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중심 삼고 볼 때 우리들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남북한이 통일되는 것이요, 좀더 범위를 넓혀서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투쟁하지 않고 하나되어 평화적인 세계를 이룩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일 것입니다. 

​1. 이상적인 터전이 되지 못한 이 세상

​개인을 두고 보면 개인에게는 자기가 처해 있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제대로 성취하는 것이 소원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개인이 처해 있는 여러 가지 실정에 따라서 원하는 소원도 제각기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두고 보더라도 부모를 중심 삼고 움직이기 때문에 식구들은 부모가 계획한 것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소원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개인에서부터 세계에 이르기까지 연관되어 있는 우리 인간에 있어서는 처해 있는 위치와 입장이 다름에 따라 각자의 소원도 다른 것입니다. 바라는 소원은 서로 다르지만 그것이 완전히 성취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실상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과연 내가 바라고 소원하는 세상이냐, 나는 과연 내가 소원하는 세상에 태어나서 소원을 이룰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그런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입장과는 상반된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을 항시 생활 속에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직장이면 직장에서도 여러 가지 복잡한 내용들이 자기 한 개체와 상관되어 있어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며, 한 가정을 중심 삼고 보더라도 그 가정이 하나의 계획을 세워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과연 우리가 진정한 의미에서 바랄 수 있는 가정의 터전이요, 이상적인 가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한 문제들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직장이나 가정을 둘러싸고 원치 않는 환경과 상반되는 모든 환경을 제거해야 하는 시점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또, 사회 단체를 중심 삼고 볼 때도 그 단체가 현재 이 사회에 있어서 영원히 행복을 누릴 수 있고, 이 사회에 있어서 영원한 소원의 빛이라고 할 수 있는 단체냐 할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자체를 두고 볼 때, 대한민국은 과연 백성들이 소원하는 나라냐?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이 이루어 놓은 환경이 우리 개개인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고, 우리가 바라는 평화라든가 모든 소원을 성취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환경으로 갖추어지지 못한 것을 볼 때, 대한민국 자체도 영원한 행복의 터전이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는 많은 선진국가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미국 같은 나라를 보면, 미국에 살고 있는 국민들은 그야말로 세계 인류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최고 선진국가의 국민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을 가졌다고 해서, 과연 그 국가의 환경이 국민이 바라는 영원한 터전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도 반드시 모순이 있고 상충이 개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크게는 세계로부터 작게는 개인에게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내 한 개체를 두고 보나 가정을 두고 보나, 혹은 사회, 국가, 세계를 두고 보나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환경의 터전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곳이야말로 우리가 영원히 살고 싶은 곳이요, 이곳이야말로 우리가 소원하던 곳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때에 이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개체들은 더 나은 곳을 찾기 위한 소망을 갖고 나가는 것이며, 그것이 곧 우리의 인생입니다.

2. ​인간의 소원과 절대자의 소원

​사람들은 '나'라는 존재가 좀 더 잘 되어야 하겠고 성공해야 되겠다고 소원합니다. 또.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서 중심적인 일을 하고자 하며, 더 나아가서는 국가의 중심인물이 되고자 합니다. 세계적인 학자라든가, 정치가라든가. 성인이 되겠다는 각자의 소원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원은 현재 자기가 처해 있는 입장에서의 소원이 아니라 현재의 입장을 떠난 미래의 소원입니다. 현재보다 미래에 더 높은 소망을 걸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개인은 물론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세계 인류가 바라는 소원과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종착점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입니다. 최고 이상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들에게 소원이 있듯이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자가 계신다면, 그 절대자에게도 역시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개인에 대해 소원이 있을 것이요. 가정에 대해 있을 것이요, 국가와 세계에 대해서도 절대자로서의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국민에 대해서 절대자로서 바라시는 소원이 있을 것이요, 미국을 중심 삼아 가지고 선진국가의 권위와 현세계에 있어서 맡겨진 모든 사명을 두고 볼 때도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민주 세계에 대해서도 바라시는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 개인의 소원이 다르다고 하여 그 소원이 개인의 소원으로서만 남아져야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세계 30억 인류가 공동으로 한 곳을 바라보는 소원으로서 남아져야 되겠습니까? 물론, 전후관계와 높고 낮은 차이야 있을는지 모르지만, 방향만은 한 방향으로 같은 길을 제대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서로 방향이 다른 길을 가고 있다면 아무리 자신들이 바라는 소원이 있다 하더라도 이상 세계와는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이며, 절대자와도 관계를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처해 있는 입장은 각각 다르지만 세계 만민 모두가 소원의 종착점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소원의 기준이 과거의 사람과 현재의 사람과 미래의 사람이 다를 것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 만일에 그것이 다를 경우에는 참된 행복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소원이 절대적인 행복의 요소라면 그것은 과거의 사람이 바라던 것이나, 현재의 사람이 바라는 것이나, 미래의 사람이 바라는 것이나 그것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하나의 목적, 즉 소원의 모체라는 것은 한국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성을 띠고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성을 초윌하고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특정한 민족만을 위하는 소원이 아니라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넘어선, 보편타당성을 가진 공동적인 목적과 공동적인 행복의 요인으로서 세계 만민이 추구할 수 있는 종착점이 되는 소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그 소원은 인류가 바라는 행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소원이 인간의 행복만을 위한 것이면 되겠느냐? 인간만 있다면 인간의 행복만을 위한 소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이외에 신, 즉 절대자가 계신다면 그 절대자의 소원은 무엇이겠습니까? 만약에 절대자의 소원이 인간 외의 것을 중심 삼은 소원이라면 인간과는 하등 관계가 없겠지만,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는 절대자라면 인간과 상반된 소원의 종착점을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의 이상과 소원 역시 인간과 차원이 다른 입장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소원과 인간의 소원이 일치될 수 있는 입장에 서야만 하나님의 소원도 이루어질 수 있고,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인간의 소원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소원의 성취는 인간과는 별도로 절대자만을 위주로 이뤄지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절대자와 인간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이뤄지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3. ​과거보다 현재, 현재보다 미래가 나아야 종착점에 도달할 수 있어

​여러분 개인의 양심을 두고 보면, 여러분의 양심은 무엇이든 최고의 것을 바랄 것입니다. 양심은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으뜸이 되고 싶어합니다. 더 나아가서 세계의 으뜸이 되고 싶어합니다. 비록 그렇게 될 수 없는 환경에 있다 하더라도 마음만은 으뜸이 되고 싶어하고, 세계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보다 더 높은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과 상관없는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높으면 높을수록, 크면 클수록 그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욕구요, 우리 인간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학생들을 중심 삼고 보면 자기 학교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고 싶은 것이 소원입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학교의 역사적인 기반을 넘어설 수 있는 최고의 성적을 내고 싶은 것이 학생들의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최고의 기록을 낼 수 있는 기준을 중심으로 하여 학교는 새로운 역사적인 전통이 세워지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는 기준이 몇점이냐에 따라서, 그 기준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 학교는 유명해지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만일 10년 전에 공부를 잘하는 어떤 학생이 최고의 성적을 올렸는데 그 학생의 성적 기록을 현재까지도 깨지 못했다고 하면 그 학교는 발전하는 학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과거를 회상하는 입장에 있어 가지고는 미래의 새로운 기록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학교는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제보다 오늘 이 시간이 낫고, 오늘 이 시간보다 내일이 점점 더 나아질 수 있게 된다면 그 학교는 무한히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런 학교가 될 때 그 학교는 대한민국의 전체 학교를 대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사회 단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을 중심 삼고 볼 때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가정이 '우리 가정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는 가정이 되겠다. 우리 가정은 부모를 중심 삼고 사랑으로 사는 생활이 모든 가정의 표본이 되고 대한민국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가정은 과거를 추구하는 가정이 아니라 모든 가정의 선두에 서서 앞으로 대한민국을 찾아오는 천운을 맞이하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대한민국을 중심 삼고 볼 때에, 대한민국이 부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문제는 과거보다도 현재에 보다 더 가치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한 발자국씩 그 가치의 기준을 높여 나가느냐 못 나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점차적으로 그 도수를 높여 나간다 하게 될 때에는 남아질 수 있는 것이지만 현재가 과거의 기준을 넘어서지 못하게 될 때는 퇴보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민주 세계와 공산 세계를 중심 삼고 보더라도 민주 세계나 공산 세계가 나가는 노정에 있어서 어떠한 때가 가장 전성 시대였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때는 전성 시대가 아니라 전성 시대를 향하여 힘차게 나가는 때인 것입니다. 그 나가는 과정이 과거보다도 현재, 현재보다도 미래, 이렇게 점점 도수를 높여 나갈 때에 그 세계는 보다 더 가치있는 소원의 종착점에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가 과거보다 못하다면 그 세계는 가치있는 소원의 종착점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4. 자신을 발전시키려면

오늘날까지 미국은 민주주의를 대표한 선도적인 입장에서 저개발 국가들에 대해서 경제적 원조를 해 나왔습니다. 이렇듯 미국이 세계를 중심 삼고 정책적인 모든 영향을 책임지면서 저개발 국가들의 수난을 극복하여 주기 위해 몸부림칠 때, 세계 모든 국가들은 미국에 대해 신망(信望)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미국을 도약의 발판으로 하여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게 될 때에 미국과 다른 국가들의 사이가 갈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민주세계의 주도적인 입장에서 모든 책임을 짊어진 미국이 후퇴의 일로를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공산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소련이 현재보다도 과거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입장에 선다면 이미 그것은 퇴보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욕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있으면 그 귀한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절대자인 신이 없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과연 무엇이 겠습니까? 돈이겠습니까? 물질과 사람을 비교하면 물질보다 사람이 더 귀한 것입니다. 사람 중에서 누가 가장 귀하냐 하면 자기를 가장 귀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 중에서도 바로 자기 자신이 가장 귀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가 가장 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아서 오래지 않아 죽을 연령에 있는 노인들도 자기 자신이 가장 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이 어린 아이들이나 청년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장년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기가 남에게 침해를 받고 위축되는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모든 관계가 맺어지고 자기로 말미암아 영향이 미쳐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정을 넘어 사회 국가 세계에까지 연결되어 관계맺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중심 삼고 자신이 어떠한 중심적인 존재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나'라는 존재가 과연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중심적인 존재냐 하면 그것은 잘 모르지만, 여하튼 모든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자기를 중심 삼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국민에 있어서 삼천만 국민이 처해 있는 자리가 전부다 같으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뒤에 있고 앞에 있고, 높고 낮고 모두가 처해 있는 위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높고 더 가치 있는 것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가만히 앉아서 '오! 대한민국은 내 것이다'라고 외친다고 해서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관계맺을 수 있는 위치에 들어가고 싶으면, 그 소원에 비례되는 시련을 극복하고 참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보편타당성을 가진 주체성을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한 가운데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혼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면 국가를 중심 삼아 가지고 국민을 지도하는 원칙적인 지도의 요건과 방향을 제시하는 규칙, 즉 국민생활의 모든 지침을 제시하여 주는 헌법이 있는 것입니다. 그 법을 위반하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법이 없어 가지고는 소원하는 자리에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소원하는 자리에 나갈 수 있도록 방향을 법에 일치시키려고 하다 보니 삼천만 국민이 처해 있는 입장은 각각 다르지만 같은 법의 지배를 받고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5. 어떤 자리에 나가려면 거기에 비례하는 어려움을 극복해야

여러분 자신들이 오늘보다도 내일이 더 나을 수 있는 생활을 현실에서 다짐하고 나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 그 기준이 국가가 기대하는 이상의 기준이 될 때에는 국가를 책임지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세계 이상의 기준의 가치를 지니고 나타나게 될 때에는 누가 바라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의 지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느냐 하면 위대한 인물, 또는 성인이 되고 싶어합니다. 큰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큰 사람이 되려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거기에 비례되는 어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국가를 놓고 볼 때도 어떤 국가가 선진국가의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기준까지 나오기 위해서는 그 국가의 국민들이 가만히 있어 가지고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됩니다.

어떤 국가의 국민도 극복하지 못한 분야에서 어려움을 극복하여 그 난관에 비례하는 승리적인 터전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점진적으로 그 가치를 확고히 하여 그 결과가 세계의 여러 국가 앞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될때에 비로소 그 국가의 국민은 선진국가의 권위나 입장을 차지할 수 있는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절대자가 계시다면 절대자가 인간에 대해서 바라는 소원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종지조상이 출발 당시부터 절대자와 더불어 같이 생활하였다면, 그 절대자와 인간의 조상은 그때부터 완전히 일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절대자가 인간 조상에게 바라는 소원은 개인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 개인이 바라는 소원은 가히 세계적이요, 우주적인 소원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의 개인이지만 여러분 개인의 욕망은 우주적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의 모든 것은 내 욕망과 일치되는 겁니다. 우주적인 주인이 있으면 그 주인을 모실 수 있는 상대적인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주적인 주인과 배포가 맞을 수 있는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음가짐이 쩨쩨하고 시시해서야 되겠어요? 그래서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종지조상을 중심 삼고 보게 되면, 그 조상도 우리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온 천하를 자기 소유로 하여 살고 싶어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만일 우리의 조상이 절대자 앞에 있어서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고, 그 절대자의 소원을 이룰 수 있게끔 행동했더라면 오늘날 인류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랬다고 한다면 그때부터 인류의 소원은 이루어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6. 하나님과 하나만 되었더라면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어떠한 입장에서 관계를 맺으시려고 하실 것인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고,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하시는 것은 인간만 행복하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도 행복하게 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중심 삼고 볼 때에 인간은 하나님 앞에 과연 어떠한 입장이냐? 다시 말해서 종의 입장이냐, 양자의 입장이냐, 혹은 아들의 입장이냐?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한다면 어떠한 자리에서 인간을 대해 주고 싶을 것이냐?

인간의 욕망을 중심으로 하여 볼 때 종의 입장으로 대해 주면 싫다 할 것이요, 양자의 입장으로 대해 줘도 싫다할 것입니다. 인간이 절대적으로 하나님 앞에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는 '당신은 내 아버지요, 나는 당신의 아들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자리일 것입니다. 또한 여자들은 '당신은 내 아버지요, 나는 당신의 딸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인간으로서는 그 이상 바랄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대한민국에 있어서 대통령의 사위 아니면 아들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할 때 '너는 대통령의 사위가 될래, 아들이 될래' 하고 물어 보게 되면 어느 누구든지 주권자의 아들이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또한 세계 대통령이 있다면 그 세계를 지도하는 대통령과 관계를 맺어서 얼마만큼 심정적으로 가까이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내가 얼마만큼 영광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이 우주에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과 인간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싶어하느냐 하면, 단 하나의 자리를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도 아니요, 양자의 자리도 아니요, 아들딸의 자리를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바람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절대자이신 하나님에게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자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부모 앞에 불효를 하고,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입장에서 부모의 책망을 받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까? 그래서는 안 됩니다. 부모에게 효의 도리를 다하여 부모가 아들딸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이 바라는 것은 그것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의 시조가 하나님의 외아들이 되고 외딸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면, 부모인 하나님과 자식인 인간과는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혈연적인 관계가 맺어졌을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면 부모의 것은 곧 아들딸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어머니 아버지가 지었더라도 자기 집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잖아요? 그 집에서 태어난 유치원생이 부모가 집을 짓는 것을 보지도 못했지만 그 집에서 자라나 '이 집은 우리집이야, 이 집은 내 집이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그런 말을 들은 때 기분이 나쁘겠어요? 오히려 '이 집은 내 집이다'라고 하는 자식을 귀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집이자 자식의 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보지도 못하고, 혹은 그 관계를 모르더라도 그것을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니, 인간이 아들딸이라 하면 그 천지만물은 아버지인 하나님 것이자 누구의 것입니까? 아들딸인 인간의 것이지요?

그래, 아들딸인 인간이 그 천지 만물을 '내 것이다'라고 한다고 하여 아버지가 기분 나빠하겠습니까? 아버지가 맡아서 주관하시는 것보다도 자기가 맡아서 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아들딸이 말한다면 '야, 요녀석 봐라. 재수 없어'라고 하겠어요? 부모는 그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셉을 두고 보더라도 요셉이 형제에게 '꿈에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라고 말하였을 때, 형제들은 그 말이 건방지다고 하여 시기하였지만 아버지 어머니는 기분 나빠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디 두고 보자' 하였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부모가 되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더라면 하나님에서 지으신 피조세계, 즉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모든 피조세계가 누구 것이 된다고요?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것도 된다는 것입니다. 내 것이 된다 이겁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엄청나겠습니까? 하나님을 부러워하겠어요? 하나님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 속에 있고 내 몸 속에 있고 생활 속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하는 문제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하나님은 관념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느끼는 하나님. 생활 속에서 맞추어 갈 수 있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세계를 지배하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어서 무엇을 하겠어요? 하나님만 내 것으로 만들면, 하나님만 내 소유로 할 수 있으면 세계는 내 것이 되는 것인데,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안 될 것 같아요?

인간이 그렇게 되었더라면 현재 여러분이 추구하는 욕망, 여러분이 추구하는 마음의 작용은 필요없는 것입니다. 본래 여러분은 지금과 같은 입장에서 바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차지해 가지고, 차지한 그 터전 위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태어난 자리는 불행한 자리가 아니고 행복한 자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부모가 있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에게 영원한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생활 가운데에서 조그마한 시련도 받지 않는 자유스러운 환경을 가진 아들딸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간들이 처음부터 이와 같은 환경을 갖고 출발했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인간들이 출세를 바란다든가 세계를 내것으로 만들겠다든가 하는 생각은 안 해도 다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세계보다 더 높은 것과 관계를 맺겠다는 생각을 안 해도 이미 다 관계는 맺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7. 고장난 인간

그런데 인간이 그런 자리에서 출발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것을 전부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보다 나은 세계, 보다 가치 있는 세계를 추구하기 위해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죽어가면서도 몰리는 싸움의 길을 계속해서 거쳐온 것을 우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바라던 소원의 때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보다 가치있는 것, 보다 빛날 수 있는 인생 길, 보다 가치있는 세계를 추구하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최종 목적은 세계를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까지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최고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그와 같은 자리에 서지 못한 인간이 그와 같은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서는 것이 인간의 최고의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냐? 이 사탄 세계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옥 세상에서 신음하며 고통받고 있는 인간을 보기 좋아하시는 분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민과 부자의 관계를 맺어 사랑할 수 있고 만민과 더불어 같이 살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아버지의 입장에서 우리를 구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의 소원과 일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소원이 일치돼 있다는 것은 곧 부자의 관계라는 겁니다. 알겠어요?

여기에서 우리 자체를 가만히 두고 볼 때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있지 못하고 항상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내 한 개체 가운데에서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른 두 목적을 추구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두 목적을 향해서 갈 수 있는 인간으로 창조하셨다면 하나님은 절대자가 아닙니다. 하나의 사상을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갈 수 있는 존재로 절대적인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다면, 두 목적을 가질 수 있는 존재로서 태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와 같이 모순된 결과에 처해 있는 사실을 두고 볼 때에 인간은 좋은 의미에서 정상적으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체가 고장난 입장에 처해 있다든가, 하나님이 안 계심으로 인하여 본래부터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든가 하는 두 가지 중의 한 가지인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면 그것은 인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고장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장난 것을 수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역사 노정을 통해서 지금까지 고장난 것을 수리할 수 있는 수리공장을 세워 나오시는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종교입니다. 수리공장을 세웠다면 기술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 기술자가 바로 종교의 도주들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고장난 라디오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람이 되도록 수리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리공장에 들어가야 합니다. 반드시 수리공장을 거쳐 나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세계 문화권은 종교 문화권내로 흡수되어 들어오고 있습니다.

민주세계를 중심한 기독교 문화권이라든가 극동 아시아를 중심한 유불선 문화권이라든가, 인도를 중심 삼은 힌두교 문화권이라든가, 이슬람의 회회교 문화권이라든가 하는 문화권이 형성된 것을 두고 볼 때에, 수천년 동안 사람들은 종교 문화권내로 몰려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수리공장이 세워지면 거기에 필요한 모든 부속재료들이 수리공장 주변에 모여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현재의 입장에서 바라고 있는 것,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후의 소원의 기점은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소원이 인간의 소원이요, 인간의 소원이 하나님의 소원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요, 내 것이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 사랑이요, 내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치화될 수 있는 관계를 맺으면 인간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고장난 라디오와 같이 이미 병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8. 인간의 완성은 하나님의 소원

만일 인간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었더라면, 즉 인류 시조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된 자리에서 출발했더라면, 그출발은 개인의 출발이자 우주적인 존재의 출발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최고의 소원인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장성하여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고 살게 되었다면, 인간은 그 이상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서 끝이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는 자체가 개인이지만 우주적인 개인이라는 것입니다.

천지 만물이 창조하신 절대자의 것이라면 인간은 그분의 아들딸이기 때문에 인간의 것도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그 자리에 섰더라면 개인완성을 이룸과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의 아들딸의 완성이자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 만물의 완성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완성된다면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인간이 완성된 것을 보고 기분 나빠하시겠어요?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작가가 많은 정성을 들여서 작품을 완성했다고 하면 그 작가는 작품을 아끼고 후세에 남기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 작품을 영원히 보관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몇 달 동안, 혹은 몇 년 동안만 사랑해 주시다가 집어던지고 말겠어요? 인간이 백 년쯤 산다면 백 년을 좋아하다가 그 이후에는 필요가 없다며 집어던지겠느냐는 말입니다. 아닙니다.

인간도 자기가 정성들여 완성한 작품을 자기의 자손만대에 남기고 싶고, 자기와 더불어 같이 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하나님께서는 어떠시겠습니까? 사랑스러운 아들딸로 태어난 인간을 잠깐 사랑하다가 말겠어요? 영원히 사랑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완성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받을 수 있다면 하나님은 인간을 영원히 곁에 두고 싶어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자가 그렇게 기뻐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기 때문에 인간도 영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영원히 남아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해와가 그렇게 되었더라면 아담 해와의 완성은 물론 하나님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담 해와가 완성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의 중심이 되는 인간에 대해서 바라던 소원이 전부 다 완결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그렇게 기뻐하시는 아버지를 모신 아들딸이라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기뻐해야 된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 기뻐해야 할 것이냐 하면 6.25동란 때 헤어졌던 부자가 수십년만에 만나서 '아버지!' '내 아들아!' 하며 목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기쁨 이상일 것이냐, 그 이하일 것이냐?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최고의 기쁨입니다. 그 기쁨을 점령할 자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불행이 있어야 되겠어요, 행복이 있어야 되겠어요? 물론 행복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9. 종교는 고장난 인간을 고치는 수리공장

부부 완성은 가정 완성의 출발이 됩니다. 즉, 가정 완성은 아들딸 완성이자 부부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부모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재미스럽게 잘 사는데. 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들딸이 울고불고 하면서 못사는 자리에 가겠어요? 안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부 완성은 무슨 완성이라고요? 「가정 완성입니다」 통일교회 원리로 말하면 사위기대 완성입니다. 이렇게 완성된 가정에서 또 완성한 가정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가정들이 종족을 이루어 종족 완성이 되는 것이요, 그 다음엔 민족 완성이 되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국가 완성과 세계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여러분이 세계에서 일등이 되겠다고 바라는 자리가 아니라 여러분이 완전히 이루어서 소화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인간들은 왜 세계 제일의 자리를 바라게 되었느냐? 그것은 인간들이 고장났기 때문입니다. 세밀히 이야기할 시간은 없지만 여러분은 고장났다 이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우리가 바라는 세계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두고 보더라도 우리가 바라는 국가가 아닙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시정하고 해결해야 될 여건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회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 조상이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중심 삼고 하나되었다면 거기서부터 부부 완성이자 가정 완성, 국가 완성, 세계 완성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세계 완성뿐만 아니라 우주 완성까지도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잃어버렸으니 인간 본연의 마음은 그것을 그리워하겠어요, 안 그리워 하겠어요 ?

고장난 라디오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는 않지만 흐르는 전파를 받으면 '삑'하는 소리라도 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본심이 있어 그 작용으로 인하여 어디론가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최고의 자리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고장났다는 겁니다. 고장난 우리들이라는 거예요. 고장난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고 떠들면 뭘합니까? 분해를 해서 다시 한 번 손질을 해야 합니다.

고장난 기계가 수리공장에 들어가면 어떻게 합니까? 그냥 놔둡니까? 어떻게 해요? 수리를 하지요? 수리를 하려면 전부 다 분해해야 합니다. 기분 나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의 입장이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는 뭐냐 하면 고장난 인간을 고치는 수리공장입니다. 그런데 이 수리공장이 끝날에는 부속품만 갈아끼우는 수리로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합 수리공장을 만들어서 종합적으로 수리를 하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종합 수리공장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종합 수리공장의 기술자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기술자가 누구냐 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 주님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세계의 모든 종교가 전부 다 끝날 수 있는 때가 왔으니, 오늘날 통일교회가 종합 수리공장으로서의 내용을 갖추고 나왔다면 통일종교를 바라는 세계 만민들은 우리를 환영해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통일교회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한국에서 나왔다는 것을 한국 백성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설사 통일교회가 그런 사명을 다하지 못하더라도 그 방향만이라도 제시한다면 이 민족이 좋아하고 환영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통일교회는 반대받고 있습니다. 반대 받지 않습니까? 반대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냐? 수리공장에서 고장난 기계를 수리하면 고장난 것을 고쳐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수리공장들은 어디가 고장났다는 것도 모르고 수리하니 더 고장나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그런 수리공장의 주인은 망해야 된다는 거라고요.

그렇게 자신이 망하게 되었으니, 안 망하려고 우리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나라도 반대하고 세계까지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와 세계가 모두 반대를 한다 해도 우리 수리공장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10. 고쳐져야 할 인간

고장난 라디오나 텔레비전은 어느 곳이 고장났는지 아는 사람이 고치면 한 번만 고치면 됩니다. 그러면 새 라디오나 텔레비전같이 방송국에서 보내 주는 방송은 다같이 들을 수 있고 다같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백대라고 해서 내용이 다른게 아니고 천대라고해서 다른 게 아닙니다. 억만대 있다고 해도 똑같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와 기뻐하게 될 때 그 자체를 비쳐 주는 텔레비전이 있다면, 그 기쁜 마음을 느낄 수 있게끔 되었다면 만민이 모두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마음이 기쁘겠어요, 안 기쁘겠어요? 기쁜 소리가 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슬퍼하시면 슬픈 소리가 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민이 전부다 그렇게 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멋진 세상이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안 되어 있으니 여러분을 수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수리공장에 들어와서 천천히 수리가 되기를 바래요, 아니면 빨리 수리가 되기를 바래요? 그것은 여러분 각자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년만에 수리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십년이 걸려야 수리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수리공장에 들어와서 일생 동안 수리되다가 버려지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 시조가 하나님과 하나되었더라면 이런 문제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완성이자 세계완성이며, 개인의 기쁨이자 세계의 기쁨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꺼번에 천국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이루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는 자연적으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 완성만 되면 자연적으로 다 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 참다운 소나무 씨를 뿌렸다 하면 참다운 소나무 싹이 나오는 것입니다. 영원히 참다운 소나무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인간은 그렇게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소나무 씨가 되어야 될 텐데 다른 씨가 됐다는 거예요. 그러니 참다운 소나무 씨로 다시 돌아 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사로 말하면 돌감람나무가 되었다는 거예요.

오늘날 인간들이 돌감람나무가 되었다는 거예요. 본래는 참감람나무가 되어야 하는데 돌감람나무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 나무의 열매는 까마귀 밥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감람나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접붙여야 됩니다.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인간들도 재생창에 들어가서 접붙이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참감람나무가 되지 못한 인간들을 중심 삼고 볼 때에 인간들은 이상적인 세계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대한민국은 이상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악이 우세한 나라입니다.

이 세계도 악이 우세한 세계입니다. 선과 악이 얼룩덜룩 섞어진 입장에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돼 있는 것을 해부해 가지고 잘라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이 서로서로 싸우는 입장에 있으면 이상적인 나라나 세계를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11. 참된 아들과 딸의 결혼식을 기다린 역사

​오늘날 인간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와 이상적인 국가나 민족이나 씨족이 생겨났어요, 안 생겨났어요? 안 생겨났지요? 또한 이상적인 가정이 생겨났어요, 안 생겨났어요? 안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왜냐? 완성된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수리공장이요 잃어버린 본향 길을 찾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는 무엇을 찾아 나왔느냐 하면, 이상적인 하나의 남자와 이상적인 하나의 여자를 찾아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은 몽땅 내 사랑이다' 할 수 있는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를 찾아온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예수님은 신랑이요, 신도들은 신부라 하는 것은 곧 세계를 총망라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독생자와 독생녀를 찾기 위한 내용을 말한 것입니다. 완성된 하나의 남자 하나의 여자가 이 땅 위에서 만나 혼인잔치를 치러야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오시는 재림 주님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신랑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 신랑이 하나의 신부를 찾아서 둘이 합하여 어린양 잔치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양 잔치가 뭐냐? 본래 인간 시조는 선한 부모로서 출발해야 했는데 악한 부모로 출발했기 때문에 인간은 모두 악한 부모의 혈통을 이어받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내 사랑과 같이 받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어서 하나님의 직계 사랑을 통한 혈족으로서 남아진 아들딸이 되어야 하는데,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본래의 그 자체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랑신부를 맞이하는 어린양 잔치인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 위에 신랑으로 오셔서 하나의 신부를 찾아 가지고 한 기준 위에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가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종교 가운데 대표적인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그 기준을 설정하여 확고한 목적을 세운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우신 종교는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민주세계가 기독교 문화권내에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참된 부모를 맞이하려면 그렇게 발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종교는 무엇을 해왔느냐? 참된 아들 하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아들 하나를 찾으시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도주들 가운데는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종교 교주들 가운데 여자가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전부 남자지요? 이것은 참된 아들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연결시켜 나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일 단계. 이 단계. 삼 단계. 백 단계…. 이렇게 올라가 최후의 바톤을 이어받아 가지고 승패를 결정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 아들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참된 아들이 나와 가지고 참된 딸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께서 결혼식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뭐 시시하게 자기 집안 인정해 주는그런 결혼식이 아닙니다. 맨 처음 결혼식 주례는 누가 했겠어요? 「하나님요」 하나님과 아들 딸 셋 밖에 없으면 누가 결혼식 해줘요?

하나님한테 결혼식 해달라고 하지 않더라도 때가 되면 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며 결혼식을 해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맨 일대의 주례는 누구라구요?「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될 수밖에 없는 거라구요. 그러면 하나님이 주례를 해봤다는 말 들어 봤어요? 그런 말 들어 봤어요?

하나님께서 주례를 서면 기분이 좋으시겠어요, 나쁘시겠어요? 또한 주례를 서는 데 있어서 아들 결혼식에 주례를 서고 싶겠어요, 종 결혼식에 주례를 서고 싶겠어요? 아니면 양자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고 싶겠어요?

그것은 물어 볼 것도 없이 아들딸 결혼식에 주례를 서고 싶어하신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생각일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직까지 아들딸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례를 서기 위해서는 앞으로 이 땅 위에 찾아오실 재림 주님을 중심 삼고 결정적인 생활 기준을 설정하여 신랑 신부가 상봉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결혼식을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결혼식을 해주실 때 울면서 해주시겠어요, 기쁜 마음으로 웃으면서 해주시겠어요? 기쁜 마음으로 웃으면서 해주신다는 겁니다.

결혼식이란 남자 여자로 갈라져 있는 것을 완전히 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남자 여자는 남자 중에 제일의 남자요, 여자 중에 제일의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절대적인 관계를 맺어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 중의 사랑이요,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다'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보면 볼수록 사랑하지 않으려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들딸이 되어 장성하게 되면 그들이 결혼식을 해달라고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하나님이 그들을 결혼식 해주고 어디로 가겠어요? 둘이만 재미있게 살라고 하셨겠어요. 아니면 같이 살려고 하셨겠어요? 같이 산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살려면 인간이 기쁨과 동시에 하나님도 기뻐야 하는 것입니다.

12. 인간의 몸은 외적인 하나님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부자의 관계입니다. 부자의 관계란 아버지는 위이고 아들은 아래에 있는 관계입니다. 상하관계입니다. 그런데 아들딸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부모는 윗자리에만 앉아 계신다 이겁니다.

그래서 자기도 윗자리에 앉고 싶다고 욕심을 부리게 되면 부모와 자식이 싸우게 되는 거예요.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상하관계인 부자의 관계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와 너는 같은 자리. 즉 부부일심, 부자일심이라고 하는 자리입니다. 일심이 되려면 하나는 위에 있고 하나는 아래에 있는 상황에서는 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위에 계시고 아들딸은 아래에 있어 가지고는 일심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동등한 입장에서 평면적으로 위치해 있어야 일심이 될 수 있습니다.

내적 외적 관계가 평면선상의 자리에 서야만 일심이 되는 것입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횡적 관계에서 안팎관계. 전후관계의 자리에 서야만 일심이 되는 것이지, 상하관계에서는 절대로 일심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것을 생각하시고 인간을 어느 자리에까지 올려 놓으려고 하셨느냐 하면, 하나님은 내적인 아버지요, 인간은 외적인 아버지이므로 하나님은 내적인 아버지요, 인간은 외적인 아버지로 일치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런 자리에까지 세우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몸은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지금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 할 때, 그 물건을 어떻게 잘 보관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백겹 이상의 철궤를 만들어 가지고 그 속에 숨겼다고 해도 누가 숨긴 것을 알고 있다면 안심할 수 있겠어요?

백겹 이상의 철궤를 만든 자기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있으면 이것을 꺼내어 훔쳐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물건을 땅을 깊숙이 파서 그 속에 감추어야 되겠어요. 산 꼭대기에다 감춰야 되겠어요?

​13.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곳

​귀한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매일같이 보고 만지고 품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여기에 있는 아주머니들도 사랑하는 아들딸을 할 수 없어서 떼어놓고 다니면 안심할 수 있어요?

시장을 가든. 어디를 가든 꼭 안고 다니고 싶은 것입니다. 애기의 뺨을 맞대고 다니고 싶은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자기의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이기 때문에 하나된 자리에 두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우주에서 제일 귀하신 분이라면 어디에 모셔야 되겠습니까? 생각해 보라구요. 어디에다 모셔야 되겠어요? 하늘 꼭대기에 모시면 안심이 되겠어요? 그러면 좋겠어요?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분, 그분을 다른 사람이 보게 되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게 된다면 너도 있고 나도 있고 모두에게 다 있으니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보이지 않고 내 눈에만 보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 곳에다가 감추어 두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런 자리를 연구하고 찾는다는 것입니다. 나만 볼 수 있는 곳에 감추어 두고 다른 사람은 절대로 볼 수 없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크신 하나님을 어디에다 감출 수 있겠습니까?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감출 수 있는 집, 혹은 그만한 보자기가 있어야 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보자기에 싸 가지고 저 하늘 높이 공중에다 두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내 속에 두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보자 기가 있느냐 할 때, 그것은 마음의 보자기밖에 없습니다. 간단하지요? 마음은 열 분쯤 모시고도 남을 수 있지요? 마음이 좁아서 하나님을 못 모시겠다는 사람 있습니까? 하나님을 통째로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을 볼 때 문제없이 모시고도 남게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속에다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자기만 알 수 있고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도록 감춘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과 나 둘만이 좋아할 수 있는 자리에 모시고 싶다는 거라구요. 사람의 욕심이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러니 하나님이 보이는 분이셨으면 큰일났을 것입니다. 안 보이는 분으로 계시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겁니다. 안 보이시기 때문에 내가 저 사람을 봐도 하나님이 들어가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보이는 분이셔서 저 사람 속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내 속에도 하나님이 계시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안 보이시는 것이 얼마나 잘된 일입니까? 그러니 절대가치라는 거예요. 아무리 연구를 한다고 해도 그 이상 연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 보이시는 하나님을 내 자체의 중심인 마음속에 모셔 놓았으니, 누가 빼앗아 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빼앗아 갈 수 있어요? 점령할 사람이 있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의 것입니까? 몽땅 내 것이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일시적입니까, 영원입니까? 영원히 내 것이 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귀하고 가장 가치있는 중심 존재인 그분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냐? 자신의 속사람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내적 하나님이고 우리 몸뚱이는 외적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4. 인간은 보이는 하나님

​인류 시조인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만물의 하나님. 즉 외적 하나님이 될 수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만물을 주관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이는 체(體)를 가진 하나님격에 선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과 일체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부부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외적으로 나타난 하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은 아담 해와의 마음 속에 계시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외적 부부인 동시에 내적인 부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안팎으로 하나된 몸에서 태어난 아들딸이 누구의 아들딸이겠습니까?

외적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동시에 내적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와는 아담의 아내만 되는 거예요? 아담의 아내이자 내적인 하나님의 아내도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인간에게 타락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비밀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런 입장에 있다 할 때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어떠한 분이시냐? 바로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 인간의 타락입니다. 그래서 고장난 모든 것을 뜯어고쳐 가지고 새롭게 재생하는 종합 수리공장의 사명을 짊어지기 위해서 통일교회가 나온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보인다면 미국과 소련이 하나님 빼앗기 싸움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인간들은 수천년 동안 땅 빼앗기 싸움을 계속하고, 요즈음은 유심론이니, 유물론이니 하는 사상을 중심 삼고 사람 빼앗기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시하고 썩은 것들을 놓고도 치열하게 빼앗기 싸움을 하고 있는데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눈에 보인다면 빼앗기 싸움을 안 하겠습니까?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의 눈에 안 보이시기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였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지만 자기 마음에 모셨기 때문에 자기는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자기가 하나되면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천지를 바라보면 다 자기의 전원같이 느껴집니다.

꽃을 바라보면 최고의 미적 경지에 도달하게 되어 창조하신 당시의 기쁨을 노래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온 우주가 꽃밭이 되고, 온 우주가 춤출 수 있는 동산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거기에 화해 가지고 우주가 기뻐할 수 있는 가락에 맞추어 한번 흥겹게 놀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그렇게 시작한 민족이 영원히 지속되었을 것입니다.

우주에 떠 있는 인공 위성들은 한 궤도를 돌기 시작하면 그 궤도를 영원히 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우주가 한번 좋아하게 되면 그것은 끝날 줄 모르고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도 하나님과 하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자 내 것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타락하여 고장났을망정 이와 같은 본성의 기준은 남아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15. 선한 길은 몇 배 힘이 드는 길

​더욱이 피조 세계의 본체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중심 삼고 언제나 상대 관계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여 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양심 작용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타락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알겠어요?

본래 인간은 모든 것을 갖춘 터 위에서 출발해야 했는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30억 인류가 살고 있지만 그 많은 사람들을 종합하여 나누게 되면 남자와 여자 둘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그 많은 세계의 인류 가운데 참사람은 누구냐? 세계적인 성인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계적인 성인을 중심 삼고 그를 닮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인륜도덕이라는 말이 있지요? 대한민국의 법도 성인의 도리를 전부 다 응용, 나열해 가지고 만든 것입니다. 결국은 성인의 어떠한 가르침에 흡수되어 들어가기 위한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제 남은 문제가 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간이 타락하여 모두가 잃어버리고 아래로 떨어진 것입니다. (판서하심) 남자와 여자 둘 다 떨어졌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떨어진 이들을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시고 구원 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래 인간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알게 된다면 여기로 올라가려고 할까요, 안 할까요? 올라 가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참남자와 참여자를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6천년 동안 종교가 찾아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다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참남자와 참여자가 없었기 때문에 결혼식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되어진 이 세계는 선한 세계입니까, 악한 세계입니까? 「악한 세계입니다」 똑똑히 대답해 봐요. 선한 세계예요, 악한 세계예요? 악한 세계이니 언젠가는 망해야 됩니다. 그래서 심판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악한 사람이 악한 자리에 있으면 종교를 가질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가질 수 없으면 어떤 길을 가야 돼요?「선한 길을 가야 합니다.」 악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대로 계속 살아간다면 선한 길을 갈 수 있습니까?「없습니다.」 자기 중심 삼고는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가고 있는 악한 세상의 길에서 빨리 돌아서서 선한 길로 가야 합니다.

깡패 생활을 하던 사람이 동료들을 배반하고 돌아서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 동료들이 그냥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또다시 그 무리 속에 들어가야 되겠습니까?「아닙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돌아서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죽어도 그곳에 다시 돌아갈 수 없다.'라고 하면서 완전히 인연을 끊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연을 끊지 않으면 선한 길은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못 간다는 것입니다. 가다가 걸려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는 '이 세상의 인연을 끊어라, 이 세상을 부정하라.' 고 하는 것입니다. 참된 종교는 부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이것을 확실히 몰랐습니다. 악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두고 볼 때에, 전부 다 자기를 중심 삼고 좋아하려고 합니다.

너도 나를 위해서 좋아해라 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남을 이용해 먹고, 나라를 이용해 먹고, 세계를 이용해 먹고, 전부 다 이용해 먹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악한 세상의 판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한 사람들이 악한 세상에서 선한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악한 사람들이 남을 이용하려고 할 때 같이 남을 이용하려고 하면 선한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악을 박차고 다시 한번 선을 세워 나가지 않고는 아무리 소원이 간절하여도 선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선은 하나님의 것이자 내 것이요, 악은 사탄 것이자 원수의 것이니 악을 추방시켜 버리고 선만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힘든 일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경계선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발자국만 앞으로 가면 사망의 길로 가고 한 발자국 뒤로 후퇴하면 생명의 길로 가는 경계선에 있다는 것입니다.

떨어질 때는 머리가 무겁기 때문에 거꾸로 떨어졌을 것이니 다시 반대로 올라갈 때는 반대 방향으로 올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거꾸로 떨어졌으므로 원래 위치로 돌아서서 제자리로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도의 길을 가려면 이렇게 몇 배나 힘든 길을 가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16. 타락한 입장에서는 자신을 부정하라

​자기가 선한 길을 가겠다고 할 때, 현재 밑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자기를 중심 삼아 가지고 올라갈 수 있겠어요? 자기 자체를 중심 삼아 가지고 올라갈  길이 없습니다. 그것으로 마지막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먼저 자신을 부정하고 자기보다 나은 사람과 절대적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은 절대 선한 자리에 못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타락한 입장에서 자신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대로 타락한 상태로 남아질 뿐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부정하고 선한 자리로 올라가면 되는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자기보다 선한 사람한테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남에게 복종하는 걸 좋아합니까? 제일 싫어합니다. 누구에게 주관받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전부 다 자기가 주관하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욕망입니다.

본래 사람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세계를 주관하고 만물을 주관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타락했기 때문에 주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마음은 주관하기를 바라지만 몸은 반대의 행동을 하지 않고는 돌아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인생 노정에 있어서 보다 선한 실적을 남기고 가는 것이 성인의 도리입니다. 인간은 이 세계에서 앞장서서 가는 성인의 가르침을 받아 그를 중심 삼고 그의 말씀과 더불어 하나되어야 합니다. 절대 복종하고 절대 순종해야 됩니다.

생명이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살아왔다 하게 될 때 그 사람과 더불어 영광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에 접붙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어요 ?

사람이 소원을 이루려면 선한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그 선의 길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는 자기 자신을 주장하는 입장에 서면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왜냐? 맨 끝, 맨 마지막에 와 있는 것이 되므로 더 이상 갈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마지막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이 선한 길, 희생의 길을 찾아가는 것은 개인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위해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개인이 희생해야 가정이 남아지는 것이고, 가정이 희생해야 종족이 남아지는 것이고, 종족이 희생해야 민족이 남아지는 것이고, 민족이 희생해야 국가가 남아지는 것이고, 국가가 희생해야 세계가 남아지는 것입니다.

내 한 개체가 희생함으로써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찾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나 자신을 내세워 가지고는 절대로 올라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선한 길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소망적인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의 일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7. 선한 길은 위해 주는 길

​세상에는 효자 효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먹을 것이 있으면 '어머니 아버지는 많이 먹어 왔으니 나만 먹겠다.'고 하는 사람은 효자 효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부모에게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효자 효녀는 내가 먹고 싶어도 부모에게 먼저 드리고, 가정 전체를 위해서 염려하고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효자 효녀는 가정에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집안 식구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희생하게 되면 자연히 아버지보다도 집안의 중심 존재로서 위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해서 어느 누구보다도 대표적인 자리에서 희생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는 그 가정의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중심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자신이 희생하는 것을 나쁘게만 생각했지 이런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게 되면 그 사람은 희생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중심 존재가 아니 되려고 도망가더라도 중심 존재로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중심 존재로 세워질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주관하고 지도해 주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선하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선의 길에 자기를 중심 삼고 끌어들이는 것이 있습니까? 남의 주머니에 있는 것을 내 것이다 하는 것이 적선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다 하는 것이 선이예요? 그런 것을 선이라 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만약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이 선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 시조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이 세계가 모두 내 것이다 해도 그것은 선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맨 밑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선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공법은 우리의 마음에 남아 있기에 오로지 선을 향해서 움직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좋은 자리로 들어가려면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나라의 것이고, 나라의 것은 세계의 것이며,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내 것은 네것이 되고 네 것은 하나님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그런 입장이 못 되었기 때문에 내 것은 내 것이고 네것도 내 것이라는 악한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악이 뭐냐 하면 자기를 중심 삼고 생활하는 것입니다. 악은 언젠가는 망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선한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 것을 전부 다 가질 수 있게 되는 거라구요. 얼마나 욕심이 나는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이 안 갖겠다고 해도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는 것은 너를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선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친구도 자기를 좋아하고 위해 주는 친구를 좋다고 하지요? 그런데 연이어 자기를 서운하게 만드는 친구는 어때요? 서로 헤어지지 말라고 해도 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위해 주는 친구에게는 차더라도 달라붙습니다. 달라붙을 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있는 친구들도 달라붙으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남아지니까 신난다는 겁니다. 간단한 거라구요. 이것이 원칙입니다.

이렇듯 선은 내가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데에서 발생합니다. 온유겸손한 자리에서 선이 시작되는 것이요, 희생하는 자리에서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은 없나니' 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보다 크다는 말입니까, 작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보다 크다는 말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선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했기 때문입니다.

선한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기를 주장하면 가짜요, 그런 가짜는 망합니다. 영영 망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의 방안을 모색하셨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자기를 탈피할 수 있는 분기점을 찾아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반대로 올라 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위해서 살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상대가 악한 사람이라 하여도 좋다는 겁니다. 악한 사람에게 선을 베풀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받지 않으면 그 열매는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악한 사람에게도 선은 있습니다.

따라서 내게 돌아올 때는 그 사람의 선까지 모두가 합해 가지고 돌아옵니다. 선은 마이너스 되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크게 돌아오지, 작아져서 돌아오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죽고자 하는 자는 어떻게 된다고 그랬나요?「산다고 했습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정녕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역설적인 논리입니다.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은 살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역설적인 논리이지만 인생의 본연의 행로에 있어서 역설적인 논리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타락한 인간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18. 먼저 가정을 위해 희생하라

​인간이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려면 혈족을 통해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선한 길을 가려면 선한 부모를 통하여서만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님에게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악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속에는 종자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너도 나와 같이 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어요? 자신은 살인강도라 해도 자식에게는 '너는 절대 살인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건 반대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타락했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있어서만은 사랑이 남아 있고 본연의 사랑의 형태가 같기 때문에, 그 사랑을 통해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 사랑마저 없다면 인간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앞에 효도해야 되고, 가정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가정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친척을 중심으로 하여 볼 때에 김씨 문중이면 김씨 문중이 전부 다 우리 가정을 위해서 살아야 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이 그 문중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머 않아 김씨 문중 전부가 그 가정에 줄을 지어 찾아와서 무릎을 꿇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해보세요.

나라를 중심으로 하여 볼 때도 먼저 눈물의 길을 가지 않은 애국자가 없고,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볼 때도 먼저 눈물의 길을 감수하지 않은 효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결국 나를 죽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부정하는 길을 가야 됩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가는 길이 선의 길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여러 종족이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김씨가 가장 많다고 하여 자기네들의 후손 중에 대통령도 나오고 장관도 나오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히려 수많은 종씨 앞에 희생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여러 종씨들에게 알려져 희생한 자기들의 종씨를 중심 인물로 모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되기까지는 피나는 고통과 슬픔이 몇십년, 혹은 1세기 2세기가 걸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의 장단은 있을 수 있겠지만, 틀림없이 씨족의 중심 인물로 모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씨족의 중심에 세울 뿐만 아니라 씨족의 주인이 되어 달라고 원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되지 않겠다고 하여도 자연적으로 주인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민족은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고, 나라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완전한 선의 나라가 되려면 반드시 세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전통과 사상을 다른 나라들이 본받고 후대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드시 중심 존재로서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는 거예요. 이제 알겠지요. 중심 존재로 모셔질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본래 인간은 가정의 주인이요, 종족의 주인이요, 국가의 주인이요, 세계의 주인입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인하여 이러한 것을 모두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 원칙을 찾아 그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는 그러한 자리에 올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시간의 장단의 차이는 있지만 이 공식을 통과해야 하는 것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19. 성인이 되려면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야

​여기 모인 여러분들은 선한 사람이 되겠어요, 악한 사람이 되겠어요? 「선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빨리 선한 사람이 되는 방법이 뭐예요?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6천년이라는 지루한 세월이 걸렸는데, 빠른 시일 내에 선한 사람이 되는 방법이 없을까요? 그러려면 사상이 필요합니다. 세계 주의, 국가 주의, 민족 주의 이러한 말을 많이 하는데 민족주의자가 되느냐, 세계주의자가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위인과 성인이 여기에서 갈라지는 거예요. 대한민국에 위인이 있어요, 없어요? 대한민국의 위인이 누구입니까? 이순신 장군은 위인이지 성인은 아닙니다. 참이라는 것은 일본에서도 참이요, 한국에서도 참이요, 세계 어디를 가도 참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은 참이 아니라구요. 이순신 장군은 대한민국의 위인이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참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명장은 될지언정 성인은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이순신 장군은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에 있어서만 위인입니다. 대한민국 사람들만 좋아하지, 일본 사람에게는 뭐가 됩니까? 원수입니다. 일본을 때려잡았다고 하여 일본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을 다 싫어합니다. 그렇지요? 국경을 못 넘었어요. 그러니 이순신 장군은 민족주의자라는 것입니다. 

민족주의자 다음에는 세계주의자입니다. 성인은 어떠한 분입니까? 성인은 민족주의자와는 다릅니다. 성인은 세계적입니다, 성인은 국가 한계권내에서 충성을 바치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깨달아야 됩니다.

이순신 장군이 자기 일신을 다해 국가를 위하다가 희생됐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통곡을 하였습니까? 그와 더불어 민족이 같이 죽고, 거국적인 슬픔의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이 갈 때에는 그 나라에서 한마디 동정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전부 다 때려죽일 놈이라고 핍박하는 사람만 있었습니다. 거국적으로 몰리고 쫓기는 사람 가운데서 성인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자기의 나라를 넘어서서 세계를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 가운데서 성인이 나왔다는 뜻입니다.

성인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 가지고 세계를 위해서 자기 생명을 투입하여 수난의 노정도 기쁨으로 삼고 세계적인 이념과 더불어 살겠다는 신념을 갖고, 생명을 걸겠다는 조건을 세우고 이상세계를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세계뿐만이 아니라 세계까지도 초월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천주적입니다. 지금까지의 성인들 중에 하나님을 소개하지 않은 성인이 있습니까? 찾아보세요. 하나님을 소개하지 않고 사람들끼리, 우리끼리 해먹자고 한 성인이 있어요? 성인은 반드시 하나님을 중심삼고 간 사람인 것입니다.

공자도 '위선자는 천보지이복하고, 위불선자는 천보지이화니라(爲善者天 報之以福 爲不善者天報之以福)' 하셨습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하늘이 복으로써 갚아주고 선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하늘이 화로써 갚아 준다는 것입니다. 공자님이 아무리 훌륭한 성인이라 해도 하늘을 생각하지 않고 가르쳤다면 아마 성인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인들을 두고 보면 모두가 종교의 교주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성인이지요? 성인이예요, 아니예요?「성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하셨습니다. 이 가르침의 주류 사상은 사람이예요. 하나님이예요? 하나님입니다. 불교의 석가모니, 회회교의 마호메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다 신을 위주로 한 종교의 교주로서 출발했습니다.

세계 4대 성인을 말할 때 소크라테스가 성인이 될 수 있습니까?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지식의 왕자인 것입니다. 지식은 인간의 생명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생명은 하나님만이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가치를 찾아 나가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지식을 통하여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학박사가 되었다고 하여 그것이 인생에 있어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오산인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지식이 천하가 다 인정할 수 있는 지식이라 할지라도 어린아이의 생명만 못한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종교는 생명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나왔으며 철학은 지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성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식은 사람의 생명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다 좋아하는 주의, 사상, 종교

신을 빼 놓은 성인이 없다는 것을 볼 때에 신이 있다는 것을 상징한 거예요, 없다는 것을 상징한 거예요? 있는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세계 문화권은 종교를 중심으로 하여 전부 다 형성되었지요? 아무리 훌륭한 정치가 라든가 위대한 민족이 있었다 해도 다 망했지만, 종교만이 수천년 동안 그 전통을 지키면서 한 발자국씩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의 모든 국가가 종교 문화권내로 들어왔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사실은 부정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볼 때에도 역사적인 주체인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 위에 왔다 간 성인들이 뜻을 이루었어요, 못 이루었어요?「못 이루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들 하나 찾는다고 했지요? 그래 잔칫날을 맞아 봤어요, 못 맞아 봤어요? 그러면 통일교회 선생님이 성인의 제자가 되면 좋겠어요, 성인의 선생 되면 좋겠어요? 성인의 선생이 되어야지요. 선생님이 뜻을 이룬 성인이 되어야겠어요, 뜻을 못 이룬 성인이 되어야겠어요?「뜻을 이룬 성인이 되셔야겠습니다」 뜻을 이룬 성인이 되어야겠지요?

선생님은 통일교회 식구들을 중심삼고 합동결혼식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세계의 사람들이 우리나라로 몰려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오직 문선생밖에 없습니다. 만일 결혼해 주었다는 것에 대해 상을 받게 된다면 세계 10개 국을 모아 놓고 777쌍 합동결혼식을 해준 것으로 일등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웃음) 이런 사실을 알고 보면 기가 막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늘 땅이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부가 다이아몬드라고 해도 주고 바꿀 수 없는 일이 있다면 한 번 해볼만 하겠지요? 여러분은 민족주의자가 되겠습니까, 세계주의자가 되겠습니까 ?「세계주의자요」 종교는 세계주의뿐만이 아닙니다. 인간만 좋게 하자는 주의가 아니라 하나님까지 좋게 하자는 주의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는 인간만 좋게 하자는 주의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까지 좋게 하자는 주의하고, 인간만 좋게 하자는 주의하고 어느 주의가 더 좋아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도 좋고 인간도 좋아하는 주의가 좋아요, 주인을 빼버리고 종들끼리만 좋아하는 주의가 좋아요?「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좋다고 하는 주의가 좋습니다」 대답을 하는 것을 보니 그래도 알긴 아는군요. 종교는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만 좋아하는 주의면 되겠습니까? 원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만 좋아해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좋아하고 인간도 좋아해야 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을 보면 신이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물질이 곧 생명이라고 합니다. 아마 지옥까지도 가지 않겠다고 그럴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결국 끝에 가서는 망하는 것입니다. 종교도 신만을 위주로 하는 종교는 망합니다. 또한 인간만을 위주로 하는 종교나 주의 사상도 망합니다. 망하지 않으면 내 손으로 전부다 망하게 할 것입니다.

그래 신과 인간을 좋게 하는 주의를 신의 세계에서 환영하겠어요, 안하겠어요? 또한 인간의 세계에서도 환영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환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지상천국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지상천국을 이루지 않고는 천상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점진적이고 진취적이며 포괄적인 종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세상 사람들은 통일교인들, 야! 선전 잘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 선전 좀 하면 어떻습니까?(웃음) 이제 선전할 만합니다. 세계 사람이 내 명령에 의해 국경을 초월하여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 있는 행동을 갖추고 있으니 선전할 만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이와 같은 놀음은 대한 민국 대통령이나 미국 대통령도 못하는 거라구요. 영국 수상도 못하는 겁니다. 예수님도 못하고 공자도 못한 일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랑할 만하지요? 한번 자랑해 보아야겠습니다. 이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면 배가 아프고 괴로울 겁니다. 그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소원, 우리의 소원을 성취하자면 이와 같은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서 죽어야 되겠어요, 안 죽어야 되겠어요?「죽어야 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그 나라가 희생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희생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미국만을 위한 민주주의 입장에 서게 되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여 자기 국가를 희생시킬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공산주의의 중공이면 중공을 중심삼아 가지고, 소련이면 소련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제패하려고 하지만, 그런 원칙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민족과 국가를 초월할 수 있는 주의 주장을 들고 나오지 못하면 세계를 하나로 만들지 못하는 겁니다. 자기 민족을 초월하지 못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우주를 주관하는 입장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것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미국 국민만을 세계의 주인으로 만들고 싶어하시겠습니까? 세계 사람을 전부 다 주인으로 만들고 싶어하실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위주한 사상은 전부다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무리 세계를 진동시킬 수 있는 주의가 있다 하여도 자기의 민족성을 초월하지 못하면 결국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민족을 초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제한된 환경권내에서 살고 있지만, 국가를 초월하여 세계를 위한 입장에서 살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아가씨들은 머리가 새까맣지만 통일교회 아가씨들은 노란 서양 총각들한테 시집가라고 해도 찬성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하나로 형성하기 위해서는 그런 때가 되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에게 서양 남자면 됐지 무엇이 부족하냐는 거예요.

지금도 일본 사람들 3백명 정도가 수련을 받고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어디를 더 사랑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더 사랑하고 있느냐, 자기 민족을 더 사랑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를 위주로 했을 때는 나라가 망할 때 같이 망하는 겁니다. 이것은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큰 것을 위해서는 작은 입장에 있는 내가 희생되지 않고는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성인들은 세계주의를 부르짖다가 죽어갔지만, 그 세계주의라는 사상과 더불어 지상에서 살았기 때문에 지상에 해방의 때가 오게 되면, 영계에서도 해방의 때가 벌어지게 되므로 그로 인해 비로소 자기의 때를 맞아 영광의 자리에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원수들의 복을 빌어 주면서, 자신은 비록 죽지만 절개를 지키고 죽음길을 당당하게 갔지요? 이스라엘 민족의 반대를 받으면서 오로지 하늘땅을 위해서 죽어간 것입니다. 그렇게 죽었으면 그런 세계가 올 때까지는 그 사람을 중심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주인 삼아 가지고 모시고 살아가고 싶어하는 것이 천리원칙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선을 행하라'고 교육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하라는 것은 희생하라는 뜻입니다. 알겠지요?

말없이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은 국운을 맞이할 수 있는 후손을 남기는 것이요, 말없이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은 세계 운세를 맞이할 수 있는 후손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가야 하는 길은 어디냐? 오늘날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민족주의자가 아닙니다. 보다 큰 사상을 지닌 세계주의자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대한민국의 자유당, 민주당, 현 정권 앞에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면서 나왔던 것입니다. 왜 ? 가만히 보니까 주의가 크거든. 그래서 또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에게도 핍박받고 있는 거예요. 지금까지 그렇게 나왔습니다. 우리는 세계주의 뿐만 아니라 천주주의라고요. 알겠어요?

그러면 이 세계는 무엇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느냐? 하나님을 위해서….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진대 그 중에 제일은 뭐라구요?「사랑입니다」 사랑이 제일이라는 결론을 이미 내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그래, 세계는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고 하나님은 누구를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구요? 아들딸을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들딸 만나서 뭘 하자는 거예요? 하나밖에 없는 사랑의 인연을 남기기 위해서…. 그것을 남겨 주지 않고는 후계자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비로소 횡적으로 모든 인연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들도 하나님을 닮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닮지 않고는 이 세계를 이끌고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우리의 소원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참된 부모의 인연을 중심삼고 인간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의 사상이 종족의 사상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런 종족의 사상은 민족의 사상으로 발전하는 것이요, 민족의 사상은 국가의 사상으로 발전하는 것이요, 또한 국가의 사상은 세계의 사상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의 사상은 하나님의 사상으로 모든 생활에 전개되어 가지고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을 중심삼아 가지고 온 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입장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존재하고자 하는 것이 지음받은 모든 피조물의 소원이요, 인간의 소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아버지, 오늘날 타락한 인간은 자신을 중심삼고는 갈 수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당신을 따라가야 하는 동시에 나를 희생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이 엄연한 법칙적인 사실을 확실히 느낄 수가 있사옵니다.

나 자신이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고, 뜻을 위하여 희생하여, 모든 것을 다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에서 당신의 수고와 노고 위에 승리를 찾아 드려야 할 저희 자신들이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우리의 소원이 무엇이냐 할 때, 타락한 저희에게 있어서는 선의 길을 가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선의 노정을 남기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기울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에게로,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에게로,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에게로, 민족을 중심삼고 국가에게로,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에게로, 세계를 중심삼고 하나님에게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렇게 단계적인 노정을 오늘날 저희들이 추구하게 될 때, 개인에서 가정으로 연결되려면 탕감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정에서 종족, 종족에서 민족, 국가, 세계, 그 단계단계마다 탕감조건을 세워 놓지 않고는 연결시킬 수 없다는 엄청난 탕감의 내용을 저희들이 체득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이 모든 전체를 책임지시고 인연지을 수 있는 승리의 한때와 승리의 한 기준을 넓히시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걸어 나오신 것을 생각할 때, 몸 굽혀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감사의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바로 통일교회 식구들의 생활이요, 생활 철학인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자기의 고집만을 주장하는―몰상식하고도 망할 수밖에 없는―자아를 무시하고 멸시하며, 남을 위해서 살고 성인이 가야할 길을 준비하기에 온갖 정성을 다하여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자기의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도 가담시켜서 '다 갔다'라는 하나의 결정적인 말을 할 수 있는 역사적인 종말의 때가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이 좁고 낮은 자기 일신을 버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바라시는 본연의 모습에 일치될 수 있는 기준을 설정하여 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도 당신이 허락하여 주신 가운데 내려진 말씀이 저희들 생활노정에 있어서 동기가 될 수 있고, 생명의 원천이 되고, 선과 악의 분기점을 확정지을 수 있는 신념의 모체가 되어, 당신을 사랑하는 저희들 가슴 가슴에 채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선을 추구하고 악을 근절시킬 수 있는 심판의 주인공으로서 남아질 수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주관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땅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당신이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고 계시는 소원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지극히 희귀하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교파가 있고 수많은 신도가 있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많지만,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집이 어떠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그 도리를 따르고자 하고, 그 도리를 본받고자 하며, 그 도리를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 없기에, 아버지께서 이 땅 위에 한 사람을 세워서 전체를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될 지중한 책임을 지고 계신 것을 느낄 적마다, 인간을 자유로이 대할 수 없는 아버지의 입장이 얼마나 불쌍하신가를 느끼게 되옵니다.

당신은 오랜 기간을 통하여 수많은 선지자들을 세우셨고, 그들이 인간의 인연을 따라 나오면서, 역사적인 그 모든 어려운 환경을 넘고 넘으면서 개척자의 사명을 다하였지만, 그때에 책임을 졌던 선지자들과 그때를 위해서 수고하신 아버지의 수고는 시대와 더불어 흘러가곤 하였던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렇게 연이어 나온 역사….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희 인간들 앞에 당신이 가중시킨 힘과 수고가 얼마나 컸는가 하는 사실을 오늘날 인류는 스스로 깨닫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여기는 용산지구 본부이옵니다. 소수의 무리들이 아버지 앞에 부복하였사옵니다. 이들이 모인 것은 그 누구를 따르기 위한 것이 아니옵고 당신을 따르기 위한 것이옵고, 당신의 자녀로서의 명분을 갖추기 위해 모였사오니 이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저희 마음 마음을 살피시어 당신의 마음 앞에 합당치 못한 모든 마음을 제거하여 주시옵고, 저희가 저희 자체를 부정하여 당신의 마음에 일치될 수 있는 본성과 몸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말과 관념으로써만 아버지를 부를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체휼로써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지 못한 아들딸들이 있거든 그런 자리에 나갈 수 있게끔, 아버님이여, 붙들어 주시옵고,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뜻 앞에 명령하시어서 기필코 당신의 은사 가운데서 살며, 당신으로 말미암아 생활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랜 동안 찾아오지 못했던 이 자리에서 오늘 이 시간에 다시 만나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용산지구를 책임맡고 있는 당신의 아들이 수고한 모든 사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 작은 자리를 통하여 용산지구 전체를 아버지 뜻 앞에 세우는 중요한 책임을 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아버지,긍휼히 보시옵소서.

많은 무리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한 생명이라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몸과 몸이 서로 연결되어 아버지의 뜻 앞에, 아버지의 생활 앞에, 아버지의 심정 앞에 화답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아옵니다. 그럴 수 있는 생명이 한 생명이라도 나타나서 이 조그만 자리에서 하늘과 인연맺고 저희들과도 인연을 맺어, 아버지가 기뻐할 수 있는 효자 효녀가 될 수 있게 하여 주옵시고, 당신께서 세우시어 자랑하고 칭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1년, 금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저희들이 일치 단결하여 당신이 맡겨 주신 사명과 책임을 다하지 않고는 민족 앞에 원한의 조건을 남길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삼천만 민족 앞에 참소받을 수 있는 입장임을 느끼면서 금년에 있어서 맡겨진 바의 책임을 감당하여 아버지 앞에 칭찬받기에, 아버지가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이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저희들 사정 사정을 온전히 당신의 사정과 연결시키시옵고, 저희들이 바라는 소원이 당신의 소원과 하나되게 하시어 당신의 뜻을 여기에서 성취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소수의 무리들이 무릎꿇은 이 자리로 말미암아 당신이 사랑하고 남을 수 있는 거룩한 승리의 터전이 확장되고 발전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언제나 이곳을 위해서 마음 모아 기도하는 자녀들에게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허락하신 이 한 시간 아버지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우리 통일교회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 그늘과 같은 어려운 역사를 지내 나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 하나님의 섭리 역사를 두고 보면 구약시대는 만물을 제물로 드리는 제물시대였고, 신약시대는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시어 제물적인 입장에 세운 시대였는데, 그 아들이 십자가에 돌아간 희생의 공로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신약을 중심삼은 기독교가 발전해 나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자녀의 시대가 아니라 부모가 역사적인 수난의 길을 가야 할 시대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1. 인류 역사는 하나의 참된 남성을 찾아 나온 섭리사

​하나님의 섭리 역사는 재창조의 역사이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창조하실 때와 같은 순서를 다시 밟고 올라가야 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신 후에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인간 조상 아담 해와는 참다운 부부가 되기 전 자녀의 자리에서 타락했습니다.

만일 이 자녀가 타락하지 않고 자라서 참된 부모의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상속을 받았더라면, 이 세계는 그야말로 우리 인간이 이상하던 선의 세계요, 소망의 세계요, 본향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세우려던 본연의 부모의 인연을 갖지 못했습니다.

자녀의 인연도 가졌다고는 하지만, 아담 해와가 자녀의 인연을 갖고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장성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모든 소망을 걸고 전폭적으로 사랑하실 수 있는 자리에 선 자녀는 되지 못하였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만물은 완성한 자녀의 입장에 선 인류의 시조 아담 해와로부터 주관받아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주관받지 못하였다는 것도 알고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 역사, 구원 역사는 잃어버린 만물과 자녀와 부모의 인연을 다시 찾아 나오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만물을 중심 삼고, 신약시대에는 자녀를 중심 삼고 나왔습니다. 그러고 성약시대에는 부모를 중심 삼은 새로운 역사시대가 전개되어 나온다는 것을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온 역사 과정을 살펴보게 될 때에, 인류 역사는 하나의 중심을 세워 가지고 그 중심으로부터 하나의 가정을 세우고 그 가정으로부터 하나의 종족과 하나의 민족과 하나의 국가와 하나의 세계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 하나의 중심적인 기원을 찾아 나오는 역사였습니다. 이것이 종교를 중심 삼은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종교는 지금까지 무엇을 해 나왔느냐? 지금까지 종교라는 것은 잃어버린 아담 해와를 찾기 위한 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그 아담 해와를 찾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이 아담을 먼저 지었기 때문에 아담을 먼저 찾아 새워야 합니다.

이렇게 잃어버린 아담,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의 자격으로 등장할 수 있고 합격될 수 있는 하나의 남성을 찾아 나오는 역사를 지금까지 종교가 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종교든지 보게 되면 종주가 전부 남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이상 세계의 완성된 남자의 기준을 세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죽어 버린 입장에 있는 인류 가운데서 새로이 하나의 완성된 남자를 다시 찾아 나오는, 다시 세워 나오는, 다시 지어 나오는 역사를 거듭해 나오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까지 종교가 추구한 구원의 내용, 구원의 도리는 개인 구원이었습니다. 종교는 어디까지나 개인 구원을 표방하고 개인을 구원시키기 위한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하나의 남자가 완성되면 그 남자로 말미암아 하나의 여성이 찾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때 아담을 지어 놓고 나서 그 아담을 본떠 가지고 해와를 지었습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칙이기 때문에 완성된 하나의 남성이 나오지 않는 한 하나의 완성된 여성은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역사는 하나의 남성을 찾아 나오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2. 예수님을 중심한 기독교 역사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아 가지고 만 인간의 대표로서 혹은 만 남성을 대표하는 중심적인 존재로서 한 분을 보내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왔다 갔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왔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의 사랑을 받았다면, 즉 위로는 하나님이 사랑하고 아래로는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받드는 입장에 섰었다면, 예수님을 중심 삼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 민족에게 연결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완성한 남성으로 보냈던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 위에서 민족과 더불어 혹은 교단과 더불어 완성할 수 있는 승리적 터전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지금까지 기독교를 중심 삼고 다시 한 민족과 한 국가를 세우고 하나의 교단을 세워, 새로운 남성을 이 땅 위에 찾아 세우기 위해 싸워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남성을 하나의 여성이 받들 수 있는 터전을 넓혀 나오는 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인 것입니다.

완성된 아담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 앞에 그때의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의 완성된 여성을 맞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 드렸더라면, 예수님은 하나의 완성된 남성으로서 하나의 완성된 여성을 맞이하여 가지고,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던 당시에 인간을 중심 삼고 바라시던 하나의 완성된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그때 비로소 완전한 가정의 출발을 보았을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완성하여 부부의 인연을 맺는 것이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지으신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 두 남성과 여성이 하나의 완전한 가정의 출발을 봐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완성된 남성으로서 이 땅위에 오셨기 때문에 국가와 교회가 받드는 가운데에서 완성한 여성을 맞이해 완성한 가정의 출발을 했다면, 그 완성된 가정을 중심 삼아 가지고 완성된 교회, 완성된 민족, 완성된 국가를 형성해서 완성된 세계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뜻이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 뜻을 이루기 위해 재차 범위를 넓혀 가지고 세계적인 무대에서 지금까지 일해 나온 것이 신약시대의 기독교 역사인 것입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느냐 하면, 이스라엘 나라와 같은 한 국가의 판도를 외곽적으로 넓혀 나왔습니다. 일개 국가를 중심 삼고 그러한 판도를 넓힌 반면 세계적으로 그 판도를 넓혀 나와서 지금의 민주 세계를 이루었습니다. 그리하여 기독교가 이 민주 세계권 내의 사상적인 책임을 지고 나왔습니다.

이 기독교와 민주 세계는 하나님의 완성된 아들이 하나의 완성된 가정의 기반을 갖출 수 있게끔 교회와 나라를 세워야 할 입장입니다.

옛날 예수님 당시에 유대 교회와 이스라엘 나라 가운데서 완성될 수 있는 하나의 여성이 세워져 가지고 예수와 하나되어서 하나님이 바라시던 이상적인 하나의 가정을 이루었더라면 그 가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하나의 종족이 나왔을 것이고 하나의 민족이 나왔을 것이고 세계가 나왔을 것인데,

그 소망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찾아 나오는 것이 기독교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는 다시 새로운 역사를 전개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 사상이라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3. 재림 이상

​그러면 다시 오시는 주님은 어떠한 분으로 오시겠느냐? 남성을 대표하여 인류 역사의 노정에 있어서 악한 세계의 모든 것을 넘어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의 자격을 갖추어 가지고 이 땅 위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이 땅 위에 오셔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땅 위에 오자마자 나라를 치리(治理)하고 세계를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이 간접적인 목적은 될는지 모르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직접적인 목적은 뭐냐 하면, 하나의 완성된 남성으로 하나의 완성된 여성을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즉, 타락의 인연을 완전히 벗어난 하나의 남성과 하나의 여성이 부부의 인연을 맺고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류 시조가 하나님을 중심 삼고 이루어야 할 참된 부부의 인연을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이루기 위해 육천 년의 역사를 통과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부부의 인연을 세우고 하나님을 중심 삼은 새로운 가정의 출발을 보기 위해 이 땅 위에 다시 찾아오시는 분이 재림 주님이요, 그것이 재림 이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참다운 부부의 인연을 통해서 참다운 자녀와 참다운 민족과 참다운 국가와 참다운 세계로 발전해 나가야 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중심된 하나의 가정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 가정 주위는 전부 하늘의 가정이 아니라 하늘에 반대되는 악한 가정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악한 가정들을 전부 뜻 앞에 소화시키고 뜻과 더불어 일체화될 수 있게끔 하늘 편으로 끌어오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가정으로부터 수많은 가정을 거쳐 가지고, 하나의 새로운 종족을 편성하고 새로운 종족으로부터 새로운 민족을 편성하고, 새로운 민족으로부터 하나의 새로운 국가를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국가의 책임자는 어떤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중심 삼은,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국가가 이 땅 위에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들의 주권자를 중심 삼고 볼 때에, 그들은 하나님이 수천 년의 역사 노정을 통해서 바라 나오던 그 책임을 계승해 나오는 그런 주권자가 아니라, 한때에 있어서 그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어떠한 공적을 중심 삼고 그 사회인들에 의해서 선출되거나 자기가 그런 자리를 차지하고 나선 주권자들입니다.

그들은 역사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소망하고 인류가 소망해 나오던,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하나님의 모든 이상을 이어받을 수 있는 중심 부부의 기반을 갖춘, 하나님이 세워 준 주권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지만 그러한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타락이 없었다면 온 세계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들을 중심 삼아 가지고 주관 받고 치리 받았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타락이래 지금까지 악의 권내에 있는 악의 주권자로부터 주관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에 이 세상은 어디까지나 하늘 나라가 아니요, 악한 사탄 주관권내에 있는, 하늘 밖에 있는, 하늘의 뜻 외에 있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세계를 중심 삼고는 뜻을 이룰 수 없겠기 때문에 이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복귀하기 위한 복귀 역사 혹은 구원 역사를 하시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4. 현재 통일식구가 짊어진 사명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참된 나라가 나오기 전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딸이 지배할 수 있는 나라가 나오기 전에 하나님을 중심 삼고 사위기대를 이룬 하나의 가정이 나와야 됩니다. 그리고 이 참다운 가정을 중심 삼고 참다운 종족이 나와야 되고, 참다운 종족을 중심 삼고 참다운 민족이 나와야 되고, 참다운 민족을 중심 삼고 참다운 국가가 나와야 됩니다.

