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통일교회를 중심한 역사적인 섭리를 두고 볼 때 중요한 달입니다. 1971년도는 선생님이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성을 띤 중대한 해입니다. 그런 1971년의 6월, 음력으로 보면 7월까지는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중요한 기간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6월 초하루인 오늘을 기하여 협회 기구를 개편한 것입니다.

​협회 기구와 교회 조직을 개편하는 이유

​지금까지 우리 교회의 조직에는 본부가 있고 지구가 있고 지역이 있고 그 밑에 지방교회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본부에서 직접 전체 교회를 관할할 수 있게 고쳤습니다. 지구장제를 없앰으로써 지구장들도 교회장이 되었어요.

여러분들이 교회장을 통해서 들었겠지만, 1960년에는 본부교회와 지방교회가 있었는데 본부교회에서 직접 지방교회를 지도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구 체제를 거치게 되었습니다. 이런 체제에서는 중간 단계에 있는 지구장들이 책임을 다하는 입장이면 모르지만, 책임을 다 못 하게 될 때는 말단 교회에서 반드시 말이 있게 된다는 것을 느껴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6월 초하루를 기해서 전체 기구 개편을 하게 된 것입니다.

도청 소재지에도 교회가 있고, 시에도 교회가 있고, 읍에도 교회가 있으며, 면에도 교회가 있습니다. 이제부터 교회장들은 실력을 다해 활동을 해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실력이 많으면 발전할 수 있는 체제를 강구한 것입니다. 교회장 가운데에는 읍교회장도 있을 것이요, 면교회장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한 교회장은 반드시 자기 교회 하나를 책임져 가지고 그 지역에서 원리적 편제를 확대시켜 나가야 합니다. 원리는 사위기대의 조직 형태이기 때문에 하나의 주체 교회를 중심삼고 사위기대 형태의 기반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배 인원이 40명 이상 집합하게 될 때에 교회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기간을 따지지 않고 네 곳에 교회를 빨리 확대 발전시킨 교회장에 대해서는 면교회장이면 읍교회장으로, 읍교회장이면 시교회장으로 승진시켜 주는 것입니다. 또, 도교회장이 40명씩 네 곳에 교회를 확보하여 책임을 다했을 때에는 본부의 부장직 등의 중요직을 책임지도록 기구를 개편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지구장 이하 지역장이나 교회장들은 누구를 믿을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자기의 실력과 활동의 결과에 따라 자기의 갈 길이 닦아지리라 믿습니다.

​순회사 제도의 신설

​그리고 본부에 전국순회사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순회요원을 만들어 전국의 교회를 관리하는 제도입니다. 남자 8명과 여자 8명으로 전국순회요원을 두어 최대한의 기동력을 동원해 가지고 지방의 군, 읍, 면까지 전체를 본부에서 관할하게끔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적어도 한 달에 두번씩은 지방교회를 순회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지구장 휘하에 지역이 소속되어 있었기에 지구장이 매달 한번씩 순회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어떤 지역에는 석 달에 한 번, 혹은 어떤 특정 지역에는 6개월에 한번씩도 순회를 하지 못한 곳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우리 교회가 발전하는 데 상당한 부작용을 야기하는 결과가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 이렇게 개편을 단행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의 기본 활동은 본부가 직접 주동이 되어 가지고 지방을 움직여 나가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교회의 전도활동은 개체 교회에서 주관하여 왔습니다. 지구 본부나 지역본부에서 각기 40일 전도기간이면 40일 전도기간을 마련하여 추진해 나왔지만, 이제부터는 본부에서 전국을 관할하게 됩니다. 만일 앞으로 40일 전도기간이 있다면 지방교회에서는 그 명단을 본부에 제출하여, 선생님의 특별 명령에 의해 진행했던 60년대와 같이 선생님으로부터 직접적인 명령을 받아 가지고 자기 지방에 배치되었다고 느끼며 활동하게 하고, 하늘에 대하여 정성들이는 데 있어서도 직접 연결되어 정성들인다는 입장이 되게 할 것입니다.

과거에는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어떤 특정한 일을 지구본부에 시달하면 그것이 각 지역에 전달되지 않고 지구에 머무는 경우가 허다했고, 또 간혹 가다가 중간에 있는 지구장이 지역장과 감정이 좋지 못하여 지역장이 요구하는 사항들이 영영 본부에 전달되지 않는 사례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방 순회반을 만들어 놓으면 어떤 폐단이 생기느냐? 어느 도면 도에 순회반을 고정시켜 배치해 놓게 되면 8개 지구장이 있었던 옛날과 같은 경향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시정하기 위해서 순회지역을 3개월에 한 번씩 교체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본부에서는 순회사로부터 한 구역의 보고를 받되 3개월 후에는 교체된 다른 순회사로부터 보고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1년이면 네 사람의 순회사로부터 그 구역에 대한 보고를 받게 되므로, 어떤 교회에 사건이 생겨 가지고 그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게 될 때, 네 사람의 보고가 일치되지 않으면 일치되지 않은 그 순회사반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순회 때나 지구장을 중심삼고 있었던 폐단을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방교회에는 교회장이 6개월에 한 번씩 왔다 간 순회사에 대한 보고와 지금까지의 전체적인 활동사항에 대한 보고 및 건의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순회사가 와서 플러스가 되었다든가, 혹은 마이너스가 되었다든가 하는 전반적인 문제점을 알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건의 문제를 6개월에 한 번씩 본부에 보고하는 체제를 갖춘 것입니다. 이렇게 1970년대부터는 새로운 체제를 갖추어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지구장이 마치 상위 계급에 있는 것과 같이 되어 가지고 상당한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지구장들이 본부에서 교회로 시달하는 내용을 자기들은 실행하지 않고 지역장들에게만 직접하게 하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체제상 책임자들이 시범을 보여야 할 입장에서 실천을 못 했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부에서 보낸 순회요원들이 각 구역에 나가 모범을 보이게 되면 전국에 있는 교회들이 새로운 힘을 얻어 가지고 발전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이런 편제를 택한 것을 여러분들이 알기 바랍니다.

​체제 변경에 따른 활동 방향

​이제부터 본부는 본부 자체대로 운영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금까지는 교회장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더라도 운영해 나올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그럴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각 교회의 교회장과 식구들이 하나되어 가지고 서로 협조하여 교회 발전을 위해 주력하지 않으면 떨어질 것입니다. 앞으로는 전부가 그런 체제를 갖추기 때문에 교회장 자신들이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과거에는 지구장이 활동하지 않더라도 지역장이 활동하면 성과를 거둘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안 될 것입니다. 각 교회장 스스로가 활동을 해야만 그 성과가 나타나지, 지역 요원들이나 지역장들이 활동한 결과의 터전 위에서 지구장의 위신이 세워졌던 과거의 입장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각각의 교회 전체가 서로 경쟁하는 입장에서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될 체제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본부에는 기동성을 발휘하기 위해서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여러 가지 여건을 강구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차량을 구입한다든가 해야 합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경비 일체를 본부에서 부담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아시고 6월부터는 새로운 결의와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모든 만물이 6월을 중심삼아 가지고 성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금년부터는 6월을 새로운 발전을 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되겠다 하는 것이 선생님이 금년 6월을 중심삼고 내다보는 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조직이 개편됨으로 말미암아 지방교회 교회장들을 직접 대해야 되겠습니다. 과거에는 교회에 문제가 있으면 지구장을 통해서 건의했으나 이제부터는 본부에 직접 건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건의하는 데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 순회요원을 통해서 건의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은 뭐냐 하면, 전국 순회요원과 전국 전도대원들이 1년이나 2년을 같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3개월마다 교체되더라도 서로 심정일체가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부에서는 전국 순회요원 외에 부장단을 특별히 연결시켜 가지고 정상적인 전국 순회활동을 시키려고 합니다.

​일치단결하여 교회 발전을 위해 가일층 노력하라

​협회 기구를 이러한 편제로 개편함으로써 전국에 있는 각 교회장들이나 식구들이 새로운 분야의 책임을 진 입장에서 어떤 지방이나 어떤 교회에도 지지 않는 성과를 이루겠다며 총진군하면 상당한 발전이 있으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일치단결해 가지고 자기 교회의 발전을 위하여 가일층 노력해 주기 바랍니다.

서울에 있는 교회장들 중에서도 이번에 바뀌는 사람이 있습니다. 각 교회의 식구들은 새로운 교회장과 심정적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1971년도 후반기를 뜻 있게 발전시켜야 되겠습니다.

이런 편제를 가지고 한 6개월 동안 실천해 보면 결과가 나타나리라고 봅니다. 이번 순회사들은 과거의 순회사들하고는 다릅니다. 과거에는 순회사들이 감독하는 입장에서 순회를 했지만 이번에는 순회사들을 통해서 교회장과 식구들이 서로 하나되어 부흥회를 할 수 있도록 밀고 나가려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체제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부서가 어디냐 하면 전국 순회반입니다. 이렇게 되면 물론 협회의 각 중요한 부서가 약화될 것입니다. 협회에서는 부장을 중심삼고 사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그칠 것입니다. 협회에서는 순회사들이 보고하는 내용을 통계 내 가지고 거기에 대한 상황을 전부 다 종합하여 전국에 다시 시달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시달하는 데는 문서를 통해서보다도 우리 기관지를 통해서 시달해야 되겠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본부에 있는 식구들도 그렇게 하게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통일세계'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또한 외국으로 나가는 간행물(The way of the world)이 있는데, 그 간행물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체제를 개편함으로써 기관지가 본부와의 연락지가 되게 해 가지고 누구나 본부의 소식을 알려면 기관지를 통해야만 되게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체제 개편을 통해 가지고 협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야 되겠다는 이런 면도 있는 것입니다. 만일 식구들이 기관지를 구독하지 않게 되면 본부 소식이나 교회 소식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다른 방법이라면 순회사를 통해서 알아보는 길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우리 기관지를 백방으로 활용해 가지고 큰 발전을 가져올 수 있도록 관심도를 향상시켜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전국 순회반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면 지구장들이 하던 일을 대행해야 되겠습니다. 수금 문제라든가, 보고 문제라든가, 부흥문제와 같은 전반적인 문제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일정한 궤도에 오르려면 3개월 정도 걸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서울에 있는 식구 여러분들은 교회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교회장을 삼고 하나되어 가지고 다른 교회에 지지 않는 교회가 되도록 주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 도]

오늘은 1971년 6월 6일, 현충일이옵니다. 이 현충일에 지금까지 하늘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슬픔에 사무쳐 나왔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더욱이 이 아침은 이달 들어 처음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저희들이 승리의 한날을 작정하고 섭리의 뜻 앞에 새로운 기원을 다짐할 수 있는 이 아침이 되기를, 아버지여, 바라옵니다.

금후에 이루어지는 이 나라의 모든 정세와 세계의 정세를 아버지께서 살펴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이 달을 중심삼은 입장에서 새로운 체제와 새로운 방향을 갖추어야 할 중요한 과정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나라와 우리 교회가 뜻 앞에 있어서 당신이 소원하시는 터전을 물려받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교회와 나라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1971년 6월, 이 달을 새로운 방향에서 아버지의 뜻 앞에 충성할 것을 다짐하는 중요한 계기로 삼아야 되겠사옵니다.

복잡다단한 세계의 정세 속에서도 흘러가는 인생길에서 가장 근원된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도록 아버님께서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내일의 소망을 보장받을 수 있는 스스로의 입장을 찾아가는 불쌍한 무리이옵니다. 현재에 있어서 스스로 영광의 자세를 갖출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사옵니다. 암담한 미래를 앞에 두고 이 세계의 절망과 더불어 뒤넘이쳐야 할 운명길에 서 있는 인류를, 아버님이여, 불쌍히 보시옵소서.

하늘의 섭리와 사랑을 이 땅 위에 세워 놓으신 아버지, 당신의 선의 심정을 이어받을 수 있는 긍휼의 대상이 진정 이 땅에 있사옵니까? 그런 한 남자가 있거들랑 그를 가까이 하시옵고, 한 여자가 있거들랑 그를 세우시어 축복하시옵소서. 그런 가정이 있으면 당신이 마음으로 그 가정을 만세에 찬양해야 할 가정으로 세우고 싶어하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족속이 있으면 그 족속을 중심삼아 가지고 한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당신의 깊은 마음의 흐름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나라가 있으면 영원히 천지의 인연을 대신할 수 있는, 당신의 거룩한 위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국가로 세우려 하시는 뜻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높고 귀하신 당신의 섭리와 사랑의 마음을 더듬는 무리가 이 땅 위에 그렇게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수많은 교단과 수많은 신자들은 있다 하더라도 당신의 고통의 심정과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저희들은, 당신의 외로운 심정을 더듬어 당신 앞에 축수를 드릴 적마다 당신의 역사적인 비극의 심정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현실의 곤고한 입장에서 인연맺을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는 저희들은 몸부림치면서라도 성전을 지켜야 할 책임을 더더욱 느끼옵니다.

금후에 다가올 혼란의 와중을 근절해야 할 세계에 있어서 당신이 믿을 수 있는 아들딸, 인자가 있거들랑 불철주야 당신이 목적하는 세계를 이루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그리움에 사무쳐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옵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계와 신앙세계에서 그러한 아들딸을 찾아내고 싶어도, 자기 일신의 해방과 구원을 위하여 염려하는 무리는 있지만 이 세계와 당신의 서러움을 염려하면서 내일의 싸움을 책임지고 현실의 곤고한 입장을 스스로 책임지려 하는 무리가 없는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께서 불쌍하신 분이니 아버지의 뜻을 따르려는 무리는 외로운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사옵고, 눈물과 가슴 막히는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오니, 여기에 모인 뭇 생명들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수난길을 승리의 길로 이끌어 주시옵고, 뜻을 위한 싸움의 노정을 자기의 운명길로 알고 싸우고 있는 이들의 발걸음을 지켜 주옵소서.

현재 저희들은 너무나 부족하고 불충하고 미급하여 자기 자체를 폭로해야 할 자신의 모습임을 발견하게 되옵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당신의 아들 딸들이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것을 마음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고 있는 이 딱한 사정을 아버지께서 살펴 주시옵소서. 행동과 마음이 일치되고, 생활과 이념이 일치되고, 자신의 생애가 역사적인 섭리와 일치되어야 한다는 엄숙한 과제를 앞에 놓고 자신을 냉철히 비판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엮어 가야 할 운명의 도상에는 너무도 진한 외로움이 가중되어 있고, 슬픔과 고통의 검은 구름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것을 개척해야 할 인간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입장에 서지 못하고 있으니, 이제 저희가 불쌍하신 아버지를 위로하는 아들딸이 되어야겠습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당신이 슬퍼하심을 알고 있사옵고, 사람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연의 고통을 책임지신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있사옵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고아와 같은 신세로 역사를 엮어 나온 인류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입장, 원리원칙에 어긋나는 입장에서 부모를 잃어버린 자식같이 헤매는 인류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저희들은 통찰해야 되겠습니다. 하늘 아버지는 언제나 영광의 자리에 계시고 언제나 승리의 자리에서 만복을 주관하고 계시는 줄 알았사오나, 만복이 나타나기 전에 한의 주인이 되어 그것을 십자가로써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계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이제 알아야 되겠습니다.

불초한 모습들이 아버지의 존전에 부복하였사옵니다. 당신의 큰 은혜를 받고 있는 역사적인 소중한 실체이면서 하늘의 슬픔을 그냥 그대로 이어받은 자체들임을 생각하게 될 때, 자식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용서와 긍휼의 마음이 깃들기를 바랄 수 없는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옵니다. 당신의 사랑이 있는 자리를 고대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우러나야 되겠습니다. 저희의 몸이 아버지 앞에 있으면서 갖은 화살을 다 받더라도 그것을 감수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침에 전국에 널려 있는 외로운 자녀들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남다른 길을 알았기 때문에 남다른 어려움을 겪어야 되겠고, 남다른 심정을 체휼했기 때문에 남다른 고독을 느껴야 되겠고, 남다른 책임을 짊어졌기 때문에 남다른 싸움터에서 싸워야 되겠고, 남다른 수난길을 가야 할 각자의 책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 책임과 더불어 쓰러져야 되겠습니다. 그리 하여 당신의 길을 따라가는 후사들이 그것을 생활적인 표준으로 삼고 스스로 다짐하게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여기에 모인 소수의 무리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 가운데 아버지께서 찾아오실 수 있는 자녀, 복을 주고 싶은 자녀가 있사옵니까? 당신의 마음을 부여잡고 흠뻑 당신의 사랑의 품에 품기고자 하는 이들을 품으시어 당신의 사연을 통고시키는 거룩한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지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통일교단이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당신 앞에 남아진 것은 아버지 외에는 그 누구의 공적도 아니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슬프신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 남보다 슬픈 자리에서 아버지를 염려해야 되겠습니다. 역사적인 슬픔의 행각을 거쳐오신 아버님의 슬픔을 막을 자가 없다는 것을 아는 저희들은 뜻을 염려하시는 아버지를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왔사옵니다. 이러한 저희들, 출발이 그러했으니 끝도 그래야 되겠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였기 때문에, 수난으로 심었으니 수난으로 결과를 거두어 들여야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통일교단에 있어서 역사적인 71년, 이 기간을 통하여 일선에 나가 있는 어린 딸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을 대해 눈물을 흘릴 적마다 스스로의 한을 가지고 이 시대의 사명을 짊어진 교단을 대하여 염려하는 무리가 있거든 용서하여 주시옵고,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여 스스로 몸부림치는 자가 있거든 부디 지켜 주시옵소서.

부디부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고,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하늘의 운세가 찾아오는 데 있어서 하나의 교두보가 되고 하나의 교량이 되게 하시어서 하늘의 위업을 이 민족에게 상속시킬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불초한 모습들이오나 당신 앞에 엎드려 사죄받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의 인연을 잊어버리지 않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의 몸과 마음이 아버지의 성전이 되게 하시옵고, 흘러가는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다가 갈기갈기 찢어져 방향을 잃어버리고 천방지축하는 무리가 되지 않고, 당신의 영원한 후사(後嗣)를 대신하여서 마음과 몸을 바쳐 승리와 행복의 결과를 거두어, 역사시대에 영원히 하나의 전통을 남길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영원히 남아지는 무리가 되길 바라시는 아버지의 마음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자신들이 되어야 하기에, 이 시간 불충한 몸들을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아버지 앞에 드러내어서 당신의 긍휼의 마음이 감돌아 영원한 당신의 존전에서 영원히 입증받을 수 있고 권고받을 수 있는 이 아침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서 이곳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무리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본부가 얼마나 두려운 자리인가를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곳을 그리는 그들 위에 천배 만배 당신의 사랑을 내려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서 이 나라를 흠모하는 당신의 외로운 무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호소하고 기도하고 있사오니 저희들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아버님, 저희들의 앞날을 개척하시기 위하여 희생을 극복하시고 오시는 아버지의 뜻을 저희들은 믿고 순응하고 따라가면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 저희의 생활철학이어야 함을 알고 있사오니,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정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전체를 맡아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침도 기억하여 주시옵길 바라오며,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우리가 현재 처해 있는 시점은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어 있는 시점입니다. 현재 개인을 두고 보아도 그러한 입장에 있고, 우리 나라 정세를 두고 보아도 그러한 입장에 있으며, 세계의 정세를 두고 보아도 역시 그러한 입장에 있습니다. 섭리적인 뜻을 실현해 나가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도 역시 그런 입장에 계십니다.

현재의 중요성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혹은 천주적인 섭리를 운행하는 천운을 통해 살펴볼 때에도, 오늘의 입장은 반드시 과거를 입증하고 미래를 세울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오늘보다 내일이 더 소망적일 수 있는 것이요, 현재보다도 미래가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에, 오늘의 우리 자신, 즉 현재 생을 영위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입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오늘이 어떠냐에 따라서 과거가 빛을 발하느냐, 발하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되는 것이요, 오늘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보다 좋은 미래가 건설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문제가 판가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다 좋은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현재가 과거보다 못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에서 승리를 하지 못하는 자는 역사에 남을 후사(後嗣)가 못 되는 것입니다. 현재에 승리를 거둘 수 없는 사람은 미래의 계승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승리라는 것을 말하게 될 때에, 과거의 승리보다도 현재의 승리를 다짐하지 못하는 무리가 되어 가지고는 시대와 더불어 정리되어지고 말 것입니다. 현재에 승리를 갖추지 못하는 무리는 미래의 승리의 세계를 상속받을 수 없는 것이요, 그 세계를 이루는 하나의 모체가 될 수 없는 것 역시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오늘 생명을 가지고 살고 있는 우리 개체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현재를 무시하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과거의 인연을 무시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요, 현재를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은 미래의 중요한 자리에 설 수 없는 것도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야말로 우리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점이요, 현재야말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점이라는 것을 항시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사람이 실패를 하게 되면, 과거에 실패한 결과를 놓고 성공을 재 다짐할 수 있는 한 시점은 중요한 기간이 됩니다. 그 기간은 오늘의 한 순간으로 말미암아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차대한 자리에 봉착해 있는 것이 현재 우리의 입장인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만일 오늘 실패를 하고, 혹은 오늘 가는 길에 있어서 한 발자국이 어긋나게 되면, 그가 아무리 과거에 빛나는 영광의 자리에 있었고 빛나는 승리를 얻었다 하더라도 미래에는 간난(艱難)한 운명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은 일상생활이나 역사적인 사실을 미루어 보아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에 무책임한 자에게는 미래를 책임지울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에서 자기 운명의 기준을 넘었으면 생애의 기준도 넘어야 합니다. 생애의 기준을 중심삼고 심각하지 않은 사람은 현재보다도 더 심각한 미래가 찾아오면 그 미래의 세계에서 남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심각하지 못한 사람은 미래에 남아질 수 없고 반드시 제거당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복잡한 환경이 미래와 관계맺고 있기 때문에, 그 복잡한 환경을 책임지고 수습하여 극복하지 못하는 무리는 현재보다 더 복잡한 미래가 다가온다면 거기에서 남아질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가 귀했더냐, 혹은 미래가 귀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과거가 제아무리 귀하고 미래가 아무리 귀하다 하더라도, 또 그것들이 귀한 것을 아는 나 자신이 되었다 하더라도 과거와 미래를 현실의 운명에 연결시켜 귀한 가치를 드러내지 못한다면, 과거도 규탄을 받아야 되고 미래도 규탄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이 실패나 성공의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는 귀중한 것임을 느껴야 됩니다.

행복의 요인도 현재에서 찾아야

현실에서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은 현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를 증거할 수 있는 행동이요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그릇됨을 현실에서 새로이 공포하는 말을 해야 되고, 미래에 그릇 되지 않음을 보증하고 입증시키는 행동을 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현실의 것만으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더 필요하다 할 수 있는 충분한 내용으로 남아지게 될 때에, 그 현실은 미래를 주관할 수 있는 것이요, 미래의 표준이 될 수 있는 것이요, 또한 과거의 빛을 발하게 하는 기점이 될 수 있는 것이요, 과거의 슬픈 역사가 있으면 그 슬픈 역사를 청산짓고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희망의 기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현실을 얼마나 중시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자연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아 나가는 데 있어서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의 일생을 불행하게 마치기를 바라는 사람은 더욱이 없습니다. 그러면 불행해지지 않고 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입장에 있어서 그것이 어느 과정에서 관계를 맺고 결정되느냐? 이것은 과거도 아니요, 미래도 아니요, 현실입니다. 흥망성쇠의 동기와 관건이 되는 것은 현실입니다. 흥망성쇠는 과거나 미래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비참하고도 냉정한 시간 과정에서 결판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미처 몰랐습니다.

그러기에 현실이라는 심각한 자리에서 져야 하는 책임은 현실에만 남아지는 책임이 아니라 미래에까지 남아지는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현실은 어제의 부족했던 것, 혹은 과거의 실패의 요인을 청산지을 수 있는 좋은 찬스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지 않으면 안 됩니다.

흥망성쇠의 요인은 어디에 있느냐? 현실에 있다는 것입니다. 망할 수 있는 운명에 서 있다면 이것을 수습할 수 있는 길은 과거에 있는 것도 아니요, 미래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이 길을 찾지 못한 사람은 미래에 가서 아무리 결심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자신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가장 귀한 것이 현실 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현실적인 입장에서 중심 위치를 결정하여야 할 자리, 안팎의 내용을 좌우할 수 있는 중심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행복을 찾는 데 있어서 현실의 행복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행복이라는 것은 우연히 찾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일단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루하루에서 슬픈 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은 하루가 행복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할 수 있는 요인을 어디에서부터 세워야 되느냐? 물론 과거에서부터 세워 나와야 되겠지만, 아무리 과거에서부터 세워 나왔다 하더라도 그것을 빛낼 수 있는 현실 기반을 상실한 채 행복을 찾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또 미래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현재는 이렇지만 미래는 이렇지 않기를 바라는 입장에 있을지라도, 현재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는 동기를 잃어버린 자리에 서 가지고는 미래의 행복도 보증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행복했던 모든 여건을 청산짓고 미래의 행복을 출발시킬 수 있는 동기는 어디에 있느냐? 현실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현실은 냉엄하고도 무자비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현실에서 한마디 말을 잘못하면 그 말로 말미암아 자기 일생의 운명이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행동을 잘못하면 그 행동이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터전을 파탄시키고 붕괴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신앙생활이 오늘의 현실과 상관관계를 맺어 현실에서 자신을 빛나게 하지 못한다면 할진대는, 과거에 아무리 빛나는 신앙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늘의 자신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또 '현실의 나는 이렇지만 미래의 나는 이럴 것이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창조해 나갈 수 있는 터전을 갖추고 미래에 승리할 수 있는 요인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선한 천품을 가졌다고 해도, 내적인 기준에서 행복의 요인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은 미래의 행복도 보장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현실을 망각하는 사람은 과거를 부정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요, 현실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은 미래의 중심의 자리를 부정하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현실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미래의 주인이 되려면

그러면 미래의 주인은 어디서부터 결정되느냐? 물론 과거로부터 출발해 나와야 되겠지만, 출발을 아무리 잘했고 어제까지 아무리 잘해 나왔다 하더라도 오늘의 현실에서 당당히 승리의 요인을 이어받을 수 있는 기쁨의 자리에 서지 않고, 승리의 현실을 갖지 않으면, 또 과거의 승리의 터전을 이어받지 않으면 절대로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과거보다 나은 현실의 자리, 과거를 빛낼 수 있는 현실의 자리를 갖지 못한다면 절대로 미래의 소망의 터전을 이어받을 수 있는 기준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현실이야말로 과거의 부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부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희생을 강조하고 매일 새롭게 되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일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소망하는 사람이 되면 되겠어요? 안 됩니다. 그 소망을 오늘의 현실 생활권 내에서 체휼하고, 즉 현실의 감정과 일체가 되게 하여 오늘의 생활무대에서 인연될 수 있는 요건을 만들어 나가야 됩니다. 이러한 실증적인 기반을 상실한 사람은 미래의 상속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있는 터전은 현실에서부터 마련해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과연 현실의 나 자신이 미래를 상속받을 수 있는 확고부동한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현실이 과거를 부정시킬 수 있는 당당한 권위를 가진 주체의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빛나는 과거가 있었다면 그 과거는 현재를 위해서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을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과거의 승자의 기쁨이 오늘의 패자의 서러움을 환영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의 패자, 혹은 오늘의 약자로서 신음하는 그런 고통은 미래가 받아 들일 수 없고 계승할 수 없는 요인 중의 주체인 것을 볼 때, 오늘 이 때야말로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는 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요인의 주체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래의 주인은 어디서 나올 것이냐? 오늘을 상실한 자리에서는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현실의 사회를 바라볼 때, 부패하고 사망이 감도는 악한 세계라 하더라도, 이 악한 세계를 토대로 해서 미래의 세계에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오늘 이 흑암세계의 권한을 생활권내에서 제거할 수 있는 자극, 그럴 수 있는 주체성을 발견하여 생활하는 환경에서 스스로 해내겠다고 하는 결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보람 있는 길이 계승되는 것이지, 현재는 암담한 자리에 있으면서 미래에만 소망을 두고 아무리 큰 꿈을 꾸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현실 과정을 거쳐 미래가 판정되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는 미래를 계승받을 터전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지 모릅니다.

과거가 귀중하냐, 오늘이 귀중하더냐, 미래가 귀중할 것이냐? 과거가 귀중한 것이 아니요, 미래가 귀중한 것도 아니요, 오늘이 귀중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슬픈 순간을 중심삼고, 고통, 불행, 혹은 행복을 중심삼고 몸부림치고 있는 현실이 가장 심각하고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에 있어서 고통받는 환경을 내 스스로 극복하고 고통받는 이 환경을 내 스스로 넘어서야 되겠다고 하며 몸부림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친구지간에 있어서나 사회활동하거나, 국가를 대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친구를 중심삼고 자랑할 수 있는 자리, 오늘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사회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자리, 오늘 국가 앞에 당당히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선 사람을 중심삼고 시대는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없고, 그러한 환경의 터전이 없어 가지고는 지금보다 나은 희망의 세계를 맞을 수 없는 것이요, 이 땅 위에서 재출발할 수 있는 기점도 찾지 못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오늘이 가장 귀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실패한 원인

그러면 우리가 기쁘다고 할 수 있는 현실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역사적 실패의 자리에서 후퇴할 수 있는 현실의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미래의 슬픈 고통이 우리 앞에 다가올 때에 그 고통을 피해 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복귀섭리노정을 다시 한 번 회고해 보면, 우리 조상들이 지금까지 하늘 앞에 승리를 다짐해 나왔느냐, 혹은 실패의 요인을 자극시켜 가지고 하늘의 슬픔을 가중시켰느냐 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늘 앞에 그렇게 충성하고 그렇게 수고하였던 노아 할아버지, 오직 뜻 대한 일념으로 슬픔을 잊고 자기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자리에 섰던 아브라함, 미래에 대한 소망을 품고 이스라엘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염려하며 애국심을 발휘하는 행동파로서 선두를 달렸던 모세, 혹은 생애 전체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귀중한 청춘시대까지 부정하고 광야에서 수도생활을 하던 세례 요한 등등의 사람들을 회고해 보고, 그들이 역사시대에 있어서 승리의 요인이 됐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패자로서 슬픔의 요인을 남겼을뿐 승리의 터전을 공고하게 다지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미루어 볼 때에, 그들은 수십 년 혹은 일생을 걸고 수난의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타났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계승할 수 있는 심각한 순간을 계속해서 갖지 못한 현실무대에서 그런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실패의 요인이 깃들어 저끄러지는 결과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는 역사적인 시대를 계승받은 현실의 입장에서 누구 보다도 심각한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모세가 누구보다도 심각한 자리에서 민족을 위해서 정성들이던 마음, 미래에 이스라엘을 창건하여 소망하던 천국의 계승자가 되기를 바라던 모세의 마음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미래의 국가의 운명을 염려하는 자리에서 현실을 어떻게 미래와 연결시키냐 하는 문제를 붙들고 몸부림쳐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명령을 중심삼고 자기의 일체의 행복의 요건을 한꺼번에 도말해 버리는 행동을 단행했지만, 결국 실패의 요인을 남겨 역사적인 한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느냐? 제단에 제물을 드릴 때에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지극히 작은 실수 때문입니다. 시간으로 말하면 촌음에 지나지 않고, 행동으로 말해도 지극히 간단한 행동이었습니다.

그 촌음의 순간에 그렇게 큰 실패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현실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닌 간단한 행동이었지만 역사 전체를 뒤넘이치게 하는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렇게 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미처 모르는 사이에 흥망성쇠의 요인은 현실이라는 운명길을 중심삼고 뒤넘이쳐 나간 것입니다. 그런 과거의 고통스러운 실패의 요인을 분석하여볼 때, 과거의 고통 이상으로 고통스런 자리도 당당코 나갈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고는 실패의 요인을 남겼던 역사를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은 가장 심각한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역사적으로 눈물을 흘렸던 자리, 상고시대에 조상들이 남긴 뜻을 알면 알수록, 그 전체를 대신하여 그 이상의 심각한 자리라도 찾아 가겠다고 다짐하는 자기 자신의 위치를 현재에서 어떻게 결정지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됩니다. 더욱이 미래에 있어서 행복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현재 이상의 수난길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자기가 당하는 수난 이상의 수난을 기꺼이 맞을 수 있고 현재의 수난 길을 요리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되지 않고는, 미래의 계승자가 될 수 없고 미래의 터전을 마련하는 주체적인 존재로 탄생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거가 아무리 좋았다 하더라도 현실이 과거의 조종을 받아 끌려가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자신이 전진할 수 있는 방향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뒤로 돌아가서 과거의 조종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신앙을 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뜻을 처음 알았을 때 기뻐하던 그 마음이 오늘의 자신과 상관없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옛날에 자기가 뜻을 알고는 이렇게 이렇게 움직였다며 옛날을 자랑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은 어떠냐고 하면, 오늘은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하나 어느 한때는 다시 그럴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어느 한때라는 것이 오늘을 넘어서서는 오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에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무자비한 개척자의 생활을 한 과거가 있다 할진대, 그런 개척생활에 있어서 미래에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면 오늘은 그 이상으로 무자비한 개척생활을 하겠다는 결단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잃어 버린 사람은 미래를 계승받을 수 있는 주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미래에는 과거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항상 심각해야

개인을 복귀한 후에 가정을 복귀하는 것이 복귀섭리의 노정입니다. 개인 보다도 가정이 더 큰 터전이기에, 가정은 개인보다 크고 심각한 내용의 모체를 가지고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보다도 종족의 복귀는 더 심각합니다. 종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복귀하기 위해 거쳤던 수난보다 더 어려운 수난의 길을 거쳐야 합니다. 미래에 계승될 뜻을 맞는 데에는 더 어려운 내용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국가를 복귀하는 데에는 민족을 복귀할 때보다도, 세계를 복귀하는 데에는 국가를 복귀할 때보다 더 큰 수고를 해야 할 심각한 내용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된다면 과거가 공인되고 앞으로 미래가 환영해야 할 현재를 치게 될 때, 깨지는 현재의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를 들어서 현재를 치게 될 때에 깨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미래까지 들어서 치더라도 깨질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깨지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 있어야 미래가 자신과 인연맺어지는 것이지, 만일에 깨진다고 하면 미래는 자신과 인연이 맺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건 틀림없습니다.

미래의 주인은 현실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미래의 주인은 미래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결정되어 가지고 미래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루 이틀에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년, 혹은 일생을 거쳐 가지고 현실적 승리의 터전이 되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승리의 역사로 남아지고 오늘의 승리가 과거의 승리보다도 빛날 수 있게 될 때에, 현재의 중심으로 추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 추대를 받는 게 현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다짐하면 다짐할수록 거기에는 현실에서 감지할 수 없는 미지의 미래의 내용이 깃드는 것이요, 그래야만 미래의 주인으로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 가운데에도 현실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현실을 무시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현실에 실패의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어디서부터 결정되느냐? 예배시간과 기도시간에서부터 결정됩니다. '내가 하나님과 더불어 같이하겠다' 하는 자리에서부터 결정되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이면 높아질 수 있지만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평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수평선에 있으면 모르지만 거기에서 떨어지기 쉬운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미래와 현실의 승리를 결정짓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심각하게 정성들이는 자리입니다. 그러면 심각하지 않은 자리에서는 그것이 결정 안 되느냐? 천만에요. 물론 심각해 가지고 몸부림치는 자리에서도 실패의 요인이 결정될 수도 있겠지만 심각하지 않는 자리에서 그런 실패의 요인이 현실과 이마를 맞대어 가지고 전진과 후퇴의 운명을 결정짓게 되는 일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얼마나 심각하냐 하는 심각의 정도가 결정의 요인이 되는 것보다도 심각하지 않을 때에 자기의 운명이 뒤넘이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저기 땅 끝에서 하나의 선이 나를 찾아오고, 이 끝에서 현재의 나와 더불어 맞춰 나가는 선이 있다면 이것이 어느때에 마주칠 것이냐? 미래에 마주쳐 가지고는 관계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늘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언제 연결시킬 것이냐? 현실의 한 시점에서 그것이 연결될 수 있는 때를 가져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맺어진 것이 하늘땅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탄 세력권내에서 제거당할 것이냐? 아닙니다. 제거돼서는 안 됩니다.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아무리 천지가 동요하더라도 그것만은 동요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제일의 기준, 절대적인 기준을 현실에 입각한 자기 생애과정에서 반드시 결정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정되는 그 순간은 현실을 대표하는 것은 물론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은 미래의 요인이 될 수 있는 대표적인 기준을 결정지을 수 있는 공고한 자리가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래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사탄과 결판짓는 것도 현실에서

그러면 그것이 결정되는 때는 언제냐? 나 자신이 좋아서, 신이 나 가지고, 은혜에 사무쳐 있을 때일 것이냐? 보세요. 섭리의 때라는 것은 하나님을 진짜 사랑하는 자리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은혜의 자리에는 하나님이 먼저 오시는 것이 아니예요. 왜? 타락한 이 세상은 하나님이 먼저 출발하신 것이 아니라 사탄이 먼저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 요인을 결정짓는 자리에는 어떻게 되겠느냐? 사탄이 먼저 참석할 수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해 놓으면 사람이 먹기 전에 파리가 날아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방지하지 않고는 아무리 정성들인 음식이라도 더럽혀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리를 제거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될 것이 아니겠어요? 그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은 어디에 있느냐? 어디에 있긴 어디 있어요, 세계에 있지요. 어느때에 있었냐? 과거에 있고 미래에 있느냐? 현실에 있습니다. 그러니 현실에서 사탄을 때려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사탄을 어떤 자리에서 때려잡아야 하느냐? 여러분은 이런 생각 안 해 봤지요? 현실, 즉 역사적인 과정에서, 습관화된 터전 위에서 '이렇게 이렇게 살다 이렇게 이렇게 가면 될 것 같은데 남달리 그럴 게 뭐 있느냐'이렇게 생각하는 자리에서는 절대로 사탄을 굴복시키고 승리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6천년 동안 하나님을 유린하고, 수많은 우리 선조들을 유린한 사탄이 얼마나 간교하고 얼마나 음흉한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거기에 걸려 6천년 동안 수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탄을 대비해 싸워 나오는 기독교 역사를 두고 볼 때, 예수와 성신이 영계에서 그렇게 싸워 나오지만 피를 흘려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퇴치할 수 없었던, 그렇게 악랄한 사탄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아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탄과 언제 결판을 지을 것이냐? 과거에? 만일 과거에 결판을 지었다면 그것으로 끝날 것이냐? 안 끝납니다. 역사를 붙안고 섭리의 뜻과 더불어 대결해 나오는 사탄이기 때문에, 섭리를 중심삼고 역사의 운명을 완전히 결판지을 때까지는 남아지는 것입니다. 백년이면 백년의 일생 동안 그런 섭리권내에 포함되어 가지고 길을 가고 있는 우리가 아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타락된 권내에서 승리했던 것이 자기 나름대로의 승리를 가진 것이라면 이 승리는 역사시대를 초월하여 남아져야 할 하나님의 섭리권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그야말로 최후의 승리, 역사적인 승리는 나 혼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탄과 나의 삼각관계에서 내가 하나님을 대표해 가지고 사탄을 제거하겠다는 승리의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언제 할 것이냐? 과거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과거에 승리를 했더라도…. 보세요. 예수님이 3대시험을 받아 승리했을 때에 사탄은 잠깐 떠난다고 했습니다. 민족을 동원해서 다시 올 것을 다짐하고 잠깐 떠난다고 했던 것입니다. 결국 민족을 대신해서 사탄이 나오게 될 때 3대시험에 승리한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었던 거예요. 예수님은 비록 이스라엘 나라에 의해 쫓겨 죽을지라도 다음에 그 후세들이 로마 제국을 중심삼고 다시 준비할 수 있는 터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음의 길을 가면서도 공세를 취할 수 있는, 미래에 원수를 침공할 수 있는 무대를 양보하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쳐간 걸음이 바로 십자가의 수난길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최후의 운명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온갖 정성을 다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느냐? 현실적인 죽음의 자리에서 사탄이 침공할 수 없는 절대적인 방어의 요건을 갖추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과 일심동체가 되어 침공의 여건을 제공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쳐 간 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것이 원수를 대해 복을 빌고 나왔던 심각한 자리가 아니겠어요? 역사적인 순간에 생명을 걸어 놓고 최후의 현실적 요인을 결정짓는 엄숙한 자리요, 심각한 자리가 십자가의 도상이었던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현재의 환경을 극복해야 미래의 상속자가 된다

그러면 승리, 혹은 행복의 요인은 어디에서 오느냐?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러한 기반에서는 절대로 오지 않습니다. 타락권내의 상습화된 인생살이에 있어서 누구나 그리는 행복의 요인을 중심삼고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자리가 찾아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미래의 절대적인 승리의 터전으로 남아질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그러한 자리는 사탄권내에 있는 슬픔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부정해야 됩니다. 격파하라는 것입니다. 제압하라는 것입니다. 전부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참아야 돼요. 견뎌야 됩니다. 견딘다는 것은 후퇴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면서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 요건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부정하는 자리에서 밀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현실적으로 복귀섭리를 실현시키는 하나님의 입장이 얼마나 심각하겠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이 심각한 고통을 느끼며 책임을 지고 현재의 자신을 대하고 있느냐 하는 것, 하나님의 섭리와 더불어 얼마나 심각하냐 하는 것 등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제아무리 심각하더라도 절대로 깨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심각한 것이, 결의한 그 내용이 어떠한 과거의 역사와 같으면 쳐야 됩니다. 과거에 아무리 비참하고 치열한 투쟁과정이 수천 번 수만 번 있다 하더라도 그 터전을 깨뜨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수만 번 그 일을 했던 것을 한꺼번에 퍼붓는 시련도상에 있더라도 내 정신은 변함이 없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성공하겠다는 사람은 현실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공부하는 데 있어서도 현실을 중심삼고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열심히 공부한다는 것은 현실의 여건을 환영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렇잖아요? 현실의 여건을 부정하는 입장을 찾아 들어가지 않고는 성공할 수 있는 길도, 행복할 수 있는 길도 갈 수가 없습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공부할 때도 전부 다 일등이예요? 천만에요. 낙제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예요. 낙제한 사람은 낙제 안 한 사람보다 못한 것입니다. 학교에 들어가 낙제했다면, 그는 학교에 못 들어가 낙제를 모르는 사람보다 사실은 못한 것입니다. 부정적인 여건이 가로막고 있으면 그것을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려면 몇 배 몇십 배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현실에서 공인을 받고 미래의 자기 위치를 결정하려면 몇 배의 수난길을 가야 됩니다. 현실에서 그러한 결과를 못 가져왔으면 현실을 납득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한 것은 차라리 안 한 것보다 못하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학교에 갔다면 그 학교를 대표할 수 있는 일등을 해야 됩니다. 일등하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더라도 '내 머리는 좋으니까…' 이러며 자신하는 사람은 어떻게 한번은 일등할는지 모르지만 노력하는 사람한테는 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노력은 뭐냐? 자기가 그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많은 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성공의 요인이 결정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과정에서는 패자의 서러움이 깃드는 것이 아니라 승자의 영광의 터전이 갖추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현실에서 잘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계승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현재의 행락에 보조를 맞추는 사람이 아니요, 현재의 환희의 환경에 장단맞춰 춤추는 사람이 아닙니다. 미래의 가치를 현실권내에 세우기 위하여 현재의 환경을 극복하고 참고 견디며 무한히 희생하고 무한히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아니고는 미래의 상속자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한 개인의 성공을 두고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며 국가를 두고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도 국민이 단결하면 살고 분열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단결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단결해야 하느냐? 나를 중심삼고 단결해야 하느냐? 아닙니다. 나라를 중심삼고 단결해야 됩니다. 나라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단결해야 됩니다. 나라를 성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라의 제반 부패 요인을 제거해야 됩니다. 그것을 극복해야 됩니다.

그 부패의 요인을 극복할 수 있는 단결이 없게 될 때에 그 나라는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아요? 동고동락해야 해야 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가야만 국가에게는 희망적인 미래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희망적인 미래의 세계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지금부터입니다. 미래의 세계를 희망의 세계로 맞이하려면 미래의 세계를 붙안고 현실 과정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무리가 있어야 됩니다. 단결된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세계적인 문제들을 극복하는 무리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래의 세계는 누구의 세계가 되어야 하느냐? 사탄의 세계가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세계가 되어야 돼요. 미래의 세계를 하나님의 세계로 만들려면 현재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반대하는 사탄세계의 요인을 극복하는 무리가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위해 참고 견디는 무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미래에 희망하는 세계가 올 것입니다. 미래의 세계를 하나님의 세계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애국자를 두고 볼 때에도 누가 애국자 중의 애국자냐? 같은 입장에서도 고생을 더 많이 한 사람이 애국자 중의 애국자입니다. 효자를 두고 보더라도 누가 진정한 효자냐? 이런 입장에서 볼 때, 많은 사람 가운데 중심이 될 수 있는 사람은 환경적으로 갖추어진 면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반대로 상극된 면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는 효자 중의 효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전체를 위해 희생해야 승리한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도 통일교회를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를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이냐? 현재에 있어서 춤추고 가는 것이 좋으냐? 현재에 춤을 추었으면 미래에는 그 이상의 춤을 춰야 됩니다. 현재에 기뻐하였으면 미래에는 더 기뻐할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를 발견했다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대중의 공인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대중의 공인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잘먹고 잘살아서? 아닙니다. 대중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는 못먹고 못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패들이 그렇게 살면 망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가 망하라고 아무리 발악을 하고, 목을 자르겠다고 아무리 별의별 수단 방법을 쓰더라도, 그래서 목을 잘라 놓아도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를 자르면 두 개가 나옵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나무의 종대를 잘라 놓으면 그 밑에서 가지가 여러 개 나오지요? 뿌리만 싱싱하다면 여러 개의 가지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통일교회가 승리의 터전을 갖추고 현재에서 승리한 내용을 전통적으로 미래에 상속시킬 수 있고, 미래를 인계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전체를 위해서 희생해야 되겠습니다. 과거의 우리 선조들도 그렇게 해 나온 사람이라야 승리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승리해 나오던 조상들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이냐? 공적인 입장에 섰다는 것을 망각하고 자유로운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게 될 때에다 망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 스스로 고생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선생님을 대하며 '내가 이렇게 이렇게 일을 했는데 그것을 몰라준다'고 하면서 눈물을 섬벅 섬벅 흘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눈물을 섬벅 섬벅 흘리는 건 좋아요. 그런데 그가 공적인 일을 염려하면서 섬벅섬벅 흘린다고 생각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런 것은 공적인 뜻과는 관계가 없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게 눈물을 섬벅 섬벅 흘리고 다님으로써 다른 사람이 비참하게 느껴서 '아! 그러냐' 하고 동정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공적인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사적인 것을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지 말래도 망하는 거예요.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에게 사정을 하고 아무리 뭐라고 해도 들어주지 않던 일도, 가족을 걸고 들어가고 아벨을 중심삼고 나가는 입장에서, 가문을 두고 봐도 그럴 수 없고 과거의 인연을 보거나 미래의 인연을 봐도 그럴 수 없다고 하게 될 때는 남편도 옳은 말이라고 긍정할 것입니다. 누구나 그렇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불평을 할지 모르지만 내심으로는 '그래 당신 말이 맞다. 체면상, 위신상 이럴 뿐이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다 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이고 자식이고 뭣이고 다 밉다'고 해보라는 거예요. 누가 동정하나. 그렇게 한 번 하면 틈이 벌어지고, 두 번 하면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공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눈물을 흘릴수록 한 번 하고 두 번 해도 그것은 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하면 다 못 한다고 뛰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그런 아내를 바라보며 '아, 고생하는구나. 나보다 낫구나' 하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포부를 가지면 현실을 극복할 수 있어

내가 어제 저녁에 정명환씨를 만났는데 그 양반이 자기 부인을 떡- 칭찬 하는 거예요. 여자로서 아주 멋진 여자라는 것입니다. 지금 나이가 40을 넘고 아들딸이 일곱이나 되는데 대학을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처녀 때에 못한 공부를 지금은 처녀들보다 더 잘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고 탄복했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겠어요? 살림살이를 제쳐놓거나 남편을 등한시하지도 않고 할 일을 다하면서 학교에 다닌다는 거예요. 아주 만능이라는 거예요. 나도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자기 아내를 칭찬하는 것이 처음인지 모르지만 그거 굉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 저 남자는 행복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여자가 지금 공부해서 뭐 할 것이냐 했다는 거예요. 돈이 없나, 아들딸이 없나,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데 왜 공부하느냐고 했다는 거예요. 잠도 하루에 몇 시간 안 잔다나요. 저렇게 고생이 막심해 가지고 어떻게 사나 했는데 노력하는 걸 보니 희망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희망은 뭐냐? 한국 여성으로서 미국에 가서 미국 대학의 교수가 되겠다고 한다는 거예요. 이런 얘기를 들을 때, 현실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는 미래의 포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해 나가는 과정에서 현재의 환경은 극복되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둘이 싸우는 것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출세하니까 아내가 업신여김받던 것을 복수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면 어느 남편이 동정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남편의 길을 열어 주고 '앞으로 한국 여성의 권위를 세계에 자랑하자'는 관점에서, 그런 사상적 토대 위에서 그러면 남편이 비록 아내에게 말은 하지 않아도 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사랑의 치리권

그러면 이런 원칙은 어디서부터 세워야 되느냐? 오늘 이 현실에서부터 세워야 합니다. 현실이 중요하니 현실에서 훈련해야 되는데 어떤 자리에서 훈련해야 되느냐? 지금 있는 자리보다 나은 자리에서? 그것은 누구나 다 바라는 것이지만 아무 가치도 없는 거예요. 거기에는 중심이 될 수 있는 내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디를 점령해야 되느냐? 참사랑만이 치리하는 치리권을 완전히 점령해야 됩니다. 그 참사랑의 치리권을 정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첩첩 방위선을 거치고 수난을 극복하고 나서야 가능합니다. 또한, 그 수난을 감수할 수 있는 스스로의 입장이 결정된 현재의 터전을 갖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통일교회의 갈 길, 통일교회의 현재 입장을 두고 볼 때, 통일교회가 이 세계의 역사과정에서 미래의 주인으로 군림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개인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개인의 자리보다 나은 자리입니다. 세계 30억 인류의 개개인보다 조금 나으면 개인적인 미래의 주인이 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주인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조금 나으면 가정적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넘어서 종족, 종족을 넘어서 국가, 국가를 넘어서 세계적 주인으로 군림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에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비참한 역사과정을 거쳐서 남아 가지고, 그 비참한 역사를 비참으로 소화시킬 것이 아니라 영광으로 소화시켜서 승리의 요인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확고부동한 현실적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지 않고는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우리 통일교회 간부면 간부들을 보면서 '어느 한때에 어떤 사람이 될까?' 하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결정적인 사람은 좋은 자리에 가기를 원해도 한번 걸려 나갔다 하면 제일 골짜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때 거기에서 탄력을 발휘해 가지고 뛰어오를 수 있어야 합니다. 올 때가 드디어 왔다고 생각하고 탄력을 발휘하여야 합니다.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탄력은 발생하지요? 현실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야 이거 됐구나. 내가 직접 될 수 있는 최후의 찬스다'고 하며 밟고 올라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점핑한다는 것입니다.

핍박을 받을 때에 '아이고!' 하고 주저앉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못 견디고 '아이고!' 하면 그만이예요.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요즘 통일 교회 교인들 가운데 핍박을 받으면 '아이고! 못 견디겠다. 아이고! 야단났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냥 '아이고!' 하는 것과 고개를 들고 이를 물고 '아이고 하나님!'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전자는 망하는 것이요, 후자는 하나님이 무엇이든 들어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들어준다구요.

오늘날 선생님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모르는 가운데 언제나 기수의 입장에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야 됩니다. 지금도 개척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선생님은 편안하게 차를 타고 다닌다고 하는데, 외적으로는 점점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환경을 갖추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심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그 범위를 달리한 면에서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세계를 넘을 수 있는 내용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보고 '선생님은 왜 저럴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고생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고생하는 게 뭐 있나? 우리는 보리밥을 먹고 굶기도 하는데 선생님은 이밥에 고기를 먹고 살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극복해야 할 현실적 터전이 미래에 극복의 원인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미래에 다가올 시련 도상과 현재의 시련을 비교해 가지고 미래의 시련을 견디어 나갈 수 있는 현실의 터전을 남겨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통일교회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시련을 스스로 깨고 나갈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외로운 것입니다. 단판으로 하면 심각한 자리라구요.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가야 됩니다.

여러분도 신앙생활하는 데 닥치는 일이 많지요? 큰 책임자가 됐다고 언제나 웃을 수 있고, 언제나 하나님이 같이하는 줄 알아요? 천만에요. 최후의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후퇴하고 사탄이 기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갈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최후의 그 순간에는 누가 결정짓느냐?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조심스럽게 비판하고 사탄도 비판하는 것입니다. 믿어야 할 하나님도 비판하고, 믿지 못할 사탄도 하나님의 입장에 세워 놓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비판해서 가려내야 되는데 이것이 쉬운 일이겠어요? 그런 일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가 비약할 수 있는 때가 온다

하나님께서는 통일교회를 한계점으로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국가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국가를 중심삼고 움직일 때까지 우리는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맨 밑창에서 공고한 터전을 닦고 점핑할 때까지 있을 것입니다. 그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내가 요즈음 어떤 말을 듣느냐 하면, 지방에 있는 지역장 지구장들이 서울에 왔다가 돌아가면 선생님 안녕하시냐고 나의 안부를 묻는 기관장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거예요. 뭔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달라지긴 뭐가 달라집니까? 외형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기관장들이 문선생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가지고 선생님의 안부를 묻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이 많아진 것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통일교회가 점핑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뛰려고 하면 환경적으로, 외형적으로 모든 조건이 전부 다 갖추어진다는 거예요. 즉 내적인 면에서는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1차에 복받을 수 있는 때를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제1차에 복받을 수 있는 여건을 양보하고, 제2차에 복받을 수 있는 것도 양보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3차는 양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귀역사입니다. 하나님도 제1차, 제2차를 사탄에게 양보했지요? 그러나 제3차만은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3차는 어떠한 때냐? 전체의 운명을 결정짓는 때요, 완결하는 때입니다. 그렇게 돼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나오셨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이 성공하기 위해서도 '이것도 네 것, 저것도 네 것'이라고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1차, 제2차는 식구들에게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 문선생도 오늘날 통일교회 간부들을 누구보다도 영광된 자리에 내세우기 위해 노력해 나왔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것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한 사람을 대해 가지고 한 생명을 책임지고 밤을 새워 가면서 말해 주던 그 사람이, 수십, 수백, 수천의 무리가 앞에 등장했을 때 정성들여 가지고 자기의 모든 소신을 피력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런 자리에는 될 수 있는 대로 식구들을 내세우려고 합니다. 제1차, 제2차까지는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 작전을 하는 거예요.

어떤 때에는 선생님이 참 기가 막힌 일을 많이 당합니다. 자기를 위해서 내세웠는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을 이용하려고 하는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 보라는 거예요. 아무리 선생님을 이용하려고 뱃심을 부려도 못 이룰 것입니다. 이렇게 돌아가면 여기에 오는 것이요 이렇게 돌아가면 여기로 오는 것인데, 그것을 스톱시켜야 하는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때가 되면 일시에 부딪치게 됩니다. 이용해 보라는 것입니다. 부딪쳐 봐야 옳고 그른 것을 판정할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때 이 과정을 지나가려면 피해가 많다는 것입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재미가 있다는 거예요.

어떤 때에는 부장 등 간부층에서 선생님을 찾아와서 잘못하면 뭐 어떻고 어떻고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거기에 안 말려들어 갑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런 데에 말려들지 않아요. 관(觀)이 딱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입장에서 그 누구의 침범도 받지 않습니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재의 입장을 잃어버리는 사나이가 되지 않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입장입니다. 현재는 무자비하다는 거예요. 가정생활에서나, 교회생활에서나 무자비하다는 거예요. 이런 가운데에서 현재의 입장을 잃지 않고 나가고자 하는 것이 선생님의 입장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내일의 주인은 어떤 모습이냐? 통일교회에서 바라는 내일의 주인은 어떤 자리에 서는 사람이냐? 대한민국에서 드러나는 자리에 선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걱정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에서의 승공운동

이번에도 일본이 친중공 정책을 펴는 데 대해 구보끼 협회장을 세워 가지고 단식투쟁을 하며 적극적인 반대를 하게 했습니다. 수백 명이 단식투쟁을 한 것입니다. 일본 국민들은 그것을 보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미친 것들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뭐 미욱한 녀석들이라는 평을 받아도 괜찮습니다. 약삭빠르고 눈치빠른 사람, 여기에 알랑거리고 저기에 알랑거리는 사람은 충신이 아닙니다. 칼을 뽑았으면 그 칼을 다시 집어넣지 않고 죽을 때까지 지니는 사람이 충신입니다. 통일교회가 승공활동을 시작했으면, 중공의 정세를 봐 가지고 싹 작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이적(異蹟)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은 일본 승공연합에 명령했습니다. '단식하라, 죽어라'고 말입니다. 이 바람에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대만 정부가 승공연합에 완전히 목이 매였습니다. 장개석 총통이 구보끼 협회장 앞에 완전히 걸려든 것입니다. 장개석 총통은 멀지 않아 망명해야 되는 운명에 놓여 있었는데 '그때 우리가 당신을 책임지겠다'고 하며 제반적인 문제를 제시하니까 거기에 완전히 걸려든 것입니다. 그리하여 20분만 만나려고 했는데 아내와 함께 와서 한 시간을 넘게 통사정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가 단식하는 것에 대해서 일본 정부는 냉정한데, 대만에서는 매스컴을 총동원하는 관심을 보였습니다. 반일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가 친중공정책을 펴는 데 대해 반대하는 것은 대만 정부가 무엇보다도 바라는 것인데, 일본내에 그렇게 하는 단체가 있다는 것은 대만 정부에게는 메시아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건을 만들어 가지고 대만 정부에 공문을 보내고, 세계적인 이념과 사상을 만날 수 있는 길을 닦아 가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가 안 하니까 구보끼 협회장이 그렇게 하고 와서 보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보끼가 그 나라에 이름난 사람들을 만나 가지고 아주 잘먹고 큰 대접을 받고 다녔다는 거예요. (웃음) 그렇게 내가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웃음)

이렇게 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재료를 전부 다 수집해 가지고 함정을 파는 것입니다. 구보끼는 와클(WACL)대회의 의장입니다. 이제 7월대회에서도 구보끼 의장을 강력히 밀어 주어야 됩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선전포고해 놓고 '꽝' 머리 꼭대기에 폭탄을 퍼붓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수십개 국의 전직 수상 혹은 현직 수상들을 만나 가지고 '우리는 한국을 위해서 이렇게 단식투쟁까지 하고 있소'라고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와클대회에 온 사람들은 '아!' 하고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의 세계적인 반공전선에 대한 자세를 제시했다. 보다 높은 데로 승화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생명을 내걸어 놓고 7일 금식투쟁을 했다. 반공전선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개인이 사선을 넘는 것을 감수할 수 있는 사상적인 자세를 공고화해야 된다. 그래 가지고 세계적으로 젊은 층을 중심한 반공체제를 결성시켜야 된다. 이것이 지금까지 의장으로서의 와클대회에 대한 견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이 많은 사람으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런 단체를 만들어 가지고 '나는 미래의 반공 전선에 대비하기 위하여 젊은이를 길러 가지고 이렇게 해왔다. 이러한 것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 국제승공연합이다'하고 선전하는 것입니다. 또한 '총회에 참가한 여러분은 앞으로 이 단체를 기억하고 이들이 갈 수 있는 길을 후원해 주시길 바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배후가 되셔서 세워진 단체의 의장된 책임을 하는 것입니다. 또 그래야만 위신이 세워지지 않겠습니까? 이래 가지고 꼭대기를 딛고 올라설 수 있는 재료를 갖추어 가지고 선두에서 퍼붓는 것입니다. 이때는 일본의 기시 전 수상도 찾아가야 됩니다. 실행위원장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한 방에서 서로 대하게 됨으로써 '아, 구보끼가, 일본 사람이 결국 세계의 모든 코장이들을 때려잡으려고 이렇게 치니 이 얼마나 시원한가!'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계획된 것입니다. 그러니 안고 환영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일을 해봐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입장이 얼마나 비참하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보고를 듣게 될 때 사흘, 나흘, 닷새, 엿새를 지나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일주일 동안 매일 공공단체에 다니며 선전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선전에 너무 치중하다 보니 대회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해요. 그래서 대회에 신경을 쓰라고 했습니다. 그 일을 하다가 다리를 다쳤는데도 세계를 위해서 하는 일이니 열심히 하라고 했습니다.

이번에 구보끼는 자기들끼리 이 대회를 해 가지고 선전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받더라도 세계를 걸어 놓고 양심의 가책을 받고, 고민을 하더라도 세계를 걸어 놓고 고민을 하라는 것입니다. 일본이 문제가 안 됩니다. 세계로 갈 포부를 갖고 나가는 개개인이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이거 안 되겠다' 하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걸어 놓고 맹세할 수 있는 적극적인 통일신도들이 된다면 통일교회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다르냐? 일본내에 정치적 측면에서 반공을 반대하는 무리가 아무리 세력이 있고 배포가 있어도 행동하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행동을 해야 되는 거예요. 이번 대회 바람에 우리는 행동을 해 가지고 우리 편의 패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민당과 싸우는 것입니다. 지금 국제승공연합과 부딪쳐 가지고 겨루고 있지요. 일본에서 지금까지 반대하던 패들도 '일본에 있어서 이런 단체가 어디 있었느냐. 야! 대단하다. 우리 보다 낫지 않느냐? 대관절 저들이 누구를 위해서 일하느냐? 저 단체가 이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해 움직이고 있으니 얼마나 가치 있는 단체냐? 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 망할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 선전 재료가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현재의 정세로 봐서 우리가 미욱하고 어리석은 자들이지만 우리의 실속을 두고 볼 때에는 거기에 성공의 터전이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싸우고 나서 실패한 것 같지만 승리한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서부터 현재의 입장이 그런 과정을 거쳐 가지고 하늘의 섭리라든가, 국가의 운세라든가, 세계의 운세는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발판으로 전진하는 것이 역사의 발전과정 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원리를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저명한 사람들에게 이것을 통고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날 이 나라의 중요한 일, 국가의 금후가 걸린 선거 이후의 후유증을 어떻게 해결지을 것이냐? 새로운 내각을 편성해 가지고 어떤 입장을 어떻게 제시할 것이냐? 이것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말일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누구나 다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한다' 하는 말을 하고, 그런 사상을 가지고 희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비참한 자리에서 승리가 결정된다

통일교회는 지금 누구도 모르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누구도 모르는 현재의 입장을 중심삼고 세계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선구자적인 사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에 이런 움직임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미래의 세계가 어디서부터 형성될 것인가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좋은 철학사상이라 해도, 그 철학사상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조직을 이루어 실천하는 운동으로 승화 되지 않으면 그것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자기 일개국을 중심삼고 움직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일개국을 희생하더라도 세계의 행복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지금까지 희생해 나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두고 보면 순교의 역사입니다. 그 순교를 시시한 꼬라비 신도들이 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심이 되는, 머리가 되는 신도들이 순교를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기독교는 세계를 상속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건 자동적으로 되게 되어 있지요. 그러지 않았으면 하나로 남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합니다.

통일교회도 이와 마찬가지의 입장이니 대한민국에서 제일 수난길을 가야 되고 세계에 있어서도 수난의 첨단을 가서, 그 수난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기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영광이 통일교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의 것으로 옮겨지게 하기 위해, 현실적인 기반을 상실하는 자리, 아무리 비참한 자리라 해도 그 자리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현재에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주인의 자리를 상속받을 수 있는 터전이 되면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두고 볼 때에 내일의 주인은 현실적 기반 무대에서, 공적인 입장에서, 수난을 받는 자리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수난을 받는 동기는 무엇이냐? 세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 대가와 결과를 현실에서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미래에 남겨 주기 위해서, 현재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그러한 현재의 환경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미래의 주인이 설정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앞으로 교회에서 움직이는 일에 보다 충실하길 바랍니다.

여러분 보세요. 1970년대에는 1960년대보다 더 비참한 명령을 해야 됩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을 거예요. 지금까지는 가정을 가진 부인들만 동원시켰습니다만 조금 넘어가면 주부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들딸까지도 동원해야 됩니다. 아들딸이라고 그냥 갈 수 없습니다. 아들딸이 앞장서야 됩니다. 아들딸이 열 살밖에 안 됐으면 '지금 열 살이지만 1970년대 말쯤 되면 스무 살이 되니 활동할 수 있다. 어서 먹고 빨리 자라거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정 사위기대를 동원해 가지고 만민을 위해 괴나리봇짐을 지고 피난민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전쟁이 나서 적에게 쫓겨 한 곳으로 몰려 가는 피난민 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한 은혜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 보따리를 싸 가지고 세계로 떠나는 피난민 형태가 벌어지는 날에는, 세계가 우리 앞에 점령당할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므로 통일교회에서 가정적 사위기대, 즉 아들딸 며느리까지 동원하지 않으면 끝장이 나지 않을 것이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그래야 사위기대 복귀를 위한 탕감이 완결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 원리적 견해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런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에 가만히 보면, 교회가 어려우니까 '선생님이야 책임을 완성한 세계적인 분이니 선생님의 어려움은 난 모르겠소. 우리 교회가 어려우니 도와 주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주 당당해요. 좋지 않은 풍조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효자라면 도와주겠다고 해도 꽁무니를 빼며 싫다고 할 텐데, 떡은 줄지 말지 한데 김칫국부터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동기가 되어야지 자기들이 동기가 되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어떤 지역장이 도와 달라고 찾아왔는데 남자가 참 딱하지요. 아이쿠 큰일났다고, 이제는 망했다고 왔어요. '그래서 망해라 이 녀석아!' 하고 보냈습니다. 누가 동기가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주는 데도 원칙이 있는 거예요. 선생님이 피동적인 입장에서 달라면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피동적인 입장에서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 대신 주동적인 입장에서 심각하게 하는 사람이예요.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한때 해먹고 보따리를 짊어지고 후퇴하는, 임기응변해 가지고 한몫 보겠다는 사나이가 아니예요. 심각하다는 거예요. 선생님 이상 심각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심각해 봤습니까? 자기 자식의 배를 째고 자기 아내의 배를 째서 제사지낼 각오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까지도 하늘 앞에 제사 드릴 수 있는 각오를 해 봤느냐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천태만상으로 그냥 남겨 놓고, 하지 못할 것을 하나님 앞에 간구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선생님도 개인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놓고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공장 문제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한 5년 동안 정성들였는데, 그 정성들인 것은 틀림없이 이루어지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바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기에 창조주 하나님 앞에 정성들인 것입니다. 내가 정성을 들이면 어떠한 기업주 이상의 철석같은 정성을 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하는 확고한 결론 밑에서 지금까지 정성들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금년에 와 가지고 다 맞아떨어졌습니다. 과정에서는 별의별 부작용도 많았습니다. 뭐가 어떻고 어떻다는 말도 많았어요.

여러분, '행차 뒤에 나발'이란 말이 있지요? 통일교회 무리는 행차하는 가운데에 나발을 불어야 할 텐데, 이미 행차한 후에 '아이쿠, 잘못했습니다' 하고 나발을 분다는 것입니다. (웃음) 생각해 보세요. 지금까지 선생님이 소수의 통일교회 무리를 이끌고 사방으로 망하는 운세권, 망하는 세계권내에 에워싸여 있었는데도 망하지 않고 이만큼 뚫고 나왔습니다. 사실은 여러분 개인의 간단한 생활과는 다릅니다. 언제나 심각합니다. 선생님은 원리적 조건에 걸릴 것 같으면 죽어도 안 합니다. 절대 안 한다구요. 천하가 다 반대해도 밀고 나갈 수 있는 안팎의 사정을 딱 감아 쥐고 밀고 나갑니다.

재미있는 것은 통일교회의 간부들 가운데는 멍텅구리가 많은데 외부에 있는 영통하는 사람들은 통일교회 간부들의 자리를 노리고 자꾸 선생님한테 접근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름까지 대면서 '지금 누구누구가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고 합니다. 세밀하다는 거예요. 앞으로는 그럴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도 문지기를 알지요? 앞으로는 총 들고 눈을 부릅뜨고 지키는 문지기는 필요없습니다. 눈 감고, 보지도 않고 다 아는 문지기가 생겨날 거예요. 들어올래야 들어올 수 없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녀석, 네 조상은 어떻고 어떻지' 하며 배경까지 꿰뚫어 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남아져야 할 곳은 과거의 승리의 요인을 빛낼 수 있고 미래의 승리적 여건을 제시할 수 있으며 현실에 있어서 승리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리인 것입니다. 이 자리는 여러분이 망상하고 바라는 가상적인 자리가 아닙니다. 피가 흐르고 죽음이 뒤넘이치는 비참한 자리에서부터 이 자리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 현실을 직시하고, 그런 현실의 있어서 건설자가 되어, 그런 현실에서 자기 스스로 정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축수를 드릴 수 있는, 거기에서부터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미래에 그런 역사를 맞이하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라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1971년도는 역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해라는 것을 통일교인 전원이 알고 있는 줄 아옵니다. 아버지, 이 3년노정이 얼마나 중하다는 것을 아는 저희가 1972년까지를 한계점으로 볼 때에 1971년도가 더욱 귀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님, 저희들은 내일의 주인이 어떠한 사람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 사람은 오늘에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고, 오늘에 웃고 춤추는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비장한 자리에서 남들이 잠든 깊은 밤에도 낮과 같이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해 싸워서 대낮의 승리를 다짐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그러한 자리에 서지 못하면 아버님이라도 그와 같은 자리에서 책임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옵니다. 효의 도리와 충의 도리를 배우고 있는 저희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밤이나 낮이나 생애 전체를 바쳐 가지고, 심각한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생축의 제물로 바치기 위하여 아버지 앞에 맹세하고 나선 길이오니, 아버지 앞에 잊을 수 없는 인연을 안고 가는 통일교회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 이들이 어슴푸레나마 마음으로 느껴서 알았을 줄 아옵니다.

과거에 아무리 자랑할 수 있는 날이 있었다 하더라도, 아무리 미래의 소망을 크게 가졌다 하더라도 현실에 있어서 아버지께서 얼굴을 돌이키게 될 때에는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과거보다도 현실에 소망을 다짐할 수 있고 미래보다도 현실을 중요시할 수 있는 오늘의 이 자리가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내가 행하는 행동이 전진하는 모습이 되게 될 때, 그 앞에 누가 복병처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를 두고 보면, 친구들이 기쁜 미소로 환영하며 맞아 주는 자리보다는 원수들이 총칼을 가지고 나를 습격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자리, 그 자리를 책임지고 그 자리를 홀로 해결하기 위한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행복하냐 할 때, 비참하고 심각한 자리에서 결정적인 생명을 아버지 앞에 내놓고 가는 그 사람이 행복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을 위하는 입장에서 돌이켜 볼 때에, 그러한 사람이 아버지의 마음을 이끄는 자요, 아버지의 심정을 감화시키는 자인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통일교회를 사랑하시거든 통일교회 자체만을 사랑하지 마시옵소서. 통일교회를 사랑하기 전에 세계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되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이 세계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이 세계를 사랑하는 아들의 사명을 다하여 세계가 기쁨을 맞을 수 있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하늘 앞에 제물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는 세계를 대한 아버지의 기쁨이 소생될 수 없다는 역사적인 탕감노정을 아는 저희들은, 교단 전체를 아버지 앞에 바칠 그날을 바라보며 나가야 되겠습니다.

하나의 통일교단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버지의 소원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든지 타락의 운명을 거쳐 나가야 할 탕감노정의 대가를 교단을 걸고라도 치르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기 때문에, 통일교단의 역사는 눈물의 역사 였고 고난의 역사였고 한숨의 역사로서 피어린 교차로에서 신음하는 역사였지만, 사탄이 물러가고 당신이 같이하셨기 때문에 한할 것이 없사옵니다.

일생에 천만 개의 흠을 남기는 한이 있을지라도 그 흠이 나의 생애에 탄식으로 나타날 것이 아니라 역사상에 영광의 무리로서 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런 아들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수고하신 역사적인 입장을 대변시킬 수 있고, 아버지와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아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끌려가는 무리가 아니라, 사탄이 굴복하고 아버지 앞에서 모셔 드리지 않을 수 없는 아들이 되었다고 칭찬하는 한날을 갖추어 드릴 수 있는 아들과 딸이 통일교단 가운데에서 많이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생애를 바쳐 투쟁해 온 결과로 오늘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때로는 아버지 앞에 몸부림을 치기도 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가슴이 에이는 한을 품은 때도 많았습니다. 하오나 아버지의 한이 저희의 한보다 더 큰 것을 알게 될 때, 그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할 통일교단은 매를 맞고도 웃어야 되겠고 버림을 받고도 도리어 아버지를 위로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버림받게 한 무리를 대해야 하는 아버지의 분한 마음을 풀어 드려야 할 입장에 있는 저희는 비참한 모습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울고 나서도 웃어야 하고, 웃고 나서도 회개해야 하는 엇갈리는 생애노정을 거쳐가야 하는 비참한 운명길이 복귀의 길인 것을 생각할 때, 그 역사를 탕감하여야 할 통일교단의 사명이 남아 있음으로 말미암아 여기 있는 아들은 그런 생애를 피해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당신 앞에 나설 적마다 눈물 없이 아버지의 처지를 생각할 수 없고, 한을 품은 아버지이심을 알았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흘리지 못했던 눈물을 다 흘려 버리고 아버지께서 바라보시고 이 세계를 위해 울지 말라고 위로해 주실 수 있는 아들이 될 그때까지 환난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엄청난 뜻을 알았기 때문에 그날이 아직 오지 않았거든 그 책임을 아버지 앞에 지을 수 없사옵니다. 때문에 모든 십자가의 고난길을 스스로 넘어 가지고 당신 앞에 나아갈 통일교단의 앞날을 당신께서 긍휼히 보시는 것을 생각할 때, 이것도 황공한 일이옵니다.

부디부디 당신의 승리의 한 나라를 찾으시어서 당신이 수난길에서 당하신 원한들을 다 풀어놓고,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사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승리의 아들과 딸을 거룩하신 품에 품으시옵소서. 천세만세 축복의 요건을 다 이루어 드리고 이제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승리의 선포식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 통일교단을 이끄는 이 자식의 소원인 동시에 당신의 소원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세상의 갖은 추악한 말,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저희 앞을 가로막더라도, 하나님이 죽었다고 하는 불효막심한 세계의 현상을 바라보시는 아버지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몸을 가누어 가지고 당신 앞에 효성을 해야 할 무리는 저희들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오니, 이 자리가 그야말로 심각한 자리요 그야말로 기가 막힌 자리인 것을 여기에 모인 이들이 뼈에 사무치도록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침에 뜨는 해를 바라보게 될 때, 여전히 그 햇빛을 소망하는 나 자신이 되었습니까? 당신을 바라볼 때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살지 못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당신의 사랑권내에서 예수와 같이 장담하면서 살 수 있는 해방의 무리요, 영광된 세계의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보게 될 때, 하늘을 대신하여 충성하는 무리가 되지 못한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내일의 주인'이라는 이 말을 중심삼고 우리의 가슴 가슴에 무엇을 남겨 놓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저희 자신들이 비탄하기에 앞서 당신의 서러운 심정을 알게 해주시고, 저희들이 외로움을 느끼기에 앞서 당신의 불쌍함을 느끼게 해주시고, 또한 자신의 슬픔을 생각하기에 앞서 당신의 슬픔을 체휼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6월 6일, 이 6수는 사탄수라는 것을 저희들이 생각하게 될 때, 이수를 넘는 이날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내일 모레는 전국에 있는 목사들을 모아서 공청회를 갖게 되겠사오니, 이 모임이 통일교단에 있어서 인간을 맞는 기쁨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7월까지, 아니 이달까지 기성교단을 대해 통일교회의 이 아들이 책임을 다함으로써 하나의 고비를 넘어야 되는 것을 당신은 잘 알고 계시옵니다.

기독교와 유대교가 지금까지 2천년이라는 역사과정을 거쳤습니다. 하지만 유대인 가운데에 기독교인은 10퍼센트도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러한 역사과정을 지켜 보시는 예수님도 아직 한을 풀지 못하고 있을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런데 통일교단은 수십 년 역사과정을 통하여 기성교회가 찾아올 수 있는 인연을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이는 역사적인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생각되옵니다.

저희들을 불쌍히 보시는 아버지의 숨은 공로로 말미암아 영광의 한날이 저희 앞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저희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펼 수가 없사옵고 고개도 들 수가 없사옵니다. 겸손히 승리의 한날을 내세우고 그 자리에 이끌림을 받아, 아버지께서 참된 아들의 모습, 참된 딸의 모습이라고 선포하고 선언할 수 있는 그날을 바라는 겸손한 아들딸들이 통일교회 식구들 가운데에 많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일선에 나가 싸우고 있는 당신의 어린 딸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이 닿는 한 아버지께서 그들 앞에 정성을 더하여 주시옵고, 그들의 아들딸과 그들의 가정을 지켜 주시옵소서. 기필코 망하지 않는 무리가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끝까지 참아서 남아지는 가정이 될 수 있게끔, 아버지,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해외에 널리어 선교의 사명을 하며 이국(異國), 이민족(異民族) 앞에서 처참한 생활의 인연을 갖추면서도 스스로 아버지의 수고를 생각하고 아버지를 위로하고자 몸부림치는 그들의 행로에, 살아 계신 아버지를 입증시키고. 이들이 망하지 않을 무리인 것을 상기시킬 수 있는 인연을 나타내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내일의 주인이 이 자리에 있노라고 아버지께서 보장하고 저희들이 입증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기 도]

아버님, 저희들 아버지 앞에서 저희 자신들을 회고해 보면서, 뜻을 안 자체로서 기도하는 한 때와 한 일을 결정짓기 위하여 모인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부족한 저희를 거느려 나오신 아버지, 아직까지 저희의 주위에는 안팎으로 어둠의 요소와 타락의 인연이 둘러싸고 저희들을 결박하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저희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아버지께서 얼마나 수고하고 계신가를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살다가 갈 것이 아니라 하늘이 가는 길을 따라가고, 하늘과 더불어 일하고, 하늘과 더불어 살고, 하늘과 더불어 싸우고, 하늘의 뜻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태어나 그렇게 살다 가야 할 자신들인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습관적인 생활을 그냥 그대로 하다가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역사 속에 매장되는, 혹은 이 시대의 하늘 앞에 부끄러운 자리에서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이 세파를 거슬러 올라가야 할 무리이옵니다. 악한 세계와 대결하고 선한 실적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오늘날 통일교단의 사명이요. 통일교회에 속한 개개인의 사명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이 자리에 현현하시어서 저희들 개개인에게 묻고 요구하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깨닫지 못하거든 아버지께서 격려하시어서, 저희가 그 일을 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지를 스스로 깨닫고 느껴 오늘을 빛나게 하고 내일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부족함이 없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은 6월 들어 두번째 맞는 성일 아침이오니, 아버지여, 이 시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이와 같이 모인 것은 인간적인 그 무엇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하늘이 요구하고 인류가 요구하는,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참된 나라를 찾기 위함이옵니다. 나라가 없는 백성으로서 역사시대에 수난의 길을 면치 못하였던 저희들, 참된 나라가 없음으로 말미암아 하늘을 하늘로 모실 수 없었던 불쌍한 저희들이, 아버지여, 이제 나라를 찾아서 그 나라 앞에 엄숙히 자세를 갖추고 하늘을 모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신이 되었다고 온 천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것을 느낄 적마다 저희들이 넘어가야 할 고비와 저희들이 가야 할 길이 아무리 험할지라도 그것을 돌파하고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 개개인의 마음 마음을 아버지께서 일깨워 주시옵소서. 오늘 나 자신이 어떠한 자리에 있는가를 스스로 응시하면서, 하늘의 목적과 일치시키기 위하여 매일매일 적응해 나가는 자신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원하는 그 길을 향하여 달려갈 때 저희들은 늘 하늘의 짐이 되었고 하늘의 십자가가 되었사오나, 이제는 그러한 무리가 아니라 하늘에 힘을 가하여 주고 하늘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남이 가지 못하는 길을 스스로 가겠다고 결심을 하고, 남이 극복하지 못하는 수난길을 스스로 극복해 가는 자신이 되어야 되겠사오니, 그럴 수 있는 무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물론이요, 남한 각지에 널려서 이곳을 바라 보며 하늘의 은사를 고대하고 있는 수많은 무리들을 당신이 굽어살피시옵소서. 하늘의 인연으로 엮어진 무리이오니 이 시간에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생명의 인연을 갖춘 무리이오니 하늘을 향한 갈급한 심령과 간절한 사랑과 심정에 사무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 모인 무리들은 초초하고 초췌하고 보잘것없는 무리로되, 한 생명도 빠짐없이 당신의 마음에 깃들지 않을 수 없는 진실되고 참된 모습으로서 아버지 앞에 부복하여 이 나라의 해방과 이 세계의 해방을 위하여 온갖 정성을 들이는 통일성도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러한 통일교단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가는 길은 그 누구도 책임져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 나라를 아버지 앞에 세우는 것은 저희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 누구의 힘으로도 안 된다는 것을 느낄 적마다, 아버지 앞에 한 걸음 더 다가선 자리에서 자신의 책임을 추궁하고 아버지의 사정을 따질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내 사정을 따져 가지고 아버지 앞에 요구하는 무리가 아니라 하늘과 미래의 사정을 따져 가지고 내 자신 앞에 책임을 추궁하는 무리가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새로운 길과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기 위하여 복귀도상에서 몇천만 번 수난의 길을 극복하신 아버지, 어느 한 날 한시도 잊지 않으시고 그때와 그날이 오기를 고대해 나오신 아버지 앞에 부름을 받은 저희들은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역사의 흐름이 아무리 처참하고 역사의 물결이 아무리 험난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신임을 자각해야 되겠고, 당신 앞에 헌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남겨진 십자가와 수난의 그 모든 내용들을 생각할 때에, 체면을 세울 수 없고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조상의 후손된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당신 앞에 슬픔을 가중시켰던 선조를 가진 저희들이, 선조들로 말미암마 막혔던 담을 헐기 위하여 회개의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될 자신들임을 발견함과 동시에 현재에 가로막힌 이 세계의 모든 장벽들을 터 나갈 수 있는 하늘의 역군이 되고, 하늘의 기수가 되어 소망의 뜻을 향하여 달려가는 데 있어서 수 많은 민족이 우러러보고 수많은 무리들이 따라올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지도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저희들은 지친 모습으로 부족한 자신을 끌고 나왔지만 하늘을 저버리지 않은 자리에 있음을 감사드리옵니다.

