을 시합도 하는 거예요. 일주일이면 일주일 동안 몇 동네에서 장정들을 참석시켜 가지고 경쟁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몇 동네의 일을 후닥닥 해치우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중심삼고도 농사짓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를 하는 거라구요.

모를 찔 때도 뿌리 있는 곳을 잘 잡아야 잘 뽑아지는 것입니다. 모를 찌는 판에서도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이 한패가 되는데 '아무개 패' 하면 그 패에서 모찌는 사람은 누구고 옮기는 사람은 누구고 묶는 사람은 누구라고 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를 찔 때는 뿌리를 잘 갈라야 됩니다. 뿌리부분을 딱 붙잡고 뽑아야 잘 뽑아지는 것입니다. 뽑은 모를 묶는 데는 많이 묶지 말고 한손에 딱 들 수 있을 만큼만 묶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연구를 해야 돼요. 경쟁하니까 연구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잠시 녹음이 중단됨 )

여러 재료를 수집·연구하고 열심히 노력하라

참된 지도자가 되려면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참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자기가 책임진 무대에서 안팎의 작전을 세워서 그 무대를 내적인 작전으로 소화시키고, 외적인 작전으로 소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재료를 수집해서 연구하고 남보다 자지 않고 더 노력해야 됩니다. 그 동네의 사람들 앞에 어떤 자극을 주고 그 사람들 앞에 플러스의 요건을 어떻게 남겨 주느냐에 따라 그 부락이 확 끌려 오느냐, 안 끌려 오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신세를 지면 누가 좋아하겠어요?「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선생님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예」

그 다음에는 안팎으로 부모의 책임을 진 교회장, 지도자는 어떤 지도자이고, 책임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 여러분이 하나님과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정성을 들여야 돼요. 문제가 그거라구요. 여러분이 지도자로서 하루 종일 기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그리워해야 됩니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그리워해야 됩니다. 흠모와 사모의 심정이 언제나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보고 싶고, 그 무엇인지 모르게 클클하고, 배고픈 아이가 젖을 먹고 싶어하는 마음과 마찬가지로 무엇인지 모르게 그립고…. 그럴 때는 남 모르는 가운데, 은은한 가운데 자기 스스로 영적 양식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그걸 남은 모르는 거예요.

어머니도 그렇습니다. 어머니도 선생님이 기도를 안 하는 줄 알아요. 자기는 아래층에 살고 나는 윗층에 사니까, 내가 기도하는 걸 보지 못했다구요. '올라가서 잔다' 하고 올라가면 자고, 내려오게 되면 자다가 내려오는 줄 알아요. 평소에 기도하는 만큼 기도하고 자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통일교 선생 노릇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구요. 기도해야 됩니다. 큰 문제를 결정하는 데는 혼자 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나라가 망할 수 있고, 나라가 왔다갔다하고 복귀섭리의 뜻이 한 고개를 넘고, 파도가 쳐 넘어올 때 그것을 늠름히 넘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정성을 쌓아야 합니다.

새로이 당하는 큰 문제를 결정지어야 할 때 잘못하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 잘못하면 통일교회가 망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망할 수도 있고, 흥할 수도 있는 이런 기로에 서 가지고 어떻게 하든 하늘의 국가를 세우려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교회 책임자는 눈물이 말라서는 안 돼

전부 다 자기가 결정해 나가야 됩니다. 그러니 자기 나름의 비법을 갖고 있어야 됩니다. 아무리 반대를 하더라도 그 원칙만 따라가게 되면 안 될 것 같지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반대하는 무엇이 있더라도 밀고 나가서 그 성과가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일치되는 것을 경험시키고 실제로 보여 주고 체휼시켜야 됩니다. 그러려면 내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여러분이 판결할 수 있어야 되고 하늘의 협조가 있어야 됩니다. 하늘의 협조를 받으려면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 책임자는 눈에서 눈물이 말라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 정말 불쌍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교회 책임자입니다. 언제나 슬픔을 품고 다니는 사람이 교회 책임자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고 복귀섭리의 때를 생각하면 하나님이 불쌍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어떤 일을 해 가지고 복귀의 길을 가야 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내가 이렇기 때문에 이런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기가 막히고 목이 막히고 가슴이 터지는 슬픔을 느낄 때가 많다는 거예요. 졸도할 수 있는 정도의 느낌이 올때가 많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세상을 붙들고 혹은 길 가던 남을 붙들고 수습할 때도 많다는 거예요. 이런 심정이 없어 가지고는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이 못 되는 것입니다. 동네 어디를 가다가 나쁜 것을 보게 되면 '지금은 내가 그냥 지나가지만 다음에 와 가지고 보자. 이 내 손으로 깨끗이 치워 놓을 것이다'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구요.

이런 입장에 선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은 이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시겠습니까? 그러니 기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기도를 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거예요. 자기에게 슬픔이 오는 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동정이 오는 배경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슬픈 거라구요. 그렇지요? 하나님이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여러분은 외롭지 않습니다. 절대 외롭지 않아요. 찬 방에 눕더라도, 동삼삭에 얼음덩이 같은 방에 눕더라도 자신이 불쌍하지 않은 것입니다. 복합적인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기도를 많이 하지 않았어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기도를 모르지요? 기도할 시간이 없으면 걸어다니면서 하세요. 걸어다니면서 기도하라는 거예요. 기도하는 대신 전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하루의 기도를 대신해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지도자란 어떤 사람이냐? 주어야 할 사람입니다.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주는 데는 같은 것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것을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설교를 하려면 어렵지요? 원리 말씀은 그대로 하면 되지만 설교는 힘들다고요. 그것은 같은 것을 주지 않아야 되겠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같은 것을 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이것저것 좋은 것을 가려서 먹여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같은 것을 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줄 것이 없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식구들에게 먹이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과 더불어 의논하고…. 결국 여러분은 분명히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가 기도를 하면서도 뭘 기도하는 줄을 모르면서 기도하는 때가 있다고요. 그럴 때는 기도하면서 자기가 기도하는 말에 자기가 감동받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서 기도를 하면 청중은 전부 다 하나님 앞에 사로잡히게 되고, '하나님이 생명의 원동력이요, 본체다' 하는 것을 체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체험을 하게 될 때, 하나님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이런 사연을 연결시켜 가지고 청중을 매료시키기 위해서는 기도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옛날에 훌륭했다는 사람들, 역사에 나오는 훌륭하다는 사람들이 다 훌륭한 학자가 아닙니다. 훌륭한 사람이란 그야말로 심정의 배고픔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 심정의 배가 부를 때에 그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희열에 사무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청중은 거기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주어야 할 텐데, 주려면 보급받아야 할 텐데 보급을 어디에서 받느냐? 본부에서 선생님의 설교를 들어서 보급받을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 혼자 떨어져 있을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보급받을 수 있는 보급로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능력을 길러야 됩니다. 어디 나서면 혼자 가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를 받아야 돼요. 참부모를 모시고,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하나님을 모시고, 세계가 여러분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는 심정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자기 앞에 있는 일이 하나님의 섭리를 좌우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어디를 가더라도 심판의 방패로서 왔다갔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 번만 왔다갔다해서 공을 쌓게 되면 그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내가 가면 하나님이 가고 내가 오면 하나님도 온다는 것을 자연히 실감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서 있는 곳은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여러분은 하루에 기도를 몇 시간이나 합니까? 잠을 안 자고라도 기도를 해야 된다구요.

참부모와 같은 지도자

다시 돌아가서 어떤 지도자가 되어야 하느냐? 참부모와 같은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기도를 해서 작전을 세워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진리를 보급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지도자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보급은 어디서 받느냐? 하나님으로부터. 작전은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의 작전법을 배워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전법을 배워서 최고의 작전계획을 세우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내가 지도자의 책임을 졌으니,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단 하나의 책임자이니, 내가 선 이 자리는 참부모의 자리다 하는 신념을 가지고 하나님과 더불어 화합하여 작전을 하는 데 있어서 먼저 알아야 되는 것이 하늘의 법도인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경험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말씀하는 것이니 그대로 실천해 보세요. 그런가 안 그런가 한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금후에 여러분이 가는 곳은 발전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살다가 길을 떠나게 되면 많은 식구들이 그 길을 따라 나설 것이고, 혹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면 이동하는 여러분을 대해 눈물을 흘릴 것이고, 눈물을 흘릴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이동해 간 그곳까지 찾아 왔다갔다할 것입니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지면, 갑이라는 사람이 이동해 가고 을이라는 사람이 새로 왔을 때, 식구들이 을이라는 사람을 남겨 놓고 갑이라는 사람이 이동해 간 곳을 찾아가게 되어 을이라는 사람이 시기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을 시기하는 사람은 교역자가 못 됩니다. 그것을 교훈으로 삼고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또 예를 들어, 갑이라는 교회에서 전도를 하던 책임자가 을이라는 교회로 갔을 때, 갑이라는 교회에는 새로운 지도자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갑이라는 교회의 교인들이 그 책임자를 따라 전부 다 을이라는 교회로 갈 수 있게 된다면 그 책임자는 훌륭한 책임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럴 때 갑이라는 교회에 신임한 지도자는 자기 교회의 식구들이 을이라는 교회로 간다고 해서 그것을 막지 말라는 것입니다. 깨끗이 보내 주라는 거예요.

을이라는 교회에 가서 지도하는 방법을 배워 가지고 와서 대역자 노릇을 하라는 것입니다. 대역자 노릇, 심부름꾼 노릇을 하다 보면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내 것 가지고 타고 앉아서 하려고 하면 다 놓치는 거예요. 알겠어요? 배우는 것입니다. 배우라는 거예요. 그 지도자의 제자와 같은 입장에서, 솔직하게 배워 가지고 자신이 그를 대신한다는 입장에서 하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것을 싫어하지요? 싫어해요, 좋아해요? 싫어했지요?「예」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더라도 한 식구입니다. 한 식구라도 가르쳐서 남기고 구원해 주어야 할 책임을 진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한 식구라도 죽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죽여 놓게 되면, 책임을 못 하게 되면 식구들이 연쇄적으로 책하게 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곳에 와서 몇 사람을 전도했느냐? 죽인 사람이 많지, 살린 사람이 많지 않다 하게 될 때는 아무리 전도를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지도자는 회개해야 됩니다. 베옷을 입고 절을 드리고 죽는 시늉을 해야 합니다. 만일에 그렇게 해도 해결이 안 되면 자기 아들딸이 전부 탕감받는 것입니다. 탕감법이 무서운 거예요. 이런 내용들을 참고해서 여러분이 지도자로서 올바른 길을 가 주기를 바라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알겠지요?「예」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천지간에 지도자가 어디에 또 따로 있겠습니까? 이 우주를 창조하신 온전하신 아버님밖에는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그 참어버이를 지도자로 모실 수 있는 영광의 아들딸의 모습을 당신이 그리워하신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고, 밤이나 낮이나 그러한 아들딸의 모습을 흠모하고 사모해야 할 저희들인 것을 이제 알았사오니, 저희들을 그럴 수 있는 자녀의 자리에 세워 주시옵소서.

아버지,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 자리까지 나오는 데는 아버님께서도 눈물의 골짜기를 많이 거치셨지만, 보잘것없는 이 자식도 남모르게 눈물을 흘려 왔사옵니다. 언제나 아버지 앞에 서러움을 자극시킬 수 있는 조건을 남길까봐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나온 것을 아버지께서는 아시옵니다. 이 보잘것없는 것을 붙들고, 이 보잘것없는 것을 칭찬의 자리에 세우기 위하여 무한히 애쓰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 될 때, 이 모두가 아버지의 영광이요, 아버지의 수고의 공로임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 이 통일교단은 흘러가는 역사의 한 면을 책임지기 위한 교단이 아니라 흘러가는 역사를 가로막고 전체를 소화시켜야 할 교단이기 때문에, 저희들은 사랑의 마음을 갖는 데 있어서도 최고의 마음을 갖고, 실천을 하는 데 있어서도 최고의 실천을 하고, 희생을 하는 데 있어서도 최고의 희생을 치러야 할 최고의 지도자의 사명을 하도록 분부받은 거룩한 무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거룩한 무리라는 것은 택함을 받았다고 해서 거룩한 무리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희생하고도 또 희생하고 싶어하는 자리에 서야 남아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신을 희생시키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빌어 주는 무리 가운데에 성인이 있다는 것을 아옵니다. 성인들이 바라던 소망의 뜻을 종결지을 수 있는 아버지와의 혈연적 인연을 이 땅 위에 심어 놓아야 할 아들딸의 인연이 통일교단 앞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사실인 줄 모르겠사옵니다.

사탄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저희들은 그 혈통적 인연을 재정비하여 참부모의 혈통을 상속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사옵고, 그런 길을 통해서 당신 앞에 선 저희들은 무한한 복을 받은 모습들인 것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받은 축복과 축복 가정의 위치가 어떻다는 것을 몰랐던 저희들이요, 생명을 대신 가려가는 길을 책임진 교회장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도 미처 몰랐던 저희들이었사옵니다. 이제 그런 것을 확실히 깨닫고 과거와 같은 무리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백 번 죽고 백 번 희생하고서도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백 번 죽고 백 번 희생하고서도 또 그 이상의 수난길을 찾아가야 할 입장이 온 우주를 잃어버린 아버지의 입장이요, 이것을 탕감해 내야 할 예수와 성신의 입장이요, 참부모의 입장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지금까지 환난의 길을 피하기를 원하였고 고통의 자리를 피해 가고자 했던 저희들이 얼마나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되옵니다.