이 악한 세계에는 수많은 국가가 있는데 그 국가 가운데서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국가가 나와 가지고 악한 세계의 나라들을 흡수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선한 국가와 악을 중심 삼은 국가가 선악의 투쟁을 거쳐 선한 국가가 악한 국가를 전부 흡수해 가지고 온 세계 국가가 하나님을 중심 삼은, 하나님이 직접 주관할 수 있는 국가권내로 통일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통일식구가 짊어진 사명은 무엇이냐? 통일식구가 가야 할 노정과 그 사명을 살펴보게 될 때, 통일식구 개개인이 통일교회를 중심 삼고 왕래하는 것이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를 신앙하는 것이 통일식구가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은 통일교회라는 이 단체를 중심 삼고 하나로 규합돼 가지고 민족을 넘어 온 세계의 인류를 통일사상권으로 흡수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수많은 국가가 여기에 귀일될 수 있는 그런 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통일세계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모든 교회를 통일해야 됩니다. 기독교면 기독교가 그냥 그대로 있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참된 종족이 있으면 그 참된 종족을 표본으로 삼아 가지고 수많은 거짓된 종족을 참된 종족으로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된 민족이 있으면 참된 민족을 중심 삼고 거짓된 민족을 참된 민족에 접붙여 가지고 복귀해야 되고, 참된 나라가 있으면 그 나라를 중심 삼고 거짓된 나라를 접붙여 가지고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냐? 여기 용산지구면 용산지구의 이 자그마한 방에 수십명의 식구가 연결되어 모여 있는 것만이 우리 통일 교회 식구가 가는 길이 아닙니다. 비록 현재 여기 자그마한 하나의 방안에 소수의 무리가 모여 있지만 이들이 구상해 가야 할 목적지는 세계를 넘어 뜻을 향해 가야 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분 개체를 통일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선만을 남겨 놓고 악을 제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악을 중심 삼고 통일하는 것이 아니고 선을 중심 삼고 통일시켜야 하기 때문에 선을 위주로 해가지고 악을 제거해야 됩니다.

선한 것을 위주로 하여 악한 것을 물리치고 그 악의 기반을 선이 점령할 수 있는 일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통일된 하나의 내 개체를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선과 악의 중간 위치에 놓여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선한 사람도 될 수 있고 악한 사람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발자국 오른편으로 가면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요, 한 발자국 왼편으로 가면 악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반된 두 주인으로부터 상반된 두 목적 앞에 지배를 받는 우리 개인 개인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를 두고 보면 나 자체도 나 하나를 중심 삼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가 못 되어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일념으로 연두에는 일년이면 일년 동안 이렇게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원하는 그 뜻은 이루지 못하고 원치 않은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일년을 다 지내고 나서 회상해 보면 지낸 일년 가운데는 후회되는 때가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내가 원하는 데로 가지 않고 원치 않는 데로 가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것은 내가 원하는 데로 가도록 끌어 주는 힘보다도 원치 않는 곳으로 끄는 더 강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즉, ‘나’라는 개체는 선과 악의 중간 위치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중심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개체는 선의 지배도 받는 것이요, 악의 지배도 받는 것입니다. 이 두 분기선이 여러분 개체를 중심 삼아 가지고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생각해야 될 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기 때문에 인간은 완전하게 하나의 목적을 지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목적은 둘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셨다면 모든 만물은 대우주의 목적을 중심 삼고 거기에 화합하도록 계획하여 지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목적이 둘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 개인을 두고 보면 두 목적을 갖고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마음이 원하는 목적이 있는 반면 몸이 원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서로 싸운다는 것입니다.

전후 혹은 좌우로 뒤죽박죽하면서 서로 싸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생 동안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 들은 물론이요, 과거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조들도 그랬습니다. 앞으로 우리 후손들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싸움을 중단시켜 가지고 마음이 원하는 선만을 따라가고 마음이 원치 않는 악을 제거시킬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악의 목적을 향하여 가는 길을 막고 선의 목적의 길로 일방통행하지 않고는 내 자체가 선한 자리에 섰다고 결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정짓지 못하면 선과 악 둘을 붙들고 있는 입장이지, 선만을 붙들고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지금까지 이 둘 중의 하나를 잘라 버리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즉, 마음과 몸이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선을 행하라고 몸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라고 하고 자기는 어렵더라도 뭇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도와줘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몸은 그와 반대의 방향을 취해 나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현재 통일식구가 절대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뭐냐 하면, 몸과 마음이 싸우는 자기 자체내에 있어서 마음을 중심 삼고 몸을 완전히 정복하여 몸의 승리의 기반을 닦고 나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선을 위주로 한 하루의 생활과, 일년의 생활과, 혹은 십년의 생활과 일생을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선만을 위주로 할 수 있는 '나'로서 변하지 않는 내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한 하나의 '나'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5. 민주와 공산은 선악 분립 역사의 열매

​선이나 악이나 모두가 두말할 것도 없이 세계적인 욕망을 갖고 나가는 것입니다. 선한 양심의 욕망도 세계적인 욕망을 갖고 나가고 악한 욕망도 세계적인 욕망을 갖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의 욕망을 가만히 보면 자신이 완전한 선의 입장에 서지 못했으면서도 바라는 소원은 세계적인 소원인 것입니다. 내가 세계에서 제일 되고 싶다거나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는 욕망은 마음도 몸뚱이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인간의 근본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음 편을 위주하는 사람과 몸 편을 위주하는 사람을 갈라놓는 역사를 기필코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안 가르더라도 반드시 단체적으로라도 그러한 역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악을 위주로 한 단체가 있으면 거기에는 새로이 내적으로 선을 위주한 단체를 갈라 놓아야 되고, 외적으로 악을 중심 삼은 나라가 있으면 내적으로 선을 중심 삼은 나라를 갈라 놓아야 되며, 외적으로 악한 세계가 있다 할진대는 내적으로 선한 세계를 갈라 놓아야 됩니다. 이것이 갈라지는 데는 그냥 갈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싸워야 됩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싸우는 거와 마찬가지로 싸움의 과정을 거쳐야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언제까지나 둘로 남아져서는 안 됩니다. 어느 한때에는 갈라져 끝에 가서는 청산지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악과 선이 같이 있을 수 없는데 여기에서 반드시 남아져야 할 것은 악이 아니고 선입니다. 그러니 선을 위주로 하여서 악을 완전히 제거시킬 수 있는 세계적 끝날이 와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끝날이 온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끝날이 어떤 때냐? 선과 악을 한꺼번에 전부다 없애버리는 때가 아닙니다. 선한 것만을 남겨 놓고 악한 것을 없애버리는 때입니다. 그러한 세계적인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적인 때가 오기 전에 선을 중심 삼고 악한 자신을 스스로 주관할 수 있는 개인이 나와야 됩니다. 선을 중심 삼고 완전히 악을 제거시킨 하나의 남성이 그러한 하나의 여성을 찾아 가지고 선의 부부의 인연을 맺어 결합된, 선을 위주한 가정의 출현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끝날에는 면양과 산양으로 갈라진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심은 것은 가을이 되면 거두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끝날에는 심어진 대로 거두어지게 됩니다. 사람은 몸과 마음이 싸우는 사람으로 심어졌기 때문에 이것이 세계적으로 열매맺을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때가 어느 때냐 하면 세계적으로 민주 세계와 공산 세계로 갈라져 있는 지금입니다. 하나는 유심 세계를 위주한 것이요, 하나는 유물 세계를 위주한 것입니다. 하나는 내적 마음 편을 대표한 세계요, 하나는 외적 몸 편을 대표한 세계입니다.

이것은 몸과 마음이 싸우는 나를 근본으로 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를 중심 삼아 가지고 그러한 부모의 혈육을 통해 세계적인 열매로 나타나야 되기 때문에 물질을 위주한 세계와 마음을 위주한 세계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타났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나타난 것을 해결지어야 합니다. 해결짓는 데는 세계에서부터 해결짓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문제가 해결됨으로 말미암아 가정 문제가 해결되고, 가정 문제가 해결됨으로 말미암아 개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세계 사람들이 통일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지만 결과적인 열매로 나타난 세계 그 자체를 수습한다고 수습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원 되는 개인을 중심 삼고 수습 방안을 세워서 해결하지 않고는 정비될 수 없는 것입니다.

​6. 통일교회가 제시한 통일 방안

​그 뿌리를 어디에 박고 있느냐 하면 우리 인간 개개인에게 뿌리박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몸과 마음이 싸우는 것이 뿌리인데 어떻게 악한 편이 되려는 몸의 실체를 부정해 버리고 선의 기원에 서 있는 마음을 중심 삼고 모든 전체를 주관하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할 수 있는 하나의 완전한 사람으로 복귀하느냐, 악을 완전히 제거시키고 선을 위주한 그런 개인으로 복귀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종교는 세계 구원을 목표로 해 가지고 전개해 나오지 않고 개인 구원을 목표로 전개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천당가겠다거나 또 어떤 종교를 믿고 극락가겠다고들 말합니다.

가정이나 국가의 관념도 없고. 세계의 관념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바라는 소원은 막연하게나마 세계의 때를, 세계 전체의 한때를 바라지만 그 목적하는 바는 세계 구원을 목적하는 것이 아니라 전부 개인의 구원에 귀착점을 두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할 때 해결 방안이 세계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개인 자체내에 있기 때문에 승패를 결정하기 위한 입장에서 지금까지 종교는 개인 구원을 추구해 나온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종교를 중심 삼고 개인이 완전히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가지고 그 개인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완전히 구원받고, 나라가 구원받고, 세계가 구원받을 수 있는 때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 구원 판도를 넘어서 가지고 가정 구원과 종족·민족·국가·세계의 구원까지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개인 구원 완성의 묘법이 나와야 되고 하나의 정리, 하나의 공식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표방하고 나오느냐? 개체를 중심 삼아 가지고 악의 기원을 방지하고 해결하기 위한 통일방안을 제시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은 무엇이냐? 하나님과의 생명의 인연을 벗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생명의 인연을 벗어나 가지고 누구와 생명의 인연을 맺었느냐 하면 사탄과 생명의 인연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권을 벗어난 반면 어떠한 사랑권내에 들어갔느냐하면, 사탄의 사랑권내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생명은 하나님을 위주한 생명이 아니라 사탄을 위주한 생명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태어난 생명이 아니라 사탄의 사랑을 중심 삼고 태어난 생명입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오늘 통일교회에서 가르쳐 주는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복귀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냐? 원죄를 벗기 위해서 입니다. 원죄를 벗게 되면 하나님의 생명권과 사랑권내로 새로이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접붙여야 됩니다.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로 만들기 위해서는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여기에 참감람나무를 접붙여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돌감람나무와 같은 인간들을 참감람나무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 자체를 부정하는 과정을 거쳐 가지고 새로운 긍정, 전폭적인 긍정을 제시하는 과정을 거쳐 넘어가야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본질 본상이 돌감람나무가 아니라 참감람나무화하고, 선악을 위주한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선만을 위주한 그런 사람으로 등장하여 그런 사람을 중심삼은 하나의 가정, 하나의 씨족,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세계를 형성해 나가자는 것이 통일교회의 통일 방안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식구들이 바라는 현재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7. 현재의 통일식구들에게 문제 되는 것

여러분이 자기 한 개체를 악에서 구하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현재의 통일식구에게 있어서 문제되는 것은 뭐냐? 몸과 마음을 중심 삼아 가지고 '나' 하나를 완전히 해방시키는 일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 그 싸움이 얼마나 치열하냐?

이 싸움은 미소가 서로 경쟁하며 하는 싸움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민주 세계와 공산 세계가 싸우는 것은 문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도 더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우리 개체로부터 기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에게 두 패가 있어서 싸우는 거와 마찬가지로 가정도 두 패요, 사회도 두 패요, 국가도 두 패요, 세계도 두 패인 것입니다. 이것을 족보로 따지자면 하나는 악의 개인이요, 악의 가정이요, 악의 사회요, 악의 국가요, 악의 세계이며, 또 하나는 선의 개인이요, 선의 종족이요, 선의 국가요, 선의 세계입니다.

이렇게 딱 갈라졌습니다. 한편은 하나님을 위주로 한 종교권내에 서 있는 편이요, 다른 한편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물질권내에서 있는 편입니다. 사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뚱이는 인륜 도덕이니 양심의 도리니 하는 이와 같은 모든 것을 전적으로 부정합니다. 개나 돼지와 마찬가지로 내가 더 먹어야 되고, 내가 좋아야 되고, 내가 편안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륜도 도덕도 없습니다.

이러한 사조가 공산 사회를 중심 삼아 시작되어 가지고 민주 세계까지 영향이 미쳐져서 현재의 민주 세계의 청년들이 이 풍조에 휩쓸려 육의 만족만을 위한 최고의 행락을 그려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의 행락이라는 것은 제한되어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인연, 어떠한 고차적인 인연을 중심 삼아 세계성을 띠고 인간을 초월적인 경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무한대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육의 감정의 한계권내에서 놀아나는 것이기 때문에 지내고 보면 허무만 남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세계는 무한합니다. 마음의 세계가 얼마나 크냐 하면 하늘땅보다도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세계가 넓다면 하늘땅 보다 넓고, 마음의 세계가 깊다면 하늘땅보다 더 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몸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진국가의 젊은이들을 볼 때에, 미국 같은 데 가 보면 히피족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내들은 인생을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사회니 국가니 세계니 도덕이니 하는 그런 것은 전부 우리에게 필요없는 것이다. 인간은 행락을 위주로 해 가지고 몸뚱이가 원하는 대로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들 멋대로 자유를 부르짖다 보니 국가의 어떠한 간섭이나, 사회의 어떠한 법도적 조건이 가담된 자유를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정이면 가정의 가법을 중심 삼고 부모의 어떤 조건적 제시권내에 있어서 제약을 받는 자유를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맘대로라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하다 보니 전체를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행락을 바라는 그들의 몸뚱이가 무한한 초월경지의 감정을 유발시키지는 못합니다. 몸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오래 가지 않아서 싫증납니다. 요즈음 유행되는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째즈곡 같은 것들이 유행해 가지고 이상한 춤도 추고 하는 패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풍조로 클래식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육을 위주로 한 감각적인 만족이라는 것은 지극히 순간적인 것입니다. 육이 오관을 통해서 느끼는 감각은 제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잘먹고 기쁠 수 있는 감정, 즉 환경을 중심삼고 느끼는 감정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무한할 수 없습니다. 입체적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의 세계에서 오는 평화라든가, 마음의 세계에서 오는 자극이라는 것은 육을 중심삼은 자극에 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얼마나 크냐? 마음의 크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욕망은 큽니다. 욕망이라는 것은 몸을 위주로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위주로 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면 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대한민국을 내 것 만들고 싶다. 세계를 내 것 만들고 싶다.' 하는 것입니다. 또 '천지를 창조한 그런 주인이 있으면 그 주인도 내 것 만들고 싶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 것 만들고 싶다는 것은 몸뚱이가 원하는 거예요? 몸뚱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은 큰 것과 더불어, 굉장한 것과 더불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때,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곳,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냐? 잘먹고 잘사는 것, 몸뚱이가 추구하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몸은 그저 좋은 것 먹고, 좋은 데서 살면 좋아하지만 마음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나 홀로 있을 때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홀로는 아니예요. 세상에서도 그렇지요? 몸뚱이를 중심 삼고 기쁘고자 하는 데에도 남자면 남자 혼자는 안 되는 겁니다.

젊은 남녀들이 행락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혼자 가요? 남녀 관계를 중심으로 그것을 최고로 하다 보니 난장판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일대 일의 남성과 여성으로서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지금 어떤 풍조가 벌어지고 있느냐 하면, 두 부부끼리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를 서로 교환해 가면서 사는 이런 풍조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만족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리 해봤자 거기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허망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소원의 터전으로 해서 그 자리를 행복의 자리로 영원히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실컷 그렇게 하고 나면 허무하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시키고 차버리고 싶은 결과로 몰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8. 몸이 바라는 것과 마음이 바라는 것

​몸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터전은 이 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즐거워할 수 있는 곳은 어디냐? 마음이 기뻐하는 데 있어서도 마음 혼자로는 기뻐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몸이 기뻐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찾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도 기뻐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상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상대가 무엇이냐? 시시하게 몸뚱이가 좋아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상대는 자그만치 세계적인 중심인 것입니다.

온 하늘땅을 창조한 창조주가 있다면 그 창조주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가씨들도 시집을 간다면 대통령 며느리로 가고 싶지요? 좀더 하여 대통령 딸이 되겠느냐, 대통령 며느리가 되겠느냐 하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그것은 물어 볼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또,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을 중심 삼고 묻게 될 때에 하나님의 딸이 될 수 있다면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나님의 딸이 되는 데는 몸으로 될 수 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신(神)이기 때문에 무형의 신의 상대가 되기 위해서는 유형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주체로서 절대자이시고, 중심 존재이십니다.

그런 분의 상대적인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유형체로서는 안 됩니다. 무형의 상대적인 내용을 가진 존재라야 됩니다. 절대적이시고, 무한하시며, 엄청나게 크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대상적인 자리에 서려면 엄청나게 클 수 있고, 엄청나게 높을 수 있는 무형의 모습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이 뭐냐 할 때, 몸이 아니고 마음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사람을 만나는 자리가 기뻐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마음이 보다 고차적인 내용을 중심 삼고 기뻐할 수 있게 될 때는 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자기를 중심 삼은 것이 아니고 세계를 중심 삼은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민족주의보다 세계주의는 앞서가는 것입니다. 세계주의는 국가주의를 흡수하고, 국가주의는 민족주의를 흡수하고, 민족주의는 가정주의를 흡수합니다. 그리고 가정주의는 개인주의를 흡수합니다.

마음은 보다 큰 것을 소망의 대상으로 합니다. 여러분들도 마음이 있죠? 이 마음의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이 대관절 무엇이냐 할 때에 '없지' 하면 그만이지만 마음은 무엇인지 모르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사회, 내가 바라는 세계는 악한 사회, 악한 세계가 아니라 참된 사회, 참된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은 언제나 그 현재의 입장을 능가하여 보다 나은 가정을 추구하는 것이요, 보다 나은 민족을 추구하는 것이요, 보다 나은 국가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마음은 보다 나은 세계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보다 나은 세계를 이루었다 할진대, 보다 나은 세계의 중심 존재가 있다면 그 중심 존재까지 추구하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한 절대적인 주인이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그 주인을 최고의 대상으로 삼아 가지고 그와 더불어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수시로 그를 찾아갈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늘 노력하고 작용하고 있는 것이 우리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설령 대한민국 삼천만 민족을 다 잘 살게 했더라도 '이만하면 이제 됐다'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은 또 명령하기를 세계 인류가 못 살고 있으니 세계 인류를 다 잘 살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더 높이 올라가서 맨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상대하고자 원하는 최고봉이 어디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인간 세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그마치 세계주의 사상을 갖고자 하고, 나아가 하늘땅을 통합한 천주주의 사상을 갖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보다 더 높은 차원의 사상을 표준으로 하면서 그것을 중심 삼고 상대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9. 성인의 가르침

​우리가 성인이라 하게 되면 성인은 세계 사람들이 전부 추앙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래야 성인인 것입니다. 위인은 각 나라마다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위인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을 들고 있지만, 위인이 훌륭한 것이 아닙니다.

이순신 장군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백성밖에 없습니다. 일본 사람은 이순신 장군을 싫어합니다. 그렇지요? 한 나라 국민들은 좋아하지만 한 나라 국민들은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이곳에서는 좋아하고 저곳에서는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볼 때에 이순신 장군도 세계 만민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참된 사람이 못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한국의 순금이 미국 가서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것은 지역적인 한계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경을 초월하고 역사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입니다.

그러면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순신 장군 같은 사람이 참된 사람입니까? 그는 대한민국 일개 국가를 중심삼고 충신이나 위인은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성인은 못 되는 것입니다. 성인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세계적인 사람입니다. 성인은 민족을 초월합니다. 대한민국 사람도 좋아하고 일본 사람도 좋아합니다. 원수를 맺은 두 나라가 싸우고 있다가도 그 앞에서는 싸움을 그치고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그런 자리에 서야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인은 세계주의자입니다. 민족주의자는 성인이 못 됩니다. 세계주의자라야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르크스 같은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마르크스 같은 사람도 성인입니까? 마르크스는 성인 축에 못 들어갑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성인이란 인간을 위주해 가지고 나온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을 위주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성인이 못 됩니다. 자기를 위주로 하여 가르치는 사람은 성인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성인들의 가르침이 뭐냐? 성인은 전부 종교를 내세웠습니다. 석가, 공자, 예수, 마호메트 등 성인의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을 보면 전부다 종교의 교주들입니다. 그러면 소크라테스도 성인이냐? 소크라테스는 성인이 아닙니다. 왜냐? 소크라테스는 지혜의 왕은 될 수 있어도 성인은 못 되는 것입니다. 지식의 주인은 될지 모르지만 생명의 주인은 못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성인은 지식을 가르치는 주인이 아니라 생명의 도리를 가르치는 주인입니다.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나왔기 때문에 성인인 것입니다. 생사 문제는 사람이 관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관리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이 관리한다는 것입니다. 신이 생사문제를 관리한다는 거예요. 생명의 문제는 신에게 속한 것이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 지도자, 종교의 교주들이 지금까지 성인의 반열에 참여했는데, 그것은 어찌된 연고냐? 그들의 가르침이 자기를 위주한 가르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공자면 공자가 자신을 위주하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석가면 석가도 자신을 위주하고 가르치지 않았고, 예수면 예수도 자신을 위주하고 가르치지 않았으며, 마호메트면 마호메트도 자신을 위주하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전부다 하늘을 위주하고 신을 중심삼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지 않고는 성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인은 민족주의 관념권내예서 한 나라를 위주한 사람이 아니요, 한 나라를 위주로 하여 세계를 제패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 위주한 도리를 중심삼고 세계를 제패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고착된 하나의 민족을 결정지어 놓고 출발하는 그러한 도리로써는 성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성인은 초민족적이고 초국가적입니다. 즉, 세계적입니다.

오늘날 마르크스주의니 무슨 주의니 하는 것은 하나의 철학입니다. 철학은 그 개인 아무개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것입니다. 철학은 지식의 기원을 통해 가지고 나오는 것이지 신과의 관계, 생명의 기원을 통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철학은 사람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탐구하는데 있어서 인성설을 주장했을는지 모르지만 생명의 기원은 어디서부터냐 하는 것을 추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문제를 추구하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 종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교주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시작되는 가르침은 교주 자신들을 중심삼고 가르친 도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늘을 위주로 해 가지고 가르친 도리입니다. 인간이 이러한 하늘의 법도에 따라서 살아야 된다는 내용의 가르침이 오늘날 세계 인류를 전부 포섭해 가지고 새로운 문화권을 형성해야 합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인은 일개 민족이나 국가권내에서 있을 수 있지만 성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위인과 성인이 다른 것이 뭐냐? 위인이 죽을 때에는 그 나라 백성들이 비통해 하지만 성인이 죽을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인의 자리에 섰던 사람들은 대다수가 '저 녀석은 나라를 팔아먹은 녀석이다'라는 비난을 들으면서, 나라 전체로부터 배반 당하고 나라 전체로부터 희롱당하는 자리에서 죽어 갔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어 본다면 예수님 같은 분을 유대교는 물론이요, 이스라엘 나라와 로마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죽음 길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간 길은 천도를 따라서 간 길이요, 가치 없는 인생으로서 간 길이 아니라 숭고하고 무한한 가치의 기준을 가지고 간 길이었습니다. 그 가치의 기준은 온 세계가 소망할 수 있는 중심 내용을 지닌 것이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은 기필코 인간이 찾아야 할 소망의 기준이요, 찾아가야 할 참된 길이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통해서 세계가 규합되어 가지고 오늘날 민주세계가 창건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공자 같은 양반도,‘위선자는 천보지이복하고(爲善者 天報之以福) 위불선 자는 천보지 이화니라(爲不善者 天報之以禍)'고했습니다. 막연하게 나마 하늘에 대해서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과 화합할 수 있고, 하늘에 조화되어 찬양할 수 있는, 전세계가 평등하고, 전세계가 같이 잘살기를 바라는 욕구의 기원이 어디 있느냐 할 때에, 여러분의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선에 바탕을 둔 마음이 바라는 것은 인류가 서로 원수시하고, 서로 싸우면서 피를 흘리고, 서로 죽이고 죽는 이러한 것이 아니라 자유와 평화와 행복이 깃든 가운데 서로 서로 우애할 수 있는 인연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소망입니다.

그런데 그 소망이 몸뚱이에서 나오는 것이냐? 아닙니다. 몸뚱이는 배고프면 자기 형님 누나 손에 있는 한 덩이밖에 없는 떡도 빼앗아 먹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몸뚱이에서 나오는 욕망은 그런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이건 어디까지나 마음의 소망입니다.

​10. 마음의 작용과 종교

​우리가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눈물을 흘리고 불쌍한 사람을 동정하고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의 편을 드는 것은, 몸뚱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 사람 마음이 좋다고 할 때 그 사람은 악한 사람이예요. 선한 사람이예요?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저 자기는 못 먹으면서도 남에게 주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희생하더라도 남을 위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못 하면 괴로워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그렇게 하느냐? 아닙니다. 마음과 몸은 근본이 다릅니다. 마음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보이지 않는 신(神)을 좋아합니다. 마음은 상대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나기 전에는 좋아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간들은 몸뚱이가 좋아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 무슨 정욕이니 향락이니 하면서, 한 때밖에 없는 꽃다운 청춘시대를 그냥 보내면 되겠느냐 하면서 몸뚱이를 위주해 가지고 혈기왕성한 청춘시대를 자랑하고 있지만 그런 것은 오래 가지 않아서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을 다 살게 되면 끝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향락의 길은 아무리 가 봤자 허무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바라는 세계의 기쁨이라는 것을 다 해볼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해볼 수도 없거니와 해보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것이 없느냐? 있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들은, 참다운 사람의 길을 가겠다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그러한 마음의 상대를 찾아 헤매는 것입니다. 이 우주를 창조한 신이 있으면 그 신은 천주의 중심이요, 절대적인 분입니다. 우리가 '그 신은 내 마음과 상대하신다' 이렇게 주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장하는 그 내용을 개인적인 것으로뿐만이 아니라 세계성을 이것으로 체계화시켜, 과거 현재 미래를 초월하여 인류의 새로운 소망으로 등장할 수 있는 하나의 사상적인 것으로 만들자 하는 것이, 즉 신을 중심삼은 새로운 사상적인 체제를 갖추어 보자 하는 것이 인류의 마음의 욕망입니다. 그 마음이 욕망하는 세계는 지금의 사회의 조직과 같은 형태의 세계가 아닙니다.

마음이 좋아할 수 있는, 내적인 세계와 같은 조직적인 형태를 갖추는 일을 역사 시대를 거쳐오면서 해온 것, 다시 말하면 양심을 가진 인간들이 바라는 배경, 배후의 터전을 역사시대를 통하여 남겨 나온 것이 무엇이냐 하면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 종교는 어느 한 민족에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종교가 한 민족 국가에서 생겨나긴 했지만, 그 민족의 종교뿐만 아니라 민족을 넘어서 세계로 연결되는 종교의 형태로 발전하는 걸 우리는 보게 됩니다.

마음은 국경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마음은 인간이 다 평등한 자리에서 같은 형제로서 우애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인간의 높고 낮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주권국가가 망하더라도 그 민족을 뚫고 넘어 다른 민족과 다른 나라에 퍼져서 세계적인 하나의 터전을 넓혀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종교권입니다, 이 종교권을 통해서 역사시대의 새로운 문화권이 성립되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를 배운 사람이면 잘 알 것입니다.

몸뚱이는 자기의 한계선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내가 배고프면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먼저 내가 먹고 싶어하는 것이 몸뚱이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몸뚱이를 중심삼고 자기라는 관념을 위주하여 엮어진 인연의 최대 판도는 무엇이냐 하면 국가입니다.

이 몸뚱이를 위주하고 국가를 형성한 국민들은 모두 무엇을 바라느냐 하면 자기 나라밖에 모릅니다.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 집밖에 모르고, 자기 나라밖에 모릅니다. 이 세 가지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자기도 부정하고, 가정도 부정하고, 나라도 부정하는 것입니다.

선이 가는 길이 그렇습니다. 선은 자기를 위주한 데서 출발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좋은 사람이다' 할 때, '네 것은 내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이다'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예요? 아닙니다. 좋은 사람 하게 되면 나에게 좋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마음 바탕이 순수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에게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 봤어요, 못 봤어요? 못 봤지만 있기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크냐? 마음이 얼마나 커요? 그 마음이 욕심대로 하게 되면 세계를 전부다 내 것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큰지 보세요.

하나님이 있으면 그 하나님도 내 것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내 것 만들려면 자격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을 관리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자기 것으로 만들든지 할 수 있지 자격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11.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인간

​이렇게 엄청난 마음이 있는데, 이 마음의 주체는 누구냐, 마음의 주인을 만나 봤느냐 이겁니다. 좋아하는 데는 혼자 좋아할 수 있어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혼자 앉아 가지고 히죽히죽 웃고 있으면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하고 몸뚱이하고는 서로 싸웁니다. 서로 싸우는 것은 몸도 마음이 싫고 마음도 몸이 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싫다고 하는 것은 그래도 서로 좋아할 다른 것이 있기 때문에 싫다고 하는 것입니다. 싫다는 것이 있는 걸 볼 때에 좋아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좋아할 것이 뭣이냐? 마음의 대상이 뭐냐? 마음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대상도 보이지 않습니다. 성인들은 그것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하게 되면 끝이 없습니다.

마음의 대상을 만났다고 하면 그 기쁨이 얼마나 크겠어요? 그 기쁨이 하루 이틀에 끝날 것 같아요? 얼마나 큰가 보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나님을 모셔 놓고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속 깊이 잠겨 있는 사랑까지도 딱 잡아넣고야 '헤헤' 하고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나에게 사랑을 줄 때도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랑을 원치 않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진짜 사랑을 나에게 몽땅 주어야 '헤헤' 하고 좋아합니다, 우리 아가씨들, 그렇지요? 세상에 부부들을 보더라도 '당신이 날 진짜 사랑하오? 할 때 그 진짜라는 것은 둘이예요, 하나예요?「하나입니다」 그러니 그 말은 '나 하나밖에 모르지요?' 하는 말인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마음이, 그 마음이 주인이 될 수 있는 터전을 갖고 좋아할 수 있다면, 얼마만큼이나 멋지게 좋을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적이겠어요?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세계가 다 거기에 녹아 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그런 주의가 이 땅위에 나오게 된다면 거기에 부딪치는 사람마다 꽃이 피고, 부딪치는 사람마다 향기를 풍기는 봄 절기가 될 것입니다. 사람이 그래 가지고 살아야 멋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통일교회 나오게 되면 그렇습니다. 여기가 용산구던가 ? 용산구, 이름은 좋은데 통일교회 방은 조그맣구만. 이 조그만 방에 들어 앉아 가지고 아주 뭐 엄청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나오기 전하고 나온 후가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학교가 파하면 그저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느라고 바빴는데 통일교회에 들어오고 와서는 왜 그런지 마음이 '야야 교회 가라. 교회 가라' 그런다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옛날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아침에 눈뜨고 밥만 먹으면 학교로 가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교회에 들어온 후에는 학교를 가는 것도 할 수 없어서…. 그리고 가는 데도 교회를 거쳐서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기 학생들, 그런 마음이 안 들어요? 그런 마음이 없는 사람은 통일교회 교인이 아닙니다.

또, 집에 가서 가만히 있으면, 집에는 어머니 아버지 다 계시고, 먹을 것 다 있고, 방도 좋고, 없는 것이 없이 다 갖추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컬컬하고 교회에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보기도 싫은 이곳이지만. 그래도 여기 교회에 오게 되면 좋다는 겁니다, 집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 느껴져요, 안 느껴져요? 그런 것이 안 느껴진다면 통일교회 교인이 아닙니다. 다 허수아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것을 몸뚱이가 느껴요, 마음이 느껴요?

몸뚱이로 말하면 자기 집이 더 편합니다. 집에서는 먹는 것도 좋은 것을 먹지만 여기에서는 깍뚜기밖에 없습니다. 김치도 있다면 형편없는 것이고, 그것도 없어서 소금에 찍어 먹거나 총각김치 하나 가지고 밥 한 그릇 먹으면서도 이 밥이 맛있다고 싹싹 긁어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게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거 왜 그래요? 몸뚱이가 좋아서 그래요, 마음이 좋아서 그래요? 보이지 않는 마음이 좋아해서 그런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 마음이 주인을 만나 가지고 마음의 본향을 찾아갈 수 있고, 마음의 나라를 찾아갈 수 있고, 마음의 세계를 찾아갈 수 있는 길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산골에 들어가서 구덩이를 파고 농사를 짓던 사람이 자기 고향에 간다고 할 때, 산골 집을 나오는 그 마음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기분이 좋다는 겁니다. 지금 출발하는 곳은 산골이지만 고향에 간다고 생각할 때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왜 좋으냐 하면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올바른 것인 줄을 마음이 알기 때문에 마음의 안테나를 중심 삼고 전파를 주고받게 되면 무리없이, 상충없이 자꾸 돌아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나오는 겁니다. 마찬가지 이치라는 거라구요.

인간에게 있어서 이 위대한 마음이, 엄청난 이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주체를 만나 가지고 그와 더불어 영원히 행복을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 봤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처녀들이 시집 가 가지고 사랑받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한 자리는 그야말로 귀한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석가모니 같은 양반은 천상 천하에 유아독존(天上天下 有我獨存)이라고 했습니다. 온 천지간에 나만이 귀한 존재다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알고 보니 나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 멋지지요? 국민학교 졸업도 못한 여자가 대통령의 부인이 되었다면 그 여자가 대통령을 대해서 '여보' 하고 부를 수 있어요, 없어요? 할 수 있지요? '당신이여' 할 수 있어요, 없어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격으로 보면 남편은 대통령이고 부인은 국민학교도 못 나왔지만 한 가정의 부부로서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중심 삼고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보다도 위대한 것입니다.

사랑은 생명보다도 위대한 것이요, 국가를 넘을 수 있고 세계를 넘을 수 있는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 삼은 인연이라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생명을 걸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지식과는 다릅니다.

인간의 가치를 두고 볼 때, 박사학위를 몇 개씩 가지고 있는 대학교의 교수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농부하고 어떤 사람이 더 가치 있느냐 할 때에 학·박사가 더 가치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농민이라고 해서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생명이라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도리어 순수한 가치로 보면 농민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지식에 있어서는 학·박사가 더 나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순수한 면에 있어서는 농민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생명의 가치를 중심 삼은 사랑은 우주와 통하고 온 천하를 꿰뚫고 넘어갈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중심 삼고 볼 때, 우리는 마음의 주체와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2. 여러분 개개인은 새로운 나라와 세계의 터전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개인과 개인이 있으면 기뻐할 수 있는 부부가 생겨날 것입니다. 즉,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주체 되시는 하나님이 있고 그 하나님을 좋아하는 남자와 여자가 있으면, 그들이 만나 이룬 가정이 있게 될 것입니다.

마음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 좋아하는 남자 여자가 이룬 가정이 있으면, 그 가정은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가정뿐만이 아니라 그런 가정이 모인 김씨면 김씨의 친척이 있게 될 것이고, 그런 친척이 합하여 씨족을 이루게 될 것이며, 그 씨족이 많아지면 민족을 이루게 되고, 나아가 국가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이루어진 국가가 갈래갈래 나눠질 수 있어요? 갈래갈래 나눠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 통일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개인에게 있어서는 마음을 중심 삼아 가지고 몸뚱이를 지배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싸움에서 마음이 패배하게 되는 날에는 지옥에 가는 겁니다. 악에 떨어졌기 때문에, 악에 부딪쳐 가지고 고장이 났기 때문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옥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쓰레기통입니다. 인간 쓰레기통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은 내 개체를 중심 삼고 몸뚱이의 상대를 위주로 해서 살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대되는 하늘을 중심 삼고 완전히 주고받아 하나되어야 합니다. 몸뚱이를 중심 삼고 인간 끼리끼리 맺어진 사랑보다도 신을 중심 삼고 맺어진 사랑이 훨씬 강한 것입니다.

이처럼 내적인 마음의 힘이 강하여 외적인 몸의 힘이 침범할 수 없게 될 때, 비로소 악의 침범을 벗어난 완전한 사람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이 되어서 그러한 가정을 이루고 그러한 민족을 이루고 그러한 국가를 이루고 그러한 세계를 이루자는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그러면 현재의 통일식구들은 어떠한 입장에 있느냐 할 때, 현재의 우리 통일식구들의 수는 적지만 우리가 짊어진 역사적인 책임은 엄청납니다. 세계에 수많은 인간들이 있지만 그 책임을 짊어지고 나선 사람들은 보잘 것 없는 소수의 우리 통일의 무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가 바라는 나라도 다르고, 우리가 바라는 세계도 다르고, 우리가 생활하는 표준도 다르고. 우리가 생활하는 내용도 다릅니다. 판이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된 가정을 이루어 참된 선의 조상이 되자는 것입니다. 선한 조상이 되어 가지고 선한 후손들을 남겨 놓자는 것입니다. 선한 후손들을 남길 뿐만이 아니라 선한 나라를 위해서 싸우고, 선한 나라뿐만 아니라 선한 세계를 위하여 싸우자는 것입니다.

현재에 연결되어 있는 악한 세계와 악한 나라에 의해 밀려 나가는 선한 입장에 설 것이 아니라 이것을 밀어낼 수 있는 주체적인 선한 입장에 서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제한된 한계권내에서 생활을 하지만 마음 세계에 있어서는 악한 나라와 악한 세계를 밀어내고, 우리가 바라는 참된 나라와 참된 세계를 생활 속에서 쌓아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만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형제 아닌 형제로서 모였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형제 아닌 형제들입니다. 김씨, 박씨 등 각양 각색의 성씨들이 모였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은 세상의 혈통을 통해서 맺어진 형제보다 낫지 않고는 가짜입니다. 또, 우리는 세상의 부모 아닌 부모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부모 아닌 부모를 모시는 자녀의 입장에 있지만, 세상의 혈육을 받아 연결된 부모와 자녀 이상 하나 못 되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오늘 이 악한 세계의 혈육을 중심 삼고 연결되어 있고, 그 뒷받침이 되어 있는 정적인 문제를 중심 삼고 연결되어 있는 가정 이상의 가정이 나오지 않고는 이 악한 세계에서….

그런 새로운 가정이 나오지 않고는 새로운 민족이 나올 수 없으며, 새로운 민족이 나오지 않고는 새로운 국민이 나올 수 없으며, 새로운 국민이 나오지 않고는 새로운 나라가 나올 수 없으며, 새로운 나라가 나오지 않고는 새로운 세계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세계의 터전이 될 수 있는 존재는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여러분 개개인입니다. 나라가 그 터전이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민족이 그 터전이 되는 것이 아니고 가정이 그 터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의 터전은 '나'입니다. 가정이 모여서 종족이 되니 종족의 터전은 가정입니다. 종족을 규합해서 민족이 되니 민족의 터전은 종족입니다. 종족을 터전으로 해서 민족이 되고, 민족을 터전으로 해서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상의 그 어떠한 종족보다도 단결된 철옹성 같은 종족, 어떠한 민족보다도 단결된 민족, 어떠한 국가가 침범할 수 없는 단결된 국가가 오늘 통일교회 식구로 말미암아 형성되지 않는 한 하나님이 바라는 새로운 세계, 지상 천국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언제 결정하느냐? 어느 때 결정하느냐? 내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서, 우리 통일식구의 현재의 생활에서 여러분 개체를 중심 삼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올 세계가 보장할 수 있는 '나' 앞으로 올 나라가 입증할 수 있는 ‘나', 앞으로 올 국민이 지지할 수 있는 '나' 앞으로 올 종족이 보증할 수 있는 '나' 앞으로 올 가정이 찬양할 수 있는 '나' 그 가정이 터전을 잡을 수 있는 '나', 결국은 내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기에 열 사람이 있으면 열 나라를 중심 삼은 대표자라는 입장에서 사랑하라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 여기 용산교회에 모인 사람이 한 50명 정도 되는데, 이 50명을 매일같이 보는 김 아무개 박 아무개, 무슨 박양, 이양으로서 알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개인이로되 한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대표자로 알라는 겁니다. 50명이면 50국가의 대표자들로 알아야 되는 겁니다.

13. 서로 초민족적 감정을 갖는 훈련을 해야 할 때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서로 사랑해야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서로 사랑함으로써 국가를 초월하고, 민족 감정을 초월하고, 오색 인종적 감정을 초윌하여 거기에 간막이 되어 있는 모든 것을 완전히 헤쳐 버릴 수 있는 심정적 훈련을 현재의 입장에서 여러분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처녀 총각이 있으면. 단순히 처녀 총각으로서 생각하지 말라 이겁니다. 30억 인류를 대표한 하나의 총각이요, 30억 인류를 대표한 처녀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이 원하는 영원한 주체 되시는 하나님을 중심 삼고, 하나님과 더불어 생각하고, 사모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이래도 같고 저래도 같으니 존경할 수밖에 없는 남자 여자로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 가지고 가정을 이루면 그 가정이 얼마나 멋지겠어요?

그 부부가 사랑하면서 '우리는 하늘땅을 대표한다. 여자가 남극을 대표한다면 남자는 북극을 대표한다.' 또 '남자가 동쪽을 대신한다면 여자는 서쪽을 대신한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 부부가 사랑하여 안팎으로 하나되는 것은 온 세계 만민을 대표한 종합적인 사랑의 주체로서, 사랑의 대상으로서 사랑하면 하나되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를 우리 품에서 사랑하고 세계 인류는 우리 사랑권 내에서 산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부부가 되면, 그런 부부에게서 아들딸이 태어난다면 어떠한 아들딸이 태어나겠어요? 여러분, '태교'라는 말도 있지요? 거기에서는 멋진 아들딸이 태어나는 겁니다.

성인은 어떤 사람이냐? 신을 중심 삼은 도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라야 성인의 반열에 동참할 수 있는 겁니다. 통일교회도 그렇습니다. 인간을 위주하고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구요. 절대자이신 신이 있으면 그 신을 중심 삼고 가르쳐 주는 겁니다. 그 신은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세계를 찾고자 하십니다. 대한민국도 귀하지만 세계의 모든 국가를 찾고자 하십니다.

세계의 모든 국가가 악하더라도 그 가운데서 선한 사람을 세워서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양 각색의 족속들이 다 모였습니다. 여러 족속 가운데서 뽑혀 가지고 하나의 나라를 추구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일개 국민이 아니라 세계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구하는 데는 한꺼번에 다 구할 수 없습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 중에서 좋은 사람들을 모아서 하나님이 좋아하는 민족을 만들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나라를 만들고,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 선 하나님이고, 그런 하나님을 주체로 삼고 그 하나님의 뜻을 성사시키기 위한 세계 이념을 갖고 나온 우리 통일교회라면, 동서남북으로부터 뽑혀 온 우리는 민족적 대표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같은 말을 쓰고 있고, 감정이 통할 수 있는 생활환경을 갖고 있지만 초민족주의자들입니다. 그러니 '나는 중국사람이다. 나는 서양 사람이다' 하는 관념을 가진, 실지로는 관계가 없는 우리 식구들이 관계를 맺어서 그러한 감정을 가지고 그런 때가 되더라도 넘어설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50명이면 50개 국 사람들이 모였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형제 아닌 형제가 모여 부모 아닌 부모를 모시고, 하나의 결속된 가정 형태와 하나의 결속된 종족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변함없이 그 나라를 향하고 그 세계를 향하여 가는 길에 있어서 탈선하지 않고 직행해 가야 합니다.

​14. 몸이 하자는 대로 할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해야

​통일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사탄들은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가 걸어오면서 욕을 먹은 겁니다. 지금까지 별의별 소문이 다 났습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가면 뭐 달라붙는 전기 장치를 하고 요술을 한다, 벌거벗고 춤춘다, 문선생한테 반해서 간다는 등 말들을 많이 들었지요? 문선생한테 반할 게 뭐예요? 문선생한테 반한 게 아니라구요.

마음이 그리워하는 최고의 주체 되시는 진짜 상대를 만났으니,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주체를 만났으니 밤이나 낮이나 가고 싶은 것입니다. 가고 싶어서 마음이 요동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의 소리를 듣습니다. 영계를 통하면 그 소리가 들려요. 마음이 넘어가고 싶어서 '아이구 가고 싶다'고 소리치는 것이 들려요. 들리면 영계를 통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들이 어린 아기가 배가 고파서 떼를 쓰면서 엄마 젖을 그리워하는 이상으로 간절히 보고 싶어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몰라 가지고는 통일교회 교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체험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립고 보고 싶다 할 때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간절하게 되면 다 들려오는 겁니다. 라디오와 같이 그렇게 통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가만히 앉아서 대통령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만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살아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마음의 주체와 더불어 천지를 무대로 해서 세계 인류를 친족으로 삼고 사는 데에 멋들어진 인간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마음은 그 세계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여러분의 마음의 주체가 없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타락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몸뚱이의 상대될 수 있는 기반은 가졌지만 마음의 상대될 수 있는 주체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찾아 헤매 온 것이 지금까지의 인생의 행로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찾았다 할 때의 자극은 몸뚱이의 제한된 감정을 가지고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 연결되어 들어오는 자극은 입체적이요, 무한한 것입니다. 한계선이 없습니다. 들어가고 들어가고 또 들어가도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무한한 세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세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러한 세계가 인간 앞에 있는 것을 아는 마음은 그 세계를 얼마나 동경하고 얼마나 그리워하겠는가를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런 곳에 가려면 마음에 상치되는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할 것이 아니라, 몸뚱이를 잡아채어 끌면서 마음이 하자는 대로 통일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현재의 통일교회 식구인 여러분은 개체로 있지만 개체가 아닙니다. 내가 개체라 하더라도 나는 나라를 대표해서 있는 겁니다. 나 혼자 남아 있더라도 나는 나라를 대표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어떤 나라냐 하면 마음의 나라입니다.

마음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누구냐 하면 마음의 아버지입니다. 그 마음의 아버지와 가까이에 있는 내가 아버지와 합하여서 마음의 부자, 부녀로 만나 가지고 서로 서로 기뻐할 수 있는 본향, 본연의 동산을 그리워하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이것을 찾아 가지고 비로소 안식하게 될 때에 모든 만복이 여기에 깃드는 것이요, 만인간의 욕망이 여기에서 다 성취되는 것이요, 행복의 기원이 여기서부터 새로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통일교회 현재의 입장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현재의 이 입장이 나타나기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하셨느냐 하면 자그마치 6천년 동안을 수고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복귀 역사를 중심 삼고 계산할 수 있는 연수입니다. 그 전의 역사는 몇십만 년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이런 오랜 역사를 통해서 이럴 수 있는 한때를 마련하셨습니다.

우리 시대에 인간의 소원과 하나님의 소원의 접촉점이 이루어지고, 우리 환경권내에서, 평면적인 사회생활권내에서 하나님의 소원과 인간의 소원이 접선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세계적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사상은 세계를 제패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바입니다.

​15. 현재의 나의 입장과 가치

​그러면 현재의 나의 입장과 가치를 볼 때, '나는 나라를 대표했다. 나는 하늘땅을 대표했다. 나는 아버지를 대표했다'고 하는 그런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살아 남아 있는 한 아버지가 바라는 새로운 가정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 남아 있는 한 아버지가 바라는 종족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 남아 있는 한 아버지가 바라는 나라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시일이 문제이지, 내가 살아 있는 한 아버지가 바라는 세계는 나로 인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늘을 대신하고 하늘나라를 대신하는 입장입니다. 나는 나라를 대신하고 민족을 대신하고 가정을 대신하고 나아가 승리적 나라를 대신하는 입장인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천상천하에 유아독존(天上天下 有我獨存) 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형제간에도 열 형제가 있으면 그 형제 가운데서 화목을 잘하게 하는 형제가 있습니다. 이 형님, 저 형님, 이 동생, 저 동생을 모두 좋게 하는, '야, 개가 없으니 섭섭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와 같은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기 용산지구에서도 '아무개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 지구장도 '재미가 없다', 학생들도 '재미가 없다', 아줌마들도 '재미가 없다', 처녀들도 '재미가 없다', 아저씨들도 '재미가 없다' 하면서 그가 안 오면 '아무개 안 오나' 하며 기다리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있으나 없으나…' 그런 사람은 틀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서도 좋아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더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유입니까, 무입니까? 여러분은 있으나 없으나 한 무가치한 존재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녀석은 생각이 그릇돼 있어요. 그런 녀석들은 자기를 위하여 이용하려고 하는 녀석들이라구요. 그런 녀석은 그 누구도 절대로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 대신이요, 세계 대신이요, 국가 대신이요, 민족 대신이요, 가정 대신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별의별 일을 다 했지. 공산당 세계에 들어가서도 감옥 생활을 했고, 민주 세계에서도 감옥 생활을 했고, 일본에서도 감옥 생활을 했고, 이 대한민국에서도 감옥 생활을 했지만 그런 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 아무리 큰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아니면 안 된다. 대한민국 그 누구라 하더라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티어 죽지 않고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선생님이 필요합니까? 얼마나 필요합니까? 이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쓰다 남은 무슨 종이 짜박지만큼 필요해요, 신다 벗어 내버린 신짝만큼 필요해요? 나 그거 싫습니다.

재미없어 매일같이 싸우는 남편만큼 필요해요? 나 그거 싫어. 하다 말고 그만둘까 말까 하는 사정 만큼 필요해요? 나 그거 싫습니다. 대통령 중심삼고 서로가 사기 모략해 가지고 뭐 해먹겠다고 할 때 그 대통령만큼 필요해요? 나 그거 싫어.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의 입장은 싫습니다. 그 이상으로 필요해야 됩니다.

인간 몸뚱이 중심 삼고 바라는 것은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몇 해가 지나가게 되면 몸뚱이의 인연과 더불어 다 흘러가 버리는 겁니다. 마음은 늙어요, 안 늙어요? 여기 50 넘어 보이는 아저씨, 마음이 늙어요, 안 늙어요?

저렇게 50이 넘었어도 마음은 아가씨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난다는 것입니다. 노인들과 얘기하는 것은 재미가 안 난다는 겁니다. 마음은 언제나 봄동산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뭘 말하느냐 하면 마음은 늙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몸뚱이의 인연은 몸뚱이가 늙어지면 인연이 끊어지게 되고 흘러가 버리지만, 마음의 인연은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 영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젊어 가지고 꽃이 되어 향기가 풍기듯이 주체와 대상이 좋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가지고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그 자리에 한번 들어가 보면 얼마나 좋을까 !

통일교회 문 선생은 그런 맛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욕을 먹고 별의별 수난을 겪으면서도 지치지 않고 후퇴하지 않고 버텨 나왔습니다. 망할 줄 알았던 통일교회가 발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용산지구는 크지 않지만…….

여기 이렇게 이게 뭐예요? 다음에 올 때는 이걸 전부 헐어 치워 버려야겠어요. 나라를 대표한 패들이 이게 뭐예요? 나도 이북에서 나올 때는 주먹 갖고 나왔습니다. 감옥에서 나올 때는 수의(囚衣)를 입고 나왔습니다.

일전 한푼 없이, 그러나 이제는 내가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뭐 부러울 게 없을 정도로 기반 닦아 놨습니다. 여러분이 도와줬어요? 내가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신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신세지고 살지 말자는 것입니다.

'본부에서 좀 도와주면 좋을 텐데. 본부에서 다른 지구는 도와주는데 용산지구는 지구장이 못났기 때문에 본부의 원조도 못 받아온다. 저 지구장은 무능력자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죽어야 돼요, 안 그래요? 그렇게 생각할 게 뭐예요? 본부 대신 내가 도와주고 내가 능력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 얼마나 좋아요?

마실 것을 단 것만 갖다 놨구만. 물을 좀 갖다 놓지. 매운 것도 필요하고, 짠 것도 필요하고, 신 것도 필요한데 전부 다 단 것만 갖다 놓았군. 어디나 가면 이런 단 것만 갖다 줘요. 며칠 동안 순회를 하게 되면 자기들은 정성을 다한다고 해 가지고 이런 것만 갖다 줍니다.

물이 제일 맛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이 집 가도 이렇고 저 집 가도 이렇습니다. 나중에는 보기만 해도 싫증이 납니다. (웃음) 여름에 순회를 하게 되면 어디 가든지 수박뿐입니다. 어떤 때는 수박이 원수 같다고요.

​16.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라

​여러분은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믿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보고 나를 믿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을 믿지요? 옛말에 '인심은 조석변이요. 산천은 고금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연 산천은 변하지 않는데 사람의 마음은 아침 저녁으로 변한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그래요?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마음은 더 잘 변하지? 자기가 자기를 못 믿는 주제에 '하나님 날 믿어 주십시오' 한다고 해서 그거 믿어 줬다가는 하나님이 망합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그건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믿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어느 누가 뭐라 하든 내가 나를 믿고 내가 결심한 바를 믿는 것입니다. 나라의 주권자가 반대하더라도 내가 하늘 앞에 맹세한 것을 실천하는 것은 선입니다.

감옥에 들어가서도 절개를 지키고, 사생결단하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지조와 절개를 가지고 '나를 죽이시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겠다고 약속했던 사나이의 약속은 변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야 쓸 만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믿을 수 있어요? 여기 젊은 녀석들, 내가 한번 시험해 보겠습니다. 내가 기동대를 만들어 사방천지에 내보내는 겁니다. 진짜 너를 믿겠느냐, 하늘이 믿게끔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건 단시간에 시험할 수 있습니다. 여기 젊은 사람들 자신 있어요?

좋은 것이 있으면 눈을 조그맣게 뜨고 살랑살랑해 가며 움직이는 솔솔이떼들, 이건 뿌리도 없는 것입니다. 왔다갔다 왔다갔다하는 이런 뱀 같은 패들은 사람 축에도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디 가나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말도 살랑살랑 눈치를 봐 가지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대번에 발길을 돌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번 결심한 바는 죽어도 지켜야 합니다. 약속을 했으면 망해 자빠지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러면 그의 아들딸들은 흥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통일하는 데 이랬다 저랬다 해 가지고 통일할 수 있어요? 통일의 통자는 거느릴 통(統) 입니다. 중심이 되어 본을 보여 주고 그것을 믿고 따를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하는 데에서부터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익보려고 오는 녀석들은 그렇게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야 됩니다. 이러한 기준을 가져야 됩니다. '현재의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위해서 산다. 하늘을 소개하는 데는 나 아니면 안 된다. 세계 30억 인류 가운데 나 아니면 하늘을 소개할 자가 없다. 우리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세계 30억 인류가 총칼과 원자탄을 전부다 동원하여 가지고 우리를 습격하고 폭격하더라도, 후계자를 세워서 일을 수습하는 일이 있더라도 변함없는 지조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중심적인 주체성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 가지고는 통일식구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 지구장이 이랬다 저랬다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쫓아내야 됩니다. 좋을 때는 하나님이 좋다고 '헤헤' 하고, 조금만 핍박받으면 '아이구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으면, 나는 후퇴하고 식구들만 내세울걸' 한다면 그는 믿을 사람이 못 됩니다. 좋을 때는 누구나 다 안심하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에 하나되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17. 물질, 생명, 사랑의 위협을 극복해야

​어려운 일은 어떠한 것이냐 하면 경제적인 위협을 받을 때, 생명에 대한 위협을 받을 때, 사랑의 위협을 받을 때, 이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3대 위협입니다. 알겠어요? 돈에 대한 위협, 생명에 대한 위협, 사랑에 대한 위협, 이것이 인간 사회의 최대의 위협의 대상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뜻을 위해서 물질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느냐? 뜻을 위해서 생명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느냐? 뜻을 위해서 사랑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느냐? 물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뜻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건 문제가 안 됩니다. 자기가 먹고 사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고생하지요? 축복받은 아줌마들은 일선으로 출발이다 할 때 그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살림살이 다 잃어버렸지요? 남편을 잃어버렸지요? 자식들을 다 집에 두었지요?

자기 생명까지도 몽땅 부정하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가정 주부에게 있어서 생명의 기준이 어디 있어요? 가정 주부에게는 자기 남편이 생명의 기준인데 일선에 나감으로써 그것을 다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고생해 가지고 재미있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을 한꺼번에 다 들이 박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뜻을 위해서는 못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이라면, 뜻을 아는 무리들에게 있어서는 회사가 문제가 아니라구요. 뭘 많이 갖는 게 문제가 아니라구요. 이혼 당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구요.

아까 얘기했지만 하나님의 복귀 역사는 재창조 역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과 아들과 부부의 인연을 세우고자 한 것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었는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찾기 위한 역사라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유혹을 받은 것이 타락입니다.

그 다음에는 개인 완성을 해서 하나님의 아들인 생명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못 되었으니, 생명에 대한 유혹을 받은 것이 타락입니다. 또, 완성한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축복을 못 받았으니 사랑에 대한 유혹을 받은 것이 타락입니다. 3대 목적, 즉 물질과 생명과 그 다음에는 사랑을 지금까지 하나님이 다시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것을 나 자신을 두고 볼 때, 내 생활에 있어서 어떻게 되느냐? 구약시대는 물질적 시대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신앙의 소생권내에는 물질이 있습니다. 그 다음 장성권내에는 자녀가 있습니다. 그 다음 완성권내에는 부모가 있습니다. 부모는 사랑을 대표합니다.

그것이 우리 생활 환경권내에서 6천년의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 역사를 표방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6천년의 종적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한다고 했지요?(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이것이 소생시대, 장성시대, 완성시대입니다.

구약시대는 물질의 시대입니다. 그 다음 신약 시대는 아들의 시대, 생명의 시대입니다. 인격 (人格)시대, 자녀의 시대입니다. 성약시대는 부모의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물질과 생명과 그 다음에 부모를 위협합니다. 부모는 사랑입니다. 요것이 여러분 앞에 딱 걸려드는 거라구요.

뜻 앞에 있는 여러분에게 물질이 문제입니까? 통일교회 아주머니들에게 패물이 문제입니까? 지금 아들이 죽게 됐는데, 자기 남편이 죽게 됐는데 패물이 문제예요? 그건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물질을 희생시켜야 됩니다. 요렇게 되는 거예요.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는 아들을 희생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리예요, 도리.

하나님이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아들을 보내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들과 사랑으로 연결지어 그 사랑이 아들에게 전해짐으로 말미암아 아들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만민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생활권내에 있어서 물질과 자녀와 부부, 다시 말하면 물질과 생명과 사랑은 불가분의 것으로서 언제나 필요 불가결하다 이겁니다.

기성교회에서는 세상을 버리고 천당가려고 하지요? 이걸 알아야 돼요. 하늘만 위주하는 것도 반쪼가리요, 세상만 위주하는 것도 반쪼가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세상 일을 겸해 가지고 하나로 만드는 것이 완전한 것입니다. 통일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 그렇게 되는 데는 무엇을 중심 삼아야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뜻 앞에, 물질 앞에 내가 모범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식 앞에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물질보다도 뜻을 중요시하지 않으면 걸리는 것입니다. 자식보다도 뜻을 중요시하지 않으면 걸리는 것입니다. 자기 남편보다 자기 아내보다 뜻을 더 중요시하지 않으면 걸리는 것입니다.

왜 뜻보다 더 중요시해서는 안 되느냐? 타락권내의 물질이요, 타락권내의 인연을 통하여 맺어진 자녀요, 타락권내에서 이루어진 부부이기 때문입니다. 타락권내의 내용을 가지고는 하늘과 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걸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천국갈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이 세 가지를 극복한 사람입니다. 이 세 가지를 극복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갑니다. 그리고 천국갈 수 있는 사람은 남을 위해서 산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팔아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라고 했던 것입니다.

​18. 물질과 사람과 나라를 누구보다 귀히 여기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 물건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물건은 응당히 교회의 물건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주체적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언제든지 그 물건을 돌려보내야 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은 자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것이고 세계의 것입니다. 내 것은 세계의 것인 동시에 대한민국 것이고, 우리들의 것입니다. 다만 대한민국 자체가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중간적인 책임자의 입장에서 관리한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 안 하거든요. 나라가 원하게 될 때는 집안이 다 망하더라도 그 물건을 나라에 바쳐야 됩니다. 그것이 도리입니다,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식도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위해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것입니다. 자식을 바쳐 가지고 안 되거들랑 자기 부부까지도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이러한 기준에 서지 않고는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못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지금까지 그런 싸움을 해 나온 사람입니다. 그 싸움을 해 나왔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 부러운 것이 없지만 지금도 그런 생활을 한다는 거예요.

누가 돈을 어디에 물쓰듯 썼다고 해서 그것을 놓고 파고들어 밝혀내고 뭐 추궁하지 않습니다. 내가 믿고 주는 것입니다. 하늘 것으로 믿고 바쳐진 물건이기 때문에 그 물건을 잘 다루는 사람은 복을 받지만 못 다루는 사람은 벌을 받는 것입니다. 대번에 벌받는다는 것입니다.

내 물건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식구들에게 돈을 줄 때는 덜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 정성이 담긴 마음과 더불어, 그 마음 이상으로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마음 이상으로 주어야 하는 것이 물질입니다. 통일교회의 여러분은 그러한 심정적 기준을 가져야 됩니다.

타락한 세계의 나라와 타락한 세계의 어떤 사람보다도 물질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나라를 귀하게 여기고, 세계를 귀하게 여김으로써 하나님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현재에 있어서의 여러분이 통일교회 식구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임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19. 선악의 기준

​그러면 여러분이 교회에 나올 때, 여기에 있는 식구들, 이런 정도의 식구들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 나올 때는 자기 부모 처자를 전부다 데리고 나오라는 겁니다. 자기 형님 누나 다 데리고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이 어머니 아버지, 자기 사촌이나 사돈의 팔촌까지 전도하기 위해서 얼마나 피눈물을 흘려 봤느냐? 그 한 생명을 끌어 주기 위해서 밤을 세우면서 정성을 들여 기도하면서 자기 일신을 제물삼아 얼마나 몸부림쳐 봤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처한 환경에 있어서 중심이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중심이 되어 가지고 나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한 가지만 더 얘기합시다. 그러면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이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악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악해 가지고는 중심이 못 되는 거예요. 선한 사람은 흥해야 되고, 악한 사람은 망해야 됩니다.

어느 살인 강도가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볼 때에, 자신도 살인 강도이지만 화면에 강도가 나온다면 그 강도가 강도질 하기 전에 순경에게 잡히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강도가 잡히면 잘 되었다 그런다는 것입니다. 강도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강도도 악한 녀석은 싫어한다는 겁니다.

또, 자기는 아무리 살인강도라도 자기 자식들에게는 '이놈의 자식들, 너희는 그러면 안 돼. 절대 그런 나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부모는 교육을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왜 그러느냐? 악은 망하고 선은 남아지기 때문입니다. 악은 순간 가다가 쓰러지는 것이지만 선한 것은 영원히 가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 어떻게 아느냐? 우리 한번 생각해 봅시다. 학생들을 중심 삼고 생각해 보면, 친구들 중에서 좋은 친구는 하루 하루 만나다가 며칠 동안 못 만나면 만나고 싶지요? 만나고 싶어요, 안 만나고 싶어요? 만나고 싶지요? 안 나타나면 그 녀석이 왜 안 나타나나 알아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친구를 좋은 친구라고 하는데 보편적으로 좋은 친구라 할 때는 어떤 사람이냐? 나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냐, 나에게 덕을 입히는 사람이냐? 어떤 사람이라구요?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예요, 덕을 입히는 사람이예요? 덕을 입히는 사람입니다. 덕을 입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나 때문에 자기는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이익을 보게끔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선은 무엇이냐? 자기를 중심 삼고 자기를 위하려는 자리에서는 선한 종자가 나올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자기를 중심 삼고 이익보겠다는 패들 가운데는 선한 종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그 말이지요?

자기를 중심 삼고 나를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예요, 악한 사람이예요? 그는 악한 사람입니다. 남의 빚을 져 줄 수 있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 이겁니다. 남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이익보겠다는 녀석은 악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나에게 있어서 좋고 나쁜 사람은 무엇을 중심 삼고 보느냐 하면 나에게 갖다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요, 나에게서 빼앗아 가는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를 중심 삼고 볼 때에 나에게 갖다 주는 사람은 갖다 주는 만큼 손해보는 것이요, 나에게서 빼앗아 가는 사람은 빼앗아 가는 만큼 이익을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느 쪽이 선한 사람이냐 하면 손해보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선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선악의 기준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선한 길을 가려고 할 때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심부름시키고 이용해 먹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 가운데 선한 녀석이 있는가 찾아보라 이겁니다.

이용해 먹겠다고 하는 녀석이 선한 녀석이예요, 악한 녀석이예요? 요런 녀석은 악한 녀석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이용당하겠다 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런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20. 전체를 위해 희생하면 흥하고 중심 존재가 돼

​그러면 왜 악은 망하고 선은 흥하냐? 이것을 여러분 자신을 놓고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나를 중심 삼고 볼 때에 악한 사람이 내 것을 한 번 빼앗아 가고 두 번 빼앗아 가고 자꾸 빼앗아 가면 내가 따라가겠어요, 도망 가겠어요? 내 것을 한 번 빼앗아 가고, 두 번 빼앗아가고, 또 세 번째 빼앗아 가려고 하면 내가 도망가게 되요, 따라가게 되요? 도망갑니다.

그럼 둘이 있다가 내가 도망가니까 그는 혼자가 돼요, 둘이 돼요? 그는 고독단신이 되는 것입니다. 고독단신이 좋아요, 안 좋아요? 자기 좋기만 바라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자기 욕심만 부리는 녀석에게서는 친구 열사람이 있으면 열 사람이 다 도망갑니다. 열 명이면 열 명이 다 도망가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다 도망가고 혼자 되니 어떻게 되겠어요? 자기까지 늙어서 죽으면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죽으면 '그 녀석 잘 죽었다. 어이 시원하다. 그 녀석 잘 죽었다'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이렇게 자기 위주하는 사람은 열 친구가 있으면 열 친구를 다 잃어버리고 혼자가 되어 무너져 없어지고 맙니다. 그렇게 되니까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내가 남을 위해서 누구에게든지 희생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내게서 친구들이 떨어져 나가겠어요, 안 떨어져 나가겠어요? 그 친구들이 선전해 가지고 자꾸 '닐리리 동동' 붙여 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게 되면 자꾸 친구들이 불어나기 때문에 흥하는 겹니다. 마을을 위해서 밤낮없이 수고하는 사람이 있으면 맨 처음에는 그를 비웃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저 녀석 괜히 저러지. 남자가 되어 가지고 저게 뭐야. 어디 며칠 가나 보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년, 이년, 삼년…, 끝까지 그 동네가 그 사람의 신세를 지게 될 때에는 그 동네가 그 사람을 좋아해요. 나빠해요? 신세를 진 후에는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천지의 이치가 받았으면 줘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공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좋아 안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그 부락을 위해서, 전체를 위해서 수고하고 나면 나는 어떻게 되느냐? 나는 하나도 없는 거지가 되고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부락 전체가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끝까지 부락을 위해서 수고하게 되면 그 부락 전체가 나에게 몽땅 점령당하는 겁니다. 끝에 가서는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종교는 끝날을 바라보며 희생해라. 희생해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무서운 작전입니다. '남을 위해 적선해라. 적선해라' 하는 것이 망하라는 것이요, 홍하라는 거예요? 흥하라는 것입니다.

원수까지도 위해서 기도하고 생명을 주면서 축복하며 가는 기독교에게는 원수 나라의 사람들도 달라 붙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운동은 세계적으로 커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이 종교가 세계를 점령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부락에서 그렇게 희생하고 나가게 되면 그 부락 전부가 자연히 그 사람의 신세를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는 그 부락에서 이 사람을 그 부락의 대표자로 세우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당신이 제일 좋으니 당신이 우리를 지도해 주소' 하며 자청해서 중심존재로 추대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집안에서도 자기 식구가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을 위해서 있는 정성을 다하고 희생하다 보면 중심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보다도 식구 전체 앞에 더 희생하게 되면 아버지 어머니도 우리 집에는 아무개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하고, 형님 누나도 모두가 기쁨으로 아무개를 중심존재로 세우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틀려요. 안 틀려요?

그렇게 되면 그 다음에는 중심존재가 될 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주인이 되어서 주관해 주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중심존재만으로는 싫소. 당신이 우리의 모든 것을 관리 처리해서 우리의 생사문제까지 전부 책임지는 주인이 되어 주소' 하고 바라는 겁니다. 이것이 선이 가는 작전입니다.

그렇게 되나 안 되나 보세요. 그렇게 되나 안 되나 해보라는 겁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 삼고 이익을 보자 하게 되면 망하는 것이요, 남이 이익을 보게 하면 흥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태어난 인생으로서 빚을 지워 주고 죽어야지 빚을 지고 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빚을 지워 주고 죽는 사람은 그 후손이 끊어지지 않지만 빚을 지고 죽는 사람은 후손이 끊어집니다.

돈 빚도 물론이지만 인생에 있어서 빚을 지고 죽는 사람은 후손이 마른다는 겁니다. 자꾸자꾸 싫다고 떨어져 나가니까 없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빚을 지워 주고 가게 되면 자꾸 엉기니까 커지게 마련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런 작전을 하자는 것입니다.

​21. 신세를 지는 사람이 되지 말고 신세를 지우는 사람이 되라

​통일교회가 통일교회라는 간판을 붙였지만 통일교회를 위한 간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관이 다릅니다. 이 간판은 나라를 위한 간판입니다. 나라를 찾기 위해서는 간판도 떼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간판도 떼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통일교회의 책임자도 되지만 통일교회뿐만 아니라 나라를 살리기 위한 일도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을 위해서 빚을 지지 않으면 개인의 중심이 되고, 가정을 위해서 빚을 지지 않으면 가정의 중심이 되고, 종족을 위해서 종족 앞에 빚을 안 지면 종족의 중심이 되는 겁니다. 민족을 위해서 민족 앞에 빚을 안 지고, 민족 전체 앞에 빚을 지워 주게 되면 최후에는 그 민족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서 국가 앞에 빚을 안 지면 그 국가의 중심으로 서는 겁니다. 그 중심으로 완전히 섬으로써 그들이 그 가치가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될 때는, 자기들이 그 가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당신이 나의 주인이 되어서 영원히 지도해 주십시오' 이런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이 로마 병정을 위해서, 원수들을 위해서 복을 빌었던 작전이 멋진 것입니다. 원수나라에게까지도 빚을 지우고 갔다는 것입니다. 이 공식에 적용해 가지고 볼 때 그것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아버지여, 저들이 저들의 죄를 알지 못하고 저런 행동을 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자기 생명을 앗아가는 그 원수들에게도 복을 빌어 주는 아량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로마 병정들 앞에 빚을 졌어요, 빚을 지웠어요? 억울하게 생명의 침범을 받은 데다가 사랑의 빚까지 지워 놨으니 로마는 예수님 앞에 완전히 빚장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고로 인륜 도덕의 표준은 적선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의 신세를 지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의 신세를 져야 되겠어요, 통일교회에 신세를 지워야 되겠어요? 통일교회의 신세를 지기 위해서 다니는 녀석은 통일교회 앞에 있어서 원수입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의 신세를 지겠다고 하는 사람이 통일교회 편이 되겠어요, 통일교회를 팔아먹는 원수가 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통일교회를 팔아먹는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 앞에 신세를 지우면 통일교회가 내 것 되는 것입니다. 간단한 겁니다. 또 통일교회 전체 식구 앞에 내가 신세를 지워 주기 위해 활동하면 통일교회의 중심존재가 안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이 어떤 생활이었느냐 하면,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빚 안 지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나에게 빚을 졌으면 졌지 내가 여러분의 빚을 안 진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기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천적인 선한 종족의 보따리를 남겨 놓아야 할 게 아니예요? 악이 선을 쳐 가지고 점령할 도리는 없습니다. 악했으면 선 앞에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왔다가 건들건들 나가면 자기 선조들이 쌓아 놓은 기반까지도 통일교회에 몽땅 빼앗기고 껍데기만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결론을 짓자구요. 선과 악이 무엇이냐? 사적인 것은 악에 속하는 것이요, 공적인 것은 선에 속하는 것입니다. 간단한 거라구요.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종교가 다루는 분야는 어디까지냐? 종교는 공적인 분야를 다룹니다. 그런데 공적인 생활 내용은 인간 세계뿐만 아니라 영계에까지, 주체적인 절대자 하나님에게까지 입체적으로 관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적으로 나라를 이용해 먹고, 자기 개인이나 가정을 위해서 국가 재산을 막 취하게 되면 나라가 망하게 됩니까, 안 망하게 됩니까? 그렇게 되면 나라가 부패했다고 하지요? 그렇지요?

공적인 책임을 진 공복인데, 국가의 공무원인데 공적인 것을 자기가 가지면 망하는 겁니다. 그것은 독약을 자기 자식들에게 먹이는 것보다 더 무서운거라구요. 안 망했으면 앞으로 망하게 되는 거라구. 하늘이 망하게 만드는 거라구.

​22. 통일은 전체를 위하는 데서 벌어져

​통일이 어디서 벌어지느냐? 통일은 자기를 위하는 데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를 위하는 데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하는 데서 벌어집니다. 이것이 통일의 방안입니다.

회사에 있어서 앞으로 회사의 주인의 자리를 인계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남보다 10분이라도 먼저 출근하고, 여덟 시간 일을 하게 되면 일을 할 때 내가 회사에 빚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서 일하고, 퇴근을 하는 데도 남보다 1분이라도 더 많이.

더 열심히 일하고 퇴근을 하겠다고 하게 되면 그는 오래 안 가서 그 회사의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간단해요. 그러한 기준으로 생활하게 되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자기의 생활무대에 있어서 공복이 되어야 됩니다. 공복이 되어야 됩니다. 사적인 입장에서 자기를 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공적인 입장에 서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통일교회가 그렇게 나가게 되면 통일교회의 발전은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아무리 누가 뭐라 해도, 나라가 뭐라 해도 막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선은 부딪치는 때마다 발전하는 것이요, 가는 곳곳마다 백승(百勝)하는것입니다. 어려운 것 같지만 이 원칙에 입각하게 될 때는 이 원칙이 틀리지 않는 한 반드시 승리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 원칙에 의해서 살고, 이 원칙에 입각하여 희생하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하는 것입니다. 내가 본 이익을 내 이익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더 큰 이익으로 여기고,

승리를 하면 그 승리한 가치를 내 것으로가 아니라 나라의 것으로 세계의 것으로 돌리는, 이런 사상을 펴 나가는 단체가 있다면 세계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단체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진 통일 사상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불과 20년 남짓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전후에 수천년의 인류 역사와 관계되어 있고, 그 전체 역사를 대신한 것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결되고, 이 터전이 닦아지는 데는 다른 데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 3자에게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게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중심 삼고 되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

몸과 마음을 두고 볼 때에 어떤 것이 공적이냐 하면 몸보다 마음이 공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중심 삼고 몸을 굴복시키는 승리적 기반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빚을 지지 말고 빚을 지우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빚을 지우는 데는 평면적인 빚을 지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빚을 지우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된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에 빚을 지워 주고도 그것을 받지 못하게 되면 반드시 그 사람의 후손이 하늘로부터 받아 가지고 이 땅 위에 와서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현재의 입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고, 앞으로 여러분이 뜻 앞에 있어서 모든 것을 극복하고 나가기를 바랍니다.