저희들에게 바라는 당신의 소원 앞에, 좀더 강하고, 좀더 담대하고 좀더 진실된 자신을 봉헌해 드릴 수 있는 귀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고, 끊임없는 당신의 협조를 받을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남한 각지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온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그들의 서신 보고를 들을 적마다 당신이 같이하여 주실 것을 바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당신이 그들과 같이하시어서 내일의 소망의 천국을 향하여 나가는 데 있어서 하늘의 기쁨이 되고 하늘의 자랑이 되게 하시옵소서. 늘 아버지께서 같이하시어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고, 그 누구도 감당해 내지 못하는 일을 감당해 낼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부디 개개인이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여 민족 앞에 자랑의 조건을 남기고, 수많은 인류 앞에 자랑의 조건을 남길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모인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어린애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사모의 심정이 충천해야 되겠습니다.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 부모의 심정과 같은 심정에 사무칠 수 있는 그 자리를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의 입장에서 부모를 찾는 갈급한 마음이 저희의 마음 몸에 어려야 되겠습니다. 당신을 잃어버렸다가 찾은 기쁨으로 자기 자신의 환경을 잊어버리고 뛰놀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사오니, 당신이 역사적으로 소망하시며 찾고 싶어하신 무리가 저희들이거든, 이 시간, 당신께서 저희의 손과 목을 끌어안고 통사정할 수 있는 실체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를 찾아 나오신 아버지시여, 당신이 찾아 나오신 남자와 여자가 어떤 모습인가를 저희들은 모르고 있사옵니다. 당신이 찾아 나오신 가정이 어떤 가정인가를 저희들은 모르옵니다. 당신이 찾고 싶어하시는 나라가 어떠한 나라이며 세계가 어떠한 세계인가를 저희들은 확실히 모르오니 확실히 가르쳐 주시옵소서. 당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반응하며 당신과 더불어 하나된 모습을 대할 수 있는, 또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세계에 널린 자녀들이 이곳을 향하여 정성을 들이고 온 영계가 이곳을 주시하고 있사오니, 이 자리에 선 저희들이 부끄럽지 않은 당신의 자녀가 되고, 땅 위의 책임을 짊어진 자녀들로서 그 책임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를 은사의 분위기로 주관하여 주시옵고, 이날을 기하여 새로운 부활권을 찬양하고 생애의 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직접적인 주도와 권위로써 당신 앞에 엎드린 자녀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이곳을 바라보며 생명길을 고대하고 있는 무리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 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온갖 이름들을 아버지 앞에 봉헌해 드리오니 기쁘신 가운데 일일이 간섭하시고 지도하시고 일깨워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말 씀

이 세상에는 여러 나라들이 있습니다. 민족을 달리하고 역사적 배경을 달리한 수많은 국가들이 이 땅 위에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나라들은 민족이 다르고 환경이 다른 만큼 국가관이라든가 세계관도 다른 입장에서 각기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각 나라가 그러하듯이 각 나라에 살고 있는 개개인도 역시 그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보편적인 소망

한 개인을 두고 보면 개인의 가는 길이 있습니다. 개인이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위해 사느냐' 하는 문제를 안고 생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면 나라도 그 시대 앞에 어떠한 목적을 이루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두고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는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떠한 목적을 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떠한 목적을 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보다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을 중심삼고 사람의 마음은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성공하기를 바라는데, 자기에게 국한된, 자기의 행복의 요인을 해결해 주는데 그치는 성공을 바라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소망을 달성하는 것은 물론, 자기의 종족이 있으면 종족의 소망 앞에 하나되기를 바라는 것이요, 민족이 있으면 민족이, 국가가 있으면 국가가 자기가 가는 길에 보조를 맞추어 같은 목적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막론하고 소원하는 바입니다.

이와 같이 생각할 때, 어느누구든지 국가 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자기가 가는 길과 더불어 하나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가는 길이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목적과 일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에서부터 전체까지 나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나와 같은 동기를 갖추어 가지고 환경을 수습하여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난 사람이고 못난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누구나 바라는 소망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아침에 바라는 것도 낮에 바라는 것도 저녁에 바라는 것도 꿈 가운데 바라는 것도 온 세계가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 것입니다.

그러면 선이란 무엇이냐? 선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나만이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넘어서 가정이 기뻐할 수 있는 것이요, 민족이 기뻐할 수 있는 것이요, 국가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이요, 세계가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이 땅 위에 나타나면 나만이 알 뿐만 아니라 민족이 알아야 되는 것이요, 민족이 알 뿐만 아니라 국가가 알고, 국가가 알고 난 후에는 세계가 알고, 세계가 알고 난 후에는 하늘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만이 알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그 기쁨을 나에게 국한시키지 않고 나를 넘어 온 세계에 확산시키고자 하는 터전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터전이 형성되게 될 때 그 터전이야말로 선한터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적인 선의 터전으로 남아진 예수의 생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시대에 있어서 선하지 못한 입장에서 죽어 갔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선하다면 선한 실체로 죽어 간 그는 역사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현현해야 되고, 세계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그의 선하였던 기준이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늘땅에 선한 결과로서 나타나야만,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인생으로서, 선한 하나의 인격자로서 선한 세계의 터전을 중심삼고 살았다는 결정적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복귀섭리의 역사노정을 다시 한 번 더듬어 볼 때, 예수 그리스도는 그 길이 아무리 극복하기 어려운 수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선의 자체로서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선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환경을 새로이 정비하고 수습하여 전진적인 하나의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짧은 30여 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가 남겨 놓고, 그가 바라고, 그가 실천한 것은 역사적인 선의 터전으로 남아진 것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터전이 악한 세계에서 닦아졌기 때문에 그 시대에서는 환영을 못 받았지만, 그 길이 인류가 가야 할 길이요 인류가 남겨야 할 선의 터전이요 하나님이 세워야 할 선의 터전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가셨지만 그가 간 길과 그가 소망하던 것은 세계 인류의 마음 마음에 상속되어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바입니다.

예수는 갔지만 선의 터전을 중심삼고 그가 바라던 소원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무리는 모이게 된 것입니다. 그 모인 무리가 수를 가해서 이루어 놓은 것이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입니다.

이 기독교인들에게는 오늘날 이 세계에 예수님이 바라던 최종의 목적을 달성시켜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국가적 입장을 중심삼고 그 책임을 다했을 때에는 국가적 한계선을 넘어 세계적인 입장에서 책임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남아 있다면 하나님의 섭리권내에서 그 책임을 다하고, 그 한계선을 넘어 다시 하나님이 예수를 두고 소원하지 못하고 예수를 두고 약속하지 못한 제2의 소원과 제2의 약속이 있다면, 하나님이 그 소원과 그 약속을 이루어 달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인들에게는 섭리적 한계선을 넘어서 이루어야 할 선의 뜻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사명과 심판의 목적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가는 길 앞에는 끝날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끝날은 어떠한 날이냐? 예수님이 바라던 소망의 천국을 중심삼은 끝날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소망과 상충되고 예수님의 소망과 반대되는 입장에 있었던 세계, 국가, 민족이기 때문에 이들은 반드시 민족의 끝을 봐야 되는 것이요, 국가의 끝을 봐야 되는 것이요, 세계의 끝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의 끝을 보기 위해서는 수많은 국가들이 끝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요, 수많은 국가들이 끝을 보기 위해서는 수많은 민족들이 끝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요, 수많은 민족들이 끝을 보기 위해서는 수많은 가정, 수많은 개인들이 끝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이라는 것은, 세계적인 끝날이라는 때는 어떠한 때냐 하면 세계를 중심삼고 극복해야 할 때입니다. 과거에 예수님이 바라던 나라와 상충되는 나라가 지나가는 때입니다. 지나가는 데는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심판받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잘되었느냐, 못되었느냐 하는 것을 구별하여 잘된 것은 남겨 두고, 못된 것은 제거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잘된 것은 선한 편입니다. 이 선한 편은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의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것이어야 됩니다. 그런 내용이 아니고는 선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선은 가정의 선으로 연결되어야 되고, 가정의 선은 종족의 선으로 연결되어야 되고, 종족의 선은 민족의 선으로, 민족의 선은 국가의 선으로, 국가의 선은 세계의 선으로 연결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사람이 선을 중심삼고 공적을 세우게 될 때 그 공적이 세계성을 띠게 되면 세계의 역사는 망하더라도 그 공적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천운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그가 세웠던 공적의 터전은 민족을 넘어 세계의 중심으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역사적 과정에 남아진 성현들의 실적인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이 오면 올수록, 이 세계가 현재의 사망세계 자체로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찾을 수 있는 그런 무엇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세계를 수습하고 청산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계가 바라는 것보다 못한 선이 아니라 이 세계가 바라는 것보다 고차원적인 선의 터전을 중심삼고, 세계는 없어지더라도 결코 없어질 수 없는 가치의 내용을 지닌 선에 의해 세계는 반드시 수습된다는 것입니다. 그 수습되는 과정에 있어서 필요요건이, 선악을 분별하기 위한 필요요건이 바로 심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가 해야 할 책임과 이루어야 할 목적은 무엇이냐? 어떠한 종파 자체가 바라는 소원을 중심삼은 목적보다도 전세계 기독교가 합하여 세계 인류가 바라는 이상의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망세계의 한계권내에서 남아질 수 있는 소원을 갖고 움직이는 기독교가 아니라, 그 한계선을 넘어 새로운 차원에서 하나님이 바라 시는 천국이념을 이어받을 수 있는 소원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선의 터전 위에 선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기독교 자체가 앞으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선의 터전에 설 수 없고, 심판받아야 할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가 가야 할 곳은 어디냐? 오늘날 장로교면 장로교 자체가 아닙니다. 감리교면 감리교 자체가 아닙니다. 어떤 특정한 종파의 이름을 가진 그 환경권내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종파를 초월하여 오늘날 사망권내에 있는 이 세계를 극복하고 세계가 희망하는 그곳을 향해 가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중심적 내용을 결정짓지 못해 가지고는 기독교의 소망의 터전은 남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머물 곳은 어떤 곳이냐? 우리는 오늘날 세계가 흘러가고 있는 역사의 환경권내에 머물 것이 아니라 이 역사를 초월하여 다가올 미래의 새로운 역사시대에 환영받을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기필코 사망의 세계와 결판을 지어 가지고 소망의 세계 앞에 보증을 받을 수 있는 실적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남아지는 무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소망의 무리가 되어야 할 통일교인들

오늘날 기독교의 통일을 표방하고 나온 이 통일교회가 하나의 종파로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간다 할진대 기독교 통일의 목적은 달성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통일이념을 갖고 나선 무리인만큼 세계의 수많은 국가를 대표한 기독교를 앞질러 나가고, 기독교가 찾는 세계가 이러이러해야 된다고 하는 것을 주장하는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수의 사명을 하지 않고는 기독교의 갈 길을 모색할 수 없는 것이요, 기독교의 생활 터전을 개척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여기에 모인 통일교회 교인들, 여기에 집합한 우리 자신들은 오늘날 역사권내에 국한된 사명을 짊어지고 모인 무리가 아닌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의 후손으로 태어나 타락권 내의 인연이 남아 있는, 타락한 세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인 무리가 아니라, 타락에 의해 맺어진 이 세계와의 모든 인연을 끊어 버리고 새로운 차원에서 하나님을 동기로 새로운 이념의 세계를 출발하기 위해 새로운 소원, 새로운 사명, 새로운 목적을 가지고 모인 무리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망의 골짜기에서 허덕이는 무리들이 '저들이 아니면 우리에게 소망을 가져다 줄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혹은, 수많은 기독교인들,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힘을 잃어버리고 아사상태에 있는 그들이 '저들과 같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할 수 있는 소망의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현재 아시아 전역을 대표해서 이 극난의 환경을 타파해 가지고 새로운 국가 이념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상황에 있는 대한민국, 부패의 일로를 걸어왔고 아직까지 부패의 요소가 남아 있는 실정에 있는 대한민국이 본받아야 할 통일교회의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결정적인 실체로 한 민족 앞에 나타나지 않고서는 앞으로 세계의 수많은 기독교를 통합하는 것은 물론이요, 세계를 수습할 수도 없을 것이 아니냐.

오늘날 시련과 환난에 부딪친 민족 앞에 통일교회가 제시할 것은 '아무리 시련과 환난이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남음이 있는 무리가 통일교회의 무리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모인 무리임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먹고 자는 것도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고, 내가 살아 있는 것도 이 목적을 감당해 내기 위해서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한 개개인이 되지 않고는 우리들이 바라보고 있는 이 세계의 종말시대에 심판의 기준을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가정 구원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 여기에 모인 우리 자신들은 개인의 구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인 무리가 아닙니다. 나 하나를 위해서 모인 무리가 아닙니다. 나 하나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모인 무리가 아닙니다. 나 하나의 편안을 도모하기 위해서 신앙길에 찾아진 무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찾아진 것은 대표적인 자리에서 선출되어 찾아진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민족이 살고 있는 이 땅 위에서 우리가 특정한 이 길을 남이 모르는 가운데 나섰습니다. 남이 환영하는 환경 가운데서 이 길을 나선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반대하는 환경 가운데서 이 길을 나서 가지고 오늘날까지 걸어왔다는 것은 그 환경과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임에 틀림 없는 것입니다.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길을 가고, 다른 환경을 이루어 놓기 위해서 출발했을 것임에 틀림없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목적으로 귀결을 짓고 만다면, 세상이 망할 때는 그 세상과 더불어 망하는 무리가 될 것입니다. 세상이 망하더라도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가는 길도 달라야 되고, 서 있는 환경도 달라야 되고, 목적도 달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과거의 신앙은 개인 구원을 목표해 나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자기 하나 구원받기 위해 신앙을 해 나왔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그런 신앙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합니다. 내용이 달라야 됩니다. '나 하나 구원받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나 하나의 구원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세계를 버리고 나서야 된다. 국가를 버리고 나서야 된다. 종족을 버리고 나서야 된다. 가정을 버리고 나서야 된다.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나서야 된다'고 하는 것이 지금까지 종교가 추구해 나온 길입니다. 그러나 오늘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이와 다릅니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버렸던 것을 되찾는 것입니다. 개인을 필요로 하는 것은 가정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가정을 필요로 하는 것은 종족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종족을 필요로 하는 것은 민족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민족을 필요로 하는 것은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국가를 찾는 것은 국가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국가 형성의 기본이 무엇이냐? 가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 구원을 목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가정 구원을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과거에 우리는 하나님과 종적인 입장에서 상대적 관계를 맺었지만, 오늘날 이 시대에는 종적인 입장에서만 상대적 관계를 맺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에게 한정된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은 나에게 한정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종적인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내가 주체가 되어 종적인 하나의 실체가 되고, 그 실체는 횡적인 하나의 상대적 터전을 결정해야 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신앙자들이 신앙생활을 해 나오던 것과 다른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일반 종교가 바라는 입장과 오늘날 통일교회가 바라는 입장은 판이하다는 것입니다.

사위기대는 원칙적인 심정의 터전

혼자서는 천국 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남성은 한 여성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아벨은 반드시 가인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렇듯 사람은 상대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되기 전에 형제의 상대적 기준을 갖지 않고는 복귀될 수 없다'는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만 믿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형제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되어야 되느냐? 통일교회 들어오기 전까지의 자기 생명을 죽이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될 수 있는 상대적 기준을 결정짓지 않고는 이 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의 출발점입니다.

하나의 남자는 반드시 하나의 여자와 더불어 가정을 형성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통일세계로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의 신앙자들은 가정을 버리고 갔지만, 버렸던 가정을 높은 차원에서 다시 찾아 가지고 새로운 터전 위에 승리의 가정으로 세우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의 가정이 형성되었다고 해서 그 가정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위기대를 형성하고서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위기대를 어디서 이루어야 되느냐? 이 지상에서 이루어야 됩니다. 어느 때 이루어야 되느냐? 자기가 죽기 전에 이루어야 됩니다. 그것을 이루지 않고는 국가를 맞이할 수 있는 국민이 될 수 없는 것이요, 세계를 맞이할 수 있는 인류가 될 수 없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천국세계를 맞이할 수 있는 천민(天民)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승리적 사위기대의 가정은 어떻게 이루어야 되느냐? 오늘날 소용돌이치는 이 역사의 흐름 가운데, 역사의 수난길에서 제거되고 그 수난의 환경에 포위되어 그 자리를 잃어버린 터전 위에 선사위기대가 아니라,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흐름을 새로운 차원에서 수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그 역사의 기틀이 되고 모체가 될 수 있는 터전 위에선, 확고부동한 입장에 선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됩니다.

이것을 중심삼지 않고는 타락한 세계관을 바꿀 수 없습니다. 이것이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이었습니다. 그 축복은 아담 해와가 기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담 해와를 넘어 역사가 지나가더라도, 수천만 년 흘러가는 역사와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 것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승리의 결정적 기준은 아담 해와뿐만 아니라 역사의 승리의 결정적 기준으로까지 이어져 세계 국가 형성의 결정적 기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뿌리가 되어 가지고, 장본(張本)이 되어 가지고 거기서 줄기가 나오고 가지가 나오고 잎이 나오고 꽃이 피어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이 원칙적 기준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도 분열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누가 아무리 분열시키려 해도 분열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인연은 갈라놓을 자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의 인연, 부부의 인연, 혹은 형제의 인연이라는 것은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부모의 혈육을 받고 태어난 형제 끼리끼리에 있어서 동생이 형을 대해서 '너는 내 형이 아니다' 혹은 형이 동생을 대해서 '너는 내 동생이 아니다' 하고 아무리 부정적 요건을 제시하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아무리 부정적 요건을 제시하더라도 천지간에 그런 요건이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자의 인연도 거기에 어떠한 힘이 가해진다 하더라도, 어떠한 권한이 그것을 타파한다 하더라도 깨뜨릴 수 없고 갈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인연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위기대의 원칙적인 심정의 터전이 아니냐. 그 심정의 터전이 침해를 받지 않는 한 심정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 심정과 더불어 연결된 부모와 자녀가 하나되고 형제가 하나된 그 표준이야말로 만세의 표준이 되는 것이요, 만국 형성의 기틀이 될 것이 아니냐.

원리의 가르침

하나의 형제가 있다면 그 형제는 반드시 서로서로가 이 공동 목적을 완결시키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형은 반드시 동생과 하나되어야만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 수 있는 것입니다. 동생은 형과 반드시 하나되고 나서야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들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종적 기준만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종적 기준을 중심삼고 대신자가 되어 횡적 기준에 종적 가치를 나타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은 이중의 목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목적과 몸의 목적, 즉 안팎의 목적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안팎의 목적이 하나되지 않고는 하나님이 임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창조원리의 가르침이 무엇이냐?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하나되지 않고는 영존할 수 있는 전통적 기준이 생겨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이걸 볼 때, 종적 관계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복귀원리를 보면,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는 부모를 맞을 수 없습니다. 사망세계에 끌려가는 운세를 박차고 돌아서려면 혼자서는 안 됩니다. 위로 하나님을 중심삼은 삼위신의 협조를 받아서 완전히 종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됩니다. 예수님과 성신과 내가 종적인 관계에 있느냐 할 때, '예수님과 성신을 위해 있다. 하나님을 위해 있다'고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종적인 기준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의 삼위기대, 즉 삼위신을 중심삼고 내가 거기에 하나되었다는 것은 종적 관계에 있어서 사위기대의 내적 결정을 이룬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그 결정만 가지고 되느냐? 그렇게 되면 나 하나만 있고 가정은 없는 것입니다. 나 하나만 있고 국가는 없는 것입니다. 나 하나만 있고 세계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나 하나밖에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반드시 횡적 기준에 있어서의 사위기대의 판도를 넓혀 놓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성신이 지상에서 살던 생활을 표준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살아가며 종적인 사위기대의 중심적 기준을 결정지었던 예수님의 생애는 승리적인 사위기대의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그러한 사위기대의 모델을 횡적으로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종족적 메시아라는 말은 형제적 기준을 넘어선 자리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가정적 터전 위에 선 자리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횡적인 대상을 갖추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건 왜? 내가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 섰다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이리하여 예수님의 대신자가 되고, 성신의 대역자가 되어 횡적인 자리에서 하나의 부활권을 만들어야 완전히 형제지간이 되는 것입니다. 부자 관계, 부부관계도 여기서 나오는 거라구요. 이것이 무엇이냐? 사위기대의 기틀입니다.

삼대상 목적이라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형제를 찾았다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이요, 신랑으로서 아내를 찾았다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이요, 부모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건 왜? 삼대상 목적이 바로 서면 사위기대가 이루어지고, 이것은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의 터전이 되기 때문에 전체가 완결됐다는 기준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구원의 도리, 타락한 인간 가인의 갈 길과 아벨의 갈 길을 가서 형제를 복귀해야 합니다. 그 형제 가운데에는 아담에게 아들딸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도 있는 것이요, 여자도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모두 형제로서 완전히 복귀된 자리에 서게 될 때 거기에서 새로운 부부의 인연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형제의 인연을 거치지 않고는 부부의 인연이 생겨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부부의 인연을 거치지 않고는 자녀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노정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의 인연을 거치지 않고는 부부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이요, 부부의 길을 거치지 않고는 부모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가인을 찾아 나가야 되느냐? 부부의 길을 찾아 나가기 위해서입니다. 부부의 길은 왜 찾아 나가느냐? 부모의 길을 찾아 나가기 위해서입니다. 부모의 길은 왜 찾아 나가느냐? 하나님이 가는 길을 찾아 나가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종적인 입장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횡적인 환경에서 벌어져야 합니다.

이와 같이 형제의 인연을 찾으려 하는 것은 부부의 길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요, 부부의 길을 찾으려 하는 것은 부모의 길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요, 부모의 길을 찾으려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길, 즉 하나님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완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은 나 개인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대표한 길이요, 세계를 대표한 길이요, 하늘을 대표한 길이 되어야 합니다.

복귀의 길은 일체를 부정하고 가야 하는 길

출발이 목적보다도 작아 가지고는 목적하는 곳까지 못 갑니다. 다시 말하면 동기의 내용이 결과보다도 충실하지 않고는 결과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사위기대의 원칙적 기준이 세계를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나간다면 그 기준이 지닌 가치가 세계적 가치보다 커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은 성경에 말하기를, '한 생명의 가치가 우주보다 크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를 거치지 않고는 하나님도 갈 길이 없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비로소 소원을 성취하고, 비로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출발할 수 있는 터전이 없어 가지고는 그 목적하는 세계는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출발할 수 있는 동기의 터전이 무엇이냐? 사위기대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집합한 우리들'인데,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여러분은 오늘 여기에 뭣하러 모였습니까? 여러분이 이곳에 모이기까지는 많은 반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세계가 가지 말라고 반대하는 것을 끊어 버리고 왔을 것입니다. 나라를 끊어 버리고, 종족을 끊어 버리고, 부모를 끊어 버리고, 형제도 다 끊어 버리고 왔을 것입니다. 다 끊어 버리고 왔다 이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은 외아들입니다. 단 하나밖에 안 남았습니다. 나만 남았습니다. 나만 남은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나만 남은 자리로 왜 하나님은 몰아넣어야 되느냐? 탕감복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렸으면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의 자리에 들어가서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서 잃어버렸느냐? 아담 해와에게서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아담이 둘이예요? 하나입니다. 해와가 둘이예요? 하나입니다. 나만 남았다는 것은 나 하나라는 자리다 이거예요. 남자로서 '나 하나다'여자로서 '나 하나다' 하는 그 자리에 나가야 됩니다. 타락함으로써 원치 않는 세계에 연결되었던 것을 딱 끊어 버려야 됩니다.

이것은 세계고, 이것은 국가고, 이것은 민족이고, 이것은 종족이고, 이것은 가정이고, 이것은 나입니다. 이러한 세계의 '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타락세계에 물든 것입니다. 이 국가권 보따리를 가진 '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타락세계의 국가에 물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이 민족이면 민족을 중심삼은 권내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타락세계의 민족에 물들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종족도 물들어 있고, 나 자신도 물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따르려거든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 이외의 다른 사람을 알아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일체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의 부모를 안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요, 너의 형제를 안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요, 너의 군왕을 안다고 해서도 안 된다' 는 것입니다. 전부 부정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여러분 자체가 타락권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 남았나이다' 하는 자리에 처하게 되는 이유

나만 남되 나 홀로 남아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나 홀로 남았더라도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엘리야가 바알신을 숭배하는 아합 왕한테 몰려 피난가서 할 수 없는 입장에서 '나만 남았다'고 탄식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굴하지 않은 7천의 무리가 있음을 일러 주셨습니다. 나만 남았지만 나 혼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가 있다는 것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무슨 말이냐? 나만 남은 자리이지만 나를 협조해 줄 수 있는 무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자체를 두고 볼 때도, 나만 남아 있지만 외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천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잃어버린 그 세계보다 나은 하늘 나라가 기다리고 있다는 거예요. 내가 바라보고 나오던 세상의 무슨 주권자면 주권자보다 나은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고 계시고, 내가 중요시하던 부모보다 나은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출발하게 되면, 내가 그리워하고 내가 사랑하고 싶었던 나라 이상의 것이 기다리고 있다 이겁니다.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버리는 것입니다. 모르고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분 자신들을 '나만 남았다' 하는 자리에 몰아넣는 것입니다. 그건 왜냐? 아담이 둘이 아니라 하나요, 해와가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세계권을 버림과 더불어 국가권, 민족권, 종족권…. 점점 버려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먼저 세계를 버려라, 요걸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라를 버려라, 민족을 버려라, 종족을 버려라, 나를 버려라…. 결국 '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 나는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이라면 나는 몸뚱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인이라면 나는 종이고,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나는 아들이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결국은 그거라구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무엇이 되느냐? 종이 아니면 양자, 양자가 아니면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될 것이 없습니다.

나만 남은 자리에서 이 관계를 못 가지면 망하는 거라구요. 죽는 거라구요. 나만 남은 자리에서 남아질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주체로 한 대상적인 입장에 서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절대적인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종이 되어야 절대적인 하나님의 일에 협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건 가당한 말입니다. '나는 부족하니 종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하늘의 수고로운 일이 있으면 '저에게 시키시옵소서' 해야 합니다. 복귀의 길은 딴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 홀로 인연맺는 것입니다. 둘이 인연맺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생겨날 때 둘이 인연맺나요? 홀로 인연맺는 거라구요. 부모를 중심삼고 홀로 인연맺는 거라구요.

하나님과 나와는 어떠한 관계냐? 하나님이 주체면 나는 대상입니다. 그런데 그 대상의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주인과 종의 자리입니다. 그 외에는 없는 거라구요. 그 외의 자리가 있다면 주인과 원수의 자리가 아니면 대상의 자리라는 거예요. 맨 처음에는 원수의 자리였지요. 원수의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서 그 놀음을 하는 거라구요. '원수는 난 싫소' 이래서 원수의 자리에서 떠나려니 전부 다 버리고 나서는 것입니다. 전부 다 쫓겨나는 것입니다. 내가 버리지 않더라도 버리게끔 때려 모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나오면 괜히 때려 모는 거라구요. 그런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 현상이 벌어져야만 참된 길입니다. 내가 버리지 않더라도 버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 싫어하고 다 쫓아내는 것입니다. 쫓아내니 좋든 싫든 그렇게 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좋든 싫든 복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강제로 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부모로부터 쫓겨나 눈물 흘리는 자리에서 부모를 잊어버리고, 부모를 뒤에 두고, 하나님과 인연맺어 가지고 하나님과 더불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 무리들이 가는 길인 것입니다.

'원수의 길이 싫다. 그러니까 이것을 청산지어야 된다. 얼마만큼 싫으냐? 개인에서 싫다. 가정에서는 더욱 싫다. 국가, 세계에서는 더더욱 싫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놈의 세상은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그게 원칙이라구요.

통일교회의 출발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가다 보니 어떻게 됐느냐 하면 자기도 모르게 세상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거 뭐 통일교회 따라 가면 뭘 해? 남과 같지 않게, 특별나게 그럴 필요가 뭐 있어? 그저 적당히 눈치보며 살지' 한다는 것입니다. 천만에요. 그렇게는 살 수 없습니다.

이 민족을 자기 식구 이상 사랑하라

여러분이 앞으로 여러분의 부모는 언제 구해야 되느냐? 그것은 복귀원리에 딱 나와 있어요. 딴 부모- 이 딴 부모는 사탄세계의 부모가 아닙니다-를 모시고 난 후에야, 하늘세계의 부모를 모시고 난 후에야 그 부모의 명령을 받고서 자기 부모를 구해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오시는 주님을 기다린 것은 그 부모를 모시기 위해서입니다. 딴 부모를 모시고 딴 형제를 모셔야 하는데, 딴 부모란 타락세계의 부모가 아니요, 딴 형제란 타락세계의 형제가 아닙니다. 타락한 세계의 부모를 가진 우리 앞에 딴 부모가 나오지 않고는 구원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딴 형제가 없어 가지고는 구원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딴 부부가 없어 가지고는 구원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딴 부모, 딴 형제, 딴 부부의 자리를 세우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냐. 그러한 내용을 갖춘 도리를 가르치고, 그렇게 생활하는 내용을 지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참부모, 참형제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형제란 무엇이냐? 통일교인이 세상의 부모보다, 세상의 형제보다 가까와야 됩니다. 나이 많은 통일교인들은 나이 어린 사람을 자기가 낳아서 기르는 아들딸보다 가까와야 됩니다. 생활을 두고 봅시다. 자기가 사랑하는 부모 형제를 버리고 나왔다는 것은 사탄세계에 있어서 자기를 중심삼은 최고의 것을 최고의 자리에서 청산짓고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려면 자기 자식을 위해서 흘릴 것이 아니라 이 민족의 비참한 사연을 들을 적마다 가슴이 아프도록 눈물을 흘리고, 염려를 하려면 자기 자식을 위해서 염려할 것이 아니라 고아와 같은 입장에 선 이 민족을 해방하기 위한 염려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심정을 느껴야 됩니다.

부부간에 있어서 아내는 남편을 버리고, 남편은 아내를 버리고 나오는 것이 무엇을 위해서냐? 불의의 부부의 인연을 가지고 탄식권내에서 신음하는 부부들을 해방시켜 참된 부부의 인연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또 자기 부모를 버리고 나오는 것은 무엇이냐? 참된 부모의 인연을 갖지 않고는 참된 부모를 갖지 못한 불행한 백성을 해방할 수 없기 때문에 참된 부모의 인연을 갖게 하기 위해서 부모를 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불의의 부모를 갖고 사망권에 있는 백성을 해방하는 것입니다.

내가 고아의 자리에 서고, 내가 상대보다 낮은 자리에서 부정받는 것은 고아와 같은 나라와 세계를 구하고, 부정받는 나라와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나 자신이 당하는 모든 것은 전체를 구할 뿐만 아니라, 나에게 좋은 것을, 한 번밖에 없는 좋은 찬스를 가져다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길을 위해서 더더욱 충성하고 내게 있는 정성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이 때야말로 온갖 정성을 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가는 길이 나만 남았다 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면 나만 남은 자리에서는 어떤 인연을 지어야 되느냐? 나만 남은 자리는 하나님을 중심 삼은 종의 자리가 아니면 원수의 자리입니다. 나만 남은 자리에서 설 때는 사탄이 원수의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내 뒤에 사탄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사탄도 '너밖에 없다' 하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로 복귀되려면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어떤 사람을 전도하려고 할 때, 어떤 사람과 약속을 하면 약속한 그 시간에 반드시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적입니다. 악이 반대하는 거라구요. 그걸 볼 때, 어떤 자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판결짓느냐 하면 하나님과 나만 남은 자리에서 판결짓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혼자 가지 말고 옆사람을 데리고 가라고 합니다. 혼자 가지 말라 이거예요. 악한 사람은 망해도 자기 혼자 망하려고 안 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옆 사람을 물고 넘어갑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왔다가 떨어지는 사람도 혼자 가만히 떨어져 나가지 않거든요. 옆 사람에게 쑥덕쑥덕해 가지고 같이 물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심보입니다. 선한 사람은 남을 평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남을 평하지 말라.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한 것은 전부 다 그에 대한 방지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가 종의 자리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그냥 그대로는 안됩니다. 완전히 돌아서야 됩니다. 돌아서는 데는 눈이 이렇게 돼 가지고는 안 됩니다. (표정으로 설명하심) 눈알 정면이 전부 다 그 주인 앞에 일치되어야 됩니다. 그 생각이 주인한테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안팎이 하나되어 가지고 주인과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 중에도 주인과 하나되는 종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원칙입니다.

그러면 종적인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횡적인 기준 앞에 우리가 설 자리는 어디냐? 종의 자리와 원수의 자리, 두 자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여기가 종의 자리이고 여기가 원수의 자리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여기의 원수의 자리에 서 있다 이거예요.

지금 타락한 세계는 사탄을 중심삼아 가지고 있어요. 이게(사탄) 중심이라구요. 이러한 인간을 하나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끄집어 내와야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은 어디에서 중심이 되어야 하느냐? 사탄세계의 복판에서는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끄집어 내야 됩니다. 끄집어 내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만 믿으면 이 세상은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사탄)이 플러스라면 요것도 플러스지요? 그래서 반발하는 거라구요. 반발작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하나님은 또 다른 하나의 플러스를 세우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귀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상대적 인연을 맺지 못하고 사탄과 상대적인 인연을 맺음으로 말미암아 타락했습니다. 사탄세계권내에서 이 세계권내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되느냐? 끝에 가야 됩니다. 끝에 가지 않고는 종의 자리도 못 나가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도 못 나가는 거예요.

종의 형제가 있으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종의 동생이라 하더라도 같은 종의 자리에 세울 수 없습니다. 그 종의 동생도 형과 같이 일해서 같아져야 형과 같은 종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다는 거예요. 종의 동생이더라도 형과 같이 일해야만 형과 같은 종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종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로 옮겨 가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주인의 아들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종의 세계에 아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 아들을 중심삼고 그 아들과 같이 행동하는 사람이 생겨나게 될 때 그 사람은 양자가 되는 것입니다. 종의 형제라 하더라도 종이 소개하는 동생을 주인은 그와 같이 대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종이 소개한 동생이라도 주인 앞에 서는 형과 같이 행동해야 종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아들의 자리에 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 위에 아들이 있어 가지고 그 아들을 중심삼고 아들과 같은 입장에서 살아가게 되면 아들과 같은 자리를 상속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인의 아들과는 다르다 이거예요. 그래야 양자의 자리가 설정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두고 볼 때,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온 시각부터 양자권이 벌어지는 것이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양자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양자가 되느냐? 예수님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놀음을 해야만 양자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그 다음에 형제끼리 양자가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가르침의 핵심

양자가 나왔으면 양자만 가지고 되느냐? 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들이 나옴과 더불어 딸이 생겨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딸이 되느냐? 아들의 상대가 되면 딸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하나님인 터전을 찾아 나오신 것은 무엇을 위해서였느냐 하면 아들을 보내심과 동시에 딸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신랑 되시는 예수, 신부 되는 신자라고 합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과 딸이 설정되었다 하는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이 기준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아들과 딸이 하나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은 부부가 된다 이거예요. 가정의 기준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갈라졌던 남자와 여자가 비로소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남자와 여자가 서로 갈라진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서로 원수가 된 거라구요. 해와는 아담을 대해서 '당신은 나를 주관해야 할 남자가 아니냐. 왜 나를 주관하지 못해 가지고 나를 요 모양 요 꼴로 만들어 놓았느냐? 왜 타락의 동기를 만들었느냐?' 하고 원망하고, 아담은 해와를 대해서 '뭐야? 해와 넌 왜 나를 꾀어서 요 모양 요 꼴로 만들었느냐? 하고 원망한다는 거예요. 둘 다 서로 원수라는 것입니다.

사탄을 중심삼고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신랑과 신부가 하나되어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는 가정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이 나오지 않고는 양자의 가정이 나올 수 없습니다. 양자의 가정과 이것이 하나되어야만 완전한 가정적 구원권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천사세계에는 종적인 가정권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을 하나님 앞에 복귀하려면 양자권을 복귀해야 됩니다. 이와 같은 것을 결정지어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원리가 가르쳐 주는 키이 포인트(key point)가 아니냐.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종의 입장에서는 절대복종해야

그러면 개인에 있어서 종의 자리에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종은 주인의 명령에 불복종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절대 복종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종의 자리에 못 나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들의 자리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종의 자리를 거치고야 아들의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절대 복종해야 양자의 특권도 바랄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 조건이 절대 복종하는 것입니다. 거역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의가 있다 할 때, 그 이의는 어디서 오느냐? '세계상의 누구누구는 이렇지 않은데…, 내가 배운 것은 이렇지 않은데…' 하며 전부 다 세상의 것을 들고 나오는 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것은 이렇지 않는데…'하는 것은 다 세상의 것입니다. 여기서 충돌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주장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계, 국가, 민족, 종족, 가정, 개인을 중심삼고 규합했다가는 반드시 사탄편에 더럽혀지는 것입니다. 절대 복종뿐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종의 자리를 못 면하는 것입니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무엇하러 여기에 모여 왔느냐? 종으로서 합격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기 위하여 온 것입니다. 그렇게 결론이 나오는 거라구요. 여기에 모여 온 여러분은 어떠한 무리들이냐? 원수의 새끼로서 종이 될 수 없는 무리인데, 원수의 세상의 인연을 다 끊고 돌아서서 나온 하나의 목적은 무엇이냐? 종으로서 공인받는 자리를 거쳐 나가려는 것입니다.

그 길은 어떠한 길이냐? 절대순종, 절대복종의 길입니다. 이의가 없는 길입니다. 이의가 있는 날에는 쫓겨나는 것입니다. 항시 감시받는 것입니다. 주인의 승낙없이 종이 무엇을 간섭하거나 건드렸다가는 걸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과 아들의 다른 점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집에 살며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간섭하곤 자유롭게 관리하고,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으되, 종에게는 절대 그런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 하나를 하더라도 주인에게 물어 보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종의 시대에는 입이 살아서 변명하는 사람은 낙방하는 것입니다. 그 길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종의 자리에 못 들어가고 사탄세계에 그냥 그대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통일교회가 참된 길이라면 통일교회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암만 있으려 해도 할 수 없이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건 원리입니다. 원리가 그렇다구요. 자기가 할 말이 많다고 하는 패들은 뜻 앞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먼저 하나님의 요구를 들어주고 자기의 요구가 있을 수 있지, 자기의 요구를 하나님이 먼저 들어주게 되었느냐 이거예요. 종은 아무리 해도 실속이 없습니다. 일을 하다 말고 나가라고 품삯을 가려주게 될 때는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가라고 하는데 '나 여기 있겠다'고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쫓아내는데 남아 있겠다고 하게 되면 지금까지 갖추었던 정성까지도 일시에 완전히 파탄되는 것입니다.

절대 불평할 수 없는 종

주인이 가라고 할 때는 기쁜 마음으로 가라구요. 주인이 가라고 하면 가야지요. 자기가 좀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주인이 가라고 할 때 가야 주인의 동정을 받고 다시 회생할 수 있는 길이 있지, '나 안 가겠어요. 내가 뭘 잘못했어요?' 해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가라고 할 때 감사한 마음으로, 섭섭함을 넘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간다면 후에 주인이 다른 사람을 데려다 써 보고 그런 사람이 없게 될 때 자기를 다시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럴 수 있는 길이 있지, 주인이 가란다고 툴툴하고 분풀이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아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탕자라도, 아들의 이름을 가지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게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종의 신세를 가리고 나서야 됩니다.

오늘날 천사장의 피를 받은 우리 인간은, 원수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 인간은 이런 부정적인 요건을 중심삼고 절대 순종, 절대 복종의 길을 거치지 않고는 종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양자도 못 되는 것이요, 아들도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순종해야 하느냐? 종에게 자식이 있는데, 주인이 그 자식을 팔아먹겠다고 하더라도 종은 그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인이 종의 자식을 팔아먹더라도 종은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항의할 수 없어요.

미국 같은 나라가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부리고 팔아먹는 것을 보면…. 복귀도상에 있어서 그렇게 분풀이하는 일면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한 민족이 왜 그렇게 세계적인 축복을 받았느냐? 하늘편에서는 그럴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 민족이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종이 되어야 되느냐? 주인은 주체적인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종의 아비를 팔아먹고, 종의 어미를 팔아먹고, 종의 자식새끼 다 팔아 먹더라도 종은 그 주인 앞에 충성을 다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종의 때가 지나고, 양자의 때가 지나고, 아들의 때가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종취급하다가는 들이 얻어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백인이 잘못하다간 흑인한테 당할 날이 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지금 미국이 그런 입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종하는 데는 얼마만큼 복종해야 되느냐? 에덴 동산에서 종이 무엇을 가졌느냐? 아무것도 안 가졌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종에게 주인이 '네 자식을 다오' 하면, 줘야 되겠어요, 안 줘야 되겠어요? 여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잡아먹겠으면 잡아먹고, 팔아먹겠으면 팔아먹고…' 해야 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런 사상을 아직도 안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뿐만 아니라 종의 자식까지도 팔아먹겠으면 팔아먹고 마음대로 하시옵소서. 주인이여, 고생을 시키시려면 고생을 시키시옵소서. 그럼으로 말미암아 종의 자리에서 수난을 받고 있는 종의 세계의 수많은 무리들을 당신께서 사랑하시고 동정하실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내 즐거이 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이 세상을 보던 입장을 떠나서 하늘의 세상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지, '내가 이렇게 돼서 분하다'고 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이렇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그들을 대신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구해줄 수 있는 길을 열겠습니다'고 하는 종의 입장에 서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직까지 불평불만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하면 안 되는 것이거든요. 하라면 하고, 가라면 가야 되는 것입니다. 종은 자기 아들딸을 팔아먹어도 좋고, 아내를 팔아먹어도 좋고, 남편을 팔아먹어도 좋다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탕감입니다, 탕감. 알겠어요? 주인이 자기 자식을 데려다가 때리든 죽이든 분풀이를 하든 불평하지 말아야 됩니다. 또 아내를 데려다 죽이든 분풀이를 하든, 혹은 남편을 데려다 죽이든 분풀이를 하든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것을 본래 사탄이 가지고 있었어요? 도둑질한 것입니다. 그러니 주인이 와서 어떻게 하든 무슨 상관이냐 하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여러분, 자기 아들딸을 하나님께서 데려간다고 불평할 수 있겠어요? 자기 아내를 빼앗아다가 팔아먹고는 '이 녀석아, 너는 물러가라' 해도 불평할 수 있겠어요?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도 불평할 수 없는 것이 많아요. 그러한 과정을 거쳐 이 땅 위의 종을 대표하여 탕감노정을 가는 무리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된 신앙자세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그 놀음에서 합격자가 되면 무엇이 되느냐? 아들이 오게 되면 양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망치는 것이 아니라, 종의 것을 다 빼앗고 양자의 이름으로 돌려주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게 악이 아니라는 거예요. 선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장사할 때에 원금을 잃어 버리지 않는 사람은 이익을 못 내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무조건적으로 그냥 다 빼앗아 가는 것 같지만 아들이 오게 되면 종의 자리를 떠나 양자의 상속을 받게 해주기 위한 것입니다. 상속을 이어받을 수 있는 아들이 왔을 때 아들의 행적을 따라 아들이 시키는 대로 해 가지고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특권을 갖추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서 아들 자리로 끌러올리려니 그 방법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 세계적인 아들, 세계적인 양자를 대해서 지금까지 사탄이 이 세상을 주관한 것은 하나님의 눈시울이 아플 수 있고 마음이 아픈 자리에서 주관한 것이지만, 비록 양자의 자리에서 세계를 주관하더라도 '오냐' 하고 주인이 기뻐하실 수 있는 자리에서 주인의 아들 대신 주관해주니 세상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것은 성공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인을 중심삼고 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의가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 보세요, 언제 종의 자리를 완전히 청산하고 넘어 갔는가. 전부 다 뒤집어 놓고, 엎어 놓고, 눌러 놓으면 '왜 이래?' 하고 반발할 것입니다. 내가 이 원칙을 중심삼고 생각할 때도, 팔이고 눈이고 코고 할 것 없이 전부 잘라 버리고 뽑아 버리면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봅니다. 손가락 하나를 자르면 참을는지 모르지만 생명까지 전부 다 잘라 버리면 틀림없이 반발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의 자세가 몇 도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종과 양자의 다른점

그 다음에 양자의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따라다닐 수 있습니다. 옛날 종의 시대에는 명령이 없으면 행동하지 못했지만 양자시대에는 명령이 없이도 양부모를 따라다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과 양자가 다른 것입니다. 양자의 특권을 받으면, 양부모가 가는 곳에 따라가려고 할 때 '야, 오지 마라'고 하더라도 '양자로서 아버지께 효도해야 할 텐데 왜 못 가요? 아버지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요?' 하면서 양부모가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따라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종은 주인이 오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돼요? 따라갈 수 있어요? 못 따라 가는 것입니다. 못 따라간다는 말은 반드시 못 갈 길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은 갈 길이 생겨났다는 말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그 갈 길이 생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갈 길을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이 구원역사입니다.

그러면 무슨 자격을 갖추어야 양자의 자리에 나가느냐? 종의 자격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양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양자의 자격을 갖추고 아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해야 됩니다. 아들이 울면 울고, 아들이 웃으면 웃어야 되는 거라구요. 아들이 우는데 '왜 우니, 왜 울어' 해 가지고는 양자가 못 됩니다.

양자와 종이 다른 것은, 종은 일을 중심삼고 주종관계에 있지만, 양자는 생활을 중심삼고 주종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종은 일을 중심삼고 주종관계가 절대적이지만, 양자는 생활을 중심삼고 주종관계가 절대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는 아들을 중심삼고 아들이 하는 대로 흉내내야 합니다. 그래서 아벨을 중심삼고 가인 복귀라 하는 것입니다.

양자가 직계 아들의 자리에 들어가려면

가인은 아벨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가 좋아하는 대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웃으라면 웃고, 울라면 울고, 가라면 가고, 절대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대 복종하면 자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종과 하나님 사이에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서로 접할 수 있는 자리에 오려니 양자와 아들의 관계에서 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로 보면 잃어버린 가인 복귀의 터전입니다.

하나님 대신 예수와 천사장 대신 가인이 형제가 되어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중심삼고 하나 되어야 되느냐? 아담을 중심삼고 천사장이, 아담이 하자는 대로, 아담이 좋아하는 대로, 아담이 기뻐하는 대로 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양자의 자리에 못 올라가는 것입니다.

양자는 생활을 중심삼고는 절대적 위치입니다. 생활을 중심삼고는 그렇지만, 양자의 입장은 직계 아들의 입장과는 다릅니다. 그러면 이 양자가 직계의 아들과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남자끼리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예수님은 아들이요 우리는 양자인데, 양자와 아들이 생활환경에 있어서는 하나되었지만 최후에는 어디에서 하나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심정적인 면에서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남자끼리는 안 된다 이거예요. 돼요, 안 돼요? 안 되지요? 이 때에 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요때 쓰이기 위해서 여자는 6천년간 고생한 것입니다. 요때까지는 여자가 고생하는 거라구요. 지지리 고생하는 거라구요. 요즘 미스 코리아니, 미스 유니버스니 하고 미스라는 말이 대단히 법석하게 등장하는 것은 그런 때가 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자가 직계의 아들권으로 들어가려면 어떠한 길을 통해야 되느냐? 그 길은 여자를 앞에 내세우고 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런 놀음을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셔서 결혼을 하는 데는 누구의 딸하고 결혼하느냐? 하나님의 딸하고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신부를 찾아오는 데는 어떤 신부를 찾아오느냐 하면 하나님의 딸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구요. 누구의 딸이냐 하면 사탄세계의 종의 딸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충성을 한 종으로서 양자의 자격을 갖춰 생활적인 면에서 오시는 아들을 완전히 모셔서 죽음의 자리에서, 혹은 어려운 자리에서 먼저 희생하고 제물될 수 있는 종이자 양자와 같은 입장에 선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의 딸과 심정적 유대를 맺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탄세계에 종의 입장에 있던 사람은 하나님과 사돈이 되는 것입니다. 사돈이 되는 거라구요. 사돈이 되면 그 권한이 하나님과 대등한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돈관계가 맺어져 가지고 결혼하여 태어난 아들딸은 양자세계의 외손자 외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쪽에서 보게 되면 손자 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 손자 손녀라는 입장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가 된다는 거예요. 사탄세계에서의 할아버지 입장에서 볼 때도 손자 손녀를 중심삼고 안팎으로 같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부부관계를 보게 되면, 사탄편 딸과 하늘편 아들의 결합이니 이 두 집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사탄편 가정도 끌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상대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딸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데 결혼했다는 것은 벌써 딸의 입장을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딸의 입장을 인정받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자는 딸의 입장, 아내의 입장, 어머니의 입장입니다. 남자는 아들의 입장, 신랑의 입장, 아버지의 입장입니다. 결국 무엇이 하나되어야 되느냐? 여자와 남자가 하나되어야 됩니다. 하늘편에는 남자뿐이고, 사탄편에는 여자뿐입니다. 그래서 결국 무엇이 연결되어야 하느냐? 남자와 여자가 연결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신부가 이와 같은 입장에서 찾아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귀역사에 있어서 하늘이 터닦아 놓은 여자는 없는 것입니다. 찾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종은 2대를 통해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종이 2대를 통해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됩니다. 종의 시대에 있어서 절대적인 충성을 하고, 양자시대에 있어서 생활면에서 절대적인 충성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2대의 환경을 거치지 않고는 양자로서 하나님의 직계 자녀와 일체될 수 있는 기준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을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땅의 세계를 중심삼고 하늘 세계와의 관계를 맺는 일을 대표적으로 세계에서 처음 한민족이 제3이스라엘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렇게 볼 때, 여러분 자신들은 결국 무엇이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본다면 하나님을 주체로 하고 나는 종의 자리에 있는데, 나는 이렇게 돌아서서 사탄세계와 하나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사탄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 되어 있으면 안 되기에 완전히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돌아서 가지고 하나님과 주종관계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서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아무리 뼛골이 녹아지는 일을 시키더라도 힘들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엔 주인으로부터 참으로 훌륭한 종이라는 인정을 받아 가지고 주인이 자기의 가정을 전부 다 맡기고 가더라도 이의가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관리 주관하는 것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면 주인이 종을 종으로서만 취급하지 않습니다. 양자의 기준권내에 인정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때에 아들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자는 주인하고만 하나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들을 중심 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들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생활적인 권내에서 완전히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가 기뻐하면 같이 기뻐하고, 그가 슬퍼하면 같이 슬퍼하고, 그가 어려워하면 그 어려움을 같이하면서 일체감을 갖고 공동적인 생활권에서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이렇게 하나된 충신이면 충신, 가인이면 가인된 그 사람의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섭리는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그 가정이 어느 가정이냐? 틀림없이 요셉 가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게 되면 요셉이 책임을 다 했느냐 못 했느냐 하는 것을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책임자를 평하는 사람은 사탄편

그런 입장에서 여러분을 볼 때, 오늘 집합한 우리들, 통일교회 식구들은 왜 모였느냐? 여러분이 여기에 모여 왔을 때는 그렇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면 여기에는 아들도 있고 양자도 있고 종도 있습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의 법도가 있는데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것을 망각해 버리고 있다는 거예요. 엄연히 소생권, 장성권, 완성권이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오게 되면 어떤 자리냐 하면 종의 자리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라는 말을 가르쳐 주는데 종보다는 참부모가 좋거든요. 그래서 '너는 누구냐' 할 때, '나는 참부모를 모시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종의 자리를 감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통일교회 신도들에게는 이런 전통의 자리가 안 잡혔다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를 넘어서 양자의 자리에 나가려면, 즉 가인의 권한을 가지고 아들을 모실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가려면 그냥은 안 되는 것입니다.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제물도 자기 마음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구요. 법도에 치리받아 절대 순응하는 입장에서 드려야 합니다. 그런 입장을 거쳐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종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 이거예요. 종의 입장에서는 하라는 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의가 없다구요.

이것이 확실하게 결정이 안 났기 때문에, 이것이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방의 책임자들에 대해서 불평이 많았습니다. 책임자들이 자기를 못살게 명령을 한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못살게 하면 못살게 할수록, 잘 살 수 있는 터전을 개척해 주기 위해 하늘이 보낸 사자라고 믿는다면 걸리지 않습니다. 이런 관을 가지고 나가면 누구도 그런 사람을 평할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평할 자신이 있으려면 세계를 대해서 이겨야 됩니다. 세계를 대해 본이 되었느냐? 하나님의 입증을 받았느냐? 그렇지 못하고 평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천사장의 후손된 인간은 평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평하는 사람은 사탄편입니다. 사탄의 산 실체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이 아닙니다. 원리가 그래요, 원리가. 만약 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 원칙적인 과정을 다 통과했느냐? 통과하지 않고 '난 싫어. 종은 싫어. 양자도 싫어. 아들의 자리로 직접 가야지' 한다면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으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왜 고생을 했겠어요? 그럴 수 없으니까 지긋지긋한 감옥살이에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그것은 왜? 종들이 해야 할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선생님은 지긋지긋한 고생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고생할 것을 대신하는 거라구요. 이 나라가 존재하는 것은 현정권이 잘해서가 아닙니다. 천운이 감돌아 들어오기 때문에 이 나라가 지금 이렇게 있는 것입니다. 그 누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못하면 천운이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그런 놀음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다 버렸다 할 수 있는 한 때를 남겨 주자 이겁니다. 우리가 지금 남편을 버리고, 아들딸을 버리고 나온 것은 무엇 때문이냐? 나라 때문입니다. 나라를 중심삼고 버렸다 하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중심삼고 한다구요.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라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또 다시 세계를 중심삼고 버려야 할 때가 있어야 됩니다. 그것은 세계를 잃어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를 찾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인은 어렵다고 불평할 수 없다 이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간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무슨 책임을 졌으니까 본부에서 전부 해결해 주겠지' 하는 퇴폐적인 사상을 갖지 말라는 거예요. 본부에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구요. 지금 본부에서 도와주는 것은 도와주고 싶어서 도와주는 것이지, 도와주게 되어 있어서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집을 가지고 있는 패들은 도와줘서는 안 됩니다. 이런 원칙적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아직까지 선생님이 명령도 안 해봤고, 실천도 안 해봤습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러니만큼 그런 견지에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넘겨 주려면 선생님이 여러분을 걸고 한번 들이치는 시험을 해야 할 고비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축복가정은 일체의 생활을 뜻을 위해 해야

여러분은 왜 여기에 모여 왔느냐? 종의 도리를 완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종의 도리를 완결하기 위한 목적은 무엇이냐? 그것은 무자비하게 나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할 수 없는 타락한 후손으로서, 양자의 특권의 혜택을 주어 하나님의 아들과 인연맺게 함으로써 하늘의 백성으로 만들어 주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될 때, 자기 일신의 어떠한 희생으로도 얻을 수 없는 영광으로 알고 감사하며 이 길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신도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개인이 종으로서 모든 것을 버리고 양자로서 죽을 놀음을 다하고 난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이냐? 그 목적은 뭐냐? 그 목적은 가정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이 가정을 가질 수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언제 천사장에게 상대의 필요성을 부여했더랬느냐 이거예요.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에게 있어서 여자는 여자, 남자는 남자의 사랑도 그런 거라구요.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씨를 바꿔 버려 사탄세계의 흔적도 없게끔 청산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거예요.

축복? 통일교회의 축복은 선생님의 사명이 아닙니다. 그런 걸 얘기해서 뭘 해요. 사탄세계의 흔적이 선생님에게 오면 올수록 폐단이 벌어집니다. 원칙에 이탈되는 심각한 문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싹둑싹둑 썰어서 독수리 밥을 만들어도 하늘은 아깝지 않다는 거예요. 그걸 생각해 보세요. 그렇잖아요? 여러분이 가는 길 앞에는 하나님의 심정을 걸어 놓고 판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축복받은 사람들은 일체의 생활이 뜻을 위한 것이 되지 않으면 하늘의 화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런 가정을 보기 위한 하늘의 뜻이 아니지 않느냐 이거예요.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억천만세의 하나님의 내심에 근심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로운 천국 가정을 만들기 위한 것이지, 천사장이 앞에 있는 가정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축복받은 가정들이 이것을 감당하지 못할 때는 고생을 해야 될 것입니다. 고생을 달갑게 받지 않을 때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 선생님의 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본 관입니다.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피곤이 어디 있어요? 피로해도 가야 되는 거라구요. 싫어도 웃으면서 가야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어떠한 입장에 있느냐 하면, 원수의 딸과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두 나라가 싸우고 있는데 한 나라의 공주가 적대국 왕자에게 붙들려 가 있는 입장이라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 처한 공주의 눈에는 전부가 원수로 보이는 것입니다. 왕자를 보게 되면, 그는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 다 죽이고 자기 나라 백성들까지 다 잡아 죽인 나라의 괴수인 셈인데, 그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게 된다면 윤리적인 면에서 여자의 절개를 중심삼고 볼 때 어떻게 될 것이냐? 원수라는 생각이 없이 아버지 어머니의 원수인 왕자와 정을 맺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것이 불효자식이예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법도에 있어서는 그것이 열녀가 되는 것입니다. 공주가 원수세계에 와서 열녀가 됐다 할 때는, 원수세계의 어머니 아버지, 그 일가 친척이 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심정을 중심삼고 그렇게 된 것입니다.

축복가정의 책임

그러면, 여러분은 과연 그런 남편을 위해서 사랑할 수 있겠느냐? 그런 자리에서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의 가정을 모두 빼앗아다가 다 파산시켜 버렸다는 거예요. 물질이니 자식이니 전부 다 망하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걸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나는 망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세례 요한과 같이 '그는 흥해야 되겠고 나는 망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것을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보관하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다가는 모두 빼앗기고 탕진하겠기에 하나님 앞에 보관시켜 놓았다가 때가 이르게 되면 이자를 몇십 배 몇백 배 계산해서 받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이번에 축복가정을 동원한 데에 대해서 뭐 이러고 저러고 불평하는 사람은 전부 다 걸립니다. 그것은 종으로서의 책임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동원하는 데 있어서 동원 안 한 사람은 축복가정이 아니라고 썩 금을 그어 버릴 것입니다. 확실히 내가 이야기가요. 금을 그어 버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땅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야 합니다. 양자의 자리를 결정짓기 위해서는 직계 아들과 생활적인 면에서 일치점을 가져야 되는데, 선생님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있다 할 때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면 원리가 틀린 것이냐,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움직이느냐, 그 명령이 무엇이냐에 따라 목적점을 두고 자기의 일체 생애를 걸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짐하고 생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길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을 보게 되면 어떠한 폐단이 있느냐? 선생님 앞에 조건을 내세워 '내가 이렇게 했으니 이렇게 해주시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적인 질서를 여러분이 세워야 합니다. 지금 그런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뭘 해야 될 것이냐? 종으로서 합격하고 양자로서 합격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심정적 인연을 통해 하나님 앞에 충성한 도수가 극에 달하게 될 때, 삼위기대의 가정기반을 중심삼고 충성을 다했다 할 때는 축복가정을 하늘을 대신한 아들과 딸로 여기고 부부의 인연을 맺어 주겠다 하는 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그 길을 진정한 의미에서 갔느냐? 가지 못했을 때는 사랑도 못 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낳더라도 자식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을 새로운 전통으로 삼고, 우리의 문화의 기원으로 삼고, 우리의 생활의 밑천으로 삼아서 우리 나라와 세계에 길이길이 남길 수 있게 될 때, 하늘나라는 건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전통적 사상을 세우는 데 있어서 우리가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은 그러한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씨족을 대신하여 씨족의 메시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체 누구나 다 해야 할 일입니다. 이 일 외에는 생각도 하지 말고, 행동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 신도들이 가야 할 현재의 입장입니다. 더욱이나 축복받은 가정은 이의가 없는 것입니다.

여자 동원한 다음에는 남자를 동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를 동원한 다음에는 아들딸을 동원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자들이 동원된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말이 아니라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걸 알고 일에 있어서 절대 복종하고, 생활에 있어서 절대 복종하고, 심정문제에 들어가서도 절대 복종하여 하늘 법도를 세워 나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않고는 자기 아내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남편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않고는 자기 아들딸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앞으로 어머니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이러고저러고 하시기 전에는 자기 아들딸을 위해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해주라고 말도 못 합니다. '내가 이렇게 수고했으니 우리 아들딸은…' 그러는 사람이 있으면 선생님은 질색입니다. 이번 축복 때도 그렇습니다. 어머니들은 절대 얼씬하지 말라구요. 얼씬하는 날에는 조건에 더 걸리는 것입니다. 눈 밖에 나는 거라구요. 도리어 그것이 화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겠느냐구요. 축복의 동기가 누구예요? 그런 것은 엄격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러한 전통적 기원을 생활적인 면에서 청산짓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모범적인 실체가 되라

여기 있는 축복가정들은 아들딸을 키우면서 불평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렇게 해 나오셨다는 거라구요. 언제 어머니에게 맡겨서 키워 봤어요? 여러분도 그 놀음을 해야 되는 거라구요. 이 길이 원칙적으로 가야 할 길인 것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성에 충성을 더하고, 말없는 가운데서 종의 도리, 양자의 도리를 거쳐가는 놀음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앞으로 그렇습니다. 선생님과 여러분이 대할 수 있는 길이 점점 멀어집니다. 이번에도 지구장을 모두 철폐해 버렸어요. 지구장을 빼버렸다 이거예요. 앞으로 본부에도 부장을 없애고, 공장에도 부장 과장을 없애 버리려고 합니다. 그건 왜냐?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닙니다. 열번 지구장을 만나는 것보다 한 번 선생님 만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백번 지구장을 만나는 것보다 한 번 본부의 소식을 직접 듣는 것이 낫다 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부패했다고 공인하고 있는 이런 때에 좀더 나가게 되면 통일교회가 가만 안 있겠다 이거예요. 이런 것들하고 싸워야 되겠다 이거예요.

지금 내가 언론기관을 만들려고 합니다. 74년까지는 만들 것입니다. 그때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다운 여당과 참다운 야당을 규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거 다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천대받고 참아 나온 것은 그때를 거룩하게 맞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수난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나라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을 때까지 수난으로써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수난으로 출발한 것이 영광으로 열매가 맺히게 될 때는 옳고 그른 것을 가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을 세워야 할 여러분이 데데하게 살아서 되겠어요? 그런 녀석들은 선생님이 안 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라구요.

지금까지 본부에서는 할 수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썼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본부에서는 부장이든 뭣이든 경력 없는 사람들이 맡아서 일을 했지만 앞으로는 경력 없는 사람은 인사이동을 시킬 것입니다.

언젠가 그런 때가 반드시 올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의 나라를 구하고, 세계를 구한다는 목적을 위해서 협조할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로서 여러분을 여기에 불러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모범적인 실체가 되어 나라를 대해서, 친척을 대해서, 가정을 대해서 '나를 본받아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실체가 되지 않고는 여러분이 여기에 모였다 해도 책임을 못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본받을 수 있는 전통적인 실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여기 서 있는 아들은 아직까지 때가 되기 전의 어떠한 권한이라든가 어떠한 가치의 모습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타락한 세계에서 종의 탈을 벗지 못한 인류를 바라볼 적마다 아직까지 한국가도 양자의 권을 대하지 못한 사실을 보게 될 때, 아들의 입장을 취할 수 없는 불쌍한 자인 것을 잘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 오늘날 통일교회 신자들은 이 길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놓고 결판지어야 되겠습니다. 이 길이 사실이 아닐 경우는 무자비하게 이 길을 끊고 돌아서야 되겠사옵고, 천성을 통하여 사실이라는 것을 확실히 안 후에는 사지백체가 갈래갈래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가고 남을 수 있는 모습이 되겠다는 결의에 찬 모습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 어려운 일을 서로가 피하고자 하는 무리를 하늘이 찾아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려운 일만 찾아 맡고자 하는 사람을 찾아 나온다는 것을 아옵니다. 금번 인사조치에서도 그런 것을 많이 엿보았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바라는 사람, 자기가 더 편할 수 있는 자리를 바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당신 앞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큰 책임을 맡게 될 때는 더 수고하고 눈물을 흘리며, 남 앞에 빚진 것을 갚아야 할 책임이 있고, 남이 모르는 가운데 수고의 대가를 치르면서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 알수록, 책임이 큰 자리가 오면 올수록 머리를 숙이고 당신 앞에 스스로 겸손한 모습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그런 자리를 자진해서 원하는 사람은 하늘이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주기 전에 원할 것이 아니라 원하기 전에 주는 그 자리를 찾아 나오신 하늘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습니다. 자기가 무엇이라고 하던 사람들은 그냥 그대로 두어도 하늘이 청산지어 나오는 것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거니와 지금도 그런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때가 되기 전에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특성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가치 있는 것은 백성과 세계 앞에 남겨 주고, 멋모르는 가운데 수난의 길을 홀로 책임지고 하늘 앞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오늘 여기에 모인 저희들은 자신들이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내가 뜻을 위해서 했다 하는 자리에 섰다면, 내 스스로가 가야할 종의 자리와 양자의 자리를 거쳐서 가정의 인연을 갖추고 지낼 수 있는 자리에서 했다 한다면, 그것이 자랑의 요건이 될 수 있으되, 그런 자리를 갖추지 못한 사람이 입을 열어 자랑하거나 행동으로서 자기 자체를 나타내고자 하면 자기의 가정이 갈 수 있는 길을 막는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하고 나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드러날까봐 마음졸이며 가야 할 길이 복귀의 행각인 것을 저희들이 이제라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가정을 이루어 사위기대의 삼대상 목적을 중심삼은 천운을 따라 심정의 본연의 궤도를 갖추는 것이 우리의 타락한 인생으로서 최대의 소망이요, 목적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라보다도, 세계보다도 이것을 먼저 갖추어야 하는 것이 타락한 저희 개인으로서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점이요, 이것이 완전히 해결되기 전에 자기 자체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원수의 참소의 조건과 사탄의 침범 요건이 남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남모르는 가운데 눈물을 흘리며 나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 각자가 신앙 생활에서 해야 할 중요한 일임을 미처 몰랐사오니, 아버지, 이 아침에 이런 내용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안팎의 내용을 가리지 못한 채 저희들은 아내를 사랑하려 했고, 자식을 사랑하려고 했습니다. 아버님, 60년대부터 67년도까지 7년노정이 있었습니다. 축복가정이면 누구나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었던 노정이었습니다. 가정을 이루고 그 노정을 가는 데 있어서 아내와 남편이 하나되어야 하고, 부부를 중심삼고 자녀가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이 원통스러운 역사적인 슬픔이 저희들이 가는 길 앞에 가로놓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의 능력과 힘을 가중시키시어 이 때에 슬픔을 나타내지 않는 아들딸이 되어 소망의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정성에 정성을 들여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동정하는 터전을 남기고, 하늘의 인연을 따라 봉헌할 수 있는 은사의 터전을 넓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저희 자신들이 스스로 개인적인 신앙생활에서 개척해야 하는 것임을 미처 몰랐습니다.

눈물어린 마음으로 저희가 배고플 때 서러운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았사옵고, 저희가 어려울 때 혹은 억울하게 매를 맞을 때 거기서 아픈 것을 느끼고 눈물 흘릴 줄은 알았지만, 앞으로 닥칠 가정의 서러움과 가정의 매맞음이 있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현재의 자기 자체의 고통을 넘고 미래의 마음을 갖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갖고 당신의 위로의 터전을 갖추어 당신 앞에 진정한 효성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사위기대의 가정을 갖게 해 달라고, 현재의 모든 것은 그것을 위하여 지니고, 현재의 모든 가치의 기준은 보다 높은 가치의 그때를 위하여 뿌리고 희생하고 희사할 수 있는 내 자신이 되겠다고 몸부림칠 줄 몰랐던 미욱한 자신임을 깨우칠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오늘날 통일교단이 남아진 것은 그 누구의 공적의 터전으로 남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원리가 가르쳐 주고 천운이 같이하여 준 인연을 따라서 남아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위기대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삼대상 목적의 기원이 탄식의 한계선인 모든 한을 탕감할 수 있는 가정적 터전을 가려 나왔습니다. 이것은 개인을 살릴 수 있는 기반이 되고,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세계를 살릴 수 있는 기반이 됨을 생각하게 될 때, 그 가정을 붙들고 당신 앞에서 애걸복걸 호소하게 되옵니다. 세계가 상처입을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현재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는 하늘나라, 하늘세계를 건국하는 저희들이 될 수 없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언제 저희가 이삭을 제단 위에 놓고 심각한 자리에서 칼을 뽑던 아브라함처럼 미래의 후손이 축복받을 수 있는 터전을 남기기 위해 자식을 제물로 바쳐 드림으로써 참된 실체로서 한스러운 것을 벗겠다고 몸부림친 때가 있었느냐고 자문해야 되겠습니다. 자기 아내가 있으면, 부부끼리는 찢기고 저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민족을 위할 수 있는 길을 구축해 달라고 그 딸을 하늘 앞에 민족의 제단 앞에 바칠 수 있는 아들이 되었고, 그 남편을 그와 같은 자리에 세워 달라고 하는 딸이 되었는가 생각하게 될 때, 통일가에 그런 가정이 한 가정이라도 없다면 하늘의 서러움이 남아질 수 있는 통일가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 서 있는 이 자식은 그런 슬픔의 터전 위에 서는 가정이 되지 않기를 바라 왔습니다.

하늘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는 부끄러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적마다 당신 앞에 걱정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 자신이 십자가의 길을 개척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가정이 희생의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이 명하신 이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남아지게 하신 당신의 은사에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마음 졸이고 걸어온 길 앞에 당신의 저주의 한이 머물지 않은 것을 생각할수록 감사한 마음을 느끼면서 금후에 가야 할 노정 앞에 가중된 시련과 복잡다단한 아시아의 정세가 한국에 와서 충돌하는 이 세계의 사조 가운데 헤쳐가야 할 복귀의 행각이 아직 남아 있음을 알게 되옵니다. 모진 바람이 불어와도 통일교회의 그 누구에게 그것을 맡기고 싶지 않은 것이 이 자식의 마음이요, 이 자식의 책임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도 그러하거니와 내일도 그러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따르는 무리들이 이대로 가는 길이 전통이고, 자기들이 가야 할 길인 줄 알까봐 이것이 제일 염려되옵니다. 책임을 못 하는 가정, 부부, 아들딸이 있으면 당신의 부끄러운 자신들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땅을 걸고 그를 원망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자신을 남겨 놓고는 원망도 할 수 없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저희들은 당신 앞에 겸손해야 되겠고, 날이 가면 갈 수록 당신 앞에 말이 없어야 되겠고, 날이 가면 갈수록 부끄러운 얼굴로 당신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가중된 채찍이 있거든 나에게 가해 달라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그늘 아래 생애의 노정을 모두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후대에 광명한 후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소망을 가지고 죽어 가는 조상이 되겠다고 한다면, 이 무리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통일교회를 사랑하시옵니까? 사랑하시거든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지켜 주시옵소서. 통일교회 교인들을 사랑하시거든 통일교회 교인들이 당신 앞에 가야 할 종의 도리와 양자의 도리를 다하는 어려운 길에서 절대 순종할 수 있고 기꺼이 제물을 바칠 수 있게끔 감동감화시켜 주시옵소서.

우리 통일교회의 역사는 아버님의 수천년 슬픈 역사와 더불어 인연을 갖고 있지만, 당신께서는 저희들에게 언제 변명을 해보셨습니까? 언제 당당히 공판정에 서 가지고 저희들을 판단해 보셨사옵니까? 이러한 아들딸들의 선악을 분별하여 판단하지 못하신 당신이었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너무나 뻔뻔한 것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 스스로 잘라 버려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남을 판단하는 데 눈이 밝아졌고 남을 비판하는 데 입이 빠른 것을 보게 되옵니다. 이런 무리에게는 하늘의 운세가 떠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무리는 때가 되면 다 떨어질 것이고, 다 흘러가 버릴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수고한 터전 위에서 참다운 하나의 열매를 거두시옵소서. 평화로운 세계의 봄날을 맞이하여 옥토 위에 마음놓고 참다운 씨를 뿌리고 거둘 수 있는 행복의 세계가 오기를 당신은 바라고 계신 것을 알고 있사오며, 부디부디 통일가를 움직이고 지도하는 이 자식만이라도 그 누가 뭐라 하든 쓰러질 수 없고, 그 말에 움직일 수 없는 자식이 되어 주기를 바라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환경을 따라 당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야 되겠고, 환경을 거쳐 당신의 수고함을 보여 줘야 할 길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도, 내일도, 금년도, 내년도, 남아 있는 생애의 후반기도 당신을 위해 갈 것을 이미 각오했사오니, 당신의 동정하는 마음이 이 통일교회에 남아지기를 바라옵니다. 동정하는 마음이 통일교회의 문 아무개에게 남아지지 말고 통일교회에 남아지고, 그 동정의 마음이 이 나라에 남아지고, 통일교회 미래의 뜻 앞에 남아지기를 바라옵니다.

수고로우신 아버지, 언제 기쁠 수 있는 한 날을 아버지와 더불어 맞이할 수 있고, 언제 아버지와 더불어 만국에 자랑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할 때마다 거기에 미치지 못한 당신의 자녀들을 채찍질하여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그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서글픔이 당신께 있는 것을 느낄 적마다 고통스러운 당신을 따라가는 사람은 고독단신임을 더욱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멀지 않은 시대에 아버지의 나라가 저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망의 절정이 파동치는 물결이 높아지고, 태풍이 불어오거든 말없이 자기 정체를 감추어야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그러나 태풍이 그치고 밝은 햇빛이 비치거든 자기 정체를 갖추고 망망대해를 힘차게 저어 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자랑은 묻혀 가는 것이요, 내일의 자랑은 희망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내일의 소망과 내일의 자랑을 위하여 가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그것을 위하여 모인 무리들인 것을 스스로 알고, 남이야 뭐라고 하든, 남이야 가든 말든 스스로의 갈 길을 주저하지 않고 달려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무엇을 결정짓기 위하여 걷는 걸음걸이는 살 길이 없는 것이요, 남을 위하여 희생의 길을 가고자 다짐하고 걸어가는 걸음걸이에는 동이 터 온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 꺾어지고 스스로 막히는 것이요, 남을 드러내고 남을 위해서 희생할 때는 스스로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사옵고,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된다고 했사오니, 지금 통일교회에 그럴 수 있는 운세가 저희들 목전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절감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지난날의 수십 평생의 노정을 다시 한 번 회상해 보게 될 때, 제가 맹세했던 것 중에 아직까지 해결짓지 못한 그 무엇이 남아 있는가를 알고 있사옵고, 당신 앞에 중요한 문제를 해결지어야 할 심각한 시기가 1971년도와 1972년도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분단된 남북의 운명을 해결지어야 할 때도 저희 앞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당신을 중심삼고 해야 할 사명이 가중되면 가중될수록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아버지의 목을 붙안고 밤을 새워 통곡하면서 당신의 심정적 인연만을 붙들고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불쌍한 한국을 생각하시거든 불쌍한 한국에서 이 나라를 위하여 수고하는 통일교회의 이 아들을 기억하시옵소서. 아버지가 불쌍한 이 나라의 운명을 염려하시고 불쌍한 이 아들의 운명을 염려하시는 한 이 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이요, 이 세계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무리들, 남모르는 한 순간, 남모르는 수난길 가운데서 남모르는 눈물을 흘리고, 남모르는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도 당신편에 서기 위한 것이요, 당신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관계를 맺기 위한 것이었사오니, 잘 알고 가는 외로운 이 무리들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제가 그럴 때 당신이 위로하던 손길이 그들에게도 같이하여 주실 줄 알고 있사오니, 복받기를 바라거든 화받기를 바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사옵고, 편안하기를 바라거든 수난길을 극복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깨우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참되이 자기 각자를 밝히고 진정한 의미에서 종 노릇이라도 하겠다는 결심을 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하고 아들딸의 복을 받겠다고 하는 자들은 도둑놈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가려는 것은 강도와 절도이오며, 이러한 패들은 통일교회에 플러스되는 패들이 아니라 통일교회를 뜯어 가는 패요, 통일교회를 망하게 하는 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뜻을 몰랐으면 모르거니와 이왕지사 뜻을 알고 있는 이상 말없이 하늘의 축복이라는 은사를 가지고 당신의 슬픔이나 걱정을 염려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겠다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소망을 남기는 자리에서 말없이 지키고 가겠다고 할 줄 아는 무리로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거룩한 날을 당신이 지키시옵고, 이날을 축복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내일의 허락하신 천국 앞에 부름받은 아들딸로서 충성을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시고, 당신과 더불어 스스로 내일의 결의를 다시한 번 자각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모든 말씀 거룩하신 참부모님의 이름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수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 가운데, 복잡한 선악의 투쟁이 엇갈리는 행로 가운데서 저희들이 초조하게 이 환경을 가려 가야 할 책임을 직시하면서 내일의 승리의 한 곳을 향해 싸워 나가고 있사오니, 그 싸움터 위에 있는 저희들에게 당신의 무한하신 가호와 사랑과 긍휼이 항상 떠나지 마시옵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옵니다.

오늘은 이 달 들어 세 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자리에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당신 앞에 드려지는 몸 마음은 거룩하지 못할지라도, 당신이 찾아오셨던 소원성취의 뜻은 다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당신이 떠날 수 없는 이곳인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부족한 자신이 아버지 앞에 충효의 면목을 갖추지 못했음을 진실로 죄송하게 생각하옵니다.

엎드려 자신의 마음을 정하고 있는 이 자리가 아버지와 엇갈리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정면으로 대하여 당신이 분부하시는 말씀과 당신이 내리시는 사명을 받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기를 진실로 바라면서 아버지 앞에 부복하였사오니. 마음으로 현현하시옵고 몸으로 나타나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저희와 인연을 맺지 않을 수 없어서 간곡한 마음으로 찾아 나오시던 역사적인 사정을 토로하시옵소서.

섭리노정에 있어서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아들과 딸의 인연을 굳건히 맺을 수 있는 자랑스런 이 시간이 되었으면 하옵니다. 또한 저희들이 뜻을 바라보고 나오는 과정에 있어서 생애를 두고 믿을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는 이 아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오니, 긍휼히 보시고 살피시옵소서.

죄지었던 자기 자신을 슬퍼함과 동시에 자신의 거듭되어 나온 과거가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당신의 거룩함을 나타내고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을 대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자신인 것을 깨닫게 되옵니다. 이러한 자신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오로지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긍휼과 당신의 영광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만을 진실로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을 찾아 여기에 모인 개개인의 마음과 몸은 비록 다를지라도 그 목적은 같을 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저희들 앞에 명령하시는 사명 분야는 같을 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당신의 그 명령에 순응할 수 있는, 혹은 복종할 수 있는, 더 나아가 아버지 앞에 산제물로 바쳐 드리는 거룩한 이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럴 수 있는 이날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당신이 긍휼히 보시옵길 원하옵니다.

