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열 사람을 대표했다면 그는 부모의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게 될 때에는 열 사람의 모든 어려움을 전부 다 책임져야 되고 열 사람을 전부 다 돌봐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을 때에는, 어느 한 사람이라도 어려운 가운데에 있거나 부족한 입장에 있으면 그의 마음을 쓰다듬어 가지고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열 사람이 한 사람을 대해 '나는 끌려가는 입장에 있다. 당신 들은 나보다 높은 36가정, 72가정, 124가정, 430가정이므로 모든 면에 있어서 나에게 본이 되어야 되고, 나를 인도해 주고, 나를 위해 주어야 한다'고 하는 입장에 있다면, 그런 자리는 언제나 불평불만이 깃들 수 있는 자리 입니다.
밥을 먹는 데에 있어서나 일을 하는 데 있어서나 자는 데 있어서도 자기를 중심삼고 행동하며 그 결과에 대해 항상 자기의 이익을 바라는 입장에 선다면,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을 중심삼고 살더라도 그 열 사람 전부가 원수가 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열 사람을 중심삼고 사는 생활에 있어서 열 사람을 대표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는 열 사람의 어려움이 자신의 어려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옆 사람을 대해 불평하는 것은 내가 나를 대해 불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나를 욕하는 입장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불평불만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맨 나중에 일어날 것입니다.
신앙길에 있어서 제일 위험한 것이 뭐냐 하면 불평불만하는 것입니다. 불평불만하는 곳에는 정사되는 법이 없고 발전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우리 신앙자를 언제나 노리는 것은 무엇이냐? 사탄이 무기로 우리 앞에 언제나 제시하는 것은 무엇이냐? 불평불만하는 것입니다.
그럼 불평불만하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개성을 드러내는 자리에서 불평불만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열 사람이 있다면, 그 가운데 언제나 자기라는 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열 사람이 거기에 화합해 주지 않고 움직여 주지 않으면 불평불만하는 것입니다.
불평불만하는 데에는 반드시 사탄이 자리잡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사탄을 제거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불평불만하는 길을 막는 것입니다. 불평불만이 벌어지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옛날에 아무리 잘믿었고 좋았더라도 불평불만하게 되면 반신반의하게 됩니다. 한 절반쯤은 믿고 절반쯤은 의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기준이 그만큼 높아 지는 것이 아니라, 절반은 믿고 절반은 의심하니까 그 터전은 절반만큼 좁아지는 것입니다. 반신반의하는 것은 절반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만큼 믿던 것이 반신반의하니까 절반만큼 작아진다는 것입니다.
절반만큼 작아진다는 것은 뭐냐? 하나의 배만큼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만큼 믿던 것이 반신반의하게 되면 그만큼 하나님 앞에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멀어지니까 사탄이 거기에 찾아 들어와서 점령하게 됩니다. 불평불만하게 되면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느냐 하면 반드시 반신반의하는 마음을 가져 다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 생활에 있어서 아내가 남편을 대해 불평불만하게 되면 '남편이 나를 사랑할 게 뭐야. 사랑 안 하지' 하는 반신반의가 반드시 개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신반의가 벌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남편을 대해 가지고 옛날에 따라보던 기준, 혹은 옛날에 사랑하던 그 기준이 전부다 감해지는 것입니다.
반신반의가 도에 차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반항과 투쟁과 결렬이 벌어집니다. 처음에는 반항이 벌어지고 반항을 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반항을 하면 저쪽에서도 반항을 하게 되고, 이렇게 두 번 세 번 맞닿게 되면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싸움이 벌어지면 같이 다 죽는 거예요. 갈라지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는 없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가 없어지는데 누가 없어지느냐? 먼저 불평불만하던 사람, 반신반의하던 사람, 반항하고 먼저 싸움을 시작한 사람이 제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 누가 망하느냐 할 때 먼저 그런 동기를 만들어 놓은 자가 망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데 불평불만하고, 별다른 일도 없는데 반신반의하고 반항하고 싸우게 될 때는 반드시 결판이 납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망하는 것이요, 다른 한 사람은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망하고 누가 이기느냐? 어떤 것이 맞고 어떤 것이 틀리느냐?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됩니다. 여기 에는 반드시 선악간의 투쟁이 개재되어 들어오게 됩니다. 악이 먼저 동기가 되어 가지고 불평불만을 시작하게 되는데, 불평불만하고 반신반의한 무리는 반드시 제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열사람을 중심삼고 사는 데 있어서 괜히 짜증을 내고 괜히 불평을 하고 괜히 타박을 하는 사람은 결국 열 사람 권내에서 물러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뭐냐? 하나님에 대해서 불평불만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반신반의를 갖는 것입니다. 반신반의뿐만아니라 입을 열어 가지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반항하는 것입니다. 반항을 하게 되면 여기에는 반드시 싸움이 벌어집니다. 사탄은 이런 자리를 노리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를 이용해 가지고 나 하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사탄의 작전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과정을 거치면 반드시 꺾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자로서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이 뭐냐? 이런 어려운 환경에 자신이 말려 들어가지 않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신반의하지 말고 붙평불만을 하지 말고 반항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을 잡는 데 있어서, 사탄을 박멸하는 데 있어서 제일 필요한 무기입니다. 사탄을 환영하고 사탄으로 하여금 승리하게 만드는 무기는 뭐냐? 불평불만이요, 반신반의요, 반항과 투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반대의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반대의 입장에 서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열 사람이 있으면 열 사람을 대표하여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나는 열 사람 전체를 위해서 있고, 열 사람 전체 때문에 산다 하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사람은 불평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의 불평을 수습해 줍니다. 수습하는 일은 누구의 일이냐 하면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환경을 어지럽게 하는 악한 사람을 선한 길로 이끌어 가는 것은 하나님이 싸워서 방비해야 할 일이지만, 열 사람을 대표한 사람은 그 환경의 어지러움을 자신이 수습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습해 주고 감싸주며 품어 주는 것은 자신의 일이지만 하나님의 할 일을 대신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의 일을 대신한 자리에 섰기 때문에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불평불만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희생하며 전체를 위해 주는 사람을 보게 되면 불평하는 말을 하다가도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전체를 위해서 밤이나 낮이나 희생하고 자기들을 위해서 수고한 것을 전부 다 알게 됩니다. 그 사람은 그런 실적이 있는데 자기는 아무런 실적도 없으니 불평하다가도 양심이 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평하는 말을 하다가도 부끄러움을 느끼고 쑥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희생하더라도 전체를 위하는 사람은 비록 몸뚱이는 땅에 있어도 하나님 대신 악을 방어하는 방패 놀음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같이하지 않을 순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을 대해서 싸우는 사람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대신하여 일할 수 있느냐? 내가 전체를 대신하여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상을 가져야 됩니다. 전체를 대표하고 있다는 사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전체 앞에 지장이 있다 할 때에는 그것을 자기의 책임으로 알고 몸둘 바를 모르며 밤을 새워 가면서라도 기도 하고 불철주야 있는 정성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있는 사람은 몸은 땅에 있어도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협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서는 발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기쁨과 영광과 소망이 머물며 강한 힘이 머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하시니 생명력이 깃드는 것입니다. 거기에 사랑의 마음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한 첫째 도수가 뭐냐? '나는 전체를 위해서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밤이면 밤, 낮이면 낮, 때를 막론하고 24시간 그들을 위해서 있다' 하는 사상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 사탄세계에서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자기를 중심삼고 '아이고, 우리집에 있을 때에는 요렇게 안살았는데 요게 뭐야? 꽁보리밥을 먹고 어떻게 살아? 지금까지 꽁보리밥 먹지 않고 살았는데 이게 뭐야? 내가 매일같이 찬방에서 어떻게 살아? 여자가 이런 옷을 입고 어떻게 살고 어떻게 거리를 나가나?’ 이렇게 전부 다 불평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지방에 나가 있는 여러분이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할 입장에서 불평을 하려면 한이 없는 것입니다. 불만을 느끼려면 한이 없습니다. 뜻에 대해서 반신반의 하려면 한이 없는 것입니다. 반항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한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나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평불만하지 않고 반신반의하지 않고 반항하지 않으며 절대 믿고 절대 순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대신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는 길에는 반드시 부흥이 되고, 반드시 번식이 벌어진다 하는 것이 원리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많이 대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많은 분야에서 대신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지극히 어려운 자리입니다. 어려운 자리에서 지극히 큰 것을 위하고 있는 자리가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작은 여자의 몸으로 무엇 때문에 여기에 나와 있느냐? 삼천만 백성을 위해 나와 있는 것이요. 30억 인류를 대신해 나와 있는 것입니다. 불평불만하고, 반신반의하고 혹은 반항하고 투쟁하는 30억 세계 인류의 이런 여건들을 제거하기 위해 나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불평불만하는 세계를 방지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 불평불만할수 없습니다. 또 절대 반신반의할 수 없습니다. 백 퍼센트 믿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의심되어도 믿어 줘야 합니다. 한 번 속아 주고 두 번 속아 주고 세 번만 속아 주면 그 자체는 자연히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고 방식을 가지고 나간다면 여러분은 비록 그런 환경에 서 있는 개인이지만 전세계를 위하여 복귀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책임을 하나의 초점에서 대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편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주도적인 책임을 하는 자리에 있는 것을 느낄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사상을 가진 자리는 가장 귀한 자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전체를 위한 입장에 있다는 관념을 가진 사람은 맨 나중까지 남아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맨 나중까지 남아지면 어떻게 되느냐? 열 사람이 살다가 다 망하고 그 사람만 남아지게 되면, 망한 밑천을 거두게 되면 자기가 가질 수 있는 분깃의 몫보다도 많아질 수 있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열 사람이 각각 백만 원씩 있다면 전부 다 합하면 천만 원입니다. 그 천만 원을 가지고 사는데 전부 다 파탄 되어서 망했다면 망한 줄거리가 백만 원 이상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통일교회가 얼마만큼 가다가 망하게 된다면 통일교회는 망하지만 나는 안 망한다 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교회가 망해서 다 도망가고 흩어져도 나는 맨 나중까지 남아서 장사를 치르고 전부다 정비해 놓고 가겠다고 해야 됩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만약 통일교회가 끝이 나더라도 하나님은 그 사람을 나중에 딴 목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딴 곳에 버려져도 하나님이 쓰시겠다고 하기 때문에 새로이 인도될 수 있는 길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도 '끝까지 참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중간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가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 남아 있는데 끝입니까? 자기 혼자 남더라도 끝까지 참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불평불만, 반신반의하지 말고 반항하지 말고 참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끝까지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 개인의 뜻은 이스라엘을 위한 뜻밖에 되지 않지만 아버지의 뜻은 세계를 위한 뜻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세계를 위한 뜻 앞에 자신의 뜻은 지도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뜻을 남기면 내 뜻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가겠다고 자기를 부정하는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죽었지만, 망한것 같지만 흥한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하나님께서 같이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은 부활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성인 현철들을 보게 될 때, 그렇게 죽은 사람은 후대에 반드시 들림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나가서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열 사람을 대신해서 살줄 알아야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일을 널리 펼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을 완전히 책임지고, 열 사람을 대신해 책임질 수 있는 책임자가 되어야 어디에 나가더라도 백 사람을 대할 수 있습니다. 열 사람을 책임졌는데도 불구하고 아홉 사람을 거느린 입장이라면 불합격자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어떻게 열 한사람을 구해 줄 수 있어요? 구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는 불평불만, 반신반의, 반항의 여건들이 수두룩하다는 겁니다. 더우기 지금 통일교회 전도대원으로 나가 있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여건들이 수두룩합니다.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야단하니, 시동생 시아주버니 할것없이 시집 식구 전부가 반대합니다. 또, 자기 집에서도 불평을 합니다. 남편과 자식들이 '이게 뭐야'라고 불평을 합니다. 불평 덩어리에 딱 올라앉았다는 겁니다. '무슨 뜻이 이래'라고 불만하기 딱 알맞고, 불평하기 딱 알맞고, 반신반의하기 딱 알맞고, 반항하기 딱 알맞다는 것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이 이상 반대하고 불만하고 반신반의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을 때에 혼자였고 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죽으면 혼자가 아니라 남편과 자식까지 함께 죽는 것과 같으니 불평불만 덩어리 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심하려고 하면 한이 없습니다. '무슨 뜻이 이래' 하면서 불평하면 끝이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혹시나 선생님이 우리를 이용해 먹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나' 하며 의심하면 끝이 없습니다. 이것이 꼬리를 물고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있어요, 없어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필시 '나는 통일교회에 괜히 들어왔어. 내가 옛날에 대학에 다닐 때에는 학교에서 우등생으로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는데, 지금은 동네방네 가는 곳곳마다 칭찬 대신 손가락질을 받고 쉬쉬하니 이거 살아 먹겠어? 이렇게 불평불만하기에 딱 알맞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불평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이 땅에서 불평거리의 최고의 정거장이냐. 종착점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자신이 지금 전도하고 있는 자리가 인간 세상에서 불평할 수 있는 맨마지막 자리일 것이냐를 생각할 때 이보다 더한 자리도 있을 것입니다.
복귀를 하려면 완전복귀를 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자신이 최고라 불평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서 거기에서 불평하지 않고 승리하고 돌아 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 자신은 완전복귀를 못 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여러분은 아직까지 완전복귀할 수 없는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탕감복귀라는 것은 거꾸로 도는 것입니다. 탕감복귀하려면 좌(左)로 돌던 것이 우(右)로 돌아야 됩니다. 거꾸로 돌아야 됩니다. 거꾸로 돌고 돌아서 다른 세계로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불평불만으로 꽉 찼다 할 때에 천국이 그 가운데 있겠어요, 없겠어요? 천국이 그 마음에 들어갈 틈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천국은 불평불만하는 데에는 없습니다. 천국은 불평불만하는 데에 서는 멀리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반신반의하고 반항하면 완전히 떠나가는 것입니다. 불평불만하고 반신반의하고 반항하는 자리는 언제나 사탄의 소굴이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일선을 만들어야 됩니다. 만약 불평불만하고 반신반의하고 반항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런 마음을 억누르고 '나는 하나님을 대표한 사람이다. 다 망하더라도 나는 망하지 않고 남는다. 망하는 것을 붙들고 내가 못 망하게 하겠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있어서, 그자리에 있어서, 그 환경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있는 자리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싸우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싸우는 자리 입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는 데 있어서는 먼저 열 사람을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전도하게 되면 서로가 먼저 열 사람을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전도하려면 희생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희생해야 됩니다. 그렇게만 하면 틀림없이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반대의 입장에서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열 사람을 전도하는데 불평불만하며 전도하면 전도가 돼요? 열 사람이 있는데 여러분이 '뜻이고 뭣이고 이게 뭐야? 하면서 불평한다면 그 사람들이 여러분의 말을 듣겠어요? 듣겠어요, 안 듣겠어요? 아무리 칭찬해 주며 자신의 말을 들어 보라고 해도 불평하게 되면 절대 전도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불평불만해서는 안 되므로 인내하고 희생 해야 됩니다. 참고 희생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참고 희생만 하게 된다면 열 사람이 나를 나쁘다고 합니까?「좋다고 합니다」알긴 아는구만요. 전체가 나를 위하겠어요, 깎아 내리겠어요? 위한다는 것입니다. 참고 극복하지 못하면 위하다가 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고 극복하는 것을 계속하면 위하는 것을 계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참고 견뎌야 합니다. 인내하고 극복해야 합니다. 참고 견뎌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는 데에 있어서 제일 첫 순서는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참고 견디는 거예요? 전체를 위해서 참고 견뎌야 됩니다. 전체의 목적을 위해서 중심적인 사상을 가지고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불평불만이 동거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데에서 하늘나라와 하늘의 터전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주의 중심이시고, 전체를 책임진 분이시기 때문에 나 자신도 전체의 중심의 자리를 대표했다는 신념을 갖는 것이 무엇보 다도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나는 전체를 위해 있다고 해야 됩니다. 나를 위해 있다고 하는 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평불만이 수두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삼천만 민족을 대신했다 할 때에는, 삼천만 민족 가운데 나보다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이 시간에도 죽어가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 이 순간에도 병석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 이 시간 자유롭게 저 뜰을 거닐고 싶고 자유롭게 저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은 있으되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많지 않느냐? 혹은 어떤 사람 앞에 자기의 사연을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비참함 가운데에서 신음 하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불평불만이 가득찬 이 모든 전부를 대신 탕감복귀하기 위한 제물이니 내가 그 이상의 불평까지 달갑게 받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렇게 불평을 달갑게 받겠다고 하는 것이 불평의 부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평을 받으면 불평의 부자가 되어야 할 텐데 불평의 부자가 되지 않고 도리어 하늘의 부자가 됩니다. 그러면 하늘의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세계의 것을 빼앗아 와야 합니다. 그리 하면 사탄세계의 것을 빼앗아 오는 것에 비례하는 부(富)가 더 찾아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평불만, 혹은 반신반의, 모든 반항의 여건을 내가 맞겠다 할 때는 전체에 대해서 불평불만의 대표자가 되겠다는 거예요? 반신반의 반항하는 대표자가 되겠다는 거예요? 내가 맡아 가지고 굴복시키 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절실합니다.
그렇게 되어 가지고 전국가의 불평불만의 권, 반신반의의 권. 혹은 반항의 권이 머리를 숙여 순종하게 될 때는 탕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나 자신으로 말미암아 탕감이 시작되기 때문에 나는 그 나라에 있어서 하나님 대신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에 대한 축복을 응당히 받게 되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는 데 있어서는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시간이 걸리니까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됩니다. 나라가 전부 다 투항할 때까지 참아야 됩니다. 견디고 참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어떤 지구장이나 부장이 '내가 15년, 17년, 혹은 20년이 넘도록 믿으면서 지금까지 견디고 참아 왔으면 됐지 않소. 더 못 견디 겠소' 한다면 그거 되겠어요? 선생님이 더 못 견디겠다고 후퇴하면 몰라도 그 사람이 그런다고 해서 통일교회가 망할 것이냐? 선생님이 끈질기게 참고 견디어 나가게 되면 망하지 않습니다. 또. 불평불만하는 사람이 선생님을 보게 되면 떳떳한가요? 중심 자리에 서서 책임지고 나가는 사람 앞에서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선악의 싸움에 있어서 탕감이라는 비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 가든지 그걸 못 하게 되면 문제가 큽니다. 불평불만하는 것은 사탄이 좋아할 수 있는 요건입니다. 이것을 해치우기 위해서 '이놈의 자식 어디 해봐라' 하면서 싸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도를 나가면 동네방네가 야단하고, 욕을 하고, 반대를 하고 핍박을 합니다. 그럴때 여러분 혼자 있는 것보다는 자기 주위에 자기편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한 열 사람이 같이 있을 때에는 티격태격하다가도, 사탄세계에서 핍박하면 '아이고, 이거 안 되겠다' 하면서 그때에는 한편이 되려고 한다는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하나 안 되었더라도 원수와 큰 싸움이 벌어 지게 되면 하나되는 것입니다. 누가 나가서 문제를 일으켜 가지고 동네방네가 야단하게 되면 더 큰 사탄이 나타나 발동하게 됩니다. 동네 사람들이 가만히 보니 양심적인 사람을 악한 녀석들이 핍박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양심적인 사람의 편을 들고 나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탄편에 있을 수 있는 입장에 있다가도 더 악한 악당이 나타나서 야단하게 된다면 선한 편이 되어 가지고 편들려고 합니다. 그런 원칙적인 작용을 해가지고 규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집안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새벽부터 싸움을 했는데, 화가 난 부인이 남편이 밖에 나갈 때에 '저놈의 영감, 오늘 나가서 확 죽어 라'고 욕을 퍼부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영감이 밖에 나가서 사고가 나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여편네는 어떻게 하겠어요? '아이고 영감, 내가 잘못했소' 하게 됩니다. 큰 사건이 앞에 벌어지게 되면 '아이고 잘못했소. 용서하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작전을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자리에서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이들보다도 더 악한 무리로 하여금 들이 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들이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작전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하였기 때문에 들이쳤던 것입니다. 그 방법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외부의 핍박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완전히 하나되게 될 때에는 핍박을 못 합니다. 열 떼거리가 한꺼번에 우리 집을 공격해 오더라도 노친네를 중심삼고 여덟 식구가 전부 다 한 사람씩 꽉 붙들고 돌아가면 끌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드세게 된다면 야단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열 사람을 중심삼고 책임져 가지고 나가 싸우게 된다면 외부의 핍박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되어 가지고 나가게될 때에는 외부의 핍박이 없지만 하나가 안 되어 물러설 때에는 더 악한 패들이 몽둥이를 들고 후려갈기려고 합니다. 그때야 '아이고 안 되겠다. 하나님! 하면서 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예 그런 일이 없게끔 각자가 열 사람을 대표했다는 입장에서 하나되는 것이 천칙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 자신이 불평불만, 반신반의, 반항의 여건을 전부다 잡아먹겠다는 마음을 갖고 책임을 지고 인내로 극복하고 견디어 전체를 위한 입장에서 나가게 될 때, 그 열 사람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출세하게 되면 그는 언제나 열 사람의 어머니와 같은 입장이 됩니다. 그래서 '아이구, 어머니 어디 가세요? 같이 따라가고 싶어요'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그렇다는 거예요.
어머니 같고 형님 같은, 친구 중에 제일 가까운 친구인 그 사람이 하늘 나라 이야기를 하게 되면 쏙쏙 맛이 나지만, 딴 사람이 말을 하게 되면 기분이 나쁘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맛나는 사람이 되겠어요, 지지리 맛없는 사람이 되겠어요? 어떤 사람이 되겠어요? 전부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지요?「예」
여러분은 삼천만 민중을 대신하고 세계 인류를 대신했기 때문에, 자신을 그 판도에서 벌어진 불평불만, 반신반의, 반항, 투쟁의 요건이 엇갈리고 있는 환경에 대응하게 하고, 우리 열 식구를 탕감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런 환경을 만들어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누가 책임지느냐? 그것을 달갑게 맞고 몸부림치며 자신의 책임이라고 하며 짐을 지는 사람이 있을 때, 그로 말미암아 외적 사탄세계는 무너져 가는 것입니다. 탕감역사는 이렇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심정을 가져야 됩니다. 주인된 부모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해 뿌리자'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하는 날에는 부모의 대신자가 안 될 수 없습니다. 부모가 불평 하면 자식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이고 이거' 큰일났구나' 하는 자식들은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울거든 자식들은 부모를 위해 죽으려고 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런 표어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주체적인 사상을 중심삼고 통일시키는 사상입니다. 주체를 중심삼은 통일사상입니다. 그러면 '통일'의 '통'은 무슨 통 자냐? 거느릴 통(統) 자입니다. 거느리는 입장은 모신다는 거예요. 이끌고 간다는 거예요?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이끌고 가니 오죽이나 힘들겠어요? 다 이끌고 가서 나중에 편안한 자리에 가게 되면 그때는 그들이 모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편하고 불평할 것이 없으니까 '아, 요렇게 좋은 것이 누구 때문이냐? 선생님 때문이구나' 하면서 모시지 말래도 감사히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만민이 모실 수 있는 영광의 때까지는 언제나 그 책임을 짊어져야 하니 수난길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대구면 대구지구, 어떤 지구면 어떤 지구에 일이 척 벌어지면 지구장보다도 선생님이 더 고생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걱정하지만 여러분의 걱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에서 여러분이 하나 잘못하면 그 책임을 전부 다 선생님에게 뒤집어 씌웁니다. 다른 단체들은 안 그러는데 우리 통일교회는 조그마한 무슨 사건이 있어도 사람들은 '아, 통일교회를 보라구. 문선생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전부 다 선생님에게 뒤집어씌웁니다.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이 나쁜 거예요, 좋은 거예요?「좋은 거예요」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뒤집어쓰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좋은 거예요. (웃음)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종교단체들이 선생님에게 다 뒤집어 씌웠어요. 그거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좋은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 가운데에 시집 장가를 가서 못살고 하는 것을 다 우리 통일교인들이 도매금으로 맡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그러면 어떤 자리에서 맡느냐? 남편과 함께 맡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잃어버리고 맡아야 됩니다. 자식을 데리고 맡지 말고, 자식을 잃어버리고 맡아야 됩니다. 형제 친척을 데리고 맡는 것이 아니라 다 잃어버리고 맡자는 것입니다.
다 잃어버리고 맡았다면 상금을 주게 될 때에는 누구부터 줘야 되겠어요? 대답해 보십시오. 갖고 있는 사람에게 줘야 되겠어요, 안 갖고 있는 사람에게 줘야 되겠어요? 안 갖고 있는 사람에게 줘야 됩니다. 안 갖고 있는 사람은 밉상주의예요, 사랑주의예요? 사랑주의라면 하나님께서 상을 주려고 할때에 제일 나쁜 것을 줘야 되겠어요, 좋은 것을 줘야 되겠어요?「좋은 것이예요」 좋은 것을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상은 어려움을 맡은 사람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잃어버린 자리에서 일했기 때문에 상을 주려면 더 좋은 것을 줘야 됩니다.
그렇게 되니 남편 중의 상남편이 되는 것입니다. 자식 중의 상자식, 부모 중의 상부모, 친척 중의 상친척. 나라 중의 상나라, 세계 중의 상세계. 주인 중의 상주인이 되는 거예요. 이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얼마나 좋아요? 늘어지게 좋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것이 죽는 일이예요, 사는 일이예요?「사는 일입니다」 복받는 일이예요, 망하는 일이예요?「복받는 일입니다」복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복까지 붙여 오는 것입니다. 끌어 오는 거예요. 거두어 오는 것입니다. 누가 그 복을 거두어 오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거두어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를 통하는 수많은 영통인들이 영계를 보면 모두 선생님에게 달라붙는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제 상받는 비결도 알았지요? 자 그렇게 상을 받았다면 그게 멋진 상이예요, 시시한 상이예요?「멋진 상입니다」 누구와 바꾸고 싶은 상입니까, 절대 바꿀 수 없는 상입니까? 바꿀 수 없는 상이니 제일 행복하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만이 이방법을 중심삼고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라구요. 오늘날 이 시대에 어느 단체가 이런 일을 합니까?
오늘날을 볼 때에 끝날이 다 됐습니다. 그렇지요? 끝날이 되어 어느 사람이나 종교 단체가 우리와 똑같이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한다고 할 때 그들이 우리 이상 하나님을 위해 일을 한다고 하면 그 사람이나 단체가 우리보다 더 좋은 상을 받아야 돼요. 나쁜 상을 받아야 돼요?「좋은 것을 받아야 됩니다」 더 좋은 것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사람들보다 더 좋은 것을 받고 싶어요, 나쁜 것을 받고 싶어요?「더 좋은 것을 받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더 좋은 것을 받고 싶으면 앞에 서야 돼요, 뒤에 서야 돼요? 「앞에 서야 됩니다」먹는 데 있어서 일등하는 사람에게 상금을 준다면 상대보다 더 많이 먹어야 됩니다. 또 옷을 잘 입는 사람에게 상금을 준다면 제일 좋은 옷을 입어야 됩니다. 그 반대로 안 먹고 견디는 데 있어서 일등이 되고 싶으면 제일 안 먹고 견뎌야 됩니다. 기분 나쁘지요? 기분 나빠요, 좋아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찌들어 마르고 꼬부라질 수 있는 끄트머리에 가더라도 '우리는 누구보다도 더 큰 것을 위해서 일한다. 세계를 위해서 일한 다'라고 해야 합니다. 죽더라도 그렇게 죽어야 됩니다. 그렇게 죽은 단체가 어디 있어요?
하나님이 가만히 계산해 봤을 때 그 도수가 99도까지 찼다고 합시다. 1도만 채우면 100도인데 그 99도 보고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그 1도가 99도보다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100점을 좋아해요, 99점을 좋아해요? 99점짜리 천 개와 100점짜리 한 개와 바꿀 수 있어요?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하나님도 그런 사정이 있을 게 아니예요? 그렇지요? 대관절 탕감복귀하는 데 있어서 100점의 곳이 어디냐? 여러분 생각해 봤어요? 그런 곳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통일단체가 전세계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참고 견디면 별수없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세상에서 '참고 견디면 복받는 다'고 하지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알기는 아는군요. 그것을 알기는 아는데 그렇게 못 하기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만 있으면 망하지는 않습니다.
참고 견디는 데 있어서 100점의 표준이 어디에 있느냐? 그 기준은 목을 내놓는 것입니다. 목을 내놓고 죽는다면 어머니 아버지는 엉엉 울면서 '조금 더 살지 왜 그래?' 하고, 동생들은 '아이고 형님 누나, 왜 지금 죽어요? 하며 온 식구가 야단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자리보다도 고독단신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고독단신이라도 자기가 나가 놀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원수가 때려죽이려고 하는 자리, 때려죽이려고 하는 패가 열 사람보다도 더 큰, 나라가 움직이고 세계가 움직여서 때려죽이려고 하는 자리, 그러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위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그자리를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통일교회를 대한민국만 반대하지 말고, 일본 미국만이 반대하지 말고 세계가 반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싫어요, 좋아요?「좋아 요」 말로는 좋지만 당해 보세요. 눈이 어떻게 되고 얼굴이 어떻게 되겠어요? 여러분은 안 당해 봤지요? 그런 일을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몰아 치더라도 '나는 책임지고 하나님을 위하여 변호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싸워 나간다. 하나님이 있는 한 나는 절대 뿌리가 뽑혀지지 않는다. 나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라고 해야 됩니다.
왜 망하지 않느냐? 하나님을 위하여 싸우는 나의 생명을 노리면 3대이상이 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3대 이상 꺾여 나가게 되면 3대 이상의 편이 생깁니다. 그러기에 상대편에서 한 번 움직여 공격했다가 후퇴하는 날에는 나에게는 그만큼 이익이 남습니다. 싸움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 여자로서 참고 견디는 데에 제일 높은 고등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겠느냐를 생각할 때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명령하는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보세요. 그렇게 하면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좋아하겠어요? 시누이 시동생 시아주버니가 좋아해요? 또, 자기 집의 아버지 어머니가 좋아해요? 자기 형제들과 친척들이 좋아해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도 '저게 사람들이야? 목석 같은 것들이 지'라고 합니다. 별의별 쑥덕공론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을 데리고 가면 모르겠는데 남편을 버리고 가고, 그 다음에는 자식도 버리고 간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시부모님도 '어휴, 불쌍해서 안됐다'고 하는 것입니다. 친척들도, 고향집에서도, 엄마 아빠도 '불쌍해서 안됐다. 아이고 이러면 안 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안 되긴 뭘안돼요? 죽을 수 있는 그 이상의 자리까지 가야 합니다. 이런 자리 이상의 자리가 있겠어요? 아무리 봐도 여자에게는 그 이상의 자리는 없을것 같아요.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으니까 망하려면 깨깨 망하라는 것입니다. 망하려면 깨깨 망하고 그 다음엔 흥하는 것도 깨깨 흥하라는 것입니다. 최고로 흥하라는 것입니다. 망하려면 곱게 망하고 흥하려면 멋지게 흥하라는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입니다.
가만히 볼 때에 이게 망할 것 같아요, 안 망할 것 같아요?「안 망합니다」이렇게 해 가지고 망할 것 같아요? 앞으로 삼천만 민중은 이 결정적인 사상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이런 쓰라림을 극복하며 나라를 위한 충절의 심정이 엇갈려 있는 곳을 거쳐 갈 때에는 어느누구도 무릎을 꿇고 천상의 만복을 받으라고 칭송하며 찬양하지 않고는 못 지나가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려면 이 길을 지나가야 되기 때문에, 천국 갈 사람은 천년 만년 여기에 무릎을 꿇고 찬양하고 존경하며 가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한테 상을 주는데 이 이상 더 큰 상이 어디 있겠어요? 이 이상 더 큰 상이 어느 상이예요? 금덩이예요? 금덩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상은 상 중에서 제일 큰 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고 견디라는 것입니다. 불평이 극할 수 있는 자리, 반신반의와 반항이 극할 수 있는 자리지만 참고 넘어가라는 것입니다. 왜냐? 우리는 부모 대신자이기때문입니다.
우리가 없으면 전체가 망하고 우리가 낙심하면 전체가 낙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불평불만하면 전체가 불평불만하는 실상이 벌어져 영영 끝장을 보겠고 반신반의하는 세계가 영원히 남겠기 때문입니다. 또한, 반항 하고 싸우는 세계가 영원히 남겠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없애기 위해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골수에 이런 사상이 박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바라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이냐? 그 사람이 지옥편이면 싫어서 바라보는 것이요, 하늘편이면 좋아서 바라볼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입니다. 알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사탄편이면 여러분을 싫어하는 것이요, 하늘편이면 여러분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고마운 것이요, 나빠하는 사람이 있으면 불쌍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망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불쌍하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나를 반대하면 벌받아야 지. 망해야지' 하는 마음을 없애야 됩니다. 그런 마음이 아니라 위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이 불쌍하다는 마음이 앞서 가지고 동네를 봐도 불쌍해서 눈물이 나야 됩니다.
예를 들어 농촌에서 일하는 할아버지를 봅시다. 나이가 7,80이 되도록 꽁보리밥을 먹기 위해 일생 동안 그저 아침부터 지게를 메고 나가 일하다가 해가 저물면 기운 없이 들어옵니다. 이런 할아버지를 볼 때, 여러분은 '불쌍하다. 내 할아버지 같다' 하며 모셔야 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할아버지를 버리고 남의 할아버지를 자신의 할아버지로 모신다면 여기서부터 천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천국 가정과 천국 환경이 여기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세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가까운 것을 희생시켜 악한 가인을 하나님의 아들딸보다 더 사랑해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입장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입장을 넘어선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서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늘나라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늘나라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인내와 극복, 이 말이 뭐예요? 참고 견디라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은 손들어 보십시오. 하나도 없군요. 싫긴 싫지요? 그렇지만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 사람이 참고 견디며 살게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타락했기 때문에 참고 견디며 살아야 합니다. 보응을 치르고 넘어 가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인간 조상이 참지 못하고 견디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그것을 탕감복귀하려면 끝까지 참고 견뎌야 됩니다. 이것이 탕감원칙입니다. 알겠어요? 참고 견디는 데는 사탄이 꼼짝 못하고 굴복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참고 견디어야 되느냐 하면 끝까지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6천년 동안 참고 견디어 나오신 분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분이 누구라고요?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그 아버지의 천품과 피살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그 아버지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세계에서의 생활철학은 참고 견디는 것이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라구요?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여기서부터 효의 도리가 시작되는 것이요, 충의 도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나라도 세계도 해방의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좋은 세계도 환영이요, 나쁜 세계도 환영이니 지옥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러한 원칙하에서 참고 견뎌야 됩니다.
옛날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5대가 한 집안에서 사는 어느 한 종가집에 종손 며느리로서 지낸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에게 어떻게 5대가 되는 식구들과 함께 사는지 그 비결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골방에 들어가더니 독을 열어 보이더라는 거예요. 거기에 참을 인(忍) 자가 서너 독에 꽉 차 있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참을 인(忍) 자, 참기만 했겠어요? 참고 견뎠는 것입니다.
견디는 데는 목적이 있어야 됩니다. 목적이 없으면 못 견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를 잡아죽이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원수를 몽땅 포위해서 전멸을 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대표해서 주님을 다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아야 합니다. 그런 목적관념이 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참고 견디기만 하면 안 됩니다. 참고 견디기만 하고 '아이쿠 힘들어라' 하면 되겠어요? 참고 견디더라도 참고 견디는 것 같지 않게끔 감사하며 찬송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고 견디는 데도 감사한 마음과 찬양하는 마음을 갖고 참고 견뎌야지 불만하면서 참고 견디면 하나님이 오다가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데는 무엇이 필요하냐? 뭐라고요?「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참지 못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밑받침되지 못하면 참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이 같이하시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하느냐? 보라구요.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내려다보고 사는 거라구요. 올려다보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래도 통일교회를 믿고 하나님을 알고 죽더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데. 통일교회에 들어오지도 않고 말씀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그러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찬송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거라구요.
감사의 마음과 찬송의 마음을 앞놓아가면서 참고 견디는 곳에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며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이 이상도 참겠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야, 아무개야. 더 이상 참지 마라, 그 길을 더 가지 마라' 하고 정지시키는 것이 복귀의 자리입니다. 감사와 찬송의 마음을 가지고 참고 견디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며 찾아오셔서 '세상 가운데에 너 같은 아들이 어디에 있으며, 딸이 어디에 있겠느냐? 지금 네가 하는 일을 딴 사람에게 시키겠다' 하시며 그를 안식의 자리, 하늘땅에 없는 복받을 수 있는 자리에 옮겨 놓으려고 하시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여기에 있는 정석온 노친네 알지요? 철산에 있던 감사패의 딸. 그들은 감사패인데 매를 맞아도 (이하 인용부호 안의 말씀은 박수치며 장단맞추며 노래로 하심) '매를 맞았으니 감사합니다. 핍박받았으니 감사합니다. 시어머니에게 욕을 먹었으니 감사합니다' 전부 감사로구만. '내 사랑하는 아들딸을 하나님이 데려가서 감사합니다. 우리 남편과 갈라놓았으니 감사 합니다'(웃음) 알고 보니까 진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감사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저 감사하고 찬송 해야 됩니다.
아침부터 부인이 바가지 긁고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며 서로 싸우고 죽는 소리 할 때도 '한 식구가 화가 났으니 감사합니다' (웃음) 그래 보라구요. 세 사람만 그래 보세요.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십 분을 넘기나. '갈 데로 가라구. 아이구 모르겠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자극이 되면 전보다도 사이가 좋아진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 동네에서는 그들을 '감사패'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철산의 감사패 교단이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아하, 그들은 대한민국에 큰 교육을 하기 위해서 나타났던 교단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해방 이후에도 몰리고 쫓기는 처참한 환경을 많이 당해 온 이민족 앞에 이런 교단이 있는 것은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 가까와 온다 그 말이거든요. 그런 것을 볼 때 한국 백성은 망하지 않는 백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됩니다.
그러면 참고 견디며 감사와 찬송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되느냐?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뭘 해야 하느냐? 상부상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도와주며 서로 도움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같이 살고 같이 가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해야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탕감복귀하려면 세상에서 맨 처음 뭘 해야된다구요? 악착같이 참고 넘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고맙기 때문에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나만 됐으면 됐지. 남들이야 문제가 안 된다. 이젠 됐으니 한 때가 되거든 나만 도망가면 된다'고 하면 되겠어요? 자기에게 있는 재산과 모든 것을 내놓고 줄을 달아 가지고 어서 와라 어서 와. 너희들 먼저 가라' 하며 다 간 후에 자신은 뒤에서 제일 늦게 가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도와주고 구해 주며 서로 도움받기 위한 인연을 맺어야 통일된 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 도와주어야 되겠어요? 감사 찬송하는 사람들이 먼저 도와주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도움받기 위해서 나가 있어요, 도와 주기 위해서 나가 있어요?「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참고 견디어야 됩니다. 다음에는 감사 찬송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말한 것이 별 것 아니라 그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상부상조해야됩니다.
누가 먼저 도와줘야 된다구요? 우리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누구를 도와주어야 합니까? 대한민국과 세계를 도와주어야 됩니다. 도와주는 것이 쉬워요?「어렵습니다」 주는 자는 복받는다고 했어요, 벌받는다고 했어 요?「복받는다고 했습니다」 받는 자보다도 주는 자가 복이 있어요, 없어 요?「복이 있습니다」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주면 잘 받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절반을 주면 갚아 줄까 말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3분의 1을 주면 먹다 남은 것이나 쓰다 남은 것을 주는 것같기에 불평이 가해집니다. 차라리 안 준 것만 못 합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3분의 1은 안 주는 것만 못 합니다. 주려면 3분의 2는 주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타락은 소생기, 장성기, 3분의 2권에서 했기 때문입니다. 3분의 2 이상의 권은 완성권이기 때문에 하늘에 속할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분의 2의 기준을 넘어서게 주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3분의 2의 기준이 되려면 50퍼센트나 60퍼센트를 가지고는 안 됩니다. 3곱하기 3은 9이니까 60퍼센트는 조금 넘어야 하고, 70퍼센트는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학교에 다니면서 시험을 보고 점수를 받게 될 때에도 60점과 70점은 10점 차이인데도 70점을 받으면 기분이 좀 낫습니다. 낙제는 안하니까 그래도 기분이 그렇고 그렇지만 60점을 받으면 기분이 잡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6수는 싫어하고 7수부터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7수에서부터 모든 소망이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6일을 지내고 안식일을 맞아야 소망이 싹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왜 그런지 70점이 되어야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80점이 되면 더 좋다고 하고 90점, 100점이 되면 더 좋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70퍼센트 이상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협회 원리시험도 70점을 못 받으면 안됩니다. 70점을 못 받으면 불합격입니다. 70점이 넘어야 합격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정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3분의 2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줘야 됩니다. 그런데 '내가 어제 그렇게 주었으니까 그만큼 돌려 받아야지. 뿌린 대로 거두는데, 뿌리면 번식하게 되어 몇 배를 거두게 되는데 내가 이렇게 줬기 때문에 이 다음에 몇십 배를 받아 갈 거야'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 준 것입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은 망하는 거라구요. 그건 장사꾼입니다. 그런 사람은 부모가 아닙니다. 3분의 2를 주고 자신이 줬다는 생각을 잊어버려야 됩니다. 남을 도와주고 기억하는 사람은 복을 빨리 못 받습니다. 알겠어요?
남을 많이 도와주었다고 수첩에 기록해 가지고, '내가 도와주었으니 이다음에 도와준 것을 찾아야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그 도와준 공적의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주는 때와 마찬가지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남을 많이 도와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잊어버리고 도와준 것을 모른다고 하게 될 때에는 복은 이미 앞에 와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오래됐기에 잊어버렸느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은 몇천 년에도 해당하고, 몇만 년에도 해당하는 것입니다. 몇만 년이 지났기 때문에 잊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라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도와주고 잊어버리는 사람은 복을 빨리 받는 것입니다. '내가 도와주었으니 갚아 주겠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기다려도 복은 오지 않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주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받겠다고만 한다면 그런 사람은 전부 다 사탄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나오시지 않습니다. 받는 것만 좋아하면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십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뭘 주겠다고 하면 서로가 좋은 것 가지려고 날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는 천국 가고 하나는 지옥 가게 된다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아무 생각없이 여러분에게 주게 된다면, 선생님은 천국에 가지만, 여러분들은 서로 좋은 것을 가지려고 싸우다가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갖기 위해서 경쟁하는 사람은 제일 나쁜 자리에 가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가운데에서 제일 상급의 사람이 그렇게 했으면 그 사람이 제일 나쁜 곳으로 떨어져 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한 행동은 더디하고, 남을 위한 행동은 서둘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현들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남을 위한 일을 중심삼고 준비도 없이 서두르는 것이 잘하는 것이냐, 못하는 것이냐? 잘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탄세계는 불평 불만과 반신반의와 반항과 싸움으로 이루어지지만, 하늘나라를 이루려면 먼저 참고 견뎌야 됩니다. 인내하고 극복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민족의 반대를 받았고 교단의 반대를 받았으며, 더 나아가서 자기 친척들에게 몰매를 맞았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까지 저버림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될 때에 예수님은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부모에게 '당신이 어떻게 내 엄마 아빠요? 하는 것을 볼 때에 엄마 아빠는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이렇게 되면 정성들여 키운 모든 과거지사가 전부 다 기쁨의 요소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화의 요소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놈의 자식 같으니라구. 너 때문에 내가 밤잠을 안 자고 너를 이렇게 키웠는데…' 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그 자식의 행동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스러운 자리이며 과거를 전부 들추어 가지고 저주할 수 있는 자리가 그 자리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불신이라는 것은 갑절로 망할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고 견디고 희생하며 온유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만사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만일 아무리 수십 년을 잘했다 하더라도 이제 와서 '못 하겠다'고 한다면, 그 한마디는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과 같습니다. 그 못은 바늘을 꽂아 놓는 것보다도 몇백 배 몇천 배 더 아픈 것입니다. 그 한마디로 말미 암아 십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불평불만은 절대 불효의 요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신반의도 그렇고, 반항하는 마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을 볼 때에 예수님이 불평불만할 수 있었던 입장인가, 아닌가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준비시켜 이스라엘 민족 앞에 보낸 아들입니다. 그런 예수님입니다. 그렇지요? '네가 가거든 마리아에서부터 요셉 가정이 일치되고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 되어 너를 군왕으로 모셔 줄 것이다'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또 '너는 세상에 가게 되면 이런 책임을 하고 이런 사명을 해야 된다'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겠어요, 안 가르쳐 주었겠어요? 그런 약속을 받았겠어요, 안 받았겠어요? 받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살인 강도, 반란패가 되어 있고 국가의 주권을 전복시키려는 반동분자로 몰렸습니다. 또, 교회는 예수님 편이 된다고 하였는데 원수가 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은 충성된 백성이 된다고 하였는데 원수의 백성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제대로 맞았어요, 안 맞았어요? 전부 다 맞지 않았습니다. 가정에서도 안 맞고, 나라에서도 안 맞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도 '참아라'고 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사기당한 것 같아요, 안 당한 것 같아요? 속은 것같아요, 안속은것 같아요? 약속대로한것 같아요, 안한것 같아요? 전부 다 틀어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만이 꽉 찼겠어요, 안 찼겠어요? 불만이 꽉 찰 수 있는 것입니다. 불만이 꽉 차면 불평이 나오겠어요. 안 나오겠어요? 불평이 흘러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불평하면 반신반의를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믿겠어요, 못 믿겠어요? 못 믿으니 하나님을 저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뭐야. 다 요사스러운 것이다' 하고 반항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가신 것입니다.
선한 일은 끝까지 선한 일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왔다는 것은 선한 것입니다. 교회를 대표해서 왔다는 것은 선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 사가랴 가정, 즉 세례 요한을 중심한 가정의 일파를 중심삼고 요셉 가정은 사랑을 맺었습니다. 그 가정을 중심삼고 그들이 충신이 된다고 했으니 그들은 선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지금 자신이 선한 자리에서 반대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나 자신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남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약속한 자리도 틀림없고, 자기 자신도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된 것은 누구 때문이냐? 처음에는 사탄 때문이요. 그 다음은 사탄세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지한 백성들, 무지한 교인들이 꾀임에 넘어가서 그렇게 반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가슴에 남는 것이 있어요? '그래도 우리 아버지밖에 없다. 내가 이제 여기에서 죽더라도 나는 악한 사람이 되지는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내 죽음을 알아줄 것이다. 내가 최후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알아주는 선한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 줄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내 뜻은 당신과 약속한 뜻이었고 내가 죽는 것은 또다시 세계를 구하기 위한 사랑의 섭리이오니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거기에 불평이 있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보시오' 라고 했습니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극복하는 자리, 참고 견디는 자리에서 감사 찬송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몸을 바쳤던 것입니다. 그렇지요? 누구한테 바쳤어요?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내주기는 미안하니까 '내 죽음을 아버지 앞에 드리기는 미안합니다. 아버지께서 죽으라고 하는 자리에서 죽고 또 죽어도 또 죽어야 할 길이 남아 있는 줄 아옵니다. 이 몸을 당신 앞에 바치지 못하오니 원수인 인류에게 남겨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인류에게 그런 심정을 넘겨 주고 죽었다는 거예요. 그것을 아는 하나님께서도 통곡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들은 죽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부활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참된 생명은 죽고나서 사탄세계에 참소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편들 수있는 생명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죽음으로 인해 하늘나라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진정, 끝까지 도와주면 인간이 안 도와주고 안 갚아 주더라도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갚아 주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하나님이 갚아 주시기를 바라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늘편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요, 사람편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보통 여러분들은 사람이 갚아 주길 바라지요? 그렇지요?
여러분들은 전도 나가게 되면 조금만 섭섭해도 '여자들에게 왜 이것을 하라고 그래 ? 세상 같으면 누가 이러고 있을까? 통일교인들은 여자들을 몰라줘' 라고 하며 알아 달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낮은 사람이 알아주면 무슨 복을 받겠어요? 높은 사람이 알아주어야 복을 받지요. 그렇지요? 하나님은 높은 곳 중에서 최고로 높은 데를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묵묵히 참고 나가야 합니다. 말없이 참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사람이 갚아 주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갚아주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분의 뜻은 크고 그분의 선은 위대하기 때문에 그분의 복을 천년 후에 받는다면 천년도 기다리고 나가야 합니다. 만년 후에 받을 것이 틀림없다면 만년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참고 나가는 입장에 서면 우리의 움직임은 그 상을 받을 때까지 발전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상을 받고 나면 그 다음에는 딴 것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끝내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길을 갔기 때문에. 이런 길을 가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것은 마리아의 아들로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죽었기 때문에 세계를 위해서 죽은 것이요, 나라를 위해 죽은 것이요, 수많은 인류를 위해 죽은 것입니다. 피를 흘린 것입니다. 그가 흘린 피는 개인의 피라도 인류를 대표한 피이기 때문에, 사탄을 막아내 가지고 새로운 천국을 개문하여 제 2이스라엘 기독교 문화권을 창건했음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결론을 짓자구요. 여러분 자신은 선과 악의 권내에서 하나님과 사탄과 예수님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인간임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자신의 가는 길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나라를 위해서 정성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나라가 망하더라도 남아지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정성들이는 사람이 된다면 세계는 망하더라도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남아질 수 있는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전체를 대표해서 있다는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전체를 위하고 전체를 살려 주고 가야 됩니다. 전체의 아버지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공동적인 목적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대표적인 사명을 하겠다는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열 사람이 있다면 열 사람을 위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열 사람 대신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열 사람에 대해 불평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불평과 불만이 가득찰 수 있는 환경이더라도 참고 견뎌야 됩니다.
그래야 감사 찬송할 수 있는 터전을 찾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감사 찬송할 수 있는 자신을 중심삼고 화합하게 되면 하나님이 열사람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나중에 받기 위해서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살려 주기 위해서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자신은 물건을 주었고 정성을 주었지만 잘하면 그의 생명을 거두어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거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상 좋은 선물이 어디에 있겠어요?
그 사람에게 선한 후손이 태어나게 된다면, 내가 그 사람의 선조의 복을 열매로 거두어서 하나님 안에 드린 것이 됩니다. 아무리 그 사람의 선조가 선했다 하더라도 거두는 데 있어서 내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선조를 통해 이어받아 가지고 결실된 상은 내 손을 거쳐서 그 후손 앞에 물려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을 주는 입장인 내가 받는 사람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도 바울은 이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사도시대에 있어서 베드로를 중심한 12사도를 핍박하는 자리에 있었지만, 바울은 그 후 유일하게 지중해 일대를 편답하면서 어떠한 사도보다도 수난길을 가며 수고했습니다. 그것은 왜냐? 자신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의 복음이 퍼지게 되어 인류가 자신의 이름을 거쳐서 전도받고 구원받게 될 때 지금까지 선한 선조들이 하나님을 위해 수고하며 쌓아 둔 공적의 열매가 자신으로 말미암아 맺혀 지기 때문에, 많은 족속들에게 상금을 줄 때에는 자신의 손을 거쳐서 주게 됨으로써 자신은 선한 조상들 앞에 으뜸가는 자리에 가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바울은 밤이나 낮이나 죽음길을, 사지사판을 헤아리지 않고 노력한 것입니다. 이런 비결을 알았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이 선생님을 통하여 이 길을 알았기 때문에, 선생님 대신 상금을 줄 수 있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만민을 대표해서 상금을 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자연적으로 전체의 위에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사고방식과 사상을 가져야 되느냐? 나는 전체를 위해서 산다. 전체보다 나는 더 해야 된다'는 전체를 위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열 사람이 수고하면 나는 그 이상을 해야한다. 거기에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면 내가 그것을 감당한다. 거기에 내손이 가야 되고 내 피땀이 연결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노력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러니 참고 견뎌야 됩니다. 참고 견디고 나면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하고 찬송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기쁨을 갖는 터전이 됩니다. 그 기쁨은 나 자신 때문에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쁨은 하나님 뜻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을 사람 때문에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을을 책임지고 마을 사람들에게 '나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여러분도 같이 나가자'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그 마을 사람들이 따르는 것입니다. 마을 사람 들이 따르면 그 사상을 가지고 군(郡)으로 나가고, 군 사람들이 따르게 되면 그 사상을 가지고 도(道)로 나가며, 더 나아가 도(道) 사람들이 따르게 되어 그런 사상을 가지고서 나라를 위해 살 때에는 그 나라는 빨리 복귀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평불만, 반신반의, 반항, 싸움의 요소들을 전부 다 없애버리고 참고 견디면서 감사하고 찬송하여야 할 책임이 있음을 알고 기쁜 마음으로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은 최고의 상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런 자리에 선 것입니다. 여러분은 최고의 자리에 섰으니 귀하고 복된 자리를 고이 간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던 고난길에서 승리 하여 돌아오게 될 때에는 금의환향할 수 있는 영광의 한날이 여러분에게 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자의 주의점이다' 하는 것을 잘 기억하고 돌아가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여러분이 내일이면 돌아가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 얘기를 해주는 것입니다. 이 점을 특히 주의해야 됩니다. 따라해 보십시오. 불평은 무서운 것. 「불평은 무서운 것」 불만은 무서운 것. 「불만은 무서운 것」 반신반의는 사탄편인 것. 「반신반의는 사탄편인 것」 반항, 투쟁은 사탄의 무기를 가지고 싸움을 하는 것. 「반항, 투쟁은 사탄의 무기를 가지고 싸움을 하는 것」 까딱 잘못하면 둘 다 망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불평불만 하는 사람은 상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투쟁하는 사람은 상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대하지 않는 것도 참는 것입니다. 귀로 그런 말을 들었으면 귀를 막아야 합니다. 눈으로 봤으면 눈을 감아야 합니다. 봤어도 전부 다 못본 체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라는 거예요.
여기서 하늘땅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그러므로 전체를 위하여 참고 견디면 하늘나라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어 가지고 감사 찬송하면서 자기의 모든 것을 주고 최후에 하늘편에 나서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결단코 귀한 복을 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고 남아진 1972년까지 전력하길 바랍니다.
여러분, 1972년까지 멀어요. 가까와요?「가깝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라 구요. 선생님도 감옥생활을 했어요. 여러분의 생활이 그 감옥살이보다 나을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선생님은 피를 토하는 많은 고문도 받았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누가 뺨을 쳐요? 누가 잡아죽이겠다고 해요? 선생님보다 낫다는 거예요. 그렇지요?「예」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알고 앞으로 주위에서 원수들이 철옹성같이 에워싸고 여러분의 생명을 노리는 낚싯밥을 던져 놓고 낚싯대를 끌어당기더라도. 이제까지 말한 불평불만 반신반의 여건을 통해서 여러분을 몽땅 걸어 낚아채려고 하는 것을 알고 거기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싸우고 승리하여 돌아오면 하나님이 기뻐하고, 이 나라 이 민족과 세계 만민이 여러분 앞에 무릎을 꿇고 천세만세 찬송과 존귀영광을 여러분에게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이 귀한 백성이 되고 귀한 나라와 세계의 주인이 되는 길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이런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고 지금 그렇게 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사랑하는 아버님, 저희는 이제 알았나이다. 남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이렇게 귀하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무것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같지만, 아버님을 대신해서 나가 싸웠고 아버님을 대신 해서 수고하였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임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사람이 알아주고 치역장이 알아주고, 혹은 교단이 알아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옵니다. 더 나아가서는 본부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게 문제가 아니옵니다. 알아주는 자리는 도리어 당신의 복을 가치 있게 받을 수 있는 자리가 못 되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신 말씀의 뜻을 이제 알았사옵니다. 아버지, 누가 몰라 주더 라도 저희들은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누가 저희의 갈 길을 막더라도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혹은 스승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당신만은 기필코 저희들이 하는 일은 아신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참고 견디어 존귀영광과 찬송을 당신 앞에 돌려드리며 만민을 위하여 고이 제물 될 수 있는 거룩한 무리들이 이 강토에 많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보낸 저의 책임이 큰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제가 그런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 앞에 빛진 것같이 느껴지지만 지금은 제가 이들이 모르는 때에 빚을 지어 놓은 것을 갚는 자리에서 탕감할 수 있는 거룩한 때라고 생각하옵니다.
아버지여. 당신께서 제가 어려울 때에 도와주시던 것처럼 이들이 어려울 때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어려움을 참고 견딜 때에 당신이 분부하시어 제가 다짐했듯이 이들이 참고 견뎌야 할 생활권내에서 당신이 분부하시어 이들이 다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끼리끼리 하나 못 되어 가지고는 남을 살릴 수 없는 것을 아옵니다. 또한 우리 끼리끼리 뜻을 높이고, 우리 끼리끼리 전체를 대신하여 제물 되겠다고 하지 않고는 천국 건설이 성사되지 않는 것을 아옵니다. 만일 대한민국이 이 뜻을 못 이루면, 세계의 어떤 나라 중에서 이 뜻을 중심삼고 나가는 민족이 당신의 뜻을 이를 수 있는 자리에 선다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한국 민족과 일본 민족과 미국 민족, 혹은 독일 민족을 비교하여 보게될 때, 한국 민족은 꼬부라지고 일그러지고 분열하는 것을 느끼지만, 일단 민족은 한마디의 명령에 일체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국 민족은 전체 분야에 있어서 서로 책임지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독일 민족은 전체의 생명을 투입해 놓고 자기가 목적한 바는 죽더라도 이루어야 된다는 민족성이 깃들어 있는 것을 보았사옵니다.
수난길을 탕감하고 극복하는 데에는 한국 백성이 필요할는지 모르지만, 하나되고 주체성을 세우고 책임을 수행하기 위하여 전체를 희생시키는 데있어서는 합격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요소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한국 민족이 탕감노정에서는 좋았지만 복귀노정에서는 서러움이 엇갈리기 쉬운 민족임을 저희들이 알고, 이 민족의 전통을 지키는 책임을 말없이 수행해야 되겠사옵니다.
불평불만, 반신반의, 반항과 부정하는 마음을 일소해 버려야 되겠사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마음을 일소해 버리고 전체를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민족성을 갖는 민족이 되지 않고는 세계 앞에 나설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사오니, 아버지, 이들을 보시어 용서하시고 당신께서 다시 품을 수 있는 한날을 헤아려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아버님 앞에 매일 모범이 되기를 맹세하고, 전체 앞에 책임을 진 주체의 입장에 서기를 맹세하고 있사오니 전체의 것을 가졌으면 그것을 내 것으로 가질 것이 아니라, 세계 만민 앞에 주기 위해 노력하는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되겠습니다.
이제 일주일 기간을 보내고 내일이면 돌아가야 할 딸들의 염려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제가 아옵니다. 부디 오늘 들은 말씀을 고이 가슴 깊이 뼛골에 잘 새겨 가지고 이것이 신앙자가 가야 하는 가장 귀한 주의점인 것을 알고, 참고 견디고 감사 찬송하는 것을 생활철학으로 삼고 혹은 모든 전부를 창조하는 것을 자기의 보람있는 생애로 삼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가는 통일교회의 앞날은 평탄할 것이지만 이것을 도피하고 부정할 때에는 민족의 앞날에 광명 대신 흑암이 가로 막힌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가 그런 민족을 불쌍히 보는 마음을 가지고 담대히 수난길을 걸어갈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제까지 아버지께서 지켜 주신 것에 감사드리옵니다. 남아진 오늘 하루를 지내면 이들이 삼지사방으로 돌아가겠사오니. 외로운 발걸음을 지키시옵소서. 이들은 망하는 세상에서 망하지 않기 위해서 남다른 발걸음을 옮겨 놓은 무리였사오니, 부끄러운 몰골로 당신의 위신을 깎는 사람이 되지 말게 하옵시고, 당신의 체면과 위신을 갖춰서 당신의 후대하신 복과 영원 불변의 축복을 받고 남아질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이들이 인류가 소망하는 조상이 되고, 인류가 희망하는 민족을 이루어 그 민족을 중심삼은 국가를 만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당신의 소원을 알고, 당신의 소원에 배반하는 무리가 절대 되지 말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남다른 길을 알았기 때문에 이런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요, 당신의 뜻을 알았으므로 불가피하게 아들딸의 인연을 맺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면 저희들은 낙망과 절망의 교차로에 섰지만 낙망할래야 낙망할 수 없사옵니다.
저희들이 낙망하여 망하는 것은 괜찮지만 저희들에게 딸린 민족과 세계가 망할까봐 당신을 저버릴 수 없고 당신의 길을 지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는 당신의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딸들이 가는 배후에서 염려하는 아들들과 그들의 자식들을 당신이 지켜 주시옵고, 그들을 중심삼은 혈연적인 이스라엘권, 외적인 이스라엘, 가인적인 터전을 당신이 지키시어 이것이 하늘 승리의 터전이 되고, 찬양과 환희의 소유권이 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말씀과 더불어 길이길이 남아지는 당신의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재삼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수고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어려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수고로운 길을 가기를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미물인 동물 이나 그밖의 식물까지도 역시 어려운 자리에 있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복귀섭리의 노정을 볼 때, 그뜻이 가는 길은 수난의 길을 피해서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수난의 길을 피해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벌써 그 길을 가셨을 것이로되. 수난의 길을 피해 가지고는 갈래야 갈 수 없는 길이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여 본연의 위치에서 떨어져 내려왔으므로 인간이 그 떨어진 자리에서 피해 갈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피할 수 있는 길이 그냥 그대로 내려가는 길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냥 그대로 내려가서는 복귀의 길을 더듬어 갈 수 없습니다. 복귀의 길을 가려면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떨어지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그 떨어진 입장에서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는 떨어질 때에 눌리어진 모든 여건들을 반대로 밀어 젖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올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을 두고 볼 때, 나면 나, A면 A라는 그 한 사람이 떨어졌는데 어느 정도까지 떨어졌느냐 하면 깊은 골짜기, 골짜기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골짜기 밑에까지 떨어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떨어진 개인 위에 가정이 누르고 있고, 그 위에는 종족이 누르고 있으며, 그 위에는 민족이 누르고 있고 또 그 위에는 세계가 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칠판에 그림을 그리심) 이와 같은 입장에 오늘날 타락한 인간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떨어져 내려왔는데 혼자만 떨어진 것이 아닌 것입니다. 떨어질 때는 혼자 떨어졌지만 역사를 거쳐올수록 천년, 2천년. 6천 년 역사가 지나오면서 그 짐은 점점 가중되어서 커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의 입장이 어떤 입장이냐 하면 구렁텅이면 구렁텅이, 골짜기면 골짜기의 제일 밑창에 깔려 있는 신세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신세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인간이 소생하여 다시 소망의 터전과 소망의 때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냥 그대로의 입장에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서는 피해 갈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현재 떨어져 있는 그 자리에서 자유롭고 어렵지 않은 길을 찾아서 희생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그 길을 원하시고 얼마나 그 길을 가게 하고 싶으시겠습니까? 그렇지만 떨어짐으로 말미암아 이 그림에서와 같이 인간은 골짜기 중의 골짜기에서 짓눌리고 있는 신세 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간을 하나님이 구원하신다고 할 때, 그 하나님의 입장과 우리 인간의 입장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하시기 위해서는, 내가 그대로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길을 터 가지고 내려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인간이 구원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길을 터 가지고 내려오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 한 사람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섭리의 뜻을 펴기 위해서 어떤 길을 걸어오셨느냐? 반대로, 세계를 뚫고 나라를 뚫고, 민족을 거치고 종족과 가정을 거쳐 나의 기준까지 거꾸로 찾아 내려오는 역사를 해 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뜻의 자리로 부름을 받은 지가 5년이나 10년, 혹은 20년이 되었다 할 때, 여러분이 뜻을 알고 하나님을 따라 나선 그 길은 5년이면 5년, 10년이면 10년, 20년이면 20년 전에야 비로소 시작되었지만 역사적인 배후를 두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수천년이라는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나' 한 사람을 다리 놓기 위해 수고해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사탄을 제거하고, 이 민족과 국가를 막고 있는 사탄을 제거하고,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가로막고 있는 사탄을 제거해 나왔습니다. 그러한 일이 여러분에게 연결되기까지 우리 인간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난의 길, 고통의 길을 거쳐 나오신 것을 여러분은 미처 몰랐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라는 한 개체가 뜻 앞에 존재하게 된 사실을 두고 볼때, 하나님이 치르신 수고의 대가와 오늘날 뜻 앞에 서게 된 나 자신의 가치를 비교해 보면 오늘에 선 나의 가치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나 자신이 뜻과 연결된 자리에 서 있더라도 뜻을 안 입장에서 볼때, 나의 가치라는 것은 사망권에 짓눌려 있는 가치요, 수많은 한과 수난길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제일 어려운 자리에서 뜻을 알게 된 자신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뜻을 알았으되 이 자리에 올라서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맨 밑창에 있다가 뜻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뜻을 안 나로서 하나님의 수고 앞에 빚을 진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 자체의 가치와 우리 자체의 가치를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수고한 것을 비교하여 볼 때, 우리는 그 수고 앞에 도저히 갚을 도리가 없는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 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거꿀잡이로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판서하심) 이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보면 개인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다 달라요. 사랑의 고빗길마다 그 길이 그냥 그대로 계속되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입장이 다르고, 사랑의 상대가 달라질 때마다 탕감의 역사가 나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나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에 나는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는 내가 완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내 개체가 세계적인 싸움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는 제일 먼 거리에 있는 자리입니다. 거리가 제일 멀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6천년의 역사는 누구를 찾기 위한 역사냐? 한 개인을 찾기 위한 역사입니다. 개인 가운데서도 누구? 남자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고의 대가를 치러 나온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나 한 남자를 찾아 세웠다 해도 그 한 남자가 하늘 꼭대기에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서 있지만 하나님이 내려오실 때 방해를 받지 않도록 만들어진 자리에 서 있는 한 남자를 찾아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다면, 그 주님이 이 땅에 오시기 위해서는 6천년전 타락한 그날부터 시작하여 탕감의 역사. 복귀의 역사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6천년의 말(末)에 하나의 남성을 찾아야 되는데, 그남성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주님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게 될 때는 세계적인 사탄, 국가적인 사탄. 민족적인 사탄, 종족적인 사탄, 씨족적인 사탄의 여건을 전부 다 청산지은 터전 위에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 한 사람은 세계로 갈 수 있는 탕감의 길을 닦고 온 입장이기 때문에 그분이 돌아가는 데는 사탄이 참소하거나 막을 수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한 연고로 그로 말미암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고해 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그 중심사상이 메시아 사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 올 때는 하나님의 협조를 받아서 탕감의 역사와 수고의 경로를 거친 후에 왔지만, 돌아갈 때는 마음대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돌아가야 되느냐? 개인으로서 가정을 데리고 돌아가야 합니다. 가정만 데리고 돌아갈 것이 아니라, 종족도 데리고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종족뿐만이 아니라 민족과 국가를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메시아의 사명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올 때에도 수고롭게 왔지만 가는 길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협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수고의 책임을 지고 개척하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타락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타락은 누구 때문에 했느냐? 하나님 때문에 한 것이 아니라 아담 해와가 책임을 못하고 타락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마 6천년의 역사가 저끄러졌기 때문에 그 아담을 대신해서 오시는 주님은 이것을 다시 헤쳐 버리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는 데는 개인을 중심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을 중심 삼고 할 수 있으면 간단하겠지만, 개인이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승리의 터전을 갖고 온 주님 앞에 부름받아 나갈 수 있는 신부와 같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신부도 역사적인 승리의 진에 일치해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승리권에 선 신부가 되어야 된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입장에 선 신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입장의 신부를 마련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신랑과 신부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되어야 됩니다. 조금 전에 말한 것과 같이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떨어질 때에 거꿀잡이가 되었습니다. 사탄이 맨 먼저요, 해와가 그 다음이고, 아담이 그 다음이며 만물이 맨 나중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라가는 데에 있어서도 아담과 해와가 나란히 서서 올라갈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과 해와가 나란히 서서 갈 수 없으면 누가 앞장서야 되느냐? 사탄과 싸워야 할 아담의 입장에 있는 주님이 앞장을 서서 책임을 지고, 그 상대되는 해와는 주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면서 주님이 가시는 발자국을 그대로 밟고 따라 나가지 않으면 해방받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신랑과 신부가 횡적 관계, 좌우관계가 아닌 전후관계에 서서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부는 신랑 되시는 주님을 어떻게 알아야 되느냐? 하나님 아버지 대신으로 알아야 되고, 그 다음에는 오빠 대신으로 알아야 되며, 신랑으로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지음받았기 때문에, 장래에 실체를 쓴 하나님, 즉 하나님의 몸이 되어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일체 되는 몸의 입장이기 때문에 그분은 아버지와 마찬가지의 입장이요, 오빠 중의 오빠의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오빠로 모실 수 있는 인연을 갖춘 후에야 비로소 신랑의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아담이 태어날때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고 해와의 오빠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와 같은 실체로 오신 주님은 신부 앞에 아버지를 대신하여 신부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것이며, 그 다음에는 오빠로서 누이 동생과 같은 입장에 있는 신부의 갈 길을 인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버이의 사랑과 오빠의 사랑, 두 사랑을 전부 체험한 자리에 선 해와와 더불어 비로소 신랑 신부의 인연을 맺게 되어 있는 것이 본래의 창조원칙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오늘날 이 땅 위의 타락한 인간들이 바라는 신랑 되는 주님이 오면, 그 주님을 중심삼고 나타나야 할 신부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분이 아버지 대신이며 오빠 대신이라는 심정적 인연을 맺은 후에 신랑으로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원칙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입장에 선 해와가 주님을 신랑으로 맞기 위해서는 아버지로 모셔야 되고, 또 오빠로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가지고…. 그분이 아버지이시니 나는 효녀의 입장에 서야 하는 것이요, 그분이 오빠이기 때문에 나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오빠를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가는 길 앞에 반대되는 입장에 설 순 없는 것이 형제의 인연입니다. 아담은 물론이고, 해와도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담이 죽을 자리에 가게 되면 해와도 그 길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사지사판의 길을 갈 때에는 부모도 죽을 자리를 가는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심정을 중심삼고 부모의 심정이나 형제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느끼는 바인 것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과 우리, 혹은 예수님과 우리의 입장이라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입장인 동시에 아버지와 오빠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의 후손인 우리에게는 세상의 부모가 있습니다. 또 세상의 오빠도 있으며 세상의 남편도 있습니다. 이러한 타락권내에서 맺어진 부모나 형제, 그리고 부부의 관계라는 것은 타락된 사랑을 근거로 해서 맺어지고 이루어진 가정적 기틀이므로 여기에는 하나님이 관계를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타락한 혈통적 부부의 인연과 형제의 인연, 그리고 부자의 인연을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밟고 넘어서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말로서뿐만 아니라 심정으로서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입장에 있는.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에 있는 우리라 할진대는, 그 정리를 두고 볼 때 세상의 부자관계의 정리 이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혹은 형제관계를 두고 볼 때, 세상의 형제관계 이상 되는 경지를 찾아 볼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또한 부부의 인연에 있어서도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타락한 인류권을 형성하고 있는 수많은 가정의 대표가 부부인데, 이러한 세상의 부부 전체와 오늘날 여러분의 부부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의 부부는 타락한 사탄세계의 부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의 부부 전체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부부와 바꿀 수 있느냐 하면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딸과 사탄세계의 인류 전체와 바꿀 수 있겠느냐?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과 이 세상과 바꿀수 있겠느냐?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이 사망의 사탄세계의 인류보다도 귀한 아들딸, 사탄세계의 그 어떤 가정보다도 더 귀한 가정을 만들어 놓지 않고는 하나님의 위신과 체면을 갖춘 자리에서 '이는 내 아들이다. 내 딸이다' 혹은 '내가 축복한 가정이다' 하는 말도 할 수 없는 것이요, 그런 위신을 가지고 대할 수도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러냐? 만일에 그런 자리에 서 있지 못하다면 사탄보다 못한 가정을 가진 하나님의 신세, 사탄보다 못한 형제를 가진 하나님의 입장이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가 될 수 없습니다.
창조의 원칙을 두고 보면, 부모는 최고의 영광된 자리에서 자녀를 사랑 해야 되고, 자녀들은 하나님의 축복권내에서 부부를 이루어 이 땅 위의 만유의 중심이 되어 가지고 온 피조물을 축복해 주고 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중심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게 될때, 이러한 가정이야말로 우주의 중심이요,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의 중심이요. 만물이 바라는 절대적인 희망의 중심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이 땅 위에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이 바로 타락입니다. 이 타락한 세상을 부정하고 이러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가는 것이 복귀노정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됩니다.
원래 에덴 동산에서 이루었어야 할 이 뜻을 에덴 동산에서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된 사탄의 소굴권내에서 이루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몇천 배의 시련을 통한 배후의 터전을 닦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서 이루어진 가정은 타락권내에서 이루어진 가정이기 때문에, 그 가정을 에덴에서 타락하지 않고 이룬 것과 같은 기쁨의 가정으로 맞을 수 있는 입장에 서기 전에는 하나님은 기거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가정을 내새우지 않고는 오늘날 사탄 세계를 굴복시키겠다고 나설 수 없는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됩니다.
이 자리가 하나님의 내정적, 심정적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참기 어렵고 얼마나 기가 막힌 자리겠느냐?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축복해 주었다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축복해 준 가정의 자리가 사탄세계에 둘러싸인 자리요, 사탄세계의 반대를 받고 참소를 받고 침범을 받을 수 있는 자리이므로, 그 가정을 대하여 타락권을 맛보지 못했던 자유의 동산 에덴에서 이루어진 가정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심정을 찾아야 하는 하나님의 고충이 얼마나 크겠느냐? 오늘날 우리들은 이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의 고충을 풀기는커녕 그 반대되는 탕감의 역로를 거쳐 나오고 있는 것이 아버지가 처해 있는 입장인 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그 가정을 대할 적마다 기쁘시고 소망이 싹트고 희망이 깃들고 사랑이 움틀 수 있는 그러한 가정이 되고 그러한 아들딸이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대할래야 대할 수도 없는 자식들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로서 하나님이 너는 내 뼈 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하실 수 있고 골수가 움직일 수 있는 정에 얽혀 뗄래야 뗄수 없는 부자의 정을 지녀야 할 인간이 어찌하여 원수의 입장에 서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부자의 인연 속에서 심정을 가지고 대하고 싶어하시는 아버지께서 아들이라고 생각조차 하실 수 없는 비통함을 가져온 것이 타락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타락의 자리에서 나를 돌이키기 위한 길이 복귀의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오라고 해도 하늘을 향하여 정면을 바라 보고 갈 수 없는 입장이요, 하늘을 향해 돌아설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하늘을 향해 갈 수 없는 구속된 입장에 있는 인간인 것을 여러 분이 알아야 됩니다.
본래 하나님이 불러 줄 수 있는 인간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타락된 이 자리에 있는 인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타락하기 전의 자리에 있는 인간을 불러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본연의 기준인데, 그 기준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기 때문에 이 사망권내를 뚫고 나가야 되는 하나님의 신세가 얼마나 비참하냐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창조원칙을 중심삼고 인간과 부자의 인연을 맺고 있기에, 자식을 찾아가는 길 앞에 위신과 체면을 생각할 수 없는 부모의 자리에 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위신은 실추될 대로 실추되고 밟힐 대로 밟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자신은 말할 수 없는 사탄의 수난권내에서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천덕꾸러기와 같은 입장이 되었지만, 그것을 참으시며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나오시는 부모의 입장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천신만고하여 자식을 찾아 나오시는 걸음 가운데 잃어버린 자식을 만나기까지의 그 애달픔도 크겠지만….(녹음이 잠시 중단됨)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심정 적인 수난의 길을 지금까지 참아 나오신 것입니다.