민족을 넘어 세계의 수난길을 책임져야 할 입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이 당하는 수난길마저도 피하려 했던 부족한 저희들이 이제 회개하고 새로이 각성하고 자각하여, 민족뿐만 아니라 세계의 수난길을 책임지고 나가시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죽음의 고빗길을 책임지고 나설 수 있는, 당신의 아들과 딸로서의 위신을 세워 드리는 무리가 되겠다는 신념을 강하게 갖고 다시 한 번 내심으로 결의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팔월 중순, 이 좋은 계절에 저희들이 청평 땅에 모여서 이와 같은 수련회를 갖게 된 것은 저희들이 낙망과 절망을 촉구하는 슬픔을 맞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망과 희망 가운데 내일의 승리의 계승자가 되기 위해서이옵니다. 벌거숭이의 몸과 붉은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소명을 받은 저희들이 당신이 분부하시는 명령을 저희들의 생명과 더불어 이루어 바치고자 하는 자리에서 새로이 출발하기를 결의하기 위해 모였사오니, 이번 기회로 말미암아 당신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아들의 권위와 위신을 다시 찾을 수 있고, 책임자로서의 권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빛 되고 가치 있는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수난길을 참고 나오신 한 많은 역사의 인연을 버리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인자하신 정통사상을 저희들이 본받아 끝까지 참고 남아져서 당신의 축복 권내에 들어가서 당신이 자랑하시기에, 나아가 당신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로서 길이 남아지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참된 지도자의 갈 길이 어떤 것임을 말하였사옵니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참부모의 심정을 지녀야 되겠사옵고, 참부모로서 자녀를 보호하고 자녀를 찾아 나오는 작전을 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날이 새로운 것을 먹여 줘야 할 입장에 서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책임인 것을 확실히 알고, 남보다 더 고달픈 사정에 처해 있더라도 남보다 더 희생하는 입장에 서서 그들을 위하고 그들 앞에 부모의 사명을 다할 줄 아는 금번에 여기 모인 교회장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자기의 일념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쌍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닫고, 하고 싶은 말을 맘대로 하여 아버님을 섭섭하게 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다시 깨달아서,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복될 수 있는 아들과 딸로 세워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신이 되도록 스스로를 다시 한 번 청산짓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이 길지 않은 이번 기간을 당신이 축복하시사, 이들을 허락하신 복귀동산에 남아질 수 있는 승리의 왕자와 왕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뒤를 이어받아 가문을 지킬 수 있는 족장들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게끔 복을 베풀어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소서.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채찍을 가하여서라도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전체를 당신께 맡기오니 경륜하시는 뜻 가운데서 승리의 한때를 맞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비참한 희생의 대가를 치러 온 기독교

​하나님은 지금까지 타락한 인간들을 대해 가지고 구원섭리를 해 나오시고 계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말할 수 없는 원수의 종자 되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바라시는 역사적인 어떤 완성기준, 즉 구원섭리의 목적기준을 넘을 수 있는 그 한 곳에 도달하게 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섭리의 방향을 밀고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아담 가정,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모세 가정, 사가랴 가정, 예수 가정 등이 나타났고, 제2이스라엘권을 창설하기 위해 기독교를 중심삼은 섭리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제1이스라엘권에서부터 남겨진 섭리역사를 재탕감하려면 그 섭리사에 나타났던 내용보다 나아야 됩니다. 그보다 못해 가지고는 탕감할 수 없습니다. 어디에 쓰여진 글씨를 지워 버리려면 그것이 쓰여질 때 들인 힘보다 더 가중된 힘으로 지우지 않고서는 지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1이스라엘권이 성취하지 못하고 실패한 그 기준을 영적으로나마 승리의 기준으로 마련하기 위해 기독교는 역사를 통해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 온 것입니다. 여기에는 개인이 동원되었고, 가정이 동원되었고, 종족이 동원되었고, 민족이 동원되었고, 국가와 세계가 동원되었던 것입니다.

로마제국을 중심삼고 보면, 그 당시 전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어떠한 나라보다도 강한 세력을 가진 국가였습니다. 그러한 로마제국 앞에 지배를 받는 이스라엘, 식민지와 같은 이스라엘권에서 기독교가 출발하여 로마를 대해 싸워 나가는데, 로마는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세계적이요, 가정적인 면에 있어서도 세계적이요, 혹은 민족적인 면, 국가적인 면, 모든 것을 보더라도 세계적인 권위를 갖춘 단 하나의 국가였습니다.

그러한 로마에 대해서 나라도 없고, 일족도 없고, 종족도 없고, 가정도 없는 상태에서 기독교가 분립된 개개인의 생명을 이끌어 가고 개개인이 일신을 투신하는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4백년 동안 투쟁하여 로마를 꺾어 놓은 것입니다. 그 기간에 기독교인들이 치른 탕감적인 희생이라는 것은 역사상에 찾아볼 수 없는 비참한 사실로 남아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역사과정을 거쳐 국가적인 터전을 닦은 기독교는 그 기반 위에서 비로소 서광을 볼 수 있게 되어 세계적인 발전의 터전을 갖추어 나온 것입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하나의 기반을 닦았지만 로마 한 국가와 국민만을 중심삼고는 섭리의 전체를 이룰 수 없겠기 때문에,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세계로 뻗어 나가면서 개인적으로 핍박을 받고, 가정적으로 핍박을 받고, 국가적으로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엮어 온 비참한 운명임과 동시에 비참한 역사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역사 속의 기독교와 재림사상

그렇게 하여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승리한 터전, 기반을 가지고 세계적으로 남아 있는 사탄권을 침식시키기 위해 많은 희생의 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해야 됩니다. 이렇듯 기독교가 수난을 당하고 희생의 대가를 치름으로써 그 거대했던 로마보다도 더 거대하고 더 빛나는 하늘편의 외적인 기반이 될 수 있는 민주세계를 창건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는 영적 이스라엘, 즉 제2이스라엘권을 기반으로 한 기독교는 민주세계를 창건할 때까지 역사과정에 없었던, 더 많은 희생을 치르고, 보다 더 많은 제물로서의 피를 홀려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상반되는 공산세계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러냐? 복귀섭리노정을 두고 볼 때 '완성'이라는 것은 혼자 되는 법이 없습니다. 완성은 반드시 가인 아벨이 완전히 일치되는 기준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에 있어서는 개인이 그래야 되고, 가정에 있어서는 가정이 그래야 되고, 민족에 있어서는 민족, 국가에 있어서는 국가, 세계에 있어서는 세계가 그러해야 됩니다. 이것은 천리의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삼은 민주세계권 앞에 그 반대적인 공산주의권이 세계적 형태를 갖추고 나타났다고 하는 사실은, 세계를 중심삼고 외적으로 가인과 아벨의 형태로 분립되었다는 입장이 됩니다. 그런데 이 민주세계 안에서 새로이 기독교를 통합하고 새로이 기독교 이념을 세계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상의 핵심, 즉 하늘의 약속 아래 기독교를 발전시켜 나온 사상의 모체가 뭐냐? 이것이 재림사상입니다.

그 재림사상이라는 것은 이 거대한 민주세계의 개인권을, 가정권을, 종족권을, 민족권을, 세계권을 인도할 수 있는 한 분을 기다리는 사상, 즉 메시아 사상입니다. 메시아로 오시는 그 개인은 민주주의권내에 있는 전세계의 개인을 대표한 형이요, 오늘날 인간들이 민주세계의 핵심적인 중심으로 바라고 있고, 소망의 기점으로 바라고 있는 중심존재인 것입니다. 이런 분을 기다리는 사상이기 때문에 메시아 한 분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민주세계의 이념이 차원이 다른 새로운 민주세계의 기반을 통해 천국이념으로 연결될 것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념은 누구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느냐? 다시 오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오시는 그 존재는 민주세계의 개인 전체를 총합한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오시는 것이요, 민주세계권내의 가정 전체를 총합한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오시는 것이며, 민족과 국가를 총합하고 민주세계 전체를 총합한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오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를 지니고 오시지 않고는 중심적 입장에서 외적인 민주세계를 지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적인 입장에 서려면 상대적 입장 보다 내적인 면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메시아는 민주세계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 있는 내용을 지닌 분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섭리적 역사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바라는 개인, 개인으로서 세계를 대표해서 완성적 기준 위에 등장할 수 있는 한 존재가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런 자리에 선 메시아는 하나님이 바라는 창조이상이 있다면 그 이상에 일치될 수 있는 사람이요, 역사적 소망을 중심삼고 섭리노정을 이끌어 나오신 하나님의 섭리노정에 일치되는 사람이요, 또 인간들이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그 소망에 일치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일치점을 안팎으로 갖추어 가지고 와야지 그렇지 않고 하나님과 인간이 바라는 소망 이하의 가치를 가지고 오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메시아가 개인으로서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중심의 자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메시아가 개인적 승리의 터전을 닦으려면

그러면 역사과정을 놓고 볼 때에, 지금까지의 역사는 어떻게 엮어져 나왔느냐? 물론 개인을 통하여 종족을 통하여 민족을 통하여 국가를 통하여 세계를 통하여 엮어져 나왔지만, 그 역사는 메시아에게 직접적으로 필요한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메시아에게 필요한 역사가 아니라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타락권내에서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복귀해야 할 운명권내에 있는 역사라는 것은 사탄을 중심삼은 혈통적 내연의 기원을 아직 청산짓지 못한 입장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권의 역사이지 이것을 청산지은 입장에 있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권의 역사가 아닌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라 타락한 사탄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내적인 내용에 있어서나 외적인 형태에 있어서 하나님과 순리적으로 부합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리적으로 부합되기 위해서는 여기에 반드시 탕감이 제시되는 것입니다. 탕감이 제시된다는 거예요. 순리적인 입장에서 하나님과 일치되기 위한 개인적인 승리의 터전을 닦기 위해서는, 사탄의 혈통을 받은 세계를 대표한 사람이 있어 가지고 개인 개인이 순리로 통할 수 있는 길을 닦기 위해서는 탕감의 제물을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성을 드러낸 것이 뭐냐 하면 가인이 아벨을 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탕감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인이 아벨에게 맞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아벨 때문에 희생하는 가인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감법에 있어서 절대 필요한 요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의 자리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편에 가까이 서 있는 아벨을 대신하여 외적인 동물이면 동물, 물건이면 물건이 맞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잘 알아야 됩니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메시아를 만날 수 있는 세계적인 대표자, 오시는 메시아를 순순히 맞을 수 있는. 전체적인 면에서 안팎으로 갖춘 인격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메시아가 어떠한 수난길로 보내더라도, 아무리 죽을 사지사판에 보낸다 하더라도 거기에 이의를 갖지 않는 사람, 자진해서 희생당하는 자리로 나갈 수 있는 세계적인 대표자가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 대표자를 맞이해야 메시아는 비로소 메시아로서의 개인적 승리의 터전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아담 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의 기준이 벌어졌기 때문에 이 기준을 세계 무대에서 결정지어 가지고 일치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개인기준에서 승리한 것을 발전시켜서 가정기준에서 승리한 것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에 세계적, 역사적 표준형이 될 수 있는 완성 기준형은 무엇이냐? 그것은 가인이 굴복한 발판 위에서 메시아가 세계의 개인들을 대해 어떠한 무대에서든지 자유롭게 명령할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메시아가 자유롭게 명령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할 권이 민주세계권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기독교 문명권내에 있는 민주세계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민주세계가 그러한 입장에 서지 못하면 개인들도 제한된 권내에서 세계적 승리를 대표한 조건적 권에만 서는 것이지 세계를 자의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기준은 못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에, 세례 요한이 만약 예수와 일체가 되었다면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고 아벨 앞에 탕감한 가인 기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세례 요한이 개인적으로 갖추어 가지고 종족과 연결되고, 교회와 연결되고, 이스라엘 민족과 연결되어 하나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일치권이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상반된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세례 요한은 국가적 기준에서 교회적 기준으로, 교회적 기준에서 종족적 기준으로, 종족적 기준에서 가정적 기준으로, 가정적 기준에서 개인적 기준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기독교를 중심한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

역사적 완성기준을 두고 볼 때, 이 완성기준을 개인을 중심삼고 결정짓는 데 있어서나 개인이 민주세계면 민주세계를 대표하는 개인적 완성기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민주세계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가인적 입장에 선 사람이 나와서 아벨 앞에 복종하고 그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즉 세례 요한과 같은 사람이 나와 가지고 오시는 메시아 앞에 절대 복종하고 그와 일체가 되면, 민주세계권에서 개인의 승리권이 갖추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민주세계권내의 어떤 특정한 국가에 있어서 개인이 굴복할 수 있는 입장으로밖에 서지 못하면 세계적인 완성기준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는 민족을 대표한 가인적 승리의 기반을 얻어 국가적 완성기준이나 종족적 완성기준, 혹은 가정적, 개인적 완성 기준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세계적 완성기준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개인이 개인적 기준에서 국가를 대표한 승리자로서 세례 요한의 입장에 있는 사람을 굴복시키게 되면 이 둘은 하나되어 가지고 가정적 기준에서 가야 할 탕감의 노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렇게 하나된 기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개인이 국가나 종족 가정이 환영하는 터전 위에서, 즉 민족과 종족과 가정을 배경으로 한 환영의 터전 위에서 그것들을 대표하여 개인적으로 세례 요한 입장에 있는 자를 굴복시켰다면 그 사람은 국가를 대표하고, 종족을 대표하고,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 서는 것이지만 그러지 못하여 그 배후의 연결체가 국가가 되지 못하고, 종족이 되지 못하고, 가정이 되지 못한 채 개인의 입장에서 그쳤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국가내에서의 개인적 승리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개인적 승리밖에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지금까지 2천년 동안 기독교를 중심삼고 섭리하신 하나님의 수고는 무엇을 위한 것이냐? 개인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기독교를 중심삼고 수난의 길을 가게 하여 가지고 전세계 기독교인이나 기독교권 전체가 국가를 초월하여 오시는 메시아 앞에 한마음 한 뜻이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의 국가가 하나되고, 세계의 민족들이 하나되고, 세계의 종족이 모두 하나되고, 세계의 가정이 모두 하나되고, 세계의 개인이 하나된 자리에서 세계를 대표한 가인적 입장에 선 사람이 메시아 앞에 굴복하게 되면, 그 굴복은 개인적 굴복은 물론이요,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굴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지 않고 개인의 입장에서 굴복하는 데서 끝난다면, 그 굴복은 개인에 한한 굴복이요, 가정의 입장에서 굴복한다면 그것은 가정에 한한 굴복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전체 국가를 대표한 굴복조건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종족을 대표하거나, 국가를 대표하거나, 세계를 대표하는 자리에는 절대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은 세계적인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교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중심삼아 가지고 전세계가 좋다하고 동원될 수 있는 환경을 역사과정을 통해 마련하여 통합적인 한 세계 무대를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민주세계권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섭리로 본 역사적 완성기준은 어떠한 곳에서 이루어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배후, 혹은 여러분 개인 개인의 배후에는 가정이 있고 교회가 있고 나라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나라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탕감하는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다면, 다시 말해서 여러분이 나라를 대표한 가인적인 입장을 완전히 탕감하겠다고 하며 생사를 개의치 않고 생명을 바쳐서라도 자기가 대표적으로 희생할 각오를 하고 나선다면, 그리하여 여러분 개인이 나라를 대표한 가인의 입장에서, 오시는 메시아 앞에 굴복한다면 그것은 가정을 대표하고 종족 민족 국가를 대표하여 굴복했다는 터전이 갖추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배후의 환경을 갖추지 못하면 개인적인 굴복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왜 전도를 해야 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왜 기성교회를 대신하여 전도를 해야 되고 이 나라, 이 민족을 내가 연결시켜야 되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믿어 가지고는 개인적으로 축복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개인적 가정에서 끝나는 것이지 배후의 종족을 연결시킬 수 있는 가인 아벨 복귀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중심삼은 가인적인 복귀의 터전도 갖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왜 전도를 해야 하는가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과 선생님의 입장을 두고 볼 때, 여러분의 입장과 선생님의 입장은 다릅니다. 여러분은 민주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개인의 입장에 서야 되는 것이요, 가정을 대표하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이요, 종족을 대표하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이요, 교회를 대표하고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되어 있느냐? 그렇게 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민주세계권을 중심삼고 개인을 연결시키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터전 위에서 오시는 메시아 앞에 개인적으로 완전히 하나되면, 세계적인 대표자로서 가인의 입장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될 수 있지만, 그러한 터전을 갖지 못하면 자기가 서 있는 그 자리밖에 탕감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뜻을 중심삼고 축복해 가지고 종족을 이룬다고 해서 그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종족이 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아벨적인 종족만 된 것입니다. 이 아벨 종족 앞에 굴복해 가지고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가인적인 종족이 있어야 되는데, 그 종족이 없다는 것입니다. 있어요, 없어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안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가 종족 기준에서 아벨의 입장에 서게 되면, 즉 종족 기준에서 통일교회가 아벨적 종족이라면, 여러분이 아벨적 종족을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 선다면 여러분의 배후에는 민족이 달려 있어야 됩니다. 민족이 달려 있는 입장에서 종족을 대표한 사명을 하게 되면 한번으로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거기에 국가가 달려 있더라도 종족 기준에서 승리하면 국가는 딸려 들어오는 것이며 세계가 달려 있더라도 세계를 전부 다 흡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체의 종족 기준을 중심삼고 보면 민족이나 국가 그리고 세계가 연결될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안 되어 있습니다」 종족 기준에서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가인 아벨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 가정적 가인 아벨이 어디 있느냐?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이 바로 가정적 가인 아벨의 입장인 것입니다.