당신이 이 세계를 살펴보실 때에 당신의 마음에 잊을 수 없는 곳이 어디며, 발걸음을 재촉하여 찾아가 머물고 싶은 자리가 어디냐 할 때에, 수많은 교단들은 자기들이 믿는 그 자리, 수많은 교인들은 자기들이 있는 그 자리라 하지만, 진정으로 아버지를 모실 수 있고 아버지와 상봉할 수 있는 자리는 아버님이 잘난 자리에서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저희 아들딸들이 잘난 자리에 서 가지고 아버님이 기뻐할 수 있는 내연의 심정을 갖추는 자리인 줄 아옵니다. 그런 심정을 갖지 않고서는 아버님이 찾아오실 수 있는 방향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 생애에 언제 아버지와 상봉하고, 언제 아버지의 품안에 품기며, 언제 아버지와 더불어 일하고, 언제 저희가 아버지와 함께 싸워 승리의 개선가를 드높이 부르겠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아버지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자리를 알지 못하는 불쌍한 자녀들이오니 이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가 저희들을 협조해 주시는 사실을 고맙게 생각하고, 명령하시는 방향을 향하여 행군할 수 있는 전열을 갖추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늘 아버지의 사정은 제쳐 놓고 자기의 사연과 자기의 사정에 얽매여 자기를 중심삼고 정병 되기를 바라는 부족한 모습들이었던 과거를 용납하시옵고, 현재의 입장을 제거시키시어 당신의 일체의 요건이 저희 자신들에게 연락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당신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되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오니, 아버지, 버리지 마시고 찾아와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아버지께서 저희 각자에게 '네 자신이 아버지가 원하는 곳에 가겠느냐. 아버지가 내린 거룩한 사명을 책임지겠느냐'고 심각한 자리에서 묻게 될 때에, 당신이 심각한 것 이상 심각한 자리에서 사무친 심정을 가질 뿐만 아니라 실천하고 남음이 있을 수 있는 자신이 되겠다며 아버지와 상봉하는 시간을 기꺼이 대하고, 아버지께서 명령하시는 말씀을 받아 기꺼이 진행시켜 나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시여!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서울 이곳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고 있사오니, 그 곳곳마다 당신의 사랑의 마음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가정을 뒤에 두고 나가 있는 어린 딸들이 남한 각지에 널려 있사옵니다. 이들이 이와 같이 나가 움직이는 것은 자기 일신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요, 자기들이 요구하는 그 무엇을 찾아 나선 걸음이 아니라 민족과 뜻을 위한 걸음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늘 부족한 인간이요, 언제나 하다가 지치는 인간인 것을 생각할 때, 반 년 세월의 과정을 거친 그들의 심정에 당신을 위한 정열이 더욱 복받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 앞에 효성의 도리를 다하는 것을 보람있는 생애의 한 토막으로 알고 당신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거룩한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을 일선에 내세우고 바라보고 있는 남편과 자식들이 더더욱 아버지와 가까운 자리에 서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자리에 서게 된다면 그 딸이 얼마나 불쌍하겠습니까? 이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그들의 가정을 지키시고, 그들의 아들딸을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이 이와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이 1971년도에 지금까지 세계에 없었던 하나의 사건을 제시하여 이 민족이 망할 수 있는 운세를 가로막기 위한 것이요, 인류가 가야 할 십자가의 길을 탕감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자리에 친히 같이하시어서 이들의 마음을 모으시옵고, 그들이 가는 방향을, 아버지, 수습하시옵소서. 이들을 하나의 승리의 귀결점으로 당신께서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기도하고 땀 흘려 활동하는 모든 것이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뼈속에 기억된 바 되게 하시옵소서. 이 민족이 당신께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고 기억치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자리에 세워지기를 바라는 이들이오니, 아버지께서 이들이 하는 일을 대하시어서 이 기간이 이들의 생애노정, 혹은 섭리도상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자랑의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자랑의 기틀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여기에 운집한 자녀들을 친히 맡아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도 이 시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한국을 바라보며 밤낮 만나기를 고대하는 그들의 마음을 긍휼히 보시옵고, 당신을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에 당신의 은사와 당신의 위로가 친히 같이하시옵소서. 세계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살아 있는 아버지를 증거하고 기뻐할 수 있는 아버지의 심정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충성을 다하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곳곳마다 당신께서 현현하여 지도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이 시간 이후의 일체를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뜻을 대해 나가는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신앙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과 어느 한 때에 상봉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상봉

자기에게 어떤 소망이 있을 때 그 소망의 대상을 만난다는 사실은, 그 소망하는 내용이 크면 클수록 귀중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바라는 소망이 일대(一代)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소망일 때에는 그 소망의 주체 되는 것, 혹은 그 소망의 주체 되는 분을 만나는 시간은 역사적인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도, 그 나라가 소망하는 어떤 것, 소망하는 어떤 분, 즉 그 나라 전체에 있어서 역사적인 분을 만나는 그 시간은 역사적인 운세 앞에 있어서 가장 귀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도 이 세계가 어떤 목적을 향해서 움직이고 있는데 그 목적을 성사할 수 있는 한 곳, 그 목적을 성사시킬 수 있는 한 분을 만난다는 것은 세계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상봉할 수 있는 시간을 잘 맞느냐 못 맞느냐 하는 것이, 자기 앞에 혹은 전체 앞에 그 기회를 유리하게 맞느냐 못 맞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합니다. 잘 맞고자 하는 것을 소망하고 나가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겠지만 잘 맞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 때를 맞는 데 있어서, 찾아오는 그 기회가 국가적인 기준이라면 국가로서의 운명길을 지내 나오는 과정에, 혹은 그 나라가 거쳐 온 여러 과정에 천운이 있었다면 그 천운을 맞은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가 열 번이 있었다면, 그 열 번 찾아오는 운세를 그 나라가 얼마나 적합하게 맞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열 번 가운데에서 여덟 번을 잘 맞았다면 잘 맞지 못한 두 번은 슬픔으로 남아졌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이 찾아오는 한 때를 맞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원의 기준은 과거에 두 번 맞지 못하였던 것까지도 탕감시켜 놓고 역사시대에서 맞이했던 어떤 때보다도 더 가치있게 맞이하는 것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바라시고 과거에 하늘의 운세를 만나지 못하였던 그 민족 앞에 다시 찾아올 것이 아니냐? 과거의 어느때보다도 더 잘 맞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다시 찾아오셨는데도 불구하고 또 못 맞게 될 때에는 거기에 과거 열 번 가운데 두 번 맞았던 그 슬픔까지 플러스시켜 가지고 그 슬픔과 더불어 돌아설 수밖에 없을 것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복귀섭리를 추진해 나오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역사과정을 미루어 볼 때에, 하나님은 어느 한때 인간과 상봉하기 위해 찾아 오시지 않은 때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개인이 자기의 선조가 지내온 역사적 과정과 전통이 다름에 따라서 현실에 처해 있는 입장이 전부 다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의 천태만상의 사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개개인의 성품을 따라 사망권내에 있는 인간들을 부활권내로 돌이키기 위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찾아오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소원의 목적을 감당하고 그 뜻 앞에 일치될 수 있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원 앞에 사랑받을 수 있고, 칭송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런 환경, 혹은 그런 자리에서 그분을 맞아들이게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기쁨으로 대하실 것입니다. 기쁨으로 대해 가지고 기쁜 사연으로 연결하고 기쁨 가운데서 끝을 맺고 기쁨으로 남아지게 될 때는, 만났다가 헤어지더라도 다시 만날 수 있는 마음, 다시 기쁨으로 만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만난 자리보다도 더 가치적인 자리를 중심삼고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돌아설 것이며, 그런 기쁜 자리에서 상봉의 시간을 가진 우리 자신들도 지금 하나님을 만났던 그 이상의 기쁨의 자리를 미래의 소망으로 남기고 헤어질 것이 아니냐? 이렇게 헤어졌던 입장에서 다시 만나는 자리는 어떤 자리가 되겠느냐? 하나님은 그 자리가 옛날보다 낮은 자리이기를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그 자리가 보다 높은 자리이기를 바랄 것이고 가치적인 면에서도 옛날보다 그 내용이 확실한 자리, 혹은 보다 높고 보다 귀한 자리이기를 바랄 것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가 일생을 살아 나가면서 어떤 소망, 혹은 어떤 뜻을 품고 나가는 데 있어서 그 뜻의 때와 혹은 그 뜻을 중심삼은 어떤 사람을 만나는 자리가 자기가 바라 나오던 소원과 일치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거기에서 일치되어 가지고 헤어지게 될 때에는 다시 새로운 목적을 중심삼고, 새로운 사명을 중심삼고 헤어질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만났을 때 그 이하의 내용을 가지고 헤어지게 된다면 누구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만날 수 있는 시간은 멀어지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기쁘게 만났다 헤어진다 하더라도 헤어지는 그 자리가 내일의 소망을 가일층 다짐할 수 있고, 더 높은 소망의 터전을 소원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헤어지는 자리가 되어야만 역사적 발전이 제시되는 것이요, 우리가 소망하는 기쁨의 내용이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못하게 될 때에는 상봉의 시간을 맞지 않았던 것보다 못하고 상봉의 장소를 맞지 않았던 것보다 못하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습니다. 이것은 개인을 중심삼고 그러할 것이고, 가정을 중심삼고 그러할 것이며,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그러할 것입니다. 세계면 세계를 중심삼고서도 그러할 것입니다.

천태만상의 선수들이 운동장을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인간들이 순차를 달리해 가지고 어떤 목적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자기 나름의 어떤 소원성취의 한 때와 소원성취의 한 곳을 향하여 움직여 나갈 것입니다. 그러면서 소년 시대를 지내곤 청년 시대를 지내고, 장년 시대를 지내고, 노년 시대를 거쳐갈 것입니다. 이렇게 갔던 조상이 선하였으면 그 후손이 선한 바톤을 이어받아 가지고 갈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연결된 역사적 사연들을 품고 그 무엇인지 모르게 전진일로에 서기를, 혹은 발전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희망의 길을 가겠다고 하는 것이 오늘 인류의 군상들이 아니겠느냐?

주류와 하나되어야 할 인간

인류가 모여 있는 곳에는 나라도 있습니다. 현재의 입장에서 보면 선진 국가도 있을 것이요, 후진 국가도 있을 것입니다. 또 거기에는 수많은 종파도 있을 것이요, 수많은 종파 가운데에 수많은 종교인도 있을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인들 가운데는 역사의 배경과 문화의 배경이 다르고 환경의 여건이 다른 입장에 서서 고민하면서 소망을 품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뻐하면서 그 소원을 품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될 때에, 세계 인류 개개인이 공히 찾아야 할 하나의 목적은 '이것이다' 할 수 있는 어떤 표준이 있을 것입니다. 혹은 세계의 수많은 가정들은 '이렇게 가야 된다' 하는 표준이 있을 것입니다. 종족이면 종족, 혹은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는 '이렇게 가야 된다' 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모든 국가들이 합한 세계도 '기필코 이 길을 가야 된다'고 하는 그런 결정적인 한 코스가 있을 것입니다.

이 코스는 수많은 지류(支流)가 모아져서 하나의 본류(本流)를 이루어 그것이 대해(大海)로 들어가는 어귀에 이르게 될 때에 전체가 한 곳으로 흘러 내려가는 코스와 마찬가지입니다. 한 곳으로 흘러가는 그 코스에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야 된다고 하는 절대적인 것만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류의 입장에서는 다릅니다. 환경이 다른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남쪽으로 흐르지 못하면 북쪽으로 흐를 때도 있을 것이요, 동쪽으로 흐를 때도 있을 것이요, 서쪽으로 흐를 때도 있을 것입니다. 지류는 이처럼 그 환경에 따라 동서남북 사방으로 방향을 달리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최후에 대해를 향해 들어가는 어귀에 이르러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일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방향을 갖춘 강줄기와 대해가 맞부딪치는 그 자리, 역사적 배후나 사정이 천태만상으로 다르다 하더라도 대해와 맞부딪치는 상봉의 자리에서는 한 모양이요, 한 형태로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과거의 소원과 지금의 소원이 다르겠느냐? 혹은, 그 소원이 북으로 남으로 동으로 서로 왔다갔다할 수 있겠느냐? 설령 그렇게 갔다 하더라도 그것은 본래 그렇게 가야 된다는 그 원칙적인 방향에 일치시키기 위해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 환경을 피해 가고, 처해 있는 입장을 넘어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원칙적인 길을 가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방향이지 정상적인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개인이 바라는 최고의 자리와 민족이 바라는 최고의 자리와 세계가 바라는 최고의 자리가 각각 다를 수 있겠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다를 수 없습니다. 천이면 천, 만이면 만, 과거에 위대했던 사람이나 현재에 유명한 사람 누구를 막론하고 인간이 바라는 기준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최고의 자리를 바랄 것입니다. 최고의 자리를 바라야 되고, 또 그 바라는 기준이 서로 틀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틀리다면 강물로 말하면 바다로 들어갈 수 있는 강물의 입장이 못 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그 환경을 극복해 가지고, 즉 그 환경에 내가 순응할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빨리 넘어서 가지고 최후의 한 점에서 세계 운세를 맞고, 국가의 운세, 민족의 운세, 혹은 가정의 운세를 맞아야 됩니다.

운 중에는 가정의 운도 있고, 개인의 운도 있을 것입니다. 아침에 집을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면서 '아, 오늘은 운이 좋았다. 오늘은 재수가 있었다' 이런 말을 하잖아요? 그러나 아무리 재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재수 있었던 자체만을 보면 좋을지 모르지만 전체를 두고 볼 때에는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오늘 이 시간에 좋다고 하는 것이 내 생애에 있어서 영원히 자랑할 것이 못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 개인의 생애노정에 있어서 처음 맞는 기쁨의 날이요, 자랑의 한 날이라 하더라도 역사의 방향에 미루어 보고, 역사의 목적과 부합시켜 볼 때에 과연 기쁠 수 있겠느냐 할 때에, 기쁠 수 없는 일이 태반일 것입니다. 방향이 다르다는 거예요.

지류로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흐를 수 있는 환경의 여건을 가졌다 하더라도 동서남북 사방 가운데에 삼방(三方)은 부정받아야 할 입장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최후에 가야 할 방향은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하나인 주류의 전통은 어디로부터 연결될 것이냐? 지류 중에는 흘러오면서도 주류에 가까운 방향을 따라 흘러오는 지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지류 가운데에서 제일 가는 지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대해로 들어가는 방향과 일치되어 가지고 흘러 나가는 주류가 있을 것입니다. 지류 가운데에 주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주류가 전통적 내용을 연결시킬 수 있는 하나의 주체적인 표준이 될 것입니다.

개인이 가는 데 있어서도 그런 주류와 같은 어떤 형태, 즉 표준적인 형태와 만나게 되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개인에 있어서는 그 주류를 만날 수 있는 때가 대해로 들어가는 때인 것입니다. 자기가 바라는 어떤 큰 희망을 가졌다면 그때가 그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이요, 계기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그런 주류와 상봉할 수 있는 지류가 있다 할 때에, 그 지류가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여야 되느냐? '그 자리는 일생동안 내가 따라갈 수 있는 자리다. 찬양할 수 있는 자리다' 이렇게 찬양하며 갈 수 있는 자리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올바로 간다는 것을 알고 가는 사람들이 있느냐? 그것을 안다는 것은 힘든 것입니다. 만날 때도 모르고 만나고, 또 만나 가지고 그렇게 따라 흘러가면서도 그 흘러가는 자리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역사는 지금까지 미지의 과정을 거쳐왔고, 또 미지의 목적을 향해 가고 있는 서글픈 역사인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과정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숱한 고빗길을 거치면서 방향을 맞춰 대해까지 나온 것입니다. 그 흘러온 곡절이 길면 길수록 흘러나오는 과정에서 인연되었던 때, 인연 되었던 사연, 그 기회, 상봉의 때는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 때를 얼마나 가치 있게 느껴 봤고, 그 자리에서 얼마나 기뻐했고, 그 때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대해 보았느냐 할 때, 그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섭리의 방향을 알고 정성을 들여 나가야 주류와 하나될 수 있어

이런 관점에서 복귀섭리를 추진시켜 나오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은 인간이 알든지 모르든지 역사를 어떤 주류의 방향에 일치시켜 나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종교인들은 종교의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지류의 사명을 대행하면서 하나의 주류의 권으로 들어가는 어귀를 향하여 흘러가는 그런 입장을 지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어떠한 종교가 있으면 그 종교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이냐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처한 지류가 어떤 방향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가는 종교인은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가고 있다. 본래 남쪽으로 가야 하는데 이렇게 동으로 조금 기울여서 가는 것이다. 그러니 동쪽으로 가서 되돌아가야 된다' 하는 이런 입장에 있는 것을 모르고, 가는 길을 통 모르고 곧장 간다고 생각하면 방향이 어긋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이렇게 가는 길을 모르고 있습니다. 인류역사를 한 방향으로 하나의 형태로 규합해서 하나의 세계를 향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권내로 이끌어 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 방향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들이 그 방향을 모른다면, 다시 말하면 남으로 가야 되는데 동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이 방향을 누가 돌릴 것이냐? 이것을 모르고 가는 개인과 종족을 그냥 내버려두면 가다가 파탄되고 말 것입니다. 막혀 버릴 것입니다. 그러니 되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정성들여 했던 일을 그만두고 되돌아와 가지고 다시 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정성을 들여 했는데 안 되었다면 또 정성들여 그것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을 거예요. 이러한 환경에서 사탄은 늘 인류가 정성들이며 가는 길을 어떻게 하든 뚝뚝 잘라 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정성들였던 사람이 돌아서 와 가지고 다시 정성들여야 되겠다고 할 때에 처음보다 더 정성을 들이면 모르지만 그만한 정성으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 이하의 정성을 들여 가지고 출발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곁길로 갔다가는 열 번이면 열 번 다 돌아서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돼요. 사람 마음이 그렇잖아요? 백만큼 정성들였던 것이 전부다 깨져 나갔다, 혹은 안 됐다, 틀렸다 하게 되면 또 백만큼 정성을 들여서 죄겠어요? 안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다시 출발을 하려면 백 이상의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백 이하의 정성을 들여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백 이상의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되는 줄 알면 백 이상의 정성을 들일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정성을 들이려면 그 이상의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 입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정성은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섭리 과정에 왔다 갔던 선조들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은 역사과정에서 그 시대를 대표해서 어느 선조를 세워 가지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과 상봉시켜서 지긋지긋한 회생을 치르게 해 가지고 그 목적을 중심삼고 나가게 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뜻을 중심삼고 나가다가 틀어지게 되면 하나님은 그 공을 봐서라도 그를 다시 들어 써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왜 그를 다시 들어 쓰시지 않았느냐? 이런 문제가 여기에 귀결됩니다. 과거에 백만큼 정성들인 사람이 실패하여 뜻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자리에 서 가지고는 백 이상의 정성을 들일 수 있는 기원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부터 그 이상의 자극을 받아 가지고 새로운 결심의 내용을 반영시킨 사람이 되기 전에는 반드시 그 길에 다시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정성들여 가는 길에 있어서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냐? 정성들이는 것으로 끝내는 사람이 아니라, 나는 저 먼 세계를 향하여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소망하는 곳이 멀면 멀수록 불행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행복한 것입니다. 기독교가 그렇게 해서 발전해 나왔습니다. 소망하는 곳이 멀면 멀수록, 고빗길이 많으면 많을수록 한 단계 한단계 넘어가기가 지루하지만 정성을 들여서 가야 됩니다. 정성을 들였는데도 안 되면 거기에서 쓰러져 망할 것이냐? 아닙니다.

하나님은 복귀섭리를 하시는 데 있어서 개인적인 시대가 지나면 가정적인 시대를 열어 놓으십니다. 개인적인 시대에 있어서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상봉의 때를 갖지 못했다 하더라도 가정적인 시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적 시대에 가서는 개인적 시대보다 더 정성들여야 됩니다. 가정적 시대에서 그 때를 맞지 못했다 하더라도 종족적 시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알고 그러한 소원을 갖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일대에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더라도 그런 사실이 틀림없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의 사랑하는 후손에게 '너는 이렇게 가야 된다' 하는 유언이라도 남겨서 바톤을 넘겨 줘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고 있는 길과, 인류들이 가고 있는 길과, 불신자들이 가고 있는 개개인의 길은 전부 다릅니다. 그러니 하나의 역사적인 주류의 형태를 따라가야 됩니다. 그 주류를 따라 가는 데는 과거로부터, 높은 데로부터,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그 주류를 따라가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기원에서부터 흘러 나온 역사적인 모든 사연을 묶어 가지고 미래의 세계적 소원의 때까지 연결시켜 주는 주류의 형태가 섭리도상에, 혹은 하나님의 뜻을 바라는 역사의 배후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과 상봉하려니 주류는 역사시대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 연결될 수 있는 그런 일치점을 찾아 나가야 됩니다.

어떤 사상이 주류사상인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시대에 우당탕 뛰어나온 사상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역사시대의 인연을 거쳐 나온 바탕이 있어야 역사적인 전통을 전체적인 면에서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나온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 미국을 보면 말이예요. 미국 사람들은 구라파 사람들한테 꼼짝 못합니다. 미국이 아무리 선진국가라고 하더라도 미국의 역사가 얼마가 되느냐 하면 3백여 년밖에 안 됩니다. 아무리 살기가 좋다고 해도 역사가 3백여 년밖에 안 됩니다. 그들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이 구라파의 문명을 이어받아 가지고 그 터전 위에서 이루어진 것들이기 때문에 그 터전을 빼면 아무 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의 기원이 확고부동한 터전을 갖춘 그 터전 위에서 역사와 일치된 자리에 목적성사의 기반이 세워지면 그것은 역사가 보증하는 것이요, 이 시대가 보증하는 것이요, 미래가 입증해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심정을 들고 나오고 있습니다. 창조시대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심정과, 타락시대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심정과, 복귀시대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심정과, 복귀완성시대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심정이 다 다릅니다. 기독교회에서는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하나님, 언제나 기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밖에 모르고 있습니다. 통일교 회에서는 기뻐해야 할 하나님이 소망하던 것을 이루지 못하고 슬퍼하시는 하나님이요, 고통받고 있는 하나님이요, 그런 가운데서도 싸우고 개척해 나오시는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인연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가 인연된 이 인연이 망하는 인연이냐? 이런 인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 나쁜 것이냐 할 때, 이 인연은 하늘의 인연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의 주류사상이 하나님의 주류사상과 일치될 수있느냐? 천년 전, 혹은 몇천년 전, 구약시대의 아벨시대, 타락하기 전 아담시대, 창조시대의 하나님까지 올라가 가지고 제일 꼭대기의 자리에까지 일치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때로는 동으로 가고 서로 가고 별의별 노정을 거쳤지만, 그 모양이 그렇게 흘러갔지만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이나 역사를 엮어 온 수많은 도인들, 혹은 수많은 성현들이 간 길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그 길보다도 더 곧다는 것입니다. 짧다는 거예요. 그래야 주류가 되는 것입니다. 길어서는 주류가 안 됩니다. 짧아야 주류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길 가운데에서, 흘러나오는 길 가운데에서 짧은 길이어야 됩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주류는 가까운 길, 직선에 가까운 길이어야 됩니다. 직선이 못되면 그 직선이 못된 길 가운데에서도 제일 짧은 길이어야 됩니다. 휘었더라도 제일 짧아야 됩니다. 제일 짧은 길을 거치지 않고는 직선으로 가지 못합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생을 하나의 지류와 같은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만나고 싶은 주류에 언제 합류되느냐?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내가 흘러가다가 언제 주류에 연결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의 끝날이 되어 하나의 세계를 표방하는 이 때에 있어서, 세계 만민이 하나의 평화의 세계를 모색해 나가는 이 때에 있어서 이 곳이 대해의 입구, 대해의 어귀가 되어 세계 전체를 묶어야 됩니다. 무엇을 중심삼아 가지고 묶느냐? 주류를 중심삼아 가지고 묶어야 합니다. 이렇게 묶어지지 않고는 대해로 흘러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한때가 있어야 합니다.

종래의 문화도, 역사도, 종교도, 사상도 전부 다 묶어져야 됩니다. 묶어지는 데는 중심적인 사상으로 묶어져야 됩니다. 하나님이 가시는 희생의 노정과 고충의 노정을 중심삼고 하나로 묶어져 가지고 흘러가야 됩니다. 흘러 들어가는 데는 누가 앞서야 되느냐? 주류사상을 책임진 무리가 앞서야 됩니다. 그런 무리가 선두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길이가 짧은 길을 가는 사람이 앞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그런 사명을 위해 나간다고 하면 통일교회는 앞서 있어야 됩니다.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앞서가야 됩니다. 뒤따라가면 망합니다.

통일교회 교인이 역사적인 하나님, 현시대적인 하나님, 미래적인 하나님이라는 이런 명사를 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입장을 아는 데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누구보다도 가까운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가까운 입장에 있다는 것은 주류에 속할 수 있는 거리가 가깝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류와 만날 수 있는 거리가 가까운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주류의 사명을 해야 할 통일교회

이와 같은 입장에 선 여러분들은 상봉의 인연을 가해 가지고 하나의 큰 강을 이루어 대해로 들어가는 시점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의 흐름 가운데서 민주와 공산의 두 세력이 맞부딪치고 있습니다. 이 둘이 흘러와서 한 곳에서 부딪치고 있습니다.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흐름이 합세하는 곳에는 소용돌이가 치게 되어 있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것이 왼쪽으로 가고 왼쪽에 있는 것이 오른쪽으로, 자기 위치를 뒤틀면서 소용돌이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부작용이 벌어집니다. 서로서로 엇갈립니다. 그래서 그 환경이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돌다가 어떤 주류의 방향을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방향을 거쳐 나가는 데 공산세계의 방향을 거쳐 나가느냐, 민주세계의 방향을 거쳐 나가느냐? 그런 문제가 벌어질 것입니다. 방향을 거쳐 나가는 데 있어서 주류에 가까울 수 있는 방향, 주류가 가는 목적의 방향과 일치되어 수습해 가야 합니다. 그 출발점을 동기로 하여 환경을 수습해 나가 하나의 흐름을 이루어야 될 것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그러한 세계를 중심삼고 통일교회를 볼 때,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부딪치는 이런 사회 환경에서 우리는 그 방향을 다른 곳으로 끌고 나왔습니다. 여기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다른 곳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하는 바는 하나님이 가야 할 곳, 뜻과 마주칠 수 있는 그 곳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 것을 주장하는 단체면 단체, 국가면 국가, 혹은 그러한 세계적인 사상을 가진 단체가 있다면 그 단체가 역사를 지배할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의 표준이 될 것이고, 역사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역사의 목적을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가 갈라져 있듯이 한국도 남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엇갈려 있습니다. 아시아가, 나아가 전세계가 여기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종교계를 두고 보면 외적인 면에는 문제가 없지만 내적인 면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통일교회를 가만히 두고 보면 심상치 않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기성종교와 부딪쳐 가지고 기성종교가 깨지느냐, 통일교회가 깨지느냐? 어떤 것이 주류의 자리를 대표해서 앞서느냐? 아무리 봐도 기성종교는 그럴 수 없습니다. 두 흐름이 부딪치게 될 때, 보다 강한 흐름이 키를 잡아 가지고 나가는 길이 있다 할진대, 그 흐름이 비록 짧더라도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한국의 종교계는 뒤넘이치고 있는데, 혼란한 풍토를 조성했는데 그 가운데에서 드러날 수 있는 하나의 방향을 갖춘 교회가 통일교회가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해방 이후에 나타나서 지금까지 시련과 갈등을 겪으며 부딪쳐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통일교회에는 종교계면 종교계에 그래도 새로운 차원의 소망의 그 무엇을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는 풍토권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방향을 잡아 가는 와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방향을 잡고 그 방향을 향하고 있고, 이미 신앙적인 면에서는 자랑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나가는 방향이 세상 사람들의 방향과 같을 것이냐? 같은 방향이 아닙니다. 같지 않습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상에다 올려 놓고 먹어야 행복한데, 이 길을 가는 사람은 찬이고 뭐고 그저 밥만 먹어도 행복하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남과 같이 뭐 안팎으로 전부 다 갖춰야 행복한데, 달랑달랑하니 혼자 다니는 나그네 신세가 되더라도 행복할 수 있어야 됩니다.

자기 자신을 중심삼은 입장은 그러하지만 통일교회가 가는 입장은 다릅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돈벌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고 교회를 위해 사는 사람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렇게 가는 것이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는 꺼꾸로 가는 것 같지만 길을 가는 데 있어 서는 더 빨리 바로 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까 어디로 가야 되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오늘날 이 세계의 사조와 종교를 훑어보게 될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뒤넘이치며 가는 방향과 현재 갖추어진 내용을 두고 볼 때 우리는 소용돌이치는 그런 와중에 있는 민족 앞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 가지고 이래야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시아는 이렇게 가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살 길이 없다'고 깃발을 들고 주장할 수 있는 입장인 것입니다. 세계는 이렇게 해야 살 길이 있지 그렇지 않으면 살 길이 없다고 당당히 주장했을 때 하나님께서 '옳다, 그렇다'고 하실 수 있게 되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통일의 한 살림꾼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거 아니예요?

이제까지 사연을 한번 쭉 펴 놓게 되면 그 내용이 전부 다 다를 것입니다. '어떤 역사를 거쳐왔느냐, 그것이 좋았던 역사냐, 슬펐던 역사냐?' 하게 될 때 그 역사가 좋았건 슬펐건간에 사연이 그 가운데에 전부 다 반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떤 결과로 나타났느냐? 전체의 사연을 합해 가지고 나쁜 결과가 나오게 된다면 그것은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연을 통틀어 보게 될 때 나빴던 사람도 좋고 좋았던 사람도 좋고, 저 사람도 좋고 이 사람도 좋아야 합니다. 그것은 너도 바라는 것이고 나도 바라는 것이고 여자나 남자나, 나이 많은 사람이나 나이 적은 사람이나를 막론하고 인류 전체가 바라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바라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슬펐던 모든 것이 좋은 것에 접할 수 있는 찬스를 맞을 수 있지 않겠느냐? 그 자리는 슬펐던 사람들이 기쁠 수 있는 자리가 되는 것이고, 기뻤던 사람은 더 기쁠 수 있는 자리가 되지 않겠느냐? 슬픔으로 출발한 역사가 기쁨으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신호를, 혹은 그러한 때를 갖지 못할 적에는 비운의 역사로 출발한 인류는 행복한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을 할 수 없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때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흥하는 자와 망하는 자의 차이

만일에 처녀로서 세계 대통령이 된 사람이 있다면 그녀는 여자로서 세계를 대표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 처녀가 시집가는 날 여자들이 '내가 저 입장이 되어야 할 텐데 저게 저게 뭐야' 하면서 반대하겠어요?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찬양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를 대표해서 저런 여자가 나와 가지고 여자의 권위를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랍도다'고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아이고 원수야. 우리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고 딴 나라 사람이니 안 되겠다'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한 관념을 어떻게 제거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때에는 인류를 대표한 자리에서 맞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에도 그런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 나라, 한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흘러가는 지류와 같은 입장에 있던 대한민국이 세계의 대민족권의 흐름을 중심삼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는 거기에 어울려 가지고 세계를 수습해서 빨리 빨리 전체가 화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주류가 되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세계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들은 남의 나라에 가더라도 남의 나라의 나쁜 것을 꼬치꼬치 캐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연구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그 나라 그 민족이 급속히 발전할 수 있는 내적인 요인인 것입니다.

'내가 아니면 안 돼!'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기독교에선 '아이구, 장로가 아니면 안 돼. 선교사가 아니면 안 돼' 그런다는 거예요. 천태만상의 별의별 사연이 있는 것을 볼 때 송장 떼거리가 굴러 나오더라도 그것을 붙안고 같이 흘러 나가야 할 판국에 '이것을 내가 해야 돼' 하며 바둥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한 발자국도 못 가고 망하는 거예요. 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통일교회는 대해로 흘러 들어갈 수 있는 큰 강 줄기의 입장이 아니냐? 앞으로는 그렇게 될 거예요. 사탄까지도 해방시키자는 거라구요.

이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가 해야 할 사명을 두고 볼 때, 우리 통일교회가 그야말로 앞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관문을 통과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가 있을 것 아니예요?

종적인 수천년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면 거쳐온 그 모양으로, 7년이면 7년, 7개월이면 7개월, 7일이면 7일, 7수를 거쳐 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해야 될 게 아니예요? 그런 입장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부 다 그러한 기간을 싫든 좋든 거쳐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싫든 좋든 거기에 도수를 안 맞추면 안 되는 그런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처녀나 총각이나 할 것 없이 누구나 7년노정을 가야 됩니다. 그것이 공식입니다. 여기에는 상하가 없는 것입니다. 굶어 죽을 입장이 된 사람을 살리려면 밥을 먹여야 됩니다. '아이고, 굶어 죽기도 싫지만 밥먹기도 싫다'고 하는 사람은 죽어야지 별 수 있어요? 밥을 안 먹으려는 사람을 살리려면 입을 벌려서라도 퍼먹여야 됩니다. 그런 일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신세를 지고 갈 것이냐, 자의로 갈 것이냐? 신세를 지고 가면 나중에는 '다시 갈 수 없을까? 하게 됩니다. 그래 이 길을 가는 데 신세를 지고 가느냐, 자기 힘으로 가느냐? 즉, 자의에 의해서 하느냐, 타의에 의해서 하느냐? 기쁘게 가느냐, 슬프게 가느냐? 아니면 기뻐서도 아니고 슬퍼서도 아니고 마지 못해서 가느냐? 마지 못해서 가는 것은 슬프게 가는 것보다는 나은 것입니다. 기쁘게 갔느냐, 마지 못해서 갔느냐, 슬프게 갔느냐? 문제가 거기에서 벌어지는 거예요. 세 갈래 길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문제입니다.

기쁘게 가느냐, 슬프게 가느냐, 마지못해서 가느냐, 그 다음에는 안 가느냐? 이렇게 되니 네 갈래 길이구만. 그러나 안 갈 수는 없습니다. 안 가는 것은 거꾸로 가는 거예요. 나가자빠져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안 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가는 데는 넘어져 가지고 가느냐, 뒤로 가느냐, 아니면 옆으로 가느냐, 바로 가느냐?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주류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에서 '나 통일교회 안 믿겠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마음에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음이 그렇다는 거예요. 반대하는 사람에게 왜 반대하느냐고 물어 보면 '교회에서 날 몰아대니 섭섭해서 반대했지'합니다. 섭섭해서 반대했다는 거예요. 좋아서, 기뻐서 반대하고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금 섭섭하게 하니까 할 수 없이 반대한다는 거예요. 통일교회를 안 가겠다는 사람은 반대하지 않는 거예요. 떨어져 나간 사람이 반대를 하지만 그 마음속에서는 통일교회를 생각하지 않아야 할 텐데 하면서도 자꾸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기성교회에 나가면서 뭐라도 해먹겠다고 정성들이게 되면 '자, 이 길을 갈래 안 갈래' 하며 영계에서 자꾸 보여 주는 거예요. 이런 걸 보면 팔자소관 같은 생각이 듭니다.

통일교회는 어떻다고 할까? 지독하다면 지독하고, 고집이 세다면 고집이 셉니다. 한번 들어오면 빠져 나갈 수 없는 곳이예요. 어떤 문제를 두고 생각할 때도 '사실이 그렇지' 하고 보면 벌써 원리적으로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니 어디를 가든지 이것을 떼어 버리고는 괴로와서 못 사는 거예요. 이걸 떼어 버리고도 괴로와하지 않고 살 것 같으면 내가 선두로 달려갔을 겁니다. 가면 갈수록 태산이예요. 들어와서 '아이구 속았다' 활개치고 나가려고 하면 털썩 하고 걸린다는 겁니다. 팔, 손, 눈, 코가 다 걸려 가지고 '아이구나 죽소' 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 걸려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렇게 됐지요. 이거 남은 잘사는데 나는 무슨 팔자가 이렇게 거세 가지고…. 안 그래요? 그렇지만 자기 일신으로는 이 운명을 벗겨 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대해로 빨려 들어가는 그런 한 형태권에서 벼락같이 흘러 내려가는 판국인데 거기에서 나 잘났다고 할 수 있어요? 그 흐름 가운데서는 잘났다고 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가다 보니 결국은 이렇게 됐습니다. 안 간다고 세상의 다른 길을 찾아가더라도 결국은 이 길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돌아와서 알게 될 때는 다시 새롭게 결심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과거에 정성들였던 터전 위에 서서 또 정성들일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안 서게 될 때에는 힘들지만 말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여러분들은 기쁘게 갔느냐, 슬프게 갔느냐, 마지못해서 갔느냐? 그 무엇이 있어서 가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흐르는 강줄기와 같은 터전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표준으로 대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이 길밖에 없습니다. 주위의 흐름이 어떻더라도 이것을 맡아 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만일 틀어지게 될 때에는 전체가 거꿀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정성들이는 인간들을 조정하면서 '야! 됐다. 가라'고 할 수 있는 운전사가 있을 것이 아니냐?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 아니겠느냐? 그럴 거 아니예요? 하나님께서 운전하실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운전을 받아 가지고 '옳소이다, 옳소이다' 하고 하나님의 뜻에 동조하면서 조종해 나가는 그 무엇이 땅 위에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종교입니다. 종교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제일로 바라보는 최고의 종교가 있을 것이 아니냐? 그것이 통일 교회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좋겠지요? '사실이 그런지 안 그런지 어떻게 알아, 내가 지내 봐야지' 할 것입니다. 눈으로 봐야 압니다. 구경해 봐야 아는 것입니다. 이 길은 여러분이 늙어 죽더라도 가야 할 길입니다. 끝을 맺어야 됩니다. 자기보다 뜻이 중요한 것입니다.

옛날에 유협회장 있을 때는 어떤 사람이 '통일교회에 가면 그 유협회장 이라는 사람 눈이 보기 싫어서 안 나간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유협회장 눈이 표준인가요? (웃음) 통일교인이 뭐가 어떻고 원리 말씀은 좋은데 교인들이 사랑이 없다고 하는 등 별의별 말을다 들었습니다.

통일교인은 시집가서 시누이와 시동생들을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그 문중을 이어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어머니가 되고 할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고, 난 그렇게 못 해' 하면 어머니도 못 되고 할머니도 못 됩니다.

부모 잘 만났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부모가 고생을 지긋지긋하게 해서 요만한 기반을 마련했는데, 죽느니 사느니 고생해 가지고 요만한 기반을 마련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한테 좋게 해주겠어요?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이치입니다. 그러니 고생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탕감해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통일교회의 때

신앙길은 부정하며 가는 길입니다. 사방을 부정하고 한 곳만을 알고 가는 길입니다. 앞으로 그런 때가 올 거예요. 그런 때가 언제냐? 대한민국에도 그런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럴 게 아니겠어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움직여야 할 통일교회의 때가 왔습니다. 그리고 교회끼리 만날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나라와 만날 때가 있을 거예요. 나라와 만나 가지고 나라한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끌고 가야 합니다. 세계 앞에 서서 세계를 끌고 가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길이 있어야 될 게 아니예요? 그냥 끌려가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만일에 가정에서 엄마 아빠가 잠들었을 때에 맛있는 것을 혼자만 먹었다고 합시다.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 아빠, 내가 엄마 아빠가 사랑하는 딸이지만 엄마 아빠가 주무실 때에 맛있는 것을 나 혼자만 먹었어'라고 하면 엄마 아빠가 기분이 좋겠어요? 자랑하기에 앞서 나눠 먹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이 도리어 채찍이 될 수 있고 화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 통일교회에서 내가 좋은 것 받았으니 나라야 망하겠으면 망하고, 세계야 망하겠으면 망해라. 나 좋으면 됐지' 하면 안 됩니다. 대한민국이고 뭐고 다 밀쳐 놓고 '우리를 반대하더니 벌 받아도 싸다. 우리는 살아서 통일교회 앞에 나섰으니 야, 자랑하자'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시겠어요? 나도 원하지 않지만 여러분들도 원하지 않을 거예요.

요즘 통일교인들을 가만히 보게 되면, 옛날에는 식구끼리 서로 그리워 가지고 뭐 못 만나면 안 되니 만나야 된다고 하며 필연적인 운명같이 알고 그렇게 날뛰던 사람들이 이제는 '식구라는 것도 다 싫소. 다 그런 거야' (웃음) '핏줄로 인연된 부모가 좋고 처자가 좋고 형제가 좋지, 핏줄이 다른 통일교회 형제는 그냥 그래' 한다는 거예요.

옛날엔 서로가 외로우니까 이 동산을 바라봐도 그렇고, 저 동산을 바라봐도 그렇고, 아무리 세월을 두고 봤댔자 적막강산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떨어져 있으니 아무리 해도 사정을 통할 수 없는 입장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을 붙들고 통일교인들끼리 간절히 소원하던 마음의 십분의 일만 쏟았어도 재깍 통일교회 식구가 되었을 걸, 내가 잘못했구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그 자리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길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시냇물이 흐르는 것을 보라구요. 옛날에 흐르던 물이 흐르는가 보라구요. 새로운 길을 따라가려면 반드시 부작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원칙이라구요. 그런데 그게 싫다고 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좋았는데 지금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엇갈리는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엇갈리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적인 현상인데, 이 환경을 누가 극복시키느냐? 이 환경을 극복시키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주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피해 가지 않고 극복해야 남아지는 것이요, 주류를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통일교회의 때가 많이 가까와졌습니다. 여러분은 몰라도 선생님은 알아요. 내가 해방 직후에 이 길을 출발할 때에는 단 십분도 마음 놓지 못했습니다. 어떤 때는 검은 구름 떼 같은 어둠의 압력이 막 몰려 오는데 소리를 질러 가지고야 그것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비등한 힘을 갖추어 균형을 취해야 방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격퇴시키기 위해 결사적으로 힘을 투입하고 노력을 하던 한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때와 더불어 뒤넘이침으로써 점점 풀려 나가고 있지만, 그런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이 장소에서 다른 장소에만 가게 되면 싸우는 거예요. 세계적인 사탄과 싸우는 거예요. 눈을 부릅뜨고 격투한다는 거예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무리 음산하고 터가 세다는 곳에 가더라도 거리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 곳에 가 있더라도 시시한 것이 근접하지 않는다구요.

애들이 바다에서 돌팔매질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큰 노도가 밀려와 가지고 한번 부딪치게 되면 잔잔한 파도들이 깨져요, 안 깨져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확 달라집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모를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서 방향을 갖춰 가지고 점점점점 밑창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끝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입니다. 높은 데까지 쭉 올라왔다면 거기에 걸린 것은 다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지금의 때가 아주 좋은 때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때는 가까왔는데 이 세계의 때는 복잡하다는 겁니다. 반대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외적인 때는 복잡한데 하늘의 때는 출발입니다. 알겠어요? 대한민국이 안팎으로 반대하는, 종교계에서도 반대하고 나라에서도 반대하는 제일 복잡한 때에 제일 끝에서 통일교회가 출발했습니다. 그때가 1960년대예요. 이제 이것이 기원이 돼 가지고 교회도 반대 안 하고 나라도 반대 안 하니 외적인 세계와 같이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내적으로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탕감을 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와 맞서서 수많은 종교를 중심삼고 세계의 해방을 위해 나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가 되었습니다. 필시 불원한 장래에 그렇게 됩니다. 그러한 여건이 지금 눈 앞에 벌어지고 있어요.

이렇게 볼 때에, 이제는 그야말로 대해로 들어가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개인이 바라던 최고의 희망의 때요, 가정이 바라던 최고의 희망의 때요, 나라가 바라던 최고의 희망의 때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바라던 최고의 희망의 한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가 오는 데는 나팔을 불고 옵니까? 전보치고 와요? '4·19의거가 일어난다' 하는 전보를 받은 사람 있어요? '5·16혁명이 난다'는 전보를 받은 사람있어요? 그렇지만 망한다 망한다 하니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내일이 찾아오더라는 거예요. 동지가 지나면 그 다음에는 뭐가 와요? 봄기운이 살랑살랑하고 오는 것입니다. 있는지 없는지, 닿는지 마는지 와 가지고 하루 이틀 죽 지내고 보면 '아, 봄이 왔구나' 하는 거예요. 봄이 오면 찬바람이 싫어서 아낙네들은 물 길러 가기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양달에서는 꽃이 피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살림살이가 벌어진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세상은 반대하지만 통일교회 자체는 꽃피는 봄을 맞아 새로운 살림살이를 하는 입장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몰아쳐 나오시는 하나님의 심정과 우리의 갈 길

만일 개인이 바라던 때, 민족이 바라던 때, 세계가 바라던 때, 하늘땅이 바라던 때, 하나님께서 만나고 싶어하시는 그런 때가 온다고 하면 누구든 보따리를 싸 가지고 그때를 맞으려고 마중나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안 그러고 싶어요? 그 때에는 자기 아들이 7대 독자니 뭐니 하면서 '그 아들을 놓아 두고 나는 못 가겠소' 하면 둘이 다 망하는 거예요. 그럴 때는 '야, 이 자식아, 나가야 돼. 이 자식아 나가야 돼' 하면서 안 가면 발길로 차고 들이 패서라도 가게 해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 있을 때에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에 데리고 가기 위해서 '출동이다. 이번 14일까지 떠나지 않으면 망한다' 할 때 그들이 어떻게 했겠어요? '갈 것이냐, 안 갈 것이냐' 하는 말에 이스라엘 민족은 '우리가 애급에 와서 400년 동안 고생 고생해서 이렇게 자손도 불고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데 우리가 밥이 그리워요, 뭐 부족한 것이 있어요? 나는 그냥 여기서 살고 싶어요'라고 했을 때, 모세는 도끼자루로 그들의 목을 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놈의 자식들, 나라를 배반하는 놈들…' 이러면서 그들을 때려 갈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럴 때가 온다는 모세의 말을 믿었겠어요? 도둑 같은 세상에 불한당이 와서 사기쳐 먹으려 한다고 생각하고 무슨 말인들 안 했겠어요?

그것을 생각해 보면 그 배후에서는 하나님이 몽시로 보여 주는 것보다도 강력한 출동부대가 나서 가지고 안 가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는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순순히 '가자, 떠나자' 할 때에 '예' 하고 나섰겠어요? 안 나서니까 할 수 없이 10대 재앙을 내려 공포의 분위기를 만들어 가지고 때려 온 것입니다. 안 가면 망한다고 하면서 말이예요. 이것이 하나님이 하실 일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아직까지도 가나안 복지로 가는 책임을 못한 것을 탕감받고 있는 것입니다. 배후에 천태만상의 불상사가 맺혀 있는 것을 수습하려니 하나님께서는 별의별 일을 다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안되면 저렇게 하고, 또 저렇게 해서 안 되면 또 다르게 해 가지고 그 환경을 한 데로 몰아 넣어서 처리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렇게 하는 것이 죽이려는 거예요, 살리려는 거예요? 살리려니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피난을 가야 하는데 애기가 배가 고파 엄마 젖꼭지를 물고 젖을 빨아먹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애기가 피난을 알아요? 인민군을 알아요? 인민군이 와서 곡괭이와 창으로 사람들을 찔러 죽이는 것을 알아요? '우리 애기 젖 먹고 있는데 다 먹거든 가야지' 하는 어머니가 있다면 그게 어머니 예요? 그때는 어머니가 아니라구요. 원수라구요. 애기가 울면 애기의 입을 틀어막고라도 가야 되고, 거꾸로 업고라도 가야 됩니다. (웃음) 그렇게 해서라도 피난을 가는 것이 어머니의 사명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아이구, 애기가 젖을 못 먹으니까 안 됐구나'하는 게 어머니의 사랑이요? 어머니의 사랑에도 한계선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아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눈치코치 볼 수 있겠어요? 가정에 아들딸이 다섯인데 못살고, 남편은 병이 들었고, 애기들은 병신이더라도 선생님은 그 부인을 출정을 시키려고 합니다. 못 가겠다고 하면 눈을 딱 감고 나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지금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통일교회가 여자들에게 전도하라고 시키니까 막힌다고 하는데, 막혀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게 통일교회 문선생의 식입니다. 통일교회의 전도 길은 막히지만 세계의 갈 길은 트인다는 거예요. 나라의 갈 길은 트인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여자들에 의해서 말이예요.

통일교회 망해도 좋다는 거예요. 한 천 이백 명쯤 죽어서 대한민국이 영원히 천운을 탈 수 있다면 그것을 단행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죽는 사람이 멸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제물적인 입장에 서면 일생 일대에 충성을 다해도 못 갈 하늘나라의 상속권을 받을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참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르고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모르지만 바라는 때요, 여러분의 선한 선조들도 몰랐지만 바라던 때요, 오늘날 인류도 모르지만 바라는 때인 그 때를 맞기 위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제 청평에 가서 모터보트를 운전해 봤어요. 모터보트를 몰면서 내가 똑바로 가라고 핸들을 수평으로 딱 맞추어 놓으면 틀림없이 똑바로 가는 거예요. 그렇지만 손을 조금만 움직이면 그만큼 방향이 틀어지는 것입니다. 또 몸을 싹 움직이게 되면 보트가 그만큼 움직여요. '야, 이것 봐라. 세상에 이런 법이 있구만. 지극히 미미하고 하등의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것이 결정적 요인이 되는구만' 하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핸들을 한번 힘차게 꺾어 봤어요. 그랬더니 다 싫어하는 거예요. 그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졸던 사람도 꿈꾸던 사람도 다 싫어합니다.

그렇게 한꺼번에 꺾어 돌리는 날에는 희생이 많습니다. 무지한 백성이 희생되는 거예요. 무지한 세계를 그렇게 꺾어 돌리면 희생이 많은 것입니다. 그런 때가 심판의 때가 아니겠느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남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꺾어 돌리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그런 식입니다.

천운을 타고 나아가려는 통일교회

통일교회가 욕을 먹었지만, 다들 망한다고 야단했지만 저 멀리에 있는 표준을 바라보고 가는 것입니다. 그 먼 표준을 바라보고 가는 데 있어서는 가까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입니다. 그 표준을 택해서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가느냐? 거 틀렸다 틀렸어' 하는 것은 눈 앞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그럴싸하게 보인다고 해서 그냥 갔다가는 옥살박살이 납니다. 옥살박살이 나도 좋아요? 이 세계를 돌리려면 세상 사람들과 같아서 돼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길을 가야 됩니다. 그 길이 무슨 길이랴? 비참한 길입니다. 세상과는 반대의 길입니다. 그 길과 인연되지 않고는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길을 못 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때가 되느냐? 통일교회에 오는 사람들 중에 '내가 기성교회에서 그래도 목사노릇을 몇십년 했는데, 통일교회에서 나를 몰라보다니…. 협회 이름으로 초청해 놓고 문선생님이라는 사람은 왜 인사도 안 해? 이거 인사불성이 아니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하면서 뭐 어떻고 어떻고 소문을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를 몰라봐요? 자기 좋아서 초청한 거예요? 그런 사람은 '내가 통일교회 교인이 되었으니 나 밥 잘먹게 만들어 주소' 할 것입니다. 그것을 원한다는 거예요.

자기들의 살림살이를 하는 데에 통일교회가 밥을 먹여 주어야 한다는 거예요. 자기가 전주에 살면 전주에까지 와서 먹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죽거든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누구도 만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그들이 필요로 할 때에 만나 주는 동네 사람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 뭐 이래' 할는지 모르지만, 내가 철석같이 행하라고 약속했지 말만 하라고 했어요?

여러분 보십시오. 대운을 맞이해야 할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여러분이 주장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의 주장은 다 풀어져 누룩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순수하니 휩쓸려 들어가야 합니다. 대해로 들어가는 권내에 있을 때는 아무 것이나 먹으면서 그 방향에 일치되는 놀음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대운, 즉 천운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나를 보고 운명론자라고 할는지 모르겠지만 천운이 있습니다. 세계의 운이 있고, 나라의 운이 있고, 가정의 운이 있고, 개인의 운이 있습니다. 개인은 가정이 망하게 될 때에는 고통을 받는 거예요. 또 아무리 행복한 가정이라 하더라도 나라가 망하게 될 때에는 다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운명이라구요. 대한민국이 아무리 잘났다 해도 세계가 뒤넘이치면 거기에 말려들어가는 겁니다. 그렇지요? 아무리 세계의 운세가 크더라도 천운이 굽이칠 때에는 거기에 말려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혜로운 사람들은 천운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망상주의자들이 종교인들입니다. '몇천 년 후에는 우리 주님이 오신다' 하고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데 그거 미친 사람들이지 올바른 사람들입니까? (웃음) '몇천 년 후에 세계를 심판하고 악한 무리를 다 쳐 버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데려다가 나라를 만들고 천국을 만든다'고 합니다. 그때가 언제냐고 하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오는 줄 모르지만 온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런 생각하면 기가 막혀요.

지혜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천운을 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천운을 타자는 겁니다. 여러분, 천운이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아폴로 11호가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달나라에 착륙했으니 좋지요. 그런데 달에 착륙하면 그냥 기분이 좋아요? 그냥 좋아요? 좋을 수 있게끔 되어서 좋아요, 그냥 그대로 좋아요?「좋을 수 있게 되어서 좋습니다」 좋을 수 있게끔 되어서 좋은 것이지 좋을 수 없게끔 되었다가는 어떻게 돼요? 팔자를 고치는 거라구요. (웃음) 어디든지 둥둥 떠다니는 거라구요. 좋을 수 있게 되어 있어 가지고 좋아야지 좋을 수 없게 되어 있는데도 좋다 하게 될 때는 그것으로 끝장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천운을 타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천운을 타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의 운을 타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운을 타자고요? 천운을 타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운 가운데는 시시한 노동자 운도 있습니다. 개인의 운도 있다구요. 양자의 운도 있다구요. 아들의 운도 있다구요. 그 운 가운데 무슨 운을 타자고요?「아들의 운입니다」 아들 중에도 쌍놈 아들이 있고 좋은 아들이 있습니다. 축복받은 아들이 있고, 축복을 못 받고 꺼떡거리면서 불효하는 아들도 있습니다. 아들이라고 다 같은 줄 알아요? 축복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지요? 그 하나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 하나의 길이 제일 어려운 길입니다. 남이 밥을 먹을 때에 밥 한끼 안 먹는 것이 제일 어려운 거예요?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 아들은 굶기가 일쑤입니다. 사람들은 놀고 먹으면서 살기를 바라는데 그 아들은 죽도록 일하기가 일쑤입니다. 사람들은 칭찬받고 살기를 바라는데 그 아들은 욕 얻어먹기가 일쑤입니다. 부모 때문에 칭찬받은 것이 아니라 욕을 먹었다면 그 아들은 부모 앞에 효자입니까, 불효자입니까? 부모 때문에 지지리 욕을 얻어먹었다면 그 아들이 효자예요, 불효자예요?「효자입니다」 효자입니다. 그러면 나라를 위해서 지지리 고생했으면 그 사람은 간신이예요, 충신이예요?「충신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지지리 고생했는데 하나님께서 '야, 이녀석아, 네가 못났기 때문에 고생했지. 너 같은 것은 필요없어' 이러시겠어요? 천운을 타려면 지지리 고생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결론밖에 안 나와요. 최고의 결론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 길을 가는 거예요. 지지리 고생하는 거라구요. 여러분, 지지리 고생하는 게 싫지요?

심정일치와 상봉의 기쁨

사람들이 서로 만나 가지고 붙드는 데도 '그 뭐 만났구만' 하면서 손을 붙들고 싶지 않아 가지고 붙들다 말다 하다가 할 수 없어 붙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반면에 손을 붙들고 싶어서 붙드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손을 잡아채 가지고 목을 안고 붙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는 어떻게 하기를 바랄까요? 그렇게 부모를 붙들면 부모가 '이 무슨 요사스러운 짓이야? 아이고 이거 미쳤구만'하면서 가만히 붙들어 주기를 바라겠어요, 80여 년 생애에 처음 해 입은 양단 치마 저고리가 어깨가 쭉 드러나게 다 찢어지더라도 그렇게 붙들기를 바라겠어요? 치마야 찢어지겠으면 찢어지고, 형편이 어떻게 되든지, 남이야 웃겠으면 웃고 말겠으면 말고…. 어떤 게 더 가치가 있느냐는 거예요. '아이고, 체면상 그럴 수 있어? 눈치를 봐야지, 눈치' 그런 부모도 있을 겁니다.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학습을 참관하라고 학부형을 오라고 하면, 자기 어머니의 얼굴이 좀 찌그러진 학생은 시무룩하여' 우리 어머니는 학교에 안 오면 좋겠다'고 할 수도 있는 거라구요. (웃음) 어머니가 딸을 만나 가지고 자기 얼굴을 생각하겠어요? 내가 얼굴이 이렇게 못생겼으니 내 딸 안 됐다' 그런 생각을 하는 부모가 있어요? 자기 얼굴이야 어떻게 생겼든지 딸만 좋다는 거라구요. 어머니는 그런 생각을 안 하고 그저 좋아서 웃는데 그 딸이 '아이고 창피해. 부모는 무슨 부모야' 하며 모른 척하고 그러면 그 부모가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그렇지만 누가 아무리 뭐 어떻다 하더라도 '엄마가 오셨구만' 하면서 그저 눈물을 흘려야 되는 거예요. 모르는 애들은 '아이고, 아무개 엄마가 저렇게 생겼구만, 우리 엄마는 저렇지는 않은데…' 할 거예요. 그렇지만 선생님이나 그 사정을 아는 사람은 그걸 보게 되면 '야!'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 옆에서 그렇게 해주는 아가씨들이, 총각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아이는 훌륭해지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우리 학교에 저런 학생이 있는 것이 학교의 자랑이다'고 한다는 거예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아, 우리 학교에 저런 학생이 있으니 우리 학교가 안 되겠구만' 이러는 선생님들이 있겠어요? 학생의 그 행동을 아는 선생님은 '귀한지고 귀한지고' 하는 거예요. 그것은 일기에 적어 가지고 남겨 놓을 장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 있을 때에 고맙게 생각했던 것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전부 선생님을 면회하겠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는 통일교회 교인들이 망할 패예요, 흥할 패예요? 남편이 그렇게 됐으면 형무소 앞에 가게 될 때에는 누가 알까봐 얼굴을 쓱 가리고 갈 판인데 내가 어디에 끌려가더라도 찾아와서 면회하려고 하는 거예요. 누가 '여기에 왜 왔어? 하면 '아, 통일교회 문선생님 면회하러 왔지요' 한다는 거예요. 서로가 먼저 면회하려고 싸움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싸움을 했다는 이 패들이 대한민국에서 망해 죽을 패들입니까. 남아질 패들입니까? 내가 그런 말을 듣고….

또, 무슨 간수장이니 서장이니 하는 사람이 와 가지고 하는 말이 '통일교회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몹쓸 사람이라고 소문났지만 그런 사람이 아니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더니 한 달쯤 지난 다음에 와서는 '선생님' 하는 겁니다. 가만히 보니까 자기가 배우는 것이 많거든요. 선생님 때문에 야단하고 있는데, 그렇게 야단하는 패가 흥할 패들입니까?

요즘 대한민국에서 '부정 부패다. 도적패다' 하는데, 통일교회는 뭐라고 할까요? 도적패보다도 더한 뭐라 할까요? 강탈이라고 하겠어요. 파탄이라 하겠어요? 남들은 도둑질해 가지고 잘살려고 하는데 통일교회는 전부 다 살림살이를 때려부수고 나라를 살리자고 벗어부치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발가벗고 춤춘다고 말하지만 춤추는 것이 아닙니다. 발가벗고 나섰다 이거예요. 그런데 망할 패냐 이거예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어떤 자리에서 상봉의 때를 맞을 것이냐

그러면, 여러분이 상봉의 기회를 만날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비단옷을 입고 식사 때에는 쌀밥에 고기를 먹고, 잠도 열두 시간 이상 72시간쯤, 한 3일쯤 자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어릴 때 부르던 '천년 만년 살고지고'를 부를 수 있는 그 때가 왔으니 이렇게 이렇게 만나야지 하면서 준비하며 살아가야 되겠어요? 그러다가는 그 때에 못 맞추는 것입니다. 늦어도 한 순간, 일 초가 아니라 한 시간, 세 시간이나 늦게 그 자리에 참석했다 할 때에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니 인류를 위해 시련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을 중심삼고 가야 합니다. 그저 눈 코 할 것 없이, 뭐랄까, 밀가루로 빚어 만든 떡 같은 꼬락서니로 고생하며 갔을 때 세상 사람들이 '저게 무슨 통일교회 패냐 망해라 망해라' 하겠지만 뜻을 위해서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부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잘먹고 잘입은 입장을 갖추어서 만날 것이냐. 피를 흘리면서 쓰러지는 그런 자리에서 만날 것이냐? 힘들게 가면서 그 때를 만났다 하게 되면 그 사람은 억천만세 천국사상을 이어받을 수 있고 그 전통을 길이길이 뒷받침할 수 있는 사상적인 주체자로서 칭송받을 수 있는 영웅이 될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새로운 천운을 따라 나타날 그 나라를 어떻게 맞을 것이냐? 살이 쪄 가지고 맞을 것이냐? 지지리 헐벗고 뼈만 앙상히 남아 가지고 기력이 없어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입장에서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타난 모양은 비참하지만 내정적인 사연은 천지를 다 녹여내고 남을 수 있는, 만민이 공인할 수 있는, 웃음거리의 세계를 일시에 울음의 세계로 돌려잡을 수 있는 능동적인 권한을 갖추지 않겠느냐? 그런 터전에 서는 것이 만민의 소원이 아니겠느냐? 보다 가치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 그래서 내가 아직까지 본부를 안 짓는 거예요.

지금 통일교회의 지구가 몇 개입니까? 세어 봤어요? 지금 몇 개예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지구만 여섯 개로군. 기분 나쁘게 말입니다. 6수는 지금까지 사탄수인데, 내가 앞서서 나가니 7수지요? 이렇게 생각하고서 탕감하자는 겁니다.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라구요.

때를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상봉의 때를 어떻게 맞을 것이냐? 지극히 사랑하고 지극히 필요로 하며, 지극히 가치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그런 자리에서 맞아야 합니다. 사랑하기에, 내 육신 전부를 녹이기 위해 이렇게 상처를 입고 피폐된 신세가 되었더라도 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주인이 틀림없이 나를 아는 주인이라 할진대, 그 주인은 천년의 사연을 넘어 가지고 행복의 세계를 다짐하여 가지고 축복의 터전을 마련해 줄 것은 두말 할 바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상봉의 기회를 어떤 자리에서 맞을 것이냐 하는 문제가 이제 여러분에게 처한 문제일 것입니다.

며칠 전부터 순회사들 모임이 있는데, 어제 저녁 그들에게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늘의 뜻 가운데 있어서 일생 동안 가는 길 앞에 자신이 맞아야 할 한 때가 있을 것이거늘, 그 한 때가 어느 자리에서 나타나는 줄 아느냐? 그 때가 빌어먹는 거지의 손길을 통해서 찾아올지도 모른다. 혹은, 최후의 운명이 가름되는 자리, 유언을 하는 그런 비운의 자리에서 찾아 올지 모른다. 혹은, 울고 있는 애기의 손길을 통해서, 애기의 모습을 통해서 찾아올지 모른다. 바라고 소원하던 그 때가 어느때에 올 것인가를 모르는 입장에 있더라도 그 기회를 맞기 위한 준비를 하여 어떤 환경에서라도 그 때를 맞을 수 있다는 마음 자세를 갖지 않으면 한 번밖에 없는 진정한 그 인연을 못 맞을 것이 아니냐? 비록 슬프고 억울하고 분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자리에서도 한 번밖에 없는 때가 나에게 찾아올 수 있는 최후의 찬스를 놓친다면 나는 얼마나 불쌍하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 때를 맞기 위해 매를 맞으면서도 참아 나왔고 죽음길을 가면서도 참아 나왔다고' 말입니다. 그 때가 올 것이어늘, 그런 마음을 갖고 가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이 가는 길은 트일 것입니다.

세계적인 상봉의 때를 맞기 위해 소망을 품고 나아가자

예수 그리스도가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한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땅 위에 찾아 나왔던 최후의 아버지의 뜻과 만나고 아버지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하나의 절호의 찬스인 것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자기의 뜻을 부정하고 아버지의 뜻 앞에 서려고 했던 일면이 있지 않았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절호의 찬스가 어떤 때냐? 잠자는 시간이냐? 밥먹는 시간이냐? 노는 시간이냐? 모르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도 달가이 맞아야 합니다. 기쁨의 길이라고 기뻐할 수만 없는 겁니다. 너무 기뻐하다가는 때를 놓칩니다. 그 기쁨 가운데 찾아오는 인연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할 입장이기에 밤이나 낮이나 그걸 찾기 위해 지내온 게 아닙니까?

하나님은 6천년 동안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도 당신의 뜻을 이어받으려고 쉬지 않고 그것을 바라고 찾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실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 사람은 아까 말한 그런 입장에서 괴로와도 그때를 찾고, 기뻐도 그때를 찾고, 죽는 자리에서도 그때를 찾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6천년 동안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필요한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가 지금까지 믿고 바라며 나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 너무나 불경스러운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이 어떠한 입장에서 상봉의 기회를 맞을 것이냐? 이게 문제되는 거예요. 자기가 병신이 되더라도, 뜻을 위해서 병신이 되었다면 그것은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팔을 하나 못 쓰는 병신이 되었다고 부끄러워할 것 없습니다. 자기의 일신을 가누지 못하는 병신이 되었더라도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 이상 더 바치고 싶은 마음, 생애를 다 바친다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는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앞서 말한 그런 주류에 어울려 가지고 대해로 들어가는 입장에 있는 이 시점에 있어서 여러분이 어떤 보조로써 그 운세와 화합하고 그 운세의 방향에 부합할 것이냐? 흐르는 그 물줄기 앞에 반대되거나 거기에 할 수 없이 끌려가는 사람이 될 것이냐?

그런 와중에서의 시련 고통은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동정을 구하고, 인류의 동정을 구하고, 역사의 동정을 구하고, 시대의 동정을 구한 다음 미래의 동정 위에서 출발을 할 수 있으면 거기서부터 세계를 찾아 나온 하나님의 소원이 '나'와 관계를 맺을 것이고, 혹은 통일교단과 관계를 맺을 것이 아니냐? 그렇게 나아가려는 자리는 기쁨의 자리가 아니요, 모든 사람이 바라보는 자리가 아니요, 모든 사람이 환영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통일교회 간부들이 선생님을 반대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죽이겠다고 하는 패도 나타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입장에 처하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 예수님도 그랬고, 역사적인 성인들도 그랬습니다. 악한 세상에서 씨를 받아 뿌리를 박고 있기에 별의별 일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까지도 각오하고 가는 길이 선생님의 길이요, 통일교회의 주류의 행로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주류와 행로 앞에 어떠한 자세로 상봉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상봉했으면 상봉의 인연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더 높은 곳으로 가야 됩니다. 개인으로 만났으면 가정으로 만나야 되고, 가정으로 만났으면 종족으로 만나야 됩니다. 선생님은 옛날에 이런 저런 어려운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부름과 구함을 받아 가지고 뜻을 중심삼고 나왔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만 언제나 기쁘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를 중심삼고 기쁘게 상봉할 수 있는 인연을 거쳐 가야 될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그러한 입장에서 상봉의 기회를 몇 번 맞이했느냐, 그것이 개인적이냐, 가정적이냐, 민족적이냐, 국가적이냐, 세계적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새로이 결의하고 내일의 소망을 바라보며 꿋꿋이 나가 주기를 바라면서 몇 말씀 드렸습니다.

​기 도

​아버님,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무엇을 찾을까 하는 문제를 두고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어떤 흐름의 과정에서 걸어 나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이때는 과연 절박한 때인 것을 느끼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수고하던 1960년대를 회상하면서,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가정들을 일선에 내세우고 다짐을 해야 하는 요 때가 지나게 되면, 통일교회 전체를 내몰아 가지고 민족의 해원성사를 할 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 나라가 망할 운명의 때가 오면 남자 여자뿐만이 아니라 아들딸 전체를 동원해서라도 이 나라를 구해야 할 전통적인 일면을 저희들이 남겨야 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통일교회는 비참한 과정을 지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부딪쳐 오는 시련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저희가 대해를 맞을 때에 영광과 찬양의 요건으로서 남아질 수 있을진대, 그 흐름은 하늘의 기쁨이요, 하늘의 자랑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 앞에 부딪치는 모든 것을 저희가 피해 돌아갈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딪쳐 나감으로써, 전부가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사연 가운데서 잊혀져 버리고 당신의 생각 가운데서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 가운데에 영원히 남고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는 내용으로 남아지기 위해 가는 통일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오늘 아침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얼굴을 바라볼 때, 내 눈이 지금까지 무엇을 바라보고 나왔으며, 내 코가 무슨 냄새를 맡고, 내 귀가 무슨 소리를 듣고, 내 입이 무엇을 먹고, 내 얼굴이 무엇을 느꼈나를 다시 한 번 직시하면서 분석 비판해야 되겠습니다. 이 손발이 누구를 위해 허덕였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와 상관이 없고 나라와 상관이 없게 될 때에는 하늘의 때와 그 나라의 때가 오더라도 나는 그때와 상관없는 자리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개인을 잃어버리고 가정을 잃어버리더라도 나라와 세계를 위해 살아야 할 것이 도의 길인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성인의 이름을 남긴 사람은 그 시대에 있어서 아버지와 세계를 위해 살기 위한 걸음을 자초해 간 사람들인 것을 생각해 볼 때, 그 이상의 자리를 다짐하고 그 이상의 길을 가야 할 통일신도들은 이제부터 가야 할 최후의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스승이 명령한다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뜻을 알았기 때문에 명령하지 않아도 내 아들딸과 더불어 일선에 서서 싸우다가 죽겠노라고, 자기 아들딸에게 그렇게 유언을 하면서 아버지 앞에 복을 빌고 아버지 앞에 사정을 통고하며 가는 부모가 있다면 그 후손은 망하지 않을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통일 가정이 몇이나 되며, 그럴 수 있는 통일의 무리가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해야 되겠사옵니다. 손을 저으며 어려운 길을 안 가겠다고 뒷걸음치는 사람은 많고, 자기를 희생하며 남모르는 가운데 수난 길을 먼저 자초해 가는 사람이 없는 민족과 단체는 끝날이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시여! 오늘 통일교회를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저 자신이 아버지 앞에 부족함이 있거든, 그 부족한 것을 식구들 앞에 남겨 주지 마옵소서. 저는 저희 선조로부터 남아진 빚이 있다면 그것을 제 일대에서 갚을 것을 결심했사옵니다. 선조로부터 천운을 이어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이 아버지 앞에 반대되고, 아버지 앞에 모순되고, 아버지 앞에 상충된 인연이 있다면 이것을 탕감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희생을 각오하고, 한걸음 후퇴하는 일이 있더라도 탕감해서 가야만 하는 길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기에 이 현재의 입장을 보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미래의 뜻을 중심삼고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가 전후를 가릴 수 있고 선악을 가릴 수 있는 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지방에 널려서 싸우고 있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더욱이 내일부터 출발하는 전국의 순회사들을 아버지께서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들은 당신의 피곤한 걸음을 대신하여 걷고, 당신의 고달픈 사연을 대신 전해 주고, 굶주리는 당신의 자녀들을 대신 지켜 줄 수 있고, 당신이 가시는 길 앞에 있는 태산준령을 넘고 그 길을 안내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들이 가는 길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그들이 가는 곳에 당신이 현현하시어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사정을 통고하시고 찾아오는 생명의 인연을 연결시켜 가지고 하늘땅이 화합하고 천지가 기뻐할 수 있는 사연이 거기에서 부활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아침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지금 이 시간은 특별순회사들이 본부에서 역사적인 자리를 갖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이 시간에 상봉의 때를 이어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진 것을 감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첫 번째 만나는 사람이 누구일 것이며, 첫 번째로 기쁨을 전할 사람은 누구이겠사옵니까? 슬프고 딱한 사정을 남겨 줄 사람, 아버지 앞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공분의 마음을 남겨 줄 사람은 누구이겠사옵니까? 천태만상의 사연을 연결시켜 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가는 그들의 걸음 걸음 앞에 원리의 불을 주시옵시고, 그들이 사연을 따라 아버지 앞에 위로의 대상이 되고 아버지 앞에 신의의 대상이 되어, 외로운 자리에 계시는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고, 기쁘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책임질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시옵소서.

아버지, 삼천리 반도에 새로운 봄절기를 심어 놓아야 할 사명이 통일교단 앞에 있사오니 이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의 가는 길을 살피시옵고 지켜 주시옵소서. 그들이 돌아오는 날, 금의환향하는 그 날을 맞이할 때 하늘이 기뻐하고 땅이 기뻐하고, 당신의 영광의 나라가 기뻐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고, 소망의 천국이 이 남한 땅을 통하여 이뤄질 수 있는 기원이 마련되는 특별한 계기를 마련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서 있는 자식이 지금까지 50평생 당신의 뜻을 따라 나온다고 하였지만,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이 부끄럽사옵니다. 내일의 갈 길이 아직까지 태산같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할 때에 오늘도 몸부림쳐야 되겠고, 내일도 몸부림쳐야 되겠고, 여생을 몸부림쳐야 되겠습니다. 그런 몸부림치는 자리를 남긴다 하더라도 이 자리를 남긴다는 그 자체를 서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남긴 그 자리를 상속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을까봐 서러워하는 것을 당신이 잘 알고 계시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그것이 서러운 것이 아니라, 축복의 길을 이어받아 가지고 그것을 전통으로 남겨 인류가 가는 길 앞에 하나의 등대와 소망의 터전이 되는 민족정기를 마련하지 못할까봐 염려하시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수난길에서 수난의 전통을 남기기 위하여 몸부림치던 과거지사가 현재의 슬픔으로 남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세계를 향하여 가는 가운데 어떻게든 새로운 상봉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 저희가 불철주야 바라는 소원인 것을 당신은 잘 알고 계시오니, 이 시간도 당신이 그 길로 한걸음 이끌어 주시옵고 보살펴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것은 나 개인의 편안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과 세계가 편한 길을 찾기 위한 것이니만큼 그것이 당신의 소원이요, 당신이 소원의 일념을 통하여 그러한 것을 바라실 것이오니, 저희가 이것을 바라는 것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내일의 희망은 당신의 희망을 대신하고 오늘의 생활은 당신의 이상적인 터전을 대신할 수 있는 승리의 여건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불쌍한 무리를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외로운 아들딸들을 지키시옵소서. 더욱이 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지금 싸워 나가는 길을, 아버님,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도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새로운 경종이 울려나는 새아침을 맞이하여, 새로운 소망의 세계를 제시하여 흑암세계에 있는 만민 앞에 광명의 등불을 비추어 줄 수 있는 통일의 제단이 되고, 통일의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통일가를 중심삼은 이 나라 이 민족이 되기를 바라는 뜻이 당신의 소원인줄을 아오니 그러할 수 있는 행로 앞에 어긋나지 않기를 지극한 정성으로 다짐하면서 전진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놀라운 역사적인 시대에 있어서 상봉의 기회를 놓치는 불쌍하고 처절하고 처참한 무리가 되지 말게 하시옵기를 바라옵고, 지금 한 말씀을 저들이 마음 몸에 새겨서 생애의 노정기로 삼을 수 있게 축복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은 선생님의 부모 형제가 계신 곳이 평안북도 정주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어머니가 사랑하던 자식이었습니다. 

​부모 형제보다 하나님을 더 생각했다

​선생님의 형님은 병이 있었는데 신앙의 힘으로 고치고, 이 나라가 해방될 것까지도 영계를 통해서 미리 알았던 사람입니다. 동생이 가는 길에 있어서, 동생에게 무슨 사명이 있는지는 몰랐지만, 앞으로 동생에 대한 기대를 크게 가져야 될 것을 영계를 통해서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누구보다도 큰 소망을 품고 나오던 형님이었습니다.

내가 그런 형님에게 동생으로서 많은 수고를 시켰어요. 복귀역사에서 가인복귀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런 의미에서는 그 형님이 대표적인 가인의 입장에 선 사람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가정은 환난노정에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역경 가운데서도 형님은 동생을 위해 수고를 하는 데는 불평할 줄 몰랐습니다. 그런 형님을 대해 내가 언제 조용히 만나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정리(情理)를 나누던 것과 같은 그런 시간을 가져 보지 못했습니다.

또, 우리 아버지로 말하면 아버지는 법이 없어도 사실 분이었습니다. 만일 아버지께서 어디서 바쁘게 빚을 얻어 왔을 경우, 그 빚을 갚는다고 약속한 날에 이자까지 갚아 주지 않고는 못 견디는 분이었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그 약속을 이행하는 사람이라구요. 약속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는 모범적인 분이었습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구요. 선생님은 그런 아버님을 자식으로서 효성을 한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해 본 적이 없습니다.

또, 내 동생들을 보면, 손위의 누나들도 그렇지만, 동생들은 선생님 때문에 희생됐습니다. 안팎으로 희생됐습니다. 그런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가정을 대하여 누구보다도 잊을 수 없는 심정적 내연(內緣)을 남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더욱이 어머니께 미안한 것은…. 여러분 중에도 아는 사람은 알 거예요. 왜정 때 관부 연락선 곤린마루(崑崙丸)가 깨져서 침몰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이 그 배를 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배를 타고 고향에 간다고 전보를 쳐 놓고 막상 떠나려고 동경역에 나가니까 하늘이 가는 길을 막더라구요. 그때 친구 세 사람이 전송을 해주려고 나왔었는데 그 길로 돌아서 가지고….그 시간에 차를 타고 배를 탔으면 배하고 같이 깨졌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어 가지고 친구네 집에 가게 됐던 것입니다. 고향에 간다고 전보했는데 어떻게 돼서 못 간다고 전보를 해야 할 텐데…. '자 이렇게 되었으니 며칠 동안 우리와 같이 놀자'고 하는 친구들에게 끌려가서 3일 동안 지내고 보니 전보를 못 쳤습니다. 그때까지도 배가 깨졌다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사흘 후에야 그것을 알게 된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집에 전보를 하긴 했는데, 그 과정에 고향에선 큰 난리가 벌어진 거예요. 들리는 소식엔 배가 깨졌지, 고향에 온다는 전보는 왔으니 틀림없이 죽었다 이거예요.

여자가 치마를 안 입고 속바지 차림으로 다닌다면, 그건 자기 정신이 아니지요? 어머니가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9월이니까 출지도 않은데, 신발이니 뭣이니 생각할 여지가 있었겠어요? 그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 부모의 사랑이 그렇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의 고향 마을에서 정주읍까지는 이십 리입니다. 어머니께서는 그 이십 리 길을 왕발(맨발)로 뛰고, 부산까지 갔다 왔는데, 신이고 옷이고 무엇이고 생각할 정신이 있었겠어요? 우리 아들 죽었다고 맨발로 뛰어 나와 가지고 부산 수산경찰서까지 가서 조사를 하니 명단에는 없고, 알 수가 있나요. 그러니까 어머니는 틀림없이 아들이 죽었다고, 이래 가지고 그렇게 골똘한 마음을 가지다 보니 왕발로 뛸 때 그 발바닥에 아카시아 가시가 박혔다는 것을 몰랐다는 겁니다. 그것이 박혀 가지고 곪아 터질 때까지도 몰랐다는 거예요. 그때 내가 보름 후인가, 하여튼 열흘이 지난 후에 돌아왔어요. 돌아와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아! 내가 너무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어머니였습니다.

선생님에 대하여 문중에서는 기대가 컸습니다. 저 사나이가 공부를 하고 학교를 졸업하면 그래도 무엇인가 될 것이라고 말이예요. 또, 내가 그 면 일대에서는 문제의 사나이였습니다. 잘되면 충신이 되고 못되면 역적이 된다고…. 성격이 대단했고, 그런 소문을 낳고 있던 사나이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선생님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컸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그런 어머니 앞에 효도를 해야 되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전혀 해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해 주셔서 지금까지 나왔다

아들이 학교를 졸업해 가지고 그렇게 집에 왔는데, 또 가는 곳은 감옥이라는 거예요. 그저 끌려갔다 하면 감옥으로 끌려가니 어머니가 감옥으로 찾아와 가지고 눈물을 죽죽 흘리면서, 뭐 용이 될 줄 알았는데 번데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별의별 소문을 다 듣게 되었어요. 내가 억울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옥에 찾아와서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대해서 기분 나빠했다는 거라구요. 자식을 대해서 눈물 흘리는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사연이 많겠지만, 나는 하나님을 생각한 것입니다. 어머니가 그런 것을 아나요? 그런 얘기를 안 했거든요. 어머니는 그보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목숨을 걸고 역사적인 전통을 이어받아야 되고, 자식이 가는 길에 축복을 해야 되고, 천륜의 길을 힘차게 가라고 자식에게 권고해야 옳다는 거예요. 물론 어머니가 모르니까 그렇겠지만. 하나님이 볼 때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 위신과 체면을 손상시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눈물 흘리는 어머니에게 벼락 같은 소리로 비켜나라고 했습니다.