어떠한 외적인 수난이나 외적인 핍박을 받아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심정에 엇갈린 원한의 행각의 노정을 걸으시면서 그 누구에게도 한할래야 한할 수 없는, 한탄을 하면 도리어 그것이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요건이 되고, 원망을 하면 원망하는 모든 내용이 인간 앞에 복이 되고 인간 앞에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탄이 하나님을 참소할 수 있는 원한의 노정으로 남아지기 때문에, 한의 심정을 품었지만 한의 심정을 표시할 수 없고, 원한의 심정을 품었지만 원한의 심정을 표시할 수 없고, 슬퍼도 슬픔을 표시할 수 없고, 괴로와도 그 괴로움을 표시할 수 없고, 억울해도 그 억울함을 표시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정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러냐? 그러한 표시를 하면 할수록 사탄이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본래의 창조원칙으로 볼 때 당신은 인간을 대하여 기뻐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슬퍼하는 입장에 서 있으니 당신의 아들을 찾을 수 없으며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면서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또 '당신은 당신의 마음 가운데에서 온갖 고통을 당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해 내고 기뻐하는 심정의 인연을 갖지 않고는 인간을 대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한 본래의 창조원칙이 있기 때문에 당신은 죽은 아들을 보고도 슬퍼할 수 없고, 외로와하는 아들딸을 보고도 외로와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참소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입장에서 복귀의 노정을 개척해 나오시는 하나님의 내정적인 수난의 길이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복귀역사를 해 오시는 가운데에서 사탄 앞에 수많은 개인을 희생시켜 나오셨습니다. 또한 가정이 희생되었고 민족과 국가가 희생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를 죽임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희생되었고, 또 2천년 동안 기독교가 희생되었지만, 이 희생되어진 무리를 붙들고 사탄 앞에 슬픈 표정을 지을 수 없는 하나님이요, 사탄을 대하여 원한의 표정을 지을 수 없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말할 수 없이 많은 무리가 희생되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자신과 관계없는 듯 무심한 심정으로 대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은 그 어떠한 고통과도 비교될 수 없는 최고의 수난의 정상에 처해 계신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서 하나님은 역사과정을 내려오신 것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오로지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서 탕감을 치러 온 것입니다. 즉, 수난을 치러야 했던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에는 하나님이 마음대로 지상에 오실 수 없습니다. 마음대로 오실래야 오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 이 땅의 전부를 어둠의 세력이 점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뚫고 나오기 위해서 무한한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한한 싸움을 해야 된다는 거라구요.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서 피나는 싸움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위에 메시아를 보내기 위해서, 그 한 사람이 올 수 있는 길을 닦는 데 6천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면 그 배후에서 싸움은 누가 하느냐? 하나님은 직접 싸울 수없습니다. 하나님이 천사장과 싸우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인하고 종이 싸우게 되어 있는 원리가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싸워야 되느냐? 천사장끼리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수많은 천사들과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 왔다가 하나님을 믿고 간 영인들을 동원하여서 지상의 개척 노정을 가게 한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지상 개척의 노정을 걷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땅 위에는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 혹은 뜻의 길을 간다고 하고, 혹은 자기의 행복과 자기의 구원과 자기의 소원성취의 뜻을 품고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이 영계에 가 보면 하나님의 입장과 하나님의 뜻과 얼마나 상치(相馳)되게 산 자신인가를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부 내가 하나님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고,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대신 싸워 주시오. 내가 해야 할 싸움까지도 맡아 주시오' 하는 입장에서 구도의 길을 가면서 하나님을 찾아 나온 사람은 많았으되 '내 싸움은 내가 책임지고 하나님의 싸움도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며 나서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 왔다 간 종교인들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 다른 종교인들은 그 종교를 믿어 하늘의 복을 받겠다고 하는 사람이지만, 예수님은 자신으로 인해 수고하시는 하나님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 대신 수고하여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고자 하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의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가 복을 받고, 수고스러운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는 펀안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종교인들이 걸어 나온 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아들 되는 예수는 하나님이 얼마나 슬픈 분인가를 알았기 때문에 효도를 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하나님의 수고를 덜어 드리고자 했지 하나님께 자기의 수고를 덜어 달라고 하는 입장에 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과정에서 비로소 '당신의 수고를 제게 맡기시옵소서, 당신의 싸움을 제가 대신하고, 당신의 심정적 십자가를 제가 대신 지겠나이다. 하나님이여,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제게 맡기시옵소서, 하나님이여, 당신이 희생할 일이 있으면 내가 대신 희생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아들로 나타난 분이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역사과정에서 이럴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말할 수 없는 심정을 억제해 나오던 입장에서, 그 아들을 대하여 비로소 '너만이 나의 심정을 알아주는구나' 하면서 통곡의 심정을 폭발할수 있는 입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감사의 통곡이요, 소원 성취의 통곡이요, 상봉의 기쁨을 대신한 통곡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뜻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죽든지 살든지 가겠다 하고, 하나님 앞에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길을 갔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 보게 될 때, 수난의 길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담판기도를 할 때, '아바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14:36)'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입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창조목적을 볼 때, 사람은 누구든지 수난길을 가게끔 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본성은 고통을 원하지 아니하고, 또한 인간은 누구나 수난길을 즐겁게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에 창조 본성의 자기 욕구를 제압하고 하나님의 수난을 자기가 맡겠다고 하는 간곡한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이러한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함으로 말미암아 이 지구상에는 비로소 행복의 터전이 마련되기 시작하였고, 하나님의 인연이 이 땅 위에 맺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비록 한 사람의 남자에 불과했지만,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한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한뿐만 아니라 심정까지도 체휼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하나님께 원한이 맺히게 했던 원수를 대하여 싸우는 데는 자기 개인의 상대 입장에 있는 원수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온 천지에 남아 있는 세계적이고 우주적인 사탄 주권의 무대를 놓고 이것을 책임지겠다 하는 입장에서 나서서 싸웠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이 그러하기 때문에 아들된 입장에서 원수와 싸우는 데는 세계적인 원수와 싸워서 그 원수를 굴복시키겠다는 결의를 갖고 하나님이 믿을 수 있은 자리에 섰던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통을 당하는 데는 하나님의 고통을 대신 받고, 책임을 지는 데는 하나님이 지실 책임을 대신 지고, 싸우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계에 남아 있는 사탄을 처치해 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이것을 살아서는 못 이루지만 죽어서 이룰 수 있는 가망성이 있다면 죽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그 길을 택하고 나선 걸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걸음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 개개인은 예수님의 사상을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신부의 자리에 서야 하는 우리는 예수님을 오빠로 모셔야 하고, 아버지로 모셔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신랑으로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세가지의 사랑을 한꺼번에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사랑, 오빠의 사랑. 부모의 사랑,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의 남자 아담을 대하던 해와가 이 세 가지의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탕감복귀 원칙에 의해 해와는 이 세 가지의 사랑을 복귀해야만 신랑을 대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로 사랑할 수 있는 주님, 오빠로 사랑할 수 있는 주님, 신랑으로 사랑할 수 있는 주님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타락한 해와의 운명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 신랑을 만나기는 현재 이 시대에서 만나지만, 신랑과 여러분은 역사적인 출발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시집을 가게 되면 신랑의 가문의 도리를 따르고 그 가문의 전통을 본받아야 됩니다. 또 신랑이 행하는 것에 보조를 맞추어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심정 생활에 있어서 신랑과 언제나 친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랑이 슬플 때 신부가 기쁠 수 없으며. 신랑이 외로울 때 신부가 안식하는 자리에 설 수 없으며, 신랑이 비참할때 신부가 행복한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신랑이 비참하면 신부도 당연히 비참한 것이고, 신랑이 행복하면 신부도 당연히 행복한 것입니다. 즉, 운명이 자기 주장으로 말미암아, 자의로 말미암아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신랑으로 말미암아 결정되는 자리가 신부의 자리인 것입니다.
신부를 두고 보면, 신부는 신랑을 잘 맞이하느냐, 못 맞이하느냐에 따라서 그 출세가 좌우됩니다. 아무리 훌륭한 여자라 하더라도 한번 신랑을 잘못 맞이하게 되면 그 훌륭한 빛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신부의 운명은 남편의 운명과 같은 입장에 서기 때문에 신부가 제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남편의 운명을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신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앞에 신랑으로 찾아올 수 있는 분은 어떤 분이냐? 아버지의 입장에서 찾아오시는 분이요, 오빠의 입장에서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나와는 완전한 형제의 정으로 결합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그와 나는 남매지간이요, 그는 우리 오빠다 하는,세상에서 자기를 낳은 아버지가 부정해도 부정할 수 없고, 세상의 혈육. 혹은 오빠가 부정해도 부정할 수 없는, 오빠나 아버지를 부정하면 부정했지 그를 부정할 수 없는 그런 자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심정세계 신랑의 인연을 갖추지 않고는 하나님의 심정적 기준을 복귀할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을 알게 될 때, 얼핏 보면 신랑 같고 얼핏 보면 오빠 같고, 얼핏 보게 되면 아버지 같은 이 삼단계의, 세 가지의. 삼분야의 사랑을 체휼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그래야 되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그 자체로 그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신랑이 가진 목적관이 뚜렷해야 됩니다. 그는 신랑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의 수고는 곧 내 수고이며 그의 운명은 곧 나의 운명이라고 해야 합니다. 절대적으로 통일된 운명권내에서 아버지로서 오빠로서 신랑으로서의 세 가지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만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은 권내에 서게 되는 것이요, 그 이상의 자리에서부터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가 가졌던 심정적 출발의 인연을 복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라든가 참자녀라든가 참부부라는 말이 역사과정에 왔다 갔던 그 누구의 말보다도 인류 앞에 있어서 복음 중의 복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오늘날 참부모가 나타날 때까지를 생각해 보라구요. (이하 계속 판서를 하시며 설명하심)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떨어져 가지고 이 자리에 왔으니 여기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부모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권을 두고 볼 때, 장성권내로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장성권내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권과 싸워 장성적인 입장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이 장성적인 입장이 뭐냐 하면 천사장급 입장입니다. 이 천사장급의 입장에서 승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사장급에서 승리할 수 있는 권을 만들려면 이 자리에 서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걸 전부 다 점령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왼쪽에 사탄편 천사장권이 있으면 여기에 하늘편 천사장권을 만들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계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마음대로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 터전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원칙에 의해서 신랑 신부가 되면 이곳까지는 올라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중심은 못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재림주가 오셔서 복귀역사를 하실 수 있는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지상에 오기 위해서는 영계를 통합해 가지고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못 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영계의 승리권을 갖추어야만 지상에 오는 것입니다..
영계의 승리권을 갖춘 다음 지상에 오면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영계와 같이 절대적으로 하나가 되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심은 조석변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왔다갔다하면서 아침에 변하고 저녁에도 변합니다. 그렇게 변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사탄권이 침범하기 때문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처참한 싸움을 해서 사탄권을 점령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거기에 대한 방비책을 마련해 가지고야 비로소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통일교인 여러분들을 두고 보더라도, 이 뜻의 길이 갈수록 좋아지면 모르겠는데 가면 갈수록 점점점 가중된 수난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다가는 못 가겠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맨 처음에 출발할 때보다 쉽게 되어 있느냐 하면 쉽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개인복귀가 얼마나 힘들었느냐? 6천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정 복귀가 얼마나 어렵겠느냐?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는 가정을 복귀할 수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수많은 종교를 중심삼고 볼 때, 결혼을 인정하지 않고 독신생활을 하라고 강조한 것은 타락 전의 천사장 기준과 타락 전의 아담 기준을 복귀하기 위한 것으로, 이것은 하나의 타락 전 아담을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여기에 상대가 허락되면 허락된 그 상대는 어때야 되느냐?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왔다갔다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죽어도 내 낭군 이요, 살아도 내 낭군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밤이나 낮이나, 청춘 시대에서부터 노년시대까지, 거기에 다른 남자나 다른 여자가 있을 수 없으며 오로지 아담은 해와뿐이고, 해와는 아담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이렇게 하나되었다고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종족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개인복귀보다도 힘든 것이 가정복귀입니다. 가정이 하나되어야 하는데 가정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 가정이 두 세계를 모시는 가정이다 할 때는 절반을 갈라야 합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가정을 중심삼고 왼쪽은 잘라 버려야 합니다. 종족을 중심삼고는 왼쪽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왼쪽이 없어야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꾸 점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교인들이 사상적으로 퇴폐되어 제일 위험한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60년대에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싸울 때에는 죽어도 가야 되겠다고 하고, 밥을 굶고 혹은 욕을 먹고, 핍박을 받아도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더니 축복을 해주니까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폐단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자리를 잡으려 해서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자리를 잡았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나님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자리를 잡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는 거예요. 자리 잡으면 망한다는 거라구요. 자리 잡게 돼 있어요, 안 돼 있어요?
그래서 개인복귀보다 가정복귀가 더 힘든 것이라는 거예요.
아내와 남편 둘이서 세상에서 이별하는 이상의 설움을 붙들고, 뜻의 한을 붙들고 눈물짓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부부가 못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부가 떨어져야 될 때 흘리는 눈물 이상으로 뜻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눈물을 흘리고, 그때에 서글픔을 느끼는 이상으로 하나님의 한을 풀어드리겠다고 결의를 할 수 있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너와 나는 이 뜻을 위해 태어났고, 이 뜻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을 해결짓지 않고는 살래야 살 수 없고,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하는 부부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편안히 살겠다구요? 여러분이 편안히 살면, 종족은 누가 복귀하고, 민족은 누가 복귀하며, 국가는 누가 복귀하고, 세계는 누가 복귀하겠습니까? 누가 해야 되겠어요? '하나님이 해야 하겠지요' 할지 모르지만,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을 통해서 해야 하는 복귀섭리이므로, 인간이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책임져야 되느냐? 아담이 이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아담이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천추의 한을 내 일신이 짊어지는 일이 있고, 하늘땅의 한을 내가 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책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누가 해야 되느냐? 아담이 해야 됩니다. 아담의 입장에 선 부부요, 축복가정이 아니냐 ! 그런데 자리를 잡아서 되겠느냐는 거예요. 자식을 낳게 되면 피난보따리 대신 업고 다녀야 할 자식인 것을 생각해야됩니다.
우리는 나라가 없고 정착지가 없습니다. 하늘로부터 땅 위의 결정적 기반을, 안식의 보금자리를 상속받지 못한 것입니다. 자식에게 피난의 도상에서 젖을 먹여야 하는 서글픔이 곧 하나님의 원통함임을 느끼면서, 자기 자식을 중심삼고 흘리는 눈물과 더불어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 하는 것이 우리 자녀들이 가야 할 효의 길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배치되고 상치(相馳)되었던고 !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신들이 복을 받고자 하고,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지는 못할망정 하나님께 슬픔을 가해 드리는 입장에서 자신들의 슬픔을 피하려 했던 것을 생각할 때, 과거의 개인적인 불효라면 모르겠지만, 가정적으로도 불효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은 어떻게 복귀의 소원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가정적인 불효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안착할 수 없습니다. 가정이 종족을 움직여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종족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합니다. 하나의 문중이 있으면 그 문중의 모든 수고를 우리들이 책임지겠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문중이 강제로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히 굴복하여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문중을 움직여 내기까지는 얼마나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 마을 사람들같이 적당히, 선한 일이나 하고 죄짓지 않고 그들에게 비판받지 않을 정도의 생활을 하겠다고 한다면 몇십 년, 몇백 년이 걸려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밤이나 낮이나 쉴 새 없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고 나서도 자랑하기보다는 앞으로 더 할 것이 남아 있기에 자랑하기를 원치 않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종족복귀의 한을 짊어지고 종족과의 사이에 있는 모든 담을 헐어 버림으로써 하나님이 마음 놓고 우리의 종족이요, 아들딸이라고 할 수 있는 동기와 기원을 마련해 놓아야만 하나님의 구속을 받을 수 있는 종족이 될것이 아니냐? 누구로 말미암아서? 그 부부로 말미암아서. 이러한 종족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으로 끝났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나님도 그것을 얼마나 바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종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사탄세상을 전부 다 불심판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종족만으로는 나라를 대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하늘나라를 표방해야 합니다. 인간들이 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한을 품고 나오더라도 나라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못 찾으면 다 도로아미타불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갈 길을 모색할 때, 물론 상대자도 요구했지만, 상대의 요구함과 더불어 국가와 유대교를 어떻게 해결지을 것이냐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일시에 하려고 4천년이라는 기간을 거쳐 나라를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일시에 무너지고 나라가 반대하고, 교회가 반대하고, 가정이 반대하여 외로운 입장에 섰을때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돌아설 때에 얼마나 슬프셨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래도 소망의 터전으로, 믿을 수 있다고 해서 보냈던 것인데 그 무리들이, 하늘편에 서서 도와야 할 입장에 있는 무리들이 반대했으니 그때에 예수가 느낀 슬픔은 하나님이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느낀 슬픔 이상의 것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반대하는 무리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잃어버린 아들딸을 다시 찾기 위해 반대하는 민족과 원수를 찾아가야 할 입장에서 눈물을 흘리시고 수고하신 것을 생각하며 그 자신이 그들을 저주할래야 저주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을 알고, 오히려 복을 빌지 않으면 안 되는 아버지의 심정을 체득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이 정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사는 데 있어서 절대 내려가서는 안 됩니다. 왔다갔다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올라가야만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 가정을 이끌고 올라가기란 더없이 힘이 드는 것을 느낄 겁니다. 개인이 움직일 때는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그것으로 끝났지만 가정을 이끌고 올라갈 때에는 이중 삼중의 힘이 드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종족을 끌고 올라가려면 얼마나 더 어렵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종족적인 메시아가 되어 종족을 끌고 올라가는 데 있어서 그 수난길이 얼마나 어렵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정을 끌고 가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들이 종족을 대표해 가지고 전통을 세워 하나님 앞에 전체적으로 움직여 나갈 수 있게 될 때는 민족이 전통의 가정적 중심인 여러분을 본받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그들 앞에 ‘천륜 앞에 이렇게 가야 한다. 여기에 반항이란 있을 수 없고 절대 복종해야 한다. 이렇게 가는 것이 전통적 노정이다' 하는 것을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종족을 모아 놓고 민족을 모아 놓아서 뭘 하느냐는 것입니다. 모아 놓음으로써 오히려 한이 되는 것이요, 거기에 원망과 저주가 깃들게 된다면 차라리 안 모아 놓은 것이 나을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가정을 뒤에 두고 이와 같은 놀음을 하는 것은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가냘프고 연약한 아낙네들이, 주체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한 여자들이 일편단심 하나님을 위해 감으로 말미암아, 뜻을 품을 수 있는 사나이들은 오지 말라고 해도 자연적으로 눈물을 흘리며 여자들이 가는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타락할 때, 아담의 뒤를 해와가 눈물을 흘리며 갔고, 해와가 가는 길을 아담도 눈물을 흘리며 감으로써 운명의 길을, 공동의 인연을 거쳐 감으로써 타락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귀 도상에서 눈물을 짓는 여러분의 그 사정을 보고 기뻐하는 남편은 남편이 아닙니다. 부인에게 협조하지 못하면 남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해와가 애달프게 눈물을 짓게 되면 남편 되는 아담도 눈물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눈물짓는 자리에 있으면 아들딸도 눈물을 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된 아담 해와가 눈물 지었으니 그 후손도 눈물로 살고 눈물과 더불어 신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복귀도상에서도 부모가 눈물 흘리면 그 아들딸도 눈물을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광의 전통은 누구로부터 세워야 되느냐? 해와로부터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해와가 잘못함으로 인하여 4천년 만에 겨우 찾아왔던 신랑 되시는 예수를 쫓게 되었고, 그 원한이 이스라엘 민족을 망하게 했으며, 세계 인류와 기독교인들을 2천년 동안 수난길로 몰아넣어 억울한 피를 흘리게 했던 것이 아니냐,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앞에 놓고 볼 때, 오늘 해와의 입장인 여러분들은 수난의 최고의 정상을 찾아 나서서 끝까지 극복해야 합니다.
신랑으로 오신 주님이 있다면, 그분이 내 앞에 찾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가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냥 온 것이 아니라 6천년 수난길을 닦아서 찾아오셨기 때문에 '그분은 이제 쉬게 하고 우리가 나가서 싸우겠다'고 하는 마음이라도 가져야 수고로이 찾아온 신랑 앞에 면목 이라도 설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당신도 같이 갑시다. 당신이 앞에 서야 됩니다' 이래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신부의 입장에 있는 여러분, 가정을 가진 여러 분은 어차피 복귀노정을 뚫고 나가야 할 운명에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되고, 남편과 아내가 하나되고, 아들딸과 종족이 하나되고, 종족과 민족이 하나되고, 민족과 국가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세우고자 해서 금년의 표어로 '통일기반 확보'를 세운 것입니다. 통일기반은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기준까지 벌어져야만 확고히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비로소 통일을 할 수 있는 주체적인 기준은 국가를 중심삼고 세울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안 가면 누가 가겠습니까? 통일교회 교인들이 안 가겠다면 누가 가겠느냐 이거예요. 기성교회가 가겠습니까? 이 나라의 사람들이 가겠습니까? 통일교인이 안 가게 되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식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자식을 열 다섯쯤 낳아 놓으면 열 다섯의 눈물이 부모에게 가해지는 것이요, 떼거리를 많이 만들면 만들수록 그 떼거리가 도리어 원한의 눈물을 가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통일교회 교인이 많아지지 않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60년대보다도 통일교인들이 더 많아지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우리들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종족의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눈물을 흘리면서 민족을 찾아갈 때, 그 민족이 찾아가는 우리를 보고 눈물로 감사하게 되면 우리의 승리적 터전이 넓어진 것으로 알라는 것입니다. 반대하고 원수같이 대하던 기성교인들이 여러분의 정성어린 태도에 감화되어 눈물을 흘리면서 맞아 줄수 있는 환경이 되면 천하를 굴복시키는 일이 내 치마폭 안에서 벌어질 것을 생각하라는 거라구요. 남자가 그렇게 되면 내가 세계적인 대표로 천사장을 굴복시킬 수 있는 영광의 기회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반대하던 무리들이 환희의 눈물로 맞아줄 수 있는 길을 개척해야만 복귀의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로 가는 길에는 그런 전통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 오시는 주님은 얼마나 불쌍하시며, 그를 따르는 무리는 얼마나 불쌍하며, 그들을 인도해야 하는 하나님은 얼마나 불쌍하냐는 것입니다.
사지사판에서도,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원한의 궁지에서도 우리가 하나 되어야 사탄세계, 혹은 지옥을 가더라도 그 지옥을 뚫고 다닐 수 있고, 지옥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다 수난의 길을 원하지 않지만, 통일교회 교인들은 수난길을 자청하여 선두에 서서 가지 않으면 복귀의 노정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수난의 정상에 올라가야 되겠다. 종족 가운데서도 종족의 최고 수난길을 내가 책임져야 되겠다고 하는 사상이 있다면 그 사상이 하늘 나라를 빨리 이룰 수 있는 사상인 것입니다. 내가 민족 앞에 있어서의 대표적인 수난길을 가겠다고 하는 사상이 있다면 그 사상이 민족을 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정상은 수난의 정상의 행각을 거치지 않고는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럼 수난은 뭐냐? 현재보다도 좋은 입장을 개척하려 할 때 따르는 고통입니다. 현재의 입장을 개척하여 더 좋은 입장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거기에 비례적으로 고통의 대가(代價)를 치러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천국을 안에 두고 가는 우리가 복귀의 과정을 거쳐 천국에 이를 때까지는 가는 길이 결코 평탄할 리 만무하다는 것입니다. 십년 동안에 갈 것이냐. 이십년 동안에 갈 것이냐를 결정할 때. '이십년이 걸리면 너무 늦다. 십년 만에 가야 되겠다'라고 생각한다면 이십년 동안에 갈 고통의 2배를 당하면 그만큼 단축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후손들이 천년 한을 벗어 놓고 해방의 아들딸로써. 아버지의 영광된 아들딸로서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는 무리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 자리는 내 당대에 몇배의 수난의 대가를 치름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수난을 감소시키고 탕감시킬 수 있는 수고의 행로를 가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탕감의 자리, 복귀의 자리는 수난의 정상에 서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통일교회가 어느만큼 올라왔느냐? 민족을 중심삼고 이 일을 해온 통일족속은 과거의 유대교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왜 하나님의 은혜권에서 떨어지게 되었느냐? 그것은 통일교회를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탕감권에 참여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보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기성교회가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탕감의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성교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짐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그 나라는 통일교회가 책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족적 권내에 있으면서 민족적 사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성교회를 밟고 올라서 차 버리고 갈 것이 아니라, 데리고 가야 합니다. 죽은 자를 살려 주기 위한 길이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넘어서면 기성교회가 우리의 발에 채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기성교회를 차버리고 갈 것이 아니라, 사지에 있는 것을 일깨워서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에게 기성교회를 전도해야 하는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자리에 올라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수난의 대가를 치렀는지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낮이나 잃어버린 조국 광복을 위해서, 에덴의 천국을 향해서 가는 집시의 무리입니다. 마을도 없거니와 살 집도 없습니다. 비가 오면 다른 데로 이사를 해야 하고, 혹은 다른 수많은 민족들이 습격을 하면 가진 재산을 모두 버리고 벌거숭이의 몸으로 피난을 해야 하는 신세가 우리의 신세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악착같이….
이스라엘 민족을 보라구요. 2천년 동안 유리 고객하던 그 민족이 이제서야 예루살렘 성전을 붙들고 선조들이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은 나라를 갖지 못한 민족이 얼마나 불쌍하고 비참한 것인가를 역사 과정에서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의 주권을 갖고 죽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기에 주권을 침해하는 어떤 운세가 있으면 생명을 걸고 내닫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십 배에 가까운 아랍권과 대처해서도 승리의 판도를 넓혀 가지고 세계적인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알았느냐? 나라 없는 민족은 비참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나라 없는 민족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주권자의 중심으로 모셔 가지고 영광의 천국을 만들어 만민이 아버지의 명령 앞에 서서 하늘의 영광을 찬미할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 통일신도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나라를 잃어버린 서글픔을 당해 보지 못했을 겁니다. 선생님은 그걸 잘 알고 있어요. 대한민국이 왜정하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선생님도 일제에 대항해 싸운 적이 있습니다. 그때 생각을 하면, 민족적인 입장에서 볼 때 나라 없는 민족이 불쌍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더 나아 가서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을 중심삼은 주권의 터전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머무르실 수 있는 흔적도 인연도 없는 이 삭막한 동산에 그럴 수 있는 흔적을 제시해야 되고, 인연을 찾아 세워야 하는 것이 복귀 행각의 노정을 짊어진 선생님의 책임이요, 여러분의 책임인 것을 생각할 때, 선생님은 여러분이 불쌍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여러분도 불쌍하지만 선생님도 불쌍한 것입니다. 선생님도 불쌍하지만 더 불쌍한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도 신음의 노정을 극복해야 되고, 여러분도 그 후손으로 태어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 길을 안 따라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담이 간 길을 타락한 인류가 갔고, 예수가 간 길을 기독교 신자들이 갔고, 선생님이 가는 길을 여러분이 가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부모가 당하는 그 고통을 같이 당하고, 부모가 처하여 있는 입장에 같이 처하지 않고는 자녀의 자리에 설 수 없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싫든 좋든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조를 맞추게 되면 효의 명분을 가질 수 있으되, 보조를 못 맞추게 되면 불효의 명분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요, 불효의 명분을 갖게 되면 오늘날 한국에 있는 삼천만 민족에게 참소받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믿지 않았다면, 차라리 몰랐다면 모르지만, 알면서도 못 간 사람은 앞으로 삼천만 민중의 참소를 받게 되고, 또 그때 당하는 수난은 지금 당하는 수난의 몇백 배, 몇천 배가 될 것으로 생각하라는 거예요. 얼굴을 들래야 들 수 없고 자기를 변명할래야 변명할 수 없는 때가 다가올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죽어도 그런 과오는 남기지 말아야 하겠다고, 이 시대에 자기 손이 끊어지고, 발이 끊어지고, 생명이 위험하더라도 불효의 자리에는 절대 가지 말아야 되겠다고, 부모가 명령하면 명령한 그 방향으로 내가 가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행하다가 죽겠다고 하는 마음가짐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뜻은 이루지 못하더라도 효자의 이름을 갖고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죽어도 그렇게 죽는 날에는 보고 싶은 어머니 아버지를 만날 수 있고, 거기에서 서러운 눈물로 붙안고 다짐할 수 있는 인연이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돌아서는 날에는 천년 만년 찾아도 어려운 길의 인연이 다시 남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을 그런 자리에 세워서는 안 되겠기에 무자비하고 매정하게 때려 모는 하나님의 사정을 알아야 되고, 선생님도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지금까지 그런 길을 걸어 나온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복귀의 길을 가는 사람은 어느 한날 편한 날이 없는 것입니다. 하루의 아침을 맞이할 때는 근심으로 맞고, 저녁을 지내고 잠을 이루게 될 때는 오늘의 하루를 감사드림과 더불어 내일의 계속되는 싸움에서의 승리를 다짐하여야 하는 연속적인 수난의 정상길을 피해 가지고는 복귀의 노정을 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번에 선거 때를 중심삼고 자기의 고향에 돌아가 가지고 남편 혹은 자식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또 자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타락하던 아담 해와를 두고 하나님이 생각하셨던 것과 같은 마음이 사무쳐야 됩니다. 아내를 찾지 못하여 낙망한 가운데 고독한 자리에서 잠을 자는 남편의 신세를 보고 신부로서, 천년 만년 위로의 눈물로 품어 줄 수 있는 어머니 입장을 대신할 수 있어야 되고 누나의 입장을 대신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다음에 신부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이 삼대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남편을 어머니의 입장에서, 누나의 입장에서, 붙안고 목을 놓고 한없이 울며 천년 만년 남편을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엇갈려야 하는 것이 신부의 사명을 짊어진 여러분이 가져야 할 심정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 아들딸을 보게 될 때, 자기의 아들딸이 불행의 아들딸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부모의 품에서 쫓겨나는 아들딸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이여,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고 억울해 하던 당신의 심정을 잘 알고 있사오니 이 아이들은 결코 아담 해와와 같은 사람이 되지 말게 하소서. 이 아이들이 하늘 앞에 탕감하지 못해 용서를 빌어야할 자리에 있거든, 그 자식의 책임까지도 제가 대신 질 수 있게 하여 주소서' 하고 눈물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웃음이 깃들 수 없습니다. 탕감이라는 원한의 교차로가 한 번만이 아니고, 종족의 교차로, 민족의 교차로, 국가의 교차로, 세계의 교차로가 얽매여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그 안타깝고 동정스러운 마음으로 주고받는 사랑의 정리로 말미 암아 인간 세계의 그 어떤 부모보다도 어머니보다도 더 강할 수 있는 사랑의 심정이 심어질 수 있기에, 하나님은 이 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러분의 남편이 가는 길을 보호해 줄 것이고, 여러분의 아들딸이 가는 길을 보호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야속하고 애석하지만 눈물을 머금고 돌아설 수밖에 없는 것은 더 큰 하나님의 민족의 한을 개척해야 하고, 국가의 한을 개척해야 할 복귀의 노정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임을 못하면 다 망하는 것입니다. 너와 나만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족이 망하는 것이요, 우리 교파가 망하는 것이요, 하늘이 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볼 때, 여러분은 현재 가정을 대표하여 첨단에 선 아낙네들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담벽도 뚫을 수 있고, 원수의 보루도 뚫고 남을 수 있는 강한 마음을 가지고 극복해 내고, 천년의 수고가 있거든 천년 이상 남아질 수 있는 결의를 하고, 만년의 수고가 있거든 만년 이상 남아질 수 있는 결의를 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 현재 여러분이 처한 자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자신들은 태어났기에, 수난을 위해 태어났기에, 가는 것도 수난을 위해 가야 되고, 죽는 것도 수난을 위해 죽어야 합니다. 그 수난은 보통 수난이 아닙니다. 수난길의 선두에 서서 가야 되는데, 가다가 죽더라도 종족적 권내에서 죽어서는 안 되고, 민족적 권내에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라를 붙들고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 백성의 이름을 갖고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영광이겠습니까? 이것이 통일식구들이 가야 할 최대의 소망이요, 최대의 판결을 하는 사지에서 생명을 걸고 쓰러져야 할 최후의 입장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자기가 못 가면 자기 아들딸을 붙들고 뼈에 사무치고 뼛골에서 우러나는 심정으로 '내 아들아 너만은 가야 한다. 내 딸아 너만은 가야 한다. 나라를 찾을 때까지는 가야 돼'라고 눈물어린 유언을 남기고 가야 할 것이 통일가의 전통적 사명인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자인 여러분, 이제 결심할 때가 왔습니다. 아낙네 되는 여러분들, 이제 최후의 단결을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민족의 한이 우리의 앞 길을 막고 있고 세계의 한이 우리의 앞 길을 막고 있는 차제(此際)에, 만일에 남편이 여기에 동조하지 않으면 남편을 버려야 할 것이고, 자식이 동조하지 않으면 자식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하늘 아버지를 모시고, 하늘 오빠를 모시고, 하늘의 소망된 신랑의 뜻을 품고 가는 것이 낫겠다고 하면서 가야 되는 것이 여러분의 입장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저께 선생님이 지구장들한테 무엇을 포고했느냐? 통일교회의 지역장이나 지구장 중에서 이 뜻 길이 어려워 못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타인의 입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든지 자유로이 행동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못 가겠다고 불평하고, 못 가겠다고 탄식하고, 다른 사람마저 못 가게 브레이크를 거는 사람은 오히려 없는 것이 낫다고 보는 것이 뜻이 가야 할길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앞으로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를 것입니다. 뜻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후퇴하는 남편이 있으면 여러분은 그 사나이의 뒤를 따라 가는 아낙네가 될 것이냐, 그 사나이를 하늘편으로 이끄는 아낙네가 될것이냐 하는 문제가 여러분에게 걸려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의 인연을 맺은 남편이 아내가 가는 하늘의 길을 부정하고 나서게 될 때, 그 남편을 원수와 같이 생각하고 손에 칼을 들고 복수하겠다는 심정을 갖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이 여러분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오늘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복귀의 노정은 수난의 정상을 달리는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 앞에 소망을 두고서 다른 무엇을 소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찾기 전에는 여러분 앞에 가중되는 비참한 수난길밖에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이 책임지고 있는 복귀의 운명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결의를 하지 않고는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없는 여러분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과 여러분은 어차피 갈라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결심을 하는 데에 있어서 하늘이 감동할 수 있는 자리에서 결심을 하고, 그 결심에 하늘이 같이하게 될 때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절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위에 철옹성같이 둘러싼 원수의 화살이 우리를 겨누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지내온 선생님의 생애가 증거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 이상 비참한 자리를 걸어왔고, 여러분 이상 십자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여러분 이상 비참한 노정을 홀로 책임지고, 비틀비틀하며 비탈길을 걸어온 선생님입니다. 벼랑길을 걸어왔습니다. 원수가 선생님을 차 굴려 버릴 수도 있었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가졌겠지만, 차버리지 못했습니다. 원수가 차 버리면 하나님이 위에서 붙들고, 또 다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다른 누구를 믿을 게 아닙니다. 선생님이 다른 누구를 믿지 않고 하늘을 믿어 왔듯이, 하늘이 가야 할 길을 믿어야 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의 누구를 사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에 없는 사랑의 길을 찾아가려니 세계에 없는 수난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여기서 여러분들은 각자가 다시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과거를 냉철히 비판하고 현재의 입장을 직시하면서 내일의 소망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이냐 하는 것을 여러분 자신이 결심해야 되겠습니다. 다른 누구를 믿을 때가 아닙니다.
단 하나 여러분 앞에 선생님이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은 뜻 앞에서 떨어질 길, 돌아설 수 있는 길이 있지만 선생님은 못 돌아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차라리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선생님을 따라가다가 돌아서게 되면, 도리어 선생님이 가는 길 앞에 동냥도 못 주면서 쪽박까지 깨어 버리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인연을 맺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인연을 맺고 나오다가 돌아서게 될 때는 사탄이 참소하게 될 것이고, 민족이 참소할 조건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비참한 운명을 여러분 앞에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의 후손들이 참소할 조건을 남기지 않으려니 현재의 입장은 무정하고 매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무정한 가운데서도 그 누구보다도 심정적으로, 여러분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하늘의 사랑을 가지고 여러분의 뒤를 지켜 주고 하늘의 복의 인연을 줄달아 주기 위해 수고하고 있는 스승이 있고, 부모가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부모도 없었고, 친구도 없었고, 형제도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고독단신이었지만 여러분은 형제가 있고, 부모가 있고 친구도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그러한 입장에서도 갈 길을 가지 못하고 돌아서게 된다면 그 부모 앞에, 친구 앞에, 형제 앞에 참소받는 그 길을 어떻게 넘어설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지옥에 가는 것이 낫지…. 영광의 천국이 그런 사람 앞에 나타나면 나타날수록 그 영광의 천국은 그에게 오히려 괴로움의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그런 비참한 사람이 되지 않고, 당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살아봤자 몇백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살아봤자 오륙십 년밖에 더 살 수 없는 여생을 뜻 앞에 묶어 바쳐 빨리 죽을 수 있는 길을 향하여 돌진하는 길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가야겠습니다. 그렇게 가는 길 앞에서는 수난길이 빨리 해결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다시 결의를 해야 할 시점에 놓였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것은 '수난의 정상에서 물러설 것이냐, 아니면 수난의 정상에서 더 가중된 수난의 정상으로 뛰어넘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가야 되는지를 여러분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을 넘어 국가까지 가야 됩니다. 이 길은 죽든지 살든지 가야 할 길입니다. 안 가면 망하는 거라구요.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한이 맺혔고, 이스라엘에게 한이 맺혔으며, 모든 만물에게 한이 맺혔습니다. 우리의 노정은 이 한을 풀기 위한 탕감노정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예수 이상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 이상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되어 안 됐지만, 여자들이 고생을 하면 얼마나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고생을 한다고 해도 감옥에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법정에 세워져 가지고 십자가를 지는 죽음의 길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수난길에는 감옥이 앞에 기다리고 있었고, 십자가의 죽음길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는 길에도 감옥이 기다리고 있었고, 교역자들이 선생님을 죽이려고 모함했던 죽음길이 앞에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에게는 죽음길이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황공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죽음길을 가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리어 신랑되시는 분들이 대신 십자가의 죽음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용서받지 못할 아낙네들의 속죄의 삶을 어떻게 살고, 속죄의 인연을 어떻게 풀 것이냐 할 때, 하늘땅을 들추어도풀 길이 없는 죄인 중의 죄인이요, 벌을 받더라도 최고의 벌을 받아야 한다고 느껴야 하는 것이 여러분이 처해 있는 아내의 자리가 아니냐 하는것입니다..
아무리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서 전도를 하고, 아무리 밤잠을 못 자고 동네에서 전도를 한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을 잡아다 죽일 사람은 없지 않느냐? 그 자체가 예수님을 대해서 면목이 없는 것이요, 선생님을 대해서도 면목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천 이백 명이라는 여러분 여자들이 단결하여, 여러분 개체 개체는 무력하지만, 안팎으로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3대 사랑의 인연을 갖춘 그런 입장을 중심삼고 나가야 합니다. 남편 대신 민족을 사랑하고, 자식 대신 민족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까 남편은 아버지요, 오빠요, 남편이라고 말했으니, 민족이 여러분을 바라보고 어머니, 누나라고 높일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 있는 남자들이 자기들의 아내보다 여러분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인연을 갖추지 않고는 복귀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남편 이상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여러분의 자식 이상으로 그들을 사랑해서 어머니의 인연을 결정하고, 혹은 누나의 인연을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자기의 아내보다도 여러분을 더 사랑했다는 입장에 서게 되면 여러분은 수난의 길을 벗어날 수 있음과 동시에 여러분을 사랑하는 그들이 하늘 앞에 끌려 들어올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여러분을 중심삼고 이 나라가 관계를 맺어서 발전해야 하는 노정이기에 여러분은 십자가의 정상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십자가의 제단 위에 올려 놓고 제물 드리는 제사장의 입장인 것입니다. 여러분을 잡아서 제물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만물을 제물삼아서 제사드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해와인 여러분을 제물드려야 합니다. 옛날에는 해와가 제물 될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해와는 남편을 따라 나왔지만 탕감복귀를 세계적으로 하는 이때에 있어서는 남편이 해와를 하늘 앞에 제물로 삼아 가지고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고비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 일이 대한민국을 중심 삼고 벌어지는데 역사상에 처음 있는 일이요, 전무후무한 일인 것입니다.
여기에 제물될 여자는 어떠한 여자냐? 남편 있는 여자입니다. 남편 있는 여자들을 잡아다가 제사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가정의 남편을 대신해서 빼앗아다가 제물드리는 입장인 것입니다. 세계의 남편들이 반대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반대하지 않는 입장에 있는 세계의 남편들이 있어야만 세계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죽을 자리로 내몰아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더 무자비하고, 더 무정하게 해야 됩니다. 제물에게 사정을 봐 주어서 되겠습니까?
이런 입장을 생각해 보고, 수난의 정상에서 민족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을 가려 가야 하는 한 여인의 신세를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천년 만년 역사적인 인연을 남겨야 할 책임이 내 몸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겟세마네 동산을 가던 것과 마찬가지로 고요히 생명을 저울질하는 입장에서 숨가쁜 걸음으로 연속된 길을 민족이 굴복할 수 있을 때까지 가야 할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부활권을 이룬 것과 마찬가지로, 만일 여러분의 정성어린 눈물과 정성어린 심정으로 해방권이 이루어진다면 비로소 지상에 천국이 개문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해방될 때에는 여러분과 더불어 여러분이 품고 있던 자식과 여러분이 품고 있던 남편과 민족 전체가 부활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죽은 제자가 있었다면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 그를 부활시키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버림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은 부활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선생님을 붙들고 같이 죽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 여러분이 죽게 되면 부활의 혜택이 주어지고, 여러분의 부활과 더불어 여러분의 남편과 자식도 부활될 수 있고, 더나아가서 민족과 국가가 부활된다는 것을 알고 최후에 남아진 십자가의 길과 최후의 정상에서 수난의 길을 달게 받아들여 최선을 다해서 이 길을 끝까지 넘어갈 것을 부탁하는 바입니다.
수난의 정상을 도피하려는 자는 하늘의 반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편과 후손에게 참소를 받는 어머니가 되는 이 억울함을 부디 여러분의 일대에 남기지 말고 갖추어진 한 때를 힘있고 보람있게, 그리고 뜻있게 보내 가지고 유종의 미를 거두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수난의 정상에서'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알겠지요?「예」그러면 틀림없이 이 길을 가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아버님, 여기에 저희들이 참석하였습니다. 이 자리에 당신의 인연이 싹트고, 당신의 사정이 넘치고, 당신의 심정이 하늘 높이 솟구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는 연약한 아낙네의 손길 손길을 모아 나라의 한을 중심삼고 외치고 일어서는 자리이오니 아버지여, 기꺼이 받아 주시옵소서. 이들은 여기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민족과 세계의 인연을 거치기를 바라는 아낙네들이오니. 아버지, 기꺼이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은 나라를 그리워하고, 나라를 위해서 불타고, 몸은 나라를 위해서 시들어지고 늙어지겠다고 각오하는 이 딸들을 아버지께서는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
이제 이 딸들이 가는 길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하늘이냐, 세상이냐, 남편 혹은 자식들이냐를 결정지어야 할 길이 이들 앞에 나타나더라도 하늘을 위하여 끝까지 가게 될 때는 남편도 자식도 다시 찾아 지는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오니, 이들이 끝까지 하늘의 뜻을 위하고, 하늘의 한을 풀고, 나라의 소원을 성취한 수 있는, 민족의 소망이 되는 여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세계의 보람 있는 소망의 중심이 되는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수난의 정상의 고비에서 저희들은 물러날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수난의 길을 향하여 점프를 하고, 내일의 희망을 위해 죽고 내일의 희망을 위해 살겠다는 각오를 해야겠습니다. 이들의 장래와 현재의 입장을 완전히 당신의 장중에 장악하시어서, 승리의 날까지 남아져, 당신의 영광의 터전 위에 동참할 수 있는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번 기간을 통하여 마음과 몸에 새로운 부활권을 갖추어 민족의 운명을 대신 책임지고 나가는, 기관차의 사명을 하는 당신의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루하루의 생활을 거쳐서 생애노정을 걸어 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개개인을 두고 볼 때. 여러분이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의 일을, 하루의 자기가 맡은 바의 직책을 수행해 나가는 데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어떻게 책임올 수행하고 내가 어떻게 어떻게 하루를 지낸다는 그러한 방향이 설정되어 있지 않으면, 하루를 지내는 그 모든 것은 내가 바라는 어떠한 목적이면 목적 앞에, 내가 앞날을 두고 성사시키려던 어떠한 뜻이면 뜻 앞에 무의미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길을 출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출발에 앞서 반드시 자기가 가야 할 어떤 원칙적인 방향을 정해 가지고 자기 앞에 플러스될 수 있는 어떤 목적을 성사시킴으로써 현재의 자기보다도 전진된 자기를 그려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항상 우리 인간이 영위하고자 하는 생활 방법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향이 설정되어야 합니다. 방향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방향은 자기가 가는 목적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목적도 틀려지는 것입니다. 방향을 달리하게 되면 목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제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이렇게 해야겠다'고 하던 그 방향이 오늘 아침에 달라졌다면 오늘은 어제와는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어제와 다르게 될 때에, 오늘 내가 수고한 모든 공로라는 것은 어제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일년을 중심삼고 볼 때도, 자기가 설정한 어떠한 방향을 중심삼고 일년동안 움직이다가 그 다음 해에 가서는 딴 방향으로 움직였다면 그 방향은 지난 1년의 기간과는 하등의 관계없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혹은 십년을 두고 볼 때에도, 십년 동안 자기가 한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그 방향으로 걸어 나왔다 하더라도 십년이 지나고 난 후에 다른 방향을 취하게 될 때에는, 이것은 지난 십년과는 하등의 관계없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한 개인의 일생을 두고 볼 때, 일생 동안 같은 방향으로 매일같이 노력을 한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혼자서 한 방향만을 향해서 갔기 때문에 그의 일생을 통해서 갖추어진 성과라든가, 그가 쌓은 공적이라든가, 그의 삶에 있어서 보람의 결과는 결국 하나의 결과에 봉착할 것입니다. 그 하나의 결과가 자기에게서 끝나게 될 때는 자기만을 위한 결과가 되는 것이지만, 그 결과가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만민을 위한 결과가 될 때에는, 그 결과는 나만을 위한 결과가 아니라 전체를 대표한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일생을 두고 볼 때 그러하다면 역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 인류의 시조가 타락은 했지만 타락 이후 지금까지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인간이 찾아가던 그 방향이, 1천년을 두고 찾아 나가던 방향과 1천년 이후부터 2천년을 향해 나가던 방향이 달라졌다면 세계는 다른 결과의 세계에 부딪치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는 3천년에서 4천년을, 4천년에서 5천년을 향해 나가던 방향이 달라지게 되었다면 그 달라진 방향에 따라서 목적이 처한 위치 또한 동으로, 혹은 서로 남으로 북으로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 것이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어떠한 방향을 잡으실 것이냐? 하나님이 인류에 대한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3천년, 4천년까지는 이렇게 이렇게 방향을 설정해 나가시다가 5천년, 6천년 시대에 가서는 방향을 달리해 가지고 저렇게 저렇게 나가신다 할 때에는 3천년, 4천년 시대에 수고한 목적의 결과와 5천년, 6천년 시대에 수고한 결과는 판이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복귀섭리노정에서 변하는 방향을 취해서는 안 될 것이 아니냐, 항시 인간을 보다 가치적인 존재로, 더 높은 은사의 자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매일같이 변하는 노정을 취해서는 안 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변하는 노정을 취하지 않고 맨처음 출발하던 것이 끝까지 가 가지고 그 종국에 맨 처음을 대신하는 소원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방향을 처해야 될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하루의 생활을 미루어 봐서도 타탕한 결론이 아닐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혹은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민족,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민족이 있다 할진대, 여기에서 제일 문제 되는 것이 무엇이냐? 변할 수 없는 하나의 방향을 갖추어 나가는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을 중심삼아 가지고 거기에 일치시켜 나가는 어떠한 조상이 있어야 되고, 그 조상으로 말미암은 후손이 있어야 되고, 그 후손이 점점 번식하여 종족을 이루고, 민족을 이루고, 국가를 이루고, 세계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방향에 일치될 수 있는 세계적인 판국을 결정지을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개인, 그런 종족, 그런 민족, 그런 국가가 있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오랜 역사를 두고 같은 방향을 취해 나오면서 망하지 않고 문화의 내용을 지니고 남아진 민족이 있다 할진대, 섭리를 한 방향으로 추진해 나가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그 하나님과 더불어 설치된 그런 내용을 갖춘 민족이 있다면, 이 민족은 오랜 역사적 전통과 더불어 지금 이 시대에도 없어지지 않고 또 앞으로도 남아질 수 있는 민족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전통을 가진 민족이라든가 국가가 있다면, 이민족이나 이 국가는 오늘날 역사상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목적과 상응적인, 상반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어떤 상응적인 내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상을 가진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끝날이 되면 될수록 기필코 세계적인 민족이 될 것입니다.
과거 역사를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이 6천년 역사를 걸어 나오시면서 민족을 편성하시지 못하고 국가를 편성하시지 못했더라도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을 중심삼아 가지고 따라 나오는 시대 시대에 있어서, 예를 들어 종족적 시대라면 종족적 시대에 있어서, 종족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으로서 하나님이 가시는 섭리의 방향과 일치될 수 있는 가정이 있으면 그 가정은 세계적인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인류역사가 아무리 오래되고, 이시대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그 가정은 역사를 대신하는 가정이 되고, 시대를 대신하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종족적 시대를 지나고 민족적 시대와 국가적 시대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민족적 시대와 국가적 시대권내에 있어서 민족과 국가가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과 일치되지 못했더라도, 민족을 대신하고 국가를 대신한 가정으로서 하나님이 나아가시는 섭리의 방향과 일치될 수 있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민족적이요 국가적인 가정인데, 단일 국가와 단일 민족을 대표하는 가정이 아니라 온 세계를 대표하는 가정이요. 역사를 대표하는 가정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점점 그 범위를 넓혀 가지고 세계적인 시대에 있어서 전세계 국가가 하나님의 방향과 일치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그 시대를 대표할수 있는 하나의 개인이나 하나의 가정이 있다면 비록 한 개인이요 하나의 가정이지만, 이 개인과 가정은 하나님의 방향을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이 거쳐가셔야 할 방향에 있어서 세계를 대표한 중심적인 개인이요 중심적인 가정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은 어느 한 개인의 가정이 아니라 국가를 넘어서 세계를 대표하는 자리에 선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중심적인 가정이 없게 될때에는…. 세계적인 시대에 있어서 그 세계적인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횡적으로 연결시켜야 하는데, 이런 중심적인 가정이 없게 될 때에는 횡적인 민족이라든가, 국가, 세계의 중심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어느 시대든지 개인 아니면 가정이 남아지든지, 그런 개인이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족이 남아지든지, 그런 가정을 중심삼고 민족이 남아지든지, 그런 가정을 중심삼고 국가가 남아지든지, 그런 가정을 중심삼고 세계가 남아지든지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입장을 갖추지 못하고는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방향을 유지시켜서 종착점에 가 가지고 세계적인 판도를 넓힐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오늘날 이 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에, 오랜 역사적 문화라든가 전통을 지니고 있는 국가가 어디에 있느냐? 이것을 생각해볼 때, 어떤 민족이면 민족을 중심삼고 어떠한 제왕이 제창한 주의나 사상보다도 하나님을 위주한 종교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따라 나온 문화권이 오랜 역사적 과정을 지나오면서도 망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종교가 바라는 목적은 무엇이냐? 선한 나라가 오기 전에 선한 가정을 요구하는 것이요, 선한 가정이 오기 전에 선한 개인을 요구하는 것이 종교가 추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선한 사람이 되어 가지고 무엇을 할것이냐? 선한 사람만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선한 사람이 되어 가지고 선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선한 생활을 하는 데는 어떠한 선한 생활을 해야 되느냐? 인간들끼리 맺어진 사랑을 중심삼고 선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사랑을 중심삼고 선한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전에도 이야기했지만, 행복한 사람이란 남자면 남자 혼자서 완성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남성이 있으면 여성이 있어 가지고 둘이 완성한 자리에서 하나되는 인연을 맺어야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되는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도 타락의 인연을 통하여서 이루어지는 사랑을 중심삼고가 아니라 타락의 인연을 벗어난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남자와 여자가 화합하여 가지고 생활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생활하는 자리는 일시적으로 하나된 자리가 아니라 영원히 하나된 자리여야 됩니다. 일시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일시적인 하나를 이루지만,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영원히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 이후 인간들이 가진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인심은 조석변(人心朝夕變)이요, 산천은 고금동(山川古今同)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 인간의 마음은 매일같이 변합니다. 여러분 개체의 생활노정을 두고 보면 오늘은 이랬다 내일은 저랬다 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뭐냐 하면 변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랬다저랬다하는 생활 가운데에서 사랑을 찾는 데 있어서 사랑의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남에게는 둘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이랬다 저랬다하는 사람은 그 목적을 어디에다 둘 것이냐? 다른 데에다 둘 수 없는 것입니다. 이랬다저랬다하는 관계이니만큼 제삼자에게 그 목적을 둘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자신에게 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타락한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은 이랬다저랬다하는 사람이요, 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목적관을 두는 데도 상대에게 둘 수 없는 입장입니다. 왜? 서로가 다 변하기 때문에, 오늘 거기에 두었다가는 내일 또 변하기 때문입니다. 즉. 희망을 가졌다가는 절망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요, 소원을 가졌다가는 타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항시 변하는 인생의 군상(群像) 가운데의 그 누구에게 목적을 두었다가는 그 목적이 크면 클수록 큰 타격을 받기 일쑤이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권내에서는 목적을 두었댔자…. 그러므로 결국은 자기에게밖에 둘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들의 운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아무리 소망과 희망을 가졌다 하더라도 결국은 자기를 초월할 수 없는 결과에 부딪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존재가 오늘날 타락권내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인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일치된 방향을 가졌다면, 항시 변하지 않는 하나의 방향을 가졌다면, 아침에도 그 방향이요, 낮에도 그 방향이요, 저녁에도 그 방향이요, 일년 후에도 그 방향이요, 십년, 일생을 지내도 그방향이요, 혹은 천년 만년 영원히 계속 사는 그런 인간이 된다 하더라도 그 방향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로 말미암아 그런 방향이 시작될 수 있느냐? 그것은 인간을 중심삼고서는 시작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인간 외에 어떤 절대자가 있으면 그 절대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시작돼야 합니다. 그래서, 변치 않는 방향이 이 지상에 현현하지 않으면 변하기 쉽고 방향을 가리지 못하는 인간은 망할 수밖에 없겠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는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지구성, 인류역사의 배경을 더듬어 오셨다는 사실, 이 시대적 환경을 찾아오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방향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위주한 뜻과 사상이 출발되어 가지고 그것이 역사와 더불어 길이길이 같은 방향을 취하면서 망하지 않고 역사를 수습해 나가는 그런 무엇이 없다 할진대는, 인류 세계에서 희망이니 목적이니 혹은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것은 찾올 수 없을 것이 아니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지금까지 종교 문화권이 세계의 역사를 형성해 나왔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지금 세계에는 4대 종교 문화권이 남아 있습니다. 기독교, 불교, 힌두교, 회회교 문화권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한 자리에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4대 종교 문화권은 동에서, 혹은 서에서, 남에서, 북에서 출발했습니다. 각각 다른 자리에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한 자리에서 출발했으면 한 곳에 결과될 것입니다. 그런데 동서남북 사방에서 출발해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나가지 않고 그 목적이 서로 다르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목적이 네 개가 되어 가지고는 네 개의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것은 이랬다저랬다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결과의 자리에는 설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가 출발한 자리는 다르지만 귀결되어야 할 결착점은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그것이 어디에서 같아져야 되느냐? 이런 입장에서는 아무리 연장해도 같아지지 않습니다. 다른 방향을 가지고는 같아지지 않습니다. (판서하시며 설명하심) 이러한 자리에서…. 요것이 목적점입니다. 여기에서만 일치됩니다. 지금 이 세계를 보게 되면 세계는 이렇게 쭉 둘러 있습니다. 이 목적점이 일점에 가서 귀결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를 보면, 어떠한 종교든지 출발을 왜 했으며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간다 하는 선을 그어 놓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해서 타락을 했으며, 그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되찾아 가야 된다는 선을 그어 놓고 그 공식 법도에 따라 가지고 나오는 종교가 없었습니다.
막연하지만 세계를 향하여 인류는 박애사상권내에 들어가야 된다고 가르치는 거예요. 인류는 박애사상을 가지고 형제의 우애를 가져야 된다고 가르치는 거예요, 막연하게나마. 또한 온 인류는 평등해야 된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가 평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을 전부 종합해 보면 무엇이 되느냐? 인류를 중심삼고 볼 때, 인류는 무엇이냐? 아담 해와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아담 해와가 인류의 부모라면 인류는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그거라구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 인류가 머물기를 희망하는 곳이 어디냐? 오늘날 우리 인류가 희망하고 있는 곳은…. 세계 어느 곳이 됐든지 부모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면 누구든지 좋아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오늘날 한국에 있어서도 그렇고, 세계 어디를 가도 그곳이 한국에서 느끼는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기쁠 수 있습니다. 즉, 한국에서 기뻐할 수 있는 부모의 사랑권과 같은 그런 사랑권이 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있다면, 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기쁠 수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계 형제지권, 한국이나 자기 가정과 같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인연, 세계 어디를 가든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질 수 있다면, 세계 어디를 가든지 기쁠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기뻐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무엇을 가지고 기뻐하자는 것이냐 할때에, 돈을 가지고 기뻐할 것이냐? 돈을 가지고 기뻐해 보았자 언젠가는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한바탕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아무리 좋아하고 웃어 봤자 그것은 영원히 기뻐할 수 있는 상대적 여건으로 등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이구 좋다. 아이구 좋다' 하루종일 하게 되면 기진맥진 해지는 거라구요.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기뻐하자는 것이냐 할 때에, 사람끼리 기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보다 더 고차적인 분, 더 감각적인 분이 있다면 그런 분을 중심삼고 기뻐하자는 것입니다. 그건 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뻐하는 데 있어서 하루만 기뻐하고 그만두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가씨가 시집을 가게 될 때에, '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하면서 시집가던 날은 기뻐하고 그 다음날부터는 울면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예요? 처음에만 기쁘고 그 다음 과정은 슬프면 돼요? 과정도 기뻐야 되고, 그 다음에 결과도 기뻐야 됩니다.
처음도 기쁘고 과정도 기뻐야 결과도 기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은 좋았는데 과정은 억울했다면 결과가 좋다 하더라도 또 억울할 수 있는 내용이 남아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세상은 바꿔지는 것이기 때문에…. 좋았으면 끝까지 좋아야지 좋다가 말면 되겠어요? 그것은 안 좋았던 것만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집을 가서 '아이고 좋아라' 했다가 나중에 나빠졌다면 시집을 안 간 것보다 나아요? 못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것으로써 시작을 했으면 그것이 가다가 중도에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좋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좋아하는 데는 무엇을 가지고 좋아할 것이냐? 여기에서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돈은 잠깐 좋아하게 되면…. 돈은 영원히 좋을 수 있는 상대적인 요건이 되지 않습니다. 돈을 가졌다고 좋아서 한 30분 동안 춤을 추어 보세요. 그것처럼 멋대가리가 없는 것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자기가 많은 돈을 가졌다고 집채만한 돈더미를 붙들고 그저 좋아 가지고 하루종일 춤을 추어 보라고요. 그 이튿날도 전날과 같이 그렇게 한다면 '이 미친 녀석아' 하는 거예요. 한번 좋아하고 나면 그만이라는 거예요. 그렇찮습니까? 그것은 영속적인 것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삼고는, 오늘 아침에 보고 좋아했다고 해서 저녁에 가서 싫어집니까? 어때요? 저녁에도 좋지요? 그렇다면 그다음날 아침에는 어떻습니까? 「좋아요」 또 그 다음해 정월 초하룻날이나 혹은 섣달 그믐날은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따라서 영원히 좋아할수 있는 기쁨의 대상은 무엇이냐 할 때 그것은 돈이 아닙니다. 여러분, 대한민국만한 돈더미를 가지고 하루종일 흐드러지게 춤을 추어 보라구요.
그 다음날도 그렇게 하라고 하면 전부 도망 갈 것입니다. 또 할 자신 있어요? 그렇게 할 기분이 날 것 같아요? 그럴 기분이 안 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자신이 있어요? 또 하면 좋겠어요, 말면 좋겠어요? 여러분, 하루만 흐드러지게 좋아하고 그 다음엔 말아야 되겠어요? 아닙니다. 그 다음에 또 계속하고 싶다는 거예요. 계속해도 또 계속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계속하다가 말고 싶은 것이 아니라 계속하면 할수록 또 하고 싶은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사랑의 길입니다. 기뻐할수 있는 그 대상이 뭐냐? 그 기쁨의 대상은 누가 되어야 해요?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집안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대해 가지고는 좋은데 밖에 나가면 울 것밖에 없다고 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예요? 집안에 들어올 때는 '헤헤' 웃고, 밖에 나가면 '엉엉' 우는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냐는 거예요? 아닙니다. 어떠한 일일지라도 기뻐하던 그 마음을 중심삼고 환경을 거쳐 나가야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이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가 처한 환경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그 어려운 환경에 휘말려 가지고 비애와 비탄 속에서 신음하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비애와 비탄의 자리를 밀고 나가서 거기에서 기쁠 수 있는 인연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는 희망적인 사람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동기가 되어 가지고 그럴 수 있는 사상을 중심삼고 십년 백년 천년 가게 된다면 인간들은 그 사상을 중심삼고 따라가려고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이냐?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을 원수시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 종교는 없습니다. 종교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하면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된다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사람을 위해서 살라고 가르쳐 주는데 오늘 아침에만 사람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만 사람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혹은 일년만 사람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일생 동안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백년 혹은 천년이라도 사람을 위해서 살게 할 수 있고, 사람을 위해 사는 데 있어서 좋아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영원히 위해 살게 할 수 있는 종교일수록 위대한 종교인것입니다..
좋은 사람만을 대해서 좋아하는 종교는 좋은 종교가 아닙니다. 나쁜 사람도 좋아하겠다고 몸부림치는 종교일수록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준 교리 가운데 최고의 교리가 무엇이냐 하면, 사람을 사랑하되 자기편의 사람만을 사랑하지 말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사랑의 도리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도리를 가르쳐 준 것을 볼 때, 여기에는 만국을 넘어서, 만민을 넘어서, 또한 모든 역사 시대를 지나가서라도 인간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좋아하겠다는, 원리적이고도 원칙적인 사상이 깃들어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삼은 사상은 세계 역사를 움직여 나왔고, 역사과정에 있어서 절망하던 수많은 인류의 가슴 가슴을 사랑의 세계로 이끌어 가지고 발전시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기독교문화권입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예수님의 사상대로 세계 인류를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그런 종교가 되었느냐? 만일 그렇게 못 되었다면 기독교는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의 방향과 상충을 가져오겠어요. 화합을 가져오겠어요? 상충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충된 세상이 찾아오면, 다시 이 상충된 환경을 제거시키고 화합할 수 있는 운동을 제시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방향을 최종 목적점까지 끌고 갈 수 있는 길이 계속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행복한 사람, 복받은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자기 혼자 있어 가지고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행복을 차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많아 지면 그런 종족이 되는 것이요, 그런 사람이 더 많아지면 그런 민족이 되는 것이요, 그런 사람이 더 많아지면 그런 국가를 이룰 수 있는 것이요. 그런 사람이 더욱 더 많아지면 그런 세계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동에서 서로 넘어가면 그것이 싸움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넘어오는 것을 환영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그런 세계가 되면, 그것이 하나님이 지금까지 찾아 나온 세계가 아닐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생각을 쭉 수습해 보면 그런 결론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는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기독교 불교 유교 등 여러 종교가 있지만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지금까지 종교가 각자의 길을 걸어왔지만 결국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장래에 모든 종교는 요 점에 와서 부딪쳐야 됩니다. 요 점에 와야 되는 거라구요. 반드시 요 점과 상봉할 터인데, 어느 한때에 상봉하기 위해서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고 이렇게 오는 거라구요.
요 점이 하늘편인데, 종교가 넷이면 넷이 '이것이다' 하고 가다 보니까 어느 한 곳에 와서 교차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차가 되었는데도 여기에서 다른 방향으로 가다가는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가지고 역사과정에 수많은 방향이 있었지만, 더 높은 문화권은 더 낮은 문화권을 흡수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지요? 어떤 종교가 이 목적점을 향해서 가다가 이 교차점에 왔는데 여기서 그냥 그대로 곧장 가려고 하다가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방향은 이렇게 가야 하는데 이와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하면 우주의 힘이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야, 너는 망해라' 해 가지고, 자체내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깨져 나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또, 어떤 종교는 여기서 출발을 했는데 요만큼 가다가 방향을 달리해서 이렇게 가겠다고 하다가는 갈 길이 막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종교가 조금 더 전진한 자리에서 '바로 여기가 목적점이다' 해 가지고 여기서 이렇게 간다면 남아지겠습니까? 못 남아지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느냐? 마음은 이쪽으로 가려고 하고 몸뚱이는 저쪽으로 가려고 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몸뚱이가 가려는 방향으로 점점 가면 갈수록 불안해지고, 헤이해지고, 가면 갈수록 책임을 지고 싶지 않고, 또한 거기에 인연을 맺고 싶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럴게 아니예요?
그 다음에 또 한 종교가 조금 더 전진했다 하더라도 다른 방향으로 그냥 그대로 가려고 하면 어디로 가겠어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은 천륜을 통해서 가고 싶은데, 인심은 천심이라고 했듯이 마음은 하늘을 따라가고 싶은데 가는 길을 모른다는 거예요. 나침반 바늘이 북극을 향해 있다 하더라도 그 나침반 바늘을 북극으로 향하게 하는 힘보다 더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지남철을 떡 놓아두면 그방향으로 나침반 바늘이 돌아가려고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고 바늘이 돌아가려고 할 때 지남철의 힘이 작용하면 바르르르 떨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세계에 진동이 벌어져 요란스러울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것인지 저것인지를 모르고 '야단이 났다'고 할 때가 오는 거라구요. 세계가 갈라질 때는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계로부터 직접 은혜를 받을 때 부들부들 떨지요? 그거라구요. 여기에 붙어 있던 것을 잡아떼려고 하니까 바르르 떠는 거예요. 지금 이때가 그때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렇게 끝날에는 모든 종교, 모든 사상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거리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지요? 공산당도 흔들거리고, 민주 세계도 흔들 거리고, 종교도 흔들거리고, 모든 것이 흔들거린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
그러므로 기독교는 마지막 종착점에 도달해서 자리를 잡아 가지고 세계를 수습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목적점까지 못 갔으면 목적점까지 가려고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중간에서 정착해 가지고 '이렇게 믿고 이렇게 가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지금 때가 그런 때입니다.
오늘날 세계를 혼란된 세계라고 합니까, 평화스리운 세계라고 합니까? 「혼란된 세계라고 합니다」 오늘날 세계를 중심이 결정된 세계라고 합니까, 중심이 없는 세계라고 합니까?「중심이 없는 세계라고 합니다」 오늘날 세계를 희망이 가득찬 세계라고 합니까, 아니면 절망이 가득찬 세계라고 합니까?「절망으로 가득찬 세계라고 합니다」 전부가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 그런 때가 왔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도 절망이요, 어머니가 생각하는 것도 절망이요, 오빠가 생각하는 것도 절망이요, 누나가 생각하는 것도 절망이요, 남편이 생각하는 것도 절망이요, 아내가 생각하는 것도 절망이요, 아들딸이 생각하는 것도 절망이니 절망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절망에 부딪쳐도 절망에 부딪친 것이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사경으로 들이 죄어 온다는 거예요. 그러니 절망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붙어 있어 가지고 되겠어요?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안 되겠으니까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형님은 형님대로, 누나는 누나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딸은 딸대로 서로가 뛰쳐 나가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럴게 아닙니까? 그럴 때가 바로 끝날입니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 '아버지가 뭐냐, 아버지가' 하면서 아버지도 잡아 치우고,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어머니도 잡아 치우고, 형제도 잡아 치우고 모두다 잡아 치우려고 합니다. 그러면 기쁠 수 있는 자리는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거 큰일났지요?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기쁠 수 있는 자리는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찾을 수 있겠어요? 거 큰일났지요? 그렇지 않아요?
좋아하는 데는 사람을 중심삼고 좋아해야 되는데 아버지나 어머니나 전부 다 절망해 가지고 서로가 뒤넘이치는데, 아버지 어머니가 둘이 만나 가지고 '아이고 좋다'고 할 수 있겠어요? 서로 절망에 부딪쳐 있는데….
서로가 대하면 대할수록 두 절망이 부딪치니 깨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만나면 좋을 것 같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점점 첩첩 태산 준령이라는 거예요. 두 절망이 부딪치고 앉아 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여자는 '저 남자란 녀석 저거 뭐야? 죽지도 않고' 그러고, 남자는 ‘저여자 저거 뭐야? 죽지도 않고…. 아이구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적막 강산이예요, 희망 강산이예요? 「적막 강산입니다」 이렇게 절망에 부딪쳐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실존철학입니다. 실존철학자들은 '현재를 극복하자'고 하는데 극복하려면 극복할 수 있는 동기가 있어야지요? 오늘날 인간들이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끝날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가 최종의 목적지를 가긴 가야 될 텐데…. 지금 네 종교가 이것을 찾아오긴 찾아왔지만 전부가…. 이것이 중심이라 하면 이렇게 이렇게 지금 만나고 있는 거라구요, 네 종교가 사방에서 나와 가지고, 지금 중심을 딱 찔러 가지고 개인이 나타났다 하게 되면, 그 개인은 역사적인 종교의 무엇입니까?「중심 인물입니다」 역사적인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이요, 목적점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되면 우주의 중심을 대신한 한 사람이 나오게 되는 것이고, 또한 우주의 목적을 대신한 한 사람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 위의 중심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중심이 결정되고 그 중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방향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는 탕감복귀를 하기 위한 역사였습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 새로운 방향은 무엇이냐? 탕감복귀시대가 아니라 복귀하기 위한 시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시대에는 서로 상충하여 엇갈리는 걸음걸이로 상봉하지만, 복귀시대에는 남자가 있으면 여자는 그 남자를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남자는 참된 남자이기 때문에 참된 남자를 대하는 참된 여자는 매양 좋게 마련입니다. 알겠습니까? 거기에는 상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복귀시대에서는 엇갈린 기준을 가지지만 복귀시대에 들어가면…. 복귀시대로 들어간다는 말은 창조이상권의 출발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복귀라는 것은…. 아담 해와의 성례식을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시대로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남자는 이 우주의 중심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탕감복귀 역사를 해 나오시던 방향을 두고 볼 때에 그 남자는 소망하던, 제일 기뻐할 수 있는 목적의 주인입니다. 목적의 실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따라서 그분을 만나게 되면 탕감복귀시대의 사연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연 가운데는 사탄의 사연과 하나님의 사연이 한데 엇갈려 있기 때문에 사탄의 사연은 제거시켜 버리고 하나님의 사연만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복귀시대에 있어서 섭리의 방향을 중심삼고 보게될 때, 역사시대에 하나님이 그 방향과 더불어 매양 수고해 나오실 때에 그 중심된 존재는 수고하시는 하나님과 언제나 같이하고 있었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역사시대를 거쳐 나오는 방향을 대표할 수 있는 중심의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기에 아담 시대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과 일치하고, 또 노아시대에 있어서도 일치하고, 그 다음 아브라함 시대에 있어서도 일치하고, 모세 시대에 있어서도 일치하고, 예수님 시대에 있어서도 일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일치함으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탄식의 역사를 엮어 온 것입니다. 일치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탄식의 반대가 뭐예요? 기쁨의 역사를 엮어 왔을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전에 일치해야 되겠어요, 십자가를 진다음에 일치해야 되겠어요?「십자가를 지기 전에요」 또,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울고불고하면서 기도하는 자리에서 일치해야 되겠습니까, 기도하기 전에 생활하면서 기뻐하는 자리에서 일치해야 되겠습니까? 「생활하면서 기뻐하는 자리에서 일치해야 됩니다」 알긴 잘 아는구만요.
일치하는 데는 어떤 자리에서부터 일치해야 되느냐 하면 예수님을 잉태했던 마리아에서부터 일치해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역사적인 일치점은 마리아의 마음을 통해서 그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예수님에게 열매맺혔기 때문에 마리아의 사정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불일치된 입장에서 예수님을 가질 것이 아니라 일치된 입장에서 예수님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래 가지고 예수님이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태어나셨는데 거기에서도 일치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는 곳이 마굿간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은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같이 가시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면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도 일치해야 되고, 십자가의 길을 가면 십자가의 길에서도 일치해야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나는 싫어. 돌아갑시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불일치예요, 일치예요?「불일치입니다」 그럼, 불일치해 가지고 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신 길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가는 길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예수님이 가신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담을 헐고 역사적인 발전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어떤 종교보다도 순교의 역사를 더 많이 입체적으로 갖고 있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것은 왜? 피를 뿌리고 간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피를 뿌리지 않고는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이 비참하다고 안 가게 되면 희망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찾아가시는 길이 그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좋아했습니까, 슬퍼했습니까? 「슬퍼했습니다」 예수님이 슬퍼한 것은, 십자가에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셨습니까. 슬퍼하셨습니까? 하나님도 슬퍼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은 슬픔의 길을 거쳐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 예수님은 슬픔의 길을 넘어서 가야 할 것이었는데 슬픔의 구렁텅이로 떨어졌기 때문에 만민은 그 구렁텅이를 전부 다 거쳐가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자동차가 좋은 차건 나쁜 차건 달리다가 앞에 구렁텅이가 되어 쑥 들어가 있으면 '아이고 나는 거기 빠지기 싫으니 날아가겠다'고 한다고 해서 날아갈 수 있어요? 그런 자동차가 있습니까? 틀림없이 그냥 그대로 가야 그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무리 빨리 달리더라도 그 구렁텅이를 지나가야 되는 거라구요. 가는 방향이 그 방향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역사를 두고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확실히 모르면서 '엄벙덤벙 어영부영 그럭저럭 그저 살아가면 되지' 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방향은 하나입니다. 하나, 하나. 다른 방향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역사적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의 뜻 앞에 보조를 맞추어 하나님의 방향과 일치된 방향을 지상에 그려 놓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비참한 운명을 가려 가야 할, 십자가의 길을 맞은 예수님은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내 뜻으로 말미암아 방향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뜻으로 말미암아 방향이 결정되느냐? 아버지의 뜻으로 말미암아 …. 그 말은 정당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서 좋다 하는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방향이 결정되고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정되고 좌우되는 것입니다. 방향이 불일치할 때는 파탄이 벌어지는 것이요, 사건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과 상별(相別)할 수 있는 자리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파탄되지 않기 위해서 십자가를 붙든 것이요. 분리되지 않기 위해서 십자가를 붙든 것이요, 하나님의 원수가 되지 않기 위해서 십자가를 붙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입니까? '선생님 뜻대로 마옵시고 내 뜻대로 하시옵소서. 우리 남편 뜻대로 하시옵소서' 혹은 '우리 아들딸의 뜻대로 하시 옵소서' 라고 한다면, 이것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한 것입니까? 누구로부터 출발한 거예요?「나로부터입니다」 나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나로부터…. 그럼 나로부터 출발한 것이 하나님의 방향과 일치되겠어요?「안됩니다」 누구로부터 출발해야 되겠습니까 ? 「하나님으로부터요」 하나님 인지 뭣인지 모르지만 주류가 있을 것입니다. 제멋대로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멋대로 왔다갔다하는 것은 미친 놈이 하는 짓입니다. 그건 믿을 것도 없고 소망을 가질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인류가 지금까지 혼란된 역사과정에서 비참한 역사적인 환경을 거쳐 나오면서도 하나의 목적을 '좋은 세계'에 두고 나온 것은 혼란되지 않는 내심의 그 무엇이 방향을 맞추고 나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선, 선, 더 좋은 것, 더 좋은 것…. 이렇게 되어 있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졌으니 하나님의 방향이 그렇게 돌아가게 되었다는데도 '나는 안 돌아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어요? 망하겠습니까, 흥하겠습니까? 「망합니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의 원수가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예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원수가 되니 하나님의 원수가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거라구요.
예수님이 다시 오겠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데는 어떤 자리에 오실 것이냐? 여러분, 생각해 보았습니까? 어떤 자리에 오실 것이냐 할 때, 미국으로 오시겠습니까? 프랑스, 이태리, 혹은 독일로 오시겠어요? 어디로 오시겠어요?「한국이요」 한국은 한이 많아서 한국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생각해요, 안 해요?
그러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데는 어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오시겠어요? 거지는 거지패를 상대로 삼습니다. 그렇지요? 거지는 거지하고 친구하잖아요. 아무리 모던 스타일의 여자가 옆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도 '픽!' 한다는 거예요. 누더기 보따리 짊어진 사람은 누더기 보따리 짊어진 사람이 제격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데 있어서 '제일 좋은 데로 찾아와야지' 하는 사람은 도둑놈 심보를 가진 사람이라는 겁니다. 좋은 자리에 가는 데는 좋은 자리를 거쳐서 더 좋은 자리에 갑니까. 나쁜 자리를 거쳐서 더 좋은 자리에 갑니까?「나쁜 자리를 거쳐서요」 알기는 아는구만. 좋은 자리를 거쳐서 더 좋은 자리에 가요, 나쁜 자리를 거쳐서 더 좋은 자리에 가요? 「나쁜 자리요」 나쁜 자리를 거쳐야 더 좋은 자리에 갈 수 있는데. 그 더 좋은 자리가 어떠냐? 이거 생각해 보라구요.
그 더 좋은 자리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나쁠 수 있는 모든 길을 전부 다 닦아 가지고 평탄한 길을 만들어 놓은 자리를 말합니다. 예수님도 이 땅위에 편한 길을 닦아 놓아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편한 길을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그 신작로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신작로가 뭐예요? 뭐긴 뭐예요, 좋아하는 길이지요. 좋아하는 길이 아니겠어요?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시는데 무엇을 하러 찾아오시느냐? 울기 위해서 찾아오시는 거예요. 사연을 털어놓고 좋아하기 위해서 찾아오시는 거예요? 「좋아하기 위해서요」
예수님이 좋아하기 위해서 찾아오시는데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 오시는 거예요?「사람이요」 예수님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사람, 어떤 사람이예요?「하나님의 사람이요」 이랬다저랬다하는 사람이요? 천년 만년이 흘러가도 이랬다저랬다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4천년 동안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이랬다저랬다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나오신 하나님이니, 그 하나님의 아들은 4천년 이상 변하지 않고 갈수있어야 되겠어요, 갈수없어야 되겠어요?
하나님이 4천년 역사과정에서 이랬다저랬다했다고 생각했다면. '아버지가 그럴 수 있습니까?’ 라고 반박을 할 수 있는 아들이라면 효자겠어요, 불효자겠어요? 하나님이 이랬다저랬다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하나님을 대해 가지고 '하나님, 왜 이랬다저랬다하십니까?’ 하고 반박하는 아들이 불효자입니까, 효자입니까 ?「효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랬다저랬다했다고 생각했다면 그에 대해서까지 반박할 수 있는 예수님이 되어야 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절대로 이랬다저랬다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랬다저랬다하는 사람을 좋아했다가 그 사람이 변하게 되면 언제 또 거기에 박자를 맞추겠어요?