아벨 가정이 비로소 중심에 서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를 중심삼고 평면적인 기준에서 상대적인 권을 이루어야 합니다. 즉, 아벨권 앞에, 아벨 중심형 앞에 가인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축복가정은 가인 입장입니다. 그러니 축복가정들이 선생님 가정과 하나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 가정과 축복가정들이 하나되지 않고는 가인 아벨권 복귀가 안 되는 거예요. 아벨적 종족권이 못 나와요. 그러니 절대적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하나되어서 민족을 탕감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민족이 탕감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쳐지는 제물과 그것을 바치는 제사장이 하나가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요? 둘이 하나되어야 하는데 하나 안 되는 거와 마찬가지니 종족적 기준에서 승리한 아벨권으로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겠지요?「예」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왜 전도해야 되는가를 알아야 돼요.

그러면 앞으로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아벨 가정인 중심적 가정과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된 것이 타락이냐? 몸과 마음이 갈라진 것입니다. 그것이 개인적으로 갈라졌고, 가정적으로 갈라졌고, 종족적으로 갈라졌고, 민족적으로 갈라졌고, 국가적으로 갈라졌고, 세계적으로 갈라져 가지고 하늘과 땅이 갈라진 것이 타락입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하나되고, 가정적으로 하나되고, 종족적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는 데는 무엇을 위주로 하여 하나되어야 하느냐? 상대를 위주로 할 것이 아니라 주체를 위주로 해서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 주체의 자리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아벨의 자리입니다.

아벨이 가인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인이 책임을 못 할 때는 아벨 자신이 가인의 책임까지 해야 합니다. 가인이 그 책임을 모를 때에는 가르쳐 주어서 가인으로 하여금 그 사명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은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종족복귀의 기준을 논의하는 때에 들어왔는데, 종족복귀 완성의 기준은 아벨 가정과 축복받은 가정이 하나되는 데서부터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바라셨고 선생님이 바랐던 것이 뭐냐? 축복받은 여러분의 가정 뒤에 민족이 달려 있고, 국가가 달려 있고, 세계가 달려 있기를 바랐습니다. 민주세계 전체가 달려 있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재탕감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 재탕감역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사장은 제물을 가지고 탕감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물질을 가지고 탕감을 했고, 그 다음에는 아들딸을 가지고 탕감을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무엇을 가지고 탕감을 해야 되느냐? 아내와 남편을 중심삼고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탕감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지금은 아들딸을 중심삼고 탕감하는 시대가 아니라구요. 과거에는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한 줄로 서서 전후관계를 결정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횡적인 관계를 결정하는 때입니다. 때가 다르다는 거라구요. 왜 그래야 되느냐? 완성시대라는 것은 부모를 대표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가정이 아벨 가정이면 완전한 그 가정과 가인적인 입장에 있는 여러분 축복받은 가정이 완전히 하나되기 위해서는 부부가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축복가정이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알겠어요?「예」

제물로 바쳐지는 것은 언제나 주인과 같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제물로서 바쳐질 날을 늘 생각함과 동시에 그 마음은 자신을 제물로 바칠 주인과 같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주인을 생각하며 언제나 주인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인 앞에 상대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주인과 하나된 기준에 서야지 그렇지 않고는 제물이 못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물을 드릴 때 가장 사랑하는 물건을 드리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사랑하는 물건을 제물로 드리나요, 사랑하지 않는 물건을 제물로 드리나요? 사랑하지 않는 물건은 하나님도 받지 않으십니다. 이런 것을 잘 알아야 된다구요.

축복가정은 민족을 위해 희생의 제물이 되어야

그러면 이 시대에 있어서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하나되었다 할 수 있는 입장에 서느냐? 여러분은 지금 하나되어 있어요? 하나가 되었어요, 못 되었어요?「못 됐습니다」 지금은 재창조역사시대이니만큼 여러분이 선생님의 분신이 되고 어머니의 분신이 되어서 죽으나 사나 7년노정을 같이 나왔더라면, 축복을 받음과 동시에 여러분도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축복기준에 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담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아벨도 아담의 자손이요, 노아도 아담의 자손이요, 아브라함도 아담의 자손이요, 모세도 아담의 자손이요, 세례 요한도 아담의 자손이 되어야 합니다. 모두 아담 안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담이 완성했다 할 때 전부 다 완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되었으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되지 못하면 완성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섭리역사노정은 미래와 하나되기 위한 방법을 써 나온 것입니다. 과거를 중요시하는 것이 미래를 중요시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기독교를 통해서 '예언자를 보내겠다, 시대를 구원할 수 있는 선지자를 보내겠다, 메시아를 보내겠다'고 하는 더 큰 약속을 하심으로써 미래에 밀착시키는 일을 해 나오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나오지만 예수님이 오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재림주님, 즉 미래의 주님을 중요시해 나온 거예요. 그렇지요?「예」

그러면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되어 있느냐? 만약 7년노정에서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이 완전히 하나되어서 완성했다면 여러분은 모두 선생님 안에 있는 것이 됩니다. 역사적 섭리시대에 아담 가정이 실패한 것을 복귀하기 위해 가인과 아벨에서부터 복귀의 전통적 인연을 따라 노아와 그 이후 많은 선지자들에게까지 섭리가 아무리 연장되었더라도 그것이 전부 다 하나되어 예수에게로 연결되었다면 그것은 모두 예수 한 사람을 열매맺도록 하기 위해 지나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담의 완성이자 역사상의 조상들의 완성권이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예」

여러분은 지금 통일교회 역사를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 완성기준을 넘어가는 데에 있어서 하나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었어요, 안 되었어요?「안 됐습니다」 안 됐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 여러분이 재탕감해야 됩니다.

그러면 재탕감은 누가 치러야 되느냐? 제사장 자리에 있는 사람이 치러야 됩니다. 제물은 누가 잡느냐 하면 제사장이 잡는 거라구요. 그러면 누가 이 제사장의 사명을 할 것이냐? 제사장의 입장에서 아벨적인 사명을 하고 있는 선생님이 여러분을 고생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고생을 시키는 데는 어떻게 시키느냐? 우선 선생님과 하나되게 하면서 민족과 연결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민족을 대신해서 희생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민족을 대신해서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민족이 굴복하게 되면 그 제물을 하늘편에서도 받는 것이요, 하나님도 받는 것이요, 백성들도 전부 다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도 기뻐하는 것이요, 아버지를 잃었던 땅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제물이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물의 입장에 서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와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기뻐할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민족을 걸고 들어와서 대표적으로 탕감하기 때문에 민족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제사장과 제물과 제객(際客)들이 합해져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렇다면 제사장이 기뻐해야 되고 제객들이 기뻐해야 됩니다. 무엇 때문에? 제물 때문에 기뻐해야 됩니다.

그러한 입장의 종족적 가정형이 있지 않으면 민족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안 그래요? 둘이 하나되었다면 거기서 나오는 아들딸은 자동적으로 하나되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아들딸을 고생시키지 않으려니 그 어머니 아버지가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물의 입장에서부터 나가야 됩니다. 종족에 있어서의 제물부터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민족 앞에 남아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러므로 제일 문제되는 것이 종족적 제물과정입니다. 종족적 제물과정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게 된 동기가 벌어진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정과 축복가정이 하나되어야

그러면 오늘날 민족 복귀보다도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이 뭐냐? 아벨의 기준을 중심삼고 종족을 복귀했다는 그런 승리의 터전을 갖추어서 민족 앞에 제물을 드릴 수 있는 조건을 갖추든가, 민족 전체가 제사장을 모실 수 있는 기준에 서든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구원섭리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은 이 두 길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만일에 아벨적 종족을 중심삼고 일치가 되지 못하면 민족을 대표해서 제물을 바쳐야 됩니다. 그러나 아벨적 종족이 기독교를 굴복시켜 가지고 하나된다면 종족복귀가 되는 것이요, 민족복귀가 되는 것이요, 국가복귀가 되는 것이요. 그리고 기독교가 연결되어 있는 세계가 일시에 연결되어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국가 기준은 자동적으로 민주세계권과 만나 가지고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통일교회는 가인 기독교권, 가인 민주주의세계권으로부터 반대받다 보니 잃어버리게 된 것을 다시 역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족복귀 기준을 완결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내세워서 민족복귀의 기준을 세우는 동시에 민족을 대신하여 희생시키는 거라구요. 여기에서 민족이 여러분 앞에 순응하고 머리 숙여 하나되면 민족도 비로소 복귀의 혜택권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속죄의 혜택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해야 복귀가 되니 얼마나 힘이 드느냐 이거예요. 한꺼번에 해 버릴 것을 개인이 해야 되고, 또 가정이 해야 되고, 종족이 해야 되고, 민족이 해야 되고, 국가가 해야 되고, 세계 국가의 기준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완성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세계적으로 넘어갈 수 있는 시대권에까지 넘어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섭리로 본 역사적 완성기준이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기독교와 통일교회가 하나되었더라면, 민주세계를 대표하고 기독교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굴복하더라도 그것이 가정을 대표하고, 종족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하고, 세계를 대표한 굴복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독교를 희생시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독교를 희생시키면서 세계의 악한 무리들을 용서해 준 것입니다. 기독교를 제물이 되게 해 가지고 기독교에 순응하는 백성을 해방시켜 이루어 놓은 것이 민주세계권입니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하늘적으로 보면 지금 탕감기대는 닦아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닦아진 기반 위에 메시아를 보내 가지고 전체를 총합해서, 즉 개인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정, 종족…. 이렇게 해서 순리적으로 세계까지 한꺼번에 복귀하려 했는데 반대받음으로 말미암아 또다시 개인적으로 싸워야 하고, 가정적으로 싸워야 하고, 종족적으로 싸워야 하고, 민족적으로 싸워야하고, 국가적으로까지 필사적으로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국가만 복귀했더라면, 예를 들어 이게 어떤 자리와 같으냐 하면,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로마제국 안에 있던 이스라엘 나라가 로마로부터 분립된 자리에 서게 되는 것과 같은 입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나라가 당시에 예수를 중심삼고 로마로부터 분립되었다면 어느 나라가 주체국이 되겠느냐? 그렇게 되었더라면 이스라엘 나라가 주체국이 되는 것이지, 로마가 주체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로마가 이스라엘에 흡수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치든가 해 가지고 두 조각이 나고 그 두 조각이 또 네 조각으로 갈라지고 해서 깨져 나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우리 축복받은 가정들이 선생님의 가정 기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서 종족적 가정 기준이 결정됐다 하면, 그 다음에는 민족을 중심삼고 아벨적 자리에서 민족을 대표해서 탕감노정을 걸어서 민족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종족적 아벨 기준이 없으면 민족적 복귀노정을 갈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예」 그러면 종족적 아벨 기준은 어떻게 해야 세워지느냐?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되는 터전이 마련되지 않으면 종족적 아벨 기준이 설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을 중심삼은 가정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어 가지고 기독교 앞에 아벨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현재 여러분의 입장입니다. 알겠어요? 「예」

3년노정이 끝나면 입적(入籍)시대가 온다

교회가 진전을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은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되어 아벨권 종족 기반을 마련했느냐 못 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종족 기반이 마련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느냐가 하나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되는 데도 좋은 의미에서만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의미에서 하나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정에 대해 명령을 하여 사지로 나가게 되더라도 여러분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되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래서 1200가정을 대표로 세워 가지고 선생님 마음대로 명령하는 것입니다. 의논도 하지 않는 거예요. 의논은 무슨 의논이예요? 의논 없이 '가라! 민족의 제물이 되라' 하고 명령하는 거예요. 여기에 순순히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3년 기간입니다. 그러니 3년 동안 희생할 각오를 하고, 3년 계약을 하고 조건을 걸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서 불평 없이 3년 과정을 마치게 되면 3년 과정을 넘어선 탕감노정이 결정될 것이지만, 여기에 하나 되지 못하는 가정은 화를 당할 것입니다.

전후관계의 가인 아벨이 문제가 아니라 좌우관계, 즉 통일교회내의 가인 아벨이 문제입니다. 이 노정을 가지도 않고 넘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있을 수 있어요? 싸워야만 됩니다. 이런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된다구요.