[기 도]

오늘은 1971년 2윌 14일, 이달에 들어와 두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오니, 당신의 거룩하심과 자비와 사랑이 여기 모인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모든 생애를 아버지 앞에 의탁하고, 남은 삶도 아버지 뜻 앞에 일치시키기 위하여 이미 아버지 앞에 맹세한 몸들이오니, 부디 부디 충효의 도리를 다하여 하나의 결실로서, 아버님이 원하시는 실적을 이 땅위에 남기고 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사정은 각각 다를지라도 마음만은 뜻을 위한 일편단심으로 갖춰야 되겠습니다. 아버님께서 이 땅 위의 잃어버린 인간들을 찾기 위하여 한 생명을 다른 생명으로 바치면서 지금까지 참고 싸워 나오신 그 놀라운 노고 앞에 진정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릴 줄 아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은 아버지의 사정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뜻을 이어받아 그 뜻을 저희의 필생의 사업으로 알고 그러한 길을 가려갈 줄 아는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겠사오니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지난날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덧없이 지나간 과거의 생활인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하루의 한 시간 한 시간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 앞에 의의있는 깊은 내면을 지니고 살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하겠다고 다짐하게 되옵니다. 아버님이 기억하실 수 있고, 인류가 마음 가운데 그리워할 수 있는 하루의 생활, 한 해의 생활, 혹은 일생의 생활을 엮어가기 위해 몸부림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이제 진정한 아버님의 모습을 저희 자신에게 현현시키시옵소서. 오늘날의 인간의 부족함을 아시는 아버지시기에 찾아 오셔서 부족한 것을 보충시키시면서 저희들을 깨닫게 하고자 만방으로 수고하시는 노고에 대해 친히 감사드리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를 모르는 자식이 되지 않고 아버지를 진정으로 아는 자식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무감각한 아들딸이 되지 않고 감각으로써 아버지를 체휼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 땅 위에 슬픔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저희들이지만 그 슬픔의 한을 연속시키어. 슬픔의 결과를 남겨 놓고 가서는 안 될 저희 자신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 육신을 갖고 있는 짧은 기간에 있는 정성을 다하여 당신이 믿고, 당신이 의지하고, 당신이 분부하고, 당신이 명령할 수 있는, 이 땅을 대신하여 아버지의 사명을 책임질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지기를 아버님께서 얼마나 바라고 계신가 하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의 마음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연들을 이 시간 다 내어놓고, 당신이 기뻐할 수 있고 좋아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내놓을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시옵소서. 당신이 슬퍼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저희들에게도 원수와 같은 것이요, 만나서 함께할 수도, 거기에 패할 수도 없기에 오직 아버님편에 선 철석같은 아들의 모습과 딸의 모습으로서 이 시간 당신의 존전에 부복하였사오니, 아버지, 받아 주시옵소서.

천상세계의 수많은 성도들도 자기들이 이 땅 위에 한을 남긴 생애를 후회하면서 오늘 이 땅 위에 있는 후손들만이라도 아버지 앞에 어서 나와 충성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아버님의 슬픔이 사무치는 그 자리는 땅의 인간들 앞에는 멸망의 자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의 소원이 깃드는 그 자리는 인생에 있어서 행복이 찾아드는 자리인 것을 알고, 저희 자신들은 아버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그 길을 남기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라는 것을 망각하는 데서만이 그렇게 되어진다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저희들을 친히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무엇을 위하여 이 자리에 나왔으며 무슨 인연을 따라서 이 파리에 나왔는가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될 때, 저희들은 높고 귀하신 아버지와의 인연과 거룩하신 당신의 아들딸의 모습을 그리워해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과거의 저희의 손길과 마음이 아버지 앞에 추한 모습이었사옵고 가증스러운 모습이었던 것을 후회하면서, 이제 앞날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성상을 본받기 위하여 나온 무리가 되었사오니, 저희 일체가 아버지 앞에 흡수될 수 있는 하나의 상대적 여건이 되게 하시옵소서. 여기서 나 스스로 무엇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것으로서 화합할 수 있고 흡수 될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한 저희 자체를 그냥 가져서는 안 되겠사오니, 스스로를 극복하고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참신하고 참된 마음을 가지고 나오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이 이 시간 이곳을 향하여 당신께 축수(祝手)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모인 곳곳마다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이 길이 하늘의 생명길이라고 모든 것을 바치고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정성을 들이는 그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생명의 인연을 그들로 하여금 영광의 터전에 연결시키게 하시어서 만민이 우러러볼 수 있는 승리의 한날을 약속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천상의 인연을 인간의 인연 가운데 심어 주시어 당신이 의지하고 안식하실 수 있는 터전으로서의 기준을 만들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특히 일본과 미국과 독일을 위주로 하여 금후에 가야 할 세계적인 탕감의 험한 노정을 당신이 가려 주시고 지켜 주시는 가운데서 승리 또 승리하고, 전진 또 전진하여 원수의 세계를 밟고 아버지의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도 당신이 친히 허락하시는 한 시간으로서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우리 개인을 두고 볼 때에 개인을 중심삼고는 반드시 가정이 관계되어 있고, 가정을 중심삼고는 사회가, 사회를 중심삼고는 국가가, 국가를 중심삼고는 세계가 관계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발전의 조건

​내 개인을 중심 삼고 가정을 두고 볼 때, 가정과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거기에는 반드시 내가 내적인 입장에 서든가 아니면 가정이 내적인 입장에 서든가 하고, 내가 외적인 입장에 서든가 가정이 외적인 입장에 서든 가하는, 서로 엇바뀌는 입장에 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 나라를 중심 삼고 보더라도 나라가 중심이 되든가 아니면 백성이 중심이 되든가 하는, 이런 관계를 반드시 맺어야 그 나라가 발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개체가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 결심한 바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 노정을 결심하고 가려 가야 합니다. 그 노정에서는 여러 가지 일과 사건들을, 혹은 여러 가지의 사물들을 관계지어 가지고서야 목적성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의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 현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와 관계되어 있는 모든 관계가 자기와 상반되는 입장에 서게 되면 아무리 좋은 목적을 두고 정성을 들여 가더라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깊이 느끼는 것입니다.

따라서 목적성사를 하고자 하는 그 결심과 더불어 관계되어 있는 모든 것이,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배후적인 주체와 대상적인 관계에 있어서 그 목적을 중심 삼고 일치화될 수 있는 입장에 서야만,

내 개체가 대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기뻐할 수 있는 한 장면을 취할 수 있는 것이며, 그 기쁨은 나에게 새로운 소망을 가져올 수 있는 자극으로써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활 가운데서 많이 느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어떠한 단체가 있어 가지고 그 단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단체를 움직이는 중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요, 그 단체가 가야 할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단체의 범위가 크면 클수록 반드시 거기에는 부서가 있게 마련이고, 그 부서에도 그 단체의 중심되는 존재와 더불어 상관돼 있는 상대적인 부서의 책임자가 있고,

그 책임자와 연결된 요원들이 구성되어져 그것이 상하로 하나되고 안팎으로 하나되게 될 때, 그 단체는 거기에서 발전하고 거기에서 계획하는 모든 일이 그대로 진전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사회나 일상생활에서 보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국가를 보더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국책을 세우는 주권자를 중심으로 그의 뜻을 받드는 행정요원과 행정 조직이 전국에 널려 있어서, 거기에 환경을 연결시켜 전체를 통할 수 있는 안팎의 조직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세포와 같이 저 말단 단계에까지 조직형태를 갖추고 있는 복잡한 국가라 하더라도 그 모두가 주권자의 본의와 상충되지 않고 일체가 되어 화합할 수 있고, 상응될 수 있는 환경적인 여건을 갖춘 국가라면 그 국가의 환경이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환경은 발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데 있어서 한 손만으로 일하는 것보다는 양손으로 일을 할 때 비로소 원만히 할 수 있는 것이며, 우리가 무엇을 보는 데 있어서도 상대적인 여건을 표준하여 시각에 대한 실상이 상대적 위치에서 결정 되어야만 보이는 것입니다.

말을 할 때에도 혼자 있어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받는 상대적인 존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을 받아들이는 상대자와 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만큼 주고받아서 일치가 되느냐에 따라서 그 말의 위력이 나타나는 것이요, 그 말이 사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통해서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가 대하고 있는 상대와 그 환경 전체 앞에 새로운 결의를 다지게 해서 상대적 요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볼 때, 어떤 나라에 중심 존재가 있어서 그 중심 존재의 행동이 그 나라 전역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그 개인의 움직임은 국가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그 사람이 세계와 더불어 관계를 맺게 될 때 그 사람의 움직임은 세계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평상시에도 우리는 이와 같은 안팎관계, 즉 주체와 대상관계가 이루어져서 끊을 수 없는 관계의 인연으로 서로 일치되어야 발전이 있는 것이며,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결여되어 주체가 열마디 했는데도 불구하고 한마디도 여기에서 상대적인 가치를 갖지 못하게 될 때는, 그 말한 사람이 허무감과 위축을 느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상대적인 결과까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상대와 상관 관계를 중심 삼고 서로 주고받는 환경을 갖추는 데서만이 기쁨과 연결되는 것이요, 발전의 기원이 벌어지는 것이요, 승리의 터전이 닦여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생활 주변이나 제반 사회의 내용은 이와 같은 상관관계를 거쳐 가지고 발전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 국가 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를 벗어나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교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나라에서 어떤 것을 요구할때 상대적인 나라가 거기에 응하여 두 나라가 서로 협력하게 되면 그 두 나라 사이에 아무리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단시일내에 주체적인 문화의 기준까지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게 될 때는 국가간에 있어서도 반드시 상충이 벌어지고 서로서로가 감소되는 입장을 빚어내고 마는 것입니다.

​2. 전후방이 하나되어야 적을 물리칠 수 있어

​오늘날 남한과 북한이 서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라와 나라가 서로 원수시하여 반목질시하고, 서로에게 약점이 있는 경우 자기가 공격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해서 그것을 노리는 입장에 있게 되면, 그 노리는 기간까지는 정지적인 한계점에 머물러 있지만 둘이 부딪치게 되면 부딪치기 전보다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안팎으로 소모를 가져오는 결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측이 부딪쳤을 때 어떤 사람, 어떤 백성이 남아질 것이냐? 그것은 일선이면 일선, 후방이면 후방이 얼마만큼 하나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적국의 전방과 후방이 하나되어 있는 것 이상의 힘으로 하나되어 있다는 기준을 갖게 될 때는, 혹은 전후방이 하나된 강력한 기준 아래 영구한 앞날을 바라보며 결의한 가운데 뭉쳐진 나라라면, 아무리 원수가 공격해 온다 해도 공격해 오는 그 원수가 기필코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비상사태를 맞이하여 원수가 100의 힘을 갖고 대적해 온다 하더라도 이것을 대하는 국민의 힘―전방과 후방을 합한 힘―이 100이상의 기준으로 나타나서 원수를 대하게 될 때는 100의 힘을 가진 원수쪽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힘의 기준이라는 것은 반드시 강한 편에서 약한 편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어느 한 나라가 강하다고 하는 것은 전방만 강해 가지고서는 강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 뿌리가 될 수 있는 후방이 강해야 합니다.

전방이 아무리 약하다 하더라도 후방이 강하게 되면 약한 전방은 강한 후방의 보강을 받을 수 있으되, 전방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후방이 약하게 되어서는 그 전방이 잘못되어 무너지는 날에는, 후방에서 보강할 수 있는 터전이 없으므로 그 나라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힘의 세계에는 이런 원칙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어느 한 단체를 중심 삼고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를 중심 삼고 보더라도 엄연히 전방이 있고 후방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주변에서 수많은 원수들이 우리를 대하여 반목질시하고 있는 것을 직접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의 세포, 우리의 감정,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친히 그러한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을 우리는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 가운데서 그런 반대적인 무리 앞에 나타나게 될 때 얼마나 강한 입장에 설 수 있느냐? 이것이 먼저 문제가 됩니다. 원수와 일대일로 부딪쳤을 때 후퇴해야 하는 자신이냐, 아니면 아무리 그들이 강하다 하더라도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또한 나는 약하더라도 나와 상대로 나타나는 반대쪽의 단체면 단체의 움직임보다 강할 수 있는 후방을 내가 갖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나 자체가 약하더라도 나의 후방이 상대의 후방보다도 몇십 배 강할 수 있고, 그로부터 언제나 보급받을 수 있고, 언제나 서로 상응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면, 일선에서는 아무리 약한 개체라 하더라도 그것으로써 승패가 결정나지 않습니다.

어떤 개체가 아무리 약하더라도 그 배후에 강한 후방이 있게 될 때는, 그 약한 개체가 몰리더라도 후방의 힘이 거기에 보급될 수 있기 때문에 약한 것 같지만 약한 것이 아니요, 망할 것 같지만 망하지 않습니다. 패자가 될 것 같지만 패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강하여 일선에 나타난 원수를 굴복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하게 될 경우에는 반드시 강한 후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전방에 있는 사람이 그 자체의 힘만으로 적의 공세를 막아내고 극복해낼 수 있겠느냐 할 때 그 개인이 건뎌낼 수 있는 능력은 제한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이 1년뿐만 아니라 10년, 1세기, 혹은 수십세기를 거치며 세계를 통하여 벌어졌다 할 때는 문제가 더욱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싸움이 자기 일생의 한때에 모든 것을 총합해 가지고 해결을 할 수 있고 승리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으로서 끝난다면 그런 싸움을 해볼 수 있으되, 그 싸움이 한번 이기더라도 또 다시 싸움이 계속 되고, 한번 그 싸움을 이겼다 해서 상대적 판도가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할 때는 우리 자체도 세계와 연결할 수 있는 배후의 인연을 갖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세계를 대할 수 있는 어떠한 힘의 내용을 보급받을 수 있는 배후와 연결되어 있지 못한 입장에서 내 자체가 이 세계적 싸움을 감당하여 승리의 자리를 획득하겠다고 한다는 것은 망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인류 역사는 선악의 투쟁사

​오늘날 인류 역사의 복귀 노정을 중심 삼고 볼 때, 우리는 선악이 대립된 그날부터 악을 대하여 선이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악과 선의 비율을 놓고 볼 때, 악은 전체에 성하여 있지만 선은 하나도 안 되는 영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오늘날 선과 악의 투쟁사의 주류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선한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오늘날 전체적으로 악화된 이 땅 위에 하나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과 일치될 수 있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을 찾으시는 섭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완전히 일치된 자리에서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승리의 기점을 세워 선과 일치될 수 있는 가정, 선과 일치될 수 있는 종족. 선과 일치될 수 있는 나라, 선과 일치될 수 있는 세계―악의 세계가 벌어졌으므로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선과 일치될 수 있는 세계―를 기필코 만들어 가지고 악의 세계 대 선의 세계의 싸움에서 이 문제를 해결짓지 않고서는 선한 세계의 승리라는 것은 우리가 바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때까지 하나님은 이 엄청난 싸움을 해 나오고 계신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인간의 역사를 헤아려 볼 때도 거기에는 반드시 일선과 후방이 있습니다. 그러면 선을 중심 삼고 싸우는 데 있어서 그 싸움을 시킨 사람이 누구냐? 그래도 땅 위에서 선을 흠모하고, 선의 사회와 선의 세계를 마음으로 그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중심 삼고 싸움이 전개되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선의 입장에서 그 책임을 지고 나타난 사람들이 선을 중심 삼고 얼마나 싸웠느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즉, 몇대 혹은 몇세기에 걸쳐 입증하는 자리에서 싸워 나왔고, 자기가 실패했다면 자기 후손에까지 연결시키고, 그 후손이 실패하면 대를 이어 가면서, 수천만대 선의 대를 이어 가며 싸워 나오는 그런 민족, 그런 국가가 어디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선악의 투쟁사는 지금까지도 해결짓지 못한 채 인류 역사에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요, 선을 중심 삼은 비참한 노정으로 남아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악한 세상에서 하늘편에 기여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상대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보조를 맞출 수 있는 하나의 무리를 선택하기 위한 섭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러한 개인을 찾아 나오시는 것이요, 그러한 가정, 그러한 종족, 그러한 민족, 그러한 국가를 찾고 계심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될 때에 오늘날 이 악한 세계에 둘러싸여 있는 현실의 세계에서 어떠한 나라와 어떠한 민족이 하나님이 세우려 하는 선한 나라와 선한 민족이 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나라와 민족이 없게 된다면 지금까지 선을 중심 삼고 싸움을 해 나오신 하나님은 지극히 불쌍한 분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할 수 있는 개인이 없다 할진대 그 개인의 싸움은 하나님이 대신 책임져야 하고, 그런 가정이 없다 할 때는 그 가정의 싸움도 하나님이 책임져야 되고, 그런 민족과 그런 국가가 없다 할 때는 그 싸움도 하나님이 대신 책임지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은 불쌍하신 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선의 편에 서서 싸우는 사람들의 후방

​지금까지 수많은 선한 사람들과 성인들이 이 땅에 왔다 갔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자기 나라 하나를 잘 살리기 위한 주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주장으로는 성인이 되지 못합니다.

대체로 성인들은 그 나라의 백성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의 환영도 받지 못하였고, 다만 그가 죽고 난 후에, 또는 그 백성들이 그를 죽이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 사람의 말이 옳고 그 사람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인정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분의 주장을 반대하고 핍박하며 쫓아냈지만, 역사가 지나간 후에는 그분의 주장이 옳았다고 하면서 거국적으로 그를 추모하는 역사적인 일을 펼쳐 나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언제나 선두에 서서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 난 후에 몇십 년, 혹은 몇백 년, 몇천 년이 지난 뒤에 승리의 결과를 찾아오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몇백년이라는 기간을 통하여 그 누가 승리의 터전을 닦을 수 있겠느냐 할 때, 그것은 죽은 사람이 닦는 것이 아니라, 선의 가치를 내걸고 희생을 해 나온 역사적인 인물들의 배후에서 협조해 주시는 하나님이 있어 가지고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에 있어서 선을 위해 싸우던 사람은 몰리고 희생당하며 죽어 갔지만, 그 후대에 승리의 결과로서 나타날 때까지의 과정에 있어서 그 인연을 나타나게 해준 동기, 혹은 그런 후방이 있어야 될 것인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를 하나님은 지금까지 해 나오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선한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을 때 그 결과를 선한 터전 위에 남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역사를 거치는 과정을 통하여 그 결과를 세워서 키워 나오고 그것을 옹호하는 일이 배후에서 끊임없이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거친 후에야 선이 남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있기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악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이 믿어 줄 수 있는 개인, 즉 30억의 악한 인류 가운데서 하나님만이 믿어 줄 수 있는 하나의 개인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개인을 찾으실 것입니다.

수많은 악한 무리 가운데서 그런 한 사람을 찾았다면 그 사람에게 복을 주고 편안하게 안식시키며 행복을 누리고 살 수 있게 해주고 싶으신 것이 하나님의 소원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아니면 이 악한 세상의 30억 인류를 대하여 책임지고 싸워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알기 때문에, 있는 정성을 다하여 찾은 그 사람을 원수 앞에 내세우지 않으면 안 될 하나님의 억울함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혹은 수난을 극복하면서 소원의 일념의 분자로서 이 땅위에 찾아진 그 모습을 하늘땅이 기뻐하는 가운데 세워 찬양할 수 있고, 또 그 모습이 승리의 결과의 중심으로 설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악한 세상에 있는 인간이기에 악한 세계와 더불어 싸워야 할 선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오늘날 선편을 대신하여 서 있는 가냘픈 한 생명을 30억 인류 앞에 내세워서 싸움을 대신해 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신 것을 생각할 때, 이러한 한 개체를 내세워 가지고 싸움을 부탁하는 그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하고 비참하신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악을 처치하는데 있어서는, 악을 유도해 들어온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 대표적으로 이 악을 해결짓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이 남아 있는 고로 하나님께서 앞에 서고 싶어도 설 수 없는 싸움터가 벌어진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싸움은 선한 사람이 나서서 막고, 선한 사람이 희생해서 승리의 결과를 다짐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이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선한 사람을 세웠다 할진대는 그 선한 사람은 불쌍한 생애를 마치고 가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과정에서 왔다 갔던 선지선열들이나 혹은 예언가, 성인, 선한 사람들은 그 시대에 있어서 성공을 한 것이 아니라 죽음의 길에서 비참하게 사라져 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5. 언제나 희생의 자리에 서 왔던 선편의 사람들

​한 사람이 그렇게 희생됨으로 말미암아 그가 억울하고 비참하게 아무 죄 없이 무모하게 죽어갔다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될 때, 악한 세계의 사람들도 그것을 직시하고 그 참상을 참관할 때 그들의 마음에는 새로운 불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참인데도 불구하고 거짓에게 억울하고 불쌍하게 희생되어 갔다는 것을 생각할 때, 거기에 관계되어 있는 모든 악된 요소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참에 의해 비로소 폭발되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희생의 제물을 세워 가지고 후원자를 내세우는 일이 선한 역사를 찾아 나가는 투쟁의 행각입니다. 이 투쟁이 없이는 이와 같은 정상의 인연을 벗어나서는 발전할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은 언제나 희생하고 나서 발전해 나오는 것이고, 그것이 선의 역사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악이 전체 주위를 점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터뜨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런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개인이 희생할 수 있는 자리에서 희생하지 않고 세계적인 싸움을 하여 이겼다면 그의 승리는 세계적인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그가 환경적으로 대한민국 내에 있고 어떤 종족의 한 아들딸로 태어난 개체라 하더라도, 그가 30억 인류와 하나님의 선을 대신하여 싸워 망하지 않고 살아남게 되면 그 자체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항상 개인이 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노아의 한 가정이 세계의 가정을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왔고, 아브라함 가정, 모세 가정, 요셉 가정, 혹은 사가리아 가정이 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가정의 자리에 서서 발전시켜 나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한 사람을 위주로 하여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완전히 하나된 가운데 서로 뜻이 같은 운명의 길에서 세계를 대신하여 수많은 악한 가정과 대결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그들을 밀어낼 수 있는 하늘편에 서서 영원히 변치 않을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세워 그 가정으로부터 수많은 가정들과 싸우게 하는 일을 지금까지 엮어 나온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노정에 있어서 책임을 짊어진 가정을 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개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반이 되어 있는 것이 노아 가정이요, 아브라함 가정이요, 모세 가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싸움을 책임지고 왔던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도 가정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중심 삼고 보면 아브라함의 일파가 있었고, 모세를 중심 삼고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싸움의 자리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가정의 중심으로서 하나의 남성의 자리에 서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은 어떠했느냐?

예수에게는 그 민족과 유대교가 하나된 터 위에, 그의 친척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민족과 국가의 형태를 갖춘 가운데, 하나의 중심적인 남성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여 세계의 민족과 국가 앞에 당당히 싸워 가지고 승리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 혹은 모든 가정이 예수 앞에서 그런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가정의 터전을 갖지 못한 예수의 입장은 다시 개인적인 싸움부터 시작해야 할 입장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3년 공생애 노정을 통해 개인의 싸움을 거쳐 가정과 종족, 그리고 민족의 싸움터를 다시 넓히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갔는데, 그것이 십자가의 노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6.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한 하늘의 수고

​여러분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택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선민으로 세운 배경에는 하나님의 소원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악한 민족이 둘러서 있는 세계 가운데서 하나님이 비로소 땅 위에 발 붙이고 섭리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민족을 찾아 나온 것이 선민을 형성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민을 세워 가지고 그 선민에게 복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장차 악한 백성을 굴복시키고 악한 나라들을 함락시키기 위해서 선민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선민의 자격을 갖추고 다시 한 번 세계 앞에 승리를 결정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했느냐? 이스라엘 선민과, 선민의 사상적인 중심인 교단과, 그리고 전체 가정의 중심인 요셉 가정이 하나된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 삼고 일치가 되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해서 악한 세계와 부딪쳐 싸우는 하늘나라의 전방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 삼은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하나의 전방이 되고, 세계에 널려 있는 악한 수많은 나라와 수많은 민족이 사탄의 전방이 되어 맞부딪치면, 사탄 세계는 총동원하여 이 악한 전방을 후원할 것이므로, 그때에 선민의 후방은 누가 될 것이었는가 하면, 하나님이 되어 주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중심 삼고 전방과 후방이 일치하여 안팎이 결속된 힘과 사탄을 중심 삼고 결속된 그 힘이 맞부딪쳐 싸우게 될 때, 하나님을 중심한 전방과 후방의 단결된 힘이 사탄의 힘보다 강하게 될 때는 악한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과 사탄나라의 악주권 전방과 후방이 결속되어진 거기에 비해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기반이 없어서 개인적인 입장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간 수고하여 나라를 세우고 이스라엘의 교회를 세운 뜻은 원수의 나라와 대결케 하기 위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함이었으나, 결과적으로 그 나라와 교회는 물러가고 예수 홀로 개인의 싸움을 반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몰리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에 악한 나라편에 있던 로마제국을 중심 삼고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까지도 예수에게 반기를 들고 공격하였던 사실을 놓고 볼 때, 하나님이 얼마나 원통하셨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한 장면이, 4천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을 키워 나오시면서 하나님이 내적으로 수난을 당하시고, 선의 판도를 넓히기 위해 역사시대에서 치러 오신 희생의 대가를 일시에 전복시키는 억울한 장면인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를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는 잘 죽었다고,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만민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은 왜 세웠으며, 왜 4천년 동안이나 수고하며 유대교를 세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땅히 죽어야 할 기반을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수고였더냐 할 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 삼고 새로운 사상으로 강력히 뭉쳐 전후방이 하나되고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를 중심 삼고 하나님과 일체가 되었더라면 하나님이 사탄세력 이상의 강력한 배후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 삼고 결속되어 아무리 강력한 로마제국이라도 굴복시키고도 남을 수 있는 기원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을 찾아왔는데도 불구하고 그 나라와 교단이 예수를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개인의 운명을 가려 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다시 종족과 민족, 국가를 찾기 위한 싸움을 하다가 죽어간 것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인 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간 그날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모든 내용을 잃어버린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땅 위에서 하나님의 기지를 잃어버린 결과가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땅 위에 하나님의 법도를 세울 수 있는 종교, 유대교를 이어받을 수 있는 기독교가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가는 곳에는 나라가 없었고, 하늘의 제단을 세울 수 있는 땅이 없었습니다.

성전을 지을 수 있는 땅도 없었고, 성전의 법도를 따라가서 겨레를 지켜낼 수 있는 민족도 없었습니다. 민족과 성전을 일치시킬 수 있는 뜻을 세워가야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이어받은 기독교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기독교 역시 민족적 터전과 성전적 터전을 지상에 닦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가는 곳곳마다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피의 참사를 당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순교사였던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를 중심 삼고 주권을 가진 국가가 되어서 로마제국과 일대일의 협상을 할 수 있고, 세계의 열강들과 일대일의 협상을 할 수 있는 터전―어느 나라가 기독교인을 학살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국교를 통해 당당히 이것을 항의할 수 있는 터전―을 가졌더라면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하나님의 땅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서 땅 위의 백성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기반조차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뜬구름과 같이 동에서 쫓기면 서로 몰리고, 북에서 쫓기면 남으로 몰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부평초같이, 흘러가는 물결과 같이 근거도 없는 역사적인 운명을 가려 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죽음의 대가를 치르고, 피의 대가를 치르는 희생을 통해서야 비로소 세계적인 결실로서 동지를 규합하는 운동을 전개해 가지고 기독교 문화권의 판도를 넓혀 오늘날의 민주 세계의 문화의 터전을 마련해 나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기독교의 영향을 받고 있는 수많은 나라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바라시던 이스라엘 나라와 같이 '이는 내 나라다' 할 수 있고, 이스라엘 교단과 같이 '이는 하늘의 법도를 지킬 수 있는 내 영원한 성전인 교단이다' 할 수 있는 땅의 기반을 가진 나라가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미국을 중심 삼고 볼 때 미국의 통수권자는 교회의 책임자가 되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영국을 보더라도 성공회 책임자가 영국의 통치권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분리되어 있습니다. 주권을 놓고 볼 때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입장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종교적인 판도를 중심 삼고 주권국가를 갖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한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아무리 작은 나라라 할지라도 그것이 내 나라요, 내 주권이요, 내 백성이요, 내 것이다 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주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 삼고 유대 나라와 유대교, 그리고 이스라엘 가정이 하나가 됐더라면 하나님께서 이는 내 나라요, 내 백성이요, 내 주권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예수님은 비로소 하나의 주권자로서, 만왕의 왕의 권위를 갖고 출발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원을 상실함으로 말미암아 인류역사는 기독교를 통하여 죽음의 골짜기를 허덕이며 서러움이 반복되는 역사로 지금까지 걸어나온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주님이 이 땅 위에 오시면, 만국은 주님의 발 아래 놓일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한 주권자로서 모든 악한 주권자를 심판하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공중의 뜬구름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땅 위에 개인과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통하여 철석 같은 사상을 기반으로 그가 동으로 가라고 하면 전체가 동으로 가고 서로 가라 하면 전체가 서로 갈 수 있는, 그러한 사상으로 맺은 터전이 없어 가지고서는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찾아왔던 예수 그리스도를 쫓아내 죽이던 것과 마찬가지로 뜻을 이룰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합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오시는 주님을 모두 따라갈 수 있을 줄 알고 믿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예수가 이 땅 위에 구름을 타고 오신다 하더라도 언제 땅에서 구름을 타고 다니겠어요? 발로 걸어다니실 것입니다.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여러분이 믿을 것 같아요? 명동거리에 주님이 구름 타고 나타났다면 따라가서 믿을 것 같아요? 혹은 미국에 주님이 그렇게 나타났다면 그 사실을 믿을 것 같습니까? 어림없는 수작들인 것입니다.

​7.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과연 소망의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칠 수 있고, 하늘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애국심에 불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늘나라의 가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신랑으로서 오게 될 때 신부로 신랑을 맞이할 수 있는 터전을 이룬 가정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10억에 가까운 기독교인들은 공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상에 있는 오늘날의 기독교는 공산주의에 전부 걸려들고 말려들어가서 자기 처신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서글픈 사정에 놓여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나라도 없고 이 땅 위에 있어야 할 하나의 터도 없는 것입니다. 목적은 오직 자기 한 사람만 믿고서 천당에 가겠다는 것입니다. 시시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시시한 사람들을 천당에 데려가지 않습니다.

'나만 믿고 천당가겠다'고 '내가 요렇게 하늘을 위해서 일하고 봉사하고 헌금하는 것은 내가 구원받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원치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전부 개인주의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과 내가 이렇게 해 가지고 천당가겠다는 사람은 사상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리고 내가 요렇게 해 가지고 천당에 가겠다는 사람은 절대 천당에 가지 못합니다.

예수의 사상이 그것입니까? 내가 이렇게 해야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겠다고 해서 아버지의 아들딸이 됐다면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아들딸 된 자리에서 책임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나만 예수 믿고 천당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절대 천당 못 갑니다.

'세상을 다 잃어버려도 나 하나를 구하기 위해서 기도해야지'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한 사람을 세워서 악한 열 사람을 굴복시키는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악까지도 슬퍼할 수밖에 없는 내용을 안고 나가게 함으로써 악이 스스로 굴복하고, 절대 복종할 수 있게 하여 진정한 승리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땅에서 승패의 결정을 해 가지고 악한 나라를 선한 나라 앞에 굴복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그런 하나님의 아들딸을 찾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악한 나라의 채찍에 맞아 몰리고 죽어가면서도 아버지의 일을 해야 천당에 가는 것입니다. 몰리고 고난을 당하며 죽어가는 것은 네가 주도하고 네가 부리던 그 권세와 판도를 하나님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악의 세력을 대하여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죽어서라도 그 뜻을 이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 역사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나왔습니다. 이런 기독교는 망해야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선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는 거예요. 선과 악을 중심 삼고 볼 때에 선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이냐? 여러분은 선악이 어떠한 것인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선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지 예수 믿어 구원을 받아 천당에 가는 것이다' 하는 식으로 하나님은 그렇게 쩨쩨하지 않습니다.

구원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안식의 터전에서 승리하고 살아가야 됩니다. 지상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사람을 말하게 될 때 혼자만 구원받겠다고 하고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하는 사람, 그 사람을 우리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가정이면 가정 전체가 자기를 위해줄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가지고 그 위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 삼고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을 맞고서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선과 악이 어떤 것이냐? 예를 들어 여러분이 좋은 친구라 할 때, 그 친구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전부 자기 주장만 하는 사람이냐, 아니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양보해 주는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남을 희생시키는 사람이냐, 아니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남에게 양보하고 희생하는 사람이냐? 이렇게 볼 때 어느 사람이 선한 사람이냐? 남을 희생시키는 사람이겠어요, 자기를 희생시켜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겠어요? 선한 사람은 왜 흥하느냐 하면 선한 사람은 절대 빚을 지거나 신세를 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친구란, 만나면 상대방의 것을 빼앗아 가는 사람이예요? 아닙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까지 상대를 위해 쓰는 친구입니다. 자기가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어려운 줄 모르고 친구의 부탁을 자기 일보다 더 들어 주려고 하는 친구가 좋은 친구입니다. 그런 친구라면 그가 도망을 가더라도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나 같은 친구라도 보이는 것마다 빼앗고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해서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그 친구가 오라고 해도 도망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선악의 기원은 벌어져 나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서 희생시키고, 자기를 위해서 빚을 지우던 친구가 죽게 되면 '에이 그 녀석 잘 죽었다'고 하면서 시원하다고 하지만 상대를 위해 희생하고 상대를 위해 애쓰던 친구가 죽게 되면 그가 죽은 후에도 무덤 앞에 서서 추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것은 간단하다는 거예요.

남을 위해 사는 친구는 당장에 친구에게 신세를 지우는 것 같지만 그 아들딸이 갚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이 연결되고 그 나라가 연결될 수 있는 추후의 터전이 여기에서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자리는 자기를 내세워 주장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자기를 위해 사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은 남을 위하여 사는 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이면 그것은 악입니다.

​8. 선악의 갈림길

​대한민국이 부패했다고 하고 악하다고 하는 것도 더 큰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이용당하지 않고, 자꾸 나라의 것을 깎아 먹고 3천만의 큰 뜻을 자꾸 뜯어 내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보태 주고 합할 수 있게끔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자꾸 뜯어 내니까 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가 망해요. 안 망해요? 망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안 망하려고 제사를 지내도 망합니다. 공화당도 이런 부패를 근절시키지 못하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천년 만년의 정권을 꿈꾼다 해도 그런 부패가 있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이런 상황에 처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이 공식은 천지가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선(積善)에는 희생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자기 부정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희생이라는 원칙을 거치지 않고서는 선이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선악의 본질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를 위하는 사적인 것은 망하는 것이요, 전체를 위하는 공적인 것은 흥하는 것입니다. 간단하다는 거예요. 이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지, 또는 집이야 어떻게 되든지 나만 잘 믿고 천당 가겠다는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상 영계에 가 보면 로마 제국시대의 4백년 고역기간에 죽은 영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내가 이렇게 하다 죽으면 천국에 가겠지' 하며 과감하게 죽었지만 그런 마음 가지고 죽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고, 로마 복귀를 위하여 있는 정성을 다하다 붙잡혀 죽는 것이, 즉 '내가 죽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위하고, 로마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죽는 것이 바로 천당의 본질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그저 예수 믿고 천당가겠다는 사람은 정작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날에 기독교가 망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그러면 마찬가지 운명이 됩니다.

내가 여러분 앞에 통일교회의 책임자로서 당부하는 것은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나'를 넘어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희생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통일교회는 됐다 할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습니다.

이런 논리 원칙에 의해서 됐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그런 연후에 자기를 사랑하고자 하는 것, 그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단체는 망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나서 그 사랑의 보증을 받아 가지고 나를 사랑해 달라고 하는 아내가 있는 가정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세계가 필요로 하고 인류가 필요로 합니다. 그런 사람은 죽으려고 해도 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 주지 않으면 하나님이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이 가는 길 앞에는 아무리 비참함이 가로막히더라도 그것을 능히 뚫고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통일교회는 핍박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지금도 갖은 치욕의 화살이 우리 주위에 날아들고 있지만 하나님이 보호하사 일선에 서서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후방이 되어 주시는 터 위에 그 보급로를 중심 삼고 일선에서 싸워 나가는 전방에 서야 합니다.

그 원칙은 간단합니다.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개인의 성공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나라와 세계를 위하고, 하늘나라의 승리를 위해 수모를 받아 가면서 싸우는 것입니다. 사업도 그러하고 행동도 그러하며, 밥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전부다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전방에 선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사령관이 되고, 군단장이 되고, 사단장,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분대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렇게 결속된 조직과 실력을 가지고 무한히 보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가는 길 앞에 백전백승의 승리는 정해진 이치입니다. 망할 줄 알았고 깨질 줄 알았는데 도리어 승리자가 되어 올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9. 후방에 있는 사람의 책임

​오늘날까지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으로부터 수많은 핍박을 받아 왔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대한민국의 세 정권으로부터 핍박을 받아 왔고 세 나라로부터 핍박을 받았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민족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이런 입장이었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왜 망하지 않았느냐? 여러분이 이 민족을 사랑하는 그 이상으로 나는 이 민족을 사랑했고, 여러분이 이 나라를 위하는 그 이상 나는 이 나라를 위하였으며, 여러분이 소원하는 그 이상으로 나는 새로운 선의 주권을 소원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만은 누구에게도 절대 뒤지지 않습니다.

세계의 각 나라가 머리를 숙일 수 있는 하나의 거룩한 민족, 세계의 모든 나라가 연결되고 싶어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된 국토, 세계 각 나라가 이 길이 아니면 갈 길이 없다고 할 수 있는 한주권을 찾아 나온 것이 곧, 하나님이 바라는 주권과 하나님이 바라는 나라와 하나님이 바라는 백성을 찾아 나온 길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길에는 싸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연쇄적인 싸움이 있습니다. 어차피 싸움은 전개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전방에 선 군사로서 싸우게 될 때 후방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십억 인류를 대표한 사탄세계의 주권이 아무리 단결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후방인 우리를 막아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후방의 하나님의 힘을 대신하고 보조를 맞춰 나갈 때에는 사탄도 꺾어진다는 신념을 갖고 싸워나온 것이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개척해 나온 통일교회 지도자의 사상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홀로 이 길을 가더라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전후방에 갖추어진 그 힘의 기준이, 그 세력권이 악한 세계의 전후방에서 갖추어진 힘보다 우위에 서지 않고서는 발전하지 못합니다. 알겠지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1천 2백명의 아주머니들이 일선에 나가 있습니다. 그들은 일선에서 고생하며 수고하는데 후방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을 보면 요란스럽기만 하였지 얼마나 발전했습니까?

아무리 알랑 거리며 통일교회를 믿고 나간다 하더라도 각자에게 맡겨진 책임을 못 할 때에는 망합니다. 일선에 있는 그들은 내 대신 먼저 칼을 받고 화살을 받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내 옷이 찢겨지기 전에 그의 옷이 먼저 찢길 것이며, 내 얼굴이 그슬릴 것을 그들이 그슬린다는 것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전후방은 하나로 결성되어 갈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고도 후방에 있는 사람으로서 책임을 못 하게 될 때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빚진 자리에 있게 되고, 하나님은 복을 받을지 모르지만 여러분의 후손은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후방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전방에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전방은 하나님과 영계가 협조할 수 있는 자리요, 하나님과 더불어 동맥의 고동소리를 같이 울릴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후방을 뒤에 남기게 되더라도 전방에 대하여 그렇게 역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후방이 결속될 때는 전후방 둘 다 사는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후방을 거쳐서 보급해 주고 싶으신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므로 그럴 수 있는 후방이 없게 될 때는 여러분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선을 사수하고자 하는 사람들만이 승리의 기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보다 배가의 기도를 해야 하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지금 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예수의 슬픔이 무엇인가 알아야 합니다. 예수가 일선장병으로서 선두의 자리에 섰을 때에 유대교가 후방이 되고, 이스라엘 민족이 후방이 되어야 하며, 요셉 가정이 후방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후방이 되어야 할 가정, 후방이 되어야 할 교회. 후방이 되어야 할 나라가 반목질시하고 수수방관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외로운 싸움을 거듭하다가 끝내 사탄에게 걸려 가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문선생도 까닥하면 사탄에게 걸려 가지고 그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때가 올까봐 지금까지 말없이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맞으면서도, 그리고 핍박을 받고 별의별 누명을 다 뒤집어 쓰면서도 참아 나왔던 것입니다. 말할 줄 모르는 무골충이어서가 아닙니다. 큰일을 겪을까봐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때가 되는 날에는 7배를 가산하여 일시에 탕감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통하여 이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후방에서 지금까지 도와주신 것을 고마워해야 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편성하여 섭리해 나오신 것에 대하여도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통일교회를 만들어 준 것에 대해서도 고마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민족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국적인 기반을 닦아 놓은 것을 전부다 여러분이 했어요? 모든 걸 고마워해야 합니다.

​10.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

​이런데도 불구하고―이와 같이 전후방이 연결되어지는 하나밖에 없는 보급로를 통해 하나님이 도와주시는데―이 사명을 우리가 감당 못하면 우리 체제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전후방이 일체가 되어 가지고 후방이 전방보다 강하게 되면 하나님은 기쁨 가운데서 여러분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비로소 소원의 때, 용서의 때를 맞이하고, 사탄의 나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울 수 있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가야 할 입장임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전방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후방에서 아무리 힘이 든다 해도 전방의 어려움을 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전방에 있는 청년들이 지금 어떠한 어려운 입장에 있는가를 몰라 가지고 3천만 민족과 3천리 반도의 중심부인 서울이 전방과 일치하지 못하게 될 때는, 대한민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공산당들이 전방과 후방이 일치되어 그 힘이 강하게 될 때는 밀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영적인 면에서라도 이러한 기원을 만들게 되면 하나님은 대한민국을 우리로 말미암아 보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일선에서의 치열한 싸움보다도 우리 종교를 중심 삼고 전방과 후방에서 하나되면, 사탄과. 하나님과의 치열한 전쟁을 하더라도 실체세계에 있어서의 국가 대 국가의 치열한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자진해서 공격전을 개시하고 있는 때가 1970년부터 1973년까지의 기간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후방에 서 있는 우리는 전방의 사정을 내 사정으로 알고, 전방을 사수하고 있는 용사들을 위해 살고 있지 못함을 한스럽게 생각하면서, 우리 전체의 생활이나 마음가짐을 전방과 통할 수 있는 입장에서 재정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전체가 전방과 통하는 자리에서 그 자리를 소화하고 살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때는 망하라고 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입장을 우리들이 가려 가야 할 것이 현재의 시점인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만일에 이것을 못 하게 될 때는―이 책임을 부여받아야 할 사명권에 처해 있는 여러분이 만일 그것을 수행하지 못하고 반대로 개인적 일을 추구하게 될 때는―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천국은 커녕 지옥중의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전후방을 생각하며 전방을 대신하여 후방을 굳게 지키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의 후방을 통해서 전방을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전후방을 통하여 각자의 책임을 다함으로 우리끼리라도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의 요건을 제시하는 일을 통일교단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우리 통일교단이 하게 될 때 통일 교회는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추앙받지 않을 수 없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아버지의 일선과 아버지의 후방은 아담이 타락한 그날부터 개인과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대하는 싸움을 벌여 나왔으나 언제나 불쌍한 입장에 서야 했던 것은 우리 아버지인 것을 저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느 한때 가정을 내세워 믿고 싸워 달라고 할 수 있는 가정이 없었으며, 믿고 내세울 수 있는 씨족이 없었던 것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어느 한때 하늘 전체가 믿을 수 있는 민족을 갖지 못하였고, 믿을 수 있는 어느 한 나라를 보지 못한 처참하고 불쌍한 아버지이신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이러한 원한의 사실을 알고 있는 통일교회의 저희들은 이제 내 개체가 아버지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 개인이 되어야 하겠고, 아버지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의 중심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가정은 종족을 대신할 수 있는 제사장 가정이 되어야 하겠고, 민족을 대신한 대제사장의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국가를 대신한 주권자의 자리에 서야 하며 세계를 대하여 아버님의 독생자의 권한을 대신하는 하늘의 왕자 왕녀의 권위를 가져야 된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저희들은 다시 한 번 회상하게 되옵니다. 이러한 인연을 이 땅위에서 이어받지 못하게 될 때 아버님은 지극히 불쌍하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지금까지 이러한 수난길을 거듭하기를 수천년을 해 나오신 것을 저희들은 진실로 뼈살에 사무치게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불쌍하신 우리 아버님을 모셔 놓고 해방의 한날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이 땅 위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합하여 승리의 세계적 판도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아버님을 안식시켜 드릴 수 없사오며, 또한 이 일을 이루지 못하면 효성의 도리도, 충성의 도리도 다하지 못하는 인류가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따라서 이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고, 이 전통적 사상을 인류 앞에 남겨 주기 위해 나타난 무리가 통일교단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이 교단을 키우기 위해 아버지께서 얼마나 수고해 오셨는가 하는 것을 저희가 아옵기에, 아버지, 진실로 황공하옵니다.

이 아침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이제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아버지 앞에 맹세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진작 일선 장병이 되지 못한 한이 저희 자신들에게 남겨질까봐 두려워하여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일선을 사수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이스라엘 민족의 젊은이들이 수많은 아랍 국가를 대하여 총칼을 들고 일선에 나서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그 나라에 당신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오늘의 통일의 용사들도 온 세계 만민을 대신하여 사탄으로부터 일선을 사수하려는 책임을 자기의 생명과 스스로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영광으로 생각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어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민족이 저희를 뒷바라지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야만 비로소 우리가 일선에 선 사탄과의 싸움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이 민족을 우리의 후방이 되도록 다시 한 번 세워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저희에게 이 나라와 이 세계를 통하여 아버지 앞에 승리를 돌려드릴 수 있는 일선과 후방을 갖추어 아버님을 안식시켜 드려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저희가 확실히 알게 하시옵소서. 이 시간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비록 일선 장병을 대신하여 책임을 지지 못할지라도 후방에 있는 요원으로서 책임을 2배 3배 해야 하겠다는 불타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사탄을 대하여 전후방을 지키며 아버님을 위로해 드리는 선한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서, 부디 아버지로부터 영원한 그 나라와 그 세계를 후사로 이어받을 수 있는 이 나라의 주인이 되고, 이 나라 조상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를 당신이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전체를 허락하여 주신 뜻대로 받으시어서 영광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오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저희들에게 이 귀한 시간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기에 참석한 자녀들은 일찌기 당신 앞에 자기의 생명을 바치겠다고 맹세하고, 실천하겠다고 다짐한 자녀들이옵니다. 이제 겸손히 아버지 앞에 엎드려서 지난날에 스스로 일하겠다고 다짐했던 '나'와 오늘에 처해 있는 '나'와 금후의 뜻 앞에 보장받아야 할 '나'를 다시 한 번 직시하면서, 올바른 판정과 지도를 받기를 바라서 이 시간 아버지 앞에 엎드렸사오니, 긍휼의 아버님, 겸손한 마음 위에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이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후대하신 사랑으로 저희들을 일깨워 주시어서 아버지와 더불어 뜻이 원하는 그곳을 향하여 보람있는 생애를 살아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저희들의 모든 것이 참다운 제물로서 아버지 앞에 봉헌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재삼 바라옵나이다.

인간들이 바라는 모든 사정과 소원이라는 것은 자기를 위주로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말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생활하기 때문에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오늘의 나는 하늘이 같이할 수 없는 모습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나를 위주하는 생활과 상치되는 생활을 하지 않고는 아버지를 발견할 수도 없고 상봉할 수도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타락된 세상에서 생애노정을 더듬어 가는 저희들의 생활이라는 것이 아버지 앞에 얼마나 용서 받지 못할 생활이며 환경이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절감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환경에 처해 있는 저희들을 아버지께서는 천번 만번이라도 복귀해 주고 싶어하며, 이 길을 떠나기 싫어하는 저희들을 당신은 떠나지 않을 수 없도록 이끌기 위해 간절한 마음을 갖고 나왔사옵니다. 이런 수고 앞에 인간이 무지하면 무지할수록 당신의 서러움이 가중되어진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이 시간 저희의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자신의 울타리를 초월하지 못한 자신임을 발견할 적마다 하늘 앞에 용납받을 수 없는 부족한 모습이란 것을 알고. 그것을 스스로 폭로하고 직고할 수 있는 겸손한 소년 소녀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이 땅 위에 살고있는 중생인 것을 생각할 때. 그 중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온 여기 부복한 자녀 자녀들을, 아버지여, 굽어살피시옵소서.

진정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에 마음과 마음이 부딪칠 수 있는 인연을 맺지 않고는 이 땅에서 당신을 의지하고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삼천만 민중 가운데 그래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잊은 적이 없사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당신의 소원이 크면 클수록 당신은 저희들과 더불어 눈물을 흘리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아버지께서 오늘날 인류를 대신하여 허덕여 나오셨고 인간의 무지를 극복해 주기 위하여 몸부림쳐 나오셨다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 앞에 효녀가 되고 효자가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자들이 있사옵거든 천만배의 복을 베푸시옵고, 후대하신 당신의 은사로써 가호하여 주시옵고 옹호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거룩하고 영광된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시옵고, 다시는 사탄에게 몸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도 저희들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믿던 친구도 내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요, 생애를 맹세하고 생활을 같이하는 부부도 내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요,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도 내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요, 나 자신도 내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부족한 인간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저희의 생명을 어디에 귀의하고 살겠사옵니까? 내 힘과 내 의지와 내 굳센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살겠다고 하는 것이 인간들의 대답이지만, 허무로 출발하여 허무로 종말을 맞이하는 인생행로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의 모든 것을 염려하시는 아버님을 발견하고 저희의 생명을 아버님께 귀의하고 저희의 모든 것을 아버님 앞에 바치고 사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모습은 불행해 보일지라도 행복한 사람인 것을 저희들 스스로 느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여기에 소수의 자녀들이 모였습니다. 이제 저희들의 생명을 아버지의 것으로서 몽땅 바쳐야 되겠습니다. 아무개 아무개의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으로서 봉헌해 드려야 되겠습니다. 스스로 해방된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힘차고 보람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은은한 가운데 애절한 마음을 가지고 찾아오시는 아버지의 발걸음을 가로막고, 아버지의 딸이 기다렸고 아들이 기다렸노라며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된 모습이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생애노정을 지나왔지만 그런 한때를 갖지 못한 용납받기 어렵고 불효막심한 자리에 있는 자신 들인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고, 기쁨의 자리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영광의 자리에서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생각한 것이 그릇된 것이었음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영광된 그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천만번 수난의 고빗길과 그 누구도 품지 못하였던 억천만세의 한의 심정을 품고 다짐하면서 찾아 오신 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찾고 있는 영광의 아버지는 슬픔의 길을 거쳐오신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사옵니다. 또, 아버님의 영광과 승리를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마땅한 도리인 것을 알게 될 때에, 뜻을 알고 가는 저희들은 옷깃을 여미고 당신의 무릎 앞에 엎드려 자신의 부족한 것을 직고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곳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 진리의 집이온데 이와 같이 소수의 무리가 모여서 당신을 부르고 있사옵니다. 비록 소수의 무리일지라도 이들 중에 당신의 마음 가운데 기억되고, 당신이 여기를 넘어갈 수 없고 당신이 여기를 지나갈 수 없는 기준에 사무친 한 사람의 충신이 나오기를 원한 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사람이 이들 중에 없게 될 때는 이 서울을 바라보시는 당신의 시선 앞에 슬픔의 안개가 가로막힌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고 스스로 아버지를 대하여 광명의 빛이 되고,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런 하나의 생명의 등불이 되어야 할 자신인 것을 느끼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아버지 앞에 빛내기 위하여 모진 수난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충효의 도리를 찾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에 이곳 서울을 향하여 마음으로 기도하는 자들이 있사오면, 아버지, 크신 은사를 베푸시옵소서. 저희들은 죽더라도 한 곳에서 죽고 가더라도 한 목적의 일치점을 향하여 가야 할 운명길에 섰사오니 당신의 슬픔을 저희의 슬픔으로, 당신의 기름을 저희의 기쁨으로, 당신의 싸움터를 저희의 싸움터로 인계받아 당신의 마음 가운데 기억되어 잊혀지지 않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오랜만에 만난 당신의 자녀들을 이 시간 온전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그 누구의 말을 믿고 그 누구의 모양을 보고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깊고 높고 거룩하신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그의 음성과 그의 가르침과 그의 마음의 터전을 그리워하면서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오직 당신만을 위하여 사는 자녀들이 되게 크신 은사를 베풀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이후에도 당신의 거룩하심과 긍휼과 자비가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혹시 처음 온 당신의 자녀들이 있사오면 오로지 당신의 마음 가운데 있는 생명의 젖을 먹이시어 아니 생각할래야 아니 생각할 수 없고,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마음의 솟구침과 마음의 그리움이 그 일신을 점령하게 하시어서, 당신의 거룩한 동산에 같이 참여할 수 있게 특별한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금년도에 저희들 개개인에게 맡겨진 책임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다시한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거룩히 이 시간을, 아버지여, 은혜로써 받아 주시옵소서. 전체를 아버지 앞에 맡겼사오니 뜻대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이 시간은 '우리의 책임'이란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치와 관계와 책임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소속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 들어가면 부모를 모시는 아들이면 아들, 딸이면 딸, 혹은 어머니면 어머니, 아버지면 아버지의 위치를 지니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그 위치가 있고 그 위치에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 위치에서 맡겨진 바의 책임을 우리는 다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어떤 부모의 아들로서 장래를 바라보며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 있다면 그에게는 학생으로서의 위치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 위치가 없다면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위치가 없고, 그러한 관계와 인연 가운데에서 어떠한 책임을 갖지 못한 사람은 외로운 사람입니다.

그 모든 위치가 뚜렷하고 그 위치를 중심 삼아 가지고, 전후 좌우 상하 관계에 있어서 그 사람이 요구하는 대로 질서 있게 협조할 수 있는 환경을 갖게 될 때, 이 사람은 앞으로 무한히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위치가 결정되어 있고, 그 환경이 구비되어 있다 하더라도 관계되고 인연되어진 모든 주위의 환경이 그 사람이 가는 길 앞에 동행하지 못하고 반대될 수 있는 엇갈린 환경이 될 때에는, 그 사람이 가는 길 앞에 어려움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행로에 있어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정에 있어서도 그러하고 한 사회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어떠한 단체면 단체에서도 자기가 처하여 있는 위치가 있는 것입니다.

한 직장에 있어서도 과면 과의 과장이라든가 계장, 그 밖의 과원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위치에 있어서 자기가 전체 목적과 관계되어 있는 인연과 내용 면에서 자기의 책임이 결부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넓으면 넓을수록, 그 인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분야가 높아지고 그 범위가 넓어질 것입니다. 그 분야가 높아짐에 따라서 그 위치도 높아질 것이며 그 책임 사항의 범위도 넓어질 것입니다.

그 관계와 인연을 잘 맺어 가지고 자기가 바라는 어떠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전후 좌우 상하가 잘 협조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면 그는 책임 수행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와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될 때에는 그가 가는 길에는 엇갈린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주권자면 주권자를 중심 삼고 볼 때, 주권자는 그 나라의 최고의 책임자입니다. 그렇지만 최고의 책임자라고 해서 홀로 그 나라의 모든 일을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행정 조직의 제반 부서와 전부다 인연을 맺어서 한 조직체로서 이끌어 나가는 것입니다. 조직을 구성하는 모든 부서가 전체가 지향하는 목적을 중심 삼아 전후 좌우 상하에서 협조할 수 있다 할진대 그 나라는 발전하고, 정책수립자나 주권자가 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도 그 결과는 좋은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관계되고 인연되어 있는 제반 부서들이 정책의 방향 앞에 상충되는 입장에 서게 될 때는 그 나라는 후퇴하는 것이요, 그 주권자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일상 생활을 미루어 보나 국가의 정세를 미루어 봐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의 정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주권자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 있어서도 민주와 공산의 양 진영을 중심 삼고 볼 때, 양 진영의 대표자 입장에 있는 주권자가 있다 할진대, 그 주권자는 비록 한 나라에 국한된 주권자이지만 그 인연이나 관계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인연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수행하는 정책이라는 것은 그 국가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넘어 세계의 수많은 국가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계적인 최고의 지도자가 계획하는 모든 정책은 자기네 한 나라에 국한되는 정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 있을수록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방대하고 전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기에, 여러 국가와 상충되지 않고 협조를 받을 수 있다면, 그 주권자의 국가에 있어서도 목적 달성이 가능하고, 전세계 인류에게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정책으로 제시한 것이 제반 여건들과 서로 상충적인 입장이 될 때에는 난행을 거듭함으로 말미암아 세계 국가들이 바라는 기준 앞에서 제거되는 것이요, 뿐만 아니라 주체적인 국가의 입장에서 곤경에 처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일개 국가의 입장에서까지도 곤경에 떨어지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 세상의 모든 일에서도 관계되어 지는 전후 좌우의 인연이, 책임을 진 사람에게 그 책임 수행여부를 좌우시키는 동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오늘날 우리와 관계되어 있는 세계를 우리는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통일교회는 어떤 위치와 사명을 갖고 있는가

​인간세계도 그러하지만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역사시대를 발판으로 하여 그 과정을 거쳐오면서 섭리적인 뜻을 수행하고 있다 할진대,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도 절대적 주권을 중심삼아 전체 세계를 섭리할 관을 세우고 그 관을 중심삼고 반드시 그 관과 더불어, 목적을 수행하는 데 관계될 수 있는 수많은 종교, 수많은 양심적인 인사들과 단체를 지상에서 협조할 수 있게끔 관계와 인연을 지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관계되어진 모든 기관들이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하나의 목적 앞에 협조 될 수 있는 내용을 갖출 것을 요구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한 그 뜻 앞에 배치될 수 있는 환경이 오늘날 이 지상에 벌어지게 된다면 한 국가의 중심 존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역시 고난과 난항의 길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기독교가 있고 불교가 있습니다. 기독교 가운데서도 여러 종파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종파로 나타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이 통일교회가 오늘날 섭리도상에 있어서 중차대한 사명을 짊어졌다 할진대, 어떠한 위치에서 사명을 짊어지고 있느냐 하는 것을 통일교회 선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는 중심존재 되는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분을 중심삼아 어떤 자리에 서 있느냐? 동쪽이냐 서쪽이냐 남쪽이냐 북쪽이냐, 상하 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 어떠한 관계, 어떠한 위치에 서 있는 통일교회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게 될 때는 그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믿고 나가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스스로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어떠한 위치에 있고, 그 위치에서 어떠한 섭리적 내용을 중심삼고 관계를 맺고 있으며, 어떠한 이념과 더불어 결속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중심삼아 여러분이 어떠한 중심존재와 관계를 맺고 있을 때, 그것이 오늘날 수많은 종족들이 중심존재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과 비교해서 그 기준이 우위에 있느냐 그 반대의 자리에 있느냐, 또는 전진적인 자리에 있느냐 후퇴하는 자리에 있느냐 하는 것을 문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쁨과 슬픔도 가려서 느껴야

사람은 누구나 '나' 라는 존재를 중심삼고 언제나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피해를 받고, '나'라는 존재가 상처를 당하는 자리로 가게 된다면 얼굴을 붉히는 것입니다. 불행을 느끼고 불만을 느끼는 그런 자리에 서게 될 때에는 반드시 슬픔을 느끼는 것이 우리 인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슬퍼하는 것도 '나' 중심한 것이요, 기뻐하는 것도 '나'를 중심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기뻐하는 그 기쁨이 어떤 자리에서의 기쁨이냐, 슬퍼하는 것은 어떤 자리에서의 슬픔이냐 하는 문제도 천태만상으로 갈라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가정을 다 버리고라도 국가와 민족의 해방, 혹은 부흥을 목적으로 삼고 그런 국가의 환경이 나타나게 될 때에 그것을 바라보고 기뻐하고 그렇지 않은 입장에 서게 될 때는 슬퍼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자기의 가정을 중심삼고 슬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자기 주위의 누가 자기와 관계되어 있어서 슬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나라의 슬픔을 염려하여서 슬퍼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한 가지 사실을 놓고도 입장과 처지를 달리하여 여러 가지 형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있어서 각 부처(部處)를 중심삼고 볼 때, 한 가지 일을 놓고 외무부면 외무부, 내무부면 내무부를 중심삼고 기뻐할 수 있는 부처가 있는가 하던 슬퍼할 수 있는 부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엇갈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슬퍼하는 것도 슬퍼할 수 있는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자기의 발전을 다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슬픔을 느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일생을 종결짓는 최후의 자리에 부딪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전부 다 슬퍼하는 것도 자기를 중심삼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것도 자기를 중심삼고 기뻐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슬퍼하는 것이 어떤 자리에서 슬퍼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개인이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이 없어서 슬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어떤 사람은 부모를 여의어 슬퍼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슬퍼하는 데도 천태만상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슬픔 중에서도 가려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쁨도 전부 다 같은 기쁨이 아닙니다. 그 기쁨 가운데는 천태만상으로 엇갈릴 수 있는 사연들이 엉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한 인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엉켜 있는 그 슬픔과 기쁨이 내 생사 문제를 좌우하고, 내 인격 문제를 결판지을 수 있는 기쁨이 되어 있고, 슬픔이 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기쁜 길도 슬픈 길도 가려서 가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길을 가는데 있어서는 지금 당장 기쁜 것만 바라고 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 있어서 10년이 걸려서 이룰 수 있는 일을 결심한 사람이 있다 할 때, 10년을 채워야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10년의 절반도 안 되어 가지고 자기가 기쁠 수 있는 어떠한 상대를 만났다고 해서 중도에서 그것을 따라가게 된다면, 10년 수도(修道) 의 결과로써 찾아야 할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은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결심을 했다면 10년 동안 이룰 악물고 모든 것을 절제하는 마음으로 이것을 수습할 수 있는 결의를 다짐하여 자신이 그런 환경에 흡수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환경에서 찾아지는 저급한 기쁨에 동화되는 입장에 설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괴로움을 느껴야 할 입장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도 목적을 뚜렷이 세워 행해야

하루 생활에 있어서 사랑하는 아내가 회사면 회사에 출근하는 남편에게 오늘 재수가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재수라는 것이 어떤 기준의 재수냐 이겁니다. 재수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어떠한 자리에서, 어떠한 인연을 중심삼고 재수가 있기를 바라느냐? 그 범위는 넓은 것입니다. 개인 개인끼리, 친구 친구끼리 만나서 서로서로가 서러운 것, 서로서로가 외로운 것, 서로서로가 미비한 것을 보충함으로써 기쁨을 느끼게 되어 재수있는 것이냐? 혹은 집이 곤궁하여 한 달 생활을 해결할 수 없는 자리에 있는데 이것이 해결됨으로써 재수있는 것이냐? 이런 것은 전부다 흘러가 버리는 재수입니다. 그것이 내 일생과 더불어, 부부가 공히 천년만년 기쁨으로서 지닐 수 있는 재수냐 하게 될 때, 이것은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아내가 오늘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면 그것이 무엇을 두고 한 말이냐? 흘려 버리는 입장에서 항시 하는 투로 말하였다면 그 말한 것이 당장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 앞에 있어서 도움이 못 되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대한민국의 한 백성으로서, 혹은 대한민국의 한 가장으로서 재수가 있기를 바란다 할진대 어떤 자리에서 재수가 있기를 바랄것이냐? 높은 자리, 귀한 자리, 보다 가치있는 자리, 회사면 회사 전체에서 우러러볼 수 있는 자리, 회사를 넘어 나라가 찬양할 수 있는 자리, 어느 자리에서 재수가 있기를 바라느냐고 묻게 될 때,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나라가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자기 남편이 재수가 있기를 바란다고 대답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 되는 것이 자기 남편이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기를 그 아내가 진심으로 바라느냐 할 때, 안 바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속담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자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 인생노정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선을 행하는 데 있어서 목적을 뚜렷이 세워 가지고 행해야만 그 목적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한다고 해서 오늘은 이렇게, 내일은 저렇게 목적이 왔다갔다하는 사람은 아무리 선행을 해서 기쁜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기쁨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선행을 하되 한 나라면 한 나라를 중심삼고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나라가 가야 할 길은 이런 길이다. 나라의 백성들은 이렇게 지도해야 된다'는 철두철미한 정신에 입각해서 삼천만 민족이면 삼천만 민족, 그 나라의 국토면 국토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성들이는 자리에서 선행을 해야 됩니다. 그것은 오늘 해도 나라를 위한 것이요, 내일 해도 나라를 위한 것이요, 낮에 해도 나라를 위한 것이요, 밤에 해도 나라를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개개인이 가진 특성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개개인의 됨됨이도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마다 바라는 인생의 목적도 똑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반드시 목적이 있어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가 존재하는 이상 그 목적을 반드시 이루려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목적하는 바의 가치가 그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도 사람이 완전하기를 바라고, 최고의 가치있는 자리에서 열매맺히기를 원하시지, 어떠한 환경의 영역으로부터 제재를 받아 미급한 자리에 서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이 아니냐? 완전무결한 하나의 결실을 바라는 하늘의 바램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럴 수 있는 하나의 목표를 중심삼아 가지고 먹는 것도 그것을 위해 먹고, 사는 것도 그것을 위해 살고, 활동하는 것도 그것을 위해 활동하고, 좋아하는 것도 그것을 중심삼고 좋아하게 된다면, 한날의 기쁨은 자기의 생활과 더불어 흘러가는 기쁨이 되지 않고 영원한 기쁨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슬픔을 만일 당한다면 그것은 나로 말미암아 당하는 슬픔이 아니라 뜻이 지향하는 자리에서 상충되어 당하는 슬픔이요, 그 슬픔의 동기는 내가 아니라 나라이기 때문에, 그 슬픔으로 인하여 내가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재차 결의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자극이 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뜻을 품고 그 목적을 위해 정성들여 가는 생활 일체를 그 목적에 귀일시키고 일치시키고자 싸워 나가는 노정, 노력해 나가는 노정에 있어서 슬픔이 있다 하더라도 그 슬픔은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통하여 내일의 희망과 내일의 새로운 목적을 촉진시키는 촉진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그 슬픔을 내일의 희망과 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터전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의 마음

여러분들이 사람을 대해서 '이 사람은 좋아. 저 사람은 나빠' 하고 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좋다고 하는 말은 무엇을 근거로 해서 평한 말이냐? 어떠한 위치와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 한 말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땐 그 기준이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그와 같이 막연한 기준을 갖고 사는 사람들로 꽉 차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사람이 아침에도 헤헤, 저녁에도 헤헤하면서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그 좋다는 것이 일관된 목적과 더불어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면 잠깐 피었다가 떨어지는 꽃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기쁨을 그려 간들 그 일생의 끝에 남을 것이 무엇일 것이냐 이겁니다. 허황된 결과밖에 가져올 수 없는 처량한 인생이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변화된 내가 되려면 어떠한 자리에서 나를 주장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아무개 집 딸이요, 아무개 집 아들인데 그 아무개는 어떤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을 중심삼고 존중시하는 것이냐? 이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누가 한마디 비평만 해도 그 자체로 기분 나빠하는 것입니다. 그 기분 나빠하는 것이 어떤 자리에서 기분 나빠하는 것이냐에 따라서 천태만상으로 가려지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우리 통일교회 선생님이 오신다는데 한번 가 보세' 했을 때 어떤 사람은 '아, 그래 ? 한번 가보자' 해 가지고 나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왔을는지 모르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큰 것을 좋아합니다. 큰 것을 좋아하지요?「예」 큰 것을 좋아하는데 큰 것이 될 때까지는 간단히 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큰 것이 그냥 그대로 자기 앞에 떨어지기를 바라는 도둑놈 심보를 가진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삼천리 반도라 하는데 대한민국이 커요, 작아요? 대한민국이 한 만리만 돼도 내가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고 여러분 그래요?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제일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다. 역적이요, 국적입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기분 나빠하지 않을 것입니다. 뭐 그럴 수 있겠느냐고 항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노하지 않는 것을 보니 그렇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대한민국만 제일 커지고 자기는 꼴찌 되기를 바라요? 대한민국이 커지는 데는 자기가 꼭대기에 서 가지고 커지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요게 인간이라구요. 이렇게 멋들어지게 바라고 있는데 자신은 똥구덩이 같은 데 있으니 야단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기분 나빠할는지 모르지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제일이 되기를 바라지만 자기를 중심삼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다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안 갖고 있는 녀석은 때려죽여도 말 못한다는 것입니다. (웃음) 이게 이상하지 않아요? 이게 참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가끔 거울을 들여다보면 자기 주제가 그럴 수 있는 내용이 안 되어 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마음만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게 얄궂은 일이지요.

한국의 가을은 참 멋진 것입니다. 한국의 가을은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청청한 가을 하늘은 높고 끝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마음은 그보다 더 높기를 바라고 더 넓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나도 그래요. 그러고 보니 여러분이 나를 닮았구만요. (웃음) 여러분이 나를 닮았는지 내가 여러분을 닮았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닮긴 닮았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인간

그런데 대관절 사람이 누구를 닮아서 이 모양이냐? 아버지를 닮았지, 그러면 네 아버지는 누구를 닮아서 그 모양이냐? 할아버지 할머니를 닮아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자꾸 올라가면 인간의 종지조상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인간 조상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조상은 누구를 닮아서 그렇게 됐어요?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인이 있어 가지고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작품은 그것을 만드는 작가가 그렇게 만들겠다고 하는 작품에 대한 구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렇잖아요? 아마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를 닮게 마련이냐? 엄마 아빠를 닮게 마련입니다. 혹 그 부모를 닮지 않았다면 몇 대조상의 성품이 숨겨져 있다가 유전법칙에 의해서 어머니 아버지의 성품과 합하여서 한 인간이 생겨난 것이지 아무 근원도 없는 무관한 자리에서 그렇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기 혼자에 의해 자신이 되어 가는 줄 알겠지만 이미 여러분 조상세계의 양반들이 많이 왔다 갔습니다, 그 수천 대(代)의 조상들을 나쁘게 얘기하면 안 되겠으니 사장님이라고 합시다. 그 수많은 사장을 종합한 총사장으로서 남아진 것이 여러분 개체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얘기를 들으니 기분 좋지요? 이렇게 멋있는 것이 사람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뭐와 같으냐 하면, 수천 수만 대의 조상들의 갖가지의 모양, 자격, 가치들을 모아 놓은 것을 박물관에 전시해 놓은 전시품들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오늘날 여러분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이 세계 앞에 '우리의 후손이 이렇다' 하며 전시품으로 세워 놓은 것이 우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봤습니까?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이 천지간에 남자와 여자는 많디 많지만, 그 개인 자체를 두고 볼 때 자기 선조들의 모양을 전체로 총합해 가지고 열매를 맺어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천당이나 영계가 있다면 여러분의 선조들의 영이 영계에 가서 죽지 않고 딱 버티고 앉아서 여러분들을 바라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조상들이 자기의 아들딸, 손자, 손녀가 잘나기를 바라겠어요, 못나기를 바라겠어요?「잘나기를 바랍니다」 잘나기를 바라는데 얼마나 잘나기를 바라겠습니까? 세계에서 제일 가기를 바랄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일이라면 세계 대통령만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세계 대통령보다더 높은 분이 있다면 그분 앞에 제일 사랑받는 손자, 손녀, 혹은 손자 손녀의 아들딸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안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기 손자 손녀를 좋아합니까, 안 좋아합니까?「좋아합니다」 나이를 많이 먹으면 주름살도 늘고 해서 손도 얼굴도 쭈글쭈글해지고 머리도 희끗희끗해집니다. 거기에다 할아버지들은 수염까지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늙은 사람들은 몸에서 냄새가 납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손자 손녀가 귀엽다고 볼을 비비고 어루만지고 하면 손자 손녀는 싫다고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빵까지 사주며 손자 손녀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나도 이런 감정을 느껴 왔어요. 여러분들은 못 느껴 봤어요? 손자 손녀는 싫다고 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따라다니며 도와주려고 합니다.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그 후손들을 미워하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좋아 하겠어요, 싫어하겠어요? 여러분 선조들이 여러분을 좋아하면 기분 좋아요, 나빠요?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조상이 세상에서 용서할 수 없는 살인 강도라면 여러분의 기분이 좋겠습니까? 그럴 때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기 조상 가운데 잘난 조상이 있으면 자랑하지요? 국민학교 아이들이나 유치원 아이들도 박대통령이 자기의 선조라면 '야 ! 지금 박씨가 대통령하기 때문에 박씨가 제일이다' 하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한 치의 관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종씨가 대통령 한다고 '우리 대통령'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 하려면 한정이 없습니다. 하여튼 여러분은 누구를 닮았어요? 누구 닮기는 누구 닮아요. 종지조상을 닮았지요. 여기에 어떤 조각 작품이나 문학작품이 있다면 그 작품은 어디에서부터 나왔느냐 할 때 작가의 마음속에 구상한 것을 닮아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요? 세계를 자기수중에 넣고 싶어하는 작가가 작품을 만들었다면 그 작품은 그런 소원을 가진 작품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그건 여러분들이 아무리 거짓말이라고 부정을 하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때 좋아하고 나빠하는가

나도 사실은 하나님 부르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면 안 부를래야 안 부를 수 없게 돼서 부르는 것입니다. 덮어놓고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따져 보고, 기도해 보고, 쪼개 보고, 맛보고, 던져 보고, 들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분석해 보고 해서 그분 아니면 안 되겠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나라고 해서 애초 부터 종교 지도자가 되려고 마음먹고 나온 게 아니다 이겁니다. 하나님을 좋아하는 성품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덮어놓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구요. 그런데 왜 하나님을 좋아하느냐?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좋으신 분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반면 하나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왜 싫어하느냐? 절대 싫어할 수밖에 없는 결과의 자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어떨 때 좋아하느냐? 마음이 딱 맞을 수 있는 상대를 만날 때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자 혼자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돼요? 백년 이내에 죽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남자가 있으면 무엇인지 모르지만 주체를 끌어 당기는 힘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도 역시 대상이 있으면 끌어 올 수 있는 힘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주체와 대상 관계가 없게 될 때에는 그러한 힘이 나와요?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남자면 남자로 태어날 때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태어났어요, 모르고 태어났어요? 여기 젊은 남학생들, 그거 알고 태어났어요, 모르고 태어났어요? 이런 문제를 따져 보면 하나님이 없다고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몰랐지만 그분은 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주체와 대상의 인연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가 공동작용을 해서 이중의 목적이 결합하여 단일적인 주체면 주체, 대상이면 대상의 가치보다 더 높을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여야 합니다. 힘을 통하여서 그 목적을 가능하게 하려니 먼저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주체와 대상이 있게 되면 그 결과는 보다 더 큰 것으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에서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힘의 세계는 그와 반대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주가 상응과 상충에 의해 생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상충은 상응하는 것을 파괴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상응되는 것을 보호육성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으로 있는 것입니다. 이러면 우주의 근본이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되어 가지고 공산당이 변증법이니 뭐니 하면서 지금까지 세계를 혼란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이건 어려운 말이니까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못 알아듣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열이라는 진정한 사랑을 받았으면 그걸 떼어놓고 살겠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습니까? 이 우주의 모든 존재는 한 개체가 작아지면 동시에 다른 한 개체는 그와 반대로 되기 때문에 보호 육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서 이러한 작용을 하는 것은 보다 이상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랑이란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다 큰 세계의 가중된 목적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나라가 잘 되려면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정신을 국민 각자가 갖고 있어야 되지요? 친구끼리 무슨 일을 하려면 단합된 친구애를 중심삼고야 되지요? 마찬가지로 세계가 잘되려면 세계 인류가 박애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힘이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된다고요?「사랑요」사랑이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체와 대상이 없으면 힘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실감나는 얘기 할까요? 여러분이 혼자 가만히 있을때 힘이 나옵니까? 혼자 밥 먹고 배가 툭 불러 가지고 기분이 좋아서 가만히 앉아 있을 때 힘이 나와요? 혼자서 힘이 나온다고 하는 녀석은 미친 녀석이라구요. 운동한다고 할 때는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를 걸어놓고 운동하기 때문에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분이 좋고 나쁘다는 것은 자기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내가 기분이 나쁘고 기분이 좋다 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그러냐? 내가 침범을 당할 때에는 기분이 나쁜 것이고, 내가 이익을 볼 때에는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내가 손해를 보면 기분이 나쁜 것이요, 내가 이익을 볼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몸이 하자는 대로 하면 허사가 돼

여러분, 매일같이 서울 명동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침에 집을 나오면서 오늘 재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한 가지라도 자기한테 플러스되고, 이익이 되겠거니 하고 나오지 일전이라도 손해 보겠거니 하고 나오는 사람 있어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친 사람일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힘의 작용도 그렇습니다. 손해나는 일에는 절대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원소의 이온결합 실험을 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플러스나 마이너스 이온이 있으면 거기에는 상대극을 띤 이온이면 무슨 이온이든지 다 결합될 것 같지만 안 그렇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게 되면 그 이온에 상대되는 이온만이 결합되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터럭 같은 것 하나라도 이익이 되는게 있으면 싸악 가서 붙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되어 있느냐? 그것은 사람도 그렇고 하나님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이 만든 물건이기 때문에 물질세계의 모든 분자 원자까지도 그런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이 작용한다는 것은 주체와 대상이 서로 만나 가지고 주고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의 양심이 작용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과학적인 논리를 뒷받침해 가지고 양심이 주체가 되느냐 대상이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양심이 작용했다는 것은 주체와 대상이 있다는 말이예요, 없다는 말이예요?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주체는 누구냐?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르지만 있다는 것입니다. 지남석이 북극에 가면 남극을 향해서 남극에 가면 북극을 향해서 작용을 하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양심이 작용했다는 사실은 우리 양심이 주체적인 입장에 있든가 대상적인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인간이 행복을 찾아가는 데는 어떤 행복을 찾아갈 것이냐? '인간이 어떤 유형의 행복을 찾아가든 인간의 수명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백년밖에 더 되나. 청춘시대라는 것은 한번밖에 없는데 젊을 때 마음대로 먹고, 마음대로 놀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죽는 것이 그럴 듯한 인생이지' 하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했댔자 나중에 가면 모두가 허사예요.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몇해 안 가서 모든 것이 다 싫증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히피족이라는 말을 들어 봤죠? 선생님이 샌프란시스코에 가보니 젊디 젊은 녀석들이 미친 도깨비처럼 해 가지고 귀중한 시간을 그냥 허송세월로 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녀석을 가꾸로 달아 가지고 궁둥이라도 한번 차 버리고 싶지만 미국에서는 그것도 자유라고 해서 자유를 침범하면 기분 나빠한다는 것입니다. 그 녀석들한테는 나라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몸뚱이의 행락을 따라 좋다는 대로 살아 보라는 것입니다. 그게 몇 년 가느냐? 얼마 안 가서 끝장난다는 것입니다. 돌아가려니 막막하고 가자니 길이 막히고….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이 땅 위에서 나쁜 행동을 하게 되면 파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점점 자기를 후퇴시키고 자기의 모든 가치를 소모시키는 결과를 가져 오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중심한 주체와 대상은 언제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을 중심한 주체와 대상은 찾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찾기 어렵기 때문에 위대하고 높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주체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대상이 되지 않고는 주체를 찾지 못하고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 주체를 만나는 날에는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기쁨과 거기에서 흘러 나오는 행복감은 무한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아마 하나님이 계신다면 딱 모셔다가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겠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것이 몸뚱이에서 나오는 욕망이예요, 마음에서 나오는 욕망이예요?「마음에서 나온 욕망입니다」 몸뚱이에서 나오는 욕망이라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장이라는 것입니다. 몸뚱이에서 그런 욕망이 나올 게 뭐 있어요? 몸뚱이야 그저 남의 등을 쳐서라도 자기 좋은 것 먹으면 되고, 좋은 것 입으면 되고, 좋은 데서 살면 되는 거라구요. 그것으로 끝나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면

사람의 욕심은 하나님하고 친구지간이 되고 싶고, 친구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집 안방에다 모셔 놓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안방에다 모셔 놓아도 안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보물 상자가 있지요? 그 보물 상자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처녀들, 묻겠어요, 안 묻겠어요?「묻겠습니다」 처녀들이 묻겠다면 남자는 물어 볼 게 없는 거라구요. (웃음) 그렇게 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있긴 뭐가 있어 ? 나에게는 영원히 영원히 주고도 남을 수 있고, 영원히 영원히 받고도 남을 수 있는 인간의 생사문제가 달려 있는 사랑이 있지'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걸 갖고 싶죠? 그걸 점령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 껍데기야 뭐 미국으로 가져가든 천당에 가져가든 좋다는 것입니다. 그걸 점령한 다음에는 먹고 자고 자기 하고 싶은 것 다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다 이루거든 그때사 실컷 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지금까지 잠 한번 실컷 못 자 봤습니다. 자는 것도 그때 가서 실컷 자야 되는 것입니다. 두부를 만들 때 간수를 잘못 넣게 되면 순두부도 못 되고 풀어집니다. 그와 같이 풀어져서 실컷 한번 자 보는 것입니다. 먹는 것도 그때 가서 실컷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하고? 하나님하고 실컷 먹고, 하나님하고 실컷 좋아하고, 하나님하고 실컷 노래부르고, 하나님하고 실컷 춤추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벌거벗고 춤도 한번 안 춰 봤는데 벌거벗고 춤춘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때 가서 하나님 앞에서 진짜 벌거벗고 춤춰 보자는 것입니다. 춤추더라도 하나님이 좋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요? (웃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 보고 통일교회 선생님이 됐다면 벌써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을 쳤을 것입니다. 이때까지 내가 얼마나 핍박을 받았습니까? 생각해 보면 지긋지긋하고 신물이 납니다. 올해 내 나이가 쉰 둘인데 어떤 사람들은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쉰 둘이 안 돼 보인다고 합니다. 선생님도 마음만은 젊습니다. 여기 양윤영 할머니도 마음은 아직까지 열 다섯 이지요? 그렇지요?「예」 그거 보라구요. 아무리 육신이 늙었어도 지금 시집간다고 하면 스무 살 총각한테 시집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지요? 솔직이 얘기해 보세요. 그럴 것입니다. (웃음) 마음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합니다.