여러분의 신랑이 변덕이 많으면 좋아요? 여기에 변덕이 많은 신랑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침에 변덕이요, 저녁에 변덕이요, 변소 가기 전에 변덕이요, 변소 갔다 와서 변덕이요, 밥 먹기 전에 변덕이요, 밥먹고 나서 변덕이요, 그런 사람이 좋아요? 그러면 '저거 어서 죽어 버렸 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기 때문에 아침에도 변하지 않고, 저녁에도 변하지 않고, 천년 만년 억만년이 가도 변하지 않을 수 있는 낭군이 찾아온다면 그는 누구를 만나러 오겠어요? 사람을 만나러 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변함 없는 사람이요」 변함 없는 사람 중에서도 어떤 사람? 「선한 사람이요」 선한 사람도 종류가 있습니다. 알록하든가 달록하든가 알록달록하든가 하는데 어떤 사람이예요?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여자요」 예수님이 동생 만나러 오시겠습니까, 아버지 만나러 오시겠습니까? 「신부 만나러요」 오시더라도 누구를 만나러 오시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거를 하려고 고향에 돌아갈 때에 새벽부터 뛰어 나갔다는데,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 새벽부터 그렇게 뛰어 나갔어요? 선거 때문에 좋아서 새벽부터 뛰어 나갔어요?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 그렇게 뛰어 나갔어요? 솔직하게 말해서 신랑을 만나기 위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웃음) 신랑이 아무리 무감각적이고 무자극적이더라도 신랑을 만나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누구를 만나려고 그랬습니까?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제일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겠어요? 물론 예수님이 태어났으니 부모는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와 요셉을 만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까? 「아니요」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 태어난 거예요?「신부요」 여러분은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 태어났어요? 신랑 만나기 위해서요」 그렇지요? 누구나 태어나면 어머니는 있기 마련입니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구요. 더욱 발전적인 대상을 만나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면 더 발전적인 사랑의 대상이 누구냐?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니라 남자는 여자요. 여자는 남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시는데 좋아하기 위해서 누구를 찾아온다구요? 「신부요」 신부, 신부입니다. 신부는 어떤 신부입니까? 이랬다저랬다하는 신부 맞으러 오는가요? 「아닙니다」 아침에는 샐쭉하고, 점심때는 삐쭉하고, 저녁에는 쏘아 잡은 말마냥 턱 버티고 서 있는 그런 신부를 만나려고 오겠어요?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면 빵긋 웃는 이슬방울 같은 신부를 원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점심때에는 따스한 태양볕에 고요히 잠들어 있는 듯한 모습을 한 신부를 원할 것입니다. 그저 싹 가서 송두리째 집어 넣고 싶은 그런 신부를 원할 것입니다. 잠을 자더라도 그저 네 활개를 펴고 소리를 내면서 자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요렇게 (행동으로 설명 하심) 하고 자는 그런 신부를 원할 거예요. (웃음) 마음을 모두어 '아 !오시옵소서' 하는 신부를 원할 것 아니예요? 나는 그럴 것 같아요. 여러분은 그럴 것 같지 않나요? 안 그래요?(웃음) 저녁이 되었으니 잠을 자야겠다고 미리 준비하는 신부가 아니라. 오시는 신랑을 기다리면서 뉘엿 뉘엿 넘어가는 해를 등에 지고 오시나 안 오시나 하고 황혼길을 꿰뚫어 보며 눈을 반짝거리고 있는 신부…. 여러분은 그런 신부 좋아요, 나라요?「좋아요」 여러분은 그걸 생각해야 합니다. '아하,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신부는 이래야 될 것이다'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4천년 동안, 혹은 6천년 동안 신부를 찾아 나오는 그 신랑의 길이 얼마나 고됐을 것인지 생각해 보라구요. 고됐겠어요. 안 고됐겠어요? 고된 길을 걸어온 그 길이 천리 길이예요, 만리 길이예요? 몇천 년 걸려서 찾아온 길이라구요. 6천년이나 걸려서 찾아 나온 신랑의 걸음걸이가 얼마나 고됐겠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에. 그 신랑이 신부를 만난다면 호화찬란하고 영광된 자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나타나는 신랑일 것이냐? 생각해 보세요. 어림도 없다는 거라구요.
그 신랑은 단 한 분의 신랑이기 때문에 신부가 해주는 옷을 입어야 하는데 신부를 찾지 못했으니 어머니 아버지가 해준 옷을 입고 출발할 수 밖에요. 그렇잖아요? 어머니 아버지가 정성껏 만들어 준 옷을 입고 신부를 찾아서 출발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옷은 몇 해가 되었겠어요? 그 입은 옷은 6천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거지 중의 상거지입니까, 하거지입니까?「상거지요」 상거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신부를 찾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갖고 있는 신랑이 시냇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아, 좋다! 한잠 자고 가세. 꽃이 푸대접하면 다른 데서 자고 가세' 하면서 신선놀음 할 수 있는 그런 입장에 있는 신랑입니까? 일분 일초를 다투어, 어서 찾아가 내일이 오기 전에 오늘 만나야 된다고, 모래가 오기 전에 내일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한 시간을 단축 시켜서 만나지 않으면, 그 시간이 연장됨으로 말미암아 신부 세계는 점점 쑥새 둥지가 되어 가는 것을 알고 있는 신랑의 발걸음이 얼마나 고달프고 그 마음이 얼마나 서글펐을 것인지 생각해 보라구요. 그렇잖아요?
그 얼굴을 보면 어떻겠어요? 세수를 했을까요, 못 했을까요? 신부를 진정으로 제일 사랑했다면 신부만을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에 세수 같은 것을 생각했겠습니까?(웃음) 생각해 보라구요. 생각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또 이빨을 닦았겠습니까?(웃음) 또 코라도 씻었겠습니까? 생각해 보라구요, 머리는 어때요? 머리를 빗었겠어요? 머리야 될 대로 되라고 했을 것입니다. 또 손톱은 깎았겠습니까? 그렇잖아요?
일분 일초라도 아껴 가지고 신부를 빨리 찾아가야 할 신랑이…. 만일에 교차로가 있어 가지고 일초라도 늦는 날에는 싹 어긋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초라도 먼저 가서 기다리면 만날 수 있지만, 일초라도 늦었다가는 어긋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화를 보면 더러 그러한 장면이 있잖아요?
그런 경우도 있을지 모르니 일초라도 빨리 가야겠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만일 '세수를 해야지, 손톱을 깎아야지' 하는 그런 마음을 가졌다면 그것이 좋은 마음이예요, 나쁜 마음이예요? 대답해 봐요. 그게 좋은 마음이예요, 나쁜 마음이예요? 신부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일편단심이기 때문에 거기에 무슨 먼지 하나 끼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곁다리 끼는 것을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몽땅이라구요, 몽땅.
그러므로 6천년 동안 기른 손톱을 가지고 오는 신랑이라는 것입니다. (웃음) 왜 웃어요? 머리는 6천년 동안 손질을 하지 않아서…. 뭐 박새 둥지는 보기나 좋지요.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의 머리를 보면 꼬불꼬불한 것이 마치 파마한 것 같은 머리인데, 거기에 비하면 그런 머리는 그래도 신사 머리일 것입니다. 6천년 동안 나오면서 그 머리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6천년 동안 나오면서 뭣은 안 묻었겠어요? 그 머리 냄새를 맡기만 해도 질색하며 나가자빠질 것입니다. 무슨 냄새는 안 나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웃음) 아마도 옷을 벗겨 몸을 보면 땀에 찌들은 때를 가죽 벗기듯이 쓱 벗겨야 될 거라구요. (웃음) 이거 우스갯소리가 아니라구요.
신부될 사람은 그런 것을 다 준비해 가지고…. 이렇게 오시게 되면 이렇게 해결해 드리고 저렇게 오시게 되면 저렇게 위로해 드려야 되겠다고 하는 것을 준비할 생각조차 못 한 신부는, 신부 되는 시험을 치게 되면 낙제는 정한 이치라는 거예요. 이런 것을 다 생각하고 있다가, 척 묻게 되면 '이런 것은 이렇지요'라고 답변을 쓱쓱 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렇잖아요?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 가운데 예수님의 신부 될 수 있는 자격자가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없다는 거라구요.
그러면 신랑을 맞기 위해서 기다리는데 아침에도 신랑이요, 저녁에도 신랑이요, 밤에도 신랑이요, 새벽에도 신랑이요, 혹은 밥을 먹어도 신랑이요. 어디를 가도 신랑이요, 말을 해도 신랑이요, 무엇을 보아도 신랑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신부가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사람이 공부를 했겠습니까, 못 했겠습니까? 또 학박사 학위를 가졌겠습니까, 못 가졌겠습니까? 생각해 보라구요. 그 여자 주제꼴이 어떻겠어요? 꼴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상거지 중의 왕 레테르가 붙은 상거지 신부라는 거예요. 그런 여자가 쓱 지나가게 되면, 똥통은 지나가고 나면 그만이지만, 그런 여자를 한번 봤다면 일생 동안 고역일 것입니다. 그 여자를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날거라구요. 그 주제가 그럴 것입니다. 또 신랑은 그보다 더할 것입니다. 그러니 신랑 신부를 맞는 자리가 포근하고 아주 호화찬란한 왕궁의 자리라고 생각을 했다가는…, 어림도 없다는 거라구요.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자, 그러면 어디에서 신부를 맞을 것이냐? 어디에서 신랑을 맞을 것이냐? 이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신부를 찾아오는 신랑이 그래도 체면을 생각하는 신랑이라면 좋은 나라로 올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사람이라면…. 자기 주제가 그래 가지고 좋은 자리에 있는 좋은 옷을 입은 사람들한테 쓱 가서 '나를 본받아라' 그럴 수 있겠어요? 자기 주제가 그렇게 형편 무인지경이니 할수없이 으슥한 곳을 찾아가게 되고 자기를 동정할 수 있는 무리들을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주님은 호화찬란한 문화 도시, 전기불이 빛나고 음악 소리가 울려 나오는 곳에는 가실 수 없습니다. 만일 그런 곳에 가게 되면, 거기에 있는 여급까지도 '이 자식아, 나가라 나가' 하며 쫓아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가 많으신 하나님은 그 아들을 보내는 데는 비참한 민족에게로 보내신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주제가 그러니 그래도 환경이 좀 끼리끼리 어울릴 수 있어야 얼굴은 못 들어도 눈이라도 조금 비추어 볼 거 아니예요. 그렇지요? 서로가 비슷비슷하니까 얼굴을 좀 들 수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그렇잖아요?
여러분, 우는 사람 축에 끼게 될 때에, 눈물이 안 나오게 되면 죽을 지경이지요? 다른 사람들은 다 우는데 자기만 눈이 반짝반짝해 가지고 있으면…. 그때는 할수없이 눈에다 침을 발라 가지고 우는 체해야 되는 거라구요. (웃음)
그런 것을 두고 볼 때에, 신랑 되시는 예수님의 주제가 그렇다면 그러한 나라와 민족을 찾아가야 어디에서든지 그냥 팔을 베고 자더라도 통과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천대를 받고 쑥덕거리는 곳에는 안 갈 것이 아니겠습니까? 도리어 그런 곳이 편하기 때문에 그런 나라와 그런 백성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런 나라와 그런 백성 가운데에서도 어떠한 백성이냐 하면, 그래도 그 무엇을 바라고, 그래도 선을 가지고 있고, 그래도 그 무엇을 찾으면서 전통적 절개를 남긴 그러한 민족을 찾아가야 되겠다 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이 그런 것을 패스할 수 있는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나라라구요. 한국은 4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은 '동방' 뭐라고 그래요?「예의지국이요」 '예의(禮儀)하게 되면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좋은 것입니다」 '에이 좋다'고 그래요? '에이 기분 나쁘다'고 그러지요? 기분 나쁜 나라라 그 말이라구요. 예의지 (禮儀之)할 때 '지 (之)자는 부사이기 때문에 '의'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예의 지국은 기분 나쁜 나라라는 말이라구요. 그래요? 기분 좋다는 나라예요. 기분 나쁘다는 나라예요?
동방예의지국이라 할 때에,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동방예남'입니까. '예여'입니까? 한국을 동방예의지국이라 할 때에 남자를 두고 한 말 같습니까, 여자를 두고 한 말 같습니까?「여자요」 여자를 두고 하는 말 같지요?「예」 다투지 말고 그렇게 정하자구요. 내가 남자이지만 여자들 편들어 줄께요. (웃음)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은 여자를 두고 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역사과정에 있어서 남편을 진정으로 모시고자 했던 부인들은 살림살이를 마음대로 못한 여인들이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열녀문이나 열녀비에 얽힌 역사를 더듬어 보라구요. 그가 며느리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새벽밥을 한 며느리요, 밥을 먹을 때도 시부모가 혹 물을 달라고 할까봐 부뚜막에 앉아서 물을 떠놓고 기다리던 그런 며느리라는 것입니다. 밥을 먹되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것이 아니라 안방에서 진지 잡수시는 시부모님께서 '얘 아가, 물 좀 가져 오너라' 하지 않을까 하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밥을 먹어도 마음은 언제나 거기에다 두고 준비하고 기다리는 그런 생활을 한 며느리가 아니고는 열녀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부뚜막 생활을 평생 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열녀는 신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마음대로 산 아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열녀문을 세우는 데는 남편을 위해서 잘해 준 여자에게 세워 줍니까, 아니면 부모를 잘 섬긴 여자에게 세워 줍니까?「남편에게 잘해 준여자에게요」남편? 그럼 남편을 위하는 데 있어서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울어도 좋다는 말이예요?「아닙니다」 효부가 되지 않고는 열녀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효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신랑이 ‘여보, 여보, 당신은 나한테 신경쓰기도 바쁜데 어머니 아버지한테까지 왜그렇게 마음을 쓰는 거요?’ 라고 한다면 그 신랑은 효자예요, 불효자예요?「불효자입니다」 불효자식입니다. 그런 불효자식에게서는 열녀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뭐가 되어야 된다구요?「효부요」 먼저 효부가 되고 그 다음엔 열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녀의 전통은 먼저 남편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그렇게 생각해 드림으로써 효부의 칭호를 받고 나서도, 부모로부터 '야 이제 나한테만 그렇게 잘하지 말고 네 남편 좀 돌보려무나. 난 그저 아무렇게 해줘도 좋아. 이제 그만하면 됐다' 이렇게 승낙을 받고 나서도, '그렇습니까' 하면서 바로 돌아서서 '아이고 좋아라. 내 때가 왔구나. 이때를 기다렸다'(웃음) 하며 좋아하는 그런 여자는 절대로 열녀가 못 되는 것입니다. '아이고, 내가 이날을 얼마나 바랐다고, 내 때가 왔구만' 하며 등등 춤을 추는 여자는 열녀가 될 수 없습니다.
시부모가 그러시거든 '아버님 어머님, 어찌 이 계집이 남편을 위하는 마음 이상으로 부모님을 위하지 않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죽은 후에까지도 부모님을 위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오니 부디 그러지 마시옵소서'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시부모가 '자 그러지 마라. 이제는 괜찮아. 그만하면 됐다'고 재차 다짐을 지으시거든, 눈물을 흘리면서 목이 메어 흐느껴 울면서 뒷걸음질쳐 나오는 그런 효부가 되지 않고는 결코 열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 품에 안길 때에 '에이, 시부모고 뭣이고 나 혼자 갈래요' 하게 되면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마음을 다하고 생명을 다해 가지고 정성들여 자기의 낭군을 낳아 준 시부모 앞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 낭군을 키우실 때에 어머니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하셨을까. 그 사랑 이상으로 내가 사랑하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시부모 대신 남편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그래 가지고, 시어머니에게서 이제는 나한테 효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들은 것과 마찬가지로 남편에게서도 '이제는 나한테 그렇게 정성을 안 들여도 된다'는 말을 들을 때,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죽더라도 당신을 위해 죽겠습니다. 그것이 여자가 가야 할 길이 아니겠습니까' 하고 운명을 걸고 맹세하면서 서로가 위로해 주고 서로가 감사할 수 있는 환경에 서지 않고는 열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통적인 열녀의 입장인 것을 똑똑히 몰라야 되겠?「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다' 하면 여러분도 '다' 해야지요. 몰라야 되겠?「알아야 되겠」'다' 「다」내가 왜 이렇게 하느냐? 저기 조는 색시가 있거든요. 눈을 뜨나 안 뜨나 보니 눈을 '빵긋…' (웃음) 그럴 때에는 이렇게 하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열녀는 어머니의 후계자라는 것, 부모의 부활된 실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면 사랑은 어디서부터 울려 나오는 것이냐?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먼저 어머니의 사랑부터 받는 것입니다. 자식을 중심삼고 상대적 사랑을 먼저 하는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아버지도 사랑을 하지만, 자식이 배 안에 있는 열 달 동안 고이고이 품고 다칠세라 상할세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말도 조심하고, 생활도 조심하고, 모든 태도도 단정히 하여 태교 기간을 거치는 과정에서 먼저 복중에 있는 아기를 자기 생명보다도 더 사랑한 사람이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머니로부터 시작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신부는 사랑의 세계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타락한 사랑에 있어서도 제일 가까운 자리에 선 것이 인류 가운데 누구냐 할 때에 여자입니까. 남자입니까? 타락의 사랑의 자리에서 제일 가까이 있던 존재가 누구라고요? 남자예요. 여자예요?「여자요」
여자라구요, 그 여자라는 건 뭐냐 이거예요. 그거 이야기해 줄까요?「예」
여자라는 것은 말입니다. 여러분이 옷을 만들다가 천이 남으면 그걸 무엇이라고 해요? 여자라는것은 뭐냐 하면 남을 ‘여(餘)자’ 여자라구요. 즉, 쓰다 남은 아들이다 이거예요. (웃음) 타락했기 때문에 여자가 된 거라구 요. 곁다리예요, 곁다리. 그래서 오늘날까지 여자는 곁다리 노릇을 하지 않았어요? 그것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여자가 곁다리 아들로 태어났으니 천대받는 것이 당연합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당연합니다」 천대한다고 해서 무슨 죄 받겠어요? 죄받겠어요, 안 받겠어요? 아들 가운데 곁다리 아들은 무슨 종자입니까? 곁다리 아들은 종년밖에 안 됩니다. 양딸 아니면 종년밖에 안 된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라는 것은 양딸 아니면 종년이라는 것입니다. 성명이 없다는 거라구요. 그렇게 된 거라구요. 여기서 주인을 대해 가지고 섭섭해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한국에서는 한 남자가 첩을 얻더라도…. 여러분, 첩을 얻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과거에는 그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면 종으로 취급하고 또 다른 여자를 얻었다는 거예요. 그래도 여자들은?(웃음) 여러분, 종이 좋을 게 뭐예요? 또 양녀 같은 것이 좋을 게 뭐예요? 얻어 가지고 데리고 살다가 집어던지고 다시 얻는 거라구요. 이렇게 세 번쯤 갈아치워도 괜찮게 돼 있었더라 이겁니다. 기분 나쁘지요?
왜 그랬는지 보라구요. 아담 시대에 남편을 배척한 여자, 해와가 그랬지요?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을 배척한 마리아, 그렇지요? 재림주님 시대에 환영하지 못하고 배척했던 여자…. 그렇지요? 이와 같이 여자들이 남자들을 배척했으니 남자들이 장가를 가야 되겠습니까, 안 가야 되겠습니까? 남자가 장가를 안 가고 기다렸으면 말이예요, 남자와 여자가 같은 입장에서 사랑을 하려면 입장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편을 세 번이나 버렸던 여자를 데리고 살려면 세 번의 장가를 갔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입장이 같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시집을 간 신부를 찾아오기 위해서, 신부가 그렇게 시집을 갔으니 신랑도 그렇게 장가를 감으로써 위신을 세워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아오겠다는 그런 낭군님이 있다는 것은 타락한 여자 앞에는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구요. 알겠어요? 여자들은 남자가 세 번씩 장가를 가서 세 여자를 대하는 것이 억울하겠어요, 기분이 좋겠어요? 「억울합니다」억울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 여자한테 장가를 가서 세 여자를 데리고 살아야 하는 그 사내 팔자가 드센 거예요, 좋은 거예요?「드센 것입니다」 불쌍한 것은 마찬가지라구요. 남자가 더 불쌍하다는 거라구요. 여자를 잘못 만나 가지고 그 여자에게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또 그 놀음을 해야 하는 그런 남자가 행복해요, 불행해요? 「불행합니다」 타락한거라구요.
그러한 가정에 있어서 '여자의 죄를 나에게 다 뒤집어 씌우시사 만국의 여성들이 해방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과거 현재 미래의 수많은 여자들이 해방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나님 앞에 복을 빌어 주고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 여자가 있게 될 때는 그 후손부터는 그런 일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그렇게 기도하며 살아간 여자가 있어요? 새로 들어온 여자를 원수시해 가지고 '하나님이여, 저 여자에게 병을 주소. 내 가슴을 이렇게 찢어 놓은 그 여우 같은 간나에게 벌을 주소' 하는 여자는 많았지만 말이예요. 자기 사랑을 몽땅 넘겨 주고도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여자는 여자 중의 대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는 복귀된 신부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인데 지금까지 그런 전통적인 역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 하다가는 우리의 갈 길은 한 십년 후에나 말할 것 같구만. 자, 신부를 찾아오는 신랑이 형편이 있었겠습니까, 없었겠습니까? 신부를 찾아오는 신랑의 신세가 형편 있었겠습니까, 형편없었겠습니까? 여기에 비하면 춘향이를 찾아오는 이도령의 행차는 상감마마의 행차라구요. 알겠어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그 신랑은 세상 남자 중에서 제일 싫어할 수 있는 남자입니다. 이는 틀림없이 6천년 동안 신부를 찾아왔으니 집시의 무리와 같은 신랑의 신세가 아니겠느냐? 그러니 얼굴을 보면 버짐투성이요 얼룩덜룩할 것입니다. 더울 때에는 긁어서 얼굴에 밭고랑이 생겨났을 거라구요. 거 어떨까요?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그러한 신랑을 맞아 가지고 '하나님이 보내 주신 내 낭군이여! 오늘의 기쁨을 찬양할지어다'라고 해야 되겠어요, 아니면 '여보 그 꼴이 뭐예요? 아이고 난 싫소! 오긴 왔지만 난 모르겠소. 그럴 줄 몰랐소'라고 해야 되겠어요? 여러분 같으면 어떤 여자를 원하겠어요? 좋건 나쁘건 내 낭군이라고 하는 여자를 원하겠어요, 아니면 아이고 난 싫으니 어서 가서 씻고 오라고 하는 여자를 원하겠어요? 어떤 여자를 원할 거예요? 「전자요」 전자라고요? 주전자?(웃음) 전자라고요, 전자. 웃을 게 아니예요.
그러면 신랑은 못 만났지만 신랑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어떤 남자가 소개해 주겠다고 하면 따라가야 되겠습니까. 안 따라가야 되겠습니까? 「따라가야 돼요」 그런데. 자기는 신랑을 맞으려고 능라 주단, 비단. 양단, 무슨 단, 무슨 단 해서 한 3백단을 갖추어 놓고 그런 옷을 입고 떡 기다리고 있는데 '당신이 기다리는 신랑님이 저기 있습니다. 안내하옵니다'라고 소개하는 그 남자가 거지 꼴이라면 '그렇소' 하면서 벌떡 일어서겠어요? 그렇게 하지 못하면 낙제감입니다, 낙제감, 거지 중의 거지 발싸개 같은 녀석이 안내하겠다고 해도 자기가 신랑을 만나기 위해 십년 백년 수고했으면 그 십년 백년의 수고에 대해 감사의 심정을 가지고 움직여야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그래야 되겠습니까, 안그래야 되겠습니까?
손은 이렇게 꺾여지고, 걷는 데는 이렇게 걷는 사람이라구요. (행동으로 표현하심. 웃음) 세상에 저런 남자가 또 있을 것 같지 않고, 꿈자리에서 보아도 질색할 정도의 남자다 이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나는 싫어' 그래야 되겠어요, '아. 나는 참 복도 많지. 나도 모르는 저런 남자가 어쩌면 이런 길을 안내할 줄 어느 누가 알았겠나, 나만이 안 것이다. 아이고 좋아라. 어서 갑시다' 그래야 되겠어요? '어서 갑시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부름을 해주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기를 바랍니까. 훌륭하지 못한 사람이기를 바랍니까?「훌륭한 사람이요」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사람인데 주제가 좋기를 바라요, 나쁘기를 바라요?「좋기를 바랍니다」 주제가 좋기를 바라는 사람은 전부 다 주님을 못 맞을 것입니다. (웃음) 주님을 알고 따라온 사람은…. 주님의 편이나 주님의 종이 아니고는 주님을 모를 것이 아니냐? 그러면 오시는 신랑이 6천년 동안 헤맸으니 그 종도 6천년 동안 헤매지 않았겠어요? 그러니 그 종의 신세도 주님의 신세와 마찬가지 신세라는 것입니다. 상거지는 그래도 덜한 거예요.
주님을 자기 일대에는 못 맞더라도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가망성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에 딸을 통해서라도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그 사람한테 시집이라도 가 둬야 되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여자라면, 자기는 주님을 맞이하지 못하더라도 자기 딸 시대에 가서는 주님을 맞이할 거라구요. 그러니 주님 앞에 가까운 신랑감이 있으면 시집을 가야 되겠습니까, 안 가야 되겠습니까?「가야 돼요」 가야 되겠어요?「예」 그러면 주님의 종한테라도 시집가야 되겠습니까, 안 가야 되겠습니까?「가야 돼요」 가야 됩니다.
그 종의 주제가 어떻겠어요? 그 종은 주님의 심부름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거동을 해도 주님보다 한번이라도 더 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주님보다 더 형편없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런 사람을 자기의 이상적인 낭군으로 모셔야 되겠어요. 안 모셔야 되겠어요? 대답해 보라구요. 모셔야 돼요, 안 모셔야 돼요?「모셔야 됩니다」 기분 나쁩니다. 요쪽 패들, 그러한 남자가 있다면 낭군으로 모셔야 되겠습니까, 안모셔야 되겠습니까?「모셔야 되겠습니다」 그렇지요?「예」 모셔야 되겠어요, 안 모셔야 되겠어요?「모셔야 되겠습니다」 정말 그렇지요?「예」 여러분은 모셨어요. (웃음) 그 다음에 여기 있는 사람들, 모셔야 되겠습니까. 안 모셔야 되겠습니까?「모셔야 되겠습니다」 저 귀퉁이에 있는 사람들만 하니까 저 뒤에 있는 사람들은 기분 나쁜 모양이구만. (웃음) 거 기분 나쁘다고 아침부터 그러지 말라구요. (웃음) 어차피 모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모실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선 여자들은 주님의 종한테 시집가지 않으면 주님한테 시집을 가야 됩니다. 그런데 그 판국을 딱 둘로 결정지어 보게 될 때에 신랑이 잘났겠어요, 못났겠어요? 비례적으로 볼 때에 내용적으로는 잘났지만, 외형적으로는 잘났겠습니까, 못났겠습니까? 「못났어요」 못났기 때문에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 부모님께 '부모님이 그렇게 고대하시던 이상상대 행차올시다' 하고 소개할 자신이 있겠어요, 없겠어요?(웃음) 생각해 보라구요. 자신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겠습니다」‘여보 여보, 좀 기다리소'라고 하기가 일쑤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여자가 열녀입니까, 망녀입니까? 「망녀요」 알긴 잘아는구만요.
구름을 타고 영광 중에 오는 신랑보다도 더욱 훌륭하다고 해 가지고 거지 중의 상거지를 모셔다가 '어머니, 사랑하는 딸이 왔소. 내 옆에 있는 이분이 누군가 하면 당신이 그렇게 맞이하기를 바라던, 천대 만대의 소원으로 찾아진 내 사랑하는 낭군이요' 할 때에, 어머니 아버지는 어떻겠어요? 뒤로 자빠지겠어요, 아니면 '아이고 너로구나' 하고 와서 손을 붙들 겠어요? 어머니 아버지가 뒤로 자빠질 것입니다. (웃음) 그런 일이 있을수 있다는 거라구요. 허허 웃지 말라구요. 지금 내가 농담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농담이 아니라구요.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자, 여기 우리 아씨들, 아주머니 후보자들. 신랑이 마음에 들어요, 안들어요?(웃음)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안 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신랑이 잘생겼어요, 못생겼어요?「못생겼습니다_I (웃음) 잘생긴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못생긴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일등 미남자와 박색(薄色) 중의 상박색의 여자가 부부의 인연을 맺어 놓고 보니 거기에도 아주 뭐 꿀이 흐르더라 이거예요. 여러분, 꿀이 뭐예요? 꿀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좋은 것입니다」 꿀이 끈적끈적한데 뭐가 좋아요? 얼굴에 묻기나 해 봐요. 기분 좋은가. 그것은 먹어 보기 전에는 절대 좋은 것이 아니라구요. (웃음) 그렇잖아요? 먹어 보기 전에는 좋은 줄을 모른다구요. 마찬가지로, 외형적으로는 못생겼지만 살아 보기 전에는 모를 사람이 있더라는 거예요. 살아 보니 이건뭐 당신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할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라구요.
여러분 가운데 어디 그런 여자들 있으면 손들어 봐요. 내가 축복을 해줄께요. 축복이 그리워서 손들었지. 정말로 그렇다면 심각한 얼굴을 해가지고 이렇게 손을 드는 거예요. (행동으로 표현하심. 웃음) 그건 거짓말입니다.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가만히 보실 때에 아들의 수준은 높은데 그 아들의 상대자는, 아들과 비슷하면 좋을 텐데, 제일 끝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 아버지가 마음을 쓰겠습니까, 안 쓰겠습니까? 「쓰겠습니다」
마음을 좋아서 쓰겠어요, 기분 나빠서 쓰겠어요? '아무리 봐도 저 짝은 조금 기우는데…. 그래도 자기들끼리는 좋아하누만. 사내 녀석이 조금 병신 아니야? 아무리 보아도 병신 같구만'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는 아들을 불러 놓고 '얘야, 네 아내를 보면 여자는 여자 같지만 꿈에서 봐도 싫을 수 있는 여자인데 그래도 너는 좋으냐? 라고 물을 때에, 그 아들의 대답이 걸작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좋다고 하기 전에 아버지 어머니가 먼저 좋다고 하셨기 때문에 저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는 것입니다.
결혼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입장에서 나에게 아내로 맞으라고 소개해 주셨는데 제가 안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하는 아들이 효자입니까, 불효자입니까? 「효자입니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이 전부 다 '부모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지 않았소? 내가 살고 싶어서 사는 거요?’ 이럴 겁니다. 그러는 것보다도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는 여자인데 제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고 한마디 했다면 벌써 그 한마디로써 효자가 될 수 있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수고는 다 집어던지더라도 그 한마디로 말미암아 효자의 판권을 팔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요? 여자 때문에. 그런 차이 있는 조건으로 말미암아 수고하지 않고도 효자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그전 자리는 거기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보게 될 때도 데리고 살고 싶은 그런 며느리를 얻었을 때, 그 부모가 자식에게 '야, 네 색시 참 곱지? 하면 '예, 곱고 말고요' 하고, '왜 고와?’ 하면 어머니 아버지가 곱다고 하기 때문에 저도 곱습니다' 하는 아들이 효자입니까? 그건 아버지 어머니도 데리고 살고 싶은 며느리니까 고와하지 않을 수 없는 거라구요. 그 아들도 고와하기 마련이라구요. 이렇게 '어머니 아버지가 고와하기 때문에 저도 고와해요' 하는 아들이 효자가 될 수 있어요? 될 수 있어요, 없어요? 그것은 상례 입니다. 상례. 이런 점에서 볼 때, 효자의 통칭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공헌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못생긴 아내라는 것입니다.
또 봅시다. 동네에서 박색 중의 박색 대왕의 간판을 갖고 있는 여자가 있다고 합시다. 이 여자를 할머니가 보나 아줌마가 보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애기들이 봐도 전부 다 기억이 좋지가 않다는거예요. '이세상에서 제일 못난 여자가 누구냐'고 할머니한테 물어 봐도 아무개의 신부, 아줌마한테 물어 봐도 그 여자, 오빠한테 물어 봐도 그 여자, 동생한테 물어 봐도 그 여자, 아이들한테 물어 봐도 그 여자라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여자를 어떤 남자가 사랑하게 되었다 하게 될 때에는 거기에서 수수께끼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동네 아줌마들이 그 남자를 보고 가만히 생각하기를, '우리 영감과 저신랑을 비교해 볼 때에 우리 영감이 저 신랑의 절반만큼만 생겼어도 내가 행복할 텐데'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여자로 태어나 저런 남자하고 한번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할머니의 마음도 싱숭생숭하게 동요시킬 수 있는 남자가 되었더라 이거예요. 알겠어요? 또 아줌마들로 하여금 '저런 남자와 한번 살지 못한 것이 한이구만. 우리 남편과 저 남자를 비교해 보면 마치 왕궁과 똥통과 마찬가지구만' (웃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는 거예요. 여자들로 하여금 자기 남편을 공격하고 비판하는 입장에 서게 하는 남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는 거라구요.
또, 시집갈 처녀들이 그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면, '나 시집가게 되면 우리 동네에 아무개 신랑과 같은 그런 미남자에게 가겠어요' 하는 그러한 바람이 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여자가 바람에 들뜨게 되면 그 여자가 앞으로 행복할 수 있겠느냐. 시집갈 처녀의 마음을 싱숭생 숭하게 만들어 놓은 남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또 어떤 처녀는 '나같은 여자는 백 번 죽고 천 번 뒤넘이치고 천년의 한을 품고 정성을 들여도 저런 남자에게 시집갈 가망성이 없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못 살겠다. 이놈의 상통' 하면서 거울을 볼 적마다 원망과 저주를 스스로 에게 퍼붓는다는 것입니다. 자포자기의 상통이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런 여자 상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그 남자는 아주 잘났는데 제일 못난 여자와 떡 산다고 하게 될 때 여자들은 그 여자를 놓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 여자가 행복하게 사는 걸 볼 때에는 자기 자신에게 '에이 벌받을 년' 이런다는 거예요. '고귀한 남자의 순정을 유린한 요사스러운 년. 이년아' 그런 가책의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그 남자를 본받아 가지고 네남편을 이와 같이 사랑하라'는 교훈의 재료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
그런 일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그런 남편을 못 얻을까봐 낙심해 가지고 죽을 수 있는 여자에게 그런 형편없는 여자를 데리고 사는 남자를 통해서 소망을 열어 줄 수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그 동네에 있어서 그 한쌍의 부부가 복되게 산다면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굴복한 사람들은 전부 다 그들을 훌륭하게 본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 부부를 고맙게 보게 된다는 거라구요. 남자는 그러한 남자가 되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남자는 어떠한 남자가 되어야 되느냐? 잘난 여자의 궁둥이나 따라다니면서 사랑하겠다는 그런 남자보다도 아무리 못난 여자이더라도 지극한 정성으로 사랑할 수 있는 정을 가진, 사랑을 가진 남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못난 여자와 사는 남자를 보게 될 때는 잘난 남자를 바라던 여자들도 남자가 얼굴이 아무리 못났더라도 나는 저런 순정을 갖고 남편을 사랑할 수 있는 아내가 되어야 되겠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교훈도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 동네 여자들은 전부 다 그 남자를 높이 본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따라서 남자를 만나더라도 누구와 같은 남자를 만나야 되느냐 하면 그와 같은 남자를 만나야 됩니다. 또 여자를 만나더라도 그와 같은 여자를 만나야 됩니다. 여자는 그와 같은 남자의 아내가 되라는 것입니다. 여자가 그와 같은 남자의 아내가 되기 위해서는 효부의 통칭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효부,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을 남편도 사랑하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는 데는 한때만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좋아했듯이 아버지 어머니가 지금도 좋아하는 며느리라면 효부라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아내를 가진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동네에서도 위함을 받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나라면 나라에서도 그래요.
앞으로 통일교인의 가정 가운데 모범적인 가정을 택하는 데 있어서 일등상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이 어떠한 가정일 것이냐 할 때에, 부부 사이가 아침에 봐도 맞고 저녁에 봐도 맞을 수 있는 그런 가정은 대표적인 가정으로 꼽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침에 봐도 안 맞고 저녁에 봐도 안 맞고, 일년 내내 봐도 서로 안 맞는 그런 부부의 가정이 일등상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잘난 사람하고 지극히 못난 사람이 사는 가정이 일등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사람끼리, 혹은 좋은 사람끼리 사랑하는 것보다도 반대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사랑의 가치가 더 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를 두고 보면, 여러분들이 결혼할 때에 여러분의 마음에 드는, 마음에 생각했던 남자를 만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구요, 어디 한번 그 비율을 알아보자구요. 여러분 가운데 지금 내가 결혼을 해서 같이 사는 남편은 내가 옛날에 생각하던 그런 이상적인 타입이 아니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살다 보니 그저 산다. 혹은 그저 좋아졌다 해도 좋고, 내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타입이 아닌데 그저 이렇게 결혼을 하게 됐다고 하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많을 거라구요.
이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구요. 내가 좀 알아보기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내가 앞으로도 이런 놀음을 해야 되기 때문에, 여러분을 참고로 해서 앞으로 여러분의 후배들을 섭섭하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 물어 보는 거라 구요. (웃음) 자기가 꿈에도 생각지 않은 그런 타입의 남자한테 시집을 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구요. 그래도 열녀감들이 많구만요. (웃음)
우리 통일교회의 색시들은 여자로서 먼저 열녀가 가야 할 길을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를 모시고 가야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진정한 열녀는 남편만을 모시는 여자가 아니더라. 이렇게 됐지요? 부모를 진정으로 모실 수 있는 정성어린 마음을 가진 열녀가 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이 시집을 가라고 하면 시집을 가겠다고 했어요, 안 가겠다고 했어요? 약혼은 같이 살라고 해줬어요, 같이 살지 말라고 해줬어요? 파혼하라고 해줬지요?「아닙니다」
여러분이 결혼하게 된 것은 신랑도 색시가 어머니 아버지를 좋아하니까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을 좋아하니까 결혼한 것입니다. 선생님을 좋아하느냐 안 좋아하느냐를 보고 결혼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거라구요. 딴 것이 아니라구요. 남편이 선생님을 얼마만큼 좋아할 것인가를 봐서 결혼한 것입니다. 한 일년 좋아하다가 그만둘 거라고 하면 '난 싫어'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년 만년 좋아할 것이라고 하면 '아이구, 난 좋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도 색시를 택하는 데 있어서 선생님을 좋아하느냐, 안 좋아하느냐를 보고 택하더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것이 다른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열녀의 전통을 지닐 수 있는 입장에서 신랑 신부의 인연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열녀의 전통은 뭐냐? 천륜의 법도를 따를 수 있고 모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신랑 신부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오늘날 혼란되고 파탄이 벌어지는 현실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역사 창건의 주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이왕지사 그렇게 부부의 인연이 맺어졌는데도 자기 남편의 얼굴이 길다고 해서 타박하는 여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타박하는 여자들은 자기 상통을 한번 보라는 거예요. 얼굴이 긴 남자 앞에 맺어진 여자는 얼굴이 동그란 여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얼굴이 긴 남자와 얼굴이 동그란 여자가 서로 합하게 되면 아들딸은 멋진 계란형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웃음) 아들딸 대에 가서는 미남 미녀가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을 받고 태어난 아들딸들이 자기 아버지 어머니보다도 잘생겼을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원칙적인 통계 결과에 의한 평입니다.
그래, 아들딸이 다 어머니 아버지보다 잘났던가요, 못났던가요? 내가 듣기에 기분 나쁘지 않은 것은, 나는 그렇게 될 줄 알았지만, 사람들이 축복받고 낳은 아들딸들이 나쁘지 않다고 하는 말입니다.
어디 우리 애기가 그렇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자기 자식이 자기보다 못생겼어도 잘났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어머니의 생각이라구요. 물어 볼것도 없다는 거예요. 다 들었지요. 들게 마련이라구요. 자기 애기가 호박통같이 생겼어도 날아가는 제비 새끼같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머니라구요. 그래, 여러분의 아들딸들 다 잘났지요? 잘났어요, 못났어요? 「잘났습니다」 잘났지요? 그저 아이를 가슴에 품고, 등에 엎고, 안고, 붙들고서 살고 싶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잘살아요, 못살아요?「못살아요」 이것이 잘사는 거라구요. (웃음) 이것을 설명할까요? 설명하자면 한이 없어요.
오늘 말씀의 제목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인데 자꾸 다른 얘기를 하게 되니 오늘 종일 얘기해도 내가 다 못할 거예요. 이제 또 무슨 얘기를 할지 모르겠어요. (웃음)
자, 이제 오늘 얘기를 신부에서부터 시작했는데 신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그럼 신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봐요. 여러분이 이렇게도 대답을 못하고 저렇게도 대답을 못하는 처지에 있는 것을 내가 이해합니다. (웃음)
여러분, 감옥에 들어가 옥살이하는 남편을 만나러 가는 여자의 신세를 생각해 보았습니까? 그런 아내의 신세 말이예요. 그걸 생각해 봐야 합니다. 감옥에 들어갔다고 해서 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구요. 거기에는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다 이거예요. 그 시대에는 역적으로 몰렸지만 후대에 가서 영웅으로 등장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영웅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아내가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남편을 찾아가 남편이 그 시대에 저주를 받고 손가락질을 받고 침뱉음을 받는다고 그 남편에 대해서 저주와 원망을 품는다면, 영웅시대에 들어서면 그 부인은 어떻게 될까요? 민족의 요녀로서 낙인이 찍힐 것이 아니겠어요? 그것을 생각해 보았어요? 생각해 봤어요, 안 해봤어요? 그렇지요? 생각해 봐야 되는 거라구요.
사랑은 영원을 중심삼고 계획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제 좋다고 하다가 오늘 나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십년 전에 좋다고 했다가 십년 이후에 나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 자리에서도 좋아해야 되고, 죽고 나서도 또 좋아하면서 가야 할 것이 사랑의 법도입니다. 이렇게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고 맺어진 맹세의 터전이 부부이기 때문에 남편이 감옥에 들어갔으면 부인도 남편과 같은 운명길을 가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남편이 침뱉음을 당하거든 그 부인도 침뱉음을 당해야 하고, 남편이 민족 앞에 몰림당하면 그 부인도 몰림을 당해야 하는 거라구요. 그것은 불쌍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응당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아야지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여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감옥에 들어간 남편이 있는데 그 부인이 남편의 가는 길을 따라 가지 않고 '아이고, 감옥이 웬말이야? 아이고, 욕설이 웬말이야? 난 싫어' 하며 반대하다가 보따리를 싸들고 마음대로 나간 여인이 있다고 합시다. 그 남편은 뜻을 품은 남편이었다 이거예요. 해가 거듭 지나감에 따라서 그 남편의 위신이 나라에 들려지고 세계에 들려져서 청사에 빛날 수 있는 성인의 이름에 오르게 되었다면, 그때에 그 남편 앞에 반대를 하던 여인은 역사상에 다시 없는 최고의 추녀요 악녀라는 말을 들으며 심판대에 오를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만일에 그렇게 되어 가지고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라면 모르지만, 영원히 산다면 그 여자는 영계에 가서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각해 보라구요. 그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진이 어머니도 그럴 수 있는 여자가 될는지 모릅니다. 현재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있어요. 선생님이 가는 길을 그렇게 반대할 수가 없었어요. 그저 밤낮없이 반대하고, 이래 반대하고, 그래 반대하고, 저래 반대하고, 이리저리 반대를 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오고 이 길을 가지 말라고 하면서 손가락을 안 깨물었나, 꼬집기를 안 했나, 긁지를 않았나, 그래도 안 되니 자기 고무신을 뒤집어 가지고 뺨을 때리지 않았나….. 내가 여자한테 천대를 깨깨 받았습니다. 거 탕감 복귀를 많이 했다구요.
또 밥에다 독약을 넣어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해주는 밥도 얻어먹어 봤습니다. 그랬으면 남자 신세가 거룩하지요? 그러니 행복한 남자입니까, 불행한 남자입니까?「불행한 남자요」 불행한 남자를 따라가 가지고 행복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그래도 살림살이 잘한 여자지요 뭐. 그렇잖아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볼 때에. 성진이 어머니가 잘했어요, 못했어요? 만일 성진이 어머니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수 있게 되었더라면, 죽으라면 죽고 고생하라면 고생하고 그렇게 갔더라면, 선생님도 고생 안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비참한 길은 안 거쳐요. 복귀의 길은 간단한 거라구요. 그랬을 게 아니예요?
해와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3시대의 역경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를 3시대에 횡적으로 탕감해야 하기 때문에 억세고 모진 여자로 말미암아 풍상을 겪는 십자가의 행각을 다시 더듬어 온 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의 노정이었습니다. 여자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여자를 생각하게 되면 아주 신물이 난다는 거예요, 신물이. 여러분을 대할 적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들을 성진이 어머니보다도 더 사랑하는 거라구요. 여러분들을 더 사랑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여기에 와서 여러분과 얘기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얘기할게 뭐 있겠어요? 그저 후려갈기고 싶다는 거예요.
내가 복수하려고 한다면 전부 다 갈기갈기 찢어서 그저 뭐랄까, 가루로 만들어 가지고 사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사무쳤다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그것을 다 용서해 줘야 되기 때문에 전부 다 잊어버리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런 여자들이 반대를 했지만 그 이상의 것을 갖다 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외로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구요. 그래서 여러분이 선생님이 고생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가슴이 휭하니 이상해지는 거라구요. 선생님의 편에서 같이 있고 싶고, 선생님편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거라구요. 동기가 그렇게 돼서 그런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 분은 성진이 어머니 이상 되지 않고는 선생님이 가는 길을 못 따라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선생님이 성진이 어머니를 앞으로 얼마만큼 고생을 시켜야 어머니의 사명을 할 수 있을 것이냐 할 때에, 고생 중의 제일 고생을 하고 버림받는 중의 제일 버림받았다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인류를 대신해서 해와를 용서해 주기 위해서는 버림받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인연을 맺었다가 버림받는 자리에 설수 있어야 되는 것이요, 버림을 받는 자리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여자가 되어야만 어머니로서 여성세계의 모든 것을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버린다고 앵앵거리고, 버린다고 야단하고, 버린다고 분풀이를 하면 모든 것이 파탄돼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 이상이 되어야 되겠지요?「예」
타락하지 않은 원칙을 두고 볼 때에, 여자로서 만나는 남자는 누구만 있어야 되느냐? 부모와 남편 외에는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세계에 있어서 해와에게는 하나님 외에는 이 세상 천지에 남자는 없는 것입니다. 없다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남자가 또 있다고 생각한 것이 타락이 아니냐. 그렇지요? 통일교회 여자들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여러분에게는 부모 외에 남자, 선생님 외의 남자는 남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부모의 입장에 있으니까. 그렇지요? 선생님 외의 남자는 남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남자는 그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냐. 이렇게 된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그 아버지를 사랑하니 그 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까?
여기에서 딴 생각을 하는 여자는 망하는 것이요, 딴 생각을 하지 않는 여자는 흥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자들이 길거리에 나가게 될 때 좋은 남자가 쓱 지나가게 되면 ‘저 남자가 나를 유혹해서 자기하고 살자고 하면 나는 지금 축복받은 남자를 버리고 또 시집가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가진 여자는 벼락맞을 해와의 후계자입니다. 알겠어요? 무엇을 맞을 해와의 후계자라구요?「벼락이요」벼락을 맞는 데는 씨알머리도 없이 먼지와 같이 후루룩 날아가게끔 벼락을 맞아야 됩니다. 그런 여자는 또다시 천도를 망치고자 하는 요사스러운 여인입니다.
또, '우리 신랑과 저 신랑을 비교해 보니 우리 신랑이 못났구나' 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 자기에게는 비교할 남자는 없다고 해야 할 것이 에덴 동산에 있어서 해와의 입장이 아니냐.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잘나도 내 낭군이요, 못나도 내 낭군이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남자라고 해야 됩니다. 못난 사람이 더 사랑스럽다고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내가 도와주고, 내가 진정한 의미에서 그의 뼈가되고 손이 되고 한 지체가 되어 줄 수 있는, 그가 필요로 할 수 있는 제일 귀한 사람이 아니냐' 하고 생각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여자들은, 그런 의미에서 남자를 위해서 존재하는 여자가 되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여자를 위한 남자가 되어야 할것이 아니라, 여자편에서 보게 될 때에는 남자를 위한 여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남자를 위하는 데 있어서는 선생님을 위하던 그 마음을 그냥 그대로 갖고 남편을 위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된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만 좋아하고 자기 남편은 싫어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런 원칙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요전에 복귀과정에 있어서는 천사장이라는 얘기를 했지만 말이예요. 내용적으로는 천사장이지만 외형적으로는 남편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
그러면 여러분은 신부 중에서 아리따운 신부가 될 거예요, 털털이 신부가 될 거예요?「아리따운 신부요」 아리땁고 향기로운, 뭐라 할까요. 신랑이 놓고는 살 수 없는 신부가 되어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런 신부가 되고 싶어요, 적당한 신부가 되고 싶어요? 적당한 신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손들어 봐요. 없지요? 아리따운 신부가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아리땁다는 것은 얼굴이 아리따와서 아리땁다는 거예요?「아닙니다」 태도와 행동이 아리따와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통일교회의 남자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통일교회 여자들은 버릇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정상적인 말이냐, 비정상적인 말이냐? 「정상적인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랬어요. 여러분이 정상적인 말이라고 한 것입니다. 내가 그렇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이 '히히히' 웃는 것은 전부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웃음) 통일교회 여자들은 버릇이 없다는 거라구요. 왜 버릇이 없다는 것이냐? 남편이 밖에 나가서 밤 12시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데도 잠만 쿨쿨…. 그러니 버릇이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웃음) 남편이 사흘 나흘 어디 나가서 돌아다녀도 '그저 돌아오겠지. 어디 갈 데가 있나. 찾아올 곳이 여기밖에 더 있나. 별수없이 오겠지' 이런 배포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니 남자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여자들입니까, 관심이 없는 여자들 입니까?「없는 여자들입니다」 솔직히 대답해 봐요. 관심이 있는 여자들이예요, 없는 여자들이예요?「없는 여자들입니다」 여러분이 사실을 알긴 아는구만. 그러면 자기에게 관심 없는 여자를 데리고 사는 남자가 행복해요, 불행해요?(웃음) 솔직히 까놓고 말해 봅시다. 그런 남자가 행복해요, 불행해요?「불행합니다」 불행하다고 여러분이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웃음)
그러면 불행한 남자하고 사는 여자는 행복해요, 불행해요?「불행합니다」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웃음) 누구로 말미암아 불행해졌어요 ?「여자요」 여자로 말미암아 불행해졌다는 거예요. 여자가 심었으니 여자에게로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가서는 좋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아줌마들이 남편에게 애교를…. (표정을 지어 보이심) 그런 인자함을 지니고 있어요? '천년 만년 간절히 간절히 기다리던 우리 낭군님이 돌아오셨다'고 하면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아이고 좋아라' 그래 봤어요? 남편이 돌아올 때 얼굴을 찡그리며 살림살이가 어려우니까 '이제 오우?' 하면서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기 전에 뭘 사 가지고 오지 않았나 하고 손을 먼저 바라본다는 거예요. (웃음) 여러분, 솔직히 말해서 그렇지 않아요? 내가 다 알고도 남는다는 거라구요.
내가 이야기 한마디 하겠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는 면회 왔다는 말이 참 기쁜 소식입니다. 누가 면회를 왔다 하게 되면 아주 뭐 눈이 번쩍 뜨이는 거라구요. 선생님도 그랬어요. 면회를 오는 것은 좋은 거라구요.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외로운 입장에 있다고 할지라도 외롭지 않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고독한 자리에 있지만 고독한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니까 참으로 좋은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런데 면회하러 올 때에 걱석개비 모양으로 맨손으로 쓱 들어오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웃음) 요새는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는 군대에 가 있는 군인들은 배가 고파 가지고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다 먹을 것으로 보인다는 거예요. 누가 면회를 올 때는 먹을 것을 해서 가지고 와야 기뻐하지 안 해 가지고 오면(표정을 지어 보이심) 이래진다는 거예요. (웃음)
그와 마찬가지로 살림살이가 어려운 여자들은 말이예요. '아이고, 이놈의 생활이 언제 끝나겠나' 하면서 이리 봐도 벗어날 구멍이 없고, 저리 봐도 벗어날 구멍이 없고, 뒤를 돌아다 봐도 내려다 봐도 벗어날 구멍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거 통일이 좋긴 좋은 것인데…. 그래 이것 가지고 좋다고 했구만' 하고 여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생각할 대로 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이 어디서 생기느냐? 남자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웃음) 통일교회 남자들을 보게 되면 병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병이 어디서 나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남자들에게서 안 난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힘들게 순회 갔다가 돌아왔는데…. 아내는 밥을 못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슴에 품겨 젖을 먹고 있는 애기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던 차에 남편이 쓱 들어오니…. (행동으로 나타내심. 웃음) 남편은 피곤해 가지고 돌아오는데 그러고 있는 부인의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나쁘겠습니까?「나빠요」 그래도 행여나 아내는 반가이 맞아 줄 줄 알고 돌아왔는데 푸…. 남편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기뻐하려다가 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무엇을 줄 줄 알고 손을 내밀었는데 못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때요? 그 격이라구요, 그 격. 행여나 하고 바라고 왔다가는 탁 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올 때부터 남편이 아무 생각 없이 왔으면 괜찮을 것인데, 그런 생각을 하고 집안에 쓱 들어섰는데 아내가 그러면 마음이 섬뜩해진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아내가 말하는 투가 분풀이를 할 양으로 '무엇이 편안해서 이렇게 늦게 들어오우?' (웃음)
'어디서 좋은 수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라고 하는 겁니다. (웃음) 거의가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수가 있었던 모양이지요?’ 라는 말을 아내에게 듣게 될 때에, 남편은 두 가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를 만나 지금까지 지내다가 지금 왔소?’ 하는 말로 들린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자기가 섭섭하니까 신랑도 자기와 같은 입장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여자의 심정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정사(情死)의 통계를 보게 되면 약 80%가 여자가 먼저 죽자고 해서 죽은 경우라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소질이 많은 것이 여자입니까, 아니면 그럴 수 있는 소질이 없는 것이 남자입니까?(웃음) 어느쪽입니까? 여자에게는 그럴 수 있는 소질이 많아요, 적어요? 자기는 기분 나쁘고 섭섭해 있는데 남편이 '히히히' 웃으면 기분이 나쁘지요? 솔직하게 대답해 봐요. 기분이 좋습니까, 나쁩니까?「나쁩니다」 자기가 앵하고 물으면 뚱하고 이래야 되지 하면서 '히히' 하면 '앵앵'하며 달려 드는 거라구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가정 살림살이를 하는 부인을 데리고 사는 남자의 신세, 통일교회의 신세. 통일교회의 지역장 지구장들의 신세가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물어 봅시다. 그들이 들락날락하는 것이 집을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까? 여편네를 위해서 들락날락하는 것입니까? 누구를 위해서 들락날락하는 것입니까?「뜻을 위해서요」 뜻을 위한다는게 누구를 위하는 거예요? 남을 위해서 들락날락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편네가 꽁하게 생각해 가지고 기분 나빠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 기분 나빠하는 거예요?「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위해서 기분 나빠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그렇게 처량하게 된 것은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남을 위해서요」 남을 위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선한 것입니까?「남을 위하는 것이요」 똑똑히 대답하라구요. 어느 것이 선한 것이예요?「남을 위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하는 것이 선한 것인 줄 알았으면 그를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을 위해야 되는 것이 도리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지역장의 마누라 지구장의 마누라들은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살아 보았습니까?(웃음)
앵앵거려 가지고 지금까지 남을 위해서 펄펄 뛰어다니던 남편의 다리나 잘라 놓고…. 그래서 남편들이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웃음) 누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까?「여자가요」절름발이를 자기가 만들어 놓고 ‘이건 뭐야. 뭐야? 왜 절뚝거려?’ 그럽니다. 절름발이로 만들어 놓기는 자기가 만들어 놓고 그걸 탓하는 거예요. 그러면 남편이 절름발이 신세가 되어 가지고 나타날 면목이 있겠습니까? 부끄러워 가지고 절름발이 신세 좀 면하게 해 달라고 그럽니다. 그렇게 나오면 불쌍히 여겨서 눈물을 흘리면서 동정해 주어야 되는데 동정은 안 하고, '무슨 강의가 그렇고 무슨 설교가 그럽니까?' 그럽니다. (웃음) 이러다 보니 팔이 또 딱 잘라졌다는 거예요. 팔을 잘라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왜 그래요?’ 이렇게 하게 되고, 그러니 또 자르는 것입니다. 상통이고 무엇이고, 코를 잘라 놓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하나 잘라 놓고, 둘 잘라 놓고, 셋 잘라 놓고…. 이렇게 셋만 자르게 되면 남자가 죽어 나가자빠지는 것입니다. 결국은 남자를 잡아먹는, 거 무엇입니까? 남자를 잡아먹는 요사스러운 것이 무엇이예요? 아귀신, 아귀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굶어 죽기 내기를 하면 여자가 나중에 죽는 거예요. 남자가 여자보다도 한 삼일 먼저 죽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왜 하나님이 여자는 남자보다 3일 후에 죽게 만들고 남자는 3일 전에 죽게 만들었느냐? 밥을 굶는 일이 있더라도 여자는 더 참아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밥을 먹여 주고 자기는 안 먹더라도 더 참아야 되겠기 때문에, 죽더라도 남편하고 같이 죽어야 되겠기 때문에, 똑같이 밥을 굶어서 죽더라도 오래 있다 죽게 하려니 할수없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편보다 더 밥을 굶으라는 것입니다.
또 여자들은 궁둥이가 왜 크나? 여자들은 궁둥이가 크지요? 애기를 낳게 하기 위해서도 궁둥이를 크게 만들었지만, 가만히 앉아서 편안히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앉아서 도닦으라고 크게 만든 것입니다. (웃음) 알겠어요? 망하는 도가 아니라 흥하는 도를 닦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흥하는 도는 뭐냐? 남을 위해서 사는 도입니다. 남을 위하려면 먼저 남편을 위해야 합니다. 그것이 남을 위하는 데 있어서의 첩경입니다. 알겠어요? 그 다음에 자기의 아들딸을 위하는 것이 남을 위하는 첩경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을 위하는 아내가 되고 아들딸을 위하는 어머니가 되라는 것입니다.
여자들의 젖가슴이 왜 볼록하게 나온지 압니까?(웃음) 그렇게 웃지 말라구요. 웃을 게 뭐 있어요? 다 그런 것인데, 여자의 젖가슴이 왜 나왔느냐 하면, 교육을 하기 위해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크면 클수록 좋은 것입니다. 젖가슴은 넓고 커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남자보다도 넓고 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남자를 사랑해야 되기 때문에 여자의 가슴이 커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젖통이 커 가지고 늘어져서 흔들흔들하는 그런 여자는 성질이 괄괄하다는 거라구요. (웃음) 한번 보라구요. 저기 뚱뚱한 아줌마는 이제 웃기 시작하는구만. (웃음) 그것은 동네방네 휘젓고 다니면서 큰 가슴으로 모든 사람을 품어 주는 여자가 되라고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또 여자는 왜 키가 작은가 하면, 키가 커서 드러나면 요사스럽기 때문입니다. 네 남자들 가운데에 딱 들어가면 작으니까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여자입니다. 그렇잖아요? 여자는 드러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하나님이 계산을 참 잘했지. 그리고 여자는 왜 수염이 안 나는지 압니까? 애기에게 젖을 먹여야 되기 때문에…. 만일에 여자들이 수염이 길게나 있다면 애기가 젖을 먹는 데에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또 남자는 수염이 나는데 여자는 왜 수염이 나지 않을까요? 만일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 싸움을 하게 될때에 여자가 복수를 할 수 있는, 한을 풀 수 있는 한때를 맞으라고 그런 것입니다. 남자의 수염을 한번 낚아채면 한이 풀리는 것입니다.. (웃음)
그리고 여자는 왜 머리를 자르지 않고 남자보다도 길게 하고 다니는 줄 압니까?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머리를 길게 하고 다닙니다. 그것을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요? 여러분은 그걸 생각해 보았어요? 생각해 봤어요, 못 해보았어요?「못 해보았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여자는 남자에게 몽땅 끌려가야 되기 때문입니다. (웃음) 남자가 머리만 붙들고 끌게 되면 몽땅 끌려가지 별수 있어요?(웃음) 그러나 남자는 여자에게 끌려가서는 안 되기 때문에 어디 잡을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난 여자든 못난 여자든 여자는 할수없이 몽땅 끌려다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끌려다녀야 할 장본인이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의 머리가 긴 것입니다.
여기서 머리란 뭐냐? 머리는 그 사람의 중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심을 어디에다 두고 살라는 것이냐 하면 남편에게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끌려갈 수 있는 상징으로 머리를 기르는 것입니다.
또 왜 남자의 목소리는 왕왕왕왕하고 여자의 목소리는 앵앵앵앵하는지 알아요? 그것은 하나님의 조화에 의해서 안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자의 목소리는 앵앵앵앵하기 때문에 단음과 같아서 멀리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자의 목소리는 화음과 같아서 멀리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여자가 '사람 살려주세요' 할 때와 남자가 '사람 살려주세요' 할 때를 비교해 보면 여자의 목소리가 더 멀리 가는 것입니다. 여자의 목소리를 앵앵앵앵하게 한 것은 말을 작게 하라고 그런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거예요. 집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크면 그 집은 좋지 않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또 남자보다도 여자의 목소리가 굵지 않고 가느다란 것은 영향을 미치지 말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일방적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통일교회 남자들을 볼 때에 통일교회 남자들은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 불쌍한 한을 언제 풀어 줄 것이냐? 여러분은 탕감복귀에 대해서 배웠어요? 통일교회 남자들의 불쌍한 한을 언제 풀어 줄 거예요? 또, 보라구요. 통일교회 여자들을 가만히 보면 자기 얼굴을 곱게 가꿀 줄 모릅니다. 호박통 같은 얼굴에다가 파마를 이렇게 해 놓고, (웃음)
두꺼운 입술에다 루즈를 새빨갛게 발라 놓는구만. 그것은 정말 죽고 못보는 거예요. 그럴 바에는 루즈를 바르지 않은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얼굴은 조그마한데 큼직한 입술에다 루즈를 새빨갛게 칠해 놓았으니 '아이고, 나 잡아먹는 호랑이...' 이건 뭘 잡아먹다가 피를 묻힌 것 같은 입술을 만들어 놓았다는 거예요. 망쳐 버린 놀음이라구요.
또 얼굴을 보면 얼굴의 위쪽이 강하게 생겼는데, 이마도 반듯하고 눈도 크고 시꺼멓게 푹 들어갔는데 거기에다가 아이 샤도우인지 뭔지를 해 놓아 가지고, (웃음) 그거 죽고 못 볼 거라구요. 아래가 좀 두둑하게 생긴 사람이 그런 것을 하면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래는 두둑하고 위가 큰 데다가 그렇게 했으니 꼴불견이지 별수 있어요? 남자가 그런 얼굴을 보고 좋아할 것 같아요? 다 울어야지요.
사람이 웃게 되면 얼굴이 둥그래집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 웃어 봐요, 그런가 안 그런가. (웃음) 사람이 웃게 되면 얼굴이 둥그래지기 마련입니다. 웃으면 왜 얼굴이 둥그래지느냐? 둥근 것이 이상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울게 된다면 얼굴이 어떻게 되느냐? 쭈그러지기 마련이예요. 웃는 얼굴 모양과 우는 얼굴 모양이 비슷한 것 같은데 천양지 차(天壤之差)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살짝 둥그래지고 하나는 쭈그러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거 다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웃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웃는 데 있어서 너무 기뻐서 흐드러지게 웃을 때에는 눈물이 나올 때가 있지요?「예」그러한 찰나에는 원수가 방해를 한다 하더라도 멈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럴 때에는 웃으면서 원수를 바라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웃으면서 원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 원수를 미워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와 틀어진 사람이 있을 때 그 틀어진 사람하고 화해 하려면, 그 집에 아주 좋은 일이 있을 때, 흐드러지게 좋아할 때 척 나타나는 것입니다. 거기에 나타날 때는 그 기분을 망치게 하려는 마음이나 원수시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환경 가운데 그냥 그대로 어울려야 합니다. 그래서 전체가 기쁠 수 있는 판국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있는 듯 없는 듯한 표정을 하기 때문에 원수를 갚으려는 마음을 억제할 수 있는 작용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만난 신랑을 두고 볼 때에, 신랑을 만난 게 어때요? 잘 만났어요, 못 만났어요? 잘 만났지요 뭐. 잘 만났다는 거라구요. 약혼식 석상에서 남자는 좋은 양복을 입고 여자는 좋은 투피스를 입고 서로 만나 보고 난 다음에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골라잡지 않았습니까? 골라잡았어요, 안 골라잡았어요?「안 골라잡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안 골라 잡았지만. 내가 골라잡았지요. 여러분들 눈보다 선생님의 눈이 나쁘지 않다구요.
777가정 축복할 때에도 서로 맞지 않아서 안 해주겠다는 데도 남자나 여자나 제발 해달라고 해서 해줬더니 지금은 '아이고' 이런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축복받고 나서 삼년, 못해도 십년만 살아 보라는 거예요. 대체로 볼 때 축복받은 가정들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좋아요, 나빠요?
그러면 오늘날 이 사탄세계에 있어서 우리 축복가정을 두고 볼 때에. 이 축복가정은 역사 이래 처음 나온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가정까지 나왔습니다. 이 가정은 역사 이래 처음 나온 가정입니다. 아까 하나님이 한 분이라면 방향도 하나요. 목적도 하나라고 말했지요? 중심 존재가 나와 가지고 역사를 이렇게 정비해 나가야 되며, 개인도 그런 입장이 선 개인이 되어야 되고, 가정도 그런 입장에 선 가정이 되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가 앞으로 남아질 수 있는 통일교회가 되느냐, 못되느냐? 하나님이 가는 방향과 일치될 수 있는 방향에 서 가지고 목적을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일치시켜 가지고 그 목적지까지 가느냐, 못 가느냐 하는 문제를 무엇을 보아서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가는 방향에 있어서 누구를 위해서 사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어떤 종교든지 지금까지 그렇게 나온 종교가 없었습니다. 만일 과거를 위해서 나가고 있는 종교, 현재를 위해서 나가고 있는 종교, 미래를 위해서 나가고 있는 종교, 이 삼시대의 종교를 대신해서 나가고 있는 종교가 있다면 이 종교는 과거 현재 미래의 방향 앞에 일치될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을 가진 종교가 아닐 것이냐.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기독교를 두고 보면 기독교는 현재를 부정하고 미래만을 위하는 종교입니다. 또, 지금까지의 종교를 보면 자기의 구원만을 표방해 나왔지. 영계의 구원완성이니 세계적인 구원완성이니 혹은, 미래의 구원완성이니 하는 것을 생각하고 나온 종교가 없었습니다.
전부 다 '내가 이렇게 믿어야 천당갈 수 있다'라고 하는 자기 중심적이었습니다. 또 내 교파가 잘되어야 된다고 하는 자기 교파 중심적이었으며, 전부 다 내 나라가 잘되어야 된다고 하는 자기 나라 중심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세계 만민을 중심삼고 세계의 수많은 나라를 중심삼고 현재의 세계를 위하고, 현재의 세계뿐만이 아니라 미래의 세계를 위하고, 미래의 세계뿐만 아니라 과거의 세계까지 위할 수 있는, 인류가 바라는 본향, 인류가 바라는 목적지를 더듬어 나선 종교가 있었느냐 하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에, 과거를 대신하고 현재를 대신하고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방향의 일치를 모색해 나간 종교나 사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짊어진 사명이 무엇이냐? 여러분이 말하기를 우리는 6천년의 역사적인 열매라고 말하지요? 그러니까 역사과정을 전부 다 부정하는 거예요? 부정하는 것입니까, 시인하는 것입니까?「시인하는 거예요」 완전히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열매이니만큼 시대적인 사명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온 세계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가 이 책임을 다해야 된다는, 세계 인류를 대표한 중심적인 사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 통일사상은 인류가 최후의 종착점에 봉착할 때까지 남아질 수 있는 사상입니다. 오늘날 혼란된 세계 가운데서 중심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사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통일사상을 오늘날 인류가 가야 할 길의 중심, 그 골수를 대표할 수 있는 사상의 자리에 세우자는 것입니다. 이 사상을 중심삼고 세계가 하나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바라고 나오시는 과거 현재 미래의 노선과 일치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이 나오지 않고는 하나님의 출발의 방향과 하나님의 과정과 하나님의 결과 세계를 일치 시킬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역사가 얼마냐 할 때에, 통일교회 역사는 17년의 역사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세 전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창조 하시던 그 창조 역사시대에서부터 타락 이후 지금까지의 복귀역사 시대를 거쳐 가지고 나온 역사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재창조 역사를 거쳐 이상시대의 실현까지, 하나님의 출발에서부터 하나님께서 나가는 방향과 더불어 하나님의 목적에까지, 즉 처음에서 끝까지 일관된 사상적 방향을 갖추어 나가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 전의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타락한 아담과 해와를 대하시던 하나님의 심정과 타락한 인류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대해서 탕감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면서 거친 애달픈 고비가 있었으면 그 고비를 거쳐 나가야 되고, 혹은 꼬부라진 길이 있었으면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꼬부라진 길을 거쳐 찾아 나가야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가다가 중도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찾아 나갈 수 있어야 됩니다.
그 방향으로 나가다가 정지되거나 다른 방향으로 분립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방향에 일치되어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하나님이 동하면 땅도 동할 수 있고 하나님이 정하면 땅도 정할 수 있는 입장에 서서 행동을 같이해 가지고 최후의 역사의 목적점, 종착점까지 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오늘날 역사를 대표하는 사상이 될 수 없고,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이 될 수 없고, 미래를 대표하는 사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보게 될 때에 역사가 찾아 나온 중심이 무엇이냐, 혹은 세계가 찾고 있는 중심이 무엇이냐, 현 시대가 요구하는 중심이 무엇이냐, 미래가 바라는 중심이 무엇이냐? 이것을 오늘 얘기하자는 것입니다. 역사가 바라는 중심이 무엇이냐, 시대가 바라는 중심이 무엇이냐, 혹은 미래가 바라고 있는 중심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참사랑을 중심삼은, (판서하심) 뭐예요, 이게? 참된 가정입니다. 참된 가정은 역사적인 소원의 실체요, 시대적인 소원의 중심이요, 미래적인 소원의 출발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시 말해서 역사적인 결실. 즉 역사적인 부활체요, 온 세계 앞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중심이요, 미래 앞에는 원칙적인 출발의 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된 사람과 이 참된 사람을 중심 삼은 가정은 역사적인 소원이 이루어져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람으로서 참된 가정의 목적을 갖고 오는 사람이 신랑입니다. 알겠어요? 그다음엔 신부가 이 신랑과 합해져서 참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사람이 나와 가지고 참된 가정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무엇이 벌어지느냐? 참된 가정이 나왔으니 그 다음엔 참된 무엇이 나와야 되겠습니까? 참된 부모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부모가 나오면 참된 가정이 성립되는 것이요, 참된 사람의 목적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영원히 찬양받을 수 있는 그 이름이 무엇이냐 하면 참된 부모, 참부모입니다. 참부모가 이 땅 위에 현현했다는 사실, 참부모가 이 땅 위에 계시다는 사실은 무엇보다도 기쁜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그렇잖아요?
오늘날 사악한 인간들 앞에, 악이 주관함으로 말미암아 방향을 갖추지 못하고 사망권을 이루고 있는 이 세계에 참된 부모의 인연이 성립된 것은 오늘날 한국 강토를 중심삼은 통일교회의 역사, 17년 동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6천년의 역사적인 수고의 공적의 열매로서 나타난 것입니다. 또한 많은 인간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방향을 가리지 못하는 이 시대 앞에 갈 곳을 찾아 주고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중심적인 모델로서 나타난 것이 참부모의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이름이 나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이상세계, 에덴 동산에서 출발되어야 했던 영원한 미래의 천국이 여기에서부터 출발된다는 사실은 역사적이오, 시대적이요, 미래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 현재 미래의 전체 역사를 통틀어 가지고 보게 될 때에, 이 땅 위에 현현된 참부모라는 이름은 우주의 중심을 결정하는 중심 포인트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열매맺히고,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수습되고,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출발되는 것입니다. 역사가 여기에서 열매맺히기 때문에 과거가 여기에서 부활되는 것이요. 세계가 여기에서 하나의 세계로 수습 되는 것이요, 하나의 세계가 기원이 되어 가지고 새로운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있어서 인류의 소망이 어디에 있었느냐 할 때에, 그 소망은 미래에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인류는 소망을 미래의 것으로만 생각해 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인류는 어디를 향하여 가느냐 할 때에,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의 세계를 향해서 간다고 했던 것입니다. 미래를 두고 하나의 세계를 모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짓된 인류 가운데에서 참된 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인류는 기뻐할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소원이 무엇이냐? 그것은 참된 부모를 맞는 것일 것입니다.
참된 부모는 인간들의 최고의 희망이기 때문에, 참부모가 현현하면 역사적 전통은 미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부모가 현현한 현실권내에서 성사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부모가 나타나면 참부모가 나타난 거기가 역사의 완성의 출발점이지 완성을 바라는 출발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소원이 출발하는 자리가 아니라 소원성사가 출발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면 앞으로의 역사는 어떻게 되느냐? 이런 참된 부모의 전통이 나오게 된다면, 참부모를 중심삼고 살던 생활권은 영원토록 역사시대에 현실적인 전통의 기준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부터 천년을 걸어가게 되면 인간들이 소망의 미래를 바라보며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천년 전의 이때를 본받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지금까지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의 세계를 모색하여 나왔지만, 하나의 세계의 중심으로 결정될 수 있는 참부모가 나오게 된다면 만민은 그 참부모의 전통을 고이고이 본받아 가지고 그 중심을 받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면 갈수록 중심을 중심삼은 판도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전통적 역사, 소망적 역사 전체를 대표할 수 있고, 미래의 시대적인 중심의 역사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그 터전이 무엇이냐 하면 참부모의 가정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6천년 역사는 무엇 때문에 있었느냐? 참부모의 가정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무엇 때문에 허덕이고 있느냐? 참부모의 가정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요? 미래의 우리의 후손들은 무엇 때문에 있느냐? 참부모의 후손을 남기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참부모의 나라를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요. 참부모의 세계를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구요. 참부모의 나라와 세계는 참부모가 나오면 자연히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후손을 남기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중심삼은 생활을 필요로 하는 때가 바로 우리의 이상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때는 이미 하늘땅이 부모의 권한에 의해 치리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때에는 평민의 이름을 가지고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를 중심삼고 엮어진 그 전통은 역사적인 전통으로 억천만세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전통이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를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는 사연은 영원토록 남아집니다. 알겠어요? 또한 참부모와 더불어 인연되었던 사연과 참부모와 관계되었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참부모와 관계되었던 사실도 참부모의 이름과 더불어 억천만세에 길이길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개인으로 와서 가정을 가져 가지고 사탄세계에서 종족을 이루고 민족을 이루고 국가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보라구요.
타락은 장성기 완성급에서 했습니다.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해 가지고 뚝 떨어져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떨어지고, 가정적으로 떨어지고, 종족적으로 떨어지고, 또한 그것이 퍼져서 민족적으로 떨어지고,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떨어져 내려왔습니다. 이렇게 세계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떨어져 내려오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떨어져 내려왔느냐? 개인과 가정을 중심삼고 떨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가정의 수가 많아져서 세계가 됩니다. 결국은 전통적 가정 하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가정이 모델이 되어서 세계가 엉클어진 것입니다.
생명의 세계와 사망의 세계를 보면 사망의 기원은 사탄이요 생명의 기원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사탄의 세계는 반대가 되는 세계입니다. 사탄세계의 가정은 어떠한 가정이냐? 평화스러운 가정입니까, 아니면 불화한 가정입니까?「불화한 가정입니다」 불화로 출발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불화할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불화한 가정으로 시작하여 불화한 가정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하늘세계가 아닙니다. 그렇지요? 가정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것 참 잘한 말이라는 거예요.
만약에 아내와 집안에서 싸우고 난 후에 남편이 직장에 가게 된다면, 그 남편은 직장에서도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분풀이를 한다는 거라구요. 어떤 사장이 집에서 자기 아내하고 싸우고 회사에 나갔다면, 그가 사원들이나 부장들을 보게 될 때 기분 좋을 게 뭐냐 이거예요. 가정에서 기분이 나빴던 것은 반드시 사회에 번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제일 참기 어려운 것이 뭐냐 하면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한이 맺히는 일입니다. 이것 이상 참기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그런 거라구요. 아담 가정으로부터 불화의 씨가 뿌려짐으로써 시작된 가정은 거짓 부모로 말미 암아 시작되었기 때문에, 불화가 깃들어 있는 가정은 사탄세계의 가정이요, 평화가 깃들어 있고 화합이 깃들어 있는 가정은 하늘세계의 가정입니다. 이렇게 반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은 무엇을 중심삼아 가지고 등장하느냐? 사탄세계의 중심이 뭐냐? 불화 덩어리 가정이 사탄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중심이 뭐냐 하면 악한 것입니다. 불화 덩어리는 뭐냐 하면 매일같이 싸움하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을 두고 보면 아버지 어머니가 서로 상충합니다. 아까 말했듯이, 부부끼리 서로 상충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루살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중단됨)
참부모가 아닌 타락한 부모로부터 태어나 가지고, 나면서부터 절망 속에서 신음하고, 목적과 방향을 모르는 가운데 매일매일 변하는 자리에서 살아 나온 인간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은 변할수 없습니다. 변할 수 있어요? 변할 수 없습니다. 아침에는 이랬다 저녁 에는 저랬다 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가는 길이 내 길이요, 참부모가 사는 생활이 내 생활이요, 참부모가 서 있는 자리가 내 자리요, 참부모의 세계가 내 세계다' 하는 사상을 공고히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참부모를 좋아하는 데 있어서는 세계 제일로 좋아한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모시고 가는 길에 아무리 폭풍우가 몰아치더라도 이것을 행복한 것으로 소화시키고 갈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가서는 세계복귀니 무슨 하나의 세계니 하는 것을 꿈꿀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때의 역사적 전통과 소망의 기준이 될 참부모 가정을 대신할 수 있는 미래의 세계적인 가정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에는 발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원칙이 되는 가정이 참부모의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후손들을 중심삼고 볼 때에, 천년이면 천년 후에 여러분의 후손들이 소원하는 것은 천년 전에 여러분이 참부모를 중심삼고 그 가정을 사랑하면서 모시고 살던 생활, 악과 더불어 싸우던 그 모든 생활입니다. 지긋지긋했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자리에 설 수가 없다 하는 그 놀음이 앞으로 역사적 전통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세계를 이룰 수 있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예」
하나님의 창조이상 완성은 참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참부모를 중심삼은 전통은 어떤 민족에게도 남아지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중심삼은 가정적 제도라는 것은 몇만 년이 지나도 마찬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짓 부모를 중심삼고 인연되어진 것은 버리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인연을 맺는 데는 제일 나쁜 것을 중심삼고 인연맺는 것이 아니라 제일 좋은 것을 중심삼고 인연맺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참부모를 중심삼고 제일 좋은 것을 가지고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한번 물어 갑시다. 제일 좋은 것이 뭡니까? 뭐예요?「사랑이요」사랑? 그래요. 사랑이 좋다는 거예요. 사랑이 성립되면 아들딸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아들딸이 없어 가지고 사랑이 성립됩니까? 안 됩니다. 그렇지요? 또 사랑이 성립되려면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부모가 없어 가지고는 사랑이 시작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자녀가 없어 가지고는 사랑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결국 사랑은 자녀와 부모, 즉 부자의 관계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좋은 것이 뭐냐 할 때…. 사랑에 앞서는 것이 뭐라고 요? 부자의 관계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중심삼아 가지고? 사탄이예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제일 기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만큼 아버지 어머니도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만일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있는 자리에서 부부가 되었으면 하나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아빠 엄마가 되었겠지요? 그렇지요?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니 아빠 엄마는 하나님을 대해서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제일 좋았을 것입니다. 또 그들에게서 태어난 아들딸들은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아들딸들도 제일 좋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참부모의 뜻이 그렇다면 선생님이 제일 좋습니까? 제일 좋습니까. 덜 제일 좋습니까?「제일 좋습니다」 뭐 덜 제일 좋아한다는 말은 없지요. (웃음) 제일 좋다고 해야 합니다. 내 눈보다도 참부모가 더 좋다고 해야 돼요. 내 눈을 빼놓고라도 참부모를 따라 가야 되고, 내 팔보다도 참부모가 좋으니 내 팔 하나를 잘라 놓고라도 참부모를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잘라 버릴래 ? 팔 하나를 잘라 버릴래 ?'라고 할 때는 무엇을 잘라 버려야 되겠습니까?「팔이요」 팔을 잘라 버려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팔을 잘라 버리게 되어 있어요? 되어 있습니까, 안 되어 있습니까?