1972년도가 지나면 입적(入籍)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지요?「예」 입적은 민족을 통솔할 수 있는 주권을 갖거나 민족이 안식할 수 있는 자리를 잡고서 비로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그래요?「그렇습니다」 호적은 종족에다 올리는 것인가요, 나라에다 올리는 것인가요?「나라에다요」 호적은 나라에 올리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됐기 때문에 입적시대가 온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러면 입적시대가 무엇이냐? 이 기간에 지금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3년노정 기간에 완전히 일치 단결해 가지고 완전한 제물로서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제물이 불평할 수 있어요? 제물은 존재의식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유관념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불평할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거기에서 제물이 되지 않겠다고 꽁무니를 뺄 수 있어요?「없습니다」

역사적 완성기준이 결정되는 자리

그러면 종족적 역사의 완성기준을 세우는 전통은 어디서부터 결정되느냐? 이걸 알아야 돼요. 역사적 완성기준은 어디에서 결정되느냐? 지금 이 자리에서, 현재의 여기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통의 기준이 되어 가지고 역사를 심판할 수 있는 공의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 나온 역사는 앞으로 남아지지 않는 거라구요. 그런 역사는 지나고 나면 생각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는 전부 다 슬픈 역사라고요. 그러면 역사에 남는 것은 무엇이냐? 가정을 중심삼은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은 것만이 역사에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타락한 역사는 개인의 역사로 출발했어요, 가정의 역사로 출발했어요? 가정에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있은 1960년도의 가정에 대한 기준에서부터 정상적인 역사적 완성기준이 시작된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물론 선생님도 가정을 갖기 위해서는 개인적 완성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여러분은 개인적 완성기준을 세웠습니까?「못 세웠습니다」 못 세웠다구요. 그러면 가정적 완성기준은 세웠나요? 그것도 못 세웠다구. 그러니 종족적 완성기준을 세울 수 있는 아무런 요건도 없는 것입니다. 가인이 무슨 복귀의 운세를 맞을 수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러니까 개인적으로도 없는 것이요, 가정적으로도 없는 것이요, 종족적으로도 없는 것이요, 민족적으로도 없는 것이요, 국가적으로도 없는 것이요, 세계적으로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가인 복귀의 기준은 누구로 말미암아? 아벨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것입니다. 복귀하려면 아벨과 하나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벨이 없으면 복귀섭리의 출발, 구원섭리의 출발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와 다시 오시는 주님과는 가인 아벨형이 되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예수와 하나된 입장에 선 기독교는 가인형이요, 재림주와 하나된 입장에 선 통일교회는 아벨형이 되는 거라구요. 여기에서 아벨을 중심삼고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구원섭리가 시작되는 것이요. 복귀의 운세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선생님이 없다면 여러분이 개인 완성기준을 세울 수 있겠어요?「없습니다」 또 가정 완성기준을 세울 수 있겠어요?「없습니다」 종족적 기준이고 뭐고 아무것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독교가 있다 하더라도 복귀 완성기준을 세울 수 있어요?「못 세웁니다」 못 세우는 거라구. 주님이 와야 되는 거예요. 아벨적인 주님이 와야만 그로 말미암아 개인적 완성기준도, 가정적 완성기준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보다 나은 사람으로 이어져 온 섭리

그러므로 절대시해야 할 존재는 누구냐면 아벨로 오시는 주님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아벨과 죽어도 하나되어야 하고 살아도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은 이 전통이 세워져 있지 않습니다. 자기 혼자서 마음대로 믿고 행해도 구원될 줄 알고 있지만 천만에요.

여러분이 하늘 앞에 당당히 서려면 아벨이 없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뒤에 있는 민주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국가와 세계 기독교를 대표할 수 있는 국가를 연결시켜서 민주세계와 국가와 종교와 민족과 종족, 그리고 가정의 기반까지를 대표할 수 있는 입장에 섰다 하더라도, 아벨이 없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가인 입장인 여러분에게 아벨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인은 있는데 아벨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도 절대적으로 아벨을 바라는 것이요, 민족도 종족도 가정도 개인도 모두 아벨을 바라는 것입니다. 세계도 아벨을 바라고 더 나아가서는 하늘도 아벨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 아벨이 누구냐 하면 메시아입니다. 세계를 대표하여 최후에 나타나는 아벨이 바로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분을 하늘땅 전부가 고대하는 것입니다.

탕감역사과정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아담보다 못한 아벨이 복귀의 사명을 할 수 있겠어요? 없지요? 또 아벨보다 노아가 못하면 아벨의 대신자로 설 수 있겠어요? 설 수 있어요, 없어요?「설 수 없습니다」 실패한 사람의 대신자를 세울 때, 그보다 못한 사람을 세우는 섭리가 있어요?「없습니다」 더 잘난 사람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벨보다 못한 노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요, 노아보다 못한 아브라함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무엇이 노아보다 낫느냐? 아브라함의 아내는 아브라함이 남매처럼 행동하자고 했을 때도‘예!’하며 따랐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마누라, 당신하고 나하고 형제처럼 행동합시다' 할 때에 그의 아내는 반대하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의 가정은 노아 가정보다 나았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가정은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노아의 아들 함은 그렇게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어머니에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제멋대로 행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하나된 어머니 사라의 품에서 자란 이삭은 목이 잘리게 되는 자리에서도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야 옳지요?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 가정은 노아 가정보다 나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과 모세는 어떠했느냐? 아브라함보다 모세가 못했느냐 아니면 나았느냐? 모세가 더 나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고향 동네를 버리고 나왔지만 모세는 애급이라는 나라를 버리고 광야로 나갔던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보다 모세가 낫다는 거예요. 더 낫지 않고는 더 큰 복귀의 사명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모세보다 나았느냐? 나았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방에서 모든 것을 버렸지만, 세례 요한은 자기 나라에서 그 모든 것을 버렸던 것입니다. 약대 털옷을 입고 다니면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지냈던 세례 요한인데, 그런 사람을 가정을 갖고 부모나 나라를 갖고 다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갖고 다닌 사람이예요, 다 버리고 다닌 사람이예요?「버리고 다닌 사람입니다」 다 버린 사람입니다. 그러니 모세보다 못합니까, 낫습니까?「낫습니다」 모세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역사 시대를 두고 볼 때에, 후대의 섭리의 대표자로 선정받은 사람은 그 전시대에 선정받은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재림주가 오시는 목적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수님보다 못한 패들입니까, 나은 패들입니까?「나은 패들입니다」 예수보다 못해 가지고 예수가 실패한 섭리의 뜻을 이룰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똑똑히 대답해 봐요. 그럴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예수보다 낫다는 전통이 세워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행동면이나 신앙면에 있어서, 혹은 목적을 정해 놓고 나가는 데 있어서 절대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렇게 시시한 기도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기도는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죽게 되었는데 교회가 무엇이고 뜻이 무엇이냐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시시한 거라구. 여러분, 그런 사람이 뜻에 합당한 사람이예요?「아닙니다」

내 자식이 죽게 되었고 내 여편네가 죽게 되었고, 내가 죽게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죽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죽게 되는데 '나는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 뜻을 아는 사람이예요. 아니면 내 자식과 아내가 죽더라도, 내가 죽어 넘어진다 하더라도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위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뜻을 아는 사람이예요? 어느 쪽이 뜻을 아는 사람이예요? 전자입니까, 후자입니까?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만약 '하나님이 약속을 했으면 뜻을 이루어 주셔야지 약속을 해 놓고 북한 땅에는 왜 가게 해, 하나님도 돌았지' 그렇게 한다면 뜻이 이루어지겠어요? 선생님은 세계적 원수 앞에 이마를 맞대고 가슴을 헤치고 '자, 죽여라'고 하면서 나왔습니다. 벌거숭이가 되어 혼자서 원수에게 대드는 거예요. 이런 선생님이 미욱한 사람이예요, 지혜로운 사람이예요? 얼마나 미욱한 사람이예요. 옥살박살이 나서 건데기도 못 건질 만큼 미욱하다구요.

종족복귀의 기틀을 마련해야 할 역사적 운명시대에 있어서 지금까지 6천년 동안은 탕감복귀역사입니다. 이것이 역사를 창출해 나왔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역사라고요. 완성시대에 있어서 실패한 역사를 남긴다면 하나님께 서러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조건이 남아 있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운명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역사의 운명을 밑에서부터 잘라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고 자랑할 수 있는 개인이 나타나 그 개인이 완성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아담보다도 낫고 예수보다도 나은,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고 이 세계 사람들이 굴복할 수 있는, 그리고 심판할 수 있는 승리적인 역사의 완성기준을 세울 수 있는 하나의 남성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남성으로 이땅 위에 오시는 분이 재림주입니다.

그러면 재림주가 오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완성적 기준이 되기 위해서는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사탄에게 참소받아 가지고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재림주는 그런 신념을 가지고 땅에 와서 마음대로 신부를 고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반대해 보라는 거예요. 주님이 이 땅에 와서 해야 될 일이 역사적인 재탕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담 가정을 반대하던 사탄의 세력과 부딪쳐야 하고,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민족을 대해 승리의 조건을 세우기 위해 가인권을 거쳐가야 합니다. 또한 노아 가정 시대에 거쳐가고 아브라함 가정 시대에 거쳐가고 모세 가정 시대에 거쳐가고 사가랴 가정 시대에 거쳐가고 예수 가정 시대에 거쳐가고 기독교 사도들이 거쳐간 과정까지 전부 거쳐가야 합니다. 그래야 탕감이 되는 것입니다.

종적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는 것입니다. 일대를 중심삼고 횡적으로 탕감함으로써 6천년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나간 탕감의 역사 내용을 기록해 놓은 것이 복귀원리입니다.

복귀하는 데 있어서, 아담 가정이면 아담 가정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타락한 아담보다도 더 슬픈 골짜기를 지나가야 합니다. 그 슬픈 골짜기의 끝을 돌아오지 않고는 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벨이 겪은 슬픔에 뒤미치는 슬픔을 겪어 가지고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돌아오지 못한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노아의 슬픔보다 진하지 않은 슬픔을 거치면 돌아올 수 있겠어요? 그렇게 되면 사탄권내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탄에게 잡아 먹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고통 기준, 그 끝 이상을 가지 않으면 돌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모세 이상의 결의와 각오를 하고 고생길을 달갑게 가지 않고는 못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가졌던 이상의 각오와 신념을 갖지 않고는 돌아올 수 없습니다. 예수가 싸울 때 가졌던 지혜와 신념 이상의 지혜와 신념을 갖지 않고는 못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이것이 복귀의 원칙입니다. 똑똑히 알아야 되는 거라구요.

지나간 시대를 탕감하려면

선생님이 마음 세계의 믿음을 중심삼고 혈투전을 해 나온 산 기록이 복귀원리입니다. 이렇게 선생님은 여러분의 배후에서 복귀의 과정을 거쳐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을 아담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오시는 주님을 아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시는 주님을 아벨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요, 노아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요, 아브라함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요, 이삭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요, 야곱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요. 모세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요, 세례 요한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요, 예수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까지 거쳐 나왔기 때문에 비로소 역사를 탕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서 아담 가정의 과정을 돌아 나와야 아벨의 자리로 갈 수 있는 것이요, 아벨의 자리에서도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서 그 과정을 돌아나와야 노아의 자리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노아의 자리에서도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서 그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노아의 밑은 딱 잘라 버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그렇게는 안 됩니다. 노아를 중심삼고 보면 이 자리에서 떨어져 버렸기 때문에 다시 올라가서 탕감을 짓고서 내려와야 됩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 그러면 이것이 없어지고 이것도 없어지고 이것만 남는 거라구요. 이게 새역사라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아브라함 시대에 있어서도 다시 아담 가정까지 올라갔다 내려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이 탕감역사에서 또 실패를 하게 되면 가중된 탕감조건이 남아집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맞습니다」

그러면 모세 시대를 탕감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모세 시대에까지 내려가 가지고는 다시 아담 가정에까지 올라갔다가 새로이 출발을 해야 모세 시대의 새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모세 이후의 역사가 비로소 하나님 섭리사에 플러스될 수 있는 새로운 역사로 기록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아도 2천년 예수님 시대에까지 탕감해 내려갔다가 아담 가정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이걸 잘라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 완성기준은 메시아로부터 세워진다

그러면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에 남을 역사는 어떤 역사냐? 아담 역사니, 가인 역사니, 아벨 역사니, 노아 역사니, 아브라함 역사니, 모세 역사니, 예수 역사니 하는 역사는 모두 실패한 역사라구요. 그렇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디서부터 출발되는 것이냐? 선생님을 중심삼고 승리한 개인적 완성기준에서부터입니다. 거기에서부터 가정적 개인 완성이 결정됨으로 말미암아 지상에서 신부를 맞을 수 있는 기준에 서는 것이지만 선생님의 개인 역사를 논의할 때, '이래 이래서 완성했다'고 간단하게 얘기할 수는 없는 거라구요.

선생님의 역사 가운데 물론 탄식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탄식의 역사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고 기쁨의 역사로 남아지는 거라구요. 그 다음에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의 가정은 다 찾아진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이렇게 볼 때 섭리로 본 역사적 완성기준은 어디서부터 세워지는 것인가? 어디에서부터 세워져요?「메시아에서부터요」 메시아 이전에는 세워질 수 있습니까?「없습니다」 절대로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없다는 거라구요. 이제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알았다구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죽든 살든 선생님을 따라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세계를 대표한 남자로서 철형(鐵型)과 같습니다. 공장에서 딸각딸각하면서 같은 물건을 찍어 내는 철형을 알지요? 그 철형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 틀에 넣고 찍어내면 같은 것이 계속 나오지요? 나와요, 안 나와요?「나옵니다」 재료는 달라도 같은 모양의 물건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플라스틱이라든가 쇠라든가 납이라든가 구리라든가 스텐레스 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모양은 다 같은 것이 나옵니다.

여러분도 '뜻 때문에 죽는다, 죽든지 살든지 뜻대로 한다' 모두 그러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모양이 같아요, 안 같아요? 같아요?「예」 질(質)은 달라도 모양은 틀림없이 같지요? 전부 다 한가지로 찍어내는 거예요. 그러니 사람들이‘통일교인들은 어쩌면 문선생을 닮았어? ’합니다. 그러나 다 나를 닮는다 해도 질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되는 거라구.

뜻 앞에 나오면 기분 나빠도 죽어 살아야 합니다. 뜻 때문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야 돼요. 그것은 가인을 위한 제물이 되기 위한 거라구요. 여러분, 뜻 때문에 미쳤어요?「예」 개인적 가인은 물론 가정적 가인이 되고, 종족적 가인이 되고, 민족적 가인이 되고, 국가적 가인이 되고, 세계적 가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선생님을 닳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닮았어요, 안 닳았어요?「닳았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개인적인 가인의 입장에서 탕감복귀의 책임을 지는 제물이 될래요, 세계적 가인의 입장에서 탕감복귀의 책임을 지는 제물이 될래요?「세계적인…」 그러니까 더 큰 고생을 해서, 죽을 고생을 해서 빨리 세계적인 자리로 나가야 됩니다. 세계적으로 죽을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갈 길은 아담 국가를 완성하는 것

여러분,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이 있지요? 여기에 부가되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세계를 위해서 죽고자 하는 자는 세계를 위해 사는 것이요, 나라를 위해서 죽고자 하는 자는 나라를 위해 사는 것이요, 종족을 위해 죽고자 하는 자는 종족을 위해 사는 것이요, 가정을 위해 죽고자 하는 자는 가정을 위해 사는 것이요, 개인을 위해 죽고자 하는 사람은 개인을 위해 산다고 하는 말입니다.