몸뚱이를 중심삼고 사랑의 상대를 찾고자 하면 오늘밤에도 어디 가든지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중심삼고 상대를 찾고자 하면 천년을 공들여도 만나기 힘든 것입니다. 거기에는 자기의 정성을 다 들여야 됩니다.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천배 만배 가치있게 배가 시켜서 투입해야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내 마음이 주체와 좋아할 수 있는 인연으로 맺어진 자리가 어디냐? 그런 은혜의 자리는 하나님을 모셔 놓고 이마를 맞대어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새로운 인연을 맺어 사랑을 논의할 수 있는 그러한 자리에서만 대상과 상대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자리는 천상천하에 있어서 무척 고귀한 것입니다.

그 사랑 가운데서 하나된 마음을 가지고 천하만상을 바라보게 될 때 이것은 이미 다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서 생각 했던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석가모니 같은 분들은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진리를 터득했던 것입니다. 그런 안경을 쓰고 보게 되면 요 분필도 천년 들여다봐도 끝이 없는 희열이 사무치는 고귀한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으면서 남긴 한 장의 손수건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것이 비록 오십 원짜리밖에 안 되지만 죽을 때까지 그것을 바라보고 생의 기쁨을 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은 자기 생애보다 더 귀한 거라구요. 인간의 사랑의 조건물로 제시된 한 장의 손수건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하나의 불변의 조건을 가진 것이야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이걸 갖게 되면 춤을 안 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런 경지에 도달해 있기 때문에 세상이 아무리 떠들어도 상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가 잘났는지는 세월이 지나면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욕을 먹고도 가만히 있으니까 통일교회가 없어진 줄 알지만 자꾸자꾸 커 가는 거라구요. 그래서 세상의 좋은 것은 전부다 우리가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적질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지 말래도 저절로 오게끔 되어 있습니다. 좋은 과실이 익어 가지고 냄새를 피우게 되면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은 냄새를 맡고 모여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들어오면 홀린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총각들도 한번 맛만 보게 되면 대번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홀린다는 것입니다.

몸뚱이의 대상과 몸뚱이의 행복과 몸뚱이의 안식처는 바로 눈앞에 펼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대상과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세계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라는 것이 나온 거예요. 이것을 찾기 위해서는 세상을 붙안고는 절대 못 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걸 다 부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상대적 절대자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떤 자리에서 기뻐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내가 일생을 두고 가고 싶은 길이라면 내가 모든 정성을 다 들여 그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자기의 온갖 정력을 다 들여 가지고 귀한 작품을 만들어 놓았는데 전쟁이 나서 피난을 가게 됐다면 그 작품을 버리고 피난 가겠습니까, 가지고 가겠습니까? 죽는 자리에서도 그것을 꼭 붙들고 죽으려고 할 것입니다. 사람도 이러한데 하물며 인간을 최고의 걸작품으로 지으신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은 절대자이고 영원하고 능력이 많은 분이신데 그런 분이 작품을 만드는데 한 백년쯤 지나면 싫증을 느껴 '에이 싫다' 하면서 집어 던질 정도로 만들었겠습니까?

사랑은 영원하고 참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랑을 얘기할 때, '일생을 사랑할 수 있는 그대여' 그래요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그대여' 그래요?「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그대여 그럽니다」 그러는 거라구요. 그런데 하나님이 한 백년쯤 살다가 집어 던져 버리려고 했겠어요? 하나님은 절대자이기 때문에 절대자가 사랑하는 대상도 절대적입니다. 영원한 속성을 지닌 그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한번 사랑하면 영원히 사랑하고 싶겠어요, 영원히 사랑하고 싶지 않겠어요?「영원히 사랑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도 그 사랑의 법도를 따라 영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세부적으로 암만 얘기해도 모자랍니다. 왜 그래야 된다는 걸 알겠어요? 사랑은 영원하게 마련이라구요. 사랑하는 남편하고 한 백년쯤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사람 있어요? 영원히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고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생은 사랑에서만 나오는 거라구요.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을 보면 만물 가운데 최고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으면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 되기를 바라고, 제일 되는 데는 자기를 제일 높은 자리에 세워 가지고 제일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누구를 닮았느냐?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관절 제일 꼭대기에 올라가서 더 올라가지도 못하고 또 내려가지도 못할 것을 뭐 하려고 그러는 거냐? 절대적인 주체 앞에 있어서의 플러스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도 제일 높은 자리에 혼자 계신다면 재미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하나님도 별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혼자 제일 꼭대기에 떡 버티고 있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웃음) 어떤 부자집 할아버지가 있는데 그 할아버지가 그 나라의 주권자이자 세계의 대통령이 떡 되었다고 합시다. 혼자 영광과 행복과 권세를 쥐었다 이겁니다. 그런데 혼자 떡 방에 버티고 앉아 가지고 '허허' 하고 웃는다면 그 사람을 보고 뭐라고 그래요? 미쳤다고 그러지요?「예」 그건 볼장 다 봤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독단신 독수공방하면서도 아주 조그만 종이에다가 바늘 끝으로 쓸수밖에 없는 글자를 써넣고 혼자 그걸 바라보고 있다면 그때는 미쳤어요, 안 미쳤어요?「안 미쳤어요」 아무리 작은 대상이라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절대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 절대자 앞에 세워진 대상이라면 절대적인 가치를 지녔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남자로 태어나서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이 고독단신으로 살아 가며 세계적인 박사가 되어 노벨상을 한 열개씩 받는 사람이 되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박사는 못 되고 농부가 되더라도 아내와 같이 자식을 낳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겠어요? 여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 우리 총각들, 어떤 길을 택할 거예요?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 나서 박사가 있는 것이지, 아내와 자식을 부정하고 박사 바라는 녀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목석같은 녀석은 죽어도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없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공부해서 뭘 해요? 처녀들이 대학교에 왜 가요? 대학교에 가서 훌륭하게 되어 가지고 남자를 끌고 다니고 타고 다니겠어요? 대학교에 가서 학박사가 되겠다는 것은 그런 상대될 수 있는 훌륭한 남자를 얻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결과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고생 안 해도 여자는 시집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독단신으로 30세가 넘어 이마에는 주름살이 생겨 가지고 무슨 학사증, 박사증을 가지고서 좋다고 히죽 웃는 사람은 망신살이 뻗쳤다는 것입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도 신수가 편하고 기쁘기 위해서는 대상이 필요할까요, 필요하지 않을까요? 필요하겠지요?「예」 그러면 그 대상이 이 천지 간에 원숭이겠어요, 사람이겠어요? 사람이겠지요? 인간에게는 절대자가 있으면 그 절대자 앞에 상대적 절대자가 되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이것은 참 어려운 말입니다. 인간은 상대적 절대자가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상대적 절대자이고 하나님은 주체적인 절대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래야 조화가 벌어지고 행복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별수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새로이 인식해야 할 기독교인들

오늘날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지고지존하신 분이고 죽을 죄인도 용서하신다. 그 하나님을 우리는 대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이러니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서는 새로운 신앙의 혁명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앞으로 공자보다 나을지 모르고 예수보다 나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금 낫다는 게 아니라구요. 나을지 모른다 이겁니다. 거 기분 나빠하지 말라구요. (웃음) 그래서 기성교회에서 문 예수란 소문이 나왔는지 모르지요. 나는 예수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내가 가르치면 가르쳤지 내가 예수한테 배우려고 하지 않아요. 내가 예수 선생 되고 싶지 예수 제자 되고 싶지 않아요. 왜 그러냐? 예수가 선생이 라면 그 제자가 선생보다 나은 제자가 되어야 그 선생도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낮춰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자식이 그 아버지보다 잘생겨야 돼요, 못생겨야 돼요?「잘생겨야 됩니다」 잘생긴 것을 시기한다면 그 아버지는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이 잘난 것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망하라고 해도 흥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보다 더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예수님보다 나은 사람을 만들 것입니다. 그런데 이단이라고 야단이예요. 이단이 뭐예요? 그들은 일단이고 우리는 이단이지요. 그렇게 생각하고 욕을 먹었습니다. 그들이 일단이니까 이단인 우리가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니까 뭐 무서워서 그러는 줄 알고 야단입니다. 그렇지만 골목에 가서 다스리게 될 때는 찔러 놓게 되면 국물도 없지요 뭐. 세상이 아무렇든 버티면서 싸워왔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 동안 고생 좀 했습니다. 아주머니들, 고생해 가지고 늙었지만 말이예요, 나중에는 연구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가을이 되면 봄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발전하고 자라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가을이 됐다 하더라도 봄을 맞을 준비를 안 하는 것입니다. 봄을 맞을 준비를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는 가을이 되어 잎이 떨어지면 봄맞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 오고 설한풍이 불어와도 그것을 견뎌야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듯이 우리에게 아무리 큰 핍박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문제가 아니예요. 사지에 생명의 닻을 내릴 수 있는 자신이 있어야 된다구요.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스스로 부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종이 되고 싶습니까, 양자가 되고 싶습니까? 진짜 아들딸들이 되고 싶습니까?「진짜 아들 딸들이 되고 싶습니다」 얼굴은 못생겼어도 모두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물어 볼 필요도 없는 질문입니다. 물어 보는 사람이 유치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됐으면 아들딸 중에서도 맏딸 맏아들이 될 거예요, 막내딸 막내아들이 될 거예요?「맏이가 될거예요」 자 그러면 맏이로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버지의 책임을 대신 양쪽 어깨에 짊어지고 내가 살기 전에 동생을 살려 주고 내가 죽더라도 동생을 살려줘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역사상의 그누구도 그 자리를 빼앗을 수 없는 완전한 맏딸이 되는 것이요, 맏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 오셨던 예수

그런데 우리의 조상이 그 책임을 짊어져야 되는데 '나는 싫소' 하고 책임전가를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완전한 맏딸과 완전한 맏아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천지간에 그러한 분이 딱 한 분 오셨는데 그분이 어떠한 분이냐 하면 30세가 넘도록 장가도 못 간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잘하는 것 없이 그저 나무나 베어다가 툭툭 깎는 까뀌질이나 했던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분은 딴 사람의 아버지가 아닌 바로 내 아버지야!' 하는 이런 마음을 갖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심을 얼마만큼 했겠습니까? 한번 결심했다고 그 마음에 자리 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 결심이 예수의 마음에 자리 잡히기까지는 얼마나 몰두했겠느냐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악마가 그런 생각을 못 하게끔 혼란을 주고, 주위 환경이 부정하고, 잡아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붙든 그 하나님은 내 아버지임에 틀림없다. 이것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죽음으로써 입증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아들은 아들인데 독생자다' 한 것입니다. 아들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다 그 말이라구요.

그러면 이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살림살이를 몽땅 책임지시겠다는 말이예요, 안 지시겠다는 말이예요? 하나님이 아무것도 안 하시게 되면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겠다는 입장이예요, 안 하겠다는 입장이예요?「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야 이놈아 ! 네가 하나님의 독생자야. 세계를 구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타락된 이 세계를 어디 한번 구해 봐라. 얼마나 큰 고통이 따르는지 한번 당해 봐라!' 하면서 갖은 시험과 핍박을 가했습니다. 죽음길이었지만 예수님은 초지일관이었습니다. '죽음아 오너라 ! 생명을 위협하는 창칼로 가로막더라도 나는 이 뜻길을 간다. 내 생명을 다 바쳐서라도 승리할 것이다. 나 이상 수고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한 나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장자다' 하는 그런 입장에서 생명을 바치고 죽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창으로 가슴을 찌른 그 원수들에 대해서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 : 34)"라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기도냐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경지까지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남자로서 얼마나 멋있는 일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근사한 일입니까? 남자가 생각을 하고 활동에 옮기려면 생사를 초월해서 그 정도는 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 남자들은 시시하게 계집애들을 데리고 산으로 놀러 다닙니다. 그런 녀석들은 나중에 자기가 죽게 되었을 때 나 죽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녀석들이라는 것입니다.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이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들을 보면 '죽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뜻을 품고 세상에 나온 사람들이 그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뜻 앞에 반대적인 역사를 하면 '죽어라' 이겁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모든 내용을 두고 볼 때 예수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를 통해서는 그 내용을 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못살게는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잘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고난의 길을 걸어왔지만 그 길은 생명이 엇갈리는 길이 아니라 보다 진보적인 생명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맏아들 맏딸이 되라

그러면 맏딸 맏아들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되겠습니다」 또 하나님이 손을 딱 떼고 '너 혼자 해라. 맏딸 맏아들이 되게 해주마' 할 때는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여기 중구교인들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해야 되겠습니다」 해야 되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내리십시오. 이런 건 물어 볼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먼젓번 지구장이 선생님 앞에 와서 '선생님, 중구교회는 큰일났습니다. 선생님, 조금만 도와주십시오' 했습니다. 지구장이 잘했어요. 못했어요? 대답해 보십시오? 옳고 그른 것을 가리고 넘어가야지, 잘했어요, 못했어요?「못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맏딸 맏아들 되겠어요?「못 됩니다」 못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사람이 오죽 못났으면 남의 신세를 지려 하고 남한테 의지하려고 손을 벌리느냐 말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맨손으로 나왔지만 남의 신세를 지려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내가 신세를 지우면 지웠지 내가 신세를 지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신세를 지는 통일교인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젊은 녀석들 보면 정신이 나갔다는 것입니다. 복을 줘도 안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처음 들어온 사람이 이런 말을 듣고 기분 나빠도 할수없는 것입니다. 욕을 해도 할 수 없어요. 욕하는 사람이 나쁘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단단히 결심을 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길을 가다가도 누가 싸움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 구경하지 않았습니다. 옳고 그른 것을 알고 난 다음에는 가만히 못 배깁니다.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지더라도 옳고 그른 것은 판결지어 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여러분은 지구장을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언제 한번 지구장이 여자들 궁둥이를 발길로 차면서 내몰아 봤습니까? 한번도 안 그래 봤죠? 그럴 때는 여자들은 고집이 있어야 합니다. '지구장 나오소' 해 가지고 끌고 다녀야 합니다. 싫다고 해도 끌고 다녀야 교회가 발전되는 것입니다. 아들 중에 맏아들이 되고 딸 중에 맏딸이 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같은 입장에서 아들의 사명을 다하고 딸의 사명을 다했을 때 하나님은 상속권을 누구에게 주겠습니까? 그 상속권은 맏아들 맏딸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상속권을 받을 수 있는 배포가 있어야 됩니다. 야곱은 지혜로왔습니다. 어물 어물하지 않고 형보다 먼저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어물어물하다 가는 손해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 합동결혼식 할 때 이번에는 한 2백 50명의 지원자가 있었습니다 처녀 총각을 앞에 세워 놓고 물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가 마음에 드는 세 사람을 고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남자는 이런 성격이고, 네 성격은 이렇기 때문에 요런 성격은 맞고 이런 성격은 안 맞는다 하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짝을 바꾸자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생님은 나를 처음 보는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서 대답을 못 합니다. 그럴 때는 사람이 용단성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빨리 서둘러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할 시간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판단이 늦게 되면 국물도 없이 다 빼앗겨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는 선생님 눈치를 살살 보는 것입니다. 저 사람하고 나하고 선생님은 맞다고 생각하실까, 안 맞다고 생각하실까를 생각하면서 선생님한테 꼬리를 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먼저 물어 보는 것입니다. '너 저 사람이 좋으냐'고 물으면 저는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책임지고 해주십시오' 하는데 사실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기분 나빠서 그러는지 좋아서 그러는지를 분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싫다고 하게 되면 그 사람은 영락없이 빼앗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너는 요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만나야 되고 이러한 성격이기 때문에 저런 사람을 만나야 된다고 결판을 지어 줍니다. 그러면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낫게 된다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그것을 잘 생각해야 됩니다. 제일 처음에 무엇을 물을 것인가 하는 것을 십년 전부터 준비해 놓으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리고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한테 주어진 것을 처리를 못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축복준비를 하는 총각 처녀가 축복받는 데 있어서 선생님이 상대를 결정해 주면 당사자한테는 괜찮은 타입인데도 싫다고 꺼드럭거립니다. 그 다음에 해주는 사람은 전 사람보다 더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다른 사람을 해주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싫다고 하면 그때는 선생님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혼이 무슨 경매로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선생님은 그런 걸 무척이나 싫어합니다. 일단 축복식장에 들어가서 선생님이 결정해 주게 되면 그대로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싫다고 하다가 선생님한테 잘못 걸리면 늙은이든 젊은이든 선생님은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마음은 좋을 땐 한정없이 좋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눈을 보십시오. 어떠한가? 잘못되었을 땐 추호도 용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그러므로 이왕 되려면 하나님 맏딸이 되라는 것입니다. 시집을 못 가더라도 맏딸이 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맏딸이 먼저 시집을 가 버리면 작은 딸이 시집을 갈 수 있습니까? 못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생을 먼저 시집 장가를 다 보내 놓고 맏딸과 맏아들은 맨 나중에 시집가고 장가를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을 사더라도 동생들의 집을 먼저 사야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너희들이 합동해서 내 집을 사주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면 그는 영영토록 그 집안의 맏아들 맏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리의 원칙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중심삼고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하게 되면 그것은 어떠한 판단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어떤 자리에서 모든 사리를 판단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될 수 있고 어떤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내가 되느냐? 우주의 중심적인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 앞에 있어서 맏아들의 사명을 다하고 맏딸의 사명을 다했다 하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고생과 시련을 각오하라

그러려면 그가 가는 길에 핍박이 없을소냐? 그가 가는 길에 눈물이 없을소냐? 그가 가는 길에 중상모략이 없을소냐? 그가 가는 길에 원수의 화살이 안 날아올소냐? 그가 가는 앞길에 함정이 없을소냐? 다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존재해 있는 어떤 한 나라가 망할 즈음 비운의 천사 가운데 나타난 그 어려운 고비 이상의 길이 내 앞길에 첩첩 태산준령처럼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자기의 팔자소관으로 알고 '나는 할수없이 이 길을 안 가면 안 된다' 하며 맞이해야 합니다. 팔자타령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팔자를 울면서 맞지 말고 기쁨으로 맞이하여 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불평불만에는 행복이 없는 것이요, 만족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떤 동네에 이북에서 피난 온 부부가 동네의 한 모퉁이에 한 칸의 방을 마련하여 살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들은 두 사람이 누우면 딱 맞는 그런 방에서 살면서도, 그것을 고생으로 생각하지 않고 행복으로 알고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대상이 되고, 또 할아버지를 보면 '할아버지 안녕하셨습니까? 오늘 기분은 어떠하십니까? 그러면 내일도 편안하십시오' 이러면서 언제나 싱글벙글 웃고 산다면 그 동네의 화제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무관심하게 지내지만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못사는 사람, 불행한 사람이 와서 의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네 부부는 무엇이 그렇게 좋길래 매일 싱글벙글 웃고 사느냐고 물어 볼 것입니다. 그때 '불평과 불만 가운데는 행복과 만족이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가운데 천국이 벌어지고 감사하는 마음 가운데 모든 것이 성사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웃으며 살기로 한 것입니다'라고 하면 그 사람도 맞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길이 내 앞에 다가온다 하더라도 감사하게 맞아야 합니다. 내가 열 번 죽어야 하는데 이 한번으로서 넘어 갈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맞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열번 죽을 길을 이 한번으로써 탕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감옥에 참 많이 갔다 왔습니다. 일본놈의 감옥으로부터 공산당의 감옥에까지 구경을 안한 데가 없습니다. 감옥에 대해서는 전문가입니다. (웃음) 그리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거기서 내가 기합도 줄 줄 아는 것입니다. 일본놈들에게는 이놈의 자식 같으니라고 하여 다시 못 오게 기합을 주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나쁜 짓 하는 사람들을 잡으면 반드시 기합을 줄 것입니다. (잠시 녹음이 중단되었음)

전진하는 데 있어서 기성교회가 아무리 반대를 하고 핍박을 해도 낙심이나 후퇴할 우리 통일교인들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렇게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 참 재미있었고 극적인 장면과 스릴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친한 친구지간에도 장난을 해야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점잔빼고 앉아서 고리타분한 얘기나 하면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간간이 신선한 자극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30세 전에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이 내 손에 걸리는 날에는 죽도록 고생만 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으면 들어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 가방이나 들어 주는 시시한 짓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여기 처음 왔지만 선생님은 잔칫집에서 초대하는 것을 제일 기분 나쁘게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남에게 신세를 지우는 잔치를 해서 오라고 초대하면 했지 잔칫집에서 초대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여러분도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신세를 지게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충신과 효자가 가는 길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길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내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느냐? 대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6천년 동안 복귀섭리를 해 오셨는데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두고두고 해 오셨는데 우리 인생은 몇십 배 몇백 배의 수고의 길을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신이 가는 길은 무서운 길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충신의 이름을 갖고 나서는 사람은 하늘을 위해 살아야 충신이란 칭호를 하늘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효자의 가는 길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 것이냐는 것입니다. 내가 먹는 것도 그것을 위해 먹고, 내가 보는 것도 그것을 위해 보고, 내가 말하는 것도 그것을 위해 말하고, 내가 행동하는 것도 그 목적을 위해서 행동해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슬픔과 눈물의 길일지라도 천상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가야 할 그 길을 대신 맡아 가지고 가야 하기 때문에, 효자의 도리와 충신의 도리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눈물의 길을 가로 막고서 나는 땅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또 다시 그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충효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의 어떤 사람이 비웃고, 어떤 나라가 배반하고, 어떤 무리가 공격한다 하더라도 그 길을 향해서 내가 가지 못한 것이 문제요, 찾지 못한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오직 그 문제만이 남아진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 과거를 돌아볼 때 우리는 그것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반성하고 그것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다 바쳐 가지고 나아가게 되면, 그는 천상세계의 그 누구도 가 보지 못한 길을 갈 것이다 하는 것이 통일교회 문 교주란 사람의 주장인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종교의 길

여러분들이 조용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조상들을 전부 불러 가지고, 그중에 선한 조상이 있으면 선한 조상들을 불러 가지고 물어 보세요. '당신은 내 앞에 있어서 둘도 없는 선한 조상이요, 영광된 자리에 있는 선한 조상이라고 하기 전에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나라가 있었고,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주권이 있었으며.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백성이 있었습니까? 여러분들이 태어난 그 나라가 아니요, 그 주권이 아니요, 그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장해 주고 하나님이 입증해 줄 수 있는 그 나라와 그 주권과 그 백성을 사랑해 보았습니까? 그런 자리에 서 봤소? 또,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는 선의 부모를 만나 봤습니까? 하고 물어 보게 될 때, 그 조상들은 대답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땅이 세울 수 있는 이상적인 선의 부모를 만나 봤고, 하나님의 완전한 아들로서 칭찬을 받아 보았느냐' 할 때….

조상이 찾지 못하였던 그 나라를 어디서 찾을 것이며, 조상이 사랑하지 못한 그 백성을 어디서 만나 다시 사랑할 수 있겠으며, 조상이 찾지 못한 그 주권을 어디 가서 되찾을 수 있겠느냐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인류가 한 목적을 위해 공히 찾아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과 더불어 공동적으로 성사시켜야 할 책임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을 돌리고 그런데 마음을 기울여 가지고 정성들여 찾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우리가 찾고 있는 그 나라가 아니요, 미국도 그 나라가 아니요, 소련도 그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수많은 선조들이 역사과정에 있어서 전생애를 거쳐 나오면서 하나의 이상세계를 모색해 나왔지만, 마음이 그리워할 수 있는 본향땅을 중심삼고 선의 부모, 선의 가정, 선의 국가, 선의 나라, 선의 세계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그런 조상들이 역사 이래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책임을 지고 그런 자리로 나왔지만 그것을 책임완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약30억 인간들이 살고있는 이 땅 위에서,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본향의 형제와 본향의 친척과 본향의 종족을 사랑할 수 있는 배경을 가졌느냐 하면, 아무도 그 배경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본향땅을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본향의 나라를 갖지 못한 것이요, 그 나라를 못 가졌기에 본향의 세계도 가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기 때문에 그 앞에는 천신만고의 수난의 길이 가로막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어려움을 타파하고 나아가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있는 정성을 다하여 우리 인류가 바라고 하늘이 바랄 수 있는 참다운 선의 모체가 되고, 부모 중의 부모가 되고, 인류의 본이 되는 사랑의 도리를 해원하지 못한 내 자신을 원망하고, 서러움과 분함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원수의 피를 받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이 더러운 피를 다 뽑아 버리고 새롭게 하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떠한 수난길과 핍박의 길이 있다 하더라도 참다운 나의 모습을 갖추어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백번 천번 죽음의 자리도 기쁨으로 맞이하여 가야 할 것이 우리 인생의 갈 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타락된 세상에서 부정의 도리를 거치지 않고는 이 길을 찾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종교의 길인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본향땅이 어디냐? 여러분이 태어난 이 땅은 본향땅이 아니라 원수의 땅이요, 원한의 땅이요, 슬픔의 땅이요, 사탄의 땅이요, 망국의 땅이기 때문에 그 땅 위에 세워진 민족도 원한의 민족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얽매인 쇠사슬을 벗어 던지고 나와서 내 개체적인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내 가정이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기쁨을 찾아야 하고, 내 종족이, 내 민족이, 내 국가가, 그리고 온 세계가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기쁨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된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철옹성과 같은 감옥에 갇힌 우리 자신인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여기에 구애받지 않고 헤치고 나가려고 애쓰지만 몸이 이것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몸부림을 치다 망하여 떨어져 나가는 것이 인생 행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그 길을 헤쳐 나가야 될 인생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본향땅을 찾고, 본연의 내 개체를 찾고 본연의 부모를 찾고, 본연의 내 형제를 찾고. 본연의 종족을 찾고, 본연의 민족을 찾고, 본연의 국가를 찾고 본연의 세계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길

오늘날 통일교회의 교인들에게 주어진 책임이 무엇이냐? 그 책임을 다했느냐?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중심삼고 사랑을 기반으로 하여 하나님의 장자 장녀가 되어서 그 전통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순결한 사랑과 순결한 대상과 순결한 일체를 이어받을 수 있는 사상을 지녀 가지고 본향땅에서 부모님을 모셔야 합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친척을 거느리지 못했으니 친척을 거느려야 되고, 그 부모님과 더불어 그 나라에서 살지 못하였으니 그 나라를 거느려야 되고, 그 부모님과 더불어 그 세계에서 살지 못하였으니 그 세계를 거느려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일선 장병으로써 책임을 짊어지고 최선을 다하여서 다가오는 시련과 어려움 그리고 환란을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제1해방, 제2해방, 제3, 제4, 제5, 제6, 제7, 제8의 해방 기준까지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책임을 지고 세상이 망하더라도 나는 망할 수 없다고 하면서 해방을 바라보고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의 갈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의 위치는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의 장남 장녀의 위치입니다. 그런 위치에 처한 우리는 선의 본향땅과 선의 종족과 선의 나라와 선의 주권과 선의 세계를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전통을 세울때 주체가 없으면 내가 대신 주체가 되어야 하고, 대상이 없으면 내가 대상이 되어서 주체와 대상의 두 가지 일을 다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이루어 놓고 본연의 세계인 복귀된 천국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복귀되는 과정에서는 죽을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만약 죽더라도 다시 부활해서 한을 풀 수 있도록 뼈에 사무친 원한을 갖고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짊어진 사람이 가는 길은 싸움의 길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싸움의 길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선 장병은 항상 적군과 총칼을 겨누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언제 어느 때 자기 생명을 잃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심하지 말고 맡은 바 책임을 다짐해 가면서 개인으로서, 가정으로서, 종족으로서 국민으로서, 세계인으로서까지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늘의 맏아들 맏딸로서 손색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상천하에 고이 잠겨 있던 하늘의 모든 위업을 상속받기에 부끄럽지 않는 아들딸이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만민의 십자가를 내가 대신 짊어지고 모든 사람이 당할 수 있는 수난길도 내가 대신 가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자기의 본분으로 알고 나로 하여금 만민이 탕감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 길이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입니다.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그 역사적인 도의 길을 천상천하에 빛내면서 갈 수 있는 사람만이 통일신도로서 책임을 다 하고 간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조건은 여기서부터 새로이 출발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루어 놓은 그 인연은 인간의 인연뿐만 아니라 천상과 그리고 영원한 역사시대를 거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인연을 가지고 개인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해방의 표본으로서 만민이 충성할 수 있고 만민이 존경할 수 있는 기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당당히 이 지상세계와 천상세계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까지 나가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 신도들의 책임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우리의 책임'이란 말이 이렇게 엄청난 역사와 더불어 상속되어졌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말씀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거기에는 아직도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탕감노정이 남아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희 한 자체의 남은 여생으로 가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것을 느끼면서, 청춘 시절엔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스스로 반성하고 자책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에게 지워진 십자가를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남겨져 있는 십자가까지 지고 가겠다고, 지고 가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다 행하고 죽는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쓰러지게 되면, 그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당신은 세 사람을 거두어들인다는 천리원칙을 따라 선한 세계의 판도를 넓혀 나았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았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먼저 맞고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하였고, 죽어서 번식시켜 나오는 작전을 하였고, 자기를 잃어버리고 전체를 찾아 나오는 작전을 해 나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우리 통일교회는 통일교회 자체를 위한 통일교회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한 통일교회가 되어야 하겠고,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을 위한 나라가 될 것이 아니라 세계를 살리기 위한 대한민국이 되어야 하겠고, 세계는 세계를 위한 세계가 아니라 고귀한 생명의 기원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접하는 세계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만우주의 생명길이 거기에 결부되게 될 때에 인간은 기쁨을 맞이할 수 있다는 엄청난 사실을 저희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비록 낮고 천한 몸이지만 높고 귀한 마음이 지향하는 그 배후에는 엄청난 역사적인 인연이 가로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마음의 고독함과 저희들이 하나의 친구가 되어서 마음이 지향하는 것에 행보를 맞추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외적인 모든 인연을 끊어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거기에 편이 되어서 가야 할 것이 저희들이 가야 할 길인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날 도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마음의 주체와 대상의 인연을 찾아 나가야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사랑을 중심으로 대상의 자리에 서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밤을 지새워 가면서 아버지를 향하여 목놓아 호소할 수 있는 딸의 모습, 아들의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가 그리워서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는 아들딸이 있으면 그 아들딸의 눈물은 헛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희들이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중구지구에 있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이 부디 허무한 욕망을 갖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허무한 모든 욕망은 일시에 지나가 버리는 구름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한한 본연의 가치를 그리워하면서 자신을 잊어버릴 수 있는 사모의 심정을 갖고 부모를 잃어 버린 고아의 신세를 면케 해주시기 위해 찾아 나선 아버지가 얼마나 불쌍 하신가를 마음속으로 깊이 느끼면서 아버지를 향하여 외치고 몸부림치는 아들딸이 되었다 할진대는, 아버지께서는 기필코 그를 버리지 않는 것을 저는 알았습니다. 그런 고귀한 인생을 자각하고 나선 승리의 아들딸이 되어야겠고, 지상 천상세계의 지도자이신 그분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될 수 있는 영원한 자리로 찾아가야겠고, 모진 수난의 길이 있다 하더라도 그길을 거슬러 갈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이제 서야 할 위치는 하나님의 맏아들. 맏딸의 자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내 개체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품에 안고 세계를 살리고 죽겠다는 마음으로 아들의 책임을 다하고 딸의 책임을 다하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당신이 바라시는 것은 세계적이기 때문에 이 세계를 넘고 비상하는 것이 아들딸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온갖 수난의 길이 저희의 앞 길을 가로막더라도 서로 앞을 다투어 나아갈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편안한 길을 찾아가는 무리들의 앞길은 언제 어디서나 막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가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눅 17 :33)"하는 역설적인 논리를 제시한 것은 천리의 원천이 현실과 상반되는 입장에 있기에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이 공적 노정에 있는 저희 통일교회 신도들은 이 길을 힘차게 달려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길을 가다가 우리의 힘이 부족하게 되면 아버지가 이끌어 주신다는 신념을 가지고 끝까지 달릴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니다.

이날의 모든 사정을 당신의 따사로운 손길로 보살펴 주시옵소서. 인생 길에 있어서 지친자들이 있습니까? 그들을 더욱더 보살펴 주시옵소서. 내일을 맞이해야 할 새로운 광명의 거룩한 햇빛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인생 설계를 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새 아침을 맞이하여 차고 넘칠 수 있는 자아를 발견하고 무한한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기쁨의 개체로서 아버지를 숭배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 드리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이 세계가 저희들을 환영하기 위해서 부르는 그 음성을 듣고 달려올 수 있는 저희들이 되고, 그 행로가 피곤할지라도 참고 극복하면서 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허락하신 가운데 전한 모든 말씀을 통하여 한 걸음 더 아버지 앞에 다가설 수 있고. 아버지 심정에 품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이 세계의 인연 가운데 가일보 전진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기를 재삼 부탁드리오니 전체를 당신이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타락한 인간들은 역사를 엮어오는 과정에서 수많은 곡절의 노정을 거쳐 왔습니다. 한숨과 절망과 탄식으로 살아온 인류를 바라보시면서 아버지께서 얼마나 얼마나 참기 어려운 수난의 환경을 극복해 오셨는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인간이 아버지와 어떠한 관계가 되어 있으며, 아버지는 인간과 어떠한 인연을 짓고 있는가를 알지 못하는 이 땅 위의 인류를 당신께서 깨우시어, 종의 인연의 자리에까지 세우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나를 생각하게 되고, 양자의 길을 개척하시어 원수의 자식들에게 당신의 모든 소유와 기업을 몽땅 상속해 주시려는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이 땅 위의 인류가 얼마나 배반하였던가를 다시 한 번 돌이켜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뿐만 아니라 참다운 자녀의 자리까지 저희들을 복귀시키시어서 당신이 친히 소망하시던 본연의 세계에까지 저희들을 이끄셨습니다. 그러기에 당신은 우리 인류의 아버지이십니다. 저희들에게 자녀의 명분을 갖추게 해주신 이 놀라우신 은사를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오늘 저녁 이곳에는 당신의 자녀들이 모였습니다. 오랫동안 만나기를 고대했지만 만나지 못했던 지난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종로지구에 있는 자녀들을 만난 이 시간을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을 따라 인연되어진 그 인연을 위주한 것 같지만 그것이 아니옵니다. 온 인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보면서 참아 왔고 죽음길을 가려 가면서 천정의 인연을 연이어 나왔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인연으로 인하여 저희들이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자리에 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아버지께서 배후에서 얼마나 수고하셨는가 하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한 개체는 지극히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이지만 그 배후의 선조들을 통하여서 먼 거리에서 혹은 수많은 인연을 넘어서서 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 한 자리에서 아버지의 심정을 체득할 수 있는 이 놀라운 은사에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옵니다.

수천년 전에 잃어버렸던 본향의 땅을 다시 흠모할 수 있는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는 곳이 이 지구성에는 한 곳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곳이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통하여 인연되고 소망의 터전이 갖추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은 저희의 자랑이요 민족의 자랑이옵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놀라우신 수고의 대가 앞에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나타난 어린 자녀들이오니 이 불쌍한 처지를 당신께서 동정하시옵소서.

이제 저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이 생명길을 찾아 흠모할 수 있는 간절한 마음만이 저희에게 사무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부모 앞에는 어린애가 되어야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앞에 저희들은 어린애가 되어야겠습니다. 각자의 처지와 환경의 다름에 따라 저희에게 생명의 은사를 보급하시사 흡족히 채워질 수 있는 이 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처럼 이러한 시간을 저희에게 허락해 주셨사오니 각별한 은사를 저희에게 베푸시옵소서.

저희 개개인의 심령이 아버지로부터 내리는 큰 사랑과 자비의 은사에 잠겨, 놀라우신 아버지의 사정과 서러움과 심정을 체득할 수 있는 거룩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은 온전히 아버지께서 주인이 되시옵소서. 일체의 어둠의 세력이 여기에 인연을 남기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불꽃 같은 눈으로 살피시어 죄악의 심지를 송두리째 빼내어 버릴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와 저희가 맺고 싶은 인연이 여기에 맺어져서 이 땅 위에 있어서 이 시간이 영원히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생애의 부활의 날이요, 신앙노정에서 자랑의 날로서 그 생애를 빛낼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도 이 시간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를 찾고, 숨겨졌던 심정을 나눌 수 있으며, 깊이 묻혔던 사연을 여기에 통고 시킬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서로서로의 인연 가운데 귀중한 인연이 맺어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허락한 시간을 따라 당신이 이 자리를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대하는 자의 마음이 오직 당신의 사정에 일치되고, 당신의 소원의 마음에 저희 스스로가 사무친 바 되어 당신이 운행하시는 일체의 경지에 사로잡혀 당신의 거룩하신 은사의 터전에 스스로를 단결지을 수 있도록, 아버님, 맡아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모든 전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가다 보면 의문나는 점도 많고, 또한 알고 싶은 내용도 많은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계시냐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하나님께 직접 물어 보고 의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행복하다는 사람보다 불행하다는 사람들이 더 많은 현실

학생들은 선생님이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게 될 때 그 선생님을 희망의 중심이요, 소망의 중심이요, 자신들의 앞날을 책임질 수 있는 지도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자기들의 모든 사정을 그 스승 앞에 직고해 가지고 의논하고 싶은 그런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계신다면 누구보다도 다정하고 가까운 스승 중의 스승의 입장에서.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부모의 입장에서 우리 인류를 가르쳤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참된 인생길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날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있어서 지금 당장이라도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당신 행복합니까' 하고 묻게 될 때 '그럼요. 행복하고 말고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물론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글쎄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또, '행복은 무슨 행복,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별의별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대답을 종합해 보았을 때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겠느냐, 불행하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겠느냐?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생각해 봤어요? 여러분들을 보니 젊은 학생들이 많은데 선생님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요?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해요, 불행하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해요? 나이 많은 어른들은 물론 나이 적은 젊은 학생들이라도 불행하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잘 모르는 유치원생들은 자기 엄마 아빠에 대해서 아무런 불만이 없으니 행복하다고 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국민학교 5학년만 되어도 '아하 가정은 이렇게 되어 있고 사회는 이렇게 되어 있구나' 하고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는 기준이 어느 정도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연령이 된 소년 소녀들에게 물어 보면 틀림없이 불행하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모두 '불행하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행복하다는 사람보다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행복하다는 사람을 찾아가서 그 사람이 진짜 행복한 생활을 하는지 파헤쳐 들어가 보면 그렇지 못합니다. 자기 일신으로는 행복할는지 모르지만 자기 가정을 두고 볼 때에는 아무리 부모님이 다 계시고 형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 형제 가운데 불구자도 있을 것이고, 남과 같이 공부하고 싶어도 공부하지 못하는 형제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의 배후에는 모두다 허점이 많은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아무리 자기 자신은 행복하다고 하더라도 그 전체의 배경이라든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두고 볼 때에, 그 가정 전체가 행복하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가정을 두고 봐도 행복한 가정이 못 되고 불행한 가정이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범위를 넓혀 가지고 보게 되면, 이 불행한 가정이 합해서 이루어진 것이 오늘날의 사회요, 국가인 것입니다. 즉, 수많은 불행한 가정과 대한민국이 지금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불행한 가정들과 연결되어 있는 사회나 국가가 행복할 것이냐? 역시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그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행복의 도가 비례적으로 커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점점점 작아져 간다는 것입니다. 즉 비례적으로 커 가는 것이 아니라 반비례적으로 작아져 간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는 그래도 괜찮지만 그 범위를 더 넓혀서 세계적으로 보게 될 때, 즉 전 세계의 30억 인류와 수많은 국가들을 한꺼번에 종합해 보게 되면, 이 세계는 대한민국보다도 더 불행한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 범위가 크면 클수록 그것이 행복의 요건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과는 더욱더 먼 거리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을 하는 데에 있어서 남을 중심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합니다. '좋다' 혹은 '나쁘다'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도 그것은 누구를 중심삼고 좋다, 나쁘다 하느냐? 언제든지 그것은 남을 중심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중심삼고 하는 것입니다. 행복하다고 하는 말도 남과 더불어 행복하다고 하는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자기를 중심삼고 행복하다고 하는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도 역시 사람은 자기를 중심삼고 말하기가 쉽기 때문에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된다면 이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많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참은 언제 어디서나 변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런 불행한 세계 가운데 사는 인간들이 과연 행복하냐 할 때, 행복하지 않습니다. 불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이 불행한 자리에선 사람이 진정 참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참이라는 것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이라는 것은 한국에 있다가 미국에 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과 일본이 과거에는 원수였지만, 원수의 나라였다고 해서 한국에서의 참이 일본에서 참이 안 될 수는 없습니다. 원수 나라의 것이라도 그것이 참이라면 참인 것입니다. 또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참임에 틀림없는 것이라면 지구성의 한쪽 끝에서 또다른 끝으로 가더라도 참인 것입니다. 흑백의 인종을 초월해서 참은 어디에서나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이라는 것은 외적으로든, 국가적으로나 문화적으로든, 혹은 지식의 유무나 인간의 가치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유 평가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을 초월한 자리에서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때, 그것을 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많은 공식들을 배우게 되는데. 그것을 대한민국에서 배운다고 해서 대한민국 학생들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우리 선조들도 그 공식을 공식으로 공인했던 것입니다. 앞으로 수십 년, 수백 년, 수세기, 수만 년이라는 세월이 가더라도 그 공식은 변하지 않고 진리를 대표하여 전해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것을 기억함으로 말미암아 참을 추구해 나가는 역사시대를 개척해 참을 찾는 데 있어서 많은 잼대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남보다도 더 많은 잼대를 갖고 있으면 더 많은 대상으로부터 참된 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공식의 결과로 나타나는 지식을 우리가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참이라는 것은 언제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참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진짜 참이라는 것은 세계에 몇 개씩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진짜 참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미터(m) 의 원리 같은 것도 보면 1미터의 원리는 오직 하나입니다. 이 미터의 원리를 중심삼고 참된 자를 만들었다고 해도 이것이 미국의 법도나 한국의 법도, 혹은 그 미터의 원치수와 비교했을 때 억천만분의 일이라도 틀린다면 그것은 진짜 미터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주 조금만 틀려도 그것은 진짜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같은 것 같지만 같을 수가 없습니다. 참이 될 수 있는 자리에 이것이 함께할 수 없습니다. 몇 억만분의 일이라도 틀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참이란 것은 반드시 하나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참사람이 있느냐

오늘날 인간들 가운데에 참된 사람이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참된 사람이 될 수 있느냐? 여러분은 금은보화를 좋아하지요? 여러분은 순금을 원합니까, 아니면 다른 것이 섞인 것을 원합니까?「순금을 원합니다」 다른 것을 합해 놓고 그것이 진짜 순금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싫어할 것입니다. 순금은 순도가 99퍼센트가 아닌 백 퍼센트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순금과 순금이 합하면 그것은 무슨 금이 되겠어요? 순금끼리 합하면 순금이 되지만 그 순금에 조금이라도 가짜를 합하면 가짜금이 됩니다. 그러므로 순금에는 순금을 얼마든지 가해도 좋지만, 거기에 조금이라도 가짜를 가하면 본판의 순금까지 여지없이 가짜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과연 참된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느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내가 어머니 중에서는 동네에서 일등이고 혹은 남편으로서 동네에서 일등이고 이장도 하고 통장도 하고, 또 교회에 나가면 교인들로부터 안녕하시냐는 인사도 받는 의젓한 사람인데, 그런 나를 누가 참되지 않다고 말하겠느냐'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진짜 참사람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 학생들이 있는데 흔히 '참된 학생이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말하는 참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사람보다 조금 나은 사람을 말할 때 하는 말입니다, 그 동네를 중심삼고 볼 때, 동네 학생들 가운데 조금 나아 보이니까 '참되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동네에서 말하는 참되다는 그 말은 절대적인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쭉 보게 될 때, 지금까지 왔다 간 조상들 가운데 과연 참된 사람이 있었느냐? 대통령이라든가, 혹은 각료들이 이 나라에서 큰소리치고 있지만 이런 사람들을 전부 통합하고, 앞으로 몇백 년 후의 후손들까지 합하여 모든 사람들을 동원할 때 참사람이 누구일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어요? 대관절 그 사람이 누구일 것이냐?

대한민국에서 아무개가 제일 참된 사람이다 하면 그 사람이 미국에 가서도 참된 사람이 될 수 있느냐? 그가 참된 사람이라면 미국 사람들도 '옳다. 참된 사람이다'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 30억 인류가 옳다 하고, 과거에 왔던 영계의 모든 영인들, 즉 선한 영인들이나 악한 영인들을 막론하고 선악을 초월하여 옳다고 하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오늘날 자기들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정통이라고 하면서 통일교회를 이단이라고 몹시 비난하는 기성교회 목사님들한테 물어 보세요. '당신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이요?' 라고 물으면 '하나님의 아들이고 말고'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천당갈 자신이 있소'라고 물으면 '있고 말고'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걸 누가 보증하느냐? 라고 물으면 '내가 보증한다' 라고 말하는 양반도 있을 것입니다. (웃음) '당신이 진짜 참사람이요' 할 때, '내가 수만의 교인을 거느리고 있고 한마디만 하면 교파가 왔다갔다하는 총수인데 참이 아니냐?' 라고 하며 기분 나빠할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도 진짜 참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자기를 중심삼은 사람은 참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아들딸이 여기 와 있다면 기분 나빠하겠지만 할수없습니다. 그런 양반을 훌륭한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아들딸들이 왔어도 할수없어요.

그가 참이라면 몇 점짜리 참입니까?나는 100점인데 선생님은 왜 50점을 주었습니까? 라고 하지만, 그들이 100점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지 못하고, 선생님이 준 50점보다 낮은 내용을 갖추었을 때는 아무리 큰소리 치더라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참사람은 누구나 만나고 싶어해

그러면 대한민국 사람 가운데 참사람이 있느냐? 대한민국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미국에는 참사람이 있느냐? 미국에도 없다면 전세계를 통틀어 꼭 세계 가운데 참사람이 있느냐? 여러분들은 참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 없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묻게 되면 다 있으면 좋겠다고 대답하겠지요? 그러면 참사람이 있소, 없소? 대답을 못 한다구요.

내가 한번 세상에 태어나서 이왕 살 바에는 참사람과 살기 위해서 태어났지, 불행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과 살려고 태어났겠어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없어요? 불행한 사람과 살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때려죽여도 좋아요.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참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일생을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과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어요, 안 살고 싶어요? 그렇게 살고 싶지요? 그렇게 살고 싶어요, 안 살고 싶어요?「살고 싶어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면 선생님이 얘기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어 볼 것도 없는 것입니다. 복중에 있는 아기들한테 물어 보아도 좋다고 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무리 못생긴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번 참된 사람과 살아보고 싶어합니다. 참된 사람이 동기나 동료 중에 없으면 참된 스승이나 참된 부모라도 한번 만나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도 못하다면 종이라도 되어 참된 주인을 만나 보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어요?

여기 있는 처녀 총각들, 고등학교 일학년쯤 되는 여러분들은 꿈이 많고, 희망과 소망으로 꽉 차 있을 것입니다. 음악을 들어도 기분이 좋고, 내가 한번 대통령이 되어 보겠다고 생각할 때는 신이 나고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봄날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신 옷을 입으면 한달 정도는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그런 때는 밥을 먹고 나도 기분이 좋고 아주 신이 날 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서 공부해요? 참된 사람이 되려고 공부해요, 악한 사람이 되려고 공부해요?「참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요」 참된 사람이 안 되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살다가 죽어간 사람들 가운데 참된 사람이 안 되겠다는 사람이 있었을 것 같아요, 없었을 것 같아요? 기나긴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왔는데 참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볼 때, 그 사람들이 전부 공상했겠어요?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석해 보게 될 때, 여러분은 참된 사람이 미국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한국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한국 사람요」 욕심이 많구만. 그러면 한국 사람 가운데 누구네 집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우리집 사람요」 우리집 사람 중에서 누가 되면 좋겠어요?「나요」 여러분은 부모도 몰라보는구만. (웃음) 내가 참된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어머니 아버지가 참된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나요」 그건 대답을 잘못 했어요. 아버지 어머니가 참된 사람이 되면 나는 참된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해도 참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참된 사람이 되는 것이 좋겠어요? 아버지 어머니가 참된 사람이 되는 것이 좋겠어요?「아버지 어머니요」 가르쳐 주니까 그렇게 말하지. (웃음)

이렇게 생각해 볼 때, 결국은 제일 좋은 것을 나와 관계맺어 놓지 않고는 못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싫다는 것입니다. 어느만큼 싫으냐? 죽기만큼 싫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제일 멋진 말입니다. 나는 싫은데 얼마만큼 싫으냐 하면 죽기만큼 싫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것은 살고 살고 또 살고 영원히 살 만큼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참사람과 어떤 관계에 있기를 원하는가

여러분, 사람은 오래 살려고 해요, 얼른 죽으려고 해요?「오래 살려고 합니다」 고생을 지지리 하고 처량한 생활을 하면서도 오래 살고 싶어요? 「예」(웃음) 그렇게 살지만 행여나 좋은 수가 있겠거니 하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고 오래 살려고 하는 것이지 그것마저 없다면 오래 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지금의 생활은 나쁘지만 좋은 수가 있을 것이라는, 행여나 하는 마음이라도 있기 때문에 오래 살려고 하는 것이지 이것이 막혀 버리면 오래 살려고 하겠어요?「아니요」 그래도 행여나 하는 마음이라도 걸어 놓고 있기 때문에 오래 살려고 하는 것이지 그것이나마 없다면 오래 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있는 것이 소망이 없는 것보다 나아요, 못해요?「낫습니다」 소망은 하나지만, 백만한 소망을 가진 사람과 천만한 소망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누구를 좋아하겠어요?「천만한 소망을 가진 사람요」 만 배 정도의 소망을 가진 사람과 백만 배 정도의 소망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누굴 좋아하겠어요 ?「백만 배만한 소망을 가진 사람요」 이것은 하늘땅만큼 크면 클수록 좋습니다. 그렇지요? 이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참사람을 만드는 길이 있다면 아버지가 참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했지요? 그러면 아버지가 참사람이 되지 못했을 때는 누가 되면 좋겠어요? 자기 자신입니다. 그 다음에는? 형님입니다. 형님이 참사람이 되는 것은 아버지가 참사람 되는 것만 못하고 내가 참사람 되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그럼 아버지가 참사람이 되는 것이 좋아요, 내가 참사람이 되는 것이 좋아요?「아버지요」 아버지가 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쌈지 돈이 자기의 주머니 돈이라는 말이 있지요?(웃음)

이렇게 좋다는 기준을 두고 볼 때 아버지가 참사람이면 좋겠어요, 어머니가 참사람이면 좋겠어요?「두분 모두요」 둘 중에 단 한 사람만 될 수 있다면 ?「아버지요」 한국 사람이니까 그렇게 대답하지 서양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자나 여자나 평등하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식으로 보게 된다면 참사람이 아버지가 되면 좋겠어요, 어머니가 되면 좋겠어요?「아버지요」 통일교회식으로 하면 남자인 아버지가 참사람이 되면 좋다고 하는데 이것이 누구 식이냐 하면 하나님식입니다. (웃음)

오늘날 이 땅 위에 참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이 인류 앞에 참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때는 인간이 제일 좋아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자리에 찾아올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참사람은 우리 인간들의 어떠한 자리에서 인격을 닦고 가야 되느냐? 이러한 문제를 우리가 이론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내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내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는 자리라면 나는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참사람이 참사람을 만나 참되고 행복하다고 한다면 나와 아버지 사이의 자리와 누나와의 자리를 비교하게 될 때 같아요, 한 단계 떨어져요? 누나는 시집가게 되면 우리집 사람이 아니니까 떨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 욕심 많은 형님이 그 자리에 가게 된다면 형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참이면서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자리요,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는 자리가 되면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성인의 가르침

세계면 세계,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역사상에는 위인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위인 가운데 누구를 제일 좋아합니까? 이순신 장군을 좋아하지요? 그러면 이순신 장군은 참사람입니까, 거짓 사람입니까?「거짓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순신 장군보다 훌륭해요? 이순신 장군은 대한민국에 있어서는 애국자입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 보면 원수이지요?(웃음) 참은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같아요, 달라요?「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은 참사람이 못 됩니다. 위인은 국가내에서만 있을 수 있는 사람 입니다. 위인이 죽게 될 때에는 비록 역적이란 말을 들으면서 억울하게 죽는 입장에 있더라도, 그 나라 국민의 3분의 1이 아니면 5분의 1이라도 그 위인의 죽음길에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와 같은 위인이 많은 세상에 있어서 성인은 어떠한 사람이냐? 진짜 사람을 찾아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위인으로는 상대가 안 됩니다. 자기 나라를 중심삼고 이러쿵저러쿵하는 무리들과는 틀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기분 나쁘다고 하겠지만, 나쁜 사람하고 비교해야 기분 나쁘지 좋은 분하고 비교하는데 기분 나쁠 게 뭐 있어요? 좋은 분하고 비교해서 이렇다 저렇다하게 될 때는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위인이 되겠어요, 성인이 되겠어요?「성인이 되겠습니다」 위인의 수는 부지기수입니다. 그렇지요? 위인은 나라마다 다 있습니다. 그런데 성인은 세계에 몇 사람밖에 안 됩니다. 누구누구인지 한번 꼽아 봅시다. 예수, 석가, 마호멧, 공자, 소크라테스입니다, 세계적인 성인은 소크라테스까지 해봐도 전부 다섯 분입니다.

지식과 생명의 가치를 두고 볼 때, 이들이 서로 대등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학박사가 되기 위해서 생명을 희생하겠어요? 생명을 학박사와 바꾸겠어요, 안 바꾸겠어요?「안 바꿉니다」 그러면 농촌에 사는 사람이더라도 생명의 가치를 알고 사는 사람과 아무리 학박사라도 생명의 가치를 모르고 사는 사람을 비교할 때, 누가 더 가치가 있어요?「생명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과 지식은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철인(哲人)이기 때문에 지식의 왕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식은 원리적인 현상세계를 중심삼은 입장에서 논한 지식이지 전체의 내용까지 포괄한 입장에서 논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신에 대해서는 확실한 입장이 아닌 가상적인 입장에서 말을 했습니다. 긍정적인 입장에서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지식의 왕은 될 수 있어도 생명의 왕은 못 됩니다.

지금까지 4대 성인들은 전부다 억조창생을 구하기 위해서 인간이 갈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인간을 중심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철인과 성인은 어떻게 다르냐? 철인인 소크라테스는 자기를 중심삼고 학설을 주장했습니다. 즉, 그의 가르침은 인간을 위주로 했습니다. 그러나 성인들의 가르침은 자기를 위주로 한 것이 아니라 신을 위주로 한것입니다. 이것이 철인과 성인의 다른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교주가 아닌 사람은 성인 축에도 못 들어갑니다. 석가도, 공자도, 마호멧도, 예수도 모두다 신의 뜻을 중심삼고 인륜을 밝히려고 했습니다. 철인 (哲人)과는 사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인륜도덕을 중심삼고 살기 때문에 신을 중심삼은 도덕 관념과는 상치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성인들을 전부 다 원수시하고 쫓아내거나 잡아죽이는 비참상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성인이 몰려 죽어 갔던 그 길은 위인의 죽음길만도 못했습니다. 위인이 역적으로 몰려 죽을 때는 울고불고하며 동정하는 사람이라도 있었지만, 성인이 죽어 갈 때에는 전부다 '그놈 때려죽여라' 했던 것입니다. 위로부터 아래까지 민족 전체가 동원하여 환영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가운데 성인들은 억울하게 죽어 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어 간 성인 가운데 대표적인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길에서는 사랑하는 제자들까지도 다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만약 예수님의 아들이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예수님의 아내가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오 사랑하는 그대여, 어서 그렇게 가시옵소서'라고 했겠어요?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더 하지 않겠습니다.

성인들은 모두 천륜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인륜도덕을 중심삼고 생활해 왔습니다. 우리가 인륜을 밝히면 인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륜을 밝히면 거기에는 천정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의 교주들은 신을 중심삼고 천륜을 가르쳐 주고. 신을 중심삼고 인륜을 구체적으로 밝히려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인 중의 성인

그러면 인륜도덕에서의 제일 구체적인 내용, 즉 근본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부부관계, 자녀관계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이 인륜도덕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륜을 중심삼고는 천정이 있을 텐데 천정과 인정이 상치되어 가지고 되겠습니까? 이것이 상치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성인들은 천륜과 인륜을 합하고, 천정과 인정을 합하여 위에는 천정이요, 아래는 인정이 있게끔 하여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도록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참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먼저는 아버지가 되면 좋겠고, 그 다음에 자기가 되고 싶다고 했지요? 그렇지요?「예」 그런데 오늘날의 종교를 두고 보면, 서로 자기의 종교가 좋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세계의 통일은 기독교가 아니라 불교를 중심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유교에서는 삼강오륜을 중심삼은 유교가 동양에 제일 많이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는 유교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한다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민주세계의 판도가 기독교 문화권내에 들어 있기 때문에 기독교를 중심삼고 세계를 통일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중심삼고 나가야 된다고 하는 대표적인 패가 바로 통일교회입니다. (웃음) 통일교회도 하나의 패입니다. 여러 패 가운데에서 하나가 나오는 것입니다. 수많은 패들이 그냥 통일이 되나요? 반드시 중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충체육관에서 레슬링대회를 하는 것을 보았지요? 장영철 선수가 상대할 사람이 없어서 이리저리 뛸 때에는 그가 대장 같지만, 김일 선수가 들어가면 그때까지 올라갔던 것이 한꺼번에 폭싹하고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장영철 선수를 지지하던 사람들도 김일 선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더라도 김일 선수가 이기게 되면 그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진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웃음) 패자의 서러움은 고귀한 것입니다.

레슬링 선수들이 챔피언이 되기 위하여 서로 경쟁을 하듯이, 하나님은 세계의 종교를 중심삼고 챔피언 경쟁을 시키고 있습니다. 이 경쟁에는 기독교, 불교, 유교, 마호멧교 등이 지금까지 싸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자기를 몰라본다고 다른 사람한테는 큰소리치더라도 아장아장 걸어가는 손자한테는 못 당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통일 교회가 바로 그러한 손자의 입장일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기성교회 사람들이 기분 나빠하기 때문에 그럴지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여러분, 요즘에는 개량종이 자꾸 나오지요?(웃음) 여러분은 개량종이 좋아요, 재래종이 좋아요? 「개량종이요」 종교적으로 보면 통일 교회는 개량종입니다. 나도 개량종을 좋아하기 때문에 지금 개량종 하나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성인들 가운데서는 누가 가장 훌륭한 성인이냐? 성인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한 성인이 있을게 아니겠어요? 성인들에게 물어 볼까요? 여러분에게 물어 보는 게 아니라 공자, 석가, 마호멧, 예수에게 물어 보는 거예요. (웃음) 대관절 참사람이 누구냐? '불교는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 천륜에 따라 도리를 밝히겠다고 하는데 그 도리가 진짜요, 가짜요'라고 석가에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자신있다고 하겠어요? 여러분이 생각해 보세요. 자신이 있다고 하겠어요, 못하겠어요? '이렇다'고 내세울 것이 있다면 몇십 년이 안 되어도 그 종교를 세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해도 해봐서 좋고 편하면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적이 되지 말라고 해도 세계적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불교는 몇년의 역사를 가졌습니까? 대략 3천년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불교가 진짜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웃음) 무슨 좋은 것이 있어야지요? 유교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예수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예수가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다른 성인보다 낫겠어요? 예수에게 '당신이 이 천지에서 진짜 참사람입니까?' 라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예수가 참사람인지 모르지만 대답이라도 걸작스럽게 하면 그들 가운데 그래도 예수가 가장 낫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양이 어떻든 간에 나는 이렇게 한다는 내용이 있어 가지고 답이라도 멋지게 하면 그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성인 중에 어떠한 성인이 가장 귀하겠느냐? 하나님이 계시고 성인이 있고 사람이 있다면 그 성인을 세우신 것은 하나님께서 좋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대표해서 성인을 세우셨다면 그것은 인간을 좋게 해주시기 위해서 세웠을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여기에 이의가 있어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성인을 세우신 것은 하나님도 좋고 인간도 좋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성인은 나쁘겠어요? 「아닙니다」 성인을 세운 것은 하나님도 좋고 성인도 좋고 인간도 좋기 위한 것입니다. 즉 셋이 모두 좋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운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은 남자에게 복귀섭리를 맡기셨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대관절 이 땅 위의 무엇을 가장 좋아하시겠어요? 나무를 좋아할까요, 돼지를 좋아할까요? 아니면 호랑이를 좋아할까요? 호랑이를 보면 잘생겼습니다, 동물 중에서 제일 잘생긴 것이 호랑이입니다. 사자는 호랑이만큼 생기지 못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호랑이를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무를 좋아해요. 호랑이를 좋아 해요? 많은 사람이 호랑이를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호랑이를 좋아하신다면 호랑이가 하나님과 제일 친한 것입니다. 하여튼 하나님께서는 식물보다 동물을 더 좋아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호랑이보다 더 잘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더 잘난 것을 좋아해야 되겠어요, 안 좋아해야 되겠어요?「좋아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좋아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더 좋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호랑이와 원숭이를 비교해 보면 원숭이가 더 낫습니다. 그렇다면 원숭이를 좋아하겠어요, 호랑이를 좋아하겠어요 ?「원숭이요」무엇 때문에 원숭이가 좋으냐 하면 원숭이는 흉내를 낼 줄 알기 때문입니다. 별짓을 다 하거든요.

원숭이와 사람을 비교해 보게 본다면 사람은 원숭이보다 나은가, 못한가?「낫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숭이보다 사람을 좋아하겠어요, 안 좋아하겠어요?「좋아합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보니 사람은 대화도 하고 노래도 잘하고 웃기도 하고 아주 좋거든요. 이런 것을 볼 때 세상 천지에서 하나님께서 제일 좋아하실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사람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제일 좋아하시겠습니까? 참된 사람 가운데 누구를 제일 좋아하시겠어요? 남자겠어요, 여자겠어요? 남자와 여자를 한꺼번에 좋아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하나 좋아하는 순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자를 좋아하시겠어요, 남자를 좋아하시겠어요?「남자요」 남자들은 전부 도둑놈 심보를 가져서 안 되겠구만. (웃음)

만약에 여자들이 이 세상을 주도해 왔다면, 남자같이 치고 빼앗고 죽이는 싸움을 했겠어요? 하나님께서 여자들에게 주권을 주어 역사를 움직이게 했다면 죽이고 빼앗는 싸움이 벌어졌을까? 만약 그랬다면 치고 빼앗고 죽이는 싸움은 하지 않지만 매일같이 앉아서 말싸움을 했을 것입니다. (웃음) 이것을 천년 만년 계속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웃는 것을 보니 동감하는 모양이구만.

여자들이 싸움을 하면 천년 만년 계속하게 되겠으니 힘이 강한 사람이 주먹을 휘둘러 이겨야 됩니다. 그래서 여자보다 강한 남자가 싸움을 맡게 된 것입니다. 여자들에게 싸움을 맡기면 끝이 안 나겠으니까 남자들에게 싸움을 맡긴 것입니다. 여자들에게 싸움을 하게 하는 것보다 남자들에게 싸움을 맡겨서 해결짓는 것이 손해가 덜 나기 때문입니다. 옳아요, 틀려 요?「옳아요」 그러니 남자들이 싸움을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귀걸이 목걸이 반지 같은 것을 좋아합니다. 여자들은 태어나기를 어떻게 태어났느냐 하면, 걸려 살고 달려 살고 끼여 살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웃음) 그래서 다는 걸 좋아하고 거는 걸 좋아하고 끼는 걸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는 태어나기를 총질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을 총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웃음) 한국말은 이렇게 계시적입니다, 절대로 우스운 말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말 한마디를 할 때에는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일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싸움을 남자에게 맡기기를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했습니다」 여자들이 대답해 보세요. 「못했어요」(웃음)

승패가 결정되는 자리

이제는 싸움이 막바지에 도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싸우는 사람을 좋아하시겠어요, 안 좋아하시겠어요?「안 좋아하십니다」 안 좋아하시지만 옳고 그른 것은 알고 계십니다. 둘이 싸울 때 하나가 잘못하면 하나는 잘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옳고 그른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어느 편이 되시겠어요?「옳은 편요」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주 힘이 세고 덩치가 큰 남자와 여자 같은 남자가 있는데, 그 둘이 싸움을 하려고 하면 그것은 싸움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싸우는 것을 보시게 되었을 때, 여자 같은 남자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가냘픈 남자지만 선하디 선하다 할 때에는 누구편이 되시겠어요? 큰 사람편이 아니라 여자 같은 남자의 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여자같이 약한 남자의 편이 되는데, 세상 사람들은 어느 편이 되느냐? 어느 편이 됩니까?「큰 사람 편이 됩니다」 여러분도 그래요? 그러니까 이게 사고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조금이라도 불리할 것 같으면 눈을 감고 모른 척합니다. 그러나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덮어놓고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알겠어요? 지혜로운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이 있으면 그 편이 되지 않기 위해서 쳐다보지도 말고 지나가라는 것입니다. 즉,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억울한 일을 위한 싸움을 도맡아 하다가 맞아 가지고 머리가 깨지고 다리가 부러지면 주위 사람들이 분개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큰 녀석을 때려잡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크다고 해도 자랑하지 말고, 작다고 해서 낙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리에 서 있느냐, 선한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 승패를 판결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면 반드시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승패의 결론은 하나님이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통일교인의 수가 많은가, 적은가?「적습니다」 기성교회는 ? 「많습니다」 이렇게 조그만 통일교회가 기성교회와 붙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여기에도 하늘편에 가까운가, 아닌가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봄날이 되면 몇십 자씩 얼었던 얼음도 물이 되어 흘러가지 말래도 흘러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월이 흘러가면 소리없이 다 무너져 가는 것입니다. 썩은 것이 무너지게 되면 그 썩은 것을 비료로 삼아서 뿌리를 박고 생명이 자라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냘프더라도 선한 편이 될 줄 알아야 됩니다. 알겠지요?

성인 가운데 예수님을 봅시다. 성인을 하나님 좋고 성인 좋고 사람이 좋기 위해서 세웠다면 성인의 가르침은 어떠해야 되겠어요? 예수님은 성인인데 인간을 대표한 대표자라면 되겠어요? 성인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세계의 인류를 대표한 한때의 챔피언입니다.

성인은 하나님을 좋게 만들고 인간도 좋게 만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인간이 좋아하는 것과 맞아떨어져야 하고, 인간이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과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도 좋고 성인도 좋고 그 다음에 인간도 좋은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그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 자리는 나를 대신하는 자리이고 아버지를 대신하는 자리입니다. 인간의 욕구와 인간이 소망하는 선이 교차하는 점을 두고 볼 때, 인간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곧 아버지가 좋아하고 자식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모든 작용의 요건

힘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서로 주고받는 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체와 대상이 있다 하더라도 서로 손해날 때는 주고받지 않습니다. 목을 자른다고 해도 주고받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사춘기가 된 처녀 총각이 연애를 할 때는 남자도 여자를 대상으로 삼고 싶고, 여자도 남자를 대상으로 삼고 싶어야 합니다. 즉, 서로가 만나서 나도 좋고 너도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플러스 될 수 있는 것을 발견하지 않고는 절대로 자기 것을 안 줍니다. 주기가 싫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하고 살면 내가 이익이 된다. 즉, 손해가 나지 않고 플러스된다는 여건을 발견하면 주고 받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초에 대했다가 첫날부터 마이너스다 할 때는 대하려고 해요? 절대로 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체와 대상은 서로서로의 목적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자기 혼자서 바라는 목적보다 더 플러스될 수 있는 내용을 상대로부터 찾기 전에는 주고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좋을 수 있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주고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좋다는 것은 무엇이냐? 플러스된다는 것입니다. 나쁘다는 것은 무엇이냐? 자꾸 뜯어 가니까 다 없어지고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플러스되어 흥하는 것이고, 나쁜 것은 마이너스되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너스 될 수 있는 데에는 아무리 주체와 대상의 인연이 있다 하더라도,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하더라도 주고받는 힘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힘이 생겨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그래요?

이런 점에서 볼 때, 공산주의의 변증법은 이것을 모르는 논리라는 것입니다. 힘의 대결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이것이 선의 요건입니다. 여러분들이 화학실험을 할 때 원소의 이온화 경향을 보더라도 원소들이 무조건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소들이 목적하는 결과에 더 좋을 수 있고 더 플러스 될 수 있는 요소가 조금만 갖추어지면 대번에 작용하는 것입니다. 만일 마이너스 될 수 있는 요소가 조금이라도 들어가서 자기 자체에 침해를 받게 될 때는 절대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이 우주는 자기 스스로 보호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과학적인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양심작용이 있어요, 없어요? 양심작용이 있다는 것은 무엇이 있다는 거예요?「힘요」 힘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이미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되어 있어서 작용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주체와 대상이 서로의 목적을 위해서 점진적으로 플러스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양심작용이 있는 것을 볼 때, 양심의 주체가 있어야 원칙이겠어요, 없어야 원칙이겠어요? 있어요, 없어요?「있어요」 양심작용이 있다는 것은 곧 양심의 주체와 대상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결과적 존재이지 동기적 존재가 아닙니다. 동기적 존재라면 인간 스스로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다는 말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스스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어요? 그러니까 인간은 결과적 존재인 것입니다.

모든 것은 주체와 대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눈도 하나만 있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눈썹을 중심삼고 두 개의 눈이 딱 맞을 때 잘 보이는 것입니다. 귀도 두 개의 고막이 좌우에서 울리게 되어 있습니다. 코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부다 이중의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 회에서는 정분합작용이라는 위대한 원리를 찾아낸 것입니다.