그럼 여러분에게 '너 통일교회를 믿을래? 믿으면 팔을 자른다'라고 할때에, 여러분은 팔을 잘리고도 통일교회를 믿겠습니까?「예」 다리를 잘리고도 믿겠어요?「예」 또 눈을 뽑히고도 믿겠어요?「예」 코를 잘리고도 믿겠어요?「예」귀를 잘리고도 믿겠어요?「예」 이렇게 되면 두루뭉수리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으니 들어 보라구요. 졸고 싶으면 졸라구요. 조는 사람 빼고 우리끼리 하자구요. (웃음) 크게 얘기할까요. 작게 얘기할까요?「크게하십시오」
이렇게 두루뭉수리 사람이 되었다는 거예요. 왜 ?「다 잘라 버렸으니까요」 그래도 좋겠습니까?「예」 어떻게 좋겠습니까? 두루뭉수리 되어 가지고도 입은 잘라 버릴 수 없으니까 멀쩡하지요? 그런 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입술도 다 훑어 버렸다면 웃는 모습이 보기 좋겠구만요. 그것까지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팔을 잘리고 다리를 잘리고 했더라도 생명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남은 생명을 가지고 부모 앞에 효도하다가 죽게 된다면, 그 잘라진 팔다리가 영계에 가서도 없겠습니까? 아닙니다. 그 잘린 팔다리는 황금빛이 난다는 거예요. 태양과 같이 빛난다는 것입니다. 그게 영광이 된다는 거라구요.
그렇게, 부모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원수들이 앞에서 가지 말라고 반대를 하고 자기의 사지백체를 전부 다 잘라 버리더라도 부모를 따라가고 부모를 위하는 여자가 있다 할진대 그 여자는 효녀입니까, 아닙니까? 「효녀입니다」 효녀라구요.
그런 효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효자는? 그러한 효자가 있어야 되겠지요? 효자 효녀는 몇 사람이 필요합니까? 효자 하나 효녀 하나, 두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뜻은 그 두 사람만 있으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부모 두 사람하고, 자식 두 사람, 이렇게 네 사람만 있으면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통일교회는 몇 사람이 있어야 뜻이 이루어집니까?「네 사람요」 여덟 사람이예요, 여덟 사람. 여덟 사람이 있어야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만 되면 시대가 지나갈수록 자꾸자꾸 번식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을 보게 되면 지금 아들딸들을 많이 낳았지요? 가정의 전통은 참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또 참부모의 아들딸을 중심삼아 가지고 참부모의 손자의 전통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이럴 수 있는 전통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선생님이 팔 하나를 잘라서 팔자고 하면 팔래요, 안팔래요?「팔아요」 진짜 팔래요?「예」 그러면 팔을 잘라서 팔 때에 왼쪽 팔을 잘라 팔겠습니까. 오른쪽 팔을 잘라 팔겠습니까?「왼쪽요」틀렸어요. 그런 사람은 낙제감이라고요. 부모의 명령이라면 자기의 제일 좋은 것까지도 부모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참된 효자 효녀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남편은 버릴 수 있고 아내는 버릴 수 있지만 부모는 버릴수 없다고 하지요? 부모를 따라가는 길은 남편도 버리고 가야 되는 길이요, 아내도 버리고 가야 되는 길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이 효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각오가 되어 있어요?「예」 여러분 신랑들도 그런 각오가 되어 있을까요? 여러분은 '나는 신랑을 버려도 신랑은 나를 버리면 싫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웃음) '나도 그러고 당신도 그래야 됩니다' 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부가 밥상을 앞에 놓고 앉아서 아내는 '당신은 뜻을 위해서, 부모를 위해서는 나를 버리고라도 가야 됩니다'라고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남편 역시 '당신은 뜻을 위하고 부모님을 위해서는 나를 버리고라도 가야 됩니다'라고 해야 됩니다. 그리고 아들딸들은 '참부모의 뜻을 세우기 위해서 아버지 어머니는 참부모의 전통을 잘 세워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아들딸을 가져야 이것이 앞으로 하늘나라의 전통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부모가 눈물 흘렸던 역사가 있으면 그 눈물은 어머니 아버지의 눈물이 되어야 되는 것이요, 후손들의 눈물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통입니다. 알겠어요? 참부모의 원수가 있으면 그 원수는 우리들의 원수요, 우리 후손들의 원수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참부모를 거쳐야 합니다. 참부모를 거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참부모가 나왔습니다. 참부모가 나왔으면 참부모를 중심삼은 참된 가정이 벌어질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도 이 참가정까지 올라가기 위해서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싸워서 이것을 전부 다 부정해야 됩니다.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여러분, 지금 세상에서는 프리 섹스(free-sex)라 해 가지고 성 개방 문제에 대해서 운운하고 있습니다. 그런 때에 들어와 가지고 어디를 가든지 그런 풍조가 퍼져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길가에서 서로 붙들고 키스를 하는 것도 보통이고 말이예요. 특히 미국 같은 나라에 가 보게 되면 공원에서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동물들처럼 말이예요. 우리는 지금 그런 풍조권내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 세계의 사조입니다.
음란으로 뿌렸기 때문에 음란으로 결실하는 때라는 거예요.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사망의 동기를 음란으로 심었기 때문에 음란으로 결실하는 권내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에 침범을 받지 않아야 됩니다. 그런 것에 물들지 말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앞으로 이러한 권내의 세계를 갈라 가지고 뒤집어 놓지 않으면 통일세계는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자신이 개척하면 발전해 나가지요? 그렇지요?(판서하시 면서 설명하심) 우리 통일교회는 거꾸로 내려갑니다. 이렇게 거꾸로 내려 가는데, 통일교회가 위대한 것은 뭐냐? 참부모의 전통이 남아질 수 있는 역사적인 길,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탕감복귀섭리역사를 해 나오시던 길이 있지요? 즉, 아벨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선생님 시대에 까지 내려오는 탕감노정이 있습니다. 탕감해 나오지요? 거꾸로 올라가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시대의 세상과 전부 반대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을 제일 피하고 살아야 합니다. 참부모의 길을 따라가는 데 제일 필요한 방법이요 정상적인 방법이 무엇이냐? 세상 사람들이 기쁘게 살면 우리는 슬프게 사는 것이요, 세상 사람들이 좋게 지내면 우리는 슬프게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길을 못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해서 어디까지 가야 하느냐? 여러분은 참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것을 쭉 벗어나야 됩니다. 세계로부터 벗어나고, 또 벗어나고, 또 벗어나고 하다 보면 나중에는 어디에 걸리느냐 하면 여러분 자체에 걸리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나에게 걸리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나 자신을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매일같이 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나 자신은 매일같이 변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매일같이 이랬다저랬다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나는 이랬다저랬다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할 수 있게 되어 있느냐, 사랑할 수 없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이랬다저랬다합니까, 안 합니까? 솔직히 말해 보십시오. 이랬다저랬다해요, 안 해요?「합니다」 하지요? 그렇게 하는 사람이 효녀예요, 충신이예요, 열녀예요? 그 마음이 일편단심입니까. 일편단심입니까? 뭐예요? 이랬다저랬다하는 것을 일편단심이라는 것입니다. 조금만 뭐라 해도 힐쭉핼쭉한다는 거예요.
누가 여러분을 죽게 하더라도 마음은 요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식이 죽더라도 세상 사람들같이 울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 그 법도를 세워야 됩니다. 알겠어요? 세상과 같아서는 안 됩니다. 달라야 됩니다. 최후에 가서는 나를 이겨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지금까지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표어를 걸고 나왔습니다. 나를 이기는 것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내 몸뚱이를 이기기가 힘들고 그 다음에는 자기의 사랑의 대상,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삼고 이기기가 힘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어떤 자리에 계시느냐? 영광의 자리에 계셔야 할 하나님이 고통의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죽어도 못 할 일입니다. 그렇잖아요? 영광의 하나님이 무슨 하나님이 됐습니까? 고통의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누구 때문에? 우리들 때문에 .
고통의 인간이 영광의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탕감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당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지 않고는 영광의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탕감의 심정으로 되돌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이 눈물을 흘리셨으니 여러분도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하나님보다도 더 많은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야야, 이젠 그만둬라' 하면서 우리를 말려 줄 수 있는 그런 자리까지 나가야 효자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인연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감복귀의 심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귀의 심정 길을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맨 나중에는 여러분 개인들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이 뜻 앞에 선 다음에는 무엇이 문제냐 하면 결혼이 문제입니다. 그렇지요? 결혼이 문제이지요?
그 개인이 문제 될 때는 개인이 뜻을 따라서 가야 됩니다. '나는 죽더라도 부모의 뜻대로 가겠다' 하는 자리에 서서 극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극복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적으로 극복해야 됩니다. 부모의 뜻을 가정이 따라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맨 마지막에 참부모 앞에 나가서 자녀가 됐다 하게 될 때는 참부모로부터 피살을 받아 난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부모로부터 피살을 받아 나고, 그 다음에는 말을 하는 것도 부모로부터 배워야 됩니다. 그렇지요? 밥을 먹는 것도 부모로부터 배워야 되고 행동하는 것도 부모로부터 배워야 됩니다. 부모로부터 배운 것 외의 행동하는 것은 사탄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참부모에게서 태어났으니 참부모의 말과 참부모의 행동과 참부모의 가정의 가법과 생활방법을 배워야 됩니다. 그 외의 것은 사탄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어디를 가든지 부모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부모와 하나되어 있어야 됩니다. 어디를 가든지, 그래서 부모를 모심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의 생활도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보더라도 혼자 보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모시고 '참 좋습니다'라고 부모에게 설명해 주는 효자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맛있는 것이 있으면 부모에게 '이것 잡수십시오'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됩니다. 언제나 부모와 하나되어야 하는 거라구요.
이렇게 부모의 혈육을 받아가지고 태어난 자식이 일생 동안 부모를 모시고 살았다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본래 하나님께서 창조이상세계로 제정하셨던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내가 있음은 부모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북한 공산당을 보면 김일성도 그거라구요. 김일성이가 아버지라고 해가지고 밥을 먹는 것도 그 아버지 때문에, 옷을 입는 것도 그 아버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거 맞는 말이라구요. 그러면. 여러분은 그래요? 여러분은 그 사상이 되어 있습니까, 안 되어 있습니까?「돼 있습니다」 안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일체의 모든 주체사상은 부모가 가르쳐 준 것이어야 합니다. 부모가 가르쳐 주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전부 다 사탄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본부에 오게 되면, 숟가락이 있으면 숟가락을 가져 갑니다. 그런 행동을 부모가 가르쳐 주었습니까? 그것은 국가 재산을 훔치는 행위입니다. 법에 걸리는 것입니다. 본부에 있는 모든 만물들은 본부에 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본부에 있어 가지고 부모의 슬하에 부모의 이름 가운데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 이름 가운데 있는 것을 부모의 승낙도 없이 강제로 가지고 가서 내 이름 가운데 두겠다 하는 것은, 상속받기 전에 상속권을 전부 다 소모시키는 입장에 서는 행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자의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탕자는 부모의 설움의 대상이요, 탕자가 되면 형제의 참소조건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자는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런 사람 있습니까? 이런 말 들었으면 이제 당장에 갖다 두라구요. 이 사상이 철두철미해야 되겠습니다.
남편도 부모를 위해서 있지요? 그러니 남편과 아내가 서로 척 만나게 되면 '당신, 애기가 어떻소' 할 게 아니라, '당신, 본부 소식을 알아요? 부모님 소식을 알아요?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인사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살고 있어요? 좋은 것이 있으면 '아이고, 우리 애기들에게 줘야지'라고 생각하기 전에 '부모님에게 드려야지'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여러분 앞에 효도할 수 있는 효자 효녀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고, 우리가 먼저 먹고 아들딸 주겠다' 하게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아래만 있고 위를 잘라 버리는 것이 되니, 위 없는 아래는 없기 때문에 천도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 입장에서 부모를 모시는 가운데 좋은 것이 있으면 대번에 '부모님에게 드려야지. 부모님 앞에 우리가 감사해야지'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활을 해야 자식들도 '부모님께 먼저 드려야지. 부모님께 감사해야지' 하며 부모 앞에 효도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전통입니다.
참부모를 빼놓고는 교육도 없어야 되는 것이요, 생활 터전도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참부모와 완전히 하나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참부모의 생활이 내 생활이요, 참부모의 이념이 내 이념이요, 참부모의 일이 내 일이요, 참부모의 사랑권이 내 사랑 권이다' 이렇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래요?
여러분들 가운데 남편이 '교회를 버리고 우리 나가자'고 하면 '아이고, 어떻게 버리고 나갑니까' 하면서도, 남편을 따라가기 위해서 부모님이고 뭐고 하며 인사도 없이 도망갈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부부가 있다면 그들은 반드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거라구요. 알겠습니까?
이제부터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알겠어요? 여자는 부모를 위해야 되고 남편을 위해야 됩니다. 부모의 계대를 받을 사람이 여자입니까, 남자입니까? 대답해 보라구요. 부모의 상속을 받을 사람이 남자예요, 여자예요?「남자입니다」남자이니까 부모를 위하듯이 남편을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알겠지요? 여러분은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버릇이 없는 여자는 부모 앞에 효도하는 거예요, 효도 못 하는 거예요? 효도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을 만나게 되면 부모를 만난듯이 반가와해야 됩니다. 남편이 어디에 갔다 오게 되면 부모의 소식을 가지고…. 부모가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공직에서 일하는 것은 부모를 대신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귀한 게 아닙니다. 승공연합에서 일하는 것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것이 귀하다고요? 교회의 지역장 지구장, 부모의 판도를 넓혀 나갈 수 있는 전통적인 노선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부모 앞에 효도해야 되겠습니까, 부모 앞에 신세를 져야 되겠습니까? 「효도해야 합니다」 부모 앞에 신세를 지는 사람은 효자라는 이름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부모 앞에 신세를 지는 사람은 효자가 아닙니다. 철없는 자식입니다. 그런 자식은 효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신세를 갚고 오히려 부모 앞에 신세를 지우는 입장에 설 때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통일교회 교인들이 효자가 되기 위해서는 본부의 신세를 져야 됩니까, 본부에 신세를 지워 주어야 됩니까? 대답해 봐요. 여러분, 웃을 일이 아닙니다. 지금 원칙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라구요.
지방 교회가 본부를 돕는 것이 효의 도리입니까, 본부가 지방교회를 돕는 것이 효의 도리입니까?「지방 교회가 본부를 돕는 것이 효의 도리입니다」 지방 교회가 본부를 돕는 것이 효의 도리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을 중심삼고 볼 때에, 대통령이 국민들을 돕기 전에 먼저 국민들이 나라에 세금을 바치지 않습니까? 대통령이 일할 수 있게끔 국민들이 바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이 일할 수 있게끔 세금을 냅니까, 안 냅니까? 내나요, 안 내나요?「안 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십의 일조서부터 십의 삼조까지 헌금을 해야 됩니다. 그것이 효의 도리인 것입니다.
지역장 지구장은 뭐냐 하면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어느 족속에서 나왔느냐 하면 레위 족속에서 나왔습니다. 그리면 레위 족속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복귀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레위 족속이 분깃을 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까? 여러분 대답해 봐요. 가나안 땅에 복귀한후 12지파로 나뉘었을 때 레위 지파는 분깃을 탔습니까, 못 탔습니까? 그것도 몰라요?「못 탔습니다」 레위 지파는 분깃을 타지 못했습니다. 레위 족속은 제사장 족속이기 때문에 …. 제사장 족속은 가인들이 먹여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속죄함을 받기 위해서 바치는 제물은 속죄받을 사람들이 바치는 것입니다. 제물은 가인들을 속죄해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가인편에서 아벨에게 제물을 드려 먹여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벨은 누가 먹여 살려야 된다구요? 부모가 먹여 살려야 됩니까, 가인이 먹여 살려야 됩니까?「가인이요」 가인이 아벨을 먹여 살리는 대신 아벨은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을 기준하는 가인과 사람을 기준하는 아벨이 여기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복귀의 터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제사장들은 아벨의 입장이기 때문에 가인을 복귀하기 위한 수고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가인을 분깃으로 갖는 것입니다. 물질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람인 가인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예」
따라서 제사장 소유의 분깃이 무엇이라구요?「가인이요」 가인인 것입니다. 물질을 나눠 준 것이 아니라 무엇을 나눠 주었다구요? 사랑을 나눠 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위 족속은 이스라엘 민족 중의 어떠한 족속보다도 귀한 족속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인 된 사람이 귀합니까, 물질이 귀합니까?「가인 된 사람입니다」 가인편의 사람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편 사람들은 아벨을 먹여 살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 전체 앞에 아벨은 누구입니까?「선생님입니다」 통일교회 전체 앞에 아벨은 선생님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을 먹여 살려야 됩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아벨로서 희생을 해 가지고 가인들을 살려줘야 됩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사명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선생님을 먹여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선생님이 월급을 주게 되면 천리 원칙에 배반됩니까, 일치됩니까?「배반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월급을 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편네들은 '본부에 있는 부장들은 월급을 받는데…' 그럽니다. 그러나 그것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부장들보다도 지구장이 더 귀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지구장 지역장들이 더 귀하기 때문에 제일 골수분자로서 책임을 진 그런 사람들에게는 월급을 안 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월급을 주는 데 있어서 내가 월급을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은 괜찮지만, 지구장 지역장들이 요구해서 월급을 주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원칙이 그런것입니다.
여기 있는 지역장 부인, 혹은 지구장 부인들은 '우리는 이렇게 못사는데 선생님은 저렇게 잘살고 있으니, 우리를 사랑하는 선생님이라면 우리에게 좀 나누어 줘야 될 텐데'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선생님의 사명이 아니라구요, 알겠습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본부에 대해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은 죄입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책임을 맡을 수 있을 만큼 철이 들었지요? 축복을 받았으니 철이 들었지요? 이제 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철이 들었으니 아들딸로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될 것이 아니에요? 그런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부모를 위해서 부부가 효성을 다해야 합니다. 효도는 혼자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가 부부로서 효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부가 효성을 다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부부로서 효도하지 못했던 것을…. 여러분 부부가 효도했다는 이름을 남김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시켜 주는 것은 부부가 부모 앞에 효도했다는 단하나의 조건을 여러분에게 세워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부부가 부모앞에 효도했다면 타락한 아담 해와보다 나은 거예요, 못한 거예요? 나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손에 손을 잡고 한 발, 한 팔. 한 몸이 되어 가지고 온 정성을 다 들여 효성의 그리움을 중심삼고 생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축복받은 가정들의 생활 원칙입니다. 알겠어요? 아침 저녁으로 주먹질이나 하고 싸움이나 하는 것이 생활 원칙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탄세계의 생활 모양입니다.
서로 싸움이나 하는 부부는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있는 부부이기 때문에 그런 부부는 뜻 앞에 세움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 부부는 앞으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께서 제거시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제 여러분이 내일 모레면 돌아가지요? 며칠 후면 돌아갈 거라구요. 원래는 오늘 끝날 것인데…. 여러분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부족한 자신들입니다. 집도, 아무것도 없는, 어려운 입장에 서있는 부부입니다. 그러면 에덴 동산의 아담 해와에게 집이 있었겠습니까, 없었겠습니까? 옷이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신을 신이 있었겠습니까. 없었겠습니까? 그리고 아담 해와가 밥을 할 때, 도마가 있었겠습니까, 없었겠습니까? 칼은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뚝배기는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그릇은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남비는 있었겠습니까, 없었겠습니까? 아담 해와에게는 그런 것이 전부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효도해야 하는 것이 아담 해와의 입장이 아니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내가 있어 가지고 먹고 입고 쓰고 남아야 효도하지' 그게 아닙니다. 비록 깨진 바가지를 들고 있다 하더라도 아담 해와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그러니 감사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옛날의 아담 해와보다는 나은 것입니다. 꿰맨 신발을 신고 다닐지라도 옛날의 아담 해와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옛날의 아담 해와는 맨발로 다니지 않았습니까? 그렇지요? 꿰맨 옷자락을 걸쳤더라도 아담 해와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찬방에 누워 자더라도 벽이 있어서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방에서 자니 그래도 아담 해와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그렇잖아요? 산을 오르내리면서 열매를 따먹은 아담 해와의 신세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남편이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남편과 함께 밥을 먹고 사니 그래도 옛날의 아담 해와보다는 더 낫지 않습니까? 여러분, 아담 해와보다 더 낫습니까. 못합니까?「낫습니다」모든 것이 아담 해와보다는 나으니까 감사해야지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 살 때도 '아이고, 내가 그릇된 길로 갈까봐 채찍을 든 천사장이 지키고 있으니 감사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일에 통일교회 문선생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가 전부 칭찬하게 된다면 잘못된 길로 가게 될까봐, 하늘이 염려하여 잘못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몽둥이를 들고 참소해 가지고 감옥에다 가둔 것이다. 여기에서 반성을 하고 더욱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더 앞으로 갈 생각을 하라고 그러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타락시켰던 천사장보다도 더 잘못될까봐 몽둥이를 들고 날 지키는 천사장이 있구만' 하면서 파수보고 있는 간수들을 고마운 분들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부모를 모시는 데 있어서 온 정성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깨우쳐 주기 위해서 채찍질하는 그런 사탄의 대신자가 있구만. 고마운 분들' 이렇게 생각하고, 매를 맞게 되는 경우에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사랑하라는 교훈을 해주니 감사하다' 고 생각한 것입니다.
똥통 옆에 눕더라도 아담 해와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똥통을 놓아 두고 살아 봤겠어요? 똥통을 할 단지나 독이 있었겠어요? 아담 해와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맨땅에다 똥을 쌌지만 나는 독으로 된 똥통을 사용하니 아담 해와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 똥통에다 똥을 쌀 때에 똥 방울이 얼굴에 튀면 '거룩한 것이구만' 그랬어요. 아담 해와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똥을 쌀때 그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아담 해와보다 낫습니까, 못합니까? 여러분은 지금 핸드백을 갖고 있지요? 갖고 있어요, 안 갖고 있어요?「갖고 있습니다」 또 구두를 신고 있지요? 그렇다면 아담 해와보다도 더 났습니까, 못합니까?「낫습니다」 그런데 왜 불평들을 합니까?
여러분은 하루에 밥을 몇 끼씩 먹습니까? 하루에 세 끼를 못 먹으면 두끼라도 먹지요? 아담 해와는 정상적으로 매일 두 끼씩 밥을 먹었겠습니까, 못 먹었겠습니까? 먹으려면 둘이 같이 다니면서 먹어야 했을 것입니다. 해와가 아담에게 '아담. 당신이 열매를 따다가 나에게 먼저 주고 그 다음에 당신 먹어야 돼요'라고 했겠습니까? 해와는 별수없이 아담의 궁둥이를 따라다니면서 아담이 열매를 따먹으면 같이 그 열매를 따먹었을 것입니다. 그랬을 것 아니예요? 통일교회 축복가정 부인들도 그렇게 할 생각을 해야 됩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먹을 것은 부부가 같이 벌어먹을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복귀가 그런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북에서 피난 나올 때 한 푼도 없이 따라지 중의 왕따라지로 나왔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좋다' 하며…. 빈털터리가 되었으니 얼마나 가뿐해요? 어디를 가더라도 걱정이 없고 도망을 가더라도 걱정이 없다는 거라구요. '야, 내가 아담과 같이 자유스러운 환경으로 돌아왔구나. 이제부터는 희망을 가지고 한번 내 손으로 사탄세계 사람들한테 지지 않고 벌어 보자' 그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무슨 일을 중간에서부터는 하기 싫다는 겁니다. 이왕 일을 할 바에는 따라지에서부터 해야지요. 그렇지요? 누군가의 신세를 지고 하는 게 아니라 얻어먹으면서 해야지요. 내가 그렇게 출발했습니다. 남의 신세를 지고 할 게 뭐가 있느냐 그 말이예요, 내 자력으로 해야지.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의 현재 입장이 해와보다 나아요, 못해요?「낫습니다」 해와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양복을 입고 다니는 남편을 보잖아요. 해와는 에덴 동산에서 벌거벗고 다니던 아담을 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구두를 신고 다니는 남편을 보잖아요? 해와는 에덴 동산에서 맨발로 다니던 아담을 보고 살았잖아요. 전부 다 해와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탕감복귀해야 되니까, 그냥 그대로 복귀해야 하니까 맨발로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사랑입니까, 사랑이 아닙니까?「사랑입니다」 맨발 벗고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벗고 출발하라는 거예요. 복귀는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없는 놀음을 한 그 전통을 본받아야 될 게 아니예요? 그렇지요? 감옥살이를 했으니 감옥살이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언제 한번 맨발로 성큼성큼 다녀 봤습니까? 아담 해와가 좋으면 둘이서 손을 잡고 뛰어다녔겠어요. 안 뛰어다녔겠어요? 오누이끼리 서로 벌거벗은 채로 그랬겠어요, 안 그랬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벌거벗고 춤을 춘다는 말도 근사한 말이라는 거예요. (웃음)
여러분, 부부끼리 벌거벗고 마음대로 춤을 춘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합니까? 벌거벗고 춤을 추든 누더기를 걸치고 춤을 추든 에덴 동산에서 누가 욕했겠느냐 말이예요. 그것이 전통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걱정이 없겠지요? 여러분은 지금 걱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내가 왜 오늘 이 얘기를 하느냐 하면, 여러분이 돌아갈 때 걱정이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고, 가려면 차비가 있어야 하는데 차비가 없구나' 하고 걱정을 한다는 거예요. (웃음) 차비가 없으면 걸어가는 것입니다.
차들이 많이 왔다갔다하는데…. 여러분이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방법을 내가 가르쳐 줄께요. 여러분 한 열 사람이 한패가 되어 가지고 옷을 울긋 불긋하게 입으라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저기 가다 보면 고속도로변에 차가 쉬는 곳이 있다고요. 그 앞에 가 가지고 춤을 추는 것입니다. (웃음)
한 열 명에서 오십 명이 그렇게 춤을 추게 되면 트럭 운전사들이 이 모습을 보고…. (웃음) 나중에는 트럭 운전사들이 전부 다 달려와서 같이 한바탕 흐드러지게 놀아 대는 거예요. 그렇게 운전사들과 화(和)했지요? 그렇게 되면 차가 떠나려고 할 때는 하나하나…. 인사는 무슨 인사예요? 그냥 차에 올라타는 거라구요. (웃음) 그렇게 차에 올라타면 운전사들이 웃게 되어 있지 미워하겠어요? 그냥 히히히 웃으면서 타면 되는 거예요. 연구를 하면 무슨 방법이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할머니를 가만히 보니까 짐을 이고 힘들게 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할머니 옆에 가서 '할머니 어디까지 가십니까?'라고 하면서 말을 거는 거예요. '나 대구까지 가네' 하면 '할머니, 이고 계시는 짐이 뭡니까? 해서 귀한 짐 같으면 사정하는 것입니다. '저도 대구까지 가는데…' 그때는 대구로 가는 거라구요. '저도 지금 대구를 가야 하는데 깜빡 잊고 차비를 안 가지고 왔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할머니 짐을 대구에 가서도 다 여다 드리고 할 테니 차비를 좀 빌려 주세요. 그러면 제가 대구에 가서 갚아 드릴께요'하면서 차비를 빌리는 것입니다.
빌린 돈으로 차를 탄 다음에 할머니 앞에서 또 호소하는 거예요.'저는 이런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해서 서울에 집합했는데, 우리는 월급을 받고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돈은 없고 대구는 꼭 가야 하기 때문에 할머니를 붙들고 그런 것입니다' 하고 사실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빌려 준 돈을 나중에 달라고 하겠어요?(웃음) 오히려 점심 값을 두둑히 받고서 '안녕히 가시오'라고 인사까지 받고, 후에 그 할머니 집에 찾아가서 전도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구를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엔 하루쯤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돈 버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돈 버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 것을 걱정 하지 말고 가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갈 것을 걱정하면 안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들 삼위기대가 다 있지요? 다른 방법이 없으면 서울에 있는 삼위기대, 사촌 삼위기대 해서 열두 집을 찾아가서 한 집에서 백 원씩을 빌려서라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삼위기대는 도와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삼위기대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남편이 죽게 되면, 삼위기대가 그 집의 살림살이를 책임져야 됩니다. 앞으로는 세 집 살림살이를 한꺼번에 하는 것입니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때가 되면 세 집 살림을 한꺼번에 하는 것입니다.
삼형제가 하나되지 못한 것이 타락이지요? 그렇지요? 셋이 하나되지 못한 것이 타락이기 때문에, 복귀원칙에 따라서 세 형제가 한 살림살이를 해 가지고 하나되지 못하면 천국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요사스러운 데가 있지요? 그 요사스러운 여자들이 이제는 반대로 요사스러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전부 다 신랑 각시끼리만 살려고 하지요? 이 사상을 무너뜨리지 않고는 세계적인 통일의 전통을 못 세우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족이 함께 살지 못하는 것은 여편네들 때문이라구요. 오늘날 이 망할놈의 세상…,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싫다고 하는 며느리들은 앞으로 비참한 시어머니가 될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이것은 서로가 서러움을 개재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전부 다 반대로 꺾어 놔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삼위기대의 세 부인들끼리 하나 못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되게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열두 가정이 한집에서 살아야됩니다. 그 다음에는 백 이십 가정, 혹은 천 이백 가정이 전부 다 한집에서 사는 것입니다. 한 동네에서 살더라도 싸움을 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만약에 싸움을 하게 되면 족장 회의를 열어 가지고 싸운 사람들의 볼기를 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싸움을 했다가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전통을, 천세 만세의 역사를 움직일 수 있는 전통을 세워야 할 때가 현재 참부모와 같이 사는 이 시대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 시대에 그런 전통을 세우지 못하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만일 이시대에 그런 전통을 세우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망하지요?「예」
여기에 사길자가 있지만 말이예요, 유협회장하고 김원필하고 김영휘는 삼위기대인데, 내가 기분 나쁜 것은 유협회장이 죽은 다음에 한집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죽기 전에 한집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세 가정 중에 한 가정이라도 아들딸을 못 낳게 되면 아들딸을 낳은 가정이 못 낳은 가정한테 아들딸을 낳아서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여편네들은 다 있는데 두 가정의 남편은 죽고 한 가정의 남편만 남아 가지고 아들딸이 하나도 없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여러분은 그런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나 하는것을? 여러분이 뜻을 알긴 뭘 알아요? 전부 다….
자기 부부끼리도 하나되어 살지 못하면서 세 가정이 하나가 되어 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부부끼리도 싸우면서 사는데 세 가정이 한집에서 같이 살수 있습니까, 없습니까?「없습니다」 절대적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이 불합격되겠기 때문에 신랑 각시는 하나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위해서 하나되어 사는 훈련을 하라는 것입니다. 불원한 장래에 아파트를 지으려고 하는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전부 다 가정적으로 훈련시켜 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가정적으로 훈련시킬 아파트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문화 주택, 아파트 말이예요. 일곱 가정 이상 적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가정집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 개월씩 들어가 가지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런 훈련 주택, 아파트 훈련소가 생겨난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여러분은 전부 다 그 훈련소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아파트에서 3세대가 같이 사는 것입니다. 밥도 같이 먹고 공부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여덟 식구가 되어야 천국에 들어가지요?「예」여덟 식구가 안 돼 가지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요?
부모하고 삼위기대를 합하면 모두 몇 사람입니까?「여덟 사람요」 여덟 사람입니다. 이 여덟 식구가 하나되었다는 기준이 안 되어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원리지요? 원리예요, 원리 아니예요? 「원리입니다」 원리이면 원리대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자집이라 해도, 아들 셋에 삼동서가 있는데 그 며느리가 전부 다 짝짝꿍이 되면 그 집 다말아 먹습니다. 말아 먹어요, 안 말아 먹어요?「말아 먹어요」 말아 먹는 거예요. 그러면 그 집은 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망하는 세계에 있어서 우리는 셋이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전통을 이어받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선한 사람은 이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상을 집어넣어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는 자신을 위해서 삽니다. 전부 다 이렇게 반대라구요. 그리고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남을 위해서 살면서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정이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 대개 알겠지요? 「예」
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남편이 가정 때문에 살림 때문에 걱정을 하거든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당신은 원리를 잘 몰랐소. 우리 집이 아무리 못산다 하더라도 남비가 두 개나 있지 않소? 아담 해와에게 남비가 있었어요?또 문을 열고 보면 문 앞에 고무신이라도 신이 두 켤레가 있지 않소?'라고 해봐요. (웃음) 그것이 복귀입니다. 복귀는 그렇게 출발해야 됩니다.
'언제 우리가 아담 해와처럼 맨발로 살았소? 그래도 고무신 두 켤레라도 있으니 감사해야지요. 아담 해와가 언제 이불을 덮고 살았소? 우리는 담요라도 있으니 감사해야지요. 거기에다 마루바닥이라도 있지 않아요? 감사해야지요'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감사해야 할 것이 태산같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고 죽겠구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여러분들이 돌아가서 남편들이 죽는 소리를 하거든 이렇게 얘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당신, 원리를 알우?' 이러면서 가르쳐 주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예」 여러분이 집에 돌아가게 되면 그러한 남편을 만날 것이 틀림없겠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레위 족속은 제사장이기 때문에 월급을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사장이 될 때 '아 나는 3만원을 받기 위해서 제사장이 된다' 하는 제사장이 있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자신의 피살을 바쳐 그 핏값으로 가인을 소유해서 사는 것이 제사장의 사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밥을 먹어도 남을 위해서 먹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직에 있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그런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다.
제사장들은 아들딸을 낳아도 자신의 아들딸이라고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고이 바쳐야 할 제사장의 후예들이기 때문에 기를 때부터 거룩하게 길러야 됩니다. 제사장의 아들딸은 다르다는 거예요. 제사장은 자기 아들딸들에게 욕도 못 하는 것입니다. 쌍말도 못 한다는 거예요. 더러움 탈까봐…. 그렇게 길러야 되는 것입니다. 어미라고 해서 아들딸이 잘못을 했다고 마음대로 매질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가 아이들에 대해서 손을 대려면 선생님한테 허락을 받아야 됩니다. '한번 기합을 줘야 되겠습니다' 하면 '그러시오'라고 해서 기합을 줍니다. 기합을 줘야 할 메는 그렇게 해서 기합을 준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무엇이 없이 아이에게 손찌검을 했을때는 가만히 안 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랑으로 대했느냐 이거예요. 그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등등의 문제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이제 여러분이 개인 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알았지요?
부모로부터 상속받을 사람은 아담이기 때문에 해와는 부모를 사랑하는 대신 누구를 사랑해야 된다구요?「아담요」 아담을 사랑해야 됩니다. 이것이 열녀가 가야 할 길입니다. 또, 교회를 책임진 여러분의 가정에 있어서 남편을 돈을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으로 만들었다가는 큰일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이용해 먹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늘의 공직을 이용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남을 위해서 살아야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살면서 남을 기쁘게 해주면 그들은 기쁘게 해준 그 은덕을 갚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십일조를 받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적을 때는 자기의 정성이 부족한 것으로 알고 먼저 하나님을 붙들고 담판 기도를 하면서 눈물을 흘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자식들이 사랑을 못 받을 때는 그 자식을 붙들고 '하나님이시여. 저희가 제사장으로서 이 동네에 사는 가인의 아들딸을 사랑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저희의 아들딸이 이렇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라고 하면서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눈물을 골짜기 물이 되도록 흘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들였는데도 불구하고 밥을 굶게 되거든 선생님의 목을 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정성을 들였는데도 밥을 굶게 된다면 그 동네가 벼락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동네가 망하기 때문에 그 동네 사람들한테 선조가 나타나 가지고 밥을 갖다 주라고 호령을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선생님은 밥을 많이 얻어먹어 보았습니다. 정성들이면 밥을 갖다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굶어 죽지 않습니다. 굶어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든지 안 굶는다는 거예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미 보따리를 싸 가지고 나갔으면 굶더라도 ‘내가 죽게 되면 죽는 거고, 일주일 금식을 해서 탕감함으로 말미암아 이 동네를 부활시키고 하나님의 사랑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다'라고 하며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이 다음에는 큰 복이 올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나가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살기도 전에 걱정이 태산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편네들의 근성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수고하는 남편들을 위로해 줌으로써 힘은 못 주더라도,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을 깨뜨리는 놀음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개인들은 개인의 탕감노정을 걸어가야 됩니다. 통일교회 지역장 지구장 이라고 해서 전부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선조들은 천 층 만 층이라는 것입니다. 선조가 선한 사람들은 나가서 전도를 하더라도 탕감받지 않고 일이 잘되는 것입니다. 대접받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조가 악한 사람들은 자기 일대에 탕감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대접받겠다고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동네에 가면 오히려 동네 사람들이 흩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거들랑 밤을 새워 가면서 회개 기도를 해야 됩니다. 선조의 죄를 생각하면서 회개해야 되고 자기가 이 시대에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이렇게 탕감한 후에야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선조의 죄로 말미암아 탕감받아야 할 권내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싫소' 하고 불평 불만하면 벼락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남에 대해서 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문제인 것입니다. 만일에 자신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섰다면, '이 나라 이 민족이 나로 말미암아 살고, 이 나라 이 민족이 나로 말미암아 해방이 된다'는 거룩한 마음을 갖고 수고해 나가면 그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나라와 민족은 망하더라도 그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선생님이 감옥살이했으니 여러분도 감옥살이해야 되겠습니까, 안해야 되겠습니까?「해야 되겠습니다」 해야 되겠어요? 그러면 도둑질해 가지고 감옥살이할래요?(웃음) 민족을 사랑하겠다고 몸부림치다가 해야되는 것입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적인 전통의 인연에 내가 한번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님께서 이 길을 거쳐오실 때 이 길을 싫다고 하셨다면 오늘날 저희들을 만날 도리가 없었을 것이 아니옵니까' 하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렇잖아요? 선생님은 그런 길을 당연한 길로 찾아왔기 때문에 한두 번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감옥문을 출입한 것이 아니냐' 하고 생각해야 되는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빌어먹는 일이 있다면 '스승의 빌어먹던 그 사정을 알수 있는 자리에 섰으니 얼마나 큰 영광이냐? 하나님이 빌어먹는 신세를 거쳐오실 때의 그 심정을 내가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이냐?' 하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길을 나왔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된 것입니다.
먹일 것이 없어 자식을 붙안고 눈물을 짓던 자리…. 선생님이 성진이 어머니를 내버리고 이북을 향해 갈 때 그런 사정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쌀 한톨 남겨 놓지 않은 자리에서 하나님이 쫓아 버린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걱정을 안 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맡겼으니 죽이겠으면 죽이고 말겠으면 말라는 생각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편지가 오면 문전에서 전부 다 돌려 보내거나 찢어 버렸습니다. 내게 소식이 오는 것을 원수같이 여겼던 것입니다. 내 앞에 얼씬도 말라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일선에 가 있는 장병이 자기 집을 염려하다가 전과에 지장을 가져오게 되면 그는 그 나라의 충신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 저런 것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도 그런 입장에 있지요? 집에 가고 싶어서 훌쩍훌쩍 우는 사람은 그 눈깔이 썩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나를 버리려고 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자리에 가든지 참부모의 인연을 중심삼은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앞으로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내가 공장에 매일같이 출입하는 것을 보고, 여러분의 후손들이 앞으로 이 나라, 이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기업가가 되거들랑, 여러분의 후손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공장을 다녔다고 교육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업할 후손 앞에 남겨야 할 전통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교회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누구보다 사랑했다는 전통을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전통을 상속하는 데는 자기 이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 가지고 상속해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의 법도입니다. (녹음이 잠시중단됨)
'어떤 남편이 만약에 일이 잘못되어 가지고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면, 집에서 밤 늦게까지 코가 빠지도록 기다리는 아내 앞에 그 사실을 얘기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말을 하지 않고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생각해요? 그것을 잘했다고 봐요, 못했다고 봐요? 이렇게 비사로 남의 얘기 하듯 한바탕 쓱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 !글쎄 그렇게 그와 마찬가지로 나 오늘 저녁에는 수택리에 좀 가 보았으면 좋겠는데…' 하는 겁니다. (웃음) 나빠도 할수없지 뭐. 그렇게 해서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좋았을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이 여기에 올 때, 서울 본부에서 자면 다섯 시에는 일어나서 서둘러야 됩니다. 선생님이 여섯 시에 여러분한테 오기 위해서는 다섯 시 전에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야 세수하고 이런 것 저런 것을 다하고…. 여기까지 한 40분 걸리거든요. 선생님이 새벽부터 일어나서 왕창왕창 들썩 거리면 어머니는 물론이고 옆방에서 자고 있는 애기들까지도 전부 다 그바람에 휩쓸리기 일쑤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밤에 쓱 나와 가지고 여기에서 자게 되면 나도 바쁘지 않고, 또 바쁘지 않은 입장에서 나와서 여러분을 만나면 기분도 좋을 거라구요. 그리고 누가 '선생님이 밤에 나오셨대' 하게 된다면 여러분들도 선생님이 없는 동네에서 자는 것보다 선생님이 있는 동네에서 자는 것이 기분 나쁘지 않을 거라구요. 선생님이 누구를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까? 여러분을 위해서입니다. '내 몸 하나 고달프면 되지…' 한다는 것입니다.
어제도 아침부터 시작해서 낮에까지 얘기하고, 오늘도 이러다가는 또 언제까지 얘기를 할지 모르겠구만. 여러분 배 고프지요? 「아니요」 나는 배가 고파서 지금 허기증이 납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그만 했으면 좋겠지요?「아니요」 이제는 여러분을 만나서 말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오늘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주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아침도 점심도 다 전폐입니다. (웃음) '할렐루야, 아멘'이예요?
남을 위해서, 공적인 일을 위해 피곤한 줄도 모르고 뛰다 언제 자는지 모르게 쑥 늘어지게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얼마나 거뜬한지 모릅니다. 그런 것을 보게 되면 '야. 하늘길은 이렇게 가는 것이 원칙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아이고, 어저께는 세 시간밖에 못 잤으니 오늘은 다섯 시간, 여섯 시간은 자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잠을 자고 일어나게 되면 허리가 아프고 온 몸이 천근 만근 같습니다. 그러니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뭐 잠자는 시간을 계산해 가지고 '오늘은 못 잤으니 내일은 더 많이 자야지' 하지 말라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그러지요? '주일 아침에는 금식을 하니까 토요일 밤에는 밥을 많이 먹자' 한다는 거예요. (웃음) 그렇게 하는 금식은 하나마나입니다. 오히려 금식을 안 하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금식을 한다고 전날 밥을 많이 먹게 되면 배가 더 고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먹어 보라고요. 위를 늘렸다가 별안간 확 비우게 되니까 배가 더 고프지 별수 있어요?(웃음)
이런 것 저런 것을 쭉 생각해 보면 하나님도 남을 위해서 그렇게 사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지내보니까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나 자신도 피곤해 가지고 눕는지도 모르게 누워서 잠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 보면 벌써 하룻밤이 지났거든요. 베개를 벴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고 늘어져 가지고 한잠 자고 깨어나게 되면, 아무렇게나 자서 기분이 나쁠 것 같은데도 기분이 아주 좋거든요.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은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 끝에서 끝을 요구하시고, 또 끝을 요구하십니다. 그런 걸 보면 빨리 죽으라는 것 같아요. 결국은 뜻을 위해서 빨리 죽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도 오래 살겠다는 생각을 안 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오래 살면 좋겠습니까?「예」그건 선생님을 죽도록 고생을 더 시키겠다는 말 아닙니까? 살아 있는 동안 자기의 책임을 못 하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사는 데 60년대의 생활이 다르고 지금 70년대의 생활이 다릅니다. 그 생활은 여러분이 본받아야 할 생활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전도하러 내보내 놓고, 비둘기가 콩밭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고 있습니다. 철부지한 여러분들을 일선에 내보냈으니 내게 책임이 있다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번에 전도 나가 가지 고는 선생님을 많이 보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을 많이 봐요? 「예」옛날과는 다르지요? 옛날과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왜냐? 그것은 선생님이 여러분을 옛날보다 더 생각해 주기 때문입니다. 더 생각을 해주고 더 관심을 가져 줄 수 있는 자리에 선 사람은 ‘더' 축복을 받는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 결국 많이 생각해 준다는 것은 사랑을 많이 준다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더 가까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사람을 보내게 될 때에는 사랑하는 독자를 보내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독자에게 한사람에게밖에 맡길 수 없는 나라의 귀중한 밀서를 맡겨서 보내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것을 알고, 개인이 살아도 참부모를 중심삼고 살고, 가정이 살아도 참부모 가정의 전통을 이어받아서 살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사는 데 있어서도 참부모가 교회를 위해 살던 그 전통을 본받아서 살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사는 데 있어서도 참부모가 나라를 위해서 살던 그 전통을 여러분이 본받아서 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부모가 뜻을 중심삼고 세계를 위해서 일생을 바쳐 간 걸음을 걸었다면, 그것을 전통으로 삼고 여러분들도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참부모와 같이 살았다는 입장에 서야 같은 나라와 같은 세계에서 행복을 같이 맞이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부모는 싸움을 해서 민족과 나라를 찾는데 자식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안방에서 놀고 쉬고 있었다면, 부모가 민족과 국가를 이루어 가지고 만민으로부터 칭송받고 환영받고 있을 때, 부모 앞에 효도 못한 그런 아들딸들이 민족과 국가가 환영하는 자리에 부모와 더불어 나설 수 있는 자격이 있어요? 그러한 자격자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선생님의 집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 여러분, 본부에 대해서 관심이 있어요? 관심을 가져 봤어요? 선생님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봤어요? 한 주일 동안이라도 본부와 선생님에 대한 소식을 모르면 못 살겠다. 밥을 못 먹으면 못 먹었지 그 소식을 모르고는 못 살겠다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상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자들이 지금 하나되는 운동을 하면서 이 민족 앞에 본을 세우는 이러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출발하는데, 선생님의 가정을 위주한 종족이 벌어지지요?(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선생님이 이렇게 종족을 통해 가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가야 되느냐? 세계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종족까지가 10년, 종족에서 민족까지가 10년, 또 민족에서 나라까지 10년, 나라에서 세계까지 10년 이렇게 40년이 걸리게 됩니다. 자그마치 40년은 결심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1960년에서 40년 후면 몇 년입니까?「2천년입니다」12천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2천년도까지 40년만 싸워 보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40세에 성혼식을 하였지만, 통일교회가 40년만 지내면 문제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가는 데는 10년을 간다면 누구와 더불어 가야 되느냐? 여러분 마음대로 가야 됩니까? 아닙니다. 부모님을 따라가야 됩니다. 아들딸이 아버지 어머니와 하나되어 가지고 따라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 손자들이 태어나면, 이게 3대예요. 3대가 하나되어 가지고 따라가야 됩니다. 언제나 하나되어 가지고 부모를 따라가야 됩니다. 이렇게 올라가야 됩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다시 말해서 선생님을 모시고 같이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선두에 서서 개척자의 사명을 중심삼고 발전적으로 기반을 넓혀 나감과 동시에 여러분도 거기에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일편단심으로 정성을 들여 가지고 같이 행동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전국적으로 나가게 될 때 민족이 복귀되고 국가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 공적인 생활을 하고 있으니 여러분도 공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있어도 나를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먹는 것입니다. 만일에 손님이 찾아오게 되면 나는 안 먹더라도 찾아온 손님에게 주려고 합니다. 그렇게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돈이 있으면 그돈을 내 생활을 위해서 쓰는 것보다도 찾아온 손님을 중심삼고 쓰는 겁니다. 자기 집안이 복을 받으려면 찾아온 손님을 잘 대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손님을 대접하는 데 있어서도 자기들이 먹고 남은 찌꺼기를 가지고 대접하면 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들은 먹지 않고 손님을 대접하는 그런 집이 있다면 동네 개도 그 집 문전에 와서 똥을 싸는 것이요, 날아가는 새들도 그 집에 와서 둥지를 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집에는 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집에 손님이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게 된다면 그 집은 화를 받는 것입니다. 그 집에는 쇠운(衰運)이 드는 것입니다. 괜히, 뭔지 모르게 동네 사람들이 그 집에 가서 기대고 싶어하고, 말을 해도 그집에 가서 하고 싶어하고, 그 집에서 모이고 싶어하는 그런 집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옛날 한국의 풍습 가운데 좋은 풍습이 뭐냐? 이남에는 그런 풍습이 있는지 모르지만 평안도 같은 데는, 내가 철이 들 때의 우리 집만 보더라도 사랑방이 있었습니다. 그 사랑방은 오가는 먼 지방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서 잘 꾸며 놓고, 언제든지 음식상을 준비해 놓습니다. 닭을 치더라도 일년 동안의 손님을 대접할 수 있는 닭을 몇 마리 더 쳤습니다. 저녁에는 그런 대로 대접하지만 아침에 돌아갈 때는 될 수 있는 대로 잘 대접해서 보냅니다. 그런 풍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는 손님을 참 많이 쳤습니다. 아마 팔도강산의 사람들이 우리 집에 들렀을 것입니다. 우리 집이 손님을 잘 친다는 소문이 한 이십 리 안팎까지 나 가지고, 지나가는 사람이 하룻밤을 묵게 해 달라고 하면 '저 아무개 고을 아무개 집 찾아가소' 하니 사람들이 열두 시에도 찾아오고 새벽에도 찾아오곤 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그런 전통을 세워 놓으셨습니다. 우리 집 문전에 와서 어려운 처지를 사정하는 사람을 절대로 그냥 돌려보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런 가풍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게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가풍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통일교회 본부에서 밥 먹는 것을 절대로 막지 말라고 얘기해 온 거예요. 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주라고 한 것인니다. 때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밥을 먹였습니다. 공밥을 많이 먹이면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선생님과 보조를 맞추겠습니까. 안 맞추겠습니까? 「맞추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선생님과 보조를 맞춰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선생님이 아시아를 중심삼고, 세계를 중심삼고 기도하는 때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은 세계를 위해서 기도할 때라는 것입니다. 자나깨나 오나가나 말이예요. 일본이면 일본, 아시아면 아시아, 이북이면 이북의 문제를 중심삼고, 또 어떻게 이 나라를 중심삼고 조직 편성하여 사상으로 무장해 가지고 아시아에 있어서 이 나라를 새로운 주체국으로 만드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기도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집이야 있겠으면 있고 말겠으면 말고, 보리밥을 먹으면 어떻고 뭐 먹으면 어떠냐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에게 한 시간을 어떻게 단축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선생님이 일구월심,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정성들이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선생님의 뒤를 따라 어떻게 하든지 거리를 단축하여 마음과 사정이 통할 수 있는 인연의 자리를 갖추어 나가면 서, 그것을 남편과 아내의 기쁨의 화제로 삼고, 자식들 앞에 자랑의 기쁨으로 남겨서 우리 통일교회가 거룩하고 훌륭하다는 것을 아들딸 앞에 교육해야 할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것을 알아야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여러분의 직계 아들딸한테도 그렇게 교육해야 되겠지만, 여러분을 따라오는 신자들에게도 통일교회 사람들은 이렇게 가야 된다고 보여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야 된다고 가르쳐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가만히 보게 되면, 자식들을 데리고 사니까 교회 식구들에게 장사를 시키고 일을 시켜 가지고, 식구들이 돈을 벌어서 바쳐도 좋은 것이 있으면 자기 자식들한테 주려고 하고 그저 자기들만 먹으려고 하지, 돈을 벌어다 바치는 식구들에게는 함부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식구들이 돈을 벌어 오게 되면 눈물을 흘리면서 받고 귀한 고기 한 토막이라도 있으면 네가 먹어야 된다고 하고, 그러면 그 식구는 나는 안 먹겠다고 하고, 이렇게 서로 바꿔치는 놀음을 할 수 있는 여러분 사모님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먹을 것이 있으면 자기 자식에게 먼저 먹이려고 하고, 자기가 먹으려고 하고, 또 입을 것이 있으면 자기가 먼저 입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따라 나오는 교인들이 안 좋은 옷을 입는데, 교회의 사모님으로서 좋은 옷을 입고 나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못 먹는데 잘 먹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옷을 꿰매서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 눈물이 핑 돌아 가지고 그야말로 어머니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아무 개, 치마 하나 해 입혀야 되겠구만' 하며, 눈물어린 마음을 가지고 위로하고, 조금만 참아 보자고, 조금만 참고 보면 우리가 좀 펴질 게 아니냐고 하면서 서로가 위로의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터전을 넓혀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누구 한 사람이라도 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자기네 살림이나 시켜 먹고 그러다 쫓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도 식구들은 밤을 새워 기도를 하고 정성들이는데 교회 사모님이라는 사람은 잠만 잔다는 거예요. 여기에 그런 사람 없어요? 그런 교회가 발전하나 보라는 것입니다. 만일 사모님이 병이라도 나게 되면 그 남편이 배 이상 해야 합니다. 배 이상 탕감복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식들도 옷을 잘 입히면 안 됩니다. 자식들을 못 입혀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야 탕감조건을 메워 나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천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부인들은 위로는 하나님을 대해야 되고, 엮으로는 남편을 대해야 되고, 아래로는 자식을 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믿음의 아들딸과 교회의 교인들을 대해야 됩니다. 이 사대 상대를 소화시킬 수 있는 사모님이 되지 않으면 그 교회는 발전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충신이 돼야 되고, 남편 앞에는 열녀가 돼야 되고, 자식들에게는 모범적인 어머니가 돼야 되고, 교인들에게는 모범적인 사모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부인이 될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여자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남자들은, 지역장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지역장들은 교인들의 내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원리 말씀을 하고 전도를 하고 식구들의 집을 방문이나 하면 되지만 살림살이를 중심삼고 밀접한 관계를 갖는 사람은 여자들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여자들이 더 잘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모님이 되어 가지고 눈을 벌겋게 뜨고 앵앵거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얼굴에는 언제나 미소를 띠어야 합니다. 보게 되면 흉내를 내는 데는 배우들이 제일 아닙니까? 사모님은 적어도 중류 배우쯤은 되어야 됩니다. 밥을 굶었더라도 방긋 웃어야 되고, 남편으로부터 뺨따귀를 얻어 맞았더라도 식구들 앞에서는 웃어야 됩니다. 집 사정은 집 사정이고, 교회 사정은 다르기 때문에, 어제는 좋았는데 오늘 달라지면 식구들이 타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중간 입장에 서서 화목덩이가 되어야 할 것이 바로 교회 사모님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이 지역장 지구장 부인들이 해야 할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통일교회 교인들이 움직이고 남자들이 움직이게할 수 있는 전통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모든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가정에서는 가정의 중심이 되는 부모를 모셔야 합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종족도 마찬가지로 중심이 되는 부모를 모셔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전부가 부모를 중심삼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중심 삼고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전부 다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세계도 역시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부모를 중심삼고 하나되기 위한 중간 매개적인 작용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부모의 전통은 뭐냐? 이것이 없어 가지고는 역사가 성립되지 않고, 사탄을 분립시킬 수 없고, 새로운 역사적 전통의 기원을 성립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언제나 여러분의 생활권, 사회권, 국가권, 세계권내에 있어서 일원화된 사상이 되어 가지고, 우리 집이라 할 수 있고 우리 형제라 할 수 있는 그런 감정이, 민족이면 민족을 초월하고 어떠한 지역을 초월하고 혹은 국경을 초월해서, 땅 끝에서 땅 끝까지 덮여지게 될 때 그 세계가 바로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새 나라를 사랑하고 가야 됩니다. 종적으로 보게 되면, 과거 현재 미래가 있는 것이고,3대인 아담시대 예수시대 재림시대가 있는 것입니다. 또 세 형제가 세 국가로 나누어져서 세계적인 국가로 벌어졌기 때문에 세 국가를 중심삼고 하나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앞으로 하늘나라, 즉 천국 세계에서 살 수 있는 국민이 되려면 세 나라 민족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 통일교인의 가정에서는 외국 사람하고 결혼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후손들은 반드시 외국 사람하고, 한쪽은 동양 사람 한쪽은 서양 사람과 결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럴 때가 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뭐냐? 그 길은 언제나 참부모의 가정을 밀고 가는 길입니다. 거기에 올라타고 말이예요. 알겠어요? 참부모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야 됩니다. 가정도 그렇게 가야 되는 것이요, 종족도 그렇게 가야 되는 것이요, 민족도 그렇게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족이 복귀되게 될 때는, 그와 같은 방식의 생활 체제가 전 민족적으로 화하게 될때 그 국가는 복귀되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세계적으로 화하게 될 때 세계는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모와, 그 다음에는? 자녀지요? 자녀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 가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모와 하나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자녀와 하나되어야 하고, 독일에 가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모와 하나되어야 하고 자녀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종적으로 보게 되면 첫째 번은 하나님의 자리요, 둘째 번은 부모의 자리요, 셋째 번은 여러분의 자리입니다.
또 이것을 횡적으로 보게 되면 부모가 중심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부모의 아들딸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횡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는 여러분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런 점을 두고 볼 때,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지 않고는 연결될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알겠습니까?
그러면 참부모의 가정은 어떤 가정이냐? 참부모의 가정은 역사적인 열매요, 시대적인 중심이요, 미래적인 기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앞으로 소망의 천국이 될 때에, 거기에 전통의 본국은 참부모님이 살아가신 그 생활 전체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국가의 사상적인 모체가 뭐냐 할 때, 이것이 그 사상적인 모체라는 것입니다. 또 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기원이 뭐냐 할때 이것이 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기원입니다. 알겠습니까? 언제든지 참부모와 더불어 참부모의 자녀 된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삼대권을 이루어야 됩니다. 하나님, 부모, 그리고 여러분, 이렇게 삼대지요? 횡적으로 보게 되면, 선생님, 선생님의 자녀들, 그 다음에 여러분, 이렇게 삼대입니다. 이 삼대권을 갖추어 가지고 완성하지 않으면 하늘땅이 통일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을 삼 년 이상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3년 이상 모시는 데는 가정이 모시고, 그 다음에는 국가가 모시고, 세계가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계 복귀권까지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3수를 중심삼고 볼 때 3년 이상을 모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3년 동안은 부모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밥도 같이 먹고 같이 의논하면서 같이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집이 그래야 된다는 거라구요. 부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으로서 평화스럽고 행복스럽고, 말을 하더라도 좋은 말만 하고, 서로가 기뻐하면서 사는 3년 기간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부부가 싸움할 일이 있어도 싸움을 못 하는 것입니다. 싸움을 하려고 해도 먼저 부모님께 여쭈어 보고 하자고 하고 방에 들어가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는 아내는 엉엉 울면서 '우리 남편이 이런 마음을 갖고 있고, 나는 이런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또 그 남편도 역시 '나는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데 아내는 이런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아내와 싸움을 해야 되겠습니까, 안 해야 되겠습니까?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싸움을 하지 마라' 하는 것입니다. (웃음) 서로 싸울 일이 있으면 이렇게 '여보 여보, 우리 기도합시다' 그래야 된다는 거라구 요. 부모님께 여쭈어 보고 하자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밖에 나갔다 돌아올 때 무엇을 사오게 되면 그것을 먼저 부모님께 드리기 위한 준비를 항상 해야 합니다. 이렇게 진짜로 모시고 사는 것처럼 생활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아침 점심 저녁 때마다 부모님의 밥을 해 놓아야 되는 겁니다. 잘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으로 뭘 할 것이냐? 언제라도 귀한 손님이 찾아왔을 때 대접해야 합니다. 본부에서 누가 오시지나 않을까, 선생님께서 오신다면 좋겠지만 선생님이 오시지 않으면 지구장이라도 찾아 오시지 않을까, 혹은 본부에서 부장님이 오시지 않을까. 상부에서 누가 오시지 않을까. 이렇게 윗 분이 찾아오시기를 고대하면서 정성을 다해서 하루종일 기다리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천국입니다. 이런 가정에는 하나님께선 복을 안 주실래야 안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옷을 해 놓고 기다리고, 먹을 것을 해 놓고 기다리고….
그 다음에는 그것이 나라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면, 국가적으로 주님을 모실 수 있는 잔치상을 차려 놓고 기다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잔치상을 차려 놓고 '아이고, 주님이 오시지 않을까? 본부에서 귀한 손님이 오시지나 않을까? 혹은 상부에서 그 누가 오지 않을까? 하며 천년 사연을 가슴에 품고 삼백 예순 다섯 날을 하루같이 기다리는 그런 도감이 있어 가지고 준비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럴 때가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때가 오면 좋겠습니까, 나쁘겠습니까?「좋습니다」 앞으로는 잔치만 하고 살 때가 옵니다. 잔치상이 아니고는 먹지 않을 때가 멀지 않아 온다는 것입니다. 나라에서도 그렇고 지파의 족장들끼리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서로 자기들이 책임지고 삼년 동안 부모님을 모시겠다고 경쟁을 하고 싸움을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런데 선생님이 죽어 가지고는 이 전통을 못 세웁니다. 그렇게, 부모를 모시기 위해 종족 전체가 정성을 모아 가지고 서로가 요전보다도 좀더 잘해야겠다고 정성들임으로 말미암아 그 종족은 망하지 않고 거기에 비례하여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이 아닙니까?
부모를 모시기 위해 정성을 드리는 데 있어서. '아버지여, 작년보다도 금년에 부모님을 더 잘 모셔야 되겠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더욱 더 노력을 해야 되겠사옵고, 하나님의 사랑도 더 받아야 되겠습니다' 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은 정한 이치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밥을 굶나 보십시오. 밥은 굶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살았습니까? 그렇게 살았어요, 못 살았어요?「못 살았습니다」 더 알라는 겁니다.
앞으로는 나라가 이렇게 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12개국이면 12개국, 3개국이면 3개국이 합해 가지고 이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시아가 합하고, 구라파가 합해 가지고 잔치상을 준비해 놓고 서로서로가 주님을 모실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서로서로가, 아시아인이면 아시아에 구라파인이면 구라파에, 자기가 정성들인 물건이 가담된 그 나라에 주님을 모실 수 있는 그 기쁜 잔칫날을 맞기를 얼마나 기다리겠어요? 거기에는 관현악단 하며 세계의 각 지방의 유명한 사람들이 다 모여 가지고 그 잔칫날을 축하하기 위해 프로를 짜 놓고서 기다리고…. 그것이 앞으로의 천국생활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두고 볼 때, 현재 통일교회 교인들, 보기에는 흉하고 꼬락서니가 이렇게 처량하지만 참…. 이것은 무섭고도 멋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웃음)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 중에서 떨어질 사람은 미리 떨어지고 떨어지지 않을 사람도 떨어지라고 지금 자꾸만 시련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습니까, 나쁩니까? 그런데도 여기에서 남아지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에게는, '복덕방인 줄 알고 뛰어 들어갔더니 왕궁의 내실이더라' 할 수 있는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동네에서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이 그렇게 살아요? 앞으로는 동네가 그렇게 됩니다. 그 동네의 족장이면 족장 집에서 족장을 중심삼고 매일같이 그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정성을 들이고, 한주일 한 주일 서로 다투어 가면서 쌀을 가져오고 먹을 것을 해 가지고 와서 정성을 들일 때가 앞으로 올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서로서로가 손님을 초대해서 대접을 하고, 이것이 마을 마을을 넘고, 거리 거리를 넘고, 혹은 나라 나라를 넘어서 언제든지 우리 동네에 손님이 와도 손님을 대접할 수 있는 준비의 터전이 되어 있다면서 서로서로가 모시기를 바라는 나라가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지요?
이것은 참부모의 전통이 아니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나라에 가고 싶어요, 안 가고 싶어요? 그런 생활을 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 하고 싶으면 그런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옷을 입더라도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여 가지고 가다듬어 입어야 되겠느냐 이겁니다. 전부 다 이렇게 정성들이는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특히 여자들은 달거리가 있지요? 그런 것도 전부 다 가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법이 많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하늘 가정으로서 생활할 수 있는 기준을 두고 볼 때에 여러분은 현재까지 합격된 생활을 했어요, 불합격된 생활을 했어요? 「불합격된 생활이요」 불합격된 생활을 했다는 겁니다. 이제부터는 내 말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예」 처음 나섰으니 끝까지 잘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편에 대한 문제, 교회에 대한 문제, 혹은 살림에 대한 문제를 앞으로 더 잘 알아 가지고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만일 이것을 못하게 되면 천추의 한을 남길 뿐만 아니라 부모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부모님이 안식할 수 있는 때는 지금이 아닙니다. 나라를 찾지 못하면 안식을 못 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입니다. 꿈에도 소원은 통일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찾아가는 걸음을 멈추지 말고 시간을 단축시키며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청춘시대에 그것을 찾지 못하고 노년시대를 맞게 된다면 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있는 정성을 다하고 다해서 하늘이 소원하시는 허락된 이 길을 바른 시일 내에 돌파해야겠다고 각자가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나라를 찾기 위해 나가서 싸우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요.
여러분이 비록 부족한 자리에서 초라한 밥상을 대할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륵 흘려야 됩니다. 부모를 모시는 자식의 생활이 나라를 찾기 위해 나선 걸음일진대 이래서야 되겠느냐고 하며, 부모 앞에 정성들여 한 끼의 진지상도 바쳐 드릴 수 없고, 정성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지 못한 불효 막심한 자기 자신을 두렵게 생각하면서 눈물이 앞설 수있는 그런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속 깊이 몇백 번이고 되풀이되는 울부짖음 가운데 '아버지 어머니, 안녕하세요. 뜻과 더불어 승리의 한 날을 맞이하여 해방의 모습을 가지고 기쁨과 영화를 누리며 아버지를 모시고 살 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 참고 가야 할 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오니, 이 자리를 기꺼이 맞아 주시옵소서' 하며 눈물과 더불어 마음을 조이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이 현재 여러분이 나가서 해야 할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혼자 그렇게 살 것이냐?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은 아들 혼자 있는 것보다도 둘이 있는 것입니다. 딸이 있어도 혼자 있는 것보다는 둘이 있는 것이 더 영광입니다. 자기 슬하에 거느린 사람이 많아야 그 집안의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부모의 영광은 무엇이겠습니까? 환갑이 되었을 때, 그의 후손이 많고 또 후손들이 부모를 위할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있으면, 그것이 환갑잔치를 맞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는 기쁨이 되는 것이요, 영광이 되는 것이요, 자랑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그렇게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있어서 자랑이 될 수 있는 영광의 한 터전을 마련 하려면. '밤이야 가겠으면 가고 낮이야 오겠으면 와라. 내 소원 일체는 오직 하나님 앞에 영광의 자녀들을 많이 남기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성을 들인 사람의 자손들 가운데서 하나의 군을 다스릴 수 있는 군수도 나올 것이요, 도를 책임질 수 있는 도지사도 나올 것이요, 혹은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 대통령도 나을 것입니다. 또, 그 지극한 정성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주권자도 나올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런 자손을 많이 거느린 부모는 복을 받은 부모가 아니겠습니까?
하늘의 참된 부모는 누구보다도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정성을 다해 그럴 수 있는 혈족을 남기고 참다운 전통을 남기기 위해서 참다운 희생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움직여야 할 때가 지금 이때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남편에 대해서도 그렇고, 자녀들에 대해서도 그렇고 교회에 대해서도 그렇고….
지금까지 통일교회 교인들의 사상이 돼먹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통일교회 교인으로서의 사상은 전부 다 띄워 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상을 가지고는 한 사람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일체를 부모와 더불어 상관하고, 부모와 더불어 결정하고, 부모와 더불어 의논하고, 부모와 더불어 상관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고 방식을 가진 남편이 못 되었고,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여러분이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은 이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 길은 역사적인 열매요, 시대적인 중심이요, 미래의 전통적 기원이기 때문에 천년 만년 후라도 이 전통을 본받지 않고는 천국에서 살 수도 없고, 천국에 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 전통을 고이 이어받아야 할 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단입니다. 이 길을 개인으로서 걸어가야 되고, 가정으로서 걸어가야 되고, 종족으로서 걸어가야 되고, 민족으로서 걸어가야 되고, 국가로서 걸어가야 되고, 세계로서 걸어가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 식구들이 가야 할 전통적 참부모의 노정임을 여러분이 알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더욱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선생님이 살아서 이런 일을 하지 못하고 가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선생님이 만약에 세상에 없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생각해 봐요. 여러분 자녀들이 그 전통을 이어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살다가 선생님이 어떻게 되면, 여러분 자신이 그 전통을 가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렇게 되면 나라를 중심삼고 전통을 세울래야 세울 수 없고, 세계를 줌심삼고 전통을 세울래야 세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세우지 못하는 날에는, 이 지구상에 천국이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역사를 가늠하여 새로운 추춧돌을 놓으면서 그위에 새로운 건물을 건설하기 위한 참다운 개척자요 건축가인 것을 명심하고, 여러분의 가는 길이 힘들지라도 부디 원망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소화하면서. 거룩한 하늘의 가법을 세우는 데 책임을 져 주기를 재삼 부탁하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자,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사랑하는 아버님, 역사의 탕감노정에 있어서 중심으로 그리워하던 것은 참부모의 가정인 것을 저희가 알았습니다. 참부모의 가정을 맞고 보니 참부모의 가정은 평탄한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그 가정은 눈물의 소굴이요, 비참의 교차점이요. 서글픔을 탕감하는 입장에 있는 가정임을 생각하게 될 때, 한 중의 한을 느끼고, 곡절 중의 곡절을 느끼고, 천상의 인연을 중심삼고 나를 제물로 바쳐 이 한의 구렁텅이를 빨리 메워야 된다는 것을 느껴야 할 것이 우리 통일교회 신자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축복받은 가정들이 이러한 시련과 수난길을 책임져야 할것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10년의 역사를 지내 왔지만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70년대에 들어서 아버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가정의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 여기에 있는 아낙네들을 삼천리 반도에 내세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오늘을 기하여 지금까지의 수련 코스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오늘과 내일을 중심삼고 저희들이 공산주의에 대비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8일에는 떠나야 할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 할 것이 아니라, 여자로서 출정하는 기분을 가지고서 민족을 바라보며 눈물을 자아낼 수 있어야 되겠으며, 민족과 더불어 내 심정의 방향을 갖출 수 있게 해주신 그 거룩한 은사를 진정으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부모가 가야 할 핵심적인 노정은 민족을 거치고 국가를 거쳐 세계의 주권자를 굴복시키고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온갖 희생의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이 일을 책임하기 위해서 맹세하고 나선 몸들로서, 충절을 다하여 아버지가 기뻐하실 수 있는 딸의 명분을 갖출수 있는 이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가야 할 길은 참부모와 더불어 가야 되는 길인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았습니다. 참부모의 길은 역사적인 방향과 일치되는 길이요, 시대적인 뜻의 중심이요, 미래에 있어서의 전통의 기원이 된다는 사실을 이제 알았사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이 이러한 참부모의 이름을 가질 수 있다는 이 영광, 이 명사와 더불어 이 사실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임을 저희들은 또한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참부모를 찾고 참부모를 만나기 위해서 수많은 민족이 희생됐고, 수많은 선한 사람들이 피의 대가를 치르고서도 원한의 구렁텅이에서 사라진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역사적인 정상에 서 가지고 이 모든 것을 탕감해야 할, 하늘의 축복받은 딸들로서 이 책임을 완전히 해낼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들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성실한 제물의 모습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죽어진 제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제물로서 주인을 모시고, 부모를 모시고, 자녀를 모시고, 남편을 모실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는 해방된 권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기에 이 일을 위하여 출발했사오 니, 끝까지 이 일을 위하여 단결하고 끝까지 이 일을 위하여 싸워 나갈줄 아는 자신들이 될 것을 이 시간 저희들은 결의했사오니. 아버지,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버지, 금후에 저희가 가는 길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고, 대한민국의 현재 입장을 지켜 주시옵소서. 이번 5월부터 저희들이 기도하는 자리에 들어갔사옵니다.
이북에 있는 김일성 도당을 중심삼고 사탄세계의 힘을 빼앗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하늘 세계와 더불어 힘있는 단결을 해야 되고, 중심과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오니 참부모와 일치가 되어야 할 입장을 저희들 각자가 고수하게 하여 주시옵고, 이것을 실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이 민족을 지키고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길인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아시아의 정세를 수습하시어 승리의 천국을 이루시옵고, 만국을 수습하시어 당신의 해방의 천국을 이루시옵기를 간절히 원하옵니다. 그것을 위하여 정성어린 모든 생활권을 개척하고 모심의 생활을 가중하여 당신의 승리권을 입체적으로, 종적으로, 횡적으로 성사시키는 데 노력하고 본이 될 수 있는 당신의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당신 앞에 맡기었사오니 저희들이 사탄과 싸워서 당신이 허락하신 뜻과 더불어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그간 며칠 동안의 수련과정을 모두 마치고 이제 여러분들은 내일이면 하나님과 약속된 자기의 책임 장소를 향하여 각자가 산지사방하여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일면으로 새롭고 벅찬 마음도 가지고 있을 줄 알고 있습니다.
무사히 이 집회를 마치게 된 데에 대해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제 여러분에게 맡겨진 중차대한 사명, 한 때밖에 있을 수 없는 민족적이요, 세계적인 이 중대한 사명을 여러분이 감당해 내느냐, 못 해내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서 연약한 아낙네들로서 가는 길 앞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비는 마음 간절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삼천리 반도 방방곡곡으로 그 누구도 고대하지 않는 마을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밤과 낮으로 사람들을 상대할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젊은 처자, 혹은 젊은 청년, 여러분이 대하는 그 마을이 크면 클수록 여러 군상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둥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길쭉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잘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못난 사람도 있을 것이며. 혹은 학식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식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도외지에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농촌에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하루 세 끼를 먹는 데도 곤란을 느끼는, 못먹고 못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여러 형태의 사람이 여러분 앞에 나타나서 비록 한 때의 환경에서 만나고 인연을 맺는 입장이지만, 그렇게 만나게 될 때까지는 숱한 인류의 역사적인 한과 슬픔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항시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못생기고 못나고 형편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형편없는 사람이 여러분에게 있어서 생애의 가름길이 될 수 있을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상상하던 외의 사람이 나타났다고 해서 그 사람을 무시하거나 멸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혹은 자기가 바라던 사람이 나타났다고 해서 그 사람을 너무 반겨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역사적으로 어떠한 인연이 있는 이상, 그 사람을 믿든가 그 사람을 의지 하든가 하면 손해를 보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에 인연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인연과 사명'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하려고 합니다.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하늘과 땅은 하늘도 별개의 것이요, 땅도 별개의 것 같지만 언제나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은 내용도 전연 다르고 모양도 다른 것이지만, 언제나 뗄 수 없는 하나의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 하늘과 땅, 그 가운데 사람, 이것을 천지인(天地人)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람도 역시 하늘이 있고 땅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며 또한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도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사람을 중심삼고 하늘과 연결되며 사람을 중심삼고 땅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사람을 전체로 보면 세계 인류가 되는 것이요, 좀더 작은 분야로 놓고 보면 한 나라가 되는 것이며, 더 작게 쪼개어 놓으면 하나의 종족이 되는 것이며, 더 작게는 하나의 가정이 되고, 더더욱 작게 쪼개어 보면 남자와 여자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 이 두사람이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모든 내용도 서로 다르고, 성격도 서로 다르고, 소질도 서로 다르지만, 서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상관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인연이라는 기준이 있어서 그 인연에 의해 남자와 여자가 태어나는데, 남자는 하늘을 대신하고 여자는 땅을 대신합니다. 비사(比辭)로말하면 상대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즉, 아버지는 하늘을 대신하고, 어머니는 땅을 대신합니다. 이와 같은 인연이 있기 때문에 우주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절대적인 하나님과 이 피조세계도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진 것입니다.
그 인연을 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하면, 그 인연을 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뗄 수 있는 악도 있을수 없습니다. 나아가 하나님 자신도 피조세계와 인연지어진 이 모든 것을 떼어 놓을래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자리에서 인연이 맺어지고 정상적인 자리에서 목적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고는 잘못 인연된 한을 풀 길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본래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 시조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불의의 인연을 맺어 가지고, 불의의 인연으로 말미암은 세계를 이루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남자와 여자 가운데에서 남자가 주인이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거꾸로 여자가 주역을 하는 입장에서 남자를 끌어냈다는 것입니다.