종족을 위해서 이루어진 천국에는 가정을 위하고 개인을 위해 죽고자 하는 사람은 참석 못 하는 법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러니 이왕지사 죽을 바에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되겠습니까? 이왕지사 매를 맞을 바에는 나랏님한테 맞아야지 하졸(下卒)에게 맞아서야 되겠습니까? 한 대를 더 맞더라도 말예요. 그렇잖아요? 여러분, 맞고 싶어요? 맞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기왕 죽을 바엔 잘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잘 죽는 사람이 영웅이 되고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충신이 될 수 있는 자리에는 간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영웅이 될 수 있는 자리에는 말할 수 없는…. 영웅의 반대말이 뭡니까?「소인요, 졸장부요」 영웅에 반대되는 말은 없다고요, 없어. (웃음)

여러분이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을 지극히 사랑하시옵소서, 우리는 6천년의 열매로 아나이다'라고 하지요? 그런 기도를 해요, 안 해요? 그 어떤 자리에서 하는 것입니까? 세계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하는 거예요?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개인의 입장에서 하는 거예요? 어떤 거예요? 문제는 그거예요.

예수님이 무엇을 위해 죽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었지요? '하나님의 뜻' 하면 무엇입니까? 세계입니다. '뜻' 하면 세계와 후손들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는 것은 세계와 후손을 위해서 죽는 것입니다. 뜻은 세계와 후손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복귀하는 데는 그냥 당장에 돼요? 후손과 다리 놓아야 하지요? 자기 아들딸이 모여 씨족이 되고, 그 씨족이 국민이 되면 국민이 모두 자기 후손이지요? 또 그 국민이 세계의 백성이 되면 세계 백성이 모두 자기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후손에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는 어디에 와 있느냐? 원리적으로 볼 때 우리는 종족적으로 가인 아벨 가정을 완전히 하나 만듦과 동시에 민족적 제물을 희생시켜 민족적인 탕감을 하는 시대권내에 있습니다. 이 단계를 넘어가는 날에는 민족적 해방운동이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렇게 되면 비로소 우리 앞에 최고의 희망의 세계가 동터오게 될 것입니다.

역사의 소원이 어디에 있느냐? 가정을 찾는 것만이 아니요, 종족을 찾는 것만이 아닙니다. 민족을 규합하여 하나의 주권을 세우는 것이 뜻의 목적이 아니냐? 완성 주권이란 가인적인 주권과 아벨적인 주권, 즉 남과 북이 통일되어야 세워지는 것입니다. 남과 북이 만나서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남조와 북조로 갈라진 것과 같은 입장에서, 남북이 가인 아벨의 형태를 거쳐서 규합되어야 합니다. 국가적 기준에서 아벨을 중심삼고, 가인을 하나로 규합해야 비로소 아벨적 아담 국가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갈 길이라구요. 알겠어요? 그러니 이북과 싸워서 이겨야 되겠어요, 져야 되겠어요?「이겨야 됩니다」 절대적으로 이겨야 됩니다. 또 기성교회와 싸워서 이겨야 되겠어요, 져야 되겠어요?「이겨야 됩니다」 절대적으로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가 바라던 민족적 소생입니다. 그것이 소생이 되고 나아가 장성이 되고 다음에 통일이 완성되는 거라구요. 국가복귀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나라가 갖추어져서 아담 국가가 되기 때문에 완성한 주체가 종횡으로, 사방으로 거동할 수 있는 하나의 완성된 주권국가가 형성된다는 거예요.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라 하나님만이 옹호하는 국가, 비로소 하나님이 맞아 주실 수 있는 국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담적 국가의 입장에 서게 되면 해와적 국가는 자동적으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왜? 해와는 아담을 통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러므로 아담 국가가 생겨나면 해와 국가는 그 터 위에서 원칙만 따라가면 자연적으로 복귀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담을 다 지어 놓고 해와를 지었겠습니까? 아니면 아담을 지으면서 해와를 지었겠어요? 아담을 지을 때에 이미 하나님의 마음에 해와를 짓겠다는 생각이 있었겠습니까, 없었겠습니까?「있었을 것입니다」 아담을 지음과 동시에 마음으로 해와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해와를 짓기 위해 준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아담 복귀역사와 더불어 해와 복귀역사를 준비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 일본을 비롯한 천사장 국가들을 준비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시대가 되려면 앞으로 몇 고개가 남았나요? 세 고개가 남아 있지요? 그러므로 1200가정이 총동원 되어 선생님 가정과 하나되어 가지고 치고 들어가야 합니다. 역사적 한을 풀어야 되겠다고, 하나님의 한을 풀어야 되겠다고, 우리 형님 누나의 한을 풀어야 되겠다고 칼을 빼 들고 나섰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내디뎠다가 가만 보고 '그럴 필요 없어' 하고 물러설 거예요? 그렇게 하겠어요?「아닙니다」

그렇게 사탄세계를 찌르겠다고 나섰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한다고 시들해져 버려서야 되겠어요? 처음에 뿌리치고 나섰으면 해결지어야 될 게 아니예요?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어떤 목적을 세우면 욕을 먹으면서라도 그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는 복수할 줄을 모르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날을 맞이할 때까지는 반대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내 갈 길이 더 바쁘기에 그냥 가는 것입니다. 내 준비하기에도 바쁘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이러고 나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하늘나라 아들딸의 갈 길

이 민족이 세계로 연결될 수 있고 세계 기독교가 안팎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이 나라와 연결될 수 있는 대표적인 국가가 되면 이 국가의 기준은 세계적인 기준이 되는 것이요, 민족적 기준이자 세계적 기준이 되는 것이요, 가정적 기준이자 세계적 기준이 되는 것이요, 개인적 기준이자 세계적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에서 가인의 입장에서 메시아 앞에 한 개인이 굴복하고, 가정이 굴복하고, 종족이 굴복하게 되면 종족은 복귀되는 것입니다.

가인적 가정이 복귀되면 예수의 가정은 자동적으로 나오는 거예요, 안 나오는 거예요?「나옵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된다면 예수가 신랑이 되어 가지고 뭘 하고 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이것만 해 놓으면 되는 거라구요. 종족권이 벌어지면 얼마든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원수 품에 있는 사람들, 기독교고 무엇이고 이런 것을 모르는 이 원수 같은 녀석들을 가르쳐 주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지금까지 기독교가 당한 희생의 대가를 타고 넘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뒤넘이쳐 가지고 세상에 없는 하늘의 운세를 여기에서부터 출발시킨 것입니다. 그러한 그 뜻을 대하는 주체 앞에 상대적으로 끌려가 심정에 불을 붙여 가지고 가정에서 반대하든 말든, 칼침을 맞고 채이고 찢기고 밟히고, 눈물 콧물 흘리면서 병신 짜박지 신세가 되어 가지고도 '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나온 것입니다. 웃음으로써 소망의 마음을 가지고 가야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도 그랬습니까? 여러분은 욕을 먹어도 철 모르고 먹었지요? 철 모를 때 욕을 먹은 것은 먹으나마나입니다. (웃음) 철 들었을 때 욕을 먹으면 뼈에 사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철없을 때에는 억울했던 일도 다 잊어버리지요? 그렇지요?「예」 여러분에게 뼈에 사무친 원한이 없습니까?「없습니다」 그러니 철이 없었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원한에 사무쳐 있습니다. 마음속에 묻혀 있는 그 한들을 어느 한때 해방시키기 위하여,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내 성격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참는 거예요. 한번 행동을 잘못했다가는 천지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이 성격을 누르고 참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할 수 있는 자리에 서더라도 못 하는 것이 있으므로 못 할 가능성이 있는 자리에는 함부로 서지 않아야겠다 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있으면서도 없는 듯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입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눈이 있어도 죽은 눈처럼, 귀가 있어도 죽은 사람의 귀처럼 다 죽이고 사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사는 것입니다. 산 목숨을 갖고도 죽은 목숨처럼 생각하고 죽음길을 자진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그래요?

이 밥을 먹는다고 해서 편한 것이 아니요, 좋은 자리에 눕는다고 해서 편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나라를 빼앗기고 자기 이웃을 희생시키는 주권자의 입장에서 그 밥이 맛있고 그 자리가 편해요? 그것은 자신의 주권을 노린, 더 유린하기 위한 제물적 주권입니다. 그것을 자신에게 제물로 부여해준 것은 그 일족과 국가를 치고 나가게 하기 위한 사탄의 간접적인 작전인 것을 알게 될 때에 분개심을 갖고 침을 뱉고 가야 할 것이 하늘나라 아들딸이 갈 길입니다. 알겠어요? 「예」

현재의 중요성

여러분의 배후에는 민족이 달려 있어요, 안 달려 있어요?「달려 있습니다」 탕감복귀한 기준에 민족이 달려 있어요, 안 달려 있어요?「안 달려 있습니다」 안 되어 있지요? 탕감시켜서 복귀해야 할 기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을 위해서 피땀을 흘려야 됩니다. 민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우리 책임자들, 교회장들 그래, 안 그래?「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냐? 군(郡)의 제사장이라구요. 선생님 대신 가 가지고 복수탕감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선생님 대신자로서 제물을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야 된다구요. 그러니 자기 자식들보다 가인을 더 사랑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게 해야 된다고요. 알겠어요?「예」 선생님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이북에 갔었습니다. 그때 정말 그러고 싶은 생각이 있었겠어요? 그리고 지금껏 혼자 싸워 나왔습니다. 그 터 위에서 제사장의 사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찬스가 여러분의 전후에 걸려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성경에 '끝날에는 젖 먹이는 여인에게 화가 있다'고 했지요?「예」 화가 있다는 말은 그것을 이기면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또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고 했지요? 통일교회는 지금 이러한 때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여러분의 원수예요, 아니예요?「원수입니다」'집 나간 것만도 이가 갈리는데 저희들 멋대로 시집 장가가서 어미 애비가 이 모양인데도 어린 자식들을 떡 갖다 맡겨?' 그럴 거예요. 그런 자식들의 심정을 내가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버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용서받을 길은 그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구. 여기서 심판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심판받을 것이요, 이런 자는 남아질 것이다' 하는 선악을 구분하고 분별하는 역사가 통일사와 더불어 새로운 천국의 역사로 남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무서워요, 안 무서워요? 「무섭습니다」 무서운 거라구요. 역사는 그냥 흘러가지 않습니다.

이 3차의 7년노정에, 즉 21년 기간에 세계를 죽이느냐 살리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중에서도 2차 7년노정의 4년째 되는 올해가 제일 중요한 시기입니다. 7년기간을 딱 꺾어 놓으면…. 고비의 한 중앙인 꼭대기를 결정할 수 있는 해가 1971년도라구요. 알겠어요?「예」 그러니까 여기에서 최후 판결이 나는 것입니다. 이 8월을 중심삼고 대한민국 환경이 무너지는 것 같기도 하고,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넘어지는것 같기도 하고, 넘어오는 것 같기도 하고, 넘어가는 것 같기도 하지요?

줄기에 요동이 치면 요동이 칠수록 뿌리가 깊고 든든한 놈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흔들거리던 것은 다 뽑히는 거예요. 작은 바람에도 뿌리째 흔들흔들하는 것들은 다 뽑히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그런 역사가 벌어지는 거예요. 여러분들, 머리가 흔들흔들해요?「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예요. 여러분은 민족을 위해 일선에 서서 천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하늘땅의 운명을 감당해야 할 제사장으로서의 책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이때는 한번밖에 없는 때입니다. 영영 다시없는 역사적인 시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기원이 되고 새 나라 창건의 전통적 사상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거룩한 시대임을 여러분이 알아서 심판을 물리치고 눈물을 흘리며 나감으로써 하나님을 감동시켜 눈물을 흘리게 한다면, 하나님도 참을 수 없어서 '야, 너희들이 고생하는구나. 어서 너희들이 원하는 그 나라를 세워야겠다'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런 자극적인 충격을 줄 수 있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만세에 축복을 받을 것이요, 청사에 길이 남을 것이요, 사탄세계를 제거하는 데 있어서 영원을 걸어 놓은 승리의 방패요, 등대의 사명을 할 수 있는 가정으로 등장할 것입니다. 잘나고 못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선생님에게 비운이 왜 생겨났느냐? 이 민족이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민족의 역사를 굽이쳐, 수난과 역경을 개척하여 80년 역사의 기독교 문화를 흡수시켜 가지고 이 나라의 해방과 더불어 안팎으로 하늘의 뜻을 이 민족에 연결시켜 나왔습니다. 그런 하늘의 축복의 터전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자리를 잡아 가지고 삶의 방석을 튼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 고비, 두 고비, 세 고비를 넘어 국가적 기준을 틀고 앉아야 할 것인데도 그것이 전부 다 틀어진 것입니다. 풀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한번 풀어진 것은 다시 감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를 하다가 실패를 하면 그 사람을 중심삼고 다시 하는 것 봤어요? 나 혼자, 지금 그 놀음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내 앞에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린 수난길이 남아졌다는 것은 여러분이 뼈살을 갈아서 제물이 되어도 갚을 수 없는 원한과 분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역사와 민족을 대표해서 통탄해야 할 그런 한의 심정을 갖지 않으면 통일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통일교인은 어떠해야 되는가

선생님의 꽃다운 30대 청춘시대는 어디로 갔는가. 선생님이 그 청춘시대에 세계를 무대로 힘차게 달릴 수 있었다면, 이 민족은 어떻게 되었을 것이며, 아시아는 어떻게 되었겠는가. 또한 세계는 어떻게 되었겠는가. 이 세계에 공산권이 아직까지 남아 있겠는가. 이 한민족이 잘못하여 한때, 한날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손해가 벌어졌고 배 이상의 희생의 대가를 치르는 것을 살아 있는 눈으로 바라보게 될 때, 탕감복귀는 엄연한 진리, 타락세계에 있어서 용서할 수 없는 진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걸 똑똑히 알아야 되겠다는 거라구요.

만일 여러분의 일대에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선생님은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망하지 않는다구요. 제1진이 망하게 될 것을 대비해서 제2진을 준비하고 있는 거라구요.