힘이 생기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어서 어느 한 쪽이 마이너스될 때에는 절대 작용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는 서로가 이중목적의 결과를 타진해 가지고 플러스될 수 있는 제 3의 목적을 필요로 할 때 발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법도

만일 아메바가 작용을 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가진 사람이 서로 사랑을 중심삼고 생리적 작용을 주고받으면 생명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메바는 아메바 자체에서 발전합니다. 발전하는 데는 하나에서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작용을 해 가지고 주고받습니다. 그리하여 두 목적이 하나의 결과가 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이것을 중심삼아 발전합니다. 이것이 없게 될 때는 작용을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게 원칙입니다.

아메바를 중심삼고 볼 때, 주고받는 작용을 해서 아메바 이상으로 큰 것이 나올 수 있습니까? 그 이상 큰 것이 나와야만 발전한 것이 되지 않겠어요?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힘이 작용을 했으면 더 큰 힘이 나와야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고 더 큰 에너지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밭전이란 에너지가 작용하면 할수록 자꾸 불어 나야 된다는 논법입니다.

그러면 작용할 때에는 어떻게 됩니까? 작아지게 되어 있지요? 작용을 하게 되면 그 자체에서 소모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흡수작용을 하니까 보급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소모가 생기는 것입니다. 생명의 기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소모시키는 데에 힘이 나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입력만큼 출력이 나와요, 안 나와요? 전기 모우터를 볼 때, 들어가는 전기의 힘과 나오는 힘이 같아요? 작아져요, 커져요?「작아집니다」

그런데 진화라는 것은 출력이 더 크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어요? 이것은 힘의 원칙으로 볼 때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힘이란 것은 제3의 힘이 플러스되어야 합니다. 만약 그 원칙이 옳다면 이 넓은 우주 세계에 큰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3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원숭이와 사람은 종자가 다릅니다. 원숭이가 문화적인 생활을 합니까? 사람은 생명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종교가 따라다녔습니다. 그렇지만 원숭이가 문화를 가지고서 세계를 통일하자고 합니까?(웃음) 다른 나라를 점령하여 자기 나라로 만들거나 국경선을 만들어서 네 나라 내 나라라고 합니까? 그래요, 안 그래요? 사람과는 종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원숭이가 하나님을 찬송합니까? 원숭이는 그저 먹기를 좋아하고 먹고 나서 번식하면 그만입니다. 사람과 원숭이는 전연 다릅니다. 진화론을 주장하는 학박사라는 사람들이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했다고 억지를 부리고 사기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그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밝히고 바로잡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그러한 원칙에 벗어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주체가 대상을 대해 가지고 열만한 사랑을 주었다면 아홉만한 사랑이 돌아오는 법이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은 적게 돌아오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같지 않으면 플러스 되어 돌아오는 것이 사랑의 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물론 모든 만물은 보통 힘의 작용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힘에 의한 작용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랑은 적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좋아합니다. 부모와 같은 아들딸, 혹은 부모보다 나은 아들딸이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법도를 통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곤충이나 모든 식물들도 사랑에 의해서 유지해 나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씨는 망하지 않습니다. 작용을 하더라도 망하지 않고 유지되는 것은 주는 힘보다 돌아오는 힘이 강할 수 있는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힘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그 힘을 통해 인간은 퇴화하지 않고 유지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손수건을 하나 줘도 그것을 자기 생명시하지요? 사랑은 그런 무한한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번식은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

신비로운 인체를 통해서 본 신의 실존성

여러분은 사랑을 받은 부모에게는 자기의 모든 것을 주고 싶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자기의 몸까지도 주고 싶지요? 또, 사람은 큰 은혜를 받게 되면 자기의 생명까지도 주고 싶어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있어요, 없어요? 실감나게 한번 얘기할까요? 여러 분이 매일같이 생활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뭐냐 하면 눈입니다. 이 눈을 가만히 보면 누구를 닮았습니까? 닮긴 누구를 닮아, 어머니 아버지와 자기 조상을 닮았지요. 그러면 그 조상은 누구를 닮았어요? 또 그 조상의 조상을 닮았습니다. 결국은 맨 처음의 인간을 지은 존재가 있다면 그분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지은 존재를 알아요?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한번 얘기해 보자구요. 인간 종지조상의 눈이 이 땅에 생겨날 때 이 천체 가운데 태양이 있는 것을 알고 생겨 났을까요, 모르고 생겨났을까요? 대답해 보세요. 여러분 자체는 몰랐지만 눈 자체는 알았겠어요, 몰랐겠어요? 지구성에 오게 되면 태양빛이 있기 때문에 그 빛을 보아야 된다는 것을 태어나기 전부터 알았기 때문에 준비하고 태어 났겠어요, 모르고 그냥 태어났겠어요 ?「알고 태어났습니다」 그건 대답 잘했어요. 이 우주에 지구가 있고 태양이 있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럼, 눈이 지구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눈 자체는 몰랐습니다. 눈이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눈 자체는 몰랐지만 이 눈을 만든 그 주인, 그 모체, 그 동기 되시는 분은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나오면 반드시 보아야 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구에서는 반드시 태양열에 의해서 증발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눈을 깜박깜박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증발작용을 방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눈을 깜박깜박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눈이 깜박깜박하게 된 것을 눈 자체는 몰랐지만, 깜박깜박하게 만든 모체는 증발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눈을 깜박깜박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깜박깜박해야 된다는 사실을 먼저 알았기에 그렇게 지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30분 동안만 눈을 깜박깜박하지 않고 뜨고 있어 보십시오. 여기에는 먼지도 많은데 물기가 전부 증발하게 되면 눈이 큰일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증발되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깜박깜박하는 눈 끄트머리에 속눈썹을 무엇 때문에 달아 놓았어요? 이것을 보게 되면 이 지구 공간에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알았습니다」 눈이 깜박이는 것은 번개보다 빠릅니다. 그래야 날아드는 먼지를 눈으로 못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방지작용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알았습니다」 만약 이게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눈이 깜박깜박하지 않는데 먼지 들어오면 어떻게 되겠어요? 눈부분이 움푹하기 때문에 먼지가 다 모여서 먼지 구덩이가 될 것입니다. 쓰레기통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귀를 보게 될 때, 만약에 귀가 이렇게(몸짓으로 하심) 생겼으면 얼마나 좋겠어요?(웃음) 귀가 사람이 말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어요, 몰랐어요? 앞을 대해서 말을 들어야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알았습니다」 귀가 편편하게 되었다면 마이크를 대고 말할 때 큰일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직접 귀안으로 소리가 들어가게 되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갑자기 '악' 하고 깜짝 놀라게 하는 소리가 그냥 대번에 들리게 되면 얼마나 충격이 크겠어요? 그래서 산맥을 척 넘어서 들어가도록 만든 것입니다. 소리를 들으면 고막이 터지지 않고 공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위험한 배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다 방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눈썹을 볼까요? 여자들은 눈썹이 없으면 절대 안 됩니다. 눈썹이 있기 때문에 잘나고 못나고를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눈썹이 이렇게 있는 것은, 땀이 귀중한 눈으로 흘러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알았어요」 그런 것을 다 알았기 때문에 눈썹이 눈 위에 있는 것입니다. 눈이 귀한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코 아래가 왜 넓게 생겼느냐 하면 입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게 넓적하지 않으면 큰일납니다. 입을 보호하기 위해서 넓적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콧구멍 없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이 콧구멍을 만든 것은 숨을 쉬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다 장난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입술이 움푹 들어간 사람 있어요? 전부 다 불쑥 튀어 나왔습니다. 눈도 튀어 나왔습니다. 이것은 물이 못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 코를 보게 되면 콧수염이 있습니다. 여자들도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웃음) 콧수염을 보면 살랑살랑해 가지고 먼지가 다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공기에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먼지가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사람의 손이 이렇게 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몸짓으로 하심) 손이 이렇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전부다 완전히 알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럼 누가 알았어요? 여러분이 태어날 때 알았어요? 여러분은 자신이 태어난 동기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체는 신비의 왕국입니다. 손가락 하나에 대하여 천만 국민을 동원해서 연구하더라도 확실히 알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체는 무진장한 신비의 왕국입니다. 알겠어요? 그냥 그대로 주먹구구식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인체의 부분들이 이러한 사실을 전부다 알고 나왔어 요, 모르고 나왔어요? 알고 나왔다면 누가 알았어요? 나는 결과적 존재이기 때문에 동기가 되는 어떤 분이 알았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을 한국말로 부를 때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하고 관계가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작품입니다. 문학 작품을 쓰는 사람이 자기의 온 정성을 다 들여 쓴 작품을 하루 이틀 가지고 있다가 아무에게나 주겠어요? 사랑스럽고 귀할수록 더욱더 아끼는 것입니다. 6,25동란 같은 때 피난을 가더라도 그것만은 붙들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아내가 죽고 자식을 버리더라도 그것만은 보따리에 싸 가지고 가슴에 안고서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같이 있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그런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시라면 그 하나님께서 자기의 정성을 다 들여 창조한 사람, 즉 천주의 조화를 전부다 살려 가지고 거기에 박자를 맞춰 살 수 있게 만든 사람을 백년쯤 데리고 살다가 집어 던지겠어요, 아니면 영원히 데리고 살고 싶겠어요? 자기가 만든 물건에게 '야' 했을 때 '예' 하고 대답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자기가 만든 것에게 '웃어라' 했을 때 웃는다면 그 이상의 것을 바랄 수 있겠어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있으니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몽땅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사랑할 것이냐? 몇백 년 동안 사랑할 것이냐? 하나님은 영원히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영생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전신의 정력을 다 들여 만든 걸작품입니다. 자기의 사연이 통할 수 있고, 내정이 통할 수 있는 걸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년쯤 살다가 죽어 버리면 무엇이 될지 모르는 그런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사람은 영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영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버지 어머니와 한 50년쯤 살았다고 해서 싫증이 납니까? 영원히 같이 있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는 영원히 함께 살고 싶은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아까도 말했듯이 사람을 중심삼고 눈이라든가 귀, 눈썹, 코 등 모든 것이 생겨난 것을 볼 때, 하나님이 있다고 하겠어요, 없다고 하겠어요? 이러한 것을 보고도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면 목을 잘라야 됩니다. 그것이 과학적입니다. 하나님이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이렇게 귀한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형으로 계시는 것이 인간들에게는 다행

여러분에게 귀한 보물이 있다면 그 보물을 자기 혼자 갖고 싶겠어요, 누구와 같이 갖고 싶겠어요? 자기 혼자만 가지고 열흘에 한번씩 꺼내 보며 좋아하고 싶지요? 그러려면 어디에다 보관해 두어야 되겠어요? 세계에서 가장 귀한 보물, 그 하나가 없으면 천지가 암흑이 되어 버리는, 하나 밖에 없는 보물을 내가 가졌다면 그것을 어디에 보관하겠습니까? 어디에 갖다 두겠어요? 뼈속에다 둘 거예요? 뼈속에 넣고 다녀도 잠을 잘 때 죽이고 빼앗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떤 생각까지 하느냐 하면, 보물이 보통 사랑 들에게는 안 보이고 나에게만 보이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절대 안 보이고 내 눈에만 보이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나만 알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 보물을 어디에다 둔다 하더라도 내 눈에만 보여서 나만 알 수 있게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보물을 저 하늘 꼭대기에 두고 싶겠어요? 사람들은 그런 보물을 언제나 갖고 다니고 싶어하고, 항상 보고 싶어하고, 만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되어서 나와 더불어 같이 있을 수 있는 곳, 즉 자기의 마음속에 두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두면 아무에게도 안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디에 모셔야 되겠어요? 하나님을 보이지 않는 마음에 딱 모시게 되면 누가 빼앗아 가겠습니까? 마음속에 감추어 두면 누가 빼앗아 갈 수 있어요? 빼앗아 갈 사람이 있어요, 없어요? 마음속에다 모시기만 하면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와 더불어 귀하게 남으실 수 있게끔, 모시고 싶은 자리에 계시게 하려면 직접 눈에 보여야 되겠어요, 안 보여야 되겠어요? 안 보여야 되겠지요? 하나님께서 안 보이시길 잘했어요, 잘못했어요? 잘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보인다면 '하나님이 저기도 있다. 여기도 있다'라고 하며 그분의 가치를 시시하게 평가할 것입니다.

너나할것없이 무한한 가치를 중심삼고 누구보다도 가까운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기를 바라고, 하나님께서도 인간과 최고로 가까운 자리에 영원히 계시고 싶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분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분이니까 보이지 않는 집에 계셔야 되겠지요? 여러분 마음이 보여요? 마음은 얼마나 커요? 마음이 작으면 무한히 큰 하나님께서 들어올 수 있어요? 마음은 무한히 크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 귀한 것을 우리에게 만들어 줄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보고 싶어요, 안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도 못 보지요? 만일에 하나님이 보인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하나님이 보인다면 하나님을 팔아먹겠어요? 하나님이 보인다면 하나님을 빼앗으려고 매일 같이 싸움을 해야 할 것입니다. 싸움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여러분들 중에 여자도 싸운다는데 남자는 안 싸우겠어요? 하나님 한 분을 차지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싸우겠어요, 안 싸우겠어요? 나라끼리도 우리 나라의 하나님이시다 하며 싸울 것입니다. 이북이나 소련 같은 나라에서는 원자탄을 걸어 놓고 싸우겠다고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간은 수천년 동안 땅 뺏기 싸움을 해왔습니다. 벌레만도 못한 시시한 사람들이 서로 뺏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데 하나님이 보이게 된다면 그 하나님을 뺏기 위한 싸움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몇 천년 동안 싸우게 될 것입니다.

인간들이 원하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느냐 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계십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과 부자지관계에 있습니다. 부자지관계는 상하관계입니다. 그렇지요? 아버지는 위이고 아들은 아래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기보다 아버지가 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 나 아들 자리를 그만둘 테니 아버지 자리를 주시오'라고 하게 되는것입니다. (웃음)

여러분도 그렇지 않아요? 맛있는 것이 있을 때 어머니 아버지와 내가 함께 먹을 수 있으면 좋지만 그것이 하나밖에 없을 때는 아버지 어머니보다 자기가 먼저 먹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상하관계도 없다는 것입니다.

증조할아버지가 하나님을 대할 때 뭐라고 합니까? 아버지라고 합니다. 할아버지도 하나님을 대해서 아버지라고 하고, 아버지도 하나님을 대해서 아버지라고 하고, 나도 하나님을 대해서 아버지라고 합니다. 무슨 족보가 이래요?(웃음) 전부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합니다. 그러니 전부다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만 절대시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는 형님이 되고 나는 아버지의 동생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할아버지와 나와도 형제지간이고 증조할아버지와 나와도 형제지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민은 전부다 한 형제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 형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족보는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웃음)

이런 것을 볼 때, 상하관계만으로는 원만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어떻게 지으셨느냐? 아버지와 아들 관계로만 지은 것이 아니라 귀여운 동생으로 지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들과 아버지가 엇바뀌는 날에는 만민이 한 형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아버지와 아들 관계로만 지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은 각각 하나님이지만 나는 아버지 하나님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되면 하나님이 내게로 들어오시기 때문에 내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내 몸이 하나님의 집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나를 대신 입장에 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의 마음과 몸은 안팎으로 내외관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거룩하시다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이기 때문에 혼자서 맨꼭대기에 버티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재미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세계 대통령이 되어 가지고 혼자 떡 앉아서 '에헴, 좋구만'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웃음) 하나님도 혼자서는 별수없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기쁨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상대인 인간과 천지만물을 짓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을 사랑하고 싶어하시는 하나님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 우리 인간은 죄인의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죄인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합니까?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죄인의 자리에 있으면서 어찌 거룩하다고 할 수 있겠어요? 아버지라는 말은 이미 부자의 관계를 맺고 집에 왔다갔다 하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아들 자리에 갈 수 있고 아들이 아버지의 자리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갈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바꿔지는 입장도 논의할 수 있는 것이 부자지관계입니다.

나는 죄인이고 피조물이며 하나님은 거룩하고 창조주인데 어떻게 같을 수 있느냐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가 뭡니까? 서로 다른 입장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한다면 그것은 말이 안 됩니다. 전부다 엉터리입니다. 그러면 대관절 아담 해와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뭘 하려고 지으셨습니까? 그냥 바라보려고 지으셨습니까? 바라만 보면 무슨 재미가 있어요?

우리들이 아기들을 볼 때, 정말 이쁘게 보이면 가서 만지고 싶어요, 안 만지고 싶어요? 만지고 싶지 않은 사람은 목석입니다. 아기들이 예쁘면 만지고 싶은 것입니다. 또, 예쁜 아이들을 보면 뽀뽀해 주고 싶지요? 여러분은 예쁜 아이에게 뽀뽀해 봤어요. 안 해봤어요? 뽀뽀해 봤지요? 그걸 누가 하라고 해서 했습니까? 누가 가르쳐 줘서 했어요? 그것은 자연히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만큼 좋으냐? 전부다 달라붙어 가지고 영원히 떨어지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웃음)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을 보고 '아이구, 너희들은 죄인이니 대할 수 없다'라고 한다면 아버지가 될 수 있겠어요? '거룩함을 시범으로 보여라. 내 아들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아버지가 있어요? 일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당은 커녕 지당도 가지 못합니다. (웃음) 선생님이 다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이 믿고 있던 최고의 이념도 다 알아보았습니다. 그들도 갖지 못한 것을 내가 갖고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기성교회보다 못한 것 같아요? 선생님의 눈을 좀 보십시오. 선생님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눈은 이렇게 작지만 겁이 없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감옥에도 여러 번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그때마다 들어갈 때보다도 더 무장해 가지고 나왔습니다. 감옥이지만 그것이 선생님에게는 여행을 갔다 오는 것과 같았습니다. 코오스가 다를 뿐이었지요. (웃음) 그 다음에는 보따리를 끈으로 크게 묶어 해결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욕을 먹고 유치장에 들어가 매를 맞는다 해도 그것은 수고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는 그렇게 하자는 거예요. 매를 맞고 그냥 줘요? 천만에요. 통일교회는 욕을 먹으면서 자꾸 커 가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기둥을 잡아 매면 큰일이 벌어집니다. 내가 일감을 내놓고 서울의 기성교회 목사 백명을 오게 하여 통일교회 원리를 듣게 하면 자꾸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백이 천이 되고, 천이 만이 될 때는 모두가 흘러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오지 말라, 오지 말라' 해도 전부다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서는 우리 인간을 안팎이나 상하관계로 묶어서 한꺼번에 사랑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러면 아담 해와는 대관절 무엇이냐? 고린도전서 3장 16절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 이라고 했는데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의 마음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만약에 타락하지 않았다면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계실 것이냐? 아담의 마음에, 해와의 마음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통일교회의 이성성상 원리가 맞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성성상의 중화체인 동시에 남성격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하나님께서 아담의 마음에 들어갔겠어요, 안 들어갔겠어요?「들어가셨습니다」 해와의 마음에 들어갔겠어요, 안 들어갔겠어요?「들어가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몇 분이나 됩니까? 기성교회 교인들을 보면 '하나님이여 내 마음에, 성신이여 내 마음에, 주님이여 내 마음에 오시옵소서'라고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러지요? 예」

그러면 내 마음속에는 어떤 하나님이 들어오겠어요? 여자들 마음속에 남자 하나님이 들어오고, 남자들 마음속에 여자 하나님이 들어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또, 남자들 마음속에 남자 하나님이 들어오고, 여자들 마음속에 여자 하나님이 들어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재미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니까 남자에게는 남자에게 맞는 성품을 가진 하나님, 여자에게는 여자에게 맞는 성품을 가진 하나님이 임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이것이 이치에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임재하시면 인간의 몸뚱이는 공의로 와지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보시고 가만히 있고 싶겠어요, 가서 쓰다듬어 주고 싶겠어요? 쓰다듬어 만지기만 하겠어요, 뽀뽀도 해주겠어요? 아담 해와가 자라 20세쯤 되어 사춘기가 되었을 때는, 해와가 아담 옆에 앉으려 하면 이상한 감정을 느끼고, 오빠 되는 아담도 누이동생이 들어오면 이상한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옛날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런 생각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예끼 고얀놈' 이라고 하겠어요, 아니면 가만두시겠어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아담 해와에게도 사춘기가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있었겠지요? 그런데도 아담 해와가 그저 싸움이나 하고 무미건조하게 살며 쓰러지면 일으켜 세워 놓고 그러는 것을 바라겠어요? 바라겠어요, 안 바라겠어요?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도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하나님도 그래야 될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서로서로 좋아해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 좋아해야만 부부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속에도 들어가 계시고 해와 속에도 들어가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몸과 같은 것이 아담 해와입니다. 따라서 아담의 부인이 해와요, 해와의 남편이 아담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부부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어떤 관계입니까? 외적인 부부인 동시에 내적인 부부입니다. 지금까지는 이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근본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만물을 주관하려면 주인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그렇지요? 아담의 몸뚱이만으로 만물을 전부 다 주관할 수 있어요? 타락한 아담이 주관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도 모르는데 주관해요? 몸뚱이가 주관할 수 있어요, 없어요? 마음속에 주인이 들어와야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계시면 온 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담의 부인인 해와는 내적인 면으로 볼 때 아담의 하나님이요, 해와의 남편인 아담은 내적으로 볼 때 해와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그러면 어느 때에 인간과 하나님이 하나될 수 있는 자리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두 사람이 안팎으로 하나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 거기에서 기쁨이 벌어지면 그 기쁨은 세상을 밝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타락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벌어진 내용 이지만, 인간이 폭발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태어나게 되면 사탄이 아무리 침범하려 해도 어림없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부름받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강도가 본래의 아버지를 때려 죽이고 어머니를 겁탈함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것과 같은 입장에 있는 것이 오늘날 타락한 인류입니다. 사탄이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원수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를 겁탈한 간부이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도 사탄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간부를 용서하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것은 다 용서하더라도 사탄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사탄을 용서하게 되면 천법이 전부 다 깨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누구냐 하면 마귀라는 것입니다. 원리를 전부 다 알고 보면 성경은 백 퍼센트 맞아 떨어집니다. 그런데 기성교회 목사들은 이런 내용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알겠어요?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알겠어요? 여러분들은 이제 정성을 들여 가지고 사탄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어떤 기준에 서야 되느냐?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도대체 어느 기준을 넘어서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받았던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 이상의 자리에 올라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 :37)"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 : 37)"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은 어느누구보다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더 사랑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 주관권내에서 사랑을 하면 사탄이 가지고 놀던 것이 되므로 절대로 하나님이 함께하는 입장에 설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려면 자기 남편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하고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자기 아들딸보다도, 자기 나라보다도, 자기의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아들을 더 사랑해야 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자기 부모보다도 선생님을 더 믿지요? 그래서 부모가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남편보다도, 아내보다도 선생님을 더 믿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탄 세계에서 백만한 사랑을 받았다면 그 사랑은 사탄이 가지고 놀던 사랑이므로 단 하나라도 그 이상으로 하나님이 바라는 사랑을 갖지 않고서는 하나님과 인연맺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반대하고, 처자가 반대하고, 나라가 반대해도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까지 반대하고 있지만 선생님은 반대받는 시련의 도상에 서도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고장난 인간을 수리하는 종합수리공장

여러분은 타락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불행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섭리를 하셔야 됩니다. 인간은 고장난 라디오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불쌍히 여기신다면 이 세계를 구하시기 위하여 역사과정을 거쳐서 섭리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 섭리는 고장난 라디오를 수리할 수 있는 공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수리공장이 뭐냐 하면 종교입니다. 그리고 수리공장의 기술자가 누구냐 하면 교주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들은 전부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수리공장의 책임을 분담받아 가지고 온 책임자들입니다. 아시아면 아시아, 남방이면 남방, 중동이면 중동, 구라파면 구라파에서 세계를 분담하여 수리공장을 세웠습니다. 온 인류는 수리공장에서 수리를 받아야 되기 때문에 종교 문화권내에 모든 인류문화가 흡수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오늘날 복귀섭리는 수리공장을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 수리공장의 기술자가 누구냐 하면 교주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수리공장만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끝날에는 종합훈련장을 만들어야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종교를 통일하자는 통일사상을 갖고 나온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역사적인 끝날에 있어서 통일교회란 이름을 갖고 나온 것만 해도 크게 자랑할 만한 일인데 이러한 통일교회를 반대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뭘 하자는 것이냐? 종합훈련장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뭐냐 하면 종합훈련장의 총책임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기분 나쁘지요? 여러분들은 기분이 좋을지 모르지만 기성교회 목사들은 죽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들 공장보다 남의 공장이 잘되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가 무슨 공장이라고요? 종합 수리공장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수리공장에 왔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수리를 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수리공장에 와서 십 년 동안 수리할래요, 아니면 열흘 동안에 수리할래요? 열흘 동안에 수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불 속에 집어 던져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불속에 집어 던져져도 괜찮아요? 바로 오자마자 집어 던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아요?「예」

그렇게 해도 괜찮다면 단시일내에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기성교회 교인들도 왔다갔다하는데 수리공장에 들어오면 무엇을 해야 되느냐? 분해작업을 해야 합니다. '나는 그냥 놔 두세요'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냥 놔 둬 가지고 수리되겠어요? 수리공장에 들어오면 무엇을 해야 된다고 요?「분해작업요」 여러분은 분해작업이 다 되었어요? 여러분들은 사탄 세계의 악의 요소를 전부다 불 속에 쓸어 넣어야 합니다. 악의 요소를 무참히 없애 버리고 쓸만한 것은 골라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은 그것을 받겠다고 안달복달해야 되겠어요, 가만히 있어야 되겠어요? 안달복달해야 됩니다. '나 살려 주소, 살려 주소' 하면서 주체자가 동으로 가면 동으로 따라가고 서로 가면 서로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된 인생길은 하나님의 참된 아들딸이 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따라가야 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따라가겠어요, 지구장을 따라가겠어요? 이왕 분해할 바에는 조금 늦더라도 잘못하면 안 되니까 기술자가 해야 합니다. 기술자는 잘하기 때문에 퍼뜩 해치우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전부 다 선생님을 따라가겠다고 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욕을 먹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대낮부터 와서 '선생님 제가 왔습니다'라고 합니다. (웃음) 그러니까 선생님이 욕을 먹어요. 선생님이 못나서 욕먹는 것이 아니라 너무 잘나서 욕먹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욕을 먹어도 배가 터지는 것을 아니니까 괜찮습니다.

여러분은 분해만 당하겠어요, 선생님을 따라가겠어요? 또 여러분은 손님이 될래요, 주인이 될래요? 통일교인들은 새로운 역사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참된 인생길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모시고 그 아버지의 참된 아들딸, 즉 독생자 독생녀가 되는 것입니다. 독생자 독생녀가 되는 것이 우리들이 가야 할 인생길이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독생자 독생녀에게 '야, 나는 못 하겠다. 나 대신 너희들이 해라'고 할 때 '아이고 나도 싫소'라고 해야 되겠어요? 그렇게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하나님께서 독생자 독생녀에게 상속했는데 그렇게 했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없애 버려야 되겠어요, 안 없애 버려야 되겠어요? '어려운 일을 내가 못 하겠다, 네가 해봐라' 할 때 '아버지가 못 하니까 나도 못 하지요' 라고 하겠어요? (웃음)

종로교회가 하나님의 장자가 되려면 어려운 일을 누가 맡아야 되겠어요? 지구장이 맡아야 돼요? 서로가 맡겠다고 지구장을 추월해서 싸워야 됩니다. 어려운 일을 내가 맡고, 죽을 자리에 내가 먼저 가겠다고 싸우다 죽는다면 하늘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하는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끝날은 모든 것이 드러나는 때

​어떠한 종교를 막론하고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종교가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말합니다. 또, 자기가 믿는 종교가 제일이라고 믿는 것과 동시에 자기가 믿는 종교가 세상에서 제일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신도들은 자신의 종교인 기독교를 중심삼고 모든 종교가 하나되기를 바라고, 또 불교를 믿는 신도들은 불교를 중심삼고 모든 종교가 하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각 종교면 종교, 종파면 종파의 교인들은 자기가 신봉하는 종교나 종파를 중심삼고 세계 제일이 되기를 바라고 전세계가 우러러 받드는 종교나 종파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오늘 우리 통일교회도 한 교파로 생겨났습니다. 통일교회는 먼저 무엇을 통일해야 되느냐 하면 기독교를 통일해야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교파로 갈라져 가지고 서로서로가 반목질시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만이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이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친 도리나 사상은 하나입니다. 말씀도 하나이고 그 계시도 하나입니다. 그런데 오랜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사람에 의해서 그 내용이 달라져 가지고 수많은 교파로 갈라지게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끝날이 되면 그 모든 것이 끝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끝날에는 인간이 이 땅 위에 태어나서 삶이 끝나게 될 때까지의 살아온 과정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봄절기에 시작하여 여름절기를 지내고 가을절기를 맞이하여 끝날이 되면 나무면 나무가 일년 동안에 어떻게 지내왔는가 하는 사실이 드러나는 거와 마찬가지로 역사시대의 끝날이 되면 종교면 그 종교의 전체가 전부 드러나는 때가 온다는 거예요. 비단 종교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람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두고 보면 '나'라는 존재는 오늘날 여러분,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박 아무개면 박 아무개가 현재에 처해 있는 그 개인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시대의 우리 선조들의 혈통적 인연을 상속받아 가지고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한 개인을 두고 보더라도, 그 개인이 선조로부터 받아 내려온 그 결실, 그 결실이 잘된 결실이냐 잘못된 결실이냐 하는 사실이 끝날에는 반드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그러하듯이 가정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은 잘되고 어떤 가정은 못되고 하는 것이 끝날에는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나라를 움직임으로써 수많은 가정이 드러나고, 그 가정이 역사적 국운이 가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지내온 그 가정의 현재 입장이 천태만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그러하면 나라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 민국이 반만년 역사를 거쳐 나오는 과정에 있어서 여러 가지 곡절이 많았겠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은 역사적인 열매로서 나타난 게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좋은 씨가 좋은 밭에, 옥토에 뿌려져 가지고 좋은 농부의 손을 거치면서 풍부한 양분을 공급받아 잘 자라는 곡식과 같은 입장에 선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부흥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조들이 부흥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이런 역사시대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면 그 민족은 반드시 후진국가가 되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한 나라도 끝날이 되면 될수록 그 나라가 지내온 과정이 차차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과정에 있어서 망했다 흥했다 하는 여러번의 수난길을 거쳐 오면서 결국 끝날에 와서는 나라마다 전부 같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고대시대에 있어서 선진문명을 자랑하던 나라들이 현재에 있어서는 중진국 또는 후진국, 미개국으로 몰락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걸 볼 때 반드시 그 끝이 좋든 싫든간에 역사의 과정에 따라서 그 역사적인 결과는 나타나기 마련인 것입니다. 종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을 보게 되면, 50살까지 살다가 죽는 사람도 있고, 70살까지 살다가 죽는 사람도 있고, 80살까지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흑은 100살이 넘게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을 우리는 신문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의 일생을 두고 보더라도 전부 다른 연령에서 한 개인의 생애가 끝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시작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끝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큰 종교일수록 나중에 빛이난다

그러면 오늘날 기독교면 기독교, 불교면 불교, 유교면 유교, 회회교면 회회교, 이런 세계적인 큰 종교가 언제까지 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의 섭리라든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뜻을 많이 계승받을 수 있는 내용을 지닌 종교일수록 나중에 빛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그마한 사명을 짊어진 종교일수록 환경에 적응해 버림으로써 그 사명이 끝나기 때문에 그 종교는 더 이상 가지 못하고 흘러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보면 4대 종교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전세계의 문명이 발전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인류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할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있는 종교가 오늘날의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독교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기독교가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끝이 오는 것입니다. 가을 절기와 같은 때가 오는 것입니다.

가을 절기가 찾아오면 무성하던 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봄절기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봄절기에는 하나의 잎이 나와서 두 잎이 되고 두 잎이 네 잎, 이렇게 점점점 배가 되어 가지고 여름에는 무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줄기가 튼튼하지 못하면 아무리 잎이 무성하다 하더라도 곧 시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여름에 자랄 때는 그 줄기가 아무 가치가 없는 것 같지만 그 줄기야말로 수많은 잎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줄기에서부터 새로운 생애와 새로운 가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꽃도 줄기에서 피는 것이요, 열매도 줄기에서 맺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도 초대교회 시대가 있고, 그 다음에는 부흥하는 시대가 있고, 그 다음에는 점점점 발전하여 전성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전성시대가 오면 그 전성시대를 거쳐서 어떻게 되느냐 하면 포화 시대를 거쳐 반드시 내려갈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것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여름에 모든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전성기를 지나 가을에 들어서게 되면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내리막길로 접어듭니다. 그렇게 되면 그 전성기에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이 맨밑창에 왔다가 다시 올라가게 되면 거기에서 생명을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올라갈 때 거기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사람은 새로운 봄을 맞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생명을 유지하면 새로운 봄을 맞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힘, 그런 씨의 바탕을 갖지 못하면 영영 가을과 더불어, 겨울과 더불어 거기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일년의 춘하추동을 보면 우리가 그것을 잘 알수 있는 것입니다.

하루를 두고 볼 때, 아침은 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낮은 여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저녁은 가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밤은 겨울절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도 소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를 거쳐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주 전체는 돌고 도는 순환 법도에 따라 봄이 지나가면 여름이 오는 것이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는 것이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는 거예요. 시작하는 때가 있으면 전성의 때가 있고 그 다음에는 반드시 결실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결실하는 때는 줄어드는 것입니다. 무성하게 뻗어 나가게 하는 그 모든 진리을 한 생명체에 집약시키기 위해 흡수해 가지고 열매를 익게 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잎은 점점 말라가고 열매는 나무에서 진액을 빼 가지고 점점 익어가는 때라는 거예요.

종교에도 이처럼 반드시 가을절기와 같은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종교에도 반드시 가을 절기는 찾아오는 것입니다. 가을절기가 오면 어떻게 되느냐? 새로운 봄절기를 맞을 수 있는 종교를 통해서 새로운 시대를 계승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닌 하나의 터전이 마련되면 새로운 종교가 출발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새로운 시대를, 새로운 봄절기를, 새로운 문명시대를, 새로운 문화권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는 길이 생겨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게 되면 그것으로 끝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새 종교 출현의 필연성

오늘날 전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 지금의 때는 종교계가 예고하고 있는 말세의 때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싸우고, 불교는 불교대로 싸우며, 유교는 유교대로 싸우는. 이렇게 모든 종교가 싸우고 있는 실상을 바라볼 때에, 이것은 종교로서의 본질을 상실하고 종교로서의 소원하던 목적과 완전히 이탈된 모습입니다.

이렇게 그대로 서로 싸우면 어떻게 되느냐? 한 가정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고, 그 다음에 형제끼리 세 번만 싸우게 되면 그 가정은 이미 볼장 다 본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새로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시련의 한 골짜기에 떨어졌다가 다시 차례로 올라와야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오늘 모든 종교가 예고한 말기를 맞이해야 할 이런 세계적인 정상에 있어서는 기독교면 기독교, 불교면 불교도 다 몰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때에 있어서 종교는 어떻게 대처해야 되느냐? 기독교면 기독교에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됩니다. 불교면 불교에서도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됩니다.

과거의 모든 그릇된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보강함으로써 새로운 싹이 나오듯이 새로운 무엇이 나와야 합니다. 잎도 없고 가지도 앙상하게 말라붙어 쓰러져 가는 나무에서 하나의 새순이 나와야 됩니다. 그래야 이 나무를 거름삼아 잘 자랄 수 있는 새로운 무대가 마련되고 새로운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옛날의 것을 그냥 가지고는 사회 앞에 공헌할 수 있는 참된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기독교의 배경을 갖고 나왔지만, 우리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은 기성교회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과거에 믿고 나오던 기성 교회와 마찬가지의 교파로서 나왔다면 통일교회 역시 흘러가는 역사의 물결과 더불어 흘러가 버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통일교회는 흘러가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체제와 새로운 하나의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흘러가는 그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 자리를 잡고 뿌리를 박아 새로운 출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부패되었습니다. 미국을 보나 구라파를 보나 현재의 한국 교계를 바라보나 기독교는 이미 끝장이 났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계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끝장난 기독교를 그냥 그대로 두어야 할 것이냐? 그냥 그대로 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부르짖던, 혹은 기도하고 사고하고 성경을 보고 설교하던, 그 당시의 것이 그냥 그대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끝장이 난다는 것은 내용이라든가 형식이라든가 그 무엇이 본질과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용이라든가 형식이라든가 하는 것이 그냥 두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새로운 것, 내용이 다르면 더욱 좋지만 내용이 같더라도 그것을 보다 충실히 갖추고, 형식도 보다 충실히 해 가지고 세계적인 사조에 맞을 수 있다면 이 문화세계 발전도상에 있어서 상관적인, 상응적인, 보응적인 관계로써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 앞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자극이 될 수 있지만 옛날의 그것 가지고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옷을 입어야 하는데 그 옷이 다 낡아서 입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낡은 옷감을 가지고 새 옷을 짓겠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새 옷을 지으려면 감을 새로 떠와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그것이 한복이었다면 그것을 뜯어 가지고 요즘 유행하는 미니스커트를 만든다든가 하는 다른 방법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폐물을 이용하는 방법이라도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이 역사적인 종말이 수많은 종교 앞에 혹은 수많은 종파 앞에 부딪쳐 오는 현시점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나왔다는 사실은 내용이야 어떠한지 모르지만 그 표현이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통일교회 선생이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환경을 이렇게 저렇게 헤아려 볼 때에 수많은 종교들이 어차피 떨어질 나뭇잎과 같고, 어차피 쓰러져서 썩어질 나무와 같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무슨 목표라든가 소망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안 되면 뭐든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새로운 내용을 제시하고, 새로운 형식을 제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통일을 표방하고 나선 통일교회

그러면 통일교회는 새로운 내용을 제시했느냐 할 때 이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다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님을 이렇게 알고 있었는데, 이 알고 있는 사실이 진짜 그러냐 아니냐, 그러면 거기에서 보다 더 가중된 내용이 통일교회에서 제시한 것이냐 아니냐 하는 그것이 문제입니다. 현재보다 나을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함으로써 끝장이 난 기독교권이지만 몇발자국이라도 끌고 갈 수 있는 거라구요. 안 그래요? 다 죽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서 싱싱한 녀석이 있으면 혼자서라도 그들을 끌고가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통일교회가 통일을 표방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통일하기가 쉬워요? 핀트를 맞추려고 해도 제대로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과연 이 통일교회가 이 기독교를 통일할 수 있느냐 할 때 통일할 수 있다 하면 통일을 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레일을 만들어 놓고 기차를 싹 밀면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전부다 밀려가는 거예요.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바로 통일교회입니다. 그 레일 위를 가려면 기차바퀴 모양을 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전부다 그런 모양을 하지 않고는 거기를 못 가는 겁니다. 그럴 수 있는 하나의 공식적인 방안이 있으면 통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가 말세의 이 땅 위에 수많은 종파가 부패된 이런 입장에 섰지만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달리해 가지고 발달해야 되겠다'는 신념으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시대에 있어서 혼란을 야기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라 경각적인 의미에서 제시하기 위한 하나의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통일교회가 필요할 것 같아요. 필요없을 것 같아요? 기성교회 입장에서는 필요없다 할 것이고, 통일교회에서는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렇고 저렇고 떠들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뭐 필요 있다 없다 떠들 필요가 없게 된다는 거예요. 필요한 것은 뭐냐 하면, 진짜입니다. 가짜는 다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진짜 이외에는 다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가짜는 입고 있으면서도 '이걸 벗어버리고 진짜를 한번 입어 봤으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가짜는 모양이 번듯한데도 불구하고 벗어버리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 옷을 항상 입는 신세를 지면서도 '이것을 언제 벗어버리나, 진짜가 언제 생길꼬' 하고 진짜를 바랄 것입니다. 이게 어거지라면 어거지고, 형편없는 망상이라면 망상이라고 하겠지만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짜는 누구나 다 원치 않는 것입니다.

그럼 통일되는 데 있어서 가짜에 의해 통일되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 할 때 한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통일되는 데는 지금은 안 되지만 이제라도 진짜에 의해서 통일되어지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진짜만 나오면 통일되지 말라고 해도 자연히 통일됩니다. 그러나 진짜가 나왔더라도 가짜가 많은 세상에서, 가짜가 수천만도 더 되기 때문에 외롭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가짜는 수두룩한데 진짜만은 오직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찾은 사람이 진짜라고 말하면 말할수록 거짓말로 느낀다는 거예요. 그러니 진짜와 가짜를 분명히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통일교회 문선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요? 어디 툭 터놓고 얘기해 봅시다. 믿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 고락을 같이해야 될 거 아니예요? 목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많은 목사들 가운데 누가 진짜냐는 거예요. 진짜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세계의 수많은 목사 가운데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시는 진짜는 하나입니다. 그럼 그가 누구냐? 모르긴 모르지만 그 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와 비슷한 것도 있습니다. 진짜 같은 것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진짜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만히 들여다보고 진짜 같다고 해서 도망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어차피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내가 찾는 물건을 사려고 하는 상점은 이 상점이 아니다, 이 교회가 아니다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통일교인들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여기는 내가 물건을 사려고 하는 상점이 아니다' 하면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진짜가 아니면 보따리 싸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미련없이 퍼뜩 가라는 것입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게 되어 있어

그러면 진짜를 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느냐?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군자같이 점잖게 생긴 사람이 자기를 중심삼고 사람들은 다 이렇고 이렇고 하지만 자기만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런 사람을 무엇이라고 하는 줄 알아요?(웃음) 그런 사람이 바보라는 거예요. 그 군자라는 사람이 진짜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됐느냐는 거예요. 진짜를 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는 진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은 진짜를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진짜를 아는 사람을 만나도 그가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가짜예요, 진짜예요? 섭섭할지 모르지만 우리 한번 터놓고 얘기해 봅시다. 진짜 같아요, 가짜 같아요? 자기집 개가 집안 마당에다 똥을 쌌다 하더라도 주인은 그것을 용서할 수 있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안방에 들어가 가지고 주인에게 쓰다듬을 받다가 뛰쳐나온 개가, 대문간에 주저앉아 가지고 주인을 보고 좋아하는 개나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자기는 그렇지만 그것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저 주인이 자기를 좋아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을 믿어도 그렇고 하나님을 믿어도 그렇다는 거예요. 자기 자체는 전혀 생각지도 않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자기 자체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싸움판에서 싸움을 하는 두 사람을 가만 보면, '내가 잘못 했다' 하는 녀석은 없습니다. 싸움하는 것을 보면 되레 잘못한 녀석이 나 혼자 잘했소 하고 큰소리칩니다. 모든 것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교회를 두고 볼 때 사람들이 삼팔 이북이냐, 삼팔 이남이냐? 그렇지 않으면 중간위치에 있는 사람이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말을 하는데 거짓말을 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말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다 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사기꾼이라고 하지만, 나 자신이 지금 사기왕이라는 레테르가 붙어 있지만 자신의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다 안다는 거예요. 수천 가지 말이 다 사기치는 말이라고 하겠지만 자기가 한마디의 참말을 했다면, '그 말도 습관이 되어서 사기치는 말인지 모르지' 그럴 수 있어요? 그리고 아무리 사기꾼이라 하더라도 자기가 옳은 말을 한 것은 그래도 사기치려고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이 내가 지금 좋은 말을 하고 있는지 나쁜 말을 하고 있는지, 좋은 행동을 하고 있는지 나쁜 행동을 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요, 몰라요? 이것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좋은지 나쁜지 헤아릴 줄을 알면서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른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역사에 실재했던 인물이냐, 이것은 예수 패거리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공산당들이 그렇게 말한다는 거예요. 그래 여러분들 예수님 봤어요?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있다고 합디까, 있었습니까? 그러니까 있는 것은 모르지만 있었다고 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니 예수님이 있었다고 하는 말이 진짜입니까, 가짜입니까? 그게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기 전에 애수가 있건 없던간에 예수와 상관 없는 사람이 말해도 있다는 것을 먼저 스스로 자신들이 마음속 깊이 느껴야 됩니다. 잘난 목사가 얘기하든, 못난 목사가 얘기하든, 예수님이 있었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그럴는지 모르지' 할 거예요. 이렇게 예수님을 믿기 전에 먼저 누구 말을 믿어야 되느냐? 사람 말을 믿지 않고는 예수님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사람 말을 먼저 완전히 믿어야 예수님을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목사나 장로들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모르지만 그들의 말을 무조건 백 퍼센트 믿기 전에는 백 퍼센트 가치의 내용을 지닌 예수님은 만날 수 없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할 때 신앙생활이 얼마나 기분 나빠요?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데, 예수님을 믿으려면 먼저 누구를 믿어야 되요? 목사나 장로의 말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목사나 장로는 예수님을 만나 보았느냐고 하면 만나 보았다고 대답할 수 있어요? 이렇게 생각할 때 예수님을 믿는 그 자체도, 예수를 믿겠다고 나서는 그 자체도 훌륭하다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런 사실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확실히 알고 믿어야

사람은 자기가 말한 것이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안다는 겁니다. 내가 지금 저 사람을 속이려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불쌍히 여겨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지 확실히 안다는 거예요. 그러나 내가 얘기할 때 다른 사람은 좋게 말을 한 것인지 나쁘게 말을 한 것인지 감지하지 못하는 거예요. 감지 못하는 사람은 좋을 것이 있는 곳만을 골라 다닐 수 있으면 모르지만 세상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남을 믿고 나서 무슨 다른 행동을 하는 것보다도, 믿었으면 그런가 안 그런가 알아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 성경에 있더라도 그 성경이 조작이냐 아니면 사실이냐 하는 것을 알아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아봐야 되는 거예요. 성경이 가르쳐 준 것같이 그러한 내용을 중심삼은 어떠한 인물이 있었는지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나 예루살렘 성이나 베들레헴을 가 보고 예수님이 다니던 갈릴리 해변가에도 가봐야 된다는 거예요. 그곳 사람들이 농사꾼이고 바보천치 같은, 즉 강원도 산골짜기 감자바위와 같은 할아버지라도 옛날에 이 동네에 이러 이러한 사람이 살았다는 그 기억이 있다 할 때에는 목사보다도 나아요, 안 나아요? 분명히 낫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어떻다고 단에서 큰소리는 치지만 정작 사실을 전해 주는 그런 농군, 비록 형편없는 몰골이지만 사실을 들고 나와서 예수가 있었다고 전해 주는 농군이 진짜라고 주장하는 어떠한 천만 목사들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 주장하는 사람이 학박사라고 해서 다 나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아는 체해도 사실을 보여 주고 사실이 그렇다는 현실적인 내용을 지니게 될 때는 비로소 그것을 신뢰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기 전에 누구 말을 먼저 믿어야 된다구요? 여러분은 기분 안 나쁘겠지요? 예수를 믿기 전에 목사들 말을 믿었는데 그 말을 예수님 말처럼 알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는 말을 하나님 말처럼 알았다는 거예요. 그렇게 알았는데 그 사람이 한번 비뚤어지게 되면 그 사람을 보고 믿던 신앙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딴소리 한다는 거예요.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이예요. 그래 가지고 어디 예수님 믿는다고 하겠어요? 누굴 믿는다는 거예요? 예수님 믿는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상세하게 분석해 가지고 비판해야 됩니다.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구나 할 수 있는 권위의 자리를 찾아 나가려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 자신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먼저 예수를 믿는 사람부터 알아보자는 거예요. 예수를 알아보기 전에 예수를 믿는 사람부터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도리라는 것은 이런 것인데 예수님을 믿고 사는 사람은 그렇게 하는지 하지 않는지 알아보자는 거예요. 그걸 알아보면 믿는 사람들 중에는 나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도 가만히 보게 되면 나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그러면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3분의 1은 집어치우고라도 3분의 2만이라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이렇게 믿어야 할텐데, 목사가 알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나와 차이가 있다 할 때는 목사가 열 시간 기도하면 나는 열 한 시간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목사보다 더 정성을 들이고 악착같이 믿으면 목사보다 더 높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 기독교면 기독교의 예수 믿는 신자들 중에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느냐? 여러분 그것을 알아요, 몰라요? 대한민국의 2백 5십만인지 3백만인지 하는 그 많은 신자 가운데 어떤 위치에 있느냐는 거예요. '나도 믿는데 누구를 믿느냐? 종교가 뭐냐? 하면 '예수님을 믿으니까 예수교회요. 그래 예수님을 믿으니까 얼마나 훌륭해요' 합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어요?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하나 물어 봅시다. 자기가 자기 자신도 못 믿으면서 예수를 믿어요? 그러면 예수님이 기분 나빠할 겁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면 기독교를 중심삼고 알아봅시다. 기독교 패들은 대관절 어떠한 패들인지 한번 씨름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런 사람은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 같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 같다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그 가운데 내가 있느냐? 이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반성해야 할 기성교인들

나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위치에 있느냐? 한 나무로 말하면 종대와 가지의 위치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잣나무가 있으면 그 잣나무의 종대를 중심삼고 동서남북으로 가지가 커 나갑니다. 그렇지요? 동쪽에 있는 몇번째 가지, 남쪽에 있는 몇번째 가지, 그렇게 가지마다 제각기 자리잡은 위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가지가 향하는 방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가지는 종대의 상대적 입장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나는 종대가 아니면 종대의 상대적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주체면, 나는 그 주체에 대해서 어떤 방향에서 대상 관계를 맺고 있느냐? '나도 그 자리에 서야 되겠다. 나도 그런 관계를 맺어야 되겠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관계를 맺지도 못하고 예수 믿는다고 합니다. 할머니들 보게 되면 그런 관계도 맺지 못하고 '성신이여 강림 하사...' 찬송하며 예수 믿는다고 떡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신랑되신 주님께서 오시면 세상을 불바다를 만들어 심판하시고 우리는 주님과 같이 구름타고 공중에 올라가서 천년 만년 산다' 이런 수작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자기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도 모르고, 자기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주님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 강을 건너갔는지, 산을 넘어갔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주님만 기다린다는 거예요. 이게 옳다고 가르친다 이겁니다, 자기가 제일이라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렇지요? 어릴 때 자기보다 큰사람이 때려서 같이 안 놀면 '저 애는 저렇다' 대번에 그럽니다. 자기는 놀기 싫어하면서 그런다는 거예요.

이렇듯 자기 자신 하나 앉을 자리도 잡지 못하고 있으면서 남이 자리를 못 잡는 것은 잘 알아 맞힙니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그릇된 것을 보고 그릇 되었다고 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못했더라도 추켜세워 주면 자기가 잘못 하면서도 기분 좋아하거든요. 자기가 다른 사람을 속였는데도 추켜세워 주면 그저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다 똑같습니다.

성동 통일교회는 통일교회 본부를 중심삼고 보면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성동교회에서 본부가 어디냐고 물으면 어디긴 어디야. 해올라오는 동쪽이지' 이렇게 대답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동교회에서 볼 때 본부는 서남쪽에 있습니다' 해야 됩니다. 모르는 녀석들은 본부가 어디냐고 물으면 '본부가 어디긴 어디야. 동쪽이니 해 올라오는 곳이지' 그럴 것입니다. 그러면 암만 그곳을 찾아봐도 모릅니다.

여러분 라디오를 들으려면 방향을 맞추고 싸이클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라디오도 한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웃음) 자신의 혈족만 따라다니면서 딱 맞는 패들만 인사하거든. 그저 조금만 다이얼을 돌려놓거나 기분 나쁘면 소리가 안 나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할머니들은 뭐 주님이 오시면 자기가 일시에 승격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부인으로 말이예요. 앞으로 오실 주님은 신랑이고 자기는 예수님의 신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부라는 거예요. (웃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데, 하늘나라의 왕자님인데 그 왕자님 앞에 내세울 수 있는 그 기준이 거룩하시지. (웃음) 기가 막혀서. 기가 막히다는 거라구요. 그 마음에서 신부되겠다는 욕심을 빼 버리면 뭐가 남아요? (웃음) 쓰레기 장사도 거들떠보지 않는 모습일지라도 그저 욕심이 그런 다는 거예요. 그런 모습으로 처녀는 총각한테 시집가게 되어 있는 것은 알아 가지고 이웃 동네에 김 아무개 총각이 있는데…' 아, 나는 처녀니까 이러이러한 총각이라야 된다' 그럴 수 있어요? 병신될 대로 다 되어 가지고 밥 한 술 못 떠먹는 주제이면서 뭐요? 아무 총각이라도 좋다고 하면서 가야 되는데 암만 해봐야 그 격이라는 것입니다.

신부 되려면 신부 될 거동을 해야 됩니다. 동쪽에 있는지 서쪽에 있는지 알아야 됩니다. 얼굴을 맞대고 '여보세요'라고 불러 봐야 대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떡 서 가지고 있으면 누가 알아줍니까? 잘난 체하는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런 문제에 걸리는 것을 많이 생각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관절 하나님이 있느냐? '하나님이 있다면 네가 하나님을 봤어 ? 하나님이 있는 줄 알아' 하면 '들어서 알지'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이 진짜 사람입니까? 전부다 보면 가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가짜가 가르쳐 준 그것이 진짜 될 수 있어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그것은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제까지 진짜인 줄 알고 믿고 살았지만 감정하는 곳이 나왔다면 체면을 불구하고 가서 한번 알아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장관집 마나님이 아니라 대통령 마나님이라도 체면 불구하고 감정사 앞에 가서 그걸 분석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감정받아 봐야 되는 거예요, 감정을 받아 봐야 할 텐데 감정사가 나왔다면 가서 받아 봐야 되겠어요, 안 받아 봐야 되겠어요?「받아 봐야겠습니다」 이렇게 잡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선생님이 통일이라는 말을 들고 나올 때 자신 있어 가지고 나왔겠어요, 자신 없어 가지고 나왔겠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자신 있어 가지고 나왔다면 이것은 굉장한 문제일 거예요. 그래 자신이라는 문제를 내걸고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면 굉장한 관심거리입니다. 관심거리 중에서도 굉장한 관심거리일 거라구요. 오늘 기성교회가 통일교회 문선생을 대해서 이단 괴수, 뭐 뿔 달린 이단 괴수라고 합니다. (웃음)

그렇게 나를 알고 있다면 큰 사고라고요. 병 고치러 온 의사있데도 불구하고 '너 같은 게 무슨 의사야' 하며 양심을 다 꺾어 버리고 병 낫겠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어요?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믿을 수 있느냐

다시 돌아가서 여러분들이 여러분 자신을 믿을 수 있어요? 여기 있는 남자들 가운데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난 이만 하면 돼' 할 수 있는 사람 있어요? 저 교장 선생님은 자랑스러운 듯이 '나는 이만하면 됐지' 하며 교육자로서 일생을 바쳐 생애에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만 못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이 당신 자신을 믿을 수 있어요? 어디 한번 대답해 보세요. 자신을 믿는다고 하면 그건 진짜 가짜입니다. 믿지 못하는 거예요. 그것을 누가 믿을 수 있다고 하늘의 공인을 받았어요? 아무도 못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 믿다가도 내일은 믿을 수 없는 거예요. 지금 이 시대에는 믿을 수 있겠지만 몇 백년 몇 천년 가다 보면 다 믿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달라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왕 씨가 될 바에는 참된 씨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지가 될 바에는 참된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되어야 되겠다는 겁니다. 줄기가 될 바에는 참된 열매를 맺는 줄기가 돼야 되겠다는 거예요. 또, 참된 씨에서부터 생겨난 뿌리를 갖는 줄기가 되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근본이 옳았느냐, 참되었느냐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과정이 옳았느냐, 현재 이 시점이 옳은 것이냐, 미래가 옳을 것이냐 하는 말입니다. 과거가 옳았다고 해도 그게 옳았는지 그릇되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리고 현재가 옳은 것인지, 미래가 옳을 것인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것을 뒤집어 보고 나가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전부 다시 만들어 가지고, 과거에도 옳고 현재에도 옳으며 미래에도 옳을 수 있는 사람을 만들 수 있다면 모두 그렇게 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만들 수 있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원하겠어요, 원치 않겠어요?「원합니다」 원하지 않으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인간개조라는 문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을 개조해야 된다는 거예요. 인간을 개조하는 게 눈을 뒤집어 박는 거예요?(웃음) 개조가 뭐예요? 그 개조라는 것은 믿는 방법이 틀린 것을 새롭게 맞게 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세가 틀렸고, 생각하는 방향이 틀렸다는 거예요. 이것을 고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믿을 수 있어요? 그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옛말에 '인심은 조석변이요, 산천은 고금동'이라 했습니다. 조그마한 봉우리만도 못한 인간, 요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여러분 마음도 요랬다 저랬다 해요? 그럴 때가 더 많을지 모르지만 다 탕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거꾸로 탕감을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생각하는 것도 이제는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던 것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일한 것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살펴보라는 거예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비판해 보라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가 현재 이러고 있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비판해 보아야 되고, 앞으로 옳을 것인지 그를 것인지 전부 가려 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앞으로는 틀림없이 이런 것이다' 하며 자신이 볼 때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건더기를 남겨 놓겠다고 해야 됩니다. 내가 살고 있는 현재에도 믿을 수 있는 건더기를 갖고 있고, 과거에도 믿을 수 있는 건더기를 갖고 살았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건더기를 모아 놓은 것이 지금 살고 있는 믿지 못하는 것보다도 커야 그래도 어느 정도의 가망성이 있지 작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통일교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바른 인식의 중요성과 성경 해석의 문제점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어떤지 모르지만 대관절 예수가 이 땅에 났느냐 안 났느냐?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야 딸이야? 요즘은 남자가 여자 될 수 있고 여자가 남자 될 수 있는, 성전환을 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웃음) 예수님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고, 서른 세 살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갔다는데 그것도 믿을 수 없다는 거예요. 지금 한국에 서른 세살난 총각 있는가 보라구요.

예수가 서른 세살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갔다고 해서 장가 보내야 되겠다고 중매하러 왔다갔다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남자냐 여자냐? 도대체 하나님의 아들이냐 아니냐? 자기가 뭐 잘난 것이 있다고 하나님의 독생자란 간판을 내걸고 미친 일을 하다가 죽었느냐? 과연 옳은 일을 하다가 죽었느냐? 그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그런 예수가 소개하는 하나님을 우리가 믿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을 알아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부정 못 하겠지요? 알아봐야 되겠지요? 알아보지 않고 신앙하는 사람은 그냥 그대로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줄기가 안 되고 낙엽이 되는 거예요. 추풍 낙엽이 되어 버린다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낙엽이 아닌 가지가 되면 누구도 꺾을 수 없고 떼어갈 수도 없습니다. 그 붙여진 생명의 힘보다도 더 큰 생명의 힘이 와서 부딪치기 전에는 떼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는 어차피 망합니다. 지금 병이 나 가지고 망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럼 무엇이 병이냐는 거예요. 무엇이 병폐냐는 거예요. 이런 세계가 망하게 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믿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오죽이나 잘 믿었어요? 믿지 못할 사람의 말을 그저 덮어 놓고 믿고 나갔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잘 믿었는데 왜 병들었느냐? 예수님의 인격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인격은 옳았는데 소개를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있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 그대로 완전히 되었다면 올바른 사람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올바른 사람들이라면 올바로 발전해 가지고 세계를 제패하고도 남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왜 가다가 병이 들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체는 틀리지 않았는데 예수님의 가르침의 말씀이 틀렸느냐? 그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인간들이 말하고 있는 내용이나 행동이 예수가 가르쳐 준 그 내용과 일치가 되었느냐? 거기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격이 틀리지 않았다면 예수님이 가르쳐 준 그 말씀의 내용이 오늘날 사람들이 아는 내용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옳습니다. 그러니 성경의 말씀은 이렇다고 다시 설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르친 것이 잘못되었으니까 그래야 되는 거예요. 교과서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잘못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비유와 상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이 안 되긴 했지만 그래도 한 가닥의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알겠어요?

기독교가 망하게 된 이 판국에 그래도 소망을 가지고 성경을 붙들고 그 내용을 달리해서 하나의 길을 모색하게 될 때, 비로소 여기에는 예수님이 바라던 새로운 인격을 갖출 수 있고 만민이 바라던 인격을 갖출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가망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러한 관점에서 성경을 봅니다.

예수님은 죽으러 오시지 않았다

그러면 그게 어떤 내용인가 한번 들어 볼래요? 바쁜 사람들은 가도 괜찮습니다. 듣기 싫은 사람은 가도 괜찮습니다. 그건 자유이니까. 말씀 중에 기분 나쁘게 나가지 말고….

오늘날까지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죽으러 이 땅에 오셨다. 내 죄를 위해서 신랑되시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 가지고, 나를 대신하여 제물로 바쳐져 가지고 나를 구원해 주신 것이다. 그렇게 피를 흘리심으로 인하여 내 죄를 대속해 주셨다' 하며 예수님을 대속(代贖) 의 주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대로라면 예수님은 잘 죽었어요, 못 죽었어요? 잘 죽었다는 것입니다. 보혈을 많이 흘리는 것이 좋아요, 조금 흘리는 것이 좋아요?「많이 흘리는 게 좋아요」(웃음) 웃을 게 아니예요. 그러면 보혈을 흘리는데 있어서 이왕에 죽을 바에는 만민을 위해서 한꺼번에 보혈을 많이 흘리는 것이 좋아요?(웃음) 그게 문제가 된다는 거예요. 웃어 넘길 게 아닙니다. 여러분, 사람이 죽는 데 있어서 비참하게 죽은 사람하고 덜 비참하게 죽은 사람이 있을 때 어떤 사람에게 더 동정이 가겠습니까? 비참하게 죽은 사람에게 더 동정이 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똑같이 죽었다 하더라도 총 한방 맞고 죽은 사람보다 비참하게 피를 많이 흘리고 죽은 사람이 더 동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게 된다면 이왕지사 우리들을 위해서 피를 많이 흘리고 죽으면 그게 더 좋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보혈을 한꺼번에 많이 쏟고 죽기를 원했어요? 어때요? 가만히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이 보혈을 흘렸어요? 그러면 나는 진정으로 예수님이 죽기를 원했을까요? 이런 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예수님은 신랑이신데 신랑된 그 분이 나를 위해 죽겠다고 할 때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있어요? 신랑인 예수님 시대에 살던 사람들도 신랑된 예수가 죽는다는데 왜 가만히 있었을까요? 거기에는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 사람들은 예수님이 신랑인 줄 알았어요, 몰랐어요? 몰랐다는 것입니다. 몰랐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유대교에서는 아직까지도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람의 손을 통해서 죽게 하려고 하였다면 가룟유다가 죽이게 하기 전에 예수님의 어머니 아버지에게 맞아 죽었어야 했습니다. 제사장은 자기가 제물이 되는 입장이므로 예수님의 아버지 어머니가 예수님을 잡아죽여야 되는 거예요. 안 그래요?

예수님은 죽기 위해서 이 땅 위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여기 기성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지금까지 문선생 말씀을 들어 보니 예수님이 불쌍하지요?

거 뭐하러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이끌어내 가지고 살게 했습니까? 그것은 오실 주님 때문에, 주님을 위해 이스라엘 민족이 울타리가 되어 가지고 주님에게 총알이 날아오면 대신 맞아 죽고, 주님이 내몰리면 대신 몰리고, 로마 제국이 주님에게 달려들면 대신 대적하여 싸워줄 수 있게 하기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울타리가 되어 주고, 철옹성 같은 궁성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신랑으로 오실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만년 공사를 세계적으로 준비시키려고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이끌어내셨던 것이지 오실 주님을 죽이라고 데리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그러면 지금까지 예수님이 죽으러 이 땅 위에 오셨다고 하는 사람 말하고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하고 어느 쪽이 이치에 합당한 말이겠습니까? 한번 얘기해 보세요. 「통일교회 문선생님 말씀이요」 통일교회 문선생 말이 이치에 합당한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괜히 4천년 동안 준비했어요?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죽이지 않았다면 누가 죽입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몰아 죽이지 않았다면 누가 예수님을 죽이냐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가 죽여요, 세례 요한이 죽이겠어요? 로마 백성도, 로마 병정도 예수님을 못 죽이는 것입니다. 원수 국가인 로마 나라를 타고 앉아 가지고 세계를 정복하여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온 예수님이신데 이 원수 나라에 끌려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민족이 그를 배신한 것입니다.

유대교는 2천년 동안 오직 메시아만을 바라고 나온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해 가지고 야곱을 21년 동안 하란 땅에 보내었다가 다시 끌어내고, 또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 들여보내 400년 동안 고생시켜 가지고 별의별 기적을 다 일으키면서 보호육성하여 끌고 나온 민족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잡아 죽이라고 그렇게 해 나오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죽이고자 했어요? 그럼 하나님이 뭡니까?

만약에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장가를 갔겠어요, 안 갔겠어요? 또 죽지 않았다면 예수님이 혼자 살다가 늙어 죽겠어요? 만약에 예수님이 죽지 않았더라면 그냥 남자로 늙어 죽었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새로운 뜻에 따라서 신부를 맞이하여 같이 살다가 죽었을 것인가? 남자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장가가야 됩니다」 장가가야 돼? 여자들은 어때요?「장가가야 됩니다」 장가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인 것을 누가 알아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신부는 하나님의 무엇이예요?「며느리입니다」 하나님의 며느리입니다. 그 아들과 며느리의 아들딸은 하나님의 무엇이예요? 손자 손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손자 손녀 보기를 원하시겠습니까, 원하시지 않겠습니까?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은 혼자서 살아야 됩니다. 물어 볼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전도하기를 바라겠어요, 안 바라겠어요 ? 하나님은 죽은 송장도 끌어 안고 전도하면서 똥 묻은 것도 닦아 가지고 아들로 삼기를 원하는데, 깨끗하고 죄 없는 신랑되는 예수님이 신부를 맞이하여 죄 없는 아들딸을 낳는 것을 하나님이 싫어하시겠어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그것을 좋아하시겠어요, 안 원하시겠어요?「좋아하시겠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 며느리가 낳은 아들딸은 하나님의 무엇이라고요? 손자 손녀입니다. 그 손자 손녀가 낳은 아들딸은 하나님의 뭐예요? 증손자 증손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러한 손자 손녀의 3대(代)쯤 가다가 끊어지기를 바라겠어요, 증손자 고손자 고고고…손자까지 영원히 대가 이어지기를 바라 겠어요? 어느 족을 바라겠어요? 고고고…손자까지 영원히 그 대가 이어 지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땅 위에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지파와 족속과 나라가 생겨났겠어요, 안 생겨났겠어요 ?「생겨났겠습니다」 생겨났다는 거예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 사람들은 예수 믿지 않아도 천당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수의 아들딸도 예수 믿어야 됩니까?(웃음) 아들딸이 예수 믿어야 천당가느냐는 거예요. 예수의 아들딸은 예수 안 믿고 천당가기 때문에 그 아들딸의 아들딸도 예수 안 믿어도 그대로 천국으로 직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류 앞에 슬픔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잘 받들지도 못하는데 예수님이 와서 뭘해요? 그래 놓고 바라기는 뭘 바라느냐는 겁니다. 예수가 와서 뭘 어떻게 하겠어요? 가당치 않는 수작들 그만하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죽었으니 다 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신부의 자리도 없어졌고, 아들 딸의 자리도 없어졌고, 예수님의 손자를 중심삼은 예수 지파 자리도 없어지고, 족속의 자리도 없어지고, 민족의 자리도 없어지고, 나라의 자리도 없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혈통의 씨가 마르고 없으니 다시 로마정권의 박해를 받은 것입니다.

사탄 세계에서 그래도 예수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축복해 주어 가지고 미국을 세워 전세계를 압도하게 만들었는데, 예수님의 직계 아들딸이 있었다면 얼마나 축복을 잘 해주시고 세계를 통일하게 해주실 것이냐는 거예요. 어림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망하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운명을 가진 기독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의한 구원의 한계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안 맞는 것 같아요? 내 말을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믿겠으면 믿고 말겠으면 말라는 거예요. 참이라는 것이 믿는다고 참이 되고 안 믿는다고 참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말한 것하고 기성교회에서 말한 것하고 어느 쪽이 참 같아요?「선생님 말씀요」 통일교회 교인들 입장에서 대답했다면 나는 그거 싫습니다. (웃음) 사탄에게 물어 봐도 문선생의 말이 맞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속이 남아 있다면 여러분은 그 족속과 사돈 될 가망성이 있어요, 없어요?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이건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데 만일에 그렇게 되었다면 그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도 애급에 들어가 가지고, 그 사지에서도 자꾸 번성해 가지고 애급 나라가 불쌍해질 뻔했는데, 만약에 예수님의 직계의 아들딸을 남겨 놓았다면 잘 퍼졌겠어요, 안 퍼졌겠어요? 하나님이 잘 퍼지게 하겠어요, 안 퍼지게 하겠어요? 잘 퍼졌으면 나라가 이루어졌겠어요, 이루어지지 않았겠어요? 나라가 이루어졌으면, 그 나라는 하나님을 중심 삼은 하나의 주권 국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죽일 수 있어요? 하나의 국가의 권위를 가지고 하늘 앞에…. 그렇게 되었으면 기독교가 세계의 종교가 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사실이 하나님의 내면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속이 있었다면 우리도 친척이 될 수 있고 사돈도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사돈이 되면 예수님에 대해서 사돈님 한다는 것입니다. 별수 없습니다. 그러한 예수님과 사돈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또, 예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있다면 비록 타락한 인간이지만 타락한 세계의 아가씨를 보고, '저 아가씨가 아니면 난 죽는다'고 하면서 예수님께 결혼시켜 달라고 떼를 쓰면 예수님도 별수 없습니다, 결혼시켜 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거기에는 식이 다르다는 거예요. 탕감과정을 거치는 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한 세계의 사람들이 예수님하고 친척을 맺을 수 있어요, 없어요? 예수님하고 사돈을 맺을 수 있느냐 말입니다. 그렇다면 왕궁에 있는 훌륭한 패들은 모두 예수님의 친척이 다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의 나라가 예수님의 권내에 들어가겠어요, 안 들어가겠어요? 「들어갑니다」 다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기독교가 지금까지 몰리고 쫓기고 구름떼처럼 해 가지고 나라없는 신세가 되어 억울하게 살지는 않았을 거라구요.

그러면 예수님이 원해서 죽었어요, 몰려 가지고 죽었어요?「몰려서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던 기도는 잘했어요, 못했어요? 기성교회의 주장대로라면 잘못한 기도라구요. 아버지의 뜻이 어디 있고 내 뜻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또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라고 한 것도 수작이 되는 거예요.

그 기도 내용을 보게 될 때, 그 기도 내용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 이것은 자신이 죽을 것을 아는 입장에서 한 기도예요, 죽지 않을 수 있는 입장에 있었는데 죽게 되니 이게 어찌 된 영문이냐고 놀라서 한 기도예요? 놀라서 한 기도예요. 그러한 기도를 세 번씩이나 했던 것입니다. '내가 그래야 되겠습니까? 본래는 내가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는 마음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죽으면 모든 사람이 피를 흘리지 않으면 나를 따라올 수 없기 때문에, 만민을 긍휼히 여기는 입장에서 후대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그렇게 피를 흘리며 따라올 수많은 신도들, 그런 기독교의 비참함을 생각할 때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해서 그런 기도를 했던 거예요.

그렇지만 할수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둘 다 놓쳐 버린다는 겁니다. 두 손에 떡을 쥐었다가 다 놓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손만이라도 떡을 쥐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영육 두 세계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육적인 세계를 버리고 영적인 세계라도 구해야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는 영적인 천국을 모색해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없게 된 이유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는 예수님을 보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준비한 나라와 교단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땅과 백성과 주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기독교가 백성을 갖고 주권을 갖고 땅을 갖고 있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미국이 그래요? 천만예요. 미국의 대통령하고 기독교 지도자하고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국가하고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 그대로 만왕의 왕입니다. 그는 주권자 중의 최고의 주권자입니다. 오늘날 교구장이면 교구장들은 최고의 지도자라는 거예요. 이런 등등을 볼 때, 이 땅 위에는 하나님의 발판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이곳은 내 나라요, 내 땅이요, 내 집이요, 내 백성이요, 내 주권이라고 할 수 있는 발판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나라와 땅이 없기 때문에 지상에서 몰리면 쫓기고 죽어가면서 세계적인 판도를 넓혀 나온 것입니다. 기가 막힌 서러움을 겪으면서 나온 불쌍한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죽인 죄를 오늘날 기독교인이 탕감해야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피를 흘리지 않고는, 피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속죄를 받지 못합니다. 죽음으로 말미암아 속죄받을 수 있다면 예수로 인한 속죄보다 내가 죽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기에 이스라엘 민족이 600만명이나 히틀러에게 떼죽음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죽은 데 대한 탕감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냐 하면 천지의 왕도 되고, 인류의 부모도 되고, 최고의 스승도 되는 거예요. 3대 명함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천지의 만왕의 왕이요. 인류의 부모예요, 부모. 그 다음에 스승 중의 스승이라구요. 그러한 3대 내용을 갖춘 예수님을 죽였으니 용서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죽인 죄인을 용서해 주는 법이 있어요? 하나님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피를 흘리지 않고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기가 막히는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원수를 갚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생각해야 됩니다.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겠는가

그럼 이제부터는 '통일식구의 사명'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죽지 않았어야 할 예수님의 그 한을 풀어 드릴 수 있겠느냐? 예수님이 억울하게 죽었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이 땅 위에 나오지 않고는 천국 갈 사람은 한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영은 천국에 가서 살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예수님도 천국에 못 가고 낙원에 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총각의 귀신을 무슨 귀신이라고 합니까? 총각이 억울하게 죽으면 몽달귀신이라고 합니다. 그런 남자는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조상이 타락하지 않고,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어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리에서 살다가 죽었다면 그들에게 원한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원한을 품지 않고 기뻐하며 하나님 앞에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도 좋아하실 수 있는 자리에서 살다가 죽어서 갈 수 있는 곳이 하나님이 지으신 천국입니다. 그것이 본래의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한을 가진 사람이 그 천국에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까? 들어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원한을 품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다시 와서 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원한을 남겼느냐? 신부를 못 가졌기 때문입니다. 신부를 못 찾았기 때문에 천국에 가지 못하고 낙원에 간 것입니다. 예수님이 총각으로 이 땅에 와서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만왕의 왕으로서 만왕의 왕비를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권을 갖기 위해서는 만왕의 왕비의 기준을 갖춘 신부를 맞이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래의 왕권의 자리에 못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아담이 타락하지 않은 입장에서 부부의 인연을 갖추어서 만물을 주관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만물을 주관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바로 남녀 평등권이라는 것입니다.

본래 이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자는 인간의 종지조상이었습니다. 주관하는 데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같이 주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만 주관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본래의 그 기준에 합당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으로 왔기 때문에 인류는 만왕의 왕후를 받들어 모셔야 됩니다. 인류의 아버지로 오셨다면 인류의 어머님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또, 인류의 스승으로 오셨다면 사모님을 모셔야 됩니다.

자식으로서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을 정성을 다하여 모셔야 완전한 효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진정한 효자인 것입니다. 아버지 혼자에게만 효도하고,어머니 혼자에게만 효도하는 사람은 효자라 할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백성이 나라님을 위해 충성을 하는데 나라님만을 위하여 충성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라님 부인까지를 위하여 충성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완전한 충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제자가 되려면 선생님과 그 사모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이것이 천법입니다, 천법. 알겠어요?