그 인연은 올바른 인연이 아닌 엇갈린 인연이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세계는 순리적인 인연권내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역리적인 인연의 결과를 빛어낸 권내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일이 순리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고 복리적인 내용을 거쳐서 전개되었고, 그런 역리적인 환경으로 엉클어져 있기 때문에 이 원치않는 인연 가운데서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는 타락한 인생이요.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불의의 인연, 우리 인간이 원래 허락받지 못한 불의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엇갈려졌으니 이 사실을 어떻게 다시 새로운 인연으로 교체해 놓느냐? 이렇게 되기를 바라고 지금까지 수고해 나온 사람들이 양심을 중심삼고 싸워 나온 사람들이요, 양심을 중심삼고 하늘과 땅의 인연을 맺어 하늘을 통하고 땅에 정성을 다하여 도의 길을 찾아오면서 하늘과 땅의 인연을 대신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엇갈린 인연을 다시 바로잡기 위한 사명을 짊어지고 나오는 사람들이 도(道)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요,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게 될 때, 이 타락한 세상에서 바라보는 창조주가 있다면 '그 창조주를 올바른 창조주로 해득할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불의의 인연, 혹은 역리적인 인연 가운데에 있는 우리 인간이 순리적이고 원칙적인 입장에 있는 절대자를 아무리 바라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비원리적이고 비인연적인 입장에서 태어난 인간들이 인간 세계의 끝날에 와 가지고는 '하나님은 죽었다' 하는 결론까지 짓게 된 것도 모두 비인연적인 관계로 말미암아 빚어진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올바른 나, 올바른 본래의 인연의 자리에 있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물론이지만, 오늘날의 여러분은 타락한 부모의 혈육을 받아 인연을 맺고 태어났기에 부모를 두고 볼 때도 우리가 본래의 인연으로 맞이해야 할 부모는 어떠한 부모냐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불의의 인연에 의해서 태어난 자식이기 때문에 불의의 결과인 그 자리에서 아무리 본연의 인연을 따라서 모셔야 할 부모를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형제를 보더라도 전부 다 불의의 인연을 따라 태어났기 때문에, 그 인연을 갖고 있는 형제 끼리끼리 아무리 본연의 형제의 인연을 상고해 봐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형제끼리 서로서로 사랑하라고 하지만 어떻게 사랑하는 것이 참다운 형제의 인연인지를 지금까지 모르고 살아 나왔던 것입니다.
또, 하나의 가정을 볼 때도 그 가정이 불의의 인연에 따라서 존속된 가정이기에 그런 가정 자체에서 보게 될 때, 본연의 참된 인연을 따라 난 가정이 어떠하다 하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의의 가정에서 태어난 우리 인간이요, 불의의 가정들이 합해져 불의의 종족을 이루고, 불의의 민족을 이루고, 불의의 인연에 따른 국가와 세계를 이루어 나왔습니다. 그러니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고 아무리 생각해도 본연의 인연에 따른 종족이 어떠하며. 그 민족이 어떠하며, 그 국가가 어떠하냐 하는 것을 알래야 알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세계의 수많은 인류가 지금은 모두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지만, 본래 하나의 세계의 내용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불의의 인연을 따라 엮어진 세계에 존재하는 인류는 본연의 인연을 따라 이루어질 세계를 알래야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우리는 환영받을 수 있는 인연을 가진 것이 아니라, 환영을 받아서는 안 될, 부정할 수밖에 없는 인연을 지니고 있고, 그러한 역설적인 노정을 거슬러 가야 할 운명권에 섰다는 사실이 비참한 것이요, 이것이 타락한 결과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나, 이러한 나는 어디서부터 이 인연의 줄을 바로잡겠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두고 볼 때, 본래 인연은 어떤 절대자가 계시면 그 절대자로부터, 하나님이 계시면 그 하나님으로부터 인연되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인연이 없어 가지고는 관계를 맺을 수 없고 존속의 기틀을 마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이상, 존재의 동기가 될 수 있는 주체를 추구하여 볼때 그 주체는 두말할 것이 없이 하나님께 귀결됩니다. 즉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인연이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하늘땅이 생겨나고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이 사랑의 소유자시라면 최고의 사랑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을 중심삼고 우리 인간은 그분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 사랑의 연줄을 반드시 하나님과 인간이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최고의 하나님으로부터 가져올 수 있는 연줄을 찾고 찾아 더듬어 가게 되면 맨 나중의 귀결점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아버지이니 우리 인간에게는 자식 이외의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또, 그 이상의 자리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우리의 부모라는 결정적인 기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참사랑을 할 때, 참사랑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니고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로서 아들을 사랑할 수 있는 자리, 그 자리는 자기 생명을 바꾸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입니다. 이것이 부자의 관계가 아니겠느냐? 이러한 부자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이루었더라면 인간은 불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아들만 되어도 삼천만 민족에게 자기가 행복하다고 얼마든지 자랑하더라도 그 누가 참소할 수 없을진대, 하물며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의 아들딸로 태어나고, 그러한 인연 가운데서 모순과 상충이 없는 순리적이요 자연적인 연줄을 따라가서 모든 환경의 요건을 넘어서 부자지정(父子之情)이 맺어지는 그 자리에 서게 되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이것을 확실히 몰랐습니다.
그러한 아들딸이 있다면, 그 아들딸이 동으로 가면 아버지도 동으로 따라가고 싶을 것이요, 아들딸이 서로 가면 아버지도 서로 따라가고 싶을 것입니다. 또. 아버지가 동으로 가면 그 아들딸도 동으로 따라가고 싶을 것이며, 아버지가 서로 가면 그 아들딸도 서로 따라가고 싶을 것입니다. 가면 같이 가고, 오면 같이 오고, 살아도 같이 살고, 일을 하더라도 같이 하니 그 인연은 일시적 인연이 아니라 영원한 인연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좋은 일이 있으면 '아이 좋아. 영원히 이랬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때에만 그렇게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참된 사랑의 자리는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인연이라는 것은 가다가 일시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참되지 못한 인연은 가다가 어느 한 때에 변하는 것입니다.
큰 원과 작은 원의 둘레를 맞추게 될 때 어느만큼까지는 맞출 수 있지만 그 이상 가면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만큼은 인연이 있어 맞출수 있지만 나중에는 갈라진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둘이 완전히 하나되는 데에 있어서는 어디를 가나 갈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최고의 사랑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한 십년쯤 살다가 갈라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어요? 한 백년쯤 살다가 갈라지고 싶은 사람 있어요? 영원, 영원, 영원히….
영원히 가더라도 갈라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 사랑을 중심 삼고 하나되는 그 자리에서 바라는 것입니다. 영원히 하나되기를 왜 우리가 바라느냐? 두 가치가 하나로 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완전히 하나가 된 것은 갈라 놓을래야 갈라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창조주와 완전히 하나로 맺어져야 하는 인연이 인간에게 있어야할 것인데, 그것을 지금까지 우리 인간이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될 수 있는 인연을 가진 남자와 하나될 수 있는 인연을 가진 여자가 완전히 하나되었다고 하면, 즉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부가 하나된 그 기틀 위에 남자 여자가 부부로 하나되었다고 하면 그 부부가 갈라지고 싶을 것이냐? 갈라지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함께 살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고 싶은 것은 물론이지만 본래의 인연을 중심삼아 이루어진 부부라면 잠깐 살고 그만두고 싶겠어요? 영원히, 영원히 살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권내에 있는 생명이라든가 그러한 사랑권내에 있는 물건, 혹은 그러한 사랑권내에 존재하는 모든 것, 상대가 갖고 있는 전부도 그냥 그대로 영원히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입고 있던 옷이 아무리 누더기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발길로 툭 차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그렇다는 거라구요.
이렇게 완전히 하나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남자 여자가 하나되고, 남자는 남자끼리 하나되고, 여자는 여자끼리 하나되고, 그 다음에 부부끼리 완전히 하나되었다면 그 중의 어떤 것은 싫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하나되게 되면 신랑의 머리카락도 신부의 것이요, 신부의 머리카락도 신랑의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이 하나 떨어져도 그걸 주어서 '이게 그분 것이로구만' 이렇게 하지 '에이, 이게 뭐야' 하면서 함부로 짓밟아 버리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두고 볼 때, 사랑하는 사람의 것은 영원히 남기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생명은 얼마나 남겨 두고 싶을까요? 백년쯤 남겨 두고 싶을까요, 영원히 남겨 두고 싶을까요?「영원히요」 영원히 남겨 두고 싶을 것입니다. 사람도 그러한데 하나님은 어떨까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라 하게 되면, 백년쯤 살다가 죽게 할 것이 아니라 영원히 같이 데리고 살고 싶고,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일하고 싶고, 같이 볼 수 있는 자리에 두고 싶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서는 몽땅 영생을 원할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에서만이 영생이 필요한 것이지, 그 외의 세계에서는 영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그러면 참된 인연은 무엇이어야 되겠느냐? 대우주의 모든 희망의 중심이요. 모든 생명의 원천이요, 힘의 모체가 되고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그런 인연이 있을진대 그 인연이 무슨 인연이겠느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의 인연입니다. 그 인연을 붙잡고 그 인연과 하나되면 즉, 모든 것이 하나님과 하나되게 되면 그 인연에 달려 있는 것 전부가 내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 이퀄 사랑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도 사랑이 있어야 하나님 노릇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 노릇을 못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 아버지 마음이 반석처럼 냉랭하고 겨울의 돌처럼 차다 할 때는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어요, 못 해요? 어머니가 그런 사람이라면 어머니 노릇 할 수 있어요? 마찬가지라고요.
그렇지만, 보기에는 덥수룩하여 제삼자가 그 얼굴을 보게 되면 기절하게 생겼더라도 그 텁석부리 아버지의 마음 속에 두툼한 사랑보따리가 깃들어 있다면 아들딸들은 그 아버지의 모습이 보기 좋다는 것입니다. 남들은 몇 시간만 봐도 질색할지라도 아들딸들은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사랑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권위와 하나님와 모든 도리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부부끼리 사랑이 없는데 색시 노릇 할 수 있어요? 사랑이 없으면서 남편 노릇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있다고 생각하는 여자들 손들어 봐요? 그런 사람은 때려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때려죽이려고 해도 죽일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서 색시 노릇 하겠다는 것은 여자가 아닙니다. 또, 사랑이 없으면서도 남편 노릇 하겠다는 사람은 남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남자는 남편 노릇을 할 수 있고 사랑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여자는 사랑을 가진 남편의 색시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같이 젊은 사람에게는 아내보다는 색시라는 말이 더 맛이 있지요? 색시라는 말은 뭐냐? 새로운 씨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색시라는 거예요.
또, 아들 노릇을 완전히 하려면 사랑이 없어 가지고 할 수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딸 노릇 완전히 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없어 가지고 할 수 있어요? 없습니다. 그럼 형님 노릇 하기 위해서는 사랑 없이도 되지요? 「안 됩니다」동생 노릇 완전히 하기 위해서 사랑 없이도 되지요?「안 됩니다」 전부 안 된다는 거야.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척 앞에 있어서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진짜 친척이 될 수 있다?「없다」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왜 없어요? 있지요?「없습니다」 없다구요, (웃음)
여러분이 웃는 것을 보면 선생님이 아무리 옳다고 큰소리 했댔자 '집어 치우고 물러가소' 그 말이거든, 배포가 두둑하다는 거예요. 말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이 실례요, 유례요? 실례지만 실례하고도 뻐길 수 있는 것은 당당하니까, 왜 당당해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니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친척 중의 진짜 친척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요? 또, 사돈끼리도 사랑이 없어 가지고는 그 사돈이 있으나 마나라는 거야. 그렇지요?「예」
또 그 나라의 백성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있어야 돼요, 없어야 돼요?「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젠 결론이 다 나왔습니다. 세계 인류가 하나되기 위해서 사랑이 없어도 돼요?「안 됩니다」 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랑이 아니고는 안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이 결국은 사랑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는 사랑이다'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밤에도 좋아하고, 낮에도 좋아하고, 일하면서도 좋아하고, 쉬면서도 좋아하고, 춤추면서도 좋아하고, 울면서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에게는 사랑이 있다. 몽땅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몽땅'이라는 말은 그 속에 전부 다 들어간다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사랑을 제일 좋아하는 양반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자, 그만하면 근사하지요? 그런 사랑을 몽땅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기에, 인간이 그 사랑을 몰랐을 때는 어쩔수 없었지만 그 사랑을 맛보게 되면 죽더라도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삼십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간 더벅머리 총각이 그 동네에 미녀가 있어서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에게 장가들려고 할 때에는, 마음으로만 끙끙 해서는 장가를 가지 못합니다. 이렇게 삼십이 되도록 끙끙 앓았다고 사랑을 알수 있어요, 몰라요?「모르는 것입니다」 왜 몰라요, 왜? 혼자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웃음) 만약에 둘이 사랑을 했다면 알 수 있어요, 없어요?「알 수 있습니다」 거 아는구만요. 사랑은 혼자서는 못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몽땅 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혼자 사랑을 받겠다는 거예요?「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사랑을 받게 되면 전부 다 혼자 받는 것을 좋아하지요? 하나님은 몽땅 사랑이니까 몽땅 사랑하는 것을 좋아할까요. 몽땅 사랑받는 것을 좋아할까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몽땅 사랑받는 것을 좋아했다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받기만 한다면 여러분에게 줄 사랑이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몽땅 사랑인데 그 몽땅 사랑을 창고에 가두어 두고 무슨 깍쟁이 장사꾼처럼 하나하나 주는 것이 아니라. 퍼붓게 되면 와르륵 꽝 퍼부어 주십니다. 몽땅 퍼붓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몽땅 퍼부으신 그 사랑을 받아 지탱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몽땅 퍼부어 줄 그 사랑이 얼마나 커야 할 것 같아요? 거기에는 하늘도 몽땅 빠져 들어가고, 땅도 몽땅 빠져 들어가고, 지금까지 왔다가 간 수많은 선조들도 몽땅 빠져 들어가고, 현재에 살고 있는 인류도 몽땅 빠져 들어가며, 앞으로 올 후손들도 몽땅 빠져 들어가야 되니 얼마나 크겠습니까? 여러분의 가슴통보다 클까요, 작을까요? (웃음)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받자면 여러분의 가슴이 커요, 작아요? 「큽니다」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습니다. (웃음) 여러분의 가슴이 크면 사랑을 몽땅 받는다는 것이고 여러분의 가슴이 작으면 그 사랑을 몽땅 못받는다는 것이 아닙니까? 기분이 나빠요, 좋아요?「나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몽땅 사랑한다고 하면서 다 주지도 않고 몽땅 사랑이라고 한다면 기분 좋겠어요? 여러분의 가슴이 사랑보다 작아서 그 사랑을 몽땅 다 받지 못한다고 해서 여러분은 그 사랑을 절반쯤만 받고 싶어해요, 아니면 넘치도록 거기에 이자까지 곱쳐서 받고 싶어해요? 여러분의 배포가 얼마나 큰지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다 받아 가지고도 감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 그렇게 생각해요? 여러분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사랑이 있으면 그것을 누구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 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는데, 감당할 만한 여력이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최고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사람은 사람 축에도 못 들어간다는 거야. 여러분도 그래요?「예」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여러분 여자들도 그래요?(웃음)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우리는 몽땅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가슴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생각해 봐요. 그만하면 쓸만하지요 ? 그만하면 쓸만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조금만 남겨 놓아도 안 된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됩니다.
몽땅 사랑은 하나님 사랑인데, 여러분, 하나님 사랑 좋아해요, 싫어해요?「좋아합니다」 몽땅 사랑이라는 말은 사랑이 아닌 것은 싫다는 말입니다. 그렇지요?「예」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부자관계가 성립되는 것은 사랑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요, 부부관계가 성립되는 것도 사랑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형제지관계가 성립되는 것도 사랑 아니면 안 되는 것이요, 동포관계가 성립되는 것도 모두 동포애가 아니면 성립되지 않습니다. 종족을 넘고 민족을 넘는 세계 인류 박애사상. 박애라는 그것도 역시 넓은 사랑이 아니고는 성립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보편화되고 이 사랑이 생활권내의 환경이 될 수 있는 인연과 터전을 마련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몽땅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세계가 될 수 없는 것이요.
그러한 환경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몽땅 사랑이시냐? 사랑이 아니고는 모든 것이 틀어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같은 양반은 사랑을 말했고, 석가 같은 양반은 자비를 말했습니다. 자비도 사랑의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이제 하나님은 사랑이 아닌 것을 싫어하시는 분이라는 걸 여러분이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만을 좋아하시는데, 대관절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은사람이 이 땅위에 있느냐 할 때 없다는 것입니다. 왜? 불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심어진 씨가 번식하여 망쳐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종자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보십시오. '인심은 조석변이요, 산천은 고금동(人心朝夕國. 山川 古今間)이라고 하는데 산만도 못한 것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하지요? 여자들은 요랬다 조랬다 하고, 남자들은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은 요랬다 저랬다 하지요? 여자 들은 조금만 졸아도 헤헤 한다는 거예요. 정말 좋아서 그러기도 하고, 속여 먹기 위해서도 헤헤헤 한다 이겁니다. 두 가지입니다.
자신이 행동하는 데에 있어서 그 결과가 좋을 수 있고 나쁠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이렇게 전부 다 두 가지, 안팎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 수련받은 사람 가운데에서도 좋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밥을 먹었는데도 한 사람은 괜찮고, 다른 한 사람은 병이 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좋을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나쁠 수 있는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례적으로 볼 때, 좋을 수 있는 것보다도 나쁠 수 있는 것이 태반입니다. 나쁠 수 있는 분야에서 나타나는 것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타난 것은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씨와 같은 것입니다. 악의 동기로 말미암아 시작된 결과이니 악의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불의의 인연 가운데 출발했기 때문에 참의 결과가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나타나지 않은 것, 불의의 인연으로 출발하기 전의 것이 나타난 거예요. 안 나타난 거예요?「안 나타난 것입니다」 나타나기 전의 것. 나타나지 않은 것에만 참이 있을 수 있지. 나타난 세계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道)의 세계는 나타나는 세계를 상관하지 않습니다. 종교의 세계에서는 보이는 것을 믿고 보이는 것을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신(神)보이지 않는 모체. 보이지 않는 근원, 보이지 않는 중심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신(神)을 중심삼아 가지고 신과 하나될수 있는 사람, 보이지 않는 그분과 하나된 사람이 도주(道主)종교의 교주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나타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전부 다 그렇잖아요? 세상의 사람들이 뭘 좋아해요? 술 먹고 트위스트 춤추는 행락의 길을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것이 나타난 것이지요? 유행이라는 것이 나타내는 놀음이예요, 나타내지 않는 놀음이예요?「나타내는 것입니다」 먼저 나타내는 놀음입니다. 유행이라는 것은 첨단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첨단에 나타나는 그곳에 우리가 찾고 있는 본연의 인연된 사랑의 터전이 있겠느냐 하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연의 사랑과 인연을 맺으려면 보이는 것과 짝짜꿍해야 되겠어요. 부딪쳐야 되겠어요? 그래서 도(道)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세상과 반대라는 것입니다. 반대여야 한다는 말이 세상 사람이 앉아서 먹으면 우리는 누워서 먹으라는 말이예요?「아닙니다」 앉아 먹으면 누워 먹는 것이 반댄가요? 세상 사람들이 입고 살면, 우리는 벗고 살라는 말이예요? 어떤 것이 반대입니까? 좋은 걸 먹으려고 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본질입니다.
세상 사람이 요구하는 것은 좋은 것을 먹으려고 하고, 좋은 것을 입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도(道)의 길을 가는 사람은 나쁜 것을 먹으려고 하는 것이 본질이 되어야 합니다. 반대입니다. 좋은 것을 못 먹고 좋은 것을 못 입고 못살더라도 본연의 인연을 찾아 영원히 나를 품어 줄수 있는 그 사랑을 찾아가는 것이 도인들의 생활목적이요, 생활방편입니다. 이렇게 가는 길이 다르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그걸 똑똑히 알아야합니다.
그렇게 보면 통일교회가 좋은 교회인지 나쁜 교회인지 대번에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본성, 타락성이 아닌 본성과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교회냐 아니냐 하는 것을 무엇을 보고 아느냐? 세상과 같이 해야 된다? 그래요? 무엇을 보고 알아요? 세상과 같아야 된다?「아닙니다」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얼마나 달라야되느냐? 백 퍼센트 달라야 합니다.
우리의 말도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게 될 때는 전격 다 자기에게 이익되게 하기 위해서 남을 속이려고 하지만, 우리는 상대에게 주기 위해서, 복받게 하기 위하여 말해야 합니다. 이렇게 전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예」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지요?「예」
동양과 서양을 보게 되면 동양은 사상적인 중심지대입니다. 동양은 종교 사상을 위주해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그렇지만 서양은 물질 사상을 중심삼고 출발했습니다. 물질 사상은 지식을 통해서, 지식이 가해지면 물질은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금(金)이 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벌써 보면 다 갖고 싶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은 가질 수 있지만 반대로 도(道)의 세계는 정신적인 지식이 가해지면 가해질수록 물질을 갖는 것이 아니라 물질 세계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에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나라를 이루고, 제일 못사는 나라로서 도의 사상으로 민족성이 엮어진 그 민족에게는 앞으로 한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도의 길을 깊이 가면 갈수록 외적인 것을 점점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외적인 것은 잃어버려야 됩니다. 100이상의 가치를 알았기에 100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비례되는 내적인 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동양 제국은 왜 못사느냐 하면 도의 길을 숭상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도의 길을 숭상하려면 외적인 것은 다 집어 던져 버려야 하는데, 집어 던지는 데에 영원히 집어 던져서는 안 되겠으니 서양 사람에게 보관하라고 준 것입니다. 이것을 주워 모아 놓은 것이 서양 문명입니다. 이 보따리가 두둑해서 우리의 도의 양과 비슷하게 될 때는 자리를 잡아 가지고 재차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질 세계에도 끝이 오고, 많은 가짜 종교에도 끝이 오는 것입니다. 사상에 있어서도 가짜 사상의 끝이 오면 참된 사상이 오는 것이요. 종교 사상에 있어서도 가짜 사상의 끝이 오면 참된 사상이 오는 것입니다. 또한 물질 세계의 끝이 오면 정신 세계, 본연의 세계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동양에서 못사는 것이 잘된 일이예요, 서양에서 잘사는 것이 잘된 일이예요? 동양에서 못사는 것이 잘됐지요?「예」 서양에서 잘사는 것이 잘된 거예요, 못된 거예요?「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이 갖다 준 종교는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만든 종교라는 거야. 알겠어요? 그러나 동양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숭상해 온 종교는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좀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타나는 곳에 참된 인연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나타나지 않는 곳에 비례적으로 참된 인연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삼천리 반도로 가는 데 있어서 찾아 나서야 할 것은 뭐냐? 보이지 않고 나타나지 않는 것을 찾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를 찾아가야 합니다. 참된 부모의 인연이 나타나지 않았고, 참된 형제의 인연이 나타나지 않았고, 참된 부부의 인연이 나타나지 않았고, 참된 종족과 참된 민족의 인연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참된 국가와 참된 세계의 인연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참된 천국의 인연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전부가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반대로 불의의 인연의 부모가 나타났고, 불의의 인연의 부부, 불의의 인연의 자녀, 불의의 인연의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다 나타났습니다. 즉, 불의의 인연의 지옥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지옥은 질서가 없습니다. 그래서 문명 제국이 되고, 문화의 세계가 놀랍다고 하지만, 질서를 찾을래야 찾을 수 없게끔 되어 있습니다. 한 곳에서 융기하면 다른 한 곳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크리만큼 눈 앞의 세계 정세가 비틀어져 나가는 것을 우리가 볼 때, 이때가 바로 마지막 때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이런 불의의 세계를 수습할 자가 누구냐 할 때, 하나님도 그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 불의의 세계를 수습하고 싶어하는 것이 누구일 것이냐 할 때, 하나님도 이 불의의 세계를 손대고 싶지도 않을 거라는 거예요. 수습하고 싶겠어요? 하나님이 수습하려면 벌써 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려온 것은 그냥 그대로 수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수습하려고 할 것이냐? 불의의 인연을 따라서 수습하려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인연을 따라서 수습하려고 하십니다. 본연의 인연이 뭐냐 하면 천지만물을 지은 그 인연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절대적인 사랑권내에서, 사랑의 화동의 인연으로 서로서로가 완성애로서 즐길 수 있고 찬양과 존경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본연의 인연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하늘의 인연과 땅의 인연이 몽땅 화합하여 하나로 조화되어 나타난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있고 보이는 몸뚱이가 있는 것입니다.
본래의 인연을 갖고 태어났다면 몸과 마음이 갈라져서 싸움을 하겠어요, 몽땅 하나 되었겠어요? 몽땅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신데, 기술이 있다면 최고의 기술이 있고 능치 못한 일이 없을 그런 하나님이 사람을 짓는 데에 있어서 마음의 목적과 몸뚱이의 목적이 달라 가지고 싸움하는 사람을 만들어 놓았겠어요 ?
여러분들을 보아도 속사람과 겉사람이 서로 싸우지요? 싸워요, 안 싸워요?「싸웁니다」 이 싸움이 언제 끝날 것 같아요? 한 십년쯤 지나면 끝날 것 같아요, 죽어도 안 끝날 것 같아요? 하나님이 인간을 이렇게 만들었다면 그 하나님은 하나의 목적을 가진 하나님이 아니고 두 목적을 가진 하나님이니, 그런 하나님은 혼돈된 하나님이라구요.
우주의 모든 법칙을 두고 볼 때, 전후좌우 엇갈림이 없이 질서정연하게 하나의 뚜렷한 목적성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걸 볼 때, 사람은 본래 이렇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뚱이를 집어던지고 본연의 마음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윤여사도 와 있구만. 참선하면서 마음이 무엇이냐, 마음이 무엇이냐를 생각하니까 마음이 없는 곳에 마음이 있고 법이 없는 곳에 법이 있다고 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근본을 찾아 들어가 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버지 어머니의 혈육을 받아 가지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의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된 상황에서 여러분이 태어났으면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었을 것인데,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의 몸과 마음이 싸워서 반대되고 갈라져 서로 엉키고 엇갈린 가운데에서 여러분이 태어났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 싸우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본연의 인연을 따라 난 거예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본연의 인연, 즉 천지의 인연을 다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참된 부모를 찾아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위대한 점이 이것을 밝혔다는 데에 있습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를 말합니다. 참된 인연을 통할 수 있는 부모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된 부모를 찾아야 하지요? 그렇잖아요? 그러니 찾지 않는 사람보다 나아요, 안 나아요? 만약에 찾았다 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좋을까요? 참부모를 찾아야 되고 참된 인연의 길을 다시 찾아가야 되고 참된 부부의 인연을 다시 찾아가야 됩니다.
옛날에는 도(道)의 길에서 시집 장가가는 것을 허락지 않았습니다. 왜냐? 부모가 아직까지 잔치하지 않았는데 종 새끼가 장가갈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시집 장가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종교이긴 종교인데, 믿다 보면 통일교회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것이 뭐냐? 합동결혼식입니다. 우리끼리는 뭐라구요?「축복입니다」 축복이라 그립니다. 참된 부부의 인연을 따라가 보자는 것입니다. 그 인연은 아침에 만나고 저녁에 만나도 좋을 수 있는 사랑의 인연입니다. 아침에 만나 가지고 인사할 때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숙였다가 '안녕하십니까' 하고 또 만나더라도 인사하며 몽땅 내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웃음) 몽땅 내 사랑이 된 다음에는 입을 헤헤 벌리면서 좋아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 땀흘리며 얘기하는데 여러분들이 좋아하니 내가 기분이 나쁩니다. (웃음) 몽땅 뭐라구요?「내 사랑요」
금순이면 금순이, 복순이면 복순이, 간난이면 간난이를 사랑한다 하게될 때, 그 사랑은 좋은 것입니다. 사랑이 어떻더냐 할 때, 두루뭉실합니다. 두루뭉실이라도 가만히 있는 두루뭉실을 원해요. 춤추는 두루뭉실을 원해요? 또는 날아가는 두루뭉실을 원해요, 춤추는 두루뭉실이를 원해요?「날아가는 두루뭉실요」 알긴 아는군요. 하여튼 사랑이라는 것은 제일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소원은 무엇이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도 지금까지 우리가 숱하게 부른 그 하나님은 쓸데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아들딸을 가져야 참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죄인들을 구해 주고, 누더기를 쓰고 다니는 사람을 구해 주는 하나님이었으니 의사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의사 팔자가 좋아요? 매일같이 만지는 것이라고는 무슨 병밖에 없습니다. 기분이 좋겠어요? 의사 좋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나는 의사 안되려고 합니다. 의사 노릇을 하다 보면 곪아터진 것도 째야 됩니다. 그걸 보고 밥을 어떻게 먹겠어요?(웃음)
하나님도 세계를 유람하면서 시를 읊고, 신선 놀음 하며 사는 사람을 원하지, 병을 고치는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의사노릇 하기를 좋아할까요? 하나님도 벙실벙실 웃기도 하고 서로서로 손을 맞잡고 '어허둥 내 사랑아…. 이렇게 살고 싶으실 게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그렇겠습니다」그것을 한번 보면 좋겠지요? 그 얼마나 좋겠어요? 생각만 해도 흐뭇하고 뭐 그 이상 좋은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부모는 어디 있느냐? 이 천지간의 참된 사랑의 모체는 누구며, 참된 모체로 말미암아 인연된 참된 부모는 어디 있으며, 참된 형제는 어디 있으며, 참된 가정은 어디에 있느냐 하는 물음에 대해서 '여보게 날보게. 그런 가정은 여기 있지' 하고 나서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었더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 땅 위에 통일교회가 '참된 가정은 이러이러한 가정이다' 하고 결론을 지어 보자는 것입니다. 참된 부모는 이러이러한 부모이며, 참된 형제는 이러이러한 형제이며, 참된 씨족, 참된 민족, 참된 국가, 참된 세계는 이러한 것이다. 그것을 제시해 놓고자 하는 것이 누구의 사명이라구요?「우리의 사명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이요, 통일교인들의 사명이더라는 거야. 통일교회 교인들의 이 사명은 통일교회 문 선생으로부터 가르침받은 사명이더라. 기분 나빠요?「좋습니다」
참된 부모의 말은 곧 자식들의 말이요, 참된 부모의 교육은 그 후대 후손 앞에 가르쳐 주는 교육입니다. 부모가 아는 것이나 자식이 아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목적이 둘이예요, 하나예요? 하나입니다. 몸뚱이가 바라보는 목적도 하나요, 마음이 바라보는 것도 몸뚱이의 목적과 똑같이 하나더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목적, 어머니의 목적이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목적도 하나요, 아들딸의 목적도 하나입니다. 아들딸의 목적이 엄마 아빠의 목적보다 낮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목적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은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친척, 이웃 동네의 목적도 우리집의 목적과 하나입니다. 또, 그 나라가 바라는 목적도 우리 집의 목적과 하나요, 세계가 바라는 목적도 우리 집의 목적과 하나입니다. 그런데 하나되었어요, 안 되었어요?「안 되었습니다」 세계가 바라는 목적과 우리 집의 목적이 같다면서 하나 안 됐어요? 하나됐어요, 안 됐어요?「안 되었습니다」 부모의 목적과 부부의 목적과 형제의 목적이 하나되면 그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의 목적이 하나가 되며, 그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의 목적이 하나가 되고, 그 민족의 목적을 중심삼고 국가의 목적이 하나가 되며, 그 국가의 목적을 중심삼고 세계의 목적이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몽땅 하나가 되었어요, 안 되었어요?「몽땅 하나되었습니다」이렇게 몽땅 하나가 되지 않고는 몽땅 사랑을 받을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중심삼고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남자를 중심하고 여자가 하나되어야 하며, 부모를 중심삼고는 자식이 하나되어야 하고, 자식을 중심삼고는 부모와 가정 전체가 몽땅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목적이 둘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의 목적도 하나요, 현대 사람의 목적도 하나요, 몇 만 년이 가더라도 그 시대 사람의 목적도 하나입니다. 그 목적은 변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러면 변하지 않는 목적이 무엇이냐? 밥은 변합니다. 그렇잖아요? 먹는 것은 변합니다. 서양 요리, 동양 요리, 그 중 일본 요리도 있고 천태만상으로 있지만 모두가 변한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 옛날 사람도 좋아하고, 지금 사람도 좋아하고, 미래 사람도 똑같이 좋아할 수 있는 그것이 뭐냐?「사랑입니다」 알기는 아누만. 사랑은 하나님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빈민굴에서 죽어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 사랑하는 아들을 데려오소' 하는 것은 왜 그러겠어요? 미워하는 아들이기 때문에?「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구요. 그렇지요?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 개인에 있어서나, 부처끼리나 가정에 있어서도 전부 다 그 사랑을 원합니다. 종족도 원하고 나라도 원하고 세계도 원하고 하나님도 그 사랑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 하면 '참된 사랑'입니다. 즉 참된 인연과 연결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서야 비로소 참된 인연을 따라 이루어지는 목적의 세계를 우리는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여기 갑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태어날 때에 본래의 참된 인연의 바탕에서 태어났으면 거기에는 참된 인연의 도수가 있을 것입니다. 10도 인연의 사랑 바탕에서 태어났느냐, 혹은 100도 인연의 사랑 바탕에서 태어났느냐? 만 명이면 만 명의 그 인연의 도수가 전부 다 같은 것이 아니라 높고 낮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100만한 부자로 살라는 팔자를 타고 태어난 사람이 있다고 할 때, 이 사람이 110만한 부자로 살다가 가게 되면, 태어날 때의 인연을 중심삼고 보아 장사 밑천 다 쓰고 빚지고 가는 것이 됩니다. 그렇지만 100만한 부자로 살도록 태어났는데 80만큼 쓰고 20만큼을 남겨 놓고 갔다고 할 때는 그는 땅 위에 무엇을 남기고 가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인연에도 한계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연이 전부 다 같지가 않아요. 사람이라는 면에는 다 같지만 태어나서 머무를 수 있는 기준이 전부 다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의 얼굴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은 둥그런 인연을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은 길쭉한 인연을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은 잘록한 인연을 갖고 있으니 천태만상이라는 것입니다. 얼굴 모양이 다른 것처럼 인연이 전부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난 본성의 인연, 곧 자기가 어떤 인연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사랑의 인연을 갖고 태어났지만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얼마나 받는가에 대해서 모릅니다. 누구나 나면서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아침 저녁 언제나 그 품에서 사랑받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인연에 따라서 많이 받는 사람도 있고 덜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있어서도 자기가 본래 태어날 때의 인연줄을 중심삼아 가지고 부모를 어떻게 사랑해야 되느냐 하는 사랑의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기준이 백만큼 된다면 그 부모를 위해서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90만큼 사랑하는 것이 좋겠어요, 백 이상 사랑하는 것이 좋겠어요? 「백 이상요」 백 이상 사랑하게 되면 그것은 하늘을 위해서 저축하는 것이 됩니다. 또, 부부지간에 있어서도 그 인연된 사랑은 백만큼 된 사랑인데, 한 천만큼 사랑했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몽땅 망해 없어지겠어요? 아내를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백만큼 사랑하라고 했는데 만약에 백 이상을 사랑한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빚지는 것이 되겠어요? 빚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쓰던가요, 달던가요? 여러분, 쓰던가요, 달던가요?(웃음) 여러분이 단 맛을 알려면 쓴 것을 먹어 봐야 진짜 단 맛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백만끔 사랑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천만큼의 사랑을 하려면 십 배 희생을 해야 됩니다. 하루에 한 번 섬기면 될 것을 열 배로 섬겨야 하니 편안하겠어요?
내가 우리 어머니께 들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애기를 많이 낳았습니다. 자그만치 열 고개를 넘고도 세 고개를 더 넘었으니 몇 사람 낳았어요?「열셋요」 열 세 명 낳았으니 예수의 일당파를 다 갖춘 셈입니다. 열두 제자와 예수까지 합하게 되면 열 세 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 세 명을 낳으셨는데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재미재미 해도 딴 재미는 없더라. 애기 낳아서 젖먹이고 키울 때의 그 이상 재미는 없더라. 늙어서 애기 못 낳으니 매사에 재미 없어 못 살겠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 수고하여 꺼칠해진 얼굴입니다. 갖은 풍상을 다 겪은 어머니의 얼굴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스러운 아기를 키우던 수고의 길이 좋더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렵고 희생을 동반하는 것이지만, 그 희생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하게 되면 희생이 되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희생이 거름이 되고 비료가 되는 것입니다. 또 자기의 살이 되고 뼈가 되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에게 '여보, 당신의 인연을 보게 되면 백만한 사랑의 인연을 갖고 있는데 나를 사랑할 때는 천만한 사랑을 하시오.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럴 때는 사랑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달라고 해서 주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진짜 사랑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자 시작이다' 이것이 아니라 자연히 나도 모르게 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오는지 가는지 소식도 없이 시작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명령에 의해서, 이제부터 시작한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 사랑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에게 '당신은 나에게 백만한, 천만한 사랑을 해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로 사랑한다면 백만큼의 사랑을 타고 났어도 백만한 사랑을 다하지 말고 십만큼만 사랑해도 나는 족합니다' 하게 되면 백만큼의 사랑을 하고도 더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상하지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주고 싶지 않고 달라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을 주는 데에 있어서 설치고 나돌아다니는 녀석들에게는 주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점잖게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있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찾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남몰래 살짝살짝 번식되는 것입니다. 부처끼리 사랑하는데 남이 보는 것이 좋아요? 사랑이라는 것은 남몰래 자연스럽게 강제도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랑을 중심삼고 나가는 데에 있어서 십만큼의 사랑의 인연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백, 천, 만만큼의 사랑을 했더라도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손해 나는 법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은 사랑과 다른 것입니다. 백만한 복을 받아 가지고 살 사람이 천만큼의 복을 받고 살겠다고 하다가는 벼락을 맞습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되지 못할 사람이 대통령 이상이 되겠다고 사기를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가서 한꺼번에 바라던 자리에 섰다가는 물벼락을 맞아 추방당하게 됩니다. 그럴 수 있지요?
복이 무엇이냐?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복이냐? 혹은 세상에 있어서 외적인 권세라든가 명예라든가 하는 그런 길을 찾아가는 것이 복이더냐? 외적인 복은 조금 잘못하여 그 도수를 넘기게 되면 모가지가 걸리지만, 사랑의 도수라는 것은 마음껏 올라가도 오케이입니다.
그러면 위대하시고도 절대적인 하나님, 몇억천만의 무한한 사랑의 도수를 가진 하나님을 내가 끌어당길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겠느냐 할 때, 그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복을 가지고는 아무리 하나님을 초대해도 오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몇천만 배의 희생을 하는 사랑을 가지고 '오 하나님' 할 때는 하나님이 척 다가와 '오냐, 내가 여기에 있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수가 있기 때문에 종교는 이러한 길을 찾아 수고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하나님과 심정이라는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심정은 역사를 지배하는 것이요, 죽었던 사망의 인간을 부활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몽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중심삼고 사랑을 끝까지 하는 데에는 하나님도 정복되고 마는 것입니다. 기분 좋아요? 자기가 생각하며 큰 사랑이라고 한 것보다 몇천만 배로 더 큰 사랑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가망성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딴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데에는 복이나 권세를 가지고는 절대 안 됩니다. 복이나 권세라는 것은 하나님의 법도권내에서 지배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인연은 어떤 것인가? 대통령이라면 그 나라에서는 제일 높은 분입니다. 그 대통령이 총각 시절에 제일 먼 곳 제주도의 서귀포에 놀러 갔다가 서귀포에서도 제일 못사는 집의 딸과 슬쩍 만나 사랑의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아가씨는 천년 만년 자기가 맺은 사랑의 인연을 잊을 수 없기에 밤이나 낮이나 정성들였습니다. 때를 맞아 그 총각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 여자가 정성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무엇을 타고 가야 되겠어요? 천천히 가는 것을 타고 가야 되겠어요? 배를 타고 가야 되겠지요? 뭘 타고 가야 되겠어요?「비 행기요」 하필이면 비행기예요? 빠른 것 중에도 세계에서 제일 빠른 것을 타고 가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 빠른 걸 타고 가는데 장관들 중에 누가'못 갑니다' 하고 막아 설 사람이 있어요? 사랑이 가는 길 앞에 그 누구도 막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이 주고받을 수 있는 줄을 갖추어 가지고 줄을 타고 가는데 막을 자가 있겠어요? 이것은 직통입니다. 직통, 인사하고 무엇이고 할 것 없이 무사통과라는 것입니다. 그 길에서 사탄이가 이러고 저러고 하겠어요? 사탄이가 말한다 하더라도 얼마나 빠른지. 사탄의 말을 듣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몽땅 점령 하고도 남을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조화통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에게만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길을 찾아가려면 희생봉사를 해야 됩니다. 기분 좋아요? 「예」희생봉사가 없으면 십만큼의 사랑의 인연을 갖고 온 사람은 백, 천, 만의 인연의 길을 갈래야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선조가 나쁘다면 십만큼의 사랑도 못 갖고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만큼의 사랑의 인연을 갖고 온 사람도 백, 천, 만의 사랑의 인연을 차지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런 길을 한번 가 보고 싶지 않으냐는 거야. 가고 싶어요?「예」 통일교회 문 선생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욕을 먹고 별의별. 수모를 당하고 감옥에 들어가 죽을 고통을 당하면서도 지금까지 참아 나온 것입니다. 또, 그러기에 내가 민족을 위하고 사랑하는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희생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도 이만큼 사랑을 했으면 됐다 하고 가다가도 나보다 희생과 사랑의 도수가 높은 사람이 있으면 나는 더한 희생과 사랑 즉, 천배 만배 희생하고 사랑해야 한다면 나는 그 길을 가겠다고 합니다. 욕심 많지요? 그러한 내가 되어야만 하나님이 사랑을 퍼부을 수 있는 것이니, 그러한 사랑은 누구로부터? 세상 사람이 보기 싫어하는 문 선생으로부터 사랑을 몽땅 퍼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나면서부터 고생으로 태어났고, 가면서도 고생을 하며 가고, 살면서도 고생을 하며 살고, 일하면서도 고생을 하면서 일합니다. 왜? 하나님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본연의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참부모의 사랑을 묶어 놓고, 참부부의 사랑을 묶어 놓고, 참형제의 사랑을 묶어 놓고, 참가정의 사랑을 묶어 놓고, 참종족, 참민족, 참국가, 참세계의 사랑을 묶어 놓을 때까지 가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한 줄에 주욱 꿰어서 꼭대기에서 그것을 잡아당기면 쭉 따라오고 아래에서 잡아당겨도 주욱 끌려오고, 끌려가고 끌려올 수 있는 사랑, 고무줄과 같이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 하는 사랑을 찾자는 것입니다.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긍휼히 더 사무치고 또한 만나면 만날수록 폭파될 만큼 강한 불이 붙을 것이 아니겠어요? 고무줄을 잡아당기면 잡아당길수록 더욱 팽팽해지는데 그것을 놓으면 거세게 부딪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딪치게 되면 사랑 벼락을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 벼락을 맞고 죽으면 한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생애 최고의 사랑 벼락을 맞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할 때, 그게 근사한 대답입니까, 근사하지 않은 대답입니까?「근사한 대답입니다」그래요. 근사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하자,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된 것을 알았으면 인류를 위해서 희생하자는 것입니다. 인류를 몽땅 자기 주머니 안에 집어 넣기 위해서 희생했다고 할 때는 하나님의 사랑이 관계맺어요. 안 맺어요? 몽땅 사랑이 씌워지겠어요, 안 씌워지겠어요? 씌우게 되면 그 사랑 안에 인류가 있어요, 없어요? 몽땅 들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좋아해요, 안 해요?「좋아합니다」안 좋아하는 사람은 쌍것입니다. 쌍것. (웃음) 안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말을 들어도 가당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원칙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도 선생님을 다 좋아하지요?「예」 통일교회에 와서 말씀을 들으면 선생님을 다 좋아하게 됩니다. 미국 사람, 독일 사람, 껌둥이, 시퍼런 사람, 알록달록한 사람. 다 좋아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좋아요, 아니면 여러분이 생각하듯이 그저 무미건조하게 그럭저럭 사는 것이 좋아요? 이렇게 사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참된 인연과 우리의 사명의 멋진 골수를 알았습니다. 한번 가 볼 거예요?「예」 진짜 가 볼래요?「예」가는데는 꼭꼭 싸매고 갈래요, 간판을 붙이고 갈래요?
옛날에 통일교인들이 전도를 나갔다가 어디서 왔소? 하고 물으면 ‘어디서 오긴 어디서 와요? 지나가다가 물 좀 얻어 먹으러 왔지요'(웃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거 기분 좋아요, 나빠요?「나쁩니다」 이제는 가슴을 헤치고 가자는 겁니다. 여러분들을 보게 되면 얼굴은 처녀 같은데 시집을 간 것 같거든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시집 갔는지 안 갔는지 물을 겁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러분들, 처녀가 좋아요, 색시가 좋아요?「처녀요」(웃음) 그러면 편리한 대로 하세요. (웃음) 아직까지 처녀들이 많으니까요. 그렇지요? 777쌍이 더 많으니까 처녀들이 더 많지요?
그러니까 모두 처녀라 해도 사탄한테 참소 안 받습니다. 777가정을 중심으로 대답한 거니까 말이예요. (웃음) 그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가슴을 펴고 얼굴을 펴고 갈 수 있습니다. 이 나라 이 백성을 목사보다 더 사랑하게 될 때에는 우리는 망하지 않고 그들이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을 남길까요? 하나님을 몽땅 사랑하겠다는 사람을 남기겠어요, 덜 사랑하겠다는 사람을 남기겠어요? 두 사람 중에서 한사람을 남긴다면 누굴 남기겠어요? 남기는 데는 몽땅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기 때문에 목사가 우리보다 먼저 죽는다는 말이 맞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기 때문입니다.
동네방네에 쓰윽 가 보면 반장이 있습니다. 그 반장을 찾아가서 '당신이 반장이오? 하고 물어 보면 '예, 내가 반장이오' 할 것입니다. 자기가 반장이 맞다고 하더라도 진짜반장이냐고 몇 번 더 묻게 되면 벌써 한대 맞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진짜 반장은 이 세상에 없는 것 같은데' 하면‘왜 진짜 반장이 없소. 사람을 세워 놓고 그렇게 무시해도 돼요?’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럼 내 말 좀 들어봐요. 진짜 반장은 이렇게 이렇게 해야 되는 거요. 그런데 당신이 그렇게 했오?' 하고 물어 보십시오. 듣느니 처음 듣는 말일 것입니다. 진짜 반장이라면 자기 아들딸보다 동네를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새벽이고 밤이고 쫓아다니게 되면 그 동네에서 쫓아내겠어요, 좋아하겠어요?「좋아합니다」
밤낮없이 미친 듯이 동네방네를 다니면서 동네에 불편한 점이 없느냐고 소리친다고 법에 걸려요? 무사통과라는 것입니다. 걸릴 법이 없다는 거예요. 이 불의의 인연을 따라서 엉키어진 세상의 법에 걸릴 것이냐? 안걸린다는 것입니다. 자연 해방권을 가질 수 있는 자유스러운 천국의 무대는 그러한 자리에서 벌어질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타당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친 듯이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미치는 데에는 대낮에만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이든지 언제든지, 동네를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하는 부모 형제 처자보다도 더 동네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울면서 그 동네를 자기의 소원무대로 생각하고 땀을 흘리라는 것입니다. 땀을 흘리는 것도 고맙고, 욕을 먹는 것도 고맙고, 놀림을 받는 것도 고마운 것입니다. 이것이 내 사랑의 도수를 입체적으로 갖추기 위한 하나의 조화법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일년이 지나고 삼 년만 지나게 되면 그 동네는 그 사람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지법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3년 동안 그런 놀음을 하려고 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고,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미욱하고 무식하고 철부지하고 잠만 쿨쿨 자는 제자들이 못먹었다고 투덜거리면 '배고프지?' 하고, 찬방에 누웠으면 '춥지? 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던 것입니다. 나는 춥더라도 추워하는 사람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으로부터 역사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문화의 세계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주어 이 동네의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 불을 붙여 놓을 수 있는 기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길은 사랑하고 싶어서 허덕이며 희생하고 가는 길입니다. 피눈물이 떨어지는 그 발자국 뒤에는 반드시 희망의 꽃이 필 것이요, 행복의 콧노래가 울려 나을 것입니다. 알겠어요? 필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참다운 사랑의 인연을 따라서 삼천만 민족을 위해 가야 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은 한입니다. 혈기 방장한 꽃다운 청춘 시대에, 내 인생의 최고의 정상시대에 온갖 정성을 다하여 천상천하의 그 무엇이 점령한다 해도 내 사랑을 막을 수 없으리만큼 사랑했다 하는 입장에 섰으면 행복한 청년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춘 시대에 나라를 붙안고, 세계를 붙안고 자기 생명을 거기에 투입하고 희생하며 그 길을 기꺼이 달려가겠다고 하는 그런 사람 뒤에는 사망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양손 양팔을 벌리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했습니다. 장가도 가 보지 못한 30세의 더벅머리 총각이 민족의 반역자로 몰리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까지 부정당하고, 자기의 교회와 종족과 민족과 나라에게까지 반대받는 고독단신으로 그 길을 갔지만 그들이 쏘는 화살에 맞은 것이 아니며, 그들이 원망하는 시련에 감겨들어 가지고 탄식하는 사나이로 갔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원망하는 자리에 있어서도 예수님은 '내가 하고 싶었던 사랑을 하지 못한 한을 땅 위의 후손 앞에 남기고 가니, 후손이나 기독교 신도들이 이 사랑을 해달라'고 하는 하나님 앞에 기도의 심정을 남기고 갔기 때문에 기독교는 그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서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어요? 몽땅 그 수중에 점령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원수를 위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만이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받을 수 있는 인연을 통할 수 있고, 거기에서 비로소 우리가 찾고 있는 인연 중에 우리의 사명의 닻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리가 하나님의 터전이 될 것이고, 참부모의 소원의 터전이될 것이고, 참부부의 소원의 터전이 될 것이고, 참민족의 소원의 터전이 될 것이고, 참세계의 소원의 터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제 여러분의 행동적인 면에. 행동하는 면에 나타날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어떤 사람을 보더라도 그 사람을 평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랑을 받아 왔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받아 온 사랑보다도 더 큰 사랑을 해주게 되면 그 사람은 여러분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혹은 아낙네를 보게 될 때, 남편에게 받아 온 사랑 이상의 사랑을 여러분이 할 때는 그 아낙네는 자기의 남편을 버리고 여러분을 따라오게 됩니다. 또 부모나 형제간에 있어서 사랑을 얼마나 받았느냐 할 때, 부모 형제 앞에 사랑받던 그 이상의 사랑을 여러분이 할때는 그들은 여러분과 몽땅 하나가 됩니다. 알겠어요? 마을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나 그 마을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 칭찬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보다 몇 배 이상으로 여러분이 마을을 사랑할 때는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이 칭찬하던 사람을 집어던지고 여러분의 품에 오지 말라고 해도 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과거에 민족을 사랑하던 선지선열이나 애국자들 중에 이순신 장군이 민족을 사랑했다고 하지만 이순신 장군 이상의 사랑을 가지고 삼천만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나오게 될 때는 삼천만 민족은 이순신 장군을 뒤에 두고 그 사람을 따라갈 것입니다. 또. 세계의 성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을 위해 복을 빌고 원수를 위해 복을 비는 크나큰 사랑을 가졌지만, 그 사랑 이상의 사랑을 했다는 어떤 한 분이 나오면 기독교 신자들도 예수의 사랑을 버리고 이제 최후에 나타난 그 한 사람의 사랑을 찾아서 총동원되어 이동할 것입니다. 알겠어요?
오늘날 통일교회 문 선생에 대해서 왜 윤 보살이 증거하고 불교인들이 증거하게 되느냐? 석가모니가 자신이 이 땅 위에 와서 억조창생을 사랑했던 그 몇백 배의 사랑을 했다고 할 때는 석가모니 자신도 따라가야 되고 무릎을 꿇는 것이 천리 원칙이기에 영계에 있는 석가모니도 통일교회의 문 선생에 대해서 윤 보살과 같은 사람을 안 보내면 천법에 걸리는 것입니다. (웃음) 알겠어요? 윤 보살뿐만 아니라, 세계 영통인들 모두 선생님에게 걸렸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걸어 넣느냐? 몽땅 사랑으로 걸어 넣었다는 것입니다. 기분 나빠요, 좋아요?「좋아요」
새까만 것도 흰 곳에 들어가면 까만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한 도가니 속에 들어가면 새까만 것도 시퍼렇고, 노란 것도 시퍼래지고, 빨간 것도 시퍼래지며, 하얀 것도 시퍼래지는 것입니다. 도가니, 펄펄 끓는 사랑의 도가니에 들어가게 되면 다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몽땅 사랑을 퍼부어 주어야 합니다. 서슴지 말고 퍼부어야 합니다. 자신 혼자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이것을 위해 희생시키고, 자녀 색시, 전체 친척들까지도 희생시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것뿐만 아니라 나라까지 세계를 사랑하는 데 희생시킨다면 그 나라는 세계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데 하나님도 지금까지의 복귀섭리 노정에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제일 가까운 사람을 전부 다 희생시키고 죽이지 않았어요?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가 이렇게 나가면 인류 역사상에 없는 최대 사랑의 등대불을 들고 나갈 것입니다. 만인이 그 등대불을 아무리 싫다고 하더라도 불이 반짝하게 되면 그들은 눈을 감았다가도 뜨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세계는 한 곳으로 안 모일래야 안 모일 수가 없습니다. 세계의 역사 상에 없는 기원을 만들어 놓게 되면 세계의 인류는 이 사랑의 인연의 곳을 향하여 찾아 넘어가게 됩니다.
여자가 시집을 가려고 남자를 고르는 데에 있어서 두 남자 가운데 한사람은 얼굴이 잘나고 한 남자는 얼굴이 못났다고 할 때, 그 여자는 얼굴이 반반하게 잘 생긴 사람도 좋긴 하지만 얼굴이 좀 못나고 무뚝뚝하더라도 불 같은 사랑이 펄펄 끓는다면 '이쁜 남자 그만두고 이 남자를 맞이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어디 여러분 대답해 봐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안 그런 여자는 죽어요, 죽어. 이렇게 사랑이 좋더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좋은 것이냐? 남편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뭐가 좋은 거야? 「사랑요」부모가 좋아요? 어머니 아버지 간판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뭐가 좋아요?「사랑요」 부모의 사랑이 좋은 것입니다. 형제가 좋으냐? 아닙니다. 형제의 사랑이 좋은 것입니다. 백성이 좋으냐? 아닙니다. 백성의 사랑이 좋습니다. 주권자가 좋은 것이 아니라 주권자의 사랑이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뭐가 좋아요? 하나님이 좋은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 좋은 것입니다.
몽땅 사랑으로 맺어진 인연을 따라 태어나 가지고 그 사랑권내에서 세계를 위하고 국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품 속에 한꺼번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곳이 지옥이예요, 천국이예요?「천국입니다」 천국가지 말라고 해도 천국으로 갑니다. 아무리 자기가 안 가겠다고 해도 하나님이 버티고 천국 보냅니다. 자기가 가겠다고 해서 천국갈 수 있어요? 못 갑니다. 여러분은 이제 천국 가는 길을 알았지요?「예」 이것을 알고 그 길을 위해서 가자구요. 갔다고 할 때는 대한민국도 머리를 숙이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변명을 안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보고 '이놈의 자식들아, 너희들이 뚱뚱이 돼지같이 자란 것은 내가 젖을 잘 먹이고 그저 밤낮없이 잘 품어 주고 길러 주었기 때문이다. 이놈들아 그것을 아느냐? 이렇게 말하는 부모가 있어요? 부모라면 그저 말없이더 해주고 싶어하고, 또 자기가 수고했더라도 기억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인은 변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통일교회 신자들은 '내가 찾아왔는데 선생님은 왜 나를 몰라 줘요? 라고 하는데 그런 수작 하면 안 됩니다. 내가 몰라 주더라도 하나님은 알아 줍니다. 불평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이런가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평하기 전에 먼저 자기가 할 것을 다해야 합니다. 자신이 해야 할, 퍼부어야 할 몽땅 사랑의 끝이 어디더냐? 한번 바라보라는 거예요.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아야 하겠어요. 알겠어요?「예」
이 모든 은혜를 한꺼번에 받아서 내가 이 길을 가게 되면 전체가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한 참된 사랑, 이것 외에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 길을 가고 나면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내가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는 길이 비록 험하더라도 험하면 험할수록 수고와 비례적인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것입니다. 뜻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간다면 행복의 문은 널리 열릴 것이요, 탄식의 구름은 사리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알고 이번에 가게 되면, 부디 이 팔도강산을 자기의 활동무대로 삼길 바랍니다. 한 곳에만 있어서도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빨리빨리 거쳐서 한 도(道), 두 도(道) 서너 도(道)쯤은, 내가 거쳐가야지'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렇게 있는 힘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의 몽땅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몽땅 사랑으로 모든 것을 품을 수 있게 되면 여러분은 성공하지 말라고 해도 틀림없이 여러분은 통일교회에서 참부모의 인연을 알았으며, 우리 앞에 있는 참된 하나님, 그리고 참된 부모, 참된 가정, 참된 남편과 자식, 참된 종족과 참된 민족을 찾아 나선 참된 환경을 여러분은 가졌습니다. 그 환경을 바라보게 될 때, 역사적으로 우리보다 더 멋진 터전을 가진 무리가 세상에 또 어디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국가를 덧붙여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할 때 희망에 벅찬 걸음으로 여러분이 나아가기를 바라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몽땅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 주기를 부탁하면서 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서 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감당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이 여러분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사랑하는 아버님, 당신의 사랑하는 딸들이 분부하신 말씀을 통하여 맡은 소임을 다하기 위해 내일이면 헤어지게 되겠사오니 그들이 가는 곳곳마다 당신의 자비와 사랑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지방의 어떤 한 마을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인연이 있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 이들이 흘리는 눈물 가닥에 당신의 하소연이 흘러들게 하시옵고, 이들이 흘리는 피땀 위에 당신의 수고의 길이 뻗쳐지게 하시옵소서.
저희가 해방의 기수가 되어 당신이 해방을 받으시고 당신을 평탄한 자리에 모시어 효성의 도리를 다하고 충신의 도리를 다하고 싶은 마음 간절 하오니, 그럴 수 있는 자리에 남아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우리는 그와 같은 입장에서 가나 오나 언제든지 당신을 모실 수 있고 하늘의 인연을 따라 세울 수 있는 거룩한 터전을 우리에게 부여하신 것을 진실로 감사를 드리옵니다.
그간 며칠 동안 당신이 저희들을 보호하여 주시고 사랑으로 길러 주신 당신의 모든 말씀들을 뼛골에 깊이 새겨 영원히 영원히 잊지 않기를 저희는 마음으로 다짐하옵니다. 저희는 이제 그 말씀들을 되살려 저희들이 갈길을 확실히 알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직행하겠다고 결심을 하는 이 자리오니 아버지께서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내일의 나라와 내일의 세계와 내일의 천국을 참된 인연을 통하여 성사시키는 사랑의 길을 개척하는 사랑의 군대요, 사랑의 정병인 것을 자인해야 되겠사옵니다.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저희들이 맹세의 실체가 되어서 아버지의 완전한 제물로 몽땅 바쳐지기를 바라는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금년을 맡으시옵고 내년도 맡으시어서 저희들과 연결된 당신의 아들딸들을 지켜 주시옵고, 그 자녀들도 지켜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다시 만날 때까지 당신이 고이고이 품어 길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5월을 맞이하여 네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 당신의 자비와 사랑이 여기 모인 자녀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언제나 당신 앞에 부족한 자신들인 것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있는 정성과 있는 힘을 다하여 당신이 염려하시는 부족한 아들딸의 입장을 극복하려 하고 있사오니, 이런 당신의 자녀들 위에 무한하신 사랑과 은총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침, 아버지 앞에 부복한 저희들을 넓고 깊게 살피시옵소서. 저희들이 당신의 소원하시는 뜻을 전세계에 확장할 수 있도록 저희들의 마음 길이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총의 힘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여기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이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온유겸손한 생축의 제물로 바쳐질 수 있는 자신들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 시간 깨달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각자의 사정과 처지는 다를지라도 당신이 원하시는 곳을 향해서 매일같이 싸우고 매일같이 노력하며 전진하는 자신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자 하오니, 아버지, 저희들을 지키시어서 그럴 수 있게 하여 주시옵 고, 당신이 소원하시는 곳까지 참고 견디어 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을 향하여 마음을 조아리고 있사옵고,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한국 땅을 위하여 정성들이고 있사오니, 그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그들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싸우기보다도 그들이 처해 있는 나라와,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와, 그들이 바라는 하늘나라를 위해서 온갖 충성과 정성을 다하기를 바라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이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외국에 나가 선교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그들은 당신이 살아 계신 것을 증거하여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저희들과 같이 계신 것을 인정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흩어진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인간들의 마음이 다 다르고 역사적 배경이 다를지라도, 아버지께서 소망하시는 선의 목적과 사랑의 세계를 향하여 가고자 하는 마음은 일치될 것으로 알고 있사오니, 직접 체휼케 하시사 각 개체가 한 곳으로 모일 수 있게, 아버지, 역사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랜 기간을 섭리해 나오신 아버지여, 인류를 버리는 것이 당신의 뜻이 아닌 것을 아오니, 이들을 고이 품으시사 영광의 한때와 영광의 한 곳을 맞이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해방된 자유의 천국으로 이 인류를 이끌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여기에 부복한 자녀들은 하늘땅을 대신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3시대와 3세계를 대신한 자리에서 생축의 제물로 아버지 앞에 겸손히 바쳐지는 모습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직시하시는 그 앞에 선 내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태도가 어떠한가를 다시 한 번 발견하고, 아버지가 원하시는 소원의 실체가 어떠한 것인가를 스스로 깨달아서,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귀결시키고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뜻에 보조를 맞춰 드리는 참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5월을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달을 중심삼고 당신이 경륜하시는 뜻 앞에 있어서 1971년도가 자랑의 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해가 당신의 수많은 자녀들에게 있어서 원망의 해가 아니라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돌려드릴 수 있는 기쁨의 해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아버지의 사랑이 여기에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생명의 힘이 저희 자신들에게 모아져서, 그 누구도 제압할 수 없는 내적인 충동을 일으켜 격동하면서 새로운 하늘의 영광된 실체를 불러일으켜 낼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만으로 기뻐하고 자신만으로 만족하는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깊고 높으신 당신의 뜻과 더불어 생명의 인연을 갖춰야만 되겠사옵니다. 그래야만 오늘 이 땅 위에 있어서 당신이 맡기신 싸움터를 지키고 당신이 원하시는 새로운 나라를 창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오니,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능력이 저희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가정을 뒤에 두고 외로이 나가 싸우고 있는 어린 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정성들이고 활동하는 그 무대를 통해 당신을 대신하여 증거하고 당신의 모든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대역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이 고심하시는 내용이 무엇이며 당신이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증거하고도 남을 수 있는 거국적인 딸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당신이 기억하시고 동정하시고 은사를 베푸시는 자리에 서서 뭇사람을 대할 때마다 당신이 살아 계신 것을 증거해야 되겠습니다.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당신의 힘이 그들을 통하여 무한히 뻗어 나가 엉클어진 모든 인연을 그들을 중심삼고 푸시옵고, 당신의 사연과 더불어 동고동락할 수 있는 민족적 거동이 이 시대에 나타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정성을 들이고 그들이 싸우는 일체가 이민족의 내일을 새로이 기약할 수 있는 동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생명을 일깨워 불러일으킬 수 있는 거룩한 계기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일본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어제를 기해 모든 행사를 마치고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맹세하고 결의를 하고 있사오니, 그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일본 민족 가운데 통일의 기치 아래 선 젊은이들이 일본 민족을 다시 한번 격동시키고 자극시켜야 할 때가된 줄 아옵니다. 어려운 아시아 정세 하에서 당신의 모든 슬픔을 대신하여 통일의 깃발을 들고 나서는 그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로부터도 동정받을 수 없는 외로운 자리에 있는 그들을, 아버지,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당신만이 지키시고 당신만이 보호하시고 당신만이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번 일주일 기간을 통하여 당신이 친히 그들 각자의 내심에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생명의 인연을 부여하여 주시옵고, 부활의 은사를 다시 한 번 체득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나라가 인정해 주지 않고, 나라가 가야 할 길을 알지 못하는 어려운 시대이옵니다. 당신이 가야 할 길은 좁고 험한 길이요, 그 누구도 가기를 원치 않는 태산준령의 길일지라도, 그들은 생명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그 길을 가고 있사오니, 그들이 당신 앞에 호소하는 것이 일본 민족을 규합시키고 아시아의 모든 어려운 정세를 제거시킬 수 있는 것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시대에 나아가야 할 방향과 아시아 민족이 결속할 수 있는 새로운 동기와 원천을 당신께서 부여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일본 역사상에 왔다 간 수많은 선조들이 이번 아시아 승공대회를 계기로 땅 위에 임할 수 있도록 특권적인 혜택을 내리시옵고, 선의 선조를 선의 후손과 연결시키시어 새로운 방향에서 협조할 수 있도록 당신께서 각별한 은사를 베풀어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기간을 통하여 일본의 인사들의 마음 마음에 생명이 약동할 수 있는 감동과 감격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이 시대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암해 (暗海)에 새로운 등대의 사명을 하고도 남음이 있는 이 기간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온 세계가 주목해야 할 이 기간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이들이 계획하는 전체를 맡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아들은 오늘 먼 곳을 향하여 떠나오니 그 길 위에도 친히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생명길을 세계 앞에 제시하고 새로운 시대의 역사적인 모든 재료를 제시할 수 있는 이번 순회노정 위에 당신의 각별한 은사가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인류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수많은 사망권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해방의 도상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당신의 협조가 없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부디 저희가 머무는 곳곳마다 가는 곳곳마다 당신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영광의 천국에 가일보 전진할 수 있는 특별한 은사를 부여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당신이 맡아 주시옵소서. 이제 여기에 있는 마음과 몸은 나 스스로의 마음과 몸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비로우신 아버님 앞에, 무한한 사랑이신 아버님 앞에. 생명의 원천이신 아버님 앞에, 능력의 본원으로 계신 아버님 앞에 일체를 맡기고 일체를 의탁하고 일체를 봉헌하는 거룩한 이 날이 아침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하늘과 땅, 온 인류가 하나되어서 당신 앞에 부활의 해방을 받을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을 찾아 나가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불행한 길을 찾아 나가는 데는 어떠한 주의나 특별한 교훈이 필요 없습니다. 불행한 길은 우리가 노력을 하지 않고도 언제나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불행을 제거하고 행복으로 가기 위해서는 가져오고자 하는 그 행복의 크기만큼의 내적인 희생의 대가 혹은 참고 견디는 어떤 제물적인 조건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행복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지기를 바라게 될 때, 자연히 나아지는 일은 있을수 없는 것입니다. 어제보다도 오늘이 낫기 위해서는 어제보다도 오늘에 있어 보다 큰 노력, 보다 큰 희생, 보다 큰 십자가의 노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오늘에 있어 어제보다 나은 행복의 여건을 가져올 수 없는 것입니다.
한 개인에 있어서도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 가정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어떤 가정이 불행한 자리에서 행복한 자리로 나가기 위해서는 그 가정을 책임진 아버지면 아버지 혼자 노력해도 될는지 모르지만, 아버지 한 사람이 노력하는 것보다도 어머니와 자녀까지 그 가정 전체가 일체가 되어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행복의 요건과 행복의 내용을 보다 더 빠른 시일내에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노력하는 것보다도 가족전체가 노력하면 그 가정의 행복의 터전을 더 빨리 마련할 수 있고, 한 사람이 수고해 가지고 이룩한 가정의 터전보다 여러 사람이 노력해서 갖춘 행복의 터전이 오랜 시대를 거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수고하여 갖춘 행복보다도 많은 사람이 수고하여 갖춘 행복은 시간에 있어서나, 정도에 있어서나, 높이에 있어서나, 깊이에 있어서나, 혹은 넓이에 있어서 그 가치가 더 큰 것입니다.
한 가정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도 그러합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소망의 나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민 전체가 현재의 불행한 입장을 극복하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싸움이 물론 거국적인 것이지만, 그 싸움은 그 나라의 어떤 단체면 단체에도 걸려 있는 것이요, 가정에도 걸려 있는 것이요, 개인에게도 걸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국민 전체가 하나되어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불행한 환경을 타파하기 위해서 몸부림치지 않고는 행복한 나라로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중심삼고 생각해 볼 때, 더우기 하나님이 30억 인류를 중심삼고 구원섭리를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두고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일개국에 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민족과 국가 전체를 중심삼고 복귀섭리를 하고 계시는데, 이 복귀섭리가 진전되어 그 결과의 세계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현재 하나님을 믿고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과거보다도 현재에 더 일체가 되고 단결하여 어떠한 수난길도 감수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세계적인 움직임이 없어 가지고는 세계의 행복은 점점 가까와 오는 것이 아니라 점점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세기말에 처해 있는 현세계를 우리가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섭리해 나오시지만 과연 앞으로 보다 행복할 수 있는 천국이념이 이지상에 접근해 올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현재 세계 인류는 하늘을 망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하나님이 죽었다고 하는 입장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이 죽었다는 것을 시인하는 무리가 점점 많아지고, 하나님이 없다는 주장을 인정하는 환경의 터전이 넓어지고 있는데, 그런 현재의 세계와 대립된 입장에서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고 주장할 수 있는 하늘편 사람들은 얼마나 되느냐를 우리가 생각해 볼 때, 하늘을 위해서, 하늘을 대신해서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적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반대하는 무리는 많아도 하늘편에 서는 사람들의 수는 지극히 적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30억 인류 가운데 하늘편 사람의 수가 10분의 1이 될 수 있겠느냐, 혹은 100분의 1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깊이 따지고 들때, 하늘이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고 나가는 길 앞에 있어서 지상의 신도면 신도, 하늘을 따르고 있는 교단이면 교단이 과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최고의 기준에 일치될 수 있느냐? 그 기준에 일치될 수 있는 한 개인이 어디에 있으며, 한 가정이 어디 있으며, 한 종족이 어디 있으며, 한 민족과 국가가 어디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이것은 심히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30억 인류가 현재의 이 불행의 여건을 완전히 타파하기 위해서는, 안팎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여건을 반드시 제시하여 가지고 그것을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보다 행복된 것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인류는 현재의 불행한 환경과 그 내용에 오히려 접근하고 거기에 흡수되는 상황에 있습니다. 이런 현시대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행복의 터전에는 얼마나 어려운 관문들이 가로막혀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이 길을 돌파하고 이 과정을 개척해야 할 사명을 짊어진 어떤 특정한 개인이 있다면 이 개인은 어떤 결심을 해야될 것이냐, 또 그러한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어떤 결심을 해야 될 것이냐, 혹은 그런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어떠한 결심을 해야 될 것이냐, 그런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어떤 결심을 해야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의 사회면 사회가 하나님께서 전체적으로 염려하실 수 있는 사회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회는 사탄을 동기로 해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타락된 세상이요, 인류역사와 더불어 슬픔이 기원이 되어 지금까지 슬픔의 역사를 엮어 왔습니다. 그런데 슬픔의 역사가 끝을 바라보는 이때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사회 전체를 소화하실 수 있는 환경으로 볼 수 있느냐 할 때, 그냥 그대로는 소화하실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반드시 가리든가 해부하든가 해서 해결짓지 않고서는 새로운 그 무엇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 뜻적인 입장에서의 견해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세상은 끝날에 타락으로 말미암은 결실을 거두게 되기 때문에, 끝날, 그 결실을 거둘 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는 세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이 가까이 다가오는 세계가 되는 것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세계에서 하늘의 행복의 곳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이 사회와 호흡을 같이하고 이 사회와 보조를 맞춰 가지고 그가 찾고자 하는 하늘의 행복의 곳을 찾을 수 있겠어요?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일체가 용인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회 환경에 전면적으로 도전하여 그 환경을 타개할 뿐만이 아니라 그 환경을 극복해서 하나의 어떤 모체적인 활동 기반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불행의 세계에서 행복의 길을 개척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오늘 이 시대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지극히 절박한 입장이요, 지극히 위험한 입장이요, 생사를 판결짓지 않으면 안 될 절정에 서 있는 입장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세계와 손을 잡고서 행복의 천국에 갈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곳을 향하여 전진하는 하늘의 사람이 있다 할 때에, 그 사람 개인 개인들이 환영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있느냐? 개인이 전부 다 환영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할 것입니다.
또, 수많은 가정이 있으면 그 가정들이 그 개인이 가는 길을 환영할 수 있겠느냐? 가정도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종족도 그러하고 민족도 그러하고 수많은 국가들도 그러할 것이 아니겠느냐?
이 사망권내에 있는 전체가 나와 더불어 호흡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반목 질시하는 요건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뚫고 나가느냐? 고립된 입장이라면 지극히 고립된 입장이요, 외로운 입장이라면 지극히 외로운 입장인데, 그런 입장에서 이것을 어떻게 뚫고 나가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뚫고 나가느냐, 아니면 비약해서 나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방향을 반대로 해서 나가느냐 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생각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겠어요?
이것은 오늘 우리 시대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고로 역사시대를 거쳐 오면서 어느 때에든지 문제가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시대가 되기 전 국가적인 시대에 있어서도 국가를 중심삼고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늘의 참된 행복을 찾아 나가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국민이면 국민 전체가 그가 가는 길을 막고, 민족이면 민족 전체, 종족이면 종족 전체, 가정이면 가정 전체가 그가 가는 길을 막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피어린 투쟁을 거쳐야 하고, 그것을 초월한 자리에서 타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길을 가야 하느냐? 그것을 버리고 되돌아가야 합니다. 그 길밖에는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타락한 결과의 세계요, 타락한 결과가 인연됨으로 말미암아 엉클어진 국가와 사회이기 때문에 하늘로 가는 길을 환영하고 옹호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 세계에서는 그 자체가 반발이요. 그 내용이 반발입니다. 이처럼 하늘길을 가려는 일체를 옹호하지 않는 반대적인 입장, 대립된 상태가 됨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행복를 찾아 나가고자 하는 사람 앞에는 백방으로 반대적인 요건이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극복하고 타개하기 위해서는 비장한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비장한 결의를 하는 데 있어서 일대 (一代)만의 결의로 끝나 가지고는 안됩니다. 일대(一代)만의 결의를 함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터전, 종족이면 종족권의 승리의 터전이 갖춰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대 (一代)를 넘어 이대 (二次) 삼대 (三次) 혹은 역사시대를 거쳐 전통으로 남겨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승리의 터전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역사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과거 선조들이 가졌던 정성과 피어린 투쟁의 기준을 언제나 유지시켜야 합니다. 그런 기준을 유지시켜 끌고 나가지 않고서는 그것을 현실적인 터전 위에 남길 수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런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계신 하나님은 불쌍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고단한 입장에 계시는 분입니다. 어떤 면으로 볼 때, 하나님은 원통하고 비참한 자리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뜻을 품고 왔다 갔던 우리 선조들은 사회로부터 환영을 받고 환경으로부터 옹호를 받는 자리에서 생활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회와 부딪히는 자리, 언제나 몰리는 자리, 언제나 추방당하는 자리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러한 자리에 처하는 것이 정상적이지 환영받는 자리에 처하는 것은 오히려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사회에서 환영을 받고 사회와 호흡을 같이하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 비정상이라는 것입니다.
사회에 호흡을 맞춤으로 말미암아 아무리 많은 국가와 세계가 움직이게 된다 하더라도 그 국가와 세계는 하늘의 행복의 요건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탄과 악의 내용을 그냥 그대로 접하는 터전 위에서 갖추어진 터전이지, 악을 청산지어 가지고 하늘만을 시작으로 성립된 터전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로부터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불쌍한 운명을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각자가 그런 입장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계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나를 환영하고 내 갈 길을 후원할 수 있는 세계가 못 되어 있습니다. 가면 갈수록 상충이요, 반발입니다. 여기서는 부딪쳐야 됩니다. 부딪치게 되면 둘 다 피해를 입지만, 어느 하나가 깨져야 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깨져야 되느냐? 선이 깨져서는 안 됩니다. 악이 깨져야 됩니다. 또 개인적인 악을 격파했다 하더라도 가정적인 악이 남아 있지 않느냐? 가정적인 악을 격파했다 하더라도 종족적인 악이 남아 있지 않느냐? 이 싸움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이걸 누가 격파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오늘날 신앙자들 중에는 나 하나 구원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 하나 천국 가고 나 하나 구원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신앙적 관점을 갖고 나간다면 자기 개인 앞에 나타나는 원수들은 극복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개인을 넘어서 가정을 터전으로 하는 악은 누가 극복하겠어요? 그리고 자기 가정만을 위주하고 가정의 구원섭리를 중심삼고 노력하는 사람은 가정적인 악의 터전진을 극복할 수 있을는지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가정 뒤에 진을 치고 있는 가정보다 더 강하고 더 악랄한 악의 터전은 누가 격파시키겠어요? 종족적인 악의 진영을 타파하고, 민족적인 악의 권한을 극복하고, 국가적인 악의 주권을 제거하고, 세계적인 악의 터전을 어떻게 해방시키느냐 하는 것이 오늘날 신앙길을 가는 사람들이 바라는 지상 최고의 소망인 것입니다.
아무리 개인이 구원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개인이 이 땅 위에서 머무를수 있는 안식의 터전을 갖지 못하면 불행한 것입니다. 개인이 안식하기 위해서는 가정의 극복권을 마련해야 하고 가정이 안식하기 위해서는 종족과 친척 전체가 해방권에 머물 수 있어야 합니다. 종족이 그런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그 민족과 국가가 하늘 앞에 치리받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택해 가지고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을 택한 것이 아니라구요. 한 사람을 이스라엘권에 세워 가지고 하나의 방망이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 방망이로 개인을 때려 잡고, 가정을 때려 잡고, 종족을 때려 잡고, 민족을 때려 잡고, 국가를 때려 잡으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수천년 동안 닦아도 터전을 갖고 있는 악이 순순히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것입니다. 악은 죽기 살기로 결판을 짓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악은 선 앞에 굴복하기 전에는 현재 갖고 있는 환경을 양보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신앙권에 있는 우리는 언제나 이런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어디서든지 스스로 하늘의 뜻을 대신해서 섰다 할진대는 나 홀로 구원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해방받기 위해서는 가정적인 승리권을 만들어야 되고, 가정이 해방받기 위해서는 종족의 승리권을 형성해야 하고, 종족이 해방받기 위해서는 민족의 승리권을 형성해야 하고, 민족이 승리권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의 주권국가를 형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복귀섭리해 나오신 기준입니다.