내가 그런 어머니를 대해서 또 형님을 대해서 원리 말씀을 한마디도 못했다구요. 그건 왜 그랬느냐? 예수님의 길을 바로잡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사정을 자신의 부모와 친척과 더불어 나눌 수 없었던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했기 때문에 내가 그 이상의 비참한 자리에 서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만민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에 있어서 둘도 없는 복의 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어머니 아버지를 붙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여러분 대신 회개하고 여러분을 대해서 지극히 정성들이는 마음을 가지고 호소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그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은 누구보다도 내가 가는 길을 지켜 주었을 것입니다. 자기 동생이면 동생, 자기 오빠면 오빠, 자기 아들이면 아들이 가는 길에 죽음이 몇백 번 가로놓여 있더라도 그 아들이, 그 형이, 동생이, 혹은 오빠가 상처를 입고 피해를 입을까봐 부모 형제들은 갖은 수욕과 슬픔을 당하는 과정에 있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가정을 뒤에 두고 길을 떠나 아무 상관없는 여러분들을 붙들고 그 사랑을 퍼부었습니다. 이건 틀림없어요.

감옥에서도 가치 없는 사형수들을 중심삼고 하늘의 긍휼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오른편 강도에게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한 것처럼, 비참한 데에서 외로운 길을 가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의 길을 위해서 사형수들이 하는 동정의 말을 통해 눈물이 엇갈리는 사연이 교류될 때, 그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기 위해서, 절망하는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싸워 나왔다는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가서도 그런 일을 하는 거라고요.

그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내가 감옥을 떠나게 될 때에, 부모가 자기에게서 떠나는 것보다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는 자리를 그들에게 남겨 주지 않고는 복귀의 사명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움직여 나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감옥을 나오게 될 때 나를 붙들고 통곡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내가 이북에서 감옥을 나올 때에 네 사람이나 자기 부모와 처자식을 다 버리고 나를 따라오는 일도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러한 길을 이어 남한 땅으로 내려와 가지고, 북한에서 내 정성을 다 퍼붓고 참다운 피땀을 다 흘려 가지고 하나님이 남기신 사람들을 수습하려 했지만 그들이 반대하고 뒤로 돌아서니, 이제는 남한 땅에 남아진 그들을 위해서 정성을 들여야 될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남한에서 그 길을 따라오는 데도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어디든지 가는 곳곳마다 마사(魔事)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어느 동네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동네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사람이 죽고 하는 일이 벌어진다구요. 그런 길을 거쳐 가지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여러분을 만나 말씀을 했고…. 통일교회 개척 당시 영도면 영도에서 유협회장을 중심삼고…. 유협회장의 훌륭한 점이 이겁니다. 그는 내 말씀을 듣지 않고도, 원리원본을 읽고 자기 스스로 서면(書面)으로 자기의 몸이 영원히 하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제물이 되더라도 감사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내가 고독한 때에 그러한 사람을 만났던 거예요. 이런 것이 하나님의 역사지요. 그때의 선생님의 심정은 심각했어요. 심각하니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역사했던 거라구요. 하나님이 몽땅 역사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지금까지 거쳐온 것입니다. 맨 밑창에서부터 거쳐온 거예요. 이제는 많이 올라왔어요.

남북통일의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통일교인들

대한민국이 남북으로 갈라져 삼팔선이 생기게 된 것은 해방 이후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 못한 데 대한 하나님의 원한의 보응입니다. 이것을 탕감하고 넘어가야 할 민족적인 해원의 길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제 남북한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남한 사람이겠습니까? 남한 사람 가지고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하나로 만들려면 공산당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공산당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게 문제라구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반공을 들고 나오는 거라구요. 공산당을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퇴치시켜 버리려면 종교인들이 단합해야 됩니다. 종교인들이 단합하려면 먼저 기독교가 단합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독교의 통일을 표방하고 나선 것입니다. 여기에 수난길이 있더라도 하늘의 주류인 참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이것을 전면적으로 드러내 가지고 반대를 받더라도 뚫고 나가겠다는 것이 통일교회의 걸음입니다.

그런 때는 우리를 반대하던 기성교회와 반대하던 나라가 반대하지 않고 환영할 수 있는 환경을 거쳐가야 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재봉춘할 수 있는 때가 언제냐? 지금입니다. 22일부터 시작된 목사를 중심삼은 제7차 원리공청회가 오늘로서 끝나게 됩니다.

이것은 빚을 지면서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에서를 굴복시키기 위해 21년 동안 정성들여 모은 재물을 에서에게 바쳤듯이, 지금 내가 가진 어떠한 것이 있고 어떠한 사람이 있고 어떠한 물질이 있다면, 이 모든 것을 기성교회를 거쳐 대한민국을 위해서 써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쓰겠다는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을 못살게 하더라도 대한민국이 잘살도록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은 뭐 우리 선생님이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만 좋게 해주고 우리는 고생만 시킨다'고 불평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영원한 주인이라면 주인인 우리가 고생을 해 가지고 전체가 기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행복의 때가 올 것이 아니겠어요? 그것을 가로막는 여건이 있으면 주인은 그것을 없애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없애느냐? 간단하다는 거예요. 어떻게 북한을 일시에 복귀시키느냐, 어떻게 해방시키느냐 하는 마음이 사무치게 되면 부정하라고 해도 안 해요. 부정하라고 해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이야 망하겠으면 망하고 말겠으면 말고, 남한이라도 그냥 이대로 잘살면 됐지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패된 풍조를 없애고 새로운 풍토를 조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새로운 국민운동을 제시하여 남북통일을 표방하고 나설 수 있는 동기를 어떻게 마련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 길의 선봉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은 통일교회 교인들이라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무엇보다도 귀한 것을 선생님의 부모와 형제들로부터 옮겨 받아야 할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은 본연의 사연이요, 탕감복귀의 사연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대신 선생님의 가정은 희생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이남 땅에 내려와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 가정은 희생되었다는 것입니다. 부모도 그렇고 형제들도 그런 입장에 있을 것입니다.

내가 이 땅에 살다가 이북 땅에 가서, 부모의 무덤 앞에서 부모님 생전에 효성을 하지 못하고 부모 앞에 책임 못한 것을 놓고 통곡하지 않고는 선생님의 한이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만일에 선생님이 죽더라도 여러분이 선생님을 대신하여 그곳에 가서 눈물을 흘리고 옛날에 선생님이 자랐던 곳과 여러분이 자랐던 곳을 엇바꾸어 가질 수 있고, 여러분의 애국심을, 나라의 정기를 바로 심을 수 있는 하나의 전통적 기틀의 사상으로 엇바꾸어야 됩니다. 그리고 하늘 앞에 제가 왔습니다 라고 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이 바라던 소원과 선생님의 선조들이 바라던 소원의 한 날이 오늘에야 왔다고, 여러분이 선생님의 조상의 무덤을 찾아가서 선생님 대신 통곡하지 않으면, 앞으로 통일천국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라구요.

앞으로 대한민국이 천국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남북을 하나로 만들어야 됩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원수에게 짓밟힌 북한 땅을 탈환해야 됩니다. 내가 공산당에게 고문을 받으면서, '이 자식! 내가 지금은 거꾸로 달려 있는 입장에 있지만, 어느 때에 가서는 반대로 내가 너를 처박을 것이다'라는 맹세를 했습니다. 그 결심을 표준삼고 지금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그때 나를 고문했던 사람의 이름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내가 얘기를 안 한 거라구요.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그곳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반드시 남북을 통일시켜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삼팔선을 넘어야 됩니다.

북한 공산당이 김일성을 중심삼고 전인민의 무장화, 전국토의 요새화 등 백방으로 준비한 터전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이상의 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불철주야 그 목표를 가지고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어차피 여러분들이 땅 위에 사는 동안 북한을 한번 갔다 와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심정적 입장에서 출발과 목적이 일치될 수 있는 가정과 형제의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이 아니겠어요? 잃어버린 땅, 성사하지 못한 그 터전에서 끝을 맺고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1965년도부터 여러분에게 '통일의 노래'를 부르라고 한 것은 그런 때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됩니다.

삼천만 민족이 북한 땅을 중심삼고 통일의 기운을 맞이해 가지고 여러분들이 선생님과 더불어 선생님의 고향에 가게 되면, 거기서부터 선생님의 역사를 풀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실제로 선생님의 과거 역사를 모르지요? 그러나 여러분이 그걸 못 할 때는 이 땅 위에 선생님이 자라던 역사를 남기지 못하고 갈지도 모른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알겠어요?

이북 동포를 구하기 위해 삼팔선을 넘을 각오를 하라

이제 여러분은 북으로 가야 됩니다. 북한 공산당들이 남한 땅을 침략한다는 소식이 들릴 때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야 됩니다. 그게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나는 이 길을 나서면서, 골짜기에 들어섰던 그때부터 공산당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공산당의 조직 사회를 잘 아는 사람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생명을 내놓고 반공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심각한 자리에 있는데도 통일교회 교인들은 낮잠만 자고 있다구요. 우리는 나라를 잃어버린 망명객이 아니예요? 그 일족이 아니냐 이거예요. 일구월심, 지독한 고생을 하더라도, 갖은 수욕의 길을 가더라도 이 나라를 중심삼고 하늘의 올바른 자세와 권위를 가지고 '당신이 찾아 오신 해원성사의 터전이 이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쌍수를 들어 환영할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해야만 비로소 고향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요, 비로소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남한 땅만을 가지고 대한민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허리가 동강난 것이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귀한 말씀을 값없이 받았습니다. 누구 때문에? 조상들의 공적을 연결시켜 가지고 난 선생님을 잘 만나서 그런 것입니다. 문씨네 가문에 하나님이 귀엽게 볼 수 있는 공적의 터전이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 혈통을 타고 나와 가지고…. 그렇게 나왔으면 거기에서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인데 이것이 돌아 들어와 가지고 출발을 거꾸로 하는 거예요. 여기에서 이렇게 열매맺어야 할 텐데 거꾸로 이렇게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여기에 와서 비로소 정상적인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며 설명하심) 이것이 탕감복귀입니다. 예수의 가정을 중심삼고 해원성사할 수 있는 실체적 섭리관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고 삼팔선을 넘나들 수 있는 그때를 맞이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고향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지장을 받지 않고, 선생님의 고향에 선생님의 친척들이 있어서 여러분을 맞아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런 등등의 문제를 생각할 때 그 일을 성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내가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도 어머니를 못 만나 봤습니다. 부모를 못 만나 봤어요. 평양에서 고향까지는 이백 팔십 리예요. 잠깐이면 갔다 올 수 있는 거라구요. 그런데 왜 못 갔느냐? 선생님과 신앙으로 인연되었던 사람들을 다 찾아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다 찾아보지 않으면 안 돼요. 내가 그 사람들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나 그 사람들의 무덤까지 찾아가서 '너희들은 배반하고 떨어져 나갔지만, 나는 배반하고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야 했습니다. 그들과 헤어질 때 약속을 했으면 나는 끝까지 그 약속을 세워 놓고 지키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정성껏 따르던 그런 사람들을 중심삼고….

여러분! 내가 미국에 가면서 여러분에게 1월 18일이 무슨 날인가를 기도 해서 알아보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그거 생각나요? 그 날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 이거예요. 그 날이 선생님에게는 가장 슬펐던 날입니다. 돈이 없어 슬펐던 날이 아닙니다. 사람이 없어 슬펐던 날도 아닙니다. 선생님의 일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그 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내가 정성을 들여 가지고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축복의 기도를 해주고 그들과 약속을 한 날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선생님을 저버렸을지라도 선생님은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다는 사실을 중심삼고 만장(萬丈)의 편지를 써서 세 번씩이나 연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편지를 갖다 줬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되돌려 보낸 것입니다. 선생님은 되돌려받은 그 편지를 가지고 이북에서 나왔습니다. 경북 영천에 들어가 보면 다리가 있습니다. 그 다리에서 1월 18일에 그 편지를 읽으면서 찢어 버렸습니다.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모르지요. 그래서 선생님은 남한 땅에 내려 와서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 길을 다시 가야 되었습니다. 그 영천이라는 말이 아주 재미있는 말이예요. 그런 것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민족의 전통사상을 이어 받은 통일의 결사대가 되라

선생님이 지금까지 허허 웃고 사니까 호남자 같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뼈없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가 오면 이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를 찾아 나가고 있는 스승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내가 공산당들한테 끌려가서 수욕을 당하던 한도 여러분들이 실체적으로 탕감복귀해야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는 거라구요. 그렇겠지요?「예」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북괴 김일성 도당을 때려잡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승공활동을 하고 통일사상을 무장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저들 앞에 남아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들을 밀어내기 위해서는 여러분을 저들보다도 더 악착같은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겠기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분을 사생길로 이끌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통일의 노래를 부를 때, 남북통일이 되면 이나라 이 민족이 어떻게 될 것이냐를 생각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공산당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강제로 구속당해 자유를 그리워하는 것이…. 그러니 구속이 얼마나 비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터전을 넓혀 놓고자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앞으로 보라요. 앞으로의 정세를 가만히 보라요. 앞으로 대한민국은 통일교회가 가는 길과 일치할 수 있는 사상으로 무장을 하지 않고는 갈 길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게끔 지금까지 우리가 이런 것 저런 것을 알아 가지고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여러분들이 기수가 되어야 됩니다. 소대면 소대장이 되고, 대대면 대대장이 되고, 연대면 연대장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향해 가야 합니다. 일본이라든가 중국이 이것을 협조하게 하기 위해서 일본과 중국의 정치적인 면에까지 어떻게 연결시켜 나가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들이 그런 것을 알고….

여러분이 선생님 가정에 빚을 졌으니 그 빚을 갚아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선물, 좋은 선물이 뭐냐? 사탄의 세계, 구속의 세계, 속박의 세계에 해방과 더불어 환희의 기쁨을 안고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유세계의 길을 우리가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해방권이 갖추어지게 될 때, 선생님의 일족도 기뻐할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야 선생님이 씨족을 찾아가서 뜻이 이렇게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예수님이 자신의 일족을 못 찾았기 때문에 다시 찾아 세워야 됩니다. 그 일족을 찾지 않고는 민족이 해원성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신의 일족과 갈라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이 삼팔선을 중심삼고 남북으로 갈라진 것입니다. 그대로 딱 맞아떨어졌지요? 따라서 남북을 하나로 만들지 못하면 통일교회는 제 사명을 못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그때가 되거든…. 선생님은 군대 생활을 못 해보았습니다. 내가 아직까지 군대 한번 못 가 봤어요. 싸움을 못 해봤어요. 그때가 되면, 내가 총사령관이 되어 선두에 서서 한번 싸워 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라구. 이놈의 자식들, 알겠나?「예」 여러분의 갈 길은 그거라구요.

우리는 이 남한 땅에서 우리의 패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진정한 동지를 규합해 가지고 이리떼 같은 저 악당들을 송두리째 뿌리 뽑아 버려야 합니다. 그러니 그 이상의 힘을 갖기까지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 어떻게 여러분을 질기고 강한 사람으로 만드느냐가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강하고 질긴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지쳐도 선생님은 지치지 않았습니다. 지칠 수 없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그런 책임을 느끼면서 통일의 노래를 부를 적마다, 대한민국이 아담 국가가 되기 위해서…. 두 동강 나 가지고 아담 국가가 될 수 있어요? 안 되지, 원리적으로? 그리운 북한 땅을 찾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원수들이 하나님께서 제일 사랑하시는 이스라엘 선민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원수들이 하나님께서 제일 좋아하신 곳을 차지한 거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북한 땅을 차지하고 있다고요. 어떤 면에서 남한보다 북한이 머리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알고 남북통일, 북진통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한국 민족으로 안 되면 아시아의 민족들을 동원해서라도 해야 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생각을 갖고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아 가지고, 일제에 항거했던 3·1운동의 사상을 가지고, 세계적인 원흉 공산당에게 항거하는 결사대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결사대가 통일교단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런 마음을 가지고 통일의 노래를 불러야 되겠습니다.

​기 도

​이달이 사탄수인 6수로 완결될 수 있는 고빗길이 피게 하여주시옵소서.

통일가가 역사적인 그 날을 맞이하여 요셉 가정과 사가랴 가정의 한의 고개를 넘고, 교회와 민족이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자연적인 환경을, 아버님이여, 갖추어야 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여기에 모인 저희들은 그것을 해야 할 통일의 용사들이요, 용장들이옵니다.

남북통일을 위한 전선에 하늘의 권위를 가지고 의기 당당하게 온 천지를 진동시켜 나설 무리가 없었던 것이, 이 자리에 서 있는 이 아들이 수난길을 가야 했던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의 통일교회가 이것을 대신하는 사명을 가지고 탕감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한의 길이 평탄하게 만들어질 것을 알았사오니, 남북이 하나된 그 나라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남한 땅에서 책임을 하는 사람들이 아벨 가정들이라면, 그 가정들에게는 국가를 넘어 북한 땅의 가인 가정들을 아버지 앞에 복귀해 드려야 할 책임이 있사옵니다. 이런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될 때, 북한에 가서 원수의 수중에 있는 가정을 복귀하고 종족을 복귀해야 할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곳은 통일가밖에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이 금후에 가야 할 길의 선봉에 선 무리가 저희들인 것을 자각하고 금일의 사회의 부패상을 가로막고, 거기에 물들지 않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내일의 싸움터를 응시하면서 준비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민족이 아버지께 진 많은 빚을 갚아야 할 책임이 통일교단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안 저희들은 가야 할 본향을 찾아가야 되겠사옵니다. 그 곳에 가서 제단을 쌓고 삼천리 반도가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터전 위에서 영광의 찬송을 드리고, 송영을 드릴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는 것이 이 자식의 생애의 소원인 것을 아버지께서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날을 위하여 참고, 그날을 위하여 수난길을 극복하고, 그날을 위하여 억울함을 참고 나온 이 길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제가 그러한 것은 억울한 일이지만 당신이 그러한 입장의 저를 찾기 위한 것임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의 한을 풀고 당신께 기쁨을 돌려드리기 위하여 필시 이 길을 가야 할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이것을 몰랐던 당신의 자녀들이거든, 이제는 무엇을 다 잃어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아버지 앞에 봉헌해 드릴 수 있는 통일의 나라를 갖지 못한 한을 넘어서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하나로 결의된 마음을 가지고 남한 땅에 있는 백성을 이끌어 북한 땅을 구하고자 하는 책임감에 불타는 민족으로 만들어야 될 것이 통일가의 사명이요, 통일교단의 사명인 것을 이들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6월을 넘기고 있사오니 7월을 맞거든, 그 달을 소망의 달로서 아버지께서 자랑하시는 달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흩어져 있는 당신의 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아버지 앞에 들이는 그 정성은 남한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을 구하기 위한 뜻이 있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하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기 도]

아버님, 이달의 마지막 안식일 이 아침, 당신이 사랑으로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전국에 널려서 이 본부를 우러러보며 생명의 길을 추구하고 있는 자녀들 위에 당신이 긍휼과 사랑으로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이 한국 땅을 바라보면서 생명의 인연을 다짐하는 곳곳마다 아버지께서 지도와 각별한 사랑으로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아버님,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역사적인 한이 탕감되기를 소원하고 있사오니, 이 터전 위에 당신의 무한하신 긍휼과 자비와 용납이 같이하시어서 이 땅 위에 해원성사의 한 터전을 넓힐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만민들이 가야 할 한 방향의 도상 위에, 생명의 길을 가리지 못하는 수많은 군상들 위에 당신이 직접적인 사랑의 손길로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운행하시는 지도의 노선을 펴시어서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방향에 일치되게 인도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사망권내에 있는 인류들이 부활의 은사에 힘입어 생명의 혜택을 받아서, 이 땅 위에서 당신의 무한한 행복과 생명에 인연됨을 감사할 수 있는 생애를 살아가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당신의 자녀들이 각자의 사정과 형편은 다를지라도 아버지의 심정을 따르는 그 마음과 당신의 소원을 성취해 드리겠다는 마음만은 아버지의 마음과 일치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천태만상의 사연이 저희 앞에 있다 하더라도, 저희들이 고달픈 사망의 세계에 인연되는 인생길을 세우지 않고, 생명의 세계에 인연되고 영원히 남겨질 수 있는 아버지의 후하신 사랑이 넘치는 곳에 인연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며 모이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부복한 모습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제 아버지의 존전에 엎드렸습니다. 저희들이 영원한 사랑과 긍휼과 존엄한 권위를 가지신 아버지 앞에 서서, 저희 개체가 아들의 명분을 가지고 명령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약속의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웠던 마음을 갖고 여기에 엎드린 자녀들이 있사오면 당신의 그리움을 향한 은사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생명의 고갈을 느끼고 이 자리에 엎드린 자녀들이 있사오면 당신의 생명의 부활의 권능이 이렇게 놀랍고 크다는 것을 체휼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흑암권내에서 생사의 기로를 판정짓지 못하고 내일의 소망을 앞두고 암담한 자리에서 허덕이는 자들이 있사옵니까? 그들에게 긍휼의 손길을 펴시어서 내일의 소망을 이루는 총아가 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흘러가는 역사적 세월 앞에서 자기가 일생행로에 그리고 남겨야 할 생애의 가치적인 위업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느끼면서, 그 가치는 인간을 위하여 사는 데서보다 아버지를 위하여 사는 데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체휼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흘러가는 세월 앞에 부족한 자신을 놓고 탄식할 것이 아니라, 부족한 자신을 아버지 앞에, 자아의 심정 앞에 접근시킬 수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전세계에 당신의 사랑이 어서 속히 충만케 하시옵고, 이 땅 위에 생명의 인연이 어서 속히 편만(遍滿)하게 하시어서, 당신이 원하시는 선의 주권을 성취하는 영광의 한 날을 차지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특히 지금 전국을 순회하고 있는 특별순회반을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들이 만나는 곳곳마다 그리움이 사무치게 하여 주시옵고, 거기에 당신의 간절한 마음과 인연이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끼리 상봉하는 자리에는 분열이 남아질 것이오나, 당신의 참다운 사랑을 중심삼은 생명의 길을 따라 상봉하는 자리에서는 부활과 새로운 재창조의 역사가 빚어질 줄 알고 있사오니,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인간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오니, 가는 길길마다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욱이 일선에 있는 당신의 어린 딸들을 지키시옵소서. 통일의 가문을 대신하여 나선 그들이 그들의 행로를 길이 빛내게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그들에게 역사의 인연을 다짐시키고 생활적인 인연을 고취시켜서 당신의 영광의 기준 앞에 이끌어 올릴 수 있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절망적인 이 시대 앞에 우리들이 해야 할 책임과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을 가려 가지고 당신이 칭찬하시지 않을 수 없는 귀한 행로를 남기고 갈 수 있는 당신의 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새로이 교회를 책임진 교회장들 위에 영원하신 사랑의 손길로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과거를 반성하면서 의미 있는 내일을 기약하는 자리에서 새로이 다짐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전체가 하나되어 당신이 원하시는 소원의 터전을 넓히고, 당신이 지상에 활동하실 수 있는 기쁨의 터전을 마련할 것을 기약할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 시간 저희들을 친히 살피시어서 내일의 소망하는 세계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아들딸이 되고, 현실 앞에 착실한 자신이 되게 하시옵소서. 악과 분별된 자리에서 생활해 나가고, 내일의 생명의 노정을 가는데 있어서 당신이 입증하실 수 있는 거룩한 생활적 자아를 찾아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친히 같이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인간들은 헛된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늘 어제보다도 오늘, 오늘보다도 내일이 더 빛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가는 것이 우리 인간의 삶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신앙길에 서 있는 우리들은 더더욱 이런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이 있었으면 내일을 입증할 수 있는 신앙의 터전을 확보하려 하고, 또한 내일이 우리 앞에 오게 될 때는 보다 높은 차원의 미래를 약속하고 다짐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생활을 우리는 해 나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소원

갑이라는 사람은 자기 나름의 소망을 갖고 있는 것이요, 을이라는 사람은 을 나름의 소망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는 성품이 각각 다릅니다. 각자의 얼굴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성품도 각자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성품이 다르니만큼 요구하는 것도 다른 것이요, 바라는 선의 기준도 다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런 것을 좋아하면 혹자는 저런 것을 좋아하고, 여러 가지 환경의 여건을 극복하는데 있어서나 생활하는 면모에 있어서 각각 성격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각양각색의 성품을 가졌다고 해서 각양각색의 길을 가야 되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각자의 성품은 다르지만 가는 목적은 하나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또, 그 목적의 귀결점은 악이 되어서는 안 되고 선이 되어야 됩니다. 그 선의 기준은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일대에서만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가 한 일이 변천하는 역사시대에 규명받을 수 있는 것보다는 변천하지 않는 역사 시대에 확립시킬 수 있는 무엇을 바라는 것이 우리 인간의 상정(常情)인 것입니다. 누구나 보다 가치 있는 기준을 바라고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을 하는 데 있어서도 어제보다도 오늘에는 선을 중심삼고 하고자 하고,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도 보다 가치적인 선을 중심삼고 하고자 하고, 절대적인 선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생활인 것입니다. 하루하루의 생활도 그러하지만 우리의 일생 행로, 전체 생애를 두고 볼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루기를 바라는 생애의 목적은 일시적인 과정에 묻혀 버리는 생애의 내용이 아니라, 역사를 초월하는 가치를 지닌 내용으로서, 그 생애에 나타난 결과가 수많은 역사시대에 반응을 일으켜 주기를 바라고, 무엇인가 보다 보람 있는 가치의 내용을 남기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인간의 소원인 것입니다.

역사는 변해도 선의 기준은 변하지 말아야

이 세상은 변천하는 세상입니다. 언제나 변천하면서 발전해 나갑니다. 그러면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현재 바라고 있고 찾고 있는 선도 역사와 더불어 변천해 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그 선이 역사와 더불어 변천해 나간다면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선을 추구해 가지고 남기고자 하는 그 목적이나 소망의 기준도 달라질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역사는 변하더라도 우리 인간이 바라고 있는 선의 기준만은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변한다 하더라도, 환경적인 내용에 있어서 달라지는 무엇이 있더라도 그 목적, 귀결점은 언제나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직선을 인류가 바라는 표준으로 볼 때, 사방으로 엇갈려 원형을 이루어 돌아가는 때도 있지만 그 귀결점에 가서는 선(善)을 중심삼은 공통적인 절대적 기준에 귀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인류가 지금까지 바라며 나가는 소망이라든가 행복의 여건이라든가 하는 것은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 변하면서 발전해 나오는 것은 인정되지만 선의 기준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변할 수 없는 그 절대적 기준을 중심삼고 직행하느냐, 혹은 우행하느냐, 좌행하느냐 하는 방향의 차이는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 결과에 있어서는 절대적 가치와 상응한 기준을 중심삼고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없다 할진대는 오늘날 역사과정을 통해서 인류가 바라며 나오는 소망이라든가 최고의 선을 다짐하기를 바라는 우리 양심의 작용은 목적점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절대적인 선의 기준은 반드시 역사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남아져야 된다 하는 것을 우리가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의 주인이 누구냐? 인간이 역사의 주인입니까? 인간은 상시 변하기 쉬운 것입니다. 어제는 저랬다가 오늘은 이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결심한 것을 내일 보장할 수 없고 금년에 결심한 것을 10년 후에는 자신할 수 없는, 변하는 우리 인생 행로인 것을 생각할 때, 변하는 사람에 따라 목적을 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만으로서 역사를 꾸며 나가고 인간만으로서 선의 절대적 기준을 찾아 나간다면, 변하는 인간으로서 절대적 한계선에 이르기에는 너무나 미급하고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

역사의 주인을 중심삼고 생각해 볼 때, 인간이 역사를 책임지고 꾸며 나가는 것 같지만, 인간만이 역사의 주인이 된다 할진대는 역사의 종말은 완전한 하나의 목적점으로 결정지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 자체가 변모하기 때문에 그 목적도 동요될 수 있는 결과에 부딪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오늘날 변하기 쉬운 인간들만을 역사의 주인으로 긍정할 수 있겠느냐? 여기에 자신을 가질 수 없는 우리 인간인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주인이 인간만이라면, 우리 인간이 바라는 선과 목적은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절대적인 선이라든가 절대적인 목적을 바랄 수 없는 자리에 있다고 하면, 인간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의 기준을 찾을 수 없다는 입장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이 찾고 소망하는 행복의 기점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들이 역사를 꾸며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배후에 어떠한 절대적인 선의 주체가 되는 절대자가 있어 가지고 그 분이 변함없이 역사의 과정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 있어서 무상한 변화를 거쳐 나가되, 그 변화되는 모형은 단계적인 발전도상을 거쳐서, 변치 않는 역사의 근본이 되시는 주인의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려 나가는 입장에 서야만 인간이 그래도 변하는 자신을 붙들고 절대적인 선의 표준을 중심삼고 소망을 바라보며 나갈 수 있지, 그렇지 못하게 될 때는 변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절망밖에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기에 어떠한 표준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이 살아 나가는 데에는 어떤 표준이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는 한국의 역사적 배경이 있고 문화적 배경이 있느니만큼 한국에서 사는 사람은 한국의 역사적인 배경과 문화적인 배경을 중심삼고 살아가는 표준이 있을 것이요, 일본 사람이면 일본을 중심삼고 그 기준이 있을 것이고, 미국사람 이면 미국을 중심삼고 그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나라마다 살아가는 생활 기준은 다소 차이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방향은 같습니다. 그 방향이 어긋나게 될 때는 국가면 국가들이 바라는 소망, 혹은 우리들이 말하는 천국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기준에 일치되어야 완전한 기쁨이 될 수 있어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도 기필코 어떤 표준을 중심삼고 우리 민족이면 민족을 대해 나오실 것이고, 세계면 세계를 대해 나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대해 나오시는데 있어서도 변천하는 시대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환경이라든가 생활환경이 변해 나가는 데 대한 방편으로, 혹은 그 목적하는 기준을 이루어 나가는데 있어서 방향이 일치되지 않을 때에 그것을 일치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변모된 방향을 바로잡아 나가면서 변천하는 입장을 대해 나오신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절대적인 기준에 그 방향이 일치되게 하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려 가지고 나가지만 만민이 바라는 최후의 표준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 표준에 접근시킬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지, 방향을 새로이 제시하는 수단과 방법은 아닌 것입니다. 그 방향을 공고화시키고 그 방향에 접근시킬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은 있을 수 있지만, 방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변천은 없을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기준이 있을 것이요, 표준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오늘날 한국 백성을 대해 '한국 백성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혹은 세계 인류를 대해 '세계 인류는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하는 절대적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세계 인류가 살아야 할 절대적 기준과 한국 백성이 살아 나가야 할 절대적 기준과는 차이가 없어야 합니다. 그것이 같은 입장에서 일치되어야 됩니다. 그 일치점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세계 인류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이요, 한국 백성이 기뻐할 수 있는 것이요, 우리 개인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절대적 기준에 도달하게 될 때 거기에서 우리가 행복이면 행복, 기쁨이면 기쁨을 느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자리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맞이한 기쁨이라면, 그 기쁨은 정지되어야 할 기쁨이요 미급한 자리의 기쁨이기 때문에 완전한 기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쁨을 다짐시키기 위한 과정적인 여건은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하늘 땅이 기뻐하고 인류가 기뻐하고 내가 기뻐할 수 있는, 전체가 기뻐할 수 있는 기준에는 아직까지 미달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신앙에도 '이래야 된다'는 어떠한 표준이 있을 것입니다. 표준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을 중심삼고,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를 중심삼고 하나님이 '여자는 이래야 된다. 남자는 이래야 된다'고 하며 바라보시는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기준, 남성은 이래야 되고 여성은 이래야 된다고 하는 기준을 중심삼고 오늘날 30억 세계 인류가 갈라져 있습니다. 그 기준을 중심삼고 이 세계가 동서남북 사방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 기준을 중심삼고 매일같이 발전을 바라면서 생활해 나가고 있는데 그 기준 앞에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표준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절대적인 표준을 중심삼고 하나님은 섭리의 목적을 추진시켜 나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어떤 절대적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특정 종교를 세우셨으면 그 종교를 세우신 목적에도 반드시 어떠한 하나의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그 기준은 미급한 때의 기준이 아니라 완성한 때의 기준, 변화시킬 수 없는 기준, 도외시할 수 없는 기준인 것입니다.

그 기준과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일치하느냐 하는 것이 행복할 수 있느냐 불행할 수 있느냐, 혹은 성사할 수 있느냐 미급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하는 요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그 표준에 항상 맞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방향도 어떤 한 방향을 중심삼고 맞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지남철이 변하지 않는 한, 고장나지 않는 한, 그것이 순수한 지남철이라면 언제나 북극을 향하여 방향을 맞추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방향이 틀어지게 된다면 그 본질에 있어서의 방향이 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적인 여건에 의해서, 장애물에 의해서 방향이 달라질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양심작용은 절대적인 표준에 일치시키는 작용

그 절대적인 방향에 우리가 일치되어 흡수될 수 있는 길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 길의 소성에 따라, 소성이 바라는 바 대로 그 방향에 언제나 일치되어 가지고 발전해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방향에 일치시킬 수 있는 내용이 우리 자체내에 있어야 하는데 그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양심작용입니다. 이 양심작용이 있기 때문에 그 하나의 표준과 상충되지 않고, 그 표준을 통해서 부활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양심은 바르다'고 하는 말은 어떤 기준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상하를 말할 때는 하늘땅을 중심삼고 바르다고 하는 것이요, 평면적인 면에서는 동서를 중심삼고 바르다고 보는 것입니다. 무엇이 바르다고 할 때 표준 없이 바르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바르다는 것은 반드시 우리 자신들은 모르지만 어떤 표준에 의해 가지고 바르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표준기점이 어떤 것이냐? 직선이 되는 것입니다. 동서로 직선이 되느냐, 남북으로 직선이 되느냐? 그 무엇인지 모르지만 직선이 되는, 일치되는 방향을 지니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양심이 바르다, 혹은 양심이 바르지 않다고 하는 것은 그 순수한 본성이 바라는 목적과 방향에 일치될 수 있는 선을 중심삼고 규정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 선의 길에 어긋나게 될 때에는 바르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양심이 발라야 한다고 하는 말도 표준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남자면 남자로서, 여자면 여자로서 살아가는 그 생애에는 반드시 표준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원리로 말하면 창조이상, 창조목적이 그것입니다. 창조이상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창조목적을 이루어야 됩니다. 창조목적을 이루지 않고는 창조이상세계가 나올 수 없습니다. 창조목적을 이룬 실체를 중심삼고 생활권을 갖추지 않으면 이상세계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목적을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창조목적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입니다.

신앙의 표준은 절대적이어야

우리 통일교회 원리 가운데 개성완성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개성완성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내 마음대로 해 가지고 개성을 완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누구도 요동시킬 수 없는 절대적인 기준에 일치될 때 개성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고 '완전한 가정이다. 사위기대를 완성한, 창조이상이 완성된, 창조목적이 완성된, 사위기대를 완성한 가정이 다' 할 때 사위기대를 완성한 가정에도 반드시 표준이 있을 것입니다. 그 표준이 있어야 됩니다. 가정이 그러하면, 그 가정들이 합한 사회도 반드시 어떤 명백한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고도 표준이 있어야 됩니다. 그 표준에 응하는 국가여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남자면 남자로서의, 개인적인 남자로부터 가정적인 남자, 사회적인 남자, 국가적인 남자, 세계적인 남자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적인 면에 있어서 개인으로부터 세계까지 가야 할 본래의 길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러한 표준이 있어야 됩니다. 그 표준이 아침 저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역사과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지배해 나가야 합니다. 사회의 공의를 심판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것이어야 됩니다. 그러한 절대적인 표준이 있어야 됩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국가를 형성하는 데는 반드시 헌법을 만들어 가지고 그 헌법의 기준을 중심삼고 국가의 모든 체제를 형성해 나가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완전하면 완전할수록 그 완전한 기준을 중심삼고 사회의 제도가 세워지고 그 제도에 일치된 생활이 벌어지게 되면, 그 국가는 반드시 헌법이면 헌법을 제정한 그 목표에 일치될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 그 민족이 바라는 이상적인 국가가 형성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게도 반드시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에 대한 절대적인 표준이 있는 것입니다. 그 표준과 더불어 일치해 나가느냐, 안 나가느냐에 따라 가지고 그 사람이 완성할 수 있는 길을 빨리 가느냐, 못 가느냐, 지름길로 가느냐, 돌아가느냐 하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신앙의 표준이라는 것은 가장 귀한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종교들은 신앙의 표준을 어디에 세웠느냐? 각자 자기 마음대로 신앙의 표준을 세웠습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을 중심삼고 그 사람 마음대로 가르친 내용이 표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특정한 사람이 가르치는 데는 반드시 하나님을 중심삼고 선을 목적으로 하고, 변치 않는 하나의 발전적인 표준을 중심삼고 가르쳐야 합니다. 종교면 종교에서 그러한 추앙을 할 수 있는 대상자를 세우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중심삼고 보면,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가르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일관된 사상의 흐름을 두고 볼 때, 예수님이 '이것은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다. 나를 보낸 자의 뜻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보여 주신 대로 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예수님이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신앙의 중심으로 믿을 수 있는 인격은 갖추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주류사상은 예수님의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불교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석가모니가 믿을 수 있는 인격적인 기준을 갖추었다고 보지만, 그 주류사상은 무엇이냐 하면 만민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박애라든가, 자비의 사상입니다. 자비라는 것은 일대의 것이 아닙니다. 자기 일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역사를 넘어 영원한 인연을 남길 수 있습니다. 또 선이라는 것은 자기 일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일대에 나타난 모든 것이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절대적인 선을 표준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선은 인간이 사는 일생, 백년이면 백년 이내의 생애에서도 존경받을 수 있는 인격을 중심삼은 내용보다도 역사의 전철을 넘어서, 시대적인 환경에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지배할 수 있는 특권적인 자리를, 영원을 중심삼은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볼 때, 그것에는 인간만이 아니라 반드시 신이 개입되어 있음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한 종교를 중심삼고 볼 때, 그 종교의 종주(宗主)가 있으면, 그 종주의 인격도 인격이지만, 그 내용에는 반드시 신이 개재되어 있습니다.

신은 시대에 따라 변천하는 신이 아닙니다. 역사의 변함이 있더라도 그 변함을 움직여 가지고 완성으로 이끌 수 있는 신입니다. 복잡다단한 사회 환경에서 주체적인 권한을 상실한 입장에 있는 신이 아니라, 사회환경이 비록 복잡다단하지만 어떻게든지 주체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수습하고, 하나의 목적권을 이룰 수 있는 주체력을 가진 신인 것입니다. 종교가 그러한 신을 신앙의 모체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신앙에는 반드시 표준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신앙의 표준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를 두고 봅시다. 통일교회 신앙의 표준이 되는 분이 누구냐 할 때, 일반 신앙을 하는 사람들은 통일교회의 신앙의 표준은 문선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선생이 신앙의 표준이 될 수 있겠느냐? 만일에 신앙의 표준이 문선생이라는 사람이라면, 그 문선생은 이 땅 위에서 오래 살아야 1세기 이내를 살 사람이 아닙니까? 1세기가 지나면 이 땅 위에는 없을 사람입니다. 우리가 주장했던 신앙의 목적이 1세기 이내에 다 이루어진다면 모르지만, 1세기 이후에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바랄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문선생이라는 한 사람이 그 내용이 되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문선생은 가더라도 문선생의 일이 문선생의 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문선생이 간 후에까지 하나님의 일로 남겨질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만, 오늘날 통일교회가 변하는 역사시대에 있더라도 변하지 않고 영원히 남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선생님이 신앙의 표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게 됩니다.

선생님 자신도 생활을 해 나가는 데, 신앙을 해 나가는 데도 반드시 어떤 표준을 중심삼고 거기에 일치될 수 있는 행로를 걸어가야 됩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표준이니만큼 절대적인 자리, 심각한 자리에서 대해 나가야 됩니다. 만일 그 표준과 방향이 엇갈리게 될 때는 통일교회도 멀지 않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환경에 있어서나, 역사시대에 있어서나, 언제나 개인이 하나의 표준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지 않을 때에는 제거당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만일 갑이라는 사람이 어떠한 표준을 중심삼고 나가다가 그 표준과 일치되지 못하고 중간에서 끊어지게 될 때에는 자기보다 그 표준에 더 가까운 자리에서 일치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넘겨줘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는 개인으로서 가야 할 길이 있을 것입니다. 개인 개인으로서 신앙해 나가야 할 길이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이 가야 할 통일교회의 어떠한 표준이 있을 것입니다. 통일교회 식구면 식구로서, 씨족이면 씨족으로서,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길의 표준이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통일교회 교인들이 이루어야 할 사회가 있으면 사회로서의 가야 할 길이 있을 것이요, 통일교회 교인이 이루기를 바라는 나라로서 가야 할 변함없는 표준이 있을 것입니다. 그 표준에 일치될 수 있는 국가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그리는 이상의 나라, 즉 지상의 천국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역사와 더불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는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확정적이고,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가야 할 절대적인 표준이 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통일교인으로서 가야 할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느냐? 개인이 가야 할, 개인은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개인의 표준이 있을 것입니다. 가정은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가정의 표준이 있을 것입니다. 혹은 국가면 국가의 표준이 있을 것이요, 세계면 세계의 표준이 있을 것입니다. 그 세계의 표준과 하나님의 표준이 일치되게 될 때 하나님의 뜻의 성사와 우리 인류의 뜻의 성사가 일치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여러분이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개인적 표준에 일치될 수 있는 생활을 하느냐, 가정적 표준에 일치될 수 있는 생활을 하느냐, 혹은 씨족이 가야 할 표준에 일치될 수 있는 생활을 하느냐, 혹은 민족으로서 가야 할 표준, 국가로서 가야 할 표준, 세계로서 가야 할 표준 중의 어떤 표준에 일치될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신앙자에 있어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의 표준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

아무리 통일교회를 10년 혹은 20년을 믿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개인적인 표준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면, 그 사람은 개인완성의 기준을 중심삼고 노력한 사람이지 가정완성이라든가, 민족, 국가, 세계의 완성을 위해서 노력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잖아요? 만일 가정완성을 위해서 노력했다 할 때는, 아무리 완성했다 하더라도 가정완성의 표준에 일치한 생활을 한 것이지 민족이라든가 국가라든가 세계라든가 혹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될 수 있는 기준에서 생활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욱이나 타락권내에서 한 단계 한 단계 점진적인 발전과정을 가려 나가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이것은 고립된 입장에서의 생활권을 가진 것이지 전체의 완성을 위해서 노력한 생활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개인완성, 즉 개인의 표준에 일치되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의 표준에 일치된 후에 가정의 표준에 일치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가정의 완성을 이루어 가지고 종족이라든가, 민족이라든가, 국가를 완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그 표준을 확실히 알았느냐 하면 지금까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개인이면 개인이 이렇게 가는 것이 절대적인 표준의 생활이다 하는 그 기준이 나와 있느냐? 나와 있지 않습니다. 가정이면 가정이 이렇게 가는 것이 가정의 절대적 기준이라고 어떤 종교가 가르쳐 주었느냐?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혹은, 민족이면 민족이 이렇게 하는 것이 민족의 절대적 기준이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지 못했고, 국가면 국가가 이렇게 하는 것이 국가의 절대적 기준이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지 못했다 이겁니다.

이렇게 볼 때 자기 나름대로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자기 개인 앞의 신앙의 표준을 대해 어떻게 추구하고, 자기가 대상의 입장에서 그 추구되는 목적을 어떻게 성사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알지 못한 채 지금까지 신앙해 온 사람들이 태반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이냐? 뻔한 것입니다. 개인의 표준에 개인이 일치하지 못할 때는 개인의 표준을 중심삼은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완성권내에 있지만, 가정의 표준을 중심삼고 노력해서 거기에 일치하지 못 할 때는 가정의 표준을 중심삼고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의 표준에 접근하는 방법

그렇다면 우리가 이것을 피해 갈 수 있는 길은 없느냐? 이것을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겠느냐? 선이면 선, 어떠한 신앙의 표준이면 표준과 일치될 수 있는 공통적인 생활방법, 그 길을 가려면 이래야 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방향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 방향을 어떻게 잡아가야 우리가 개인의 기준을 무난히 넘어갈 수 있고, 가정의 기준에 접근할 수 있는 요건을 많이 갖출 수 있겠느냐? 가정에서 종족으로, 종족에서 민족으로, 민족에서 국가로 접근할 수 있는 공통적인 방향의 길이 무엇이냐?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그 방법이 무엇이냐? 그것은 자기를 위해 생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좁혀 갈 수 있는, 거기에 접근해 갈 수 있는 공통적인 길이 무엇인가 찾아보게 될 때, 종교의 가르침을 두고 보면, 자기를 위해 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남을 위해 살라고 했습니다. 생애의 목적을 자기에게 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두었다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살라 이겁니다. 거기에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남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사는 데는 적당히 사는 것이 아니라 희생하며, 이익을 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보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 길밖에 없습니다.

공통적인 길에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길을 모색한다면 그 길이 무엇이냐? 그 길은 자기를 위주하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남에게 목적을 두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목적은 자기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두는 것입니다. 목적을 상대에게 두어야 하는데, 상대에게 두는 데는 누구를 중심삼고 두느냐? 물건도 아니요, 세계도 아닙니다, 사람을 중심삼고 두는 것입니다. 사람 중에서도 제3의 사람, 다른 사람에게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라는 권내에 두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두어야 된다 이겁니다.

우리 집이 있다 할 때, 그 집이 선한 집으로 남아지기 위해서는 남을 위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그 집은 선한 집이 못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집은 거기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 사느냐? 3자권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자기 자체의 목적을 추구하는 자리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목적을 추구하는 자리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그 길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종교 전체를 두고 볼 때, 거기에 공통적인 내용의 길이 되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선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신앙의 표준에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냐? 목적을 자기에게 두지 않는 것입니다. 목적은 내 목적이지만 그것을 상대에게 두는 것입니다. 목적을 위해서 내가 희생해야 그 목적이 이루어지지 목적을 위해서 상대방을 희생시키면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열만한 목적을 위해서는 열만한 목적 앞에 열만한 희생의 대가를 내가 부가시켜야지, 거기에서 끌어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표준에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그 절대적인 목적을 자기 자체에 두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제3자에게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는 방향은 어떠해야 되느냐?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남이 좋아진 뒤에 내가 좋아져야 됩니다. 이러한 생활이 희생의 생활, 희생의 길입니다. 이렇게 희생하면…. 좋아지는 데는 내가 먼저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먼저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상대를 위해 희생하면 희생을 하는 사람보다도 상대가 좋아지는 것입니다. 상대가 좋아져야 합니다. '몇천 년, 몇만 년 후에 너와 내가 기쁠 수 있는 목적을 위해서 너도 이용한다' 해 가지고 나가면 다 좋아집니다. 그렇지 않아요?

우리 통일교회 자체에서는 민족복귀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민족복귀를 하면 민족복귀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이 복귀되면 나도 복귀됩니다. 이중의 목적이 성사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 일대 내에 민족을 복귀해 가지고 우리가 잘살아야 되겠다고 해 가지고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면, 이용당했다는 결론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신앙자로서 언제나 생각해야 할 문제는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표준이 있다 하는 것입니다. 개인이면 개인을 중심삼고 바라는 기준,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고 바라는 표준, 사회면 사회를 중심삼고 바라는 표준,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고 바라는 표준, 세계면 세계를 중심삼고 바라는 표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표준 앞에 어떠한 무리가 남아지느냐? 남아질 수 있는 무리는 어떠한 무리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영원히 남아지는 사람이 되려면

자기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자기 하나의 행복을 바라고 자기를 중심삼고 움직이는 사람은 자기를 중심삼고 끝나는 것입니다. 남을 중심삼고 움직이면…. 만일 내가 가정을 중심삼고 움직인다면 내가 쓰러지면 가정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의 움직임이 친척이라든가 이웃 동네에 영향을 미쳤다 할 때는, 영향을 받은 종족이면 종족, 혹은 동네가 망하지 않는 한 영향을 미쳐 준 가정의 사상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한 개인이 국가면 국가, 민족이면 민족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상을 가지고 희생의 대가를 치러서 공인받을 수 있는 일을 했다면 그 국가와 민족이 망하지 않는 한 그 사상은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 개인이 만일 세계 인류가 좋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상을 갖고 있다면, 그 개인은 위대한 사상가가 될 수 있는 것이요, 위대한 종교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상이 세계적으로 판도를 넓혀 가면서 1세기, 2세기, 혹은 수천 년을 가더라도 남아지게 될 때, 그것은 반드시 새로운 사상으로 등장하는 것이요, 새로운 종교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개인을 위해서 희생하고 개인을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도 가정을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고 노력하기보다도 종족을 위해서, 종족보다 민족을 위해서, 민족보다도 국가를 위해서, 국가보다도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제일 클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세계적으로 남아지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그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국가적으로 남아지고 싶다 하면 국가를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게 되면 국가적으로 남아집니다. 애국자는 국가를 위해서 희생한 대표자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상을 중심삼고 민족적으로 남아질 수 있는 생애를 살았다면, 그 민족은 그 사람의 사상을 민족사상으로 추대할 것입니다. 그 사상은 그 민족이 없어지지 않는 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 자신이 장구히 남아질 수 있는 공을 남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개인보다도 가정을, 가정보다도 종족을, 종족보다도 민족을, 민족보다도 국가를, 국가보다도 세계를 위하라. 더 큰 것을 위해서 희생하고, 더 큰 것을 위해서 극복하라 하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개인이 완성되지 못했지만 가정완성을 위해 노력했다면, 개인이 개인적 표준에는 미달했지만 가정의 표준에 도달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면 개인의 표준에 도달하기 위해서 노력한 것보다도 몇 배나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표준을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도 가정의 표준을 위해서 노력한다면 그 가치는 몇 배나 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표준에 도달하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보다도 도리어 가정의 표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남아집니다. 개인은 망하더라도 그 개인이 세운 공은 가정 앞에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가정은 망하더라도 그 가정이 종족을 위해서 희생했으면, 그 가정은 미완성이 되어도 종족을 중심삼고 남아지는 것입니다. 종족은 망하더라도 민족이 남아질 수 있고, 민족은 망하더라도 국가는 남아질 수 있고, 국가는 망하더라도 세계는 남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더 큰 것을 위해서 희생하고, 더 큰 것을 위해서 자기 일신을 투입하면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표준의 범위에 가까와지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큰 분야에서 희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라'고 하는 종교가 고차적인 종교입니다. 고차적인 종교는 자기 민족만이 아니라 세계 만민을 위하는 종교입니다. 과거의 죄를 속죄하고 현실의 죄를 속죄해 가지고 미래에 죄 없는 세계를 만들자고 하는 겁니다. 그것이 세계적인 것입니다.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세계적인 것입니다. 사상가도 국가, 민족을 위주로 하는 사상가보다도 세계 만민이 공통적으로 잘살 수 있는 사상을 가진 사상가가 요구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이어야 합니다.

그럼 왜 세계적인 것을 바라느냐? 그것은 남아지기 때문입니다. 내 개인적인 것은 아무리 이루어 놓았다 하더라도 내 개인이 사라지게 되면 나와 더불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고, 세계를 위해서 공을 들였다면 그것은 세계와 더불어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반드시 세계 가운데서 세계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움직이기 때문에, 그 섭리의 방향을 중심삼고 언제든지 상응할 수 있고 언제든지 상대적인 환경을 거쳐 나가는 사람은 표준에 일치될 수 있는 거리가 가까와지고 세계적 완성권에 미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이 되면 끝날이 될수록 어떤 시대가 오느냐? 끝날이 되면 될수록 세계의 표준이 일치화될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표준이 세계적으로 일치화할 때가 올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일치될 수 있는 표준의 때가 되면, 어느누구든지 세계 사조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낙오자가 될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계를 구원하는 것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개인권을 중심삼고 살 때는 개인이 있고 가정이 있고 종족이 있고 민족이 있고 국가가 있기 때문에, 개인이 망하더라도 가정권을 중심삼고 다시 노력해서 나갈 수 있었지만, 세계를 중심삼은 세계적인 완성권 시대에 있어서는 세계를 중심삼고 노력하고 거기에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남아질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완성의 표준에 일치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냐? 뜻을 중심삼고 볼 때, 그것은 세계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완성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런 때가 되려면 반드시 세계를 위해서 사는 때가 와야 될 것입니다. 개인이 개인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잘살게 하기 위해서 희생하는 시대가 와야 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사상을 지니고, 그러한 사상 밑에서, 그러한 사상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더불어 그 표준에 일치화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종교가 모색되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종교가 어떠한 종교가 되느냐? 우리 통일교회가 그러한 종교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통일교회의 가정을 위해서 나가는 통일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통일교회가 남아지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을 위주로 나가는 통일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대한 민국을 넘어 세계를 위해서 나가야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늘땅을 위해서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먹고 사는 생활 전체가 최고의 기준, 최고의 신앙의 표준이 될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이 완성하는 때를 위해, 그 세계적인 기준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노력한 것이라면 그 노력한 것은 세계와 더불어 남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국가를 위해서 노력했다 하더라도, 그 국가의 표준이 세계의 표준과 다르게 될 때는 그 국가를 위해서 한 노력은 사라지게 됩니다. 또 아무리 종족을 중심삼고 노력했다 하더라도 종족의 기준이 국가의 기준과 다르게 될 때는 그 종족의 노력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노력하는 데 있어서도 국가권내에 있는 가정을 중심삼고 노력했다면, 국가권의 기준이 사라지게 될 때 그 가정을 중심삼고 노력한 것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노력해야 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걸어 나온 하나의 변치 않는 표준, 반드시 개인을 거쳐 나왔고, 가정을 거쳐 나왔고, 종족을 거쳐 나왔고, 민족을 거쳐 나왔고, 국가를 거쳐 나온 변치 않는 전통적인 인연을 이어받아 가지고 세계까지 나가는 그러한 족속이 있어야 되고, 가정이 있어야 되고, 개인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무슨 사상이냐? 이스라엘 사상입니다. 선민사상입니다.

이제는 세계를 향하여 나아갈 때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선조로부터 내려온 유대교의 사상을 이어받았고, 오늘날 통일교회는 유대교의 사상을 이어받은 기독교사상을 이어받았습니다. 지금까지는 기독교가 막연하게 세계를 위해 나왔다면, 이제는 구체적으로 세계를 향하여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을 가지고 세계적인 입장에 서서 노력해야 할 때인데, 그런 길이 오늘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입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국가도 희생해야 됩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민족도 희생해야 됩니다. 종족은 물론이요, 가정은 물론이요, 개인도 물론입니다. 이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수많은 세기를 거쳐왔습니다. 6천년, 60세기를 거쳐온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1세기 내의 생활이요, 1세기 내의 생애를 삽니다. 이 생애를 사는 우리들은 무엇을 표준으로 삼고 살아야 되느냐? 1세기 내의 자기 생애를 중심삼고 살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세계적 생애권을 중심삼고 살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일수록 세계적인 인물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우리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내 개인을 희생하고 내 가정을 희생하고 우리 통일교회를 희생하더라도 대한민국을 위하는 길입니다. 대한민국이 통일교회의 사상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가지고 희생하면서 세계를 위해서 살고, 세계를 위해서 극복해 나간다면 망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세계를 위해서 희생했다 하는 사실이 세계적으로 공인되게 될 때 대한민국은 세계의 중심국가가 아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개인의 생활이 세계를 위해서 사는 생활과 동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위하는 뒷받침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가정도 세계를 위해 사는 생활과 동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 가정의 표준에 일치될 수 있는 입장에서 나가야 됩니다. 혹은 종족도 세계의 표준에 일치될 수 있는 종족으로 남아져야 되고, 민족도 세계의 표준에 일치될 수 있는 민족으로 남아져야 됩니다.

그러나 그걸 일일이 따져 가지고 그때그때에 맞추어 타 가기에는 시간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생해 나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희생하면서 세계를 위하라, 세계를 위해 극복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 고개도 넘는 것이요, 가정 고개도 넘는 것이요, 국가 고개도 넘는 것이요, 세계까지 접할 수 있는 기준이 설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한민족이면 한민족이라는 그런 감정을 중심삼고 '애국사상을 가져야 된다. 민족을 사랑하라'고 하는데, 민족만 사랑해 가지고 되겠어요? 민족만 사랑해 가지고 세계가 하나되느냐? 하나 안 됩니다. 보라구요. 민족만 사랑해 가지고 세계가 하나될 것 같아요? 하나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산권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소련이 슬라브 민족을 중심삼고 공산권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데, 영속적으로 그렇게 나가게 되면 다른 민족은 거기에 흡수되지 않습니다. 희생해 가지고 '그럴 수 있는 가치와 내용을 지녔다. 당신들은 이러이러한 추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일시뿐만 아니라 영원을 중심삼고 절대적 표준에 일치될 수 있는 전통적 사상의 기원을 당신 민족 전체가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당연하다' 하게 될 때는, 그 민족이 스스로 원하지 않더라도 환경이 원해서 거기에 흡수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를 하나로 만든다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면 통일교회 사람이 통일교회 사람을 더 사랑한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를 넘어서 통일교회 사람보다 세계를 더 사랑한다는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끼리는 냉대하고 우리끼리는 돌보지 않더라도, 그 누구를 돌보는 것보다도 세계를 돌보는 것이 선이라는 공통적인 사상이 주류를 이루어 가지고 나간다면, 우리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종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를 희생시켜 가지고 통일교회 사람끼리 사랑하자. 이것이 통일사상의 주류다' 하면 망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앞으로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에 있어서 국제결혼 문제는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을 중심삼고 볼 때, 한국과 일본은 국가적으로 원수입니다. 나 자신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일본 사람은 참으로 잊을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원수입니다. 그 원수를 원수로 남길 수 있는 그런 주장을 하는 통일교회 사상이라면, 그 사상은 원수 앞에는 필요 없는 사상입니다. 이것은 원수가 배척할 사상이지 원수를 흡수할 수 있는 사상은 못 되는 것입니다.

원수들까지도 필요로 할 수 있는 그런 사상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원수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원수를 믿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원수의 한계선이 국가간이기 때문에,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이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계를 찾기 위해서는 너와 나 둘이 손을 맞잡아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면 원수를 용서하고도 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사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간부들, 본부면 본부의 간부들로서 물론 위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위신을 갖는 데 있어서 '사무적인 내용, 혹은 명령계통을 중심삼고 위신을 세워야 되겠다. 너희들은 나중에 들어왔으니, 우리의 지도를 받아라' 하는 사고방식은 버려야 합니다. 또 간부들 가운데 '지도를 받아라' 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안 되는 것입니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 외국 사람이면 외국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들이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본부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 사람들에게 위하는 것을 보여 줘야 합니다. 한국 민족 앞에 보여 준 것은 그 사람들 앞에 실지로 보여 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소문을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 그 아는 것이 실현될 수 있는 과정이 있어야 될 것 아니예요?

그러므로 본부에 있는 사람들은 본부를 찾아온 외국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계를 위해서 희생한다고 했으면, 세계를 대표한 외국 사람들이 찾아올 때, 그 개인 개인을 대해 희생하는 정신 자세, 생활 자세를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과거에 이랬으니 오늘에 와서 뜻을 따라온 너희들은 우리 앞에 순종해라' 해서는 안 됩니다. 보여 주고 나서 그래야 됩니다. 보여 주어서 순종하게 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 간부들 가운데는 인사이동을 시키게 되면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승진이니 뭐니 좌천이니 해 가지고 섭섭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계를 위해 일하는 데 있어서 승진이 어디 있고 좌천이 어디 있습니까? 낮을수록, 낮은 데서 충성할수록 그 사람은 애국자가 될 수 있고, 세계적인 성인의 반열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아주는 데서 충성하는 것보다 몰라주는 데서 충성하는 것이 더 가치 있습니다.

'내가 과거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이래야 되느냐'고 하는 사람을 보면 내가 기분이 나쁩니다. 이번에도 그런 사람이 있으면 들어 보라구요. '내가 들어오기도 먼저 들어왔고, 혹은 실적을 봐도 이런데 그럴 수 있느냐' 여기에 최창림 같은 사람을 보면 그런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협회장을 불러다가 뭐 몇 번씩 말했다나요? 그런 사람들은 용서할 수 없다 이겁니다. '선생님이 지금 뭐 뭐' 이러고 있어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누구는 뭐 어떻고, 실장은 누구를 시키고, 뭐 어떻고 어떻고, 우리 체면이 무엇이 되느냐' 한번 그렇게 건의했으면 됐지 두 번씩이나 불러 가지고 말하고,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여기 협회장부터, 선생님 자신부터 지방으로 가려고 합니다. '지구장이 되어야 좀 어떻고…' 하기 때문에 지구장제를 철폐해 버린 것입니다. 지구장이 되어야 좋고 지역장은 틀렸다고…. 그건 누구를 위한 거예요? 누구를 위해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해 한다면 하나님 앞에 드러내서 간판을 가지고 해야 하나님이 칭찬해 주느냐 이겁니다. 말없이 해야 됩니다, 말없이. 알아주든지 말든지….

자기를 중심삼고 신앙의 표준을 세우지 말라

자기의 생각에 '나는 세계를 위해서 충성해야 된다'고 하겠지만 아직까지 세계를 위해서 살지 못했지 않느냐 이겁니다. 여기에 있는 간부들, 통일교회 협회간부로서 세계를 위해서 한 게 뭐 있어요? 뭐 했어요? 한국의 통일교회 간부라고 해서 일본에 가서도 통일교회 간부 시켜 줄 줄 알아요? 천만에. 앞으로 일본에 승공연합 지부를 만들려고 하는데, 그때도 여러분이 내가 한국 본부에서 왔으니 나와 의논해야 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말없이 뒤에 서 가지고 그 나라를 위해서 본을 보여야 됩니다. 본을 보여 주어 가지고 그들이 비로소 문의하러 찾아와서 '당신이 지도해 주십시오'할 때 지도해 주면 모르지만, 본부에서 왔다고 해서 '이렇게 해라'하는 생활태도를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신앙의 표준을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표준은 세계입니다. 보라구요. 개인을 위해서 아무리 충성했다 하더라도, 개인의 성과는 가정이 충성한 성과를 못 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은 접어두고 가정을 위해서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도의 길이요, 선이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가정을 위해서 충성했다 하더라도, 가정이 씨족이면 씨족, 민족이면 민족을 위해서 충성하는 것을 못 당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가정이 망하더라도 종족은 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종족이 망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개인이 희생되는 한이 있더라도 가족들은 망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을 남기기 위해서는 개인이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남아지기 위해서 종족을 희생시키고, 문중을 희생시켜요? 그건 안됩니다. 문중을 남기기 위해서는 가정이 희생하는 것이 선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되면 그 가정은 문중의 주류 가정, 중심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또 민족을 남기기 위해서는 씨족이 희생해야 된다 이겁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김씨 문중이면 김씨 문중이 망해야 됩니다. 망하는 것이 도리라는 것입니다. 응당히 그래야 됩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한민족이 망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앞날에 있어서 이러한 세계적인 사조로 갈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 할 진대 끝날이 되면 될수록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할 종교면 종교, 국가면 국가가 나와야 합니다. 자기 종교를 위해서 사는 종교는 망합니다. 세계를 자기 종단을 중심삼고 몰아내겠다는 종교는 망합니다. 자기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를 몰아내겠다고 하는 민족은 망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할 수 있는 종교, 세계를 위할 수 있는 민족은 남아지지만, 자기 민족을 중심삼고, 자기 종교를 중심삼고 세계가 자기들 뜻대로 되어야 한다고 해 가지고 나가면 망한 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기독교는 한계점에 도달했습니다. 기독교는 성경을 절대시하고 기독교를 절대시하는, 생명의 터전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것이 국가 민족을 중심삼은 사상, 이스라엘 국가 민족을 중심삼은 사상이 되었는데, 그것이 세계적인 사조권내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기독교가 되었기 때문에, 기독교를 위주한 세계는 찾아왔지만 세계를 살리기 위한 기독교, 세계를 살리기 위해 예수같이 희생해야 하는 기독교의 입장을 망각했기 때문에 기독교는 망한다 이겁니다.

미국도 그렇습니다. 미국이 오늘날 선진국가로서 기독교 사상을 중심삼고 민주주의 국가를 지도하는 국가가 되었지만, 미국을 위주로 한 세계주권, 세계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한 민주주의는 있을 수 있지만…. 미국이 민주세계를 살리고 세계가 공동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될 때는 미국이 민주주의의 주도국가로서 남아질 수 있지만, 자기 국가를 중심삼게 될 때에는 분립되는 것입니다. 그 주인은 탈락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표준, 영원한 세계적 승리의 표준을 바라보고 가야 할 우리들은 개인생활을 표준하고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하는 사람보다도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염려하지 않고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고 염려하는 사람은 자기 개인의 생활, 자기 개인의 신앙의 표준, 자기 개인의 섭리적 표준, 인격완성의 표준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 개인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가정을 위해서 희생했으면, 자기를 위해서 일생 동안 희생한 사람보다도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가정이 자기 가정을 위해서는 하나도 희생하지 못했지만 종족을 위해서 희생했다면, 희생한 그 가정은 종족과 더불어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종족이 자기 종족을 위해서는 희생하지 않았고 종족을 위해서는 수고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민족을 위해서 살았다고 할진대는 그 종족은 반드시 민족과 더불어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해야 할 통일교회

오늘날 이 세계 국가 가운데에서 세계를 자기 국가보다 더 존중시하면서 세계를 위해 희생하는 국가가 있으면, 그 국가는 세계를 지도하는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국가를 창건하기 위한 어떠한 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 뜻을 가려 가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를 위해서 희생했다 할진대는 대한민국 자체내에서 이루어야 할 개인적이요, 가정적이요, 종족적이요, 민족적인 기준을 위해서, 일대 혹은 일생을 통해서 희생하지 않았더라도 일차적으로 세계를 위하는 분야에서, 세계적 기준을 완성할 수 있는 자리에서 희생하게 되면, 그것으로서 국가적인 이념권을 넘어설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살인 강도라 하더라도 국가의 비상시에 적진에 들어가서 민족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희생하게 될 때는, 그 민족은 그 사람을 개인의 이름으로 죽이지 않습니다. 민족은 그를 원수와 대결해 싸운 기준을 중심삼고 평가하지 과거에 지은 죄를 중심삼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역사상의 지혜로왔던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그런 사람들은 성현들인데, 그 성현들은 어떤 사람이냐? 세계를 위해서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역사적인, 몇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무엇을 위해 살았느냐? 세계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인류를 위해서 살았다 이겁니다. 보다 고차적인 세계를 위해서…. 민족주의 관념을 넘어섰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적 관념권내에서 박애사상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너와 내가 다르다고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전부 공통한 입장에 놓고 자기 형제 이상으로 사랑하려고 한 그 사상을 중심삼고 세계를 수습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삼은 민주세계권내의 사상적인 기반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민주세계의 사상적인 터전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닦아진 것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오늘날 이 통일교회가 국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국가 민족이 복귀되지 않은 때에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국가는 망하더라도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세계가 다시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면,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한민족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는 달라질는지 모르지만 한민족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우선 한국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묵묵히 희생하는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찾아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이것을 알아주소'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련이요 하나의 수련이요, 미래의 세계를 위한, 보람 있는 그 때를 맞기 위한 준비기간으로 알고, 이때에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랑할 수 있는 미래의 그 때를 위해서 가야 합니다.

선두에 선 사람일수록 원수가 많은 것입니다. 원수가 많기 때문에 희생하는 데는 될 수 있으면 소문 내고 희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소문 내지 않고 말없이 희생하라! 이것이 지금까지 선이 가려 나온 작전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슨 영예로운 출세, 영전, 좌천, 그런 관을 갖지 말라는 겁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생각입니다. 세상은 돌아가는 게 이치라구요.

만일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국가적인 책임을 했다면 다른 민족 앞에 나갈 때는 그 책임은 그대로 적용하지 못합니다. 그 민족들이 이것을 알고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상대관계를 갖추어 나간다면 적용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모를 때에는 적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대한민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모르는 민족 앞에 갈 때는 또다시 개척해야 됩니다. '내가 대한민국 혹은 아시아에 이런 기반을 닦았으니 알아다오' 하면 누가 알아주느냐 이겁니다. 그것은 분야가 다른 것입니다. 그 분야가 넓으면 넓을수록 맨 밑창에서부터 접선시켜 나가야 됩니다.

오늘날 선교사를 내보내는 것은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각 나라에 선교사들이 들어가서 '우리 통일교회가 이러이러하니 당신 나라도 이러한 것을 인정해 주시오'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것을 보고서 그 나라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것이냐, 중국이면 중국, 일본이면 일본을 위해서 하는 것이냐를 보는 것입니다. 현재 일본에서도 그래요. 지금 일본에서 바라보기를 '이것이 한국에서 나온 것이니 한국을 주체국가로 만들기 위한 사상이 아니냐' 이럽니다. 들이치려고 한다구요. 그들이 '한국을 주체 국가로 하려는 사상이 아니다. 아시아를 위한 사상이다'할 때는 남아진다 이겁니다. 한국 사람이,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도 한국을 위주로 하는 것보다도 아시아를 위하고, 더 높은 것을 위주로 하게 될 때는 남아진다는 겁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역사 형성에 있어서 원칙으로 되어 있습니다.

통일교인들이 지녀야 할 주류사상

이렇게 볼 때, 앞으로 통일교회 교인들이 어떤 주류사상을 지니고 가야 되느냐? 세계를 위해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는 데는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희생해야 됩니다.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 되느냐? 일생동안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부모는 그렇잖아요? 부모는 자식을 낳은 그날부터 자식을 위해 사는 거라구요. 죽을 때까지. 자식을 길러 줄 때까지가 아니라구요. 백 살 난 부모가 여든 살 난 아들에게 '아가 아가' 그런다는 거라구요. 길 떠나게 될 때에는 차를 조심하라고 주의를 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출발서부터 끝까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하시냐? 왜 만민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좋아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그러신다는 거라구요. 처음부터 끝까지라구요. 과정에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누구를 위해 계시느냐?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계시지 않습니다. 자식들을 위해서…. 자식이 되어야 할 입장에서 타락한 이 인간들을 위해서, 탕자와 같은 자식들을 위해서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계셨느냐? 이렇게 이렇게 계셨는데 거기는 비참한 자리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비참했느냐? 하나님 때문에 비참했다면 다 고개를 숙이는가 보라구요. 그러나 누구 때문에 비참했느냐? 하나님 때문에 비참한 것이 아니고 자식 때문에 비참했다. 타락하여 이지러진 자식 때문에 비참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도리어 그 아는 심정으로 말미암아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수고하고 희생하신 아버지셨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것만이 타락한 우리 인간을 복귀시킬 수 있는 폭발적인 동기가 될 수 있지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복귀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도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선생님의 이익을 위주해서 살면 통일교회는 끝장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수단 방법을 동원해 가지고 노력한다 해도 끝장난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인도해 나가고 있지만 통일교회를 잘되게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잘되게 하기 위해서 통일교회 교인을 희생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가야 할 표준과 일치될 수 있는 길입니다. 이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세계를 위해서, 세계가 전부 일원화될 때까지 우리를 희생시키고자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대신 입장에 세우셔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러시니까, 하나님의 아들도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까운 자리에 선 아들일수록 희생해야 됩니다. 희생시키고 나서, '야, 너 수고했다' 그럽니까? 아버지와 아들이 농토에 나가서 하루종일 일하고 돌아오면서 아버지가 아들을 바라보며 '너, 수고 많았구나, 야 고맙다' 그럴 수 있어요? 아버지일수록 그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수고한 줄 알면서도 속으로만 '이 녀석, 또 수고했구만' 이러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나 수고했는데 왜 몰라줘요' 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면 그보다 더 수고를 할 때에는 그에게 값을 치러 주어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 끝장입니다. 그런 사고방식은 안 됩니다. '무슨 부장에서 뭐가 되고, 뭐 어떻구, 나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 이러는 사람에게는 그 이상의 일은 못 시킨다 이겁니다. 위에 올라갔던 사람을 밑창에 처박아 놓았을 때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은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한 단계 낮추어졌다고 해서 눈물을 흘리고 입으로 조잘거리는 사람은 짧은 사람이라구요.

보라구요. 나는 이렇게 나왔어요. 하나님이 선생님에게 한 약속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건 여러분에게 말을 다 못합니다. 세계가 너를 위해서 있고, 얼마 기간이면 하늘땅이 전부 이렇게 된다고 하시면서 하늘 끝까지 쳐들어 올려 주셨어요. 그러나 그것만 바랐다간 망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통일교회가 망하지 않는 것은 그 반대적인 길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서려면 든든한 기초공굴을 해야 됩니다. 공굴(콘크리트)을 하려면 저 바다 밑을 깊이 파고 들어가서 남모르는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그 기초공굴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지, 하나님이 해줘야지'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이용해 먹겠다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내가 해야 됩니다.

높은 빌딩을 짓기 위해서는 기초를 튼튼히 해야 됩니다. 강한 철재, 강한 쇠붙이 같은 것을 들이박아야 되는 것입니다. 박을 때, '아이고, 시끄럽다. 거 귀가 찢어지겠구만' 이래 가지고 동정해서 되겠어요? 무자비하게 내리쳐야 합니다. '이놈아, 들어가라 쑥 들어가라' 해야 하는 겁니다. 거기에서 삐뚤어져 나가면 안 돼요. 삐뚤어져 나가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똑바로 나가야 돼요 똑바로. 하나님이 여지없이 들이치더라도 삐뚤어져 나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꺾여지면 안 됩니다. 똑바로 들이치는 일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지주를 박는 것입니다. 감옥에 처넣어 가지고도…. 세상에 그 이상의 망신살이 없는 거라구요. 별의별 수모를 받는 자리에 처넣는 것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내가 약속한 것을 이어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아무리 수모를 당해도 불평해 본 적이 없어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이야 뭐, 철근 같은 사나이인데 뭐, 피곤한 줄도 모르고, 언제나 기운차고 언제나 자신만만해' 하지만, 자신 만만할 게 뭐 있느냐 이겁니다. 아직까지 할 일을 다 못 했다는 것입니다. 할 일을 못 하고 죽으면 큰일납니다. 그렇잖아요? 할 일을 못 하고 죽으면저 나라에 가서 면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일대에 국가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인연짓기 위해서 가야 됩니다. 지금 내가 일을 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전혀 생각하지 않는 일을 지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다가 무너지느냐 안 무너지느냐, 혹은 실패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실패해도 할 수 없다 이겁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세계를 위해서 가는 길임에 틀림없고, 하나님이 가시는 길이 그렇게 가시는 길임에 틀림없다. 이 길이 아니면 하나님이 가실 길이 없다. 내가 인류를 대신해서 첨단에 서 가지고 누구보다 정성을 다할 때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거다' 하며 갑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안 될 것 같은데도 끝에 가서는 골인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나가야 합니다.

세계를 위해 희생하면

아직까지 통일교회 교인들이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해야 할 일이 많으면 써야 할 돈도 많은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많을 때에는 경제적 지원도 많아야 합니다. 그 경제적 지원은 어디서 해줄 것이냐? 그것은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 중에서 제일 귀한 것을 세계를 위해서 먼저 다 주라는 겁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연보할 때도 귀한 것은 전부 내놓았다가 '이건 우리 아들딸에게 물려줘야지. 아들딸이 시집 장가갈 때 물려줘야지' 합니다. 그런 사람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아들딸은 물론, 가족 전체, 종족 전체, 민족 전체를 끌어다가 세계를 위해서 희생시키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을 때,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 되었다면 어떻게 하셨을 것이냐? 그 다음에는 로마를 위해서 싸우게 하셨을 것입니다. 싸우게 하는 데는 칼을 가지고 싸우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를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로마를 위해서 멋지게 희생시키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전을 써서 세계를 구원해 내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게 될 때에, 앞으로 우리는 신앙의 표준을 어떻게 세워야 되느냐?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사는 사람, '내가 이렇게 해야 구원받지' 하는 사람은 시시한 사람입니다. 통일교회식으로 말하면 '내가 이렇게 해야 축복받지' 하는 사람…. 그 축복은 누구를 위해서 받아요? 나를 위해서 받아요? 나를 위해서 받는 축복이 세계와 무슨 상관이 있어요?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을 중심삼고 탕감복귀 역사를 해 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무엇 때문에? 내가 사는 것은 문선생 일생권내에 살고 있지만, 하는 것도 문선생 일생권내에서 하고 있지만 왜 세계와 관계를 맺느냐? 여러분이 이걸 생각 해야 됩니다. 그 목적이 대한민국이 아니라 세계다 이겁니다. 그 일의 목적이 대한민국이 아니고 우리 가정이 아니고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땀을 흘리고 노력하는 그것이, 들이 맞부딪치는 그 장면이 개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다, 이 일만은 남아야 된다, 이 세계 인류가 사라지더라도 남아야 된다' 하며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그렇게 결정한 것은 아무리 누가 그치게 하고 깨려고 해도 절대 안 깨지는 것입니다. 오히려 깨려고 하는 사람이 망합니다. 틀림없어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 나오는 데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더구나 이번에 우리가 청평에 땅을 구매해서 앞으로 세계적인 국제 수련소를 지어 국제 수련생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위해서…. 선생님 일대에 땅을 살 때에 처음으로 정성을 들이는 거예요. 그것은 대한민국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위할 수 있는 때가 맞선다는 것입니다. 운세도 세계적인 운세, 천운이 선생님과 맞서고, 땅도 다 선생님과 맞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말만 틀리면 꺾여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대한민국이 통일교회를 반대하는데, 하나님은 왜 통일교회 사람들 중에 이 길을 못 가는 사람들은 그저 망하게 하고 통일교회 반대하는 사람들을 들이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통일교회는 이 대한민국을 넘어서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대할 상대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세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은 이미 넘어 섰기 때문에 뒤에서 야단하는 거라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에 대해서 무슨 칼질하고 뭐 그렇게 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앞에 오는 원수도 막아내야 되고 또 대비를 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참 무섭다는 거예요.

요번에 우리가 청평에서 약 8개월 동안 약 90명의 주인들로부터 땅을 샀습니다. 이틀 사흘에 한 건씩 계약을 한 것입니다. 세상에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게 하나님이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반대하던 사람이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우리 때문에 한 7,8명이 꺾여 나갔습니다. 땅을 안 팔겠다고 반대하던 사람에게는 몇 개월 후에 부인이 무슨 이름 모를 병이 나 가지고 배를 째게 되는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것을 볼 때, '아, 하나님은 계시는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때가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럴 수 있는 상대자를 세계적으로 남기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첨단에 서 가지고 그런 뜻을 받을 수 있는 무리가 나와야 되는데, 그럴 수 있는 무리가 누가 될 것이냐? 통일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인은 그런 무리가 못 되더라도 통일교회 선생은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널려 있는 고차적인 영통인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을 증거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국가의 운세가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세계의 운세, 세계가 하나된 나라, 이상세계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이미 영계에서는 그런 권내에 있는 사람들의 동족권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리에까지 나오게 되면…. 선생님이 지금까지 편안하게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녹음이 잠시 중단됨 )

책임자의 어려움

오늘부터 장마철에 들어가게 되는데, 장마철이 되면 기분이 나쁩니다. 천막을 쳐 놓고 목사들을 모셔다가 수련하는 것은 우리 일생에 처음인데, 비가 오고 구질거리는데 천막만을 들락날락하게 되니 참 안 됐거든요. 천막으로 하려면 한 십오만 원이면 끝나는데, 다른 숙소를 지으려니 90평 가량 되게 지어야 되는데 90평의 건물을 지으려면 못해도 180만원, 200만원에 가까운 돈이 있어야 됩니다. 그 200만원에 가까운 돈을…. 통일교회 교인 가운데 연보하는 사람도 없다구요. 지금까지 선생님 위하려는 사람 어디 있었어요? 자기가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허덕거리고, 자기가 안타까우면 안타까와서 허덕거리지, 선생님이야 뭘 하든 자기와 관계없이 딴 나라 사람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겁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빚을 지고라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어제 전반적인 계획을 세워 가지고 7월 8일까지 수련소를 지으라고 했습니다. 어제 내가 그랬어요. 이런 지경에 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든지 모아야 하는데, 이번에 한 30명을 지방으로 인사 이동함으로 말미암아 지구장 아래에 있던 부장급의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당장 올라오라 해 가지고 청평에서 땅을 파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수련회를 하고 사흘동안 땅을 파라고 해 놓고 누가 어떻게 하나 가만히 두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 내가 시켰으니 할 수 있어요?

어저께 아침에 선생님이 척 일어나니까 날이 좋지 않아요. 기분이 참 좋지 않아서 이층에서 가만히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어요? 까딱 잘못했다가는 사고날 것이 뻔하거든요. 사고 생기면 큰일난다구요. 그래서 가 보고 오자 해서 조금 늦게 나섰습니다. 내가 운전수에게 오늘 주의하라고 해 가지고 천천히 40킬로미터 정도의 속력으로 갔어요. 보통 때 같으면 40분이면 가는데 한 시간 반이나 걸렸어요, 가는 데만. 가는데 비가 오는 거예요.