예수님이 그러한 천리의 원칙 앞에 합당할 수 있는 만왕의 왕권을 갖추는 데는 혼자서 됩니까? 혼자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부인이 있어야 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것 같아요, 안 그럴 것 같아요? 남자 혼자서 사는 게 좋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나에게 영광이 되니 나 혼자 하자. 잘살게 된다면 나 혼자 천년 만년 산다' 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돼지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그 영광된 자리에는 누굴 데리고 가고 싶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데리고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아들보다도 색시가 낫다는 거예요?(웃음) 그러니 기쁜 일이 있다면 자랑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 기쁜 후에 자랑할 수 있는 대상이 없으면 그 기쁨도 허수아비입니다. 한바탕 기뻤으면 그 다음엔 자랑할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부부끼리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자랑하려니 아들딸이 있어야 됩니다. 부부끼리 자랑하게 되면 무슨 재미가 있어요? 아들딸 앞에서 '야야 이렇게 한다'고 하면서 자랑해야 재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천지는 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예수님의 최고의 소원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라면 왕후가 필요하겠어요, 안 필요하겠어요? 뒤에 처음 온 젊은 청년들, 어떨 것 같소? 예수님이 만왕의 왕인데 왕비가 필요하겠어요, 필요하지 않겠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인류의 아버지가 예수님이라면 예수님 혼자서 아버지가 될 수 있어요? 혼자서 아버지가 될 수 있어요? 혼자서는 못 되는 거라구요. 부인이 없으면 부모는 못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부모라면 짝이 없어 가지고는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부인을 모셔 가지고 부모의 자리에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못 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최고의 소원은 무엇이겠습니까? 나라를 갖기 전에 먼저 무엇을 가져야 되겠어요? 자식을 갖기 전에 먼저 무엇을 가져야 되겠어요? 부인을 먼저 맞이해야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전도를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들딸로 만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부모의 자격으로 왔으면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기도할 때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합니다. 기성교회와는 달라요. 신부가 없는, 외짝인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에서는 참 멋진 기도를 하지요?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참 대왕마마, 중전마마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거예요. 선생님 하면 선생님 부부가 좋아요, 외짝이 좋아요? 그래 어떤 것이 좋아요? 쌍이 좋아요, 외짝이 좋아요?「쌍이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어야 되고 여자가 있으면 남자가 있어야 됩니다. 남자가 태어날 때 여자가 있을지 없을지 걱정하고 태어났어요? 생각해 보세요. 태어날 때 큰일났다고 걱정했어요? 벌써 그건 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임자네들은 꿈도 안 꾸어 보고, 그걸 알게 되어 있어요? 그걸 내가 풀었다구요. 기가 막히다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한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면 큰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한이 맺혔느냐? 그것은 신부를 찾아야 되는데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찾기 전에 교회를 찾아야 되고, 교회를 찾기 전에 종족을 찾아야 되고, 종족을 찾기 전에 가정을 찾아야 되고, 가정을 찾기 전에 신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신부를 찾지 못하면 가정도 없는 것이요, 종족도, 민족도, 나라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잃어버렸다 이거예요.

세계의 제일 종지 중의 종지요, 근본 중의 근본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찾아야 됩니다. 이것이 본연의 천명에 의한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나라가 배반하고, 교회가 배반하고, 씨족이 배반하니 모두가 한결같이 돌팔이꾼들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할수없이 예수님은 몰리고 쫓기며 살아가는 그 생애에서 다시 한 번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3년 공생애노정을 가신 것입니다. 나라를 대신할 수 있는 패를 만들고,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패를 만들고, 종족을 대신할 수 있는 패를 만들고, 예수의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패를 만들고, 종교를 대신할 수 있는 패를 만들기 위해서 공생애노정을 가신 것입니다. 로마의 앞잡이가 된 이스라엘 민족과 대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을 신부로 세워 가지고 새로운 종족과 새로운 교회와 새로운 민족을 세우기 위해 나선 것이 3년 공생애노정인 것입니다. 그것은 처량한 노정이었습니다.

그 계획했던 코스대로 전부다 가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반대하는 무리들에게 안팎으로 에워싸여 가지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세와 엘리야를 변화산에 보내 가지고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죽을 것을 의논하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한이 뭐라구요? 신부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여기 처녀들, 시집 못 가 보고 죽으면 한이 맺히겠어요, 안 맺히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또 남자가 그러면 한이 맺히겠어요, 안 맺히겠어요? 맺힙니다. 여자가 한 맺힌 것에 대하면 남자가 한 맺힌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남자는 나이 80이 되어서도 장가들겠다고 하지요?(웃음)

그렇기 때문에 본연의 천리 원칙이 그렇습니다. 천국은 본래의 선한 부모로부터 태어나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고 우주의 모든 피조물이 그와 더불어 화동할 수 있는 자리에서 부부의 인연으로 아들딸을 낳아 사랑하고, 그 아들딸들에게 모든 것을 다 상속해 주고 가는 곳입니다. 천국은 뭐 아버지는 가고 어머니는 못 가는 곳이 아닙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 모두 다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열두 제자의 입장과 그들의 불충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예수 믿고 천국가자'고 합니다. 천국은 믿어야만 가는 곳이 절대 아닙니다. 천국은 자동적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렇게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신부를 찾았더라면 죽긴 왜 죽어요? 예수님이 신부를 찾았다면 가만히 있어도 뜻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막에 가서 구덩이를 파며 농사짓는 농부가 되더라도 뜻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전도는 무슨 전도예요?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그 어부 짜박지들을 전도해 놨지만 그들로서 무엇을 하느냐 이거예요. 신부를 맞이하여 아들딸 낳아 훌륭하게 키워서 장가 보내고 시집 보내 가지고 친척관계를 맺음으로써 철옹성 같은 인연의 터전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지에서 도망가는 그따위 패들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의 식민지권내에 있더라도 누구도 모르게 감쪽같이 그 뜻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의 이종 사촌 형이 되지 않아요? 서로 형제지간이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당시 유대 나라에서 천재라는 명성이 붙어 가지고 모두가 우러러보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만히 있으면서도 그러한 형을 내세워 가지고 하게 되면 유대 나라는 한꺼번에 다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긴 왜 죽어요?

그때는 로마제국이 이스라엘 나라를 점령한 입장, 아랍권 전체가 로마의 속국이었으므로, 유대 교회가 돌아가게 되면 유대 나라가 돌아가게 되고, 유대 나라와 유대 교회가 예수님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이스라엘이 봉기만 하게 되면 일시에 아랍권은 이스라엘을 중심삼고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편싸움이 벌어져 중동지역에 로마를 대신한 새로운 국가권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로마 제국을 잡았더라면 예수님의 기독교가 왜 순교의 종교가 되겠어요? 예수가 죽긴 왜 죽어요?

그러니 예수님이 제자들을 세워서 그들을 하나님의 아들딸 만들고 싶겠어요, 자기의 혈육을 낳아서 하나님의 아들딸 만들고 싶겠어요? 어떻게 하고 싶겠어요?「자기 아들딸입니다」 물어 볼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가 뭐예요, 사도가?

예수님이 자기의 직계 아들딸을 찾을 방도가 없으니까, 할수없이 제 1기반을 닦기 위하여 대표적인 인물을 세워 가지고 교회와 나라를 얽어매기 위한 외적인 일을 준비하려니 제자들을 안 세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라를 잃어버렸으니 나라의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충신들을 모아 놓아야 되고, 교회를 잃어버렸으니 교회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세워 놓아야 하나님 앞에 위신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위하고 교회가 위하고 종족이 위할 수 있는 그런 패들을 전부 다 잃어버리고, 나라도 잃어버리고 교회도 잃어버리고 모두 다 잃어버리고 무슨 면목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어요?

그래도 충신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적어도 열두 사람은 세워야 하고, 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못해도 열두 사람은 세워야 됩니다. 또, 지파가 열두 지파이니까 열두 지파를 대표할 수 있는 열두 사람을 세워 놓아야 한다는 거라구요.

예수님의 12사도는 무엇이냐 하면 한 나라의 충신의 대신자요, 교회의 제사장의 대신자요, 가정의 12지파 중 열두 아들의 대신자입니다. 이러한 3단계적인 가중된 책임에 입각하여 예수님은 오로지 그것을 위하여 정성을 다했는데도 그들은 가정의 부모된 입장도 버리고, 교회의 제사장된 입장도 버리고, 나라의 군왕된 입장도 다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열두 제자는 무엇이냐 하면 이스라엘 국가의 애국자의 대표자요, 교회 제사장의 대표자요, 종족, 씨족, 가정의 아들의 대표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에도 그들을 세웠고, 교회에도 그들을 세웠고, 씨족에도 그들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들은 전부 대표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뿌리를 박아 가지고 씨족과 연결시키고, 교회와 연결시키고, 나라와 연결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한

그런데 그렇게 해야 할 대표적인 중요한 인물들이 그 꼴이 되어 버렸으니 예수님이 갈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었으니 예수님은 할수없이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잘 죽었어요, 못 죽었어요? 모두가 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원수가 되어 버렸으니 사돈 맺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누구하고도 사돈을 맺을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습니다. 혼자서는 좋은 자리에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다 같이 가야 됩니다. 안팎을 다 갖추어 가지고 4천년의 역사적 인연을 계승할 수 있는 틀거리를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곡절의 배후가 엉클어져 있는 하나의 딸, 하나의 신부를 맞이할 수 있는 패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도를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할수없이 몰려서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한이 무엇이예요? 예수가 왜 죽었습니까? 나라 때문에 죽었어요, 아니면 교회 때문에, 친척 때문에 죽었습니까? 모두다 아닙니다. 신부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신부를 못 찾은 것이 한입니다. 그러니 기독교가 문제입니다. 기독교가 종 떼거리 같은 그런 백성을 두어 가지고 뭘 하느냐 이거예요. 예수님께는 신부를 구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전체가 낙원에 가서 무릎 꿇고 기다려야 됩니다. 지금 그런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지어 내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알아보니까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이치에 딱 들어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죽은지 사흘만에 다시 나타나서 '내가 다시 오마'라고 한 것입니다. 다시 오는 데는 신랑으로 신부를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부를 찾으러 오겠다는 말은 지금 선생님이 얘기한 말과 맞는 말이예요, 안 맞는 말이예요? 신부를 찾기 위해서, 어린양 잔치를 하기 위하여 온다는 것입니다.

어린양 잔치를 하기 위해서 오신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느냐? 만왕의 왕의 왕후를 책정하기 위해 오시는 것이요, 만민의 어머니를 책정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요, 만민의 사모님을 책정하기 위해 오신다는 뜻입니다. 알겠어요? 그 다음 자신을 아버지로 책정하고, 사부로 책정하고, 만왕의 왕으로 책정하시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안팎의 핵심을 결정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신랑된 남자로서 모든 핵심을 대신해 줄 수 있는 만왕의 왕이요, 만인의 아버지요, 만인의 스승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신부되는 사람은 만왕의 왕비요, 만인의 어머니요, 만인의 사모님인 것입니다. 이것이 결정되어야 비로소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하늘땅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결정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한이 맺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이 땅 위에 오셔 가지고 나라보다도 먼저 신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시는 재림주님은 신부를 찾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신랑 신부란 말이 왜 나왔느냐? 기독교인들은 예수님만 믿으면 천당간다고 하며 목사들을 무조건 '우리 주님은 거룩하신 신랑이요, 그 주님을 믿는 우리들은 신부이기 때문에 남자도 신부요, 여자도 신부다' 라고 하는데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남자가 신부예요? 그런 엉터리의 말, 얼토당토 않는 말을 믿는다는 거예요. 그런 말을 믿는 데는 기독교인들이 제일입니다. 여기 아가씨들, 남자가 신부예요? 남자를 보고 '그 신부 잘났다' 이래 보십시오. (웃음) 기성교회 목사들이 그렇게 큰소리치고 버티고 있는 걸 보면 배짱이 땅 거죽보다 더 두껍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버티고 있다는 거예요. 나 같으면 얼굴도 못 들겠어요.

남자가 신부되는 법이 있어요? 그런 말 어디서 배운 적이 있어요? 예수 믿는 남자들이 '신랑되시는 주님이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는 것을 보고서 예수님이 과연 기분이 좋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는 수작들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신부라는 말은 누구에게 해당되는 말이냐? 여자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여자의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땅을 대표해서 하늘의 왕자로 오셨던 예수님이 나라에서 제일 가는 신부를 맞이해야 했지만 그런 신부를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이 맺힌 것입니다. 이 한을 풀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넓고 높은 자리인 세계적인 무대에서 신부를 찾아야 되겠기 때문에 기독교를 발전시켜 세계사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위치에서,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데에서 보다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데에서 하나의 신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한을 풀 수 있지 그보다 낮은 데에서 신부를 찾았다 가는 예수님의 한을 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래서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전파된 것입니다. 역사 이래에 없는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여성을 세워 가지고 인류의 어머니로 삼고, 만국의 황후로 삼고, 만교회의 사모님으로 삼아야 됩니다. 전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끝날에는 신부를 찾아야 됩니다. 그 신부를 찾게 되면 예수님의 한은 해원성사되고, 여기에서 비로소 이 땅 위에 새로운 판도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부를 맞아 가지고 아들딸을 낳아서 내 땅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들딸만 가지고 해원하겠어요? 본래 천지를 지을 때 땅은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으니 어머니 아버지의 땅입니다. 그래야 천지가 다 풀리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땅이 되어야 되고.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이 되어야 되고,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교인이 되어야 되고.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민족이 되어야 되고,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나라가 되어야 되고,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만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서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면서도 죽지 않고 나왔더라면 뜻은 다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시 오셔 가지고 이러한 내용을 갖춘 세계적인 판도에서 하나의 신부를 맞이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하는 왕자는 왕권을 잡기 위해서 왕궁을 세우고 황족권을 만들고 세계를 지휘하기 위해 오십니다. 이 사상이 바로 재림사상인 것입니다. 참 근사하지요? 이렇게 되어야 이치가 맞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신부 찾아왔다는 말이 틀립니까,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면 신부를 찾았겠어요, 못 찾았겠어요? 예수님을 유대교가 받들고 이스라엘 민족이 받들었다면 예수님을 사위 삼고 싫어하는 문중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여러분, 여자 같으면 시집가고 싶겠어요, 안 가고 싶겠어요?「가고 싶어요」 그렇지요? 생기긴 못 생겼어도 시집은 다 가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웃음) 세상에 꽉 찬 것이 신부감이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여성들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희망의 꽃처럼 피어올라 모든 여성들이 나비와 같이 예수님께로 날아들어야 하는 이런 신랑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 잘 죽었구만 잘 죽었어.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서 죽었어요? 세계를 위해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게 내버려뒀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거예요. 지금까지 예수 믿던 사람들 뭘 했습니까? 죽도 못 쑤고 밥도 못 하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뭐 통일교회 문선생 보고 이단 괴수니 뭐니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몰라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어떠냐는 것입니다. 하기야 통일교회 문선생이 무섭기도 할 것입니다. 몸집을 보더라도 내가 뚱뚱하기는 합니다. (웃음) 지금 기성교회는 선생님이 무서워서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저녁에도 어떤 호텔에서 목사들 90명 가까이가 통일교회의 원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언제는 반대하더니 이제는 와서 듣겠다고? 기성교회에서는 통일교회 가지 말라고 하는데 일부에서는 통일교회 말 듣겠다고 해 가지고 배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습니다. 내가 요즘은 살맛이 납니다. 천사장이 나팔을 불고 있는데 잘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집안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전부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겁니다. 통일교회 잘한다 하면서 추파를 던지는구만. (웃음) 그래 예수님이 잘 죽었어요, 못 죽었어요? 잘못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건 설명이 필요없어요. 이제 결론을 맺어야겠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내주실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었느냐? 한이 맺혔다는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나 가지고 장가도 못 가고 죽으면 한이 맺히겠어요, 안 맺히겠어요? 한이 맺히는 거라구요. 뭐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못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는데, 내가 못난 사람입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성교회 목사들의 편견입니다. 내가 예수만큼 못나지 않았다 이거예요. 예수가 매일 아침 나한테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보다 못났어요? 무슨 말인지 여러분은 잘 모를 겁니다. 근거없이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내용을 얘기하게 되면 여러분이 홀딱 반하기 때문에 얘기를 안 하는 것입니다. (웃음)

통일교회에 가면 달라붙는다는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알아요? 사람은 손해 나는 길은 절대 안 가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여기에 올 때도 10원이라도 손해가 난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먹다 남은 찌꺼기라도 남을 줄 알고 왔지, 손해 보기 위해서 오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익이 되는 곳에는 가지 말라고 해도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통일교인들에게 딱 가르쳐 주기만 하면 내가 저 깊은 골짜기에 가 있더라도, 백두산 꼭대기에 가 있더라도 여러분들은 다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굴속에 가 있으면서 들어오지 말라고 하면 통곡을 하면서 늙어 죽더라도 만나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안 만나면 안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가면 이익 나는 줄 알게 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만 못해서 욕을 먹으며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 눈을 보라구요. 내가 허세를 부리고 있나? 지금 내 몸이 이렇지만 옛날에는 내가 안 해본 운동이 없습니다. 운동을 해서 단련된 몸입니다.

바쁠 때는 벼락불이 납니다. 그런 사람이 지금 기성교회 목사들한테 몰매를 맞고 있습니다. 한 대 갈기면 어디 갔는지 씨알머리도 없을 패들한테 말이예요. '얼마나 센가 한번 보자' 이러고 살고 있지만 말입니다. 선생님이 못나서 그래요. 잘나서 그래요? 내가 힘내기를 해도 그렇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씨름의 참피언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맞고 있다는 거예요. 또 선생님 말 빠른 것을 보세요. 성격이 얼마나 급한지 알아요? 악에게 지고는 못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선에 대해서는 생명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지키는 사람입니다. 악을 반대하는 싸움을 많이 해왔습니다.

또, 내가 길가에 가다가 싸움 구경은 절대 안 하는 사람입니다. 싸움 구경을 하는 날에는 옳은 녀석 편이 되어 가지고 잘못한 녀석을 패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움 구경을 안 합니다. 시시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yes(예스)인지 no(노)인지 확실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지금은 욕을 먹어도 가만히 있습니다. 신생님이 말을 하게 되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습니다. 이론적인 사람이라구요. 주먹 구구식으로 살지 않아요. 이래도 과학을 공부한 사람이예요. 알겠어요 ?

하나님, 성신을 받아야 할 텐데 하고 이렇게 막연하게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그런 식으로 나를 따라오려고 하면, 그런 사람들 내 손에 잡히는 족족 등골이 빠지도록 부려먹을 것입니다. 그래도 따라오겠어요, 안 따라오겠어요?「따라가겠습니다」 그래도 자기가 좋아서 따라오니 등골이 빠지도록 일을 시킨다는 겁니다. 두고 보라고요.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들이 아무리 통일교회 문선생을 반대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그 반대하는 패들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죽겠다 살겠다' 하는 놀음이 벌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우주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 사건을 하나님이 대할 때 하나님께서 기분이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온 천지가 깜깜했어요, 안 했어요? 세시간 동안 깜깜했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분 좋아서 그랬겠어요? 하나님이 이 땅 위의 만민을 구하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준비하시어 메시아를 보내셨는데 그 메시아가 보혈의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그 시간이 영광의 시간이예요, 아니예요? 영광의 시간이었다면 왜 천지가 깜깜했느냐는 거예요. 천지가 광명의 빛이 나야 할 텐데 왜 깜깜해졌느냐는 거예요.

또.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기도를 했어요, 안 했어요? 하나님께서 기분이 좋아서 버렸겠습니까, 기분 나빠서 버렸겠습니까? 기분 좋은데 버렸겠어요? 근본문제를 탐구하지 않고 그저…. 무지에서 완성이 나옵니까? 오늘날 이러한 시대에 있어서 조직을 짜 가지고도 틀어져 나가는데, 주먹구구식으로 해먹을 수 있어요? 이런 것을 보니 하나님도 예수를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예수님까지 보냈는데 사명을 완결짓지 못한 것이 원통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걸 보고 원통해 했다는 거예요.

3대 한을 해원성사하는 것이 통일식구의 사명

예수님을 자식으로 보냈기 때문에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팎으로, 영적 육적으로 다 틀어져 버리니까 영적으로라도 구할 수 있는 길을 가게 한 것이었습니다. 쌍동이 형제가 다 물에 빠졌을 때, 둘 다 구해야 하는데 그러자니 둘 다 죽겠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한 명만이라도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격이라고요.

예수님의 영과 육을 통해서 천지를 구해야 되는데, 땅 위의 터전은 사탄들이 지배하여 전부 악하게 되어 버렸기 때문에 할수없이 영계의 끝을 중심삼은 한편이라도 남기기 위해서 비상대책을 취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한 뱃속에서 태어난 쌍동이라 할지라도 둘 다 구하지 못할 상태에서는 하나라도 구해야 됩니다. 둘 다 구하려 했다가는 둘 다 죽는 것입니다. 둘 다 죽으면 씨가 없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비상대책으로 사탄이 침범한 육신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은 땅을 상징하고 마음은 하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몸은 사탄이가 침범해서 못을 박고 했지만, 예수님의 정신은, 예수의 영은 거기에 무한히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내 육신은 녹아나 없어지더라도 하늘과 상대되는 내 마음과 사상은 거룩히 하고, 침범받지 않겠다고 몸부림쳤다는 거예요. 죽더라도 안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도장을 받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구원을 완성해 가는 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는 하나님의 발판이 없습니다. 이 땅 위에는 한 조각의 땅도 하나님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종족, 하나의 민족, 한 나라의 국토도 하나님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소원은 이 땅 위에 주권을 세워 가지고 이 지구성을 하나님이 관리할 수 있는 하나님의 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이 누구 땅이 되었습니까? 전부 다 사탄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땅을 복귀해야 됩니다. 빼앗긴 이 땅을 되찾는데 있어서 이 땅 위에 발판이 없는데 주님이 공중으로 와 가지고 되겠어요? 오늘날 기독교인들 공중 잔치해요? 주님이 공중으로 와 가지고 될 게 뭐예요? 구름 타고 와 가지고 돼요? 땅이예요, 땅. 땅으로 오셔 가지고 모든 문제를 이론적으로 풀어 나가는 놀음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요즈음 학박사들이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민대가리가 되어 가지고 뜻에 대해서 연구한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니 망해야 되는 거라고요. 망하지 않으면 내가 망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사상태에 들어간 뒤에 주사를 놓아 다시 살려 가지고 끌고 갈 것입니다. 그것 좋은 생각이예요,나쁜 생각이예요?「좋은 생각입니다」 좋은 생각이예요? 이것은 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아도 안 되니까 할 수 없는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첫째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나님의 한이 맺혔습니다. 예수가 죽음으로써 하나님이 한이 맺혔겠어요, 안 맺혔겠어요? 독생자 외아들이 죽은 날 저녁에 그 아버지의 마음이 편안했겠어요, 안 편안했겠어요? 편안했겠어요? 외아들이 죽은 그 아버지의 마음이 천하를 다 준다 한들 좋을게 있어요? 하나님이 기쁠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한이 맺힌 것입니다. 다음에는 예수님의 한이 맺혔습니다. 그리고 세째는 이스라엘의 한이 맺힌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한은 역사적인 인류의 한이 맺힌 것을 말합니다. 이렇듯 예수 한 사람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3대의 한이 맺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선생님이 이 한을 풀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역사적 사명입니다. 이걸 똑똑히 알라구요. 무슨 사명이예요? 이렇게 3대의 한을 해원성사시켜 드리는 것이 통일식구의 사명입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이냐

통일교회에서는 교인들을 대해서 신도라 하지 않고 식구라고 합니다. 그건 왜 그러느냐?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왜 식구라는 말을 했느냐? 이 말을 그저 주먹구구식으로 갖다 붙였느냐, 아니면 할수없어서 붙였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죽었다고요? 이스라엘 나라는 예수님을 위해서 준비되었지요? 유대교도 예수를 위해서 준비되었지요? 그렇지요? 요셉 족속도 예수를 위해서 준비되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예수를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중심은 유대교요, 유대교의 중심은 요셉 족속이요, 요셉 족속의 중심은 마리아요, 마리아의 중심은 예수입니다. 틀렸어요, 안 틀렸어요?

예수님은 마리아의 중심이니까 요셉 족속의 중심이 돼요, 안 돼요? 중심이 됩니다. 그러면 교회의 중심이 돼요, 안 돼요? 나라의 중심이 돼요, 안 돼요?예수님이 이런 중심된 자리에서 가정을 가졌다면 그 가정은 중심된 가정이 돼요, 안 돼요? 중심 가정이니까 종족의 중심도 되고, 민족의 중심도 되고, 국가의 중심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가정을 가졌다면 한꺼번에 다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었다면 씨족도 통일이 되는 것이요, 교회도 통일이 되는 것이요, 나라도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다 통일되는 것입니다. 종적으로 연결된 것을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듯 지금까지 종적 역사를 거쳐오면서 생겨난 나라와 교회와 씨족과 가정이 한꺼번에 통일되는데 그 통일된 가정은 새로운 가정이요, 통일된 씨족은 새로운 씨족이라는 것입니다. 주권자가 달라지니 모든 것이 새로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달라졌다는 거예요. 또, 교회도 통일된 그 교회는 새로운 교회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통일되면 그 국가는 새로운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일시에 다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교회와 새로운 주권자를 중심한 국가가 하나된다면,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뜻이 성취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소원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소원하던 그 소원이 성취되고, 요셉 족속에 대한 소원이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다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소원성취가 다 되었으면 하나님의 한이 맺혔겠어요, 안 맺혔겠어요? 또, 예수의 한이 맺혔겠어요, 안 맺혔겠어요? 안 맺힌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이스라엘의 한이 맺혔겠어요, 안 맺혔겠어요? 한이 맺히지 않고 일시에 다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이 맺혔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에 나라를 잃어버리고 고생을 했습니다. 나라가 예수님을 반대해서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교회가 반대하니 교회도 잃어버렸지요? 그 다음 요셉 족속도 예수님을 바알세불이 들린 자라고 전부다 비난했지요? 하나되었어요, 안 되었어요? 하나가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도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심정을 갖지 못했고 자기의 생명을 바쳐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마리아가 예수님을 따라다녀야지 왜 따라다니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책임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는 말이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했습니다. 이걸 보면 어머니가 뜻대로 했다는 거예요, 못 했다는 거예요? 못 했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따라다녔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남아졌어요? 예수님이 갈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집에 가려고 해도갈 수 없고, 씨족을 찾아가려고 해도 갈 수 없고, 교회를 찾아가려고 해도 갈 수 없고, 나라를 찾아가려고 해도 갈 데가 있어요? 이렇게 되니 죽는 것만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머무를 데가 없었다는 거예요. 의붓아버지인 요셉의 등살에 뼛골이 녹아 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건 모르지요? 여러분이 예수님의 사정을 상세히 알아보면 땅을 치고 통곡할 사연이 맺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의붓아버지나 의붓어머니에게서 자란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잘 해주어도 잘 해주지 않은 것 같고 항상 못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를 데려온 후 당당하지 못했던 요셉

성경을 보게 되면 유월절이 되어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다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렀는데 그것도 모르고 하룻길을 가다가 예수님이 없음을 알고 찾다가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와 성전에 머물러 있는 예수를 보고 마리아가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를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8)"하면서 뒤로 뺐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 예수님은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것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 했습니다. 그 말이 좋은 말이예요? 천만에요.

어미라는 사람이 어린 아들을 사흘씩이나 내버려 두고 지금에 와서 이제 뭐냐는 뜻이예요. 왜 그런지 알아요? 어머니라는 사람이 사흘씩이나 자기의 어린 아들을 버려 두고 갔다 오는 법이 어디 있느냐는 거예요. 그게 에미 애비예요? 사람 많은 곳에서는 혹시 아이를 잃어버릴까봐, 손을 놓칠세라 꼭 잡고 데리고 다녔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는 내팽개치고 자기들 둘이 돌아다니다가 사흘 후에야 와서는 성전에 있는 예수를 보고 '너 여기서 뭘 하는 거냐' 하고 꾸중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성교회에서는 뭐 어쩌고저쩌고…. 똑똑히 모른다는 거예요. 내 말이 맞을 것 같아요, 안 맞을 것 같아요? 요셉과 마리아에게는 예수가 언제나 불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에 자기들을 위해서 하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혼자서….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했을 때 요셉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때 요셉은 자기 어머니 아버지한테 의논하고 데려왔을까요, 살짝 데려왔을까요?한번 생각해 보세요. 또, 대낮에 데려왔을까요, 아니면 밤에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데려왔을까요? 감쪽같이 데려왔다는 것입니다.

그 집에 이틀 사흘, 며칠 동안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오던 길로 보이지 않게 다시 돌아가야 됩니다. 유대 나라에 가 보면 변소 같은 데도 따로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마리아가 빨리 다녀와야 된다는 거예요. 요즘은 문화시설이 잘 돼 가지고 구석진 방안에 있으면 1년을 가도 모르지만 당시에 그럴 수 있어요? 지금도 유대 나라에는 지붕없는 집들이 많습니다. 비가 안 오니까요. 그러한 집에 총각녀석의 방이나 따로 있겠어요? 그런데 방에다 처녀를 떡 데려다 놓았으니 며칠 후에는 그 소문이 났겠어요, 안 났겠어요? 동네 어른들까지도 다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상하다고 수군수군하고 다녀서 다 알았다는 거라구요. 요셉의 어머니 아버지가 그러한 소문을 들었겠어요, 못 들었겠어요?

요셉의 어머니 아버지가 소문을 듣고 와서는 요셉에게 '어찌된 거냐' 하고 물을 때, 요셉은 자신만만했어야 됩니다. 마리아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당당하게 얘기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꾸물꾸물댔다는 것입니다. 또 친구들이 '이 녀석아, 저 여자를 왜 데리고 왔어' 할 때 요셉이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꾸물꾸물댔다는 것입니다. 그 배는 얼마나 불렀겠어요?

예수님을 모시지 못한 요셉 가정

그 당시에는 처녀가 아기를 배게 되면 돌로 맞아 죽는 시대였습니다.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나 가지고 가르쳐 줘서 마리아를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그도 마리아가 성신으로 잉태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어요? 요셉이 믿을 수 있어요? 약혼녀가 애기를 뱄을 때 그 신랑될 사람이 그 애기의 애비는 누구냐 할 때, '애비가 누군 누구예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신으로 잉태했어요' 하면 그것을 믿을 수 있겠어요? 어디 믿겠다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그러니 요셉의 기분이 나빴겠어요, 좋았겠어요? 기분은 나빴지만 데려왔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를 데려다 놓고, 그 애기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어떻게 해서 애기를 가졌는지 물어 보고 싶겠어요, 물어 보고 싶지 않겠어요. 「물어 보고 싶겠습니다」 요셉이 마리아에게 그렇게 물어 볼 때, 만약 마리아가 요셉이 자기 남편인데도 불구하고 '내 복중에 있는 애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신으로 잉태했습니다' 했다면 그 대답을 믿겠어요? 그런 대답을 했다가는 '내가 너를 구해 주고 살 길을 열어 주었는데 아직까지도 날 속이기 위해 그런 수작을 부리느냐'고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그때부터 문제가 벌어진 것입니다. 마리아의 배가 불러 있으니 요셉이 마리아에게 다그쳐서 추궁했는데 대답이 다르기 때문에 여기에서 충돌이 생기고 하다 보니 그러한 사실이 온 동네에 다 소문났다는 거예요. 그래서 마리아는 어디에 가서 애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심장을 가졌더라도 그런 판국에서는 '나 애기를 낳겠어요' 하게 안 되었다는 거예요.

마리아가 갈 수 있는 길은 사람이 없는 무인지대, 사막지대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 스스로도 하늘 앞에 눈물지으며 호소하던 때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들레헴의 한 마굿간에서 낳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늘의 왕자로서, 이스라엘의 왕과 제사장들이 예물을 드리고 경배를 드리는 그런 영광된 자리에서 태어나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세상도 모르게 감쪽같이 낳으니 이방에서 계시받은 동방박사 세 사람만 찾아왔던 것입니다. 인류를 위해서 오시는 예수님을 인류의 참군왕으로서 인간이 맞아들였다는 조건을 세우고 인간으로 하여금 체면을 세우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들을 국경을 넘어 찾아오게 하여 경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게 했던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억울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 때문에 싸움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생들까지도 예수님을 비난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형인 예수가 혼자 있을 때 동생들이 와서 '세상 사람들이 형님만 나타나기를 바란다면 사람 많은 데 가서 선전하지 왜 여기 있소' 하며 비난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동생들의 비난까지 받으면서 처량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럼 통일교회 문선생은 이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예수님을 직접 만나 가지고 다 이야기를 들어서 안 것입니다. 내가 꾸며 가지고 하는 얘기가 결코 아닙니다. 언제나 예수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와 동생들은 불평불만이 많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갈 때도 길을 가다가 형제들에게 물을 떠 먹이더라도 그 어머니는 예수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 예수에게 먼저 떠 주고 하니 그 길에서도 트러블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예루살렘 성전까지 올라갔다가 돌아갈 시간에 기분이 나빠 가지고 서로 싸우면서 돌아갔던 것입니다. 싸우는 마리아의 신세를 본 예수도 어떻게 얘기를 할 입장이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요셉도 마리아에게 예수를 데리고 가자고 얘기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도 안 데리고 돌아가서 마을까지 거의 다 왔을 때 마을 사람들이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간 것을 알고 있는데 가만 보니 꼴이 안 되겠거든? 할수없으니까 둘이 만나 얘기해서 사흘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를 찾은 것입니다. 성전에서 한 예수의 말이 항거의 말인 줄도 모르고 칭찬의 말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머니를 대하여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것은 마리아가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이 정도 얘기하면 이해가 되지요? 천주교인들이 마리아를 잘 모시는데 영계에 가 보라는 겁니다. 마리아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

그러니까 예수가 쫓겨나면 마리아도 당연히 따라나가야 될 게 아니예요? 마리아는 예수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요셉도 누구 때문에 태어났느냐 하면 예수 때문에 태어났다는 거예요. 그러니 예수를 따라야 되는 거예요. 예수가 밥을 굶으면 자기도 굶고, 그렇게 되면 자기가 대신 밥을 얻어오고 해야 된다는 거예요. 예수가 집을 나가게 될 때 요셉과 마리아가 따라 나서면 예수 동생들도 따라 나서겠어요, 안 나서겠어요? 나서는 것입니다. 요셉 가정이 그 동네에 있어서 중심되는 가정이라면 이종사촌인 세례 요한도 따라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어야 했던 세례 요한

예수 가정이 그를 믿고 철옹성 같은 울타리가 되었다면 열두 제자는 누가 되는지 알아요? 베드로 같은 어부나 무식한 사람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형제들이나 사촌, 육촌, 팔촌 등 문중에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촌이나 사돈의 팔촌이라도 되는 거예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태복음 11장을 보면 "너희는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마 11: 7∼8)". 또"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래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 나갔던 것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예수님께 세례를 해주기 위해서 나갔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눅 7:19)"하고 수작을 했던 것입니다. 천국은 힘쓰는 자가 빼앗는 거 아니냐? 세례 요한 자신이 이루어야 할 천국을 힘쓰는 베드로가 빼앗아 버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마 11:11)"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못생겨서 그런 얘기를 한 거예요? 여인에게서 낳은 자 중에 컸으면 영계에 가서도 커야 되는데 거꿀잽이라구요.

선지자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과거의 모든 선지자들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으로서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미래를 바라보며 예언적인 증거를 했지만, 예수님의 실체를 보고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은 세례 요한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세례 요한이 제일 큰 선지자라구요.

그러나 예수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 세례 요한은 맨 꼴찌라는 것입니다. 영계에 간 수많은 선지자들은 먼 미래를 두고 메시아를 증거했습니다. 메시아를 직접 모시는 입장은 아니지만 영계에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모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는 맨꼴찌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고 했던 것입니다. 성경을 이렇게 해석해야 풀리는 거지 거꾸로 들이 맞춰 가지고 될 게 뭐예요? 성경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든 그 내용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찾아 세운 제자들마저 끝까지 따르지 못했으니

그러면 예수님의 3년 공생애 노정은 무엇이냐?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찾는 기간인 것입니다. 13년은 정말 원통한 기간이었다는 것입니 다. 그때에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받들고 따라 나서기만 했더라면 집안이 다 따라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모도 마리아가 속닥속닥하면 예수를 따라 나서는 것입니다. 그리 해 놓고 여자들 입을 틀어막아야 되는 거라구요.

그리고 마리아는 뭘 했어야 하느냐 하면 예수님의 신부를 준비했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30세가 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것을 생각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도 요셉과 마리아 때문인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생활해 갈 수 있게 모든 것을 준비해 가지고 예수님의 갈 길을 닦아 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오히려 파괴행위을 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있어도 어머니가 아니요, 아버지가 있어도 아버지가 아니요, 형제가 있어도 형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중이 있어도 문중과 자기가 상관할 수 없었고, 교회가 있어도 교회와 상관할 수 없었고, 나라가 있어도 나라와 상관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정 대신 상관할 수 있는 패를 만든 것입니다. 종족 대신 패를 만들고, 교회 대신 패를 만들고, 나라 대신 패를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열두 가정을 중심삼은 대표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집을 나와 3년 공생애노정을 걸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준비하신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 교단과 요셉 가정을 중심삼은 민족적인 터전은 온데 간데 없어졌으니 집시나 방랑자와 같이 지팡이를 들고 나서는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이렇게 되니까 사탄이 예수님에게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하고 시험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탄과 개인을 걸고, 가정을 걸고. 나라를 걸고, 세계를 걸고 싸워서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기가 막힌 싸움을 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 때문에 그런 고생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집을 나와 가지고 이렇게 3년 공생애노정을 걸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했지만 예수님이 집을 나와서 돌아다니다 십자가에 가게 될 때 예수님을 따르던 5천여 군중은 다 어디 가고 12제자는 다 어디로 갔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때 따라 죽은 사람이나 있었습니까? 그런 입장에서 예수님이 무엇을 하겠어요? 수습할 도리가 있어요? 이방에 가서 뜻을 이룰 수 있다면 그곳으로 도망이라도 갈 수 있지만 그럴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4천년 역사의 중심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상속을 받지 않고는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갈래야 갈 수 없는 망명객으로, 뜻을 이룰 수 있는 예수가 못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열매를 못 맺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할수없이 영육 완전 구원이 아닌 일부분인 영적 구원이라도 준비해 놓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뜻이요, 예수님이 바라는 뜻이었기 때문에 성경에 십자가의 곡절이 역설적인 내용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다 잃어버렸지요?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소원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사랑하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소원해 나왔었던 것이 무엇이냐? 예수를 이스라엘 민족이 사랑하고, 교회가 사랑하고, 종족이 사랑하고, 가정이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놓고 소원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아들을 위해서 준비했기 때문에 준비해 나온 그 나라와 교회와 씨족과 가정이 일치 단결하여 예수를 지극히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먼저 준비된 그것들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 앞에 가인과 마찬가지입니다. 천사장이 되는 거라구요. 사랑해야 했다는 거라구요. 이와 같은 일을 못 했기 때문에 한이 맺혔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어머니를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했고, 형제를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했고, 종족을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했으며, 교회를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전부다 반대라구요. 이것이 예수님의 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한이 맺히지 않게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종족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왔는데도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했던 이 한을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총각 예수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신랑된, 남편된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맞이했었어요? 아버지된 예수님을 맞이해 보았어요? 할아버지된 예수님을 맞이해 보았어요? 그리고 씨족의 족장된 예수님을 맞이해 보았어요? 민족의 중심된 예수님을 맞이해 보았어요? 국가의 주권자된 예수님을 맞이해 보았어요? 다 맞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예수를 맞이하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소원이요, 이스라엘이 바라는 소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쫓겨다니는 예수밖에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이게 이스라엘의 한입니다. 이렇게 원한에 사무치게 되었으니 그 백성이 남아 있겠어요?

그래서 2천년 동안이나 세계에 유리고객하며 가는 곳곳마다 말발굽에 밟혀 죽고 칼에 찔려 죽으며 얼마나 많은 피의 대가를 치렀는지 알아요?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지요?

그러고 나서 1948년 8월 1일 유엔의 결의에 의해 비로소 독립이 되어 재봉춘의 때를 맞이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때가 늦은 것입니다. 그 민족으로서 맞이할 수 있는 때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죄를 세계 앞에 탕감하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특별한 시기를 맞아 이스라엘 민족 600만이 학살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죄를 다 탕감하게 하셨고, 재봉춘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새로운 세계 역사를 갖지 않을 수 없게 만드신 것입니다. 엄청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2천년 동안 왜 나라가 없었는지 알아요? 그러니 그렇게 된 게 싸요, 안 싸요? 나라가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이스라엘은 선민의 나라였기 때문에 그 이스라엘의 한은 인류의 한이요, 역사적인 한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에 관한 내용도 모르면서 반대하는 기성교인들

예수 할아버지란 말 들어 보고 예수 할머니란 말 들어 봤어요? 다 못들어 봤을 것입니다. 행복을 바라는 인간의 욕망을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하고 간 입장에 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뜻을 이루었어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이 신부를 맞이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예수님이 종가집 주인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민족의 책임자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예수 같으면 그런 것을 바랐겠어요, 안 바랐겠어요? 예수님이 '난 이렇게 다니다 죽겠다' 그렇게 생각했겠어요? 예수님은 이스라엘은 물론이요, 세계를 전부 구원해 가지고 이 땅 위에 하늘나라를 이루고 가겠다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혼자 천국을 이루겠다고 생각했겠어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도 모르면서 예수님이 뭐 우리를 위해 죽으러 왔다고요? 이 강도 같은 녀석들. 지금까지 몰랐으니까 남아 있는지 모르지만 통일교 회를 반대하는 교회들, 앞으로 남아지나 보라구요. 선생님이 지금 나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14년 전에 얘기한 것이 지금 다 들어 맞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말을 중심삼고 보면 다 들어맞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을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한마디 해 놓으면 그것이 다 들어맞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악착같이 문선생을 따라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그렇습니다」

선생님이 한번 말을 하면 기분 나쁘리만큼 들어맞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3대의 한을 푸는 것이 누구의 사명이라고요? 죽는 날까지 이 3대의 한을 해원해야 됩니다. 나는 이것을 생각하면 목이 타는 사람이라고요. 다른 사람을 시켜서는 절대 안 됩니다. 어떤 것이 통일교회 식구의 사명이라고요? 하나님의 한을 풀고, 그 다음엔 예수님의 한을 풀고, 또 그 다음엔 이스라엘의 한을 푸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풀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기성교회에서 쫓겨났지요? 예수 무리가 가던 길을 그대로 걸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문선생도 기성교회에서 쫓겨나 가지고 이북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대교로부터 쫓겨나 가지고 이방에 갔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 이야기를 했지요? 그 얘기가 어떤 얘기인지 알아요?

선생님이 대한민국의 반대를 받고 기성교단의 반대를 받아 이북에 가서 몇 사람을 찾았습니다. 이북 땅에 가서 모든 역사적인 탕감 내용을 세워 가지고 몇 사람을 찾아 가지고 이남 땅에 왔습니다. 원수 나라의 사는 걸 보고 왔어요. 이남에 와서도 자유당, 민주당, 혁명정부가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나를 반대하고 때려죽이려고 했지만 선생님은 죽질 않았습니다. 벌써 자기들이 생각하는 그 안에 내가 들어 앉았다는 거라구요. 없어진 줄 알았더니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거든? 이제는 내가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내가 도장만 누르면 세계가 움직일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이제 통일교회의 신세를 져야 할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통일교회 지독하지요? 지독한 패가 우리 패들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렇게 지독한 패들을 이끌려니 통일교회 문선생도 지독해야 되는 거라구요.

어떻게 해야 3대 한을 풀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3대 한을 전부 다 풀 수 있겠느냐?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교단과 기성교단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해방 직후에 대한민국은 주권이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주권이 없었으니까 기성교단과 우리와 합했더라면 상당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자유당을 편성할 때 발기인의 한 사람이었다면 꽃 같은 젊은 시절에 출세했을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이 반대하지 않았을 겁니다.

선생님의 할아버지가 이승만 박사하고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그때에 기반이 닦여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만 되었다면 일시에 뜻이 다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아직까지 유엔에 가입을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이 언제 유엔에 가입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봤어요? 우리 나라가 일제치하에 있을 때 일본 나라가 공격을 받았지만 우리 나라는 폭탄 하나 맞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다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승만 박사가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면 소련 공산당은 벌써 내 손에 없어졌을 것입니다.

이박사로 하여금 선생님의 말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박마리아가 4대 장관과 합세하여 별의별 소문을 다 내어 가지고 통일교회 문선생을 반대하고 잡아죽이려고 했지만 자기들 뜻대로 안 된다는 거예요. 반대하고 급살맞아 죽으라고 하고 원수시했던 선생님은 살아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들의 아들딸…. 끝을 다 보고, 악은 악대로 공포를 다 해버리고서야 죽으면 죽지 그냥은 안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자유당 때, 민주당 때, 그리고 지금 혁명정부가 통일교회가 좋아서 지금까지 나오게 한 줄 알아요? 지금까지 얼마나 못살게 굴었어요? 반대를 받으면서 이렇게 커 나온 것입니다.

애국 애족하는 데 있어서는 이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애국자면 애국자, 박대통령이면 박대통령한테나 이 나라 이 민족의 어느누구한테도 선생님이 지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나라를 위해서 누구보다도 더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눈물이 독을 채우고도 남았을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부인들을 한번 보세요. 축복가정 부인들은 전부 남편을 버리고, 자식을 버리고, 일선에 나가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 이상으로 애국애족하는 사람은 없다 이거예요.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의 한을 풀어 줄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 이스라엘 나라를 대신하여 대한민국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애국애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는 애국 애족하는 교회다. 저들의 사상이 아니면, 저들과 같이 행동을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갈 길이 어떻다' 하는 것을 이 민족이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그 말이 점점 들어맞게 되어 있습니다. 애국 애족하는 무리가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 무리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유대 교회를 대표하고 기성교회를 대표해 가지고 그 이상의 것을 새로운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해야 됩니다. 열두 지파와 요셉 종족이 예수님을 받들지 못했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합동결혼식을 하여 종족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들은 친척들이라구요. 거 알아요? 죽자 하면 한꺼번에 같이 죽는 거예요. 배를 가르자 하면 같이 가르게 되어 있습니다. 요셉 가정을 대신해서 예수님이 안식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들어 놨다는 것입니다.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쫓겨 났었지만 다시 찾아와서 찾을 것 다 찾아 놓았다는 거예요. 유대 나라와, 유대 교회와, 요셉 종족을 대신하여 이 나라와 사회와 교회와 가정을 중심삼고 대표할 수 있는 기준을 다 닦아 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리 통일교회는 이런 단체가 된 것입니다.그러면 이런 단체가 있기 때문에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이냐? 민족을 대신하고, 교회를 대신하고, 종족을 대신하고, 부모를 대신하고, 형제를 대신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할 것이냐? 여기에 있는 지구장들 이걸 하게 되면 역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걸 하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한 예수의 말씀을 실천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스라엘의 할아버지, 할머니, 형님, 누나, 동생, 아주머니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그들을 대신하여 이 사람을 예수로 알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사랑해야 되고 우리 족속이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탕감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민족과 교회와 종족과 가정이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한이 풀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예수와 마찬가지로 사랑을 받았으니 개인의 뜻을 종족으로 넓히기 위해서 사랑 못 한 형을 찾아서 사랑해야 합니다. 누나가 있으면 누나를 예수님 대신 사랑해야 되고, 아줌마를 사랑하지 못했으니 아줌마를 예수님 대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데도 예수 대신 사랑하라는 거예요. 이것을 지금까지 실천한 사람들이 통일교회 무리들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섬기고, 교회 사람들을 모두 섬기려고 하고, 먹을 것이 있으면 그저 주려고 하고, 못살게 되면 살길을 가려 주려고 하고...

사랑하라 이겁니다. 통일교회가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할머니, 교회의 아주머니, 교회의 누나, 교회의 형님, 교회의 동생들을 족속을 대표하여 전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을 함으로 말미암아 누구의 한이 풀린다고요? 사랑을 했으니까 예수님의 한이 풀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스라엘의 한을 풀어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은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총각 예수가 아닙니다. 축복가정은 예수 아저씨, 예수 아줌마를 대신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예수를 믿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는 종족을 편성해 놓은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의 황족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의 아들딸, 예수님의 친족을 맞이하지 못했던 것을 맞이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한을 풀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이스라엘의 한을 풀 수 있는 인연을 갖고 한 덩어리가 되어 하나님을 모시게 될 때, 그 자리는 바로 지상의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지상천국은 예수님 중심삼고, 예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벌어지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떻게 해야 이루어지겠는가

그러면 앞으로 천국은 어떻게 이룰 것이냐?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을 넘고 국경을 넘어서 예수가 사랑하지 못한 세계 사람을 사랑을 해야 됩니다. 세계 사람을 사랑하라 이겁니다. 국경을 초윌하고, 인종을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여 사막이나 아프리카의 오지의 사람이나 그 누구나 자기의 자녀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 대신 누나와 같이, 예수 대신 동생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편화된 세계가 지상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고 가고 가야만 천상천국에 들어가지 그러지 않으면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을 중심삼고, 예수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예수님의 친척을 중심삼고, 예수님의 종족을 중심삼고 되어졌어야 할 환경을 우리 통일교회에서부터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은 한을 해원성사하기 위해서는 식구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이 식구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식구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앞으로 여자들은 어떤 남자가 있으면, 그 남자를 내 상대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예수와 같은 오빠로 생각하고 섬기고 나서야 시집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사람들은 이런 내용을 몰라서는 안됩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미완성된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남자가 있다고 해서, 지금 나이가 시집갈 나이가 되었다 해서 '결혼상대로 괜찮구만' 하는 말을 하면 걸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상대자를 못 가졌는데 그런 사람이 상대자를 가질 수 있어요? 이런 원칙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연애도 못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남자들을 대하여 아저씨와 같이 생각하고 오빠와 같이 생각하고, 그리고 남자들은 여자들을 대해 누나와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또, 나이 어린 사람을 예수님 동생으로 여기고 사랑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인간,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다운 인간이 되어 공적인 세계를 이룸으로써 언제나 하나님이 같이하신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인류의 부모가 되는 거예요. 이것을 해야 하는 것이 통일식구들의 뭐라구요 ?「사명입니다」

이렇듯 부모 아닌 부모, 형제 아닌 형제를 자기의 친부모를 모시는 것보다도, 자기의 친형제를 사랑하는 이상으로 사랑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되면 나라의 국경을 초월하여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이 결혼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안 되는 거라구요. 국경없이 살자는 것입니다.

천국에 무슨 국경이 있겠어요? 이 세계는 우리 아버지의 땅이요, 우리는 아버지의 아들딸이니 이 세계는 바로 우리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으로써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하는 데는 식구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랑의 출발 지점이 식구이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통일교인을 신도라 하지 않고 식구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통일식구의 사명이 무엇이냐? 그러한 사랑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 있어서의 사랑, 교회에 있어서의 사랑, 나라에 있어서의 사랑, 이 3대 사랑의 한이 맺혔던 것을 우리가 풀어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대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때문에 한이 맺혔습니다. 예수가 한(恨) 맺히게 한 그 이상의 자리에서 한을 풀어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살아서 천국을 이루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들을 괜히 축복시켜 준 줄 알아요? 그럼으로써 예수님이 신랑이 못 된 것을, 자기 아들을 보지 못한 것을 탕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골수사상입니다. 이렇게 횡적으로 전부 다 탕감하는 것입니다. 참 멋진 내용이지요? 알겠어요?「예」

이런 사랑이 통일교회 식구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느냐 하면 믿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도 못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가짜 사람도 잘 믿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복을 받기 위해서 사랑하지 말고 복을 주기 위해서, 그가 복을 받을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사랑을 해야 됩니다. 복을 받자고 해서 위하면 지옥 가는 거예요.

복을 베풀어 주어야 됩니다. 선을 행해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참사랑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 저희들이 서 있는 이 자리가 저희들에게 있어서 어떠한 자리이며,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어떠한 길이고, 저희들이 가는 길이 어떠한 길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내용과 형식이 다를지라도, 서로가 다른 각도에 있을지라도 그것을 확실히 알아 가지고 오늘의 자기 자신에게 주이진 책임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모든 사실들을 아버지와 같은 입장에서 바라보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성동지구를 방문하게 하시어 만나고 싶었던 식구들을 만나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한 시내에 있으면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갖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마음의 미안함과 더불어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이들을 더욱 참다이 지켜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아버지 금후에 또다시 아버지의 뜻 앞에서 보다 더 자주 만나 사연을 털어놓고 아버지의 뜻을 사모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도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슬픔의 노정을 감으로써 아버지를 위하는 효자가 되고 효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오늘 전한 말씀이 아들에게 절대 필요한 말씀이 되어서 말씀의 실체로서 이 말씀을 실천하고 가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땅 위에 태어난 한 사람으로서 아버지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더우기 아버님의 한을 해원해 드릴 수 있고, 예수님의 한을 해원해 드릴 수 있고, 이스라엘 민족의 한을 해원할 수 있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행복되고 엄청난 자리에 서게 된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그런 한을 풀 수 있는 승리의 기틀을 스스로 닦기 위해 서는 악을 가까이해서는 안 될 저희 자신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편안해 가지고는 갈 수 없는 통일의 길이요, 식구의 인연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서로서로 사랑하며, 예수를 중심삼고 서로가 모든 것을 용서해 주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는 저희들이 아버지의 한을 해원성사할 수 없고, 아버지의 나라를 계승받을 수 없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날들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1971년도부터 70년대를 당신께서 승리하시어 장중에 두시옵소서. 당신께서 준비하신 그 세계, 하늘의 만민들이 부르고 있는 그곳까지 힘차게 달려갈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모든 전체를 당신 앞에 맡기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 이 저녁에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모인 성북 지구본부를 방문하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저희들의 일상 생활과 생애노정의 모든 것을 저희 자신들은 염려하지 않았지만, 아버지께서는 친히 염려하시면서 오늘까지 인도하여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아버지, 여기 모인 자녀들의 마음을 친히 굽어살피시옵소서. 저희 개개인이 처하여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이며, 어떠한 방향에서 당신을 그리워 하고 있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효성과 충성의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과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사랑의 마음이 저희 일신에 충만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찾던 참된 효자와 참된 충신의 모습을 여기에 모인 자녀들 가운데서 찾으시옵소서. 당신의 심중에 사무쳐 있는 소원의 일면을 전할 수 있으며, 사정의 일면을 나눌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찾고 바라는 소원의 그 나라와 당신이 원하는 소원의 그 세계를 위해서 당신이 수고하신 보람은 선하고 참된 아들딸과 상봉하게 될 때 결정되는 줄 알고 있사오니, 여기 모인 개개인의 심령 심령이 아버지 앞에 기어코 상봉되어지는 이 시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당신 앞에 모든 것을 직고하고 당신이 허락하신 분부를 받들며 사랑을 받고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아버지, 복을 베풀어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겸손히 아버지 존전에 부복하였사오니 저희와 더불어 인연을 맺으시옵고, 저희에게 통고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저희 마음 깊은 가운데에 내려 주시옵소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고, 감동받지 않을래야 감동받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서 아버지만을 위하는 참다운 자녀의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께옵서 저희 일체의 스승이 되시옵소서. 이제 허락하신 시간권내에 분부하시는 모든 말씀을 통하여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기꺼이 봉사하고 희생할 수 있는 참다운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재삼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곳을 위하여 염려하고 기도하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복을 베풀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오늘 이 저녁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위에도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이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릴 제목은 '참된 인생길'입니다.

제목이 장엄하다면 장엄하다 하겠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은 물론이려니와 대한민국에 사는 백성이나, 세계에 널려 있는 인류 그 누구를 막론하고 참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살고 있는 인간

여러분 자신들이 일상생활을 두고 볼 때 말을 하든가, 행하든가, 무엇을 찾는다든가 할 때, 생활의 모든 것을 자기 아닌 제삼자를 중심삼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말하는 것도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이요, 행하는 것도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행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나' 라는 존재를 중심삼고 볼 때 인간은 제삼자에게 푸대접을 받거나 피동적인 입장에 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서 상대 된 그 환경에 자기 중심적인 내용, 주체적인 내용을 접속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우리 인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도 결국 남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야만 비로소 좋아지는 것이요, 슬퍼하는 것도 결국 남을 중심삼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중심삼고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할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자리에서 좋다고 말하는 것이지 상대방의 입장을 중심삼고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나쁜 사람이다 할 때, 그 나쁨을 결정할 수 있는 중심이 누구냐 하면 상대하고 있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나쁨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 나쁘다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희망하는 일체의 목적을 누구와 관계맺기 위해서 말하고 행하느냐 하면, 나와 관계 맺고 나와 인연이 되며 나와 더불어 세워지는 결과를 찾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개개인을 막론하고 어떤 사람이 되겠느냐 할 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스승이 강단에 서서 국민학교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앞으로 대한민국에 있어서의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지요. 마찬가지로 중고등학교 학생들, 대학교 학생들에게 있어서 교육의 표준이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누구를 두고 그 기준을 말하는 것이냐 할 때 그 기준도 역시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 좋은 내용을 전부 다 지녔으면 모르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고 나쁨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쁘다는 사실을 결정지을 수 있는 참된 개인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참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어느 것을 나쁘다고 할 때에도 역시 참된 기준을 중심삼고 분석하여서, 이것은 이러이러하니까 얼마만큼 어떻게 나쁘다 하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는 입장에서 나쁘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럴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좋다는 말을 막연한 자리에서 하고 있습니다. 나쁘다는 말도 역시 막연하게 말하고 있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절대자가 인정해야 참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우리가 참된 사람, 좋은 사람을 말하게 될 때 그 좋고 참된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정도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자기 전문 분야가 다르면 자기가 좋다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도 다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끼리도 좋다는 사람이 분야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 성북교회에 어떤 좋은 사람이 있어서 그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붙였다면, 그 말은 성북지구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지 통일교회 전체를 중심삼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성북구에 좋은 사람이 있다면 좋다는 그 사람이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좋다고 하는 그 사람은 성북구를 대표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데는 요원한 과정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면 진정한 의미에서 대한민국이 그 사람을 좋아하지만 세계의 각 나라들도 그 사람을 좋아하느냐 할 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현시대에 세계 인류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과연 세계를 대표한 자리에서 과거 역사시대를 대표할 수 있고 미래까지도 대표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 또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두고 볼 때, 우리 인간이 추구해 가는 참된 인간,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문제가 간단한 것 같지만 지극히 복잡하고도 지극히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가정에서 참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할 때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참사람이 있을는지는 몰라도 그야말로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현재에 그런 사람이 있느냐? 앞으로 있을 것이냐? 있었다면 그가 누구냐? 앞으로 올 것이라면 어떠한 타입으로 올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어떠한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우리 인간끼리 참사람을 구하고 참사람이 되겠다고 노력하는 가운데 참사람을 찾았다 한다면 그 찾는데 있어서 누가 찾았느냐 하는 것이 새로운 문제가 됩니다. 인간끼리 어떤 사람을 그야말로 참다운 사람이라고 정했다 할 때에 이것을 정한 그 사람 자체가 참된 사람이 된 자리에서 정한 것이냐, 참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자리에서 정한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참된 사람이 된 자리에서 참된 사람을 정한다면 그 사람은 참된 사람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참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자리에서 참된 사람을 정했다면 그 사람이 정한 사람은 참된 사람으로 인정될 수 없습니다. 안 그래요?

참된 사람을 선발하는 위원회의 위원들이 참된 사람이 되어 가지고 이 사람은 이러이러하니까 틀림없이 참된 사람이다 해서 결정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참으로 믿을 수 있지만, 참된 사람이 되는 길을 찾아가는 입장에 있는 사람에 의해 참된 사람이 결정되었다면 그를 참된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겠느냐? 그런 사람은 참된 사람이 못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두고 볼 때, 오늘날 인간 세상에 역사를 대표하고 시대를 대표해서 사는 참다운 사람이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일 세계적으로 위대한 사람들이 모여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인생의 모델로서 삼을 수 있는 참된 사람을 결정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인정받기까지는 복잡한 과정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맨 나중의 한 사람을 선발하기 위해서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일부를 택해야 되며 그들 중에서도 또 일부를 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남은 둘 가운데서도 한 사람을 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선발된 사람이야말로 참된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첫째로 선발된 사람과 둘째로 선발된 사람과의 차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차이가 얼마나 있을 것이냐? 천분의 일이라도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를 오늘날 인간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약 참사람을 선발하는 대회가 있다면 그 대회에 어떤 사람이 참사람으로 당당히 나섰는데도 불구하고 첫째번으로 선발되지 못하고 둘째번으로 선발됐다 할 때 그 둘째번 사람이 첫째번 된 사람을 보고 '야, 내가 찾으려고 했던 진짜 참사람이다'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정치를 하는 여당과 야당도 서로 잘났다고 그러잖아요? 두 사람만 있어도 서로 자기를 중심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인간은 개인 중심의 강한 욕망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자신이 잘되었어도 잘되었다고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끝없는 욕망이 있는 것을 보면 과연 참된 사람을 찾았을 때, 내가 찾아 나오고 바라던 사람으로서 만나 보고자 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할 때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참'을 추구해 간다는 통일교회의 사람들을 가만히 보니 키를 보더라도 나보다 작은 사람이 있고, 얼굴 생김새를 봐도 내가 더 잘 생겼다고 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한 가지에 한정을 지어서 비교하면 다른 사람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너보다 나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세상천지에 참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겠느냐?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참된 사람으로 세워 놓았을 때, 그 참된 사람을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며 노력하며 희생하며 그를 참된 사람으로 모실 수 있겠느냐 할 때, 할 수 있겠어요? 안 되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믿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으로서 참된 사람을 만났다 한들 내가 믿고, 내가 행하고, 내가 모시는 것이 참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얘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생각해도 자랑할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인간끼리 정해 참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어쨌든지간에 불안하다는 거예요. 결론이 나와 있는 것입니다. 불안한 존재이기 때문에 절대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끼리의 결정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선 인간일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만일 절대자라고 틀림없이 인정할 수 있는 분이 있어서 그 사람이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을 정했을 때, 정한 그 사람을 어떻게 하겠어요? 의심하겠어요. 믿겠어요?「믿겠습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인간이 긍정할 수 있고, 그렇다 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사람의 욕심이 얼마나 커요? 사람의 욕심이 대단하지요? 사람은 욕심이 얼마나 크냐 하면 설명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큽니다. 그렇지요? 여기 여학생들도 대한민국을 내 것 만들면 좋겠지요? 대한민국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어 보면 내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을 것입니다. 세계가 누구의 것이냐고 물어 보면 그것도 내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을 것입니다.

여학생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아주머니들이나 나이 많은 노인들은 말할 것도 얼고, 남학생들도 물어 볼 것도 없습니다. 남자들은 도둑놈 심보를 많이 가졌거든요. 그러니 물어 볼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세계 대통령의 지배를 받고 싶어하겠어요, 세계 대통령을 쥐고 흔들고 싶어하겠어요? 사람의 욕심은 쥐고 흔들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둘째 가는 것은 싫어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주인이 되어서 세계를 쥐고 흔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다 이루어지더라도 세계를 창조한 창조주가 있다면 그분까지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더 좋은 분이 있다면 살짝 그리로 마음이 옮겨가는 것입니다. 옮겨가요, 안 가요? 옮겨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안 가면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게 되어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 욕심도 가질 수 있을 만큼 멋진 것이 사람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참된 사람을 찾아 나오는 데 있어서 절대자가 나와서 참된 사람은 '이 사람이다' 하고 딱 결정해 주었다고 할 때 사람의 마음은 무엇을 생각하겠어요? 참된 사람을 따라가느냐, 참된 사람을 결정해 준 분을 따라가느냐를 생각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고요. 여러분도 그런지, 안 그런지. 이것이. 사고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참된 사람 하나 찾아 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참된 사람은 남겨 놓고 참된 사람을 결정해 준 절대자를 따라가려고 한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역사노정에서 사람을 믿겠다 하는 사람들은 전부다 가짜입니다. 사람을 중심삼고 이렇구 저렇구 한다는 것은 전부다 가짜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절대자를 믿겠다는 사람은 진짜입니다. 진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은 무엇을 바라고 살아가느냐? 참된 사람을 바라고 살고 싶어합니다. 참된 사람을 바라는 데는 인간끼리의 교육이라든가 인간끼리의 인연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절대자인 신을 중심삼고 신에 의한 교육, 신과의 인연을 맺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 사람이 좋아요, 신이 좋아요? 절대적인 신이 있다면 신이 좋아요, 사람이 좋아요?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신이 좋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믿지 못해도 하나님만은 믿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억울한 자리에 몰려 누명을 쓰고 죽음길을 가는 사람이라도 '세상 사람은 나를 알아주지 않지만 하늘만은 알아줄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소학교 학생이라도 세계에서 제일 가는 소학교 선생님이 있다면 그 선생님한테 배우고 싶지요?「예」 그러면 세계 제일 가는 소학교 선생님의 선생님이 있으면 어때요? 자신이 소학교에 다니지만 그 선생님한테 배우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 선생님한테 배우려면 소학교 윗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선생님에게 배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이렇게 얄궂은 게 사람입니다. 세계적으로 훌륭한 선생님에게 배웠으면 됐지, 왜 그보다 더 훌륭한 선생님에게 배우려고 하느냐는 거예요? 그것은 더 넓은 세계와 인연을 맺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제자는 선생님보다 낮지요? 선생님이 높다는 것입니다. 산이 높으면 그산 밑은 넓어요, 좁아요? 넓습니다. 산이 낮으면 산 밑도 좁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산이 높으면 거기에 비례해 가지고 산 밑이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넓어지고 높아지는 것은 무엇이냐? 넓어지는 것은 세계적인 것이 되는 것이고 높아지는 것은 하늘 끝까지 닿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늘 끝까지가 어디예요?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까지예요? 하나님 끝까지는 어디까지예요? 하나님 속까지입니다. 하나님의 심중까지 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어디에 가고 싶어하느냐 하면 좋은 데 가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학생들이라면 학교에 가고 싶어하지요? 왜 학교에 가려고 하느냐? 높아지려고 그러는 거예요. 높아져서 뭘 하려고 하느냐? 좋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면 좋아지면 어떻게 되느냐? 즉, 자꾸 넓어지고 자꾸 높아지면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인간세계를 넘어 가지고 저 하늘 꼭대기 하나님 계신 곳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자꾸 올라가면 좋지요? 사람의 욕망은 한계가 없습니다. 이런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의 한계점이 어디냐? 그 목적지가 어디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모든 것을 갖고 싶고, 자꾸자꾸 올라가고 싶고, 좋은 것은 모두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세계까지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인간

그러면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 서로 죽이고 살리고 하는 세계를 만들겠어요? 매일 싸우고 원수처럼 지내는 세계를 만들려고 그러겠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보면 볼수록 정이 가고, 거기서 살면 오래 살고 싶고, 보면 볼수록 좋아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틀림없지요? 그것이 틀렸다 하는 사람은 죽으라는 거예요. 죽으라고 하면 죽을 사람이 없다는 거라고요. (웃음)

인간은 좋고 좋고 또 좋은, 살고 살고 또 살고 싶은 세계에서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 세계는 한쪽으로 납작하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래야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 가치의 기준이 얼마만한 기준이냐? 국민학교 다니는 학생의 기준이 아니예요. 그러면 대학교 교수와 같은 기준이겠어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법학과면 법학과를 맡은 교수와 같은 기준이겠어요? 인간이 얼마만큼 높아지려고 그래요? 아무리 좋다고 해도 거리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 얼마만큼 높아지려고 그래요? 세계 인간을 대표한 만큼 높아지려고 그래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최고의 절대자인 그분이 나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고, 그분이 나를 박찰래야 박찰 수 없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칭찬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기뻐요, 안 기뻐요?「기쁩니다」 여기 아줌마 기뻐요, 안 기뻐 요?「기쁩니다」 대학교 시험을 보는 데 있어서 일등을 목표로 공부하던 사람이 정말 수석으로 합격을 했다 할 때 기뻐요, 안 기뻐요? 말할 수 없이 기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기쁘다고 해서 함께 입학한 친구들 모두가 기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분 나빠할 수 있습니다. 그 녀석이 아니면 내가 수석이 되었을 텐데 할 것입니다.(웃음) 물론 친구가 수석이니, 기쁘지만 기분 나빠하는 녀석도 있다는 거라구요. 그것은 왜 그러냐? 절대적이 안 됐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목적하는 목적점은 어디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절대자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절대자가 있으면 틀림없이 확실하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짓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무리들이 하나님을 목적하고 하나님을 내가 점령하겠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한다는 말이 어폐가 있지만 하나님을 소유하고 싶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보기라도 하고 싶을 것입니다. 보면 기분 나쁘지 않고 좋은 거예요. 좋으면 갖고 싶겠어요, 안 갖고 싶겠어요? 결국 좋게 되면 갖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갖겠다는 말을 어폐 있는 말로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좋으면 갖고 싶다는 거예요. 갖고 싶다는 것은 나와 관계를 맺고 싶다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좋으면 어떻게 좋아하자는 것이냐? 같이 밥이나 먹으면서 좋아하자는 것이냐? 천만에, 그렇게 좋아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같이 살면서 좋아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것을 한번 보고 그것을 내버려요? 그것이 나와 더불어 하루 1년, 10년, 일생은 물론 영원히 좋을 수 있기를 원하 지요. 영원히 좋을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거예요? 영원히 좋을 수 있게끔 살고 싶다는 거예요, 죽고 싶다는 거예요? 결론은 살고 싶다는 겁니다. 좋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이냐? 어떤 입장에서 살고자 하느냐?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우주에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과 서로 대립하고 살려고 그래요?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싶어요? 하나님의 마누라처럼 살고 싶어요, 신부님처럼 모시고 살고 싶어요, 하나님이 지식의 왕 중의 왕이니까 하나님으로부터 글을 배우면서 살고 싶어요? 어떻게 살고 싶어요?

처녀가 시집가서 남편을 만나면 어떻게 살고 싶어해요?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지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시집가서 가만히 있으면 행복이 나옵니까? 글이나 배우면서 지내면 물이 나오듯이 행복이 나와요? 어떻게 해야 행복이 나와요? 간단합니다. 서로 사랑해야 됩니다. 둘이 사랑해야 행복이 나온다는 거예요. 둘이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까지 점령하고 싶어하는 인간

그러면 세상에서 사랑의 대왕이 누구냐? 천지에 사랑의 주인공이 누구냐 할 때, 그가 사람이겠어요? 아닙니다. 하나님과 같은 절대자일 것입니다. 사랑의 주인은 절대자입니다. 그러면 절대자의 사랑이 절대적인 사랑이겠어요, 인간적인 사랑이겠어요? 무슨 사랑이겠어요? 절대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그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 보면 어떻겠어요?

어떤 사람은 행복하게 사는 가정에는 참깨 냄새가 난다고들 합니다. 이렇게 타락한 인간끼리도 모여 가지고 구수한 사랑을 하며 재미있게 산다고들 하는데 절대자의 사랑을 받고 살면 어떻겠어요? 생각해 봤어요? 어떻게 다르겠어요?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산다면 어떻겠어요? 그 사랑 받고 당장 죽어라 해도 그 사랑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 한번 받고 죽어도 괜찮다고 할 자신 있어요? 그 사랑을 한 번 받아 본 사람은 열 번 백 번을 죽어도 좋다는 말이 실감이 날 것입니다.

세상의 인간들도 사랑 가지고 죽고 살고 야단하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살 때, 그 사랑을 한 번 받고 영원히 죽는다 하더라도 그 사랑을 받고 싶다 할 수 있는 사랑이겠어요, 아이구 생각해 봐야지 하는 사랑이겠어요? 얼른 감도가 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절대적인 것에 대해 여러분은 생각을 하려고 해도 못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고무풍선을 불 때 바람을 넣어 가지고 탱탱하게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크게 불지요? 그것이 터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빵 하고 터지지요. (웃음) 그렇게까지 좋아해 보자는 거예요. 여러분이 마음으로 얼마만큼 좋아해야 하느냐? 그 풍선같이 터져서 다 날아가도 좋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라는 거예요. 그것이 사랑이 아니 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이 있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욕을 좀 듣는다 하더라도 무엇이 무섭겠어요? 감옥에 끌려가는 것이 무서워요? 죽음이 무서워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이 있을 때는 지상의 인간들은 남자나 여자나, 늙은이나 젊은이들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런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받고 싶어요, 안 받고 싶어요?「받고 싶습니다」 그것이 멋진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어느 때 가서 '아이구 이제는 내 목적을 다 이루었으니 나도 그만 쉴래' 그러겠어요? 언제 이런 마음이 생기느냐는 거예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까지 점령하기 전에는 그런 마음이 안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두고 볼 때 인간의 가치가 굉장하지요?

인간이 하나님을 봤다 하면 갖고 싶겠어요, 안 갖고 싶겠어요? 갖고 싶겠지요? 하나님을 내 것 만들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 속에 하나밖에 없는 보물단지까지 갖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인간이 그것을 본다면 하나님에게 '그것까지 나 주소'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멋있더라도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되면 그 사람은 있으나 없으나,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나 마나입니다. 그렇지요?

만약 부모한테 사랑 못 받는 자식이 있다면 그 사랑을 못 받는 것이 좋아요, 섭섭해요?「섭섭해요」 그것 역시 마찬가지라고요. 자식이 부모에게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부모의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인간의 마음은 이웃 동네의 어떤 훌륭한 사람을 본받아 훌륭해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천상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창조주가 있다면 그 창조주인 대왕님을 점령해 가지고 내 사랑으로 만들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자체가 우리 인간이요, 그렇게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몸뚱이를 두고 볼 때, 큰 사람이 고작해야 여섯 자를 조금 넘을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기준을 두고 볼 때 그렇다는 거예요. 여기 이사람 키가 얼마 돼요?「여섯 자입니다」 키가 크긴 크구만 ! 나보다 조금 크구만. (웃음) 나도 키가 작은 축에 속하지 않는다고요.