그러면 한 나라로서, 이 세계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행복의 요건을 제시할 수 있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있느냐?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특정한 민족으로서 하늘의 행복을 소개해 주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 민족이 있느냐? 특정한 민족이 없으면 특정한 종족이라도 있느냐? 그런 종족이 없거들랑 그런 가정이라도 있느냐? 그런 가정이 없다면 그런 개인이라도 있느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세상은 하늘과 화합될수 없는 세상이요, 어차피 심판의 과정을 거쳐서 존재해야 할 세상입니다. 그러한 세상의 끝날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어떤 이념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선진국가의 문명이 하늘 앞에 도움이 될 수 있겠느냐? 그 문명이 하늘 앞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이 국민이요, 국민사상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과연 그 나라의 국민사상이 하늘의 사상과 일치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치되지 않게 될 때는 어떠한 문명권도 하늘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하늘이 가는 방향과 일치된 사상을 가진 국가의 국민이 있느냐 할 때 우리 통일교인들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미국도 그러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하고,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을 두고 볼 때도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더더구나 공산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면 현재 세계를 리드하고 있는 큰 나라, 또는 선진국가권이 이세계가 하늘나라로 갈 수 있는 행복의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중심 사명을 하고 있다고 보느냐? 그렇지 못합니다. 그 문명국가들이 현대세계가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보다 도리어 실망과 절망의 방향으로 가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 문명권에 있는 국가들이 오늘날 이 세계에 하늘이 바라는 행복을 소개해 줄 수 있는 터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럴 수 있는 터전이 되려면 이 세계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됩니다. 세계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책임을 지는 민족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 민족이 있느냐? 미국을 중심삼고 볼 때 미국이 그럴 수 있느냐? 만일 미국 자체의 어려움을 세계의 어려움보다 더 생각하는 미국이 될 때는 그런 사명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국가를 세계보다 더 중요시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는 그런 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소련은 더더구나 말 할것이 없습니다. 소련을 위주로 한 세계, 소련 자체를 중심삼고 소련 밑에서 움직이는 세계가 되기를 바라는 이념. 그런 사상 가지고는 하늘이 바라는 행복의 터전을 성립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를 뚫고 나갈 수 있는 국가, 악한 세계를 극복해서 뚫고 나갈 수 있는 국가, 그런 국가는 어떤 국가냐? 그런 국가가 지금 선진국가권 가운데는 없습니다. 오늘날 이 악한 세계를 초월해 나갈 수 있는 국가는 없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바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길이냐? 이것을 극복해서 뚫고 나갈 수 있는 길도 없고, 극복해서 넘어갈 수 있는 그런 무엇도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 세계를 중심삼고 기뻐하면서 나갈 것이 아니라, 이 세상과 더불어 보조를 맞추면서 나갈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기준과 달리 뒤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악한 세계권에 있는 현재의 환경을 극복하고 뚫고 나갈 수 있는 특정한 나라가 없게 될 때는, 이것을 타고 넘어가서 '세계는 이래야 산다' 하는 길을 모색해서 새로운 이념을 세계에 제시할 수 있는 나라가 없거들랑, 이 세계와 결별하고 뒤로 돌아서서 방향을 달리해 가야 됩니다. 180도로 방향을 달리해 가지고 가야 됩니다. 환경적인 여건과 방향을 달리하여 돌아선 그 이념이 세계의 어느 이념보다도 크고, 돌아선 그 이념의 목표가 세계의 어떠한 문명권의 국가가 바라는 목표보다도 높아 가지고, 돌아서는 데 있어서 미련없이 돌아설 수 있는 그런 내용을 제시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계가 타락권이요, 사망권이요, 사탄이 주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임금이 사탄인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탄과 일체화한 세계는 하늘과 화합할 수 없는 사망세계입니다. 이것을 타개할 수 있는 힘이 없고 이것을 비약할 수 있는 방향이 없다 할진대는, 돌아서서 가는 민족과 국가의 움직임이 이 세기말적인 시대에 나타나지 않으면 이 세계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없을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않아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뜻을 품은 사람들은 새로운 지도이념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이념을 타고 넘어가야 됩니다. 비약해 갈 수 있는 새로운 지도이념을 세계가 찾고 있으되 그것은 이 세계 자체내에서, 지금과 같은 결과의 세계를 만들어 온 역사권내에서, 혹은 지식권내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상은 초월적인 내용을 모체로 하지 않고는 안 될 것입니다.
인간들끼리 합하여 노력하는 것으로는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그 노력한 결과가 망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인간들은 돌아설래야 돌아설 수 없고 갈래야 갈 수 없는 절망의 벽에 부딪치게 된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그 환경의 내용을 제시해 준 지식 기반이나 사상기반을 가지고는 그 벽을 뚫고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초월적인 그 무엇, 새로운 사상적인 기반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을 중심삼고는 불가능합니다. 신이 있어서, 초월자가 있어서 그로 말미암아 그것을 초월하고 비약하여 넘어갈 수 있는 새로운 사상과 이념이 제시되든가, 아니면 그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이념을 가진 사람이 나오든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소화시킬 수 있는 이념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돌아가야 합니다. 그 길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없으면 그걸 극복해 나갈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악한 사망권내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 터전 위에서 갖추어진 정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엉클어진 이 세계에서는 그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정했댔자 부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사상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상을 가지고 부정했댔자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히피족 현상이 그 좋은 예입니다. 그들은 다 부정해 본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모든 것을 부정해 보고, 자기의 일시적인 관념까지도 부정해 본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부정해 보았자 새로운 것이 나오느냐?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끼리 부정을 했댔자 그 부정한 것을 초월할 수 없고, 그 부정한 터전을 초월하여 새로운 방향의 목적관을 제시할 수 없으며,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제 인간만으로는 세계 문제를 해결지을 수 없는 시점에 부딪쳐 있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죽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죽었던 하나님을 부활시킬 수 있는, 역사시대에서 추방당하던 신을 맞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이 벌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필코 벌어져야 될 것입니다. 사람이 있으면 사람의 뜻이 있습니다. 사람이 있으면 사람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 소원을 중심삼고 세계의 끝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소원 가지고는 세계를 요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계를 행복의 세계로 완결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이 있다면 신의 소원은 무엇이냐? 오늘날까지 역사시대를 거쳐오는 가운데 신의 섭리의 손길이 있었다면, 그 신의 소원은 오늘날과 같은 세계를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 현세계를 다 요리할 수 있는 신이 있다면 그 신이 현세계를 요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 것이냐? 그것은 현세계와 동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신이 기뻐할 수 있는 세계가 못 되기 때문에 이 세계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반대적인 입장에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참고 극복하는 주의여야만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고 견디는데 있어서 무엇을 중심삼고 참고 견뎌 내야 되느냐? 새로운 가치관을 모색해서 그것을 중심삼아야 됩니다.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가치, 인간에 대한 새로운 가치, 이념에 대한 새로운 가치 혹은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해야 합니다. 그 가치관이 신의 뜻과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출발하게 될 때, 그 가치관은 인간을 중심삼은 가치관과는 모체가 다른 것입니다. 인간의 뜻을 중심삼고 세워져 있는 가치관과 다른 것입니다. 거기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가치관은 현실과 분립된 자리에 있을 것이 아니라 악한 현실권내에서 관계를 맺어 가지고 악한 세계의 어떠한 행복보다도 우월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이념을 발견하지 않고는 거기에서 인내와 극복, 곧참고 견딜 수 있는 기준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부정하고 보다 차원 높은 가치관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될 선상에서 지금 세계는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존철학도 그런 관점에서 생긴 것입니다. 현실을 극복하려면 현실을 극복하게 할 수 있는 내적인 가치관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 내적인 가치관을 어떻게 제시하느냐 하는 것이 현대철학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가치관은 인간으로 말미암아서 형성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제아무리 노력했댔자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증명되고도 남음이 있는 권내에 들어와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할 것은 초월적인 가치, 보다 고차원적인 가치입니다. 그 내용이라는 것이 막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렇게 된 것같이 미래에도 이렇게 될 것이다' 하는 것 가지고는 안 되겠 다는 것입니다. 현실 생활에 있어서 우리의 생활 감정을 중심삼고 환경의 여건을 극복하고 타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내용을 갖춘 것이어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체득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끝날이 되면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런 때가 와야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인간들이 알고 있는 정상적인 내용이 아닌, 인간들이 헤아릴 수 없는 비정상적인 각도를 통한 새로운 초윌적인 힘이 투입되고 그 능력이 나타날 수 있게 하는 운동이 벌어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그것과 인연된 것을 모체로, 동기로 해 가지고 악의 세계와 맞붙게 될 때, 그것이 악의 세계가 갖추고 있는 동기보다도 강하고, 가치적으로 높은 내용일 때는 악한 세상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고 견딜 수 있는 힘의 모체, 그 힘의 내용을 어떻게 해서 얻을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통일교회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오늘 이 세계와 동화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요, 이 세계가 가는 노선에 보조를 맞추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계에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고, 그 새로운 사상적 내용을 중심삼은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심정관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랑도 차원이 높은 사랑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악한 사랑과 다른 참된 사랑을 제시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족이 악한 가족이었다면 참된 가족을 제시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라가 악한 나라였다면 참된 나라를 제시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악한 나라에서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이 기쁜 입장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요, 본연의 입장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요, 슬픈 입장에 계신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그 슬펐던 하나님의 입장을 기쁠 수 있는 입장으로 어떻게 전환시키느냐? 이런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은 무엇이냐? 초월적인 사상, 초월적인 세계관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인류가 바라 오던 세계관이 아니라 초월적인 경지에서 세계는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된다고 할 수 있는 세계관이어야 합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악한 세계의 모든 여건이 부정된 새로운 세계가 되어야 됩니다. 개인도 그런 입장에 서야 되고, 가정도 그런 입장에 서야 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도 그런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 선 개인이 있다면 그 개인을 36억 대 1입니다. 그는 36억의 악을 대해 홀로 선 사람입니다. 홀로 선 하늘편의 그 사람이 악과 싸워 악에서 밀려날 것이 아니라 악을 밀고 나가야 됩니다. 악한 세계 앞에 소화당할 것이 아니라 악한 세계를 소화해야 합니다. 소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강한 힘이 필요합니다. 출발서부터 보다 강해야 합니다. 이런 가치관을 중심삼고 나가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는 악한 세계를 공인하는 무리에게 참을 제시하고, 악한 사랑으로 엉클어진 가정제도권내에서 참된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제도를 엮어 가야 합니다. 악한 인연을 통하여 연결된 사회, 국가 형태권 내에서 참된 인연을 중심삼고 연결된 국가 형태를 형성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연결되는 인연이라는 것은 일시적이 아니라 영원해야 합니다. 개인도 참이어야 하고, 가정도 참이어야 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도 참이어야 합니다. 이 시대에도 참이어야 하고 후 시대에도 참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변함이 없는 참이 되기 위해서는 그냥 그대로의 모습을 영원히 끌고 나가야 할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않고는 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악한 세계에 포위되어 가지고 여기에 소화당하고 구속되어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언제나 극복할 수 있다. 극복한 자리에서 끌고 갈 수 있다. 주체적인 입장에서 개척할 수 있다' 하는 신념을 갖고 어느때를 막론하고 변치 않고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악한 개인을 대해서도 문제없다. 악한 가정, 악한 씨족, 악한 종족, 악한 민족, 악한 국가 혹은 악한 세계를 대해서도 문제없다' 할 수 있는 개체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한 모습이 되어야 메시아 사상이 될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세상과 타협하고 가지 않습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세상보다 강해야 됩니다. 강해야 되겠습니다. 강하게 될 때에는 길을 잡아야 됩니다. 세상의 길은 악한 길이니 악한 길에 반대되는 선한 길을 잡아야 됩니다. 선은 영원과 일치되는 것입니다. 선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심정에 일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적인 터전이 동요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내 생활적 환경이 동요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악한 환경에 처했다 하더라도 그 환경에 내 생활 환경이 침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환경이 변함에 따라 변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생활적 환경이 악한 환경을 소화시켜야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인격 자체가 사회의 인격 기준에 감화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물이 들어서는 안 됩니다. 내 인격을 중심삼고 악한 세계를 감동 감화시켜 가지고 물을 들여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냐. 변치 않는 인격을 가져야 합니다.
그 인격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제시되느냐? 그것은 생활관, 인생관, 세계관을 중심삼고 제시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에 입각한 자체가 되어서 '설령 그 관이 변할지라도 그 자체는 변할 수 없다. 세계가 변할지라도 그자체는 변할 수 없다' 하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인격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인격을 닦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이냐? 심정이 문제요, 사랑이 문제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부모의 사랑이 있고 부부의 사랑이 있고 자녀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랑을 중심삼고 살면서도 불행을 느끼는 현재의 입장을 극복해야 됩니다. 무난히 격파할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차원을 중심삼고 그것을 뜯어서 바꿀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연결되어 나온 일체의 정적인 여건을 고심 없이, 괴로움이 없이 자유롭게 뜯어고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해야 할 주체적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환경은 반대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성경에서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 라고 한 말이 맞다는 것입니다. 현재 살고 있는 악의 세계에서 연결된 가정제도를 무난히 뜯어고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부정하고, 남편이 아내를 부정해야 되겠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부정하고 부모가 자식을 부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될 것입니다. 역사는 필시 그런 과정을 거쳐 나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은 어떤 때냐? 세계적으로 집안 식구끼리 서로 부정하는 때가 최후의 때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몰라보고, 자식이 부모를 몰라보고, 부부끼리 서로 몰라보고, 형제끼리 서로 몰라볼 수 있는 때가 기필코 와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시대를 거쳐서 부정시키는 섭리를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부정당하는 놀음이 세계상에 벌어지지 않고는 새로운 세계는 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때가 오거든 끝날인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심정적 내용을 부정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국가관을 부정할 때가 올 것입니다. 충신이면 한 나라를 중심삼고 충신이라 했고, 효자면 한 가정을 중심삼고 효자라고 했지. 세계적인 충신을 논한 때는 없었고, 세계적인 효자를 논한 때는 없었습니다. 일개 국가나 일개 가정을 중심삼고 논했던 것입니다. 열녀 또한 일개 낭군을 중심삼고 열녀를 말했지 세계적인 표준을 놓고 열녀를 주장한 예가 없었습니다.
이런 것은 다 세계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었습니다. 개인주의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개인을 위주하는 것을 부정하고 세계를 위주하는 것으로 바꿔 줘야 될 것이 아니냐? 그것을 바꿔 주기 위해서는 개인을 위주하는 전체가 부정당할 수 있는 때가 와야 합니다. 개인 인격 부정, 개인 생활 부정, 개인 심정을 부정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고는 끝날이 안 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이 부정당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거들랑 끝날이 된 것으로 알라는 것입니다.
현재가 그런 때입니다. 가정 자체가 부정당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왔습니다. 생활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시대상에 처해 있고, 국가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시대상에 처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세계 자체를 부정할수 있는 시대권내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게 부정할 수 있는 시대권내에 처해 있는데도 새로운 견지에서 긍정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안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새로운 방도를 제시하고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제시할 것은 무엇이냐? 일차 부정을 통한 입장에서 참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이 그것입니다. 일차 부정한 자리에서 결과를 찾는 것이 새로운 각도에서 출발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차피 인류는 세계를 잃어버려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이런 일을 해야 합니다. '내 가정을 부정하자. 지금까지 살아, 나온 인격을 부정하자. 행동을 부정하자. 심정을 부정하자'는 것입니다. 부정하는 데는 아무 내용도 없이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고차적인 내용을 가지고 부정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말을 하고 있느냐? 참부모를 말하고 있습니다. 전부 내용이 다릅니다. 참된 부모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참된 부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참된 가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참된 종족과 참된 민족과 참된 국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된 세계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중심삼고? 어떤 특정한 개인을 중심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어떠한 철학을 중심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주장합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관념적이냐, 실증적이냐? 관념을 초월한 생활권내에서 실증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역사시대의 어떠한 가치와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이 그렇다고 자각하고, 그 가치를 결정지은 터전 위에서 새로운 참을 주장하고 나서야 합니다. 역사를 지나온 이 세계 앞에, 새로운 섭리의 뜻을 따라가야 할 이 세계 앞에, 반드시 그런 관문을 통과한 주장을 하는 무리가 나와야 될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무리가 그런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이 그러냐, 그렇지 않으면 사실이 그랬느냐, 그렇지 않으면 사실이 그럴 것이냐, 이 세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실증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내용을 여러분이 갖추지 않고는 통일교회 교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랬다 하는 면에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긍지를 가져야 됩니다. 과거는 그랬을지 몰라도 현재는 그렇지 않다 할 때는 이미 후퇴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 악한 세력은 개인일 때보다 가정일 때 강하고, 가정일 때보다도 종족일 때 강하고, 종족일 때보다도 민족일 때 강하고, 민족일 때보다도 국가일 때 강하고, 나라일 때보다도 세계일 때 강하기 때문에, 과거에 그랬으면 오늘은 더더욱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 십년 동안 그랬다 하더라도, 이제부터 대하는 악의 권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그 배 이상의 힘을 갖추어 지금도 그렇다 할 수 있는 자부심을 갖지 않고는 여러분의 갈 길에 파멸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심정을 모체로 한 새로운 가치관을 중심삼고 고차적인 가치의 내용을 결정지은 자신을 발견해 가지고, 거기서부터 자신 있게 부르짖을 수 있는 참부모와 인연을 맺고, 참부모의 인연을 통한 참자녀의 사랑을 맺고, 참다운 남성과 참다운 여성의 사랑으로 맺어지는 부부의 인연을 맺고, 그 부부로 인하여 자녀를 낳고, 그 자녀로 인하여 가정을 이루게 되면 그 가정은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참다운 가정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횡적인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가정이 없게될 때는 출발을 할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부터 실제로 횡적인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나와서 그 가정의 전통을 세계화시키게될 때 세계는 바람직한 세계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과 그러한 가정이 지구성 어디에선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악의 세계 내에 있는 가정은 있을는지 모르지만 악의 세계를 극복한 가정은 없는 것입니다. 소망을 가질 수 없는 현시점에서 그것을 극복했다는 자부심을 가진, 보다 고차적인 가치 밑에서 주장할 수 있는, 내정적인 인연을 갖춘 참다운 가정이 나와야 합니다. 그 가정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가정이요, 인류가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소망해 나오던 목적지가 아니겠어요? 하나님도 이것을 바라 나오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중심이요. 인류가 바라는 중심이요, 역사가 바라는 중심이기 때문에 이러한 중심을 해결하기 위한 책임을 지고 한 분이 오시게 되는데 그분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주님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입장을 제시하고 나서게 될 때 그 악한 세계가 가만히 있겠느냐? 반대하는 것입니다. 백방으로 반대하는 것입니다. 반대하는데 있어 기수들은 누구일 것이냐? 뜯어고치기 위해 부정해야 할 무리들입니다. 그 무리가 먼데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제일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이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라고 한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이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자기 어머니가 칼을 들고 목을 찌르려고 하는 것을 보아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해 '너는 나와 상관없다' 하면서 혈연을 끊기를 자청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습니다. 가정이 반대하고 친척이 반대하고 민족이 반대하고 나라가 반대하는 것을 보아 나왔습니다. 그 반대받는 것이 억울하고 서러운 것이냐?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환경이 나를 부정하고 반대하다가 반대하지 못하게 될 때에는 그 환경이 일시에 굴복할 것이 아니겠느냐! 세계가 나를 반대하여 부정시키지 못하게 될 때에는 세계가 나에게 굴복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승리할 수 있는 때가 되면 제일 가까이 있는 어머니 아버지가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승리할 때가 되면 종족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종족이 승리할 수 있는 때가 되면 민족이 거기에 반대할 것입니다. 민족이 복귀될 수 있는 때가 되면 거기에 제일 원수가 되는 것은 주권자입니다. 주권자가 원수가 될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아서 때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가 복귀될 수 있는 때에는 무엇이 원수냐? 그야말로 사탄이 원수입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천주복귀가 될 수 있는 때에는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이냐? 하나님이 문제가 됩니다. 최후에는 하나님을 극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소화시켜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타락된 개인을 소화하고, 타락된 가정을 소화하고, 타락된 종족을 소화하고, 타락된 민족을 소화하고, 타락된 국가를 소화하고, 타락된 세계를 소화해야 됩니다. 타락된 세계를 소화하려면 사탄을 소화해야 됩니다.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사탄을 해방시키지 않고는 세계가 복귀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는 하나님을 해방시켜야 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그러니 주체가 누구냐? 하늘이 아니라 땅입니다. 주체가 하나님이 아니라 나라구요, 나. 내가 걸려 있지 하나님이 걸려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걸려 있기 때문에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해원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골수에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제일 가까운 사람이 참의 길을 가는 데에 동조할 수 없는 운명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걸 알아야 돼요. 동조하면 좋겠지만 동조하면 안 됩니다. 그건 왜? 타락한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 동화하고 동조하게 될 때에는 거기에 여러분이 물들 수있기 때문에, 하늘은 이것을 잘라 버리게 하기 위해 반대하고 부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터전으로 해서 살던 인간은 가정으로부터 부정받는 자리에 서서 가정이라는 안식처에서 행복을 누리던 그 이상의 행복의 여건을 발견하지 않고는 이 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행복의 여건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당장 자기의 생활 여건을 능가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것을 내적인 중심으로 세워서 내적인 극복의 과정을 거쳐 가지고 내적인 세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됩니다. 그것이 신앙자의 갈 길입니다.
십년 전에 결심했던 내용이 있다면 십년 후에는 그것을 잃어버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모체로 해서 십년 동안의 수많은 결심들을 전부 거기에 합해 가지고 환경의 내용을 제거시킬 수 있는 그런 내용으로서 남겨야 됩니다. 십년을 믿었으면 십년 믿은 만큼 내용이 더 가중되고 탄탄해져야 됩니다. 문제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내와 극복을 해야 합니다. 굴복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길을 가 가지고 무엇이 남느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분풀이를 다 해가지고 그 환경이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분풀이를 다 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분풀이를 다 하면 그 친척이 달려드는 거라구요. 분풀이를 했다가는 더 큰 원수가 나오는 것입니다. 종족을 중심삼고 분풀이했다가는 민족이 달려드는 것입니다. 있으면서도 없는 듯이 있게 될 때 내적으로는 크게 있는 것입니다. 민족을 중심삼고 분풀이 하면 국가가 달려드는 것입니다. 싸우게 되면 더 큰 원수가 동원되는 것입니다. 국가를 중심삼고 싸우게 될 때는 세계가 동원됩니다. 더 큰 원수가 동원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참 지혜로운 가르침입니다. '왼뺨을 치거든 바른뺨을 돌려 대라.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가라.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줘라' 그 작전이 참 멋진 작전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큰 것이 동원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동원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대작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굴복시키는 데는 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힘으로 대결해 가지고는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진 나라는 언젠가는 이긴 나라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희랍이 로마를 지배했지만 나중엔 로마가 희랍을 지배했습니다. 영국도 보게 되면 미국을 지배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그 반대적인 입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힘을 가지고는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힘으로는 원수 국가가 점점 커 가기 때문에 원수 국가를 굴복시킬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으면 또 원수 갚음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 내용을 잘 알고 세계를 바라보았던 예수님은 인간들을 대해 원수를 굴복시키려면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고 새로운 인생관을 제시하고 새로운 심정관을 제시해 가지고 원수를 사랑해라. 원수를 갚을 것이 아니라 원수를 위해 주어라. 그렇게 되면 끝에 가서는 결국 원수가 굴복하는 것이다'라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그 시대에 맞지 않는 가르침 같지만 역사를 초월하여 미래의 세계를 무난히 통과할수 있는 영원불멸의 내용을 설파한 가르침이 아닙니까? 그 외의 길이 있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예수의 가르침을 중심삼고 우리는 이 세계를 뚫고 가야 합니다. 뚫고 가야 하는데 여러분처럼 그렇게 가서는 뚫고 갈 수 없다 이겁니다. 이것을 넘어가려면 어떻게 넘어가야 되느냐? 원수를 굴복시킬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뒤로 돌아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뒤로 돌아가더라도 나중에는 세계와 만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정면으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그러니 어차피 타락한 인간들은 일대에 세계를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가야 할 길을 못 가는 것입니다. 출발도 역시 일대에 세계를 굴복시키기 위해 출발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일대에 세계의 길을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돼요? 전체를 부정하고 새로운 의의 길을 제시하고 새로운 사상을 제시해 가지고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일체를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나라도 세계도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정하는 자체와 부정당하는 세계는 바꿀수 없습니다. 참은 언제나 주체입니다. 세계를 도피해서는 안 됩니다. 불교가 산중에서 수도할 때는 지났습니다. 세계 정면 도상에 나타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때를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바에는 아예 부정하고 출발하는 것이 낫습니다. 도피해서 가는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참된 종교냐, 아니면 부정하고 가는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참된 종교냐 할 때, 부정하고 가는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참된 종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모든 것을 갖춘 종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내와 극복은 이 세상에서 행복의 길을 찾아가는 하나의 궤도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안 됩니다. 이것이 싫다는 사람은 못 가는 것입니다. 그 외의 길이 있겠어요?
그 길을 가는 데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 뚫고 가야 됩니다. 초월적인 사상을 중심삼고 뚫고 가야 합니다. 제재소에 가게 되면 돌아가는 톱이 있습니다. 그 톱날만 보는 사람은 이게 왜 이렇게 잘라질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그렇지만 그 톱이 자르는 데 있어서는 돌면서 자르기 때문에 직선으로 잘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도 하늘의 사상과 하나되어 가지고 주고받으라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그 힘이 톱날과 같이 돌아가면서 잘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것이라 하더라도 각도를 조정해서 잘라내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것보다 강해야 합니다. 오늘날 공산당보다 우리가 강해야 되고, 어떤 사상보다도 통일사상이 강해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왔다 갔던 어떤 개인도 통일교회의 개인이 굴복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통일교회의 가정은 지금까지 왔다 갔던 수많은 가정과 현대의 수많은 가정보다도. 효자 효녀 충신 열녀를 갖춘 어떤 가정보다도 강해야 되는 것입니다. 없어지더라도 제일 나중에 없어져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어떤 종교보다도 강해야 합니다. 통일사상은 어떤 사상보다도 이론적으로 단련되고 강한 사상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강한 데도 평면적으로 강한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강해야 합니다. 그런 내용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는 세계적으로 어느 시대에도 없었던 고차원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터전 위에, 가치적인 내용과 심정적인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초월적인 자리에서 세계적인 가치를 실증할 수 있는 기반 위에 선 것이 여러분의 신앙입니다. 찬송가에도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라고 하는 구절이 있지요? 받은 증거가 있다 이겁니다.
'나는 이미 가정을 부정했다. 나는 이미 나라를 부정했다. 나는 이미 세계를 부정했다' 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어떠한 사상, 어떠한 그 무엇도 다 부정한 자리에 서야 합니다. 부정해 가지고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자리로 가겠다고 해야 됩니다. '올 테면 와라. 내가 깨지든가 네가 깨지든가 나는 가겠다' 하는 것입니다. 톱과 같은 사상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결국 나라도 잘라지고 세계도 잘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르게 되면 서로 좋아해요? 열이 나는 것입니다. 부작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열이 난다는 것은 부작용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소모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난 소모가 싫다. 그 부작용이 싫다'고 하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결론은 무엇이냐? 인내와 극복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체 소모를 위한 인내와 극복이 아니라 자체 보강을 위한 인내와 극복입니다. 참고 견디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행복의 요건은 나와 더불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나와 더불어, 그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는 나와 더불어,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나와 더불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인내와 극복이 나를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전진적인 플러스권을 형성하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할 때는 기쁨이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하나의 어려움을 극복하면 두셋의 기쁨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악의 세상에서 하나의 가치적인 것을 희생하면 선의 세상에서 찾아지는 가치의 것이 몇 배 이상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는, 오늘 이 땅의 어떤 극복하기 어려운 자리도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밥을 굶고 길가에서 잠을 자는 처지에 있더라도 그 자리는 세상의 그 누가 그려 보지 못한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자리요, 하늘땅을 대신하고 온 피조세계를 대신하여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은 악한 생활권에 살고 있으되 악권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단은 보다 높은 차원을 중심삼고 인내와 극복의 궤도를 달려가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디까지 왔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지금은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통일교회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회환경이 됐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어머니 아버지에게 끌려가야 되느냐, 어머니 아버지를 끌어 와야 되느냐? 소화당해야 되겠느냐, 소화시켜야 되겠느냐? 소화시켜야 됩니다. 소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누룩의 입장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누룩이 되라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누룩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 어머니 아버지가 나쁠 수 있는 자리에서 굴복하게 되면 굴복하면서도 찡그리지만, 좋을 수 있는 자리에서 굴복하게 되면 굴복하면서도 '야. 훌륭한 딸이구나. 훌륭한 아들이구나' 하고 손을 들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룩이 되라는 것입니다.
누룩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냐? 아무리 큰 밀가루 떡이 있더라도 누룩을 넣으면 변합니다. 누룩을 조그마한 것을 갖다가 박아 놓으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거예요. 그까짓 것은 문제도 되지 않을 것처럼, 그 하나쯤은 문제도 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두고 보면 이것이 전체를 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누룩입니다. 성경에도 누룩이란 말이 있지요?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지만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삼천리 반도, 삼천만 민족 가운데 통일교회가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지만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대한민국에서 통일교회가 문제입니다. '야! 강력한 단체다' 이렇게만 되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지만 문제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문제냐?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면 문제인 이것을 빼 버린다고 해결되느냐? 누룩이 박히는 데는 점같이 박히는 것이 아닙니다. 누룩을 넣으면 어떻게 되느냐? 박혀 버립니다. 박히는 데도 한 점으로 박히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박히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런 단계에 있는 통일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통일교회가 점이 아니라 선입니다. 이 민족 사조 가운데서 빼버릴 수 없는 사상과 이념을 제시해 놓았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누룩이 되었어요? 누룩이 큰 밀가루 덩이에게 '밀가루 덩이야, 나는 너와는 비교도 안 되니까 내가 너한테 항복하겠다. 내요소를 전부 취소시키겠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거라구요. 오히려 밤이나 낮이나 그를 섬기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타락한 세계에서 무엇을 하겠느냐? 누룩의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침범당하고 나오신 것이 아니라 침범해 나오셨습니다. 소화당해 오신 것이 아니라 소화시켜 나오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소화당해야 됩니까, 소화시켜야 됩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부인들, 소화당해야 돼요? 우리 할머니들. 아들딸한테 소화당해야 됩니까? 아들딸이 밥을 안 먹여 주면 내가 죽겠으니 아들딸 궁둥이를 따라다녀야 된다. 그래요? 아내는 남편에게 달렸으니 남편을 따라가야 된다. 그래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내도 만만치 않다는 거예요.
그러니 세상에는 지금 야단이 났습니다. 끝장이 나 가지고, 세계적으로 끝장이 나 가지고 이제 한번 문제를 벌여야 될 것이 아니예요? 문제가 벌어지게 해야 할 때가 점점 가까와지고 있습니다. 한 가정이 문제가 되고, 한 나라가 문제가 되고, 세계가 문제가 되고, 하늘땅이 문제가 되고, 하나님이 문제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합니다.
극복이 나쁜 것이냐? 참는 것이 나쁜 것이냐? 엊그제도 목사 원리공청회를 했는데, 120여명이 듣고 갔지만, 그들이 '우리가 120명 넘게 와가지고 말씀을 듣는데 문선생님이 왜 나타나지 않느냐'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자기들이 하자는 대로 하나요? 자기들이 내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손님들이 무슨 수작이예요? 손님이 주인 노릇을 하겠다면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법이라구요. 다르다는 것입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문선생 하면 '어허……'하더니만, 요즘에는 관심이 많아져서 선생님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혹 낮에 드나들고 할 때 본 사람은 '오늘 문선생님을 보았으니 여기에 나타나겠지' 하고 기다린다는 거예요. 나타나긴 뭘 나타납니까?(웃음)
어제 어느 신문사에서 '통일교회가 이제 그만한 기반을 닦았으면 이제 문선생이 자가선전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며 취재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너희들 돈 벌어 주는 일 안 하겠다. 선전하려면 내가 만들어서 하지' 라고 했습니다. 그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계획대로 놀아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구요. 신문기자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취재해요? 이놈의 자식들, 자기들 원하는 대로 취재해? 언제는 헐뜯고 이제 와서는 뭐가 어째? 지금까지 내가 그런 사람은 만난 적이 없습니다. 미국에 갔다 왔을 때도 취재하러 왔던 사람이 사흘 나흘을 기다렸지만 못 만나고 갔습니다. 내가 선전을 하려면 우리 언론기관을 만들어서 하지요. 사탄세계 언론기관은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그들은 나를 때려잡고 헐뜯기 위해서 선전했지 좋은 선전을 해주었어요? 나 싫다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선생님은 누가 '당신이 나를 만나 주면 통일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주겠소' 하더라도 그런 사람을 만나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림없으니 가 봐라'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좀 달라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거 다 별스럽지 않아요? 별스러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아, 못 만나서 기분 나쁘다' 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더 궁금증에 사로잡혀 관심을 집중시키게 돼 있지요.
이제 내가 한번 목사 총회 한다고 하게 되면 왔던 사람은 다 올 거라구요. 내가 직접 나가서 얘기할 테니 오라고 하면, 왔다 갔던 사람이 천 명이면 천 명이 다 모일 것입니다. 그렇게 한꺼번에 하면 될 텐데 뭐하러 원리공청회 할 때마다 나갑니까?(웃음)
선생님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이렇게 저렇게 하자 한다고 해서 절대 안믿습니다. 누가 뭐 어쩌고 저쩌고 한다고 해서 후퇴하거나 양보하지 않습니다. 코방귀도 뀌지 않아요. 선생님이 고집이 있다면 누구보다도 고집이 있고 악착 같다면 누구보다도 악착 같은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미지의 세계를 이만큼 개발해 나온 것입니다. 이제는 천하가 다 헤엄칠 수 있는 수영장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천하가 빠져 죽지 않고 수영할 수 있는 수영장이 되어 있고 벌판에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닦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운동장에서 뛰노는 것만을 제일로 아느냐? 그래 가지고는 안 되는 거라구요. 운동하는 그것으로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구요. 선수는 그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교인들도 세계적인 모든 것을 알게 되려면 아직 좀더 극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입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는 거라구요. 눈이 있어 보았다고 해서 다 보았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귀가 있어 들었다고 해서 다들었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이상으로 보고 들을 때가 온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사탄보다 더 포악했대' 어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을 위해서라도 그 이상 되어야지요. 세계의 3분의 1을 거느리고도 아무도 상대 안할수있는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된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을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보기에는 못난 사람처럼 가만히 있지만 속에 무슨 배포를 품고 다니는 줄 알아요? 아직은 선생님이 말을 하지 않는 거라구요. 그 세계까지는 멀다는 거예요.
지금 이 정도에서 머리를 들고 '아이고, 내 아들딸 죽소'라고 하는데 죽겠으면 죽으라는 겁니다. 네가 죽지 뜻이 죽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댓 사람 죽더라도 뜻을 살리고, 그 죽는 사람 가운데서 뜻을 위한 충신한 사람을 남기고자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신입니다. 열 사람이 죽더라도 그 이상의 내용을 중심삼고 극복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붙들고 열 사람을 희생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입니다. 복귀섭리가 그렇잖아요? 노아 할아버지를 보라구요. 노아 가정 한 가정을 중심삼고 심판하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데 있어서 사탄세계의 3배 이상 하라는 것입니다. 악한 사탄세계에서 3배 이상의 수난을 당하게 되면 그 악은 제거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까지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참아라, 견디라는 것입니다. 그 정상을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3단계를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일 수련이 있지요? 내가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때가 오면 그런 때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구. 이것이 십자가의 길이라고 하더니 진짜 십자가의 길을 맛볼 때가 왔구만' 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진짜로 맛본다는 것은 십자가 가운데 최고겠어요, 최하겠어요? 최고입니다. 진짜 맛보았다고 할 때는 죽기 직전입니까, 죽어가는 자리입니까? 죽어가는 자리입니다. 죽기 직전은 아직 최고가 아닙니다. 죽어가는 자리가 최고입니다. 그 눈에서부터, 그 손에서부터, 그 몸뚱이에서부터, 냄새가 나고 냄새를 피우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참는데 있어서도 진짜 참았다고 하는때는 두 번이예요, 한 번이예요? 한 번밖에 없는 것입니다. 두 번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통일교회 선생 노릇을 하려면 참는 데 있어서도 언제나 대장이 안 되면 안됩니다. 그렇잖아요? 그러지 않고는 보따리를 싸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그렇게 하느냐? 여러분은 모르지만 사탄을 중심삼고 그 놀음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러고 저러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무엇을 중심삼고 이러고 저러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합니까? 여러분은 그걸 생각해야 됩니다. 세계를 중심삼고 이러고 저러고 합니까? 세계를 중심삼고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해야 극복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좋다 이겁니다. 그것은 환영합니다. 얼마든지 하라는 겁니다. 하늘땅을 중심삼고 그렇게 하는 것이냐? 자기를 중심삼고 그렇게 하는 것이냐? 자기 하나를 중심삼고 돌다가는 깨집니다.
악한 세상을 뒤집어 박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악한 세상에 끌려가 가지고 뒤집어 박을 수 있어요? 위가 아래로 가고 아래가 위로 가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뒤집어야 됩니다. 뒤집는데 그냥 따라가서 돼요? 위로 올라가야 됩니다. 위로 올라가서 잡아 제껴야 됩니다. 잡아서 끌어 올려 가지고 꽁지 아래로 끌어내려야 됩니다. 그렇지요? 잡아 제끼려면 올라가야 됩니다. 올라가게 되면 사탄세계가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가려고 해도 못 가게 합니다. 그러니 사탄이 낮에 움직이면 우리는 밤에 움직이자는 것입니다. 낮에는 악착같이 끌어내리니까 말입니다.
사탄이 언제나 악착같을 수 없습니다. 숨을 언제나 '후 후 후' 하고 내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말입니다. 악착같지만 조금 쉴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탄이 악착같이 한 십리를 끌어내렸으면 숨쉬는 동안에 이십리 올라갈 수 있는 준비를 하자는 것입니다. 내려갔다가 '꽝' 하고 상승. 비약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환경이 점점 어떻게 되느냐? 취미와 흥미를 가지고 '이것 봐라. 네가 그 기준을 중심삼고 얼마만큼이나 타고 넘어가느냐? 한 발자국씩 가서 언제 그 같은 세계까지 가느냐? 아이구 아이구' 이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거라구요.
다시 한 번 올라가 보자 이겁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승공활동할 때에도 지서 주임에게 점심도 사주며 한번 같이 해보자고 한 때도 있었습니다. 귀에 피도 안 마른 20대의 젊은 녀석들이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고 향수 냄새를 피우고 근사하게 차려 입고 걸어 다니는 것을 잠바짜박지나 입고 있는 사람들이 보게 되면 샘나거든요. 그러니까 끌어내리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지지 않고 지서 주임을 거쳐 지서장, 면장, 군수, 경찰서장 등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승공연합과 반공연맹이 대판 싸움을 한 적이 있지요? 그들이 아무리 못 올라가게 그러더라도 우리는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악착같이 올라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그들은 다 기운이 빠졌어요. (웃음) 통일교회 신도는 얼마 안됩니다. 그들과는 비교도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악착같이 올라갔습니다. 반공연맹 이사장까지 통일교회 원리가 굉장하다고 선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쯤 되면 통일교회가 많이 올라왔지요?
통일교회에서 손댄 것은 국가적인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 면에서 악착같다는 거라구요. 내가 하는 것은 세계적인 것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두고 보라구요. 우리 공장도 그래요. 통일교회에서 총을 만든다고 해서 얼마나 말이 많았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국가가 선생님을 찾아오는 때가 옵니다. 이때까지는 내가 그 어떤 실업가, 어떠한 사업가 이상의 정성을 들였습니다. 하늘이 우리의 갈 길을 염원한다면 이 선생님을 도와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한 15년쯤 지나 선생님이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게 되면 아폴로 11호가 달나라에 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두고 보라구요.
통일교회가 아무것도 없으면서 나라를 상대하여 무엇을 해보겠다고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 크지도 않은 어린아이가 대통령 하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지 누가 믿어 줘요? 그러나 두고 보라는 겁니다. 되나 안 되나. 해 나온 것을 보라구요. 이제 됐다는 겁니다. 통일교 회를 두고 '이단 이단' 하는 사람들,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내가 초청할때 오나 안 오나 보자는 것입니다.
'원리공청회에 목사들 오소' 할 때 위에서는 공문을 내 가지고 가지 말라고 어쩌고 저쩌고 했습니다. 위에서는 가지 말라고 해도 밑창에서는 자꾸 빠져 나가는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새 민 공문을 보내도 안 통하니까 그냥 덮어 두겠다 한다는 것입니다. 암만 공문을 내 보내라는 거예요.
와 가지고는 이래저래 신세졌지. 많이 배웠지, 충격을 받았지, 생각해 보면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지. 그러니 큰일났다는 것입니다. 고개를 뚝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처음 들어올 때는 눈이 번뜩번뜩했지만 나갈 때는 고개가 숙여지는 것입니다. 실력에서 진 것입니다. 아무도 큰소리를 못합니다.
이렇게 되면 뒷문으로 들어간 자가 안방 주인을 쫓아내고 대신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뒷문 출입을 했지만 정문 출입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놀라운 때가 오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살아온 거예요.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살지 않았을 겁니다. 그저 아등바등 아등바등하던 사람들이 결국은 우리 꽁무니를 따라와서 '나 몰라서 그랬소. 본래 나는 악한 사람이 아니예요' 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이 쓱 보면 세계가 눈앞에 보입니다.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선생님이 잠을 잘 때 기도를 하지 않고 자더라도 꿈자리가 사납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기도하지 않고 잠을 자면 꿈자리가 사나왔습니다. 사탄들이 1번 2번, 3번. 행렬을 지어서 습격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기도를 않고 어디에 가도 사탄의 흔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들은 이제는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뜻을 알고 무엇을 했습니까? 한번 계산해 보자구요. 장사 밑천 털어 보자구요. 뜻을 알고 무엇을 했어요? 했다고 하는 사람은 나서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좀 물어 보게. 큰소리 칠 만치도 못했는데 그 밑천 가지고 편안해요? 뜻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뜻을 위해서 생명을 걸고 가라' 할 때는 '예, 가겠습니다' 해놓고,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이렇고, 그때는 뭐가 어떤지 모르고 요사스러운 것이 붙어서 그랬지' 하는 식입니다. 세례 요한식이라구요. 자기가 물로 세례를 주고 증거 했던 그분을 '나는 몰랐어' 하면 그 말이 통합니까? 나발을 불었는데 '나발이 소리를 냈지 입이 냈나? 하는 식입니다. '난 모르겠소. 그건 나발이 그랬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통일교회의 모든 문제가 풀릴 때가 멀지 않았어요. 통일교회에는 세상 가정들이 반대하더라도 통일교회를 지지하는 가정도 있지 않느냐!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이 있지 않느냐! 보라구요. 이번에 가정에서 아들딸을 낳고 재미있게 살고 있는 부인들을 몽땅 집에서 내쫓았습니다.
그러니 남편들이 이 일을 놓고 데모하면 큰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남편들이 '통일교 문선생님의 일선에 아내 파송 반대 데모 안 하기 운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웃음) 데모도 그런 데모를 하면 마지막일는지 모르지만 말이예요.
그리고 여러분이 '생활이 어려우니 월급 주소' 할는지 모르지만 내가 월급을 주기 위해 이런 일을 시킨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직까지 월급을 못받아 봤습니다. 내가 통일교회 선생이 돼서 지금까지 월급을 못 받아봤어요. 선생님 월급이 얼마예요? 여기 아는 사람 있으면 말해 보세요. 선생님이 월급을 정하지 않았는데 여러분의 월급을 달라구요? 그거 다 불법이라구요. 선생님에게 먼저 월급을 주고 자기가 받겠다고 해야 효자입니다. '선생님은 월급을 안 받아도 밥은 먹고 살 수 있지 않소' 하겠지만, 그래 그것이 그냥 됐어요? 선생님이 다 만들어서 그렇게 됐지. 그렇게 만든 공적은 생각해 줘야 하지 않아요? 선생님이 쓰고 남거든 그것을 조금 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쓰려고 하는 것을 '나 좀 주소'하니 그런 도둑놈들이 어디 있어요? 그들은 망할 것들입니다.
그래, 내게 돈이 있으면 나를 위해 씁니까? 미래를 위해서 씁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계를 위한 뜻입니다. 현재에 있어서 제물을 드리는 것은 후손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게 철칙입니다. 내가 현재에 잘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고생을 좀더 하더라도 우리 후대, 후손들은 고생 안 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뭐냐?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데데한 사나이가 아닙니다. 내가 집 살 돈을 마련했다가 그것을 전부 다 여의도 땅을 사는 데에 투입했습니다. 하늘의 집을 짓는 데에 정성을 들이지 않고는 내 집을 짓고 못 살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을 해보자구요.
내가 잘못한 게 무엇이 있나? 나는 양심의 가책을 안 받습니다. 내가 양심의 가책을 받을 일이 있었다면 벌써 꺾여 나갔을 것입니다. 벌써 꼬꾸라졌을 거예요. 그렇다면 영계가 협조하겠어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모르지만 이방 종교 가운데 영통하는 사람들이 선생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나한테 보고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영계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모른다구요. 나는 하나님을 사랑 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다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겠다고 생각을 하지 않는것입니다.
나에 대한 문제를 놓고는 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매일같이 망우리 고개를 넘나들며 수택리에 다녀오지만 우리 공장을 이렇게 해달라고 기도한번 안했습니다. '틀림없이 내 소신대로 밀고 나가면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이 후원 안 하시거든 나 혼자의 힘과 노력으로써 있는 정성을 다해 나갈 것이다. 만들어 보자. 나 혼자 만들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때 가서 기도하는 것이다' 이게 선생님의 주의입니다.
하나님의 후원을 바라지 않는 입장에서 내가 정성을 다할 때 하늘이 협조하게 되면 이것은 누구도 못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하늘이 갖다 주었으니 누구도 못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그냥 주는 그런 법이 어디 있어' 할지 모르지만 달라고 하지 않아도 그만큼 줄 수 있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가지라고 설득시켜 가지고 주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데는 통일교회를 어떻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는 안 합니다. 항상 세계적인 문제를 걸어 놓고 담판 기도를 했지, 내 아들딸을 어떻게 해달라, 통일교회가 고생하고 있으니 어떻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통일교회의 여러분을 고생시키고 있는데 고생시켜 놓고 '하나님, 복을 주소' 그러지 않는 겁니다. 고생을 깨깨 시키고 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악한 사탄세계에 줄 수 없었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고생을 깨깨 했지요? 세상은 깨깨 고생을 못 했기 때문에 복을 못 받은 것 아니냐 이거예요.
참고 나가야 합니다. 참는 것도 참되게 참아야 합니다. 손가락 하나 뽑아 내는 것이 참는 것이냐? 그게 모호하다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공장에 가서 보니 쇠나 철봉을 바이스에 물려 가지고 잡아당기면 엿가락 모양으로 늘어납디다. 그걸 한번 끊어지도록 잡아당겨 보면 좋겠더라구요. 잘늘어나거든요. 내 손가락을 거기에 물리고 잡아당긴다면 손가락이 빠져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참겠어요, 못 참겠어요? 참는다 이겁니다. 손가락 하나 빠지는 것은 문제도 되지 않아요. 손가락이 다 빠지고 그 다음엔 손이 빠졌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참겠어요, 못 참겠어요? 예수님은 어디까지 참았어요? 죽을 때까지 참았습니다.
참는 한계가 어디까지예요? 죽기 전까지예요? 죽을 때까지! 죽을 때까지 뜻을 위해서 싸우겠다고 맹세한 사람은 손들어 보라구요. 나 스스로 그렇게 맹세했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그 외의 사람들은 생각도 안 해봤구만.
그러면 죽을 때까지다 하면 어떤 때가 죽을 때예요? 개인을 위해서 죽을 때까지입니까? 나 좋을 때예요? 그런 죽을 때가 어디 있어요? 죽을 때까지라는 것은 죽을 일들이 연방 생기는 때입니다. 아버지도 죽을 때까지, 아들도 죽을 때까지, 십대가 아니라 천대, 수천년 동안 죽을 때까지. 그런 역사적 전통을 받은 것이 기독교 사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는 순교와 수난의 피를 보여 준 역사인 것입니다. 죽음의 제단이 상속되어 나온 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가정에 여덟 식구가 있는데 모두 죽고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합시다. 여덟 식구가 다 죽었는데 내 차례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내가 죽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사람이 여기에 150명쯤 있는데 이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통일교회를 위해 싸웠는데도 다 안 죽었다는 거예요. 그게 죽을 때까지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죽을 때까지 싸운다고 할 때는 150명이 하나도 안 남고 다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구, 다 죽고 나만 남았으니 나는 종자라도 해야지, 죽을 때까지라고 맹세를 했지만 하나님 용서하소' 하면 되겠어요? 망하더라도 혼자 남은 그 사람도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죽을 때까지입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통일교회가 망하면 되나, 종자라도 있어야지. 네가 남아 종자가 되겠소'해 가지고 자기는 안 죽겠다고 하면 되겠어요?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맹세했으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이 굶고 뭐가 어떻다는 말을 해야 되겠어요? 큰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자기 여편네와 자식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겠다고 해서 되겠느냐 말이예요. 선생님도 그 놀음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이 걸어온 입장과 여러분의 현재 입장이 다릅니다. 사람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걸어온 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내려갔다가 현재의 입장까지 올라왔지만 여러분은 내려가지를 않았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몰랐어요. 그저 선생님 등을 타고 올라왔습니다. 이보다 좋은 데로 가려면 탕감조건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못가는 것입니다. 한번 죽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저 여러분이 하기 좋은 일을 해 가지고는 절대로 복귀가 안 됩니다. 통일교회가 민족적인 시대에 있어서 사명을 다하려면 종족적인 골짜기에 들어가 거기에서 극복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개인적인 골짜기, 가정적인 골짜기, 종족적인 골짜기, 민족적인 골짜기를 거치고 현실적으로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해서 한 번이라도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부정적인 입장을 거치라는 것입니다. 그저 참고 참아야 합니다. 참지 못할 일이 수두룩하더라도 참아야됩니다.
칼이 있으면 배때기를 도려내 버리고 얼굴을 도려내 버리고 싶은 사람을 만날 때도 많은 것입니다. 그거 보면 선생님이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성격이 참 급한 사람입니다. 옛날에 동네에서도 돈푼이나 있고 잘사는 사람이 못사는 사람들을 못살게 굴거나, 나이가 많은 녀석들이 나이가 어린 아이들을 억울하게 때리거나 하게 되면, 선생님은 복수를 하고 싶어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게 안 되면 분에 벅차서 못 사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보고는 못 견뎌요. 그런 성격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런 일을 하려니 죽을 지경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탕감 효과율이 높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물에 물 탄 듯이. 도살장에 가는 늙은 황소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건 별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꽤 힘들어요? 그런데 이건 팔팔 뛰는, 아예 견딜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가 이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목사들의 강의를 다 듣고 있습니다. 옛날에도 내가 얘기했지만, '말을 이렇게 해, 이 녀석아' 하면서 욕을 퍼붓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무슨 잘못을 하게 되면 욕을 퍼붓거든요. '잘 만났다. 이 녀석들아' 하는 것이 인사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세계는 ‘잘 왔어?’ 그러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쪽으로 나가야 합니다. 잘한 사람이 잘못한 사람들 한테 '아 미안합니다'라고 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당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자세로 들이 짓밟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부작용이 벌어지고 마지막이 되는 게 아니냐 이겁니다.
내가 요전에도 모모 인사들을 만났을 때, '당신을 내가 만난 것은 당신이 필요해서 만난 것이 아니다. 나는 당신의 권위라든가 당신의 입장을 마이너스시키는 졸장부가 아니다. 당신이 나를 만나자고 한 것은 당신에게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만나자고 한 것이다. 당신 앞에 내가 마이너스 조건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들이 방문도 안 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극복해야 됩니다. 극복해야 되는 거라구요. 참기가 얼마나 힘드느냐? 이거 보라구요. 참을 인(忍)자는 칼 도(刀)에 마음 심(心)입니다. 그래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칼날 같은 마음을 쓰라는 거예요, 쓰지 말자는 거예요?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라는 것입니다.
참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요. 참고 견뎌야 합니다. 견뎠다 하는 것은 참는 일이 생기기 전보다 못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낫게 되었다는 거예요? 참는 일이 생기기 전보다 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극복했다 하는 것도 참는 일이 생기기 전보다 못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낫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이 그 터전을 중심삼고 제 2의 인내의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극복이 옛날보다 못해 가지고는 하늘이 제2의 인내의 도상을 가라고 명령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극복하는 자리에서 당하던 것보다도 내심에 보다 나을 수 있는 천적인 내용이 결정되어야만 다시 올라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참고 견뎌 온 것은 연습입니다. 이제부터 실전도상을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또 이기고 극복하게 될 때는 그것도 연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겼다고 그것 가지고 춤추지 말라는 겁니다. 연습으로 알라는 것입니다. 또다시 제3의 실전노정을 가야 됩니다. 제4차 민족복귀, 제5차 국가복귀, 제6차 세계복귀, 제7차 천주복귀, 제8차 하나님복귀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까지 하면 8차까지 나가지요? 하나님까지 해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효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얼마나 극복해야 되느냐!
하나님은 뒷방 할아버지가 되고 선생님은 안방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놀음을 해야 되는 거라구요. 내가 통일교회 영신들을 데려다가 까꾸로 모가지를 잡고 한번 들이박았으면 좋겠어요. 가지 않을 때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선생님이 그렇게 들이박으면 안 꺾일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대해서 시험을 제일 많이 하셨습니다. 문 아무개는 질기다는 거라구요. 질기고 악착같다는 거예요. 내 눈을 보라구요. 내 눈을 보면 흐릿하게 생기지 않았습니다. 악착같습니다. 내가 무엇을 한번 붙드는 날에는 손목이 빠지면 빠졌지 안 놓습니다. 절대 안 놓습니다. 후퇴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그거 하기 전에는 밤잠을 못 자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사탄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사탄이 있는 것 같지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하나님이 있는 것 같지요? 그렇게 믿어 가지고 생명을 내놓을 수 있어요? 내놓을 수 있다면 그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런 것 같은 것을 사실로 믿고 행동하는 사람은 지극히 미욱한 사람이 아니면 지극히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것은 왜? 만일 어떤 사람이 막연히 같은 것 같은 것을 사실로 믿고 죽는 자리까지 갔다면, 그렇게 내몬 주인이 있다면, 그 주인은 그 사람을 영원히 심복부하로 삼을 것입니다. 결론이 그렇잖아요. 바보 중의 바보 같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같은 것 같은데 사실로 믿고 했다 이겁니다. 사실로 믿고 한 그것이 그 누구도 탄복할 수 있는 일이라 할때 주인은 그 사람을 영원히 심복부하로 삼으려 할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은 것 같은 것을 믿어라 했는데 그것을 믿고 행동했다 할 때, 그리고 그 행동한 것이 하나님보다도 멋지다 할 때, 하나님은 그를 영원히 심복부하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이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믿고 우러러 모시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한계가 어디냐? 인내적인 믿음, 극복적인 믿음의 한계가 어디까지냐? 하나님을 타고 앉는 자리까지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상투 끝에 올라가 춤을 추더라도 하나님이 좋아하며 어서 춤추어라 할 수 있는 자리까지입니다. 그 자리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지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내용만 뒷받침된다면 믿지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탄을 잡기 위해서는 사탄 이상의 수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이 사탄을 잡으려면 사탄 이상의 수법을 써야 합니다. 사탄이 하자고 하면 하나님은 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작전이 있어야 합니다. 사탄이 '아이구, 나 손들었어' 해야지. '내가 현재 하나님보다 낫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것이라 하더라도 선을 보다 가치 있게 증거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인정하겠다' 하나님은 이렇게 보시는 것입니다. 악이 그 반대적인 선을 자극시킬 수 있는 자극제로 쓰여진다 할 때는 그 악을 악으로 취급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어떤 사람이 벼랑에서 떨어져 죽는 것을 본 사람은 거기에 가 안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안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법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한 자리를 갖지 못한다면 사탄을 영영 정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자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나서라는 거라구요.
앞으로 세계적인 신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의 그 누구도 무시 못할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을 생명시하고 간 신앙자가 누구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하늘 뜻과 관계되어 있는가를 파헤쳐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정상적인데….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무시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과 다르기 때문에 그게 타당한 것이라구요. 나와 다르기 때문에 손가락을 보더라도 더 많기 마련이라구요.
나는 손가락이 다섯 개 있는데 하나님은 손가락이 여섯 개 있다고 하면 하나님은 나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이 정말이라고 알면 된다구요. 간단하다는 거라구요. 나 자신이 하나님과 똑같다면 나는 그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의 복을 받고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쉽게 말하면 내가 가진 다섯 개 이상의 손가락을 가졌기 때문에, 그 나머지 손가락으로 복을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적용시킬 수 있고 타당화시킬 수 있는 자신이 되려고 해야지. 그것을 부정하고 비판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죽기까지 해보라는 거라구요. 죽어 보자 이겁니다. 죽는 데는 잘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잘 죽어 보자는 것입니다. 죽고 난 뒤에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죽는 것은 내 일이고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살리겠다고 하신 약속을 깨뜨리면 하나님이 배반자가 되는 것입니다. 약속 불이행자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죽었는데 하나님이 그 약속을 불이행했다면 하나님이 나를 그냥 그대로 처박아 둘 것이냐? 아닙니다. 몇백 배 이상의 다른 것으로 갚아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식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죽으라고 해서 죽었는데. 죽으면 부활시켜 준다고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면 그 대가 이상으로 갚아 줘야 되는 것입니다. 나 하나 죽었는데 나를 부활시키지 않은 대가로 '우리 나라를 살려주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대가로 세계를 걸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나를 죽음길로 내모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못 믿을 것을 믿는 것이 위대합니다. 못 믿을 것을 믿고 행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나선 사나이가 있다면 그는 위대한 사나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장 죽게 되었는데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자기가 당장 죽게 되어 벌거벗겨져 매를 맞으면 '아이구, 아야야야' 그러지, ‘아버지, 아프세요?’ 그래요? 그런데도 예수는 '아버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그랬습니다. 그것은 ‘나는 없습니다. 아버지가 아프시지요?’ 그 식이라구요. 차원이 다릅니다. 이렇게 땅이 아니고 하늘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능동적인 그 주체 앞에서는 못 믿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할 때 한국의 잘 믿는 목사나 신령한 사람들을 다 만나 봤습니다. 그들에게 몇 마디 물어 보면 대번에 다 아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믿소? 하며 점쳐 보는 거라구요. '당신은 하나의 종주 새끼밖에 못 된다' 이거예요. 하나님은 절대적인 하나님이요, 창조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탄의 말이라도 하나님의 말로서 절대적으로 믿게 될 때는 하나님이 이루어 줘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사탄의 말에 속아 가지고 사탄의 말을 믿으면, 그것은 사탄을 유인하는 거예요. 끌어올리는 거예요. 사탄은 끝까지 올라가 더 이상 갈 데가 없으면 다시 내려와야 하는 것입니다. 내려오는 길은 해방의 길이기 때문에 하늘의 길을 따라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탄의 말이라도 하늘의 말로서 믿고 끝까지 나가게 될 때는, 그것은 사탄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은 것이 되기 때문에, 창조의 하나님은 그것까지 이루어 주는 책임을 지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입니다. 오늘 통일교회가 그런 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출발했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아야 합니다.
극복도 타당한 극복이어야 합니다. 통일교인들, '이거 이렇게 하면 축복을 받지' 하는데. 그것이 무슨 극복입니까? 그것은 장사지요, 장사. 그건 제3의 환경과는 하등의 관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건 자기만 관계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여러분이 참는 한계가 어딜 것이냐? 극복의 한계가 어디냐? 한계는 끝까지라구요. 죽는 데까지입니다. 목을 내놓는 데까지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목을 내놓는 데도 ‘내 가정을 위해 목을 내놓는다’ 하는 것은 시시합니다. 나라를 위해 내놓는 것도 시시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내놓긴 내놓는데 세계를 위한 나라를 위해서 내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위한 나라의 주권자가 되는 거라구요. 그러면 그가 개인일지라도 전체를 대표한 개인입니다. 가정이라면 전체를 대표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참이 되는 것입니다.
참은 개인도 긍정하고 가정도 긍정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전부가 긍정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디에 가든지 부정적인 여건을 제시할 수 없는 참의 기원을 형성하지 않으면 참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싸우는 데 있어서 세계를 구하기 위해 했다 하면 그것은 세계적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도 세계를 위했다 하면 그것은 세계적입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문선생이 그런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사탄이 걸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사는 데 있어서, 가정을 터전으로 해서 사는 데도 그 가정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대표한 가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종족을 중심삼고 사는 데도 세계를 대표한 종족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종족권은 축복받은 가정들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 내에 여러분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못 살면 안 됩니다.
내가 엊그제 일본 가정부장이 왔기에 얘기했습니다. 그에게 일본이 살길이 무엇이냐 하는데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복귀역사는 물질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제물, 즉 물질시대요, 신약시대는 인격시대요, 성약시대는 부모의 심정시대입니다. 만물과 인격과 심정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이것을 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을 위해서 선교 헌금을 해라. 그 다음에는 한국을 위해서 죽어라. 그리고 한국을 자기 나라보다 사랑해라. 그래야 일본이 살 길이 생기게 된다. 이것이 복귀다. 이것이 일본의 갈 길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원칙은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원칙은 불변입니다. 선생님이 싫더라도 선생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가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종족적인 메시아가 될 수 없습니다. 축복이 그게 아니냐. 축복해 준 것은 하나되었다는 조건을 세워 준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없으면 횡적인 출발은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수님이 왜 낙원에 가 있느냐? 가정적 기반을 못 가짐으로 말미암아 이 지상에 횡적인 섭리의 터전을 남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선생님의 가정을 따라 나가야 합니다. 종족도 선생님을 중심삼고 통일교회 전통에 화해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국가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자면 그 과정에 무엇이 필요하냐? 인내와 극복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기가 가는 것입니다. 인내와 극복의 길은 복귀도상에 있어서 가야할 정상적인 궤도입니다. 참고 견뎌야 합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이 공장 얘기를 한번 하겠습니다. 우리 공장이 처음 총을 만들게 될 때, 공장장에게 하루에 얼마나 만들 수 있느냐고 물으니까 80정 정도 밖에 못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400정을 만들라고 하니까 못 하겠다기에 내가 책임지마고 했습니다. 내가 여기서 세 시 50분에 차를 타고 나가서 거기에 네 시 5분, 10분에 도착하니까 공장장이고 누구고 자기네들이 네 시에 안 일어나고 별수 있어요? 밥 먹고 편안히 잠잘 여력이 생겼기 때문에 안 된다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400정이 뭐예요? 최고 780정까지 만들었습니다. 단결하면 이렇게 위대한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조직을 무시했습니다. 내 명령을 절대시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엔 계장, 과장이 없는 것입니다. 통일이라 이것입니다. 과장이고 누구고 책임을 못 하면 '너희들은 놀아라' 하고 들이박아 놓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몇 번 내몰았더니 복닥불이 났습니다. 환경이 뭐 어쩌고 하면서 요사떨고 하던 시시한 녀석들에게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역사가 벌어지면 '아이고 나 죽소' 하면서 즉각 일을 하겠다고 하지 않고는, 밤을 새워서라도 하겠다고 하지 않고는 죽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정부에서 2만 정을 만들 계획인데 그중 얼마나 만들 것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장 책임자 들에게 그중 3분의 1정도인 6천 정까지 만들어 보고 그 다음에 1만2 천정까지 만들어 보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들이 못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왜 못하느냐 이것입니다. 해봤느냐 이겁니다. 그런 것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해보고 말하라는 겁니다. 해보고 안 되면 모르지만, 되는 데까지라도 해보라는 거라구요. 열 시간 해서 안 되면 스무 시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스물 세 시간이라도 하는 거라구요. 그래서 죽겠으면 사람을 배가시키는 것입니다. 열 사람으로 안 되면 스무 사람을 동원해서라도 되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는 그 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런 때가 된 것입니다.
사무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과장인데 왜 이런 일을 시키는 거야? 과장 일만 하면 됐지, 전도는 무슨 전도야' 이런 시시한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항상 일이 밀려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내가 용서하지 않을 거라구요. 때만 되면 내가 한번 반대로 친다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는 반대로 하는 것입니다. 농사짓기 싫어요? 내가 농사를 짓겠다 그 말입니다. 선생님도 똥통을 멨다는 것입니다. 해라 이겁니다. 거꾸로 처박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는 거라구요. 간부들도 거꾸로 처박아 버릴 거라구요. 그 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꺼떡꺼떡하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패스가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식이 나쁜 식이냐? 그것이 통일식입니다. 기둥을 박는 데는 단단한 기둥을 박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고물로 짓더라도 단단한 기둥을 박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사람을 처음 봐도 단단한 사람인지 노글노글한 사람인지 다 감정할 줄 압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230쌍 약혼을 시켜 주는 데도 열 시간 이내에 다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너는 이런 성격이고, 또 너는 이런 성격이 아니냐' 이렇게 선별해서 맺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들보다 낫거든요. 그런 선생님이라구요. 알고도 모른 척하고 잘 속아 주지.
선생님은 여러분이 가야 할 길에 있어서 인내와 극복의 도가 아직까지 차지 않았다고 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부인들을 내보냈습니까? 자기들이 갔지요? 부인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따라가겠어요, 그냥 버티고 있겠어요? 부인들이 안 돌아오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거 생각해 보라구요. 안 돌아오면 어떻게 할 테야? '안 돌아오면 그만두지 뭐'. 그만둬 보라는 거예요. 도깨비같이 어영부영하는 777쌍 남편들, 부인들이 안 돌아오면 따라갈 거예요, 안 따라갈 거예요? 따라갈 거예요, 안 따라갈 거예요? 남자의 체면이 있지 어떻게 따라가요?(웃음) 안 따라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잘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길이길이 통일교회 선생님 편들게 되어 있지 여러분 편들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은 편안하게 있으면서 여러분만 시킨다고 할지 모르지만 내가 부인들을 내보내 놓고 지금 밤잠을 못 자는 것입니다. 개척시대에는 굶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려운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비가 오는데도 한데서 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몰리고 욕먹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선생님이 편안하겠어요? 그런 면에 있어서는 선생님이 양심적으로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그건 왜? 여러분이 뜻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구요.
그러면 선생님은 그런 과정을 안 거쳐왔느냐? 선생님도 다 했다구요. 처자를 버리고, 어머니 아버지가 감옥에 찾아왔을 때도 쫓아 보내는 것입니다. 눈물 흘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아무개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름을 부르면 쫓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다시 나타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을 무서워했습니다. 남편보다도 시아버지보다도 선생님을 제일 무서워했습니다. 간부들도 그렇게 되어야 하는 거라구요.
선생님은 15세 되기 전에 어머니, 아버지, 형님, 삼촌, 사촌까지 손에 쥐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조건에 걸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여덟 살부터 사돈의 8촌까지 선을 보아 주었다고요. 사진 가지고 오면 내가 봐 가지고 틀렸다 하면 못사는 것이고, 됐다 하면 잘사는 거라구요. 그런 간판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동네에서 믿을 만한 사람으로 선전이 되어 있었다구요. 선생님은 그런 역사가 있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구요.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잘못하면 조건에 걸릴 걸 생각 안 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여러분이 모를 때에 먼저 다했다는 거예요. 다 해 가지고 조건에 안 걸리게 해서 자리를 잡은거라구요.
여러분에게 원리말씀을 14년 전에 가르쳐 주었는데, 지금에 와서 '아이고 선생님, 이거 이렇지요. 지금에야 알았습니다'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14년 동안 원리강사를 했으면서도 그 내용을 지금에야 알았다고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 14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거예요? 도둑질을 했다는 겁니다. 사기꾼 노릇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보면 여러분의 차원은 못해도 10년쯤은 선생님과 차이가 있는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36가정 결혼식도 선생님이 그저 계획을 세워서 한 것이 아닙니다. '식은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는 것을 다 하고 나서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서야 '아, 그래서 그렇게 했구나' 한다는 거예요. 그런 처지에 있는 여러분이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느냐는 겁니다. 절대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절대 복종하면 빨리 가는 것입니다. 가지가 뿌리에 복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 뿌리가 끄는데 가지가 '아이고 난 뿌리를 따라가지 않겠다'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가지가 떨어져 나가지 별수 있어요? 이러구 저러구 하다가는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유협회장이 훌륭했습니다.
내가 극복해야 할 5퍼센트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 보라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도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 천사장이 이렇게 따먹으라고 하는데 이것 따먹어도 됩니까? 하고 물어 봐야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은 못하시더라도 '이놈!' 하고 화라도 내셨을것 아닙니까? 그런데 물어 보았나요? 이런 원칙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물어 보지 못했다는 거예요. 꿍꿍이 속으로 자기 혼자 하다가 누더기 보따리 쓰고 '아이고, 나 죽는다' 한 것입니다. 그렇게 죽는다고하면 누가 공언을 해주나요? 잘 죽으라지. 자기 갈 길도 바쁘다는 것입니다. 전체의 갈 길이 바쁘다는 거라구요. 내가 지금 수습할 여지가 없습니다. 알아줄 여자가 없다구. 그보다도 더 바쁜 일이 있다는 거야. 때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고 참고 견뎌야 합니다. 참고 견디는 데 있어서 견디는 자리가 참을 일이 생긴 자리보다 낮아져서는 하늘 앞에 서지 못합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하면 끝나고 났을 때, '야, 너 훌륭하구나. 그가, 훌륭하구나' 하고 하늘의 동정의 여운이 같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이 그를 세워서 또 다른 새로운 출발과 또 다른 발전의 동기를 가져다 주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은 꺾이게 될 때는 어느때든지 한 시대밖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이면 아브라함도 한 시대밖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꺾이게 될 때는 그것으로 끝장을 보지 않았더냐!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문선생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수난의 길을, 생명이 엇갈리는 길을 거쳐왔지만 선생님이 남아진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극복을 하는 데도 마이너스되는 극복은 안 했습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불평 불만을 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평불만은 사탄의 요소입니다. 아무리 사지에 가더라도, 쇠고랑을 차고 영어의 몸이 되어 옥살이하는 한이 있더라도, 불평 불만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불평 불만을 하면 절대 남아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선생님이 신앙길을 개척해 나오면서 가졌던 본질적인 생각입니다.
극복해야 합니다. 극복하는 데는 누구를 중심삼고 하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극복을 하고 난 뒤에 어디에 남아지기를 하나님이 바라실 것이냐? 비판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동정을 받는 자리, 하나님이 눈물을 흘리며 맞아 줄 수 있고, '내 아들아' 하며 품어 줄 수 있는 자리에 남아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는 극복하고 나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참는 자리에서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와 가지고 '내 아들아, 너만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자리, 그 자리는 누구를 중심삼고 나오느냐? 그것은 세계와 하늘을 위해서 나가는 사람을 중심삼고 나오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자기를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위해서 죽고 세계를 위해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복을 받기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아들딸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복을 지닐 수 있고 역사가 복을 지닐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죽고 사는 것이지, 나와 내 아들 딸을 위해서 죽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공적인 입장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인 노릇을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위해서 가정을 투입해 가지고, 부인을 내세워 가지고 전도하자, 그 다음에는 남북통일을 하자, 삼팔선을 철폐하자는 운동을 벌여야 되겠습니다. 삼팔선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어머니 아버지, 아들딸을 버려 두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나라의 삼팔선을 극복할 수 없고, 이 나라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대가를, 그것을 위한 인내의 과정을 누가 치를 것이냐? 대한민국이 못 치르거든 통일교회가 치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여러분이 못치르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치르겠다는 것입니다.
어저께 내가 일본 가정부장을 데리고 얘기할 때 무슨 얘기를 했느냐 하면, 앞으로 일본 식구들은 대마도를 전도기지로 하라고 했습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일본 정부가 제국주의 국가형태로 돌아가게 될 때는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적이기 때문에 탄압당할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가 대마 도를 중심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대마도로 집결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엔 한국으로 철수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만일에 한국이 공산당에게 밀리게 될 때는 우리가 대마도로 피난 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통일교인들이 굶어 죽지 않지요. 그래 가지고 한국 통일교회와 일본 통일교회가 합하여 대마도를 완전히 철옹성 같은 요새지로 만들고 일본이 뭐라 하게 되면 매매해 버리자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까지 지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내가 구보끼한테, 만일 너희들이 망명해야 될 때 전부 대마도에 머물 수 없거든 일본 승공연합이 한국 통일교인을 책임지고 망명시키라고 했습니다. 이번에 이런 문제까지 토의했습니다. 비밀 회담을 한 거라구요. 그 내용을 여러분에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박대통령을 만나서도 못할 얘기를 지금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선생님에게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한 시간 15분 동안 만나서 얘기를 하고 나니까 완전히 걸려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못 하는 일을 우리는 지금까지 해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삼천만 민족 앞에 당당코 큰소리를 하더라도 나라의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지금 사실이 그렇게 될 수 있는 권을 만들어 놓고 아시아로, 세계로 뻗쳐 나가야 할 인내와 극복의 꿰도를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코치할 수 없는 일을 선생님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 이 궤도를 가설해야 합니다.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궤도를 가설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다 하겠어요? 그러려면 초국가적인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내 아들딸, 대한민국의 백성만을 위하는 그런 고질적인 사상 가지고는 안 됩니다. 초국가적인 사상을 중심삼고 아시아를 사랑하고 아시아인을 대하여 형제의 정을 나누고, 아시아인을 대하여 하나의 동포의 감정을 체득할 수 있는 놀라운 사상의 터전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궤도를 출발하여 세계로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이 궤도가 부산에서 출발했으면 부산에서 멈추게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뻗쳐 나가서 이 세계를 돌아와야 합니다. 한국에서 출발하여 아시아만 돌아와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다 거쳐서 돌아와야 합니다.
이 일을 해야 하는데 누가 할 것이냐? 주체국인 한국을 중심삼고 그일을 시키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이것을 하기 싫어하면 한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종주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추종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종의 나라가 되는 거예요. 되겠어요? 여러분, 종이 되겠 어요? 빌어먹고 남에게 의지해 살던 불쌍한 이 신세를, 역사적인 탈을 벗어 버리고 주인 노릇을 해야 합니다. 나라의 주권자들이 행사하던 몇백배의 당당한 권리를 갖고 평화의 세계에 부상할 수 있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끝에서 끝을 극복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한국에서 출발을 했으니 한국에서 끝을 맺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출발했으니 한국이 기관차가 되어 세계를 돌아다니며 철도를 부설해야 합니다. 그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한국이 병신이 되어 가지고, 못난 그 자체가 되어 가지고 제일이 되느냐? 천만에요. 이것은 선생님의 사상이 아닙니다. 세계에 그 일을 하지 못하는 한국이 되었는데도 한국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한국이 세계 제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똥싸는 일도 먼저 했다고 해서 제일이야?
여기 부장이라든가 지구장들은 일본 사람이 평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개 부장은 몇 점, 뭐 80점, 또는 몇 퍼센트 해 가지고 이것저것다 따져서 계산해 놓고 비평을 합니다. 그들은 이 부장들 가운데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다' 하는 것을 다 알아 가지고 그런 부장들이 아무리 큰소리를 해도 코방귀도 뀌지 않습니다. 그가 무슨 불평을 하더라도 듣지도 않습니다. 자기는 상대가 그런 것을 다 듣고 있는 줄 알고 기분이 좋아서 얘기했지만 그 사람들은 '이놈의 자식, 모가지를…' 이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병신 자식이 집안 망신을 시키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병신이 방구석에 들어앉아 가지고 이 야단이라구요. 병신 자식이 망신시킨다는 말이 있잖아요? 여러분이 이 말을 알아야 합니다.
한국이 주체국이면 선생님을 빼놓고도 주체국이 될 수 있어요? 선생님이 미국에 가게 되면 한국에 오라고 해도 오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미국에 가면 미국이 주체국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이 뭐 어떻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들이 못 하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은 세계적인 시련과 세계적인 환난과정 가운데에서 인내와 극복을 생활의 본질로 삼고 성품으로 삼아 가지고 세계를 돌아올 때까지 가야 합니다. 이곳에서 그 궤도가 출발하여 세계를 돌아서 종착지인 본지에 돌아왔을 때, 그 길이 탄탄대로가 되어 세계가 편리하게 되고 이익을 보게 되면, 그때에는 이것을 영원히 영원히 찬양하고 숭배하는 역사적인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늘의 뜻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앉아서 뭉그적거려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보아서 앞날을 알라구요. 여러분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한국이 어떻게 될 것이냐, 뜻을 대하여 어떻게 가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자기 자체의 신앙 자세, 생활 자세, 뜻에 대한 자세가 어떠냐 하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 여러분의 후손들의 귀결점이 어디가 될 것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때를 맞기까지 환경의 여건을 중심삼고 싸워 승리한 터전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자랑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이 나라가 그것에 일체되지 않고 상반될 때는 이 나라와 국민은 비참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 그런 때입니다. 통일교회가 없어졌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통일교회가 없는 사회를 생각해 보라구요. 앞으로 부패를 뿌리뽑을 수 있겠어요? 그것을 나한테 맡기라는 것입니다. 깨끗이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여당과 야당의 당수가 나한테 와서 훈련을 받고 내가 하는 대로 하라는 겁니다. 내가 일년 반이면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안 되나, 되나 보라는 것입니다. 사상무장을 우리가 시켜 주겠다는 것입니다. 군대의 사상무장도 우리가 시켜 주겠으니 맡기라는 것입니다. 이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내가 공식석상에서 노골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타가 공인할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공부를 시켜 가지고 들이까는 거라구요.