비가 오는데 거 뭐하러 가느냐?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거라구요. 그저께도 갔다 오고 어제 저녁에도 갔다 왔는데 뭐 하러 또 가느냐? 그 사람들에게 일을 시켜 놓았으니, 별의별 궁상 다 하고 있을 게 아니예요? 그러니까 가는 거예요. '선생님은 뭐 일을 시켜 놓고 나타나지도 않고, 뭐 이렇구 저렇구…' 그러니 할 수 없지요. 그래서 책임자는 힘든 거라구요. 선생님이 떡은 못 사주고 좋은 예물은 못 갖다 주더라도, 비가 오는데 우산도 안 받고 배를 타고 갔다 오는 그것으로 그 수십 명이 고단한 것을 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는 그런 놀음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이 오늘 이 일만이 아니라구요. 현재 청평에서 땅 파는 일만이 아니라구요. 이것은 통일교회를 위한 일입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를 위한 일을 하고 있지 않느냐? 여러분은 나라를 위한 일을 해야 됩니다. 나라를 위해서는 삼팔선도 넘어야 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는 소련의 첩보원들과 싸워야 할 때도 와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럴 수 있는 일을 하게 되면 그것이 마지막 길이 아니겠느냐 이것입니다.

이것은 중간과정인데 여기에서 떨어져 가지고 통일교회 문선생을 걸고 넘어가면 곤란하다 이겁니다. 걸고 넘어가더라도, '누구보다도 불쌍한 분이 통일교회 문선생님 아니냐? 저분 대해서는 걸 수 없다' 하면서…. 그래 가지고도 걸고 넘어가면 할 수 없습니다. 만일에 책임자가 걸리게끔 해 가지고 세 사람 이상이 참소하게 되면 그는 길이 막힙니다. 길이 막힌다구요.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말이예요. 나가 가지고…. 떨어져 나간 사람들 중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어요. 유협회장이 욕 많이 먹었지요. 그렇게 나왔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반대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대하면 몽시로 가르쳐 준다구요. 그러니 이게 골치 아프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나 자신을 갖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뭐냐? 내가 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나도 망할 수 있는 거라구요. 국가적 책임이라든가, 세계적 책임을 중심삼고 가는 길의 선두에 선 선생님은 무엇 하나라도 잘못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늘땅이 녹아날 수 있는 입장에 선생님이 서 있습니다. 잘못 결정했다가는 문제가 큽니다. 일년에 갈 것을 십년, 백년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내 감정을 중심삼고 결정하지 못합니다.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는 반드시 여러분 모르게 기도를 해야 돼요. 내가 무엇을 하자 할 때는 그저 아무렇게나 생각해 가지고 기분에 따라 하는 것이냐? 천만에요. 여러분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내적인 결정을 짓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하늘 꼭대기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뭐가 되겠습니까? 꼭대기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큰 일을 했다 하더라도 간신이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뜻, 둘째는 세계의 뜻

내가 뭐 이렇고, 저렇고 그런 얘기를 안 하지만 말이예요.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람들은 선생님 앞에 칭찬받는 입장에 서지 못합니다. 그런 뭐가 있다는 거라구요. 아침에 척 일어나면 벌써 오늘 좋은 일이 있겠는지, 나쁜 일이 있겠는지 압니다. 또 여러분이 보고를 하러 들어오면 척 벌써 압니다. '아, 이 사람이 오늘 좋지 않은 일을 했구나' 하고 말이예요. 그런 것이 있다구요. 사람에게는 전파가 있습니다.

혹은 사람에게서 냄새가 나지요? 그 냄새는 후각을 중심삼고는 못 맡는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 여러분 각자의 자력선과 같은 파장이 있어서 좋고 나쁜 체취 같은 것을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대번에 압니다. 가만히 앉아 가지고 대번에 안다는 거예요. 그 사람의 경지에 내가 딱 들어가는 거예요. 알려고 안 해도 벌써 그 사람의 마음이 반응되어 들어옵니다. 그래서 기쁜 소식인지 아닌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싸우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길을 따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망하는 것이요, 이렇게 하면 흥하는 것이다 하는….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나갈 때는 망하는 거라구요. 어디까지에도 그 길은 남아 있습니다. 777가정 축복 때 선생님의 집 살 돈을 마련해 주었는데도 내가 집을 못 샀습니다. 양심상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싶은데 순서가 있는 거예요. 내가 이 순서를 알고 있는데, 하늘의 섭리의 뜻을 먼저 내가….

뜻이라는 것이 뭐냐? 첫째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둘째는 세계의 뜻입니다. 세째는 뭐냐 하면 후손, 자손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면, 하나님을 위한 뜻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한 뜻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 일대를 위한 뜻이 아니라 후손을 위한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세계를 위한 것이요, 후손을 위한 것입니다.

뜻을 위해 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뜻대로 살아야 되는데, 세계가 뜻의 목적지이기 때문에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세계를 위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가 오늘 잘되어 가지고는 내가 남아지는 게 아닙니다. 후손을 위해서 남기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뜻을 중심삼고 가는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신앙적인 표준을 정하는 데는 어떻게 정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은 세계입니다. 이 세계의 주권, 선의 주권을 어떻게 세우느냐? 일구월심, 자나깨나 그것을 위하여 나가야 됩니다. 세계의 소식을 듣게 될 때, '아, 그 자리로 세계가 다시 돌아오는구나' 하면서 그것을 바라보고 저울질해 나가야 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생활하라! 세계에 필요한 사람이 되라! 세계를 위한 영원 불변한 사람이 되라!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를 위해서 보다 희생할 수 있는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세계를 책임지는 자리에서 희생하려면 반드시 세계를 위하는 데 있어서 부정이냐, 긍정이냐 하는 결과를 결정지어야 합니다. 보다 나은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결과를 타진하지 않고는 세계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길을 못 가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이렇다 하는 결정을 짓고 가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자리는 무의미한 자리가 아니라 심각한 자리입니다. 심각한 입장에서, 결정적인 입장에서 출발하는 자리가 희생하는 자리더라 이겁니다.

희생할 때 그냥그냥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의 어지러움을 박차고 헤치고 나서는 것이 가치 비례를 중심삼고 볼 때 그 어떠한 것보다도 가치적인 내용을 갖기 때문에, 현실적인 모든 것을 끌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으로부터 자기의 모든 환경까지를 끌고 나갈 수 있는 요건이 뭐냐? 가치 기준에 있어서 세계를 위하는 것이 보다 가치 있다 하는 기준이 결정나야 합니다. 그래야 현실적 환경을 처리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또 다음은 뭐냐? 세계입니다. 후손을 위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앞으로 세계적인 본부가 되어야 합니다. 본부라고 해서 청파동의 본부가 세계 본부가 아닙니다. 내가 요번에 외국 사람들한테 이 본부는 이러이러한 역사를 중심삼은 무엇을 지닌 곳이기 때문에 초라하지만 여러분이 이 곳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지만, 이 곳이 세계본부가 될 수 없다구요. 세계본부라는 것은 제일이다 하는 의식을 주어야 됩니다. 또 세계본부는 새로운 곳에 만들어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의도에 땅을 사게 된 거예요. 땅을 사는 데는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곳에 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곳에 세계본부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 세계본부가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세계본부가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뭐냐? 세계 사람을 위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세계 사람을 위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뭐냐? 청평입니다. 청평에다 국제 수련장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앞으로 거기에다가는 무엇을 하느냐? 각국의 선교본부가 있는 블록, 일본이면 일본 블록, 미국이면 미국 블록을 만들 것입니다. 방대한 지역을 사 가지고 거기에 있는 가로를 경계로 해서 미국이면 미국인들에게 떠맡기는 거예요. 미국인들이 와서 수련받으려면 미국인들의 취향에 맞는 도시, 마을을 만들고…. 각 나라의 문화를 총합할 수 있는 환경적 도시, 종합 촌락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우리 수련소를 만든다는 겁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수고한 사람들은 반드시 본부에 와서 수련을 받게 하고, 본부에 와 가지고 수련받고 돌아가는 것을 영광으로 알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경치가 좋아야 됩니다. 그리고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순회를 하게 될 때, 그들의 인상에 남을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곳을 한 곳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순회하는 데 두달 혹은 석달은 걸릴 수 있는 코스, 몇 개월이라도 머무를 수 있는 코스를 우리가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명승지를 잡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명승지라야 일주일 혹은 열흘씩 지내 보고 '야! 한국이 이렇게 멋지구만' 하는 거예요. 이런 곳을 만들어야 합니다.

앞으로 세계 각 나라에서 한국에 왕래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느 단체의 사람들이 많을 것이냐? 대한민국의 어떤 기관, 대사관 혹은 외국 공관에 관계된 사람들보다도 통일교회와 관계된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외국 손님으로 많이 찾아올 것은 틀림 없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외국 사람들이 왕래하는 이런 주류적인 입장을 책임져야 할 단체가 통일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 외국 사람들은 한국에 처음 왔다 가는 사람들이니만큼 한국을 소개하는 데 있어 선두에 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수련소를 좋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들이 '야! 가는 곳곳마다 절승이다. 명승지다. 대한민국은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 않을 수 없는 나라다'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래 가지고 일주를 쭉 할 수 있도록, 여기서부터 동해안, 서해안, 남해안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명승지에 앞으로 우리가 반드시 휴식처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한바퀴 삥 돈 다음에는 제주도로 가는 것입니다. 지금 제주도 서귀포에도 호텔을 지을 땅을 사 놓았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거기에 박자를 맞출 수 있는 지역을 선정해 가지고 지금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지요? 그저 밥이나 먹으면 좋구, 편안히 잠이나 자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구요. 여러분은 선생님을 돕기 위해서 따라온다고 생각하겠지만, 선생님은 여러분이 선생님을 돕기 위해서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고달프게 하기 위해서 따라온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고요.

앞으로 외국 사람들이 한번 쭉 왔다 가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그렇잖아도 한국은 신앙의 조국이요, 자기들의 이상적인 모국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자랑할 건데기가 없어도 자랑하려고 할 텐데,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었으니…. 그렇게 되면 사돈의 팔촌까지 전부 다 데려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전부 다 소개해 가지고 몰려오게 되면, 우리는 관광사, 호텔을 만들어서 그 사람들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국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게 되면 자연히 이 나라를 관광국가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외국 사람들이 울상을 하고 오는 것보다 웃으면서, '야, 가고 싶었다' 하며 진짜 소망을 가지고 올 수 있는 이런 나라를 만들어야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결국은 무엇이냐 하면…. 지금 통일교회 문선생을 보고 뭐가 그렇게 편안치 않아서 그런 일을 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뭐 돈이나 생기면 지금 못살고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 월급이나 주고 잘 먹여 줘 가지고, 동네방네 친척들이 '아이구, 우리 누구, 우리 아들딸 통일교회에 잘 들어갔어, 잘 들어갔어, 또 들어가라' 하게끔 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통일교회에 들어가서 시집장가 간다고 하더니 이 녀석아, 이 년아 너희들 그게 뭐냐, 통일교 문선생이 결혼시켜 줘서 너희들 요렇게 됐다'는 등의 별의별 소문을 듣고 다 알고 있어요.

그러나 아무리 대한민국내에서 욕을 먹지만 대한민국에서 욕먹는 대가로 세계적으로는 칭찬받을 사람의 수가 더 많아진다구요. 알겠어요? 가만히 저울질해 볼 때, 대한민국에는 마이너스이지만 세계적으로는 플러스입니다. 그러니 세계를 위하는 사람이 할 일을 대한민국에서 야단한다고 해서 안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방에 가게 되면 어떤 사람은 선생님을 만나겠다고 몇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갔을 때는 아파 가지고 '아이쿠. 내가 이럴 때 아프다니' 하며 통곡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 사람은 선생님을 만나면 항의하려던 사람이라구요. '우리 딸 결혼식장에서 결혼 잘한다고 동네방네 다니며 선전을 잘해 놓았으니 이제는 반대도 할 수 없고,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겠다' (웃음) 이러고 있다가 '우리는 이제 결연해 가지고 통일교회 절대 반대하려고 그런다' 이겁니다. 동네방네 다니면서 칭찬하고 좋은 선전을 했기 때문에 하늘의 공신으로서 그 명단이 엄연히 올라가 있는데, 이것을 뒤집어 놓으면 선조들이 안 따라 준다 이겁니다. 선조들이 있으면 그의 모가지를 눌러야 돼요. 이런 것을 생각할 때, 그가 스스로 아프기를 잘했지 안 아팠으면 어떻게 됐겠어요?

대한민국을 세계의 주체국으로 남기자

이러한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 선생님은 망하지 않는 것이 절대적입니다.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 자신이 그냥 그냥 이럭저럭 가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정성들이며 가는 것입니다. 그제는 6·25동란이 일어났던 날입니다. 그 전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우리가 목사들을 데려다가 제7차 원리 공청회를 마친 날입니다. 이렇게 딱 맞아 들어갑니다. 이때는 통일교회가 넘어가는 때입니다. 단숨에 넘어가는 때입니다. 넘어갈 때에는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럴 때에는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섭리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금년이 6·25 21주년 되는 해인데 이것과 통일교회 선생님 21년노정 기간하고 어떻게 이렇게 맞아떨어지고, 7수에 해당하는 목사 장로들의 제7차 공청회 기간이 그렇게 맞을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까지 3일 기간은 좋지 못한 기간입니다. 오늘이 27일이지요? 24, 25, 26일은 불길한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알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금년 6월에는 대한민국에서도 이렇게 변천이 벌어지지요? 우리 통일교회도 체제를 개편하여 새로운 체제로 죽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은 살아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끌고 나가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목적점이 어디냐? 현재 이 자리가 아니예요. 이 자리는 낳은 자리입니다. 낳은 자리라구요. 낳은 자리에서 살아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여기서 기원해서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이냐, 언제까지 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여러분은 모를 거예요.

이런 등등의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김일성이의 한계점을 왜 명년 1972년도까지로 잡느냐? 김일성이가 1972년도면 회갑을 맞습니다. 4월 15일이 생일이라구요. 이 녀석, 너 60세만 넘어 봐라, 이놈의 자식아! 그때까지 통일교회가 대한민국에서 민족을 걸고 가정과 개인이 희생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공산당들이 나라를 중심삼고 충성하는 것 이상의 조건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세계에 없는 가정 출동, 가정의 아주머니 출동이라는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또 어떤 일을 시킬지 모른다고 지금도 야단하는데, 이제 그 아주머니들한테 '너희 아들딸까지도 같이 데리고 가서 희생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것까지 생각해야 됩니다. 자기가 벌어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가서 3년 동안 나라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제물 되기 위해서 왔지만 나라를 위해서 희생해라 할 때는 그 일을 해야 되는 거라구요. 이러한 등등의 길이 아직까지 여러분 앞에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표준이 무엇이냐? 국가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아니예요. 이런 말을 들으면 '아이구…' 할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대한민국 사람 아닙니다. 대한민국에만 매여 있으면 세계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앞으로 세계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주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대한민국이 세계의 주체국가로서 남아질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사상입니다. 통일교회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대한민국을 이끌고 가 가지고 절대적으로 희생할 수 있어야 됩니다. 세계적으로 희생시켜야 됩니다. 세계를 위해 희생하며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세계가 빚을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여러분의 직장에서도 그렇지요? 직장에서 희생하면 희생한 만큼 올려 주는 것입니다. 올려 주는데도 내려가겠다면, 반동작용으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양심세계의 사조의 내용입니다.

인간이 망하지 않는 길을 가기 위해서는…. 더더구나 종교를 중심삼고 가는 길에서 개인을 위해 사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개인을 위해 사는 사람은 열 번 수고하면 열 번 쪼그라들어요. 알았어요? 개인을 위해 고생하면 그저 폭싹 녹아 죽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은 고생하고 고생해도 지치지 않습니다. 보람이 있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패들의 얼굴을 보면 팽팽하다는 것입니다. 어저께도 박봉애씨가 와 가지고 누구를 만나서 얘길 하는데 왜 이렇게 젊어졌느냐고 하더라는 거예요. 자기 아들딸 위해서 먹고 살겠다고 까박까박하는 사람은 숨을 쉬어도 답답해 가지고 절벽강산으로 막힌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늙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남을 위해서 살면 지금은 고생하더라도 앞으로의 생활이 훤히 트인 생활이기 때문에, 숨을 쉬어도 마음놓고 깊은 숨을 쉴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여건에 있어서 남보다 잘 되어 가는 겁니다.

우리 할머니들을 내 가만히 보게 되면 말입니다. 여기 석온 할머니를 보면 쪼글쪼글한 것이 보기에 견딜 수 없을 정도이지만, 한참 은혜에 취해 있을 때 척 보면 아주 미인으로 보일 때가 있다구요. (웃음) 인물을 보게 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다른 일면, 마음에 소망을 갖고 있는 얼굴을 보면 저런 할머니도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세상 할머니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자기 개인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가면 갈수록 절망이지만 남을 위해서 살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다른 교회와 다른 것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들이 신앙의 표준을 어디에 정할 것이냐? 통일교인들은 자그마치 천주(天宙)에 정해야 됩니다. 천주주의입니다. (판서하심) 천주주의가 뭐냐? 한 손으로는 하늘을 붙들고 한 손으로는 땅을 붙들고 산 제사를 드린다 할 때에, 하늘땅이 내 안에서 갈라지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갈라지면 복귀가 안 됩니다. 하늘이 갈라질 수 없고, 땅이 갈라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갈라 놓겠다고 하게 되면 하나님도 야단이시고, 땅도 야단할 수 있는 입장입니다. 이것이 천주주의입니다. 이런 운동을 하자는 주의라구요.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통일교회 교인들은 지금은 과정에 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사람 사태가 날 것입니다. 두고 보라구요. 지금은 사람이 그리워서 별의별 놀음 다 하지요? 기성교회 목사들, 통일교회를 반대해 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거지, 상거지가 되면 그들도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총무부장이나 협회장한테도 이야기 했지만 말이예요. 그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악이 선을 쳤으면 맞은 선이 가는 길을 악은 머리를 숙이고 따라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거지 노릇을 하면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은 주인 노릇을 하면서 맞고 가지만, 악은 선을 쳤기 때문에 거지 노릇을 해야 된다 이겁니다.

기성교회가 왜 그렇게 된 줄 알아요? 통일교회를 반대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내놓고 당당히 얘기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럴 때가 왔습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던 기성교회들,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래기를 주워 먹던 것같이 그렇게 굶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구요. 목사들이 돈 몇백 원에 자기 체면을 팔아먹을 수 있는 자리까지 가는 것을 볼 때 기가 막혔습니다. 닭을 잡아서 해주니까 자기 것을 다 먹고 들어오지 않은 사람 몫의 닭다리까지 물고 나가는 목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기가 막혔습니다. 그런 것이 남의 일이 아닙니다 그들이 따지고 보면 나하고 원수라구요.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강단에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때려 잡으라고 하고 통일교회 가지 말라고 벽돌담을 쌓아 놓던 목사들이 아닙니까? 이제라도 그 담을 툭 터놓으면 한꺼번에 다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건 틀림없습니다. 이건 목사들이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있는 데에 기성교회 목사나 장로, 집사들만 불러다 놓으면 찰떡에 팥고물 묻듯이 들이닥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구요.

조금만 더 얘기하자구요. 요즈음에 기독교가 하나되겠다고 무슨 회의를 하고 하지만, 아무리 회의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회의를 열게 했으면 그것이 통하지만, 하나님이 무시해 버리면 아무리 회의를 해도 하면 할수록 뿌리가 전부 갈라진다 이겁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내가 기성교회 한 천 개를 한꺼번에 흡수할 것입니다. 알겠어요? 기성교회 한 천 개를 흡수한다 이겁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전도하느라고 고생했지만 한꺼번에 지금 통일교회 이상 많이 들어올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월급을 만 원 받는다고 할 때 만 오천원을 주겠다고 하면 입 벌리고 달려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불원한 장래에 사람 사태가 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그때 가서 무엇을 가지고 수습할 것이냐? 일대일로 수습할 것이냐? 수습할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많은 사람이 들어오면 그들을 무엇으로 지도할 것이냐? 여러분이 거기서 뗄 수 없는 하나의 사상이 무엇이냐? 세계를 위한 사상이요, 후손을 위한 사상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까 얘기한 여의도나 청평에 하는 것은 세계를 위해서 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후손을 위해서 교육기관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 대학교를 세우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도 바쁘다구요. 여러분들을 보게 되면 여러분도 지금 급해 가지고…. 어떤 사람은 뜻을 위해서 수고하다 보니 결국은 나 하나 남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더 고생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뭐 출세한 사람이라구요? 지금도 낙오자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뜻이라는 것은 세계를 위하는 것이요, 뜻을 이루는 것은 후손을 위해 남기고 가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통일교회가 다른 교회와 다른 것입니다.

통일교회에도 신앙의 표준을 두지 말라

오늘날 여러분이 선생님을 따라오는 데 있어서 선생님에게 그러한 면모가 엿보이는 한, 여러분이 가는 길 앞에 있어서 선생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을 비판할 수 없습니다. 비판하면 여러분이 비판받게 됩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민족이 반대하고 교회가 반대하고 수많은 교파들이 들이쳤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요전에 주간 선데이 서울에 강원용 박사 얘기가 실려 있었지만, 몇 번을 때리면서 저 사람이 남아지겠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들이 통일교회 문선생 패를 들이 때리면 남아질 것 같아요? 생각해 보라구요. 몇 번 안 때려서 폭싹할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 문선생은 별의별 누더기 감투를 썼지만 안 망했습니다. 오히려 못살게 굴던 사람들이다 망했어요.

그것은 왜 그러냐? 통일교회가 망했다가는 큰일나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이것이 주류사상이라고 하면 하나님편 사람들이 다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현세에 있어서 세계적인 사조를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가 가는 방향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세계를 수습할 대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하나님이라면 절대적인 상대권을 남겨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겨 놓지 않으면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는 한계선에 도달했으니만큼, 신앙의 표준을 자신에게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정에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어디에 가서 통일교회 교인이 세상 사람과 싸우는 것을 보게 되면 먼저 통일교인을 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선 안 돼요. 상대방을 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통일교인이 잘했느냐 잘못했느냐를 살펴보기 전에 상대방이 잘했느냐 잘못했느냐를 살펴보고, 상대방이 잘못했더라도 통일교회 교인은 다 잘했느냐를 살펴봐서 다 잘 했다 하더라도 잘못한 사람을 우선 책망하지 말고, 통일교인에게 '네가 선한 입장에 서 가지고 그래 악한 사람을 대해 이것이 뭐냐? 고 충고해 주어야 합니다. 상대방을 위해서 그렇게 충고해 주면, 또 상대방이 그것을 알게 되면 저절로 분립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책임자들을 잘살게 해야 되겠어요, 기성교회 책임자들을 잘살게 해야 되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자, 주류사상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표준을 갖고서 가인을 복귀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가인을 복귀하기 전에 아벨이 잘살 수 있어요? 잘살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성교회 목사들을 잘살게 해야 통일 교회 책임자들이 잘살 수 있다 이겁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나라를 위해서 희생해야 나라도 그 희생의 길을 따라서 희생의 제물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탕감해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길이 미래의 국가가 가야 할 길인데 그걸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 현정부의 위정자들은 믿을 수 없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내가 가만있지 않으려고 그런다구요. 선생님이 1974년도까지는 언론기관을 만들려고 합니다. 1974년도까지 강력한 언론기관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지금 종교신문 나오는 거 알죠? 「예」 나라를 올바로 세우려면 종교계를 올바로 이끌어야 됩니다. 그것이 끝나면 신문을 올바로 지도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그것을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을 알고, 우리 통일교회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신앙계나 종교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계기가 된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이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더 큰 발전을 위해서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신문을 몇만 부를 발행했다 하게 되면 여러분이 팔아야 됩니다. 통일교인 전원이 안 보면 안 됩니다. 할머니들도, 알겠어요? 밥을 못 먹으면 못 먹었지…. 세 끼니 먹던 것을 두 끼니만 먹으라구요. 여러분이 종교기관을 협조하는 의미에서 한 부씩 사 봐야 되겠습니다. 할머니들, 알겠어요?「예」 우리 남자들은 구경해야 되겠어요?「아닙니다」 그래 가지고 십만 부를 넘겨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무엇을 하든지간에 내가 신문사를 만들겠습니다. 신문으로 두들겨 맞았으니 신문으로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종교계에서 두들겨 맞았으니 종교로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돈이 없다고 천대받았으니 앞으로 돈으로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모든 것이 탕감복귀입니다. 문선생이 지금까지 벌거벗고 춤춘다고 소문났지만, 이제는 언론기관을 통하여 춤추게 해 놓고 구경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기어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그렇게 될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다짐해야 할 주의는 천주주의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꽉 잡아라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참된 길을 가는 사람은 하늘을 붙들고 땅을 붙들고 놓으려고 해도 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길을 찾아 나가는 사람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아무리 짓궂게 하더라도 놓을래야 놓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도 이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문선생을 놓을래야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손을 잡았다 하면 꽉 잡아라 이겁니다. 꽉 잡고 이것을 이루어야 된다는 거라구요. 세계 사람들도 그래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잡으면 하나님이 '꽉 잡아라' 하시는 겁니다. 세계 사람들이 안 쥐어 주면 '아이구 쥐어 주십시오'라고 할 수 있는 내적인 운동이 지속되지 않으면 천주주의를 완성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려면 민족을 초월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판국 사람인데 일본 사람이 선생님을 보고 '우리의 선생님이 대한민국 사람, 옛날에 우리의 식민지 국가로서 우리의 통치를 받던 저개발국가의 국민이 아니냐? 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안 잡아 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아무리 밉더라도 꽉 잡아 주십시오'라고 해야 합니다.

불평의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몰라줘서 불평이라는 것입니다. 그건 괜찮습니다. '선생님이 날 몰라줘서, 안 잡아 줘서 불평이지, 내가 안 가겠다고 하나?'합니다. 통일교인들이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로 되어야 돼요. 방향이 남북으로 되어 있던 것이 거꾸로 되어야 됩니다. 거꾸로 한바퀴 획 돌아와야 됩니다. 다시 돌아와야 된다구요.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당신이 이렇게 죽다니, 이게 웬 말이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가지 마세요'하고 막을 때 예수님이 뭐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이여, 어서 오십시오'라고 했어요? '사탄아, 물러가라'고 했습니다. 이미 때가 늦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렇게 가려고 그러는데 '그거 안됩니다, 안 됩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선생님이 그 사람을 놓고 가지, 데려갈 것 같아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고집이 세다면 누구 못지않게 센 사람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보고도 내가 가끔 '어쩌면 그렇게 아버지를 닮았느냐? 핏줄은 어쩔 수 없구나'라고 합니다. 흥진이를 보나 세 살 난 현진이를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자기가 한번 말한 것을 못하면 자기 체면이 서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 체면은 모른다 하고 아버지 앞에 와서 버티고 서 있는 것입니다. 한번 한다 하면 절대 굽히지 않는 성질입니다. 그런 면이 있습니다. 고집이 세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강한 사람이라구요.

또 말을 안 듣는 데는 누구보다도 말을 안 듣는 사람입니다. 그르다 할 때는 코를 꿰어 가지고 아무리 잡아 끌어도 안 듣고, 옳다 할 때는 가지 말라 해도 가는 거라구요. 그런 성질이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 중에 선생님이 우리 말을 잘 듣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계산을 잘못 했습니다. 그 사람은 잘 들어주는 것같이 해주어야만 일을 하겠기에 그렇게 해주는 거라구요. 그렇다고 언제나 그렇게 해주느냐? 선생님의 본의는 딱 정해져 있습니다.

복귀의 길은 본래 딱 정해져 있습니다. 그 프로는 단 일보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일보도 양보할 수 없어요. 그것을 알고, 여러분 중에 적당히 작전해 가지고 자기가 출세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라지라구요. 내가 거기에 말려들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처음에는 얼마만큼 보조를 맞춰 주지만, 결국에 가서는 그가 이용당했다는 결과에 떨어지게 하면 했지, 내가 이용당해 가지고 나가자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교회 문선생 개인의 목적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와 하늘땅을 위해서입니다. 이 사상을 여러분이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지 말고 뜻대로 살려고 해야

여러분이 개인표준이나 가정표준을 다 달성할 수는 없습니다. 다 못해요. 여러분 일생 동안에 그것을 다 할 수 있어요? 이만큼 나오는데 6천년이 걸렸습니다. 수천년 동안 하늘땅이 인류를 동원해서 만들어 가지고 나온 것을 일대에 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해야 하느냐? 더 큰 세계를 위해서 죽어라, 뜻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희생하자는 것입니다. 희생하고 나서 잘살자는 것입니다. 잘살되 '나 혼자 잘사는 것은 싫다. 아버지와 전체가 잘살아야 한다'고 해야 됩니다. 이것이 뜻의 길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희생을 하고 하고 또 하더라도, 망할 것 같은데도 안 망하는 것입니다.

어저께 나까무라 목사가 와서 선생님보고 하는 말이 참 이상하다는 거예요. 일본 정계 원로인 모씨들과도 연고가 깊은 박모라는 한국 사람이 있는데, 그와는 재산 문제 때문에 관계되어 가지고 일본에서 처음 만났답니다. 그 사람은 불교를 믿는 사람인데 하루는 자기에게 기도를 받고 싶다고 해서 기도를 해주었답니다. 기도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 경련이 일어나고 하는 역사가 벌어졌다는 거예요. 담배를 피우고 술을 잘먹는 알콜 중독자 여서 풍기(風氣)가 있던 사람인데, 한바탕 구르고 넘어지고 하는 역사가 있고 나서 거꾸러졌다는 것입니다. 나까무라 목사는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안수를 해주고 하던 예순 몇 되는 노 목사인데 지금까지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선생님을 생각하고 이렇게 해보니 하나님이 살아 계시더라는 거예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목전에 볼 수 있더라는 겁니다.

또 내가 전 일본의 47개 내지 50개 도시에서 순회부흥회를 할 것을 지시했었어요. 그래서 순회 부흥회를 하고 돌아왔다는 거예요. 그러고 나니까 이제 일본에서 아주 유명해졌다나요? 지금 현시대에 살아 남은 교역자라는 그 꿈 같은 이야기가…. 맨 처음에 시작할 때는 막막했는데, 이것이 마지막 판이라고 생각을 하고 하다 보니까 결국은 하나님이 같이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지금 한국과 일본과 중국을 연결하는 교단을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뭐 여러분이 몰라도 괜찮아요. 요전에 일본의 크리스찬 신문에도 그게 났어요. NCC권내의 일본 목사들을 상대로 전부다 한국을 중심삼은 침투공작을 통일교회에서 한다고 신문에 나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야단한다는 거예요.

그는 세상이 뭐라 하더라도 자기는 목숨을 내놓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제 당장에라도 통일교회 간판을 내세워 가지고 발표하라면 발표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일러주고 있지만 말이예요. 여러분들은 지금 '꿈 같구만' 하고 있지만, 새로운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실제로 지금 불이 붙을 수 있는 환경이 되어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한민국내에서가 아니고, 세계적으로 그렇게 되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내가 이번에 외국에 나가게 되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날 만나리라고 보고 있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무엇이냐면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이겁니다. 여러분들은 무슨 일을 해야 되겠다고 하면, '또 일이구먼, 아이구' 이러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아직까지 세계가 우리와 손을 못 잡았고 세계를 위할 수 있는 한계점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분은 세계를 위해 희생하는 길을 가야 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기 위해서는 나라를 위해서 빨리빨리 다리를 놓아야 되겠습니다.

이 나라가 어떻게 북괴를 능가할 수 있는 사상으로 무장해 가지고, 강철같이 단결하여 세계 공산권을 제압하느냐? 세계 공산당을 제압하게 될 때는, 민주세계는 그 기준이 올라가지 말래도 푹 올라가기 마련이 아니겠어요? 우리가 이 조그마한 한국 땅에서부터 유도탄기지로 삼아 가지고 한번 싸워 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기에 재료가 되고 한 터전이 되어 가지고 보조를 맞추고 싶어서 모인 무리가 통일교회 교인들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은 자기 마음대로 할 사람이냐? 뜻 마음대로 할 사람이다 이겁니다. 그렇지요? 뜻 마음대로 할 사람이지, 자기 마음대로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뜻대로 하게 할 사람이 누구냐? 통일교회 문선생이다 이겁니다. 문선생이 여러분을 전도시켜 가지고 등쳐먹고 여러분의 신세를 져 가지고 잘살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는 지금 내가 먹고 살 것을 옛날에 다 만들어 놓았습니다. 누구도 부럽지 않다는 거예요. 내가 여러분의 신세를 진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내 신세를 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관계를 맺으면 맺을수록 내가 여러분에게 신세를 지우고 왔지 내가 여러분의 신세를 지지 않았다 이겁니다. 그러니 당당하다구요. 여기에 이의 있어요?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세계를 위해 희생하는 길

세계를 위해서 가는 길로 더 내몰아야 되겠습니다. 더 내몰아야 되겠어요. 안 내몰아야 되겠어요? 남자들 대답해 보라구요. 내몰아야 되겠다는 겁니다. 만일에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입장에서는 거예요. 세계를 위해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가는 길은 단 하나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목적을 성사하려고 하는 사람이 그 목적을 위해서 얼마만큼 희생의 대가를 치르느냐에 따라서, 상대적권내에 그것이 얼마만큼 흘러들어가게 하느냐에 따라서 목적성사의 기일이 단축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내가 의무적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살려면 대한민국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세계를 위하지 않으면 오늘날 우리가 세계를 위해 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고스란히 나와 같은 신앙적인, 사상적인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 혹은 그런 후손을 만들어 가지고 천년 만년 후대에 이와 같은 사상을 남겨 줄 수 있는 터전이 남아지는 한 통일사상은 세계에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조할 사상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선생님의 관이요 하나님의 관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알고, 개인으로서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보다도…. 본연의 인간이 남아질 수 있는 빠른 길은 세계를 위해, 더 큰 것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희생하여 세계적인 일체권내에서 여러분이 이것을 정복해 보십시오. 가정 전체, 사위기대 전체, 통일교회 축복받은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통일교회 전체, 민족 전체가 한꺼번에 세계를 위해서 통일할 수 있는 때가 되면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가 종적으로 탕감해야 될 역사적인 사실을 통일교회가 일시에 탕감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섭리관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인이 개인적 기준, 가정적인 기준, 종족적인 기준, 민족적인 기준에서 탕감하지 못하면 선생님 자신이 해야 됩니다. 여러분 개인을 희생시켜서 가정에 투입하고, 가정을 희생시켜서 교회에 투입해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지방에 가게 되면 어머니가 고단하다고 해도 가자고 하는 겁니다.

만일 통일교회 여러분들이 못 하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여러분을 중심삼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선생님의 직계 자식들을 중심삼고 이루어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여러분은 불쌍한 무리가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종으로 끝납니다. 그렇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새는 선생님이 선생님의 자식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될 수 있으면 자기 전에 자식들을 위해서 마음으로 기도해 줍니다. 왜 그러느냐? 여러분을 누구보다 더 사랑했다 이겁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책임을 못 하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계대를 받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던 그 사랑을 자식들에게 주더라도 천적인 사랑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기 도

​그 누가 잘나서 오늘 이 자리까지 통일교단이 남아져 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지 않을 수 없었던 역사적인 비운의 그늘과 당신께서 6천년 동안 섭리도상에서 비운을 벗어날 수 없었던 역사적인 사실이 그냥 그대로 남겨져 있사옵니다. 이것을 현세를 살고 있는 실체 들을 통하여 해원성사해 드리지 않으면 안 될 엄숙한 과제와 책임이 통일교단에게 부과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자나깨나 그 일을 감당해 내야 될 것이 오늘 여기 서 있는 자식의 책임이요, 이 자식을 따르고 있는 자녀들의 책임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말없이 참아 나오셨습니다. 통일교회도 지금까지 말없이 걸어왔습니다. 당신의 용모를 갖추어 가지고 비참하였던 선의 역사를 드러내어 만민 앞에 선포하여, 만민이 가슴 가슴을 헤쳐 가지고 거기에 하늘로 메울 수 있는 날은 어떻게 오게 할 것인가, 이것이 오늘날 통일가가 해야 할 책임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미지의, 미개의 민족을 깨우쳐야 할 사명이 저희에게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될 때, 한 날이 얼마나 바쁜 생활을 해야 할 날이요, 한 시간이 얼마나 귀한 생활을 해야 할 시간인가를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나이가 더해 가는 것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뜻 앞에 미급한 자신인 것을 한탄할 줄 아는 통일교단의 사람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제 6월이 다 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6월의 마지막 안식일이옵니다. 이 1971년 6월을 슬픔의 달로서 흘려 보낼 것이 아니라 기쁨의 달로서 아버지 앞에 봉헌해 드려야 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이달이 추억의 달이 되고 기쁨의 달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7월을 맞으면,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세계를 향하여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되겠습니다. 7월은 전국에 있는 자녀들을 새로이 출발하는 40일 전도 노정에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될 때이옵니다. 저희들이 계속되는 지루한 싸움터에서 그칠 수 없는 싸움의 전선을 펴고 있는 지금, 언제나 스스로를 감정해 가지고 긴장된 입장에서 하루의 생활을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될 자리에 선 자신을 보게 될 때는 불쌍한 모습이지만, 자신의 불쌍함보다도 민족 앞에 불쌍한 운명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넘어가기 위해서 저희들이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적인 탕감 노정을 알았기에, 이러한 도상에 들어서는 저희들을 불쌍히 보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아버지가 계시는 것을 알고, 감사하며 생활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 저에게 바라시는 생활의 표준이 무엇이냐, 가정의 표준이 무엇이냐, 종족 민족 국가의 표준이 무엇이냐고 묻기 전에, 세계를 위할 수 있는 희생의 표준,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는 데 있어서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물어야 되겠습니다. 이 기준이 지금 때에 문제가 되옵니다. 세계를 위한 공신이 되게 될 때는 국가의 공신은 이미 되어진 것이요, 종족 가정 혹은 개인의 완성기준도 이미 넘어선 것이라는 사실을 아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세계기준을 중심삼고 나오셨사옵니다.

끝날이 오는 것도 세계의 때를 마련하기 위해서요 심판날이 오는 것도 세계의 때를 마련하기 위해서임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은 세계를 움직여온 무대를 표준해 가지고 지금까지 지루한 역사과정을 참아오신 것을 생각 하게 될 때, 이것은 세계를 상속할 수 있는 하나의 아들딸을 찾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임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제 눈이 뜨였으면 세계를 바라보고 울부짖는 감정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이 있거든, 내 개인을 위하여 감정을 격동시킬 것이 아니라 세계를 대한 섭리 앞에 원수를 대하여 감정을 격동시킬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참고 또 참아야 할 것이 통일가에 속한 무리들의 사명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부디 이와 같은 사명을 절감하고 내일의 희망과 더불어 세계 인류와 더불어 천국의 개문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기수들이 되어, 당신이 바라시는, 세계의 인간은 이래야 된다는 절대적 기준을 제시하고도 남을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러한 무리가 처해 있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이요, 그러한 무리가 이 세계에 처해 있다면 이 세계는 망하지 않을 것이요, 그러한 무리가 이 땅 위에 남아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로 말미암아 해원 성사할 수 있는 기원이 세워진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저희들이 이 기준에 따라서 가기 위해 마음을 다하고 몸을 다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가 흘러가는 세계의 사조와 더불어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자기 개인의 사정 때문에 급급하는 불쌍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세계의 슬픈 노정이 저희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미래의 터전을 위하여, 현실 과정에서 이것을 극복하고 타개하기 위한 싸움을 누구보다도 심각한 자리에서 계속할 수 있는, 당신이 보람 있게 느끼실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할 것을 이 시간 깨달았사오니, 오늘날 저희들이 이것을 위한 신앙의 표준을 갖고 나가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세계의 천국을 위해서, 아버지께서 안식하실 동산을 위해서 가야 되겠사옵니다. 오늘 자기 가정이 아버지 앞에 안식된 가정이 되었다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 환경이 가정의 표준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환경을 개척하여야 할 사명을 절감하면서 극복해 나가겠다고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만 나라 앞에 남아질 수 있는 가정이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그러한 책임을 지고 나가겠다고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를 믿겠습니까? 그 누구를 바라보겠습니까? 이 땅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보잘것없는 저희들이 하늘땅이 바라보고 있고 인류가 바라보고 있고 후손이 바라보고 있는 엄청난 초점상에 서 있는 자신을 결정지을 수 있는, 내일의 패배의 쓴잔을 마시면서 낙망하고 사라지는, 사망권내에서 허덕이는 무리가 될까봐 이것을 두렵게 생각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를 악물고 극복하고 자기 생명을 다하는 한이 있더라도 승리의 결과를 다짐하여, 하늘땅이 기뻐할 수 있는 환희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영광스런 아들의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는 시간을 바라보며 싸워 남아지는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그럴 수 있는 생활감정, 그럴 수 있는 생활태도를 갖고 나가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사무칠 수 있는 이들이오니 이제 이들이 세계를 구해 줘야 할 때가 와야 되겠습니다. 세계 민족과 상봉하기를 그렇게 바라왔지만 소원이 이루어진 그날이 아직 오지 않았기에, 그 날을 맞기 위해서 세계본부를 중심삼고 서로서로 만날 수 있는 때를 당신께서 준비하고 계시는 것을 알고, 그날과 그때를 위해서 현실생활에서 부끄럼 없는 자신으로 연마시키고, 책임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노력을 다할 수 있는 아들 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통일교회가 걸어온 이 길은 개인적으로 볼 때 슬픈 길이요, 그 누구 앞에 형용할 수 없는 비참한 길이었습니다. 여기에 서 있는 아들도 대한민국 삼천만 민족을 대하여 말을 하자면 할 말이 많사옵고, 수많은 교단을 대하여도 할 말이 많사오나, 아버지의 참으신 마음을 알고 있기에,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 말할 수 없음을 느끼옵니다.

남기신 복귀의 한의 고개, 세계를 위할 수 있는 제물의 한계점을 어떻게 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그것을 넘는 데는 외로이 혼자 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교단을 끌고 민족을 끌고 넘어야 할 사명이 이들에게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 일을 생애노정에서 결정짓고 가지 않으면 안될 운명의 복귀의 길을 가는 이들임을 생각하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갈 길을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들이 저주를 받아서는 안 될 것이요, 이들이 망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이 길을 염려하고 이 길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이들을 보시며 이들을 용납하시옵소서. 이들이 아버지의 은사권내에 서기를 바라는 것이 당신의 마음인 것을 생각할 적마다 불쌍하신 분은 아버지이심을 느끼옵니다. 그러한 아버지와 같은 입장에 있는 무리가 있다면, 그 무리가 주체요,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주는 무리요, 모든 전체의 동기의 원천을 마련하는 무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무리로 말미암아 세계는 새로운 천국의 방향을 갖추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의 신앙의 표준은 자기 개인구원이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허덕이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가정의 구원보다도 종족의 구원을, 종족의 구원보다도 민족의 구원을, 민족의 구원보다도 세계의 구원을 맡을 수 있는 입장에 서 가지고, 일구월심 스스로의 환경을 망각한 채 자신의 생애노정을 잊어버리고 가는 사람이 되었다 할진대는, 그가 죽더라도 그 터전은 남아진다는 사실을 이 시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여기에 서 있는 이 자식을 필요로 하는 것은 제가 누구보다도 아버지 앞에 가까이 가겠다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 아니오라 아버지를 위해 누구보다도 더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이옵니다. 당신이 그러한 사람을 중심삼고 수습하시는 원칙적인 기준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들도 그 발판을 통해서 아버지 앞에 가기를 원하여 이 자식을 필요로 판다는 것을 아오니, 이들이 그런 사상을 본받아 가지고 자기 종족과 민족을 위해서 그런 길을 가기에 온갖 정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가 죽게 될 때 민족의 앞날이 좌우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통일교회 교인이요, 그 단체가 절망하게 되면 민족이 절망할 수 있는 그런 단체가 될 때 그 단체는 민족을 주도하는 것이요. 그 나라가 낙망하면 세계 국가가 낙망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서게 되는 그런 나라가 되면, 그 나라는 세계를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이제 그러한 표준을 바라보고 나갈 수 있는 이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공부하는 학생이 있거든 자기 일신의 뜻을 위해서 공부할 것이 아니라 인류의 이익을 위해서 하고, 개인이 하루하루 가정 생활을 영위하는 것도 자기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오늘날 교단의 형성도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뜻에 남아질 수 있는 그 목적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철석같은 신앙의 표준을 이 아침에 새로이 갖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과연 자기 일신을 얼마나 나라 앞에, 자기 가정을 얼마나 나라 앞에, 자기 자식들을 얼마나 나라 앞에 희생시키고자 했는가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여, 저는 통일교단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교단이 비참하게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서슴지 않고 이 나라와 세계 앞에 내놓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제단 위에 올려진 이삭과 같이, 통일교단에 속한 무리들이 서슴지 않고 불평불만하지 않고 제물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될 때, 이 단체는 민족이 복귀될 수 있는 터전이 될 것이요, 세계가 복귀될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들이 확고히 믿고 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기준을 중심삼고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가지고 이 6월을 보내고, 7월을 비롯한 새로운 달들을 힘차게 맞아 나갈 수 있는 통일가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고, 이 나라 이 민족과 세계가 바랄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오늘은 1971년 7월 1일, 많은 날과 많은 달, 많은 해를 보내고 나서 맞이한 날입니다. 금년의 이 달과 이 날이 아버지 앞에 자랑이 되고, 이 백성에게 기억될 수 있는 달과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안팎으로 경륜하시는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내적인 면이 외적으로 일치 되고, 외적으로 일치된 그 모든 사실이 내적인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기쁨의 터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복귀도상에 있어서 예수의 한을 풀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수난의 길을 걸어왔사옵고, 그 최종적인 결정을 지어야 할 시대적인 사명이 오늘날 이곳까지 연결되어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의 수고가 얼마나 컸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예수를 믿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수난의 행각노정에서 그 슬픔을 대신 탕감하기 위하여, 혹은 인류의 선조로 말미암아 남아진 죄악상을 탕감하기 위하여 숱한 피의 대가를 치러 왔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뜻을 놓고 하늘의 슬픔과 땅의 슬픔이 엉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해원성사의 한 날이 이 땅 위에 오기를 아버지께서 얼마나 바라셨으며, 예수와 성신과 성도들이 얼마나 바랐는가를 생각하여 볼 때, 아버지, 1971년 7월, 이 한 달이 생사의 한 표준을 정하는 데 있어서 한계점을 넘을 수 있는 거룩한 달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안팎의 세계적 정세와 뜻이 가는 길을 아버지께서 굽어살피시옵소서. 국가와 세계의 인연이 당신이 경륜하시는 섭리의 뜻과 일치되는 그 날이 오기를 고대하시는 아버지여, 이제 7월 이 한 달을 기쁨의 달로 세우시옵소서.

오늘은 이 해에 있어서 남은 6개월을 새로이 출발하는 달의 첫날인 동시에 7수를 시작하는 새로운 달이오니, 아버지여, 영광으로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오늘은 71년의 71과 7월 1일의 71이 맞서는 날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에 있어서는 7대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로서 복귀섭리 앞에 기억될 수 있는 날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세계 각 나라에서 대표들이 이 땅에 왔사오니, 아버지께서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과 도의 길 앞에서 섭리의 뜻을 추진시켜 나오고 하늘의 영광을 바라며 뜻을 따라온 성인 현철들을 동원하시어서, 영광의 새로운 나라를 개문(開門)하여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기쁨의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특별히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성지는 세계 각국에 널려 있는 120개 성지의 중앙지로서 하늘이 축복하고 하늘의 이름으로 묶은 장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로 말미암아 인연되어 있는 수많은 성지에도 당신의 인연의 터전을 세우시어 만방에 자랑할 수 있는 승리의 표적으로 삼아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걸어 나온 수십여 년 가운데에 있어서 이 해와 이 달과 이 날이 복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1971년도가 역사상에 있어서 가장 귀한 해임을 저희들은 선포했습니다. 그런 해이오니 이 7월이야말로 안식을 향한 한의 한 고비를 넘지 못하였던 당신의 섭리의 날들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발전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성지를 지키면서 아버지 앞에 기도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서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수고하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 위에도 영광의 손길로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 달이 남아진 복귀세계에 있어서 자랑이 될 수 있는 달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하여야 할 여러 가지 일을 앞에 놓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 7월을 중심삼고 저희들이 벌이는 모든 행사를 당신이 직접 주도하여 주시옵고, 승리의 결정을 가지시어 만방에 자랑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과 후손까지도 당신의 이름을 높이 찬양할 수 있는 기쁨의 조건을 세우고 넘어갈 수 있는 거룩한 달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염려하고, 당신이 섭리하시는 복귀의 뜻을 따르기 위해 수난의 노정도 개의치 않고 달리고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더욱이 일선에 나가 있는 당신의 어린 딸들을 지켜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들이 나가 싸우고 활동하는 것은 자기 개인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과 세계의 앞날을 위해서이며, 당신의 슬픈 역사적인 한의 심정을 해원성사해 드리기 위한 것이옵니다. 선의 승리를 다짐하고 선을 받들 수 있는 하늘의 가정을 세우기 위하여 싸우는 이 거룩한 무리들 위에 당신이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1971년도와 1972년도에 민족적으로 모든 탕감을 치르는 한 날을 가지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가야 할 수난의 복귀의 행각도 뜻을 위한 길이요, 당신과 상봉할 수 있는 길이기에, 힘차게 달려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상의 모든 귀한 것을 찬양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소원이지만 여기에 모인 자녀들은 오직 당신의 섭리노정을 따르고, 당신과 관계맺는 것을 소원으로 삼고 있는 줄 아옵니다. 이러한 것을 자랑할 수 있는 해와 달과 날이 금년 이 해와 이 달과 이날로부터 출발 되어야 하겠사오니,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시대를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고, 이해를 주관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며, 후반기 6개월의 첫날을 출발하는 이날부터 남은 6개월간을 아버지께서 친히 주관하시어서 영광의 세계에 찬양의 조건을 세울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만방과 만천주 위에 당신의 이름을 높이고 기뻐할 수 있는 반년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당신의 자녀들도 많사오니, 그들에게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남아진 복귀의 권내에 당신의 거룩함과 승리의 한 날을 세울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체를 아버지께서 주관하여 주시옵고,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과, 땅위에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을 다 지켜 주시옵소서. 통일의 나라와 승리의 세계로 진군하는 새로운 의지의 해와 달과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러분이 알다시피 오늘은 7월 1일입니다. 이 나라에서 7대 대통령 취임식을 하는 날입니다. 금년 71년도가 섭리도상에서 초석이 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를 갖고 있는 해인 것은 모두다 알고 있는 바입니다.

1971년 7월을 맞는 우리의 바람

지난 6개월을 지내고 맞이한 오늘 7월 초하루를 중심삼고 볼 때, 오늘은 이제 남은 반년이 새로이 출발되는 날입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우리 교회에는 여러 가지 행사도 많았고, 여러 가지 문제도 많았습니다. 이제 그런 한 고비는 지나갔으니 새로이 발족된 체제와 더불어 새로운 섭리의 목표를 향하여 전진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섭리적인 관점에서 7수라 하게 되면 완성수입니다. 그런데 이 7수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인간이 타락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1971년과 7월은 연례적으로 오는 그런 해와 달과는 달리 섭리적으로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해와 달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국제 정세로 보나 국내 정세로 보나, 이 7월부터 남은 반년 기간에 되어지는 모든 일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선생님이 바라는 바입니다. 또 그러한 결과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물론 국가적으로도 그런 움직임이 있어야 되겠지만, 우리 교회에서도 기성교계를 중심삼고 남은 후반기 6개월에 섭리의 결정적인 한 마감을 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한때를 대비해 우리 교회에서는 여러 가지 일을 해 왔습니다. 그 일들의 종합적인 결과를 볼 때이므로 이제 이 7월부터는 더 잘해 나가야 되겠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또, 이 7월을 중심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7월 20일부터 시작되는 40일 전도기간입니다. 이 7월 20일은 우리의 뇌수에서 잊혀지지 않는 날인 동시에 우리 교단에서도 언제나 중요시하는 날인 것입니다.

1960년도부터 1963년도 전반기까지는 40일 전도기간을 출발할 때에 본부가 중심이 되어 움직여 나왔습니다. 그러던 체제가 1963년도 후반기부터 각 지구, 혹은 지역을 중심삼고 활동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금년부터는 이 40일 하계전도기간을 다시 본부가 관할하고, 직접 선생님의 지도 밑에서 실시하려고 합니다. 1971년도와 1972년도 이 기간에 특별히 이런 활동을 하려는 것은 뜻적인 입장에서 볼 때 아주 중요한 관건도 되겠지만, 우리 교회가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됩니다.

지금은 올바른 전통을 세워야 할 때

1960년대에는 우리가 전통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개개인의 신앙이라든가 혹은 교회의 신앙 방향이나 흐름을 보게 되면 전통과는 상치(相馳)된 입장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앞으로 우리 교단이 새로운 체제를 갖추어 그야말로 기성교회의 많은 신앙자들이 우리와 연결될 때, 어떻게 그들을 흡수하고 그들의 갈 길을 인도해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자체의 역량이나 인적 자원, 경제적 자원 등의 활동적 체제를 강화시키는 내용도 문제가 되겠지만, 그것보다도 더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올바른 전통을 세워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이렇게 가야 된다'하는 하나의 역사적인 실적을 남겨야 하고, 누구든지 그것을 공인할 수 있는 터전을 공고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우리가 앞으로 가는데 있어서 큰 뜻을 안고 넘어갈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전통입니다. 전통은 하루 이틀에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반드시 역사과정을 통해서 전통의 인연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일년만에 세워진 전통은 일년의 전통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 년이라든가 혹은 몇십 년, 그것이 길면 길수록 역사의 모든 기원을 움직일 수 있는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강조해 나온 것이 뭐냐 하면 전통을 올바로 세우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개인의 신앙 전통보다도 교단의 신앙 전통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왜 바로 서지 못했느냐 하면 개인적인 전통과 가정적인 전통, 그리고 교단적인 전통을 올바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움직일 수 있는 사상을 가진 유대교가 '이스라엘 민족을 책임질 수 있는 교단은 이렇게 가야 한다' 하며 한 곳을 향하여 가야 했고, 그 교단에 속해 있는 가정들도 그렇게 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도 개인의 신앙의 전통이 이러이러해야 한다 하는 기준이 깨어졌던 것입니다.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퇴색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늘의 뜻과 방향에 일치된 것이 아니라, 지상의 모든 환경의 여건 앞에 오히려 하늘의 방향과 흐름을 방해하고 흐트러뜨리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때마다 하늘의 섭리는 난관에 봉착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우리 교단이 세워야 할 신앙적 전통은 우리 교단을 중심삼고 축복받은 가정들이 세워야 되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이 올바른 전통의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가정을 구성할 수 있는 개개인, 즉 남편이면 남편, 아내면 아내로서의 신앙 기준이 확고부동한 공식적인 전통에 어떻게 일치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가 금년 정초에 정한 표어 '통일기반 확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은 물론이고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이 3단계의 과정에서 이것을 확고히 해 놓지 않으면 타종교나 국가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간에 개인적인 신앙 자세와 가정적인 신앙 기준과 교단적인 신앙의 전통 기준을 어떻게 확립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이 기간을 흘러가는 역사의 한 과정에 처해 있는 기간으로 생각하며 상습화하기 쉽지만, 뜻적인 의미에 있어서 이 기간은 중요한 기간이기 때문에 반드시 결정을 하고서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평범한 생활권내에서,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이런 생활 습관내에서 살기 때문에 각별하게 전통이란 것을 생각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섭리의 뜻을 두고 볼 때는 반드시 굴곡이 있어서 하나의 정상을 향하여 넘어가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있다면 그런 때 가운데 날이 있을 것이고, 달이 있을 것이고, 해가 있을 것이 아니냐. 또 해라 해도 어느 한 기간이 있을 것입니다. 복귀섭리도 3년노정이라든가 7년노정이라든가 하는 기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한계선을 넘기 마련입니다.

제2차 7년노정을 중심삼고 볼 때 2라는 수는 3수를 거쳐가는 데 있어서 중간수가 됩니다. 1970년도부터 1973년도까지가 섭리도상에서 볼 때, 중요한 기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1971년은 중심이 되는 해라는 것입니다. 2차 7년노정을 두고 볼 때 68년, 69년, 70년 그 다음이 71년으로 이해가 7년노정의 중간 해입니다. 더구나 오늘은 그런 해에서 6개월을 보내고, 7월에 들어서는 날이므로 꼭대기 중의 맨 꼭대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섭리가 필요로 하는 절박한 시점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통일사상을 강조해 나왔고 전국에 여러 가지 영향을 끼치고 나왔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이냐?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남다르다는 그런 선을 넘어 통일교단으로서 민족적인 새로운 풍토를 조성할 수 있는 권(圈)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서로 따로따로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즉 개인은 개인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개인이자 가정이요, 가정이자 교회가 되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앞으로 이 사상을 중심삼은 민족적인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할 수 있는 전통적 기원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교회를 빼더라도 가정이 부정될 수 없고 가정을 빼더라도 개인이 부정될 수 없는 입장, 개인이 가정을 대표할 수 있고 가정이 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그러한 확고부동한 전통 확립이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전통기반 확보는 개인에서부터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 각 개개인은 하나의 개인이라 할지라도 살아 있는 뜻의 실체입니다. 뜻을 대표할 수 있는 산 실체라는 것입니다. 탕감이 필요하게 될 때는 언제라도 자기 일신에서 탕감요건을 제시할 수 있는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시한 탕감의 결과로 말미암아 어떠한 승리적인 영광의 터전이 생긴다면, 그것은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중심삼은 뜻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복귀섭리 시대에는 중앙의 자리에 하나님이 서는 것도 아니요, 사탄이 서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이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제물도 인간이 되어야 되는 것이고, 영광의 실권을 대표해서 설 수 있는 존재도 인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적 기원을 가져야 됩니다. 그 전통적 기준에 선 사람은 하나님이 볼 때는 영광의 실체가 되어야 하고, 사탄이 볼 때는 최대의 슬픔의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한 세상을 분립시켜서 다른 한 세상을 세워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한 세대를 보내고 다른 한 세대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1971년도는 통일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해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통을 중심삼고 재차 수습하고 확립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에 금년 표어를 '통일기반 확보'라고 한 것입니다. 통일기반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우선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데는 자의에 의해서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뜻이라는 모토를 세워 놓고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 뜻은 개인을 위한 뜻이요, 가정을 위한 뜻이요,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위한 뜻입니다. 그 뜻 가운데는 전부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가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도 아니요, 교회에서부터 출발하는 것도 아닙니다. 개인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통일기반 확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개인으로부터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으로부터의 출발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자기 마음을 중심삼은 자기'가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복귀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창조목적의 완성을 위한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실체로 모시는 자리가 출발의 기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동기가 되어 가지고 자기 마음이 거기에 상대적 관계를 맺어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자기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주체인 플러스를 중심삼고 내 실체와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실체라는 것은 생활권을 중심삼은 실체를 말합니다. 영적 나라와 내 마음, 육적 나라와 내 몸이 하나되도록 맺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육적 세계는 사탄의 활동무대이고, 영적 세계는 하나님의 활동무대가 되어 언제나 엇갈려 나왔습니다. 이것이 복귀섭리 시대에 한의 요건으로 남아 있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할 때에 이것을 엇갈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마음권과 하나님을 중심삼고 치리받는 몸권을 마련해야 합니다. 생활권내에서 이것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 하는 데서 통일기반의 기준이 확립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일치된 남성과 여성이 하나되면 하나의 가정적 일치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적 일치점을 가진 가정들이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12수면 12수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종족적인 경지를 넘어 민족적인 경지에 선 입장이 되면서 하나의 전통적 기원, 통일적 기원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새로운 전통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1972년까지는 새로운 종족 편성을 해야 되겠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중심삼고 전통적 기반을 확립하는 것이 역사를 대표해 봐서 미급하게 될 때는 비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엮어 온 소망의 기준으로 현재 서 있는 전통적 기반 확립이라는 자체를 비판해 볼 때, 혹은 섭리시대를 대표했던 수많은 우리 선조들, 예를 들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같은 선조들이 뜻을 추진시켜 나오던 본의의 기준과 비교해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세운 전통적 기준이 거기에 상충되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보다 높은 차원에서, 평면적이 아닌 입체적인 차원에서 그 내용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원동력이 되고 모체가 되는 전통을 확립해야

우리가 심정을 중심삼고 새로운 부모를 중심삼고 새로운 종족 편성과 새로운 국가 결성을 바라고 나가는 것을 볼 때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평면적이었지만 이제는 하나의 입체적인 방향을 가려 나가기 때문에, 역사적 과정에서 바랐던 전통기반과는 판이한 이미지를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전통적 기원이야말로 역사의 주인이 되고, 새로이 세우고 싶은 현 시점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혼란된 이 세상은 전후 좌우 상하 어디를 두고 봐도 자리잡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앞으로 전진하더라도 그 전진은 미래의 세계에 어떠한 표준으로서 공인받을 수 있는 아무런 내용도 갖지 못하고 있으며, 또 갈 길이 막혔다고 해서 돌아갈 수 있는 내용도 없는 것입니다. 또 그렇다고 좌우로 뒤넘이칠 수 있는 내용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 정세를 바라보고 있는 이때에 있어서, '우리가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틀림없이 이 세계의 혼란을 해결할 수 있으며 극복하고도 남을수 있다'고 하는 그런 전통적 기원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기원은 '이렇다' 하는 그 자체 가지고는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역사적인 내용이 될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를 분석하고 통계에 의해서 실질적인 결과로 보여 줄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해야만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엮어 온 수십년사(數十年史)는 지대한 의의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이 세계에 있어서 새로운 전통의 내용을 가진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단체로 확고부동한 기반 위에 남아질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는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수십년간 활동해 온 역사가 가려 주는 것입니다.

그 역사가 개인에서 왔다갔다해서는 안 됩니다. 또 내려가서도 안 됩니다. 올라가야 됩니다. 시일이 감에 따라, 우리의 판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공인도(公認度)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나 조금 높아졌다고 해서 '이제는 쉬자'라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걸 밟고 한층더 새로운 차원을 향해 점핑해야 합니다. 이러한 터전이 되어 모두가 환영할 수 있는 전통을 수립했다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전통이 될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수난의 길과 개척자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만이 안식할 수 있는 터전으로 남아서는 이 시대에 필요한 전통이 안 되는 것입니다.

혼란된 와중에서 허덕이는 인간을 이끌어서 전체 앞에 플러스시킬 수 있는 내용이 우리의 짧은 역사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보여 주는 데에 있어서는 개인으로 보여 주어야 되고, 가정으로 보여 주어야 되며, 단체로서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가고, 또 어떤 사람은 저렇게 가고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서로의 모양이 다르기는 하지만 내용은 같은 입장에서 가야 합니다. 통일적인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가야 합니다. 얼굴과 모든 생김새는 다를지라도 방향은 일치된 입장에서 가야 합니다. 하나는 움직이는데 다른 하나가 쉬어서는 안 되며, 하나는 전진하는데 다른 하나가 후퇴해서도 안 됩니다. 전진이면 같이 전진이고 쉬면 같이 쉬는 그런 일체화되고 통일된 정책을 중심삼은 전통을 우리가 이 사회 앞에 제시할 때 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그런 내용을 갖춘 전통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된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많은 종교인들과 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그들 앞에 무엇을 제시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의 외적인 실적을 제시해 봐야 큰 교단의 그것에 비교도 안 되는 것입니다. 단 한 가지 우리는 개척자의 사명을 가지고 목표를 향하여 투쟁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외적인 유지권을 내적인 면에서 해부하여 새로운 차원에서 자극을 줄 수 있고 새로운 결의를 할 수 있도록 촉진시킬 수 있는 촉진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하나의 모체가 되고 원동력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 원동력에 접하게 될 때, 자기가 지금까지 해온 신앙생활이라든가, 관습적이고 편견에 처해 있던 내용을 거기에 규합시켜 새로운 통일적인 세계로 보다 강하고, 보다 힘차고,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가지고 가겠다고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자극시켜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수단이나 방법으로 이룬 무슨 권이나 터전을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상 가운데에 깃들어 있는 전통적 내용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의 확립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전통을 세우는 데 있어서 가정의 중요성

지금까지는 생활 환경의 문제라든가 가정적인 문제라든가 하는 여러 가지 엇갈린 문제들을 중심삼고 나왔지만, 금년에는 이런 모든 환경적인 차원을 극복해 가지고 새로운 터전을 확보할 것을 다짐하고 넘어 가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60년대와 '70년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로 보게 된다면, 60년대에는 개인이 교회라는 목표를 중심삼고 싸워 나왔지만, 70년대는 가정이라는 기반을 터로 교회의 목표를 중심삼고 나라를 위하여 싸우는 시대입니다. 이렇게 단계가 달라지는 때이므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개인에게는 개인이 바라는 것을 가정적인 기반에 전수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가정을 기반으로 하여 교회가 바라는 것을 나라나 전체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통적 기반으로 전수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71년도부터는 가정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활동해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정이라는 것은 개인완성의 기준이 되는 것이요, 교회완성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아무리 뜻 앞에 잘했다 하더라도 가정이 못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가정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른 종교와 우리 통일교회가 다른 점이 무엇이냐 하면, 지금까지의 종교는 개인구원을 위한 도의 길을 닦아 나오는 일을 해 왔지만, 우리 교회는 가정을 중심삼고 일해 나온 것입니다. 가정을 보게 되면 여기에는 한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면이 있습니다. 남성이 있고 여성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남성 여성을 중심삼고 자녀가 있습니다. 이렇게 사방성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 사방성을 중심삼고 볼 때, 이것은 인간의 뜻으로 이루어진 가정이 아닙니다. 즉, 가정은 인간의 뜻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종적인 관계를 맺어서 사방성이 갖추어져야만 입체적인 내용을 결할 수 있는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창조원리를 들어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가정이야말로 뜻을 중심삼고 개인을 완성할 수 있는 곳이요 교회의 출발점입니다. 만약 잘못되면 교회내에서 수습할 것이 아니라 가정 자체내에서 수습할 수 있는 기원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기원을 못 가진 사람은 교회에서도 수습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천국은 개인을 중심삼고 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중심삼고 사방성과 입체성을 갖춘 터전에서 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을 중심삼은 이론이라는 것은 어느 일방적인 입장에서 반박을 받거나 사방적인 면에서 부정을 받는 이론이 아닙니다. 사방적인 면에서 긍정을 받아야 되고 일방적인 면에서도 찬양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방적인 면에서 찬양을 못 받더라도 일방적인 면에서만은 부정을 넘어 가지고 찬양받을 수 있는 가정의 형태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이런 가정의 형태를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랑 신부의 이름을 중심삼고 찾아 나오는 우리 뜻의 노정이 그러한 결정적인 입장에 서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가정의 전통이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전통을 어디서부터 세워야 하느냐? 물론 남자부터 세워야 되겠지만, 부인들이 더 문제이기에 부인들부터 세운 것입니다. 그러니 남자들은 거기에 일치되어야 되겠고 자녀들도 일치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부인들이 선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일선입니다. 그러니 그 일선을 중심삼고 가정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치된 가정은 승리의 기반을 가지고 결정적 기원을 설정해야 합니다. 그 승리의 가치를 표준으로 삼게 될 때, 그 곳이 안식할 수 있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안식할 수 있는 곳은 전쟁하는 곳이 아니며 일선이 아닙니다. 사방을 중심삼고 치리하고 관리하고 주관할 수 있는 권한을 백방으로 드러낼 수 있는 자리가 안식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권내의 중심이 기뻐하는 것은 개인적인 기쁨만이 아니라 전체가 부응할 수 있는 기쁨인 것입니다. 안식권은 일선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선에서 승리하고 난 후에 안식권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의 새로운 전통 확립

그러면 가정이 일선에 설 때가 어느때냐? 70년, 71년, 72년도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교회가 일선에 설 때가 어느때냐 하는 것이 문제됩니다. 그때가 되면 국가적인 시대가 됩니다. 예수의 시대를 중심삼고 보면, 종족적 기반을 넘어서 유대교와 기독교가 합일될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국가가 뜻 앞에 귀결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뜻적인 입장에서 볼 때, 지금까지 가정을 중심삼은 전통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게 되면 부인들은 나가서 활동하고 있는데 남자들은 뜻길을 가는지 오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박차를 가해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번 7월 20일을 중심삼고 전국에 동원하는 데 있어서 전체 동원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에 우리는 말뿐만이 아니라 실지로 새로운 전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싸웠다고 하며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으로 볼 때, 섭리 역사 과정에 있어서 이렇게 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에 필요로 하는 이상적인 가정체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가정이 민족을 대신할 수 있고, 이 가정의 이념이 혼란된 이 세계의 사상계를 혁신시키는 혁명이념이 될 수 있고, 하나의 모티브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공인할 수 있는 터전을 우리가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만들려면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그 기반으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의 기반은 하늘이 바라는 전통적 가정의 기반이 확립되지 못한 것입니다. 만일 그 기반이 그냥 그대로 확립된다 하게 되면 뜻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차원을 달리해야 합니다. 현재의 체제를 급변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고개를 넘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넘는 데는 양면이 있습니다. 섭리적으로나, 뜻적으로나, 개인적인 이상실현을 중심삼고 보나 고개를 넘을 때 제일 가는 대상이 누구냐? 그것은 상대입니다. 상대문제에 결부되는 것입니다. 평면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입체적으로 볼 때는 심정문제가 결부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반이 가정을 중심삼은 활동으로 벌어지는 때이므로 이때야말로 우리 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72년도까지 새로운 차원에서 정성을 더욱 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을 표준해 나가던 때와는 다릅니다. 이제는 교회를 중심삼고 올바른 전통을 세워 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방향을 갖추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차원이 다른 입체적인 면에서 새로운 전통적인 내용이 필요한 때가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자신이 얼마나 책임을 지고, 얼마나 정성을 투입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정성을 투입하려면 가정의 기반이 설정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70년도를 중심삼고 그 한계점을 넘어섰다고 보기 때문에 71년도에 여러분 가정의 주부들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이 시대건에서 이 고개를 넘어서는 데는 혼자 가서는 안 됩니다. 예수도 혼자 갔기 때문에 다시 찾아 나왔습니다. 이와 마찬가지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넘어가는 데에 있어서는 같이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누가 앞서 가야 되느냐?

같이 가야 되겠지만 복귀 과정에는 누가 기준이 되느냐? 여자입니다. 여자가 기준이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역사상에 없던 새로운 가정을 중심삼은 이 뜻,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볼 때, 사상적인 면에서 이런 것을 제시했다는 것은 역사시대에 없었던 새로운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상을 체계화하는 데에 있어서 개척적인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계기권, 여기에 여러분 가정이 나섰다는 사실은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실인 것입니다.

이 기쁨은 어떠한 국가를 중심삼고 나라를 잃어버린 망명객의 입장에서 복권(復權)을 하여 새로운 국가를 건설함으로써 영광의 한 날을 차지한 그런 기쁨보다도 큰 것입니다. 세계뿐만이 아니라 천주를 중심삼고 영원한 역사를 중심삼고 한 번밖에 없는 그러한 때에 여러분 가정이 동원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통 중에 가장 귀한 전통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찾아 세워야 할 3단계 기반

그러므로 우리 가정이 일치되어 가지고 단결해야 됩니다. 가정이 단결되고 결속될 때는 개인이 비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교회나 단체가 비판할 수 없습니다. 나라로서도 비판할 수 없습니다. 그런 확고한 기반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개개인이 그런 전통을 세워 넘어가야 합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여러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복귀의 단계로 볼 때, 개인은 반드시 가정을 찾아 나가야 하고, 가정은 반드시 교회를 찾아 나가야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걸어온 길입니다.

마리아 가정을 통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개인완성을 표방하면서 찾으려 한 것은 무엇이더냐? 가정을 찾으려 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무엇을 찾아 나가야 되느냐? 교회를 찾아 나가야 됩니다. 교회는 나라를 찾아 나가야 되며, 나라는 세계를 찾아 나가야 됩니다. 그리고 세계는 무엇을 찾아 나가야 되느냐 하면 천주, 하늘땅을 통일시킬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찾는 세계나 나라는 지금의 이러한 세계와 나라가 아닙니다. 이러한 교회, 가정, 개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서의 개인은 완전히 하늘땅을 대표할 수 있는 개인이어야 합니다. 확정된 기반 위에서 개인의 관을 갖지 못했던 역사시대 앞에 확정시킬 수 있는 개인의 관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관은 개인을 완성할 수 있는 관이자 가정관을 보충하여 완성시킬 수 있는 제1표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 제1표준을 중심삼고 가정이 완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반이 없어서는 가정도 완성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개인은 가정을 통해서 가야하며 가정은 교회를 통해서, 교회는 나라를 통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 가지고 가야 할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이었느냐? 개인이 이 땅 위에 머리를 들고 나설 수 있는 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이 머리를 들고 나서려면 가정에서 가정적 상대기준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가정적 상대기준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섭리는 가정을 중심삼고 새로운 민족 형성을 위해 교회를 중심삼고 벌어져 나왔기 때문에 교회 단위의 위신을 세울 수 있는 가정의 터전을 갖추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개인 앞에 가정, 가정 앞에 교회, 이렇게 3단계가 연결될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을 갖지 못하게 될 때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단계 완성을 이루면 그러한 길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복귀역사는 개인완성을 위한 역사였습니다. 우리가 기독교보다 특출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은 가정완성을 표방하는 것입니다. 개인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가정적 기준의 결실을 맺고자 하는 것이 재림사상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는 참부모의 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새로운 종족 편성을 위한 세계적인 행로를 개척하는 데에 있어서는 나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교단을 중심한 교회를 찾아가야 됩니다. 그 교회는 역사적 결실체로서 유업을 상속받아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유대교를 중심삼고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모든 것을 상속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이 그런 과정을 거치는 동시에 전체가 그런 인연을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 앞에 전체가 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불가피하게 비운의 역사를 넘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개인은 가정에 부응해야 되고 가정은 교회, 교회는 나라에 부응해야 됩니다.

이것을 구분하자면 개인, 가정, 교회, 나라, 이렇게 넷이지만 단계로 보면 3단계입니다. 그래서 한 인간이 가는 길은 나로부터 가정으로 가는 것이며, 가정으로부터 교회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길입니다. 그러므로 가정과 교회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가 하나되기만 하면, 개인은 이미 완성 단계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와 나라가 하나되었다 할 때는, 가정은 이미 완성되는 것입니다. 또한 나라와 세계가 하나되게 될 때는, 나라로서는 이미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것이 예수님이 오셔서 확립해야 했던 것입니다. 가정 기반을 확립하고, 교회 기반을 확립하고, 나라 기반을 확립해야 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환경적으로 갖추지 못한 그런 자리에서 개인이 설 수 있는 자리, 가정이 설수 있는 자리, 교회가 설 수 있는 자리, 그리고 나라를 대할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해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 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때

우리는 지금까지 나라 없는 백성과 같은 입장에서 몰려왔습니다. 3정권을 거쳐오면서 나라 없는 백성과 같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당당하게 설 수 있습니다. 지금 보게 되면 우리 교회의 지구장들이 중요한 장소에 초청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원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것을 보더라도 이제는 대 사회면으로 보나 대 교회면으로 보나 피장 파장이라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서로 뒤넘이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교단적인 입장에서 볼 때 가인 아벨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적 형태가 갖추어지면 어디가 형의 입장이냐? 지금까지는 가인이 형의 입장에 섰지만 그것이 이제 전환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면 역사는 새로운 역사적인 제물시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원리적으로 볼 때, 지금 이 시대상이 평면적으로 우리와 대등한 자리에 있으므로 우리는 당당히 상대적 권을 넘을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이번에 목사 공청회 7차를 끝냈으니 8차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8월 12일 쯤에는 8차까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기성교회가 우리 교회를 대하는 것이 안팎으로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8차 공청회 때에는 우리가 강제로 그 사람들을 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자원해서 올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오는 데 있어서 '여기 사람들이 불러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해서 오는 것입니다'라고 하게 되면 차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새로운 면에 있어서 우리가 섭리적인 면에 가일보 전진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점이 마련됐다고 보는 것입니다.

오늘은 7월 1일, 이날에 어떻게 하여 7대 대통령이 취임하게 되었겠습니까? 7대 대통령이 7월 1일에 취임한다는 것은 8수를 향해서 전진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아시아 정세라든가 국가 정세라든가 우리 교회 문제라든가 그밖에 안팎의 모든 면에 있어서 일점을 획득할 수 있는 차원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사실을 두고 볼 때, 이제야말로 그런 세계가 멀지 않았음을 여러분이 알고, 비약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비약하려면 어떠한 기준을 중심삼고 해야 하는데 그 기준이 국가적이면 국가적인 기준만큼 비약할 수 있는 것이요, 세계적이면 세계적인 기준만큼 비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비약하는 목적이 자기를 중심삼은 것이면 망합니다. 가정은 교회를 위해서 비약해야 하고, 교회는 나라를 위해서 비약해야 하며, 나라는 세계를 위해서 비약해야 됩니다. 점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적인 노정을 중심삼고 볼 때, 전통적으로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가정은 교회를 위해서, 교회는 나라를 위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라고 할 때에는 개인, 가정이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또 나라라고 할 때도 개인, 가정, 교회가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복귀섭리의 단계를 전진시켜야 하는 전통적인 과정을 어떻게 거쳐가며, 그 과정에서 변치 않는 기준을 어떻게 확립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지금이야말로 그 기준을 확립할 수 있는 가장 귀한 기회입니다. 우리 교회에 있어서 가장 귀한 때인 것입니다. 60년대는 개인을 중심삼은 교회였지만, 이제는 가정을 중심삼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중심삼고 가정은 이래야 한다는 전통이 여러분 가정에게 있습니까? 여러분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개인생활을 중심삼고 교회생활을 비판하려고 했느냐, 아니면 교회생활을 중심삼고 개인생활을 비판하려고 했느냐? 이것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개인생활을 중심삼고 교회생활을 비판하려고 하는 것은 차원이 틀린 것입니다.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내려가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을 중심삼고 개인생활을 비판해야 됩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예수가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을 비판하려고 했어요?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개인적인 뜻을 저버리려고 했지, 개인적인 뜻을 중심삼고 가정을 저버리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가정을 찾아가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가정을 찾는 데는 마음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통해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는 나라를 통해서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원칙이라구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 자체가 가정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 자체가 여러분을 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정 앞에 피동적인 입장에 서야 합니다. 여러분이 주체적인 입장에 서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라는 하나의 모체를 중심삼고 볼 때, 그 가정 앞에 주관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은 교회 앞에 주관받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교회를 중심삼고 일치될 때는 소생, 장성,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평면적인 가정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섭리적으로 볼 때, 지금까지의 역사는 개인적 시대, 그리고 재림 시대는 가정적 시대, 앞으로의 시대는 세계적 시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교회를 중심삼고 사상적 기원이 마련되어야 개인, 가정에 있어서 평면적인 기원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원칙적인 전통의 확립으로 누가 움직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며, 또한 가감할 수 있는 체제도 아닙니다. 이것은 절대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관이 아직까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제멋대로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원칙에 의해 시정해 나가야 됩니다.

전통을 세워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교회가 되어야

앞으로 3년노정이 끝나게 되면 반드시 지파 편성이 벌어지게 됩니다. 지파 편성을 하려면 교회 기반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회를 중심삼은 모세 오경에 순응할 수 있는 사람들을 중심삼아서 12지파 편성이 벌어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파를 편성하는 것은 교회와 가정에 개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면 망하게 됩니다. 교회가 나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때, 그 교회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또 가정이 교회에 영향을 못 주게 되면 그 가정도 망합니다. 개인도 가정에 영향을 주지 못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못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60년대와 70년대의 선생님의 입장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심각한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무엇보다 전통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이 가는 길은 가정을 통해서, 가정이 가는 길은 교회를 통해서, 교회가 가는 길은 나라를 통해서, 또한 나라는 세계를 중심삼고 가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땅 위에 그렇게 가는 사람이 있으면, 비로소 그는 사방성을 갖추어 가지고 동서 사방을 대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가지 않고는 일방적으로 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동서 사방을 갖추려 하면 사탄세계가 전면적인, 공세를 취하고, 부정적인 요건을 들이댑니다. 그러나 그 부정적인 요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전통을 세울 수 있는 실적을 쌓아야 합니다. 그 전통이 짧더라도 국가적 이상이 되어야 하고, 세계적인 하나의 표준이 되어야 됩니다. 그때가 되면 외적인 세계에 혼란이 벌어지게 됩니다. 높은 데에서부터, 꼭대기에서부터 혼란이 생긴다는 거예요. 나무도 죽을 때는 밑에서부터 먼저 죽는 것이 아니라 맨 꼭대기에서부터 죽지요? 그렇지 않아요?