민족을 걸어 놓고, 종족을 걸어 놓고, 가정을 걸어 놓고 탕감해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과 베드로와 야고보 가정들이 예수편이 되지 못했던 것을 예수가 밟고 넘어가 가지고 거느릴 수 있게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래야 비로소 민족이 우리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민족의 주권이 하늘편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성교회와 하나되는 날에는 종교계를 자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는 거라구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죽겠다면서, '뭐 내 배가 고픈데 누나 시집가는 것이 무슨 상관이야, 나 밥 먹는 게 더 좋지, 형님 장가가면 뭘 해?' 하는 철부지들이 많습니다. 초교파운동을 하는 데에 돈이 어느만큼 들어가느니 목사 공청회 하는 데에 얼마를 쓰느니 하면서‘밥을 먹고 배가 불러야 일을 하지 배가 고픈데 어떻게 일을 해?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저 로마에 가 보라구요. 거기에는 카타롬이라고 하는, 기독교인들이 400년 동안 토굴에서 살았던 도시가 남아 있습니다. 거기에는 무덤으로 사용한 선반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흙을 파고 묻을래야 묻을 수 없었으므로 선반을 짜서 그 위에 시체를 놓고 썩는 냄새를 막기 위해 흙을 덮었다는 거예요. 그것이 썩어서 흐르는 물을 밟으면서, 시체가 뼈다귀만 남을 때까지 그런 곳에서 생활하면서 싸워 나온 기독교의 비참한 역사를 생각해 보라구요.

선생님은 뼈가 가루로 되어 있는 그것을 보고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애혼이여, 당신이 죽을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죽었는가. 당신 개인의 구원을 위해 죽었다면 당신은 영계에서도 슬플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오신 예수의 슬픔을 풀어 드리고 새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하늘의 기수가 되지 못한 채 죽는다는 한을 품고 죽었다면, 천상세계에 가서 내가 부활을 시켜 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독교의 순교자들 가운데에는 자기 하나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 죽은 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시시한 겁니다. 시시하다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나 하나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 여기에 들어왔습니까?「아닙니다」 자기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들어왔다면 시시한 것입니다. 껄렁껄렁하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차라리 죽어 버리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가정 하나 구원얻기 위해서 통일교회에 들어왔어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민족 앞에 필요한 아벨 종족권을 이룰 수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역사시대에 희생되었던 기독교인 가운데 산 무리가 이 땅 위에 있었더라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런 비참한 길을 걷지 않았을 텐데….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만나 뜻이 이루어진다고 기분 좋아하거나 마음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입니다. 기독교인들과 여러분을 비교할 때 여러분이 그들보다 휠씬 나아야 선생님의 마음에 사무쳐 있는 슬픔을 해소시킬 수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너무도 철부지의 모습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새벽기도를 하고 정성을 들이는 것은 못 찾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니 똑똑히 정신차려야 된다구요.

민족복귀와 국가복귀를 해야 할 우리

자, 그러면 여러분들, 선생님 가정과 하나되고 싶어요?「예」 죽든 살든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 안 되면 큰일납니다. 여러분 가정이 어디에 가서 발을 붙일 것인가 생각해 보세요. 지옥에 발을 붙이겠어요, 천상세계에 발을 붙이겠어요? 지옥에 가게 되면 사탄들이 여러분을 보고 '이놈의 자식아, 나는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해서 여기에 왔지만 너는 완성기 완성기준에 부모의 심정을 유린하고 타락했으니 너는 나보다 더한 사탄이다' 라고 할 것입니다. 사탄이 여러분을 보고 사탄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디 가서 발을 딛겠어요? 어디에 여러분이 발을 딛고 살 곳이 있을 것 같아요? 있을 것 같으면 선생님이 벌써 이 일을 집어치웠다구요. 천상세계에도 갈 수 없고 지옥에도 갈 수 없으니 어디 가서 발을 붙이냐는 것입니다. 발 붙일 곳이 있겠어요, 없겠어요?「없습니다」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얼굴 좀 보게. 있어요? 선생님이 그런 것을 똑똑히 알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가야 되고, 살더라도 가야 되고, 바람이 불어도 가야 되고, 벼락을 맞아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뜻 앞에 있어서는 차라리 빨리 죽는 것이 행복할 것입니다. 뜻을 품고 뜻을 위해 성의를 다하여 일하다가 죽는 그 순간에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고는, '나는 내가 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일을 다 못 했다'는 한을 품게 되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그렇지만 죽는 마당에 '저는 이 이상 더는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당신도 아시지 않습니까' 할 수 있으면 개인적인 입장에서 홀로 살다 죽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자리에 갈 수 있고, 세계를 치리할 수 있는 자리에 당당히 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나깨나 민족복귀와 국가복귀의 운명을 해결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숨겨진 진리를 발굴하고 탕감 역사의 한의 노정을 가려 왔지만, 그 최후의 승리의 기준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민족을 해방시키고 국가를 해방시킬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하면 통일 사상은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의 한을 지상에서 풀지 못하기 때문에 제1이스라엘의 한도 풀지 못하는 것이요, 제2이스라엘의 한도 풀지 못하게 되어 제3이스라엘의 완성권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소생기 완성을 못 했는데 장성기 완성이 있을 수 있으며, 장성기 완성을 못 했는데 완성기 완성이 있을 수 있어요? 그렇지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제1이스라엘 왕권의 기준과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 영내의 왕권 기준을 통합시켜서 승리의 기준을 세우고 직접적으로는 영계를 다스리고, 간접적으로는 이스라엘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승리의 기백을 가지고, 제사장의 대신자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만민을 굴복시켜 경배식을 하는 잔칫날을 맞이하지 않으면 통일사상으로 국가를 맞이할 길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도 이제는 '아하, 그렇게 되는 거구만' 하고 대개 짐작할 것입니다. 알고 보니 선생님이 불쌍한 사람이지요? 나라를 가질 수 있는 자리에서 나라를 잃어버린 서러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약속으로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세계를 잃어버린 서러움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수많은 주권자들로부터 영광을 찬양받는 자리에 설 수 있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저주와 원망 속에 피와 눈물을 흘리며 비참한 길을, 그것도 서서 걷는 것이 아니라 밀리고 밟히면서 네발걸음질을 하면서 기어가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나와야 했던 것이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역사인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런 비운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여러분, 소위 교회장이라는 자들이 그런 태도 가지고 되겠는가? 민족은 어디 가고 국가의 주권은 어디 갔는가? 지금 누가 책임질 것인가? 대한민국 이 나라를 누가 책임질 수 있느냐? 이 나라에 하나님이 믿고 안식할 수 있는 소망적인 천국의 터전이 남아진다고 생각하면 이럴 수 없다구요. 그러니 잘났건 못났건 우리의 눈물과 피와 땀을 짜내 진하게 해서 폭주를 만들어 그들에게 마시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한을 풀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그 일을 가당한 일로 생각하고 자진해서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나라 이 민족의 해방을 맞을 수 없는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여러분은 직시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최후의 결판을 내리는 순간에, 승패를 결정하는 그 순간에 대비하여 온갖 시련과 온갖 훈련을 거치고, 어떠한 경쟁도 마다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떠한 시련이라도 참고 나아가야 천국에 들어간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지요?「예」 남편과 아내가 완전히 하나되지 않으면 복귀한 사위기대 완성의 터전을 마련할 수 없지요?「예」 그래서 7년노정 기간에는 선생님과 어머니가 어떻게 하나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될래야 하나 될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같이 가는 것이 아니라 부딪치면서 가는 길이었어요. 여자는 여자 세계, 남자는 남자 세계의 복잡한 모든 굴을 거쳐 다시 만나 가지고, 갈 곳이 없어 눈물을 흘리면서 손을 잡고 가는 그 길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 길을 거쳐가지 않고는 완성했다는 자리에 갈 수 없는 것이요, 하나님의 날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은 남자로서 한탄을 하되, 세계 남자들의 슬픔을 한탄하는 대표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여자를 생각하면 이가 뿌득뿌득 갈리고, 여자를 보면 몇번이고 칼침을 놓고도 남을 것 같은 분한 마음이 생기고 원통한 마음이 생기는 자리까지 간 것입니다. 자기 일신을 위해, 자기 일신의 영복(榮福) 을 위해 간 것이 아닙니다. 천리의 불쌍한 사람들의 영복이 이 칼 끝에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를 악물고 칼 끝을 자기 가슴에 갖다 대고 찌르면서 스스로 자극을 주는 행동을 하면서라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 복귀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날을 맞은 배후의 역사에 있는, 부모의 날을 맞은 배후의 역사에 있는, 자녀의 날을 맞은 배후의 역사에 있는, 만물의 날을 맞은 배후의 역사에 있는 선생님이 겪은 슬픔을 모를 것입니다. 어떠한 혈투전을 벌여 그날이 지상에 나타나게 됐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것은 어머니도 모릅니다.

이런 비운의 역사과정에서 시련을 당하고 핍박을 받는다고 해서 시련과 핍박과 더불어 흘러가고 사라져 버리는 사람이 될 것이냐?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짓궂은 폭풍우가 몰아친다 해도 아침 햇빛처럼 희색이 만면해 가지고 승리의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새로운 웃음을 웃으며 새아침을 맞을 수 있는 한날이 있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그런 약속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참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날을 맞지 못하고는 죽을 수도 없는 거라구요.

절뚝발이가 되고 한 눈이 먼 병신이 되더라도 남은 한쪽 눈으로 태양을 보기 위해 얼굴을 들어 태양빛을 받으며, 눈물과 더불어 과거의 모든 슬픔은 흘려 버리고 잊어버리고, 오늘의 나는 자랑스런 승리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고 만민이 축복해 줄 수 있는 입장에까지 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갈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늘 깨어 있으라

여러분은 종족적으로 일체가 되는 기준을 완결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서 이 3년노정에 아내와 하나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끌어다가 아내와 하나되라는 거예요. 어떤 녀석은 아내한테 편지를 해가지고 너는 나와 결혼했으니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하면서 언제 어디로 나오지 않으면 이혼이라고 하기도 했다는 겁니다. 그런 녀석들은 종족을 복귀하려면 3대가 걸릴 것입니다. 편지질 똑똑히 해야 돼요. 자기 자식의 등골을 타다가 부인을 죽게 만들 수 있고, 부인의 등골을 빼서 자식을 죽게 만들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처신을 잘해야 돼요. 여기에도 그런 녀석들이 있어요?

자식을 놓고 아브라함이 되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자식의 배에 칼을 대고라도 가야 되겠다는 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며 '복귀의 길이 이렇게 서러운 것이더냐?'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어찌하여 그런 자리에서 명령하시지 않으면 안 되는 비참한 주인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원망과 저주를 퍼붓고도 싶었지만 그런 길을 가지 않고는 사랑하는 아들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원망이 변하여 하나님을 위해 죽겠다고 다시 맹세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약속과 새로운 출발의 동기가 그런 자리에서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섭리의 뜻을 가려 나오는 이 스승이 오늘날까지 남아질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어떤 때는 어떤 간부의 발을 내 손으로 찢어 가지고 새나 돼지 굽듯이 바짝바짝 구워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참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한 입장에 처한 하나님이 참고 나오는 그 전통을 이어받아야 되겠기 때문에 참아야 되는 것입니다. 보고도 못 본 체하고 듣고도 못 들은 체하며 분해도 안 분한 체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스쳐간 그 아픔은 하나님과 더불어 느낀 아픔이기 때문에 빼어 갈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때가 무서운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을 좋다고만 생각하지 말아요. 정의와 공의의 법도를 중심삼은 원리 원칙에 있어서는 무자비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종족복귀의 노정을 더듬어 가는 데 있어서, 민족복귀를 위해 나가는 기수의 행렬에서 낙오자가 될 것이냐? 혹은 도피자가 될 것이냐? 도피하게 되면 즉각 처분되는 거라구요. 그러니 자기의 흔적을 남겨야 할 여러분은 낙오하는 아내가 있으면 남편이 아내의 목을 잘라야 합니다. 알겠어요? 또 남편이 그러거든 아내가 남편의 목을 잘라야 합니다. 그렇게라도 하고 가지 않으면 남편도 아내도 살 수 없습니다. 둘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각한 길이 오늘 현재 우리가 처한 길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다 이겁니다. 알겠지요?「예」

'섭리로 본 역사적 완성기준'이 완성기준이 결정됨과 동시에 불완성 기준을 심판할 수 있는 결정권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두 세계로 갈라지는 거라구요. 갈라지는 데는 어디서부터 갈라지느냐? 통일교회 선생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서부터 두 패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참과 거짓으로 말이예요. 거짓은 참 앞에 나가야 거짓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참과 먼 자리에 있을 때는 거짓이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참된 것도 진짜 참 앞에 가까이 가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렇듯 참과 거짓이 교차되는 역사적인 순간이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여러분의 이마로 스쳐가고, 가슴 사이로 스쳐가고, 손 사이로 스쳐가고, 발가락 사이로 스쳐가고, 눈 사이로 스쳐가고, 코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느껴 봤어요? 느껴 봤느냐는 말예요. 여러분이 까딱하는 사이에 스쳐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가 막힌 놀음이 여러분에게서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가 생각해 보라구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숨을 쉬더라도 뜻을 품고 쉬어야 되고, 길을 갈 때도 뜻을 품고 가야 되고, 잠을 잘 때도 '아버지, 저를 용서하시옵소서. 이 시대에 있어 저는 언제 거쳐갈는지 모를 그 순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깨닫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하면서 자야 합니다. 그 교차점에서 잘만 교차되어 나가면 공을 안 들이고도 죽을 자리를 천국으로 교차되는 교차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오른편 강도가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그랬습니다」 잘 붙들었지요? 그 사람이 교법사나 알았을까요?

역사가 우리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해야

이런 것을 알고 여러분은 선생님을 생각해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의 가정보다 선생님의 가정을 더 생각하면 종족적으로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은 민족을 위해 제물을 바쳐야 됩니다. 자식을 희생시키고 아내를 희생시켜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하나님이 그런 자리에서 나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식을 희생시키고 해와를 희생시킨 것 아닙니까? 그것은 복귀 역사를 이끌어오시는 하나님에게는 지극히 비참한 입장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해와는 하나님의 아내격입니다. 해와의 아들딸이 하나님의 아들딸이예요. 그렇지요? 「예」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민족을 위해서 그런 제물을 바칠 각오를 하고 수난의 길을 달려가야 합니다.