그래서 74년도까지 우리의 신문사를 만들려고 합니다. 본부에 있는 부인들도 다 나가서 신문을 파는 것입니다. 동아일보를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빚을 지면서까지 신문사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선전만 하면 절대로 지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수고를 해야 할 것입니다. 수고하고 나면 망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장단에 맞춰 춤출 일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동에서 춤을 추고, 서에서 춤을 추고, 남에서 춤을 추고, 북에서 춤을 추더라도 중앙에서 춤을 추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에서 춤을 추는 것은 중앙에서 춤출 수 있는 그때를 위해 춤추는 것입니다. 동에서 춤추는 것을 가지고 중앙에서 춤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중앙에까지 가서 춤을 추어야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체국인 한국이 하늘의 권위와 긍지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세계의 어느 국가 민족보다도 세계를 붙안고 참고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거기에는 개인적인 시련이 부딪쳐 올 것이요, 가정적인 시련이 부딪쳐 올것이요, 종족적인 시련이 부딪쳐 올 것이요, 민족적인 시련도 부딪쳐 올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현재의 입장을 볼 때, 통일교회는 종족적인 시련을 맞고 있는 비상시기에 처해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의 비상시기가 아니라 여러분의 비상시기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고비가 있다는 것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언제까지나 한국에 있을 것이냐? 선생님은 언제나 한국에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미국에 가는 데도 세 가지 목적이 있지만 이야기하지 않는 거라구요. 여러분들이 신문 지상에 보도되는 세계적인 사건이라든가 외곽적인 세계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듣게 될 때, 우리는 그반대적인 면에서 어떻게 결의해야 되는가를 미루어서 알아야 합니다.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대 이상의 반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극복할 수 없습니다. 승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철칙입니다.
여러분이 한국에 있지만 세계를 직시하며 가야 합니다. 이미 여러분이 바라는 궤도가 부설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궤도를 이용 하여 힘차게 달려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 전체를 활용해 가지고 세계로 갈 수 있는 여러분 나름대로의 주체면 주체, 하늘 앞에 사랑받는 아들이면 아들, 충신이면 충신의 길을 닦아 나가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의 닦아진 터전을, 그 궤도를 백 퍼센트 이용해서 통일교회의 첨단을 넘어가야만 여러분의 공의로운 그 터전이, 그 궤도가 더 연장될 수 있는 것으로 남아진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보다 잘 극복해야 됩니다.
이제 우리 가정 전체가 동원하여 삼팔선을 지키고, 뜻을 위해 이북 5도를 직시해 나가 내일의 성공을 다짐할 수 있는 가정이 되고 그 소망을 안고 가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가정이라면 지금 이때에는 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중심삼아서 가는 사람에게는 승리와 영광과 찬양이 영원히 같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이 통일교단은 그 누구를 위한 교단이 아닙니다. 제가 이 길을 닦아 나오는 데는 삼척동자에게도 머리를 숙여 경배하는 자리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그 자리에서부터 자기의 가치를 당신과 더불어 무한히 확대하고자 하며 싸워 나온 역사가 배후에 숨어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길을 가는 스승과 그 스승을 인도하는 아버지는 그보다 더한 몇천만 배의 수난길을 걸어오신 것을 이들이 생각하게 하여 주시옵고, 오늘 이런 터전을 갖춘 실상권에 있어서 당신의 수고에 황공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고 당신을 대하여 눈물과 진정으로 간구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자신들인 것을 발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제 저희들은 이 사망권의 세계를 초월하여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뚫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당신은 이 시대적 환경에서 살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적 환경을 극복하고 남아질 수 있고 미래의 전통을 현실 기반 위에 확고히 세울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사망권을 극복하고 나아가 승리의 권을 영원히 갖출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그런 입장에 선 아들딸들을 찾기 위해 사망권에서 얼마나 얼마나 몸부림쳐 나오셨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 앞에 부름받을 수 있는 아들 중의 아들이 되고 딸 중의 딸이 되겠다고, 당신의 영광의 나라에서 당신이 기뻐하시며 내세울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겠다고 다짐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께서 온 피조세계를 상속해 주고 너 때문에 내가 있고 너 때문에 내가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하실 수 있는, 당신의 사랑을 몽땅 상속받고도 부끄러움이 없이 기뻐할 수 있는 저희 자신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런 자녀들이 나올 때까지 참아 나오시는 당신의 수고로움이 오늘날까지 저희들의 배후에 엉클어져 나왔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당신이 그러한 수난의 대가를 치르고 찾아오셨는데. 찾아진 저희들이 이렇게 무가치한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생각할 때, 자신의 모습을 이천지간에 내놓을 수 없고, 눈을 들어 산을 볼 수 없고, 호수를 볼 수 없고, 땅을 볼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한때가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자기의 손을 펴 가지고 한 포기의 풀도 한 줌의 흙도 만질 수 없는 부끄러운 자신인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억천만세 그 무엇보다도 고귀한 수고의 대가를 치르고 이렇게 무가치한 것을 찾아 놓으신 것을 생각할 때, 단 하루도 슬픔과 원통함과 억울함과 분함의 마음을 풀 수 없는 당신의 입장인 것을 저희들이 모르고, 당신께 나를 사랑하여 달라고 나를 북돋아 달라고 하는 자리에 섰던 자신들의 모습이 얼마나 추했는가 하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긍지를 가지고 당신께 감사 또 감사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 눈으로는 당신을 위해 보고 이 몸으로는 당신을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자리에서 도망쳐 왔던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를 생각할 때, 저희들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불쌍한 죄악의 후손인 것을 자인해야 되겠습니다.
나 자신이 이렇게 추한 모습인 것을 생각하면 당신의 거룩한 모습을 바라볼 수 없고, 아버지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부를 수 없사옵니다. 너무나 너무나 부족한 나 자신임을 느끼옵니다. 아버지, 아버지, 천만 번 불러 보고 그 말이 귀를 통하여 들리게 될 때. 또다시 그 말을 그리워하며 눈물 짓고 몸부림쳐야 할 입장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 타락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저희들의 비참사인 것을 생각하옵니다. 어찌하여 저희들이 이렇듯 비참한 인간이 되었는가를 스스로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 선조로부터 엮어진 죄의 근원이 나에게 그런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것이 불가피한 사실임을 알게 되옵니다.
천세 만세 한을 품고 나온 아버지 앞에 그 한을 풀 수 있는 길이 무엇이 옵니까? 이렇게 부족한 저희들을 거름삼아서 그 한을 메울 수 있는 길이 있거든 그 길이 죽음길이라도 찾아가야 되겠사옵니다. 그 길이 신앙길을 가는 사람들의 전통적인 길인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거룩하신 성상이 분부하시는 노정을 옷깃을 여미고 목이 쉬도록 통곡을 하며 따라 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당신보다 앞서서 눈물을 거두고 당신보다 먼저 편한 자리에 섰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이상 경거망동한 일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참고 견디고 극복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내가 참아야 하겠고 나를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가정을 극복하고 환경을 극복하는, 외람된 터전을 삼켜 버릴 수 있는 주체가 되지 않고서는 당신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무릎을 꿇고 밤을 세워 가면서 아버지 앞에 나는 망하더라도 민족이 소원하는 한때를 갖게 허락해 달라고, 개인들을 대신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하소연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되겠사옵니다. 또 그럴 수 있는 가정이 나타나야 되겠다고 피를 토하고 눈물을 흘리며 당신 앞에 정성들이는 무리가 되어야 할 것이 여기 모인 통일의 무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말을 하고 나서도 부끄러움을 깨달을 줄 모르고 바라보고 나서도 기가 막히다는 것을 깨달을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는, 그 이상의 민족이 나타나고 그 이상의 무리가 나타나게 될 때 당신이 그들을 부등켜안고 흐느낀다는 사실을 알고, 이제 누구보다도 수난길을 달려가서 누구보다도 최후의 승리를 결정하는 영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시련의 도상에 있는 한국과 세계의 정세를 바라볼 때, 저희들이 그 첨단에 서서 당신을 대신하여 정성의 피눈물을 흘림으로 말미암아 당신이 모든 것의 동기가 되고 당신의 내일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한국과 일본과 대만을 연결시켜야 할 시대적 사명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가를 생각하고 이제 저희들은 새로운 각오를 해야 하겠습니다. 일본에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은 오늘부터 7일간 단식 투쟁에 들어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릎을 꿇고 정성을 들이며 싸우는 것은 일본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 스승과 한국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일본에서는 그 나라의 주권자 그 민족보다도 한국의 통일교회의 식구들과 여기에 서 있는 스승을 중심삼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제 이 나라의 장래는 누가 책임을 지느냐 하게 될 때에 이 나라의 실정을 아는 저희들이 책임져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우리가 선봉에 서서 아시아의 제물이 되어 아시아를 위하여 피를 흘려야 하겠습니다. 이번 40일 기간에 일본에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보다도 더 심각한 자리에서 기도하고 정성을 들여서, 아버지 앞에 한국이 먼저 기억될 수 있게 해야 된다는것을 생각하고, 일본에 져서는 안 될 주체국가 한국의 사명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모인 젊은 가슴들, 청년들의 고동치는 맥박을 통하여 뻗어 나오는 젊은 피는 어디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사옵니까? 적진의 참호를 쳐부수는 자리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고동치는 소리가 세계를 움직이고 세계의 역사를 움직여 세계의 심정을 회복하는 일을 해야 되겠사옵니다. 그것이 통일가의 사명이요, 본부와 본부를 중심삼고 대한민국내에 있는 저희들의 사명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누가 하지 못하더라도 본부에 있는 몇 사람이라도 아버지를 대할 수 있는 그날까지 세계의 복지천국, 행복의 터전을 위하여 인내와 극복을 생활철학으로 삼고 참고 견디어 나가는 무리가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러한 무리가 많아야 된다는것을 저희는 미처 몰랐습니다. 이 시간, 당신 앞에 부복한 자녀들이 그럴 수 있는 모습을 스스로 갖추겠다고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아버님은 불쌍하시고 고독하신 분이십니다. 이 땅 위에 당신이 바라시는 아들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나 이들이 이 민족 가운데서 남아지는 무리들이 될 것을 결의하였사옵나이다. 이 길은 이기고 나서도 세상 전체가 원망하고 망하기를 바라는, 환희하는 무리들이 없는 고독의 길인 것을 아옵니다. 그 어느때에 민족과 더불어 환희하고 그들로부터 환영을 받을 수 있는 날이. 만민이 스스로 당신을 찬양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은 우리보다 더 불쌍하시고 비참하신 분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여기에 모인 자녀들이 오늘의 비참이 자랑이요, 내일의 비참이 더 자랑이라고 알고 끝까지 인내와 극복만의 철학을 가지고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그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전통과 기반을 남기는 당신의 아들딸이 기필코 될 것을 이 시간 결의하게 하시옵소서.
금후에 한국의 갈 길이 아시아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아오니, 저희들의 신앙의 자세와 정성의 자세가 당신의 마음과 일치되고 당신의 세계 섭리의 방향과 일치되게 하시옵소서. 저희들이 새로운 결정적 승리권을 마련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일본에서 제일 못난 무리는 통일교회 무리요, 제일의 천치의 무리는 승공연합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옳소이다. 그렇게 나라와 민족 앞에 부정받는 자리에서 더 많은 곡절이 있을 때에 당신은 더 같이해 주실 것을 알고, 이제 그들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흥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그들의 배후에서 역사적인 전통과 지금까지의 탕감노정의 원칙을 중심삼고 그들의 갈 길을 지키시옵고, 아시아로 갈 수 있는 제물의 길을 공고히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나라와 일본과 아시아의 전 나라가 하나되어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승리의 아시아권을 마련할 그때까지 저희들이 전진 또 전진할 것을 이 시간 결의하게 하여 주시옵고, 각오하고 맹세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오니 당신의 자녀들이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의 사랑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이곳을 향해 마음 모아 기도하는 무리들에게 빚지는 이곳이 되지 않도록 당신이 사랑과 영광의 은사로 그들에게 대신 갚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사랑하는 아버님,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각자 처해 있는 자리에서 정성을 모아 이 만물의 날을 기념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본부에 있는 자녀들도 아홉번째 맞이하는 만물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하였사옵니다.
이처럼 저희들이 이날을 해마다 기념하게 됨은, 당신께서 구약시대를 통하여 제물을 조건으로 사람을 연결시킨 후 아들을 보내시어 신약시대를 마련하게 하셨으며, 신약시대를 통하여 새로운 성약시대의 부모의 인연을 세우려 하시는 한 많은 복귀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인간보다 하늘 앞에 가까운 입장에서 중간적인 제물의 사명을 해주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사람이 만물보다 부끄러운 자리에 섰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오늘날 이와 같이 종적인 인연을 따라서 만물을 매개로 하던 입장에서 아들을 매개로 했고, 아들을 매개로 하던 입장에서 부모를 매개로 하여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종적인 역사가 횡적인 출발을 볼 수 있는 이 시대권을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부모로부터 자식, 자식으로부터 만물, 이러한 순차적인 과정의 질서를 반대로 엮어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될 때에, 당신께서 지으신 피조세계가 얼마나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다시금 느끼게 되옵니다.
이와 같은 수난의 길을 거쳐 가인 아벨의 인연을, 오늘 우리 시대에 있어서 가정을 통하고, 종족을 통하고, 민족을 통하고, 국가를 통하고, 세계를 통하여 뒤집어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모의 한이 풀릴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 길을 가려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이요, 통일신도들의 생활철학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부족한 모습들이 이 자리에 모였사오나, 이 자리는 세계가 주시하는 자리요, 온 영계가 주시하는 자리라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선하지 못한 자체가 되어 아버지의 염려의 대상이 되고, 아버지의 슬픔의 요건이 되어서는 안 될 자리이오니, 아버지 1971년 5월 24일, 음력으로는 5월 초하룻날, 이날이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날을 기꺼이 맞아 주시옵소서. 이날 부족한 정성을 모아 식을 하는 이 자리는 역사를 대신한 자리요, 시대를 대신한 자리요. 천주를 대신한 자리요,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을 맺고 지낼 수 있고 당신을 받들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이날은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왔다 간 수많은 선조들이 고대하고 따랐던 날이요, 만물들이 희생권내에서 탄식하다가 해방을 맞이하여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날이요, 온 세계가 흑암 가운데 있다가 새로운 광명을 가지고 스스로 부끄러운 자세를 벗어 버리고 엄숙한 자세로서 당신을 아버지라 부르며 경배할 수 있는, 체신을 갖출 수 있는 날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진실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이날을 축하해야 되겠고, 아들 된 권위와 주일 된 권위를 갖추어 가지고 아버지 앞에 효성의 도리를 다하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 시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한국 땅 삼천리 반도뿐만이 아니라 해외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무릎을 꿇고 아시아의 한 모퉁이에 있는 한국, 처음 출발한 이곳을 향하여 이 날을 축하하고 있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비록 수는 소수요, 모임의 형태는 보잘것없다 할지라도 그 배후에 연결되어 있는 그 나라의 선한 선조들과 역사시대에 뜻을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던 순교의 선열들이 이들의 인연을 통하여 해원성사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이런 역사적인 원한을 저희들이 생각하게 될 때, 비록 소수의 기도라고 할지라도 그 기도가 얼마나 크고, 처해 있는 입장이 얼마나 엄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한 생명이 머리 숙이는 곳곳마다 한 나라가 머리를 숙인 그 이상의 가치로 아버지께서 기억하고 계신다는 사실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들이 이곳을 향하여 마음을 다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이곳이 아버지의 본연의 곳이요, 아버지의 본연의 나라라고 추구하면서 정성들이고 호소하는 자리마다 당신께서 같은 은사를 퍼부어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주체적인 사명을 다하지 않고서는 상대적인 권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자기들의 책임과 사명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 이날을 거룩히 받아 주시옵소서. 불충불효하고 미흡한 저희가 이날을 축하하는 기준이 당신의 소원과 일치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의 자비로우신 동정과 긍휼의 사랑이 이 시간 저희들과 함께 하시옵고, 이날이 기쁨의 날로 세워질 수 있게 하여 주시 옵길 재삼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 이 삼천리 반도에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만물이 소생할수 있고, 이 나라 이 민족이 기뻐할 수 있는 봄비를 바라보게 될 때, 외적으로 이렇듯이 내적으로도 아버지의 포근한 은사의 비를 내려 주심으로써 새로운 세계의 봄날을 맞이할 수 있고, 새롭게 해방의 기치를 드높이 들 수 있어서 삼천리 반도는 물론이요, 아시아와 세계에까지 떨쳐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더우기 이날 아버지 앞에 바라옵는 것은, 일본에 있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이 가두에서 7일 단식 투쟁을 하고 있사오니, 그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그들은 가고 오는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도 될 것이옵니다. 어려운 자리에서 참아 나가는 그 움직임이 그 나라 그 민족 앞에 무엇인가를 남겨 주고, 저들의 일체가 새로운 역사시대에 있어서 그 국민 앞에, 아시아의 민족과 국가 앞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사옵니다. 이와 같은 투쟁을 하는 것은 우리 교단에 있어서는 물론이거니와 역사적인 섭리의 도상을 두고 볼 때에도 처음 있는 일이오니, 아버지께서 그 자리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정성을 들이고, 더우기 마음을 다하여 이 만물의 날을 기념하는 자리에 있어서 그들이 눈물어린 심정을 가지고 마음 몸을 묶어 아버지 앞에 바치오니, 온 일본 열도가 아버지의 경륜을 이어받을 수 있고 새로운 결의를 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하늘 뜻 앞에 반대되는 일체의 길을 아버지께서 막으시고, 당신이 원하시는 뜻을 향하여 갈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개척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그들이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당신의 뜻을 위해서 이옵니다. 당신의 뜻을 중심삼고 주체적인 나라의 권위를 세워야 될 한국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모르고 있사옵니다. 그들을 그와 같은 자리에 세우기 위해서 당신께서 명령한 것이요. 여기에 서 있는 아들이 명령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그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기회가 일본 청년들의 가슴 가슴에 새로운 불을 지를 수 있는 기간이 되고, 아시아에 있어서 새로운 하늘의 깃발이 드높이 들려질 수 있는 하나의 터전을 만드는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아버지, 이날 그들 앞에 임재하여 주옵소서. 비록 당신 앞에 마음을 묶어 바쳐드리는 축하의 인연이 온전히 합당할는지 모르지만 그 모습들을 기꺼이 보시옵시고, 영계에 있는 선한 영인들과 일본의 선한 선조들을 동원하시어서, 이번 일로 말미암아 하늘이 각별히 승리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시고 악이 물러가고 선이 득세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국과 일본과 대만이 연결되어 아시아를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뜻으로 본 섭리역사라는 것을 알게 되오니, 아버지에서 온전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아시아의 운명을 가려낼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함으로 말미암아 온세계가 동화하고 온 세계가 새로운 방향의 체제를 갖추어 출발할 수 있는 도화선을 만들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국은 이제 외로운 환경에 놓여 있사옵니다. 금후의 국가의 운명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누구도 이 나라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오늘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미래의 한국을 위하여 가겠다고 결의하옵니다.
역사과정을 통하여 수고로운 뜻을 남기기 위하여 찾아오신 섭리의 뜻은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을 통틀어 아버지 앞에 제물로 드리는 기간에 처해 있사오니 이들의 눈물과 이들의 정성을 보시고, 아버지, 과거에 부족했던 사실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이 민족이 부족했던 사실을 용납하여 주시어서 미래에 남아질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명년은 북괴의 김일성이가 회갑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만 60을 넘고 난 후에는 사탄수인 6수를 통하여 끝을 봐야 할 것을 생각하게 될때, 섭리의 뜻을 중심 삼은 저희들이 내적으로 단결하여야 할 때가 온 것을 알게 됩니다. 몸과 마음은 물론이요. 가정과 교회와 통일교회 식구 전체가 하나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나라 이 민족에 있어서 모든 부패한 것들을 저희들이 제거 해야 되겠사옵고, 악이 팽창하는 것을 물리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일들은 저희 통일의 무리가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이날을 축하하고 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모인 저희들이 손에 손을 잡고 마음과 마음을 묶어서 당신의 뜻 앞에 완전히 바쳐지기를 결의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께서 바라시는 섭리의 뜻 앞에 나타나기에 부끄러운 모습들이 체면 불구하고 오늘 이 아침에 모였사오니, 이 부족한 무리들을 긍휼히 보시고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소원하는 것은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민족과 세계와 뜻의 승리이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저희들은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수해야 되겠다는 것을 결의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의 모든 전체를 흡족히 받으시옵고, 새로운 약속과 인연을 세우시어 영계가 지상으로부터 환영을 받고, 만물로부터 환영을 받을 수 있게 기독교를 중심삼은, 예수님을 위주한 일체의 사도들과 선한 선조들이 지상복귀를 위해 선두에 서는 선발대로서 악의 세력을 몰아내는 데에 온갖 책임과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끔 당신께서 명령하시고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 이날을 거룩히 받아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이 알다시피 오늘은 '제9회 만물의 날'입니다. 햇수로 말하자면 1963년 5월 1일에 만물의 날을 설정했으므로 올해로서만 8년째가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기념하는 이와 같은 날들은 세계의 어느 민족이나 어느 나라가 갖지 못한 축제일들이요, 이 축제일들 가운데 한 날이 바로 '만물의 날'인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는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 이렇게 4대 명절이 있습니다. 만물의 날은 4대명절 중의 한 날입니다. 본래는 먼저 하나님의 날이 있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있어야 했는데, 거꾸로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있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날이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날이 어찌하여 뒤에 있게 되었느냐 하는 것을 원리를 통해서 대강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인간 시조인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부모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참다운 인류의 부모가 세워져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가져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위기대가 성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타락한 가정에서 타락한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타락한 가정은 하나님과 안팎으로 인연을 맺을 수 없는 악의 권내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안팎으로 인연맺을 수 있는 가정을 다시 찾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것이 복귀섭리역사입니다.
찾는 데에 있어서는 나라를 찾기 전에 민족을 찾아야 하고, 민족을 찾기 전에 종족을 찾아야 하고, 종족을 찾기 전에 가정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찾아 세우기 전에 하나의 남자와 여자부터 찾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악의 중심인 사탄을 자연굴복시키고 그에게 종을 부리듯이 명령하고 지시할 수 있는, 사탄 자신도 부정할 수 없는 입장에서 그 명령과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기준을 갖춘 하나의 남자와 여자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의 자리를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아들과 딸이 되어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아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대표할 수 있는 남자가 되는 것이요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남자와 여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남자와 여자 사이에 서로 원한이 남아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중심삼고 볼 때, 여자가 남자를 타락시킨 결과가 되어 있기 때문에 남자의 원수는 여자로 되어 있고, 여자의 원수는 남자로 되어 있습니다. 아담은 남자로서 주체의 입장이기 때문에 상대적 입장에 있는 해와가 제아무리 간교한 행동으로 유인을 하더라도 그것을 주관해야될 책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말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타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결과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안 들어야 할 입장에 서야 할 주체 되는 아담이 상대인 해와의 말을 들어 줌으로 말미암아 아담이 해와의 원수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하더라도 일대일의 입장에서 받게 되면 참다운 부부의 인연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하나의 남성과 여성이 이 땅 위에 나타나서 서로 하나되지 못하고 둘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남자를 위한 남자가 아니요, 여자는 여자를 위한 여자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안팎이 되어 그 누가 분리시킬 수 없는 일체된 심정적 기반을 갖추지 않고서는 참된 가정의 기점을 마련할 수 없는 것이 원리적인 관입니다.
이러한 기준이 갖추어지기 전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간격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탄과 인간과의 간격을 벌여야 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먼저 인간끼리의 간격을 해소시켜야 됩니다. 그 다음에 타락된 인간으로서 복귀된 일남 일녀의 자리에 서 가지고 그동안 우리 인간들이 역사과정을 통하여 범죄한 내용들로 말미암아 벌어졌던 하나님과의 간격을 해소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승리적 사랑권을 만들수 없다는 것이 원리적인 관입니다.
부모의 날이 설정되고, 자녀의 날이 설정되고, 만물의 날이 설정되는데는 누구를 중심삼고 설정되느냐 하면 부모를 중심삼고 설정되는 것이 아니요. 자녀를 중심삼고 설정되는 것도 아니요, 만물을 중심삼고 설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설정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부모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 일체될 수 있는 사랑의 내연을 결정짓지 않고는 참된 부모의 자리에 나갈 수 없는 것이요. 자녀와 만물도 참된 자녀의 자리에, 참된 만물의 자리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시기 전에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만물을 지으시고 난 후에 아담 해와를 지으셨습니다. 아담 해와가 자라 가지고 장성한 후에 가정을 이루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그 가운데 자리를 잡게 되어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은 나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맨 나중에 자리를 잡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아들이라든가 딸을 중심삼고 사랑의 인연이 되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개인인 남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는 것은 하나님과 자기와의 일대일의 관계로서 종적인 터전은 되지만 횡적인 터전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횡적인 터전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종적인 입장에서 사랑을 받던 남녀가 하나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남녀가 하나되는 것은 종적인 입장을 종결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횡적인 사랑의 이상을 출발시키기 위한 기원이 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부부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횡적인 세계로서의 인연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나오던 사람들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외아들을 보내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터전은 이루었지만, 그들이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면, 개인적으로 사랑을 받지 못하여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정적인 사랑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마련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횡적인 세계의 사랑이 출발을 볼 수 있는 동기가 성립되지 못했고 이 땅 위에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횡적인 사랑의 기원을 다시 뜻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찾아나온 것이 기독교가 2천년 동안 싸워 나온 길이요, 기독교가 최종 목적으로 바라고 있는 소망의 날인 재림의 날인 것입니다.
이 재림의 날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는 것만으로서 다 성사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오시는 아들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가 설정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가 정해지면 서로서로 간격을 두고 사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되어 결속된 터전 위에서 자녀의 인연이 성립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이 땅 위에 하나님을 중심한 사방성(四方性)이 갖추어져 가지고 하나의 민족이면 민족을 이룰 수 있는 중심 형태를 갖출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성인이 있고, 하나님 뜻을 잘 아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부부의 인연을 맺지 못하면 그 사람 혼자서는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가정적 기반을 마련해야 되는 것이 창조이상이요, 복귀섭리의 이상이요, 섭리시대를 통해 바리고 나오는 역사적인 소망인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역사적인 죄과를 완전히 청산지을 수 있는 종교의 최후의 목적이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오시는 예수님 자신이 머무를 수 있는 희망의 터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내적인 기준이 결정되지 않고는 '부모의 날'이 설정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부모는 어디서 출발했느냐? 장성기 완성급에서 무원리권으로 떨어져 내려간 그 자리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복귀하기 위해서 종의 종의 자리에서부터 종의 자리를 거쳐 양자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양자권내에서 아들과의 접붙임을 통하여 가지고 완성권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완성권이 무엇이냐? 타락하지 않은 권입니다. 다시 말하면 본래의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을 자유롭게 대할 수 있는 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완성권으로 넘어 들어가기 위해서는 참된 아들을 통하여 접붙임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기독교가 해 온 사명이 무엇이냐? 참된 아들로부터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터전을 세계적으로 준비한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 와 가지고 '모두 나에게 접붙임을 받아라' 하게 될 때, 일시에 이 세계가 접붙임을 받게 되면 완성권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일시에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터전을 세계적으로 확대시켜 놓은 것이 제2이스라엘권입니다.
제2이스라엘권은 무엇에 해당하는 권이냐 할 때에, 천사세계에 해당하는 권입니다. 왜 그것이 천사세계에 해당하느냐 하면, 아담이 아직까지 완성하지 못한 권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천사장을 중심삼고 일은 벌어졌지만, 그래도 천사장 자신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전체적인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입니다. 즉, 천사장 자신의 위치를 중심삼고 거기에 해당하는 완성적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권이 지금까지의 천사장권인 것입니다.
완성된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그 권이라는 것은 어떠한 자리냐 하면, 상대 이상을 이룬 자리가 아니라 개인적인 자리입니다. 영계에 가 있는 예수 자신은 물론이지만 예수님을 잘 믿고 갔던 사람들도 이와 같이 개인적인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에 천사세계와 마찬가지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상대적 인연을 결정짓지 않고 홀로 있는 존재입니다.
성경 말씀을 보게 되면, 사두개인이 예수님에게 와서 일곱 남편을 가졌던 여인을 가리켜 '저가 영계에 가게 되면 누구의 아내가 되오리까?' 하고 물을 때 예수께서 '영계에서는 시집 장가 가는 일이 없다(눅 20 :35)'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영적 구원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타락한 천사장권에서 타락하지 않은 천사장권으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태초에 아담 해와를 완성권으로 인도해야 될 책임과 사명이 천사장에게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타락하지 않은 천사장 이하 천사 전체가 합동하여 예수님이 지상에서 아담 해와가 세워야 할 완성기준을 세우는 데에 협조하는 것, 다시 말하면 재창조의 역사에 협조하는 사명을 계승해서 수행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 천사장의 사명이 완결되기 위해서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일남 일녀가 나타나서 상대적 사랑권을 성립시키는 출발을 봄으로써 천사장 세계가 타락의 동기가 되었던 것들을 해원성사하고 탕감복귀할 수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원성사되지 않고는, 다시 말하면 천사장권이 옹위할 수 있는 아들딸의 입장에 서지 않고는 아담 해와가 완성한 아담 해와로서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오시는 주님이 해야 할 책임이 무엇이냐? 천사장 승리권, 예수님을 위시하여 지금까지 영계에서 승리해 왔던 승리권을 그대로 상속받아 나와야 됩니다. 천사장 심정권을 중심삼고, 천사장 세계, 곧 영계 전체를 중심삼고 천사장이 사랑받던 그 기준의 사랑을 받았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천사장의 사명을 대신하는 자리에 서서 옛날 천사장이 사랑받던 그 이상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섰던 예수님과 하나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내용적으로 보게 되면 아들이었지만 사명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천사장의 사명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명적인 터전이 거두어지기 위해서는 천사세계 전체가 아들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했습니다. 내용적인 면에서 예수님을 중심삼은 복귀섭리 역사는 아들 하나를 세우기 위한 역사이기 때문에, 영계에 가 있는 그 아들을 사랑했다는 내적인 인연을 통하여 땅 위의 아들도 사랑할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예수님이 영계에서 천사장 이상의 사랑을 받았던 것과 같은 사랑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상에 탄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의 사랑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일체를 정복해야 됩니다. 전체를 굴복당하게 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싸움의 노정을 거쳐 가지고 예수님을 중심삼고 완성하지 못했던 사명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적으로는 아들의 입장이요, 외적으로는 천사장의 입장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사명을 하다가 갔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가인적인 사명이요, 가인적인 사명은 천사장적인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오시는 주님은 외적으로는 가인적인 사명을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아들의 입장을 안팎으로 상속받고 나타나야 합니다.
재림주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천사장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아들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천사장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섰다는 조건을 성립시키지 않고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참아들로 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영계의 예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인연을 상속받고, 천사세계와 예수님과 온 영계가 합동하여 사랑의 내연을 갖춘 그 승리의 발판을 가지고 지상에 현현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 동산을 복귀할 수 있는 전체적인 사명을 짊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재림주님 한사람을 두고 볼 때 그 한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오시는 주님은 내적인 아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의 기준을 대신해야 되는 것이요, 천사세계의 사랑을 완전히 대신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계의 천사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을 총합하여 가지고 이 땅 위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종의 종의 역사로부터, 종의 역사, 양자의 역사, 아들의 역사를 거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아들의 역사를 거쳐 승리한 후에 비로소 부모의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서 바로 부모의 자리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종으로서 승리한 사랑의 인연을 상속받고 나서 부모의 자리까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난 후에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영계와 육계를 중심삼고 볼 때, 영계는 가인형(型)이요, 육계는 아벨 형(型)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 그래야 되느냐 하면, 타락하기 전에 있어서 천사장은 영적이요, 실체를 가진 아담 해와는 육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육적인 아들에게 영적인 천사장이 순종 굴복해야 되고, 그 아들을 천사장이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전세계 30억 인류의 운명은 누구에게 달려 있느냐 하면, 바로 30억 인류의 운명을 짊어지고 이 땅 위에 오시는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30억 세계 인류를 대표한 하나의 남자와 여자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이 기독교의 재림 이상이요, 또 그러한 가정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이 기독교의 재림이상인 것입니다.
그 재림이상의 중심 내용은 신랑 신부입니다. 신랑 신부의 사랑이 지상에 현현하는 때가 오늘날 인류가 바라는 소망의 때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신랑 신부가, 다시 말하면 새로운 부부가 현현하는 때가 이상이 출발하는 때입니다. 재림이상은 혼자서는 이룰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부가 되지 않고는 횡적인 연결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혼자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늘을 쳐다 보고 '하나님…'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인들이 해온 기도였습니다. 그들은 또, 소원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만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하나님 자신에게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이걸 인계 받아야 된다' 해 가지고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그런 놀음을 해 나왔다는 겁니다. 소원하는 것이 이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 이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개인적으로 이루고, 상대적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한 부부가 현현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의 발판이 지상에 결정됩니다. 그와 더불어 역사에 없었던 심정적인 횡적 터전. 다시 말하면 지상섭리의 기반이 마련되어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가정들은 기도를 할 때도 혼자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제목도 부부가 의논해 가지고 정하고, 기도를 드려도 부부가 함께 드려야 합니다. 타락도 혼자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씨를 뿌린 것도 혼자서 한 것이 아니고 둘이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귀의 사랑도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1960년도에 성혼식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은 어느 기준에서 했느냐? 장성기 완성급에서 했습니다. 기독교가 오시는 주님을 받들었더라면 양자의 기준에서 출발했을 것인데, 그것이 안 되었기 때문에 오신 주님은 종의 종살이를 했던 것입니다. 맨 밑창에서부터, 감옥 중의 감옥에서부터 출발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올라온 것입니다. 그것이 21년을 중심삼고 출발한 7년노정이었습니다. 이 노정은 3단계 복귀노정을 통해서 야곱이 하란에서 종살이하면서 21년을 걸어 나갔던 것과 마찬가지의 역사를 되풀이해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1960년도에 40수를 중심삼고 성혼식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성혼식은 장성기 완성급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양자의 자리를 상속받고 영적인 아들로부터 실체적인 아들의 권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시 말하면 영적인 천사장과 영적인 아들인 예수님이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천사장과 예수님이 하나되어서 지상에 오는 아들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운데 누가 주체가 되느냐? 예수님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땅 위에 완성권을 인계받아 가지고 오시는 재림주님이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접붙이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상속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접붙임을 받고 상속을 받는 데 있어서는 혼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일시에 남자가 접붙임을 받고 여자가 접붙임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남자면 남자, 하나의 여자면 여자의 배후에는 억천만의 사건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여자들이 저지른 모든 죄와 남자들이 저지른 모든 죄를 가지고 참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러면 죄의 뿌리가 뭐냐? 거짓 사랑입니다. 거짓된 정적인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죄의 뿌리를 끊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사랑의 기원을 마련해야 됩니다. 그 사랑의 기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선과 악은 서로 방향이 다릅니다. 따라서 구주 되는 사람이 악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악한 사람의 맨 밑창의 자리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구해 주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악의 맨 복판에 들어가야 그 사랑의 기원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의 가정은 어떠한 가정이냐? 비참하다면 그 이상 비참한 가정이 없을 만큼 비참한 가정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가정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통하여 모든 남녀들이 저질러 놓은 비참사가 잠깐이라도 스쳐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탕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이 일등 신랑이라고 해서 그 신부 되는 여자가 태평 왕궁의 왕녀와 같은 호화찬란한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시는 주님의 자리는 지금까지 역사 시대에 있었던 아프다고 하는 모든 느낌을 언제나 느껴야 하는 고통스러운 자리인 것입니다. 탕감법도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아이고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 둘 사이는 그저 만나면 천국이라구요? 천만에! 남자와 여자, 하나는 주체이고 하나는 대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한 천사장과 예수님의 사이와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말없는 싸움입니다. 여자로서 재료를 수집하여 남자를 평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을 차 버리고, 잘라 버리고, 찔러 버리고 싶은 그런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탕감이 안 됩니다. 이러한 비참한 가정입니다. 그러기에 재림주님의 가정에 뜻이 없다면 일시에 산산조각이 나서 없어질 것입니다. 뭣이고 다 팽개치고 어디론가 훌쩍 날아가 버리고 싶은 그러한 자리라는거예요.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천국을 바라고, 혹은 큰 것을 바라보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오기는 쉬운 일이지만, 가정이 결정되지 않고서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가정이 결정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중심한 나라도 나올 수 없는 것이요, 하나님을 중심한 민족도 나올 수 없는 것이요. 하나님을 중심한 씨족도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나가기는 쉬웠지만, 감정을 곧추세워 싸움을 극복하는 입장에 처해지면 그 책임을 누가 해야 하느냐? 타락은 해와가 했지만 해와가 할 수는 없습니다. 심정적인 모든 문제를 남자인 아담이 조절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어떠한 분일 것이냐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남자로서 사랑을 중심삼고 그 어느누구도 감당하지 못했던 십자가의 정상의 길을 개척해 나온 분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이 아니고서는 악한 사랑을 제거시키고 선한 사랑을 발전시켜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의사가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병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알아 가지고 그것을 떼어 버리기 위해 그 자리까지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의사가 아픈 사람이 당하는 그 고통 이상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심각한 자리가 아니고서는 병을 고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의 가정에 있어서는 역사시대에 비참했던 남녀 관계의 비운의 역사가 스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탕감복귀가 안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신부가 흘려야될 눈물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역사상의 수많은 여성을 대표한 눈물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참는 일이 있다면 그것도 역시 역사상의 수많은 여성들을 대표한 참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남자로서 해야 할 것은, 심정세계에 있어서 억울하게 희생당해 가지고 사랑의 길을 갔던 남자들이 있을 것이요, 또 분하고 원통하게 사랑의 길을 갔던 남자들도 있을 것이요, 죽으면 죽었지 그 길을 못 가겠다고 했던 남자도 있을 것인데, 그들의 그러한 운명길을 책임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역사상에 엉클어졌던 악의 뿌리를 몽땅 뽑아 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이 문제를 중심삼고 여러분이 걸려든다면 용서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매달아 놓고 침을 뱉아 가며 조롱했던 이스라엘 족속과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육적인 십자가를 지고 갔지만, 다시 오시는 주님은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입장인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오시는 주님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와 같이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비난 비소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내적인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 엉클어지고 찌그러진 것들을 모두 얽어모아 가지고 완전한 하나님편 가정으로서 보호해 줄 수 있는 자리까지 나온 것이 하나님의 날을 설정하기까지의 과정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날'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아무리 기도해 보아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1968년 1월 초하루를 기하여 선생님이 '하나님의 날'을 결정했다고 선포함으로써 알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날을 선포하기 위해서 어떤 길을 거쳐 왔고, 어떠한 내용을 갖추었고, 어떠한 담판을 지어 왔는지 여러분은 모릅니다. 이것은 영원히 모를 것입니다.
자, 여기(흑판 설명) 장성기 완성급에 올라섬으로 말미암아 1960년도를 중심삼고 '부모의 날'을 설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모의 날은 완성적인 부모의 날이 아니라, 아담이 타락할 때 미완성적 권에 있었던 것과 같은 그런 입장에서의 부모의 날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7년과정을 거친 다음 1968년 1월 1일을 기하여 완성된 하나님의 날이 설정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가정적으로 복귀되었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개인적으로 복귀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인 아벨이 되어 탕감해 들어가야 합니다. 즉, 믿음의 기대, 실체기대를 세워 가지고 메시아를 맞이하여 원죄를 청산지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원죄를 청산짓기 위해서 거치는 과정이 축복받을 때의 성주식입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는 7년노정을 가야 합니다. 부모가 갔기 때문에 여러분도 7년노정을 가야 되는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이 기간에 무엇을 해야 되느냐? 7천년의 역사를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6천년의 역사와 안식일 기간인 천년 역사를 합한 7천년 역사를 이 7년 동안에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천사장을 선생님이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이 선생님에게 굴복해야 합니다. 바로 가인이 아벨에게 굴복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상대를 못가졌기 때문에 영적인 가인형이 되어 있는데 우리는 실체적으로 그 일을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체기대를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안팎으로 전부 갖추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먼저 해야 되느냐 하면 천사장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천사장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가인을 불러들이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다시 말해서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을 불러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자식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거기에 완전히 하나되었다는 입장에 선 아벨이 결정되지 않고는 가인을 불러들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천사장 혈육의 아들딸은 원수의 자식입니다. 이러한 아들딸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지상의 하나님의 아들 대신 될 수 있는 아벨의 기준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무엇을 해야 하느냐? 7천년 역사의 탕감노정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가는 데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 3시대에 걸쳐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3시대에 걸쳐 맞았기 때문에 여러분도 반드시 3시대를 통해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즉, 아담시대에 맞았고, 예수시대에 맞았고, 재림시대에 맞았습니다. 재림시대에는 기독교가 반대했기 때문에 맞은 것입니다. 이렇게 3시대에 걸쳐 맞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3시대의 수난길을 가야 합니다.
한국 동란 당시에 서울이 몇 번 후퇴했어요? 한 번이예요, 두 번이예요? 두번 후퇴했지요? 세 번 후퇴하면 안되는것입니다. 세 번만에는 완성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도 복귀역사를 하는 데 있어서 그 일을 했습니다. 세 번의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 나왔습니다. 한 번에 안 되면 세 번은 해야 합니다. 한번에는 힘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시대에 걸쳐 여러분이 맞아야 합니다. 맞음으로 말미암아 탕감복귀, 즉 3시대로 해원 성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3시대를 걸쳐 맞으면서 어떻게'해야 되느냐? 믿음의 자녀 셋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첫째 믿음의 아들은 아담 형(型)이요. 둘째 믿음의 아들은 예수 형(型)이며, 세째 믿음의 아들은 재림주 형(型)인 것입니다. 이렇게 굴복시킨 믿음의 세 자녀를 아담 가정에 세워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세 아들을 데리고 떨어져 내려갔기 때문에, 즉 타락했기 때문에 믿음의 세 자녀를 끌고 들어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되었을 때는 아들의 사명을 끝내고 어디로 올라가느냐 하면 부모의 자리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3시대를 맞았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믿음의 세 자녀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심정적으로 찔러대고 외적으로 찔러대는 사탄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3대 국가의 시련을 거쳐야 합니다. 선생님이 3대 국가적 시련을 거쳐 나왔기 때문에 통일교회도 세 정권의 시련을 거쳐 나오는 것입니다. 그다음엔 3교단의 핍박을 받아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원수는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전부 다 원수예요. 여러분은 그런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가야 할 길에는 누구에게나 7년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를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7년노정을 가야 된다는 것이 선생님이 주먹구구식으로 정한 것인 줄 알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전체적인 책임을 짊어졌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전체적인 책임의 한계점은 어디냐? 예수는 이스라엘 나라를 한계점으로 했습니다. 통일교회의 한계점을 가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가정은 이미 갖추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기에 나라가 한계점입니다.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의 입장을 두고 볼 때, 가정이 축복받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된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본래 그 가정은 예수시대에 있어서 예수님을 중심삼고 유대교와 하나되게끔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안 되었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에 이르러 기독교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찾아 나가는 것은 개인을 찾아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에는 개인도 있고, 가정도 있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인적인 것들입니다. 그 가인적인 세계의 개인이 굴복하고, 가정이 굴복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굴복하게 되면 한꺼번에 다 됩니다. 여기서 한꺼번에 다 뚫고 나가면 세계적으로 접붙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7개월이면 세계를 복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깨져 나갔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걸어가지 않아도 될 길을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한계점은 나라입니다.
예수시대에 있어서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되지 못했던 것을 오늘날 우리가 하나되게 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 시대에 고마워하는 것은 오늘날 통일교회와 기성교회의 목사들이 서로 왕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가 보면 아직까지도 기독교와 유대교가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일전에 선생님이 그곳에 갔을 때, 기독교인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 보니 전체 인구의 7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2천년 동안 죽는다 산다 별의별 희생을 치러 가면서 나라를 건설해 놓았지만 기독교인은 7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직까지 기독교와 유대교가 하나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서로 원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초창기에 있어서는 기독교에게 핍박을 받았지만 이제는 기성교회 목사들이 왕래할 수 있는 권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천년 역사를 탕감할 수 있는 입장이 된 것입니다.
선생님은 원래 이 목사들의 집회를 3차까지만 해도 조건에 안 걸립니다. 그렇지만 6월까지 7차까지 하려고 합니다. 1971년도는 7천년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운세와 맞먹는 것입니다.
지금 통일교회 간부들을 보게 되면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잘라 버릴 수 있는 조건에 전부 다 걸려 있습니다. 어느 한사람도 데려다 쓸 녀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 때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개인적으로 배반했기 때문에 끝에 가서는 가정을 가진 천사장 패들도 배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이 그런 때와 맞먹는다는 거예요. 그 기간이 이번 7월까지입니다. 이 기간이 6천년때 해당하는 것입니다. 1971년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러한 때를 넘어가기 위해서 작년 12윌부터 축복 가정을 동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죽었느냐 하면, 12사도가 완전 동원을 못했기 때문이고, 70문도, 120문도 역시 완전 동원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한 번도 완전한 동원을 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예수님과 일체적인 행동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망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때 우리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은 자기들이 제대로 한 것 없이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운명과 같이하기 위해서 언제나 선생님과 일체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권내에서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동원되는 데는 누가 중심이냐 하면 부인들이 중심입니다. 그래서 축복받은 가정의 아내들을 전부 다 동원시킨 것입니다.
그 동원된 부인들을 중심삼고 목사 초청 공청회를 어떻게 해서라도 6월말까지 7차까지는 끝내려고 합니다. 이 집회에 참석한 목사의 숫자야 6백 명에 한 명만 넘어서면 조건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7백 명을 넘겨 보자는 것이 선생님의 계획입니다. 이렇게 하고 난 후부터는 기독교인들이나 기독교 목사들이 믿겠으면 믿고 말겠으면 말라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선생님의 책임은 다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그동안 선생님이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만 4년 동안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이것은 4천년을 탕감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그런 일을 해 나왔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의 숫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탕감을 어떻게 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알겠어요?
이 7년노정은 누구에게나 남아 있습니다. 영육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을 탕감복귀하여 이 7년노정을 넘어서야 합니다. 이것은 선생님을 위주하여 그 과정을 거쳐야 되고, 또 여러분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제2차 7년노정은 어떤 때냐? 그것은 여러분이 가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이 나가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딸로 책정해 줄 수 있는 이 뜻깊은 1971년을 잊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책정되었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그리고 만물의 날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 나가게 된다면 여러분 앞에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이나 시험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는 부모의 날부터 하나님의 날이 책정된 1968년도부터 제2차 7년노정을 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타락 권내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타락하지 않은 권내에 선 자녀의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의 책임은 다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누구의 책임이냐 하면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그러면 3년노정에서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선생님의 가정과 마찬가지로 세 아들과 열두 아들을 세워 지파 편성을 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하나되어 나가게 되면 지파편성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회 내에서도 지파편성의 형태를 갖추어 놓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일치단결 하나되어 가지고 나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되지 못한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그것은 가정 때문에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그 동기가 딴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축복해 준 가정 때문에, 축복가정 때문에 하나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고 난 다음부터는 아들딸이니, 살림살이니, 뭐니 해서 하나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문제에 대해서 누가 탕감을 해야 되느냐? 여러분이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탕감할 수 있는 때에 못 했기 때문에 선생님 가정이 탕감해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선생님 가정이 여러분이 참소받을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가지 않고는 탕감이 안되는 것입니다. 선생님 가정이 탕감하지 않고는 다시 연결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어머님을 통해서 정비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 가정에 있어서 성혼식을 한 1960년도 이후부터 애기들이 저나라에 가기도 했는데, 거기에는 이중적인 책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님도 선생님을 중심삼고 나오는 데에 있어서 선생님과 하나되어야 하고 절대 복종해야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입장에 섰던 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분 가정의 문제라든가 하는 것에 대한 공동적인 책임을 선생님 가정이 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가정이 탕감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970년도에 여러분을 전체 동원했던 것입니다. 그때는 아들이건 딸이건, 남자건 여자건 다 동원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다 동원되었더라면 지금쯤 상당한 승리의 판도가 벌어졌을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되었기 때문에 더 연장시켜 가지고 재차 탕감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것이므로, 여러분 가정이 동원됐다는 사실을 영광으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이 하늘 앞에 탕감될 수 있게끔 동원되었다는 사실이 영광이 라는 거예요. 그 동원된 것이 무엇에 해당하느냐 하면 1960년대에서 지금까지 어머니가 복귀하지 못한 것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해를 잘 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신옥순이가 겉으로 보기에는 미욱하고 무식하게 생겼지만, 방언 역사 받은 것을 보게 되면 놀랍다는 거예요. 어머니 역사를 연장시키는 입장에 서 가지고 탕감복귀를 한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여러분은 상식적으로 알아 둬야 됩니다.
7년노정은 어느누구라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 있어서는 뭐니뭐니 해도 하나님이 7천년 역사를 복귀하기 위하여 1차 아담, 2차 아담, 3차 아담을 내세웠는데 자식과 종들이 주인을 들이치는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자식과 종이 서로 합하여 가지고 주인을 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귀시대에 들어가서는 종은 칠 수 있지만 자식은 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종은 사탄의 입장이니까 치지만, 만일 자식들을 거기에 같이 쳤다가는 걸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놀음이 4월에 통일교회에서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은 통일교회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밝히고 기억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지금까지의 복귀역사는 천사장하고 아들딸들이 모두 다 반대한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실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사탄은 반대할 수 있지만 인간은 반대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하면 복귀가 되겠어요? 여러분이 선생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평하게 되면 모두가 걸리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선생님이 풀어 주지 않으면 절대 못 갑니다. 선생님이 아니면 풀 자가 없다는 거예요.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복귀 기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이의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더우기 여자들은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됩니다. 만일 입을 열어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다간 다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사실들은 선생님의 말이 아닙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아직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불평 한마디 안 하고 뜻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죄없이 감옥에 들어가서 불한당들에게 맞고, 피를 토하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이 왜 이래 ? 하고 원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종들이 억천만세 반대할지라도 아들만은 그들 편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반대 하는 사탄이 있는 것을 알면서 아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반대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죽더라도 아버지 편에 서서 죽어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디어 나오다 보면 아버지 앞에 말하고 싶은 것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 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나님에게 말할 것이 없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평하려면, '하나님이 문선생을 사랑하기는 뭘 사랑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같지 않아. 제일 사랑을 많이 받을 자리에 가게 되면 모가지를 자르고…. 그게 뭐야? 그것이 어떻게 사랑이야' 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탕감시대에는 하나님은 선생님편이 안 됩니다. 도리어 사탄편이 되어 선생님을 시험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선생님이 탕감하게 되면 그것을 사탄에게 자랑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탄을 충동질해 가지고 선생님이 하는 것을 방해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하는 일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탄세계의 모든 것들을 빼앗아 오기 위해서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거기에서 선생님이 극복하면 '문선생이 너보다 나으니까 네 것을 모두 내놓아라' 하고 사탄 앞에 제시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선생님도 여러분에게 지긋지긋한 고생을 시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맹세를 하고 죽든지 살든지 가겠다고 하는 사람을 아직까지 내가 만나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선생님을 찾아와서 눈물을 흘리며 '이런 죽을 자리에 동참하고 싶은데 저를 보내 주십시오'라고 탈하는 사람을 아직까지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체계적인 내용을 가지고 만났지만, 여러분 자신이 자진해 가지고 '뜻을 위해서라면 독수리 밥이 되더라도 고마와하며 가겠다'는 다짐을 해야 되겠습니다. 복귀의 길이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7년노정에 있어서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3시대의 한을 넘어서야 합니다. 믿음의 세 자녀를 세워서 3시대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세계에 있어서 믿음의 한 아들을 세운다는 것은 자기 아들딸 셋을 키우는 것보다 더 힘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자녀 3명을 세우려고 하면 자기 자식 9명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래서 3단계가 다시 9단계가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이제 여러분들은 타락한 시대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한 사람 앞에 있어서 3대에 한하는 원한을 풀어야 합니다. 그것이 실감이 안 나면 자기의 세 아들딸을 기르는 것보다 믿음의 자녀 한 명을 기르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생각하면 되는 거예요. 여러분, 믿음의 세 아들딸을 길러 가지고 하늘 앞에 바치기가 쉬운 일입니까?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가지고 설정된 것이 '부모의 날'인 것입니다. 이 부모의 날이 설정되어 부모가 7년노정 완성기를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이 부모 앞에는 침범할 조건을 갖지 못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거기서부터 한 고비를 넘어서 가지고 발전시대로 들어온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사위기대의 터전을 넓혀 나온 것입니다. 이제 그 터전이 넓혀짐과 더불어 여러분이 복귀되는 거예요. 여기에 있는 선생님 가정의 애기들의 이름을 보면 전부 다 복귀역사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이만큼 올라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길을 가는데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먼저 교단적인 입장에서 기성교회와 손을 잡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선생님이 왜 목사 집회하는 곳에 안 나타나는지 알아요? 거기에 선생님이 나타나게 되면 여러분이 그들 앞에 아벨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시 말하면 그들 앞에 선생님이 나타나게 되면 선생님이 그들의 아벨이 되지, 여러분은 아벨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또 교수들 집회하는 데에도 선생님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걸 보고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이 지금까지 그런 사람들을 전도하지 못하고, 만나지 못한 것이 한이었는데, 그런 자리에 왜 안 나타납니까? 라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선생님이 나타나면 선생님이 그들의 아벨이 되지, 여러분이 그들의 아벨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
그런 의미에서 가인의 입장에 서 있는 그들이 복귀되기 위해서는 아벨의 입장에 서 있는 여러분 앞에 머리를 숙여야 되는 것입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번 목사 집회에 참석했던 목사들이 결의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강의하고 있는 강사들은 교수, 혹은 신학박사들에게 강의했던 사람들이니 괜스레 질문했다가는 무식이 탄로날 것이니까 하지 말자' 라고 공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결국 그들은 모든 면에 있어서 여러분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안 숙이겠다고 해도 숙이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이와 같은 아벨적인 입장에 여러분을 세워 놓으려니 선생님이 어쩔 수 없이 뒷방살이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괜히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원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선생님이 왜 그렇게 하는지 잘 알겠지요? 전부 여러분의 갈 길을 닦아 주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과 그들이 짝짜꿍이 되어 선생님을 모시려고 들어오게 되던 그때서야 비로소 선생님은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을 복귀시켜 가지고 대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입장이 아니예요?
이런 이유로 해서 지금 현정부의 박대통령이 만나자고 해도 선생님이 만나 주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당신들이 나를 만나고 싶으면 통일교회 식구를 통해서 만나러 오라는 거예요. 내가 지금 그 놀음하고 있습니다. 우리 식구들을 다리를 놓아 가지고 한번 만나자고 연락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칙이 그래요, 안 그래요? 지금 일본의 구보끼 협회장이 장개석을 만나러 왔다갔다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일을 위해서입니다. 장개석인지 장괴석인지 하여간에 선생님의 작전에 걸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이렇게 하라는 지시대로만 구보끼 협회장이 하면 그가 걸려드나 안 걸려드나 어디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 말을 믿지 못하고 나오던 사람들도 이제는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을 무섭게 생각하게 된다는 거예요.
구보끼 협회장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점은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여기 본부의 간부들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세 가지를 지시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내용은 여러분에게 말할 수 없어요. 만일 얘기하면 큰 문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뭏든 선생님이 지시한 대로 믿고 나가게 되면 전부 다 선생님 작전에 걸려들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나는 누구누구의 특사로서 왔습니다' 하고 전달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일본에서는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그 최고의 간부들이 이런 일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여러분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일본의 통일교회가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것을 두고 보면 때가 다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복귀역사는 종적으로 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느냐 하면, 통일교회와 기성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과거에는 통일교회가 기성교회한테 핍박을 받아 가며 끌려갔으나 이제는 피장파장 이라는 거예요. 즉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가인과 아벨이 바꿔쳐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90도 바꿔쳐지기 위해서는 평면선상에 들어가야 합니다. 종적으로 되었던 것이 90도 선상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너와 내가 비슷비슷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기성교회도 큰소리 못 치게 되었습니다. 즉, 횡적인 입장에 기성교회와 통일교회가 나란히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기성교회와 통일교회가 상하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어느 쪽이 아벨의 자리를 복귀해 가지고 더 위에 설 것이냐 하면 그것은 통일교회라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성교회와 통일교회는 횡적인 관계인데, 누가 더 위에 서 있느냐? 통일교회가 위에 서게 될 때는 아벨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은 자연히 머리를 숙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때는 종적인 관계가 아니라, 전부 다 횡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지금은 통일교회의 여러분 누구나 선생님을 중심삼고 선생님의 7년노정에 맞추어 7년노정을 가야 하는 때입니다. 즉, 횡적으로 서는 때입니다.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횡적으로 서는 때이고, 정부와 통일교회가 횡적으로 서는 때이며, 대한민국과 이북 공산당이 횡적으로 서는 때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북이 대한민국보다 우세했지만, 이제부터는 횡적으로 동등한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과 이북 공산당이 지금은 횡적으로 섰지만, 대한민국이 통일사상으로 무장만 하게 되면 위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도 구보끼 협회장을 중심삼고 일본 자체내에 횡적으로 되어 있는 때가 있습니다. 또 대만 내에 있어서도 횡적으로 서 있는 때가 있습니다. 전부 다 횡적으로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횡적으로 다 서 가지고 아직까지 세워지지 못했던 질서를 세워만 놓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두고 볼 때. 한국과 일본과 중국을 중심삼고 세계의 운세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미국이 지금 암만 큰소리쳐도 아시아를 찾아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5년 이내에 찾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미국이 찾아오지 않으면 망하게 됩니다. 현재 미국이 중공을 찾아오는 것이 좋아서 찾아오겠습니까? 사탄세계에 있어서 천사장권이 중공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중공이 돈더미 같고 먹을 것이 있을 것 같으니까 중공을 중심삼고 지금 야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온 것입니다. 그걸 보게 되면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이렇듯이 모든 것이 횡적으로 섰기 때문에 이것들을 연결시켜 가지고 90도를 넘어 180도가 되면 완전히 하나가 됩니다. 거기에 누가 중심이 되느냐 하면 우리가 중심이 되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우리 아래에 서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생님이 지금 기도하고 있는 중심적인 내용이 뭐냐 하면 일본이나 중공이나 혹은 북괴의 문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 여러분과 선생님과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문제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거예요.
외적인 세계가 평면적으로 전개되는 것을 보게 될 때, 우리가 바라는 역사적인 때는 이미 우리 눈앞에 다가온 것을 알고, 이것을 어떻게 소화해야만 서로가 비약할 수 있고, 원칙적인 키이 포인트(keypoint)를 중심삼고 돌아 넘어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 이 시대의 우리들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축복가정이 하나되어야겠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축복받은 777가정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세계를 대표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섞어 놓았습니다. 알겠어요? 777가정은 아직까지 제대로 통일교회 식구도 안 된 사람들도 축복을 해주었기 때문에 이들을 보면 얼룩덜룩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을 왜 섞어 놓았는지 알아요? 그것은 이들을 세계를 대표하는 입장에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무한한 용서권을 이 지구성에 부여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777가정에는 뜻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들어 있습니다. 형편이 무인 지경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집합된 부인들만은 올바른 사람들로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여자의 잘못으로 망했기 때문에 이번만 여자들이 올바른 정성을 다하여 뛰게 된다면 외세가 우리 때와 더불어 보조를 맞추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남자들은 안 따라갈 수가 없다는 거예요. 따라가지 않으면 갈 곳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을 써 먹을 데가 있어요? 지금까지 취직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그러한 일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타락권내에 있었던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비로소 완성권내로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무원리권으로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안 떨어졌어요. 인간이 장성기 완성급에서 꺼꾸로 내려갔기 때문에 이 내려간 무원리권에 서부터 복귀해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장성기 완성급에서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장성기 완성급에서 무엇 때문에 타락했느냐? 그것은 참부모의 동질적 사랑을 중심삼고 맺어져야 할 것이 거짓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맺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맺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사랑과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일체가 되려면 타락권내의 모든 문제를 중심삼고 정서적 분야를 탕감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날까지 복귀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의 사랑과 일체가 되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의 축복을 위해서 부모님은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많은 십자가를 졌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날을 책정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하나님의 날'을 책정한 권내에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이루어졌으니, 타락권이 아닌 입장에서 오늘날 축복받은 가정이 제2차 7년노정을 맞이했다는 사실은, 이 자리가 이미 낙원을 뛰어넘어 낙원천국이라는 것입니다. 낙원이 아니라 낙원천국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낙원에는 상대적 인연이 없지만, 천국에는 상대적 인연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2차 7년노정이 뭐라고요?「낙원천국입니다」 낙원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러한 권내에 들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모심의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어도 혼자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요, 잠을 자도 혼자 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가려가며 생활해 나가기 위해서 주일 아침에 경배식을 하는 거예요. 원래는 그것을 일주일에 한번씩만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해야되는 것입니다. 매일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그러한 가법을 세워 나가야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가지고 하나님의 날이 설정되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만물의 날'인데 지금까지 말씀한 것은 만물의 날에 대한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을 중심삼은 말씀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만물의 날'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로 합시다.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무원리권으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떨어질 때는 무거운 것이 밑창으로 갑니까, 가벼운 것이 밑창으로 갑니까? 사람이 떨어지게 되면 무거운 머리가 먼저 떨어지지 발이 먼저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무거운 것은 밑으로 가지 말라고 해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타락한 장본인일수록 맨 밑창에 깔립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맨위에는 무엇이 있고, 맨 밑에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맨 위에는 만물이 있고 그 다음에는 아담이 있고 그 다음 해와가 있습니다. 그리고 맨 밑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탄권은 무원리권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만물의 자리가 거꾸로 됐다는 거예요. 이것을 다시 본래의 입장으로 되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인간이 완성권으로 올라가려면 만물권을 무시하고 올라갈 수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은 제물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구약시대는 제물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제물은 대상이고 인간은 주체적 입장이기에, 대상이 하나님 앞에 공인받으면 주체도 공인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마이너스가 나타나면 완전한 플러스는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또 그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플러스가 나타나면 완전한 마이너스는 자동적으로 생겨난다는 거예요. 이것은 천지가 상대 인연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두고 볼 때 인간은 제물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만일 제물과 하나되었다면 그 위에는 누가 있느냐 하면 하나님이 있습니다.
만물을 중심삼고 볼 때, 물건 가운데는 참된 물건과 거짓된, 가중된 물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즘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먹지 말라고 하는 개나 뱀과 같은 것들은 모두 가증스러운 것들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소나 양이나 비둘기 이런 것들은 선한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만물 중에 가장 선한 물건입니다. 제사상에 올려 놓는 고기로 너무 기름진 것들은 올려 놓지 말아야 합니다. 기름진 것들로 치우쳐서는 안 되는 거예요. 기름진 것이 많으면 조화가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사상에 올라가는 고기는 기름이 많고 비린내가 많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문어나 숭어처럼 바싹 마른 고기들이 제사상에 올라갑니다. 이런 사실들은 전부 다 음양의 상대적 이념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니 제물시대에 있어서 선한 물건을 고르다 보니 소와 양과 비둘기를 골랐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들은 무엇을 상징하느냐? 먼 산을 바라 보며 되새김질을 하는 소는 복귀되어야 할 인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일구월심 복귀될 날만을 기다리는 인간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또 양이라는 것은 연약한 짐승입니다. 덩치는 크지만 자기보다 더 작은 산짐승한테 잡혀 먹힐 수 있는 것이 양입니다. 양은 약한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면서 항거하지 않습니다. 양은 주인이 잡을 때에도 항거하지 않는 짐승입니다. 옛날에 제사에 쓰려고 양을 잡을 때 항거하는 양은 제사에 쓰지 않았습니다. 반항하지 않고 '맴맴' 하면서 그저 동정을 구하듯이 처량하게 울부짖는 그런 양만을 잡아서 제물로 삼았던 것입니다. 두들기고 발길로 차고 해서 잡은 양은 제물로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비둘기는 무엇을 상징하느냐? 우리는 흔히 말하기를 비둘기 같은 눈동자라고 합니다. 비둘기 같은 부부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것은 비둘기가 사랑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이것들은 짐승들 가운데 선한 의미에서 차원이 높은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은 이것들 중에서 뽑았습니다. 인간은 그것들과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소와 같이 충성하고, 양과 같이 희생하고, 비둘기와 같이 정서적(사랑)이 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귀의 내용을 대표한 만물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들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거꾸로 되어야 합니다. 종한테 굴복해야 되고 며느리한테 굴복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됩니다. 여러분이 자세를 버티고 있어서는 절대 복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박사이니 박사의 권위를 세워 주지 않으면 통일교회에 못 가오'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통일교회 오려면 오고 말려면 말라는 거예요. 그것은 선생님이 알 바가 아닙니다. 선생님의 눈에는 박사고 무엇이고 없습니다. 박씨는 알지만 박사는 몰라요. 선생님이 그런 주의입니다. 이것이 무슨 주의냐 하면 하나님 주의입니다. 하나님 앞에 박사가 있어요? 전부 다 국민학생이지요. 그렇지 않아요? 또 하나님 앞에 어른이 있어요? 전부 다 아이들이지요.
자, 구약시대는 제물시대이고, 그 다음은 무슨 시대지요? 신약시대는 무슨 시대입니까? 예수님이 완성된 제물 실체로서의 자격을 갖추어 가지고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열매는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약시대의 제물 실체의 결실로 와서 하나님 알에 있어서 만물과 가인들을 그냥 그대로 제물로 드렸다면 교단과 나라를 복귀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벨형 국가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세계의 만물도 결국 복귀되고, 가인편 교단도 민족도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만물을 대신한 결실이요, 교단을 대신한 결실이요,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한 결실입니다.
예수님이 이러한 입장이었기에 사탄은 민족을 놓더라도 그 결실인 예수님과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대속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구원받아야 할 만민들은 예수님을 제물로 삼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신약시대입니다. 알겠어요?
그 다음에는 성약시대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온다고 했는데, 성약시대에 오는 데는 어떻게 되어 가지고 오느냐? 제물의 결실이요. 아담의 결실이요, 그 다음에 내적인 결실에 있어서도 가인의 소생적인 결실과 장성적인 결실이 되어 가지고 와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인을 굴복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영적으로 그러한 모든 것을 다 갖추어 놓고 가겠다는 거예요. 소생적인 결실과 장성적인 결실을 이루었다는 거예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천사세계의 굴복과 양자적인 입장의 실체권을 복귀한 입장에 섰기 때문에 가인을 소생적으로 굴복시키고, 장성적으로 굴복시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양자의 대표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일을 대신하다가 죽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을 하다가 죽었기 때문에 결국 아들 노릇은 못 했습니다. 따라서 소생적 천사장권과 장성적 양자형을 복귀해야 할 중심존재로서, 또 이것을 결실로 나타내지 않고는 재림주님이 이 땅위에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소생적 천사장형과 장성적 양자형 이 둘을 결합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난 후에 여기에 신랑이 오는 것입니다.
재림주님을 오게 할 수 있는 동기를 지상의 기독교가 마련해야 합니다. 해와가 아담을 유인하여 타락을 했기 때문에, 후아담인 예수님이 재림할수 있는 동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땅 위의 기독교가 세계적인 해와권, 신부권을 형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랑은 특별한 기독교 국가를 중심삼고 거기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신랑 되시는 주님이 이 땅에 와 가지고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정을 찾아야 합니다. 소생기에는 가정이 있지만, 장성기에는 가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소생기의 가정은 사탄편적 가정이기 때문에 신랑이 와서 찾아야 할 가정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신랑이 와서 찾아야 할 터전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을 잘 믿던 요셉 가정이나 사가랴 가정과 같은 터전이 있으면 모르되, 기독교가 반대하게 되어 기독교에서 그런 가정을 찾지 못하게 되면 반대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떨어지게 되면 어디 가서 찾아야 하느냐? 하나님편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사탄편 가정에서 찾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사탄편에서 찾아오려면 사탄편이 ‘여기 있소. 당신이 찾으러 온사람 여기 있소' 하며 내주면 좋겠는데, 이 고질통 원수가 그렇게 내주겠어요, 안 내주겠어요? 안 내준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하란에서 21년 동안 종살이를 한 다음에 약속대로 자기 부인과 자식들과 자기 분깃을 가지고 나오려고 했을 때, 라반이 ‘어서 가라'고 했습니까? 안 했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눈치를 보니까 자기를 보내 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라반을 속여 가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것을 찾지 못하면 주인이 될 수 없겠기 때문에 라반의 집에 자기의 것은 몽땅 빼앗아 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기 것을 찾기 위해서는 주먹질이라도 해서 빼앗아 와야 하는데, 그러다가 라반이 죽게 되면 자신도 죽게 되기 때문에 싸움을 해서 빼앗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라반에게 살짝 거짓말을 해서 빠져 나오는 것이 최고의 전법이더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라반의 집에서 나온 거예요.
모세도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보내 준다고 해놓고 보내 주지 않으니까 바로를 속였던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도 그와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거예요. 오시는 주님이 이 땅에 누굴 찾으러 오시느냐? 신부를 찾으러 오시는 거지요. 그러면 신부는 어디에 있습니까? 기독교권내에서 신부를 찾아야 하는데 기독교가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에서 빼앗아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신부의 입장에서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안 했습니다. 기독교가 그것을 안 했으니 사탄세계에 가서 신부를 빼앗아 와야 합니다. 사탄 세계에 가서 '우리 집사람 내주소'라고 하면 사탄이가 내주겠어요, 안 내주겠어요? 내주지 않습니다. 내주면 그냥 찾아올 수 있지만 안 내주니까 찾아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탄을 죽이고 빼앗아 올 수도 없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사탄이가 아담 해와를 빼앗아 갈 때 하나님을 죽이고 빼앗아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탄을 죽이고 빼앗아 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을 죽이지 않고 찾아와야 합니다. 찾아오는 데는 사탄이 안 내주겠으니, 할수없이 작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을 굴복시키는 작전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희생을 하고 종살이를 해가며 거꾸로 복귀해 올라와야 합니다.
종인 천사장이 해와를 타락시켜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그와 마찬가지로 종살이를 하는 겁니다. 복귀의 길에는 종살이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왜냐하면 그 주인, 즉 사탄보다도 더 큰 사랑을 가지지 않고는 신부를 찾아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해와가 하나님의 참다운 사랑을 중심삼고 자기의 모든 것을 부정하며 '나는 죽더라도 당신의 곁으로 가겠습니다.’ 라고 할 수 있고 그 남편에게 굴복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야만 찾아올 수 있는 길이 이 길입니다. 만일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속여서라도 빼앗아 와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판서하시며 설명하심) 상대는 여자인데, 여자를 두고 볼 때 어떤 여자냐? 여자 가운데 신부 될 수 있는 여자입니다. 여자 가운데에서도 어머니 여자가 있고 딸 여자가 있습니다. 이것은 레아와 라헬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시는 신랑의 본의가 아니지만 천리원칙에 의해서 그러한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종의 입장에서 자기 딸 같은 사람을 고이 길러야 합니다. 어머니가 종이면 딸은 무엇이 됩니까? 종의 딸이 됩니다. 그래 가지고 바로 그 종의 딸을 하나님의 딸로서 입적하는 상속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식을 해야만 비로소 신랑으로 오신 주님 앞에 신부가 책정 됐다고 새로운 시대 앞에 선포식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시대는 통일교회로 말하면 1960년도에 해당됩니다. 알겠어요?
말이 났으니 얘기지만 여기 어머니를 중심삼고 그렇게 역사한 거예요.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그런 역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홍순애씨라고 하는 어머님의 어머니가 있습니다. 모녀는 언제나 마음이 맞기 때문에 속닥 속닥하더라도 같이 속닥속닥합니다. 효녀끼리 한번 잘못했다가는 둘다 망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모녀가 하나되었을 때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을 지금까지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정에서 얼마나 어려운 길을 가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나 자신의 어려움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뜻이 문제였습니다. 뜻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어려운 길도 자청해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와 같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왔다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러한 관점에서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책임을 못했습니다. 아들의 상대를 찾아 세워야 할 어머니로서 사탄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하고 같이 살아서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안 되는 것입니다. 종의 세계가 되는 거예요. 요셉이 천사장격이기 때문에 예수를 위해서 독신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그렇게 하지 못했고 예수의 상대를 지상에서 책정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비운에 사라지는 사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주님이 다시 와야 한다는 비통한 역사를 만든 죄인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흑판에 그려진 도표를 가리키시면서) 이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종적인 부모와 가정이 나왔으니 횡적인 아들의 가정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횡적인 가정이 나오기 위해서는 그냥 나올 수 없습니다. 복귀노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횡적인 가정이 나올 수가 없다는 거예요. 어디까지나 이렇게 나오게 되어 있지, 이렇게는 못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이러한 고충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제 2차 7년노정을 걸어 나오고 있는데, 68년, 69년, 70년까지 3년노정을 넘어서고 난 다음 축복가정들을 동원했습니다. 1970년 12월부터 축복가정을 동원했습니다. 따라서 71년도를 중심삼고 다시 3년노정을 넘어서면 새로운 단계로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기간은 그야말로 사탄세계를 재분별하는 기간입니다. 사탄세계를 몽땅 끌어내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를 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앞서 참부모의 가정이 모든 것을 탕감해야 되었듯이 여기에서 국가라는 기준을 앞에 놓고 재차 정비해 가지고 넘어서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가 여러분의 때라는 것입니다. (흑판의 도표를 가리키시면서) 이것이 결정되면 만물은 자동적으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이 타락할 때에 만물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복귀될 때 만물이 복귀되어야겠어요. 안 되어야겠어요? 복귀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적 탕감기준을 넘어서게 될 때 만물 복귀의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물 복귀시대가 오는 데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횡적인 국가라든가 만물권을 전부 다 연결시켜야 합니다. 오늘날 여의도 부지 문제라든가, 우리 교회를 짓는 문제라든가, 세계 수련소 건립 문제라든가 하는 것들은 우리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세계본부도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미국을 본다면,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들어가서 맨 처음에 무엇을 했느냐 하면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 다음에 농사를 지었고, 그 다음에 세계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세계를 주도해 나가는 국가가 된 것입니다. 그와 같이 미국은 먼저 하늘을 위했기 때문에 복을 받았다는 거예요.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선생님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내 집을 사기 전에 그런 일부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다 해놓고 집을 사야 양심의 가책을 안 받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그렇게 다 했기 때문에 집을 사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집을 선생님이 사야 되겠어요, 여러분이 사줘야 되겠어요?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지금 축복받은 가정들은 전부 다 영광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즉 낙원천국권내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낙원천국권내에 서게 된 그 혜택은 누구로 말미암아 되었습니까?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되었습니까? 선생님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정적으로 접붙여 준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보답을 여러분이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선생님보다 먼저 자기 집을 갖게 되면 천법에 걸리게 됩니다. 선생님이 집을 갖기 전에 자기 이름의 집을 갖게 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법규화할 때가 올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이름을 거친 다음에 모든 만물을 자기의 이름으로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귀가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복귀되기 전에는, 성혼식을 하기 전에는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사유재산은 전부 다 하늘 것으로 입적해야 됩니다. 시집가는 처녀가 자신이 그동안 갖고 있던 것을 가지고 시집을 갑니까, 남겨 놓고 갑니까? 이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타락세계에 있어서는 이렇게 원리원칙대로 하지 못하는 서러움이 있습니다. 원칙대로만 하게 된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공장에 출근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기막힌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참부모 이름 앞을 통과해 가지고 수속을 밟은 후에 자기의 것으로 재차 받으면 여러분의 자손 만대에까지 길이길이 남을 수 있는 종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러한 것을 가졌어요? 선생님의 것을 받아 가지고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큰 것을 하나님 앞에 바치고, 하나님으로부터 조그마한 것을 받더라도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금후에 다가올 통일세계의 경제적인 방향인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불이 붙게 되면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긴 행렬이 될 것입니다. 서로 먼저 바치려고 하는 싸움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처녀가 시집을 갈 때와 마찬가지로 주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리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탕감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기 전에는 돈을 생각하지 말아야 됩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원리적인 가르침입니다. 여기에 이의 있습니까?
지역장 지구장들은 통일세계에 있어서 주류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사장의 입장이라는 거예요. 제사장은 제물을 바치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께 직접 바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참부모의 이름을 통해서 바쳐야 합니다.
참부모의 이름을 통해서 제물을 바치게 되면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고생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야 탕감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이 과정을 거친 입장이냐? 선생님은 이 과정을 가정적으로 복귀했기 때문에 자유로이 돈을 융통하여 쓸 수 있는 세계적인 기반이 닦아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966년을 중심삼고 경제기반 확보라는 말을 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책정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만물의 날을 축하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여러분에게 속한 만물을 하나님 앞에 결속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사유재산은 물론 공동재산인 나라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봉헌해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또 세계 지구성을 하나님 앞에 봉헌해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지구성을 하나님 앞에 봉헌해 드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봉헌하게 될 때에는 반드시 부모의 이름을 통해서 바쳐 드려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소유권한이 어느 천지에든지 연결될 수 있는 권을 만들어 놓아야 만물의 날을 축하하는 목적이 달성되는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을 보게 될 때 자신의 재산을 하나님 앞에 바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이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 참부모의 나라. 참백성의 나라, 참자녀의 나라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부터 이렇게 해야 되느냐 하면 여러분 자신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즉 참부모가 여러분의 집에 가서 여러분에게 말도 없이 마음대로 물건을 가져 가도 그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된다는 겁니다. '부모님 마음대로 가져다 쓰셔도 좋습니다' 할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무상통(有無相通)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통일교회에서는 유무상통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위 통일교회 식구 가운데에는 선생님에게 돈 빌려 주고 이자까지 받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걸립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전도 나가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복받을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이자 받습니까? 여러분은 이러한 원칙을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서 자기의 뼈와 살을 갈아서 바치지 못하는 것을 한스럽게 생각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이자까지 받아 먹습니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이런 사람은 절대 만나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할 말이 많다고 하더라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36가정들은 어떻습니까? 그렇게 됐어요, 안 됐어요? 대답해 보세요. 선생님이 이번 제2차 7년노정만 끝나게 되면 36가정들을 자리잡게 해주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야단이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제 '만물의 날'을 기념할 때마다…. 이 삼천리 반도가 하나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나라가 되었느냐? 아직까지 자기가 속해 있는 마을도 사탄권내에 소유되어 있어서 선생님의 이름을 중심삼고 마음대로 할 수 있게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게 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만일 선생님이 돈이 있으면 선생님을 위해서 쓰고 교회나 여러분이 망하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는다면 망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책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다짐하고 가야 할 승리적인 터전을 어떻게 형성하느냐 하는 문제를 원리적인 관점에서 가려 나가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에게는 잊어버릴 수 없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렇게도 믿었던 통일교회 간부라는 작자에게 '네 집을 지금 당장 아무개에게 줘라'고 지시를 했는데 주기는 커녕 슬금슬금 꽁무니만 빼더라는 거예요. 그래서는 안됩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생사를 결정짓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선생님 승낙없이 멋대로 자기 이름을 대문에 내걸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물이 탄식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런 모든 과정을 여러 분은 거쳐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의 승낙이 없이 그러한 놀음을 자진했다가는 걸리는 것입니다. 자손들이 천법에 걸리게 된다는 거예요.