지금까지 세계를 움직여 나오는 사람들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높은 데에 앉아 있지만 더 높을 수 있는 길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높이 올라가려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낮은 데를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새로이 수습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높은 데를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낮은 데를 내려다본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된 것입니다. 섭리적 시대를 중심삼고 보아 서도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그런 때가 접근해 오는 것을 우리가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종족적인 연관을 거쳐 민족적인 인연에 어떻게 연결을 시키느냐? 연결시키는 데는 그냥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과 인격과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심정의 길 사랑의 길

그래서 진리심판, 인격심판, 심정심판이라는 말을 하지요? 말씀과 인격과 심정이 문제라는 거예요.

말씀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심판의 규정이 되는 것입니다. 법은 심판의 기준으로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진리라는 것은 선악의 기원을 결정할 수 있고, 그 선악의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하나의 표준이 되어야 됩니다. 그 표준이 우리 교회의 '원리'여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절대시할 수 있느냐?

그 말씀에 반항하거나 상치될 때는 그 말씀에 제재를 받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원칙이 아니겠습니까? 말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말씀의 환영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섰을 때, 비로소 인격 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를 중심삼은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생활하는 데에 있어서, 모든 것을 말씀대로 했다고 해서 그 결과가 자신에게 맺혀지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늘 앞에 맺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삼을 것이 아니라 전체를 중심삼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관점이 달라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문제에 있어서도 상대적 요인을 중심삼아야 됩니다. 심정은 정서적인 것입니다.

사랑의 근거지가 어디냐 할 때, 여러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사랑'하게 되면, 사랑은 상대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그 사랑의 근거지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게 사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사랑의 주체이시지만, 하나님 자체가 출발 기점이 되고 하나님 자체만 사랑을 갖게 되면 사랑의 대상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을 필요로 하는 근거지가 어디냐 하면 자체 같지만 자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실이 없는 출발이라는 것은 아예 출발하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 물론 그 자체가 동기는 되겠지만 그 결과는 상대에게 맺혀지는 것입니다. 열매라는 것은 반드시 상대와 관계를 맺어야 맺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열매를 중심삼고 볼 때, 사랑의 결정적 근거지는 자기 자체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상대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가치를 백 퍼센트 인정하는 데서만이 백 퍼센트 사랑의 가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에서는 왜 희생해야 되느냐? 그것은 자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상대라는 근거지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 근거지에 완전히 일치될 수 있는 여건을 제시하지 않고는 사랑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사랑을 하려면 완전한 희생을 해야 됩니다, 완전한 희생을 넘어서 가는 사랑의 길에는 완전한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심정의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이냐?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서 발전하는 시대 시대에 둘 수 없기 때문에, 천주의 주체이신 하나님에게 두는 것입니다. 뜻은 상대적 관계에 있습니다. 그 뜻이 가는 길에 있어서, 개인의 뜻이 가야 할 길은 가정이요, 가정의 뜻이 가야 할 길은 교회요, 교회의 뜻이 가야 할 길은 나라요, 나라의 뜻이 가야 할 길은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뜻의 동기와 결과가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그러니 동기를 사랑하는 만큼 결과를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는 길입니다.

동기를 사랑하는 만큼 결과를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개인적인 입장에서 사랑하는 동기와 개인적인 입장에서 사랑하는 결과가 같아야 됩니다. 가정적으로 볼 때도 그것이 같아야 됩니다.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심정적 희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 인격, 심정의 심판에 있어서 하나님만 사랑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의 상대적 권의 세계에서 상대 이상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 하나님을 사랑하듯 세계를 사랑하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 하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웃을 사랑하기를 내 몸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람을 내 몸같이 할 수 있는 거기서부터 뜻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갈 수 있는 첫 출발은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자기 이웃을 사랑하는 데에서부터 벌어집니다. 이런 사람이 뜻의 세계를 대할 수 있는 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는 데에 있어서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과 가정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뜻, 그리고 교회를 중심삼은 하나님의 뜻, 나라를 중심삼은 하나님의 뜻이 서로 엇갈려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종합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우리가 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때가 71년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운 전통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책임을 다해 나가야

71년과 7월 1일이 만나는 때는 오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대한민국에 있어서 대통령 취임식이 있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섭리적 입장에서 생각할 때, 섭리사적인 의의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이번 대통령 취임식에 세계 각국에서 대표들이 경축하러 몰려왔다는 문제를 두고 볼 때도 무엇인가 뜻적인 내용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환경의 여건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무엇을 느껴야 하느냐 하면 뜻의 때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혁명정부를 다른 나라의 정부가 볼 때, 혁명적인 이단정부의 출현으로 보았습니다. 혁명과정을 거친 정부를 공인하고 환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벌써 같은 입장에서 본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도 기성교회 앞에 그러한 입장에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때가 섭리적으로 얼마나 귀중한 때인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알고 축복가정들은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뿌리가 되는 선생님의 가정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나무의 뿌리가 뻗어 나가는 데 있어서 중심 뿌리가 옆으로 가게 되면 그 나무는 구부러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심은 곧게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중심 뿌리가 제일 힘든 것입니다. 들어가는 데에는 반드시 직선으로 뻗어야 됩니다. 옆으로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갔을 때는 수난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직선으로 가야 됩니다. 이런 것이 문제되는 거예요.

그러면 직선으로 반듯이 못 가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직선으로 가지 못하고 옆으로 뻗어가더라도 직선 이상 뻗어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개인적인 신앙의 기준이나 가정적인 신앙의 기준이나 선생님으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통확립에 대하여 바로 알고 전통을 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 전통을 잘못 세우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는 중심인 선생님이 있어야지요? 그렇지만 선생님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선생님이 있는 통일교회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없는 통일교회, 선생님이 없을 때 우리의 신앙이 어떻게 될 것이냐를 언제나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후손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겠어요? 지금 아들딸들도 마음대로 못 하는데, 후손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겠어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뜻에 대해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도 마음대로 못 하니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마나입니다. 뜻의 세계를 여러분 자신이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후손을 통해서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뜻을 위해 살고 세계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기에 후손을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가정들이 수고하는데, 그것은 교회를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나라의 전통을 올바로 세우기 위해서 수고하는 것입니다. 유대교 사상이 잘못되었기에 이스라엘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그렇듯 기독교 사상이 잘못되게 되면 세계를 망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망할 수 있는 세계권내의 경계선에 접해 있으므로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기성교회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통적 환경을 남겨야 됩니다. 그러려면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국가가 책임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국가를 쪼개 보면 개인이 중심이 되고, 가정이 중심이 되고, 단체가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국가는 단체로 구성되어 있고 단체는 가정으로 구성되어 있고, 가정은 개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요소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이제 우리 교회 자체가 개인과 가정과 교회를 중심삼고 국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후 말씀은 녹음이 안 되어 있음)

[기 도]

저희들이 아니면 당신의 나라를 찾을 수 없고, 저희들이 아니면 당신이 소원하시던 세계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과연 당신은 슬픔의 하나님이 아닐 수 없음을 느낄 때가 많사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다시 한 번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슬픈 입장에 계시는 아버지의 친구가 되고, 수난길을 극복하시는 아버지의 입장에 서서 아버지와 같이 참는 아들딸이 되고, 싸움터에서의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겠다는 맹세의 심정을 가지고, 이 시간 아버지 앞에 부복하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을 위하여 맹세하고 나선 사람들은 많았지만,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당신을 저버리는 사람도 많았던 것을 저희들이 보았고, 잘 알고 있습니다. 부디부디 맹세하기 전에 당신을 저버리지 않는 실체가 되어야겠사옵니다. 당신 앞에 맹세하기는 쉽지만 그 맹세한 대로 실천하기는 심히도 어렵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활 환경을 통해 잘 알고 있는 몸들이옵니다.

부족한 저희 자신들을 당신이 부족하다 하게 될 때 당신 앞에 감사할 줄 알고, 자기 일신에 탕감이 벌어지게 될 때 그 탕감이 자기 일신의 탕감뿐만이 아니라 자기로 말미암아 민족과 세계와 온 천주의 탕감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심정적 내연을 가지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여, 이 날 이 아침에 저희를 불러 모으셨사오니, 당신의 소원 앞에 일체될 수 있는 저희 자신들이 되어 있는가를 생각하고, 자기 정체를 아버지 앞에 명백하게 드러내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로 말미암아 감정을 받고 비판을 받고, 당신이 원하시지 않는 자신의 미흡한 점은 제거시키고, 완전무결하게 당신에게 일치될 수 있는 그 마음만이 이 시간 아버지와 인연맺게 허락하시사, 당신이 저희와 더불어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민족과 세계 복귀의 운명을 책임지기 위해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 시간 당신의 영광이 저희 심령의 밑바탕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악은 악대로 세우고 선은 선대로 분립시켜 세워야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 줄 알고 있사오니, 저희 본성의 기준 앞에 반대되는 일체의 모든 요소를 제거시키시어 당신만이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선만을 동기로 삼아 저희를 자극시키고, 결과의 인연까지 이끌어 가실 수 있는 아버지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부복하였사옵니다. 자기 자체에 악의 요건이 남아 있는 채로 부복한 자 앞에는 당신이 같이하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선만이 저희와 같이하여 미래를 향하여 새로이 다짐하고, 소망의 천국을 향하여 건설자의 책임을 다짐할 수 있는, 새로운 사명에 불탈 줄 아는 아들들이 되고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적인 사명이 저희 목전에 다가오고 있지만, 스스로 준비해야 할 저희 자신들이 미급함으로 말미암아 찾아오는 때와 천운 앞에 책임 다하지 못하여 아버지 앞에 염려를 가해 주는 것이 저희 일상 생활이었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부족하오나 아버지의 모든 일체를 믿을 수 있게 저희들의 마음을 강하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의 모든 것을 당신 앞에 맡길 수 있는 저희 자신들이 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되지 않고는 당신이 역사하실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멀리 계시는 것 같은 자리에서 저희들이 몸부림치고 슬픔의 고통을 느낄 때에, 당신은 언제나 저희들과 같이 계신다는 것을 오히려 발견할 때가 많은 것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과 언제나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리가 오히려 먼 자리인 줄 아옵니다. 당신이 멀리 있으면서도 당신과 언제나 가까이 있다고 관념적으로 알고 신앙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오니, 당신과 가까이 있으면 가까이 있는 것을, 멀리 있으면 멀리 있는 것을 자신이 확실히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저희에게 찾아오시어 당신의 내정적인 심정을 토로하여 주옵소서. 각양 각이한 사람들의 마음에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케 하시어서, 당신의 생명의 인연을 동기삼아 전진적인 생명의 인연을 자신의 생애노정에 남기고 갈 줄 아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소수의 무리가 이 아침 이 자리에 참석하였사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이 이 시간 서울을 향하여 정성들이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정성들이는 곳곳마다, 아버지여,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당신 앞에 몸부림치는 마음, 당신의 뜻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졌거든, 그 자리에 친히 같이하시어서 천배 만배 더 많은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당신의 뜻을 위하여 책임지고 일선에서 수고하고 있는 당신의 딸들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그들과 그 지역을 책임진 아들과 하나되어 민족적 해원성사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통일가의 식구들이 가야 할 운명의 길을 아버지 앞에 맡겼사오니, 아버지여, 맡아 주관해 주시옵소서. 다른 누가 저희들을 주관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께서 친히 주관하시어서 일체를 당신의 뜻과 더불어, 당신이 원하시는 소원과 더불어 일치되지 않음이 없는 것으로 남아질 수 있는 당신의 무리들이 되고, 당신의 백성들이 되고,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의 아들딸이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극히 어렵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아버지 앞에 정성에 정성을 가할 수 있는 저희들의 생활이 되고 충성과 효성을 다짐할 수 있는 나날이 되게끔, 존귀한 가치로 아버지와 함께 의논하고 아버지 앞에 돌려드릴 수 있는 생활을 하지 않고는 참다운 효성의 도리인 아들의 책임과 딸의 책임을 다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하시어, 하루하루의 생활을 성별하여 아버지 앞에 온전히 바치기 위해 노력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저희들이 습관에 젖어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해탈하지 못하는 자리에 설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으로 그 환경을 소화시키고 역경을 헤쳐 나가 소화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아버지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과 땅 위에 있는 수많은 종교인들이 하나되게 하시어, 당신이 원하시는 하나의 세계를 창건하는 데 상하가 협조하여 하나의 입체적인 세계를 이룰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찾아오시어 저희들과 같이 지내시옵고 이 날을 복되게 해주시옵고, 이날을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무리들이 있으면 당신의 심정을 기울이시어 기억될 수 있는 이 날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거룩한 이름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러분이 알다시피 오늘은 7월 4일입니다. 또 이 달 들어서 처음으로 맞는 안식일이고, 반 년을 중심삼고 볼 때, 첫출발을 하는 안식일도 되는 것입니다. 또 이날은 우리 교회에 있어서 지금부터 16년 전에 있었던, 선생님과 식구들이 잊을 수 없는, 이 민족과 기성교단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원망을 가질 수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벌써 많은 해가 거듭해 나온 것을 알게 됩니다. 그간 우리 교회에 있어서 여러가지 사정도 있었지만, 그 사정들 가운데서 우리 통일교회 식구로서는 그 날이 잊을 수 없는 슬픔의 한 날이 되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역사적 인간

이제 남은 6개월을 새로이 맞는 이 마당에서 1971년도 7월을 중심삼고 볼 때 1971년 7월이 있고 7월 4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역사적 인연을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71년도가 있기 전에 1970년도가 있었고, 1970년도가 있기 전에 1960년대가 있었습니다. 혹은 50년대, 40년대, 30년대, 이렇게 거슬러올라가다 보면,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들이 태어날 때, 혹은 태어나기 전 부모시대로 쭉 거슬러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러한 역사시대를 회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역사시대에는 세계면 세계를 중심삼은 역사시대가 있는 것이고,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중심삼은 역사시대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문중을 중심삼고 보면 김씨라든가, 박씨라든가 그 문중의 역사가 있는 것이고,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그 가정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길고 짧은 차이는 있지만, 역사는 반드시 있습니다. 가정 가운데에서도 개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그 개개인에게도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이 시간,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에게도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과거를 지냈기 때문에, 그 과거는 여러분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역사적 사연을 남겼고, 지금도 그것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연과 현재의 여러분과는 분립된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연결된 현재의 입장에서 자신을 다시 한 번 직시하면서 과거의 나는 이렇게 걸어왔으니 오늘의 나는 어떻게 걸어가야 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가 걸어온 과거의 역사가 참다운 역사였다면, 내가 걸어가야 할, 역사적 사실을 남겨야 할 현재의 입장에서도 자신이 참되어야 될 것입니다. 이 참된 것이 현재뿐만이 아니라 10년, 20년, 30년, 생애의 종말까지 참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길고 짧은 차이는 있을는지 모르지만 과거가 참이었으면 현재도 참이어야 되고 미래도 참이 되어야 됩니다.

역사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내가 태어날 때서부터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때에까지 남겨 놓게 될 그 역사적 사실에 있어서,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앞에 어떠한 역사적 사실을 남겨 놓고 가느냐? 종족이면 종족 앞에, 혹은 후손이면 후손 앞에 어떠한 가치의 내용으로 남겨 놓고 가느냐? 이것은 타진해 보지 않더라도 어차피 역사에 남기고 갈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좋은 역사를 남겼느냐 나쁜 역사를 남겼느냐, 선한 역사를 남기고 갔느냐 악한 역사를 남기고 갔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앞날이 없는 최후의 운명의 순간을 앞에 놓고 자기의 과거 역사를 생각해 보게 될 때, 미래가 없는 현재 입장에서 자기를 청산지어야 할 절박한 처지에서 과거를 회상하게 될 때, 자기가 민족 앞에 부끄러움을 가졌다면 그 입장이 어떠하겠습니까? 자기가 일생을 마치는 마당에서 자기의 부모면 부모, 친척이면 친척, 처자면 처자, 후손이면 후손들 앞에 후회할 수 있는 입장에 섰다면 그 입장이 어떠하겠습니까?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애가 어느 순간에 끝나게 될 때에, '내가 이 땅에 왔다가 남기고 가는 것이 슬픈 것이냐, 기쁜 것이냐' 하는 문제를 반드시 귀결짓고 가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잘났든 못났든 늙어서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젊어서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길고 짧은 역사를 중심삼고 슬픈 생애를 남기고 가느냐, 기쁜 생애를 남기고 가느냐 하는 두 가지 문제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과거와 더불어, 현재와 더불어 미래를 저울질해 나가면서 좋은 일, 나쁜 일을 가려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가려내는 순간이 언제냐 하면 현실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가려내는 순간은 미래도 아니요, 과거도 아닌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현실. 오늘 하루가 선할 수 있는 역사를 만드는 데있어서 중심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이 한 시간이 과거의 역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순간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가 슬픈 역사로 남아지게 되면 현재의 입장도 슬픔에 휩싸일 것입니다. 또 현재의 입장이 슬픔의 침범을 당하게 될 때는 미래도 슬픔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슬픈 역사냐 기쁜 역사냐 하는 것이 어디서부터 결정되어져 나가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할수록 심각한 문제인데, 그것을 결정짓는 내용이 오늘이라는 현실, 이 찰나의 순간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주면 우주, 역사면 역사에는 어떠한 운명길이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목적을 향해 나가는 방향이 있을 것입니다. 또 그 방향에 수평선과 같은 하나의 선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선을 중심삼고 혹자는 80도, 혹자는 90도, 혹자는 100도, 혹자는 180도 등 각도를 달리하여 그 선에 일치하기 위해 그들은 방향을 갖추어 나갈 것입니다. 그 방향의 각도가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의 선한 노정은 짧아질 것입니다.

한 선을 중심삼고 볼 때, 직선의 각도가 크면 클수록 선에 대한 거리는 짧아지고, 각도가 작으면 작을수록 반드시 그 거리는 길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생활이 하나님의 창조이상, 하나님의 창조원칙에 일치될 수 있느냐? 하나님이 바라시는 어떠한 선이 있다면 그 선의 방향을 중심삼고 몇 도의 자리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노정에 기쁠 수 있는 내용을 많이 남기느냐, 슬플 수 있는 내용을 많이 남기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의 선악의 결정 요소

그러한 결정이 언제 되느냐? 과거도 아니요. 미래도 아닌 현재입니다. 그러면 현실 가운데서 자신이 가만히 있는데 선악이 결정되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데 선한 일이 결정되고 악한 일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움직이는 가운데 선한 일과 악한 일이 결정됩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밥만 먹고 살고 자신과 관계없는 자리에서 그것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밥을 먹고 살고 있는 생활무대를 중심삼고 자신과 관계된 인연권 내에서 자신의 말과 행동, 마음 씀씀이에 따라서 선과 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과 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요건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의 말과 행동과 느낌입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감정문제에 들어가 내가 기분이 좋다든가, 나쁘다든가, 혹은 과거에 기분이 좋았다든가, 나빴다든가 하는 것을 가려 보게 되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언행심사(言行心事)라는 요건에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말을 해 놓고 행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을 선이라 할 수 있느냐 할 때, 행하지 않은 만큼 악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을 해 놓고 행하게 되면 반드시 행한 만큼 선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행하는 데 있어서도 진실되게 했느냐, 의무적으로 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의무적으로 했다 하여도 거기에 진실을 가하면 가할수록, 그 가한 내용이 커지면 커질수록 비례적으로 선이 커진다는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을 통해서 볼 때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건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선한 역사를 남겨야 할 필연적인 운명길을 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길이라 할 때, 그 필연적인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요인은 몇 가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과 행동과 마음쓰는 것과 느낌입니다. 여기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의 말을 듣고 상대의 행동을 보고 상대가 '좋았다, 나빴다' 하고 평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자기에게 한 말을 놓고 좋은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다, 흑은 행하는 데 있어서 참되게 행하느냐, 거짓되게 행하느냐의 문제를 중심삼고 그 사람이 선하냐, 악하냐 하는 것을 관찰하여 비판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은 비판할 줄 알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어떻게 하느냐? 우리는 자기 자신에 있어서도 그와 같이 비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남을 대해서 비판할 수 있는 그런 기준, 그런 실력이 있으면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말하였으면 확실히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말한 대로 얼마만큼 행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행하는 데 있어서는 마음도 두지 않고 자기는 상관하지 않는 자리에서 행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적인 상관을 갖고 그야말로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서 행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선악이 결정되는 것을 볼 때, 여러분 자신이 움직이는 데 있어서도 역시 얼마만큼 정성을 다해 자기가 말한 대로 실천했느냐 하는 문제가 여러분 일생 동안의 선악의 문제를 좌우시키는 것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감각적인 문제가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고 듣고 느끼는 데 있어서는 내가 말하고 내가 행동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인격적인 기준을 완결시키기 위해서, 혹은 보강시키기 위해서 보고 듣고 느껴야 됩니다. 만일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이 자신에게 마이너스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 그것은 절대적으로 자신을 악 앞에 굴복시키는 것이요, 그 입장은 악 앞에 굴복하는 굴욕적인 입장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만일에 그것을 조정하지 못할 경우는 나도 악한 말을 하는 상대방과 같이 되는 것이요, 상대방이 보고 듣고 느끼고 행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가면서 남긴 역사는 반드시 슬픈 역사가 될 것이고, 죄악된 역사가 될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 그러한 기준에 서지 않기 위해서는 단연코 이렇게 되는 것을 방지 하고 그것과 절연하여 좋고 나쁜 것을 가려 가지고 자기 스스로의 발전의 재료로 삼아야 됩니다. 나쁜 사람이 있으면 나는 저와 같이 나쁜 사람은 안되겠다 하고,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도 저와 같이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노력하는 여러분이 되지 않고는 여러분 생애에 선한 결과를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자가 현실에서 언제나 문제삼아야 할 것

여러분이 생애를 통해서 선한 결과를 남기지 못할 경우에 여러분은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앞에 빚진 사람이 되는 것이요, 가정이면 가정 앞에 빚진 사람이 되는 것이요, 남편이면 남편, 아내면 아내, 혹은 자녀 앞에 빚진 사람이 아니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을 결정지을 수 있고 이러한 생활의 전모를 좌우시킬 수 있는 기준이 되는 때가 어느때냐 하면, 바로 오늘이요 현실이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현실은 여러분을 사방에다 줄로 걸어 놓고 잡아당기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 사방의 줄을 똑같이 잡아당기면 언제든지 중앙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 잡아당기는 힘이 커지면 중심이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그 중심이 기울어졌을 때 자기 혼자 바로잡을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을 자기 혼자 바로잡기는 힘든 것입니다. 중심이 기울어졌을 때 중심을 자기 혼자 바로잡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바로잡아 줄 수 있는 길이 있든가, 바로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 가지고 자기를 부축해 주는 입장에 서게 되면 바로잡을 수 있으되, 그렇지 않고 기울어진 입장에서 자기 스스로 바로잡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이 신앙생활에서 잘 느껴야 됩니다. 더우기 우리는 아무런 목적 없이 사는 것이 아니고, 큰 목적을 중심삼고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더 많이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까딱 잘못했다가 중심이 기울어지기 시작하면 아무리 자기가 노력을 해도 바로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번 잘못해서 중심이 기울어지면 잘못한 것의 몇십 배, 몇백 배, 몇천 배로 노력을 해도 바로잡기 힘든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심각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면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그렇지만 세상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일에 세상에서 무엇인가 한 가지가 틀려지기 시작했다 하면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틀려지기 전보다, 그것을 시작하기 전보다 몇십 배 더 준비를 하고 그 이상의 노력을 투입해도 정상적 기준에까지 복귀시켜 놓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에, 이 중심적 기준을 상실하지 않고 언제나 수직이면 수직에 딱 서서 중심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현재의 입장에서 어떻게 유지시켜 나가느냐 하는 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중심이 기울어지는 것은 내가 대판 싸움을 하여 상대방에게 망신당했다고 해서 기울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중심이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것은 한가지 기분 나쁜 일로 인한 감정에서부터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상대를 보게 되면, 자기를 좋은 면에서 자극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반대적인 면에서 자기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보게 될 때는, 그 느낌 하나하나가 좋지 않게 느껴지고 자기의 기준이 틀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고 느끼는 데 있어서 기준이 틀려지게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상대에 대해서 잘못 느끼고 말을 잘못했다가는 아차 하는 순간에 꺾여 나가는 때가 많습니다. 하나의 작은 감정 문제가, 하나의 느낌이 여러분의 신앙노정이라든가 여러분의 정상적인 인격생활에 있어서 선악의 문제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 봄으로 말미암아 내 중심이 꺾여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 느낌으로 말미암아 내 중심이 꺾여 나갈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잘못 느끼고 잘못 말함으로 말미암아 내 중심이 꺾여 나갈 수 있다는 거예요. 자신이 말하고 잘못 행동했을 때는 결정적으로 악한 결과에 부딪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신앙생활에서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느끼고 있는 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에서 언제나 문제삼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하면 '느낌을 바로잡아라, 느낌을 다스려라, 느낌을 잘 보호해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감정적으로 느끼는 모든 느낌에 대해서 각별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고 느끼고 행동하고 말하는 데 있어서 올바르게 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플러스요, 저렇게 저렇게 하면 마이너스라는 확실한 경계선을 가려 가지고 이 이상의 한계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기준을 완전히 결정지어야 될 것입니다. 이 경계선을 넘어선 안 됩니다. 만일 그 경계선을 넘는 날에는 지금까지 닦았던 공적인 터전이 일시에 파탄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많이 느꼈으리라 봅니다.

여러분은 저울추와 마찬가지입니다. 조금만 많으면 올라가고, 조금만 적으면 내려간다는 거예요. 그러면 저울추가 어느때 정지하느냐, 저울추를 어떻게 완전히 정지시키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완전히 정지시키기 위해서, 저울눈을 잘 맞추어 저울추가 수평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거예요.

그 수평지점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수평지점은 하나인데, 그것은 머리카락 굵기보다도 작고, 수로써도 표시할 수 없으리만큼 작은 자리가 아니겠느냐는 거예요. 그야말로 숨 한번 쉬는 시간이 길다는 거예요.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시간에 세계의 수평점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는 거예요. 그와 같이 지극히 순간적인, 몇십 분의 일초라는 기준을 중심삼고 여러분 생애의 방향이 왔다갔다한다는 것입니다. 혹은 어떠한 한계선을 중심삼고 왔다갔다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배를 타도 그렇다는 거예요.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그 방향에 맞추어 가야 하는데, 나침반이 조그만 흔들려도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그러니 나침반이 직행길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진짜 직행길은 못 가리킨다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의 놀음이 여러분이 생활하는 이 순간, 이 시간에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악이냐 선이냐 하는 문제가 여러분이 생활하는 현재의 과정에서 가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순간적으로 잘못하게 되면 과거가 몽땅 달아나는 것입니다. 잘못하게 되면 현실이 몽땅 부정되고, 미래가 완전히 절벽으로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어느 때에 결정되느냐 하면 과거도 아니요 미래도 아닙니다. 바로 현재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악의 세력을 물리칠 확고한 기준을 세워야

그러나 여러분의 그러한 기준은 각자가 다 다릅니다. 그것은 천성이 각자 다르니만큼 여러분이 느끼는 기준도 각자가 다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은 이래야 좋더라. 이럴 때는 기분 나쁘더라' 하는 것을 느껴 가지고 될 수 있으면 마음이 좋더라 하는 그 길을 향하여 개척해야 됩니다.' 기분 나쁘더라 하는 일은 죽어도 못 한다. '이걸 하는 시간은 죽는 시간이다' 해야 합니다. 사실 그것을 하는 시간은 죽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죽을 때에도 병이 나자마자 갑자기 죽는 것이 아닙니다. 병이 났는지 안 났는지 모르는 자리에서 죽음은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자리가 죽음의 기원이라는 거예요. 죽는 시간까지는 시간적 차이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죽음의 기원이라는 것은 죽는지 마는지, 병이 났는지 안 났는지 모르는 이러한 찰나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여러분 각자의 천성을 중심삼고 '나는 이래야 마음이 편하다' 하는 기준이 있을 거예요. 그 기준대로 살아야 됩니다.

하나의 상봉을 향하여 올라가는 길이 사방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개인이 가야 할 목적지는 하나이지만 여러분 각자의 천성이 다르니만큼 가는 방향은 각자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도(正道)를 가기 위해서는 '이런 길을 가서는 안 된다' 하는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남자면 남자로서, 여자면 여자로서, 가정에 있어서 남편이면 남편으로서, 아내면 아내로서, 아버지면 아버지로서, 어머니면 어머니로서, 아들이면 아들로서, 딸이면 딸로서 혹은 친구면 친구로서의 한계선이 있는 것입니다. 각자의 성격이 다르니만큼 '아버지면 아버지, 어머니면 어머니에 대해서 이렇게 해야 한다' 하는 한계선 이상 넘어서는 안 됩니다. 그 한계선을 넘게 될 때는 반드시 악이 뿌리를 박게 되는 것입니다.

악이 한번 뿌리를 박게 되면 혼자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걸고서 둘이 같이 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상대를 물고 늘어져 둘이 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 해와가 타락하면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악은 혼자 망하겠다는 법이 없고 반드시 물고 넘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은 혼자 망하려고 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내가 죽더라도 너는 살아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악과는 다르다는 거예요. 부자관계에 있어서 악으로 출발했다면 아버지와 자식이 악해짐과 동시에 부자관계 자체가 악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확실한 규정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는 더 이상 다른 길을 안 간다. 이 한계선을 안 넘겠다' 하는 기준을 세워 놓아야 됩니다. 그것은 절대적입니다. 하늘편인 오른쪽으로는 내가 마음놓고 가지만, 다른 쪽을 갈 때는 어떤 때보다 심각한 자리에서 사력을 다해 분석 비판하여 이것을 타진해 가지고 악은 악대로 처단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한계 선까지 나가야 하는 어떤 어려운 문제도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악 앞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겠다는 자신의 입장을 결정지을 수 있는 확고한 생애의 터전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자신의 일생은 선한 생애로써 남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해 가지고 하나님은 아버지의 입장에 계시고 우리는 아들딸의 입장에 있다면, '나는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이 이상의 길만 가지 그 이하의 길은 안 간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왼쪽으로는 절대 안 간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선(線)이 있어야 되고 각도가 있어야 됩니다. 목적을 향하여 전진하는 만큼 그 방향과 어떻게 일치되게 하고 그 각도와 차이를 어떻게 작게 하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언제냐 하면 과거도 아니요, 미래도 아니요, 현실입니다.

그러면 그 기준 앞에 어떠한 태도가 필요하겠느냐? 여기서 필요한 것은 솔직함입니다. 솔직한 신앙자. 솔직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습니다. 마음은 이렇습니다. 아버지, 나도 솔직하겠사오니 당신도 내게 솔직하게 대해 주십시오. 당신은 정의에 입각한 자리에서 얼마나 솔직한 마음을 가지고 나를 대해 주셨습니까? 내가 부정의 마음을 가진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당신도 부정의 마음을 가지고 나를 대하시겠지만, 이제 마음에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대하려 하니 정의의 판단을 내려 나를 가려 주시옵소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심정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다년간 거쳐오면서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신앙인이 지녀야 할 태도

여러분은 자기가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해야 합니다. 자기가 열만큼 잘못했는데도 '아버지, 저는 여덟만큼 잘못했습니다'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열만큼 잘못한 것을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이 솔직해야 됩니다. 그 하나님이 자신이 잘못한 것을 열만큼으로 바라보고 있어도 자신은 백만큼 죄를 범한 것같이 고통을 느끼면서 '저는 당신 앞에 용납받지 못할 사람이니 나를 멀리 하시옵소서'라고 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얼마든지 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열만큼 잘못했는데도 자신이 너무 솔직해서 백만큼 고통을 느끼면서 '하나님을 대할 면목이 없습니다'라고 하며 도망가려고 한다면, 도망가려고 해도 도망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의 긍휼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않아요?

하나님은 열만큼의 죄로 바라보시는데 자기 자신은 백만큼의 죄의식을 느껴 가지고 고통을 받게 될 때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변명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솔직히 바라보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나는 이렇습니다'라고 하며 솔직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해 놓고도 이러고저러고 변명이 많아요. 그건 솔직하지 않은 거예요. 솔직하다는 기준이 자기가 정한 기준이냐, 공적으로 정해져 있는 기준이냐 하는 문제를 볼 때, 이러고저러고 변명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중심삼고 그 기준을 정해 가지고 이러고저러고하는 것이지, 공적 기준을 중심삼고 이러고저러고하지 않는 것입니다. 공적 기준을 중심삼고 이러고저러고하는 사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이 이러한 생활태도에 어긋나게 될 때는 여러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결과에 부딪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이 잘 예측할 것입니다. 더구나 심각한 영적 체험을 한 사람들은 자신이 말 한마디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일주일 이상 회개해야 탕감이 되는 경우를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일년 이상 회개해야 탕감이 가능한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말이 그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간에 있어서나, 부자관계에 있어서나, 혹은 부부관계에 있어서, 자식을 대하는 데 있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하는 사람 전부가 자기 본성적 기준에 의해서 각각 방향을 달리하고 있으면 그 방향에 있어서 나는 이 이상의 기준을 넘지 않는다는 기준을 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엄벙덤벙 휩쓸려 가게 되면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니요, 선도 아니요, 악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것은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지 미지근해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러기에 악한 것을 행하고, 그것을 알고 뉘우치는 사람은 선한 길로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을 행하고 나쁜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기를 변명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솔직한 생활이 필요합니다. 솔직해야 됩니다, 솔직한 신앙 생활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생활에서도 솔직해야 됩니다. 그런데 변명이 많다는 거예요. 요즈음 전도하러 임지에 나간 전도대원들 중에 전도하다 말고 돌아온 전도대원들이 있는데, 그들을 보고 식구들이 '어떻게 돌아왔소' 하면 이러고저러고 변명이 많다는 거예요.

통일교회면 통일교회 전체가 움직이는 활동을 중심삼고 가야 할 복귀의 노정은 개인 혼자 못 가는 것입니다. 개인은 반드시 가정과 합하여 가야 합니다. 이것이 천국 들어가는 길입니다. 가정도 가정 자체로써는 못 갑니다. 가정은 반드시 교회와 합하여 가지고 가야 합니다. 또 교회는 나라와 더불어 가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공식입니다.

그러면 보다 솔직한 길이 어떠한 길이냐? 보다 큰 것 앞에 솔직해야 합니다. 종족보다 큰 국가 앞에 솔직해야 되기 때문에 종족관이 있더라도 종족관만을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 종족관을 중심삼고 이렇게 해야 된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종족관은 보다 큰 국가관 앞에 굴복을 당하고 흡수를 당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국가가 종족에게 제재를 가하더라도 종족은 제재당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것이 타당한 공식이라는 거예요. 보다 큰 문제를 중심삼고 작은 문제는 흡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관(觀)이 아무리 차원 높더라도 개인의 관보다는 가정의 관이 차원 높습니다. 가정의 관보다는 종족의 관, 민족의 관, 국가의 관이 더 차원 높습니다. 더 나아가 세계의 관이 더 차원 높습니다.

대한민국이 하늘나라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대한민국만의 하늘나라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세계적인 하늘나라를 이루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의 수많은 민족이 가진 민족감정을 초월할 수 있는 국민들이 되어야 됩니다. 여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다 큰 관(觀)을 가지고, 거기에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삼고 언제 어느 환경에서든 개의치 않고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선한 사람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가다가 중단될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가야 할 방향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개인보다도 가정, 가정보다도 종족…. 개인을 희생시켜서 가정을 찾아야 되고, 가정을 희생시켜서 종족을 찾아야 되고, 종족을 희생시켜서 민족을 찾아야 되고, 민족을 희생시켜서 국가를 찾아야 되고, 국가를 희생시켜서 세계를 찾아야 됩니다. 이렇게 원리적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충성을 다한 사람이 '내가 이만하면 세계를 대해 당당하지 않느냐'라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그 나라를 중심삼고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에서는 당당할는지 모르지만 세계를 대해서는 당당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세계 앞에 당당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세계를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세계와 하나님은 하나입니다. 뜻 중심삼고는 하나님과 세계는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국가는 언제나 세계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도록 만들어 나가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야 할 방향입니다. 이렇게 통일교회가 가야 할 방향이 제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한 것을 알면 겸손해야

그러면 오늘날 나 자신은 법도와 기준 앞에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느냐? 어떤 잘못을 하게 되면 여러분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압니다. 거기에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의 양심이 이미 공판을 해 가지고 결정지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잘 안다는 거예요. 잘못한 것이 있으면 마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거예요. 위축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누가 설명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잘못한 것을 다 안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또 잘못하게 되면 날벼락을 맞는다는 거예요.

잘못한 것을 알면 겸손해야 합니다. 부끄러운 줄 알고 '당연합니다'라고 자기의 잘못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돼 가지고 이렇다고 변명하려고 하고 철면피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며칠 못 가는 거예요. 가다 보면 자신과 하등의 상관없는 종착점에 이르게 되어, 이별하지 말라고 해도 이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별하고 난 후에는 만날래야 만날 수 없다는 거예요. 자기의 잘못을 변명함으로 말미암아 갈라졌던 사람은 그 변명 조건의 몇백 배를 노력해도 변명하기 이전의 자리를 다시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왜냐? 선과 악은 등위(等位)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엄연히 등위가 다른 것입니다. 선한 자리와 악한 자리는 엄연히 다릅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게 되면, 선한 사람 앞에서 자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내가 너와 같지?'라고 주장하지 못하고 자연히 머리 숙인다는 겁니다. 그건 왜 그러냐? 악의 보응을 받아야 할 사람의 등위는 다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즉 악의 침입권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잘못하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철면피한 사람도 양심으로 그런 것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 느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영계에 가서도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이 느낌이 없다면, 이런 것을 느끼지 못했다면 영계에 가서 고통은 무슨 고통, 고통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느낌이 있기 때문에 저 나라에 가서도 고통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통해서 잘 알아야 됩니다.

신앙자들은, 진실한 사람들은, 참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말 한마디 잘못하게 되면 안다는 거예요. 벌써 얼굴 빛이 달라집니다. 눈동자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대번에 안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 앞에서 잘못을 했다가는 자기가 아무리 세상에서 큰소리를 치고 살았다 하더라도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게 자기 자신이 거북해진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아무 생각도안 하고 있는데 자신은 그 사람 앞에 가까와지면 가까와질수록 거북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선과 악이 처해 있는 등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걸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런 거북한 자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히 직고해야 됩니다. '나는 본래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라고 솔직히 통고해 가지고 '나는 이와 같이 못된 사람이지만 당신은 선한 사람이니, 나 같은 사람을 동정하여 갈 길을 모색할 수 있는 방안이 있으면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시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게 되면 자유스러운 환경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그대로 버티고 서 있게 되면 아무리 자기가 한다 하더라도 마음으로는 수습되지 않습니다. 환경을 수습하지 못하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으로서 당신과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그러니 동정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려면 솔직히 직고해야 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기도.

기도는 무엇이냐? 기도는 내가 가는 방향이 틀렸을 때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이런 놀음이…. 여러분의 생활을 보면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느낌 하나에 의해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러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자신이 오늘날 현실 가운데에서, 숨쉬며 살고 있는 이 순간에 이렇게 저울질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 저울눈을 맞추는 데 있어서는 솔직해야 쉽니다. 이것(저울대)이 평형(平衡)을 이루려면 저울끈을 굵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주 가늘게 해야 됩니다. 그리고 저울끈을 삐딱하게 놓지 말라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야마시(속임수)라는 거예요. 딱 맞게 해야 합니다. 정확한 눈금을 가리킬 수 있게끔 솔직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솔직하게 했느냐? 모든 일은 이 문제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보다 솔직해야 합니다. 개인보다도 가정에 대해서 솔직해야 합니다. 가정보다도 교회에 대해서 솔직해야 되고, 교회보다도 국가에 대해서 솔직해야 되고, 국가보다도 세계에 대해서 솔직해야 되고, 세계보다도 하나님 앞에 솔직해야 합니다. 최후에는 하나님 앞에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까지 가는 데 있어서 개인만 솔직하면 된다는 사람은 안 됩니다. '나는 양심적인 생활을 했으니 어디 가든지 당당하다' 할 수 없습니다. 그 양심적으로 생활했다는 것은 자기주변을 중심삼은 양심적인 생활이기 때문에 그런 생활을 아무리 많이 했다 하더라도 나라와 세계 앞에 플러스를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나라와 세계 앞에 빚을 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공적 기준과 일치되는 생활을 해야

그러면 성인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의 법도, 하나의 천륜이 있으면 그 천륜의 방향과 한계선을 중심삼고 언제나 자기의 마음을 저울질하면서 산 사람입니다. 즉, 세계를 걸어 놓고, 혹은 하나님을 걸어 놓고 자기의 마음을 저울질하는 가운데 가책받는 모든 일체를 제거시키고 오히려 남이 느끼지 못하는 행복을 느끼고 가책을 느끼면서 산 사람들이 성인입니다. 그래서 성인은 세계적인 인물입니다. 자기 나라나 자기 민족만을 위해서 산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세계적인 사상으로 세계적인 생활방법을 가려 가지고 산 사람들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남는 것입니다. 때문에 성인은 사상적으로, 정신적으로 주체의 자리에서 지금까지 세계의 역사와 전통을 키워 나오고 있지 않느냐는 거예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솔직해야 합니다. 솔직하지 못한 두 사람이 있으면 싸움이 벌어집니다. 싸움이 안 벌어질래야 안 벌어질 수 없습니다. 솔직해야 될 텐데, 솔직하지 못하면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판은 누가 하느냐? 솔직하지 못한 두 사람, 쏙닥쏙닥하며 좋아하던 그 두 사람을 누가 심판하느냐 하면, 난데없는 제삼자가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괜히 멀리하고 그 사람이 있는 것을 꺼려해 가지고 둘이만 쏙닥쏙닥하더라도 결국 말하지 않고 관계맺지 않았던 사람이 심판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일이 많지요? 괜히 기분 나쁘게 해 가지고 누구하고 싸우게 될 때 누가 판단하느냐면 제삼자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 진다는 거예요. 이제 보라구요. 여러분들에게도 그와 같은 관계가 벌어져요.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서로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절대적인 원칙을 따라서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솔직한 사람이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자리에 계시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솔직함의 주체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숨어서 뭐가 어쩌고저쩌고 쏙닥쏙닥하면서 행동하게 되면 누구한테 공판을 받느냐 하면 하나님한테 받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예요. 제삼자가 심판자의 자리에서 나를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죄를 지었으면 여기에는 증인이 필요하지요? 그렇지요. 죄지은 것을 무엇으로 결정하느냐 하면, 물론 당사자의 말 가지고도 결정하겠지만 증인의 말 가지고 합니다. 그 증인의 자리가 하나님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벌써 그 두 사람이 얘기하게 되면, 그 말이 솔직한 것인지, 솔직하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솔직하다는 것은 참과 통하는 거라구요. 솔직하다는 말은 똑바로 인도해 간다는 말이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곧게 거느려 간다는 거라구요. 곧게 간다는 그 기준 앞에서는…. 벌써 쑥덕쑥덕 공론하게 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대적인 입장에 서는 것이 아니라 반대적인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 각도에 비례한 공판기준을 누가 세우느냐? 자동적으로 세워지게 된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심판은 누가 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둘이 싸울 때 제삼자가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이 싸우면 서로 옳다고 합니다. 그 판단을 누가 하느냐면 제삼자가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언제나 양심적인 생활을 하고 사는 데 있어서는 나 혼자가 아닙니다.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사는 데는 반드시 제삼자가 있습니다. 법이라든가, 혹은 사회 풍습이라든가, 혹은 도덕관이라든가 하는 그 어떠한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이 바로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저울대라는 거예요. 여기에 일치되지 않게 될 때는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활권내에서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은 지극히 심각한 생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10년 동안 정성을 다했어도, 한번 잘못하게 되면 10년의 정성이 몽땅 뭉텅 끊겨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더더욱 솔직하라

내가 이야기 하나 하지요. 감옥생활을 오래 해보면 제일 그리운 것이 밥입니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 군대생활하던 사람들도 가장 그리운 것이 밥이라고 하지 않아요? 감옥에서는 자기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자기 아내보다도 자기 자식보다도 밥이 더 그립다는 거예요. 밥을 먹고 나서 배가 불러야 그리워지지 배가 고프게 되면 그리운 것이 다 없어져요.

배고플 때에는 밥이 만능권을 가지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밥의 힘이 얼마나 위대하냐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그런 데 가 봐야 아는 거예요. 배가 너무 고파 의식을 잃을 때가 있어요. 옆에서 밥을 먹게 되면 밥덩이만 보이지 사람은 안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잘 이해되지 않을 거예요. 체험 안 해본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밥 가진 사람이 시퍼렇게 살아서 눈을 뜨고 있는데도 사람은 안 보이고 밥덩이만 보인다는 거예요.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젓가락이 남의 밥으로 가는 거라구요. 가다가 주인이 있는 것을 느낄 때의 그 심정이 얼마나 기가 막히냐 하는 것은 여러분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고통을 밥을 그리워하는 것보다 더 크게 느끼지 못하면 언제나 그 놀음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다가는 전체 앞에 비판받기 마련이라구요. 만일에 자기가 젓가락을 들고 갔다가 주인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내심적으로 느끼게 되는 그 치욕, 그 비참함이라는 것은 밥 억천만 덩이를 주고도 느끼지 못하는 기가 막힌 것이기 때문에 다시 그것을 하라고 해도 못 하는 것입니다.

이걸 보면 모든 일의 악과 선에 있어서 탕감하는 데는 그 최고의 경지, 한 골수에 들어가지 않고는 그 일을 완전히 끊고 돌아설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을 느껴 봤기 때문에 그러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입이 들어오면 잘 챙겼다 그 사람들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하지, 그러지 않고는 그 사람을 볼 적마다 못 견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동하면 마음으로 그만큼 시원하다는 거예요. 비참함을 느낀 대가로 물질적 조건을 중심삼고 몇십 배 탕감했다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마음이 해방 안 되더라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 그 사람들을 보게 되면 마음의 구속을 벗어날 도리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이 구속에서 벗어나려면 몇십 배 탕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물질적으로 시간적으로 그것을 탕감하기에는 지루한 시간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떤 때는 말 한마디 잘못한 것 때문에 일주일뿐만 아니라 몇 개월 동안 가려서 넘어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생활 속에서 그런 것을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동료지간이나 사제지간에 있어서, 혹은 가정에 있어서 나와 관계맺은 사람들 가운데 변명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 보세요. 여러분들은 자기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누구도 어떻고 어떻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끌고 들어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그랬는데, 동생도 그랬는데 왜 나만 나무라냐고 합니다. 이것은 거짓이라는 거예요. 자기가 잘못했으면 솔직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물고 들어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서 솔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더더욱 솔직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면 통일교회에 있어서 선생님이 여러분을 중심삼고 전체를 움직여 나오는 데도 솔직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는 데 있어서도 최고로 솔직한 자리에서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을 이용하기 위해서 가르친다면 선생님 양심상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솔직하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역사에 남아질 수 있는 사람

만일 선생님이 이렇게 가르쳐 줬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행동을 못하게 될 때는, 그 책임은 선생님한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있는 것입니다. 윗사람이 어떠한 것을 주면 아랫사람은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쁜 것일 경우에는 항의할 수도 있겠지만, 좋은 것을 줄 경우에는 감사히 받아야 합니다. 복귀도상에 있어서 개인복귀 노정보다도 가정복귀 노정을 가르쳐 주겠다 할 때는 감사하며 받아야 합니다. 가정보다도 종족, 종족 보다도 민족, 민족보다도 국가복귀 노정을 가르쳐 주겠다 할 때는 감사하며 받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충신되라고 그 길을 가르쳐 줄 때는 무엇보다도 감사해야 합니다. 또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을 가라고 가르쳐 줄 때는 무엇보다도 귀한 것이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세계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하나님 앞에 있어서 충성과 책임을 다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나라 앞에 떳떳한 것이요, 그 민족 앞에 떳떳한 것이요, 그 가정의 어머니 아버지 앞에, 그 누구에게든지 떳떳한 것입니다. 거울 앞에 서서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도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솔직한 양심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찬양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만했으면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 이상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죽기까지 했습니다. 이 땅에 와서 이 이상 할 수 없습니다. 내 있는 기력을 다하고 정성을 다했습니다. 단, 한 가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나와 같이 하나님 앞에 못 나가게 한 것입니다. 그것이 죄라면 죄지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은 다했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역사에 무엇인가를 남기고 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당시의 환경에서 드러나지 않는 사람으로서 간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계가 그 사람의 사상을 이어받게 한다든가, 그의 후손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그 사람의 가치를 열매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그러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열매가 안 되면, 열매가 못 되면 종자라도 되게 하는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는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열매로서 기쁨을 맞이할 수 있는 자리에 못서더라도 그가 하나의 씨로 뿌려지면, 후대에는 반드시 그 결실이 수확되는 것입니다. 거두겠다고 노력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 사람의 전통과 사상, 그 사람의 선의 실적은 부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부정하시는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의 뜻은 이뤄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터전을 가꿔 주고 키워 주고 남겨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는 한 그런 사람의 전통을 이어받은 후손이나 그런 사람의 사상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이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솔직한 자세는 대립관계를 절충시킨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솔직한 신앙인의 자세를 누구부터 길러 줄 것이냐? 좋은 사람부터 길러 주자! 그거 좋다는 거예요. 그러면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제일 좋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그 다음에 누구냐? 형님 누나입니다. 그 다음은 누구냐? 자기 부인이요. 자기 아들딸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자기가 좋은 사람끼리 좋아하면, 그것은 전체가 좋은 것은 될는지 모르지만 자랑할 수 있는 선은 못 되는 것입니다. 그걸 누구한테 자랑하겠습니까? 누구한테, 자기 집안 식구들을 좋아하는 것은 으례 다 하기 마련이라구요. 안 그래요? 어머니 아버지 좋아하는 것도 자랑할 바가 못 되는 거라구요. 형제지간에 좋아하는 것은 자랑할 바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드러내 가지고 '아! 나는 부모 형제를 이렇게 좋아했으니까 세계적이다'라고 해도 세계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정적인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되어 보았자 효자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잘했다 하더라도…. 그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으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은 드러나는 것입니다. 높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높이 드러나는 만큼 높이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라는 거예요. 선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그냥 그대로 좋을 수 있는 환경에서는 안 됩니다. 그 반대의 환경이어야 됩니다. 열만한 선을 이루는 데 있어서 그냥 좋을 수 있는 자리에서 열만한 가치를 가진 사람과 백만큼 수고하여 열만한 선을 이룬 사람이 있다면, 그냥 좋을 수 있는 자리에서 열만한 가치를 이룬 사람보다도 백만큼 수고하여 열만한 선을 이룬 사람이 더 귀한 것입니다. 그냥 좋을 수 있는 자리에서 열만한 가치를 가진 사람보다도 백만큼 수고하여 열만한 선의 기준에 올라선 사람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니까 하나님은 으례히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문제는 다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들딸을 사랑하는 것이니까, 그것이 무엇이 선이냐? 당연한 것이지…' 그렇게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적이다'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입장은 그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원수의 자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체적인 선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사랑하시니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우리는 하나님이 영영 대할 수 없는 원수의 자식이기에 원수처럼 대하는 것이 원칙인데도 불구하고, 이 원칙을 부정하고 또 다른 원칙을 제시해 주셨기 때문에 나도 선하게 되었고, 이런 사람들을 선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나도 또다른 원칙을 세워 행함으로 말미암아 선한 환경을 가졌구나. 내가 하늘을 위해서 이런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볼 때, 나를 위해서 그런 마음을 갖고 살 수 있는 사람을 남겨야 되겠구나'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내가 희생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길은 그냥 그대로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끼리 좋아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솔직하라는 말은 상응적인 관계에서가 아니라 대립적인 관계에서 절충을 위해 필요한 것이니, 절대적으로 순응하는 입장에 서라는 말이지 상대적인 입장에 서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타락한 사람은 솔직해야 합니다. 보는 것도 솔직히 봐야 합니다. 말하는 것도 솔직히 말해야 합니다. 위증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의 책임자들, 식구들을 지도하고 있는 책임자들은 식구들보다 정성을 더 들여야 합니다. 책임자가 식구들보다 정성을 못 들였으면, 식구들보다 잠을 한 시간이라도 더 잤으면, 미안해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명목상 나는 교회장이고 당신들은 교인들이니 내 지도를 받아야 된다'고 한다면, 이것은 강도들이나 하는 것이예요. 양심은 알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양심은.

나는 요즘 우리 통일교회가 앞으로 돈이 많아지면 통일교회 패들이 어떤 녀석들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누구한테 한 일년 동안 장부 대조도 안 하고 돈을 대주어 보면 좋겠다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게 하다가 어느 날 장부를 가져오라고 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할까요? 장부를 맞춰야 되겠으니 장부를 적당히 꾸며 가지고 올 것이 아니겠느냐는 거예요. 그걸로 통하겠습니까? 통하지 않습니다. 그 벌어진 간격을 좁힐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갈 때는 큰 것으로부터 거꾸러져 나가는 것입니다.

일과 사고방식의 문제

어제도 내가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어떤 우리 식구에게 돈을 주어 가지고 일을 하게 했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지불하는 돈은 무서운 돈입니다. 공금 중에서도 공금입니다. 그 공금을 가지고 여러분이 책임수행을 하다가 그것이 안 되게 될 때는 선생님에게 보고한 다음에 제2의 목적을 위해 활용하게 되면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고도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처리했습니다. 그래도 그냥 잊어버리려고 했는데, 영계에서 그 사람 안 되겠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기억 안 하고 준다고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이용당하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이용하겠다고 하더라도 이용 안 당하는 거라구요. 해보라는 거예요, 누가 망하나. 그냥 그대로 하다가는 전부 다시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솔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돈을 타 가지고 갔다 나중에 장부를 꾸며 오는데 보게 되면, 몇백 몇십만 몇천 몇백 몇십 원까지 일전 한푼 틀리지 않고 딱 떨어지누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몇 번 그런 일이 있으면 그거 진짜일까 하는 생각이 되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비상한 재간이 있는 거예요? 그런 것이 문제가 된다는 거에요. 적당은 통하지 않습니다. 더더욱 선생님은 원리를 중심삼고…. 즉, 통일 교회에 세계적인 사명이 있다면 첨단에 서서 걸어가는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기성교회 목사들을 중심삼고 원리공청회를 하려고 청평에 임시 수련소를 짓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천막을 쳐서 하려고 했어요. 그래도 6천년만에 처음으로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만나는데…. 이것은 우리 교회에 있어서는 역사에 다시 없는 단 한 번의 기회입니다. 이것은 다시 없는 기회입니다. 무엇이든지 1회가 귀하지 2회는 귀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돈은 없지요. 그렇다고 천막을 치려니…. 아벨은 가인을 복귀 하기 위해서 자기 생명을 바쳐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라고 내가 가르쳐 주었는데, 장마철이라 비가 오면 흙감탕이 될 텐테 고무신 신고 다니다가 미끄러지는 사람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물론 미끄러 넘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잘못이지만, 만일에 넘어져 가지고 다리가 부러졌다 혹은 죽었다 하게 될 때는 통일교회에 영원히 흠으로 남아지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잘못하다 넘어져 머리가 돌부리에 부딪치게 되면 뇌진탕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누구 때문에 죽었느냐? 통일교회 때문에 죽었다! 그 행사를 누가 주도했느냐? 통일교회 문선생이 결정해 가지고 주도했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문선생 때문에 죽었다!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수택리 수련소 짓느라고 내가 밤잠을 안 자고 야단했습니다. 새벽 두시 세 시까지 잠을 안 자면서 몸둥이를 들고 들이 모니까 청년들이 힘이 들어 가지고 나만 보면 도망갑니다. 어제도 청평수련소 짓는 책임자가 '선생님, 사람이 부족합니다' 하길래 내가 '이놈의 자식, 네가 24시간 밤잠 안 자면서 해봤느냐'라고 했어요. 24시간 밤잠 안 자고 해보고 나서 안되겠다고 해야지, 먹을 것 다 먹고 잠잘 것 다 자고 안 되겠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선생님의 사고방식은 여러분들과 다르다는 거예요.

나 같으면 이렇게 한다는 거예요. 내 관은 딱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 관을 중심삼고 여러분을 지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관하고는 틀리다는 거예요. 24시간 일을 해봤느냐는 거예요. 밤 아홉시까지 해서 안 되면 새벽 네 시 다섯 시까지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보고 나서 안 되면 그 일을 누가 책임지느냐? 자기들에게 일 시켰으면 하라는 대로 정성껏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건 번들번들 아침에 나갔다 저녁이 되어 들어와서는 '사람이 부족합니다' 이러고 있어요. 이놈의 자식 같으니라구…. 선생님 자신도 새벽부터 날뛰면서 일하고 있는데….

어제는 청평댐의 수문이 활짝 열려져 물이 많이 빠져 나갔습니다. 내가 한 3, 4년 청평을 왔다갔다하면서 정성을 들였지만 그렇게 물이 빠지기는 처음이예요. 우리가 축대를 쌓는다고 지금까지 돌을 얼마나 갖다 넣었는지 몰라요. 그런 한 날이 있기를 바라 가지고 지금까지 정성을 들여왔고 처음으로 물이 빠져 축대를 쌓아야 할 텐데…. 자, 이거…. 그때까지는 물이 차있는 가운데 축대를 쌓았기 때문에 몰랐는데, 물이 빠지니까 그 앞이 훤하게 비어 있는 거예요. 이걸 넓혀 놓으면 7,80평은 넓어지거든요. 그 아래까지 돌이 깔려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축대를 쌓아야 할 텐데, 돌 쌓는 사람 들을 가만히 보니까 일하기 쉬운 자리에서 쌓고 있어요 많이 쌓아야 벌이가 되니까. 절대로 어려운 일을 안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가만가만 미꾸라지 모양으로 빠져 나가려고 계산하고 타산해 가지고 그 누구도 한 발짝 안 나가려고 합니다.

물이 차 있을 때는 구부러지게 쌓아야 되는데, 물이 나간 다음에 보니까 직선으로 쌓을 수 있는 자리에까지 돌더미가 깔려 있지 않겠어요? '야 이제는 됐다'고 생각했는데 돌 쌓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내가 양말 벗고 나섰습니다. 축대는 쌓아 보지 않았지만 '이것은 이러니까 이래야 될 것이 아니냐' 이렇게 이치로 가르쳐 주면서 쌓으라고 했습니다. (녹음상태 불량으로 약간 정리하지 못했음)

그래서 오후 일곱 시쯤 되어서 다 쌓았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그쯤 되었을 거예요. 만일 세상 사람들에게 일을 시켰으면 한 사날 걸렸을 거예요. 그래, 내가 청년들에게 호령을 해 가지고 후닥닥 한 시간 반에 물이 들어와도 괜찮을 만큼 축대를 쌓았습니다. 그런데 잘못 쌓아 가지고 이 다음에 무너지게 되면 타박맞을 게 아닙니까? 그래서 어제 시멘트 콘크리이트로 메꾸었습니다. 물이 고이기 전에 콘크리이트해 버리면 안 무너지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이 쌓게 되면 시멘트를 안 바르지만 우리가 쌓은 것이 무너지면 어떡해요. 위신이 있지. 또 비례적으로 볼 때 깊은 곳에 쌓았기 때문에 무너질 가망성이 많다는 거예요. 그렇게 된다면 전문가들이 쌓는 것이 낫지 전문가 아닌 사람들이 쌓은 것은 할 수 없구나 하는 평을 할 거예요. 그래서 모래하고 시멘트를 섞어 세멘떡을 만들어 가지고 발라 놓은 것입니다. (웃음)

일하는 사람들 보면 답답하다는 거예요.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가만히 안 둔다는 거예요. 물론 선생님이 가만히 있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 없지만, 답답해서 눈뜨고 보지 못하겠거든. 이렇게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해야 할 텐데 전부 다…. 그래서 내가 처음 얘기하지만 목수들도 꼼짝 못하는 거예요. 이치에 맞거든. '이것은 이렇고 이렇지 않느냐 어떠냐' 하면 '그렇습니다' 하는 거라구요. 그들이 틀리게 하면 이틀도 못 가서 또 바로잡아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또 오셨구만' 그래요. 그들은 선생님이 가르쳐 주면 기분 나쁘다고 할는지는 모르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는 내가 안 합니다.

청평 우물물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또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아요. 지금 더운 때이기에 땀 흘리며 일하게 되면 물을 많이 마셔야 됩니다. 아마 한 사람이 한 바께쓰 정도 물을 마실 거예요. 나도 지금 등에 땀이 나고 있지만 곡괭이질을 하다 보면 땀이 나니, 물하고 싸워야지 별 수 있어요? 그저 물을 떠서 마시는 거라구요. 사람들은 자기가 살던 지방을 떠나 물을 갈아 먹게 되면 설사하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팔도에서 별의별 사람이 다 와서 먹었는데도 아무 이상 없었습니다. 또 밥은 왜 그렇게 잘먹는지. 그저 밥을 해서 백두산같이 그릇에 담아 줘도 뭐 인사도 안 하고 금새 먹습니다. 잘 먹을 수 밖에 없어요. 힘으로 일하니까, 운동량이 많으니까 자연히 몸의 기능이 활발해져 소화가 잘 되게 되어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일은 하지만 밥 잘 먹고 물 잘 먹는다는 거예요. 먹는 것보다 빼는 것이 많으면 몸이 비리비리해지겠지만, 빼는 것보다 먹는 것이 많으면 튼튼해지는 거예요. 어떤 녀석이 처음 여기 올 때보다 살이 많이 쪘길래, '이 녀석 살쪘구만'하니까 '헤헤' 하고 웃는 것입니다. (웃음) 밥 잘먹고 물 잘먹고 소화 잘 되니까 건강해지는 거예요. 이렇게 청평 물이 참 좋다는 것입니다.

수련소를 90평이 넘게 지으려니까 터가 작아서 파 놓은 우물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 생겼어요. 할 수 없이 그 우물을 옮겨야 했는데, 그 우물은 옛날에 파서 돌로 쌓아 가지고 뚜껑을 해 덮은 우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뚜껑이 한 자 반밖에 안 되니 옆으로 파서 파이프를 연결하면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예산을 잡아 가지고 떡 준비를 하게 해서 구멍을 뚫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책임자가 와서 '이 우물은 다섯 자 묻었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다섯 자나 묻었나? 하고 물어 보니 돌로 축대를 쌓으면서 다섯 자를 묻었다는 거예요. 원래 그 우물의 깊이가 아홉 자인데…. 그래서 내가 '이놈의 자식, 세상에 그렇게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라고 나무랬습니다. 그러니 물이 고일래야 고일 수 있어요?

요즈음에는 비가 와서 물이 많이 나오는데, 왜 이렇게 흙탕물이 나오는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그렇게 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깊게 축대를 쌓았으면 그냥 두어도 흙탕물이 안 나을 텐데, 얕게 쌓았기 때문에 비가 오니까 흙물이 위로 올라와 흙탕물이 나오게 돼 있다는 거예요. 내가 곡괭이 자루를 쥐고 '이놈의 자식아,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느냐'하고 나무랐습니다. 할 수 없이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그걸 다시 파야 되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세상에 그렇게 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묻었다가 다시 파려니 오죽 힘들겠어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했으면 파이프 하나만 연결하는 정도로, 얼마든지 간단하게 할 수 있었는데 말이예요. 그러고도…. 여기 통일교회 교인들도 그렇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전도한다고 임지에 나가서 사람만 잡아먹었지 전도했어요? 그러고 나서도 '3년 동안 열심히 했는데…'그러는 사람이 있어요. 3년 동안 나가서 해 놓은 게 뭐가 있어요. 그런 패들이 많다는 거예요. 자기 중심삼아 가지고 모든 것이 되게끔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녹음 잠시 중단됨)

원칙은 어디에든 통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인쇄소 같은 공장에 가서 일하는 것을 척 보면 얘기할 게 참 많아요. 그러나 모른 척하고 있는 거예요. (녹음 잠시 중단됨)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들은 언제나 일을 하되…. 선생님의 사고방식은 절대로 그렇게 안 합니다. '이 일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여기에 썼다가 다음에는 또 무엇에 써야 되겠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물건을 만들 때는 반드시 그 물건이 두 세 가지의 목적에 사용이 가능할 수 있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집을 지어도 그렇습니다. 이 다음에 그 집을 뜯어서 다시 지을 것도 생각하자는 거예요. 그러나 목수는 집을 짓는 것만 생각하지 그 다음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거예요.

솔직하면 언제나 통해

그러면 전체적인 문제를 볼 때 어떠한 사고방식이 좋겠습니까? 선생님과 같은 사고방식이 좋습니다. 오랜 역사를 두고 보면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건 틀림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한 가지 일만 늙어 죽도록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기술자면 기술자로서 전문 분야에 있다고, 예를 들어 펜을 쥔 사람은 죽을 때까지 펜만 쥐고 살겠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럴 수 있어요? 그것만 해먹고 살겠어요? 사람은 어떻게 살다 보면 직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고 노동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무엇이든지 해보라는 거예요. 30대까지는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맨손 들고 나가더라도 어디 가서든지 먹고 살 수 있는 실력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정 어렵게 되어 식당 종업원 노릇을 하게 되더라도 잘 할 수 있게 밥하는 것까지 알아 두라는 것입니다. 배추나 무우 같은 것을 잔뜩 쌓아 놓고도 장단맞춰 가며 자를 수 있는 기술도 배워 두라는 거예요. 남자가 요리할 줄 안다고 해서 재수없나요?

내가 그래요. 지방 순회할 때 부인들이 밥하는 것, 반찬 만드는 것을 쓱 보게 되면 밥물은 얼마나 부었고, 시금치나물에는 어떤 양념이 들어갔고, 콩나물에는 어떤 양념이 들어갔다는 것을 다 알 수 있어요. 쓱 보게 되면 무슨 반찬은 어떻게 무친 것인지 다 아는 거예요. 그렇지만 할 수 있어요? 마음에 썩 들지 않아도 정성들여 상을 차렸으니 '감사합니다'하면서 먹는 거예요. (웃음) 내가 자취생활을 7년 이상 한 사람이예요. 습관이 되어서 많은 반찬이 필요 없습니다. 언제나 간편하고 맛있고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것 하나면 됩니다. 언제나 일식 일찬이라구요. 맛있는 반찬 한 가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즈음 상에 반찬을 수두룩 올려 놓는 것을 보면 아예 귀찮다는 거예요. 시장에 가 보면 철따라 반찬거리가 다르지요? 사람의 식성도 철따라 달라지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사람이 중국요리만 며칠째 실컷 먹다 보면 맵고 짠 김치, 깍두기가 먹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중국요리를 또 먹어야 한다면 그것처럼 죽을 지경이 없는 거예요.

내가 여름에 지방순회를 가게 되면 가는 곳곳마다 선생님이 오신다고 수박, 참외를 대접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박 참외만 보면 '아이고' 하게 돼요. (웃음) 그것보다는 냉국, 찬물에다 장을 넣고 오이를 껍질도 벗기지 않은 채 썰어 넣은 냉국 한 사발 먹고 싶은데 그것을 누가 알아요? 그러니 환경에 맞게 거기에 적절하게 맞설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정성들이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며느리가 매일같이 밤을 새워 정성을 들여 가지고 반찬을 만들었는데 맛이 없다 할 때는, 시아버지가 하루 이틀 사흘쯤은 수고했다고 하면서 먹지만, 그 다음부터는 수고가 다 무엇입니까? 그렇지만 정성들이지 않는 며느리라 해도 살랑살랑해 가지고 어디 갔다가 늦게 돌아와서도 '아버님, 늦게 돌아와서 미안합니다' 하면서 간단히 상을 차려 가지고 들어왔는데, 이건 거북이처럼 석달 열흘을 정성들인 며느리보다도 '시아버지가 요렇기 때문에 요런 것을 좋아할 것이다' 하면서 계절에 맞게 해 왔다면 반찬 한 가지에 보리밥이더라도 감칠맛이 나는 거예요.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물론 정성들여 자기를 모셔 주는 며느리도 좋아하지만 자기의 기분을 나쁘지 않게 해주는 며느리를 더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기분을 맞출 줄 알아야 합니다. 너무 알랑거리는 것은 안 좋지만 기분 나쁘지 않게 적당히 알랑거리는 것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따지는 기도를 하면서 가만히 영적으로 느껴 보면 마치 묵직한 바윗돌이 누르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 하나님 잘 하셨습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그저 굴러도 좋고 자빠져도 좋습니다'라고 칭찬하게 되면 하나님도 좋아하신다는 거예요.(웃음) 그러니 솔직한 것도 필요하지만 그 사람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방법도 필요할 때가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솔직한 것은 언제나 통하는 겁니다. 물론 솔직해 가지고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하고, 솔직하면서도 그 시대 감각에 맞고 환경에 맞게 조화의 미를 높일 수 있다면 그야말로 두말할 나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욕도 하면서 지도하는 사람이지만 시장에 가게 되면 몇십 년 시장에 나온 아주머니들하고 친구가 되어 앉아서 농담도 잘 합니다. '아주머니는 얼굴이 이렇게 생기고 코가 이렇게 생기고 눈이 이렇게 생겼기 때문에 돈 많이 벌겠구만. 아들은 이렇겠구만'하게 되면 '어, 당신이 우리 집을 어떻게 아느냐'고 깜짝 놀랍니다. 그러면 '알기만 해요. 잘하면 당신하고 사돈간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 가지고 물건도 싸게 사는 그런 놀음도 할 줄 압니다. (녹음 잠시 끊김)

신앙의 전통

내가 청평에 가게 되면 통일교회 문 아무개가 산에 올라갔다고 소문납니다. 그리고 나한테 관심 있는 사람들은 내려왔나, 안 내려왔나 확인까지 하는 거예요. 자, 이거 거북할 때가 많습니다. 영감이 잘나서 영감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영감을 만들어 주는 거예요. 옛날에 개망나니 노릇을 했던 사람도 손자들이 많게 되면, 그 손자들 앞에서는 아주 점잖은 선군 모양의 태도를 취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환경이 그렇게 되니까 거북할 때가 많다는 거예요. 어떤 때는 좋지 않다는 거라구요. 그 발랄하고 말이예요. 점심 때가 되면 주먹밥을 해 가지고…. 그릇이 필요 없다는 거라구요. 솥이면 솥에다 냄비면 냄비에다 밥을 잔뜩 해 가지고…. 반찬이 없으니까 할 수 있어요? 무럭무럭 김이 나는 데다가 손으로 쓱쓱 소금을 발라 가지고 한 덩이 해서 '먹자!' 이래 가지고 꿀꺽…. 할아버지 손, 할머니 손, 아빠 손, 엄마 손, 고운 손, 미운 손 할 것 없이 한 덩이 집어다 쭈벅쭈벅, 들고 그저 된장이나 고추장에 척 찍어서 이렇게 먹는 것이 제격이라는 거예요. (웃음) 그게 좋긴 좋다는 것입니다. 개척시대에는 그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 이거 차도 타고 다니는데 밥은 어떻게 먹나 한번 가 보자 하고 와서 선생님 밥 먹는 것을 보고 어떻구나 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걸 보게 될 때 이름난 책임자는 구속이 많다는 것입니다. 눈을 깜박해도 왜 깜박하느냐고 그럽니다. (웃음) 여자들을 보고 점심 때가 됐으니 점심 해 오라고 내가 눈을 깜박했는데도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별의별 이상한 생각을 다 합니다. 이것은 비정상적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내가 어떤 때는 공석에서 욕을 잘합니다. 내가 욕을 함으로 말미암아 손해나는 것보다도 이익이 더 크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을 수백 명 앞에 세워 놓고 욕을 하면 말이예요. '선생님이 저렇게 욕을 하시는데 얼마나 분하면 저러실까'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 참고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한 사람이 제물됨으로 말미암아 나머지 수백 명이 욕 안 먹을 수 있게 된다면 당당히 욕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처음 온 사람은 알지도 못하고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공석에서 무슨 욕을 저렇게 하느냐? 라고 생각할 거예요. 욕을 하려면 멋지게 해야지요. 칭찬하는 것은 욕이 아니예요. 그저 눈에서 눈물이 쑥 나오도록, 가슴이 섬찍하도록 해줘야 멋진 욕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람의 잘못을 탕감해 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죄수를 재판할 때, 검사가 형법 몇 조에 의해서 몇 년 징역을 구형하지만, 판사는 그 사람이 애국심이 있다든가 효성심이 있다든가 하는 변호사의 변론을 참고로 해 가지고 언도하잖아요? 판사는 형벌을 감해 줄 수도 있고 집행유예도 내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죽을 녀석이지만, 그 녀석 자체에 동정의 여지가 없다 할 때는 내가 욕이라도 해서 동정의 여지를 만들어 가지고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선생님이 공석에서 욕을 한다고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유 협회장은 통일교회 충신인데도 불구하고, 언제는 부려먹더니 죽은 다음에는 상은 못 주나마 욕을 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나와 유 협회장과의 사이를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다년간 같이 일을 해 나왔는데 모든 것이 백점일 수 있어요? 그래서 잘못한 것을 청산해 주기 위해서 공석에서 욕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정치적으로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슬쩍슬쩍 선생님을 속여 가지고 이중 삼중으로 생활하면 전부 다 나한테 걸려 넘어간다는 거예요. 좋다 좋다 하면서 잘못했다가는 난데없이 걸려 넘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해 나오신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이 그것을 얼마나 잘 아시겠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핏대를 세우고 기분 나쁘게 되면 전체에게 문제가 되는 거예요. 한 사람은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동기와 인연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수습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병폐가 되어 가지고 전체에 폐단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누가 해결하겠느냐 이거에요. 여러분이 그것을 하지 못할 때는 선생님이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럴 때는 뿌리를 뽑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욕을 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볼 때, 어떤 일을 하든지 거기에는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하는 데 있어서도 그 일하는 목적을 중심삼고 볼 때에…. '그저 일하라니까 하지, 그저 오늘 밥 먹었으니 땅 파라니까 파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땅을 파는 데는 무엇인가 있어야 돼요. 조국을 창건하기 위해서 한다든가…. 생각이 달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입체적으로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하늘이여, 제가 피땀 흘리는 것을 삼천 만의 피땀을 대신한 것으로 탕감해 주십시오' 하면 탕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기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공적인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신앙생활에 있어서 전통적인 기준이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중심삼은 기준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기준 밑에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다음에 아들딸에게 유언을 하더라도 '야, 아들딸들아, 너희도 나와 같이 나라에 충성하라'고 하려면 보여 줄 것이 있어야 합니다. '나와 같이 남을 위해서 선을 행하라'고 하려면 보여줄 게 있어야 합니다. 보여 줄 게 없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할 수 있는 공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자타가 공인하고, 자타가 추앙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춘 입장에서 자식들에게 얘길 해야 자식도 공인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특히 주의할 것

여러분이 신앙생활에서 특히 주의할 것은 현실적 문제를 중심삼고 선악의 척도를 가려내는 것입니다. 아침에 쓱 나서게 될 때는 말이예요. 기도할 때 길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버지,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였으니 어제보다도 오늘이 더 선할 수 있는 길을 내가 가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거기에 반대가 있거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인내력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거기에서 꺾이는 졸자가 되지 않고 하나님의 위신과 권위를 세울 수 있는 아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길을 오늘 가겠습니다. 나는 부끄럽지 않게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면 되는 것입니다. 청산유수로 몇 시간씩 아무리 하면 뭘 해요. 행하지 않고 실적 없는 그런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고 현재의 입장을 중심삼고 잘 가려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차피 죽습니다. 안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나는 틀림없이 늙어서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젊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자신이 없구만. 암만 뚱뚱하고 양돼지같이 생겼어도 말이예요. '나는 80살 이전에는 안 죽는다'고 자신하는 사람 있어요? 장로교인인가 누가 죽었다면서요? 석온씨 노친네 어디 갔나요? 그렇게 펄펄하고 그렇게 야단스럽던 아주머니가 뭐 넘어져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만 죽었다는 말을 어제께 들었어요. 그래 오늘 장례날이라고요? 그것 보세요. 병이 들어 죽으나, 넘어져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생각해 보면 여러분이 안 죽는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나이 많은 사람도 그래요. 언제 죽을지 알아요? 밥을 먹다가 숟가락도 놓기 전에 그 숟가락을 입에 물고 죽을지 누가 압니까? '난 그렇게 안 죽지. 그렇게 안 죽지' 하다가 그렇게 죽으면 어떡하겠습니까? 죽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을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일생을 두고 볼 때, 무엇을 남길 것이냐? 무엇을 남기느냐?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이 터전을 밟고 섰을 때 당당할 수 있느냐? 여러분이 한 가지 행동이라도 잘 했으면 당당할 수 있지요? 일생을 살고 마지막 순간에 선이냐, 악이냐 할 때 '아버지, 나는 아버지 앞에 선한 아들입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격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이 땅 위에서 백승장군의 영광을 가진, 국가와 세계의 역사를 변혁시킨 영웅보다 더 위대한 것입니다. 그 전쟁이 선한 전쟁이 아니게 될 때는….

예수님은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습니다. 놀라우신 분이라는 거예요. 그 젊은 가슴에 뜻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을 밟고 넘어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 라고 한 말은,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정성과 노력을 다했고 투쟁과 인내와 극복의 최고의 한계선을 세우는 데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자신만만한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훌륭하다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내가 차를 탈 때도 그냥 타지 않습니다. 영계를 동원하는 거예요. 파수군을 세워 가지고 차를 타고 갑니다. 이런 준비도 않고 차를 탔다가 운전수가 선생님과 심정이 맞지 않으면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운전수가 사탄과 상대기준을 이루면 사탄이 들이받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언제든지 빈틈만 있으면 선생님을 공격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 직속 부하들을 시켜서 어느 곳에 가서 차를 부딪치게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통고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제물을 바칠 때 '야, 내가 지금 제물 받는다 받는다' 라고 하나님이 그래요?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는 겁니다. 언제 받으셨는지 모르게 받으신다는 거예요. 그것은 자기가 모르는 것입니다. 인간이 알 수 있어요? 하나님은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제물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만일에 차를 타고 가다가 죽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냥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유언이고 뭣이고 할 수 있어요? 다 죽어 버리는데…. 만나서 이야기할 시간도 없이 죽게 될 때는 어떻게 할 거예요? 나는 그런 것까지 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를 타고 다니는 것보다도 걸어다니는 것이 더 편합니다. 차를 타고 심각한 길로 가면 갈수록 운전수보다 내가 더 심각해집니다. 모든 문제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죽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계에 가서 '아이쿠-' 하는 거예요. 그러니 준비해야 합니다. 언제나 준비해야 됩니다.

솔직한 사람은 누구나 좋아해

내가 여러분에게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남기고 있는 사람이지만, 원리원칙에 벗어나게 되면 용서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용서가 없다는 거예요. 만일 어떤 문제로 원리원칙에서 벗어나게 될 때는 사정 모르는 사람이예요. 무자비한 사람이예요. 선생님은 어머니 아버지 처자를 다 버린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개인 사정에 끌려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계선까지 나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언제 알았더냐 이거예요. 그게 필요합니다. 가정이면 가정을 대해서도 그렇고, 자식이면 자식에 대해서도 그렇고, 여러분이면 여러분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내가 뜻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솔직하고 단순한 내용을 가지고 가듯이 여러분도 그럴 수 있는 면을 가지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고이 데려가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인들을 지도하고 있는 선생님의 소신입니다. 여러분도 그것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은 솔직한 것을 좋아합니다. 엊그제 유종영 순회사가 와서 보고를 했습니다. 그 녀석도 승공연합에 있으면서 그저 바람을 피우고 다녔습니다. 뭐 나쁜 바람이 아니라, 세상에서 났다 하는 사람들과 어깨를 겨루며 매일 저녁 파티에 참석해 가지고 거드럭거리며 살았었거든요. 가만뒀다가는 사람 버리겠기에 내가 순회사로 내보냈습니다. 순회사는 밤잠도 제대로 못자는 거예요. 그러니 고생길로 들어선 거에요. 여러분은 순회사들을 동정 좀 해줘야 돼요.

어디 가나 통일교회 간부들이 욕을 먹고 다 이랬기 때문에 내가 고생 좀 시키려고 그를 순회사로 내보낸 것입니다. 순회사가 되면 잠 못 자거든요. 피곤하다고 해서 어디 가 가지고 '나 피곤하니 방을 좀 내주소' 할 수 있어요? 가자 마자…. 지방을 순회하게 되면 물 마실 시간도 없는 거예요. 내가 순회를 다녀 봤기 때문에 잘 압니다. 물 마실 시간도 없어요. 가자 마자 물 달라고 할 수 있어요? 변소 갈 시간도 없어요. 식구들이 꽁무니를 따라다니니…. 어떤 때는 '야 변소 좀 다녀 오자' 하고 첫번 인사를 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할 수 없는 거예요. 그것을 나쁘다고 한다면 사정을 모르는 거예요. 그 사람이 나쁜 것이지 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방에 들어가 앉게 되면, 그 사람들은 선생님을 대접하는 것보다 선생님이 오셨으니 무슨 소식 좀 들을 수 없나 그러는 거예요. 선생님 대접보다도 소식에 더 관심이 있는 거예요. 그렇다고, '선생님이 왔는데 대접도 안 해주고…' 이런다면 그것은 가짜예요. 밥이야 먹겠으면 먹고, 말겠으면 말고 그저 말씀을 해야 된다구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래, 늦게 가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도중에 밥 먹겠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한다면 그 판은 망치는 것입니다. 끝도 못 맺고 말이예요. 그러니 그건 못한다는. 거예요.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끝을 맺어 놔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열두 시쯤 되어 가지고 밥을 먹게 되는 거예요. 그래 열두 시쯤 저녁을 먹고 상을 물리게 되면 밥한 사람들은 상을 치우고 들어가 자지만, 어떻게 금방 밥 먹고 돼지처럼 잠잘 수 있어요? 한 30분 정도 일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렇게 언제나 늦게 자게 됩니다. 또 식구들이 철야기도 한다고 하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지요. 고생길로 들어갔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 녀석들 밥 먹는 것보다 잠이 간절할 것이다…. 잠 잘 자던 녀석들 어디 한번…. 그랬는데 아니나 다를까, 무엇이 제일 힘드냐고 물어 보니까 '잠 못 자는 것입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 맛을 잘 알아야 돼요.