내가 이번에 교회를 짓는 데 조금씩 협조해 주었는데, 그것은 여러분이 전부 다 가정을 제물로 드렸다는 입장에 섰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제물로 드려 가지고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종족적 표준을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여러분의 집이 아니고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 교회들은 앞으로 기성교회와 통하는 기점이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이번에 내가 지방교회에 얼마씩 도와준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도와줍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언제나 도와줄 줄 알고 있습니다. 이놈의 자식들.

여러분은 민족을 붙들고 민족이 머리 숙일 수 있도록 제물의 과정을 말 없이 거쳐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감당하겠어요, 안 하겠어요?「하겠습니다」 감당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라구.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의 교회 역사는 통일교회의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엮어질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것이 과거 구약시대 역사나 신약시대 역사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지금은 소생시대이므로 구약시대와 같은 때이지요? 전통을 세울 수 있는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 다시 말하면 통일교회가 기독교와 합하는 때가 구약시대가 되고, 대한민국과 합하는 때가 신약시대가 될 것이며, 북한과 합하는 때가 성약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틀림없을 거예요.

그러니 구약시대를 이룰 제물의 과정을 통과할래요, 안 할래요?「하겠습니다」 그 과정을 통과하면 구약시대가 이루어져요, 안 이루어져요?「이루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신약시대가 되고, 여러분은 신약시대로 들어가면 예수님의 재림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가를 중심삼고 신약을 완성하게 되면 우리는 통일국가를 갖게 되는 것이지요?「예」 마찬가지입니다. 반대하는 나라가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시대에 있습니다. 심각하다는 거예요.

이것이 세계적인 전통 역사, 즉 역사적 완성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생님 가정의 역사에 가인 가정의 역사를 중심삼고 여러분의 가정이 역사에 연결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여러분 가정이 여기에 동참할 수 있는 역사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되었다 하게 되면 여러분의 가정은 해방되는 것이라구요. 그 다음엔 가정이 하나되어 가지고 종족적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종족적 아벨로서 기독교와 맞서서 종족적 가인을 굴복시키면 민족적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민족적 아벨이 되어 가지고 국가를 중심삼고 몇 사람만 굴복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오른손으로는 선생님을 붙잡고, 왼손으로는 민족을 붙잡고, 가슴으로 품고 옹호하면서 72년도까지 싸워 나가야 합니다. 알겠어요?「예」 선생님과 같이 뛰어 보자구요. 여러분이 하나되지 못하면 여러분보다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세상에 우리같이 불쌍한 사람들이 어디 있어요? 우리가 이 통일교회에 들어올 때 어머니를 만나러 왔습니까? 형제끼리 재미있게 살러 왔어요?

어머니 아버지 버리고, 형제 다 버리고, 친척 다 버리고 나와서 나라로부터 쫓겨다니고 있는데 우리가 무엇을 못 하겠습니까? 부모를 버리고 나왔으니 부모보다 더 잘살아야지요?「예」 형제를 버리고 친척들을 버리고 나왔으니 우리가 하나되어야 할 것 아닙니까? 하나되지 못하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는 거라구요. 세상에 어디 하소연할 데가 있느냐는 거예요. 다시 집으로 가서 '아이고 엄마 아빠! 배고파 죽겠소. 철몰라서 나갔으니 이제는 안 그럴께요' 이럴 거예요? 목을 빼서 개를 주었으면 줬지 그렇게는 못 하겠지요? 죽어도 못 그러는 거예요.

하나되어야 산다

죽든 살든 우리는 하나되어야 합니다. 절대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떨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예요. 우리는 어차피 공동운명권에 있습니다. 너와 나는 공동운명으로 서로가 허리띠처럼 얽어매어져 있는 것입니다.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하나가 죽게 되면 둘이 죽게 되고, 둘이 죽게 되면 셋이 죽게 되고, 더 수가 많아지면 전체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동운명권에 우리가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여기에서 하나되지 못하면 우리같이 불쌍한 사람들이 없지만 우리가 하나된다면 우리같이 행복한 사람이?「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번 만번 불러 봐도 또 부르고 싶은 이름, 꿈에도 부르고 싶은 이름이 있나니, 그 이름이 참부모라는 이름이요, 천번 만번 불러 봐도 또 부르고 싶은 이름이 있나니 그 이름이 참부모의 아들딸의 이름인 것입니다. 또한 천번 만번 부르고 싶고 사모하고 싶은 가정이 참부모의 가정이요, 참부모가 있는 민족과 더불어 참부모의 가정을 모시고 살고 싶은 것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국가와 더불어 주권과 더불어 모시고 싶다는 거라고요. 이것은 선생님 중심삼은 말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중심삼은 말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게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됐습니다」 됐지요?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60년대는 어떤 시대였느냐 하면 탕감시대로서 눈물과 고통의 시대였습니다. 그러한 시대를 거쳐온 사람이 오늘날 하늘의 완성기준인 새로운 섭리역사가 탄생하는 이 마당에 부부가 같이 이 길을 못 간다면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 수 없는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자식을 품고 사랑하고 눈물을 흘리고 그러면 통일교회 자식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자식을 얽어매어야 합니다. 나면서부터 죽을 자리에, 사지판에 몰아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희진이도…. 선생님은 그런 것을 알았다는 거라구요. 부모가 그걸 몰랐겠어요? 희진이가 죽었을 때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넘어야 할 고비라고 생각한 거예요. 철모르는 자식을 죽을 자리에 보내고 가슴 아파하던 나 자신은, 철을 알고 뜻의 길을 안다고 만민을 위해 가겠다고 하며 죽음길을 가다가 죽어 쓰러진 자식을 보며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내가 가야 할 죽음길을 대신 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지독하다면 참으로 지독한 사람이라구.

이번 기회를 통해서 여러분은 새로운 의미에서, 그리고 새로운 각도에서 섭리의 터전을 중심삼은 현재의 입장이 어떤 자리인지 확실히 알았으리라고 봅니다. 알았어요?「예」

역사적인 입장에서 우리 가정은 어떤 자리에 있고, 우리 가정의 역사가 어떻게 되었으며, 이 역사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예요. 역사는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오점은 천년 만년의 오점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의 하루의 오점이 천년 만년의 오점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 21년 기간에 오점을 남기면 그것은 천년 만년의 오점으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1차, 2차, 3차 7년노정은 이제는 영영 없는 것입니다. 이런 노정이 또 있을 것 같아요?「없습니다」 다시는 없다는 거라구요.

우리로 말미암아 '섭리로 본 역사적 완성기준'이 이루어지게 하자

이 시대에 개인적 완성기준이 탄생하여 비로소 역사상에 개인적 완성의 역사가 머리를 들고 나타날 것이요, 가정적 완성기준의 역사, 모든 가정의 형을 대표할 수 있는 철형(틀)과 같은 역사가 비로소 얼굴을 들고 나타날 것이요, 가정을 중심삼은 사위기대의 전통적 기준, 철형과 같은 기준이 하나님이 바라고 인류가 바라는 섭리역사의 목적체로서 비로소 역사상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이때인 것입니다.

그런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적 모델형이 나타나야 그 모델형을 중심삼고 세계적 종족편성이 가능한 것이요, 그것을 중삼삼고 세계복귀가 가능한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이 잘 가느냐, 못 가느냐에 따라 세계복귀의 기간이 연장되느냐 단축되느냐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세계복귀의 운명이 여러분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종족적 전통의 역사를 세우지 않고는 세계 종족을 교육할 수 있는 기준이 결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세계적 종족권을 편성하여 빛나는 역사를 창조하고 찬란한 문화의 기원을 만들려니 여러분은 등골에 땀을 흘려야 되고, 손끝에 땀을 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려도 안 되거든, 남이 먼저 죽기 전에 우리들이 일시에 배를 째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 죽겠다는 각오를 하자는 겁니다. 자식과 아내를 전부 죽이고 나까지 칼침을 놓고 죽더라도 원수에게 죽을 수는 없다는 한을 품고 우리는 언제든 한꺼번에 죽을 무리라는 각오까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앞에 나라가 없고 주권이 없어 해방국가, 통일국가를 갖지 못할 때에는 거기에서 종결짓겠다고 결의하는 무리가 통일의 무리요, 통일의 가정인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주류사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디 그러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아이구, 거룩하도다! 정말 그렇게 하겠어요?「예」 나는 지금까지 많이 속았습니다. 이번엔 틀림없어요?「예」 어디 한번 해보라구요.

이 나라, 이 민족을 누가 제물이 되어서 지킬 것이냐? 여러분은 그 나라를 그리워하며 그 나라를 찾기 위해 꼬인 다리를 끌고, 절름발이 걸음을 걸어 나왔기에 이 나라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을 목전에 두고는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비운의 사나이들이 아니냐 이겁니다. 내 발을 잘라 제물로 드려서 그 나라를 찾을 수만 있다면 아깝지 않게 당당히 드리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나서야 할 것이 현재 우리의 입장이 아닙니까? 죽더라도 찬란한 역사를 빛내고, 역사시대의 사망의 골짜기에 새로운 부활체로 연결시킬 수 있는 전통의 샘을 터놓고야 죽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 섭리를 책임진 우리의 입장이 아닙니까?

이러한 때가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짧은 거예요. 21년이라는 세월은 꿈같이 지나가는 거예요. '10년 세월이 언제 다 지나갔는가? 그런 역사가 있었던가' 하는 것같이 눈 깜박하는 사이에 지나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나이 50이 넘었지만…. 오늘도 여기에 오기 전에 여섯 시간 가까이 말씀을 했는데 얘기를 끝내고 내려오려고 하니 다리가 굳어져 가지고 휘청휘청하잖아요. 그래서 책상을 짚고 내려섰습니다. 그러면서도 '청평으로 가자. 이놈의 자식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또 가야지' 해 가지고 여기에 온 것입니다. 80대까지는 이렇게 버티고 나갈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칼을 꽂고 결의했던 것을 이루고, 소원을 성취해 가지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꽂았던 칼을 도로 뽑아서 원수를 쳐 달라고 하며 드릴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한 후에 눈을 감고 죽겠다는 것이 여러분이 스승이라고 부르는 이 사나이의 소원입니다. 자식들이 배가 고파 잠을 못 이루고 누워 있는 처량한 모습을 보고도 어쩌지 못하고 뜻을 품고 싸워 나온 행각의 노정이 여러분이 모시는 스승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만 그렇게 해 나온 것이 아닙니다. 애국자의 전통적 사상은 그런 자리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그런 전통을 이어받아 곱게, 아름답게, 그리고 순순하게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섭리로 본 역사적 완성기준'이 우리로 말미암아 탄생되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여기에서 우리시대, 이 시대의 잼대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 잼대를 가지고 금을 그으려면 한금 한금을 정확하게 그어서 누가 봐도 틀림없다고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여러 번 '전통을 세워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을 여러분은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전통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전통을 못 세우면 망하는 거예요. 전통이란 그 나라의 애국사상을 연결시켜서 세우는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사상적 전통을 세울 시기는 이 시대밖에 없습니다. 알겠어요?

역사적 완성기준은 성약시대에서부터 남아진다

여러분이 아내와 더불어 이 시대를 맞이했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놀라운 일입니다. 세계가 통일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예요. 세계 통일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느 시대 어떤 사람보다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리이니만큼 거기에는 슬픔과 기쁨이 엇갈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슬픔과 기쁨을 다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성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이 통일신도, 특히 지방교회를 책임진 여러분들의 사명인 것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장 시절에 하늘나라의 전통적 노정이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만민에게 보여 주고 틀림없는 길, 고속도로와 같은 길을 깔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천년 만년 그들의 피 속에, 살 속에, 정신 속에 살아 남을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기쁜 일이 있어도 비석이 서 있는 여러분의 무덤을 바라볼 것이고, 여러분이 넘나들던 산이 있으면 그 산을 넘나들면서 역사를 읊으며 '이 기쁨을 당신이 받으소서' 하고 찬양으로 여러분에게 기쁨을 돌려주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조상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보람있는 인생입니다. 알겠어요?「예」

일생 동안 대로에서 진탕 먹고 웃고 춤추며 살다가 무덤에 가면 복이 될게 뭐 있어요? 그런 사람의 무덤에는 풀이 날 뿐이겠지만, 나라를 위하여 피를 흘리고 죽은 사람의 무덤에는 그 나라가 살아 있는 한 꽃이 필 것입니다.

선생님이 죽으면 여러분들 선생님의 무덤에 와 볼래요?「예」 어떤 모습으로 올래요? 와도 걱정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 무덤엔 와서'선생님, 제가 왔습니다. 아무개가 왔습니다' 할 때 '오냐, 그렇게 오기를 바라던 그대가 왔느뇨' 하고 죽은 영혼이 반길 수 있는 여러분이 돼야 할 텐데…. 그래야 되겠지요?「예」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아름다운 씨가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어 가지고 영광의 터전을 넓혀서 귀한 사람으로서, 칭찬받는 사람으로서 찾아오기를 바라지 않겠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또 선생님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을 때 찾아오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찾아올래요, 안 찾아올래요?「찾아가겠습니다」 어떻게 찾아올래요? 선생님을 찾아와 가지고 '아이구, 선생님 제가 죽게 됐습니다. 나 좀 도와주세요' 하겠어요? 선생님은 죽어도 그런 일은 못 합니다. 선생님은 한 7,8천만 원 있던 돈이 일주일 새에 한푼도 없이 돼 버렸다고 해서 '아버지! 내가 따라지 신세가 되었으니 도와주시오. 큰일났습니다. 좀 도와주세요' 이런 기도는 죽어도 못 해요. 내가 책임을 졌으면 내가 있는 정성을 다하고 그 고통을 홀로 감당하는 거예요. 그래야 됩니다. 여러분도 그럽니까?