그러면 하나님은 키가 얼마나 되겠나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 키가 얼마나 되겠어요? 하나님은 크다면 제일 큰 분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얼마든지 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작다면 얼마든지 작을 수 있습니다. 왜? 절대자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능치 못함이 없는 분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는 제일 작은 것의 표준도 될 수 있으며, 제일 큰 것의 표준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크기도 하고 제일 작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두고 볼 때 이렇게 작은 우리 인간이 무엇으로 큰 하나님을 상대하겠다 하는 것입니까? 몸뚱이로 하겠다는 것입니까, 마음으로 하겠다는 것입니까? 생각해 봐요? 몸뚱이로 상대하겠다 하는 사람은 머리가 백 번 돈 사람입니다. (웃음)

그럼 무엇으로 상대하겠다는 것입니까? 몸뚱이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그러면 대관절 마음이 얼마나 커요? 마음이 하나님을 상대할 만큼 크냐 이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커요, 안 커요? 마음이 얼마나 크냐 하면, 국민학교는커녕 유치원도 못 가 본 사람, 사람을 한 번도 만나 보지도 못하고 커 나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의 마음은 더 크고 더 좋은 것을 찾아가는 거예요. 그렇지요?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크냐? 마음이 얼마나 커요? 대한민국을 집어넣고도 모자라요, 남아요? 대한민국을 집어넣고도 또 큰 것을 내 것 만들겠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그 마음이 얼마나 크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세계보다 커요, 작아요?「커요」 그러면 하늘땅보다 커요, 작아요?「커요」 하나님보다 클 수 있는 가망이 있을 것 같아요. 없을 것 같아요?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보다 클 수 있을 가망성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면 하나님보다 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다 점점 커 갈 수 있는 내용이 있다는 거라구요. 사람이 이러한 내용을 생각하고 산다면 살 만하다는 거예요. 사람이 이만하면 살 만하지요? 이것을 알게 된다면 나이 많은 사람들은 고심하며 울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쓸데없이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해 가지고 내가 마음에 병들게 됐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탓하지 마세요. 그것은 좋은 병입니다. 만약에 그 일로 해서 밥을 못 먹고 죽었더라도 지옥은 안 가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지옥은 안 가요. 그 병은 좋은 병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이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들어 보겠다 할 수 있는 가망이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무엇으로요? 마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슬쩍 모셔 드리고도 남아 가지고 나도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습니다. 이렇게 넓고 큰 본바탕을 지니고 있는 인간 이기 때문에, 이러한 재산을 가지고 이러한 밑천이 있는 훌륭한 가문의 출신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귀하신 분이다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본 인간의 가치

하나님은 기뻐하는 것을 좋아하겠어요, 슬퍼하는 것을 좋아하겠어요? 「기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잘 아시는구만. (웃음) 슬픈 것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없지요? 그러면 우리 인간은 누구를 닮았어요? 닮기는 누구를 닮아요, 주인 닮았지 (웃음) 아버지, 어머니를 닮았지요. 예술 작품을 보더라도 그 작품은 작가의 소성을 대신한 거라구요. 작가의 성격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가 있어서 우리 인간을 지었다면 우리 인간은 절대자를 닮아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절대자를 닮았으니까 그 절대자이신 하나님하고 친구 될 수 있는 소성을 가져야 되겠어요, 안 가져야 되겠어요?「가져야 되겠습니다」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최고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고귀한 존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절대자라면 그 절대자를 중심으로 좋아하겠다는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을 닮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주체로 계시는 절대자 앞에 우리 인간은 대상이니까 절대적인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기분 좋지요? 그렇지만 이렇게 한 번 좋다가 나빠지면 사고가 생기는 거예요. (웃음) 이만하면 사람이 만물 중에 최고라고 말할 자격이 있겠지요.

여러분, 대통령의 부인을 뭐라고 해요? 국모라고 하지요. 그 대통령 부인은 국민학교의 국(國)자도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대통령과 사랑으로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에 외적인 모든 권세와 외적인 모든 가치를 완전히 상속받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국모 되는 이가 비록 '국'자도 모르지만 대통령의 부인이기 때문에 그 나라의 각료들은 충성껏 모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 부인은 국민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고 나는 박사인데 하고 비교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천당과 지옥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화를 내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그것이 싫다고 하면 무사 통과돼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해야 할 책무를 중심삼고 나라를 염려하는 것은 대통령의 부인보다는 나라 일을 아는 총리가 낫지만 사랑의 세계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에 관계되어 인연이 맺어지는 날에는 통일권이 벌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있다면 좋겠지요? 좋게 될 수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이 높다고 생각하였더니, 하나님만이 높은 것이 아니라 누가 높다고요? 하나님의 높음만 생각했지 인간의 근원을 몰랐다는 거예요. 이것이 사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높은 것처럼 인간도 높아져야 할 텐데 불구하고, 하나님만 높은 줄 알고 인간들은 낮은 줄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높아질 수 있는 비결이 어디에 있느냐? 이 비결을 찾아 가지고 높아질 수 있는 길이 통일교회에 있다면 통일교회 오지 말라고 철문을 몇십 개, 몇백 개씩 달아도 특공대를 편성해서라도 들어오려고 할 것입니다. 오지 말라고 해도 사다리를 놓고 올 것입니다. 올라오기 위해서 별의별 수단을 다 쓸 것입니다. 그럴 가망성이 있겠어요,없겠어요? 「있습니다」 없다면 사이비예요, 그러니 미리 척 와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남들 잘 때 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기분 나빠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제일 높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처럼 높아질 수 있냐고 하면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틀렸다고 할 것이예요. 내가 바로 그 문선생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 자리에 처음 온 사람은 이 사람이 대관절 누구길래 이런 엄청난 말을 하는가 할는지 모르지만 내가 바로 소위 기성교회에서 말하는 문제되는 사람입니다. (웃음) 오늘 이 말씀을 듣고 돌아가서 '아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여태까지 사람들이 하나님 높은 줄만 알았지 사람 높은 줄은 몰랐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떠들고 다니려면 실컷 떠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낮고, 천하고, 죽을 곳으로 몰아넣고 하나님은 높고 잡지 못할 곳에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점점 멀어지겠죠? 그렇게 점점 멀어지니 소원성취라는 것이 있겠어요? 절대 없다는 것입니다. 소원성취하려면 소망이 크고 높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높을 수 있는 비결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생명을 걸고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예」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

하나님도 기쁜 것을 좋아한다고 했지요?「예」 기쁜 것을 좋아하는 것은 남자나 여자나, 노인네나, 어린애나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다 같습니다. 슬픈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기쁜 것을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뻐한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겠어요, 독자적인 것이겠어요? 기뻐하는데 있어서 상대가 없이 기뻐할 수 있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럴 수 있는 법이 있어요?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어떻게 기뻐하시겠어요? 상대 없이 기뻐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상대 없이 혼자서 웃고 기뻐한다면 무슨 하나님이라고 하겠어요? 정상적인 하나님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결론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기쁨을 느끼려면 상대가 있어야 됩니다. 상대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노벨상 열댓 개를 탔고, 세계 대통령이 되어 한 번 손을 들어 호령하게 되면 천하가 움직이지 않을 수 없고, 암행어사 출동은 문제가 아닐 만큼 대단한 사람이 있더라도 아무도 없는데 혼자 앉아 가지고 허허허 웃는다면 사람이 어떻다고 그래요? 미쳤다고 하지요.

그렇지만 깨알 같은 조그마한 것이라도 그냥 놔 두면 날라가니까 침을 발라 가지고 손에 딱 붙여 놓고 웃는다면 미쳤어요, 정상적이예요? 이 말은 지극히 작은 대상 하나가 전체 가치를 인정시키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런 대상 앞에서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천지창조를 하셨느냐? 천지창조는 슬퍼하기 위해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대상의 세계를 지은 것은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지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천지에는 별의별 만물이 다 있습니다. 천지 만물 가운데 제일 가는 보물이 있을 것입니다. 박물관에도 제일 가는 보물이 있는 것입니다. 국가의 보물들 중에 국보가 있습니다. 국보 가운데는 제일 가는 국보가 있습니다. 전부다 일등 가는 국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국보 1호, 2호, 3호… 순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보를 보면 남대문이 국보 1호로 되어 있습니다. 국보 1호라고 해서 그것이 제일 좋아서 1호로 된 것이 아닙니다. 내용과 가치적인 면에서 다른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절대적인 가치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제일이라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박물관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주된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그 중심, 즉 하나밖에 없는 제일 가는 국보를 보는 것입니다. 목적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불란서의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우리 인간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어요? 하나님은 피조 만물 가운데 중심이 되는 걸작품이 있다면 그 걸작품에 대하여 관심을 갖겠어요, 안 갖겠어요? 갖는다는 것입니다. 관심이 많으면 많을수록 멀리 하겠어요, 가까이하겠어요?「가까이 합니다」 관심사의 내용이 거기에 집중이 될 때는 가까이하지 말라고 해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관심사다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도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대상이 없어 가지고는 기쁨이 안 생긴다는 거예요.

만약에 사람이 어떠한 물건에 관심이 있다면 그 물건을 그냥 두고 보겠어요, 만져 보고 싶겠어요? 여러분 앞에 관심 있는 물건이 있다면 그 물건을 보기만 해요, 만져 봐요? 생각해 보세요. 만져 보지요?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관심 있는 대상에 대해 어떻게 하시겠어요? 보기만 하시겠어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나님도 만져 보신다는 것입니다. 만져 보는 데는 어떻게 만져 보겠어요? 관심이 크면 클수록 이렇게 주무르고 만지고 할 것입니다. 때가 묻었으면 싹싹 닦고 불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밖에 나가게 될 때는 자기 품에다 품고 내놓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맞았어요, 틀렸어요? 맞았습니다. 맞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상대적인 절대자

그러면 사랑의 하나님이 인간이라는 걸작품을 지었는데 다시 한 번 만들자 하고 내버리고 다른 데 가서 상대를 찾으려고 하겠어요? 여기 있는 아기 엄마들도 알다시피 아기들이 태어나서 몇 달만 지나게 되면 방긋방긋 웃지요? 한 석 달만 지나게 되면 웃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기가 태어나서 첫 번 웃을 때에 여자는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반드시 남편한테 좋아라고 선전을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보 우리 아기가 웃었어요 하면서 좋아합니다. 그런 얘기는 제일 가까운 사람한테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선전을 들은 남편은 좋아하겠어요, 울겠어요?「좋아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화(家和)만사성 (萬事成)이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담과 해와가 보면 볼수록 귀여웠으니 어떻게 했겠어요?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좋았겠지요? 하나님이 미워할 때 목석같이 가만히 있더라도 아담 해와가 좋아보인다는 거예요? 아담 해와가 기분 나쁜 표정을 하게 되더라도 그것이 더 감칠맛이 난다는 거예요. 자식성이라는 것이 그래요. 아담 해와가 울면서 싫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좋다는 것입니다. 덩실덩실 춤을 추다 못해 얼씨구 절씨구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말을 하는 것이 기가 막히거든요. 까닥까닥하면 되받아서 같이 까닥까닥하고, 손에 무엇인가를 주면 받기도 하고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은 미치도록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예술인의 조각작품이 대통령상을 받았다 하게 되면 그 작품을 걸어 놓고 이것이 대통령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며 그 사람의 문중들이 모여 야단이지요? 이렇게 돌덩이를 가공하여 작품을 만들어도 떠들썩한데 만약 자기의 작품이 말을 하고 자기 소원까지 얘기한다면 이런 작품을 놔 두고 어디를 갈 수 있겠어요? 놓고는 못 가는 거라고요. 그 얼마나 보고 싶고 얼마나 신기하겠어요?

여기 아주머니들, 아기들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신기하지요? 신기해요, 안 신기해요? 신기하지 않다면 어머니 노릇 못 하는 거라구요. 아기가 잠을 자고 나서 밥 달라고 '빽' 하니 울어대면 그 어머니는 아기 우는 소리를 듣고 기분 나쁘다 하며 달려가요, 아이가 보고 싶어서 달려가요? 보고 싶어서 달려가지요. 그러고는 아기를 부여안고 가슴을 헤치고 생명의 호스를 들이대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잖아요? 아기가 그걸 잘 빨아 먹는 것을 볼 메 엄마는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좋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러한데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보고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람들이 아기를 키울 때 좋아했던 것보다 몇백 배, 몇천 배, 몇만 배, 몇억만 배 더 좋아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상상하지 못할 만큼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좋아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내용을 알아요, 몰라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좋아했겠어요? 하나님이 한 번 웃으면, 천지가 다 웃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번 춤을 추면 천지가 다 춤을 출 것입니다. 그렇게 좋아할 게 아니예요? 그렇게 좋아한다고 누가 욕을 하겠어요?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는데 아들이 아버지를 보고 울겠어요, 따라서 좋아하겠어요? 「좋아합니다」 그럴수록 좋아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춤을 추고 해도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은 인간을 빼놓고는 상대할 대상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알겠어요? 인간을 빼놓고는 재미를 볼래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 앞에 있어서 인간은 상대적인 절대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만히 앉아 가지고 내가 말하는 것을 듣고 쉽게 말하는 것같이 느끼겠지만 여기서 이런 말 하는 사람은 뼛골에서 흘러내리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냥 와 가지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요.

오늘날 기성교회에서 사람과 하나님의 사이를 말하고 있는 것을 두고 볼 때, 기성교회는 앞으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추방을 당할 날이 올 것입니다. 왜 그러냐? 우리 인간은 자기는 부족하더라도 고차원적인 것을 바라고 생활하며 최고의 자리를 표준하고 나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성교회에서는 자꾸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부족하더라도 최고의 자리를 향해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에게 자꾸 내려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높고 거룩하신 창조주와 우리 피조물과 어떻게 감히 상관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잘못 알았어요, 잘못 알았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어떤 자리에서 관계맺을 것이냐

그러면 언제 어디서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 높으신 하나님과 어디서 관계를 맺을 것이냐? 예수님이 삼위일체로 계시다는 분이라고 하는데 어디 가서 그와 관계를 맺을 것이냐? 관계맺는 그 자리가 어디냐 이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흘린 자리겠어요? 사람이 피흘리는 것 좋아해요? 인간에게는 행복의 노래가 깃들 수 있으며 만민이 화동하고 화합할 수 있는 자리에서 만나고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본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자리에서 만나고 좋아하였던 무리들이 인류역사상에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디에서 만날 것이냐? 예수님을 어디에서 만날 것이냐? 기성교회에서 말한 대로라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더라도 '오, 당신은 거룩한 분이오. 나는 죄인이오니 가까이 오지 마소. 오지 마소 !'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또 돌아서서 기도를 할 때에는 '하나님이여! 당신은 우리 아버지이시니 내 마음에 오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지요? 이게 무슨 짓이예요. 오시라는 거예요, 오시지 말라는 거예요? 창조주는 상대할 수 없이 거룩하고 피조물인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딱 못박아 놓고는 '하나님이여 내 마음에 오시옵소서! 이게 무슨 짓이예요? 그야말로 이율상반된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런 주먹구구식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이치에 맞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왔든지 기성교회에서 처음 온 사람이 있다면 생각을 다시 해보라는 거예요.

오늘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지만, 사람은 손해나는 일은 안 하려고 합니다. 그렇지요? 조금이라도 이익될 틈만 있으면, 갑자기 부자 될 길이 있으면 남모르게 혼자서 해치우려고 하지요? 어떤 일이고 손해나는 일이면 안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도 통일교회에 손해보기 위해서 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자신을 두고 볼 때 그럴 것입니다.

여기 온 사람 중에서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대한민국에 소문도 많이 나 있고, 또 발가벗고 춤춘다는 헛소문을 믿어 가지고 구경삼아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뭔가 잘못 알고 왔다는 거예요. 잘못 알았어도 한참 잘못 알았다는 것입니다. 문선생이 시시껄렁한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내가 정말 발가벗고 춤이라도 한번 춰 보고 그런 말을 들으면 모르겠는데, 춤도 못 춰 봤는데 자꾸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됐다는 것입니다. 밥을 안 먹는데 배가 부르다는 식이잖아요? 그러니 진짜 기근이 들었을 때 남들이 다 죽더라도 나 하나만은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거예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남들은 밥을 못 먹게 되면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겠지만 나는 밥을 안 먹었는데도 먹었다고 하니 남들보다는 나중에 죽는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람을 만나고 싶겠어요, 안 만나고 싶겠어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요, 안 만나고 싶어요?「만나고 싶어요」 어디서 어떻게 만날 거예요? 어떤 자리에서 만날 것이냐 말이요?「극락이요」(웃음) 그 말 한 번 잘했습니다. 극락이란 말이 불교에서 나온 말이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당과 같은 뜻이예요. 천당이 극락이라는 것입니다. 제일 기쁜 자리에서 만나자는 것입니다. 그거 말 잘했어요. 여러분들이 웃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진짜 극락에서 만나야 합니다.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당신도 좋은 그런 자리에서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신과 인간이 어떤 자리에서 관계를 맺겠느냐? 이것이 지금까지 확정되지 않은 문제입니다. 종교인들이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여 가지고서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매하게 남겨 놓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만나게 되느냐, 어디서 맺혀질 것이냐, 어디서 첫 인연이 이루어질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려면 먼저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알지요?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통일교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틀림없이 있는 것을 알지요? 「예」

하나님과 인간의 본연의 관계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종이 될래요, 하나님의 양자 양녀가 될래요?「양자가 되겠습니다」 그건 말을 안 해도 잘 아는구만요. 그러면 양자가 될래요, 친자식이 될래요? 모두들 직계 아들딸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여자들은 하나님의 친딸이 되고 싶어요,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뭐가 될래요? 잘 대답해야 돼요? 며느리가 될래요, 딸이 될래요?「딸이요」 딸은 시집가는데요?(웃음) 그래도 딸이 되겠어요?「예」 그래도 딸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딸은 시집가서 소박을 맞으면 아버지에게 돌아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어려운 일이나 슬픈 일이나 마음대로 아버지 앞에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딸의 특권입니다. 그렇지만 며느리로서 소박을 맞게 되면 시아버지한테 얘기할 수 있어요?「못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딸이 며느리보다 어떻다고요? 낫다는 거예요.

사람의 욕망이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남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여자는 하나님의 딸이 되는 곳까지 올라갑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이 인간에 대하여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싫다고 하시겠어요, 여기까지 찾아와서 사랑받는 아들딸이 되겠다고 하니 고맙다고 하시겠어요?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고맙다고 생각하겠어요, 안 고맙다고 생각하겠어요?

하나님이 사랑의 주인공으로서 어떤 자리에서 인간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자리에서 인간을 대하고 싶어하실 것이냐 할 때에, 하나님 자신도 인간을 최고의 자리에서 대하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피한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최고의 자리가 어떤 자리일 것이냐? 하나님이 요구하는 자리는 우리 인간도 요구하는 자리일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는 아들딸의 자리요, 그 자리는 아버지의 자리일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리에서 상봉할 것이냐? 하나님과 인간이 찾아 나가는 그 길에 있어서 사랑을 최고로 원하는 부자의 자리를 떠나서는 서로 만나 기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서 기뻐하실 수 있는 단 하나의 자리는 아들과 딸의 자리요, 아버지의 자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날 기독교에서 막연하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는 것은 위대한 발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과 신이 상대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비로소 인연지어질 수 있는, 상봉할 수 있는 첫 기점이 어디냐 하면 부자의 관계를 맺은 자리인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 있어요?

만약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으면 어떻겠어요? 아버지와 아들은 부자의 관계이지요. 아버지는 위에 있고 아들은 아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상하관계입니다, 상하관계.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는 데 있어서 부자의 관계에서만 대할 것이냐? 여기서 인간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위인데 나는 아래다 이거예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아버지, 나 아버지의 자리에 한 번 가서 있고 싶어요'할 때 아버지가 '이 고얀지고! (웃음) 이래 가지고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부자지간에 생이별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부모의 심정을 두고 볼 때, 아주머니의 얼굴이 못생겼다 하더라도 그 아주머니가 안고 있는 아기를 보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야! 그 녀석 엄마보다 몇천만 배나 더 잘생겼군' 하면 그 얼마나 기뻐요? 좋아서 헤헤 하는 거라구요. (웃음) 그러면 엄마는 그 아기보다 몇천만 배 잘생겼다는 거예요, 못 생겼다는 거예요? 세상에 어느 엄마가 이런 말을 듣고 '뭐라고! 나보다 몇천만 배 잘생겼어? 그럼 나는 몇천만 배 더 못생겼다는 얘기가 아니야?'라고 하겠어요? 그렇게 대드는 엄마가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그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거라구요. 이것이 엄마의 마음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하는 마음이 누구 닮았겠어요? 엄마는 결과적 존재이지 동기적 존재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럼 아들이 아버지보다 못하기를 바라는 집안이 있다면 그 집안은 망하겠어요, 흥하겠어요? 망하는 거예요. 아버지는 대통령인데 아들은 그보다 못하게 될 때는 그런 형태로 몇 대를 가게 되면 그 집안은 점점 망하는 것입니다. 맨 나중에는 쥐구멍을 찾는 신세가 될 거라구요. 별수 있어요? 그러니 망하겠어요, 안 망하겠어요? 대답해 보세요?「망합니다」 말을 같이 해야지요. 나 혼자 하면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아들보다 아버지가 잘나게 될 때는 그 집안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자식이 아버지에게 '내가 아버지보다 못하면 되겠습니까? 하면 아버지가 '예끼 이놈!' 하겠어요, '오냐 그래라' 하겠어요? 어떻게 하겠어요? 후자를 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하관계뿐만이 아니라 너와 내가 같을 수 있는 자리라고까지 생각하면서 나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같은 자리에 있다. 네가 아래도 아니요, 내가 위도 아니다. 너와 내가 같은 자리에 있다'할 수 있는 자리까지 우리 인간을 올려 놓으려고 하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고마운 분이요, 안 고마운 분이요 ?「고마운 분입니다」

세상의 은덕을 가지고는 갚을 수 없는 최고 고마운 분, 그런 고마운 분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런 분으로 누구를 세워 놓고 싶어요? 삼촌을 세워 놓고 싶어요, 선생님을 세워 놓고 싶어요, 어머니 아버지를 세워 놓고 싶어요? 대답해 보라구요. 전부다 어머니 아버지를 세워 놓고 싶지요? 누구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마우신 분으로 아버지를 세우려 하는데 그 아버지가 누구라고요?「하나님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근본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생애를 바쳐 헤치고 헤쳐 들어가 보니 이러한 우주의 근본이 있더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인간의 가치를 모르는 기성교회

하나님은 인간과 상하관계뿐만이 아니라 안팎으로 위해 주는 관계까지 세워 나오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고마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과 하나님이 이런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인간은 아버지의 것을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것이 다 내 것이며 아버지가 주관하는 것을 내가 다 주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버지께서는 우리 인간을 당신과 동등한 권한을 가진 자리, 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세우시기 위해서 창조하셨다는 고마운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기성교회에서는 인간이 이런 존재라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오늘의 철학도 난점을 많이 갖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절대자가 필요합니다.

철학 종교 등의 근본 문제들도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해결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교에서도 통일교회가 문제가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세계 사람들을 불러다가 통일하자는 것입니다. 안 되면 내가 하게끔 만든다는 것입니다. 안 되면 때려서라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는 대등해요, 안 해요?「대등합니다」 크기가 비슷하다고 해서 대등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80세 넘은 노인에게 20세도 안 되는 아들이 있다고 할 때 그 나이 많은 아버지는 무슨 일에 대하여 그 아들과 의논하고 싶겠어요, 안 하고 싶겠어요? 고등학교 1학년밖에 안 되는 아들일지라도 의논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렇지요?「예」

부모는 자기가 고독하면 고독할수록 생사의 권을 넘어서 자식에게 자기의 사정을 얘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심정이요, 부모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이것이 사실이라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좋겠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저 대답하는 소리 좀 보세요. (웃음) 말만 그렇게 하고 행동은 그렇게 하지 않지요? 그게 문제입니다. 이런 말은 내가 금년에 들어와서 통일교인들에게 처음으로 들려주는 말입니다. 부자(父子)가 이렇게 돼야 아버지 좋고 아들 좋은 것입니다. 춤을 출 때 아버지는 저 위에서 춤추고 나는 아래에서 춤춘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웃음) 붙들고 춤추는 것이 좋잖아요. 그래야 하나님이 안아 주겠다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될 것이 아니예요? 그래야 이치가 맞을 게 아닙니까?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계신가를 계속 얘기할까요, 그만둘까요?「얘기해 주세요」 사실 나는 지금 저녁도 안 먹었습니다. 여러분은 저녁 먹었어요, 안 먹었어요?「먹었습니다」 먹었으면 나보다 낫구만요. 손님 대접을 이렇게 박절하게 할래요?(웃음) 시간 많이 걸리게 얘기하지 말자구요. 그래 아홉시에 끝나면 되지요? 아홉시에 끝내려고 했는데 벌써 아홉시 10분이 됐네요. (웃음) 통일교회 목사들은 40분 이상 설교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벌써 내가 한 시간 40분이나 했으니까 이제 그만합시다. 나도 지쳤으니 그만해요?「아닙니다」 나는 사람 좋게 하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내가 그 바람에 늙었어요. 내가 기를 쓰고 이야기할 때, 모두들 좋아하면 늙었어도 좋기나 하지요. 그런데 욕은 나 혼자 다 얻어먹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통일교인들밖에 없습니다. 그래, 간단히 얘기할까요, 세밀히 얘기할까요?「세밀하게요」 세밀하게 얘기하자면 일주일이 아니라 3년을 해도 다 못해요. 그러니 얼마만큼 얘기해 줄까요? 여러분이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간단하게 해 봅시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확실히 몰라 가지고는 기초가 흔들리게 됩니다. 기초가 틀어진 가운데 빌딩을 높이 지으면 태풍이 불어오고 지진이 날 때에는 넘어지겠어요, 안 넘어지겠어요? 넘어지지 말라고 '하나님 !나 좀 살려주십시오' 한다고 그렇게 돼요. 하나님이 '이 녀석아, 넘어간다 비켜라' 하신다는 것입니다. (웃음) 기도를 아무리 해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기초가 올바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어떻게 있느냐 하는 것을 실감나게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고 싶지만 그 얘기는 다음에 합시다. 지금 다 가르쳐 주면 여러분 머리가 너무 작기 때문에 핑 돈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안 되잖아요. 집에 갈 때 길이라도 잘 보고 가야지, 궁상스럽게 가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지기라도 하면 통일교회 문선생 때문에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려구요. (웃음)

만약 여러분이 과거에도 없고, 현재에도 없으며, 미래에도 없을 세계에서 가장 귀한 단 하나의 보물을 가졌다면 그것을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봤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갖고 싶지요? 하나님을 갖는다면 어디에다 보관할래요?

우리에게 보물이 있다면 그 보물을 보관할 장소가 없다는 것입니다. 창고에 기껏 모아 놓은들 무엇하겠습니까? 전부 남이 빼앗아가는데요. 계속 보관할 수 있는 가망성이 없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그것을 품속에 안고 다닌다면 언제 목이 달아날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어디 건사할 데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보물의 보관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어떻게 했느냐? 세상의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 보물이 보이지 않고 자기 눈에만 보이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심이 되겠지요? 세상 사람의 눈에는 절대 안 보이고 내 눈에만 보이게 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겠어요, 안 하겠어 요?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내 마음대로 건사할 수 있고 나만이 상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여러분, 제일 귀한 물건이 있다면 하늘 꼭대기에 갖다 놓고 싶겠어요, 갖고 다니고 싶겠어요?「갖고 다니고 싶어요」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물건인데, 언제든지 가지고 다니면서 한시도 그 물건과 떨어지고 싶지 않겠어요, 떨어지고 싶겠어요?「떨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최고 보물이라 할 하나님이 공중에 계신다면 보여요, 안보여요? 서울 청파동에서 보여요, 안 보여요? 사람은 그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창고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생각하겠지요. 그 창고가 뭐냐면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알겠어요?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의 창고에다가 보이는 하나님을 모시고 싶어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모시고 싶어요? 보이면 기분 나빠 안 되는 거라구요, 여기 계신다 저기 계신다' 하면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남이 다 가지고 있는 것을 자기가 가졌다고 하면 기분 좋아요? 나쁘다는 것입니다.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 나만이 알고 있고, 나만이 비밀로 갖고 있는 분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속에 모시게 될 때 그분은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최고의 분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만이 통할 수 있는 분을 갖고 있다고 할 때에 비로소 안심을 합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어디에 갖다 모시려고 하느냐 하면 우리 마음속에 모셔드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은 이미 이런 것까지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 잘 생각하셨다는 거예요.

인간은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있어야만 둘도 없는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둘이서만 느낄 수 있는 자리가 행복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복을 느끼려고 마련한 자리가 마음의 자리입니다. 알겠지요?

하나님이 보이길 잘했어요, 안 보이길 잘했어요? 안 보이기를 잘한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보였다면 하나님 노릇을 하겠어요? 생각해 봐요? 몇천 년 동안 이 작은 지구덩이 가지고 서로 많이 차지하겠다고 나라끼리 치고 뺏는 싸움을 했지요? 더구나 요즘은 사람까지 빼앗으려는 싸움을 합니다. 공화당이니 무슨 당이니 서로 쓸만한 사람이 있으면 빼앗는 싸움을 하지요? 그렇지요?

천주의 대주재 되시는 하나님이 인간의 눈에 보이게 된다면 그 하나님을 서로 빼앗겠다는 싸움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이 싸움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기를 잘한 거예요. 만약 하나님이 보였다면 미국과 소련이 서로 자기 하나님이라고 싸우겠어요, 안 싸우겠어요?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 싸움을 누가 말릴 수 있겠어요? 하나님은 전지하사, 이런 싸움이 있을까봐 무형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잘됐어요, 못됐어요?「잘됐습니다」 하나님이 보이기를 바라는 것은 망령된 행위라는 거예요. 안 보이기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들어와 있으면 마음이 알아요, 몰라요? 틀림없이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면 바람벽도 뚫어 볼 수 있는 거예요. 태평양 바다 속도 뚫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능력이 인간 자신에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도 저 하늘 끝까지 통해 가지고 몇천 년 전에 죽은 성인들을 현실의 세계에서 운행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분이시니까 하나님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원을 시간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원 안에 시간이 있는 거라구요. 그러니 하나님은 안 보여도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남자가 주체 여자는 대상

하나님을 마음속에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봐요. 편의상 그 사람이 옛날의 아담이라고 하자구요.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원칙에 의해서 하나님은 아담의 아버지로서 아담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하나님이 남자의 마음에 먼저 들어가겠어요, 여자의 마음에 먼저 들어가겠어요? 어디로 먼저 들어갈 것이냐? 그게 문제입니다. 그것은 자리가 먼저 준비된 곳에 먼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가 먼저냐, 여자가 먼저냐 할 때, 남자는 남자가 먼저라고 할 것이고 여자는 여자가 먼저라고 할 것입니다. 어디 여자분들 누가 먼저입니까?

남자와 여자를 주체와 대상이라고 하는데 어디가 먼저이겠습니까? 여자와 남자를 가만히 보게 되면, 여자들은 살림을 해 왔지만 남자들은 이 세상 일을 맡아 나오면서 사람을 죽이는 싸움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요? 남자들이 싸움을 했지, 여자들이 싸움했어요? 그러니 남자들이 얼마나 민망해요. 그런데 만일에 세상 일을 남자들에게 맡기지 않고 여자들에게 맡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놀음을 여자들이 맡았다면 매일같이 싸움은 하지만 끝판이 안 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 싸움을 매일같이 몇천 년 동안 계속해도 끝판이 안 난다는 거예요.

그래 싸움은 끝판을 내는 것이 좋아요, 안 내는 것이 좋아요?「끝판을 내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도 그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를 세워 끝판을 내려는 것입니다. (웃음) 여자는 싸움을 해서 졌어도 안 졌다고 하는 거라구요. (웃음) 전라도 사람들은 겨울에도 숯불을 피워 놓고 강건너 가서 싸움을 한다는 말이 있지만, 여자끼리 싸움이 붙으면 싸움이 끝이 안 나는 것입니다. 끝이 날 것 같아요? 끝이 안 나는 것입니다. 서로가 용서를 못 하거든요. 그러나 남자들은 아무리 상대가 원수라 하더라도 술 한잔 먹고 나면 다 풀리는 것입니다. 서로 양보를 하면서 푸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서로 양보를 안 하려고 하기 때문에 매일같이 이 싸움을 해도 끝이 안 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들을 세운 것을 보면 지혜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싸움을 끝을 내야 되겠기 때문에 남자들을 세운 것입니다. 싸움을 하여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했지만 남자들은 멋진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렇다고 여자들이 섭섭하게 생각하면 안 돼요 가만히 생각하면 그 말이 맞는 말이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싸움을 해 나오는 데 있어서 남자끼리 싸웠어요, 남자와 여자가 싸웠어요? 만약 남자와 여자가 싸웠다면 큰일이 난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는 거라구요. 남자는 남자끼리 싸울 때 타협을 통해 지고 들어가게 되어도 갈 데가 있는 거예요.

그러나 남자와 여자가 싸웠다면 갈 데가 있어요? 남자하고 여자가 싸워서 이기면 뭘하고 지면 뭘해요?(웃음) 그러니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끼리 싸우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싸움을 할 때에는 어떤 녀석이 이기느냐 하면 힘이 있는 녀석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을 두고 볼 때 이길 수 있는 터전은 힘이 있는 데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자보다는 남자가 힘이 더 있기 때문에 남자에게 싸움을 맡긴 것입니다. 힘이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것이 좋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남자가 힘이 있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를 못 당하지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남자는 아무리 여자와 같은 남자라 하더라도 대상이 아니라 주체이고, 여자는 아무리 남자와 같은 여자라 하더라도 대상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여자들 섭섭해요?「아니오」(웃음) 섭섭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주체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주체와 대상이 있는데 어디로 먼저 들어가고 싶겠어요? 대상에게 먼저 들어가고 싶겠어요, 주체에게 먼저 들어가고 싶겠어요? 이렇게 되면 할수없이 대상이 주체한테 양보해야 하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자리만 좋아하게 안 되어 있더라는 거예요. '아이쿠 여긴 좀 차겁구만. 뜨거운 데로 가 보자' 하고 다른 곳을 찾아가는 거예요. 그곳이 여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북쪽을 말하고 여자는 남쪽을 말하며, 또 남자는 동쪽을 말하고 여자는 서쪽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 서남간에는 좋은 사이가 아니지만 남북 북남간에는 좋은 사이지요?

인간은 외적인 하나님

하나님은 남자에게 들어가는 거라구요. 그런데, 하나님은 한 분이요, 두 분이요? 한분입니다. 한 분인데, 어떻게 두 사람에게 들어가겠어요? 이 사람한테 들어갔다가 저 사람한테 들어가고, 저 사람한테 들어갔다가 이 사람한테 들어가고 그러겠어요? 또 세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한테 어떻게 들어갔다 나왔다, 나왔다 들어갔다, 그러시겠어요?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원리에서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체라는 얘기가 나온 것입니다. 여기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분인 것입니다. 이것이 참 멋진 결론입니다.

즉, 하나님은 여자 성품도 있고 남자의 성품도 지니고 있는 이성성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가운데 있는 남자의 성품을 모아 가지고 남자를 만들었으며 여자의 성품을 모아 가지고 여자를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주체와 대상으로 갈라지며 이 주체와 대상이 서로 수수작용을 하면 이것이 다시 합쳐서 작용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통일교회의 원리에서 말하는 정분합작용이라는 거예요. 이 위대한 통일교회 원리가 앞으로 철학에 있어서나 종교에 있어서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남자를 만들었으니까 남자 하나님이죠? 또 여자를 만들었으니 여자 하나님도 되죠? 이와 같이 하나님은 남자의 성품과 여자의 성품을 다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하나님 자체가 그런 분인 줄 몰랐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주체로서 대상인 인간들에게 머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그렇게 되어야 됩니다.

아담은 남자고 해와는 여자지요? 그렇지요? 남자가 태어날 때 여자가 있을까 걱정하고 태어났어요? 여자도 태어날 때 남자가 있을까 걱정하고 태어났어요? 걱정 안 했지요? 이런 걱정을 안 했는데 누가 준비를 했을까요? 하여튼 태어나고 보니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습니다. (웃음) 여러분이 한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걱정을 해서 여자가 태어난 것이 아니고 여자가 걱정을 해서 남자가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최고로 걱정한 분이 먼저 준비를 해 놓았기 때문에 거기에 맞게끔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아담이 안팎으로 하나되었다면 하나님은 내적인 하나님이요, 아담은 외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안에 있는 하나님은 내적인 하나님이요. 밖에 있는 아담은 외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적인 하나님이고 아담은 뭐라구요? 외적인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만물을 아담이 지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었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기술자는 아담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만물을 주관하라고 할 때 그 아담은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이 몸뚱이가 주관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아니고는 몸뚱이로는 주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 ;20)"고 했지요. 또 타락한 우리 인간이 구원을 받게 되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아담은 하나님께서 임재할 수 있는 집이죠?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본래 인간은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있어서 언제나 피조물의 입장에 서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와 동등한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내적인 절대자인 동시에 인간은 외적인 절대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입장에 선 상대적 절대자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상대적 절대자라는 말은 어려운 말입니다. 이렇게 주체적 절대자 앞에 상대적 절대자의 위치에 서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세계 우주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본연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적인 마음입니다. 알겠어요? 욕망은 나쁜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으로 인하여 갈 길이 막혔기 때문에 그러한 욕망을 달성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되고자 하는 작용은 본질적인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담이 누구라고 했지요 ?「외적인 하나님요」 외적인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해와는 누구입니까? 해와는 아담의 아내이니 외적인 하나님의 대상이지요. 그 해와 앞에 하나님도 상대되어 있으니 결국 해와는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 아담의 아내가 되는 동시에 내적인 하나님의 아내도 되는 것입니다 엄청난 말입니다. 이게 우주의 진리라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인간이 그 이상 바랄 게 있어요? 그렇게 되면 하나님 것이자 누구 것이예요?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 것이자 하나님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사랑으로 하나되었다면 타락했겠는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가 하나되어 사랑의 인연을 맺어 가지고 성혼식을 했더라면 이들의 사이를 가를 자가 있겠어요? 그렇게 되었더라면 아무리 타락을 하라고 해도 안 할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의 남자 여자도 서로가 정이 들어 아버지 어머니에게 결혼하겠다고 동의를 구했을 때에 동의를 안 해주면 나 죽는다 하면서 못 갈라진다고 하지요? 타락한 사람들도 이러는데 본연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부풀은 풍선이 터질 만큼 지독한 사랑권에 들어가서 서로가 네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랑을 했다면 사탄이 빼앗아 가지고 타락시키려고 해도 타락시킬 건데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갈라놓으려고 해도 갈라놓을 수 있을 것 같애요?

그런 사랑을 한 사람에 의해서 태어났더라면 누구의 아들딸로 태어났겠어요? 아담의 아들딸이예요? 아담의 아들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불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야 이론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덮어 놓고 아버지라고요? 못 믿겠으면 기도해 보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거짓말 했는가 목을 걸고 기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타락이 뭐냐고 하면, 기성교회에서는 선악과 따먹은 것이 타락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해적은 유물론적인 것입니다. 물질을 먹고 영혼이 타락했다 하면 물질 가운데서 정신이 나온다는 공산당의 이론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물질을 먹고 영혼이 타락해요? 그런 수작이 어디 있어? 이런 비과학적인 녀석들…. 이제 낱낱이 밝혀질 때가 온 것입니다. 물질을 먹고 영혼이 타락할 수 있어요? 영혼으로 말미암아 물질이 타락되었으면 말이 되지만 물질로 인하여 영혼이 타락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물질 가운데 영혼이 있다는 것은 유물론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기독교 자체 내에서 모순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기성교회 목사들은 자기 잘났다고 정통이라고 합니다. 그놈의 정통! 무슨 통 되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 통을 비우면 무슨 통이 돼요? 깡통이 되는 거예요, 깡통. (웃음)

아담 해와가 선악과라는 물질을 따먹은 것이 무슨 죄가 되길래 수천 년동안 그것이 고질이 되었어요? 앉아 가지고 수작만 하면 되는 줄 알아요? 이런 놈들을 전부다 잘라 버려야 되는 거라구요.

지식 있는 사람들은 내 말에 찬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의 말에 찬동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이 이 말을 듣고 기분 나빠도 할수없습니다.

아담 해와를 끌고 갈 수 있는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어떤 동네의 명문 집에 외딸이 있는데 그 외딸이 끼고 있던 반지를 네가 가졌다고 해서 너는 내 것이다 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만 그 딸이 어떤 깡패 왕초에게 걸려들어 가 가지고 그 왕초와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면 꼼짝을 못하고 주관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아버지가 아무리 딸에게 큰소리를 쳐도 어쩔 수 없습니다. 막무가내라구요. 아버지가 반대하더라도 그 깡패가 선전포고를 하면 나가자빠지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어요? 없어요? 사랑의 법도라는 것은 절대 주관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주관을 받으면 누구도 끌어 갈 수 없습니다. 내 것이라고 주장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 번 사랑에 걸려들게 되면 걸려든 자는 그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이론적으로 따져 봐도 그렇습니다. 죄가 유전이 되는 데는 먹는 것 가지고 유전이 되겠어요? 아닙니다. 혈통적 관계가 아니고는 유전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무엇을 미워하느냐? 하나님은 음란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왜? 인간이 불법으로 사랑하여 천지를 뒤엎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악의 피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의 세계에서는 독신 생활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만일 남자가 신령한 기도의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면 반드시 여자가 나타나서 시험을 할 것입니다. 반드시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도의 길을 막고 나선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선악과 따먹고 타락했다는 수작을 해 가지고 2천년까지 남아졌다는 것이 용타는 거라구요.

여러분 유대교에서는 할례를 해 나왔지요? 할례는 양피 끝을 자르는 것입니다. 왜? 제물은 쪼개야 되기 때문입니다. 피를 빼 버려야 합니다. 악한 피를 받았기 때문에 그 피를 빼 버리고 선한 피로 돌아가야 합니다. 탕감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물은 전부다 쪼갰지요?

피를 뽑지 않고는 구원이 안 되는 거예요. 악한 피를 뽑기 전에는 선한 피가 나오지 않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인간은 악한 피를 완전히 빼 버려야 됩니다. 그런 다음 다시 순수하고 선한 피를 흘려야 됩니다. 인류역사를 두고 볼 때 선한 피를 흘리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혈통복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인간

지금까지 예수를 믿어 온 신약시대의 사람들은 전부다 거짓 패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혈통을 이어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요8:44)"했지요? 여기서 우리 인간의 아버지가 누구라고요? 사탄 마귀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 인간의 애비가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마귀와 혈통의 관계를 맺고 태어났으니, 태어날 때부터 전부 다 사탄의 아들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돌감람나무이며 예수님은 참감람나무입니다. 돌감람나무는 뭐예요? 양자입니다. 핏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성경에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했지요. 양자이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양자는 절대로 직계 아들이 못 됩니다. 질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왜냐? 양자는 아버지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너희는 양자 같은 존재라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목사들은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요' 하는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요. 하나님의 종새끼밖에 안 됐어요? 이왕에 될 바에야 하나님의 종보다는 양자가 되어야지요. 하나님의 양자라도 기분이 나쁜데…. 그러니 그들은 하나님의 종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양자 되는 것이 좋겠어요, 직계 아들딸이 되는 것이 좋겠어요?「직계 아들딸요」 양자와 직계는 핏줄이 달라요. 양자는 태어날 때부터 돌감람나무예요. 돌감람나무의 열매가 뭐예요? 「……」 하여튼 열매가 있지요? 그것 기분 나쁜 거라구요. 그것은 까막까치 밥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로 되려면 접붙여야 됩니다. 참감람나무와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칙적인 법도를 가지고 나온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를 초심자가 보게 된다면 같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달라요, 안 달라요? 다릅니다. 초심자는 돌갈람나무를 더 좋아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전문가가 보면 어느 것을 좋아할까요? 돌감람나무를 잘라야 되겠어요, 참감람나무를 잘라야 되겠어요? 돌감람나무를 잘라 가지고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야 된다는 겁니다. 참감람나무의 눈 하나와 돌감람나무 전체를 바꾸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돌감람나무인 내 몸뚱이를 참감람나무인 예수님의 눈하고 바꾸었소' 하면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는 기가 막힐 것입니다. 기가 막히겠어요, 안 막히겠어요? 이놈의 자식아, 세상이 망했구나. 네 눈하고 뭐가 달라서 바꿔! 같은데 이놈아' 할 것입니다. 같아요, 안 같아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나라가 반대하고 세계가 반대하더라도, 죽더라도 이 길을 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참감람나무의 눈하고 바꿔야 돼요. 바꿔 말하면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접붙이는 것은 무엇이냐? 핏줄을 옮겨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포도주와 떡을 떼어 주시며 '이는 내 뼈요 살이며 포도주는 내 피라'고 했습니다. 떡이 어떻게 살이 되고 뼈가 되며, 포도주가 어떻게 피가 됩니까? 그것은 뭐냐 하면 사탄세계에 빠져 있는 우리의 몸뚱이가 예수님의 몸을 인계받는 데 필요한 조건물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이와 같은 접붙임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잘라야 됩니다. 자르는 데는 어디를 잘라야 되느냐? 나무는 가지를 자르면 되겠지만 사람은 어디를 잘라야 되겠습니까? 목을 잘라야 됩니다. 목을 자르면 죽는 거예요. 그러기에 죽고자 하는 사람은 살고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죽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돈 분이 아닌데 왜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알고 보면 이치에 맞는 말입니다. 이 말은 역설적인 논리로 되어 있지만 반대로 맞추어 볼 때, 그것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여러분도 통일교회를 믿으려면 죽을 각오를 하고 믿어야 됩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기반을 닦은 통일교회

요전에 기성교회의 목사들 백여 명이 와서 통일교회 원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이 원리를 듣더니 그 원리에 감화받아 가지고 '아이구 몰랐구나. 통일교 문선생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구나' 하며 말했습니다. 옛날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통일교회 문 아무개 몰아내자고 하던 일을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옛날과 비교하기조차 무섭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그렇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3월에 이 일을 또 해야 되겠습니다. 이번에도 한 백 명쯤 오게 해서 교육을 시킬 것입니다. 이제는 목사들도 자기 교회의 단에 서서 통일교회에 가지 말라고 하는 소리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알 만한 목사들을 다 왔다 갔습니다, 자기들은 통일교회 원리를 듣고 배웠으면서 교인들에 대해서는 통일교회에 가지 말라 하면 도둑놈이지요. 그런 패는 하늘이 들이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런 사람들 수법에 말려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를 잡아죽이려면 누구든지 해보라는 것입니다. 자유당 시대에도 경찰들을 포함해 내무부 장관이니 법무부 장관 등 별의별 사람들이 나를 잡아죽이려고 했습니다. 민주당 때에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내가 거기에 걸려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형편없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나와 그들의 수를 두고 볼 때 누가 수가 깊으냐 하는 것입니다. 누가 생각을 많이 했어요? 누가 연구를 많이 했어요? 공상을 해도 선생님이 많이 했지요? (웃음)

여러분보다 예수님이 생각을 많이 하면 예수님이 주체자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나부랑이라구요. 또, 하나님보다 고생을 많이 하면 하나님보다 더 주체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기보다 높다고 칭찬해 주어야 됩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건달꾼이 아닙니다. 생각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또한 선생님은 무엇보다도 실천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그런 면에서 통일교인들은 선생님 앞에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나이 많은 사람한테나 나이 적은 사람한테나 전부 다 기합을 주는 것입니다. 내게 욕을 먹고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때까지 이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남한테 뒤떨어져서는 죽으면 죽었지 그냥 살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선생님이 학생 때 씨름을 했는데 한 번 졌습니다. 그래서 3개월 동안 우리 집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를 상대로 밤낮없이 씨름 연습을 했습니다. 석달 이내에 그놈을 잡아야 되겠기 때문에 그 나무의 껍질을 벗겨 놓고 매일같이 연습을 했습니다. 선생님의 성격이 그렇습니다.

기성교회 장로 목사들이 들고 일어나 통일교회는 이단이고 문 아무개는 어떻고 하면서 핍박했는데, 선생님이 그런 것에 졌다면 벌써 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20년 동안 이런 욕을 먹어 가면서도 이제는 세계적인 기반을 다 닦았습니다. 내가 부러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장에 빌딩도 지을 수 있습니다. 고급 차를 보내라고 외국에 전보치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누가 이런 기반을 닦았습니까? 미국 사람들도 내가 전보해서 몇백 명이고 오라고 하면 올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고 일본 사람들도 오라고 하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거 보면 못났어요, 잘났어요?「잘났습니다」 선생님이 잘났기 때문에 그런 놀음을 할 것입니다. (웃음) 이제는 내가 자랑을 좀 해야겠습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은 '아이구, 통일교회 문선생이 한번 만나 주지도 않네. 이렇게 많이 왔는데 인사라도 한번 있을 줄 알았더니 말 한마디도 안해' 합니다. 내가 그렇게 인사하도록 되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만나고 싶을 때 만나는 것이지. 대한민국 그 누가 와도 만나볼 시간이 없다는 거예요.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만나 주지 않습니다. 자질구레하게 꺼덕거리는 녀석들은 만나라고 해도 안 만나 줘요. 그러나 겸손히 나와 가지고 자기의 사연을 털어 놓는 사람들은 만나 줍니다.

신문사는 또 어떻습니까? 통일교회 문선생님에 대해 특집기사를 한번 내겠다고 하면서 과거에 써먹었던 것을 그대로 베껴써 놓고는 선전한다고 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이용해서 장사해 먹겠다는 장사속이 드러나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한테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신문기자를 무서워하지 않는 패는 통일교회 문선생 패라는 것입니다.

이런 떼거지 같은 녀석들을 전부다 갈고리에 걸어 가지고 혼내 주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 신문기자 있습니까? 가서 욕하겠으면 떳떳이 나와 보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볼 수 있을 때 불러다가 욕을 해줄 것입니다. 그것도 작전상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도 필요한 거예요.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욕을 다 해봤는데 더 이상 할 욕이 있겠어요? 암만 해도 제 물구덩이 파는 짓이라는 것을 안다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이제는 욕할 거리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욕을 해도 우리는 코방귀도 안 뀌는 거예요. 욕하겠으면 하라는 것입니다. 이젠 그들이 눈물을 흘려도 늦었습니다. 그렇지요?

아담 해와가 선악과라는 과일을 따먹고 타락을 했다면 오늘날 내가 이 고생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생을 하더라도 내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보다 못나서 이런 놀음을 하는 줄 아십니까? 기성교회 신앙자들의 생활을 내가 전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다는 것도 내가 전부 돌아다녀 봐서 압니다. 그래서 그들보다 낫기 때문에 내가 이 놀음을 하는 것이지 그들보다 못하다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 기준

오늘날의 인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하나님의 자리에 들어왔느냐? 사탄이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기에 인류는 사탄의 아들딸이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가려면 사탄과의 인연을 잘라 버리고 접붙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참감람나무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참감람나무에게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접붙이려면 세상의 인연을 전부다 잘라 버려야 됩니다. 나라와 세계, 부모, 처자도 다 잘라 버려야 됩니다. 여러분이 천국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인 실체로서 이 땅에 와 가지고 누구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처자나 누구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받는 사랑이 사탄권에 있는 사랑보다 못하게 된다면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탄보다도 못한 사랑을 받는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 기준이 무엇이냐? 자기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않고서는 사탄권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아내보다 자기 남편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타락된 인류가 사탄권내의 사랑의 함정에서 빠져 나와 가장자리까지 나왔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나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여러분이 태어난 심정적 기원까지도 부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독신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앞으로 재림주가 와서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해 주겠지만 그전까지는 개인 적으로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 구원을 위주로 해서는 앞으로 갈 길이 없기 때문에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구원해야 됩니다. 이렇게 가정 전체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 재림주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 믿고 천당간다고 하지만 전부 개인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본래 천국에는 혼자 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권에 머물렀다면 그들이 천국 가겠어요, 못 가겠어요? 그렇게 됐다면 지옥이란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천국은 어떻게 가는 곳이냐? 부부를 중심삼고 그 부부가 낳은 아들딸을 거느리고 가는 곳입니다. 그리하여 아들딸 손자들과 더불어 그 족속을 거느리고 가는 곳입니다. 더 나아가서 나라 전체가 가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천국 가겠다고 하지만 천국은 혼자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절대로 혼자는 못 갑니다.

예수님이 어찌하여 천국에 못 들어갔겠습니까? 천국은 타락하지 않은 산 자가 들어갈 수 있게끔 하나님이 인간에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원칙적인 기준에 세워져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자신도 타락한 인간을 구원해 가지고 타락하지 않은 인류의 부모인 아담 해와의 자리에서 아들딸을 거느리고 들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혼자 왔다 갔으니 예수님의 자손이 있어요? 없기 때문에 낙원에 가게 된 것입니다. 천국에 못 들어 가고 낙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 가기 위한 대합실 같은 데 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와서 신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본래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신랑 신부가 되어 가지고 천국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인류시조가 타락했을망정 그 원칙은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원칙대로 꽃피우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혼자 갔으니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시 와 가지고 땅에서 풀고 가야만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땅에서 맺었으니 땅에서 풀어야 된다는 성경 말씀과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어떤 존재인가

그러면 사탄이 어떻게 했느냐? 사탄이 어떻게 했다구요? 사탄은 비법적인 사랑으로 아담 해와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여 그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본래 사랑은 절대 주관하게끔 되어 있는 것이 창조원칙입니다. 사랑의 인연을 한 번 맺게 되면 영원히 혈통적인 인연에 의해 주관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인류의 조상을 겁탈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사랑을 주관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을 중심삼고 인류를 주관하게끔 되어 있는데 비법적으로 사탄이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인류를 자기 것으로 못박아 놓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서 인류를 빼앗아 와야 됩니다. 이 잃어버린 자식을 찾기 위한 싸움이 수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무엇이냐? 사탄이 무엇이냐 이겁니다. 하나님 앞에 사탄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사랑이 많으신 분입니다. 인간의 잘못에 대해서는 몇천 번도 용서할 수 있는 아량이 있는 하나님이 왜 사탄만은 한 번도 용서를 안 해줬느냐는 것입니다. 왜 사랑을 못 해줬느냐는 것입니다.

사탄은 무엇이냐 하면 간부입니다. 무슨 기관의 간부(幹部)가 아니예요? 사랑의 원수입니다. 사랑의 원수되는 사탄 마귀가 하나님을 참소해 나온 것입니다. 6천년간 사탄의 참소를 받으며 나오시는 하나님의 고통이 얼마나 컸겠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자녀인 아담과 해와를 잘라 버렸으니 이것을 복귀하려면 잘라 버린 자체를 잘라 버려야 됩니다. 그래야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창조원칙에 따라 하나님의 아들딸이어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 인해 사탄의 아들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간부 되는 사탄과 이마를 맞대고 싸워 나오셨습니다. 참소의 조건을 막아 가면서 지금까지 인류를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런 기막힌 하나님인 줄 기성교인들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영광의 하나님으로만 알고 '오 ! 천지 영광 가운데 위대한 하나님이시여'라고 하고 있다는 겁니다.

내 아버지를 죽여 버리고 어머니를 겁탈한 사탄 마귀가 알고 보니 내 아버지의 입장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원수의 피를 받은 내 몸뚱이의 피를 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놈의 몸뚱이를 청소하기 위해 금식을 하라는 것입니다. 고생하지 않고 피를 흘리지 않고는 제대로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를 때려잡기 위해서는 고생해야 합니다. 온유 겸손하고 희생봉사하고 죽을 때까지 순종해야 됩니다. 사탄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라는 것이 통일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사탄 마귀가 어떤 것인지 알았어요? 여기 처음 온 사람들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벼락을 맞을 거라구요. 지금 여기에서 말하는 문선생이 적당히 꾸며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절대적인 것입니다.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자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제 기분 좋아요?

인간은 타락했으나 본성이 있기에 복귀될 수 있어

창조원칙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면 몸뚱이는 자연적으로 마음과 하나되게 되어 있습니다. 자연적으로 부합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은 두 주인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사탄이 인간과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핏줄을 타고 들어와 몸뚱이에 뿌리를 박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마음을 중심삼은 내적인 존재요, 사탄은 몸뚱이에 뿌리를 박고 있는 외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내적인 면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성품이 있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런 성품을 온전히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하나님은 사탄과 같이 있게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는 종이고 하나는 주인인데 어떻게 같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본래는 하나님과 아들딸인 아담 해와는 안팎으로 하나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사장인 사탄이 아담 해와를 취해 갔기 때문에 하나님은 천사장과 같이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인 하나님이 떠난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떠났지만 우리 마음은 본래의 주인과 하나될 수 있는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도 이런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힘이라는 것은 어떠한 작용을 통하지 않으면 안 나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힘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는 것입니다.

아인시타인은 '이 우주는 힘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힘이 보여요? 안 보이지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 하면,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서 작용할 수 있어요? 힘 자체는 상대적 여건을 무시해 가지고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힘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어서 생겨나는 것이지 이것을 벗어 나게 되면 안 나오는 것입니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힘이 나와요? 안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모든 자연도 이러한 관계로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공산당이 이 이론을 모르고 있다는 거라구요.

그런 점에서 볼 때 힘이 작용하는 데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 주체와 대상이 작용하는 데 있어서는 절대로 손해 나는 즉, 자기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대상과는 절대로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남자가 여자를 만나게 될 때 여자한테서 손해볼 것 같으면 그 여자와 가까이하려고 해요, 안 해요? 안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익이 될 것 같으면 열심히 만나려 한다는 것입니다. 손해나는 작용은 절대 안 한다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라면 벌써 둘입니다. 이 둘은 하나의 개체로서 요구하는 것보다도 서로가 요구하는 목적을 중심삼고 서로 부합될 수 있는 입장을 발견하기 때문에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처녀 총각도 둘이 서로 좋기 때문에 약혼하고 결혼하지요.? 그러나 어느 한 편에서든지 못하게 될 때에는 그 결혼은 깨지는 것입니다. 안 되는 거라구요. 운동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자기 자체의 목적보다 플러스될 수 있는 요건을 발견했을 때는 누가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될 때 우리 사람에게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이 작용해요, 안 해요?「합니다」 작용하는 데에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어서 서로 손해가 될 수 있는 바탕을 가지고는 작용을 안 한다고 했습니다. 양심도 손해보지 않는 입장에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은 주체가 아니면 대상이든지 둘 중의 한 가지는 결정되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뭐냐 하면, 보이지 않는 주체와 대상인 여러분 마음이 상대가 되어 가지고 주고 받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에 양심작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양심의 작용을 논하게 될 때에는 양심의 주체가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양심은 남극과 북극이 서로「주고받는 작용을 하는 것과 같은 운동을 지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과 같지 않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떠났지만 인간의 본성, 본바탕만은 본래 하나님과 합할 수 있는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작용은 우주의 공간을 넘어서까지 작용하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 가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늘을 향해서 높아지려고 하고 하늘을 찾아 가려고 하는 것은 원칙적인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그 작용을 지금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작용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작용을 중심삼 아서 섭리의 길을 밝혀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사탄은 무엇을 하느냐?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누간 주체적인 입장에 서야 되느냐? 하나님은 마음의 주체요. 사탄은 몸의 주체로서 우리 인간의 두 주인이 되어 서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플러스 플러스끼리, 마이너스 마이너스끼리는 서로 반발하는 거라구요.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우리 인간은 마음과 몸이 싸워요, 화목해요? 싸우는 것입니다.

인간의 완전 구원을 위해 종교는 통일되어야 한다

인간은 절대적인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로서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이 두 목적을 대해 가지고 방향을 달리하는 작용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하나의 목적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달리 두 가지의 목적을 추구하는 마음사람과 몸사람을 가지게 되었으니 이것이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몸뚱이를 때려잡아야 합니다.

종교는 무엇을 하는 것이냐? 마음을 중심삼고 몸뚱이에 경고하고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두고 볼 때 마음사람과 몸사람으로 되어 있는 인류는 고장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장난 인류를 수리하기 위해서 수리공장을 만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지금까지 인류는 고장났으니 이것을 다시 수리해 가지고 하나님이 좋아하고 그 자체가 좋아할 수 있는 것으로 다시 재생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생품이나마 본래의 목적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장난 인류가 수리공장을 통해 바로 잡아지기를 하나님께서도 바라실 것이요, 여러분 자신들도 바랄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이 땅 위에 인류 역사와 더불어 싸움을 거쳐오면서 인간들을 수리공장에 집어넣기 위한 운동을 해 오셨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종교운동입니다. 알겠어요? 종교가 뭐라구요? 수리공장이라구요, 수리공장. 그러기에 종교의 교주가 누구냐 하면 기술자입니다, 기술자. 알겠어요? 예수도 기술자고, 석가도 기술자고, 공자도 기술자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의 문명의 발원지를 두고 볼 때 반드시 종교의 사상을 통하지 않고는 생겨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 인류는 종교권내로 몰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없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끝날이 다가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하면 통일종합 수리공장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분품 수리공장에 가고 싶어요, 종합 수리공장에 가고 싶어요?「종합적인 공장에 가고 싶습니다」 물어 볼 것도 없습니다. 전부다 종합적인 수리공장에 간다고 할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종합적인 수리공장이라면 통일교회의 선생님은 무엇이 되겠어요? 「기술자입니다」 나는 이제 기술자 안 해요. 여러분이 해보십시오. 선생님은 뒤에서 앉아 있겠어요.

역사적인 사실을 두고 볼 때, 하나의 나라를 중심삼은 것보다도 전세계가 하나되어 함께 살기를 바라는 소망이 외적으로 벌어지는 때가 왔다면 오늘날 하나님을 중심한 종교, 세계의 수리공장도 자기의 종교를 초월하여 가지고 세계사적인 입장에서 공동적인 통일수리공장 즉, 종합 수리공장을 건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귀추로 봐서 필연적인 것입니 다. 그러면 역사가 요구하는 시대에 있어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것을 주장했다면 잘했어요, 못했어요?「잘했습니다」 잘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하여 칭찬은 못할망정 왜 그 야단들입니까?

여러분은 수리공장에 들어왔으니 전부다 분해되어야 됩니다. 분해되어야 돼요. 안 되어야 돼요? 분해되어야 합니다. 완전히 분해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분해가 되는 데 있어서 초보자에게 분해되고 싶어요, 전문가에게 분해되고 싶어요? 통일교인은 전부다 선생님에게 분해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선생님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흠도 안 내고 분해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지구장이 있지만 말이요, 지구장 따라갈래요, 선생님 따라갈래요?「선생님 따라가겠습니다」 지구장 앉혀 놓고 망신 주는 법이 어디 있어요?(웃음) 그것은 왜냐하면 선생님이 기술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영물이기 때문에 더 좋은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장이 있는 앞에서도 체면불구하고 선생님을 따라가겠다고 하는 겁니다. 선생님이 보기에 오늘 처음 본 사람도 있는데, 선생님 따라갈래요? 몰라서 그렇지 알기만 하면 선생님을 따라가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아들딸을 찾는 것이 소원이지요. 그러면 아들딸만 찾아 가지고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겠어요? 하나님의 소원이 아들딸 둘만 찾는 것이예요, 한 나라를 찾는 것이예요? 하나님의 소원이 아들딸만 찾는 것이겠어요? 가정을 찾고 나라를 찾고 세계를 찾는 것입니다. 인간이 본래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출발을 한다면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게 되지요? 그렇지요? 누구의 가정이라고요? 하나님의 가정입니다. 이것이 많아지면 누구의 종족이라고요? 하나님의 종족이 이루어집니다. 땅은 누구의 땅이예요? 하나님의 땅입니다. 사람은 누구의 사람이지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족이 점점 많아지면 민족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주권이 있어야 되는데 그 주권은 누구의 주권입니까?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백성은 누구의 백성이예요? 땅은 누구의 땅이예요? 전부다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커지면 땅 위의 세계가 하나의 세계가 되겠어요, 두 세계가 되겠어요?「하나의 세계가 됩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의 주권을 이루는 하나의 백성이 되어 하나의 주인으로부터 지배받는 하나의 세계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 주인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할 때, '하나님은 하나님이지' 그렇게 막연하게 대답하면 안 됩니다.

타락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참부모

하나님은 우리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스승 중에 제일 큰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 중에 대왕 선생님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모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부모로 말하자면 부모 중에서도 첫째 부모입니다. 즉, 참된 부모입니다. 왕으로서는 만왕의 왕입니다. 누가? 「하나님이요」 하나님입니다. 알겠어요 ?

하나님은 선생님 중에 첫째 가는 선생님이요, 부모 중에 첫째 부모입니다. 부모 중에 몇째 부모라고요?「첫째 부모요」 첫째 부모라면 그 부모가 가짜 부모이겠어요, 참부모이겠어요?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그런 참부모가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부모가 되었어요?

통일교회에서는 기도를 마칠 때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맨 처음 참부모는 하나님이 될 것 아니겠어요? 그래, 기도를 하면서 빌 때에 누구를 통해서 빌어요? 무엇을 할 때도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게 되어 있잖아요? 그렇지요?

여러분이 물에 빠져 있을 때 누가 구해 주기를 원해요? 구주가 와서 구해 준다고 할 때, 이웃 동네의 할아버지가 구주가 되어 구해 주기를 원해요, 자기 동생이 구주가 되어 구해 주기를 원해요? 자기를 구해 주는 구주가 형님이면 좋겠어요, 동생이면 좋겠어요?

누가 와서 구해 주었으면 하겠어요? 자기 아내가 구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아닙니다. 자기 부모가 와서 구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구주 중에서도 일등 구주인 부모가 와서 구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고통을 자기 뼛골에 사무치는 고통으로 아는 분이기 때문에 자식은 아버지 어머니 되는 구주를 찾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신이 뭐냐 하면 어머니 신입니다. 죄는 여자가 지었기 때문에 여자를 대신해서 어머니 신으로서 죄를 씻는 역할을 하는 것이 성신입니다. 아버지는 낳아 주는 역할을 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성신은 예수님을 사모하는 데 있어서 세상의 남편 이상 사모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는 예수님을 못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승인을 못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신이 어떻게 해서 되었는지 몰라 가지고는 신부가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신부가 될 수 있겠어요? 어림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면 스승 중의 스승이요, 부모 중의 참부모요, 대왕 중의 참대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효도하는 것이 결국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부모 앞에 효도만 하게 되면 천국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타락을 안 했으면 부모의 말을 잘 듣고 부모를 따라 가르침대로 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천국에 가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세상의 인륜도덕을 중심삼고 볼 때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군왕에 대하여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연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이 주권자가 되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 앞에 충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충신과 효자의 도리를 다하게 된다면 천국은 내 것이요, 그 주권도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의 사상을 가르치는 동양사상이 그런 면에서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면 가르침 중에 누구의 가르침이 제일 위대한 가르침이냐? 스승의 가르침보다 부모로서 스승의 가르침을 대신할 수 있고 부모로서 나라님을 대신할 수 있다면 그런 부모를 가진 자식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 부모가 가지고 있는 것이 누구 것이 되겠어요?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부모와 같은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러한 분으로 계시는 하나님에게 나라가 이 땅 위에 있습니까, 주권이 이 땅 위에 있습니까, 백성이 이 땅 위에 있습니까?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전부다 하나님의 것이 되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안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신민을 세워서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으니 그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와서 상대를 찾아야 했습니다. 신랑 신부가 되어서 가정을 이루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부가 되었다면 예수님의 아들딸이 있겠어요, 없겠어요?「있습니다」 그럼 그 아들딸은 하나님의 뭐가 돼요? 손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손자가 많으면 좋겠어요, 적으면 좋겠어요?「많으면 좋습니다」 손자가 많아지면 하나의 족속을 이루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나라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나님의 땅에 주권을 세우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겠느냐? 이 일을 하려다가 못한 것이 한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이 가야 할 최고의 길

타락한 인간이 가야 할 길은 참된 인생길입니다. 그런 참된 인생길을 어떻게 찾아가야 하겠습니까? 타락한 인간으로서 어떤 길을 찾아가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의 자리, 딸의 자리를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딸 중에서도 어떤 아들, 어떤 딸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딸이 백 명쯤 있다면 그 중에 첫째 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동생들을 돌보지 않으시면 첫째 딸로서 하나님 대신 동생들을 돌보고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주어야겠어요, 안 해주어야겠어요? 공부시켜 주어야 되겠어요, 안 시켜 주어야 되겠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 겉으로 나타나야겠어요, 안 나타나야겠어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고생과 씨름을 해야 된다는 거라구요. 첫째 딸이 되어서 이런 일을 못 하게 되면 하나님의 최후의 사랑을 누가 받겠어요? 막내 딸 아니라 망나니 같은 딸이라도 전체를 책임지고 제일 고생을 많이 했다면 그 딸이 최후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첫아들과 첫딸이 되었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자 첫째 아들의 자리를 찾아 나온 것이요, 첫째 딸의 자리를 찾아 나오는 인생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런 사랑을 받으려면 자기 자신을 위주로 살아야 되겠어요, 남을 위주로 살아야 되겠어요? 형제를 위주로 해서 살아야 되겠어요, 나를 위주로 살아야 되겠어요? 아버지 대신 내가 희생해야 된다는 거예요. 어머니 대신 희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대신하여 제일 많이 피를 흘리고 오래 참고 극복한 사람일수록 깊고 넓고 높은 사랑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아버지 어머니의 전체를 상속받을 수 있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막내 딸로 태어났든지, 막내 아들로 태어났든 지간에 첫째 사랑을 점령하고 부모의 사랑을 몽땅 차지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고 참된 인간으로서 등장하는 자리를 찾아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이 인생이 가야 할 최고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세계 만민을 위해 살라

여기 성북교회에 통일교인이 백 명 있다면 여러분은 그 백 명을 죽이는 사람이 될래요, 백 명을 위하는 사람이 될래요?「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 다」 그렇게 위해도 상대가 안 받겠다고 한다면 그만두어야겠어요. 안 받으면 큰일난다고 하면서 받아 달라고 해야겠어요? 여러분은 빌면서라도 받아 달라고 해야 됩니다. 왜냐? 상대가 안 받으면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맏딸 맏아들의 자리에 못 서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 받을 때는 울면서라도 주겠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틀림 없이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딸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것입니다. 그가 죽고 난 후에 그 터전 위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꽃이 핀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라고 했습니다. 독생자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첫사랑을 몽땅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독생자는 있었는데 독생녀가 있었어요? 독생녀를 못 만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첫사랑을 몽땅 받을 수 있는 독생녀를 만나기 위해서 예수님은 재림하는 것입니다. 재림주가 와서 뭘 할 것이냐? 어린양 잔치. 즉 혼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첫사랑을 몽땅 받은 남자와 하나님의 첫사랑을 몽땅 받은 여자가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의 자리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할 예수님 자신은 세계 만민을 위해 희생한 것입니다, '내가 받을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너희들에게 넘겨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주며 복을 빌어 주었던 것입니다. 원수를 위해 생명에 복까지 플러스해서 넘겨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는 죽어서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종교 중에 제일 위대한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부자의 관계로 설파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최고의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오래 남아질 수 있는 분은 예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인이 무엇인지 알지요? 위인은 대한민국에 많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누가 위인이예요? 이순신 장군이지요. 그렇지만 나는 이순신 장군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순신이 참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된 사람이라면 원수 나라에서도 참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이순신은 대한민국에서는 분명히 애국자입니다. 하지만 일본에 있어서는 원수라는 것입니다. 참사람은 원수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국가를 초윌합니다. 위인은 국가 라는 환경을 못 넘어선다는 거예요.

그러나 성인은 국가를 초월합니다. 성인의 사상은 자기 나라 일개국을 위해서 사는 사상이 아닙니다. 위인들이 가는 길에는 눈물을 흘려 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성인들이 가는 길에는 그 나라 전체가 떠다 밀고 원수시합니다. 그래도 성인들은 그 길을 가겠다고 하며 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제자 할 것 없이 전부다 도망을 가지 않았어요? 그들 중에 한 명이라도 예수님 편만 들어 주었어도….

예수님은 십자가 길에서 죽게 된 강도와 사정을 나눠야 하는 단신이었던 것입니다. 나라 전체가 배반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 소원과 뜻은 만민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사정은 하나님만이 알아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불쌍하기는 어떤 성인보다 불쌍했지만 세계 만민을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갔기 때문에, 그 일은 세계적인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자리는 전체를 위하는 자리로 종결되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인간의 역사가 출발하면서부터 종교가 뒤따라 나왔느냐 ? 그것은 참사랑을….

우리가 4대 성인을 두고 보더라도 그들은 전부 다 종교의 교주들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성인이 못되는 것입니다. 그는 단지 철인일 뿐입니다. 철인은 무엇이냐 하면 지식의 왕자입니다. 그 지식을 가지고는 생명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사리에 대하여 판단은 할 수 있지만 생사의 권을 판단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천륜과 인륜, 천정과 인정을 합하는 참아들딸이 되라

생명을 지배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신 이외에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생명을 지배해 오는 것입니다. 인간은 죽더라도 행복을 저버리지 않지요? 그렇기 때문에 교주들이 가르쳐 준 주류사상이 무엇이냐 하면 신을 위주한 사상입니다. 즉. 하나님을 위주로 해서 전부 가르쳐 주었습니다. '신을 본받아라! 신을 따라가라 ! 신을 위해 살아라 ?고 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참된 길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사람이 결정한 것을 믿는다고 했어요, 안 믿는다고 했어요?「안 믿습니다」 그것은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위주로 해 가지고 도리를 펴지 않고는 참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위주하고 인류의 가야 할 도리를 가르친 사람이 성인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따라서 성인들치고 하나님을 빼놓고 생각한 사람은 없습니다.

공자는 '위선자는 천보지이복하고 위불선자는 천보지이화니라(爲善者 天報之以福 爲不善者 天報之以禍)'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천이 뭐냐?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 나는 신랑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정적인 사상 체계를 들고 나오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명실공히 세계적인 성인이 안 될 수 없는 것이요,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은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자리에 예수를 안 세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기독교 문화권이 오늘날 세계의 중심을 이룬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신을 떠난 인륜, 인정이라는 것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신을 빼놓은 인륜이 있을 수 없고 신을 빼놓은 인정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륜과 인륜은 합해져야 되고 천정과 인정도 합해져야 됩니다. 그런데 다른 종교에서는 이 천정을 몰랐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격적인 신만 알았지 정서적인 신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유교도 그저 유도가 있음을 말했을 뿐이었으며 불교도 역시 확연히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가 위에 서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천륜이 있은 후에야 인륜이 설 수 있는 것이요, 천정이 서 가지고야 인정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정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천륜을 따라오면서 천정을 몰랐다는 거예요. 그러면 천정이 무엇이냐? 인간이 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한 가정에서 맺어져야 하는데 그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종교가 해결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가 무엇을 중심삼고 나오느냐? 천륜과 천정을 중심삼고 인륜과 인정을 합한 가정적 종교, 구도의 도리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종교는 없었습니다, 오직 자기 개인만 하나님 믿고 천당가려고 합니다. 그려나 통일교회는 천국은 혼자 가는 곳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부부가 하나되어 사위기대를 이루지 못하면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 이래 이런 가정적 구도의 도리를 비로소 체계적으로 잡아놓은 곳은 통일교회뿐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를 믿고 가는 사람은 가정이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이루는 행사가 통일교회의 합동결혼식입니다. 알겠어요? 합동결혼식에 대하여 세상에서는 비웃고 별의별 소리를 다 하지만 이 축복의 내용이 얼마나 멋지고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륜과 인륜, 천정과 인정이 합하는 참아들딸의 모습으로 인륜을 대표한 참장남과 참장녀의 위치에서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지상의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이 땅 위에 태어난 참된 인간으로서의 목적을 완성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입니다. 이 길이 참 사람이 가야 할 길입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여기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 살피시옵소서. 가련한 인생으로 태어난 모습이 얼마나 비참하였던가 하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수난의 탕감노정을 거슬러 가기 위해 아버지께서 역사노정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가 하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 오늘날 돌고 도는 역사의 고빗길에서 처량한 심정을 그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아버지의 깊으신 아픔이 있는 것을 저희들은 생각하게 되옵니다.

찾아오신 삼천리 반도 이 강산에 수많은 백성들이 살고 있지만 몰리고 쫓기는 보잘것없는 통일의 무리들만이 남아 있는 그 자리에 놀라운 천륜의 인연으로써, 누가 말하지 않아도 서로서로 확신을 가져 내일의 소망을 다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생활 터전을 갖게 하여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이 한자리가 6천년 소원 가운데 나타난 자리인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때가 가까워 옴에 따라 저희들의 사명이 얼마나 엄중하고 귀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은사를 주신 것을 아버지 앞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옷깃을 여미고 무릎을 꿇을 때 하늘을 향한 심정이 불타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충신의 도리와 효자 효녀의 도리를 다하여 역사시대의 충신 열녀들 앞에, 효자 효녀들 앞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고 만세에 내세워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효자 효녀의 모습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러한 부족함이 없는 소망의 아들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서 아버지 앞에 인정받게끔 저희들은 생명을 다 바쳐 나가야 되겠습니다.