내가 유종영, 그 사람 성격을 좋아하는 것은 말이예요. 사람이 솔직하다는 것입니다. 그가 순회사로 떠날 때 사실은 기분 좋지 않았다나요? 그것은 선생님이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순회사로 떠날 때는 순회사에 대해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지방에 가서 통일교회 교인들을 보니까, 없는 가운데에서도 그저 정성을 들여 위하려고 하고, 본부에서 선생님의 특명을 받고 온 순회사라고 선생님 이상으로 위하려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는 거예요. 아, 통일사상이 여기에 있구나…. 통일의 순풍, 봄바람 같은 기운을 느꼈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돌아와서는 공석에서 순회사가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보고하는 것을 볼 때, 이 녀석 생기기는 맹탕하게 생겼지만 솔직해서 좋다는 것입니다. 그는 솔직한 데가 있어요. 좋으면 좋다고 하고….

어떤 때는 나한테 와 가지고 '선생님,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걸 공적인 데 쓰려고 하는 것인지, 사적인 데 쓰려고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기를 위해 쓰려고 하면 벼락을 치려고 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통일교회를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려고 얼마나 밤을 새워 가며 연구했겠어요? 그래서 '지금 생각한 것이냐, 며칠 전부터 생각한 것이냐?' 고 물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생각했습니다' 하는 거예요. 그래, 그러면…. 그럴 때는 그 수고한 공적을 알아주어야 된다구요. 그것이 효과를 보든, 못 보든간에 수고한 공적을 인정해 주어야 됩니다. 그런 것을 몇 번만 잘라버리면 그 사람은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몇 번에 한번씩은 알아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울며 보채는 아이에게 젖 준다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젖을 먹고 또 먹겠다고 할 때, 아는 자식이라면 그 부모는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요? 그렇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자식이 많이 먹고 빨리 크겠다고 하면, 자식이 빨리 커야 부모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무진장 보급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와 같은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뜻을 대해 솔직한 신앙자가 되라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대체로 사람이 선악의 길을 가려 가는 데 있어서 덕망지우(德望之友)를 많이 가질 수 있는 길, 혹은 윗 사람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길, 혹은 손아랫 사람 앞에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길은 변명이 아니더라 그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이 전부 다 타진해 보고, 비교해 보라는 거예요. 대체로 변명하는 사람들은 손해를 봅니다. 그러니 사건이 생겼으면 변명하지 말라 이겁니다. 선생님은 죽어도 변명은 못 하는 사람입니다. 들이 대 가지고 사실이 그렇습니다 하게 되면, 만약 방법상 달리 대답해야 할 때도 눈이라도 찡그리며 대답하지, 변명은 안 합니다. 선생님의 생활습관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걸 볼 때, 대체로 볼 때 솔직한 사람은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환경을 계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더더욱이나 '솔직한 신앙자'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그러면 솔직한 신앙자는 어디에서 가려지느냐? 현재의 입장에서 가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과 일치되지 못하고 악의 침범을 받았을 때는 즉각 처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무슨 일이 생기면 세 시간 이상을 넘기지 않습니다. 절대 넘기지 않습니다. 넘기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벌써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그냥 흘려 버리는 것입니다. 기분 나쁜 마음을 가지고 대중 앞에 나가 이러고저러고하는 것은 가짜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놓고 우리 인생을 보게 되면 신앙생활에서도 그렇지만 대체로 일상 생활에서도 솔직한 생활철학을 지켜 나가는 사람은 남아집니다. 그런 사람이 역사적인 면에 있어서 공헌을 남기고 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지금 통일교회는 모든 면에서 첨단에 서 있습니다. 첨단에 서 있어요. 선생님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이 아니예요. 선생님은 상당히 예민한 사람입니다. 참 예민한 사람이예요. 그래서 우리 아들들도 예민합니다. 너무 예민하다는 거예요. 벌써 한마디 말을 들으면 그 말의 동기부터 파악 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본래 내가 세밀한 사람입니다. 방에 척 들어가서 몇 개월 동안 사용했던 물건이 그 자리에 없으면 기분 나빠하는 사람입니다. 책상 서랍 하나 열어 보더라도 무엇이 어떻게 어떻게 되어 있나를 세밀하게 다 봅니다. 무엇을 보더라도 무심코 보지 않습니다. 상하를 전부 가려 가지고 저기서는 무엇이 중심이냐, 어떤 것이 상(上)이냐를 보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너무 그렇게 보려고 하다 보니 사람이 좁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일부러 털털하게 하는 것입니다. 일부러 잊어버리려고 하고, 일부러 무관심하려고 합니다. 그런 면을 키워야 합니다. 그렇다고 원칙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더욱 그렇지만 원리 중심삼은 생활에 있어서도 언제나 솔직해야 합니다. 적당히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을 삼 시대가 보고 있습니다. 과거의 선조가 보고 있고, 옆에 있는 현재의 사람이 보고 있고, 미래의 후손이 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영계가 보고 있고,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변명이 필요 없습니다. 언제나 솔직해야 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일생생활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선생님이 느꼈기 때문에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현실을 중심삼고 솔직한 생활을 습관화하여 선악을 가려 나가게 될 때, 하나님의 원칙에 입각하여 인정받을 수 있는 생애의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역사적인 과거를 남기게 될 때, 최후의 운명에 처하더라도 선한 것을 남기는 보람 있는 생애를 마치고 가게 될 것입니다. 눈을 감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해서 솔직한 신앙생활이 여러분 자신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기 도

​저희들이 뜻을 따라가는 행로가 평탄하기를 바라지만, 그 평탄한 것이 영원한 선을 보장시킬 수 있는 공고한 여건이 못 되는 것을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복귀노정을 가는 길에 있어서 염려가 되는 것은, 통일교회 문이라는 사람이 편안할 수 있는 자리에 선다고 해서 아버님께서 복귀도상에서 안심할 수 있는 자리에 계시겠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편안한 오늘과 내일을 그리워하는 저 자신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사옵니다.

오늘날 통일교단이 민족의 환영을 받고, 세계의 환영을 받는다 해도 통일교회 교인들은 핍박이 없고 자유스러운 환경을 갖게 될는지 모르지만,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중차대한 책임을 짊어진 사람에게는 편안한 날들이 허락되지 않는 것을 생각할 때에, 공적인 길은 언제나 희생의 길이요. 언제나 수난의 길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는 자는 자기를 중심삼고 좋은 것을 주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좋은 것을 주고, 부족한 마음을 앞놓아가면서 주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선 것을 저희들은 언제나 느껴야 되겠습니다.

말씀을 들고 나가서 말씀을 통고하는 자리에서도 그래야 되고 행동을 제시하는 데도 그래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상하의 도리가, 확실하게 결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심정을 규합하여, 위로 끌어 올릴 수 있는 내적인 결연이 저희들에게 없다 할 때는, 완성세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하나님이 이 땅 위에서 그 누구를 찾아오실 것이냐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현재 세계 기독교권내에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통일의 무리는 아버지가 낙망할 수 있는 무리요 길가에서 몰려온 무리들이지만, 행동은 하지 못 할지라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느낌만은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인연을 따라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녀들 가운데 조금이라도 아는 자가 있게 될 때, 아는 자를 바라시고 아는 자를 찾고 계시는 아버지 앞에 이들을 먼저 세워야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알았지만 행동을 다하지 못하게 될 때 저희들을 대하시는 아버지께서 슬픔의 일로를 내디딜까봐 두려워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불러 모아 일깨워 주신 것은 그와 같은 자리에 서기를 바라신 것이 아니옵고, 보다 고차적인 자리에서 아버지가 기뻐하실 수 있고, 아버지의 영광의 흔적이 드러났다고 자랑하실 수 있는 자리에 서기를 바라신 것이 아니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저희들이 당신 앞에 염려를 끼쳐 드리고 언제나 당신 앞에 끌려가는 신세가 된다면, 당신의 아들로 태어난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이요, 당신의 딸로 태어난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저희들이 무엇보다도 절실히 느끼고, 내가 무엇을 가지지 못하고 무엇을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대로는 못 가겠다고 몸부림치면서 그날을 위해 준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시집을 가는 처녀의 마음과 같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시집을 가는 처녀가 알몸뚱이로만 시집을 가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옵니까? 친척들 앞에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예물이라든가 인사의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을 갖고 가야 하는 것이 신부의 입장인 것을 알게 될 때, 아버지로 말미암아 보냄을 입었다가 돌아가는 도상에 있어서 이 땅 위에 선한 영광의 터전을 바라면 바랄수록, 이 땅 위에 보내신 자신인 것을 알면 알수록, 당신이 바라시는 소원이 크면 클수록 저희들이 어떤 길을 가야 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나이만 많아지는 것이 제일 무서운 것이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이 제일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한 시간 한 시간, 순간 순간에 부끄러움을 넘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고달픈 노정을 극복하기 위하여 저는 걸음걸이로라도 가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있사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 '나는 통일교회를 믿다가 망했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통일교회를 믿다가 망한 사람은 한 개인일지 모르지만 당신을 믿다가 망한 나라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믿긴 믿되 잘못 믿게 될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여기 서 있는 통일교회 문이라는 사람이 망할 수 있는 장본인이 되어서 망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저는 망하지 않기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제 짐이 아무리 과중하다 하여도 그 짐을 당신과 더불어 의논하기보다도, 오히려 제 짐에 당신의 짐을 가중시켜서 내 짐으로 어떻게 소화시킬 것이냐 하는 마음으로 고달픈 나날을 보내야 할 것이 이 자리에 서 있는 이 자식의 책임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행하고 나서 자랑할 것이 있다고 해도 지금까지 기쁜 날을 맞지 못하신 당신 앞에서 기쁜 날을 맞아서는 안 될 것을 잘 알았사옵고, 그것을 나라와 민족 앞에 돌리고 세계 앞에 남겨 주는 것이 아버지를 위한 저희들이 가야 할 길인 것을 알았기에 지금까지 이 교단을 이끌고 반평생의 행각의 노정을 지내왔나이다. 아버지, 통일교회를 사랑하시거들랑 '저'라는 사람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보다도, 당신이 바라시는 나라와 세계를 붙안고 사랑해 주시옵소서. 이것이 통일교단의 소원이요, 여기 서 있는 이 자식의 소원인 것을 아버지는 잘 아시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은 민족을 걸고 세계를 걸고 호소하면서 싸워야 되겠습니다. 저희들과 민족을 걸고 세계를 걸고 호소하면서 싸워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것을 저희들과 아버지만이 알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영계에 있는 선조들과 후손들까지도 그러한 것을 알아서 저희들을 대신하여 이 아들의 소원을 들어 달라고 아버지 앞에 기도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시여, 당신은 이런 아들을 찾고, 이런 아들을 만나고 싶은 것이 당신의 소원이 아니옵니까?' 하고 영계에 있는 선조들과 천천만 성도들이 가담하여서 협조할 수 있는 인연의 범위를 넓혀 가야 하는 것이 지상인으로 가려 가야 할 아들딸들의 길인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외로움을 느낄 때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지켜 주셨습니다. 제가 망하기를 바라던 사람들이 오히려 망하는 것을 저는 많이 보았고, 저를 고독한 자리로 몰아넣으려던 그들이 고독한 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많이 보았고,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잃었고, 서고자 하는 사람은 쓰러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에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솔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솔직함과 동시에 교회 식구들에게도 솔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을 순박한 그 자체로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 백성 앞에 통일교회 무리는 믿을 수 밖에 없는 무리로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밤이나 낮이나 구김살이 없는 사람들로서의 권위를 지켜 사악하고 부패된 이 땅 위에 이러한 민족정기가 새로운 샘물로 솟아 나오게 된다면, 흐려졌던 이 동산이 소망의 봄절기를 맞을 수 있으며, 당신이 이 동산에 오셔서 목을 축이실 수 있고 발을 씻으실 수 있고 목욕을 하실 수 있는 한 깨끗한 안식의 보금자리가 되지 않겠사옵니까? 이것이 이 자식의 소원이오니 부디 그럴 수 있는 아들딸들이 많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자기의 출세를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리보다 당신 앞에 순종하는 입장에서 말없이 쓰러져 간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승리자가 되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통일교회 식구 가운데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많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아침에 거룩한 말씀의 시간을 갖게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희들이 부모와 처자와 형제, 혹은 나라와 세계와 하늘을 대신하여 자기 자신이 취할 입장을 확실히 알고…. (이하는 녹음되어 있지 않음)

주간종교사는 통일교회 주간지를 만들기 위해 세운 것이 아니라, 종교 주간지를 만들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주간종교 창간 목적

​선생님에게는 계획이 많습니다. 세밀한 것은 관두고, 앞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지금 종교계는 서로가 자기 종파를 중심삼고 난리입니다. 전부 다 자기 종파가 아니면 안 된다고 독불장군 놀음을 하고 있어요. 그래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삼팔선 이북에 공산권이 대기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더욱이 그러합니다. 신이 싫어하는 공산주의요, 인류가 싫어하는 공산주의입니다. 더구나 신을 좋아하는 인간들은 신이 싫어 하는 것을 좋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을 제일 좋아하는 패는 어떤 패냐? 종교인들입니다. 거기에는 물론 층이 있을 것입니다. 종교인들이 신을 믿는 데에도 여러 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종교인들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느냐? 종교인들끼리 합심하여 결판을 지어야 할 제3의 원수, 큰 원수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 내에 있는 원수보다 더 큰 원수인 것입니다. 그러니 종교인들이 우선 합동작전을 해야 합니다. 합동작전을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러한 풍토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기성교회로부터 욕을 먹으면서도 가만히 있었습니다. 언제 한번 변명하지 않았다구요. 그저 수십 년 동안 맞기만 했습니다. 그들이 죽어라고 두들겨 패고 밟아쳐도 죽지 않고, 자꾸 발 밑으로 더 깊이 뿌리만 박았습니다.

이제 봄날을 맞아 잎이 생기게 되었는데, '야야, 이제 잎 중에도 제일 작은 잎이 되었구먼, 흠' 하고 무시했다가는 큰일납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기운을 받아서 가지가 뻗을 수 있는 입장을 갖추어서 정상 코스에 들어갔다 하는 날에는, 우리 보고 작다고 하던 큰 나무보다 나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럴 수 있지 않겠어요?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우리 통일교회 자체가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언론기관 종사자들, 예컨대 신문 기자들을 만난 예가 없습니다. 어느 누가 와도 만나지 않았어요. 이놈의 자식들, 내가 두들겨 패기 전에는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복수를 하고, 탕감해 주고 나서나 만나 볼 거예요.

우리도 이제는 신문사를 하나 만들었다구요. 여기에 돈이 상당히 들어갔습니다. 알겠어요? 지금 신문사에 관계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나요? 사람이 모자라던 입장에서 얼마나 투입했어요? 이제 한 60명이 되었지요. 인쇄소 안에 있는 사람까지 전부 다 하면 한 60명 됩니다. 여기서 일을 하는 데는 우리 통일교회가 통일사상을 가지고 해야 되겠지만 사회를 대해야 되기 때문에 먹을 때 가서는 먹어야 되고, 싸울 때 가서는 같이 싸워야 되고, 말할 때 가서는 말해야 되고 그렇습니다. 또, 그러니까 월급도 다 줘야 합니다. 그럼 월급은 누가 줘야 합니까? 통일교회가 줘야 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통일교회가 월급을 줘야 돼요.

지금 누가 월급을 주고 있나요? 비용을 누가 대고 있어요? 본부에서 대지요? 통일교회에서 대지요? 통일교회에서 대요. 누가 대요? 누가 대고 있느냐구요? 대답해 보세요, 누가 대고 있어요? 신문사에 들어가는 비용을 누가 대고 있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교인들이 대고 있어요? 임자들이 대고 있어요?「선생님이 대고 계십니다」 선생님이 대고 있는 거라구요.

그래 선생님이 대고 있는데 여러분 중에서, '선생님께서 우리 신문사의 비용을 대시는데 선생님께는 돈이 없겠다' 해 가지고 뒷꽁무니에 돈 보따리 하나, 천 원짜리 한장이라도 갖고 선생님을 찾아와서 '선생님 신문사 운영하시는데 좀 보태 쓰십시오'라고 한 사람 있어요? 그런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봐요. 손 한번 들어 봐요. 있어요, 없어요?

주간종교가 창간되기까지의 어려움

나라가 잘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금도 안 걷고 대통령 혼자서 일해 가지고 나라가 잘될 수 있습니까?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발전에 비례하는 세금을 받는 것은 절대적이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의 없지요? 잘난 양반들, 이의 없지요? 있어요, 없어요? 이의 있는 사람 손들어 봐요? 똥 감태기 씌워 놓을 테니까. 나도 여기에는 이의 없습니다. 선생님이 이의 없으니까 여러분들도 이의 없어야지요. 여러분은 누구를 닮으려고 합니까? 선생님을 닮으려고 하지요?「예」 그러니까 선생님이 이의 없다 하니 여러분들도…. 어때요? 여러분들은 이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이의 있는 녀석은 때려죽여야 됩니다.

자, 보세요. 신문사 하나 만드는 데 얼마가 들어갔느냐? 한 3천만원 들어갔습니다. 지금까지만 한 3천만원 달아났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을 중심삼고 앞으로 74년도까지는 어떻게든지 일간지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동아일보를 능가하자는 거예요. 동아일보를 능가하자! 동아일보를 타고 넘자는 거예요. 동아일보가 철길을 달리고 있다면, 우리는 고속도로를 달려야 되겠습니다. 거 기분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얼마나 좋아요? 혀를 내뽑고, 코 눈물을 흘리고 춤을 출 만큼 좋다 이거예요. 내가 하고 말 것입니다.

내가 하고 말 터인데, 여러분 거기에 보조나 협조를 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얼마나 할래요?「힘껏 하겠습니다」 힘껏의 한계가 어디예요? 「피가 마를 때까지입니다」 피가 말라서 죽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거 못 하면 안 되겠습니다.

이번에 주간종교 신문사 허가를 내는 데도 네 번씩이나 정부기관에 찾아 갔습니다. 허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자, 또 가자고 해 가지고 거기서 '안 됩니다' 하면 '됩니다' 하고 들이댔습니다. 어제 열만큼 했으면 오늘은 스물만큼 들이대는 것입니다. 그들이 '안 돼요, 안 됩니다' 하면 '아, 됩니다, 돼요' 하면서 들락날락거리는 거예요. 그러니 그들의 생각이 달라지더라구요. 그렇게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를 네 번까지 했습니다. 하려면 죽기 내기로 하는 것입니다. 악착같이 들락날락하는 거예요. 우리가 정 그러니까 그 사람들도 곤란해진 거라구요. 안 되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되게 되어 있어요. 안 되는 것은 정성이 부족해서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사고방식입니다. 한번 해서 안되면 두 번, 세 번해야 하고, 남편이 해서 안 되면 여편네도 같이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부모를 움직이고, 부모까지 해도 안 되면 스승까지 움직이게 해서 해야 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더 높은 사람을 움직여서라도 하는 거예요. 얼마만큼 성의 있게 대들어서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저러다가 통일교회 문선생 파투나겠다는 소문이 꽉 퍼졌습니다. 그래도 가는 거예요. 가서 죽어도 못 가겠다고 하는 거에요. '저놈 미친 놈이야'라고들 해도 괜찮습니다. 미친놈이라도 하늘편이라는 거예요. 지금 나라가 망할 수 있고 하늘땅이 왔다갔다하는 판국인데 한 번 해서 안 된다고 해서 물러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한 번 해서 안 되면 두 번, 세 번, 열 번, 백 번 해서라도 해야 될 것 아니예요?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하는 데 있어서 한 번 해서 안 된다고 그만둔 적이 있어요? 사탄도 비위가 좋지만, 하나님은 더 좋습니다. 하나님이 비위가 약해요? 사탄보다도 더 좋다는 거예요. 사탄이 낱으로 먹으면 하나님은 통째로 먹는다는 거예요, 통째로, 그러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지금 어디 가서 목수 일을 하라 해도 할 수 있고, 염전에 가서 소금 가마니를 나르라고 해도 할 수 있습니다. 그걸 못 하겠어요? 못하는 것이 없다구요. 통일교회 교인 가운데 못 하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못 하나 보자구요. 여기 할머니들 데려다가 부려 먹을 것입니다. 자기 손자들을 위해 할머니들을 부려먹을 거예요. 그 손자들이 나와서 참소하고 나설 만큼 지긋지긋하게 부려먹을 것입니다. 나를 위해 부려먹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손자들을 위해 부려먹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할머니들이 일을 하면서도 '허허' 하고 웃는 거예요. 할머니가 죽어서 손자들 수십 명이 잘된다면 할머니가 죽는 것은 당연하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주간종교를 영향력 있는 신문으로 키우자

그러니까 앞으로 10만 부 이상을 발행하여 동아일보를 따라잡자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10만 부만 돌파하는 날에는 당장 일간지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이 주간 신문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느냐면 외국에다가도 팔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한국의 주간지 중에 외국으로 팔린 주간지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간지가 외국으로 몇천 부 나간다 할 때는 다른 주간지들 꼭대기에 앉는 거예요. 그때는 우리를 무시 못 한다구요. 일본에 몇천 부, 미국에 몇천 부해서 쭉 파는 거예요. 발행을 시작하면 금방금방 팔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려면 외국어로도 발행을 해야 됩니다. 주간종교가 16면이니까 16면의 내용을 영어, 일어, 불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5개 국어로 발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5면이 더 늘어나는 거지요. 16면에 5면을 첨부하면 몇 면이예요? 21면이지요? 그렇지요? 삼칠은 이십 일(3×7=21)거 기분 좋구만.

선생님이 이번에 외국 나가면 우리 통일교회 잡지(The way of the world)의 담당자들도 여기에 전부 몰아넣으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일본 사람, 미국 사람 등 각국의 언론계에 대표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이제부터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너 각계의 종교담당자, 언론기관의 문화부 소관 종교담당자와 사귀어라' 이렇게 명령할 것입니다. 내가 이번에 외국을 쭉 돌아오면서 이런 일을 하려고 해요. 그래 가지고 배치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나이 많은 중년 이상 되는 남자, 그리고 빠리빠리한 남자와 여자, 이렇게 세 사람씩 배치하는 거예요. 일본에 세 사람, 미국에 세 사람, 독일에 세 사람, 불란서, 스페인 등 각 나라에 세 사람씩 배치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훈련을 시켜야겠습니다. 거기에서 가장 우수한 한 사람을 내가 한국 본부로 데리고 오겠다고 하면, 좋아서 입이 벌어질 거예요. 그리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아이고 좋겠다'고 하면서 모이지 말라 해도 죽자 살자 모일 것입니다. 무진장 모일 거예요. 거기에서 성적이 우수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우리 일간 신문사 외국 특파원 훈련부에 배치시키는 거예요. 훈련부는 훈련시키는 것을 도와주는 부서입니다.

그렇게 떡 하게 되면 우리 외국 특파원들이 많이 몰려올 텐데, 그 사람들이 오게 되면 무엇을 시키느냐? 취재를 하러 보내는 것입니다. 어디로 보내느냐면 서울신문사 사장네 집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동아일보사 사장네 집으로 취재를 하러 보내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자, 동아일보사 사장으로서 종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어 보게 하는 겁니다. 청와대를 찾아가서 대통령에게 종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보게 하는 거예요. 통계적으로 볼 때 세계의 종교인들이 17억 이상인데 그렇게 하면 나중에는 정치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세계를 전부 낚아다가 요리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기분 좋습니까, 나쁩니까?「좋습니다」망하더라도 크게 한번 싸우다가 망해야지, 그렇지 않아요? 그래야 망하더라도 역사에 남지. 안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개가 되더라도 미친개가 되든가, 아주 순한, 선한 개가 되든가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가 미친개 되자는 거예요, 선한 개 되자는 거예요? 「선한 개가 되자는 겁니다」 악당이 되자는 거예요, 선당이 되자는 거예요? 선당이 되자는 것입니다. 선당이 되기 위해 지금까지 악당 같은 패들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참고 나온 것입니다. 그래 참는 사람이 복이 있어요, 욕하는 사람이 복이 있어요?「참는 사람요」 알긴 다 아누만요. 그러니 우리가 선당이 안 되려고 해도 할 수 없이 되게 마련입니다. 선당이 되어야 됩니다. 으뜸이라고 해서 선당이 아닙니다. 그게 선생님의 소신입니다. 틀림없이 된다구요.

'주간종교는 찍어 봐야 1만5천 부 이상 씩은 못 찍을 것이다'라고들 말합니다. 그래서 본래는 초판을 3만5천 부 발행하려고 했는데 몇 부 발행했느냐 하면…. 그건 뭐 이야기 안 하는 것이 원칙이예요. 뭐 3만5천 부 이상 발행했을지도 모르지 ….

아뭏든 10만 부 이상을 돌파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거 돌파하면 좋겠어요, 못 하면 좋겠어요?「하면 좋겠습니다」'하면 좋겠다' 해 가지고 되겠어요? '좋다'고 해야 합니다. 10만 부하고 2분의 1면이라도 넘어가야 됩니다. 2분의 1면이 넘어가서 내 지갑에 들어가는 휴지 한 장 꼴이 되더라도, 미스 프린트되어 휴지하려고 집어 넣다가 보니까 그것이 10만 부하고도 2분의 1면이 되었다, 이렇게라도 10만 부를 넘겨야 합니다. 한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면 반 페이지라도 넘겨야지 그러지 못하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주간종교가 10만 부를 넘기는 날에는 내가 빚이라도 내서 일간 신문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기분만 나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내가 기분 좋아하면 하나님도 좋아하십니다. 내가 좋은 바람, 봄 바람 분다고 춤을 덩실덩실 추면 영계에서도 춤을 춰요. 옛날에 도깨비가 돈을 만든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구요. 알겠어요? (웃음) 도깨비 돈 만드는 법 있잖아요. 그래 통일교회 문선생이 도깨비보다 못하겠어요? 밤도깨비가 돈을 만들었으면 낮도깨비 이상 되는 사람이 뭣인들 못하겠어요? 내 기분이 그런 기분이예요. 내 기분이 사시장철 언제나 봄날 같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안 될 것이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입니다.

지금은 통일교회 운세가 청평으로 집중할 때입니다. 그래서 내가 요즘 밥만 먹으면 청평에 가려고 합니다. 또 눈만 뜨면 '청평, 청평' 합니다. 이럴 때는 여러분들도 '청평, 청평' 해야 된다구요. '청평, 청평' 하는 사람이 복 받는 거예요. '아이고, 비가 오는데 물이 많아지면…' 이럴지 모르지만 그런 물 정도는 내가 죽더라도 난 죽어도 좋다구요. 그 위로 걸어가면 갈 수 있는 거예요. 그렇다고 선생님이 예수님 사촌 동생 되겠다고 하지 마세요. 옛날에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갔잖아요? 지금은 과학이 발달하여 배를 타고 갈 수 있으니 더욱 좋지요.

우리가 한국에서 제일 가는 신문사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지금 한국에서 제일이라는 무슨무슨 신문사의 내부라든가, 사장의 안방이나, 자동차까지 전부 다 취재시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주간종교를 무시할 수 있겠어요? 또 그렇게 되면 번역하지 말라고 해도 자기들이 각국어로 번역을 해 가지고 번역판이 나올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뭘 하느냐? 내용만 한번 쓱 얘기해 주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한꺼번에 각국어로 번역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내가 그렇게 한다구요.

그렇게 하려면 외국 식구들을 데려와야 되는데 그러려면 적어도 주간종교를 5만 부는 넘게 발행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어떻게 외국 사람들을 데려올 수 있겠어요? 그래 가지고 체면이 서겠습니까? 5만 부도 못 찍어내면서 '야야, 본국에서 주간지를 만드니 너희들 와서 도와라' 해서 데려다가 배정할 수 있어요? 그들이 와 가지고 '아이구 겨우 몇천 부야' 하게 되면 상통 망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돼요, 안 돼요?「안 됩니다」 그러니까 5만 부이상 넘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5만 부를 넘기겠어요, 안 넘기겠어요?「넘기겠습니다」 여자들, 넘기겠어요. 안 넘기겠어요?「넘기겠습니다」

통일식구들은 주간종교사를 적극 후원하라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남들이 8시간 일하면 우리는 24시간 일해야 합니다. 노력을 3배는 더 해야 돼요. 그러면 6년 걸릴 일을 1년에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사고방식입니다.

오늘도 사실은 내가 새벽 두시 반에 깼습니다. 이번 달에 우리가 갚아야 할 돈이 이런 것 저런 것 해서 1억원 가까이 되는데 지금 돈은 한푼도 없습니다. 10일 경에 한 6천만원이 나가야 되는데 지금 한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잠이 오겠어요? 이거 어떻게 할 거예요? 통일교회 위신이 왔다갔다하는데…. 내가 지금까지 이런 놀음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금년부터 1974년도까지 모험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늘이 협조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늘이 협조해야 된다' 하게 되면 협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철석같은 선생님의 신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큰일을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빌려 쓰면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 신문사가 적자 보기를 원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럼 적자 안 보기를 원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래도 기분 나쁘지 않게 다 드는구만요. 선생님이 손들라고 하니 눈치보지 않고 다 드는 걸 보니 됐습니다.

강변에 척 가 보면 모래사장이 좋습니다. 여러분은 '해수욕장' 하면 무엇을 생각합니까? 자갈을 생각합니까?「모래사장을 생각합니다」 해수욕장 하게 되면 모래사장이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그 모래사장을 가만히 보면 수천의 모래알이 모여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렇지요? 야, 그 잘 보이지도 않는 모래 한 알 한 알이 모여서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모두 모여 뒹굴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모래 한 알보다 못해요. 나아요?「나아요」 나아야지요. 나은 패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하나가 모여서 모래사장보다 더 크고 넓은 운동장이 되어 가지고 세계 사람들이 거기에 와서 춤을 추며 즐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세계의 훌륭한 사람들이 몰려와서 벌거벗고 춤춘다고 해서 나쁠 게 뭐 있어요? 죄짓고 벌거벗고 춤추는 게 아니라 하늘나라의 선한 사람들이 벌거벗고 춤춘다면 죄 될 게 뭐냐는 거예요. 그런 판국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되어야 됩니다. 이웃 사촌과 하나 되어야 돼요. '요모도 조모 같고 조모도 요모 같다' 할 수 있게 되어야 돼요. 메밀을 보면 그렇지요? 삼각형이어서 요것도 조것 같고 조것도 요것 같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야 됩니다. 통일교회 선생도 그렇고 통일교회 패들도 그렇다고 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얼룩덜룩하지 않고 새파랗다면 다 새파랗고, 하얗다면 다 하얘야 됩니다. 얼룩덜룩한 것은 싫습니다. 얼룩덜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건 기분 나쁜 거예요. 하얗다면 모두 하얗고, 빨갛다면 모두 빨개야지요.

우리는 무슨 주의입니까? 민주주의인데 민주주의는 백색주의입니다. 반면에 공산주의는 적색주의지요? 백색은 왜 백색입니까?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일을 한다는 거예요. 공산주의는 뭐냐? 사탄을 중심으로 놀음하는 주의입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공산당은 새빨개 가지고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우리는 같아야 된다구요. 같아야 되겠지요? 그러기 위해 결의합시다. 우리가 일간 신문사를 만들면 좋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됐습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만 선생님과 하나되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각자 한 백만 원씩만 책임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몇 억원은 어렵지 않게 나올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그 2배를 내가 벌어들이겠습니다. 통일교회 전부가 모은 것의 배 이상을 나 혼자서 벌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1천만원 정도 모은다면 내가 3천만 원을 벌겠다는 거예요. 배 이상, 3배는 모은다는 거예요. 여러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을 발판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준을 무엇으로 세울 것이냐? 신문을 10만 부 이상, 최소한 5만 부 이상을 발행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는 것입니다. 5만 부를 넘기지 못하면 위신도 체면도 안 섭니다. 본부의 위신을 세워야 돼요. 지금 일본 국제승공연합에서 승공보를 발행하는데, 몇 부를 발행하느냐 하면 7만 부에서 8만 부정도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5만 부도 못 넘겨 가지고 거기의 중요한 체제 요원을 빼올 수 있겠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등등의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가 일간지를 만드는 날에는 어떻게 되느냐? 우리에게는 세계적인 조직이 있지요? 내가 워싱턴에도 가 보고 해서 외국 특파원들을 많이 만나 보았지만 그들은 전부 따라지들이예요. 고독단신들이라는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들이 가는 데는 통일교인들이 많지요? 미국에 가도 그렇고, 영국에 가도 그렇고, 불란서, 이태리에 가도 그렇습니다. 가는 곳마다 기반을 다 닦아 놓았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대학을 나온 사람이 없나, 대학원을 나온 학박사들이 없나, 그들을 전부 다 데려오면…. 여러분은 그때 가 봐야 본부의 레테르가 어떻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청파동 본부 마루바닥에 앉아 있을 때는 '언제 뜻이 이루어질까, 오늘도 그 날이요, 그 날도 오늘이구만, 선생님도 저러다 말겠지'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외국에 한번 나가 보면 '아이쿠, 선생님이 이런 줄 몰랐구나? 하는 거예요. 선생님 레테르를 붙여 가지고 편지 한 장만 써 주는 날에는 어디 가서든…. 여러분, 그렇게 한번 살고 싫지 않아요? 그러니 못난 사람들같이 살지 말라구요.

선생님이 앞으로 여러분들을 외국 특파원들과 같은 외국 사람들과 더불어 국제적인 무대에서 훈련시켜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국제 무대에서 훈련시키는데 선교사 이름 가지고는 활동이 제한되어 있어서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 신문사를 중심삼고 아시아의 레테르를 딱 박아 가지고 일본과 합작회사를 만들려고 합니다. 거기다가 중국까지 끌어넣으려고 해요. 그렇게 되면 동아일보는 문제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일본어판, 중국어판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주문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이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여러분이 세계로 출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문사 특파원 패스포오트만 가지고 있으면 어디든지 통하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통해요. 그쯤 되면 그 다음에는 우리 비행기 회사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알겠어 요? 우리가 나라와 나라 사이를 가고 싶을 때 가고, 오고 싶을 때 오고 그래야지. 수속 밟아서 돈 주고 남의 비행기 타고 다닐 게 뭐 있습니까? 우리 비행기 타고 다니지, 그렇지요? 힘을 조금만 더 들이면 되는 거라구요. 그거 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하고 싶습니다」하고 싶어요? 기분이 동하구요? 여편네가 죽더라도 그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기분만 동하면 되는 거라구요. 선생님 말만 들으면 다 되는 것입니다. 기분으로도 다 되어야 행동으로도 되는 거예요. 기분부터 잡치면 안 되는 거예요. 다 망치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신문사 된다고 하면 되는 거예요. 누가 만들든지 만들면 되는 겁니다.

세계경제의 전망과 그 대책

자, 결론을 짓자구요. 결국은,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잘 후원하는 날에는 여러분도 살고 여러분 후손들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건 가외 이야기지만, 앞으로 내가 회사를 만드는 데 있어서 세계적인 거부(巨富)를 끌어들여 가지고 종합주식회사를 만들 것인데, 거기에서 사장이 될 수 있는 인물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의 나라가 세계의 경제권을 지배할 때가 올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병철, 조중훈 같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대한민국 내의 사람들입니다.

그런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을 한국에서 여남은 명 잡고, 일본에서 여남은 명, 중국에서 여남은 명, 미국에서 여남은 명, 구라파에서 여남은 명을 잡아 가지고 세계 종합회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세계 제일 가는 자동차회사인 포드보다 한 열 배쯤 큰 회사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거 할 수 있지요?

일본도 보세요. 지금 후지니 뭐니 하는 회사들이 합병을 하지 않습니까? 왜 그러겠습니까? 세계의 대기업 국가 생산공장 기준에 대비하여 가지고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나라의 재벌에 불과합니다. 앞으로는 한 나라를 중심삼고 그럴 때는 지나간다구요. 국경을 넘어서 서너 나라의 거부들을 움직여서 한 곳에 쓸어 넣어 가지고 세계적인 경제 판도를 닦아야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는 그 판도권에서 놀아날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꿈을 꾸고 있습니다.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재벌들은 몇 년 있으면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지금 일본에서 오야마(大山)상과 이시이(石井)상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도 내가 알고 있습니다. 이놈의 자식들, 그래 가지고는 죽도 못 먹는다구요. 왜놈의 곤조, 한국놈의 고집, 이거 그냥 두면 안 돼요. 이놈의 자식들, 다음에는 중국까지 여기에 끌어들일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의 회사를 세우라고 하는 거예요. 뭐하려고 그렇게 하느냐? 세 나라의 자원을 가져다가 회사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한 집에 살게 하는 거예요. 매일같이 한 집에 사는데 매일 아침 싸움하고서야 만날 수 있나요? 한 집에 사는데 성질이 불 같은 사람에게 잘못하면 콧방 맞는다구요. 콧방 맞게 되면 위신상, 체면상 안 되겠으니 싸우더라도 이불 쓰고 싸우게 되지 별수 있어요? (웃음)

그렇게 훈련시켜 가지고 앞으로 세계 각국으로 판로를 확대시켜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런 일들을 누가 있을 때 해야 되느냐? 선생님이 없을 때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김영휘 협회장이 하자고 하면 말을 듣겠어요? 일본 구보끼 협회장이 하자고 하면 말을 듣겠어요? 안 듣는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죽기 전에, 선생님이 살아 있는 동안에 세계적 경제판도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적 거부들을 끌어들여 생산공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계적 판로를 닦는 것입니다. 그러한 조직 기반을 가진 단체는 세계 경제권을 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불원간에 옵니다. 그때가 올 것을 알고 내가 지금 준비하는 것입니다.

내가 일본 식구들에게, 야마다니 도요다니 하는 회사의 자동차들이 암만 좋다고 해도 그 회사 제품을 쓰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면 일본식구들이 쓰겠어요, 안 쓰겠어요? 안 쓰게 되어 있다구요. 한국의 종합자동차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품질이 일본 제품의 80퍼센트 정도밖에 안 되지만 내가 명령하면 그걸 사 쓰게 되어 있습니다. 안 그러면 내가 불러 세워 놓고 몽둥이로 후려갈기는 것입니다. 이마에 피가 솟도록 들이 밟는 거예요. 그렇게 맞아도 선생님한테 항의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항의하게 되어 있어요, 안 하게 되어 있어요?「안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전통을 못 세우면 통일교회의 후손들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빠른 시일내에 그러한 일들을 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지금 1980년대를 바라보고 준비해 나가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지금 '선생님은 돈이 있으면서도 우리에게 먹을 것도 안 사 주고 굶기고 고생만 시키고, 먹을 것이 있으면 선생님 혼자만 먹는다'고 할지 모릅니다. 물가에 서 있는 학을 보면 먹이를 언제 먹는지 모르게 '꺽꺽꺽' 하고 먹는데, 그래 선생님이 먹는 것을 여러분들이 봤어요? 언제 먹는지 모르게 나오는 거예요. 그 격입니다.

누가 나를 동정하면 나는 불안합니다. 큰일에 동정하면 도리어 불안스럽다는 거예요. 동정받고 싶지 않다구요. 큰 일에 동정하지 말고 세세한 일에 동정하라는 것입니다. 세세한 일이란 이 신문사 일 같은 것입니다. 동정이란 그런 데밖엔 쓸 데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또 '아이구, 신문사 이거 시세 폭락이다' 이럴지 모르지만 시세가 폭락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시세가 폭락 했으면 거기에서 시세를 맞추면 되는 거예요.

그런 때에 대비하여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세계적인 판로를 닦아야 합니다. 종합회사를 만들려면 여러 개의 부서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지원부대로 경제기반이라든가 언론기관을 한데 묶어 가지고 쾅쾅쾅 요리해야 됩니다. 앞으로 미국을 올바른 입장으로 지도해야 될 게 아닙니까? 알겠어요?

그들을 낚아 가지고 콧구멍을 꿰어 끌면 끌려오는 것입니다. 한 콧구멍만 걸리면 코가 째지지만 두 콧구멍을 꿰어서 잡아당기면 꼼짝못하고 끌려 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끌려오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배퉁이까지 걸어 놓으면 '아이고, 나 죽었소, 잡수소' 하고 그냥 끌려오기 마련입니다. 별수 없다는 거예요. 보세요. 영계와 사탄세계를 굴복시킨 문선생이 세계 경제권을 못 말아먹을 것 같아요? 내가 미국에도 돈 벌 데는 다 봐 왔어요. 못 하는 것은 시켜도 믿지 않고 하지 않기 때문에 못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보라구요. 통일교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종교 지도자라고 하더니 요즘엔 뭐 회사를 차리고, 또 집 짓는 데 감독도 하고 뭐가 어떻고 어떻고 …. 말이 많습니다. 청평에서 이번에 일하는 사람들, 젊은 놈들을 데려다가 일을 시킬 때 말이예요. 지방에서 부장 뭐뭐 하는 사람들, 전부 다 오라고 했더니 한 30명이 모였습니다. 잘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한 사흘 끌다가, '지금 바쁜데 공밥 먹으면 죄다'고 해 가지고…. 그렇지 않아요? 공밥 먹으면 죄라구요. 공밥을 먹으면 안 됩니다.

통일교회는 주인을 만드는 곳

그래 가지고 선생님이 청평에서 그들에게 '청평으로 오라'고 하니까, '그렇잖아도 한번쯤 가보고 싶었는데, 아이고, 좋아라. 으이구 좋다'고들 하면서 모였습니다. 그래서 '잘 왔다, 이 녀석들아' 해 가지고 우선 먼저 점심밥을 먹여 놓고는 훈시를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일을 할 거야, 안 할 거야? 해 가지고 꼭대기에서부터 책임량을 딱 정해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옛날에 그런 일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잘 압니다. 분깃을 정해 주는 데도 비슷비슷하게 정해 줘야 그저 바둥바둥 서로 뒤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하지, 워낙 차이가 나면 안 되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그들이 척 보니까 열심히 해야 다른 사람과 보조를 맞추겠거든요. 어쩌면 그렇게 잘 배치했는지, 45일 하다 보니까 몇 시간 더 해야 될 것까지 막 해치우더라는 거예요. 나도 그런 데는 놀랬구만요. 그런 것도 다 내게 경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구요. (웃음)

그 녀석들이 처음에는 곡괭이질도 할 줄 몰라 가지고 쩔쩔맸어요. 내가 또 곡괭이질을 하는 데는 아주 선생이지요. 흥남 비료공장에서 비료를 파던 사람이니 오죽하겠어요? 그래서 내가 그 젊은 놈들한테 곡괭이질하는 시범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곡괭이를 잡고 들어올릴 때는 힘이 안 들게 들어 가지고 내리칠 때는 반동을 줘서 탄력으로 쳐야 된다고, 시범을 보였어요. (행동으로 하심) 그러고서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해보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어렵지 않게 하거든요. 곡괭이를 한 곳에 열 번을 들이박으면 열 번 다 탕탕 들어가 맞거든요. 말씀만이 아니고 사실이 그러니 안들을 수 있어요? 그래 가지고 '잘 걸려들었다, 파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 못 하면 안 되겠거든요. 남들은 다 파고 내려가니 큰일났다는 거예요. 그러면 밤 12시까지라도 해야지 별수 있어요?

그 다음에 잠을 자는데 새벽 네 시만 되면 꾀꼬리가 웁니다. 네 시만 되면 새소리가 들려 온다구요. 그리고 네시 반만 되면 '짹짹짹' 참새 소리가 들리고 하기 때문에 잠은 다 잔 거라구요. 그러면 내가 쓱 일어나서 다섯시도 되기 전에 기상 명령을 내립니다. 바쁠 때는 이러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출동 명령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피곤해 가지고 눈들이 그저…. 그렇지만 별수 있어요? 또 해야지요. 밤 열두 시까지 일을 하고도 몇 시간 못 잤으니 젊은 놈들이 잠이 모자라거든요. 내가 안다구요. 그렇다고 계속 잘 수 있어요. 안 일어날 때는 내가 들어가서 목덜미를 들이 밟을 텐데…. 내가 가만 안 둔다구요. 여자들도 가만 안 둔다는 거예요.

나를 기성교회 목사처럼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라구요. 알겠어요? 여러분들도 통일교회 교육을 받았으니 기성교회 여자들과 달라야 돼요. 알았으니 틀려야 돼요. 본질적으로 틀려야 된다는 거예요. 차원이 달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무서워서 일을 못 하겠으면 보따리 싸 가지고 가도 괜찮습니다. 갔다가 이 다음에 얻어먹으러 오라고 할 때, 보따리 싸 들고 오겠으면 오고…. 주인 노릇하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주인 만드는 곳이지 얻어먹는 거지 패를 만드는 곳이 아니예요. 그러니 땅을 파라는 것입니다.

내가 저 특별 수련생들이 활동하는 것을 다 보았지만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지방에 내려가서 교육할 때는 욕을 못 했어요. 그런데 한 닷새쯤 지나니까 젊은 놈들이 돼서 '에이 기분이다'고 하며 파는데 참 잘들 파더구만요. 잘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판 4,5일 하게 되면 큰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런 집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8일쯤만 가게 되면 완전히 지을 거라구요. 그때쯤 거기에 한번 가 보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그렇지만 그냥 오면 용서 안 해줄 거예요. 한 보따리 사 가지고 오든가, 와서 팬티와 런닝을 입고 땀을 흘리며 일하든가 둘 중의 하나여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려면 일하는 데에 뭘 하러 와요? 구경하러 올 거예요? 땀 흘리며 일하는 형님 누나들이 있는데 말이예요. 사돈 집에 갈 때도 참외 몇 관이라도 사 가지고 가고, 수박이라도 사 가지고 가는데, 그래 그렇게 땀 흘리며 일하는 곳에 그냥 올 수 있어요?

자, 오고 싶은 사람은 와도 좋다구요, 한 보따리 사 가지고. 그런데 뭘 사올 때는 사람이 40명이니까 40개는 사와야 된다구요. (웃음) 혼자서 힘들면 조합을 만들어 가지고 오면 됩니다. 조합해 가지고 오게 되면 그 중 바쁘지 않은 사람을 잡아 놓고 일을 시킬 수도 있으니까 말예요. 그러면 이제껏 너무 고생한 사람들에게 하루쯤 쉬게도 할 수 있잖아요. 그들을 동정하는 마음이 있거든 그런 조합에 가입해 가지고 후원부대로 와도 좋다고요. 또 안 와도 괜찮습니다. 안 오면 내가 하지, 뭐.

청평수련소는 기성교회 목사들을 위해 지은 집

그 대신 여러분, 유심히 보라는 거예요. 내가 목사들을 위해서 집을 짓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집을 지을 때도 내가 잠을 자지 않고 새벽까지 눈에 불을 켜 놓고 일을 했습니다. 그러지 않았어요? 우리 경기도 수련소는 대한민국을 위해서 지은 것입니다. 정성을 다 들여서 지었어요. 정성을 다 들여서 내가 직접 지도해 가지고 지었다는 거예요.

이러면서 내가 기성교회를 위해, 기성교회 목사들을 위해 일해 나왔습니다.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나왔어요. 우리 통일교단을 원수시하는 이놈들 넥타이를 잡아다가 어떻게라도 하고 싶지만 말입니다. 내가 성격이 급한 사람입니다. 옛날부터 싸움할 때도 남한테 맞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예요. 나한테 대들어 가지고 이긴 녀석이 없어요. 내 코가 한번 터진 날에는 그 녀석의 어머니, 아버지의 코까지 터쳐 놓고 그 다음에 그 녀석의 코피를 터쳐 놓고야 마는 거예요. (웃음) 생명을 걸고 싸움을 하는 거예요. 한 달 동안 싸운 적도 있습니다. (웃음) 내가 성격이 그런 사람이라구요.

그런 생각을 하면 한칼에 날려 버리고 구름 사라진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원수 중의 원수라고요. 전부 다 잡아서 배알을 꺼내 가지고 독수리 밥으로 던져 줘도 시원치 않을 원수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후반기에 들어서 7월을 중심삼고 써야 할 돈을 몽창 잘라 가지고 이 놀음을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지금 빚을 지면서 이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도 뛰라는 거예요.

이제는 우리 통일산업이 신용을 얻었습니다. 어디든지 물건을 가지고 가면 '어서 가져오소' 한다는 거예요. 서울 시내에서 사업하는 사람에게 '통일 산업' 하게 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은행에 가서 '통일산업이 어디 있소' 하고 물어 봐도 대번에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은행으로부터는 절대적인 신용을 얻었거든요. 우리는 뭘 하든지 하는지 마는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말한 대로 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통일산업에서 수표만 떡 끊어주면 어느 은행에서든지 받아 준다는 거예요.

내가 지금 청평 수련소를 짓는데, 이제는 통일교회 위신도 세워야 됩니다. 그래서 목사들 공청회 때는 내가 안 갈 거라구요. 집은 내가 감독해서 짓지만 그 다음에는 잘 안 나타날 거예요. 그 목사들이 언제 모터보우트를 타 보았겠어요? 못 타 봤겠지요? 목사들이 통일교회에서 공청회한다고 해 가지고 귀빈으로 불려 와서 보니까 모터보우트도 타고 '야, 좋긴 좋구나' 할 수 있도록 내가 만들어 주어야 되겠습니다. 빚을 조금 더 지더라도 모터보우트를 더 사야겠어요. 세 대는 더 사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두 대가 있으니까 다섯 대가 되지요. 행차를 하더라도 한 대보다는 다섯 대가 하면 기분이 좋겠지요. 모터보우트 다섯 대가 행렬을 지어 가지고 '와르릉' 하고 가는 것하고, 한 대가 '욍' 하고 가는 것하고 어느 것이 더 좋겠어요? 기분상 어느 것이 더 좋겠어요? 남자들, 어느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와르릉 하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다섯 대가 '와르릉' 하는 것이 한 대가 '욍' 하는 것보다 좋겠지요? 그렇게 행렬을 지어 가지고 기수가 깃발을 딱 들고 청평댐에서부터 저 남이섬까지 한두 번 돌아오면 자동적으로 선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말이예요. 우리 주간종교에는 그 기사를 안 내는 것입니다. 일반 신문사의 기자들이 취재해 가지고 떡 내는 거예요. 신문 기자들도 별수 있어요? 태워 주면 좋아하게 되어 있지요. 그래 가지고 소감담을 써서 전국에 내게 해보고 싶어요, 안 해보고 싶어요? 그러면 목사들이 기분 좋다고 하겠어요, 나쁘다고 하겠어요? 기분 나쁘다고 하면 그런 사람들은 입을 째야 되는 거예요. (웃음) 그렇잖아요? 목사들 가운데는 처음으로 모터보우트를 타 보는 사람도 있을 게 아니예요? 나도 그거 기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나에게는 지금 모터보우트가 있지만 말예요.

선생님이 3년 전에 배를 한 대 만들었는데, 배 만드는 것을 가만히 보니까, 내가 배 만드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눈치코치로 원칙은 안다구요. 배가 앞으로 나가게 되면 수압의 영향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를 생각해 가지고…. 배가 달리게 되면 물을 밀고 나가기 때문에 뒷 부분으로 서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배가 물을 직각으로 밀고 나가기 때문에 빠르지 못해요. 그러나 배의 뒤가 넓으면 물이 많이 받쳐지기 때문에 배가 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 만드는 데를 가만히 보고는 그런 배를 만들어 달라고 하니까, 전부 다 무슨 배냐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무슨 배는 무슨 배야, 이게 진짜 배니, 이런 배를 만들어 주소' 했더니. '여보, 그런 배는 전부 다 싫다고 하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싫다고 하더라도 내게 이렇게 만들어 주소' 해 가지고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 배를 만드는 데 또 얼마만한 걸 만들었느냐 하면 4톤짜리를 만들었어요. 보통 2톤짜리를 만드는데 말예요. 왜 그렇게 만들었느냐? 내가 바쁠 때에는 밤중에도 다녀야 할 텐데 달리다가 뗏목이라도 받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다가 구멍이라도 뚫리게 되면 큰일 이지요.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든든해야 됩니다. 그래서 '얼마나 크게 만들까요? 2톤으로 할까요? 아니면 3톤으로 할까요? 제일 큰 것이 3톤짜리 인데…' 하길래, 3톤짜리는 작으니 4톤짜리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4톤짜리 배를 만들라고 하니, 만드는 사람이 두꺼워서 힘이 들 것 같았는지 '후!'하고 한숨을 쉬더라구요. 그래서 '이 녀석아 돈을 더 주면 될 거 아니냐?'했습니다. (웃음) 그래 가지고 돈을 더 주기로 하고 만드는데, 이게 얼마나 무거운지 네 사람이 쩔쩔매요. 사실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든 배를 띄우려고 보니, 선생님은 100마력짜리 모터를 달려고 생각했는데 25마력짜리 모터를 달아 왔어요. 배는 이만한데 모터는 요만한 것을 달아 왔다는 거예요. (행동으로 하심) 그런 배를 갖다가 띄운다고 하니까, 거기 청평 유원지에 있는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가지고 전부 미쳤다고 하더라구요. (웃음) 내가 즉석에서 창피를 당했구만요. (웃음) 절대 안 간다누만요. 그래서 내가 '그것은 당신네들 생각이다. 배는 갈 것이다. 이놈의 자식들아, 배를 띄워 가지고 가 봐야 알지. 나를 좀 봐라' 해 가지고 배 위로 탔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기분이 나빠 가지고, 당신들, 우리 별장 앞에서 뭐하는 거냐? 왜 우리 땅을 침범해 가지고 이러냐'고들 합디다. 그래서 내가 침범이 뭐냐. 너희들이 기분 나쁘게 생각해서 내 배 띄우는 걸 반대하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 이랬어요. 입씨름까지 했어요.

그래 가지고 '이젠 뭐 갈 것 아니냐, 봐라' 해 가지고 배를 탔는데, 또 거기에 짐도 가득 실었습니다. 짐만 실어도 배 허리가 쑥 들어갔어요. 그런데 거기에 사람이 여섯이나 떡 타고 앉았네. 그러니 구경꾼이 얼마나 많았겠나. (웃음) 그리고 나서 배 스위치를 떡 넣으니까 이게 '우우웅' 이래 가지고 거기 있는 배들이 다 움직였어요. (웃음)

그런 거 보면, 선생님의 감정력(鑑定力)을 알 수 있지요. 선생님의 감정력이 그만큼 예민하다는 것입니다. 처음 배를 대했지만 그래야 된다 이거예요. 이치라는 것은 틀림없는 거예요. 제일 크고 제일 무겁고, 제일 못생긴 배지만 제일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 식이라구요.

작은 것에서부터 충성하라

이번에 또 국산 보우트를 하나 샀습니다. 가만 보니까 잘 나가게 생겼더라구요. 아닌 게 아니라 이게 일제 못지않아요. 배는 잘 달리면 되는 것입니다. 국산품이라고 천대할 게 뭐 있어요? 그것이 속도를 내면 아주,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분 나쁘지 않지 않지 않지…. 이거 몇 번 해야 되나요? 좋다는 말이 되려면 않지를 일곱 번 하면 되는 거라구요. 그렇죠? 좋다는 수가 9수예요, 7수예요?

배를 그렇게 세 대씩이나 만들려면 말이예요. 돈 없이 그냥 되나요? 배가 굉장히 비싸다구요. 여러분, 배를 타고 싶어요, 안 타고 싶어요? 우리 젊은 녀석들, 배 타고 싶지? 청평호수에 가서 뱃놀이 한번 하고 싶지요? 그렇잖아요? 손님 대접하고 남은 음식은 좋은 음식이라도 먹어도 죄가 아닙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때는 우유 못 먹던 사람들, 설사가 나도록 먹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손님 대접하기 위해 좋은 배를 만들었는데 손님들이 타고 나면 그것을 갖다가 팔아먹겠어요? 팔아먹겠어요, 그냥 놔 두겠어요? 놔 둬야지요. 또 그냥 매 놓아야 되겠어요, 써야 되겠어요? 쓴다면 누구를 태우겠어요? 여러분들을 태운다는 것입니다. 좋아요, 나빠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목사들 공청회 하는 바람에 우리 통일교회가 배를 많이 가지게 되었다고 해서 나쁠 게 뭐 있어요? 거기다가 일반 전용 보우트를 아예 여덟 척이나 아홉 척 갖다가 전체 열 세 척쯤 되게 해 놓으면…. 우리가 청평에서 배를 만드는 데도 한 대 두 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제일 많이 만드는 것입니다. 이번에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목사들이 기분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통일교회 교리는 어떻든간에 우선 통일교회가 하는 짓이 나쁘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기분이 좋고 전체에게 좋을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일을 우리가 해야 한다구요. 그래서 그 일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걸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겠느냐?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생각 외의 돈이 들어간다구요. 지금 '윙' 하며 정찰하는 배가 얼마냐면 말예요. 모터보우트만 해서도 100만원짜리가 보통입니다. 알겠어요? 보통 '웽'하고 다니는 모터보우트는 270만원, 200만원, 170만원, 150만원, 이렇게 나가는 것들입니다. 그런 것을 몇 대 사려면, 돈이 들어가겠어요, 안 들어가겠어요?「들어갑니다」 그런데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사기는 사야 할 텐데 돈이 없으면 도둑질해야 되겠어요?「신문 팔아야 됩니다」(웃음) 신문 팔아서 될 게 뭐예요? 몇백 년 팔아도 못 해요.

여기 아주머니들, 선생님에게 일년에 몇 번이나 점심을 대접하고 싶어요? 일년에 몇 끼 정도 선생님에게 대접하고 싫어요? 하루에 한 끼씩 대접하고 싶어요, 안하고 싶어요? 하루 세 끼 다 대접하고 싶지요?「예」 그 3분의 1만 대접하라는 거예요. 3분의 1이면 몇 끼입니까? 365끼지요? 한 끼에 백원은 써야 될 거 아니예요. 그렇지요? 백 원은 써야 될 것 아니예요? 아 선생님이 비싼 점심 좀 먹어 보자요. 비싼 거. 백원은 써야잖아요. 짜장면도 한 그릇에 120원 하지 않느냐 말입니다. 선생님에게 짜장면 대접할래요, 국수 대접할래요? 아니면 냉면? 백원씩은 쳐야 될 것 아니예요.

그렇게 하면 일년에 얼마입니까? 3만6천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3만6천원씩은 모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럼, 통일교인들이 1만 명이면 3억6천만원이 된다구요. 굉장하지요. 우리 신문사가 한 달에 4억원 정도 예상하는데 신문사 정도야 거뜬히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정성을 어떻게 묶어서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지, 선생님에게 돈이 없으니까 못 할 거라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리가 여의도에 1만5천 평 가까이 되는 땅을 샀지만 말이예요. 그 땅을 살 때도 돈이 다 되더라구요. 지금 달러 시세가 올랐기 때문에 그 땅의 현공정가격이 7만원 이상 된다구요. 그러니까 그게 한 10억원 이상 되지요? 그러니 이제 통일교회가 부자 됐다구요. 그렇지요? 아주머니들이 전도 나가서 밥을 굶고는 있지만 말입니다. 그것은 먹기 위해서 굶는 것입니다. 이제 신문사를 다 만들면 옛날에 어려웠던 것 다 탕감지어 버리고, 다 용광로에 녹여 버리고 진짜 잘사는 교회가 될는지 모른다구요.

여러분에게 국물이 생길는지 안 생길는지는 모르지만 선생님이 잘났든 못났든, 협조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없다고 생각해요?「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선생님하고 지내 봤으니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협조할 가치가 있다고 봤다면 협조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큰 것부터 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하라는 것입니다. 큰 것부터 하라고 하면 다 떨어지겠으니까, 떨어지면 안 되겠으니까 전부 가담해서 제일 작은 것부터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제일 작은 것이냐? 자갈밭을 들이 파는 것입니다. (이후는 녹음되어 있지 않음)

[기 도]

아버님, 오늘은 1971년 7월 11일, 이 날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시옵소서. 71과 7월 11일이 맞서는 이 날이오니, 당신의 영광과 자비와 사랑이 온 인류 앞에, 수난의 길을 걸어온 이 민족 앞에, 아직까지 싸우고 있는 모든 자녀들 앞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더욱이 내일은 7차 수련회를 거친 목사들을 선발하여 청평에서 공청회를 시작하는 날이오니 1971년도를 맞이하여 71수에 해당하는 이 날을 넘고 새로운 출발의 날로서 아버지께서 세워 주시옵소서. 가인과 아벨의 탕감의 역사를 엮어 오신 아버지의 소원을 교회와 교회를 중심삼고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반목질시(反目嫉視)하고, 만날래야 만날 수 없었던 그런 자리에서 이제 상봉할 수 있는 인연을 갖추게 하여 주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이 비단 통일교회의 어떠한 연차적인 행사로 끝나는 것이 되지 않기를 저는 바라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그들이 움직이는 곳에 당신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번에 참석하는 그들로 말미암아 한국 교계에 새로운 풍토를 조성하고, 섭리의 뜻을 알지 못하여 잃어버렸던 선민권을 획득하고, 당신이 소망하시는 제3차 이스라엘권의 본연의 자세를 갖추어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거룩한 무리가 한 생명이라도 아버지께서 기뻐하는 가운데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이 저희들의 소원인 것을 당신은 알고 계십니다.

이 시간에도 청평에서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이 쉬지 않고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통일교회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기성교계와 복귀노정에서 섭리를 배반하였던 불쌍한 가인의 역도들을 대신하여 하는 일이오니, 아버지, 실질로 받으시옵소서.

이번 이 일은 오늘 이 통일교단이 민족을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하여, 야곱이 에서 앞에 했듯이, 기성교단 앞에 바치는 하나의 제물의 터전으로 받아 주시옵소서.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날을 기쁘신 날로서 축복하여 주옵고, 이 날을 사랑하는 날로서 아버지께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민족을 사랑하기 전에 종족을 사랑해야 되겠고, 종족을 사랑하기 전에 가정과 개인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의 식구라는 명목을 가지고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이제 겸손한 자세를 갖추어 과거를 다시 반성하고 질식된 이 세계를 바라보면서 손에 손을 잡고, 마음과 마음을 합하여 하늘의 힘찬 용사로서 보조를 맞추어 총진군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낄 때마다 저희들은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여리고성을 향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대하여 아버지께서는 '내가 너희와 같이 있을 것이며, 너희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을 것이니,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버님이 같이 협조하신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강하고 담대하기를 바라시던 그 마음과 같이, 오늘날 통일신도들은 이 때에 있어서 세계를 자기가 담당해야 할 사명의 터전으로 알고, 새로운 깃발을 들고 하늘의 용병들이 되어 원수의 세계를 한손에 무찌르기 위하여 총진군을 결의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백전백승의 결과를 가져오고 말겠다는 신념에 사무친 하늘의 용사들이 되어야 된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다짐할 줄 아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역사에는 언제나 고빗길이 있는 것이요. 굴곡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굴곡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묘미가 있는 것이요, 고비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귀하고 그렇지 못한 가치적 기준의 차이가 설정된다는 것을 생각 하게 되옵니다. 어느 시대나 그 사명을 책임지려는 사람과 그 환경을 기쁨으로 맞으려는 무리가 없게 될 때는 아무리 훌륭한 역사를 지닌 민족도 끝을 보게 된다는 사실을, 아무리 훌륭한 역사를 개척한 선구자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 역사는 지나가 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새로운 역사과정에서 통일교단이 이 땅 위에 존속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인연은 인간의 인연을 따라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높고 귀하신 당신의 인연을 따라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그 깊은 곳에는 당신이 언제나 임재해 계시고, 그 본연의 방향에서는 언제나 당신께서 선두에 서서 지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항상 느끼고, 항상 생각하면서 진지하고 심각한 자신을 가꾸기에 온갖 노력을 다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마음을 헤쳐 놓고 아버지 앞에 사정을 토로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저희의 사정보다도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저희의 애달픔보다 아버지의 애달픔을 염려할 줄 아는 장성한 자녀들이 되어야 될 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삼천리 반도를 긍휼히 보시는 아버지, 끝날에 최후의 결단을 짓기 위하여 저희를 길러 오신 아버지의 수고와 아버지의 소망 앞에 저희가 한낱 희망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희망의 실체가 되어 당신이 염원하시는 소원 앞에 없어서는 안 되는 단 하나의 단체가 되고, 단 하나의 무리가 되기를 아버지께서 바라시듯이 저희들도 바라야 되겠사옵니다.

긍휼하신 아버지시여, 당신께서 저희를 불러내어 이끄신 것은 사망의 자리에 결실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인연 가운데에서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민족을 창건하고,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구도자적인 역할을 맡기기 위함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저희 자신이 진지해야 되고, 진실된 자신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날을 축복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이 어린 자녀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였거든 당신의 권고와 사랑과 보호의 손길이 떠나지 마시옵고, 창달한 자녀로 있거든 무서워할 것 없이 선두에 서서 아버님이 기뻐할 수 있는 기수가 되어 전진의 일로를 다짐할 수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의 인물 중에서 나라를 사랑하지 않고자 했던 사람이 어디 있었으며, 자기 혈족을 저버리고 싶어한 사람이 어디에 있었겠습니까만, 남겨야 할 역사적인 사실이 자기의 민족보다도 자기의 가정보다도 자기 자신보다도 더 큰 자리에 있게 될 때는 그것들을 부정하기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이기를 개의치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오늘 저희들도 그런 결의에 사무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이 아침에 찾아오시어서 저희 각자의 이름을 부르시어 그대들이 바라는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시고, 저희가 바라는 소원보다도 당신의 소원이 비교할 수 없는 끈 가치의 내용을 가졌음을 저희에게 보여 주시고, 저희들이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루의 기쁨이 말년의 평화를 가져올 수 없고, 하루의 나태가 일생의 승리권을 다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부지런해야 되겠습니다. 꾸준해야 되겠습니다. 개척자의 사명을 항시 더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저희의 몸과 마음으로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저희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당신이 분부하신 은사와 더불어 저희들은 지금까지 저희의 생애에 굴곡이 있거든 그것을 평탄하게 만들고, 가는 방향이 엇나갔거든 그것을 곧게 만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필요하옵니다. 저희들은 타락한 인간조상의 후손이기 때문에 최고 완성의 기준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잘 아시는 아버지, 당신이 중심이 되시고, 당신이 선두에 서시어 언제나 저희들을 지도하여 주시옵고, 언제나 저희의 표준이 되시옵소서. 어긋나지 않는 실존체로서 부끄러움의 결과를 갖지 않게끔 항상 중심과 상대적 인연을 잘 갖추고, 본연의 미를 상대적인 입장에서 가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침 여기에 참석하지 못한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전국에 널려서 이 아침에 이곳을 향하여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는 자녀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통일의 승리의 한 날을 위해 자기 일신의 괴로움을 잊어버리는 그들 위에 만복이 깃들게 하시옵소서.

사람들은 평온한 날을 고대하고 있지만, 자기의 편안한 날보다도 아버님을 위하여 애쓰고 수고하는 그 괴로운 노정으로 말미암아 아버님께서 빛될 수 있고 인류 앞에 남겨질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이 조성된다는 것을 아는 자녀들이 있으면, 거기에 당신의 후하신 사랑이 떠나지 마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모인 곳곳마다 당신의 풍족한 은사로써 감싸주시옵고, 내 일의 소명 앞에 부끄럽지 않는 제사장의 책임을 다하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한 시간을 아버지께서 맡아 주시옵고, 일선에 나가 있는 어린 자녀들을 아버지께서 친히 지키시옵소서. 해외에 널려서 싸우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 더욱이 선봉에 서서 한 나라의 생명을 책임지고 달리고 있는 어린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7월 이후에 남아진 모든 행사와 저희들이 새로 시작하는 모든 일들이 아버지의 영광과 아버지의 승리의 결실이 되시어서, 새로운 세계의 문화 창건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주도적인 역할로 나타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의 일체를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누구나 다 좋은 세상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좋은 사회를 바라는 것은 물론이고, 좋은 사람으로서 자기의 일생을 살아 가지고 그 결과로 인하여 좋은 사회 앞에 좋은 인격자로 추앙받기를 원하는 것이 누구나의 바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추앙받는 사람

어떤 지방에 가서 그 지방을 두고 볼 때, 그 지방에서 추앙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지방에서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역사를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추앙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한 집안을 두고 보더라도 그 집안에 아버지나 장남, 혹은 그 누가 추앙을 받고 있다고 할 때, 그 사람은 반드시 가정을 대표해서 전체가 갖지 못한 역사를 지닌 것입니다. 전체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고, 전체가 책임질 수 없는 일을 책임져 나오는 한, 그 사람은 반드시 그 가정의 추앙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한 나라를 두고 보더라도 그 나라에서 정신적인 지주로 추앙받는 애국자가 있다고 하면, 그 애국자는 일국의 역사가 지나온 과정에서 그 누구도 지니지 못한 것을 지녔고 거치지 못한 역경을 거쳤다는 것입니다. 그 민족으로서 자랑할 수 있는 가치의 내용을 남긴 그 사실이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은 그 나라의 추앙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개인에서부터 가정이라든가, 혹은 사회와 국가를 넘어선 세계의 역사는 선의 역사를 향하여 발전해 나간다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해 볼 때, 그 발전도상에 있는 역사의 과정에는 세계를 위하여 수많은 인류가 호응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어느 한 분야뿐만이 아니라 각 분야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터전을 넓혀 나올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창건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에서 책임을 진 사람들이 자기의 민족보다도 세계에 새로운 무엇을 남기기 위해 수난의 길을 극복해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그 극복한 내용이 문화 창건에 언어서는 안 될 하나의 표준이 되고, 그 표준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환경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게 될 때는, 그렇게 남아질 수 있는 동기를 이루고 나왔던 그 사람은 세계가 승리적인 세계를 다짐하고, 그러한 세계를 원하면 원할수록 추앙받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날 역사의 흐름 가운데에서 세계를 새로운 세계, 인류가 바라는 소망의 세계로 접근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목적 달성을 위하여 누가 보든 안 보든 노력하게 될 때는, 그 사람들은 인류 앞에 추앙의 대상이 아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학자라든가 사상가, 혹은 종교가 등, 그 분야는 다를지라도 세계적인 내용을 내포한 그러한 개척자들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한 개척자들의 담당 분야가 복잡하고 맡겨진 사명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되는 수난의 길이 동반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당연한 일을 마지못해서 했다면, 그 사람은 인류 앞에 보다 높은 소망을 교시할 수 있는 사람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큰 수난길이 있더라도 그 수난길을 생명을 다하여 가고, 자기의 힘이 부족하여 정신적으로나 생활적으로 투입시키고 싶었던 여력을 다하지 못하여 한을 남기고 간 사람이 있다면, 즉 비참하고 어느누구도 동정해 주지 않는 그런 자리에서도 몸부림치며 수난길에서도 진일보를 다짐하며 노력하다 쓰러져 간 사람이 있다면, 그 당대에는 그 사람의 실적이 드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추구한 사상은 미래에 남아져서 개척자의 승리의 터전을 이어 나오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개척자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하는 사람

이렇게 생각할 때, 그런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못 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려도 비참한 눈물을 흘려야 하고, 몸부림을 치더라도 비참한 몸부림을 쳐야 할 입장이로되 그것으로서 끝날 수 없는 자기의 일생이면 일생의 운명길을 지내야 하는 것이요, 역사적인 운명길이 있으면 그 운명길과 더불어 같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기뻐할 수 있는 날을 맞지 못함과 더불어 역사적인 운명도 기쁠 수 있는 내적인 결정을 볼 수 없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는 미래를 대신하여 수난길에 부딪치는 것입니다.

자기 때문에 수난길에 부딪쳤지만 그 수난의 환경은 역사적인 수난이나 개인적인 수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환경을 넘어설 수 있는 정신적인 힘, 남아진 여력이 거기에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기필코 그 여력과 더불어, 그 뿌리와 더불어 새로운 역사적 분야로 남길 수 있는 기원이 거기에 깃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현실의 만족을 바라는 사람은 많을지 모르지만, 미래의 만족을 위하여 자기의 생애를 바쳐 몸부림치는 사람은 극히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이 우리의 실상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 개체를 두고 봐도 마찬가지인지만, 오늘날 세계 전역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런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또 역사과정에서도 그런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요,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새로운 세계와 소망의 천국을 이어받기 위하여 노력하는 개척자가 있다 할진대, 그 개척자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세계를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또한 그 개척자는 자기와 더불어 맹세하고 나선 무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현실의 안락을 취하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현실과 미래를 비교해 가지고 현실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보다도 현실의 가치를 희생시켜 가지고 미래의 가치를 추구하기에 투신을 하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진대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하더라도 그에게는 패자의 서러움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설령 당장에는 자기 일신이 쓰러지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쓰러지는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쓰러짐이 도리어 새로운 재출발을 촉구시키는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의 생활주변에서 체험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선 사람이 아니고는 개척자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개척자는 현실에 국한된 그런 가치를 다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을 초월하여 미래의 가치를 다짐할 수 있는 신념과 우주관과 인생관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즉, 현실의 생활권내에서 감미로운 그 무엇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현실을 터전으로 하여 내일의 가치를 심어 놓기 위한 싸움의 길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해 나가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개척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을 통하여, 혹은 시대적 현상이나 우리 생활주변의 사정을 통하여 미루어 볼 때, 이것은 당연한 사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 있는 개척자, 그러한 사명을 촉구받고 있는 개척자, 그런 개척자를 이 시대는 원하지 않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제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환영하지 않는 것 같지만, 겉으로는 환영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내심으로는 환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있다면 현실이 그를 환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과거에 그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수난길에서 쓰러져 영계에 간 역사시대의 선조들이 있다 할진대는 그들이 이런 사람의 동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상에 있어서는 그런 사람의 친구가 되지 못하고, 전후좌우에서 동역자가 되지 못했을망정, 또 현재에는 서로 합하는 길을 못 갔을지라도 그러한 사명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동지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는 사람은 현재의 동지뿐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언제나 동지로 남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러냐? 역사는 현재에 정지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을 수 있는 선의 목적, 최고의 승리의 터전, 최고의 안식권을 향하여 발전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발전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필요로 하는 사람은 현재의 자기 자신의 안일을 추구하는 사람보다도, 미래의 안일권을 위하여 현재에 자기의 무한한 가치를 투입시키는 사람입니다. 역사는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의 방향은 오늘의 환경이 어지럽더라도 그 어지러운 환경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사람 앞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살아 있는 역사적인 그 무엇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역사는 그런 사람에게 접근해 들어갈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를 남기기 위해 수고하다가 영계에 간 선조들이 있다면, 그 선조들도 영계에서 그 사람에게 접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부딪쳐 오는 시련을 감수하라

미래를 향한 뜻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즉 미래의 소망을 향하여 자기 스스로 출발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을 갖춘 사람이 있다면,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를 분석하면서 미래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현재에 있어서 그 누구도 극복하지 못할 수난길에서 개척자의 사명을 한 사람이 있다면 역사는 반드시 그런 사람을 추구할 것입니다. 역사는 현재에 있어서 미래를 향하여 개척하고자 하는 사람을 추구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지 그 사람에게 지도를 받고 싶어할 것이며, 그 사람의 모든 면을 상속받고 싶어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을 따라 미래를 향한 길에 보조를 맞추려고 온갖 정성을 다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비록 개척자로서 서 있는 자리가 외롭다고 할지라도 외로운 자리가 아닙니다. 전후 사방에서 필요로 하는 요건을 중심삼고 볼 때, 개척자의 전생애는 외롭고 비참했을는지 모르지만, 미래를 대신한 내용적인 면에 있어서는 만민이 그를 추앙할 것입니다. 또한 개척자의 자리는 참을 추구하고, 보다 나을 수 있는 고차적인 평화와 행복의 세계를 바라는 인류 앞에 있어서는 결코 고립된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그가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환경에 부딪치는 어려움을 보다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동함으로 말미암아 역사는 동하고, 내가 정함으로 말미암아 역사는 정한다. 내가 현재의 입장에서 확고부동한 실체로서 중심의 입장을 대신한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승리권은 내 앞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현실적인 역사의 터전 위에 중심의 가치를 다짐함과 동시에 변하지 않는 철두철미한 사상을 중심삼고 확고부동한 진로를 향하여 일보 일보 전진한다'라고 하면서 수난길과 대결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런 사람은 수난길을 가더라도 패자의 서러움을 맛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승리와 자기 개인의 희망의 가치를 보다 잘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다 간 사람일수록 역사적인 인물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사회에서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나는 세계를 위한 개척자다'라고 하며 나선 사람이 있느냐? 그런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역사의 수난길을 도피하여 역사의 개척자가 되겠다고 다짐한다면 그는 역사 앞에 규탄받아야 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적인 개척자가 되고, 또 역사 앞에 새로운 개척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수난길을 자기의 당연한 운명길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비참한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데 있어서 그것을 자기의 타고난 팔자로 생각하고, 그것을 못 하게 될 때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하며 그것을 당연지사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대해 불평할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죄에 해당하는 벌을 받아야 됩니다. 백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으면 백만큼의 벌을 받아야 되는 것이요, 천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으면 천만큼의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천에 해당하는 죄를 짓고도 천에 해당하는 벌을 받지 않는 자리에 서게 될 때, '나는 천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는데, 왜 천의 벌을 주지 않느냐'고 도리어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벌을 받더라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천에 해당하는 죄를 짓고도 백만큼의 벌을 받는 것이 소원이요, 열만큼의 벌을 받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죄와 더불어서 끝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 관계되었던 죄의 양은 그 사람에게서 청산되지 못하고 그의 후손이나 그의 민족이 청산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난길을 감수하고 나가야 할 개척자의 사명을 짊어지고 나가는 데에 있어서, 자기는 이만큼의 수난을 바라보고 있는데 일시에 큰 수난이 몰아쳤다고 합시다. 여기에서 '어찌하여 내 입장과는 상극적인 입장의 수난이 나에게 부딪쳐 오느냐'라고 하면서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은 아무리 강한 신념을 가진 개척자라고 자처하더라도 거기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입장이 세계적인 입장은 못 되더라도, 세계적인 시련이 부딪쳐 올 때는 그것을 감수할 수 있고, 그 시련을 '오늘에 있어서 내가 진지하게 감수해 나가야 할 것이요, 오늘날 내 생활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필연적인 운명이다' 이렇게 알고 처음부터 끝까지 감수하고, 소화시키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하여 부딪쳐 오는 시련을 분석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 앞에 천의 수난길이 왔다면 그것은 자기를 파탄시키는 동기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재건할 수 있고, 내일에 있어서 보다 넓은 터전을 이어받을 수 있는 상속자가 되는 데 필요한 환경으로 수습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통일식구들은 새로운 역사를 창건해야 하고, 내일의 천국을 창건해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만민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미래의 희망의 세계에 대해서 암담한 벽에 부딪쳐 있는 이 때에, 동서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적마다, 이제는 더 나갈 수 없는 단말마적인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이 땅에서 오늘날의 통일신도들은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개척자의 사명을 다짐하고 나서겠다는 신념과 결의에 사무칠 뿐만 아니라, 그러한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진군하는 무리가 되어야 된다는 것은 두말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새 역사의 개척자가 되어야 할 통일교인들

이러한 입장에 선 젊은 청년이면 청년, 젊은 처녀면 처녀, 혹은 장년이면 장년, 노인이면 노인 등 그 아무개가 오늘날의 시대에 엇갈린 환경을 자연적인 환경으로 기필코 맞이해야 되는데 이것을 타개해 나가는 데 있어서 모순이나 상충을 느끼는 무리가 되어 가지고는 하나님께서 이들을 중심삼고 미래의 천국을 창건하는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 저끄러져 있는 환경을 직시하면서 내일의 승리의 결정타를 가할 수 있는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의 모습을 응시하면서 비겁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자기 자신을 책하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일러주는 그 표준에는 역사적인 인연이 접하여 있고, 미래를 이어받을 수 있는 현실적인 승리의 터전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자손만대, 혹은 천추만대의 우리 후손들이 쌍수를 들어 길이 찬양할 수 있는 승리의 요건이 바로 오늘의 현실에서, 내 발등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일거수 일투족이, 환경의 모든 것이 그것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알고, 역사와 더불어 보조를 맞추고, 시대와 더불어 보조를 맞추고, 미래와 더불어 보조를 맞추기 위해 변하지 않는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를 잡고 올라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거꾸로 깔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를 밀어내는 사람이 있어서 밀려난다고 하더라도 암흑의 세계가 그를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광명의 세계가 그를 환영하게 할 것입니다. 밀리고 밟히는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자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밟히지 않고 이루어야 할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새로운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출발은 핍박과 엇갈리는 환경 속에서 이어져 나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적 사실에서, 혹은 오늘날의 시대적 환경에서 잘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한 동네를 두고 볼 때에도 그 동네에서 어떤 집은 흥하고, 어떤 집은 망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흥하는 집을 보면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하여 아이들까지도 미래의 의욕에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난에 부대끼는 그런 환경에서도 그 수난길을 극복하겠다는 희망이 흘러 넘치게 되 면그 가정은 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서 있던 터전에서 희망이 사라져 버리고, 미래의 소망이 사라져 버리고, 현실적 자극과 감정마저 상실하여 스스로 자신들을 수습하지 못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그 집은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지 말라고 해도 망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는 잘 살 때의 생활 그 이상을 원하지 그 이하의 것은 원치 않는다'라는 입장에 서게 될 때, 그 이하의 입장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이상의 입장이 자기들 앞에 부여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이하의 입장을 원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그 환경은 점점 급강하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흥하는 가정을 보면, 그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일을 하다가 지치면 그 아들이 이어받아서 하고, 또다시 아들이 지치면 딸과 어머니가 이어받아서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열만큼의 고생길에서 뜻을 못 이루었으면 아들이 백만큼의 고생길을 가야 되겠다, 이것이 자기의 의무요, 책임이라는 이런 사명감에 불타는 마음이 있다면 그 가정은 진일보 발전하는 가문으로 나타날 것이요, 그렇지 못하게 될 때는, 즉 아버지보다 자식이 못하게 될 때는 그 가문은 망하지 말라고 해도 망하는 것입니다.