잠잘 것 다 자고 비굴한 모습이 되어 가지고 비렁뱅이 노릇을 하지는 않아요. 잠을 안 자고 일을 할 것입니다. 젊은 시대에 잠 안 자고 일을 해서도 안 되면 늙더라도 잠을 안 자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 저런 것을 알고 가치 있는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올 새나라의 역사적 완성기준은 어느 시대에 남아지느냐? 구약시대도 아니요, 신약시대도 아니요, 성약시대입니다. 새나라의 역사는 이 성약시대에서부터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싹이 튼다는 것입니다. 교훈의 원본도 여기에서 생기는 것이요, 사상의 원줄기도 여기서부터 생기는 것이요, 사탄세계를 판결할 공의의 법도도 여기서부터 생겨나는 것이요, 악을 제거시키는 방법도 여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잘 태어났어요, 못 태어났어요?「잘 태어났습니다」

태어나기는 잘 태어났지만 여기서 책임을 못 하게 되면 제일 못 태어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 하나만 망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망하게 하는 불쌍한 괴수가 되는 거예요. 그래도 잘 태어났어요? 잘 태어났어요. 못 태어났어요?「잘 태어났습니다」 잘 태어났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 가려면 살아서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어가야 합니다. 아들딸이 생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서슴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가기 위해 죽음 길을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럴 수 있어요?「예」 그러지 않으면 예수보다 못하게 되는 것이요, 아브라함보다 못나게 되는 것입니다. 최후에 완성의 책임을 진 사람은 역사상에 충성했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섭리적으로 멋진 시대

옛날에는 종이나 물건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거나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 자신이 제물이 되었지만, 지금 여러분은 아들딸과 아내와 자신까지도 제물삼겠다고 해야 됩니다. 지금 때가 그런 때예요. 알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예수보다 못해요, 나아요?「낫습니다」 하나님이 대할 때 예수 때보다도 지금 여러분이 낫겠어요, 못 하겠어요?「나을 것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말 같은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이 이 시대의 실상입니다. 예수가 자기 아내를 전도하러 보내 봤습니까? 보내 봤어요, 못 보내 봤어요?「못 보내 봤습니다」 또 예수가 자기 아들딸에게 엄마 아빠랑 같이 전도 나가자고 해봤습니까?「못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예수보다 낫잖아요. 낫지요?「예 」

그러니 여러분은 멋진 시대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대강 알겠어요?「예」‘섭리로 본 역사적 완성기준’은 아무 때나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죽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지나가겠어요, 남아지겠어요?「지나갑니다」 때는 지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거예요?「남아지겠습니다」 남아지니 어떻게 할 거예요?「대신 그 일을…」

그래서 선생님이 여러분의 골수에 사무치게끔 이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하는 일을 확실히 알고, 또 그것이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 가지고 다음 단계에서는 어떤 일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면 선생님이 죽더라도 뜻을 이어받아 완성 기준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겠지요?「예」

옛날 기성교인들은 가인 시대의 탕감을 위해 열성을 다한 것입니다. 가인이 되기 위해서 열성을 다한 것입니다. 부끄러운 가인의 입장을 탕감하기 위해서 열심으로 일한 거예요. 알겠어요?「예」 그러면 여러분이 열심히 일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아벨이 되기 위해서…」 부끄러운 아벨이 되기 위해서예요, 승리한 아벨이 되기 위해서예요. 아벨은 아벨인데 예수보다 나은 아벨이 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민족복귀의 책임을 진 아벨의 입장에 서서 정성을 들이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같은 정성을 들이더라도 우리는 차원이 높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정성을 들이고 같은 자리에서 길을 가더라도 영계에 가면 그들은 우리의 지배를 받아야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그러니 우리가 기성교회 목사들보다 더 정성을 들여야 되겠어요, 덜 들여야 되겠어요?「더 들여야 됩니다」 이런 것은 뭐 물어 보나마나 뻔한 것이지요.

자, 이제는 대강 알겠지요?「예」 이제 여러분들은 '아하, 72년까지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 그래서 선생님이 입적시대가 온다는 말씀을 하셨구나'할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아내를 가진 사내 녀석들을 입적시대에 참석 못 시켰다가는 서서 죽는 것이 아니라 자빠져서 배밀이를 하면서 스스로 죽게 되는 때가 올지 모릅니다. 왜? 자기 아들딸의 등살에 못 사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는 거라구요. 자기의 아들딸들로부터 '아이구, 어머니 아버지는 뭘 했어' 하는 말을 듣는 비참한 부모가 되는 거라구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구.‘왜 먼저 와서 요 모양 요 꼴로 만들었소? ’하면서 자기 아들딸이 눈에 번갯불이 일도록 한다는 거예요.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지 않는다면 내가 오도록 만들지도 모릅니다. 농담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예」

그래서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아버지는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훌륭한 아버지요. 우리 어머니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훌륭한 어머니다. 너희 부모는 이 세상에서 단 한 분밖에 없는 어머니요, 단 한 분밖에 없는 아버지다'라고 할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그런 사상을 집어넣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도 이 사상을 이어받아서 자식들에게 자나깨나 그런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먼저 세계 역사상에 없는 효자가 되고 효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러한 사상을 남겨야 됩니다. '우리 가정은 이 세계에 없는 가치관을 지닌 가정이다'라고 할 수 있는 부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을 이어받는 거라구요. 알겠지요?「예」

'우리 친척들은 천년을 같이 살아도 그 수가 작아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모여 사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는 사상을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세계의 국가와 민족이 한 울타리 안에 모여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류적 통일사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눈을 똑바로 뜨고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달리자

여러분은 선생님이 오늘, 1971년 8월 17일 저녁에 한 이 말씀을 명심해야 됩니다. 그리고 역사를 길이 빛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돌아가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예」 이 말씀을 듣기 전과 듣고 난 후에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달라지겠어요, 안 달라지겠어요?「달라지겠습니다」

이제는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아야 돼요. 선생님의 목적과 여러분의 목적은 같습니다. 그렇지요?「예」 그러니 고생을 해도 같이 고생하고, 울어도 같이 울고, 좋아해도 같이 좋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에는 선후가 있기 때문에, 더 큰 것을 살리려니 작은 가정을 희생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희생해야 되겠다는데 자식과 아내를 돌볼 수 있어요? 여러분은 이런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이 역사적 완성기준을 세울 때입니다. 개인의 완성기준을 세울 때도 이때요, 가정의 완성기준을 세울 때도 이때요, 종족의 완성기준을 세울 때도 이때요, 민족의 완성기준을 세울 때도 이때요, 국가의 완성기준을 세울 때도 이때입니다. 그러므로 이때에 세워지는 전통으로써만이 세계를 녹일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의 누룩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강한 칼이 되어 어느 나라의 전통이든 싹뚝 잘라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자고 하면 다 동원되겠어요, 안 되겠어요?「동원되겠습니다」 지금 이 한국 군인들, 소대장이고 대대장이고 이 썩은 패들은 전부 다 보따리를 싸 가지고 꽁무니 뺄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몇천 명의 소대장감, 몇천 명의 중대장감을 다시 길렀으면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이란 것을 알고 여러분은 역사적 완성기준을 세우기 위해 나가야 합니다. 역사적 완성기준, 이것은 하나님도 원하시고 역사도 원하고 인류도 원하고 선생님도 원하는 것입니다. 그 철형 (鐵型)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재료나 질은 달라도 모양은 같게 만들어지는 것이 철형이예요. 알겠지요? 모양은 같아야 하는 거라구요. 우리 가정들의 모양이 그렇지요?

지금 우리 통일교인들의 생활은 비참하지요? 살림살이가 비참해요. 그러나 자기 아들딸을 죽여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다면 자기 아들딸을 죽음의 길에 선뜻 내주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구요. 그런 것이 다 전통이 되는 거예요. 그 사연이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억천만년 빛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지요. '통일사상을 중심삼은 역사시대에 순교자를 갖는 가정은 복이 있느니라'는 이야기 말입니다. 선생님 가정에서는 1969년도에 희진이가 대표적으로 갔다구요. 그때 선생님이 명령했지요? 금년만은 전체가 동원되어야 한다고 말이예요. 1969년도는 3년노정의 2년째 되는 해이기 때문에 전체가 동원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때 희진이 이녀석이 들어오더니 '전체가 나가지 않으니 저 혼자라도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고는 김천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경기도에 김천이 있는 줄 알고 거기로 가는 줄 알았습니다. 경상도에 있는 김천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으면 안 보냈을 것입니다.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 서로서로 끼고 조심해야 할 기간인 줄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깜빡한 것입니다. 그렇게 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희진이가 우리 가정의 제1대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피지도 않은 꽃봉오리 같은 소년으로 순교의 선혈을 흘림으로써 영광의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빛나는 가치는 역사시대에 길이길이 전통으로 남아질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은 자랑스럽게 간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가정에도 그런 아들딸이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있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나 여러분이나 그런 것은 같아요. 그러니 이 시대의 가치를 알고 이때의 운명적인 인연을 여러분이 고이 이어 받아 가지고,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선조들의 전통적인 공적을 연결시키는 이 시점을 부디 하늘이 찾아오실 수 있게 빛나는 결실로 맺어 주기를 바랍니다. 이런 마음에서 말씀한 것이니 잘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어린 아들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철부지했던 과거를 깨닫고, 이렇듯 심각한 역사의 배후를 더듬어 깨우치는 이 자리 위에 당신의 거룩하신 은사의 손길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잊을 수 없는 이번 기간이 감사하다면 감사한 기간이요, 두렵다면 두려운 기간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철부지하여 아버지의 사정을 몰랐던 이들이, 이제 애달프게 몸부림치시는 아버지의 사정을 깨우쳐 헤아릴 수 있는 철든 아들의 입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이들이 고이고이 아버지 앞으로 가야 할 운명의 길을 돌이키려고 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당신 것으로 맡기었사오니 비참해도 당신 것이요, 영광스러워도 당신 것이옵니다. 가치의 비중을 생각할 때 영광이 귀한 것이 아니라 비참이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한 칼에 쪼개질 수 있는 제물이 되겠다고 하는 아들이 있고 딸이 있다면, 당신은 그들로 말미암아 천세 만세의 한을 털어 버릴 수 있는 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요, 또한 당신의 긍휼과 동정의 마음으로 만민의 한의 터전도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오늘 저희들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거룩한 자리에 있는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철부지했던 과거지사를 박차 버리고 장자의 모습을 갖추어 효의 도리와 충의 도리를 다하지 않으면 살더라도 죽은 목숨이요, 그렇게 하지 못하면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짖으면서 쓰러져 가야 하는 것이 사나이의 갈 길임을 알고, 새로이 결심할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들에게는 가정을 중심삼고 세상의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사정이 엉클어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당신의 슬픈 사연이 감돌고 있는 것을 아옵니다. 복귀의 한의 심정을 중심삼고 예수님이 당한 슬픔을 살아 있는 실체의 부모의 입장에서, 아버지와 같은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이 자리에 세워 주신 것을 생각할 때, 비록 나타난 모습은 비참하지만 역사에 숨겨진 당신의 심정을 상속받을 수 있는 승리의 자리인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창백한 자식을 바라보는 그 자리, 심정이 극에 달해 숨통이 터질 듯하는 그 자리에 당신의 심정이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저희 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린 자식들이 보리밥을 젓가락으로 끄적이며 먹는 것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고, 그러한 자식의 모습이 비록 창백하지만 죽을 자리에 갈 자식이 아니라, 미래에 천국의 상속자로서 영광을 이어받을 수 있는 희망의 자리에 갈 자식이기에, 불쌍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축복을 받고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자랑스러운 자식이라고 생각해야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 앞에 불초한 자식으로서 그런 자식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통곡할 수 있는 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억천만세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복된 것이라는 것을 이들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자식을 사랑해 주는 자가 있거든 정(情)의 실체로 생각하고 생애를 바쳐 보답하고 감사하겠다는 부모의 마음을 갖게 되고, 그런 자식을 위해 빵 한 조각을 주는 사람이 있거든 천년 역사의 은덕을 입은 은인으로 생각하고 그에게 만복을 받을 수 있게 축복을 돌려 드리겠다고 결의도 할 수 있는 이 시간이옵니다.

이렇듯 슬픈 역사노정에 동석하여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빵 한 조각, 물 한 그릇을 주는 사람에게 만복을 빌어 줄 수 있는 인연이 맺어지는 사실을 느끼고 알 수 있게 된 것도, 오늘 이와 같은 자리로 말미암은 것임을 고이 고이 마음과 뼈살에 새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자리에 설 적마다 예수의 신세를 생각하고 아버지를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라져 간 예수, 요셉과 마리아의 품에 품기어 사랑을 받지 못한 예수의 어린 시절의 한이 풀려 나갈 수 있는 거룩한 순간이 우리 가정에 있노라고, 그런 자랑의 조건이 우리 가정에 있노라고 할 수 있어야겠사옵니다. 그런 복된 자리를 더듬어 이어받을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환영해 주는 종족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종족이 없는 것을 바라보고 그런 종족이 있기를 얼마나 얼마나 바라왔습니까? 저희들이 그런 종족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라도 그 종족을 흠뻑 사랑하고 싶어하고 그 종족 앞에 종이 되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갖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예수의 심정을 다시 회상하며, 사가랴 가정이 그랬어야 된다면 그것을 복귀한 형태의 가정으로 탕감해야 하는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이들이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민족을 넘어 국가를 넘어 주권이 우리의 손가락 끝에서 오락가락할 수 있는 행운의 시대가 우리 앞에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행운의 시대를 나 혼자서만 맞는 것이 아니라, 어버이와 아내와 자식이 함께 맞이할 수 있도록 허락되는 평화공존의 기준이 지금 결정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전체가 눈물을 홀리며 감사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당신이 사랑하시고 싶었던 통일교단을 품어 흠뻑 사랑하시옵고, 책망하고 싶었던 당신의 아들딸이 있거든 서슴지 말고 채찍질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후한이 없는 민족으로서, 출발한 사람이 한 사람도 떨어짐이 없이, 애급땅에 남아지지 않고 홍해를 건너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더라도, 하늘의 길에서 죽겠다는 마음으로 같이 동행할 수 있는 무리로서 아버지 앞에 기억되고 길이 남아지는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아버지의 이름과 더불어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를 대신하고, 자식을 대신하고, 후대의 후손을 대신하고, 가인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 전체를 대신하여 맹세하오니, 이를 아버지께서 받으시사 부디 다시는 아버지를 배역(背逆)하는 일이 없게 하여 주시옵고, 이 시간을 당신이 기억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역사적 완성기준이 세워질 그립고 그리운 그날, 찾고 또 찾아 나온 그 자리, 바라고 또 바라고 나온 그 한계선을, 그 경계선을 이 눈으로 바라보며 이 발로 넘을 수 있는 영광의 한때를 천만 번 죽더라도 잃어버리지 않는 거룩한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것이 역사의 전통이 되고 빛나는 종족의 자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통일교단이 승리의 터전이 되게 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시간 어린 아들딸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통고하였사오니, 뼈살이 녹아지는 한을 백골난망의 은사로 알고 감사하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하늘의 지성소를 맡아 지키는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여 아버지로부터 무엇 하나 축복받지 못함이 없는 거룩한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아진 내일 시간도 당신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바쁜 날들 가운데 엮어져 가는 당신의 뜻의 엮어짐이 아시아를 통하여 세계에 이어져 천운을 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승리의 노정이 힘차고 자랑스럽게 한국 강토를 중심삼고 저희의 몸과 마음의 움직임과 방향에 연결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4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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