이러한 원리 원칙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부모의 이름을 거쳐 가지고 대속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소유권도 부모의 이름을 거쳐 가지고 자기에게 상속되어야 됩니다. 그러한 것을 해원성사하지 못하게 되면 여러분은 천국생활을 하지 못하고 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것은 천국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사탄의 물건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밖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러한 환경적 기준을 체계화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복귀역사시대에 있어서 사회의 윤리라든가 질서에 상당한 지장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걸 체계화시키려니 할 수 없이 선생님은 '내가 고생을 좀더 하더라도 한계점까지 끌고 나가자'고 다짐을 하고 지금까지 이 놀음을 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선생님이 누구에게든지 아무개 집에 가서 제일 좋은 물건 가져 오라고 시킬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렇게 시킨다면 여러분은 가져올 수 있어요? 하나님의 수속을 통해서 인계받지 못한 물건을 갖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됩니다.
앞으로 세계의 부자는 통일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세계를 먹여 살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는 이제 한 나라로 수습될 것이요, 하나의 법도에 귀결될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 원칙입니다. (녹음 상태 불량으로 중략)
여러분은 나라를 하나님 앞에 바치고,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합니다. 그래야 소생 장성급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바치고, 자기 가정을 몽땅 하나님 앞에 바치고, 그 다음에 나라와 주권자와 백성을 하나님 앞에 바치고, 세계 주권자 전체와 세계 인류 전체를 하나님 앞에 바치게 되면 이지상 위에 사탄권은 무너지고 새로운 하늘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만물의 날'을 기념할 때마다 여러분은 이것을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아무나 만물을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딸의 권위를 가져야만 바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아들딸의 권위를 갖지 않고 종의 자리에서는 바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천사장 사탄도 자기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하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종의 자리에서 바치게 되면 사탄에게 걸리기 때문에 아들딸의 이름을 갖지 않고는 바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들딸은 참부모를 통해서 축복을 받지 않고는 안 됩니다.
이와 같이 환경적 터전을 복귀하고, 또 실체 자녀로서 하나님 앞에 봉헌하지 않고는 천국가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이 아침에는 한스러운 복귀의 내용에 대해서 말씀을 하였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영계로부터 시작하여 육계에 이르 기까지 수많은 복잡다난한 과정을 풀고 해방권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에서 이것을 저희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그 얼마나 수고하셨고, 그 배후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이 만물의 날을 맞이할 때마다 한많은 복귀의 인연을 생각해야 되겠사옵니다. 하온데 이와 같은 날들을 계속 지켜 나아가 하나님의 날을 자기의 하나님의 날로서 인계받고 넘어서야 할 가정적 권이 남아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당신께서 저희가 모르는 가운데 이러한 기반을 확대시키시기 위해서 무한히 애쓰시고 수고하신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천신만고의 수난길을 극복해 나오신 그 길을 저희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거기에 보답하는 실체가 되고, 거기에 일체가 되고, 희생하는 자가 되기 위해 온갖 지성을 기울이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이 아침에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딸들과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날을 기념하면서 이곳을 그리워하며 눈물짓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그들에게 천배 만배의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후대하신 당신의 사랑권내에서 그들이 내일의 소망의 실체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게끔 보호 육성하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오늘 이 기념 행사의 모든 전체를 기쁘게 받으시옵고, 전한 말씀이 이들에게 해방과 승리의 표준이 되게 하시옵소서.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걸어가야 할 노정기에 있어서 빛나는 등대의 사명을 할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일깨워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남아진 시간과 오늘 이후의 전체도 뜻을 중심삼고 귀결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거룩하신 이름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아버님, 안식일 이 아침에 당신의 거룩하심과 당신의 긍휼하심이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하늘과 땅이 일체가 되어 저희의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고, 저희 형제들이 서로서로 아버지의 형상을 닳아 통일될 수 있는 사연이 여기에 같이 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각자로서 있으되 각자를 위해 있는 자신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 있는 자신임을 발견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아침에 이곳을 우러러보면서 생사의 결정권을 다짐하고 있사옵거든, 그 자리에 당신의 거룩하심과 놀라 우신 은사가 같이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대에 절박한 자기 자신의 생명 문제를 놓고 영원하신 당신의 자녀의 의리를 완전히 갖추어 경배드 리는, 아버지께서 자랑하시고 아버지께서 기억하시지 않을 수 없는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시대에 책임과 사명을 본부받고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당신의 딸들과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이 금후에 당신이 원하시는 그 나라를 위하여 순응하면서 해야 할 책임이 방대하다는 것을 느끼고 하늘과 땅, 당신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이 거리를 메우고, 이 환경을 충당시켜야 할 책임을이 보잘것없는 통일의 무리가 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다는 엄청난 사실을 느끼게 되옵니다.
하늘을 땅에 접근시키고 땅을 하늘에 접근시키기 위해서, 이것을 몸 마음 가운데로 연결시키기 위하여 밤낮으로 간곡한 심정을 붙안고 몸부림 치는 당신의 거룩한 자녀들이 있사올진대, 그 자리에 당신이 살아 계신 것을 입증하시옵고, 당신이 같이하시는 사실을 보이시사 선과 악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목격할 수 있도록 당신이 현현하시옵기를 간절히 바라 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하늘을 위하여 그리움과 땅을 위하여 책임을 다짐하는 자녀들의 울부짖음이 기필코 헛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런 자리마다 아버지에서 찾아오시어서 당신이 얼마나 외로웠다는 것을 그들 앞에 증거해 주시옵고, 당신이 얼마나 참고 나왔다는 것을 그들 앞에 보여 주시옵 고, 당신은 선을 위하여 지금도 책임을 지고 있고 수난의 길을 극복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시키시사, 당신의 마음 가운데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아들이요 딸로서 맞이할 수 있는 은사의 시간을 부여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의 마음 마음이 아버지 앞에 사무칠 수 있고 심정의 열도가 강해질수 있는 시간을 바라고 있는 불쌍한 저희들을, 아버지여, 굽어살피시옵소 서. 가을과 같고 겨울과 같은 마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화창한 생명의 인연을 자랑하는 봄볕을 맞을 수 있는 마음의 향기와 여름날을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의 즐거움을 이 시간 저희들에게 부여하여 주시 옵소서 .
당신이 보게 될 때 찾아오지 않을 수 없는 봄날의 향기를 풍기는 꽃이 되고, 여름날의 무성한 그 모습을 자랑할 수 있는 완전한 당신의 자녀의 미를 갖춤으로 말미암아 아버님이 저희를 놓고는 다른 무엇을 하실 수 없고, 저희와 더불어 이날을 즐거워하고, 저희와 더불어 운행하시고, 저희와 더불어 동행하실 수 있는 아버지가 되시옵기를 이 시간 간절히 바라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분부하실 수 있는 당신의 사연을 여기에 나누시옵고, 찾아오시는 발걸음을 여기에 맞추시어서 이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누구보다도 간절한 마음을 갖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다시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부복한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간사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간교해 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이 보실 때 몽땅 품고 사랑하시지 않을 숱 없는 혈연적인 인연이 그 자체에서 움직일 수 있고, 사연을 통하여 얼크러질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기 위하여 부복한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앞에 무릎 꿇고 엎드린 자기 스스로의 모습이 가증스러운 것을 절절히 느끼고, 죄악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인연을 끊지 못하고 해방의 은사권내에서 당신의 아들의 명예를 갖지 못한 불초자식들인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하면서, 아버지의 구원의 손길로 수난의 길을 참아 나오신 아버지의 은사 앞에 더 감사하고, 이 몸을 다시 아버지 앞에 생축의 제물로서 드리오니 부족한 것을 부족하다 마시고 받아 달라고 몸부림칠수 있는 간곡한 마음의 흐름이 저희 일신을 점령하게 하여 주시어서 그러한 마음으로 당신 앞에 부복한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찾아오신 보람을 느끼면서 사연을 나눌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처에 널려서 싸우고 있는 당신의 어린 딸들을 이 시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가정을 뒤에 두고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일선에 나선 것은 이 나라 이 민족을 염려함이요, 세계 인류 앞에 세워야 할 아버 지의 뜻을 염려함임을 아시사 불쌍히 보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은 이 시간도 이곳을 향하여 마음을 조이며 하늘의 은사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때. 이 자리에 있는 저희들이 부끄러운 모습을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청파동에 있는 이 본부가 보기에는 초라한 곳이지만 하늘땅이 주시하고 수많은 생명의 인연이 갈구하고 있는 자리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 머무른 저희들은 어렵고 두려운 자리에 선 것을 스스로 느끼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현현하심과 더불어 저희의 마음이 당신의 마음 앞에 어리고, 저희의 심정이, 당신의 성상 앞에 흠모의 심정이 사무칠 수 있게 해주시고, 아버님의 사랑의 마음과 아버님의 동정의 심정이 임하시어 저희 전체를 아버지 앞에 품겨 드릴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외로운 싸움터에서도 지치지 않고 하늘을 위하여 싸우는 곳곳마다 살아 계시는 아버지의 능력의 손길을 펴시어서, 당신의 승리의 인연을 증거하는 자리가 되게 하시옵고, 그들이 이 세계 인류 앞에 하늘의 생명의 인연을 가진 하늘의 기수로서 부끄러움이 없고, 당신이 자랑하기에. 당신의 사랑을 받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30억 인류의 생명을 이끌고 가는 외로운 무리들이지만 당신편에 서 있는 것을 입증시키시어서, 언제나 위로하고, 언제나 권고하고, 언제나 격려받을 수 있고, 또 격려하기에 주저하지 않는 그런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친히 찾아오시어서 저희와 사연사연을 나누시옵고, 불충스러운 저희의 모습을 폭로하시어서 당신이 원하시는 마음과 원하시는 소원의 노정을 따라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 서울을 위주하여 40일 특별 집회 기간을 갖고 있사오니, 이 기간에 당신이 저희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인연짓기 위한 각별한 뜻을 세우시 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이 자리에 모인 자녀들 헛된 시간으로 맞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전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거룩하신 이름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또, 그 종교를 중심삼고 신앙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종교와 신앙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해 가지고 하나님은 지금 섭리의 손길을 펴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는 이 시대를 대표한 하나의 축소체인 동시에 우리는 역사를 거처 오면서 하나님이 종교를 통하여, 혹은 신앙자들을 통하여 소망하시던 하나의 실체로 서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금후의 역사시대를 책임져야 할, 신앙계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후계자, 혹은 창건자라는 입장에 있는 울러 자신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오늘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자리는 심각한 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떠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그 일이 아름답고 영광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그 민족 앞에 드러나기를 바라고, 세계면 세계 앞에 남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상정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들이 생명을 걸어 놓고 신앙하는 것을 두고 볼 때도 한낱 흘러가는 세파와 더불어 흘러가 버리기를 바라고 신앙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생애를 걸어 놓고 심각한 입장에서 신앙하면 할수록, 그문제가 중하면 중할수록 그것이 깊게, 넓게, 혹은 길이 남아지기를 누구나 원하는 바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여 바라보게 될 때에 심각한 하나님이시라면 그 누구보다도 심각한 관점에서 자기를 보아 주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일 것입니다. 또 자기로 말미암아서, 자기가 연유되어서 세계에 그 무엇이 남아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신앙자로서 그 누구나 갖지 않을 수 없는 태도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수많은 종교를 중심삼은 종교인 가운데 '나'라는 존재는 한낱 지나가는 세상 가운데 그저 왔다 가는한 사람으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남과 비교해서 좀 특별하게, 좀 다르게…. 하나님이 계시다면 나를 기억해 주시고 나와 관계를 맺어 주시기를 누구든지 바란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시대에 종교를 세워서 세계를 구원해 나오시면서 얼마나 심각하셨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내가 그 심각한 문제와 하나될 수 있는 자리, 심각한 자리에 얼마만큼 처해 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있으면 그 소원을 중심삼고 일체될 수 있는 기준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를 중심삼고 악한 세계와 싸워 나가시는 그 싸움이 얼마나 심각하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싸워 나가시는 길 앞에 내가 얼마나 협조하고 그 길을 따라가는 입장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심각하게 이 싸움을 대신 책임질 것이냐 하는 문제도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뿐만 아니라 이와 같이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동안 역사 과정에서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르면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희생의 대가를 치른 그 범위는 한 부분에 제한된 범위가 아니었습니다. 국가를 넘고 세계를 긍하여 이런 환경을 움직여 나오면서 희생의 대가를 치러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 역사만 두고 보더라도, 아담 가정으로부터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모세 가정, 사가랴 가정, 요셉 가정까지 4천년의 역사시대를 거쳐오는 과정에서 막대한 희생의 대가를 치러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한 희생의 대가를 치러 나오는 데 있어서 역사적인 희생의 인연을 계대해 나오기 위해서는 역사시대의 선조들보다 더 무거운 십자가, 더 큰희생의 대가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가지고는 발전을 못 하고, 미래의 가치를 추구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기필코 더 크게 희생하기를 결의하는 무리가 없어 가지고는 이 세계를 발전하는 섭리로 추진시켜 나갈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과거보 다도 희생의 대가를 더 추구하고자 하는, 더 희생하고자 하는 무리를 찾아서 이 전쟁터를 개척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되는것입니다..
노아 할아버지는 120년 동안 싸워 나왔습니다. 120년이라는 기간을 생각할 때, 그것은 12일도 아니고 12년도 아닙니다. 120년이라는 기나긴 기간은 전체 생애에 해당하는 귀중한 기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아에게 있어서 120년은 살다 남은 그런 기간이 아닙니다. 노아에게 있어서는 일생에서 가장 귀한 생의 토막을 갖추어 드릴 수 있는 기간이 아니겠느냐는것입니다.
그 기간에 수난길을 감수하며 120년을 하루같이 꾸준히 싸워 나온 노아 할아버지의 인내력과 성실성.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충실함은 그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 서기까지 그 배후에시 얼마 만한 수고와 희생의 대가를 치렀겠습니까?
가정에서의 핍박도 있었을 것이고, 동네의 반발도 있었을 것이고, 혹은 친척들이 그를 부정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했을 것입니다.
그런 환경을 극복함에 있어서 그에게 하루는 기쁨의 날이 아니라 도리어 슬픔의 날이 이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하루가 슬픔의 날인 동시에 그하루를 극복하기 위해 매일매일 가중된 투쟁과 가중된 시련 가운데서 참는 시련도 컸을 것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시일이 가면 갈수록 그런 시련이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가중된 환경의 시련이 노아 할아버지 일신 앞에 부딪쳐 왔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노아 할아버지야말로 역사상에 있어서 섭리의 뜻을 대해 나가는 하늘편 사람 중에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볼 때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정든 고향 산천을 떠나갈 때 광포(狂暴)하고 떠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아무날 아무시에 어떠한 사명을 짊어지고 어떠한 곳으로 간다고 이웃, 친척에게 선포 하고 간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밤에 홀로 몸을 감추어 길을 떠나는 외로운 신세였던 것입니다. 그 고독한 일면은 아브라함 일신의 일면만이 아니요 그 외로운 자리는 하나님의 외로운 자리와 일치될 수 있는 자리였던 것입니다. 그런 기원을 갖지 않고 출발하였다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 외로운 자리가 하나님이 처해 있는 외로운 자리요, 그 심각한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처해 있는 심각한 자리였습니다. 악을 분립시키고, 악을 제거시키고, 악을 단호히 처단할 수 있는 결의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는 태도와 행동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2천년의 하나님의 섭리역사의 전체를 통합할 수 있는 중심자로 세우지 않을 수 없었음을, 그런 내연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모세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애급의 궁중에 들어가 바로의 딸,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사랑받는 자리에 선, 특별한 혜택을 받은 사람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처해 있는 자리는 호화스러운 자리였지만 그는 마음으로 호화찬란한 바로 궁중이 자기 소원의 터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 주위에 갖추어진 환경이 호화스러우면 호화스러울수록 그것은 그에게 자기가 찾고 있는 기쁨의 환경이 아니요, 기쁨의 자극이 되는 환경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 민족애를 촉구시킬 수 있는, 그런 자극을 받는 환경으로 삼았고, 자기 민족의 자주성을 고취시키고, 애국적 심정에 불타 오를 수 있는 하나의 터전으로 삼았던 모세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과 애급 사람이 싸우게 될 때, 이스라엘 사람의 편을 들어 애급 사람을 쳐죽였다는 사실은 돌변적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마음 가운데는 이스라엘 민족이 해방되어 평화스러운 국민으로서 자주적인 국민으로서 살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이 깃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애급에서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는 과정에 있어서 그 호화로움과 영광의 터전이 크고 넓으면 넓을수록, 또 거기에 있는 가치의 내용이 가중 하면 가중할수록 그 이면에는 그것을 극복하고, 그것을 무시하고, 그것을 제거시킬 수 있는 애국적 심정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러한 인연을 통하여 민족애의 한 발현으로 나타난 자리가 애급 사람을 쳐죽인 자리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애급 사람을 쳐죽이는 그 자리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자리였느 냐? 아니었습니다. 하나님도 이스라엘 민족이 수백년 동안 애급 민족 앞에 고역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될 때, 당장 그들을 쳐죽이고 싶은 마음이 폭발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언제나 그런 사람이 나타나 주길 바라시던 숨어 있던 하나님의 심정을 대표해서 모세가 애국적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자로 나타나 그런 심정적 출발을 가졌기 때문에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은 역사적인 민족의 새로운 출발을 가져오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을 두고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대에는 메시아가 오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았을 것입니다. 수많은 교법사나 제사장들도 메시 아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을 것입니다. 혹자는 밤을 새워 가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혹은 생애를 투입해 가지고 그날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린 많은 무리 가운데서 하나님은 당신이 바라시 소원 앞에, 당신이 보내시는 그 아들이 오는 길 앞에 가까울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을 찾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유대교인, 혹은 교법사들은 영광 가운데 주님이 오시기를 바랐지만 영광 가운데 올 수 있는 아들의 입장이 못 되었습니다. 그렇게 바라고 있는 그 무리들의 입장과 하나님의 입장과는 천양지판이었습니다. 판이한 방향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올 수있는 길은 영광스러운 자리가 아니라 반대로 비참한 자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은 그 비참한길을 개척하는 사명을 짊어질 수 있는 무리 들을 찾으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세례 요한이 나타날 그 당대에 이스라엘 민족이 섭리를 대하는 관(觀)과 세례 요한이 뜻을 대하는 관(觀)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음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 나가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외로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꽃을 본다고 해도 외로운 가운데 사연을 통할 수 있는 상대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광야의 처량한 그 환경이 야말로 깊은 내면의 심정을 하나님과 관계맺을 수 있는 자극적인 그런 황량한 환경이었을 것입니다.
그 황량한 환경에서 고독이 사무쳐 들어오고 어려움이 부딪쳐 올 때, 그 고독과 어려움을 자기 일신의 고독과 어려움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독과 하나님의 어려움을 동정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평화롭고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고독한 자리에서 어려움을 물리치며 그 환경을 극복하면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한때, 그날이 올 수 있는 길을 개척하는 선봉자의 길을 가는 세례 요한의 입장은 심각한 입장이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세례 요한은 그 시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어떠한 선지자, 어떠한 교법사보다도 하나님이 찾아오는 그 길, 그 도상에 가까운 인연을 갖출 수 있는 시대적인 대표자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세례 요한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겠느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시기를 간곡히 바라는 소원이 있다면 그 간곡히 바라는 소원의 마음은 자기 일신의 행복을 해결짓기 위해서 메시아로 모시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는 메시아로 모실 수 있는 준비된 마음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민족과 역사시대, 혹은 하나님의 섭리시대에 있어서 자랑이 되고 전통적 내적 인연을 세울 수 있는 대표자임에 틀림없 었기 때문에, 이런 세례 요한을 통해서 하나님은 계속적인 섭리의 뜻을 연결시켜 나가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선조들이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수난길을 극복해 나온 공적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 선조들이 수고한 그 공적이 어느 한때에 결실을 봐야 될 것이 아니냐 하고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왔다 갔던 선조들이 한 일들이 하나의 결실을 완전하게 하기 위한 비료가 되고 영양소가 되었을 뿐이지 그것이 결실 그 자체는 되지 못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그 결실은 기필코 어느한 시대에 나타나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결실로서 나타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일 것이냐?
예를 들어 나무는 그 나무가 겪어 온 수난의 모든 내용을 대표할 수 있는 결실을 맺어야 됩니다. 그 결실 자체가 그 수난의 내용보다 더 우위에 시지 않으면 그 결실은 중간에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할 수있는, 그 내적 인연 이상의 힘을 보유하지 않고서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투입된 영양소에 의한 열매, 혹은 수난의 가치로서 찾고 있는 그 열매는 나타나지 못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 섭리는 범위가 넓어져 나왔습니다.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 범위가 넓어지고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섭리의 뜻의 내용은 점점 가중된 복잡성을 지니고 나왔 다. 이런 섭리의 뜻을 미루어볼 때, 현시대에 처해 있는 무리 중에 결실로서 자처하고 결실이 되기 위해서 나서는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그 내용에 있어서 복잡함이 역사시대의 복잡함보다도 못해서는 완벽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은 못 될 것입니다.
복잡한 자리에서 더 복잡해야 되고 심각한 자리에서 더 심각해야 되겠습니다. 수난을 극복하는 자리에 있어서도, 어떠한 역사시대의 수난보다더 강한 수난길에서도 극복할 수 있는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건 왜냐? 과거에는 개인적 시대, 가정적 시대, 종족적 시대, 민족적 시대를 거쳐왔고, 지금은 세계시대와 천주시대를 향한 전환기인 것입니다. 그런 시점에 서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시대는 어떠한 역사시대보다도 광대 하고, 그 골은 높고 그 심도에 있어서는 깊은 시대인데, 이 전체적 사연을 움직이고, 전체적 환경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 내용에 있어서는 무엇 보다 심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복잡한 내용을 피해갈 것이 아니라 여기에 보다 복잡성을 가지고 이것을 초월하고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자체로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시대 앞에 역사적인 신앙의 결실체로서 나타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심각한 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오늘날 여러분 자신들은 6천년의 역사적 열매라고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 그런 시대입니다. '우리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통일교단을 통하여 아버지의 최후의 섭리는 끝을 맺어야 한다. 그 끝맺음의 결과가 어떻게 된 것이냐?' 하는 문제가 오늘 통일교단이 하나의 종교단체로서 선서해야 할 심각한 문제요, 통일교단의 일원으로서, 하나의 신앙인으로서 선서해야 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대표한 개인, 그 자신은 심각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떠해야 되느냐? 통일교회도 심각해야 될 것입니다. 또,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이 나라는 어떠해야 될 것이냐?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이 나라도 심각해야 될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이세계도 심각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심각한 자리에서 세계가 통일교회를 인도할 것이냐? 그런 섭리의 때가 되었으면 하나님은 걱정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계가 통일교회를 지도할 수 있는 입장에 서면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끝난 자리 라는 것입니다. 통일된 세계가 통일교회를 인도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세계가 통일교회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교회가 세계를 인도해야 됩니다. 반대입니다. 이 나라가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통일교회를 인도해 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가 이 나라를 인도하는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종교를 이끌어 가고, 종교가 종교인을 이끌어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기를 바라는데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통일교 회가 통일교인을 끌고 가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통일교인이 통일교회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단이 6천년의 열매가 되기 전에 통일교인이 6천년의 열매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의 나라가 6천년의 열매가 되기 전에 통일교단이 열매가 되어야 되고, 통일교단이 열매가 되기 전에 통일교인이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통일나라가 열매 맺히기 전에 통일나라를 위한 통일교회 신도가그 나라의 열매로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세계가 열매가 되어야 하는 것은 틀림없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통일나라가 열매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통일나라가 세계를 대표한 열매로서 나타나기 전에 통일교단이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단이 열매가 되기 전에 통일교회 교인이 세계 적인 열매로서 나타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선 나, 그런 입장에 선 통일교회와 통일교인은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시대는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그 한날을 찾기 위해 수천년을 걸어온 역사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위주한 역사를 보더라도 고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할 수 있는 교단으로서 유대교를 세워 섭리해 나왔습니다. 유대교를 수습할 수 있는 입장에 선 유대교인으로서 당연한 걸음을 걸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통일교회 시대는 다릅니다.
오늘 통일교회 시대는 유대교 시대와는 그 깊이와 넓이에 있어서 다릅니다.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출발의 기원이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 들은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민족적 수난길을 극복하면 될는지 모르지만, 유대교는 민족 앞에 저끄러지고 하나의 섭리 앞에 반대되는 것을 제거하면 될는지 모르지만, 오늘 통일교단과 통일교회 교인은 이스라엘 민족, 유대교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섭리를 종결지어야 할, 역사시대를 대신한 세계적 시대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니 심도에 있어서 얼마나 심각해야 될 것이냐. 역사노정에 왔다 갔던 어떠한 종교보다도 우위에 선 종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넓이와 길이와 깊이에 있어선 당대의 어떠한 종교를 제창한 도주보다도 더 넓고 더길고 더 깊은 심각한 심도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세계는 어디로 가느냐? 이것이 문제가 아닐 수없습니다. 오늘날 세계정세를 바라볼 때, 선진국가를 자처하는 그런 나라라 해도 국민에게 불신도를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정세를 바라 보게 될 때 이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이냐? 이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세계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느냐? 이런 문제가 나옵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하나님이 죽었다고 하는 사조가 공공연히 흐르고 있는 이 세계를 바라볼 때 '하나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시다. 틀림없이 살아 계시다. 역사적 부정의 여건을 일시에 제거시키고도 남을 수 있는 긍정적 인연을 갖고 있다' 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이방대한 세계적인 부정의 권을 긍정적 신념을 가지고 격파시키고 남을 수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세계를 이끌어 가야 할 통일교단은 갈 길이 막혀 버릴 것입니다. 세계를 부활권으로 이끌어 가야 할 통일교회 신자는 거기서 갈 길이 막힐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때, 세계를 누가 책임을 질 것이냐? 이 책임을 하나님께서 일상 져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의 소윈이지만 실상 내용은 그렇게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을 지되 최후의 책임을 지고 나오신 하나님께서 그 책임을 인간에게 전환시키지 않고서는 결정적 승리를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노정의 원칙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놓고 세계의 현상들을 바라볼 때 이 시대를 대신하여 책임질 수 있는 교단은 어떠한 교단이며, 그 교단을 대표할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이냐? 그런 입장에서 세계 전체 문제를 책임지고 나가다가 '나 홀로 생축의 제물로서 사라지더라도 이 세계와 싸우겠다. 싸워 가지고 후퇴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를 극복시키고 말겠다'고 몸부림치는 교단이 있어야 되고, 그런 교단에 앞서 몸부림치는 개인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계적인 인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자기가 어떤 종교를 믿고 있으면 그 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요, 자기가 처해 있는 신앙의 터전이 세계적인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라는 것이 크지만 그것이 발전 하고 크기 위해서는 바라고 있는 그 이상의 대가가 소모되어야 되고, 그힘의 소모가 가중되어져야만 그 대가의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대가는 무시하고 결과만을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욕심입니다. 그런 신앙은 허황된 신앙입니다.
이 세계가 우리를 이끌어 줄 수 있는 길은 없느냐? 없습니다. 세계가 우리를 이끌어 줄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의 환경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하늘을 중심한 사람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먼저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고서는 우리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세계는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러분 개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심도라는 문제는 방대한 내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온 세계를 통합한 가운데….
여러분이 제주도를 가 보면 알겠지만, 제주도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전지역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처해 있는 곳이 한라산 밑바닥이라 해도 그곳은 한라산 정상과 반드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각도는 다르더라도 정상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평평한 것 같은데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 높이가 가중되는 것입니다.
제주도가 한라산을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는 한사람의 인격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인 모든 섭리의 뜻을 중심삼은 수고의 터전은 누구를 위해 있느냐? 세계를 위해 있기 전에 나 하나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세계의 터전이 넓어지고 높아진 것은 그것이 쪽 올라가서 높아진 것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수습해 가지고 하나의 높은 신앙의 인격을 구축하기 위해서 높아진 것입니다. 그런 정상에 서 있는 '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신앙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 취하에 연결되어 있는 모든 사연이라는 것은 남의 사연이 아닙니다.
나와 직결되어 있는 사연입니다. 단계에 있어서는 나와 거리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직결된 사연이라는 것입니다. 단계에 있어서 거리가 있으니 나와 상관없다고 부정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큰 산을 이룰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큰 인격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큰 인격자가 될 수 없다고 할 때는 큰 뜻의 책임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 못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될 때, 사는 생활이 비록 제한된 환경에서 살고, 자기 하나 누울 수 없는 좁은 자리에서 사는 생활이라 살지라도 그 한 사람을 통해서 세계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의 정상의 자리에 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 자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죽음 길을 자처해 간 자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 앞에서 염려한 것은 자기가 죽어 없어지는 것을 염려한 것이 아니라, 자기는 죽더라도 그 인연을 남기고 가야겠다는 염려의 마음이 앞섰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4천년 역사를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의 사직(社稷)이 무너지느냐, 안 무너지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심각했던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자기 일신이 사라지는 것을 염려한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남겨진 전통의 노정이 나로 말미암아 손실이 돼서는 안 되겠다. 나로 말미암아 빛이 될 수 있는 결과를 가져 왔으면 가져 왔지 역사적인 하나의 한의 노정을 남겨서는 안 되겠다' 한 것입니다. 거기에 해방권을 만들고, 자유와 평등권을 만들고, 여기에 스스로 침의 원천을 자극시킬 수 있는 역사적인 그 무엇을 남기고 싶은 마음을 가졌으면 가졌지. 거기에 흠을 가져다 주고 거기에 손실을 가져다 주는 그런 놀음은 죽더라도 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길을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찾아 왔느냐? 그런 사람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역사적 가치의 내용을 종결지을 수 있는 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하나님은 심각할 것이 아니냐…. 이것이 더 상처를 받아서는 안 되겠다는 심각한 마음, 그 상처를 남겨서는 안 되겠다는 간곡한 마음이 앞섰던 것입니다. 자기는 백, 천만한 상처를 입더라도 거기에 열만한 상처도 입혀 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보다 백배 천배 염려를 하면 할수록 그건 하늘의 영광이 되는 것이요, 하늘의 자랑이 되는 것이요, 하늘의 역사적 승리의 터전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예수님은 자기 일신을 가누어 가지고 생각할 수 없는 자리가 아니었겠느냐? 그것은 생각할 여지가 없는 자리가 아니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하신 말씀 가운데는 공적인 입장에 선 당당한 그의 인격이 숨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러 시나이까'라고 한 것은 버릴 수 없으신 아버지이신데도 불구하고…. 여기 에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고 하는 말씀의 의미가 성경 가운데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의 내심을 중심삼고 볼 때, 그가 세상 앞에 말할 수 없는 간곡한 내적 결의를 다짐한 것을 두고 볼때, 그것은 '틀림없이 다 이루었다. 내가 소원하는 일념 앞에 있어서 넘을수 있는 고개는 다 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인 것입니다. 그 한마디의 말은 역사를 새로이 창건할 수 있는 승리의 표어와 마찬가지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발전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그 발전의 역사의 동기는 무엇이냐? 예수의 그 철저한 사상적 터전이었던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터전이 역사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하고도 남을 수있는 동기의 기원이 되었기 때문에 기독교는 죽음이 따르는 순교의 역사도 무한히 돌파하고, 현실에서 세계적인 터전을 넓힐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장본인이 가졌던 신념과 하나님을 위한 간곡한 심정적 심도가 거기에 깃들어 그것이 밑천이 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심어진 그 힘의 여력이 거기에 깃들어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 결과는 세계의 끝날에 거둬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4천년 역사시대를 대신해서 누구보다도 하나님 앞에 진정한 의미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분이 간 죽음길은 보통 사람의 죽음길과는 다른 것입니다. 자기 일신의 행복만이 아니라 자기가 속한 일개국의 행복뿐만 아니라, 만민과 더불어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시대의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가는 그의 심각함에는 그 누구도 따를수 없고, 하나님도 감탄하실 수밖에 없는 내용이 깃들어 있음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루어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의 소원을 매듭짓고, 새로운 천국이념을 주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이 이 시대에 요구하는 뜻이라는 것을 생각 하게 될 때, 그러한 하나의 교차선, 그런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상에 서있는 오늘의 통일교회, 통일 종교를 갖출 수 있는 통일교단, 통일교단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신앙자, 그 신앙자의 인격은…. 그 인격이야말로 예수의 전통적 역사적 심정을 부끄러움 없이 상속받았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가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세계적인 수난 과정을 극복하고도 날올 수 있는, 승리의 한날을 찬양하고도 남을 수 있는 내적 결의와 더불어 다짐된 사람이 아니겠느냐. 이런 것을 두고볼 때 그자리에 선사람의 신앙의 심도라는 것은 은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계를 걸어 놓고 하나님 앞에 심각한 자리에서 기도해 봤느냐? '내가 동쪽으로 갈 때는 세계가 동쪽으로 움직이고 내가 서쪽으로 갈 때는 세계도 서쪽으로 움직인다. 내가 호흡하는 것은 세계 인류를 대표해서 호흡하는 것이고, 내가 먹고 사는 것은 인류를 대표해서 먹고 사는 것이다' 이러한 신념에 사무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기를 하나님은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통해서 바라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그런 사람이 있었느냐? 일년, 혹은 한때를 그렇게 산사람이 있었을는지 모르지만 십년을 매일같이, 혹은 노아와 같이 120년 동안 그런 심정을 중심삼고 역사적 전환점에서 전체의 천적인 사명을 대신하기 위한 승리적인 결실로서 남아지겠다고 몸부림친 무리가 있었느냐할 때, 이것은 심히 염려되는 문제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된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승리의 날은 맞지 못할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자랑할 수 있는 통일교인이 되어야 하고이 세계가 자랑할 수 있는 통일교회, 통일교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나라와 이 세계가 통일교회만 자랑하는 그런 교단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가 자랑하는 통일교단이 있기 전에 이 세계가 자랑하는 통일교회 교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랑하게 될 때 '야, 통일교회 잘한다' 하기를 바랄 것이냐? 그것은 여러분과 관계가 없습니다. '통일교회에 다니는 아무개를 자랑한다' 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도, 십자가의 죽음길을 간 예수는 이스라엘을 자랑하는 예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교를 자랑하는 예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교를 대표하고 이스라엘 나라를 대표한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그 예수는 유대교를 포함하고, 이스라엘을 포함하고, 유대교와 이스라엘의 미래를 포함하고도 남음이 있을 수 있는 정상에 서 가지고 그의 권위와 영향을 미치게 될 때, 전체가 그 영향권에 휩쓸려 들어갈 수 있는 주체적인 입장에 선 예수였던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통일교회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 신앙자 가운데 그럴 수 있는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박 아무개면 박 아무개가 있어야 될 것이 아닌가? 그래서 역사를 탐구하는 것은 그보다 나을 수 있는 '나'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 시대의 신앙자들을 감정하는 것은 그 시대적인 어떠한 신앙자보다 나은 신앙자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미래에도 이런 전통을 넘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원을 마련하지 않고는 역사시대에 남아질 수 있는 최고의 무리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오늘날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세계를 대한 하나님의 섭리 앞에 있어서 역사적인 종말시대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역사적 출발을 볼 수 있는, 기원을 일으킬 수 있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은 역사시대를 넘고 살수 있는 심정적 동기를 유발시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출발된 종교면 종교의 과정을 거쳐 역사의 승리점을 결정지을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이지, 그것을 결하지 않고서는 그런 결과는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어떤 한 시대를 대표하여 기도하고, 그시대의 비운을 책임지고 하늘 앞에 몸부림치는 수고의 자리에 선 사람은 어떠한 종교면 종교의 도주로서 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시대를 극복하고 그 세계의 섭리적 관을 넘고 나설 수 있는, 그렇게 정성을 들이는 무리들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역사 발전사에 남아질 수 있는 개인, 혹은 종교가 될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무리를 찾아나온 것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신앙의 심도'라는 주제로 말씀하고 있지만,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자기를 중심삼은 생활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 일신을 위해 사는 생활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팔려가는 종의 몸보다 더한 신세입니다그 시대에 팔리는 몸이 되기 보다는 미래 세계와 전체 역사와 더불어 운명을 같이하기 위해 팔리는 몸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를 위해서 수고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완전히 역사 앞에 있어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기의 생명이 남아 있는 것은 역사가 남아 있기 때문이요, 역사의 해결점을 결정하기 위해서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 가지고는, 그런 기원이 없어 가지고는 세계를 요리할 새로운 운동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그와 같은 내용을 갖지 않고는 지상을 중심삼고 역사할 수 없을 것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전체를 복귀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부자집에 팔려온 종의 입장에서 주인을 위해 생애를 바쳐 충성함으로 말미암아 그주인 앞에 칭찬받은 생애를 남긴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이 수고한 것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그 사람의 수고에 몇천만 배 더 가중한 수고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부모 안에 효도를 하여 효자의 칭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효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 효자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그런 입장과 같을 것인가?
다른 것입니다. 역사를 대신해서 찾아온 길이요, 시대를 대표한 길이요, 미래의 출발의 기원이 되어야 할 그런 자리인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효자 중의 효자가 나와야 되겠느냐.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이걸 잘 알아야 됩니다. 내가 언제 세계와 더불어 살아 봤느냐? 내가 언제 이 민족과 더불어 살아 봤느냐? 더 나아가서는 민족이 망하고 세계 역사도 변해왔지만 그 변하는 역사도 넘어 서고 민족의 망하는 운세도 넘어서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 봤느냐?
그러면 망하는 운세를 가로막고 세워 놓으시려니 하나님은 얼마나 힘이 드시겠습니까? 그렇잖아요? 한 집이 망하는 것을 바로잡으려면 십 년 수고해도 어려운데. 이 천지가 망해 떨어지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수고를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수고하셨는데도 바로잡지 못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틈바구니에서 지렛대 놀음을 누가 해야 되느냐? 그것은 하나님이 혼자 하셔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지렛대의 끝을 쥐고 지레질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지렛대는 누가 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이 아닙니다.
원리를 두고 볼 때, 누가 되어야 한다고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나'입니다. 내가 지렛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렛대가 되려면 찢기는 밑창에 들어가야 되는데 거기에 누가 들어가야 되느냐? 사람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세워 나오는 과정에서는 지렛대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 찢겨 죽은 수많은 개인도 있었고, 수많은 가정도 있었고, 수많은 민족도 있었던 것입니다.
찢겨서 죽은 것을 다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찢겨 죽은 이상의 힘을 가질 수 있는 종교가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그 종교가 남아진 이상의 힘을 가진 종교인이 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지렛대 끝, 희생의 첨단에 서 가지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가중된 힘, 밀어 제낄 수 있는 강도(强度)를 가진 힘의 모체가 되어야 하는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렛대이기에 거꾸러지든 뒤집어지든 일그러지든 쩌그러지든 상관없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신념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내심에 그런 결심을 얼마나 해보았어요?
6천년 동안 박혀 있던 큰 집채 같은 바윗돌을 들어 가지고 옮겨 놓았다. 구원했다 할 때는 하늘땅이 얼마나 환성을 지르며 기뻐하겠습니까?
그럴 게 아니예요? 이것이 언제 한번 구르는 날에는 천하는 나가떨어질 것입니다. 그런 어떠한 한계선을 중심삼고 하나님은 있는 힘을 다하여 틀려고 하는 방향이 있을 것이 아니냐? 그래 주기를 바라는 소원의 일념이 남아 있을 것이 아니냐? 저끄러진 이 세상, 이 세상이 타락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그것을 굴러 넘기는 지렛대의 사영을 누가 할 것이냐?
'나는 구경하는 사람이 되겠다' 하는 사람은 쓸데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믿으실 수 있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원의 세계를 어떻게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믿지 못하시는 것까지 믿을 수 있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품지 못하는 욕망까지 가져야 되겠다. 하나님은 쉬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런다고 하나님이 '경거망동하지 말아라. 에이 불충한 녀석'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는 죽더 라도 내가 하겠습니다' 하고 나서는 지렛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만일 지렛대를 쥐고 계시는 하나님이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라면 말이 예요. 지렛대가 되겠다고 한 결심이 하나님보다 더 강한 입장에 서면 하나님께서 '그래. 한번 해보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결심을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바다를 유리덩이로 된 바다라고 생각해 보세요. 이 유리덩이 바다를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는 그런 놀음을 한다면, 맨 밑창에 있는 그 깊은 바닥을 잡아챈다면 바다는 떼굴떼굴 굴러갈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깊은 곳을 찾아가야 합니다. 신앙의 길도 마찬가지로 깊은 곳을 찾아가야 합니다. 신앙이란 말은 믿고 바라는 것입니다. 우러러보면서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신앙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느냐? 말씀을 중심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하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믿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이 뭐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해준다 하는 계약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 뭐냐 하면 전부 다 계약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해주마 하는 계약인 것입니다. 계약대로 이행하면 하늘은 흥하게 하고, 계약대로 이행 안 하면 하늘은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계약대로 전부 다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계약한 그 내용이 아무나 항상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신앙이자는 말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나와 직접적 관계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 관계에서 인연을 따라가는 길에 있어서 필요한 것입니다. 나와 하나되었는데 무슨 신앙이 필요하겠습니까? 살면 되지. 신앙이 필요한 것은 관계가 맺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관계를 맺어야 하느냐? 말씀을 중심삼고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통일교회 신앙을 한다. 통일교회를 믿는다는 말은 통일교회 말씀을 따라간다는 말입니다. 통일교회 말씀과 하나됐다는 말입니다. '잘 믿는다'는 말은 열심히 믿는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믿는다' 하는 말은 통일교회 교리대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에서 현재 이만한 신앙을 해 가지고 이만한 환경을 만들었다면 더 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큰 신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통일교회 말씀을 중심삼고 믿고 나가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맡을 것이냐? 이것은 믿고 저것은 안 믿는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믿는 데 있어서는 몽땅 믿으라는 것입니다. 믿고 나서 '아이고, 난 됐다' 해서는 안 됩니다. 믿는 데 있어서는 배고픈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것 가지고는 안 되겠는데 더 뭐 없나' 해야 합니다. '이것 먹고는 체해서 설사가 나서 죽겠는데...'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먹고 나도 배가 고픈데 더 먹을 것이 없느냐'고 하며 입을 벌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지 못할 말이 없어야 합니다. '1정도 가지고는 설사 안 한다. 배가 아프지 않다. 그것보다 몇백 배 되는 말을 흠뻑 집어 삼키고도 끄떡없이 소화시킬 수 있다' 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아직까지 머리 숙이고 무엇이 어떻고 어떻고 하고 따지는 사람은 멀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믿지 못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저에게 한번 명령해 보십 시오' 하며 무엇이든지 믿겠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야 이녀석아, 이 녀석 안 되겠구만' '그러시겠어요? '내가 믿지 못할 것이 어디 있느냐?' 하시면서 없다고 해도 '아 그래도 있을 게 아니요? 하면서 하나님의 멱살을 잡고 매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싫어하겠어?
'이놈 자식아, 경망스럽고 불경한 자식아' 하시겠어요? 사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신나시겠어요. 안 신나시겠어요? 그런 사람을 불효 자식이라 하겠어요, 망할 자식이라 하겠어요? 그런 사람이 없어서 하나님이 걱정하시지 않느냐는 겁니다.
성경에도 보십시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16 : 12)"는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답답함이 얼마나 크냐' 하며 예수님이 탄식을 많이 했습니다. '이 세상 일을 말하 여도 믿지 못하는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고도 했습니다.
불신하는 사람들에 대해 탄식한 말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서 통일교회를 믿는 데 있어서 얼마만큼 믿을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믿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그것도 소화시킬 수 있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것도 소화시켜서 영양소로 섭취해서 살이 되면 되는 것입니다. 뱀을 잡아 먹는다고 다 죽는 것이 아닙니다. 독사의 독을 먹었다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먹어 가지고 소화시 키면 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못 믿을 것이 무엇이냐 이것입니다. 그런 것을 한번 연구해 봤어요? 나에게 이것이 필요하고 이것은 필요없으니 버린다고 할 수 있어요?
여러분 누구에게나 뱃속에는 내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장에는 비료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내장 가운데 들어 있는 비료는 내게 필요 없으니 빼 버리고, 내장의 어느 부분은 잘라 버리고 내가 필요한 것만 갖고 있겠 다고 할 수 있어요? 모두가 필요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똥까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웃음) 시시한 신앙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시한 신앙.
현재 통일교회 앞에 나타난 것도 요리하지 못하는데 앞으로 갈 통일교회를 창조해 낼 수 있겠어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못 믿을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진리 중에 못 믿을 것이 없다. 이만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걸 가지고 통일교회 신앙이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느냐?' 여러분은 이렇게 한번 해봤어요?
선생님 주의가 그래요. 믿지 못할 것까지 찾아다니면서 믿겠다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20대에 한국의 훌륭하다는 목사들을 다 만나 보았습니다. 그래 가지고 당신이 믿지 못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들어보니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모두 비교 감정한 것입니다. 그 정도 가지고는 뭐…. 믿겠다고 생각하지 않고도 믿을 수 있어야 큰 믿음입니다.
그래서 내가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는 끝없는 정성을 들이겠다고 한것입니다. 끝없는 정성은…. 나라도 한꺼번에 몽땅 잡아서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나라를 제물로 해서 정성들일 수 있으면 거기에는 어머니 아버지도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처자도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나 홀로 남아서 아들딸 전부를 제물로 드릴 수 있는 그런 자리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심도에 있어서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자기가 믿는데는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현재는 진리에 있어서, 둘째는 인격에 있어서…, 믿는데는 그렇잖아요?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사탄이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 '진리에 있어서는 못 믿을 것이 없습니다. 그건 문제 없습니다. 다 믿으니, 선생님, 말씀해 보십시오. 믿지 못할 것이 있거든 말씀해 보십시오. 그것을 내가 삼켜서 피살을 만들겠습니다' 그럴 수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믿어요? 종교를 믿어야 되는데 종교를 믿게 될 때는 그 종주를 따라야 합니다. 그 종교를 창설한 사람의 인격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창설한 사람이 하지 못하겠다는 것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종교의 전통적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창설자가 하자 하는데 싫다고 하는 사람은 아직 거리가 있는 것이요, 그 인격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종교의 창설자가 하자고 한 것은 틀림없이 해야 합니다. 만일 창설자가 하자고 하기 전에 먼저 나서서 '내가 하겠습니다' 하는 사람이 있게 되면, 그 종교의 창설자는 자기가 죽기 전에 그에게 계대를 이어 놓고 가려고 할 것입니다. 창설자가 살아 있을 매 계대를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창설자가 하지 못하는 것까지 하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아이구, 통일교회 문선생 가는 길을 나는 못 따라가겠소' 해서는 안 됩니다. 하자고 하는 것은 다 하고 '더 해야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구. 또 하는구만. 그걸 어떻게…. 이건 뭐 가면 갈수록 태산준령이구만. 선생님이야 미쳐서 그렇지, 나는 안 미치겠어' 하는 사람은 거기서 망하는 것입니다.
먼저 진리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지도하는 사람과 하나되 어야 합니다. 어느 고개를 넘어가다가 지도자가 못 가겠다고 하면 그 지도자를 밀고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밀어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 편이 되는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 지도자가 지쳐서 못 올라간다 할 때. 지금까지 수고를 해왔는데 하나님이 그가 지쳐서 멀어지길 바라겠어요? 배후에서 누가 밀어 주기를 얼마나 바라시겠어요?
그러니 지도자가 못가게 될 때 그 지도자를 밀어 주는 입장에 서면 하나님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지도자가 못 간다고 해서 '어이구 어이구, 선생님도 봐라' 그런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뒤에서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통일교회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중 작전을 하십니다. 밀어 주는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치는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을 원수 사탄에게 넘겨주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화살침으로 궁둥이를 찌르게 해서 화닥닥 정신차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따라서 무슨 문제가 벌어졌다 하면 '아이쿠 감사합니다' 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강장제 주사를 놓아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늘 작전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에 내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되면 동시에 친구 중의 친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두 패로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었던 사람이 원수가 됨으로 말미암아 생각하지도 않았던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자리로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꿔치면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퀴가 구를 때는 정지하려는 것보다 뒤에서 미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굴러가는 것입니다. 뒤에서 오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굴러가는 것입니다. 뒤에서 오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앞은 물러가고 뒷 것이 앞자리를 차지하면서 바퀴가 굴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굴러가는 것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선생님을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선생님이야 팔자를 타고 나서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팔자를 타고 나지 않았다'고할 수 있어요?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그 팔자를 다 이어받지 않고서는 살 팔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은 그 심도에 있어서 선생님을 따라가지 말고 선생님보다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선생님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 이상으로 하나님을 대할 때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자기 앞에 다가 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움직여 나온 것은 그냥 허무하게 나온 것이 아닙니다. 지난 역사를 두고 볼 때 엄청난 역사가 있었고, 지금도 엄청난 역사가 연결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이 같이 하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나는 선생님이 만나지 못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가까우니 내가 더 잘 믿어 보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선생님은 가만히 계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하면서 서로 하겠다고 싸우게 되면 그 집단이 망하겠어요, 안 망하겠어 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발판 삼아서 출세해 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 하게 하려고 파리를 끊고 손을 끊으려 한다면 죽일 녀석입니다. 발판으로 삼을 수있으면 발판을 삼으라는 것입니다.
'선생님, 이 대한민국을 복귀하고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이런 정도의 희생은 할 수 있고 이런 배짱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예 요? 선생님이 못 하시겠거든 저에게 시켜 주십시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기성축복 받은 가정인데 나이가 한 40이 넘은 사람입니다. 조용한 새벽인데 문을 두드려요. 그래서 문을 열어 주었더니 들어왔어요. 왜 왔느냐고 물으니 할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심각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말해 보라고 하니까 '제가 김일성의 목을 짤라 올 테니 보내 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웃음)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니까 어떻게 하는 것은 그때 가 봐야 알겠지만 하여튼 보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은 그때 가 보아야 알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우선 가는 것이 문제이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그때 가 봐야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됐다 이 녀석아' 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납니다. 내가 지금도 이북을 생각하고, 김일성을 생각할 때는 그 사람 얼굴이 번뜩 떠오릅니다. 요전에 내가 그에게 '지금도 가고 싶어요' 했더니 '예'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웃음) 그게 됐다는 겁니다. 진짜 그럴수 있는 때가 된다면 저 한번 해봐라' 하고 제 1호 특명. 밀명을 내릴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죽지 말고 기다려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일성' 하면 그 얼굴이 퍼뜩 떠오릅니다.
만일 통일교회 교인 중에 '선생님, 제가 하나님과 한판 씨름을 하든가뭐 하나님께서 그것은 믿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도망칠 정도로 믿고 싶으니, 하나님을 좀 소개해 주십시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선생님의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 하면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를 것입니다.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서 도망갈 정도로 믿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 할 때에는 그 사람이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믿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1호는 무엇이고, 2호는 무엇이고, 3호는 무엇이고….' 이렇게 쭉 생각해 보라는 거라구요. 왜 그러냐? 사탄세 계를 요리하려면 사탄세계에서 믿을 수 있는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사탄세계에서 믿지 못할 것을 가지고 요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뒤집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아래서부터 뒤집어야 돼요, 위에서부터 뒤집어야 돼요? 위에서 뒤집는 것은 뒤집을 수 있다 해도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복귀는 아래서부터 해야 합니다. 아래서부터 올라가야 합니다. 위에서 부터 한다면 대통령에서부터 내려와야 합니다. 그렇게는 뒤집을 수 없습니다. 뒤집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뒤집으려면 밑창부터 뒤집어야 합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세상이 믿지 못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까지 믿지 못하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가 신앙생활에 있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 진리를 믿어야 됩니다. 그 인격을 믿고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 가야 되는 것입니다. 믿는 것만 가지고서는 안 됩니다. 이룰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술을 열 댓독 만들어 가지고, 서울 사람이 다 먹고 취해서 나가자빠질 정도로 술을 만들어서 한번 마셔 봤으면 좋겠다 할 때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 남아질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어요? 탕감복귀 역사에서 술 먹은 사람을 해방하려면 그 놀음을 누가 하겠느냐 이거예요?
그렇잖아요? 술을 먹고 병이 나서 죽은 사람을 어떻게 탕감복귀하겠어요? (웃음) 그런 사람을 탕감복귀할 사람이 있어야 할 게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술 공장 주인도 되어야겠습니다. 도박장도 만들어야 되겠구만. 세계에서 제일 가는 도박장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건 왜?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그것은 언제나 두는 도박장이 아닙니다. 일시 탕감복귀하기 위한 도박장입니다. 그런 도박장도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사실 탕감복귀는 그렇게 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총살한 과거역사를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수만 명을 한꺼번에 총살하는 일도 벌어질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수만발의 총알이 한꺼번에 나가는 총을 만들어서 일격에 전부 다 죽이지 않고서는 해원성사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런 일도 있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있다는 것이 아니라구요. 처녀들은 '아이구, 말만 들어도 끔쩍해'라고 하겠지만 (웃음),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썩어진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만들기 위해서는 썩어진 것을 잘라 버려야 할 게 아닙니까? 잘라야 할 손가락을 놓고 '아이구. 이 손가락 이때 까지 나와 더불어 함께 했는데 자르다니, 나는 죽어도 못 자르겠다' 하면 죽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한번 잘라 보자' 하고 선뜻 잘라 놓고 울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탕감복귀라는 말을 알고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 치고는 너무나 째째하다는 것입니다. 3천만 명쯤 잡아서 제사를 드려야 30억 인류를 살릴 수 있다면 3천만 명을 잡아 제사를 드리겠어요, 안 드리겠어요?
제사를 드려야 되겠어요, 안 드려야 되겠어요?「드려야 되겠습니다」'그것 어떻게 드리나? 안 돼지' 하면 되겠어요? '하나님, 3천만은 그만 두고 30만, 30만은 그만 두고 3만, 3만은 그만 두고 3천3천은 그만 두고 탕감조건이니까 3백 명, 3백은 그만두고 조금 더 양보해 가지고 3십명, 조금 더해 가지고 3명만 드리면 어떻겠소?'(웃음) 한다면 거 수작이 됐어요? 3천 명쯤 제물드려야 한다고 하면 '3천 명 가지고 되겠소? 3억 명을 제사 드리겠소' 하면 하나님은 '3천이면 돼. 그럴 필요 없다' 할 것입니다. 그러면 '3천 3십 3명이라도 드려야 될 게 아니 요?' 하면 '다 그만 둬라' 그러실 것입니다. '그러면 3천 3명이라도 해야 될 게 아닙니까' 하면, 그만두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3천명에다 신발 세 켤레라도 갖다 놓고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한다면, 이런 식은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흥정합시다' 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웃음) 내가 탕감복귀의 역사를 알고 난 후에는 못할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까지도 바쳐야 된다면 바치겠다고 결심한 사람입니다. 자식, 아내는 문제도 아닙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어느 누구보다도 믿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 일등이라고 하나님이 믿을 수 있어야 세계적인 놀음도 한번 시켜 보고, 하나 못 하나 구경이라도 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자들을 내세워 가지고 인민군들을 정복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결심 입니다. 남자 인민군들을 여자들을 내세워서 때려잡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 주장입니다. 한번 할 것입니다. 그러면 희생이 얼마나 될 것이냐? 3배 이상 희생될 것입니다. 그러냐 대한민국의 여자 세 사람만 남겨 놓고 다 죽더라도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남자만 있으면 여자는 사오면 되는 것입니다. (웃음)
우리가 공기총을 만들어 보급했기 때문에 새들이 다 죽었다고 이야기들을 하는데 새가 죽어서 어쨌다는 겁니까? 돈 벌어서 일본에 가서 사오고, 이국에 가서 사오면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새보다 배나 더 좋은 종자를 사다가 만들어 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에 좋지 나쁠 것이 뭐냐는 것입니다. 나쁜 종자가 있는 것보다 더 좋은 종자를 사랑해 주면 대한민국이 이익이지 손해날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열심히 믿겠다고 하던 유협회장을 보고 '저녀석을 제사를 드려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그러다 죽었지요? 그렇 다고 섭섭하게 생각했겠어요? '아이고, 왜 죽었어 왜 데려갔어.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하면서 눈물을 홀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제사 드리지 못한 것이 한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 그게 됐어요, 안 됐어요?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잔인하지요? 그런 식입니다. 그렇 게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서는 못할 게 무엇이냐…. 그게 문선생 주의예요.
통일교회 말씀을 대해 못 믿을 것이 없습니다. 우선 믿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안 된다면 이의를 제기한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지도 않고 향하지도 않고 이러쿵저러쿵하면 입을 찢어 버려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행한 실적 앞에 치이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인격을 따라가라, 그 사람을 따라가 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 못 하겠소' 한다면 실패입니다. 그 사람을 상대 안 하는 사람은 거기서 망하고 맙니다.
아직까지는 정상, 꼭대기를 못 가 봤으니 망하더라도 꼭대기에 가 보고서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8부 능선에서 쓰러지면 사체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죽어 독수리 밥이 되더라도 꼭대기에 가서 죽겠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 높은 고개를 올라 정상을 정복했다는 역사를 남기고 죽어야 지, 못 가겠다고 하다 죽었다고 하면 안 간 것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인격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가지 못할 길도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셋째는 무엇이냐?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사랑해야 합니다.
있는 정성을 다하고 나서도 아직까지 사랑이 미치지 못했으니 그것에 대해 한을 품어야 합니다. 내가 정성을 들인 심도가 아직까지 미치지 못한 깃에 대해 한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한때, 1960년도에는 뜻을 위해서 사랑했고, 하늘을 위해서 사랑 했고, 민족을 위해서 사랑을 쏟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망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를 위주한 사랑이 아닙니다 전체를 위한 사랑입니다. 전체를 위한 사랑이니 그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 자기를 개조해야 합니다. 자기 개인의 영탁을 위해서 믿는 신앙이 아니라 전체의 복락을 위해서 믿는 신앙이라야 하늘나라를 찾아갈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더 큰 소원의 터전을 이루어 갈 수 있는 종교가 되는 것이요, 인격이 되는 것이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사랑의 마음을 갖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개인을 위해서 희생하고,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통일교회는 짜여져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만일 하늘 뜻 앞에 세워지는 날에는 이 3천만 민족은….
3천리 반도에 외국으로 깃발을 들고 희생하러 가는 무리가 아침 저녁으로 북적거리고, 그들을 보내면서 부르는 전송의 노래가 각 항구 도시마다 우렁차게 되면 이 나라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장은 처량하고 당장은 잿더미가 되는 것 같지만 이 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통일교회가 되겠느냐 할 때 '된다' 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그렇게 만들 수 있는 통일교회 선생님이 되겠느냐 할 때 '한다' 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선생님 자신이 선두에 설 것을 각오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사랑을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려고 하시기 때문에 공히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와 인격과 사랑. 이 세 가지가 문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진리심판, 인격심판, 심정심판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걸 중심삼고 볼 때, 참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참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말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깨지는 것입니다. 말한 대로 실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과 행동이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엇갈려서는 안 됩니다. 말과 행동의 일체,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 그것은 사랑을 위한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소재지는 자기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의 소재지는 어디냐? 사랑의 소재지는 자기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인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 지간에도 사랑을 받은 다음에 사랑한다는 사랑은 오래 못 갑니다. 사랑은 상대적 요건이 없으면 성립 안 되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아무리 '백 살, 천 살까지 사랑한다' 하더라도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사랑의 동기는 자기가 아닙니다. 상대가 있기 때문에 애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사랑의 소재지는 내가 아니예요.
여자들, 시집 가는 것은 사랑을 받기 위해 가지…. 천만에요. 자기가 사람을 해야 합니다. 사랑의 길은 희생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왜? 상대가 주체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사랑을 완전히 점령하기 위해서입니다. 상대가 완전히 나와 하나될 수 있고, 나에게 순응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위해서 희생의 대가를 치러 나오는 사람 앞에는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소재지는 자기가 아니라 상대인 것입니다. 제가 잘나서 아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지….' 하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뻐기다가는 몇해 안 가서 깨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남자가 자기밖에 없나? 하게 되는것입니다. 옛날에는 잘나보였다 해도 자기가 잘났다고 자꾸 자기를 내세우면 '코가 왜 저렇게 생겼어' 이렇게 결점을 지적하게 마련입니다. (웃음) '아이구. 왜 저렇게 말이 많아, 겸손해야지.
그 말 듣기 싫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는 말이 다 싫어지게 됩니다. 거기서부터 파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위하는 데서부터 통일이 벌어지는 것이요, 위하는 데서 부터 천운이 함께하는 영원한 승리적 터전은 쌓아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처음 온 사람들 중에는 '통일교회 교인은 사랑을 크게 제일 말하고 있지만 막상 가 보면 냉랭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냉랭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가 보면 그 무엇인지 모르게 맛이 있다. 뭐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멋진 데가 있다'라고 하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모든 사연을 중심삼고 통하지 않을 것이 없는 주체적 입장에 서야 합니다. 위함받기 위한 입장이 아니라 위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렇게 위할 수 있는 입장만 되면 그 교회에 사랑이라는 명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여 '야 이 자식아. 네가 뱃속에서 나을 때 얼마나 내 살덩이와 피를 빨아먹고 나왔어 ? 지금까지 파먹었는데도 뭐가 불만이 라고 또 꽥꽥거리는 거야, 이녀석아' 그래요? 그렇게 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예요?(웃음) '오 그래. 주는 대로 잘 먹는구만. 더 주어야지' 하면서 자식을 자기의 가슴에 품고서 '어서 먹어라. 어서 먹어라' 하면서 빨대를 들이대고서 빨지 않는다고 걱정하고, 주지 못해 안타까와하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이게 귀한 거라고요. 그런 자리에서 어머니의 사랑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랑받겠다고 날뛰다가는…. 받아 보라는 거예요.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겠다고 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데는 희생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위대한 사랑이요, 절대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은 어디에 가서 열매 맺힐 것이냐? 세계가 나에게 들어와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계에 나가 열매 맺는 거예요. 세계에 나가서, 상대 세계에 가서 열매 맺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랑의 열매를 위해 희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도리요,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한 것인데, 누구에게 주셨어요? 만민 앞에 주겠습니다. 자식을 주고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는 자리에까지 나가셨고, 세계를 위해서 연속적인 희생을 치러 나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좋은 것이고 하나님이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리고 만민을 사랑해야 합니다. 만민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원을 무한히 투입시키라는 것입니다. 인간을 무한히 투입시키라는 것입니다. 무한히 투입시키려니 통일교회는 무한한 부자가 되어야 하고, 무한한 발전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통일교회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영원한 천국을 만들기 위해시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때를 바라고 나가기 때문에 그때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은 통일교회를 보고 기뻐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이루어 주고서야 기뻐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날뛰면 날뛸 수록 점점 도와주지 않고서는 못 견디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뜻은 빨리 이루어질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부모가 환갑을 맞아 잔치를 해드려야 할 입장에 두 아들이 있다고 합시다. 그 중에 형님은 극상으로 해드리겠다는 겁니다. 부모가 일생 동안 모아 둔 재산을 몽땅 팔고 자기 재산을 전부 다 팔고, 그것도 부족하여 자기 재산보다 몇 배의 빛을 져 가면서 잔치를 해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생은 어머닌 아버지는 환갑잔치를 그렇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다고, 어머니 아버지가 돈을 번 것은 자식을 위해서 번 것이지 부모를 위해서 번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재산의 3분의 1쯤 가지고 환갑 잔치를 해도 효자가 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팔고 빛지고 하겠다는 무식하고 미욱한 형님하고 팔지 말고 남기고 하자는 동생이 싸우는 것을 부모가 바라볼 때 작은 녀석은 장래성이 있거든 요? 그런데 부모는 누가 더 자기들을 위하는 자식이라고 생각하겠어요?
주먹구구식으로 빛을 지더라도 재산을 몽땅 팔아 한번 잔치하고 망해도 좋다는 아들과 장래를 생각하고 그럴 것 없이 그냥 조건만 세우고 넘어가 자는 아들 가운데서 누가 더 어머니 아버지를 위하는 아들이라고 생각하 겠어요? 다 팔아 치우고도 모자라서 빛이라도 지겠다고 하는 자식일 것입니다.
그 다음에 부모는 동생에게 '네 말도 맞다. 그런데 네가 그렇게 주장한 것은 진정 부모를 위해서 그런 것이냐? 네가 그렇게 아끼자는 것은 진짜 부모를 위해서 그런 것이냐, 아니면 앞으로 세간날 때 분깃을 더 많이 타기 위해서 하는 것이냐? 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 아들은 질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질문을 받을 자리에 있는 아들과 질문받지 않고 동정받을 자리에 있는 아들 중에 누가 효자냐? 질문 받을 자리에 있는 아들은 효자가 아닙니다.
그 아들은 누구를 생각해서 그랬느냐? 자기를 먼저 생각하고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수고한 것을 생각하면 재산을 털어 바쳐 가지고 빛을 몇백 배 지더라도 그 수고를 보답할 수 없다는 입장에 선 그런 효성의 마음을 가진 장자라고 한다면 무엇을 질문하고 비교 비판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몽땅 인정하고 들어가야 되는 거라고요. 부모는 이 아들에게 몽땅 인계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둘째 아들이 앞으로 자기가 상속받을 수 있는 양을 남기겠다고 생각할 때는 빼앗아 가지고 하나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해주면 통일교회에 이익이 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걸 잘 압니다. 남을 희생시키고 잘되겠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 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내가 이렇게 이렇게 희생하겠다고 하게 될 때는…. 하고 나면 반드시 성과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손해보는 입장에서, 언제나 마이너스되는 입장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 때, 그런 입장에서 이 민족을 위할 수 있는 제물이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내가 플러스되는 입장에서 제물 드리겠다는 것은 제물 드리고 장사하겠다는 격인 것입니다. 자기를 희생해 가지고 뭇사람을 다 잘살게 하는 것이 제사 드리는 목적인데, 여러 사람을 희생시켜서 자기가 잘살겠다는 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신앙의 심도를 중심삼고 볼 때 얼마나 믿었느냐 그거예요. 얼마만큼 믿겠느냐? 그리고 얼마나 행하겠느냐? 또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얼마나 위하겠느냐? 이런 문제가 앞으로 통일신도들에게는 불원한 장래에 넘어가야 할 고비로서 찾아 올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 놓여 있는 여러분은 '신앙의 심도'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다시금 생각하고 비판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에게 플러스되게 하기 위해서 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후퇴하여 결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명심해 주기를 바라고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 신앙의 길은 세상의 일과 같이 되어지지 않는 길인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님께서 심각한 입장에서 계시다는 것을, 한 순간 한 행동의 결과에 의해 천지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절박한 초점상에서 뜻을 섭리하시는 아버님의 입장이 얼마나 심각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미처몰랐습니다.
아버님, 통일교단이 가야 할 길을 당신은 잘 알고 계십니다. 통일교회을 지도하고 있는 이 자식이 가야 할 길도 당신은 잘 알고 계십니다.
저도 제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가를 이미 알고 출발했사옵니다. 이길을 걸어오는 도상에서 수많은 사람이 흘러갔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직시해 왔고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면서 체험했기 때문에 사람은 어떻다는 것, 어느 나라 사람들은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은 이렇고 일본 사람은 이렇고, 또 다른 외국 사람은 이렇다는 것을 제가 느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늘 사람은 대한민국 사람보다도, 일본 사람보다도, 혹은 외국 사람 그 누구보다도 변함이 없어야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하늘의 사람은 세계 어떠한 민족 앞에 내놓더라도 '옳소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일본 사람만 추구하고 미국 사람만을 상대하는 신앙이 통일교회의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님 자체를 추구하고, 아버님 자체를 의지하고 나가는 길 앞에 있어서. 어떠한 민족이건, 과거의 그 누구든, 현재의 그 누구든 미래의 어떠한 사람이든 간에 아버님을 추구할 수 있는 동기의 내용을 가진 신앙태도를 갖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고, 실천의 행적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 노정은 눈물과 피의 대가, 사랑의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결실의 노정인 것을, 오늘날 국가와 민족을 넘어 세계적인 인연을 따라가야 할 행각의 노정인 것을, 저의들은 알긴 알았지만 그렇게 심각한 것이라는 것은 미처 몰랐습니다.
오늘 이 아침, '신앙의 심도'라는 말씀을 중심삼고 내가 어느 정도 깊은 자리에 서 있는지 다시 한 번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과연 말씀에 사무쳐 뼛골이 우러날 수 있는 심정의 사연을 가지고 어느 한때 밤을 새워 가면서 '모든 인연을 저버리고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 과 몸부림치며 깊고 깊은 심정의 자리에 서서 아버님을 추앙하고, 놀라우신 말씀에 감사의 심정을 갖고 아버지 앞에 나타난 때가 있었습니까? 스스로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의 입장을 다짐해 가면서 스스로 부족한 자신을 재차 발견하고 새로운 자각을 촉구시킬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런 말씀을 하였사옵니다.
하늘 길을 가는 데는 실체 대상을 가려 가야 하기 때문에 제물되는 노정을 가야 되겠습니다. 개인의 제물 노정을 가야 되겠습니다. 남자도 제물이 되어야 되겠고, 여자도 제물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남자 여자는 물론이고 그 아들딸도 재물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 아들딸이 제물 되는 것도 물론이겠지만 그 아들딸을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는 씨족이 제물 되어야 하겠습니다. 씨족이 제물 된 후에는 민족이 제물 되어야 되겠고, 민족이 제물 된 후에는 국가가 제물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천리의 한의 고개를 넘을 수 없다는 엄청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너무나 천박한 자리에 있었사옵니다. 너무나 자기를 중심삼은 생각 가운데 사무쳐 있었던 것을 발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침에 햇빛을 바라볼 때 이 나라에 오망의, 해방의 빛이 빛나는 새 아침을 만나야겠고, 밤이 찾아오면 이 밤이 사탄의 침범과 사탄의 참소의 조건을 남기는 밤의 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맞아야 되겠습니다. 아침에는 감사요, 저녁에는 아버님과 더불어 동감하며 생활할 수있는 환경을 갖지 못한 탄식권내에 있는 실체임을 발견하고, 이런 환경을 제거시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보여지는 만상은 평화와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자유로운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만물을 품고 사랑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내가 바라던 소원의 한 자리에 선 내 아들이요, 딸이라는 입장을 거느려 가지고 만물을 품고 사랑할 수 있는 그 자리에 서지 못한 자신을 바라보고 탄식해야 될 오늘날의 신앙자들인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세상은 이미 악해져 버렸기 때문에 이런 세상에는 미련이 없어야 되겠습니다. 이 악한 세계를 넘고 가야 할 자신인 것을 알고, 악의 침범을 받올 수 있는 어려운 길에서도 믿음의 길을 가려 가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드려 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가는 길 앞에 수난의 길이 있으면 이것을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직행하면서, 당하고 부딪치면서 가야 할 길임을 미처 몰랐습니다. 어느 누가 수난길을 가고 싶어하겠습니까 마는 당신의 사랑이 그립기 때문에 그 길을 가야 되는 것이요. 당신의 나라를 그리워하기 때문에 죽음길을 가야 되는 것이요, 혹은 쌓아 놓은 주검 무더기를 넘어갈 것을 각오한 걸음이기에 그날이 아직까지 오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감사의 눈물로써 내일을 아버지 앞에 봉헌하고 내일을 아버지 앞에 제물로 드리겠다고 몸부림치며 나가지 않으면 안 될 불효 막심한 타락의 후손이 저희들인 것을 미처 몰랐사옵니다.
옷깃을 여미고 당신이 소원하시는 그 나라를 추구하면서 죽음길 앞에 생명의 여로를 남기지 않고 아버지 앞에 몽땅 바치겠다는 간곡한 그리스 도의 십자가의 노정과 같은 노정을 한두 번이 아니라, 생애를 바쳐 매일같이 가겠다고 다짐하는 생활을 한다 해도 6천년 동안 수난의 길을 극복해 오신 아버지 앞에 서기에는 너무나 미급하고 너무나 불초한 모습임을 느끼옵니다. 그런 것을 느낄 적마다 저희들은 충성을 다하고 나서도 아버님 앞에 저주를 요구하고, 아버님 앞에 사랑을 다하고 나서도 불효의 요건을 찾아 나서야 할 운명이 타락의 운영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와 같은 신앙의 행각 노정에 있어서 의지할 수 있는 그 누가 없는 것을 느낄 적마다 아버님이 얼마나 고독했었고, 그 누구도 바랄 수 없는 상대적 여건을 갖지 못할 적마다 아버님이 얼마나 서러웠다는 것을 알고, 외로우신 아버님 앞에 상대의 실체가 되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기를 바라는 통일의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그런 통일의 신앙을 하는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이 천리를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머리 숙인 이 자리가 당신의 슬픔을 복돋우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당신의 심정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의 파문이 저희의 마음을 휩쓸 수 있고 저희를 점령하고도 남을 수 있는 자리를 위해 모인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그리워 흐느끼는 울음 소리가 끊기는 제단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파묻혀 가지고 당신을 천만번 이상 찬양하고 수난의 길을 극복하겠다고 믐부림치는 당신의 아들딸들을 접할 수 있는 자리, 당신의 아들딸들이 모일 수 있는 거룩한 장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기 이 마루바닥이 '통일교회의 순수한 신앙길을 가려는 사람은 못다 흘린 눈물과 콧물을 흘려야 되겠다. 몸부림치지 않고서는 갈 수 없다'고 조소한다는 것을 알아 가지고 여기에서 눈물 흘리고 피땀 흘릴 수 있는 무리가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통일의 무리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이곳은 비록 초라하고, 그 누가 볼 때 비관할 수 있는 장소라 할지라도, 이곳을 통하여 역사상의 그 누가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적 사연과 원한의 심정이 수습되고 하늘의 생명의 터전이 결정되었던 역사적인 장소인 것을 알게되옵니다.
천년 사연의 소원 앞에, 당신의 한의 심정 앞에 없어서는 안될 단 하나의 장소라는 것을 생각할 때, 고맙고 감사한 장소라고 찬양할 수 있는 기쁨의 마음이 여기에서부터 연결되고 아버지의 한이 여기서부터 해원성 사된다는 것을 깨닫고, 이 자리에 동참한 놀랍고 거룩한 자신을 발견할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찾아오시는 발걸음 앞에 기쁨의 미소와 함께 최후의 운명길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이 웃음 가운데 저희를 기억하시어 몽땅 당신의 아들딸이라고 하시면서 이 자리를 기억하실 수 있는 그런 인연을 남겨아할 통일교단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 여기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서 있는 자식을 당신이 아직까지 사랑하시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외로운 때에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당신의 위로가 이 제단의 배후에 아직 까지 남아 있음을 압니다. 당신이 원하지 않는 세계 앞에 내세울 적마다 염려하는 무리가 많은 것을 생각할 때 당신은 기필코 이 통일제단과 같이 하고 있는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여기에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이들을 고이 기르시옵소서, 통일교단이 이들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통일교단의 앞날을 개척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 개인 개인을 통일교회 이상 사랑해야 하는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과연 하나님은 불쌍한 분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 날도 수난의 길, 이 날도 외로운 행각의 노정, 이 날도 처량한 그입장을 홀로 달래면서 가야 할 길, 아직도 남아 있는 그 길을 가기 위해 걸음을 계속하게 될 때, 따라가는 무리들이 당신의 주위를 옹위하여 내일의 천국이 보인다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아버님이여! 참고 넘으시옵소 서' 하고 간곡히 호소하는 무리가 많이 있는 자리에서 넘고 싶은 것이 아버지 사정인 것을 저희는 아옵니다. 저희가 미처 그와 같은 자리에 서지 못하였던 과거지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절박한 사태 앞에 부족하고 불효불충하였던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아버님의 거룩하심과 아버님의 승리의 결과를 그리워할 수 있는 마음으로 일치시켜 나가기 위해 모든 것을 저버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있는 자녀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를 보아 기억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고 당신이 찾고 계시는 세계를 보고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흘린 눈물과 피땀이 헛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수많은 사람이 다 흘러 가더라도 그 가운데 한 사람, 한 사람이 없으면 저 자신이라도 이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제가 느끼고 있는 것을 당신이 잘 알고 계시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할 수 없는 통일교단, 책임하지 않을 수 없는 통일교 단. 끝까지 싸워 견디지 않으면 안 될 통일교단, 이 통일교단의 운명 길을 홀로 이끄시는 당신은 과연 불쌍하신 분이요. 당신의 뜻을 대하는 아들딸도 불쌍한 무리인 것을 아옵니다. 이 불쌍한 무리들의 행각의 종국이 비참해서는 안 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아버지 앞에, 저희의 그 마음만은 망하지 않는다는 여유를 지니고 효와 충의 도리를 다짐하는 모습이 되게 하시옵고, 당신의 긍휼의 마음과 자비의 마음이 에워싸고 감돌수 있는 이 자리가 되고 저희들의 신앙의 환경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아침에 신앙의 심도가 이들의 뼈살에 사무쳐 얼마나 믿었으며. 얼마나 행하였으며. 얼마나 사랑했으며, 또 미칠듯이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놓기 위하여 얼마나 몸부림쳤는가를 반성할 수 있는 이 5월의 마지막 안식일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제 6월 초하룻날이 찾아오고 있사오니 6월을 힘차게 넘어야 되겠사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이 가야 할 운명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북괴의 김일성이가 60세를 중심삼고 남한을 노리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그가 60대를 넘지 말아야 된다는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저희들이 그 이상의 정성을 가하여 이 나라 이 민족의 미래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남을 수있고, 사명을 감당하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 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 당신이 이 제단과 전국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에게 깊은 심정으로 위로와 권고와 지도와 사랑으로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 드리옵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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