한 가정이 그렇듯이 한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나라에 부딪쳐 오는 시련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시련아 와라! 우리는 기필코 너를 넘어 내일의 세계에 있어서 새로운 희망의 천국을, 소망의 나라를 창건할 것이다'라고 다짐하면서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거기에 비례되는 수난길이 가로 놓여 있더라도 그것을 돌파하고, 전진의 행보에서 멈추지 않기 위한 신념을 갖고 결속에 결속을 다짐하며 벅찬 내일의 소망의 일념 가운데 사로잡혀 있는 민족이 있다 할진대, 그 민족은 역사상에 새로운 기수로 등장하기에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현실 생활권내에 있어서 내일의 소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입장을 유지하기에 급급하고, 그것이 결여될 수 있는 일면을 보게 되면 낙망하며, 스스로를 자책할 수 있는 입장에 선 민족이 있다고 할진대, 그 민족은 아무리 수가 많다 하더라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망하지 말래도 망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금후의 통일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통일교회가 문제인 것이요. 지금까지의 나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나 자신이 문제인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개척자가 가야 할 길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떠한 길을 거쳐 갈 것이냐, 또 통일교회를 주도하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길로 데려가고 싶으실 것이냐? 이렇게 묻게 될 때, 하나님은 자녀들을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자녀들을 데리고 돌아서 가고 싶다고 대답하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직행으로 데리고 가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수난의 요인을 연장시켜서는 안 되겠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 아닙니까? 단축에 단축을 시키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 아닙니까? 이렇게 묻게 된다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나는 직행시키고 싶다'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행시키고 싶다고 말씀하실 때는 보통의 입장에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자리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심각한 자리라는 것은 온갖 시련의 환경을 극복하고 뚫고 나갈 수 있는 결의를 필요로 하는 자리입니다. 그런 심각한 마음을 가지고 선두에 선 입장에서 답변하실 하나님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지루한 복귀노정을 알고 책임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어떠한 길을 택할 것이냐? 십년 동안 지지리 고생하는 것보다는 생명을 걸고 라도 십일 동안에 넘어갈 수 있으면 그 길을 택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그러한 사명을 감당해야 할 아들의 입장에 선 우리들이 그 길을 가는 것은 응당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밖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통일교단이 해야 할 대답은 무엇이냐? 나 자신은 그렇게 대답하지만 통일교단 자체는 어떻게 대답해야 될 것이냐? 자기들을 지도하는 스승이 있다면 '스승이여 ! 여기에 임하시옵소서. 당신의 원함이 그러하거늘 우리의 원함도 그러합니다. 벌써부터 그러기를 바라고 준비했던 바입니다' 라고 하면서 그 날이 오기를 일치단결하여 바랄 수 있어야 합니다. 총사령 관이 명령할 최후의 통첩을 고대하고, 총진격할 수 있는 신념에 사무쳐 결속된 무리가 있으면 그 무리는 현실을 위해 결속된 무리가 아닙니다. 현실을 위해 규합한 무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하여 결속한 무리입니다. 그런 모습이 갖추어져서 환경을 극복하고 남을 수 있는 입장에 섰다고 할진대, 그 무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개척자는 자기가 당하는 그 일에 관심이 없어 가지고는 그 일을 완전히 정복할 수 없습니다. 개척자는 신념을 가지고, 눈앞에 나타나는 그 일이 처음이요, 부딪치는 것도 처음 부딪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해서 백번 천번 주의하는 마음으로 안팎을 헤아리고, 그것을 연구하고 분석 비판해서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되겠다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그 어떤 환경을 빨리 해결해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쉬운 길을 거쳐서 그 일을 감당하겠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아예 개척자가 될 수 없습니다. 개척자의 반열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개척자라는 것은 그 이름 자체로부터, 움직이는 그 실체로부터, 남아진 생애로부터 가려가야 할 역사적 운명이 전부 비참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안식의 터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역적으로 천국이 이루어질 때까지, 또한 그 분야가 한계선에 도달할 때까지는 미지의 분야와 미급한 분야를 타개할 수 있는 개척자의 입장에 서서 내일의 소망에 불탈 수 있는 현실적 자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현실의 부대낌 가운데에서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니라 남아져서 상속의 인연을 넓힐 수 있는 터전을 가꾸어 가야만 개척자로서 소망하던 승리의 때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지, 그러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척자가 가야 할 길은 언제나 모험입니다. 언제나 수난길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그 모험이라는 것이 자기 환경의 어떤 사건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전후좌우에서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에 부대끼는 그런 모험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단 하나의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재간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노력과 투쟁밖에 없습니다. 노력과 투쟁을 해 가지고 그 다음에 비판의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지식의 기준을 먼저 세우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투쟁의 결과에 의해서 지식의 기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합니다.

인류가 추앙할 수 있는 것들은 모험을 통해 얻어진 것들

역사과정에 있어서 새로운 사상이나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게 될 때, 그것이 인류가 추앙할 수 있는 보다 가치적인 내용이라고 하면, 그것은 새로운 것으로서 역사상에 없었던 모험을 극복하고 나서 출발한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 복잡다단하고 사악된 환경에서, 생사의 권을 가려 낼 수 없는 운명의 판도를 이루어 나오는 이 무대에 있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일상 생활 가운데 따라오는 그런 신앙의 태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상습적인 생활에서 그리고 있는 소망의 일념을 이루어 보겠다는 그런 미미한 결의를 가진 사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일의 약속의 터전을 공고히 한 자리에서 이어받게 하기 위한 보다 고차적인 새로운 사상이요, 새로운 이념입니다. 때문에 여러분은 여러분이 처한 직장이면 직장, 혹은 천태만상의 환경에서 그 사상을 중심삼고 새로운 모험과 극복의 노력을 통하여 체험한 것을 가려내어 그것을 기록으로 고이 남길 수 있는 대표자의 사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직장에 있으면 '통일신자가 있는 직장은 이래야 된다'고 하며… 과거와는 달라야 됩니다. 이래야 된다는 그 자체가 모험인 것입니다. 열, 백, 천의 동지들이 있다고 할 때, 그 동지들이 맨 처음에는 자기들과 같지 않다고 규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과 같아 가지고는 내일의 터전을 개척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달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같아 가지고는 아무 것도 안 됩니다. 거기서는 새로운 분야가 개척될 수 없습니다.

달라야 한다면 어떻게 달라야 하느냐? 비슷하게 달라 가지고는 안 됩니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차원을 달리한 입장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면 다를수록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름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는 시련이 따른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모험이 언제나 같이하는 것입니다. 자기 입술이 하나 잘못하게 되면 전부가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이 잘하여 환경은 세계적인 내용을 갖추더라도 개인 한두 사람밖에는 알아주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갖춘 가치는 천주에 드높이 찬양하고 선포할 수 있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나타난 상대세계에서는 한두 사람밖에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봄날이 되어 새로이 푸른 잎을 내는 모든 나무들은, 일년이면 일년을 중심삼고 갖가지 수난을 겪은 후에 가을절기를 맞이해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갖추어진 열매가 그 자체의 사실을 증거하는 것과 같이 결과는 끝에 가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봄에 푸르게 출발했으면 여름에도 푸르러야 되고, 가을까지도 자기의 본색이 열매를 위해서 언제나 그러했다는 가치의 내용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지 않아서 열매가 떨어지게 될 때는 도리어 열매가 맺히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것입니다. 열매가 맺혀 가지고 자라다가 떨어지게 되면 도리어 그 나무 자체에 손해를 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 결실보다는 차라리 잎이 나을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개척자가 가는 길에는 언제나 모험이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라도 까딱 잘못 행동하게 되면 그 인격이 일시에 파탄되어 버립니다. 그렇지만 일시에 파탄될 수 있는 행동도 단행할 수 있는 자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현재에는 파탄될 수 있는 행동이라 하더라도,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은 소망의 세계의 실상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어떤 하나의 중심된 사건을 남기고 싶은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이 제시하는 그런 조건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위신이나 인격이나 체면은 문제가 아닙니다. 현실에서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그 하나의 행동을 현실 전체가 받고 있는 것보다 크고 보다 가치적인 내용으로, 보다 귀한 것으로 높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개척자로서의 상속을 미래에 남겨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진정한 개척자

내가 어제 밤에 그렇게 잠을 잤고 밥도 그렇게 해먹고 지냈으니, 오늘도 그렇게 해야 되고, 또 내일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전체가 어제라는 기준을 중심삼고 측정했다가는 전진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기준을 중심삼고 측정했다가는 전진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척자는 항상 자기 생명을 위험의 첨단에 내세우는 것은 물론이지만, 자기의 인생관이나 우주관 전체를 보따리 싸서 걸어 놓고 예스냐, 노우냐 하는 이자택일을 결정지어야 하는 순간에 있는 것입니다. 개척자는 과거에는 이러했다는 공인된 것을 취합하지 않고는 보다 가치 있는 전진적인 개척의 무대를 개척해 낼 수 없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 가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 백 퍼센트 매장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 매장되는 일이 참이라면, 도리어 세상을 매장시킬 수 있는 역사시대의 새로운 전통의 기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천년 후에 그 일이 인류 앞에 필요한 일로 등장하게 되면, 천년 역사의 승리의 터전을 맞는 그 날에 가서 천년 전 비운에 사라진 그 불쌍한 운명의 개척자는, 천년 역사의 영광을 대신하여 찬양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개척자가 가는 길은 언제나 모험의 길입니다. 그 모험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갖추어 온 인격기준을 중심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가서든지 미래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다 높은 가치의 내용을 추구해 나가는 길이지, 현재의 입장에서의 가치를 보고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이렇게 가야 한다고 나왔을 때는 가는 것입니다. 망해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해야 될 일은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직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이 지구를 몽땅 붙안고 뒤넘이쳐 가지고 갖겠다는 사람, 지구의 중심을 꿰어 가지고 그 양끝을 쥐고 늘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지구의 주인입니다. 그런 사람이 천국 간다 하면 지구의 구멍을 뚫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놀음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보다 가치 있는 개척자는 어떤 사람이냐? 현실에서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 입니다. 현실보다도 미래에 무한한 가치를 두고 거기에 전심을 쏟고, 거기에 생명을 걸어놓고 무한히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길이 있어도 그것을 응당한 일로서 받아들이기를 결의한 사람들만이 개척자로서 역사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자격자입니다. 현실기준과 더불어 미래를 남기겠다는 사람은 개척자가 될 수 없습니다. 개척자는 언제나 현실을 부정하고 또 부정하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 나온 길이 그러하며, 앞으로도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그러할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세계적인 개척자의 사명을 감당할 자신이 있느냐 할 때, 나는 그럴 자신이 있습니다. 모험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통일교회를 사랑하고 이끌고 가야 할 책임이 내게 있지만, 이것을 미워하고 저버리고서 더 빠른 길이 있다면, 미워하고 저버릴 수 있는 그런 놀음도 해야 됩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안 되게 될 때는 무자비하게 끊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과연 그럴 수 있느냐? 자문해 보라는 것입니다.

아무개의 남편, 아무개의 아내, 혹은 아무개의 아버지로서는, 하나님께서 개척자들을 통하여 창건되기를 바라는 이상의 터전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척자의 힘과 권위를 이어받고 남기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나서야 합니다. 부정뿐만이 아니라 파탄시키고 나서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파탄시키고 부정하고 나설 때에는 그 이상의 가치를 보고 느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그러는 사람은 바보요 미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틀림없이 '이것이다' 하는 가치적인 내용을 내가 알고 있고, 하나님도 틀림없다고 알고 있고, 40억 인류도 틀림없다고 알고 있으면 그 가치가 현재의 가치적인 내용을 능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라고 내모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개척의 노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소화하고 극복할 수 있어야

오늘날의 통일교회는 개척의 교회입니다. 세상의 외적인 그 무엇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인들은 황무지와 같은 정신세계의 개척자요, 선구자입니다. 여기에는 미지의 사연들이 너무나 많이 복합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과 관계를 맺을래야 맺을 수 없고, 인연의 사실로서 제시할 수 없는 내용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개척자라고 자신하고 나서면 나설수록 그 많은 내용들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일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고, 두 가지 일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고, 세 가지의 일, 천만 가지의 일이 우리를 찾아올 것입니다. 그럴 때에 이것도 내가 해야겠고, 이것도 내가 바라던 것이며, 이것도 내가 필요로 하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도량을 내 스스로가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내 성격에 맞으니 되고, 이것은 맞지 않으니 안 된다고 하기 전에 모든 것을 다 삼켜 소화시키려고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좋은 것만을 좋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도 좋게 만들기 위한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다방면으로 고차원적인 입장에 서서 전체적인 면을 소화하고 극복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분야에서 이러한 작전 계획을 세워서 했는데 그 작전이 적용되지 않게 될 때에는 반대의 분야를 향해 급변하여 돌이키는 작전을 세울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금을 써야 하는데 금이 없으면 구리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혹은 놋쇠를 대신해 쓸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금과 구리와 놋쇠는 다르다. 영영 같지 않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그런 것이라도 연결시켜 가지고 극복해야 됩니다. '너와 나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이 맺어져 있다'고 할 수 있어야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그 길을 가는 데 직행할 수 있는 길을 닦아야 합니다. 엇갈려 가거나 왔다갔다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직행하는 걸 원하십니다. 그러나 직행하자면 두 세계의 죽음을 극복해야 합니다. 사탄세계의 죽음을 극복해야 하고, 하늘세계의 죽음을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두 세계의 죽음길을 극복하기 위해 나왔던 것입니다. 즉, 육적 세계와 영적 세계를 극복하기 위해 싸워 나온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이며, 육적인 세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세계의 죽음길을 극복하고 비로소 승리의 한 나라와 승리의 한 전통을 이 땅 위에 세우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입니다.

통일교회를 책임질 사람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앞으로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내에 그런 통일교인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통일교인이나 대한민국 내의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대한민국 내에서 벌어지는 비참사, 혹은 극복하기 어려운 수난길을 자기가 스스로 자신있게 처리하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는 세계적인 입장으로 출발할 수 있는 길이 약속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의 청년들 가운데 통일교회를 책임질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인가? 통일교회의 청년들 가운데는 배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따라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겠다' 할 때 그 단체는 끝장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배우는 목적은 어디에 있으며, 따라다니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자기가 잘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가 그것이 안 되는 날에는 도망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배우는 목적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것이고, 따라가는 목적도 세계에까지 가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목적이 아니겠어요?

따라가는 사람은 개척자가 아닙니다. 개척자라는 것은 선두에 선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이어받아 가지고 숭상하면서 가는 사람은 개척자가 아닙니다. 그렇지요? 역사가 없는 자리에서 역사를 창건해 나가는 사람이 개척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동기를 지니고 간다고 하는 사람은 개척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따라가는 사람이요, 본받고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따라가는 사람이 될 것이냐, 개척자가 될 것이냐? 여러분은 뭣이 될래요? 여기 여자들, 나이 많은 할머니들, 따라가는 사람이 될래요, 개척자가 될래요? 아들딸을 낳게 되면 개척자가 될 수 있는 아들딸을 낳을래요, 따라가는 아들딸을 낳을래요?

개척자는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방향을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 자체가 역사요, 방향입니다. 자기가 그릇된 역사의 인연에 결부되게 되면 그 자신은 자연적으로 파탄되는 것이요, 방향이 잘못되어도 그 자신은 산산조각이 나서 그 생명의 밑바탕도 건질 수 없을 만큼 파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척자에게 신앙길이 있다면 그 신앙길은 절대적인 신앙길일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살 길을 찾기 위해 검불도 구원의 줄로 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개척자에게는 역사도 없고, 무엇을 본받을 것도 없습니다. 자기 자체가 역사요, 실체이며, 자기 자체가 승패의 결정을 마련해야 할 입장이니 얼마나 심각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개척자에게는 그런 길이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이제 그만큼 했으면 세상적으로 볼 때, 성공한 사람이라고 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해야 할 보다 높은 차원의 일이 있다는 거예요. 과거와 현재에 개척자의 사명을 다했으면 미래에도 남아질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개척자의 권위와 그 가치를 심어 놓고 가야 됩니다. 이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니냐는 거예요. 심어 놓으려면 개척해서 씨를 뿌려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실에 있어서 여러분 중에도 '통일교회가 뜻은 그렇지 않은데 왜 이 모양일까'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개척자라는 말도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입니다. 통일교회가 이렇게 된 것은 개척자의 사명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평하는 입을 가진 사람들은 개척자의 역사에 있어서 심판을 받아야 할 패들입니다. 얻어먹기 위해서 주둥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은 개척자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자기 일신의 행복을 위해서 끌려가는 패들은 열매가 필요할 때에는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러분의 처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재료를 수습하고 연구 분석하는 태도

여러분은 개척자입니다.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거예요. 밥을 먹어도 다른 것입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밥을 빨리 먹어? 하겠지만 그 사정은 누구도 모르는 거예요. 개척자는 언제든지 바쁩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천성을 그렇게 타고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연구를 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를 실험하는 사람과 열 가지를 실험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연구를 더 빨리 끝내겠습니까? 열 가지를 실험하는 사람이 빨리 끝낼 것입니다. 그것은 만사를 그 일과 관계맺어 가지고 행여나 거기에 자기가 요구하는 길이 없나 하고 연구를 하기 때문입니다. 연구하는 사람은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산에 올라가나, 들에 나가나, 자나깨나 항시 모험과 더불어 투쟁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지고 이 모험을 일시에 끌어내 가지고 밟아 넘어갈 수 있는 그 체제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사연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도상에서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그 길을 가려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고맙다는 것을 여러분은 느껴 봐야 합니다.

안절부절하면서 전진도 못 하고, 후퇴도 못 하고, 옆으로 빠져 나갈 수도 없고, 죽자니 죽을 수도 없고, 살자니 살 길도 없지만 가야 할 운명을 알고 몸부림칠 때에 상징적인 교시의 내용이 있어서 실체를 구원해 낼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상징은 실체보다 더 놀랍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계시를 주시는 것입니다.

마이너스 백을 중심삼아 이것을 상징적으로 해결해 놓고, 실체로 백의 일을 하게 되면 이백을 차지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내용을 바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상징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통하는 사람은 시일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점점 모르게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배가의 승리권을 가려 나갈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영적인 세계의 개척 무대를 넓히기 위해서는 그 길을 찾아야 되곤 상속받기 위한 환경에 완전히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개척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한 눈을 바라볼 때, 너는 내가 이 길을 찾아 나오는데 있어서 몇 가지나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바라보고 찾았느냐? 하고, 또 손을 볼 때도 손가락 너는 나한테 몇 가지 도움이 됐느냐? 너는 선한 일을 몇 가지나 했느냐? 하고 반문해 보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눈에 상처를 입고, 손에 상처를 입었으면 그 상처를 볼 때마다 옛날의 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개척자가 가는 길은 모험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인내로써 극복을 해야 될 뿐만 아니라 투쟁을 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어떤 참고 자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숱한 극복의 환경을 거쳐 가지고 틀림없는 결과가 나올 때 그러한 것을 재료로 삼아야 역사적인 결과가 남아지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잘 살 수 있는 표준적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요,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니요, 진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모든 대책을 자기가 세워야 됩니다. 즉, 자기가 역사가 되어야 하고, 진리의 실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어떤 표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가만히 있어서 되겠어요? 재료를 수습해 가지고 연구를 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앞에는 재료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발전하려면 개척자의 노정을 통하여서 승리적 터전을 연결시켜 가지고 하늘의 뜻을 복귀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탕감복귀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만한 가치로 탕감되느냐? 민족적 가치냐, 국가적 가치냐, 아니면 세계적 가치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탕감을 하려면 제물을 드려야 하는데, 제물을 드리는 데는 반드시 피를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민족을 중심삼고 탕감을 한다면 민족의 가치만큼 피를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는데는 민족적 개척의 사명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주체적인 책임을 다한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피를 흘리는 것이나 수난길을 가는 것은 마찬가 지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나 여러분이 고생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는 길과 여러분이 가는 길이 똑같다는 거예요.

개척자가 찾아가야 할 자리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은 역사에 남을 수 있는 개척의 길을 가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그러한 개척의 길을 남겨 가지고 영원히 추앙받을 수 있는 역사가 못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타락한 역사이기에 영원히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역사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복귀과정에 있어서의 탕감이나 수난길은 머리에 남겨 두고 싶은 길이 아닙니다. 지긋지긋한 길이요, 잊어버려야 할 길이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신음하면서 수고해 오시고 개척해 오신 노정을 통고 하지 않았습니다. 역사 자체가 하나님 자신이 돼야 하고, 진리 자체가 하나님 자신이 돼야 하고, 모든 결정적 주체, 권한, 표준, 혹은 방향의 중심도 하나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한 거기에는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역사를 통해 미래의 역사를 개척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난 후에는 과거의 역사를 다 흘려 보내 버리자는 거예요. 그것은 수습할 아무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귀의 세계를 거쳐서 비로소 이 땅 위에 천국을 창건해 가지고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터전을 갖추면, 그때부터 창조이상을 꿈꾸어 나오던 하나님은 역사를 남기고 싶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외로울 때는 여러분 혼자서 외로울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럴 때에는 친구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자기보다 앞서 있을 때는 도움이 될는지 모르지만, 앞서 있다고 하더라도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그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는 전체가 아니라 한 분야에 불과한 것입니다. 전체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는 통일교회를 이끌고 있는 문선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들은 한 분야의 책임을 질 입장에서 사명을 해 나왔지만, 중심을 결정지어야 할 끝날에 있어서는 중심적인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종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개척자의 중심이요, 역사의 출발이자 종결이요, 진리의 주체이시며, 방향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가 개척자가 찾아가야 할 자리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금후의 통일교회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금후에 내가 어디로 갈 것이냐를 생각하는 사람은 개척자가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얻어먹으러 다니는 거지입니다. 목적성으로 볼 때, 대한민국이 어디로 갈 것이냐를 염려하는 사람은 삼천만 민족을 거느릴 수 있지만, 나라야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자기가 어떻게 될 것이냐를 염려하는 사람은 삼천만 민족도 잃어버리고 고독단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후의 통일교회는 어디로 갈 것이냐를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밖에 없다면 자기는 통일교회에 있어서 개척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금후의 대한민국은 어디로 갈 것이냐? 현재는 암담한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문제를 중심삼고 부딪쳐야 됩니다. 그러한 제시 조건을 중심삼고 몸부림치며 대한민국의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금후의 세계는 어떻게 되어야 될 것이냐. 복귀섭리의 방향은 어떻게 진군되어 나가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가는 그런 현명한 사람들로 인하여 역사의 방향은 수습되어 나갈 것입니다.

개척자는 고독한 법

북괴와 대결하고 있는 한국의 현재 입장을 살펴볼 때, 이웃 일본은 지금 중공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며 좌경화되어 가고 있고, 미국도 소련과 얼룩덜룩해져 가지고 이쪽도 믿을 수 없고, 저쪽도 믿을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사해에 둥둥 떠서 현재의 운명을 모면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런 입장에 서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역사상에 없는, 어떤 나라도 당하지 못한 비참한 환경에 몰렸다고 해서 상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개척자의 사명을 다해 새로이 딛고 올라서는 날에는 세계 만민이 따라올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생길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그러한 길을 개척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역사가 없습니다. 또 역사를 창조해 가지고 이렇다 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역사를 개척해야 합니다.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문선생은 어떤 사람이냐? 선생님은 지금도 개척자의 사명을 다해야 되겠다는 소신을 가지고 변함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생님은 변함없는 생활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망성이 있는 거예요. 나는 다가오는 세계를 위해서 모험을 하기도 하지만, 모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모험을 시키기도 합니다. 모험을 시키는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명령을 하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개척환경을 터득하기 위한 보다 고차원적인 미래에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현재에 접근되고 현재에 도취되는 내용을 가지고 명령을 하게 되면 현재에 정지되는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현재를 뚫고 미래의 역사를 창건할 수 있는 중심적인 터전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상승적인 면을 바라보고 가라는 거예요. 그것이 전국으로 나타나고 세계로 벌어지게 될 때는 새로운 역사가 창건될 것입니다.

그러한 신념과 그러한 다짐을 갖고 있느냐? 무한한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명령할 때에 하늘과 땅이 보좌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는 길이 평탄하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9부 능선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힘이 듭니다. 여러분이 저 강원도 같은 곳에 가서 산길을 넘나 들어보면 아무리 높고 험한 산이라 하더라도 평지는 다 마찬가지인 것을 알게 됩니다. 높은 산에 있어서도 평지는 마찬가지입니다. 올라가려고 하면 높은 것 같지만 올라가서 내려다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 평지에서 살자'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높은 세상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평지를 부정하고 높은 것을 긍정하면서 그 높은 것에 근접 하기 위하여 투쟁하고 극복한 결과로 남겨지는 실적과 여건이 자기의 승패의 가치를 다짐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7부 능선을 넘고, 8부 능선을 넘고, 9부 능선을 넘어…. 10년 공을 들여서 절정에 올라서는 마지막 판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십년 걸려 올라와서 내딛는 그 마지막 한 발자국은 역사적인 것입니다.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 세계의 뜻을 세워 나오시는 하나님께도 넘어야 할 최고로 힘든 고개가 있을 것입니다. 그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서는 탕감이 필요합니다. 그 탕감을 치르는 자리는 한 발자국 내디디자마자 쓰러질 수 있는 자리이지만, 억천만 인이 찬양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어제 석온씨의 딸이 죽었습니다. 석온씨는 정말 정성을 많이 들이는데 작년에는 아들을 잃고 올해는 딸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이 진짜 사랑할 수 있는 길을 만들려니 세상을 믿고 있는 시시한 건덕지 같은 것들은 다 데려가 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 딸보다도 자기 아들보다도 진정 통일교회를 위하는 아들딸을 더 사랑하겠다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에 반대가 될 때는 데려가는 거예요. 다른 사람에게 열 번 가면 자기 아들에게는 한번 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그래요. 원필씨 집을 한 번 가보았습니다. 그것도 갈 기회가 있어서 간 것입니다. 딴 집에 가면 갔지 안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먼 것이 아니예요. 원칙이 그래요. 성진이가 거기에 있었지만 가서 공부 잘하라고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안 가 보는 거예요.

대신 사람을 보낼 때에도 내가 침범받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을 남기고 보냈습니다. 탕감복귀역사라는 것은 원칙을 벗어나면 용서가 없습니다. 통일교회를 믿다가 나간 사람들 중에 선생님 앞에 말할 수 없을 만큼 낙망을 주고 간 사람들은 절대 다시 돌아온 사람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그만큼 믿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뿌리채로 빼돌려서 배은망덕을 하게 되면 거기 에는 무서우리만큼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탕감법에는 사탄편에 대해서 탕감하는 법이 있고 하늘편에 대해서 탕감 하는 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민족이 반대했던 것을 다 맡아 가지고 탕감하게 되면 하늘은 그 사람을 보고 민족을 용서해 줄 수 있는 거예요.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민족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람이 꺾여져 나가면 통일교회는 그만큼 발전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민족을 부활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복귀는 반대적인 탕감법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악착같이 반대를 받아야 됩니다.

평양에서부터 반대해 나온 사람이 지금도 한 사람 남아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말로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내가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를 바라보면서 탕감법은 저렇게 적용되어 나가는구나 하고 연구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개척자라는 것은 자기 아들딸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도 믿지 못하며, 더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하는 고독단신입니다. 언제나 역사도 없으며 인연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역사를 세울 수 있는 개척자가 되어야 합니다. 인연을 남길 수 있는 개척자가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개척의 일로를 거쳐가야 합니다. 언제나 새출발이요, 언제나 시작이며, 언제나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가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래야 하지만 통일교회 교인들도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청평에서 건물을 짓고 있는데, 날이 궂지만 않았어도 계획대로 진행이 되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장마가 져서 문제입니다. 오늘이나 내일쯤에 끝나리라 보고 있는데, 내일은 어차피 끝나지 않더라도 목사들이 집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도 재료들을 구입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전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직접 나가서 연락을 해야 했습니다. 할 수 없이 내가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며 배를 타고 나왔습니다. 비가 얼마나 들이 퍼붓는지 이건 도망가는 사람 같았습니다. 뒤에서는 기관총으로 사격을 하는데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가는 그런 입장 같았습니다.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 하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청평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수십 일 동안 땅을 팠습니다. 그러면서도 보통 네 시간, 다섯 시간밖에 못 잡니다. 죽을 지경이라는 거예요. 어제는 내가 부상자 나서라고 하니까 26명 중에서 8명이 나섰습니다. 3분의 1이 부상자였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쓱 보니 죽을 부상은 아니었습니다. 곡괭이에 좀 다치고, 못에 찔리고 해서 발등이 좀 부은 것을 가지고 부상이라고 하며 절뚝절뚝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놈의 자식들, 이 자리에서는 부상을 당하는 사람이 나와야 되는 거야. 피를 흘리는 사람이 나와야 돼'라고 말했습니다. 이 자리는 탕감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식은 모든 것을 개척하는 방식

내가 이번에 지구를 새로운 편제로 개편했는데, 지구에서 실무 책임을 졌던 사람들을 전부 불러왔습니다. 통일교회 이름을 이 녀석들이 자꾸 나쁘게 만들고 다니거든요. 그래서 이 녀석들을 데려다가 한번 수고를 시켜야 되겠다 하고 생각해서 계획적으로 불러온 것입니다. 그러니 도망 갈 수 있어요? 도망 갔다가는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들이박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보고 있으면 힘이 나지만 내가 없으면 힘이 없어진다나요. 왜 그런지 선생님이 있으면 그저 밤이라도 부대끼면서 일을 하게 되는데, 선생님이 없으면 기운이 쭉 빠진다는 거예요. 내가 하루만 여기 와서 자고 가도 일을 전부 다 거꾸로 해놓는 것입니다. 그러니 야단법석이라는 거예요. 집 짓는 일을 몇십 년 한 사람이 하는 일도 내가 가서 코치를 해야 제대로 되는 거예요. 내가 목수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전문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각한 입장에서 그 표준의 가치를 관찰하게 되면 그것이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대번에 알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온돌을 놓는 것도 내가 '온돌은 이렇게 놔야 한다' 하고 코치를 해야 되더구만, 또 어저께는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 왔는데, 우물을 어디에 파야 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라면 산줄기를 보고 물이 어디에서 나올 것인지를 알아야 할 텐데 나한테 와서 어디에 파야 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가만 보니깐 내가 대장 같은지 나한테로 오는 겁니다. 며칠 일을 하는 가운데 목수들도 일을 잘못 했다가 나한테 기합받고 다시 뜯고 하니까, 자기들도 잘못 했다가는 말을 듣겠으니 내 눈치를 살살 보면서 나한테 와 가지고 '어디를 파면 좋겠습니까? 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딜 파긴 어디를 파? 우물만 몇십 년씩 판 사람들이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어떻게 일을 했나? 우물은 굳은 땅과 무른 땅의 접경이 있으면 그 줄기가 직선으로 흘러가다가 옆으로 누었을 때 그 줄기를 따라서 찌르면 물이 나오는 거라구. 안 그렇소'라고 했더니 언제 우물 파는 것을 다 배웠습니까?하는 것입니다. 그건 이치입니다. 내가 배우기는 뭘 배웠겠어요. (웃음) 이치가 그렇다는 겁니다. 벌써 척 대하면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지도해 나오는 책임자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오던 것이 이젠 전부 공식화되어 있습니다. 척 보고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렇지만 결과는 어떨 것이다 하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보는 데는 한 곳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봅니다. 집터를 닦더라도 전체를 봐 가지고 닦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통일교회식은 전부 개척입니다. 청평에 집을 짓는 것도 두 달 정도 걸려야 될 것을 8일 만에 완성하는 것입니다. 7월 초하루부터 터를 닦으라고 해서 2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일주일 동안에 다 하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마루를 놓고 벽을 바르고 그 다음에는 천정을 다 했습니다. 비가 오게 되면 이것도 고마울 수 있는 입장인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오늘은 정리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보고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는 '뭐 선생님은 타고난 천성이 저러지 않으면 소화가 안 되고, 잠도 못 자구 팔자를 세게 타고나서 그러니 할 수 없지. 스스로 기뻐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니 동정할 것 없다' 하고 말하는 만성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청평에 지은 집이 93평입니다. 이 강당이 한 40평 되니까 여기에 있는 인원의 배가 들어가고도 남습니다. 또 청평수련소의 강당만 따진다면 한 70평이 되므로 200여 명은 잘 수 있습니다. 고런 집을 짓는 일을 일주일 동안에 해치우는 것입니다. 오늘까지 하면 만 열흘이 됩니다. 오늘이 71년도의 7월11일인데 원래는 어제까지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넘겨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8일 동안에 전부 끝내고 그 다음에는 도장을 하는 것입니다. 칠을 하고…. 한 3,4일간 단장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단장은 잘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피난통에 시집을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단장을 하지 않고 시집을 가더라도 신랑을 만나서 잘 살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개척자의 소질을 갖고 있다

통일교회는 개척입니다. 집을 짓는 데 있어서도 개척입니다. 우리가 수택리 수련소를 지을 때도 28일만에 다 지었습니다. 땅이 얼어서 일주일 동안은 쉬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21일 동안에 지은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창건하는 것입니다. 남보다 늦으면 기분이 나쁘다는 거예요.

내가 어제는 청평에서 나오면서 무얼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이지만 자는 것이 제일이라고들 그러는 거예요. 그러더니 점심을 먹자마자 전부 쓰러져 쿨쿨 자는 거예요. 그래서 요전에 내가 과자를 만원어치 사다가 쌓아 놓고 하루에 한 번씩 나누어 주었었는데, 이제는 일도 끝나고 했으니 그 과자 봉지를 가지고 가서 먹고 싶은 사람은 먹되 자는 사람은 깨우지 말라고 했더니 전부 다 깨는 거예요. (웃음)

그 사람들한테는 잠이 참 그립다는 것입니다. 잠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는 거예요. 또 어떤 때는 밥 먹는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내가 일부러 밥을 주지 말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열한 시, 열두 시, 세 시가 지나면 '밥 안 됐어? 하고 한 사람 두 사람 묻는 것입니다. '아직 밥이 안 되었어' 하게 되면 처음에는 웃는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도 밥이 안 되었다고 하면 그때는 전부 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공산당의 배급제도가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무슨 사랑이니 하는 것보다 밥줄을 가지고 요리하는 것이 제일 빠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먹는 것도 개의치 않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금식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밥 먹는 시간이 따로 없습니다. 내가 아침을 안 먹었으니까 아침을 먹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없어요.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먹으면 먹는 거예요. 끼니마다 먹어야 된다는 것을 누가 만들었는지 기분이 나쁘다는 거예요. 아침 점심 저녁 먹어야 된다는 걸 누가 만들었어요? 선조들이….기분이 나쁘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아침을 열한 시에도 먹고, 열두 시에도 먹고, 오후 한 시에도 먹습니다. 또 저녁은 새벽 한 시에도 먹어요. 그게 통일교회식입니다.

우리 아가씨들은 좋은 옷을 입고, 귀여움을 받고 사는 것이 전통이지요? 그렇지만 통일교회의 전통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부 다 데려다가 고생을 시키고, 일을 시키는 겁니다. 어제도 누가 아가씨 한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일을 도와주는 것을 가만히 보면서, '너 누구의 집에서 왔나' 하고 물으니 '아무개 집에서 왔어요' 하길래, 내가 '너 여기에 있고 싶지? 라고 물었더니 '아무개가 이렇기 때문에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하고 핑계를 대는 겁니다. 그래서 '그래, 그러면 내가 아무개한테 말해서 그런 일 없게 할 테니 너는 언제나 여기에 있는 거야'라고 했더니 대답을 안 하는 거예요. 가만 보니 구질구질하고 비를 맞으면서 일을 하고 있거든…. 나는 그런 사람들을 잡아다가 일 시키기를 좋아합니다. 그건 왜? 개척을 하는 개척자가 되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앞으로 한국의 옷도 개조하려고 지금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집도 개조해야 되겠습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집을 경치가 좋은 곳에 지으려고 하지요. 지금 때는 경치가 좋은 곳에 집을 짓는 시대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지하도시가 생겨날 것입니다. 지하에 도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수중도시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럴 때가 온다는 겁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드러나는 곳에 집을 잘 짓는 것은 맛이 없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남이 하는 것은 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색다른 것을 하려니 땅에 구덩이를 파서 좋은 빌딩을 짓는 것입니다. 땅구덩이를 파서 몇백 층 되는 빌딩을 지으면 얼마나 근사하겠어요? 그것이 좋다는 거예요. 사람의 소질이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사람은 개척자의 소질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구덩이를 파서 빌딩을 짓는 것, 그건 쉽다는 거예요. 수중에다 그렇게 지으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태평양 한가운데에 철재를 싣고 들어가는 그 맛이 얼마나 멋지겠느냐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할 것이냐? 정부에서는 경부간 고속도로를 부설했지요? 그 정도 해 가지고는 기분이 좋지 않아요. 무엇을 할 것이냐? '서울에서부터 동경까지 직행할 수 있는 지하철을 만드는 것이나,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를 흙으로 메꾸는 정도 가지고는 기분 나쁘니까, 세계에 있는 좋은 반석들을 전부 다 갖다가 전세계를 연결하는 길을 닦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걸 생각해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내가 구라파 일대를 다니면서 교황청이 있는 로마의 바티칸 궁전에 가보았는데, 그곳에 구라파 문명의 정수가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종교사상은 위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왔다간 지 수천년이 지났는데도 이런 문화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정신적인 영향이 깃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할 때, 죽은 예수가 그런 문화를 창건했다면 살아 있는 문선생은 무엇을 창건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바티칸 궁전의 위쪽은 도움(dome)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수백 사람이 한꺼번에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삼백 칠십 몇 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올라가려면 다리가 아파요. 한꺼번에 수백명이 오르내리는데도 내려앉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그 꼭대기에 올라가게 되면 밑을 내려다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할아버지들 할머니들이 참 수고를 했다는 거예요. 초가 삼간을 지어 놓고 그래도 거기에서 아들딸들을 낳고, 그 아들딸들이 뭐 세계가 어떻고 어떻고 했으니 말이예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식이 다르더라는 겁니다.

앞으로 통일교회는 뭘 할 것이냐? 역사적인 위업을 남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서 우리의 후손들이 수고하지 않고도 잘살 수 있게 만들어 놓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로마는 현재 관광 수입으로 정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통일교회 뭘 할 거야? 통일교회 이 본부, 내가 여기 본부에 오게 되면 입이 아파요. 본부 안에 기둥이 몇 개가 있느냐 하면 여섯 개 가있습니다. 이 6수 기반을 넘어서 7수를 세우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 본부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기둥이 여섯 개지요? 여기에 하나 더하면 일곱이 되는 거예요. 이 기둥을 척 보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세계 어디를 다녀 봐도 교회에 기둥이 있는 곳은 여기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개척입니다.(웃음)

합동결혼식도 내가 개척했습니다. 통일교회는 개척을 참 많이 했습니다. 본래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이 통일교회이니만큼 여러분도 개척을 해야 합니다. 개척에는 모험과 극복이 필요합니다. 어떠한 역사적 전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역사를 만들어야 돼요. 선생님에게 지도자가 있어요? 없지요?「예」없지만 내가 전부 다 '이렇게 이렇게 하자'고 지시를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주간종교 신문을 낸다고 하니까 기독교회관에서 얼마나 배 아파했는지 모릅니다. 우리 신문이 제2호가 나오니까 야단들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신문사가 네 개가 있어요. 크리스찬신문, 연합신문, 기독공보, 주간기독교, 우리 것까지 하면 다섯이구만. 오자(五者)가 경쟁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비록 꼴찌로 출발했지만 꼴찌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꼴찌로 출발했을 때에는 뒤로 돌아서는 거예요. 그러면 일등이 되는 것입니다. 출발선에 서자마자 돌아설 때는 일등이 된다는 거예요. (웃음) 주간종교 2호가 나오니까 크리스찬신문사의 어떤 국장이 하는 말이 이제는 자기들 신문사 못 하겠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다는 거예요.

빚을 져도 내가 하겠다 이겁니다. 옛날에는 사정이 어려우면 미인 아가씨를 머슴한테 시집 보내기도 했습니다. 서울에도 그런 데가 있어요. 돈을 받고 딸을 시집 보내는 수도 있다는 거예요. 신문사를 잘되게 하기 위해서는 그런 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아가씨들 가운데에서 '그렇게 해도 난 좋습니다' 하는 사람은 시집을 가는 데에 있어서 개척자입니다. (웃음)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이왕지사 할 바에는 남달리 해 가지고 멋지게 잘 살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부 다 개척을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실패도 많이 해봐야 됩니다. 실패를 해보는 것도 개척입니다. 실패해 가지고 맨 나중에는 올 데 갈 데도 없는 벌거숭이가 되어 전진도 할 수 없고, 후퇴도 할 수 없어서 앉아서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그것도 개척이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서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구멍을 파고 딴 짓을 해서라도 그 이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이 된다면 그 맛을 봐도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 간부들 왔으면 손들어 봐요. 저 구석에 딱하니 앉아 있구만, 간부들이 '선생님만 애쓰시게 해서는 안 되지, 우리가 해야 된다구'라고 하면서 말은 잘합니다. 그래 임자들에게 맡겨 놓으면 세계적인 것을 만들 것 같아요? 이건 하지도 못하면서 괜히 뒤에서 타박만 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장(長)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젊은 사람으로 교체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작용이 많다는 거예요. 이사장이니 사장이니 하는 자리를 만들어 놓았더니 오히려 큰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요사스러운 패들이 된다는 거예요. 아직까지 내가 책임해야 할 것을 몇 가지 못 해서 그렇지, 그것만 해 놓으면 서슴지 않고 인사조치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준비해야 될 거예요. 지금처럼 해 가지고는 플러스가 안 된다는 거예요. 자기들 말대로 하면 자기 꼴 되지 별 수 있어요? 송충이 말들으면 송충이밖에 될 것이 더 있느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끌어서 자기들을 출세시켜 주면 그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소망을 가지고 찬양은 못 할망정 왜 뒤에서 수작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까지 별의별 말이 많다는 거예요. '무슨 종교단체가 공기총을 만들어 살생을 하다니…'살생이 뭐예요. 자식까지 잡아서 제사 지내려고 결심한 사람 앞에 새나 개, 돼지, 소, 양 그런 것이 문제겠어요? 대한민국을 위해서 앞으로 그런 길도 개척하려니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개척입니다. 어린이 무용단을 시작할 때도 '통일교회는 여편네들이 벌거벗고 춤추더니 이제는 그 자식까지 춤을 추는구나. 그것 봐라 밤낮 춤추더니 또 춤추는 자식 낳았다'고 하는 등 별의별 말을 내가 다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겠으면 하라는 거예요.

이번에 수련소를 지을 때도 얼마나 불평이 많았어요? 선생님은 뭐 도깨비같이 밤낮 잠도 자지 않느냐고 하면서, 거 일하는 녀석들도 나만 보면 슬슬 도망가는 거예요. (웃음) 무슨 발광증이 나서 밤잠도 안 자고 두 시 세시까지 야단이냐고 하지만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슬퍼하시겠느냐는 거예요. 문선생이 미칠듯이 일을 하는 데는 하나님께서 같이하십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집중하게 되면 거기에는 천운이 같이한다는 것입니다.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청평에 관심이 많아요. 지금 청평에다 집을 짓고 있는데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집을 짓는 데에 대한민국을 대신하여 정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또 내가 기성교회를 복귀해야 한다고 말한 장본인이므로 지금 짓는 성전은 기성교회 목사들을 위해서 준비하는 성전이니 정성을 들이라는 거예요. 이것을 다한 후에는 내가 집을 짓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안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난 후에는 통일교회가 세계에 제일 가는 교회를 짓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안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리원칙에 절대로 상치되면 안 됩니다. 그러니 지금이 좋은 때라 이겁니다. 비가 오더라도 그 비 오는 것이 도리어 자랑거리가 되고, 비를 맞으며 배를 타고 도망가는 사람의 신세가 되더라도 좋다 이거예요. 그 신세가 자랑거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것이 다 개척입니다. 땅을 파는 것도 개척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수련소를 짓기 위해 청평에 들어올 때 단벌신사였습니다. 입고 온 남방 샤쓰도 하나요, 입고 온 바지도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20여일 땅 구덩이를 파고 일을 하게 되니 팬티 하나만 남고 다 찢어져 나갔다는 거예요. 그래서 샤쓰와 수영복이 있으면 되겠다 싶어 내가 샤쓰와 수영복을 사다 주었습니다. 알몸뚱이로 일하는 것을 보니까 남자들이라 아주 근사하더군요. 또 곡괭이질을 할 때 근육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아주 예술적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제 나오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들이 집에 가야 할 날이 다 되었는데 단벌로 입고 온 옷이 다 찢어져 버렸으니, 어떻게 하겠어요. 그런 꼴로 집에 가면 집에서는 '서울에 수련을 받으러 가더니 옷까지 다 찢어지고 뭘 빌어먹다 왔구나' 그러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양복도 한벌 사 주고 남방도 하나 사 주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오늘 열 시까지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이 사실을 그 사람들은 모르는 거라구요. 내가 돈이 없어서 그렇지, 나에게 돈만 있으면 이번에 수고한 사람들이 돌아갈 때 한짐씩 지워 보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을 안 한 사람들은 '아이쿠 나도 그때 했으면 좋았을 걸' 할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이런 얘기도 안 하려고 했지만, 어제는 기도하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어떤 사람과 일 대 일로 만나서 영적으로 공방전을 해 가지고 그 사람을 깨끗이 굴복시켰습니다. 기분이 좋은 날이었어요. 그것을 보게 되면 탕감복귀역사는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개척

오늘이 7월 11일인데 안팎으로 이렇게 다 되는 것을 볼 때, '내가 잼대질을 하는 것이 영계에도 관계가 되어 있고….이제는 안팎으로 들어맞는 때가 되었구나' 하는 느낌이 옵니다. 이것을 볼 때,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에 통일교회의 역사는 이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은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일생이 지나가게 되면 천년, 만년, 억천만년을 기다려도 다시 찾을 수 없는 그런 인연인 것입니다. 한 고비, 한 고개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시대권내에서 같이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통일교회 문선생은 개척자입니다. 종교에 대한 개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또 요즈음에는 사업에 대하여 개척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사사까와 영감 일파의 간부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은 정치 경제면에 있어서 거물이라고 평을 하는 것입니다. 나까무라 목사가 대만에서 사사까와를 만났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통일교회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됐는데, 고맙고, 보기만 해도 좋고, 생각만 해도 신납니다'라고 하니 사사까와 영감이 그런 데도 있느냐고 했다는 것입니다. 거 잘 모르거든요. 그런 거라구요.

내가 이제 세계에서 일등 가는 부자가 되면 틀림없이 돈을 대줄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과 사돈을 맺어 두면 좋을 거예요. 통일교회 아가씨나 총각들은 사돈이 되는 것보다도 선생님을 통해서 시집 장가를 가려고 합니다. 그것이 사돈보다 더 가깝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극복을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개척입니다. 알겠어요?「예」개척자의 소망은 오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일에 있습니다. 알겠어요?「예」그 내일은 어떠한 내일이냐? 그것은 내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체가 영원히 보장될 수 있는 내일입니다. 그 내일은 하나님께도 필요한 것이요, 민족에게도 필요한 것이요, 선생님에게도 필요한 것이요, 여러분에게도 필요한 것이요, 여러분의 후손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과정을 어차피 거쳐 나가야 합니다.

한국을 중심삼고 볼 때,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나서려면 돈도 많아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여의도에 본부도 좋게 지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의도에 있는 땅을 지금 시가로 말하면 10억이 넘습니다. 시청이 결정한 공정시가로 봐도 배 이상의 장사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 잘 샀어요, 못 샀어요?「잘 샀습니다」그거 산다고 배 아파한 사람들이 많았지요? 이제 한 2,3년만 있으면 평당 7,80만원으로 펄쩍 뛸 것입니다. 그것만 팔아도 통일교회가 부자라는 소리를 들을 때가 올 것입니다. 명동 같은 데는 평당 280만원, 거의 300만원이 나가고 있는데, 앞으로는 여의도가 서울의 중심가가 될 것입니다. 그걸 보면 하나님이 보호하사, 내가 예상한 것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그리고 앞에는 민족의 광장이 생기지요? 그게 누구 때문이냐? 통일교회가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사당이 저 구석에 자리잡은 것은 그 땅을 우리가 사라고 그런 것입니다. 국회의사당이 거기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 땅을 싸게 살 수 있었던 거예요. 우리가 그 땅을 사니까 땅 값이 후닥닥 뛰어 올랐습니다. 내 기분이 좋은 것은 마포대교를 건너가게 되면 바로 통일교회 간판이 떡 보이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지을 세계본부 모형도가 떡 걸려 있는데, 한강을 건너가자마자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120층 건물을 짓는다고 시에서는 이미 소문이 났습니다. 상징적으로는 성공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 놓으니 세상의 그 누구도 통일교회를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가난하지 않다는 거예요.

여의도 땅을 살 때 몇 개월 동안에 몇 억이라는 돈을 거뜬히 현찰로 지불했습니다. 3차로 지불하게 되어 있었는데 한 6억에 가까운 돈을 끙끙거리지 않고 거뜬히 지불했습니다. 그랬더니 시에서는 '한국에서 제일 부자라는 이병철씨도 현재 은행 구좌에 2천8백만 원밖에 없는데 통일교회는…' 하면서 놀라는 것입니다. 은행에서 대부받아 가지고 그 돈을 지불한 게 아닙니다. 그걸 보고 120층 건물을 짓고도 남는다는 실력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돈이 많은 게 아닙니다. (웃음) 그것을 샀기 때문에 지금 통일교회가 간판을 걸고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지방교회에 가 보라구요. 한 방에서 모든 식구가 사는 지역장들을 보면 밥도 못 먹고 장마에 흘러가다가 건져낸 쥐새끼 모양을 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통 자만 나와도 혼비백산하던 사람들도 통일교회가 이렇게 되어 있는 줄 알게 되면 도를 닦느라고 저러지 돈이 없어서 저렇다는 생각은 안 한다는 거예요. 그것을 생각할 때, 선생님 작전이 적중했다는 것입니다.

요즘에 청평에서는 우리가 대장입니다. 청평에서는 지금 집을 짓느라고 천막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걸 보고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폐병이 나서 수양하러 온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웃음) 우리가 청평을 드나든 지 4년째가 되는데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처량하거든, 비가 오게 되면 천막에 사는 신세가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괜히 그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편수가 되려면 도수를 가려야 되는 줄 모르고 말이예요. 내가 사람을 배치해 가지고 땅을 살 줄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푼도 없어서 할 수 없이 그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입장에서 낚시터를 하나 닦으려고 하니 주인이라는 사람이 와 가지고 야단을 하는 거예요. '어떤 녀석이 주인의 승낙도 없이 낚시터를 닦느냐' 하고 말이예요. 그러면 '아 그래요. 주인 되니 대단하오. 그러면 물러가오' 이러는 것입니다. (웃음) 거기에는 일화가 많다는 거예요.

또 우리가 천막을 쳐 놓은 그 터는 쥐꼬리만한 뽕나무 밭이었습니다. 맨 처음에 청평에 가서 밤을 보내려고 하는데 천막을 칠 땅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내가 뽕나무를 자르라고 했습니다. 문선생이 쉬기 위해서는 뽕나무 하나쯤 잘라도, 주인은 참소할지언정, 뽕나무는 참소를 하게 되어 있지 않거든요. 그래서 뽕나무를 자르고 천막을 쳤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아침에 주인이 뿔이 나 가지고 찾아와서 어디서 온 사람들이냐고 종일 야단을 하는데, 그래도 대꾸를 안 하는 거라구요. (웃음) 그것을 한 사람은 딴 데에 가 있는 것같이 상관을 안 하거든요. 그렇게 한 사람이 내가 아닌 것같이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거예요. 그저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는 것같이 있는 거예요. 그랬더니 첫 날에 와서는 야단을 하더니 그 이튿날에 와서는 야단하던 것이 조금 내려가고, 사흘째 와서는 더 내려가서 몇 마디 하더니, 그 다음부터는 오히려 '미안합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 미안해요? 하고 반문을 했습니다. (웃음) 주인이 생각해 보니 몇 푼 안 되는 뽕나무 하나 가지고 너무했다는 거예요.

내 덩치가 킬로 수로 얼마냐 하면 93킬로그램에서 97킬로그램을 왕래합니다. 조금만 더 나가게 되면 거인협회에 가입할 수 있는 거예요. (웃음) 그런 거구한테 조그마한 사람이 큰소리친 것을 생각해 보니까 자기가 너무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한 일년쯤 지난 뒤에 그 땅을 우리에게 팔라고 하니까 두말도 않고 팔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는 청평 좌우편에 80만 평을 마련했습니다. 80만 평이면 여의도 땅만합니다. 청평에서 별장을 지을 만한 중요한 곳은 내가 다 타고 앉았다는 것입니다. 요즈음에 와서야 그 냄새를 맡고 '저 사람들이야말로 강태공 할아버지보다도 더 시대를 아는 사람이구나'라고 한다는 거예요. (웃음)

낚시질을 할 때도 제일 많이 잡고, 제일 큰 놈을 잡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철학입니다. 그래서 제일 많이 잡고, 또 제일 큰 놈을 잡았어요. 기록을 냈다는 것입니다. 1미터 이상 되는 잉어를 잡았거든요. 그렇게 기록을 세우고 난 뒤에는 고기를 잡는 쪽쪽 전부 놓아 주었습니다. 탕감복귀하는 것입니다. 기록을 세우기 전에는 잡아서 맛있게 먹었지만, 기록을 세운 후에는 놔 주는 거예요. 잡은 고기를 놓아 줄 때는 지느러미에다 나이론 실을 잘 매서 놓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다음에 그 고기가 잡힐 때, 사람이 잡았다가 놓아 준 것이니 그 사람도 놓아 주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잉어를 놓아 주니까 잉어가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꾹 찔러도 안 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놈아' 하고 소리를 지르니까 그때서야 가는 것입니다. (웃음)

순종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

여기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와는 먼 영통인이 있는데 그 사람은 석가모니를 믿는 불교신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엊그제 영계의 석가모니로부터 선생님을 뵙지 않으면 안 되니까 선생님이 계시는 곳에 한 번 가서 잘 찾아 뵈라는 명령을 받고 부랴부랴 나에게 온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참 이상하다는 거예요. 찾아오는 길에 잉어를 보았는데 그 잉어가 용왕의 딸이라나요. 용왕님이 쓱 나타나서 하는 말이 문선생이 잉어를 잡았다가 그 잉어를 놓아 주었기 때문에 참 고맙게 생각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잉어들이 나타나서 인사를 하고 축수를 하더라면서 이상하다는 거였어요. 잉어들이 전부 복을 빌더라는 거예요. 그런 것을 보면 세상만사가 다 인간에 의해서만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제부터는 여기서 잉어를 잡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좋은 일을 하라는 거예요. 선심을 써야 될 때라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고기를 희생시켜서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었으니 사람을 찾았으면 고기는 해방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이제는 낚시 질을 안 할 겁니다. 그렇게 비가 와도 낚시질만 할 때를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낚시하는 것이 팔자다, 취미다 했지만, 그것은 세계를 낚는 놀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정성을 들인 것입니다.

이제는 낚시질을 하라고 해도 안 합니다. 이제는 고기를 잡아도 안 먹을 것입니다. 청평에서 잡은 고기는 안 먹는 거예요. 요전에도 잉어를 잡아서 요리를 해주었는데 안 먹었어요. 내가 식구들한테 먹지 말라는 얘기는 안 했지만 청평에서 잡은 고기면 피래미 새끼 한 마리라도 안 먹는다는 것입니다. 바다에서 잡은 조기를 지져서 먹으면 먹었지 청평에서 잡은 고기는 안 먹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역사는 다 그렇게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신이 나서 어떤 일을 할 때는 거기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아 둬야 되겠습니다. 그런 것에 관점을 둬 가지고 보조를 맞추어 나가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요, 그것을 불평하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황서방도 선생님에 대해서 이러고저러고하지만 선생님 말만 들으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사업부장이라도 잘라 버리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내가 엊그제 불러다 놓고 기합을 줬습니다. '이 녀석 선생님을 누구로 알고 허재비 만들려고 그래? 너 이러이러한 수작하지 않았느냐'라고 들이댔어요. 누가 이러이러하다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든 것을 다 보고 얘기한다고 한 거라구요.

선생님은 본래가 남에게 간섭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저런 말 듣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구요. 그렇지만 내가 한 말에 대해서는 철두철미 하다는 거예요. 성공시켜 놓고 만다는 거라구요. 앞으로는 그런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 간부들이나 지구장들 가운데, 모여서 쑥덕공론을 하던 사람은 다 빼 버릴 것입니다. 앞으로는 안 되면 나 혼자 할 것입니다. 내가 지방 순회할 때 지역장들을 한 30명 데리고 다닐 것입니다. 그리하여 안 되면 현지에서 바꾸어 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뜻을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내가 간부들의 보고를 듣고 일을 하지 않는다구. 체제상, 대외관계 때문에 그런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 별장을 지어서 한 30명씩 교육시켜 가지고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기동명령을 내려 어디로 가라 했는데 안 듣게 되면 전부 현장에서 인사조치를 하는 것입니다. 보고는 무슨 보고입니까. 내가 보면 다 알 수 있어요. 사람이 돼먹었는지 못 돼먹었는지 내가 아는 거예요. 이런 때가 불원한 장래에 올 것입니다. 변명이 필요없다는 거예요. 직접적으로 해결지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식입니다. 인사이동도 이동 본부가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척적인 인사이동입니다.

전부 개척자가 되기 위해 고생할 각오를 해야

여러분이 이러한 것을 알고, 앞으로 선생님을 모시고 나가는 데 있어서 어떤 형식을 갖추거나 금을 그어 놓고 이렇게 해야 된다고 하는 것은 집어 치우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안 맞는다구요.

앞으로 우리 신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원한 장래에 외국 기자들을 데려올 것입니다. 주간종교사를 그렇게 시시하게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거기에 주력을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개척을 해야 합니다. 개척을 했다고 할 때는 개척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우리는 전부가 앞날의 개척자가 되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여의치 않은 자리에서 40일 전도 기간을 중심삼고 개척자의 책임을 얼마나 해결해 나왔느냐는 것입니다.

요즘의 젊은이들을 가만 보면, 내가 전도하러 나가라고 할까봐 눈을 껌벅거리면서 '옛날에는 그렇게 해서 됐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안 됩니다' 이러는 거예요. 또 어떤 사람은 '지금은 선생님이 월급도 주는데'라고 합니다. 자기가 그런 경우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가 되기까지는 천신만고 끝에 올라온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전부 다 그 코스를 걸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이번에, 7월 20일에 본부에서 출동명령을 내릴 것입니다. 아주머니든, 누구든 전부 다 준비를 해야 됩니다. 그러니 본부에서 그 명단을 작성하라구요. 알았지요?

그래 가지고 뭘 할 것이냐? 개척자를 만드는 것이 내가 할 일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의 사명은 스스로 개척자가 됨과 동시에 개척자의 선봉에 서서 역사를 창건하고, 세계 전역을 해방하고 개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개척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개척자로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을 개척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고생의 자리에 내몰아야 되는 것입니다. 죽을 뻔한 것이 살 뻔한 것보다 낫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죽을 위험에 처한 사람은 죽을 뻔한 사람을 구해 줄 수 있지만, 살 뻔한 사람은 죽을 뻔한 사람 옆에도 못 가는 것입니다. 죽을 뻔한 것이 살 뻔한 것보다, 해본 것이 안 해본 것보다 낫다는 거예요. 안 한 것보다 한 것이 못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건 틀림없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습니다. 노동판에서부터 안 해 본 것이 없다는 거예요. 전부 다 해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자신없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시시하게 하지 않고 전문적으로 한다는 거예요. 그런 경험을 가지고 응용하게 되면 못 할 것이 없더라 이겁니다. 눈치가 훤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의 30세 전 젊은 남녀들에게 깡통을 들려서 밥을 얻어다가 잔치를 할 생각입니다. 얻어 온 밥을 가지고 서울 시내에서 제일 큰 잔치를 한번 해볼 만하겠지요? 밥을 얻으러 나가는 사람들이 학사님들, 석사님들, 박사님들이라고 하게 되면, 그 사람들이 깡통을 차고 나가서 얻어온 것을 가지고 서울에서 잔치를 한다면 세계에 없는 잔치가 될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거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거 어때요? 그렇게 되면 깡통 찬 대장이 세계에서 금주머니를 찬 대장보다도 높아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간부들, 부장이고 협회장이고 때만 되어 봐라 이거예요. 어디로 가나. 전부 개척자로 내 보낼 것입니다. 그게 선생님의 생각이라구요. 여러분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야 됩니다. 요전에도 총무부장이라든가 간부들이 인사이동 때문에 기분 나빠했습니다. 기분 나빠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때는 딱지가 하나 더 붙는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옛날에 백 점이었으면 이제는 오십 점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한번 더 해 볼 것입니다. 푹 떨어지게 해 볼 것입니다. 그래도 또 기분 나빠하면 딱지가 하나 더 붙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해 볼 것입니다. 세 번만 그렇게 하면 '너는 나와 상관없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영부영해 가지고 통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보세요. 통일교회 문선생의 눈을 보라는 거예요. 무섭지요? 아주 야무지게 생겼습니다. 적당히 아무렇게나 해서 통하는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지금 가는 길 앞에 있어서 마이너스가 된다고 잘라 버리면 가는 길이 달라져 버리게 되므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같이 지내던 친구가 나를 찾아왔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당신이 감옥에서도 나를 이렇게 이렇게 도와주었었는데, 이제는 사회적인 지위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감옥에서보다 더 훌륭한 선생님이 되었으니 그때 나를 도와준 것보다 더 도와주는 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이 할 수 있는 소질이 아니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거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때와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내가 공산당을 복귀하기 위해서 정성들이던 때였습니다. 공산당을 복귀하기 위해 정성을 들이던 때인만큼 공산당 중에서 권위 있는 사람을 찾는 놀음을 해야 했었습니다. 선생님은 선두에 서서 참뜻을 품고 있는 사나이이기 때문에, 공산당에게 탄압을 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을 해방하기 위해서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 정성들이는 데 있어서 제일 빠른 길이 뭐냐면, 감옥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들을 도와준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을 위해서 정성을 들여야 되는 때입니다. 통일교인들의 것을 빼앗아다가 대한민국을 위해서 정성들여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비단옷 대신 광목옷을 입히더라도 대한민국을 살리고 세계를 살리기 위해 징발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사상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죽더라도 대한민국이 남아져야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다 죽더라도 여러분의 후손은 남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후손을 위해서 준비하고, 후손을 위해서 희생하고, 후손을 위해서 현실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 개척자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황사장!「예」 임자는 이제 사장이라는 간판을 가지고 있으니, 일반 사회에서 월급 받던 것 이상의 것은 전부 다 공납하는 거야. 저금통에 저축하는 거야. 그러지 않으면 월급을 받아 가지고 타계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거야. 이놈의 자식들, 목을 자르고 말 거야. 어떤 사람은 통일교회의 회사도 주식 회사이니 사회 사람과 같은 부장이면 다른 회사와 똑같이 월급을 받아야지 왜 우리가 적게 받소? 라고 하는데, 월급을 적게 받는다고 해서 위신이 깎이고 인격이 낮아져요? 그따위 시시한 사고방식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받고 있는 월급을 공납해야 합니다. 이것은 전부가 통일가정을 위해서 가정기금을 만드는 것입니다. 협회장보다 월급을 많이 받으면 벌을 받습니다. 협회장보다 좋은 밥을 먹으면 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통일교회도 눈이 벌개져 가지고 돈줄 찾으려고 하다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말대로 하는 사람은 굶어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굶어 죽게 되면 내가 먹여 살리겠어요.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이것도 월급세계에 있어서 개척입니다.

이번에 회사 간부들에게 일반 사람은 한 16만원 받는데 그 절반인 8만원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거기에서 또 4만5천원을 뺀 3만5천원만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불평하면 안 됩니다. 그것을 통일교회 문선생이 갖다가 탕진해 먹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에 이자를 붙여서 천대 만대 후손 앞에 갚아 준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선생님 앞에 불평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벌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거 찬성하지요?「예」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돈을 가지고 우리 지역장 지구장들을 돕자는 것입니다.

개척자는 인내심이 있어야

세상이 못 하는 일을 내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못 하는 일을 통일교회가 해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그것은 왜냐? 통일교회는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여 새로운 천국을 창건해야 할 개척자의 사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척자는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표준도 없는 것이요, 본받을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바로 역사요, 본받게 할 수 있는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선생님을 따라오고 있지요? 선생님을 본받아 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이미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불쌍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를 믿고 나온다면, 통일교회에는 원리라는 것이 있고 가는 길이 딱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가는 길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아직까지도 암중 모색하면서 선두에 서서 가려 가야 할 세계사적인 내용을 앞에 놓고 노심 초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 이상으로 노심초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도 거기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도 언제든지 개척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돈 때문에 자신을 팔아먹는 시시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의 공무원이 돈 몇십 원 몇백 원에 왔다갔다한다면 시시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추풍낙엽과 같이 다 떨어지는 것입니다. 돈 몇십만 원, 몇백만 원에 팔려가는 사람은 언젠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요전에 내가 어떤 기성교회의 총회를 보니까 총회장 선거에서 백만 원짜리 수표 한 장에 표가 왔다갔다하더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백만원도 안 되는 돈에 전부 왔다갔다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싸구려더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 통일교회 문선생은 몇백만 원에 왔다갔다할 것이냐? 생각해 봐요. 몇천만 원에 몇억 원에 왔다갔다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을 놓고 왔다갔다할 것이냐? 지구를 놓고 왔다갔다할 것이냐? 안 되는 것입니다. 지구를 놓고 왔다갔다하게 되면 지구를 지배 못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념을 중심삼고 왔다갔다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중에서 몇 푼, 몇천 원에 왔다갔다하는 그런 졸장부들이 있다면 전부 밀어 버려야 합니다.

선생님도 아직까지 월급을 받지 않고 일을 하고 있는데 여러분이 그럴 수 있어요? 선생님 월급이 얼마예요? 이것이 선생님 월급이요라고 해 가지고 한 달이라도 갖다 준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구요. 선생님은 아직까지 사장도 못 되고, 계장도 못 되고 그저 통일교회의 문선생입니다. 그렇지만 선생이라고 해서 다 선생이 아닙니다. 선생 중에는 가짜 선생도 있습니다. 사기치는 선생도 있습니다. 선생이라고 해서 다 진짜예요? 여러분은 출세하는 것을 좋아하지요?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서울과 부산의 기성교회 목사님들을 청평에 초청하여 특별수련회를 갖게 되는데, 그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틀림없이 나와서 인사를 하겠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왜 안 나서느냐 이거예요. 선생님이 그들이 무서워서, 말을 못 해 가지고, 그들을 꼼짝못하게 할 수 있는 실력이 없어서 안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체면과 위신과 모든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들이 반대하게 되면 마지막입니다. 그렇지요? 와서 대접을 받고도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면 깨져야지 별수 있어요? 그렇지요? 「예」마지막입니다. 그때는 아예 하나님도 버리십니다. 영영 마지막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인의 종이라든가, 심부름꾼이라든가, 주인의 아들쯤은 모르고 불손했다면 그것은 주인이 보고 용서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이 다 자기네들을 위해서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불평이 많습니다. 불평이 많기는 하지만 이 불평은 좋은 불평인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 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양심적으로 가책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결국 그들의 아들딸이라든가 그들의 장래를 생각 하고, 더 넓은 의미에서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내가 안 만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공석에서 그들이 통일교회 문선생님, 당신이 이름난 사람같이 그런 사람이오 ?라고 할 때는 내가 뭐라 하겠어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내세워 가지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회사를 다 맡기고 하는 것도 통일교 문선생이 할 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사람의 심리를 분석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일을 시켜 놓고 만족한 기분이 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많지만 그런 일은 내 책임이 아닙니다. 회사의 사장 일을 하는 것이 내 책임이 아니며, 승공연합 이사장 하는 것이 내 책임이 아닙니다.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현재에 있어서는 탕감복귀의 원칙에 의해서 교단을 중심삼고 국가적인 한계선을 넘어야 합니다. 회사나 승공연합은 교회를 보충하고 보강하기 위한 간접적이요. 방편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지 직접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식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모든 내용을 알아 가지고 다시 한 번 자세를 갖추어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거국적이요, 아시아적이요, 세계적인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생활태도나 환경 등 모든 면에 있어서 혁명적이요, 새로운 보람 있는 내용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1971년도의 여름 40일 전도기간에는 전체가 동원해야 되겠습니다. 1960년대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의미에서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동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사명과 새로운 시대 앞에 개척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의 보람을 남기는 개척자가 되라

자, 그러면 이번 7월 20일에 개척을 나가겠다는 사람 손들어 봅시다. 다 나가야 합니다. 내리라구요. 다 나가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무슨 직책이라든가, 지금 현재에 맡고 있는 책임이 중요할 때는 특별한 예외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이번에 안 나가는 사람은 눈물을 흘릴 때가 올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이번에 개척전도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돈을 한 보따리씩 집어서 나누어 줄지도 모릅니다. 혹은, 여러분이 지방교회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만나게 되면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지방에 가서 사진을 찍어 줄지도 모릅니다. '1971년도 하계 특별 40일전도의 기념촬영이다' 해서 찍게 되면 그 사진을 가진 사람들은 앞으로 다를지 모르는 것입니다.

옛날, 1961년도인가 내가 10환짜리 동전을 나눠 준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그것을 잃어버리지 말라구요. 이번에는 내가 좋은 사진기를 가지고 가서 사진을 찍어 주려고 합니다. 그 사진을 일생의 기념품으로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그때는 어머니도 같이 가야겠습니다. 선생님이 그럴지도 모르는 거예요. 그 40일 기간에 찍은 사진은 하루에 천만원씩 쳐서 4억을 주고도 못 바꾸는 그런 사진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금년이 아니고는 못 갖는 사진이 될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알고 새로운 의미에서 이 1971년도를 중심삼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너와 나 사이에 다리가 놓였으니 건너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전부 상대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저께 중국에서 편지가 온 것을 보면 중국에는 목사들이 들어와서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거기는 목사들이 수련을 받으려고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들이 원리 말씀을 들으려고 야단이라는 거예요. 그것이 복귀입니다. 그렇지요?

지금까지는 통일교회가 맨 하발이들을 전도하느라고 야단이었는데. 이제는 상발이들이 들어와서 야단입니다. 앞으로는 궁중에서 원리강의를 듣겠다고 야단할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런 때가 안 온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어요? 안 오게 안 되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국에서 정성들이고 공을 들이는 것이 이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보다 차원 높은 역사적인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러한 때를 놓치지 말고 자신의 생애의 가치를 보람 있는 결과로 가져오고, 개척자의 사상을 가진 책임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아버지께서는 이 자리에 서 있는 이 자식을 철모를 때부터 지금까지 이끄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나이까?

사연이 많은 과거를 더듬어 보고 현재의 복잡한 사정과 해결지어야 할 제반 문제를 앞에 놓고 볼 때, 금후에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방향을 올바르고 곧게 책임지고 가려 나가야 할 사명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가를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보다도 높아져서도 안 되는 것이요, 아버지보다도 너무 뒤떨어져서도 안 되는 것이기에 당신의 입장에 서서 당신의 뒤를 따라온 것이 지금까지 이 자식이 걸어온 길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행각의 노정에서 아버지가 염려하시는 일념의 심정을 이어받아야 할 심각하고도 절박한 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 이상의 내심을 가지고 수고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할 적마다, 이 민족의 실수와 교단의 실수를 책하지 않으시고, 이 나라, 이 민족의 금후에 대한 염려를 저로 말미암아, 이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지금도 버리지 않고 붙들고 나가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소망했던 나라와 소망했던 교단이 당신의 품에 품길 수 있는 인연에 접근해 오는 그런 환경을 이루지 못한다고 할진대 얼마나 비참해질 것인가를 염려하신 나머지, 당신은 기어이 그런 환경이 저희의 목전에 도달할 수 있게끔 지금까지 사태를 수습하여 이와 같은 인연을 만드셨사옵니다. 이것은 통일교인들의 수고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절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수고하신 당신의 그 공로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임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자식은 더욱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이 교단의 금후의 운명을 당신이 책임져 주셔야 되겠습니다. 여기의 주인은 그 누구도 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이 단체를 사랑하고, 이 뜻을 사랑하고, 이 단체와 이 뜻을 세우신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가 염려하시는 세계를 사랑하고, 수난길을 극복해 나오면서도 인류를 더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이 단체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통일가의 운명은 당신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고, 당신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의 운명과 더욱 직결되어야 하겠습니다. 역사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근원적인 내용을 찾아야 한다는 이 엄숙한 과제를 두고 볼 때, 부족한 자신을 자탄하면서 내일의 소망된 모습을 아버지 앞에 보여 드릴 수 있는 제2의 자기 모습을 그리워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한계선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쳐야 되겠고, 현재의 불쌍한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기 위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여건들이 남아 있는 것을 솔직히 비판하고 솔직히 받아들일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대한민국의 장래를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통일의 역군들이 눈물 어린 심정으로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이북민족과 남한민족을 붙들고 새로운 의미에서 아버지 앞에 제단을 쌓고, 10월까지 정성을 들이는 과정에 있는 것을 당신은 잘 알고 계십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는 아버지여, 저희 뜻을 알고 저희의 갈 길을 열어 주시는 아버지여, 망하는 자리에 들어가서는 안 될 아버지의 사연의 내용이 보잘 것 없는 저희의 배후와 안팎으로 갖추어져 있음으로 말미암아 저희의 장래를 염려하시는 아버지께서는 민족과 더불어, 저희와의 인연을 맺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의 이념을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시는 아버님은, 입체적인 수난의 길을 극복해 오면서 저희들을 위하여 싸워 오셨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천만 번 머리를 숙여 감사를 올릴 따름이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당신께서 저희를 권유하시는 그런 본연의 모습으로 나타나실 때, 그 누구도 '아버지' 하고 손을 붙들 사람이 없고, 아버지의 영광된 모습 앞에 머리를 숙여 '아버지'라고 말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버지께서는 너무나 낮고 비참한 자리에까지 눈물을 흘리는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찾아오셨기 때문에, 저희들은 늘 외로울 때마다 아버지를 부르는 습관을 가진 그런 자식들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려울 때마다 협조를 바라는 그런 습관을 가진 아들딸들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희의 영광을 대신 받으셔야 할 아버지이시지 그러한 자리에서 저희를 협조하실 수 있는 아버지가 아닌 것을 저희들은 이제부터 다시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당신과의 인연이 결여될까봐 염려해야 되겠고, 천번 만번 죽을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서러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를 부정하면서 당신을 높일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미처 몰랐사오니, 이제 그러한 아들이 되고, 그러한 딸이 되겠다고 몸부림치며 결의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당신은 저희가 당신의 뜨거운 손을 잡게 될 때에 당신의 손길이 뜨겁다며 뜨거운 정을 느낄 수 있기를 얼마나 바라셨습니까? 당신의 손을 잡을 적마다 당신의 손길은 뜨거웠으나 저희의 손길은 차가왔습니다. 당신은 소망이었으나 저희는 절망이었습니다. 당신은 저희를 대신해 싸워 나오셨지만, 저희는 무자비한 입장에서 당신께 십자가를 지워 드렸습니다. 이러한 과거지사의 인연에서 벗어나지 못한 저희들임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의 거룩함 앞에 저희의 정체를 나타내기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아버지 앞에 정면으로 설 수 없어 아버지를 부르며 뒤로 돌아설 수 밖에 없는 자신 임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바라는 실체의 모습을 가진 아들이 되지 못한 것을 탄할 줄 알고, 그러한 딸이 되지 못한 것을 탄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는 아버지를 보고 싶어하고,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하고, 아버지를 위해서 아버지의 명령대로 움직이기 위해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미친 듯이 달려가고 싶어하고, 미친 듯이 행동하고 싶어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갖추지 못한 그 자리를 눈물로써 밤을 지새워 가며 사모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는 것이 통일가의 전통의 인연을 가진 아들딸의 입장인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앞날에 다가올 비운의 역사가 있거든 저희들이 책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계의 역사 위에 고빗길이 있으면 저희들이 방파제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질기고, 끈기 있고, 강직해야 되겠습니다. 콘크리트보다도 철근보다도 더 굳고, 더 강하고, 더 질긴 통일의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50여 년의 생애를 거쳐온 지금까지의 노정을 더듬어 볼 때, 앞으로 가야할 노정에서는 더욱 강직하게 나가야 될 자신임을 느낄 적마다 이러한 저를 따르고 있는 무리들도 불쌍한 무리라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들은 수난의 고빗길이 길면 길수록 원망할 것이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40년노정에서 망하게 된 원인을 당신은 잘 알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그러니 이 불쌍한 무리를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그저 시내산을 바라보고 가는 것보다는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하며 가는 아들딸로 삼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아버지여, 이들이 밤낮 쉬지 않고 기도하는 가운데, 몽시 가운데 이들을 자극시키어 이끄시옵소서.

패자의 서러운 잔을 마시면서 원망과 더불어 아버지를 대하는 아들딸이 되지 말고, 승자의 영광을 감사하면서 긍휼을 바라는 마음으로 찬양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 들이 그런 자리에 나서기 위해서는, 개척자의 전통적 사상을 본받아 가지고 내일의 자극제로 남아질 수 있는 것을 각자 찾아내고, 또 현실에서 그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이 굽어살피시옵소서. 더욱이 일본에서 온 당신의 아들딸들이 수련소에서 수련을 받고 있습니다. 만나고 싶고, 보고 싶고, 가고 싶던 곳을 보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보다 여기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강해야 되겠습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전에 여기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아버지와 그들의 인연 가운데에 남겨져야 할 것임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그들이 올 때보다 더 보람 있고, 더 좋은 소망의 마음을 가지도록 아버지께서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을 위로해 주시옵소서. 일본에 있는 식구들을 당신이 굽어살피시옵소서. 역사를 대신하여 첨단에 서서 수난길을 극복해 나가고 있는 그들을 바라볼 때마다 저의 죄가 많다는 것을 자인할 때가 많습니다. 이 민족을 넘어서 이국 민족에게 이런 일을 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이 민족의 부끄러움 없이 그들을 수난길에, 십자가의 길에, 어둠의 자리에 내몰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서게 된 것이오니 당신께서 후한 사랑으로 그들에게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아시아에서 제일 국민이라고 자처하는 그들이옵니다. 당신 앞에 있어서도 세계 백성을 대표한 아들딸이라고 칭찬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전통을 남길 수 있게끔 끝까지 참고 극복해 나가게 하여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금후에 있어서 8년동안 계획하는 모든 일이 뜻 가운데에서 형통하여, 당신이 분부하신 소원의 뜻을 이루어서 만민의 기쁨과 더불어 당신 앞에 복귀해 드리고, 바쳐 드릴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저희들이 모인 이곳을 당신이 친히 운행하시고 주도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이 날의 이 시간을 감사드리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4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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