부족한 자신임을 저희들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높고 귀하신 아버지의 수고가 저희 생활 가운데 머무르신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저희들은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하여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야겠고, 하늘이 기뻐할 수있는 충효의 도리를 다하기 위하여 시간을 아껴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의 좁은 마음을 넓혀 주시옵고 죄악의 후손으로 태어난 저희들에게 있는 악한 피의 뿌리를 뽑으시어서, 당신이 취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당신의 아들딸의 모습으로서 지켜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참된 인생길이라는 제목을 중심삼고 당신의 자녀들 앞에 말씀하였사오니, 이 내용이 앞으로 이들이 새로운 생명길을 가는 데에 힘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사망의 세계에 있어서 모든 것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팡이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이 뜻과 일치되어 승리의 결과를 가져 올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이 시간 아버지께서 영광받으시옵고, 기뻐할 수 있는 은사를 이들에게 내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오늘 특별히 이곳 동대문지구 본부에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모였습니다. 이곳에 모인 자녀들로 말미암아 당신의 경륜하신 뜻을 성취하시옵소서.

엄청난 복귀섭리의 노정을 두고 생각해 볼 때, 어느 시대든지 하늘을 위하고 하늘의 뜻을 따라서 그 사명을 책임지기 위해 온갖 충성을 다하던 사람들이 아버지 앞에 불리움을 받았고, 그들이 하늘이 분부하신 뜻을 상속받아 후대의 인류 앞에 전승시켜 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이 자리에서 지난날의 역사과정을 돌이켜 볼 때, 숱한 선조들이 하늘을 대해 눈물과 피의 대가를 치르면서 충성해 나왔던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수고의 인연을 통하여 아버지께서 붙들어 주신 터전 위에 오늘 보잘 것 없는 저희들이 겸손히 엎드려 있사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은 역사적인 계승자가 되지 않으면 안될 자리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겸손한 자의 마음을 따라 겸손을 본받게 하시고, 수많은 충신 열사들이 간 길을 본받아 아버지의 뜻 앞에 모든 것을 바치면서 순응하는 참다운 아들과 딸의 모습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자녀들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

부족한 자신을 아버지 앞에 낱낱이 아뢰게 될 때에 어찌 아버지의 긍휼을 받을 수 있는 자가 있겠습니까마는, 당신의 수고와 역사적인 저희 선조들이 희생한 공적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오늘 저희들이 선한 기준 위에 연이어 섰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철모르는 가운데서 여기에 인연되었지만 배후에서 아버님이 수고하셨고 수많은 저희의 선한 선조들이 희생한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제 저희들이 선하신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기 위하여 선의 선조들이 남긴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오늘 이 시대에, 저희 일대에 아버지께서 요구하시는 전체 사명 앞에 필요한 개체개체들로서 저희들을 불러 모으시고 뜻과 인연되었을진댄, 이 자리가 아버지의 서러움을 자아내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기필코 중심이 되시어서 당신이 남기신 시대적 승리의 터전을 이 자리에서 기쁘게 소생시켜, 아버님이 운행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거룩한 장소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당신이 그리던 자녀들이 한 자리에 모였사오니, 여기의 주인은 당신이 되시옵소서. 일체를 당신이 관리하시고 당신이 허락하신 섭리역사 앞에 일체화시키시어 내일을 보장하고 현재를 책임질 수 있는 참된 아들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잠깐 당신이 허락하신 이 시간은 말씀을 통하여 저희들이 아버지와 인연되는 귀한 시간이 되겠사오니, 아버지께서 일체를 주관하시어서 죄악의 요소와 선에 반대되는 모든 성분들을 제거시켜 주시옵고, 선과 화합하고 선만이 중심이 되어, 저희 각자의 몸 마음이 온전히 충만한 자리에, 아버지, 화합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곳을 위해 기도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을 것이오니, 그들에게도 일률적인 은사와 아버지의 사랑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말 씀

오늘 저를 처음 보는 분이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상당히 많군요. 내리세요.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인생길이 어떤 길인지 자기도 모르면서 그대로 가고 있고, 혹은 알기 위해 노력하면서 가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의 풍습과 법을 따라서, 한국 사회 제도권내에서 생활해 나가고 있습니다. 미국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세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도 역시 각기 다른 환경과 배후의 인연을 따라서, 그 나라 사회제도에 따라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처해 있는 형편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다 하더라도 인간 스스로 가야 할 목적지는 하나입니다. 세계의 수십 억 인류가 모두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현재의 입장에서 그 목적지를 알거나 모르거나간에 그 목적지를 찾아 허덕이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자기가 처해 있는 자리가 확실해야 됩니다. 또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보람 있어야 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생활이 가치 있는 생활이어야 됩니다. 아무리 가치적인 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생활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원치 않는 생활인 것입니다. 지내놓고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그것이 나에게 자랑이 되고, 그렇게 살아온 나 자신을 스스로 장하게 생각하면서, 내일도 보람 있는 생활이 되기를 추구하면서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즉, 행복이라는 것은 오늘 살고 있는 자리에서 나 스스로 행복하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그 행복한 자리는 과거가 입증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과거에서 보게 될 때 그래야 되겠다는 공인의 기준이 되어야 되고, 현재에서 보게 되면 만민이 바랄 수 있는 소원의 기준이 되어야 되고, 미래에서 바라보게 되면 그것을 후손들에게 남겨 주기를 바랄 수 있는 내적인 기준이 설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아무리 현재의 자신이 행복하다 하더라도 그 행복은 흘러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자기 개인만을 중심삼은 행복은 역사와 더불어 관계를 맺지 못하고, 시대와 더불어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 앞에도 도움을 준다든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혼자 살지 않기 때문에, 나의 행복은 곧 나라의 행복과 연결되어야 하고, 나의 행복은 오늘날 사회와 연결되어야 함과 동시에, 과거도 이 행복에 대해 보증할 수 있고 미래도 보증할 수 있는 행복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순간에 머무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을 추구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는 자신이 아무리 행복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일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일 때에는 오히려 불행한 사람보다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소망하는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간다, 나는 이러한 사람이다'라고 하면서, 목적한 바가 뚜렷하고 그 목적에 대한 관념이 철두철미해 가지고 오늘의 생활이 내일을 향하여 가는 길에 있어서 보람 있는 터전이 되고,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그것이 더욱더 자기에게 행복을 확대시키는 자극적인 것이 된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면 현재의 내가 아무리 행복하다 하더라도 갈 곳을 모르고 머물 곳을 모르는 자리에서 행복하다고 한다면, 그 행복은 나와 아무 상관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런 행복은 나와 더불어 같이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분리되어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목적의식이 뚜렷해야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인생으로서 현재에 행복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의 인생이 가야 할 목적지점에 도달하기를 바라고 누구보다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소원의 뜻이 철두철미하여서, 그 소원을 중심삼고 오늘의 생활을 거기에 방향을 맞추어 사는 사람은, 그 소원이 점점점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보면 볼수록, 어제보다도 오늘, 오늘보다도 내일, 내일 보다도 일 년, 이렇게 우리 인생이 바라는 목적지를 중심삼고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그 목적의 때가 가까와 오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 서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진다 하더라도 그것을 불행한 것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한 목적지점이 가까와 옴을 느낌으로 말미암아 보다 큰 행복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사람이든지 목적 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목적이 철두철미하고 확실해야 현재에 처하고 있는 행복도 확실한 것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민족을 놓고 이 민족이 불행한 민족이냐 행복한 민족이냐 할 때에, 현재 입장으로 보면 불행한 민족이라고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불행한 민족이라 할지라도, 이 민족이 세계 어떤 민족보다도 뛰어난 목적관을 갖고 매일같이 그 목적을 향해서 개척하고 건설하고 싸워 나가고, 세월이 감에 따라 그 나라가 바라던 목적의 세계가 점점 다가오는 것을 실증적으로 느낄 수 있는 민족이라 할진대는, 불행한 민족이 아닙니다. 현재는 그 민족이 아무리 못산다고 해도 불쌍하지 않다 이겁니다.

만일에 지금 아무리 잘산다 하더라도 내일의 갈 길을 보장받을 수 없는 비운에 처해 있다고 할진대는, 오늘의 이 행복 자체가 내일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도리어 오늘의 행복이 내일의 불행을 자초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의식이 뚜렷한 입장에서 이것과 직전 관계를 맺어서 내일의 승리를 스스로 다짐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승리야말로 전체가 환영할 수 있는 승리입니다. 그런 내가 되어야 전체의 승리자가 될 수 있고, 국가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승리의 범위가 보다 넓은 관계를 갖고 그 목적이 있는 것을 확실히 알면 알수록 아무리 어려운 길을 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세계 인류를 통틀어 보면 남자와 여자가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목적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목적의식도 없이 그냥 그대로 사는 사람도 있고, 그 국가면 국가에서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목적을 바라보고 환경의 어려움을 헤치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나라 정세면 정세에, 세계 정세면 세계 정세에 휩쓸려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인생에 대해 목적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이며, 역사와 더불어 시대와 더불어 싸워 나가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하게 될 때, 그래도 그런 사람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그중에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목적을 갖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사람은 목적도 없이 인생행로에 있어서 그날그날 그대로의 생활을 중심삼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인들의 목적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우리는 이렇게 이렇게 살아 나감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세계를 맞이할 수 있으며, 우리들이 이러한 참나라를 맞이할 수 있다'고 하는 목적의식이 뚜렷합니다. 그러한 목적관을 중심삼고 나가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현재의 환경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그 어려움보다 더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타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적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정세의 변천에 따라 변하는 정세와 더불어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간도 역시 뚜렷한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간다면 어떠한 어려운 환경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즉, 국가를 위해 애국한다든가, 혹은 세계를 위한 세계적인 사상이나 주의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와 목적은 인간만을 위하는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신이라는 절대자를 개입시켜 가지고 그 절대자의 목적과 인간의 목적을 공동으로 추구하며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슨 사상이니 무슨 주의니 하는 하나의 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예를 들어 민주주의라든가, 공산주의와 같은 어떠한 이념을 중심삼고 자기 입장에 치우쳐 가지고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나 신을 빼놓고 사람 위주한 사상을 세워 가지고 목적점을 향하여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는 그만두고 나라면 나라를 중심으로 하나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단체를 중심으로 하나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가정을 중심으로 하나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개인으로서 출세하기 위한 하나의 목적 의식을 갖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개인을 중심한 목적, 가정을 중심한 목적, 혹은 단체나 나라를 중심할 목적을 가지고 나간다 하더라도 그보다 더 높은 정세가 변하면 그 모든 것은 흘러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의 단체를 위해 나가면 국가의 정세가 변하게 될 때 단체를 표준하고 나가던 그 모든 목적은 흘러가 버리게 되는 것이요, 하나의 국가를 위해 나가면 그 국가가 세계정세에 휘말려 들어가게 될 때 국가를 표준하고 나가던 그 모든 목적은 흘러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 인간이 세계적인 주의를 가지고 나간다 하더라도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차원을 높여 가지고 나갈 수 있는 한 고비를 벗어나지 못하고 거기에 휩쓸리게 된다면 그 이상의 고비는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디에 목적을 두어야 할 것인가

인간으로서 최후로 목적해야 할 곳이 어떤 곳이냐? 인간만을 위주한 세계주의를 가지고도 안 됩니다. 오늘날 공산주의 사상은 인간을 위주한 하나의 세계주의입니다. 그렇지만 민주사회나 종교사상을 중심삼고 보면, 이것은 인간을 위주한 그런 주의는 아닙니다. 인간의 목적과 신의 목적을 합한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어느 한때에 자기들끼리 부딪쳐 쓰러지더라도 신의 높은 이념이 있으면, 그 신의 이념이 남아져 가지고 부딪쳐 쓰러져 있는 인간들을 다시 산발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만을 위주한 사상일 때에는 여기서 최후를 고하게 되고 말 것이로되 인간과 신이 합동하여 하나의 목적을 세워 나가는, 그런 목적이 있다면 이것은….인간이 미급하여 그 목적의 자리까지 못 나간다 하더라도 신이 중심이 되어 있으면 인간이 미치지 못하는 그 분야를 신을 중심삼고 개척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분야를 신을 위주로 하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찾아 나가는 최후의 목적을 어디에 둘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그 목적을 가정에 두게 되면, 사회가 휩쓸리게 될 때 그 가정의 모든 것도 휩쓸리게 됩니다. 단체에 목적을 두면, 나라가 휩쓸리게 될 때 그 단체는 여지없이 파탄되고 마는 것입니다. 나라에 목적을 두면, 세계 정세가 급변해 들어갈 때 그 나라의 운명은 파탄되고 그 목적은 깨어져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에 목적을 두고 나간다 하더라도, 인간을 위주로 한 범세계주의가 있다 하더라도 천운이 다가오게 되면 그것은 천운에 몰려서 말로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모르겠거니와, 하나님이 있다면 반드시 인간을 위주한 주의 주장은 끝날 때가 올 것입니다. 최후에 인간 위주하던 주의 주장이 끝나는 때와 더불어 필히 신의 이념을 주장하는 그런 주의 사상이 최후에 남아져서 갈 수 있는 역사적인 하나의 길이 있을 것이다 하는 것을 우리가 예측해 보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무엇을 목적으로 해야 되느냐? 개인을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가정을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단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국가를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세계를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하늘땅을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하늘땅을 중심해서 인간을 위주하여 목적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인간이 합한 목적을 향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최후까지 남을 수 있는 목적

그러면 어느 목적이 최후에 남을 것인가? 개인을 위주하는 것은 흘러 가는 것이요, 가정을 위주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이요, 자기 단체를 위주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이요, 나라를 위주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이요, 세계를 위주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맨 나중까지 남을 수 있는 하나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신(神)과 인(人)이 합동해서 추구하는 목적입니다. 그런 목적만이 인간 역사의 최후에까지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우리 개개인을 두고 볼 때, 너는 어떤 사람이 되겠느냐고 물으면 누구나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대답합니다. 훌륭한 사람이 된다면 어느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인가?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백성 가운데 제일 가는 대통령이 될 것이냐? 대한민국 사람만을 두고 보면, 어느누구나 대한민국에서 제일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제일이 됐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세계에서 제일이 되고 싶어합니다. 세계에서 제일이 된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세계보다도 더 높은 것이 있고 더 높은 분이 있다면 그 자리에 가기를 원하고 그분과 손을 잡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욕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을 위한 목적보다도 가정을, 가정을 위한 목적보다도 단체를, 단체를 위한 목적보다도 국가를, 이렇게 점점 더 큰 목적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노정을 두고 볼 때, 오늘날 인간들이 어디까지 왔느냐 하면 국가만을 목적으로 하던 때는 지났습니다. 세계를 위주하는 주의 사상이 서로서로 복잡한 환경을 중심삼고 우리의 생활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인간만을 위주하는 주의 주장이 세계적으로 번성해 가지고 인간들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같이 보여지는 것이 오늘날의 세계정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의가 마지막 주의는 아닙니다. 신이 없다면 인간을 위주로 한 주의가 누구든지 바라는 최후의 소망의 세계관으로서 남아질지 모르지만, 신이 있다면 신과 인간이 합동으로 바라는 소망을 중심삼아 가지고 반드시 인간들이 규합해 가야 할 참길이 남아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신은 최고의 분이요, 절대자이시기 때문에 절대자가 바라는 목적은 절대적인 것이요,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간을 중심한 세계의 어떤 주의보다도, 인간들이 바라는 어떤 목적보다도 절대적인 입장에 선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목적을 중심삼고, 거기에서 비로소 인류가 바랄 수 있는 참된 목적점을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 인간만의 목적을 중심삼고 나오는 것은 우리 인생이 타당한 목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 개인을 두고 볼 때에, 어떻게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냐? 인간에게는 하늘땅을 대표해서 자기 자신이 전체 앞에 더 높아지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이 있습니다. 이 욕망은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그런 작용을 하느냐? 인간은 세계를 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고, 자기가 중심이 되어 세계 인류를 끌고 가고 싶어하고, 자기가 누구보다도 최고의 자리에 서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체를 보면,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귀결되고 싶어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라는 목적이 인류가 공히 바라는 목적이 되어 가지고 안팎으로 들어맞을 수 있는 새로운 목적적 세계가 오늘 이 지상에 나타나면, 그때야말로 인간 역사 시대에 새로운 인간으로 바랄 수 있는 소망의 때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참된 사람인가

여러분들이 세계적으로 제일 위대한 사람이 있다면, 세계적으로 제일 훌륭하고 선한 사람이 있다면, 그 선한 사람을 골라낼 수 있느냐? 진정한 의미에서 대한민국에서 제일이 되는 사람을 우리 인간이 골라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백 퍼센트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참된 사람인지 거짓된 사람인지, 이에 대한 확실한 결정적인 기준이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을 빼내어 가지고 참이라고 결정하면 그 사람이 참사람이 될 수 있느냐?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서는 세 사람 중에 두 사람, 두 사람 중에 한 사람, 이렇게 해서 세울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한 사람을 참된 사람이라고 선정했을 때, 그 한 사람을 두 번째 사람이나 세 번째 사람이 과연 우리가 바라던 소망의 참사람이라고 하면서 그를 중심삼고 자기들이 움직일 수 있느냐 할 때에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선정했을 때는 도리어 거기에 불평을 한다는 것입니다. '네가 뭐냐' 하면서 참소를 하는 것입니다. 너하고 나하고 볼 때 조금은 차이가 있지만 너를 선정한 일원들이 틀릴 수도 있다고 항거한다는 것입니다.

너를 정한 사람들이 절대적인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정한 것 또한 백 퍼센트가 아니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백 퍼센트가 아닌 만큼 그것이 완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중심삼아 첫째 되는 사람에게 둘째 되는 사람이나 세째 되는 사람이 항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면으로 보게 되면, 즉 외모로 보나 학력으로 보나 내가 당신보다 나을 수 있다. 하나하나 뜯어볼 때에 전부 너보다 나을 수 있는 내용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네가 결정됐다 하는 것은, 배후에서 결정한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결정될 수 있다' 하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사람들이 결정한 참된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다 해서 그것을 믿을 수 있느냐 이겁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에도 어떤 사람을 놓고 이 사람이 참된 사람이라고 하면서 전세계 인류가 동원해 가지고 참된 한 사람으로 세웠다 하더라도, 세 사람에서 두 사람, 두 사람에서 한 사람, 이렇게 세웠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그 사람이 어떤지 알게 뭐야? 도리어 그 사람보다 내가 낫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한 사람 자신들이 불완전하기에 정한 사람들을 불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완전한 선의 자리에 절대적으로 선 것도 아니요, 그들 자체가 불완전한 입장에서 결정한 것이니 완전하다는 결론이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어떤 한 사람을 인류가 바라는 참사람이라고 정했다고 해도 그것은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게 되면 인간으로서 찾아 나오고, 인간으로서 주장하고, 인간으로서 제창한 세계주의가 있다 할 때 그것이 참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국가주의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참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과정에 있어서의 주의 주장은 변해 나가는 것입니다. 주권이 달라지고 국가가 달라지면서 반드시 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역사과정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참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미래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역적 변천에 의해서 그 자체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역이야 천번 만번 변해도 그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절대적입니다. 참은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도 그래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참사람을 결정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되면 사람은 어디까지 남느냐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남느냐…. 사람끼리는 못 믿지만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세포까지 침투해 봐 가지고 하나에서 천만 가지에 이르는 모든 것을 완전히 아는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을 완전히 아는 신이 '요것이 옳다' 하고 빼놓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때는 변명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대번에 판결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자가 판정을 했다면, 인간은 안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의 한계

그런데 사람의 욕심이 어디까지 가느냐 하면 말예요. 참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판정해 가지고 '이 사람이 참된 사람이다' 하고 딱 세워 놓으면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참된 사람을 결정해 준 그 절대자를 따라갈 것인가, 절대자가 결정해 준 분을 따라갈 것인가 하는…. 여러분 생각해 보라고요. 어디를 따라갈 것인가? 사람을 따라갈 거예요, 절대자를 따라갈 거예요? 여러분 마음은 어때요?「절대자를 따라가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절대자가 참사람이라고 그 사람을 가르쳐 주고 결정했더라도, 그 사람 보다는 절대자를 따라가고 싶어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것은 왜 그러냐 하면, 사람은 최고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못난 사람이나 잘난 사람이나 최고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못난 사람이나 잘난 사람이나 최고가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끼리 선정한 그런 사람은 믿을 수 없고, 인간의 모든 생사지권을 좌우할 수 있고 절대적 가치의 기준이 될 수 있는 한 분,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싶은 것이지,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참되다고 하는 사람과 관계 맺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국민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자기의 선생님이 그 나라에서 제일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일 가는 선생님이 자기 선생님이 되는 것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제일 가는 선생님이 자기 선생이라 할 때는 자랑하거든요. 그렇지만 그 국민학교에서 제일 가는 선생의 선생이 있다 할 때는 어느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싶어하겠느냐? 어떻겠어요. 선생의 선생님이지요? 여러분들은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우리 꼬마들 그렇지요 ?「예」

이것은 나이 많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서 국민학교 학생들이 그 선생을 제일 가는 선생으로서 대했으면 다행입니다. 그 이상은 물을 것도 없습니다. 그것으로 백 퍼센트 되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같은 것을 배우더라도 선생의 선생을 통해서 배우려고 하는 거예요. 그거 왜 그런가. 그리고 친구를 사귀는 데도 자기보다 낮은 사람을 사귀고 싶겠어요, 높은 사람을 사귀고 싶겠어요? 높은 사람이지요.

그것은 왜 그러느냐? 산으로 말하면, 높고 넓어진다는 겁니다. 낮으면 아래가 좁은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무엇을 바라느냐 할 때에 여러분은 높은 것을 원해요, 낮은 것을 원해요? 전부다 높은 것을 원하지요? 또 좁은 것은 원해요, 넓은 것을 원해요? 넓은 것이지요? 높고 넓고 큰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보다 높고 넓고 큰 것과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빨리 높아지고, 내가 빨리 세계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내가 빨리 세계 최고 주권자와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그 사람과 마음만 맞으면 그 사람의 집에 마음대로 드나들며 살 수 있는 거라고요. 그렇지요? 조금만 더 마음이 맞으면, 그 사람이 남자라면 아가씨들은 그 사람에게 시집도 갈 수 있어요. 그럴 수 있는 거라고요. 또, 남자들은 자기 아저씨로 삼을 수 있는 거라고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그 사람의 무대는 내 무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손해나지 않고 그만큼 이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훌륭하고 더 귀하고 높은 분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보면, 인간이 주장하는 주의를 따라갈 것이냐, 절대자가 주장하는 주의를 따라갈 것이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을 통한 주의 사상보다 절대적인 신이 있으면 그 신이 주장하는 주의 사상을 따라가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본래 인간의 욕망이요, 본래 인간의 바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끼리 무엇을 한다는 것은 절대적이 아닙니다. 변하는 것입니다.

신을 위주하여 가르쳤던 성인들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왔다 간 사람들 중에 훌륭한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입니까? 성인들이 있지요? 성인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그들은 사람을 위주한 사상을 본받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4대 성인이 누구 누구입니까? 예수, 석가, 공자, 마호메트이지요. 소크라테스는 안 들어가지요. 소크라테스는 철인은 될 수 있고, 지식의 왕자는 될 수 있지만, 생명의 왕자는 될 수 없는 거예요, 소크라테스는 생사지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대학교 교수의 생명하고 유치원도 못 나온 저 강원도 산골 감자바위에 사는 할아버지의 생명하고 차이가 있어요, 없어요? 있다면 얼마나 있어요? 생명의 차이는 없습니다. 일자무식의 강원도 할아버지의 아들과 딸은 누구를 좋아하겠어요? '우리 아버지는 일자무식이니 학박사를 아버지로 모셔야겠다' 하는 말을 해요? 그러니 지식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생명의 가치에는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철인으로서 지식의 왕은 될 수 있지만 성인은 될 수 없습니다.

생명은 누가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자체는 생명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생명은 누가 지배하느냐? 인간이 아닌 어떤 초월적인 중심이 되는 주체가 지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죽고 사는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합니까? 못하지요? 나를 내 마음대로 못하니 나는 어떤 주체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달려 있다는 것은 다른 곳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말입니다. 생사지권은 인간이 마음대로 못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인들은 무엇을 중심삼고 가르쳤느냐 하면,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생사지권을 지배할 수 있는 입장에서 사는 도리를 가르친 것이 성인의 도리입니다. 생사지권은 누가 갖고 있는 것이냐? 그것은 사람이 갖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이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갖고 있는 거라구요.

이러한 점에서 성인들을 볼 때 성인들은 대개 어떠한 사람들이냐? 종교의 뭐예요? 교주입니다. 석가도 불교의 교주이고, 공자도 유교의 교주이고, 예수도 기독교의 교주이고, 마호메트도 회교의 교주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결국 종교의 교주들은 무엇을 중심삼고 가르쳤느냐? 신을 중심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신의 사상과 뜻을 중심삼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뜻이 아닙니다. 그들 자신들이 잘났다는 것이 아닙니다. 신을 위주한 세계관, 신을 위주한 인생관, 신을 위주한 우주관을 선포하다가 간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성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인간 자체를 두고 볼 때 어느 누가 어떤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다' 그럽니까? 그런 말을 합니까? 신과 더불어 있지 않고는, 거룩하다는 칭송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들끼리는 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밥 먹고 사는 것은 다 마찬가진데 거룩은 무슨 거룩입니까?

거룩이란 명사를 중심삼고 보면, 그것은 인간 위주한 내용만을 중심삼고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신을 위주한 내용을 중심삼고 가르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 인간이 찾아 나가는 최고의 목적은 무엇에 귀결될 것이냐? 인간이 목적하고 바라는 욕망과 소망,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것이 마지막이 될 수 없다 이겁니다. 인간을 초월하여 신과 인간이 합동해 가지고 신도 좋고 인간도 좋은, 전체가 좋아할 수 있는 목적점을 모색하여 가야 하는 것이 최후에 인간이 찾아가야 하는 하나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성인들은 반드시 신을 중심삼고 천륜을 가르쳤습니다. 천륜을 따라 인륜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천륜이 있으면 천정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종교적으로 보면 천정이 있습니다. 천정이 있으면 인정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이것이 막연했습니다. (칠판에 판서후 지적하시면서 설명하심) 일방적으로 이것이 구체적입니다. 이것이 구체적이어야 인격적인 신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사람 하게 되면 몸만 있어 가지고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이라면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눈물 흘릴 때에 웃으면 그게 사람입니까? 웃는 자리에서 우는 것이 사람이예요? 아닌 거라구요. 그런 것은 껍데기만 사람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희노애락의 정서적인 면을 겸하여 가지고, 모든 감정을 체휼할 줄 알아야 됩니다.

정은 통일과 행복의 바탕

서양 사람이 보고 우는 장면을 보고 동양 사람은 안 웁니까? 서양 사람이 눈물 흘리는 장면은 동양 사람이 봐도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이 보고 눈물 흘리는 장면은 원수되는 일본 사람이 봐도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정적인 세계는 통일이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한국의 부모는 사랑하지 않는데 일본의 부모는 사랑합니까? 그래요? 그게 아니지요? 통일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될 수 있는 바탕은 무엇이냐?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말로써 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정서적인 내용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부부끼리 서로가 사랑하는 것도…. 무엇으로 통일되는 것이냐? 정서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정서를 빼놓으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부부에게서 사랑을 빼놓으면 뭐예요? 남자와 여자이지요? 여기에 정서적인 면을 쏙 빼면 뭡니까? 인형과 뭐가 다릅니까? 말하는 인형이지요. 그렇지 않아요? 말하는 남자 인형과 말하는 여자 인형입니다. 그렇지만 정서적인 문제를 중심삼고는 하나 안 될 수 없습니다.

친구간에는 우정이 있지요? 친구간에 우정을 빼놓으면 하나되나요, 안 되나요? 안 되는 거예요. 한 나라의 국민들을 보면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이 있습니다. 애국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나라를 사랑하는 정이 있어서 그 정을 통해서 국민들이 하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될 수 있어요, 없어요? 보라구요. 정은 통일될 수 있는 통일의 바탕이요, 행복의 바탕입니다.

통일되지 않으면 행복이 없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되어야 행복하지요? 그렇지요? 부자간에도 하나되어야 행복합니다. 하나되지 않은 가정에 무슨 행복이 있겠어요? 정이 없어 가지고 서로 으르릉거리면서 싸움이나 하는데 무슨 행복이 있겠어요? 행복이 뭔지 알지도 못한다는 겁니다. 정이 없으면 하나가 안 되고, 하나가 안 되면 행복이 없습니다. 행복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우선 두 사람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그가 울면 나도 울고, 그가 웃으면 나도 웃고, 그가 가면 나도 가고, 이렇게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되려면 뭘 해야 되느냐? 정서적인 것이 있어야 됩니다.

통일의 방안

우리 교회를 통일교회라고 하지요? '통일교회' 이 말 참 좋습니다. 통일교회가 통일되려면 무엇이 있어야 됩니까? '통일할 수 있는 진리가 있어야지'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진리가 있더라도 통일할 수 있는 정서적인 내용이 없으면 그만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종교인들은 종교인끼리 서로 화합시킬 수 있는 진리가 있더라도 거기에 화합시킬 수 있는 정이 있어야 됩니다. 서로가 안 만나면 안 되고 서로가 안 보면 안 되는, 그대가 아니면 내가 안 되는 것이고, 내가 아니면 그대가 안 된다는 정서적인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서로가 물어 뜯고, 서로가 잘났다고 그저 티격태격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서로가 잘났다고 해서 하나될 수 있어요? 어머니는 어머니가 잘났다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가 잘났다고 하면 하나될 수 있어요? 안 되지요.

그러면 통일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이냐? 서로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상대방이 불쌍하게 생각되어서 사랑할 수도 있고, 좋아서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부부끼리 처음부터 좋아서 사랑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차차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부인이 남편을 보니 고집이 땅고집입니다. 그 고집 많은 영감을 누가 사랑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부인은 '저 고집 때문에 얼마나 부딪치는 것이 많을까, 그 땅고집을 갖고 사니 얼마나 힘이 들까?'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라구요. 이렇게 생각하고 도리어 불쌍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불쌍하게 생각해서 사랑해 주면, 그 영감은 제일 외롭고 슬플 때는 부인을 찾아와서 사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또, 그 영감이 고집 센 것을 보면, 자기는 고집이 없는데 영감의 고집이 쓸 만할 때도 있거든. 그러니 좋아서도 사랑할 수 있고 불쌍해서도 사랑할 수 있고, 그런 마음만 가지게 되면 통일되는 것입니다.

정서적인 분야에 있어서 자신보다 상대방이 불쌍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앞을 닦아 나가게 되면 자연히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해 성이 나서 손으로 때리면 어떻습니까? 부모가 곧 회개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 그저 자식이 불쌍해서 어머니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사랑하면 도리어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렇잖아요? 그렇게 하면 어머니는 굴복하지 않고 언제든지 승리자로서 그 아들딸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때리면 효과가 적다는 것입니다. 형이 동생들을 끝내 미워했다가는 형이 도리어 굴복당합니다. 그럴 수 있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통일하는 데는 무엇이 있어야 된다고요? 정서적인 분야가 있어야 됩니다. 통일되지 않는 곳에는 행복이 없다는 거예요. '통일된다. 통일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은 통일시킬 수 있는 정서적인 내정이 깃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통일교회는 기독교를 통일해 보자는 것입니다. 통일하는 데에 있어서 세계에 수많은 교파가 있는데 통일교회 사람 외의 사람들은 우리와 상관 없다 하면 통일이 되겠습니까?「안 됩니다」 수십 수백여 교파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하며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있으면, 그들에게 결점이 있더라도 용서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이 죄지은 것을 다 용서해 주신 것도 '너는 아직 죄인이다' 하는 마음이 있으면 용서해 주었겠어요? 끝까지 긍휼히 보는 마음이 있으니까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용서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하나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서적인 분야를 빼버리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알겠어요? 우정을 빼고, 애국하는 마음, 즉 나라를 사랑하는 그 정을 빼고, 부자히 정을 빼고, 부부의 정을 빼고, 형제의 정을 빼버리면 모래알만 있는 사막 같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 가운데 통일이 있겠어요? 그런 정을 빼 버리면 행복이 있겠어요, 없겠어요?「없겠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천정을 가르쳐 주었던 예수 그리스도

이렇게 볼 때 인간들은 서로 정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하고 사람하고 정을 붙일 수 있는 길이 있을 것 같아요, 없을 것 같아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최후에 세워야 할 목적을 인간을 중심삼고 하지, 왜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우려고 하느냐'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짜 있어서 그분하고 인간하고 정을 주고받을 수 있고, 불쌍히 여기고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정서적인 기대가 서면, 하나님하고 인간하고 하나될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될 수 있습니다」 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천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종교에서는 천정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불교도 천정에 대해서 모릅니다. 천정이 있는지 없는지 막연하다는 거예요. 유교도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위선자(爲善者)는 천보지이복(天報 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보지이화 (天報之以禍)니라' 하고 천(天)을 가르쳤지만 확실히 모른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이 아니라는 거예요. 천륜은 가르쳐 줬지만 천정은 못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천륜은 있지만 천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과 더불어 살림살이하는 재미있는 행복의 터전을 어떤 종교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만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기독교만은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란 말이 뭐예요? 관계가 있다는 말이예요, 없다는 말이예요. 아버지하고 아들이라면 부정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요? 이건 절대적인 인연입니다.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누가 여기에 흥정을 하고 가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예수님이 말을 잘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세상 친지에서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예수님이 처음입니다. 기도하는 내용을 봐도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人)을 위주한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천을 위주한 사고방식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참다운 인생의 목적을 모색한 대표적인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도 괜찮은데, 거기에 또 독생자라고 말했다는 거예요. 독생자는 뭐예요?「외아들입니다」 외아들이니까, 부모의 사랑이 다른 어디로 흘러갈 곳이 있어요?「없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몽땅 독차지한다 이겁니다. 그런 의의에서 예수님은 독생자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예수님이 욕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나는 신랑이고, 너희는 뭐라고 했어요「신부요」 신랑 신부라고 하는 것은 뭘 하자는 거예요? 너희는 나를 찾아올 때 나를 신랑으로 생각하고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래 신랑으로 생각하고 찾아가는데 뭐가 있어야 돼요? 정서적인 내용이 있어야지요? 정서적인 내용이 구비되어 있지 않으면 시집이 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시집이 새색시 집이예요? 신(新)집이라서 시집이예요? 거기에 무엇이 앞서야 돼요? 자기 얼굴이 앞서야 돼요. 신랑을 위하는 정서적인 분야가 앞서야 돼요? 그래 무엇이 앞서야 돼요?「정서적인 분야가 앞서야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되어 사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됩니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다 껍데기들이예요. 통일교회 패들도 미쳤다는 소문을 듣지 못하면 다 껍데기들입니다 미쳐도 깨깨 깨깨 미쳐야 합니다. 깨깨 깨깨 망하게 미쳐야 합니다. 미쳐도 절대적으로 미쳐야 합니다. 그렇게 보면, 여러분이 잘 미쳤어요, 못 미쳤어요? 잘 미쳤지요?(웃음) 그럼 미친 사람은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여러분이 길에서 미친 여자를 보면 치마고 뭐고 다 벌려 놓고도 좋아서 춤을 추고 야단하지요? 보통 사람들 눈에는 안 보이지만 그 사람은 영인들하고 대화하고 웃고 그러는 거예요. 그 사람은 쌍안경을 끼고 다른 세계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남자하고 산보를 하고 세계에 없는 흥겨운 가락에 맞춰 돌고 있는 판인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이상하겠지만 그 세계에서는 정상적이요, 표준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분이 좋겠어요, 안 좋겠어요?「좋겠습니다」 그래서 웃고 야단하는 것입니다. 그 눈에 우리와 다른 것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무서움을 느끼면서 춤추는 사람이 있어요? 정서적인 분야에 무서움이 있어요? 정에도 무서운 것이 있어요?「없습니다」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니라. 나와 너희들은 서로 형제다' 하고 말한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간으로서 통일할 수 있는 정서적인 기반을 갖추어 결론을 지어 놓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기독교가 정서적인 분야를 중심삼아 가지고 말한 것이 틀림없다면, 하나님도 틀림없이 그것을 바랄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있는 한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목을 잘라도 이 길을 가는 거라구요.

어떤 강도나 집권자, 혹은 원수가 와서 총칼로 위협하면서 너의 어머니 아버지라고 설명해서 납득시킬 도리가 있어요? 뼈를 깎고 살을 에어도 납득을 못 시키는 것입니다. 그건 교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 교육 못 합니다. 누가 교육합니까? 공산당이 무슨 세뇌공작이니 뭣이니 해도 통하지 않습니다. 통해요? 이건 절대적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부정하면 망합니다. 이것은 천리공법으로 공포한 것인데 이것을 부정하면 심판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되면 사람 위주한 행복의 터전을 찾아가는 것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사람 위주한 통일세계를 꿈꾸어 나가는 것은 다 가짭니다. 사람 위주하고 좋아하는 것들도 다 가짜 사랑입니다. 사람 위주하고 좋아하는 가정도 가짜라는 겁니다. 사람 위주하고 이루어진 국가도 가짜고, 사람 위주하고 이루어진 세계도 다 가짜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무엇이 들어가야 되느냐? 아까 말한 것같이 최고로 높은 주인, 하나님이 들어가야 됩니다. 내 개인에게 하나님이 들어와서 하나님과 더불어 인류를 사랑하면 그것은 진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합해 가지고 부부끼리 사랑해야 진짜 부부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하나님과 합한 단체면 단체, 국가면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국가의 국민이 되어 하나님을 중간에 놓고 국가를 사랑하게 될 때 진짜 국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과 인간의 소원

인간을 위주한 개인의 목적이나 인간을 위주한 가정의 목적은 다 흘러가는 것입니다. 인간을 위주한 씨족, 종족, 민족의 목적도 다 흘러가는 겁니다. 인간끼리 국가를 중심삼고 나가는 것도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큰 운세가 몰아치게 되면 그런 것은 다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일본이 한때 동남 아시아 일대를 전부 주름잡았었지만 세계 운세가 거꾸로 몰아치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순식간에 망했던 것입니다. 공산주의니 무슨 주의니 하면서 인간 위주로 한 거기에 하늘의 운세가 몰아치게 될 때 그것은 여지없이 깨져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세워야 하는 최후의 목적은 무엇이냐? 참다운 인간과 참다운 신이 공동으로 보조를 맞춰 갈 수 있는 곳, 하나의 사상, 천주주의, 하늘땅을 합한 새로운 세계적인 사상을 중심삼은 곳입니다. 인간은 그곳을 목적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그곳을 바라고 가는 개인이 있어야 하고, 가정적으로도 그곳을 바라고 가는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신의 의도를 따라 가지고 그 목적을 추구하는 종족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민족이 있어야 되고, 그러한 국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민족이 어느 민족이냐?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 그들의 사상은 선민사상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승리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세상을 이긴 개인적인 기준이 나와야 되고, 세상을 이긴 가정적인 기준이 나와야 되고, 세상을 이긴 종족적인 기준이 나와야 되고, 세상을 이긴 민족적인 기준이 나와야 되고, 세상을 이긴 국가적인 기준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이 뭐냐 하면 바로 선민사상입니다.

이 선민사상이 세계적인 사상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위주한 철저한 종교적인 사상을 중심삼아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인정을 중심삼고 통일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정과 천정이 연결될수 있는 정을 서로가 엇바꿀 수 있는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살아 나오는 개인, 살아 나오는 가정, 살아 나오는 종족, 살아 나오는 민족, 살아 나오는 국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인류의 소원입니다. 이런 것을 이루기 위해 세운 주권국가가 유대교를 중심삼은 이스라엘 입니다.

여기에 선민 사상을 대표한 종교를 이어받아―이것은 종교사상이예요― 하나님에 의한 세계적인 가정을 중심삼고 신의에 의해서 하나의 종교적 형태를 갖추어 세계를 자기의 수중에서 뒤넘이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대신해 왔던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냐? 예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성인 중의 성인이 누구냐 하면 예수님입니다. 정서적인 내정을 그렇게 파헤치고 신(神)과 인(人)이 가정 하나를 중심삼고 안팎과 같이, 전후와 같이, 상하와 같이, 좌우와 같이 딱 맞아 떨어져 완전히 일체가 되어야 됩니다. 하늘은 위요, 땅은 아래입니다. 이렇게 딱 맞아 떨어지는 하나의 가정적인 모델을 구상하고 왔던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구상하였던 것이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다시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이 땅 위에서 신랑과 신부라는 이념을 중심삼고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가정을 세계적인 중심 가정으로 형성하기 위해서 다시 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

오늘 제목을 '우리의 갈 길'이라고 했는데 우리의 갈 길에 대해서 이젠 대충 알았지요? 성인들을 보면, 자기 고집을 중심삼고 자기사상을 중심 삼고 가르치지 않고 난데없는 하늘을 중심삼고, 신을 중심삼고 가르치려고 하던 양반들이 어떻게 해서 세계의 성인이 됐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의 인간은 타락한 인간이기에 고장난 라디오와 같습니다. 신이 있다면 고장난 라디오와 같은 인간을 고치기 위한 수리공장을 마련하여야 됩니다. 이 수리공장이 무엇이냐 하면, 종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수리공장의 기술자는 누구냐? 교주입니다. 종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리공장에다 이 세계 인류를 자꾸 몰아넣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 역사는 종교사상을 기반으로 해서 발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신이 없다고 부정할 수 없습니다.

유물론이라는 것은 종교권내에서 편파적으로 도망 나간 것입니다. 유물론이라는 것은 공산주의라는 거예요. 공산주의가 뭐냐 하면 유물사상으로 종교를 통일하자는 것입니다. 기독교 형태와 비슷하게 생겨나서 외적 문제를 중심삼은 유물 종교 형태와 같은 집단이 공산주의라는 거예요. 인간이 신을 대신하려고 하고 있잖아요? 김일성이를 아버지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절대시하고 있습니다. 가상적으로 신격화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사상과 같습니다. 외적인 형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용도 전부 종교사상과 같은 내용을 중심삼고 단일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짜하고 진짜하고 비슷한 것입니다.

우리의 갈 길은 무엇이냐? 하나의 나라를 찾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나라를 찾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세계를 찾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계를 아버지의 나라로 만드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절대자가 있으면 그 절대자가 지으신 이 세계이기 때문에, 이 세계에 사는 백성들은 그 주인, 즉 아버지의 아들딸로 다시 입적하고 싶어합니다. 여러분은 타락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고아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를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부모를 가졌으나 그 부모는 참된 부모가 아닙니다. 거짓 부모입니다. 인류의 종지조상을 따져보면 거짓 부모요, 거짓 조상입니다. 참된 조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환경을 부정하고 소망의 부모, 소망의 친척, 소망의 민족, 소망의 나라, 소망의 세계를 찾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어떤 나라냐 하면 하나님이 바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공인하는 부모, 하나님이 공인하는 친척, 하나님이 공인하는 민족, 하나님이 공인하는 주권, 하나님이 공인하는 국토, 지금까지 이런 것이 있었어요?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가 와야 할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합니다.

참이 이룰 것을 악이 흉내 내면서 나온 것이 독재 공산권입니다. 민주주의가 영원히 가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앞으로 절대적인 하나님이 이 땅을 지배하게 될 때 정권을 교체하기 위한 전주곡입니다. 정권을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나온 주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도 무슨 야당이 있어요? 하나님에게 야당이 있어요?「없습니다」 최후 세계에서 국회의원 선거가 있어요? 야당 여당의 싸움이 있겠어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머리에도 야당이 있어요? 양심에 야당이 있어요? 야당 여당이 지금 싸우고 있는 것은 끝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이냐? 이제부터 통일교회가 가야할 길을 알아봅시다. 인간만을 위주한 세계주의는 물러가게 하고, 신을 위주하고 인간을 위주한, 신의 정과 인의 정이 서로 화합하여 통일적인 사랑으로 나타나게 할 수 있는 개인, 그렇게 된 사람들로 이루어진 가정, 그렇게 이루어진 가정들로 이루어진 종족, 그렇게 이루어진 종족들로 이루어진 민족…. 민족에는 수많은 종족이 들어갑니다. 그런 사람들이 기쁨으로 추대할 수 있는 주권자가 나와야 하고, 그 주권자가 통치할 수 있는 땅과 백성이 이 지구상에 어느 한때에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를 중심삼고 악과 선, 옳고 그른 것을 가릴 수 있는 잼대 되는 참된 나라를 표본으로 세워 놓고, 그 표본이 세계로 향할 수 있는 길을 내어 놓고, 여기에 옳지 않는 것은 다 잘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끝날에 심판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심판은 개인적인 심판과 가정적인 심판, 종족적인 심판, 민족적인 심판, 국가적인 심판이 있습니다.

천국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아 천당 간다고 합니다. 천당 가는 데 전부다 자기 혼자 가겠다고 하지요?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를 모시고 천당에 가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앞으로는 종교가 개인구원만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세워 놓은 참된 세계적 종교라면 우주적이고 최후까지 남을 수 있는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종교로서 인류가 소망하는 최후의 종교가 있다면…. 천국을 가는 데 개인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에게만 소개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도 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소개하여 족장이 그 앞에 굴복하게 되면 그 친척이 한꺼번에 따라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주권자가 굴복하면 그 나라 3천만이면 삼천만 전국민이 한꺼번에 천국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 통일은 빠를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떠한 입장에 있느냐? 타락한 입장에 있습니다. 타락은 떨어졌다는 말이지요? 올라갔다는 말이예요, 떨어졌다는 말이예요? 「떨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높은 데서 떨어지면 어디까지 떨어져요? 중간에 머물러요. 밑창에까지 쾅하고 떨어져요?「밑창에까지요」 얼마나 깊이 떨어졌는지 한번 생각해 봤어요? 인간들은 모르지만 맨 밑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다리를 놓고 올라갈 수 있겠어요?

그래서 떨어지더라도 줄을 하나 잡고 떨어지라 이겁니다. (웃음) 그렇게 떨어지면 어때요?「다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신호하여 잡아끌면 올라갈 수 있는 가망성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이렇게 줄을 감아 쥐고 떨어지면 올라갈 가망성이 있으나 줄이나마 없으면 가망이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은 무엇과 짝을 지으려 하느냐 하면 선하고 짝하려 합니다.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을 보면 불쌍하게 보이지요? 그럴 때 양심은 '야 내가 좋은 일 해야 되겠다' 하면서 마음이 자꾸 좋은 일 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대한민국을 잘 먹여 살리고 싶어하고 더 나아가 세상 사람까지도 잘 먹여 살리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계 사람을 다 먹여 살리고 싶어하는 분이 누군지 알아요? 하나님입니다. 세계 사람을 다 해방시켜 주고 싶어하는 분이 누구냐? 내가 아니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굴 닮았느냐? 아들은 아버지를 닮지요?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을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이라 해도 그 양심은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 양심이 하나님의 흉내를 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세계 사람을 전부 잘먹게 해주고 잘살게 해주고 싶은 것이 양심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래요」 그렇다는 거라구요. 그런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떨어져 내려가도 그 마음은 달고 내려가는 것입니다. 양심을 달고 내려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렇게 양심 작용하는 마음이 또 하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흉내를 내고 싶어하는 양심

그래서 여러분에게는 두 줄이 있습니다. 하나는 양심이 달고 있는 줄이고, 하나는 구덩이에 떨어져 가지고 나가 자빠진 몸뚱이가 달고 있는 줄입니다. 떨어졌더라도 마음은 올라가겠다고 생각하는데 몸뚱이는 도망가려고 합니다. 몸뚱이는 올라가려고 하지 않고 벌벌 기어가려고 합니다. 자꾸 평면적으로 도망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양심은 어디로 가려고 합니까?「올라가려고 합니다」 방향이 상충되는 현상이 몸뚱이와 마음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다면, 절대적인 하나님이 두 생각을 가지고 사람을 지었겠어요? 그렇다면, 절대자가 아닙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가도록 지으셨지 두 목적을 위해 갈 수 있게 사람을 지었다면 절대자가 아니다 이겁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의 목적을 갖게끔 되어 있느냐? 타락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칠판에 쓰시면서 설명하심) 그래서 여러분의 몸뚱이가 가는 길과 마음이 가는 길이 서로 틀리는 것입니다. 서로 자기의 목적을 향해서 가려고 싸우는 것입니다. 싸워요, 안 싸워요? 하나가 '이래라' 하면 다른 하나가 '이놈아 이리 가자' 하면서 싸웁니다. 그래 몸하고 마음이 싸워요, 안 싸워요?「싸웁니다」 이 싸움의 씨를 인간이 심었습니다. 알겠어요?

이러한 사람을 심어 놨으니, 이런 사람이 둘 되고, 셋 되고, 넷이 되이 되어 가정이 이루어지고, 나라가 이루어지고, 세계가 이루어졌으니 결국 오늘날의 세계는 이러한 사람의 형체를 중심삼은 세계요, 이것이 역사적인 사조를 대표해 가지고 결실된 시대가 현재인 것입니다. 여기서 몸뚱이는 외적이요, 마음은 내적입니다. 외적으로 물질만 아는 것은 유물주의요, 내적으로 마음만 아는 것은 유심주의입니다. 그러니 물질을 심으면 뭐가 돼요? 이렇게 심었으니까 세계적인 열매를 맺을 게 아녜요? 콩을 심으면 콩을 맺지요? 그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서로 싸워 가지고는 둘 다 망합니다. 고생만 지지리 하는 거예요. 몸과 마음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마음과 몸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하나되었겠어요, 안 되었겠어요?「되었겠습니다」 하나됐겠지요?「예」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몸과 마음은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부모를 위하고 형제를 위하라

만일에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세계가 있고, 나라가 있고, 민족이 있고, 씨족이 있고, 가정이 있고, 그 다음엔 아담 해와가 있습니다. 인간 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아담 해와의 완성은 가정 완성의 시작이 됩니다. 가정의 완성이 시작됨과 동시에 민족 완성의 출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잖아요? 가정이 자꾸 불어나 가지고 민족이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 완성의 출발임과 동시에 가정 완성 출발, 종족 완성 출발, 국가 완성 출발, 그 다음에 세계 완성 출발이 한꺼번에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한꺼번에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담 해와 두 사람은 무엇이냐? 반대로 말하면 세계의 중심이요, 나라의 중심이요, 민족의 중심이요, 종족의 중심이요, 가정의 중심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래요」 그러니 이 두 사람만 완성해 가지고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면 그 가져온 세계의 중심 가정이요, 나라의 중심 가정이요, 민족의 중심 가정이요, 종족의 중심 가정이요, 가정의 중심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중심 가정'이라니까 이상하지요? 그러나 가정에서 아들딸을 낳고 보면 어머니 아버지가 중심이지요? 가정에는 아들 딸이 있어야 되잖아요? 타락하지 않고 자기 위치에 서게 되면 가정의 중심, 사회의 중심, 국가의 중심, 세계의 중심이 일시에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두 사람이 완성되었더라면 나라를 찾는 일을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안 해도 됩니다」 안 해도 나라는 저절로 되게 마련입니다. 그렇지요?「예」 나아가 세계를 찾겠다는 일을 안 해도 저절로 세계가 되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을 위주한 주의가 생겨날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인간을 위주한 나라가 생겨날 수 있어요? 없습니다. 인간 위주한 가정이 생겨날 수 있어요? 없습니다. 신을 위주하지 아니한 것은 생겨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고요. 알겠어요?

이렇게 되면 이 아담 해와는 가정의 가장인 동시에 종족의 족장입니다. 또한 종족의 족장인 동시에 민족의 민족장이며, 국가의 주권자인 동시에 세계의 주권자입니다. 그렇지요? 결국은 무슨 주의예요? 주의라면 무슨 주의겠어요? 어머니 아버지 주의입니다. 그렇지요? 사상은 무슨 사상이냐? 어머니 아버지 사상입니다. 그 사상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위하는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부모를 위하고 형제를 위하는 사상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부모를 위하고 그 다음은 뭐라고요?「형제를 위하고」 형제를 위하는 거야.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에게 효도하면, 천국은 그냥 가는 주의입니다.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의 백성으로서 나라님의 말을 듣고 따라가면 천국은 그냥 가는 거라고요. 예수 믿고 기도하고, 울고불고 회개하고, 그래야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대로 가는 거라고요. 생활함으로써 천국은 자동적으로 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아니하였으면, 이 세계에 천국을 자동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 희생봉사하라고 재촉하는 마음

그렇게 되면 개인을 위한 것이 전체의 출발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요. 개인 중심하고 설 때에 전체의 중심으로서 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이와 같은 창조본성의 기준이 인간에게 부여되었기 때문에 타락은 했을 망정 순수한 선의 바탕이 될 수 있는 마음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어서 빨리 세계적으로 최고의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계는 내 세계요, 세계의 민족은 내 민족이요, 세계의 주권은 내 주권이요, 세계의 주권자는 내 아버지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자리에 빨리 올라가라고 여러분의 마음은 조금만 악하게 되려고 하면, 독재자처럼 밤이나 낮이나 쉴새없이 '네 이놈!' 하면서 발길로 차는 것입니다, 그거 고마운 거예요, 나쁜 거예요. 고마운 것입니다. 이 채찍질에 밀려 가지고 마라톤 선수처럼 뛰어 올라가게 되면 틀림없이 거기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천년 동안 제일 고마운 것은…. 오늘 이 시점에 처해서 올라가기엔 너무나 먼 거리에 있는 것을 양심은 폭군과 같이 여러분을 때려모는 것입니다.

일시에 세계 사람을 위해서 희생봉사하는 길이 있으면 그 길을 가라고 마음은 재촉합니다. 그렇게 재촉하는 것이 우리의 본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얼마나 멋져요? 여기에 올라가면 세계를 구하고 나라를 구할 필요가 있어요?「없습니다」 민족, 종족, 가정 다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느냐?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딸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요, 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딸만 되어서는 안 됩니다. 늙어서까지 아들딸의 입장에서 달랑달랑 매어 달려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아들딸이 되었으면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의 합동결혼식입니다. 총각들, 호기심이 있으면 통일교회를 믿어 보라고요. 믿기만 하면 내가 못살게 할 거예요. 대롱대롱 매달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했느냐 하면, 자기 혼자 믿고 천국 간다고 했습니다. 남자면 남자 혼자, 여자면 여자 혼자 간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느냐?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올라가려고 하니 둘이 손잡고 올라갈 수 있어요? 그러니 비결은 혼자 줄에 매달려 대롱대롱, 그저 생명을 걸고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조심스럽게….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종교는 개인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개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가는 종교였다는 것입니다,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가다 잘못하여 떨어지면 옥살박살나는 거예요.

가정과 나라와 같이 들어가야 할 천국

예수를 믿고 천국에 가자고 하는데, 누가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까? 자기 개인이 간다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가정이 함께 천국 가자는 그런 일을 한 종교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개인구원을 위주로 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가정이 함께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는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가정이 일시에 구원받을 수 있는 종교이념이 나와야 천국의 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혼자 줄에 매달려 대롱대롱 올라가는 개인구원의 종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세계에서는 독신생활을 강조한 것입니다. 가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원수라는 거예요. 예수님도 집안식구가 원수라고 했지요?

다 올라와 가지고는 땅의 주권을 잡아야 하고, 처녀 총각들은 결혼, 축복행사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본래 아들딸이 결혼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것이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완성해야 할 천국입니다.

예수님이 영계에 갔는데 혼자 갔어요, 둘이 갔어요?「혼자 갔습니다」 혼자 갔기 때문에 천국에 못 들어가고 낙원에 간 것입니다. 낙원은 천국 가기 위한 대합실입니다. 낙원은 이상적인 천국이 아니라고요. 천국은 부부가 식구들을 데리고 들어가야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다시 와 가지고 신랑 신부를 편성해서 가정과 나라를 데리고 들어가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낙원에 보류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지상에 와서 그 원칙적인 내적 기반을 닦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저 주먹구구식으로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이치가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그래서 앞으로는 어머니 아버지가 구원받는다는 거예요. 가정이 몽땅 천국 갈 수 있는 종교, 그런 구원의 도리를 가르쳐 주는 종교가 있으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여기서부터 나라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개인으로는 나라가 세워지지 않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시집 장가 못 간 처녀 총각을 모아 놓은 것이 기독교라는 거예요. 천주교의 신부하고 수녀들을 여러분은 봤지요?

이 땅 위에 기독교 국가가 많지만 그 국가의 주권자는 기독교 지도자, 즉 교구장이나 목사가 아닙니다. 엄연히 다르다는 거예요. 기독교는 영적인 나라입니다. 땅 위에는 나라가 없습니다. 땅에 나라가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땅 위에 주권이 있었다면 기독교인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안 죽는다 이겁니다. 그러나 나라가 없기 때문에 유리고객하며 밀려 다니고, 떼거리로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세계의 기독교인들을 합해 가지고 그 나라의 주권을 가지고 내 집, 내 나라, 내 세계를 찾아야 됩니다. 그것을 기독교인들은 해야 됩니다.

본래는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타락함으로 떨어져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칠판에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이제 이것을 복귀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이것을 반대로 끌어 올려야 됩니다.

나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세계가 이렇게 있습니다. 세계 안에는 나라가 있지요? 그 안에 나라가 요렇게 작게 생겨 들어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민족이 있고, 그 다음에는 종족, 그 다음에는 가정, 그 다음에는 개인이 있습니다. (칠판에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리고 개인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하필이면 이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본향 땅을 가는 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갈 길이요, 우리 인생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면 그 길은 어떻게 가야 하느냐? 떨어진 것은 틀림없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행복한 사람은 없는 거라구요. 타락한 인간으로서 선한 자리를 찾아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올라가는 데에 있어서 나를 위주하면 올라갈 길이 없는 거예요. 알겠어요? 나를 중심삼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자리에서는 못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마지막이라는 거예요. 그렇지요? 나는 떨어져서 지금 혼자인데 혼자 된 그 자체를 중심삼고 자기 마음대로 한다고 꺼덕거리면서 '허 내 마음대로 한다' 해 가지고는 절대로 못 올라가는 거예요. 그것으로 끝입니다. 마지막이라는 거예요. 어떻게 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갈 거예요? 여기가 맨 마지막인데 이리 내려갈 거예요? 타락한 인간이 서 있는 이 길은 마지막 길이예요. 나를 위하는 놀음 해 가지고는 갈 길이 없다는 거라구요.

그러면 내가 가는 길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지 않고는 올라갈 길이 없습니다. 알겠어요? '가정아, 너가 나를 위해서 가라' 이것이 아니라 내가 가정을 만들어야 됩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놔야 돼요. 그래야 가정 안에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그렇지요?「예」

내가 가정 편성을 해야 합니다. 가정을 만들어 놓고 내가 그 안에 들어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위해 내가 희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주한 가정을 만들려고 하면 안 됩니다.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희생해 가지고 준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 거예요, 만약 인간이 타락하지 앉았으면 나를 중심삼고 주장하지요? 그렇지요? 타락하지 않았으면 나를 중심삼고 주장하는 것이 만세에 통할 수 있는 길이 있으되 타락하고 나서는 내가 여기에 떨어졌으니 입장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본래의 자리로 올라가서 주장해야 됩니다. 그 자리에 올라가서 주장해야 하는데 떨어졌기 때문에 나를 주장해서는 못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중심삼고 주장해야 되느냐? 선한 가정을 중심삼고 주장해야 됩니다. 선한 가정을 위한 내가 되어야 돼요. 그래야 선한 가정의 뿌리를 붙들고 내가 올라가는 것입니다. 거꾸로 올라가는 거예요. 그렇지요?

또, 그 가정은 그 가정 자체만을 위해 가지고는 절대 못 올라갑니다. 그 가정은 종족을 위해야 하는 것입니다. 종족의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그 가운데 들어가야 비로소 나를 중심삼고 침범받지 않는 정상적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중탕감을 해야 하는 거예요. 내 개체를 탕감하고 가정을 위한 탕감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내가 자리잡고 서려면 가정의 울타리를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내가 안식할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내가 안식하기 전에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야 하니, 내가 얼마나 희생해야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만드는 데는 강제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원칙에 따라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복귀원리 알지요? 그 복귀의 원칙을 통과한 가정을 만들어 놓고, 그 가정이 나 위하여 생명의 울타리가 되게 될 때 내 개인이 비로소 나를 주장할 수 있는 안식의 보금자리가 생기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어야 하는 거라고요. 알겠어요?

그래서 선한 길을 가려면 자신이 희생하지 않고는 못 간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자기라는 것을 들고 나왔다가는 거기서 끝장입니다. 올라가지도 못하고 여기서 끝난다는 것입니다. 이 밑창에서는 그냥 올라갈 도리가 없어요. 그러니 할수없이 많은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야 합니다. 큰 것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보다 종족이 크지요? 그러니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종족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의 것으로

그렇게 되면 나는 가정에 들어가고, 가정은 종족에 들어가고, 종족은 민족에 들어가고, 민족은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꾸 올라가는 것입니다. 보다 큰 것을 중심삼고 희생함으로써 올라가는 거예요.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세계적인 중심으로서 주장할 수 있는 나로 복귀되는 겁니다.

복귀노정에서 여러분 개인을 주장했다가는, 올라가지 못하고 거기서 끝장나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런데 본성을 중심삼고는 여러분 개인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의 길은 역설적인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은 버려야 됩니다. 예수님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죽는다」 전부다 반대라구요? 종교인들에게 온유겸손하라고 그러지요? 그거 좋아요, 나빠요?「좋아요」 그게 본래는 싫은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남이 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희생봉사하면 어떻게 되느냐? 그 사람들이 나한테 와서 붙습니다. 알겠어요? 내가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도와주게 되면, 내가 그 사람에게 덕을 끼쳤을 때에는 나한테 타서 붙는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 사람을 소외시키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요, 안 떨어져 나가요?「떨어져 나갑니다」 나를 주장하면 전부 떨어져 나가니 영영 외톨이가 되는 겁니다. 외톨이가 되어 가지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희생해 가지고 남을 위하라는 거예요.

공산당은 뭐예요? 네 것은 내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이지요?(웃음) 그것은 누구를 위주한 거예요? 자기를 위주한 거지요? 하늘편은 뭐냐 하면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나라의 것이며, 세계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아버지인 하나님 것이라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형제끼리니까…. 오빠 것은 누나 것이고, 누나 것은 누나 것이예요? 전부 아버지 것입니다. 내것하고 네 것하고 전부 한 곳에 모아 가지고 부모에게 바칠 때 둘이 갖다 바치는 법은 없지요? '내 것은 오빠 것' 형제가 모두 이렇게 되어서 대표자가 모아 가지고 아버지에게 갖다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귀의 운세권내에 있는 전부를 하나님 앞에 바치기 위해서는 내 것은 네 것이요, 네 것은?「아버지의 것」 즉, 내 것은 네 것이요. 네 것은 가정의 것이요. 가정의 것은 종족의 것이요, 종족의 것은 민족의 것이요, 민족의 것은 국가의 것이요, 국가의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결국은 아버지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간추려서 말하면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아버지 것이고, 아버지 것은 내 것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몇 배가 되느냐? 한 배, 두 배, 세 배, 세 곱절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아버지 것이 내 것이 되면 아버지 것도 나한테 걸려드는 거예요. 누나도 오빠도 다 걸려드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복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아버지의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하는 거라고요. 그렇지만 공산당은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망하는 겁니다. 왜 망하느냐? 친구가 있는데, 친구의 지갑에 있는 돈을 가지고 '네 것은 내 것이다. 그 돈은 내 것이다' 이렇게 세 번만 하면 그 친구가 떨어져 가겠어요, 붙어 있겠어요?「떨어져 갑니다」 못 가게 하면 야반도주해 가는 것입니다. 공산당들이 삼팔선을 지키고 있어도 사람들이 야간에 남한으로 넘어오지요? 야간도주하는 것입니다. 둘이 있다가 하나가 없어지면 작아지지요? 점점 작아지니까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상대를 위하며 내 것은 네 것이라고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날 좋아하겠어요. 안 좋아하겠어요. 「좋아합니다」 떨쳐버리려 해도 달려드는 겁니다 죽어도 너와 같이 죽겠다 하는 것입니다. 혼자 될래야 될 수 없는 거예요. 둘이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위 모두가 나하고 하나되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점점 많아지니까 어떻게 되겠어요? 흥하는 거지요.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

그렇게 자꾸 하면 어떻게 되느냐? '저런 미흡한 녀석, 바보 같은 녀석' 저건 내 밥이라고 생각하고 몰려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할수록 나중에는 그들이 '친구들 가운데서 네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우리 친구 가운데서는 누가 중심이 되어야 돼' 하고 중심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다 보면 중심뿐만이 아니라 주인이 되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게 되면 중심이 없는 타락한 세상에서 중심으로 책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이 무엇이냐? 남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중심뿐만이 아니라 중심의 도리를 세우게 되면 그들은 '제발 나의 주인이 되어 주시오. 당신의 무슨 말이든 듣겠소. 절대 복종하겠소'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에서 백까지 순종하면 할수록 이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적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인으로 모심을 받을 수 있는 자리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하나님이 그저 못난듯이 인류를 위해 눈물 콧물 다 닦아 주고 희생하고 봉사하다 보니, 하나님이 싫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다는 것입니다. 좋으니까 어떻게 하느냐? 중심되는 분으로 세우고, 뿐만 아니라 주인으로 받드는 것입니다. 주인으로 모셔도 미급하니 내 아버지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가지고 끝까지 나가면 만민은 자동적으로 효도하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 효도를 받을 수 있는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자식을 위해 일생을 바쳐 수고한 부모에게 그 자식이 효도하고 싶겠어요, 안 하고 싶겠어요? 자기를 위해 고통받고 뼛골이 녹아나도록 고생한 부모의 은덕을 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잘사는 집의 아들딸과 같이 잘 먹여 준 것도 아니요, 잘 입혀준 것도 아닙니다. 먹는 것을 가치로 보면 절반도 안 되고 5분의 1도 안 되지만, 몇십배 이상 수고했을 때는 그 자식의 마음에 어머니 아버지는 영원토록 남아 있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같이 죽고 싶고, 살더라도 같이 살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결속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사정을 두고 볼 때도 그렇거든 하나님의 사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는 이와 같은 원칙을 통해서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 교회 문선생은 통일교인들을 등쳐 먹는 사람이 안 되겠다 이 말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돈이 생기면 그 돈을 가지고 내 아들딸을 잘 먹이고 잘 입힐 생각 안 한다 이겁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을 위해서 쓴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을 고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를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식구는 나하고 가깝지요? 선생님과 가까운 권내에 있는 사람들을 고생시켜서라도 나라를 위해서 살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게 원칙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부 동원해서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 그 나라는 대한민국처럼 부패한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바쳐야 합니다. 통일교회 간판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야 됩니다. 그 나라 안에 통일교회가 있잖아요. 그렇지요?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는 나라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이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중심 종교로서 망할래야 망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남한이 하나님 앞에 선다면, 북한을 총칼로 싸워 통일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결된 힘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주고 사랑해 주면서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안 먹고 안 쓰면서 모아 가지고 그들을 남보다 잘살게 하겠다는 노력만 하면 그들도 배후에서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지금까지 우리에 대해 소원하신 것은 반드시 더 큰 날을 위해서 기반을 닦는 것입니다. 그러한 울타리를 만들어 놓지 않고서는 안식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 사탄세계이기 때문에 공격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루(堡壘)를 만들어 놓고 들어가서 안식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이 안식하기 전에 가정의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안식해야 합니다. 가정이 안식하려면 종족의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안식해야 되고, 종족이 안식하려면 민족의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안식해야 되고, 민족이 안식하려면 국가의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안식해야 되고, 국가가 안식하려면 세계의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안식해야 됩니다. 결국은 세계를 위한 국가, 국가를 위한 민족, 민족을 위한 가정, 가정을 위한 개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는 길이 타락한 인간들이 선한 길을 찾아가는 정상적인 길입니다. 이 길은 자기를 주장하면서 가면 안되는 거예요.

인간 본연의 통일된 심정을 가지려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뭐 통일교회 잘했다고 언제 주장했어요?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요. 하나님께서도 6천년 동안 가만히 있었지요? 그래, 하나님이 자기를 주장했어요, 안 했어요?「안 했습니다」 안 했지요. 예수도 십자가에 돌아갈 때에 개인을 위주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도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할 때도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참소를 해도 예수는 자신을 위한 변명이나 주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자기가 가야 할 길은 천도를 세우는 것이다라고…. 나를 주장하는 길이 아니라 엄연하신 하나님을 입증하고, 하나님을 주장할 수 있는 자리에서 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했던 예수였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도 하나님과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본받아 가지고 우리의 생애노정 끝까지 가 보자 이겁니다. 그래 가지고 망하는지 흥하는지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반드시 흥해야 되지, 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만일 이렇게 해 가지고 망하게 되면, 내던져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합동결혼식 했던 아주머니들 1200명을 동원해 가지고, 뭐 살림하고, 남편 섬기고, 아들딸 데리고 잘사는 사람들을 전부 떨쳐 버리고 동원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아들딸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더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을 못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나라의 상속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나라를 차지할 수도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반드시 이런 길을 가야 됩니다.

이런 길을 가야만 우리 인간이 바라왔던 본연의 세계의 통일된 심정, 인간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심정, 인정뿐만이 아니라 천정이 규합된 최고 기준으로서 전세계가 횡적인 기준에서 통일될 수 있는 위치를 찾아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종교에서는 '적선하라' 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을 위해 살라고 하는 말입니다. 자기만을 위해 살아 가지고는 절대로 그 길을 못 간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통일교회에서 3년노정을 가는 것도 '내가 축복받기 위해서 간다' 그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공적인 한을 풀고 하나님이 추구하시는 것을 해원성사해 드리기 위해서 3년노정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런 것 때문에 수고하셨으므로 내가 이렇게 감으로써 하나님의 한을 해원성사해 드리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 조상들의 해원성사와 더불어 오늘날 세계 만민이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기 위해서 3년노정을 가는 것이다. 이러한 3년노정을 거치고 난 후에 축복을 받아야겠다' 이렇게 각오하고 간다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만두고 내가 이렇게 해야 축복받는다' 하는 것은 결국 누구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까? 누구를 위해서예요?「자기 자신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 보면 옛날에 순교한 신도들 가운데 '내가 이렇게 순교해야만 천당에 갈 수 있지' 했던 사람들은 천당에 못 갔더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찾아오기 위해 수난길을 걸으셨고, 피를 흘렸고, 주님께서도 이와 같이 희생하고 갔으니, 나는 천만분의 일이라도 그 분의 은덕을 갚기 위해서는 어떠한 길이라도 가겠다'고 하면서, '그 은덕을 갚을 수 있는 자리에 내가 동참할 수 있는 영광의 한때를 맞은 것이 얼마나 고마운가' 하면서 죽은 사람은 영락없이 천국에 갔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누구를 위해 죽은 거예요? 자기를 위해 죽었어요, 남을 위해 죽었어요? 하늘땅을 위해서 죽은 겁니다. '내가 이렇게 믿고 죽어야 천당가지' 이것은 누구를 위해 죽은 거예요?「자기요」 자기를 위해 죽은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자기를 주장해서는 절대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계애를 가지고 나가라

그래서 '개인은 대세(大勢) 앞에 복종할지어다' 하는 말이 논어에도 나온 것입니다. '자기 개인을 쳐 버려라. 몸뚱이를 쳐 버리고 내 속의 양심 앞에 굴복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천국에 가기 위한 것입니다.

몸뚱이는 언제나 개인을 위주로 하고, 마음은 언제나 남을 위주로 합니다. 자기를 위하는 몸뚱이와 남을 위하는 마음이 서로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몸뚱이는 남을 위하려는 공적인 마음의 기준과 일치가 안되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지금까지 개인을 굴복시키는 싸움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위주하면 마지막이라는 것입니다. 갈 곳이 없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교만해 가지고는 절대로 갈 길을 못 가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장입니다. 구덩이로 그냥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올라가려면 복귀노정을 중심삼고 전체를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범위를 넓혀 나가야 됩니다. 개인은 가정, 가정은 종족, 종족은 민족, 민족은 국가, 국가는 세계, 세계는 천주, 천주는 하나님,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 이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추구해 나온 것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위해서 한 것입니다. 아들딸을 중심삼고 잃어버린 것을 본래 사랑의 자리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 싸워 나오신 것입니다. 성경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무슨 말이냐? 하나님도 결국 사랑하는 아들딸을 찾기 위해서 나오셨다는 겁니다. 그 사랑 때문에 지금까지 싸워 나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금후에 가야 할 길입니다. 우리 개인이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가정적인 사랑의 길을 찾기 위한 것이요, 가정을 희생시켜 가지고 종족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종족적 사랑의 길을 넓히기 위한 것이요, 종족을 희생시켜 민족을 구하는 것은 민족적 사랑의 길을 넓히기 위한 것이요, 민족을 희생시켜 세계를 구하는 것은 세계적 사랑의 길을 넓히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적 애(愛)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야 할 길이 금후에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우리 인류의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류는 본연의 자리에서 한없이 떨어져 버린 것을 자인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니 저희들은 참다운 인간의 모습을 다시 지녀 가지고 세상의 어떤 주의 주장을 다 거부하고 최후에는 아버님과 인간이 합한 사랑을 중심삼은 통일의 심정을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목적을 중심삼고 개인은 가정을 위하여, 가정은 종족을 위하여, 종족은 민족을 위하여, 민족은 국가를 위하여, 국가는 세계를 위하여, 보다 큰 것을 위해서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는 그러할 길을 거쳐 올라가지 않고는, 아버지의 놀라우신 사랑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니 저희들은 가정을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중심적인 자신이 되어야 하고, 종족을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중심적인 자신이 되어야 하고, 국가와 세계를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중심적인 자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님, 그러한 수난의 길, 수고의 길, 희생의 길을 앞을 다투어서 싸워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할진대는 아버님께서 지금까지 준비해 오던 수많은 복을 그들 앞에 상속해 주신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제 그 마음과 몸이 자기 스스로를 중심삼은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기의 욕망이 근거가 되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가 기도하였듯이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면서 가는 자신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신앙자로서 가야 할 길이요, 타락한 인간으로서 기필코 되돌아가야 할 운명길, 필연적인 행로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주장보다도 부모의 주장을, 부모의 주장보다도 족장의 주장을, 족장의 주장보다도 국가의 주권자의 주장을, 국가의 주권자의 주장보다도 세계의 주권자의 주장을, 세계의 주권자의 주장보다도 천주의 주권자이신 아버님의 주장을 따라가야 된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과 더불어 내 개인에 대해서 의논하고, 아버님과 더불어 내 가정에 대해서 의논하고, 아버님과 더불어 내 종족에 대해서 의논하고, 아버님과 더불어 내 민족에 대해서 의논하고, 아버님과 더불어 내 나라와 내세계에 대해서 의논할 수 있는 동시에 전체를 아버님과 결부시켜 받들어 섬기는 자리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길을 가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되돌아갈 수 없는 자신인 것을 확실히 알았사오니, 저희들은 희생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스스로를 부정해야 되겠사옵고, 모든 것을 아버님 앞에 바치고 가야 하겠사옵니다. 하오니, 그러한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은 나그네 신세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짐을 가지고는 못 가는 길이오니 보다 큰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바쳐 놓고 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인생으로서 가야 할 먼 복귀노정을 힘차게 달려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나를 위해 가는 길이 아니요. 나라와 세계를 위해 가는 길이오니, 이 엄청난 보람 있는 생활의 길을 힘차게 달려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목적을 위해 태어났고, 이러한 목적을 위해 살고, 이러한 목적을 위해 죽어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절개를 지킬 줄 아는 당신의 아들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아버지께서 같이 말씀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오며, 다시 만날 때까지 온전히 아버지의 경륜 가운데서 저희의 가고 오는 모든 것을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문선명선생말씀선집 제4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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